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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Casey,Riley 2022. 10. 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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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추적하여 야생동물들의
생태와 특징 등을 취재한 일련의 과정들을 스토리와 함께 기록한 것이다. 야생동물 촬영은 시간과
계절의 변화 등 제약을 많이 받는다. 더구나 촬영 대상이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이라면 촬영
을 위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보통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먼저 먹이 등 음식 냄새로 야생동물
을 유인해 놓고, 동물이 지나갈 가능성이 있는 길목을 찾아 무인 센서 카메라를 설치한다. 때로는
산속 위장 텐트 안에 잠복하여 새벽까지 직접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 산야를 전전하면서 언
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주인공을 기다리며 찾아 헤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고달픈 여정이었
지만 한 컷 한 컷 결과물이 나올 때마다 보람과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 Short Summary
이 책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차례차례 추적하여 야생동물
들의 생태와 특징 등을 취재한 일련의 과정들을 스토리와 함께 흥미롭게 기록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달리 야생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등굣길에 마을 뒤 동산에서 산토끼 추
적하는 것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 그만 지각해서 복도에서 벌을 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넋을 잃고 산토끼가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수업 시간이 2시간이나 지난 것을 뒤늦게
알고는 아예 등교를 포기하고 그대로 산토끼 앞에 주저앉아 버린 일도 있었다. 그날 밤 동네 아저씨한
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 나를 마당에 벌을 세우셨다. 나는 어둠 속에서 울먹이
면서도 낮에 본 산토끼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야생동물 촬영은 시간과 계절의 변화 등 제약을 많이 받는다. 더구나 촬영 대상이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이라면 촬영을 위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보통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무조건 야생동물을
쫓아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오랜 기간을 먹이 등 음식 냄새로 야생동물을 유인해 놓고,
동물이 지나갈 가능성이 있는 길목을 찾아 무인 센서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리고 때로는 직접 산속 위
장 텐트 안에 잠복하여 새벽까지 촬영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째 휴일을 반납한 채 전국 산야를 전전하면서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주인공을 기다리며
찾아 헤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고달픈 여정이다, 하지만, 한 컷 한 컷 결과물이 나올 때마다 보람과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저자는 이런 도전 정신으로 ‘와일드 지리산’ 자연 다큐멘터
리 영화 감독으로 깜짝 등단했다. ‘와일드 지리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에 걸쳐 지리산 국립 공
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갈등과 공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
안 아름답고 평온하며 때론 기이하며 절절한 순간들을 4k 화질로 제작했다.
인간과 자연(환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의 관계이다. 지리산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존중받아 마
땅하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환경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필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그간의 경험과 자료를 정리함으로써 이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야생동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토대
로 계속 보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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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 차례
1 지리산 반달가슴곰
2 담비
3 삵
4 수달
5 오소리
6 멧돼지
7 점박이물범
8 족제비
9 산양
10 하늘다람쥐
11 너구리
12 붉은박쥐
13 멧토끼
14 여우
15 두더지
16 늑대
17 고슴도치
18 표범
19 고라니
20 다람쥐
21 시베리아 호랑이
22 한라산 노루
23 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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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지리산 반달가슴곰
반달가슴곰 11개월 추적 촬영: 지난 2월, 경남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뒷길에 반달가슴곰이 출몰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3월 초, 벽송사에서 출발해 벽송 능선을 타고 지리산에 올랐다. 등산로를 벗어
나 4시간을 더 올라가니 아름드리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 나왔다. ‘반달가슴곰이 나온다’는 바로
그 숲인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취재팀은 반달가슴곰 서식 증거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추적에 나섰다. 인근 지역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지만 조금씩 달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약초꾼을 만났다. “지난해 딱 한 번 봤어요.” 지리산 둘
레길 송대마을의 정현주(58) 씨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과 조우한 것은 지난해 5월 모내기할 무렵이
었다. 그날도 정 씨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숲에서 튀어나온 반달가슴곰과 딱 마주쳤
다. “순간, 가족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어요. 곰은 예민해서 상당히 보기 어려운데, 나도 놀랐고
반달가슴곰도 놀랐어요. 곰은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울음소리를 내며 위압감을 주더군요. 나는 곰과
눈싸움을 하면서 천천히 뒷걸음으로 도망쳤지요.”
정 씨는 지리산은 워낙 높고 짐승이 있어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그는 사림재를 지나 더 올라가면 8만
평 정도의 진숲이 나온다고 했다. 이곳은 산벚나무,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피나무, 신갈나무 등이 원
시림을 이루고 있어 일반인들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숲이 얼마나 길게 이어져 있는지 약초꾼들은 그
숲을 ‘진숲’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곳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한다고 했다.
깊고 울창한 지리산 어디쯤 반달가슴곰이 산다는 증언에 힘을 얻어 본격적으로 산을 누비기 시작했다.
반달가슴곰을 추적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사람의 길이 아닌 동물의 길로 가야 하니 거칠고 험했다.
우선 반달가슴곰이 다닐 만한 길목을 몇 군데 정해, 움직임이 포착되면 자동으로 찍히는 방식의 무인
센서 카메라를 설치했다. 다른 장소에는 위장막을 설치하고 직접 촬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
득 없이 봄이 지나고 여름이 흘러갔다. 그리고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가을은 야생동물을 추적하기에
제격이다. 먹이가 풍부하면 배설이 잦아지므로 그 흔적이 남는다. 예상대로 반달가슴곰의 배설물을 발
견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설물은 가파른 계곡 지대를 따라 이어졌다.
이곳에서 가까운 숲길에 설치해 둔 무인 센서 카메라를 확인하러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반달가슴곰이 찍혔을까? 먼저 카메라에 찍힌 건 멧돼지 무리였다. 담비의 집단 서식과 함께 수많은 야
생동물이 이곳 일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반달가슴곰은 없
었다.
낙엽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반달가슴곰의 먹이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깊은
계곡에서 한 무더기 배설물이 발견됐다. 반달가슴곰에게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었다. 인근에서 또 다
른 흔적도 발견되었다. 지리산에 분명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을 텐데…. 이렇게 기대와 실망이 엇갈린
지 10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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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매일매일 무인 센서 카메라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모니터에는 산책하는 벽송사 스님, 약초꾼,
등산객도 보였지만 반달가슴곰은 없었다. ‘촬영은 실패한 것일까?’ 상실감이 밀려오던 지난달 22일 오
전 11시 21분 마침내 반달가슴곰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11개월간의 추적 끝에 반달가슴곰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왼쪽 귀에 무선 추적 장치(GPS)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사된 놈이었다. 그렇게 반달
가슴곰이 첫 모습을 드러냈다.
1950년 반달가슴곰 사냥꾼 증언: 지리산에는 65년 전에도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었다. 1950년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아랫마을에 사는 김종현(87) 할아버지는 당시 22살의 젊은 사냥꾼이었다. “1950년 초까
지 지리산에는 먹이가 풍부해 반달가슴곰이 자주 주민들에게 발견됐지. 약 100마리쯤 된다고 들었어.
특히 도토리가 떨어지는 늦가을이면 마을 사람들이 반달가슴곰을 보았다는 얘기가 자주 들렸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곰을 잡으러 가는 포수를 따라 산에 올랐다. 그 당시 곰은 특정인만 잡을 수 있었
다. 포수를 따라간 김 할아버지는 올가미에 걸린 곰을 보았다. 늦은 봄, 두릅 밭에서 두릅을 먹던 반달
가슴곰이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총살만 하면 되었다. 엽총을 들고 겨냥하자, 반달가슴곰은 목에 줄이
감겨 있었는데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반달가슴곰은 가죽이 얼마나 튼튼한지 가까이 다가가서
총탄을 쏴야 했다. 정면을 향해 조준하자, 반달가슴곰이 눈에 불을 켜고 곧 덮칠 것처럼 사나워졌다.
연거푸 총탄을 발사했다. 총탄이 가슴에 박히는 순간 ‘우우우악~’ 하며 큰 소리를 내더니 올가미를 뜯
고 도망쳐 달아났다. 사람들과 같이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두릅 밭에 곰이 쓰러져 있었다. 당시 반달
가슴곰은 부산의 모 한의원에 15만 원에 팔렸다.
지리산은 야생 반달가슴곰이 살기 좋은 곳임이 틀림없다. 65년 전에도 반달가슴곰이 살았고 지금도 반
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반달가슴곰 이동 경로 추적 현장: 취재팀은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연구하는 추적팀을 만났다. ‘국립 공
원 멸종 위기종 복원센터’ 연구원들인데 무선 발신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10월 전남 구례군 복원
센터에서 오전 9시경 출발했다. 일행은 차량으로 30분간 이동하여 경남 하동군 지리산 형제봉
(1,117m)에 도착했다. 연구원들은 탐방로를 벗어나 길 없는 원시림을 헤쳐 나갔다.
10kg의 배낭을 멘 연구원들은 안테나와 무전기까지 들고 있었다. 배낭에는 각종 추적 장비와 함께 김
밥과 물이 있었다.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반달가슴곰 이동 경로 현장을 보기 위해 끝까지 따라갔다.
계곡을 건너고 다리를 지나 끝없는 숲을 걸었다.
탐방로를 벗어나 3시간쯤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임종현(39) 연구원이 큰 바위 위로 올라섰다. 한 손
에 안테나를 높이 들고 무선 위치 추적기에 귀를 바짝 대더니,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을 이용해
지도 위에 점을 찍었다. 발신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삑 삑 삑’ 노련한 연구원이 안테나를 돌려서 위치
를 찾아냈다. 깊은 계곡에서는 전파가 서로 부딪히기 때문에, 발신 장소를 찾는 데 경험이 중요했다.
48번 반달가슴곰이 ‘벗점골’로 위치가 확인되자, 연구원들은 바빠졌다. 20분 동안 이동 경로를 추적하
고 계속 기록을 했다.
같은 시각 또 다른 곳에서 손대삼(39) 연구원 발신음 추적기에도 ‘삑 삑 삑’ 희미한 신호음이 잡히기
시작했다. 점차 소리가 커지면서 신호음 크기를 표시하는 막대 수가 늘어났다. 52번 반달가슴곰 위치
는 ‘대승골’로 확인되었다. 복원기술부 이승훈(42) 팀장은 벗점골의 2살짜리 48번 새끼 반달가슴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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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는 50kg 정도라고 했다. 4살짜리 52번 반달가슴곰의 몸무게는 125kg에 달한다고 했다.
연구원들은 매일 2인 1조로 지리산 일대 반달가슴곰 38마리를 추적한다. 반달가슴곰의 개체 관리와
생태를 파악하기 위해 귀에 붙여 놓은 발신기는 배터리의 지속 기간이 1년 정도여서 적기에 갈아 주어
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곰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지리산이 넓어 한순간 놓치면 반달가슴곰이 어
디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올가미에 걸렸
는지, 건강한지, 민가 쪽으로 내려오지 않는지 등 위치를 확인하며 개체의 주요 동선을 파악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야생동물에게 GPS를 부착시켜 서식지와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 수신음을 따라 험한
산을 이동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발신기 교체나 유전자 감식을 위해 반달가슴곰을 생포하는
일은 더욱 위험천만한 일이다. 등산로가 아닌 능선과 계곡을 따라 이동하며 굴속에서 잠을 자는 일도
그들의 일상이라고 했다.
자연 적응 훈련과 방사를 통한 연구 사례들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구원들의 노력과 시행착오는 한
단계씩 발전하는 종 복원의 뿌리가 되는 작업들이다. 종 복원은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고 먹이 사슬을
부유하게 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큰 선물로 남을 것이다.
한반도의 마지막 반달가슴곰: 한반도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사진이나 흔적이 아닌 실물로 마지막 모습
을 드러낸 것은 1983년이었다.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의 총을 맞고 신음하던 반달가슴곰이 있었다.
밀렵꾼은 납이 든 사제 총탄을 사용했고, 부검 과정에서 어른 주먹 크기의 웅담이 나왔는데 공개 입찰
로 판매했다. 죽은 반달가슴곰은 10년생 암컷이었는데 수태한 흔적이 없었다. 이렇게 설악산 밀렵꾼에
의해 희생된 후로는 반달가슴곰의 흔적이 일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 11월 생태 전문가 김
창수 씨가 최초의 야생 반달가슴곰 흔적을 발견하고 전주 MBC 방송사에 제보했다. 그때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 촬영에 성공하면서 야생 곰 실체가 확인되었다.
현재 지리산에는 야생 반달가슴곰이 4, 5마리 사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4년부터 시작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으로 지금까지 38마리를 방사했다. 이후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해서 현재
38마리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 반달가슴곰과 방사 반달가슴곰을 모두 합쳐 약 43마리 정
도가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달가슴곰처럼 한번 멸종 위기 종이 되면 복원하기가 매우 힘
들다.
종 복원 센터 연구원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반달가슴곰을 방사하고, 자연에 적응시켜 서로 짝짓기
를 하게 하거나, 혹은 야생 반달가슴곰과 짝짓기해 복원시키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단군 신화
에 등장하는 곰, 그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서 지금 복원되고 있다. 또 다른 신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
이다.
취재팀과 함께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을 추적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반달가슴곰의 특성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근 1년을 취재하는 동안 물심양면 도움을 주신 벽송사 원돈 주지스님과 다양한
정보를 전해 준 지리산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기획 시리즈를 끝내게 되어 홀가분하
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지리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서성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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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수달
부산의 대표적 도심 하천인 수영강에서 서너 마리씩 무리 지어 사는 수달의 모습이 수차례 추적 끝에
카메라에 포착됐다. 천연기념물 제330호, 멸종 위기 야생동식물 1급인 수달은 매끈한 몸매에 능수능란
한 수영 솜씨를 뽐냈다. 서로 뒤엉켜 물장난을 치고 잽싸게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은 물속 포식자의
진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취재팀이 수달 추적에 들어간 계기는 오래전 직장 동료였던 최충식 씨의 제보 때문이다. 그는 “수영강
과 그 지류인 온천천 하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밤이면 날쌘 동물 한 마리가 물속에서 머리와 콧구멍을
내밀고 헤엄치고 다녀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취재팀이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져 배설물을 확인한 결과 수달이 분명했다. 문제는 어떻
게 카메라에 담느냐였다. 추적과 잠복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수달을 촬영하는 데 실패했다. 주로 밤에
활동하며 눈과 귀가 유달리 예민한 수달을 촬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마다 이곳을 지나면서 오로지 ‘수달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지난 2월, 취재팀은 또다시 수영강을 찾았다. 흔적은 있지만 목격된 적이 없는 수달, ‘오늘은 볼 수 있
겠지’라는 생각으로 온천천 하류와 만나는 목 좋은 지점에 자리를 잡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편으로
는 도심의 가로등 불빛과 차량 소음이 가득한 이곳에서 과연 수달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
었다.
수달을 기다린 지 3시간 남짓. 목 놓아 기다리던 녀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수달이 물에서 올라
와 맨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마치 할 일을 다 끝낸 듯, 녀
석은 물 위로 얼굴을 내놓은 채 잠시 머물다 하류로 사라졌다. 행여 다시 올까 싶어 1시간여를 더 기
다렸지만 허사였다. 그래도 수영강에서 수달을 처음 확인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천성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으로 흘러 법기ㆍ회동 수원지를 이룬 뒤 수영구와 해운대구를 가로질
러 수영만과 만나는 이곳 수영강은, 지류인 온천천과 연결되는 특성상 각종 어류와 바다 생물이 공존
하고 있어 수달이 먹잇감을 얻는 데 안성맞춤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족제빗과의 포유류인 수달은 몸길이 63~75cm, 꼬리 길이 41~55cm, 몸무게 5.8~10kg 정도이다. 몸
매는 족제비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크고, 몸은 수중 생활을 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먹이는 주
로 어류, 특히 비늘이 없거나 적은 어종들을 잡아먹는다. 개구리나 게도 잘 먹는다.
수달이 물속에 들어가 견딜 수 있는 잠수 능력은 5~8분 정도이다. 다리가 짧고 몸이 유선형이라 빠른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 해서, 수달은 강바닥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물고기를 찾아낸다. 수달이 물고기
를 사냥할 수 있는 추적 장치는 입 주변의 긴 수염이다. 코와 귀는 수중에서는 자동으로 닫혀 물이 들
어오는 것을 차단한다.
수달의 또 다른 수영 비결은 발바닥의 모양이다. 다른 육상동물과 달리 수달의 발바닥은 물갈퀴 구조
로 되어 있어 훌륭한 물고기 사냥 도구가 된다. 앞발을 손처럼 사용해 물을 휘저어 물고기를 찾으면
빼어난 수영 실력으로 추격한다. 이리저리 급선회도 가능하며 주둥이와 앞발을 이용해 단숨에 물고기
를 낚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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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지난 3월에는 앞서 수달을 봤던 지점에서 5km 정도 떨어진 하류에 위치한 민락동 방파제를 찾았다.
역시 제보에 의해서였다. 턱 밑으로 파고드는 칼바람 속에서 잠복 두 시간쯤 지난 자정께, 어둠 속에
서 꿈틀대는 동물의 은밀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방파제 아래 돌 틈에서 3마리의 수달 가족이 어슬렁거
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추위가 싹 가셨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을 죽인 채 수달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수달의 본격적인 먹이 사냥이 시작됐다. 수달이 유연한 자맥질로 물고기를 낚아채 수면으로 모습을 드
러낸 건, 사냥에 나선 지 불과 20초 만이었다. 물고기 한 마리 정도는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수달이
하루에 먹는 양은 2~3kg 정도다. 녀석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려면 조금 더 사냥을 해야 했다. 수달은
생각보다 아주 빨리 물고기를 사냥했다. 그들은 물고기의 머리만 남긴 채 뼈와 지느러미까지 야무지게
먹어 치웠다.
박용수 생태 전문가는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영강에 아직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음
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라며 “수질이 개선되면서 물고기 등 먹이가 늘어 수달이 하류 쪽으로 이동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발자국과 배설물을 추적 조사한 결과, 최소 6마리 이상의 수
달이 이 일대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수달 보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
조했다.
수달은 1950, 60년대 무분별한 포획과 난개발 등으로 서식 환경이 급격히 악화돼 개체군이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 국립 공원 종 복원 센터(전남 구례)와 수달 복원 증식 센터(강원도 양구)가 개원하면서,
전국에 걸쳐 수달 보호 활동이 탄력을 받아 한때 멸종 위기에까지 몰렸던 수달이 지금은 개체 수가 많
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멧돼지
야생의 세계는 이미 멧돼지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현재 국내 산천에서 멧돼지를 공격할 수 있는 맹수
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천적이 사라진 이 땅에서 이제 멧돼지는 천하무적이다. 불행히도 멧돼지는
생태계 내에서 개체 수를 조절 받을 기회를 잃은 셈이다. 그 결과 개체 수가 크게 늘었고 먹이는 부족
해졌다. 종족 번식이 곧 자기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멧
돼지들의 비극이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벽송사 원돈 주지스님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사찰 앞 텃밭에 몰려든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야간 생태를 확실하게 관찰하기
위해 멧돼지가 모습을 드러내는 먹이 터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고 잠복에 들어갔다. 야생동물 중에서
특히 후각과 청각이 발달한 멧돼지를 관찰하기 위해, 취재팀은 멀리서도 조정 가능한 특수 촬영 장비
를 설치하고 기다렸다.
주지스님의 제보대로 멧돼지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또 한 마리가 나
타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멧돼지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몸집이 작은 어린 멧돼지가 있는
것으로 봐서 멧돼지 가족이었다. 멧돼지들은 천천히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음식물을 먹어 치우기 시
작했다. 곧이어 또 다른 멧돼지들이 나타났다. 아마도 숨어서 지켜보다가 더는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
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분명했다. 멧돼지 수가 6마리로 늘어났다. 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음식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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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웬만큼 배를 채웠는지 유유히 산으로 사라졌다.
멧돼지들이 벽송사를 찾게 된 것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와 관련해 절 공양간 보살의 증
언을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조금씩 없어졌어요. 날이 갈수록 없어지는 양이 점차 늘었어요. 어느
시점이 되니까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없더라고요. 저를 비롯한 절 식구들 모두가 궁금해, 저녁때부터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보니 주범은 멧돼지였어요.”
원돈 주지스님의 허락으로 그때부터 절에서 멧돼지에게 음식을 주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일이 더 늘
었지만 공양간 보살은 개의치 않고 되레 성의를 다해 멧돼지에게 먹이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먹이는
주로 제를 올리고 남은 각종 떡과 공양하고 남은 음식물이 대부분이지만, 공양간 보살은 철마다 신선
한 과일을 먹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먹이뿐 아니라 멧돼지의 안전에도 신경을 썼
다. 여유가 있을 때는 혹시 마을 사람들이 쳐 놓았을 법한 올무를 제거하기 위해 절 주위를 돌아다녔
다. 그것도 모자라 행여 올무 등으로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나 걱정하며, 음식을 먹는 멧돼지들의 머릿
수를 헤아리기도 했다.
지리산 둘레길 초입에 있는 벽송사 앞 텃밭 양지바른 터에는 매일 저녁 4~6마리의 멧돼지 때가 어김
없이 나타난다. 이렇다 보니 야생 멧돼지들은 냄새만 맡고 보살을 알아보며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
다고 한다. 공양간 보살은 “매일매일 야생 멧돼지들을 보다 보니 이제는 모든 야생동물이 사람과 한데
어울려 사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멧돼지들이 벽송사를 찾아오는 한 먹이 주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멧돼짓과에 속하는 멧돼지는 가축화된 돼지의 조상 종이다. 돼지가 탈출해 산으로 도망치면서 새끼를
낳아 한 세대 만에 자연에 적응하고, 온순한 가축에서 사나운 맹수로 돌변했다. 멧돼지는 고기의 식용
도 가능해 사육하기도 한다.
몸길이는 1~1.8m, 어깨높이는 0.45~1m, 몸무게는 100~300kg 정도이다. 원뿔형인 머리는 몸통과
구별이 확실하지 않다. 네 다리는 짧고 가늘며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빠르다. 몸 색은 어두운 갈색에
서 엷은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시아 멧돼지는 머리 꼭대기에서 등 중앙부에 걸쳐 긴 센털이
많이 나 있지만, 유럽 멧돼지는 털이 그다지 발달해 있지 않다. 또 아시아계 멧돼지에는 윗입술로부터
볼에 걸쳐 흰 털의 선이 있으나 유럽계의 멧돼지는 그렇지 않다.
최근 멧돼지가 도심까지 출현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거나 농부들을 공격해 상처를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엇이 멧돼지가 도심을 활보하며 인간을 공격하도록 했을까? 상위 포식자가 없어 개체 수
가 늘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인간에게 있다.
인간이 들어와 살기 전까지 숲은 야생동물의 터전이었다. 인간이 차츰 생활 영역을 넓히면 상대적으로
야생동물의 영토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 아래 잡목으로 이루어진 구릉지는 야생동물과 사람과의 완
충 지대인 셈이다. 이 완충 지대를 인간이 개발하고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평화가 깨지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고갯마루를 절단 내 도로를 만들면서 동물들의 이동을 차단한 것도 또 하나의 원
인이 될 수 있다. 이동 통로를 잃은 동물들은 도로로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빈번한 로드킬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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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저돌적’이라는 말이 있다. 성년 멧돼지가 들이닥치듯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멧돼지는 의
심도 많고 겁도 많다. 평소엔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피하는 순한 녀석이다. 짝짓기 때와 새끼를 데리
고 다닐 때만 사람을 공격한다. 짝짓기 때 갑자기 등장한 사람을 암컷을 해치려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게 멧돼지의 습성이다.
천적이 사라진 땅에서 이제 멧돼지에게 위협은 오로지 멧돼지 자신들뿐이다. 겨울과 초봄은 어느 동물
에게나 혹독한 계절이다. 그러나 대식가인 멧돼지는 아무리 혹독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생명
을 탄생시킨다. 이 땅의 야생 멧돼지들은 당분간 어떤 시련이 온다 해도 그 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나
갈 것이다.

한라산 노루
‘무너진 전설, 한라산 노루.’
제주의 청정 자연환경을 상징하던 노루가 이젠 유해 동물로 전락했다.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증가한
데다 농가에 피해까지 주기 때문이다. 노루는 한때 신령스러운 한라산을 가장 한라산답게 해 주는, 제
주를 상징하는 야생동물 중 하나였다. 동그랗고 순한 눈망울, 수풀 사이로 자꾸 몸을 숨기는 순하고
겁 많은 노루는 바로 한라산의 살아 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에게 노루는 한라산만
큼이나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았다.
그런데 요즘 제주에서 노루의 위상이 영 말이 아니다. 제주시 조천읍 선교리에서 만난 농민 김영기
(65) 씨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대뜸 자신의 밭으로 취재팀을 안내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채소밭
이었다. 잡초가 많다는 것만 빼면 특별한 게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뜯어낸 것처럼
줄기며 잎이며 성한 곳이 없었다. 줄기 윗부분이 잘린 채소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잡초에 자리를 내
주고 만 것이다. 김 씨는 “5년 전만 해도 이처럼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부쩍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만큼 노루 개체 수가 늘었
다는 방증이다. 이제 적극적으로 방지책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었다.
노루에 대처하는 농민들의 방법도 다양했다. 그물이나 철조망을 치는 건 기본이고, 태양열 전등을 이
용해 노루를 놀라게 해 쫓아내고, 밤마다 호랑이나 사자 울음소리를 틀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류가 흐
르는 전선을 설치해, 노루가 접근할 경우 순간적으로 충격을 주는 일종의 전기 울타리도 등장했다. 그
러나 노루가 보호 동물이기에 잡거나 죽이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 뾰족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
었다.
그렇다면 정말 노루가 많아진 걸까? 취재팀은 노루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가 보았다. 들판 여기저
기서 자연스럽게 먹이 활동을 하는 노루들은 취재팀이 다가가 촬영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3, 4마리가 함께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앞발이 뒷발보다 짧아 오르막길을
유난히 잘 뛰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라산 노루였다. 사람이 자주 오가는 길목으로 야생동물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곳, 심지어 소나 말을 키우는 목장 주변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목장을 제집처럼 드나드
는 노루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터를 잡고 사는 듯했다. 들판에서 말들과 어우러져 자연스
럽게 풀을 뜯는 노루의 모습은 이제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노루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주민들의 하소연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은 밤이 되자 채소밭으로 향
했다. 10분 뒤 밭 한가운데를 헤집고 다니는 동물을 발견했다. 순식간에 수풀 사이로 사라진 녀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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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뒤쫓았다. 노루가 분명했다. 초저녁부터 일출 전까지 활동하는 노루를 쫓느라 취재팀은 밤새 숲속을
헤매야 했다.
한라산 노루 주 서식지는 해발 200~600m대의 중산간 지대였다.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최
대한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한라산은 노루의 낙원이었다.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한라산 중턱에 노루
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노루는 지리산, 휴전선 비무장 지대 등 국내 몇몇 곳에서 아주 적은 수가 살고
있지만, 이곳 한라산에는 많은 개체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암수 몸의 크기는 비슷하지만, 수컷만 뿔을 갖고 있다. 수컷은 뿔로 나이를 가늠한다. 1년생은 하나, 2
년생은 둘, 3년생 이상은 뿔 가짓수가 3개로 더는 늘어나지 않는다. 12월쯤 떨어졌다가 이듬해 5월에
다시 자라는 뿔은 노루의 유일한 무기다.
초식동물이 그렇듯 노루도 순하고 겁이 많다. 조그만 인기척이 나도 주위를 경계하였다. 한라산에는
우거진 숲도 많지만, 탁 트인 초원도 적지 않아 사람들 눈에 띄기 쉽다. 노루는 구상나무 숲이나 잡목
림에 숨어 있다가 밖으로 나올 때면 습관적으로 조심스럽게 사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일단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나오면 더욱 조심했다.
“껑껑껑.” 노루의 울음소리였다. 노루가 자주 나타나는 한라산의 민대가리동산이나 만수동산 부근에서
가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가 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멧돼지 같은 들짐승의 울음소리와도 비슷
했다. 초원에 울려 퍼지는 노루의 울음소리는 주위를 긴장하게 한다. 잡목림이 우거진 숲에서 듣는 노
루 울음소리는 적막한 숲속을 쩌렁쩌렁 울렸다.
제주 노루 뿔은 대륙사슴의 그것보다 크기가 작은 데다 약효가 떨어진다고 알려진 덕분에, 한라산 노
루는 남획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계속된 포획 탓에 지난 1980년대
에는 멸종될 위기까지 내몰렸다. 한라산 영물 노루가 멸종 위기에 처하자, 제주도는 1987년부터 노루
살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매년 노루 먹이 주기 행사를 하고 곳곳에 쳐 놓은 덫과 올무를 제거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개체 수가 2011년 2만여 마리까지 늘었다. 하지만 노루 보호에 성공했다는 기
쁨은 잠시였다. 대책 없이 늘어난 노루들이 먹이를 찾아 농가로 내려오면서, 한라산의 영물 노루는 순
식간에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제주에서 노루가 급증한 것은 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천적인 호랑이, 표범, 늑대 등이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고, 천혜의 자연조건 속에서 먹이까지 풍부하게 주어지자 자연스럽게 개체 수가 급증한 것
이다. 사라질 뻔했던 노루를 되살려 놓았던 제주도민이 그때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제 노루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길을 잃은 한라산 노루들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 때
문이다.

청설모
해운대 동백공원에 날쌔게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색다른 재주꾼이 등장했다. 다람쥐도 아닌 저 녀석
은 대체 누굴까? 청설모다. 다람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만, 청설모는 반대로 위
에서 아래로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마치 특공대가 자일을 타고 거꾸로 내려오는 모습 같다. 고개를
수평으로 쳐들고 거꾸로 내려오면 고개가 아프지 않을까 싶은데, 동물 중에서 거꾸로 나무를 타는 녀
석은 청설모가 유일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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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쥐목 다람쥣과의 포유류인 청설모는 길이가 10cm가 넘는, 회색을 띤 갈색의 몸뚱이와 귀의 긴 털, 그
리고 꼬리를 갖고 있다. 잣나무, 상수리나무, 솔방울 따위 종자와 밤, 땅콩, 도토리 등의 나무 열매, 나
뭇잎과 나무껍질 등을 주로 먹는다. 나무 위에 집을 짓고 4~10월에 한 배에 3~6마리의 새끼를 낳는
다.
다람쥐와 청설모는 외모와 먹이의 종류, 분포 지역 등이 유사하다. 구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등에
줄무늬가 있으면 다람쥐다. 청설모는 천적이 사라진 뒤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환경부가 지
난 2000년 해로운 짐승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겨울잠을 안 자는 청설모는 동백공원에서 무엇을 먹고 살까? 이곳의 청설모는 다른 곳의 청설모와 달
리, 사람이 가까이 가도 약간의 경계는 하지만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주위에서 맴돈다. 사람들이 돌
위에 아몬드와 과자를 올려놓고 가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이제는 사람이 자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사람이 던져 준 아몬드를 먹는 데 집중한 나머지, 가까이
다가가 촬영을 해도 도망가지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먹이를 주면 어디선가 다른 청설모들이 나타
나, 자기에게도 먹이를 달라는 듯한 시늉을 하며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식사 후 녀석들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근처에 있는 수도꼭지 쪽으로 물을 먹기 위
해 오고 있었다. 내가 위치한 곳이 수도꼭지 근처여서, 녀석은 나를 힐끔 보면서 뜸을 들일 뿐 수도꼭
지 쪽으로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나도 숨을 죽이며 잠시 먼 산을 보는 척하며 모른 체했다. 잠시 후
녀석이 결심한 듯 조심스레 움직였다. 물을 먹을 찰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자, 일순간 나무 위로 쏜
살같이 도망가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놀라면 나무 위로 도망가는 습성 그대로였다. 물을 못 먹
어 아쉬웠던지 녀석은 나를 계속 경계하면서 수도꼭지 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도 계속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행동하며 녀석의 동태를 끝까지 살피고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결국
녀석은 수도꼭지 쪽으로 이동해 물을 재빨리 먹고 갔다.
알고 보니 이곳 수도꼭지는 청설모와 산새들이 물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장소였다. 쇠박새, 동박새, 직
박구리, 진박새, 박새, 맷비둘기, 까치, 뱁새, 곤줄박이 등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물을 한 모금씩 먹었
다. 어떤 놈은 목욕을 요란스럽게 하고 떠났다. 이들 중 청설모가 우두머리가 아닌가 싶었다.
청설모는 먹이 저장을 어떻게 할까? 먹이 저장은 겨울철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다. 추위가 엄습하면
숲에선 먹이를 찾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청설모가 열매 찾기에 분주했다. 녀석은 열매를 나무 위에
서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열매를 발달한 앞니로 까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녀석은 열매를
먹지 않고 입에 잔뜩 물기만 했다. 그리고 이동해서 열매를 자신만의 비밀 곳간에 저장해 두었다.
청설모가 솔방울을 잽싸게 돌리며 까는 발동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청설모가
열매를 까는 행동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경험에 의한 것일까? 열매를 까는 청설모를 관찰해 보자.
열매 껍데기에는 홈이 있다. 경험이 많은 청설모는 이 홈 속에 이빨을 넣을 수 있도록 앞발로 열매를
붙잡는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꽉 깨물어 열매를 쉽게 깬다. 이러한 일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열매를
쉽게 까는 요령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단 한 번에 열매를 깔 수 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청설모의 이런 습성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연구원들은 청설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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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자연 상태에서 기르면서 어미가 될 때까지 씨앗이나 딱딱한 열매를 주지 않았다. 이 실험은 청설모가
개암나무 열매를 능숙하게 까는 것이 타고난 것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청설
모는 본능적으로 열매를 분별하여 까지만, 능률적으로 열매를 깔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청설모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 열매나 과일 씨를 먹는데, 한
가지 방법만으로 모든 열매를 다 깔 수는 없다. 결국 각각의 열매마다 까는 방법을 몇 번의 실패를 거
듭하면서 배워야 했다.
날씨가 추워지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청설모는 자신만의 비밀 곳간에 저장해 둔 먹이를 가져와서 먹는
다. 청설모는 그동안 먹이를 저장해 둔 장소를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물론 청설모가 찾아내지 못한 열
매들이 땅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덕분에 땅속에 묻힌 열매들은 싹을 틔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그렇게 보면 청설모와 나무 열매는 서로 돕고 사는 셈이다. 청설모는 열매를 먹어
서 좋고, 나무는 자기 열매를 여기저기 퍼뜨려 자라게 하니 좋고, 이런 관계를 서로 돕고 산다고 해서
‘공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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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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