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일러두기
1. 본서는 <장자> 3편 33장을 완역하되, 종래 위작이라고 지적되어온 <외편>, <잡편
>에서 부분적으로 무잡한 구절을 골라 제외함으로써 장자 사상의 적확한 이해를 꾀했
다.
2. 각 편과 장을 다시 의미에 따라 분절하여 평이한 현대문으로 역출했으며, 원문
및 해의를 달아 원의를 밝혔다.
3. 저본으로는 왕선겸의 <장자집해>를 썼고, 기타 제본을 참조했다.
해제
1. 장자의 생애와 시대 배경
장자는 장주를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장주의 저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 중국에
서 '자'는 '선생'이자 '선생의 말씀'을 뜻했기 때문이다.
장자는 노자와 함께 노장이라 불리기도 하고, 남화진인이라 존칭되기도 한다. 그것
은 그가 노자와 함께 고대 중국의 3대 학파 중 하나로 꼽히는 도가의 중심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특히 비실천적, 도피적, 방관자적 사상가라는 혹평 아래 경원되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 즉 얕은 지혜와 눈앞의 욕망, 입신 출세 따위를 조소하는 그 점 때문에
숭앙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단순히 세상을 버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생몰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사기>에 의하면 위혜왕(기원전 370--317년 재
위) 및 제선왕과 동시대인이라 한다. 또 학자에 따라서는 기원전 369--286년으로 추정
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연구가들이 <장자>에 나오는 역사상의 실존 인물과 전국
시대의 문헌을 비교함으로써 그의 생존 기간에 대한 고증 작업을 하고 있으나 앞의 것
과 큰 차이는 없다.
그의 생존시기는 이른바 전국 시대 중기로서, 춘추 시대 이래 약육 강식을 거듭하여
전국 칠웅이 중원의 패권을 다투던 시대다. <장자>에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이 단편
적으로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위왕은 무단히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니, 그 시체가 나라 안에 넘칠 지경이다.'(인
간세)
춘추 전국 시대는 급격한 변혁기였다. 후대의 한유가 말했듯이 천하를 혼란 속에서
건지려는 사상가들 탓에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질 겨를이 없고, 묵자의 굴뚝은 검어질
수가 없는' 다망한 시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상을 받은 것은 새로운 지배 계급
이고, 하층민들은 다시금 조여드는 속박 속에서 노예의 노예로 전락할 뿐이었다. 혼란
이 휩쓸고 간 그 황폐한 땅은 장자에게 누적된 반성과 실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염세적인 경향을 띠게 하였던 것이다.
장자의 출생지는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부근인 몽 땅으로서, 당시엔 송나라에 속해
있었다.
송나라는 주나라에게 멸망한 은나라 주왕의 서형, 미자를 시조로 오랜 문화를 지니
고 있었으나, 당시엔 한낱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임금 자리를 둘러싼 골육
상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물론 송나라에도 제환공의 뒤를 이어 천하의 패자가 되어보겠다는 야망을 품었던 양
공(기원전 649--636년 재위) 같은 임금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국력은 점점 쇠약해져
서 장자의 생존 시기에는 마침내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즉 송왕 척성은 아우인 언
에게 쫓겨 망명을 했고, 왕이 된 언은 제, 초, 위와의 싸움에서 거둔 일시적 승리 탓
에 걷잡을 수 없이 오만해져서 더욱더 미치광이 같은 짓을 할뿐이었다.
피를 담은 가죽 부대를 공중 높이 달아매 놓고 활을 쏘아 피가 쏟아지게 하고는, '
내가 하늘을 쏘아 이겼다.'면서 사람들에게 만세를 부르게 했다. 또한 주색에 빠져 정
치를 돌보지 않고, 이를 간하는 신하가 있으면 활로 쏘아 죽이는 짓거리를 자행했다.
그 포악 무도함 때문에 그는 '송걸왕'이란 별명까지 얻게 되고, 마침내 기원전 286년,
제, 초, 위 3국 연합군에 패하여 죽음을 당했으며, 나라는 이 3국에 의해 분할되기에
이르렀다. 장자는 이런 사실을 직접 보았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라도 들었을 것임
에 틀림없다.
장자의 경력에 대해서는 <사기>에 '일찍이 몽의 칠원 지방에서 관리 노릇을 했다.'
고만 간단히 전해올 뿐,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장자>의 <외편>과 <잡편>에는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지락)과 제자가 있었던 것(산목, 열어구)이 전해온다. 또
그의 가난함을 나타내주는 것으로는 감하후에게 돈을 빌리러 갔던 이야기(외물)와 다
떨어진 누더기 차림으로 위혜왕을 만나러 갔던 이야기(산목)가 있을 뿐이다.
전국 시대는 유능한 인재를 널리 필요로 하는 시대였다. 자신을 인재라 생각하는 사
람은 누구나 제후를 찾아가 자기의 사상을 토로했고, 제후들은 이런 인재들을 다투어
맞아들여 국력을 배양하려 했다. 그러나 장자는 이런 시대적인 움직임에 대해 어디까
지나 초연했다. <사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초위왕이 장자의 높은 명성을 전해듣고 그를 재상의 자리에 앉히려 했다. 초왕의 사
자가 후한 폐백을 가지고 찾아오자 장자는 웃으며 말했다.
"과연 금이란 돈은 대단한 것이며, 재상이란 벼슬은 가장 높은 자리일 수 있소. 그
러나 교제에 바쳐지는 소를 보시오. 여러 해 동안 맛있는 먹이를 먹고 비단으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제단으로 끌려가고 마오. 그때 가서 들판을 생각해보아
도 이미 때는 늦지 않겠소? 모처럼 편히 살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지 말아주시오. 나는
자유를 속박당하느니 차라리 시궁창에서 놀고 싶소. 관리 따위는 질색이니 내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시오."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어쨌든 간에 그가 명리를 하찮게 보았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는 제후들 밑에서 벼슬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했다. 당시 제위왕이 천하의 학자들
을 불러모아 학술연구원을 만들었던 직하의 학원에도 나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민본주
의 사상을 내세우며 천하의 제후들을 살인자라고 비난했던 맹자도 이 직하 학원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데 반하여 장자가 직하 학원을 찾아간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자가 천하의 학자들과 전혀 무관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당시 직하에
서 넉넉한 생활을 보장받고 있던 학자들은 종래의 실용과 실천을 목표로 한 학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를 꾀하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
었다. 송연, 윤문, 전병, 신도 등은 직하에서 자라난 학자들로서 뒤에 도가라 불리었
는데, 이들의 사상이 장자의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장자와 직접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혜자(혜시)뿐이며, 그의 이름은 <장
자>속에 자주 나온다. 전국 시대 변론술의 발달은 마침내 일종의 논리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혜자는 그 대표적 인물로서 명가라 불리는 논리학파에 속해 있었다. 혜자는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장자>에 그가 내세운 명제가 실려 있다. 가령 '해는 한낮
이 되면 곧 기울고, 만물은 생겨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혜자의 말은,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제물론)는 장자의 말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
다.
<장자>에는 장자가 혜자의 무덤 앞에서 좋은 의론 상대를 잃은 것을 탄식하는 이야
기(서무귀)가 나온다. 그러나 장자는 혜자가 혜왕 밑에서 재상 노릇을 하는 것을 못마
땅하게 생각한 것 같다. <장자>속에 나오는 혜자가 장자와 의론을 교환할 때마다 항상
곤경에 몰리고 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장자는 시류에 초연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나갔다. 따라서 그의 처세 방식과 사상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2. <장자>의 구성 및 성립 과정
<장자>는 의론문과 우화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 6만 5천여 자, 33장에 이
르는데, 이것은 <내편> 7장과 <외편> 15장, <잡편> 11장으로 되어 있다. <내편>의 각
장 제목은 그 주제에 따라 붙여져서 장의 제목 자체에 뜻이 담겨져 있으나 <외편>과 <
잡편>은 별의미 없이 첫머리에 나오는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이런 점이 내용, 문
장과 더불어 각 장의 성립 연대를 밝혀내는 근거가 되고 있다. 각 장의 세목은 다음과
같다.
<내편>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외편> 변무, 마제, 거협, 재유, 천지, 천도, 천운, 각의, 선성, 추수, 지락, 달생,
산목, 전자방, 지북유
<잡편> 경상초, 서무귀, 측양, 외물, 우언, 양왕, 도척, 설검, 어보, 열어구, 천하
지금의 <장자>는 진나라 곽상이 주석을 가하면서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4세기). 이
보다 앞서 기원 1세기에 간행된 <사기>에는 '장자 10여만 글자'라고 씌어 있으므로,
전해지는 것보다 4만 자나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사기>보다 2세기 뒤에 간
행된 <한서예문지>에는 52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내
용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지금은 다만 곽상이 간추려놓은 33만장만이 현존할 뿐
이다.
위진 시대에는 <장자>가 널리 읽혔다. 곽상 이외에도 27장으로 된 최선의 책과 26장
으로 된 향수의 책 등 여러 개의 산정본이 있었음이 <경전석문서록>이라는 책에 전해
지지만 이것 역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튼 원본 <장자>의 내용이나 그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달리 상고할 길이 없다.
다른 많은 선진 시대의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원저서가 후세 사람들에 의해 첨가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다가, 다시 간추려 편집되어 오늘에 전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장자>중 장자 자신의 손으로 씌어진 부분은 어느 곳일까? 여기에
대해서 송나라의 소식(동파)을 비롯한 많은 연구가들이 여러 가지 의론을 전개했는데,
<내편>중에서도 '소요유'와 '제물론'뿐일 것이라는 가정이 통설로 되어 있다. <내편>
은 일관된 사상 체계와 문장의 품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논어>나 <맹자>와 마찬가지로 <외편>과 <잡편>의 장 제목이 본문 첫머
리에 나온 글자를 따서 붙여진 것으로 미루어보아 <내편>이 오히려 <외편>이나 <잡편>
보다 후대에 씌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같은 <외편>과 <잡편>도 전부
가 후세 사람에 의해서 고쳐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과 일부만을 의심하는 설이 있어
일치되지 않고 있다. <외편>과 <잡편>에는 분명히 잡다한 사상들이 뒤섞여 있으며, <
내편>과 모순되는 것도 많다. 가령 <잡편> 중 '도척'에는 장자 본래의 사상과는 거리
가 먼 쾌락주의적인 요소가 농후하다는 점이 바로 그렇다.
또한 <내편>의 어떤 한 장을 풀이한 것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제물
론'과 '추수'의 두 장은 내용 면에서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살
펴볼 때 <외편>과 <내편>의 상당 부분은 후세 사람의 가탁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이다.
한편 <잡편>의 끝장인 '천하'는 당시의 온갖 학설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선진
의 여러 학술을 개론한 것이다. 이 부분은 한대 초기에 장자 학파에 의해 씌어진 것으
로 추정되는데, 당시 성행하던 각 학파의 진수가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어 선진 사상
연구에 중요한 문헌 자료가 되고 있다.
3. 장자의 사상
장자는 꿈 이야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눈을 돌려 꿈의 세계로 도피하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의 꿈 이야기 속에는 잠을 깬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냉철한 통찰이 담겨져 있어 인간의 지와 사물과의 관계를 추론하고 있다.
'지적인 인식은 대상을 얻은 다음에 비로소 확정되는 것이나, 대상이 되는 사물 자
체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대종사)
장자는 현상계의 본질을 변화 가운데서 추구한다. 만물은 한순간도 그칠 사이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변화한다. 장자는 모든 변화의 근원인 동시에 일체의 변화
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를 상정하여 '도'라고 이름 붙였다.
'도는.... 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마음으로 느껴 얻을 수는 있어도 감
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천지 개
벽에 앞서 존재했다. 귀신도 상제도 하늘도 땅도 그 연원은 모두 도이다.'(대종사)
도는 사물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다. 이 도를
가지고 사물을 보면 일체의 사물에 구별이 없어진다. 도는 원래 무한정한 것이므로 사
물의 구별도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는 무한정한 자연을 한정지으려 한다. 사물을 대비하고 분별하여
질서를 세우려 하는 것이 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사물을 분별해야 할
까?
'모든 존재는 저것과 이것으로 구분되나, 저것 쪽에서 말한다면 이것은 저것이고 저
것은 이것이 된다. 즉 저것이라는 개념은 이것이라는 개념과의 대비에서 비로소 성립
되며, 이것이란 개념은 저것이란 개념과의 대비에서 비로소 성립된다.....'(제물론)
인간의 판단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
은 지에 의지해 자기의 판단만이 옳다고 서로 맞서 싸운다. 이것이 지적 동물인 인간
의 비극의 뿌리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를 버리지 않는 한 이 비극의 뿌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지의 한계를 자각하고 지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사물의 차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다.
'진인은.... 만사를 있는 그대로 내맡길 뿐, 작위하려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슬퍼할 것도 없다.
자기 자신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 보고, 죽음으로 인해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지
에 의해 도를 해치지 않고, 인위로써 자연을 해치지 않는 생활 방식이란 바로 이것이
다.'(대종사)
자연 그대로의 인간인 진인은 장자가 그린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상이다. 사물을 차
별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생성 변화하는 외계의 사상에 무한으로
순응해가는 자유로운 정신이 바로 진지인 것이다. 지에 구속되어 자연에서 점점 멀어
져가고 있는 인간이 진인의 자재로운 경지에 도달하려면 자기 자신의 자연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도와 일체화한다.'는 말은 완전한 무아의 상태로 돌아가, 일체를 있
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장자에게 자유란 인간이 자기의 속박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도를
체득함으로써 현상계의 차별과 대립의 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인간, 즉 '주어진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자재로운 정신의 소유자'만이 참으로 자유로
운 인간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쓸모없는 것일수록 인위와의 관계는 멀어져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다. 인간이 그
어떤 것의 도구도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어야만 천수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육체가 쓸모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편안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 하물며 재덕이
쓸모없는 인간이 천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인간세)
<사기>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장자의 학문은 노자에 기초를 두고, 공자의 무리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사마천 당시부터 '유가를 조롱하고 인간의 노력을 부정한 사상가'
라는 인상이 강하게 박혀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세속적인 권위나 가치관에 대한 장자의 비판은 달리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철저하여, 공자가 죽은 뒤 형식화해버린 유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그러나 장자가 유가의 시조인 공자 그 개인을 부정한 것일까?
공자는 <장자>속에 가장 빈번히 오르내리는 인물이지만 정면으로 통렬한 비판을 받
은 것은 겨우 몇 군데 뿐으로, 대부분의 경우 '아직 도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인간'으
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문장 가운데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명의 존재를 뻔
히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버리지 못하는 공자에 대한 깊은 공감
이 엿보인다.
장자를 유가 출신으로 보는 견해는 바로 이런 점에서 연유한다. 장자의 사상에는 공
자와 마찬가지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제물론'에 양행이라는 말이 있다. 일체의 모순과 대립이 모순한 채 긍정되고 대립
된 채 의존한다는 무한히 자유로운 경지를 의미하는 말인데, <장자>는 바로 이를 바탕
으로 씌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장자>에는 견실한 사변과 분방한 공상, 신중한 몸
의 보호와 함께 몸을 내던지는 자기적인 도약 등 온갖 대립적인 요소가 한자의 오묘한
뉘앙스 속에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이처럼 독특하고도 양의적인 필체가 <장자>의
구성에 시적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로 정한 이래 도가의 모든 학파들은 한 때 세력을 잃고 회남왕
유안 밑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에 그들이 지은 <회남자>란 책은 내
용 또한 <장자>와 흡사하다.
<장자>가 일반적으로 널리 읽히게 된 것은 위진 시대(3세기)에 들어와서부터였고,
노자와 장자를 합쳐 '노장'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후로 <장자>는 유
가의 경전이 공식적인 학문으로 인정받는 이면에서 많은 독자들을 얻게 되었다.
<장자>는 여러 방향으로 이미지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문장상의 특징 이외에도 다방
면에 걸쳐 후세에 영향을 끼쳤다. 이것을 정치와 종교, 문학 예술 측면으로 나누어 조
명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정치
평자에 따라서는 장자 사상을 단순하게 약자를 위한 철학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현세계에서 구원을 얻지 못한 약자가 <장자>를 통하여 고민과 번뇌로부터 해방되어 정
신적인 위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 혹자는 일반 대중의 눈을 현실 세계에서 벗어
나게 함으로써 변혁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하는 마약이라고 비난하며, 장자에게 봉사
하는 것을 노예 근성이라고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양쪽이 다 <장자>가 미치는 영향을 잘 지적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장자는
약자에게 구원이 되는 동시에, 그 정신을 잠들게 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러나 <장자>가 약자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세상의 강자인 지배 계급들에게
까지 골고루 읽혀졌다는 편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 사회를 지배해온 표면상의 이념은 유교의 도덕론과
명분론이었다. 그리고 그 완고한 멍에와 굴레는 지배층에게도 숨쉴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이 답답함을 <장자>를 통해 해소했고, 잠시나마 우주와 일체가
된 경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노장을 대표로 하는 도가 사상은 유가
사상과 표리 관계를 맺으면서, 그 내부로부터 봉건적인 지배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
는 역할을 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에 이 사상은 하나의 가치가 되어 반역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가령 근
대 초기의 무정부주의자들은 '노장'이 말하는 무위 자연의 다스림 속에서 이상적인 정
치 형태를 찾았던 것이다.
* 종교
한대에 인도에서 전래한 불교는 장자의 인식론을 매개로 하여 순식간에 중국인의 정
신 세계를 잠식해 들어갔다. 특히 중국에서 번성한 선종은 장자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
다.
장자의 사상은 또 후대 도교에도 이용되었다. 후대 도교란 한위 육조 시대에 재래의
신선 사상이 세속적인 이익을 염원하는 토속 신앙과 결합해서 생겨난 것이므로 장자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장자>에서 볼 수 있는 천수를 온전히 하겠다는 염원이
며, 즐겨 신선을 등장시키는 점 등이 이용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
여 당대에는 <장자>를 <남화진경>이라 하여 도교의 경전에 포함시켰으며, 장자 역시
남화진인으로 불리면서 열선으로 추앙받기에까지 이르렀다.
* 문학 예술
<장자>는 그 문장이 오묘하고 발상이 자유분방하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문학서이
다. 예부터 중국의 문장가들은 대부분 장자를 통해 문장력을 길러왔으니, 도연명과 이
백, 소식 등 그 이름을 들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또 문학이 정치나 도덕과 분리되어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한다는 근대적인 문
학관을 확립시키는 데에도 장자의 '무용의 용' 사상은 커다란 역할을 했다.
장자의 사상 중 가장 뛰어나고 후세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은 결국 내적인 정신
의 자유를 구가하며 유유 자적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소요유>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고, 사생을 초월하여 절대 무한의 경지에서
소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인생은 모두 천명이라는 숙명론을 취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ff
내편
<내편>은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의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편>은 장주 사상의 진수로 전해오는데, '양생주'의 경
우 각 절이 독립되어 있어 연관성이 희박하며, '인간세'와 '응제왕'은 내용에 의문스
러운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장주 사상의 정수는 '소요유', '제물론', '덕충부', '대
종사'의 4장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것은 장주 사상의 통일성을 찾기 위해 추구된 결과
일 뿐, 결코 <장자> 전권의 가치를 부인할 만큼 중대한 결점은 아니다. 각 장의 제목
은 그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
큰 것과 작은 것 - 소요유
북명*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인지 모른다. 변해
서 새가 되면 붕*이라고 하는데, 붕의 등은 몇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세차게 날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곧 남명으로 옮겨
간다. 남명은 천지다. <제해>*는 이상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그 책에는 '붕이 남명으
로 갈 때는 물 3천 리를 치고 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9만 리나 하여, 여섯 달을 난 뒤
에 쉰다.'고 씌어 있다.
땅에는 아지랑이와 티끌과 생물들의 숨결이 뒤섞여 있다. 짙푸른 하늘빛은 틀림없이
하늘의 빛일까? 멀어서 끝이 없어서일까? 그곳에서 아래를 굽어보아도 또한 그러할 뿐
이다. 또 무릇 물이 얕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물 한 잔을 마룻바닥 오목한 곳에
쏟으면 겨자씨는 띄울 수 있으나,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고 배는 크
기 때문이다. 바람이 약하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 9만 리는 되어야 바람을 아래에
둘 수 있다. 그런 뒤에야 바람을 타고 등에는 푸른 하늘을 지게 되어 가로막을 것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남명을 향해 날게 되는 것이다.
매미와 발의새가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결심하고 날아야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가 닿고, 때로는 닿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어째서 9만 리나 남쪽으로 날아갈까?"
교외에 가는 사람은 세 끼 밥만 먹고 돌아와도 아직 배가 부르다. 백 리를 가는 사
람은 저녁에 양식을 찧는다.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달 양식을 모아둔다. 그러니 벌레
두 마리가 무엇을 알겠는가? 소지는 대지에 미치지 못하고, 소년은 대년에 미치지 못
한다. 어떻게 그것이 그런 줄을 알겠는가? 조균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는 봄
가을을 모른다. 소년이기 때문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란 나무가 있는데, 5백 해로 봄을 삼고, 5백 해로 가을을 삼았
다. 또 상고에 대춘이 있었는데, 8천 년으로 봄을 삼고, 8천 년으로 가을을 삼았다.
그런데도 팽조*가 특히 오래 산 것으로 알려져 뭇사람들이 짝을 이루려 하니 슬픈 일
이 아닌가!
탕왕*이 극*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것이다. 궁발 북쪽에 어두운 바다가 있는데, 그
것이 천지다. 거기에 있는 고기는 그 너비가 몇천 리에 달하며, 길이는 아직 아는 사
람이 없는데, 그 이름은 곤이라고 한다. 새가 있어 이름을 붕이라고 하는데, 등은 태
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바람을 치고 9만리를 올라 구름의 기운을
끊고 푸른 하늘을 업은 다음, 남쪽을 향하여 남명으로 가려 한다. 참새가 비웃으며 말
한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나는 날아 올라가도 몇 길을 채 못 가서 내려와 쑥대 사이
를 날아다닌다. 이것 역시 날 만큼 난 것인데, 그는 또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
이것이 대소의 구분이다. 그러므로 무릇 지식이 한 벼슬을 감당하고 행실이 한 고을
에 뛰어나며, 덕이 군주에 합당하여 일국을 대표하는 사람도 자기를 보는 것은 이와
같다. 그러나 송나라의 영자*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세상이 칭찬을 한다 해서 더 부
지런할 것도 없고, 그르다 해서 더 막히지도 않으며, 안팎의 구분이 있고 영욕의 경계
를 알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세상사에 동요되지 않았으나 아직 부동의 경지는
아니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니며 시원하게 떠돌다가 보름 뒤에 돌아왔다. 그는
복음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았다. 비록 걸어 다니는 것은 면했다고 하
지만, 그대로 의지하는 것이 있었다. 만일 천지의 바른 것을 타고, 육기*의 분별을 다
스리면서 무궁에 노는 사람이라면 또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래서 '지인은 내가 없
고,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고 한 것이다.
북명의 곤이라는 고기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몇천 리인지 모를 만큼 컸다. 곤은 변신
하여 붕이라는 새가 되는데, 이때 몇천 리인지 알 수조차 없는 그 몸뚱이가 날개를 펴
고 날아오르면 하늘은 검은 구름에 덮인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어 바다가 거친 계
절이 되면 붕새는 남명, 곧 천지를 향해 날았다. 온갖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들이 실
려 있는 <제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남명으로 떠날 때의 붕새는 바다 위 3천 리를 날개로 치고 날아오른 다음, 바람을
타고 9만 리 높이에까지 솟아오른다. 그리하여 남명까지 여섯 달 동안을 쉬지 않고 날
아간다."
땅 위에는 아지랑이가 끼고, 먼지와 생물들의 숨결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하늘
은 그저 새파랗게만 보인다. 그것은 하늘빛이 원래 푸르러서가 아니라 다만 끝없이 먼
거리가 하늘을 파란 빛으로 보이게 할뿐이다. 마찬가지로 9만리 상공을 나는 붕새의
눈에는 이 땅위가 다만 파란 빛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마루 틈새에 고인 한 잔 물에도 겨자
씨 따위는 떠 있지만, 거기에 잔을 띄우면 그만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고 배는 크
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커다란 날개를 펴려면 큰 바람이 필요
하다. 9만 리 높이까지 날아오르면 붕새의 날개는 강한 바람의 힘에 의지하게 된다.
바람을 탄 채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나는 붕새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은 없다. 그리하
여 붕새는 줄곧 남명을 향해 나는 것이다. 그러나 매미와 발의새(작은 비둘기)는 그런
붕새를 비웃게 마련이다.
"느릅나무 박달나무 가지에 날아오르는 것도 힘에 겨워 제대로 가지 못한 채 떨어지
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멀리 남쪽으로 9만 리나 날아가려고 하는 저 새의 기분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교외로 나가는 정도라면 하루치 식량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백 리쯤 되는 길을 떠나
는 사람은 하루 전에 쌀을 찧어놓아야 한다. 만일 천릿길을 떠날 사람이라면 석 달 전
부터 양식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러니 매미나 발의새 따위가 무엇을 알겠는가? 작은
세계에 사는 것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세계가 있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짧은 시간을 사는 것들은 오랜 세월을 알
길이 없다. 아침에 돋아났다가 저녁이면 시들고 마는 조균(하루살이 버섯)으로서는 하
루가 얼마나 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 철을 사는 매미 또한 1년이 얼마나 긴 것인
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짧은 세월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초나라 남쪽에 있던 명령이라는 나무는 1천 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더했다.
또 대춘이라는 나무는 1만 6천 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더해갔다고 한다. 이런 것들에
비한다면 수백 년을 살았다는 팽조가 부러워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가련한 것인가!
은나라 탕왕과 그의 신하 극과의 문답에도 붕새가 언급되어 있다. 땅(궁발)의 북쪽
끝에 어두운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그것을 천지라 한다. 거기에 곤이라는 고기가 사
는데, 등의 너비는 몇천 리나 되며, 그 길이는 얼마인지 알 수조차 없다. 또 거기에는
붕이란 새가 있다. 크기는 태산만 하다고나 할까? 날개를 펴면 하늘이 검은 구름에 덮
인 듯하다. 붕새는 바람을 타고 빙빙 돌면서 9만 리 높이로 날아오른다. 앞길에는 구
름 한 점 없다. 붕새는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남쪽의 남명을 향한다. 참새가 비웃으
며 말한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우리는 기껏 날아봐야 몇 길도 못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고
만다. 그래서 이렇게 쑥대 사이를 푸드덕거리며 뛰놀고 있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저런 힘든 일을 하다니 정말 알 수가 없구나."
크고 작은 것의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지식을 길러 관리가 된 사람, 공을 세워
한 고을의 원이 된 사람, 재능을 인정받아 대신이 된 사람, 덕이 높다 하여 임금의 자
리에 있는 사람, 그들 역시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따지고 보면 이 참새와 다를 것
이 없다.
송나라의 영자는 그들을 속된 무리라고 비웃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
방 같은 것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자신과 남, 안과 밖을 분명히 구별해서 영예로운
것과 욕된 것이 자기에게 본질적인 것이 못 됨을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세속에 초
연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참다운 자유를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놀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표연히 땅 위로 돌아왔
다. 그렇듯 그는 세상사에 속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바람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 역시 참다운 자유를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
천지 자연에 몸을 맡기고 만물의 육기에 따라 무궁한 세계에서 소요할 수 있는 사람
이라야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참다운 자유의 존재인 것이다. '지인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신인은 공적을 생각하지 않으며, 성인은 명성에 관심이 없다.'고 한
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 북명: 명은 '까마득하게 끝도 없는 바다'라는 뜻으로 명으로도 쓴다.
* 곤: 장자의 우의적인 표현. 큰 고기의 이름, 혹은 '고기 새끼'라고도 한다.
* 붕: 장자는 '매우 큰 새'라고 표현했으나 봉의 옛 글자라는 설도 있다.
* <제해>: 책 제목으로 해석했으나 가공 인물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 팽조: 전욱의 현손으로, 은나라 말엽까지 767년을 살았어도 늙지 않았다고 한다.
* 탕왕: 하나라의 폭군 걸을 내쫓은 후 은왕조를 세운 성군.
* 극: 탕왕 때의 현인이라고 하나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 영자: 도가의 학자였던 송견을 지칭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욕심을 배격하고,
싸워서는 안 된다는 비전론을 주장했다.
* 열자: 열어구. <열자>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존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다.
* 육기: 천지간의 여섯 가지 기운. 곧 음, 양, 풍, 우, 회, 명을 이른다.
포인과 시축 - 소요유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사양하며 말했다.
"해와 달이 나와 있는데 횃불을 끄지 않으면 그것이 빛을 발하기 어렵지 않겠소? 때
맞추어 비가 왔는데도 물을 준다면 또한 헛되지 않겠소? 선생이 천자가 되면 천하가
잘 될 것이오. 내가 다스리는 것은 나 스스로 보기에도 모자라오. 청컨대 천하를 맡으
시오."
허유가 말했다.
"선생이 다스리니 천하는 이미 다스려졌소. 그런데도 내가 선생을 대신한다면 나는
장차 이름만을 바라는 것이 될 것이오. 이름이란 실상의 부수물일 뿐인데, 내가 장차
부수물이 되겠소? 뱁새는 깊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두더지
는 하수를 마셔도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소. 돌아가시오. 내게는 천하가 소용이 없
소. 포인이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시축*이 술통과 도마를 넘어가 대신하지는 않는
법이오."
요가 허유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태양이 떠올라 있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짓이오. 또 때맞추어 비가 땅
을 흠뻑 적셔주었는데도 논밭에 물을 주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 아니겠소? 선생 같은
분이 나타났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천자의 지위에 앉아 있겠소? 천자의 자리를 받아
주시오."
"지금도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있소. 그러한 지금 내가 새삼스러이 천자가 된다면
나는 천자라는 이름을 바라는 것이 되지 않겠소? 이름이란 실상의 부수물에 지나지 않
는 것이오. 나더러 부수물이 되라는 말씀이오?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
가지 한 개를 필요로 할뿐이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만 차면 족한 것이오.
부디 분부를 거두어주시오. 천하가 주어져도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소. 비록 음식을
만드는 포인이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시축이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나가지는
않는 법이오."
* 요: 태고의 성제로서 전설상의 인물.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순에게 양위하였다고
한다.
* 허유: 전설상의 인물.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
려 귀가 더러워졌다 하여 영천의 물에 귀를 씻고 기산에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 시축: 시는 '신주' 또는 '맡아 한다'는 뜻이다. 축은 '빈다'는 뜻도 되고, '제사
음식 차리는 일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흔히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로
풀이한다.
요순도 발톱의 때 - 소요유
견오*가 연숙에게 물었다.
"접여*의 말을 들으면 황당하고 앞뒤가 없소. 나는 그 말이 놀랍고 두려웠소. 마치
하수의 끝이 없는 것 같았고, 큰 격차*가 있어서 인정에 가깝지가 않았소."
연숙이 물었다.
"그 말은 어떠하였소?"
"'묘고야란 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빙설 같고 부드럽기는 처녀와 같다. 곡식을
먹지 않고 바람을 호흡하며, 이슬을 마신다. 구름을 타고 비룡을 몰아 사해 밖에서 논
다. 그 신이 뭉쳐 만물을 병들지 않게 하고, 그해 곡식을 익힌다.'라고 합디다. 이 때
문에 나는 그가 미친 것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소."
연숙이 말했다.
"그렇소. 장님은 색깔을 볼 수 없고, 귀머거리는 쇠북소리를 들을 수 없소. 어찌 형
체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소? 정신에도 또한 그런 부류가 있으니, 그 말이 지금
그대를 두고 한 말 같소. 신인의 덕은 장차 만물을 뒤덮을 것이오. 일세를 난에서 건
진다 한들 누가 천하를 문제 삼겠소? 물질은 신인을 상하게 할 수 없소. 큰 홍수가 하
늘에 닿아도 빠지지 않고, 큰 가뭄에 쇠와 돌이 녹고, 흙과 산이 타도 뜨거워하지 않
소. 바로 먼지와 때와 쭉정이와 겨로도 요와 순*을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이오. 어찌 물
건을 가지고 문제 삼겠소?"
견오가 연숙에게 말했다.
"접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떻게나 떠벌리는지, 어디까지가 이치에 닿는 것인
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소. 정말 질리고 말았소. 마치 구름을 잡는 것 같은 이야기
뿐이라서, 보통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요."
"대체 어떤 이야기였소?"
"어디 한번 들어보겠소? 그의 과장은 이런 정도요. '묘고야란 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처럼 나긋나긋하다. 바람을 받아들이고 이슬을 마실
뿐, 곡식 같은 것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어떤 때는 구름을 타고, 또 어떤 때는 용
을 타고 우주 밖에서 노닌다. 별로 하는 일은 없지만, 신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처
를 입거나 병이 든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온갖 곡식이 다 잘 익는다.' 그의 말은 모두
이런 식이오. 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서 도저히 곧이 들리지가 않았소."
연숙이 말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소. 속담에 '장님에게는 아름다운 색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
리에게는 아름다운 가락이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선생이 바로 그렇구려. 신인이
라 불리는 사람의 덕은 이 우주를 뒤덮고 있소. 보잘것없는 천하를 다스리면서 아둥바
둥하는 인간과는 근본이 다르단 말이오. 또 신인은 어떤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존재
요. 물이 하늘까지 닿을 듯한 홍수에도 신인은 빠지지 않소. 쇠와 돌을 녹이고 땅을
태울 만한 열도 신인에게 화상을 입히진 못하오. 세상 사람들이 성군이라고 칭찬하는
요나 순 같은 이는 신인의 '발톱의 때'만 가지고도 만들어낼 수 있소. 과연 상식에 사
로잡혀 있는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 견오: 전설상의 인물로서 상고의 현인, 혹은 태산신이라고 한다.
* 접여: 성은 육, 이름은 통. 초나라의 은자로서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 격차: 원문은 경정. 경은 '작은 길'이라 좁고, 정은 '뜰'이라 넓다는 뜻으로, 현
격한 차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순: 전설상의 성군. 성은 요, 이름은 중화. 요임금에게서 선양받은 후 나라 이름을
우라 했고, 뒤에 우에게 선위했다.
소용없는 상품 - 소요유
송나라 사람이 장보관*을 사가지고 월나라로 갔다. 월나라 사람은 단발 문신이라 쓸
데가 없었다.
요는 만민을 다스려 해내의 정사를 고르게 했다. 묘고야 산에서 네 사람을 만나본
뒤 분수* 남쪽에서 멍하니 천하를 잊고 있었다.
어떤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관을 많이 사가지고 월나라로 장사를 떠났다. 그런데
월나라에 가서 보니 그곳 사람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몸에는 먹물로 그림을 그리고
지냈다. 따라서 문명한 나라 사람들이 쓰는 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는 선정을 베풀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었으므로 의기양양하게 묘고야란 산 속
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신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요는 거꾸로 신인들에게 압도되어, 서
울 교외에 있는 분수가 돌아와서도 정신이 멍해 세상사를 아득히 잊었다.
* 장보관: 은나라 때 만들어진 관의 이름. 모양이 좋아서 주대에까지 쓰여졌다.
* 분수: 황하의 한 지류. 요임금이 도읍을 차렸다는 평양 부근을 흐르고 있다.
큰 표주박의 용도 - 소요유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내게 큰 표주박 씨를 주었네. 그것을 심어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닷 섬들
이나 되었네. 물을 담았더니 너무 무거워 혼자 들 수가 없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
더니 편편하고 얕아서 들어 갈 곳이 없쟎겠나? 크기는 하나 소용이 없어 부숴 버렸네.
"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원래 큰 것을 쓰는 데 서투르네.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않는 약을 잘
만드는 자가 있었는데, 대대로 실*을 빨아 바래는 일을 해왔네. 한 나그네가 이를 듣
고 그 비방을 백 금에 사겠다고 청했네. 가족을 모아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대
대로 실을 빨아 바래는 일을 해왔으나 몇 금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하루아침에 재주
를 백 금에 팔라고 하니 팔아버리자.' 나그네는 이를 얻어 오왕을 설득했네. 월나라와
싸우게 되자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네. 겨울철이었는데, 월군과 수전을 벌여 크
게 이겼으므로 땅을 쪼개 받고 후로 봉해졌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
으나 한 사람은 봉지를 얻고, 한 사람은 실을 빨아 바래는 일을 면치 못했네. 쓰는 바
가 달랐던 것이지. 자네는 닷 섬들이 표주박으로 어째서 큰 통을 만들어 강호에 띄울
것을 생각지 못하고 너무 커서 쓸 곳이 없다고 걱정한단 말인가! 이는 곧 자네에게 속
된 마음이 있는 것일세."
혜자가 이런 말로 장자를 비꼬았다.
"전에 위왕으로부터 큰 표주박 씨를 얻은 일이 있었네. 그것을 심어 열매를 맺게 되
었는데, 표주박이 어찌나 큰지 닷 섬이나 들어가지 않겠나? 거기에 물을 가득 담으면
무거워서 들 수도 없었다네. 그래서 반을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커서 물독에 들어가지 않았네, 크기는 컸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지라 그만 부숴 버리고
말았다네."
그 말을 장자는 이렇게 받아넘겼다.
"자네는 정말 큰 것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군그래. 이런 이야기가 있네. 송나라에
대대로 실을 세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네. 직업이 직업인만큼, 그의 집에는 손
이 트지 않는 신기한 약을 만드는 비방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네. 어느 나그네가 소문
을 듣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 약 만드는 비방을 백 금에 사겠다고 하였네. 그래서 주
인은 온 가족을 모아놓고 상의를 했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실을 빨아주고 생활을 해
왔으나 벌이라고는 일년에 고작 오륙 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 약의 비방을 백 금
에 팔 수 있게 됐다. 어떠냐, 청을 들어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 한편 약 만드는 법을
배운 나그네는 오나라로 가서 왕에게 약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네. 그때 마침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해오자 오왕은 이 사람을 장군으로 기용했네. 그리하여 한겨울에 일부러
월나라 군사를 물 위로 끌어내 싸웠네. 손이 트지 않는 약 덕분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크게 이길 수 있었지. 오왕은 그의 공을 가상히 여겨 땅을 떼어주고 제후로 봉했네.
이제 알아듣겠나? 약의 효과는 똑같지만 한 사람은 봉지를 얻게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여전히 빨랫군에 불과하다네. 모든 것은 사용하기에 달린 것이야. 다섯 섬들이 표주박
이라면, 왜 그것을 배로 만들어 양자강이나 동정호에 기분 좋게 한번 띄워볼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너무 커서 물독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면, 자신이
상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란 것을 자인하는 것밖에 더되겠는가?"
* 혜자: 성은 혜, 이름은 시. 장자와 같은 시대의 사상가로서, 양나라의 재상을 지
냈다. 사상적으로는 명가에 속하며, 장자의 의논 상대인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 위왕: 양나라의 혜왕을 가리킨다.
* 실: 원문은 광으로서, 헌솜이나 삼, 혹은 고치라고도 해석한다.
무하유지향 - 소요유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가죽나무*라고 부르네. 그것의 큰 둥치는
울퉁불퉁해서 먹줄을 칠 수가 없고, 작은 가지는 뒤틀리고 굽어서 자를 댈 수가 없기
에 길가에 있어도 목수가 돌아보지 않네, 지금 자네의 말은 크지만 쓸모가 없어서 사
람들이 듣지 않는 것이네."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살쾡이를 보지 못했나? 몸을 낮추고 엎드려서, 뛰노는 놈을 기다리네. 그렇
게 동으로 서로 뛰어다니며 높고 낮은 것을 피하지 않다가 덫과 그물에 걸려 죽게 되
지. 들소는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으나, 몸이 크다뿐이지 쥐도 잡지 못하
네, 지금 자네가 큰 나무를 가지고 그 쓸모없음을 걱정하고 있는데, 어째서 무하유지
향*의 광막한 들판에 심어두고, 이리저리 그 근처에서 소요하다가 그 밑에 누워 쉴 생
각을 못하는가? 일찍 도끼에 넘어가지 않고, 아무것도 해를 끼칠 것이 없네. 무용하다
는 게 어찌 괴로운 것이겠나?"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고 가죽나무라 하
더군. 나무 둥치가 옹이투성이라서 먹줄조차 댈 수가 없고, 가지는 꾸불꾸불해서 자로
잴 수조차 없는 형편이네, 그 때문에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를 않네.
자네의 논의도 말은 그럴 듯하지만 결국은 그 나무와 다를 바가 없네. 세상 사람들이
상대할 턱이 있겠나?"
"그럼 살쾡이는 어떤가?"
하고 장자는 받아넘겼다.
"살쾡이는 가만히 몸을 숨기고 먹을 것을 노리다가 단숨에 확 달려드네, 어떤 곳에
서라도 날쌔게 뛰어 돌아다니지.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은 덫이나 그물에 걸
려 죽게 되네. 그것에 비하면 들소는 마치 하늘을 덮은 검은 구름처럼 엄청나게 큰 몸
집을 갖고 있지만, 생쥐 한 마리 잡을 능력도 없네. 그러나 무능한 것 때문에 죽지 않
고 살게 되지. 자네가 그런 큰 나무를 두고 쓸모없다고 걱정할 건 없네. 무하유의 고
을 넓은 벌판에다 심어두고 유유히 그 옆을 거닐며, 편안히 그 나무 그늘에서 쉬면 좋
지 않겠나? 세상 사람에게 소용이 닿지 않으니 톱질을 받아 넘어질 염려도 없고 가지
를 잘릴 걱정도 없네. 소용이 없다고 해서 고민할 까닭은 조금도 없는 것일세."
*가죽나무: 혹은 개똥나무라고도 한다. 잎사귀에선 냄새가 나고, 줄기와 가지는 아
무데도 쓸 수 없다.
* 무하유지향: 무하유는 '아무 것도 있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허무를 말한다. 이처럼 우의적이고 역설적인 명사를 지어내는 것은 장자가 즐겨 쓰
는 방법이다. 이때부터 후세 사람들은 속세 밖의 이상향을 가리켜 '무하유의 고을'이
라고 불렀다.
천뢰를 듣다 - 제물론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고 앉아 하늘을 우러러보며 숨을 쉬고 있는데, 우두커니,
마치 짝을 잃은 듯했다. 안성자유*가 앞에 모시고 있다가 말했다.
"어떻게 하고 계신 것일까? 얼굴이란 원래 마른 나무처럼 만들 수 있고, 마음이란
원래 죽은 재처럼 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아가 책상에
기대고 있던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말하기를,
"언아, 그렇게 묻다니 똑똑하구나, 나는 지금 나를 잃고 있었다. 알겠느냐? 너는 인
뢰는 들었으나 지뢰를 듣지 못했고, 지뢰를 들을 수 있더라도 천뢰*는 듣지 못한다."
자유가 말했다.
"감히 그 방법을 묻겠습니다."
자기가 대답한다.
"무릇 땅이 내뿜는 기운을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는다뿐, 일단 일어
나면 뭇 구멍이 노해 울부짖게 된다. 너는 홀로 긴 바람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산 숲*
과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의 구멍들이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목 긴 병 같고,
바리 같고, 절구와 같고, 깊고 얕은 웅덩이 같다. 물 흐르는 소리, 화살 나는 소리,
꾸짖는 소리, 바람 들이마시는 소리, 외치는 소리, 곡 소리, 아득히 먼 소리, 새 우는
소리가 있다. 앞엣것이 위잉 하고 외치면 뒤엣것이 휘익 하고 따라 외친다. 작은 바람
에는 작게 울리고, 날랜 바람에는 크게 울린다. 사나운 바람이 그치면 뭇 구멍이 비게
된다. 너는 나뭇가지가 홀로 하늘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자유가 물었다.
"지뢰는 뭇 구멍을 말하고 인뢰는 비죽*을 말하는데, 천뢰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대답했다.
"천차 만별의 사물에 작용하여 스스로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취하
지만, 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남곽자기는 책상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
고 있는 동안 온몸에서 생기가 사라져 버리면서, 혼이 나간 빈 껍데기처럼 변해갔다.
곁에서 모시고 있던 안성자유가 그 모습을 보면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살아 있는 몸뚱이가 마른 나무처럼 굳어버리고, 마음 또한 불
꺼진 재처럼 되어버리다니.... 지금 책상에 기대앉은 사람은 앞서 책상에 기대앉은 선
생님이 아니로구나."
이때 자기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언을 불렀다.
"언아, 방금 나는 나를 잃었는데, 너도 그것을 알고 있었더냐? 그러나 아직은 멀었
다. 너는 인뢰(사람의 음악)는 알고 있어도 지뢰(땅의 음악)은 들은 적이 없을 것이
다. 설령 지뢰를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천뢰(하늘의 음악)를 듣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
했을 테니 말이다."
"자세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땅이 토해내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일지 않으면 별일 없지만, 일단 바
람이 일면 땅 위의 모든 구멍들이 소리를 내게 된다. 너는 혼자서 긴 바람 소리를 들
은 적이 있느냐? 그 바람이 산 숲을 뒤흔들면 백 아름이나 되는 거목의 갖가지 구멍,
즉 우리 몸의 코나 입이나 귀, 혹은 병이나 절구와 같은 물건 모양, 혹은 땅의 연못이
나 웅덩이처럼 모양과 깊이가 가지각색인 구멍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
다. 그 구멍에 따라 물이 흐르는 소리,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나오는 소리, 들어가는
소리, 외치는 소리, 곡 소리, 아득히 먼 소리. 새 우는 소리, 위잉 하고 울리면 휘익
하고 받으며 바람의 힘에 따라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
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큰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모든 구멍들은 일제히 울음을 그친
다. 그러나 아직도 하늘거리는 나뭇가지와 잎들에서 방금 지나간 바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뢰하는 것은 땅 위의 구멍들이 바람을 받아 울부짖는 소리로군요. 모든 구멍이
소리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인뢰는 인간이 불어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되겠습니다만...
. 천뢰란 어떤 것입니까?"
"지뢰든 인뢰든 간에, 우는 것은 천차 만별이지만 각각 제 소리가 제 음색으로 조리
를 낸다. 그렇다면 이처럼 성난 듯 소리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 남곽자기: 초나라 소왕의 서제, 남쪽 외성쪽에 살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
다.
* 안성자유: 자유는 자, 이름은 언이다.
* 천뢰: '천뢰를 듣는다'는 것은 일체의 상념을 버려야 비로소 무한한 조화의 세계
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산 숲: 원문은 외추. 바람이 잘 닿지 않는 숲을 뜻한다.
* 비죽: 대를 엮어서 만든 생 같은 악기.
참된 주인은 누구인가 - 제물론
많이 알면 여유가 있고 적게 알면 소심해지며, 위대한 말은 활달하나 사소한 말은
수다스럽다. 잘 때도 혼이 헛갈리며 깨어서는 형태로 전개한다. 외부 사물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으니 마음은 항상 투쟁하게 된다. 느린 사람도 있고, 파고드는 사람도 있고,
세밀한 사람도 있다. 조그마한 두려움에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큰 두려움에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말하는 것이 화살과 같다 함은 그 시비 가림을 이르고, 그 머무름이
맹약에 얽힌 제후들과 같다 함은 더 나은 것을 차지하려는 모습이다. 쇠해가는 것이
가을과 겨울 같다 함은 날로 소멸하여 빠져들기만 하고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음을 말하
는 것이다. 상자 속에 틀어박히 듯하다는 것은 늙어감에 따라 죽음에 가까워지는 마음
을 다시 소생시킬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희노 애락이 있다. 근심하여 탄식하고, 겁이 있어 변덕스러우며, 요염하여 방탕하
고, 솔직함과 꾸밈이 있다. 음악은 빈 곳에서 나오고 습기는 곰팡이를 만든다. 밤낮으
로 서로 바뀌어 나타나지만 어디서 생겨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
라. 아침 저녁으로 이를 보게 됨은 어떤 근원이 있어서다. 그 근원이 없으면 내가 존
재할 수 없고, 내가 없으면 그것들을 취할 수도 없다. 매우 밀접하건만 그 근원을 알
지 못한다. 참된 주인이 있는 듯하나 그 징조를 찾을 수 없다. 작용하는 것은 확실하
지만 그 모양을 찾을 수 없고, 존재하기는 하나 모습이 없다. 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구멍과 여섯 창자가 존재한다. 내가 어느 것과 더 친하겠느냐? 너는 모두 기쁘게 해주
겠느냐? 어느 것을 편애하겠느냐? 이것들이 모두 신하와 종이 될 수 있겠느냐? 그 종
들을 서로 다스릴 힘이 없다. 그것들이 서로 번갈아 주인과 종이 되겠느냐? 참된 주인
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것이 참인 것에 더하고 덜할 것이 없다.
한번 그 모습을 받아 이루어지면 잘 보존하여 다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사물
에 얽매여 서로 역행하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한다. 그 다함을 향하여 가는 것이 달리
는 것과 같아도 이를 그치게 할 수 없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평생을 고생만 했으
나 그 성공을 보지 못하고, 지치고 시달려서 돌아갈 바를 모르고 있으니 슬픈 일이 아
닌가?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해준들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그 형체가 사라지면
마음도 함께 없어지니 어찌 슬프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삶이란 원래 이
렇게 어리석은 일인가, 아니면 나만 홀로 어리석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
무릇 원래의 마음을 좇아 스승으로 삼는다면 어느 누가 스승이 없겠는가? 어찌 반드
시 고칠 것을 알아서 스스로 선택하는 자만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도 더불어 있는
것이다. 마음을 작정하지 않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오늘 월나라로 떠나며 어제 도착
하였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없는 일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있다
고 하면 비록 신과 같은 우왕*이라 해도 알 수 없는 것인데, 내가 홀로 어찌한단 말인
가?
무릇 말이란 숨을 내쉬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이란 무엇을 말하려 하나, 그 말하
려는 바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말을 하게 되면 과연 그것이 말을 한 것이
겠는가? 그것이 새소리와 다르다고 하나 어떤 구별이 있는가? 구별이 없을 것이다. 도
*는 무엇에 가려져서 참과 거짓이 있고, 말은 무엇에 가려져서 옳고 그른 것이 있는가
? 도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며, 말은 어디에서나 타당할 것이다. 도는 작은 성공에 가
려지고, 말은 영화를 추구하다가 잃게 된다. 그러므로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있다. 그
들은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한다. 그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
다고 하고,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려면 밝음에 따라야만 한다.
인간의 지식이나 말은 참으로 다양하다. 포괄적인 인식, 분석적인 탐구, 간결한 표
현, 번잡한 잔소리 등 사람과 경우에 따라 여러 모로 다른 형태를 갖는다.
인간이란 그 어느 경우에도 지식과 말에 의존해서 꿈속에서도 바깥 사물을 추구하
고, 잠이 깨어서는 온 정력을 다 기울여 투쟁에 몰두한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심
각하게, 따로는 세심하게 불안에 떨고 절망에 몸부림치며 서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시비를 가리는 것은 시작에서 판단하는 것과 흡사하고, 자기 주장을 끝내 고집하는
것은 맹약에 얽힌 제후들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가을과 겨울 냉기에 시들어 떨어지는
초목과도 같이 육신의 건강은 나날이 쇠약해져만 가고, 숨을 제대로 못 쉬는 노인처럼
정신도 날로 제 기능을 잃어가는 것이다.
기뻐하는가 하면 어느덧 성을 내고, 슬퍼하는가 하면 어느덧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인간 심리의 모든 형상은 대관절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들의 심리는 빈 것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나 습기찬 땅에서 생겨나는 곰팡이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무엇이 그 궁극의 원인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침 저
녁으로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보면 역시 무엇인가가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한다.
"바깥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기'라고 하는 의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마
음의 변화란 바깥 사물과 자기와의 교섭에 의해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 말은 일면 타당하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을 인정
한다 해도 심적 기능의 근원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심적인
기능이 부여되어 있는 이상, 그것을 부여한 그 무엇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즉 '
참다운 주재자'의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존재를 명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을 보더라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인체에는 백 개나 되는 뼈마디와 아
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창자가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에 의해 이것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 전부를 사랑할 수도 없고, 그 어느 하나만을 특별히 돌보아
줄 수도 없는 것을 보면 그것들은 모두 나를 섬기는 신하와 종이 아닌가?
그러나 주재자가 없으면 몸은 몸으로서 전체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것들이 주재자도 되고 종도 되어 서로 번갈아가며 지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시 우리들의 지각을 초월해 존재하는 진군이 우리 몸을 통괄한다고 생각해야만 설
명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인체가 하나의 통일을 이루
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일단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태어나면, 몸에 딸려 있는 모든 감각 기관은 죽는 그 순
간까지 바깥의 사물을 배척하기도 하고 수용하기도 하는 작용을 끊임없이 계속한다.
즉 바깥 사물과의 갈등을 반복하면서 죽음을 향해 줄달음친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
는 과정인 것이다. 한평생 아둥바둥하며 몸과 마음을 괴롭혀도 그 보람을 얻지 못하고
지치고 시달릴 뿐, 평안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투쟁이야말로 삶의 표시다.'라고 말하지만, 이 얼마나 무의미한 설명
인가? 살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바깥 사물과 싸우고 스스로 소멸해간다는
이 거대한 모순은 아무런 설득력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생의 불가사의를 사람
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인간에게는 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있다. 성심 자체에는 슬기롭다거
나 어리석다는 구별이 없다. 그러나 이 성심은 살아가는 동안에 바깥 사물과 대립하면
서 변질되어간다. 그리하여 오늘 월나라로 떠나면서 어제 도착했다고 말하는, 있을 수
없는 명제까지도 낳게 만든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논증하는 인간의 지혜는 마
침내 우왕의 신지도 미치지 못하는 경제에 도달한 것일까?
말이란 빈 곳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말에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뜻이 확정된 것이 아니면 말은 성립될 수가 없다. 만일 성립한다면, 말이 새 울음
소리와 다르다고 해보았지만 실상 둘 사이에는 별다른 구별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도에 참과 거짓의 구별이 생기고, 말에 옳고 그름의 구별이 생기는 것은 무
엇 때문일까? 원래 도는 만물에 두루 편재해 있는 것이고, 말은 도와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인데, 그것을 지식으로 구속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유가와 묵가 학
파간의 논쟁도 결국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제각기 다른 설을
내세워 논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결국은 말이라는 수단 그 자체가 목적으로 변하여 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이러한 잘못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참다운 지혜, 즉 밝은 지혜
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 오늘 월나라로.... 같다: 장자와 절친했던 논리학자 혜자가 세운 명제이다.
* 우왕: 하왕조를 세운 전설상의 인물. 곤의 아들. 요순 시대에 대규모의 치수에 성
공하고 순임금의 선양을 받아 왕이 되어 하왕조를 창시하였다.
* 도: 도란 본디 지나다니는 길을 말한다. 인간은 길을 통해서 걸어다니고, 만물도
길을 통해서만 나타나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 때로는 인간이 지켜야 할 예의 도덕을
뜻하기도 하고, 때로는 만물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를 뜻하기도 한다. 장자가 말하는
도는 우주(인간을 포함)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의 사물을 초월
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사물 속에 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만물 제동 - 제물론
만물은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 저편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
나 자기가 보면 안다. 이것이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또 저것에 기인한다.'
는 피시방생설이다. 그러나 태어난 것은 죽게 되고, 죽는 것은 태어나게 된다. 가능한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불가능한 것은 가능하게 된다. 옳은 것에 의지한다는 것이 그
른 것에 의지하게 되고, 그른 것에 의지한다는 것이 옳은 것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
로 성인은 의지함이 없이 하늘에 비추어본다. 이러한 것도 역시 의지하는 것이나, 이
것은 또한 저것이요, 저것은 또한 이것이 되는 경지다. 마찬가지로 저것은 옳기도 하
고 그르기도 하며, 이것 또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저것과 이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것과 이것은 없는 것일까? 저것과 이것의 짝이 없는 경지
를 도주*라 한다. 지도리는 고리의 한가운데에 걸려 무한히 회전하게 된다. 옳은 것도
무궁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른 것 또한 무궁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
밝은 지혜'에 따르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손가락으로써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니라고 깨우치는 것은, 손가락을 초월하여 손가
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깨우치는 것만 못하다.* 말로써 말이 말이 아님을 깨우치는 것
은, 말을 초월하여 말이 말이 아니라고 깨우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손가락 하나요,
만물은 한 마리의 말이다.
가한 것을 가하다 하고, 가하지 않은 것을 가하지 않다고 한다. 도는 움직임으로써
이루어지고, 만물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렇다고 한다. 무엇을 그렇다고 하는가? 남들
이 그렇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한다. 무엇을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남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만물에는 본디 그렇다고 긍정할 것이 없고, 만
물에는 본디 옳다고 인정할 것이 없다. 또한 만물에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것이 없
고, 만물에는 옳지 않다고 부정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 풀잎과 기
둥, 문둥이와 서시*를 든다.
야릇하고 괴상한 것도 도의 입장에서는 하나가 된다. 나누어지는 것이 곧 이루어지
는 것이요, 이루어지는 것은 곧 허물어지는 것이다. 무릇 만물은 이루어짐도 허물어짐
도 없이 통틀어 하나가 된다. 오직 도에 통달한 사람만이 만물이 결국 하나임을 안다.
도에 통한 사람은 구별을 하지 않고 이것을 떳떳함에 맡긴다. 떳떳함은 쓰는 것이요,
쓰는 것은 통하는 것이요, 통하는 것은 얻는 것이다. 얻음이 있어야만 도에 접근한다.
도에 따를 뿐이다. 이미 그러하고도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경지를 도라 이른다.
모든 존재는 저것과 이것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저것 쪽에서 보면 이것은 저것이 되
고, 저것은 이것이 된다. 즉 저것은 이것이라는 개념과의 비교 대립에서 비로소 성립
되고, 이것은 저것이라는 개념과의 비교 대립에서 비로소 성립된다.
그러나 상대적인 것은 저것과 이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삶과 죽음, 가능한 것과 불
가능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등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모든 사물은 서로 의존
하는 동시에 서로 배척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속박됨이 없이 생
성 변화하는 자연에 순응할 뿐이다.
이것 또한 어떤 입장에 근거한 판단임에 틀림없으나 이 입장에서 보면 이것과 저것
은 상대적이 아니며, 양자는 동시에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다. 즉 양자의 구별이 존
재하지 않게 된다.
이같이 하여 나와 다른 것의 대립을 해소시키면 개별적인 존재를 초월하여 도추의
경지에 이른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문짝의 지도리가 고리를 축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끝없이 변화하면서 그 무궁한 변화에 대응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도추의 경지에 이르면 옳고 그른 것의 대립이 해소된다.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손가락의 개념을 분석하여 그 말이 존재로서의 손가락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고, 말
이라는 개념을 분석하여 그 말이 존재로서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논증한 사람이
있다.
만일 이들 궤변론자들이 이러한 논리로 우리들의 인식 능력이 불완전함을 강조하려
한다면, 그 방법은 오히려 잘못된 것이다. 개체를 초월하면 손가락이라는 존재는 손
가락이면서 손가락이 아니고, 말이라는 존재는 말이면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상
대성을 초월한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손가락 하나도 천지라 할 수 있고, 말 한 마리
도 만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말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의 구별이 명확하다. 도는 무한히 변화함으로써 완전한 존
재가 되지만, 그것이 나타난 하나하나의 사물에 대해서는 그 각각에 해당되는 말이 필
요하다.
즉 그런 것은 '그렇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듯이 그 뜻이 확실히 정해져 있
지 않으면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말의 표현 대상인 사물은 원래가 개별적이
동시에 보편적인 존재다. 따라서 풀잎과 기둥, 문둥병자와 미녀 서시를 예로 든다면,
전자는 그 크기에, 후자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각각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만 역
시 동일한 것이다. 또한 아무리 상상을 벗어난 기괴한 사물이라 하더라도 도의 견지에
서는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형식뿐만이 아니라 운동에 있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일면 파괴로 보이는 현
상도 다른 면에서 보면 완성일 수 있고, 반대로 완성이 곧 파괴일 수도 있다. 즉 일체
의 존재는 형식과 운동을 막론하고 어떠한 구별도 없는 것이다.
이 만물제동의 이치를 체득한 사람은 사물을 선택하는 입장이 아니라 사물을 떳떳
함, 즉 자연의 형상에 맡길 뿐이다. 떳떳하다는 뜻의 용은 쓴다는 뜻의 용과도 통하
고, 이것은 다시 통한다는 통과 통한다. 자연의 작용에는 무리함이 없다. 통은 또 얻
는다는 득과 통한다. 무리가 없는 작용을 통해서만 사물은 존재로서의 의의를 갖게 되
는 것이다.
일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인식은 만유의 실
상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도와의 일체화란 자연에 맡기려는 의식마저도 없는 상
태를 이르는 것이다.
* 도추: 추는 문짝이 열리고 닫히고 하는 지도리로서, 문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다. 그러므로 도추는 도의 요체란 뜻이 된다.
* 손가락으로써.... 못하다: 이 대목은 공손용 파의 논리학자들이 주장한 '지물론'
과 '백마비마론'을 가리킨 듯하다. 공손용은 '백마론'에서 만물의 같고 다름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하였다. 또 '지물론'에서는 이르는 것과 실상과의 관계
를 취급하여, 이름은 거짓 가리킴으로 실상과 반드시 합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 서시: 춘추 시대 월나라의 미녀로서 오왕에게 바쳐졌는데, 오왕은 서시의 아름다
움에 혹하여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자연에 맡겨라 - 제물론
마음을 괴롭히면서까지 만물을 하나로 보려고 하나 그것이 같은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을 '조삼'이라 한다. 무엇을 이르는 말인가? 저공이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말
하기를, 아침에 셋을 주고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성을 냈다. 그러
면 아침에 넷을 주고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하자 모든 원숭이들이 기뻐했다. 이름과
실상이 변하지 않았는데, 기뻐하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한다.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
다. 이 때문에 성인은 시비를 조화시켜 천균에 맡긴다. 이것을 '양행'이라고 한다.
옛사람 중 지식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어디에까지 이르렀던가? 처음
부터 만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이 경지는 완전 무결하여 더 이
상 첨가할 것이 없다. 다음 사람은 만물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음 사람은 만물 사이의 구별은 인정했으나 옳고 그름의 구별은
없다고 하였다. 옳고 그른 것의 구별이 생기자, 도는 손상되었다. 도가 손상된 곳에
집착심이 생기게 되었다. 과연 이루어짐과 허물어짐이 있겠는가, 아니면 이루어짐과
허물어짐이 없겠는가?
이루어짐과 허물어짐의 예는 소문이 금을 타는 경우이다. 또한 이루어짐과 허물어짐
이 없는 예는 소문이 금을 타지 않는 경우이다. 소문은 금을 타고, 사광은 지팡이로
가락을 맞추며, 혜자는 책상에 기대어 담론했다. 세 사람의 재능은 매우 훌륭하여 후
세에까지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들은 좋아하는 바가 옛 성인들과 달라서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을 남에게도 밝히려 하였다. 밝힐 수 없는 것을 밝히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단한 돌은 돌이 아니라는 따위의 어리석음에 빠졌다. 그리고 소문의 아들은 소문을
능가하지 못하고, 평생토록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사람들도 도를 이룬 것이라
한다면, 비록 나라도 도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
한다면, 모든 사물과 함께 나도 도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성인은 회의를 초월한 빛
남을 지니고자 염원한다. 이를 위하여 선택함이 없이 자연의 떳떳함에 맡긴다. 이것이
곧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한 것이 세상 사람들의 판단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같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같든 같지 않든 간에 서로 판단하는 것이니 세상 사람들의 판단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말을 해보려 한다. 처음이 있으면 처음 이전의 시기가 있고, 또한
처음 이전의 시기, 이전의 시기가 있게 된다. 유가 있으면 그 이전에 무가 있다. 무
이전에는 무가 없었던 상태가 있고, 또한 무가 없었던 상태 이전의 상태가 있게 된다.
유무가 홀연히 나타나나 어느 것이 있는 것이고 어느 것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말한 대로이다. 그러나 내가 말한 사실도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말
할 수 없는 것인지 또한 알 수가 없다.
도에 비춰보면 가을철에 가늘어진 짐승의 털끝보다 큰 것이 천하에 없다. 태산도 그
보다는 작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어린아이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없으니 팽조도 그보
다 명이 짧다. 천지는 나와 함께 생겼고, 만물도 나와 하나가 된다. 이미 하나라고 하
였으니 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 이미 하나라고 말을 했으니 또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 하나가 하나라는 말과 합쳐서 둘이 되고, 둘이 처음의 하나와 합쳐서 셋이 된다. 이
렇게 수가 늘어가면 수에 능한 사람도 헤아리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
떻겠는가? 무에서 유로 넘어가는 순간 셋이 되었으니 유에서 유로 향할 때는 얼마나
혼돈에 빠지겠는가? 차별의 세계로 향하지 말고 도에 의지해야 한다.
무릇 도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없고, 말에는 애당초 일정함이 없다. 말로써 도를 나
타내려 하므로 한계를 두게 되니, 그 한계를 말하려 한다. 왼쪽과 오른쪽이 있고, 떳
떳함과 옳음이 있으며, 나눔과 따짐이 있고, 시샘과 다툼이 있다. 이것을 여덟 가지
덕*이라 한다. 성인은 천지 밖의 현상이 있다고 하여도 논하지 않는다. 또한 천지 안
의 현상을 논하기는 해도 밝히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참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실제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고, 참으로 따진다는 것은 실제로 따지지 않는 것이다.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성인은 일체를 받아들이나 사람들은 그것을 따지고 서로
내보이려 한다. 그러므로 따진다는 것은 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큰 도는 이름 붙일 수 없다. 큰 변론은 말하지 않고, 진실로 어진 것은 사소하
게 어질지 않다. 지극한 겸손은 하찮은 일에 겸손을 보이지 않고, 큰 용기는 남을 해
치지 않는다. 도가 드러나면 도라 할 수 없고, 말로 따지면 진실에 미치지 못한다. 어
진 것도 일정하면 인을 이룰 수 없고, 겸손도 지나치면 위선이 되며, 남을 해치는 용
기는 무너진다. 위의 다섯 가지는 둥근 것이지만 지나치면 모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얇은 그 한계를 알아 거기에서 그쳐야만 지극한 것이다. 누가 말하지 않는 변론과 도
가 아닌 도를 알겠는가? 만일 능히 아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경지를 천부*에
비할 수 있다. 퍼부어도 넘치지 않고, 떠내도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유래를 알지
못하니, 이것을 보광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자기의 선택만 고집해 마음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다. '조삼 모사'라는 말이 있다.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이 하루는 원숭이들에
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아침에 세 공기, 저녁에 네 공기씩 주기로 하겠다."
그 말에 원숭이들은 일제히 성을 냈다. 그래서 저공이,
"그럼 아침에 네 공기, 저녁에 세 공기를 주겠다."
하고 말하자 원숭이들은 금방 화가 풀어졌다고 한다.
사실은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어떤 때는 기뻐하고 어떤 때는 성을 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
인은 옳고 그른 것의 구별을 세우지 않고 일체를 자연의 조화, 즉 천균에 맡긴다. 이
것을 '양행'이라고 한다.
태고적에 최고의 지혜를 지녔던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존재였고, 그들의 의식은 주객이 아직 나눠지지 않은 이른바 혼돈 상태였다고 생각되
기 때문이다. 이 혼돈 상태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인식 작용이 생기게 되었으나 객체로서의 사물에 구별을 두지는 않았다. 다
시 시대가 내려오자 사람들은 사물의 구별을 의식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아직 가치 관
념은 생겨나지 않았다. 이윽고 가치 관념이 생겨나자 도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인간에게 집착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도에 이루어지고 허물어지는 성휴의 구별이 있는 것일까?금의 명수인
소문의 연주를 생각해보자. 소문의 연주는 분명히 신묘한 가락을 이루었다. 그러나 반
면에 그는 연주되지 않은 무수한 가락들을 잃게 되었다. 소문의 연주, 즉 인간의 작위
가 성과 휴의 구별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다.
비단 소문의 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광(진나라의 약사)의 작곡이나, 혜자의 논
리학은 모두 인간 능력의 최고 단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불후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
다. 분명 그들은 위대했다. 그러나 자기의 재주나 지혜의 힘을 과시하고, 그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도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그 결과 헤자의 논리와 마찬
가지로 한낱 궤변에 그치고 말았다. 소문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기술에 얽매여 이상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만일 소문, 사광, 혜자의 세 사람이 성취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하는 일
모두 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휴에 불과하다고 단정해버린다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물론, 사물의 변화마저 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념 무상의 상태를 최고의 지혜로 알고, 선택하는 일없이 자연에
맡길 뿐이다. 바로 이것은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물에는 본래 구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나의 주장 역시 옳
고 그른 것을 따진 것이라는 견해도 성립된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든 따지지 않든,
그것이 판단인 이상 양자의 차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
에 항상 있게 마련인 한계를 염두에 두고 다시 인식 문제에 대한 고찰을 더 해볼까 한
다.
인간의 사물에 대한 인식은 운동(시간)과 형식(공간)의 두 범주로 크게 구별된다.
먼저 운동을 살펴보면, 어떤 운동이든 '처음'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 처음이
없으면 운동은 성립되지 않는다. 즉 처음은 모든 운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다. 그런데 처음이 전제되고, 일단 '처음이 있다'라는 판단이 내려지게 되면, 이에 대
해 '아직 처음이 없었던 때'라는 부정판단이 성립된다. 이러한 부정판단이 성립되면
다시 계속해서 '처음이 없었던 때'라는 이중 부정판단이 성립된다.
다음 형식을 살펴보자. 어떤 형식에서든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존재
하지 않으면 형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형식에 있어서 가장 기본
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고, 일단 존재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이것에 대해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라는 부정판단이 성립된다. 다시 계속해서 '아
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없었던 상태'라는 이중 부정판단과,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없었던 상태마저 없었을 때'라는 삼중 부정 판단이 성립된다.
이같이 모든 사물이 일단 의식의 영역 속에서 판단을 형성하면 즉시 그것에 대한 부
정판단이 성립된다. 그리고 부정은 다시 부정의 부정을 이끌어내고, 다시 또 부정의
부정의 부정이 이끌려온다. 이렇게 부정의 무한한 연쇄 반응은 끝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말해왔다. 그러나 이 판단 역시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체의 모순과 대립을 초월한 도의 세계에서는 큰 것을 대표하는 태산도 짐승의 잔
털보다 작으며, 8백 년을 살았다는 팽조도 어머니 배속에서 나오자마자 죽어버린 갓난
아기보다 명이 짧다. 천지와 나는 한몸뚱이요, 만물과 나는 하나인 것이다.
이 '하나', 즉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되는 주객 일체의 세계에서는 개념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라고 판단한다면 벌써 거기에 하나라
는 개념에서 둘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 둘이라는 개념과 하나라는 개념으로부터 셋
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이렇게 수 개념이 끝없이 늘어나게 되면 아무리 계산에 뛰어
난 사람이라도 밝혀낼 도리가 없다.
무에서 유를 향해 내딛는 그 순간에 벌써 셋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유에
서 유를 향해 나가는 경우에 어떻게 분화되어갈 것인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
다. 따라서 차별과 혼돈의 세계를 지향하지 말고 자연의 본모습인 도를 따라야 할 것
이다.
도는 본디 무한한 것이기에 말(개념)에 의한 구분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
나 말을 절대시하기 때문에 사물을 구분하는 관념이 생긴다. 그 구분에 대한 관념을
검토하려 한다.
먼저 사물을 비교 대립시키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 따위의 상대적인 구분이 생긴
다. 이 구분을 바탕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이 질서는 필연적으로 선택과 경쟁을 인간
사회에 초래하였다. 인간이 사고를 통해 얻은 수확은 이러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천지 밖의 현상은 내버려둔 채 논하려 하지 않으며, 천지 안
의 현상은 논하기는 하나 세세히 캐고 들지 않는다. 또 옛날 선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춘추>에 대해서도 사실을 자세히 따지기는 하나 시비를 가리려 들지 않는다. 결국 구
분을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구분하는 것이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가
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구분을 두지 않고,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
가? 일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인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일반 사람들은 말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서로 시비를 가린다. 이처럼
말을 절대시하는 것은 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도는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위대한 변론은 말로써 표현하지 못한다. 대인은 사소
하게 어질지 않으며, 진정한 겸손은 작은 일에 겸손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는 그것이 드러나면 이미 도라 할 수 없다. 말을 변론하면 사물의 실상에서 멀어
진다. 인은 특정한 대상에 고정되면 인이 될 수 없으며, 겸손이 지나치면 거짓이 된
다. 또한 용기를 믿고 남을 해치려 하면 용기라 부를 수 없다.
위에 말한 다섯 가지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둥근 것을 더욱 둥글게 하려는 것
이 인간의 지혜이고 노력이다. 그러나 둥근 것을 더욱 둥글게 하려는 노력은 결국 둥
근 것을 모나게 만들고 만다. 즉 인간의 최고의 지식은 앎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표현하지 않는 변설과 도가 아닌 도를 알 수 있겠는가?
만일 이것을 체득한 사람이 있다면 그 경지는 한없는 천부에 비할 수 있다. 모든 것
을 받아들여도 넘치지 않고 아무리 내주어도 마르지 않으나, 왜 그런가를 의식하지 않
는다. 이것이 밝음을 의식하지 않는 밝음, 즉 보광인 것이다.
* 여덟 가지 덕: 좌우, 윤의, 분변, 경쟁의 여덟 가지 덕.
* <춘추>는... 않는다: 원문은 '육합지외.... 성인의이불 변'인데, 이 대목의 뜻이
분명치 않다. 후세 사람들의 주가 본문에 삽입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천부: 천신의 창고
순의 반전로 - 제물론
예전에 요가 순에게 물었다.
"나는 종과 회와 서오를 치고자 한다.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석연치 못하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순이 대답했다.
"저들 셋은 아직도 쑥대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석연치 못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 옛날엔 열 개의 해가 함께 떠서야 만물을 다 비추었다 합니다. 하물며 그 해보다도
덕이 뛰어나신데 말씀입니다."
언젠가 요임금이 순에게 상의했다.
"나는 종, 회, 서오의 세 나라를 치고 싶다. 어쩐지 즉위한 뒤로 이 세나라가 마음
에 걸려 견딜 수 없다."
"그 세 나라는 미개한 야만국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풍속이나 습관이 다르다고 해서
공연히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
상태에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엔 해가 하늘에 열 개나 떠서야 만물을 비
출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태양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위대한 덕을 갖추신 임금께서
구태여 무렵을 쓰려 하십니까?"
*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남면): 옛날의 임금은 남쪽을 향해 앉아 정사를 논했기에
남면은 '임금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 제물론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만물이 똑같이 옳다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느냐?"
"선생님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느냐?"
"그러면 만물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느냐? 그러나 시험 삼아 말해보겠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
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내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시험 삼아 또 네게 묻겠다. 사람은 습기찬 곳에서 자면 허리가 병들어 한
쪽을 못 쓰게 되지만 미꾸라지도 그렇더냐?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면 무서움에 떨고 두
려워하지만 원숭이도 그렇더냐? 셋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거처임을 알겠느냐? 사람
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달다고 하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즐긴다. 넷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맛인지 알겠느냐? 원숭이는 편저를 암컷으
로 삼고, 고라니는 사슴과 사귀며, 미꾸라지는 고기와 논다. 사람들은 모장*과 여희*
를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고기가 보면 깊이 숨고, 새가 보면 높이 날아가며, 사슴
이 보면 급히 달아난다. 넷 중에서 어느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아름다움이겠느냐
? 내가 보기에는 인의의 근본이나 시비의 불분명함이 어수선하게 한데 섞여 있어서 어
지럽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가릴 수 있겠느냐?"
설결이 물었다.
"선생님은 이해를 가릴 수 없다 하시는데, 그렇다면 지인은 원래 이해도 모르는 것
입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지인은 신이다. 큰 계곡이 불타도 그를 뜨겁게 하지 못하고, 하수와 한수가 얼어도
그를 차갑게 하지 못한다. 격렬한 우뢰가 산을 허물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그
를 놀라게 하지 못한다. 지인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 생
사도 그를 변하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이해를 따지겠느냐?"
설결이 스승인 왕예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만물이 모두 한결같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시면, 적어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것만은 알고 계시는군요."
"그것도 모르지."
"그러면 일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계십니까?"
"그것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지나치게 판단에 집착해 있는 모양이니, 말로 설명하
기는 어렵지만 그런대로 말을 해보겠다. 대체로 인간의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
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며, 모른다고 단정한
것이 실은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험 삼아 네게 물어보겠다. 사람은 축축한 곳
에서 자면 허리를 앓아 반신 불수가 되고 말지만, 미꾸라지는 어떻더냐? 또 사람은 높
은 나무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덜덜 떨지만 원숭이는 어떻더냐? 이 셋의 거처에 대해
어느 것이 올바른 거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소나 돼
지의 고기를 맛있게 먹지만 사슴은 들판의 풀을 좋아한다. 지네는 뱀을 진미로 알고
있지만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는다. 그러나 이 넷의 맛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올바른 맛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또 있다. 원숭이는 편저라는 손이 긴 원숭이를 암컷
으로 하고, 고라니는 사슴과 사귀며, 미꾸라지는 물고기들과 어울려 논다. 모장과 여
희가 사람의 눈에는 절세의 미인으로 보이지만 물고기는 이들을 보면 무서워서 물 속
깊숙이 숨어버리고, 새는 놀라 하늘 높이 날아가며, 사슴은 허둥지둥 달아나고 말 것
이다. 그러니 이 넷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올바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겠
느냐? 내가 보기에는 인의를 논하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애매하기만 하니 어떻게 구분
할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
"선생님은 시비나 이해를 가릴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럼 지인(도에 도달한 사람)은
원래 이해 같은 것을 모르는 존재입니까?"
"지인은 영묘한 존재다. 큰 계곡이 불타도 뜨거움을 모르고, 큰 강물이 얼어붙어도
추운 것을 모른다. 산을 가를 듯한 우레나 바다를 뒤집을 듯한 폭풍에도 놀라지 않는
다. 지인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몰아 이 세상 밖에서 노닌다. 그의 몸이 생사를 초
월해 있는데, 하물며 하찮은 이해 득실을 따지겠느냐?"
* 설결: 요임금 시대의 현자로서, 왕예의 제자.
* 모장: 춘추 시대 월왕의 총희.
* 여희: 춘추 시대 진나라 헌공의 총희.
참다운 자유 - 제물론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저는 다른 선생님께 '성인은 속된 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
다. 해를 피하려 하지 않고, 구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며, 도덕 규범을 따르지도 않는
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것이 있고, 말을 하여도 말하려는 바가 없다. 성인은 이렇
게 속세 밖에서 노닌다.'고 들었으나 선생님은 그것을 꿈 같은 말이라고 부정하셨습니
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성인의 영묘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어
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오자가 대답했다.
"그 말은 황제*가 들어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물며 공자가 어찌 이를 알겠느냐?
또 너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다. 달걀을 보고 닭*을 요구하며, 활을 보고 올빼미 구
이를 찾는 것과 같다. 내 시험 삼아 너에게 망령되이 말하겠으니 너도 그렇게 듣거라.
성인은 해와 달을 이웃하여 우주를 옆에 끼고서 노닌다. 또한 만물과 하나가 되어 그
혼돈 속에 몸을 맡기고, 천한 것도 존귀하게 여긴다. 뭇 사람들은 잘난 체하지만 성인
은 오히려 어리석다. 만물을 있는 그대로 모두 옳다며 붙들어 포용한다. 삶에 집착하
는 것이 잘못이 아님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일찍 고향을 떠
난 사람이 돌아갈 곳을 모르는 것이 아님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여희는 애에 사는
봉인의 딸로서, 진나라에 처음 갔을 때는 너무나 울어서 옷깃을 흠뻑 적셨다. 그러나
임금의 처소에서 임금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고기를 먹게 되자 그 전에 운 것을 후회
했다. 죽은 사람이, 그가 죽기 전에 가졌던 삶의 애착심에 대해서 뉘우치지 않을 것을
내가 어떻게 알 것인가? 꿈에 술을 마신 사람이 아침에 울부짖으며, 꿈에 울부짖으며
운 사람이 아침에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꿈을 꿀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꿈
속에서 그 꿈의 길흉을 점치지만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안다. 오직 크게 깨달
은 뒤에야 인생이 긴 꿈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깨어 있다고 생
각하기에, 귀한 것이니 천한 것이니 한다*. 답답한 일이다. 공자와 너는 다 꿈을 꾸고
있다. 내가 너에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이다. 이 말은 매우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대성인을 만세 뒤에 만난다면 오히려 일찍 만나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나는 너와 논쟁을 벌였다. 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너를 이기지 못한다면, 과연
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것이겠느냐? 내가 너를 이기고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옳고 네가 그른 것이겠느냐? 혹은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은 그른 것이냐? 또는
다 옳거나 다 그른 것이냐? 나와 네가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기가 힘들 것이
다. 그러면 누가 바른 판정을 내리겠느냐? 너와 같은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너와
같기 때문에 올바를 수 없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나와 같기 때문에
또한 올바를 수가 없다.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우리와 다르기 때문
에 또한 올바를 수 없다.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우리와 같기 때문에
바르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면 나와 너와 제삼자가 모두 알 수 없게 된다. 그러한 판
정을 기다린다는 것은 변화하는 말소리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만약 기대하지 않을 바
에는 천예로서 화합하고, 이것에 의해 무한한 변화에 몸을 맡긴다. 대립이 없는 무아
의 경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느냐?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 그런 것과 그렇지 못
한 것이 있다. 옳은 것이 만약 진실로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과 다름
을, 그런 것이 진실로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다름을 말할 필요
가 없다. 세월과 옳음을 잊고 무경에서 노닐면 일체가 무경하게 된다."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성인은 속된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 이익을 추구하거나 손해를
회피하지도 않는다. 애써 구하려 하지 않고, 세상의 도덕을 따르지 않는다. 말함이 없
이 말하고, 말을 해도 생각이 없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을 초월해 있는 존재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이를 인간이 동경하는 것 중 하나일 뿐,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부정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
니다. 성인의 이러한 모습이 영원한 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장오자가 대답했다.
"황제 같은 현인도 혼동할 터인데, 공자 따위가 무엇을 알겠느냐? 너는 생각이 단순
한 것 같다. 그 정도의 설명으로 벌써 도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구나. 달걀을 보
고 닭을 찾으며, 활을 보고 올빼미 구이를 달라는 것과 같다. 내가 망령되이 말하겠으
니 들어보아라. 성인의 큰 덕은 일월과 같이 우주를 옆에 끼고 노니는 정도다. 만물과
한 덩어리가 되어 몸을 혼돈 속에 내맡기고, 귀천과 상하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사람
들은 지식에 얽매여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성인은 재주와 지혜를 버린다. 성인은
유구한 천지의 운행에 몸을 맡기나 변하지 않으며, 만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여 자기
안에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삶에 집착하는 것
은 어리석은 일이며,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나그네가 고향에 돌아감을 잊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봉인의 딸 여희가 처음 진나라로 갔을 때는 눈물로
나날을 보냈으나, 후궁이 되어 임금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
자 전에 울었던 일이 어리석게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 역시
일찍이 삶에 집착하였던 일을 어리석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또 꿈속에서 술을 마
시며 실컷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서 소리 내어 울고, 꿈속에서 통곡
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즐기는 일도 있다.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꿈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는 일도 있지만, 잠이 깬 뒤에는 그것이 꿈이었음
을 알게 된다. 인생도 긴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으며, 참된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만
이 그것이 꿈인 줄 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사람들도 그들이 깨어 있다고 믿기에 사
소한 지식을 과시하고, 귀천의 차별을 일삼는 것이다. 나의 말이 무척 이상하게 들릴
것이나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대성인은 수십만 년에 한 사람 나오기
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도 믿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너와 논쟁하고 있지만, 만일 네가 나
를 앞서게 된다면 너의 말이 옳고 내 말이 그른 것이 되겠느냐? 반대로 내가 앞선다면
나의 말이 옳고 네가 그른 것이냐?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 것이겠느냐? 양쪽
이 다 옳거나, 아니면 양쪽이 다 그른 것이냐? 당사자인 우리 두 사람이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제삼자에게 부탁한다 해도 그 역시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
일 판정하는 사람이 너와 같은 의견이라면 그는 벌써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
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쪽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판정을 내리게 하면 양쪽이
다 부정될 것이 틀림없다. 또 양쪽 모두와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면 판정을 내리기
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건 간에 옳고 그른 것의 판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구에게 판정을 기대하겠느냐? 결국 어느 것이 옳고 옳지 못하
다고 논해보아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런 바에야 이러한 일체의 대립을 그대로 방
치해두고, 대립이 없는 경지에 내맡겨두는 것이야말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참다
운 자유가 아니겠느냐? 옳으니 옳지 않으니, 그러니 그렇지 않으니 하고 구별할 것이
아니라, 일체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옳은 것은 어디까지나 옳고, 그런 것은 어
디까지나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는 없다. 생사와 시비를 초월하여 무한한 천지의 운행에
몸을 맡기는 것만이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 구작자: 장자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 장오자 역시 마찬가지다.
* 황제: 성은 공손. 소전씨의 아들로 복의씨, 신농씨와 더불어 삼황이라 일컬어진
다.
* 닭: 원문은 시야이다. 닭이 밤이 새는 것을 알리는 데서 비롯되었다.
* 귀한 것이니 천한 것이니 한다: 여기서 군은 귀한 것을, 목은 천한 것을 가리킨
다.
망량과 경 - 제물론
망량*이 경*에게 말했다.
"당신은 가다가도 곧 멈추고, 앉아 있다가는 곧 일어서는군. 어째서 그렇게 지조가
없소?"
경이 대답했다.
"내가 무엇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겠소? 또한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
에 의지하여 그렇게 움직이겠소?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뱀의 배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 정도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렇고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소?"
망량이 경에게 말했다.
"당신은 걸어가는가 하면 금방 멈추고, 앉아 있는가 하면 금세 일어서는구려, 어째
서 그렇게 지조가 없소?"
그러자 경이 대답했다.
"당신은 형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인다고 나를 비난하고 있소. 그러나 나의
형체가 과연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겠소? 내가 따르고 있는 형체도 다른 그 무
엇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 형체란 빈 껍데기와 다름이 없을 것이오. 나는 내가
왜 움직이는지 알려 하지 않소."
* 망량: 그림자의 엷은 그림자. 즉 그림자 밖에 있는 희미한 그림자를 말한다.
* 경: 그림자.
꿈에 나비가 되다 - 제물론
어느 날,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춤추는 한 마리의 나비였다. 즐겁고 마
음에 흡족해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잠을 깨어보니 자기는 틀림없는 장
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로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로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
었다. 장주와 나비는 명백한 구분이 있다. 이것을 만물의 변형이라고 한다.
어느 날, 장주(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기가 장주
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눈을 떠보니 자기는 틀림없는 인간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주의 꿈을 꾸는 것인가? 그 모양으로
볼 때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만물의 무한한 변화 속에
서는 한 양상에 불과한 것이다.
지에는 평안이 없다 - 양생주
나의 삶은 끝이 있으나 앎은 끝이 없다. 유한한 것으로써 무한한 것을 따르면 위태
롭다. 그래서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뿐이다. 선을 행하더라도 명예를 좇지
말고, 악을 행하여 형벌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 자연 그대로를 본받아 떳떳하게 살면*
몸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또한 부모를 공양하고 주어진 생명을 다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 것이다. 그러나 지의 작용은 한이 없다. 생명의 이러한 유한
성을 도외시하고, 지가 이끄는 대로 끊임없이 추구하다 보면 평안한 날이 없다. 우리
는 이러한 이치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지식에 속박되어 있다.
우리는 지식의 작용으로 선과 악을 말한다. 그러나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하는 것도
실상은 명예나 형벌을 규준으로 한 평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같은 선악에 사로잡
히지 말고, 자연을 본받아 그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편안하고 충실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
* 자연 그대로.... 살면: 원문은 연독이위경이다. 여기서 독은 등의 중간에 뻗은 혈
관 또는 등 뒤 옷의 솔기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중간의 바른 것', '중정'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경은 법도 또는 기준을 가리킨다. 즉 '올바른 자연의 법칙 그대로'를
뜻하는 구절이다.
명포정 - 양생주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갈랐다. 손을 놀리고 어깨로 받치며, 발로 밟고 무릎
을 굽힐 때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싹싹 혹은 쓱쓱 울려퍼져 음악적인 가락을 이루었다.
그것은 상림의 춤*과도 같고, 경수의 장단*을 연상케도 했다. 문혜군이 경탄했다.
"오오, 잘도 한다. 제주가 여기까지 미칠 수 있단 말이냐!"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서, 재주보다 훌륭한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소를 잡을 때
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습니다. 3년 뒤에는 소의 온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지금은 오직 마음으로 일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 기관은 그칠
줄을 알고 마음은 움직이려 합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큰 틈을 벌리고 크게 비어 있
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본래의 구조에 따르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뼈와 힘줄이 엉켜
있는 곳을 가르는 일에 실수가 없었습니다. 하물며 커다란 뼈다귀가 문제되겠습니까?
능숙한 백정이 해마다 칼을 바꾸는 것은 날이 무뎌지기 때문이며, 일반 백정이 매달
칼을 바꾸는 것은 날이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지닌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
리의 소를 갈랐지만 칼날은 새로 숫돌에 간 듯합니다. 소의 마디는 사이가 있지만 칼
날은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빈틈으로 들어가 여유있게 그 칼날을 놀리기
때문에 19년이나 사용했지만 숫돌에 방금 간 듯합니다. 그러자 오직 한 군데, 뼈와 힘
줄이 엉켜 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것이 힘든 일인 줄 알기 때문에 크게 조심하여, 눈은
한 곳을 응시하고, 칼질은 더뎌져서 칼놀림이 대단히 미묘해집니다. 흙이 땅에 떨어지
듯 뼈와 살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일이 끝나면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흐뭇해져서 칼을 닦아 넣어둡니다."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얻었다."
언젠가 소를 잘 잡기로 유명한 포정이 문혜군 앞에서 소를 한 마리 잡아 보였다.
포정이 소 몸뚱이에 손을 대고 어깨에 힘을 주며 발의 위치를 정하고 무릎으로 소를
누르는 순간, 고기가 뼈에서 떨어져 나왔다. 보기좋게 돌아가는 칼놀림은 가락을 타는
것이 마치 상림의 춤을 보고 경수의 장단을 듣는 것 같았다.
문혜군은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과연 훌륭하구나! 참으로 귀신같은 솜씨다."
포정은 왕의 칭찬을 듣자 칼을 놓고 말했다.
"방금 보신 것은 솜씨가 아닙니다. 솜씨의 극치로서 도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이 일
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소의 겉모습만이 눈에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는 동안 겉모습
은 사라지고 뼈와 힘줄이 보이게끔 되었습니다. 이제는 육안에 의지하는 일없이 마음
으로 소를 대할 뿐입니다. 소를 대하면 우선 감각의 활동이 그치고 마음만이 활발히
움직입니다. 그 다음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소의 몸뚱이에 갖추어져 있는 틈바구니를
끊어서 벌리고 들어가기 때문에, 큰 뼈는 물론이고 힘줄과 살이 뼈와 서로 맞붙어 있
는 부분에서도 칼날이 부딪히는 일이 없습니다. 보통 백정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꾸고, 솜씨꾼이라도 1년에 한 번은 바꿔야 합니다. 뼈에 부딪혀 부러지기도 하고,
오래 사용하면 날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칼은 19년이나 쓴 것입니다. 벌써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아직 새것 같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으나 칼날에는 두
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에 집어넣는 것이므로 아무리 써도 날이
상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힘줄과 뼈가 맞붙어 있는 마지막 어려운 곳에 가 닿으
면 그때는 긴장하게 됩니다. 눈은 한 곳에 멈추고 동작은 점점 늦춰져서 저 자신도 칼
을 움직이는지 알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윽고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살 전체가 흙덩
이처럼 뼈에서 떨어져 나오면 그때서야 긴장이 풀어집니다. 칼을 들고 일어나 주위를
둘려보면 뿌듯한 충만감이 마음에 가득 차 잠시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윽
고 냉정을 되찾은 다음, 저는 정성들여 칼을 닦아서 칼집에 넣어둡니다."
문혜군은 감동하여 말했다.
"그대의 말을 듣고 나는 양생의 도를 깨달았다."
* 포정: 흔히 '백정'이란 말로 쓰이지만 원래 포는 고기를 저장해두는 창고나 고기
를 다루는 요리사를 뜻했다. 또 정은 사람의 성이니, '칼잡이 정 서방' 정도의 뜻이
다.
* 문혜군: 전국 시대 양나라의 혜왕을 가리킨다.
* 상림의 춤: 은나라 탕왕이 비를 빌 때 연주한 무곡.
* 경수의 장단: 요임금이 작곡한 무곡.
우사의 자유 - 양생주
공문헌*이 우사*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어찌 된 사람인가? 어째서 한쪽 발을 잃었나? 하늘의 뜻인가, 사람의 뜻인가?"
우사가 말했다.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뜻이 아닐세. 하늘이 나를 한쪽 발만 가지고 태어나게 한 것
일세. 사람의 모양은 하늘이 주시는 것이네. 그러니 내가 한 발을 잃게 된 것은 하늘
의 뜻일 뿐, 사람의 뜻이 아님을 알 것일세. 들꿩은 열 걸음에 한 번 쪼아먹고, 백 걸
음에 한 번 물을 마시지만 새장 속에 갇혀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네. 기운은 비록 왕
성해질지 모르나 마음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지."
우사는 형벌을 받아 한쪽 발을 잃었다. 우사를 여러 해 만에 만난 공문헌이 놀라서
물었다.
"대관절 어찌 된 일인가? 그 발은 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단 말인가? 하늘의 뜻인
가, 사람의 뜻인가?"
우사가 대답했다.
"놀라지 말게. 나는 형벌을 받았으나 그것은 사람의 힘이 한 일이 아닐세. 하늘이
나를 한 발만 가지고 태어나게 했을 뿐이네. 사람은 자신이 원해서 한쪽 발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세. 그러니 내가 한쪽 발을 잃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라네. 자네는
들꿩의 기분을 아는가? 그들은 먹이와 물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고 다니지. 그것이 고
생스러우나 새장 속에서 편안히 살려 하지는 않는다네.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자유를
원하기 때문일세. 나는 발 하나를 잃은 뒤에야 참다운 자유를 알게 되었네."
* 공문헌: 송나라 사람이라는 설이 있으나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 우사: 벼슬 이름.
제지현해 - 양생주
노담*이 죽자 진실은 세 번 우는 것으로 조상을 끝냈다. 노담의 제자가 물었다.
"선생께선 선생님의 벗이 아닙니까?"
진실이 대답했다.
"그렇지."
"그런데 조상을 이렇게 하셔도 괜찮습니까?"
"괜찮다. 나는 그 사람을 달리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까 내가 조상을 할 때
보니 늙은 사람은 그 아들이 죽은 듯이, 내 젊은 사람은 그 어미를 여읜 듯 울고 있었
다. 이렇게 많은 조상꾼이 몰려든 것은, 선생이 평소에 그렇게 하라고 하지는 않았겠
지만, 말하지 않은 가운데 은연중 조문하고 울게끔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를 벗어나고, 인간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옛사람은 이것을 일러 천리를
피하려 하는 죄라고 했다. 선생이 태어나게 된 것은 그때가 되어서라고, 돌아가시게
된 것은 그 운명에 따르는 것이다. 때를 편안히 생각하고 그것에 따르면 슬프고 즐거
운 것이 감히 개입하지 못한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제지현해'*라고 하였다.
장작이 모자란 곳에 장작을 밀어 넣어주면 불이 옮겨져 그것이 꺼지는 일이 없다.
진실은 노담(노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상을 갔으나 영전에서 세 번 곡하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그것을 본 노담의 제자가 진실을 힐책했다.
"선생께서는 우리 선생님과 오랜 친구 사이가 아니십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친구인 선생님께서 그런 식으로 조상을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괜찮다. 평소에 나는 선생을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왔으나 이제 그 생각이
달라졌다. 아까 안방에서 조상을 하면서 보니,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육친
이라도 잃은 것처럼 울고 있었다. 이렇게 조상꾼이 몰려든 것은 죽은 이가 평소 그렇
게 하게끔 자네들에게 말과 행동을 해왔기 때문이 아니겠나? 물론 선생은 슬퍼해 달라
거나 울어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말이 없는 가운데 그렇게 해주기를 원하고 있
었던 거겠지. 선생은 하늘의 이치에서 벗어나고, 인간 본래의 진실을 외면한 것이다.
즉 하늘에서 받은 인간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인, 옛사람들은 이것을 하늘의 이치에 어
긋나는 죄라고 했다. 선생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를 만났기 때문이며, 세
상을 떠난 것은 떠나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정해준 때를 편히 여겨 운명
에 순응하면 슬픔과 즐거움이 끼여들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경지를 가리켜 옛사람들은
천제가 준 생사의 고에서 벗어난다고 하였다. 하나하나의 장작개비는 타서 없어져 버
리지만 불은 영원히 타고 있는 것이다."
* 노담: 성은 이, 이름은 이. 노는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초나라 사람
으로, 철학자이며 도가의 시조이다.
* 제지현해: 제는 '하늘'을, 현은 '속박'을 뜻한다. 즉 하늘로부터 받은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 장작이.... 없다: 흔히 후세에 첨가된 문장으로 해석할 만큼 애매한 구절이다. 따
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다.
무심의 경지 - 인간세
안회*가 중니*를 보고 떠나기를 청했다.
"어디로 가려느냐?"
"위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무엇을 하러 가느냐?"
"제가 들어보니 위왕은 그 나이가 한창이고 행하는 바가 독재라서 나라를 가볍게 다
스리면서도 잘못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백성들을 가볍게 부려 죽게 하기에 죽은
자가 늪지의 풀처럼 나라 전체에 깔려 있으나, 백성들은 그를 어찌하지도 못하고 있습
니다. 일찍이 제가 듣기로 선생님께서는 '다스려진 나라는 버리고 어지러운 나라로 가
라. 의원의 집에는 병자가 많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들은 대로 행하면 그 나라의
거의 고쳐질 줄 압니다."
"슬프다, 만약 네가 가면 아마도 형을 당할 것이다. 무릇 도는 다른 것과 섞이는 것
을 바라지 않는다. 섞이면 많아지고, 많아지면 어지럽고, 어지러우면 근심되고, 근심
되면 구원할 수 없다. 옛 지인은 자기 몸에 먼저 도를 지닌 뒤에야 남에게 도를 지니
게 했다. 자기가 지닌 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느 여가에 포악한 사람의 행동에까지
이를 수 있겠느냐? 너 역시 어찌하여 덕이 흔들리며, 어찌하여 지혜가 나오게 되었는
지 알고 있을 것이다. 덕은 이름에 흔들리고, 지혜는 싸움에서 나온다. 이름이란 서로
마찰하는 것이고, 지혜는 다투는 연장이다. 이 두 가지는 흉기로서 결코 취할 바가 못
된다. 또 덕이 두텁고 믿음이 굳건하더라도 사람의 기운에는 이르지 못하여, 평판을
다투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통하지 못하면, 그가 아무리 인의와 먹줄처럼 곧은 말
을 폭군 앞에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 뜻을 미워하게 된다. 이런 자
를 일컬어 화를 미치는 사람이라 한다. 남에게 화를 미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화가
돌아온다. 너는 아마 남을 위해 화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진실로 어진 사람을 좋아
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미워한다고 하면, 어찌 어질지 못한 사람을 미워한다고 하
면, 어찌 어질지 못한 것을 가지고 그와 다른 것을 구하겠느냐? 너는 미처 말도 못하
고, 왕은 반드시 너를 눌러 이기려고 할 것이다. 너의 눈은 차차 어지러워지고, 낯빛
은 차차 평범해지며, 입은 차차 꾀하게 될 것이다. 얼굴을 꾸미게 되며, 따라서 마음
또한 이를 이루려 할 것이다. 이는 불로써 불을 끄려 하고, 물로써 물을 막으려는 것
이다. 이를 가리켜 더욱 심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이 순조로우면 막힘이 없다. 네
가 만일 신뢰받지도 못하면서 말이 많으면 반드시 폭군 앞에서 죽을 것이다. 옛날 걸
은 관용봉을 죽이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다.* 이들은 다 그 몸을 닦아 아랫사람으
로서 남의 백성을 어루만지고 윗사람을 거역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몸을 닦
았다는 이유로 임금에게 제거당한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름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옛
날 요는 총과 지와 서오를 치고, 우는 유호를 쳤다. 결국 나라는 텅 비어 병들고, 그
들은 형을 받아 죽었다. 그들이 용병을 그치지 않은 것은 실속을 구한 탓이다. 그들이
다 이름과 실속을 구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만 듣지 못했더냐? 이름과 실속은 성인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너야 말해 무엇하겠느냐? 그러나 네게도 반드시
까닭이 있을 테니 시험 삼아 내게 말해보려무나."
중니(공자)의 제자 안희가 중니 앞에 나와 하직 인사를 드렸다.
"어디로 가려 하느냐?"
"위나라로 가려 합니다."
"장차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말해보아라."
"선생님께서도 들으셔서 아실 줄 믿습니다만, 위왕은 지금 한창 나이에 점점 더 도
리에서 벗어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큰 공사들을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벌
여놓고는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위나라의 국토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 있
고, 가는 곳마다 죽은 사람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왕은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없어, 백성들은 재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는 '잘 다스려진
나라에는 할 일이 없다. 어지러운 나라야말로 우리들이 일해야만 하는 곳이다. 그것은
마치 병든 사람을 위해서 의원이 필요한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선생
님의 가르침에 따라 위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잡기 위해 전력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너도 결국은 죽음을 당할 것이다.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두기 바란다.
도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잡념을 품어서는 안 된다. 잡념을 품으면 마음은 어지
러워지고 고민으로 꽉 차게 마련이다.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는 도에 가까워질 수
가 없다. 대체로 세상에서 성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도를 체득한 뒤에야
비로소 남을 이끌려고 생각했다. 너처럼 도를 체득하지 못한 사람이 난폭한 임금을 교
화시킬 수 있겠느냐? 우리들이 어째서 덕을 잃고 지식에 의존하게 되었는지 너는 아느
냐? 덕을 잃게 된 것은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에 이끌려서이며, 지식에 의존하게 된 것
은 그것이 싸움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예욕에 사로잡히고 지식에 의존하는 한 사람
들간의 대립과 항쟁은 심해질 뿐이다. 명예욕이나 지식은 상대방을 해치고 자신을 망
치는 흉기에 지나지 않는다. 흉기에 의존해서 도대체 뭐가 될 수 있겠느냐? 가령 네가
이미 충분한 덕을 갖추었고, 아무런 명예욕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
하다. 상대가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만의 자를 들고 폭군에게 그것에 맞는 인의나 도덕을
강요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느냐? 상대방 눈에는 네가 남의 결점을 미끼 삼아 자
기 혼자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겠느냐? 그래서는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
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남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화가 되돌아가게
된다. 네가 무사할 리 있겠느냐? 가령 위왕이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멀리하며, 너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인물이라면 새삼스레 네가 갈 것까지도
없다. 기실 그는 손을 댈 수조차 없을 만큼 못된 왕일 뿐, 위나라에도 너만한 인물은
있다. 그가 네 의견 따위에 귀를 기울일 리 있겠느냐? 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는
권세를 등에 지고 단숨에 너를 내리누르려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려고 줄곧 변명만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애초에 가졌던 마음은 까
맣게 잊어버린 채 상대방의 의향에 끌려가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치 불에 기름
을 들이붓는 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이 그런 형편이면 다음은 무한정 후퇴
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상대방에게 신임도 얻지 못한 처지에 눈치없이 간
언이라도 하게 되면 죽게 될 것이 불을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하다. 옛날 관용봉은 임금
걸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비간은 임금 주에게 죽음을 당했다. 관용봉과 비간은 다같이
세상에 알려진 어진 사람이다. 그들은 신하이면서 임금의 잘못을 꾸짖고 백성들을 불
쌍히 여겨서, 백성들 사이에서는 임금을 능가하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임금이 그들을
죽인 것인 그들의 뛰어난 인격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들 두 사람은 명예욕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위험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옛날 요임금은 총과 지와 서오를 토벌하
고, 우임금은 유호를 토벌했다. 그 결과 그들 네 나라의 임금은 죽고, 백성들은 흩어
져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네 나라의 임금음 이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끝없이 전쟁을
되풀이하였다.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다.
이 이야기는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떤 성인의 힘
으로도 그를 교화시킬 수 없는 법이다. 더구나 네 힘으로서는.... 그러나 자진해서 위
나라로 가려고 하는 데는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겠느냐? 그것을 한번 들어보자."
* 안회: 자는 자연. 공자의 제자.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공자의 총애를 받았으나 요
절하였다.
* 중니: 성은 공, 이름은 구, 자는 중니. 춘추 시대 노나라의 철학자로 유가의 시
조.
* 옛날 걸은.... 죽였다: 걸은 하왕조의 마지막 천자이고, 주는 은왕조의 마지막 천
자이다. 다같이 폭군으로 유명하다. 또 관용봉은 걸의 신하이고 비간은 주의 작은 아
버지였다. 관용봉은 걸의 잘못을 간하다가 목을 베이게 됐고, 비간은 주의 잘못을 간
하다 주의 심기를 건드려, '성인의 염통엔 구멍이 일곱 개나 된다니 과연 그런가 어디
봅시다."하는 말과 함께 살해당했다.
마음의 재계 - 인간세
안회가 말했다.
"단정하고도 겸허하며, 근면하고도 순일하면 되겠습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아니다. 어떻게 되겠느냐? 위왕은 정기가 꽉 차 있어 심히 잘 변한다. 얼굴빛이 일
정하지 않아 보통 사람으로 여길 수가 없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느끼는 바를 짐작
하여 그의 마음을 충족시키려 한다. 이를 가리켜 한 점의 덕도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데, 하물며 큰 덕을 이룰 수 있겠느냐? 그는 장차 변하지 않을 것이며, 겉으로는
동의해도 안으로는 고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저는 안으로 곧고 밖으로는 굽히며, 말을 하되 하늘에 견주어 하겠습니다.
안으로 곧다는 것은 하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천자나 저
나 모두 하늘의 자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남이 좋아하기를 바랄
뿐, 남이 싫어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른바 사람들
이 말하는 어린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늘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꿇어앉으며 팔을 굽히는 것은 남의 신하 된 사람의 예로서, 모두가 하는 일
을 어찌 감히 하지 않겠습니까? 남이 하는 대로 따르면 사람들이 헐뜯는 일이 없을 것
입니다. 이것을 일러 사람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말을 하되 하늘에 견주어 한다는 것
은 옛사람과 함께 함을 말합니다. 그 말은 가르침과 꾸짖는 내용이지만, 옛날부터 있
던 것이지 제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비록 고친다 해도 병이 되지 않습니
다. 이것을 일러 옛사람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괜찮겠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아니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느냐? 너무 정법*이 많아서 편치 못할 것이다. 하기
야 거북한 대로 죄는 없을 테지만 이에 그칠 뿐, 그것이 어찌 교화시키는 데까지 미치
겠느냐? 너는 아직도 네 마음에만 매달려 있다."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을 여쭙고자 합니다."
중니가 대답했다.
"재계해라. 내가 네게 말하겠는데, 마음으로써 하는 일이 그리 쉽겠느냐? 쉽다고 하
는 자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본래 저희 집이 가난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매운 것을 먹지 않은지가 여러 달째
됩니다. 이러한 것을 재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제사 때의 재계지, 마음의 재계는 아니다."
"감히 마음의 재계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중니가 대답했다.
"너는 뜻을 하나로 해라. 듣기를 귀로써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해라. 또한 듣기를 마
음으로써 하지 말고 기로 해라. 듣는 것은 귀에서 끝나고 마음은 부*에 그친다. 기라
는 것은 텅 빈 채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는 오로지 빈 것으로 모이니, 빈 것
이 곧 마음의 재계다."
안회가 물었다.
"제가 일찍이 가르침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참으로 스스로가 저 자신이었습니다. 가
르침을 얻고 나니 비로소 저 자신을 떠난 것 같습니다. 이를 허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중니가 대답했다.
"충분하다. 내가 네게 말하겠다. 네가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 뛰논다 하더라도 그
이름을 느끼는 일이 없게 해라. 들어오면 울고, 들어오지 않으면 그친다. 문도 없고
담도 없으며, 부득이*라는 한 집에 살게 되면 그에 가까이 가게 된다. 자취를 끊기는
쉬워도 땅을 걸어다니지 않기는 어렵다.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면 거짓을 행하기가 쉽
고, 하늘이 시키는 바에 따르면 거짓을 행하지 않게 된다. 날개 있는 것이 난다는 얘
기는 들었으나 날개 없는 것이 난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앎이 있음으로써 안
다는 말은 들었으나 앎이 없음으로써 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저 빈 것을 보건
대 빈 방은 흰 것을 낳으며, 길상은 빈 것에 머문다. 그것이 아직 비어 있지 않음을
일러 좌치라 한다. 귀와 눈의 내통에 따라서 마음의 지를 밖으로 하면 장차 귀신도 와
서 머물러 할 터인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만물의
조화다. 우와 순이 이를 바탕으로 하고, 복희와 궤거가 평생 동안 행한 바가 이것인
데, 범인이야 더할 나위가 있겠느냐?"
"저는 절대로 지조를 굽히지도, 위왕을 업신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명예와
이익에 이끌리는 일없이 오로지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
니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나. 위왕은 정기에 가득 찬 인물로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
로 기분이 자주 변하여 신하들이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형편이라고 들었다. 그
것을 다행으로 아는 위왕은 더욱 신하들의 의향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
는 것이다. 폭군을 상대로 그런 방법을 쓴다면 큰 덕을 이루기는커녕 작은 덕조차 이
룰 수가 없다. 네가 뭐라 하든 위왕은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네 말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외양뿐, 진심으로 반성할 생각은 없을 것이
다. 그런 방법으로 어떻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속으로는 본성을 해치는 일이 없고, 겉으로는 위왕을 거역하지 않으며,
직접적인 비난은 피하고 모두 옛사람의 말을 빌어서 의견을 표현하겠습니다. 이런 방
법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속으로 본성을 해치는 것은 하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을
따르면 왕이나 저나 원래 구별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 의견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왕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달한 사람은 어
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늘을 따른다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겉으로 위왕을 거역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홀을 잡고, 무릎을
꿇고 깊숙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신하가 지켜야 할 예의로서, 신하 된 사람이면 누구
나 하고 있는 일입니다. 저도 여기에 따를 작정입니다. 누구나 다 행하는 것이니 비난
받을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속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옛사람의
말을 빌어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옛사람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임금을 비난
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말이라도 옛사람의 말을 빌어 표현하면 형식적으로는 제 발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과감한 발언을 한다 해도 시비를 듣지 않
을 것입니다. 옛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래도 역시 안 되겠
습니까?"
"그것 역시 좋지 않다. 너무 마음씀이 지나쳐서 잠시도 편할 때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런 방법이라면 죄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교화한다는 중요
한 목적은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 마음을 괴롭혀서 지혜를 짜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재계를 하는 것이 좋다. 알겠느냐?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성취시킬
수 없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배반하는 것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가난한 탓으로 저는 벌써 몇 달이나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
습니다. 그러니 이미 재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사를 지낼 때의 그런 재계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마음의 재계다."
"마음의 재계란 무엇입니까?"
"일체의 유혹에서 벗어나 마음을 순일하게 갖는 것이다.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다. 또한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는 기로써 듣는 것이 좋다. 귀는 소리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마음은 사상을 지각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로서
듣는다는 것은 모든 사상을 있는 그대로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는 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히 나타나게 된다. 마음의 재계라는 것은 무심의 경지
를 내 것으로 하는 일이다."
"저는 지금까지 너무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 앞에 서니 하찮은 저
따위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군요. 이제야 가르침을 받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
경지를 무심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그렇다, 그것으로 좋다, 회야. 세속에 동화되어 있으면서도 세속에 있음을 잊는 것
이다. 위왕이 귀를 기울일 때는 마음껏 의론을 전개하는 것이 좋다. 또 위왕에게 그럴
생각이 없으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좋다. 마음의 벽을 없애버리고 무를 내 마음으
로 하여 오로지 자연에 몸을 맡기고, 자연대로 행동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걷지 않
고 발자취를 남기지 않기는 쉬운 노릇이다. 그러나 걸으면서 발자취를 남기지 않기는
어렵다. 평범한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작위를 떠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하늘을
따라 자연에 몸을 맡기면 작위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날개가 있기에 새는 하늘을 난
다. 그러나 날개를 버림으로써 참다운 앎을 얻을 수 있다. 앎이 있기에 인간은 앎에
의지하려 하나, 그것을 버려야만 참다운 앎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방이 텅 비어 있
을수록 많은 빛이 들어치듯이 마음이 무심에 가까울수록 도의 활동이 높아진다. 무심
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는 한 잠시도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외계의 사물은 들리고 보
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것을 앎에 맞추어 따지려 해서는 안 된다. 이 경
지에 도달하면 귀신조차 움직일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은 말할 여지
도 없다. 그리하여 만물은 그 덕에 감화되는 것이다. 우와 순, 복희씨, 궤거 같은 성
인들도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평생을 두고 노력했는데, 하물며 성인이 아닌 한낱
범인이 무심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정법: 남을 바로잡으려는 말.
* 부: 밖의 움직임에 부합시키는 것, 즉 마음으로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 부득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 즉 '자연' 또는 '자연의 법칙'을 말
한다.
자연에 살다 - 인간세
섭공 자고*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중니에게 물었다.
"왕께서 저에게 시키시는 일이 심히 무겁습니다. 제나라는 사자를 맞아 아마도 일에
극히 신중을 기하느라 빨라 처리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부도 쉽게 움직일 수 없
는데, 하물며 제후야 어떻겠습니까? 저는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일찍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무릇 일이란 작건 크건 성사됨을 기쁨이라고 하지 않는 일이 적
다. 만일 일이 이룩되지 않으면 반드시 인도의 근심이 있고, 일이 이룩되면 또한 음양
의 근심이 있다. 이룩하든 이룩하지 못하든 뒤에 근심이 없는 것은 오직 덕 있는 사람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먹기를 검소하게 하고 사치를 부리지 않아서 밥 짓는
사람들이나 덥다고 할 정도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명령을 받고 저녁에 얼음물을 마
시는 것은 속에서 열이 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해 보지도 않고 이미 음양의 근심
을 가졌으니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반드시 인도의 근심 또한 갖게 될 것입니다. 이
로써 두 가지 근심을 다 가진 셈입니다. 남의 신하 된 자로서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일
이니, 이에 대해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천하에 대계가 둘 있으니 그 하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의입니다. 자식이 어버이
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으로서, 마음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
은 의로서, 세상은 임금의 것 아닌 데가 없으니 천지간에 벗어날 곳이 없습니다. 이것
을 일러 대계라 합니다. 그러므로 무릇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버이를 편안케 해야 지극한 효도가 되며, 또한 임금을 섬기는 사람은 일을 가리지
않고 임금을 편안케 해야 커다란 충성이 됩니다. 스스로 마음을 섬기는 사람은 슬픔이
나 즐거움 앞에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고 편안
히 여기기를 운명과 같이 하는 것을 덕의 지극함이라 합니다. 남의 신하나 자식 된 사
람에겐 본래 부득이한 일이 있습니다. 일을 실정대로 행함으로써 그 몸에 대한 걱정을
잊어야지, 어느 겨를에 삶을 즐기고 죽음을 싫어하겠습니까? 선생은 그곳에 가는 것이
옳습니다. 들은 바를 말하고 싶습니다. 무릇 사귀는 데에 있어 가까우면 반드시 서로
믿음으로써 따르고, 멀면 말로써 충성하게 됩니다. 말이란 반드시 누군가가 전하게 됩
니다. 무릇 양쪽이 기뻐하고 양쪽이 화낼 일을 전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입니다. 대체
로 양쪽이 기뻐할 일엔 반드시 좋은 말이 지나치게 많고, 양쪽이 화낼 일엔 나쁜 말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대개 무엇이 넘친다는 것은 망령된 것이요, 망령되면 그것을 믿을
사람이 없고, 그러면 전한 사람이 화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법언*에 '그 떳떳한 뜻
을 전하고, 그 넘친 말을 전하지 않으면 대체로 온전하리라.' 했습니다. 또 기교로써
힘을 겨루는 사람은 항상 양에서 시작하여 음으로 끝나는데,* 심해지는 것은 기교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로써 술을 마시는 사람은 어지럽지 않게 시작하여 항상 어지럽게
끝나는데, 난동에 이르는 것은 기락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또한 그러해서 참
된 것에서 시작해서 언제나 더러운 것으로 끝납니다. 시작은 간략하나 장차 그것이 끝
날 무렵엔 반드시 커집니다. 말은 풍파이고, 행함은 참을 잃은 것입니다. 풍파는 움직
이기 쉽고, 실상은 위태롭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분노하게 되는 것은 교묘한 말과 편
벽된 말 때문입니다. 짐승은 죽을 때 아무렇게나 소리를 지르고, 기식이 불연하여 마
음이 사나워지게 됩니다. 극심함이 심해지면 반드시 어질지 못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데, 그러고도 그것이 그런 줄을 모릅니다. 진실로 그런 줄을 모른다면 어진 줄 모르게
누가 이를 끝내겠습니까? 그러므로 법언에 '영을 달리하지 마라, 성공을 서둘지 마라.
'라고 했습니다. 도가 지나친 것은 보태는 것이요, 영을 달리해 성공을 서두는 것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 걸려 이루어지고, 악은 한번 이루어지면 미처
고치지 못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물을 따라 마음을 편히 하고 부
득이한 것에 의지하여 마음을 닦으면 그만입니다. 어찌 꾸며서 하는 일로 이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명을 충실히 좇는 것만으로는 다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어려
운 것입니다.
초나라의 섭공은 사신이 되어 제나라로 떠나기 전에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왕께서는 제게 너무 힘겨운 일을 시키셨습니다. 아마도 제나라는 이리저리 둘러대
며 일을 자꾸 미루려고만 할 것 같습니다. 필부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데, 하물
며 제왕을 설득한다는 것은 제게 너무 벅찬 일입니다. 제가 처해 있는 입장을 생각하
면 몸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언제인가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
습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보통 사
람은 책임을 맡은 일이 실패로 끝날 경우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고, 처벌받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설사 성공한다해도 마음의 무거운 짐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으로 쓰러진
다. 일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항상 무사 태평할 수 있는 것은 덕이 있는 사람뿐이
다.' 저는 평소부터 극히 질소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땀이 나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왔
습니다. 그런데 사신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부터는 몸에 심한 열이 나서 얼음물을 마
시지 않으면 못 견딜 지경입니다. 이렇듯 아직 제나라로 떠나기도 전에 병부터 앓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죄를 추궁받을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되면
이중으로 화를 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하로서 차마 못할 말이긴 하나 소임을 감당
할 수 없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의 가르침
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는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운명으로, 부자의 관계
가 그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의 심정이며, 누구든 이 심정을 던
져버릴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규범으로,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그것
입니다. 어떤 나라에나 반드시 임금과 신하가 있기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군신 관
계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이란 이 두 가지를 말합니다. 따라서 자식
된 사람은 어떤 곳에서든 부모를 좇아 부모의 안태를 도모해야만 효도라 할 수 있습니
다. 신하 된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임금의 명령을 좇아 임금의 안태를 꽤해야만
충성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어났을 때의 마음을 따르게 되면 어떤 일에서든 감
정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자식이 되고 신하가 되는 것이 내가 지닌 숙명이요 필연이라면, 자신을 잊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몸이 죽고 사는 것을 고민할 겨를이 없습
니다. 바라건대 아무 생각 말고 사신으로 떠나십시오."
공자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내가 견문으로 얻은 지식을 조금 더 말하겠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사귈 경우,
이웃 나라끼리라면 직접 의사를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나를 상대할
경우엔 사로가 사신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신이 되어 양쪽이
모두 좋아할 이야기, 혹은 반대로 양쪽이 다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양쪽이 다 좋아할 만한, 혹은 양쪽이 다 싫어할 만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거짓을 섞고 진실을 감추기가 쉽습니다. 진실에 위배되는 말은 분쟁의 근원
이 됩니다. 분쟁이 일어나며 사신은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심부름꾼은 진실을 옮기
는 것, 심부름꾼의 허풍은 화의 근본'이라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비근한 예를 들
면, 즐겁게 시작한 경기도 어느덧 열이 올라서 승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면
좋지 못한 결과로 끝나기가 일쑤입니다.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한 연회도 술잔이 거듭
되면 어처구니없는 광태를 보이며 난장판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보면
만 가지를 알 수 있다고, 처음엔 신중히 나가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아무렇게나 하고
마는 것이 사람이 보통 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엔 간단한 것 같아도 어느 사
이엔가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말이란 물결처럼 불안정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순간 쉽사리 변모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말을 전한 사람은
가끔 위험한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이 분노로 치닫게 되는 것은 말이 아첨이나
거짓으로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죽게 되면 힘을 다해 울부짖으며 미쳐 날뜁니
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지도 못
했던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한번 탈선하면 그때는 그칠 수가 없게 됩니다. 격언에 '
임금의 명령을 윤색하지 마라. 공을 세우려고 서둘러 꾀를 부리지 마라.'라고 했습니
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말에 거짓이 섞이게 되고, 임금의 명령을 윤색하고 꾀를 부리
면 일을 그르칠 뿐입니다. 큰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급히 서둘
러 나쁜 결과를 가져오면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부디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운명에 거역하지 않고 자신을 자연에 내맡겨야만 참다운 자유와 도의 활동이 있게 됩
니다. 그러니 선생은 결과를 생각하여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이, 임금의 의향을 그대로
만 전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 섭공 자고: 성은 심, 이름은 저량. 초나라의 대부로서 섭의 현령을 지냈다.
* 법언: 바른 도리로 법도가 되게 하는 말. '격언'이나 '속담' 정도로 풀이할 수 있
다.
* 또 기교로서.... 끝나는데: 여기서 양은 힘으로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음은
은밀한 계략을 써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
범을 길들이는 법 - 인간세
안합*이 장차 위영공의 태자*의 스승이 되려 할 때, 거백옥*에게 물었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덕이 없소. 함께 모나지 않게 일하면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며, 모나게 하면 나의 몸을 위태롭게 할 것이오. 그의 지혜는
남의 잘못은 족히 알면서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오. 그러한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하
겠소?"
거백옥이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오. 그대는 경계하고 조심하여 몸을 바르게 하시오. 몸은 따르는 것만
한 것이 없고, 마음은 화하는 것만한 것이 없소. 비록 그대로 행한다 해도 이 둘에는
조심할 점이 있소. 따르면서도 끌려들지 말고, 화합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하시오.
몸이 따르고 끌려들면 엎어지고 망하고 무너지고 미끄러지며, 마음이 화해 드러나게
되면 곧 시끄러운 말이 되고 명예가 되고 요괴한 재앙이 되오. 그가 어린아이짓을 하
면 더불어 어린아이가 되고, 그가 정휴 없는 짓을 하면 또한 더불어 정휴 없는 짓을
하시오. 그가 방종한 짓을 하면 또한 더불어 방종한 짓을 하시오. 여기에 통달하여 티
가 나지 않는 정도에까지 이르러야 하오. 그대는 저 당랑을 알지 못하오? 당랑은 자신
의 힘을 뽐내어 수레바퀴에 부딪치는데, 자신 힘이 이겨내지 못할 것은 알지 못한 채
힘만을 자랑하기 때문이오. 경계하고 조심하시오. 그대의 능력만을 자랑하여 이를 범
하게 되면 위험하오. 그대는 범 기르는 사람을 알지 못하오? 범에게 산 것을 주지 않
는 것은 이를 범이 이를 죽이려 성을 내기 때문이며, 또한 온전한 전체를 주지 않는
것은 이를 찢으려 성을 내기 때문이오. 배가 부르거나 고프면 범은 성을 내게 되오.
범이 사람과는 종류가 다르면서도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은 사람이
범을 따르게 했기 때문이오. 즉 범이 죽이는 것은 그를 거슬렸기 때문이오. 말을 사랑
하는 사람은 광주리에 말의 똥을 담고, 큰 그릇*에 오줌을 받기도 하오. 모기와 등에
가 달라붙는다고 qf시에 이를 치면 말은 재갈을 끊고, 머리를 깨고 가슴을 다치게 되
오. 뜻이 지극한 바가 있어도 사랑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소?"
노나라의 현자 안합은 위영공의 태자의 스승으로 부임하게 되자 위나라 대부 거백옥
을 찾아갔다.
"나는 어떤 사람의 교육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손을 댈 수 없이 혹독하고 경박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남의 잘못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은 어떠한 악행을 되
풀이해도 괜찮은 줄로 생각하고 있소. 그대로 두면 나라를 망치는 장본인이 될 것이
며, 그렇다고 무리하게 바로잡으려 하면 내가 죽게 될 처지요. 내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겠소?"
거백옥은 대답했다.
"그거 매우 흥미 있는 문제요. 먼저 계속 행실을 조심하여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노
력해야만 하오. 그런 다음 상대방에게 공손히 행동하면서 융화를 꾀하는 것이 좋소.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소. 상대에게 공손하다 보면 자칫 상대방의 나쁜 짓에 말려들
게 되고, 융화를 꾀하다 보면 자칫 감화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나게 되오. 상대방의 악
행에 끌려들면 스스로 몸을 망치는 결과가 되고, 상대방을 감화시키려는 의도가 드러
나면 당장 화가 미치게 되오. 상대방이 어린아이처럼 장난하거든 함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좋고, 상대가 버릇없이 행동하거든 함께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이 좋소.
또한 상대가 무모한 행동을 하거든 함께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소. 어디까지나 공
손하게 행동하면서 내 덕으로 상대를 감싸고, 나와 동화시키는 것이오. 사마귀의 예를
들기로 하겠소. 사마귀는 물건이 근접해오면, 비록 수레바퀴라 하더라도 앞발을 쳐들
고 맞서려 하오. 결국은 당해내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오. 능력을
과신하여 태자에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면 마침내는 사마귀와 같은 운명에 처할 테니
백 번 조심해야 할거요. 범을 기르는 사람을 예로 들어봅시다. 범을 기르는 사람은 절
대로 범에게 살아 있는 먹이를 주지 않소. 그것을 죽이려고 범이 살기를 띠기 때문이
오. 또한 절대로 먹이를 통째로 주지 않소. 찢어 먹으려고 살기를 띠기 때문이오. 범
을 기르는 사람은 범의 식욕에 따라 먹이를 조절하면서 어느 사이엔가 범의 살기를 없
애버려, 마침내는 사나운 범을 완전히 길들이게 되오. 범의 성질에 따르기 때문에 가
능한 일이오. 그와 반대로 범에 잡아먹히는 것은 범의 성질을 거슬렀기 때문이오. 아
무튼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그릇을 말의 변기로 쓸 정도요. 그러나 이토록 소중
히 길러주어도 등에 때문에 갑자기 때리기라도 하면, 말은 재갈을 물어 끊고 미쳐 날
뛰어 큰 상처를 압게 되오. 사랑이 원수로 변하는 것이오.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당신도 십분 조심해야 하오."
* 안합: 노나라의 현인.
* 태자: 괴외. 계모 남자를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외국으로 망명했다. 아버지인 영공
이 죽은 뒤 자신의 아들이 즉위하자 위나라로 몰래 들어와 반란을 일으킨 끝에 아들
출공을 내쫓고 위나라 왕이 되었다. 이가 장공이다.
* 거백옥: 성은 거, 이름은 원. 위의 대부.
* 큰 그릇: 원문의 신은 '큰 조개'로, 자개를 박은 좋은 그릇을 뜻한다.
무용과 유용 - 인간세
장인 석이 제나라의 곡원 땅에 이르러 사당나무가 되어 있는 가죽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덮고,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다. 그 높이는 산에 으르
며, 그 열 길 위에야 가지가 나 있었다. 가지는 배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수십 개나
되어, 구경하는 사람만도 저자를 이루었다. 장인 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제자는 이를 실컷 구경하고 나서 장인 석에게 달려가 물었다.
"제가 도기를 잡고 선생님을 따른 뒤로 일찍이 이같이 아름다운 재목을 보지 못했습
니다. 선생님은 보지도 않으시고 걸음도 멈추지 않으시니 어째서입니까?"
장인 석이 말했다.
"그만두어라. 말하지 마라. 못 쓸 나무다. 이 나무로는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곽
*을 만들면 빨리 썩으며, 그릇을 만들면 빨리 깨지고, 문을 만들면 나무진이 나오며,
기둥을 세우면 좀이 먹는다. 그것은 재목이 되지 않는 나무다. 쓸 만한 데가 없으니
그토록 오래 산 것이다."
장인 석이 돌아오자 가죽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너는 나를 어떻게 비교하느냐? 나를 문목*에다 견주려 하느냐? 저 아가위, 배, 귤,
유자, 등나무 등속은 열매를 뺏겨 욕을 당한다. 큰 가지는 부러지고 작은 가지는 찢어
진다. 이것은 그 능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이렇지
않은 것이 없다. 또 나는 내가 쓸모없기를 구한 지 오래다. 죽음을 앞둔 지금 그것을
얻었으니 큰 소용이 되었다. 나를 쓸모있게 했다면 이렇게 자랄 수 있었겠느냐! 죽을
사람이 또 어떻게 죽을 나무를 알겠느냐?"
장인 석이 깨어 꿈 이야기를 하니 제자들이 물었다.
"쓸모없기를 서둘렀다면 사당나무가 된 것은 어째서일까요?"
"조용히 해라, 말을 마라. 다만 머물러 있을 뿐, 자기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욕하는
것이다. 사당나무가 안 되었더라면 베였겠느냐? 그가 가지고 있는 바는 뭇사람들과 다
르다. 의로써 기린다면 또한 멀지 않겠느냐!"
석이라는 목수가 제나라로 여행을 하였다. 도중에 우연히 곡원이란 곳을 지나게 되
었는데, 거기에서는 엄청나게 큰 가죽나무가 사당나무로 제사를 받고 있었다.
그 크기로 말하면 나무 그늘 밑에 몇천 마리의 소가 쉴 수 있을 정도였다. 줄기는
백 아름은 되었고, 높이는 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땅위 7,80척쯤 되는 곳에서 겨우 가
지가 갈라져 있었다. 말이 가지지, 넉넉히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큰 가지가 수도
없이 뻗어 나와 있었다.
이 큰 나무를 구경하러 찾아드는 사람들로 그 근처는 마치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웠
다. 석의 제자들은 숨을 죽이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석은 한번 거들떠보는
일도 없이 성큼성큼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간신히 뒤를 쫓아 따라온 제자들이 물었
다.
"선생님, 선생님 밑으로 찾아온 후 오늘날까지 이렇게 훌륭한 재목을 본 적이 없습
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리셨습니다. 대관절 어찌 된
까닭입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 나무는 아무 데에도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가라
앉아버리고, 널을 만들면 금방 썩고 만다. 가구를 만들면 곧 부서지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투성이가 되며, 기둥을 만들면 밑으로 금방 좀이 먹고 만다. 아무 짝에도 쓸모
가 없이 크기만 한 나무다. 이렇게 크게 자라나게 된 것도 사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
다."
석이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 꿈에 가죽나무가 나타나 물었다.
"너는 도대체 나를 무엇에 비교해서 쓸모없다고 하는 거냐? 결국 문목과 비교한 것
이리라. 하긴 아가위나무, 배나무, 유자나무, 등나무 따위의 유실수는 너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일을 맺기에 비틀려 떨어져 욕을 당하고, 가지가
부러지고 찢어지고 한 끝에 제 명대로 못 살고 죽게 된다. 자신의 장점이 바로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즉 자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힌다. 이 세상에선 사람
이나 물건이나 모두 유용한 것이 되고자 똑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쓸모없는 것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천수가 다
해가는 지금에야 겨우 완전히 쓸모없는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너희들에게 쓸모없는 것
이 내게는 참으로 유용한 것이다. 만일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벌써 베어져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해 너나 나나 다같이 자연계의 개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건이 물건의 가치를 평가해서 어찌하겠다는 게냐? 가치를 평가하기로 말하면 너처럼
쓸모있는 것이 되고자 자신의 생명을 깍아내는 자야말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다. 쓸
모없는 인간이, 내가 쓸모없는 나무인지 아닌지를 알 까닭이 있겠느냐!"
이튿날 아침, 석이 전날 밤의 꿈 이야기를 하자 제자들은 말했다.
"그토록 쓸모없는 것이 되고 싶다면서 왜 백성을 수호하는 사당나무가 되었을까요?"
"이제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두어라. 사당나무가 된 것은 그가 바란 것이 아니라 임
시로 빌린 것에 불과하다. 이러니저러니 비평해보았자 상대방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들의 잠꼬대라 흘려들을 뿐이다. 기실 사당나무가 되지 않았더라도 남에게 베이진
않았을 것이다. 뭐라고 하든 그 나무는 세간의 바람과는 반대로 쓸모없는 것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상대를 세간의 상식에 맞춰 판단하면 턱도 없는 엉뚱한 견해를 가져
오게 될 뿐이다."
* 가죽나무: 재목으로 쓸 수 없는 쓸모없는 나무로서, 저와 병행하여 쓰인다.
* 관곽: 관과 관을 담는 궤. 속 널과 겉 널.
* 문목: 인간에게 소용이 되는 나무.
거목의 수수께끼 - 인간세
남백자기*가 상구에 유력*할 때 큰 나무를 보았는데, 차이가 있었다. 사두마차 1천
대를 메어도 그 그늘로 덮어 가릴 수 있었다. 자기는 말했다.
"이것이 무슨 나무일까? 이것은 반드시 특이한 재목이 되리라."
그리고 위를 우러러보니 그 가는 가지는 꾸불꾸불하여 동량을 만들 수가 없고, 아래
를 살펴보니 굵은 뿌리는 말리고 풀려서 널을 만들 수도 없었다. 그 잎을 핥으니 입이
부르터 쓰라렸으며, 냄새를 맡으니 몹시 취해 사흘이 갔다. 자기는 말했다.
"이것은 과연 쓸모없는 나무다. 그러기에 이토록 클 수가 있었구나. 슬프다, 신인이
이렇듯 쓸모없는 것이라니!"
남백자기가 상구 지방을 여행하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나무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두마차 1천 대가 그 그늘 밑에 쉴 수 있을 만큼 컸다.
"대체 이게 무슨 나무일까? 틀림없이 좋은 목재로 쓰이게 되리라."
그런데 자세히 쳐다보니 가지는 이리저리 꾸불꾸불 마구 꼬여 있어서 서까래나 기둥
으로 쓸 수가 없었다. 나무 밑둥 역시 굵은 뿌리가 비비꼬이고 얽혀 있어서 널을 짤
수도 없었다. 나뭇잎을 씹어 보았더니 금방 입이 부르트고 쓰려왔다. 또 잎의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갑자기 어지러워져서 사흘 동안이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아무 짝에도 소용에 닿지 않는 나무로구나. 그러기에 이토록 크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아, 슬프다! 신인이란 바로 이 나무와 같이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는
것으로 전화시킨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 남백자기: 남곽자기와 같은 인물
* 유력: 이리저리 두루 살피며 돌아다님.
불길은 대길 - 인간세
송나라 형지에 노나무와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랐다. 한 주먹이 넘는 것은 저후*가
베고, 서너 뼘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들보를 찾는 사람이 베며, 일고여덟 뼘이 되는
것은 귀인과 거부 집안의 널을 찾는 사람이 베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준 나이를 마치
지 못하고 중도에 도끼에게 죽게 되었다. 이것이 재목의 근심이다. 말하자면 이마 흰
소와 코가 휜 돼지와 치질 앓는 사람은 하신에게 맞지 않음을 무축*이 이미 아는 것과
같다. 이렇듯 상서롭지 못한 것을 신인은 커다란 상서로 삼는 것이다.
송나라의 형지 땅에서는 노나무와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랐다. 그런데 이들 나무가
자라서 주먹만큼 굵어지면 저후가 원숭이의 몽치(몽둥이)로 쓰려고 베어냈다. 세 주먹
이나 네 주먹쯤 되면 목수가 베어다가 들보로 써버렸다. 또 일고 여덟 주먹쯤 되면 부
자들이 베어다가 널감으로 썼다. 그러므로 어느 한 그루도 천수를 다하는 일이 없이
모두 중도에 넘어졌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마가 흰 소, 코가 휜 돼지, 치질을 앓는 사람, 이 셋은 절대로 하신에게 바치지
않는다. 이들은 불길해서 신에게 바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축이 잘 알고 있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세상에서 불길하다고 보는 것이
신인에게는 대길이 되는 것이다.
* 저후: 원숭이를 놀리는 사람.
* 무축: 신사를 맡은 사람.
불구자의 이점 - 인간세
지리소*는 턱이 배꼽에 숨어 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았다. 상투는 하늘을 가리
키고, 오관은 위에 가 있으며, 두 허벅지는 갈비뼈처럼 되어 있었다. 그는 바느질과
빨래를 하는 것으로 넉넉히 입에 풀칠을 했으며, 고책 파정*으로 넉넉히 열 사람을 먹
였다. 위에서 무사를 징집해도 지리소는 그 사이로 팔을 휘두르고 다녔으며, 위에서
큰 역사가 있어도 지리소는 불구자라하여 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줄 때는 삼종을 받고도 열 다발의 장작을 더 받았다. 지리소와 같은 형용을 한
사람도 오히려 족히 그 몸을 길러 하늘에서 준 나이를 마치는데, 하물며 그 덕이 지리
소와 같은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지리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등뼈가 어찌나 꼬부라졌는지 턱이 배꼽에까지 파고
들어 갔으며, 어깨는 머리보다 위로 솟아 있고, 상투는 똑바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
다. 두 다리는 옆구리 밑에서 갈라져 있고, 찾자는 머리보다 위에 자리잡았다. 그는
이런 부자유스런 몸으로도 바느질감과 빨랫감을 맡아 일하면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
었다. 게다가 방아까지 찧어주면 열 명은 충분히 부양할 수 있었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서 징병이 실시되어도 불구자인 그는 아무 걱정 없이 태평스러웠
다. 또 큰 공사가 시작돼도 부역에 끌려가는 일이 없었으므로 징집되어 가는 사람들
속으로 팔을 휘두르며 걸어다녀도 그만이었다. 게다가 정부에서 불구자에 대한 구호라
도 실시하면 곡식과 장작을 듬뿍 얻게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몸뚱이가 쓸모없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생애를 보낼 수가 있다. 그러니
재주와 덕에 있어서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도 천수를 온전히 마치지 못할 리가 없을 것
이다.
* 지리소: 지리는 지리멸렬과 같은 뜻으로서, 사지가 제멋대로 붙은 불구자를 뜻하
고, 소는 두뇌 작용이 둔한 것을 뜻한다. 이는 장자가 창작해낸 인물이다.
* 고책 파정 : 고는 고동한다는 뜻이고, 책은 '점을 치는 대'를 가리킨다. 글자 뜻
대로 풀이하면 점치는 대나무 가지를 흔들거나 세어 잡는다는 뜻이 된다. 파는 '흔든
다', 정은 '곡식을 고른다'는 말이다. '고책'은 '점을 친다'는 뜻이 되겠으나 여기서
는 '함께 꾀하다'로 해석, 즉 '살 찧는 일을 거드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은자의 독백 - 인간세
공자가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 광접여*가 그의 문앞에서 놀며 말했다.
"봉이여, 봉이여, 덕이 쇠한 걸 어찌하랴! 오는 세상은 기대할 수가 없고, 지나간
세상은 돌이킬 수가 없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은 이룩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살아갈 뿐이다. 지금 이때에는 형만 면하면 그만이다. 복은 깃털보다도 가벼운
데 이를 들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는 땅보다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
다. 말지어다, 말지어다, 남을 대하기를 덕으로써 하는 것을. 위태롭구나, 위태롭구
나, 땅을 그어놓고 달리는 것은. 미양*, 미양하면 내 가는 것에 상하는 일이 없고, 내
가는 것이 각곡*하면 내 발을 상하는 일이 없다.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게 되고,
기름불은 스스로를 태우게 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은 쓸
수 있기 때문에 찢기게 된다. 사람은 쓸모있는 것만을 쓸 줄 알고, 쓸모없는 것은 쓸
줄을 모른다."
공자가 초나라에 유세하던 어느 날, 광접여라 불리는 은자가 공자가 머무는 집 앞을
지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봉새여, 봉새여, 어찌하여 덕이 그 모양으로 쇄했느냐? 내일에의 희망은 덧없는
것, 어제의 영광은 지나간 꿈, 지금은 다만 오늘을 살아갈 뿐.
도가 있는 세상은 성인이 다스리는 곳, 도가 없는 세상은 성인이 숨는 곳. 이토록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무사 태평으로 지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행복은 깃털보다도 가
벼운데, 행복을 잡는 사람은 왜 그리도 적은 것일까? 화는 땅덩이보다도 무거운데, 화
를 피하는 사람은 왜 이다지도 적은가?
내가 가는 길을 인의로 좁히고 내가 가는 길을 남에게 강요하니, 아아,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지혜를 버리고 바보가 되어 세상의 허무 속에 몸을 맡겨라. 그러면 내 몸
은 상하는 일이 없다. 산의 나무를 베는 것은 쓸 곳이 있어서이고, 기름이 말라 없어
지는 것은 불이 타기 때문이다. 육계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잘리고, 옻은 칠할 수 있
기 때문에 찢기게 된다.
쓸데있기를 찾는 사람은 땅에 가득한데, 무용지용을 깨달은 사람은 왜 이다지도 적
은가!"
* 광접여: 광접여는 본이름이 아니다. <논어> '미자편'에는 공자가 당시의 은사들에
게서 비판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접여도 그 중 한사람이다. 광은 그가 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다닌 데서 붙인 이름이고, 그가 공자가 탄 수레 옆을 함께 따라가면서 이
런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편의상 '접여'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공자를 봉에다 비유한
것으로 보아, 때를 만나지 못한 공자의 외롭고 고달픈 생애를 못내 안타까워했던 것을
알 수 있다.
* 미양: 밝은 곳을 찾아다니다.
* 각곡: 각은 '피하다', '물리치다'라는 뜻. '각곡'은 비틀비틀하는 힘든 걸음걸이
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왕태의 인망 - 덕충부
노나라의 왕태는 올자*이나 그를 따르는 제자가 중니의 제자에 못지않았다. 상계가
중니에게 물었다.
"왕태는 올자이나 그를 따르는 사람의 수는 선생님과 노나라를 양분할 정도입니다.
강의나 토론을 하지 않지만 빈 채로 가서 충만해져 온다고 합니다. 그는 말이 없는 가
운데 가르침이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마음에 이루어진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중니가 말했다.
"선생은 성인이다. 나도 아직 찾아보지 못했지만 장차 스승으로 섬기려 하는데, 나
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노나라 뿐만 아니라 장차 천하를 이끌고 그
를 따르려 한다."
"그는 올자인데도 선생님보다 훌륭하다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
의 마음씀은 대체 어떠한 것입니까?"
"인간에게는 생사가 큰 문제이나 그를 변하게 하지 못하고, 천지가 뒤집혀도 또한
동요시키지 못한다. 그는 현상을 초월한 진리를 밝게 알아 만물의 변화에는 마음이 움
직이지 않는다. 만물의 변화를 운명에 맡기고, 도의 근원을 지켜나간다."
상계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틀린 것에서 보면 간과 쓸개도 초와 월만큼이나 멀지만 같은 것에서 보면 만물은
하나가 된다. 그러한 자는 귀와 눈의 즐거움을 모르고, 마음을 덕의 조화 속에 놀게
한다. 만물을 하나로 보고 득실을 보지 않는다. 발을 잃는 것을 보고도 마치 흙을 버
리는 듯하였다."
상계가 물었다.
"그는 지혜로 마음을 얻고, 그를 통해 부동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몸을 수양하였는
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습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사람은 흐르는 물에 비춰보지 않고 정지해 있는 물에 비춰본다. 오직 정지하고 있
는 물만이 모습을 비추고자 하는 사람들을 멈추게 한다. 땅의 식물 중에서 오직 소나
무와 잣나무가 사철 푸를 뿐이다. 목숨을 받은 인간 중에서는 순이 홀로 천성을 옳게
지녀 올바르게 살고, 또한 백성을 올바로 했다. 타고난 대로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
한 사람의 용사가 명예를 얻고자 구군* 속에 뛰어든다. 명예를 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데, 천지를 지배하고 만물을 포용하며, 육신*을 임시 거처로 여기고 귀와 눈을 치레로
알며,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생사를 넘어선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사람들
이 왕태를 따를 뿐이지, 그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려 하겠느냐?"
노나라의 왕태는 올자였지만, 제자의 수가 중니에 못지 않았다. 어느 날, 상계가 중
니에게 물었다.
"왕태는 올자이지만 선생님과 노나라를 양분할 정도로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습니
다. 강의나 토론을 하지 않아도 그를 따르면 반드시 무엇을 얻어 마음이 충실해진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은 덕으로 가득 차 있어서 말없는 가운데 사람을 교화한다고 하니,
대관절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그는 성인이다. 나도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으려
한다. 내가 그러한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노나라뿐만 아니라
천하의 사람들을 이끌고 장차 그를 따르려 한다."
"올자인데도 선생님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그런 인
물의 마음가짐은 대체 어떤 것입니까?"
"사람들은 죽고 사는 문제를 가장 크다고 하지만 그는 생사의 문턱에서 조금도 동요
하는 일이 없고, 천지가 뒤집힌다 해도 꼼짝하지 않는다. 만물의 실상을 통찰하여 현
상의 변화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일체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근본
이 되는 도를 잃지 않는다."
"그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물이든 차별의 세계에서 보면 모두가 다르다. 우리 몸속에 있는
간과 쓸개만 하더라도 초나라와 월나라만큼이나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
물은 근본에서 보면 결국 하나인 것이다. 이 원리를 체득한 왕태 같은 사람은 일체의
사물에 대해 선택하는 일없이 모든 것을 텅 빈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만물을 똑
같은 것으로 보기에 이해 득실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태는 발 하나 잃은 것
쯤이야 흙덩이를 버리는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왕태가 자기의 지혜로 마음을 완성하여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한 개인을 위한 수양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흐르는 물은 거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고요히 멈춰 있는 물에는 모든 사물이 비
치는 것이다. 초목 가운데서 사철 푸른 것은 소나무와 잣나무뿐이며, 사람 가운데서
천성을 옳게 지닌 이는 순임금뿐이다. 그러므로 순은 만백성으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사람이 천성을 올바로 지니면 어떠한 일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용감한 무사는 혼자
서도 수많은 적군 속으로 헤치고 들어간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다. 하물며 왕태는 천지를 지배하고 만물을 자기 안에 포용하며, 육신을 임시 거처로
여기고 귀와 눈을 장식품으로 알며, 지식의 구별을 초월하여 그것이 하나임을 깨닫고
생사마저 초월한 사람이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왕태 같은 사람이 무엇 때문
에 세상의 평판을 얻고자 하겠느냐? 오직 사람들이 왕태를 따르는 것뿐이다."
* 올자: 형벌로 발뒤꿈치를 잘린 자.
* 구군: 중군. 많은 군사들.
* 육신: 해는 '정강이뼈'라는 뜻으로, '육신'은 머리와 동체와 사지를 뜻한다.
재상과 올자 - 덕충부
신도가는 올자로서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을 선생으로 모시고 있었다. 자산이 신도
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면 당신이 남고, 당신이 먼저 나가면 내가 남겠소."
다음날 다시 스승의 집에 동석하자 자산이 거듭 다짐하며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면 당신이 남고, 당신이 먼저 나가면 내가 남으리다. 나는 지금 나
가려 하는데, 당신은 남아 있겠소, 어찌하겠소? 집정을 보고도 피하지 않으니 당신이
집정과 같다는 말이오?"
신도가가 대답했다.
"선생님의 문하에 당신이 말하는 집정이 있겠소이까? 당신은 집정이라고 말하며 남
을 얕보는데, 듣건대 '거울이 밝으면 먼지가 끼지 않고,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 어진
사람과 사귀면 허물이 없다.' 하였소. 지금 당신은 선생님의 큰 덕을 배우면서 이 같
은 말을 하니, 역시 당신의 잘못이 아니겠소?"
자신이 말했다.
"당신은 그런 꼴로 요와 선을 겨루려 하는 거요? 자신의 덕을 헤아려 스스로 반성할
수 없소?"
신도가가 말했다.
"스스로 잘못을 변명하여 부당함을 뒤엎으려는 사람은 많으나, 잘못을 변명하지 않
고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소.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그 운명에 안주할 수 있소. 예*의 과녁 안에서 놀면 그 중앙에 있는 사
람은 모두 화살을 맞을 것이나, 요행히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운명이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이 온전하다고 해서 나의 발이 온전하지 못함을 비웃을 때마다 나는 울컥 화를
냈소. 그러나 선생님께 가면 깨끗이 잊고 돌아오게 되니, 선생님의 덕이 나를 씻어주
시는 것인지 모르겠소. 19년을 함께 지냈으나 선생님 앞에서는 한 번도 내가 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소. 지금 당신은 나와 마음을 교류하여야 할 터에 나를 겉모양으로
판단하려 하니, 또한 잘뭇이 아니겠소?"
자산이 삼가하여 태도를 바르게 하고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올자인 신도가는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자산은 신도가를
꺼려하던 중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가면 당신은 뒤에 남으시오. 당신이 먼저 나가면 내가 남으리다."
이튿날 두 사람은 백혼무인의 집에서 또 만났다. 자산은 다시 다짐을 주었다.
"돌아갈 때는 따로 갑시다. 내가 먼저 갈 테니 당신은 뒤에 오시오. 싫으면 당신이
먼저 나가시오. 나는 지금 나가려 하는데 어찌하겠소? 일국의 재상을 보고도 어려워하
지 않으니, 당신이 나와 동등하다는 말이오?"
신도가가 대답했다.
"선생님의 문하에 재상 따위가 어디 있소? 또 설령 당신이 재상이라고 해도 남을 얕
잡아 볼 수는 없소. 흔히 '밝은 거울에는 먼지가 끼지 않고,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
어진 사람과 오래 사귀면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오. 선생님의 덕을 배
우는 몸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신의 과실이 아니겠소?"
"그런 꼴을 하고도 요임금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다니, 자신의 덕을 돌아보고 반
성함이 어떻겠소?"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여 발을 잘릴 짓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쉬우
나, 이왕 발을 잘리게된 이상 한 마디 변명도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법
이오. 덕이 높은 사람만이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수 있지요. 인간은 결국 예
의 과녁 안에서 노니는 것과 같소. 화살을 맞지 않아 무사한 사람도 있고 화살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그것은 각자의 운명일 뿐이오. 세상에는 자기의 두 발이 성하다
고 해서 나를 비웃는 사람이 많으나, 그들은 운이 좋은 것일 뿐이오. 그럴 때마다 분
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선생님 앞에만 가면 깨끗이 잊게 되니, 선생님의 덕이 내 마음
을 씻어주는 것이라 생각하오. 가르침을 받은 지 19년이 되었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한
번도 내가 불구임을 의식하지 못했소. 마음으로 사귐을 맺어야 할 터에 오히려 신체의
겉모양만을 문제삼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소?"
자산은 승복하고 태도를 고쳐 말했다.
"잘못했으니 그만해두시오."
* 자산: 성은 공손, 이름은 교. 정나라의 재상.
* 백혼무인: 자산과 열자의 스승.
* 예: 고대의 전설적 영웅. 요의 신하. 10개의 태양이 떠올라 초목이 말라죽게 되자
활을 쏘아 그 중 9개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공자의 천형 - 덕충부
노나라의 숙산무지란 올자가 발뒤꿈치를 끌고 중니를 찾았다. 중니가 말했다.
"그대는 삼가지 않아 이렇게 올자가 되는 화를 당했다. 이제 와서 어찌하겠다는 말
인가?"
무지가 말했다.
"내가 비록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처신을 가볍게 하여 발을 잃었으나, 지금 내가 찾
아온 것은 발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기에 그것을 힘써 보전하려 함입니다. 무
릇 하늘은 덮지 않는 것이 없고 땅은 싣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선생을 천지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러실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내가 잘못했소. 어서 들어오시오. 내가 들은 바를 말해드리리다."
무지는 가버렸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무지는 올자인데도 배움에 힘쓰고 과거의 잘못을 돌이켜 보충하려 한다. 너희는 몸
이 온전하니 더욱 학문에 힘써라."
무자가 노담에게 말했다.
"공구는 지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찌 번거롭게 가르치려 할까요? 그는 괴상
한 속임수로 명성을 얻으려 하니, 지인에게는 이것이 절곡*임을 알지 못하는 듯합니
다."
노담이 말했다.
"그렇다면 생사를 하나로 알고, 옳고 옳지 못한 것을 똑같이 여기는 사람으로 하여
금 그의 질곡을 풀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무지가 말했다.
천형이니 어찌 풀 수 있겠습니까?"
노나라에 숙산무지라는 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발뒤꿈치를 끌고 공자를 찾았
다. 공자가 말했다.
"평소에 행실을 조심하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몸이 되어놓고, 새삼 나를 찾아와서
어쩌겠다는 것이오?"
무지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힘써야 할 바를 등한히 하여 발을 잃게 되었지만, 사람에게는 발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이 소중한 것을 지켜가고자 선생을 찾았습니다. 나는
선생이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는 천지 같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잘못 알았던 것 같습
니다."
공자가 태도를 바꾸고 말했다.
"나의 생각이 좁았소. 들어오시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무지는 그대로 가버렸다. 뒤에 공자는 제자들을 타일렀다.
"저 무지는 올자이면서도 학문에 힘쓰고, 과거의 잘못을 보충하려고 한다. 너희들은
온전한 몸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 학문에 힘써라."
무지는 노담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저 공자는 지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학자인 척할까요
? 사람의 눈을 괴상하게 속여 단지 명성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인에게 명성
은 수갑과 쇠사슬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생사를 구분하지 않고 가불가를 하나로 보는 만물 제동의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 하
여금 그의 질곡을 풀어주게 하면 어떻겠느냐?"
무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이 주신 형벌을 어찌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 발보다 더 소중한 것: 원문은 존족자로서, '바른 마음', '덕'을 뜻한다.
* 질곡: 손과 발을 매어두는 형틀. '몸을 구속한다'는 뜻이다.
추남 애태타 - 덕충부
노애공*이 중니에게 물었다.
"위에 애태타라는 악인*이 있었소. 남자도 그와 같이 있으면 사모하여 떠날 줄을 모
르고, 여자가 보면 부모에게 청하기를,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선생의 첩
이 되리라.'하는 사람이 이미 수십 명이었소. 그러나 일찍이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고, 항상 남과 화목할 뿐이었소. 군왕의 지위로 죽을 사람을 구해주는 것도
아니고, 모은 녹으로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도 아니오. 또 그 추함은 세상을 놀라
게 하지만 외치지 않고 어울릴 뿐이며, 지식이 나라 안에 그치는데도 남녀가 앞에 모
이는 것은 반드시 특이한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과인이 불러보니 과연 천하를 놀
라게 하는 추남이었소. 과인과 함께 지낸 지 몇 달이 안 되어 그의 인품에 호의를 갖
게 되었고, 1년이 못 되어 과인은 그를 신뢰하게 되었소. 나라에 재상이 없어 과인은
그에게 국정을 맡기려 했소. 민망한 듯이 뒤에 대답하는데, 망설이는 것이 사양하는
것 같았소. 과인은 쑥스러웠으나 가까스로 나라를 맡겼는데, 얼마 안 되어 과인을 떠
나가버렸소. 과인은 무엇을 잃은 듯 걱정이 되고, 이 나라를 다스리며 함께 즐길 사람
이 없는 듯하오. 그는 어떤 인물이오?"
중니가 대답했다.
"저는 일찍이 사신으로 초에 갔었습니다. 마침 돼지 새끼가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것을 보았는데, 잠시 후에는 놀라 달아났습니다. 자기들을 보지 않으며, 자기들과 다
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미를 사랑하는 것은 그 형체를 사랑함이 아니라, 그 형체
를 부리는 본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사자를 장사 지낼 때는 삽*을 보내주지 않고,
월자는 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이것은 다 그 근본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천자를 모
시게 되면 손톱을 깎거나 귀에 구멍을 뚫지 않고, 새신랑은 바깥 일을 쉬며, 관청에서
도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형체를 보존하는 것도 족히 그와 같은데, 하물며 덕을 온전
히 아는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애태타는 말을 안해도 믿고, 공이 없어도 친하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를 주게 만들고도 받지 않을까 염려하게 합니다. 반드시 그는 재
능이 온전하고, 덕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애공이 물었다.
"무엇을 가리켜 재주가 온전하다고 하오?"
"사생 존망, 궁달 빈부, 현명함과 우매함, 비난과 칭찬, 기갈과 한서 등은 사물의
변화이고 운명의 움직임이기에 밤낮으로 눈앞에서 번갈아 일어나도 그것의 시작을 알
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화를 어지럽히지 않고 올바른 마음을 꾸
준히 유지하면 만사는 봄과 같이 됩니다. 사물과 접촉하여 그 마음에 때를 만드니, 재
능이 온전하다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리켜 덕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오?"
"물이 완전히 멈추어 있을 때가 가장 평평하기 때문에 이를 표준으로 삼습니다. 안
에 간직하고도 밖으로 흔들리지 않지요. 덕은 조화를 이루는 수양인데, 덕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만물이 그를 떠나지 못합니다."
애공은 훗날 민자*에게 말했다.
"처음 내가 남면을 하여 천하의 임금이 되었을 때는 백성의 기강을 바로 잡고 그들
의 죽음을 근심하는 것으로 내가 할 일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소. 이제 지인의 말을
들으니 나는 자격이 없으며, 행동을 경솔히 하여 나라를 망칠까 두렵소. 나와 공구는
군신이 아니라 덕으로 맺은 친구일 뿐이오."
노예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위나라에 애태타라는 지극히 못생긴 사내가 있었소. 그와 잠시만 같이 있어도 남자
는 그를 사모하여 떨어지지 못하고, 여자는 첩이라도 좋으니 옆에 있게 해달라고 부모
를 조른다 했소. 그러나 이 사내는 남의 비위만 맞출 뿐,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는 일
이 없다는 거요. 재산도 권력도 없는데다가 천하에 다시 없는 추남이지만 모두가 사모
하니 특출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불렀다오. 과연 소문과 같이 세상에 보기
드문 추남이었소. 그러나 나는 함께 지낸 지 몇 달이 채 못 되어 그에게 호의를 갖게
되었고, 1년이 안 되어 그를 진심으로 신뢰하게 되었소. 마침 재상 자리가 비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국정을 맡기려 했소. 그러나 명백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관심이 없다
는 태도였소. 그 담담한 태도에 쑥스럽기는 했으나 가까스로 국정을 떠맡겼는데, 얼마
안 되어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소. 나는 마음이 허전하여 무엇을 잃은 것만 같구려. 나
라를 다스리며 같이 즐길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 같으니, 대관절 그는 어떤 인물이오
?"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초나라에 갔을 때, 새끼 돼지가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
끼 돼지는 곧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어미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살아 있을 때의
어미가 아님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새끼 돼지는 어미의 몸이 아니라 그 마음을 사
랑한 것입니다. 전사자의 관에는 삽을 꾸미지 않고, 월자는 산에 관심이 없습니다. 외
형보다 내용을 소중히 하기 때문입니다. 천자를 모시는 여자에게는 몸에 장식을 못하
게 하고, 새신랑은 바깥일을 쉬며, 공적인 일도 면제받습니다. 이것은 다 몸을 보존하
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형체를 유지하는 것도 이와 같은데, 온전한 덕을 보존하는 것
은 말할 나위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애태타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도 남이 믿
게 하고, 공적이 없이도 호감을 샀습니다. 또 나라를 맡기게 하고도 오히려 거절할까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애태타는 천성대로 사는 덕의 소유자임에 분명합니다."
애공이 물었다.
"온전한 재능이란 어떤 것이오?"
"사생과 존망, 곤궁과 영달, 현명함과 우매함, 비난과 칭찬, 기갈과 한서 따위는 모
두 현상이 변화하는 모습이고 운명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우리들 앞에 전개
되지만 인간의 지혜로는 그 인과 관계를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
화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 없이 모든 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알고 마음을 즐겁게 가
져, 일체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만이 무한히 변화하는 바깥 세계에 대
해 항상 새로운 조화를 창조해나갈 수 있습니다. 온전한 재능이란 바로 이러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덕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이오?"
"멈춰 있는 물이 사물의 높이를 계산하는 기준이 됩니다. 물은 본성을 안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밖으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수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덕이란 만물과
일체가 되어 그것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덕의 소유자는 괸 물과 같아서 사람들이 떠나
지 못하는 것입니다."
뒷날 애공은 민자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의 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최상의 정치라고
믿고 있었소. 그러나 공자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는 임금이라는 명성만이 있을 뿐,
덕을 지니지 못했음을 깨달았소. 나는 비로소 가볍게 행동하여 나라를 망치는 일이 없
을지 두려워하게 되었소. 그것을 가르쳐준 공자는 나의 신하가 아니라 내가 덕을 닦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친구요."
* 노애공: 노나라의 제25대 왕. 삼환이라 불리는 공족 삼가에 의해 추방당했다.
* 악인: 용모가 추악한 사람.
* 삽: 전쟁에서 세운 공을 기리는 장식물.
* 민자: 민자건. 공자의 제자.
하늘이 길러준다 - 덕충부
인기지리무신*이 위영공에게 설명했다. 영공이 말을 듣고 온전한 사람을 보니 그 목
이 야위고 가늘었다. 옹앙대영*이 제환공에게 설명했다. 환공이 말을 듣고 온전한 사
람을 보니 그 목이 야위고 가늘었다. 그러므로 덕이 커지면 외형을 잊게 된다. 사람이
잊을 것은 잊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은 잊으니, 이것이 정말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노니는 곳이 있어 앎을 곁순*으로, 규범을 아교풀로, 덕을 붙들어
매는 것으로, 기교를 장사하는 것으로 안다. 성인은 꾀하지 않으니 어찌 지식을 쓰며,
쪼개지 않으니 어찌 아교풀을 쓰며, 잃을 것이 없으니 어찌 덕을 쓰며, 파는 일이 없
으니 어찌 장사를 하겠는가? 이 네 가지는 천국이며, 천국이란 하늘이 기르는 것이다.
이미 양식을 하늘에서 받았는데, 어찌하여 다시 인간의 노력을 하겠는가? 사람의 형체
는 가졌으나 사람의 정이 없다. 사람의 형체를 가졌으므로 사람과 함께 사나, 사람의
정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시비가 없다. 미미한 것은 사람에게 속했기 때문이나, 크고
위대한 것은 홀로 하늘의 도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절름발이에다 꼽추, 언청이까지 겸한 인기지리무신이 위영공에게 도를 말했다. 영공
은 이 불구자의 말에 감동하여, 그 뒤로는 육신이 온전한 사람을 도리어 이상하게 생
각했다. 또 목에 큰 혹이 달린 옹앙대영이 제환공에게 도를 말하니 환공 또한 이 불구
자의 말에 감동하여, 그 뒤로 육신이 온전한 사람을 보면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런 예로 알 수 있듯이 덕이 뛰어나면 외형을 잊게 된다. 반대로 외형에 사로잡히
면 덕을 잊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망각이다. 따라서 성인은 아무것에도 사로잡
히지 않는다. 지식도 쓸데가 없고, 규범은 사람을 구속하는 아교풀이며, 세속적인 도
덕은 허식에 불과하고, 기교도 장사의 수단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이 어찌 성인을 괴
롭히겠는가? 지식과 규범, 도덕과 기교는 천국인 것이다. 하늘이 길러주는데 새삼 인
위를 필요로 하겠는가?
성인은 사람의 형태를 취하지만 인간의 욕정은 갖고 있지 않다. 사람의 형태를 지닌
까닭에 인간 사회에서 살고 있으나 욕정이 없으므로 시비의 대립을 초월해 있다. 성인
도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자연의 도를 완성했다는 점에서는 한없이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 인기지리무신: 가공의 인물로서, '인기'는 다리가 굽은 것, '지리'는 꼽추, '무
신'은 언청이를 가리킨다.
* 옹앙대영: 가공의 인물로서, 큰 혹이 달린 추한 사람을 말한다.
* 곁순: 원문은 얼로서, 본뜻은 '서자'이다.
정문답 - 덕충부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사람이 본디 정이 없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헤자가 물었다.
"사람이 정이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사람이라 하겠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도가 모양을 주고 하늘이 형체를 주었는데, 어찌 사람이라 하지 않겠나?"
혜자가 물었다.
"이미 사람이라 부르는 이상 어찌 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내가 말하려는 정이 아닐세. 내가 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호오로써 안으
로 그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항상 자연에 맡겨둘 뿐, 삶에 더 보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네."
혜자가 물었다.
"삶에 보탬이 없다면 어찌 그 몸이 있을 수 있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도가 모양을 주고 하늘은 형체를 주었으니, 좋고 싫음으로써 안으로 그 몸을 상하
게 하지 말게. 자네는 지금 마음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정신을 괴롭히고 있네. 나무에
기대어 울고, 오동나무 책상에 의지하여 명상에 잠기네, 모처럼 하늘이 점지한 형체를
가지고 견백의 궤변*만 지껄이고 있네."
혜자가 장자에게 의논을 청했다.
"성인은 정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람이 정을 갖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지."
"정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람이라 하겠는가?"
"하늘이 사람의 형체를 부여했으니 사람이라 하지 않고 뭐라 하겠는가?"
"사람이면서 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내가 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에 사로잡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일세. 좋고 싫음
에 사로잡혀 몸을 해치는 일없이 일체를 자연에 내맡겨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
이네."
"그러나 인위를 부정하면 자기의 몸도 보존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은 이미 주어진 존재네. 따라서 좋아하고 싫어함으로써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여 의논으로 날을 보내며 자신을 괴
롭히고 있네. 하늘이 모처럼 자네를 낳아주었는데, 자네는 아무 쓸모 없는 의논에 힘
을 쏟으며 자신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
* 견백의 궤변: 견백 동이. 중국 전국 시대의 문인 공손용이 내건 궤변.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면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
한 줄 알 수 있으나 색깔은 알 수 없으므로, 단단한 돌과 흰 돌은 같은 물건이 아니라
는 주장이다. 견석 백마 역시 같은 의미이다.
진인은 누구인가 - 대종사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아는 자는 끝에 이른다.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자는 하늘
과 함께 살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자는 그 앎의 아는 바로써 그 앎의 모르는 바를
키운다. 중도에 죽지 않고 천수를 다하는 사람은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심이 있으니 앎이란 기다린 후에 얻어지는데, 그 기다리는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내가 하늘이 사람과 다름을 알고, 사람이 하늘과 다름을 알 수 있겠는
가!
진인이 있은 후에 진지가 비롯되었다면 진인이란 어떠한 사람인가? 옛날의 진인은
역경을 거스르지 않고, 달성함을 뽐내지 않으며, 일을 꾀하지 않았다. 그 같은 사람은
잘못이 있어도 뉘우치지 않으며, 부딪쳐와도 스스로 취하지 않았다. 높은 데 올라도
겁내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았다. 앎이 능
히 도를 이룩함이 이와 같았다.
옛날의 진인은 자면서 꿈꾸지 않고, 깨어서 근심하지 않았으며, 먹는 것을 달게 하
지 않고, 호흡은 깊고 깊었다. 진인은 발뒤꿈치로 숨쉬는데, 중인은 목구멍으로 숨쉰
다. 굴복한 자의 목구멍 소리는 막히는 것 같고, 욕심이 많은 자는 천기가 짧다.
옛날의 진인은 삶을 기뻐할 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 몰랐다. 태어남을 하소연
하지 않았고, 돌아감을 꺼리지 않았다. 무심히 갔다가 무심히 올뿐이었다. 그 시작한
바를 잊지 않고, 그 마친 바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받으면 기뻐하고, 잊으면 돌아간
다. 이를 일러 마음으로 도를 상하지 않고, 사람으로 하늘을 돕지 않는다고 한다. 진
인은 이러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엔 생각이 없고 얼굴은 고요하며, 이마는 우
뚝하고, 엄함이 가을 같으며, 온화함이 봄과 같다. 기뻐하고 화내는 것이 네 절기를
통해 만물과 함께 조화되니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군사를 써서 나라를 멸망시켜도 인심을 잃지 않으며, 혜택을 만대
에 베풀어도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물에 통하려는 사람은 성인이
아니고, 친하려 함은 인이 아니며, 천시에 따르려 함은 현이 아니다. 이해를 통하지
못한 사람은 군자가 아니며, 이름 때문에 몸을 잃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고, 자신을 잃
고 진실하지 못한 것은 사람이 힘쓸 일이 아니다. 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기자
서여, 기타*, 신도적 같은 이는 남의 일에 힘쓰고 남이 좇는 것을 좇았지, 스스로 자
신이 좇을 바를 좇지 못한 사람이다.
하늘(자연)과 사람(인위)을 지배하는 법칙을 깨닫는 것이 앎의 최종 목표이다. 하늘
의 법칙을 알면 일체의 변화에 순응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할 일을 알면 무리함이
없이 앎을 활용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하늘이 준 생명을 다하는 사람을 지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에 이르러도 앎에는 여전히 근심이 남는다. 지적인 인식은 대상에
대해 작용하는데, 대상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명확한 인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다. 따라서 하늘과 사람의 대립마저도 명확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진지는 이런 약점을 갖지 않는다. 이 진지를 인격화 한 것이 진인이다. 태고
의 진인은 역경을 거역하거나 달성한 것을 기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연에 내맡겨 인
위적인 노력을 더하지 않았다. 실패해도 속을 썩이지 않았고, 성공해도 자랑하지 않았
다. 절벽 끝에 서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물에 빠져도 젖지 않았으며, 불에도 뜨거워하
지 않았다. 이러한 도와의 일체화가 진인의 진지다.
진인은 잠잘 때 꿈꾸지 않고, 깨어나서는 근심이 없다. 먹어도 맛에 끌리지 않으며,
발뒤꿈치로 천천히 깊은 숨을 쉬었다. 그러나 범인들은 목구멍으로 바쁜 숨을 헐떡거
리고, 말은 패배자의 울부짖음 같다. 지나친 욕심이 타고난 생명의 힘을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다.
진인은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을 기피하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났음을 기뻐하지
않고, 죽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다.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갈 뿐이었다. 자신을 자연
현상의 하나로 보았기에 죽음에 개의치 않았다. 주어진 삶을 즐기다가 죽을 때가 되면
일체를 망각하고 자연에 되돌아갔다. 마음으로 도를 해치지 않고 인위로 자연을 돕지
않았으니, 진인이란 바로 이 같은 존재였다.
진인은 마음이 무심하고 용모가 한적하며, 이마는 넓고 편편하다. 추상처럼 엄한가
하면 봄날처럼 온화하여 감정의 움직임은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고, 정신은 바깥 사
물과 조화를 이루어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성인이 무력을 사용하여 한 나라를 멸망시켜도 백성들이 그가 나라를 멸망시킨 것으
로 생각하지 않으며, 혜택을 만대에까지 펼쳐도 백성을 사랑한다 하지 않음은 자연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물에 통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성인이 아니고, 의식적
으로 사람과 친하려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아니다. 또한 천시(때에 따라 변하는 자연
의 현상)에 따르는 사람은 현자가 아니며, 이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
다. 본래의 자신을 잊고 본성을 상실하는 것은 인간이 힘쓸 일이 아닌 것이다.
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기자서여, 기타, 신도적과 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신념을
관철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남의 의사에 영합하고 평판에 이끌려 자신의 본성을 포
기한 사람들이다.
* 무광: 하나라 사람으로, 탕임금이 양위하려 하자 물에 빠져 죽었다.
* 백이, 숙제: 주나라 사람. 무왕이 끝내 은을 치려 하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다 굶어 죽었다.
* 기타: 은나라 사람. 무광이 자결하자 다음에는 제위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 역시 물에 빠져 죽었다.
천일 합일 - 대종사
옛 진인은 그 모습이 높아도 무너지지 않고, 다하지 않은 듯해도 덧붙일 것이 없었
다. 유연하며 고고한 듯해도 고집하지 않고, 마음이 넓어 청허한 듯해도 가볍지 않았
다. 즐겁다 해서 그것이 기쁨과 같을 것인가? 재촉한다 해서 하는 수 없는 것인가? 안
락함이 내 얼굴빛에까지 나타난다지만, 서로 즐기며 내 덕에 자리한 것뿐이다. 넓다
하여 그것이 세상일과 같을 것인가? 고원하여서 제약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오래도
록 침묵한다지만, 보고 듣지 않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을 것인가? 무심한 상태여서 말
을 잊은 것뿐이다. 형벌을 제 몸처럼 여기고, 예의를 날개처럼 여긴다.
앎은 시대를 따르고, 덕은 섭리를 따른다. 형벌을 제 몸처럼 여긴다는 것은 남을 죽
이는 것에 관대하고, 예의를 날개처럼 여긴다는 것은 세상에서 하는 대로 따른다는 말
이다. 앎으로써 시대를 따른다는 것을 일을 하지만 마지못해서이고, 덕으로써 섭리를
따른다 함은 발이 있는 자와 함께 언덕에 도달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인이 노력해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
도 하나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하나다. 하나라고 여기는 것도 하나고, 하나가 아니라
고 여기는 것도 하나다. 하나라고 함은 하늘과 함께 하는 것이고, 하나가 아니라 함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런 사
람을 진인이라 한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밤과 낮이 일정한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만물의 실상이다. 사람들은 특히 하늘을 아비라 하여 몸으로 사랑하는데, 하
물며 그보다 탁월한 자이겠는가! 사람들은 특히 임금이 자기보다 낫다 하여 몸을 바치
는데, 하물며 그보다 참된 자이겠는가! 못의 물이 말라 물에 함께 있게 된 물고기가
습기를 뿜어내 서로의 몸을 적시는 것은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있음만 못하다.
요를 칭찬하고 걸을 비난하는 것은 둘을 잊고 도와 일체가 됨만 못하다.
무릇 자연은 나에게 형체를 주어, 노력하여 살다가 늙어서는 편안하게 하고 죽으면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내 삶을 좋은 것이라 여김은 나의 죽음을 좋은 것이라 여김과 같
다. 배를 골짜기에 숨기고 산을 못에 감추고 견고하다고 생각한, 밤중에 힘있는 자가
지고 달아난다. 그러나 우매한 자는 이를 모른다. 작은 것을 큰 것에 감추면 적당하기
는 하나 달아날 수가 있다. 그러나 천하를 천하 안에 감추면 달아날 수가 없다. 이것
이 만물의 실정이다. 사람의 형체를 한 것을 특히 기뻐하지만 사람의 형체는 한없이
변화하여 일찍이 다함이 없었다. 그 즐거움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장차 만물이 달아나지 못하는 곳에서 노닐며 모든 것을 그대로 두려 한다. 죽
는 것도 좋다 하고, 늙는 것도 좋다 한다. 시작도 좋다 하고, 끝도 좋다 한다. 사람들
은 이런 사람을 본받으려 한다. 하물며 만물이 매어 있고 큰 변화가 나오는 것이겠는
가!
무릇 도란 정이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작위하지 않고 형체가 없다. 전할 수
는 있어도 받을 수 없고, 얻을 수는 있어도 볼 수가 없다. 스스로 근본이 되고 뿌리가
되어 천지가 없던 태곳적부터 이미 존재하였다. 귀신과 상제를 신으로 만들었으며, 하
늘과 땅을 낳았다. 태극보다 위에 있어도 높지 않고, 육극보다 밑에 있어도 깊지 않
다. 천지 이전에 생겼으나 오래된 것이 아니며, 상고보다 오래되었으나 늙은 것이 아
니다.
상고의 희위씨*는 이를 얻어 천지를 합했고, 복희는 이를 얻어 기모를 이었다. 유두
는 이를 얻어 어그러짐이 없었고, 해와 달은 이를 얻어 그 운행을 그치는 일이 없었
다. 감배는 이를 얻어 곤륜산신이 되었고, 풍이*는 이를 얻어 황하에서 노닐었다. 견
오는 이를 얻어 태산에 거주했고, 황제는 이를 얻어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 전욱
*은 이를 얻어 현궁에 들어갔고, 우강은 이를 얻어 북극에 살았다. 서왕모는 이를 얻
어 소광에 앉았으나, 그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었다. 팽조는 이를 얻어 위
로는 순으로부터 아래로는 오백*의 시대에까지 살았다. 부열은 이를 얻어 무정의 재상
으로 천하를 지배하다가 동유에 올라 기성과 미성을 달려 열성에 끼게 되었다.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지극히 높아도 절대로 무너지는 일이 없으며, 어딘가 모자
라는 듯하면서도 덧붙일 것이 없었다. 유연하여 고고한 듯하면서도 완고하지 않고, 그
마음이 청허하고 크건만 가벼운 법이 없었다. 즐거워한다 해서 그것을 진인의 기쁨이
라고 말할 수 없고, 세상일에 재촉받는 것 같지만 자연의 도리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안락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도 본성을 잃는 일이 없고, 사색에 잠겨 침묵하는 것은 무
아의 경지에서 노닐기 때문이었다. 진인은 형벌을 자기의 몸처럼 생각하고 예의를 날
개처럼 여기며, 지식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으로, 덕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
으로 알았다.
형벌을 자기 몸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을 죽이려 할 때 관용을 베풀 수 있고, 예의
를 날개처럼 여기기 때문에 자유로이 세속적인 규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식이 시
대의 흐름에 따른다는 것은 필연적인 움직임에 순응한다는 것이고, 덕이 자연의 섭리
에 따르는 것이라 함은 덕이 이를 수 있는 곳에 남과 함께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진인은 이와 같이 자연 그대로의 존재이나, 남이 보기에는 그것이 노력의 결과 도달
한 것처럼 생각된다. 진인은 자연 그대로를 따르기 때문에 차별이 없으므로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본다. 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하늘의 도리를 따름이요, 그렇지 않
다고 보는 것은f 사람의 작위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리를 따르든 사람의
작위를 따르든, 진인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하늘의 도리와 사
람의 작위가 대립하는 일이 없는 사람을 진인이라고 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처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만물의 근본 법칙은 인
간의 지혜가 마칠 수 없는 곳에 있다. 사람들은 이 하늘을 어버이로서 존경하고 사랑
한다. 하물며 그 하늘이 만들어낸 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나라의 지배자
에 불과한 임금도 높게 보고 목숨까지 바치는데, 하물며 만물의 참된 주재자에게 귀의
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말라붙은 연못의 고기는 진흙 위에 몸을 모아 서로의 입김으
로 목숨을 지탱한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것보다는 넓은 강이나 호수 속을
헤엄쳐 다니며 서로를 잊는 편이 훨씬 자유로운 것이다.
인간 역시 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착한 것을 칭찬하고 악한 것을 비난하며 사는 것보
다 선악을 초월하여 도에 따라 사는 편이 훨씬 자유스럽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태어
나 고생하며 살다가, 늙어서는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죽어서 영원히 휴식하는 것이 인간
의 한평생이니, 삶을 긍정한다면 죽음도 긍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에
집착한 나머지 삶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것은 배를 깊은 골짜기에 감추고, 산을 연못 속에 숨겨두고는 안전하다고 믿는 어
부와 같다. 그러나 아무리 교묘하게 숨겼더라도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어둠을 틈타 훔
쳐갈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감추었다고 안전하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천하를 천하 속에 감춰둔다면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도 단순히 인간의 탈을 얻어 썼음을 기뻐한다. 그러나 인간의 형체는 무한히
변화하는 것이니, 그 변화에 마음을 맡기면 기쁨도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
은 일체를 있는 그대로에 맡기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는 경지에서 노닐고자 한다.
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을 동일하게 여기고, 삶과 죽음을 똑같이 긍정하는 성인
은 모든 사람의 사표로서 숭앙을 받는다. 따라서 만물을 통괄하고 무한한 변화를 낳는
도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도란 어떤 것인가? 변화하는 만상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무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것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으나
감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천
지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귀신과 상제, 하늘과 땅의 근원은 모두가 도이다.
태극(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보다 더 위에 있으면서도 위가 아니고, 육극의 밑
에 있으면서도 밑이 아니다. 유구한 과거로부터 존재하였으나 오래되었다고 할 것이
없고, 늙었다고 할 것도 없다. 이 도를 얻었기 때문에 희위씨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켰
고, 복희는 기모(원기의 근원)를 관장했으며, 유두(북두신)는 영겁에 걸쳐 천체 운행
의 지표가 되었고, 해와 달은 그 운행을 그치는 일이 없었다.
감배는 도를 얻어 곤륜산신이 되었고, 풍이는 황하신이 되었으며, 견오는 태산신이
되었다. 또 황제는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올랐고, 전욱은 현궁(북방의 궁전)의 왕이 되
었으며, 우강은 북해신이 되었고, 서왕모는 소광산에 살면서 불로 불사의 신선이 되었
다. 팽조도 도를 얻어 순에서 오백의 시대에까지 살았으며, 부열은 무정을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한 다음 동쪽 하늘에 올라가 빛나는 별이 되었다.
* 희위씨: 전설상의 황제.
* 풍이: 하백의 이름. 물을 다스리는 신.
* 전욱: 오제의 하나. 황제의 손자로서 20세에 즉위하여 고양에 나라를 일으켰으므
로 '고양씨'라고도 한다.
* 오백: 오패라고도 한다. 하의 곤오, 상의 대팽, 시위, 주대의 제나라 환공, 진문
공의 다섯 패자를 가리킨다.
도를 배우다 - 대종사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가 많은데도 얼굴빛이 젖먹이 같으니 무슨 까닭이오?"
"도를 들었기 때문이오."
남백자규가 물었다.
"도는 배울 수 있는 것이오?"
"안 되오. 그대는 배울 사람이 못 되오. 저 복양의는 성인의 재질은 있으나 성인의
도가 없고, 나는 성인의 도는 있으나 성인의 재질이 없었소. 내가 가르치고자 했으나
그가 과연 성인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소. 그러나 성인의 도를 성인의 재질을 가
진 사람에게 일러주는 것은 쉬운 일이오. 내가 기다렸다가 도를 일러주었더니 사흘 뒤
에는 능히 천하를 밖으로 했고, 이미 천하를 밖으로 한 뒤에도 계속 지켜보았더니 이
레 뒤에는 능히 만물을 밖으로 했소. 만물을 밖으로 한 뒤에도 내가 계속 지켜보았더
니 아흐레 뒤에는 능히 삶을 밖으로 했고, 삶을 밖으로 한 뒤에는 능히 조철의 경지에
들어섰소. 조철의 경지를 깨달은 뒤에는 도를 볼 수 있었고, 도를 본 뒤에는 능히 고
금을 초월하였소. 고금을 초월한 뒤에는 능히 죽음도 삶도 없는 세계에 들어갈 수 있
었소. 삶을 죽이는 자는 죽을 수 없고, 삶을 낳는 자는 태어날 수 없소. 이 성인의 도
는 보내지 않는 것이 없고, 맞이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헐지 않는 것이 없고, 이룩하
지 않는 것이 없소. 그 이름을 영녕*이라 하는데, 영녕이라 함은 얽어맨 뒤에 이룬다
는 뜻이오."
남백자규가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도를 들었소?"
"부묵의 아들*에게서 들었소. 부묵의 아들은 낙송의 손자*에게서 들었으며, 낙송의
손자는 첨명에게서 들었소. 첨명은 섭허에게서 듣고, 섭허는 수역에게서 들었으며, 수
역은 오구에게서 들었소. 또 오구는 현명에게서 듣고, 현명은 참료에게서 들었으며,
참료는 의시에게서 들었소."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가 상당히 많은데 얼굴은 어린아이같이 윤기를 띠고 있으니 어찌 된 일
이오?'
"도를 배웠기 때문이오."
"당신은 도를 배울 그릇이 못 되오. 당신은 복양의라는 사람을 알고 있소? 그는 성
인이 될 소질은 가지고 있으나 도를 닦는 방법을 몰랐으며, 나는 성인이 될 소질은 없
지만 도를 닦는 방법을 알고 있었소. 나는 그에게 도를 가르치고자 하였으나 그가 과
연 도를 체득하여 성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소, 그러나 성인의 재질을 갖춘 사람
에게 성인의 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울 것이라 생각하여 신중을 기한 끝에 도를 일러주
었소. 그랬더니 그는 사흘이 되자 먼저 인간 세상을 잊게 되었소. 계속 지켜보았더니
이레 뒤에는 바깥 사물을 잊게 되었고, 아흐레 뒤에는 자기의 존재를 망각하게 되었
소. 자기의 삶조차 잊은 뒤에는 모든 것을 아침 햇살처럼 비추는 경지에 들어갔소. 그
리하여 그는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도를 느꼈고, 도를 감득한 뒤에는 시간을 초월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생사의 구별마저 의식하지 않게끔 되었소. 무릇 사물의 사멸을 관장
하는 것은 죽는 것이 될 수 없고, 생성을 관장하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 될 수 없소.
생사를 초월한 도의 존재는 변화하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면서도 모든 것을 변화에 내맡
길 뿐이오. 복양의는 마침내 이러한 영녕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오."
남백자규는 경탄하여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에게서 그 도를 배웠소?"
"나는 부묵의 아들에게서 배웠소. 부묵의 아들은 낙송의 손자에게 배웠고, 낙송의
손자는 첨명(밝게 보는 것)에게서 배웠소. 첨명은 섭허(깨달음)에게서 배웠고, 섭허는
수역(실천)에게서 배웠고, 수역은 오구(실천으이 기쁨)에게서 배웠소. 오구는 현명(유
현한 경지)에게서 배웠고, 현명은 참료(허무의 경지)에게서 배웠으며, 참료는 의시(도
의 근원)에게서 배웠던 것이오."
* 남백자규: 남곽자기(남백자기)로 추측된다.
* 여우: 도를 닦은 어진 사람.
* 영녕: 만물을 얽히게 한 뒤에 본성에 따라 편안히 해주다.
* 부묵의 아들: '부묵'은 '서적'을 말한다. '아들'이라 함은 도를 아비로 보았기 때
문이다.
* 낙송의 손자: '낙송'은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손자'라 함은 서적이 아들이라
면 그것을 읽는 것은 손자가 되기 때문이다.
생사 일체 - 대종사
자사*, 자여*, 자리, 자래 등 네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가 능히 무로 머리를 삼고, 삶으로 등뼈를 삼으며, 죽음으로 꽁무니를 삼겠나?
그리하여 생사와 존망이 일체임을 아는 자가 있다면 내가 함께 벗하겠네."
네 사람이 서로 보고 웃었다. 마음에 막히는 것이 없으니 드디어 서로 벗이 되었다.
얼마 뒤에 자여가 병에 걸렸다. 자사가 문병을 가니 자여가 말했다.
"위대하구나, 저 조물주는. 장차 나를 꼽추로 만들려 하는구나."
그의 등은 매우 굽어 있었고, 오장이 위로 올라갔으며, 턱은 배꼽 밑에 숨어 있었
다. 또 어깨는 머리보다 높고,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양의 기운이 어지러
웠으나 그 마음만은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했다. 비척대며 우물가로 가서 모습을 비춰
보더니 말했다.
"아, 조물주는 역시 장차 나를 꼽추로 만들려는가!"
자사가 물었다.
"자네는 그것이 싫은가?"
자여가 대답했다.
"내가 왜 싫어하겠나? 병이 점점 더하여 나의 왼팔이 닭으로 변한다면 왼팔에게 새
벽을 알리라고 요구하겠네. 병이 더하여 오른팔이 활 모양으로 변한다면 오른팔에게
올빼미 구이를 요구하겠네. 병이 점점 더하여 꽁무니가 수레바퀴로, 마음이 말로 변한
다면 이를 탈 수 있으니 어찌 수레가 필요하겠나? 무릇 생을 얻은 것은 때를 만났음이
고, 목숨을 잃는 것은 때에 순응하는 것이니, 때를 편안히 하여 운명에 따르면 슬픔과
즐거움이 개입할 수 없네. 이것이 옛날에 이른바 현해*라고 한 것이네. 구속을 스스로
풀 수 없는 것은 외부의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네. 사물이 하늘을 이길 수 없음은
영구한 것이니, 내가 또 무엇을 싫어하겠나?"
얼마 뒤에 자래가 병이 들었다. 헐떡거리며 곧 죽으려 하므로 처자가 둘러앉아 울고
있었다. 자리가 문병을 왔다가 꾸짖었다.
"쉿, 저리 물러가라. 죽는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마라."
자리는 문에 기대어 말했다.
"진정 위대하구나. 조물주는 자네를 무엇으로 만들어 어디로 보내려고 하는가? 자네
를 쥐 간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벌레의 발로 만들려는 것일까?"
자래가 대답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명하면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좇을 뿐이네. 하물며 음양이 사람
에게 하는 일을 어찌 부모에 비기겠나? 조물주가 지금 나를 죽게 하려는데, 내가 듣지
않는다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겠지만 조물주에게는 허물이 없네. 무릇 자연은 나에게
형체를 주어 고생하면서 살다가 늙어서는 편안하고, 죽어서 아주 쉬게 만들었네. 그러
므로 나의 삶을 좋다고 했으면 나의 죽음도 좋다고 해야 할 것이네. 위대한 주물사가
쇠를 부을 때, 쇠가 날뛰며 '나는 반드시 막야*가 되겠다.'라고 한다면, 반드시 좋지
못한 쇠라고 꾸짖을 것이네. 한번 사람의 형체를 가졌다 해서 '사람으로만, 사람으로
만' 한다면 조화자는 반드시 좋지 못한 인간이라고 꾸짖을 걸세. 천지를 큰 용광로라
생각하고 조화자를 주물사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어디로 보낸들 어떻겠나?"
자래는 조용히 잠들어 편안히 세상의 꿈에서 깨어났다.
자사, 자여, 자리, 자래의 네 사람이 모여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무를 머리로 하고, 삶을 등뼈로 하며, 죽음을 꽁무니로 하여 생사와 존망이 하나임
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그와 벗하고 싶네."
라고 하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마음으로 친구가 된
것이다.
얼마 뒤 자사가 병이 든 자여를 문병갔을 때, 자여는 말했다.
"조물주는 참으로 위대하구나. 이것 보게. 내 몸뚱이가 이 모양으로 뒤틀려버렸네."
과연 그의 등은 형편없이 굽어서 창자는 위로 밀려 올라왔으며, 턱은 배꼽 밑에 처
박혀 있었다. 또 어깨는 머리 위로 솟았으며,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음양의 두 기운이 혼란을 빚고 있는데도 자여는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자여는 비틀비틀 우물가로 걸어가더니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
다.
"정말 어지간히 비틀어졌군."
그 말을 듣고 자사가 물었다.
"꼽추가 되는 것이 싫은가?"
"아니, 이보다 더 심해진다 해도 괜찮네. 만일 왼쪽 팔이 닭처럼 된다면 왼팔을 보
고 힘차게 새벽을 알리라 할 것이고, 오른팔이 활처럼 된다면 올빼미를 잡아 구우라고
할 것이네. 꽁무니가 수레바퀴로 되고 마음이 말로 변한다면 그대로 타고 달리겠네.
무릇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때를 만났기 때문이며, 사람이 죽는 것 또한 때를 따르는
것뿐이네. 이렇게 운명을 따르면 기쁘고 슬퍼할 여지가 없지 않겠나? 이러한 경지를
옛사람은 현해라 하였네. 인간이 삶의 구속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외부 사물에 얽
매여 있기 때문일세. 그러나 사물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으니, 내가 무엇을 싫
어하겠나?"
얼마 후 이번에는 자래가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다. 처자들이 자래를 둘러싸고 울며
슬퍼하고 있는데, 자리가 문병을 왔다.
"조용히 해라. 모두들 저리로 가라. 임종을 방해하면 안 된다."
처자들이 물러서자 자리는 병상의 자래를 보고 말했다.
"조화란 참으로 위대한 것이로군. 대관절 이번에는 자네를 무엇으로 만들려는 것일
까? 쥐 간이나 벌레의 발로라도 만들려는 것일까?"
그러자 다 죽어가는 자래가 대답했다.
"부모의 명이라면 사람은 사방 어느 곳에라도 가지 않는가? 더구나 부모 이상으로
절대적인 하늘의 섭리가 나를 죽게 하는데, 죽고 싶지 않다고 해서 따르지 않으면 나
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인간으로 육신을 받아 태어나서 삶을 지고 괴로워하다 늙음을
맞아 편히 되고, 죽어 쉬게 되는 것, 이것이 인간의 일생인 만큼 삶을 좋은 것으로 긍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되네. 예를 들어 주물사가 쇠
붙이를 녹여 칼을 만드는데, 쇠가 발버둥치며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막야와 같은
명검이 되고 싶다.'하고 울부짖는다면, 주물사는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울부짖는다면 쇠붙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말하자면 천지는 용광로와 같고, 조물주는 주물사와 같으
니 무엇이 되든 상관할 필요가 없네."
말을 끝마치고 자래는 잠이 들 듯 저 세상으로 갔다.
* 자사: 자여, 자리, 자래와 함께 가공의 인물.
* 현해: 해방되어 자유스러움.
* 막야: 오나라의 간장이 만들었다는 유명한 칼 이름.
하늘의 무리와 사람의 무리 - 대종사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 세 사람이 함께 모여 벗하여 말했다.
"누가 능히 서로 벗함이 없이 서로 벗하며, 서로 위함이 없이 서로 위할 수 있겠는
가? 누가 능히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서 놀며, 무극에 함께 어울려서 삶을 잊고 다함
이 없을 수 있을까?"
세 사람이 서로 보고 웃으며 마음에 거슬림이 없는지라 함께 벗하였다.
얼마 뒤 자상호가 죽었다. 장사를 치르지 않았음을 듣고, 공자는 자공에게 가서 일
을 돕게 하였다. 그들은 혹은 발을 엮고 혹은 금을 타고 노래하고 있었다.
"아아 상호여, 아아 상호여! 너는 이미 참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도 사람으로
있구나. 아....!"
자공이 뛰어들었다.
"감히 묻겠는데, 시체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예에 속하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예의 본뜻을 알겠나!"
자공이 돌아가 공자에게 고했다.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무런 수행도 없이 예를 잊고, 시체 앞에서 노래하면서
도 안색이 변치 않으니, 대체 뭐라고 이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
공자가 대답했다.
"그들은 세상 밖에서 노는 사람이요, 나는 세상 안에서 노는 사람이다. 밖과 안이
서로 미치지 않는데도 내가 너에게 가서 조상케 하였으니, 내가 곧 잘못이다. 저들은
또 조물자와 벗이 되어 천지의 첫기운*에 놀려 한다. 저들은 삶을 군살을 붙이거나 혹
을 붙인 정도로 생각하고, 죽음은 혹을 끊고 종기를 터뜨리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
데 그 같은 사람들이 어찌 죽음과 삶의 앞뒤를 구별하겠느냐? 다른 물질로 인해 같은
몸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간담과 이목을 잊고, 반복되는 시작과 끝을 알려 함이 없이
멍하게 세속의 밖에서 방황하며, 무위의 일에 소요한다. 그러니 어찌 수다스럽게 세속
의 예를 닦아 뭇사람의 이목을 살피겠는가?"
"그러면 선생님은 어째서 세속에서 사십니까?"
"나는 하늘에게 벌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이 길을 계속 가리라."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고기는 물에서 서로 자라고, 사람은 도에서 서로 자란다. 물에서 자라는 고기는 못
을 팜으로써 양분을 얻고, 도에서 자라는 사람은 일이 없으면 안정되는 것이다. 그래
서 '고기는 강호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술에서 서로 잊는다.'고 했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기인*은 무엇입니까?"
"기인은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와 하늘과 같이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소인은 사람의
군자요, 사람의 군자는 하늘의 소인'이라고 했다."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 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무심히 서로 사귀고, 무심히 행동하는 사람은 없을까? 세속을 떠나 하늘 높이 노닐
며, 생사를 잊고 영원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없을까?"
세 사람은 뜻이 통하여 웃고는 함께 친구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이윽고 자상호가 죽게 되었는데,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시체를 버려두
었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가 제자인 자공을 보내 장례식을 치르게 했다.
자공이 자상호의 집에 와보니 맹자반은 봉당에서 거적을 엮고, 자금장은 금을 타면
서 노래하고 있었다.
"아아, 자상호여! 그대는 벌써 고향에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 세상을 방황하
노라!"
자공은 이에 그들을 나무랐다.
"시신을 앞에 놓고 노래를 하다니,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소!"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예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모양이군."
기가 막힌 자공은 돌아와 공자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대관절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교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이 예의를 송두리째
무시해버리고, 죽은 사람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도 태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자는 대답했다.
"글쎄다. 그들은 세상의 테두리 밖에서 살고 있고, 나는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
이다. 사는 세계가 전혀 틀리는 것은 생각지 않고 조상을 보낸 내가 생각이 모자랐다.
그들은 조물자와 벗하여 우주의 근원에서 놀려 하는 인간이다. 삶을 혹이나 사마귀가
난 정도로 생각하고, 죽음을 종기가 터지는 정도로 생각한다. 따라서 삶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육체를 빚은 물건으로 생각하기에 간과 쓸개, 귀와
눈을 다 잊고 생멸의 무한한 순환 속에 몸을 맡긴다. 이리하여 속세를 떠나 무위 자연
의 경지에서 소요하는 것이다. 그들이 애써 세속의 예법을 지켜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할 리가 없다."
그들이 칭찬하는 공자의 말이 자공에게는 이상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왜 규범에 따르고 계십니까?"
"나는 천형을 받은 사람이다. 인간 사회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너희들과 함께 덜 구애받는 삶을 살도록 애쓰는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고기는 강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 안에서 서로 잊는다는 말을 알고 있느냐? 고
기를 살리는 것이 물이듯 인간을 참으로 살리는 것은 도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
기는 못 속에 있으면 절로 자라나고, 도로 나아가는 사람은 무위 속에 있어야만 그 천
수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자공은 다시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기인이란 무엇입니까?"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이들이 이상할 게 틀림없다. 그것은 그들이 세속에 사로잡히
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늘의 소인은 사람에게 군자이고, 사
람의 군자는 하늘에 대해 소인이다.'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과 함께 가공의 인물.
* 첫 기운: 원문은 일기. 만물의 생성 변화시키기 이전의 기운으로, 음양 이전의 태
극과 같다.
* 기인: 성질이나 언행이 특이한 사람. 기인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잠을 깬 인간 - 대종사
안회가 중니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그 어머니가 죽자 곡을 했으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
습니다. 또 상을 치르는데도 서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셋이 없이도 상을 잘 치렀다
고 노나라에 퍼지니, 실상이 없이 이름을 얻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중니가 대답했다.
"맹손씨는 다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아간 것이다. 줄일 수 없었던 형식을 그
는 줄인 것이다. 맹손씨는 살고 죽는 까닭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어느 것이 먼저이
고 나중임을 알려 하지 않았다. 변화에 따라 물*이 되어, 그 알지 못하는 바의 변화를
기다릴 뿐이다. 지금 당장에 화했다고 보는 그것이 화하지 않은 것인지 누가 알겠으
며, 지금 화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이미 화한 것인지 누가 알겠느냐? 우리들은 처음
부터 그 꿈에서 깨지 못한 것이다. 또는 그는 형체는 있지만 마음은 해치지 않으며,
삶과 죽음을 바꾸어도 정신은 죽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맹손씨는 진실로 깨달은지
라 사람이 울면 따라서 울지만, 자기에게 합당한 방법으로 한다. 또한 서로 자신이라
고 하는 것도, 어떻게 내가 이른바 나라는 것을 알겠느냐? 너는 꿈에 새가 되면 하늘
을 날고, 물고기가 되면 못에 잠기는데,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꿈꾸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 마땅함을 가리는 것이 웃는 것만 못하고, 웃는 것이 가만
히 있는 것만 못하다. 가만히 있는 것에 안주하여 변화에서 벗어나면 도와 일체가 되
는 것이다."
"저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안회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맹손재는 어머니의 상을 입어 예법대로 소리내어 우는 시늉은 했으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얼굴은 담담하여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으며, 상을 치르는 일에 애도의
정을 다한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범적인 상례였다고 나라 안에 칭찬이 자
자하니, 실상이 없이 이름만 얻은 것이 아닙니까?"
공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맹손재는 우리들의 지식을 초월한 인물이니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
니다. 인간이 가진 최대의 미혹은 삶에 대한 집착이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여 생사가
구별이 없다는 결론을 얻는 것은 특히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아직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맹손재쯤 되면 생사를 초월하고,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무심히 받아들일 뿐이다. 지
금 내가 변화라는 말을 썼으나, 변화나 불변도 실은 그 한계를 정할 수가 없는 것이
다. 생사나 변화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은 꿈속을 헤매고 있을 뿐이다. 맹손재에게는
형체의 변화만 있을 뿐,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도 단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집
을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맹손씨는 특히 깨친 사람이라 무슨 일에도 거역함이 없기에
남이 울면 자신도 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공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현재의 형체는 과연 자기이겠느냐? 꿈속에서 새가
되면 사람이란 것을 잊고서 하늘 높이 날고, 고기가 되면 물속 깊숙이 헤엄쳐 다닌다.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현실도 실제로는 꿈인지 어찌 알겠느냐? 시비를 내세워
남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웃으며 용서하는 것이 좋고, 웃고 용서하는 것보다 나와 남의
구별을 잊고 자연의 변화에 융화하는 것이 좋다. 자연의 변화에 융화하여 변화하는 것
마저 잊어버릴 때, 비로소 모든 대립을 초월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 맹손재: 노나라의 대부 중에 맹손씨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동일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물: 여기서는 '사람'을 뜻한다.
입묵을 없애다 - 대종사
의이자*가 허유를 만났을 때였다. 허유가 물었다.
"요는 너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의이자가 대답하였다.
"요는 저에게 반드시 인의를 실천하고, 옳고 그름을 밝히라고 하였습니다."
허유가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하러 왔느냐? 요가 이미 네 몸에 인의를 새기고 시비로써 코를 베었는
데, 너는 장차 무엇으로 요동하며 자유롭게 변화하는 길에서 노닐 수 있겠느냐?"
의이자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놀고 싶습니다."
허유가 말했다.
"안 된다. 장님은 눈썹과 눈과 안색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을뿐더러 푸르고 노란 옷
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의이자가 물었다.
"무장*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량*이 그 힘을, 황제가 그 앎을 잊은 것은 모두가
다시 달구어 만든 것입니다. 제게도 저 조물주가 먹물을 없애고 코 밴 것을 붙여, 완
전한 형상을 갖고 선생을 따를 수 있게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허유가 대답했다.
"아아, 알 수는 없도다. 그러나 너를 위해 그 대략을 말하겠다. 내 스승은, 내 스승
은 만물을 바로하고도 의롭다 하지 않고, 은택이 만세에 미쳐도 어질다고 하지 않는
다. 상고보다 오래되어도 늙었다고 하지 않고, 하늘을 덮고 땅을 실어 뭇 모양을 새겨
도 훌륭한 솜씨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 노니는 바다."
의이자가 허유에게 배움을 청하자 허유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요에게서 배웠다던데, 무엇을 배웠느냐?"
"인의의 실천에 힘쓰고, 시비와 선악을 분명히 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뭣하러 새삼 나를 찾았느냐? 요가 이미 네 이마에 인의를 새겨넣고 시비
라는 말로 코를 잘라버렸는데, 자유롭고 거리낌이 없는 큰 길로 어찌 너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의이자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설사 도에는 이르지 못해도 근처에는 가고 싶습니다."
"안 된다. 장님은 앞에 미인이 서 있어도 볼 수가 없으며, 곱게 수 놓은 비단을 들
고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너는 이미 도와는 인연이 없어졌다."
"옛날 무장이 그의 아름다움을, 거량이 그의 힘을, 황제가 그의 지혜를 잊은 것은
모두 도의 불길에 녹아 다시 단련된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며 조물주가 나에
게도 입묵을 녹여 없애고, 코를 처음대로 붙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끔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소원대로 잘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토록 소원이라면 말해보겠다. 내가 스승으
로 삼은 도는 만물을 있게끔 해주고, 한없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무심하여 자신이 은혜
를 베푼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유구한 과거에서 영겁의 미래에 걸쳐 하늘과 땅을
덮고, 삼라 만상을 쉴새없이 만들어내면서도 힘을 자랑하지 않는 위대한 존재이다. 그
래서 나도 이 스승을 따라 무의 경지에서 놀려 하는 것이다."
* 의이자: 가상의 인물.
* 무장: 고대의 미녀로, 도에 관해 들은 후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았다고 한
다.
* 거량: 장사의 이름.
좌망 - 대종사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하였습니다."
중니가 물었다.
"무슨 말이냐?"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됐으나 아직 멀었다."
안회가 뒷날 다시 만나 말하였다.
"저는 또 더하였습니다."
중니가 물었다.
"무슨 뜻이냐?"
"저는 예악을 잊었습니다."
"좋으나 아직 멀었다."
안회는 뒷날 다시 만나 말했다.
"또 더함이 있었습니다."
중니가 물었다.
"무슨 말이냐?"
"좌망*을 합니다."
중니가 놀라서 물었다.
"좌망이란 무엇이냐?"
안회가 대답했다.
"지체를 버리고 총명을 물리치며, 형체를 떠나고 앎을 버려서 대통*과 같이 되는 것
을 좌망이라고 합니다."
중니가 말했다.
"같게 되면 좋아함이 없고 화하면 상이 없으니, 과연 어질도다. 내가 너를 따르리
라."
안회가 공자에게 말했다.
"제 수양이 꽤 진보한 것 같습니다."
"어째서?"
"저는 인의를 잊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뒷날 안회는 다시 공자에게 말했다.
"저는 더욱 진보했습니다."
"그래서?"
"예악을 잊게 되었습니다."
"장하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뒷날 안회는 다시 공자를 보고 말했다.
"저는 더욱 진보했습니다."
"어떻게 진보했느냐?"
"저는 좌망할 수가 있습니다."
"좌망?"
공자는 깜짝 놀라 태도를 고쳐 물었다.
"무엇을 가리켜 하는 말이냐?"
"몸에서 힘을 빼어 일체의 감각을 잊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텅 비어 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공자는 크게 끄덕였다.
"도와 하나가 되면 시비 선악에 사로잡히지 않고 도와 함께 변화하여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장하다. 네가 벌써 거기에까지 나아갔으니 내가 네 뒤를 좇아
야겠구나."
* 좌망: 앉은 채 일체를 잊어버리는 것.
* 대통: 현상의 차이를 넘어선 그 근본의 도, 즉 자연을 말한다.
하늘이냐 사람이냐 - 대종사
자여*와 자상은 친구다. 장마가 열흘째 되던 날, 자여는 '자상은 아마 굶주려 누워
있겠지.'라고 생각하여 밥을 싸들고 먹이러 갔다. 자상의 문에 도착해서 보니 자상이
금을 뜯으며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소리로,
"아비냐 어미냐, 하늘이냐 사람이냐...."
하고 못 견디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시를 읊고 있었다. 자여가 들어가 물었다.
"자네는 왜 그런 시를 읊고 있는가?"
"내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네.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랄 것인가? 하늘은 사사로이 덮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음이 없는데,
천지가 어찌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겠는가? 이렇게 된 이유를 찾아보았으나 알 수
가 없으니, 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명인가보네."
자여와 자상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다. 장마가 한 열흘이나 계속되던 어느
날, 자여는 문득 생각했다.
'자상이란 친구, 먹을 것이 없어서 퍼져 누워 있으리라.'
자여는 밥 꾸러미를 들고 자상의 집을 찾았는데, 안에서 노래인지 우는건지 모를 이
상한 소리가 금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아버진가 어머닌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굶은 탓인지 숨넘어 가는 소리로 이렇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자여가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이상한 노래로군. 어찌 된 건가?"
자상이 대답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난한지 생각해보았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설마 부
모가 자식이 가난하기를 원했을 리 없고, 더구나 공평 무사한 하늘이 나만을 차별해서
이 꼴을 만들었을 리도 없지 않겠나? 이모 저모로 생각해도 도저히 알 수가 없네, 누
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닌데도 이토록 가난하니, 이 역시 운명이 아니겠나?"
* 자여: 공자의 제자인 증삼의 자. 효행으로 유명하다.
시비 세계 - 응제왕
설결이 왕예에게 물어보았더니, 네 번 물어도 네 번 모두 모른다고 했다. 설결이 이
에 뛰어오를 듯이 기뻐하며 포의자*에게 쫓아가 말했다. 포의자는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야 알겠느냐? 유우씨*는 태시*에 미치지 못한다. 유우씨는 비록 사람들에
게 인을 지니라고 권하여 얻게 했으나 처음부터 비인에 지나지 않았다. 태씨는 그 잠
자리에서도 느긋할 뿐 아니라 깨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누가 자기를 말로 여기건 소
로 여기건 개의치 않았다. 그의 앎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것이며 그의 덕이야말로 참
된 것이니, 처음부터 비인의 무리에 끼지 않았다."
설결이 스승인 왕예에게 네 번을 여쭈어보았으나 거듭해서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설결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껑충껑충 뛰며 기뻐하다가 한달음에 포의자에게 달려
가 고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포의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느냐? 성천자라고 불리는 유우씨도 옛 제왕인 태씨에게는 미
치지 못한다. 물론 유우씨는 인덕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키려 했고,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바로 그가 잘잘못을 가리키고 있다는 증거다. 그에 비해 태씨는
누가 자기를 말이니 소니 해도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잠을 잘 때는 느긋하고, 깨어나
서는 단잠을 잤다는 기색뿐이었다. 무지의 지, 무위의 덕을 갖추었기에 인위적인 세계
에 휩쓸려 들어가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 표의자: 왕예의 스승.
* 유우씨 : 순임금을 말한다.
* 태씨: 태고적의 제와 이름
참견은 필요하다 - 응제왕
견오*가 광접여를 만났다. 광접여가 물었다.
"일중시가 네게 뭐라고 하더냐?"
견오가 대답했다.
"제게, '임금 된 사람이 몸으로써 경식*과 의도를 나타낸다면 누가 감히 듣고도 화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접여가 말했다.
"그것은 덕을 속이는 짓이다. 천하를 그렇게 다스리는 것은 개천을 파서 바다를 끌
어들이고, 모기로 하여금 산을 지게 하는 것과 같다. 성인의 다스림이 어찌 밖을 다스
리겠느냐? 바르게 한 뒤에 행하고, 확고하게 일을 할 뿐이다. 새는 높이 날아 주살에
다칠 일을 피하고, 생쥐는 신단 밑에 깊이 구멍을 뚫어 불을 때거나 파헤쳐질 걱정을
던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 그 벌레들보다 무지할 수 있겠느냐?"
일중시의 제자 견오가 광접여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접여가 물었다.
"일중시는 어떻게 가르치더냐?"
"저희 선생님께서는 '임금 된 사람은 솔선 수범하여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 나가야만
백성들의 추앙을 받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덕에 지나지 않는다. 천하를 그렇게 다스리려 하는 것
은, 한 줄기 내를 파놓고 온 바다의 물을 전부 그리로 흘려보내려 하거나, 한 마리의
모기에게 태산을 지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인은 외면적인 제도나 법을 이렇게저렇
게 해보려 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의 천성을 제대로 키워서 백성들에게도 각각 자신에
맞는 생활을 하게 한다. 성인의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저 새를 보아라. 하늘 높이
날아올라 화살의 위험을 피하고 있다. 또 생쥐는 신단 구석 깊숙이 집을 지어 자기 몸
을 편안히 지키고 있다. 새나 쥐들마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살 길을 다 알고
있는데, 사람이야 말해 뭘 하겠느냐? 공연한 참견을 할 필요가 없다."
* 견오: 광접여, 일중시와 함께 가공의 인물이다.
* 경식 : 법 또는 제도를 뜻한다.
무명인의 가르침 - 응제왕
천근*이 은양*을 지나다가 요수 위에 이르렀을 때, 마침 무명인을 만나서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겠습니다."
무명인이 대답했다.
"저리 가라, 너는 구차한 사람이다! 어찌 그따위 시시한 것을 묻느냐? 나는 바야흐
로 조물자와 함께 벗하고 있지만, 싫어지면 또 방묘의 새*를 타고 육극 밖으로 나가서
무하유지향에 노닐다가, 광랑의 들에서 살려 한다. 너는 또 어찌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내 마음을 어지럽히려 하느냐?"
천근이 다시 물으니 무명인이 대답했다.
"너는 마음을 맑은 곳에 놀게 하고, 기운을 고요한 데에 합하여, 만물 본연의 성질
을 좇아 사사로움을 섞는 일이 없게 해라. 그러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이다."
천근이 은양을 지날 때 요수 근처에서 무명인을 만났다. 한눈에 상대가 비범한 사람
임을 알아차린 천근은 곧 말을 걸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물러가거라.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있구나. 나는 지금 조물자와 노니는 참이다. 놀
다가 싫어지면 망묘의 새를 타고 우주 밖으로 나가서, 무하유의 고을과 광랑의 들에
가서 실컷 놀면 된다. 그런데 너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 천하를 다스린다는
이야기는 나의 흥을 깨뜨릴 뿐이다."
그러나 천근은 단념하지 않고 거듭 가르침을 청했다. 무명인은 마지못해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마음에 있는 일체를 버리고 무심으로 돌아가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맡겨두고 인위
적인 노력을 모두 버려라. 그러면 천하는 자연히 잘 다스려진다."
* 천근: 원래는 성숙의 이름이지만 여기서는 가공의 인물이다.
* 은양; 은산 남쪽에 있는 산의 이름.
* 망묘의 새: 허무한 기운. '망묘'는 아득한 모양을 뜻한다.
재능은 몸을 망친다 - 응제왕
양자거*가 노담에게 말했다.
"여기서 빠르고 굳세며, 사물을 명철하게 알고, 도를 배우기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가히 명왕*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성인에게 있어 그런 사람은 오히려 하급 관리나 기술자처럼 몸을 괴롭히고 마음을
두렵게 하는 자에 불과하네. 범과 표범의 무늬는 사냥꾼을 부르고, 원숭이의 재빠름과
살쾡이를 잡는 개는 사슬을 부른다네. 이 같은 사람을 명왕에 비할 수 있겠는가?"
양자거가 움찔하며 물었다.
"감히 명왕의 다스림에 대해 묻겠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명왕의 다스림은 공이 천하를 덮어도 자기에서 비롯된 것인 양하지 않고, 교화가
만물에 미쳐도 백성은 그것을 모른다네. 하는 일이 있어도 이름을 붙일 수 없고, 만물
로 하여금 스스로 기쁘게 하며, 자신은 헤아릴 수 없는 데 서서 무유에 노는 사람이라
네."
양자거가 노담에게 물었다.
"민첩하고 과감한 행동력과 투철한 통찰력을 겸비하고서 도를 배우기를 잠시도 게을
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옛 성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담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성왕에 비교가 된다고? 그런 자는 고작 말단 관리에 지나지 않네. 하찮은 재주에
사로잡혀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가련한 사람이라네. 그런 서툰 재주는 도리어 몸을 망
치는 것이니, 범과 표범은 아름다운 털가죽 때문에 사냥꾼에게 죽게 되고, 원숭이와
사냥개는 날쌔기 때문에 쇠사슬에 얽매이게 되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태고의 성왕에
비할 수 있겠나?"
"그러면 옛 성왕의 다스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성왕의 공덕은 천하를 온통 뒤덮고 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와 천하와는 아무 관
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며, 그 교화가 만물에 비치나 백성들은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
하네. 천하를 다스리고도 그 흔적을 남기지 않네. 그러고도 만물로 하여금 자신의 자
리를 찾아 기쁘게 하며, 자신은 인간의 지혜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허무의 세계에서
노니네. 이것이 태고의 성왕들의 정치라네."
* 양자거: 양주라고 하나 확실치 않다.
* 명왕: 밝은 정치를 펼친 어진 왕. 성왕.
도망친 신무 - 응제왕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무가 있었다. 사람의 생사 존망과 화복 수요를 맞추는데, 해
와 달과 순일까지 틀림이 없어 귀신 같았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모두 피해 달
아났다.
열자가 보고 심취하여 돌아가 호자*에게 말했다.
"지금껏 저는 선생님의 도를 지극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보다 더 지극한
사람이 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그 글은 다했으나 실상은 다하지 못했는데, 어째서 진실로 도를 얻
었다고 하느냐? 뭇 암컷이 수컷이 없으면 어떻게 알이 생기겠느냐? 네가 도로써 세상
과 맞서 그들의 신용을 얻으려하니 남이 너의 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험 삼아
함께 와서 나를 보여봐라."
이튿날 열자와 함께 호자를 보고 나온 계함이 열자에게 말했다.
"슬프다, 당신의 스승은 죽을 것이오. 살아나지 못하오. 열흘을 견디지 못하겠소.
나는 이상은 것을 보았소. 젖은 재를 보았소."
열자가 들어가 눈물로 옷깃을 적시며 호자에게 고했더니 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지문*을 보였다. 터질 듯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는 상이지. 그
자는 내 생기가 꽉 닫힌 것을 본 것일 게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와라."
이튿날 또 그를 데려와 호자를 보게 하였더니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다행이오. 당신 선생은 나를 만나 병이 낫게 되었소. 완전히 살아났소. 꽉 닫힌 것
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소."
열자가 들어가 호자에게 고하니 호자가 말했다.
"내가 아까 보이기를 천양으로 했다. 이름과 실상이 들어가지 않고, 기가 발꿈치에
서 나오는 것이다. 아마 내게서 생성의 기운을 본 것일 게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오
너라."
이튿날 다시 데려와 호자를 보게 하였더니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한결같지가 않아 상을 볼 수가 없소. 좀 진정시킨 뒤에 다시 보리라."
열자가 들어가서 호자에게 말하니 호자가 말했다.
"나는 아까 태충막승*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아마 내게서 절대의 조화를 본 것일 게
다. 소용돌이치는 물도, 고요한 물도, 흐르는 물도 못이 된다. 못에는 아홉 가지 이름
이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에 해당한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오너라."
이튿날 또 데려와 호자를 보게 하였더니, 앉기도 전에 선 채로 그만 정신을 잃고 달
아났다. 호자가 말했다.
"쫓아라."
열자가 이를 쫓았으나 붙잡지 못하고 돌아와 호자에게 보고했다.
"이미 사라져버려서 붙잡지 못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미시출오종으로 했다. 즉 마음을 텅 비우고 현상의 변화에 그대로 따라
분별을 못하도록,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고, 물결치는 대로 흔들리기에 무서워서 도망
간 것이다."
그런 뒤에 열자는 스스로 배움이 모자람을 깨닫고 돌아가 3년간 나오지 않았다. 아
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기르듯 하며, 일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었
다. 새기고 다듬는 것에서 소박함으로 돌아가 괴연히 홀로 그 모양대로 서 있었으니,
만물을 있는 그대로 두고 간섭하지 않은 채 일생을 마쳤다.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 관상쟁이가 있었다. 사람들의 생사와 길흉을 귀신
같이 알고 있어서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짜까지 정확히 알아맞혔다. 정나라 사람
들은 그를 보면, 불길한 예언을 들을까봐 정신없이 도망쳐 달아나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계함을 만난 열자가 그의 재주에 반하여 스승인 호자에게 와서,
"저는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도만이 최고의 것인 줄 믿고 있었습니다만, 세
상에는 그보다 더한 것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고 계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호자는 조용히 타일렀다.
"나는 지금껏 너에게 도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왔지만 그것은 말뿐으로, 도 그 자
체는 아직 보여준 일이 없다. 그런데도 너는 도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
이구나. 아무리 암탉이 많아도 수탉이 없으면 생명이 있는 알을 낳지 못하는 법이다.
생명력이 없는 그 같은 도를 자랑으로 생각해서 사람들과 겨루어 자신을 돋보이게 하
려니까 관상쟁이 따위에게 속을 들여다보이게 된 것이다. 아무튼 말보다는 실지로 시
험해보는 것이 좋으니, 한번 관상쟁이를 데리고 와서 나를 점쳐보게 해라."
이튿날 열자는 계함을 데려와 호자의 상을 보게 했다. 호자의 얼굴을 두루 살피고
난 계함은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당신 선생님은 얼마 안 가 죽을 것 같소. 고작 오래가야 열흘일 거요.
얼굴에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 있소. 마치 물에 젖은 재처럼 생기없는 기색이...."
열자는 놀라서 방으로 달려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호자에게 알렸다. 그러나 호자는
태연했다.
"그렇겠지. 내가 아까 그자에게 지문상을 보여주었으니까. 지문상이란 움직이지 않
는 대지의 상을 말한다. 그는 내 생기가 꽉 닫혀져 있는 것을 본 것이겠지. 어디 다시
한번 그자를 데리고 오도록 해라."
이튿날 열자는 다시 계함을 데리고 와서 호자의 상을 보게 했다. 방에서 나온 계함
은 열자에게 말했다.
"운이 참 좋았소. 당신 선생님은 나를 만난 탓으로 완전히 원기를 되찾게 되었소.
이제 아무 걱정 없소. 꽉 닫혀져 있던 생기가 새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분명히 보
였소."
열자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이를 즉시 호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호자는 태연했
다.
"그럴 테지. 나는 아까 그자에게 천양의 상을 보여주었다. 뭐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도, 잡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움직이기 시작한 생기가 발뒤꿈치 근처에서부
터 올라오는 상을 말이다. 그것은 흡사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어 만물을 만들어낼 때
와 같은 것이다. 그는 내게서 그런 생성의 움직임을 본 것이다. 시험 삼아 또 한번 그
자를 데리고 오너라."
그 이튿날 열자는 또다시 계함을 데리고 왔다. 전과 마찬가지로 호자의 얼굴을 살피
고 난 계함은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게도 당신 선생은 만날 때마다 상이 변하고 있소. 이래 가지고는 아무리 나
라고 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소. 먼저 조용히 생각을 할 필요가 있소. 그러면 내가 앞
일을 말할 수 있을 거요."
열자가 이 말을 전하자 호자는 이렇게 말했다.
"음, 그렇겠지. 나는 아까 그자에게 태충막승의 상을 보여주었다. 모든 대립과 항쟁
이 사라진 태허의 상을 말이다. 그 녀석은 나에게서 모든 것이 절대의 조화를 유지하
고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내 마음은 강물의 못과 같은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물, 처
음부터 움직이지 않는 물, 쉬지 않고 흐르는 물,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조용하고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못을 이룬다. 무릇 못에는 아홉 가지 상이 있다. 내 마음도
온갖 상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나는 그자에
게 아직 세 가지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시험 삼아 다시 한번 데리고 오너라."
이튿날 열자는 다시 계함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계함은 호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깜
짝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뒤를 쫓아라."
호자의 말에 열자는 곧장 뒤를 쫓았으나 모습이 금방 사라져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맥없이 돌아와 말했다.
"벌써 그림자도 볼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뒤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 괜찮다. 나는 아까 그자에게 미시출오종의 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
을 완전히 버리고 무심히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르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상을 말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물결이 밀어닥치면 물결을
따라 떠다니는 식으로 상대방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놈은 자기의 본색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나서 도망친 것이다."
열자는 자기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고향집으로 내려가 몇 해 동안 한
발짝도 대문 밖을 나오지 않고 수행에 힘썼다. 아내를 대신해서 부엌에 가서 밥을 짓
기도 하고, 돼지를 사람과 똑같이 기르는 등 일절 차별을 두지 않았다. 허식을 버리고
소박한 것에 돌아가 초연히 세속을 떠나 산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만물을 있는 그대로 맡겨두고, 인위적인 노력을 더함이 없이 마음 편
안히 일생을 마칠 수 있었다.
* 호자: 이름은 임. 열자의 스승이다.
* 지문: 땅의 무늬, 혹은 산과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모양.
* 태충막승: 태충은 허, 또는 허심을 뜻하며, 일체의 사물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지인의 마음 - 응제왕
명예의 주인*이 되지 말고 주모자*가 되지 마라. 책임자가 되지 말고 앎의 주인이
되지 마라. 무궁을 체득하여 허무의 세계에서 놀아라. 하늘에서 받은 바를 다하면서도
이득을 찾지 않는 것, 즉 허일 뿐이어야 한다. 지인의 마음씀은 거울과 같다. 보내지
도 않고 맞지도 않으며, 응하여 간직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만물에 견디고 상
하지 않는다.
이름을 멀리하고 재주를 부리지 마라. 책임자가 되지 말고 지혜를 초월하라. 영원할
것과 한 몸뚱이가 되어 허무의 세계에서 놀아라. 자기에게 주어진 천성을 온전히 하는
것만으로 좋은 것이다. 그 이상 더하지 말아라. 한 마디로 마음을 텅 비게 하는 것이
다.
지인의 마음은 거울 같은 것이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도 오는 것을 그대로 비춰주
지만, 가버리면 아무런 흔적도 없다. 그러므로 무엇에건 대응하지만 해를 입는 일이
없다.
* 명예의 주인: 원문은 명시이다. 여기서 시는 '위패' 또는 '신주'의 뜻으로, '숭앙
받는 주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주모자: 원문은 모부로서, '모의의 창고' 또는 '모의의 중심'을 뜻한다.
혼돈의 죽음 - 응제왕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했다.
숙과 홀은 가끔씩 더불어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이 대접을 매우 잘했으므로 숙과
홀은 혼돈의 덕을 갚기로 하였다.
"사람은 다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하는데, 혼돈만이 갖지
않았다. 시험 삼아 그것을 뚫어주자."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남해의 제왕은 숙, 북해의 제왕은 홀, 중앙의 제왕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은 가끔씩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그때마다 후대를 받았다. 혼돈의 후대에 감사한 두 사람은
뭔가 보답을 하려고 상의를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인간은 누구나 눈과 귀와 입과 코의 일곱 구멍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쉰다. 그런데 혼돈에게만 구멍이 없으니 뚫어주는 게 어떨까?"
그래서 숙과 홀은 혼돈의 몸에 매일 하나씩 구멍을 뚫었고, 그 결과 혼돈은 7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 숙: 어떤 현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 즉 유를 상징한다.
* 홀: 어떤 현상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 즉 무를 상징한다.
* 혼돈: 만물이 채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 즉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상징한다.
@ff
외편
<외편>은 후세의 장자 학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지만, 대부분 <
내편>의 논리를 충실히 전개, 확대시키고 있다. 각 장의 제목은 처음의 두세 글자로
지어졌다. 즉 '변무', '마제', '거협', '재유', '천지', '천도', '천운', '각의', '선
성', '추수', '지락', '달생', '산목', '전자방', '지북유'의 15장으로 구성되어 있
다. 여기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장자보다는 노자에 가까운 내용이 많으며, 유가와 법가
에 동조함으로써 장자 사상의 파탄을 보이는 부분도 간혹 있다.
천하의 법도 - 변무
붙은 발가락과 육손은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나 덕에서 볼 때는 덧붙은 것이다. 사마
귀나 혹은 형체가 생긴 후에 붙은 것이나 성에서 볼 때는 역시 덧붙은 것이다. 인의를
과다하게 쓰려 하는 것은, 그것이 오장에서 짜낸 것이라 해도 도덕의 본연은 아니다.
그래서 발가락이 붙은 것은 소용이 없는 군살을 덧붙인 것이고, 손에 가지가 난 것은
쓸데없는 손가락이 돋은 것이며, 오장의 장에 여러 가지로 붙고 돋은 것은 인의를 빗
나가게 하여 총명한 척해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빛에 빠지는 자는 오색에 어지럽고 무늬에 넋을 잃는다. 청황색 옷의 휘황
함이 이 때문이 아닌가? 이주*가 이와 같았다. 여러 가지로 귀를 사용하는 자는 오성
에 어지러워지고, 육률에 빠져든다. 금석 사죽*, 황종, 대려의 소리가 이 때문이 아닌
가? 사광*이 이와 같았다. 어진 것이 지나친 자는 덕을 뽑고 성을 막아서 명성을 얻으
려 한다. 피리나 북을 가지고 천하로 하여금 도달하지 못할 것을 받들게 하려는 법이
아니겠는가? 증삼이나 사추*가 이와 같았다. 변설에 빠진 자는 기와와 기화를 끈으로
묶는 것처럼 쓸데없이 옛말을 훔쳐서 견백 동이의 사이에서 논다. 아무 쓸모가 없는
말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자*나 묵자*가 이와 같았다. 이러한 것은 모두 동
에 군살을 붙인 것일 뿐, 천하의 지정이 아니다.
네 발가락과 육손은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인 것이지만, 정상인과 비교한다면 군더
더기일 뿐이다. 사마귀나 혹 또한 후천적인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인의를
지나치게 세상에 결부시키는 것은, 비록 그것이 사람의 오장에서 짜낸 지혜일지라도
진정한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발가락이 붙은 것은 군살이 덧붙은 것이고, 육손은 소용도 없는 손가락
하나를 더 갖고 있는 것이며, 오장의 진실함 속에서 다시 인의를 쳐드는 것은 불필요
한 의미를 덧붙여 쓸데없이 총명한 척해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과도하게 눈을 사용하는 자는 색채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들떠서 갖가지
무늬를 대하면 정신을 잃을 만큼 빠져든다. 청색과 황색 무늬를 휘황하게 수놓은 예복
따위를 만드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이주를 들 수 있다.
과도하게 귀를 사용하는 자는 오음을 듣기만 해도 마음이 들뜨고, 육률에 이르러서
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빠져든다. 금석 사죽이며 황종, 대려 따위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광이 바로 그런 사람중의 하나이다. 또 과도하게 인에 치우친 자는 성정을
거슬러서라도 명성을 얻고자 한다. 천하의 이목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려 드는 것이 좋은 증거이다. 그런 사람으로는 증삼이나 사추를 들 수 있다.
또한 과도하게 변론에 치우친 자는 기왓장을 노끈으로 매듭지으려는 듯 쓸데없이 옛
사람의 글귀를 훔쳐다가 견백 동이의 궤변을 장식하느라 기운을 탕진한다. 그런 사람
들로는 양자와 묵자를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무가치한 도리일 뿐, 천하의 법도라 할 만
한 것이 아니다.
* 이주: 멀리서 털끝을 분별하는 눈을 가졌다는 전설상의 인물.
* 금석 사죽: 모두 악기의 이름으로, 금은 종, 석은 경, 사는 금슬, 죽은 생황을 말
한다.
* 사광: 진나라 평공 때의 이름난 음악가.
* 사추: 위나라의 대부로서, 의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 양자: 양주. 전국 시대의 철학자로서, 염세주의와 쾌락주의를 주장하였다.
* 묵자: 이름은 적. 노나라의 철학자로서 묵가의 시조이다.
본성과 자유 - 마제
말은 발굽으로 서리나 눈을 밟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풀을 먹고 물을 마시
며, 발을 들어 뛴다. 이것이 말의 진정한 본성이다. 비록 장려한 거처가 있어도 쓸모
가 없는 것이다.
백락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말을 잘 다룬다."
털을 지지고 낙인을 새겨 고삐를 매어서 외양간에 집어넣었느나 죽는 말이 열에 두
세 마리나 되었다. 배를 곯리고, 목마르게 하고, 힘껏 달리게 하고, 갑자기 뛰게 하
고, 정렬하여 세우기도 했다. 앞에서는 재갈에 끈을 달아 근심케 하고, 뒤에서는 채찍
을 쳐서 위협했다. 이래서 말은 반이 넘게 죽어갔다.
도자는 말한다.
"나는 찰흙을 잘 다룬다. 둥글게 하면 그림쇠 같고, 모나게 하면 곡척과 같다."
장인은 말한다.
"나는 나무를 잘 다룬다. 구부리면 갈고랑쇠에 맞고, 곧게 하면 먹줄과 같다."
무릇 찰흙이나 나무의 본성이 그림쇠나 곡척, 갈고랑쇠나 먹줄처럼 되기를 원하겠는
가? 그러나 세상에서는 백락은 말을 잘 다루고, 도장은 찰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한
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과실 또한 이와 같다. 내가 천하를 잘 다스린다고 말하는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백성들에게는 상성이 있는데, 짜서 옷 해입고 밭을 갈아먹는
것이다. 이것이 동덕*이다. 합쳐서 하나가 되고 편벽되지 않은 것을 천방*이라고 한
다.
말의 발굽은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그 털은 바람과 추위를 막아준다. 말은 또
한 풀을 먹고 마시며, 발걸음도 날쌔게 뛰어다닌다. 이것이 말을 본성이다. 고대 광실
따위는 그에게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백락은 이렇게 호언 장담했다.
"나는 말을 잘 다룬다."
그는 말의 털을 태우거나 깎고, 발톱을 깎아 낙인을 찍은 다음 고삐를 매어 마구간
에 넣어 길렀다. 그 결과 열 마리 중 두세 마리가 죽었다. 또 훈련을 시킨다면서 굶기
거나 목마르게 하고, 힘껏 달리거나 때로는 대열을 지어 달리게 했다. 재갈에는 끈을
달고, 뒤에선 채찍으로 위협했다. 그 결과 죽는 말이 반을 넘게 되었다.
옹기장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찰흙을 잘 다뤄서 둥근 그릇으로 만들면 그림쇠를 댄 것 같고, 각진 그릇을
만들면 곱자에 들어맞는다."
또 목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무를 잘 다뤄서 둥글게 깍으면 갈고랑쇠에 맞고, 곧게 하면 먹줄을 친 듯하
다."
그러나 찰흙이나 나무의 본성이 어떻게 그림쇠며 곡척, 갈고랑쇠며 먹줄과 같겠는가
?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부터 백락을 말의 명인이라 하고, 옹기장이와 목수에게 흙
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칭찬한다. 천하의 위정자들 역시 그와 같다.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백성들에게도 그들의 본성이 있
다. 그리하여 추우면 길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고, 배가 고프면 농사를 지어먹게 마
련이다. 이것을 자연의 본성이라 하며, 각자가 천성을 좇아 순전한 것을 자유라 한다.
* 동덕: 덕, 즉 타고난 성질이나 모양이 같다.
* 천방: 되는대로 자연에 맡겨두다.
백락의 죄 - 마제
무릇 말은 땅에 살면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신다. 기쁘면 목을 맞대고 서로 비비며,
화가 나면 등을 돌리고 서로 발길질을 한다. 말의 지혜는 여기까지밖에 이르지 못한
다. 그런데 굴레를 씌우고 재갈을 물려 월제*로 다스리려 하자 말이 꾀를 내게 되었
다. 가로대를 부수고, 멍에를 벗고, 재갈을 물어뜯고, 고삐를 끊는다. 따라서 말의 지
혜를 도둑의 모습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백락의 죄다.
저 혁서씨* 시대의 사람들은 머물러도 할 바를 몰랐고, 가려 해도 그 갈 데를 몰랐
다. 배불리 먹고 즐기며, 배를 두드리며 놀았다. 이렇게밖에 할 줄 모르던 백성들이
성인이 나타나서 몸을 굽혀 예악을 지키게 하고, 천하로 하여금 치장하게 하면서 인의
로써 천하의 마음을 사려 들었다. 백성들은 이때부터 애써 지혜를 좋아하고 이익을 좇
아 다투며, 그 멈출 바를 모르게 되었다. 이것 역시 성인의 죄이다.
말은 땅에 살면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신다. 흥이 나면 서로 목을 마주 비비고, 노여
우면 서로 발길질을 한다. 말의 지혜란 것이 기껏 이 정도이다. 그런데 그 말에게 굴
레를 씌우고, 재갈을 물리고, 이마에 월제를 박아 괴롭히면서도 말도 또한 갖은 꾀를
다 내게 되었다. 가로대를 부러뜨리고, 멍에를 벗어던지고, 재갈을 물어뜯고, 고삐를
끊어버리려 하는 것이다. 별다른 지혜가 없었던 말을 이렇게 만든 것은 모두 백락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
혁서씨가 지배하던 태고적만 해도 사람들은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고, 길을 떠나려
해도 갈 곳이 없었다. 입이 미어지게 음식을 먹고 즐기며, 배를 두들기며 만복감을 누
렸다. 그렇게 살던 백성들이 이른바 성인이 출현하면서부터 괴로워지게 되었다. 성인
들은 백성들에게 예악을 지키게 하고, 겉치장에 신경을 쓰게 하면서도 인의를 내세워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들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애써 꾀를 생각해내고 앞을 다
투어 이익을 좇게 되었으니, 이것은 곧 성인이 저지른 죄이다.
* 월제: 말의 이마에 박는 장식. 이마치레.
* 혁서씨: 태고의 제왕.
위험한 성인 - 거협
상자를 열고, 자루를 더듬고, 궤를 뒤지는 도둑을 막으려면 반드시 봉하고 묶어놓으
며, 빗장과 장식을 튼튼하게 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속의 지혜다. 그러나 큰 도둑에
이르면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자루를 메고 달아날 판이라, 그들은 봉한 것과 빗
장과 장식이 여물지 못한 것을 오히려 두려워한다. 그러니 고을의 이른바 지혜로운 자
는 곧 큰 도둑을 위해 쌓아두는 사람이 아닌가?
시험 삼아 논해보겠다. 이른바 세속의 지자로서 도둑을 위해 쌓지 않은 자가 있는가
? 이른바 성인 치고 큰 도둑을 위해 지키지 않은 자가 있는가? 어떻게 그러한 연유를
아는가? 옛날 제나라엔 이웃 고을이 서로 바라보고, 닭과 개의 울음소리가 들렸으며,
그물 치고 쟁기질하는 곳이 사방 2천 리나 되었다. 사경 안에 종묘 사직을 세워 읍옥
과 주려와 향곡*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하나 성인을 본따지 않은 게 있었던가? 그러나
전성자*는 하루아침에 제왕을 죽이고 나라를 도둑질했으며, 그 나라뿐 아니라 성지의
법까지 도용했다. 그리하여 전성자는 도둑의 이름을 가지고도 몸은 요순의 편안함을
누렸으나, 소국은 감히 시비하지 못하고 대국도 감히 치지 못해, 12대에 걸쳐 제나라
를 지배했다. 이것이 곧 제나라를 도둑질하고, 아울러 그 성지의 법까지 차지함으로써
도적이 몸을 지킨 것 아닌가>
그러므로 도척의 무리가 척에게 물었다.
"도둑에게도 도리가 있습니까?"
척이 말했다.
"어디를 간들 도가 없겠느냐? 무릇 방안에 감춰둔 것을 알아맞추는 것은 성이요, 먼
저 들어가는 것은 용이요, 뒤에 나오는 것은 의요, 가부를 아는 것은 지요, 고르게 나
누는 것은 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도 큰 도둑이 된 자는 일찍이 천하에
없었다.
이렇게 살펴보면 착한 사람이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서지 못하듯이 척이 성인의
도를 얻지 못했다면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하에 착한 사람은 적으나 착하지 못한
자는 많다. 곧 성인이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적으나 천하를 해치는 일은 많다. 그
러므로 말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차고, 노나라 술이 묽어서 한단이 포위되었다*. 성인이 생기자
큰 도둑이 일어났다."
성인을 배격하고 도적을 버려두어야 천하는 마침내 다스려진다. 무릇 냇물이 마르면
골짜기가 비고, 언덕이 무너지면 못이 메워진다. 성인이 죽으면 큰 도둑이 일어나지
않아 천하는 태평하여 일이 없다.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이 그치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거듭 기용하여 천하를
다스려도 이는 곧 도척을 거듭 이롭게 할뿐이다. 두곡을 만들어 그것으로 되게 하면
곧 두곡을 함께 훔치고, 권형을 만들어 그것으로 달게 하면 곧 부절*과 옥새를 함께
훔치고, 인의로써 바로잡으려 하면 곧 인의를 함께 훔친다. 무엇으로 이를 알겠는가?
혁대고리를 훔친 자는 죽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문전에 인의가 있
다면 이는 곧 인의와 지혜를 훔쳐서 두곡, 권형, 부새의 이점을 아울러 쓸 수 있는 자
를 몰아내는 것은, 비록 높은 지위가 걸려 있다 해도 권할 수 없고, 형벌의 위엄으로
도 금할 수 없다. 이렇게 거듭 도척을 이롭게 하고 막지 못하는 것은 곧 성인의 허물
이다.
재물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는 자루의 끈을 단단히 묶고, 금궤나 상자에 자물쇠를
굳게 채운다. 이것이 이른바 세상 사람들의 지혜다. 그러나 좀도둑의 경우라면 모르지
만 큰 도둑은 오히려 그런 것을 더욱 좋아한다. 그릇째 몽땅 들고 가기에는 끈이나 자
물쇠가 튼튼할수록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통용되는 지혜란 큰 도둑을 대신해서 물건을 잘 보관해두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성인이니 지혜 있는 사람이니 하고 떠들
어대는 사람들 치고 큰 도둑을 감싸주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일찍이 제나라는 산물이 풍부해서 온 나라의 농사가 풍작이었다. 마을마다 부족함이
없었고, 조상과 토지신의 제사에서부터 행정 구역의 구분에 이르기까지 성인의 치국법
그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신인 전성자가 하루아침에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도둑
질하고 말았다. 도둑질한 것은 나라만이 아니었다. 그는 성인의 치국법가지 그대로 적
용하여 민심을 장악했으므로 나라를 훔친 도둑인데도 불구하고 요순 못지 않은 안정된
지위를 보존할 수가 있었다. 또한 그의 불의를 꾸짖는 나라도 없었고, 제나라를 정벌
코자 토벌 군사를 일으키는 나라도 없었으므로 자손은 12대에 걸쳐 제나라를 지배할
수 있었다.
언젠가 유명한 도둑 척에게 부하들이 물었다.
"도둑에게도 도가 필요합니까?"
"물론이다."
척은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을 하든 사람에겐 도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로서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가를
꿰뚫어 보는 것이 성이요, 맨 먼저 침입하는 것이 용이며, 맨 뒤를 지켜 철수하는 것
이 의다. 전진과 후퇴를 그르치지 않도록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지요, 얻은 것
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이 곧 인이다. 이 다섯 가지 덕을 체득하지 못한 사람이 큰
도둑이 된 전례는 없다."
이와 같이 성인의 도에 의존하는 일은 착한 사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도척만
하더라도 성인의 동에 의하지 않고는 큰 도적이 될 수 없었다. 더구나 착한 사람이 적
고 악한 사람이 많은 것이 이 세상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성인은 사회에 공헌하기보
다는 해독을 끼친 편이 훨씬 더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차다.
노나라가 술을 아꼈기에 조나라의 서울이 포위당하였듯이 성인과 큰 도둑 사이에도 똑
같은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성인이 있기에 성인의 지혜를 훔치는 큰 도둑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태평 시대를 실현하려면 도둑 따위는 안중에 두지 말고 성인부터 근절시켜야
한다. 냇물이 다하면 골짜기는 마르고, 언덕이 무너지면 못은 묻힌다. 마찬가지로 성
인이 없어지면 큰 도둑도 자취를 감추게 되어 틀림없이 태평 무사한 세상이 도래할 것
이다.
성인이 존재하는 한 큰 도둑은 끊이지 않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으로 성인의
지혜를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큰 도둑은 그만큼 살찌게 마련이다.
성인이 되나 저울을 만들면 도둑은 그것을 고스란히 훔치고 만다. 부절이나 옥새를
만들면 그것 또한 고스란히 훔쳐가 버린다. 또 인의를 말하면 인의까지도 그대로 훔쳐
버린다. 혁대고리를 훔치는 자는 사형에 처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나
라를 도둑질한 자들은 모두가 인의를 간판으로 내세워 제후의 지위에 앉아 있지 않은
가? 인의와 성지를 훔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의를 훔치고 치국법을 훔친 큰 도둑의 소행이 천하의 인정을 받는 세상에서 포상
이나 형벌이 얼마만한 효과를 가져오겠는가? 고작 좀도둑을 막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
지 못한다.
이와 같이 큰 도둑을 살찌게 하고 악을 억제할 수 없게 만든 책임은 다른 사람 아닌
성인이 져야 한다.
* 읍옥, 주려, 향곡: 행정구역의 단위. 3백 묘(1묘는 3백평)를 옥, 15호를 여, 1백
여를 주, 5주를 향이라 한다.
* 전성자: 성은 전, 이름은 상. 황제인 간공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하여 그의 증손
때부터 왕위에 올랐다.
* 노나라의 술이.... 포위되었다: 초선왕이 제후들을 불러모았는데, 그 중 노공공이
바친 술은 묽고 맛이 없었다. 이에 선왕이 노나라를 치자 그 틈을 타서 양혜왕은 평소
에 벼르던 대로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였다. 노나라의 술 때문에 조나라가 공격
당한 것이다.
* 부절: 돌이나 대나무로 된 신분 증명서의 일종. 부신.
성인을 경계하라 - 거협
그러므로 성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큰 도둑이 없어지고, 옥을 내던지고 구슬을 부수
면 작은 도둑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절을 불태우고 옥새를 부수면 백성이 소박하고 검
소해지며, 말을 깨고 저울을 꺾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또 천하의 성법을 모조리
없애버리면 백성이 비로소 함께 논의하게 된다.
6률을 뽑아 흐트려버리고, 생황과 금을 녹여 끊어버리고, 사광의 귀를 막으면 천하
사람들의 귀가 비로소 총명해진다. 문장을 없애고 오채를 흐트려버리며, 이주의 눈을
붙여버리면 천하 사람들의 눈은 비로소 밝아진다. 먹줄과 자를 버리고 부수며, 공수*
의 손가락을 꺾어버려야 천하 사람들의 손이 비로소 공교로워진다. 그러므로 '크게 공
교로운 것은 서툰 것과 같다.'고 말한다. 증삼과 사추의 행실을 깎아내리고, 양자와
묵자의 입을 막아 인의를 물리치면 천하의 덕이 비로소 같게 된다.
사람 저마다가 그 밝음을 지니면 천하는 어지럽지 않게 되고, 사람 저마다가 그 총
명을 지니면 천하는 곧 번거롭지 않게 된다. 사람 저마다가 지혜를 지니면 천하가 현
혹되지 않으며, 사람 저마다가 그 덕을 지니면 천하는 편벽되지 않는다. 저 증삼, 사
추, 양자, 묵자, 사광, 공수, 이주는 모두 그 덕을 밖으로 세움으로써 천하를 어지럽
힌 자들이니 그 법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대 홀로 지극한 덕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가? 옛날 용성씨, 대정씨, 백황씨, 중앙
씨, 율륙씨, 여축씨, 헌원씨, 혁서씨, 존로씨, 축융씨, 복희씨, 신농씨 들의 당대 백
성들은 줄을 매어 쓰고, 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풍속을 즐기며 안락
하게 살았다. 이웃 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과 개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
까지 서로 내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때를 잘 다스려졌을 때라 한다.
지금은 드디어 백성들로 하여금 목을 빼고 발뒤꿈치를 쳐들어 '어느 곳에 현자가 있
는가?' 하면서 양식을 싸들고 달려가게 하기에 이르렀다. 즉 안으로 그 어버이를 버리
고 밖으로 그 임금의 일을 버린다. 발자취가 제후의 지경까지 닿고 수레바퀴의 흔적은
천 리 밖에 이어지니, 이것은 곧 위에서 지혜를 좋아하는 탓이다. 위에서 진실로 지혜
를 좋아해도 도가 없으면 곧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진다. 무엇으로 그 까닭을 아는가?
저 활과 쇠뇌*와 필익*과 기변의 지혜가 많으면 새는 위에서 어지러워지고, 구이, 망
고, 삼태그물, 통발의 지혜가 많으면 고기가 물에서 어지러워진다. 또 깎은 말뚝과 그
물과 덫의 지혜가 많으면 짐승은 들판에서 어지러워진다. 지혜로 속이는 것과 보이지
않게 해치는 것, 다루기 힘든 것과 견백, 해구, 동이의 변설이 많으면 세속의 분변을
현혹한다. 그러므로 천하는 그때그때마다 크게 어지러워지니, 죄는 지혜를 좋아한 데
있다.
그러므로 성인의 지혜를 버리게 되면 큰 도둑이 자취를 감추고, 보물을 부숴 없애면
좀도둑이 사라진다. 부절을 태우고 옥새를 부수며, 말과 저울을 망가뜨려 버리면 민중
은 소박한 본성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성인이 정한 법을 완
전히 버린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을 되찾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음계의 구별을 없애고 악기를 태워버리며, 사광의 귀를 막아버려야만 사람들은 자기
귀로 들을 수 있다. 장식을 버리고 색채를 잊으며, 이주의 눈을 막아버려야만 사람들
은 참으로 자기의 눈을 가지고 볼 수 있다. 먹줄을 끊고 자를 꺾으며, 공수의 손가락
을 못 쓰게 만들어야만 사람들은 참으로 자기의 손으로 만들 수 있다.
'너무 공교로운 것은 서툰 것과 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 증삼과 사추의 덕행
을 배격하고, 양자와 묵자의 변설을 막아 인의를 뿌리째 뽑아버려야만 사람들은 진실
한 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참다운 총명을 지니고 있으면 외부 사물에 현혹되는 일이 없고, 참다운 지혜를 지니
고 있으면 미망에 빠지는 일이 없다. 참다운 덕을 지니고 있는 한 자신을 잃는 일 또
한 없다. 저 중삼, 사추, 양자, 묵자, 사광, 이주, 공수의 무리들이 자신들의 덕을 자
랑하여 세상에 모범을 보이려 했기 때문에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가
르침에서 취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참다운 덕이 유지되었던 태고 시대는 어떠했던가?
용성씨로부터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율륙씨, 여축씨, 헌원씨, 혁서씨, 존로씨,
축융씨, 복희씨를 거쳐 신농씨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세월을 통해 사람들은 글자를 만
들지 않고, 줄을 매듭을 지어 기억을 도왔다. 누구나가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 만족하
여 아무 욕망도 품지 않았다. 그러므로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이웃 나라가
가까이 있어도 사람들은 서로 내왕하는 일이 없었다. 이런 시대야말로 참으로 세상이
잘 다스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지혜를 좇고 이익을 추구하여 잠시도 편할 날이 없다. 현자의
소문을 들으면 먼 길도 마다 않고, 부모를 버리고 임금의 명령을 팽개쳐 버리면서까지
달려가려 한다. 사람들은 현자를 찾아 각국을 두루 돌아다니느라 수레의 흔적이 천 리
에까지 미치는 형편이다. 그이유는 지배자들이 지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지배자가
지혜만 소중히 알고 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를 잃고, 세상은 어
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진 것이다.
새를 잡기 위해 우리들이 쇠뇌와 주살 따위의 기구를 만들면 새는 그만큼 자연 속에
서 편히 살 수 없는 법이다. 또 낚싯바늘이니 어살 따위의 어구를 만들면 만들수록 고
기는 물속에서 편안히 살 수 없다. 또 그물이나 덫 따위의 사냥 도구를 만들면 만들수
록 짐승은 자연에서 편안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의 경우도 똑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인위적인 일에 힘쓰고 궤변을 희롱하며,
슬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를 잃고 만다. 세상이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지고 만 것도 그 근원을 캐고 보면 지배자가 지혜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 공수: 요나라의 뛰어난 목수의 이름.
* 쇠뇌; 여러 개의 화살이나 돌을 잇달아 쏠 수 있는 큰 활.
* 필익: 그물과 주살.
자연에 맡겨라 - 재유
천하를 자연에 맡긴다*는 말은 들었으나,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있
는 대로 두는 것은 천하가 그 본성을 어지럽힐까봐 두려워서이며, 너그럽게 하는 것은
천하가 그 덕을 고치는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천하의 본성을 어지럽히지 않고, 그 덕
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다. 옛날 요가 천하를 다스린 것은 천
하를 기쁘게 한 것이니, 사람들은 그 본성을 즐겨야 했다. 이것은 고요한 것이 아니었
다. 걸이 천하를 다스린 것은 천하를 괴롭게 한 것이니, 사람들은 그 본성을 괴롭혀야
했다. 이것은 즐거움이 못 되었다. 무릇 고요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은 덕이 아니며,
덕이 아니면서도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천하에 없다.
천하를 자연에 맡겨둔다는 말은 들었어도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
했다. 있는 대로 두는 것은 천하 사람들이 그 본성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너그
럽게 하는 것은 타고난 덕이 변질될까 걱정해서이다. 그리하여 천하 사람들이 자기의
본성을 지키고 덕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면 구태여 천하를 다스릴 필요가 없을 것이
다.
옛날 요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쁘게 살도록 했기 때문에 사람
들은 굳이 기쁘게 살려고 힘써야 했다. 또 걸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비참하게 살도
록 하였기에 사람들은 산다는 것을 짐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기뻐해야
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은 덕을 깨뜨리는 일이며, 그렇듯 덕을 깨뜨리고도 오랫동안 집
권한 예는 고금에 없다.
* 천하를 자연에 맡긴다: 원문은 재유천하로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라는 뜻이
다.
마음의 천변 만화 - 재유
최구*가 노담에게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지 않고도 인심을 안장할 수 있습니까?"
노담이 대답했다.
"너는 조심해서 인심을 교란하지 않도록 해라. 인심이란 깎아내릴 수도 있고 추어줄
수도 있다. 올리고 내리는 것은 옥에 가두거나 죽이는 것과 같다. 유약한 것은 딱딱하
고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하지만 날카로운 것은 깍거나 간다. 그 열이 불길 같고, 그 차
가움이 얼음장같다. 부앙지간*에 사해의 밖에까지 미치고, 가만히 있으면 금방 연못처
럼 고요해지며, 움직이면 뛰어 하늘에 이른다. 이렇게 광분하고 교만해서 잡아맬 수
없는 것이 인심이다."
최구가 노담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천하를 다스리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민심은 어떤 방법으로
안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너는 부디 조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해라. 사람의 마음이란 깍
아내릴 수도 있고 추어줄 수도 있으나 어느 것이나 다 치명적이다. 부드러운 것은 딱
딱하고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하고, 날카로운 것은 깎거나 갈아서 만물을 자극시킨다.
불길같이 타오르기도 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며, 순식간에 이 세상 밖으로 뛰어 나
간다. 가만히 있으면 못물처럼 고요하고, 움직이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이렇듯 천변
만화해서 결코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 최구: 노자의 제자.
* 부앙지간: '부앙'은 '굽어보고 우러러 보다'라는 뜻이다. 몸을 굽혔다 젖혔다 하
는 아주 짧은 동안을 말한다.
만물의 생육법 - 재유
운장*이 동쪽을 유력하던 중에 부요*의 가지 옆을 자나다가 홍몽*을 만났다. 마침
홍몽은 넓적다리를 두드리면서 새처럼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운장이 보고 갑자기
멈추더니 꼼짝도 않고 섰다가 물었다.
"노인은 어떤 분이십니까? 무얼 하고 계십니까?"
홍몽은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새처럼 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운장에게 말했다.
"놀고 있다."
운장이 말했다.
"저는 여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홍몽이 운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
"천기가 합하지 않고 자기가 펴지지 못하니, 육기가 조회하지 않고 사시는 차례가
없습니다. 지금 저는 육기의 정을 합하고 군생을 기르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
까?"
홍몽은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머리를 저으면서 새처럼 뛰며 말했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운장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3년이 지난 후, 동쪽을 유력중에 송나라의 들판을 지나
다가 때마침 홍몽을 만난 운장은 크게 기뻐하며 달려가 말했다.
"하늘 같은 분이여, 저를 잊으셨습니까? 하늘 같은 분이여, 저를 잊으셨습니까?"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홍몽에게 들으려 하니 홍몽이 말했다.
"떠돌아다니지만 구하는 바가 없다. 멋대로 가면서도 그 가는 곳을 모른다. 무망을
보며 집착 없는 세계에 노는 내가 또 무엇을 알겠느냐?"
운장이 말했다.
"저 역시 멋대로 떠돌아다니는 몸입니다. 그러나 백성이 제가 가는 곳을 따르니 제
가 부득이 백성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지금 백성을 위해 한말씀 듣고 싶습니다."
홍몽이 말했다.
"하늘의 법을 어지럽히고 사물의 실정을 거스르면 자연의 활동은 그치고 만다. 짐승
의 무리는 흩어지고, 새들은 모두 밤에만 운다. 재화가 초목과 벌레에까지 미치게 된
다. 이것이 치인의 허물이다."
운장이 물었다.
"그러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아, 귀찮구나. 빨리 돌아가거라."
운장이 말했다.
"저는 하늘 같은 분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한 말씀만 듣고 싶습니다."
홍몽이 말했다.
"아! 마음을 길러라. 네가 만약 무위에 처한다면 만물이 저절로 화하리라. 네 형체
를 떨어뜨리고 네 총명을 떨쳐버려서 자신과 만물을 잊는다면 자연의 기와 한 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풀고 정신에서 벗어나 막연히 혼이 없도록 해라. 그러면 만물
이 그 근본을 회복한다. 그 근본으로 돌아간 것조차 모르면 혼돈스러운 무차별의 세계
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알게 되면 그것을 떠나가 버린다. 그 이름을
묻지 않고, 그 실정을 엿보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만물은 스스로 생리를 얻는
다."
운장은 말했다.
"하늘 같은 분께서 저에게 덕을 내리고 침묵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구하던 것
을 이제 얻었습니다."
운장은 두 번 절하고 일어나 인사하고 떠났다.
운장이 동쪽을 돌아다니며 노닐던 중에 부요의 가지 아래를 지나다가 홍몽을 만나게
되었다. 때마침 홍몽은 신이 나서 넓적다리(혹은 볼기)를 두드리며 새처럼 깡충깡충
뛰어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던 운장은 이윽고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노인장께선 어떤 분이시며, 또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렇게 노는 거지, 뭐!"
"제가 무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어!"
"천기는 조화를 잃고 지기는 펼쳐지지 못했으며, 육기는 고르지 못하고 사시는 차례
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기의 정수를 모아 만물을 키우고자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홍몽은 그래도 여전히 깡충깡충 뛰놀면서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나는 몰라, 모른다."
운장은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그 뒤 3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송나라의 어느 들을 지나다가 홍몽을 다시 만나게 되
었다. 운장은 크게 기뻐하며 달려가 말을 걸었다.
"하늘 같으신 분이여, 저를 잊으셨습니까? 저를 잊으셨습니까?"
운장은 머리를 두 번 조아리고 문답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홍몽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세상을 방황하지만 바라는 것이 없으며, 내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지 못한
다. 집착하는 것이 없으므로 무엇이 부족하지도 않으며, 다만 참된 움직임을 볼뿐이
다. 그런 내가 무엇을 더 알겠느냐?"
"사실은 저 역시 자유인으로 행동해 왔습니다만, 백성들이 언제나 뒤를 따라다니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같이 지냅니다. 부디 한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지의 법칙을 어지럽히고 만물의 실정을 거스르면 자연의 활동은 끊어지고 만다.
그 결과 짐승들이 무리를 흩고, 새들은 밤에 울며, 초목이며 벌레에까지 재앙이 미치
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다스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처신해야 됩니까?"
"정말 귀찮구나. 빨리 돌아가라."
"저는 하늘 같으신 분을 좀처럼 만날 수 없습니다. 부디 이 자리에서 한말씀 해주십
시오."
홍몽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먼저 마음을 잘 길러라. 네가 만일 무위 속에 몸을 둔다면 만물은 저절로 생육된
다. 네 몸을 잊고 정신을 떨쳐버려서 자신과 사물을 아울러 망각한다면 자연의 근원과
더불어 한몸이 될 것이다. 마음의 집착을 풀어버리고 정신의 속박을 벗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라. 그렇게 되면 만물을 스스로 알지 못한 채 근원으로 돌아갈 것
이다. 그것들은 또한 혼돈 속에서 다시는 근원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만일 그것
들이 근원으로 돌아온 것을 깨닫는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들은 다시 근원에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그 근원이 무엇이냐고 물어서도 안 되며, 그 모습을 알고자 해
도 안 된다. 그래야만 만물은 저절로 나고 키워질 것이다."
"하늘 같으신 분께서 저에게 진정한 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침묵
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것을 이제 비로소 얻었습니
다."
운장은 비로소 두 번 절하고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한 다음 어디론가 떠났다.
* 운장: 가공의 인물로, '구름의 신'이라는 뜻이다.
* 부요: 신목을 일컫는다.
* 홍몽: 가공의 신인으로, 원래는 '자연의 원기'라는 뜻이다.
천지가 비록 크다 해도 - 천지
천지가 비록 크다 해도 그 화함은 고르며, 만물이 비록 많다해도 그 다스림은 한가
지다. 사람이 비록 많다 해도 그 주인은 임금이다. 임금의 근원은 덕에 있으니 다스림
의 도를 이루는 것을 현이라 한다. 그러므로 '옛 임금들은 무위로 천하를 다스리고,
천덕을 따랐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천지가 비록 광대하더라도 조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만물이 비록 잡다하지만
그 다스림이야말로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 또한 많다지만 그 주인은 임금
한 사람뿐이며, 임금은 덕을 근본으로 삼아 다스림의 도를 이루는데, 그것을 현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옛말에도 '태고적 제왕들은 인위를 떠나 자연의 덕을 따랐을 뿐'이라고 한
것이다.
상망이 으뜸 - 천지
황제가 적수*의 북쪽을 여행했는데,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다가 현
주*를 잃어버렸다. 지*를 시켜 찾았으나 얻지 못했고, 이주*를 시켜 찾았으나 얻지 못
했다. 끽구*를 시켜 찾아도 역시 얻지 못했다. 그래서 상망*을 시켰더니 상망이 찾았
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하다. 상망이 마침내 찾게 되다니...."
황제가 적수의 북쪽 기슭에서 노닌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다가 그만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라는 신하에게 그것을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이주도, 끽구도 역시 찾아내지 못했는데, 상망만이 그것을
찾아냈다. 황제는 한탄했다.
"이상한 일이구나. 상망이 찾아낼 줄이야...."
* 적수: 세속과는 멀리 떨어진 신묘한 강의 이름.
* 현주: 도를 상징한다.
* 지: 지혜를 상징한다.
* 이주: 시력이 뛰어난 사람을 상징한다.
* 끽구: 말재주를 상징한다.
* 상망: 무심, 즉 있는 듯 없는 듯한 무아의 상태를 상징한다.
꾸중 듣는 성인 - 천지
요가 화에 들렀다. 화의 봉인*이 말했다.
"아아, 성인이시여, 청컨대 성인을 축복하겠소. 성인으로 하여금 오래 살게 하소서.
"
요가 말했다.
"사양하오."
"성인으로 하여금 부자가 되게 하소서."
요가 말했다.
"사양하오."
"성인으로 하여금 아들이 많게 하소서."
요가 말했다.
"사양하오."
봉인이 말했다.
"수와 부, 다남은 사람이 바라는 것인데, 홀로 그대만 바라지 않는 것은 어째서요?"
요가 대답했다.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부자면 일이 많으며, 오래 살면 욕이 많소. 이 셋은
덕을 기르는 것이 아니기에 사양하오."
봉인이 말했다.
"나는 처음엔 그대를 성인으로 알았으나 이제 보니 군자구려. 하늘이 만민을 낳으면
반드시 일을 주오. 아들이 많다 한들 일을 주면 무슨 걱정이 있겠소? 재산이 많아도
이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갖게 하면 무슨 일이 있겠소? 무릇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살며, 병아리처럼 먹고,* 새처럼 다녀서 눈에 띄지 않소.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물과
더불어 번창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덕을 닦으며 한가한 곳으로 나가오. 1천 세를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버리고 하늘의 신선이 되어, 흰 구름을 타고 상제의 고을에
이르오. 세 가지 걱정에 다다름이 없고, 몸에는 항상 재앙이 없소. 곧 무슨 욕됨이 있
겠소?"
봉인은 갔다. 요가 따라가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소.
봉인이 말했다.
"물러가시오."
요가 민정 시찰차 화에 갔을 때의 일이다. 화의 봉인은 요를 보자 이렇게 축수했다.
"오오, 성인이시여. 청컨대 성인께 축복을 드리게 해주십시오. 부디 오래오래 사십
시오."
그러나 요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시면 부자가 되십시오."
요는 그것도 거절했다.
"그럼 아드님을 많이 두시기를 빕니다."
요는 그것마저 거절했다. 그러자 봉인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대관절 어찌 된 일입니까?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아들을 많이 낳은 것은 누구나
가 다 바라는 것이 아닙니까?"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끊일 날이 없고,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을 다 감당할 수가
없소. 오래 살면 그만큼 욕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지오. 그런 것들은 덕을 쌓는 데 방
해가 될 뿐이오."
그러자 봉인은 태도를 돌변하여 말했다.
"이제 보니 내가 잘못 본 모양이오. 당신은 고작 군자에 지나지 않는군요. 인간은
모두가 하늘로부터 생을 부여받은 것이오. 따라서 제각기 그에게 알맞는 일자리를 갖
게 마련이오. 아들이 몇 명이든, 제각기 천분에 맞는 길을 걸어가게 하면 걱정이 생길
리 없소. 또 아무리 부를 얻어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번거로울 게 있겠소? 성
인이란 메추리와 같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살며, 병아리처럼 주는 것을 먹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취를 남기지 않는 법이오. 즉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에 맡길 뿐, 인위
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오. 도가 있는 세상이며 만물과 함께 번영하고, 도가 없는 세
상이면 남몰래 숨어 자기의 덕을 닦소. 그리고 천 년을 살다, 이 세상이 싫어지면 땅
위를 떠나 흰구름을 타고 하늘 나라에서 논다오. 이같이 구속이 없는 세상에서 노니는
자는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욕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오."
말을 마친 봉인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요를 뒤에 남긴 채 가버리려 했다.
"잠깐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소."
요는 황급히 뒤쫓았으나 성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이제 볼일이 없소."
* 봉인: 국경을 지키는 관리.
* 병아리처럼 먹고: 병아리가 어미에게 받아 먹듯이 보잘 것 없이 먹는 것을 뜻한
다.
혼돈씨의 생활법 - 천지
자공이 남쪽의 초나라를 노닐다가 진나라로 돌아와 한음*을 지날 때, 한 노인이 채
소밭에 두렁을 내는 것을 보았다. 굴을 뚫어 우물로 들어갔다가 물독을 안고 나와 밭
에 부었다. 끙끙대며 힘을 많이 쓰기는 하나 결과는 보잘것이 없었다. 자공이 말했다.
"여기 하루에 백 두렁을 적실 수 있는 기계가 있소. 힘을 쓰는 것은 매우 적으나 공
을 보는 것은 많은데, 노인장께선 이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포자*가 그를 쳐다보고 물었다.
"어떻게?"
자공이 대답했다.
"나무를 깎아 기계를 만들되,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게 합니다. 물이 끄는 것을 뽑
아올리는 듯하고, 빠르기가 끊는 물 같습니다. 그 이름을 고라고 하지요."
포자는 성난 듯 얼굴빛을 바꾸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스승에게 들으니 '기계가 있는 자는 반드시 그런 일이 있고, 그런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런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백을 갖추지 못
한다. 순백을 갖추지 못하면 잡념이 생겨 안정이 되지 않고, 잡념이 생겨 안정되지 않
는 자는 도를 받아들일 곳이 없다.' 했소. 내 이를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부끄러움을
사지 않기 위해서요."
만연해진 자공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못하자 잠시 후 포자가 말했다.
"당신은 무얼 하는 사람이오?"
자공이 대답했다.
"공구의 제자입니다."
포자가 말했다.
"당신은 박학으로 거룩한 체하고, 탄식하는 말로 뭇사람들을 덮으며, 외줄로 슬프게
노래하며 그 명성을 천하에 파는 자가 아니오? 당신은 이제 당신의 신기를 잊고, 당신
의 형해를 버리는 것이 어떻소? 당신 몸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
스리겠소? 내 일을 방해하지 말고 그만 가시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빛을 잃었다. 어쩔 줄 모르고 30리를 간 뒤에야 마음이 가라앉
았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아까 그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님은 무슨 까닭으로 그를 보고 난 후 얼굴이 변
하고 얼굴빛을 잃어, 종일토록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십니까?"
자공이 말했다.
"처음엔 나는 천하에 오직 한 사람뿐인 줄로 알았다. 그런 사람이 또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내가 스승께 듣기로는 '일은 옳은 것을 구하고, 공은 이룩됨을 구하라. 힘을
적게 들여 많은 공을 보는 것이 성인의 도이다.'라고 하셨다. 이제 그렇지 않음을 알
았다. 도를 지닌 자는 덕이 온전하고, 덕이 온전한 자는 얼굴이 온전하며, 얼굴이 온
전한 자는 신이 온전하다. 즉 신이 온전한 자가 성인의 도다. 삶을 의지하여 백성들과
함께 걸어가나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말로는 그 마음씀을 헤아리지 못한다. 분명
그자의 마음에는 공리심과 작위가 없다. 그와 같은 사람은 마음에 없으면 가지 않고,
마음에 없으면 하지 않는다. 비록 온 천하가 옳다고 칭찬하며 취하려는 말이라도 오만
하여 돌아보지 않고, 온 천하가 그 말이 잘못이라 비난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하의 비난이나 칭찬이 유익하거나 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전덕의 사람이라 한다면 나는 풍파의 백성이라 할 것이다."
노나라에 돌아와 공자에게 아뢰었더니 공자는 말했다.
"그는 혼돈씨*의 길에 가탁해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며, 그 안은 다스리지만 밖은 다스리지 못한다. 무릇 명백하여 깨끗하고 무위로
순박해지며, 자기 정신으로 세속을 노니는 사람이었다면 어찌 네가 놀랄 수 있겠느냐?
혼돈씨의 길이라면 나나 네가 아는 것으로 어찌 미칠 수 있겠느냐?"
공자의 제자 자공이 초나라 여행을 마치고 진나라로 가던 중이었다. 한수 남쪽에 이
르러서 보니 한 노인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밭에 파둔 우물의 밑바닥에
까지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올라와 밭에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
리며 일을 했지만 좀처럼 표가 나지 않자, 보다 못한 자공이 말을 건넸다.
"노인장, 힘드시지 않습니까? 이런 수고를 하시지 않더라도 하루에 백 두렁의 밭을
적실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그걸 쓰시면 힘들이지 않고도 일을 빨리 할 수 있으니
그걸 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오?"
노인은 얼굴을 들며 물었다.
"무자위(양수기)라는 것으로서, 통나무에 가로로 막대기를 걸친 뒤 앞쪽엔 두레박
을, 뒤쪽 끝엔 무거운 돌을 매단 것입니다. 상하로 움직이기만 하면 마치 물을 빨아올
리듯 길어올릴 수 있고, 끓어오르는 기세로 물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노인은 정색을 했으나 이윽고 가엾다는 듯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나는 스승님으로부터 이렇게 배웠소.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
는 데서 작위가 생긴다. 작위가 생기면 어느덧 타고난 마음을 잃어버려 잡념이 끊이지
않는 법이고, 마음이 잡념으로 어지러워지면 도를 얻을 수 없다. '나 역시 무자위를
쓸 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거기까지 타락하고 싶지 않기에 쓰지 않을 뿐이오."
노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자공은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조금 뒤
노인이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노나라 공자의 제자입니다."
"뭐, 공자라구? 그럼 당신도 박식을 자랑하고, 성인인 체하며 거만한 몸짓으로 세상
사람을 현혹시키고, 멋대로 비장한 소리로 이름을 팔며 돌아다니는 패겠군. 도라는 것
은 말이오, 그런 슬기를 버리고 겉형식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으면 체득하지 못하는
거요. 천하와 국가를 논하는 틈틈이 조금은 자기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소? 일에 방해
되니 그만 돌아가보시오."
자공은 완전히 기가 죽어 얼굴빛을 잃고 정신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30리를 걸어도
자기가 걷고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자공에게 제자가
물었다.
"그 노인이 어떤 분이기에 그토록 마음이 산란하셨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천하에 우리 스승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는 줄로 믿어왔는데,
그같이 훌륭한 노인이 계시는구나. 나는 스승님에게서 이렇게 배웠다. '가장 좋은 방
법으로 일을 성취하도록 해라. 행동하는 이상 최대의 효과를 올려라. 이것이 성인의
도란 것이다.' 그런데 성인의 도가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았다. 도를 따르는 자는 온전
한 덕을 갖추게 된다. 온전한 덕이 갖춰지면 타고난 대로의 본성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러면 무심의 경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고, 이것을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도
인 것이다. 그 노인처럼 무심의 경지에 달한 사람은 세속 안에 살고 있으나 아무것에
도 구애받지 않는다. 날 때부터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작위도, 공리심도 없다. 언제
나 자기의 본성에 따라 행동할 뿐, 세상의 칭찬이나 비난 따위에 일절 마음이 흔들리
지 않는다. 이래야만 비로소 온전한 덕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
하면 나 같은 존재는 동요해 마지않는 '풍파의 백성'밖에 안 된다. 정말 부끄럽구나."
노나라로 돌아온 자공은 즉시 공자에게 그 노인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공자는 자
공을 타일렀다.
"그 노인은 태고의 득도자인 혼돈자로 자처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는 도의 일면
밖에 모르는 것 같다. 그러기에 마음의 순일을 지킬 줄은 알지만 현실 사회에 등을 돌
리려 하는 것이다. 만일 그 노인이 참으로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여 날 때부터의 순박
함을 지닌 채 세속에 동화되어 있었다면, 네 눈에 그것이 보일 리 만무다. 혼돈씨가
사는 방법은 나나 너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 한음: 한수의 남쪽. 강물은 남쪽을 음, 북쪽을 양이라고 한다.
* 포자: 밭을 관리하는 사람.
* 혼돈씨: 태고의 제왕. 무위로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 천지
세 사람이 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잘못하면 가는 곳에 이를 수 있다. 잘못한 자가
적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잘못하면 애써도 이르지 못한다. 잘못한 사람이 이기기 때
문이다. 천하가 잘못 흘려 있는 지금, 나 홀로 갈 곳을 구한다 해도 얻을 수 없으니
슬프지 않은가!
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그 중 한 사람이 길을 잘못 들었을 때는 그나마 목적지를 찾
아갈 수 있다. 그러나 셋 중에서 둘이 길을 잘못 그는 경우엔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
리 고생한들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미혹한 자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천하
가 모두 미혹한 가운데 나 혼자만이 도를 구하고 있으나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닌가!
문둥이의 아이-천지
문둥이가 밤중에 그 자식을 낳고는 급히 불을 비추어 보았다. 서두른 까닭인즉 행여
자기와 같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문둥이가 밤중에 아이를 낳았다. 그는 황급히 등불을 켜들고 갓난아이의 얼굴을 들
여다보았다. 행여 자기와 같은 문둥이가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끝없는 운행 - 천도
천도의 운행은 막힘이 없으므로 그로 인해 만물이 생성한다. 제왕의 도는 운행에 막
힘이 없으므로 그로 인해 천하가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성도는 운행에 막힘이 없기에
그로 인해 온 세계가 복종한다. 하늘에 밝고 성에 통하며, 제왕의 덕에 통달*한 자는
자연 그 자체이기에 고요하지 않을 수가 있다. 성인이 고요한 것은 그것이 좋아서 고
요한 것이 아니다. 만물이 마음을 어지럽힐 수가 없으므로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
하면 수염이나 눈썹까지 비추고, 그 평평함이 기준이 되므로 훌륭한 목수는 그것을 법
으로 취한다. 물도 고요해야 밝은데, 하물며 정신과 성인의 마음이 고요할 때는 어떻
겠는가? 천지의 거울이요, 만물의 거울인 것이다.
천도는 끝없이 운행하여 멈추는 일이 없다. 그러기에 만물이 생성하는 것이다. 제왕
의 도 또한 끝없이 운행하여 멈추는 일이 없다. 그러기에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
간다. 성인의 도 역시 끝없이 운행하기에 천하가 그를 따르는 것이다.
만일 천도를 밝히고 성인의 도를 통하며, 제왕의 도를 통틀어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면 그 사람은 자연 그 자체이기에 고요할 것이다. 성인이 고요한 것은 그것이 좋은 것
이어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기에 고요한 것이
다.
물이 고요하면 수염이나 눈썹까지도 비춰주며, 그 평평함은 목수가 본뜰 만큼 수준
기 구실을 하게 된다. 물이 고요해도 모든 것을 밝게 비춰줄 수 있는데, 나아가 영묘
한 성인의 마음이 고요하다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야말로 천지의 거울이자 만
물의 거울인 것이다.
* 통달: 원문은 육통사벽. 여기서 '육통'은 '상하와 동서남북으로 두루 통한다'는
말이고, '사벽'은 사방이 탁 트여 있는 것을 말한다.
소든 말이든 - 천도
사성기가 노자에게 물었다.
"저는 선생이 성인이라 들었기에 먼 길을 사양하지 않고 와서 뵙기를 원했습니다.
백 집을 지나 발이 부르터도 감히 쉬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선생을 보니 성인이 아
닙니다. 쥐가 있는 곳에도 남은 음식이 있는데, 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인이 아닙니
다. 날것과 익은 것이 떨어지지 않고, 쌓고 거두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노자는 아득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사성기가 이튿날 다시 와서 뵙고 말했다.
"어제 제가 선생을 비난했으나 지금은 마음이 가라앉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노자는 말했다.
"무릇 교지 신성한 자는 자기 스스로 벗었다고 생각하오.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 불
렀다면 소라 했을 것이고, 말이라 불렀다면 말이라 했을 것이오. 적어도 존재하는 실
상에 사람이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를 받지 않는다면 다시 재앙을 받게 되오. 나는 언
제나 굴복하지만 굴복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굴복하는 일은 결코 없소."
사성기가 뒤를 좇아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아가 물었다.
"어떻게 몸을 닦아야 합니까?"
노자가 말했다.
"당신은 얼굴이 애연*하고 눈이 날카롭소.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입은 감연하오.
형상이 의연하여 말을 붙들어 매어둔 것 같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어 나가기만 하
면 빠르고, 살피는 바가 자세하오. 또한 지식과 기교에 있어서는 거만하게 보이는 등
모두가 불신을 낳게 하니, 변경에 그런 자가 있다면 도둑이라고 할 것이오."
사성기는 노자를 만나게 되자 대뜸 그를 힐난했다.
"저는 선생이야말로 참다운 성인이라는 소문을 그대로 믿고 있었습니다. 선생을 뵙
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밤낮 없이 몇날을 걸어, 발이 부르터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뵙고 보니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댁에는 쥐구멍 근처에까지 먹다 남은
음식들이 흩어져 있으나 피를 나눈 누이동생은 돌보려 하지 않으시니, 이래서야 어디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선생은 여전히 재산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습니
다."
그러나 노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마디 대꾸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그 이튿날, 사성기는 다시 노자를 찾아와 사과했다.
"어제는 선생께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끄러움으로
몸이 죄어드는 것만 같으니, 이건 대관절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당신은 지자니 성인이니 하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것을 벗
어난 지 이미 오래요. 어제 만일 당신이 나를 소라고 했다면 나는 자신을 소라고 인정
했을 것이며, 말이라고 했다면 역시 말인 줄 알았을 것이오. 남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오?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반대하고 나서면 더 심
한 봉변을 당하게 되는 거요. 나는 조금도 저항하는 법이 없소. 그러나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지 의식적으로 저항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오."
사성기는 깊이 깨달은 듯 머리를 숙인 채, 일어나 나가려는 노자의 그림자를 피하면
서 따라나가 공손히 가르침을 청했다.
"저는 어떻게 몸을 닦으면 좋겠습니까?"
"당신의 풍채는 당당하고 위압적이오. 엄숙한 얼굴, 날카로운 눈초리, 반듯한 이마,
용맹스런 입 언저리, 뜯어보아도 어느 것 하나 가슴속의 달리는 말을 억누를 길이 없
는 무엇인가가 있소. 당장 움직일 것만 같은 만반의 태세를 취하고, 한번 놓아버리기
만 하면 화살처럼 재빠르오. 또한 날카로운 관찰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지혜로운
계략을 자랑하는 오만한 인물이오. 그러나 그런 것은 모두 인간 본래의 모습이 아니
오. 당신 같은 사람이 국경 근처를 어물거리면 당장 도둑으로 오인받을 것이오."
*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안행'은 원래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모습을 말한다. 여기
서는 '기러기처럼 비스듬히 조금 뒤떨어져 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 애연: 홀로 우뚝하다. 즉 '돋보인다'는 뜻이다.
구락의 일 - 천운
"하늘을 스스로 돌고 땅은 스스로 처해 있는가? 일월은 스스로 서로 다투고 있는가?
누가 이를 주장하는 것인가? 누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인가? 누가 편히 앉아 이를 추진
하는 것인가? 기관을 닫는 이가 있어 부득이하게 되는 것인가? 운전하는 근원이 있어
스스로는 멈출 수가 없는 것인가? 구름은 스스로 비를 내리고, 비는 스스로 구름을 만
드는가? 누가 이를 구름고 비로 만드는 것인가? 누가 편안히 앉아 일없이 장난으로 이
를 권하는 것인가? 바람은 북방에서 빨아들이는 것인가? 누가 할 일이 없어 편히 앉아
이를 흩고 모으고 하는 것인가? 감히 그 이유를 묻겠소."
무당 함소가 대답했다.
"오너라. 내 너를 위해 말하겠다. 하늘에는 육극*과 오상*이 있다. 제왕이 이를 따
르면 다스려지고, 이를 거스르면 흉해진다. 구락의 일*에서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덕이
갖추어져 하토를 비추고 천하가 떠받드니, 이것을 가리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돌아가고 땅은 스스로 머무는 것인가? 해와 달은 스스로 서로 좇아
갈 길을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누가 있어 이를 주관하는 것인가? 누가 있어 이
를 통할하는 것인가? 누가 편안히 앉아서 이를 추진시키는 것인가? 혹은 어떤 근원이
있어 할 수 없이 움직여지는 것인가? 혹은 제 힘으로 움직이기는 했으나 제 힘으로 그
치지 못하는 것인가? 구름은 스스로 풀려 비가 되는가, 아니면 비가 스스로 올라가 구
름이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누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인가? 누가 편
안히 앉아서 장난으로 이렇게 하는 것인가? 바람은 북에서 생겨 동서로 불고, 혹은 그
냔 하늘에 맴돌기도 하는데, 그것은 과연 무엇이 뿜고 빨아들이는 것인가? 누가 편안
히 앉아서 그렇게 주재하는 것인가?"
내가 무당 함소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를 위해 대답해주겠다. 하늘에는 육극과 오상이 있는데, 제왕
이 그것에 따라 다스리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고, 그것에 역행하면 천하가 어지러
워질 것이다. 구락의 일에서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덕이 갖추어져서 천하를 두루 비추
게 되면 천하가 모두 이를 떠받들게 될 것이니, 그런 분을 가리켜 상황이라고 하는 것
이다.
* 육극: 일찍 죽는 것, 병, 걱정, 가난, 악함, 약함의 여섯 가지 또는 사방과 위아
래라고도 한다.
* 오상: 금, 목, 수, 화, 토를 가리킨다.
* 구락의 일: 하의 우가 치수할 때 낙수에서 나왔다고 하는 마흔다섯 자를 낙서라
한다. <서전>의 홍범구주는 이 낙서의 이치에 의하여 만든 것이라 하며, 팔괘의 법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짚으로 만든 개 - 천운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유세를 떠난 후 안연이 사금* 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이번 여행이 어떻겠소?'
사금이 말했다.
"애석하오. 선생은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안연이 물었다.
"왜 그렇소?"
사금이 말했다.
"아직 진상되지 않은 추구* 는 대바구니에 넣고 수놓은 보자기로 싸서 재계한 시축
이 다룹니다. 그러나 진상이 끝나면 행인이 목이나 등을 밟고, 풀 베는 자가 주워 땝
니다. 이것을 다시 주워다가 대바구니에 넣어 수놓은 보자기로 싸서 잠자리에 두로 같
이 지낸다면, 편한 꿈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수차 헛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지금 당신
의 선생도 선왕이 이미 진상한 추구를 주워다가 그 밑에서 제자와 자고 놀지 않습니까
?"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유세를 떠나고 난 뒤, 본국에 남아 있던 안연은 사금에게 물
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길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유감이지만 곤경에 빠질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이오?"
"제사 때에 쓰는 추구를 아실 겁니다. 그것은 상에 올리기 전만 해도 대바구니에 넣
어 수놓은 보자기로 싸고, 목욕 재계한 시축이 손수 다루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사
가 끝나는 대로 길가에 내버려 행인이 짓밟고 지나가게 합니다. 나무꾼이 주우면 가져
다가 군불을 땝니다. 만일 그것을 다시 주워다가 바구니에 넣고 보자기로 소중하게 싸
서 모셔둔 채 그 곁에서 잠을 잔다면 악몽에 시달려 몇 번이고 가위 눌린 헛소리를 지
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의 선생님도 옛성왕들이 쓰다 버린 추구를 어디
선가 주워다가 제자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곤경에
빠질 게 뻔합니다."
* 사금: 사는 노나라의 태사를 말하며, 금은 그의 이름이다.
* 추구: 짚으로 만든 개. 액막이를 할 때 쓰였다.
추녀의 흉내 - 천운
"저 길고*를 당신 혼자만이 못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기면 내려가고, 놓으면
올라오지요. 그것은 사람이 끄는 대로일 뿐, 그것이 사람을 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
서 내려가거나 올라오거나 사람에게 책을 잡히지 않지요. 저 삼황 오제의 예의 법도도
같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데에서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황 오제
의 예의 법도도 아가위, 배, 귤, 유자와 같이 그 맛은 서로 다르지만 입에 맞는 점에
서는 모두가 좋았던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예의법도란 것은 때에 따라 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원숭이를 잡아다가 주공*의 옷을 입힌다면 그놈은 반드시 물어뜯
어 벗은 후에야 성이 찰 것입니다. 고금의 차이를 보면 원숭이와 주공의 차이에 비유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서시가 가슴이 아파 마을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자 그 마을의
추녀가 그 아름다움을 보고 돌아와, 가슴에 손을 얹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합니
다. 마을의 부자들은 이를 보자 문을 닫은 채 나오지 않고, 가난한 자들은 이를 보자
처자를 거느리고 도망갔습니다. 그 추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아름다움은 알았지
만, 눈살을 찌푸리고도 아름답게 보이는 그 점은 몰랐던 겁니다."
사금은 계속해서 안연에게 말했다.
"당신은 두레박틀을 알 거요. 당기면 내려가고 손을 놓으면 올라옵니다. 용두레란
사람의 힘에 따라 움직일 뿐, 그것이 삶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올라가건 내려가건 사람들이 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태고의 삼황 오제가 만든
제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서로 같아서가 아닙니다. 아가위, 배, 귤, 유자
와 같이 맛은 각기 다르지만 어느 것이나 입에 맞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도는 시
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입니다. 지금 원숭이를 데려다가 주공이 입던 옷을 걸쳐준다면
반드시 물어뜯거나 찢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고금의 차이를 보건대 바로 원숭이와 주
공 정도의 차이가 아니겠습니다? 전에 미인인 서시가 병이 있어 가슴에 손을 대고 눈
살을 찌푸렸더니 그 마을의 추녀가 그것을 어여쁘게 여겨,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같은 마을의 부자들은 차마 못 보겠다
해서 문을 잠그고 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가난뱅이들은 아예 처자를 이끌고 마을을 등
졌다고 합니다. 그 추녀는 눈살 찌푸린 서시의 아름다움만 알았지, 왜 아름다운가는
몰랐던 것입니다. 성인이 한 일이라고 해서 무작정 흉내를 내는 일은 그 추녀가 서시
를 흉내낸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 길고: 한 끝에는 두레박, 한 끝에는 돌을 매달아 물을 퍼내는 틀. 두레박틀.
* 주공: 주나라 무왕의 아우로서, 무왕이 죽자 어린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선비가 사는 방식 - 각의
뜻을 닦고 행동을 고상하게 하며, 세상을 떠나 세속과는 달리 처신하고, 높은 이론
과 원망, 비방으로 잘난 체하는 사람은 산골의 선비이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마른
몸으로 못에 뛰어드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인의와 충신을 말하고, 공손하고 검소
하며, 겸양하여 몸을 닦는 것은 평범한 세속의 선비이다. 남을 선한 곳으로 이끌려는
사람이며, 유세하거나 머물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큰 공을 말하고 큰
이름을 내세우며, 군신의 예를 지키고 상하를 바르게 하여 다스리려는 것은 조정의 선
비이다. 임금을 존중하고 나라를 강하게 하는 사람이며, 공을 세우고 남의 나라를 삼
키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숲이나 진펄을 헤치고 광야에 거처하며, 고요한 곳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무위를 즐
기는 사람은 강해*의 선비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다. 한가한 것을 좋아하여 심호
흡으로 썩은 것을 토하고 새것을 마시며, 곰처럼 매달리고 새처럼 펴며 장수를 위하는
사람은 도인*의 선비이다. 형체를 기르는 사람이며, 팽조처럼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
람이다.
만약에 갈지 않고도 높고 인의가 없이도 닦아지며, 공명이 없이도 다스려지고 강해
가 없이도 한가하며, 도인하지 않고도 장수한다면 일체를 망각할 수도 있고 일체를 소
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은 한 극단에 서지 않고 뭇 아름다움이 그를 따를
것이다. 이것이 천지의 도며 성인의 덕이다. 그래서 '비고 적막하고 허무한 가운데 무
위하는 것이 천지의 고른 것이며, 도덕의 근본이다. '라고 하는 것이며, 또 '성인은
여기서 쉰다.'고 하는 것이다. 쉬면 평이해지고, 평이하면 염담하게 된다. 평이하고
염담하면 우환이 들어오지 못하고, 사기가 내습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그 덕이 온전
하게 되고 정신은 이지러지지 않게 된다.
고상한 행동과 고답적인 담론으로 세상을 비방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혼자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산골의 선비들이다. 그들은 불평하거나 괴로운 나머지 물
에 빠져 죽기 일쑤다.
인의와 충신을 말하고 공손하고 겸양하며, 오로지 자기 몸을 닦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세속의 선비들이다. 이들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동시에 남을 착하게 이끌
고자 하며, 천하를 유세하거나 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반면에 큰 공업을 말하고 큰 이
름을 세우며, 군신간의 예의와 상하 관계를 바로잡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조정의 관리들이다. 그들은 임금을 받들어 나라를 강하게 하고자 하며, 혹은 공을
세워 남의 나라 땅을 병탄하려 든다.
또 시골로 돌아가 무위를 즐기는 강해의 선비들은 세상을 피하거나 한가하게 지낸
다. 심호흡을 해서 묵은 공기를 토하고 새 공기를 들이마시며, 곰처럼 거꾸로 나무에
매달리고, 새처럼 몸을 펴서 장수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도인의 선비들이다.
이들은 신선술로 양생하고자 하며, 팽조처럼 장수하려 든다.
하지만 뜻을 갈지 않아도 행동이 고상하고 인의가 없이도 몸을 닦으며, 공명이 없이
도 나라를 다스리고 강해가 없이도 한가하며, 도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오래 살 수 있
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도 어느 것 하나 없는 것이 없고, 마음이 텅 비어 모든 아
름다움이 스스로 따를 것이다. 이것이 곧 천지의 도이며 성인의 덕이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은 '허심하여 고요하며, 허무 속에서 무위의 덕을 지키는 것이 천
지에서 가장 평화로운 생활 방식이며 도덕의 본질'이며, '성인은 허심, 고요, 허무,
무위의 경지에 쉰다.'고 말했다. 무위에 쉬면 마음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곧
편안할 것이다. 또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면 근심 걱정이 깃들지 않고, 나쁜 기운도
그를 덮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의 덕이 온전할 수 있고, 정신도 손상되
는 일이 없게 된다.
* 강해: 강호를 일컫는다.
* 도인: 정좌하여 호흡을 조절하는 도가 양생법의 일종.
조화의 이치 - 선성
본성을 세속에서 다스려 속학*으로써 그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바라는 자가 있다. 세
속에서 욕망을 어지럽혀놓고 그 밝음을 찾으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 이를 가리켜 몽
매한 백성이라고 한다 옛날에 도를 다스린 자는 고요한 것으로써 지식을 길렀으니, 즉
타고난 것을 알 뿐, 아는 것으로써 더하지 않았다. 이것을 가리켜 지혜로써 고요한 것
을 기른다고 한다. 지혜와 고요함이 만나 서로 길러질 때, 그 본성에서 조화된 이치가
나온다.
타고난 본성을 세속의 학문으로 다스려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
다. 혹은 세속의 지혜로써 자신의 지혜를 어지럽혀놓고서 밝은 지혜를 찾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본성을 덮어 어리석어진 몽매한 백성이라 한다.
옛날에 도를 닦은 사람들은 물욕을 떠난 고요함 속에서 지혜를 기르려 하였다. 타고
난 본성을 그대로 지닐 뿐, 인위적인 방법으로 지혜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지혜로 고요함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 참다운 지혜와 고요함이
서로 길러져 어울릴 때, 비로소 조화와 질서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저절로 나오게 마
련인 것이다.
* 속화: 통속적인 학문. 장자는 유가, 묵가 사상을 그릇된 학문으로 여겼다.
하백의 깨달음 - 추수
가을물이 때가 되어 모든 개천이 황하로 몰려들자 흐르는 물이 매우 컸다. 양쪽 기
슭과 언덕 사이에 있는 소와 말을 분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하백은 스스로 매우
기뻐서 천하의 아름다움이 전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흐르는 대로 따라 동쪽으
로 가서 북해에 이르렀다. 동쪽을 바라보니 물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이에 하백은 그
얼굴을 돌려 큰 바다를 바라보며 약* 을 향해 탄식했다.
"속담에 '백 가지 도를 듣고서 자기만한 자가 없는 줄 안다.'고 하더니 내게 한 말
이구려. '중니의 견문이 보잘 것 없고, 또 백이의 의를 가벼이 본다.'내가 말을 듣고
도 믿지 않았으나 오늘 당신을 보니 난궁합니다. 내가 당신의 문에 이르지 않았더라면
위태할 뻔했습니다. 오래도록 대방가*의 웃음을 보아야 했을 테니 말입니다.*
가을물이 장마를 만나 황하로 몰려들자 그 물결이 참으로 크고 넓었다. 양쪽 기슭에
소가 있는지 말이 있는지조차 구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이에 하백은 자랑스럽게 뽐내
며 천하의 장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을 따라 동으로 흘러가
북해에 이르러도 끝이 없자 하백은 비로소 얼굴빛이 달라져서 약에게 고개를 숙였다.
"속담에 '겨우 몇 가지 도리를 듣고 천하에 자기만한 자가 없는 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 말이 바로 나를 두고 이른 말일 줄이야……일찍이 나는 '중니의 견문을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고, 백이의 의 또한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를 않았소. 그러나 이제 그대의 끝없음을 내 눈으로 보게 되니, 만일 내가 그대를
찾아나서지 않았던들 길이길이 대방가의 비웃음거리가 될 뻔 했구려."
* 약: 북해의 신.
* 대방가: 대방이란 대도로서, 크고 위대한 도를 말한다. 즉 '크게 도를 깨우친 사
람'이라는 뜻이다.
크게 이기다 - 추수
기*는 그리마*를 부러워하고, 그리마는 뱀을 부러워하며, 뱀은 바람을 부러워했다.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했다. 기가 그리마를 보고 말했다.
"나는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자네는 여러 개의 발을 움직
여 가느라고 얼마나 노고가 많겠나?"
그리마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자네는 저 침 뱉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뱉으면 큰 것은 구슬 같고,
작은 것은 안개 같네. 섞여 나오는 것이 수를 셀 수가 없네.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것도
나의 천기일 뿐, 왜 그런지를 모르네."
그리마가 뱀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 발로 가는데도 자네의 발 없는 것에 미치지 못하네. 왜 그런가?"
뱀이 말했다.
"저 천기가 움직이는 것이 어찌 쉽겠나? 내가 어떻게 발을 사용하겠는가?"
뱀이 바람에게 물었다.
"나는 등과 갈비뼈를 움직여서 가는데, 아직도 발로 가는 것과 흡사하네. 지금 자네
는 휭하고 북해에서 일어나 휭하고 남해로 가네. 형제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
게 하는가?"
바람이 말했다.
"그렇지, 나는 휭하고 북해에서 일어나 휭하고 남해로 들어가네. 그러나 손가락으로
막아도 나를 이기고, 발길로 차도 나를 이기네. 반면 큰 나무를 꺾고 큰 집을 날리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으니, 작은 것에 짐으로써 큰 것에 이기는 것이네. 큰 것에 이기
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가능하네."
발이 하나밖에 없는 기는 발이 많은 그리마를 부러워하고, 그리마는 발이 없어도 자
유로운 뱀을 부러워했다. 뱀은 형태가 없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움직이지 않고
도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부러워했다. 또 눈은 보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마
음을 부러워했다.
한번은 기가 그리마에게 물었다.
"나는 한 발로 껑충껑충 뛰면서 가지만 그 한 개의 발조차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
는다네. 그런데 자네는 그렇게 많은 발을 어떻게 일일이 움직일 수 있는가?"
"별 것 아닐세. 사람들이 침을 뱉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힘차게 침을 뱉으면 큰
것은 구슬처럼 크고, 작은 것은 안개처럼 뿜어나오지 않던가? 그렇다고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침을 뱉는 것은 아닐세. 나 역시 타고난 대로 움직일 뿐,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네."
그리마가 뱀에게 물었다.
"나는 여러 개의 발로 가는데도 발이 없는 자네를 따라갈 수 없네. 그 이유가 무엇
인지 아는가?"
"천기를 말할 수는 없네. 내가 어떻게 그것을 바꿀 수 있겠나?"
뱀이 바람에게 물었다.
"나는 몸을 비틀어 움직이는 만큼 발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네. 하지만 자네는
형태도 없이 어떻게 북해에서 일어나 남해로 갈 수 있는가?"
"자네의 말이 옳네. 나는 북해에서 일어나 남해로 갈 수는 있으나, 누가 손가락 하
나로 막아도 그것을 꺾지 못하네. 또 나를 발길로 차도 어쩔 수 없네. 그러면서도 큰
나무를 꺾고 큰 집을 부숴버릴 수 있네. 작은 것에 짐으로써 큰 것에 이기는 게 아닐
까? 성인들은 그렇게 크게 이긴다고 들었네."
* 기: 발이 하나밖에 없다는 동물의 이름.
* 그리마: 음습한 곳에 사는 작은 동물로, 15쌍의 다리를 갖고 있다.
거북의 출세 - 추수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했다. 초왕*이 두 사람의 대부를 보내 이렇게 말하게 했다.
"바라건대 나라의 일로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습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손에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들으니 초나라에는 신귀*가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천 년이나 되었으며, 왕이
이를 비단보에 싸서 상자에 담아 묘당 위에 간직해두었다고 하오. 이 거북은 죽어서
껍질을 남기는 편이 귀하겠소, 아니면 꼬리를 진흙 속에 끌며 사는 게 편하겠소?"
두 대부가 대답했다.
"차라리 살아서 꼬리를 진흙 속에 끄는 게 낫지요."
장자가 말했다.
"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소."
장자가 언제나처럼 복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초나라의 두 중신이 왕의 명령
을 받고 찾아왔다. 사자는 말했다.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주십시오. 우리 임금님의 원이옵니다."
장자는 낚싯줄을 드리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귀국에는 죽은 지 3천 년이 된 영험한 거북의 등껍질이 있다고 들었소. 임금께선
그것을 비단보로 싸서 상자에 넣어두고 소중히 제사를 드린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 거
북을 보시오. 죽은 뒤에 제사를 받는 편과, 살아서 흙탕물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편을 생각해보면 어느 게 더 낫겠소?"
"그야 살아 있는 편이 더 좋겠지요."
그러자 장자는 말했다.
"자, 그만 돌아가 주시오. 나도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살고 싶소."
* 초왕: 초나라 위왕을 가리킨다.
* 신귀: 그대로 풀이하면 '신령스러운 거북'이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거북의 등껍질
로 점을 쳤기에 여기서는 '점을 치기 위해 말려둔 거북 껍데기'를 뜻한다.
솔개의 먹이 - 추수
혜자가 양나라의 재상이 되자 장자가 가보았다. 어떤 자가 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가 당신을 대신해서 재상이 되려고 왔다."
그러자 두려워한 혜자는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온 나라를 뒤졌다.
장자가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남쪽에 사는 원추*라는 새를 아는가? 무릇 원추는 남해를 떠나 북해를 향해
나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멈추지 않고 연실이 아니면 먹지 않으며, 예천*물이 아니
면 마시지 않는다네. 그런데 썩은 쥐를 얻은 솔개가 원추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고 '
이놈'하고 소리쳤다네. 지금 자네도 양나라를 가지고 욕심을 내서 나를 위협하려 하는
가?"
혜자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장자는 재상이 된 친구를 만나보려고 훌
쩍 양나라를 찾았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한 사람이 혜자에게 고자질했다.
"장자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틀림없이 당신을 밀어낼 생각으로 왔을 것입니다."
이 말에 놀란 혜자는 사흘 동안 온 나라 안을 샅샅이 뒤져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홀연히 혜자 앞에 모습을 나타낸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쪽 나라에 원추라는 새가 있네. 그 새는 남해에서 북해로 건너가는 멀고 먼 길에
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는다네,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 새라네. 그런데 썩은 쥐를 주운 솔개가 마침 머리 위로 지나가
는 원추를 보고, 모처럼 얻은 먹이를 빼앗길까 두려워 힘찬 목소리로 원추를 위협했다
고 하네. 자네 역시 이 솔개처럼 양나라는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를 위협하겠다
는 것인가?"
* 원추: 봉황새의 일종.
* 예천: 물맛이 매우 단, 술 같은 샘물.
어리석은 일 - 지락
천하에 지락이 있을까, 혹은 없을까? 몸이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없을까? 지금 무
엇을 해야 하고 무엇에 의거하며,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처하며, 무엇을 취하고 무엇
을 버리며, 무엇을 즐겨하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는가? 무릇 천하가 존경하는 것은 부
귀와 수선*이다. 좋아하는 것은 몸을 편히 하고 맛있게 먹으며, 아름답게 입고 좋은
색깔을 보며,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빈천과 요악*이다. 싫어
하는 것은 몸이 안일하지 않고 입이 좋은 맛을 얻지 못하며, 형체가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눈이 좋은 색을 보지 못하며, 귀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
을 얻지 못하면 근심하여 우울해진다. 형체를 위하는 이런 것들은 어리석은 일이다.
천하에 지극히 즐거운 일이 있을까, 없을까? 자기 몸을 안전하게 살리는 길이 있을
까. 없을까? 그런 것이 있다고 하면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에 의거하며,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거처하며,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멀리 하며,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
어할 것인가?
무릇 천하에서 높이 치는 것은 부귀와 수선이며, 즐기는 것은 한 몸의 안락함과 맛
있는 음식, 아름다운 의복과 좋은 빛깔과 듣기 좋은 음악이다. 또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은 가난하고 천한 것과 일찍 죽는 것,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은 몸이 편치 못하고 맛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 아름다운 옷을 입지 못
하고 좋은 빛깔을 보지 못하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그것들을 얻지 못할 때는 크게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마련이니, 이야
말로 한 몸뚱이만 위하는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는가?
* 수선: '수'는 오래 사는 것, '선'은 남에게 칭찬받는 것을 말한다.
* 요악: '요'는 일찍 죽는 것, '악'은 남에게 비난받는 것을 말한다.
장자의 아내 - 지락
장자의 처가 죽자 혜자가 조상을 갔는데, 장자는 다리를 뻗고 앉아서 분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함께 살며 자식을 키우다가 늙어서 몸이 죽었는데, 곡하지 않는 것은 괜찮다 하더
라고 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다니,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처음 죽었을 때는 나라고 해서 어찌 느낌이 없었겠나? 아내의 처음과
본원을 살펴보니 생이 없었네.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는 형체도 없었고, 형
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는 기도 없었네. 혼돈 사이에 섞여 있다가 변하여 기가
있게 되고, 기가 변하여 형이 생기고, 형이 변하여 생명이 생긴 것이네. 지금 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사시가 가는 것처럼 변하여 이처럼 죽었네. 아내가 큰 방* 에서
잠들려 하는데, 내가 시끄럽게 곡을 한다는 것은 천명에 불통한 일이라 생각되네. 그
래서 그친 것이네."
장자의 아내가 죽었다. 혜자가 조상을 가보니,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분을 두
드리며 노래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물었다.
"부인은 자네와 부부로 살며 자식을 키웠고, 자네를 위해 늙지 않았나? 또 자네가
설사 곡을 하지 않는 건 그렇다 치세. 그러나 굳이 분을 두드리며 노래까지 한다는 것
은 너무 심한 일이 아닌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처음에 아내가 죽었을 때는 나 역시 슬퍼했네. 그러나 그가 이 세상
에 태어나기 이전을 곰곰이 따져보니 원래는 없었네. 육체도 없었으며, 나아가서는 육
체를 형성하는 음양의 기운조차 없었다네. 모든 것이 혼돈 속에 뒤섞여 있다가 변화를
얻어 기가 생겼고, 그 기가 변화해 형체를 이루었으며, 그 형체가 변화에서 생명이 생
긴 것이네. 그리고 이제 다시 변화를 얻어 죽음으로 돌아간 것일세. 이것은 계절이 순
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아내가 거대한 방안에서 편히 잠자려 하는데, 굳이 시끄
럽게 곡을 해댄다는 것은 천명을 모르는 소행일 걸세. 그래서 곡을 하지 않는 거라네.
"
* 큰 방: 원문은 거실로서, 거대한 방, 즉 '하늘과 땅'을 말한다.
해골과의 대화 - 지락
장자가 초나라에 가서 빈 촉루*를 보았는데, 형태가 있었다.
그는 말채찍으로 치며 원인을 물었다.
"그대는 삶을 탐하여 이치를 잃고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망국의 일고 중형을 받
아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그대는 행실이 좋지 못해 처자에게 누를 끼칠 것
이 부끄러워 이렇게 되었는가, 혹은 춥고 배고픈 나머지 이렇게 되었는가? 혹은 나이
를 다하고 이렇게 되었는가?"
말을 마치고는 촉루를 당겨 베고 누웠는데, 밤중에 촉루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변사를 닮았군. 말하는 것을 지켜보니 모두 산 사람의 누다.
죽으면 이런 것이 없네. 그대는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소."
촉루가 말했다.
"죽음에는 위로 임금이 없고 아래로 신하가 없으며, 또 사계의 변화도 없네. 으레
천지로써 춘추를 삼으니, 비록 남면한 왕의 즐거움이라 해도 더 나을 수 없네."
장자가 믿지 않고 말했다.
"내가 사명*으로 하여금 다시 그대의 얼굴과 뼈와 살과 피부를 만들어 그대의 부모
처자며 마을 친지들에게 돌려준다면 그대는 이를 원하겠소?"
촉루가 깊이 눈살을 찌푸리고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어찌 남면한 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인간의 노고로 돌아가겠나!"
장자가 초나라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앙상한 해골 하나가 들판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본 장자는 말에서 내려 들고 있던 채찍으로 이를 두들기며 말을 걸었다.
"이 무슨 꼴인가? 그대는 방탕한 짓을 하다가 이 꼴이 되었는가, 나라를 망치려다가
죄를 받아 목이 잘렸는가? 부모와 처자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짓을 하고 자살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헐벗고 굶주린 끝에 이 꼴이 되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천수를 다
하고서 이 꼴이 되었는가?"
말을 마친 장자는 해골을 끌어당겨서 베고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해골이 나타나 말했다.
"그대도 제법 언변이 있군그래. 하지만 그대가 한 말은 모두 뜬세상의 번거로운 이
야기뿐, 죽은 사람의 세계에는 그런 게 없지. 어때, 죽은 자의 세계에는 흥미가 없나
?"
"제발 좀 들려주구려."
"죽은 자의 세계에는 임금이니 신하니 하는 구별이 일절 없네. 과거도 미래도 없고,
하늘과 땅도 마찬가지로 영원한 세계지. 비록 이 세상의 왕이나 제후의 생활인들 이
죽음의 세계처럼 즐겁지는 못할 걸세."
장자는 해골의 말을 그대로는 믿지 않았다.
"내가 사명에게 말해서 임자를 다시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려 부모 처자와 친
지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 그렇게 해 볼 생각은 없소?"
그러자 해골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왕과 제후도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버리고 괴로움이 많은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가
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 촉루: 해골을 말한다.
* 사명: 사람들의 목숨을 주관하는 신, 또는 저승의 신이라고도 한다.
달인 - 달생
생의 뜻에 통달한 사람은 생의 어쩔 수 없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 명의 뜻에 통달한
사람은 지혜가 어쩔 수 없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
생명의 진실을 밝게 꿰뚫은 사람은 생명의 본질로써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은 처음부
터 체념하고,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천명의 진실을 환히 꿰뚫은 사람은 사람의 지혜로써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은 처음부
터 알려 하지도 않는다.
선표와 장의 - 달생
노나라에 선표란 자가 있었다. 바위굴에 살면서 물을 마시고, 남들과 함께 이를 꾀
하지 않았으므로 나이 일흔에도 갓난아기의 얼굴색과 같았다. 그러다가 불행히도 굶주
린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혔다. 장의란 자는 고문 현박*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으나
나이 마흔에 열병으로 죽었다. 선표는 그 안을 길렀으나 호랑이가 그 밖을 먹어버렸
고, 장의는 그 밖을 길렀으나 병이 그 안을 공격하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 뒤지는
것을 채찍질하지 않은 자들이다.
노나라에 선표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바위굴에 숨어 물이나 마시고 살면서 세속의
이익을 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이 일흔이 되어서도 얼굴빛이 어린애와 같았으나
불행하게도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히고 말았다. 또 장의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부잣집이건 가난뱅이의 집이건 가리지 않고 분주히 다니면서 이익을 꾀했다. 그러나
나이 마흔이 되어 열병을 앓다가 죽었다.
선표는 그 속마음을 잘 길렀으나 호랑이에게 육체를 먹혀버렸고, 장의는 바깥쪽인
육신은 잘 닦았으나 안에서 병이 생긴 것이다. 둘 다 그 모자라는 쪽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 고문 현박: '고문'은 '높은 집의 문'으로 부잣집을 가리키고, '현박'은 발을 쳐서
문을 대신하는 가난한 집을 가리킨다.
돼지와 자기 - 달생
축종인*이 의관을 갖추고 돼지우리에 가서 돼지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죽기를 싫어하느냐? 나는 석 달 동안 네게 맛있는 것을 주고, 열흘
을 재계하고, 사흘을 삼갈 것이다. 흰 띠풀로 엮은 자리를 깔고 조각된 도마 위에 너
의 어깨와 엉덩이살을 올려 제사를 지내려는데, 너는 어떠냐?"
돼지를 위해서는 누구나 말할 것이다.
"강조를 먹고 우리 속에서 사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누구나, 살아서 헌면*의 귀함을 얻고 죽어서 아름답게 장식
된 좋은 영구차에 올려진다면, 생을 희생할 것이다. 돼지를 위해서는 버리고 자기를
위해서는 취한다면 돼지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축종인이 제복을 입고 돼지우리에 다가가 돼지에게 말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죽기를 싫어하느냐? 나는 너를 위해 석 달간 맛있는 음식을 주
고, 또 열흘 동안 내 몸을 깨끗이하며 사흘간 몸을 삼갈 것이다. 그리고 흰 띠풀로 엮
은 자리를 깔고, 너를 잡아 무늬 있는 제기 위에 차려 신에게 제사 지내려 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라도 이런 돼지를 생각할 때는 겨나 술지게미를 먹고 좁은 우리 속에 살지언정
오래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놓고 생각할 경우에는
어떤가? 만일 살아서 고귀한 자리에 오르고, 죽어서는 훌륭한 관과 영구차에 뉘어져
성대히 묻힐 수 있다면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하려 든다. 돼지를 위해서는 목숨이
희생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는 찬성하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과연 무
엇 때문이겠는가?
* 축종인: 제사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
* 헌면: 큰 수레와 면류관. 높은 신분이 되는 것을 뜻한다.
싸움닭 - 달생
기성자가 왕* 을 위해 투계를 길렀다. 열흘이 지나자 물었다.
"닭은 쓸만한가?"
기성자는 말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바야흐로 헛교만을 부리며 기운을 믿습니다."
열흘 만에 또 묻자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오히려 질시하며 기운을 돋웁니다."
열흘 후에 다시 묻자 대답했다..
"어지간합니다. 비록 우는 닭이 있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바라보면 나무로 만든 닭
과 같은데, 이것을 그 덕이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달아
납니다."
기성자는 투계를 기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왕이 그에게 투계 한 마리를 훈련
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열흘쯤 지나 왕이 경과를 물었다.
"어떤가? 어느 정도 쓸만하게 되었겠지?"
그러자 기성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은 덮어놓고 살기를 띠면서 줄곧 적을 찾기만 합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자 왕이 또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근처에 닭이 있다는 기척만 느껴도
곧 싸울 기세가 등등해집니다."
열흘이 지나서 다시 왕이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노려보며 성을 냅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묻자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거의 됐습니다. 옆에서 다른 닭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와도 전혀 움직이는
기색조차 없어,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보입니다. 이야말로 덕이 차 있다는 증거입
니다. 이렇게 되면 그 어떤 닭도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 모습만 보아도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 왕: 주의 선왕.
* 향경: 울리는 소리와 그림자.
목수의 비결 - 달생
재경이 나무를 깎아 거*룰 만들었다. 거가 완성되자 사람들이 보고 놀라 귀신 같다
고 하였다. 노후가 보고 물었다.
"그대는 무슨 재주로 만드는가?"
재경이 대답했다.
"신은 공인인데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있습니다. 신은 장차 거
를 만들려고 하면 감히 미리 기운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재계하여 마음을 고요
하게 합니다. 사흘 동안 재계하면 감히 경상 작록*을 품지 않게 되고, 닷새 동안 재
계하면 감히 비난이나 칭찬, 잘 되고 잘못 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레 동안 재계하
면 문득 저의 사지와 형체를 잊게 됩니다. 이때는 공조* 도 없어지고, 순수한 공교로
움으로써 외형적인 기교도 사라지게 합니다. 그런 뒤에 산속으로 들어가 나무의 질이
나 생긴 모양을 보고 고르기에 이릅니다. 그런 뒤에 마음에 거를 그려본 후 비로소 손
을 대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둡니다. 곧 하늘과 하늘이 합치는 것이니, 신이 만든 걸
로 의심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노나라의 이름난 목수 재경이 나무를 깍아 거를 만들었다. 어찌나 잘 만들어졌던지
보는 사람마다 크게 놀라서, 이것은 귀신의 재주임에 틀림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노나
라 임금도 감복한 나머지 재경을 불러 물었다.
"그대에게 숨은 재주라도 있는가?"
그러자 재경은 이렇게 대답했다.
"목수인 제게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 나름대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
다. 저는 거를 만들 때는 절대로 잡념을 품지 않습니다. 먼저 재계하여 마음을 가라앉
힙니다. 사흘을 계속하면 이욕을 잊고, 닷새를 계속하면 세상의 평탄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어 잘 만들겠다는 생각마저 잊고 맙니다. 이윽고 이레째가 되면 자신을 잊는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전혀 무심한 상태여서 나라의 위엄마저 잊고 맙니다.
저는 이 경지에 도달한 다음에야 비로소 산으로 가서 재목을 찾습니다. 재목은 나무
성질이나 생긴 모양이 거를 만들기에 적당한 것을 고릅니다. 나무가 정해지면 마음속
에 거의 모양을 그려보고, 그 나무에 꼭 들어맞는다는 확신이 서야만 제작에 착수합니
다. 만일 마음에 맞는 나무가 없으면 거를 만들지 않습니다. 결국 나무의 천성과 제
천성이 하나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귀신이 한 일이라고 칭
친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 거: 악기의 이름.
* 경상 작록: 상과 벼슬과 녹, 즉 세상의 이익.
* 공조: 임금의 조정 또는 나라의 조정, 나라의 권세.
거목과 거위 - 산목
장자가 산속을 지나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거목을 보았는데, 나무꾼이 그 옆에 서
있었으나 베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쓸데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재목이 안 되므로 그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
장자는 산에서 나와 옛친구의 집에 묵었다. 친구가 반가워하며 하인* 에게 거위*를
잡아 삶으라고 명했다. 하인이 물었다.
"하나는 잘 울고 하나는 울지를 못하는데, 어느 것을 죽일까요?"
주인이 대답하였다.
"울지 못하는 것을 죽여라."
장자가 어느 산속을 지나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한 그루 보았다. 그런
데 나무꾼이 그 옆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베려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자는 느끼는 바가 있어서 중얼거렸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타고난 수면을 다할 수 있구나."
장자는 산을 내려오자 옛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친구는 반가운 나머지 하인에
게 거위를 잡아 삶으라고 했다. 그러자 하인이 물었다.
"한 마리는 잘 울고 다른 한 마리는 잘 울지 못하는데, 어느 놈을 잡을까요?"
주인이 말했다.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 하인: 수는 '심부름하는 아이', '내시'의 뜻을 가진 글자로서, '하인'을 뜻한다.
* 거위: 원문은 안으로, 여기서는 '거위'로 해석했다.
천 금과 갓난아기 - 산목
가나라 사람이 도망을 치는데. 임회는 천 금의 구슬을 버린 채 갓난아기를 업고 도
망했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 값*을 따져도 갓난아기가 적고, 그 누를 따져도 갓난아기가 더 많소. 굳이 천
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도망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임회가 대답했다.
"보배는 이익으로 맺은 것이고, 갓난아기는 천명으로 이어진 것이오."
가나라 사람이 도망칠 때의 이야기다. 임회라는 자가 천 금의 보배를 내버려둔 채
갓난아기만 업고 도망했다. 그것을 본 누군가가 물었다.
"값을 치더라도 천 금 쪽이 낫고, 피해가 적은 것도 천 금 쪽이 아니오? 그런데 왜
굳이 천 금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왔소?"
"천 금은 나와 이익으로 맺어져 있지만, 이 애는 나와 운명으로 맺어져 있소."
* 값: 포는 옛날의 화폐 단위로서, '돈', '값'의 뜻을 지닌다.
쫓는 자는 쫓긴다 - 산목
장주가 조롱*의 울타리에서 놀던 중 이상한 까치 한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의 폭이 일곱 자에다 눈의 크기가 한 치나 되는 새였는데, 장주의 이마를
스치고 밤나루 숲에 앉았다. 장주가 말했다.
"이게 무슨 새인가? 날개가 커도 지나가지 못하고, 눈이 커도 보지 못하는구나."
옷자락을 걷고 걸음을 빨리하여 탄자*로 이를 맞히려 했다. 자세히 보니 바야흐로
아름다운 그늘 속에서 그 몸을 잊고 있는 매미 한 마리가 있는데, 버마재비가 앞발을
들어 그것을 치려 했다. 얻을 것만 생각하느라고 그 형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이상한 까치는 그를 쫓느라고 이익 때문에 참*을 잊고 있었다. 장주가 두려워하며 말
했다.
"아아, 만물은 본디 서로 괴롭히고, 두 종류는 서로 부르는구나."
탄자를 버리고 돌아나오는데, 숲지기가 쫓아와 꾸짖었다. 장주는 돌아와 석 달 동안
뜰에 나오지 않았다. 인저가 따라와 물었다.
"스승님은 요즈음 무엇 때문에 통 뜰에도 나오지 않으십니까?"
장주가 대답했다.
"나는 형을 지키느라 몸을 잊었고, 흐린 물을 보느라 맑은 못을 잊었다. 또 내가 선
생님께 듣기로는 '세속에 들어가면 그 세속을 좇으라'고 하셨다. 내가 조릉에서 놀며
참을 잊었더니 밤나무 숲지기는 나를 죄인 취급했다. 이것이 내가 뜰에 나가지 않는
까닭이다."
장작 조릉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남쪽에서 이상한 까치가 날아왔다. 날개
는 일곱 자나 되고, 눈은 한 치나 되는 큰 까치였다. 까치는 장자의 이마를 살짝 스치
고 날아가서 가까운 밤나무 숲에 앉았다.
"이상한 새다. 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날지 못하고, 큰 눈을 가지고 있으
면서도 마치 눈뜬 장님 같지 않은가!"
장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재빨리 밤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화
살을 겨누었다.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니 까치는 나무에 붙어 있는 버마재비를 노리고 있었다. 그 버
마재비는 또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신나게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버
마재비도 까치도 먹이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자기 몸이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을 모르
고 있었다. 장자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것이 또 먹이가 된단 말인가? 이익을 쫓는 자는 해를 부른다. 위험
하기 짝이 없구나."
장자는 활과 화살을 버리고 급히 밤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뒤쫓아온 밤나무
숲지기에게 붙잡혀 밤 도둑이라고 실컷 욕설을 들었다.
그 뒤 장자는 석 달 동안 방에 틀어박혀 뜰에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인 인저가 이상
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요즘은 뜰에도 나오지 않으시니 말씀입니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외계의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나 자신의 우매함을 모르고 있었다. 흐린 물에
마음을 빼앗겨 맑은 못에 몸을 비춰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 '세속에 살고 있는 한 세
속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그런데 요전번에 조릉에서 놀 때는 이마를
스치고 날아간 큰 까치에게 정신이 팔려, 금령도 미처 생각지 못하고 밤나무 숲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겠나? 그 때문에 숲지기에게 엉뚱한 의심을 받아 욕을 보았기에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 이렇게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 조릉: 능의 이름
* 탄자: 탄궁. 활.
* 참: 여기서는 신과 통하여 자신의 몸을 가리킨다.
미움받은 미녀 - 산목
양자*가 송나라로 가서 여관에 묵었는데, 그 소자*에게는 첩이 둘 있었다. 그 하나
는 아름답고 다른 하나는 못생겼는데, 못난 여자를 귀여워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천하
게 여겼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묻자 소자가 대답했다.
"아름다운 쪽은 스스로 아름답다 하니 내가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못난 쪽은
스스로 못났다 하니 그 못남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양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기억해라. 행실이 어질어도 스스로 행실이 어질다고 내세우지 않으면 어
디 간들 사랑받지 않겠느냐!"
양자가 송나라를 여행하면서 어느 여인숙에 묵게 되었다.
소자에게는 첩이 둘 있었는데. 한 여자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또 한
여자는 보기 딱할 정도로 밉게 생겼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소자는 못난 여자를 더
귀여워하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양자가 그 연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여쁜 여자는 얼굴이 예쁜 것만 믿고 설치는 통에 점점 보기가 싫어졌지만, 못난
여자는 자신이 못난 것을 부족하게 여겨 모든 일에 겸손하고 조심하기 때문에 그 마음
가짐이 아름다워 못난 것을 잊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알아두어라. 훌륭한 일을 하고도 스스로 뽐내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만백성에
게 사랑받을 것이다."
* 양자: 양주.
* 소자: 원래는 '일하는 아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여관 주인'으로 풀이해야 한
다.
전자방의 스승 - 전자방
전자방*이 위문후를 모신 자리에서 여러 번 계공을 칭찬하였다. 문후가 물었다.
"계공은 선생의 스승이오?"
자방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 마을 사람입니다. 도를 자주 말하기에 무택*이 칭송하는 것입니다.
"
문후가 물었다.
"그러면 선생은 스승이 없소?"
자방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선생의 스승은 누구요?"
자방이 말했다.
"동곽순자입니다."
문후가 물었다.
"그러면 선생은 왜 여태 그를 칭찬하지 않았소?"
자방이 대답했다.
"그 사람됨이 진실하여 사람의 모양을 하였으나 하늘처럼 텅 비어있고, 자연을 따름
으로써 천진을 보전하며, 맑은 마음으로 만물을 안고 있습니다. 무도한 것에는 바른
얼굴로 뉘우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나쁜 것을 없앱니다. 제가 어떻게 족히 그를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자방이 나가자 문후는 멍하니 종일토록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앞에 서 있는 신
하들을 불러 말했다.
"멀구나, 완전한 덕의 군자와는, 처음에 나는 성인이나 지자의 말과 인의의 행동을
지극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자방의 스승 이야기를 들으니 내 형체가 풀어져 움직일
마음이 생기지 않고, 입은 닫혀져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내가 배운 것은 바로
토경*과 같은 것이었다. 위나라도 나에게는 누가 될 뿐이다."
전자방이 위문후를 모시고 앉은 자리에서 자주 계공을 칭찬하자 위문후가 물었다.
"계공은 선생의 스승이오?"
"아닙니다. 저와 한마을 사람인데, 자주 도에 합당한 말을 하므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에게도 스승이 계시오?"
"네, 계십니다."
"선생의 스승은 누구요?"
"동곽순자라 합니다."
"그런데 선생은 왜 한 번도 그분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시오?"
"그 분의 사람됨은 진실 그 자체입니다. 비록 외모는 사람과 같지만 정신은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여 진실을 보존하고, 밝은 마음으로 만물을 포용
합니다. 무도한 사람에게는 엄격한 태도를 취해 그 잘못을 깨닫게 하고, 나쁜 사람을
대하면 그 사악한 마음을 없애줍니다. 그런 분을 제가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겠
습니까?"
자방이 물러간 뒤에 문후는 멍하니 앉아서 온종일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시립한 신
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덕을 완전히 갖춘 군자와는 거리가 멀구나. 나는 처음에는 성인이나
지자의 말과 인의의 행동을 최고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방의 스승 이
야기를 듣고 보니 온몸이 나른해져서 꼼짝할 수도 없고, 입은 닫혀져 말하기도 귀찮아
졌다. 아마도 내가 배운 것은 토우와 같은 게 아닐까? 이 나라조차 내게는 번거로운
방해물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 잔자방: 이름은 무택, 자는 자방. 공자의 제자인 자하에 이어 문후의 스승이 되었
다.
* 무택: 전자방 자신을 가리킨다.
* 토경: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
도가와 유가 - 전자방
온백설자* 가 제나라로 가던 중 노나라에서 묵었는데, 노나라 사람 중 뵙기를 청하
는 자가 있었다. 온백설자가 말했다.
"안 된다. 중국의 군자는 예의에는 밝으나 사람의 마음을 아는데는 어둡다고 들었
다. 나는 만나고 싶지 않다."
제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노나라에서 묵게 되자 이 사람이 다시 만나기를 청했
다. 온백설자가 말했다.
"먼젓번에도 나를 보기를 청하더니, 지금 또 내게 만나자고 하는구나. 이는 반드시
나를 깨우치려 하는 것일 게다."
나가서 그 손님을 만나고 들어오더니 탄식을 했다. 그 이튿날도 손님을 만나고 와
또 탄식하자 심부름꾼이 물었다.
"손님을 만나고 올 때마다 반드시 탄식하시니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말했다.
"내가 전부터 너에게 말하지 않더냐? 중국의 백성은 예의에는 밝으나 사람의 마음을
아는 데는 어둡다고. 아까 내가 본 사람은 나오고 물러감이 하나는 규를 이루고, 하나
는 구를 이루었다.* 또 종용함이 한편으로는 용과 같고, 한편으로는 범 같았다. 나를
간하는 것은 자식과 같고, 나를 타이르는 것은 아비와 같았다. 그래서 탄식하였다."
그를 만나본 중니는 말이 없었다 자로가 물었다.
"스승께서는 온백설자를 보고 싶어한 지 오래되셨는데, 보고도 말하지 않으시니 어
찌 된 일입니까?"
중니가 말했다.
"그와 같은 사람은 눈으로 보아도 도가 있었다. 역시 말로는 어떻다고 할 수가 없구
나."
온백설자가 제나라로 가던 도중 노나라의 도읍에서 묵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 재
빨리 만나기를 청해온 사람이 있었으나 온백설자는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거절하겠다. 이 지방의 선생들은 도덕이니 예법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몹시
자상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관해서는 무척 둔감하다고 들었다. 그런 자들은 만나고 싶
지 않다."
제나라에서 돌아오는 도중 다시 노나라에서 묵게 되었는데, 앞서 찾아왔던 자가 다
시 만나기를 청했다.
"한 번 거절을 당하고도 거듭 만나자는 것을 보니 끝까지 나를 깨우쳐줄 생각인 모
양이다."
이렇게 말한 온백설자는 그를 딴 방으로 불러들여 만났다. 그리고 그를 보내고 돌아
와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다시 그를 만난 뒤에도 온백설자는 여전히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물었다.
"그분만 만나면 으레 한숨을 쉬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음, 앞서도 말하였듯이 이 지방 사람들은 도덕이니 예절이니 하는 것에만 까다로울
뿐, 사람의 심리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까 그자 역시 행동거지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훌륭했다. 풍채도 당당해서 임금을 능가할 만한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대하듯 간절하고 정답게 나를 타일러주었기에 자연 한숨
이 나왔다."
온백설자가 만난 사람은 바로 공자였다. 공자는 집으로 돌아오자 한 마디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궁금하게 여긴 자로가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온백설자를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셨으면서 그 원을 푼 이제 아무 말
씀도 없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는 듣던 것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 번 보기만 해도 전체가 도 그 자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 도저히 말로는 그를 설명할 수가 없구나."
* 온백설자: 온백이 성이고, 이름은 설자. 남쪽의 어진 사람. 초나라 사람이라는 설
도 있다.
* 하나는 규를.... 이루었다: 규는 그림쇠, 구는 곱자로서, '법도'를 가리킨다. 즉
법도에 알맞다는 뜻이다.
노나라의 유생 - 전자방
장자가 노애공을 만나자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생이 많아 선생의 도를 배울 사람이 적소."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생이 적습니다."
애공이 물었다.
"노나라 어디에서나 유복을 입는데, 어째서 적다고 하시오?"
장자가 말했다.
"저는 '유생이 둥근 관을 쓰는 것은 천시를 아는 것이요, 모난 신을 신는 것은 땅의
모양을 아는 것이요, 느슨히 결* 을 차는 것은 일이 닥치면 결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도가 있는 군자라고 해서 반드시 그 옷을 입는 것은 아니며, 그 옷은 입
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도를 아는 것도 아닙니다. 임금께서 정말로 그렇지 않
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째서 나라 안에, '그 도가 없으면서도 유복을 입은 자는 그 죄로
죽는다.'는 호령을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애공이 포고령을 내리자 닷새 만에 노나라에는 감히 유복을 입는 사람이 없었
으나 오직 한 사나이가 유복 차림으로 공문*에 서 있었다. 애공이 곧 불러들여 나라의
일을 물으니 천전 만변*하여 궁함이 없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를 통틀어 유생은 오직 한 사람뿐인데, 어떻게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장자가 노애공을 만났다.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생이 많소. 모처럼 오셨지만 선생의 도를 들을 사람이 아마 거의 없
을 게요."
그러자 장자는 말했다.
"아닙니다. 노나라에 유생이 많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노나라의 모든 백성이 유복을 입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
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유생이 쓰는 둥근 관은 하늘의 이치를 나타내고, 네모난 신은 땅의 법칙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결은 결단력을 나타낸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의 상징
에 지나지 않을 뿐, 그것이 곧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를 닦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복을 입는 것을 아니며, 유복을 입고 있다
해서 또 반드시 군자의 도를 닦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전
국에, '군자의 도를 닦지 않았으면서 유복을 입은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내려보십시오."
애공은 그의 말대로 포고령을 내렸다. 닷새가 지나자 노나라에는 유복을 입은 자가
거의 없어졌는데, 단 한 사람이 유복을 입고 공문 앞에 서 있었다. 애공이 그를 불러
들여 국정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막힘없이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했다.
장자는 애공에게 말했다.
"전국에 유생은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유생이 많다고 하겠
습니까?"
* 결: 유생들이 오색 실로 꿰어 허리에 차는 구슬.
* 공문: 궁궐의 문.
* 천전 만변: 천 가지로 바뀌고 만 가지로 변화하다.
말없는 가르침 - 지북유
지*가 북쪽의 현수 가에서 놀다가 은분이란 언덕에 올랐을 때, 우연히 무위위를 만
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헤아려야 도를 알 수
있소?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해야 도에 안주할 수 있소? 무엇을 따르고 무엇에 말미
암아야 도를 얻을 수 있소?"
세 번 물었으나 무위위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답을 몰랐다.
지는 묻지 못하고 백수의 남쪽으로 돌아왔다. 호결이란 언덕에 올라 광굴을 만났다.
지가 그말을 광굴에게 물었더니 광굴은 말했다.
"아, 내가 알고 있소. 당신에게 말해주겠소."
말하려는 참에 그 말할 것을 잊어버렸다. 지가 대답을 얻지 못하고 제궁에 돌아가
황제를 보고 물었다. 황제는 대답했다.
"생각하지 않고 헤아리지 않는 것이 도를 아는 첫걸음이오. 아무데도 거처하지 않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도에 안주하는 첫걸음이며, 또 아무것도 따르지 않고 아무
것에도 말미암지 않는 것이 도를 얻는 첫걸음이오."
지는 황제에게 물었다.
"나와 당신은 이를 알고 저들은 모르오. 누가 올바르겠소?"
황제는 대답하였다.
"무위위가 진실로 바르고 광굴은 비슷하며, 나와 당신은 끝내 가깝지 않소. 무릇 지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르는 사람이오. 그 때문에 성인은 말하니 않고 가르
치는 것이오."
언젠가 지가 북쪽 현수 가에서 놀 때, 은분이라는 언덕에서 우연히 무위위와 만났
다. 지는 무위위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헤아리면 도를 알 수 있겠
소? 어떤 곳에 살면서 어떤 일을 해야 도에 안주할 수 있겠소? 무엇을 따르고 무엇에
말미암아야 도를 얻을 수 있겠소?"
지가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였지만 무위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위위는 답을 몰랐다.
지는 더 묻지 못하고 백수의 남쪽으로 돌아와 호결이라는 산에 올랐다. 거기서 광굴
을 만나자 지는 광굴에게 같은 말을 물었다.
"그건 내가 알고 있소. 내가 가르쳐드리리다."
그는 말을 꺼내려다가 문득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잊어버려서 더 말을 잇지 못
했다. 지는 광굴에게도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제궁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물어보았다.
황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것도 헤아리지 않아야 도를 알 수 있소. 아무데에도 살
지 않고 하는 바가 없어야 도에 안주하여 편안해지오. 따르는 것이 없고 말미암은 것
이 없어야 도를 얻는 것이오."
지는 다시 황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과 나는 도에 대해 아는 것이지만 저 무위위와 광굴은 모르는
것이 되오. 과연 어느 쪽이 정말로 아는 것이 되겠소?"
황제가 대답했다.
"무위위야말로 진정 도를 아는 사람이며, 광굴은 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소. 하지만
나나 당신은 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오. 예부터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
고, 말하는 자는 그것을 모르는 자라고 했소. 그러므로 성인은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
는 것이오."
* 지: '지식'이라는 추상 개념을 의인화한 것으로 이 편에 나오는 현수, 은분, 무위
위, 백수, 호결, 광굴, 제궁, 황제 등을 모두 이와 같은 표현이다.
망아의 잠 - 지북유
설결이 피의에게 도를 묻자 피의가 말했다.
"그대의 형체를 바로 하고, 시선을 한결같이 하시오. 장차 천화*에 이를 것이오. 그
대의 앎을 거두고 헤아림을 한결같이 하시오. 신명*이 와서 머물 것이오. 덕이 장차
그대의 아름다움이 되고, 도가 장차 그대의 집이 될 것이오. 그대는 갓난 송아지처럼
눈을 뜨고 그 까닭을 알려 하지 마시오."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설결은 잠이 들었다. 피의는 크게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돌
아갔다.
"모양은 마른 뼈와 같고, 마음은 죽은 재와 같다. 실상을 아는 것을 참으로 하고,
까닭을 가지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어둡고 깜깜하며 무심해서 함께 꾀할 수 없으
니 저 자는 어떤 사람일까?"
설결이 피의에게 도에 대해 물었다. 피의가 말했다.
"먼저 전신의 힘을 뺀 후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시오. 조화가 절로 몸에 갖춰지게 될
거요. 그런 다음 사려와 분별을 쫓아내 마음을 무로 하면 만유의 실상을 절로 느껴 깨
닫게 되오. 그것이 곧 도와 한몸이 되고, 도의 움직임과 합치된 상태인 것이오. 금방
태어난 송아지와 같은 마음,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의식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그것이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결은 어느 사이엔지 곱게 잠이 들어 있었다. 피의는 더할 수
없이 만족스러워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갔다.
"몸은 마른 나무, 마음은 죽을 재
슬기를 버리고 참으로 돌아간다.
망연히, 그저 황홀히 텅 비어 밑바닥도 모르고
사람이면서 또 사람이 아니다."
* 천화: 자연의 조화.
* 신명: 하늘과 땅의 신령, 즉 신을 말한다.
@ff
잡편
<잡편> 역시 <외편>과 동일하게 각 장의 제목이 서두의 두세 자를 따서 명명되어 있
다. '경상초', '서무귀', '측양', '외물', '우언', '양왕', '도척', '설검', '어보',
'열어구', '천하' 등 11장으로서, 사람 이름으로 된 제목이 5장이나 도어 주목을 끈
다. 소식은 이 중 '양왕', '설검', '어보' 3장은 천박하여 도에 미치지 못하므로 명백
한 위작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또한 '우언'과 '천하'는 발문 같은 성격을 띠어 장자
사상의 본질을 요약, 논찬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내편>과 <외편>보다는 문장의
품격이 치졸하고 논리의 전개가 단순한 점도 없지 않다.
경상초의 번민 - 경상초
노담의 제자에 경상초란 자가 있었는데, 노담의 도의 한 조각을 얻어 북쪽의 외루산
에서 살았다. 그 하인 중 똑똑한 자는 내보내고, 그 계집종 중 고분고분하고 어진 자
는 멀리 하여, 추한 자들과 함께 살고 열심히 일하는 자들만을 부렸다. 3년이 지나자
외루산은 풍족해졌다. 외루산 사람들이 서로 모여 말했다.
"경상자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다.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를
계산하면 부족하지만, 1년을 통해 계산하면 남는다, 그분은 성인이 아닌가? 우리 그분
을 시축과 사직으로 모셔보지 않겠나?"
경상자가 이 말을 듣고 남면하여 석연치 않게 여기자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경상자는 말했다.
"너희들은 왜 나를 이상하게 여기느냐? 무릇 봄기운이 나면 온갖 풀이 생기고, 가을
이 되면 온갖 곡식이 영근다. 봄과 가을이라 할지라도 그 이치를 얻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다. 천도가 이미 행한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지인은 작은 방에서 조용히 살
지만, 백성들은 마음대로 날뛰어 오가는 바를 모른다.'고 했다. 지금 외루산의 하찮은
백성들이 쓸데없이 수군대며 나를 현인으로 받들려 하는데, 그러면 내가 사람의 표적*
이 되지 않느냐? 내가 노자의 가르침에 면목이 없게 되기에 이러는 것이다."
노자의 제자 중에 경상초라는 사람의 있었다. 그는 얼마 동안 노자의 도를 체득한
다음 북쪽으로 가서 외루산에 머물러 살았다. 그는 하인 중에서 똑똑하고 분별력이 있
거나 고분고분하며 마음이 착한 사람은 모두 내보냈다. 그리하여 경상초와 같이 사는
자들은 대개 무뚝뚝하거나 순박한 사람뿐이었다.
경상초가 외루산에 머문 지 3년, 그 일대 사람들은 생활이 풍족함을 깨닫고는 서로
놀라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저 경상 선생님이 처음 이사해왔을 때, 우리는 놀라고 수상히 여겼었다. 그런데 그
후 우리들의 살림을 돌아보면 하루하루는 부족해도 1년을 두고 계산해보면 수입이 남
아돌아 간다. 이것은 아무래도 경상 선생님 덕택일 것이다. 그분이 성인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분을 시축처럼 받들고, 사직으로 모시자."
이 말을 전해들은 경상초는 남쪽을 보고 앉은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보았더니 경상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에겐 내가 이상하게 보이느냐? 무릇 봄기운이 돌면 온갖 초목이 싹트고, 가
을이 되면 모든 열매가 영근다. 그러나 봄이나 가을 역시 자연의 법칙에 의거하지 않
으면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 나 때문이 아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지인
은 조그만 방에서 고요히 살뿐,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백성들은 마음대로 행동
하여 무엇이 도인지 모른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삶들의 표본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나는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 것이므로 스승님께 면목이 없다.
그 때문에 언짢아하는 것이다."
* 사직: 한 왕조의 기초, 또는 토지와 곡식의 신.
* 표적: 원문은 표로서, 자신을 남 앞에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노자의 탄식 - 경상초
남영추*가 양식을 지고 이레 만에 노자의 거처에 이르렀다. 노자가 물었다.
"자네는 경상초가 있는 곳에서 왔는가?"
남영추가 대답했다.
"네."
"자네는 어찌하여 저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왔는가?"
남영추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노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말하는 것을 모르는군."
남영추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며 탄식했다.
"저는 지금 대답할 말을 잊었으며, 그로 인해 여쭈어볼 것마저 잊었습니다.
노자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알지 못하면 남들이 저를 어리석다 하고, 알면 도리어 제 몸을 근심케 합니다. 어
질지 못하면 남을 상하게 하고, 의로우면 도리어 저를 근심하게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이런 데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 세 가지가 저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경상
선생께 여쭈어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나는 아까 자네의 미간을 보고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네. 이제 자네의 말을 듣
고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네. 그것은 마치 부모를 잃은 자가 바다에서 장대로 찾는 것
과 같네. 지네는 돌아갈 집이 없는 자처럼 망망하기만 하네. 자네는 자네의 성정으로
돌아가려 하나 돌아갈 곳을 모르니 가련하구먼."
남영추는 길을 떠난 지 이레 만에 노자의 거처에 이르렀다. 노자가 물었다.
"자네는 경상초가 보내서 왔는가?"
남영추는 공손히 대답했다.
"네."
"그런데 자네는 웬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데리고 왔나?"
남영추는 노자의 말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으나. 물론 뒤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노자가 한탄했다.
"자네는 내 말뜻을 모르는군."
남영추는 얼굴을 숙이고 부끄러워하다가, 이윽고 노자를 우러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저는 무슨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오면서 여쭈어보고자 했던
말까지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잘 생각해보게나."
남영추는 한참 만에 겨우 생각해냈다.
"무지하면 어리석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으며, 지혜가 있으면 자기의 몸을 괴롭힐
뿐이라 생각합니다. 또, 인자하지 않으면 남을 해치게 되고, 인자하면 자기 몸을 괴롭
히게 될 뿐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남을 상하게 하고, 의로우면 자기를 괴롭히게 됩니
다. 이러한 지혜와 인, 그리고 의로움이 바로 저의 고민거리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여쭤보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노자가 대답했다.
"나는 아까 자네 얼굴을 보고서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눈치를 챘네. 이제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짐작했던 대로군. 자네는 꽤 여러 모로 마음을 쓰고 있지만, 마
치 부모 잃은 아이가 장대를 들고 바닷 속을 휘젓는 거나 마찬가지일세. 자네는 돌아
갈 집을 잃은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자기의 본성을 찾으려 하지만 그 방법을 모
르고 있네. 참으로 불쌍한 일이야."
* 남영추: 경상초의 제자.
* "자네는 어찌하여.... 왔는가?": 원문은 자하여인개래지중야로서, 마음속에 생각
이 많고 복잡하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개와 말의 감정법 - 서무귀
서무귀*가 여상*의 주선으로 위무후를 만났다. 무후가 위로하며 말했다.
"선생은 피곤한 것 같소. 산림의 노고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 같구려."
서무귀가 대답했다.
"제가 임금을 위로하려고 왔습니다. 임금께서 어찌 저를 위로하겠습니까? 임금은 욕
망을 차게 하고 호오를 조장하기 때문에 본성이 자연히 병듭니다. 그렇다고 욕망을 버
리고 호오의 감정을 버리시면 눈과 귀가 병듭니다. 그러니 제가 임금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임금께서 어떻게 저를 위로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후가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대꾸를 못했다. 잠시 후 서무귀가 말했다.
"시험 삼아 임금께 개의 상을 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급은 배만 부르면 끝나니
마치 살쾡이와 같고, 중급은 마치 해를 노리는 듯하고, 상급은 마치 그 몸이 없는 것
처럼 합니다. 제가 말의 상을 보건대 곧장 달리는 것은 마치 먹줄을 친 듯하고, 돌 때
에는 그림쇠 같으며, 모로 뛸 때에는 곡척과 같고, 원으로 뛸 때에는 그림쇠 같으면
국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하의 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천하의
말은 타고난 소질이 있어서, 보기에는 멍청하고 마치 자기 몸을 잊은 듯하지만 일단
달리면 빠르기가 말할 수 없어, 그 있는 곳을 알 수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무후는 매우 기뻐하며 웃었다.
서무귀가 여상의 주선으로 위무후를 만났다. 무후는 그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선생은 몹시 피곤해 보이는구려. 산속의 생활에 시달린 나머지 일부러 나를 찾아오
신 것 같소."
"그게 아닙니다. 저야말로 임금을 위로해드릴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임금께서 저를
위로하신다니 말도 안 됩니다. 임금께서 권세를 쥐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이유
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권세를 쥐면 자연 좋고 싫은 것이 뚜렷해지며, 그로 인해 본
성을 손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욕망을 억제해 좋고 싫은 것을 가리지 않으시면 관능
의 즐거움이 사라져, 눈과 귀와 온갖 감각기관이 못 쓰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임금을 위로해드릴 수는 있을지언정 임금께서 저를 위로하시지는 못한다는 것입
니다."
무후는 할 말을 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가 개를 감정하는 법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개에게는 상중하의 세 등급이
있습니다. 하치의 개는 먹을 것만 생기면 정신없이 퍼먹어 배가 불러야 끝을 냅니다.
따라서 살쾡이나 다름없습니다. 중치쯤 되면 마치 해라도 노리듯이 기개가 있어 보입
니다. 그러나 상등의 개가 되면 자기 몸조차 잊어버린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또 제가
개를 식별하는 것은 말의 감정법보다는 못합니다. 곧장 달릴 때는 마치 먹줄을 친 듯
바르고, 빙글빙글 돌 때에는 그림쇠를 댄 듯하고, 방형으로 나갈 때는 곡척을 댄 듯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말은 나라의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도 천하의 명마
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천하의 명마란 타고난 소질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서, 얼핏보기
에는 멍청하여 어디 하나 쓸모가 없어 보이며, 제 몸뚱이마저 잊고 있는 듯합니다. 그
러나 그 말이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그 빠르기가 어디를 가는지조차 모를 지경입니다.
"
이 이야기에 무후는 크게 기뻐했다.
* 서무귀: 위나라의 덕 있는 은자.
* 여상: 위나라의 대신.
* 국마: 한나라의 말, 즉 '나라 안에서 가장 뛰어난 말'이라는 뜻이다.
혜자의 묘 앞에서 - 서무귀
장자가 장의 행렬을 뒤따르다가 혜자의 묘를 지나게 되자 제자들을 돌아보고 말했
다.
"영* 사람이 악*을 파리 날개처럼 코끝에 바르고, 장석에게 깎아내리게 했다. 장석
이 도끼로 바람이 일도록 내리쳤는데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악이 다 떨어졌는데도 코
가 상하지 않았고, 영 사람은 얼굴빛도 변치 않고 서 있었다. 송원군이 이를 듣고 장
석을 불러 말했다. '과인을 위해 시험 삼아 그 재주를 보여 주게나.' 그러자 장석은 '
신은 예전에는 할 수 있었으나 이미 그 상대가 죽은 지 오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도 혜자가 죽은 후로는 상대가 없어졌으니, 함께 말할 사람이 없구나."
장자는 행렬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혜자의 묘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장자는 그곳에 우
두커니 서있더니 뒤따르던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에 장석이라고 하는 유명한 대목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자기 코
에 찰흙을 파리 날개처럼 얇게 바른 다음 장석에게 깎아내리게 했다. 장석이 도끼를
휘둘러 그것을 내리치는데, 바람소리가 윙윙거릴 정도로 맹렬했으나 그 사람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보니 찰흙은 떨어졌으나 코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송원군이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저는 전에는 그 재주를 부릴 수 있었지만, 상
대가 이미 죽고 없으니 다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나 역시 혜자가 죽은 뒤로는 상대
가 없어졌다. 논하고자 해도 그럴 만한 상대가 없구나."
* 영: 초나라의 수도.
* 악: 흰 찰흙. 백토.
길상의 상 - 서무귀
자기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 있었다. 그들을 앞에 불러놓고 구방인*을 불러 말했다.
"나를 위해 내 아들들의 상을 봐주시오, 누가 복된가를."
구방인이 대답했다.
"곤이 복됩니다."
자기는 깜짝 놀라 기뻐하며 말했다.
"어째서 그렇소?"
"곤은 장차 임금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일생을 마칠 것입니다."
자기는 놀라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내 자식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구방인이 말했다.
"무릇 임금과 같이 먹으면 그 은택이 삼족에까지 미치는데, 하물며 부모야 말할 것
이 있겠습니까? 지금 선생이 이 말을 듣고 우는 것은 복을 막는 것입니다. 아들은 복
되나 아버지의 상은 불길합니다."
그러자 자기가 말했다.
"구방인, 그대가 무엇을 안다고 곤을 복되다 하는 거요? 술과 고기는 코와 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거요. 그대가 어찌 그 복이 연유하는 까닭을 알겠소? 내가 일
찍이 짐승을 기른 적이 없는데 암양이 집의 서남쪽에서 나오고,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
데 메추라기가 집의 동남쪽에서 나온다면, 그대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소? 나는
내 자식들과 함께 그저 하늘과 땅에서 사는 거요. 즐거움을 하늘에서 얻고, 먹는 것
을 땅에서 얻소. 우리는 남과 함께 하지 않으며, 함께 꾀하지도 않고 이상한 짓을 하
지도 않았소. 나는 자식들과 함께 하늘과 땅의 정성에 힘입었고, 만물과 서로 얽혀 있
지 않소. 나는 애들과 한결같이 자득한 모습일 뿐, 남과 함께 일의 됨됨이에 관해 어
떻다 논하지 않았소. 그런데도 세속의 보상이 있을 수 있소? 무릇 괴이한 조짐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괴이한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오. 이것은 아마 나나 내 자식의 죄가 아
니라 하늘이 준 게 아닌가 하오. 그래서 우는 거요."
얼마 안 있어 곤은 연나라에 가게 됐는데, 도중에 도둑에게 잡혔다. 그들은 곤을 온
전히 팔기는 어려우니 발을 자르면 되겠다고 하여 그의 발을 잘라 제나라에 팔았다.
그는 마침 거공에게 팔려 문지기가 되었으나 몸은 고기를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남곽자기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자기는 아들들을 불러 모아놓
고, 관상술의 대가인 구방인을 불려들였다.
"자식들 중에서 누가 제일 행복하게 될지 점쳐보아 주시오."
"곤이란 아드님이 제일 행복하게 되겠습니다."
자기는 매우 기쁜 듯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에게 어떤 좋은 상이 나타나 있소?"
"이 아드님은 머지않아 임금과 같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신분이 되어 평생을 안락하
게 보낼 것입니다."
자기는 금세 얼굴빛이 변하며 눈물을 흘렸다.
"내 자식이 그런 불행 속에 떨어질 줄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 국왕과 같은 음식을 들 수 있는 처지가 되면 그 혜택이 일가 친
척에게도 미치게 될 터인데, 더구나 부모의 행복이야 얼마나 크겠습니다? 그런데도 지
금 눈물을 흘리시는 것은 자진해서 행운을 사양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드님에게는 좋
은 상이 나타나 있으나, 슬프게도 아버님 되시는 당신에게는 불길한 상이 나타나 있습
니다."
구방인이 안타까운 듯 말하자 자기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대체 뭘 안다고 내 자식이 행복하게 될 거라는 거요? 당신에게 보이는 것은
고작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뿐,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그 까닭은 모르
고 있지 않소? 지금까지 가축을 기르거나 사냥한 일이 없는 우리집에 갑자기 암양이
서남쪽에서 태어나고, 메추라기가 동북쪽에서 태어났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이상
하다고 생각되지 않겠소? 나는 자식들과 함께 천지 자연 속에 놀면서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 만족해왔소. 우리들은 다같이 세속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지혜나 꾀를 쓰는 일
도 없었으며, 세상을 놀라게 한 행동도 없었소. 천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밖의 일로
인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없이 살아왔소.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일은 되어가는대로
맡겼을 뿐, 이것저것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일이 일절 없었소. 그런 우리들에게 세속적
인 보상이 주어질 리가 있소? 이상한 징조가 나타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는 법이오. 그 같은 일을 한 기억조차 없는 우리 부자에게 그런 이상한 징조가 나타
난 것은 아마 하늘이 준 운명일 것이오. 이것을 슬퍼하지 않으면 어쩌겠소?"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자기는 곤을 연나라로 보냈는데, 곤은 도중에 산적을 만나 붙
잡히고 말았다.
산적들은 젊은 곤을 그대로 두면 도망칠 염려가 있다고 생각해 그의 다리를 자른 다
음 제나라에 팔아넘겼다. 거공에게 팔려가 문지기가 된 곤은 구방인의 예언대로 임금
과 같이 고기를 먹으며 그 생애를 마쳤다.
* 구방인: 이름난 관상쟁이인데, 말의 관상을 잘 본 사람이라고도 한다.
* 지경: 원문운 극. 극과 통하여 '불행'을 뜻한다.
* 문자기: 원문은 가. 규와 통하여 '문지기"를 뜻한다.
벼슬길을 구하는 법 - 측양
측양*이 초에 머물렀다. 이절*이 왕에게 말했으나. 왕이 보려 하지 않으므로 이절은
돌아왔다. 팽양*은 왕과를 보고 말했다.
"선생께서 저를 왕에게 천거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왕과가 대답했다.
"나는 공열휴*에 미치지 못하오."
팽양이 물었다.
"공열휴란 어떤 사람입니까?"
"겨울에는 강에서 자라를 잡고, 여름에는 산속에서 쉬오. 지나가던 자가 물으니 대
답하기를, '이것이 내 집이다.'라고 했소. 이절이 못한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
소? 나는 이절을 당할 수 없소. 무릇 이절의 사람됨은 덕은 없지만 지혜는 있소. 스스
로 잘난 체하지 않으며, 그 교제를 귀신처럼 해치우고 있소. 원래 부귀에 눈이 멀어버
린 자라 서로 도와서 덕을 키우지는 못하고, 서로 도와서 덕을 없앨 인물이오. 무릇
언 사람은 봄이 되어도 옷을 빌리고, 더위를 먹은 자는 겨울에도 찬바람을 쐬려 하오.
저 초와의 사람됨은 엄하고 존대하여 범죄에 대해서는 호랑이처럼 용서가 없소. 아주
간사한 사람이거나 올바른 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를 굴복시킬 수 있겠
소? 성인은 빈궁해도 가족이 그 가난함을 잊게 하고, 영달해서는 왕공으로 하여금 그
작록을 잊고 비천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오. 사물에 있어서는 함께 즐기게 하고, 사
람에 있어서는 통하여 즐기지만 자기를 보존하오. 그래서 혹 말이 없더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화평을 만끽하게 하고,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을 화하게 한다오. 아비는
아비, 자식은 자식으로서 있어야 할 모습을 갖게 하고, 그것을 베푸는 데 있어서도 숨
어서 나오지 않소. 성인의 마음은 이처럼 고매하기에 나는 공열휴를 좇으라는 것이오.
측양이라는 자가 벼슬이라는 자가 벼슬을 얻기 위해 초나라에 왔다. 우선 왕의 측근
인 이절을 통해보았으나 왕이 만나주지를 않자 이번에는 왕과를 찾아가 부탁했다. 그
러나 왕과는 한마디로 거절하며, 공열휴에게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측양이 그의 사
람됨에 대해 묻자 왕과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겨울이면 강에서 자라를 잡고, 여름이면 산속에서 일월을 벗삼아 놀고
있소. 누군가 그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강가와 산속이라고 대답했다더군요. 아
무튼 나로서는 저 지혜로운 이절이 못하는 일을 떠맡아 해낼 수가 없소. 이절은 비록
덕은 없지만 굉장히 지혜로워서 늘 겸손한 척, 남과의 교제를 귀신처럼 해나가는 사람
이오. 하지만 부귀에 눈이 먼 사람이라 서로 돕고 지낼수록 덕을 향상시키기는 커녕
덕을 손상시키기 일쑤인 인물이오. 이런 속담을 들은 적 있소? '몸이 언 사람은 봄이
되어도 옷을 빌리며, 더위를 먹은 사람은 겨울이 되어도 찬바람을 쐬고자 한다.' 초나
라 임금은 그 사람됨이 존대하고 엄격하며, 범죄자에 대해서는 호랑이처럼 조금도 용
서가 없소. 간사한 악당이 달라붙어 그의 마음을 녹이든가, 고상한 인격자가 그 미친
것 같은 마음을 식혀주지 않는 한 방법이 없소. 반면에 성인은 가난하여도 가족이 가
난함을 잊고 도를 즐기게 하며, 영달하면 왕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귀함을 잊고 백성
들과 동화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오. 어떤 사물이나 적응해 즐기고, 어떤 인물과도 교제
해 즐기지만 결코 자기를 잊는 일이 없소. 그러기에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
을 평화롭게 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감화시켜나가오. 아버지와 자식이 있어야 할 모
습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덕을 순수한 마음으로 베푸니 마치 천지의 덕과 같소. 그러
기에 공열휴를 찾아가서 부탁하라는 거요."
* 측양: 성은 팽, 이름이 측양이다.
* 이절: 초나라 대신의 이름.
* 팽양: 측양을 가리킨다.
* 공열휴: 초나라 은자의 이름.
달팽이 뿔 위의 싸움-측양
위영*이 전후모*와 화약을 맺었으나 전후모가 이를 배반했다. 위영이 노하여 사람을
시켜 그를 살해하려 하자 서수*가 이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임금은 만승의 임금*이십니다. 어찌 필부같이 원수를 갚으려 하십니까? 청컨대 저
에게 20만을 주신다면 임금을 위해 공격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고, 그 마소를 끌어오
고, 그 임금으로 하여금 내열이 등 밖으로까지 나오게 한 다음 그 나라를 뽑아 버리겠
습니다. 전기가 달아난다면 그 등을 치고 등뼈를 꺾어 버리겠습니다."
계자가 이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열 길 성을 쌓아가는 중 이미 일곱 길을 쌓았는데, 그것을 곧 허물어버린다면 백성
들이 심히 괴로워할 것입니다. 이제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지도 어언 일곱 해로서, 이
는 왕업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연은 난인이니 그 말을 들어선 안 됩니다."
화자가 다시 이 말을 듣고 추하게 여겨 말했다.
"제를 치자고 말하는 사람은 난인입니다. 그러나 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난인입니
다. 치자고 하는 자와 치지 말자고 하는 자를 난인이라고 하는 사람 또한 난인입니다.
"
임금이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오?"
"임금은 도를 구할 뿐입니다."
혜자가 이말을 듣고 대진인을 만나게 했다. 대진인이 말했다.
"임금께서는 달팽이란 것을 아십니까?"
"아오."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를 가진 사람을 촉씨라 하고, 오른쪽 뿔에 나라를 가진
사람을 만씨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가끔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싸웠습니다. 쓰러진 시
체가 수만이었는데, 도망치는 것을 보름 동안이나 쫓고 나서야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허어, 거짓말이겠지...."
대진인이 말했다.
"신은 임금을 위해 이를 증명하겠습니다. 임금께선 상하 사방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
십니까?"
"무궁하오."
"마음이 무궁에 노닐 줄 아는 사람이 나라에 생각이 미치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
같은 것이 됩니다."
"과연 그렇겠소."
"그 생각이 미치는 곳에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양이 있고, 양 안에 다시 왕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왕과 만씨가 구별이 있겠습니까?"
"다름이 없겠구려."
대진인이 나가자 임금은 창연히 넋을 잃고 있었다. 혜자가 들어오자 임금이 말했다.
"그는 과연 큰 사람이오. 성인도 아마 그를 당하지 못할 것이오."
혜자가 말했다.
"피리를 불면 큰 소리가 나나 칼구멍을 불면 휙 하는 소리가 날 뿐입니다. 사람들이
요순을 칭송하나 대진인 앞에서 요순을 말하는 것은 한 번 휙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
는 것입니다."
위영이 전후모와 서로 화친을 맺었으나 제나라가 일방적으로 이를 깨뜨렸다. 격노한
혜왕은 제나라에 자객을 보내 위왕을 암살하여 했다. 그때 장군 공손연이 이를 반대하
고 나섰다.
"대국의 임금은 그런 야비한 보복 수단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 보다는 신에게 군
사 20만을 빌려주십시오. 신이 임금을 대신해서 제나라로 쳐들어가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고 재산을 약탈하여, 제나라 왕이 분을 못 이겨 항복을 하면 모르되 만일 도망치
는 일이 있으면 끝까지 추격하여 여지없이 쳐부수고 말겠습니다."
어진 신하로 알려진 계자가 이 말을 듣고 반대했다.
"높이 열 길이 되는 성을 쌓는데, 일곱 길을 쌓고 허물어버린다면 인부들의 고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는 전쟁을 그친지 일곱 해나 되는데, 이야말로 왕
업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무력에 호소하려는 공손연은 질서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덕이 높기로 이름이 있는 화자가 다시 이를 비판했다.
"전쟁을 주장하는 공손연과 같은 사람은 원래부터 질서를 파괴하는 무리임에 틀림없
지만, 부전의 이를 주장하는 계자와 같은 사람 역시 이해에 사로잡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실은 그들을 비판하고 있는 저 자신부터가 시비에 사로
잡혀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입니다만...."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임금의 질문에 화자는 대답했다.
"도를 닦는 사람 하나면 족합니다."
임금의 질문에 화자는 대답했다.
"도를 닦는 사람 하나면 족합니다."
임금이 잘 이해하지 못하자 혜자는 대진인을 추천했다. 임금을 만나게 된 대진인이
물었다.
"달팽이란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씨라는 사람의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는 만씨라는
사람의 나라가 있어서 계속 영토 분쟁을 되풀이했습니다. 한번은 보름 동안이나 격전
을 벌인 끝에 쌍방 모두 전사자를 수만 명씩이나 내고서야 겨우 군사를 거두었다고 합
니다."
"농담도 이만저만이 아니구려."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그 증거를 말씀드리겠으니 잘 들어주십시오. 대왕께서는 이
우주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겠지."
"그러면 마음이 그 무궁한 세계에 놀고 있는 사람이 땅 위의 나라들을 내려다본다면
거의 있는 듯한 작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나라들 속에 위나
라가 있으며, 위나라 속에 양이란 도읍이 있고, 또 그 도읍 안에 대왕이 계십니다.
그러고 보면 대왕과 만씨간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으음, 별차이가 없겠군."
대진인은 물러갔다. 임금이 멍청히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데, 혜자가 들어왔
다.
"정말 큰 인물이오. 성인도 그에 미치지 못하겠소."
"피리를 불면 높은 소리가 울려퍼지지만, 칼자루의 구멍을 불면 휙 하고 입김 소리
만 날 뿐입니다. 요순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 소리도 대진인 앞에서는 휙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 위영: 위나라의 혜왕. 여은 그의 이름이다.
* 전후모: 제나라의 위왕. 모는 그의 이름이며, 전기라고도 한다.
* 서수: 벼슬 이름으로, 여기서는 공손연이 서수의 직을 맡고 있다.
* 만승의 임금: 만승지국의 임금, 곧 천자나 황제. 만승은 1만 채의 수레, 또는 그
것을 가진 천자를 말한다.
물에 잠기다 - 측양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의 의구의 한 주막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이웃의 한 부부
가 하인들과 같이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자로가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중니가 말했다.
"저들은 하인배처럼 사는 성인들이다. 스스로 백성 사이에 묻히고, 스스로 밭두덩에
묻혀 살고 있다. 저들의 명성은 사라졌으나 그 뜻은 한없이 깊다. 저들의 입은 말을
하지만 그 마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세속을 등진 채 살고 있고, 마음 또한 세속과 함
께 하기를 원치 않고 있다. 이를 뭍에 잠겨 사는 사람*이라 하는데, 저들이 바로 시남
의료*일 것이다.
자로가 그들을 불러오자고 청했더니 공자가 말했다.
"그만둬라. 저들은 내가 자기들을 알아본 것을 안다. 내가 초나라로 가는 것도 알
고, 내가 반드시 초왕으로 하여금 저들을 부르게 할 것으로 알고 있다. 저들은 나를
간사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무릇 그 같은 사람들은 간사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조차
수치로 알고 있는데, 그 몸을 보이겠느냐? 너는 어째서 저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
느냐?"
자로가 가서 보니 과연 그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공자 일행이 초나라로 유세를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의구의 주막에서 묵게 되
었는데, 근처 지붕 위에서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부부와 하인인 듯한 사람들이 보였
다.
이를 눈치 챈 자로가 화를 냈다.
"무례한 것들!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저토록 무례하단 말입니까?"
공자가 조용히 타일렀다.
"저들은 몸을 하인배 속에 묻은 어진 사람들이며, 자진해서 백성들 속에 묻혀 농부
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세상에서 잊혀진지 오래지만, 그들의 정신과 자유의
경지를 거닐고 있다. 또한 말과 행동은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만, 속마
음은 세속을 등지고 허에 편안히 살려 하고 있다. 이것이 '뭍에 잠긴다'는 생활 방법
인 것이다. 아마 시남의료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면 찾아가 모셔오겠습니다."
"공연한 짓이다. 시남의료라면 나를 만날 리가 없다. 그는 내가 초나라의 서울로 가
면 초왕을 만나 자신을 등용하도록 권고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나
를 남의 비위나 잘 맞추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 내 말만 들어도 귀가 더러워졌다고 여
길 게 틀림없다. 그런 그가 왜 나를 만나려 하겠는가? 너는 그들이 아직도 그 집에 남
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자로가 반신 반의하며 그 집을 찾아갔더니 과연 한 사람도 남지 않고 텅 비어 있었
다.
* 뭍에 잠겨 사는 사람: 원문은 육침자로서, 땅속 깊은 곳에 잠기듯 숨어 사는 은자
를 뜻한다.
* 시남의료: 초나라의 현자.
외물 - 외물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사물은 필연적인 것이 없다. 그로 인해 용봉이 주살되고 비간
은 살육당했으며, 기자는 미치고 악래는 죽었다. 결국 걸과 주도 망했다.
군주는 신하의 충성을 바라지 않는 일이 없지만 충성을 다한다 해서 반드시 믿는 것
은 아니다. 그로 인해 오운*은 강에 떠내려 갔고, 장홍*은 촉에서 자살했는데, 그 피
를 묻었더니 3년 후에 구슬로 변했다. 부모 치고 자식이 효도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
이 없으나 효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받지는 못한다. 그러기에 효기*는 근심했고,
증삼은 슬퍼했다.
나무와 나무를 서로 비비면 불이 일어나고, 쇠와 불을 서로 합치면 쇠가 녹아 흐른
다. 음양이 잘못 행해지면 천지가 크게 엇갈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며, 뇌우가 일
면 홰나무가 탄다. 사람도 또한 큰 근심이 있으면 이해에 빠져 도망갈 곳이 없게 된
다. 정신의 조화를 얻을 수 없기에 마음은 마치 천지간에 매달린 것 같으며, 위로하고
괴로워하고 빠지고 머뭇거린다. 이해가 서로 들끓어 불꽃을 튀는 일이 지나치게 많아
지고, 사람들은 마음의 조화를 스스로 불태워버린다. 달과 같은 인간의 마음이 불을
이길 수는 없다. 이리하여 무너지고 기울어져서 도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 밖에 있는 일체의 사물은 어느 하나도 반드시 절대적인 젓이 아니다. 그러기에
명성을 추구한 용봉은 하나라 걸왕의 손에 죽었고, 비간은 은나라 주왕에 의해 피살되
었으며, 기자는 광인 시늉으로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권세를 좋아한
악래는 주나라 무왕의 손에 죽어야 했고, 걸왕과 주왕 또한 망하고 만 것이다.
임금들 치고 그 신하가 충성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지만 충성을 다했다고 해서
반드시 임금이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든다면 오자서는 살해당해 강물에 던져졌
고, 장흥은 촉나라로 추방되어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다. 장흥이 죽자 그의 죄없는 죽
음을 슬퍼해서 그 피를 함께 묻었는데, 3년 뒤에 보니 푸른 구슬로 변해 있었다고도
한다.
또 부모들 치고 자식의 효도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효도를 다했다고
해서 반드시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효기는 계모 탓에 조심하지
않을 때가 없었고, 증삼은 늘 아버지의 미움 속에 살아야 했다.
나무와 나무를 마찰하면 불이 일어나고, 쇠는 불에 닿으면 녹아 흐르게 마련이다.
또 음양의 기운이 그 평형을 잃으면 천지의 변괴가 생기게 마련이어서 우레가 울고 번
개가 친다. 그러한 뇌우에 맞으면 거대한 홰나무도 타버리는 수가 있다.
사람들 또한 그와 마찬가지여서 음양과 인도의 근심에 빠진 나머지 어디로 도망칠
곳조차 없게 된다. 정신의 큰 조화가 상실되어서 하늘에 매달린 듯 불안하고, 근심과
욕망에 빠져 이해가 상충하기 일쑤다.
사람들은 이 때문에 본성을 불태우고, 이 불길로 인해 생명마저 불타버린다. 이렇게
하여 도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 오운: 자는 자서. 오나라 왕 부차에게 충간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결했다.
* 장홍: 주나라 경왕 때의 신하. 간신 탓에 쫓겨난 후 자결했다.
* 효기: 은나라의 태자.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높다.
붕어가 사는 길 - 외물
장주는 집이 가난하여 쌀을 꾸려고 감하후를 찾았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내가 장차 읍금*을 거둘 텐데, 그때 3백금을 빌려주면 되겠소?"
장주가 화가 나서 말했다.
"제가 어제 여기 올 때 중도에 부르는 자가 있어 돌아다보니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
리에 붕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붕어야, 왜 그러느냐?'하고 물었더니, '저는 동해신의
신하입니다. 당신이 물 몇 되로 나를 살려주십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다
. 나는 오와 월의 왕을 찾아 남으로 가는데, 서강*의 물로 너를 환영하도록 말해주겠
다. 좋으냐?' 했더니 붕어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이 떨어져 거처할
곳조차 없소. 나는 몇 되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소?
차라리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오.'"
장자가 한번은 쌀을 꾸러 감하후(위문후)를 찾아갔다. 그의 청을 들은 문후는 이렇
게 말했다.
"좋소, 이제 세금을 거두는 대로 3백 금을 꾸어주리다. 그러면 되지 않겠소?"
장자는 화가 나서 분연히 말했다.
"저는 어제 이곳에 오는 도중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길바닥의 물구덩이에서 붕어 한 마리가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어보았습니다. '붕어야, 왜 그러느냐?' '나는 동해신의 신하입니다. 몇
되의 물로 나를 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나는 지금 오나라와 월나라의 임금
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곳에 당도하면 양자강 물을 범람시켜서 너를 맞이하겠다. 그러
면 되겠느냐?' '나는 지금 물이 떨어져서 거처할 곳마저 없는 몸이오. 단지 몇 되의
물만 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말을 하는 거요? 차라리 이 다음에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나 찾아보시구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 읍금: 자신의 영지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
* 서강: 양자강.
붙잡힌 신귀 - 외물
송원공이 한밤중에 꿈을 꾸었는데, 머리를 푼 사람이 아문을 엿보며 말했다.
"나는 재로의 못에서 왔소. 나는 청강*을 위해 하백이 있는 곳으로 심부름을 가던
중이었는데, 고기잡이 여저가 나를 잡았소."
원공이 잠에서 깨어 사람을 시켜 점을 쳤더니 점쟁이가 말했다.
"이는 신귀입니다."
원공이 물었다.
"고기잡이 중에 여저란 자가 있느냐?"
"있습니다."
원공이 말했다.
"여저를 조회에 들게 해라."
다음날 여저가 조회하자 원공이 물었다.
"어떤 고기를 잡았느냐?"
여저가 대답했다.
"제 그물에 흰 거북이 잡혔는데, 그 둘레가 다섯 자였습니다."
원공이 말했다.
"너의 거북을 바쳐라."
거북이 도착하자 원공은 이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망설이다가 마음에 의심이
생겨 점을 쳤다. 점괘는 이러했다.
"거북을 죽여 그것으로 점을 치면 좋다."
이에 거북을 도려내 72번을 점쳤으나 틀린 괘가 없었다.
중니는 말했다.
"신귀는 능히 원공의 꿈에까지 나타날 수 있었으나 여저의 그물을 피하지 못했고,
그 지혜는 능히 72번을 찔러 틀린 괘가 없었으나 창자를 도려내는 환을 피하지 못했
다. 이처럼 지혜도 궁한 곳이 있고, 신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 비록 높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만사람이 도모할 수가 있다. 고기는 그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다새*를
두려워한다. 작은 지혜를 버려야 큰 지혜가 생겨나며, 착한 것을 버려야 착해질 수 있
다. 갓난아이가 스승 없이도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송원공은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한 남자가 내전 뒷문
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원공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꿈이었다.
"나는 재로라는 못에서 왔소. 청강의 사자로서 황하신에게 가던 도중 여저라는 어부
에게 붙잡히고 말았소."
원공이 이 꿈을 해몽하도록 시켰더니 그것을 신통력을 가진 거북이라는 점괘가 나왔
다. 원공이 물었다.
"어부 가운데 여저란 자가 있느냐?"
"있습니다."
"그를 데려오도록 해라."
이튿날 여저가 조정에 들어오자 원공은 곧 그를 불러 물었다.
"요즘 이상한 고기를 잡은 일이 업느냐?"
"있습니다. 흰 거북을 산채로 잡았사온데, 직경이 다섯 자나 됩니다."
원공은 여저에게 그 거북을 바치도록 명령했다. 이윽고 거북을 본 원공은 그것을 살
려줄 것인지 죽일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다시 점을 치도록 했다.
"거북을 죽여 그것으로 점을 치는 데 쓰면 좋다."
원공은 그 점괘에 따라 거북을 죽여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그 껍질로 72번이나 점
을 쳤으나 단 한번도 틀린 일이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중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 거북은 원공의 꿈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면서도 어부의 그물을 피하지는
못했다. 또 72번이나 점을 쳐서 한 번도 틀린 일이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 껍질을 벗기는 화를 면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때로는 궁지
에 빠지는 수가 있고, 아무리 신통력을 가졌어도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투철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것이라도 많은 사람의 지혜와 힘 앞에는 견뎌내지
를 못한다. 고기는 물새에게 잡아먹힐까봐 두려워할 뿐, 어부의 그물을 경계하지는 않
는다. 작은 지혜란 이런 것이다. 인간도 작은 지혜를 버리고 나서야 큰 지혜를 얻게
되며, 착한 일을 하려는 노력을 버려야만 착해지게 된다. 갓난아이는 특별히 말을 가
르쳐주는 스승이 없어도 말을 배운다. 이렇게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야
말로 완전한 앎인 것이다."
* 청강: 양자강의 신.
* 사다새: 물고기를 잡아먹는 큰 물새로 '펠리컨'이라고 한다.
성인 흉내내기 - 외물
연문*에 부모를 여윈 사람이 있었는데, 곡하고 슬퍼하느라 몸이 여위었다.*나라에서
벼슬을 주어 표창하자 그를 흉내내는 무리들이 여위거나 반이 죽었다.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주자 허유가 도망했다. 탕이 무광에게 천하를 주려 하자 무광은 화를 냈다. 기
타가 이를 듣고 제자를 이끈 채 관수에 주저앉아 있으니 제후들이 위문했다. 삼 년 후
신도적은 그를 사모하여 황하에 뛰어들어 죽었다.
송나라 연문 근처에 부모의 상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너무도 상례를 지킨 나
머지 형편없이 여위어버렸다. 그래서 나라에 표창해 벼슬을 내렸더니 그곳 사람들이
모두 그 효자 흉내를 내다가 여위어버렸고, 그 중에는 너무 여윈 나머지 죽는 사람이
반이나 될 정도였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넘기려 하자 허유가 도망친 것을 본
받아 그것을 흉내내는 자가 속출한 것이다. 은나라 탕왕이 무광에게 양위하려 들자 무
광은 자기를 모욕한다고 성을 냈으며, 그 소문을 들은 기타는 제자들을 이끈 채 관수
기슭에 주저앉아 물에 빠져 죽겠다고 했다. 이에 제후들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사신을
보내기도 했다.
그로부터 삼 년 후, 신도적은 기타의 행위를 사모한 나머지 누가 그에게 천하를 주
고자 하지도 않았는데 황하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 연문: 송나라에 있는 성문 이름.
* 곡하고 슬퍼하느라 몸이 여위었다: 원문은 선훼이다. '훼'는 '야위다', '수턱하
다'라는 뜻으로, 훼멸은 상을 당해 너무 슬퍼하여 몸이 야위고 기운을 잃는 것을 말한
다. 즉 법도에 맞게 상을 잘 치렀다는 뜻이다.
무언 - 우언
우언이 열에 아홉이고, 중언은 열에 일곱이며, 치언은 날로 새롭게 천예*를 조화시
킨다.
열에 아홉인 우언은 다른 데에 가탁해서 논술하는 것이다. 친아버지가 그 자식을 위
해서 중매 서지 않는 것은, 그 아버지가 칭찬하는 것보다 아버지 아닌 자가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죄가 아니라 사람들이 죄다. 가지 뜻과 같으면 응하지만
자기와 같지 않으면 반대하며, 자기와 같으면 옳다 하고 자기와 다르면 그르다고 한
다.
열에 일곱을 차지하는 중언은 논란을 중지시키려는 옛사람의 말이 그것이다. 나이가
앞섰다고 할 수 없다. 앞선 사람으로서 사람을 이끌지 못하면 사람의 도를 다한 것이
라 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의 도를 갖추지 못하면 이것을 가리켜 진인*이라고 한다.
날로 새로운 치언은 자연의 천예와 조화되고, 그 사리를 만연히 하여 천수를 다하게
하기 위함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고르나 말을 고르게 하려 하면 고르지 않게 된
다. 그러므로 무언을 말한다. 말을 했으나 말이 없는 것이다. 평생 말해도 말하지 않
은 것이 되고, 평생 말을 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의 글에는 다른 일에 가탁해서 표현하는 우언이 전체의 9할이고, 옛사람의 말을
빌려 표현하는 중언이 전체의 7할이며, 대상에 따라 자유 자재로 변호하는 치언은 전
체에 걸쳐 통용되어 있다.
우언이란 다른 것을 빌려 말하는 문장이다. 가령 아버지가 아들을 중매하지 않는 것
은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라
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우언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의 의견이 자
기의 뜻과 같으면 찬성하지만 다르면 반대한다. 또 자기와 같은 의견은 옳다 하고, 다
른 의견에는 비난을 퍼부어댄다. 그러기에 직접적인 발언을 삼가고 우언을 쓰게 되는
것이다.
중언은 번거로운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옛사람의 말이라는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옛사람들이라 해도 사리를 분별 못하고 일의 본말을 알지 못했다면 앞
섰다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사람을 이끄는 힘이 없는 사람이면 사람으로서의 도마저
도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옛사람들을 가리켜 낡았다고 한다.
치언이란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것을 써서 상대적인 논쟁을 절대적인 입장에서 화해
시키며, 무심하고 자유롭게 천수를 다하게 하기 위한 말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사물의 대립은 생기지 않으며, 만물은 그 제동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제동성이라고 묶
어서 말할 때, 그 용어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 된다. 도라는 말 역시 용어와 개념은 이
원적인 대립을 갖게 되므로 궁극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말고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보
아야 한다.
무언이란 바로 이런 궁극의 도에서 나온 말이기에 일생을 두고 말을 해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또 반대로 죽을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진실을
끊임없이 이야기한 것이 된다.
* 천예: 자연의 경계.
* 진인: '진부한 사람'을 말한다.
예순 살에 예순 번 되다 - 우언
장자가 혜자에게 말했다.
"공자는 행년 60에 60번 변했네. 처음에 옳다고 한 것도 마침내는 그르다고 했네.
그러면 지금 이른바 옳다는 것도 쉰아홉 번째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네."
혜자가 말했다.
"공자는 뜻을 부지런히 하고, 앎에 힘쓴 것뿐이네."
장자가 말했다.
"공자는 그것을 버렸네. 일찍이 그것을 말한 적이 없었네. 공자는 '재주는 큰 근본*
에서 받는다. 본래의 영*으로 돌아가 살면 우는 것은 음률에 맞고, 말하는 것은 법도
에 맞는다.'고 말했네. 이익과 의리를 앞에 늘어놓고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다만 사람의 입을 수고롭게 하는 데 지나지 않네.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굴
복케 하여 감히 거스르지 못하게 해야 천하의 올바름을 정할 수 있네. 이미 정해진 일
이니 나는 그에게 미칠 수 없네."
언젠가 장자가 혜자에게 말했다.
"저 공자 같은 성인은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예순 번이나 생각을 고쳤다고 하네.
처음에 옳다고 믿었던 일도 뒤에 잘못임을 깨달으면 고쳤고, 나이와 더불어 새롭게 변
화하며 살아갔네. 지금 우리들이 옳다고 믿고 있는 일도 일찍이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역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것일세."
"그야 공자가 자기의 뜻을 이룩하기 위해 쉴새없이 노력하며 학문을 깊게 하려고 힘
쓴 때문이겠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군. 공자는 그런 의식적인 노력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네. '
사람의 능력은 원래가 하늘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이 영묘한 성품으로 되돌아가서 무
심히 살아가면 말과 행동은 자연 바르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무엇보다 그의 생활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네. 새삼스럽게 정의가 어떠니 이해가 어떠니 떠들어 대고, 뭐
가 좋으니 나쁘니 하며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의 논의는 결국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
네. 그러나 무심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립 의식을 잃고
마네. 이래야만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가 확립되는 것이지. 우리는 도저히 공자
에게 미치지 못하네."
* 큰 근본: 원문은 대본이다. 자연의 위대한 근본, 즉 '조물주'를 말한다.
* 영: 자연에서 부여받은 영묘한 원래의 성품.
천하의 주인 - 양왕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양도하려 하자 허유는 받지 않았다. 또 자주지보에게 양도하
려 하자 자주지보가 말했다.
"나를 천자로 삼는 것도 좋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마침 유우지명*이 있어서 그
것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오. 천하를 다스릴 만큼 한가롭지 못하오."
천하는 지극히 중요한 것이지만 생명을 해쳐도 될 만큼은 아니다. 하물며 다른 것이
야 어떻겠는가? 천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사람만이 천하를 맡을 수 있다.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물려주고자 했으나 허유는 사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주지
보에게 천하를 양도하려 하자 자주지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천자로 삼는 것도 졿겠지요, 하지만 나는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 그것
을 고치는 중이오. 그러니 천하를 다스릴 틈이 어디 있겠소?"
천하는 더없이 가치있는 것이겠지만 목숨을 희생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보다 못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천하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천하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다.
* 유우지병: 마음으로 근심하는 병. 우울증 또는 가슴앓이로도 풀이한다.
영토를 버린 대왕 - 양왕
대왕 단보*가 빈에 살 때 적인이 침입하였다. 가죽과 비단을 보내 섬겨도 받지 않았
고, 개와 말을 보내 섬겨도 받지 않았으며, 구슬과 옥을 보내 섬겨도 받지 않았다. 적
인이 요구하는 것은 토지였다. 대왕 단보가 말했다.
"남의 형과 함께 살면서 그 아우를 죽이고, 남의 아비와 함께 살면서 그 아들을 죽
이는 짓은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모두 힘껏 살아라. 내 신하가 되는 것과 오랑캐의
신하가 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또 나는 '기르는 데 쓰는 것*으로 기르는 것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는 채찍을 짚고 떠나갔다. 백성이 서로 이어서 쫓아가 드디어 기산 밑에 나라를
이루었다. 대왕 단보는 생명을 귀하게 여겼다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비록 부귀를 누려도 그를 위해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비록 빈천해도 그 때문
에 몸을 괴롭히지 않는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높은 벼슬과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면 모
두 잃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이를 보고 가볍게 그 몸을 망친다. 어째 잘못 된 것이 아
니겠는가!
대왕 단보가 빈이란 땅에 머물러 살 때, 인접해 있는 적이란 이민족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단보는 털가죽과 비단을 보내어 화친을 청했으나 적은 듣
지 않았다. 대왕은 다시 개와 말 등 가축을 보냈으나 마찬가지였고, 귀한 보물들을 보
내도 역시 응하려 하지 않았다. 적의 야심은 영토에 있었던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게 된 대왕은 신하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싸움터로 끌어냄으로써 사람들이 육친을 잃고
슬퍼하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다. 그대들은 모든 것을 견디고 이 땅에 머물러 살아
라. 그대들로서는 내 신하가 되나 오랑캐의 신하가 되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는 '
땅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는 것이나 그런 땅을 위해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에 따르려 한다."
말을 마친 대왕은 채찍을 짚고 표연히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나갔다. 그러나 그의 덕
을 사모하는 백성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대왕의 뒤를 따랐다.
이리하여 대왕이 새로 자리 잡은 기산 기슭에 새로운 나라가 생겨났다.
대왕 단보야말로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을 존중
하는 사람은 비록 부와 귀를 누리는 지위에 있더라도 향락을 위해 몸을 해치는 일이
없고, 가난하고 비천한 환경에 놓여 있어도 이익이나 욕심으로 인해 육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지위를 잃을까 걱정하여 명예
와 이익을 위해 가볍게 몸을 망치는 일이 수없이 많다. 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
다.
* 단보: 주문왕의 조부. 고공단보라고도 한다.
* 기르는 데 쓰는 것: 원문은 소용양으로서, 즉 토지와 재물을 가리킨다.
남의 말 - 양왕
자열자가 궁해서 용모에 굶주린 빛이 있었다. 어떤 나그네가 정자양에게 말했다.
"열어구는 도가 있는 선비입니다. 상공의 나라에 있으면서 궁하게 살면 상공이 곧
선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자양이 곧 관에 명령하여 곡식을 보냈으나 자열자는 사자를 보고 두 번 절하며 사
양했다. 사자가 가고 나서 자열자가 들어오자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첩은 도 있는 사람의 처자는 모두 편함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굶
주린 기색이 있기에 상공이 식량을 보냈으나 당신은 받지 않았습니다. 어찌 명이 아니
겠습니까?"
자열자가 웃으며 말했다.
"상공은 스스로 나를 안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내게 곡식을 준 것이오. 나를
죄줄 때에도 또한 남의 말로 할 것이오. 이것이 내가 받지 않는 까닭이오."
그 후 백성들은 과연 난을 일으켜 자양을 죽였다.
열자는 가난 때문에 몸이 형편없이 여위어 있었다. 마침 한 나그네가 그것을 안타깝
게 여기고 재상인 자양에게 말했다.
"영어구처럼 유덕하고 어진 사람이 그토록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
지 않습니다. 상공께서는 어진 사람을 싫어한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줄로 압니다.
자양은 즉시 소임에게 지시를 내려 열자의 집에 식량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열자는
심부름 온 사람을 만나자 깍듯이 인사를 차린 후 이를 거절하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가슴을 치며 남편을 원망했다.
"저는 덕이 있는 사람의 처자는 평생 안락한 생활을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재상께서 보내주신 양식조차도 당신은 굳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저
의 천명일까요?"
"그는 스스로 준 것이 아니라 남의 충고를 듣고 보내준 데 불과하오. 그러니 다음에
는 또 남의 말을 듣고 나에게 어떤 벌을 줄지 누가 알겠소? 그래서 받지 않았던 것이
오."
그 후 자양은 과연 민중의 신망을 잃어 난을 당해 피살되었다.
* 정자양: '정나라의 재상인 자양'이라는 뜻이다.
천하의 대도 - 도척
공자와 유하계*는 친구였다. 유하계에게는 도척*이란 아우가 있었는데, 그는 군사 9
천 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며 제후들을 기습했다. 방에 구멍을 뚫고 문의 지도리
를 뽑으며, 남의 마소를 몰아가고, 남의 부녀자를 빼앗아갔다. 탐욕스러워 친척을 잊
고 부모 형제를 돌보지 않았으며,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이
면 대국은 성을 지키고 소국은 보호에 들어갔기에 만백성이 괴로워했다.
공자가 유하계를 찾아가 말했다.
"무릇 아비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을 타이르고, 형 된 사람은 아우를 가르쳐야
하오, 만일 아비가 능히 아들을 타이르지 못하고, 형이 능히 아우를 가르치지 못한다
면 부자와 형제의 친함이 귀할 것이 없소. 선생은 지금 세상의 재사이지만 아우가 도
척이 되어 천하의 해가 되어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속으로 선생을 위해 부
끄럽게 여기고 있소. 청컨대 선생을 위해 내가 가서 설득하겠소."
유하계가 말했다.
"선생은 아비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아들을 타이르고, 형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아우
를 가르쳐야 한다고 했소. 그러나 만일 자식이 아비의 타이름을 듣지 않고, 아우가 형
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비록 선생의 변론인들 무슨 방법이 있겠소? 또한 도척의
사람됨은, 마음은 솟는 샘과 같고, 뜻은 회오리 바람과 같소. 굳셈은 족히 적을 막고,
변론은 잘못을 꾸미기에 넉넉하오. 자신의 뜻에 순종하면 기뻐하지만 거스르면 노하여
사람을 말로써 욕하기 쉬우니 선생은 절대로 가지 마시오."
공자는 듣지 않았다. 안회에게 말을 몰게 하고, 자공을 오른쪽에 앉힌 채 도척을
보러 갔다. 도척은 태산 남쪽에 부하들을 쉬게 하고는 사람의 간을 회하여 먹고 있는
참이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알자를 보고 말했다.
"노나라 사람 공구가 장군의 높은 의를 듣고, 삼가 두 번 절하며 뵙고자 하오."
알자가 들어가 전하자 도척은 이말에 매우 화가 나서 눈은 샛별같이 하고, 머리털은
위로 관을 향했다. 도척이 말했다.
"그는 저 노나라의 위선자 공구가 아니냐? 내 대신 말해라. '너는 글을 짓고 말을
만들어 망령되이 문무를 일컫는다. 모양나는 관을 쓰고 죽은 쇠가죽 띠를 두르며, 수
다스럽다고 그릇된 이야기만 지껄인다. 밭갈이를 안하고도 먹으며, 베를 짜지 않으면
서 입고, 입술을 놀리고 혀를 움직여 멋대로 시비를 가려서 천하의 군왕들을 현혹한
다. 천하의 학사로 하여금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망령되이 효제를 만들
어 봉후와 부귀를 요행으로 얻으려는 자다. 너의 죄는 극히 크고 무겁다. 급히 돌아가
지 않으면 나는 너의 간으로 점심 반찬을 더하겠다.'"
공자가 다시 알자를 통하여 말했다.
"제가 계에게 사랑을 얻고 있으니 막하를 밝게 해주십시오."
알자가 다시 이 말을 전했더니 도척이 말했다.
"그를 앞으로 오게 해라."
공자의 친구 유하계에게는 도척이라는 아우가 있었다. 도척은 9천명의 부하를 거느
리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위로는 제후들을 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위협하여 소와
말을 앗아가고 여자를 데려갔다.
어찌나 욕심이 많고 성질이 못됐던지 일가 친척은 물론 친형제도 염두에 두지 않았
다. 더구나 조상의 제사 같은 것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도척의 무리가 온다는 소문만
나면 큰 나라건 작은 나라건 황급히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는 형편이어서 백성들의 고
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자는 유하계를 찾아갔다.
"어버이는 자식을 가르칠 의무가 있고, 형은 아우를 지도할 의무가 있소. 세상에서
는 선생을 현인이라 하는데, 못된 동생을 바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소?
내가 직접 선생의 동생을 설득하고 싶은데, 선생의 생각은 어떻소?"
유하계는 대답했다.
"물론 부형 된 사람은 그런 의무가 있겠지요. 그러나 상대가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
이지 않고, 형의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는데야 선생의 변설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더
구나 척으로 말하면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기략과 질풍 같은 행동력, 쉽사리 상대를
무찌를 수 있는 완력, 검은 것을 희다고 둘러붙일 수 있는 말재주를 가지고 있소. 다
행히 제 기분에 들면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당장 화를 내고 예사로 사람을 모욕하
는 녀석이니 아예 그만두시오. 공연한 헛걸음을 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공자는 그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안회를 마부로, 자공을 수행원으로 하여 길을
떠났다.
마침 그때 도척은 태산 남쪽 기슭에 부하들을 쉬게 하고는 사람의 간을 회쳐서 먹고
있었다.
"나는 노나라의 공구라는 사람입니다. 장군의 높으신 이름을 사모하여 뵙고자 하니
부디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공구란 놈이?"
알자의 말을 전해들은 도척은 매우 화를 냈다. 두 눈빛은 이글거리고, 성난 머리털
은 관을 밀어올릴 지경이었다.
"저 노나라의 위선자 말이냐? 가서 이렇게 전해라. '너의 행동은 무거운 죄에 해당
한다. 너는 교묘한 말로 문왕과 무왕의 도를 들추어내고, 장식을 단 관과 쇠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하고 유해 무익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또한 일하지 않고 먹고, 제멋
대로 시비와 선악을 논하며, 제후와 학자들을 그릇된 길로 끌어가 효도 운운하는 공연
한 소리를 외치고 다닌다. 모두가 출세를 위한 허튼 수작이다. 너같이 세상에 해독을
끼치는 인간은 다시 없다.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너의 간이 내 밥상에 오르게 될 것이
다.'"
공자는 굽히지 않고 사정했다.
"나는 장군의 형님 되시는 분의 소개로 왔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장군의 발
아래 엎드려 뵙기를 허락해주십시오."
그 말을 전해들은 도척은 그제야 승낙했다.
"그럼 이리로 안내해라."
* 유하계: 성은 전, 이름은 금. 실제로는 공자보다 1백 년 전의 인물이다.
* 도척: 진나라의 유명한 도둑으로, 실제로는 유하계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궁지에 물린 공자 - 도척
공자는 급히 나갔다가 자리를 피하고 도로 물러나 도척에게 두 번 절했다. 도척은
크게 화가 나 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앉아 칼을 어루만지고 눈을 부릅뜨며, 젖 먹이는
호랑이 같은 소리로 말했다.
"구는 앞으로 나와라. 네가 말하는 것이 내 뜻에 맞으면 살고, 내 마음에 거슬리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저는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장대하고 아름답기 짝
이 없어 소장 귀천이 보고 다 기뻐하는 것이 상덕입니다. 지혜는 하늘과 땅을 이으며
능력은 만물을 분별하는 것이 중덕이고, 용감하고 과감하여 뭇 사람을 모아 군사를 거
느리는 것이 하덕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면 족히 남면 칭고*할 수 있습니
다. 장군은 지금 이 셋을 겸하고 있습니다. 신장은 여덟 자 두 치에 얼굴과 눈에는 광
택이 있고, 입술은 붉은 색을 칠한 듯합니다. 이는 조개를 가지런히 한 것 같고, 목소
리는 황종*에 어울립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도척이라 불리니 저는 장군을 위하여 속으
로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장군이 신의 말을 들으실 뜻이 있다면, 청컨대 남으로는
오와 월에, 북으로는 제와 노에, 동으로는 송과 위에, 그리고 서로는 진과 초에 심부
름을 가겠습니다. 장군을 위하여 수백 리의 큰 성을 만들고 수십만 호의 고을을 세워,
장군을 높여 제후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천하와 더불어 다시 시작하여 군사를 파하고
병졸을 쉬게 하며, 형제를 거두어 기르고 함께 선조를 제사하는 것이 성인과 재사의
행실로서 천하가 바라는 바입니다."
도척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구는 앞으로 오너라. 무릇 이로써 달래고 말로써 간할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은 백성
일 뿐이다. 내가 장대 미호하여 사람들이 보고 기뻐하는 것은 우리 부모가 끼친 덕이
니, 네가 비록 칭찬하지 않는다고 내 스스로 알지 못하겠느냐? 또 나는 면전에서 남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돌아서서 헐뜯기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지금 네가 내게 큰
성과 많은 백성을 들어 말한 것은 나를 달래려고 함이며,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한 것
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 성이 아무리 커도 천하보다 더 크지는
않다. 요순이 천하를 가졌으나 자손은 송곳을 세울 땅도 없었고, 탕무는 천자가 되었
으나 후손이 끊겨 없어졌다. 이로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공자는 재빠른 걸음걸이로 도척 앞으로 나아갔다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 정중히
인사를 했다.
도척은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두 발을 힘차게 딛고, 칼자루에 손을 걸쳤다.
그리고 새끼를 감싸는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가 공구냐? 앞으로 나서라. 말하는 바가 내 마음에 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
면 목숨이 남아 있지 못하리라."
공자는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릇 사람에게는 세 가지 덕이 있다고 합니다. 당당한 체구와 아름다운 얼굴을 지
녀서 젊은이나 늙은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보고 좋아하는 것이 상덕
이고, 천지를 덮는 영지와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중덕, 용맹 과
감하여 많은 무리를 동원하고,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것이 하덕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임금이 될 자격이 있다. 했는데,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
을 모두 지니고 계십니다. 당당한 체구와 빛나는 얼굴, 붉은 칠을 한 듯한 입술에 조
개를 세운 듯한 치아, 황종 가락에 맞는 목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도척으로 불리고 있으니, 이것은 장군을 위하여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장군께서
만일 제 의견에 따르시겠다면, 저는 남쪽으로는 오와 월, 북쪽으로는 제와 노, 동쪽으
로는 송과 위, 서쪽으로는 진과 초에 사자로 가서 이들을 움직여, 장군을 위해 사반
수백 리에 이르는 성을 쌓고, 수십만 호에 이르는 나라를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
게 하면 장군은 제후로서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
는 것입니다. 전쟁을 그치고 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것이야말로
성인이 할 일이며, 또 만백성의 염원인 것입니다."
도척은 격노했다.
"에잇, 듣기 싫다! 어리석은 백성이라면 혹 모르지만 내가 이익에 동요되고 달콤한
소리에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느냐? 내가 당당한 미장부로서 모든 사람의 흠모를 받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벌써부터 알고 있다. 남이 보는
앞에서 아첨하는 자 치고 숨어서 험담하지 않는 자가 없다. 성을 주고 큰 나라를 주겠
다는 소리는 더욱 귀에 거슬린다. 이익으로써 내 마음을 움직여보려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바로 나를 어리석은 백성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 요순은 천하를 지배했지
만 자손은 송곳 하나 세울 땅이 없었다. 탕왕과 무왕은 천자가 되었지만 그들은 자손
이 끊겨 멸족하고 말았다. 큰 이익일수록 잃기 쉬운 법이다."
* 남면 칭고: 남면은 임금의 지위, 고는 왕후의 겸칭으로, '군주가 된다'는 뜻이다.
* 황종: 중국 12음률 중 기본이 되는 소리.
검술광 조왕 - 설검
옛날 조문왕*은 칼을 좋아했다. 검사들이 문전에 몰려 손님 노릇 하는 사람이 3천여
명에 달했는데, 낮이나 밤이나 왕 앞에서 싸워 사상자가 한 해 1백여 명에 이르렀는데
도 왕은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3년을 이렇게 하여 나라가 기울자 제후들이 모사를 꾀
했다. 태자 회가 이를 근심하여 신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왕의 뜻을 달래어 검사의 발길을 그치게 하는 사람에겐 천 금을 내리겠다."
신하들이 말했다.
"장자라면 능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태자가 사람을 보내 장자에게 천 금을 바쳤으나 장자는 이를 받지 않고 사자와
함께 와서 태자에게 물었다.
"태자는 제게 무엇을 시키시려고 천 금을 보내셨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선생이 밝고 성스럽다는 말을 듣고 종자를 시켜 천 금을 받들어 폐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이 이를 받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듣건대 태자께서는 저를 시켜 왕이 좋아하는 것을 끊게 하려고 하시는 모양입니다.
위로 대왕을 달래다가 그 뜻을 거스르거나 아래로 태자와 맞지 않게 된다면 신은 형벌
을 받아 죽게 될 터인데,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신이 위로는 대왕을 기쁘게 하고,
아래로는 태자와 맞으면 조나라에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왕이 만나시는 것은 검사뿐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칼을 잘 씁니다."
태자가 말했다.
"우리 왕이 만나시는 검사들은 모두가 풀어헤친 머리에 일어선 구레나룻, 눌러쓴 관
과 굵고 험한 관 끈, 거기에다 뒤가 짧은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뜬 채 고함치듯 말해야
만 좋아하십니다. 선생이 선비의 옷을 입고 대하신다면 일은 반드시 크게 뒤틀릴 것입
니다."
장자가 말했다.
"검복을 준비하겠습니다.
조문왕은 이상하리만큼 검술을 좋아했다. 항상 3천 명이 넘는 검객을 문하에 거느리
고 있으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검술 시합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죽고 다
치는 검객이 한 해에 1백 명이나 되어도 왕이 검술을 좋아하는 정도는 점점 심해만 갔
다. 3년이 지나자 조나라의 형세는 눈에 띄게 약해져 이웃 제후들이 침략의 기회를 엿
보기 시작했다.
태자 회는 사태를 걱정한 나머지 신하들을 모아놓고 상의했다.
"왕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도 왕이 검술에서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면 상으로 천 금을 주겠다."
"혹시 장자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신하들의 말에 따라 태자는 사신에게 천 금을 들려 장자를 맞으러 보냈다. 그런데
장자는 돈은 받지 않은 채 사신과 함께 태자를 찾아와 물었다.
"이런 큰 돈을 주시다니, 제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선생의 어진 재주를 전해듣고 꼭 힘을 빌리려 했는데, 예물을 받지 않으셨으니 굳
이 간청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듣건대 저를 왕께 보내어 왕의 검술 취미를 버리도록 할 생각이시라는
데, 만일 그렇다면 천 금은 필요없습니다. 만일 제가 잘못해서 왕의 비위를 거슬러 태
자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죽을 사람에게 큰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대로 제가 만일 성공하게 된다면 저는 천 금뿐 아니
라 바라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 아닙니까?"
"과연 말씀대로군요. 부디 왕의 취미를 바꿔주십시오. 왕은 지금 검술에 정신이 빠
져 다른 일은 다 잊고 계십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저도 검술을 약간은 알고 있으니까요."
태자는 기뻐하며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선생은 학자 차림을 하고 계시는데, 왕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풀어헤
치고 뒤가 짧은 옷을 입어 처음부터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거친 말을 뇌까리는 살
기 등등한 사람들입니다."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검객의 차림을 하겠습니다."
* 조문왕: 조나라 혜왕. 이름은 하이며, 무령왕의 아들이다.
무적 검사 장주 - 설검
검복을 만들기 시작한지 사흘 만에 태자를 만났다. 태자는 그와 함께 왕을 뵈러 갔
다. 왕은 흰 칼을 뽑아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자는 전문으로 들어갔으나 서두르지
않고, 또 절도 하지 않았다. 왕이 말했다.
"선생은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태자를 앞세워 왔소?"
장자가 말했다.
"신은 대왕께서 칼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칼을 갖고 온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선생의 칼은 무엇을 능히 금제*할 수 있소?"
"신의 칼은 10보에 한 사람씩을 베어 천 리를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천하에 적이 없겠구려."
"무릇 칼을 쓰는 사람은 허를 보여 기회를 잡으며, 나중에 움직이고도 먼저 칩니다.
원컨대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숙사에 가서 쉬며 명을 기다리면 곧 시합을 열어 선생을 청하리다."
왕은 곧 이레 동안의 검술 시합을 베풀어 사상자 60여 명을 낸 끝에 5, 6명의 검사
를 뽑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각 아래 칼을 들고서 있게 한 다음 장자를 불러 말했
다.
"오늘 시합을 열어 무사들이 칼을 닦게 하겠소."
"오래 기다렸습니다."
"선생은 길고 짧은 것 중 어떤 칼을 쓰시오?"
"아무거나 씁니다. 신에게는 세 개의 칼이 있으나, 대왕의 뜻대로 쓰겠습니다. 그런
데 먼저 한 말씀 드리고 시합에 임하겠습니다."
사흘 후 장자가 검사 차림으로 태자를 찾자 기다리던 태자는 즉시 장자를 왕에게 데
리고 가 문안을 드렸다.
왕은 칼을 뽑아 든 채 두 사람을 맞았다. 그런데 장자는 태연한 모습으로 성큼성큼
전상으로 올라가더니 절도 하지 않은 채 왕의 앞에서 있었다. 왕은 발끈했다.
"굳이 태자를 번거롭게 해가면서 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대왕께서 칼을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신의 검법을 보여드리고자 왔습니다."
"허, 그러면 선생의 칼 솜씨는 어떠하오?"
"열 걸음에 한 사람씩 쓰러뜨리면서 천 리을 가도 가로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말에 왕은 금방 입이 딱 벌어졌다.
"오오, 정말 천하 무적이로군."
"검술의 극치는 먼저 틈을 보여 상대를 움직이도록 유인한 다음, 그 움직임에 맞춰
거꾸로 선수를 잡아 치고 들어가는데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이 극치를 실제로 보여드
리고 싶습니다."
"옳거니! 그렇다면 우선 숙사에 가서 쉬도록 하오. 내가 곧 시합 준비를 끝내고 선
생의 솜씨를 구경하도록 하겠소."
그로부터 이레 동안 왕은 매일 시합을 벌여 60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고수 5, 6명을
뽑아냈다. 여드레 째 되는 날, 이들 검사들을 뜰아래에 대기시킨 뒤 왕은 장자를 불러
냈다.
"그럼 이 검사들을 상대로 선생의 솜씨를 보여주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칼은 긴 걸 쓰겠소, 짧은 걸 쓰겠소?"
"어느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신이 쓰는 칼 세 개 중 대왕께서 마음에 드시는 것을
쓰겠습니다. 그러나 시합에 앞서 먼저 그 세 가지 칼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 금제: 상대방을 막아내 제압하다
검의 극치 - 설검
왕이 말했다.
"세 개의 칼에 대해 듣고자 하오."
장자가 말했다.
"천자의 칼이 있고, 제후의 칼이 있고, 서인의 칼이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천자의 칼은 어떠하오?"
"천자의 칼은 연계*와 석성으로 칼끝을 삼고, 제의 대산*으로 칼날을 삼으며, 진과
위로 칼등을 삼습니다. 또 주와 송으로 손막이를 삼고, 한과 위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사방을 오랑캐와 춘하 추동으로 둘러싸고, 발해를 두르고 상산을 띠로 하며, 오행으로
제어하고, 형벌과 덕으로 논합니다. 음양을 열어 봄과 여름을 조화시키고, 가을과 겨
울을 운행시킵니다. 이 칼은 바르게 하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들면 위에 적이 없으
며, 아래로 누르면 아래에 적이 없고, 움직이면 사방에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뜬구름
을 가르며, 아래로는 지기를 끊습니다. 이 칼은 한 번 쓰면 제후를 바로잡고, 온 천하
를 굴복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이 망연 자실하여 물었다.
"제후의 칼은 어떠하오?"
장자가 대답했다.
"제후의 칼은 지용의 선비를 칼끝으로 하고, 청렴한 선비로 칼날을 삼습니다. 현량
한 선비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런 선비로 손막이를 삼으며, 호걸스런 선비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이 칼은 바르게 하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들면 위에 적이 없으며, 아래로
누르면 아래에 적이 없고, 움직이면 사방에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
아 삼광을 순하게 하고, 아래로는 모난 땅을 본따서 사시를 따르며, 가운데로는 민의
를 살펴서 사방 고을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은 한 번 쓰면 우뢰와 번개가 떨어지는
듯하여 사방 국경이 항복하고, 군명을 따르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후
의 칼입니다."
왕이 다시 말했다.
"그럼 서인의 칼은 어떠하오?"
장자가 대답했다.
"서인의 칼은 더벅머리에 수염투성이로서 관은 뒤에 붙고, 오랑캐의 관 끈을 늘였으
며, 옷은 뒤가 짧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말이 시끄러워 임금 앞에서도 서로 치며, 위
로는 몸과 옷깃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허파를 가릅니다 이것이 곧 서인의 칼로서 투계
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일단 목숨이 끊어지면 나라일엔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지금 대왕은 천자의 지위에 계시면서도 서인의 칼을 좋아하시니, 신은 대왕을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왕은 간신히 몸을 움직여 전상에 올랐다. 재인이 밥을 올렸으나 왕은 그 주위를 세
번이나 돌았다. 장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편히 앉아 기운을 차리십시오. 칼에 대한 것은 이미 다 아뢰었습니다."
이로부터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궁 밖에 나오지 않았고, 검사들은 모두 그곳에서
자살해 죽었다.
"세 가지 칼이란 어떤 거요?"
"천자의 칼, 제후의 칼, 그리고 서민의 칼입니다."
"그래, 천자의 칼이란 무엇인가?"
"이 칼은 북쪽의 연계와 석성을 칼끝으로 하고, 제나라의 대산이 칼날, 진과 위가
칼등입니다. 또 손막이는 남쪽의 주와 송이며, 칼자루는 서쪽의 한과 위입니다. 그 세
력과 위엄은 멀리는 발해와 상산에 까지 미치고, 동서남북의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춘
하 추동 사철을 두릅니다. 오행을 관장하여 자연계를 운행시키고, 상벌을 분명히 하여
인간 세계를 질서있게 합니다. 그리고 음양 두 기운을 움직여 우주의 대생명을 작용시
킴으로써 봄과 여름에는 이를 약동하게 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이를 숨어들게 합니다.
이 칼의 위력은 위로는 뜬구름을 찢고, 아래로는 지축을 끊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
니다. 이것을 한번 쓰면 제후는 숙연히 몸을 바로 하고, 온 천하가 일시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은 기가 질렸다
"흐음, 그럼 제후의 칼은?"
"제후의 칼은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선비를 칼끝으로 하고, 청렴한 선비를 칼날로
합니다. 또 어질고 착한 선비를 칼등으로, 충성스런 선비를 손막이로, 호걸스런 선비
를 칼자루로 하고 있습니다. 천자의 칼과 마찬가지로 상하 사방 미치지 않는 곳이 없
습니다. 위로는 해와 달과 별의 삼광에 순응함으로써 하늘의 법칙에 맞게 하며, 아래
로는 사철의 변화에 순응, 땅의 법칙에 맞게 하여 민심을 부드럽게 하고 사해를 편안
하게 합니다. 이 칼을 한 번 쓰면 천둥 번개와도 같은 위력이 있어서 온 사해가 다 임
금의 명령에 복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후의 칼입니다."
"그럼 서민의 칼은?"
"머리는 더벅머리에다 관은 뒤에 붙어 있고, 옷은 전투복, 말을 주고받는 것까지 살
기에 차 있는 사람들이 갖는 칼입니다. 한 번 올려 치면 상대방의 목을 자르고, 내려
치면 상대방의 창자를 가릅니다. 마치 투계가 싸우는 것 같습니다. 이 칼을 쓰는 사람
은 목숨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어서 나라를 위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대왕께선 천자의 높은 지위에 계시면서 이런 비천한 서민들의 칼에 매혹되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왕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며 몸소 장자의 손을 잡아 전상으로 맞아 올렸다. 요
리사들이 음식상을 차렸으나 왕은 정신없이 상머리를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장자가 말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자리에 앉고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이야기는 이미 끝났습
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한 발짝도 궁전 밖에 나오는 일없이
근신했다. 그리고 왕에게 버림받은 검사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쳐 자살하
고 말았다.
*연계: 연나라의 계곡.
*대산: 태산의 다른 이름.
어보의 동정 - 어보
공자가 울창한 숲*에서 놀다가 행단*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독서를 하고
공자는 노래 부르며 금을 뜯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반도 끝나기 전에 어보가
배에서 내려 다가왔다. 수염과 눈썹이 희고, 산발을 하고는 팔짱을 낀 채 언덕을 올라
누대에서 멈췄다. 왼손은 무릎에 놓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듣더니, 곡이 끝나자 자
공과 자로를 불렀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어보는 공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자로가 대답했다.
"노나라의 군자요."
어보가 그 성을 묻자 자로가 대답했다.
"공씨요."
"공씨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자로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자공이 대답했다.
"공씨는 성품이 충신을 지녔고, 몸으로는 인의를 행하오. 예악을 닦고 인륜을 정하
여 위로는 임금께 충성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교화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오, 이것이
공씨가 하시는 일이오."
어보가 물었다.
"영토를 가진 임금이오?"
자공이 말했다.
"아니오."
"제후의 재상이오?"
"아니오."
어보가 웃고 돌아가며 말했다.
"인은 인이나, 그 몸을 면할 수 없음이 두렵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힘들게 하여
그 진실을 위태롭게 하는구나. 오, 도에서 떨어져 있음이 멀구나!"
공자가 울창한 숲속에서 놀다가 행단에 올라 쉬고 있을 때였다. 그의 제자들은 소리
내어 책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고 있었다. 그런데 채 한 곡이 끝나
기도 전에 어보가 배에서 내려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수염과 눈썹이 희고 산발
한 머리에 팔짱을 낀 채로 언덕을 올라오더니 누대 앞에 섰다. 그러고는 턱을 괴고 앉
아 거문고 소리를 한참 듣고 있더니, 곡이 끝나자 자공과 자로를 손짓해 불렀다. 그는
공자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요?"
자로는 대답했다.
"노나라의 군자이십니다."
"성씨는 무엇이라고 하오?"
"공씨입니다."
"그래, 공씨라는 저 사람은 무엇을 하시오?"
여기서 자로의 말이 막히자 자공이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공씨께서는 충신을 성품으로 지니고, 인의를 몸으로 행하며, 예악을 닦고 인륜을
가르치십니다. 임금께 충성하고 만민을 교화해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이 공씨가
하는 일입니다."
"영토가 있는 임금이시오?"
"아닙니다."
"그러면 제후의 재상이시오?"
"아닙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웃고 되돌아갔다.
"인이라면 인이겠지만, 아마 그 몸이 견뎌내지를 못할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
을 수고롭게 하여 생명의 진실을 위태롭게 할뿐이다. 도에서 등을 돌린 것이 너무도
멀구나!"
* 울창한 숲: 원문은 치유로서, '검은 휘장'이라는 뜻을 가졌다.
* 행단: 학문을 가르치는 곳. 공자가 행단 위에 앉고 제자는 그 곁에서 강학한 고사
에서 나온 말이다.
무능에 철저하라 - 열어구
열어구가 제나라로 가다가 중도에서 돌아오던 중 백혼무인을 만났다. 백혼무인이 물
었다.
"어찌하여 벌써 돌아오느냐?"
"저는 놀랐습니다."
"무엇에 놀랐느냐?"
"제가 열 군데의 주말에서 밥을 먹었는데, 다섯 주막에서 남보다 저에게 먼저 밥을
주었습니다."
백혼무인이 물었다.
"그것이 왜 너를 놀라게 했느냐?"
열어구가 대답했다.
"마을이 진실고 풀리지 않으면 얼굴도 따라서 빛을 이루어 밖으로 남의 마음을 누릅
니다. 남들이 늙은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볍게 하여, 그 걱정하는 바를 어지럽게
한 것입니다. 주막하는 사람은 다만 밥과 국을 장사로 할 뿐, 다른 이익이 없습니다.
이익됨이 작고 권세가 그처럼 가벼운데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만승의 임금이겠습니까
? 몸은 나라에 시달리고 지혜는 일에 다한다면 그는 장차 저에게 일을 맡겨 공을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웠습니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잘 보았다. 그러나 네가 이렇게 처신하면 남들이 장차 너를 붙들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가보니 문 밖에 신발이 가득했다. 백혼무인은 북쪽을 보고 서서 지
팡이에 턱을 괴고 잠시 있다가 말없이 나갔다. 빈자*가 열자에게 알리자 열자는 신을
들고 맨발로 달려와 대문에 이르러 말했다.
"선생님께서 오셨으면서 어째서 약*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만두어라. 내가 전에 너에게 사람들이 장차 너를 붙들 거라고 했더니 과연 너를
붙들었구나. 남들이 너를 잡게 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너를 잡지 않도록
하지는 못한 것이다. 느낌이 있으면 반드시 너의 본성을 어지럽게 할 것이니 또한 말
할 것이 없다. 너와 함께 노는 사람은 또 네게 말할 것이 없으며, 저들의 작은 말은
모두 사람을 해친다. 깨치게 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이 어찌 서로 친숙해지겠느냐? 공
교로운 자는 수고롭고, 지혜로운 자는 근심한다. 무능한 자는 구하는 것 없이 배불리
먹고 마음대로 논다. 묶여 있지 않은 배와 같이 떠다니면서 텅 빈 채 마음대로 노는
것이다."
열자는 제나라 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중간에 되돌아오던 중 스승인 백혼
무인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이냐? 어째서 되돌라왔느냐?"
"네, 실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열자는 사정을 설명했다.
"계기는 밥을 먹는 데서부터였습니다. 여행 도중 저는 몇 번인가 주말에 들어갔습니
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다른 손님을 밀쳐놓고 저의 주문부터 받으려고 했
습니다. 두 번에 한 번 꼴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두려운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아마 제가 아직도 자부심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남이 보기에 달리
보였던 모양입니다. 먼저 온 손님들 중에는 노인도 있었는데, 제 풍채가 주인을 위압
해서 노인을 보살펴주려는 마음을 잊게 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
었습니다. 대체로 주막이란 보잘것없는 장사로서, 재산도 없고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
런 밥집의 주인에게까지 저를 특별히 대우하려는 기분을 일으켰는데, 한 나라의 임금
쯤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그가 내정과 외교에 골몰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
이 엉뚱한 기대를 걸고 나를 맞아들여 국정을 맡긴 다음, 그 성과를 보고 싶어할 것입
니다. 두려운 것은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백혼무인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다. 잘 생각했다. 하지만 네가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한, 어디를 가든지 세상
사람은 너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 얼마 후 백혼부인은 열자의 집을 찾아갔다. 방문 밖에는 찾아 온 손님들의 신발
이 넘칠 지경이었다. 백혼무인은 지팡이에 기대고 잠시 서 있더니 그대로 가버리려 했
다.
이 소식을 들은 열자는 황급히 방에서 뛰어나와 맨발로 대문 밖으로 달려나가 백혼
무인을 붙들고 사정했다.
"선생님, 모처럼 저의 집까지 오셨으니 한 말씀이라도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십시오.
"
"듣기 싫다. 새삼 무슨 소리를 하겠느냐? 내가 분명히 말해주지 않았더냐? 네가 네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한, 세상 사람들이 너를 가만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네가 자진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네게는 남에게 신뢰받지 않
으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이다. 사람들이 너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네게 남의
눈데 잘 보이려는 틈이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런 생각과 태도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해칠 뿐, 아첨하여 너를 병들게 할뿐이다. 자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 아니
라, 남의 마음까지 어둡게 하고 만다. 이리하여 서로가 밑바닥 없는 진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지혜와 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시달리게 할 뿐, 아
무것도 얻는 것 없이 일생을 마친다. 그러나 무능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일체의 욕
구에서 벗어나 배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며, 마음 편한 생활을 즐기고 산다. 물결 따라
나부끼는 작은 배처럼 자신을 버리고 자유의 경지를 거닐게 되는 것이다."
* 빈자: 손님의 출입을 담당하는 사람. 문지기.
* 약: 원문은 약으로서, '약이 될 만한 좋은 가르침'을 뜻한다.
용요리 - 열어구
주평만은 지리익에게서 용을 잡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천 금의 가산을 탕진했다. 3
년 만에 기술을 익히기는 했으나 그 기술을 쓸데가 없었다.
주평만은 지리익에게서 용을 죽여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 천
금을 탕진했고, 비법을 터득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용은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잡기도 힘들어서 그 기술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장자의 임종 - 열어구
장자가 죽게 되어 제자들이 후히 장사를 지내려 하자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를 관곽으로 삼고 해와 달을 연벽*으로 삼으며, 별들을 구슬로 삼고 만물
로 재송*을 삼을 것이다. 내가 어찌 장구를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여, 여기에 무엇
을 더하겠느냐?"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님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된다. 저것에서 빼앗아 이것에게 주려 하는구나. 어찌 그렇게 편벽되었느냐? 고르지
못한 것으로써 고르게 하려 하면 그 고른 것이 고르지 못하고, 밝지 못한 것으로써 밝
히려 하면 그 밝은 것이 밝지 못한다. 밝은 사람은 다만 남에게 부림을 당할 뿐, 신자
만이 밝힐 수 있다. 무릇 밝은 것이 신령스러운 것을 이기지 못한 지 오래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의 보는 바를 믿고 인위적인 것에 빠져들어 간다. 그 공이 밖에 있
으니 또한 슬프지 않으냐?"
장자의 병이 위중하게 되었다. 임종하는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
를 것을 원했으나 장자는 이를 거절했다.
"하늘과 땅이 곧 나의 널이요, 해와 달과 별은 보배이다. 또 만물이 곧 장례식에 모
인 회장자인데, 이 위에 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느냐? 이대로 밖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선생님의 몸뚱이를 까마귀와 솔개가 먹게 될 것입니다."
"물론 땅 위에 놓아두면 새에게 먹힐 것이다. 그러나 땅 속 깊숙이 묻는다고 해도
결국은 벌레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굳이 한 쪽에서 빼앗아 다른 쪽에 준다는 것은 공
정한 처사가 아니다. 또한 인위적으로 공정을 꾀하는 것은 공정이 될 수 없으며, 의식
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려는 것은 참다운 순응이 아니다. 자신의 영리함을 믿고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저 무심히 사물에 순응할 뿐이다. 결국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
람은 참다운 지혜를 따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의 판단에 얽매어 재주를 부리며, 끝내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보다 더 슬픈 일
이 어디 있겠느냐?"
* 연벽: 한 쌍의 옥. 여기서는 관 뚜껑에 장식하는 두 개의 구슬을 말한다.
* 재송: 원래는 '어떤 물건을 보내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부장품'으로 풀이한
다.
도의 바탕 - 천하
천하를 다스리는 도법을 가진 자들은 많다. 모두가 덧붙일 것이 없는 것을 가졌다고
한다. 옛날의 소위 도술이란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다. 그
렇다면 신은 어떤 연유로 내려오는 것인가? 밝음은 어떤 연유로 나오는가? 성인이 출
현하고 왕이 달성하는 것은 모두 하나에서 근원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이렇다. 하고 내세우는 학파가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것이
제일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를 전하는 근본적인 학술이 있다는 말인가? 그보다는
도 자체가 보편적인 것이므로 어디에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의 작용이 나타나고
모습이 구체화되며, 성인이 출현하고 제왕의 공업이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은 한결같
이 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대한 장자 - 천하
그 글은 비록 기발하고 특별하나 사물과 더불어 서로 따르므로* 해침이 없다. 그 말
은 혹은 허하고 혹은 실하나 그 골계가 가관이다. 그 충실함이 더할 수 없을 정도다.
위로는 조물자와 더불어 놀고, 아래로는 생사를 내던져 종시가 없는 것과 벗한다. 근
본*에 대한 것은 굉대하게 열리고, 깊고 넓게 덮으며, 대종에 대한 그렇다고는 하나
변화에 응하여 만물을 해설한 것이기에 그 이치를 다 말할 수가 없고, 장래에도 허물
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즉 망망하고 매매하니 다하지 못한 것이다.
장자의 저서는 규모가 웅대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초월한다.
그의 논술은 자유 자재여서 남을 해치지 않으며, 그의 표현은 신출 귀몰하고 기기
괴괴해서 파격적인 재미가 있다. 또 내용에는 생명력이 충일한 풍성함이 있다. 위로는
조물자와 함께 놀며, 아래로는 생사를 벗어나고, 시간을 초월한 자와 벗하는 것이 그
의 경지이다.
근원적인 진리에 대한 파악은 광대하고 넓어 두루 미치며, 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정신의 편안한 조화를 얻어 높은 세계로 올라가 있다. 이를테면 신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변화하는 현상계에 순응하여 삼라 만상에 존재 양식을 해설한 것이므로
그 이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장래에도 그러한 허물을 벗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
런 의미에서 그 역시 '미진한 것을 남긴 자'이다.
* 사물과 더불어 서로 따르므로: 원문은 연환으로, 빙빙 도는 모양을 말한다.
* 근본: 여기서는 도를 가리킨다.
스물한 가지 위변 - 천하
알에 털이 있다. 닭은 발이 세 개다. 영에 천하가 있다. 개를 양이라 할 수 있다.
말은 알을 낳는다. 개구리는 꼬리가 있다. 불은 열이 없다. 산은 입에서 나온다. 수레
바퀴는 땅에 닿지 않는다.
눈은 보지 않는다. 손가락은 닿지 않고, 닿으면 안 떨어진다. 거북은 뱀보다 길다. 곡
척으로 모를 그릴 수 없고, 그림쇠로 원을 그릴 수 없다. 구멍은 자루에 맞지 않는다.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화살에는 정지된 시간이 있다. 구는 견이
아니다. 누런 말과 검은 소는 셋이다. 흰 개는 검다. 어미 없는 망아지는 어미가 있은
적이 없다. 한 자짜리 지팡이를 하루에 반씩 자르면 만세가 지나도 다 잘라낼 수가 없
다.
변자들은 이를 혜시와 서로 주고받으며 종신토록 그칠 줄을 몰랐다. 환단*이나 공손
용도 변자의 무리로서, 사람의 마을을 꾸미고 사람의 뜻을 바꾸어놓았다. 사람의 입은
이길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는 없으니, 이것이 곧 변자의 한계이다. 혜
시도 날마다 그 지혜로써 이들과 변론했으나, 특별히 천하의 변자들과 더불어 괴상한
짓을 한 데 불과했다. 이것이 그 개략이다.
혜시를 비롯한 여러 논리학자들의 궤변에 이런 것이 있다.
알에 털이 있다. 시간이란 본래 무한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 알에서 새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무시된 것이다.
닭은 발이 셋 있다. 인식은 대상과 개념에 의해 성립되게 마련이다. '닭의 발'이라
는 단독 개념 하나와 구체적 대상인 발 둘을 합해 닭의 발은 셋이 된다.
영(초나라의 서울)에 천하가 있다. 무한한 공간에서는 천하 역시 무와 같으니, 따라
서 천하는 영에 있다.
개는 양이다. 개와 양은 모두 네 발 달린 짐승이기 때문이다.
말은 알을 낳는다. 태생 동물인 말이나 난생 동물인 새나 다 같이 동물이다.
개구리는 꼬리가 있다. 올챙이에 꼬리가 있기 때문이다.
불은 열이 없다. 불이 뜨겁다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것일 뿐, 불 자체의 성질은 아
니다.
산은 입에서 나온다. 산은 거대하지만, 그 이름은 입으로 말할 수 있다.
수레바퀴는 땅에 닿지 않는다. 달리는 수레바퀴와 땅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눈은 보지 않는다. 대상이 있기에 볼 뿐, 단독으로 볼 수는 없다.
손가락은 닿지 않고 닿으면 안 떨어진다. 손가락이 어떤 물건에 완전히 닿았다면 그
순간 떨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북은 뱀보다 길다. 무한한 공간에서는 뱀도 짧은 것이다.
곡척으로 모를 그릴 수 없고, 그림쇠로 원을 그릴 수 없다. 절대적인 의미의 사각형
이나 원은 있을 수 없다.
구멍은 자루에 맞지 않는다. 조금의 차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은 무한히 쪼갤 수 있으며, 새의 그림자
역시 그 쪼개진 시간시간마다 정지된 상태이다.
나의 화살에는 정지된 시간이 있다. 화살이 나는 거리는 쪼개지며, 또 그대로 볼 수
도 있다.
구는 견이 아니다. 용어가 다르다.
누런 말과 검은 소는 셋이다. 누런 말과 검은 소는 같은 동물로서 한 개념을 이루므
로 한데 합치면 셋이 된다.
흰 개는 검다. 흰 빛과 검은 빛은 다르지만 빛깔인 점에서는 같다.
어미 없는 망아지는 어미가 있은 적이 없다. 시간을 쪼개서 현재만 생각한 것이고,
또 '어미 잃은 망아지'와 '망아지'는 그 용어가 다르다.
한 자짜리 지팡이를 하루에 반씩 잘라내면 영구히 해도 다 잘라낼 수 없다. 무한소
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학자들은 혜시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끝낼 줄울 몰랐다. 환단과 공손용 같
은 궤변론자들은 이런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꾸미고 경박하게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론으로 남을 제압할 수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혜시 또
한 자기의 지혜를 다해 이들과 논쟁했으나 천하의 궤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괴상한 이
론을 판해 성립되게 마련이다. '닭의 발'이라
는 단독 개념 하나와 구체적 대상인 발 둘을 합해 닭의 발은 셋이 된다.
영(초나라의 서울)에 천하가 있다. 무한한 공간에서는 천하 역시 무와 같으니, 따라
서 천하는 영에 있다.
개는 양이다. 개와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