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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굴드] 판다의 엄지 2

Casey,Riley 2022. 10. 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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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장 다시 등장한 '희망적인 괴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압제자 위대한 형제(빅브라더)는
'인민의 적' 에마뉴엘 골드슈타인에 대해 매일 2분간 증오의 시간을 갖
는다. 1960년대 중엽 내가 대학원에서 진화생물학을 배우던 시절에 사
람들은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는 이야기가 나돌던 유명한 유전학자 리
처드 골드슈미트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조소하곤 했었다. 
  어느새 문제의 1984년이 되었건만 나는 이 세계가 빅브라더의 지배
하에 놓이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10년 안에 골드슈미트가 진화생물학계에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으리라고 
생각한다.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골드슈미트는 나머지
생애를 버클리에서 보내다가 1958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진화에
관한 그의 견해는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그 윤곽이 헝성되었
다. 그것은 오늘날 지배적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저 위대한 신다
윈주의 종합설neo-Darwinian synthesis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신다윈주의는 흔히 '진화의 종합설'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신다윈주의 이론이 집단 유전학 이론, 고전적 형태학, 계통 분류학, 발생학,
생물지리학, 그리고 고등생물학의 고전적 연구 등을 하나로 종합했기 때
문이었다. 
  이 종합설의 핵심 내용은 다윈 자신의 이론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두
가지 요소를 달리 말한 것뿐이다. 첫째, 진화란 2단계(원재료로서의 임
의적 변이와 방향을 지시하는 힘으로서의 자연 선택)로 이루어지는 과정
이며, 둘째, 진화적 변화는 일반적으로 완만하고 착실하고 점진적이며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실험실 속에서 초파리의 개체군을 병 속에 넣어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가 서서히 증가하는 모습을 연구한다. 그에 비해 박물학
자들은 영국 공업 지대의 매연이 수목을 검게 만드는 과정에서 점진적
으로 흰 나방이 검은 나방으로 교체되어가는 상태를 기록한다. 그리고
정통 신다윈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완만하고 연속적인 변화
가 생명의 역사에서 진행되는 가장 깊은 구조적 변화와 본질적으로 동
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조류는 감지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밖에 없는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 파충류와 연결되고, 똑같은 과정을 통해 턱을 갖는 어류는 
턱이 없는 원시 어류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대진화(몸의 구조에서 나타
나는 큰 변화)는 소진화(병 속의 초파리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연장에 
불과하다. 
  100년 정도가 걸려 흰 나방이 검은 나방으로 변할 수 있다면, 파충류는 
수많은 변화를 연속적, 순차적으로 거쳐 2-300만년 만에 조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지 개체군local population에 자주 일어나는 유전자 변화는 
모든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모형이 된다. 현대의 정통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생물학개론 교과서 가운데 가장 형편없는 어떤 책은
전통적인 견해를 옹호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규모가 큰 진화적 변화, 즉 대진화를 이러한 소진화적 변화의 결과
라 설명할 수 있을까? 조류는 정말 초파리의 딸기색 눈색깔 유전자
로 설명되는 유전자 교환이 거듭되어서 파충류로부터 파생된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훌륭하게 설명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화석 기록을 보면 대진
화가 실제로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들 개
인 병력의 내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수백 수천 가지 유전자
교환이 누적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은 수 없을 성도로 완만하게 진
행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많은 진화학자들은 소진화와 대진화의 완벽한 연결이 다윈주의를 구
성하는 본질적 요소의 하나이며 자연 선택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
다. 그렇지만 이미 17장에서 설명했듯이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자연 선
택과 점진론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서로 분리시켜 생각했고, 다윈에게
점진론에 지나치게 고리고 부당하게 구애된다면 자신의 전 체계를 스스
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갑작스런 이행을 보여주는 화석 기록은 점진적인 변화를 뒷받침하지 
않으며, 자연 선택의 원리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택은 빠른 
속도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이 억지로 
만들어낸 불필요한 요소가 종합설의 중심적 교의 가운데 하나로 굳어
버렸다. 
  골드슈미트가 소진화에 관한 모범적인 설명에 반기를 든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된 저서인 '진화의 물질적 기초'(1940년)의 전반부를 종
의 점진적, 연속적인 변화를 논의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종이 불연속적인 변이, 즉 대돌연변이(Macromulation, 구조 유
전자의 현현에 변화를 일으켜 유기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큰 돌연
변이/옮긴이)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나타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종합
설과 그 견해를 달리했다. 
  그는 대부분의 대돌연 변이는 비참한 재앙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을 인정했고, 따라서 그것들을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울러 골드
슈미트는 아주 드물게, 순전히 행운에 의해 어떤 대돌연 변이가 특정 
생물을 새로운 생활 양식에 적응하도록 한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그런 운좋은 돌연 변이가 발생한 생물을 '희망적인 괴물'이라고 
불렀다. 대진화는 이러한 희망적인 괴물들이 드물게 성공함으로써 진행
하는 것이고, 특정 개체군 속에서 작은 변화가 누적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종합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자신들 대신에 매맞을 희생양을 만
드는 과정에서 골드슈미트의 사상을 희화화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
다고 내가 골드슈미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
진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다윈주의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그의 주장에는 결코 찬동할 수 없다. 
  골드슈미트 역시 다윈주의의 본질-자연 선택이 진화를 좌우한다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굳이 점진적인 변화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헉슬리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주의자로서 나는 대진화가 단지 소진화의 연장이 아니며, 주요한
구조적 변화는 일련의 연속적인 중간 단계를 무수히 거치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격히 발생한다는 골드슈미트의 가정을 지지하고 싶다. 
나는 지금부터 세 가지 의문을 중심으로 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모든 대진화적인 사건에 대해 연속적 변화를 입증하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할 수 있는가?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2. 돌발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이론은 본질적으로 반다윈적인가? 
(나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3. 골드슈미트가 이야기하는 희망적인 괴물들은, 그에 대한 비판자들이 
이전부터 주장했듯이 반드시 다윈주의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다'이다)
  화석 기록에 중간적 단계를 보여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은 고생
물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요한 군(동식물 분류상의
단위.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옮긴이)이 다른 군으로 이행하는 경우
는 모두 갑작스럽게 이행한다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대개 점진론자들은 화석 기록이 지극히 불완전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 한다. 즉 무수히 작은 단계들 가운데 오직 한 단계
만이 화석으로 남는 데 성공했다면 지질학이 연속적인 변화를 기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반대하지만(그 이유에 
대해서는 17장에서 설명했다). 이런 식의 전형적인 발뺌을 너그러이 허용
하고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완만하고 연속적인 이행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하더라도, 
구조의 이행 과정에서 선조와 자손 사이의 매개 역할을 하는 일련의 
설득력 있는 형태, 즉 실제로 기능할 수 있고 생존 가능한 생물을 상정할 
수 있는가? 생존에 유리한 구조들이 아직 완전히 발전하지 않은 초기 
상태에 그것은 과연 어떤 용도가 있을까?
  가령, 절반만 생긴 턱이나 반쪽짜리 날개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전
적응(preadaptation, 어떤 형질이 장래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계
통적 변화를 미리 나타내는 것/옮긴이)'이라 불리는 개념에 따르면 초기
상태에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관점이 허용되기 때문에, 우리
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절반만 발생한 턱뼈는 턱살을 떠받치는 골격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고 있었을 것이며, 절반만 발생한 새의 날개는 먹이를 붙잡거나 
체온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전적응'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반드시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전적응으로 점진론을 변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 개념을 이용해 거의 혹은 모든 경우에 연속성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나의 상상력 부족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그러면 
내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최근 화제가 된 불연속적 변화의 두 가지 예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일찍이 도도(dodo,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하는 오리만한 새/옮긴이)
의 서식지로 알려진 외딴 섬 모리셔스Mauritius섬에 살고 있는 보아과
(비단뱀과 보아구렁이를 포함한다) 두 속의 보아뱀에게는 그 밖의 육생
척추 동물에게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턱에 있는 위턱뼈가 움직일 수 있는 관절로 이어진 앞부분과 뒷부분
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1970년에 내 친구 톰 프라제타가 '희망적인
괴물로부터 볼리에리아아과Bolyerine의 뱀으로'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전적응의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불연
속적 이행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였던 위턱뼈가 어떤 과정을 거쳐 둘로 분리된 것일까? 설치류 
가운데는 먹이를 저장하는 볼주머니cheek pouch를 가지고 있는 종류가 
많다. 좀더 많은 먹이를 입 속에 저장할 수 있도록 선택적인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에 입안쪽에 있던 볼주머니는 점차 인후에 직접 연결되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더쥐붙이쥐과(땅다람쥐가 여기에 속한다)와 주머니쥐과(캥거루
쥐와 주머니쥐가 여기에 속한다)의 동물들은 볼의 바깥쪽 표면이 깊게 팬 
결과, 볼주머니가 구강이나 인두로 이어지지 못하고 안쪽이 모피로 이루
어진 주머니가 얼굴 양쪽에 달리게 된다. 얼굴 바깥쪽에 움푹 들어간 
구멍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 완전하지 못한 구멍은 그 생물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었을까? 
  이 동물은 약간의 먹이를 불완전한 구멍 속에 넣고 그것을 한쪽 앞발로 
누르면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세발로 달려갔을까? 찰스 A. 롱은 최근 
전적응의 가능성(예를 들어 굴 파는 동물들 얼굴 양쪽에 흙을 나르는 데 
쓰는 구멍이 있었을 수 있다는 식의)을 몇 가지 생각한 끝에, 그러한 가정
은 불연속적 이행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했다. 
  진화적 박물학이 들려주는 '진짜이야기(just-so story, 어떤 사물의 
유래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어낸 이야기/옮긴이)'의 전통에 
속하는 이러한 사례들은 아무것도 입증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 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유사한 사례들의 무게 때문에 점진론에 
대한 내 믿음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다. 
  이보다 훨씬 더 창의력 있는 의견이라면 점진론을 구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듯 판에 박힌 억측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개념으로는 내게 아무런 설득력도 주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대진화에서 보이는 불연속적 이행 사례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면, 다윈주의는 단지 종 내에서의 작은 적응적 변화를 설명하는 이
론으로 축소되지 않을까?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진화적 변화
의 주된 창조력이라는 한마디 속에 들어 있다. 자연 선택이 부적자
를 제거하는 소극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생물체는 선택이라는 방법을 통해 유전적 변이의 스펙트럼 
속에서 매 단계마다 생존에 유리한 부분을 보존해간다. 그리고 자연 
선택은 무수한 단계를 밟아나가는 동안 여러 가지 적응구조를 형성
하면서 적자를 만들어낸다. 선택은 무언가 다른 힘이 완성된 새로운
종을 갑작스럽게 만들어낸 후에 부적자를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창
조의 과정 그 자체를 지배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불연속적 변화를 주장하는 비다윈적 이론을-(가끔씩)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곤 하는 깊고 갑작스런 유전적 변화를 중시하는-마음속
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식물학자 드 브리스는
금세기 초에 이러한 학설을 주창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수반된다고 생각된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네는 도대체 누구와 맺어지는 것일까. 
그녀의 친척은 모두 다른 종의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에 추한 
괴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아테나가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
일까? 전 유전 체계가 거의 다 붕괴한 결과 생존에 유리한 생물이
-아니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생물조차도-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약 120년 전에 헉슬리가 지적했듯이, 불연속적 변화를 설명하
는 모든 이론이 반드시 반다윈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성체의 형태에
서 나타나는 불연속적 변화가 작은 유전적 변화를 통해 발생한다고 가
정하자. 이 경우에 같은 종의 다른 구성원과의 부조화라는 문제는 생기
지 않는다. 또한 생존에 유리한 큰 변이는 다윈적인 방식에 따라 한 개
체군 속에서 확산될 수 있다. 
  이 큰 불연속적 변화가 갑자기 완성된 형태를 생성하지 않고, 그 
변화를 일으킨 개체를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이행시키는 '핵심 적
key adaptation'으로 작용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그 생물이 새로운 
방식으로 번성하기 위해서는 형태와 행동 양면에 걸쳐 광범위하게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 적응이 선택적인 
압력을 크게 바꾸면 그 밖의 부차적 변화들은 좀 더 일반적인 점진적인 
경로를 따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의 종합설 신봉자들은 '희망적인 괴물'이라는 골드슈미트의 캐치
프레이즈를 깊은 유전적 변형으로 인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비다윈적인 관점과 결부시킴으로써 골드슈미트를 골드슈타인으로 바
꿔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골드슈미트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성체 형태의 불연속성에 대해 설명하는 골드슈미트의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는 작은 유전적 잠재 변화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골드슈미트는 원래 배 발생을 연구한 학자였다. 그는 초기의 연구 
경력 대부분을 매미나방의 지리적 변이를 연구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매미나방 유충의 색채 패턴상의 커다란 차이가 발생 
시기의 작은 변화로 인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성장 과정 
초기에 색소 형성이 약간 지연되거나 너무 빨리 일어나면 그 영향이 
개체 발생의 진행 과정에서 증폭되고 다 자란 뒤에는 심각한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골드슈미트는 이러한 타이밍에서의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규명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큰 차이가 성장 초기에 작동하
는 하나 또는 소수의 '속도 유전자rate gene'의 작용을 반영한다는 사
실을 증명했다. 그는 1918에 속도 유전자라는 개념을 정리한 후, 20
년이 지나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돌연 변이 유전자는 발생을 구성하는 여러 과정의 속도를 변화시킴
으로써 ... 그 효과를 일으킨다. 그 속도란 성장이나 분화 속도, 분
화에 필요한 재료를 생산하는 속도, 일정한 발생 시기에 일정한 물
리적 또는 화학적 상태를 가져오는 반응 속도, 일정 시기마다 배
가 갖는 발생 능력 차이를 일으키는 여러 가지 과정의 속도 등이다.
  골드슈미트는 1940년에 발간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저서에서, 속도
유전자를 '희망적인 괴물'의 잠재적인 제조자로서 각별히 중요시했다.
"이 원칙은 요구되는 형태로 괴물성을 만들어내는 돌연 변이체의 존재, 
그리고 배 상태와 결정에 관한 지식에 의해 주어진다. 그것은 발생 과
정 초기에 속도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그 생물체의 상당 부분을 구체
화시킬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편견이 심한 내 개인적 견해에 따르면, 대진화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불연속성과 다윈주의를 조화시키는 문제는 발생 초기에 일어난 작은 변
화가 성장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 성체가 되면 커다란 차이를 야기한다
는 관점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가령 영장류의 뇌는 태어나기 전
에 급속히 성장한다. 
  만약 이런 원숭이 뇌의 성장 속도가 새끼 시절부터 계속된다면, 원숭
이의 뇌 크기는 인간의 뇌에 가까울 것이다. 멕시코 소치밀코 호수에 
있는 양서류인 아홀로틀(axolotl, 멕시코에 서식하는 도룡뇽의 유생/
옮긴이)은 변태의 시작이 늦으면 아가미를 가진 올챙이 형태로 번식
하기 시작하고 절대 도룡뇽으로 바뀌지 않는다(이 문제의 구체적인 
예는 졸저 '개체 발생과 계통 발생'(1977년, 하버드 대학 출판)을 참조
하기 바란다. 물론 독자들이 이런 뻔뻔스런 요구를 허용한다면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롱Long은 들쥐의 볼주머니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유전적으로 제어된 볼주머니의 역전은 발생 과정에서 일어나고, 여러 
차례 반복되다가 몇 개의 개체군에서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형태상의 변화는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을(즉 모피가 안쪽으로 들어
오게)'정도로 효과가 강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것은 비교적 단순한 발생학적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불연속적 이행이 발생 속도가 약간 변화해 일어난 것이
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진화적 변화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고도로 분화되고 명백한 특성을 갖는 '고등'
동물의 복잡한 성체만큼 저항성 강한 계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어떻
게 다 자란 코뿔소나 모기가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로 바뀔 수 있단 말
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인 군(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이 다
른 군으로 이행하는 사례는 생명 역사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다. 
  고전학자이며 빅토리아조의 산문 문장가이자 20세기 생물학의 입장에
서 보면 영광스러운 시대 착오자였던 다시 웬트워스 톰프슨은 '성장과
형태에 관하여'라는 고전적인 논문에서 이러한 괴로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하나의 기하학 곡선은, 그것이 속하는 군을 규정하는 기본 공식을
가지고 있다. ... 우리는 나선체를 타원체로, 또는 원을 빈도 곡선으
로 '변형'시키는 따위의 일은 절대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의 형
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단순하고 적절한 왜곡을 통해 특정한 무척추 동물을 
특정한 척추 동물로 변형시키는 일을 절대 할 수 없고, 강장 동물을 
환형 동물로 바꿀 수 없다. ... 자연물은 하나의 유형에서 다른 유형
으로 진행한다. ... 양자 간의 간격을 메우는 징검다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영원히 그리고 헛되이 계속된다. 
  톰프슨의 해결 방법은 골드슈미트와 같았다. 다시 말해 이행은 멀리
분화된 성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단순하고 유사한 유
생들 사이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불가사리를 생쥐로 변형시킬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극피 동
물과 원시 척추동물의 유생은 거의 흡사하다. 
  1984년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된 지 125주년이 되는 해여서
1959년의 100주년 이래 처음으로 축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제부터 얼마 동안 우리들의 '새로운 주장'이 독단론이 되지 않고 터무
없는 주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견고히 지켜져온 점진론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입장이 인기를 잃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연계에나
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의 다원성을 받아들이게 될지 모르겠다. 
  
      제19장 대용암 지대 논쟁
  일반인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의 첫 문장은 대개 사람들 사이에 널리 받
아들여지는 정설을 가장 순순한 형태, '그러나'로 시작되는 전문적인
서술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독단론으로 제시해서 사람들의 구
미를 돋우게 마련이다. 가령 미국국립공원이 작성한 치즈국립공원 자동
차 여행 안내서의 경우를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세계와 그 속에 포함된 삼라만상은 여러 가지 변화가 이어지는
연속적인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
는 변화들은 대부분 극히 미세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
한 채 끊임없이 지나쳐가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하
는 것들이며, 장기간에 걸쳐 그 영향력들이 누적되어 큰 변화를 일
으키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협곡의 절벽 밑에 서서 사암 표면을 손으로 
문질렀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러면 수백 개나 되는 모래알이 떨어져 
나올 겁니다. 그것은 하찮은 변화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런 
과정이 쌓이고 쌓여서 그 협곡이 형성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힘이 모래알을 떨구고 운반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과정이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기도 하지만(당신이 사암을 문지른 때
처럼), 보통은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이루어집니다. 충분히 긴 시
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모래알을 한 번에 수십 개씩 문질러 떨어뜨
리는 동작을 되풀이해서 산 하나를 무너뜨리거나 협곡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지질학 초급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팜플렛은 미세
한 변화가 축적된 결과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으로
협곡 바위벽을 문지르는 것은 협곡 자체가 생기는 속도를 보여주는 적
절한(아니 어쩌면 효과가 지나치게 큰) 예증인 셈이다. 지질학적 현상의
무진장한 원천, 즉 시간이 모든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 팜플렛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아치들
의 침식이 이루어진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접하게 된다. 우리는 '칩 오
프 더 올드 블록Chip Off the Old Block'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암반
위에 균형을 잡고 있던 커다란 바위가 1975년과 1976년 사이의 겨울에
마침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또한 장대한
스카이라인 아치Skyline Arch의 옛날과 오늘을 보여주는 사진에는 다
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아치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0년 말엽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무너져 떨어지면서 스카이
라인은 갑자기 그전의 두 배 크기가 된 것이다" 이 아치는 모래알들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
라, 이따금 돌연히 일어난 사태나 붕괴 등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팜플렛을 작성한 필자들은 점진론적인 정설에 너무나 충실하려던 
나머지 서문에 소개한 이론과 그들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구체적 사실 
사이에 모순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3부에 나는 점진론이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형성된
편견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고, 속도 개념 역시 하나가 아닌 복수적
인 것임을 이야기했다. 단속적 변화는 적어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이루어지는 축적만큼은 중요하다. 
  이 장에서는 한 지방에 대한 지질학적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주된 내용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독단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학자들이 자연계에서 검증할 수 있는 반론을 미리 배제
시킨다는 사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워싱턴 주 동부에는 화산으로 형성된 현무암이 광대한 지역에 걸쳐
퍼져 있다. 이 현무암 지대에는 빙하 시대 바람에 날려온 입자가 느슨
하게 쌓여 형성된 두꺼운 황토 퇴적층으로 덮여 있는 곳이 많다. 스포
캔 시와 남쪽의 스네이크 강, 그리고 서쪽의 컬럼비아 강으로 둘러싸인
이 지역에는 장대하고 길다란 수로들이 뻗쳐 있어 황토와 그 밑의 딱딱
한 현무암을 깍아내고 있다. 이 지방에서 '쿨리coulee'라 불리는 이 수
로들은 빙하가 녹은 물이 흘렀던 통로였던 것 같다. 
  이 쿨리들은 최후까지 남아 있던 빙하의 남단 부근에서 워싱턴 주 
동부에 있는 두 개의 큰 강으로 흘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수로 
대용암 지대'는-지질학자들은 이 지방 전체를 이렇게 부르고 있다-다음
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한편으로는 경외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
스러운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 이들 수로는 일찍이 그것들을 분리시켰던 높은 분수령을 가로질러
연결돼 있다. 수로의 깊이가 수백 피트에 달하니 이 정도 규모로 
수로가 서로 합쳐진다는 것은 막대한 양의 물이 분수령을 넘어 흘
렀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2. 과거 이 수로에 물이 가득 차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은
쿨리 양편 여러 지류들이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 다수의 현곡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현곡이란 현재의 본류 강바닥보다 높은 곳에서 
본류에 합쳐지는 지류 수로를 말한다).
  3. 쿨리를 형성하는 단단한 현무암이 깊게 패고 표면이 갈라져 있다.
이러한 침식은 온화하게 흐르는 하천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4. 대개 쿨리 가까운 곳에는 씻겨내리지 않은 황토가 여러 개의 언덕
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들은 그물코 모양으로 교차하는 거대한 물결 
가운데 솟아 있는 섬들과 흡사하게 배열돼 있다.
  5. 쿨리에는 하천성 현무암 자갈로 된 불연속적인 퇴적물이 있는데,
이것은 그 지방 것이 아닌 암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직후, 시카고의 지질학자인 J 할렌 브레츠는 당
시로서는 이단적인 내용으로 이 이상한 지형을 설명했다(여기서 조심해
야 할 것은 J 다음에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그가 불처럼 화낼지도 모르니까). 
  그는 이 유수로 용암 지대가 형성된 것은 빙하가 녹은 물로 일어난 
거대한 홍수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국지적인 격변이 
쿨리를 가득 채워 수백 피트 두께에 이르는 황토와 현무암을 깍아내고 
불과 며칠 후에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1923년에 발간한 주요 
논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빙하의 해빙수는 컬럼비아 고원의 3천 평방마일 이상에 걸쳐 범람해
황토와 침니의 피복을 벗겨냈다. 이 지역 중 2천 평방마일 이상의 면적
이 노출되었고, 침식된 암반 위로 새겨지듯이 수로가 형성되어 오늘날의
대용암 지대가 형성된 것이다. 또한 거의 1천 평방마일에 걸쳐 침식된 
현무암에서 나온 사력층 퇴적물이 남아 있다. 그것은 컬림비아 고원을 
휩쓸고 지나간 대홍수였다.
  브레츠의 가설은 지질학계에 커다란 소동까지는 아니지만 한 차례 파 
문을 일으켰다. 브레츠가 고립되면서도 자신의 대격변 가설을 완강하게 
변호한 데 대해 마지못해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에는 대부분
아무런 지지도 보내지 않았다. 미국지질탐사국으로 대표되는 기구들은
그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더 나은 제안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이 용암 
지대 지형이 갖는 특이한 성격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점진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 대격변적인 원인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도그마를 
고수했다. 브레츠의 홍수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일반론에 비추어 그의 이론을 단순히 배격한 것이다. 
  1927년 1월 12일, 브레츠는 용감하게도 호랑이 굴에 뛰어들었다. 워
싱턴의 코스모스 클럽에서 열린 연구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견해를 과
감하게 피력했던 것이다. 회의에는 지질탐사국 사람들도 다수 참가하고
있었다. 그 후 발간된 토론 결과를 조사해보면, 선험적인 점진론이 브
레츠가 냉담한 반응을 받도록 한 주된 원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러면 많은 반대자들의 논평 가운데 전형적인 몇 가지를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W. C. 올든은 이렇게 인정했다. "나처럼 이 고원을 실제로 조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그 현상에 대해 갑작스럽게 다른 설명을 가
하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계속했다. 
  "두 가지 큰 난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수로가 단기간에 걸쳐 
동시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이고, 둘째는 엄청난 양의 물이 흘렀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 그러나 만약 이 지형이 형성되는데 
그보다 적은 양의 물로도 충분하고, 더 긴 시간과 여러 차례의 홍수가 
반복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질 겁니다."
  금세기 들어 지질학계에서 점진론의 기수로 꼽히고 있는 제임스 길루
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긴 논평을 끝맺고 있다. "특정 시점에 실
제로 일어났던 홍수가 현재 컬럼비아 고원에서 일어나는 정도, 또는 그
두세 배 정도의 규모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얻어낸 증거로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E. T. 맥나이트는 사력층에 대해 또 다른 점진적인 대안을 제기했다. 
"저는 그 사력층이 컬럼비아 강이 전빙기, 빙하기, 후빙기에 걸쳐 이 지
역 동쪽으로부터 이동하면서 생성된 지극히 일반적인 하상퇴적물
이라고 생각합니다."
  G. R, 맨스필드는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그 정도로 엄청난 과정이
현무암에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나타냈다. 그 역시 좀더
부드럽고 완만한 설명을 제기했다. "그 용암 지대는 빙하가 녹은 물이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때로는 그 위치와 유출 장소를 바꿔가면서 흐름
과 고임의 과정을 계속 반복한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설명이 훨씬 설득
력 있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O. E. 마인저는 "이 지역의 침식 상태는 서술이 불가능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기괴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점진론자들의 설명을 용인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은 태곳적 컬럼비아 강의 정상적인 흐름을 가정하더
라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대담하게 자기 신념을 공언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 정도로 극단적인 가정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현재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후일
브레츠는 나중에 획득된 증거로 인해 호랑이 굴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이
다. 그 후 브레츠의 가설은 널리 알려져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지질학
자들이 대격변적인 홍수가 유수로 용암 지대를 조각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브레츠 자신이 이러한 대홍수를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를 발견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빙하가 스포캔까지 나아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어떻게 그 엄청난 양의 물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녹을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러한 돌발적인 해빙이 
일어난 메커니즘은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다른 방면에서 나왔다. 몬테나 주 서부
에 얼음 댐으로 막혀 있는 엄청난 크기의 빙하호가 있다는 증거가 지질
학자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이 호수는 빙하가 후퇴하면서 댐이 파괴되
는 과정에서 격변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 물의 방수로는 유수로 용암
지대에 곧바로 연결된다. 
  브레츠는 갑작스레 몰려든 엄청난 양의 물이 어디로부터 오는지에 대
해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수로가 새겨지는 과
정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진행된 것인지도 모른
다. 또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물길의 합류점이나 현곡 등은 모든 것을
휩쓸어갈 만한 강한 흐름이 아니라 온화한 흐름이 쿨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음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용암 지대를 촬영한 항공 사진이 최초로 공개되었을 때, 
지질학자들은 쿨리의 하상 일부 구역이 최대 높이 22피트, 길이 425
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하상 연흔(stream bed ripples, 얕은 물의 바닥에 
파도와 수류의 작용으로 마치 물결 모양처럼 생긴 무늬/옮긴이)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브레츠는 예일 대학의 블래더볼(bladderball, 예일 대학에서 거행되는 
전통 경기에 사용되는 거대한 고무 풍선/옮긴이)에 올라탄 한 마리 
개미에 견줄 만한 잘못된 척도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수십 년간 
그 연흔 위를 걸어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매우 정확하게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연흔은) 무성한 산쑥으로 덮혀 있는 지상에서는 식별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관찰이란 적절한 척도에서만 가능하다.
  수력 공학자들은 특정 하상에 존재하는 연흔의 크기와 형태를 조사함
으로써 그곳 물 흐름의 특징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V. R. 베이커는
그 용암 지대의 수로에서는 매초 최대 75만 2천 세제곱피트의 유량이
지났으리라 추측했다. 이 정도의 홍수라면 지름 36피트의 표석도
떠내려갈 정도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 취향대로 이 이야기를 삼류 소설처럼 끝맺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즉 눈먼 교조주의자들에게 억압된 명민한 주인공이 초
지 일관 지조를 지켜 당시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에 굴하지 않고 사실에
대한 충성심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인내심 강한 설득과 압도적인 입증을
통해 드디어 승리를 거둔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이것은 분명 타당하다. 점진론에 대한 선입견이 브레츠의 대격변설을 
처음부터 배격했지만, 결국은 브레츠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옳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쓴 논문의 원본을 읽은 후 나는 이 착한 사람 대 
나쁜 사람의 줄거리는 더 복잡한 상황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레츠의 논적들은 무지한 교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진론을 
선험적으로 받아들인 면도 있었지만, 브레츠가 처음으로 주장하고 
나섰던 대격변적인 홍수 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브레츠의 과학 연구 스타일은 그의 처음 
데이터로써는 자신의 논적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브레츠는 경험주의라는 고전적 전통에 따라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모험적인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야외에서 끈질기게 정보를 수집해야
만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이론적인 검토를 등한시했으며, 반대
자들이 제기했던 타당한 개념상의 의문, 즉 그 많은 물들은 과연 어디
에서 갑작스럽게 흘러 나왔는가라는 문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브레츠는 야외에서 얻은 침식의 증거를 끈기 있게 하나씩 하나씩 종
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설을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는 자기의 이론에 일관성을 주는 데에 결핍된 한 가지 항목, 즉 홍수의
수원을 찾는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홍수의 수원을 찾
으려면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추측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브레츠는 오로지 사실에만 의존하려 했던 것이다. 길루리가 그에게 
홍수의 수원이 없다는 문제를 지적했을 때 브레츠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수로 용암 지대에 대한 내 해석은 용암 지대의 여러 가지 현상 
자체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불완전한 학설이 반대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이유
는 무엇일까? 브레츠는 빙하의 남단이 갑자기 녹았다고 생각했지만, 어
떻게 그토록 급격히 해빙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는 학자는 한 사람도 없
었다(브레츠는 얼음 밑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길
루리의 반론에 부딪치자 곧바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브레츠가 고집스럽게 용암 지대에 머물고 있었을 때 엉뚱하게도 
몬태나주 서부에서 해답이 나왔다. 1880년대 이후에 나온 문헌 속에는 
미줄라 빙하호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호수를 
자신의 연구와 연관시키려 하지 않았고,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
시키고 있었다. 
  결국 그의 논적들이 옳았다. 지금도 그 정도로 많은 양의 얼음이 
어떻게 그처럼 빨리 녹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참가자들에 의해 공유된 이 전제는 틀린 것이었다. 물의 
근원은 (빙하가 아니라) 물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은 그것이
실제 일어났다는 증거가 아무리 많이 축적되더라도 정당히 평가되지 않
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메
커니즘이 필요하다. 
  대륙 이동설의 초기 지지자들도 브레츠가 경험한것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몇 개 대륙에서 발견되는 동물상과 암석이 
나타내는 증거는 오늘날 우리에게 압도적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륙 
이동설이 제기된 초기에는 대륙을 움직이는 힘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대륙 이동이라는 
개념이 수립된 것은 판구조론(plate tectonics, 지각 표층이 판 모양을 
이루고 움직인다는 이론/옮긴이)이 이동의 메커니즘을 제공한 뒤의 일
이었다. 
  게다가 브레츠의 반대자들은 브레츠 가설의 이단적 성격만을 문제 삼
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나름대로 몇 가지 구체적인 사실을 정리하
고 있었고,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의견이 옳았다. 처음에 브레츠가 홍수
가 단 한 차례 일어났다고 주장한 데 반해, 비판자들은 그 용암 지대가
단번에 형성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는 미줄라 호수가 빙하의 경계가 변동함에 따라 여러 
차례 그 형태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브레츠 자신도 마지막 
논문에서는 대격변적인 홍수가 모두 여덟 차례 단속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적들은 일시적인 확산을 보여주는 증거에서 점진적인 변화
를 추론했다는 점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격변적인 사건들 사이
에는 긴 휴지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레츠도 용암 지대의 형
성 원인을 단 한 차례의 대홍수로 돌렸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 
  나는 겉만 번드르르하고 내용이 없는 권위자보다는 잘못을 저지르더
라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적인 영웅 쪽을 더 좋아한다. 브레츠가 내 글
의 주제로 등장한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경직되고
제약된 독단론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브레츠가 독선적인 권위자들을
각성시키기까지 무려 1세기 동안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었던 것이다. 지
질학에서 점진론의 대부격인 찰스 라이엘은,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일어난다는 교의를 수립해서 감쪽같이 많은 사람들을 속
여왔다. 
  과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지질학자들은 시대를 넘어선 
자연 법칙의 보편성(균일성)을 중히 여겨야 한다고 한 그의 주장은
매우 옳았다. 그런 다음 그는 여러 가지 진행 과정의 속도에 관해 경험
적인 주장을 펼칠 때 똑같은 말(균일성)을 적용해, 변화는 완만하고 착
실하고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큰 결과는 작은 변화의 축적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칙의 균일성이 자연스러운 격변, 특히 국지적인 규모인 경
우에서도 예외인 것은 아니다. 아마도 어떤 불변의 법칙들이 드물게 일
어나는 돌발적이고 심오한 이변을 야기하는 데에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
다. 어쩌면 브레츠는 이런 유의 철학적 모호성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그런 생각을 도회지의 책상물림들이나
늘어놓는 얼빠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브레츠는 호라티우스 (Horace, 로마의 시인/옮긴이)의 
"Nullius addicfus jurare in verba magistri(나는 어떤 대가의 말에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라는 오래된 말을 모토로 삼아 살아갈 정도로 
독립심과 진취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 모토는 과학에 의해 자주지지
되기는 하지만 실행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즐거운 
후일담을 남기고 끝나게 된다. 
  첫째, 유수로 용암 지대는 대격변적인 홍수의 작용을 증명한다고 한 
브레츠의 가설은 그가 연구한 국지적 지역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풍부한 결실을 가져왔다. 서부 지방에서 다른 호수와 연결되어 있는 
몇몇 용암 지대가 발견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너빌 호수-그에 
비하면 유타 주에 있는 현재 그레이트 솔트 호수가 작은 웅덩이로 보일 
정도로 거대했던 그 선조격인 호수-가 중요하다. 
  그 밖에 도처에서 적용 사례가 발견되었다. 또한 브레츠는 화성 표면
에서 관찰되는 수로의 특징이 브레츠식의 대격변적인 홍수를 상상하면 
훌륭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성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 브레츠는 대륙 이동설이 망각 속에 묻혀 있는 동안 그린랜
드의 빙원에서 행방 불명된 알프레드 베게너와 같은 운명을 격지 않았
다. J 할렌 브레츠는 지금부저 60년 전에 독자적인 가설을 주창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
90세에 접어든 그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긍심
과 자기 만족에 차 있다. 1969년에 그는 워싱턴 주 동부의 유수로 용암
지대에 관한 반세기에 걸친 논쟁을 정리한 40쪽 분량의 논문을 발표했
다. 그는 그 글을 이런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국제 제4기 학회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Quaternary
Research(제4기는 신생대 마지막 기로서 홍적세와 충적세로 이루어진
250만 년 전에서 현재까지를 말한다/옮긴이)의 1965년 대회는 미국에
서 개최되었다. 당시 예정된 여러 차례의 야외 여행 가운데 하나로
워싱턴 주의 북부 로키 산맥과 컬럼비아 고원을 방문하는 코스가 있었
다. ... 그 여행은 ... 그랜드 쿨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퀸시 분지 일부와 
팔로우즈 스네이크 용암 지대 분수령 대부분 지역, 그리고 스네이크 
협곡의 거대한 홍수 퇴적물을 횡단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참가할 수 없었지만 다음날 '인사' 전보를 받았다. 그 전문은 
"지금은 우리들 모두가 대격변론자입니다"라는 구절로 끝이났다.
    후기  
  이 기사가 '내추럴 히스토리'지에 게재된 후 나는 그 사본을 브레츠
에게 보냈다. 그는1978년 10월 14일에 답장을 주었다. 
  친애하는 굴드 씨에게
  최근 제게 보내주신 편지는 대단히 기쁘게 받아 보았습니다. 제게
베풀어주신 이해에 대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저는 제 선구적인 대용암 지대 연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
고, 나아가 한층 더 발전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시
종 나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수십 년에 걸쳐 의심
이나 반론을 받았기 때문에 감각적인 무기력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후 6월에 있었던 빅토르 베이커의 필드 여행이 내게 준
또 한 차례의 놀라움으로 저는 다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럴 수
가! 저는 어느새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과정이나 사건에
관해 준권위자가 되어 있었던 겁니까?
  이제 저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무기력해져서(저
는 96세입니다). 과거에 제 자신이 개척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979년 11월에 열린 미국지질학회 연례 회의에서 이 분야 최고의 상
인 펜로즈 메달Penrose Medal이 J 할렌 브레츠에게 수여되었다. 
  
      제20장 쿼호그는 쿼호그
  일찍이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과학을 "상식을 체계화시킨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을 비롯해서 
그와 반대되는 생각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과학은
어떤 현상에 대한 '명백한' 해석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
며, 따라서 겉모습 뒷편에 숨어 있는 것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식과 유력한 이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반 법칙을 제시
한다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없다. 각 진영은 싸움에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의 쓴 맛을 보기도 해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식이 승리를 거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까닭은 일반적인 관점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
는 이론도 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론이란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과 상식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게 된 잘못은 진화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히 범해지는 것으로서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식적인 견해로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거시적 생물들의 세계가 우
리들이 종이라 부르는 '묶음package'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매우 당
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새의 관찰자나 나비의 수집가들은 모든 특정 지
역의 표본들이 실제로는 비전문가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학
명이 붙여진 불연속적인 단위들로 분리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때로는 이 묶음에 이름표가 붙지 않은 경우도 있고, 다른 묶음과 한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 상세히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매사추세츠의 조류나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투구벌레들은 숙달된 관찰자라면 누구라도 동일한 방식
으로 알아볼 수 있는 종들의 명백한 구성원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종류natural kinds'를 의미하는 종의 관념은 창조설에 
근거하는 다윈 이전 시대의 교의에 훌륭하게 부합한다. 예를 들어 루이 
아가시는 종을 신의 존엄성과 신의 메시지가 우리들에게 감지 가능하게 
구현된 신의 개별적 의지라고까지 주장했다. 아가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종이란) 신의 사고 방식을 나타내는 여러 범주들로서 신의 지혜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생물계를 불연속적인 여러 단위로 나누는 것이 끊임없는 변화
가 자연계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이라고 공언하는 진화론에 의해서 정당
화될 수 있을까? 다윈과 라마르크는 모두 이 문제와 씨름을 벌였지만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했다. 두 사람은 모두 종에 '자연의 종류'라
는 지위를 부여하기를 거부했다. 
  다윈은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는 앞으로 종이라는 것을 ... 단지 편
의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합으로 ...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전망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아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아낼 수 없는 종이라는 말의 본질에 대한 무익
한 탐구로부터 해방될 수는 있을 것이다." 
  라마르크 역시 불평을 늘어놓았다. "박물학자들은 지금까지 기재된 
엄청난 양의 종 일람표에도 성이 차지 않아서, 그 목록을 한층 더 늘리기 
위해 미묘한 차이나 사소한 특성 등을 잡아내 그 목록에 새로운 종을 
기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다윈과 라마르크 두 사람은 모두 수백에 달하는
종을 명명한 뛰어난 분류학자이기도 했다. 다윈은 따개비barnacles에
관한 네 권으로 이루어진 분류 전문서를 썼고, 라마르크는 화석 무척추
동물에 관해서 그 세 배에 달하는 책을 발간했다. 두 사람 모두 이론적
으로는 종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도, 일상적인 연구에서는 종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통적인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즉 끊
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계는 특정 순간의 형체만을 보면 정지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느린 속도로 변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생물 종의 일관성은 시간이 흘러 그 자손들로
서서히 변형되어감에 따라 사라져간다. 우리들은 단지 '여자가 낳은 사
람'에 관한 욥Job의 비탄을 떠올릴 따름이다. 
  "그는 저 꽃과 같이 떨어지고 ... 그림자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영속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라마르크와 다윈은 이 해결책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광범위한 화석을 연구해 현재 세계를 분석하는 데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해가는 연속물을 서로 다른 많은 종으로 나누는 
데에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전통적인 도피처로 피신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모든 의
미에서 종의 실재성을 부정한 생물학자들도 있었다. 필경 금세기 들어
가장 뛰어난 진화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J. B. S. 홀데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종의 개념은 우리들의 언어학적 습관과 신경학적 메커니즘에 재
한 양보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고생물학자는 1949년에 "종이란 ...
허구이고, 객관적 실재성을 갖지 않는 정신적 구축물에 불과하다"라고
단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오늘날 세계 어
느 곳에서든지 종이 분명히 식별된다는 의견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
고 있다. 대다수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간에 걸친 종의 실재성은 부
정하더라도 현시점에서의 실재성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종과 종분
화에 관한 연구의 제일인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종은 진화의 산물이
지 사람 머리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이어는 종이란 그 
역사와 각 구성원 사이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결과로 빚어 
지는 자연계의 '실재' 단위들이라고 주장한다.
  종은 일정한 지역 내에 살고 있으면서 일반적으로 작고 불연속적인
개체군 선조의 계통에서 가지쳐 나온다. 종은 그 구성원끼리는 서로 교
배할 수 있지만 다른 종의 구성원과는 교배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유전 프로그램을 발전시킴으로써 각기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수립한다.
동일 종의 구성원들은 공통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해 교배를 통한 상호
작용을 계속한다. 
  린네식 계층 구조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단위들은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것들은 다수 종의 집합이고 자연계에서 독자적인 실재성을
갖지 않기-그들은 서로 교배하지 않고 반드시 상호 작용을 할 필요도
없다-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상위를 차지하는 단위들-속, 과, 목, 
또는 그 이상의 단위-이 임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진화적 계통론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즉 인간과 돌고래를 같은 목에 
넣고. 침팬지를 다른 목에 넣는 식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식의 서열 매기기는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관행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계통론에 따르면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
이다. 그러나 이들을 우리와 같은 속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같은 
과의 다른 속에 넣을 것인가? 결국 종만이 자연계에서 유일한 객관적인 
분류 단위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마이어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홀데인을 따라야
하는가? 나 자신은 마이어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으며,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설득력 있는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마이어의 견해
를 강력하게 옹호하고 싶다. 반복 실험은 과학적 방법의 기초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계에서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다루
는 진화학자들은 그것을 실천한 기회를 좀처럼 잡기 어려운 것이 보통
이다. 
  그러나 이 경우 종이 고유한 문화적 행위 속에 담겨 있는 정신적, 
추상적 관념인지, 아니면 자연계의 '묶음'인지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각
민족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어떻게 여러 단위로 나
누는지 조사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린네식의 종으로 나누는 서
양 분류법과 비서양 지역의 여러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민속적 분륜
법' 을 비교해볼 수 있는 것이다. 
  비서양 지역에서의 분류법에 관한 문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것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린네의 종과 비서양 지역에서의
동식물 이름이 놀랄 정도로 잘 대응한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각기 다른 문화에 의해 같은 '묶음'이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
다고 민속적 분류법이 항상 린네의 종 목록 전체를 망라하고 있다는 주
장을 펼 생각은 없다. 
  어느 민족이든 사람들은 대개 중요하거나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진 
생물이 아니면 빠짐없이 분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뉴기
니아의 포레Fore 족은 모든 나비를 단지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곳의 
나비들은, 그들이 린네의 종보다 훨씬 자세히 분류하고 있는 조류만큼 
분명히 식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투구벌레들은 대부분 미국인의 민속
적 분류법에서는 각각의 명칭이 없는 반면에 메사추세츠 주의 새는 전
부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민속적 분류법이 상세한 분류를 시도한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린네의 분류 체계와 일치한다.
  지금까지 여러 생물학자들은 현장 연구를 계속하면서 이러한 현저한
대응성을 발견했다. 에른스트 마이어 자신도 뉴기니아에서의 경험을 이
렇게 쓰고 있다. "40년 전에 나는 뉴기니아의 산 속에서 파푸아 부족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다. 
  이 훌륭한 숲 거주자들은 내가 식별한 137종의 새 가운데 136종의 새에 
대해 고유한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식별하기 어려운 2종의 명금류 새에 
대해서만은 혼동을 일으켰다) ... 석기 시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구미의 대학에서 훈련을 받은 생물학자가 자연계의 실체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이라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에서 온 것임을 
분명히 증명해준다." 
  1966년, J. 타이아몬드는 뉴기니아의 포레 족에 관한 훨씬 더 광범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 서식하는 새의 모든 린네 종에 대해 
각각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가 7명의 포레 족 남자를 
그들이 결코 본 적이 없는 새가 살고 있는 다른 지방으로 데리고 가서 
신기한 각각의 새에 대해 가장 가까운 포레 명칭이 무엇인지 물은 결과, 
그들은 130종 가운데 91종을 서양의 린네식 분류 종에 가장 가까운 
포레식 종의 이름을 대었다.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포레 족의 조수 가운데 한 사람이 몸집이 크고 검고 날개가 짧은 지
상성 새를 붙잡았는데, 그 새는 나는 물론이고 조수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새였다. 내가 그 새의 유연 관계를 알지 못해 궁
금해하자 그 남자는 단번에 그 새가 '파테오베이에'라고 단언했다. 
  이것은 포레 족 정원의 나무 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몸집이 작고
갈색을 띤 아름다운 뻐꾸기 이름이다. 결국 이 신기한 새가 멘벡스
쿠컬(Menbek's coucal, 쿠컬은 두견새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이다/
옮긴이)이라 불리는 종류임을 알았지만, 이것은 뻐꾸기과의 변두리
쯤에 위치하는 구성원으로서 체형과 발의 특징, 그리고 부리의 형태
에서만 차이가 났을 뿐이다. 
  생물학자들이 실시한 이러한 비공식적인 연구는 최근 뛰어난 박물학
자이기도 한 인류학자들이 출간한 두 편의 상세한 논문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뉴기니아에 살고 있는 칼람Kalam 족의 척추 동물 분류에 관한
랄프 벌머의 연구와, 멕시코 치아파Chiapas 고원의 첼탈Tzeltal 인디언
의 식물 분류에 관한 브렌트 벌린의 연구(식물학자인 데니스 브리드러브,
피터 레이븐과 함께 연구했다)가 그것이다(나는 이 자리를 빌어 벌머의 연
구를 내게 소개해주시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러한 경향을 나타낸 여러 주
장을 가르쳐주신 에른스트 마이어 선생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예를 들어 칼람 족은 여러 종류의 개구리를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데, 그들이 사용하는 개구리의 명칭은 거의 대부분 린네 종과 일대일
대응을 한다. 간혹가다 같은 이름을 복수의 린네 종에 대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에도 그 차이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칼람 족 사람은 '구눔gunm'이라 불리는 
두 가지 다른 종을 그 겉모습과 서식지로 쉽게-각각에 대한 표준 명칭은
없지만-식별할 수 있었다. 때로는 칼람 족이 우리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힐라 베키'(Hyla becki, 청개구리속의 일종/옮긴이)라는
서양 학명으로 잘못 불리던 두 가지 종을 '카소지kasoj'와 '위트wyt'로
올바르게 식별했다. 
  근년 들어 벌머는 칼람 족 사람인 이안 사엠 마즈네프와 협력해서
'우리 칼람 나라의 새들'이라는 주목할 만한 책을 발간했다. 그 책에 따
르면 사엠이 정리한 명칭의 70퍼센트 이상이 서양 종과 일대일 대응
관계를 갖는다. 
  그 밖의 경우에 그 칼람 족 주민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린네 종을 
동일한 칼람 종으로 묶으면서도 서양식 구별을 인정하거나 또는 하나의 
서양 종에 속한 것을 각각 구별해내면서도 그것의 일체성을 파악하고 
있었다(예를 들어 극락조의 특정 종은 수컷만이 훌륭한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웅에 별개의 이름을 붙였다). 사엠은 단 하나의 
경우에서만 린네식의 명명법과 일치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서로 다른 종의 극락조 황갈색 암컷에 대해 같은 이름을 붙인
반면, 같은 종의 화려한 수컷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이와 같이 벌
머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개구리류, 그리고 어류 등에 걸친 총 174
종의 척추 동물 목록 가운데 겨우 4퍼센트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을 밝혀냈다. 
  한편 벨린, 브리드러브, 그리고 레이븐 세 사람은 1966년에 최초의
연구 성과를 발표해 민속 명칭과 린네 종이 일반적으로 일대일로 대응
한다는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우선 그들은 첼탈
어 식물명 가운데 고작 34퍼센트만이 린네 종과 대응한다는 사실을 내
세웠으며, 여러 가지 '잘못된 분류'는 각 문화권의 고유한 명칭 사용과
관행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들은 한 편의
매우 솔직한 논문에서 종전에 자신들이 주장했던 내용을 번복하고, 민
속 명칭과 린네의 학명이 밀접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연구 초기에 계층적인 질서를 갖는 첼탈의 언어 체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민속적민 기본 분류군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계층에 속하는 명칭들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벌린은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인류학적 선입견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음을 스스
로 인정했다. 여기에 그가 자신의 입장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글을 직접
인용하기로 하겠다. 그것은 그의 잘못을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
학자들이 좀처럼 실행하려 들지 않는 행위를 찬미하기 위해서다(성실한
과학자라면 누구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서 생각을 바꾼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분류법을 완전히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많은 인류학자들은 대개 이런 종류
의 발견을 받아들이기 꺼려한다. ... 내 동료와 나는 과거에 쓴 논문
속에서 '상대주의'적인 관점으로 주장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 글을 발표한 후 많은 자료를 조사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지금 이 
입장은 진지하게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민속적
분류법으로 인정되는 기본적인 분류 단위가 과학적으로 알려진 종과
긴밀히 대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그후 벨린, 브리드러브, 레이븐 세 사람은 '첼탈 족이 식물을 분류
하는 제 원리'라는 제목으로 첼탈 족의 분류법을 자세히 논한 책을 발
간했다. 그들이 펴낸 완벽한 목록에는 471개의 첼탈 어 명칭이 수록되
어 있다. 그 가운데 61퍼센트에 해당하는 281개의 명칭이 린네의 학명
과 일대일로 대응한다. 17개를 제외한 나머지 명칭은 모두 저자들이 이
야기하는 '불완전 분화underdifferentiated'된 명칭이다. 즉 이들 첼탈
명칭들은 복수의 린네 종을 지칭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용어들 가운데 2/3 이상이 기본적인 분류군 내에서 다시 
세분하기 위한 보조 명칭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이들 보조 명칭은 
모두 린네 종에 대응한다. 3.6퍼센트에 해당하는 17개의 명칭만이 린네 
종의 일부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어 '과분화overdifferentiated'를 나타낸다. 
  일곱 개의 린네종이 각기 두 개의 첼탈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종은 세 개의 첼탈 명칭을 가지고 있다. 흔히 호리병박이라 불리는 
'Lagenaria siceraria'가 그것이다. 첼탈 족은 호리병박을 실제 유용성을 
기준으로 구별하고 있다. 하나의 이름은 토르티야(tortilla, 멕시코의 
빵케이크의 일종. 옥수수 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펴서 철판이나 냄비에 
굽는다/옮긴이) 용기로 사용되는 크고 둥근 열매를 가리키며, 또 하나의 
이름은 액체를 붓는데 쓰기 좋게 만들어진 목이 긴 조롱박을 가리키며, 
세 번째 이름은 특별한 용도 없는 작은 타원형 열매를 가리킨다.
  또한 흥미로운 두 번째 일반성은 민속적 분류법에 대한 연구에서 나
온다. 생물학자들은 오직 종만이 자연계의 실질적인 단위이고, 분류학
상 종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는 명칭들은 종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결정을 말해준다고 주장한다(물론 이러한 분류는 진화적인
계통론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제약하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종으로 이루어진 군에 적용되는 명칭에 대해서 린네식의 학명과 일대일
대응을 기대해선 안 되며, 국지적인 사용법이나 각각의 문화에 뿌리내
린 다양한 체계를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민속적 분류법에 대한 연구에서 항상 발견되었다. 
여러 종으로 이루어진 군에는 몇 가지 진화 계통에 따라 따로따로 도달한 
기본적인 형태를 포함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첼탈 족은 수목, 
덩굴성 식물, 화본과에 속하는 풀, 그리고 잎이 넓은 초본 식물과 대략
적으로 일치하는 몇 가지 종으로 이루어진 군을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의 
호칭을 네 개 가지고 있다. 이들 명칭은 그들이 식별하는 식물 종류의 약 
75퍼센트에 적용된다. 한편 옥수수, 대나무, 용설란 등 그 밖의 식물들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몇 가지 종을 묶어서 군으로 분류하다 보면 문화가 갖는 미묘하면서
도 구석구석 퍼지는 특성이 잘 반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뉴기니아의 칼람 족은 파충류 이외의 네 발을 가진 척추 동물을 세 가
지 부류로 나누고 있다. 즉 쥐류는 '코파크kopyak', 진화적으로 이질
적이고 비교적 몸집이 크며 수렵의 대상이 되는 포유류-대개 유대류
와 설치류가 여기에 속한다-는 '쿰kmn', 그보다 더 이질적인 개구리
류와 소형 설치류를 '애스as'로 분류한다(벌머가 여러 차례 물어보니 칼
람 족은 '애스' 안에 개구리류와 설치류의 아 구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스'에 속하는 것들 가운데 몸집이 작고 털투성이인 
동물이 '쿰'에 속하는 설치류와 형태상 서로 유사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지 이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어떤 종류의 '쿰'은 주머니를 갖지만 다른 '쿰'은 갖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러한 분류법은 칼람 족 문화의 기본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코파크'는 배설물이나 인가 근처의 쓰레기 등 
불결한 것과 연관된다고 생각하여 식용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애스'는 주로 여자와 아이들이 채집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그것을 먹고 
몇몇은 채집하기도 하지만, 통과 의례를 거치는 소년들과 주술을 하는 성인 
남자들은 이 동물들은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다. '쿰'은 주로 남자들이 사냥
한다. 
  마찬가지로 새와 박쥐는 모두 '야크트yakt'라 불리며, 단 한 가지 몸
집이 크고 날지 못하는 화식조만이 예외로 '코브티kobty'라 불린다. 칼
람 족은 '코브티'에게도 새의 특징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니 이렇게
구별한 데에는 겉모습만이 아닌 더욱 깊고 복잡한 이유가 있다. 
  벌머의 주장에 따르면, 화식조는 삼림에서 최상급에 속하는 사냥감이며, 
칼람족은 타로 토란(taro, 토란의 일종/옮긴이)과 돼지로 대표되는 농경 
생활과 판다누스 열매와 화식조로 대표되는 숲속의 생활 사이에서 정교한
문화적 대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화식조는 신화에서 인간의
형제로 간주된다. 
  우리는 자신들의 민속적 분류법에서 이와 유사한 관습을 계속 유지하
고 있다. 식용 연체 동물 하면 '셀피시shelfish'라는 이름이 있지만, 린
네식의 종들은 똑같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 나는 뉴잉글랜드의 마닷가
에서 모든 이매패에 대해 비공식적인 학술 용어인 '클램'(clam, 대합조
개/옮긴이)이라는 단어로 명명했을 때, 그 고장의 어부(그에게 '클램'은
오직 우럭[Mya arenaria, 껍질이 얇은 달걀형의 식용 이매패/옮긴이]만을 지
칭하는 말이었다)로부터 "쿼호그는 쿼호그(quahog, 비늘백합속의 일종. 북미
대서양 연안에서 생산되는 대합류 식용 조개), 클램은 클램, 가리비는 가
리비!"라고 힐난을 받았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속적 분류법이 제시해주는 이러한 증거는 오늘날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생물을 린네 종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우리 모두에게 고정 배
선돼 있는 신경학적 정형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면(이런 주장은 흥미롭
기는 하지만 상당히 의심스럽다). 
  생물계는 어떤 근본적인 의미에서 진화로 인해 탄생한 불연속적인 묶음
으로 합당하게 나누어진다(물론 나는 어떻게든 사물을 분류하려고 하는 
인간 성향이 우선 우리들의 뇌와 그 뇌가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능력, 그
리고 복잡성에 질서가 부여되고 의미를 갖게되는 일정한 방법 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단지 생물
을 린네 종으로 분류하는 일정한 절차가 자연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들의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인식되는 린네 종은 그 순
간의 일시적인 형상, 즉 끊임없이 유동하며 진화 계통상 거칠 수밖에
없는 작은 간이역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미 17장과 18장에서
진화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종
은 특정 시점에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에 걸쳐 '실재성'을 갖는
다고 주장했다. 
  화석으로 남은 무척추 동물의 종들은 평균적으로 500만년 내지 1천만 
년 가량 존속한다(육생 척추 동물 종의 생존 기간은 평균적으로 이보다 
짧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자손 없이 멸종해간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종은 선조 종의 개체군 전체가 천천히 변형되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선조의 줄기에서 갑자기
작은 가지가 분리돼 나가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종분화의 빈도와
속도에 대한 저로 다른 견해는 근년 들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진화론
논쟁 가운데 하나며, 대다수 동료 학자들은 대부분의 종이 분열을 통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기간은 우리들 일상 생활과 비교해볼 때는 무척 긴 것으로 여
겨질지 모르지만,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두꺼운 지층에 걸쳐 연속적
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얇은 층 속에 화석 기록으로 나타
날 뿐이다. 그 정도의 기간이라면 지질학적 척도에서는 일순간과 같다
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종들이 수백 내지 수천 년에 걸쳐 나타나서
그 후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존속한다면, 그 종이 출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종의 존속 기간 전체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은 시간의 흐름에서 볼때에도 불연속인 실체로 
간주되어도 좋을 것이다. 더 높은 수준에서의 진화는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종 수준에서의 여러 가지 차등적인 번영에 대한 이야기이지 각 계통의 
느린 변형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지질학적인 일순간에 해당하는 탄생의 시기에 처
한 한 종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있다 해도 우리들은 그 종을 뚜렷이
식별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이 이런 상태에서 발견될 가
능성은 지극히 드물다. 
  종이라는 것은 처음 생성될 때에는 대단히 짧은 기간을 걸치고 불명료한 
상태에 있지만 일단 완전한 형성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매우 안정적인 
실체가 된다(반면 소멸할 때에는 그렇게 불명료하지 않다.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하지 않고 깨끗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
다). 과거에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파크는 다른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낮과 밤의 경계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빛과 어둠은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진화론은 유기체의 변화에 대한 이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
각하듯이 끊임없는 유동이 피할 수 없는 자연계의 상태라거나, 생물체
의 구조는 어느 한순간의 일시적인 구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이론
은 옳지 않다. 변화는 완만하고 일정한 속도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하나의 안정된 상태에서 다음의 안정된 상태로 빠르게 이행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금 조직화되고 적절히 구별화된 세계에 살고 있
다. 종이란 자연 형태론에 나타나는 하나의 단위인 것이다.   
  
    제6부 최초의 생물
      제21장 첫출발
  '티티푸의 그 무엇보다도 존귀한 귀족'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푸바
Pooh-Bah는 자신의 가문에 대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자부심
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뇌물을 쓰면 적절하긴 하지만 무척 비용이 많
이 들 것이라고 암시하면서 난키 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조가
원형질 속의 근원적인 원자 구체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자존심이 이 정도로 깊은 뿌리를 가졌다면, 1977년 말엽은 인
간의 자만이 매우 풍부한 결실을 맺은 시기였다. 1977년 11월 초, 남아
프리카에서 원핵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생명의 역사를 34
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했던 것이다(박테리아와 남조류를 포함하
는 원핵 생물은 모네라계Monera라는 분류군을 형성한다. 
  이들 생물의 세포에는 세포 기관, 즉 핵과 미토콘드리아가 모두 없기 
때문에 지구상의 생물들 가운데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간주된다). 2주일 
후에 일리노이 대학의 한 연구팀은 이른바 '메탄을 생성하는 박테리아'가 
다른 모네라류와 근연 관계를 갖지 않으며, 하나의 독자적인 '계(kingdom, 
분류의 최상 단계로 일반적으로 식물계, 동물계, 곰팡이계, 원생 생물계, 
원핵 생물계의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옮긴이)를 형성한다는 이론을 발표
했다.
  가령 진짜 모네라가 34억년 전에 이미 생존한 것이라면, 모네라와 새
롭게 '메타노겐methanogen'이라 명명된 이 미생물의 공통 선조가 존
재했던 연대는 이들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에
서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보이는 그린랜드 서부 이수아Isua 표층 지각
이 38억 년 전의 것이니 지구 표면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되고 나서 생명 자체가 등장하기까지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 걸렸을 것
으로 추측된다. 
  생명이란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확실한 것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즉 단순한 구성 성분을 가진 지구의 초기 대기에서 이 지구상에 가장 
정교한 조직을 광대한 시간에 걸쳐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구축해나가는 
데에 엄청난 시간이 요구되는 복잡한 사건과는 다르다. 
  생명은 매우 복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발생이 가능하게 되자마자 
급속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아마도 생명은 석영이나 장석의 출현이 불가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났을 것이다(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이지만, 처음 생성된 다음부터 계속해서 용융과 반용융의 상태를 
거치다가 아마도 그린랜드 서부의 연속 지층이 퇴적하기 조금 전에야 비로
소 단단한 지각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가 '뉴욕 
타임즈'의 제1면을 장식했고, '퇴역 군인의 날' (11월 11일)을 위한 사설을 
쓰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20년 전, 나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콜로라도 대학에서 여름을
지낸 적이 있었다. 여름에도 꼭대기가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나, 섣불리
빨리 걷도록 재촉하다가 성내게 만든 나귀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
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일은 조지 월드가 실시한 '생
명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강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정도로 강력한 매력과 열정을 발산하면서, 
195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해서 최근까지 정설로 군림하고 있는 생명계의 
전체상을 이야기해주었다.
  월드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자연 발생적인 기원은 지구의 대기와 
지각, 그리고 태양계에서 지구가 차지하는 위치와 크기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명이란 것
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화학 물질에서 생명
이 발생할 때까지에는 틀림없이 장구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주장한
다. 즉 그 후에 벌어지는 DNA 분자에서 고등한 딱정벌레-아니면 우
리의 주관적인 생명의 사다리에서 어떤 단계를 임의적으로 선택해도 무
방하다-에까지 이르는 진화 역사 전체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천에 달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모든 
단계는 그 이전의 단계를 필요로 하며 결코 그 자체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장구한 시간만이 그 결과를 보증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시간만이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피할 수 없는 일로 바꾸어내기 때문
이다. 
  내게 100만 년이라는 시간이 허용된다면, 동전을 100번 던져 100번 
모두 앞이 나오는 경우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있을 것이다. 월드는 
1954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실로 시간은 음모의 주역이다. 우리들이 
다루어야 할 시간은 20억 년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것이다. ... 그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고 가능한 것은 사실상 
거의 확실한 것이 된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 자체가 기적을 일으
키니까."
  이러한 정통적인 관점은 고생물학에서 얻어낸 직접적인 자료의 검증
없이도 이미 확고하게 굳어졌다. 6억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있
기 전의 화석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어찌할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
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초로 선캄브리아기의 생명계를 이야기해주는 명
백한 증거는 월드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세운 바로 그해에 발견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엘소 바그혼과 위스콘신 대학의 지질학자 
S.A. 타일러는 슈피리어 호 북안의 약 20억 년 전 암석인 군프린트Gun
flint층의 규산질 퇴적암에서 일련의 원핵 생물 화석을 발견한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군프린트 층과 지구의 기원 사이에는 아직도 25억 
년이라는 간격이 가로놓여 있었고, 25억 년이란 기간은 월드가 주장하듯이 
완만하고 착실한 구축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은 계속 고대로 거슬러 을
라간다. 스트로마톨라비트(stromatolite, 녹조류의 활동에 의해 생긴 박편
모양의 석회암/옮긴이)라 불리는 와층상 구조를 나타내는 탄산염 퇴적물이 
남로디지아의 26억 년에서 28억 년 전의 블라와요 통(Bulawayan series, 
통은 계의 하위 단위로서, 지질 시대의 세에 해당하는 지층을 가리킨다/
옮긴이) 암석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적층구조는 퇴적물을 고정시키는 오늘날의 남조류 매트에서 볼 수 
있는 패턴과 동일하다. 버그흔과 타일러가 군프린트 화석을 발견하자 선캄
브리아기 화석에 대한 믿음을 이단적으로 보던 당시까지의 잘못된 관점이
사라졌다. 그 후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생물의 기원이라는 견해가 널리 받아
들여졌다. 
  그 후 1967년에 바그혼과 J. W. 쇼프는 남아프리카의 피그 트리통에서 
'남조상' '박테리아상' 생물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로써 생명계
가 지구 역사 대부분의 기간을 통해 서서히 형성되었다는 정통적 사고 
방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67년 당시에 알려진 바로는 피그 트리통의 암석은 31억 년 이상 전의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쇼프와 버그흔은 라틴어 학명을 붙여 자신
들의 발견물에 위엄을 부여하려 했지만, 그 발견물 자체가 갖는 특성-남조
상과 박테리아상의 특징-은 그들이 품던 의구심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실제로 훗날 쇼프는 증거라는 저울이 이 구조물이 생물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34억 년 전에 이미 생명이 존재했었다는 최근의 뉴스는 전혀
새로운 발견이 아니었다. 피그 트리통에 나타난 생명계 상태에 관한 10
년에 걸친 논쟁이 필연적으로 도달한 하나의 정점에 지나지 않는다. 앤
드류 H. 놀과 버그흔이 최근에 얻어낸 증거도 피그 트리통의 규산질 퇴
적암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증거는 결정적인 것에 가깝다. 게다가 최근 확인된 
연대는 이 지층이 지금까지의 것보다 더욱 오래된 34억 년 전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피그 트리통의 규산질 퇴적암은 태곳적 생명체가 
발견되는 데 알맞은 가장 오래된 암석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오래된 
그린랜드의 암석은 열과 높은 압력으로 지나치게 변질돼 있기 때문에 
생물의 화석을 보존하기 힘들었다. 
  놀은 내게 아직 조사되지 않은 로디지아의 규산질 퇴적암 가운데는 
36억 년 전의 것도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열성적인 과학자라면 자신들의 난해한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느정도 탄탄한 지지를 얻을 때까지 정치적인 선언을 보류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생명체의 증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가장 오래된
암석 속에서 실제로 그런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생명이 완만하고
점진적인,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사고 방식을
버리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필경 생명은 지구가 생명체를 수양할 수 있
을 정도로 냉각되자마자 갑자기 발생했을 것이다. 
  피그 트리통에서 발견된 새로운 화석은 그전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
다. "더 새로운 연대의 암석에서 발견된 [그것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해초류의 미화석microfossil이라고 불렸을 것이다"라고 놀과 버그혼은
말했다. 이런 해석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논거를 바탕으로 한다
  1. 이 새로운 구조물은 현재의 원핵 생물의 크기 범위 내에 있다. 이
미 버그혼과 쇼프가 기술한 그전의 구조물은 매우 컸다. 후일 쇼프는 
그것의 생물성을 스스로 부인했다. 그것은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었다. 
평균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 (1마이크로미터는 100 만분의 1미터)인 
새롭게 발견된 화석의 평균 부피는 지금은 무생물로 간주되고 있는 그 
이전 구조물의 약 0.2퍼센트에 불과하다. 
  2. 현존하는 원핵 생물의 개체군들은 크기에서 특징적인 빈도 분포를
보여준다. 그 분포도는 전형적인 종 모양 곡선을 이루는데, 평균 지름이 
최빈값을 이루고 그보다 지름이 크거나 작아질수록 점차 수가 작아진다. 
따라서 원핵 생물의 개체군은 특징적인 평균 크기(앞에서 이야기한 가장 
높은 지점)를 가질 뿐 아니라 이 평균치를 중심으로 특징적인 변이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새롭게 발견된 미화석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1에서 4마이
크로미터까지) 훌륭한 종모양 분포를 보인다. 그에 비해 이전에 발견된 
더 컸던 구조물은 훨씬 폭넓은 변이를 나타내며 중요한 평균치도 없다. 
  3. 새롭게 발견된 구조물은 군프린트와 선캄브리아기 후기의 원핵 
생물과 놀랄 만큼 흡사해서, "어떤 것은 가늘고 길며, 다른 것은 납
작하고 주름이 져 있거나 접혀져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겉모습은 현존 원핵 생물이 죽은 후에 보여주는 변화의 특징에 
해당한다. 최초에 발견되었던 더 큰 구조물은 난처하게도 구형이었다. 
구는 표면적을 최소로 만드는 가장 표준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무생물적 과정에서도 쉽게 관찰될 수 있다. 가령 물방울을 보라.
  4.  이 네 번째 증거가 가장 설득력이 크다. 지금까지 새롭게 발견된
미화석의 약 1/4이 다양한 세포 분열 단계에서 발견되었다. 이처럼 세포 
분열이 한창 진행중인 상태에서 발견된 비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원핵 생물이 약 20분마다 분열하며 그 과정을 완료
하는 데 수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해주고 싶다. 따라서 하나의 세포가 
두 개의 딸세포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생애의 1/4을 사용한다고 생각
해도 좋을 것이다. 
  5. 형태를 바탕으로 한 지금까지의 네 가지 논거만으로도 내게는 충
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놀과 보그혼은 여기에도
만족하지 않고 생화학에 바탕을 둔 몇 가지 근거를 덧붙이고 있다. 
어떤 분자의 원소들이 다른 무게를 가진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위원소라 불리는 이러한 이형들은 같은 숫자의 
양성자를 갖지만 중성자의 수는 서로 다르다. 
  동위원소 중에는 방사능을 띠거나 다른 원소로 자연 발생적으로
붕괴하는 것도 있으며, 긴 지질 시대를 통해 변화하지 않고 존속할 
정도로 안정성이 뛰어난 것도 있다. 탄소에는 중요하게 생각되는 
안정된 동위원소가 두 종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각기 6개씩 갖는 
C12와 6개의 양성자와 7개의 중성자를 갖는 C13이 그것이다. 생물이 
광합성으로 탄소를 고정할 때에는 가벼운 동위원소 C12가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광합성으로 고정되는 탄소의 C12/C13의 비율은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와 같은 무기 탄소에서의 그것보다 크다. 
  더구나 이 두 가지 동위원소는 모두 안정적이기 때문에 그 비율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피그 트리통에서 발견된 탄소의 
C12/C13의 비율은 무기적인 기원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광합성을 
통해 고정되는 탄소의 범위내에 있다. 그렇다고 이 사실 자체가 피그 
트리 속에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증거는 아니다. 가벼운 탄소는 
다른 방법으로도 선택적으로 고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화학적
으로 얻어지는 이 추가적인 근거가 크기와 분포, 그리고 세포 분열 등의 
증거와 결합해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34억 년 전에 원핵 생물이 충분히 뿌리를 내렸다면,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더 과거를 향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야 하는 것일까? 이미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지구상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된 적당한(또는 적어도 사용 가능한) 암석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
에, 화석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삼는 한, 현재로서는 더 이
상 과거로 추적해 들어갈 수 없는 셈이다. 
  그 대신 우리들은 또 하나의 톱 기사감으로 주의를 돌리기로 하자. 
그것은 메타노겐(methanogen, 발생적으로 박테리아나 동식물 세포와는 
다른 메탄 생성 미생물/옮긴이)은 박테리아가 아니라 모네라(박테리아와 
남조류)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계'를 대표하는지도 모른다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그들의 보고서 내용은 크게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 
  특히 1977년 11월 11일자 '뉴욕 타임즈'의 사설은 가장 두드러진 경우
이다. 그 사설은 식물과 동물이라는 기본적인 2분법이 무너졌다고 선언
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생물이 동물이 아니면 식물이라는 식의
-포유류 동물이 모두 수컷과 암컷으로 나누어지는 것만큼이나-보편적인 
이분법을 배운다. 
  그런데 ... [지금 우리들은] 지구상에 '제3의 생물', 즉 동물도 식물도 
아닌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생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2분법'을 이미 오래 전에 폐기
시켰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단세포 생물을 그 동안 전통적으로 복잡한 
생명체로 인정돼온 이들 2대 집단에 포함시키려 하는 무모한 시도를 
벌이지 않는다. 
  요즈음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식물, 동물, 균류, 원생 생물(핵, 
미토콘드리아, 그 밖의 세포 기관을 갖춘 아메바와 짚신벌레를 포함하는 
단세포 진핵 생물), 그리고 원핵 생물인 모네라의 다섯 가지 계로 이루
어지는 분류 체계이다. 만약 메타노겐의 중요성이 조금 더 강조된다면 
제6의 계를 이루어 모네라계와 함께 '원핵 생물'이라는 '초계 super 
kingdom'를 구성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동물이냐 
식물이냐가 아니라 원핵 생물이냐 진핵 생물이냐의 구분이 생명계를 
나누는 가장 근본적인 칸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위즈 연구 집단(문헌 목록의 폭스Fox 및 기타 학자 참조)은 10
개의 메타노겐을 비교해서 사용한 3개의 모네라로부터 공통의 RNA를
분리해냈다(DNA가 RNA을 만들고, RNA는 단백질 합성의 원형이 된
다). DNA와 마찬가지로 한 가닥의 RNA는 연속되는 뉴클레오티드 효
소로 이루어진다. 
  네 개의 뉴클레오티드 가운데 어느 하나가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면,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지는 각 집단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결정
한다. 그리고 단백질은 서로 연결된 사슬 모양으로 배열된 아미노산으로 
완성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이 바로 '유전 암호'인 것이다. 오늘날 
생화학자들은 RNA의 염기 서열을 결정하는 단계, 즉 RNA 가닥에 각각
의 뉴클레오티드 배열 전체를 순차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원핵 생물(메타노겐, 박테리아, 그리고 남조류)은 최초의 생명이 탄생
할 즈음에 틀림없이 공통의 선조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핵 생물
은 모두 과거 어느 한 시점에 같은 RNA 염기 배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모두 원핵 생물 계통수의
줄기가 여러 갈래 가지로 갈라진 후에 이 공통 선조의 염기 서열에서
방산하여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분자 차원에서의 진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했다면, 현재 어느 두 
종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의 범위는 계통이 공통된 선조, 즉 두 종류가 
같은 RNA 배열을 공유하고 있는 가장 최근의 선조에서 각각 다른 모습
으로 분열하는 데 걸린 시간의 길이를 직접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두 종류의 생물이 동일한 상황에서 10퍼센트 차이를 갖는다면 
뉴클레오티드는 10억 년 전에 갈라져 나왔음을 말해주고, 그 차이가 20
퍼센트라면 20억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위즈와 그의 연구팀은 10종류의 메타노겐과 3종류의 모네라 사이에서
각각 한 쌍의 종을 선택해 RNA 차이를 측정함으로써 계통수를 세울
수 있었다. 이 계통수는 두 개의 큰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메타노
겐 전체, 다른 하나는 모네라 전체이다. 그들은 3종의 모네라를 그 집
단 가운데서 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선택했다. 예를 들어 대장균과 자
유 생활을 하는 남조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모네라 사이에는
모네라와 가장 흡사한 일부 메타노겐과의 유사점보다 더 커다란 유사성
을띠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얻어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해석은 메타노겐과 모네
라가 공통 선조로부터 분리해 나온 별개의 진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그전까지 메타노겐은 박테리아로 분류되었었다. 즉 이들은 통일성 있는 실
체로 인식되지 않았고, 각각의 메타노겐은 각기 독립적인 계통, 즉 메탄을
생성하는 능력을 향해 수렴 진화하는 각각 다른 계통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다). 
  이러한 해석은 메타노겐이 모네라와 다른 것이며, 제6의 계로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훌륭한 모네라가 34억 년 전 또는 더 
오래 전 피그 트리통 시대에 이미 진화한 것이라면, 메타노겐과 모네라의 
공통 선조는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기원은 지구 
자체의 시발점을 향해 더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위즈와 그의 연구팀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 단순한 사고 방식이 그들
의 연구 결과에 대한 유일 무이한 해석은 아니다. 우리는 그 해석과 똑
같은 정도로 그럴듯한 가설을 두 가지 더 세울 수 있다. 
  1.그들이 사용한 세 종의 모네라는 그 집단 전체를 충분히 대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모네라의 RNA 배열은 모든 메타노겐이 
서로 각기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3종의 모네라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메타노겐을 모든 모네라와 함께 단일한 대집단에 포함시킬 수 
없다. 
  2.진화 속도가 거의 일정했다는 가정이 그릇될 수도 있다. 어쩌면 메타
노겐은 모네라의 주류 집단이 공통의 선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훨씬 후에 
모네라의 어느 한 가지에서 파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초기
의 메타노겐은 서로 다른 것에서 갈라져 나올 때, 모네라의 각 집단이
갈라져 나오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메타노겐과 모네라의 RNA 배열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초기의 메타노겐이 빠른 속도로 진화했음을 기록할 뿐이지, 
모네라 자체가 그보다 작은 여러 하부 집단으로 분열하기 전에 모네라와 
메타노겐의 공통 선조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진화가 어느 정도 일정한 생화학적 속도로 진행되기만 하면, 생화학적인 차
이의 총량은 어느 시기에 갈라져 나왔는지를 정확히 기록해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위즈의 가설은 매력적인 면이 있고
강력하게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메타노겐이라는 생물은 혐기성
으로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메타노겐
은 산소를 남김없이 소모한 소택지 밑바닥이나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
있는 깊은 온천 바닥 등처럼 특이한 환경에서만 서식한다(메타노겐은 수
소를 산화시켜 이산화탄소를 메탄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통해 살아간다. 
메타노겐이라는 이름도 그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오늘날 초기 지구와 그 대기에 대한 연구에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일반적 합의에 도달한 내용이 있다. 최초의 
대기에는 산소가 없고 이산화탄소가 풍부했고, 이런 조건하에서 메타
노겐이 급속도로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으며, 그런 조건 때문에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메타노겐은 원래 지구 표면의 전반적인 조건에 부합하도록 
진화했지만, 그 후 대기 중에 산소가 증가하면서 지금 은 극히 제한된 
환경으로 몰리게 된 지구상 최초의 생물상일까? 우리는 현재 대기 중에 
있는 유리 산소free oxygen가 대부분 생물의 광합성 작용으로 인해 
생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피그 트리통의 생물은 이미 
활발하게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메타노겐의 황금 시대는 피그 
트리통의 모네라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이미 지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추측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생명은 피그 트리통의 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에 발생한 셈이 된다. 
  간단히 말해 지금 우리는 생명의 직접적인 증거를 가장 오래된 암석
속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상당히 확실한 추론에 따라 메타노겐
의 광범위한 생태적 분포는 광합성을 하는 이들 모네라류보다 먼저 일
어난 일이었다고 생각할 만했다. 필경 생명은 지구가 그것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냉각한 직후에 발생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 개인적 편견을 반영하고 있을 결론적인 생각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나는 주체 문제를 포함하지 않는 대주제인-이 점에서는 오직
신학만이 우리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우주 생물학의 열렬한 팬이
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상상해온 것 이상으로 생명이 지구와 같
은 크기, 위치, 구성을 갖는 행성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광
한다. 나는 지구의 생명계가 유일 무이하지 않다는 개념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다른 행성의 문명을 탐색
하는 데 한층 더 노력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여기에 해결되어야 할 어
려움은 무수히 많지만, 만약 긍정적인 결과가 얻어진다면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다. 
  둘째, 오늘날엔 신뢰를 잃긴 했지만 그전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던
주장, 즉 생명이 서서히 발생했다는 주장이 그처럼 강고하게 전체적 합
의를 얻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관점이 그만큼 합리적으로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이 책 이외의 여러 글에서 되풀이해 주장했듯이, 나는 과학이 진리를
향해 방향지어진 객관적인 기계가 절대 아니며, 열정과 갈망, 문화적
편견 등에 의해 영향받는 뭇 인간적 활동의 전형이라는 관점을 강력히
지지한다. 
  문화에 얽매인 사고의 전통은 과학 이론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특히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주제처럼) 상상이나 선입견을 
제약하는 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 때 억측이라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자신의 영역에 관해서 말하자면(17장, 18장 참조), 
나는 점진론이 "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결코 비약하지 않는다)
라는 오래된 모토를 통해 고생물학에 가해온 강력하고 불행한 영향력에 
대해 큰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 
  점진론, 즉 변화란 완만하고 착실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개념을 암
석에서 직접 판독할 수 있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그것은 공통된 문화적
편견이거나, 또 부분적으로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놓인 세계에 대한 19
세기 자유주의의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객관적이라 생
각되는 우리들의 생명 역사 읽기를 지속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점진론적인 가정을 통해서 생명의 기원에 관한 그 밖의 어
떠한 해석이 내려질 수 있을까? 지구의 원시 대기 성분에서 DNA 분자
까지에는 거쳐야 할 엄청난 단계가 가로놓여 있다. 그러므로 수십억 년
에 걸쳐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식으로 무수한 중간 단계를 건너
며 힘들게 진행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읽는 생명의 역사는 일련의 안정적인 상태들이고, 그 상
태들의 연속은 급속하게 발생하면서 다음 안정기를 수립하는 큰 사건들
에 의해 여기저기에서 단속되어punctuated 있다. 원핵 생물은 캄브리
아기의 '대폭발'이 있기까지 30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왔다. 이 대폭
발이 있기 천만 년 전후로 다세포 생물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 후 약 3억 7천 5백만 년이 지난 다음, 무척추 동물에 속하는 약 
절반 가량의 과가 수백만 년이라는 기간을 거치면서 멸종해버렸다. 지구
역사는 잘 변하지 않는 완고한 계가 하나의 안정된 상태에서 다음 안
정된 상태로 추진해가면서 이따금씩 맥동하는 일련의 움직임으로 모델
화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원소가 빅뱅big bang이 있었던 최초의 수분 동안 한꺼
번에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후 수십억 년의 기간은 이 대격
변적인 창조의 산물들을 개조해온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명은
그 정도로 급격하게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후 계속된 기간에
비한다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발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DNA의 뒤섞임과 진화 과정은 최초의 산물에 몇 차례 개
량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경외스러운 무언
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제22장 늙은 미치광이 랜돌프 커크패트릭
  악명을 남기지도 못한 채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괴짜에게 주어지
는 흔한 운명이다. 만약 이 책의 독자(해면 동물을 전공하는 전문 분류학
자가 아닌 독자)들 가운데 랜돌프 커크패트릭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척이나 놀랄 것이다. 
  표면적으로 커크패트릭이라는 사람은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언
행이 온화하고 헌신적이지만 얼마쯤은 편벽하다고 할 만한 전형적인 영
국인 박물학자였다. 
  그는 1886년부터 1927년 은퇴할 때까지 대영 박물관에서 '하등 무척추
동물의 부관리관으로 근무했다(나는 항상 간단 명료하고 정확한 어휘를 
사용하려는 영국인의 기호-예를 들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엘리베이터
elevator나 아파트먼트apartment라는 말 대신에 리프트lifs나 플랫flat을 
사용하는-에 감탄해왔다. 미국에서는 박물관 소장품 관리자를 부를 때 
라틴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서 큐레이터curator라고 부르지만, 영국인들은 
그냥 '키퍼keeper'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을을 나타내는 말로 영국인들이
 '오텀autumn'을 쓰는 데 비해 미국인들은 'fall'이라는 말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 걸음 앞선다). 
  커크패트릭은 처음에 의학으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지만 여러 차례 
질병과 씨름을 벌인 후 자연사의 세계에서 "그다지 격렬한 싸움을 요하지
않는 생애"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표본을 찾아 세계를 두루 여행
하면서 87세까지 수를 누렸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50년의 마지막 수개월 동안에도 그는 런던의 
번화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커크패트릭은 연구 생활 초기에 해면 동물에 대한 분류를 주제로 매
우 견실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간된
학술 잡지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후계자들은 추도
문에서 커크패트릭이 중도에 연구를 그만둔 원인은 '이상적인 관리자'
로서 행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극단적일 정도로 겸손하고 친절하고 관대했고, 동료와 외국에서 
온 교환 연구원들에게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연구를 완성
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도와주기 위해서라면 언제
라도 자신이 하던 일을 기꺼이 중단할 정도로 지나치게 친절했기 때문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그리고 전해지는
것처럼 전혀 오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1915년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발표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학술지가 게재를 거부
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자비로 출판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커크패트릭은 금세기에 한 전문 자연사학자(커크패트릭에 뒤지지 않을 
만큼 중후한 대영 박물관 관리관)이 발표했고 오늘날에는 완전히 상식
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학설 가운데서도 가장 주변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데 자신의 연구 생활 나머지 기간을 몽땅 쏟아 부은 것이다. 나는 그의
'화폐석 생물권(nummulosphere, 신생대 제3기에 속하는 고등 유공충의 
화석/옮긴이)' 이론에 가해지는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입장을 강하게 변호하고자 한다. 
  1912년, 커크패트릭은 모로코 서부 마데이라 군도에 속한 포르토 산
토 섬 앞바다에서 해면류를 채집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해발 1천 피
트 고도의 산 정상에서 주운 화산암 조각을 몇 개 그에게 가지고 왔다. 
커크패트릭은 훗날 자신의 대발견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그 암석들을 확대경으로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모든 암석
에서 원반형 화폐석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이튿날 나는 암석 파편이 발
견된 장소에 직접 가보았다."
  오늘날 화폐석은 지금까지 생존한 유공충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
려졌다(아메바와 근연 관계에 있든 단세포 생물로서 단단한 껍질이 있기
때문에 화석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화폐석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전과 비슷하다. 그 껍질은 지름이 1인치에서 2인치 정도 되는
평평한 원반이다. 이 원반은 일렬로 배열된 다수의 소실(동식물
체내에 있는 공동/옮긴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열은 전체적으로 소
용돌이 모양으로 단단하게 감겨진 형상을 이루고 있다(그래서 이 껍질은
동그랗게 감아놓은 밧줄을 그대로 축소한 모습처럼 보인다). 
  화폐석은 제3기 초기(약 5천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번성했었기 때문에 
이 생물의 껍질로만 이루어진 암석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암석을 '화폐석
석회암'이라고 부른다. 카이로 부근에는 화폐석이 지면에 흩어져 있는 지
역이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이 화폐석을 대피라미
드를 건설하던 노예들이 급식으로 먹다 남긴 렌즈콩이 석화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 후 커크패트릭은 마데이라로 돌아갔고 그곳의 화성암 속에서도 화
폐석을 '발견'했다. 지구의 구조에 관해서 이보다 더 과격한 주장은 상
상하기조차 힘들다. 화성암이란 화산 분화로 만들어지거나, 지구 내부
에서 녹았던 마그마가 냉각되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화성암에 화석이
들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커크패트릭은 마데이라와 포르토산토 화성암에 화폐석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화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렇
다면 '화성암'은 지구 내부에서 나온 용융된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저에 침전된 퇴적물이어야 하는 셈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거의 포르토 산토 섬 전체, 즉 건물, 포도즙 짜는 기구, 토양, 그 밖
의 대부분이 화폐석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나는 문득
'에오존 포르토산툼Eozoon portosantum'이라는 학명이 이 화석에 어
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조금 후에 에오존에 대한 설명이 나온
다. 그 뜻은 '여명의 동물'이다). 마데이라의 화성암 역시 화폐석
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에오존 아틀란
티쿰Eozoon atlanticum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 무엇도 커크패트릭를 제지할 수 없었다. 그는 세계 여러 지
방에서 채취된 화성암을 조사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황급히 런던으로
돌아왔다. 모두 화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날 아침, 나는 북극 지
방의 화산암을 에오존을 포함하는 암석에 추가했고, 같은 날 오후에는
태평양, 인도양, 그리고 대서양의 화산암을 그 목록에 덧붙였다. 자연
스럽게 에오존 오르비스-테라룸Eozoon orbis-terrarum이라는 명칭이 떠
올랐다." 마지막으로 운석을 조사한 후 그는 모든 것이 화폐석이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만약 에오존이 전세계를 손에 넣은 후, 정복할 더 넓은 세계를 찾지
못해 한숨을 쉬었다면 그 운명은 알렉산더 대왕을 능가하였을 것이
다. 왜냐하면 알렉산더 대왕과는 달리 그 갈망이 실현되었기 때문이
다. 화폐석의 제국이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
을 때, 마지막으로 그 학명을 에오존 우니베르숨Eozoon universum
으로 바꿀 필요가 분명해졌다. 
  커크패트릭은 명쾌한 결론, 즉 지구 표면에 있는 모든 암석(우주에서
날아온 것까지를 포함해서)이 화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 암석이 원래 생물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도 자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거기에서 유공
충의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구조가 대단히 명
료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커크패트릭은 저배율 확대경으로 화폐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
했지만, 지금까지 그의 주장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성암을 
비롯해서 그 밖의 모든 종류의 암석에 관한 내 견해에 사람들은 상당한 
의혹을 보내왔지만, 그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리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커크패트릭이 조금쯤 착각에 빠져 있
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권력 기구에 영합한 독단
론자로 배격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지키기 위해 상당
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앞에 얘기한
세부 사항들을 실제로 보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몇
시간씩 암석 파편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더라도 도대체 그는 지구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지각이 완
전히 화폐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에 도달하게 된 것일까? 커크패트릭
은 생명계와 역사 초기에 화폐석이 껍질을 갖춘 최초의 생물로 출현했
다고 주장했다. 그가 그 생물에 대해 에오존이라는 학명을 사용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커크패트릭은 캐나다 대지질학자인 J. W. 도슨이 1850년대에 
지구상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발견된 화석 생물에게 처음 붙인 이름을 
응용했다(오늘날 에오존은 흰 방해석과 녹색 사문석의 와층 무기 구조물로 
알려져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23장을 참조하라).
  커크패트릭은 생명 탄생의 초기에는 틀림없이 해저의 전 지역이 화폐
석 껍질로 두텁게 퇴적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왜냐하면 바
다에는 그것들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 내부
에서 발생한 열이 이것들을 녹여서 껍질 속으로 규토가 흘러 들어가게
하였다고 보았다(순수한 화폐석이 탄산칼슘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화성암
이 규산염인 것은 왜일까라는 골치 아픈 문제는 이 설명으로 해결된다). 
  화폐석이 압축되어 녹아내릴 때 그 일부는 윗쪽으로 밀려 올라가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었고, 이것들이 훗날 화폐석을 포함한 운석이 되어 지상
에 다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암석이 화석을 포함하는 것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되
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화석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암석에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셈
이다. ... 지각은 실제로는 규산질화된 단일한 화폐석권인 것이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지각이나 운석만으로 만족하
지 못한 그는 화폐석의 소용돌이 형태가 생명의 본질을 나타내며, 그
형태야말로 생명 자체의 구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
는 자신의 주장을 극한에까지 확대시켰다. 암석이 화폐석이라고 말해서
는 안 되며, 오히려 암석이나 화폐석, 그 밖의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생명 물질의 근본적인 구조' , 즉 모든 생존물의 나선 형태의 표현이라
고 말해야 온당하다고 주장했다.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필경 그랬을 것이다(만약 그가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직감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면 영감이 떠오른
것일까?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광기에 빠진 것일까? 역시 그랬을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커크패트릭은 화폐석 생물권
이론의 틀을 세우는 데에도 항상 자신의 과학적인 연구의 동기가 되었
던 순서에 충실히 따랐다. 
  그는 종합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 그리고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실들을 
하나로 결합하도록 하는 마치 충동과도 같은 상상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외형적으로 유사하다고 반드시 공통된 근원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진리를 무시하고, 그는 전통적으로 다른 범주로 
분류되어왔던 것들 사이에 나타나는 기하학적 형태의 유사성을 줄기차게 
찾아 헤맸다. 또한 그는 자신의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희망을 
기반으로 그러한 유사성을 구축한 것이다. 
  물론 이렇듯 종합하려는 경솔한 탐구로 인해 진지하게 접근하던 과학
자들이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던 진정한 관련성을 다시금 폭로할 수도
있다(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초의 착상
을 얻어 이러한 관련성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지만). 커크패트릭과 같은 과
학자들은 대개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마련이
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옳을 때에는 일반적인 학자들이 보통의 방법
으로 실행한 견실한 연구를 무력하게 할 정도로 그들의 통찰은 괄목할
만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커크패트릭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가 1912년에
운명적인 발견을 했을 때 왜 그가 마데이라와 포르토 산토에 있었는가
라는 물음을 제기해보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12년 9월, 나는
기묘한 해면 조류인 메를리아 노르마니merlia normani에 대한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마데이라를 지나 포르토 산토로 여행했다." 
  그 전해인 1900년에 J. J. 리스터라는 분류학자가 태평양의 리푸 섬과 
푸나푸티 섬에서 특이한 해면 동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규산질의 침골을 
갖고 있었고, 그 밖에도 산호의 일부 종과 놀랄 만큼 흡사한 석회질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침골이란 대부분의 해면 동물 골격을 구성하는 
작은 바늘 모양 구조물을 말한다).
  냉정한 판단력의 소유자였던 리스터는 규산과 방해석의 '잡종'을 용
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침골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해면 동물 속으
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은 더 많은 표본을 채집해서 해면 자체가 침골을
분비했다고 정확하게 결론지었다. 그 후 1910년에 커크패트릭은 마데이
라에서 메를리아 노르마니를 발견했다. 이것은 규산질 침골과 보조적인
석회질 골격을 가진 두 번째 해면 동물이었다. 
  이제 상황은 피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메를리아를 종합하고자 
하는 커그패트릭의 정열은 둑이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었다. 그는 
마침내 문제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석회질 골격이 보통 산호류로 분류되고 
있는 몇 개의 화석 집단, 특히 스트로마토포로이드 Stromatoporoia와 
카에테티드chaetetid류의 평편한 면을 가진 산호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사실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고생물학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에게 매우 중대한 관심사임을 
보증할 수 있다. 
  스트로마토포로이드와 카에테티드류는 화석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으로서, 
태곳적 일부 퇴적물에서 암초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이 차지하는 분류학
상의 위치는 고생물학에 있어 고전적인 수수께끼의 하나로 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그 연구에 평생을 바칠 정도였다).
  그런데 커크패트릭은 이들 두 군과 그 밖의 수수께끼 화석들이 모두 해
면 동물에 속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는 해면 동물과 유연 관계를
가진다는 확실한 징후로서 그 화석들 속에서 침골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것들은 모두 침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커크패트릭이 다시금 착각과 망상에 빠진 것도 
분명하다. 의문의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한 이끼벌레인 몬티쿨리포라속
까지도 자기식으로 '해면 동물'의 범주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어쨌든 
커크패트릭은 곧 자신의 화폐석 생물권설에 몰두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메를리아속Monticulipora에 대해 계획하던 주요 연구 성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화폐석 생물권이 그를 과학의 부랑아로 만들었고, 산호 모양의 
해면류에 관한 그의 연구는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커크패트릭은 화폐석을 연구할 때나 산호 모양 해면류를 연구할 때에
도 항상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즉 아무도 하나로 결합시키려 들지 않
았던 몇 가지 사실에서 공통의 근원을 추론해내기 위해 추상적인 기하
학적 형태의 유사성에 조소하고, 마지막에는 분명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조차 자신이 기대한 형태를 실제로 '보았을' 정도의 열정을
기울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연구 사
이에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차
이점이란 해면류에 관한 한 그의 입장이 옳았다는 것이다. 
  자메이카의 디스커버리 만 해양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토마스 고
로는 1960년대에 암초가 많은 서인도 제도의 신비스런 환경에 대한 조
사에 착수했다. 그곳의 갈라진 금과 틈새, 동굴 등은 지금까지 알려지
지 않은 중요한 동물상을 숨기고 있다.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제레미 잭
슨 그리고 윌라드 하르트만이 이 서식지에 무수한 '살아 있는 화석'들
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최근 20년 동안 이루어진 가장 흥미로운
동물학적 발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숨겨진 사회는 그보다 더 새로운 종류가 진화함에 따라, 문자 그대로 
그림자가 옅어진 하나의 생태계 전체를 남김없이 나타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생태계는 (우리들 눈에는)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구성
원들은 멸종하지도 않았고 희귀하지도 않다. 동굴이나 갈라진 틈의 안쪽 
표면은 오늘날 암초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단지 스쿠버 다이빙이 
등장할때까지 과학자들이 이러한 장소에 출입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이러한 숨겨진 동물상에는 두 가지 동물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완족류 동물과 커크패트릭이 발견한 산호 모양의 해면류가 그것
이다. 고로와 하르트만은 자메이카의 암초 앞쪽의 경사면에서 여섯 종
의 산호 모양 해면을 발견하고 기록했다. 이들 종은 경해면류Sclero-
spongiae라는 해면류의 새로운 강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연구를 진행
하는 과정에서 커크패트릭의 논문을 재발견했고, 산호 모양의 해면류와
수수께끼의 화석인 스트로마토포로이드와 카에테티드의 근연 관계에 관
한 그의 입장을 조사했다. 
  그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커크패트릭의 논고에 의해서 우리들은 앞에서 
기술한 산호 모양 해면류와 화석 기록으로 알려지는 몇 개의 군의 대표를 
비교하게 되었다." 그들은-내게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이들 
화석이 실제로 해면류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동물학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 
고생물학의 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다. 그런데 늙은 미치광이 랜돌프 
커크패트릭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커크패트릭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하르트만에게 편지를 썼을 때, 하르
트만은 해면류에 관한 커크패트릭의 분류학상의 연구는 매우 훌륭한 것
이니 화폐석 생물권에 대한 이론을 빌미로 그를 지나치게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충고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해면류 연구와 불가사의한 화폐석 생물권에 대한 연구 양 
측면에서 모두 커크패트릭을 존경한다. 어떤 사람의 동기를 이해하고자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한바탕 비웃음을 가지고 그것은 미친 학설이라고 
일축하기는 무척 쉽다. 화폐석 생물권 이론은 사실 미친 이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들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취한 방법을 진지하고 세심하게 
조사하는 노력을 통해 많은 보상을 얻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열정이 일관성
에 대한 타당한 인식과 주목할 만한 변칙적 가치를 갖지 않는 경우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식으로 드럼을 치는 특이한 드러머가
풍부한 결실을 맺는 새로운 템포를 치는 일이 자주 있으니까 말이다. 
  
      제23장 바티비우스와 에오존
  토마스 헨리 헉슬리가 "우리의 기쁨이자 즐거움"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극진히 사랑했던 아들을 성홍열로 잃었을 때, 찰스 킹즐리는 영혼의 불
멸성에 관해 긴 이야기를 해주며 그를 위로하려 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불가지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던 헉슬리
는 킹즐리가 자신을 걱정해준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들었지만, 그의 
위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절한 행동에 필요한 좌우명으로서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진 
한 유명한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임무는 사실을 자신
이 바라는 바에 따라 짜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바람이 사실과
일치하도록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 어린아이처럼 사실 앞에 겸허
하게 앉아 모든 선입견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자연이 이끄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깊은 낭떠러지라 하더라도 겸손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헉슬리의 기상은 고상하고 그의 고뇌는 애처롭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격언을 실행하지 않았다. 요컨대 창조적인 과학자들 가운데는 이 모토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뛰어난 사상가는 사실을 눈앞에 두고 결코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다. 그들은 자연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겸손하게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 나름의 바람과 직관을 가지고 있어 그
관점에 따라 세계를 구성하려고 열심히 시도한다. 걸출한 사상가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저지른 실수들 목록에서 특히나 이채로운 
일역을 담당했다. 이론적으로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된 가상의 동물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에 볼테르는 "만약 신이 없다면, 신을 만들어내기
라도 해야 할 것이다"라고 빈정거린 것은 이에 대해 정곡을 찌른 표현
이었다. 
  실제로 서로 관련되고 교차하는 두 종류의 공상적인 괴물Chimera이
진화론이 등장한 지 불과 얼마 안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종
류와 괴물은 다윈주의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두 종류의 괴물 가운데 하나에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이
름을 붙여주었다.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에게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는 별문제가 되지 않
는다. 그들은 신이 생물을 암석이나 화학 물질보다 분명히 진보하고 뚜
렷한 차이를 갖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진화론자
들은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독일에서 다윈 이론이 지지를 받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며 
초기 진화론자들 가운데 가장 사변적이고 공상적인 인물이었던 에른스트 
헤켈은 진화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공백을 메울 만한 가상의 생물을 상상
했다. 하등생물인 아메바는 최초의 생명체 모형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그 
내부가 핵이나 세포질로 분화했다는 사실은 원시 무정형성으로부터 이미 
상당히 진전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켈은 조직되지 않은 원형질만으로 이루어진 하등 생물인 
'모네라'라는 유기체의 존재 가능성을 주장했다(어떤 의미에서 그는 
옳았다. 오늘날 우리는 핵이나 미토콘드리아를 갖지 않은 생물-물론 
헤켈적인 의미에서는 무정형이라고까지 말할 수 는 없지만-, 즉 박테
리아와 남조류로 이루어진 집단에 그가 만든 명칭을 붙여 '모네라계'
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헤켈은 자신이 상상한 모네라를 "완전히 균질하고 구조가 없는 물질
이고, 영양과 생식이 가능한 알부민(albumin, 단백질의 일종/옮긴이)으로 
이루어지는 입자"라고 정의했다. 그는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 지대에 위치
하는 존재로 모네라를 든 것이다. 그는 무기물로부터 생명이 발생한다는 
골치 아픈 문제가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진화론자에게는 가장 복잡한 화학 물질과 가장 단순한 생물 사이에 
가로놓인 커다란 간격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며, 역으로 창조설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강력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헤켈은 이렇게 쓰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세포는 이미 두 가지 다른 부분, 즉 핵과 
세포질의 분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자연 발생적으로 직접 
만들어 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모네라처럼 구조되지 않은 알
부민 몸체와 같이 완전히 균질한 유기 물질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훨씬 납득하기 쉽다."
  그러한 이유로 1860년대에 다윈 지지자들이 해결해야 할 우선 사항은
모네라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따라서 모네라는 무구조적일수록, 그리고 
더 많이 흩어져 있을수록 더 바람직했다. 헉슬리는 킹즐리에게, 자신은 
몇 가지 사실을 추적해서 무정형의 심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비유적
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1868년에 정작 그가 진짜 심연을 조사할 때 그를 이끈 것은
[사실이 아니라] 희망과 기대였다. 그는 그보다 10년 전에 아일랜드 북
서부 해저에서 끌어올린 침니 표본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표본 
속에서 초보 단계의 불완전한 젤라틴 물질을 찾아냈다. 그 속에는 코콜
리스(coccolith, 백악이나 심연의 연니 중에서 발견되는 석회석의 작은 
조각/옮긴이)라 불리는 원반 모양의 작은 석회질 판이 파묻혀 있었다. 
  헉슬리는 이 젤리 물질을 그 동안 예견만 되왔을 뿐 실제로 찾아낼 수
없었던 무구조의 모네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콜리스를 모네라의 원시 
골격이라고 판단했다(오늘날 코콜리스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다. 그것은 
해초류의 골격 파편으로서 플랑크톤 을 생산하던 기관이 죽자 곧 해저에 
가라앉아 형성된 것이었다). 
  그는 모네라의 존재를 예견한 헤켈을 기리기 위해 그것을 '바티비우스 
헤켈Bgthybius Haekelii'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헤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귀하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대자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자 헤켈은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
각한다"는 답장을 보냈고, 당시 자신이 쓴 노트를 "모네라, 만세!"라는
구절로 끝냈다. 
  미리 예견되왔던 것의 발견만큼 크게 설득력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바티비우스는 도처에서 나타났다. 찰스 위빌 톰슨 경은 대서양의 심해
저에서 끌어올린 표본을 조사한 뒤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진흙은 정
말 살아 있었다. 그것은 계란의 흰자위가 엉긴 것처럼 덩어리져 있었다. 
그 흰자위 비슷하게 생긴 덩어리를 현미경으로 조사해보니 살아 있는 
원형질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헉슬리 교수는 ... 그것에 바티비우스
라는 이름을 붙였다."(덧붙여 말하자면 원형질이란 단세포 원생 동물의 
군이다) 
  헤켈은 평소의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해 이 사실을 즉각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저(5천 피트까지) 전체가 살아 있는 바티비우스의 
맥동하는 막으로 덮여 있고, 청년 시절 헤켈의 우상이었던 낭만적인 
자연 철학자들(괴테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이 이야기하는 '원점액
Urschleim'으로 덮여 있다고 추정했다. 
  헉슬리는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 1870년에 행한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바티비우스는 해저에 살아 있는 얇은 막을 형성해 수천 
평방마일에 걸쳐 퍼져 있습니다. ... 필경 그것은 지구의 전 표면을 둘러
싸면서 살아 있는 물질의 연속된 얇은 층을 형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티비우스는 공간적으로 더 이상 확장시킬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인 시간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
정에서 우리가 다루려는 두 번째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때를 만난 또 하나의 생물은 '에오존 카나덴세Eozoon canadense'이다. 
이 말은 '캐나다에서 기원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다윈에게 화석 기록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고민거리였다. 모든 복잡한 동물의 
설계가 지구 역사의 기원에 가까운 시기가 아니라 지구 역사의 5/6이상이 
지난 후인 이른바 캄브리아기의 대폭발 시기에 동시적으로 생겨났다는 
사실만큼 그를 난처하게 만든 것도 없었다. 
  학문적으로 그와 다른 견해를 가졌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창조의 순간
이라고 해석했다. 캄브리아기 이전에 생명체가 살아간 궤적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시점에서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늘
날에는 새로이 발굴된 태곳적 암석으로부터 광범위한 모네라류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21장 참조), 따라서 선캄브리아기의 화석 생물만큼 학자
들에게 설레임을 주며 환영받은 것도 없었다. 또한 단순하고 무정형일수록 
더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1858년에 캐나다 지질조사국에서 일하던 한 채집원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기묘한 것들을 몇 가지 찾아냈다. 그것들은 사문석
(주성분은 규산염)과 탄산칼슘이 동심원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는 얇은 층
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조사국장인 월리엄 로건 경은 그것이 화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지지하는 답은 거의 얻지 못했다.
  로건은 1864년에 오타와 인근 지역에서 더 좋은 표본을 몇 개 발견했
다. 그는 그 표본들을 당시 캐나다의 저명한 고생물학자이자 맥길 대학
학장이었던 J. 월리엄 도슨에게 가지고 갔다. 도슨은 방해석 속에서 일
종의 도관 체계를 포함하는 '유기적인' 구조를 발견했다. 동심원 모양으로 
층을 이룬 이 구조에 대해, 그는 현존하는 같은 종류와 비교해 다소 
산만한 구조를 띠기는 하지만 지금 것보다 수백 배나 더 큰 거대 유공충의 
골격일 것이라고 판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에오존 카나덴세' 라고 
명명했다. 
  다윈은 이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 "그것이 생물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는 그의 확고한 찬사와 함께 에오존의 이
름은 '종의 기원' 제4판에 수록되었다(공교롭게도 도슨 자신은 충실한 창
조론자였고, 아마도 진화론에 맞서서 마지막까지 저항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훗날 1897년에 그는 '원시 생명의 유물'이라는 에오존
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 거기에서 그는 단순한 구조를 지닌 유공충류가 
긴 지질 시대 동안 계속 생존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연 선택설에 대한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생존 투쟁이 있었다면, 이러한 
저급한 생물은 더 고급한 생물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티비우스와 에오존은 하나로 결합될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
어졌다. 이들은 무정형성이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에
오존이 분명한 골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바티비우스와 차이가 날
뿐이다. 에오존이 그 껍질을 잃고 바티비우스가 되었거나, 아니면 이들
두 종류의 원시 생물이 서로 가까운 유연 관계를 맺으며 생존했던가 
어느 한쪽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생리학자였던 W. B. 카펜터는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티비우스가 ... 스스로 조개 껍질 모양의 외피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 외피는 에오존의 그것과 아주 흡사했을 것이다. 더욱이 헉슬리 교수가 
깊이뿐 아니라 온도의 측면에서도 매우 폭넓게 바티비우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듯이, 모든 지질 시대에 걸쳐 심해저에 그것이 계속 생존
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나는 에오존과 바티비우스가 모두 
전 지질학적 시대에 걸쳐 생존을 계속해왔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진화론자들을 흥분시키는 하나의 환상이었다!
예상했던 무정형의 유기체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유기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신비로운 태곳적 해저를 뒤덮고 있었다. 
이들 두 생물이 멸종한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일찍이 어떠한
과거 문헌에서도 옹호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편견을 지적하고 넘어가겠
다. 즉 이 논쟁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은 가장 원시적인 생물은 균질하고 
무정형이고 산만하고 일정한 체제를 갖지 않았을 것이라는 '명백한'
진리를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카펜터는 바티비우스를 두고 "그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해면류보
다 더 저급한 유형"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헤켈은 "여기에서 원형질은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거의 명확
한 형태를 띠지 않고 아직까지는 개체화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단언
했다. 
  헉슬리에 따르면, 세포핵과 같은 내적 복잡성을 갖지 않는 생물은 
유기체의 조직이 무한의 생명력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 역의
경우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헉슬리는 바
티비우스가 "핵 속에 아무런 신비로운 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
한 생명은 생체 물질의 여러 가지 분자가 나타내는 속성이며 신체 조직
은 생명의 결과일 뿐 생명이 신체 조직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들을 고려할 때, 왜 우리는 무정형과 원시성을 같
은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오늘날의 생물들은 이러한 사고 방식을 뒷
받침해주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형태의 규칙성과 반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선 적합치 않다. 가장 단순한 박테리아도 일정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무조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아메바를 포함하는 
분류군에는 모든 규칙적인 생물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잡하게 
조각된 방산충류Radiolaria도 포함돼 있다. DNA는 조직화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왓슨과 크릭은 아주 정교한 팅커토이(Tinkertoy, 집짓기 
모형의 상표명/옮긴이) 집짓기 모형과 같은 것을 만들어 모든 부분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DNA구조를 밝혀냈다. 
  그렇지만 나는 규칙적인 형태가 신체 모든 구조의 기반을 이룬다는 
신비주의적인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역설할 생각은 없다. 또한 원시성과 
무정형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관념의 뿌리를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진보주의자들의 은유에-즉 생명계의 역사를 무에서 시작되어, 단순성
에서 복잡성을 향한 무수한 단계를 거쳐 필연적으로 인간 자신의 고귀한 
형태에 도달하는 사다리라고 보는 사고 방식-기원한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자부심을 갖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윤곽을 그리는 토대로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간에 바티비우스든 에오존이든 그 어느 것도 빅토리아 여왕보
다 오래 살지는 못했다. 바티비우스를 "실제로 살아 있는 ... 흰자위와
같은 덩어리"라고 말한 찰스 위빌 톰슨 경은 1870년대에 챌린저 호에
의해 이루어진 해양 조사의 수석 과학자가 되었다. 이 조사는 전세계
해양에 관한 과학적인 조사 항해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었다. 챌린
저 호의 연구원들은 깊은 해저 진흙 속에 들어 있는 신선한 표본에서
바티비우스를 찾아내려고 여러 차례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후일의 분석을 위해 진흙 표본을 보존할 때 대개 유기물을 
고정할 목적으로 알코올을 섞어놓곤 했다. 헉슬리가 처음 찾아낸 바티비
우스는 10년 이상 알코올로 보존되어온 표본 속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그
런데 챌린저 호의 조사원 가운데 한 사람이 신선한 진흙 표본에 알코올을 
가할 때마다 바티비우스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사단에 
속해 있던 한 화학자가 바티비우스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바티비우스는 진흙이 알코올과 반응을 일으켜 발생하는 황산
칼슘의 글로이드성 침전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톰슨은 
헉슬리에게 편지를 썼고, 헉슬리는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그의 표현대로 굴욕을 감내했다). 헤켈은 헉슬리보다 좀더 완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티비우스는 조용히 퇴색해갔다. 
  이와 반대로 에오존은 좀더 오랫동안 생명을 부지했다. 도슨은 지금
까지 과학자가 쓴 것 가운데 가장 신랄한 평론을 몇 편 썼다. 그 글들을
통해 그는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에오존을 고수한 셈이다. 
  한 독일의 비판자에 대해 그는 1897년에 이렇게 평하고 있다. "추는 
모비우스가 독자적이지만 다소 제한된 관점에서 최선을 다해 논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성이나 적절함과는 거리가 먼 
논문을 과학적 자료로 발표하고 발간한다는 것은 과학이 간단히 용서
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특히 모비우스의 글을 실은 독일의 잡지 편집자
들의 경우-하나의 범죄 행위라고 본다." 도슨은 당시에도 고독한 저항을 
계속 하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일 커크패트릭은 더 기묘한 
형태로 에오존을 부활시켰다. 22장 참조).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모두 에오존이 무기물이라는 데-높은 열과 압력에 
의한 변성 작용의 산물-의견을 같이했다. 실제로 에오존은 화석이 발견
되기에는 부적당한 장소인 고도로 변성된 암석(변성암) 속에서만 발견
되었다. 여기에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화산
에서 분출된 석회암 덩어리 속의 에오존이 그 증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발견으로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진 것은 1894년의 일이었다. 
  그 후 과학계에서 바티비우스와 에오존은 한바탕의 헛소동 정도로 간
주되었다. 음모가 놀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현대의 생물학자들 
가운데서 단 1퍼센트만이라도 이 두 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사
람이 있다면 나는 무척 놀랄 것이다. 과학이란 오류를 끊임없이 제거하
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고래의 전통(오늘날에는 효력이 상실된)
속에서 자란 역사가들도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잘못
으로부터 유쾌한 웃음이나 숱한 '금지 조항'으로 조립된 도덕률 외에
어떤 교훈을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과학사가들은 이렇듯 영감에 뿌리를 둔 잘못에 대해 과거 사
람들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한 잘못은 각 시대에 나름
대로의 의미를 가졌다. 그렇다고 그런 오류들이 오늘날에는 아무런 의
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모든 시대의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과학은 그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 개인적인 기행, 
경험으로부터 오는 제약 등과 상호 작용하며 형성되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바티비우스와 에오존이 그전 시기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모으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이 글을 쓰면서 나는 처음 발간되었던 
자료들, C. F. 오브라이언의 에오존에 관한 논문과 N. A. 루프케와 
P, F. 레보크의 바티비우스에 관한 논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레보크의 논문은 철저하고 풍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계에서 완전한 바보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의 전후 배
경을 정확하게 살피고,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인
식을 잣대로 삼아 판단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잘못은 항
상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잘못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전후 상황이 변화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대개 잘못은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보다는 통찰력을 주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체계화할 수 있는 
상상력의 소유자들이고, 모든 점에서 '그렇다'라고 긍정할 수 없는 이 
복잡한 세계에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 떠돌게 만들 정도로 
모험적(또는 자기 중심적)이다. 영감으로 인해 발생한 오류를 깊이 따지고 
드는 것은 오만이라는 죄에 대해 훈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위대한 통찰력과 엄청난 잘못이 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양자를 관통
하는 공통된 특성이 탁월함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분명 바티비우스는 영감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이었다. 그것은 진화론을 
진전시킨 보다 큰 진리에 기여했다. 또한 그것은 원시 생명체가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쳐 확산되었다는 매혹적인 환상을 제공했다. 레보크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것은 원생 동물의 가장 저급한 형태, 세포의 기본적 
단위, 모든 생물을 진화시킨 전조, 화석 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생물 
형태, 현대 해저 퇴적물의 중요한 요소(코콜리스), 또한 영양분이 빈약한 
심해에서 고등 동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 등 지나칠 정도로 많은 
역할을 한꺼번에 담당했다. 
  바티비우스가 퇴색한 후에도 그 것이 제기한 여러 가지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바티비우스는 허다한 과학 연구에 커다란 자극을 주어 
풍부한 결실을 맺을 수 있게 해주었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의 윤곽을 밝혀낼 수 있도록 초점을 제공해주었다. 
  정통설은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매우 완강할 수 있다. 
틀에 박히지 않는 연구를 할 때 영감이 떠오르듯이, 영감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잘못의 가능성을 그 자체 속에 품고 있는 왕성한 상상력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정통 학설들을 뒤흔들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밖의 다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뛰어난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자체를 교정함으로써 싹이 틀 수 있는 씨앗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결실 풍부한 잘못이라면 언제든 내게 주게. 물론 당신은 불모의 진리를 
가슴속에 품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비탄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가 아니거나, 교회 비판의 현장에
있지 않을 때, "비합리적으로 신봉된 진리는 사유를 기초로 한 잘못보다
더 유해하다"라고 주장한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이름을 굳이 들먹일 필요
는 없을 것이다. 
  
      제24장 해면 세포의 안쪽
  1979년 12월 31일, 나는 지난 연대의 마지막 주말을 한 무더기의 '뉴욕
선데이'지를 읽으면서 보냈다. 연말 연시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이행기의 침체 무드에는 항상 그렇듯이, 그 신문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70년대에 보물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80년대에는 배격될 것인가?' 
'7O년대는 무시되었던 것들이 80년대에 재발견될 것인가?' 와 같은 70년
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굽이'에 대한 잡다한 예언 목록이었다. 
  오늘날 이런 식의 억측이 너무나 만발해서, 나는 이전 세기에서 금세
기로 넘어가는 이행기, 그리고 이런 식의 생물학적 굽이를 회고해보고
싶다. 19세기 생물학의 가장 뜨거운 주제들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주제들에 대해 강한 집착
을 가지곤 한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방법이 출현해 금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몰락했던 주제들을 다시 중요한 문제로 부활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 바이다. 
  다윈에 의한 혁명의 결과 당시 박물학자들은 생물 계통수를 재구축하
는 것이 진화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야심에 찬 사람들은 대담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 계통
상의 작은 곁가지(예를 들어 사자와 호랑이의 유연 관계)나 그보다 더 큰
가지(예를 들어 새조개와 홍합의 관계) 등으로 초점을 좁게 맞추지 않았
다. 그들은 줄기 자체의 근원을 문제 삼아 식물과 동물이 어떤 관계를
갖는가, 척추 동물은 어떤 근원에서 나온 것인가 등의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중요한 큰 가지를 밝혀내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관점을 토대로 이들 박물학자들 역시 결함투성이의 자
료로부터 각자가 찾고 있는 해답을 자유롭게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헤켈의 '생물 발생 원칙' -개체 발
생은 계통 발생을 동일하게 반복한다는 원칙-에 의하면, 모든 동물은
각각의 발생 과정 동안 자신의 계통수를 기어오른다고 설명되었기 때문
이다. 
  동물의 배를 조금만 관찰하면 선조의 성체가 일정한 순서로 잇달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물론 문제는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반복론자
들은 발생의 여러 단계 중에는 선조의 흔적이 아니라 직접적인 적응을
말해주는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한 각 기관 사이의 
발생 속도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의 여러 단계가 불일치하거나, 
심지어는 그 전후가 역전되기조차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표면적인' 변형을 확실히 식별하고 제거해내면, 
선조 형태의 행렬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동물학자 E. G. 콩크린은 훗날 '계통 발생 복원'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지만, 헤켈의 원칙이 가지는 사람을 혼란시키는 매력을 이렇게 회상
했다. 
  (헤켈의 원칙이야말로) 땅속에 묻힌 태곳적 유물을 발굴하는 것 이상
으로 중요한 과거의 비밀-실로 그것은 지구상에 생식하는 모든 생명 
형태를 포함하는 완전한 계통수임에 분명하다-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세기의 변환기는 반복설의 붕괴도 예견했다. 반복설 이론이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은 주로 1900년에 멘델 유전학이 재발견됨으로써
반복설 이론을 바탕으로 세워졌던 여러 가지 전제가 성립하지 않게 되
면서부터 이다('성체의 행렬'이 계속되려면 선조 동물의 개체 발생 과정의 
끝에 새로운 단계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만약 새로운 특성이 유전자에 의해 제어되고 그 유전자가 수정의 순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면, 그 새로운 특성이 배의 발생이나 그 후의 성장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발현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론은 훨씬 이전부터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선조
의 희미한 기억이 새롭게 나타난 배 단계의 적응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다는 가정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나치게 많은 단계가 누락되어 있고 
그밖에도 많은 단계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다. 따라서 
헤켈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생물의 계통수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끝없이 계속되고 해결하기 어렵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주장을 낳을 뿐이다. 
  계통수를 구축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척추 동물의 유래를 극피 
동물에서 찾으려 시도하고, 다른 사람들은 환형 동물에서 이끌어내려고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대형 이매패에서 그 기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사변적인 계통 발생 복원을 대체할 수 있는 '엄밀한' 실험적 방법을 주창
했던 E. B. 윌슨은 1894년에 이렇게 한탄했다. 
  여러 가지 이론의 상대적인 유효성을 평가할 만한 명확한 가치 기준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태학자들의 학문이 이처럼 많은 계통 발생에 
관한 억측과 가설-그 대부분은 상호 배타적이다-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형태학자들에게는 근본적인 수치이다. 
  그 연구가 너무도 자주 과학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조잡한 억측으로 
이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연구자들, 특히 엄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형태학의 계통 발생론적인 측면을 모두 
진지하게 주목할 가치가 없는 사변적인 현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
한다해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계통 발생론을 복원시키려는 시도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전반적으로 인기를 잃었지만, 여러분들은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이 주제
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나는 지금 높은 수준, 즉 
줄기와 큰 가지에서의 계통 발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좀더 많은 
적절한 증거가 있는 가지와 잔가지에 대한-흥미는 그보다 덜하지만 좀더
 확실한-연구는 언제나 빠르게 진전된다). 
  계보가 사람들 사이에 독특한 매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그 '뿌리'를 추적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먼 증조부의 흔적을 
다른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발견하는 정도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조상의 발걸음을 아프리카의 유인원이나 파충류, 어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척추 동물의 선조, 단세포 생물의 조상, 그리고 생명의 기원 그 
자체에까지 거슬러 올라 조사하는 일은 실로 외경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심술궂게 이야기하자면, 애석하게도 우리가 더 멀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는 더 깊이 매료되지만, 그만큼 아는 것은 적어
진다. 
  이 장에서 나는 계통 발생에 관한 하나의 고전적인 문제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그리고 우리에게 기쁨과 좌절을 모두 안겨주는-주제의 
예로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 주제란 동몰의 다세포성multicellularity의 
기원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하고도 경험적인 해결책을 얻기 위해 끝
까지 물고 늘어져야 할 것이다. 과연 원생 생물(단세포성 선조 생물)과 
후생 동물(다세포성 자손 생물) 사이에서 모든 의문을 해소해줄 만한 중
간적인 화석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희망을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문제의 이행이 
약 6억 년 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로 명료한 화석 기록이 형성되기 훨
씬 전에, 화석이 될 수 없고 부드러운 몸을 가진 생물에게서 일어났으
리라는 것이다. 
  원생 생물과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최초의 후생 동물 화석은 현존
하는 가장 원시적인 후생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동물이 선조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현존 생물
들에게 눈을 돌려야만 한다.  
  계보를 재 구축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신비스러움도 없다. 이 방법은
근연 관계로 생각되는 생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해석하는 데에 그 기반
을 두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사성'은 전혀 단순한 개념이 아니
다. 유사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원인에 의해 각기 독자적으로
발생한다. 진화적인 계통수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들 두 가지를 엄격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계통을 보여주지만, 다른 하나는 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인도하기 때문이다. 어떤 두종의 생물이 공통된 
선조로부터 유래했다면 그 생물들은 동일한 특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유시성이 '상동homologous'이라 불리는 것으로, 다윈의 
말을 빌리자면 '혈통의 근친성'을 암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인간, 돌고래, 박쥐, 말 등이 공통적으로 갖는 앞
다리를 상동의 고전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것들은 얼핏 보기에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동일한 뼈로 구성
되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 해도 매번 원점에서 출발해서 동일한 
부품으로 이처럼 전혀 닮지 않은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들은 지금 그것들로 이루어진 특정한 구조물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공통된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서로 다른 2종의 생물이 각기 독립적인 계통을 따라 매
우 흡사한 진화적 변화를 일으켜 어떤 공통된 특징을 갖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유의 유사성을 '상사analogous'라고 부르는데, 서로 매우 비슷해 
보여 유연 관계가 가까우리라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계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이 상사성은 마치 도깨비와 같은 것이다. 예를들어 새, 박쥐, 
나비 등의 날개가 상사의 좋은 보기로 많은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이들 
가운데 어느 두 종의 생물도 날개를 가진 공통된 선조를 갖지 않는다. 
  생물 계통수의 줄기와 큰 가지의 위치를 설정할 때 겪는 어려움은 방
법에 관한 사고 방식의 혼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헤켈 이후의(또
는 그전부터의)주요 박물학자들은 그들의 작업 절차를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절차란 모두 상동의 유사성과 상사의 유사성을 구별해서
상사를 버리고 상동만으로 계통을 재현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부정확
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재생한다는 헤켈의 법
칙도 상동성을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였다. 이처럼 그 목표는 명확
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상동을 식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상사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상사는 근연 관계가 없는 두 계통
에 외면적, 기능적으로 현저한 유사성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수천
개나 되는 복잡하고 독립적인 부분들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변형시키
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 정확성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그 유사성은 상
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필요한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확신할 만큼 충분한 
정보가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원시적인 후생 동물과 가까운 유연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 원생 생물들을 비교할때, 어떤 대비를 
하든 간에 공통된 소수의 특징들을-상동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적은-기초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작은 유전적 변화가 성체의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따라서 한 차례 이상 일어
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유사성은 실제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실제로 그 생물들을 비교하는 것
이 아니라, 그 생물들의 희미한 그림자만을 비교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원생 생물에서 후생 동물에의 이행은 6억 년 이상 전에 일어났
다. 모든 실제 선조들도 최초의 자손들도 모두 아득한 과거에 사라져버
렸다. 우리는 그들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특징들이 일부 현생종
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특징들이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분명 변형
되었을 것이고 너무도 많은 특수화된 적응 형태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적응을 통해 발생한 나중의 
변형에서 원래의 구조를 식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확실하게 우리를 
안내할 지침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생 동물이 원생 생물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
나리오는 단 두 가지이다. 첫째는 '융합amalgamation' 이라 불리는 것
으로서, 일군의 원생 생물 세포들이 하나로 결합해 군체로 살아가기 시
작해서 각 세포와 각 부분 사이에서 기능 분화가 일어나고 마침내 하나
의 통합된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는 '분열
division' 시나리오로서, 하나의 원생 생물의 세포 내부에 칸막이가 형
성되었다는 생각이다(세포 분열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딸세포가 분리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제3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오늘날 이 견해를 받아들이는 학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탐구를 하는 데 우리들이 부딪치는 것은 바로 상동의
문제이다. 다세포성 자체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다세포화는 단 한 번만
일어난 것일까? 가장 원시적인 형태에서 그것이 일어난 과정을 해명하
기만 하면 모든 동물에서 다세포화가 일어난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 차례 일어난 것일까? 바꿔 말하면 여러 동
물의 계통에서 다세포성은 상동인가 상사인가?
  흔히 후생 동물들 가운데서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해면 동
물은 융합이라는 첫번째 시나리오를 통해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실제
로 현생 해면류는 편모를 가진 원생 생물들이 느슨히 결합된 연합체와
흡사하다. 일부 해면류의 세포들은 섬세한 비단옷을 걸치고 스쳐 지나
듯이 결합되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세포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이동해서 더 작은 덩어리로 분화하고, 
다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새로운 해면을 재생한다. 만약 모든 동물이 
해면류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다세포성은 우리가 속한 전체 동물계를 
통해 상동이며 융합을 통해 나타난 것이 된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해면류는 그 후에 자손의 계통을 만들지
않으며, 진화적인 막다른 골목에 해당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다세포성은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일어난 진화 현상의 가장 유력
한 제1후보인 것이다. 다세포성은 상사의 기본적인 특성 두 가지를 갖
추고 있다. 첫째, 다세포성은 비교적 용이하게 달성된다. 둘째, 다세포
성은 고도로 적응적이며, 그것이 가져다줄 이익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
한 경로이다. 타조 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동물의 단일 세포는 일
정 크기 이상으로 커질 수 없다. 
  다른 한편 지구상의 물리적 환경에는 단일 세포 크기의 최대 한도보다 
큰 생물만이 이용할 수 있는 서식지들이 무수히 많다(개체의 표면에 작용
하는 여러 가지 힘에 비해 중력이 훨씬 크게 작용할 만큼 몸집이 거대해
져서 얻을 수 있는 안정성을 생각해보라.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은 
성장과 함께 감소하기 때문에 이렇듯 중력이 더 크게 작용하기 위해선 
크기를 늘려야 한다).
  다세포성은 생물의 가장 큰 세 가지 계(식물, 동물, 균류)에서 각기
따로따로 진화해오기도 했지만 필경 각각의 집단 내에서 여러 차례 일
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식물과 균류의 다세포성
은 모두 융합에 의해 발생한 것이며, 이들 생물은 원생 생물 군체의 자
손일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해면류도 융합
을 통해 나타났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세포성이-세 개의 계 사이에서, 그리고 각각의 계 
내에서 모두 상사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매번 같은 방식으로 진화했다
고 결론지으면서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을까? 현존하는 원생 생물 
가운데는 규칙적인 세포 배열과 초기의 분화 상태를 나타내는 군체 
형태도 있다. 
  여러분은 고등 학교 생물 교실에서 본 볼복스(Volvox, 편모가 있는 
다수의 녹색 세포가 모여 군체를 이루고 있는 볼복스속 생물의 총칭. 
원생 동물이나 녹조류에 포함시키기도 한다/옮긴이)의 군체를 기억할 
수 있는가? (사실 나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스푸트니크 
인공 위성이 쏘아 올려지기 전에 뉴욕의 공립 고등학교에 다녔던 것
이다. 
  그때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실험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졸업하자마자 번개처럼 생겨났다(미국은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 
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이른바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갑작스레 과학 교육
을 강조했다. 저자는 그 점을 비꼬고 있다/옮긴이). 일부 볼복스는 규칙적
으로 배열된 일정 수의 세포로 이루어진 군체를 형성한다. 이 세포들은 
크기가 저마다 달라서 생식 기능은 어느 한쪽 끝에 위치한 세포들에 
국한돼 있을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해면류까지 진화하는데 그렇게 큰 
간극이 가로놓여 있단 말인가?
  동물에 한해서 또 하나의 시나리오에 대한 좋은 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자신을 포함한 동물 가운데는 분열에 의해 발생한 것이
있을까? 이 의문은 동물학에서 가상 오래된 다음의 수수께끼를 풀지 않
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 그 수수께끼란 자세포 동물문phylum Cnidaria
(산호와 그 동류, 그리고 아름답고 투명한 빗해파리류와 유즐 동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의 지위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자세포 
동물문이 융합에 의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동물들과 다른 문과의 유연 관계가 딜레마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기되는 모든 설명 체계가 나름대로 근거 있는 것들이기 때문
이다. 다시 말해 자세포류를 해면 동물의 후손일 뿐 다른 무엇의 선조도 
아니라고 보는 견해, 자세포류를 동물계에서 분리되어 나왔으며 후손이 
없는 하나의 가지로 보는 견해, 자세포류를 모든 '더 고등한' 동물문의 
선조라고 보는 견해(이것은 19세기의 고전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고등한 문에서 퇴화한 자손으로 보는 견해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지며 분분해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견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우리의 문제, 
즉 모든 동물이 융합에 의해 필경 두 차례-한 번은 해면류, 다른 한 번은 
그 밖의 모든 동물들-에 걸쳐 제각기 발생했으리라는 문제는 해결되는 
셈이다. 그러나 만약 '더 고등한' 동물문이 자세포류와 근연 관계에 있지 
않다면, 또한 만약 이들이 동물계 중에서 다세포화가 일어난 제3의 다른 
진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분열이라는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재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등 동물이 각기 별개로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편형 동물을 선조 계통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웨슬리안 대학의 생물학
자 얼 핸슨은 고등 동물의 편형 동물 기원설과 분열의 시나리오 양쪽을
모두 주장하였다. 그의 인습 타파적인 관점이 승리를 거둔다면 인간을
포함한 고등 동물은 아마도 융합이 아니라 분열에 의해 일어난 다세포
성의 산물이 될 것이다. 
  핸슨은 섬모충류-우리에게 잘 알려진 짚신벌레가 여기에 속한다-라고 
불리는 원생 생물의 한 집단과, 편형 동물 가운데 '가장 단순한'종류인 
무장목-체강을 발달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과의 유사성을 
조사한 뒤에 독자적인 관점을 제기했다. 상당수의 섬모충류는 하나밖에 
없는 세포 속에 여러 개의 핵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핵과 핵 사이에 
세포 내 칸막이가 나타났다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생물은 상동성을 
주장하는 설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무장목과 흡사할까?
  핸슨은 다핵성 섬모충류와 무장목 사이의 폭넓은 유사성을 상세히 기
록했다. 무장목은 작은 해양성 편형 동물의 하나이다. 그 중 일부 종류
는 헤엄칠 수 있었고, 다른 종류는 깊이 250미터 정도의 물밑에서 생활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얕은 바다의 해저를 기어다니면서 바위밑이나 모래와 
진흙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크기는 다핵성 섬모충류와 비슷한 
정도이다(후생 동물이 원생 생물보다도 반드시 크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섬모충류는 몸길이가 100분의 1밀리미터에서 3밀리미터 사이인 데 비해 
무장목은 몸길이가 1밀리미터 이하의 것도 있다). 
  섬모충류와 무장목의 내부 구조가 서로 유사한 것은 주로 그들이 단순
하다는 공통된 특성에서 유래하며, 일반적으로 후생 동물과는 달리 무장
목에는 체강이 없고 체강과 연결되는 기관도 없다. 그들은 영구적인 소화 
기관이나 배출 기관, 호흡 기관도 갖고 있지 않다. 섬모충류와 마찬가지로
이 동물은 일시적인 식포를 형성해서 그 속에서 먹이를 소화시킨다. 
  섬모충류와 무장목 모두 그 신체는 크게 나누어 안층과 바깥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모충류는 외부 원형질(바깥층)과 내부 원형질(안층)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수의 핵은 내부 원형질 속에 모여 있다. 무장목의
경우 안쪽 영역은 소화와 생식 기능에 할당하고, 바깥층의 일부는 이동
과 방어, 그리고 음식물 포획에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 두 집단은 여러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무장목은 신경망과 생식 기관을 갖추고 있으며, 그 기관들은 꽤 복잡한
형태를 띠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류는 페니스을 가지고 있어 그
것을 마치 피하 주사처럼 체벽을 관통시켜 다른 개체를 수정시킨다. 그
리고 수정 후에 배 발생을 일으킨다. 그에 비해 섬모충류는 조직적인
신경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은 분열을 통해 둘로 분리되고 접합이라 불리는 과정으로 생식
행위를 하지만, 발생 과정은 거치지 않는다(접합이 일어날 때는 두 개
체의 섬모충이 하나로 결합해서 유전 물질을 서로 교환한다. 그 후 
이들은 분리되고 각기 분열해 두 개체의 자손이 된다. 거의 모든 후생 
동물에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성과 생식이 섬모충류에서는 
별개의 과정인 것이다). 물론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무장목이 다세포성
인데 비해 섬모충류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차이점이 있다고 해서 이들 두 군의 유연 관계가 가깝다는 가
설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현생 섬
모충류와 무장목은 그들의 공통 선조라 추정되는 생물로부터 5억 년 
이상 앞선 것이다. 둘 중 어느 것도 다세포성의 기원을 설명해줄 만한 
이행기 형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대신 이 두 생물 때문에 유사성이라는 
것에 대해, 즉 유사성이 상동인지 상사인지를 둘러싼 가장 오래되고 가
장 기본적인 문제에 논쟁이 집중된다. 
  핸슨에 따르면, 무장목의 단순성은 편형 동물 가운데 선조적인 상태
이고, 주로 이 단순성의 결과인 섬모충류와 무장목의 유사성이 서로 계
통상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이 유
사성은 상동인 셈이다. 이 설에 대한 반대자들은 무장목의 단순성이 그
보다 복잡한 편형 동물로부터 그들이 '퇴화적' 진화를 겪은 이차적인
결과, 즉 무장목 내에서 몸이 현저히 작아진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보다 큰 와충강(무장목를 포함하는 편형 동물의 한 군)은 장과 배설 
기관을 가지고 있다. 만약 무장목의 단순성이 와충강 내에서 파생된 상태
라면, 그 단순성이 섬모충류의 줄기에서 직접 이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행하게도 핸슨이 증거로 삼고 있는 유사점들은 '상동 대 상사'를
둘러싼 해결 불가능한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특성들은 상
동을 확실히 보증할 수 있을 만큼 엄밀하지도 않고 그 수도 그다지 
많지 않다. 특성들 대부분은 무장목이 복잡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기반하고 있으며, 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이 쉽게 반복적으로 일어
나는 데 비해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들이 독립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무장목의 단순성은 몸의 크기가 작다는 사실로부터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은 계통 발생상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몸 
크기가 같은 범위 내에 이차적으로 들어온 한 군이 섬모충류의 설계로 
기능적으로 수렴한 것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표면적과 부피와의 관계가 문제된다. 호흡이나
소화, 배설 등 여러 가지 생리적인 기능은 몸의 표면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몸 전체 부피에 대해 기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집이 큰 대형
동물에서는 몸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작기 때문에 그들은 내
부 기관을 발달시켜 내부 표면적을 크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기능적으
로 폐는 가스 교환에 쓰이는 표면을 갖는 자루와 같으며, 장은 소화해야 
할 음식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표면을 갖는 시트와도 같다). 
  다른 한편 소형 동물의 경우에는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크기 
때문에 외부 표면만을 통해 호흡, 먹이 섭취, 배설 등을 할 수 있다. 편형 
동물보다 복잡한 동물의 문 중에서 가장 작은 종류들 역시 체내 기관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달팽이 가운데 가장 작은 동류인 시컴Caecum은 
체내의 호흡 기관을 전혀 갖지 않으며, 외부 표면만으로 산소를 받아들
인다. 
  핸슨이 제기하고 있는 그 밖의 유사점들은 상동을 뒷받침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생물에서도 널리 관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유사점들은 계통 발생의 어떤 특정한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생 생물과 모든 후생 동물 사이의 유연 관계가 깊다는 것이 되고 동시
에 파생된 형질에만 국한되어야 한다(파생된 형질은 그 특성을 공유하는 
두 집단의 공통 선조로부터만 고유하게 진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계통을 
구별짓는 특징이 된다. 
  그에 비해 공유되는 원시적 형질은 어느 한 계통만의 특징이 아니다. 
섬모충류와 무장목 모두에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들 두 군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원생 생물과 후생 동물이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핸슨은 "섬모충류와 무장목에 의해 
공통적으로 의미 심장하게 유지되고 있는 항구적인 형질"로서의 "완전한 
섬모"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섬모는 상동이라 하더라도 다른 여럿에 
공유하고 있는 원시적 형질이다. 다시 말해 자세포류를 포함한 다른 많은 
군들이 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섬모의 완전함은 섬모충류와 무장목에서는 상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쉬운' 진화상의 사건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외부 표면
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섬모의 최대수는 한정되게 마련이다.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큰 소형 동물의 경우에는 섬모를 이용해 이동할
수도 있지만, 대형 동물은 상대적으로 작은 몸 표면에 그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섬모를 발생시킬 수 없다. 
  무장목이 완전한 섬모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작은 몸 크기에 대한 
이차적인, 적응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몸이 작은 '시컴'도 
섬모 운동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이보다 몸집이 큰 근연 관계에 있는 종
들은 근육을 수축하여 이동한다. 
  물론 핸슨은 형태와 기능에 관한 고전적인 증거를 이용해서 그의 매
력적인 가설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편모충류와 무장목 사
이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유사성이 상당수 존재하지만 그들 사이에
엄격하게 규정할 만한 상동 관계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리고 이 끝 모를 논쟁을 완전히 종식시킬 다른 방법은 없을까?
  만약 우리가 충분히 비교 가능하고 복잡한 새로운 특성들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상동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
면 상사로써는 무수한 상호 독립적인 항목들에 대해 부분대 부분의 상
세한 설명을 줄 수 없으며, 수학적 확률의 법칙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
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유사한 단백질들의 DNA 배열이다. 모든 원생 동물과 후생 동물
들은 많은 상동 단백질을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길다란 연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미노산은 DNA 속에 들어 있는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배열로 부호화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단백질
DNA 부호에는 분명한 순서를 가진 수천 개의 뉴클레오티드들이 들어
있다. 
  진화는 이러한 뉴클레오티드들의 배열을 바꾸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두 군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후 그들의 뉴클레오티드 배
열은 변화를 거듭한다. 대략 그 변화의 빈도수는 최소한 분기 이후 경
과된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따라서 상동 단백질의 뉴클레오티드 배열
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유사성은 계통적인 분리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클레오티드 배열은 상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꿈이
다. 왜냐하면 그 배열이 잠재적으로 수천 개가 될 수 있는 변화들을 나
타내기 때문이다. 각각의 뉴클레오티드의 위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변화의 자리site인 것이다. 
  오늘날 뉴클레오티드의 배열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지금 문제되고 있는 모든 섬모충류와 후생 동물의 상
동 단백질을 추출해서 그 배열을 조사하고 두 생물 사이의 유사성을 측
정해서 이 해묵은 계통학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좀더 결정적인 통찰
(심지어는 그 해결책까지도)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만약 무장목이 체내에 세포막을 진화시켜서 다세포성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원생 생물의 군들과 가장 가까운 유연 관계를 맺는다면, 핸슨
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이 군체 속에서 
통합되어 다세포성에 도달할 수 있었던 원생 생물에 가장 가깝다면, 고전
적인 견해가 승리를 거둘 것이고 모든 후생 동물은 융합의 산물로 나타
나게 되었을 것이다. 
  금세기 들어 계통학 연구는 적응 현상에 대한 분석 때문에 부당하게
그 빛을 잃었지만, 학자들을 매료시키는 힘은 아직까지 상실하지 않았
다. 핸슨의 시나리오가 우리와 그 밖의 다세포 생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함축하는 내용을 생각해보라. 동물학자들 가운데는 모든 고등 동
물들이 편형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다세포성을 띠게 됐다는 사실에 의
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만약 무장목이 어떤 섬모충이 다세포
화되면서 진화한 형태라면, 우리들의 다세포성 신체는 원생 생물의 일
개 세포와 상동인 셈이다. 
  또한 만약 해면류, 자세포류, 식물, 그리고 균류가 융합으로 인해 발생
한 것이라면, 그들의 몸은 원생 생물의 군체와 상동이다. 그리고 섬모충의 
세포가 원생 생물의 군체를 만든 개별 세포와 상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몸 전체가 해면이나 산호, 또는 식물 몸체 일개 세포와 상동이라
고-이것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다-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상동성의 기묘한 경로는 훨씬 더 과거까지 올라간다. 원생 생물 세포 
자체는 여러 개의 더 단순한 원핵 생물(박테리아, 남조류) 세포가 서로 
공생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원핵 생물의 세포 전체와 상동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원생 생물 각각
의 세포와 후생 동물 몸체 각각의 세포는 계통적으로 볼 때 원핵 생물의 
통합된 군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몸을 박테리아의 군체 덩어리, 또는 해면이나 
양파의 얇은 껍질의 일개 세포와 상동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여러분은 당근조각을 삼키거나 버섯을 얇게 자를 때 이 점을 생각해보라.
  
    제7부 과소 평가된 동물들
      제25장 과연 공룡은 우둔했을까
  무하마드 알리가 미 육군의 지능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그는 다
음과 같은 재치로 궁지를 모면했다. "나는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을 뿐이지 
가장 똑똑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은유와 우화 
속에는 종종 몸집은 거대하고 강한 반면에 지능이 매우 낮아서 공평함을 
이루고 있는 거인들이 등장한다. 
  재능은 몸집이 작은 사람들에게 항상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수단이 되어왔다. 토끼와 곰 이야기, 돌팔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이야기, 콩나무를 베어 거인을 물리친 잭의 이야기 등을 
생각해보라. 재능없고 우둔하다는 것은 거인의 비극적 결함인 것이다. 
  19세기 공룡의 발견은 크기와 지능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전형적인 생
각을 증명해주었다(아니 그런 것으로 생각되었다). 공룡들은 콩만한 뇌와
거대한 몸집을 가졌기 때문에 우둔함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공룡이 멸종
했다는 사실은 그 몸의 설계에 결함이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것 같았다. 
  공룡에게는 위대한 육체적 용맹함이라는, 흔히 거인에게 붙어다니는
위로조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신은 이 거대한 동물의 뇌에 관해서 주의
깊게 침묵을 지켰지만, 그 강력한 힘에 대해서는 분명히 경탄했다. "보라,
그의 강함은 허리에 있고, 그 힘은 배의 중심에 있다. 요동치는 꼬리의 
모습은 향떡갈나무와 같고 ... 그 뼈는 구리로 만든 판처럼 강하고, 그 
늑골은 쇠막대와 같도다(욥기 40장 제16절-18절)." 
  다른 한편으로 공룡은 언제나 움직임이 느리고 신경이 무딘 동물로 
그려져왔다. 일반적으로 공룡 시대를 복원해놓은 그림에서 브론토사우
루스는 소택지의 물 속에 잠겨 있는데, 그 까닭은 땅 위에서는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사용되도록 보급된 그림들은 정통설에 입각한
묘사를 제공한다. 나는 뉴욕 시 퀸즈구립 제206 초등학교에서 도둑맞은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버사 모리스 파커의 '과거의 동물들'
이라는 3학년용 책(1948년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매키너니 선생님,
미안합니다). 그 책 속에서 소년은 쥐라기 세계로 염력 이동되어 브론토
사우루스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동물은 엄청나게 크다. 당신은 그 작은 머리를 보면 그 동물이
무척 우둔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거대한 동물은
먹이를 먹으면서 아주 느리게 어슬렁거린다. 움직임이 그처럼 느려도 
이상할 것은 없다! 커다란 발은 굉장히 무겁고, 굵은 꼬리는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 여러분은 이 브론토사우루스가 물의 부력
으로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물 속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거대한 공룡들은 한때 지구를 지배한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종적
을 감춰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은 그 대답 중 일부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몸이 뇌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했다는 것이다. 만약 몸이 
더 작고 뇌가 더 컸더라면, 그들은 더 오랫동안 살아 남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모두가 공룡을 좋아하는 시대가 되자 공룡들은 힘차게 되살아
났다. 최근 들어 고생물학자들 사이에는 공룡을 정력적이고 활동적이고
유능한 동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브론토사우루스는 한 세대 전만
해도 늪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땅 위를 뛰어다니고 있
다. 때로는 두 마리의 수컷이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한 정교한 성적 투
쟁으로서 긴 목을 서로 상대의 목에 꼬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마치 기린들이 목으로 씨름을 하듯이). 
  최근 시도되는 해부학적인 복원은 공룡의 강력함과 민첩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 많은 고생물학 자들은 공룡이 온혈 동물이었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26장 참조).
  공룡이 온혈 동물이었다는 생각은 일반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신
문과 잡지에 빈번하게 보도되었다. 그에 비해 공룡의 능력에 대한 또
하나의 옹호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그 주장이 온혈설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둔함과 몸 크기의 거대함
사이의 상관 관계에 대한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수정주의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것은 공룡을 '지성의 
전당'에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공룡들이 특별히 작은 뇌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크기의 몸을 
가진 파충류로서 저마다 '적정 크기'의 뇌를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다. 
  나는 주관적이고 불균형적인 관점을 적용해 거대한 몸집의 스테고사
우루스가 편평하고 작은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
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공룡에게 다른 동물들 이상의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몸집이 큰 동물은 유연 관
계가 가까운 소형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뇌를 가지고 있다. 
  동족의 동물들(예를 들어 파충류 전체나 포유류 전체)에서 뇌 크기와 
몸 크기와의 상관 관계는 매우 규칙적이다. 소형 동물에서 대형 동물로, 
예를 들어 생쥐에서 코끼리로, 또는 작은 도마뱀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인
도네시아 코모도 섬에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도마뱀/옮긴이)로 옮아가면
서 뇌 크기는 차츰 늘어나지만 몸 크기만큼 급격하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몸은 뇌보다 큰 비율로 증대해서 대형 동물의 체중에
대한 뇌 무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사실 뇌는 몸의 2/3 
비율로 증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대형 동물이 소형의 근연 동물보다 
반드시 우둔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따라서 우리는 대형 
동물이 그보다 작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작은 뇌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이다. 이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면 아주 큰 동물, 특히 공룡의 지능을 과소 평가하기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뇌와 몸 크기의 관계가 모든 척추동물 집단에서 같게 나타
나는 것은 아니다, 뇌 크기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비율은 모든 동물에
게 마찬가지지만, 소형 포유류는 체중이 같은 소형 파충류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이 불일치는 체중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대로 이어진
다. 왜냐하면 뇌 크기는 어느 쪽 집단에서도 같은 비율(몸 크기의 2/3비
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정리하면, 대형 동물은 모두 상대적으로 작은 뇌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같은 체중이라도 파충류는 포유류보다 훨씬 뇌가 
작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보통의 대형 파충류에게는 어떤 
현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가장 적절한 크기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생 파충류 가운데는 몸의 부피가 중간 
크기의 공룡에 가까운 것도 없으니 공룡의 모형으로 사용할 만한 현존
하는 기준은 없는 셈이다. 
  다행히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화석 기록이 비록 불완전하다 하더라
도, 그것은 공룡의 뇌에 관한 데이터 공급원으로서는 그렇게 불만족스럽
지 않다. 수많은 공룡 종에서 대단히 보존 상태가 양호한 머리뼈가 발견
되었고, 그 머리뼈를 통해 그 뇌 용적을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충
류의 뇌는 두개골을 완전히 채우지 않기 때문에, 머리뼈 속의 빈 공간을 
기준으로 뇌 크기를 추정하려면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처리 방법을 사용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공룡이 우둔했다고 하는 평범한 가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명쾌하게 검증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파충류 
일반의 기준이 유일하고 적절한 기준인지 여부를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
다. 
  우리는 현생 파충류의 뇌와 몸 크기의 관계에 관한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생 종에서는 소형에서 대형으로 옮겨
갈수록 뇌가 몸 크기의 2/3비율로 증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따라서 
공룡들도 이 비율을 따라 커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으며, 가령 현생 
파충류가 공룡만큼 커진다면 그것의 뇌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예상하여 
공룡의 실제 뇌 크기가 이것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었다. 
결국 공룡이 인간이나 고래보다 작은 뇌를 가졌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
으로 드러났다. 
  해리 제리슨은 10종의 공룡의 뇌 크기를 조사한 결과, 그것들이 파충
류의 외삽 곡선상에 놓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공룡이 유별나
게 작은 뇌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고유의 크기를 갖는 파
충류로서 적정 크기의 뇌를 가진 셈이다. 더욱이 공룡의 멸종에 대한
파커 부인의 설명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그러나 제리슨은 여러 종류의 공룡들을 따로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았
다. 여섯 가지 주요 집단에 걸쳐 10종만을 조사한 것으로는 비교를 위
한 적절한 기반을 제공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시카
고 대학의 제임스·A ·홉슨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서 괄목할 만한
발견을 했다. 
  우선 홉슨은 모든 공룡에 대한 공통의 척도를 얻으려 했다. 따라서
그는 각 종의 공룡 뇌와, 체중에 따른 파충류의 뇌 크기 평균치를 비교
했다. 만약 어떤 공룡의 수치가 표준 파충류의 외삽 곡선상에 놓인다면
그 공룡의 뇌는 1.0이라는 값 (같은 체중의 표준 파충류에게 예상되는 
뇌와 실제 공룡의 뇌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흔히 대뇌화지수
encephalization quotient[EQ]라고 불림)을 갖게 된다. 
  이 곡선보다 위에 있는 공룡(같은 체중의 표준 파충류에게 예상되는 
것보다 큰 뇌를 가진 공룡)은 1.0이상의 값을 가지며, 이 곡선보다 밑에 
있는 공룡은 1.0이하가 된다.
  홉슨은 EQ 평균치의 증대에 따라 대표적인 공룡 집단들을 서열 순서
대로 배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등급은 운동 속도, 민첩함,
섭식 행동(또는 먹이가 될 가능성을 피해 다니는 행동)에 대한 행동상의
복잡성 등과 완전히 일치한다. 
  거대한 용각아목의 하나였던 브론토사우루스와 그 동류의 EQ는 
0.20내지 0.35라는 가장 작은 값을 갖는다. 그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이동했고, 기동성도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그들은 
오늘날의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큰 덩치 덕분에 먹이가 되는 것을 
모면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EQ 0.52에서 0.56의 집단으로는 갑옷을 두른 안킬로사우루스
와 스테고사우루스가 있다. 튼튼한 갑옷을 갖추고 있었던 이들 동물들은 
주로 수동적인 방어에 의존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안킬로사우루스의 
곤봉 모양의 꼬리와 스테고사우루스의 스파이크가 돋은 꼬리는 어느 정도 
적극적인 투쟁성과 행동상의 복잡성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으로 약 0.7에서 0.9사이에 각룡아목이 있다. 홉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거대한 머리에 뿔이 돋은 대형 각룡아목은 적극적인 방위 전략에 
의존했고, 포식 동물의 공격을 막거나 같은 종 끼리 싸움을 벌일 때에 
꼬리를 무기로 사용하는 어떤 종류보다도 민첩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뿔이 없는 소형의 각룡아목은 예민한 감각과 빠른 속도에 의존해서 포식
자의 공격을 피했을 것이다." 
  조각아목의 EQ는 0.85에서 1.5여서 초식성으로는 가장 머리가 좋은 
동물군이었다. 그들은 육식 동물을 피하는 데 "예민한 감각과 비교적 
빠른 속도"에 의존했다. 그러나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땅 위에서 방어할 
때보다 한층 더 예민하고 민첩해야 했을 것이다. 
  각룡아목 가운데 대체로 소형에 속했고, 뿔이 없었으며, 빠른 속도로 
달렸으리라고 짐작되는 프로토케라톱스는 세 개의 뿔이 돋아난 대형 
트리케라톱스보다 EQ가 높았다.
  오늘날의 척추 동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육식 공룡은 초식 공룡보다
EQ가 높다. 재빠르게 도망치거나 완강하게 저항하는 먹이를 사냥하려
면 안성맞춤인 식물을 뜯어먹는 데 비해 훨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한
다. 거대한 수각룡(뒷다리로 걸어다니는 육식성 공룡. 티라노사우루
스와 그 동류들)의 EQ는 1.0에서 2.0에 가까운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높은 정상에는 작은 몸집에 어울리게 EQ가 5.0을 넘는 
소형 코엘루로사우루스인 스테노니코사우루스가 위치해 있다. 아마 소형 
포유류이거나 조류였을 것으로 보이는 민첩하게 돌아다니는 먹이감을 
찾아내 사냥하는 데에는 티라노사우르스가 트리케라톱스를 사냥하는 데 
부딪쳤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전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뇌의 크기가 지능과 일치한다는, 또는 이 경우에는 행
동 범위와 민첩함과 일치한다는 천진 난만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
다(인간에게 지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미 멸종한 파충류의
한 집단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한 종 내에서 뇌 크기의 편차와
지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사람은 뇌 크기가 900세제곱센티
미터에서 2,500세제곱센티미터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모두 잘 살
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클 경우에 다른 종과의 비교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이 EQ 수치에서 코알라를-나는 이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이 그 동안 인류가 이룩해온 번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
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공룡들 에 대한 합당한 서열 매김
은 뇌의 크기라는 거친 척도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행동의 복잡성이 지력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우리는 협동, 단결, 
상호 인지 등이 요구되는 사회적 행동의 일부 징후들이 공룡 화석에서 
발견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로 그러한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공룡을 우둔하다고 잘못 평가하던 시대에 그와 
같은 징후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0마리가 넘는 공룡들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이동했음을 말해주는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종류의 공룡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
던 것일까? 데이븐포트 랜치Davenport Ranch에서 발견된, 용각아목들이 
자주 지나 다져진 길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중앙에 나 있고 그 양 옆으로 
큰 발자국들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공룡은 오늘날 일부 고등한 초식
성 포유류 무리처럼 몸집이 큰 공룡이 주변부에 위치해 어린 동물들을 
가운데 놓고 보호하면서 이동했던 것일까?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과거의 고생물학자들에게는 가장 기괴하고 아
무런 소용이 없어 보이던 구조물-하드로사우루스의 정교한 볏, 각룡아목의
뿔과 목 주름,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뇌를 둘러싸고 발달한 두께 9인치 
가량 되는 단단한 뼈 등-이 오늘날에는 성적인 과시와 투쟁에 사용된 
장치로서 다시금 설명되고 있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는 그 튼튼한 이마를 
가지고 오늘날의 산양처럼 박치기를 하면서 암컷을 둘러싼 경쟁을 벌였
을지도 모른다. 
  일부 하드로사우루스의 볏은 공명실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
면 그들은 누가 더 큰 소리로 울 수 있는지 경쟁을 벌였던 것일까? 또한 
각룡아목의 뿔과 주름은 짝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서 칼이나 방패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동은 그 자체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사회 체계가 존재했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에, 낮은 지능 수준을 간신히 
벗어난 동물 집단이라면 발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룡의 능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흔히 공룡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들먹여지는 사실, 즉 그들의 멸종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멸종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최근까지도 '섹스'에 수반되는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빈번하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토론하지도 않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멸종은 섹스와 마찬가지로 생명계가 피해 갈 수 없는 일부인 
것이다. 멸종은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숙명이지, 운이 나쁘거나 잘못 
설계된 생물만의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결함의 징후가 아닌 것
이다.
  공룡에 관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멸종했다는 사실이 아니
라, 오히려 그들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상을 제패했다는 사실이
다. 그들은 약 1억 년 동안이나 세상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포유류
는 소형 동물로서, 공룡들의 세계에 나 있는 작은 틈새에서 생활했다.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 지 7천만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포유류는 뛰어
난 업적을 이루었고 미래의 전망도 밝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공룡과 같
은 지구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다. 오스트랄
로피테쿠스 이래 약 500만 년 동안 우리 자신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온 기간은 고작5만 년에 불과하다. 그러면 우리들의 가치 체계 내
에서 최후의 검증을 해보기로 하자. 호모 사피엔스가 브론토사우루스보
다 오랫동안 살아 남을 것이라는 명제에 대해 아주 유리한 조건이라도
상당한 금액을 내기에 걸 사람이 있겠는가?

      제26장 비밀을 밝혀주는 차골
  네 살 무렵 나의 장래 소망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부가 되는 것이
었다. 나는 깡통들이 딸그랑거리는 소리와 컴프레서가 돌아가는 소리를
무척 좋아했다. 게다가 나는 뉴욕 주의 모든 쓰레기를 한 대의 대형 트
럭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데 매우 매혹되었다. 얼마 후 다섯 살이 되었
을 때, 아버지가 나를 자연사 박물관으로 데리고 가 티라노사우루스를
구경시켜준 적이 있었다. 
  그 화석 동물을 쳐다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큰 소리를 내며 재채기를 
했다. 깜짝 놀라 간이 콩알만해졌던 나는 나도 모르게 '세마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신앙 고백/옮긴이)'을 읊조릴 뻔했다. 그러나 그 동물의 거대
한 뼈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 자세로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곳을 떠
나면서 나는 이 다음에 크면 반드시 고생물 학자가 되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벌써 먼 옛날이 된 1940년대 말엽에는 어린 소년이 고생물학에 흥미를 
갖게 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것들로는 '판
타지아(디즈니의 1940년작 만화 영화로 공룡 멸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
루고 있다/옮긴이)' '앨리 웁(1933년작 미국 만화로 선사 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혈거인 이야기/옮긴이)' 그리고 박물관 매점에 진열돼 있던 금속
으로 만든 모조 골동품 조각이 고작이었다. 
  그 가짜 골동품은 내가 사기에는 너무 비싼 데다가 별로 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조잡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 속에서 무엇
보다 강한 인상을 받았다. 땅위에서는 체중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소택지의 물에 잠겨 일생을 지냈다는 브론토사우루스, 싸울 때는 잔인
하지만 움직임이 서투르고 미련스러웠다는 티라노사우루스 등이 내 
관심을 끌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모두 느리고 육중한 걸음걸이로 돌아다니며 마치 콩
처럼 작은 뇌를 가진 냉혈 동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말해주는 궁극적인 증거로 백악기의 대멸종기에 모두 전멸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사고 방식 속에 있는 한 가지 요소가 늘 나를 괴롭혀
왔다. 이러한 결함을 가진 공룡들은 그토록 훌륭하게, 또한 그처럼 오랫
동안 번성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포유류의 선조였던 수궁류에 속하는 
파충류는 공룡이 번성하기 전에 벌써 여럿으로 분화했고 수도 늘어나 
있었다. 그렇다면 공룡이 아니라 수궁류가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포유류 자체는 공룡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진화해서, 소형이면서 특징적인 
동물로 약 1억년 동안 생존했다. 공룡이 그처럼 느려빠지고 우둔하고 비효
율적이었다면 포유류가 곧바로 확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1970년대에 여러 고생물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놀라운 해답을 제기
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공룡은 민첩하고 활발했으며 온혈 동물이
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룡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공룡의
큰 계통의 한 가지가 그 밖의 가지들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것을 조류라고 부른다. 
  일찍이 나는 이 에세이에서 온혈 공룡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을 작
정이었다. 이 새로운 복음은 텔리비전, 신문, 잡지, 그 밖의 일반 대중
들을 대상으로 씌어진 서적 등에서 충분히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층인 지적인 일반인들은 벌써 귀가 아플 정도로 그 이야  
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몇 가지 이유로 당초의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논쟁 속에서 나는 문제의 핵심이 되는 두 가지 주장
-공룡이 온혈 동물이라는 주장과 공룡이 조류의 선조였다는 주장-의 
관계에 대해 널리 확산된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공룡과 조류의 관계에 대한 오해가 잘못된 이유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에 비해 조류의 선조와 공룡의 온혈성을 깔끔하게 
묶어줄 만한 올바른 이유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결합이 가장 과격한-공룡을 파충류에서 떼어내어 전통적인 
조류의 분류 항목으로 지위를 내리고, 공룡류와 조류를 하나로 통합시킨 
새로운 강을 만들어서 척추 동물의 분류 체계를 재편성하자는-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이렇게 되면 육생 척추 동물은 두 냉혈성 집단인 양서강과 
파충강, 그리고 두 개의 온혈성 집단인 공룡강과 포유강이라는 네 개의 
강으로 분리된다. 나는 이 새로운 분류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 
입장을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그 주장의 독자성과 매력은 존중하고 싶다.
  조류의 선조가 공룡이라는 주장은 처음 들었을 때만큼 충격적인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계통수에서 하나의 가지 위치를 조금 바꾸는 정
도일 뿐이다. 최초의 새였던 시조새와 코엘루로사우루스라 불리는 소형 
공룡 가운데 한 집단과의 유연 관계가 지극히 가깝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토마스 헨리 헉슬리와 19세기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공룡과 조류가 직계의 계통 관계를 가지며 조류의 선조가 공룡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금세기에 들어 헉슬리의 관점은 겉보기에는 타당한 어떤 단순
한 이유로 인기를 잃었다. 진화 과정에서 한번 완전히 상실된 몸의 복
잡한 구조가 다시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진화에서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 신비스러운 힘에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
라 단지 수학적인 확률에 근거한 사실일 뿐이다. 
  몸의 복잡한 부분은 생물체의 발생 기구 전체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다수의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약 이러한 체계가 진화의 
결과로 상실된다면, 다시 조금씩 형성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헉슬
리의 주장이 배격된 것은 쇄골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뼈 때문이었다. 
  시조새를 포함해서 조류에서는 좌우 양측의 쇄골이 중앙에서 결합되어 
차골(V자형의 뼈)을 이룬다. 콜로넬 샌더즈(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사의 
창업주, 이 상점 앞에 서 있는 흰 머리에 흰 옷을 입은 인물이 바로 콜로
넬 샌더즈이다/옮긴이)의 단골 손님들에게는 '위시본wishbone'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공룡이 모두 쇄골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조류의 직접적인 선조일 수는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완벽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논거가 후세에 이루어진 
발견에 의해 무효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헉슬리의 반대자들도 시조새와 코엘루로사우루스류의 공룡 사
이에 나타나는 구조상의 유사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조
류와 공룡의 유연 관계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것을 골랐다. 즉
조류와 파충류가 모두 아직 쇄골을 가지고 있는 파충류의 한 집단에서
갈라져 나왔고, 그 후 한쪽 계통(공룡)에서는 쇄골이 사라지고, 다른 한
쪽 계통(조류)에서는 그것이 강화되어 서로 결합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다. 
  공통의 선조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트라이아스기의 조생치를 가진
파충류(파충류의 선조로서 이가 턱뼈의 홈 또는 구멍에 삽입되어 있는 
특징을 가짐/옮긴이)에 속하는 의사악어류pseudosuchians라 불리는 군
의 파충류였다.
  대다수 사람들은 조류가 지금까지 살아 남은 공룡의 한 계통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러한 충격적인 주장은 지금까지 인정되어온 척추
동물의 유연 관계에 대한 관점을 혼란시킬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고생물학자라면 누구나 공룡과 조류가 가
까운 관계라는 주장을 옹호한다. 
  근년 들어 이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의 핵심은 계통 발생의 분기
점에서 이루어진 약간의 이동에 대한 것이다. 즉 조류가 의사악어류에서 
분리된 후손인지, 아니면 의사악어류의 자손이었던 코엘루로사우루스 
공룡으로부터 분리된 것인지를 둘러싼 문제이다. 가령 조류가 의사악
어류의 단계에서 분기한 것이라면, 그들은 공룡류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없다(당시 공룡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만약 조류가 
코엘루로사우루스로부터 진화했다면, 그들은 공룡의 줄기에서 살아 남은
유일한 가지가 되는 셈이다. 
  의사악어류와 원시 공룡은 무척 닮았기 때문에 실제 분기점은 조류 
생물학에서 그다지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벌새가 스테고사우루스나 
트리케라톱스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계속하면 많은 독자들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다른 이유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주
장을 펼 작정이다. 나는 계통수의 이런 작은 가지의 문제가 실제로 전
문적인 고생물학자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다. 
  우리는 무엇이 무엇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는가에 대해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계의 역사를 복
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이고,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
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착심과 같은 정도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생물
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 자신의 사촌 형제
가 실제로는 자신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안다면-설령 그 발견으로 자
신의 생물학적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예일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존 오스트롬이 '공룡설'을 
부활시켰다. 그는 시조새의 모든 표본을-지금까지 발견된 다섯 개의 표본 
모두-재조사했다. 우선 공룡을 조류의 선조라고 보는 입장에 대한 주된 
반대론이 반박되었다. 두 종류의 코엘루로사우루스 공룡이 쇄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따라서 더 이상 이들이 조류 선조의 후보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게 되었다. 두 번째로 오스트롬은 시조새와 코엘루로사우
루스 사이에 구조상 현저한 유사성이 있음을 매우 자세히 입증하고 있다. 
  시조새와 코엘루로사우루스의 공통적인 특성 대부분은 의사악어류에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그 특성들은 각기 따로 두 번 발생했거나(의사악어
류가 조류와 공룡 모두의 선조인 경우), 아니면 한 번 발생해서 조류가 
선조인 공룡으로부터 그러한 특성을 계승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같은 특성이 따로따로 발생하는 경우는 진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특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현상을 병행 진화parallelism, 또는 수렴
convergence이라고 부른다. 두 군의 생물들이 같은 생활 양식을 공유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소수의, 비교적 단순하고 명백히 적응적인 구조
를 향해 수렴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한다.  
  남아메리카에 생존했던, 검치를 가진 유대목 육식 동물과 태반을 가진 
검치 '호랑이'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28장을 참조하라). 그러나 세부적인 
구조에서 적응적 필연성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부분과 
부분이 서로 대응성을 갖고 있는 경우, 이들 두 집단은 공통의 선조로부터 
진화했기 때문에 그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오스트롬의 공룡설 부활에 찬성한다. 공룡을 조류의 선조로 
보는 시각에 대한 유일한 큰 장애는 일부 코엘루로사우루스 공룡에서 쇄
골이 발견되면서 이미 제거되었다. 
  조류는 공룡에서 진화했다. 그렇다고 과연 그 말이, 비속하고 지루한
표현을 인용하자면, 공룡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일까? 좀더 실제적인
질문을 하자면, 공룡과 살아 남은 그 유일한 대표격인 조류가 같은 군
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미국의 고생물학자 R. T 배커와 P. M 골턴이
조류와 공룡을 함께 수용하는 공룡강이라는 척추 동물의 새로운 강을
제창했을 때, 그들은 바로 이러한 관점을 채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실제로는 분류학상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 얽혀 있는 것이다(이처럼 뜨거운 주제와 관련해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분류학적 형식에 관한 문제와 
신체 구조와 생리에 관한 생물학적 주장을 분명히 구별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중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분류학자들 가운데는 오직 계통 분기의 패턴에 의거해서만 생물을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선조 계통이 
두 계통으로 갈라져 나와 각각의 계통이 자손 계통을 갖지 않는다면
(공룡과 조류와 같이), 그 경우 이들 두 계통은 형식적인 분류에서 둘 
중 어느 한쪽이, 이들 두 군과는 다른 공통의 선조를 갖는 계통과 같은 
강으로 통합되기-가령 공룡과 다른 파충류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처럼
-전에 근연 관계가 더 가까운 동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류학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분기론cladistc의 입장에서는 조류가 
파충류가 아닌 것처럼 공룡 역시 파충류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규칙에 
따르면, 조류가 파충류가 아니면 공룡과 조류는 하나의 새로운 강이 되는 
것이다. 
  다른 분류학자들은, 계통의 분기점은 분류를 하기 위한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구조상의 적응적인 방산adaptive divergence의 
정도를 분기점과 같은 비중으로 평가한다. 분기론에 따르면, 소와 폐어는 
폐어와 연어보다도 가까운 유연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육기아강(sarcopterygian, 폐어를 포함하는 집단)의 어류가 
아주 오랜 옛날에 조기아강(actinopterygian, 연어를 포함하는 보통의 
경골 어류 집단)에서 분리된 후에 육생 척추 동물의 선조가 조기아강
에서 분기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전통 이론의 분류 방법에서는 분기 패턴과 생물학적 구조를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폐어와 연어를 모두 어류로 분류한다. 그것은 양자
가 모두 수생 척추 동물의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
는 양서류에서 파충류를 거쳐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진화적 변화를 
겪은 데 비해, 폐어는 정체 상태를 유지해 2억 5천만 년 전과 별다른 차이
가 없는 외관들 가지고 있다. 언젠가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듯이 물고기는 
역시 물고기인 것이다. 
  전통적인 분류 방식에서는 분기한 후에 나타나는 진화 속도의 차이를
생물을 분류하는 데 사용한다. 때로는 어떤 집단이 큰 방산을 나타내기
때문에 독립된 지위가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방식에
서 포유류는 독립된 한 집단이 되고, 폐어는 그 밖의 어류와 함께 분류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별개의 한 집단이 되고, 침팬지와 오랑
우탄은 함께 분류된다(인간과 침팬지의 분기가 침팬지와 오랑우탄이 분리
된 것보다 최근에 분기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조류가 공룡으로부터 분기했다 하더라도, 조류 역시 독립된 
한 집단이 되며 공룡은 파충류에 포함된다. 만약 조류가 공룡으로부터 
분리된 후에 그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해부학적 특징을 진화시킨 
것이라면, 또한 공룡이 기본적인 파충류의 체제로부터 멀리 일탈하지 않았
다면, 조류는 독립적으로 분류되고 공룡류는 그 계통 분기의 역사와 무관
하게 파충류와 함께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야 우리는 마침내 원래의 핵심적인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
다. 그리고 지금까지 언급한 분류학의 전문적인 주제들을 공룡이 온혈
이었는가라는 주제와 하나로 묶게 되었다. 조류는 그 기본적인 특징을
공룡으로부터 직접 계승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현대의 거의 모든 조
류가 대부분의 공룡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양식(날기와 작은 크기)을 가
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배커와 골톤이 주장한 공룡강이라는 분류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결국 박쥐도 고래도 아르마딜로(남미산 야행성 포
유 동물/옮긴이)도 모두 포유류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류의 경우, 하늘을 날기 위한 적응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두 가지
큰 특성을 생각해보자. 몸을 들어올리고 추진력을 주는 깃털, 그리고
비행이라는 격렬한 활동에 필요한 높은 물질 대사를 항상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온혈성이 그것이다. 시조새는 이들 특성을 선조인 공룡으로부터
계승할 수 있었을까?
  R. T 배커는 공룡이 온혈이었다고 주장하는 가장 수준 높은 보고서
를 제출했다. 그의 논쟁적인 주장은 크게 4개의 근거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1. 뼈의 구조에 관하여 냉혈 동물은 체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다. 냉혈 동물의 체온은 외부 온도에 따라 변동한다. 따라서 계절이 
뚜렷한 지역, 즉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있는 지역에 사는 냉혈 동물은 
조밀하게 이루어진 뼈의 맨 바깥쪽 표층에 동심원 모양의 성장선을-여름
의 빠른 성장과 겨울의 느린 성장이 번갈아 나타나는 층상 구조-갖고 
있다(물론 나무의 나이테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반면 온혈 동물은 
내부 체온이 계절 변화와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이러한 
층상 구조가 나타나지 않는다. 계절 변화가 뚜렷한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의 뼈에서도 이러한 성장선이 관찰되지 않는다. 
  2. 지리적 분포에 관하여 몸집이 큰 냉혈 동물은 겨울의 짧은 낮에 체
온을 충분히 올릴 수 없고, 동면을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찾기에는 
몸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적도에서 멀리 떨어진 고위도 지방에서는 살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대형 공룡들은 극북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전혀 햇볕
이 닿지 않는 긴 겨울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다. 
  3. 화석 생태학에 관하여 온혈 육식 동물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같은 크기의 냉혈 육식 동물보다 먹이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 따라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몸 크기가 거의 같은 경우 냉혈 동물 사회에서는 온혈
동물 사회보다 포식자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한 마리당 먹이의 수가 
훨씬 작기 때문에). 피식자에 대한 포식자의 비율은 냉혈 동물 사회에서는 
40퍼센트까지 이르는 데 비해 온혈 동물 사회에서는 3퍼센트를 넘지 않는
다. 공룡의 동물상에는 포식자의 수가 적으며, 포식자의 상대적 크기는 
오늘날의 온혈 동물 사회에서 예상되는 크기와 같다. 
  4. 공룡의 몸 구조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공룡류는 느린 속도로 움직이
는 대형 동물로 묘사되지만,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복원 작업은 (25장 
참조) 대부분의 대형 공룡들이 그 운동 기관의 구조와 사지의 비율에서 
주행성 포유류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조류가 달고 다니는 깃털은 공룡에게서 물려받은 것
일까? 브론토사우루스의 동류 가운데 공작처럼 깃털이 뒤덮인 종류가
없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왜 시조새는 깃털로 덮인 것일까? 비행을 위
해서라면 깃털은 조류에게만 속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하늘을 나는
공룡을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늘을 날았던 익룡목 동물들은 다
른 집단에 속한다). 그러나 오스트롬의 해부학적 복원은 시조새가 하늘
을 날 수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날개가 돋아 나온 전완(사람의 팔뚝에 해당하는 부분/옮긴이)은 견대에 
연결되어 있어 날개 치기를 하기에는 전혀 적절치 않은 구조였다. 오스
트롬은 깃털이 두 가지 기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즉 몸집이 작은 온혈 
동물에서는 열이 발산되는 것을 막아주었고, 날아다니는 곤충이나 그 밖의 
먹이를 낚아챌 때 먹이를 완전히 품는 듯이 잡을 수 있도록 일종의 바구
니와 같은 기능을 해준다는 것이다. 
  시조새는 몸집이 작은 동물이었다. 체중은 1파운드 이하였고 서 있을
때의 신장은 가장 작은 공룡보다 1피트나 작았다. 몸집이 작은 동물은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크다(29, 30장을 보라). 열은 전신에서 발
생해서 그 표면에서 방출된다. 몸집이 작은 온혈 동물은 열이 상대적으
로 넓은 몸 표면에서 계속 발산되기 때문에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특별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뒤쥐는 체모라 난 모피로 덮여 단열되지만, 체내에서 계속 열을 발생
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먹이를 먹어대야 한다. 그에 비해 몸집이 큰 동물은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작기 때문에 단열물을 갖지 않고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룡 또는 그 자손들이 소형화함에
따라 온혈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열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 것
이다. 
  따라서 깃털은 몸집이 작은 공룡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적응 수단으로 기능했을지도 모른다. 배커는 작은 코엘루로
사우루스의 대부분이 깃털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깃털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 화석은 좀처럼 없고, 시조새는 깃털의 흔적이 
정교하게 남아 있는 희귀한 예에 속한다).
  처음에 단열물로 발달한 깃털은 곧 비행에서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
다. 사실 깃털이 비행 외에 아무런 효용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깃털이 계속 진화하게 된 사실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조류의
선조는 분명 하늘을 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깃털이 한꺼번에 완
전한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자연 선택이 깃털이 필
요없던 선조 동물들을 통해 몇 차례의 중간 단계를 거치면서 하나의 적
응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단열이라는 최초의 기능을
가정하면, 온혈 공룡이 작은 크기라는 생태학적 유리함을 획득할 수 있
는 장치로서의 깃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류가 코엘루로사우루스 공룡의 자손이라는 오스트롬의 주장은 공룡
이 온혈성이라는 사실이나 깃털이 원래 단열재로 기능했다는 사실 토
대로 삼지 않는다. 대신 그의 주장은 비교해부학의 고전적인 방법, 즉 
뼈와 뼈 사이의 부분 대 부분에서 나타나는 유사성과, 그러한 현저한 
유사성이 수렴이 아니라 공통의 선조를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사고 방식을 기초로 한다. 나는 공룡의 온혈성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이
어떻게 결론지어지더라도 오스트롬의 주장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조류가 깃털과 온혈성이라는 최초의 적응을 공룡
류로부터 직접 계승한 경우에만 조류가 공룡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이 설
득력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만약 조류가 갈라져 나온 뒤에 이러한
적응을 발달시킨 것이라면 공룡은 그 생리적 특징에서 훌륭한 파충류이
며, 따라서 그들은 거북, 도마뱀 그리고 그 밖의 동류와 함께 파충강으
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다(내 분류학적 관점에 따르면, 나는 분기론보다
전통 이론에게 더 가깝다). 
  그렇지만 만약 공룡이 정말 온혈 동물이었다면, 또한 만약 깃털이 작은 
몸으로 온혈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조류가 번성할 수 있었던 
기반은 공룡류로부터 계승된 셈이 된다. 그리고 만약 공룡이 그 생리적 
특징에서 다른 파충류보다 조류에 더 가까웠다면, 조류와 공룡을 정식으로 
'공룡강'이라는 새로운 강으로서 분류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해부학적 관점
을-계통에 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지지하는 근거를 얻고 
있는 셈이다. 
  배커와 골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조류의 확산은 공룡이 지닌 기본
적인 생리와 구조를 공중 생활에 이용한 것이다. 그것은 박쥐의 확산이
포유류가 지닌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생리를 공중 생활에 이용한 것과
같다. 우리는 단지 하늘을 난다는 이유만으로 박쥐를 독립된 강으로 분
류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조류가 하늘을 난다거나, 새의 종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로 그들을 공룡으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강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달 하순에 당신이 차골을 뜯을 때가 있거든 꼭 티라노사우루스를 
생각하라(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의 추수감사절때 칠면조 고기를 먹을 
때를 의미하는 것임/옮긴이). 그리고 아주 먼 옛날 모든 공룡의 대표였고,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인 티라노사우루스에게 감사드려라.
  
      제27장 자연계의 교묘한 얽힘
  자연의 사슬 가운데 열 번째 고리를 끊든 천 번째 고리를 끊든 곧 
자연의 사슬은 파괴되고 만다. 
                     알렉산더 포프, '인간에 대한 에세이' (1733년)
  포프의 이 2행 문구는 조금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생태계에서 살아
가는 생물들 사이에 상호 관계가 어떠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잘 표현
해내고 있다. 그러나 생태계란 하나의 종이 멸종하였다고 도미노 현상
처럼 연쇄적으로 작용할 만큼 불안정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멸종은 모든 생물 종의 공통된 숙명이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생물 종이 [멸종하면서] 그들의 생태계를 모조리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종들은 흔히 롱펠로가 묘사한 "어두운 밤에 서로를 
지나치는 배들"처럼 서로에 대해 크게 의존하고 있다. 뉴욕시는 개가 
없더라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바퀴벌레가 없는 뉴욕 생활이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한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상호 의존하는 짧은 연쇄는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로 다
른 종에 속하는 생물과 생물 사이에 갖는 기묘한 결합은 일반인들을 대
상으로 박물학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하
나의 조류와 균류가 지의류를 형성하고,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 초를 
형성하는 산호의 조직 속에 살고 있다. 자연 선택은 기회주의를 그 본질로 
삼는다. 
  다시 말해 생물을 그때 그때 환경에 부합하도록 만들기는 하지만 결코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다. 한 생물 종이 다른 종에 대해 끊을 수 없는 
의존 관계를 진화시키는 일은 종종 있다. 변덕스러운 세계에서는 이렇듯 
유용한 결합이 그 생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내 박사학위 논문은 버뮤다 제도의 화석 달팽이를 주제로 한 것이었
다. 해안을 따라 걷노라면 커다란 소라게가-이 소라게는 커다란 집게
발을 가지고 있다-어울리지 않게 갈고둥의 작은 껍질에 마치 쑤셔 박
히듯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왜 소라게는 불편한 숙소에서 
좀더 편안한 하숙으로 옮기지 않는 걸까?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소라게를 능가하는 것은 빈번하게 부동산 시장을 출입하는 오늘날의 기업 
경영자들뿐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마리의 소라게가 적당한 크기의 숙박 시설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숙박 시설은 서인도 제도 일대에서 주식
으로 쓰이는 '웰크(식용으로 쓰이는 쇠고둥의 일종/옮긴이)'라 불리는 대형 
고둥 껍질이었다. 그러나 그 껍질은 아주 오래된 사구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씻겨진 화석이다. 
  그 껍질은 지금 그 속에 들어 있는 소라게의 선조가 12만 년 전에 그 
사구로 운반해온 것이다. 나는 그 후 수개월 동안 소라게와 그 껍질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대부분의 소라게들은 갈고둥 껍질에 억지로 들어가 
있었지만, 소수는 웰크 껍질 속에서 살았다. 그 껍질은 항상 화석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문헌을 조사했다 그 결과 1907년에
이미 애디슨 E. 베릴이 나를 앞질러 이것을 먼저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그는 루이 아가시의 제자로 예일 대학에 재직하던 분류학자
였고, 버뮤다의 박물지를 공들여 기록한 사람이기도 했다. 
  베릴은 살아있는 웰크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버뮤다의 역사 기록
들을 뒤졌고, 그 섬에 인간이 정주한 초기에는 웰크가 아주 풍부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존 스미스 선장은 1614-1615년의 대기근 
동안 한 뱃사람의 운명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살아 남은 사람 중 
한 명은 수풀속에 숨어 웰크와 통통하게 살찐 참게만을 먹고 지냈다." 
  또 다른 선원은 웰크의 껍질을 태워 얻은 석회를 거북의 기름으로 개서 
배의 갈라진 틈을 메꾸는 시멘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베릴이 남긴 현생 
웰크에 관한 최후의 기록은 전쟁이 한창이던 1812년에 버뮤다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취사장에서 기어 나톤 살아 있는 웰크에 대한 것이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근년에는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 지방의 가장 나
이 많은 노인들의 기억을 더듬어도 살아 있는 웰크가 잡힌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70년 동안 웰크가 버뮤다에서 멸
종했다는 베릴의 결론을 뒤집을 만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내가 베릴의 기록을 읽었을 때, 체노비타 디오게네스Cenobita diogenes
(대형 소라게의 학명이다)가 처한 딱한 처지는 흔히 인간 이외의 생물들
에게 들씌워지는-필경 부당하기 짝이 없는-인간 중심적인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금할 수 없게 했다. 이 소라게가 버뮤다에서 서서히 사라
져 버리는 것이 자연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갈고둥 껍질은 너무 작아서 소라게의 새끼나 성체 가운데 아주 작은 
놈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외의 소라게에게는 갈고둥 껍질이 
적당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소라게가 다 자란 후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점차 줄어드는 소중한 필수품(쇠고둥 껍질)을 찾아내 소유하는 
것이-탈취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필수적이다. 그러나 근년 들어 버뮤
다 제도에서 쇠고둥은 요즈음 유행어를 빌리자면 '회복 불가능한 자원'이 
되기 때문에 소라게들은 여전히 몇 세기 전의 껍질을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껍질은 두껍고 튼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파도나 암석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급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매년 사구에서 소수의 '새로운' 껍질이 굴러 떨어진다. 그 새로운 껍질은 
먼 옛날에 언덕 위로 껍질을 운반해 올린 선조 소라게들이 남긴 귀중한 
유산이다. 그러나 이런 껍질들로는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전위적인 영화나 시나리오에 흔히 등장하는 염세적인 관점-완전히 지친 
생존자들이 최후 한 조각의 음식물을 얻기 위해 사투를 계속한다는 식의 
스토리-을 만족시키도록 운명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 대형 소라게를 명명한 학자는 정말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준 셈이다. 
견유학파인 디오게네스는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등을 밝히고 아테네 
거리를 헤맸지만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 체노비타 디오게네스도 
자기에게 맞는 껍질을 찾아 헤매면서 차츰 사라져갈 것이다. 
  대형 소라게에 얽힌 이 가슴아픈 이야기는, 최근 이와 흡사한 이야기
를 들었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갑자기 떠올랐다. 앞에서 했던 이야
기에서는 소라게와 웰크가 진화적인 의존 관계를 형성했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수목의 씨앗과 도도라는 새가 훨씬 특이한 조합을
이룬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19세기의 지질학자들 가운데 대격변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였던
윌리엄 버클랜드는 생명의 역사를 한 장의 큰 그림에 요약했다. 이 그
림은 여러 겹으로 겹쳐져 '지질학과 광물학에 대한 자연 신학적 고찰'
이라는 제목의 당시 유명한 저서 속에 끼여 있었다. 그 그림은 대멸종
당시 희생되었던 동물들을 멸종한 시대별로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주요
동물들은 한데 모아놓았다. 
  어룡, 공룡, 암모나이트, 익룡 등이 한 무리를 이루었고, 매머드, 긴털
코뿔소, 거대한 동굴곰 등이 또 한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맨 오른쪽에는 
현대의 동물로서 우리 시대에 기록된 최초의 멸종 생물인 도도가 혼자 
서 있다. 몸집이 크고 날 수 없었던 도도(이 새의 체중은 25파운드가 
넘었다)는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상당수 서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처음 발견된 후 채 200년도 지나지 않아 멸종하고 말았다. 
맛이 뛰어난 도도의 알을 남획한 인간들과, 일찍부터 선원들이 모리셔스 
섬에 들여온 돼지가 그 원인이었다. 1681년 이후 살아 있는 도도는 단 
한 마리도 목격되지 않았다. 
  그런데 1977년 8월에 위스콘신 대학의 야생 생태학자 스탠리 A. 템
플이 다음과 같은 신기한 이야기를 보고했다(그 후에 일어난 논쟁에 관해
서는 '후기'를 참조하라), 그는, 그리고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은 칼바리
아 마요르Calvaria major라는 거목이 모리셔스 섬에서 거의 멸종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1973년에 그는 남아 있는 원시림 속에서 겨우 13그루에 지나지 않는 
'과성숙했고 고사하고 있는 노목'을 찾아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모리셔스 
섬의 경험 많은 삼림 관리인들은이 거목의 수령을 3천 년 이상으로 추측
했다. 이 나무들은 매년 겉보기에는 수정된 것처럼 보이는 완전한 형태의 
씨앗을 만들어내지만 실제로는 단 하나의 씨앗도 발아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린 나무는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공적으로 이 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기후를 갖춘 종묘장을 만들어 
그 씨앗들을 발아시키려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과거
에는 모리셔스 섬에 칼바리아가 아주 흔했던 것으로 보이며, 과거의 삼림 
관리 기록에 따르면 이 나무가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벌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름이 2인치 가량 되는 칼바리아의 열매에는 두께가 1/2인치 정도되는 
단단한 핵으로 덮힌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 핵은 수분이 많은 과육질 
층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바깥쪽에 엷은 외피가 덮혀 있다. 템플은 견
고한 핵이 "내부에 있는 배가 팽창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종자가 
발아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면 먼 옛날에는 어떻게 
발아한 것일까?
  템플은 두 가지 사실을 하나로 묶었다. 초기의 탐험자들은 도도가 삼
림 속 거대한 나무의 열매와 씨앗을 주식으로 삼았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실제로 칼바리아 핵의 잔해가 도도의 유해 속에서 발견되기도 했
다. 도도는 견고한 먹이를 깨뜨릴 수 있을 만큼 자갈이 많이 들어 있는
튼튼한 모래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지금까지 살아 있
는 칼바리아 나무의 수령이 도도가 멸종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
실은 이 두 종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도도는
약300년 전에 종적을 감추었고, 그 후에 발아한 칼바리아 나무의 씨앗
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템플은 도도의 모래주머니 속에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적응 전략으로서 칼바리아가 씨앗을 아주 두꺼운 핵으로 둘러싸도록 진
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나무는 스스로의 번식을 
도도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하나를 얻은 대신 다른 하나를 내준 꼴이다. 
  도도의 모래주머니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핵은 배가 스스로의 
힘으로 발아하기에는 지나치게 두꺼웠다. 이처럼 일찍이 씨앗을 위협하던 
모래주머니가 이제는 칼바리아가 번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가 
된 것이다. 이제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핵이 마멸되고 그 
표면이 깎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러 종류의 작은 동물들이 칼바리아의 열매를 먹지만,
그들은 단지 수분이 많은 육질부를 갉아먹을 뿐 중심부에 있는 핵은 건
드리지 않는다. 반면에 도도는 이 열매를 통째로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이 새는 과육을 소화시킨 후 핵을 뱉거나, 모래주머니에서 핵을
벗겨낸 다음 똥과 함께 배설했을 것이다. 템플은 씨앗이 여러 동물의
소화관을 거친 후 발아율이 현저히 높아진 여러 사례를 인용했다. 
  그런 다음 템플은 여러 종류의 현생 조류의 체중과 모래주머니에서
발생하는 힘 사이의 관계를 그래프로 나타내 도도의 모래주머니가 갖는
파괴력을 추정해보았다. 여기에서 얻어진 곡선을 도도의 체중에까지 연
장한 결과, 칼바리아의 핵은 파괴에 저항할 정도로 충분히 두껍다는 결
론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가장 두꺼운 핵은 마멸에 의해 약 30퍼센트
가 줄어들지 않는 한 파괴되지 않았다. 
  도도는 그전 상태에서 씨앗을 토해내거나 장으로 보냈을 것이다. 템플은 
오늘날 살아 있는 새 가운데 도도와 가장 비슷한 칠면조를 선택해서 한 
번에 하나씩 강제로 칼바리아의 핵을 먹여보았다. 칠면조의 모래주머니
에서 17개의 씨앗 중 7개가 부숴졌고, 나머지 10개는 칠면조가 토해냈거나 
상당히 마모되어 배설물과 함께 배출되었다. 
  템플은 이 씨앗들을 심었고, 그 결과 3개의 씨앗이 발아했다. 그는 
"이것들이 지난 300년 넘는 기간 동안 처음 발아한 칼바리아의 씨앗일지
모른다"라고 썼다. 어쩌면 인공적으로 마모시킨 종자를 뿌리는 방법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칼바리아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결합해서 자연 파괴가 
아니라 보전으로 이어지는 일도 이따금씩 일어난다. 나는 '내추럴 
히스토리'지의 연재 에세이가 5년째에 접어들 무렵 이 이야기를 썼다. 
처음에 나는 자연사에 관한 흥미거리를 늘어놓는 지금까지의 상투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다시 말해 자연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진화론의 일반 원리에 결부시키고 싶
었다. 판다와 바다거북을 진화의 증거로서 불완전한 점들과 결부시키고, 
자성 박테리아를 비례 증감의 여러 가지 원리에 결부시키고, 몸 속에서 
어미를 먹는 진드기를 성비에 관한 피셔의 이론과 결합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들의 복잡한 세계에서 사물들은 모두 다른 
사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그리고 국부적으로는 붕괴된다 하더라도 그 
여파는 훨씬 멀리에까지 미친다는 단순한 교훈이외에 아무런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 이 글에서 서로 연관을 갖는 두 가지 이야기를 언급한 것은 
단지 그 이야기들이 한편으로는 가슴아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미롭게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후기
  자연사에 얽힌 이야기 가운데는 널리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아름답
고 복잡한 것들이 있다. 템플의 보고는 곧 신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
게 되었다(제일 먼저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 후에는 내 논문에 인용되었다). 이듬해에(1979년 3월 30
일) 모리셔스 섬 삼림국의 와달리 박사가 학술지 '사이언스'(템플의 최
초의 논문이 발표된 잡지이기도 하다)에 발표한 전문적인 논평에서 몇 가
지 의문을 제기했다. 다음에 소개한 글은 와달리 박사의 논평과 그에
대한 템플의 반박을 원문 그대로 수록한 것이다. 
  나는 식물과 동물 사이에 공진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일부 씨
앗의 종자는 동물의 장을 통과함으로써 발아에 도움을 받는다는 주장
자체를 반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명한 도도와 칼바리아의 '상리 공
생mutualism'이 공진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
음과 같은 이유로 지지할 수 없다. 
  1. 칼바리아 마요르는 강우량이 연간 2,500에서 3,800밀리미터인 모
리셔스 섬의 고지 다우림 지역에서 자란다. 반면 네덜란드 인들의
자료에 따르면, 도도는 북부 평지, 그리고 네덜란드 인들이 최초의 
거류지를 마련한 장소인 동부 그랜드 포트지구의 구릉지역-즉 비교적 
건조한 삼림-에 출몰했다. 따라서 도도와 칼바리아 마요르가 동일한 
생태적인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힘들다. 실제로 지금까지 
저수지와 배수구 등을 만들기 위해 고지에서 광범위한 굴착 작업을 벌였
을때 도도의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2. 일부 저자들은 마르 오 송주Mare aux Songes에서 목본 식물의
작은 씨앗이 발견된 사실, 그리고 도도를 비롯한 다른 새들이 그
씨앗들의 발아를 도왔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종자는 칼바리아 마요르가 아니라 시데록실론 롱기
폴리움Sideroxylon longifolium으로 확인된, 저지에 서식하는 다른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삼림국은 최근 수년에 걸쳐 조류의 도움 없이 칼바리아 마요르의
종자를 발아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서 큰 성과를 얻었다. 다소 발아율이 
낮기는 하지만 최근 수십 년에 걸쳐 번식률이 현저히 저하된 많은 
토착종의 발아율만큼은 낮지 않다. 그 번식률 저하는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에는 서무도 복잡한 여러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원숭이에 의한 약탈과 외래 식물의 침입이다. 
  4. 1941년 보건Vaughan과 위에Wiehe는 고지에 있는 최고 강우
림 지역을 조사한 결과, 75년에서 1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칼바리아의 상당히 큰 군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도도가 멸종한 것은 1675년 무렵이다!
  5. 칼바리아 마요르 씨앗이 발아하는 방식은 힐Hill이 기술하고 있
다. 그는 배가 어떻게 단단한 목질 내과피를 뚫고 나올 수 있는지를 
밝혀냈다. 팽창한 배가 종자의 밑부분 절반을 명료한 파열대를 따라 
가른 것이다. 
  칼바리아 마요르와 도도의 '신화'를 깨뜨리고 고지 평원에 돋아 나오
는 이 거대한 나무의 숫자를 늘리려는 모리셔스 삼림국의 노력을 올바
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모리셔스, 큐어파이프 삼림국
                                     A. W 와달리 1978년 3월 28일
  도도와 칼바리아 마요르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동식물 간의
상리 공생은 도도가 멸종한 이상 실험적인 입증 불가능하다. 내가 지적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고, 따
라서 그 가능성이 칼바리아 마요르의 낮은 발아율을 설명해줄 수 있으
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역사적 복원에 잘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
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도도와 칼바리아가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었다는 와달
리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모리셔스 섬의 고지에서는 실제로 도
도의 뼈나 그 밖의 어떤 동물의 뼈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동
물들이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섬의 지형상 충적층(충적세에 생성
된 지층. 지질학상 가장 새로운 지층으로 자갈, 진흙, 모래, 토탄 등으로
이루어짐/옮긴이)이 고지에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지의 물이 모
이는 지역에는 주위의 고지에서 씻겨 내려온 동물의 뼈들이 많이 쌓여
있다. 
  하찌즈카가 요약한 초기 탐사자들의 기록에는 도도가 고지에서 발견
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적혀 있지만, 그는 도도가 엄밀히 해안에 사는 
새였다는 오해를 푸는 데 중점을 두었다. 모리셔스의 과거 임업 기록은
칼바리아가 고지의 평원에서뿐 아니라 저지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원시림은 고지에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살아 남은 칼바리아 
나무 중 하나는 겨우 해발 150미터 위치에 있다. 따라서 도도와 칼바리아 
사이에서는 상리 공생적 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동지역성 sympatric 
분포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인도양 일대에 분포한 사포타과(sapotaceous, 감나무목에 속하는 쌍
떡잎 식물/옮긴이) 식물의 분류 전문가들은 마르 오 송주의 습지에 있
는 충적층 퇴적물에서 시데록실론 롱기폴리움의 작은 종자와 함께 칼바
리아 마요르의 씨앗을 식별하고 있지만, 이것은 상리 공생의 문제와 거
의 관계가 없다. 상리 공생하는 종이 반드시 함께 화석화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모리셔스 삼림국은 극히 최근에 와서야 처음으로 칼바리아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최근의 성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성공이 상리 공생설을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성공을 거둔 것은 씨앗을 심기 전에 핵을 기계로 마
모시켰기 때문이다. 도도의 소화관은 모리셔스 삼림국의 실무자들이
씨앗을 심기 전에 인공적으로 가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방법
으로 칼바리아 씨앗의 내과피를 마모시킨 것에 해당한다. 
  와달리가 살아 남은 칼바리아의 수령에 관해 인용하고 있는 문헌은
의심스럽다. 그런 식으로 정확히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
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 와달리가 인용한 논문의 공저자인 위에는 300
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살아 남은 나무의 수령에 관해서 내가 인용한 문
헌의 저자이기도 하다. 1930년대에는 현재보다 살아 남은 나무가 많았
다는 주장은 동의할 만하다. 그것은 칼바리아 마요르가 쇠퇴하고 있는
종이고 또한 1681년 이래 쇠퇴하는 경향이 계속되었다는 관점을 한층
더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내가 힐을 인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힐은 어떤 조건
하에서 종자가 발아하게 되었지를 기술하지 않았다. 그 자세한 설명이
없는 한 그의 기술은 상리 공생의 문제와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다. 
                                                  스탠리 A. 탬플
                                  위스콘신 대학 야생 생태학 교실
  나는 템플이 와달리가 처음에 제기한 세 가지 논점에 대해 적절히,
그리고 훌륭하게 응답했다고 생각한다. 고생물학자로서 나는 고지에서
화석이 잘 발견되지 않는 점에 대한 그의 주장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고지의 동물상에 관해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화석 기록은 지극히 불
충분하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표본은 일반적으로 저지의 퇴적물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높은 곳에서 흘러 내려오는 과정에서 많이 마모되고
씻겨졌기 때문이다. 
  삼림국이 칼바리아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전에 씨앗의 내과피를 마모
시켰다는 사실을 와달리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었다. 
마모의 필요성이 템플 가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템플도 그 
자신의 발견보다 훨씬 앞선 모리셔스 현지인들의 노력을 증거로 삼지 
않은 점에서 마찬가지로 부주의했다. 
  그렇지만 와달리의 네 번째 논점은 템플의 주장에 대한 반증을 내포
하고 있다. 만약 칼바리아의 '상당히 큰 군집'의 수령이 1941년에 100
세 이하였다면, 도도가 그 나무들의 발아를 도울 수는 없었다. 템플은
이처럼 젊은 나무의 존재가 확인된 것을 부정하고 있고, 나 자신도 이
결정적인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 소개한 논쟁은 과학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할 때 사
람들을 혼란시키는 요소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매체
들이 템플의 최초 논문을 인용해왔다. 그러나 그 후에 나타난 의문점에
대해 언급한 언론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의 '훌륭한' 이야기들은 대개 허위이거나 적어도 과장된 것임이 
밝혀지지만, 그런 사실을 폭로하는 것은 흥미로운 가설만큼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틀렸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런 잘못된 도그마만큼 삭제되는 것에 꿋꿋이 저항
하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와달리와 템플의 논쟁은 현 단계에서 판정하기 힘들 만큼 호각지세
다. 나는 템플 쪽을 지지하지만, 만약 와달리의 네 번째 주장이 옳다면
이 도도 가설은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멋진 표현대로 "지저분하고 추악
하고 사소한 사실에 의해 매장된 아름다운 이론"이 되는 셈이다. 
  
       제28장 유대목 동물에 대한 재평가
  나는 나와 같은 종의 탐욕 때문에 살아 활동하는 도도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몹시 분개하고 있다. 칠면조만한 크기의 비둘기
과의 새라면 무언가 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곰팡이 냄새
나는 박제된 표본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혀 실감을 느낄 수
없다. 
  자연의 다양성을 마음껏 즐기고 모든 생물들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호모사피엔스에게 백악기의 대멸종 이래 가장 큰 재앙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약 200만 년에서 300만 년 전의 
파나마 지협의 융기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생물계의 비극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사건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남아메리카는 제3기(즉 대륙 지역이 빙하에 뒤덮히기 시작하기까지의 7
천 만 년) 동안 내내 하나의 섬으로 이루어진 대륙이었다. 그리고 오스
트레일리아와 마찬가지로 이 대륙에는 매우 특이한 두 종류의 포유류가
살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남아메리카가 폭넓고 다채로운 생물 형
태들을 가지고 있었던 데 비하면 무척 침체된 편이었다. 
  파나마 지협이 형성된 후 북아메리카에서 몰려온 동물들의 맹습을 
받았지만 많은 생물종들이 살아 남았다. 그 중 일부는 그전보다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 번성했다. 어포섬(주머니쥐)은 북아메리카에서 캐나다까지 
도달하였고, 아르마딜로는 계속 북쪽으로 진출해갔다. 
  소수 종이 계속 살아 남은 반면 다채로운 남미의 생물 종들이 멸종해
간 것은 남북 양 대륙의 포유류들이 접촉하면서 우월한 종이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두 목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현존하는 포유류는 약 25목으로 분류된다). 식물을 먹는 다양하고 거대
한 집단이었던 포유류들이 오늘날까지 살아 남아 있다면 우리들의 동물
원이 얼마나 풍부해졌을지 상상해보라. 
  거기에는 찰스 다윈이 비글 호로부터 상륙 허가를 얻어 처음 그 화석을 
발견한, 코뿔소 크기의 톡소돈Toxodon에서 티포테리움typotheres과 헤게
토테리움hegetotheres에 속하며 토끼나 설치류와 닮은 종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또한 두개의 작은 그룹, 즉 크고 긴 목을 가진 
낙타와 흡사한 마크라우케니아macrauchenids, 그리고 가장 괄목할 만한 
집단으로서 말과 닮은 프로테로테리움proterotheres으로 이루어진 골거목
litopterns을 생각해보라(프로테로테리움은 진짜 말과 비슷한 진화적 경로
를 부분적으로 반복해온 군이다). 
  가령 세 개의 발가락을 가진 디아디아포루스Diadiaphorus에 이어 하나의 
발가락을 가진 토아테리움Thoatherium이 나타났음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토아테리움은 양쪽의 흔적 손가락이 오늘날의 말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
로 퇴화해 있다는 점에서 맨 오워(Man' O War, 미국 경주마 사상 최고의 
경주마로 꼽힌 말의 이름/옮긴이)를 능가할 지경이다. 
  이들은 모두 지협의 융기로 시작된 남미 동물상의 붕괴에 휩쓸려 영원
히 사라지고 말았다(남제목notoungulates과 골거목 가운데 일부는 빙하 
시대까지 살아 남았다. 어쩌면 그들은 초기 인간사냥꾼들에 의해 최후의 
일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만약 남아메리카가 섬 대륙으로서 
계속 남아 있었다면 그 중 다수가 지금까지도 살아 남았을 것이라고 확신
한다). 
  이들 남미의 초식 동물에 의존해 살아가던 토착 육식 동물들도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재규어와 그 동류에 해당하는 남미의 현생종 육식 동
물들은 모두 북아메리카에서 온 침입자들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남
아메리카의 토착 육식 동물은 모두 유대목이었다(그러나 놀랍게도 일부
육식 동물에는 큰 몸집을 가진 포로라코스과phororhacids는 멸종한
새의 집단이 있었다). 
  유대목에 속하는 육식 동물도 북반구 여러 대륙에 있는 태반을 가진 
육식 동물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작은 동물에서 곰 크기의 
동물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종류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 계통은 북
아메리카의 '검치호(위턱의 송곳니가 칼 모양으로 발달한 호랑이와 
비슷한 화석 동물/옮긴이)'와 놀랄 만큼 흡사하게 진화했다. 즉 유대목인 
틸라코스밀러스Thtlacosmilus는 먹이를 찌르는 긴 윗턱 송곳니와, 이 
송곳니를 뒷편에서 지탱하는 듯한 테두리를 아래턱 뼈에 발달시켰다. 
이 모습은 라 블레아(로스앤젤레스 근교)의 타르 늪에 보존되어 있는 
스밀로돈smilodon과 똑같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남아메리카에서 유대목의 상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북아메리카에는 버지니아 어포섬 정도가 서식하는
반면(실제로는 남미에서 이주한 것이지만), 남미에서 어포섬은 약65종에
이를 만큼 다양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오포섬 랫opossum rat'
이라 불리는 케놀레스테스속caenolestids의 주머니 없는 유대목이 진짜 
어포섬과 유연 관계가 먼 별개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남미의 
유대목 중에 세 번째로 큰 집단인 육식성 보르히에나 borhyaenids는 
완전히 사라졌고, 북방에서 온 고양이과 동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
하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관점에 반대하
기 위해서이다-따르면, 육식성 유대목이 멸종한 것은 주머니를 가진
유대목이 태반을 가진 포유류에 비해 전반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유대목과 난생 오리너구리와 바늘두더지를 제외하면 현생하는 포유
류는 모두 태반을 가지고 있다). 이 관점은 여간해서는 깨뜨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대목은 태반을 가진 대형 육식 동물이 아직 자리를 잡
지 못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메리카라는 고립된 섬 대륙에서만 번성
했다. 
  제3기 초기에 북아메리카에 있는 유대목은 태반을 가진 포유류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자 곧 종적을 감추었다. 다른 한편 남아메리카의 유대목은 
북미와 남미를 연결해주는 중미를 통해 북방의 태반을 가진 포유류가 남
쪽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자 큰 타격을 받았다. 
 생물지리학과 지질학사에 기초를 둔 이러한 주장은 유대목이 태반을
가진 포유류에 비해 해부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종전의
사고 방식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분류학 용어 자체도 이
러한 편견을 강화시켜준다. 포유류는 세 군으로 나뉜다. 
  난생의 단공류monotremes는 '원수아강(Prototheria, 포유류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로 오리너구리, 바늘두더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옮긴이)' 또는 
원시 포유류라고 불린다. 그에 비해 태반을 가진 포유류는 '진수하강
Eutheria', 즉 인정한 포유류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유대목은 '후수아강Metatheria', 즉 중간 단계의 포유류로-불완전한
포유류로-냉대를 받고 있다. 
  유대목이 다른 포유류보다 구조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은 주로 유대
목과 유태반류의 생식 방식의 차이에 근거하고 있으며, '우리와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오만한 가정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실제로도 경험했듯이 태반을 가진 포유류의 새끼는 어미와
밀접하게 연결돼서 어미로부터 혈액을 공급받는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의 갓 태어난 새끼는 생활력을 갖춘 
거의 완전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에 비해 유대목의 태아는 모체 속에서 
크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장치를 자신의 신체 내부에 발달시키지 않았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온 조직을 식별해내서 받아들이지 않는 신비
스러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질병에 대항하는 데 필수적인 방어 
수단이 되는 반면, 최근에는 피부와 심장 이식과 같은 의학적 처치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듣고, 
50퍼센트의 외가 쪽 유전자가 아이에게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여전히 어머니와 이질적인 조직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서는 모친의 면역 체계를 덮어 가릴 필요가 있다. 태반을 
가진 포유류의 태아는 그 방법을 '배운 데' 비해 유대목의 태아는 배우지 
못한 것이다. 
  유대목의 임신 기간은 대단히 짧다. 보통 어포섬의 경우 그 기간은
12-13일 정도이며, 그 후 새끼 어포섬은 체외 주머니 속에서 60일에서
70일 동안 발육을 계속한다. 게다가 모체 내에서의 발육도 모체와 밀접
한 결합을 이루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체로부터 차단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임신 기간의 2/3는 림프구의 침입을 막는 모체의 기관이자 면역 체계의 
'병사'라고 할 수 있는 '알 껍질막shell membrane'속에서 진행된다. 그 후 
수일간, 일반적으로는 난황낭을 통하여 태반과 접촉한다. 이 기간 동안 
모체는 면역 체계를 작동시키고, 곧 이어 태아가 태어난다(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미의 몸에서 추방된다).
  갓 태어난 유대목 새끼는 발육 정도에서 볼 때 태반을 가진 포유류의
초기 배에 해당한다. 머리와 앞다리는 비교적 빨리 발생하지만, 뒷다리
는 대개 미분화된 맹아와 같은 상태에 불과하다. 태어난 후 이 생물은
위험한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젖꼭지가 있는 모체의 주머니까지
꽤 긴 거리를 천천히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잘 발달한 앞
다리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태반을 갖춘 자궁 속
에서 진행되는 우리들의 태아기 생활은 훨씬 편하고 확실히 더 나은 것
처럼 보인다. 
  그러면 유대목의 열등성을 주장하는 생물지리학과 몸의 구조에 대한
설명을 어떤 식으로 반박할 수 있을까? 내 동료 존 A. W. 커쉬는 최근
여러 가지 주장을 정리했다. 그는 P. 파커의 논문을 인용해 유대목의
생식 양식이 하등한 것이 아니며 다만 다른 적응 양식을 따랐을 뿐이
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유대목의 태아는 모체의 면역 체계 작동을 정지시키며 자궁 
속에서 완전히 발생할 수 있는 기구를 진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른 
출생 역시 하나의 적응 전략일 수 있다. 또한 모체의 태아에 대한 거부 
반응이 반드시 설계상의 실패나 진화적 기회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살아 남기 어려운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아주 먼 옛날부터 발전
시킨 좀더 완벽한 접근 방식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커의 주장은 
개체가 자신의 번식률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즉 자신의 유전자가 미래 
세대에 발현될 기회를 증가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라고 말한 다윈의 
주장에 곧바로 귀착한다. 이 목적을(무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취할 
만한 서로 다르고, 모두 똑같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가지 전략이 
있다. 
  태반을 가진 포유류의 어미는 새끼가 태어나기 전까지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이렇듯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일이 새끼가 잘 자라날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어미 자신으로 볼 땐 상당한 모험을 하는 
셈이다. 만약 어미가 그 새끼를 잃기라도 한다면, 어미는 아무런 진화적
이득도 얻지 못한 채 생애의 일정 기간으로 제한돼 있는 생식적 노력의 
상당 부분을 돌이킬 수 없이 낭비해버리는 셈이 된다. 
  태어난 새끼 가운데 죽는 숫자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유대목 어미는 
큰 희생을 치른 것이지만 생식에 소모한 손실은 작다. 임신 기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어미는 같은 번식기에 다시 한 번 새끼를 가질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은 태아는 모체의 에너지원을 크게 소모
시키지 않으며, 쉽고 빠른 출산은 모체에게 거의 위험을 주지 않는다. 
  다시 생물지리학적인 사실로 눈을 돌리면, 커쉬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메리카가 북반구 유태반류의 세계에 발을 붙일 수 없었던 열등 동
물들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이 동물들
이 남반구에서 다양하게 번성한 것은 주변부에서 이루어진 미미한 노력
이 아니라, 그 선조들이 살던 본고장에서 이룬 성공을 반영하는 것이라
고 보았다. 
  이 주장은 보르히에나(남미의 육식성 유대목)와 티라키누스thylacines
(오스트레일리아의 육식성 유대목) 사이에 밀접한 계통적 관계가 있다는 
M. A 아처의 견해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분류학자들은 이 두 
군을 진화적 근사-앞에서 설명했듯이 유대목과, 유태반류인 검치 호랑이
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유사한 적응적 특징이 따로따로 발달하는 것-의 
예로 간주해왔다. 
  실제로 분류학자들은 유대목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메리카로 방산한 
것이 북반구 대륙에서 밀려난 원시 유대목이 양 대륙에 각기 따로따로 
침입함으로써 나타난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건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만약 보르히에나와 티라키누스가 밀접한 유연 관계에 있다면, 
남쪽의 양 대륙은 아마도 남극 대륙을 경유해서 그들의 거주 생물 가운데 
일부를 교환했을 것이다(대륙 이동에 관한 최근의 지질학적 관점에 따르
면, 남반구의 여러 대륙은 공룡 멸종 후 포유류가 번성한 무렵에는 지금
보다 훨씬 가까웠다고 한다). 
  좀더 소극적인 관점에 따르면, 유대목은 남아메리카를 두 번에 걸쳐 
따로 침입한 것이 아니라(보르히에나의 선조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
밖의 것은 북아메리카에서), 원래는 유대목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기원
했는데 단지 티라키누스가 진화한 후에 남아메리카로 확산된 것이라고 
상상된다. 엄청나게 복잡한 우리들의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설명이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커쉬의 주장은 유대목의 고향이 발상지가 아닌 
피난처에 불과하다는 일반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문을 제기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처럼 몸의 구조와 생물지리학이라는 양면에서 유대
목를 옹호하는 것이 앞에서 소개한 기초적인 사실-파나마 지협의 융
기, 태반을 가진 육식 동물의 침입, 유대목 육식 동물의 급속한 쇠락,
그 후 유태반류의 번성-앞에서는 기가 꺾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
을 수 없다. 
  이러한 여러 사실들은 북아메리카의 유태반 육식 동물이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기발한 추측으로 
이 불유쾌한 사실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쪽을 택하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유대목이 태반을 가진 포유류와 
대등하다는 주장을 계속 옹호할 수 있을까? 
  보르히에나가 싸움에서 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유대목이었기 때
문에 패배하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유대목이든 태반을 가
진 포유류든 간에 님아메리카의 모든 토착 육식 동물에게 어려운 시기
가 있었으리라 예측하는 생태학적 주장을 더 따르고 싶다. 우연히 유대
목이 희생자가 됐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원인에 의
한 것이었지 분류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이 두 사실이 우연
히 일치했을 따름이다. 
  R. T 배커는 제3기의 육식성 포유류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몇 가지
새로운 개념과 종래 축적된 지혜를 한데 종합한 결과 그는 북방의 태반
을 가진 육식 동물들이 두 가지 진화적 '테스트'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아냈다. 그들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대멸종을 두 차례나 경험했다. 따라
서 그 뒤를 잇는 새로운 군들은 더 적응적인 유연성을 가졌을 것이다. 
  번성을 계속하던 시기에 다양한 포식자와 피식자들은 심한 경쟁, 섭식
(빠른 섭취와 능률적으로 음식을 씹는 일)과 이동 능력(매복형 포식자의
경우에는 빠른 가속성, 장거리형 포식자의 경우에는 지구력) 등에서 꾸준
한 개량을 보이는 진화적 경향을 낳았다. 
  그런데 남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육식 동물은 어떠한 테스트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대량 멸종을 경험하지 않았고, 최초의 종이 
계속 자리를 지켰다. 그곳의 동물들은 결코 북반구만큼 다양하게 번식하지 
못했고, 경쟁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배커는 그 동물들이 달리기나 
섭식에 관한 형태상의 특수화에서 같은 시기 북쪽에 살던 육식 동물보다 
훨씬 수준이 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뇌의 크기에 관한 H. J. 제리슨의 연구도 인상적인 확증을 제공해준
다. 북반구 여러 대륙에서는 태반을 가진 포식자와 피식자가 모두 제3
기에 조금씩 뇌를 진화시켰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에 분포하는 육식성
유대목과 그 피식자인 태반을 가진 포유류는 모두 같은 몸 크기의 평균
적인 현생 포유류에 비해 무려 50퍼센트밖에 되지 않거나 그것보다 더
작은 뇌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유대목과 태반을 가진 포유류의 해부학적 특성이 큰 차이를
갖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진화적인 도전에 각기 대응
해온 상대적인 역사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우연히 북쪽의 
육식 동물이 유대목이고 남쪽의 육식 동물이 태반을 가진 포유류였다고 
한다면, 나는 남아메리카측이 패배한 원인은 그들이 지협을 통해서만 교류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북아메리카의 동물상은 대량 멸종과 격렬한 경쟁 등 엄중한 시련으로 
항상 테스트되어왔지만, 남아메리카의 육식 동물은 심각한 도전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파나마 지협이 해면 위로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진화적인 저울 위에 올려진 셈이다.   그리고 다니엘의 왕(신바
빌로니아의 왕. 여러 차례의 원정으로 바빌로니아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신바빌로니아는 결국 멸망하고 만다/옮긴이)처럼 그들은 힘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제8부 몸 크기와 시간
      제29장 우리에게 할당된 수명
  E. L. 독토로우의 소설 '래그타임Ragtime'에 존 P. 모건과 헨리 포드
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대화에서 모건은 컨베이어 시스템이라
는 것은 자연의 지혜를 충실히 옮겨놓은 것이라고 극구 칭찬한다. 
  당신이 고안한 컨베이어 시스템은 천재적인 공업가의 뛰어난 업적일
뿐 아니라 생물의 진리를 투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결국 부품이 교환 가능하다는 것은 자연 법칙의 하나입니다. ... 모든 
포유류는 같은 방식으로 번식하고, 같은 형태로 설계된 영양 섭취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소화기와 순환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같은 감각을 향유합니다. ... 공통의 설계 덕분에 분류학자들은 포유류를 
포유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업계의 오만한 거물이라면 모호한 얼버무림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
이다. 그래도 나는 모건의 말에 대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라는 애매하기만 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모건이
컨베이어 시스템을 대형 포유류와 소형 포유류의 기하학적 복제라고 생
각했다면 그의 견해는 틀렸다. 코끼리는 생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
은 뇌와 굵은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개
개 동물의 특수성이 아니라 포유류 몸의 설계를 지배하는 일반적인 법
칙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모건이 대형 동물은 같은 군에 속하는 소형 동물과 본질
적으로 같다고 말한다면 그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유사성이란 변하지
않는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하학의 근본 법칙대로라면 동물들이
제각기 다른 크기를 가지면서 동일한 방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갈릴레오는 1638년에 고전적 법칙의 한
예를 수립했다. 즉 동물 다리의 세기는 그 횡단면의 면적(길이x길이)의
함수이며, 양 다리가 지탱해야 하는 체중은 그 동물의 부피(길이x길이
x길이)에 따라 변한다. 
  만약 어떤 포유류가 몸이 커지는 데 따라 다리의 굵기를 상대적으로도 
증가시키지 않는다면, 곧 그 포유류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체중은 양 
다리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의 한계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증대하니까). 
기능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동물들은 그 형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형태 변화에 대한 연구를 '비례 증감론scaling theory'이라고
한다. 그 연구 덕분에 포유류의 체중이 생쥐에서 고래에 이르기까지 무
려 2,500만 배로 증가하는 동안 그 형태도 뚜렷한 규칙성에 따라 변화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든 포유류에서 체중에 대한 뇌 무게의 관계
를 이른바 '생쥐-코끼리 곡선(또는 뒤쥐-고래 곡선)'으로 그려보면, 일반
적인 법칙을 나타내는 하나의 곡선에서 일탈하는 종이 거의 없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소형 포유류에서 대형 포유류로 옮아감에 따라 뇌의 무
게는 체중의 2/3의 비율로 증대하는 데 그친다(사람은 청백돌고래와 함
께 그 곡선의 윗쪽으로 가장 크게 일탈한다는 영예를 차지한다).
  우리는 물체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물리적 성격에서 이러한 규칙성을
자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심장은 펌프이다. 포유류의 심장은 종
류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작은 심장
은 큰 심장보다 빠르게 박동한다(대장간에서 사용하는 풀무와 구식 풍금
의 큰 송풍 장치와 비교해 손가락 정도 크기의 장난감 풀무가 어느 정도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포유류의 '생쥐-코끼리 곡선'를 보면 소형 포유류에서 대형 포유류로 
이동함에 따라 심장 박동 시간은 체중의 1/4에서 1/3의 비율로 증대한다. 
이러한 결론은 거미 심장 박동의 비례 증감에 관한 J. E. 카렐과 R. D. 히
스코트의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들은 레이저광으로 이미 휴식중인 
거미의 심장을 쬐기 시작해서, 체중의 약 1천 배의 범위에 걸친 18종을 
대상으로. '게거미-타란툴라거미(이탈리아 독거미의 일종/옮긴이) 곡선'을 
그렸다. 여기서도 심장 박동 시간은 체중의 약 2/5의 비율(엄밀하게는 
0.499배의 비율)로 증대한다. 
  우리는 심장에 관한 이러한 연구 결과를 확장시켜 소형 동물과 대형
동물의 생활 속도에 관한 일반적인 공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소형 동
물은 대형 동물보다 빠르게 일생을 보낸다. 소형 동물의 심장은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그들은 더 자주 호흡하고, 맥박은 훨씬 빠르게 박동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른바 생명의 불이라는 신진 대사
비율이 포유류의 경우 체중의 3/4의 비율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는 점이
다. 
  생존을 계속하기 위해 대형 포유류는 소형 동물에 해당되는 단위
부피당 열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다. 몸집이 작은 뒤쥐는 미친 듯이 돌
아다니며 포유류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물질 대사의 불을 계속 지피
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먹이를 먹고 있다. 그
에 비해 흰긴수염고래는 위엄 있게 물 속을 미끄러지듯 헤엄치기 때문에 
그 심장은 온혈 동물 가운데 가장 느린 리듬으로 박동한다. 
  포유류의 수명을 비례 증감의 관점에서 보면 이처럼 비교하기 힘든
데이터들을 흥미롭게 종합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크기의 포유류 애
완 동물을 통해 작은 포유류가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다는 사실을 경험
적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포유류의 수명은 심장 박동이나 호흡의 길이
와 비슷한 비율로-소형 동물에서 대형 동물로 옮아 감에 따라 체중의
1/4에서 1/3의 비율로-길어진다(호모 사피엔스는 이러한 일반 원칙에서
벗어나는 아주 특수한 동물이다. 우리는 비슷한 크기의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오래 산다. 9장에서 나는 인간이 '네오테니'라 불리는 진화 과정에
-우리의 선조인 영장류의 유아기 때 특징을 나타내는 외관이나 성장
속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되는 것-의해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수명이 긴 원인도 네오테니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인간 일생의 각 단계는 '너무도 느리게' 온다. 인간은 
긴 임신 기간을 거쳐 무력한 태아의 형태로 태어나 긴 유년기를 보낸 다음
에야 겨우 성인이 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아주 큰 온혈 동물이나 누릴 
수 있는 연령까지 살 수 있다).
  대개 우리는 기껏해야 1년이나 2년의 생애를 끝내고 죽는 애완용 생
쥐나 저빌쥐를 불쌍히 여긴다. 사람이 1세기 가까이 사는 데 비하면 그
들의 일생은 얼마나 짧은가? 나는 이 장의 중심 주제로 우리가 이런 동
정심을 품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물론 우리가 품는 개인적인
슬픔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의 대상도 아니다-주장하고자 한다. '래그타임'에서 
모건이 소형 포유류와 대형 포유류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한 것은 
옳았다. 그들의 수명은 각각의 생활 속도에 따라 비례 증감하며, 따라서
모든 동물은 거의 같은 길이의 생물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소형 
포유류는 빠르게 움직이고 생명의 불을 급속하게 태우고 짧은 기간을 
산다. 반면 대형 포유류는 느린 속도로 장기간 생존한다. 그들 자신의 
체내 시계로 측정하면, 서로 다른 크기의 포유류들이라도 모두 같은 
시간을 사는 셈이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이 중요한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서양식 사고 습관이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을 유일한 척도로 간
주하도록 훈련받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부엌에 걸려 일정한 속도로 똑
딱거리는 시계를 모든 사물에 들씌운다. 우리는 생쥐의 민첩함에 혀를
내두르고, 하마의 느린 움직임을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러자 모든 동물
은 자신의 생물 시계에 적절한 보조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천문학적 시간이 생물에 대해 갖는 의의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31장을 참조). 동물들은 살아 남기 위해 절대 시간
을 측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슴은 언제 자신의 뿔을 재생시켜야 할지,
새는 언제 이동을 시작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동물들은 각기 자신의
24시간 리듬으로 낮과 밤의 주기를 반복한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장거
리로 이동할 때 시차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은 자연이 원하는 바보다 훨
씬 빠르게 지구 표면을 이동한 데 대해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인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시간은 생물학적 시간을 측정하는 데에 적절한 척
도가 되지 못한다. 혹등고래의 장엄한 노래를 생각해보라. E. O. 윌슨
은 이러한 발성이 갖는 경외로운 효과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음
조는 사람의 귀에는 왠지 등골이 오싹하면서도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
다. 
  중저음의 신음 소리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소프라노 
음이 갑작스럽게 음조가 오르내리는 비명과 반복되며 교차한다." 우리는 
이 노래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혹등고래는 그 노랫소리로 
서로를 찾아내어 매년 대양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동안 함께 지낼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구애하는 수컷이 짝을 부르는 연가인지도 모른다. 
  이 고래들은 제각기 특징 있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의 매우 복
잡한 패턴이 매우 정확하게 몇 차례 되풀이된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알게 된 수많은 과학적 사실 가운데 한 마리의 고래가 부르는 노래가
30분 이상 계속된다는 로저 S. 페인의 보고만큼 감명 깊은 것은 없다. 
  나는 나단조 미사곡 첫머리에 나오는 약 5분간의 기도문도 제대로 기억
하지 못한다(그렇다고 내 노력이 모자란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 한 마
리의 고래가 30분 동안 울고, 그 후 정확하게 그 곡조를 반복할 수 있
는 것일까? 30분 가량의 반복 주기는 도대체 어떤 용도를 가진 것일까?
  그것은 우리들이 보기에는 너무 긴 노래이다. 우리는 (페인 기록 장치를
이용해 데이터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는 한) 그것을 한 곡의 노래로 파악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나는 고래의 신진
대사 비율을 상기했다. 사람과 비교해 고래의 생활 속도는 엄청나게 느
리다. 고래가 30분이라는 기간 동안 무엇을 지각하는지에 대해 과연 우
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혹등고래는 자신의 신진 대사율에 맞추어 세
계를 측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고래에게 30분의 노래는 우리들의 1분간의 왈츠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더라도 그 노래는 가히 경이적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모든 동물에게서 발견된 단일한 과시display 가운데 
가장 정교한 것이다. 나는 단지 고래 자신의 관점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포유류가 평균적으로 대개 동일한 생물학적 시간
을 산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치적으로 엄밀한 자료를 제공할
수도 있다. W. R, 스탈과 B. 군서, 그리고 E. 구에라가 1950년대 말엽
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고안한 방법에서는 체중과 같은 비율로 비례 
증감하는 여러 가지 생물학적 성질을 대상으로 '생쥐-코끼리' 방정식을 
구한다. 예를 들어 군서와 구에라는 포유류의 체중에 대한 호흡시간
(숨의 길이)과 박동 시간(심장 박동 1회의 길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방정식을 세웠다
호흡 시간 = 0,0000470 x 체중^0.28
심장 박동 시간 = 0,0000119 x 체중^0.28
  (수학이라면 절레절레 고개부터 흔드는 독자라도 이런 수식에 기가 질릴
필요는 없다. 이 방정식은 호흡 시간과 심장 박동 시간이 소형 포유류에서
대형 포유류로 옮아 감에 따라 체중의 약 0.28배의 비율로 증가한다는 것
을 이야기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 두 개의 방정식을 양변으로
나누면 체중은 모두 같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약분이 가능하다. 
호흡 시간 / 심장 박동 시간 
= (0.0000470 x 체중^0.28) / (0.0000119 x 체중^0.28) = 4.0
  이것은 심장 박동 시간에 대한 호흡 시간의 비율이 포유류가 얼마만
한 크기든 모두 4.0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포유류는 크기와 무관하게 
모두 심장이 4번 박동할 때 한 번꼴로 호흡을 하는 셈이다. 소형 포유류는 
대형 포유류보다 호흡과 심장 박동이 빠르지만, 동물의 몸집이 커짐에 
따라 호흡과 심장 박동은 상대적인 비율로 느려진다. 
  또한 수명은 체중과 같은 비율로 비례 증감한다(소형 포유류에서 대형
포유류로 이동함에 따라 0.28배의 비율로). 이것은 호흡 시간과 심장 박
동 시간의 수명에 대한 비율이 모든 크기의 포유류에게서 일정하다는
의미이다. 위에서 했던 것과 같은 계산을 해보면, 포유류는 크기와 무
관하게 일생 동안 약2억 회의 호흡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따라서
심장 박동은 8억 회 가량이 되는 셈이다). 
  소형 포유류는 빨리 호흡하는 대신 짧은 기간밖에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 심장의 체내 시계와 호흡 리듬으로 측정하면 모든 포유류는 같은 
기간 동안 사는 셈이다(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자신의 호흡 회수와 맥박을 
계산해보고 자신이 훨씬 전에 이미 죽었어야 한다는 계산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지능이 발달했다는 사실 외에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정상적인 포유류이다. 우리의 수명은 같은 크기의 포유류
에게 '할당된' 수명의 약 3배나 되지만, 호흡은 '정상적인' 비율로 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크기의 보통 포유류에 비해 일생 동안 약 3배만큼 
호흡을 더 한다. 나는 이러한 여분의 수명이 네오테니가 가져다준 고마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루살이는 성충이 되고 나서 단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 아마도 이
곤충은 우리들이 평생을 사는 것처럼 그 하루를 경험할 것이다. 그렇다
고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루살이처럼 세계를 짧
은 시간 동안만 흘낏 본다면, 더욱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을 해
석할 때 왜곡이 일어날 것이다. 다윈 이전 시대의 진화론자였던 로버트
챔버스는 1844년에 개구리로 변태해가는 올챙이를 바라보는 하루살이의
이야기를 썼다.
  4월의 어느 날에 태어나 웅덩이 위를 날고 있는 하루살이가 물 속에
있는 올챙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자. 하루살이가 노충이 된 오후, 그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올챙이에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
니, 하루살이는 올챙이의 아가미가 퇴화하고, 몸 안쪽의 폐가 아가미를 
대체하고, 뒷다리가 자라나기 시작하고, 꼬리가 사라지면서 이윽고 육상의 
주민이 되어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지질학적인 시계로 재면 인간의 의식은 밤 12시가 되기 약 1분 전에
나타난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라는 하루살이들은
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메시지는 알지도 못한 채 태곳적 세계를 마음
대로 구부려 우리들의 의도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가 4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살아 있기를 기원하자.
  
      제30장 자연의 인력-박테리아, 새 그리고 꿀벌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유명한 말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수태되었음을 알릴 때 한 말이다. 중
세와 르네상스기 회화에 등장하는 가브리엘은 대개 정성 들여 그려진
새의 날개를 넓게 펼치고 있다. 작년에 피렌체를 방문하는 동안 나는
이탈리아 거장들이 그린 가브리엘 날개에 대한 '비교해부학'적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마리아와 가브리엘의 얼굴은 정말 아름다웠고 풍부한
몸짓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라 안젤리코와 마르티니가 그린 날개
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깃털은 달고 있었지만, 어딘지 굳어 있고 생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다음 나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그가 그린 가브리
엘의 날개는 너무도 부드럽고 우아해서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브리엘의 얼굴을 조사하거나, 그가 마리아에게 준 충격을 생각할 겨
를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이 왜
남다른 차이를 갖는지 깨달았다. 
  새를 연구했고 날개의 공기 역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레오나
르도는 실제로 작동 가능한 날개를 가브리엘의 등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 날개는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기능적이었다. 날개들은 방향이나 휘어
짐이 제대로 묘사되었을 뿐 아니라 깃털의 결도 정확하게 배열돼 있었다. 
  가브리엘이 조금만 더 가벼웠다면 신의 인도 없이도 혼자서 하늘을 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에 비해 다른 화가들이 그린 가브리엘은 실제로는 
작동할 수 없는 약하고 서툰 장식물을 짊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심미
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적인 아름다움이 손에 손을 잡고(이 경우에는 날개와 
날개를 잡고) 서로를 떠받쳐준다는 말을 상기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뛰어난 예에서-질주하는 치타,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가젤, 하늘로 솟구치는 독수리, 이리저리 헤엄치는 참
치, 그리고 심지어는 미끄러지듯 기어가는 뱀이나 느릿느릿 이동하는
자벌레 등-우리들이 아름다운 형태로 인식하는 것은 동시에 물리학적
문제에 대해 훌륭한 해결책을 주기도 한다. 
  진화생물학에 등장하는 적응의 개념을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흔히 
생물이 물리학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생물은 음식물을 
섭취하고 이동할 수 있는 매우 능률적인 기계로 진화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가 가브리엘에게 어떻게 자신이
수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나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라고 묻자 천사는 "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대답
했다. 
  그러나 자연이 할 수 없는 일은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자연은(신보다) 
훨씬 뛰어난 일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뛰어난 설계는 어떤 생물의 
형태와 기술자가 만든 청사진의 일치에 의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나는 훨씬 더 충격적인 뛰어난 설계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
다. 그것은 자신의 몸 속에 직접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생물이다. 그 기
계란 자석이고, 그 생물은 '하등한' 박테리아이다. 가브리엘이 떠난 후
마리아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도움으로 수태한 엘리사벳을 방문
했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의 아기(후일 세례자 요한이 된다)는 
"복중에서 뛰놀았다('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
중에서 뛰노는지라', 누가복음 1장 41절/옮긴이)". 그리고 마리아는"et
exaltavit humilis(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누가복음 1장 52절/옮긴이)"라
는 1행-훗날 바흐에 의해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작곡되었다 
-을 포함하는 성모송을 불렀다. 모
  든 생물 가운데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전통적인 (그리고 
불합리한) '생명의 사다리' 첫번째 계단을 이루고 있는 미세한 크기의 
박테리아는 다른 생물이라면 그것을 나타내는 데 수 미터가 필요했을 
뛰어난 경이와 아름다움을 겨우 수 미크론으로 표현하고 있다. 
  1975년에 뉴햄프셔 대학의 미생물학자 리처드 P. 블레이크모어가 매
사추세츠 주의 우즈홀 근처의 퇴적물 속에서 '주자성magnetotactic' 
박테리아를 발견했다(주지성geotactic 생물이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주광성phototactic 생물이 빛이 오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과 마찬
가지로, 주자성 박테리아는 자기장 속에서 정해진 방향을 따라 일렬로 
헤엄쳐 간다). 
  그 후 블레이크모어는 1년 동안 일리노이 대학의 미생물학자 랄프 
울프와 함께 주자성 박테리아의 순수한 계통을 분리, 배양하는 데 성공
했다. 그런 다음 블레이크모어와 울프는 자기물리학의 전문가인 매사
추세츠 공과대학의 국립 자기 연구소의 리처드 B. 프랭켈에게 도움을 
청했다(나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인내심 깊고 명쾌하게 설명해준 프랭켈 
박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랭켈과 그의 동료들은 그 박테리아 각 균체 속에는 한 변이 약 500
옹스트롬인 정육면체에 가까운 형태의 불투명한 소립자 20개 가량이 한
개의 자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옹스트롬은 1밀리미터의 1
천만분의 1이다). 이 소립자들은 자철광(Fe3O4)이라는-천연 자석이라
고도 불린다-자성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 후 프랭켈은 박테리아 1개당 자기 모멘트의 총량을 계산해서 각 
균체가 브라운 운동의 방해 작용에 저항해 지구의 자장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잡기에 충분할 만큼 자철광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들의 몸을 안정시키는 중력이나 곤충 정도의 중간 크기 물체에 작용
하는 표면 장력 등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작은 입자들은 그것들이 부유
하고 있는 매개물의 열에너지에 의해 임의적인 방식으로 서로 충돌한다. 
이것을 '브라운brown 운동'이라고 한다. 창문으로 비쳐 든 햇볕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브라운 운동의 한 예이다).
  주자성 박테리아는 자신의 극미한 몸 속에서 나침반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유명한 구조물을 이용해 놀라운 기계를 만든 것이다. 
프랭켈은 왜 자철광이 소립자로 배열되어야 하는지, 또한 그 소립자는
왜 한 변의 길이가 약 500 옹스트롬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유효한 나침반으로 작용하기 위해 자철광은 이른바 단자구single 
domain입자로-북쪽과 남쪽을 가리키는 양극을 가지고 단일한 자기 
모멘트를 갖는 작은 자석 조각으로-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박테
리아는 자기 모멘트의 N극이 이웃의 S극에 접하며-프랭켈의 말을 빌리면, 
"서커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코끼리들이 머리를 서로의 엉덩이에 대고 동그
랗게 원을 그리듯이"-일렬로 나란히 선 입자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고리 전체는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는 양극을 가진 자성 쌍극자로 
기능하는 것이다. 
  만약 입자의 크기가 더 작다면(한 변이 400옹스트롬 이하), 그 입자들
은 '초상자성superparamagnetic' 을-상온에서의 열에너지가 그 입자 내부
에서 자기 모멘트의 방향 전환을 일으킬 것이라는 엄청난 말-가질 것이다. 
반면 만약 입자의 한 변 길이가 1,000옹스트롬보다 크면, 제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개별적인 자구magnetic domain들이 그 입자 내부에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이 그 입자 전체의 자기 모멘트를 
줄어들게 하거나 상쇄시킬 것이다. 
  따라서 프랭켈은 "이 박테리아는 나침반으로 작동하기에 가장 적절한 
크기인 500옹스트롬의 자철광 소립자를 만들어 물리학적으로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한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은 주로 '왜'를 다루는 과학이기 때문에 이렇게 작
은 생물이 자석을 이용해서 애당초 무엇을 하려 했는가라는 물음을 제
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개의 박테리아가 몇 분의 생존 기간 동안 활동
하는 범위는 수 인치 정도에 불과하니 북쪽이나 남쪽을 향하는 운동이
어떤 적응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박테리아가 선호하는 운동 방향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까? 프랭켈은 이런 박테리아에게는 이동 능력이 가장 중요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 그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
이었다. 아래쪽은 수중 환경속에서 퇴적물이 가라앉는 방향이고, 또한 
박테리아가 좋아하는 산소 압력에 도달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렇
다면 이 경우 '천한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더 낮게 해주기를 바라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박테리아는 어느 쪽이 밑을 향한 방향인지 어떻게 알 수 있
는 것일까? 우리의 오만함과 편견에 비추어본다면 이런 물음은 한낱 어
리석은 질문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박테리아는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밑으로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이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우리의 몸이 크기 때문
이다(중력은 물리학에서 가장 '약한 힘'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이다[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으로 이루어지는 자연계의 네 가지 기본력 
가운데서 중력이 가장 약하다/옮긴이]).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여러 가지 
힘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세계에 살고 있고, 그 힘들의 상대적인 세기는 
일차적으로 그 힘이 작용하는 물체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크기를 가지며 우리에게 친숙한 생물들에서는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생물체가 크면 클수록 
이 비율은 작아진다. 면적은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고, 부피는 길이의 세제
곱에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곤충과 같은 작은 생물은 몸 표면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힘들에 의해 지배받는다. 어떤 곤충은 수면 위를 걸을
수 있다. 또한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걸을 수 있는 종류도 있다. 그것은 
표면 장력이 아주 강한 반면 천정에서 이 곤충을 떼어놓으려는 중력이 아주
약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력은 부피에 대해(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정한 중력장에서 부피에 
비례하는 질량에 대해) 작용한다. 사람은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작기 때문에 중력에 의해 지배받는다. 그러나 곤충은 중력으로 인해 어려
움을 겪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박테리아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 
  박테리아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는 전혀 달라 우리는 사물의 존재
방식과 작동 방식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에 여러분이 텔리비전에서 '마이크로 결사
대'를 볼 기회가 있다면, 주연을 맡은 라크엘 웰치와 포식성 백혈구 등에서 
잠깐 눈을 돌려 과연 탐사자들이 현미경으로나 알아볼 수 있는 극미한 
크기로 인체 속에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영화에서 그들은 
마치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브라운 
운동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움직이는 얼룩으로 인해 뿌옇게 
흐려진다. 
  또한 아이작 아시모프가 지적하듯이 이 정도 척도의 세계에서는 혈액의 
점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의 탐사선은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시모프는 그 탐사선이 박테리아처럼 편모를 추진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오 이래 비례 증감론의 제1인자였던 다시 톰슨은 만약 박테리
아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든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뛰어난 저서 '성장과 형태에 관해서'(1942년에 초판이 발간되었지만, 아
직도 절판되지 않았다)에서 그는 '크기에 관하여'라는 장을 다음과 같은
명문으로 끝맺고 있다. 
  생명계는 물리학이 다루는 크기에 비교하면 실로 좁은 범위를 갖는다. 
그렇지만 생명계는 인간, 곤충, 세균이 살아가면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담당하는 상이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포괄할 수 있을 만큼 폭넓다. 
인간은 중력에 지배되며 어머니인 대지를 발판으로 삼아 살아간다. 
물방개는 수면을 사활의 터전으로, 즉 위험하기 짝이 없는 철조망이자 
동시에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지대로 삼고 살아간다. 
  세균이 생활하고 있는 제3의 세계에서 중력은 잊혀지고 액체의 점성, 
스토크스(Stokes, 영국의 물리학자 이름으로 점성의 단위로 사용된다/
옮긴이)의 법칙이 지배하는 저항, 브라운 운동에 의한 분자의 충돌, 그
리고 이온화한 매질의 전하 등이 물리적 환경을 구축하며 생물에 대해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곳에서 우세한 여러 가지 요인은 우리들의 척도에서는 더 이상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세계, 모든 선입견을 근본에서부터 뜯어 고치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테리아는 어떻게 어느 쪽이 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자석을 오직 평형상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만 쓰기 때문에 지구의 
자장이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성향도 있으며, 그 세기는 위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때가 많다(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직 방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나침반은 수직 방향의 흔들림이 생기지 않도록 제작
되어 있다. 인간은 중력에 지배되는 대형 생물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밑
인지를 알고 있다. "어느 쪽이 위인지" 모른다고 말하면 바보 취급을 당
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살아가는 거시 규모뿐이다). 
  나침반의 바늘은 지구 자력선의 방향을 가리킨다. 적도상에서 자력선은 
지구 표면에 대해 수평이다. 그러나 양극으로 갈수록 자력선은 차츰 지구의 
내부를 향해 기울어진다. 그리고 자극에 다다르면 자침은 바로 아래쪽을 
가리킨다. 지금 내가 있는 보스톤의 위도에서는 실제로 수직 성분이 수평 
성분보다 강하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침인 박테리아가 북쪽을 향해 헤엄
칠 때, 그 박테리아는 우즈홀에서는 아래쪽을 향해 헤엄치는 것이다. 
  박테리아의 나침반에 이러한 기능이 있으리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순
전히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박테리아가 아래쪽을 향해 헤
엄치기 위해 그 자석을 사용하는 것이라면(서로 다른 박테리아를 찾기 위
한 목적이거나, 또는 우리에게는 낮선 그들만의 세계에서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검증 가능한 몇 가지 예측
을 할 수 있다. 
  즉 적도 부근의 생활에 적응해 자연적인 개체군을 형성하고 있는 동일 
종의 구성원들은 자석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자침이 수직 성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남반구에서는 
주자성 박테리아가 역전된 극성을 나타내고, 자남극을 찾아 헤엄칠 것이다. 
  자철광이 그보다 몸집이 큰 여러 동물들의 몸을 이루는 구성 요소라
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동물들의 경우 자철광은 모두 수평면
상에서 방향을 찾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사람 정도의 크기를 가진
생물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나침반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매패, 권패와 가까운 유연 관계에 있는 대합조개와 카이튼(chiton, 
딱지조개류에 속하는 조개의 일종/옮긴이)은 주로 열대 지역 해수면 
가까운 높이의 바위에서 산다. 이들은 치설이라 불리는 길다란 막대 
비슷한 기관으로 바위에서 먹이를 얻는다. 이 치설의 끝부분은 자철광
으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카이튼들은 자신들이 사는 장소에서 상당히 
먼 거리까지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정확히 원래의 
장소로 '귀향'한다. 
  여기에서 그들이 방향을 찾는 데 자철광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런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확보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카이튼이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철광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프랭켈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철광 입자들 대부분이 단자구의 
상한을 넘어서고 있다고 말한다. 
  꿀벌의 어떤 종류는 복부에 자철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꿀
벌이 지구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이 주제에 대
해서는 문헌 목록에 나와 있는 J. L. 굴드[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이다], J. L. 쉬빙크, 그리고 K. S. 드파이에스의 글을 참조하라). 
  꿀벌은 수직면을 이루고 있는 벌집 표면에서 그 유명한 춤을 춘다. 
꿀벌은 이 춤을 통해 태양과의 관계에서 먹이가 있는 장소까지의 방향을 
중력과의 관계에서 춤을 춘 각도로 변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벌집이 
눕혀져 꿀벌이 수평면상에서 춤추지 않으면 안 된다면, 그들은 중력과의 
관계에서 방향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수 주일이 지나면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춤을 나침반과
같은 방향으로 맞출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방향에 대한 아무런 암시도 얻을 누 없는 텅빈 벌통 속에 
꿀벌의 한 무리를 옮겨놓으면, 원래의 벌통과 같은 자력선의 방향에 
맞추어 새로운 벌집을 짓는다. 역시 집을 찾아가는 데 선수인 비둘기들은 
뇌와 머리뼈 사이에 자철광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자철광이
단자구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자석과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문헌 목록의 C. Walcott et al., 1979를 참조).
  이 세계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신호들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생
물들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힘들로 가득 찬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많은 생물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감각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능력을 갖는다. 박쥐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극소수의
사람들은 들을 수 있지만-주파수로 음파를 발사하는 방법으로 방해물
을 피해 간다. 
  많은 곤충들은 자외선을 볼 수 있으며, 꽃의 '보이지 않는' 안내선을 
따라 그들이 먹이로 삼는 꿀로 인도되며, 이 과정에서 다른 꽃으로 
꽃가루를 옮겨 수정을 돕는다(식물들은 곤충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방향을 지시하는 색 줄
무늬를 사용하는 것이다) .
  이런 점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각력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매력적이고 생생한 신호들에 둘
러싸여 있으면서도 우리는 자연 속에서 보지(듣지, 냄새 맡지, 촉감으로
느끼지, 맛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평범한 마술사들의 묘기도 우리의
지각 범위를 넘어서 영혼의 세계를 흘낏 들여다보는 새로운 힘이라도
되는 양 쉽사리 속아 넘어간다.   비일상적인 것은 환상일 수 있다. 그리고 
돌팔이들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초인적'인 지각 능력은 새, 꿀벌, 박테리아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생물들 속에 실제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이 직접 
감지할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 과학이 만들어낸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다. 
  
    후기
  박테리아가 자신의 체내에 자석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프랭켈은 이 작은 생물에게는 북쪽으로 헤엄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아래쪽으로 헤엄치는 것(그것은 북반구의 중위도나 고위도
지방에서 나침반을 가진 생물체들에게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추측했다. 그의 추측에 고무되어, 나는 프랭켈
의 설명이 옳다면 남반구의 자성 박테리아는 아래쪽으로 헤엄치기 위해
서 남쪽 방향으로 헤엄칠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들의 자극성이 북반구
에 있는 같은 종류의 박테리아와 반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1980년 3월에 프랭켈은 동료 R. P. 블레이크모어와 A. J. 칼마인과
함께 쓴 논문을 내게 보내주었다. 그 논문은 아직 출간되기 전의 것이
었다. 그들 두 사람은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로 가서 남반구의 자성
박테리아의 자극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실제로 그 박테리아가 모두 남
쪽으로, 그리고 아래쪽으로 헤엄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발견으로
프랭켈의 가설과 내 글의 기본 입장은 명쾌하게 입증된 셈이다. 
  또한 그들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또 다른 확증을 얻을 수 있
었다. 우선 그들은 매사추세츠 주 우즈홀에서 자성 박테리아를 채집해
북쪽으로 헤엄치는 세포들의 표본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그들은 그 중
한 무리를 보통의 극성을 가진 실험실에서 수 세대에 걸쳐 배양하고,
나머지 한 무리는 남반구의 상태를 모의 실험하기 위해 반대 극성을 갖
는 실험실에서 증식시켰다. 
  수 주일이 지나자 보통의 극성을 가진 실험실에서는 북쪽으로 헤엄치는 
세포가 여전히 지배적인 데 비해, 반대의 자성을 갖는 실험실에서는 남쪽
으로 헤엄치는 세포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박테리아의 세포는 일생 
동안 극성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 극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마도 
아래쪽으로 헤엄치는 능력에 대해 자연 선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쪽 실험실에서도 북쪽으로 헤엄치는 세포와 남쪽으로 헤엄
치는 세포가 나타날 수 있지만, 자연 선택이 아래쪽으로 헤엄칠 수 없는 
개체들을 신속하게 제거해버릴 것이다. 
  프랭켈은 지금 적도에서, 즉 자기장에 아래로 향하는 성분이 전혀 없
는 장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제31장 시간의 장구함
  1979년 1월 1일 오전 2시,
  나는 토스카니니의 마지막 연주회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밤, 고금을 통해 가장 위대한 거장이었고, 서양 음악의 모든 것을 절대
오류가 없는 기억 속에 담아내고 있는 이 거인이 수 초 동안 멈칫거리
며 그 영예로운 지위를 상실했던 것이다. 만약 영웅이 불사신이라면 어
떻게 그들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겠는가? 지그
프리트는 어깨에, 아킬레스는 발 뒤꿈치에 급소를 가져야 했고, 슈퍼맨
은 크립토나이트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칼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은 두 번-첫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우스운 익살극으로-일어난다고 말했다. 토스카니니의 실수가
비극적인(영웅적인 의미에서) 것이었다면, 나는 바로 두 시간 전에 그
익살극을 목격한 셈이다. 나는 가이 롬바르도(미국의 경음악 지휘자, 그
가 이끄는 악단은 매년 1월 1일이 시작되는 순간에 '올드 랭 사인'을 연주
했다/옮긴이)의 유령이 박자를 틀리게 지휘한 것을 듣고 있었다. 
  신만이 알고 있을 긴 세월 동안 처음으로 그 부드러운 소리, 새해를 
맞이하는 저 안온한 소리가 어떤 신비로운 일순간에 갑자기 산산이 
부서졌다. 그후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누군가가 깜빡 잊고 1975년의 
최후의 1분이 특별히 61초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휘자인 가이 롬바
르도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너무 일찍 연주를 
시작했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했다. 
  원자 시계와 천문학적 시계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1초를 더하게 되었
다는 소식은 신문을 통해 널리 보도되었지만, 대개의 기사는 반은 농담
조로 그 내용을 다루었다. 사실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요즘 들
어 즐거운 소식을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우니 말이다. 더
구나 대개의 신문들이 똑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모든 기사들은 극도의
엄밀함에 매달리는 과학자들을 조롱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겨우 1초라
는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투였다. 
  그래서 나는 1년에 5만분의 1초라는 다른 숫자를 상기했다. 1초라는
거대한 짐승 앞에 선 한 마리의 개미와도 같은 이 숫자는 조수의 마
찰로 인해 생긴 지구 자전 시간의 연간 감속률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
처럼 '중요치 않은' 수치가 지질학적 시간의 장구함 속에서 어떻게 중
요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구의 자전이 조금씩 느려진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 유
명한 혜성에게 이름을 준 대부이며 18세기 초에 영국 왕립천문대장을 
지냈던 에드먼드 핼리는 과거에 식이 일어난 실제 위치에 대한 기록과, 
그가 살던 시대의 지구 자전 속도를 기초로 예측된 가시 면적 사이에서 
규칙적인 불일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계산 결과 만약 과거에 자전 속도가 더 빨랐다고 가정한다면 
그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핼리의 계산은 그 후 몇 
번이나 수정을 거듭하고 다시 해석되었다. 그 결과 식을 기록해놓음
으로써 과거 2-3000년 동안 1세기에 약 2밀리초(1밀리초는 1천분의 
1초/옮긴이)라는 비율로 자전이 느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핼리 자신은 이 감속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18세기
말엽에 이 현상을 설명한 사람은 다재 다능한 천재였던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였다. 
  그는 달을 끌어들여 10세기 말경 조수로 인한 마찰이 지구의 자전을 
느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달이 지구의 바닷물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 
만조 때에는 해수면이 높아지며 지구가 자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높아진 
해수면은 계속 달을 향하게 된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관찰하고 있는 
우리들 눈에 만조는 지구 주위를 서쪽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만조는 육지와 바다를 가로질러 연속적으로-육지 위의 수역
에서도 소규모 조석이 일어난다-이동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엄청난 
마찰이 생긴다. 
  천문학자인 로버트 재스트로와 M. H. 톰프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매일같이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만약 이 에너지를 
유용한 목적을 위해 회수할 수만 있다면, 전세계 전력 필요량의 수 배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에너지는 연안 해수를 불안스럽게 휘몰아치게 만들고, 지각의 암석을 
약간 데우는 과정에서 사라져간다."
  조수로 인한 마찰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지구의
장구한 역사에서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마찰이 회전하는 지구
에 브레이크로 작용했고, 한 세기에 약 2밀리초, 즉 1년에 5만분의 1초
라는 느린 비율로 지구의 자전을 느리게 만드는 것이다. 
  조수 마찰에 의한 제동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흥미로운 효과를 일으
킨다. 하나는 1년의 일수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다. 
1년의 길이는 공식적인 세슘Cesium 원자 시계와 비교해볼 때 거의 일
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 불변성은 경험, 즉 천문학적인 측정과 이론의
양면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다른 한편 우리는 달의 인력으로 생긴 조석의 작용이 지구의 자전을 
느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양의 인력으로 생긴 조수의 작용이 지구
의 공전을 감속시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에 의한 밀, 
썰물의 효과는 아주 미약하고, 우주 공간 속을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지구는 엄청난 관성 모멘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아 10억 년당 1년의 
길이가 겨우 3초의 비율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숫자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가 탄생한 시점에서 앞으로 약 50억 년 뒤 태양이 폭발해
지구가 소멸할 때까지(약 100억 년 동안) 느려지는 시간은 고작 30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지구가 감속됨에 따라 각운동량(운동하는 물체가 있을 때, 지
정된 점에 관한 그 물체 운동량의 모멘트/옮긴이)을 잃지만 달은-지구와
달로 이루어진 계의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지구가 잃은 만큼의
운동량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달은 지구를 공전하는 동안 지구와의 거
리를 차차 늘려가면서 이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달은 지
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월의 맑은 날 밤, 달이 지평선 위로 막 얼굴을 내밀어 (하늘에 떠
있을 때보다) 크게 보일 때, 당신은 5억 5천만 년 전에 삼엽충이 보고
있던 달의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달이 점차 멀어진다는 생각을 처
음 제기한 사람은 찰스 다윈의 차남이자 천문학자였던 G. H. 다윈이
다. 그는 달이 태평양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했고, 그 돌발적 탄생
시기를 산출하는 데 현재 달의 후퇴 속도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
법을 사용했다(그 방법은 적절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판구조론 덕분에
태평양이 항구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질학적 시기에 형성
된 지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약하자면, 달에 의해 발생한 조수의 마찰이 오랜 시간에 걸쳐 두
가지 결과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느 현사으로
서, 1년의 일수가 줄어들며 지구 자전이 감속하는 것과, 지구와 달의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현상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
고, 지질학적 시간이라는 척도에서는 수 밀리초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
안 실제로 그 현상을 측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 그 효과를 측정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과거의 감속률을 기준으로 현재의 감속률을 추정하는 방법만으로는 불
충분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동을 거는 세기가 대륙과 해양의 지형이나 
구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동 효과는 조석이 얕은 바다에 파급될
때 가장 커지고, 깊은 바다와 육지에 비교적 경미한 마찰을 일으키면서
이동할 때 가장 작아진다. 
  얕은 바다는 현재 지구의 지형에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지만, 과거 
여러 시대에는 수백 만 평방마일이라는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에 일어난 큰 조석의 마찰은 그 밖의 시대, 특히 모든 대륙이 
하나로 결합되어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를 이루고 있던 시대의 대단히 
낮은 감속률과 대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전이 
느려지는 패턴은 천문학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지질학적인 문제인 
셈이다. 
  나는 지질학이라는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비록 모호하기는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그 정보란 몇 개의 화석 자료가 그 성장 패턴 속에 기록하고
있는 태곳적 천문학적 리듬이다. 거만한 수학자들이나 현대의 실험적인
지구물리학자들은 비천한 화석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려 들지 않는 경
우가 많다. 그래도 지구의 자전을 전공하는 한 뛰어난 연구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생물학이 지구물리학자들을 구원해줄 것 같다." 
  100년 이상 전부터 고생물학자들은 화석 단면에 규칙적인 간격을 가
진 성장선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이따금씩 주의를 기울였다. 일부 학자
들은 그러한 성장선이 나무의 나이테와 마찬가지로 날, 달, 해 등의 천
문학적 주기를 나타낼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런 관찰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30년대에 마 팅 잉Ting ying Ma이라는 조금 비현실적일 정도로 
공상적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중국의 고생물학자가 태곳적 적도가 어디에 
위치했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화석 산호에 나타나는 나이테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온도가 거의 일정한 적도 부근에서 서식하는 산호에는 계절
적인 성장선이 나타나지 않지만, 위도가 높아지면 성장선이 분명히 나타
난다). 그러나 하나의 나이테에 수백 개나 포함되어 있는 미세한 층상 
구조를 연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60년대 초에 코넬 대학의 고생물학자 존 웨스트 웰스가 이처럼 극
히 미세한 줄무늬가 각기 하루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나무의 경
우, 겨울의 느린 성장과 여름의 빠른 성장이 교대로 나타나 나이테가 
형성되듯이, 산호에서는 밤의 느린 성장과 낮의 빠른 성장이 교차된다). 
그는 거친(약 1년 동안의) 성장대와 미세한 성장선을 모두 가진 현생 
산호를 조사해서, 하나의 성장대 속에서 평균 약 360개의 미세한 선을 
셀 수 있었다. 
  그리고 미세한 선이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진다고 결론지었다. 그런
다음 웰스는 자신이 수집한 화석들 가운데서 보존 상태가 지극히 양호
해 미세한 성장선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고 추정되는 산호 화석을 찾
았다. 극히 소수의 표본밖에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들을 이용해 
고생물학의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 가운데 하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즉 약 3억 7천만 년 전의 한 무리의 산호에는 하나의 거친 성장대 속에 
평균 약 400개의 미세한 성장선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산호에게 
1년은 약 400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아주 오래된 천문학적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질학적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웰스의 산호는 이 이야기의 절반, 즉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하
루의 길이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
즉 달이 차츰 지구에서 멀어진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일 성
장대와 월 성장대를 모두 가진 화석이 필요하다. 만약 먼 옛날에 달이
지구에 더 가까이 있었다면 달은 지금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지구 주위
를 공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용하던 태음월은 29.53 태양일
인 현재의 태음월보다 적은 일수를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웰스가 1963년에 '산호의 성장과 지질 연대 측정법'이라는 유명한 논
문을 발표한 이래, 달의 공전 주기성에 관한 몇 가지 주장이 나타났다. 
가장 최근에 프린스턴 대학의 고생물학자 피터 칸과 콜로라도 주립대학
의 물리학자 스티븐 폼피가 달의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앵무조개 속에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앵무조개의 껍질은 '격벽septa'이라 불리는 규칙적인 칸막이로 나누
어진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미국의 생리학자이자 시인
이기도 한 올리버 웬델 홈즈는 이처럼 아름다운 형태와 구조에 매료되어 
사람들에게 각자의 정신생활을 높이도록 권하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 더 넓은 저택을 지으라, 우리의 영혼이여
계절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당신에게는 낮은 천정을 남기고 떠나간다!
지금까지 살았던 어떤 집보다도 높고 새로운 전당에서
더욱 큰 돔으로 하늘로부터 당신을 가리라
드디어 당신이 자유의 몸이 되는 날까지.
그리고 삶이라는 쉼없는 바다에 이미 비좁아진 너의 껍질을 띄어 보내라.
  그런데 나는 앵무조개의 격벽이 홈스가 정신의 불멸성에 대한 명상에
사용한 것이나, 오닐이 희곡 제목에 무단으로 차용한 것보다 훨씬 큰
유용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해야겠다. 칸과 폼피는 앵무조개 껍질의 외면
에 나타나는 미세한 성장선의 수를 세어 각각의 작은 방(격벽과 격벽 사
이의 공간)에 평균 약 30개의 미세한 선이 들어 있으며, 그 숫자는 서로
다른 앵무조개의 껍질에서, 또한 같은 껍질의 모든 방에서 거의 일정하
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일대의 심해에 사는 앵무조개는 태양의 주기에 따라 매일 
부침하기 때문에-밤이 되면 해수면으로 떠오른다-칸과 폼피는 하나의
미세한 선이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격벽의 생성은 달 주기에
 맞추어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포함한 상당수의 동물은 대개 
생식과 결부된 월주기를 갖는다. 
  앵무조개류는 화석으로 흔하게 발견된다(현생 앵무조개는 무척 다양했
던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남은 종류다). 칸과 폼피는 4억 2천만
년 전에서 2천 5백만 년 전에 걸쳐 살았던 25개의 앵무조개를 조사해
하나의 작은 방 속에 들어 있는 가느다란 선의 숫자를 셌다. 그리고 현
생종에서는 선의 숫자가 약30개, 가장 새로운 화석에서는 약25개, 가
장 오래된 화석에서는 겨우 9개인 것으로 볼 때 연대가 오래될수록 규
칙적으로 그 숫자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만약 달이 4억 l천만년 전에-당시 하루는 21시간이었다-약 9태양일에 
지구 주위를 공전했다면 달은 현재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칸과 폼피는 몇 가지 방정식을 푼 결과 이들 먼 옛날의 앵무조개류는 
지구로부터 현재 거리의 2/5정도의 위치에 있는 달을 보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실제 그들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화석의 성장 리듬에 관한 많은 자료에 대해 내 자
신이 상반된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연구
방법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 성
장선들이 어떤 주기성을 나타내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미세한 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선은 일반적으로 태
양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그 선들이 조수의 
주기-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 모두를 포함하는 주기성-에 대한 반응
이라고 하자. 
  만약 달이 먼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공전했다면, 태
곳적 조수의 주기는 현재와 같은 태양일에 가깝지 않았을 것이다(여기
에서 앵무조개의 가느다란 성장선이 조석의 영향보다 오히려 수직 
방향의 밤 낮 주기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폼피의 주장의-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세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들면서, 그 앵무조개들이 얕은 연안 수역에 살았으며, 따라서 
조석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설령 성장선이 태양의 주기에 대한 반응이라 하더라도, 먼
옛날의 1개월 또는 1년이 며칠이었는지를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 단
순한 셈으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동물들이 하루를 건
너뛰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루에 두
개의 성장선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장선을 세어보면 실제 일수보다 적은 숫자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현생종 산호에서는 1년에 365개의 성장선이 아니라 평균 
360개의 성장선이 나타난다. 아주 흐린 날에는 낮이라고 해도 밤보다 
크게 빠른 성장을 보이지 않으니 성장선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웰스의 최초의 연구를 상기하라).
  게다가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면, 성장선이 천문학적 주기성
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성장선이 날, 달,
해를 기록할 것이라고 가정하게 만드는 근거는 그것들의 기하학적 규칙
성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동물은 규칙적인 성장 속에 천문학적 주기를 성실하게 기록
하는 수동적인 기계가 아니다. 동물들은 그 밖에도 체내 시계를 가지고 
있다. 그 시계는 날, 조석, 계절 등 천문학적 시간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물질 대사 리듬에 맞춰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동물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 성장률이 
저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성장선은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증가한다. 또한 앵무조개의 격벽과 격벽 사이의 거리는 일생
동안 항상 규칙적으로 넓어진다. 격벽은 정말 한 달에 하나씩 규칙적으
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나중에 만들어진 것은 더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지는 것일까? 
  앵무조개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격벽을 하나씩 만든 것이 아니라, 
연체 부위가 규칙적으로 늘어나는 작은 방의 용적을 가득 채울 때마다 
격벽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주로 이런 이유때문에 나는 칸과 폼피의 
결론에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시간적으로 잘 일치하지 않은 데이터가 많은 까닭은 이러한 여러 가
지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헌
속에는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다. 산호에
의해 흔적화된 달의 주기성을 대상으로 연구한 어느 한 실험은 3억 5천
만년 이전에는 한달의 길이가 칸과 폼피가 생각하는 일수의 세 배에 달
한다는 사실을 시사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이러한 시도에 만족하며 아
울러 낙관하고 있다. 첫째, 내용적으로는 전혀 일치하지 않아도 모든
연구가 동일한 기본 패턴-1년당 일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소하는
-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모두가 무비판적으로 열광하던 최
초의 시기가 지나자 고생물학자들은 성장선이 정말로 무엇을 나타내는
지 알아내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무척 힘든 작업-조절된 조건하에서
현생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적 연구를 하는 것-에 착수하고 있다. 이제
곧 화석 자료에서 나타나는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얻게 될
것이다. 
  지질학과 관련하여 이처럼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한 문제들이 뒤얽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보자. 만
약 식의 데이터에서 추정되는 최근 달의 후퇴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가 연장해보면, 달은 약 10억 년 전에 로슈의 한계(Roche ilmit, 어떤
천체의 중심과 인접한 다른 천체가 접근할 수 있는 한계 거리/옮긴이)에
부닥치게 된다. 
  로슈의 한계 내에는 큰 물체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거대한 물체가 
외부에서 그 속으로 들어온다면 그 결과는 분명치 않지만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대한 조석이 지구 위를 휩쓸고 달 표면은 융해될 
것이다. 그러나 아폴로 우주선이 채집해온 달 표면 암석을 조사해본 결과 
과거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현재의 
데이터를 기초로 추정되는 후퇴 속도는-1년에 5.8센티미터-칸과 폼피가 
주장한 평균 속도보다-1년에 94.5센티미터-훨씬 작다). 
  따라서 달은 그 표면이 40억 년 이상 전에 굳어진 이래 10억년 전에도, 
그 후에도 지구에 그 정도로 가깝게 접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달의 후퇴 속도는 지구 역사의 초기에는 훨씬 느렸다가 갑자기 
변화해서 급격하게 뒤로 물러났거나, 아니면 지구가 형성된 훨씬 뒤에 
달이 현재의 궤도에 들어왔을 것 같다. 어쨌든 과거에 달은 지구와 훨씬 
더 가까웠다. 그리고 이렇듯 달라진 상호 관계는 두 천체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구의 경우, 펀디Fundy 만의 위험한 조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조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초기의 퇴적암 속에서 그러한 징후를
조심스럽게 찾아볼 수 있다. 달의 경우에는 칸과 폼피가 흥미로운 주장
을 제기하고 있다. 먼 옛날 달이 지구와 더 가까웠을 때 지구의 인력이
지금보다 더 강했다는 사실이 오늘날 달 표면에 있는 바다가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쪽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가 되거나(달의 바다는 액체 상태 마
그마의 거대한 분출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달의 질량 중심이 지구 가까
운 쪽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질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가운데 시간의 장대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우리의 결론을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격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쉽게 지구의 나이가 45
억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적으로 아는 것과 그 실체를 인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이다. 숫자 그 자체로 볼 때 45억이라는 수는 그리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지구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해왔는지, 그리고 인류가 진화해온 
시간이-우리들의 일생이 우주의 연령에 비한다면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얼마나 짧은지를 강조하기 위해 은유나 
상징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이는 은유는 인류 문명이 최후의
수 초에 해당하는 24시간짜리 시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인간 생활의 척도에서 볼 때 전혀 무의미한 미세한 힘이 갖는 매력을
더 강조하고 싶다. 조금 전에 우리는 또 1년을 보냈고, 지구의 자전은
5만분의 1초만큼 더 느려졌다. 그래서 도대체 어쨌다는 것인가? 지금까
지 당신이 읽은 내용이 그 답이다. 
  
    옮긴이후기
      자연은 뛰어난 땜장이이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사람처럼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 볼 수 있다는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판다의 손가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의 숫자가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인 것이다. 그렇다면 판다의
엄지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판다의 실제 엄지손가락은 다른 역할에 할당되어 있어서 별도의 기능
을 갖기에는 지나치게 특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붙잡을 수 있
도록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손가락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판다는 손에 있는 다른 부분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손목뼈를 확장
시켜 엄지로 이용한다는 조금 꼴사납기는 하지만 일단 도움이 되는 해결 
방법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뛰어난 신발명이 
아닌 임시 변통의 처방"이었던 셈이다. 
  다윈의 난에 대한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자연에서 우리는 이런
식의 임시 변통적 장치들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공학자가 생각해내
는 가장 뛰어난 고안물도 역사의 힘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판다의 엄지는 자연이 "뛰어난 땜장이이기는 하지만 성스러운 공장
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 책 '판다의 엄지'의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라는 
불완전하고 기이한 사례를 통해 진화의 진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굴드는 얼핏 보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현상을 제기하면서 
우리를 중요한 질문으로 이끄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점장이식 임시 
변통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데? 이것을 굳이 임시 변통이라고 부를 까닭
이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완전한 원래의 설계
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필자가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말, "진화란 어떤 목적을 향해 한걸음 한 걸음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완전한 무엇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화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관점, 즉 진화론에 대해서
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굴드는 현대의 종합설이 진화를 어떤 틀 속에
가두어놓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국지적인 개체군 속에서 일어나
는 점진적이고 적응적인 변화'라는 다윈주의의 기본 관점에 귀착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굴드는 자연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며 진화는 여러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진화란 누적적이고 점진적이라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와 엘드리지는 진화의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um" 모형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속평형설이란 "대부분의 
계통이 각각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거의 변화하지 않지만, 이따금 
급격하게 일어나는 종분화라는 사건에 의해 그 평형이 단속되는 것, 
그리고 진화란 이러한 단속의 전개와 생존이 뒤섞여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쟁은 아직까지 확실한 결말이 나지 않고 있지만, 최근 복잡성 
과학complexity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컴퓨터 모형으로 생물의 진화 
과정을 시뮬레이트(모의 실험)한 결과는 단속평형설이 사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필자가 진화나 진화론에 대
해 새로운 관점이나 풍부한 사고를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 우리 삶의 여러 굽이굽이에 고여 있고 굳어 있는 수많은 것들을
판다의 엄지로 흔들고 휘저으면서 그 속에서 드러나는 숱한 문제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종주의를 뒷받침했던 두뇌 계측학, 그리고 IQ검사를 비롯한 숱한 
그 현대판들.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과학에 들씌워져 있는 숱한 인간
들의 감정과 희망, 그리고 이해 관계들. '멍청한 공룡'이라는 인간들의 
편견이 보여주는 인간중심주의. 사람이나 동물의 몸이란 유전자를 나르는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로 비약한 도킨스의 환원주의와 유전자 
결정론... 더욱이 그는 오늘날 복잡성 과학이나 체계 이론의 접근 방식을 
자신의 연구 분야에 훌륭하게 수용시키고 있다. 
  그는 '역사적 과학'이라는 접근 방식을 통해 "생물은 유전자들의 융합 
이상의 무엇이며, 생물은 역사라는 중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몸의 
여러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는 관점으로 환원론. 결정론, 원자
론을 단호히 배격한다. 역사는 수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역사는 판다의 
엄지를 만들어내고, 완벽한 설계처럼 보이는 것을 순식간에 멸종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객관적인 것인 양 생각하는 과학자체도 역사의 산물
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명한 학자이자 탁월한 과학 저술가이다. 그는
진화생물학, 고생물학, 동물행동학 등의 전문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과
학사, 과학사회학 등의 폭넓은 안목으로 과학의 중요한 주제들에 뛰어
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섣부른 주장을 펴기보다 독자들에게 풍
부한 사실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견해를 공평하게 제기해 독자들이 스
스로 판단을 내리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보기 드문 재주를
지닌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굴드는 과학 글쓰기에서 한 지평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문장은 숱한 은유로 가득 차 있고,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능한 한
그 의미들을 살려내려 노력했지만, 얼마나 필자의 뜻을 올바로 전달했
는지 무척 의심스럽다. 제대로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것은 전적으로 옮긴이의 책임임을 밝혀 둔다. 좋은 책을 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세종서적과 까다로운 옮긴이의 주문에도 불평하지 않고 여
러 차례 원고를 다듬어준 편집부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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