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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Casey,Riley 2022. 10. 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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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급변하는 현대의 세계정세의 흐름을 현실주의와 지정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말레
이시아의 외교관이자 지정학자인 저자는 ‘권력, 지리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변수를 토대로
세상의 분쟁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국가 간의 갈등과 협력의 원인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저자가 말레이시아 국적의 지정학 연구자라는 사실에는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지정학과 국제 관계는 대개 서구의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제3세계의
시각으로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말레이시아 국립대 국제관계학과에서 학사 과정을, 말레이 대학 전략 및 방위 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이
수한 이후 지정학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는 2021년 7월 현재 17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페이스북 계정
을 통해 지정학적 관점에서 시사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비록 연방 정부를 위해 일하는 행정 관료이자
외교관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지 프리드먼이나 로버트 캐플란처럼 인문학 분야에 대해 논평을 하는
독립된 지정학 분석가로 알려지기를 더 선호한다. 지정학 외에도, 다양한 언어에 대한 애호가이다.


▣ Short Summary
저자 아이만 라쉬단 웡은 영국이 브렉시트로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2016년 12월부터 온라인 플랫폼
을 통해 국제 문제에 대해 글을 쓰고 논평하기를 시작하였다. 그의 논평은 말레이시아 국민들 사이에
서 광범위하게 읽히고, 추종되고, 토론되었다. 국제 문제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경계 밖을 바라보면서
도 정확하고 합리적이다. 특정 문제에 대한 성격과 모습뿐만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도 탐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주제인 ‘권력 정치의 영향, 국민 국가의 생존 논리, 힘의 균형
의 원칙’에 계속 집중하는 한편,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세계화와 포퓰리즘-민족주의 사이의 긴장 관
계, 그리고 강력한 지도자의 부상’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논의를 확장한다. 나아가 국제 문제에
서 새롭게 대두되는 사이버 정치학, 환경 정치학, 우주 정치학, 증오 정치학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현실의 발현이며, 영원히 확장되는 국제 문제의 모습이다.
이러한 주제는 증가하는 비전통적 안보 문제의 대두, 비국가 행위자의 행동주의, 하위 국가 및 증가하
는 탈국경 문제를 조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저자는 비타협적인 현실주의자이며, 말레이시아의 애국자이다. 현실주의적 사고와 질문을 강조하며,
자유주의적 제도주의자들의 암묵적인 추정을 거부한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소규모 국가의 생존 가능성
을 높이기 위해서, 그의 현실주의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직면한 도전과 장애물, 그리고 무정부 상태의
국제 시스템에 그들이 적용해야 하는 행동과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진정한 애국자는
자국의 약점을 부정하고, 국제 사회에 있어서 ‘영향력 있는’ 행위자가 되려는 비현실적인 태도를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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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다거나, 우리가 성취한 것들의 ‘위대함’을 맹목적으로 칭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국의 제한된 능력을
인정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말레이시아에 대한 정확한 평가의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말레
이시아 국민의 입장에서 본질적으로 애국적으로 된다는 것은 말레이시아의 장점들을 변화의 잠재적 자
산으로 잘 활용하는 가운데, 권력, 지리,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 상황을 주시하는 것이라는 걸 저자는
강조한다.

▣ 차례
한국어판 서문
서문
1.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30년 / 2. 권력 / 3. 지리 / 4. 정체성 / 5. 미국 / 6. 멕시코 / 7. 유럽 / 8.
영국 / 9.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 10. 스페인 / 11. 이탈리아 / 12. 러시아 / 13. 우크라이나 / 14.
중동 / 15. 이스라엘 / 16. 이집트 / 17. 사우디아라비아 / 18. 이란 / 19. 터키 / 20. 리비아 / 21. 수단
/ 22. 북동아프리카(Horn of Africa) / 23. 예멘 / 24. 시리아 / 25. 쿠르디스탄 / 26. 레바논 / 27. 이라
크 / 28. 오만 / 29. 아프가니스탄 / 30. 인도와 파키스탄 / 31. 중국 / 32. 신장 / 33. 홍콩 / 34. 대만
/ 35. 일본 / 36. 인도-태평양 / 37. 한국 / 38. 북한 / 39. 남미 / 40. 아프리카 / 41. 동남아시아 / 42.
미얀마 / 43. 필리핀 / 44. 태국 / 45. 인도네시아 / 46. 말레이시아 / 47. 우주정치학(Astropolitics) / 48.
사이버 정치학 / 49. 증오 정치학 / 50. 환경 정치학
저자 인터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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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아이만 라쉬단 웡 지음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30년
이제 세상은 더 평화로워졌는가? 아니면 더욱 혼란스러워져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가? 스웨덴 웁살라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2010년대에 세계 분쟁은 2009년 81건에서 2018년 165건으로 증가
하였다. 그러나 분쟁 상태에 있는 국가들의 숫자는 감소하였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분쟁 상태
국가가 2014년에 14개국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7개국으로 줄었다. 총사상자도 2014년 143,409명
에서 2018년 77,392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분쟁의 강도가 감소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자유
주의의 전통에 흠뻑 젖어 있는 미디어와 학자들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민주화와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 갈등이 감소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에서 자유주의는 주로 자유주의적 정치사상이나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이
데올로기를 국제 정치에 적용한 사람들을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대부
분의 분쟁은 경제적 자원에 대한 각축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그들의 견해이다. 이들은 개방 경
제 체제와 자유 무역은 국가 간의 분쟁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만일 원하는 것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전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는 국가 내부
의 부를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고, 사회적 이동을 장려하고, 계층 간의 긴장을 줄인다고 본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반자유주의적 파시즘을 2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국제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1944년부터 1948년까지 UN, IMF 그리고 세계 인권 선언
의 규정들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탄생되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를 수용했으며, 이를 통해 소위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형성되었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강대국 소련은 공산주의에 기초한 세계 건설을 꿈꾸었다. 소련은 모든 국가의
공산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에는 소련
의 보호국인 위성 국가가 되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소련이 새로운 독재를 촉발시킨다고 보았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벌어졌고 각자 대리 국가를 통해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였다. 한반도에서 친소련
공산주의자들은 북한 정권을 수립하였고, 친미 자유주의자들은 남한을 수립하였다. 그와 동일한 형태
는 베트남에서도 볼 수 있는데, 친소련 공산주의자들은 북베트남을 수립하였고, 군주제 지지자들은 미
국의 동맹인 남베트남을 수립하였다.
2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 역시 동·서독으로 분단되었다. 서독은 민주 국가였고, 동독은 공산 국가
였다. 심지어 수도조차도 베를린 장벽에 의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분할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자
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독재주의, 자유와 폭압을 구분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989년 국
민 혁명이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을 휩쓸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이 베를린 검문소를 개방했고
마침내 베를린 장벽도 무너져 독일은 다시 통일이 되었다. 냉전은 결국 자유세계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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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제 세계는 단일한 사회ㆍ정치 체제로 통합되었다. ‘국경 없는 세계’와 ‘세계화’
같은 용어들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분쟁과 퇴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
겨졌다. 물론 성숙한 민주주의 체계와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국가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포퓰리즘의 부상은 세계화와 민주화에 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물결은 제
3세계에서뿐만 아니라, 북미나 서유럽과 같이 성숙한 민주주의와 경제 체제를 가진 국가에서도 요동치
고 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들이 대중 영합주의자들이다. 포퓰리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나쁜 것으로 간주되는가? 포퓰리즘은 민중의 소리를 절대적으로 지지
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여기에 정의된 민중은 노동 계급과 저소득층 집단, 보통 사람들, 그리고 가진 것
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 엘리트들로부터 등한시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나타났다.
포퓰리즘은 ‘좌’와 ‘우’ 모두에서 생성된다. 좌파 포퓰리즘은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대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투쟁하며, 평등한 부의 분배를 주장한다. 반면에, 우파 포퓰리즘은 민족주의자들이고
보수적이며, 주관을 강조하고, 개방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금 떠오르고 있는 포퓰리즘은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다. 민족주의자들은 주권을 내세우며 자유 무역과 이민자들의 유입에 반대한다. 그리고 자
유주의적 엘리트들과 세계화 추종자들이 국익과 국가 정체성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은 신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이외에도, 민족주의의 물결은 러시아, 터키, 중국, 일본, 필리핀,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강
타하였다. 이전에 서방 국가들을 지향하였던 터키와 필리핀은 이제 그들에 대한 확고한 비평가가 되었
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세상을 다시 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된 파시즘
의 시대로 이끌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민족주의, 특히 포퓰리스트적 민족주의를 막으려
고 한다. 대신에 그들은 국가는 물론이고 국가의 정체성에 우쭐해하지 않는 다문화주의를 앞세운다.
그들에게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의 부상은 1945년 또는 1989년 이후 세계에 평화와 발전을 가져온 국
제 질서를 위협하는 ‘역행 트렌드’이다.
사실 포퓰리즘과 신민족주의의 부상은 세계화와 민주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중들은 2010년대 이래
로 세계 경제의 침체를 탈피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자유주의 정책에 희망을 잃었다. 타임, 이
코노미스트, CNN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포퓰리스트와 신민족주의자들을 조롱했다. 그러한
태도는 국제주의 엘리트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강화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벽에 낙서된,
그들을 비난하는 글을 보지 못하였다. 그것이 바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패
배한 이유이다.
국제 정치학 연구에서 자유주의는 이상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민주주의나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매우 강조하며, 세상을 색깔이 없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색깔이 없는 세상에
서는 정체성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익은 보편적 가치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에 반해 현실주
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강조한다. 세상은 검지도 희지도 않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성과 자연법에 기초한 변하지 않는 요인들이 있다. 현실주의자들은 세상의 분쟁을 이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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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 ‘권력, 지리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변수에 기초한 세 가지 열쇠를 제시한다. 각각의 열쇠는 다
음의 장에서 논의할 것이다.

권력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인간성을 완성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본다. 민주적 시스템과 자유 시장 같은
올바른 장치를 통해 폭력의 사용은 근절될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불신은 인류애의 정신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그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 현실주의자에게 국가들 사이
의 분쟁과 전쟁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영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은 아
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물질적 성취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 간 파트너십이 절대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국가는 상대적 이익을 고려한다. 트럼프가 미
ㆍ중 간의 무역 관계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론상으로는 양국이 모두 이득을 얻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중국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경제는 3% 성장
하지만 중국은 10%나 성장한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경
제가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더욱 그러하다. 중국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위협할 때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들은 왜 권력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인가? 모든 국가의 행동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는 개인들의 집합체여서 어떤 국가의 행동은 인간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 중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권력에 대한 욕구이다.
1651년에 발간한 『리바이어던』에서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인 무한한 권력에 대한 탐욕을 “죽음
으로서만 끝이 나는, 권력에 대한 무한하면서도 쉼 없는 갈망”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홉스는 권력의
필요성이 무정부 상태인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그의 원시적 인간 상태에 대한
설명이다. ‘무정부 상태에서 남는 것은 정글의 법칙뿐이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해를 끼치면 누구
도 다른 사람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람
들이 사회 계약을 맺고, 폭력을 사용할 권리를 최고 권위인 정부에 넘겨야만 바뀔 수 있다. 국가는 국
방 업무를 수행하고, 범죄를 처벌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폭력의 독점자이다. 이 방법을 통해서만 사람
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들 간의 관계는 초기 무정부 상태의 사람들 간의 관계와 유사하다. 다른 나라의 행동을 감시하는
세계 정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다. 이것
은 국가들 사이에 불안정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국제법이 제정되었지만 국제법은 국내법과 동일하지
않다. 국내법은 어떤 사람이 법을 위반한다면, 폭력을 독점하는 당국자, 즉 정부에 의하여 벌을 받게
된다. 국제법은 지켜야 할 사항을 준수하지 않으면 비난은 받게 되지만, 처벌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국가는 확장주의 정책에 의해 권력을 최대한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무정
부 상태의 세계에서 국가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유일한 보장은 최강자가 되는 것뿐
이다. 반면에, 강자가 되는 데 실패한 국가들은 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 힘의 균형에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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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다. 힘의 균형은 그들 자신의 힘을 기르거나 다른 나라와 힘을 합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국
력의 상승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발전시킴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장한 강대국들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집요하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다.
힘을 증가시킬 수 없는 약소국가들은 보다 강하고 위협적인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을 형성한다.
하지만 국제 정치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에는 적이 될 수 있다.
내 적의 적은 내 친구이다.” 실제로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가
엄청나게 강력했기 때문에 적대적 관계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부상하는 독일과 균형을 맞출 필요
가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국이 되었다.
힘의 균형은 한 국가가 안전과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이를 위
해 약소국은 강대국과 동맹을 선택하거나, 다른 국가들과 블록으로 동맹을 결성한다. 동맹을 맺지 않
거나 중립을 선언하는 것은 그 중립성이 강대국에 유리한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한편 패권국과 패권국이 되려고 하는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과의 힘의 격차를 더욱 확대하려고 할 것이
다. 왜냐하면 힘의 격차가 좁으면 패권국을 노리는 국가들이 패권국의 위치를 차지할 인센티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1894년에서 1914년 사이에 일어났는데, 이때 독일은 영국의 지
위에 도전하였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은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사이의 힘의 격차가 좁
아졌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패권국의 존재는 보다 번영하고 안정적인 시대 또는 평화를 보장하였다. 팍스 브리태니카는 국제 정치
에서 영국이 지배했던 시대로, 영국의 경쟁 국가인 러시아가 크림 전쟁에서 패한 이후 남쪽으로 갔던
1850년대부터 1890년까지, 그리고 독일이 영국에 도전할 때까지의 시기이다. 또한 팍스 아메리카나는
냉전(1945~1989)이 종식된 이후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국력에 엄청난 격차가 생기면서 시작되
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기까지 미국에 도전할 다른 강대국은 없었다.
패권국의 긍정적인 측면은 패권국은 보다 질서 정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 즉, ‘세계 질서’를 창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은 패권국이 다른 국가들의 주권 침해를 한다는 것이
다. 2003년 국제 사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시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를 명확히 보여 주
었다. 견제되지 않는 미국의 힘에 대한 불안감은 중국과 러시아 간의 조약처럼 경쟁 국가들 사이의 조
약을 체결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세상은 과거 10년에 비해 더욱 혼란스러운데, 이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국력
의 격차가 좁혀지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미국이 여러 측면에서 우
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은 전면전이 아닌 ‘냉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은 패권에 도전하는 힘이 패권과 동등한 지위에 있게 되었을 때 촉발되었다.
오늘날 미국 이외의 다른 강대국의 부상과 함께 신민족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패권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격차가 좁혀지게 되면, 다른 나라들은 패권 국가에 의해 수립된 질서를 따르지 않게 된다. 이
렇게 되면 힘의 경쟁으로 인해 국가들이 무정부 상태에 놓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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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지리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에게 국경의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세상은 둥글거나 평평하며, 기술이
인류를 연결했기 때문에 지리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육지와 수역을 포함하
는 영토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벽이 없는 세상에서도 지리학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모든 국가에
는 영토가 있기 때문이다.
땅은 고지대이거나 평평하거나, 비옥하거나 건조하거나, 넓거나 작을 수 있다. 이것들은 어떤 국가에
대한 관심과 위협을 정의할 지리의 모든 측면이다. 만일 어떤 국가가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소유하
고 있다면, 그 국가는 생산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반면에 그러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국가는
다른 국가의 땅을 차지하거나 통제해야 한다.
평지가 많고 고지대로 보호되지 않는 국가는 고원에 둘러싸여 있거나 고지대에 위치한 국가보다 다른
국가의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된다. 예를 들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산맥 중 가장 높은 알프
스산맥에 위치하는 덕분에 많은 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어떤 누구
도 두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3,000미터나 되는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우크라
이나와 폴란드는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은 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평평한 땅 때문에 더욱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리적 구성은 국가 건설 능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스페인과 아프가니스탄처럼 산맥을 가진
국가는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힘든 문제에 직면한다. 멕시코와 같이 외곽에서 멀리 떨어진 중
심부를 가진 국가들 역시 효율적인 행정을 펼치는 데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지리는 운명
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노력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만큼, 국가도 올바른 전략과 외교 정책으로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운명을 바꾼다
는 것이 운명을 거스른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외교 정책과 관계를 계산하는 데 있어 지리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힘)’이 ‘국가 간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고 지속적인 이익만 있다’고 가르친다면, ‘지리’는 국
가 이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국가가 동맹이 되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적이 되어야 하는
지를 보여 준다. 이처럼 지리가 알려 주는 정치 역학을 ‘지정학’이라고 불린다.
지리는 어떤 국가가 둘러싼 위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프랑스는 사방이 천연 장벽으로 보
호받는 축복받는 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남쪽으로는 피레네산맥에 의해 스페인과, 남동쪽으로는 알프
스산맥에 의해 이탈리아와, 북쪽으로는 영국 해협에 의해 영국과 분리되어 있다. 프랑스의 문제는 동
쪽에 있다. 광활한 평원 외에는 산맥과 바다 또는 빠르게 흐르는 강들과 같은 천연 장벽이 없다. 따라
서 프랑스는 독일로부터의 잠재적 위협, 특히 16세기 합스부르크 왕조 시기에 독일이 발흥하던 이래로
그 위협에 직접 노출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지리로부터 발생하는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물리적 방어 이외에,
완충 지대나 영향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완충 지대는 국경에 있는 중립적 국가들이 위협에 직면하는 최
전방으로서 기능할 때 만들어진다. 만약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자 한다면 네덜란드나 벨기에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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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프랑스에게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벌어 주게 된다. 안전을 보다 더 도모하기 위해
서는 완충 지대에 있는 다른 국가를 자국의 영향권 하에 놓는 것이다. 완충 지대는 수동적인 전략이고,
영향권은 일종의 능동적인 전략이다. 이를 위해 한 국가는 다른 국가에 분열을 일으키거나, 적대적인 정
부를 우호적인 정부로 대체함으로써 위협으로 간주되는 국가의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
또한 동맹을 선택하는 데 있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원칙 이외에 지리적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어떤 국가가 위협으로 간주되는 국가를 억누르려고 한다면, 그 국가의 이웃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프랑스의 경우, 독일을 억누르기 위해 가장 유용한 동맹은 폴란드였는데, 이는 폴란
드가 독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프랑스가 독일을 포위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틀어
16세기 이래로 프랑스는 폴란드와 좋은 관계를 수립하였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
했기 때문에 일어났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당시 폴란드의 동맹인 프랑스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지리적인 이유로 함께 모여야 할 필요성은 비록 이데올로기와 가치가 서로 다르더라도 국가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한 국가의 이념이나 체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내려놓고,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인해 보다 더 큰 이익을 추구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이외에도, 지리적 이유 때문에 한 국가
의 이익이 지도자와 정권의 명멸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한다.
유럽에 근접해 있는 관계로, 영국은 18세기에 강력한 유럽 대륙을 두려워하였으며, 19세기와 20세기에
도 여전히 강력한 유럽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와 같은 일관성은 상당한 국경의 변동이 없는 한
동일한 지리에 의해 발생된다.
1945년 이래 미국의 외교 정책은 자국의 안보가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 대륙) 강국의 부재에 달려 있
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유라시아는 영국에 대한 유럽과 같다. 미국에 도전할 수 있
는 유라시아 국가들 중에는 러시아/소련과 중국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NATO, CENTO(중
앙 조약 기구), MEDO(중동 조약 기구), SEATO(동남아시아 조약 기구)에서부터 한국, 일본, 대만에 이
르기까지 소련과 공산주의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많은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989년 냉전이 끝난 후에도 미국은 NATO를 해체하지 않았고, 일본이나 한국과의 방위 조약을
종료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는 양국의
지리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정치적·전략적으로 중요한 주변 지역을 통제하는 것은 러시아
와 중국에 대해 균형을 맞추는 열쇠이다.
또한 초강대국은 관문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 지점은 무역로가 있는 두 바다를 연결하는 좁은 통로이
다. 이 지역을 독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경쟁자의 목을 겨누게 된다. 미국과 일본의 중국에 대한 경쟁
은 기본적으로 말라카 해협에 대한 통제 경쟁에서 시작되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이
란에 대한 경쟁은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대한 통제 경쟁에 의해 발생되었다. 따라서
민주화와 세계화는 “지리가 운명이다.”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국가들 사이의 대부분의 분쟁
과 경쟁은 수천 년은 아니라 할지라도 수백 년간 지정학의 연장선에 있다.

정체성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정체성’을 인간을 분열시키고 진보를 막는 편견으로 본다. 그들에게… 민
족주의는… 비이성적인 정신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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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그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
세계화 시대는 서로 다른 인간의 정체성을 하나로 녹이는 것처럼 보인다. 작업복의 정의는 셔츠, 넥타
이, 정장 등 모든 국가에서 표준이다. 전 세계에서 동일한 시스템(초등, 중등 및 고등)을 사용하는 학
교에 보내진 어린이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에 취업하는 데 필요한 동일한
사항(수학, 물리학, 생물학 및 회계)을 배운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국민 국가의 개념을 지리 개념 외에 더 이상 관련성이 없다고 본다. 이들
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국민 국가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고 싶어 했는데, 1993년에 출
판된 장 마리게노와 1995년에 출판된 오마에 겐이치의 책들이 바로 그러한 책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국가로 인정되는 국민 국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거의 비슷하다. 설령 국민 국가가 존재
한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현재 유럽의 경우처럼 국민 국가가 합병하여 하나의 유럽 국가를 형성한 경우
처럼, 경제 구역을 기반으로 재편성될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는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 지역으
로 통합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오늘날 우리들이 목격하고 있는 것은 신민족주의 형태
로 민족주의가 귀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리고 그 놀라움은 그들이 인간의 삶에서 정체성의 근본을 간과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밝혀진 바
와 같이 정체성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그것은 결코 음식이나 옷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나
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질문을 통해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이며, 어떤 목적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개인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국가는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묻게 될 것이다. 한 국가의 정체성은 행동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힘을 어디로 확장시킬 것인
가? 어떤 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가? 어떤 원칙을 견지해야 하는가? 그래서 한 국가의 이익을 정
의하는 데 있어서 정체성은 지리만큼이나 중요하다.
정체성은 유연한 어떤 것이어서 새롭게 구축될 수 있고, 파괴될 수 있으며, 또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
다. 때로는 국가가 더 큰 집단과 동일시할 때가 있고, 더 배타적인 정체성을 선택할 때도 있다.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 국가는 지역성, 뿌리 및 문명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위협이 없을 때에는, 더 좁은
민족주의, 인종, 민족, 부족주의 및 영토를 선택할 것이다. 반면에 종교와 같은 정체성의 근원이 하나
의 단결 요소가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열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소련의 위협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유럽 국가들을 유럽 공동체(이후 유럽 연합)를 형성하도록 단결
시켰는데, 그 이전에 서유럽 국가들은 수백 년간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소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
게 되자, 각 국가들은 유럽 연합으로부터 독립을 원할 정도로까지 국민 국가 정신이 되살아났다. 일부
국가들은 정체성 혼돈에 직면하고 있는데 문명의 충돌 이론의 창시자인 새뮤얼 헌팅턴은 이들 국가들
을 ‘분열국’으로 명명하였다. 터키는 분열 국가의 한 예인데, 왜냐하면 유럽 정체성과 무슬림 정체성
사이에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 정체성의 지배는 터키가 유럽을 우러러볼 것이라는 뜻이고, 반
면에 무슬림의 우월적 정체성은 터키가 중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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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정체성은 또한 갈등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특히 한 나라에서 정체성의 충돌이 있을 때 더욱 그러
하다. 이 나라들은 유럽 식민주의 과정에 의해 형성된 나라들이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는 영국에 의
해 북부 나이지리아(무슬림 다수)와 남부 나이지리아(기독교 다수)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1차
세계 대전 이후 수립된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의 경우 수니파, 시아파, 아랍인, 그리고 비아랍인들이
한 지붕 아래 있는 것이다.
강한 정체성이 없다면, 민족 간의 장기간의 갈등은 내전의 불씨가 될 수 있는데, 외세가 전쟁 중인 집단
들 중 한 곳을 지원을 해서 이득을 취할 때 더더욱 그렇다. 이런 현상이 식민주의 이후의 국가들에만 국
한된 것은 아니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중국 등 식민 지배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라들도 카탈루냐,
스코틀랜드, 파다니아, 홍콩 등에서 주변 민족주의가 부상했다. 각각은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사람과 국가는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받기를 원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중화민족의 위대
한 부흥’에서부터 ‘브렉시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가 세계화에 ‘반격’하며 자국의 정체성을 찾는 노
력을 주도하였다. 이것이 프랜시스 후쿠야먀가 인정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한 현상이다. 인정받을 필요
성은 인정 욕구라고 불리는 개인적인 부분에서 나왔다. 정신과 욕망 이외에, 인정 욕구는 플라톤과 같
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확인한 인간의 일부이다. 인정 욕구는 우월 욕망과 대등 욕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우월하다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고, 후자는 동등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민족주의 정책이 국민에게 얼마나 이익을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민족주의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원하는 존엄성의 필요성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가 동등하게 인정되기를 원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우월한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한
만족을 위한 물질적인 대체물은 없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권력, 지리, 정체성의 세 가지 요인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분쟁의 근원을 밝
혀낼 수 있다. 이때 문제를 사례별로 보면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일반화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그것은 자유주의자들과 이상주의자들의 실수이다. 다음 장을 통해 세계에
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 어떻게 권력 경쟁, 지정학적 관심,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정체성 충돌과 관련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자.

미국
2016년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전 뉴욕 상원 의원 및 국무 장관을 역임한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다는 소식에 전 세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직을 가져 본 경험도 없고 논란이 많
은 백만장자인 트럼프가 당선이 된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순전히 운이나 책략을 써서 미국의 대통령
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떤 전략을 사용해서 승리했을까?
미국 대통령은 일반 투표 대신 선거구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50개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는 각각
일정 수의 표를 가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55표, 텍사스는 38표, 뉴욕은 29표 등 모두 총 538표로
구성된다. 누구든 과반수인 270표 이상을 얻게 되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지리적으로 민주당과 공
화당 모두 안전한 예금처로 간주되는 주를 가지고 있다. 텍사스 등 남부 주와 네브래스카, 캔자스 등
중서부 주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공화당에서 투표할 것이고, 뉴욕 등 동부 해안과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에 있는 주들은 민주당의 안전한 예금처이다. 해안 지역의 인구가 상업 지역이라는 특성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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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더 자유롭고, 따라서 민주당에 기울었다. 반면 남부 지방과 중서부는 농업 지역이고 덜 발전된 지역이
다. 그래서 그들은 더 보수적이고, 공화당에 더 기울었다.
각 당의 대표 색깔(공화당은 빨간색, 민주당은 파란색)을 가리켜, 공화당에 투표하는 주를 붉은 주라고
하고, 민주당에 투표하는 주를 푸른 주라고 한다. 빨강과 파랑 주에 대한 각 선거인단 투표의 합계는
거의 같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기려면, 후보들은 울타리 위에 있는 주들(부동층 주들)에 집중해야 한다.
6개의 경합주(아이오와, 위스콘신, 미시간, 인디애나, 오하이오, 펜실베니아)는 오대호 지역에 있다. 예
를 들어, 오하이오주는 킹메이커 주로 여겨진다. 그곳의 승자가 대통령이 되어 왔다. 오하이오주는 클
린턴(1992년과 1996년), 부시(2000년과 2004년), 오바마(2008년과 2012년), 그리고 트럼프(2016년)
에게 투표했다.
오대호 지역은 미국의 산업 지대이다. 미시간, 위스콘신, 인디애나, 오하이오 그리고 펜실베니아는 소
위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지대를 형성했다. 이 주들은 한때 철강과 자동차 제조의 산업 중심지였기
때문에 ‘철강 벨트’라고 불렸다. 자동차 제조업체인 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는 모두 미시간에
본사를 설립했다. 미국 철강, 철강 다이내믹스 등 주요 철강 회사들도 입주해 있다. 그러나 일본, 한국,
중국의 경쟁 때문에 이 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이 공장에서 몇 세대 동안 일
하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수입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철강 벨트는 ‘러스트 벨트
(rust belt)’라고 불렸다.
트럼프는 포퓰리스트(인기 영합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포퓰리스트는 엘리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
는 자신을 국민의 챔피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특히 중국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기업을 다시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미국 국민들
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미국 산업을 재가동하겠다는 선언에 빨려 들어갔다. 보다 엘리트주의적이
고 글로벌한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미국 우선’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외친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선거 운동이 오대호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였다. 오대호 6개 주 모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돌아섰다.
2015~2016년 세계 상품 대란과 IS의 위협으로 경기 침체가 발생하자 트럼프는 자유 무역 제한을 추
진하고 국가 발전과 이민자 감축에 주력했다. ‘어떤 반칙도 주저하지 않는’ 트럼프의 조치는 그의 보수
기반을 강화시켰는데, 여기에는 백인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극보수주의 단체도 포함된다. 이 단체는 미
국인들이 그들의 백인 및 기독교적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는 걸 지지하지 않는 정치적 태도에 반대한
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인종 차별주의로 분류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선서를 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국을 환태평양 경제 동반
자 협정(TPP)에서 탈퇴시키고,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을 재협상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자유 무
역 협정은 미국 시장에서 값싼 상품과 이주민의 홍수를 초래하여 미국에 손실을 입히는 것으로 간주되
었다.
다음으로 더욱 논란이 되는 트럼프의 조치는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 특히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를 인상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캐나다를 제치고 2009년 이후 최대 대미 수출국이다. 2017년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적자는 3,760억 달러로, 전체 미국 무역 적자(7,960억 달러)의 47%에 달하였다.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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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럼프는 이 모든 것은 중국이 중국산 제품을 더 싸게 만들기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등 불공정 무역관행
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트럼프는 이런 주장을 근거로, 2018년 7월부터 총 3,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상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역시 동일한 금액 상당의 미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는 등 맞대응하면서 미중 간 무역 전
쟁을 유발하였다. 경제 전문가들은 대공황이 되풀이될 것을 우려하며 트럼프를 경멸했지만, 트럼프는
“무역 전쟁은 승리하기 쉽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 경제는 2018년 국내 총생산(GDP)이 1990년 이
후 가장 낮은 6.6% 성장에 그쳐 트럼프의 관세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 이는 집권 정당화를 위해 경제
적 성과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게는 나쁜 소식이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필수 기술 부품 제조국이 되기 위해 2015년 도입한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저지하고자 화웨이 같은 중국 기술 공급 업체에 제재를 가했다. 트럼프는 경제적 압박 외에,
북한과 이란 등 중국 동맹국에게도 압박을 가했고, 대만과 홍콩, 신장 분리주의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정신적인 지지를 보냈다. 트럼프는 최대한의 압박 전술을 썼고 중국은 트럼프의 압박으로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다.
트럼프는 중국 외에 유럽 연합 등 무역 상대국에 대해서도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
토 회원국에 대해서도 분담금을 증액하라고 위협하였는데, 트럼프는 미국이 나토 비용을 가장 많이 부
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행보는 미국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그동안 다
른 나라들을 자발적으로 조약에 가입하도록 초대해 왔던 점에 비추어, 이제 와서 돈 문제로 투덜거리
는 것은 통상적인 일은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행정부 경험이 없는 사업가로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
고 있지 않다. 트럼프는 손익을 우선시하며, 그의 많은 행동은 단기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는 국무부의 전문 관료부터 민주당 내 진보적 국제주의자로 구성된 조직, 공화당 내 신보수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들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유주의의 책임을 안으며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진보적 국제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는, 트럼프가 유엔이나 세계 무역 기구 등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핵심 기관에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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