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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Casey,Riley 2022. 11. 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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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머리말>

말 잘하는 아이가 리더가 된다

"환경보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그러니까 환경은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을 잘 가꾸어야......잘 가꾸어야 
보호된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응시자는 당황한다.간단하게 생각해온 환경문제지만 순발력 있게 정
리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상적인 말로 중언부언 
대답하고 만다.외모도 번듯하고 좋은 학력을 가졌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1999년부터 국내 유수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내세워 입사시험에 면접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시지원자 대부분은 면접관의 이와 같은 질문에도 당황하게 된다.
학교나 가정에서 말하기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국내 기업들은 점차 학력이 적힌 이력서조차 보지않고 치르는, 일명 블라인드 면접
등을 활용해 입사지원자의 자질을 평가하고 있다.나아가 면접의 비중을 확대시키고 있
다. IMF체제 이후 국내로 물밀듯 밀려온 외국인 기업체는 더욱더 면접을 중요시한다.

지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의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
쯤이면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면접만으로 사원을 뽑은 회사들이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사실이 게속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회사들
은 임 오래전부터 학과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보통이다.맥킨지 
같이 요즘 잘 나가는 회사는 일주일간의 면접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선발한 사원들은 경쟁력이 높아 맥킨지가 단기간에 고속 성장을 한 중요요인
으로 분석되고 있다. 요즘에는 빌 게이츠나 손정의처럼 대학재학시절부터 기업을 세워 
세계적인 부자가 돤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처럼 일찌부터 기업은 세운 사람들은 
설득력이 경영의 설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결국 성공하려면 
말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설득 당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좋은 물건도 선뜻 사지 않
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처럼 부모가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절대적인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
라는 드물 것이다. 자녀교육에 열성인 부모들은 자녀의 대학입시 준비를 유치원 때부
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유치원 때부터 학습지 공부는 물론이고 교양
을 높일 수 있는 그리기, 악 다루기, 수영, 테니스, 발레 그리고 요즘에는 컴퓨터까지 
배우도록 한다. 이처럼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한이 있어도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가능한 많은 것을 가르
치려고 애쓴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만난 미국의 어머니들 못지 않게 자녀의 조기교육에 열성이었다. 
운동이나 예능을 제대로 모르면 교양 있는 성인이 되기 어렵고, 교양 없는 사람은 타
인의 호감은 얻을 수 없어 성공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교양을 갖추기 위한 
공부는 어려서부터 시작할수록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미국의 어머니
들은 자녀에겨 조기교육은 하되 자녀가 싫어하면 미련 없이 그만두게 하였다. 예능보
다는 사회에서 가장 중시하는 말하기 능력부터 길러준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어머니
들과 차이가 난다.

 미국의 경우 자녀의 성공을 원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예능교육보다 말하기 교육부터 
시킨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말의 매너와 논리, 바르게 말하기를 교육하는 것
이다. 미국에서도 성공한 인물을 가장 많이 배출한 유태인 부모의 경우 자녀의 어휘력
과 철학적 사고 능력 그리고 토론 능력 길러주기에 교육의 우선 순위를 둔다.

 공리론의 대가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사람은 이미 여덟 살 때부터 그리스의 기원전 역
사가인 크세노폰의 책을 읽었고 열 살 무렵에는 플라톤의 저술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
다. 밀의 압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이처럼 어려운 책을 통해 아들인 밀의 어휘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주어 세계적인 철학자로 만든 것이다. 자녀를 철학자로 기르지 
않더라도 철학적 사고를 길러주면 말을 잘하게 된다. 말의 논리는 철학에서 오기 때문
이다. 유태인의 자녀교육에서 철학과 토론이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람의 말하기 능력은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기 때문에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말하기는 하루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예능과 다르다.또
한 말하기는 한번 버릇으로 굳어지면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자녀를 리더
로 기르고 싶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말하기 능력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21세기에는 말 
잘하는 어린이가 리더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말하기 교육을 소홀히 한 
채 다른 교육에만 힘쓴다면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십상인 시대가 코앞에 닥
친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성공을 바란다. 이젠 말을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느새 성공의 기본이 된 자녀의 말솜씨를 길러주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스피치 
컨설턴트로서 부모가 어떻게 자녀의 말하기 교육을 해야 하는지,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해와 실천을 돕기 위해 흔히 맞닥뜨리는 일상 생활 
속의 사례를 많이 곁들였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고 생
각하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부모들이 정말로 자녀를 성공하는 성인으로 
기르는데 작은 보탬이나마 되기를 기대해 본다.

1999년 12월에 이 정 숙


 
< 차례 >

1. 늦기 전에 고쳐주어야 할 말버릇 10가지
 빠르고 숨가쁘게 말한다 17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22
 말끝은 흐리며 말한다 26
 발표 불안증이 있다 32
 거짓말을 잘한다 36
 토막말을 쓴다 42
 소리 지르며 말한다 49
 말할 때 눈을 맞추지 못한다 54
 제때 대답을 안 한다 60
 베이비 토크를 버리지 못한다 65

2. 자녀를 리더로 만드는 말교육 10가지
 "미안하다" "감사하다"를 입에 달고 살도록 하라 73
 존댓말은 말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라 80
 왕따일수록 남의 말을 경청하게 하라 88
 자녀가 할 말은 자녀가 말하게 하라 94
 말하기 매너도 가르쳐라 102
 발표문은 직접 쓰게 하라 109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도록 하라 115
 논리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121
 긍정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130
 자녀와 주제가 있는 토론을 자주 하라 136

3.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녀의 마래를 바꾼다
 독이 되는 말, 한 번만 참자
 "내가 못살아" 143
 "누가 너더러 그런 일 하라고 했어?" 150
 "너 때문이야" 155
 "이 바보야, 그것도 못 해!" 161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168
 "아니, 그게 뭐야?" 174
 약이 되는 말, 많이 할수록 좋다
 "너는 할 수 있어" 181
 "그럴 수도 있지, 뭐" 186
 "네 머리는 꾀주머니야" 190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196
 "걱정하지 마라" 201

4. 자녀와의 갈등 말로 풀자
 공부하기 싫어할 때 207
 예능교육을 시키고 싶을 때 214
 옷차림을 간섭해야 할 때 221
 나쁜 습관을 고쳐주고 싶을 때 225
 거친 말버릇을 쓸 때 229
 PC방에 빠졌을 때 233
 성가신 질문을 계속할 때 239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사귈 때 244
 처음으로 성적인 호기심을 나타낼 때 252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떼쓸 때 260
 용돈을 올려 달라고 조를 때 266
 


 1. 늦기 전에 고쳐주어야 할 말버릇 10가지
 
 빠르고 숨가쁘게 말한다

"엄마, 그런데 으응, 애들이 으응, 기석이를 으응, 막 때려줬어."
"뭐가 그렇게 급해, 좀 천천히 말해봐."
"애들 여러 명이 으응, 그러니까 한꺼번에 으응, 달려들어서.........."
"응,맞아."

 현진이는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와서 급하게 말할 때마다 이처럼 끙끙대거나 숨
가쁘게 말해 어머니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현진이뿐만 아니라 요즘 어린이들은 말
을 빨리 하려고 끙끙대거나부모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우리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말이 빠르지요?"하며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다.

 말을 달 알아듣게 하는데 말의 속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나치게 빠르면 
알아듣기가 어렵고 지나치게 느리면 지루래서 듣기 싫어진다.말하면서 끙끙대거나 너
무 빨리 말하는 것은 말하기에 필요한 호흡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숨쉬기는 말하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말하다가 숨을 쉬는 것을 '포즈(pause)'라고 하
는데 '공간의 미' '여백의 미'라고도 한다. 말하기에 필요한 호흠은 동양화에서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채워진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백과 같은 역할을 한다.여백
이 없는 동앵화가 답답해 보여 가치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많은 정보를 접하기 때문
에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생각대로 말은 나
오지 않아 아이들은 숨을 쉬지 않고 금하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어린 아
이들의 폐활량은 적기 때문에 급하게 말하려고 하면 할수록 숨이 가쁘게 된다.

 이러한 자녀의 말하기 습관을 발견하고도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 곤란하
다.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성인이 된 다음에도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
르고 숨가쁘게 말하는 습관을 갖기가 쉬운 것이다. 자녀의 숨가쁘고 빠른 말버릇은 발
견 즉시부터 고쳐주어야 한다.

 만약 자녀가 현진이처럼 끙끙대며 급하게 말한다면 "여러 녀석이 기석이를 때렸단 
말야?"라고 어머니가 답을 말해버리자 말고 "거기서 한 번 쉬고 다시 이야기해봐.기석
이가?뭐라고?"라고 되물어서 자녀가 다시 정확하게 정리해서 말하도록해야 한다.
 
 말을 빨리 하는 자녀에게 "그렇게 빨리빨리 이야기 하니까 듣는 엄마가 숨이 찬다"
라는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자녀가 어머니 
지시대로 다시 고쳐서 정확하게 말하면 '늘 그렇게 말하면 듣기가 참 편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저 듣다가 짜증난다고 부모가 나쁜 감정을 드러내면 자녀는 부모의 요구를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최대한 편안하게 느낄수 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저 듣다가 짜증난다고 부모가 나쁜 감정을 드러내면 자녀는 부담을 갖게 되고 자
녀의 말버릇을 고치기도 어렵게 된다. 자녀가 부모의 요구를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최
대한 편안하게 느낄수 있는 반응을 보여 천천히 말버릇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신혜미 씨는 외국인 기업체의 신입사원이다. 취업난 속에서도 외국인 기업에 취직한 
그녀가 행복에 젖기도 전에 회사생활이 시작되자 말버릇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
했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그녀의 말이 너무 빨라 회사생활이 시작되자 말버릇 때
문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그녀의 말이 너무 빨라 회사의 
선배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라고 
하는데 있었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직장 선배들은 "자네는 따발총이야? 천천히 말 좀 해봐."라고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신혀미씨는 학교 다닐 대는 자신의 말이 그처럼 빠르다
는 사실을 잘 몰랐다.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주의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부
모님이 "아이구, 말 좀 천천히 해라. 알아듣게 또박또박 말해봐"라고 하긴 했지만 친
구들과의 관계에서는 큰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에 들엉노 후 그녀는 따발총 
쏘는 것처럼 빨리 말하는 습관 때문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 받아야 하는 회사에서는 대충 얼버무리는 말하기가 통하지 않았
던 것이다.어려서부터 빠르고 숨가쁘게 말하는 자녀들의 습관을 고쳐주려면 자녀들에
게 틈나는 대로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준다.
 이때 무조건 소리내서 읽도록 하는 것보다 책에다 일일이 쉬는 표시를 해주고 표시
된 곳에서는 반드시 끊어서 읽도록 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숨을 쉴 때도 박자를 맞춰
서 쉬도록 한다. 자녀에게 호흡에 대한 이해를 시킨 후 문장 중간에는 반 박자, 문장
이 끝났을 때는 한 박자씩 쉬도록 하는 것이다.
 자녀가 숨쉬기 표시가 된 자리에서 정확하게 잘 끊었을 대는 빠트리지 말고 칭찬을 
해주어서 자녀가 소리내서 책읽는 것에 흥미를 갖도록 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소
리를 고래고래 지르게 하는 것보다는 정확한 호흡에 맞춰서 목에서 힘을 빼고 배에 
힘을 주어 읽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책읽기는 평소의 말하기에 큰 영향을 주어 말할 때의 호흠이 고르게 되고 또
박또박 편안하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소리내 읽기는 자녀들의 호흡뿐만 아니라 
발성 연습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의 발성 연슴은 발음과 발성, 끊어 읽기를 
자연스럽게 해줘 평생 동안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된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상사께서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새로 공부를 하라고요."
 직장인을 위한 '스피치 테크닉' 강의를 받기 위해 사무실로 나를 찾아온 20대 후반
의 한 직장의 한 말이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말에서 받침이 전혀 들리지 않아 계속해서 "다
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해야만 햇다. 그는 말이 빠른 데다 입을 정확하게 
벌려 말하지 않아 받침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말의 전체 내용을 알아듣기가 어려웠
다. 
그는 우수한 인재였다. 서울대학교를 나왔고 영어도 잘해 직장에서 촉망받는 
지구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말을 불분명하게해 진급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를 
아끼는 직장 선배는 말하기 교육을 받아 그 부분을 보충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우리말에는 받침이 있기 때문에 입모양이 바르지 않으면 받침이 제대로 발음되지 
않아 정확한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다. "아까 제대로 알아들었어?"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들리지를 않더라고." "그 사람 말은 정말 외국인보다 더 어려운 거 
있지?" "요즘 젊은 사람 특증이야. 받침이 발음 안 돼서 그래." "말할 때마다 
'뭐라고요?'라도 되물을 수도 없고 말야." "세일즈맨이 그렇게 말해서 어디 성공할 
수 있겠나?" 10년이 넘은 자동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자동차에서 갈갈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해 친구와 함께 자동차 판매사원은 입을 작게 벌리고 말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이 안에서만 웅알거려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네? 다시 한 번 
설명해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미안해 아예 포기하고 
중간에 그 곳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도 그런 경험은 많이 할 수 있었다. 한 
회사에 가서 사원 교육을 마친 후 교육 담당자들이 예약해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불고기를 잘하기로 널리 알려진 집이라고 했다. 그날따라 식당이 붐벼 식당 
안은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 복판처럼 소란했다. 그 회사의 교육담당 책임자는 
식당에서 나에게 개인적인 것은 물론 회사 운영에 관한 여러 가지에 대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은 적이 없다. 발음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차례 그에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지요"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에게 무엇을 묻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그냥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업무에 관련된 이상,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행능력이다. 일에 관련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행능력이다. 일에 관련되어서라면 상대방은 정확하고 철저하게 말할 것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차징이 생기면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으로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음이 불분명하다면 고쳐야 하고 어릴수록 교정이 쉽기 때문에 발견 즉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자녀의 발음을 고치려면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때 
부모는 자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신중해야 대처해야한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자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훈련을 통해서 교정해줄 수 있다. 
부모와 같이 아침마다 책을 읽을 때 입을 최대한으로 크게 벌려서 큰 목소리로 읽도록 
한다. 이를테면 'ㄴ'과 'ㅇ'이 잘못 발음되면 '항강'이 된다. 그러면 '한강'으로 
정확하게 발음라도록 입 모양을 살피면서 지도해야 한다. 부모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자녀의 발음이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가 먼저 입을 크게 벌리고 
발성훈령을 하거나 자녀와 함께 발음 교정을 하면서 자녀의 발음도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좋다. 또 조금 자라서 교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왕이면 부모들이 
자녀가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좋은 말음을 들려주어, 그 발음이 귀에 익도록 사전 
작업을 해두는 것이 좋다. 좋은 책을 골라 자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며, 이 때 
부모가 발음을 정확하게 낼수록 효과가 좋다. 사회 생활을 할 때 상대방이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발음이 불분명하면 호감을 얻기가 어렵다. 자녀를 성고하는 사회인으로 
기르려면 어려서부터 발음ㅇ르 고쳐 주는 것이 좋다.포인트 소리내어 책을 읽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정확하게 말을 하도록 한다. 부모의 발음은 정확한지 체크해본다. 
영유아 때 부모가 바른 발음으로 책을 읽어준다. 발음은 어릴 때일수록 고치기가 
쉽다. 

말 끝을 흐리며 말한다.

"말의 내용은 좋은데 고개를 너무 많이 움직이는 
것.........." "끝까지 설명해 보세요." "움직이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애들이 
TV에서 본 드라마 이야기를........." "이야기를 어떻게 했다구요?"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묜 이처럼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뒤끝을 흐리면서 중간에서 
잘라버려 재질문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에는 
문장이 아닌 단어로만 말하기도 한다. PC통신 등 컴퓨터와 전자 매체가 발달하면서 
중요한 단어 몇 가지로 의사를 전달하거나 단어 자체를 심하게 줄여쓰.는 탓이다. 
이러한 습관은 성인이 된 후까지 없어지지 않아 사회 생활의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어린 자녀가 끝 부분을 흐리며 불분명하게 말해 부모조차 자녀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불평을 하는 부모들도 
자녀의 언어 습관을 고쳐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어가 얼굴이 크거나 키가 작은 
것처럼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노력만 하면 언제든 
고쳐서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 몸매를 다듬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훈련으로 
목소리도 고칠 수있다. 말끝을 흐리거나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은 등 자녀들의 
말하기가 예전과 달라지면서 부모와 자녀의 세대간 커뮤니케이션 단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말하기 자체는 세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요즘은 그 
변화가 너무 급격래 세대간 격차와 단절을 촉진하고 있다. 세태가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면서 자녀의 잘못된 말버릇을 방치하면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 사회 생활을 
할 때 큰 어려움을 격게된다. 자녀의 사회 생활을 관리할 상사나 소비 능력을 가진 
고객은 자녀들과 같은 세대가 아닌 부모나 자녀와 부모의 중간 세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어려서부터 말을 
끝까지 명확하게 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한국 말은 끝가지 들어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다. 서술어를 맨 뒤에 사용하기 때문에 끝까지 듣지 않으면 
긍정인지 부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부정어나 긍정어, 동사, 형용사가 맨 끝에 온느 
서술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말하기 습관에 있어서 서술어 부분이 거의 
들리지 않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정도로 말끝을 흐리면 어려서부터 고쳐주는 것이 
좋다. 계속해서 강조했지만 말하기 습관은 나이가 들수록 고치기가 어렵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명료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면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전에는 사회적으로 말에 대한 중요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말끝을 흐려도 큰 문제가 없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말을 중요시하는 
사회물결은 벌써부터 우리나라 직업세계에도 들어와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는 미래에는 타인을 설득해야 성공할 수 있는 생종 경쟁이 지금보다 더 치열해 질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허탈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 인전받고 계시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능력이 있어도 
말하기가 서투르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든요.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니 
왜요?" "실력이 별로인 사람들도 말만 잘하면 성공하더라구요. 진급도 빠르고 좋은 
자리에 가 있지요." "억울하시겠네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기업체에 나가 
커뮤니케이션 교육을ㄹ 해보면 이와 같은 고민을 말하는 직장인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직장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거나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러응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또렷하게 말하는 것을 의마한다. 
세계에서 가장 평등권이 보장된 것으로 알려진 미국사회도 실상을알고 보면 엄격하게 
구분돼 있다. 계층구분은 단어 사용법, 말의 억양, 말하는 태도로 측정된다. 1962년 
아카데미상을 9개나 휩쓴 영화 <마리 페어 레이디>를 보면 영국인들이 계급을 나눌 
때 얼마나 언어를 중요시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영국 문화를 그대로 
들여온 미국인들도 언어사용 태도를 보고 계층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해준다. 
사람들은 겉으론느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 때문에 남보다 특별해 보이는 옷을 입고 미싼 자동차와 집을 
사며 특수 계층을 만드는 것이다. 한때는 비싼 차와 좋은 옷이 특별 대우를 
받을수 있는 요소가 되었지만, 경제가 좋아지고 평등권이 향상되면서 그러한 
것들로 특별 계층을 나누는 의미는 사라졌다. 그 때문에 그 동안 특별 대우를 받아온 
사람든은 다른 방법을 다시 계층을 나누기 시잭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말하기, 매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전문직 종사자 중 옥스퍼드 영어와 프린스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만 사교가 가능한 계층이 많다고 한다. 하물며 끝까지 
명료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제대로 대접받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사회지도자들까지도 사투리와 표준말을 마구 섞어 
사용하고 있으며언어 사용법으로 계층을 나누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그러나 
미국처럼 생활 수준과 GNP가 높아져 좋은 옷 입고 비싼 집이나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도 머지 않아 언어나 매너로 계층을 나누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미 그러한 바람이 불고 있어 기업체 같은 데에서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매너나 이미지 그리고 말솜씨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단어 사용법, 문장 구성법, 
말하는 태도 등을 가르쳐 사회생활에 성공하도록 해왔다.이제 말이 그 사람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말끝을 흐려 마지막 말을 생략하는 
언어습관을 방치하면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기쉽다. 정확한 문장으로 말할 때 그 사람이 논리적이고 정확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적절한 대접도 받을 수 
있다.자녀가 말을 끝까지 하지 않거나 축약해서 대충 말하면 때때로 그 내용을 
녹음해서 들려준 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를 반복해서 알게 
해주어 끝까지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끝을 
흐리며 정확하지 않게 말하면 못 들은 척한 다음 자녀가 다시 끝까지 또박또박 
말했을 때 자녀가 좋아하는 과자 등 간단한 상을 주면서 아이를 칭찬해주며 그 
습관을 교정할 수 있다.포인트아이가 말끝을 흐리며 끝까지 말을 다 할 때까지 다시 
말하도록 한다.아이의 말을 녹음해서 들려주고 왜 발음을 고쳐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말끝을 흐리면 대꾸를 하지 말고 말을 제대로 하면 칭찬을 해준다. 


발표 불안증이 있다.

"우리 애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인데 남들 앞에서 발표하기를 
두려워합니다.""그런 것은 훈련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정말 그럴까요?" 자녀가 
발표를 못 해 문의 전화를 하는 부모들이 많다. 어려서부터 보호를 유난히 많이 
받았거나 바깥 세상과 접할 기회가 적은 어린이일수록 낯선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게 된다. 낯선 사람과 말하기를 꺼리는 어린이는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는 
더욱 싫어한다.어린이의 발표 불안증을 없애려면 자녀에게 낯선 사람을 자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극성을 부려 부모들은 
세상이 너무 험해서 자녀에게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대꾸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른다. 심지어 자녀 혼자 약국이나 동네 문방구에 가는 것도 위험하다며 "엄마랑 
같이 가자"하면서 따라나서는 어머니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어린아이들은 점차 낯선 
사람과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는 더욱 싫어하게 된다. 
부모들이 미리부터 단속하는 것이 당연할 만큼 세상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의 말하기 교육에서 이러한 부모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녀가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잘 하도록 하려면 자녀에게 닻선 사람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해야 하는데 낮선 사람의 말에 대꾸하지 말라는 것은 아이의 압을 
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녀를 낮선 사람데게 노출시키기가 불안하다면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과 어울리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내가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정부나 파출부 손에서 자라 외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이를 맡아준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고를쳐 책임질 일이 생길까봐 아이들을 방 안에 두고 보호하기에만 
급급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섯 살, 여섯 살 때의 알이다. 예고 없이 회사동료가 
자녀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오자 작은아이는 그들 앞에서 짜증을 내며 "나는 
우리 집에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게 싫어" 라고 말한 것이다. 직장동료 앞에서 부모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남편의 입사동기였기 때문에 남편은 더욱 화를 
냈다. 남편은 그 동료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 손에 잡히는 대로 매를 
들고 작은애의 엉덩이를 두들겨 패기 사작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리 매를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남편을 말렸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책을 세웠다. 라면도 
상자째 사지 않고 낱게로 샀다. 라면 세 개가 필요하면 형이 한 개, 동생이 한 개, 
둘이 같이가서 한 개, 이런 식으로 사도록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가게 앞까지 
갔다가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어 라면을 사지 못하고 울면서 그냥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가볼래?" 가서 그냥 `라면 하나 주세요` 라고만 
말하면돼" 하고 타일러 돌려보냈다. 세 번씩이나 그냥 돌아왔지만 내가 굽히지 않자 
마침내 아이들은 라면을 사들고 왔다. 아이들은 라면을 산 첫날 너무나 기뻐 
가게에서 집으로 뛰어오다가 넘어져 무릎이 다 벗겨졌다. 그후부터 나는 시장 볼 때 
두부나 파 같은 물건은 시장에서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아이들에게 
사오도록 한다. 당시 나는 직장일에 시달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작은아이의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의 말하기 교육 때문에 집의 대문을 활짝 
열기로 했다. 그때부터 회사동료들은 우리집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자주 
전출되는 우리 회사의 새로운 직원과 만날 수 있었으며 낮선 그들과 금세 말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노력 덕분으로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쉽게 말을 붙일 수 있으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매일 내주는 발표숙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훈련에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낯선 사람과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면 발표 불안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포인트낯선 사람과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준다.말을 나눌 수 있는 가게에 아이를 보내 물건을 사도록 
한다.격의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자주 집으로 초대한다. 

거짓말을 잘한다"우리 애는 나만 보면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안 해요. 나한테 화가 났느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는 거에요." 초등학교 5학년인 민옥이는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묻는 말에 간단하게 대답한 후 그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다. 민옥이는 어머니가 
보기에 친구들하고는 잘 떠드는 것 같은데 자신만 보면 입을 꾹 다물어버려 여간 
속이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옥이가 그러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민옥이 
어머니는 잔소리가 많았다. "민옥아, 이 스웨터 입어. 그것 말고 이것 말야." 
"민옥아, 이걱 좀 먹으라니깐. 왜 안 먹으냔 말야." "그런 건 몸에 나쁘다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외출을 한단 말야?" "그런 애를 왜 
집에 데리고 오니?" 민옥이 어머니가 민옥이에게 자주 쓰는 말이다. 민옥이 아버지는 
종종 그러한 민옥이 어머니의 잔소리에 화를 내 심한 부부싸움도 일어나곤 했다. 
민옥이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아란곳하지 않고 딴청을 부리며 못 들은 척했다. 원래 
민옥이는 성격이 밝고 뒤끝이 없어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도 돌아서면 어머니에게 
애교를 부리며 엉겨붙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후부터 갑자기 입을 봉해버렸다. 
사춘기를 맞은 민옥이에게 어머니의 잔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사춘기를 맞기 때문에 부모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를 
이때부터 날카롭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가 잔소리를 많이 하거나 
권위적이어서 자녀들이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하면 자녀들은 아예 부모를 피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살짝살짝 속이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습관이 굳어지면 거짓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내용을 조금씩 
과장시키는 언어습관을 갖게된다. "형이 그랬어요. 나는 아빠 컴퓨터 안 만졌어요." 
재현이 아버지는 그동안 만들어둔 서류가 노트북 컴퓨터에서 사라져버란 사실을 알고 
재현이를 불러놓고 노발대발했다. 재현이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불 같아 화가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매를 든다. 재현이와 형인 재형이는 
그러한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재현이의 호기심은 그치치 않았고 아버지를 
자주 흥분시켜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재현이는 아버지가 아무리 무서워도 
신기한 물건은 반드시 직접 만져보아야만 속이 후련한 성격이었다. 그 때문에 
재현이는 아버지가 화를 낼 때마다 거짓말을 해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잘못을 
무섭게 닦달하면 들통이 날 때 나더라도 끝까지 숨기고 보자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거짓말도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 말은 믿지 마. 엉터리야. 
허풍이 삼해서 그 사람 말 듣다가는 망신이아 당하니깐." "맞아, 어디서 이상한 
소식을 많이 가져오기는 하는데 맞는게 거의 없어." 대기업 대리인 김정식 씨를 두고 
직장 동료들이 하는 말이다. 그는 입사초기에는 어디선가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소식들을 수집해와 재미있게 들려주어 주변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그는 내용을 
각색해서 과장되게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기 때문에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던 동료들도 실상을 알고 나서는 그를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 "김 이사가 
주식을 몽땅 해외로 빼돌렸대." "정말?" "김 이사도 해외로 내빼려다 마지막 순간에 
들통이 났다지 뭐야." "어떻게 그런 소식을 알게 되었지?" "그런 거 알아내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신입사원 때 김정식 대리가 동료들에게 한 이 말은 한 입 건너 두 
입, 두입 건너 네입으로 번지다가 온 회사 안에 다 퍼지게 되었다. 결국 그것은 
김대리가 어디선가 잘못 듣고 각색해낸 거짓말이었음이 들어났고 김대리는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김대리는 특별한 목적이 없이도 이처럼 거짓말을 만들어내 종종 
물의를 빚곤했다. 김대리는 "우리 집 노인네는 절대 용서해주는 법이 없지" 라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모양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1990년대 중반에 명문 대학생인 
대법관 아들이 대가를 받고 수능 시험을 대신쳐주다 들통나 아버지 법복을 벗게한 
사건을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때 경찰에 잡힌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용돈을 노무 적게 주어 친구들과 정상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돈을 벌기 위해 그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만큼 부모의 잔소리가 많거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엄격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는 습과을 길러줄 수 있다. 부모의 
잔소리와 윽박지르기를 견디기 힘들 때 어린 자녀는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다. 나쁜 일이 으레 그렇듯 거짓말도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다. 자녀를 거짓말쟁이로 말들고 싶지 않으면 어려서부터 브모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부모의 성격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한 달에 한 번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그 동안 부모에게 기분나빴던 
일, 속상했던 일을 털어놓게 하면 자녀의 거짓말 습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도저히 자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며, 자녀가 마음놓고 속마음을 털어놓도록 아이들의 문화부터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어하는 가수, 배우, 만화, 게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등 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 큰아이가 사춘기를 맞아 갑자기 날 
피하여 자기 방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하자 그 아이가 좋아하는 팝 음악 가사부토 
외우기 시작했다. 그 음악의 가사내용을 가지고 말을 붙였더니 아이가 쉽게 말문을 
열고 방문도 열었다. 부모가 자녀들과 문화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자녀들은 
좀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부모가 절대 자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 직접 자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도록 하기 어려우면 제3자를 통해서 
할 tnr도 있다. 교사 등 자녀와 거리감을 갖기 쉬운 사람보다 자녀와 친한 이모, 
고모, 사촌등을 통해서 자녀의 속마음을 알아보게 한 후 간접적으로 듣는것도 좋다. 
이때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고 해서 "아니?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하며 화를 내는 것보다 냉절하게 부모 자신의 행동을 평가한 다음 자신의 
잘못이 인정되면 "내가 잘못 한 것 같다. 고의는 아니었다. 미안하다." 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부모도 모르는 사이 자녀가 거짓말을 했고 
부모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자녀가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 원인을 알아보고 자녀에게는 거짓말아 왜 나쁜다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이때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자녀를 대하는 것은 금물이다.포인트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는 자녀의 거짓말을 조장한다. 자녀가 좋아하는 음악, 게임, 놀이부터 
이해하자. 한 달에 한 번은 자녀의 속마음을 부모에게 털어놓도록 하자. 자녀와 
대화하기 힘들면 사촌이나 이모, 고모를 통해 속마음을 들어보자. 자녀가 부모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해도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엄마, 밥."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유치워에서 돌아온 훈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훈이 
어머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방으로 달려간다. 훈니는 그런 엄마가 좋다. 
늘 편안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는데도 
문장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여기, 숙제" "야, 와" "안 된대두" 와 같은 
토막말 사용은 친구사귀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남 앞에서 하는 공식적인 말은 
될 수 없다. 훈이 어머니는 평소 학교활동에도 열성이어서 학부모회의 임워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훈이의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말을 잘해 인기가 있는것도 
아니어서 다른 엄마들 앞에서 늘 기를 펴지 못한다. 게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훈이는 이제 툭하면 엄마에게 "신경질 나."라고 토막을 친 한마디만 뱉은 후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려 훈이 어머니는 마음이 답답하다. 어떤때는 그러한 
훈이에게 왜 화를 내는지 자초지정을 묻기도 하지만 훈이는 "몰라"라는 한마디로 
잘라버려 더욱 안타깝다. 훈이 아버지도 훈이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단 
한마디로 "시끄러워" "괜찮아"라고만 말해 훈이 어머니 속을 뒤집어놓는 경우가 
많다. 훈이 어머니는 커갈수록 아버지와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훈이를 보면 "에이구, 
제 아비를 닮아서 원." 하며 한숨만 쉬었다. 훈이네와 같은 아파트에서 10년을 함께 
산 혜경이네는 훈이네와 좀 다르다. 신문사 기자인 혜경이 어머니는 모처럼 휴일을 
맞아 늦잠을 자고 이제 막 일어나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훈이와 함께 밖에서 놀다 
돌아온 유치원생 혜경이도 "엄마 밥" 하며 달려왔다. 혜경이 어머니는 "다시말해봐요. 
뭐라고 했지요?"라고 대꾸하며 혜경이를 바라보았다. 혜경이는 소리를 더 높여 
"밥 달라니깐" 하며 짜증을 낸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밥 줄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요." 혜경이 어머니는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혜경이는 몹시 화가 났다. 
할머니 같으면 `내가 밥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갖다주는데 우리 엄만 왜 그렇게 
까다롭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혜경이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않고 반복해서 "다시 말해봐요"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고모집에 가셨기 때문에 
혜경이는 할머니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심통을 부리던 혜경이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엄마, 밥 주세요"라고 고쳐서 말한 후에야 밥을 먹을수 있었다. 
혜경이 어머니는 휴일도 없이 바쁘기 때문에 혜경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혜경이는 할머니가 돌보아주었다. 할머니는 혜경이의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에 혜경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척척 알아서 
챙겨주었다. 그날 혜경이는 모처럼 집에 있는 엄마가 미리 알아서 밥을 차려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함머니와 달리 "밥 주세요"까지 말하도록 까다롭게 구는 
엄마가 미웠다. 옆집에 사는 훈이만 해도 "엄마 밥" 이라고 소리만 지르면 엄마가 
금세 밥을 챙겨주는데 우리엄마는 왜 그럴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혜경이 
어머니가 시간 날 때만이라도 혜경이에게 끝까지 바른 문장으로 말하게 한 보람이 
있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또박또박 말을 잘해서 늘 학급대표로 뽑혔다. 자연 
훈이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훈이와 혜경이는 
타고난 능력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훈이에게도 어릴 때부터 정확한 문잘으로 
말하도록 가르쳤다면 그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훈이 어머니처럼 자녀들이 토막말을 해도 귀엽다고 안아주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엄마, 밥 줘" "밥" "물"과 같이 말해도 그 의미를 다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버릇이 굳어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감정부터 앞세워 추상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될 염려가 있다. 그러한 습관이 굳어지면 자녀의 나이가 많아질수룍 보모조차 
자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귀찮은 일은 피하게 되어 
가능한 한 간단한 말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려고 하며 그것이 잘 통하면 더 
이상의 노력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따라서 토막말 습관이 붙으면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기보다 감정부터 내세워 짧은 토막말을 내뱉기 쉽다. 미국의 중산층 
어머니들은 절대 자녀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받아주지 않는다.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 있는 샌트럴 초등학교 4학년인 엘리아의 어머니 베시는 자녀들에게 아주 
어려서부터 `어머니 밥을 주세요`라고 정확한 문장으로 이야기 하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베시는 자기만 자녀들에게 특별히 정확한 문장쓰기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어머니보다 강도가 좀더 높을 뿐이며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자기처럼 토막말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하고 크레이그 쉐퍼와 브레드 피트가 노만과 폴이라는 형제로 출연한 
미국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영문학자 노만 맥클린의 자서전 소설을 영화한 
것인데 오지마을의 목사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낚시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는 서정적 
내용으로 우리나라 영화팬들의 가슴속에도 오래 남아 있다. 영화 속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작문공부를 혹독하게 시키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같은 제목의 
글을 하루에도 여러 번 고쳐 쓰게 하는 것이다. 노만과 폴은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가 견디기 힘들어서 여러 차례 좌절하지만 중도포기란 있을수 없다. 이러한 
아버지의 열성적인 지도 덕에 큰아들 노만은 동부로 나가 영문학 교수 자격을 
얻어오고 작은아들 폴은 지방 심문기자가 된다. 이 영화에서 목사인 아버지는 
아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기르려면 글쓰기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처럼 쓰기는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세도 옛부터 
선비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 천자문과 명심보감, 논어, 맹자 같은 좋은 글을 
외우고 시나 문장을 쓰는 것으로 학문을 닦아 과거를 보기도 했다. 이처럼 쓰기를 
중요시한 것은 쓰기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남에게 전달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빨리 전달돠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쓰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해 
더 빨리 전달 할 수 있는 말하기가 중요해진 것 이다. 쓰기와 말하기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여서 쓰기를 잘해야만 말도 잘할 수 있다. 요즘 우리들에게 가장 큰 
부러움을 사는 세계 최고부자인 빌게이츠나 아시아 최고 부자대열에 들어가는 
재일동포 손정의 같은 사람들도 회사경영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로 그 
아이디어를 정리해 다른 사람들과 교환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면 
만나서 토론해 다시 하나로 만든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는 교육의 최종목표는 
말하기와 쓰기를 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회사는 
사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글로 쓰도록 하며 그 내용이 좋은 결우 다시 말로 
발표하도록 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채택되면 그 사람은 회사나 조직 안에서 
인정을 받게된다. 우리의 부모들은 바쁜세상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에 있느냐며 아이들이 토막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던 문제들이 나중에 아이들의 사회생활에 장애요소가 
되는 경우도 많다. 토막말을 사용하는 습관이 굳어지면 성인이 된 후에도 
말하기와 글쓰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따라서 쓰기와 말하기 습관은 어려서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이때 제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어른이 된 후에도 단어나 어법 
사용에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단어를 틀리게 사용하거나 어법에 맞지않게 써서 옆 사람의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법에 맞는 말을 사용하려면 주어나 동사, 목적어가 제자리에 
있는지,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글로 
한번 써보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스피치 교육 수강생 중에는 단어를 약간씩 
틀리게 사용한다든가 어색한 조사의 사용, 함부로 단어를 생략하는 습관 때문에 
한번쯤 남 앞에 서서 웃음거리가 된 경험이 있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잃어 남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법이나 단어사용에 자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주저하게 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주변사람들은 
심지어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의삼까지 하게되는 것이다. 결코 좋은 
이미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말버릇을 잘 살펴서 토막말을 
올바른 문장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하고 동사가 바뀌었다건가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강압적인 지적은 
곤란하다. 자녀가 부담을 갖게 되면 차츰 부모 앞에서 말을 안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고쳐줄 수 없는 것은 물론 자녀와의 
대화마져 단절되수 있다. 자녀가 토막말을 사용하거나 약간 틀리게 말했을 경우 왜 
그것이 문제인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후 바르게 바꾸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포인트토막말을 올바른 문장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지도한다.글쓰기 공부를 시킨다. 

소리지르며 말한다 

"몰라. 내가 안 그랬다니깐!" 
경인이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큰소리로 어머니에게 대꾸를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악을 쓰는거야?" 경인이 어머니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자꾸 우기니깐 
그렇지." 경인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전화기 옆에놓인 손톱깍이가 어디로 갔단 
말야?" 경인이 어머니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믐 왜 뭐만 
없어지면 나만 야단쳐? 나 손톱깍이 안 썼단 말야.""네가 항상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놓지 않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아니란 말야." 아참, 엄마가 엊저녁에 경준이 손톱 
깎아주었잖아." "아니구 참, 내 정신 좀 봐." 그제서야 경인이 어머니는 목소리의 
크기를 줄였다. 경인이 어머니와 경인이가 대화를 나눌 때 모를는 사람이 듣는다면 
싸우는 줄 알 것이다. 경인이 어머니는 성격이 급해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따지듯 큰 소리를 말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인 
경인이는 물론 경인이 동생인 경준이까지 큰 목소리로 말대꾸를 한다. 경인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허스키인데다 목청이 커서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온 동네가 
들썩들썩할 정도였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경인이 아버지도 목소리가 걸걸하고 크다. 
경인이네 가족들의 목소리가 하나같이 다 커서 모두 모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목청을 높에 말하기 때문에 말할 때 목에 힘중이 돋는 것도 서로 
닮았다. 경인이와 경준이는 어려서부터 약간 쉰 듯한 목소리에 조용하게 말할 줄도 
모른다. 게다가 경인이 남매는 여러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았다. 
경인이 어머니까지 합쳐 세 사람이 공공 장소에서도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경인이 아버지가 특별 보너스를 받게 돼 가족이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새로 생긴 그 레스토랑은 매우 넓고 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자녀를 데리고 식당에 온 가족들도 많았다. 경인이 남매는 그곳에 들어선 후에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거 내꺼란 말야." "아냐, 내꺼야. 안 내놓을래? 너 
죽을줄 알아." 경준이 누나인 경인이가 아끼는 영화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인형 
하나를 훔쳐온 것이 들통이 나 싸우는 것이었다. 그 인형은 지난 달 아버지가 
미국출장 가서 사온 것이었다. 경준이도 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았지만 어디로 
가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나 물건에 손을 댄 것이다. 그들 남매의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커 모든 사람이 눈살을 짜푸렸다. 화가난 손님 한 사람이 
경인이에게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인줄 아니? 좀 조용히 해라." 하며 야단을 쳤다. 
경인이는 움찔하며 그 사람을 쳐다보았지만 경인이 부모는 오히려 "왜 우리 아이를 
함부로 야단치는 거지?" 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해외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우리나라 식당에 들어가면 너무나 시끄러워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나는 미국에 가서 살기 전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4년 정도 미국에서 살다 돌아와보니 식당에 가서 외식하는 
것이 즐겁기는커녕 곤욕으로 생각될 정도로 소란스러움을 참기가 어려웠다. 한 
사람이 소리를 높여 말하면 다른 사람도 소리를 높이게 된다. 차례차례 소리를 높이다 
보니 자연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정신수준도 점차 
높아진다. 우리나라에도 날이 갈수록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사람을 싫어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인이 될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아무곳에서나 함부로 떠드는 사람들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자녀의 
목소리가 너무 커 쉰 소리가 나거나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떠들며 방치하지 말고 
고쳐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자극해 자꾸만 소리를 지르게 하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쉰 소리로 변할 수 있다. 쉰 소리가 나면 소리가 억세게 들리고 너무 커 
듣기에 거북한 것은 물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교양이 없어 보인다. 어려서 웅변을 
많이 한 사람들 중에는 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많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성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소리를 질러 목청이 상한 것이다. 성대는 매우 약한 
기관이어서 무리하면 쉽게 상한다. 한번 상한 목소리는 쉽게 회복하기가 어렵다. 
웅변으로 목청이 트이고 활달한 목소리를 만든 사람들은 발성을 제대로 해서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소리를 지르더라도 정확한 발성법에 따르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는 소리를 지르더라도 정확한 발성법에 따르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는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큰 소리로 말하지 않도록 해야만 자녀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가끌 수 있다. 어려서부터 기어드는 것처럼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곤란하다. 자녀의 목소리를 쉰 목소리가 아닌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로 
만들려면 목에 힘줄이 솟을 정도로 함부로 소리를 지르게 할 것이 아니라 배에 힘을 
주어 소리를 크게 내는 발성법으로 목소리를 달련시키는 것이 좋다. 또한 자녀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방치하면 교양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돼 다른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녀를 함부로 
야단친다고 싫어할 것이 아니라 내 자녀가 남의 눈총을 받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자녀가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떠들지 않게 하려면 부모부터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포인트아이를 자극해 소리 지즈지 않게 한다.아이가 본받는 것은 
부모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발성하도록 교육시킨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알려준다. 


말할때 눈을 맞추지 못한다 "시선이 
허공을 맴돌면 영혼도 허공을 맴돌죠." 말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말할 때 상대방 눈의 표정을 살피지 못하면 
메시지의 35%가 증발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메르비안은 
사람이 말을 할 때 눈의 메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 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눈은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눈만 보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도 자녀의 눈만 보면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 바람난 남녀를 보고 `눈이 맞았다`고 표현하는 것도 눈의 
메시지가 얼마나 간한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시선 처리가 정말 힘들군요." `스피치 
테크닉`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기의 가장 어려운 점이 `눈 맞추기`라고 
호소했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쳐다보면서 말하는 습관을 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시선처리를 어려워 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시선이 허공을 맴돌면 영혼도 
허공을 맴돈다는 결론으로 내려주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동안 엉뚱하게도 
창 밖 풍경을 보거나 벽에 걸린 애궂은 달력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실례되는 것은 아닌지 확신이 없어 일부러 시선을 피하기도 한다. 동물학자로 
인간행동에 관한 영구까지 해 맨워칭등 많은 책을 낸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즈먼드 모리스 교수는 인간의 눈이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상대방을 더 오랫동안 응시하며 특별한 댄스를 추듯 시선이 
서로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서 하나같이 상대방의 눈을 피한다. 야단치는 어른의 눈을 두려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른들도 강심장이 아닌 한 거짓말을 할 때 대부분 
상대방의 눈을 피한다. 서양인들은 눈의 메시지를 중요시해 대화를 나눌 때 눈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서양 영화를 보면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다그치며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해" 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서야인과 협상하면서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힐끔거려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우리나라 대표들이 
많다고 한다.중요한 협상에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것은 커다란 실책이 
아닐 수없다.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양인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것을 싫어해 똑바로 보며 말하는 서양인과 커뮤니케이션의 충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문화적인 차이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좋다고 꼬집어서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의 많은 
양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문화적인 
관슴 때문에 상대방의 눈을 독바로 바라보기가 어렵다면 얼굴이라도 바라보아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고 내 마음 속에 있는 메세시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엄마, 여기 좀 봐. 내가 개구리르 그렸어." "알았어. 엄마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보자." "싫어, 지금 봐." 유치원생인 지웅이는 몰을 흔들며 다림질에 열중인 
어머니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느라 바쁜 지웅이 
어머니는 지웅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 바쁘니까 나중에 보여줘. 
미안해"라고만 말했다. 지웅이 어머니는 다림질이 서툴러서 남편의 핀잔을 받는 
날이 많아 와이셔츠를 다닐 때에는 다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지웅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알았어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떨고며 그림을 들고 자기 방으로 
건너가버렸다. 결혼 전 직장에만 다녀 살림을 해본 적이 없는 지웅이 어머니 
이계주씨는 집안일 때문에 매일 쩔쩔맸다. 자연히 아이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건성으로 아이의 말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집안일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 바쁜 집안일들이 자녀 잘 기르기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얼마든지 어리띠를 졸라맬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이다. 
그러나 자녀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하지 못해 
자녀교육에 쏟아부은 돈과 에너지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와 말을 주고받을 때 자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지 않으면 자녀가 아무리 많은 
예능 교귤을 받아도 대접받는 교양인으로 자라기 어렵다. 예능 교육울 많이 시켜도 
기본 예절을 안지키면 교양인을 평가 받을 수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와 눈을 
맞추지 않고 딴 곳을 보면서 말하면 자녀들은 '부모가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삿해 부모를 불신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건성으로 들어주는 부모의 태도는 자녀들에게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거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도록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른들도 
상대방의 시선을 피한 채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상대방의 시선을 피한 
채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상대방의 눈이나 얼굴을 
보징낳고 상대방의 눈이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누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어렵다. 실컷 설명을 듣고도 엉둥한 답변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대문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듣기를 잘해야 한다. 기업체의 최고 책임자들의 
업무 중 70%가 듣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의견들을 제대로 
듣고 의사 결정을 정확하게 해얌나 업무를 제대로 처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하기 습관과 마찬가지로 말할 때 눈을 맞추거나 시선을 맞추는 태도는 어려서부터 
길러지지 않으면 습관으로 굳어져 고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 작은 아이 승연이도 
어려서 어른들과 말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 허공을 보며 말했다.승연이가 
내게 유치원의 재롱 잔치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할 대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이러한 태도를 
발견한 후 그것을 고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저녁 식사 후 나와 대화를 나눌 
때만이라도 눈을 보며 말하라고 부탁했다. 물론 
나는 가능한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며 '자.이번에는 엄마랑 눈을 
맞추며 말해야지'라는 사인을 해주어 아이가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했다. 이때 내가 
웃지 않으면 아이가 부담을 가질 것을 알기 때문에 웃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나와 말을 시작하면 곧바로 시선을 피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다라 자연스럼게 눈을 
맞추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형과 눈을 맞추게 하였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눈을 맞추며 말하도록 했다. 만약 그 때 승연이의 눈을 맞추며 말하지 
못하는 습관을 발견해 고쳐주지 못해다면 그러한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자녀의 이런 태도를 발견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 먼저 시선을 맞추며 말하도록 하고 다음에는 그 다음으로 친한 
사람 순으로 눈을 맞추도록ㄱ 해 고쳐주자. 무엇보다 자녀가 부모에게 말을 할 대 
바쁜 일을 미뤄놓고 자녀의 눈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자녀의 시선 처리가 
자연스러워진다. 

"커피 두 잔하고 오렌제 주스하나 주세요." 커피숍에서 친구들으 
만나기로 해 주문을 하는데 종업원이 주문을 받은 후 "알았습니다"라든지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고 휙 사라져버렷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다. "별일이야. 도대체 차를 가져다주겠다는 거야. 
안가져다주겠다는거야?" 울화통이 터졌다. 계산을 해오라고 신용카드를 주면 들고 
감감무소식일 때가 많고 거스름돈이 필요한 큰 돈을 주면 대꾸가 없어 신경 쓰이게 
하기도 한다. 간단하게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고만 말하면 상대편은 편안해질 
수 있는데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답을 뚝 잘라먹으면 불쾌감을 준다. 즉각 
대답을 하지 맛하는 사람은 사회인으로서 환영받기가 어렵다. 그뿐아니라 남의 
오해를 사기도 쉽다. "신세대의 특징이 뭔 줄 알아? 약속을 안지키고 대답을 제때 안 
한다는 것이댜." 학부 학생에게도 강의를 하시는 은사님 한 문은 학생들과 면담하는 
계절이 오면 종종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도 그에 동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언젠가 
논문자료조사를 위해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바쁜 
일이 생기면 약속한 날까지지 자료를 찾아오겠다는 전화조차 하지 않아 여러 번 
스케줄을 차질을 빚게 했다. 그러고도 별반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후부터는 그 
학생을 신뢰할 수 없어 자료조사를 계속해서 시킬 수가 없었다. 일시적인 
아르바이트도 이런데 엄격한 직장에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직장에서도 상사가 
명령을 내릴 때 답변을 제때 하지 않으면 미움이나 받기 딱 좋다. "최 대리, 아까 
서류 가져오라고 한 것어떻게 됐어?" "네, 아까 다 만들었는데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다 했으면 가지고 와야지. 거기다 보관하고 있으면 어쩌란 
말야." 장필수 팀장은 짜증을 냈다. 최 대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만 
두드렸다. "이 사람이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최 대리는 "지금 프린트해서 
가져가려고......"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말을 해야지, 말을! 이 사람은 
대답하다 죽은 귀신이 들렸나? 대답을 그렇게 뚝뚝 잘라먹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답답하잖아." 장필수 팀장은 화를 버럭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세대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어린애들일수록 그런 
태도가 많이 나타난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도록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질문을 받으면 즉각 대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상사나 
고객이 질문을 하면 작은 일일지라도 즉각 대답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커피 
한 잔 주세요." "네, 곧 돌아오겠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커피솦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종업원은 주문을 하건나 계산을 부탁하면 항상 "곧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손님이 묻는 말에는 반드시 즉각 대답을 했다. 또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제3자가 질문을 하면 "미안합니다. 이분과 이야기가 끝난 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설명을 한다. "주혜야. 너 아까 엄마가 사오라고 말한 
약 사왔어?" "아니, 숙제하고 다녀오려고 했어." "엄마는 또 네가 약 사러간 줄 
알고 목을 빼고 기다렸지. 엄마한테 지금 갈 수 없다고 말했으면 엄마가 벌써 
갔다왔을 것 아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주혜 어머니는 짜증을 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혜 어머니는 주혜가 아주 어려서부터 대답을 제때 하지 않아 
화를 낼 때가 많았지만 그 버릇을 고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혜는 
제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왜 나쁜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성년을 맞았다. 
그리고 IMF 한파 속에서 학교 추천으로 외국인 기업체의 인턴 사원이 되었다. 그러나 
대답을 제때 하지않는 어릴 때부터의 습관 때문에 회사 사원들에게 곱게 보이지 
못해 임용되지 못했고 6개월 인턴을 마친 후 회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는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취직을 하기 위해 영어다, 컴퓨터다, 여러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직은 쉽지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처음 인턴으로 들어갔던 회사에 잘 적응했다면 이처럼 취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녀가 어른이 하는 말에 제때 대답을 하지 않으면 
고쳐주어야 한다. 어른에게 질문을 받으면 적어도 `네, 아니요` 정도는 즉각 답변을 
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질문을 한 후 자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정확하게 
관찰해 자녀가 답변을 제때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이 왜 나쁜지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한다. 대답을 제때 할 때는 상을 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벌을 주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고치도록 한는 것이 좋다. 또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대꾸는 
꼬박꼬박 하면서 필요한 대답은 제때 하지 않는다면 부모의 말버릇은 어떤지도 함께 
점검해보아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는 본보기라는 것을 심히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자녀는 다른 사람아 아는 부모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며 말하기를 배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포인트질문을 하면 반드시 즉각 대답하도록 한다.대답을 하지 
않으면 벌을 주고 대답을 제때하면 상을 준다.부모 또한 자녀가 묻는말에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성의를 다해 즉각 대답하도록 한다. 

베이비 토크를 버리지 못한다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이에요. 그 친구는 집안도 좋고 가정 교육도 잘 
받았거든요나무랄 데가 없는 좋은 남자라고 할까?"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지요?" "그 
친구가 아기처럼 말해요." "저런......" "어떤 때는 제가 그 친구 누나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불편해요. 저는 때때로 남자친구가 저를 감싸주기를 원하거든요. 그리고 또 
남들 보기에도 창피해요. 제가 마치 어린애 데리고 데이트하는 것 같아서요." "그 
문제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말해본 적 있어요?" "네, 몇번은...... 그런데 그 친구 
말이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거에요." "그것을 고쳐주고 싶다는 말이군요." 
"네." "그 말을 분위기를 바꾸어서 해보면 어떨까요. 서울 근교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데로 정중하게 초대해보세요. 그리고 거기 가서는 평소와 다른 엄숙한 얼굴로 
`너의 모든 것이 다 좋지만 말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인다`라고 
이야기해 보세요." "그런데 남자찬구 어머니는 교양 있고 자녀교육에도 열성인 
분이어서 제 말이 잘 먹힐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그 친구에게는 남동생만 하나 
있는데 그 동생도 그런식으로 말하지 뭐에요. 그 동생 말투까지 고쳐주고 싶은데 잘 
될는지 모르겠어요." 한 여대생이 나에게 이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자 대학생이 있다. 심지어 머리를 박박 민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치원생은 아직 어리니깐 그렇다 
치더라도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으로 내려올수록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전에는 여학생들만 다 자란 다음에도 아기처럼 말하는 `베이비 토크` 를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성인남자들데게서도 `베이비 토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베이비 토크`는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aksf이 볼 수 있다. 미국에 있을 때 
만난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유학생 중에는 20대 후반인데도 `베이비 토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말투에 대해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 임용될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 임용될 경우를 상상해보라. 아기말투로 선인인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교수라니...... 자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몸집과 말투가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베이비 토크` 가 오히려 귀여울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다음네도 여전히 듣기에 어색할 것이다. 목소리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베이비 토크`를 사용한다면 전문직에서 
일하가조차 힘들 것이다. 아기처럼 말하는 전문가를 믿고 큰일을 맡길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 가정에서는 자녀가 청소년으로 자랄 때까지 
`베이비 토크`를 사용하면 전문가를 찾아 고쳐주기도 한다. 자녀의 `베이비 토크`를 
바로잡이 주려면 어린 자녀와 말할 때 부모 자신이 "아이구, 우리 아기가 유치원 잘 
다녀와써"와 같이 아기말투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투를 
흉내내며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부모의 `베이비 토크`를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 
자녀들이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영아일 경우에도 부모가 자녀에게 아기말투로 말할 
필요는 없다. 자녀가 어리더라도 분명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해야 자녀가 그 
발음을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비행기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어머니기 어린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며 기다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지세히 관찰해보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어린 자녀일지라도 정확한 발음으로 
책을 읽어준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어린이들도 이때 어머니들로부터 들은 말투가 
기억의 장에 저장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어머니의 태도는 자녀의 언어교육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기가 어머니의 말에 반응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못한다고 
해서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기들은 말을 못할 뿐 다 알아듣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기들은 말을 못할 뿐 다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신상아도 문쪽에 누인 아이와 안쪽에 누인 아이의 지능발달 속도가 다를 
정도로 듣기에 민감하다. 우리의 할머니들 중에도 아직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아이구, 도련님 참 잘생기셨네" 하며 정중하게 말을 거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도 이미 어른의 말투가 어린이들의 언어교육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부모들 중에는 
자녀가 귀엽다고 해서 자신의 말투를 아기처럼 바꾸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눈높이를 
맞추어야만 어린 아이들과 대화를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러나 말투 바꾸기는 대화의 눈높이 맞추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성적이 좋고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인 경우 
거기에 도취가 되어서 자녀의 말버릇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는 공부는 잘하는데 말은 못한다"라응 호소를 하는 학부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경험을 한 발 앞서서 해본 미국의 
경우 자녀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기르기 위해 어려서부터 걷기, 앉기, 말하기, 
식사예절, 개인적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발음 발성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자녀의 '베이비 토크'는 빨리 고쳐 줄수록 좋다. 나이가 들수록 버릇이 고정되기 
때문에 고치기가 어렵다. 만약 고쳐지지 않으면 발성 연습을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발성 연습을 통해 '베이브 토크'는 고치는 것은 물론 발음도 좋게 하고 
목소리로 좋게 만들 수 있다. 자녀의 말성연슴은 소리내어 책읽기 같은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배에서 큰 소리를 내서 읽도록 하고 입을 
크게 벌려 발음을 정확하게 내도록 지도한다. 이러한 훈련은 단번에 끝내지 말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며, 이는 인내심을 키우는 효과도 가져온다. 또 제대로 훈련을 
하면 자녀의 목소리를 크고 당당하게 말들어 '베이비 토크'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발음도 분명하게 만들 수 있어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춰주는 것이다. 포 인 트 정확한 
발음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을 읽어줄 때, 절대 아기 말투로 말하지 않는다. 
발성 연습을 통해 발음 및 목소리를 좋게 한다. 



2. 자녀를 리더로 만드는 말교육 10가지 
"미안하다" "감사하다"를 입에 달고 살도록 하라. 

1996년 변호사인 남동생네가 일곱 살 난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튤레인 대학에 유학을 갔다. 당시 나는 14살과 13살짜리 두 
아들을 데리고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2년째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미시간 주의 
랜싱에서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까지는 자동차로 2박 3일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어서 동생네가 미국에 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당장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3개월이나 벼르다가 그 해 12월, 겨울방학을 맞아서 내가 우리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2박 3일 걸려서 뉴올리언스로 가서 동생네 가족을 마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조카들은 미국에서 고모를 만나자 반가웠는지 겪은 미국살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고 법석을 떨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낯선 나라에서의 체험이 모두 
신기했을 것이다. 더구나 뉴올리언스는 아열대 지역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키가 크고 잎이 음산해 보이는 나무들이 많았으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낡고 
고풍스러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당시 다섯 살바기였던 조카 미호는 자기가 겪은 
미국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고모, 영어로 '익스큐즈 미(Excuse me)'가 
우리말로 무슨 뜻인지 알아?"라는 질문부터 했다. 눈을 빛내며 그와 같은 던지는 
다섯 살바기가 미국인들이 입에 달고 사용하는 '익스큐즈 미'를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글세, 고모는 잘 모르겠는데? 미호는 잘 아니?"하고 
되물었다.미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 "에이, 고모는 그것도 몰라?그건 
말이지 '길 비켜'라는 뜻이야"라고 대답했다. 어른들은 모두 미호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나라 다섯 살바기 어린이인 
미호의 머릿속에는 남의 앞을 가로질러 갈 때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몰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아버지와 석사 학위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중산층 가정 교육을 받았을 어린이지만 미호는 모든 미국 
사람들이 길이 혼잡해서 앞질러 가야만 할 상황에서 "익스큐즈 미"라고 말하는 
것을 "비켜줘, 안 비켜 줄래?" 하며 험악하게 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아이들이 미국의 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요즘에도 자주 
미국을 오가는데 미국에만 가면 혼잡한 곳을 지나게 되거난 다른 사람 앞을 가로질러 
가게 될 때 자동적으로 "익스큐즈 미"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반면에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오면 그 말이 밖으로 새어나올까봐 조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때는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익스큐즈 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하기는 
습관이다. 어려서부터 미안할 때 "미안합니다".고마울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면 커서 그런 말이 잘 안나오게 죈다. 만약 불쑥 그런 말을 하게 
되더라도 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내가 미국을 나뎌온 후 
'익스큐즈 미'를 말한 후 신경을 쓰는 것과 같은 종류의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실수를 저질러놓고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를 내세워 
억지를 부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속으로는 정말로 고맙고,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을 꼭 말로 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편이나, 
아내가 또는 어린 자녀가 내가 베풀어준 일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잘라머으면 
분하기도 섭섭하기도 해 푸념을ㄹ 늘어놓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부부 사이에서도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생략하는 배우자를 원망하며 싸우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 것이다. 주부대상 프로그램인 <아침 마당>은 매주 주말에 변신 코너를 
방송한다. 편소와 달리 멋진 옷과 화장으로 변신한 아내를 남편과 갑자기 만나도록 
하고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이 코너의 핵심인데, 이때 대부분 남편들은 아내가 
억지로 "나 이뻐?" "나 사랑해?"라고 물어야만 겨우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대답도 
즉각 하는 것이 아니라 함참 동안 "이 사람이 미쳤나?"라든가 놀란 얼굴로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라고 말한 후 대답한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문제의 
남편에게 왜 그렇게 늦게 말했느냐고 물으면 "마음 속으로는 아내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럼 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쑥스러워서 말이 잘 안나온다"고 
대답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기리는 서로의 눈빛을 보아도 달콤하고 행복해서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1970년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영화, 에릭시갈의 원작 <러브스토리>에는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그 말처럼 정말 
사랑이 넘치는 중요한 말들은 굳이 필요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마울 때는 '고맙다',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라고 말을 해야만 그 마음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가롭게 살던 그 마음이 정확하세 전달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가롭게 살던 
농경시대에는 눈빛이나 태도로도 그 사람이 나에게 미안해하는지 고마워하는지를 
살필 시간적 여우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너무나 바쁘고 복잡하며, 해야 할 
일들도 많다.상대편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일일이 그 사람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를 체크할 겨를이 없다.가까운 사이일수록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를 
말해야만 비로소 정확하게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좋다는 말은 안하고 나쁘다는 말을 쉽게 해버려 상대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조금만 잘못하면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좋은 감정에 
대해서는 그것을 입ㅂ으로 발설하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문다. 
어려서부터 '고맙습니다'와 '미안합니다'라는 말의 개념을 제대로 배우지 않앗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시간 주립대 강사인 샌디는 딸하고 단둘이 사는 
미혼모이다.샌디는 자녀교육에 남다른 신경을 썼다.자신이 미혼모라서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나와 내 가족이 다른 사람의 방매가 되는 행동을 
할 대 가장 자존심상해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자녀 교육은 누구나 시킨다고 말했다. 
샌디는 여섯 살 난 딸아이에게 좋은 말버릇을 길러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샌디는 딸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대 아이가 그냥 "과자를 
주세요"라고 말하면 절대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 "과자를 주세요"한 다음에 
"플리즈(부탁이에요)"라는 말을 반드시 붙이도록 했다. 미국 어머니들은 이 
'플리즈'란 말을 '매직워드(마술을 부리는 말)'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플리즈'를 
붚이면 과자가 나오지만 그렇지만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플리즈'가 
마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가 엄마 책을 떨어트리거나 
그릇을 까트리는 사소한 실수를 하면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벌을 
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도 함박 웃음을 머금고 내하는 것을 
예의로 생각하는데 그 버릇도 어려서부터 들인다고 한다. 손님 앞에서 떼를 쓰거나 
울상을 지으면 손님이 돌아간 후 반드시 양해를 구한 다음 끈끈이가 많이 붙은 
테이프 입에서 귀쪽으로 붙여서 일부러 웃는 얼굴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 벌을 
받았는데도 eh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벌 받는 시간으 점차 늘린다. 한 번 잘못했을 
때에 한 사간 동안 벌을 받았다면 다음 두 시간, 그 다음에는 네 시간 이런 식이다. 
물론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벌칠을 정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녀와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만약에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행동을 하면 벌을 
받겠다'는 동의부터 받아놓고 규칙을 엄격하게 세워서 규칙대로 벌을 주는 것이다. 
샌디는 보통의 미국 부모는 자기처럼 자녀교육에 매우 엄격하며 그렇게 자란 
자녀들일수록 사회에서도 환영받는다고 말한다.우리나라에서도 엄격한 자녀들일수록 
사회에서도 환영받는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엄격한 자녀들의 가풍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리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엄격하게 길러야만 좋은 사회인이 도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녀를 '적게 낳아 잘 기르자'가 정착되면서 '적게 낳아 기 살려주자'로 
변했다. 그렇게 기가 산 아이들은 아예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거나 
밖에 나가서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믿는 경우가 많아졌다. 품언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자란 다음에는 이러한 자녀의 태도 때문에 부모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 성장하면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멋대로 행동을 해도 
바로잡기가 어렵고 부모에게까지 버릇없는 행동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행돟하게 된다는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과 행동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녀에게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습관을 길러줌녀 예의바르고 매사에 분명하게 하는 사려 깊은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모에게는 물론 사회적 관계로 만난 사람에게도 기분 좋게 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존댓말은 말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라 
"기가 막혀 죽겠어요. 면접 보러온 놈들이 날더러 `수고하세요` 하면서 생긋 
웃잖아요." 한 신용카드 회사 중역이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자기네 회사 신입사원 
면접을 치른 이야기를 하면서 분개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이지 
신문에서는 취업난이라고 난리들이지만 회사측에서 보면서 구인난이에요, 구인난. 
뽑을 사람이 없다니깐요. 글세 면접 보면서 눈을 치뜨고 면접관을 올려다보는가 하면 
따지듯이 말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더라니까요." 그 중역에게는 요즘 젊은이들의 
말하기 태도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나는 우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온 친구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30대 가량의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할머니에게 반말로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할머니가 뭘 
안다고 그래? 참견하지 말고 자기 일이나 잘하라니까" 하며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동승한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 보다못한 내가 
"할머니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지?" 하고 말 참견을 했다. 그 애는 "아줌마는 또 
뭐야?" 하며 눈을 위아래로 흘겼다. 나는 순간 한방 얻어맞은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애와 할머니는 
내렸다. 친구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참, 누구네 집 애인지는 
몰라도 장래가 걱정된다, 얘" 나는 친구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투덜거렸다. "얘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오지랖 넓게 왜 남의 일에 참견이니? 자기네 부모가 책임지겠디. 
네가 왜 그렇게 걱정을 해야 하니? 그리고 요즘 애들 다 그래, 얘" 하며 은근히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동안 그 여자아이에 대해는 차츰 잊게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히히덕거리다 보니 기분도 좋아졌다. 
역시 친구가 좋았다.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친구네 아파트는 9층이었다. 엘리베에터가 7층에 멎자 친구집에 
올 때 만났던 그 여자아이가 놀랍게도 예의 신용카드사 중역과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역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아니? 여기는 어쩐 
일로?" "어머, 이 아파트에 사세요? 이제 보니 한 동네 분이시네요."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소녀는 중역의 품으로 파고들며 내 얼굴을 맹랑한 표정으로 
올려보았다. "아, 참 인사드려라. 이 분은 아빠가 아는 선샌님이야. 이 아이가 제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입니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 
여자아이는 웃을까말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얼마 전 신입사원 면접시험을 치른 후 분개하던 중역의 얼굴이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처럼 남의 자녀에 대해서는 가혹할 만큼 
엄격하게 채점을 하면서도 내 자녀에 대해서는 관대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존댓말 하나 제대로 사용하는 어린이들이 드물다.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20대가 넘은 젊은이들도 방송에 출현해서 "내가 보여주셨는데요"와 같은 실수를 
밥먹듯 자주 한다. 어느 신문 칼럼에 대학교수 한 분도, 연구실에 앉아 있으면 
학생들이 찾아와 버젓이 "물어볼 말이 있어서 왔는데요"라거나 교수가 말하는 동안 
"아, 음 으응?" 같은 영어식 맞장구를 쳐 기가 막힌다는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존댓말 사용봅을 배우지 않았으니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존댓말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룬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존댓말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회사다닌때 있었던 일이다. 부산 출신의 한 
프로듀서가 강원도 출신 엔지니어의 호통을 듣고 서 있었다. 엔지니어가 프로듀서보다 
입사 10년 선배였다. 문제는 휴일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하느라 그 엔지니어에게 
녹음전표를 건네면서 벌어졌다. 프로듀서는 엔지니어에게 무신코 "선배, 10시 
녹음"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일 때문에 자주 만난적이 없어서 말을 트고 지낼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엔지니어는 마치 후배인 그 프로듀서의 지시를 받은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야, 임마, 내가 네 친구야? 엇다 대고 반말이야? 
응?" 하며 냅다 호통을 쳤다. 프로듀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오히려 와를 
내며 "아니, 왜 화를내?" 하며 다시 반말을 했다. "아니, 이 자식이 정말." 
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결국 녹음을 제 시간에 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부산 출신인 그 프로듀서는 평소 존댓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선배들로부터 자주 
야단을 맞았다.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방송이야말로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하기 힘든 작업의 연속이다. 그 프로듀서는 존댓말을 잘 몰라 녹음 하나만 하려고 
들어도 늘 브레이크에 걸리곤 했다. 그런가 하면 워로교수 한 분을 지금은 
동료교수가 된 제자들에게 여전히 그 제자의 제자들 앞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반말을해 동료교수가 된 제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성인이 된 후의 존댓말 사용은 이처럼 여러 가지 의 미를 갖게 된다.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오해를 반는 것은 물룬 인격까지 의심받도록 
만든다. 나는 지금은 대학생이 된 우리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때부터 존댓말을 
쓰도록 했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댁의 아이들은 그렇게 존댓마릉ㄹ 꼬박꼬박 사용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사실 당시의 나는 부모들이 왜 그런 지문을 하는지 아해하지 못했다. 내 
생각으로는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가르치는 것처럼 쉬운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말을배우기 전부터 부모가 자녀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자녀는 
그대로 따라하기 마련이다. 존댓말을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말에도 
부모가 "바담 풍" 하면 아이도 `바람풍`을 "바담 풍"이라고 한다지 않은가? 존댓말 
가르치기에 실패하는 부모님들을 보며 부모는 반말을 하면서 아이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말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아이가 "미치겠어 정말" "내가 못살아"와 같이 부모가 평소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말하기 습관이 좋지 않을 때 
자녀의 말하기 습관도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말하기 습관은 어려서 잘못 
들여놓으면 다 자란 다음에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여 말을 배울 때부터 
제대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존댓말은 더욱 그렇다. 어려서부터 사용하지 않으면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어 고쳐서 말하기 어렵다. 어려서부터 존댓말을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면 성인이 된 후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사용할 수 있어 환영받는 
사회인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이 지녀에게 있는 돈 없는 돈 들여서 피아노다 미술이다 
산수다 국어다 여러 학원에 보내고 공부도 열시미 시키는 이유는 자녀가 자란 후 
훌륭한 사회인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말버릇을 
제대로 들이지 못하면 아무리 성적이 좋고 재능이 많은 사람도 실력을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그 사람이 보여주는 매너와 
이미지, 말솜씨 등으로 좁혀지고 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자란 이 다음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할 때 각 회사는 면접만으로 사원을 채용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물건을 파는 설득력이 중요시될 거란 뜻이다. 이미 
우리나라 기업은 사원들에게 가족까지도 고객으로 보고 고객관리를 하라는 주문을 할 
정도로 직업세계가 바뀌어가고 있다. 자녀를 성공하는 사회인으로 기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자녀가 보는 앞에서 부모들끼리라도 존댓말을 쓰고 자녀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일수록 부부간에도 
사랑방과 안방으로 나누어 사용했고, 배우자를 방문할 때에는 사전에 허락을 
구했으며 반드시 존댓말을 사용했다. 자녀가 자녀가 성년이 되면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집안의 구조가 아파트 식으로 바뀌고 산업화와 함께 
사회계층이 혼합되면서 농촌과 도시 간 인구이동이 많아져 이러한 기본 예의가 
많이깨졌다. 우리가 가졌던 좋은 전통은 살려내야 한다. 서구인들도 지금까지 
부부끼리 존댓말을 사용해서 자녀들에게 그 본을 보이는 것은 물론 자녀가 어느정도 
자란 다음에는 부모도 자녀에게 함부로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을 유서깊은 
관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어는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누구나 다 `유`로 부를수 
있다고 해서 존댓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어야 말로 대상에 따라 
다른 문법을 사용해야 하는 복잡한 언어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대상에 맞는 존댓말 
사용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예의 바른 말을 사용하도록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가 
다 자라서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본 후에도 자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반말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아랫세대로 그대로 대물림될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고치지 않는 한 대대손손 이어져 자손들의 사호히생활에 장애물로 
자라잡게 될 것이다. 


왕따일수록 남의 말을 경청하게 하라 

"소연이는 엄마 때문에 왕따가 되었어요." "엄마가 왜?" "학교로 선생님을 자주 찾아오거든요." 
"공개적으로 선생님을 만나신단 말이야." "몰래 만나지요." "그런데 너희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왜 그걸 몰라요? 선생님이 다 티를 내니깐 알지." "어떻게 티를 
내는데?" "예뻐 죽겠다고 티를 내신다니까요." "그래서 애들이 소연이를 와따시킨단 
말야?" "애들이 그런 애를 무지무지 싫어하거든요." "그 애는 공부를 잘한다면서?" 
"공부 잘하고 선샌님이 특별히 예뻐하니깐 더 그렇지요.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지만 
다른 애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예언이와 왕따에 대한 나눈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 사회문제가 되었다. 중고등학생들에게서 불기 시작한 왕따문제는 
초등학교로 번지다가 유치원까지 내려왔다. 아이들은 또래집단과 놀면서 사회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또래끼리 마음을 터놓으면서 위로받기도 한다. 또래와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때 아이들은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왕따를 당하면 
또래집단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은 물론 집단 괴롭힘까지 당하기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서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 안 왕따문제가 크게 번지자 
정부는 왕따시키는 아이들을 고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김대중 대통령은 TV의 
<국민과의 대화>프로그램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왕따시키는 친구들을 고발하라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왕따가 줄었다는 보도는 없었다. 왕따 문제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문제인 것이다. 왕다시키는 아이들도 왕따당하는 
아이들도 모두 어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사회문제의 피해자인 것이다. `왜 
아무개한테 지느냐?`라는 부모들의 닸달이 아이들의 경쟁심을 부추기고 아이들은 
경쟁에서 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남포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왕따시키는 
아이들에게도 문제아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왕따당하는 아이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어머니가 자기 자녀만 학교에세 특별대우를 받도록 교사에게 촌지를 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부탁을 할 때 그 자녀는 또래 아이들의 미움을 받아 왕따를 당한다. 
어머니의 이러한 태도는 자녀로 하여금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게 하기 때문에 
자신도 다른 아이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해 왕따가 되는 것이다. 남을 이해할줄 
모르는 아이는 다른 아이의 미움을 받기 때문에 왕따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반에 진하라는 아이가 있는데 애들이 지저분해서 싫어해요." "얼마나 지저분한데?" 
"늘 코를 후벼서 코딱지를 옷에다 쓱싹 닦지요. 그런 애하고 놀고 싶은 애가 어디 
있겠어요." 옆집사는 초등학교 2학년인 세령이가 말했다. 요즘 애들은 어머니로부터 
철저한 위생 교육을 받기 때문에 이처럼 지저분한 아이들도 왕따가 된다. 
어린아이들은 친구가 놀리면 화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지저분하다며 놀리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더라도 다른 애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더욱 그 애를 
따돌리게 된다. 진하가 왕따를 면하려면 몸부터 청결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작은아이도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또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은 
물론 매도 무지무지하게 많이 맞았다. 우리 아이가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부탁해 
나는 속이 쓰린 것을 참으며 일체 아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학생이 
된 그 아이는 "어려서 친구들에게 고통을 당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이처럼 강인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혼자서 어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왕따당한다고 
해서 부모가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개입하면 자녀가 왕따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물론 어른이 된 후 그때의 쓰라린 경험이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기회마져 놓치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우리 아이들을 
맡아 길러준 한 아줌마는 매우 성실하고 성격도 깔끔했다. 그런데 한번은 유치원의 
학부모 회의에서 교사들로부터 "승연이가 친구들하고 어울려 놀려고 들지 않아요. 
원생들이 모두 그네를 타는 시간인데 옷을 버리면 안 된다며 안 타고 우겨서 그래도 
꼭 타아 된다고 말했더니 그네 위에 올라가 그냥 쪼그리고 앉지 뭐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승연이는 옷을 더럽히면 아줌마가 너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는데도 가까이 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승연이는 그 아줌마를 
무척 따랐다. 그 아줌마는 아이에게 "옷 버리지 마. 빨래하기 힘들어" 라고 말해온 
것이다. 나는 매우 조심 스럽게 아줌마에게 그 애기를 전해주었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이처럼 자녀에게 너무 깨끗한 옷을 입혀 유치원에 보내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다. 인형처럼 예쁜옷을 입혀 모자까지 씌워 유치원이나 학교로 보내면 
보기에는 좋겠지만 아이들의 활동 범위가 좁아져서 자연 혼자놀게 되고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도 어렵게 된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허름한 청바지 같은 질긴 옷을 
입혀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낸다. 특별한 옷은 행사가 있는날만 입힌다. 미국 
어린이들은 남녀 구분하지 않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놀든지 아니면 마음놓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논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는 옷을 입혀 
자녀의 활동량을 높이고 접촉할 수 있는 친구들의 숫자도 많게 한다. 교사들도 
정장차림으로 일하지 않고 언제든 아이와 뒹굴고 놀 수 있는 작업복을 입는다. 
딱딱한 정장 차림과 TV출연자 같은 화장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해외에 자녀를 
데리고 가 그곳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보내본 부모들은 우리나라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의 화장에 대한 불만을 자주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행동에 제한을 
받으면 생각이 제한되고 자연히 말도 제한을 받게 되며 언어능력 발달도 더뎌진다. 
소극적인 아이들보다 활동적인 아이들이 목소리도 크고 말을 잘하는 것만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녀의 어휘를 늘리는 데도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남의 말을 열심히 듣도록 하는 훈련부터 시켜야 한다. 이제는 1999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의 언어영역에서 우리말의 듣기 테스트를 치르게 되어있다. 그 
동안 경시되었던 듣기의 중요성이 우리 시회에서도 새삼 부각된 셈이다. 어려서부터 
남의 말을 자 들으면 친구들을 자 사귈수 있게 되어 왕따될 염려가 앖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왕따당하는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태도와 언어습관 들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내 자녀가 왕따가 되었다고 해서 부모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면 오히려 역 효과를 
낸다. 자녀의 문제는 자녀 스스로 해결해하도록 해야 경쟁력 있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자녀가 할 말은 자녀가 말하게 하라 "그럼 엄마가 용돈을 안 
올려주시면 어떻게 하지?" "말을 안 들었어요." "그럼 잘 통하니?" "아니요." "그럼 
포기 하니?" "아니요." "그럼?" "아양을 떨어요." "어떻게?" "엄마가 참 예쁘다고 
말해요." "그건 통하는 모양이지?" "잘 안 통해요." "그럼 용돈을 못 올려 받겠네." 
"엄마가 바쁜 때 말하면 통해요. 손님이 오신다든가 급히 외출하 때요." 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가 용돈 올리기에 대한 전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어머나, 초등학교 
4학년인 남자애가 엄마한데 참 이쁘다고 말할 줄 안단 말이에요?" 하며 후배에게 
조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후배에게는 4살 
난 딸만 하나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를 실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일정수준 이상의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종한다. 자녀가 너무 어려서 부모에게 의존해야 할 나이이기 때문에 
부모가 상상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어른 못지 않은 말을 한마디 하면 신통하다고 은근히 
놀라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날카로운 관찰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음놓고 말을 하도록 북돋아주면 어른보더 더 기발한 
말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나는 비교적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며 
길렀느데 초등학교 때가 대학생이 된 지금보다 더 기발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아이들의 예민한 감각을 무시하고 부모 마음데로 말을 대신해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반을 속도가 느려 답답하기 때문에 부모가 먼져 앞질러 말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의 말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엄마하고는 대화가 안 
통하지?" "네." "왜?" "제 생각을 듣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그럴 리가? 엄마 
생각에는 민석이가 엄마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제가 말하려고 하면 엄마가 다 해서." 아이가 말을 잘못해서 걱정이라는 한 어머니의 
상담을 받고 그들 모자를 만나보았다. 만나보니 그 댁의 자녀는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정리해서 말할 줄 알았다. 다만 어머니가 없을 
때에만 할 말을 했다. 민석이 어머니는 자신의 성격이 몹시 급하다고 말한 다음 
실제로 자신이 얼마나 성격이 급한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내가 그둘 모자를 만난 후 
민석이에게 "몇 살이지?" 하고 묻자 어머니가 얼른 "3학년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이름은?" 나는여전히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어너니는 기다를 여유를 
주지않고 "배민석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그 어머니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다음 민석이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낯선 나에게 
말하기를 꺼리던 민석이도 내가 같은 눈높이에서 질문을 하자 조금씩 말문이 터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야기에 탈려이 붙으면서 민석이는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장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토막말을 했다. 말을 
배우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어머니가 민석이 대신 말을 해왔기 때문에 민석이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하는 연습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부모들 중에는 
스스로 "내 성격은 다혈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하면 동남아에 여행을 
가면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보고 "빨리빨리"라고 말하겠는가? 성격이 급한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자녀의 말버릇을 기르는 데에는 부모의 다혈질 성격은 
장애요소가 된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단어수를 많이 알지 못하고 
어른들처럼 판단력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자녀가 생각을 정리하는동안 부모가 미리 자녀를 대신해 답변해 버리면 자녀는 
나는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하게 된다. 성격이 급한 부모가 있으면 성격이 몹시 
급한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만약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은데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숨을 헐떡이거나 말을 되풀이하게 된다면 아이의 성격이 급하다는 
사실을 파악하면 더욱 인내심을 갖고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어야 한다. 
성격이 급한 아이들은 원하는 데로 빨리 말이 나오지 않을 때 부모가 독촉을 하게 
되면 마음에 상처를 받아 말을 더듬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자녀의 성격이 급하면 
부모의 성격이 급하기 마련이어서 자녀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대신 말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답답하다고 해서 자녀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고 들어가면 자녀에게 큰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다. 아이들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부모가 중간에 잘라버리면 아이는 자기가 무슨 말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즉 생각을 정리학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어린 자녀가 
생각을 끝까지 말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했는지를 검토하고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충질문을 해서 이야기를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조심할 것은 맞장구 
치는 차원을 넘어서 부모의 생각대로 따라오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른이건 어린아이건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을 싫어한다. 뜸을 
많이 들인 후 말하거나 추상적으로 말하는 자녀의 말하기 지도를 하려면 맞장구 치는 
방법이 가장 좋다. 부모는 자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래서?" "저런" "그랬는데"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텐데"라고 말해서 자녀의 생각을 내 생각에 맞추어 정리 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자녀가 스스로 정리가 덜 된 부분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서 말하지 않고 되는데로 주섬주섬 말하는데도 
부모가 방치하면 자녀에게 `그렇게 말해도 된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겉보기에 훌륭해 보이는 성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많다. 학벌이 좋고 실력만 있으면 지금까지는 별탈없이 
잘 살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차츰 사회에서 말 잘하고 이미지 좋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환경은 급격하게 변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물론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업들도 신입사원채용에 
면접을 강화하였다. 어떤 회사는 지원자의 이력서를 미리보지 않고 면접을 보는 
블라인드 면접만으로 사원을 뽑기도 한다. 학력이나 경력에 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그 사람이 말하는 태도를 보고 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또 
대학 재학생이나 갓 졸업한 학생들도 홀로 창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럴 때에도 
가장 중요시 되는 능력은 말하기일 것 이다. 창업자일수록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하며 고객은 설득없이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이제부터는 
자녀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기르려면 어려서부터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말하기 실력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해서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노력해야만 길러지는 것 이다. 자녀를 
훌륭하게 기른 부모들이 성공사려를 보면 지금의 사회가 아니라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자식을 
교육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항 2001년도부터는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이른바 `튀는 학생들`이 대학 가기가 더 쉬워졌다며 대학 특례입학정원이 느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부모가 미리 어린 자녀의 능력을 제안하지 안ㄹ고 기발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해야 자녀를 튀는 아이로 기를 수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되어주기를 원하지만 초등학교만 해도 학교 안에서 
친구들 간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테크노춤 같은 최신 유행춤을 잘 추는 
아이들의 인기가 많다. 그리고 축구 같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잘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잘 해서 새로운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아이들이 인기를 독차지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다가올 사회를 더 
잘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인이 될 미래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성공의 주요 요소가 될 
것이다.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자녀의 기발한 생각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어야 
한다.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야" "어린 게 무슨...."과 같은 반응을 
보이면 아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금세 시들어 버리고 자녀는 부모가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게된다. 자녀가 때론 어른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할지라도 열심히 들어주어 생각을 정리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러면 부모는 자녀가 할 말을 절대 가로채면 안 된다. 답답해도 자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줘 자녀가 생각을 정리해서 또박또박 말하게 해주어야 
한다. 

말하기 매너도 가르쳐라 “말은 편안하게 하는 편인데 너무 몸을 많이 
움직이는군요.” “팔츨 너무 자주 움직여서 산만해 보여요.” “말하다가 자꾸만 
머리를 쓸어올리니까 내용이 귀에 잘 안 들어와요.” 한 여자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스킬 수업을 하면서 앞에 나와 말표한 학생들은 대학생인데도 똑바로 서서 안정감 
있는 자세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기업체에서도 강의를 해보면 사회인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말하기나 말하기의 태도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아예 바로서서 말하는 학생조차 
드물다. 요즘의 어린이들은 전에 비해서 말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말하기 
태도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말이 끝난 후 혀를 쏙 
빼물거나 엉덩이를 뒤로 빼거나 손가락을 입에 물거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애들인데 무엇 하러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습관도 
어려서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고치기가 어려워 성인이 된 후에도 말하는 
자세가 바로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애는 숫기가 없어서 그래요.” 낯선 
사람을 보기만 하면 엄마 뒤로 숨는 지혜를 가리키며 어머니 염순영 씨가 말했다. 
염순영 씨는 35세에 결혼해 36세에 딸을 낳은 프리랜서 방송작가였다. 그녀는 
방송일에 쫓겨살다가 결혼이 늦어져 36세가 되어셔야 첫딸을 낳게 되었다. 삼남매의 
막내딸인 염순영 씨는 특별히 독신주의자는 아니었다. 학교졸업 후원하던 방송작가가 
되었고 PD들하고 호흡을 잘 맞추어 여기 저기에서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방송일의 특성이 늘 시간에 쫓기는 것인지라 염순영 씨도 그처럼 바쁘게 쫓기며 
살다보니 나이를 의식할 겨를이 없었고 30세인가 했더니 훌쩍 3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동생이 없어서인지 아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염순영 씨는 어느날 문득 
결혼헤서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단다. 염순영 씨에게는 대학 
때부터 친구로 지냈지만 도대체 만나보아도 가슴이 뛰지 않아 연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박용진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가끔 농담처펌 남자친구인 박용진 
씨가 염순영 씨에게 청혼을 해왔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과 주변사람들의 설득에 한편으로 망설여졌지만 박용진 
씨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난산 끝에 첫딸 지혜를 
낳았다. 염순영씨는 늦은 나이에 낳은 지혜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친정 어머니가 지혜를 안아보려고 해도 마치 닳기라도 한다는 듯 선뜻 
넘겨주지를 못했다. 염순영 씨는 지혜가 태어난 후 방송일을 일체 중단하고 딸 
지혜하고 함께 지내고 싶어했다. 자연 지헤는 어리광이 심했고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엄마와 떨어지려 하지 않아 유치원에조차 보낼 
수가 없었다. 염순영 씨는 지혜가 유치원에 가려고 들지 않자 그제서야 걱정이 
되어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지혜가 자란 후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게 하려면 유치원에 보내 또래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염순영 씨는 한 학기가 지날 때까지 딸 아이의 유치원에 따라다녀야만 했다. 
유치원 교사들의 도움으로 6개월이 지난 후에는 지혜가 유치원에 혼자서 갈 정도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을 만나면 엄마 뒤로 숨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일단 때부터 썼다. 말을 할 때에도 손가락을 입에 물거나 몸을 비비꼬면서 말했다. 
염순영 씨는 딸 지혜가 이제 겨우 혼자서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된 것만이 대견해서 
그러한 딸의 태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혜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 
정도쯤은 귀엽게 봐줄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홀로 집에> <리틀 걸> 같은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겨우 유치원이나 토등학생 정도인 
어린아이들이 어른들과 또같이 악수를 나누고 똑바로 서서 의젓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양 아이들이 특별히 조숙해서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남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가정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인 엘렌 키틀리는 예절바른 모범생 이고 공부도 잘해서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Scholastic Aqtitude Test)에서도 모두 만점을 
받았다. 졸업식 스피치도 잘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엘렌은 세살 때부터 작시법과 함께 스피치 요령, 걷기, 말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아직도 미국 상류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 예절은 까다롭기 짝이 없어 자녀를 
상류사회로 진출시키기 원하는 부모들은 엘렌의 부모처럼 어려서부터 그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백인들이 
대부분인 미국의 상류사회에 다른 인종이 끼기 어려운 이유는 피부색보다 그 
까다로운 매너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미국 사회에서는 
그 집단이 갖추고 있는 매너와 태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그 안에서 누구도 환영받지 
못해 자연히 소외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눈감아준다. 기부금만 많이 내면 언제든 상류사회계층에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경우 놀랍게도 인사를 할 때 목레를 
똑바로 할 줄 안는 사람조차 드물다. 고개를 숙인 후 일어설 때는 방향이 바뀌거나 
비틀어진다. 3개월 코스의 스피치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 절하기만 고치고 간 
사람이 제법 많다. 그만큼 우리 부모들이 자녀의 기본 태도 교육을 등한시했다는 
증거다. 말하기는 말의 매너, 태도가 말의 내용과 함께 메시지를 전한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이러한 말하기의 기본적인 습관들을 길러주면 자신의 의도를 
남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기본 태도일수록 어려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성인이 된 후에는 수십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고칠 수 있다. 가족간에는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말하기의 중요한 부분을 부모로부터 훈련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자녀들이 조금 더 자라거나 결혼을 한 후에는 그러한 
것들이 오해의 소지로 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 자란 자녀가 함부로 말하면 
부모는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성인이 된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자녀의 
좋은 말버릇 들이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하기와 같은 기본 생활태도는 
가정밖에 교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말을 
할 때 표정과 몸의 움직임, 목소리 등이 말의 내용과 걸맞지 않으면 내 생각이 담긴 
메시지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생각, 즉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말솜씨를 가졌어도 제데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표정까지 조화를 이루어야만 메시지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의 습관 고치기라고 한다. 자녀들을 리더로 기르려면 
어려서부터 바른 자세로 말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시기를 놓친 후 뒤늦게 나쁜 습관을 
고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 그만큼 경쟁에 뒤처지게 된다. 어릴 때부터 
딴짓을 하면서 건성으로 얘기하거나 몸을 건들거리거나 혀를 빼물거나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말하는 태도를 방치하면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진다. 자녀에게 그러한 
버릇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바브더라도 부모들이 자녀들이 말할 때 건성으로 
듣거나 다른 데 정신을 팔면서 귓가로 흘려듣지 말고 자녀의 얼굴을 보면서 가끔 
눈을 맞추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며 열심히 들어주어야 한다. 청소를 하거나 옷을 
개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신문을 보는 일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말하기 훈련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녀가 말을 할 때에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열심히 들어주어야 한다. 혹시 자녀가 손짓발짓을 다 동원해 말한다 해서 
부산스럽다고 하지 말자. 나중에 남 앞에서 생생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 온몸으로 열심히 말하는 자녀에게 “조용히 앉아서 얘기해 
봐”“서두르지 마”하면서 제재를 가한면 말하는 데 흥미를 잃고 열정이 식어 
말하기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 정말 말을 자하는 사람들은 온몸으로 
정열을 다해서 생생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가 말하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열과 성의를 다해 온몸으로 말하는 기쁨을 알도록 
유도해주자. 

발표문은 직접 쓰게 하라 
“우리 아이를 원장선생님에게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초등학생은 아직 저희들이 맡을 수가 없는데요.” “그래도 
이 아이는 지금 꼭 스피티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영등포에 사는 한 어머니가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 회사에 전화를 해왔다. 어지나 열심히 설득을 했던지 
직원들이 그 모녀가 회사를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을 약속해버렸다. 나는 다른 약속을 
연기하고 그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약속날이 되자 그 어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데리고 사무실로 왔다. 그 어머니의 근심은 딸아이가 영어를 잘해 
앞으로 2주 후에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영어는 잘하지만 표정이나 태도가 
어쩐지 말의 내용과 맞지 않아 물안해서 우리 회사를 수소문해 찾아왔다고 했다. 
어머니의 요청대로 그 아이에게 즉석에서 연습한 영어를 배워 발음이 미국인 못지 
않게 좋았다. 그러나 말하는 태도가 자연스럽지 않고 외워서 읽는 것이 역력했다. 
누가 글을 썼는지 물으니 방송작가인 큰언니가 써주었다고 한다. 원고를 다른 
사람이 쓴데다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말하니까 글의 내용에 감정이 실릴 리가 
없었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만약 딸아이가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하려면 글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대표로 뽑히거나 숙제로 발표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은 그것을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도 
자녀가 학교에서 특별히 뽑혔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하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할 수 없으면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서라도 열심히 도와준다. 
그렇게 되면 원고를 어른들 말투로 쓰게 된다.. 어른들은 대부분 남 앞에서 말할 
때는 평소와 달리 어렵게 말해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 많으신 
교장 선생님처럼 순 한문투의 말을 하는 것이 유식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발표할 때 자기 자신도 이해가 잘 안되는 어려운 말투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내용은 대부분 매우 교훈적이어서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우리나라도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투다. 토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도 발표를 시키면 마무리를 이런 식으로 한다. 학교에서 발표를 시키는 
이유는 아이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듣기 위해서일 것이다. 얼른들이 글을 써주면 
아이들은 자기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게 된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낭독하는데 그치고 만다. 따라서 만약 자녀에게 발표의 기회가 주어지면 발표문은 
자신이 직접 쓰도록 해야 한다. 약간 서툴더라도 직접 원고를 정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만 발표를 잘할 수 있다. 어른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은 
좋다. 그러나 반드시 아이의 말투로 아이가 직접 쓰도록 도와줄 때 발표를 잘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업테나 기관의 장들 중에는 행사가 있을 때 누군가가 
대필해 준 원고를 가지고 연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원고를 들고 말을 
하면 그것은 말이 아닌 낭독이 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들려주지 않으니 
그때 들은 말을 나중에 기억할수 있는 청중은 없다.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높은 사람도 자기가 연설할 글을 남에게만 
맡겨두지는 않는다고 한다. 연설문 쓰기에 장본인이 깊이 개입해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발표문 쓰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어른들이 발표를 어려운 말로 하기 때문에 나도 그래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발표문 쓰기를 어려서부터 두려워하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어려워하게 된다. 
스피치 교육을 받으로 온 성인둘 중에서도 말하기 못지 않게 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으로는 얼마든지 재미있고 쉽게 쓰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펜을 잡으면 잘 되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쓰지 않고 말하면 말의 
내용이 정리되지 않아 중언부언하기 일쑤였다. 발표를 하려면 그 내용을 반드시 글로 
쓴 후 말하는 것이 좋다. 연설문은 어렵고 멋지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호소다. 그러나 
발표는 쉽고 작은 주제로 시작해야 청중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주제가 작아지면 
발표문 쓰기가 한결 쉬워진다. 만약 자녀의 발표문 주제가 ‘미래의 꿈’이라고 
주어졌다면 곧이곧대로 그 주제를 통재로 요리하려고 들면 쓰기는 물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일단 발표주제가 주어지면 주제를 잘게 쪼개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체험에서 찾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나의 ‘미래의 꿈’을 모두 다 
이야기하려고 들지 말고 그 중 가장 자신 있는 ‘지금 배우고 있는 플루트를 잘 불고 
싶다’라든가 ‘산수성적을 좀 더 올리고 싶다’정도로 작은 주제 하나를 잡아서 
말하는 것이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때는 여러가지 요소 중에서 자녀가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자녀가 직접 고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부모가 자녀의 
발표문 쓰기를 도와주려면 자녀와 발표할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주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그것을 하나로 좁혀가변서 줄거리를 정리한 다음 나머지 내용을 자녀가 직접 
쓰도록 한다. 이때 쓰기와 말하기에서 사용하는 문장과 단어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쓰기처럼 말하기를 어렵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써놓은 
내용을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고 말하기에 어색한 문어체가 있다면 말하기에 편한 
문장으로 고쳐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즘 애들은 정말 말 잘해요. 마이크 대면 
그냥 청산유수에요.” 독립 프로덕션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윤창식PD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처음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10년 전에 
비해 요즘 어린이들은 정말 말을 잘한다고 감탄한다. 확실히 요즘 애들은 10년 전 
어린이들에 비해 말을 잘한다. 부모들의 연령층이 달라지면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는 경향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전 세대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계를 향해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유치원부터 모든 숙제는 친구들 앞에 나와서 
발표하도록 한다. 이때 친구들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고 
만약 친구의 질문에 답변하기 어려울 경우 다음 시간까지 답을 알아와서 
대답해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 실행됨은 물론이다. 나는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학부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많다. 그때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1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보면 2시간 동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말하기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자녀의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처음 말을 배울 때부터 이와 같은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한다. 요즘 
우리의 자녀들의 말솜씨가 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발포를 할 때는 아직도 
어른 흉내를 내거나 어른이 써준 글을 읽어야만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 영상세대인 
우리의 어린이들이 TV나 비디오 같은 영상물을 많이 봐서 감각적으로 말하기는 
잘하지만 논리가 필요한 공식적인 말하기는 훈련받을 기회가 적어 아직도 서툰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식적인 말하기를 잘해야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를 리더로 기르려면 어려서부터 발표문을 스스로 쓰고 남앞에서 자연스런 말투로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발표문을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는 겻을 
알게 되면 발표문 쓰기를 잘할 수 있다. 듣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쉽고 
평이한 문장을 사용할수록 설득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성인사회에서도 지위가 
높다고 해서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거나 난해한 문장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거리감을 
갖게 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좀더 쉽고 간단하게 유머와 재치를 섞어 사람을 
즐겁게 하는 화술을 익히면 자녀는 발표에 친숙해지고 어른이 된 뒤에는 더욱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도록 하라 
“우리 엄마는 거울 
보면서 울어요.” 남편 회사동료들을 초대해 식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다섯 살 난 딸 
차연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차연이 엄마 
김숙경 씨는 깜짝 놀라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건넌방으로 갔다. 김숙경 씨는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차연이를 건넌방 바닥에 내려놓으며 노기 띤 목소리로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라고 말하며 눈을 흘겼다. “엄마가 저번에 
거울 보면서 울었잖아.” 차연이의 대꾸에 김숙경 씨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데 누가 너한테 그걸 물어봤어?” “응.” “아니? 누가?” “응, 안경 낀 
아저씨가 나한테 엄마 잘 지내시느냐고 물었단 말이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차연이는 비죽비죽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으양’하고 큰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김숙경씨는 밖으로 차연이의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봐 “알았어. 
울지마”하면서 오히려 차연이를 달랬다. 김숙경 씨는 지금의 남편과 7년 전 사내 
결혼을 했다. 그후부터 지금까지 옛 동료이자 남편의 현 동료이기도 한 직원들을 
1년에 한 번씩은 집으로 초대했다. 차연이가 말한 안경 낀 아저씨는 김숙경 씨가 
회사에 다닐 때 그녀에게 유난히 호의를 보였던 성진성 씨였다. 그가 차연이를 보자 
“엄마는 잘 계시니?”하고 물었던 것이다. 차연이는 아무도 엄마의 안부를 묻지 
않던 차에 자신에게 질문이 오자, 신이 나서 언젠가 인상깊게 보았던 엄마의 모습을 
남들 앞에서 설명한 것이다. 사실 김숙경 씨가 운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김숙경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무득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특별한 보람없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이 가여워 그만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자연 거울을 보다가 다시 울고 또 울곤 했는데 딸 차연이 
눈에 어머니의 그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차연이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김숙경 씨가 결혼생활을 비관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얘기하기 때문에 이처럼 어른들이 난처해질 
만한 얘기를 아무곳에서나 불쑥 해버릴 수가 있다. 직장동료끼리 부부동반으로 모인 
자리에 따라간 어린이가 엄마와 아빠가 싸운 얘기를 적나라하게 털어놓는다든가, 
밖에 알리고 싶지 않은 집안사정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부모가 쑥스러워서 그러한 자녀를 현장에서 야단치면 아이들은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울기 마련이다. 부모는 체면이 구겨질까봐 “알았어. 조용히 해. 
알았으니까 나가 놀아”라고 말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쉽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자녀에게 상황에 맞는 말하기 태도를 길러주지 못한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라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엄마가 먼젓번에 할머니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잖아.” 할머니를 몹시 다르는 예원이는 “아이고 내 새기 왜 
이렇게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 왔어. 좀 더 자주 오지 않고”라고 말하는 할머니 
앞에서 엄마를 원망스레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원이 엄마는 얼굴이 상기되어 딸 
예원이에게 눈을 흘겼지만 시어머니의 표정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다. 어린아이들의 
이러한 말은 고부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큰아이가 일곱 살, 작은아이가 여셧 
살 때의 일이다. 우리는 강원도 원주에 살았고 시댁은 인천이었다.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짐을 잔뜩 챙겨들고 인천으로 행했다. 당시 나는 방송국 아나운서였는데, 
방송국 속성상 이러한 개인적인 행사를 이유로 휴가를 얻는다 해도 반드시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을 미리 제작해서 녹음가지 마친 후 떠나야만 한다. 쉬는 기간 동안의 
일을 미리 해두는 셈이었다. 자연 에너지 소모가 많아져 정작 휴가를 받았을 때는 
지쳐 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며느리는 누구나 시댁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식모가 되어야 했다. 나는 아이들 갈아입을 옷가지가 든 무거운 가방을 
시댁 마루에 내려놓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재래식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평소 직장일이 바빠 아이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와 함게할 수 있는 기차여행을 몹시 즐겼다. 그러나 할머니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자기들만 두고 부엌으로 사라지자 그만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작은아이가 할머니에게 쫓아가 “할머니, 우리 엄마는 집에서도 밥을 안 
하는데 왜 할머니 집에 오면 밥을 해야 해요?”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몹시 당황하더니 이내 불쾌해하며 “아니,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아이의 말인데도 시어머니는 마치 ‘에미가 
아들을 시켜서 내게 그런 항의를 하는 거 아니냐?’는 듯한 말투였다. 아이들이 
생각나는 대로 불쑥 던진 말 한마디는 이처럼 친인척간에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유난히 가까운 아이들 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엄마와 
아빠만의 비밀얘기를 털어놓는다든가 고모나 이모 또는 학교교사에게 그들이 
들어서는 안 될 집안사정을 소상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아이들이 상황이나 
대상을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방치하면 상황이나 대상에 맞게 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게 된다. 성인이 된 후 눈치 없이 아무곳에서나 할 말 못할 말 
구분 없이 해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아이구, 참 
주책이야. 주책, 저기서 저 말을 꼭 해야만 하나?” 어른이 된 후에도 대상이나 
상황에 맞는 말하기를 하지 못해 이러한 핀잔을 받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자녀가 
환영받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상황이나 대상에 다라 어떤 내용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알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머니에게는 엄마에 대해 어디까지 말해야 하며 고모나 
이모에게는 또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모가 자녀에게 솔직하게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면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때 무조건 “왜 그런 
말을 해?”“얘가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하며 핀잔만 주면 자녀는 상황과 대상에 
맞는 말하기를 정확하게 배우기는 켜녕 부모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솔직한 것이 좋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아무에게나 모든 것을다 공개적으로 
털어놓도록 하다가는 대상이 누구이건 어떤 파급 효과가 오건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다 털어놓아 분위기를 망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만약 어린 
자녀가 남 앞에서 부모가 민망해할 내용을 공개적으로 말했다면 그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화를 내 시끄럽게 만들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파한 다음 반드시 자녀를 
다시 불러서 그것이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또 자녀가 부모의 설명을 이해한 다음에는 다음부터는 그런식으로 말하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두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자녀를 윽박지르기보다 “너라면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또는 그런 것들이 알려졌을 때 할머니가 들으시면 
기분이 좋겠어?”라고 물어 자녀가 스스로 상황과 대상에 맞는 말하기에 대한 개념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아냐, 우리 엄마가 그런 것은 
불량식품이니까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어.” “너네 엄마가 뭔데 그런 말을 
해? 너네 엄마가 무슨 박사라도 되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남자아이들이 학교 앞 길거리의 ‘뽑기장사’앞에서 옥신각신하고 있다. 얼굴이 
크고 덩치가 큰 남자아이가 유난히 얼굴이 희고 가냘퍼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뽑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얼굴 흰 아이는 뽑기가 불량식품이어서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덩치 큰 아이는 그 아이와 반드시 뽑기를 해야 한다는 듯 끈질기게 
설득했다. 얼굴 흰 아이는 엄마가 말한 불량식품을 사 먹을 수 없음을 강조했고 덩치 
큰 아이는 그 아이의 엄마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덩치 큰 아이도 뽑기에 쓰이는 설탕물이 비위생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덩치 큰 아이가 얼굴 흰 아이의 엄마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뽑기가 불량식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남을 석득하려면 권위 있는 사람의 말과 
명확한 근거를 대야만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1994년 처음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그 덩치 큰 아이가 
친구에게 말하듯 명확한 근거를 대서 말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명확한 근거를 대서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 학생들과 그것을 
실펀하기 어려운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몹시 힘들었다. 나는 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인생경험도 많았지만 말을할 때 그 학생들처럼 유명한 학자나 
명인들이 한 말을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말할 때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든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등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말해왔기 때문에 미국 학생들처럼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실의 제임스 윌리스 
교수가 말하기를 ‘사람은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따라서 
말하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미국 
학생들은 입만 열면 반드시 권위적인 연구결과 등 근거를 확실히 덧붙여 자기 주장을 
폈지만 나는 그것이 잘 안 됐다. 아나운서를 20년이나 한 나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스타일 구기는’기분이었다. 그것은 
영여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통용되었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말하는 것보다 감정을 내세워 큰 
목소리로 우기면 더 잘 통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바뀌면서 그것이 차츰 
퇴색해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 학교로 옮겨가 숙제하는 것을 보니 미국 
학생들이 근거를 대며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잘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 아이들이 받아 돈 숙제는 대부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관련 도서를 4권 읽고 저자의 생각 12개를 인용해 글을 써오라는 것이었다. 
숙제를 할 때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글을 써서 내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자 읽어야 할 책이 
4권에서 8권으로 늘었고 대학에 들어가자 그 양이 더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지고 문제집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를 풀어오라는 것이 초등학교 숙제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이용해 조사하는 숙제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하루종일 문제집을 붙들고 있거나 책을 베끼는 숙제를 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원래부터 논리에 약한 것은 아니다. 
선조들은 논어나 맹자 등을 인용해 정확한 근거하에 말하곤 했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충분한 말하기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는 구태의연한 학교교육 때문에 
우리는 원래부터 연설이나 논리적인 말하기에 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도 교사가 발표를 시키면 
매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딸들을 한 사람의 당당한 
성인으로 기르려면 우리가 본래부터 논리에 약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지금부터라도 경쟁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 학교로 옮겨간 후 
많은 미국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태인 친구들이 가장 많다. 유태인은 
미국 상권의 80%를 쥐고 있다고 한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를 
유태인들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 아이들의 유태인 친구들을 
보면 할아버지 때부터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은 부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노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놀이가 바로 토론이었다. 우리 작은아이는 
유태인 못지 않게 토론을 좋아해 그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뱌ㅁ새워 토론을 
벌이기도 하는데 근거와 논리를 세워 말하는 수준이 놀랄 만했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논리와 철학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웬만한 아이들에게는 논리에서 지지 
않지만 유태인 친구들은 만만치 않다고 고백한다. 유태인들은 자녀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논리와 철학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개인감정을 앞세워 
말하지 않고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말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독서를 많이 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유태인 자녀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어려운 철학서적도 읽게 한다고 한다. 미국에는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다 모여 살고 
있다. 그 중 유태인들이 가장 장사를 잘하고 그 다음이 아라비아 사람들, 중국 
사람들, 인도 사람들 순으로 장사를 잘하는 순위를 꼽는다. 우리 아들 친구들 
중에는 유태인과 중국인, 인도인이 다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어려서부터 철학서적을 
많이 읽었으며 논쟁을 좋아하고 논쟁을 벌일 때에는 반드시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유태인 친구를 많이 사귄 이유는 유태인과 
한국인에게는 비슷한 특징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들의 자녀교육 열기와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것들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논리를 익히게 하면 유태인 못지 않은 비즈니스맨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유태인 친구들과 논쟁을 벌일 때는 마치 싸우는 것처럼 큰 소리를 
지르면서 무섭게 언쟁을 벌인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가 싶어서 
아이들 방을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이과 취향인 큰아이는 처음에는 톤론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고 옆에서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시로 나에게 와서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애들은 저러면서 노는 거예요”라며 상황설명을 해주어 나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이 아이들의 장점은 토론에서 지면 승자에게 깨끗하게 
승복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활태도가 결국 사회생활을 잘하게 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하고 유태인들은 그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칸트와 데카르트 등이 저술한 철학책과 삼국지 
손자병법 등을 대부분 다 읽었다. 그때문에 또래의 친구들과 대화수준이 잘 맞지 
않아 하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노상 두들겨 맞고 왔다. 말하자면 ‘왕따’였다. 당시 
주변사람들은 나에게 어린아이가 그런 것까지 읽도록 놔두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렸다. 물론 내가 강제로 아이에게 그 책을 읽도록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릴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사모았고 
그 책들을 발길이 닿는 곳마다 늘어놓았다. 이 아이는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책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 책읽기가 일상화되었다. 그 덕에 우리 아이는 
미국에서도 가장 논리적이라는 유태인 친구들과 토론을 해 이기기도 했다. 우리 
아이의 꿈은 유태인보다 더 유능한 장사꾼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식과 논리적인 말솜씨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논리적인 책을 가까이 하면 탄탄한 논리의 구성 방법을 익힐 수 있고 그 
속에서 세상사는 이치를 쉽게 깨닫게 되어 장사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의 유태인 친구들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장사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 설득에 탁월하다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말하지 않고 반드시 근거를 가지고 말하도록 훈련을 시키면 
자란 후 쉽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옆집 아이가 그랬대”라고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옆집 아이가 미끄러져서 유리창을 깨뜨렸어요”라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밝혀 말하도록 한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도 대체로 추상적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경쟁력을 
높입시다’와 같은 말이 그런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하는지를 말해서 듣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점에 너그러워서 ‘대충 넘어가지 뭐’ 
‘좋은 것이 좋지 않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이 길 
하나를 물어도 정확하게 댜답하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신호등 몇 개를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서 다시 신호등 몇 개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고’와 같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하고‘저쪽으로 가세요’라고 막연하게 알려주어 길을 
찾으려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정확하게 대답해주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늘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건성으로 보아두어서 신호등을 두개 건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를 갖지 
않으면 이처럼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부터 소홀해진다. 논리와 철학의 기초가 
튼튼하면 길 하나를 보아도 어떤 골목으로 어느 정도 가서 구부러지고 신호등은 몇 
개 건너야 하는지가 머리에 잘 들어오게 된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사회생활의 체계를 쉽게 파악하며 아무리 복잡한 조직 안에서도 그것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근거 없이 그냥 추상적으로 얘기하도록 
두면 이처럼 필요한 논리적 사고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자녀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려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함께 본 다음 그 줄거리를 말하더라도 
반드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갖추어서 말하도록 하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인용해서 객관적으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이라든가 
“내가”로 시작되는 주관적인 말하기를 논리적인 설명으로 바꾸어 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싫어.” 진주가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사라져 버린다. “피아노 연습 좀더 하라니까.” 진주 어머니는 문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피아노 그만 할래.” 진주도 지지 않았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이리 나와봐.” 진주 어머니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진주 
어머니는 진주의 방문을 흔들어 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진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주 어머니는 “아이구, 내 참, 기가막여서 원. 내가 뭐 나 위해서 
피아노 치라는 줄 알아? 다 너 위해서 그런 거지. 요즘 피아노 못 치는 애가 있는 
줄 알아? 하기 싫으면 관둬. 맘대로 하라고.” 초등학교 2학년인 진주와 
어머니는 항상 이런 식으로 싸웠다. 진주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놀 
시간이 없다. 학교 끝나고 오면 피아노다 수영이다 미술이다 영어다 해서 학원을 네 
군데나 다니기 때문이다. 진주는 학원에 많이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피아노만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서 배우고 싶지 않았다. 웬일인지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진주의 생각과는 달리 진주가 조금만 쉬려고 하면 피아노 연습을 
하라고 성화였다. 진주 어머니는 진주만할 때 피아노를 몹시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공무원인 아버지 봉급으로는 레슨비를 낼 수 없어 끝내 배울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밖에 없는 딸 진주가 피아노만큼은 잘 텨주기를 
바랐다. 진주와 어머니의 갈등은 점차 깊어만 갔다.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릴 
테야.” 성격이 급하고 괄괄한 승기는 밖에서 친구들하고 조금만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이런식으로 혼자서 씩씩대며 화를 내곤했다. “아니, 왜 또 그래?” 승기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그 자식들이 내가 딱지를 많이 따니까 다 
그만둔다고 가버리잖아, 에이씨.” 승기는 방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승기 어머니는 예전에는 승기의 이런 태도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남자아이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기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엄마, 그건 말도 안돼” “누가 그따위 말을 했어?”하며 
엄마에게 직설적으로 화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나라 부모들 
중에는 자녀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처럼 거친 행동과 말투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분 내키는 대로 거칠게 말하는 아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러한 습관이 어른이 된 후까지 없어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환영받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 사회에 막 진출한 젊은이들 중에는 부모의 기 살리기 덕에 
상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딱 부러지게 말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안에서는 
그런 자녀가 똑똑해 보이고 대견할 수 있지만 직장 상사들에게는 몹시 거슬리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직장이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며 한 사람의 뛰어난 
능력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여 팀워크를 이루어야만 생산성을 높일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신참사원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헤서 지나치게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것을 
선배들이 좋아할 리 없다. 나의 회사동료 중 신입사원 시절에는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동료들에게는 속시원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윗사람들은 껄끄럽게 여겨 
한직으로 돌며 고생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중견사원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 옳은 일이라고 해서 일일이 
따지고 드는 부하들은 부담스러워. 그런 부하가 저쪽에서 나타나면 나는 이쪽으로 
피해서 돌아가게 되더라고. 그 사람 말이 백번 옳은 줄은 알지만 마치 나한테 너는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비난하는 것 같아서 무섭기까지 해.” 그는 
자기가 당해보고서야 윗삶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어겨서부터 자녀의 기를 
살려준다고 생각나는 대로 원색적으로 표현하도록 방치하면 자신의 말이 남에게 왜 
환영받지 못하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기 쉽다. 진주 어머니처럼 자녀를 
설득하지 못하고 감정의 갈등을 일으켜 자녀가 부모에게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말하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진주 어머니는 진주가 그토록 
싫어하는 피아노를 억지로 배우게 함으로써 모녀 사이를 나쁘게 만든 것은 물론 
진주의 말버릇까지 망치고 있는 셈이다. 진주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그만두기 
위해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최대한 과장해서 말하고 점차 더 거칠게 
말하게 될 것이다. 진주 어머니 또한 진주의 그러한 태도에 화가 나 원색적인 
감정표현을 하게 돼 모녀간의 대화는 더욱 격해지고 이것은 마침내 대화의 단절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진주 어머니가 진주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끝내 진주의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게 할 경우 진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상대방에게 원색적으로 
화를 내며 함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어머니가 고집을 꺾지 
않고 진주에게 계속해서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들면 모녀 사이는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돈과 시간, 감정소모도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절대 능률을 올릴 수 없다. 진주의 어머니는 
진주가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싫어하는데도 꼭 배우도록 하려면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진주가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진주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얼마든지 설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요즘 피아노 안 배우는 아이가 있는 줄 아니?”라고 단정적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피아노 배우는 애들이 많지 아마?”라고 말하거나 
“피아노를 배우면 이러이러한 점이 좋다”라고 바꾸어서 말해야 한다. 같은 내용도 
“나쁘다”보다는 “좋지 않다”“피아노 안 배우는 아이들이 없다”보다는 “많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것이다”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처럼 부모가 긍정적인 말로 자녀를 설득하면 자녀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표현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승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승기가 “다 죽이고 싶다”거나 
“나쁜 놈들”이라고 말할 때 그 이유를 묻고 자신의 감정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말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기가 펄펄 살아 거칠게 말하는 남자는 뒷골목이나 주먹 
세계의 리더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결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세계의 지도자 중 부정적이고 원색적으로 말해 성공한 사람은 없다. 어려서부터 
긍정적이고 세련된 표현법을 익혀야만 진정한 리더가 될 자질을 키우는 것이다. 


자녀와 주제가 있는 토론을 자주 하라 
“아니야, 저런 구름이 생기면 비가 내려.” 
“그렇지 않아.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을 봐. 저 정도 속도로 움직이면 구름이 비를 
만들 때쯤에는 다른 동네로 이동해서 이 동네에는 비를 내릴 수 없어.” “아니야. 
지금은 바람이 동쪽으로 불지만 서쪽 끝에 구름이 흩어지는 것 봐. 곧 바람의 
방향이 바뀔거야.” 연년생인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둘이서 많은 토론을 
벌였다. 나는 방송국에 다녀서 평소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자, 지금부터 대화를 나누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화는 주로 저녁식사 후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려면 학교숙제를 미리 해두어야 했다. 만약 엄마와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미리 숙제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미리 숙제를 해놓고 
엄마와의 대화시간을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 흥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개발해야만 했다. 
아이들과 서로의 일과에 대한 이야기만 주고 받으면 대화가 단조롭고 재미가 없어 
아이들은 절대 미리 숙제를 마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거나 같은 책을 읽은 후 그 내용속에서 주제를 정해 토론을 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간 후부터 나는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동화나 어린이책을 
보느라고 정작 나에게 필요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토론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엄마라고 해서 봐준 적이 없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것이 발전되어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의 수업을 토론식으로 진행하는 미국 학교로 유학을 가서도 
그곳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내 인생 전체를 거는 극성 
어머니는 아니다. 미국에 간 것도 아이들의 유학을 위해서가 아니가 내가 유학을 
가는데 아이들이 따라간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낳은 자녀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최대한의 뒷받침은 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들을 위해 재산을 남겨주거나 비싼 과외를 시켜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야심가로 
기를 생각은 없으며 즐겁게 일하고 그래서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출세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넓은 세상을 보는 
안목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길러주는 
일에 차중했다. 그러다 보면 성공이나 실패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능한 한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노력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과 4학년때 우리 가족은 배낭을 메고 2주간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막 허용되기 시작해 여행지에서 아주 
많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에 
유럽 역사책을 외우다시피 많이 읽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대학생 형들과 토론을 
벌이곤 했다. 평소 엄마와 토론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어떤 형들과도 토론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여행이 즐거워졌다. 그때 유럽 여행을 하면서 스위스 루체른에 갔을 
때 우리는 호숫가에 있는 캠프장에 묵었다. 나는 아이들만 캠프장에 두고 남편과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필라투스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캠프장 근처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에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캠프장에 두고 어른들만 산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낯선 캠프장에 남겨두고 부부끼리만 등산을 
떠나는 일을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캠프장에 남아 있던 우리 아이들은 둘이서 
근처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에 다녀온 후 토론을 벌이며 잘 지냈다고 한다. 
어린이들도 어려서부터 자주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며 어른들 못지 않은 
날카로운 관점으로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녀가 싫어할 성적이라든가 친구에 관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와 이야기하기를 싫어하게 만든다. 자녀와 대화를 재미있게 
나누려면 개인신상에 관한 화제만을 끄집어내지 말고 시사문제라든가, 국제적인 
흐름에 대해 주제가 있는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다.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면 
자연히 아이들의 말하는 태도도 으젓해진다. 그런 문제는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가 함께 관심을 가져주면 유치원 아이들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어른보다 더 날카로운 논쟁을 할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주제를 찾아 
어린이들에게 프로젝트를 주고 해결하게 하는 유치원 교육법을 개발한 이탈리아의 
교육학자 모리스 말라구치는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주제를 던지면 아이들은 의외로 깊숙이 이해하고 스스로 
알아낸다. 이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그들은 일생동안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3.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녀의 미래를 바꾼다 

독이 되는 말, 한 번만 참자

“내가 못 살아” “나 때문이야” 

옛 동료가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조문하러 밤 10시경, 강남 성모병원 영안실에 가게 
됐다. 그 병원에는 1층만 해도 영안실이 20개가 넘는지 방 번호가 21번이었다. 방을 
찾느라 헤매는데 복도 한쪽에 놓인 벤치 끝에 걸터앉은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저절로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건강한 남자 한 사람이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그게 왜 네 탓이야? 엄마는 아파서 돌아가신 거잖아.” “오빠는 몰라. 엄마가 
항상 그랬어. 나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래서 정말로 이렇게 일찍 돌아가신 거야.” 
“그야 엄마가 그냥 한 말씀이지, 정말 저 때문에 못살겠다고 생각하신건 
아니잖아.” “아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만 보면 너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러셨단 말야, 암에 걸린 것도 다 나 때문이야.” 그녀는 ‘엄마’를 
부르며 흐느꼈다. 그녀가 오빠라고 부른 남자는 담배를 꺼내 물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청초해 보이는 20대 여인이 어머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우기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조문 온 사람이 그 자리에 서서 남의 이야기를 
마냥 엿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동료 모친의 영안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료의 어머니는 80세를 넘기신 노인으로 10여 년을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호상이었다. 조문객들도 밝은 표정이었고 상주들도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아 나는 쉽게 그 자리를 뜰수가 있었다. 대신 조금 전 
영안실 복도에서 만난 남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해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행히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울던 여성은 
제법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다소곳이 앉아 오빠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유추해보면 
남매의 어머니는 유난히 몸이 약해 젊어서부터 자주 병석에 누웠던 모양이었다. 
응석받이 어린 딸은 어머니가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이구,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엄마 기운 없어 
죽겠는데 이렇게 기대면 어떡하니?”부터 시작해서 매사에 “너 때문에 
못살겠다”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았단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자란 후에도 
어쩌다가 딸이 외출에서 늦게 돌아오면 “아이구,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라고 
말했으며 조금만 잘못을 저지르면 여지없이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워낙 어려서부터 그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한 면역성이 생길 만도 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면역이 
생기지는 않았고 그녀가 대학에 들어간 후 어머니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자 
오히려 그 말이 덫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더니 정말 나 
때문에 일찍 돌아가시는구나’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녀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아마도 천벌을 받을 
거다. 엄마를 죽게 했으니 죽을 죄를 지은 거다.’ 그녀는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며 오빠의 팔에 얼굴을 붇고 다시 흐느꼈다. 나는 그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는 회사의 한 선배가 생각났다. 그는 6.25때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였다. 그때 어머니는 갓 스무 살이었는데 너무 일찍 청상이 된 탓인지 
어머니는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그가 철이 들었을 때는 어머니가 없었다. 그는 
성년이 되어서야 어머니가 어떤 동네 청년과 눈이 맞아 야반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할머니가 대학 갈 
때까지는 살아계셨다는 점이다. 대학 입학 후 얼마 안 있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셨고, 그 선배는 혼자서 연탄배달부터 안해 본 것 없이 고생하면서 대학을 
마치고 운이 좋아 방송국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품이 좋고 실력도 
있어서 상사는 물론 동료들 간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 동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동료들은 그처럼 슬피 우는 동료를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누구도 그가 왜 그렇게 슬피 우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다. 나는 휴일 근무를 했고 그도 프로그램 제작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지 회사에 나왔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고 저녁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는 평소 내가 존경하는 선배였으며 가끔은 격의 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친했다. 그러나 그는 그날처럼 진지하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그날 그는 지금까지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머니를 찾기위해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이어서 허리 펼 날 없이 평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개가한 후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는데 제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을 가진 자녀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신세가 그렇게 된 것이 
마치 자기 때문인것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벌써부터 듣고 계셨는지 “아이구, 이놈아. 네 에미는 너 
때문에 평생을 숨 한번 못 쉬고 사는구나”라며 그 선배가 자라는 동안 끊임없이 
말해왔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떠난 선배의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고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던 듯 오히려 그 선배를 탓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는 그날에야 비로소 평소에는 멀쩡하던 그가 
술만 마시면 꺼이꺼이 우는 까닭을 알게 되었다. 옛 동료 모친상 조문을 하러 
영안실을 다녀온 얼마 후 동네 미용실에 들렀다. 갓 첫돌을 지난 것으로 보이는 한 
아이를 안고 세살 가량 된 남자 아기의 손을 붙든 채 잘 차려입은 한 여성이 
미용실에 들어섰다. 그 여성은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기를 안고 집에서 
미용실까지 오는 동안 몹시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며 아기를 
옆 의자에 내려놓자 콘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 품에 파고들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겨붙었다. 그 아이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양보한 일이 몹시 억울했던 듯 
힘들다는 어머니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 여성은 자녀들의 
교육에 무척 신경을 쓰는 신세대 주부 같았다. 다른 어머니들처럼 아이에게 
원색적으로 화를 내거나 반말로 욕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엄마 죽으면 
좋겠어요?”라며 아이에게 계속 자기한테서 떨어질 것을 요구했다. 나는 영안실 
사건이 떠올라 그 여성의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점잖기는 해도 그 어머니는 
‘네가 엄마에게 그렇게 엄마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후로도 
나는 너무나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들 앞에서 “너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그런 일을 보았다. 주말에 종로에 있는 
서점에 가기 위해 여의나루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탔다. 다섯 살, 여섯 살 가량의 
연년생으로 보이는 남자 대 둘을 데리고 한 어머니가 공덕동역에서 탔다. 마침 
빈자리가 나 그 어머니는 작은아이만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리에 앉지 
못한 형과 장난을 치기 위해 자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형이 동생을 한대 
때리고 달아나자 형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지하철은 총정로역에 도착했고 
물 밀듯 밀려온 승객들이 얼른 그 아이의 자리에까지 앉아버렸다. 화가 난 
어머니는 아이들을 향해 “내가 못살아, 정말. 엄마가 그냥 앉아 있으랬잖아”라며 
화를 냈다. 별반 신기할 것도 없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행동이 과연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녀들은 어머니가 푸념을 하면 귀담아 듣지 않는 
척한다. 그러나 그들 가슴속애는 그 말이 못이 되어 깊이 박히게 된다. 그리고 
부모에게 물행한 일이 생기면 어머니의 ‘내가 못살아’라는 말은 자녀의 
죄책감으로 되살아난다. 아이들은 겉으로 부모의 말을 흘려듣는 것 같지만 부모의 
말은 아이의 가슴에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어머니의 말 때문에 쓸데없는 죄책감에 빠져 
겉은 멀쩡하지만 마음은 불행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이가 잘못하면 그 잘못에 대해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어머니가 푸념으로 “내가 못살아”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당장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장차 자녀를 망치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너더러 그런 일 하라고 했어?” 영지는 모처럼 어머니 칭찬을 받기 위해 설거지를 했다. 
그러나 집안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서툴러서 그만 그릇 하나를 놓쳐버렸다. 다행히 그릇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방 
정리를 하던 영지 어머니는 밖에서 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 “아니,누가 너더러 그런 일하라고 했어?”하며 소리를 질렀다. 영지는 어머니를 
위해 설거지를 한 자신에게 칭찬은 커녕 소리나 질러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지는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영지가 주방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영지 어머니는 방송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여러 차례 입사시험을 치렀지만 모두 낙방하고 말았다. 포기하고 결혼을 했지만 
그때 그 열망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영지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지를 
방송 기자로 만들고 싶었다. 영지 어머니는 학창 시절 몸이 약한 어머니 대신 
자신이 집안 일을 도맡아야만 했다. 영지 어머니는 지금도 자신이 집안일을 하는 
대신 공부만 열심히 했다면 방송 기자가 될 수 있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영지는 어머니 생각과는 달리 요리가 재미있어 어떻게든 주방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어머니를 위해 설거지를 하면 칭찬을 받을 텐데 반대로 
부엌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엽이는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였다. 툭하면 시계를 뜯어놓더니 이번에는 얼마 전 
아버지가 새로 사준 컴퓨터를 뜯다가 못 쓰게 만들어버렸다. 중소기업의 말단 
사원인 기엽이 아버지로서는 기엽이를 위해 몇 달을 모은 돈으로 사준 컴퓨터인데, 
기엽이가 뜯어버려 못 쓰게 되어서 몹시 화가 났다. “컴퓨터가 어디 한두 
푼짜리야? 아빠가 그 컴퓨터를 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엽이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기엽이에게 심하게 화를 냈다. “이제 한 번만 더 이런 거 만지면 집에서 쫓아내버릴 
거야!” 기엽이는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기엽이는 다음날부터 
뜯어놓은 컴퓨터를 고치기 위해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컴퓨터를 다시 쓸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기엽이 아버지는 그러한 기엽이의 
행동에 대해 칭찬을 해주기는 커녕 “아빠 말을 뭘로 아는 거야? 아빠가 이런 거 
다시는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하면서 오히려 화를 냈다. 완고하고 권위주의적인 
기엽이 아버지는 기엽이가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기엽이 어머니도 기엽이가 툭하면 시계다, 녹음기다 기계만 있으면 뜯어버려 
못 쓰게 만들더니 그 비싼 컴퓨터까지 고장낸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혼을 내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주기를 바라며 남편과 합세해 기엽이를 
꾸짖었다. 그날 이후 기엽이는 차츰 집에서 놀지 않고 밖으로 돌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모든 노력을 다 동원해서 컴퓨터를 고쳐 놓았는데도 부모가 화를 내자 
부모에게 몹시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PC방에 박혀 있는 날이 점차 늘었다. 자연히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말도 안 들었다. 차츰 기엽이 부모는 기엽이를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기엽이는 “아빠가 사준 것 부수지 
않았는데 왜 그러세요?”하며 대들기까지 했다.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음식을 못 
만드니?” 후배 수진이는 결혼 10년이 넘었지만 라면 하나도 맛있게 꿇일 줄을 
몰랐다. 어쩌다 그애 집에 가면 중국 음식을 시켜다 먹어야만 한다. 중년이 
되어가면서도 그애는 아예 요리방법을 개선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수진이 남편은 
아내의 요리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굶는게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진이의 요리 
솜씨는 부부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수진이가 원래부터 요리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진이 말에 의하면 어렸을 때 어느 날인가 
재미있을 것 같아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만들었는데 어머니가 “누가 너더러 그런거 
하라고 했어? 이런 것 누가 먹는다구. 내다버려”하며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수진이는 ‘나는 요리를 못 해’라고 믿게 되었다. 정작 요리를 해야 할 
결혼 적령기가 되어 이번에는 어머니가 요리를 배우도록 권했지만 수진이는 끝내 
듣지 않아쓰ㅇ며 중년이 되도록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아 남편과 갈등을 빚는 
원인으로 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 남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기계를 뜯거나 부셔놓기 일쑤다. 내게도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있어서 그걸 싫도록 
경험했다. 큰아이 창연이가 유치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회사에 
돌아와보니 아이가 겁에 질려 있었다. 파출부 아주머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호기심이 많은 큰 아이는 ‘쇠로 된 냄비나 솥은 
가스 불에 올려놓고 요리를 하는데 플라스틱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몹시 
궁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줌마가 빨래를 널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해 가스 불을 켜고 플라스틱 바구니를 올려 놓았다. 불꽃이 확 
번지면서 독한 냄새가 났다. 아이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노라 울면서 주방에서 
뛰쳐 나왔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에 놀란 아주머니는 안으로 뛰어들어와 그 광경을 
보았고 너무나 놀란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아이는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더 큰 야단을 맞을까봐 기가 푹 죽은 채 내가 퇴근했는데도 전혀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어서 크게 웃으며 “우리 
창연이가 오늘 큰일 하나 냈군. 불에다 그런 거 올려놓는 건 위험하니까 그걸 
알았다면 다음부터는 조심해”라고 말해 주었다. 머럭 소리를 지른 아주머니와 다른 
나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던 아이는 곧 크게 안도했다. 나의 이런 반응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우리 엄마는 만약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그래 좋은 
경험이야. 다음부터 조심해’라고 할 것이다”고 말하곤 한다. 아이들이 모처럼 
새롭게 시도한 일에 대해 “누가 너더러 그런일 하라고 했어?” 하며 화를 내면 
아이들의 호기심은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의 창의적인 의욕이 꺾이는 것은 물론 
심하면 반발심이 생겨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할 수도 있다. 아이의 호기심을 꺾지 
않고 주의할 수 있도록 적절히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 때문이야” “저도 알아요. 애를 때리는 게 얼마나 나쁜지. 그래도 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이혼 후 혼자서 가계를 꾸리면서 자녀를 상습적으로 때려 그 
죄핵감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라디오 주부 프로그램에 전화를 해 흐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애만 없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녀는 
결혼 5년 만에 바람난 남편의 요구로 이혼하고 하나밖에 없던 다섯 살 난 아들과 
단둘이 살게 되었다. 혼자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위자료로 받은 돈을 털어서 동제 
어귀에 작은 피자집을 차렸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는데다 
변변하게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아들이 칭얼대며 쫓아다녀 여간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있는 대로 쌓였다. 그녀는 화가 날 때마다 아이를 때려주었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어린것을 심하게 때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이를 붙들고 
울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아이도 어머니에게 정을 잃었다. 유치원에 막 입학한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부부로 맞벌이를 하는 민청수 씨는 
미시족을 자처하는 소위 386세대(30대나이,80년대 학번,60년대 촐생) 여성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전업주부보다는 그냥 일하면서 결혼생활을 하는 
직장여성이고 싶었다. 게다가 친정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고 안 계시기 때문에 
아기를 마음놓고 맡길 만한 곳도 없었다. 시어머니는 시누이가 해외 출장이 잦은 패션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집 아이들을 맡아 길러주고 있어 민청수 씨네까지 마음놓고 
아기를 맡길 처지는 아니어서 아예 아기를 낳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인 
최수영 씨의 생각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아기를 좋아한 그는 아내인 민청수 씨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관계없이 아기를 낳으려 들지 않는 아내에게 불만이 
많았다. 또한 그는 외아들이었으며 부모님께서 손주를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면서 
목을 빼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반드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 
부부사이에는 아기 문제가 가정 불화의 씨앗이었다. 민청수 씨는 피임에 매우 
철저했다. 그런데 결혼 5년만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수로 아기가 생기고 말았다. 
마음이 모진 편이 못되는 민청수 씨는 이미 생긴 아이를 없애지는 못했고 결국 
아들을 낳았다. 시부모는 몹시 기뻐했지만 시누이가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민청수 
씨의 아이를 맡아 기르지 못하고 여전히 시누이네 아이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무터 문제는 커졌다. 아기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민청수 씨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민청수 씨는 자기도 모르게 툭하면 “너만 
아니었으면” 하며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민청수 씨는 아들이 빨리 
자라 유치원에 맡길 수 있는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아들 석구는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툭하면 유치원 애들을 두들겨 패 하루도 민청수 씨를 편하게 해주는 
날이 없었다. 그들 부부는 아이 문제 때문에 다투는 일이 많아 날로 사이가 
나빠지더니 이제는 가정 내 별거에 들어갔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가 통제하기 
힘들 만큼 제멋대로 행동했다. 내 친구 명옥이는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매를 들어 
어려서부터 엄청나게 맞고 자랐다. 명옥이 아버지는 당시 대학을 나온 인텔리였는데 
사회에 적응을 못 해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연애 결혼을 했는데 사실은 명옥이 어머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실수해서 명옥이가 생기는 바람에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술만 마시면 명옥이를 
때렸다고 한다. 실제로 명옥이 아버지는 종종 말없이 집을 나갔다가 잊을 만하면 
집에 나타나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표시했다. 명옥이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그런 태도를 견디기 힘들면 명옥이 앞에서 “너 때문에.......”라며 흐느껴 울곤 
했다. 명옥이에게는 동생이 둘 있는데, 적어도 명옥이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동생들에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유독 명옥이 에게만 그런 식으로 대했다. 
그 때문에 명옥이는 사춘기를 누구보다 힘들게 보냈다. 그녀의 절망감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는데 있었다. 명옥이는 결국 불행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아직도 친구들은 그녀의 죽음을 두고 “자살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명옥이는 타고난 강골인데다 결혼도 하기 전인 30살을 
갓 넘긴 나이로 느닷없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명옥이는 머리가 좋고 영특해 
제대로 그 실력을 발휘할 수만 있었다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옥이는 연극을 하겠다며 어둡고 칙칙한 창고에서 먹고 자면서 고생만 하다가 어느 
날 술을 한꺼번에 몽땅 마신 후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명옥이는 술에 취해 사는 
날이 많았는데 명옥이와 가끔 만날수 있던 친구들은 명옥이가 늘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어”라는 말을 했으며 “내가 없어지면 행복해질 사람이 
많아”라고 입버릇처럼 덧붙였다고 전해주었다. 혜졍이는 안방 앞을 지나다가 
어머니가 손님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애가 태어난 다음부터 집이 기울었지요. 
점쟁이도 그렇게 말하더라니까요.” 혜경이는 그 애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혜경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해보이고는 방 앞을 지나쳐버렸다. 혜경이네는 
경기도 지역에서 벽지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1999년 경기도 지역에 난 큰 
홍수로 공장이 완전히 물에 잠겨버렸다. 공장 안에는 그 동안 행산해둔 종이가 
많았다. 그 해에는 경제 위기가 차츰 화복되면서 모처럼 종이 주문이 늘었고, 
혜경이 아버지는 가을 성수기를 겨냥해 융자까지 받아서 종이 생산을 늘렸다. 그렇게 
만들어 둔 종이들이 몽땅 물에 떠내려가게 된 것이다. 종이를 납품하고 대금을 
받으면 융자를 갚으려고 했었는데 큼 차질이 빚어졌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그렇듯 
어음이 부도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게 돼 담보로 잡힌 살림집까지 내놓게 
되었다. 빚쟁이들이 뻔질나게 집을 드나들었다. 혜경이 어머니는 빚쟁이들에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점쟁이가 했다는 혜경이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혜경이 
어머니 말로는 혜경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 한다. 공장도 
키우고 수입도 나날이 늘어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내인 혜경이가 
태어난 후에는 웬일인지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더니 혜경이가 열 살이 되자 마침내 
공장이 물에 떠내려가 쫄딱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혜경이 어머니는 유난히 점 
보기를 좋아해 점쟁이 말이라면 무조건 믿었다. 점쟁이가 혜경이를 두고 초년운이 
나쁜 아이여서 그 애가 태어난 후 집안이 기울 거라고 말하자, 혜경이 어머니는 그 
말에 현혹되어 혜경이에게 못된 계모처럼 굴었다. 아이가 받을 상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도 함부로 하곤 했다. 혜경이는 그 전까지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망함과 동시에 어머니로부터 구박을 받기 시작하명서 
성적은 날로 떨어졌으며 툭하면 말썽을 부려 교사의 꾸지람을 도맡아 들었다. 
체육복을 가지고 오지 않아 운동장을 스무 바퀴씩 도는 벌을 받는가 하면 
엉덩이를 여러 대 맞는 벌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교사가 아무리 심하게 야단을 
쳐도 말을 듣지 않자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기르면서 
어떤 경우에도 ‘너 때문에’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누구 때문이라는 
것은 없다. 아이는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낳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바보야, 그것도 못 해” “나는 바보라서 죽어야 돼.” 
초등학교 5학년인 경철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방과 후 경철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정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오늘도 화분을 깼거든.” 경철이는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죽기는 왜 
죽니? 그리고 네가 왜 바보야? 너는 아는것도 많잖아.” 정미는 갑자기 경철이가 
불쌍하게 보여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가 그랬어. 나는 화분 하나도 못 옮기는 
바보라고.” 경철이는 다시 한 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미는 어떻게든 
경철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너는 바보가 아냐. 화분이 얼마나 무거운데.” 
“아빠는 나보다 화분을 더 좋아해.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이 너무 많아. 
그런데도 아빠는 회사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베란다로 먼저 
쫓아나가서는 ‘아이구, 내 새끼들 잘 있었니?’라고 하셔.” “우리 아빠도 
화분은 좋아해.” 경철이는 기운 없이 피식 웃었다. “그렇지만 화분을 깼다고 
너한테 바보라고 말씀하시진 않잖아.” “우리 아빠는 나한테 화분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셔.” 정미도 한숨을 내쉬었다. 정미와 경철이는 일산의 별빛마을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는 같은 증권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가족들과도 모두 친한 편이다. 아버지들의 취미도 비슷해 경철이 
아버지는 난을 좋아하고 정미 아버지는 분재를 좋아한다. 두 집의 아파트 베란다에는 
화초로 가득 차 있다. 경철이 아버지는 넓은 베란다에 화분을 기를 수 있어 좋다며 
여의도 집을 팔아 일산으로 이사했다. 정미 아버지는 친구인 경철이 아버지의 권유로 
이사를 하게 됐다. 경철이 아버지는 이사후 화분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한편 틈나는 
대로 새로운 화분을 사들여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경철이 어머니는 그러한 남편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아 화분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화분을 좋아하는 경철이 아버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화분을 잘못 다루면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며칠 전 무거운 화분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경철이 아버지는 장남인 
경철이에게 화분 옮기는 일을 돕도록 했다. 경철이 아버지는 아내가 자신의 취미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화분 만지는 일을 못 하게 하고 대신 
경철이를 시킨 것이다. 경철이는 아버지가 얼마나 화분을 아끼는지 잘 알고 있어서 
화분 옮기기를 도울 때마다 긴장을 했다. 이사 후 처음 아버지의 화분을 다루게 된 
그날, 경철이는 너무나 긴장을 한 나머지 화분을 들고 일어서다가 중심을 잃고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화분 세 개를 동시에 깨트리고 말았다. 경철이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이 바보야, 그것 하나도 못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경철이 
아버지는 경철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이 
바보야, 그것도 못 해!”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경철이는 덜렁대는 성격의 전형적인 
개구쟁이긴 했다. 실내에 들어와서도 생각 없이 뛰다가 도자기를 깨트리거나 
탁자위의 재떨이나 책을 떨어트리기 일쑤였다. 여의도의 좁은 아파트에서 살 때는 
하루도 탈없이 지나는 날이 없었다. 경철이 아버지는 꼼꼼한데다 완벽주의자여서 
이처럼 덜렁대는 경철이를 못마땅해졌다. 경철이 아버지는 회사일이 바빠서 
평일에는 집에 일찍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휴일이면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골프나 낚시를 간다며 외출하는 대신 집에서 화분을 돌보기 때문에 다른 집 
아버지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경철이는 아버지가 집에 머무는 
휴일이면 매우 불편했다. 아버지는 경철이를 나가 놀지도 못하게 하고 화분 손질하는 
일을 돕도록 했고 조금만 잘못하면 “이 바보야. 그것도 못해?”라며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경철이는 잘못해서 물건을 깨트리거나 어머니가 휴지나 간장, 파 
같은 것을 사오라고 하면 그 중 하나를 빠트릴 때가 많았다. 경철이는 그때마다 
“맞아, 나는 바보야. 그러니까 또 빠트렸지”라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그 때문에 
주고 싶다고도 한다. 경철이는 아직 어린데도 벌써부터 매사에 자포자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초등하교 4학년인 성기는 오늘도 같은 반 여자 친구 
희윤이에게 매를 맞고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희윤이는 같은 반 아이들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다. 힘도 더 셌다. 희윤이는 특히 얼굴이 희고 나약한 남자애들만 
골라 팼다. 그 중에서도 성기는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리 엄마가 알면 혼나”라고 
말해 희윤이의 미움을 제일 많이 받았다. 희윤이는 그렇게 말하는 남자아이들을 
보면 괜히 미워했다. 희윤이는 번쩍번쩍하는 가죽옷과 넓은 벨트를 착용하고 학교에 
나타나기도해 친구들은 그 애를 ‘지존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기 어머니는 
여자애에게 맞고 얼굴에 멍이 들어 집에 들어오는 아들만 보면 속이 상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기 아버지는 그러한 성기를 향해 “이 바보야. 그래 계집애한톄 
맞고 찔찔 짜고 들어와? 계집애를 한 대 갈겨줄 수도 없단 말야?” 라고 말했다. 
성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맞고 들어와 억울해하는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편에게 “계집애도 계집애 나름이지”하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성기는 
아버지로부터 ‘바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는 진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그런 건 
말하나마나 안 되는 일이야. 그 많은 예산을 퍽도 주겠다.”라며 찬물을 끼얹곤 했다. 
직원들은 차츰 그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딴청을 부리거나 입을 다물게 되었다. 
성심껏 말을 해봐야 그 한마디로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기 일쑤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야유회날이었다. 직원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모였다. 
계곡의 물은 맑고 시원했으며 날씨는 화사했다. 직원 자녀 중 한 아이가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계곡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모든 직원들은 놀라 그 아이가 물에서 
나올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이를 물에서 건져낸 후 아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그 직원은 자녀 때문에 동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를 
향해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하며 아들에게 대고 혀를 찼다. 우연히 그 직원 옆에 
있게 된 상사는 화를 버럭내며 “어린에에게 바보라고 말하는게 아니야”라고 
했다. 직원들은 상사의 그러한 반응에 아연 놀랐다. 화를 내는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날 야유회에서 술에 취한 그 상사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밥통아” “이 바보야. 너는 그것도 못 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 자신은 자신감이 없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면서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말하지 말라는 일장 훈시를 늘어놓았다. 자기는 원래 활달하고 적극적인 
아이였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채도 때문에 큰일을 
해내지 못해 한직으로만 돌다가 정년퇴직을 10년 남겨둔 40대후반에 명퇴당하고 
말았다. 그는 머리도 좋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어 주변의 비난을 받곤 했다. 무슨 연유로 그의 부모가 
그에게 ‘바보’라는 낙인을 찍어주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그에게 
말한 ‘바보’라는 말이 아들의 능력을 위축시킨 주범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부모의 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자신이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내리는 평가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나 교사가 반복적으로 자녀에게 “바보야. 그것도 
못 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나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단정지을수 
있다. 자녀의 능력을 위축시키는 독이 되는 것이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아니, 왜요?” “저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셔서........” “어머니는 다 그렇지요.” “지금 80세가 다 되셨는데도 아직도 
아침마다 전화해서 저한테 ‘차 조심해라’‘정직하게 살아라’‘밥 잘 챙겨 
먹어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선생님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지금도 
어머니와 통화가 안 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환갑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다국적기업 사장 한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눈물겨웠다. 그는 미국의 동부지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꼽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의 잘 나가는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 뽑혔다. 
그런데 그는 사장으로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회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당시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했다. 
세 번 이혼하고 그때에는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 없이 직업까지 잃은 그를 
사람들은 동정했다. 나는 그가 어머니에 관한 말을 했을 때 돼 그처럼 직장이나 
결혼 생활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걸림돌은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그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연세가 80세라면 누구나 노쇠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노쇠했다는 사실마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의 효심은 눈물겨웠지만 나에게는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와 결혼한 여성들은 그 남자의 아내 자리를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내들은 마치 자신이 숨겨진 애인 정도의 위치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결혼한 그의 아내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에게 여러 차례 둘어본 이야기를 한꺼번에 요약해보면 그의 어머니는 
젊어서 혼자가 되셨다. 그에게는 달랑 형 한 사람만이 있었는에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두 형제를 훌륭하게 기르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어머니의 노력에 
힘입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학교에 합격했고 대학 때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까지 갈 수가 있었다. 형은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주지 못해 어머니의 관심영역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형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일가를 이루었고, 동생이 미국으로 
간 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와서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것 같아 늘 
죄스러웠다. 게다가 형네 집에서 함께 살지 않고 혼자 사는 어머니가 늘 안쓰러워 
그의 가슴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매일 국제 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너만 믿는다. 너는 
내 인생의 전부야”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그는 모르긴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재혼은 못 할 것 같았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반대하자는 말은 아니다. 
자녀가 자라면 어머니는 그저 그림자로 물러서야 하며, 아들의 날개를 움켜쥐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인생이 있어야만 한다. 
자녀에게만 의지하고 인생을 비치면 성년이 된 자녀와 거리를 두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홀어머니의 외아들과 결혼한 교민 여성이 울면서 말했다. “미치겠어요. 
망령난 우리 시어머니께서 아들만 보면 자꾸 옷을 다 벗어버리세요. 망측하기도 하고 
참을 수가 없어요.”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된 시어머니는 오로지 그 아들 
하나만 의지하면서 일생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딸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대신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의사가 되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이 아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그러나 아들이 미국 이민을 한 후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망령이 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가 안쓰러워 
어머니를 미국으로 오시도록 했는데 며느리는 시어먼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힘들어했다. 나는 아까운 인재들이 성년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푼안을 떠나지 못 해 
중년 이후 능력을 사장시키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았다. 현명하고 강인한 
어머니라고 해도 자녀를 어머니의 틀에 끼워 맞추면 자녀가 크게 자라기 어려운 
것이다. 어릴 적의 자녀는 보호할 수 있지만 다 자란 자녀에게는 어머니의 보호가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자녀를 일찍 놓아주는 어머니가 자녀를 정말로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지나치게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다. 그 때문에 ‘만약 자녀가 나를 배신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어머니는 수시로 “넌는 나의 
전부야”“나한테는 너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을 송두리째 
자녀에게만 걸면 성인이 된 자녀에게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자신을 
몽땅 희생하지 않는 부모의 자녀들은 독립심이 강하고 부모에 대한 부담없이 잘 
지낸다. “너 이 다음에 엄마랑 한 집에서 살래?” “그럼요. 엄마하고 살지 누구랑 
살겠어요?” “아이구. 지금이야 그렇게 말하겠지만 이 다음에 색시나 얻어 보라지. 
엄마가 따라올까봐 걱정하겠지?” “엄마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나는 평생 
엄마랑 살 거야.” 우성이는 숨까지 식식애며 대답했다. 전업 주부인 민혜숙씨는 
초등학교에 이제 막 입학한 아들이 집으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기만 하면 아들을 
붙들고 이와 같은 다짐을 했다. 물론 아들은 한결같이 어머니랑 같이 살겠다고 
대답했다. 민혜숙씨는 아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뻔히 알면서도 아들의 입을 통해 
‘엄마하고 같이 살 거다’라는 말을 확인 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그것은 아마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처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팔순 친정어머니는 지금 
이른바 ‘집시 노인’이 되었다. 셋이나 되는 오빠들이 서로 어머니를 모시지 
않으려고 해 돌아가면서 1년씩 오빠들 집을 전전하기 때문이다. 민혜숙씨는 
맏며느리여서 친정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 자주 한숨을 
내쉰다. 가끔은 남편을 향해 “딸 자식은 자식이 아닌가, 뭐?”하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녀는 맏며느리지만 시부모를 모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부모도 
모시지 않는 맏며느리가 친정어머니를 모셔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민혜숙씨가 친정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갑자기 입을 조개처럼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도 자기 나름대로 장남으로서 부모를 모시지 않고 따로 사는 일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결국 두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쏟아진다. 우성이는 어머니가 “이 다음에 누구하고 살 거지? 나한테는 우성이 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듣기 싫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어머니를 모시고 살 텐데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어머니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성이는 어머니의 그 말에 벌써부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부모 자녀 간은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일 때 서로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부모때문에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라고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자신의 
노후를 위해 존재하는 부속물도, 위안거리도 아니다. 

“아니, 그게 뭐야?” 
“아니, 그게 뭐야? 그런 걸 창피해서 어떻게 학교에 가지고 가려고 그래?” 윤상이 
어머니는 윤상이가 내미는 동물 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엄마가 그려줘. 
난 못 하겠단 말야.” 윤상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 물감이랑 종이 
가져와.” 윤상이 어머니는 윤상이가 그릴 재료들을 가져오자 자신이 직접 온 정성을 
다 기울여 토끼 가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 그럼 나는 나가 놀다올게.” 
“알았어. 빨리 들어와.” 초등학교 1학년 윤상이는 횡 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밖에서 실컷 놀다 돌아오면 어머니가 숙제를 다 해놓을 것을 알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윤상이네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들에게 이야기책 내용에 맞추어 아이들이 
탈을 만들어 쓰고 연극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탈을 만드는 숙제를 
해야만 했다. 윤상이는 그리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만들기가 재미있어서 콧등에 
땀이 송송 돋도록 열심히 동물 탈을 만들었다. 그토록 열심히 탈을 완성한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 탈이 완성되자 곧바로 어머니에게 들고 갔다. 그러나 윤상이 
어머니는 아무리 보아도 토끼로 보이지 않는 그 탈을 학교에 가져가 아들이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고, 결국 자신이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윤상이는 만들기 숙제는 으레 어머니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윤상이와 같은 반인 슬기네 어머니는 잡지사 기자다. 슬기 어머니 
김숙현씨는 딸 슬기가 직접 만든 동물 탈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슬기가 
주장하는 고양이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슬기에게 “아이구, 잘 만들었네”라고 
말하며 동물 탈을 건네주었다. 슬기는 “아니야, 이건 고양이가 아냐”하며 화를 
냈다. 슬기는 자기가 만등 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김숙현씨는 “그러면 
어때? 잘만 그렸는데 그냥 가지고 가”라고 말했다. 슬기의 미덥지 않아 하던 
표정은 차츰 웃음으로 바뀌었다. 슬기는 어머니에게 흔쾌히 “알았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탈을 학교에 가져간 슬기는 교사로부터 “네 눈에는 그게 고양이 같니? 
내가 보니까 쥐 같구만”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교사는 슬기에게 고양이 탈을 다시 
만들라고 했다. 슬기는 밤늦게 퇴근한 어머니를 보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그것 봐. 
내가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했잖아”라고 말했다. 월간 잡지의 원고마감 
기간이어서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김숙현씨는 슬기의 말을 
듣자 교사에게 왈칵 화가 났다. “아니, 애들이 그 정도 그렸으면 됐지. 어쩌라고. 
참 나”하며 슬기 앞에서 교사를 비난했다. 그후부터 슬기는 학교숙제를 혼자서 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툭하면 어머니를 흉내내어 담임교사를 못마땅해하는 말을 하곤 
했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열린교육이 확대되면서 암기 교욱에 치중하던 옛날과는 
달리 만들기, 말하기, 행동하기 등등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며 놀이하듯 즐기는 
교육을 권장한다. 그런데 취지는 훌륭하지만 가끔 아이들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과제물이 나올 때가 있고, 부모는 남의 아이에게 기죽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숙제를 대신 떠맡는다. 그러다 보니 만들기나 그리기 숙제는 어머니들의 차지가 된 
경우가 많다. 일이 많고 귀찮을 수밖에 없다.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이 만들면 서툰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규격에 맞추어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곧 부모와 함께 만들라는 요구가 된다. 아이들은 점차 만들기를 
외면하게 되고 스스로 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들은 스폰지와 같다. 
어른의 사소한 한마디가 아이의 가슴 깊이 스며들어 그 아이의 일생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그림도 잘 그려 
우리가 살던 원주지역에서 활약하던 한화가에게 다섯 살 때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미술을 지도해준 화가가 “하늘을 그려봐”라고 말하면 별이나 해, 달, 귀신을 
그리는 다른 애들과 달리 비행기를 그려 자주 칭찬을 받곤 했다. 인상작용과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때 한 담임교사가 실물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는 우리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가 낸 그림을 보고는 “애걔, 
그것도 그림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아이가 그림에 갖던 흥미를 일시에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아이는 이제껏 칭찬받던 것과는 달리 담임선생이 실망하는 
태도를 직선적으로 보이자 자신감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는 그후부터 절대 그리기를 
하려고 들지 않아 미술 숙제를 할 때마다 나와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작은아이는 “나는 그림을 못 그려”라고 말한다. 아이가 
그리기에 자신 없어 할 때마다 나는 그때 말 한마디로 아이의 흥미를 잃게 한 
교사가 원망스러웠다. 어른들은 체면을 중요시하며 아이들도 어른처럼 사실적으로 
그리거나 만들어야만 그게 정말 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그렇게 할 수 없기도 하고, 또 아이들의 퐁부한 상상력이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진정한 열린교육이 가능해질 
텐데, 그걸 모르는 교사나 부모가 많다. 또 무신경한 말 몇 마디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애걔, 
그게 뭐야?”라는 말 한마디가 자녀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많다. “선배, 
나는 치마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워. 나는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거든.” 
얼굴이 갸름하고 유난히 흰 진영이가 말했다. 진영이는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코스모스 같은 해맑은 소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왜? 너 
날씬하잖아. 난 네가 치마를 싫어해서 바지만 입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냐. 
다리가 무다리여서 내놓기 창피해.” “얼마나 심하길래?” “하여튼 치마는 절대 
입을 수 없어.” 진영이는 화사한 봄 주말에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거리를 누비는 
여성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그해에는 유난히 하늘하늘한 
천으로 만든 샤넬 라인의 치마가 유행이었다. 그러던 진영이가 출퇴근을 고려해 
신당동에서 나와 같은 여의도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중 목욕탕에서 진영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진영이가 ‘무다리여서 절대 치마를 입을 수 없다’고 말한게 생각나 나도 모르게 
진영이 다리부터 살피게 되었다. 그러나 진영이 다리는 내 다리보다 더 곧고 
날씬했다. 오히려 무릎에서부터 약간 휜다리를 하고도 줄기차게 치마를 입고 다니는 
나를 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뭇 분하기까지 했다. “다리가 어때서 그래? 
이쁘기만 한데.” “어머 아니에요, 내 다리가 무다리라니까요.” 진영이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나는 나중에 진영이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에야 진영이가 돼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진영이 어머니는 알려진 미인에다 멋쟁이였다. 
진영이에게는 언니와 여동생, 이렇게 해서 세 자매가 나란히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언니와 여동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머니를 많이 닮았는데 
진영이만 아버지를 닮아 다른 자매들과 다르게 생겼단다. 진영이 어머니는 그러한 
진영이의 외모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진영이가 어려서부터 꽃무늬에 레이스가 많이 
달린 여성스러운 옷이라도 입으려고 하면 “아이구, 여자애가 다리가 그게 뭐야. 그 
다리를 해 가지고 어떻게 치마를 입어”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멋쟁이 어머니와 대비가 되니 자기가 봐도 다리가 무다리처럼 느껴질 만했다. 
그후부터 진영이는 치마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신체에 대해 갖는 
편견은 자녀들에게 평생 신체에 대한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 또한 
자녀들이 열심히 한 일에 대해 “아니, 그게 뭐야”라고 말하면 자녀로 하여금 
앞으로 더 이상 그 일을 계속하지 말라는 뜻이 된다. 아이들이 그리거나 만들기 
숙제를 했을 때 결과가 어른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함부로 “아니, 그게 
뭐야?”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자녀의 숨겨진 재능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독이 
될 수 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열린교육을 하려면 아이들이 서툴더라도 
기다려주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동물 탈을 지접 만들어 가면놀이를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집접 참여하는 즐거움,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호기심 발동 등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저 탈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약이 되는 말, 많이 할수록 좋다

“너는 할 수 있어” “네? 제가 어떻게 그런 걸 해요?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역사시간에 나영이에게 앞에 나와 어제 본 TV 
프로그램 내용을 요약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라고 지시하자 나영이는 온몸을 
흔들면서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 배울 단원이 
‘임진왜란’이었는데 그 전날 TV 프로그램에서 ‘임진왜란’을 다루엇기 때문에 
교사는 햐ㄱ생들에게 미리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라는 숙제를 냈다. 물론 나영이도 그 
프로그램을 봤다. 하지만 나영이는 뜻밖에 담임교사가 자기를 지적하며 발표를 
하라고 하자 놀란 얼굴로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원래 나영이는 TV 
보기를 좋아해 청소년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때는 친구들에게 들려주라고 말하자 이처럼 “나는 
못 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고 일선교사들은 말한다. 요즈음 젊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네가 최고다”라고 너무 많이 추켜세워 그런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오해다. 오히려 집에서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조금 어렵다 싶으면 서슴없이 “나는 못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젊은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해주어 
아이들 간에 공주병이나 왕자병이 대유행을 하기도 했다. 겸손을 미덕으로 아는 
기성세대의 눈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물론 어린 자녀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주병과 왕자병이 아이들의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잘생겼다. 나는 뭐든지 가질 수 있다”라는 자만심을 심어줄 수 
있어 문제가 된다. 자신감은 자만심과 다르다. “본인의 왜모 중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어디지요?” 선남선녀를 모아놓고 짝짓기하는 <사랑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출연 남녀에게 반드시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 이때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저의 외모는 완벽하지만......”이라거나 “모두 다 자랑할 만하지만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라며 자기 자랑을 서슴지 않는다. TV 시청자 중에는 
이런 이들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20대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어린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들은 그들보다 더 대담하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겸손을 
모르는 버릇없는 태도로 보일수도 있지만 자신감을 높인 점은 크게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자만심은 높아졌는데 능력에 관한 자부심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린 자녀들에게 집안일을 시킨 적도 없고 새로운 도전을 허용한 
적도 없어 아이들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할 경우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서슴없이 
“나는 못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인텔 컴퓨터의 앤디 그로브스 사장 같은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만만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는 “내가 부자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남들보다 똑똑하다”라고 말하며, 앤디 그로브스는 미국에서는 그다지 
좋은 학교로 치지 않는 뉴욕 시립대학을 다녔지만 “나는 학비를 별기 위해 
웨이터로 일하는 동안 경영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런 것을 배우려고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이처럼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은 그들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은 성공을 원하면 어려서부터 매일 거울을 보며“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에 실패는 없다”라고 외워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배웠기 때문에 겸손을 가르치려고 애쓴다. 하지만 기를 
살려준다고 방치하기도 하는 그런 이중적 태도가 자부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혼동을 
주어 자부심 대신 자만심만 키워주는 경우가 많다. “잘은 못 하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 성격이 좋지는 않지만 친구는 많답니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맛있고 싼 식당을 알고 있으니까 저에게 연락해주시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배운 것은 없지만 한번 말을 해보겠습니다.” “주제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른들의 모임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서두를 꺼낸다. 척 보기만 해도 우선 자신이 없다는 점을 앞세우는 말이다. 이를 두고 
겸손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표현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감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의 말투를 배운다. “나는 못 해요.” “내가 
어떻게 그런 걸 해요?”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때 
미국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에 견학을 갔다. 그곳에서 우리 작은아이는 안내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다음에 이 보잉사를 내 것으로 만들 거예요.” 안내원은 
“이 회사는 세계적인 회사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안내원에게 “우리 아이는 그렇게 할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대학 1학년 학생인데 회사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아이가 잘 해낼 것을 믿는다. 본인 자신이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이의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났다. 부모 몰래 못질을 
하려고 장도리를 찾다가 연장통 안에 있는 칼에 손가락을 찔려 버린 것이다. 아이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어두운 창고에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강원도에 살 때, 우리는 
지하에 큰 창고가 있는 이층집에 살았다. 큰 아이는 틈만 나면 창고로 내려가 
뭔가에 열중하곤 했다.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일요일에도 근무를 하는 날이 
많았는데 그날은 내가 쉴 수 있는 일요일이었다. 큰아이는 그날도 여전히 창고에 
내려가 나무에 못질을 하려다 그만 손가락을 다치고 만 것이다. 나는 아이가 
놀랄까봐 가능한 한 침착한 얼굴로 “어쩌다 그랬어? 아프겠구나. 이리와”라고 
말한 후 손가락을 소독하고 약을 말라주엇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야단 맞을까봐 
두려워하던 아이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지나가는 것이 역력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아버지가 쓰다가 창고에 넣어둔 화공약품을 섞어 불꽃이 일어나게 하거나 
한쪽에 방치도니 조각나무에 못질을 하거나 낡은 전깃줄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기계 
만들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아이가 이러한 것들을 다루면 사고낼 
위험이 높기 때문에 늘 불안했지만 그 아이가 워낙 좋아하는 일이기에 말릴 수는 
없었다. 또 큰아이는 한편으로는 나이에 비해 덩치는 컸지만 마음이 너무 약해 
방안에서 바퀴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며 달아날 정도였다. 유치원 때 귀가 아파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의사와 친하게 지내더니 한동안 이 다음에 
커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벌레를 보며 놀라는 아이를 보며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의사가 되겠니?”라고 말했더니 당장 장래 희망을 
과학자로 바꾸어버렸다. 큰 아이는 이처럼 부모가 한마디 하면 오래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었다. 나는 아이의 이러한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말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사고를 
일으키면 우선 놀랍고 화가 났지만 가능한 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수도하는 기분으로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마”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한다고 받아들여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어쩌면 애들이 부모 말을 그렇게 잘 듣지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같은 반 준영이 어머니는 
나만 보면 부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준영이는 절대 부모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해 부모가 큰 소리를 지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준영이는 툭하면 동네애들도 자주 때려 동네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 못했다. 준영이 어머니는 자존심이 강해 자녀들이 남들에게 욕 먹는 것을 참지 
못했다. 아이들이 실수만 하면 “그렇게 하면 어떡해?”하며 야단부터 쳤다. 말이란 
강하게 하면 할수록 힘을 잃는 법이다. 말에도 내성이 생겨 자꾸만 강하고 험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부모는 또 자녀들이 말을 듣게 
하려면 더 강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목청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자녀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햐버리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위력이 없어져서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들어도 귓등으로 흘려듣게 된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면 
자녀가 갖고 있는 호기심의 싹부터 잘라버리는 셈이 된다. 미국의 경제 잡지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부모에 대한 기사를 종종 싣는다. 미국의 <포춘>지는 1999년 여름, 
미국의 경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 책임자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보도를 했다. 여기서 소개된 사람들은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재무담당 최고 책임자 디나 더블론, 보잉의 데비 홉킨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회사인 이베이의 최고 책임자 맥 휘트먼, 휴렛팩커드의 회장 칼리 피오리나 
등이었는데 이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자녀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자유록게 
길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최고의 방송 MC로 방송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포브스>지에서 미국 4백대 부자에 선정된 오프라 윈프리의 아버지는 
그녀가 청소년 시절 가출을 하고 미혼모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괜찮아. 
너는 이겨낼 수 있어”라고 말하며 감싸주었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 한마디가 
그녀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음은 물론이다. 기차 안에서 전기실험을 하다가 불을 내 
기관사에게 욕을 먹고 친구에게 공중으로 뜰 수 있는 약이라며 배에 가스가 차는 
약을 먹게 해 온통 소동을 일으킨 에디슨의 어머니도 자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절대 책임 추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만 말해도 자녀들은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드는 대신 잘못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려 노력할 것이다. 

“네 머리는 꾀주머니야” “울지 마라. 네 머리에는 꾀주머니가 들어 있어서 그렇단다. 너를 
놀린 놈들은 이 다음에 다 제 부하가 될거야.” 여동생은 머리 뒤통수가 유난히 
튀어나와 동네 남자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지금은 어머니들이 
여자아이들의 뒤통수가 튀어나오면 예쁘다며 좋아하지만 당시에는 여자애들의 
뒤통수가 나오면 놀림거리가 되었다. 친정아버지는 동네애들의 놀림이 분해서 울며 
집으로 돌아온 동생에게 이렇게 위로해주셨다. 친정아버지의 그 말이 맞았던지 
동생은 교수가 된 후 많은 남성들을 대표하해서 국제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위치로 
성장했다. 성훈이는 코가 유난히 커 아이들이 코끼리라고 놀렸다. 성훈이는 가뜩이나 
작은 키에 코만 커 거울을 볼 때마다불만이 많았는데 친구들마저 자신의 큰 코를 
가지고 놀리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성훈이는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할 
때마다“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낳았어?”하며 원망했다. 성훈이 어머니는 그러한 
성훈이를 달래면서“그런 멍청한 놈들이 있나?아니 우리 성훈이 코 크는데 제 놈들이 
뭐 보태준 것이라도 있나?놀리긴 왜 놀려?”하며 아들과 함게 울화통을 
터트렸다.그러나 어머니의 그 말이 성훈이에게 큰 위로는 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은 사소한 일로도 친구를 놀린다. 그 중에서도 신체적 특이함은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쉽다. 사람은 누구난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어서 언제든 
놀림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 친구들이 내 자녀를 놀린다고 해서 어린 자녀의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놀리지 말라고 일일이 일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자녀가 친구들로부터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놀림을 받았을 때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위로해줄 것인간,ㄴ 아주 중요하다. 친구로부터 놀림을 받은 후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에 따라 자녀가 가진 신체적 결함은 결함이 아닌 장점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님 눈동자가 유난히 초롱초롱하군요. 이 다음에 꼭 큰 인물이 
되겠어요.” 어렸을 때 친정아버지의 친구 한 분은 병약했던 나를 만나면 우리 
어머니에게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근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안 믿겠지만 당시 
나는 병차례가 잦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이였다. 감기몸살은 기본이고 
기관지염, 폐렴처럼 자칫 어린이의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는 중병에도 자주 걸려 
부모님 속을 꽤 썩혀드렸다. 나는 병차례가 잦아 한 학년에 한달씩은 결석을 했다. 
모르긴해도 우리 부모님은내가 큰 인물이 되기는 커녕 제 명대로 살기나 할까를 
염려하셨을 것이다. 뼈가 앙상하며 눈만 휑뎅그렁한데다 얼굴이 유난히 흰 나는 
누가 보아도 환자 같았기 때문에 그러한 나를 두고 “크게 될 인물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 그 아저씨밖에 없었다. 그 아저씨의 그와 같은 말은 그냥 인사치레일 
수도 있었지만 내 가슴에는 크고 깊게 새겨졌다. 그 아저씨는 한 마디 말로 나에게 
‘나는 반드시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세울수 있게 했다. 그 
아저씨가 어떤 기준으로 큰 인물을 정하며, 과연 나를 자신의 기준에 맞는 큰 이물 
수준에 올려놓고 그렇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또한 성인이 된 
나는 남들이 말하는 큰 인물로 성장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걱정하시듯 일찍 죽지 않았으며 내 신체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아들 둘 낳고 
지금은 건강한 체격으로 잘 살고 있으니 그 아저씨의 덕담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준 
셈이다. 미국 퍼스트레이디로 화제를 뿌린 힐러리 클린턴이 1999년 11월말경 한번도 
가서 살아본 적 없는 뉴욕시 맨해튼에서 사원의원으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해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힐러리는 똑똑한 퍼스트레이디로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는데 그녀를 싫어하는 살마들조차도 그녀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 힐러리도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고 못 살 일은 
없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힐러릴의 어머니 도로시 여사는 힐러리를 
낳은 후에 대학에 입학할 만큼 당찬 여성으로 딸에게 말과 행동을 동시에 보여주며 
딸의 교육을 해왔던 것이다. 어머니 도로시의 말은 딸 힐러리에게 여자라는 사실이 
핸디캡이 아니며, 여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는 원천이 되었다. 
“연년생인가요? 애들이 참 똘똘하게 생겼네요. 그런데 동생이 형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게 생겼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때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말해 난처한 적이 많았다. 큰 아이는 
덩치가 크고 얼굴이 둥근 편인 반면 작은아이는 군살이 없이 날씬한대다 얼굴이 
갸름했다. 형에 비해 인상이 날카로운 편이어서인지 처음 본 사람들은 서슴없이 
“동생이 더 똑똑하지요?”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말할 때마다 큰아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걱정이 되어“아니에요. 
형도 잘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간 마음이 쓰이지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한 여성은 작은아들 이름에 ‘큰 대(大)’자를 사용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 
여성도 아들만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착하고 여러가지 재주가 있는 반면 
작은아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공부를 잘했다. 어느 날 그 여성이 아들 둘을 데리고 
외출을 했는데, ‘아이구, 고놈들 참 잘생겼네. 이름이 뭐냐?“하면서 묻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큰아이가 “진수인데요”라고 말하고 작은아이가 
“대수인데요”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저런, 작은아들 이름이 더 크군. 형이 
동생에게 꿀리는 이름을 가졌네”라고 말했다. 그후부터 큰아들이 동생을 미워하고 
신경질을 부린다면서 그 여성은 아들의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말까지 했다. 
어린아이들만 친구들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어린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이처럼 불쑥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게집애가 
나서긴 왜 나서?”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말을 들으면 
그말 한마디에 평생 주눅이 들어 사는 아이들이 많다. 내 자녀에게 상처주는 말을 
불쑥 해버리는 이웃어른이나 자녀의 친구들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녀가 타인에게 마음에 상처를 받을 만한 말을 들었다면 부모가 바르게 위로해 
주어야 한다. “네 머리에는 꾀주머니가 들어 있단다”와 같은 위로의 말은 자녀가 
밖에서 받은 상처를 오히려 성공의 밑거름으로 만드는 약이 된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왜 아들에게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전혀 안 하지요? 우리 
부모님 같으면 창연이, 승연이처럼 잘하는 것이 많으면 매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텐데.” 우리 아이들이 미국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의 미국 친구인 씨시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일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다 안단다. 부모 자식간에 무엇하러 그런 말을 하니? 창연이랑 승연이는 
내가 일일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두 아들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하고 말했다. “그렇지 않던데요? 창연이와 승연이는 자기네가 그 
정도 잘한다고 해서 아줌마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데요? 그래서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자신을 들볶던데, 너무 딱해 보였어요. 오늘도 승연이가 수학시험에서 두 
개 틀렸다고 화를 내 친구들을 놀라게 하던데....... 그 점수가 우리 반 
최고점수였는데도 승연이는 자기는 한국 사람이니까 수학에서 틀리면 안 된다며 
화를 무지무지 냈어요.” 그 아이의 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평소에 한국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보다 수학을 어렵게 배웠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 말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줄곧 1등을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도 재미있어야만 할 가치가 잇다’고 주장했다. 나는 
친정어머니가 40대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며 그 사실을 매우 중요시한다. 길지 않은 인생을 하기 싫은 
일에 매달려 사는 것은 낭비라고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성과가 나지 않으며 성공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찾아온다’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내가 그랬으니, 아이들도 당연히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다른 애들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성적이 들쭉날쭉 진폭이 심해 담임교사들을 
헷갈리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깊은 곳까지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닦달을 한 것도 아닌데도 아이들은 성적에 신경을 쓰며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닦달은 안했지만 
아이에게 자부심을 복돋아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여느 미국 
어머니들과 달리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와 같은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씨시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들었던 것이다. 그후 아이들이 학교 프로젝트를 
잘해 교사의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아오면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순간적으로 그 말이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놓치는 때가 많았다.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일부러 소리내어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연습을 한 후에야 아이들이 잘한 일이 있으면 겨우 그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 말을 자주한 후 우리 아이들의 
성적은 더 좋아졌고 늘 어머니인 나로부터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주 잘 찾아냈다. 한번은 교민 중 우리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는 할머니 한 분이 내가 한국에 나온 후 아이들이 청소는 
제대로 했는지, 밥은 재대로 챙겨 먹는지 살펴보려고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청소를 다 해놓고 오히려 할머니에게 다과를 정성스럽게 
차려주어 할머니는 대접만 받고 돌아왔다며 한국에서 돌아온 나를 붙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나는 아이들이 내 친구가 집에 찾아오면 다과를 내오게 
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러워”라고 말해왔다. 그 말로 아이들은 
손님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를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칭찬에 매우 
인색한 민족이다. 특히 배우자나 가족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예로부터 ‘자식 
자랑은 팔불출’‘좋은 일에 입 방정 떨면 마가 낀다.’와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칭찬하는 말을 아예 터부시해왔다. 우리는 자녀가 자랑스러운 일을 하면 부모가 그저 
빙그레 웃어주기만 하면 될거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방송국에서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그로 인해 정부로부터 잘했다고 격려까지 
받았겠는가? 그러나 무조건적인 칭찬이 꼭 좋은 결과만 가져오라는 보장은 없다. 
잘못된 칭찬은 자녀의 자만심만 심어주어 공주병, 왕자병을 앓게 할 수도 있다. 
칭찬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특히 자녀를 칭찬할 때는 무조건 “잘했다” 
“최고다”라고 말해 자만심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자녀가 부모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자녀의 능력을 배가시킨,ㄴ 작용을 한다. 자녀들은 
부모가 나를 자랑스러워 한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해 하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법이다. 부모가 된 어른들도 다시 생각해보면 어려서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했던 사실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세대차는 6개월 간격이라고 한다. 그렇게 치지 않더라도 부모와 자녀 간에는 
세대챠가 많이 난다. 자칫하면 부모 자식 간에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부모라 할지라도 속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자녀가 대견한 일을 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속으로만 대견해하지 말고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해보자. 자녀는 
부모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해 신바람을 내며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며 부모와 대화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는 
말은 자녀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아주 효과 좋은 특효약인 셈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어요.” 환경부장관 임용 후 
곧바로 물러나게 돼 세인들 눈앞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손숙씨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다. 손숙씨는 연극배우로서 환경부장관으로 
임용되었지만 <어머니>란 연극의 러시아 초청공연을 승낙한 상태에서 공연을 중단할 
수 없다며 취임과 동시에 러시아로 떠났다가 기업체에서 건네준 돈 봉투를 받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귀국후 즉각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녀는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세간의 관심을 벗어나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잇는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연극 무대에 서게 된 그녀는 <이영자, 
임성훈입니다>라는 토크쇼에 출연해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애들은 모두 제 편인 거예요. ‘얘 걱정하지마. 우리가 
있잖아?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그냥 푹 쉬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럴 땐 
자식이고 남편이고 다 소용없어요,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최고지. 정말 친구들이 
해준 그 말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고통받는 순간 
그녀를 위로한 것은 가족이 아닌 친구였다. 물론 손숙씨네 가족이 그의 고통에 
냉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과연 우리는 상처받은 자기 가족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라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어린 
자녀들이 밖에서 타인에게 상처받고 돌아오면 부모는 얼마나 자녀를 잘 
위로해주는가? 알고 보면 어린아이들도 인생살이가 고달프기는 어른과 다를 바 
없다.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 잘해도 티내지 않아야 하고 청결해야 
하며 공부를 못하면 공부 대신 뭔가 한 가지에는 특출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다른 아이들의 대화에 참여하려면 새로운 게임이나 만화에 대해 
부지런히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생활이 어른보다 단순해 
상처받을 일이 그다지 없을 거라며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조그만 실수도 용서보다는 질책을 앞세워 자녀를 위로하지근 코녕 더욱 쓸쓸하게 
만든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수년 전 소설가 이문열씨가 쓴 단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어린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어른들 세계 못지 않게 험난하다는 
사실을 자세히 묘사해내고 있다. 엄석대라는 힘센 친구의 횡포와 거기에 대응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이둘의 세꼐도 어른의 세계 못지 않게 험난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예현이는 “이모,학교 다니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1월11일 빼빼로 데이에는 
자기가 빼빼로를 많이 받아 체면 유지는 됐는데 친구들끼리 과자를 주고받는 무슨 
날이 많아져서 그날 얼마나 많은 과자를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기도가 
측정된다는 것이다. 예현이는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서바이벌 
게임이지요”라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학교생활을 통해 어린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상처는 크다. 그런데 학교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부모들이 실수할 요소가 
많다. “아니? 그 많은 돈을 다 잃어버렸단 말야? 어떻게 들고 다녔길래 돈을 다 
잃어버려?” 은주 어머니는 펄쩍 뛰며 은주에게 화를 냈다. 여의도에 사는 은주는 
방배동 할머니 댁에 가서 미국에서 돌아온 고모를 만나 용돈을 받았다. 은주가 
원하는 것이 컴퓨터 게임기라는 것을 알고 고모는 오랜만에 만난 은주에게 거금 
10만원을 주며 게임기를 사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는 많은 돈이었다. 은주는 
돈을 잃어버릴까봐 손지갑 안쪽에 잘 접어서 넣었다. 그리고 그 지갑을 배낭에 넣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투자회사에 다니는 아버지가 그날따라 회사에 일이 있어 
차를 태워줄수 없자, 사촌언니와 버스로 함께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지갑이 통째로 없어졌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잃어버릴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이 약간 복잡하기는 했지만 
만원은 아니었다. 은주 어머니는 고지식하고 꼼꼼한 성격이어서 은주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게임기 하나를 사주려면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그 게임의 유행이 거의 지나갈 
무렵에야 사주곤 했다. 은주의 소원은 새로 나온 게임을 다른 애들보다 먼저 
가져보는 것이었다. 은주 고모는 그러한 은주의 말을 듣고 조카인 은주가 안돼 보여 
은주에게 큰돈을 준 것이다. 은주는 그 돈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은주에게 어머니는 돈 잃어버린 부주의한 딸로 
몰아세우며 온갖 신경질을 다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은주 어머니가 화를 내는 대신 
“걱정하지 마라, 다음부터는 조심해”라고 말했다면 은주는 돈을 잃어버렸을지라도 
금세 상처를 회복하고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을 것이다. 상처받은 
어린 자녀를 치료하는 최고의 약은 부모의 “걱정하지 마라. 다음부터 조심하면 
된다”라는 말이다. 


4. 자녀와의 갈등, 말로풀자 
공부하기 싫어할 때 

“아이구, 저 잔소리.” 초등학교 5학년인 다희는 귀를 막으며 안방을 나왔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수학성적이 떨어져 1시간동안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비싼 수학과외를 시켜주었는데 성적이 그게 뭐야?” 어머니는 그 
말을 레코드판 돌리듯 반복하다가 1시간이 지나서야 지쳤는지 다희에게 나가보라고 
했다. 다희 어머니는 다희의 학교생활에 대해 소상히 아는 ‘극성엄마’였다. 다음 
시험에는 어떤 종류의 문제가 다루어질 것인지, 참고서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좋고, 과외 선생님은 누가 유명한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희는 
언제나 다른 어머니들보다 앞서서 모든 것을 챙겨주는 어머니의 명령에 반박할 힘이 
없어 거역하지 못한다. 다희 어머니는 다희가 5학년이 되자 수학 과외선생님을 
바꿨다. 그 선생님은 다희네 학교에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서 가르쳤다. 
다희는 그 그룹의 아이들만큼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열성 
때문에 간신히 그 그룹에 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희는 과외를 다니면서도 
그룹 친구들이 편하지가 않았다. 친구들이 자기가 낀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가끔은 친구들의 눈치가 보여 불편하기까지 했다. 사실은 그 과외에서 
빠져버리면 차라리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만약 다희가 어머니에게 
그런 생각을 털어놓으면 “아니, 그 그룹에 끼어넣으려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하면서 화낼 것이 뻔했다. 다희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질려 “누가 과외 
시켜달라고 했나? 흥”하며 안방을 향해 혀를 쏙 내미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저항할 
뿐이었다. 사실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보다 자녀인 당사자가 더 기분이 나쁠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성적에 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기준에 
미달하는 성적을 받게 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부모들릉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우선 떨어진 성적 점수만 가지고 자녀를 추궁한다. 그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가 성적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알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정확하게 콕 찍어서 지적하면 
반발하게 되어 있다. 물론 부모로서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성적에 관한 문제는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거론해야만 한다. 우리 작은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50점 맞은 수학 
시험지를 들고 와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바로 전에 본 시험까지는 
거의 다 100점을 받아왔고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니 나의 충격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흥분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를 쓰며 그 아이와 마주앉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오.” 나의 질문에 아이는 기어드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이유를 
말하기 싫어?” 여전히 대답이 없다. “너도 이 점수에 실망했지?” “네.” “엄마는 
굉장히 실망했다. 너도 마찬가지지?” “네.” “네 잘못 때문에 엄마도 실망했고 
너도 실망했으니까 네가 손바닥을 맞아야겠다. 이번에는 10점에 단 대씩, 다섯대를 
맞겠지만 다음에는 더 많이 때릴 거야. 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아이는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약속대로 아이의 손바닥을 다섯 대 때려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매맞은 보람(?)도 없이 다음에 수학성적을 예전처럼 올리지 못했다. 80점 
선에서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중학교 졸업반이 되어서야 ‘수학은 모두 논리다. 너는 논리를 좋아하니, 수학을 
논리라고 생각하고 퍼즐놀이하듯 즐기면서 해봐라’라는 말로 설득해서 아이의 
수학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결국 매가 아닌 설득이 더욱 효과적 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성적 때문에 야단을 맞게 되면 아이들은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데다 야단까지 맞게 되어 더욱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아이에게 야단을 치면 
다음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결국 자발적인 
결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건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 법이다. 설혹 매로 성적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진짜로 실력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 때문에 화를 낼 때는 때부분 자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심한 말을 하게 된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자녀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작정 꾸짖는 짓은 결코 자녀의 성적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문제를 거론하려 한다면 
우선 부모 자신의 학창시절부터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들의 대부분이 학교 
다닐때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자기 자녀만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또 학창시절에 성적이 좋았던 부모들이라면 이번에는 “저 녀석은 왜 
나를 닮지 않았지?”라며 화를 낸다. 자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자녀의 능력이 반드시 부모와 같거나 더 나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 큰아이가 서울에서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교장선생님은 신입생들의 학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여기 모인 학부모 중에서 서울대 나오신 분은 손들어 보세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손을 들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그 
교장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여서 “아니, 자기들은 서울대 못 나와놓고 왜 
애들보고는 서울대 가라고 들볶는 거예요.”하면서 야단부터 치셨다. 거기에 모인 
학부모들이 와르르 웃었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들의 부정할 수 없는 현주소이며 
자화상일 것이다. 대개 자녀들의 성적문제를 유난스럽게 거론하는 부모들은 
대리만족 때문에 자녀들에게 성적의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비록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해 오늘날 이 모양 이 꼴로 살지만 너만은 반드시 
송부를 잘해서 나보다 더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성적문제로 자녀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모들 중에는 자녀의 성적이 나빠지면 자기 체면이 
손상된다고 생각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친구의 
자녀 아무개는 이 정도의 성적을 받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아니면‘옆집의 
아무개는 성적이 좋은데 너는 왜 그 모양이야?’라며 비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의 장래를 걱정한다는 미명 하에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이러한 욕심 때문에 인격을 무시당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부모를 미워하게 된다. 자녀의 성적문제를 
거론하려면 자녀에게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보다 자녀 스스로 
원인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너의 성적이 떨어져서 부모인 내 체면이 
뭐가 되느냐”고 ‘나 메시지’로 말하지 말고 “성적이 떨어져 네가 얼마나 기분이 
나쁠지가 걱정이다”라고 ‘너 메시지’로 말해야 한다. “그렇게 성적이 나빠서야 
이 다음에 대학이나 가겠느냐?”라는 비난이 아닌 “성적이 나빠 대학에 못 가면 
속상해할 네가 걱정된다”라고 자녀의 입장에 서서 말해야 부모의 충고가 진지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평소 우리 아이들의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네가 떨어진 
성적을 붙들고 아무리 걱정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잘못 받은 성적을 
회복하고 싶으면 잘못 본 시험성적을 걱정할 시간에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나도 원래부터 아이들에게 그처럼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50점 받아온 수학시험 성적 때문에 작은아이의 손바닥을 때린 후 
그것이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교훈으로 아이들에게 “너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너는 잘할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 
있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자신의 기준을 
스스로 높여 성적이 나빠지면 자기 자신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다.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보다 자녀 자신이 가장 크게 실망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그때 부모는 자녀가 최선을 다하도록 책임 의식과 여유를 주는 것 이상의 압력을 
주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인 내가 오히려 “적당히 쉬면서 공부하지 
그러니?”라고 말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예능 교육을 시키고 싶을때 
“우리 아이가 거울 보면서 탤런트 흉내나 내는 걸 볼때 마다 야단을 쳤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아닌 것 같아 최감독, 우리 애를 자네 영화에 엑스트라로 써줄 수 없겠나? 
어렸을 때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으면 대학 특례입학이 가능하다던데.” 모임에서 내 
바로 앞에 앉은 은행 지점장인 문영진씨가 영화감독인 최 일씨에게 이런 말을 하자 
좌중에서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당사자인 문영진씨의 얼굴은 웃을 일만은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2001년 대학입시 요강에서 15만명의 학생들이 
측기생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발표를 하자 자녀의 학교성적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부모들이 어떻게든 자녀의 특기를 살려 다른 집 아이들보다 좋은 대학에 보낼 
수는 없을까 궁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영진씨처럼 체면 차리지 않고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한 탐색전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가 부쩍 늘어났다. 2000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청소년 댄스그룹인 ‘S. E. S'의 유진이 고려대학교에 특례입학을 
하게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특례입학을 앞두고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격렬하게 찬반 양론을 펴기도 했으며 네티즌들도 여기에 가세해 뜨거운 
공방전으로 나라 안을 달구었다. 반대하는 측은 유진은 직업가수인데, 음악대학이나 
연예학부가 없는 고려대학교 서양어문학과에 입학한 것은 특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특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찬성하는 측은 그녀가 괌에서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영어를 잘하며 가수로서 일본 등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도 능력으로 인정하면 대학에서 받아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의 대학 입시 준비는 유치원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생각한다. 대학입시 요강이 획기적으로 바뀌면 유치원 학부모부터 
자녀의 학습계획을 바꾸기 위해 분주해지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자녀의 예능교육 
열기가 약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학입시가 학과위주에서 특기자 쪽으로 문호가 
넓어지자 자녀의 특기를 일찍부터 찾아내기 위해 예능학원을 찾는 학부모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사실 뛰어난 예능인 중에는 소질을 조기에 발견해 개발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기교육 찬성론자들은 아이들의 특기는 일찍 발견할수록 개발하기 
쉽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자기 개발을 하는 기회가 많은 편이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일이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에는 대부분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로 가기 때문에 성대한 
졸업파티를 열어준다. 파티가 열리면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받았던 상장과 트로피, 사진, 노트 같은 자신의 모든 기록을 참석자들에게 
공개하고 피아노를 잘치는 아이는 피아노 연주를,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은 자신의 
작품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기량을 보인다. 우리 아이들의 미국인 친구 조수아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졸업파티에 참석한 손님들 앞에서 그 동안 닦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피아노 콘서트를 열었다. 그 아이의 피아노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훌륭했다. 그 아이는 학교 연극반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줄리어드 음대 지원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장래에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시간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우리 아이들의 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조수아처럼 어려서부터 피아노는 물론 수영, 스키, 야구, 댄스, 
골프 등을 배우며 그 아이들의 예능실력은 아무추어 수준 이상이다. 미국의 
어머니들도 자녀들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예능교육을 시킨다. 나 또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믿으며 본인만 원하면 무엇이든지 어려서부터 배워야만 제다로 
일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적성에 맞지 않는 예능교육을 억지로 시키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데 억지로 시켜봐야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우리 작은아이는 어렸을 때 몸이 약하고, 체격이 
작은 편이어서 나는 그 아이에게 태권도를 배우도록 권했다. 동네친구들에게 힘에 
밀려 얻어맞을까 봐서였다. 그러나 이 아이는 태권도 배우는 것이 친구들한테 
얻어맞는 것보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체력은 약하면서 호기심만많아, 수업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많이 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친구들에게 얻어맞곤 했다. 만약 
미국으로 가지 않고 우리날에서 계속 학교에 다녔다면 자신은 친구들에게 
맞아죽었거나 약올라서 던신병에 걸렸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맞은 자리가 아프고 
약올라서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태권도 학원에 등록하기는 
싫어했다. 나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오는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등록을 
거부한 후 단 한 번도 태권도를 배우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작은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나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한 후에야 
갑자기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친구들에게 
얻어맞아도 참을 수 있었지만 미국 아이들에게까지 매를 맞을 수는 없다며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결심하자 작은아이는 책방에 
가서 영어로 된 이소룡의 쿵후 책을 사다가 쿵후에 대한 설명과 그림을 보고 
마당에 나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 마당에 서서 밤마다 손전등을 
비춰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독학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서 태권도 
사범을 찾아 아이를 맡겼다. 아이는 두 달 동안 연습을 한 끝에 미시간주 대항 
태권도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와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바이올린 레슨도 
마찬가지다. 작은아이는 워낙 힘이 없었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들고 켜는 것이 
힘들다며 5년 정도 배운 후 그만두었다. 물론 처음부터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5년간 별의별 설득을 다 해 배우도록 했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이 아이를 5년 이상은 설득할 수가 없었다. 주변사람들은 5년이나 배운 바이올린을 
아까워서 어떻게 그만두게 할 수가 있느냐면서 말렸지만 나는 억지로 시키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그만 두도록 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바이올린 그만두는 것을 아까워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이 아이가 앞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할 것은 아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이올린 레슨을 
그만둔 사실을 잊을 만할 즈음 미국으로 왔고,작은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자 아이는 
‘음악가’라는 별명을 가진 조수아랑 친해졌다. 음악을 좋아하는 조수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 아니는 갑자기 자기도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아이의 요구를 즉각 받아들이지 않고 “네가 전에 바이올린 배우기를 그토록 
싫어했는데 피아노도 악기이기 때문에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면 돈만 낭비하는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이 아이는 나에게 며칠 동안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중간게 그만두지 않기로 다짐을 한 후 배우게 했더니 
일주일에 한권씩 피아노책을 떼서 담당교사를 놀라게 했다. 하기 싫을때에는 
그만두게 했다가 진정으로 원할 때 다시 시작하게 하니까 무섭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어릴지라도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는 
그처럼 무서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반대로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돈은 돈대로 낭비하게 된다. 자녀의 예체능 
특기를 발견하기 위해서 예능학원에 골고루 등록해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독단적으로 정하지 말고 자녀에게 충분히 그 이유를 설명해 자녀가 
납득을 한 후 등록하는 것이 좋다. 등록을 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그것을 배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과감하게 그만두게 하고 아이가 흥미를 갖는 것만 골라서 
배우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원에 등록을 해도 교사의 능력과 품성에 따라 
자녀와 마음이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자녀를 담당하게 될 교사를 
면담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와 호흡이 맞는지를 검토하고 아이의 재능을 끌어내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 아이를 보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다닐 학원을 고를 
때면 한 과목에 10여명의 교사를 면담한 수 최적격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를 골랐다. 
우리 큰 아이의 미국 친구 데이브 어머니도 데이브를 낳기 전 10여 지역의 공립학교 
교장과 면담을 한 후 우리 동네로 이사해 오키모스 학교로 보내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듯 부모는 교사의 자질을 미리 파악해보고 우리 아이와 호흡이 자 
맞을 것인지, 우리 아이의 재능을 충분히 개발해줄 수 있을 것인지 파악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옷차림을 간섭해야 할 때 
“이거 입어, 이 옷이 예쁘잖아.” 
어머니가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꺼내 흔들자 여섯살바기 혜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나는 이거 입을래.” 혜지는 며칠 전에 고모가 사다준 힙합바지를 들고 
서서 몸을 흔들었다. “안돼, 결혼식에 갈 때 그런 바지는 입는 게 아니란 말야.” 
혜지 어머니는 어머니 말을 듣지 않는 혜지가 미워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결혼식 시간은 점차 가까워오고 혜지는 요지부동이었다. 혜지는 알아주는 
고집쟁이여서 어머니가 혜지의 고집을 꺾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도 끝내 혜지에게 
어머니가 졌다. 그렇게 해서 혜지는 고모 결혼식에 힙합바지를 입고 참석하게 
되었다. 격식을 중요시하는 혜지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더니 아연실색을 하며 혜지 
어머니에게 눈을 흘겼다. 혜지 어머니는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몰라했다. 어머니는 
혜지 때문에 망신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혜지의 
엉덩이를 심하게 때려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도 혜지의 고집을 꺾지 못해 번번이 
낭패를 보곤 했다. “엄마가 사온 운동화 신어봤니?” “엄마, 그런 걸 사오면 
어떡해요? 요즘에 그런 거 신는 애들이 어디 있어.” “얘는, 그게 얼마나 비싼 
건데.” “그러니까 엄마가 사지 말고 나한테 돈으로 달라고 했잖아. 나 그거 안 
신어.” 초등학교 5학년인 우경이도 어머니가 사다준 운동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우경이 어머니는 “신기 싫으면 떨어진 신발 그냥 
신고 다니렴”하면서 화를 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 중에는 여름에 겨울옷을 꺼내 
입거나 겨울에 여름 신발을 신고 나서기도 한다. “아니, 태민아, 그게 뭐야. 그건 
여름 신발 이잖아. 지금 밖에는 눈이 오는데 발 시려서 안 돼.” 망사가 붙은 여름 
운동화를 신고 외출준비를 하는 태민이를 보자 어머니가 기겁을 하면서 쫓아와 
말렸다. 그러나 태민이는 태연한 얼굴로 “그게 뭐 어때서?”하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안돼, 당장 이걸로 바꿔신어.” 태민이 어머니는 급히 신발장에서 
겨울운동화를 꺼내 태민이 발 앞에 내려놓았다.“아이 참, 괜찮은데......” 태민이는 
뒷머리를 긁으며 신발을 바꿔신었다. 요즘 아이들은 개성이 강해서 어른들이 골라준 
옷이나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어머니 
마음에 드는 옷만 입히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만만치 않을 때가 많다. 대부분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면서 부모가 고집을 꺾는다. 
그만큼 부모들이 자식 설득에 서툴다는 것인데, 이는 부모가 자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아빠를 미워한다고 해서 저도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해요.” 이혼한 부모의 자녀로서 갈등을 겪는 20대 여성이 
털오놓은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혼율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갈등도 점차 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는 이혼부모 사이에서 
자녀들이 겪는 갈등이 다른 나라의 자녀들에 비해 훨씬 클 것이다. 언젠가 
이스라엘에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고민하고,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가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걱정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녀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나의 소유물이라고 믿고 자녀의 인격을 무시하면서 자녀를 설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윤리의식이 엄격해 부모의 
말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순종했지만 요즘에는 유치원 아이들도 
부모가 강압적으로 명령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들은 분방해졌는데 부모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자녀도 인격을 고려해 설득을 
해야만 부모말을 듣는다. 혜지 어머니는 혜지가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일방적으로 
골라줄 것이 아니라 미리부터 결혼식에 입고 갈 만한 옷을 여러 벌 준비하고, 혜지 
스스로가 고르게 했어야 했다. 우경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머니가 사다준 
운동화를 우경이가 싫어하면 “미안해서 어떡하니? 그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그냥 
돈 줄걸 그랬지?”하면서 우경이를 설득해야 우경이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유를 가졌을 것이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되는 아이들이지만, 인격을 
존중하면서 알아듣게 얘기하면 다 받아들일 줄 안다. 

나쁜 습관을 고쳐주고 싶을때 

“아니, 왜 그렇게 눈을 깜빡거려?” 밥 먹으면서 유난히 눈을 깜빡거리는 
영석이를 보며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왜요?” 영석이는 볼멘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큰일났네. 얘가 왜 이렇게 눈을 깜빡거리지?” 영석이는 자신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났나 싶어 몹시 불안했다. 자녀들의 나쁜 버릇은 부모의 큰 
근심거리가 된다. 그 때문에 영석이 어머니처럼 자녀의 나쁜 버릇을 발견하면 앞위 
생각없이 소리부터 지르는 부모들이 많다. 평소에는 교양 있는 태도를 보이던 
어머니들 조차 자녀들의 나쁜 버릇을 발견하면 걱정이 앞서 호들갑부터 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생긴 나쁜 버릇을 그런 식으로 지적 받으면 
그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어 더욱 고치기 힘들어진다. 우리 아이와 
유치원을 같이 다닌 필종이는 다른 애들에 비해 유난히 덩치가 컸다. 3대 독자 
외아들이어서 부모가 자식을 끔찍하게 여겨 애지중지했기 때문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음이 유난히 약했다. 필종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교사에게 밑보여 고생을 
많이 했다. 담임교사는 필종이의 유난히 느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두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월말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다른 애들은 
모두 시험지를 냈는데 필종이만 붙들고 있었다. 담임교사는 “얘, 여태 못 쓴 
시험지, 더 붙들고 있는다고 달라지니?”하며 필종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교사의 
말대로 필종이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필종이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생겼다. 필종이의 머리 흔드는 버릇을 발견한 
어머니는 왜 필종이가 갑자기 머리를 흔들어대는지를 알아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필종이의 머리 흔드는 습관을 고치려면 원인부터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종이가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필종이 어머니는 매우 현명하게 처신을 했다. 자녀 앞에서 한 번도 “필종아, 왜 
머리를 흔들고 그래?”라고 말하지 않고 원인부터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필종이는 
어머니와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3년 만에 머리 흔드는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미국에 건너가서 흑인 친구들을 사귀면서부터 걸음걸이가 마치 
뒷골목을 오가는 깡패들같이 변했다. 어느 날 그것을 발견한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면밀히 검토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걸음걸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걸음걸이를 고쳐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확실하게 선 후에야 “너희들 
걸음걸이가 이상하니 고쳐야겠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내가 자신들의 
걸음걸이를 왜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이들 스스로 
걸음걸이를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거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이들의 
걷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준 다음 감상이 어떤지 물었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걸음걸이가 보기 좋지 않았던지 그제서야 고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 머리 위에 
잡지책 두 권을 얹고 걷는 훈련부터 시켰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잡지가 자꾸만 떨어졌다. “그것 봐. 네 걸음이 정말 이상하지?” 
형제끼리 서로 상대방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며 놀리면서도 아이들은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버릇이 금세 고텨지지는 않았다. 6개월 정도 지난 후에야 걸음을 
똑바로 걷게 되었다. 자녀에게 나쁜 습관이 생겨 고쳐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발견했을 때 자녀 앞에서 그 문제를 과장되게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버릇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돼 오히려 고치기 어려워진다. 그럴 때면 자녀에게 나쁜 
습관이 고쳐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설명해주어도 자녀가 자신의 버릇이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되는지를 
알지 못할 경우 비디오로 촬영해 보여주는 것도 좋다. 이 방법을 쓰면 자녀가 
자신의 습관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자녀가 자신의 나쁜 습관을 인지하게 
되면, 자녀와 함께 계획을 세워 함께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실천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거친 말버릇을 쓸 때 

“씨팔, 저런 것도 부모라고.....” 해구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 녀석이 지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응?” 해구 
아버지는 벽력 같은 소리를 질렀다. 해구 아버지는 IMF 사태가 오기 전까지는 
증권회사의 관리과 직원이었다. IMF 이후 구조조정 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해구 아버지는 모아둔 돈도 없고 창업을 할 만한 실력도 없어 택시 회사 운전사로 
취직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해구 아버지는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에 자연히 
신경질이 많아졌고, 특히 초등학교 4학년인 맏아들 해구에게 화풀이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해구는 그러한 아버지가 점점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해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가 출근하면서 방에 두고 온 담배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날도 해구 아버지는 전날 밤근무를 하고 낮잠을 잔 후 다시 
밤근무를 나가려다가 해구에게 방에두고 온 담배를 갖다달라고 했다. 그때 해구는 
숙제를 하느라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니, 이 녀석이 아빠 말을 뭘로 알고”하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해구는 그때 막 
잘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가 풀리기 시작해 그것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해구는 
아버지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담배를 들고 나와 출근을 할 수 있는데도 
숙제 때문에 바쁜 아들에게 담배를 갖다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모라면 공부를 하고 있는 자식에게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아버지에게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고 만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심한 
억압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반발하게 된다. 대상이 부모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민선이는 어머니가 시킨 설거지를 하면서 “저런 부모들은 다 죽어야 
해”하며 울화통을 터트렸다. 민선이 어머니는 밖에 외출하여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맏딸 민선이에게 집안일을 맡겨 두고 나가곤 했다. 우편 집배원 봉급으로 
빠듯한 살림을 알뜰하게 돌보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주부가 밖으로 나돌아 다니니 
살림이 엉망이었다. 민선이가 매일 설거지를 하고 보이는 곳만 청소를 해 집안이 
겨우 유지되었다. 민선이는 그러한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툭하면 
친구들 앞에서도 “저런 것도 부모라고”하며 노골적으로 부모를 비난했다. 
그러다가 어머니 앞에서도 그렇게 중얼거려 여러차례 매를 맞기도 했다. 자녀가 
부모의 잘못을 비난하면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건방지다며 자녀의 
행동만 나무란다. 그 때문에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자녀와 싸우는 
부모들도 많다. 자녀가 부모에게 대들면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고 “어디서 
그렇게 나쁜 버르장머리가 생겼어?”하면서 화부터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들의 
못된 말버릇은 부모의 억압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 중 누군가 
쓰고 있는 말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녀들의 말버릇이 갑자기 다른 
곳에서 올라가 만무하다. 자녀가 부모에게 불손한 말을 사용한다면 불러다 야단부터 
칠것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속에 무슨 응어리가 있는지 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만약 
자녀들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응어리가 있다면 그것을 풀어주어야만 
나쁜 말버릇을 고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구와 민선이처럼 부모에 대한 미움이 
있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할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럴 대 자녀는 부모에게 대든다. 만약 자녀가 어른과 말하면서 욕을 섞어 
쓴다거나 어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으면서 대든다면 그것은 반드시 
고쳐주어야 할 문제이다. “집에서 아무리 고운말을 가르치면 뭐합니까? 밖에 나가면 
다른 애들이 욕을 섞어 말하는데 우리 애들이 배우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부모들도 많다. 믈론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밖에서 욕을 배워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고운말을 사용하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친구들의 말투에 심각한 영향은 받지 않는다. 자녀들이 욕을 섞어쓰거나 
부모에게 대들거나 ‘그’‘저’‘어’같은 잡음을 많이 사용한다면 모두 어렸을 
때 고쳐주어야 한다. 잘 고쳐지지 않으면 녹음을 해서 들려줄 필요가 있다. 문제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어린아이들은 순수해서 어른들보다 문제의 본질을 더 쉽게 
고치려고 노력한다. 어머니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받아들이지 않던 아이들도 
녹음을 해서 직접 들려주면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들어보니 어떠니?”라고 물은 
후 “이것을 고쳤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대개 부모 말에 따른다. 
무엇보다 자녀의 말버릇을 좋게 하려면 부모부터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하며 자녀가 
밖에서 나쁜 말을 배워왔을 때에는 그 말이 왜 나쁜가, 차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PC방에 빠졌을 때 

어린이들 사이에 <포켓 몬스터>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전기를 
발산하는 생물인 ‘포켓 몬스터’는 ‘주머니’를 뜻하는 영어 
‘포켓(Pocket)’과‘괴물’을 뜻하는 ‘몬스터(Monster)'가 합해진 말로 만화에 
나오는 가상의 괴물을 뜻한다. ‘포켓몬’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주인공 
애시가 괴물을 모두 잡아 괴물세계를 점령한다는 줄거리의 게임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포켓 몬스터>에는 152가지의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몬스터 중에서도 피카추는 귀여운 뒤 모양의 몬스터로, 미국 
월트디즈니의 ‘미키 마우스’가 왕좌를 내줄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포켓 몬스터>는 처음에는 게임으로출발해서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만화로 나오더니 극장상영용 애니메이션, 인형, 책, 카드 등이 등장해 모든 상품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홀딱 빼앗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판매가 시작되지 않은 
품목은 해외 출장 가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다주어야 할 선물 1호가 되었다. 그런 
것을 가진 어린이는 친구들에게 ‘짱’으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에서 
1998년에 내놓은 <포켓 몬스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어린이들에게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뜻 있는 미국인들을 걱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에서 <닌자 거북이>를 내놓은 이래 <파워 레인저><스타 
크래프트><포켓 몬스터>등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컴퓨터 베임이 성행하면서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어린이들은 ‘게임세대’라고 분류해서 부를 정도로 하나의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즐길수 있는 PC방이 전자 오락실을 점령해버렸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 집에서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아이들은 물론, 집에 컴퓨터가 있더라도 
여러 대의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구성해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해야만 하는 <스타 
크래프트>같은 신형 컴퓨터 게임을 즉기기 위해 아이들은 돈만 생기면 PC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푹 빠진 아이들은 방과 후 제때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학원을 빼먹기까지 한다. 게다가 pc방에는 나이어린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드나들고 있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1999년 11원에는 여고생이 
pc 방에서 만난 어른과 어울리다가 한 남자가 성폭행을 하려고 하자 이를 피하려고 
여관 창문에서 떨어져 숨지기도 햇다. 설상가상으로 그로부터 며칠 후 숨진 여고생의 
친구까지 그 친구가 죽은 것을 비관하고 동반자살을 해 pc 방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부모들은 당연히 어린 자녀가 pc 방에 드나드는 것을 
말리고 싶을 것이다. "우리 준석이가 학원을 빼먹고 pc 방에 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만 그 버릇을 고칠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 회사에서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던 주부 수강생 신명희 씨가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아들에 대한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신명희 씨는 4년 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이 경영하는 선물용 상자를 만드는 중소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두 살 터울의 아들이 둘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큰아들은 별 
말썽 없이 어머니의 말을 잘 따라주는 반면 작은아이가 4학년이 되면서부터 어머니 
속을 썩이기 시작한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최근에는 아예 학원도 빼먹고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셨지요?" "한번은 제가 
준석이가 다니는 영어학원 쪽에 있는 거래처에 갔다가 아이가 끝날 시간이 다 된 것 
같아서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입구에서 기다렸지요. 그런데 다른 애들은 다 
나오는데 준석이가 안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설마 하다가 차츰 이녁석이 도대체 
어디를 갔나 싶더라고요." 신명희 씨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작은아들 준석이는 
어머니인 신명희 씨가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자리를 뜨려고 할 때쯤에야 학원과는 
반대쪽 골목에서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보자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긑났어요. 엄마"하고 콧소리를 내면서 어며니와 팔장까지 끼는 것이, 평소 어머니와 
손 잡는 것도 꺼려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서 '정말 뭔가 있구나' 하고 짐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말을 잘못꺼냈다가는 오히려 준석이의 반발이 클 
것 같아 일단은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적정이 
되어 준석이의 학원 앞에 숨어서 며칠 동안 지켜보았는데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이 다 나가고 난 후 학원과 반대쪽에서 나와 친구들과 함께 태연하게 집 
쪽으로 가더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PC방을 다니는 것 같았다. 신명희 씨는 여러 가지 
사회적 경험이 많아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대처를 잘한 것 같았다. 나는 
신명희 씨에게 기회를 보아서 준석이 입으로 학원 대신 PC방을 다니게 된 사실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보라고 일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갑자기 태도변화를 일으키면 안 되며 평상시와 같이 침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럴 
때 아이는 어머니에게 들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머니의 태도가 조금만 변해도 미리부터 방어를 하개 된다. 
그래서 오히려 신경질을 내거나 자포자기하는 말투로 대드는 등 과잉대응을 
보이면서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신명희 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언제나 나와 
의논했고 내가 말한 대로 신중하게 대처해 준석이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그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준석이는 지금은 집애서만 컴퓨터 게임을 할 뿐 PC방에는 가지 
않는다. "이모, 엄마가 언제 제일 미운 줄 아세요?" "글세?" '뭐에 열중하고 
있는데 딴 거 하라고 말할 때." "예를 들면?" "컴퓨터 게일을 하고있는데 갑가지 
쫓아와서 공부하라고 말할 때." "그건 예현이가 공부를 제때 안 해서 엄마가 
걱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라니까요. 나한테도 다 계획이 있는데 갑자기 열심히 
하는 일을 방해하니까 화가 나는 거죠." "그럼 공부할 시간을 미리 정해두었단 
말야?" "그럼요. 그 게임만 끝나면 할 생각이었단 말예요." "그래도 게임에 푹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잖아. 공부부터 하고 난 다음에 게임을 하면 엄마가 
간섭 안 했을 거 아냐?" "공부하라는 말뿐만이 아니라니까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꼭 할 일이 생기면 중간에 나타나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신단 말예요." 대학교수인 여동생은 딸 예현이와 함께 지낼 시간이 없어서 
예현이는 주로 할머니와 지냈다. 그런데도 후일이나 방학 때 엄마와 함께 있으면 
이래라저래라 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투덜거린다. 아이들에게 요구사항이 있으면 
열주하고 있는 일을 방해하지 말고 그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특히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열주하고 있을 때 부모가 자주 방해하면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를 피해서 PC방으로 달아나게 된다. 아이들은 또래들이 즐기는 놀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왕따'가 된다. 아이들 말로는 컴퓨터 게임의 유행은 6개월을 주기로 
바뀐다고 한다. (닌자 거북이)나 (파워 레인저) (포켓 몬스터)처럼 세계를 
강타하는 대유행 게임도 3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아이들로 새로운 경향을 
쫓아가려면 바쁘다는 것이다. 사이버 서계가 팽창하고 정보화시대가오고 있는 이상,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은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억지로 막기보다는 자녀와 의논해서 일과 시간표를 조절하도록 여유를 주면 정해진 
일과와 게임하는 시간을 스스로 안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가신 질문을 계속할 때 

"엄마, 건널목은 영어로 워예요?" "인터섹션(Intersection)." "엄마, 다방은 
영어로 뭐예요?" "커피 숍(Coffee shop)." 내가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예측을 프로그램으로 제작해서 방송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히 
미래 예측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우리 아이들이 성년이 될 다음 시대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다소 지식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2000년대에는 
우리나라도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어실력이 
사회인의 필수조건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하긴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1980년대 초에 이미 영어공부 열풍이 세차게 불었기 때문에 나처럼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면 요란을 떨지 않더라도 부모라면 누구나 그 정도쯤은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두 아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말과 동시에 
영어도 가르쳤다. 집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에는모두 쩍지에 영어명칭을 써서 
풀로 붙여놓았다. 그 모습을 누군가 보았더라면 우리 집을 무당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나는 손님이 오는 날에는 부지런히 쪽지를 
뗐다가 손님이 돌아간 후에 다시 붙였다. 그 덕에 우리 집의 그 흉물스러운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그때 배운 영어는 생각이 안 나지만 엄가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여두었던 쪽지들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영어를 
함께 가르치는 동안 "엄마 코딱지가 영어로 뭐예요?" 하고 물어서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가뜩이나 질문이 많은 아이들인데 영어로는 뭐냐는 질문까지 해대는 바람에 
나는 종종 영어까지 가르칠 마음을 먹은 자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영어와 
우리말을 한꺼번에 배우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질문이 많았다. 
"엄마, 추락이 뭐예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걸 말하는 거지." "그럼 
폭포가 떨어지는 것도 추락이에요?" 우리 아이들은 이런 식의 질문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든 적도 많다. 어린 자녀들이 매사에 꼬치꼬치 물으면 피곤하고 힘들 
때는 일일이 대꾸해주기 힘들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라는 말을 배우는가 
싶으면 어느새 보는 것마다 새롭고 궁금해서 "이거은 뭐예요?" "저것은 뭐예요?" 하고 
끝없는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친정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이 나만 보면 이처럼 
시시콜콜 질문을 해대자 "아이구, 이놈들아. 너희들 질문에 엄마가 다 대답을 
해주려면 엄마가 박사학위를 수십 개 받아야겠구나"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친정아버지는 아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딸을 구해주기 위해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나한테 물어라"라고 말씀하였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들은 철학과 역사 
이야기들은 우리 아이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는 
것마다 꼬치꼬치 물으면 힘들고 피곤해서 "몰라" "원래 그래" "엄마 지금 바빠, 
나중에 물어볼래?"라고 대꾸하는 경우가 많다. 또 요즘에는 부모와 자녀 간의 
세대차가 많이 나 정말 몰라서 대답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포켓 몬스터)라든가, 게임방이 뭔지 잘 모를 경우 자녀가 거기서 생긴 문제를 
얘기 할 때 속시원하게 답변해주기가 힘들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할머니가 
자녀를 맡게 되면 할머니는 컴퓨터 게임에 관한 새로운 기술용어를 몰라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할머니를 무시하고 부모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질문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직장일에 
시달리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퍼부어지는 아이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이들이 꼬치꼬치 물을 때에는 부모가 좀 
힘들더라도 꼬박꼬박 대답해주는 것이 좋다. 만약에 내가 알 수 없는 범위의 
질문을 한다면 "나도 잘 모르는데 우리 같이 한 번 알아볼까?"하면서 함께 책을 
찾아보건나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또 문헌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시범을 직접 보여줄 수도 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자녀들은 묻는 
것보다는 직접 자료를 찾는 것이 더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부모는 자녀의 질문공세에서 차츰 벗어나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새로 나온 
백과사전은 반드시 사주었고 한글을 깨우친 후부터는 직접 사전을 찾도록 했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것만 엄마가 답변하게 되자 일거리가 한결 줄어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한 습관 때문에 미국에 갈 때도 한글로 된 31권짜리 부리테니커 
백과사전을 챙겨 갔다. 지금은 CD로 된 백과사전이 나와 이동이 한결 편해졌다. 
자녀가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유난히 질문을 많다면 어머니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는 가족끼리 답변당번을 정하면 좋을 것이다. 
모든 질문애 어머니 혼자 대답해주는 것보다 다양한 답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녀에게도 좋다. 시간을 정해두고 몇 시부터 몇 시는 아버지가, 몇 시부터 몇 시는 
어머니가, 몇 시부터 몇 시는 할머니가, 아니면 기술적인 것은 아버지가, 친구관계는 
어머니가, 어른들에게 대한 불만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분담해서 
답변해주는 식이다. 미국에서 본 어머니들은 자녀가 아무리 꼬치꼬치 물어도 
귀찮아하거나 나중에 얘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주부들이 그들보다 
힘겹고 피곤하게 살기 때문에 매사를 그들과 비교하기는 어럽다. 그러나 호기심 어린 
자녀의 질문에 "이따 물어보면 안 되겠니?" "엄마 지금 바빠"라고 반응하면 자녀의 
호기심은 그 순간 사라져버리고 그와 동시에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도 사라질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을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을 나중에 다시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즉석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탐구심과 관찰력이 
길러지는 것이며, 이는 곧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발전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사귈 때 

"정말 속상해 죽겠어. 저렇게 지저분한 애를 허구한 날 
집으로 데리고 오다니." 박숙영 씨는 주방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외동딸인 
계영이가 오들도 산동네에 사는 석규를 델;고 왔기 때문이다. 한의사의 부인인 
박숙영 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계영이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집안 좋고 잘 
생긴 민수나 재민이 같은 남자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구네 집 아들인지도 
로를 남루한 차림의 석규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석규가 집에 오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지만 계영이와 사이만 나빠졌을 
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엄마, 석규는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사회숙제를 하기가 
힘들대. 엄마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말했잖아. 친구한테 컴퓨터 좀 
빌려주는데 그게 뭐가 나빠. 그리고 석규가 컴퓨터 공짜로 쓰자는 것도 아니고 
사용료를 500원씩 낸다잖아." 이렇게 말하는 계영이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 
반박할 수가 없었지만 박숙영 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석규가 계영이를 따라 집에 
드나드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 때문에 석규에게 "아버지는 뭐하시니?" "사는 
동네는 어디니?" "공부는 잘하니?" 하며 석규의 자존심이 상할 만한 질문도 서슴지 
핞고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계영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펑펑 울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엄마는 정말 잔인해. 석규네 아빠는 돌아가셨는데 왜 석규한테 아빠에 
대해서 물어가지고 석규를 화나개 하는 거야? 이제 우리 집애 안 온대"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석규는 집이 가난했지만 힘이 세고 아는 것이 
많아서 만약 석규에게 밉보이면 계영이는 학교에서 '왕따'가 될 수 있었다. 석규는 
자기네 집에서 가까운 계영이 집에서 컴퓨터를 빌려쓰고 싶다고 했고 계영이는 석규와 
유난히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한 아이들의 세계를 
모르는 박숙영 씨는 "계영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석규 아빠가 돌아기신 줄 
몰랐잖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란 말야" 하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런데 왜 같은 
질믄을 계속하느냐구." 계영이는 울움을 터드렸다. 그후부터 계영이는 꽤 
오랬동안 어머니와 눈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언니, 정말 신경질 나 죽겠어." 
"아니, 왜?" "태영이가 이상한 계집애를 집에 데리고 왔어." "이상하다니?" "몰라, 
앉을 때도 치마가 홀랑 뒤집어지게 앉고 냉장고를 제 마음대로 뒤지는 여자애를 
친구라고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 있지. 오늘이 처음이 아냐." 사촌인 재옥이가 모처럼 
전화를 건 나에게 이러한 푸념부터 늘어놓았다. "얘는 아직 어린애들인데 뭘 그래?" 
"어리긴 뭐가 어려. 벌써 초등학교 졸업반인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애가 얼마나 
교양 없이 자랐으면 남의 집에 와서도 그렇게 행동을 하겠어?" "그래도 태영이는 그 
애가 좋은 모양이지, 뭐." "언니는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거야? 언니도 당해봐. 
얼머너 속상한지 알아? 내가 태영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여자애들이랑 논단 
말야? 옛말에도 애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잖아. 친구를 잘 사귀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언니. 게다가 우리 태영이는 남자애고 그 애는 여자애잖아." 재옥이는 
지금까지 참았던 화풀이를 나에게라도 하려는 태세였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공부 
잘하고 집안도 좋은 친구와 사귀기를 원한다. 아니면 적어도 수준이 비슷한 친구라도 
사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성적이나 집안을 따지며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때문에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아이들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부모로서는 또래의 아이들끼리는 많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의 기준에 미달되는 친구를 사귀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와 친하거나 집에까지 데리고 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간섭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잘못하면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간섭하려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한다. 또 요즘 애들은 
예전처럼 친구와 죽고 못살만큼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드물다. 친구라 해서 무조건 
좋아하거나 붙어다니지도 않는다. 물건을 빌려도 돈 주고 빌려주는값을 계산한다. 
석규가 계영이네 집에 가서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이용료를 내는 것처럼 친구에게 
물건을 빌리면서 이용료를 내는 것처럼 친구에게 물건을 빌리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다. 딱지놀이를 하면 딱지를 많이 단 아이가 즉석에서 
친구에게 팔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서구의 합리주의와 상업주의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친구도 부모가 생각하듯 심각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 자녀가 친구를 집으로 데려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모 식으로 지레짐작해 지녀의 친구관계를 섣부르게 간섭하면 
해결은커녕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상업주의가 팽배했다고 해도 
어린아는 순수하기 때문에 배우운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친구가 
가난하거나 집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부모가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부모를 
속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속물 근성을 부끄러워 한다. 또 요즘에는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사춘기가 온다고 한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초경을 경험하는 여학생들과 몽정을 경험하는 납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다. 가뜩이나 사춘기가 오면 부모를 멀리하고 싶어하는데 만약 부모가 
속물근성을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면 심하게 반발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자녀가 
부모의 마음에 들지않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해서 그 아이의 지존심을 
상하게 하면 부모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두 아이가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기도 
한다. "승연아. 크리스는 괜찮은 애니?" 미국에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 
아이들이 어느 날 험상굿게 생긴 흑인 친구 한 명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크리스라는 그 아이는 땅에 질질 끄리는 펑키 바지에 부대자루 같은 웃옷을 입고 
있었다.게다가 목에는 쇠사슬을 걸고 치렁치렁 늘어지는 귀골이도 했으면 걷는 것도 
춤을 추는 것처럼 건들거렸다. 나는 설마 우리 애가 그런 친구를 사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무척 놀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저 애 총 가지고 다니는 
애는 아니니?" 하고 물었다. "아이구, 참 엄마도. 그런 애라면 제가 같이 
놀겠어요? 보기는 저래도 착한 애예요"라고 말했지만 왠지 마은이 놓이지 않았다. 
그후로도 두어번 크리스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집에 왔다. 우리 아이들은 크리스가 
학교에서 춤을 가장 잘 추는데 자기들이 그 아이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는 대신 
춤을 배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했지만 크리스가 우리집에만 
오면 요란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우리집에 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섣불리 말을꺼냈다가는 아이들에게 핀잔이나 받을 것 
같아서 묘안을 짜야만 했다. 그러던 중 동네에 큰 비가 내리더니 1층인 우리집 거실 
입구까지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직했다. 현관바닥의 방수 공사가 오래되어 물이 
새어드는 것이어서 고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는 
원한다면 동 호수를 바꾸어 주겠다고 햇다. 결국 계획에 없던 이사를 하게 되었다. 
미국은 노동력이 워난 비싸기 때문에 집을 고치거나 이사를 할 때 웬말하면 일꾼을 
부리지 않고 직접 한다. 아이들도 일꾼없이 우리끼라 이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각자의 운동기구에다 책상 컴퓨터 등 무거운 짐이 너무 많아 우리끼리 아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그 중에는 
크리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차림의 아이에게 짐을 나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우기는 바람에 승낙하고 말았다. 크리스는 그날 하루종일 춤추듯 걸으며 
이삿짐을 거뜬하게 날랐다. 다른 애들은 힘들다고 중간에 쉬거나 가버리기도 했지만 
크리스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쉬지않고 열심히 짐을 
날랐다. 크리스가 돕지 않았다면 이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 아이의 성품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 크리스가 집에 
오는 것을 못마땅해한 사실이 미안해졌다. 그후 내가 마음을 바꾸어 크리스가 집에 
방문할 때면 갈비나 잡채를 해서 먹고 가라고 붙들기 시작했다. 우수운 것은 내가 
친절해 지자 우리 아이들이 크리스에게 유난히 친한척 하던 태도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내가 크리스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혹은 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줄 말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유난히 감쌌던지 그후로부터는 오히려 
크리스를 덤덤하게 대했다. 내가 호들갑스럽게 크리스를 반기면 "엄마는 크리스가 
그렇게더 좋으세요?" 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후부터 나는 아이들이 내 마음에 
들지않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도 일단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그 친구에 대한 장점은 물론 단점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아이들이 친구의 단점을 이야기 힐 때면 "그러니깐 거리를 좀 둘 
필요가 있겠지?" 라는 말로 쐐기를 박아두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와 친하거나 집에 자주 데리고 오면 그 아이들 내 자녀보다 더 잘 대해줄 
필요가 있다. `아니? 우리 엄마가 혹시 나보다 저 애를 좋아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은 독점욕이 강해서 그 친구와 자연히 거리감을 두게 될 
것이다. 무턱대고 반대해봐야 자녀들은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 북풍과 해님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로 한 내기에서 이긴족은 차가운 바람을 불어댄 북풍이 아니라 
햇살을 내리쬐던 따뜻한 햇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으로 성적인 호기심을 나타낼 때

"언니, 어떡하면 좋아? 글세 우리 주연이가 거실에 앉아서 
고추를 가지고 놀지 뭐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또 그런 
짓을 하면 혼내 준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겁을 내더라고.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나 안보이는 데 숨어서 그러는 거야. 누나방에도 가서 그러고 서재에서도 그래. 
그래서 주연이가 그러는 것을 보고도 아는 척도 못 했어." 부잣집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산다고 소문난 학교후배 영은이가 10년정도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고민이 있다며 
전화를 했다. 영은이의 고민은 이제 겨우 여섯 살 밖에 안 된 막내아들 주연이가 
어느 날 부터인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하고 남편의 각별한 보호 속에서 전업주부로 15년을 평온하게만 살아온 
영은이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 이었다. 영은이는 성격이 꼼꼼하고 깔끔해서 
집안이 반들반들햇다. 영은이네 집 거실에 들어가면 순간 내가 마치 여성잡지의 
화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처럼 집안 곳곳에 책과 종이더미를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살던 사람에게는 그러한 집 모양새가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그토록 정돈이 잘 된 집 모양과는 달리 영은이는 나를 만나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한숨부터 길게 내 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주연이가 별난 건 아냐. 
다섯 살, 여섯 살 난 애들 중에도 그런 애들이 제법 많아." 라고 말해 주었지만 
막무가내였다. 하긴 은영이의 말을 들어보느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바도 
아니었다. 영은이는 결혼 후 중학교 1학년과 3학년인 딸을 둘 두었다. 영은이 
남편은 부친의 금융사업을 이어받아 직접 운영해 형편은 넉넉했다. 그 때문인지 
영은이 남편을 나이가 들수록 아들타령이 잦아졌다. "재산은 누구에게 물려주나?" 
하며 한숨까지 쉬는 날이 많았다. 영은이는 아들은 낳지 못한 것이 마치 자신만의 
잘못인 것 같아 기를 피지 못했다. 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친척들은 아들 
타령하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 아들을 밖에서 낳아가지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하나 더 
낳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은이는 남들 말에 잘 넘어가는 성격은 아니었자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하는 바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영은이 부부는 둘 
다 임신방지를 위한 수술은 받지 않았기 때문에 피임만 안 하면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영은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정말 우연히도 아기가 들어섰고 태어난 
것이 주연이었다. 영은이가 마침내 아들을 낳자 그녀의 남편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즐거워했다. 자연 주연이라면 끔찍하게 위해주었다. 영은이는 주연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엉덩이를 제대로 닦았는지 검사를 하고 괜찮은데도 다시 
닦아주었으며 옷에 먼지가 조금맘 묻어도 옷을 갈아입혔다. 주연이는 항상 진열장에 
놓인 마네킹처럼 멋진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녔다. 자연 마음놓고 땅바닦을 뒹거나 
뛰놀 수가 없어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가 없었다. 어머니 하고만 보내는 시간이 
다른 애들보다 훨씬 만았다. 영은이는 그 깔끔한 성격 때문에 파출부 아주머니에게만 
집안일을 맡기지 못하고 집안 청소다 빨래다 점검을 하느라 주연이와 같이 놀아주지 
못해 주연이는 혼자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연이는 심심했다. 그러나 영은이는 그 
문제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많가 때문에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인다. 어머니들이 아기 돌보기를 힘들어 하는 이유도 아이들이 움직이는데로 
쫓아다니기가 힘들기 때문인 것 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들은 마음놓고 뛰놀지 
못하게 하면 에너지 방출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에너지를 방출할 출구를 찾게 된다. 
아기가 외롭거나 마음놓고 뛰놀 수 없을 때 나이에 관계없이 자위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천재는 성에너지 왜곡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머리가 좋다기 보다 성에너지가 성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학문쪽으로 붑출된 결과라는 것 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1900년대 초기에 
어린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교육하는 시험학교를 운영했던 서머힐 학교에서 여섯 살 
난 어린이가 자위행위를 하자 교사가 지켜보면서 "재미있니? 다 끝났어?" 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누어 그 아이가 성적으로 외곡되지 않도록 교육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 내용은 책으로 발간돼 우리나라에서도 교육 관계자는 물론 
교육학 전공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온실속에서만 실아온 
영은이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아니, 이게 뭐야. 
발가벗은 여자 아냐? 무엇 때에 이런 걸 그린 거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 
서미영씨는 달 지수의 방청소를 하다가 지수가 숨겨둔 비밀상자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지수가 여러 가지 모습의 여자 나체를 그려놓은 그림을 보게 되었다.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울화통부터 터트렸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지수가 어른들이 
보기에더 외설스러운 여자 나체를 그려놓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되었던 것 이다. 지수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무릎을 꿇라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지수는 부끄럽고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 어머니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자 지수 역시 화가 나 어머니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남의 물건을 뒤지는 거야?" 지수는 오히려 화를 내며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밖에 안된 녀석이 글세 컴퓨터 음란 사이트에서 그림을 모아다가 
저장을 해 놓았지 뭐에요? 화가나서 그냥 다 지워버렸지요.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그날 저녁부터 슬슬 나를 피하는 거에요." 회사 남자 후배 한 사람이 우연히 점심을 
같이하게 된 자리에서 이와 같은 하소연을 했다. 그 후배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아들 녀석이 괘씸해 죽겟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야, 임마, 이리와 봐. 아빠랑 말좀 
하자, 하고 꽁무니를 빼는 녀석을 불렀지요. 그랬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달아나 
버리는 거에요. 워낙 회사가 바쁘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녀석이랑 마주 칠 일이 
없어서 며칠 못 만났지요. 그런데 그날 이후 이 녀석은 아빠만 만나면 문을 쾅 닫고 
눈을 위 아래로 흘기는 거예요. 뭐 뀐놈이 성낸다고, 나 원 참."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사춘기를 맞는다는 말을 앞에서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예현이는 “우리 또래 남자애들은 몸이 근질근질한가 봐요. 길을 가다가 
괜히 쓰레기통을 발로 차 깨트려버리기도 하고 나무에 몸을 대고 비벼대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게다가 물질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성의 상품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성행위나 성적자극을 느낄수 있을 만한 영화, 
비디오, 인터넷 화면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폭력과 돈, 섹스가 
주축을 이룬다. 게다가 미국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영화등급은 섹스 장면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의 강도가 기준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도 반드시 섹스 장면이 있으며 아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관람한다. 그러한 
헐리우드 영화를 우리의 어린이들도 열심히 본다. 요즘에는 인터넷 음란 사이트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들도 손쉽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린이들의 주변이 포르노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들은 
부부끼리 포르노비디오를 보고 방치해 아이들도 여과 없이 보기도 한다. 성교육강사 
구성애씨는 이러한 포르노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살펴보면 
완전한 포르노 퇴치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접촉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초등학생들 간에도 “아무개는 결혼한다더라”라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번지고 있으며 어떤 여자 어린이들은 ‘H.O.T'의 멤버들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한다. 부모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자녀들은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자녀를 데리고 온 한국인 부모와 자녀 간에 이러한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미국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댄스파티를 연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 부모들은 ‘댄스파티’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껴 
자녀들에게 그곳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한다. 학교 댄스파티는 남녀학생들이 
끌어안고 춤을 춘다고 해서 어른들이 생각하듯 음란한 파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 따라서는 댄스 대신 스쿼시나 테니스같은 운동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교를 위한 행사가 ‘댄스파티’인 것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실을 
옮겨다니며 과목별 교사들한테 수업을 받기 때문에 친구들을 시귀기가 어렵다. 따라서 
댄스파티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인 부모들은 
무조건 참석을 막으면 안된다고 믿어 참석하고 싶어하는 자녀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춤의 열풍이 불어 테크노댄스니 D.D.R.(컴퓨터 
댄스 게임)이니 해서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춤추는 것이 별나게 보이지 않아 
그런 갈등은 많이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적인 문제로 겪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아이들은 성과 관련된 문제를 어른들의 기준으로 
평가해서 호들갑을 떨면 부모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눈을 속이기 위한 보안을 짜내면서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자녀가 
성적인 호기심을 나타내면 부모는 가능한 한 담담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고추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니?” “네.” “그럼 가지고 놀아. 그런데 엄마 앞에서만 
가지고 놀아. 보기에는 흉하거든.” “뭐가 흉한데요?” “생각을 해봐. 엄마가 
사람들 보는 데서 너처럼 고추를 가지고 놀면 보기 좋겠어?” “아니오.” “그것봐. 
엄마는 네가 어떤 놀이를 해도 밉지 않은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 한 
아동심리학 교수가 유치원때 자위행위를 하는 딸과 주고 받았다는 대화다. 그 집 딸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던 유치원 때 1년 정도 자위행위를 하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친구가 많아지면서 그 버릇이 없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때쓸때 

“요즘 부모는 애들이 사달라는 것은 다 사주잖아요.” “그래서 없는게 없지요.” 
“아이구, 말씀도 마십시오. 애들이 새 게임이나 장난감이 나오면 어찌나 졸라대는지 
안 사주고 배길 수가 없지요. 텔레토비가 유행하는가 했더니 이제는 포켓 몬스터가 
나왔잖아요. 그런 게 나오면 어디 한두 가지만 나오나요. 게임 나오지, 만화 나오지, 
카드다, 과자다 헤아릴 수도 없어요.”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인 아들 둘을 둔 
대학교수 한 분이 사석에서 요즘 아이들에 대한 말을 하게 되자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집은 아이들 방이 장난감으로 다극 차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수가 적기 때문에 자녀들이 원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사주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이들 고집을 꺾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서 그냥 들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이 그러한 부모를 고마워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일 수 있다. 
사람은 열 번 잘해주다가 한 번 잘못해주면 그 한 번 잘못해준 일만 기억하기 
마련이어서 어쩌다 한번 부모가 자기 마음을 거슬리게 하면 두고두고 기억한다. 또 
부모가 원하는 것을 척척 사주면 자녀의 경제관념도 흐려진다. 돈은 쉽게 벌수 있고 
쉽게 써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원주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의 아동 상담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했다. 부모들이 자녀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못할 때 전화를 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국립원주대학 학장이 되신 당시 원주전문대 유아교육과 최한수 교수와 
오랫동안 그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했다. 그 분은 40대중반에 석사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게 된 분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페스탈로치 못지 않았다. 그 분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시장구경을 많이 시켜주라고 일러주었다. 
시장은 온갖 새로운 물건이 쌓여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 분의 조언을 많이 들었다. 따라서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큰 아이 창연이가 네 살때였다. 큰아이는 유난히 퍼즐이나 레고 맞추기, 자동차 
놀이 등을 좋아했다. 새로운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한번은 시장 안에 
있는 양품점 골목을 지나다가 진열장의 마네킹 발 밑에 엄지손가락만한 외제 모형 
자동차가 진열돼 있는 것을 발견하자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앞에 서서 자동차를 
구경했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엄마, 저 자동차 
사주세요.” “엄마 지금 돈 없어.” “사주세요.” “그리고 저건 파는 것도 
아니야.” “사아주우세에요.” “안 된대도.” 아이는 길거리에서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럼 여기서 울고 서 있을래? 엄마는 갈건데.”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그럼 엄마는 간다.” 나는 그 자리를 피해 몸을 숨겼다. 
아이는 아예 자리에 앉아 다리를 뻗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30분만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는 30분 가량 울고 난 후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일어서서 두리번거리며 날 찾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서야 아이 앞에 
나타났다. “어떡할래? 엄마랑 같이 갈래? 여기서 계속 울래?” 내가 다시 묻자 
아이는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았다. 그날 이후 우리 아이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말할 때 “엄마 다음에 봉급타면 사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버릇은 계속되어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필요하긴 한데 나중에 
사주세요”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도록 해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싶은 의욕을 잃게 돼 성인이 된 후에도 열심히 살려는 
의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아이의 유치원 친구였던 상훈이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상훈이 어머니는 수예점을 했는데 솜씨가 좋아 
형편이 넉넉했다. 그래서 상훈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주었다. 한번은 
유치원 자모들이 제과점에서 만나 아이들 재롱잔치에서 하용할 케이크를 사기로 했다. 
어머니를 따라온 상훈이는 어머니에게 커다란 생일 케이크를 사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안 된다고 하자 진열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더니 그 케이크를 손으로 주물러 놓았다. 
상훈이 어머니는 당황하며 그 케이크를 샀다. 온갖 응석을 다 부리면서 자란 상훈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빼먹고 놀러다니더니 고등학교 때 가출해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만난 데이몬의 어머니 애실리는 그런 점에서 지독했다. 애실리 
부부는 우리 동네에서 잘 알려진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녀에게서 데이몬이 어렸을 때 
자전거를 샀던 이야기를 듣고 만은 것을 배웠다. 데이몬이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었다. 네이몬은 아주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무척이나 타고 싶어했다. 자전거를 
사려고 용돈을 꼬박꼬박 저축했다. 부모가 도와준 적은 없었다. 이웃집 잔디를 깎거나 
이웃집 아저씨 자동차를 세차해주고 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모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신문에서 중고 자전거 광고를 열심히 찾아 간신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 자전거는 형편없는 고물이었지만 데이몬은 매일 
자전거를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면서 새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학교 다녀오면 
자전거부터 살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몬이 그렇게도 아끼던 자전거가 없어졌다. 
도둑을 맞은 것이다. 데이몬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애실리와 
그녀의 남편은 데이몬을 위로하기 위해 새 자전거를 사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벌로 벌금을 물도록 했다. 데이몬은 다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금을 물고 새 자전거를 살 돈을 저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자전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데이몬은 두 번 다시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성능 좋은 열쇠도 같이 샀다. 이 과정을 통해 데이몬이 
물건을 아끼고 관리할 줄 알게 된 것은 물론이다. 한 교민이 우리 동네에 살다가 
시카고로 이사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집을 비워놓더라도 집주인이 잔디를 깎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 집으로 오는 우편물도 챙겨서 각종 세금을 내야 한다. 누군가 
잔디를 깎고 집을 돌보아주고 우편물을 새 주소로 보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집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친구인 폴에게 그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미국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 
집에서는 이웃집에 사는 폴에게 그 일을 맡아주면 일주일에 20달러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너무 돈을 많이 주면 그러한 아르바이트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 집에서는 1주일에 5달러씩 주기로 하고 집안 
돌보는 일을 맡기게 되었다. 폴의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폴에게 1주일에 20달러씩은 
너무 많은 돈이며 그 돈이 폴을 망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교민가족들은 그 
일을 두고 “정말 미국 어머니들은 대단하더군요”라고 말했다. 돈은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행복을 주는 신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 노력할 힘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얼굴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때 부모가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것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말해야만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를 수 있다. 당장 귀찮고 어렵다고 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더 자란 
다음에는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안 된다고 할 때에는 끝까지 버텨야 
한다. 중간에 고집을 꺾으면 버릇이 들어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절대 승복하지 않게 
된다. 


용돈을 올려 달라고 조를때 

“용돈을 어디에 쓸려고 올려 달래? 엄마가 다 해주잖아.” 
“그래도 쓸 데가 많단 말야.” “글쎄, 그게 뭐냐니까?” “나처럼 용돈 
적게 받는 애가 있는 줄 알아?”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무슨 돈 쓸 일이 
그렇게도 많아?” “엄마가 준비물도 안 챙겨주면서 뭘 그래?” 경원이와 어머니는 
툭하면 용돈 때문에 줄다리기를 벌인다. 경원이 어머니는 공직자의 아내로 그야말로 
콩나물 값도 깎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알뜰주부였다. 그에 비해서 경원이 아버지는 
호기 있고 씀씀이가 커서 직장동료는 그를 통 큰 사람으로 불렀다. 경원이 어머니가 
알뜰하게 굴지 않으면 살림유지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외동딸 경원이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뭔가 사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 늘 용돈이 
부족했다. 경원이 어머니는 그러한 경원이의 생활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는 
남편이 돈을 잘 써서 속썩이는 것도 견디기가 힘든데 애까지 그렇다며 노골적으로 
싫어하기도 했다. 경원이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올려받기 위해 여러 가지 꾀를 
생각해내곤 했다. 어머니 대신 설거지를 해놓으며 아양을 떨기도 하고 통하지 않으면 
생때를 쓰거나 손님이 올 때를 노려 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평소에는 인색하던 
어머니들도 급히 외축을 해야 하거나 손님이 오면 바쁘거나 민망해서 얼른 돈을 
주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에 
용돈을 올리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용돈을 
주는 일에 대해 뚜렸한 주관을 갖고 있지 않고 무조건 올려줄 수 없다고 거절하거나 
무조건 원하는 대로 다 주면 자녀들에게 바른 경제관을 심어줄 수 없게 된다. “지난 
휴가 때 우리는 호숫가에 집을 얻어 아이들과 함께 한달간 지내다가 돌아왔지요.” 
미국에 있을 때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미셸어머니 뎁은 휴가를 맞아 북부 미시간 
트레벌 시에 있는 호숫가 옆에 있는 렌치 하우스를 한 달간 빌려 가족과 수상 스키를 
타며 즐기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미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미셸의 동생 릭은 
2학년이었다. 미시간 주립대 교직원인 뎁은 휴가에서 있었던 즐거웠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갑자기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뎁은 휴가 동안 아이들에게 완전히 
살림을 맡긴 적이 있다고 한다. 4주동안 네 가족이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살림을 
책임지기로 했는데 누구나 동일한 생활비로 예산을 세워 식품조달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했다는 것이다. 릭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원하면 누나인 미셸과 공동작전을 
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한 주는 GM자동차 공장의 매니저인 아버지가, 한주는 
뎁이 그리고 두 주 동안은 아이들 둘이서 공동으로 살림을 맡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와 같은 제안을 재미있어 하며 기꺼이 응했다고 한다. 남매는 휴가 가기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면 돈이 모자라서 안 
돼.” “그럼 아침 식사는 무조건 오트밀로 할까?” “아빠가 오트밀을 
싫어하시는데.” “그럼 아빠만 콘플레이크로 하도록 작은 것 한 통만 사자.”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이 좋잖아. 바나나가 싸니까 하루에 1킬로그램씩 사고 비싼 
야채는 사지 말자.” 아이들은 신문광고에 나온 식료품 가격표를 보면서 식단과 
예산표를 짰는데 그것이 어른들 못지 않았다. 아이들이 식사 당번을 하는 두 주일은 
가족들 모두가 거의 영양실조를 간신히 면할 정도로 소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뎁은 
아이들에게 식사를 책임지는 대신 예산을 적절하게 짜면 남는 돈은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라며 괜히 그런 제안을 했다가 배고파 
혼났다며 웃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살림을 맡아서 해본 후부터는 지독한 
구두쇠들이 되어 단돈 1페니라도 계획을 세워 사용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서울에 혼자 남아 있던 남편이 의논할 일이 
있다며 급히 다녀가라고 하는 바람에 아이들만 두고 서울에 다녀와야 했다. 나는 뎁과 
몇 명의 교민친구들에게 응급상황이 오면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아이들에게 
은행 신용카드와 수표 등 남은 돈을 모두 맡기고 서울로 왔다. 나는 서울에서 
일주일을 머문 후 랜싱으로 돌아간 다음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일주일간의 식단을 
짜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식사를 해결했으며 집안청소도 내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말을 들은 내 친구들은 10대 아이들에게 
재산을 몽땅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나는 다음해에 두 아이만 미국의 아파트에 두고 서울로 나와 우리나라의 
대학원에 다시 입학하고 사업도 시작할수가 있었다. 이국 만리에 10대 아이들만 
떼어놓고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아이들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응급상황을 위한 비상연락망만 잘 가동이 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 예측은 맞아 떨어져서 그후 우리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숙식을 해결하며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에 입학한 후 기숙사로 옮겨 완전히 혼자 살아가고 있다. 
“고모한테만 살짝 말해봐. 용돈을 주로 어디에 쓰나?” “과자 사먹는데요.” 
“엄마가 만들어주지 않니?” “그래도 사먹는 것이 맛있어요. 돈이 있으면 가끔 
친구들한테 사줄 수도 있잖아요.” “준비물 살 돈도 필요해요.” “엄마가 다 
챙겨주는데도?” “다 챙겨주시지는 않아요. 그리고 내가 직접 사는게 좋아요.” 
용돈을 올려받기 위해 어머니에게 아양도 떨어본다는 조카 태호는 용돈 사용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직접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친구들에게 인심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어른의 사교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지나치게 인색한 용돈은 자녀의 사교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대전에 사는 조카 
예현이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반 해철이는 병원집 아들인데 가끔 친구들한테 돈을 
나누어 줘요. 동전을 잔뜩 들고 와서는 땅에다 뿌리면서 가질 사람 가지라고 해요.” 
“해철이는 반 애들에게 인기가 좋겠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돈 줄 때만 
좋아하지요.” 이처럼 지나친 용돈은 아이들의 사교생활을 망치기도 한다. 용돈을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에게 미리 예산서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예산을 
세울 때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용돈을 올려주는 
것이 좋다.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이 방법을 사용했는데 대학에 다니는 
지금은 예산 세우기가 생활화되어 부모에게 용돈을 올려 받으려면 당연히 예산서를 잘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오히려 어머니가 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며 눈을 흘길 
때가 있다. 아이들이 용돈을 올려달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화를 내거나 
“어린애가 무슨 쓸 돈이 그렇게 많아?”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돈을 어디에 씨低鍛求?초등학생인 폴에게 1주일에 2幣玖?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사주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이들 고집을 꺾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서 그냥 들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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