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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고] 법학통론 (1)

Casey,Riley 2022. 11. 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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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학통론

최종고

    목차
      제1장: 학문으로서의 법학
    1.키르히만의 고발
    2.법학도의 유형
    3.법학의 학문성
    4.법학과 법률가
    5.법학공부의 방법

      제2장: 법의 개념
    1.서론
    2.법은 하나의 사회규범이다
    3.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강제성을 띤 규범이다
    4.법은 정의라는 법이념을 향한 문화규범이다
    5법은 존재와 당위 사이의 '사물의 본성'으로서의 규범이다
    6.법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규범이다
    7.결론

      제3장: 법과 사회규범
    1.서론
    2.법과 관습
    3.법과 종교
    4.법과 도덕
    5.법과 예
    6.결론

      제4장: 법의 이념
    1.서론
    2.정의
    3.합목적성
    4.법적 안정성
    5.법이념의 내적통일
    (보론)현대법철학에서의 정의론

      제5장: 법의 존재형태(법원)
    1.서론
    2.성문법
    3.관습법
    4.판례법
    5.조리

      제6장: 실정법과 자연법
    1.서론
    2.실정법
    3.자연법
    4.악법의 문제
    5.저항권의 문제
    6.양심의 문제

       7장: 법의 체계
    1.서론
    2.국내법과 국제법
    3.공법과 사법
    4.공,사법과 법발전
    5.제3의 영역
    6.법학의 체계

      제8장: 법의 효력
    1.서론
    2.법의 실질적 효력
    3.법의 형식적 효력

      제9장: 법의 적용과 해석
    1.법의 적용
    2.법의 해석
    3.해석과 해석자

      제10장: 법계와 법문화
    1.서론
    2.로마 게르만법계(대륙법계)
    3.코몬 로법계(영미법계)
    4.사회주의법계
    5.법계간의 교섭
    6.현대세계의 법문화
    7.결론

      제11장: 권리, 의무와 법률관계
    1.서론
    2.권리의 학설
    3.권리와 구별되는 개념들
    4.권리의 종류
    5.의무의 개념
    6.권리의무의 주체,객체
    7.법률관계

      제12장: 법의 변동
    1.서론
    2.법과 사회력
    3.법과 정치
    4.법과 경제
    5.법과 혁명
    6.법의 발전

      제13장: 국가와 법치주의
    1.서론
    2.국가의 개념
    3.국가의 형태
    4.국가의 구성
    5.법치주의
    6.법치국가의 철학

      제14장: 기초법학
    1.기초법학이란 무엇인가
    2.법철학
    3.법사학
    4.법사회학

      제15장: 헌법학
    1.헌법의 개념과 분류
    2.헌법의 제정과 개정
    3.대한민국 헌법
    4.국민의 기본권과 의무
    5.통치구조

      제16장: 행정법학
    1.행정법의 의의
    2.행정조직
    3.행정작용
    4.행정주체
    5.개별행정

      제17장: 민법학
    1.민법의 의의
    2.민법전의 체제
    3.민법의 기본원리
    4.권리행사의 한계
    5.민법총칙
    6.재산권
    7.가족법

      제18장: 상법학
    1.상법의 의의
    2.기업의 주체
    3.기업의 물적 조직과 그 공시
    4.기업의 양도
    5.상행위
    6.회사
    7.보험
    8.해상
    9.어음,수표법

      제19장: 형법학
    1.형법이란 무엇인가?
    2.형법의 기능
    3.한국형법의 성립
    4.형법이론의 발전
    5.죄형법정주의
    6.범죄론
    7.형법각칙의 구성
    8.형벌론

      제20장: 소송법학
    1.사법
    2.민사소송법학
    3.형사소송법학

      제21장: 사회법학
    1.사회법의 개념
    2.노동법
    3.사회보장법
    4.경제 법

      제22장: 국제법학
    1.서론
    2.국제법의 주체
    3.국가 이외의 국제법의 주체
    4.국제연합
    5.외교사절과 영사
    6.분쟁의 평화적 해결
    7.분쟁의 실력적 해결
    8.안전보장과 전쟁

      제23장: 국제사법학
    1.서론
    2.국제사법의 기본문제
    3.준거법

      제24장: 지적소유권법학
    1.지적소유권법의 의의
    2.통상문제로서의 지적소유권
    3.특허권
    4.영업비밀
    5.상표권
    6.저작권
    7.국제기술제휴
    8.지적소유권법의 집행

      제24장: 한국법학의 과제
    1.서론
    2.한국의 전통적 법학
    3.서양법학의 수용
    4.한국법학 45년
    5.법언어의 문제
    6.한국법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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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학자 사진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에릭 볼프
  한스 켈젠
  제레미 벤담
  올리버 호움즈
  로스코 파운드
  루돌프 폰 예링
  프리드리히 포 사비니
  오토 폰 기르케
  요세프 코올러
  법학협회
  김병로
  유진오
  김중한


      제1장: 학문으로서의 법학


  법학은 맥주와 같다. 처음에는 치를 떨지만 마실수록 뗄 수 없는 것이다.
- 괴테(J.Goethe)
  법학은 여성과 같다. 멀리하면 달려오고 가까이 하면 달아난다.
- 라반트(P.Laband)
  법학은 이해적, 개별학적 및 가치관계적 학문(verstehende,
individualisierende und wertbeziehende Wissenschaft)이다.-
- 라드브루흐(G.Radbruch)


    1.키르히만의 고발
  독일의 검사 출신으로 유명한 문필가가 되었던 키르히만(J.H.von Kirchmann,
1802-1884)은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무가치성'(Uber doe Wertlosigkeit der
Jurisprudenz als Wissenschaft, 1847)이라는 강연을 책으로 발간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입법자가 세 마디만 수정하면 실정법이 매우
가변적이며, 그 가변적 법질서 위에 세워진 법학이 과연 학문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적나라한 고발이라 하겠다.
  법학을 선택하려는 사람이나 이미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도 때때로
키르히만의 이 말을 생각하면서 법학이 학문이 될 수 있을까 회의하는 때가
있다. 물론 이점을 깊이 논하려면 학문이 무엇인가부터 따져야 할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학문성이 의심스럽지 않은 분야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데까지
논의가 미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독 법학에 대하여 학문성 자체를 되묻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에 의문의 심각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2.법학도의 유형
  독일의 형법학자요, 법철학자였던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1878-1949)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에 오는 젊은이들을 관찰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주1)
  첫번째 부류는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남들이 법을 공부하면 결코 손해는
안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지망해온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로마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법격언 "유스티니아누스가 명예를 준다"(Dat Justinianus Honores!)는
유혹에 끌려 '빵을 위한 학문'(Brotwissenschaft)으로 법학을 선택한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별로 기대할 바가 못되며, 이들이 설령 법률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생활에 손해를 주면 주었지 이익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는 더 이상 이러한 자들을 법률가로 받아들이기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두번째 부류는 지식만 발달하고 인격성이 부족한 젊은이다. 이들은 대개
중,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다. 이들은 법학자가 되든 법률실무자가
되든 대체로 유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법률가의 과제가 매우 형식적이고 별다른
창조성을 요구하지 않는 한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전형적인 법률가'라고 해도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라드브루흐에 따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번째 부류가 있다. 그들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철학, 예술 혹은 사회와
인도주의(Humanismus)에 기울어지면서도 외부사정 때문에 부득이 법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다. 예를 들면 가난하여 저술가나 학자와 같은
불안정한 생로를 선택할 수 없었거나 혹은 예술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창작활동에 뛰어들 수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당분간 법학을 선택하면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시간과 정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자기 본래의 취미방면에 정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법학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도중에 포기하고마는 수도 잇다. 그러나
이들이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고 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학자와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독일에서만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대체로 경험상 들어맞는
사실이라고 생각되며, 자신의 법학에 대한 기대와 결부시켜 자문해 봄직한 문제
설정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어떠한 부류에 속하는 법학도이며 장차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각자는 마음 속에 자기가 되고 싶은 인간상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3.법학의 학문성
  그러면 다시 법학은 학문인가? 법학의 학문성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가치 혹은 비가치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태도는 다음 네 가지 양태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주2)
  우선 우리는 가치 혹은 비가치에 대하여 완전히 등한시하는 태도를 취할
경우가 있다. 이것을 가치맹목적 태도(wertblindes Verhalten)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태도는 혼돈된 주어진 소여 가운데서 자연의 왕국(Reiche der
Natur)을 이룬다.
  반대로 가치 혹은 비가치 자체에 주의를 돌리는 경우가 잇다. 이것을 평가적
태도(bewertendes Verhalten)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태도는 자연에서 독립된
가치의 왕국(Reiche der Werte)을 이룬다. 가치맹목적 태도가 자연과학적 사유의
본질을 이룬다고 한다면, 평가적 태도는 가치철학(논리학, 윤리학, 미학)의
특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제3의 태도는 이상 두 태도와의 관계에서 설명되는 성질의 것이다.
학문(Wissenschaft)이라고 하는 개념은 반드시 진리(Wahrheit)라고 하는 가치와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시대의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오류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학문이라고 할 때에는 그들 모두가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학문은 그것이 실제 진리에 도달했건 못했건 간에
적어도 진리에 봉사한다고 하는 '의미(Sinn)를 가진 실재'이다. 마찬가지로
예술(Kunst)도 미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이 예술사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미에의
노력에 의해 하나의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다. 윤리(Ethik)도 실상은 많은 양심의
미혹을 포함하지만 선에의 노력이라는 의미에서 윤리 혹은 도덕이라는 개념을
구성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문화(Kultur)라고 하는 개념은 결코 순수한
가치만이 아니라 인간애와 잔인, 취미와 무취미, 진리와 오류의 혼합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미를 가진 소여'로서, 법철학자
슈탐러(R.Stammler, 1856-1938)의 말을 빌리면 '바른 것에의 노력'(Streben
nach dem Richtigen)을 말한다. 라드브루흐는 이와 같은 태도를 가치관계적
태도(wertbezichendes Verhalten)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소여를 문화의
왕국(Reiche der Kultur)에 포괄하여 문화과학의 방법론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치초월적 태도(wertuberwindendes Verhalten)라고 부르는 종교의
세계가 잇다. 종교는 모든 존재의 궁극적 긍정이요, 모든 사물에 대하여
'예'(Ja)와 '아멘'(Amen)을 선언하는 미소짓는 실증주의(lachelnder
Positivismus)요, 사랑하는 것의 가치 혹은 비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행,불행의 피안에 존재하는 법열(Seligkeit)이요, 유죄,무죄를 넘어선
은총(Gnade)이요, 모든 것이 보기 좋았으며, 시련받은 욥(Job)에게는 궁극적으로
그 대립으로서만 생각할 수 있는 가치의 초월을 의미한다. 즉 가치와 비가치는
마찬가지로 타당한(gleich gultig)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무관심한
(gleichg ultig) 것이다. 가치와 비가치의 대립과 함께 가치와 실재와의 대립도
지양된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비가치적인 것(das Wertwidrige)도 궁극적
의미에서 가치적(werthaft)이든가 비본질적(wesenlos)인 것이다. 가치가 사물의
존재근거(Seinsgrund)로 파악될 때 그것을 사물의 본질 (Wesen)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종교의 세계는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절대의 왕국(Reich der
Absoluten)이다. 그러나 가치와 비가치의 대립을 초월하기 위하여는 항상 그
대립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종교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trotz alledem)의 성격을 지닌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운
관대함'은 가치맹목적 태도의 '어리석은 무관심'과 다를 바가 없다. 종교적
긍정의 대상은 일단 가치의 왕국을 통과한 것이다. 즉 종교는 가치의 왕국의
피안에, 자연은 차안에 존대한다. 진정한 종교는 과학과 모순하는 것이 아니며
진실한 신앙은 결코 현실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을 극복하고 이성을
초월하는데서 비로소 참된 종교가 성립한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의 경지는 과학,
도덕, 예술의 극치이며, 진, 선, 미의 최고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절대적 입장에서 가치세계의 상대성을 지양하는 곳에 종교의 진수가
구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태도를 다시 살펴보면, 자연의 왕국은 존재를 그 대상으로
하고, 가치의 왕국은 당위(Sollen)를, 문화의 왕국은 의미(Sinn)를, 그리고
종교는 본질(Wesen)을 각각 그 대상으로 한다고 하겠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자연(Natur)과 이상(Ideal), 이 양자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뛰어넘어
연결하는 두 개의 것, 즉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문화의 다리(교)와 매순간 그
목표에 도달하는 종교의 날개, 곧 작품(Werk)과 신앙(Glaube)이 그것이다.
라드브루흐는 가치맹목적, 자연과학적 태도와 평가적, 가치철학적 태도 사이에
'다리'로서의 가치관계적, 문화과학적 태도의 독자성을 인정함으로써 높은
이상을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낮은 현실을 고려하여 이상과 현실과의 교차
가운데서 인생의 진실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상 세 가지 태도를 법에
적용시키면, 가치맹목적 태도는 법과 무관계하다. 가치평가적 태도는 법의
가치이념을 평가하여 법철학(Rechtsphilosophie)의 영역을 이룬다. 가치관계적
태도는 법과 관련하여 법(과)학(Rechtswissenschaft),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법해석학(Rechtsdogmatik)이라고 부르는 분야를 이룬다. 가치초월적 태도는 법의
종교철학(Religionsphilosophie des Rechts)을 형성하여, 법의
무본질성(Wesenlosigkeit des Rechts)의 문제를 논할 수 있다.(주3)
  법학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마찰과 충돌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마련한
법이라는 장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학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천성적으로 이론을 캐기 좋아하는 사람은 법학이
너무 필연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또 활동적인 사람은 법학이 너무나 많은
구속성을 갖는 학문처럼 느낀다. 이 두 성격의 인간에게는 법학으로는 항상
인간이 정한 규칙 때문에 어떤 절대적이고도 무한한 것에 접촉할 수 없다는
번민이 따르게 된다. 또 철학이나 종교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법은
가변적이어서 영원한 것, 초월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같이 느끼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생각과 느낌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감상일 뿐이고 법학의
본질은 오히려 그와 정반대이다.
  법학은 법이라는 인간제도적 장치를 연구, 분석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가치와
정의, 그리고 절대적이고도 신성한 것을 다루고 성찰해야 하는 학문이다. 사회가
제멋대로(?) 흘러갈 때 법률가는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며, 정치가가 "어서 가자"고 하면 법률가는 "실수 없이 가자"고 한다. 이런
면에서 라드브루흐는 "법학도의 고민은 젊은 신학도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민이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법학을 신학, 의학과 함께 가장 일찍부터 학문으로
정비하여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까지 목사(혹은 신부), 법률가, 의사
이 세 '가운을 입는' 직업을 일종의 성직으로 부르고 있고, 서양에서 아직도
목사의 성복과 판사의  법복이 매우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법률
가를
'세속적 성직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법률가는 모름지기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홈즈(O.W.Holmes)는 "법은 시인이나 예술가가 있을 곳은
아니다. 법이란 사색가의 직업이다"라고 하였다. 

  [법학과 법률학]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법학이란 명칭과 법률학이란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동양인의 전통적 법에 대한 명칭은 율이었고, 삼국, 고려, 조선시대의 법학을
율학이라 하였다. 그래서 나이든 세대에서는 법률학이란 명칭이 입에 익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에서는 대개 법학이란 말이 쓰이고 이것이 바르다고
생각된다.
  법학은 영어로는 legal science라 하고, 가끔 jurisprudence라는 고전적
표현도 사용하나 이것은 법리학 혹은 법철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독일어로는 Rechtswissenschaft 혹은 Jura라고 말한다. 로마시대에 처음
학문화되어서 유럽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서양법학이 수용되었는데, 그것을
우리의 상황과 토대 위에서 발전시킬 때 '한국법학'이 되는 것이다.


    4.법학과 법률가
  법학은 사회과학 중에서도 연구영역이 넓고 연구방법이 독특하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사회과학대학에 속하기 보다는 법과대학으로 독립하여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법학의 내용은 학문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과목과
체계로 학생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이 내용과 체계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거니와, 어쨌든 법학은
오늘날 흔들림없는 확고한 학문으로서의 위치와 진용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응당 법에
호소해야 하고, 법적 해결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법학의 원리와 적용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법학을 배운다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바르게 사는
원리와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법학을 가리켜서 '정의의
학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인으로서 바르게 살뿐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만일 법률가가 된다면,
이제는 자기의 바른 삶만이 아니라 남에게 바른 삶의 원리를 가르쳐 줄 주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때문에 법률가의 사명과 책임은 막중하며, 이를 위하여
심오한 법학지식과 그것을 기초하는 학문적, 사상적 교양이 필요한 것이다.
법률가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법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감정의 안경을
코에 걸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라드브루흐가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이상적인
법률가상을 보면서 법학의 학문으로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의식해 보기로
하자.

  이해와 자신에 충만하여 모든 인간적인 것을 통찰하는 눈을 가지고,원칙에
엄격하면서도 말없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당사자의 다투는 심정을 초월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독자성을 추구해나가는 노판사를 우리는 어쩌면 한 번쯤 접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인물, 즉 어그러진 자아의식을 가진
가련한 자조가라든가 자기의 직업을 지탱할만큼 직업적 희열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온 사람들도 있다 세상의 직업 가운데는 항상 성공하지 못하는 직업도 있다.
법학은 그런 직업에는 분명히 속하지 않는다. 법학은 종종 실패하기 쉬운 직업일
뿐이다. 그러나 직업에 실패한다는 것은 커다란 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정신을 위축시키고 불구화하며 파괴시키기 때문이다.(주4)

  우리는 법학에 대하여 너무 거창한 이상론적 기대를 걸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법학은 단순히 기술적인 저속한 학문이라고 환멸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차안적
생을 영위하는 동안에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보다도 오히려 상대적인 것,
무상한 것에 강하게 지배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속에서나마 바른 것, 정의로운
것, 가치있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법을 향한 노력이고, 그것을 학문화한 것이
곧 법학이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 없을 것이다.
  라드브루흐는 "직업생활이 어떠한 순간에도 자기의 직업이 필연적으로 깊은
문제라는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는 법률가는 훌륭한 법률가가 못된다"고
하였고, 예일대학 로델(Fred Rodell, 1907-1980) 교수는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Woe Unto you, Lawyers!, 1957) 라는 책에서 고대의 마술사, 중세의
성직자, 현대의 법률가를 대중을 착취하는 계급으로 비판하였다. 그러나 법학자
에릭 볼프(Erik Wolf)의 표현처럼, 법률가는 "사랑스럽지는 않으나 없을 수는
없는 존재"인 것이다.(주5)

  [법률가, 법조인, 법학자]
  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내지 계층을 법률가 혹은 법조인이라 부르는데,
엄밀하게 보면 각각 다른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는 법률가, 즉 lawyer나 jurist라 하면 법을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사람이나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쩐지 법률가라 하면 법실무가, 즉 판사, 검사, 변호사를
뜻하고, 연구자는 법학자란 말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특히
법조인이라 하면 더욱 실무중심의 뉘앙스를 풍긴다. 또 한자말로 판사, 검사에는
일 사자를 쓰고, 변호사 혹은 율사(이 말은 시대착오적 말인데도 가끔
사용된다.)라 할 때는 선비사자를 쓰고 있다. 어쨌든 이런 법실무가와 법학자를
포괄하는 뜻으로 법률가라는 말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문제되고 있는 법실무가와 법학자의
법조이원화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5.법학공부의 방법
  젊은 법학도로 하여금 마음껏 법학과 친근하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위대한 법률가의 전기를 읽게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직업윤리에 알맞는 인격을
형성하는 데 유효한 방법임에도 오늘날의 대학교육에서는 충분히 이용되고 있지
않다. 라드브루흐는 그의 '법학입문'(Einfuhrung in die
Rechtswissenschaft)에서 안젤름 폰 포이어바흐(Anselm von Feuerbach,
1775-1833)가 직업상의 번민에 빠진 자기 아들 루드비히(1804-1872)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본의와 어긋나는데도 법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광명을 주는 교언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법학은 나의 소년시절부터 마음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나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역사와 철학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대학생활의 제1기는 주로 이 두 학과에만 소비되었고 이 밖의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아니했으며, 이것 없이는 살 수도 없다고 믿었다. 나는 당시
장차 철학교수가 되려고 이미 철학박사 학위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보아라!
거기서 너의 엄마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철학보다 빨리  지위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을 잡을 필요가 있게 되었다. 나는 재빨리 단호한 결심을 하여 나의
사랑하는 철학을 버리고 염증나는 법학으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차차로 그것이 싫어지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끈기와 의무감에서 나오는
용기만 가지고 - 별로 재주도 없으면서 - 나는 점점 성공을 거두어 2년
후에는 교단에 서게 되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빵을 위하여 선택한 법학에
저술로서 기여하고 드디어 독자적인 입장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입장에서 나는 급속한 명성과 외적인 행복을 차지하고 자신의 생애가 인류를
위하여 유용하였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소리 높이 증명 받을 수
있었다.(주6)

  이것으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어느 직업에 대한 흥미도 적성도 없는
사람이 그 직업에 들어가면 차차로 필요한 흥미와 적성이 생기는 법이며,
'직무는 이해력을 가져온다'는 말은 해묵은 진리이다. 일단 법학을 선택한
사람에게 직업의 실패는 없어야 할 것이다.
  법학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법학의 효과적인 학습방법 내지
공부비결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알맞는 묘안은 없고, 학문에
왕도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학의 학습방법은 하나의 타산지석으로서 학생
각자가 자기에게 적합한 학습방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독일 괴팅겐대학 민법교수 디이데릭센(Uwe Diederichsen,
1933-)이 권장하는 법학공부 수칙을 소개하기로 한다. 그는 '민법총칙
입문'(Allgemeiner Teil des Burgerlichen Rechts fur die Anfanger)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12개의 수칙을 제시하고 있다. 

  제1칙: 지금부터 공부를 시작하라!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아니하고 휴가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라. 그러면 법학공부는 날이 갈수록 우리에게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제2칙: 한꺼번에 너무 많이 공부하려고 하지 말라!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
규칙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여야 하며 휴식도 취해야 한다. 규칙적인
학습태도를 길러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급해서는 안 되며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법률가에게 특히 중요한 이해력, 기억력, 그리고 논리적,
체계적 정리능력을 훈련을 통하여 길러야 한다.
  제3칙: 학습계획(Arbeitsprogramm)을 세워서 이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습자료(즉 교과서나 법전)를 중요도에 따라 쪼개어 우선 중요한
것부터 공부하고 중요도가 낮은 것은 나중에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모든
것을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산더미같은 학습자료에 절망을
느끼게 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제4칙: 법은 가치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법규의 의미(즉 법규의 목적)를
탐구하여야 한다. 조문을 읽을 때마다 법률이 이 조문(규정)을 통하여 어떠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느냐(즉 법률의 목적), 어떤 가치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느냐를 탐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법적 논의를 할 때에는, 법률이 보호하려는
이익이 무엇이냐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법규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제5칙: 읽기와 듣기(강의 수강)만으로 공부가 끝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부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성과를 점검해 보는 일이다. 자기가
교과서에서 읽은 것이나 강의에서 들은 것을 진실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항상 검증해 보아야 한다. 읽은 것과 들은 것을 머리 속에서 또는
말(문자 또는 구두)로 되새겨 보고 자기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잇느냐를
되씹어 보아야 한다.
  제6칙: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이해하려고 힘써야
한다. 교수, 조교, 선배 또는 저자에게 질문하여 의문을 풀어야 한다. 질문하기
싫어하는 버릇은 하루 속히 버리는 것이 좋다.
  제7칙: 판례를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판례를 읽을 때, 우리는 법원은 왜
그렇게 판결하였으며, 달리 판결하지는 아니하였는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어떠한 이익의 충돌이 존재하는가? 등등의 문제, 즉 판결의 근거 내지는 이유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
  제8칙: 여러 개의 교과서들 가운데서 최량의 것으로 생각되는 것 하나를
선택하여 이것을 거듭 반복하여 읽을 것! 어려운 부분은 녹음테이프에 녹음하여
반복해 듣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하면 이 부분이 기억
속에 박히게 되고 또한 대부분의 경우 이해도 될 것이다.
  제9칙: 기본서 이외의 저서들에서 읽은 것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기본서의 해당부분의 페이지의 여백에 써넣거나, 또는 다른 종이에 베껴서
기본서의 해당부분에 붙여 놓는다. 이 경우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록하는 것보다
복사기를 이용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제10칙: 개념규정, 정의를 낱말 하나까지 정확하게 암기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Defintion)를 다시 여러 개의 구성요소들, 즉 개념요소들로
쪼개서 그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암기하여야 한다.
  제11칙:  많은 학생들이 그들의 기억력 내지 암기력이 좋지 않다고 호소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기억능력(암기능력)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그들의 기억능력을 효과적 방법에 따라 사용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기억력이 나쁘다고 탓한다. 우리는
기억능력을 끊임없이 사용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그러면 기억력이 향상될
것이다. 쓰지 않으면 쇠처럼 녹슬게 마련이다. 우리가 배우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암기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부분은 계속 반복하여 공부해야 한다.
급하게 새것을 자꾸 배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즉 읽은 부분이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아니하였는데도 자꾸 교과서를 앞으로 앞으로 읽어 나가려 해서는
안된다. 오늘 배운 것은 며칠 후 다시 반복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부는 모래성 쌓기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확고한 기본실력을 얻게 될 것이다.
  제12칙: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동료 및 선배들과 공부그룹(Arbeitsgruppe)을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공동으로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법적 논의의
방법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초기부터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룹공부는 처음에는 학습에 별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꾸준히 계속하면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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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주1: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학의 정신'(종로서적, 1983), 139면 이하.
  주2: G Radbruch, Rechtsphilosophie, 1932, S. 93;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중판(삼영사, 1989), 33면
  주3: 자세히는 최종고, '법과 종교와 인간'(삼영사, 1982), 103-123면.
  주4: 라드브루흐, '법학의 정신', 1983, 149면
  주5: Erik Wolf, Der unbeliebte, aber unentwehrliche Jurist(Freiburg,
1977): 에릭 볼프에 관하여는 최종고, "에릭 볼프",'위대한사상가들3'
(학연사, 1985), 20-64면.
  주6: 라드브루흐/정희철 역, '법학원론'(양영각, 1982), 315면

  [연습문제]
  1.법학은 어째서 학문인가?
  2.키르히만(Kirchmann)의 법학부정론을 비판하라.
  3.나는 왜 법학을 배우는가?
  4.바람직한 법률가상을 논하라.
  5.법학에서의 논리와 감정을 논하라.
  6.법학과 인접학문의 관계를 논하라.
  7.바람직한 법학공부의 방법을 설명해 보라.


      제2장: 법의 개념


  하나의 정의에로 이르는 것은 아름다우나 때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법률가는 그들의 법의 개념에 관한 하나의 정의를 찾고 있다. - 칸트(I.Kant)
  이념을 회피하는 자는 결국 개념도 파악할 수 없다. - 괴테(J.Goethe)


    1.서론
  법의 개념이란 법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얼핏 생각하면 법이란 법전에
실려있는 법규 그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법전에 쓰여 있지 않으면 법이 아닌가
하는 물음도 제기된다. 따라서 법의 개념 내지 본질에 관한 물음에 대답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으며 어쩌면 법학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학문에서 그것이 출발점으로 삼는 문제가 가장 궁극적인 문제요, 마지막 물음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이 이야기하려면 법철학의
심오한 이론을 벌어 논의해야겠지만, 법학통론에서는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고 대체로 법이라는 것이 어떠한 규범인가를 이해하면 충분하다.


    2.법은 하나의 사회규범이다
  일찍이 법격언(Rechtssprichwort, legalmaxim)에 "사회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가 있으면 법이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도 되고, 법은 사회에만 있다는 의미도 된다. 법이란 자연의
필연의 법칙(Gesetz)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회생활에 관한
규범(Norm)이다. 그렇게 때문에 법학에서 말하는 법은 처음부터 '해는 동에서 떠
서로 진다'거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등의 존재(Sein)나
필연 (Mussen)의 법칙과는 다른 당위로서의 규범(Sollensnorm)을 의미한다.
기르케(Otto von Gierke, 1841-1921)는 인간의 인간됨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데에 있다고 하였고, 여류문학가 마리 폰 에브너, 에쉔바흐(Marie von
Ebner-Eschenbach)는 "아무도 타인에 대하여 공정할 수 있을만큼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인간사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이라는 사회규범이
필요한 것이다.


    3.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강제성을 띤 규범이다
  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 즉 국가 속에서 스스로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강제(Zwang)라는 수단을 뒷받침으로 갖고 있는 규범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법학자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92)은 "강제가 없는 법은  타지않는 불꽃

같다"고 표현하였고, 현대의 법학자 켈젠(Hans Kelsen, 1881-1973) 역시 법에서
강제는 본질적 속성이라고 보았다.
  법은 자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제재(Sanktion)를 가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적 규범들, 예컨대 도덕이나 종교 또는 관습과 성격을 달리한다(이에
대해 뒤에 상론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커피숍에 앉아 나는 하이데거
철학이 좋다, 나는 야스퍼스가 마음에 든다고 한담할 수는 있지만 법이라 한번
제정되면 좋으나 싫으나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규범의
강력함과 권위, 따라서 그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생기게 된다.


    4.법은 정의라는 법이념을 향한 문화규범이다
  우선 법은 하나의 문화개념(Kulturbegriff)이라는 사실부터 설명하겠다. 이
세상은 현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인간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항상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현실, 즉 가치를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끊어진다면 인간 존재의 인간됨은
그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인간이 현실에서 가치를 향하여 노력하는 가운데서
생성되는 업적 내지 산물을 우리는 문화 혹은 작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인간이 미라는 가치를 향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이룬 작품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예술은 미 자체는 아닌 것으로 그 속에는 마만이
아니라 불미 내지 추악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미를 향하여
노력한다는 의미(Sinn)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술로서 평가되고
정당화된다. 학문도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하야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데에서 학문성을 갖는다.
  우리가 문화의 의미를 잃게 이해한다면, 법은 정의 자체는 아니지만 정의라는
가치(법이념)를 향하여 노력하고 있는 하나의 문화개념이라는 점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법은 정의를 지향하지만 정의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세상의
법에는 정의의 법만이 아니라 부정의로운 법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부르기 쉽게 악법 혹은 불법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법이 법인 것은 그것이
정의 그 자체는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정의를 향하여 강하게 노력하고 있는
규범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드브루흐는 법을 다음과 같이
적절히 정의하였다. "법은 법이념에 봉사하는 의미 있는 현실(die Wirklichkeit,
die den Sinn hat, der Rechtsidee zu dienen)이다" 라고 했다.(주1)


    5.법은 존재와 당위 사이의 '사물의 본성'으로서의 규범이다
  법이 하나의 문화개념이라는 사실은 법이 현실과 가치의 어느 한쪽에만 속하는
것이 아닌 존재와 당위의 연결에서 나오는 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철학적으로 존재와 당위의 상관문제는 매우 어려운 테마이지만 법은 단순히
당위적 규범에만 속할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켈젠은 이른바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 pure theory of law)을
주창하여 법을 오로지 당위의 순수한 규범으로만 파악하고 일체의 존재 사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당위는 당위에서만 도출될 수 있다고
하여 존재와 당위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방법이원주의(Methodendualismus)를
수립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법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 것은 더 상위의
법으로부터의 당위적 효력을 위임받기 때문이라는 법단계설(Stufentheorie)을
전개하였다. 즉 다음과 간이 법은 위계질서의 피라미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근본규범 - 헌법 - 법률 - 명령 - 규칙
  다시 말하면 명령, 규칙이라는 최하위 법규범은 더 상위의 법률에서 효력을
부여받고, 법률은 다시 최상위의 헌법에서 효력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상위의 헌법을 법으로서 효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켈젠은
실정법(positive law, positives Recht)으로서 헌법 위에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헌법에 효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근본규범(Grundnorm, basic
norm)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근본규범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무엇에서부터도 연역되지 않는,
스스로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갖고 있는 무엇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켈젠이 그렇게 강조하는 당위로서의 규범이 아니라 이미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켈젠의 법단계설은 근본규범이라는 가설 때문에 자기모순에 따지고 만다.
이러한 자기모순은 처음부터 법을 존재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당위의
규범체계로만 이해하려고 출발했던 데에서 비롯된다. 그보다도 오히려 법을
존재와 당위 사이에 있는 사물의 본선(Natur der Sache, nature of things) 내지
질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모든 당위적 규범은 그것이 마땅히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즉 존재적으로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당위적으로 그렇게 해주기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법의 이해에서 엄격한 방법이원주의를
취하기 보다는 사물의 본성을 통하여 방법일원주의(Methodenmonismus), 즉
존재와 당위를 연결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뒷날 '법철학' 과목을 배우면 더 깊이 이해될 것이다.(주2)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법'이란 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이 글자는 물과
해태치가 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중국의 묘족이 신의재판을 할 때 해태를
재판석 앞에 내세우면 해태는 반드시 죄지은 자에게로 가서 뿔로 떠받는다는
고사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도 중국의 법복에는 해태의 석상을 즐겨 해
세웠다. 즉 해태는 동양적 정의의 상징이다.(주3) 따라서 법이란 말은 물과 같이
공평하게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뜻하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법은 한자어인데, 순수하게 우리 한글로 법에 해당하는 말이 있을까? 그것은
아마 '본'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김현배님이 어법, 산법을 말본,
셈본이라 했듯이, '본보기', '본때가 있다 없다' 할 때의 그 '본'이다. 즉 본은
지상에 있으되 꼭 있어야 할 모습대로 있는 상태, 그래서 남의 모범이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존재이되 당위적으로 있는
상태, 즉 당위적 존재(Sollendes Sein)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좋은 말의 뜻을 갈고 닦아 학문화시켜야 할 것이다.(주4)


    6.법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규범이다.
  이 명제는 다소 문학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상대적이니 절대적이니
하는 말 자체가 매우 유동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상대주의자라고
강력히 주장하면 은연 중 절대적으로 되기 마련이고, 진정으로 상대적이 되려면
 자기의 주장 자체를 상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
는 뜻은 법이라는  규범은 존재만도 아니며 당위만도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존재
로서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상대적  규범이면서, 그러면서도 거기에만 집
착하지 않고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절대적 규범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팡세(Pensee)'에서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법)가 저
쪽에서는 부정의(불법)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법의 상대적 운명을  예리하게 
갈파한 표현이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이쪽이나 저쪽이나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언젠가는 서로  연합하여 일치된 정의를  추구하는 법을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는 처음부터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백 사람이  함께 일하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한 삶이  혼자 죽어간다"(Wir arbeiten  zu Hunderten 
zusammen, wir lieben  zu zweit, wir sterben allein.)고 할  수 있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면서  절대적인 것을 추구해 나가
야 하는 운명일 것이다.
  [법.법률.법전.법규]
  '법'과 관련하여 비슷한 응용된 용어들이 있다.
  법률(Gesetz, law 혹은  statute)은 실질적 의미에서는 법과 동일한  뜻으로 사
용하지만, 형식적 의미에서는 국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법을 
가리킨다. '법'은 보다 포괄적, 추상적이며, 법률은 구체적, 가시적인 개념이다.
부정당한 법'(unrichtiges Recht)이란 형용모순이지만 '부정당한
법률'(unrichtiges Gesetz)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자세히는 '악법론'에 관한
설명 참조.
  법전(code, Geseztbuch)은 헌법, 법률, 명령, 규칙과 같은 실정법을
체계적으로 편별한 조직적 성문법규집의 전체를 가리킨다. 단행법전도 있지만,
'육법전서' 혹은 '법전'이라 하여 포괄적인 법전과 중소법전들이 있다. 보이는
것은 제정법률 등이며, 그 속에 '법'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법규(Rechtssatz)는 넓게는 법규범 일반의 준말이고, 좁게는 성문의 법령을
의미한다.
  법령은 법률과 명령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넓은 뜻으로는 법률이나 법 전체를
가리킬 때도 있다. 법전을 법령집이라 부를 때도 있다.


    7.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법을 몇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여 그 개념을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법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법철학 자체에서 법이 무엇인지 속시원히 해결될 것은 아니다.
  법의 개념 내지 본질의 문제를 두고 앞으로 이야기할 자연법론자들과
법실증주의자들의 날카로운 이론대립이 법학의 역사를 이루어 왔으면서도 이
문제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호움즈(O.W. Holmes, 1841-1935,판사)는 '법은 법원에서 말해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보았는가 하면, 소련의 민법을 초안한
고이히바르(Goikhbarg)는 '법은 종교보다 더 강한 아편이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여 모든 것이 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불가지와 회의를 건전한 비판주의로 구사하느냐, 파괴적 허무주의로
전락시키느냐는 우리들 판단자 자신의 교양과 윤리의 문제인 것이다. 홈즈는
자신의 첫번째 신념을 의심하는 것이 문명인의 특징이라고 하였는데, 인습과
선입견, 주관적 가치관의 정신적 노예에서 벗어나 냉정한 인식의 판단 위에서
법적인 것을 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엄격히 법철학적으로 다소 불명확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법이 이 땅 위의 삶 속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규범인가는 밝혀졌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심헌섭, '법철학1', 법문사, 1981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삼영사, 1975(초판), 1989(6판)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과 예술', 열화당, 1980
  A.카우프만/심헌섭 역, '현대법철학의 근본문제', 박영문고, 1974
  김병규, '법철학의 근본문제', 법문사, 1988
  최종고 편, '법격언집', 교육과학사, 1989
  H.켈젠/심헌섭 편역, '켈젠법리론선집', 법문사, 1990
  Lon Fuller, The Law in Quest of Itself, 1940
  R.Zippelius, Das Wesen des Rechts, 3.Aufl., 1973
  H.Kantorowicz, The Definition of Law, 1958
  H.L.A.Hart, The Concept of Law, 1961

  [주석]
  주1: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91), 62면
  주2: 자세히는 심헌섭, '법철학1' (법문사, 1982), 177-220면
  주3: 최종고, '정의의 상을 찾아서', 서울대출판부 1944: 정의의 상징 해태상.
'월간미술' 1994년 11월호:법과 정의의 상징에 관한 연구, '저스타스' 27권 1호,
1994
  주4: 최종고, "법과언어", '법과 종교와 인간'(삼영사, 1992)

  [연습문제]
  1.법이란 무엇인가?
  2.법개념은 왜 문화개념인가?
  3.법과 정의의 관계를 논하라.
  4.방법이원주의와 방법일원주의를 논하라.
  5.법의 존재적 측면과 당위적 측면을 논하라.
  6.법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하라.


      제3장:법과 사회규범


  인간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법 또는 국왕이 개입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적은가! - 존슨(Dr.S.Johnson)


    1.서론
  법은 인간생활을 규율하는 하나의 규범(Norm)으로서 관습, 종교, 도덕과 같은
다른 사회규범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법만 동떨어져 인간과 사회를 규율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규범들과 어떻게 다르며 또 서로 어떠한
관계를 갖는 것일까? 법은 이들 규범들과 어떻게 긴장, 갈등의 관개에 서며
어떻게 조화하여 나가는 것일까? 이 물음은 사회생활 속에서 법규범의 생생한
작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법규범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법과 관습
  법과 관습(custom, Sitte, 혹은 Gewohnheit)을 개념적으로 구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관습은 생성되어지는 것이라고 일단
구별할 수 있겠지만, 관습을 무시하고 법을 만들기는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이며
관습법(customary law, Gewohnheitsrecht)이라는 중간 형태도 있다. 법학에서
관습법은 단순한 사실로서의 관습법으로서 존중되는 것이다. 또 법은 강제
가능한 것인 데 반하여 관습은 인간의 자유의사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관습 역시 지키지 않으면 상당한 비난과 강제가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정으로 관습을 지킬 줄 아는 자가 신사이다" 라는 속담이
이야기하듯, 관습 역시 법에 못지 않은 은근한 힘으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습은 법과 개념적, 체계적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법과 도덕이 채 분리되지 않은 전형태(Vorform)로서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이 표현하였듯이 '법과 도덕의
형태를 각각 다른 방형으로 출발시키는 미분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선이라는 관습은 한편으로는 자비라는 도덕적 의무로도 발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구제라는 법제도로 발전하기도 한다. 관습은 법과 도덕을
준비하고 그것을 가능케 한 연후에 법과 도덕에 흡수된다고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렇다고 하며 법과 도덕을 분리한 연후에 관습의 사회적 기능이 없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이익사회(Gesellschaft) 속에도 항상 공동사회(Gemeinschaft)의
수많은 편린들, 즉 관습들이 파괴되지 않고 통일성을 유지해 가고 있으며,
아직도 그 교육적 활동을 필요로 하는 사회계급들과 원시적 민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시사회나 미개사회에서는 습속이 법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관습은 현실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생활의 준칙이며 역사적
전통을 근간으로 하여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이상이 아니라 평균이며 사실을
규범으로 높인 것이다. 관혼상제와 같은 것을 그 에로 들 수 잇다. 혼례의
관습이나 제례의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혼례
때 장롱을 신랑이 장만하느냐 신부가 장만하느냐에 관한 관습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호남에서는 신부측에서 장롱을 장만하고 영남에서는 신랑측에서 장롱을
장만하기 때문에 호남신랑과 영남신부가 결혼하면 장롱은 아무도 안해 가게
된다. 이러한 관습을 위반한 경우에는 시가나 처가에서 두고두고 경멸을
당할지는 몰라도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사회의
강제가 따르느냐 국가의 강제가 따르느냐에 따라서 관습규범과 법규범을 구별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신부의 부모에 대한 홍수 청구권을 인정한 일도 있었다.
  사실혼도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한일합방 이전에는 부부로 되기 위해서 신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의용민법에 따라 신고해야만 혼인의 그 성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실상 혼인식만 올리고 동거하는 부부도 많다.
오늘의 사회보장관계법에서는 사실상의 부부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여 부부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규범 중에는 - 특히 가족법과 같이 - 관습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역이 존재한다. 관습을 무시하고는 법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1980년에
제정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허례허식을 금지하고 2대조까지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관습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생활질서이기 때문에 그 내용도 좋은 것들이
많으며, 따라서 '공서양속'이라는 이름으로 법체계 속에 포함되어 존중된다.
관습법은 실정법이 모자라는 경우에 그것을 보충해주는 효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대에도 법과 관습은 끊임없이 내용적 상호작용을 계속함으로써
법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런 측면은 특히
법사회학과 법인류학, 법민속학 등의 연구과제이다.


    3.법과 종교
  영국의 법학자 메인(Henry Maine, 1822-1888)은 그의 '고대법'(The Ancient
Law, 1861)에서 고대법이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원시인들은 금기(Taboo)라는 규범을 가졌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종교적이며
한편으로는 법적 규범이었다. 예컨대 동리 밖 서낭당을 지나갈 때 침을 뱉고 돌
하나를 던지지 않으면, (종교적으로) 부정을 탄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동리
전체에 재앙을 몰고 온다고 하여 (법적으로)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고조선의 단군과 삼한의 천군, 신라의 고유한 왕호인 차차웅(자충)은
실은 주술사나 무를 뜻했다. 신라의 금관은 시베리아계 샤만의 체모와 매우
비슷하다.모세의 십계명이나 신라의 세속오계는 종교규범이면서 법규범이었다.
또한 중세에서도 종교의 힘은 강력하여 법과 도덕의 거의 전부를 포괄하고
있었다. 중세에는 법학이 신학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정의는 오직 신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그 때까지는 법과 종교를 이원적으로 대립시켜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신정일치가 행해져 종교가 국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서양의 신성로마제국과 회교국가들, 동양의 유교국가나 불교국가가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근세이래 세속화(Secularization)와 함께 정교분리가 이루어지고 법은
일단 국가법을 의미하고 교회법은 종교내부에만 적용되는 자치법으로서의 효력만
갖게 되었다. 이로써 이제 종교는 인간의 영적 문제를 다루고 그 밖의 것은 일체
법이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종교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절대자를
신앙함으로써 초월과 구원에 이르려는 노력이므로 그 자체는 선한 것이기
때문에, 세속적 법은 최대한 종교적 가치와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늘날에도 서독에서처럼 국가와 교회가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교회법이
적용되는 나라들이 있고, 이란과 같이 회교국가들도 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카톨릭교회가 사실상의 국교로 되어 잇고, 태국과 같은 불교국가도
있다.(주1)
  그래서 동서양의 종교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근대국가들이 헌법과 법률을
통하여 종교의 자유와 정교관계를 규정하였다.(정교협약,Konkordat). 현대에서도
아무리 과학화와 세속화를 주장해도 종교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법은
종교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에 있다. 독일에서는 헌법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교회법'(Sraatskirchenrecht)이 독립과목으로 법과대학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법과 종교의 속성은 어떤 권위(Autoritat)에 대한 복종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법학과 신학은 절대적인 것의 추구와 독단적(dogmatic)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법률가는 '세속적 성직자'라는 표현도 있듯이 법의 이념을 추구하기 위하여
외롭고 성스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현대에서도 법은
여전히 종교적인 권위로까지 느껴질 때에 비로소 진정으로 법에 대한 복종심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종교는 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영원과 초월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동안에는 법의
제약을 떨어버릴 수 없는, 종교와 이율배반하고 긴장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로
조화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할 요청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데 영역은
법신학(Rechtstheologie)에서 다룬다.(주2)


    4.법과 도덕
  종교에 비하면 부차적이고도 차안적인 법과 도덕의 상호관계는 설명하기가
더욱 어렵고 미묘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얼핏보면 법에는 도덕과 일치되는 것도
있고(예컨대 살인죄), 전혀 관계없는 것도 있다.(예컨대 교통법규). 법과 도덕은
도대체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근본적인 두 관점이 있다. 즉
자연법론(Naturrechtslehre)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만드는 법은 그보다 더
궁극적인 도덕에 기초하고 그에 합치되어야만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 것이며,
'부정당한 법'(unjust law)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여 법과 도덕을 일원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설명해 보아도 이 세상에는 인간이 제정하는 실정법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며, 부정당한 법을 법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이 사실에 대하여 법실증주의의 입장에서는 법의
내용이 도덕에 반하더라도 법은 법이라고 보아 법과 도덕을 이원적으로
구별하려고 한다. 따라서 '악법도 법'(dura lex, sed lex)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악한 법이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정되기만 하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본다.
  시민은 이 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며, 다만 자기의 양심에 의하여 그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결단하는 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악법의 문제는 뒤에 다시 얘기하겠다.

  1.법과 도덕의 구별
  법과 도덕을 처음부터 동일시하면 개념의 혼동만 일으키게 되니, 자연법론이니
법실증주의니 하는 관점에 구애받지 말고 이 두 개념을 일단 다음과 같이 구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주3)

  (1)관심방향에서의 구별
  법은 외부적 형태에 관심을 두고 도덕은 내면적 형태에 관심을 둔다고 하겠다.
"사색에는 누구도 벌을 가할 수 없다"(Cognitationis poenam nemo patitur)는
말이 있듯이, 법은 인간의 외부로 나타난 행동에만 관계한다는 것이다.
도덕에서는 '마음속의 간음'도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도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
  법도 인간의 내면적 사항(예컨대 고의, 선의, 책임)을 적지 않게 참작할 뿐만
아니라 도덕도 마음 속으로만 갖고 있어서는 부족하고 외부적으로 적절히
표현되어야만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톨스토이(L.Tolstoi,
1828-1910)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사랑없이 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법률가의 죄악이다" 혹은 "법률가들은 인생에 있어서 동료와의
직접적인 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존재하는 듯이 믿고 있다"라고
비판하였다.(주4)

  (2)목적주체에서의 구별
  법은 타인을 지향한 규범이요, 도덕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란 상호적, 상대적이므로 법과 도덕을 그
어느 한쪽에만 국한하여 생각하면 잘못일 것이다.

  (3)의무방식에서의 구별
  법은 규정에 적합한 형태, 즉 합법성(Legalitat)으로 충족되지만, 도덕은
규범에 적합한 심정, 즉 도덕성(Moralitat)이 끝없이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은 무한한 자기채무이지 남에게 권리로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도덕은 어느
정도 공통적인 기준과 상호교환성이 있어야지
'심정윤리'(Gesinnungsethik)로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주5)

  (4)타당원천에서의 구별
  법은 법복종자에 대하여 밖에서 의무지우는 타자의 의지, 즉
타율성(Heteronomie)의 규범이고, 도덕은 고유한 인격을 통한
자율성(Autonomie)의 규범이다. 그러나 단순히 타자의 의지란 불가능하며
거기에서는 필연(Mussen)은 불러올 수 있지만 당위(Sollen)는 초래할 수 없다.
법에도 스스로의 의욕(Wollen)이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법과 도덕의 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내 볼 수 있을 것이다.
  (41쪽의 그림을 생략하고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법과 도덕이 같은 상태, 법과
도덕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 법이 도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상태, 도덕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상태 - 이상 4가지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법과 도덕은 일단 구별될 수 있으면서도 성질을 판이하게
달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래서 혹자는 법을 도덕의 최소한(Georg
Jellinek)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오히려 도덕의 최대한(G.Schmoller)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법과 도덕은 분리(Trennung)될 수는 없고 다만
구별(Sonderung)될 수 있다고 하겠다. 도덕은 법의 타당근거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목적과 이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은 항상 윤리성을
띠어야만 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며, 라드브루흐가 말한 '법의
도덕의 왕국에로의 귀화'와 '도덕의 법의 왕국에로의 귀화'가 다아나믹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2.법과 도덕과 상황
  법과 도덕이 각기 성격이 다른 사회규범이라고 하여 양자가 무관계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사회생활에서 양자는 다른 성격과 기능을 가지면서도 서로
밀접한 교섭관계를 가지고 있다.
  내용적으로 본다면 이 두 규범의 내용은 중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규범은 도덕규범인 동시에 법규범이다. 그러나 그 규정형식이
다르다. 도덕규범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 있는 데 대하여 법규범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형법 제 250조) 있어 행위규범으로서가 아니라 강제규범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법과 도덕이 내용적으로 겹쳐있는 분야에서는 법은 도덕규범을
강제하는 기능을 한다. 헌법에서 범죄행위로 되어 있는 행위는 모두가
도덕적으로도 악으로 되어 있는 행위이다. 또 민법의 영역에서 공서양속이나
신의성실의 원칙 등에도 도덕적 요소가 들어 있음이 명백하다. 또 과거에 도덕의
영역에서만 문제가 되었을 뿐 법이 직접 간섭하지 않았던 것도 새로이 법의
내용으로 되는 수가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도덕과 내용적으로 중복되어 있는 법의 준수는 법과 도덕의 협동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겠다. 형법에서 범죄행위는 도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이며, 또
민법의 신분에 관한 법분야에서도 내용적으로 도덕과 중복되는 것이 많다.
그러나 행정법이나 상법에서는 도덕적으로 무색한 기술적인 성격의 법이 많다.
내용적으로는 도덕과 무관한 이러한 기술적 법도 그것이 일단 제정되고 나면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도덕의식 - 준법의식 - 이 생김으로써 법의 실효성이
유지된다. 예를 들어 교통법규는 교통도덕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된 도덕에 명백히 모순되는 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법은 실생활에서는 사회규범으로서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법과 도덕의 이론상의 이동은 이와 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상생활과 입법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삼강오륜과 같은 것은 주로 인간의
내심을 규율하는 규범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윤리규범이요,
도덕규범이다. 이러한 윤리규범, 도덕규범에 위반하는 경우에도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것이 윤리규범이나 도덕규범 자체로서가 아니라 법규범화하였을 때
처벌된다. 우리 형법은 존속살인죄 및 존속상해죄(형법 제251조)를 규정하여,
비속인 아들이나 며느리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살해했거나 상해한 경우에
일반인을 살해했거나 상해한 경우보다도 중벌로 다스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1973년에 이것이 위헌이라 하여 존속살인이란 법적 개념이 없어졌다. 법과
도덕의 판단에 관하여 다음 사례들을 들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혀 거의 죽게 된 것을 버려두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다. 그런자 한
사마리아인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감람유와 포도주를 붓고 싸맨 후에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봐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소'라고
말했다."(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33절)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조해 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360프랑
이상 15,000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프랑스 형법 제63조 2항)
  첫번째 인용문은 성서의 누가복음에 나타난 사례인데, 현대에도 위난을 당해
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을 구조해주지 않을 때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만 할
것인가 아니면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문명사회일수록 대낮에 행길에서 강도를 당해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구조해주기는 커녕 경찰에(증인으로 소환될까봐 귀찮아서)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서양의 국가들은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the Good Samaritan Clause)을 형법 속에 신설하였다.(주6) 이것이 법의
새로운 윤리화(neue Ethisierung des Rechts)의 현상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조불이행자에 대하여는 벌금(핀란드, 터키), 3개월 이하의
구류(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6개월 이하의
구류(체코, 에티오피아), 1년 이하의 징역(독일, 그리스, 헝가리, 유고), 최고
5년 이하의 징역(프랑스) 등의 형벌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형법은 1960년에 제정되어 개정논의 제기되고 있지만 이런 조항은 두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한다면 이런 조항이 필요할까,
필요없을까? 필요없다면 현대사회의 몰인정, 비인간화의 현상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간통죄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형법 제241조에 따르면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에 대하여
법이 윤리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이라 하여 간통죄 조항을 없애자는 주장이
있다. 외국에는 이런 조항이 없는 형법이 대부분이고, 서양에서는 가톨릭교가
강한 나라와 이슬람국가와 유교국가 등 종교적, 윤리적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만
존속하고 있다.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안락사(Euthanasia)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할 수 있으며, 환자에게 의사가
안심을 시키기 위하여 거짓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모두 어려운
문제들이다.
  법과 윤리의 판단을 함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상황이다.
윤리학에서 이른바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바
있는데, 한마디로 상황윤리는 실용주의(pragmatism), 상대주의(relativism),
실증주의(positivism), 인격주의(personalism)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결의론(neo-casuistry)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상황 중심적이며
구체적이란 면에선 옛 결의론과 같으나 윤리적 결단을 관례적으로 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옛 것과 다르다고 하겠다.(주7) 여기에선 '이웃을 위한 사랑'의
명령성(the imperative)과 '상황의 상대적 사실'의 자발성(the indecative)이
합쳐서 하나의 규범성(the normative)을 형성한다고 본다. 상황윤리는
근본적으로 아래와 같은 여섯 개의 원리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1.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사랑뿐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도덕적 덕성은
명목적이지 실재적이 아닌, 비본질적인(extrinsical) 것이다.
  2.사랑만이 유일한 규범(norm)이다. 따라서 사랑과 율법이 모순될 때에는
율법을 버리고 사랑을 따라야 한다.
  3.사랑과 정의는 같다. 따라서 이 둘 사이를 구별함은 잘못이요, 그렇게 되면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되고, 정의는 비인간화된다. 상황윤리는 '사랑 중심의
공리주의'(agape-utilitatrianism)로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최대다수의
최대사랑'으로 바꾼 관점이다.
  4.사랑(love)은 감정적 좋아함(liking)과는 다르다. 따라서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며,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의지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낭만적 사랑은 명령이 될 수 없으나 아가페의 사랑은 명령이 된다고 한 칸트의
말은 수긍된다.
  5.사랑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목적만 확정되면 그 목적의
실형을 위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목적과 수단은
상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용감하게 죄를 지어라"(pecca
fortiteri)고 한 루터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6.사랑의 결단은 상황적이지 관례적이 아니다.

  이상과 같은 출발점에서 미국의 상황윤리학자인 플레쳐(Joseph Fletcher)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서 말한다.(주8) 베를린이 소련군에게 점령되기 직전
독일의 어느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간첩으로 오인되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헤어졌던 두 아이는 고아원에 있다가 종전으로 군대에서 돌아온
남편과 같이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이 수용소에서 나가는 길은 오직 두 가지
사유, 즉 중병이 걸리거나 임신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여인은 감시병에게
간청하여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임신을 하여 남편과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남편에게 돌아온 여인은 그 동안의 경과 이야기를 하고 아이를 낳자 그를
입적시켜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모순이다. 이럴 때 사랑을 위하여는 율법을
범해도 좋다는 것이 상황윤리의 관점이기 때문에 이 여인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예를 들면 미국에서 어느 여인이 인디언의 습격을 받고 세
어린아이와 함께 숲 속에 숨었다. 인디언이 옆을 지나갈 무렵 그중 제일 갓난
아이가 울기 시작하였다. 인디언에게 들키면 전부 몰살을 당한다. 이럴 때
갓난아이의 입을 막아 죽이면 어떨까? 플레쳐는 아이를 죽인 어머니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갓난아이를 살리려다 네 명이 다 죽는
것보다 한 아이를 죽이고 세 명이 사는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사랑'이란 원리에
적합한 것이고 이와 꼭같은 근거에서 술취한 정신이상자에게 강간당한 처녀가
낙태수술을 하는 것은 정당화된다고 플레쳐는 주장한다.
  플레쳐를 중심으로 한 상황윤리의 주장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논의할 점이
있지만, 법과 도덕의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주장들이 법에 대한 예외의 경우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성격에도 법에 대하여 예외적인 태도가 여러 군데에 발견되긴 하지만,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통상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또 윤리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고 하여 법적 책임을 모면할 수은 없는 것이다. 어쨌든 법과
도덕과 상황의 관계는 어려운 주제임에 틀림없다.(주9)


    5.법과 예
  서양에서는 법과 도덕을 일원론, 이원론으로 설명하면 충분하겠지만,
동양에서는 법과 도덕 사이에 예라고 하는 독특한 규범이 발달하였다. 이를
도식화해보면 그림과 같다.(46쪽 그림 생략 - 법과 도덕이 겹치는 부분에 예가
들어있다.)
  동양 전통사회에서 법은 도덕이나 예규범의 실천을 위한 보조물로 생각되었다.
법은 도덕규범이나 예규범의 위반을 처벌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도덕이나 법의
실천을 담보하는 강제장치에 불과했다. '예주법종'이나 '덕주형보'의 사상은
법과 도덕의 관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동양사회의 예를 서양에서는 자연법으로 보려는 견해도 있다. 예는 관습,
습속, 의식 및 협약의 복합체라고도 할 수 잇는데, 니이담(J.Needham)은 이를
일종의 자연법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주10) 예가 사전에 국민을 선도하여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 데 대하여, 법은 이미 이루어진
악행에 대하여 사후에 그것을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다만 법을 인간이
만든 것으로 본 것에 대하야, 인의예지와 같은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요, 실정법에 우월한 것으로 본 점에서는 자연법의 기능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 뒤 법가에 의하여 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유교사상에서도 예와
법의 분화가 이루어져 법의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당대에 와서는 율령격식과
같은 실정법이 중요시되었으나 여전히 법형은 서민계급을 다스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요, 지배계급에게는 예와 덕에 의한 훈도가 더욱 중요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유학이 국가 이데올로기화하여 지배하면서
후반기에 이를수록 예가 발달하였다. 법학이나 윤리학이 발달하기보다도 수많은
예학자와 예학서가 나왔다. 예만 지키면 어느 정도 법을 지키는 것이고, 예만
지키면 어느 정도 도덕을 충족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예가 완충지대와 같은
매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법은 법대로 발달하지 못했고, 도덕은 도덕대로
자율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유학은 송나라의
성리학과 주자가례에 입각하여 공자, 맹자의 송례보다는 관혼상제의 사례
중심으로 발전하였다.(주11) 이것을 반성하고 비판한 것이 정약용(1762-1836)의
예론 이었다. 서양법을 수용하여 법치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예의
기능은 적지 않게 계속되고 있다고 보겠다.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예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하겠다.(주12)


    6.결론
  관습, 종교, 도덕, 법의 규범은 인간의 차안적 공동생활을 규율함에 있어서
각각의 독특한 이념과 특성, 존재양태를 가지면서도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작용한다고 보겠다. 법규범은 관습, 종교, 도덕의 다른 사회규범이 갖는
일반적인 규범으로서의 건전성을 지녀야 법규범 자체의 고유한 이념과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가능한 한 관습을 존중하고, 도덕을 그 타당성의 기초와 목적으로
실현하도록 노력하며, 이 세상에서 종교적 초월 - 즉 사랑과 자비의 높은 이상
을 바라보며 부단히 자신의 무본질성(Wesenlosigkeit)과 '궁극적 본질' 사이에서
긴장하며 자기를 갱신해 가는 사이에서 법규범과 사회규범의 갈등은 은연 중
조화와 타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종고, '법과 종교와 인간', 삼영사, 1981
  한국종교법학회 편, '법과 종교', 홍성사, 1983
  최종고, '국가와 종교', 현대사상사, 198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의 규범문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라드브루흐, '법철학', 삼영사, 1975:
  Joseph Fletcher, Situation Ethics, 이희숙 역, '상황논리', 종로서적 1989
  Lon Fuller, The Morality of Law, 강구진 역, '법의 도덕성', 법문사, 1972
  다나카 고타로/정종휴 역, '법과 종교와 사회생활', 교육과학사, 1990
  C.그레고리 외/최종고 역, '착한 사마리아인 법', 교육과학사, 1990
  H.하멜 외/최종고 역, '서양인이 본 한국법속', 교육과학사, 1990
  정해창,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하여, '법철학과 사회철학' 창간호, 1991
  랄프 드라히어, 독일에서의 법과 도덕의 관계에 관한 논의 동향, '법철학과
사회철학' 창간호, 1991
  차용석, 윤리와의 관계에서의 형벌과 한계, '법철학과 형법', 법문사, 1979
  최종고, '법과 윤리', 경세원 1992
  Erik Wolf, Das Recht des Nachsten, 1986
  Sallg F.Moore, Law as process:An Antropological Approach, Boston, 1978

  [주석]
  주1: 최종고, '법과 종교와 인간', 3판(삼영사, 1989):문화부, '외국의
종교제도' (문화부, 1989)
  주2: 한국종교법학회 편, '법과 종교'(홍성사, 1984)
  주3: 이하의 설명은 라드브루흐, '법철학', 중판(삼영사, 1989), 70-79면
  주4: L,Tolstoi, Das Gesetz der Gewalt und das Gesetz der Liebe(1906),
S.102: Boris Sapir, Dostoevsky und Tolstoi uber Probleme des Rechts(1932)
  주5: Max Weber는 윤리를 개인적 심정윤리와 사회적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Max Weber, Politik als
Beruf,S.54 
  주6:자세히는 C.그레고리 외/최종고 역, '착한 사마리아인 법:법과
윤리'(법학교양총서6)(교육과학사, 1990) 참조
  주7: 결의론(Kasuistik)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개별적인 해결책을 찾는
사고방식인데, 법학의 출발인 로마법학을 비롯하여 모든 법학적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법학의 발달은 개념에 의하여 결의론적 사고를
지양하는 데에 있었다. 자세히는 최종고,'법학사'(경세원 1986), 34, 80면
  주8: J.Fletcher, Situation Ethics: 플레쳐/이희숙 역, '상황윤리'(종로서적,
1989)
  주9: 자세히는 최종고, "법과 도덕", '법과 종교와 인간'(삼영사, 1984),
41-74면
  주10: J.Needham,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2, p.616 이하
  주11: 자세히는 최종고, "한국전통사회에 있어서 법, 도덕, 예", '한국의
규범문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동인, '한국법사상사', 서울대출판부,
1989
  주12: 전병재 편, '현대사회와 예'(을유문화사, 1989)

  [연습문제]
  1.법과 관습은 어떤 관계인가?
  2.법과 종교의 관계를 논하라.
  3.법과 도덕의 관계를 노하라.
  4.법과 예와 도덕의 관계를 논하라.
  5.법적 판단과 윤리적 판단의 관계를 논하라.
  6."악법도 법이다"는 생각은 어떤 법사상에 기초하는가?
  7.법과 도덕을 구별함으로써 행위규범으로서의 법은 어떤 특징을 갖는가?
  8.실정법의 체계는 여러 법분야에 걸쳐 있는데, 도덕과 관련이 깊은 분야는
어느 것인가? 반대로 도덕과 관련이 적은 분야는 어느 것인가?
  9.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것이 신문기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해지는데,
법정에서 증인으로 그것을 밝히라고 할 경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10.The Good Samaritan Clause를 우리나라 형법에도 규정하는 것이 좋을까?
  11.존속살해죄(형법 제251조)의 가중처벌은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12."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기타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간은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민법 제974조)는 규정은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필요한 규정인가?
  13.국가보안법 제10조에서 규정한 불고지죄를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논평하라.
  14.계약불이행이나 불법행위(민법 제750조)를 이유로 자식이 친부모에 대하여
소송할 수 있는가?


      제4장: 법의 이념


  민족을 승화시키는 것은 정의이다 - 성서
  당신은 지금까지 하나의 사상을 끝까지 생각하면서 모순에 부딪치지 않은 때가
한번이나 있었는가? - 입센(Ibsen)


    1.서론
  법의 이념(Idee) 혹은 목적(Zweck)이란 법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법은
왜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법은 한번 만들어지면 좋든 싫든 따라야 하는
강제규범이기 때문에 한번 그 강제적용을 받아본 사람은 법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진지하게 제기하게 된다. 법은 법은 결코
맹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미며 무엇인가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이 이념과 결부시켜 이해하지 않으면 결코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법의 이념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적지 않은 법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설명하여
왔다. 법의 이념은 정의라느니, 공공복리라느니, 행복과 사랑이라느니 등등.
그러나 많은 주장들이 법의 어느 한 면만 보고 하나의 가치만을 강조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법의 이념론을 가장 총체적이고 다면적으로 서술한
학자는 독일의 법학자 라드브루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법이념 3요소설은
현대법학에서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정의
  정의(justice, gerechtigkeit)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법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서양 법철학에서는 법은 정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에서는 법(Dike)과 정의(Dikaion)는
언어적으로도 불가분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로마에서도 법(Ius)은
정의(Iustitia)에서 유래한 것이며, 로마의 법학자 켈수스(Celsus) 이래로 법은
정의와 형평의 술이라고 말하여졌다.
  동양의 사상에서는 법과 정의의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정의라고 하기보다는 의 내지 의리라고 했으며, 법치주의보다는 예치주의,
덕치주의가 성행하여 법규범보다는 도덕규범을 중요시하고 인의예지를
도덕규범으로 인정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는 정의를 삼라만상의 자연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인간의 주관적 판단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 후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인간을 만물의 척도라고 하면서, 정의에 대한
객관적인 가치척도를 부정하고 주관적 상대주의를 대표하였다.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Sophist)들의 주관적 상대주의를 배척하고 인간의 실천생활의
신념에 확고한 기반을 제공한 사람은 소크라테스(Sokrates, 469-399 BC)였다.
그는 법과 정의를 같게 보고, 법과 정의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인 것은 실정법의 우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 저항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플라톤(Platon, 427-347)은 정의를 인간의 이성에서 발견하려
했다. 그는 덕을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넷으로 나누고, 정의의 본질이란
공동생활 속에서 분수를 지키는 것, 즉 각인이 그 고유의 생활 범위를 자기에게
속하는 특별한 덕으로써 승화키고 유지하는 종합에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주1)
  정의개념을 최초로 이론화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였다. 그는 정의를 우선 윤리학의 견지에서 고찰하고 정의를 사람이
이행하여야 할 최고의 덕이라고 함과 동시에 정의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이
아니고 각자의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현하여야 할 길, 즉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도덕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광의와 협의의 둘로 나누었다.
광의의 정의는 일반적 정의로서, 인간의 심정 및 행동을 공동생활의 일반원칙에
적합하게 하는 것, 즉 아테네의 법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협의의 정의는
법의 구체적 원리에 따라 각인의 물질상 및 정신상의 이해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평등을 특수적 정의로 보았다. 이 특수적 정의는 평균적
정의(commutative justice) 배분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로 나누어진다.
평균적 정의는 절대적 평등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기득권의 존중, 권리침해의
금지 등으로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사법의 정의로 나타난다. 절대적 평등의
적용의 예를 보면 매매에서의 등가의 원칙, 토지수용에서의 정당한 보상,
손해보상액산정에서의 등가원칙 등이다. 특히 선거권, 국민투표권, 피선거권의
평등은 절대적 평등을 요구한다.
  배분적 정의는 비례적 평등을 의미한다. 이는 공법에서의 평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임금지불의 경우 성과급에 의하거나, 훈장을 주는 경우 그의 공적에
의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배분적 정의의 기준에는 특정한 척도가 없다.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지 위해서 특수의사나 자의를 배제하고 무사공평하게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배분적 정의의 요청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개인주의와 단체주의의 양측면을 고려하고 그 조화를 꾀한 것으로서
후세의 정의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세에는 법철학이 가톨릭신학의 일부분으로서 발전하였다. 교부철학의
대표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St. Augustinus, 354-430) 교회의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우월성을 인정하고 국가에 대하여는 인간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는 정의를 사랑과 같은 것으로 보고 유일한
신을 신봉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였다. 스콜라철학의 최대의 이론자인
토마스 아퀴나스(St.Thomas Aquinas, 1224-1274)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적 견지에서 새로이 해석하려고 하였다. 아퀴나스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4대 덕목으로서 들고, 정의를 일반적 정의와 특수적 정의로
나누었다. 그에 의하면 일반적 정의는 지상의 모든 덕망을 포괄함에 대하여
특수적 정의는 배분적 정의와 평균적 정의로 나누어진다고 하였다.
  한편 동양의 유교에서 정의개념에 해당하는 것은 의라고 할 것이다.
도가에서는 무위자연을 주장하고 소극적 정치를 최고의 정치로 보았다. 이들은
법의 중요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 이념인 의도 무시하고 자연법칙에만 따르도록
강조하였다. 유가나 도가들이 법을 경시한 데 대해 법가는 인치주의를 배격하고
법치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사회진화에 관하여 현저히 현실주의적인 견해를
취하여 법의 우월을 주장하였다. 법가는 법의 목적이 사회질서의 유지에 있음을
명백히하고, 법의 적용은 평등해야 한다고 하여 유가의 계급적 법적용에
반대하였다. 이처럼 법치주의를 강력히 주장한 법가도 법의 이념으로서의
평등이라든가 정의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법의 실력성을 중심으로 법의
효용을 중시했을 뿐 정의개념의 수립에는 뒤졌다고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정의의 이념은 과거에는 동서양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었으나. 오늘날 정의의 개념은 세계 각국에서 어느 정도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정의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라 평등으로 파악하는 것이 전통이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에 더하여 인권의 존중을 드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제2차대전 후의 국제연합헌장은 인권의 존중과 정의원칙에 입각하여 국제사회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에서도 "인류사회의 모든 성원의 생명의 존엄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이다"라고 하고
있다. 제1차대전 후의 독재정권을 경험한 세계 각국의 국민은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준다는 정의의 격식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이것으로는 정당성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고 보고, 실질적 정의의 내용을 확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의의 내용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평등이라고 주장되었으나 무엇이
평등인가를 단언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다. '같은 것은 같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라고 하는 평등을 말할 때, 그것이 합리적 차별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어쨌든 정의의 본질은 평등에 있는 것이며 평등은 보편 타당한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정의를 지향하는 사람은 합치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정의가 개별적인 경우에 적용될 때 형평(equity)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구체적, 개별적인
경우에 내용적으로 무엇이 정당하다고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하나의 공허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 정의만 지향한다 할
경우에 실제의 적용에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나타낼 위험이 클 것이다. 그래서
법에 있어서 구체적인 정당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두번째의 이념 내지 가치가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합목적성(Zweckmassigkeit)이라는 이념이다.


    3.합목적성
  합목적성이라는 말은 목적에 맞추어 방향을 결정하는 원리라는 뜻인데, 법에서
합목적성이란 어느 국가의 법질서가 어떠한 표준과 가치관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제정, 실시되는 원리라는 뜻이다. 정의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라는 형식적 이념에 불과하므로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을 구별할 표준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지향해야 할 문제이다. 여기에는 어떤 처방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내심의 깊은 곳에서부터의 결단'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은 인식(Erkenntinis)되는 것이 아니라
고백(Bekenntnis)될 뿐이다.(주2)
  그렇다면 인간이나 국가가 고백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가치관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라드브루흐에 따르면 거기에는 개인주의와
단체주의, 그리고 문화주의의 세 가지가 가능하다.
  개인주의는 인간을 궁극적 가치로 지향하며,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노력한다. 따라서 국가를 포함한 단체는 개인보다 하위의 가치에
서게 되며,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존중되도록 평균적 정의가 강조된다.
  단체주의 혹은 초개인주의는 단체(예컨대 민족이나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고, 개인의 인격은 단체의 부분으로 단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범위 안에서
인정되고 존중된다. 여기에서는 단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단체의
입장에서 개인들에게 비례적인 평등을 실현시키면서 배분적 정의에 중점을 두게
된다.
  문화주의 또는 초인격주의는 개인도 단체도 아닌 인간이 만든 문화 혹은
작품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태도이다. 수천만 노예의 목숨보다 피라미드가
위대하다고 보고, 불난 집에서 아이보다 라파엘의 그림을 먼저 꺼낼 것을
장려하는 견해이다. 개인과 국가는 이러한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범위 안에서만
부차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보는 이 견해는 가톨릭 사회이념이 갖는 태도일 뿐
실제로 많은 정당이나 국가가 지향하지 않은 이데올로기이다. 어쨌든
문화주의에서는 배분적 정의에 의한 차별은 인정되지만 그 차별의 표준은
문화업적의 창조에 공헌하는 범위 안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 상대주의(Relativismus)의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상대주의는 회의주의나 파괴주의 혹은
부정주의와는 구별된다. "내 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네 것도 소중하다"는 것이
진정한 상대주의의 관용(Toleranz)의 에티켓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목적을 천명하고 잇다. 이와 같이 법이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추구해야 하며
그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합치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따른다면 법의 목적은 사회적 불평등의 제거에 있다고
하며 배분적 정의의 실현을 내건다. 이에 반하여 개인주의적 세계관에서는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며, 개인의 가치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권력분립론을 주장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세계관에서는
민의존중, 국민의 참여가 법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다수결의
원리가 강조되며 국민의 의사는 하나이므로 군력분립론은 부정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법의 목적은 국가나 세계관이 지배하기 때문에 어떤 목적  하나만이
절대적이라고 인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법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천부불가침의 것으로 국가에 의하여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도 제10조에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와
권리의 보장은 동시에 공공복리의 원칙과도 합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재산권은 옛날 개인주의 시대에는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사회정의를
구하는 20세기에 와서는 상대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헌법 제23조 2항)고
규정하고 있으며,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민법 제2조)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인 자기와 타인의 공존을 위하여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규정만이 아니라 법현실이 어떤지 비판적으로 관찰하면서
법학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4.법적 안정성
  "부정의로운 법도 무실서보다는 낫다"는 괴테(Goethe, 1749-1832)의 표현도
있듯이, 법의 제1차적 기능은 질서를 유지하고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평화를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있다. 법은 법 자체의 안정성과 사회질서의 안정성을
요구한다. 법의 안정성이 보장되면 사회질서의 안정도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왜냐하면 법이란 행위규범인 동시에 재판규범이기 때문에 그것이 자주
변경되어서는 국민이 행동의 지침을 잃게 될 것이요, 사회도 안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의 제정과 개정은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실이 계속되는 경우 법적 안정성의 원칙에 따라 그 상태를 인정하여
기존사실화하는 경우도 있다. 소명시효, 취득시효, 사법상의 점유보호, 선의
취득 및 국제법에서의 현상유지(status quo)이론 등도 법적 안정성을 위한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공소시효에 걸려 공소제기를 할
수 없으며, 형의 선고를 받은 사람도 일정기간 집행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소유권의 경우에도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선의, 무과실하게 점유하면 시효로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가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거시다.
  민법, 상법은 재산권보호라든가 거래질서의 안정, 가족생활유지 등을 위한
기능을 하고 있다. 헌법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중요한 목적의 하나로 들고
있으며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위헌정당의 해산제도 등을 규정하고
있다. 형법은 개인적 법익, 사회적 법익,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여 시민질서와 사회질서 및 국가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법이 안정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나갈 수 없다.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이 요청된다.
  첫째, 법의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둘째, 법이 쉽게 변경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입법자의 자의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법이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너무 높은 이상만 추구해서는 안된다. 넷째, 법은 민중의
의식, 즉 법의식(Rechtsbewubtsein)에 합치되는 것이어야 한다.
  법의 안정을 위하여 법 자체로서도, 예컨대 민법에서의 점유나 시효제도를
두고, 선판례의 구속력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혁명도 실패하면 범죄가 되지만
승리하면 새로운 법의 기초가 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이 부정되지 않고 혁명과
같은 단절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법적 안정성의 내용인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한국을 관찰한 미국의 한 학자는 말하기를, "미국의 법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는데 한국의 법은 바람직한 최고의 기준을 정하고 있어
대부분의 국민을 범법자로 맞들고 있다"고 하였는데 되씹어 볼 말이다.


  5.법이념의 내적 통일
  정의,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의 세 이념은 어떠한 관계에 서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상호모순(Antinomien)이면서도 상호보완의 관계에 서 있다고 하겠다.
극단적으로 정의만을 강조하면 "세상은 망하더라도 정의는 세우라"(Fiat
justitia, preat mundus)고 하고, "정의만이 통치의 기초이다"(justitia
fundamentum regnorum)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합목적성을 강조하면
"민중의 행복이 최고의 법률이다"(salus populi suprema lex est)라고 하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 법이다"(Was das Volk wunscht, ist das Recht.)라고
주장하게 된다. 또 법적 안정성은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고 하고
"정의(법)의 극치는 부정의(불법)의 극치"(Summum ius, summa injuria)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세 이념은 상호간에 긴장하면서 모순을 보여준다.
  특히 정의만을 강조하면 법적 안정성이 해쳐지고, 안정성만 강조하면 정의를
망각하는 수가 생긴다. 실정법이 아무리 안정적으로 시행되더라도 그것이
부정의로우면 그것은 시체의 정숙과 묘지의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법론자들은 정의를 무시하는 법은, '법률의 모습은 띠고 있으나
불법'(Gesetzliches Unrecht)(주3)이라고 주장하고 더 이상 법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법실증주의자들은 법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정되었으면 부정의로운 법(악법)이라고 법은 법이라고 주장하는데, 다만
국민은 도덕적 양심에 따라 이러한 악법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자연법론에 서든 법실증주의에 서든 법의 부정의, 악법에  대하여는
비판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부여된 과제요, 의무일 것이다.
  결국 법의 세 가지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은 상호모순하면서도
협력, 보완하는 관계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목숨을 지키려는 자는
목숨을 버릴 것이요, 목숨을 버리려는 자는 목숨을 지킬 것이다"(누가복음 17장
33절) 라는 성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라드브루흐는 법의 세 이념이 서로
조화하는 가운데 다이내믹하게 법의 생명은 유지, 발전되어 나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합목적성이 선택하는 세 가지 가치와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와
사회도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 주는 데에 그
존재의의가 잇다. 문화와 작품이 중요하지만 위대한 문화작품은 인격의 발로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류라는 위대한 상을 찾아 노력하는 예술을
불가피하게 국민적(민족적)이다(라드브루흐).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고 궁극적으로 의문스러워서가 아니라, 어떤 가치도
소중하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존중해주는 가운데 법의 합목적성에 따라 정의를
실현해 나가며 동시에 안정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로는 이렇지만
실제로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간에 충돌이 있는 경우 어느 이념을
우선시켜야 할지는 각 시대와 국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랐다. 경찰국가에서는
국가의 목적,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정의나 법적 안정성을 희생시켰다.
법실증주의시대에는 법의 실정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의나 합목적성이
소흘히 되었다. 이에 대하여 자연법사상이 전성하던 시대에는 정의의 원칙을
우선하여 여기에서 법의 내용과 법의 효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법이념 사이의 이러한 모순, 충돌에 대하여 우리 헌법의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헌법 제37조 2항). 이 규정은
법의 이념인 자유와 권리, 공공복리, 질서유지, 국가안전보장의 상관관계를
규정한 것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우리 헌법은 정의,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
충돌하는 경우에 이의 조화로운 조정은 원칙으로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정의원칙인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우선을 규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우리 헌법은 자연법 원리에 입각하여 기본권의 천부인권성을
인정하고 그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문제되는 것으로는 사형제도라든가 낙태죄(형법 제269조)가
있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하여 인간의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외국에서는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제국이나 미국의 다수 주에서는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주4)
  또한 요사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는 호주제도와 동성동본금혼 문제가
있다. 유림 측에서는 민법의 이러한 규정들은 우리나라의 윤리질서를 규정한
것이므로 이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법적 안정성을 내세운다.
이에 대하여 여성단체에서는 이 규정들은 인간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이라는
정의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제6공화국 헌법은 제36조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민법상의 이런 규정들은
위헌으로 무효라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된다. 이 경우 국회의 입법자는 정의의
실현이냐 전통의 유지와 안정성의 확보냐 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하게 된다.
인간은 이 지상에 살면서 모든 가치를 한꺼번에 향유할 수는 없고,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만큼 다른 하나의 가치를 희생하게 된다. 교양인이면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법의 이념과 가치선정에서도 이처럼
명민한 사려 위에서 조화와 결단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보론] 현대법철학에서의 정의론

  1.머리말
  정의는 법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산 시간 보충강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정의는 실로 지상에 사는 인간의 최대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의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매력적인 말이라고도 할 수
잇다. 그러면서도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마치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처럼 난감함을 느끼게 한다.
  정의를 크게 개인의 덕성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진, 선, 미와 같이 개인이
추구하여야 할 절대 최고의 가치로 설명되어지는데, 그러나 철학, 윤리학에서 지
정의가치의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간단한 일은 아니다. 또 사회상태
혹은 사회질서로서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사회정의라는 말로 쓰여지며, 법에서
얘기하는 정의도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여기에서는 법학에서 정의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설명되어 왔는가를 잠깐
시대적으로 개관하고, 현대법철학에서 정의론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우리의 처지에서 정의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생각해 보고자한다.

  2.정의론의 전개
  정의의 개념을 규명하기 위하여 동서고금의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들이
정의론을 전개하였다. 앞에서 이미 공부하였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자. 고대
로마의 울피아누스(Ulpianus)는 정의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려는 항구적
의거"(suum cuique tribuere)라고 표현하였는데, 오늘날까지 정의에 대한 거의
표준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희랍의 플라톤은 정의를 이성과 용기와
절제의 부분덕목이 조화할 때 이루어지는 종합덕으로 설명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이란 관념에 입각하여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즉 "같은 것을 같게, 같지 않은 것을 같지 않게"(like for
like, unlike for unlike)의 원리와 인간이기에 "모두 같게"(like for all)
취급하는 두 원리, 다시 말하면 상대적 평등과 절대적 평등의 원리를 적절히
구사하면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학자들은 당시의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정의를 신의 뜻에 따르면서 사랑(caritatis)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근대와 더불어 다시 비종교화된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무수한 이론가들이 정의에 대하여 추구하였다. 예컨대 휴움(David Hume,
1711-1776)은 "정의는 효용의 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 낸 덕이다.
정의는 인간의 본능적 감정에서가 아니라 인간생활에 유익한 경향에 대한 이성의
반성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하여 정의 본질이 전적으로 사회에 대한 효용에
있다고 보았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정의와 부정의를 구별하는
기준은 국가권력의 의사결정에 있다고 보았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도덕형이상학(Metaphysik der Sitten)에서
"정의가 소멸하면 인간이 지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등의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정의의 가치를 주장하였고, 정의의 원칙을 평등의 원리로 파악하고
형벌론에서도 응보를 저의의 실현으로 보았다. 라이프니츠(G.Leibniz,
1646-1716)는 보편적 정의를 자연법의 3단계로서 설명하였다. 첫째는 엄격법의
단계로 "타인을 해치지 말라"는 근본원칙의 광정적 정의요, 둘째는 형평의
관계로 "각인에게 그의 몫을 나누어 주라"는 근본원칙의 배분적 정의요, 셋째는
경건과 성실의 관계로 "성실하게 살아라"는 근본원칙의 보편적 정의라고 보았다.
  근세의 정의론은 한마디로 인간중심주의(Humanism)에 기초한 자연법적인
정의론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의 무수한 정의론을 배경으로 하여
현대의 법학은 정의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표적인 법철학자 몇 사람의 이론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3.켈젠의 정의론
  켈젠(Hans Kelsen)은 법실증주의자답게 정의의 상대성을 강조한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What is justice?, 1957) 라는 저서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의의 여러 가지 형식을 검토, 비판하고 상대주의의 관점에 입각하여 정의가
절대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의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만이 정당하고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적
행위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요구가 너무나 절실해서 생기는 자기
기만"이라고 하면서, 절대적 정의론을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도식이라고
논박한다.
  "착한 일을 하고 악한 일을 하지 말라"는 정의론은 무엇이 착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을 줄 수 없다고 논박한다. 결국 정의론은 무엇이
착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을 줄 수 없다고 논박한다. 결국
켈젠은 정의를 규정짓는 것은 실제적으로 실정법이며, 정의의 객관적 기준은
도대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절대적, 보편적 정의를 제시할 수
없고, 나의 정의만 얘기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유의 정의, 평화의 정의,
민주주의 즉 관용의 정의라고 결론을 맺는다.(주5)

  4.라드브루흐의 정의론
  라드브루흐의 정의관은 그의 생애에서 다소 유동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2년 '법철학'(Rechtsphilosophie)을 낼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정의는
법이념의 한 가치를 의미했을 뿐이다. 즉 정의는 법의 보편적이고도 그러면서도
'먼 이념'으로서 합목적성(Zweckmabigkeit)과 법적
안정성(Rechtssicherheit)과함께 법이 봉사하여야 할 가치(이념)로
파악되어졌다. 다시 말하면 법의 이념으로서 정의만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정의를 무엇으로 이해하였던가? 그는 우선
법에서 얘기하는 정의는 윤리적인 선의 한 현상 형식, 즉 인간의 자질이나
덕목으로 보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관적 의미의
정의는 마치 진리와 성실과의 관계와 같이 객관적 정의를 지향하는 심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법에서 문제삼는 정의는 개관적 정의로서, 그것은 인간의
의지, 심정, 성격, 즉 인간 자체를 평가하는 정의가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관계,
이상적인 사회질서를 대상으로 하는 정의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정의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법률의 적용
또는 준수를 '정의롭다'고 할 때도 있고, 법률 그 자체를 '정의롭다'고 말할
때도 있다. 전자의 정의 곧 합법성(Rechtlichkeit)을 의미하고, 후자는 실정법
자체를 평가하는 정의로서 그 본질은 평등(Gleichheit)에 두고 있다고
라드브루흐는 설명한다.(주6)
  그러나 정의에서부터 '바른 법'(das richeige Recht)의 개념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되자면 다른 원칙들이 보충되어야 한다고 라드브루흐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배분적 정의라 하더라도 무엇을 평등한 것으로
취급하고 무엇을 불평등한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하는 내용을 말해 주지 않는
, 그야말로 형식적 성격을 띤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라드브루흐에게
정의는 법의 세 가지 이념의 하나로서만 의의를 갖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 또
라드브루흐는(켈젠도 그러하지만) 정의의 본질과 내용에 대해 어떤 자신의
주장과 이론을 삼가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관용과 타협이 함께 어우러져
질서있는 공동생활의 가능성을 만드는 다양한 가치의 복수사회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있을 때마다 독재를 조장하고 자의를 퍼뜨리는 '도덕',
'윤리질서', '윤리성', '자연법' 등이 이데올로기로 '절대화'하는 것을 그는
비판적으로 보고 '상대주의'를 통해 거리감을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나치스 경험을 통하여 만년에는 상당히 수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주7) 왜냐하면 그가 내건 다른 법이념인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에 의하여 독재정부가 '결단'과 선택에 의하여 자의대로 법을 운영해
나갈 때 그에 대하여 정의의 개념을 다시 동원하지 않으면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의를 다른 법이념과 동렬에서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에 제기된다.
  그래서 라드브루흐는 정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논문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gesetzliches Unrecht und ubergesetzliches Recht)을 발표하였다.(주8)
그러나 이 논문으로 라드브루흐가 종래의 삼원적 법이념론을 번복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뉘앙스로 보라
정의의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내용으로서 사물의 본성, 인권,
전통적(그리스도교적) 가치들에 대한 존중 등을 시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볼 때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에서 정의는 점점 큰 의의를 갖게 된
관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5.코잉의 정의론
  서독 프랑크푸르트대학의 교수로서 법철학자요, 법사학자인 헬무트
코잉(Helmut Coing, 1912-)은 막스 쉘러(Max Scheler, 1874-1928)와
하르트만(N.Hartmann, 1822-1950)의 실질적 가치론에 영향을 받아 실질적
정의론을 전개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는 법의 이념은 정의, 인간의
존엄(Menschenwurde), 그리고 신의와 신뢰성(Treu und Zuverlassigkeit)이라고
보았다. 그도 역시 정의를 평등한 취급이라고 파악하는데, 정의 자체로서는 그
구체적 내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도덕적 가치들로 보완하여야 한다고
본다. 다른 도덕적 가치들이라 신의, 성실, 신뢰 등의 가치를 말하는데, 이들
도덕적 가치들도 결국 인간의 존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게 살라", "아무도 해치지 말라",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라"로
공식화되는 정의도 이 인격적 가치의 도덕적 자기형성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저의의 공식은 자기 및 타인의 인격존중, 인격의 평등한 취급을 의미한다.
코잉은 이러한 정의는 평등상태(Gleichordnung), 복종상태(Unterordnung),
공동체상태(Gemeinschaft)의 세 가지 사회적 기본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고
한다. 즉 평등상태에서의 정의는 평균적 정의이고, 공동체상태의 정의는 배분적
정의로 나타난다.
  평균적 정의(Iustitia commutativa)의 근본원칙은 기존권리에 대한 상호존중을
뜻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는 이 원칙에서 여러 가지 개별적
금지규정이 나온다. 그러나 그 기본적 핵심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말고
보호하라는 것이다. "타인을 해치지 말라"는 명제에 위반된 때에는 손해배상을
해야 되며, 이 평균적 정의의 원칙은 사법에 적용된다.
  코잉은 지배복종관계에서 필요한 정의의 원칙은 보호적 정의(Iustitia
protectiva)라고 말한다. 이 보호적 정의의 최고 명제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모든 권력은 제한되어야 한다"(Alle Macht von Menschen uber Menschen mub
begrenzt sein.)는 것이다. 무제한의 권은 법에 위배되는 것이며, 권력의 제한은
사물의 본성(Natur der Sache)과 기본권의 존중(Respektierung der
Grundrechte), 신의성실의 원칙, 모든 권력에 대한 통제를 요구한다. 보호적
정의는 한마디로 법치국가적 정의인데,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근본명제를 내포하고 있다.(주9)
  1.모든 권력은 그가 이룩하려는 목적을 넘어 행사되어서는 안된다.
  2.모든 국가권력은 기본인권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
  3.권력자는 복종자에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4.모든 권력은 통제되어야 한다.
  배분적 정의는 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원리인데, 이 명제는 사물의 본성에 따라 평등하게 이익과 부담을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잉은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수용하고
그것에 보호적 정의를 새롭게 추가하여 정의론에 큰 기여를 하였다. 보호적
정의는 달리 보면 법치국가적 정의이며, 이를 위하여 사법권의 독립,정당한
증거조사의 원칙, 판결의 궁극성의 원칙 등 사법적 정의의 원칙이 요청된다고
보았다. 코잉의 정의론은 시대제약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현대
법치국가에서 정의의 개념을 더욱 구체적으로, 내용적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했던
공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6.롤즈의 정의론
  법학자는 아니지만 하버드대학의 철학교수 존 롤즈(John Rawls, 1921-)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이라는 책을 써서, 현대의 정의론에 큰
논쟁점을 제공하였다. 롤즈는 정의문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갖는데, 하나는
국민의 기본적 자유에 관한 문제요, 하나는 사회적, 경제적 가치들의 분배에
관한 문제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두 측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본원리가
적용되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주10)
  1.모든 개인은 다른 사람들의 같은 자유와 양립할 수 잇는 가장 광범한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2.사회적, 경제적 불균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첫째, 그 불균등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이익이 되리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잇다. 둘째, 그 불균등의 모체가 되는 지위와 직무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도록 한다.
  이처럼 롤즈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보장을 전제로 하면서, 그러면서도
그 강조점을 분배의 공정성(fairness)에서 정의의 본질을 찾고 있다. 말하자면
자유와 기회, 재산과 소득, 자기존중의 근거 등 모든 사회적 기본가치는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되, 이러한 가치들의 불균등한 분배가
허용되는 것은 그 불균등한 분배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것이 도리어 유리한 경우에 국한된다는 것이 롤즈의 근본사상이다.
그가 이와 같은 정의의 원칙을 가장 타당하다고 믿는 것은 그의 사회계약적
사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롤즈가 제시한 두 가지 원칙은 원초적 상황(intima situation)에 놓인
사람들이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 쌓인 상태에서 정의의 원칙을
선택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아마 모든 사람들이 찬동할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영미계통의 학자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그가
정의를 어떤 명증설을 빌어 독단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동의의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인간성이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조심성있게 찾아내고자
하는 접근방법이 훌륭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으로 정의의 본질이 완전히 표현되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느낌이 있다. 그가 제시한 경제적 불균등의 원칙에 모든 사람들이
찬동하리라는 주장에는 의문이 있고, 두 원칙 사이의 우선 순위에 관하여도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롤즈의 정의원칙이 이론적으로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의 이념의 윤곽을 잡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적 목적에는 크게 도움이
된다. 우리가 민주주의 실현을 공동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글의 이 두 원칙은
이미 민주주의사회에서 널리 만들어지고 잇는 정의의 통념을 공식화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두 원칙에 특별히 새로운 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이념 속에 이미 형성되어온 정의의 개념을 치밀하고
명확하게 공식화하여 표현하는 동시에 공식화된 두 원칙을 사회계약설의
지에서 정당화하려고 시도한 점이 새로운 경지를 보였으며, 그 정당화의 시도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졌다는 점에 그의 정의론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7.페를만의 정의론
  롤즈의 정의론이 정의에 관해 합리적이고 또 모두가 수락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건과 규칙들을 모색한 '결정 이론적' 정의론이라 한다면, 벨기에
브뤼셀대학 법철학교수 카임 페를만(Chaim Perelman, 1912-84)의 정의론은
정의에 관해 이성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 담화의 조건과 규칙들을
모색한 '논의 이론적' 정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의
수사학(rhetoric)에서 발전시킨 논리학(Traite de l'argumentaion)을
신수사학(La Nouvelle Rhetorique)이라 부르고 그 바탕 위에서 정의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정의에 관해서"(De la justice, 1945)와 "정의에 관한
강의"(Cinq lecons sur la justice, 1965) 등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다.(주11)
  그는 정의의 관념이 갖는 가능한 모든 의미를 열거할 수는 없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정의관념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각자에게 똑 같은 것을 
  2.각자에게 그의 공적(merits)에 따라
  3.각자에게 그 일의 결과(works)에 따라
  4.각자에게 그의 필요(needs)에 따라
  5.각자에게 그의 계급(rank)에 따라
  6.각자에게 법적 자격(legal entitlement)에 따라
  이 각각의 의미가 어떠한 때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페를만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설명한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정의론은 정의의 내용을 독자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위의 여섯 가지 개념을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 하겠다.
  페를만의 표현을 직접 인용해 본다. "정의는 품위가 높으면서도 착종된
개념이다. 일상용어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의의 개념은 워낙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까닭에 이에 대한 명백하고 정확한 개념 규정은 불가능한 것이다. 정의에
대한 개념 규정을 통하여 우리는 다만 정의의 한 측면만을 강조할 수 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의의 적용 가능성의 측면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든 주문을 담아 보고자 시도한다. 이와 같은 시도가 가지는 결점은 하나의
용어로부터 정서적 내용을 논리적 속임수로서 우리가 자의로 부여하는 합리적
의미로 바꿔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점을 피하기 위해서 정의의 분석은
정의에 관한 다양한 관점에 공통하는 요인을 발견하는 데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확실히 그 관념이 가지는 전체 관념을 충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명백하고 정확한 개념 규정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의의 체계라도 불가피하게 자의적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정의
체계의 불완전성은 체계의 극단적 결론만을 적용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상기되어야 한다. 오직 완전한 정의의 이름 아래서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라' 라는 주장은 도덕적으로 옳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불완전한 규범체계도
만일 그것이 윤리적으로 비난을 모면하고자 한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보다
자발적인 가치와의 접촉으로부터 참신한 영감을 추출해내야 한다. 어떠한
정의체계도 그 자신의 불완전성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아울러 불완전한 정의는
결구 자비가 존재하지 않는 한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깨달아야
한다.(주12)

  [정의와 의리]
  지금까지 정의에 관해 논의했지만, 어쩐지 정의란 말은 우리와 거리가 있는
관념인 것같이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생활과 사고방식에서 정의보다는 의리라는
것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 때문에 여러
가지 독특한 형상이 생기는 것이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사회인 것이다. 그러면
동양의 의리란 어떤 것인가?
  첫째, 의리는 다른 사람에게 정해진 방식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사람의 의무 내지 지위이다. 이 의무의 범위는 의무자가 놓여진 상황과 의무를
빚진 타인에 따라 바뀐다. 즉 어린이의 부모에 대한 의리, 학생의 스승에 대한
의리, 부하의 상사에 대한 의리 등이 각각 다른 것이다.
  둘째, 의무를 받을 사람은 의무자로부터 이행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의자가
자발적으로 이행할 것을 기다려야 한다.
  셋째, 의리의 관계는 영속적이다. 상인과 고객 사이에 의리관계가 확립된 경우
고객이 다른 상인과 거래를 하였다면 그 고객은 의리를 저버린 것이 된다.
  넷째, 의리관계는 애정의 감정 위에 기초하고 있다. 이 감정을 특히
인정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면 그는
인정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따라서 의리를 해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다섯째, 의리관계는 전통적인 계층질서 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자기의
분수를 충실히 지키는 것이 미덕이라는 윤리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인기있는
상사는 자신의 의리인정을 알고 부하의 신상과 가사문제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며
부하는 반대로 상사의 개인적 용무를 기꺼이 돌보아 준다.
  여섯째, 의리는 공공의 강제수단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명예의
감정에 의해 승인되고, 의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는 '체면을 잃는'(lose face)
결과를 가져온다. 인류학자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일본의 문화를 서양의
죄문화(sin culture)에 비하여 수치문화(shame culture)라고
분석하였는데,(주13) 동양인은 타인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에 잘못의 척도를 두는
면이 강하다고 하였다.
  이 밖에도 의리에 관한 분석과 정의와의 비교를 할 수 있지만, 더 깊이
있는 연구는 법사회학과 법철학, 법심리학의 과제라고 할 것이다.(주14)

  8.맺는말
  이상에서 정의의 개념을 규명해 보려고 시도한 학자들의 이론들을 검토해
보았다. 그러나 다 읽어도 어쩐지 정의가 무엇인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단 정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 선, 미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들은 모두 손에 잡히듯 그 내용이 분명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분명히 인식되지 않는다 하여 섣불리 불가지론이나
회의주의, 퇴폐주의, 파괴주의로 흘러서는 안 되며, 오히려 더욱 이렇나
가치들을 지향하여 용기있게 건설적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이 교양인의 태도라고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따지고
앉아 있기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짱도 구워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에드몬드
칸(Edmond Cahn)이 '부정의의 감각'(The Sense of injustice)라는 책을 쓴
동기처럼 정의에 관해 부정적 정의론도 가능하다.
  정의는 정의만 추구하려고 하면 은연 중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되고마는
미묘한 속성을 갖고 잇다. 법격언에 "정의의 극치는 부정의의 극치"라는 말도
있고, 아퀴나스가 "자비없는 정의는 잔인이다"라고 말하였듯이 정의는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더 높은 사랑 혹은 인간애를 지향하는 수단 혹은
계산(calcul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 아무리 고상한 사랑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정의라도 그것을 관철시킬만한
힘이 없으면 정의가 될 수 없다. "실력없는 정의는 무기력하고, 정의없는 실력은 
폭력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정의와 힘은 서로 이질적인 것이면서도 조화해야만
된다. 그리고 어차피 구체적 사건이나 문제 앞에서 무엇이 정의인가를 결정하는
표준은 인간, 즉 법률가나 정치인 혹은 국민이 결단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결단을 하면서 정의를 추구하는 데에 솔직히 말하여 정의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정의가 무엇인지 몰라서라기보다는 양심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실천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정의가
무엇인지는 오히려 부정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 즉 도덕심과 지성의 강화를
통하여 밝혀진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의는 자기의 이기심을 극복하면서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주고, 지성과 도덕심을 함양하여 이성과 양심, 그리고 합리성에 근거하여
문제의 해결에 접근할 때, 어둠을 비춰주는 빛과 같이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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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 Campelell, Justice, London, 1988

  [주석]
  주1: 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박영사), 24면
  주2: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9판(삼영사, 1991), 39면
  주3: G.Radbruch, "Gesetzliches Unrecht und ubergesetzliches Recht"(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법철학', 9판(삼영사, 1991), 285-294면
  주4: 사형에 관하여는 본서 456-459면 참조. 최종고, '법과 윤리', 경세원,
1992
  주5: 켈젠/박길준 역, '정의란 무엇인가'(전망사, 1984)
  주6: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91), 64면
  주7: Zonguk Tjong(정종욱), Der Weg des rechtsphilosophischen Relativismus
bei Gustav Radbruch(Bonn, 1967):박은정 편역, '라드브루흐의 법철학'(문학과
지성사, 1989
  주8: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91) 285-294면
  주9: H.코잉/정희철 역, '법철학개론(동신문화사, 1964), 200-214면
  주10: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Harvard Univ.Press, 1971), p.60:
황경식 역, '사회정의론'(서광사,1985)
  주11: 카임 페를만/심헌섭, 강경선, 장영민 역, '법과 정의의 철학'(종로서적,
1986)
  주12: 카임 페를만, 위 번역서, 72면, 페를만에 대해 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 박영사, 1992. 532-534면
  주13: Ruth Benedict, Chrysanthemum and the Sword, 1946, p.222-223
  주14: 최종고, 강경선, '법사상사'(한국방송통신대학출판부, 1986), 228-230면

  [연습문제]
  1.법은 왜 존재하는가?
  2.법의 이념을 논하라.
  3.정의란 무엇인가?
  4.법의 이념으로서의 합목적성을 논하라.
  5.법적 안정성의 요건을 논하라.
  6.정의와 의리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7.'부정의로운'사회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길을 논하라.


      제5장: 법의 존재형태(법원)


  자연은 공백을 만들지 않고, 목적없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 로마법격언
  법의 생명은 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있다. - 호움즈(O.W.Holmes)


    1.서론
  법이 실정법으로서 나타나게 된 이후로는 법질서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형식
내지 종류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법의 형식 내지 종류를 법의 연원(sources of
law) 또는 법원(Rechtsquelle)이라고 한다. 즉 법규범이 문장의 형식으로
나타나는가 또는 불문의 형식, 다시 말하면 사회생활에 관습으로서 행해지는
것이 당연히 법으로서 인정되고 있다든가에 따라서 성문법(written law)과
불문법(unwritten law)으로 구별된다.
  불문법은 성문법 이전의 모든 법원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관습법이니 성문법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직접 관습법을 드는 수도 있다.
또한 성문법은 구가 및 기타 단체에 의해서 제정되는 것이니
제정법(statutes)이라고도 부르며, 그 이전의 것은 제정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비제정법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법'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 어떤 법을 가리키는가를 분명히 알고 사용하는 것이 법학도는
물론 교양인에게도 중요할 것이다.


    2.성문법
  성문법은 권력자의 의사가 문장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며, 이것은 조직적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법원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성문법이
법원으로서 위치하는 순위는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것은 아니다. 영미법은 원래
불문법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성문법의 범위가 그다지 많지도 않고 따라서
가장 중요하지도 않지만, 대륙법계의 국가들, 즉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북유럽 및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그리고 한국, 일본 등은 성문법 특히
법전(Code, Gesetzbuch)을 갖는 나라들이다.
  성문법은 인위적인 법이다.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의회, 즉 국민의 의사에
의해서, 전제정치에서는 원수 한 사람의 의사에 의해서 제정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인간의 의사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제정되는 것인 데에는 다름이 없다.
  성문법에는 법의 문장화, 고정화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점
내지 결함이 잇다. 성문법은 문장으로 표현된 사상이기 때문에 문장의 성질상
그것이 어느 사상의 내용을 완전히 표현하지 못하거나 또는 잘못 표현할 수도
있으므로 입법자 이외의 사람이 그 문장을 통하여 그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법적 표현의 특수성 때문에 문장에 사용되는 용어의
선택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문법에는 해석이 중요한
과제로 된다 고정적인 성문법은 항상 변천하는 사회생활의 현실적 수요에 따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결함은 법의 개정(revision, Anderung)을 통해서 시정되는
수밖에 없는데, 법의 개정은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고 또한 중요한 법일수록 -
즉 헌법은 물론이요, 민법, 형법, 상법 등과 같은 것도 - 신중을 요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아무리 재빠른 개정도 결국 사회적 필요에 충실히 호응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법의 성문화는 다음과 같은 장점도 갖고 있다.
  성문법은 법의 존재와 그 의미를 명확히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행동을
하는데 매우 편리하다. 법적 행동을 하기 위하여는 일반적으로 법이 어떠한
효과를 주는가를 예지할 필요가 있고 특히 그 결과에 대해서 정확한 예견을
필요로 하는 상거래 등의 법적 생동에서는 법을 존재와 의미내용을 명시할
필요가 더욱 잇다. 영국 등의 불문법국가에서조차 상법이 일찍부터 성문화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성문법은 또한 국가권력의 전횡에 대하여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도
필요하다. 각국의 헌법이 일반적으로 성문법화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형법은 법관의 주관적 자의, 권력의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범죄인의 특별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문화가 강조되며, 그러한 목적으로 나타난 것이
죄형법정주의(nulla poena sine lege)이다.
  이상과 같은 성문법의 단점과 장점 이외에 법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성문법은
항상 이상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은 원래 일반인으로서도
실현하기 쉬운 규범내용이 들어있는 것인데 그러한 한도에서는 인간의 생활
정도를 다소라도 개선하는 방향으로 그 규범내용이 결정되므로 성문법은
관습법에 비하면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제정법은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므로 대체로 근대국가에서는 실정법 체계 중 제정법을 다른
법원보다 우월한 것으로 취급한다.
  법의 생성에서는 관습법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 복잡하게
되고 사회의 규모가 확대됨으로써 도덕 등과 같은 자연적 질서유지의
방법으로서는 사회의 현실적 질서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였을 때 비로소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법률이
제정된다. 따라서 이러한 제정법, 즉 성문법은 그 자체가 일정한 문화적 발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법전을 가진 나라가 법전제도를 포기한 예는 찾아볼 수
없다"는 피일드(David Field, 1805-1894:미국에서 법전편찬을 위해 노력한
변호사)의 주장은 성문법주의의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성문법의 내용은 목적적, 의식적으로 제정되는 것인데, 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즉 조리적 규범, 관습적 규범, 기술적 규범 및 정치적 규범
등이며, 가령 살인을 금지하는 형법 제250조는 윤리적 규범, 양자에 관한 민법
제866조는 관습적 규범, 어음의 배서에 관한 규정인 어음법 제11조는 기술적
규범, 그리고 노동쟁의에 관한 쟁의행위의 제한을 규정하는 노동쟁의 조정법
제12조는 정책적 규범이다.
  이와 같이 성문법은 다양한 내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니 법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원으로서 성문법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624개의 법령이 시행 중에
있다(1991년 1월 3일 현재).(주1)

  (1)헌법
  우리나라의 조직과 통치에 관한 근본법으로서의 헌법은 명문으로 제정한
성문헌법이다. 그러한 의미의 헌법은 형식적으로 헌법전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만이 아니고, 국가의 최고법규라면 그의 명칭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실질적인 헌법이 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어
그해 7월 17일에 공포되고 지금까지 9차에 걸쳐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이
형식적인 헌법이다.

  (2)법률
  법률이라는 말에도 광의와 협의의 두 가지 의미가 잇는데, 광의는 법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협의는 헌법에서 말하는 '법률', 즉 국회에서 의결되어
제정되는 성문법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법률은 협의의 법률을 말하는 것이다.

  (3)명령
  명령이란 국회의 의결에 의하지 않고 제정되는 법령을 말한다. 명령은
행정관청이 제정하는 데, 그러므로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는 점에서 협의의
법률과 다르지만 국가의 법령이라는 점에서는 양자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리고
양자의 형식적 효력에 있어서는 명령은 법률보다 하위에 위치하고 따라서 명령에
의해서 법률을 개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자치법규
  자치법규란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법령을 말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법률에
의해서 인정된 자치권의 범위 안에서 그 자치권에 의해 자기의 조직, 자기의
사무 및 기타 주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법규를 제정하는 기능을 갖는다.
자치법규에는 조례와 규칙의 두 가지가 있는데, 조례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자치권에 의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 의결을 거쳐서 제정한 것이고, 규칙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제정하는 것이다.

  (5)조약
  조약이란 국제법상 완전한 주체가 될 자격이 있는 국가 사이의 문서에 의한
합의를 말하는 것이다. 조약은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비준 및 공포로서
이루어진다. 다만 그 국내법상의 효력에 있어서는 우리나라는 이것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헌법 제6조)


    3.관습법
  관습법(Gewohnheitsrecht)이란 사회의 자연발생적인 규범을 말하는데, 일정한
조직을 갖게 된 국가법체계 아래서 법원으로서 하나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관습법이라 하는 것은 성문화되지 않고 불문적인 모습으로
국가에 의해서 법으로서의 승인을 받고 강제규범으로서 국가법체계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입법기관이 제정한 법이 아니고 국가사회 안에
관행의 형태로서 존재하는 것이 그대로 법으로 된 것을 말한다.
  관습 가운데 어느 것은 국가적 입장에서 국가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그에 대한
준수가 절대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이며, 그러한 종류의 관습이 국가의 힘에
의해 보장됨으로써 관습법이 되는 것이다.

  (1)관습법의 성립기초
  관습이 어떻게 하여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느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1)관행설: 어느 사항에서 동일행위가 오랫동안 관행되면 그
관행이 관습법이 된다는 설인데, 치텔만(E.Zitelmann, 1852-1923)이 주장하였다.
이 설의 주장은 이른바 "관습이기에 법적으로 정당하다"(Es ist Rechtens, weil
es Gewohnheit ist)는 것인데, 이 설은 관습법 그 자체와 그 내용을 형성하는
소재로서의 관습을 혼동한 것이다. 물론 사회발생적인 관습법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관습 중에서 법적 성격을 띤 것(권리, 의무적인 것)을 말하는데, 그것과
여기에서의 관습법은 다른 것이니 국가법으로서의 관습법은 단지 관습의
존재만으로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행설은 관습이 왜 관습법이
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2)확신설: 사회의 다수인이 어떤 관습적인 것을 법이라고 확신함으로써 그것이
법, 즉 관습법이 된다는 설이다. 이것은 사비니(F.K. von Savigny, 1779-1861),
푸흐타(G.Puchta, 1798-1846), 기르케(Otto von Gierke, 1841-1921) 등
역사법학파의 주장이다. 일반인의 법적 확신을 토대로 하여 법을 결정한다는
것은 법사회학의 분야에서 대단히 중요시하는 태도이며, 사회의 자연발생적인
관습법이란 결국 이러한 사회인의 법적 확신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 확신에 의한 관습법은 필경 사회학적 견지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며, 일정한 국가제정법 체계에서의 그것은 아니고, 이러한 법적 확신은
국가법적 견지에서는 그의 입법적 견지에서는 그의 입법적 소재는 될 수 있지만
법 그 자체라고 할 수는 없다.
  3)국가승인설: 국가가 어떤 관습의 내용을 법으로 승인함으로써 관습법이
성립한다는 라손(A.Lasson, 1832-1971)과 빈딩(K,Binding,1841-1920) 등의
학설이다. 생각건대 국가에 있어서 법이란 국가권력이 그 위반에 대하여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 준수를 강요하는 규범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한 규범의 내용은
성문법이거나 법으로서는 다름없는 것이다. 다만 성문법은 국가의 입법이라는
적극적인 법창조의 방법으로 인정된 것인데 반하여, 관습법은 국가의 승인이라는
수동적 방법에 의해서 인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관습법의 승인,
강행 및 완성은 국가적 작용이다. 국가가 성문법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관습법을
그에 대한 보충적 또는 변경적인 법원으로 하는 경우(민법 제1조, 제105조,
제185조)도 있고, 법원이 관습의 규정내용을 채택하여 재판의 준거로 하는 수도
있고, 또는 행정관청이 관습에 따라 처분하는 일도 있다. 이와 같이 법원 또는
행정관청이 동일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관습법이 생기는 예도 많은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법원 또는 행정관청의 행위로서 관습법이 확정되는 것이니 그러한
행위는 일종의 입법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여러 가지 학설 가운데 국가승인설을 가장 정당한 것으로 본다. 요컨대
국가에서 무엇이 그 나라의 밥이냐는 결국 그 국가의 의사(주권)가 결정하는
것이니, 만일 관습법이 국가의 의사에 의한 결정이 아닌 방법으로 그 국가의
법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의 모순이다. 사회의 자연발생적인 관습법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정한 국가법체계상의 것이 아니고 사회학적 견지에서
법의 보편개념으로 불려지는 것이다. 그러한 관습법이 특정한 국가의 법이 되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의사에 의한 선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말하자면 국가적
승인없이 관습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나라 민법 제1조 등이 일정한
제한 아래에서만 관습법의 성립을 규정한 것도 관습법 성립의 기초가 국가의
승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관습법의 효력
  1)관습법과 관습의 관계: 관습, 즉 사실인 관습과 관습법, 즉 법으로서의
관습과는 상대적 관계에 있다. 관습법의 실체가 되는 관습의 효력을 관습법과의
관련에서 보면 민법 제 106조에 사실인 관습에 관해서 "법령 중의 선양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관습이 있는 경우에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관습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 제106조는 관습의 효력에 관하여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은 때를
요건으로 한다. 당사자가 관습에 의할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경우에는 그 관습은
법률행위의 내용이 되므로 민법 제105조에 의하여 당연히 그 관습에 의하게
된다. 한편 당사자가 관습에 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때에 관습에
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관습이 독자적 효력을 갖는 범위는
당사자가 관습에 의한다는 의사나, 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은 경우이다.
  다음, 관습의 내용이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관습일 것을 요구한다.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있는
규정, 즉 강행규정에 위반하는 관습은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한편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 즉 임의규정과 다른 관습은 법률행위의
해석에 관하는 한, 일반 임의규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임의 법규는
법률해석의 표준이 되는 것이며, 그의 해석적 작용은 두 가지 방면으로부터
관찰되고 있다. 그 하나는 의사표시가 없을 때 그것을 보충하는 경우이며,
둘째는 의사가 불명확할 때 그것을 일정한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이다. 그리하여
사실로서의 관습은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보충하고 해석하는 자료로서의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습은 실제에 있어서 임의법규를 개폐하는 결과가
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관습은 당사자의 의사가 명시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해서만 그
효력을 갖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관습법은 법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 여하를 불문하고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 것이다.
  2)관습법과 성문법의 관계: 다음으로 관습법의 효력을 우리나라 성문법과의
관련에서 본다면, 민법 제1조는 관습법에 대한 성문법의 우월을 인정하고
관습법은 원칙적으로 성문법의 규정이 없는 사항에 관해서만 그 보충적 효력이
인정된다. 또한 성문법이 특히 그 규정내용과 다른 관습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성문법을 개폐하는 변경적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당연하다.(주2)
  다음으로 상사에 관해서는 상법 제1조에 "상사에 관하여 본법에 규정이 없으면
상관습법에 의하고 상관습법이 없으면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상관습법이 민법의 규정에 우선하게 되며, 이는 "특별법은 보통법에
우선한다"는 원칙에 의하여 상법에 대한 보충적 효력과 아울러 민법에 대한
변경적 효력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민법 제185조는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물권의 종류뿐만 아니라 내용도 포함하며,
결국 물권에 관하여는 관습법에 대하여 성문의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인정한
것으로 양자 사이에는 '신법은 구법에 우선한다'는 원칙이 인정된다. 이것은
민법 제1조에 대한 중요한 예외규정인 것이다.


    4.판례법
  판례법(case law, Fallrecht)이란 일정한 법률문제에 동일취지의 판결이
반복됨으로써 방향이 대체로 확정된 경우에 성문법화되지 않고 법적 규범이 되는
법이다. 판례법은 관습법의 특수한 형태인데, 법원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관습법과는 다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상급법원이 어떤 법률문제에 관하여 판결을 내리면 그
법원이나 하급법원은 동일한 법률문제에 관해서는 앞선 판결과 다르게 판결할
수는 없게 된다. 따라서 같은 법률문제에 관하여서는 같은 취지의 판결이
반복되게 되는 것이며, 이리하여 판례법의 형성이 가능하게 된다.
  그와는 반대로 유럽 대륙국가들에서는 법전주의에 입각하기 때문에 법원은
동급 및 상급법원의 판결에 구속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법제에서
일정한 법률문제에 관해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반복되고 판례의 방향이 대체로
확정되는 경우에 그 판례는 성문법 및 관습법과 아울러 하나의 특수한
법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하면 이러한 법제에서도 판례법의
존재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인가? 이들 국가들과 같이 법원이 법의 적용만을
담당하고 법의 창조에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나라에서는 판례는 단지 법적용의
성과에 불과하며 법의 정립이 아니니, 법원의 하나로서 판례법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법해석상의 입장을 떠나서 판례와 사회생활과의 실제적
관련에서 생각해 볼 때, 법원이 법적 안정, 즉 사회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중대한
이유와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종래의 판례의 변경을 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처사가 되므로 감히 그러한 변경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하급법원이 다르게
할 경우에는 상급심에 가서 파기될 염려가 잇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상급법원의 판례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구속력이 없는
한 상급법원의 판례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구속력이 없는
판례가 사실상으로는 구속력을 갖게 되며, 따라서 법의 적용은 법원을 통해서
법을 정립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재판의 구속력은 성문법의 구속력에 비교하여 일반적일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국 특정한 구체적 사실관계에 관한 것이니, 폭은 넓지 않으나 깊이에
있어서는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기본적인 관계에서의 판례법의
구속력은 성문법의 구속력보다 높은 예민성을 갖는 것이다. 또한 판례는
성문법과 같은 추상적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구체적 사실관계와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의 형성과정에서 볼 때
일종의 입법적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로 '법원의 입법행위'라는
말 자체가 기이한 감을 주기는 하나 사법과 입법이 결국 국가의 동일한
작용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다지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 대륙식 법전주의를 수용하였지만 해방 후 영미법적
요소도 가미되고 있어 판례법의 중요성은 점점 크게 인정되고 잇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 및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하여 한국 판례법은 아직도 전통과 혼선을 겪고
있다.(주3)


    5.조리
  조리 또는 사물의 본성(Nature of things, Natur der Sache)이란 국가가
법적 규범의식으로서 승인한 사회생활의 원리를 말한다. 조리와 성문법과의
형식적 관련에  관하여는 민법 제103조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경우에 '선량한 
속 기타 사회질서'라는  관념은 도덕이라든가 종교 등의 사회규범에  의한 평가를 
하는 게 아니고 법적 규범에 의한 평가를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만고불변의 이
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에 의하여 현행법 질서를 유지하도록  현실적으로 사
생활을 규율하는 법적 규범의식으로서의 평가를 받고  동시에 국가에 의하여 지지 
고 있는 것을 말한다.
  민법 제103조는 '공서양속'이 법적 규범의식으로서 어떠한 의미내용의
것인가에 관하여는 적극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만 건전한 규범의식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원조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회생활의 현상들은
복잡한 것이며 항상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밀하게 법을 제정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관습법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요청하는 모든 법률관계를
완전히 망라하여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법원은 특정한 구체적 사건에서 이에
적용할 법규가 없다 하여 재판을 거부할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 법원은 그
법의 결함(법률의 흠결, Lucken des Rechts)을 보충하여 판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는 외국의 입법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오스트리아민법
제9조에 '자연적 법원리'(die naturlichen Rechtsgrundsatze)라든가 스위스 민법
제1조에 '입법자로서 제정함직한 규칙'(die Regel, die der Gesetzgeber
aufstellen wurde)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법의 흠결을 조리로
보충하려는 것을 규정한 것이다.
  조리로 재판할 때에는 '정의형평'이라든가 '신의성실' 또는 '공서양속',
'사회통념' 등의 말을 종종 사용한다. 그렇다면 조리를 법원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인가? 만일 재판은 법에만 준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조리도 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조리에 의한다는 이유에서 '조리에 의한
재판이 법률에 의한 재판'이라고 함으로써 조리의 법원성을 긍정한다는 것은
비약된 결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에 의한 재판'이란 기존의 법으로
재판을 한다는 뜻이지 그것에만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재판은 반드시 법률에 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그 법률의 흠결의 경우에도 재판은 법률 이외의 다른 준거에 의해서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며, 재판이 조리에 의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정의, 형평 등,
즉 법이 원래 따라야 할 원리 그 자체에 의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리는 그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법도 그 자체가
의거해야 할 원리이기는 하지만, 법은 반드시 그 원리와 합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조리는 법 그 자체는 아닌 것이고 조리에 법원성을 인정하는
이론은 긍정하기 어렵다.
  조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재판의 기준은 되지만 법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조리에 의한 재판일지라도 그 판례가 판례법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문헌]
  비노그라도프/서돈각 역, '법학개론'(법에 있어서 상식), 육법사, 1984
  치펠리우스/김형배 역, '법학방법론', 삼영사, 1981
  켈젠/황산덕 역, '법과 국가의 일반여론', 백영사, 1956
  W.Geldart, Elements of English law, 7th ed., 1966
  H.W.Goldschmidt, English Law from the Foreign Standpoint, Pitman, 1937
  G.Radbruch, Die Natur der Sache als juristische Form, 1952

  [주석]
  주1: 가장 포괄적인 법령집은 법제처 간행, '대한민국 현행법령집'(총50권),
1989. 헌법 1개, 법률 817개, 대통령령 1,360개, 총리령 69개, 부령 922개 조약
254개, 국회규칙 57개, 대법원규칙 106개, 헌법재판소규칙 20개,
선거관리위원회규칙 9개, 감사원규칙 9개
  주2:북한에서는 관습법의 법원성이 부정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최종고,
북한법의 구조와 사상, '북한 연구', 제2집, 1991
  주3:한국법학교수회 편, '한국판례형성의 제문제'(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연습문제]
  1.법원(Rechtsquelle)을 설명하라.
  2.법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3.관습법의 법원성을 논하라.
  4.관습과 관습법의 이동을 논하라.
  5.조리란 무엇인가?


      제6장: 실정법과 자연법


  하고 많은 소리, 하고 많은 말이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리한 눈은 있지만 섬세한 감각의 섬광, 즉 사람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하는,
사물의 밑바닥까지 통찰하는 눈은 드물다. 그리고 단순히 자기 자신을 보증하는
도장을 누르는 고전적 소박성을 가진 것은 가장 드물다.
- 라드브루흐(G.Radbruch)


    1.서론
  실정법학을 열심히 공부해도 법과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조차 '자연법'이
무엇인지 머리에 분명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실정법은 이해하고
암기하면 되지만 자연법은 발견하고 감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역사를 본다거나, 오늘날에도 고차원적인 법의 문제가 등장하면 '자연법'의
문제가 종종 등장한다. 법 내지 법학의 역사는 곧 자연법과 실정법의 긴장과
대립 혹은 자연법사상과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 Rechtspositivismus)의
대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개념과 그 관계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2.실정법
  실정법이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사회에서 효력을 가지고 있는 법규범을
말한다. 실정법은 성문법이 보통이지만 예외적으로 관습법, 판례법, 조리법 등과
같은 불문법도 있다.
  실정법의 법형식에는 성문법으로 헌법, 법률, 명령, 규칙 등이 있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상위의 실정법으로서 기본권규정과 같이 자연법을 실정화한 규정들을
담고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되는 법규범이다. 법률은 헌법의 범위 안에서
제정되어야 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내용의 법률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하고 개정하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명령에는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이 있다. 위임명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규정한 명령이며, 집행명령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명령이다.(헌법 제75조) 명령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있다. 규칙에는 국회규칙, 대법원규칙,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감사원규칙, 행정규칙 등이 있다. 대법원규칙은 법률보다는 하위이지만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것을 규정하여 명령에 우월하거나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하겠다.
행정규칙에는 행정각부의 규칙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정이 있다.
행정규칙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정하는 것이므로 명령보다도 하위의 규범이다.
  이와 같이 국내법은 헌법을 정점으로 하야 법률, 명령, 규칙, 처분 등의
순서로 상하의 단계구조(Hierarchie)를 이루고 있다. 에에 대하여 자세히는
제5장의 법원에 관한 설명에서 언급하였다.


    3.자연법
  아무리 실정법의 체계가 거대하게 짜여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실정법 그 자체로 가늠할 수는 없다. 물론 실정법을 제정할
때에 그 주체인 인간이 지식과 가치를 기울여 되도록 정당한 법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법질서가 정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이 정당성
여부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그것을 초월한 어떤 영원한 객관적 질서에 의하여
행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그 표현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 기준을 법학에서는
자연법(natural law, Naturrecht)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연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 또한 간단히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국가가 만든 법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법이
준수하여야 할 법규범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법의 관념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도 존재하였고, 그후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이론화하여 이른바 자연법론(Naturrechtslehre)을 구축하여
왔다. 자세히는 '법철학'에서 배울 것이겠지만, 대체로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의
자연법은 삼라만상의 우주질서의 원리에서 연역된 개념이었고, 중세에는 신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는 원리라는 개념이 강하였다. 근세에 들어와 법학이
신학에서 분리되면서 자연법은 신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질서라는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에까지 확대되어
오늘날에도 일반적으로 자연법이라고 하면 인간의 본성(Natur des Menschen)과
사물의 본성(Natur der Sache)에 근거하여 시대와 민족, 국가와 사회를 초월하여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객관적 질서라고 의식되고 있다. 다만 현대의
자연법론자는 자연법의 영구불변성을 강조하면 융통성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오해될 것이라고 하여 역사성 혹은 '내용가변성'(R.Stammler), 구체성을
강조하여 여러 가지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법론은 자연법론자의 수만큼 각양각색의 내용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롬멘(Heinrich Rommen, 1897-)은 '자연법의 영원회귀'(Die
ewige Wiederkehr des Naturrechts)라는 책을 써서, 자연법론의 현대적 부활을
잘 지적하였고,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도 "자연법론은 자기를
매장하려는 자를 매장시키고 만다"는 표현을 하여 자연법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독일의 법사상가 에릭 볼프(Erik Wolf, 1902-1977) 교수는
'자연'(Natur)이란 말과 '법'(Recht)이란 말이 각각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자연법'(Naturrecht)이란 다음과 같이 수많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1.볼프는 우선 '자연'이란 개념의 의미변화에 얼마나 다양한 자연법의 개념이
가능한가를 아래와 같은 열두가지 명제로 분류한다.(주1)
  1)'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통약 불가능성(Inkommensurabilitat)내지
유일성(Einzigartigkeit) 혹은 양립 불가능성(inkompatibilitat), 따라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Inkomparabilitat 혹은
Unvergleich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위에서 보면
'자연성'이란 개념은 하나의 법적 존재의 총체(ein Inbegriff rechtlicher
Existenz)로서 파악되어 개별성과 집단성, 종과 속, 유형과 예외의 자존의
법(Recht des Selbstseins von individualitat und Kollektivitat, Genus und
Species, Typus und Ausnahme), 다시 말하면 '존재법'(Dasein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2)'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시원성(Originalitat) 내지
원초성(Ursprunglichkeit) 혹은 역사성(Historizitat 혹은 Geschichtlichkeit)
아니면 유기성(Organitat) 내지 성장성(Gewachsen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신화론적 법창설(mythologische
Rechtstiftung) 아니면 사회학적 법발전(soziologiche Rechtsentwicklung)으로
이해되는 하나의 원초질서(eine Ursprung), 말하자면
발전법(Entwicklung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3)'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순진성(Veritabilitat) 내지 순정성(Echtheit) 혹은
무결성(Integeritat) 내지 불타락성(Unverdorben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비인위적인 자연상태의 전 문명적
질서(die vorzivilisatorische Ordnung des status naturalis) 혹은 타락하지
않는 무결상태의 질서(die praelapsarische Ordnung des status incorruptus
sive integratitatis), 말하면 순정법(Echtheit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4)'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본능성(Instinktivitat) 내지
천부성(Angeborenheit)혹은 직관성(Intuitivitat) 내지
직접성(Unmittelbar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비반성적인,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질서(eine
unreflektivierte, unmittelbar empfundene Oudnung) 말하자면
'직관법'(Intuition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5)'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인과성(Kausalitat) 내지 필연성(Notwendigkeit)
혹은 조건성(Konditionalitat) 내지 제약성(Bedingt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경험적인 체험법칙성(eine
empirische Erfahrungsgesetzlichkeit) 혹은 논리적인 사고법칙성(eine logische
Denkgesetzlichkeit)을 의미하는 '존재법칙성을 가진 어떤 것'(eins mit dem
Seinsgesetz)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6)'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목적성(Finalitat) 내지 합목적성(Zweckmabibkeit)
혹은 의도성(Intentionalitat) 내지 목표지향성(Zielgerichtet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목적론적
행위법칙성(eine teleologische Handlungsgesetzlichkeit)을 의미하는
'당위법칙을 가진 어떤 것'(eins mit dem Sollensgesetz)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7)'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합리성(Rationalitat) 내지 조리성(Vernunftigkeit)
혹은 지각성(Intelligibilitat) 내지
이해성(Verstandigkeit=Verstand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일상적 자명성(eine alltagliche
Selbstverstndlichkeit)의 생활지혜의 법(das Recht der Lebensklugheit),
말하자면 '인습법'(Konvention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8)'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이상성(Idealitat) 내지 정신성(Geistig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일종의 철학적
이상으로서, 절대적인 것의 법(das Recht des Absoluten) 내지
절대법(Absolutesrecht), 말하자면 '이상법'(Ideal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9)'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피조물성(kreaturlichkeit) 내지
피창조성(Geschoff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신학적 이론으로서, 타락한 자연의 상대적 법(das
relatve Recht der natura corruptia), 말하자면 '선린법'(Nachsten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10)'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현실성(Realitat) 내지 소여성(Gegebenheit) 혹은
즉물성(Sachlichkeit) 내지 대상성(Gegenstand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사물정의의 존재론적
발견(einontologischer Befund der Sachgerechtigkeit), 말하자면 '사물의
본성의 법'(Recht der Natur der Sache)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11)'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활력성(vitalitat) 내지
충동성(Triebnatur)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권력의지의 자기질서(eine Selbstordnung des
Machtwillens), 말하자면 '강자의 법'(Recht des Starkens)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12)'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자발성(Spontaneitat) 내지
자의성(Freiwilligkeit) 혹은 일시성(Monmentaneitat) 내지
순간성(Augenblick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비인습법인 혁명적 질서개선'(unkonventionel-revolutionare
Ordnungsbesserung) 내지 반전통적인 '정신의지'(antitraditionalistischer
Erneuerungswille)의 뜻을 갖게 된다.

  2.볼프는 다시 '법'(Recht)이라는 개념의 의미변화에 따라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자연법의 개념이 가능하다고 본다.
  1)'법'은 사회적 존재의 객관적 질서(objektive Ordnung), 즉 자연스런 법(lex
naturae)이라는 의미를 가진다.(objektives Rech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자연법'이란 법적 혹은 관습적 방식의 기본질서(Grundordnung gesetzlicher
oder brauchlicher Art)로 이해되어 사회적 규범과 의무의 체계(ein System
soczialer Normen und Pflichten)를 의미한다.
  2)'법'은 사회적 존재의 주관적 질서(subjektive Ordnung), 즉 자연스런
권리(ius naturae)라는 의미를 가진다(subjektives Rech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일반인적인 혹은 최고인격적인 방식의 기본적
요구(Grundanspruch allgemeinmenschlicher oder hochstenpersonlicher
Art)로 파악되어 기본권 혹은 인권의 카탈로그(ein Katalog von Grund-order
Menschenrecht)를 의미한다.
  3)'법'은 사회적 존재의 공평적 질서(Kommutative Ordnung), 즉 형평(aequitas
혹은 ius aequiem)이라는 의미를 가진다(Billig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정당한 것과 공정한 것의 기본적 확신(Grunduberzeugung von
Rechten und Billigen, consensus 혹은 omnium)으로 파악되어 전학문적인 대중적
법률관의 총체(ein Inbegriff von vorwissenschaftlicher popularer
Rechtsanschauung)을 의미한다.
  4)'법'은 사회적 존재의 감정적 질서(emotionale Ordnung), 즉 법감정(sensus
juridicu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Richtsgefuhl).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일상사의 기본적 경험(Grunderlebnis des eninen
Jeglichen Zukommenden 혹은 Rechtsempfindung)으로 파악되어 개별적 호응
집단적인 권리상태와 권리소지의 감정적 전체(ein gefuhltes Ganzes
individuellen oder kollektiven Imrechtseins und Rechthabens)를 의미한다.
  5)'법'은 사회적 존재에 있어서 이상적 질서(ideale Ordnung), 즉
정의(justitia)라는 의미를 가진다(Gerechtig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실정법의 기초(Grundlegung des positiven Rechts, 즉
Rechtsidee)로 파악되어 사회질서를 위한 지시체계(ein System von Direktiven
fur die Sozialordnung)를 의미한다.
  6)'법'은 사회적 존재의 유용한 질서(brauchbare Ordnung), 즉
유용성(util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Nutzlich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하나의 목적질서(Zwecksordnung), 즉 행복을 위한
법(Recht auf Gluck)으로 파악되어 복지국가적 규율의 체계(ein System
wohlfahrtsstaatlicher Regelung)을 의미한다.
  7)'법'은 사회적 존재의 보호적 질서(schutzende ordnung), 즉
안정성(secur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Sicherh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하나의 보호질서(Schutzordnung), 즉 안정을 위한 법(Recht auf
Sicherheit)으로 파악되어 법치국가적 보장의 체계(ein System
rechtsstaatlicher Garantie)를 의미한다.
  8)'법'은 사회적 존재의 유지적 질서(bewahrende ordnung), 즉
유지력(prob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Bewahrth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유지되면서 스스로 유지하는 질서(bewahrte und bewahrende
Ordnung)로 파악되어 하나의 역사법(historisches Recht)을 의미한다.
  9)'법'은 사회적 존재의 집단적 질서(gruppliche Ordnung), 즉
사회성(social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Typizita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인과적 혹은 목적적으로 결정된 사회질서(kausal oder final
determinierteGesellschaftsordnug), 즉 작용질서 내지 반사질서(Spiel-oder
Spiegelordnung)로 파악되어 하나의 사회학적 권력요소의 체계(ein System
soziologischer Machtfaktoren)를 의미한다.
  10) '법'은 사회적 존재의 인간적 질서(humanitare Ordnung), 즉
인간성(human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Menschlich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경험적, 인류학적 혹은 윤리적, 정치적
보장질서(empirisch-anthropologische oder ethisch-politische
Garantienordnung), 즉 자연적 기본권(naturliche Grundrechte)으로 파악되어
인권의 체계(ein System der Menschenrechte)를 의미한다.

  3.이와 같이 자연법의 개념은 120가지의 의미변화로 구별되었지만 볼프는
자연법론에서 자연법이란 관념은 다음 세 가지 명제로 포괄할 수 있다고 본다.
  첫번째 명제는, 우선 자연법에 있어서 '자연개념은 다의적이다'(Der
Naturbegriff ist mehrdeutig)는 것이다. 모든 세계관의 시대적, 객관적 혹은
실천적, 이론적 형식화(Formulierung)는 사상가들의 사고방식의 무한한 가능성에
의존하지 않을 우 없다. 어떤 자연법사상을 구상한 사람은 동시에 결합할 수
없는 이론적 대립물 혹은 실천적 배타적인 목적설정에 서게 되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스스로 그 변증법의 역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성(Problematik)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자연법의 참다운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연법개념의 양극적 혹은 선동적
오용을 낳는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두번째 명제는, 그러나 '자연법사상의 기능은 일의적이다'(Die Funktion des
Naturrechtsdenkens ist eindeutig)는 것이다. 자연법은 두 가지 방향의 기능을
가지는데, 그 하나는 모든 실정법의 정당화의 기초(legitimierender Grund 혹은
Rechtfertigungsgrund)로서의 기능이요, 하나는 모든 경험적, 역사적 법의
규범화의 표준(normierendes RichtmaB 혹은 Regulativ)으로서의 기능이다.
자연법사상의 이러한 이중적 기능은 한편으로는 보수적, 한편으로는 혁명적
성격을 띠게 하고, 한편으로는 제도론적, 한편으로는 실존론적 성격을 띠게
한다. 그러나 자연법이 이처럼 사회적 목적에 구속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목적논리(Teleologik)로서만은 자연법의 더 깊은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법의 진정한 임무를 플라톤이
말한 의미의 파수꾼(Wachter)의 역할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
실천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되고 사변적, 이론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연법 사상은 현실적으로 실천화될 수도 없고 환상적으로 발견될 수도 없으며,
다만 주의깊게 경계되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자연법론은 언제나 법을
지키는 일을 자기의 본질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법 사상은 궁극에서 오직
하나의 요구(그리고 무제한의 진지성을 가진!)를 가지고 잇는데, 그것은 법이
'거기'(da) 있어야 할 지속적인 준비성(dauernde Bereitschaft)에 대한
의무이다. 이것은 참으로 '법을 위한 투쟁'(Kampf fur das Recht!)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법이 '거기' 있어야 할 근거를 묻는 법사고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지 낳을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자연법사상은 특수한 신학적 문제로서 그의 법신학(Rechtstheologie)의 주장은
구성하는 것이다.
  세번째 명제는, '자연법론은 존재의 근본문제를 추구한다'(Die
Naturrechtslehre folgt den Grundfragen des Seins)는 것이다. 즉 볼프에
의하면 존재론적 자연법(ontologisches)은 법(현실법)에 관한 존재성(Dasein
von Recht)을 묻는다. 윤리적 자연법(ethisches Naturrecht)은 법(현실법)에
관한 당위성(Gesolltsein von Recht)을 묻는다. 이론적 자연법(logisches
Naturrecht)은 법(개념법)에 관한 의식(BewuBtsein von Recht)을 묻는다.
형이상학적 자연법(metaphysisches Naturrecht)은 법(이상법)에 관한
정당성(Gerechtfertigtsein von Recht)을 묻는다.
  위에서 서양의 자연법개념을 분석하였는데, 이러한 다소 '혼란을 야기시키는
지나치게 분석적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주2)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게는
'자연법'사상은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조상대대로 나쁜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였고, '경위'를 존중하였으며,
'나쁜법'(악법)에 대하여는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사상은
춘향전과 같은 문학작품을 통하여서도 나타났다.(주3) 다만 이러한
'자연법'사상을 서양에서처럼 법제도와 법학과 관련지어 보다 이론화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를 크게 안고 있다고 하겠다.


    4.악법의 문제
  자연법 혹은 정당한 법에 관한 논의를 할 때마다 그에 위배되는 이른바 악법에
관하여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악법이란 무엇이며, 악법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악법이란 말을 많이 쓰면서도 우리는 그 개념을 정확히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격히 서양에 '악법'이란 말은 없고 Unrecht란 말은 그대로
옮기면 '불법'이다. 동양에는 좋은법, 나쁜법의 개념, 즉 량법과 악법이란
개념이 서양의 정법(Recht), 불법(Unrecht)의 개념보다 친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악법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같다. 다소 감정적이고 주관적,
심정적인 뉘앙스가 섞여 악법이란 말은 종종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도 하다.
악법이란 내용적으로 악한 법인가, 악한 사람이 만든 법인가, 악한 절차로 만든
법인가?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자연법을 부정하는 법실증주의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절차만 밟아서 제정된 젖이면 악법도 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이라는
형식적 이념이 내용적 이념인 정의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된다.
자연법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의의 원리에 반하는 법은 법이 될 수 없고
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치스의 악법을 경험한
라드브루흐가 생생한 증언으로서의 주장을 제공한다. 그는 종래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동렬의 법이념으로 설명하였던 태도를 바꾸어 만년에는 정의를
상위의 이념으로 설명하였다. 즉 법이 정의를 부정하면 '법률의 모습을 띄고
있으나 불법'(gesetzliches Unrecht)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오늘날 학자들이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Formel)(주4)이라고 부르는 악법에 대한 그의
표현은 이러하다. "법률적 불법(악법)의 경우와 부정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효력을 가진 법률 사이에 예리한 선을 긋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경계를
예민하게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정의가 한번도 추구되지 않는
곳, 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평등이 실정법의 제정에서 의식적으로 거부되는
곳에서는 그 법률은 단지 '부정의로운 법'(unrichtiges Recht)만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법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주5) 이렇게 본다면
라드브루흐에게는 정당한 법률, 부정당하지만 효력을 갖고 있는 법률, 그리고
법적 성격을 갖지 못하는 법(즉 악법)의 세  가지 개념이 설정되고 있다.첫번째과 
두번째는 법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항권의 대상은
아니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악법은 객관적으로 내용적으로
정의를 표기하고 절차적으로 불평등하게 제정된 법률을 말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나쁜 법"이라는 생각만으로는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당한
요소, 즉 몇 가지 독소조항들이 들었다고 해서 한꺼번에 악법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악법이란 용어의 지나친 확장과 남용이라고 할 것이다. 부정당한 법은
저항이 아니라 비판으로서 일단은 준수해주면서 국회 등 입법기관을 통하여
정당한 절차를 밟아 개선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라드브루흐의 악법공식의 인용에서는 나타나지 낳았지만, 그의 만년의 사상의
강조점으로 보아 악법은 또한 인권과 전통적 가치(민주주의, 자유, 평등,
박애)를 부정하는 법률임을 시사하였다. 헌법학자들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헌법과
법률, 즉 인간을 차별하여 생명, 재산, 자유를 박탈하여 언론, 출판의 자유를
탄압하는 법률을 악법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법'의 정의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공표되는 것이 아니고 비판과 저항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악법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어떤 통치자나
입법가가 처음부터 악법을 제정하려고 하겠는가. 오히려 법의 시행과정이 정의와
평등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부정의의 방향으로 몰고갈 때 악법이 '형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악법도 법"이라는 대전제도 서서히
저항권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다.
  [악법, 불법, 비법, 위법, 탈법]
  바른 법에 위배되고 부정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악법, 불법, 비법, 위법,
탈법 등의 표현들이 분명한 구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서양의 unrichtiges
Recht(unjust law)나 Unrecht(lawlessnss)같은 표현보다 동양의 한자식 표현이
편리하게 이런 말들을 창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서양의 법이론을 그대로 빌려쓸
수는 없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악법: 법 자체가 법적 성격과 권위를 갖지 못하고 오히려 불법적 결과를 끼칠
잘못된 법을 말한다.(이하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
  불법: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법이 아닌 것이지만 법적이지 못한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민법에서 불법행위를 연상해 보자.
  비법: 표현도 문자 그대로 하면 법이 아닌 것이지만 법에 거슬리는 잘못된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위법: 어떤 법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에 위반되는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탈법: 정당한 법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교묘히
빠져나가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5.저항권의 문제
  우선 저항권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상적으로는 맹자의 역성혁명론, 중세에의
폭군방벌론(Monarchomachie), 근세의 사회계약론에서 찾아볼 수 있고,
실정헌법상의 규정으로는 18세기에 들어와 1776-1784년 사이에 시민권리선언의
형식으로 나타난 미국의 각주 헌법(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 1793년의 프랑스의 쟈코방헌법, 제2차대전 후에는 1946년 프랑스의
헌법초안(국민투표에서 부결), 서독 헤센주헌법, 1947년 서독 브레멘주헌법,
1950년 서독 베를린헌법, 1968년 서독연방기본법(Grundgesetz)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규정의 표현을 보면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 현저하게 침해될 때에는
모든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베를린헌법 23조 3항) 라는 것이 있고,
미국독립선언에는 "어떤 정부라도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목적을 훼손하기에 이를 경우 인민은 이를 변경하거나 폐지하고..."라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저항권(Widerstandsrecht)이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자연법과 악법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저항권은 자연법에 위배되어 잘못된 권력행사에 의해 헌법적 가치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예비적 헌법보호수단(주6)이라고 설명된다.
다시 말하면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침해에 대한 최후적, 초실정법적 보호
수단이다.(주7) 저항권은 이처럼 기본권적 성격과 헌법보호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이른바 양면적인 것이다. 저항권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초실정법적인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인가의 문제와 저항권의 행사요건에 관한
문제이다.

  1.저항권의 초실정법성
  홉스와 칸트가 초실정법적 저항권을 부인한 이후 법실증주의에서는 이른바
'자연법적'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홉스는 인간의 성악설에서 출발하여
국가란 인간 각자가 타인에 대한 자기보호의 필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간은
국가를 통해서만 보호된다는 국가철학을 가졌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저항권은
처음부터 생각할 수 없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Vernunft)을 강조하여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국가는 마땅히 법치국가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저항권이란
무용한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낙관적 인간상을 가진 로크(John Locke,1632-1704)가
저항권을 인정한 것처럼 저항권의 문제는 인간성에 대한 세계관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로크는 '국가를 통한 보호' 외에 '국가에 대한
보호'(Schutz vor dem Staat)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초실정법적(자연법적) 저항권을 부인하는 논리의 저변에는 저항권행사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권위적 심사기관이 없는 한 저항권을 인정한다면 결국 무질서를
초래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나 초실정법적(자연법적) 저항권을 인정하는 통설적 견해에 따르면
권위적인 심사기관을 상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비성, 최후수단성에 의해
상징되는 저항권의 특징이며, 실정법을 따라서 자연법적으로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이 자연적 견해에 의하면
저항권은 본질적으로 초실정법적으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며, 저항권을 헌법전
속에 실정법화하는 것은 규범화될 수 없는 것을 규범화시키는 무리한 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인간양심의 결정을 법조문이 명령할 수 없는 것처럼
국가의 대한 저항권의 행사도 국가가 헌법조문으로 이래라 저래라 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저항권을 반드시 어떤 힘의 행사와 결부시키지 않고, 독일의 법철학자
카우프만(Arthur Kaufmann)처럼 저항권을 정신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일종의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의자세'(staatsburgerliche Haltung)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자연법적 저항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저항권의 행사란 화산의 폭발과
같은 것은 아니고 국가권력에 임하는 일정한 자세를 뜻하는 것으로서, 권력에
대한 회의적 자세, 공공연히 비판할 수 있는 용기, 결국 권력에 대한 '비판적
복종'(kritischer Gehorsam)을 통해서 권력행사를 수시로 통제하는 것이
저항권의 행사라 볼 때에는 그것은 혁명권과는 구별된다. 이와 같은 의미의
저항권도 실정법상의 규정 유무를 떠나서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연법적 권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저항권의 행사요건
  저항권을 언제 행사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주로 저항권을 힘의 행사와
결부시켜 그것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는 전통적 관점에서 자주 논의되어
왔다. 독일 기본법 제20조 4항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 현저하게 침해될 때에는
모든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처럼 저항권을 실정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저항권의 행사가 일정한 전제조건 아래서만 가능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실정법적인 행사요건의 해석문제로 논의되게 마련이다.
  저항권을 일시적인 힘의 행사로 이해하려는 전통적인 관념에 따르거나
실정법이 저항권을 규정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저항권의 행사요건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든다. 저항권의 보충성(예비성), 최후 수단성, 성공가능성
요청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저항권은 다른 모든 헌법적 수단을 총동원해서도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침해를 막을 길이 없는 경우에 보충적, 예비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하고, 저항권의 행사는 헌법적 자치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최후 순간까지 기다려보고 헌법적 가치질서가
완전히 무너지지 직전에 그것을 구제하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한다. 또 저항권의 행사는 성공의 가능성(Erfolgsaussicht)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저항권의
행사는 결국 부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로 간주되게 된다.
  저항권을 위헌적인 권력행사에 대한 힘의 도전이라고 이해하는 경우에는
저항권의 남용에 의한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 행사요건을 되도록
엄격하게 정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카우프만이 지적한 것처럼 이
세 가지 요건이 전부 충족될 수 있는 저항권의 행사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항권의 행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헌법침해의
초기에 시작되어야 될 것이지만 이 단계에서는 아직 최후 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로 최후 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될 때에는 이미
불법권력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게 될 것이다.
저항권을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복종의 자세로 인식하고 이를 수시적이고
계속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려는 의도는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러나 저항권을 예방적인 기본권 보장 또는 편의적인 기본권 보장의 방법으로
행사하여서는 안된다. 또 저항권은 정치적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악용되어서도
아니된다. 저항권이 기본권을 포함한 헌법적 가치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국민의
최후 수단적 자구수단(Nothilfe des Burgers)으로서의 궤도를 이탈해서, 이른바
'인간의 생존' 내지 '인류의 적'에 대한 정당방위적 수단으로 탈바꿈하는
경우에는 대의민주적 정책결정의 메커니즘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된다.
기술문명의 발달을 추진시키고 이를 인간생활에 유익하게 활용하려는 정부의
미래지향적 정책결정에 반대하며 '자연보호', '핵공포로부터의 해방',
'무기경쟁의 중단', '미사일배치 반대' 등 각종 구호를 외치며 언필칭
'저항권'을 들고 나오는 경우 대의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책결정은 마침내 설 땅이
없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참여와 복종의
메커니즘에 바탕을 두 통치질서이다.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채널이 헌법상(주8) 개방되어 있는 겨우 이 채널을 통해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의사표시를 하고 일정한 정책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좋든 싫든 그에
복종해야만 민주주의는 그 명맥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수단으로서 저항권을 내세우는 것은 저항권의 중대한
궤도이탈이라고 해석된다.(주9)
  저항권을 힘의 행사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학설에 따르는 한 저항권을 아무리
평화적 방법으로 행사되더라도 공공의 안녕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실정법과
충돌이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행사요건의 충족여부에 대한 심각한
의견대립이 생기고 심지어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적 행위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힘의 행사로서의 저항권 행사의 현실적 딜레마가 있다.
"성공하지 못한 저항권의 행사는 저항권이 아니고 범죄이다"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한다. 따라서 저항권을 '힘의 행사'로만 이해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계속적인 저항, 즉 비판적 복종의 자세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최대한으로 보장함으로써 언로의 경색
때문에 쌓여가는 불만과 폭발 가능성을 줄여가는 정치인의 슬기는 기본권의
보장뿐 아니라 저항권의 순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6.양심의 문제
  행해진 저항의 합헌성 여부는 후일 법원에서 판정한다. 따라서 저항 자체가
급박한 결정의 압박 밑에서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법원이 차후적으로 상황판
단을 하는 위험도 있다. 따라서 저항시 수반되는 위험은 저항하는 자에게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 즉 앙가쥬망(Engagement)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양심의 자유(Gewissensfreiheit)가 저항권의 마지막 근거로 다시
등장한 게 된다. 문제는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자기에게만 어떤 법률의 적용의
예외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더 나아가 자기의 양심과
상충되는 법률의 개정을 목적으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까지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법에 대한
준수를 거부하는 것도 개인적 허용과 금지의 일이지 법의 일반적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주10) 양심에 의한 준법 거부는 개인적
사항이고 정치적 헌법의 가치관념과는 무관하다고 설명되기도 하고, 모순을
지적하기 위한 목적의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다수설에 대해 양심의 자유를 개인적 양심의 결정의 침해에 대한 방어뿐만
아니라 양심에 위배되는 법의 개정을 위해 동조자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행위까지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보는 소수설도 있다.
  저항하는 자가 저항하기 전에 실질적으로 저항권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었는가를
법원에 묻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언제 어떻게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는 저항자 스스로 양심에 의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저항의
합헌성 여부판단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행해지기 때문에 개인적 책임이 없이
위헌적인 저항권을 행사할 경우를 예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저항을 정당화하는
상황의 존재여부를 명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경우이다. 여기에 한 질문이 남게
되는데, 즉 가만히 있음으로써 상황에 따라서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의 침해를
방관하는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위헌적인 저항까지도 감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양자택일의
결정은 개인적 양심의 문제로서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영역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의 충돌은 '실천적 조화의 원칙'(der Grundsatz der praktischen
Konkordanz)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주11) 이 원칙을 적용하면 양심의 자유는
국가영역에서는 단지 부수적이고 사소한 문제에 한해서만 인정될 뿐이고
원칙적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이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볼 것이다.
  어쨌든 저항권에 대한 최근의 한계론은 혼란과 무질서로 헌정 자체를 파괴할
염려가 잇다는 점에 집중된다. 현재로는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그 이유는 초기의 권리조항에서 요청된 바와 같은 자유민주적 정치체제가
실현되었다는 점이고, 그 밖에도 본질상 실정법으로 제도화하기가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국가가 저항을 받아야 할 법과 정치체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근원적으로 요청된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베키오, 마리땡/장광수 역, '인권과 자연법, 정의의 문제', 양영각, 1983
  최종고, 에릭 볼프의 자연법사상, '법사와 법사상', 박영사, 1983
  오경웅/서돈각 역, '정의와 원천: 자연법의 연구', 박영사, 1980
  이태종, '법철학사와 자연법론', 법문사, 1984
  전월배, "악법의 법리", '법학'(서울대), 11권 1호, 1969
  마틴 크릴레/국순옥 역, '민주적 헌정국가의 역사적 발전', 종로서적, 1983
  마틴 골딩/장영민 역, '법철학', 제일출판사, 1982
  박은정, '자연법사상', 민음사, 1987
  Erik Wolf, 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 Karlsruhe, 1952
  Hans Welzel, Naturrecht und materielle Gerechtigkeit, 1963

  [주석]
  주1: Erik Wolf, 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 Karlsruhe, 1952
  주2: 자세히는 박은정, '자연법사상'(민음사, 1987)
  주3:장경학, '법률춘향전'(을유문화사, 1970)
  주4: 라드브루흐 공식에 관하여는 Bjorn Schumacher, Rezeption und kritik
der Radbruchschen Formel, Gottingen, 1985: Walter Ott, Die Radbruch'sche
Formel:Pro und Contra, Zeitchrift fur Schweizerisches Recht, Bd.107, 1988
  주5: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89), 290면
  주6: 아래의 설명은 주로 허여, '헌법이론과 헌법(상)'(박영사, 1985),
119면 이하: 같은 책(중, 1986, 중판, 169-71면 이하 참조
  주7: 자세히는 A.Kaufmann(hrsg.), Widerstandsrecht, Darmstatt, 1972:
J.Igsensee, Das legalisierte Widerstandsrecht, 1969: H.Schneider,
Widerstand im Rechtstaat, 1969
  주8: 기본권보장의 최후수단으로서 저항권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국내학자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학자는 권영성, 허영 등이고,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학자는 문홍주, 박일경 등이다.
  주9: J.Isensee, Das legalisierte Widerstandsrecht, S.32
  주10: Preub, Politische Verantwortung und Burgerloyalitat, 1984, S.34
  주11: K.Hesse, Grundzuge des Verfassungsrecht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1980, 계희열 역, '서독헌법원론'삼영사, 1985)


  [연습문제]
  1.'자연법'이란 무엇인가?
  2.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를 논하라.
  3.'자연법의 영원회귀'란 무슨 뜻인가?
  4.실정법주의의 기능과 한계를 논하라.
  5.악법도 지켜야 하는가?
  6.저항권의 근거와 한계를 설명하여라.
  7.우리는 언제 법을 지키고, 언제 저항해야 하는가?



       제7장: 법의 체계
   법률가에게는 언젠가 한번은 풍부한 색채의 세계를 일곱 가지 기본색 속으로
던져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식할 때가 올 것이다.
 - 라드브루흐(G.Radbruch)
  1.서 론 
    인간생활을 규율하는 법률은 단순한 조문의 집합체가 아니라 법규범의
통일체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을 법의 체계(legal system, Rechtssystem)라고
한다. 법학에서도 체계가 중요하며, 법률가를 가리켜 '체계병자'라고 부를만한
이유도 있다. 법은 물론 시대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기초하여
제정되지만 그 내면에서는 모순과 대립되는 요소를 간직하면서도 통일성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해석과 적용에 혼란을 초래함은 물론 법의 일관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법의 체계는 관찰의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대체로 국내법과 국제법의 구별문제, 국내법에 있어서 공법과 사법,
그리고 사회법의 구별문제가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법학도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럼으로써 복잡하면서도 정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2.국내법과 국제법
  국내법은 한 국가에 의하여 인정되어 그 국가에 적용되는, 국가와 국민 또는
상호간의 권리, 의무관계를 규정하는 법인 데 반해, 국제법(international law,
Volkerrecht)은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국가 상호간의 권리, 의무와 국제기구에
관한 법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국내법과 국제법을 일원적으로 보느냐 이원적으로 보느냐,
이원적이라면 국내법이 우위에 있느냐 국제법이 우위에 있느냐에 대하여
학자들의 이론이 분분하다. 이에 대하여는 국제법 시간에 상세히 배우겠고,
다만 여기에서 지적해야 할 것은 국제공법과 국제사법(Internationales
Privatrecht)이 있는데 국제사법은 국제법이 아니라 국내법에 속한다는 점이다.
국제사법(혹은 섭외사법)은 국가 상호관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의 국민과 외국인과의 법률관계를 정함에 있어서 자국법을 적용하느냐 그
외국인의 본국법을 적용하냐를 정하는 법이 대부분이다. 모두 자국법을 적용해도
좋겠지만 사정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없는 때도 있으므로 각 경우에 준거해야 할
법을 지정해 두는 것이다.


    3.공법과 사법
  로마법은 일찍부터 법을 공법과 사법으로 구별하여 체계화하였다. 그로부터
법학에서는 집요하게 공법과 사법의 이분체계가 논의되어 왔다. 그렇지만
무엇이 공법이고 무엇이 사법이냐를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별하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으며, 따라서 구구한 학설들이 등장하였다.
  1)이익설: 법이 공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공법, 사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사법이라고 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의 실정법은
이익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공익만을 위하고 사익의 보호만을 규정한 것은
거의 없다. 법은 원래 국가, 사회생활에 관한 규범이므로 공익의 실현과 함께
공익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익의 보호를 위한 규정이 있겠고 반면 사익의
보호와 아울러 공익의 실현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대표적
공법인 헌법이 보장하는 각종의 자유권 등은 국가적 이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반면 개인적 이익의 기본이 된다. 그리고 민법상의 등기제도, 친족, 상속
등에 고나한 법규는 개인적 이익의 보호에 관한 것인 동시에 국가적 이익에도
깊이 관련되다.

  2)주체설: 법률관계의 주체를 표준으로 공법과 사법을 구별하려고 하는
설인데, 국가 기타 공법인이 법률관계의 주체로서 규율하는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사인 상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을 사법이라고 한다.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가 주장한 견해이다. 그러나 이 설은 왜 국가 기타의
공법인에 대하여 법인 상호간의 관계와 다른 취급을 하는가를 명확히 설명하지
낳고 있다. 가령 국가 기타 공법인과 사인간에 매매, 임대차 등의 사적거래를
맺을 경우에도 사법인 민법의 규정에 의하여 규율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다.
  3)법률관계설: 법률관계의 성질을 표준으로 하여 공법과 사법을 구별하려고
하는 설인데, 권력, 복종의 관계, 상하평등의 관계, 즉 종적, 수직적인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사법이라 한다. 그러나 이 설에 의하면 국제법은
공법인 데도 국가간의 평등한 관계를 규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법으로
간주되는 모순이 생긴다. 떠 민법의 친족관계는 평등, 대등한 관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친족법을 공법이라 해야 할 모순이 나타난다.
  4)생활관계설: 인간의 생활을 국가생활관계와 사회생활관계로 나누고, 전자를
규율하는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후자를 규율하는 법을 사법이라 한다. "인간이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에서 이용하는 법규범의 사법이다"고
푸흐타(G.F.Puchta)는 말하였다.
  생활관계설이 오늘날의 통설적 견해이다. 공법은 국가권력의 직접 지배하고
규제하는 공적, 정치적 생활관계에 관한 법이며, 사법은 국가권력이 일단
후퇴하고 간접적인 지배체제하에서 어느 정도의 사적 자치의 원칙을 용인하는
사적, 경제적 또는 가족적 생활관계에 관한 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표준들에 의하여 공, 사법을 구별하려고 하는 실익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공, 사법의 구별을 부정하는
학설도 등장하는데, 예컨대 프랑스의 공법학장인 레온 뒤기(Leon Duguit,
1859-1928)는 권리부인론, 개인주의법 비판과 함께 공, 사법의 구별을
부정하였다.
  또한 켈젠 역시 공, 사법의 구별은 근대법학에 대한 정치의 침입을 옹호하는
이론이며, 법학의 순수성 또는 과학성을 해치는 것이라 하여 배격하였다.
그렇지만 복잡한 근대법체계를 무엇인가 구분, 설명해야 할 필요는 점점 더
절실해진다. 라드브루흐는 공법과 사법의 구별은 '선험적'(a priori)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험적이라는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며,
오히려 아래와 같이 역사적, 경험적 법의 발달과정에서 법의 이해해야 할
것이다.


    4.공, 사법과 법발전
  로마인들이 공, 사법을 구별한 것은 소송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로마법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게르만법에서는 공, 사법의 구별을 몰랐다
동양법에서도 공법에서 분리된 독립된 사법을 알지 못하였고, 사생활까지도
공법이 으레 지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서양에서도 공, 사법의 구별이 크게 부각된 것은 자본주의가 생성된
18,19세기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 아래서였다. 이 체제에서는
인간의 사적 자치(Privatautonomie)가 최대한 인정되고, 국가는 최소한 개인
생활에 간섭을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리하여 법질서도 국가적 공법질서
외에 개인적 사법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병리현상이 속출하게 되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부조리가 근대시민법의 사적 자치라는 미명 아래 팽배해 갔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국가가 다시금 적극성을 띠고 사회적 강자는 누르고
약자는 떠받치는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사법의 공법화 경향이라고도 하고, 전통적인 공, 사법의 구별이 불분명하게 된
제3의 법역으로서의 사회법(Sozialrecht)의 등장이라고도 말한다. 이에 대하여는
뒤에 설명하겠다.
  공법과 사법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은 현실적으로 사법제도에서도 남아 있다.
프랑스나 독일 등 이른바 대륙법계의 국가에서는 사법재판소(Tribunal
judiciare)와 계통을 달리하는 행정재판소(Tribunal administrative,
Verwaltungsgericht)가 있어서 민사사건과 형사사건 이외의 다른 행정사건을
관할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법원들의 관할권을 배분하기 위하여도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국, 미국과 같은 영미법계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행정재판제도는 원칙적으로 두지 않으며, 모든 법률상의 쟁송은 종국적으로
사법재판소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에 대륙법계 국가에서처럼 공, 사법의 구별이
절실하게 요청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법은 대체로는 대륙법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잇지만 영미법계처럼
행정재판제도를 실시하고 있지 아니하고 행정사건도 사법재판소에서 재판하게
되어 있으며 고등법원이 제1심 법원이 된다. 그러나 행정소송사건의 범위는
정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행정소송법 제1조는 공법상의 권리, 의무 관계에
관한 소송만이 행정소송사건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공법과 사법의
구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법학에서 공,
사법의 구별은 그 이론적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5.제3의 법역
  라드브루흐는 근대법에서 현대법에로의 발전을 '개인주의법에서
사회법에로'(vom individualistischen zum sozialen Recht)라는 표어로 설명한
바 있다. 자본주의사회는 사회주의자들이 예언하듯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황금을 낳는 오리'로서 자체 속에 수정원리와 대체재를 포괄하면서 계속
발전해가고 있다. 국가가 복지국가(Wohlfahrtsstaat)를 이념으로 기업과
근로자의 이해를 조절하며, '소유와 이용의 조화'을 꾀하고, 독점기업의 횡포를
억제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나타난 사회법은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의 부분적
모순을 수정하기 위한 법이지 자본주의의 부정을 의미하는 사회주의법은 아니다.
사회법은 근로자들에게 '인간다운 생존'(menschenwurdiges Dasein)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법 중에서 일부를 특별히 분리하여 발전시킨 것이다.사회법이란 개념도
넓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속에 노동법(Arbeitsrecht),
경제법(Wirtschaftsrecht), 사회보장법(Sozialversicherungsrecht)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물론 이에 대하여 경제법은 사회법과 그 원리가 다른
독립영역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광의의 사회법과
협의의 사회법의 개념을 그때그때 적절히 구별하여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법의 체계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체계화해 볼
수 있을 것이다(국내법).
  1)공법: 실체법(헌법, 행정법, 형법), 절차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2)사법: 민법, 상법
  3)사회법: 노동법, 경제법, 사회보장법
  이렇게 법을 삼분체계화하는 것이 오늘날의 통설이라고 하겠지만, 이 3분 체계
안에 구체적인 법역들을 어디에 소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또한 간단치
않다. 예컨대 사법이나 저작권법을 포함한 무체재산법(Immaterialguterrecht),
환경법 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세부까지 공, 사법의
구별을 논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오늘날은 과거에 상상치도 못한 영역에까지
법이 규율하여 법역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은 법체계론은 자본주의체제세서의 법체계론이고, 사회주의적
법체계에서는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레닌은 "모든 법은 공법적이다"라고
말하였듯이 공사법의 구별 자체가 부정된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법의 '붕괴'를
보고 있는 오늘날 법체계는 새로운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6.법학의 체계
  이처럼 복잡다기한 법의 체계를 어디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도서관에 가서 분류표(Katalog)을 보면 가장 빠르다. 그런데 한국에는 법학에
관하여 제대로 정리된 도서관이 없어서 실제로 정리된 실물을 볼 수 없고, 다만
서울대학교에 법학도서관이 존재할 뿐이다. 법학 전체의 체계와 구성을 알고
어느 분야에 무슨 책이 있는가, 그 저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두는 것만도 중요한
지식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특정한 목적이 없더라도
도서관에 가서 목록만 뒤적이는 것도 공부가 된다고 하겠고, 그런 가운데 무언가
얻는 것이 있으리라.


  [연습문제]
  1.법의 체계를 논하라.
  2.공법과 사법의 구별을 논하라.
  3.사회법의 성립배경과 내용을 논하라.
  4.'현대법'의 체계를 논하라.
@h:법학통론2@e

      제 8장 법의 효력

    내가 원하기 때문에 네가 해야한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너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판단이며, 이것이 바로 법의 기초이다.
-조이메(J. G. Seume, 1763-1810)

    1.서론
  법의 효력(Rechtsgeltung)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

"법이
현실생활 속에 실현되는 근거는 무엇이냐"를 구명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규범이 실현
하려
하는 이념과 현재 사실로서 실현되고 있는 상태가 합치되느냐의 문제인데, 이것을 실
질적
효력이라고 한다.
  한편 실정법은 시간적,공간적,인적으로 한정된 범위 안에서 효력을 가지는데, 이것

법의 형식적 효력이라고 한다.

    2.법의 실질적 효력
  법의 실질적 효력은 이론적으로, 법이 왜 '지금 여기에'(hic et nunc) 적용되고 있
는가를
설명하는 것인데, 상당히 법철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간단치 않다. 법의 효력이란 말

관련하여 법의 타당성(validity), 실효성(Gultigkeit)등의 말을 쓰기도 하는데, 타당
성이란
법이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정당한 자격 내지 권능을 의미하고, 실효성이란 법이 현실로 
지켜져
실현되는 근거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법의 효력은 타당성과 실효성이 합치
될 때
비로소 발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용어를 엄밀히 구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의 효력이라고 하면 법

어떻게 현실 속에 실현되느냐를 묻는 것인데, 사람의 행위와 관련되고 있는 하나의 규
범이
'효력'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구속성(Verbindlichkeit)을 갖는다는 것, 즉 사람은 규
범이
정한
방법대로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효력을 가지면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H. Kelsen, Reine Rechtlehre, 제 2판(Wien, 1960), S. 196.)
라드브루흐는 법효력의 문제란 복종에의 요청, 그 의무부과력(Verpflichtungsraft)에 
관한
문제라고 하였고,(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117-126면.)
 벨첼(Hans Welzel, 1904-1977)도 "법의무와 법효력은 말하자면 법을 통한
규범적 구속력(normative Bindung)이라는 동일한 사태의 두 개의 서로 다른 국면에
불과하다"(H. Welzel, Macht und Recht, Abhandlungen zum Strafrecht und zur
Rechtsphilosophie(Berlin, 1975), S. 291.)고 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의미의 효력이 
법에 있어서
발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1. 법학적 효력론
  이러한 물음에 법학적으로 대답을  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켈젠(H. Kelsen)의
순수법학적
효력이론이라고 하겠다. 이에 따르면 법의 효력은 당해 국가와 사회의 법질서 속에서 
상위의
형식적 및 실질적 수권규범에서 위임받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법의 단계구조에서처

효력의 위계질서도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가 법의 효력을 순전히 법률적 효력, 즉
합법성(Legalitat)으로만 파악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순수법학의 이론 자체가 한계를 안고  있듯이 법률적 효력론은 최상위 수권규범인 헌
법이
어떻게
효력을 갖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근본규범(basic norm, Grundnorm)이라는 개념을 창
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근본규범은 칸트의 선험철학에서 말하는
'논리적 전제'(logische Voraussetzung)에 의거한 것으로, 켈젠 자신은 이렇게 설명하
였다.
  하나의 규범의 효력근거에 대한 모색이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처럼 끝없이 갈 
수는
없다. 이 모색은 최후,최고의 규범으로 전제된 하나의 규범에서 끝나지 않으면 안 된
다. 이
규범은 최고의 규범으로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규범은 -또 다
른 더
높은 규범으로부터 그 권한을 얻어야 하는- 하나의 권위에 '제정'되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규범의 효력은 더 이상 더 높은 규범에서 이끌어내어질 수 없으며 그 효
력의
근거는 더 이상 문제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최고의 것으로 전제된 하나의 규범이 근본
규범이다..... 근본규범은 동일한 질서에  속하는 모든 규범의 효력에 대한 공통적인
원천이며
공통적인 효력근거인 것이다.(H. Kelsen, Reine Rechtslehre, S. 197)
  그러나 이 근본규범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에 켈젠의 선험적,논리적 전제니
'가설'(Hypothese)이니 '실정법적 의미의 헌법이 아니라 논리적 의미에서의 헌법'이라
느니
하는 표현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켈젠은 '사람은 헌법이 규정하는 대로 행위해야 한
다'고
하는 근본규범을 전제로 하는 조건 아래서 마치 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종교적
근본규범이 신의 개개의 명령과 그것에 의거한 명령들에 정당성을 부여하듯이, '법적'
근본규범은 그것이 관련된 실정법질서에 정당성(합법성)과 객관적 효력을 부여한다고
보았다.
실로 켈젠에 있어서는 실정법질서는 이미 주어진 것이고 근본규범도 단지 효력의 기초
로서
'덤으로 생각된' 것과 같았다.(K. Engish, Auf der Suche nach der
Gerechtigkeit ; Hauptprobleme der
Rechts-Philosophie(Munchen, 1971), S. 61.)
  그래서 근본규범에 대하여 그것을 순전히 동적원리로 파악하여
어떠한 헌법에도 그것이 실효적이기만 하면 내용에 관계없이 축복을 내리어 법효력의
문제를 '너무 많이' 해결해 준다는 비판이 있다.( H. Henkel, Einfuhrung in
die Rechtsphilosophie(Munchen, 1964), S. 451.)
  사실 켈젠은 "어떠한 실정법질서도... 특히
규범의 내용이 어떤 이유로 부정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효력이 박탈될 수는 
없다
(H. Kelsen, "Vom Geltungsgrund des Rechts", Die Wiener rechtsheoretische Schule, 
Bd.
2(1968), S. 1423.)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실효적인 강제질서는 '마치' 객관적으로 효력있는
것'처럼'(als ob) 해석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그야말로 '사실적'인 것의
전문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아니냐는 비판도 면할 수 없게 되었다.(H. Welzel, Die Frage nach der
Rechsgeltung, S. 28.)

  2. 사회학적(역사적) 효력론
  순수한 법률적 효력론으로서는 법효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오히려 사회학적 
내지
역사적 효력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주목하게 된다. 사회학적 효력론으로서 다
음과
같은 몇 가지 주장방향들을 들 수 있다.
  1) 사실의 규범력설 : 이 설은 법의 타당성의 근거를 '힘'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사실의 규범력'(normative Kraft des Faktischen)이란 사실 속에 규범으로 바뀔 힘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상에 근거하는데, 이것을 강조한 사람은 옐리네크(Georg Jellinek)
이다.
그는 관행이라는 사실로부터 관습, 더 나아가서 관습법이라고 하는 규범이 생기는 것, 

혁명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종래의 규범체제가 부정되고 새로이 창설된 규범체계가 효
력을
가지게 되는 것 등을 '사실의 규범력'으로 설명한다. 법과 사실의 연관성의 문제에 관
하여
시사하여 주는 바 많지만, 그것이 법존립의 기초를 오직 사실의 힘에서만 구한다면
법실력설과 결합하게 된다. 
  2) 실력설 : 법을 만들고, 법을 움직이고, 법에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강자의 실력
이라고
하는 학설인데, 그 역사는 소피스트(Sophist)에서 비롯된다. 극단적인 실력설은 법은 
실력
자체라고 하며,  "실력이  법이다"(Macht ist  Recht)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Ma
rxism)
에서는 
"법은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에 대응하는 생산관계를 토대로
하면서, 그 위에 구축된 상부구조이며, 또 계급적 지배의 수단이고, 지배계급이 국가
권력과
결합하여 규범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법은 곧 권력이다"라고 본다. 실력설은 

지배자가 법의 효력을 지지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가지느냐의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
라드브루흐는 실력설을 비판하기를, "명령과 힘은 의욕과 능력을 의미할 뿐이며, 따라

명령자에 대해서 기껏해야 필연을 생기게 할 뿐이지, 당위를 생기게 할 수는 없으며, 
아마도
복종을 낳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결코 복종에의 의무를 낳게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119면.)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도 "아무리 강한 자라도 만약 그가 자기의 힘

권리로, 그리고 복종을 의무로 변경시키지 않는다면 항상 최강자일만큼 충분히 강한 
것은
못된다"고 하였다.(J. J. Rousseau, Du Contrat Social, 제 1권 3장, 238면.)
  3) 여론설: 영국의 다이시(Albert Venn Dicey, 1835-1922)는
여론(public opinion, offentliche Meinung)이야말로 법의 효력의 근거이며, 또 법창
설의
연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그는 "여론이란 일정한 
법을
유익하다고 인정하고, 다른 법을 해롭다고 인정하는, 사회에 널리 통용되는 신념이다"

말했다. 그러나 '다수'의, 신념도 '소수의 신념에 의해 배제되어 법을 창조할 힘을 상
실하게
될 때, 그것은 법을 창조하여 지지하는 최후의 힘이 될 수 없다.
  4) 승인설: 이것은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수인이 법규범을 준수할 행동의
준칙으로
'승인'(anerkennen)하고 이를 지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설의 대표자는 독일학자
비얼링(R. Bierling, 1841-1919)이다. 그러나 이 견해가 "법의 효력의 근거가 사회에

생활하는 일반인의 법에 대하여 인정하는 정신적 지지에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으나
법의 효력근거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즉 무정부주의자는 현존의 실정법

승인하지 않지만 법은 이런 자들에게도 효력을 미친다. 또 이 기존의 설은 법의 효력

설명할 수는 있으나, 새로 법이 성립하는 근거는 설명할 수 없다.

  3. 법철학적 효력론
  사회학적 이론만으로도 법효력의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법철학의 
문제로
돌아와 법의 효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적 효력론'(philosophische Geltungslehre)이라는  이름으로 라드브루흐에 의하

개척된
이 효력론은 한 마디로 법의 효력을 법이념 내지 가치와 관련지어 설명하려는 일종의
법이념설 내지 정당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효력은 언제나 가치효력이다"(H. Ricker
t,
System der Philosophie, 1(Tubingen, 1972), S. 122.)라는
리케르트(Heinrich Rickert, 1863-1936)의 대명제처럼, 라드브루흐는 "법의 효력은
실정법에도
힘이나 승인과 같은 사실에도 의거할 수 없고, 오로지 더 높은 또는 가장 높은 당위, 

하나의 초실정적인 가치(uberpositive Wert)에만 의거할 수 있다"(G. Radbruch, Vorsc
hule
der Rechtsphilosophie(Gottingen, 1959), S. 36.)고 하였다. 또 법을
'문화대상'(Kulturgegenstand), '의미형성물'(Sinngebilde)로 보는
빈더(Julius Binder, 1870-1939)나 라렌츠(Karl Larenz, 1903- )도 마찬가지였고, 현

독일의
법철학계에 법이념설로 법의 효력을 설명하려고 하는 학자들로 벨첼,
카우프만(Arthur Kaufmann, 1922) 등을 들 수 있다. 벨첼은 "힘으로서의 법은 강제할
뿐이며, 가치로서의 법은 의무를 부과시킨다" H. Welzel, "Naturrecht und
Rechtspositivismus", Abhandlngen zum Strafrecht und
zur Rechtphilosophie(Berlin, 1975), S. 286.)고 하고, 카우프만은 "법이념이란 법이
법으로서 효력을 갖기 위하여 지향해야만 하는 법의 목적이다"
(A. Kaufmann, Rechtsphilosophie im Wandel(Frnkfurt, 1972), S. 230. 이 책에 대한
소개로는 '현대사상 100권', '신동아', 1986년 1월호 부록.)
라고 하였다. 라렌츠도
"법은 의미현실(Sinn-Wirklichkeit)이며, 그리고 말하자면 이념의 실현으로서 효력있

것이다"(K. Larenz, Das Problem der Rechtsgeltung, S. 31.)고 하였다. 마이어(Max
Ernst Mayer, 1875-1923)는 "마치 둥지에서 쫓겨난
새처럼 효력의 개념은 가는 곳마다 자리 잡으나 어느 곳에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법철
학의
여기 저기를 날아다닌다"(M. E. Mayer, Rechtsphilosophie, 2. Aufl(Berlin, 1926), 
S. 56.)고
말하였는데, 법철학에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법이념과 결부시켜 법효력을 설명한다고 하지만, 위에 지적한 법의 타당성과 실효성

양면으로 나누어 보면 철학적 효력론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감이 있다. 그래서 사회
학적
효력론과 다시 결부시켜 생각해보자면 승인설(Anerkennungstheorie)에 대한 새로운 해
석이
주목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설이 맞다 틀리다를 따지기보다도 법의 효력의 문제는 
법의
이념과 결부시켜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국민이나 아니면 법제정당국에
의하여서만이라도 '승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혹은 의제)이 있어야 할 것이다.

    3. 법의 형식적 효력
  실정법은 구체적 사실에 적용된다. 적용되는 사실이 어떠한 시기에 발생하였는가, 
어떤
장소에서 발생하였는가, 또 어떠한 사람에 의하여 발생되었는가가 문제되는데, 이것을 
법의
시에 관한 효력, 장소에 관한 효력, 사람에 관한 효력이라고 한다.
  1. 법의 시간적 효력
  (1) 법의 시행
  제정법 효력은 시행일로부터 폐지일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을 법의 시행기간 또는
유효기간이라 한다. 법은 이 기간 안에 발생한 사항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
다.
법은 시행에 앞서 '공포'하여야 한다. 공포는 법의 성립과 그 내용을 국민에게 주지시
키기
위한 것이다.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
력이
발생한다(헌법 제 53조 7항).
  공포일로부터 시행일까지의 기간을 법의 주지기간이라 한다. 그러나 법에 따라서는 
따로
시행일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민법(법률 제 471호)은 1958년 2월 22일에 공포되어 19
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으므로 거의 2년간의 주지기간을 두었다. 재산 및 가족생활에 걸친,
중요하고 방대한 법률이므로 국민일반에게 충분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 다고 규정한 법도 있다. 1961년 12월 4일 개정된 근로기
준법은
그 부칙에 걸쳐 동시에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나(동시시행), 때로는 지방에서는
중앙으로부터의 거리를 참작하여 시행일을 달리할 수 있다(이시시행). 가령 울릉도 같

섬에서는 법의 전달과 주지에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이시에 시행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2) 법의 폐지
  법이 구속력을 잃는 것을 폐지라고 한다. 법의 폐지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1) 명시적 폐지: 첫째, 법령이 그 시행기간(유효기간)을 정해놓을 경우엔 그 기간의
종료로
그 법령은 당연히 폐지되고, 폐지 후에는 폐지 전의 사실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수 없
다.
여기에 중요한 예외로서 한시법(Zeitgesetz)이란 것이 있다. 둘째, 신법에서 명시규정
으로
구법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폐지한다고 규정한 때에는 구법은 당연히 폐지된다.
  고유한 의미에서의 한시법이란 폐지 전에 미리 그 시행기간, 즉 일반적 유효기간을
예정하여 그 기간의 경과로 당연 실효할 것을 정하고 있는 법규를 말한다. 다만 유효
기간을
법규제정의 당초에 정하건 폐지에 앞서서 정하건 묻지 않는다. 한시법은 그 폐지 후에

효력이 상실되지 아니하고 폐지 전의 행위에 대하여 추급효를 가지는 것이나, 입법예
에서는
명문으로서 폐지 전의 행위에 대하여 벌칙에 관여하는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별규정없이 형벌법규의 폐지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그 법이
한시법인가의 여부를 논할 필요가 있다 한시법의 의미에 관하여는 훨씬 넓게 이해하려

견해가 있다. 유효기간의 예정이 없더라도 법률의 내용이 일시적(필요적) 사정에 대응
하기
위한 것이면 모두 한시법이라는 견해가 있고, 또 당해법규의 입법정신을 기초로 하여
한시법의 범위를 한정하려는 견해가 있다. 법은 그 정신에 입각하여 합목적으로 해석
하여야
할 것은 법해석상의 대원칙인 이상 법의 입법동기도 참작하여 그 취지에 알맞도록 해
석하는
것은 조금도 부당하지 아니하다. 물론 법의 명문이 없는데 추급효를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견해(다수설)도 있으나 타당하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행위시
에 그
행위를 벌하는 법규는 명백히 존재하고 있었고, 행위당시에 적법이었던 행위를 사후의
입법에 의하여 처벌하려는 것과는 근본취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2) 묵시적 폐지 : 동일한 사항에 관하여 신법과 구법이 모순,저촉될 때에는 그 저촉

한도에서 구법은 묵시적으로 당연히 폐지된 것으로 본다. 국가의사는 통일적이어야 하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신법은 구법을 깨뜨린다"는 원칙이 지배한다.

  (3) 법률불소급의 원칙
  새로 제정된 법률은 그 이전에 발생한 사실에 소급하여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원칙, 

형사에 관하여는 법률의 소급효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밖의 경우에는 기득권의 
존중
내지 법적 안정성의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이 원칙이 인정되고 있지만, 반드시 절대적
인 것은
아니며, 신법이 관계자에게 유리한 경우, 또는 기득권을 어느 정도 침해해서라도 신법

소급시킬 도덕적 내지 정책적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서 소급효가 인정된다. 혁
명은 그
현저한 경우이지만, 새로운 이념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경우 등에도 이러한 예가 있다. 
민법
부칙 제 2조, 상법시행법 제  2조 등에서 신법의 소급효를 인정하였으며, 법률불소급

원칙이
가장 엄격히 적용되는 형법에서도, 신법이 구법보다 형사피고인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신법이 소급하여 적용된다고 규정한다(형법 제 1조 2항).
  1) 사후법 제정금지의 원칙: 이것은 행위시에는 범죄로 되지 않는 것이 사후에 제정

법률에 의하여 범죄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사후법의 제정이 금지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죄형법정주의 내용을 이룬다.
  2) 기득권존중의 원칙: 구법에 의하여 취득한 기득권은 신법의 시행으로 소급하여
박탈하지
못한다는 원칙이다 .자연법론자들이 개인의 재산권에 관하여 주장한 데서 유래한 것이
며,
역사적으로 사유재산의 확립에 이바지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원칙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입법에서 제한할 수 있다.

  (4) 경과법
  법령의 제정, 개폐가 있었을 때 구법시행시의 사항에는 구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신
법시행
후의 사항에 대하여서는 신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구법시행시에 발생한
사항으로서 신법시행 뒤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사항에 관하여는 구법과 신법 중 어
느 것을
적용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규정된 것이 경과법이며, 법령을 
개폐할
때 명문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대개 본법의 부칙에서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나(민법 부칙 제 5조), 상법시행법과 같이 별도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2. 법의 장소적 효력
  법의 장소적 효력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적용된다.
  1)속지주의: 이것은 범죄인의 국적여하(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를 불문하고 자국영

안에서
발생한 일체의 범죄에 대하여 우리나라 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헌법 제 3조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권은 북한에도 당연히 미쳐야 하지만 사실상으로 현행법이 적용
되지
못한다.
  2)속인주의: 이것은 범죄지 여하를 불문하고(외국에서의 행위라도) 자국민의 범죄에
대하여
우리나라 법을 적용한다는 원칙이다.
  3)보호주의: 이것은 범죄지 및 범죄인의 여하를 불문하고, 자국 또는 자국민의 법익

침해하는 범죄에 대하여 우리나라 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4)세계주의: 이것은 범죄에 대한 사회방위의 국제적 연대성이라는 견지에서 범죄인 

범죄지 여하를 불문하고 일체의 반인류적 범죄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법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속지주의를 기본원칙으로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를 가미하고 있
다.
속지주의의 소극면을 철저하게 주장한다면 국외에서 발생한 일체의 범죄에 대하여 우
리나라
법을 적용할 수 없으므로, 속지주의 원칙을 보충하기 위하여 속인주의 보호주의를
가미하였다.
  세계 각국이 채용하고 있는 주의는 일치하지 않고, 또 우리나라 현행법은 전술한 바

같은
주의들을 채용하고 있으므로, 외국에서 행한 범죄에 대하여 외국의 법과 우리나라 법

경합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외국에서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 확정재판을 받

자라 할지라도 다시 우리나라의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원칙에 대하여는 약간의 예외가 인정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한 조례

규칙은 그 목적상 그 지방에 한하여 적용되며, 도시계획법(1962년 법률 제 983호)은 
도시에
한하여 적용된다.

  3. 법의 인적 효력
  '사람에 관한 효력'은 법이 어떠한 사람에게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다. 법은 전술한 
'장소'

'시'에 관한 효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법의 사람에 관한 효력의 문제는 결국 예외로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
람에
관한 문제에 귀착된다. 이 예외로서는, 국내법상의 관계로서 적용을 받지 아니하는 자
와,
국제법상의 관계로서 그 적용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구별하여 논할 수 있다.
  1) 국내법상의 예외: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가 아니고는 재직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 84조). 국회의원은 불체포의 특권이
있고(헌법 제 44조), 또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외부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헌법 제 45조). 이것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임기 중에 안심하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제한없이 적용되어야 할
터이지만, 특별법은 일정한 범위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공무원법(1963년 법률 제 1325호)은 국가공무원에게만,
근로기준법(1953년 법률 제 286호)은 사용자 및 근로자에게만,
미성년자보호법(1963년 법률 제 1448호)은 미성년자 및 그 친권자에게만 적용된다.
  2) 국제법상의 예외: 치외법권을 누리는 자는 국제법상 현재 체류하는 나라의 과세
권과
경찰권에 복종하지 않는 특권이 있는데, 이러한 특권자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외국원
수,
대통령, 국왕, 외교사절(대사, 공사 기타)  및 그 가족과 수행원, 외국에 주재하는 군
대,
외국
영해상의 군함의 승무원 등이 이에 속한다.
  이 때에는 속지법주의가 배척되고 속인법주의가 적용된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군의
지위에 관하여는 가령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의 상호방위조약 제 4조에 의한 시설과 구
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1967년 조약 232)에서 상세히 규정하

있으며, 어느 정도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또 참정권, 청원권, 병역의무 등 '헌법
상'의
권리의무는 외국에게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참고문헌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삼영사, 1975, 116-126면; 심헌섭, '법철학1', 법
문사,
1982,  62-102면; 김증한, '민법총칙', 박영사, 1986; H. L. Schreiber, Was heist
geltendes
Recht? Zum Problem der Rechtsgeltung, '법철학과 형법'(황산덕박사화갑기념), 법문
사,
1979;
라렌츠/양창수 역, '정당한 법의 원리', 박영사, 1986; 심헌섭, 법의 효력에 관한 연
구,
'법학'(서울대) 21권 1호, 1980.
  Hans Welzel, Frage nach der Rechtsgeltung, 1966; H. Hoffmann, Legitimitat und
Rechtsgeltung, 1977; H. Kelsen, General Theory of Law and State, 1973; K. Laren
z, Das
Problem der Rechtsgeltung, 1929.

  연습문제
  1. 법의 효력의 근거를 논하라.
  2. 법의 사회학적 효력과 법률적 효력을 논하라.
  3. 법의 시간적 효력을 논하라.
  4. 법의 장소적 효력을 논하라.
  5. 치외법권의 효력을 논하라.
@ff

      제 9장 법의 적용과 해석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정신은 살리는 것이다. -신약성서 고린도후서 3장 6절
    법학적 해석은 앞서 생각된 것을 추고하는 것(Nachdenken eines Vorgedachten)이 
아니라
생각된 것을 마지막까지 생각하는 것(Zuendedenken eines Gedachten)이다.
-라드브루흐(G. Radbruch)

    1. 법의 적용
  입법부에서는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에서는 법률을 집행하며, 사법부에서는 법률

적용(anwenden)한다. 오늘날 법규가 적용된다는 것은 재판과정에서 더욱 명확히 표시
된다.
재판과정을 살펴보면 적용될 추상적 법규를 대전제로 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사건을 소전제로 하며, 거기에서 판결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삼단논법'(Syllogis
m)의
형식을 밟아서 법이 적용된다.
  가령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만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 329조)는 법규를 대전제로 하고, A가 B의 재물을 절취했다는 사실을
소전제로 하여, 거기에서 판결로써 A를 3년 징역에 처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절도죄에 관한 형법 제 329조를 적용하는 것이 된다.

  1. 사실의 확정
  법규를 적용하려면 먼저 소전제가 되는 사실을 확정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절도'행위'를
했다는 사실을(위에서 A의 절도행위) 확정하지 못하면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을 확정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1) 입증
  사실의 확정은 증거(Beweis)에 따른다. 재판에서 사실의 존부에 관하여 확신을 얻게 
하는
자료가 증거이며, 재판관의 사실인정의 객관성을 담보한다. 특히 형사소송법의 절차에

당사자주의에 철저한 법정에서는 오로지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거증책임이 있고, 직권
주의
법제에서는 법관도 입증에 개입할 수 있다. 이것을 '입증책임'(Beweislast) 또는
'거증책임'이라고 한다.
  (2) 추정
  증거로 확정하지 못한 사실을 우선 있는 사실대로 확정하여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사실의 추정'(Vermutung)이라 한다. 가령 민법 제 844조 1항에서 "처가 혼인 중 포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만약 사실은 그 자가 처의 불륜행위로 인한 
타인의
자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추정된 효과는 생기지 아니한다. 이것은 입증의 번거로움을 
면하기
위해 우선 사실대로 확정하여 보자는 것이다.
  (3)의제(간주)
  민법 제 28조에서 "실종선고를 받은 자는 실종기간이 만료한 때 사망한 것으로 본
다"고
규정한 것이 한 예인데, 그것은 실종자의 법률관계에 결말을 지어주기 위하여, 실종선
고를
사망으로 동시하여 혼인의 해소, 상속의 개시 등의 효과를 생기게 하는 것이다. '간
주' 또는
'의제'(Fiktion)는 '추정'과 달라서 반증을 들어서 당장에 그 효과를 전복시키지 못하
는 데

차이가 있다. 가령 실종선고를 받아서 사망으로 간주된 자가 생존하고 있음을 입증하
더라도
그것만으로 당장에 선고의 효과가 전복되는 것은 아니며, 따로 선고의 취소를 위한
판결절차를 밟아야 한다(민법 제 29조).  이렇게 볼 때 사실의 확정에 있어서 추정보

간주의 효력이 더 강함을 알 수 있다.

  2. 법의 발견
  위에서 본 A의 절도 사실이  증거로 확정되면 다음에는 그 사실에다 '적용'할 법을
발견해야
한다. 그런데 '법을  발견한다'(Rechtsfindung)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법상의
생활관계에서도
어떤 물건을 '빌려준다', '빌린다'는  경우 빌리는 물건이 금전이나 미곡이면 소비대
차가
되고,
대지나 가옥이면 임대차가 되며, 임대료를 물면 유상임차가 되고, 물지 않으면 사용대
차로
된다.
  법을 발견하려면 먼저 법의 의미내용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의미내용이 분명하
지 못한
법은 현실의 생활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법의 의미내용을 명백히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바로 법의 '해석'(interpretation, Auslegung)이다. 이리하여 
법관은
한편에서 사실을 확정한 다음에, 또 한편에서 법을 찾아내어 해석한 법을 사실에 적용
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실의 확정과 법의 해석은 법의 적용을 통하여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
이다.

    2. 법의 해석
  1. 의의
  법은 언어로 표현되어 있고, 쯔바이크(Arnold Zweig)의 표현대로 "언어는 우리를 위

생각하고 시를 짓는다." 언어철학자들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인간은 언
어를
떠나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사고가 그에 구속된다.
  법의 의미내용을 밝혀내는 것, 즉 법의 구체적 적용을 위해 법규의 의미를 체계적으

이해하고 법의 목적에 따라서 규범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이론적 기술적 조작을 법의
해석이라 한다. 그러므로 해석으로 규명해야 할 법규의 의사내용은 입법자의 의사에만
국한될 것도 아니고, 법규의 물리적 의미나 논리적 의미에만 한할 것도 아니다. 물론
법해석의 대상이 언어로 표현된 입법자의 의사인 한, 그 대상에 대한 인식에는 입법자

의사, 문리해석, 논리해석 등의 검토가 전단계적으로 행해질 것이지만, 이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법의 객관적 의미를 밝혀내는 데 필요한 준비단계로서의 자료 내지 조건이 
될 수
있을 따름이다. 법의 해석은 법에 내재된 이념과 정신을 객관화하는 데 있는 것이며, 
그것은
단순한 형식론적 방법을 넘어서 목적론적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각 법
규가
가지고 있는 객관적 목적과 그 시대의 사회적 실정들을 고려해서 목적적 가치관계적으
로 그
의미내용을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2. 해석의 방법
  해석에는 유권해석과 학리해석이 있다. 유권해석이란 관청이 유권적으로 내리는 해
석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학리해석인데 이는 사인에 의한 해석 특히 법학자가 학설로서 전개

법해석을 가리킨다. 이 해석은 국가권력의 뒷받침이 없으므로 그 자체로서는 하등 구
속력이
없다. 그러나 시대의 권력으로 좌우되지 않고 순수한 학문적 견지에서 하는 해석이므

일반여론에 대한 설득력도 그만큼 강하며 유권해석에 대하여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학자의 법해석이 재판과 입법의 기초가 된다. 종래의 법학은 이런 종류의 해석에 주력

기울여왔으며, 학리해석은 법학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로마 제정시대에는 트리보니아누스(Tribonianus), 울피아누스(Ulpianus),
파울루스(Paulus),
파피니아누스(Papiniaus), 가이우스(Gaius) 등 5인의 법학자의 법해석이 학설로서 구
속력이
있었다. 6세기 전반 동로마제국 중흥의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시민법대전'(Corpus Iuris Civilis)을 편찬할 때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가 크게 활약
했고,
'시민법대전'중에서 '학설휘찬'(Digesta,  Pandectae)은 울피아누스,  파울루스, 파피
아누스
등을
비롯하여 고전시대의 법학자의 저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성립되었으며, 또한
'법학제요'(Institutiones)는 가이우스의 저서를 주요자료로 하여 편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815해방 후 학문의 공백기를 거쳐 1960년대 이후에 와서 법학교수들에 의하여 학설들

형성되었다. 이처럼 법학자의 학설이 입법의 근간이 되고, 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을 
보고,
이를 법원으로 인정하여 "학설법"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아래에서 학리해석을 문리
해석과
논리해석으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1)문리해석
  이것은 법규의 문자 및 문장의 의미를 하나하나 밝힌 후에, 다시 조문 전체문자의 
구성을
검토하여 그 의미내용을 파악하는 해석방법이다. 위에서 예시한 절도죄의
규정(형법 제 329조)을 해석할 때, 먼저 '타인의 재물'이란 무슨 뜻인가, '...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따지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것은 주로 조문의 국어학적 해석 또는 문법

해석(philologische Auslegung)을 꾀하는 것인데, 법해석의 기초작업이며 제 1단계의
해석이다.
그러나 조문의 문자에만 사로잡혀 법에 내재하는 목적이념을 살피지 않는다면, 그런
법해석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1)축소해석: 법조문의 문구를 문리적으로 해석하여 법조문의 언어적 표현 자체보다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조문의 언어적 표현을 제한하는 해석이므로 제한해석이라
고도
한다. 가령 민법 제 109조 1항에서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동조 2항에서는 "전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
의 제
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데, 이 경우의 '제 3자'는 법조문의 언어적 표현
대로
해석한다면 당사자 이외의 모든 제 3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겠으나, 이 조문의 의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제 3자의 범위를 한정하여 "당사자와 그 포괄승계인 이외의 자로서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로 생긴 법률관계에 의거하여 새로운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자"
로 좁게
해석되는 것이다. 또 형법 제 329조의 절도죄의 객체인 '재물'에는 부동산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여 축소해석을 한다.
  2) 확장해석: 법규의 문장의 의미를 확장하여 널리 이해하는 법의 해석의 한 방법이
다.
문리해석에 의한 법문의 단순한 해석이 너무 좁아서 법규의 진정한 의도를 실현할 수 
없을
때, 논리해석에 의한 논리적 방법으로 법문의 의미를 확장하여 널리 해석하는 태도이
다.
예를
들면 형법 제 257조의 '상해'에서 법문의 의미로만 보아 생리적 절단에 국한하지 않
고,
여성의 두발을 절단함으로써 외관상 손상을 초래한 경우에도 상해죄를 적용하도록 '상
해'의
의미를 확장하여 널리 이해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3) 유추해석: 어떤 사항을 직접 규정한 법규가 없는 경우에, 이와 가장 비슷한 사항

규정한 법규를 적용하는 것, 즉 비슷한 갑을 두 개의 사실 중 갑에 관해서만 규정이 
있는
경우에, 을에 관해서도 될 수 있는 대로 갑에 근사한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유추(analogy, Analogie)이다. 예컨대 '권리 능력없는 사단'의 법률관계에 관해서는 
민법에
규정이 없으므로 법인의 규정을 유추적용해야 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가) 확장해석과의 차이 : 사례의 성질이 같지만, 전혀 다른 사례에 관하여 규정된 
법규를
가져다 문제되는 사례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유추는 확장해석과는 다르다. 즉 확장해석

경우에는 법조문의 언어적 표현 자체의 의미보다 확장하여 해석하지만, 그것은 당해 
사례에
관하여 규정된 법규를 해석하는 것이다.
  (나) 반대해석과의 차이: 반대해석은 법조문의 언어적 표현과는 반대의 의미로
해석하므로,
그 법조문에 근거를 두고서 해석한다. 이에 반하여 유추는 문제가 되는 사례에 관하여
법규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 다른 법규를 가져다가 적용하는 방법이므로 반대해석과는
다르다.
  (다) 준용과의 차이: 유추와 준용은 비슷하지만 역시 다르다. 가령 민법 제 10조에

"제5조 내지 제 8조의 규정(미성년자의 행위능력에 관한 규정들)은 한정치산자에 준용
한다"고
규정하였다. 미성년자의 능력에 관한 규정을 그것과 '본질을 달리하는' 한정치산자의
능력에다 적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하는 것을 준용(entsprechende Anwendung)이라 한
다.
한정치산자의 능력을 미성년자의 그것과 동일하게 입법하려고 할 때 미성년자의 능력
에 관한
민법 제 5조 내지 제 8조의 4개조를 다시 중복하여 규정하지 않고, 간단하게 입법할 

있으므로 준용은 입법경제상의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으나, 그 반면 법규의 검색을 번
잡하게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석의 의문을 가져오는 등 단점이 있다. 이처럼 준용은 명문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하는 것인 데 반하여, 유추는 명문의 법규로 인정하지 않는 사례
에 그와
비슷한 예에 관한 법규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유추는 법해석상의 방법인 데 반
하여,
준용은 입법 기술상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라) 형법에서의 유추해석의 금지 : 형법에서는 유추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해
석상의
원칙이다. 형법에서는 죄형법정주의가 지켜지고 있으므로 피고인의 이익은 해하지 않
기 위해
함부로 유추를 허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형법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in dubio, proreo)라는 원칙이 인정되고 있다.
  (2)논리해석
  1) 의의: 법규의 문자나  문자의 문법적 의미에 구애받지 않고, 또 입법자의 심리적
의사에
관계없이 법문의 논리적 의미에 관심을 두는 해석이다. 법규의 발생적, 심리적, 주관

의의를 초월한 객관성의 보장에 이바지 하기는 하지만, 과도한 형식논리의 편중은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의 폐단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제사회에 적합치 않

모순을 발생시킨다.
  2) 비교해석: 법규를 구법, 외국법 등과 비교대조하면서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 때
에는
입법론적 판단이 해석이라는 이름 밑에 주입되는 수가 있다. 특히 외국법을 많이 수용

나라에서는 그 모법과의 비교해석이 중요하다. 두 개 이상의 나라의 법을 비교하는 학
문을
비교해석(Comparative law, Rechtsvergleichu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19세기 말부터 
법의
사회화, 세계화의 현상에서 유래하는 것이지만, 1900년에 살레이유(Salleilles)가 제
창하여
조직된 '파리 비교법학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오늘날 거대한 연구분야를 
이루고
있다.
  3)목적해석: 법의 목적에 따라 행하는 해석의 한 방법으로 목적론적
해석(teleolegische Auslegung)이라고도 한다. 개개의 법규의 목적뿐만 아니라 널리 
법의
목적이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법의 성립 당시의 목적뿐만 아니라, 법의 적용
시에
요청되는 법의 목적도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논리해석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을 

헤어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자칫하면 목적을 앞세워 본래 의미를 왜곡할 위험도 있
다.
  4)의사해석 : 입법 당시의 자료를 보고 입법자의 의사를 탐구하여 법규의 의미내용

해명하는 해석이다. 그러나 입법에서는 다수인이 참여하며, 때로는 그 의사가 서로 대
립하는
경우가 있고, 입법 당시와 그 법을 적용할 사회상은 다르므로 입법자의 의사해석으로
법해석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반대하면서, 법조문의 독자적인 의미내용을 객관적으로
해명하는 것만이 옳은 해석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법안과 그 이유
서,
국회의사록 등은 법해석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5)보정해석: 법문의 자구가 잘못되었다거나 표현이 부정확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자구를 보정한다거나 변경하는 해석인데, 때로는 '변경해석'이라고도 한다. 가령 민법 

7조에서 "법정대리인은 미성년자가 아직 법률행위를 하기 전에는 제 2조의 동의와 승
낙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으나, 여기의 '취소'는 '철회'라고 보정하여 해석함이 좋

것이다.
왜냐하면 '취소'는 일정한 원인에 의하여 의사표시의 효과를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데,
여기서는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에게 준 '동의'나 '승낙'이 장래에 대해서만 그 효력

생기지
않도록 막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철회'라고 해석해야 한다. 보정해석을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관하여는 학설의 대립이 있다. 입법자가 자구의 표현을 잘못하였느냐의 여부는 일반적
으로
확실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만약 보정을 인정한다면 법의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는 이
유에서
이런 해석을 부인하는 견해도 있다. 이이 반하여 자유법운동이나 목적법학의 입장에서
보듯이 법관의 법해석에 많은 자유재량(discretion, freies Ermessen)을 허용하려는
학자들은
보정해석을 인정하려 한다. 그러나 보정해석도 법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
서 해야
하므로 물론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입법자의 법문의 표현이 명백히
잘못되었을 때, 확정적 학설에 명백히 위배될 때, 또는 명백한 사회적 수요에 확실히 
반하는
때에 한하여 허용될 것이다.
  6)물론해석: 법조문이 일정한 사례를 규정하고 있을 경우에 한하여 다른 사례에 관
하여도
사물의 성질상 당연히 그 규정에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해석방법이다. 가령 자전
거의
통행을 금지하는 게시판이 세워있는 경우에는 물론 오토바이도 통행하지 못한다고 해
석할 수
있다. 또 민법 제 396조 과실상계의 규정에서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
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고 하였
다. 이
규정 속에는 '과실'보다 더 중한 주관적 귀책사유인 '고의'는 물론 포함되는 것으로
물론해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물론해석은 법조문의 자구 속에 다른 사례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되는 데 반하여, 확장해석은 법조문의 자구'밖에' 확장하여 해석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7)반대해석: 법문에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와 반대로 된다고 해석하는 방법으
로,
유추해석에 대립한다.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부담한 채무에 대하여 다

일방은 연대책임을 진다고 규정(민법 제 832조)으로부터, 딸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부담한
채무에 대하여는 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함과 같다. 반대해석은 현실적으로는 당
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반대해석의 당부의 판단은 법의 일반

목적에 의한 목적론적 해석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3) 유권해석
  1)입법해석: 민법 제 98조에서  '물건'이란 용어를 풀이하여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하는데, 이것은 동일한 법률 중

법의 '해석규정'을 두는 예이다. 이것은 입법기관이 법을 제정하는 권한으로 해석규정

두어서 해석을 꾀하는 것이다. 또 어느 경우에는 부속 법규같은 다른 법령에서 해석규
정을
두는 예도 있다. 그것은 독립된 법규를 이루고 있으므로 '법규해석' 또는 '법정해석'
이라
한다.
최근의 입법경향은 특히 선행하는 사회적 지반을 갖지 않은 신입법을 할 때 해석규정

마련하는 경우가 있다. 또 입법기술적 조작상의 해석규정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가

노동조합법 제 3조에서 '노동조합', 동법 제 4조에서 '근로자', 동법 제 5조에서 '사
용자'의
의의 등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입법해석은 법령 중에 해석규정을 설정하는 것이므로 
본래적
의미의 법해석 방법과는 다르다. 해석규정도 역시 하나의 법규정이므로 이것도 또한 
해석의
기준이 된다. 가령 민법 제 18조 1항에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을 주소로 한다"고 규
정한다.
이것은 주소에 관한 해석규정인데, 이것도 역시 하나의 규정이므로 그 자체도 또한 해
석의
대상이 된다. 즉 어느 곳을 '생활의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정주의 사실'(가체)로 주소

보느냐(이것은 객관주의, 실질주의), 혹은 그외에 다시 그 곳을 생활의 근거로 한다는
'정주의 의사'(심색)가 있어야 주소로 보느냐(이것은 주관주의, 의사주의)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학설과 판례가 형성된다.
  2)사법해석: 사법기관인 법원에서 형사절차에는 검사의 공소제기가, 민사절차에서는 
원고

제소가 있은 후에 소송사건의 해결을 위해 내리는 해석이며, 법원은 오직 판결의 형식
으로만
법을 해석하여 당사자의 다툼에 답하고 판결 전에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유권해석을 
얻을
수 없다. 개별적으로 취급하는 당해사건에 관한 한 원칙적으로 최종적인 구속력을 가
지므로
법해석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법원에는 심급이 있고 하급심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파기되는 수도 있으며, 또 최고심의 판결에 법원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

그대로 답습되는 것도 아니므로, 법원에 판결에서 표시되는 법해석이 절대부동할 것이
라고는
하지만 대법원의 해석은 사실상 시민생활의 길잡이가 된다. 또한 사법해석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므로 '재판해석'이라고도 부른다.
  3)행정해석: 행정관청에서 법을 집행할 때, 또는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대한 훈령
지령
등을 내리면서 법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행정관청은 최종 구속력이 있는 해석

하지 못하며, 그릇된 해석에 따른 법집행으로 위법한 행정처분이 행해졌을 때는 최종
적으로
법원의 해석으로 교정된다. 그러나 상급관청의 회답 등은 같은 계통의 하급관청에 대
하여
사실상 구속력을 가지므로 역시 행정해석도 유권해석이라 할 수 있다.

    3. 해석과 해석자
  지금까지의 법의 적용과 해석의 방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종류들을 살펴 보았지만, 
어느
경우에 어느 해석을 적용시킬 것인가에 관하여는 어떤 원칙이 수립되어 있지 아니하
다.
라드브루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흥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불명확하고 모순에 찬 입법자의 작품 중에서, 모순없는 
해결을
스스로 창조작용을 더함이 없이 모든 경우에 내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법관에게 갖
추어져
있다는 신앙은 가시지 않고 있다. 법학자는 여러 가지 해석기술이 꽉 들어차 있는 고
문실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이용하여 입을 다문 법을 강제로 이야기시키려고 한다. 문리해
석,
확장해석, 축소해석, 유추해석, 반대해석(argumentum e contrario) 등이 그것이다. 그
러나
유감스러운 일로는 어느 경우에 어느 해석을 적용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일반적 준칙이 
전혀
정해져 있지 아니하다. 어느 대합실에 "개는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는 게시가 있었다.
어느날
곰 곡예사가 나타나서 그가 그의 털많은 동반자를 데리고 들어가도 좋을 것인가 자문
했다.
그는 개에 관해 한 말을 곰에게도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가 법학자였다면 
그는
아마도 이 결론을 게시의 내용으로부터 유추하여 얻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즉 곰도 개

같이 동물이므로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고, 그러나 왜 그는 반대해석을 하지 않고 특히
유추를 한 것일까. 만일 반대해석을 쓴다면, 곰은 곰이지 개는 아닌 고로 들어가도 좋
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가 전자를 택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후자가 불합리한 결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석은 그 결과의 결과이다. 해석의 방법이 이미 확정된 
후에
비로소 선택된다. 이른바 해석방법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법문의 창조적 보충에 의하여 
이미
발견된 결론을 후에 법문상의 근거를 얻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적인 보충이 어떠한 결론을 가져오든지 간에, 항상 유추와 반대해석이라는 두
해석수단의 어느 것인가가 그 이유설명에 이용되는 것이다. 만일 곰 곡예사가 법학자
였다면,
그는 자기가 게시 중에서 읽어 알아낸 내용을 반대로 게시에서 그가 끌어낸 결론이라
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법률가는 법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판단을 보류할 수는 없고, 주어진 법문을
치밀하고 바르게 해석하여 정당한 결론을 내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쉴러(Schille
r)는
"왜
법률가가 법학을 싫어하는가"에 대하여 "법학자는 자기의 활동을 우주의 위대한 전체

연관시키는 일을 게을리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물의 상호관련에서 절단되어 고립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하였다. 어쨋든 법률가는 한편으로는 현실세계를 명확히 보되 한편으로는 
법문에
기초하여 머리 속으로 치밀한 논리를 구성하여 서로 일치시키는 가운데서 적합한 해석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치펠리우스/김형배 역, '법학방법론', 삼영사, 1976; 라드브루흐. "해석의 종류,"
'법학의
정신', 종로서적, 1982 ;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삼영사, 1985(중판), 156-
157면.
  K. Engisch, Einfuhrung in das juristische Denken, 4. Aufl., 1957 ; J. Frank, L
aw and
the
Modern Mind, 1930 ; U. Klug, Juritische Logik, 3. Aufl., 1966 ; H. Isay, Rechtsn
orm
und Entscheidung, 1929.

  연습문제
  1. 법의 적용원리를 논하라.
  2. 법의 해석의 종류를 논하라.
  3. 법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4. 바른 해석이란 어떤 것인가?
@ff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1878년 11월 21일 독일  뤼벡에서 태어나 뮌헨대학, 라이프찌히대학, 베를린대학에

법학을
공부하였다. 1902년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 1903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교수자
격을
얻고 1919년에 키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21년에 바이마르공화국 법무장관이 되어
형법개정에 노력하였다. 192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 형법 및 법철학 교수가 되었다가,
1933년에 히틀러 정권에 의하여 파면되었다. 12년간 수난의 시기를 보내고 1945년에
복직되어 하이델베르크 법과대학장이 되어 1948년에 정년퇴직하였다. 1949년 11월 23

하이델베르크에서 사망하였다. 저서로 '법철학'(Rechtsphilosophie, 1932) 등이 있다. 
그의
자서전 '마음의 길'(Der innere Weg, 1961)이 번역되어 생애를 잘 알 수 있으며, 현재
독일에서 '라드브루흐전집'이 총 20권으로 출판 중에 있다.

    에릭 볼프(Erik Wolf)
  1902년 5월 13일 독일 비스바덴(Wiesbaden) 근교에서 태어났다. 예나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공부하였고, 라드브루흐의 조수가 되어 그 밑에서 교수자격을
받았다. 1928년 로스톡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1930년에 프라이부르크대학으로 옮겨 196
6년에
은퇴할 때까지 형법, 교회법, 법철학, 법학사 등을 강의하였다. 동 대학에 '법철학 및
교회법연구소'를 창설하였고, '독일법사상가전'(Grosse Rechtsdenker der
deutschen Geistesgeschichte, 1939), '교회의 질서'(Ordnung der Kirche, 1961),
'자연법론의
문제'(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 1952) 등 20여 권의 저서와 200여편의 논문

발표하였다. 1977년 10월 13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하였다. 독일의 법철학 및 법사
상사의
대표적 학자인 그는 특히 프로테스탄트법신학의 주장자로 알려졌고, 그의 후계자
홀러바흐(A. Hollerbach) 교수에 의해 '법철학연구'(Rechtsphilosophische Studien),
'법신학연구'(Rechtstheolosgische Studien), '법사상사연구'(Studien zur Geschichte
der Rechtsdenken)의 세 권으로 유고집이 출판되었다.
@ff

      제 10장 법계와 법문화
    풍토의 변천에 의하여 성질이 변하지 않는 정의도 부정의도 없다. 극에서도 3도 
떠나면
전법률학이 무너진다. 한 줄의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하고 몇 년의 세월이 소유를 결정
한다.
근본법규는 변한다. 법은 그 시대를  가진다. 강과 산맥이 경계짓는 정의! 피레네 이
쪽에서의
진리가 저쪽에서는 오류이다. - 파스칼(B. Pascal), '빵세' No. 319

    1. 서론
  법계(legal system 혹은 legal family, Rechtssystem 혹은 Rechesfamilie)란 어떤 
국가의
법질서가 어떤 법체계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고, 법문화(legal culture, Rechtskultu
r)란 그
법계
속에서 당해국가가 어떠한 특성 혹은 체취의 법제도, 법학, 법사상을 구성하여 운영하

있는가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 지구 위의 수많은 국가들은 지리적, 역사

연유로 저마다 다른  법계와 법문화를 갖고, 상당히  그에 제한되어 기능하면서 존속
하고
있다.
현대의 법학도라면 이러한 세계적 법문화의 좌표와 분위기를 알아야 국제적 안목을 갖

법을 운영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비교법학(Rechtsvergleichung, comparativ
e
law)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법계론'
  법계론은 1900년을 전후로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비교법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에스맹(A. Esmein), 레비-울만(Levy-Ullmann), 홀(Sauser Hall), 사르파티(Sarfati),
파쯔(Martinez Paz), 위그모어(John Wigmore), 슈니처(A. Schnitzer), 볼프(Martin Wo
lff),
다비드(Rene David), 쯔바이게르트(K.  Zweigert)와 쾨츠(H. Kotz)의 법계론이 유명하
다.
각각
분류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5대법계, 6대법계 등 특이하게 나누어 이론을 구성한
다.
최근에는 쯔바이게르트와 쾨츠가 법의 역사적 발전, 특수한 법학적 사고, 특징적인 법

제도, 법원의 종류와 해석방법, 이데올로기적 요인 등을 종합하여 라틴법권, 독일법
권,
북구법권, 영미법권, 사회주의법권, 극동법권, 이슬람법권, 힌두법권의 여덟 개
법권(Rechtskreis)으로 나누는 것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1) 자세히는 최종고, '한국법과 세계법'(교육과학사, 1989), 11-23면.)

    2. 로마게르만법계(대륙법계)
  현대세계의 법계 중에서 가장 광범한 분포를 갖고 있는 것은
로마게르만법계(romisch-germanische Rechtsfamilie)이다. 과거에는 로마게르만법계가 
주로
유럽 대륙에서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륙법계라는 표현을 썼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비롯하여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 계통에 속하기 때문에 로마게르만법계라고 부른
다.
  로마게르만법계는 로마법을 기초로 발달하여 온 법계이다. 이 법계에서는 대체로 법

올바른 행위규칙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정의, 도덕관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

의미에서 이 법계는 법실무자보다는 주로 법학자들이 이루어온 특징을 갖고 있다.
로마게르만법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주로 시민간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하여 사법 중
심으로
발전하여 왔다는 데 있다. 법의 다른 분야는 훨씬 늦게서야 사법의 원리에 따라 발전
하였다.
  로마게르만법계는 12세기부터 유럽대학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483-565)가 편찬한
'시민법대전'(Copus Juris Civilis)을 기초로 연구한 데서 형성되었다. 로마게르만법
이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법을 주축으로 게르만족의 관습을 많이 포함한 관습법을 첨가하여 이
룩한
점, 그리고 라틴지역 대학과 게르만지역 대학에서 동시에 연구하여 형성된 데 기인한
다.
이어서 19세기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 1804) 이후 모든 나라들은 성문법전의 
제정을
통하여 법체계를 정립하였다. 따라서 성문법주의가 이 법계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 후
유럽국가들의 식민지정책을 통하여 이 로마게르만법계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의 지역에서는 유럽법의 계수(Rezeption, 또는 수용)를 통하여 이 법계
를 대폭
수용하였다.(자세히는 현승종, '비교법입문'(박영사, 1972); 최종고, '한국법과
세계법'(교육과학사, 1989).)

    3. 코몬 로법계(영미법계)
  또 하나의 중요한 법계는 영국에서 형성되어 발전한 코몬 로(Common law)계이다.
코몬로를 보통법 혹은 일반법이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영미법계라고 부르
지만, 이
법계는 영국에서 형성되어 그 식민지였던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 퍼져 나갔다.
  코몬 로는 로마게르만법계와는 달리 법학자들이 아니라 법관들이 법실무에서 개인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판결을 통하여 형성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코몬 로는
로마게르만법계처럼 추상적인 일반 법규칙을 제정하기보다는 구체적인 분쟁소송에서
해결책을 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코몬 로에서는 소송절차, 증거절차 등

관련된 절차법규가 법률관계의 내용을 규정하는 실체법규 이상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법을 발견하고(law finding), 이를 위하여 법적 추리(regal reasoning)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몬 로는 원래 왕권과 연결되어 있다. 영국왕국의 평화가 위협되거나 기타 다른 이
유로
왕권의 개입이 요구되거나 정당화되는 경우에 발달하여 왔기때문에 본질적으로 공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개인간의 분쟁은 왕권의 이해에 관계되는 경우가 아니면 코몬 로법
정의
관심 밖이었다. 이같이 소송절차에서 유래하는 공법인 코몬 로의 형성과 발전에
로마게르만법계 학자들이 세운 법이론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법용어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을 갖고 코몬 로는  불문법주의의 원리 아래에서 발달하

왔다.
코몬 로도 식민지정책이나 자발적인 법의 계수를 통하여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로마게르만법계와는 달리 코몬 로는 불문법주의이기 때문에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 사회의 가치 요소들이 로마게르만법계의 경우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나 캐나다의 코몬 로는 영국의 그것과 상당한 차
이를
갖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대하여는 서양법제사 강의 특히 영미법사를 통하여 자세히 
배우게
된다.(자세히는 L. 프리드맨/안경환 역, '미국법역사'(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8); 최
종고,
'서양법제사'(박영사, 1986), 397-492면.)

    4. 사회주의법계
  사회주의법계(Socialistic legal family)란 소련을 위시하여 공산국가들의 법계이
다. 원래
이들은
로마게르만법계의 국가들이었으므로 로마게르만법의 요소들을 상당히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법규칙을 행위규칙으로 보는 점, 법의 분류, 각종 법률용어 등이 거의
로마게르만법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념을 기
초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피상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에서는 매우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경제구조를 목표로 생산수단을 국유화함에 따라
개인간의 관계는 퇴색하여 사법 자체가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므로 로마게르만법계와
는 달리
철저하게 공법이 주도하고 있다. 또한 법규정의 저의 혹은 도덕관념에 결부되기보다도
집권계급의 지배수단(도구)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차이는 법규정의 제정, 
적용,
해석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동유럽에서 시작된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는 법에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정통 마르크시즘의 법이론에 수정이 가해지고, 실정법의 입법에서도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가미되고 있다. 소련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
책 이후
1990년 3월에 대통령제를 도입하였고, '소유권에 관한 법률'(1990년 3월 6일)을 제정
하여
사소유권을 인정하였으며, '임차에 관한 입법의 기본원리'를 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

법개혁은 점점 속도를 더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공과 북한은 사정이 좀 특수하다. 아직도 개방의 폭을 좁히고 있어 그 법제의 내
용을 잘
알 수조차 없다. 통일을 향하여 북한법 연구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지만 아직도 자료

불충분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입수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마르크스적 공산주의 법
이론에
주체사상을 가미하여 사회주의 법무이론 등 독특한 법제도와 이론을 구축하고 있다. 
이것이
법과 법학의 '변질'인지는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이 북한법의 특색이라면 특색이
라고
하겠다.(최종고 외, '북한의 법과 법이론'(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1987); 최달곤정경
모 편,
'북한
법령집', 전5권(대륙연구소, 1990) ; 최종고, 북한법의 구조와 사상, '북한연구', 2
집, 1991;
동인, 북한의 입법동향과 법생활, '북한연구', 4집, 1992; 동인, '북한법입문', 박영
사,
1993.)

    5. 법계간의 교섭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로마게르만법계와 코몬 로법계 사이에 많은 접촉이 있었으
며, 그
결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다. 두 가지 법계가 모두 그리스도교 윤리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르네상스 이후에는 개인주의와 인권개념이 깊이 침투되었다. 그뿐 아니라 
코몬
로법계에서도 현대사회의 복잡한 생활관계를 규율하기 위하여 점차 법규칙 제정이 일
반화
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코몬 로에서도 절차적 해결뿐 아니라 실체적 해결을 중요시하

되고, 따라서 유럽 대륙의 법학과 비슷하게 총론적 법학이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나아가면 법학에서도 수렴이론(convergence theory)이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
각이
든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 두 법계를 합쳐서 서구법(Western law)이라는 명칭을 쓰기

한다.
두 법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때 모법(Mutterrecht)과 자법(Tochterrecht)의 관계

성립된다고 부른다.
  이와 같은 흐름에 따라 로마게르만법계와 코몬 로법계의 중간형태까지 나타난다.
이스라엘,
남아공화국, 캐나다의 퀘벡, 필리핀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한편 사회주의법과 서구
법간의
상호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 서구법에 나타난 주요 기업의 국영화, 주요 서비스업의 
공영화
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6. 현대세계의 법문화
  이러한 법계들이 모여 현대세계의 법문화(Rechtskultur)를 이루고 있다. 위에서 지
적한
바와
같이 현대세계의 가장 중요한 법계는 로마게르만법계이다. 유럽에서는 공산권과 영국,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 법계에 속한다. 그뿐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있던 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식민지 국가들은 거의 모두 로마게르만법계에
속한다.
  한편 이들 식민지였던 지역 중에서 그 뒤 코몬 로 영향권으로 바뀐 지역은 일정하지 
않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던 미국의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아리조나, 텍사스 
등은
일정한 옛 전통을 유지하긴 했지만 코몬 로에 속한다. 파나마와 기아나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캐나다의 퀘벡, 그리고 푸에르토리코는 코몬 로의 상당한 영향

받았지만, 로마게르만법계에 속한다.
  아프리카 및 인도양의 섬나라들은 대체로 과거 식민지 종주국의 영향을 받았다. 즉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벨지움 식민지들은 로마게르만법계이나 소송절차에 코몬 로법계이
다.
다만
중간에 지배권이 바뀐 지역은 일정하지 않다. 에티오피아는 식민지와 관계없이 대체로
로마게르만법계이나 소송절차에 코몬 로의 영향이 크다. 남아공화국은 처음에 네덜란
드의
지배아래 있다가 영국의 지배로 바뀌었는데, 그 법제도는 두 가지 법계의 혼합형이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프랑스법의 영향으로 로마게르만법계에 속하나 이슬람법의 영향

크다.
  터키는 처음에는 이슬람법의 영향이 컸으나 1차대전 후 개혁을 통하여 로마게르만법
계에
충실했다. 터키의 영향을 받던 이집트 및 근동의 아랍국가들은 프랑스의 영향 아래
로마게르만법계가 주류를 이루나 터키처럼 완전히 이슬람법의 영향을 벗어나지는 못하
였다.
이스라엘은 원래 프랑스법 영향 아래 있었으나 영국의 위임통치로 혼합형이 되어 있
다.
이라크와 요르단도 비슷한 운명이었으나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면서 다시 로마게르만
법계로
돌아왔다. 페르시아만 지역의 아랍국가들은 법제도가 현대화되는 중이며 아직 어느 계
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 일본, 대만 등 국가들은 유럽법의 계수를 통하여
로마게르만법계에 속한다. 타이도 대체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로 로마게르만법계에 속하였으나 50년간의 미국지배로 영미
법계와
혼합이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로 로마게르만법계에 속하나 이슬람법 

전통적 관습법이 상당히 지배하고 있다.

    7. 결론
  법의 역사는 불문법에서 성문법으로 발전하여 왔다고 하나 성문법주의와 불문법주의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성문법주의를 택하는 국가에서도 불문법을 법원으

가지고 있으며 불문법주의를 택하는 국가에서도 성문법을 법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

성문법과 불문법 중에서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문법주의는 법의 내용을 명확히 해주고 국가의 법체계를 통일적으로 정하기 쉬우
며,
법질서의 안정(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법의 내용을 법
조문에
고정시켜 사회현실과 거리가 멀어져서 사회발전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
다.
한편 불문법주의는 법이 문자로 고정되지 아니하여 변천하는 사회현실에 적응하기 쉬

장점이 있는 반면에, 국가의 법을 통일적으로 정비하기 어렵고 법질서의 안정성을 확
보하기
어려우며 법의 존재가 명확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근대법체계가 완비되지 못한 후진국에서는 선진국의 발달된 법제를 통해 짧은 시일 
안에
근대적 법체계를 수용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므로 대체로 성문법주의를 취하게 된다. 그 
대신
후진국에서는 계수한 근대적 법제도와 봉건잔재를 탈피하지 못한 전통적
법의식(legal consciousness, Rechtbewusstsein)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정하여 성문법

실효성을 거두느냐 하는 문제가 당면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성서에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지만, 
선진된
법문화와 이론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세계방방곡곡으로 전파되어가

만다. 이런 면에서 법은 빛이요 복음이다. 그러나 이론과 법전만이 선진화된다고 그 
사회가
곧 선진국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고, 그 과정 속에 무수히 많은 시도와 좌절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이런 면에서 세계의 법문화와 법계를 정확히 관찰하여 타산지석으로 삼으며 현
명한
국민으로서 법문화의 향상을 위해 명민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현승종, '법비교입문', 박영사, 1972;
  최종고, '법학사', 경세원, 1986;
  최종고, '서양 법제사', 박영사, 1986 ;
  최종고, '한국의 서양법수용사', 박영사, 1982 ; E.
  알랜 파른즈워드/서돈각박길준 역, '영미법', 법문사, 1986 ;
  H. J. 버어먼 편/이내조 역, '미국법입문'(Talks on American Law, rev., 1971),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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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권, '영미법', 동성사, 1986
  황적인 이은영, '독일법', 박영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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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 '러시아소비에트법', 민음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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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맨/윤대규 역, '시민법전통',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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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H. Wigmore, A Panorama of the World Legal Systems, 1928; Rene David/B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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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weigert/Kotz, Einfuhrung in die Rechtsvergleichung, 1971; W. Fikentscher, Metho
den
des
Rechts, 4. Bde., 1975.

  연습문제
  1. 세계의 법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2. 대륙법과 영미법의 형성과정을 구별하라.
  3. 한국법의 세계적 좌표를 논하라.
  4. 대륙법문화와 영미법문화의 특징을 논하라.
  5. 성문법주의와 판례법주의 장단점을 논하라.
@ff

      제 11장 권리의무와 법률관계
    1. 서론
  법학에서 권리와 의무의 표현만큼 자주 쓰이는 말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법학은
권리의무의 개념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리란 말은 영어의 r
ight를
번역한 말인데, 중국에서 선교사 마아틴(William A. P. Martin)이 휘이턴(Henry Wheat
on)의
저서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1836)를 '만국공법'(1864)으로 번역출판할 때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자세히는 최종고, '한국의 서양법수용사'(박영사, 1982), 
309-311면.)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통의'라 번역하였다가 '권리'라고 번역하였는데,
당시에는 그 어감이 너무 강하다고 하여 법률가들 외에는 이 말을 사용하기를 꺼렸다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자칫하면 자기 권리에 대해서는 110% 요구하고, 의무는 10%도 안 지
키려고
하는 얌체성을 보이는 면도 있을 정도로 권리란 말이 유행되고 있다. 어쨌든 건전한
법률생활을 위해서는 권리와 의무를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2. 권리의 학설
  권리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이를 권리학설이라

부른다.
  1) 의사설(Willenstheorie): 이 설은 권리의 본질을 의사의 자유 또는 의사의 지배
라고
보는
학설인데 사비니, 푸흐타, 빈트샤이트 등이 주장하였다. 그런데 권리실현에 의사는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가령 의사무능력자의 권리향유의 경우와 같이 의사가 권리실현

반드시 수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의사의 존재를 권리의 본질이라고 볼 수는 
없다.
  2) 이익설(Interessentheorie): 권리의 본질을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 또는 법률에 
의하여
개인에 귀속되는 생활재화라고 하는 이 설은 예링이 주장하였다. 이 설은 권리의 주체

항상 수익주체와 동일주체일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법률에 의한 이익보호는 반드

권리라는 형태를 통하는 것만이 아니고 법률에 대한 준수가 어느 특정인에게 권리가 
되지는
않지만 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수가 있으니(교통규칙에 대한 일반인의 준수는 어느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익의 향유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아니다), 권리를 이익과 혼동할 수는 없다. 권리의 목적과 권리의 본질을 이 설은 혼
동하고
있다. 이익은 권리의 목적이며 권리는 분명히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익
은 권리
자체는 아니고 법률에 의하여 이익을 실현케 하여주는 힘이 권리이다.
  3) 법력설(rechtliche Machttheorie): 이 설은 권리의 본질을 인간이익의 충족을 위
해서
법률에 의해서 주어진 힘이라고 하는 설이다. 의사설과 이익설을 절충결합한 이론이라
고 볼
수 있는데,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의사의 지배가 곧 권리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의
민법학자
에넥케루스(Ludwig Enneccerus, 1843-1928)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적어도 권리라는 
것이
자연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정법적인 것을 가리킬 때에는 이 법력설이 타당하다고 볼 

있겠다.
  권리의 본질은 오늘날 특히 영미법학에서 논의되는 핵심문제의 하나이다.
파운드(R.  Pound)는 이익(interest),  요구(claim), 능력(capacity),  자유(liberty)
, 정의
(justice)의 다섯 개념으로 구별하여 설명하였다.(R. Pound, Jurisprudence, 1959.)

    3. 권리와 구별되는 개념들
  1) 권능(Befugnis): 권리 속에 포함된 개개의 작용을 말한다. 즉 한개의 권리가 있
으면,
그로부터 여러 가지 권능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몇 개의 권능이 합
쳐져 한
개의 권리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소유권이라는 권리로부터 사용의 권능, 수익

권능, 처분의 권능 등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권능도 흔히 -권이라 불린다(사용권,
수익권,
처분권 등).
  2) 권한(Zustandigkeit, Kompetenz): 공법상 또는 사법상의 법인 또는 단체의 기관

법령과
정관 등에 의하여 행할 수 있는 일의 범위 내지 자격을 말한다. 예컨대 공무원의 권
한,
단체간부의 권한, 회사 이사의 권한 등이 이 것이다.
  3) 반사이익(objektives Reflexrecht): 법의 규정의 결과로 각 사람이 저절로 받게 
되는
이익을
말한다. 적극적으로 어떤 힘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이 그 향유를
방해하더라고 권리를 주장하여 보호를 청구하지 못한다.
  예컨대 생활보호법의 결과로 보호 대상자들이 받는 이익은 반사이익이다. 만약에
관계관청이 그 규정을 충실하게 이행치 않아서 보호대상자들이 받을 이익이 감소되더
라도 그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상이 종래의 일반적 설명이지만, 오늘날 실질적 법치주의 
내지
인권보장을 강조하게 됨에 따라 반사이익의 공권화 또는 보호이익화 경향이 대두하고 
있다.

    4. 권리의 종류
  권리는 공권과 사권의 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공권은 공법상 부여된 권리이고, 사
권은
사법상 인정된 권리이다.
  1. 공권의 종류
  공권은 국가 기타 공공단체가 가지는 공권과, 국민이 가지는 공권으로 나눌 수 있
다.
국가가
가지는 공권은 바로 통치권이며, 국가 이외의 공공단체가 가지는 공권은 국가의
통치권으로부터 나뉘어 나온다. 따라서 이 두 가지의 공권을 포괄하여 국가공권이라고
부르고, 이에 인민공권을 대립시키는 학자도 있다. 인민공권은 국민이 국가와 기타
공공단체에 대하여 가지는 공권이다. 인민공권은 보통 이를 자유권과
수익권(국가행위요구권), 그리고 참정권의 셋으로 나눈다. 그 각각에 관하여는 헌법학
에서
배운다.

  2. 사권의 종류
  (1) 권리의 내용에 의한 분류
  1) 인격권: 권리자 자신을 객체로 하는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인격권은 그 인격과
분리될
수 없다. 생명권, 신체권, 성명권, 정조권 등이 그것이다.
  2) 신분권: 친족권과 상속권을 통틀어 신분권이라 한다. 친족권은 호주권, 친권, 후
견권,
부양청구권 등과 같이, 일정한 신분을 기초로 하는 권리이다. 상속권은 타인의 인격 
또는
타인의 재산을 상속할 권리이다. 신분권은 일신전속권임을 원칙으로 한다.
  3) 재산권: 경제적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이다. 물권과 채권 및 무체재산권이 
이에
속한다. 물권은 물건을 직접 지배하여 이익을 받는 권리고, 채권은 특정인에 대하여 
특정한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할 권리이다. 이에 대하여 무체재산권은 발명저작 등 지능적 제작
물에
대한 권리이다.
  (2)권리의 작용에 의한 분류
  1) 지배권(Herrschaftsrecht): 권리의 객체를 직접 지배하는 권리이다. 물권,
무체재산권(특허권, 저작권, 상표권 등) 및 친족권의 대부분은 이에 속한다. 지배권은
타인의
침해를 배척할 수 있는 효력, 즉 배타성을 가지는 것이 원칙이다.
  2) 청구권(Anspruch): 타인의 작위, 부작위(하지 않는 것) 또는 인용(참고 받는 것)

요구할 권리이다. 채권은 모두 청구권이다. 그 밖에도 물권, 무체재산권, 친족권, 상
속권
등으로부터도 청구권이 발생할 수 있다. 청구권에도 물권적 청구권과 채권적 청구권이
있는데, 전자는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특정인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3) 형성권(Gestaltungsrecht): 권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어떤 권리의 발생, 변
경,
소멸
기타의 법률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권리이다. 취소권(민법 제 140, 141조)과 추인권
(민법
제 43, 130, 133, 139조)및 해제권(민법 제 544조) 등이 이것이다.
  4) 항변권(Einrede): 타인의 청구권의 행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항변권은
상대방에게 청구권이 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전제하고 다만 그 
행사를
배척하는 것이다. 동시이행의 항변권(민법 제 536조)이 그 예이다.
  예컨대 매매계약을 한 경우에, 매수인은 매도인이 채무를 이행할 때까지는 대금채무

이행하지 않아도 되고, 매도인은 매수인이 대금채무를 이행할 때까지는 목적물 이전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매수인이 대금은 내지 않고 목적물을 이전해 달라

청구하는 경우에는, 매도인은 매수인이 채무를 이행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이것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다.
  (3)기타의 분류
  1) 절대권(대세권)과 상대권(대인권): 절대권은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
고,
상대권은 특정인에게 대해서만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다. 절대권은 배타성이 있고,
상대권에는 배타성이 없다. 물권은 절대권의 예이고, 채권은 상대권의 예이다. 다만
채권보호
수단이 절대권에 가깝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구별은 절대적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2) 일신전속권과 비전속권: 일신전속권은 성질상 권리자에게만 전속하여 양도나 상
속으로
타인에게 이전할 수 없는 권리이고, 비전속권은 이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인격권및
신분권은
대체로 일신전속권이고, 재산권은 대체로 비전속권이다.

    5. 의무의 개념
  의무는 일정한 행위를 해야 할, 또는 해서는 안 될, 법률상의 구속이다. 해야 할
의무(duty,
Pflicht)를 작위의무, 해서는 안 될 의무를 부작위의무라고 부른다. 부작위의무 중에
서 특히
타인의 일정한 행위를 참고 받아야 할 의무를 인용의무라고 한다. 의무도 또한 공법상
의무와 사법상 의무로 구별된다.
  권리와 의무는 마치 하나의 물건의 양면처럼 서로 대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대응

채권과 채무의 대응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
다.
권리가 대응하지 않는 의무도 있고, 의무가 대응하지 않는 권리도 있다. 법인의 등기

무능력자의 영업의 등기를 해야 할 의무(민법 제 49,  51조; 상법 제 6조)와 공고의무
(민법
제88, 93조)및 감독의무(민법 제 755조) 등은 전자의 예이고, 민법상의 취소권, 동의
권,
해제권
등의 형성권은 후자의 예이다. 또 친권자가 미성년자인 자를 보호교양할 권리를 가지

동시에 의무를 지는 예와 같이(민법 제 913조) 동일한 사람의 권리이며 동시에 의무인
경우도 종종있다.

    6. 권리의무의 주체객체
  권리는 특정인에게 부여되는 것인데, 권리를 가지는 그 특정인을 권리의 주체라고 
부른다.
또 의무를 부담하는 자를 의무의 주체라고 부른다.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만이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만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연인과 법인에 한하는데, 자연인은 누구나 당연히 권리의무

주체가 되지만, 법인은 관청의 허가를 얻고 등기를 해야 비로소 권리의무의 주체가 된
다.
  권리는 특정한 생활이익을 그 내용으로 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다. 권리의 내용인 

특정한 생활이익을 권리의 목적이라고 하고, 이 내용, 즉 목적이 성립하기 위하여 필
요한
일정한 대상을 권리의 객체라고 부른다. 예컨대 물권에서는 일정한 물건을 직접 배타
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물권의 목적이며, 그 일정한 물건이 바로 물권의 객체이다. 채권에서는
특정인으로부터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채권의 목적이므로 채무를 지는 그 특정
인의
행위가 채권의 객체이다.
  권리의 객체는 권리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다. 물권에서는 물건이고, 채권에서는 사
람의
행위이며, 또 친족권에서는 일정한 친족관계에 서는 사람의 지위가 권리의 객체이다. 

생명, 신체, 자유, 명예 등 그 주체와 분리될 수 없는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인격권에
서는
권리의 주체 자신이 동시에 권리의 객체이다.

    7. 법률관계
  인간의 사회생활관계를 법적으로 관찰해 보면, 그것은 복잡다양한 권리와 의무의 관
계로
엉켜져 있다. 이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법률관계(Rechtsverhaltnis)라고 부른다.(아래
의 서술은
이영준, '민법총칙'(박영사, 1987), 31면 이하.)
  어떤 법학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높은 빌딩에 올라가 "저 아래에 무엇이 보이느냐
?"고
물었다. 학생들이 다소 의아해하며 머뭇거리자 교수는 "권리의 주체와 객체가 보이지
않느냐!"고 하였다는 얘기가 있다.
  1. 의의와 내용
  법률관계의 내용은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이다. 예컨대 매매관계에 의하여 매도인은
소유권이전의무를 지고 매수인은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반면에 매도인

매매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매수인은 이를 지급할 의무를 진다. 이것이
매매관계로부터 발생하는 본체적 권리의무이다. 이처럼 법률관계는 권리의무를 내용으

하는 것이고 양자는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나 근대 민법은 권리본위로 구성되어 있으므

법률관계는 흔히 권리에 의하여 표현되는 수가 많다.

  2. 인간관계
  법률관계와 존재의 평면을 달리하는 것에 인간관계와 호의관계가 있다. 이들은 원칙
적으로
법의 규율을 받지 않고 관습과 도덕및 종교의 규율을 받는 생활관계이다.
  인간관계(menschliche Beziehung)란 가족, 애정, 우의, 예의관계와 같은 생활관계이
다.
예컨대 부가 자에게 생일선물을 하기로 약정하는 것, 친구간에 서로 여행을 함께 떠나
기로
약정하는 것, 특정한 날 스승을 찾아뵙기로 약정하는 것, 결혼식을 특정한 종교방식에
따라서
하기로 약정하는 것, 멀리 떨어져 있는 부인에게 다달이 법률이 규정하는 부양료 외에
상당한 금액을 보내주기로 약정하는 것 등은 모두 인간관계에 기한 약속으로서 이로부

법률관계는 발생치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약속을 어겨도 그 이행을 청구한다든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 이러한 청구권을 인정하면 바로 위와 같은 약속을 한 
의미가
파괴되기 때문에 이를 법률관계로 하지 않는 것이다.
  순수한 인간관계와 법률관계의 한계를 짓는  것이 쉽지 않은 수도 있다. 예컨대 여

사람이
여행할 때 일정한 금액을 거두어 숙박비용 등 여행비에 충당하기로 약정하고도 한 사
람이
여행에 참여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사람이 이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 문제는 후술하는 호의관계와도 관련된다. 또한 혼인할 것을 전제로 하여
혼수를 수수했는데,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이를 반환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
한가.
생각건대 원상회복케 하는 것이 형평에 맞으므로 이 경우에는 부당이득반환에 기한
법률관계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인간관계인가 법률관계인가의 구별은 법의 
보호를
줄 이익이 있는가를 고려하여 이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3. 호의관계
  호의관계(Gefalligkeitsverhaltnisse)란 호의로 어떤 이익을 주고 받는 생활관계를
말한다.
호의관계는 법률관계 밖에서 시작하여 이에서 끝나는 수가 많고, 이러한 경우에는 아
무런
법률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호의관계에 수반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 손해를 누구로 하여금 부담케 
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문제가 일어난다. 예컨대 주유소에서 단골에게 휘발유를 거저 주었으
나 그
휘발유의 질이 조악하여 케브레타에 고장이 생긴 경우, 이웃집 부인들이 외출할 때에
상대방의 아이를 보아 주기로 약속하여 이를 실천하던 중 부주의로 아이가 다친 경우,
지나가던 행인이 자동차의 후진을 도와 신호를 보냈으나 잘못 신호하여 사고가 발생한 
경우,
특히 근래에 이르러 빈발하게 된 호의동승, 즉 호의로 자동차를 무료로 태워주고 가다

과실로 사고가 발생하여 탄 사람에게 상해나 사망이 발생한 경우 이러한 생활관계를
호의관계라 하여 이에 대한 법적 규율을 거부하는 것이 타당한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
다.
  특히 근래에 이르러 사고보험이 많으므로 흔히 이러한 손해는 일응 보험회사에 의하

전보된 후에 '가해자'에게 구상하므로 결국은 법률문제화되게 되는 것이다.

  4. 기타 법률관계
  외양으로는 인간관계나 호의관계와 대단히 유사하나 언제나 법률관계인 것이 있다.
  (1) 신사약정
  그 전형적인 것이 이른바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다. 이것은 당사자가 
어떤
약정을 하면서도 그 약정에 대한 법적 구속을 배제하기로 특약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

특히 카르텔법 분야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약정에 기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급부를 청구하거나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당사자 쌍방이 그 의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그 약정이 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이행한 것의 반환을 청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법적 구속
을 받지
않는 약정이라 하더라도 이행된 급부를 정당하게 보유할 수 있게 한다고 하는 점에서 
이러한
약정관계는 법률관계이고 단순한 인간관계나 호의관계가 아니라 할 것이다.
  (2) 무효사유를 알고 한 계약체결
  이에 대하여 당사자가 무효사유가 있음을 알면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상술한 법적
구속을
배제하는 약정과 성질을 달리한다. 예컨대 당사자가 약정의 내용이 강행법규 또는 선
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약정을 하는 것은 그 약
정의
법적 구속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효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의욕하고 
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약정의 효과는 대체로 신사약정에서와 같이 취급하여야 할 것이다.
당사자가 무효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있다고 착오하고 있는 경우에도 동일
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3) 호의지급의 상여금
  법적 청구권을 배제하면서 지급하는 특별상여금도 문제로 된다. 예컨대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특별상여금 또는 휴가비 등을 지급하면서 "이것은 호의로서 지급하는 것으
로서
고용주에 대하여 여하한 법적 청구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의사표시를 한 경
우 그
의사표시는 어떠한 법적 의미를 갖는가? 생각건대 이러한 상여금 또는 휴가비는
실질적으로는 근로의 대가이고 특히 그 지급이 반복되면 근로자는 이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므로 이러한 임금지급에 대한 기대는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는 이 경

특별상여금 또는 휴가비 등에 관한 법적 청구권을 갖는 것이므로 이에 의하여 정상적

법률관계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5. 법률관계의 변동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법률에 의하여 규율되는 생활관계를 법률관계라고 하는데, 근

법체계는 권리본위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법률관계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생활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법률관계도
변동한다. 즉 권리는 발생변경소멸한다. 권리의 발생, 변경, 소멸을 법률효과라고 한
다.
그리고 법률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원인을 법률요건이라 하고, 법률요건을 구성하는 사
실을
법률사실이라고 한다.
  법률관계, 권리관계, 법률효과, 법률요건, 법률사실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갑이
을에게
자동차를 100만원에 사라고 청약하고, 을이 이를 승낙하면 매매계약이 성립한다. 이에
의하여
매도인 갑은 매수인 을에 대하여 자동차대금 100만원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고
을은 갑에 대하여 자동차이전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여기서 갑을간의
매매관계는 민법 제 563조 이하의 규율을 받게 되는 전형적인 법률관계이다. 여기서
매매라고 하는 것은 법률요건이고, 매매를 구성하는 갑의 청약의 의사표시와 을의 승
낙의
의사표시는 각 법률사실이다. 그리고 매매에 기하여 갑의 매매대금지급청구권과 을의
소유권이전청구권이 각각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법률효과이다.
  권리의 발생, 변경, 소멸은 이를 권리의 주체를 중심으로 보면 권리의 득실변경으로
나타난다. 권리의 득실에는 절대적(원시적 또는 객관적)인 것과 상대적(승계적 또는
주관적)인 것이 있다. 상대적인 경우에는 취득과 상실이 상호 각 원인이 되고 결과로 
된다.
예컨대 갑이 을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면 갑은 소유권을 상실하고 을은 이에 기하여 소
유권을
취득한다. 그러나 절대적득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톨스토이(L. Tolstoi)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사랑없이 권리의무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법률가의 죄악이다" 라고 하였고, 라드브루흐는 "법률가는 미묘한 빛깔의 
영롱한
세계상을 오직 무지개의 일곱 색으로만 바라본 것을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라고 하
였다.
그렇지만 법을 통한 분쟁해결이 불가피한 이상 이렇게 인간관계를 법률관계로 파악하
면서
탐구해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고문헌
  예링/심재우 역,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 박영문고, 1980;
  김증한, '민법총칙', 박영사, 1983;
  이영준 '민법총칙', 박영사, 1987;
  장경학, '법률춘향전' 을유문고, 1975;
  유네스코 편/이극찬 역, '인간의 권리', 청구출판사, 1958;
  러셀 갤로웨이/안경환 역, '법은 누구 편인가', 교육과학사, 1992;
  G. 옐리네크/E. 부뜨미 저, 김효전 역, '인권선언논쟁', 법문사, 1991.
  R.Dworkin, Taking Rights Seriously, Harvard Univ. Press, 1977; Chongko Choi, T
he
Asian Conception of Right and Duty, '동서의 법철학과 사회철학', 법문사, 1990.

  연습문제
  1. 법과 권리의무의 관계를 논하라.
  2. 권리의 종류와 의무의 종류를 논하라.
  3. 법에서 권리가 중요한가 의무가 더 중요한가?
  4. 법률관계의 성질을 논하라.
@ff

      제 12장 법의 변동
  법은 안정되어야 하지만 결코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 -파운드(R. Pound)
  처음에 법철학의 변화가 있었고 나중에 혁명이 있었다. -라드브루흐(G. Radbruch)
    1. 서론
  지금까지 주로 법의 규범적 측면을 많이 논해왔지만, 법은 당위적 규범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작용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로서의 법은 여

가지 요인과 사정에 따라서 변화한다. 이러한 법의 변동(dynamics)의 면모, 즉 그 생
성,
발전,
쇠퇴, 소멸의 과정에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분야가 법사학, 법사회학 등이다. 이에 대
하여는
'기초법학'에서 상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법의 변동에 큰 요인을 이루는 정치, 경
제,
혁명, 발전의 문제를 요점중심으로 다루어 보자.

    2. 법과 사회력
  법규범은 일반적으로 고정적이고 보수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추상
적이고
일반적인 형식으로 제정되는 입법(법률)은 사회에 다소 변동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이

대응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기 때문에 쉽사리 개폐되지 않는 지속성을 자체 안에 가지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법전'(1804)이 많은 수정을 받아가면서도 1세기 반의 생명
력을
유지해오고 있음이 좋은 예가 된다. 만약 법이 입법자의 자의로 '조령모개'된다면 법
관이나
일반인은 법을 준수할 수 없을 것이며 사회질서와 법적 안정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실정법의 규정은 사회경제 사정에 다소 변동이 생기더라도 곧 이에 따라 변경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법의 작용을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법의 고정성이나 탄력성에도 한계가 있다. 사회의 새로운 진전에 적응하지 
않는
낡은 법률도 법률도 법이기 때문에 지킬 것을 강요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생활을 해칠 

아니라 법 자체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준법정신을 확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일반적, 추상적인 법규는 법의 해석과정을 통하여 유동적인 사회현실에
맞추어 나갈 수 있으나, 법과 사회현실의 간격이 한층 확대되면 무리한 법규의 준수를
강요당하는 피치자쪽으로부터 당연히 저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저항이 소극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법의 경시나 탈법행위로 되고, 적극적으로 표현되면 극단적인 경우 법
체제
전체를 뒤엎는 혁명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물론 수 없는 비극과 희생을 지불하는 혁명
보다도
법질서 자체가 끊임없는 사회진화에 대응함으로써 언제나 정의와 구체적 타당성을 실
현해 갈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그러자면 지배자가 현명해야 한다거나 여론이 건전해야 하는 것 외에 무엇보다도 정
치체제
자체가 독재적인 자의나 부당한 이해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는 공정성과 풍부한 탄력성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의 정치기구, 특히 국민대표제에 입각한 입법부

법체제 전체의 탄력성을 될 수 있는 한 보장할 수 있도록 고안된 역사적 소산이다. 따
라서
근대법의 변동은 입법부의 활동에 의한 평화적 변천을 원칙으로 한다.
  법의 변동을 가져 오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낡은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만드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종전에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든가 사회적 요구라고 
하는
막연한 이름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회력'(social forces, soziale Mach
t)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층 더 깊이 분석하면 사회력이라고 하는 말의 내용을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 있다. 즉 어떤 경우에는 군사력이나 정치력
이,
어떤 경우에는 사상의 힘이, 또 어떤 경우에는 경제력이 법의 변동을 촉구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따라서 법을 만들고 움직이고 파괴하는 원동력을 역사적으로
규정하고도 구체적 현실을 보지 않는 경우에는 독단적 편견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
므로
법의 변동을 추진하는 것이나 법을 움직이는 것을 탐구하기 위하여는 역사적인 구체적
조건들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법의 변동요인을 탐구하려면 정치, 경제, 사상 등의 여러 영역에 깊이 파고 들어가

안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법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방법, 나아가서는 세계
관과
역사관, 그리고 인생관의 차이에 의한 관찰방법에 따라 해석이 매우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배제하고 구체적 조
건들을
역사적, 기능적으로 고찰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에서 볼 때 법의 변동

일정한 역사적 조건 밑에서 정치, 경제, 사상 등의 요인들이 각기 특유한 역할을 하면

이루어져 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법변동의 궁극적 원인(causa finalis)

탐구하기 위하여는 구체적 조건 밑에서 상호작용하는 여러가지 힘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법의 변동요인으로 가장 큰 정치, 경제, 혁명의 
문제를
분석해 보고, 법과 발전의 문제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3. 법과 정치
  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정치생활도 규제한다. 즉 법은 
정치와
함께 국민을 복종케 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법과 정치 둘 중에 법이 우위에 있느냐 또는 정치가 우위에 있느냐 하는 문
제가
제기된다. 법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 법치주의인데, 이에 의하면 아무리 법이 정치에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정치는 그 법의 구속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가 
법에
구속된다는 것은 바로 국가도 구속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통하며, 치자와 피치자는 동일체가 된다. 법에 의하지 않는 정치는 불법이
며, 또
법에 의하지 않는 권력은 폭력이 된다. 이에 반하여 정치주의에 의하면, 법은 어디까
지나
정치의 수단에 불과하여야 하고 정치가 법의 구속을 받아서는 안 되며, 법이 정치에
추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즉 이런 논리는 법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정치의 만능을 
믿어서
모든 것을 조작(manipulation)하면 된다는 독재주의 사상을 이끌어 내게 된다.
  법이 정치의 우위에 있음으로써 정치가 법의 규범에 의하여 움직이는 질서있는 사회
아래서만 법과 정치가 일치될 것이며, 통일성과 안정성이 확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
므로
정치는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법에 의하지 않는 정치란 그
것이
아무리 국민복지를 위한 선의의 정치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민주정치라고는 할 수 없고
주권재민의 근본이념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치와 법치는 본질적으로 긴장관계이면서, 서로 협력해야 할 관계하고 

것이다. 정치에서는 또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라드브루흐가 1931년 독일
헌법기념일에 국회연설에서 말한 다음과 같은 표현은 깊은 시사를 주는 바 있다.
  정치적 지도자란 그때그때의 상황을 편견없이, 경직한 강령의 깨어진 안경을 통하여 
보지
아니하는 자를 말한다. 정치적 지도자란 누군가가 그에 대하여 "저 사람이 믿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찾아야 하며,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너희들은 아직도 나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학의 정신'
,
4쇄(종로서적, 1986), 55면.)

    4. 법과 경제
  '법과 정치'에 못지 않게 '법과 경제'도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가지
접근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역사적 유물론 내지 유물사관(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historical materialism)이다. 우선 칼 마르크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제관계 속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실제적 기초인바, 이 기초 위에 하나의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구조

세워지고 또한 이 기초에 대응하여 일정한 제사회의식의 형태가 존재하게 된다. 물질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제력이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를 경우, 이 때의
생산제력은 기존의 생산제관계 및 그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소유관계 - 이것들은 다름
아닌
생산제력 내부에서 이제까지 운동해온 것이지만 - 와 모순되기에 이른다. 생산력의
발전형태들로부터 이러한 생산관계는 생산을 구속하는 질곡으로 변한다. 이리하여 하
나의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다소간
급격하게 변혁된다.(마르크스/김호균  역, "정치경제학 비판에 부쳐", '경제학노트'
(이론과
실천, 1988), 11면.)
  이처럼 마르크스는 경제에 우선적 의미를 부여하고, 법 자체를 본질적인 실체로 파
악하는
견해, 즉 법물신주의(fetishism of law)를 비판한다. "법은 종교와 같이 독자적인 역
사를
가지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방법은 오랫동안 경제결정론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는데, 마르크스의 참 의도는 물질적, 경제적 토대야말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객관
적,
과학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제1의 소재임을 밝히는 데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
은 그가
놓인 객관적 상황을 왜곡없이 똑바로 인식할 때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주체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전제로서 사적 유물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엥
겔스가
'반뒤링'(Anti-During)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로 국가와 법은 고사하리라고 말한 
것도
'선언'의 의미 이상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을 확립하는 일은 마
르크스
이후의 '후계자'들에게 맡겨졌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다.(콜린즈/홍준형 역, '마르
크스주의와
법'(한올, 1986) ; 양건, '법사회학'(민음사, 1986), 135-147면
; 조성민  편역, '자본주의국가와 법이론'(태백, 1987) ; 케인헌트 편/ 민주주의법학
연구회역,
'맑스와 엥겔스는 법을 어떻게 보았는가?'(터, 1991).)

  오늘날까지의 역사와 현실은 법과 경제에 관한 마르크스의 명제에 몇 가지 한계가 
있음을
밝혀 주었다. 토대/상부구조의 비유에는 그 메커니즘에 관한 상세한 논증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측도 다소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듯이 보인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우리들에게 일깨워준 교훈, 즉 법의 물질적 기초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내지 근본성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유산이다.
  우리가 비록 사적 유물론의 모든 명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 조건지워져 있다는 역사인식과, 경제적 불평등은 극복되어져야 한다는 문
제제기
만은 늘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법과 경제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사적 유물론을 채용하는 데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그 
한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법의 기능에 대한 합당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생각건대 법과 경제 모두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요하다. 사적 유물론이 재기한 경제

선차성에 대한 강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법과 경제는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한다고 파악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접근방법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법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economics analysis of law)내지 법경제학이다.(Kuperberg & Beitz(ed.), Law,
Economics, and Philosophy: a Critical Introduction,
with Applications to the Law od Torts(Rowman & Allanheld, 1983); 폴린스키/송상현
정상조역,
; '법경제학입문'(경문사, 1984).)

 이 방법의 창시자는 코어스(Ronald
H. Coase)로, 1960년에 발표된 '사회비용의 문제'(The Problem of Social Cost)는 법
에서
효율성(efficiency)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논문이다. 여기서는 사적 유물론과는 
다른
뜻에서 법의 독자적 의미가 과소평가된다.
  예컨대 코어스의 공식(Coase's theorem)은 효율성을 가늠하는 데에 법이 관여할 영
역이
그리 크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후 포스너(R. Posner)등에 의하여 발전한 법경제
학도 이
효율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법경제학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

효율이 과연 모든 법영역을 위하여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정의를
대신할만한 척도가 될 수 있는가로 모아지는 듯하다.(자세히는 박세일, 미국에서의 법
경제학의
연구동향, '법학', 25권 2,3호, 1984.)

    5. 법과 혁명
  혁명((revolution)이란 정치체제나 법질서가 실력에 의하여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혁

하는
것을 말한다. 혁명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는 기본질서의 변혁으로서 보통 비합법
적인
폭력적 수단의 발동으로 행하여진다. 따라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적법하게 법을 개
혁하는
개혁(reform) 혹은 점진적 진보(evolution)와 의미를 달리한다.
  본래의 혁명과 비슷하나 다른 것으로는 '쿠데타'(coup d'etat)가 있다. 쿠데타는
비합법적인
폭력수단에 의한 정치적 변혁인 점에서는 혁명과 유사하나, 정치체제 또는 지배권력 

자체의 변혁이 아니고 지배층 내무에서의 권력의 상대적 이동에 그치는 점에서 본래의
혁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또 혁명은 피치자층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지배관계나
통치체제의
변혁인 데 대하여, 쿠데타는 위로부터의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바와 같이 정치의
기본조직이나 체제에는 변함이 없이 통치기관이나 지배권자의 비합법적인 교체가 행하
여질
뿐이다.
  혁명의 본래 유형은 법질서의 기본체제의 변혁으로서 법을 만들어내는
최고연원(헌법제정권력)의 변혁에서 구하여진다. 봉건적 신분지배나 절대군주제를 타
파한
근대 시민혁명이나 자본주의의 사적소유제도를 철폐한 현대의 사회주의혁명 등은 정치
사회의
기본조직과 헌법제정권의 소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혁명들이다.
  혁명은 구법질서에 대한 가장 급격하고 극단적인 도전이요 파괴이다. 즉 제헌권이
지배자로부터 피치자에게로 서서히 이행하는 개량과는 달리 기존의 체제를 뿌리째 뒤
집어
놓은 것을 의미한다. 혁명에 성공한 세력은 전적으로 새로운 이념에 의하여 새로운 체
제를
구축하게 된다. 거기에는 구법질서의 철저한 파괴가 따른다. 무혈혁명이라 할지라도 
실력에
의한 비합법적인 법의 파괴가 행하여지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혁명은 기존

법질서에 의한다면 위법성을 그 자체 속에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법을 파괴하는
비합법적인 힘은 기존 실정법의 관점에서는 불법, 혹은 위법의 낙인이 찍혀도 그것이 
동시에
부정당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혁명은 대개 기성질서의 부패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의 깃발을 들고 변혁을 단행한
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배권력에 대한 신흥세력의 실력투쟁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성을 둘러싼 이념의 투쟁이다. 구지배질서가 실정법의 내재적 정의에 비추어 법을
파괴하는 실력을 불법이라고 단속하며, 새로운 질서를 지향하는 혁명세력은 그 탄압을
실정법의 초월적 정의의 관점에서 부정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혁명은 단지 가치이념의
대립이나 이데올로기의 투쟁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실력의 투쟁이다. 지배권력이나
실정법규의 처지에서는 혁명이 최대의 불법이요 반역이다. 권력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강제수단으로 이것을 탄압하는 것도 한편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권력의 위협과 억압에 눌려있는 혁명세력이 비합법적인 대항수단으로서 권력에 대항하

극한적인 무력투쟁을 기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의 평등이나
피치자의 해방이 낡은 지배관계의 타파를 요구할 때 혁명은 새로운 건설을 의미한다.
자연법의 관점에서 혁명권을 인정하려는 견해는 고루한 지배질서를 타파하고 자유와 
정의를
세우려는, 실정법을 초월한 자연권을 승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 실정법의 견지에서 혁명을  단죄할 것인가, 미래사회의 관점에 비추어 혁명권

정당한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이 어떠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이다.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기존의 법질서가 구체적 타당성을
상실하고 그 정당성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인정이 없어진 때문이다. 법질서가 고루한
정화현상을 일으켜 그 부패에도 불구하고 밑으로부터의 비판이나 여론에 귀를 기울이
지 않고
오직 권력이나 억압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유지하려고 할 때에 위기적인 조건이 가하여
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혁명이 간단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민의를 끊임없이
입법부에서 반영시키도록 조직된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탄력적인 기구들이 건전하게
움직여가는 한 혁명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기구가 민의나 
여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법의 평화적 변천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법과 혁명의 관계는 실로 한마디로 뭐라 하기 어려운 주제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지면 역적이요, 이기면 공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혁명에 실패하면 국
가전복
내지 내란의 죄이므로 중벌을 면치 못하지만, 혁명에 성공하면 새로운 법을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자세히는 심헌섭, "법과 힘", '법철학'(법문사, 1983), 137-162면.)

    7. 법의 발전
  법은 발전하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박하게나마 법을 인간의 사회생활을 규율하는 규범이라고 볼 때 고대나 중세, 근세
를 거쳐
인간이 만든 지혜의 결집으로서 뭔가 발전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되기 때문이다. 
사실
법만큼 땅 위의 인간들이 꾸준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온 노력의 결정물

드물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법은 발전하는 것일까? 이렇게 되물어 본다면 우리는 
무엇이
발전인가, 도대체 무엇을 법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점에 부딪치게 될 것
이다.
법도 혁명과 전쟁에 의하여 얼마든지 파괴되는데다, 이른바 악법처럼 인간들의 간악한
지혜의 산물을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발전(development)이니, 진보(progress)니, 진화(evolution)니, 성장(growth)이니,
근대화(modernization)니 하는 비슷비슷한 개념들을 줄잡아 생각한다 하더라도 법의 
발전의
문제는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물음에 속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법과
발전'이냐 아니면 '법(자체)의 발전'이냐 하는 문제가 근원적으로 제기되는데, 법과 
발전의
문제에 대하여는 법학자뿐만 아니라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이 참여하여 광범하게 논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발전 자체에 대하여는 일차적으로는 법학자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가 해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법학에서 지금까지 법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는 한 번 검토

보려고
한다. 그것도 엄격히 따지면 법철학적 이해, 법사회학적 이해, 법사학적 이해로 나누

논의해야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엄격한 구별없이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분석해 보자.
(Robert B. Seidmann, "Law and Development: A General Model", Law and Society
Review 6(1972); Daved M. Trubek, "Toward a Social Theory of Law: an Essay on
the Study of Law and Development", Yale Law Journal 82, 1(1972); David M. Trubek
and Marc Galanter, "Scholars in Self-Estrangement; Some Reflections on the Crisi
s
in Law and Development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Wisconsin Law Review(1974)
.
이 논문은 한인섭이철우 엮음, '법, 국가, 저발전'(이성과 현실사, 1986), 123-174면
에 번역
되어
있다: Lawrence M. Friedman, "On Legal Develoment", Rutgers Law Review 24, 14, 19
69;
최대권, '법과 사회개발'(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1983), 181면 이하.)

  1. 막스 베버(M. Weber)의 견해
  법의 발전문제에 가장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학자는 역시 막스 베버(1864-1920)
라고

것이다. 베버에게 법이란 강제할 수 있는 '현실적 인간행동의 사실적 결정근거의 복
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법은 '흠없는 단계 사다리'를 이루어 관습이나 도덕 등 사회
질서와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베버에  의하면 법은 역사 속에서 점차 합리성(Rationalitat)
의 증진을
통하여 발전되어 간다. 그에 의하면 법의 형식적 자질(Qualitat)은 원시적 법과정에서

마술적으로 제약된 형식주의와 계시적으로 제약된 비합리성의 결합 속에서 나타나고, 
그것이
과도적으로는 실질적 혹은 가부장적으로 제약된 실질적 혹은 비형식적
목적합리성(Zweckrationalitat)의 우회로를 거쳐 점점 전문적으로 법률적, 논리적 합
리성과
체계성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관적으로 본다면 법은 시간의 진전에 따라
논리적으로 순화되고 연역적으로 엄격화되며, 법과정은 합리적 기술이 강화되는 방향
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발전단계를 베버는 다음과 같이 좀더 자세한 '합리성의 이념형'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법은 다음 네 가지 합리성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법구조와 형태

취하는 것이다.(Max Weber, Rechtssoziologie, S. 70.)

  1) 형식적 비합리성의 법: 여기서는 예컨대 주술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의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통제수단이 지배한다.
  2) 실질적 비합리성의 법: 개별적 경우의 구체적인 원리적, 감정적 혹은 정치적 평
가가
각각 지배한다. 여기서도 추상적 규율이 적용되지 않고 구체적인 합리성과 정의가 모
색될
뿐이다.
  3) 형식적 합리성의 법: 여기서는 철저히 일의적인 구성요건과 기준이 요구된다. 그
것은
싸인이나 특정한 언어의 선택 혹은 상징적 행위같은 내용적 가시성을 통하여 나타낼 

있고, 개념 체계화를 통하여 얻어진 일반 개념으로서 추상적인 의미해석의 논리적 일
반화를
통하여 나타낼 수도 있다.
  4) 실질적 합리성의 법: 내용적으로 일반적인 명령, 예컨대 윤리적 혹은 공리적 명
제나
격률이 형식적 판단을 깨뜨리는 법체계를 말한다. 말하자면 형식적으로 합리적인 절차

밟지 않더라도 합리적 목적을 향하여 동원될 수 있는 법을 뜻한다. 베버는 예컨대 동
양의
전통법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았다.
  베버는 한편으로 법이 마르크시즘에서 주장하듯이 순전히 경제적으로 제약되는 상부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른 한편 슈탐러(R. Stammler, 1856-1938)가 생각하
였듯이
경제적 내용을 담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
여,
이처럼 법이 합리성에로 발전하는 것은 법기술에 의존한다는 점을 논증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법기술의 형식은 매우 간접적으로만 경제적 발전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하려

하였다. 이것을 검증하기 위하여 그는 에를리히(E. Ehrlich, 1862-1922)와 마찬가지로 
주로
'경제적으로 적합한 법'인 사법에 연구를 집중하였고 그 결과로서 위에 제시한 법발전

유형들을 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베버가 생각한 합리적 법의 발달은 자본주의의 발달
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베버가 생각한 네 가지 합리서의 이념형에

불구하고 그의 머리 속에는 당시 독일 법학계를 풍미하던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
enz)의
개념화 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지적되는 사실이다.(M.
레빈더/이영희최종고 역, '법사회학'(법문사, 1981), 140면.)
  과연
비유럽적 법을 일률적으로 개념법학적 합리성의 척도에 의해서만 발전의 여부를 평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여기에서 생긴다. 어떻게 보면 베버가 그렇게 법과 사회를 연결시

생각하면서도 법의 발전의 문제를 너무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나 생각
된다.
  2. 라드브루흐(G. Radbruch)의 견해
  형법학자요 법철학자인 라드브루흐는 주저 '법철학'(Rechtsphilosophie, 1932)에서 
법의
발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상당히 시사성있는 언급을 
하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법을 '법이념에 봉사하는 의미있는 현실'(die Wirklichkeit, die 
den
Sinn
hat, der zu dienen)이라고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법은 하나의 문화개념이라고
본다.(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75), 126면.)
  따라서
그것은 현실 속에서 이념이 실현화되어가는 과정 속의 산물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법의
범주론적 개념은 법의 실재적 문화형식 속에서 현실로서 표현된다. 이러한 법의 개념

가지고 라드브루흐는 법의 역사철학 내지 법사(Rechtsgeschichte)의 철학에 관한 문제

대하여 사려깊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역사철학의 주제는 가치실현의 관점에서 본 역
사, 즉
가치에서 멀어지는 길로서의 역사를 뜻하는데, 그 때문에 법의 역사철학 내지 법사의 
철학의
임무는 법의 개념과 이념 및 효력이 현실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파악된다. 여기에서 그는 법의 소재와 형식의 관계, 즉 법형식의
형성력과
법소재의 저항력에 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생긴다고 한다.
  자연법론은 소재의 이념에 대한 저항력을 '제로'(Null)와 같이 놓을 수 있다고 믿는
관점이다. 즉 그것은 법이념의 자료로서 일정한 역사적 상태인 자연상태를 생각하고, 

자연상태는 사회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고립된 개인의 병존이라고 설명하여, 이 
개인
사이에 현존하는 사회학적인 구속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따로따로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것이
법이념의 임무라고 한다. 또 자연법론은 역사학적, 사회학적 소재의 저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념의 가변성을 부정한다. 이러한 법형식의 전능을 주장하는 자연법론을 극
복한
것이 역사법학파(Historische Rechtsschule)이다. 여기서는 민족정신(Volksgeist)이라

소여가 이성의 형성력을 희생시켜가면서 까지도 강조된다. 실제로 소재의 저항력이 제
로와
같은 것으로 생각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사회에 결정적인 운동들은 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깐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법질서는 오직 개개인에 대해서만
명령하며,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는 개인을 통한다고 하는 우로로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은 매우 제한된다. 예컨대 군중심리적인 현상은 법질서에 의하여는 지배되지 않는
다. 또
법질서는 자연현상에 대하여는 어떠한 작용도 미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연현상인 
동시에
사회현상이며 기술인 동시에 경제(Wirtschaft)는 본질적으로는 법에 영향받기보다는 

반대로 법에 대하여 작용하는 데 적합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법형식의 전능론과 무능
론이
대립하게 된다. 라드브루흐는 법형식은 법소재의 현상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극
단적인
견해로 또 유물사관을 든다. 법은 유물사관에서는 형성적 형식이 아니라 피형성적 형
식이고,
소재가 그 가운데 들어박히는 형식이 아니라 소재가 채용하는 한 형식이며, 또 핵심적
본질이 아니라 외부적 현상이다. 법은 철저히 역사학적, 사회학적으로 제약되며, 보편
타당한
형식적 구성부분을 조금도 가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법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독자
적인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법형식
만을
주장하는 자연법론과 법소재의 면을 강조하는 역사법학파와 유물사관을 소개하고,
라드브루흐는 법의 발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역사 속에서 법이념이 실현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다시 말하면 법은 두 
가지
방법으로  발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어떤 세계관과 정당이 가진 법이념에서 출발하여 역사가 어느 정도까지 그들 

이념의 실현에 봉사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즉 어떤 세계관과 정당의 이념의 역사 
속에서
법의 이념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자유주의적 역사철학의 예로서는 칸트의 세계시민

의도에서 출발한 보편사의 이념을, 사회주의적 역사철학의 예로서는 공산당선언을,
초개인주의적 역사철학의 예로서는 랑케(L. von Ranke)가 바이에른왕 막스(Max von
Bayern) 앞에서 행한 연설과 정치문답을, 또 마지막으로 초인격적 역사철학의 예로서
는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세계사적 고찰을 들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일반적으로 이념 특히 법이념이 어떠한 방법으로 역사에 영향을 주는
가,
그것이 개개인의 의식적인 목적설정이라고 하는 형태로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인
사회과정이라고 하는 형식으로인가 하는 문제를 추구한다. 이 두번째 문제는 이미 헤
겔과
사비니(F. C. von Savigny)와의 대립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지만, 라드브루흐는 이
에 대한
대답은 법이념은 끊임없이 점점 더 의식적으로 되고 더 목적적으로 되는 역사상 하나

추진력으로 되어왔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라드브루흐는 이러한 법의 발전은 여러 가지
표어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면서, 민족정신에서 국가의지에로의 발전이라든가, 관습법
에서
제정법에로의 발전이라든가, 유기적인 법의 성장에서 법에 있어서 목적 및 '권리를 위

투쟁'(Jhering)에로의 발전이라든가, 혹은 규범을 정립하는 사회구조를 생각하는 경우
에는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Tonnies)에로의 발전이라든가, 혹은 개개인의 법적 지위의 형
성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신분에서 계약으로(H. Maine)의 발전이라든가 상당히 개방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충동적 행위 대신에 하는 목적설정이라는 것도 반드시 절대적인 목적
이념에
일치될 수는 없고 순전히 이기적이며 자의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

충동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이기적인 목적정립도 보편타당한 목적이념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되는 수가 종종 있다고 본다. 심리학자 분트(W. Wundt, 1832-1910)

이것을 '목적의 변질'(Heterogeine des Zwecks)이라 하였고, 헤겔은 '이성의 교지'(Li
st
der Vernunft)라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충동적 법형성에서 목적적 법형성에로의, 또는
비합리적 법형성에서 목적합리적 법형성에로의 불가피한 발전은 서로 다른 가치판단 
아래
놓일 수 있다고 라드브루흐는 말한다. 사물들과 관계들이 가지는 이성이 모든 개인 이
성보다
높은 것이라고 하는 견해는 필연적으로 문화비관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이 자연필연적

발전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다른 한편 이에 반하여 사물들과 관계
들 속에
존재하는 이성은 모두 이성적인 개인이 그것에 부여한 것이라고 하는 견해는 이
자연필연적인 발전 속에 역사를 통한 이성의 개선행진, 즉 무한한 진보의 존재를
문화낙관주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확립하
여야
하는 것은 공동사회의 위대한 이론가는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에로의 부단한 발전에서
문화비관주의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하는 점이다.
  이렇게 라드부르흐는 역사 속에서의 법의 발전에 대한 의미해석에 개방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자신은 법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

만년의 저서 '법철학입문'(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에서 은연 중에 드러난
다. 그는
"법은 역사현상에 관한 완전한 지배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새로운 법률상
태는
종전의 법률상태로부터 법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며, 역사의 과정에

결코 법의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정통성(Legitimitat)이라는 표어의 의미
이다"
(라드브루흐/엄민영서돈각 역, '법철학입문'(육법사, 1982), 173면.)고 말한다.
  역사의 다이나믹한 성질은 파국들(Katastrophe)에 따른 법의 파괴에 의한 법의 끊임
없는
새로운 재발생(자연발생)으로 발전한다고 라드브루흐는 말한다. 이것이 곧 옐리네크(
G.
Jellinek)가 말한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Normativitat des Faktischen)이라는 말의
의미라고
라드브루흐는 설명한다. 그러나 법의 완전지배는 역사에서 그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한편으로는 전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의 불연
속성에
대하여 법이 역사의 완전한 지배를 요구하면 평온한 시대는 몇번이고 원하지 않는 것
으로서
받아들이게 된다고 라드부르흐는 말한다. 몰트케(Moltke)는 영원한 평화를 "하나의 꿈
이다.
결코 아름다운 꿈은 아니다" 라고 말하였고, 니체(F. W. Nietzsche, 1844-1900)는 오
히려
'위험한 생활'(das gefahrliche Leben)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라드브루흐가 시사하는 
것은
역사의 불연속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발전은 있으며, 그에 대응하여 법의 발전도
불연속적이나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라드브루흐의 설명은 법의 발전에 대한
사실과학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법의 역사철학 내지 법사의 철학이기 때문에 매우
추상적이지만, 역사라는 것 자체가 무엇이라고 사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한다면, 깊은 의미를 깨우쳐 준다.

  3. 델 베키오(Del Vecchio)의 견해
  이탈리아의 로마대학 총장을 지낸 법철학자 튷지오 델 베키오(1878-1970)는 법의 발

내지
진화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근본적으로 법의 진보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이 목적의식으로 인한 독단적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그 유기적 발달에 포함된 종국목적의 전개로 보아야 한다. 인
간의
정신에는 단계적으로만 나타나는 소질과 능력이 내재한다. 법의 영역에서도 인간적 인
격의
본질적 특성이 개인에서와 마찬가지로 각 민족의 경우에도 시대의 경과 속에서 비로소
전개하며, 점차적으로 인정되고 실현된다. 더욱이 이성이 발달된 정도에 따라 실현된
다.
이것이 법의 진화를 나타낸다.(G. Del Vecchio, Lehrbuch der Rechtphilosophie, S. 4
29.)
  이렇게 근본적으로 법의 발달 내지 진보를 긍정적으로 전제하고, 베키오는 법의 발
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법은 무의식적인 것에서 의식적인 것으로 발전한다. 법은 직접적이고 비사유
적인
법형성으로부터 사유적이며 자각적인 완성에로 발전한다. 관습과 같은 포괄적 사회규
범 속에
들어있던 법이 사회의 진보와 함께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통하여 성문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이 때 법을 지지하는 힘은 개인의 양심에 기초하는 '공통의 확신'이다.
  둘째, 법은 특수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발전하다. 원시적 법은 특정국민의 역
사적
운명에 크게 제약되지만 점점 하나의 보편성을 향하여 구심적 경향을 나타낸다. 여기
에는
전쟁과 거래같은 외부적 원인도 있고, 보편성을 지향하는 인간적 정신의 내부적 원인

있다.
  셋째, 법은 열등한 심리적 동기에서 우등한 심리적 동기로 발전한다. 베키오는 법이
처음에는 불가지의 공포, 공동방위의 필요, 개인종족의 보호 등 본능적 충동에서 발생
했으나
차차로 공동생활의 다른 동기, 자유의 요구 등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와
같이 법의 발전을 심리적 면에서 보기 때문에 역사적 유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유물주의는 경제적 숙명주의이므로, 법은 외부적이고 피상적인 파생물로서 부수현상으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넷째, 법은 강제적 결합에서 임의적 결합으로 발전한다. 초기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역사적 발전으로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면서 책임이 개별화되고 신
분이
파괴되었다.
  이것이 베키오의 법발달의 특징에 관한 서술인데, 그러면서도 이러한 변화를 초월하

항상
불변하는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법이 다수 인격자의 행위의 객관적 조절이라는 
데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첫째는 인격의 보장이고, 둘째는 개인의 자의의 금지라고 
한다.
(G. del Vecchio, a.a.O., S. 414.)

  4. 갈란터(M. Galanter)의 견해
  시카고대학과 스탠포드대학에서 비교법학을 가르쳤고, 특히 인도와 남아시아 법에 
관하여
깊이 연구한 마르크 갈란터 교수는 법의 근대화에 관하여 매우 흥미있는 명제를 제시
하였다.
(Myron Wiener, Modernization; The Dynamics of Growth(1966), 차기벽 외 역,
'근대사'(세계사, 1967), 195-209면.)
  즉 그는 근대 법체제에 공통되는 현저한 특색으로서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우선
법규의 종류에 대해서 보면,
  첫째, 근대법은 그 적용에 있어 균일하고 일정불변한 법으로서 구성된다. 이러한 법

적용은 대인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이다. 즉 같은 법이 온갖 종교, 종적, 계급, 카스
트,
지역의
성원과 남녀 양성에게 적용된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개인간의 차이는 귀족과 농노, 또

브라만과 하부 카스트간의 차이와 같은 고유한 종류나 속성의 차이가 아니라 세속적인
직업에서의 기능과 조건 및 업적의 차이이다.
  둘째, 근대법은 거래로 성립된다. 권리와 의무는 그것들이 특정거래 이외의 결정요

때문에
법주체에 수반하는 불변하는 연속적 결정으로서 집계하기보다는 당사자간의 거래에 연
유하기
때문에 배당된다. 즉 법적 권리와 의무는 특정거래와는 상관없는 연령, 계급, 종교성
과 같은
요인들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존재하는 권리와 의무의 이와 같은 결정화된 
지위는
선천적인 가치나 신성한 명예보다는 세속적인 기능이나 조건(예컨대 고용주, 기업가)

터잡고 있다.
  셋째, 근대 법규범은 보편주의적이다. 규제를 위한 실례들은 독특하고 직관적인 것

표시하기보다는 일반적 적용의 타당한 기준을 예증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리하여 
법의
적용은 재현할 수 있고 예견할 수 있다. 카디(이슬람의 법관) 재판적 정의(Kadi-Justi
z)는
칸트의 지상명령에 의해 대치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법을 집행하기 위한 제도적인 조처와 기술은 어떠한가?
  넷째, 그 제도는 계층적이다. 이 법을 적용하기 위한 제1심 재판소의 정규적인 망상
조직이
있고, 그리고 지방적 소송이 전국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항소와 재심의 
일정한
상층구조가 있다. 이는 그 제도로 하여금 일률적이며 예측할 수 있게 한다. 하부기관
에 대해
실질적인 감독을 하는 이런 종류의 계층제도는 부여된 권한 안에서 완전한 자유재량을
향유하는 하부기관에게 기능을 위임하고 있는 계층제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다섯째, 그 제도는 관료제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통일성을 이룩하기 위하여 그 제도
는 각
소송마다 정해진 절차에 따르며 각 소송을 성문법에 부합하도록 판결하면서 공평무사
하게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심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의 성문기록이 각
소송마다 보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섯째, 그 제도는 합리적이다. 그 소송절하는 특수한 비합리적 자질없이도 배울 수 
있고
전해질 수 있는 기술에 의해서 성문화된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법은 그 공식적
인 속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선택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의 그 수단적 효용성 
때문에
가치가 부여된다. 예를 들면 증거의 영역에서 신학적이며 형식주의적인 기술은 기능적

기술에 의해 대치되었다.
  일곱째, 그 제도는 전문가들에 의해 운용된다. 세속적인 자격시험을 통해 선택된 사
람들이
그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일에 가끔 종사하거나 부업으로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간 종사하는 전문직업인이다. 그들의 자격은 특수한 자질이나 재능의 소유에서거

인생의 어떤 다른 영역에서의 탁월성에서가 아니라 법체계 그 자체에 관한 기술습득에

오고 있다. 영주나 종교적 고위성직자는 훈련된 직업적 법률전문가, 경찰, 증인, 신문
인 및
기타 법률집행 전문가에 의해 대치된다.
  여덟째, 그 제도가 더욱 전문적이고 복잡하게 됨에 따라 법원과 그리고 법원과 거래
해야
하는 사람들간에 전문화된 직업적인 중개자가 나타난다. 변호사가 단순한 비전문적인
중개인을 대치하게 된다.
  아홉째, 그 제도는 개정할 수 있다. 그 제도에는 신성한 불변성은 없다. 그것은 변
하는
필요에 대응하거나 변하는 선호를 표시하기 위해 법과 절차를 명시적으로 개정하는
일정하고도 공공연한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리하여 특수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혁신이 가능하다.
  끝으로 법과 정치적 권위와의 관계에서 보면,
  열번째, 그 제도는 정치적이다. 법이 국가와 밀접히 관련되고 있으므로 국가는 그 
관할권
내의 쟁의에 대한 독점권을 누리고 있다. 종교재판소나 동업조합과 같은 쟁의해결을 
위한
다른 재판소는 오직 국가의 묵인 아래서만 또는 국가의 짜여진 틀에서만 운영되며 자
칫하면
국가의 감독을 받기 쉽다.
  열한번째, 구체적 소송사건에 해당하는 법률을 찾아내어 그것을 적용하는 일은 다른
통치기능과 직원 및 기술에서 구별된다.
  갈란터에 의하면 법의 근대화는 이상의 열한 가지 특징들의 발전 또는 그런 특징들

지향하는 끊임없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에서는 11세기에 시작된
로마법의 계수에서부터 알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18세기 말에 활기를 띠어 19세기 초

유럽의 대부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비유럽국가들에서 근대화는 유럽법의 도입과 밀접
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런 종류의 근대화는 오늘날 신구를 막론하고 모든 나라에서 진행
되고
있다고 본다.

  5. 레빈더(M. Rehbinder)의 견해
  스위스 츄리히대학의 법사회학 교수 만프레드 레빈더는 그의
'법사회학'(Rechtssoziologie)에서 현대사회에서 법의 발전경향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M. 레빈더/이영희최종고 역, '법사회학'(법문사, 1981), 123-142면.)
  여기서 그는 법의 변화현상을 서술할 뿐 발전의 의미를
논하지는 않고 있지만, 현대법의 발전추세를 가리켜주는 흥미있는 진단이라 여겨진다.
  첫째, 법의 통일화 경향을 들 수 있다. 교통의 발달, 매스 미디어의 보급에 따라 공
간적,
시간적으로 축소된 세계 속에서 법은 점점 통일화되고 있다. 미국의 통일 상법전(Unif
orm
Commercial Code), 독일의 보통거래약관(Allgemine Geschaftsbeeingungen, AGBG) 및
연방공화국에서 연방에 대한 강력한 입법권의 부여 등 법통일화의 경향은 현저하게 나
타나고
있다. 이것은 국내법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조약을 통한 국제화로까지 전개되고 있고, 

국가들이 외국법의 수용(Rezeption)과 법비교(Rechtsvergleichung)의 방향으로 나아가

있는데서도 드러난다.
  둘째, 법의 사회화 경향을 들 수 있다. 19세기의 시민법 질서가 보장한 사적자치의
원리(Prinzip der Privatautonomie)는 실질적으로는 불평등과 부자유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사실적 불평등은 사법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맨탈리티에 의하여(본의 아니게) 강화되

이른바 계급사법(Klassenjustiz)의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상황에서 법

라드브루흐가 적절히 표현한 바와 같이 '개인주의법에서 사회법에로'(vom
individualistischen
zum sozialen Recht)의 경향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는 국가가
복지국가(Wohlfahrtsstaat)의 이념을 내걸고 더욱 적극적으로 국민의
생존배려(Daseinsvorsorge)에 의하여 법을 제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그리
하여
노동법, 경제법, 사회보장법 등 이른바 사회법(Sozialrecht)의 법역을 대표로 하여 나
아가
경영참가 및 환경보호 등 광범하게 법의 사회화가 추진되고 있다.
  셋째, 법자료의 증대화 경향이다. 국가임무의 확대, 사회생활의 복잡화, 관료화는 
법률의
폭발 혹은 법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사회발전 법칙에 따라 법은 고사한
다느니,
법은 되도록 단순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은 사회적 낭만주의자(Sozialromantiker)들
이나
하는 소리로 되어버렸다. 법자료의 증대로 문화는 침체되는 것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활동이 법의 수단을 통하여 더욱 진보되는 것으로 파악되어져야 할 것이다. 어
쨋든
지나친 법증대는 혼란을 야기하는 수도 있으므로 현대에서 '입법의 소명'에 대하여 논
란이
계속되고 있다.
  넷째, 법기관의 전문화와 관료화 경향을 들 수 있다. 권력분립은 국민의 자유를 보
장하기
위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대명제이지만, 법의 문제는 전문가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사항으로 취급되고 있다. 판사, 검사, 공증인, 행정법률가, 경제법률가 
그리고
법무사에 이르기까지 법률가들이 전문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

독일의 경우 법원제도는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체계를 이루어 전문화되고 있다(헌법
재판소,
보통재판소, 노동재판소, 재정재판소, 사회재판소, 특허재판소). 또 보통재판제도 속
에도
민사와 형사의 구별은 물론 각종 분과(후견과, 등기과, 증명과)가 있고,
특별위원회(상사위원회, 토지위원회)나 심의회(카르텔심의회, 저작권심의회)들이 있
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증거력을 갖기 위하여 모든 판결절차는 문서화되고 광범하게 형식화된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인은 법치국가(Rechtsstaat)속에 살고 있다기보다도
법수단국가(Rechtsmittelstaat)에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으며,
그러면서도
법은 더욱 지켜지지 않고 무규율화로서의 아노미(Anomie)현상이 일어난다고 하겠다.
  다섯째, 법의 과학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집단다원주의(Gruppenpluralismus)에 입각한 사회로서 관용(Toleranz)의 원리와 다수
결의
원리를 불가피하게 신봉하고 있다. 또 사회적 집단화와 그에 따른 수단의 합목적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헌법에 맞추어 다수에 의하여 결정함으로써 정당화된다(합법성에 
의한
정당성, Legitimation durch Legalitat). 그러나 이러한 다수결에 의한 법규범의 의미

목적에
대하여도 질문은 광범하게 제기된다. 즉 다수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사실적 작
용력을
얻으려면 규범을 받는자들(Normenadressaten)에게 수긍이 가도록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속화된 사회에서 가장 신빙할만한 기준은 과학이며, 법기관은 점점 더 과학

정보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막스 베버가 분석한 대로 법에서 합리성의 요청은 더 높
아가고,
이를 위한 과학화의 작업은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서 이뤄지고 있다. 국회, 정부,
법원에서
행하는 각종계획(Planung)과 자료처리(Datenverarbeitung), 사무의 프로그래밍(예컨대
컴퓨터로 처리된 입법, 판결의 문서처리, 기계적 조세결정, 행정의 자료은행,
토지등기부에서부터 공증인서류까지의 전산화) 등이 이것을 말하여 준다. 앞으로는 법
정에
판사를 대신해서 컴퓨터가 앉을 것이라는 미래학적인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
지만
상당한 영역에까지 과학의 손길이 확대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그렇게 됨으로써 법률 당사자는 법률경과(소송)를 몰이해하고, 법에 대한 인식과 존경

갖지
못하여, 권리를 남용하게 될 부작용도 따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학적 발전을 규제하

법의
영역이 대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예컨대 자료보호법).

  6. 노네(P. Nonet)와 젤츠닉(P. Selznick)의 견해
  버클리대학의 필립 노네 교수와 필립 젤츠닉 교수는 공저 '전환 속의 법과 사회'에
서,
법은
억압적 법(repressive law)의 단계에서 자율적 법(autonomous law)의 단계로, 자율적 
법의
단계에서 대응적 법(responsive law)의 3단계로 발전한다고 설명한다.(P. Nonet & P.
Selznick, Law and Society in Transition; Toward Responsive
Law(Harper & Row, 1978), p. 15; 정동호신영호 공역, '법과 사회변동'(나남, 1986).)
  첫째, 억압적 법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법제도들은 직접적으로 정치권력에 밀착되어 있다. 법은 국가와 동일시되고 국
가의
목적(raison d'etat) 아래 놓여있다.
  #2. 권위의 유지는 법적 관청에 선점되어 있다. '공식적 관점'들이 지배하고, 의문
이 있을

체제 측에 유리하게 판단이 이루어지며, 행정적 편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3. 경찰과 같은 전문통제기관들이 권력의 독립적 중심을 이룬다. 그것들은 중재적
이고
사회적 사정에서 유리되고 정치적 권위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4. '이중적 법'(dual law)의 체제가 사회적 복종의 패턴을 강화하고 정당화함으로

계급적
정의를 제도화한다.
  #5. 형법전은 지배적인 습속(mores)을 반영한다. 그리고 법적 도덕주의(legal moral
ism)가
풍미한다.
  둘째, 자율적 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법은 정치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특히 체제는 사법의 독립성을 선언하고 입법과
사법기능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설정한다.
  #2. 법질서는 '규율의 고정된 모델'(model of rules)을 신봉한다. 공식적 예견가능
성의
정도를
증대시키는 데 규율의 초점이 놓여있다. 동시에 그것은 법제도의 창조성과 정치영역으
로의
침투위험을 제약한다.
  #3. 절차가 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실질적 정의(substantive justice)가 아닌
규칙성(regrlarity)과 공정성(fairness)이 법질서 제일의 목적이고 주된 권능이다.
  #4. '법에 대한 충실'(fidelity to law)은 실정법의 규율에 대한 엄격한 복종으로
이해된다.
기존의 법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셋째, 대응적 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법적 발전의 다이나믹스는 법적 추론에서 목적의 권위를 증대시킨다.
  #2. 목적은 법적 의무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다.
그럼으로써 복종에 대한 법의 요구를 완화하고 공공질서에 대하여 덜 엄격하고 더 시
민적인
관념을 개방한다.
  #3. 법의 개방성과 신축성을 획득함에 따라 법적 주장은 정치적 차원을 띠게 되며
법제도를
교정하고 변화하는 데 공헌할 힘을 산출해내지만, 제도의 고결성을 동요하게끔 위협한
다.
  #4. '압력의 환경'(environment of pressure) 속에서 법적 자치의 지속적 권위와 법
질서의
고결성은 더 적절한 법제도에 대한 구상(design)에 의존한다.
  이러한 3단계 법발전의 특징을 다시 한번 요약해보면 표와 같은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노네와 젤츠닉의 삼단계적 법발전의 특징
  #1. 목적
  1)억압적 법: 질서
  2)자율적 법: 정당성
  3)대응적 법: 권능
  #2. 정당성의 근거
  1)억압적 법: 사회방위, 국가이성
  2)자율적 법: 절차적 공정성
  3)대응적 법: 실질적 정의
  #3. 규율의 성격
  1)억압적 법: 조야하고 자세함, 다만 법정립주체에 대한 구속력은 약하다.
  2)자율적 법: 정련되어 있고, 피치자와 마찬가지로 치자도 구속하도록 되어있다.
  3)대응적 법: 원칙과 정책에 복종
  #4. 법적 추론
  1)억압적 법: 수시로 편의에 좌우되며 개별적(특수주의적)
  2)자율적 법: 법적 권위에 엄격히 결속(집착), 형식주의와 법률주의로 되기 쉽다.
  3)대응적 법: 목적지향적, 인식권능
  #5. 재량
  1)억압적 법: 기회에 따라서 널리 행해진다.
  2)자율적 법: 규율에 의해 제약됨, 위임의 여지는 좁다.
  3)대응적 법: 널리 행해지지만 목적에 대해 책임이 있다.
  #6. 억압
  1)억압적 법: 널리 행해지며 그에 대한 규제는 약하다.
  2)자율적 법: 법적 규제에 의해 통제된다.
  3)대응적 법: 그것을 대치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적극적 추구, 예컨대 인센티브, 
의무의
자기 지지적 체계
  #7. 도덕성
  1)억압적 법: 공동체적 도덕성, 법도덕주의, 억제의 도덕성
  2)자율적 법: 제도적 도덕성, 예컨대 법적 절차의 통합성에 크게 선점
  3)대응적 법: 시민적 도덕성, 협동의 도덕성
  #8. 정치
  1)억압적 법: 법이 권력, 정치에 종속
  2)자율적 법: 법이 정치로부터 독립, 권력의 분립
  3)대응적 법: 법적 지향성과 정치적 지향성의 통합, 권력의 융합
  #9. 복종에 대한 기대
  1)억압적 법: 무조건적 불복종은 그 자체 도전으로 간주되어 처벌된다.
  2)자율적 법: 법적으로 정당화된 규율의 일탈, 예컨대 법률과 명령의 유무효를 심사
  3)대응적 법: 실질적으로 해가 되는가에 따라 불복종을 평가,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됨
  #10. 참여
  1)억압적 법: 맹종, 비판은 불충으로 간주된다.
  2)자율적 법: 기존절차에 의해 접근도 제한되어 있다. 법적 비판의 대두
  3)대응적 법: 법적 주장과 사회적 주장의 통합에 의해 접근이 확장된다.
  노네와 젤츠닉은 이 3단계는 법의  분명한 유형(distinct types of law)일 뿐만 아
니라
어느
정도 법과 정치적, 사회적 질서와의 관계에서 진화의 단계(stages of evolution in th
e
relation
of law to the political and social order)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진화의 단계란 말

썼지만,
그것은 곧 발전의 모델(development model)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이 그 다음
설명에서 곧 드러난다. 이들은 발전이란 말이 19세기 진화주의(evolutionism)가 시들
어짐과
함께 비판을 받아 왔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면서도 제도사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방향성(directionality), 성장(growth)과 패망(decay)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
장한다.
법학에서도 어떤 법분야는 다른 법분야보다 더 발전되었다거나 법적 변화가 성장의 패
턴을
보여주거나 패망의 패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로스코
파운드(Roscoe Pound, 1870-1964)를 법의 성숙도(maturity)에 따라 법의 발전의 정도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한 학자라고 지적한다. 노네와 젤츠닉은 발전이론에 대

비판은 지성적으로 너무 나갈 수 있으며, 오히려 발전이론의 근본관점이 결실을 거둘 

있고 심지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법의 발전에 관한 베버, 라드브루흐, 델 베키오, 갈란터, 레빈더 그리고 
노네와
젤츠닉의 견해들을 살펴보았는데, 물론 이로써 이 방면의 학문적 업적을 골고루 소개
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법의 발전을 "신분에서 계약으로" 라고 표현한 고대법 연구가 헨리
메인(Henry S. Maine, 1822-1888)에서부터, (Robert Redield, "Maine's Ancient Law i
n the
Light of Primitive Societies",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3(1950), p. 57.)
  최초의 첨단실험을 통하여 인간의 법의식
발달도를 측정하려 했던 로렌스 코올베르크(Lawrence Kohlberg, 1927-1987) (
 ) Jane Tapp & L. Kohlberg, "Developing Sense of Law and Legal Justice", Journal
of Social Issues, vol. 27,  no. 2(1971), p.65; L. 코올버그/김민남 역, '도덕발달
의 철학
', 교육과학사, 1990.)까지
추가돼야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좀더 시야를 넓히면 형사적 법(repressive
law)에서 회복적 법(restitutive law)에로의 발전을 생각한 에밀 뒤르깽(Emil
Durkheim)이나,
(Leon S. Sheleff, From Restitutive Law to Repressive Law; Durkheim's Division
of Labour in Society Revistited, Archives Europeenes de Sociologie, 16, no. 1(19
75),
p. 16; Richard D. Schwartz & James Miller, "Legal Evolution and Social Complexit
y",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70(1964), p. 1599.)

생산수단으로서 경제구조의 발전 속에서 법의 발전문제를 생각한 마르크스와 그 추종
자들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학자들의 이론 그 자체를 배우려기보다도 법의 발전이란 무엇
인가를
알아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법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법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된다고
서론에서
비쳤듯이, 법의 발전에 관하여 수 많은 학자들의 관심영역에 따라 (법)철학적으로,
(법)사회학적으로, (법)역사학적으로 각양각색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체로 법에서 발전의 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법에서도 양적인 증가냐 질적인 발전이냐 하는 문제가 되풀이되어 물어질 수 있다.
법사학자들은 법의 양적 증가의 추세를 분석하고 그것을 발전이라고 보는가 하면,
법철학자는 법의 내용적 단절에도 불구하고 법이념의 창조적 발전의 계기를 긍정적으

받아들이는 법의 역사철학을 전개한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모두 역사 속에서의 법이
라고
하는 피제약적 현실에 관한 논의로서, 역사란 것 자체가 신비한 것인 한 불완전한 논
의에
불과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아무리 현대의 법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과 적용에서 고대

단순한 법만큼 '발전'의 질을 못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은 한편으로는 제도요 기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과 정신의 산물
로서
무엇보다도 그 체계성과 합리성, 보편성과 문화성을 강하게 추구하는 규범이다. 이러
한 법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전제함은 어쩌면 역사 속에서 인간이 더 낫게 살려는,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역사적 책임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은 역사
학자
아돌프 라우프스(Adolf Laufs, 1935-) (dolf Laufs, Rechtsentwicklungen in
Deutschland(Berlin, 1978).)
 가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제적 성장, 종교적 충동,
정신적 또는 문화적 자극, 정치적 목적 등 다양한 요인의 복합에 의하여 발전하는 것

사실이다. 이 발전의 사실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정리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는 것
이다.

  참고문헌
  라드브루흐/엄민영서돈각 역, '법철학입문', 육법사, 1983
  A. M. 폴린스키/송상현정상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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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 프리드만/박남규 역, '법과 사회', 법문사, 1984
  켈젠/장경학 역, '공산주의 법이론', 명지사, 1984
  휴 콜린즈/홍준형 역, '마르크스주의와 법',
한울, 1986 
  한인섭이철우 엮음, '법국가저발전', 이성과 현실사, 1986
  조성민 편역, '자본주의국가와 법이론', 태백, 1987
  등전용/이경주 역, '마르크스주의 법학입문', 이성과
현실, 1990
  모린 케인알란 헌트 편저/민주주의법학연구회 역, '맑스와 엥겔스는 법을
어떻게
보았는가', 터, 1991
  최대권, '법과 사회', 서울대출판부, 1992 
  러셀 겔로웨이/안경환 역,
'법은 누구 편인가', 교육과학사, 1992.
  Harold J. Berman, Law and Revolution: The Formation of Western Legal
Tradition, Harvard Univ. Press, 1983 ; Paul Hirst, On Law and Ideology, Humaniti
es
Press, 1979 ; R. Stammler, Wirtschsft und Recht nach msterialistischer
Geschictsauffassung, 1896.

  연습문제
  1. 법의 변동요인을 논하라.
  2. 법과 정치의 관계를 논하라.
  3. 법과 경제의 관계를 논하라.
  4. 법과 혁명의 관계를 논하라.
  5. 유물사관적 법이해를 논하라.
  6. 법은 발전하는가?
  7. 저개발국가에서의 법과 사회변동을 논하라.
@ff

      제 13장 국가와 법치주의

    경들이여, 국가의 유용성이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자기를 신뢰하지 마시오.
-쉴러(F. Schiller)
    국가가 자기 스스로를 법의 척도로 삼고 국가 자신의 의사를 정의와 혼동할 때에
는 이미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끄 엘룰(Jacques Ellul)

    1. 서론
  법학도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 혹은
법치국가(Rechtsstaat)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믿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법학을
배운다고 말할 수 있다. 법이 무엇이기에 그것으로 하여금 국가와 사회를 다스려가게
하는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딘지 허구같은 느낌이 없지 않기에 그것을
물신숭배(Fetischismus)라고 냉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인
간이
인간존재의 불완전성을 솔직히 인식함으로써 이룩한 고도의 정신적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을 무시하고 잘된 일이 역사적으로 거의 없다고 본다면, 법치주의를 논하기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를 추구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2. 국가의 개념
  국가란 일정한 지역과 그것에 정주하는 사람을 지배하는 최고권력에 의하여 결합된
조직체이다. 동양 고전에는 '나라'(국)와 집(가)이란 표현이 빈번히 사용되면서도 막

국가란
말은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영어의 state, 독일어의 Staat를 1860년대에 중국과 일본
에서
처음 '국가'라고 번역하여 사용했다.
  1) 지역적 사회: 국가는 일정 지역과 그 주변 영해 및 그들의 상공인 영공을 그 존
립의
기초로 한다.
  2) 정치적 사회: 국가는 강제력으로써 그 구성원의 의사 및 행위를 통제하고 그에
복종시켜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는 지배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지배권을
통치권이라 하는데, 국가는 통치권에 의하여 조직된 사회, 즉 통치조직을 가지는 사회
이다.
  3) 최고독립적 사회: 통치조직을 가지는 지역적 사회의 특질은 국가 이외에 연방의 
주,
식민지도 원칙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국가와 이들과의 차이는 국가가 대내적으로는 최
고이며
대외적으로는 독립이라는 점에 있다.

    3. 국가의 형태
  1. 국체에 의한 구분
  법적 의미에서의 국체는 국가권력의 최후적 귀속자를 표준으로 하는 국가형태의 분
류이다.
  1) 군주국체: 국가권력이 국가구성원 속의 한 자연인에게 최후적으로 귀속하는 국체
이다.
이 자연인은 군주라고 하며 기타의 국가구성원을 신민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국체에
서는
군주의 의사가 곧 국가의 의사이며 국가의 활동은 모두 군주에서 비롯되고 모든 정사

궁극적으로 군주가 판단한다.
  2) 귀족국체: 국민 가운데서 일부 특권신분층인 귀족에게 국가권력이 귀속하는 국체
이다.
그러나 이 국체는 근대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쇠퇴하였으며, 현대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3) 계급국체: 국가권력이 국민 중의 한 계급(예컨대 노동계급)에게 귀속하는 국체인
데,
소련 및 그 위성국가의 근본을 이루고 있었다.
  4) 민주국체: 국가 전체가 국가권력의 귀속자 내지 보유자라고 생각되는 국민주권의
국체를 말한다. 이 국체에서는 피치자가 동시에 치자로서 기능하는 이른바 '치자와 피
치자의
동일성'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2. 정체에 의한 구분
  법적 의미에서의 정체는 국가권력의 행사방법, 즉 통치권을 행사하는 형식절차를 기
준으로
하는 국가형태를 말한다.
  (1) 군주정체와 공화정체
  1) 군주정체: 군주정체는 통치권의 행사에 있어서 군주가 최고통치권 행사자인 정체
인데,
다른 국가기관에 의하여 어더한 제한도 받지 않는 전제군주정과 통치권의 행사에 있어

군주의 의사를 제한할 수 있는 국가기관을 가진 제한군주정이 있다. 이 제한군주정은 
다시
등족군주정과 입헌군주정으로 분류된다.
  2) 공화정체: 통치권의 행사에 군주가 관여하지 않고 군주라는 것이 없는 정체이다. 

ㄱ)입헌공화정(미국프랑스), ㄴ)계급독재공화정(소련), ㄷ)귀족적공화정(고대),
ㄹ)행정부독재적공화정(나치스 독일) 등이 그것이다.
  (2) 간접민주정치와 직접민주정치
  1) 간접민주정치: 국민은 다만 대통령 내지 국회의원과 같은 공무원을 선거한 권리 
내지
피선거권 및 공무담임권을 가질 뿐이고, 입법, 행정, 사법과 같은 통치권은 대통령, 
국회
등의
민간기관 기타의 통치기관에 의하여 행사되는 제도를 말한다.
  2) 직접민주정치: 국민이 직접 헌법 또는 법률을 제정, 개정한다든가 외국과의
선전강화를
결정한다든가 예산을 편성한다든가 공무원을 파면하는 등 국가기관의 형성관여권과 그 
밖에
직접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직접민주정치의 주요한 제도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가) 국민표결권(referendum): 국민에게 의안 기타에 대한여 최종적 결정권을 주는
제도이다.
  (나) 국민발안제(initiative): 국민에게 능동적으로 어떤 의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국민창안이라고도 한다.
  (다) 국민소환제(recall): 국민이 대통령 기타의 정부직원, 국회의원 기타 공무원을
파면할
수 있는 제도로 국민파면이라고도 한다. 현대 자유민주국가에서 국민주권의 근본정신

실정법상으로도 충실히 구현하기 위하여 통상적인 국무는 일반국가기관에 의하여 수행

하되 국가운명을 좌우할 중대사항에 관해서만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법상의 발언권 내

최종결정권을 부여하려는 취지에서 이른바 혼합민주정치의 채택이 요청된다.
  (3) 연방제와 단일제
  통치권이 원칙적으로 중앙정부에 의하여 통일적으로 행사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그에게 수권한 범위 안에서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를 단일제라 하고, 통치권

처음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분할되는 국가를 연방제라 한다. 특히 연방제에
서는
외교, 군사, 화폐 등 전국을 통하여 통일을 요하는 사항만을 상방(연방정부)이 관할하
고,
기타의 일반사무는 하방(주정부, 지방)이 관할하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4. 국가의 구성
  국가는 일정한 지역을 성립요건으로 하고 나아가 주민을 지배하는 통치단체이다. 이
러한
국가의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즉 1)국가는 신의 의사에 따라 성립된 것이라는
신의설, 2)국가는 가족의 결합 내지 가족을 확대한 것이라는 가족설, 3)국가는 재산, 
특히
토지의 영유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재산설, 4)국가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에 의
하여
성립된 것이라는 실력설, 5)국가는 인간 상호간의 계약에 의하여 성립되었다는 계약
설,
6)국가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심리설 등이 있다.
  옐리네크(G. Jellinek, 1851-1911)는 국가는 국민과 주권및 영토의 3요소로 구성된
다는
설을
주장하여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옐리네크의 국가 3요소설로서 국가가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국가를 국가로서 운영해 나가기 위하여는 스멘트(Rudolf
Smend, 1882-1975)가 주장하듯 사회적 통합이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스멘트의 통합이론(Integrationslehre)
  스멘트의 법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통합이론이라고 하겠다. 통합이
론은
국가 및 헌법을 형식주의적, 실증주의적으로 파악하는 데 반대하여 생활과정(Lebenspr
ozess),
개인의 질서와 참여, 인격적 삶의 통합으로 파악하려는 그의 독특한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국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생존을 계속적으로 가능하게 하고 고양시키는 하나의
'정신과학적으로 이해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이처럼 통합이론은 국가를 사회적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데, 스멘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 이론은 하나의 사회학적 이론이 아니라 
헌법을
정당하고도 완전하게 해석하는 하나의 법이론이다. 스멘트는 당시 독일의 헌법생활에

점증하는 붕괴(Disintegration)의 조짐들을 보면서 특히 바이마르 헌법 제 48조의 독
재자
조항의 위협을 미리 간파한 데서 통합이론이 구성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본다

통합이론은 개인을 앞세우고 그 속에 국가의 헌법생활을 질서 지우려고 하는 점에서 
철저히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통합이론은 "사회가 어떻게 하여 국가로 변형되는가?"(die Transformation der
Gesellschaft
in den Staat) 라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답하려고 한다. 종래의 옐리네크류의 국가 3요
소설은
공간적, 정태적 사고에로 오도하였으며, 켈젠(H. Kelsen)의 순수법학적 단계설은 국가

내용이 공허한 규범체제로 용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스멘트는 비판하고 있다.
  다른 한편 스멘트는 국가를 개인의 집합으로 보는 인과적, 목적론적 사고방식도 거
부한다.
오히려 통합이론은 국가를 그 사회적, 법적 관계의 전체성(Totalitat) 속에서 경험적
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관점에 서있다. 국가는 내재적인 자기갱신(Selbsterneuerung)과
자기창조(Selbsterzeugung) 속에서 이념적  의미영역(ideelle Sinnsphare)을 발견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스멘트의 발상은 그의 논문 '헌법국가에서 정치권력과 국가형태의 문제'(Die
politisch Gewalt im Verfassungsstaat und das Problem der Staatsformen, 1923)에서
출발하여 주저 '헌법과 헌법률'(Verfassung und Verfassungsrecht, 1928)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스멘트의 통합이론에 의하면 통합에는 인격적 통합, 기능적 통합, 사물적 
통합의
세 종류가 있다.
  (1) 인격적 통합(personliche Intergration): 스멘트는 인격(예컨대, 군주, 대통령, 
엘리
트,
공무원 등)의 지도력없이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지도를 받는 국민 일반

자발성과 생산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스멘트는 지도자(Fuhrer)는 객관화된 목적설
정의
기술자(Techniker objektivierter Zwecksetzung)로서 사물적 기능 속에서 항상 피지도
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자극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2) 기능적 통합(funktionelle Integration): 기능적 통합이란 여러 가지의 통합적

기능이나
혹은 절차, 다시 말하면 집합 내지 사회적 통합(soziale Synthese)을 가능하게 하는
생활형식을 가리킨다(예컨대 의회의 활동, 선거, 국민투표 등). 이것은 막스 베버의
지배형식(Formen Integration)을 연상하게 한다.
  (3) 사물적 통합(sachliche Integration): 스멘트는 인격적 통합과 기능적 통합 이 

가지
궁극적으로 사물적 통합이라는 상위관념 아래서 가능하다고 본다. 이 '사물적
가치공동체'(sachliche Wertgemeinschaft)라는 개념으로부터의 발상이 스멘트의 통합
이론을
종래의 국가목적이론과 구별시키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스멘트에게 국가는 국가 
밖에
있는 목적을 실현하려는 어떤 수단으로서의 현실체(reales Wesen)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실현(Sinnverwirklichung), 즉 가치실현으로 이해된다. 이 국가의
가치전체성(Werttotalitat)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은  국가적으로 통합된다고 본다. 한
국가에서
사물적 통합의 구체적 요소는 그 국가가 국민의 이름으로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는 가
치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부분적으로 헌법의 기본권의 형식으로 고정되기도 하고,
대표적 또는 정치적 상징, 의식 등은 국민축제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통합은 스멘트에게도 다양한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과정'(Prozess) 혹은 그 과정을 산출하는 요소들의 공동작용(Zusammenwirkung), 혹은
국가의 정신적, 초경험적 형태의 항구적 실현 등..... 여기에 스멘트 이론의 깊이와
불명확성이
병존한다 하겠다.(스멘트와 통합이론에 관하여는 허영, '헌법이론과 헌법(상)'(박영
사, 1983);
최종고, "루돌프
스멘트", '위대한 법사상가들 2"(학연사, 1985), 187-218면.)

  1. 주권
  (1) 주권의 개념
  주권이란 개념은 최고독립성, 국가권력 자체, 국가의사결정의 최고원동력, 정치형태

최종결정권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를 다른 사회와 구별하는 그 특
질을
명백하게 하기 위하여 '국가에는 주권이 있다'든가 '국가는 주권적이다'라고 할 경우
에는
국가권력의 최고독립성을 의미한다.
  주권개념은 근대적 전제군주정을 변호하기 위하여 성립하였고 뒤에 왕권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혁명의 이념으로 발전한 개념으로서, 옐리네크가 말한 바와 같이, "처음에는
방어적인, 그러나 후에는 공격적인 성질을 가지게 된 투쟁적 개념"이었다. 이러한 역
사적
배경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고 등장한 것이 유명한 보댕(J. Bodin, 1530-15
96)의
주권론이다. 원래 주권이론에서 중요한 문제는 국가권력이 누구에게 귀속하느냐, 국가
권력의
보유자 내지 주권의 담당자가 누구인가의 문제였다.
  (2) 주권에 관한 학설
  1) 군주주권설: 고대 전제군주국가에서는 국가권력이 최호적으로 군주에게 귀속한다

군주주권의 사상이 지배하였다. 보댕 이외에도 영국의 스튜어트(Stuart)왕조의 왕권신
수설,
프랑스의 루이14세(Louis 14)의 '짐이 국가이다' 라는 사상은 이것을 표명한 것이다.
  2) 국민주권설: 근대 초의 전제군주정에 대한 대항적 개념으로서 주장된 이 사상은
근대적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정에 대한 반동세력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 16세기 프랑스의
'폭군방벌론'(Monarchomachie)의 이론에 그 맹아를 찾아볼 수 있다. 그 후 국가계약설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알투지우스(J. Althusius, 1557-1638)를 경유하여 많은 
계몽적
합리주의 자연법론자에 의하여 주장되었으며, 루소(J. J. Rousseau, 1712-1778)에 이
르러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주권설로서 확립되었다.
  국민(Nation)주권과 인민(Peuple)주권
  국민주권도 그 국민이 어떠한 국민이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즉
'국민'(Nation)주권에서는 주권자를 Nation으로 보는데, 이는 이념적, 추상적인 실체
로서 그
구성원으로부터 독립되는 법인격을 구성하며 스스로의 고유의사를 가진다. 따라서 이
는 그
성질상 주권의 주체와 그 행사자가 분리되어 무기속위임의 대의제를 내용으로 하고
권력분립을 전제로 하며 제한선거를 인정한다. 한편 '인민'(Peuple)주권에서는 주권자

peuple로 보며 이는 현실적, 구체적인 유권적 시민의 총체로서 이른바 자동성의 원리

근거한 직접민주제와 기속적 위임을 그 내용으로 하고 권력분립과 제한선거를 인정하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은 순수하게 nation주권이나 peuple주권을 고집하지 않고 양자

조화를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3) 국가주권설: 이 학설은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서 보면 전제군주정과 극단적 민주
정의
타협인 입헌군주정의 이론으로 19세기 후반기의 독일 보통법학에서 많이 주장되었고,
게르버(Carl F. von Gerber, 1823-1881), 라반트(Paul Laband, 1838-1918), 옐리네크 
등의
유력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었다.(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박영사, 1983), 173-18
8면.)
  그러나 국가주권설은 국가구성원 중 국가권력의
보유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주권의 귀속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지 않으므로 채택하기
곤란하다.
  (3) 대한민국의 주권
  우리나라의 주권에 관하여는 헌법 제 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
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내용은 우리 헌법이 국민주권주의

채택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2. 국민
  (1) 국민의 개념
  국가의 항구적 소속원으로서 영토 안에 있거나 영토 밖에 있거나 국가의 통치권에 
복종할
의무를 가진 자를 국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국민이 되는 자격을 국적(nationality)이

한다.
국적은 사람의 신분, 자격을 말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권리는 아니다. 국적을 가지는 
것은
국민의 한 권리이다.
  (2) 국민의 요건
  1) 국적의 취득: 국민이 국적을 가지는 데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있고, 또
국적을
상실하였다가 회복하는 경우가 있다.
  (가) 선천적 취득: 출생으로 인하여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로 혈통주의(속인주의)와
출생지주의(속지주의)가 있다. 혈통주의는 부모의 국적에 따라서 국적을 결정하는 주
의인데,
일본같은 단일민족 내지 소수민족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출생지주의는 부모의 국적
을 묻지
않고 출생한 곳에 의하여 국적이 결정되는 주의인데, 영국 및 미국과 같은 복수민족국
가에서
보통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이므로 혈통주의가 원칙이며, 다만 부모

분명하지 않을 때 또 부모가 모두 무국적일 경우에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 및 대한민
국에서
발견한 기아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출생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나) 후천적 취득: 외국인 여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의 처가 된 자는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한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부 또는 모가 인지한 외국인은 일정한 요건 아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귀화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이 타국가의 국적

취득하려는 의사에 의하여 타국가의 허가를 얻어 국적을 취득함을 말한다. 귀화는 그
조건여하에 따라 보통귀화와 특별귀화의 두 가지가 있다. 그 밖에 후천적 취득으로서 
타인의
국적취득에 수반하는 국적취득과 국적회복이 있다.
  2) 국적의 상실: 국적상실의 원인으로서는 혼인, 양자,  혼인의 취소 또는 이혼,
이중국적,
인지 등이 있다. 그 밖에 영토의 변경에 의하여도 국적의 취득 및 상실이 발생한다.
  (3) 국민의 지위
  1) 헌법상 국민의 지위: 국민의 헌법상의 지위는 다음과 같다.
  (가) 주권자로서의 국민: 헌법 전문의 국민은 헌법제정권자로서의 국민을 말하며, 
헌법

1조 2항과 제 7조 및 제 8조 2항의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국민을 말한다. 헌법제정권 
내지
주권의 주체로서의 국민은 국민 전체를 하나의 이념적 통일체로서 파악한 것이다. 이
것은
개개의 국민과는 그 개념이 다르며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선거권자는 물론이고 선거
권이
없는 국민도 모두 포함된 것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할 때 국가의사를 최종적으

결정하는 원동력이 국민 전체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며, 또 국민이 헌법제정권력을 가
진다고
할 때 실제로 헌법제정은 제헌국회에서 할지라도 그 헌법은 국민전체의 의사에 따라서 
국민
전체를 위하여 제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있어서의 계기가 국민 전체에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나) 헌법상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민: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전체
국민과는
다르며, 주권자인 전체 국민 주에서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고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개개
국민이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민을 구성한다. 우리 헌법상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민에 부
여되어
있는 권한은 대통령 선거권, 국회의원 선거권, 국가의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권,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 등이다. 이러한 의미의 국민은 유권자의 집합체 즉
선거인단으로서 국민의 의사형성에 참여한다.
  (다)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서의 국민: 이것은 국가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의 모든 국민

말하며 헌법 제 2장의 국민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국민이라 할 때 원칙적으로 우
리나라
국적을 가진 국민만을 말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지 않은 외국인

대하여도 일부 기본권이 보장된다. 또 기본권보장의 대상으로서의 국민개념 중에는 법
인도
포함되는 수가 있다. 이와 같이 헌법 제 2장의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서의 국민은 그
조항마다 내용이 다르므로 조항에 따라 구체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라) 통치대상으로서의 국민: 국가구성원으로서의 국민과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에
서는
주권자인 국민과 통치대상으로서의 국민이 동일성을 가진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통치대상으로서의 국민에는 모든 자연인은 물론이고 법인도 포함되며 또 국외에 있는 
국민도
포함된다. 통치대상으로서의 국민의 지위에 있는 국민에는 국가에 대한 의무가 생기
며, 그
밖에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법률로써 규정하는 국민의 여러 가지 의무
가 있을
수도 있다.
  2) 국가에서의 개인의 지위: 법실증주의자로서 국가법인설, 국가주권설을 주장한
옐리네크는 국가에서의 개인의 지위를 개개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갖는 지위 내지 상
태를
기준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옐리네크/김효전 역,
'일반국가학'(태극출판사, 1981).)
  (가) 소극적 지위: 국민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를 받지 아니하는 자유로운 영역이
다.

지위에서 자유권이 발생한다.
  (나) 적극적 지위: 국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국가에 대하여 어떤 것

청구할 수있는 지위이며, 이로부터 수익권이 발생한다.
  (다) 능동적 지위: 국민이 국가 기관으로서 능동적으로 국가의사의 형성에 참여할 

있는
지위이며, 이로부터 참정권이 발생한다.
  (라) 수동적 지위: 국민이  국가의 통치권에 복종하는 지위이며, 이로부터 국민의
공의무가발생한다.

  3. 영토
  (1) 영역의 개념
  영역은 국가의 통치권이 행사되는 공간을 말하며, 영토, 영해 및 영공을 포함한다. 
그러나
영해는 영토의 주변해역이며, 영공은 영토, 영해의 상공이므로, 영역의 기본은 영토이
다.
우리나라 헌법 제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
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통치권이 원칙적으로 행사되는 지역은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들
이며,
북한도 규범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 속에 포함된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 조문을
국가보안법의 헌법적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2) 영토의 변경
  국가의 영토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영토의 취득 또는 영토의 상실로 변경
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영토가 일부변경되더라도 국가의 동일성에는 영향이 없고 다만
통치권행사의 범위에 신축이 있을 뿐이다. 무주지의 점령은 통치권의 원시취득이며 타

영토를 할양받을 경우에는 통치권의 승계취득이다.
  (3) 영토변경의 원인
  1) 국제조약에 의한 변경: 국제조약에 의한 새 영토의 취득에는 타국으로부터 영토

일부를 할양받을 경우와 타국을 병합할 경우가 있다. 평화시에는 매매, 교환, 병합 등

의하며, 전쟁시에는 강화조약에 의하여 새 영토를 취득한다. 그리고 국제조약으로 인

영토의 상실에는 타국에 영토의 일부를 할양하는 경우와 국내의 지역이 독립하여 새 
국가를
형성함을 승인하는 경우가 있다.
  2) 자연조건 내지 사실행위로 인한 변경: 자연조건 내지 사실행위로 인한 새로운 영
토의
취득에는 무주지의 선점, 자연적 영토형성 등이 있고, 영토상실의 원인으로는 화산의 
폭발
등으로 지역의 일부가 바다 속에 몰입하는 경우 등이 있다.
  (4) 영토변경의 효과
  국가병합의 경우에 모든 주민은 당연히 병합국의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그러나 일

할양의 경우에는 할양지의 주민은 당연히 국적의 변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할양조
약에
의해 결정된다. 보통의 예로서는 주민에게 일정한 기한을 주어서 국적을 자유선택하도

한다. 할양지의 법은 영토의 변경에 의해 당연히 그 효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고 신
법에
의해 변경될 때까지 그대로 계속 시행된다. 그리고 이것은 구영유국의 법으로서 시행
되는
것이 아니고 신영유국의 법으로서 인계, 시행되는 것이다.

    5. 법치주의
  1.법치주의의 의의
  법치주의가 근대국가에 통치원리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각국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은 반드시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법치주의라고 할 때, 그것은 대체로 '인의
지배'(rule
of man)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하며, 국가권력은 국민의 의사를 대
표하는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발동되어야 한다는 원리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법치주의란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
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거나 그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법치주의의 목적은 국미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고, 그 기초는 권력분립(sepera
tion
of power)이며, 그 내용은 법률의 우위, 법률에 의한 행정, 법률에 의한 재판이다. 다

말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의회가
제정한 법률로서 하여야 하며(의회주의와 법률의 우위), 행정은 이러한 법률의 존재를
전제로
그에 의거하여 행해져야 하고(법률에 의한  행정, 즉 행정의 합법률성), 사법도 법률

존재를
전제로 법률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법률에 의한 재판)이 법치주의이다.
  법치주의가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고 할 때 그 법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
다.
적극적으로는 국가권력발도의 근거로서의 기능(법의 제1차적 기능)을 수행하고,
소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기능(법의 제2차적 기능)을 수행한다. 법이 국가권력발
동의
근거로서 기능한다는 의미에서의 법치주의는 전제군주국가나 전체주의국가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법이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한다는 의미에서의
법치주의는 자유주의국가에만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 법치주의는 후자의 의
미에
더욱 더 비중이 주어진다. 여기에 법치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그 불가결의 전제로 하
여야 할
이유가 있다.
  법치주의의 구성요소로는 최소한 1)성문헌법주의, 2)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의 선언,
3)권력분립의 확립, 4)위반법률심사제의 채택, 5)집행부에 대한 포괄적 위임입법의 금
지,
6)행정의 합법률성과 행정의 사법적 통제, 7)국가권력행사에 대한 예측가능서의 보장 
등을
들 수 있다.(권영성, '헌법학원론'(법문사, 1986), 124-130면, 법치주의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1 구병삭 교수('헌법학 1', 박영사, 1983, 113면)는 성문
헌법의
최고법규성, 기본권보장제도, 권력분립주의, 적법절차에 의한 실현, 사법권의
보장(위헌법률심사제), 포괄적 위임입법의 금지, 국가권력행사의 예측가능성 보장,
사회민주제와 법의 지배, 법의 지배의 현대적 의의에 대한 비판 등을 들고, #2 김철수
교수('헌법학원론', 박영사, 158면)는 기본권의 보장, 권력의 분리와 분할, 형식적 법
률의
개념,
집행의 적법률성, 국가권력행사의 가능성, 사법적 권리보장, 성문헌법의 존재와 헌법

민주적인 형성, 입법의 헌법에 의한 구속과 위임입법의 제한 등을 들고, #3 허영
교수('헌법이론과 헌법'(상), 박영사, 1980, 273면이하)는 법치국가의 내용을 그 실질

내용, 구조적 원리, 절차적및 형식적 내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2. 법치주의의 이론
  17세기 이후 푸펜도르프(S. Pufendorf, 1632-1694) 등에 의하여 근대 합리주의적
자연법론이
전개되고 천부인권사상이 시민혁명과 결부되자, 여기에 개인적 자유의 보장과 더불어
권력분립에 의한 국가권력의 제한을 그 내용으로 하는 근대적 의미의 법치주의가
확립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법치주의는 각국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대응하여 다양

성격과 내용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기본적 유형은 영국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
w)의
원리와 독일에서 '법치국가'(Rechtsstaat)의 이론으로 전개되었다.
  (1) 영국에서의 '법의 지배'
  영국에서 '법의 지배'는 '법의 우위'(supremacy of law)라고도 한다. '법의 우위'는
지배자의
전단적인 권력행사를 억제할 목적으로 중세 이래 영국헌법을 일관하고 있는 법이념이
었다.
이것이 17세기에 와서, 군주적 대권의 절대성에 반대하여 코먼 로(common law)의 우위
성을
주장한 에드워드 코크(E. Coke, 1552-1634) 경에 의하여 '법의 지배'라는 형식으로
주장되고,
명예혁명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확립되며, 다이시(A. v. Dicey, 1835-1922)에 의하여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다이시는 그의 '헌법학입문'(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Constitution,
1885)에서 영국헌법의 기본원리로서 의회주권 및 헌법적 관습과 더불어 법의지배의 원
칙을
들고, 이것들이 영국헌법 아래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 Diecy에 의하면, 법의 지배가 영국헌법에서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보통법원이 통상의 법적 절차에 따라 확정한 판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처벌
받거나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2 법 앞에는 누구나 평등하다.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
고,
 누구나 보통법과 보통법원의 재판권에 복종하며, 행정법이라든가 행정법원과 같은 제
도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3 개인의  권리는 헌법을 근거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헌법규범이라는
 것은 개개의 사건에서 법원이 확인한 개인의 권리의 집적이다(A. V. Diecy, Introduc
tion
to the Study of the Constitution, 10th ed., 1961, p. 184).)
 아무튼
영국에서 법의 지배는 왕권에 대한 법의 우위에서 출발하여 보통법 법원의 우위로 발
전하고,
그것이 결국 의회주권주의에 도달하였다. 프랑스의 법제도와는 대조적으로, 다이시가
영국헌법의 특질이라 주장한 법의 지배는 오로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절차법적'인 측면에 중점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 발달한 법의 지배의 원리

미국에서 법원에 의한 위헌법률심사제 내지 사법권의 우위로 전개되었다.
  (2) 독일에서의 법치국가론
  근대적 법치국가의 개념은 적어도 19세기까지는 다른 나라의 헌법질서에서는 그 예

발견할 수 없는 독일 특유의 개념이었다. 법치국가의 개념은 경찰국가나 관료국가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성립하였다. 고전적 법치국가론을 의미하는 시민적, 형식적 법치국
가론은
18세기 말에 모올(R. v. Mohl), 슈타인(L. v. Stein), 벨커(K. T. Welcker), 베르(O. 
Bahr),
오토 마이어(O. Mayer), 슈타알(F. J. Stahl)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슈타
알은
법치국가를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 내지 법기술로 이해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이어는
법치국가를 "법률우위의 원칙", 특히 행정의 법률적합성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로
이해하였다.
오토 마이어의 견해가 19세기 말의 지배적 견해가 되었고, 이것이 그후 칼 슈미트(Car
l
Schmitt, 1888-1985)에 의하여 "법치국가의 구성요소는 국가권력의 제한과 통제의 원
리이며,
시민적 자유의 보장과 국가권력의 상대화체계이다"라고 하는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칼 슈미트/김기범 역, '헌법이론'(교문사, 1977), 147-178면.)

  3. 법치주의의 위기와 실질적 법치주의
  시민적 법치국가에서 형식적 법치주의는 "행정과 재판이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적합
하도록
행해질 것을 요청할 뿐, 그 법률의 목적이나 내용을 문제로 삼지 아니하는 형식적
합법주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위기를
의미하는 독재체제가 출현하자, 법률을 개인의 권익보호를 위한 수단에서 억압의 수단
으로
악용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률을 도구로 이용한 
'합법적
독재'(tyranny through law)를 의미할 뿐이었다.(독재체제에서는 독재적인 집행권력의
극대화로 말미암아 법치주의와 입헌주의체제 그
자체가 전면 부인된다. 법의 제한을 벗어난 권력이 거대한 권력장치를 동원하여, 개인

자유와 인권을 가차없이 말살한 예를, 우리는 파시즘의 역사에서 목격한 바 있다. 특

독재국가의 출현은 국제긴장을 초래하여, 그 밖의 자유주의국가들의 법치주의까지도
위협하는 현상을 연쇄반응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제 2차대전도 어떤 의미에서는 법치주
의와
반법치주의의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 2차대전에서 독일 등 독재국가들의
패배로 이와 같은 형식적 법치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실질적 법치주의가 그것을 대신하

되었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
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거나 그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뿐만 아니라, 법률의 목적과 내용도 정의에 합치되는 정당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질적 법치주의라 함은 법

안정성의 유지와 더불어 인간의 존엄이라든가 실질적 평등과 같은 정의의 실천을 내용
으로
하는 그러한 법에 의한 통치원리를 말한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통치의 합법성을 특징
으로
하는 것이라면, 실질적 법치주의는 통치의 정당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실질적
법치주의가 확립되려면 최소한 국민이 참여하는 행정통제와 사법적 권리구제 제도가
완비되어야 한다.

  4. 한국헌법에서 법치주의의 구현
  현행 헌법에는 법치주의에 관한 직접적 명문규정이 없지만, 여러 헌법조항에서 이미
법치주의의 구성요소와 그 구현방법이 규정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1) 법치주의의 구성요소와 구현방법
  1) 성문헌법주의: 헌법의 개정곤란성과 더불어 형식적 의미의 헌법을 국가의 최고법
규로
간주하는 성문헌법주의에서는, 헌법규정은 국가기관의 조직과 국가권력발동의 근거가 
되며,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점에서 성문헌법주의는 법치주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된다. 한국헌법에서 성문헌법주의도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갖
는다.
  2) 기본권보장의 선언: 한국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의 선언은 법치주의의 목적을 선언

것이다. 특히 모든 영역에서 기회균등의 보장과 균등한 생활향상을 규정한 헌법 전문,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
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한 헌법 제 1
0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한 제 11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규정
한 제
34조
1항 등은 특히 실질적 법치주의에 관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제 37조 2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

침해할 수 없다"라고 하여, 기본권제한에 관한 일반원칙을 명시함과 동시에 자유와 권
리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형식적 법치주의와 더불어 실질적 법치주의

구현하려 하고 있다.
  3) 권력분립주의의 채택: 현행헌법은 권력분립주의를 채택하여 입법권은 국회에(헌
법 제
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헌법 제 66조 4항), 사법권은 법원에
(헌법 제
101조 1항) 속하게 하고 있다. 권력의 분립뿐만 아니라 권력상호간의 억제와 균형에
관해서도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권력의 분립이야말로 법치주의의 기초라 할 것이
다.
  4) 위헌법률심사제의 채택: 행정과 재판뿐만 아니라 법률도 그 내용과 목적이 정당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위헌법률심사권을 법원(전심권)과 헌법재판소(종심권)에 부여하고 
있다.
헌법 제 107조 1항의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
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5) 집행부에 대한 포괄적 위임입법의 금지: 현행헌법은 현대국가의 행정국가화 경향

따라
집행부에 광범한 행정입법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관해서만 명령을 발하게 하는 것일 뿐(헌법 제 75조), 법치
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포괄적 위임입법은 금지하고 있다.
  6) 행정의 합법률성과 행정의 사법적 통제: 현행헌법은 제 107조 2항에서 "명령, 규
칙,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라고 하여 독립적 지위를 가진 법원이 행정행위의 
합헌성,
합법률성을 심사하게 함으로써 이를 통제하도록 하고 있다.
  7) 국가권력행사의 예측가능성의 보장 모든 국가권력행사의 주체와 권력행사의 방법 
및 그
범위가 성문법규로써 규정되어야만 국민은 그 권력행사에 관하여 예측할 수 있다. 이
와 같은
예측가능성이 민주사회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헌법 제 96조는
"행정각부의 설치 및 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고, 제 89조에서는
국무회의의
심의사항의 형식으로 규정되고 있기는 하지만 집행부의 권한사항을 열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102조 3항은 "대법원과 각급 법원의 조직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함으로써
집행권과 사법권의 발동에 관한 예측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2) 법치주의의 제한
  한국헌법은 법치주의 내지 법치국가의 원리를 광범하게 채택하고 있지만, 국가의 위
기나
비상사태에 처한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법치주의가 제한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헌법은 국가가 위기나 비상사태에 처할 경우에는 대통령에게 긴급명령권 등(헌법 제 7
6조)과
계엄선포권(헌법 제 77조)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적 위기나 비상사태 아래
서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긴급명령이나 계엄선포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정한 범위 안에

법치주의가 제한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사태 아래서의 법치주의 실현은 
제한은
매우 한정된 경우에 국한되어야 하고, 그것도 헌법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6. 법치국가의 철학
  국가가 법에 따라 통치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가 법에 구속된다는 근
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일찍부터 법이 국가에 우선하는가(vorangehen) 아니면 국가가 
법에
우선하는가 하는 법철학의 문제가 관련되는 어려운 테마이다. 국가는 그 명령권의 범
위와
한계를 법에서 위임받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과 반대로 법의 효력은 국가의사로 규정
되고
제약되는가 하는 문제이다.(아래의 논의는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제 26장.
)

  국가가 법에 우선한다고 하는 견해에 대하여는 국가는 법의 근원에 지나지 않고 그

자신이 법적 형상(Rechtsgeblide)이기도 하며 국가는 국가법의 소산이라는 사실이
가로막는다.
그러나 법이 국가에 우선한다고 하는 반대주장에 대하여는 국가 이전의 법이란 자연법 
내지
관습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적어도 실정법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켈젠은
국가와 법의 동일성(Identitastheorie)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국가와 법은 동일하

때문에
어느 쪽이 우선하는가를 물을 수 없다. 국가는 항상 법 속에 있고, 불법을 행하는 국
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 국가가 법에 의하여 구속된다고 하는 문제는 참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항상 법 속에 있다고 하는 확인 속에
경찰국가(Polizeistaat)에 대한 신앙이 고백되고 있다고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고, 또
불법을
행하는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 속에 법치국가에 대한 신앙이 고백
되고
있다고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법치국가라고 하는 의미에서

다르지만 국가와 법의 동일성설은 순수히 개념적, 분석적 의미는 가지지만 법철학적, 
정치적
내용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의 우위와 국가에 대한 법의 구속력을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시도는 옐리네크

이른바 '법에 의한  국가의 자기구속의 이론'(Selbstbindungstheorie)이다. 그러나 구
속하는
자와
구속되는 자는 서로 다르며, 구속되는 자는 법현실로서의 국가이고 구속하는 자는 국
가의
법의 총체로서의 국가이다. 따라서 어떤 국가외적 규범이 국가를 법에 구속시키는가 
하는
문제에 다시 부딪치게 된다.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die normative Kraft des
Faktischen)은
하나의 파라독스이다. 어떤 일정한 시대의 견해라고 하는 사실은 어떤 규범이 이것에
규범력을 부여했을 때에만 규범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법적 구속력은 사실의 세계로서가 아닌 규범의 세계, 즉 국가

실정법이 아니라 자연법적으로만 존재하는 규범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초
실정적
법에 의하여 국가도 법도 구속되며, 그것을 위하여 국가와 법은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뜻에서 라드브루흐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법치국가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
게 하는
명언이라 하겠다. "법치국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정치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문
화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질서에 대하여 자유를, 이성에 대하여 생명을, 규칙에 관하

우연을, 형식에 대하여 실질을 지키는 것, 요컨대 목적과 가치 자체를 단지 목적과 가
치를
위한 수단에 대항하여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라드브루흐/최종고 옮김, '법학의
정신'(종로서적, 1986), 45면.)

  참고문헌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삼영사, 1985, 241-248면 ; 문인구, '한국법의 실
상과
허상',
삼영사, 1985 ; 켈젠/황산덕 역, '법과 국가의 일반이론', 백영사, 1956 ; 마르틴
크릴레/국순옥
역, '민주적 헌정국가의 역사적 전개'(헌법학 입문), 종로서적, 1983 ; 켈젠/민준기 
역,
'일반국가학', 민음사, 1990.
  A. Dicey,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Constitution, 10th ed., 1961 ; H. K
elsen,
Allgemeine Staatslehre, 1925 ; K. Loewenstein, Political Power and Governmental
Process, 1960
; H. Nawiasky, Allgemeine Staatslehre, 1958.

  연습문제
  1. '법의 지배'의 원리의 발전과정을 논하라.
  2. '법치국가'의 개념을 논하라.
  3. 법치주의와 인격주의를 논하라.
  4.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관계를 논하라.
  5. 우리나라의 법치주의적 지향과 현실을 논하라.
@ff

  한스켈젠(Hans Kelsen)
  1881년 10월 11일 당시 오스트리아 소속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1905년에 빈(Wien)
대학에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11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1918년에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탄생되자 헌법기초에 참여하였다. 1930년에 쾰른대학 교수로 옮겨 왕성한 학문활동을 
하다
1933년에 나치스정권 장악으로 교수직을 잃고 고향 프라하로 돌아갔다가 1940년에 미
국으로
망명하였다. 1942년부터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1957년에 은퇴하였고, 197
3년
4월
19일에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법과 국가의 일반이론'(General Theory of Law and Sta
te,
1945)등 다수가 있고,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의 창시자로 전세계 법학계에 영
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에 '켈젠연구소'가 설립되어 있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년 2월 1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옥스포드대학에 입학하여 1763년에 문
학사,
1766년에 문학석사가 되었고, 1767년에 링컨법학원(Lincoln's Inn)으로부터 변호사 자
격을
얻었다. 블랙스톤(W. Blackstone, 1723-80)에게서 배웠으나 그의 자연법 예찬을 비판
하면서
점차 급진적으로 영국 법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
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s)을 보장해주는 법이 좋은 법이라고 주장하고,
공리주의적
원리에서 입법학과 의회개혁, 행형개선에 관하여 많은 저술을 하였다. 평생 결혼도 하

않고
은자적 생활을 하다가 1832년 6월 6일 런던에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입법론'(Theor
y
of Legislation, 1780), '도덕과 입법의 원리'(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1789) 등이 있고, '벤담 전집'(The Works of Jeremy Bentham, 11 vo
ls.,
1838-43)이 출판되었다.
@ff

      제 14장 기초법학
  철학 없는 법학은 출구 없는 미궁이다. -라이프니츠(G. W. Leibniz)
  법사학은 사람들을 슬로건의 강제에서 해방시키며, 법학도를 기능공이나 숙련공으로
타락시키지 않도록 지켜준다. -미타이스(Heinrich Mitteis)
    1. 기초법학이란 무엇인가?
  기초법학이란 용어는 학술용어라기보다는 강학상 편의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
다. 즉
헌법학, 민법학, 형법학 등 이른바 실정법학에 대하여 어느 특정 법역에 국한되지 않

법학의 기초를 이루는 이론법학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기초법학 내지 이론법학에는 어

분야가 내포되는가?
  아래에서 상론하는 법철학(Rechtsphilosophie), 법사학(Rechtsgeschichte),
법사회학(Rechtssoziologie) 외에도 법인류학(Rechtsethnologie), 법민속학
(Rechtsvolkskunde),
법고고학(Rechtsarchaologie), 법심리학(Rechtspsychologie), 법경제학(law and econo
mics),
법언어학(Rechtssprachwissenschaft), 입법학(Gesetzgebungslehre), 법계량학(Jurimet
rik),
법신학(Rechtstheologie) 등의 헤아릴 수 없는 분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연구역사가 일천하여 기초법학의 연구
가 매우
부족한 상태이며, 기초법학의 튼튼한 토대 위에서 건전한 실정법학이 발전될 수 있음

두말할 여지도 없다.

    2. 법철학
  1. 법철학의 의의
  법철학(legal philosophy, Rechtsphilosophie)은 법의 본질을 모색하고, 그 목적과 
이념을
추구하며, 법학의 방법론을 확립할 것을 임무로 하는 기초법학의 대표적 분야이다. 원
래는
법리학(jurisprudence)이라 불렀으나 법률철학이라 하다가 오늘날에는 법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법에 대하여 단편지식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지식을 바르게 종합하고 그것을 바

방향으로 쓰려면 법철학적 안목이 필요하다. 아니 그보다 법철학이 없으면 실정법학의
지식마저도 바르게 가질 수 없다. 법철학은 철학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법학의 일부
분이다.
그러므로 법철학을 파악하려면 법학의 지혜와 철학의 성찰을 동시에 갖고 노력하여야 
한다.
  2. 법철학의 임무
  그러면 법철학이 하는 일, 즉 법철학의 임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철학의 과제를
첫째로
존재대상의 본질을 파헤치는 '존재론적 과제', 둘째로 대상인식의 방법과 가능성을 탐
구하는
'인식론적 과제', 셋째로 삶과 세계의 의미와 목적가치를 포함한 일체의 '있어야 할 
것'을
평가를 통해 얻으려는 '가치론적 과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 모든 과제의 생동적인
생성의
흐름을 고찰하는 '철학사적 과제'로 나눈다. 일반철학의 과제가 이렇다면 이에 따라
법철학의
과제도 밝혀진다. 즉 법철학은 일반철학이 해결해야 할 모든 과제를 그 특수한 탐구의
대상인 법적 근본문제들과 관련하여 수행해야 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법철학의 과제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심헌섭, '법철학 1'(법문사, 1
982),
18-20면.)

  첫째,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 즉 법존재론(Rechtsontologie)이다.
여기에서는 법
그 자체의 '본질', 다시 말해서(효력이 있어야 할 법규범의 총체로서의) 그 특수한
존재형태에서의 법 그 자체의 모습을 파악한다. 즉 법의 개념적 징표들은 어떻게 규정
되어야
할까? 법은 어떠한 구성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의 상호관계는 어떠한가? 또 
법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법은 누구에 대해서 구속력을 갖는가?(법효력과 법의무의 
문제)
등등..... 이 모든 문제들은 '법의 일반이론'(allgemeine Rechtslehre)과 '법이론'(Re
chtstherie)
 법이론에 대해서는 배종대, 법이론연구, '고시계', 1988. 4, 5월호 참조.)의
일부에서 다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법 그 자체를 놓고 그 내면을 파헤치는 과제라 하
겠다.
  둘째, 인식론적, 방법론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이다. 이는
법인식(Rechtserkennung)의
방법과 가능성, 즉 법사고(Rechtsdenken) 일반에 관한 과제이다. 주지하듯이 법적 사
고도
판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판단은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것의 중심

법규범이라면 이의 성질은 어떠하며(법과 진리의 문제) 또 이는 완결적인지(보완의 문
제),
그리고 그 내용은 어떻게 밝혀야 하는지(법해석의 문제), 그리고 그 적용의 과정과 구
조는
어떠한지(법논리학의 문제)? 이러한 문제들은 '법학방법론'(치펠리우스/김형배 역,
'법학방법론'(삼영사, 1976).)
(juristische Methodenlehre)
또는 '법논리학'(Rechtslogik)의 과제로 다루어진다.
  셋째, 가치론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이다. 여기에서는 가치론적, 규범적 관점
에서
법과
법규범을 문제삼는다. 도대체 법질서의 존재는 어떻게 정당화되는 것인가? 법질서는 
어떠한
목적가치에 이바지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정당한 법질서를 어떻게 형성하여야 할까? 
이 모든
문제들은 '법이념론'(Rechtideenlehre) 또는 '정법론'(Lehre des richtigen Rechts)의
문제이다.(자세히는,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5판(삼영사, 1985), 56면; 칼
라렌츠//양창수 역,
'정당한 법의 원리'(박영사, 1986), 1-35면.)
  넷째, 철학사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이다. 이상과 같은 (법)철학의 근본문제들

실질적으로 똑같은 것들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면 모두 상호관련되어 있고,
하나는 다른 하나에로 이끌어지고 따라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

것이 (법)철학사이다. 법철학사는 법철학적 문제들의 역사적 관련을 그 정신적 발전과

속에서 밝혀주는 것이어서 그것은 무엇이 법철학인가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적 전체'로서의 법철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법철학사(Geschicht
e der
Rechtsphilosophie)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3. 법철학의 역사
  (1) 고대의 법철학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법학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로마
에서
비롯되었다. 게르만족에는 전문적인 법률가가 없었기 때문에 법학이 형성되지 않은 데 
반해,
로마에서는 이미 공화정시대에도 법학자(jurisprudentes)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제정기에
들어서는 가이우스(Gaius), 파피니아누스(Papinianus), 울피아누스(Ulpianus) 등의 법
학자가
나타나 2세기 반 동안은 법학전성시대(klassische Zeit)라고 불리기까지 하였다.
법학(jurisprudentia에서 jurisprudentia로)이라는 개념도 로마에서 시작하였는데, 여
기서
prudentia라는 것은 '총명의 덕'을 일컬었고 실천을 위한 지식을 뜻하였다. 법학자도
법이론가라기보다는 실제가 내지 실천가였으며, 그들의 관심사는 학문적 체계가 아니

구체적 사건을 타당하게 해결하는 데 있었으므로, 오늘날의 실천법학 내지
해석법학(Rechtsdogmatik)의 시초가 되었다.
  영국은 로마법을 계수하지는 않았으나 로마법의 정신은 받아들였으며, 한편으로는 
불문법,
관습법적인 게르만법이 영국으로 흘러들어가 이 둘이 서로 조화되어 로마법학의 실제 
장소는
오히려 영미법에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로마법 전체는 북이탈리아
볼로냐(Bologna)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주석학파(Glossatoren)나
후기주석학파(Kommentatoren)의 연구를 통하여 유럽대륙의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이
른바
계수(Rezeption)라는 형식으로 로마법학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다.(자세히는 최종고,
'법학사'(경세원, 1986), 73-111면)

  독일에서는 로마법이 보통법(das gemeines Recht)으로 되어 보통법학(판덱텐법학,
Pandektenwissenschaft)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개념적이고
추상적
경향으로 기울어 로마법의 실제적인 정신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로마법의 계수

민주의
요망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점과도 관련

있다. 그 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휴머니즘운동의 영향을 받아 문예부흥정신에서 고전
로마법의 연구도 성행하고, 한편으로는 게르만 고유법을 강조하는 풍조도 일어났다. 1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르케(Otto F. von Gierke, 1841-1921)(자세히는 최종고, "오토 폰 기
르케",
'위대한 법사상가들 1'(학연사, 1984), 215-260면.)를 위시한 이른바
게르마니스텐(Germanisten)들이 로마니스텐(Romanisten)들에 대항하여 게르만법의 연
구를
촉진하였다. 예링이 '로마법을 통하여 로마법 위로'(durch das romische Recht, uber
dasselbe
hinaus)라고 '로마법의 정신'(Der Geist des romischen Rechts)에서 부르짖은 것도 이
러한
이유에서 였다.
  로마는 무력과 그리스도교와 법으로 세 번 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하는데, 이 로마법 
내지
로마법학과 체계는 특히 민법의 영역에서 오늘날도 그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법학의 학문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에서 법의 문제와 정의의 문제가 심도깊게 다루어져 법철학의 모티브를 제공
하고
있다. '철학의 천재'인 그리스인의 철학적 개념들은 로마법에 영향을 주어 로마법학을
학문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즉 결의론(Kasuistik)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법
학을
류와
종의 개념과 체계로 추상화시킴으로써 학문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2) 자연법론
  1) 스콜라학파: 로마법에서는 인법(jus)과 신법(fas)을 갈라 놓았기 때문에 종교적
요소는
법학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것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Thom
as
Aquinas, 1235-1274)를 대표로 하는 유럽 중세의 스콜라학(Scholastik)이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톨릭신학과 결부시켜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영구법(lex
aeterna),
자연법(lex naturalis), 인정법(lex humana)은 서로 연관된 것이며, 인정법은 자연법

적용한
것이고, 자연법은 영구법에의 참가이다. 이 스콜라적 법학은 중세에 교회와 너무 밀착
하여
'신학의 시녀'로 전락하였지만, 중세의 토마스철학은 후세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
왔다.
  2) 신토마스주의: 자연법론에 대한 반발로서 19세기는 법실증주의가 풍미한 시대라

하겠는데 19세기  말에서 금세기초에 걸쳐 이른바 '자연법의 부활'이 일어났다. 카트
라인
(Victor
Carthrein, 1845-1931)은 신법(lex divina)에서 자연법을 끌어내고, 자연법을 실정법

기초라고
하여 반자연법적인 실정법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주목할 것은 독일에서 나치스 폭정

경험한 이래 악법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자연법의 재생'이 크게 자극된 사실이다. 예컨

카우프만(Arthur Kaufmann, 1922)(자세히는 최종고, "아르투어 카우프만", '위대한
법사상가들 3'(학연사, 1985), 322-413면.)의 저항권에 관한 견해는 스승인 라드브루
흐의
상대주의를 넘어서 자연법사상에로 접근하였고, 흘러바흐(Alexander Hollerbach, 193
1)는
강력한 네오토미스트로 자연법을 주장하고 있다. 신토마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다벵(J
ean
Dabin,
1889)과 같은 도덕적, 정치적 자연법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법률적 자연법은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 리뻬르(Jeorges Ripert, 1800-1858)와 같이 카톨릭윤리를 강조하면서도
자연법론을 취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3) 합리주의적 자연법론: 중세가 신으로 특징지워진다고 한다면 근세는 인간의 이성
으로
특징지워진다. 이리하여 자연법도 근세에 이르러서는 신에서 분리된 인간의 이성에 바
탕을
두게 된다. 그 최초로 나타난 법사상가가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자세
히는
최종고, 후고 "그로티우스", '위대한 법사상가들 1'(학연사, 1984), 36-64면.)이다.
그는 인간에는 사교적 본성(appetitus societatis)이 있고, 이 사교적 본성이 인간의 
이성과
일치한다는 전제에서 자연법을 올바른 이성의 명령이라고 하였다.
  이와 반대로 홉스(Thomas Hobbes, 1580-1679)는 그로티우스가 성선설의 견지에서 "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전제에 터잡아 지배자에 대한 인민의 절대적
복종의무를 사회계약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 대하여, 성악설의 견지에서 '사람

사람에 대하여 이리'(homo homini lupus), '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
ntra
omnes)이라는 자연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서 사람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강
력한
수단으로서 국가와 그 국가에 의한 법이 있다고 하여, 자연법을 객관적 질서의 면에서
보다
인간성에 따른 주관적 요구라는 면에서 고찰하였다. 또 그는 국가는 어디까지나 수단
이고
주권자에 대한 국민의 복종의무는 주권자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한에

인정되는 것이라고 하여 공리주의의 관점에 서기도 하였다.
  로크(John Locke, 1631-1704)는 플라톤, 데카르트, 스콜라학파를 부정하고, 지식의 
근원을
감각적 경험에서 구함으로써 영국 경험주의철학의 대표자로 손꼽히게 되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자연법론자였다. 그는 실정법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자연법을 인정하고, 

한에서는 중세적인 자연법의 관념을 부활시켰다고 하나, 그가 자연법이나 사회계약의 
이론을
인정한 것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홉스의 사상은 절대주의적 요소가 엿보
이는 데
대하여, 로크는 자연상태를 평화와 선의가 찬 것으로 상정하고 소유권 기타의 권리는
사회계약 이전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합리주의적 자연법론은 계몽사상을 통하여 근대헌법의 골격을 이루고 자연권적 인권

토대로서 현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4) 역사적 자연법론: 2차대전 후가 되면서 자연법을 역사성과 관련시켜 고찰하고자 
하는
법철학이 대두하였다. 미타이스(Heinrich Mitteis, 1889-1952)(자세히는 최종고, "하
인리히
미타이스", '위대한 법사상가들 2'(학연사, 1985), 315-341면.)와 코잉(Helmut Coing, 
1922)
(자세히는 최종고, "헬무트 코잉", '위대한 법사상가들 3'(학연사, 1985), 225-251면.
)이
그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나치스의 폭정을 경험한 카우프만의  저항권사상과
일맥상통하면서 그들의 자연법론은 권력의 자의적 지배에 대한 저항의 정신으로 가득

있다. 그들의 자연법론의 핵심은 인권이다. 이 현대자연법론은 자연법과 실정법의 끊
임없는
대결 속에서 법이 발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법사학의 과
제라고
한다.
  이렇듯 그들은 자연법의 역사성을 인정함으로써 자연법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타당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실정법을 실정법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더 근원적인 것을 인정하여 이것에 실정법을 보충, 수정하는 기
능을
인정하고자 한다. 이것은 슈탐러(R. Stammler)의 '가변적 내용의 자연법'(Naturrecht 
mit
wechselndem Inhalt)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의 역사적 발전 안에서
자연법의 객관적 실현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3) 관념주의 법철학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존재라는 것을 끝까지 좇아 '나는 생각한
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하여 주체적인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비판적이고 선험적으로 구명함으로써 인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였다고 자처한다. 즉 대상이 처음부터 존재하여 이를 인식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함으로써 인식대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의 법철학은 도덕적 형이
상학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자유가 도덕법칙의 존재근거이고, 도덕법칙은 자유의 인식근거

된다고 한다. 그는 법칙에 대한 존경이라는 의무의식이 동기가 되어 법칙에 일치하게 
행위를
할 때에 도덕성(Moralitat)을 갖는 것이며, 단순히 법칙에 일치하게 행위를 할 때에는
합법성(Legalitat)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법과 도덕을 준별하는 관점을 취하였다. 
칸트가
주장하는 법과 도덕의 구별, 각인의 자의(Willkur)의 긍정과 그 한계, 인격의 절대성,
죄형의
균형과 같은 여러 원리는 모두 오늘날 시민법원리와 부합되는 것이며, 시민사회의 출
현을
기반으로 하는 계몽사상은 칸트를 통해서 최고의 철학적 표현을 얻을 수 있었고, 칸트
철학이
이룩한 이론체계는 사회적 요청과 일치함으로써 많은 공명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칸트철학은 그 후에 여러 갈래의 신칸트학파(Neo-Kantianismus)로 이어져 현대에서도 
매우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칸트가 확립한 독일관념철학은 그후 피히테(Johann G. Fichte, 1762-1814)를 거쳐
헤겔(Georg W. F. Hegel, 1770-1831)의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헤겔은 '법철학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의 서문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모든 사상을 변증법적인 발전 속에서 파악한다. 이러한 
그의
변증법철학은 법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오늘날까지 신헤겔주의(Neo-Hegelianismus)
법철학을 형성하고 있다.(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 증보중판(박영사, 1990), 274
-28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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