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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Casey,Riley 2022. 11. 24. 07:49
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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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

                 J.M 데 바스콘셀로스 

어느날 슬픔을 알게 된 어린이의 이야기

이 책을 
살아 계시는 분들과
세상을 떠난 분들에게 바칩니다.

살아계시는 분들에게 ---
씨실루 마따라주
메르세데스 끄루아데스 리발디
에리히 제마인
프란시스코 마린즈
아르난두 마갈량이즈 데 지아꼬무
엘레나 루지 밀러
그리고 나의 아들 훼르난도 세프린스키에게 ---

세상을 떠나신 분들에게 ---
보고 싶은 나의 동생 루이스와
글로리아 누나에게
루이스 왕은 스무살에 죽었고
글로리아 누나는 스물넷에 삶의 의미가 없다며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여섯 살 난 나에게 따뜻한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마지막으로
도리발 로렌스 다 실바에게도
이 책을 바칩니다 ---
평안히 잠드소서!

                                     --- 바스콘셀로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차례  >

                        제 1 부

                철드는 소년  1장
                한 그루의 라임오렌지나무  2장
                가난으로 찌든 손가락  3장
                새, 학교 그리고 꽃  4장
                화요일과 노래  5장

                        제 2 부

                박쥐  1장
                소중한 사람  2장
                우리의 이야기들  3장
                잊을 수 없는 아픔  4장
                부드럽고 이상한 간청  5장
                사랑을 알게 한 대화  6장
                망가라띠바  7장
                늙어가는 나무들  8장
                마지막 고백  9장

                         제 1 부
 
         때때로 크리스마스에 악마소년이 태어난다.

                           1 장

                       철드는 소년

  나는  형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또또까 형은 나에게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드려주고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그런 형이 있
어  매우 기쁘기는 하지만 형은  언제나 밖에서만 가르쳐주었다. 내가 사물
에 대해  깨닫게 된 것도 밖에서였다. 집에서는 저질렀고 그때마다 나는 매
를  맞곤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집안 식구들은  나를 때리는 
일이 없었다. 조금 자라서 차츰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자 식구들은 내가 
장난꾸러기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후로 나는 항상 <말썽꾸러기> <강아지 
같은   놈>  <털도 나지 않은 고양이> 등의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밖에 나가서 놀지 않았더라면 지
금쯤 노래 부르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노래란  정말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또또까 형은 노래도 잘 불렀지만 
특히  휘파람을   잘 불었다. 나는 형의 흉내를 아무리 내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형은  애써 나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나팔과  
같은 입모양은 잘 되지 않았고  소리는 더욱 나오질 않았다. 그  대신 속으
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할 수 있었다.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 가운데 한 곡을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시고,  우물가에서 빨
래를  하셨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시고 몇 시간씩이나 물 속에 손을 담그
신 채 하얀 비누거품을 일으키시며 빨래를 하셨다.
  그리고  깨끗이 빨아진  옷을 줄에 갖다 널곤 하셨다.  줄에 가득 빨래가 
널리면 긴 장대로  줄을 받쳐 올리셨다. 그때 엄마는 화울라베르  박사님댁
의 빨래를 해주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는 큰 키의 날씬한 미인이셨다. 까만 
  피부에 새카만 머리는 묶지 않고 길게 밑으로  늘어뜨리면 허리까지 내려
와  닿았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던 엄마의 모습도  노래를 부르시
는 엄마의 모습만큼 아름다워 보인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엄마 옆에 앉
아서 이 노래를 배웠다.

사공아, 사공이여,
무정한 사공이여
그래도 인해,
나 죽을 것만 같아.

파도가 출렁거리는,
먼 바다 위로,
나의 사랑 사공은
멀리 떠나 갔네!

사공의 사랑은
기약할 수 없어
배가 닻을 올리면
사공은 떠나가네,
파도가 거세게 출렁이는데......

 지금도 이 노래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또또까 형이 갑자기 나를 잡아당겨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제제 뭘 생각하니?"
 "아무 생각도 아니야,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노래?"
 "그래, 노래......"
 "제제, 난 노래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형은 소리없이 노래  부르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입을 다물었
다. 형이 그걸  모르고 있다면 가르쳐 주지 말아야지.
  우리는 <리어 -- 상파울로> 간선도로변에 왔다. 그곳에는 큰 트럭과 작은 
자동차,  수레, 자전거들이 빠르게 다니고 있었다.
  "제제, 잘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좌우를 
잘 살피는 거야. 자!  건너가자."
 우리는 힘껏 달려 길을 건너갔다.
 "무서웠니?"
 조금은 무서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다시 길을 건너 볼까? 어디 잘하는지 내가 시험해 봐야겠어."
 우리는 다시 길을 건너왔다.
  "잘했어. 그럼 이번엔 너 혼자서 해봐. 너도 이제 어른이 된다는 것을 두
려워해서는 안돼."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혼자 건너봐."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단숨에 길을 건넜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
리고  있자니 돌아오라는 형의 신호가 있어 다시 건너오자 형은,
 "처음치고는 아주 잘했어. 그런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었어.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펴봤어야 했어. 내가 언제까지나 널 따라다니며 신호를  해줄 수
는 없잖아. 돌아오는 길에 또 연습 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네게 보여줄 곳이 
있어."
 그리고 형은 나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길을 걸으며 나는  언젠
가 형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또까 형!"
 "응!"
 "철이 든다는 것이 굉장한 것이야?"
 "웬 바보같은 말이니?"
 "응, 에드문등 아저씨께서 그러시는데  나더러 다른 애들보다 조숙해서 철
이 들고  곧 이성을 갖게 될 나이에 들게 된다고 말했어. 그러나 난 조금도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없거든."
 "에드문드 아저씨는 바보야. 항상 머리 속에 복잡한 일들만 가득담고 다니
니까 말이야."
 "형! 아저씨는 결코  바보가 아니야. 아저씬 척척박사야. 나도 크면  아저
씨같이 될 거야. 그리고 시인도 되고 멋진 나비넥타이도 맬 거야. 언젠가는 
꼭 멋진  신사가 되어 나비넥타이를 매고 사진도 찍을 거야."
 "왜 꼭 나비넥타이니?"
 "나비넥타이를 안 맨 시인은 없거든. 아저씨가 보여 준  시인들 사진엔 ?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어."
  "제제!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두는  믿지마. 에드문드 아저씨는 거
짓말장이고 얼간이란 말야."
 "그럼 아저씨는 매춘부의 아들이란 말이야, 형?"
  "제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못써. 에드문드 아저씨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난 거짓말장이고 얼간이라고 말을 한 것 뿐이야."
 "형은 아저씨가 거짓말장이라고 했잖아?"
 "네가 한 말 하고 거짓말장이하고 무슨 상관이 있니?"
 "아니야, 상관이 있단 말야. 저번에 아빠가 쎄베리노 아저씨와 카드놀이를 
하셨는데 그때 라보네 아저씨를 가리켜 '매춘부의 아들 녀석이 거짓말만 하
고 다닌다'고 쎄베리노 아저씨가 말했는데 그때 아무도 그게 아니라고 말하
는 사람이 없던데?"
 "제제,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괜찮아."
 우리는 잠시 얘기를 멈추었다.
 "그럼 에드문드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럼 얼간이는 무슨 
말이야? 또또까 형?"
 또또까 형은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얼간이가 아니야. 착하신 분이야.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언젠가 나를 딱 한 번 때리시긴 했지만 그것도 심하게 때리
지는 않았어, 형."
 또또까 형은 깡충 뜀녀서 좋아했다.
 "에드문드 아저씨가 너를 때렸다구? 그게 언젠데?"
 "내가 너무 장난이 심하다고 글로리아 누나가 나를  딘디냐 할머니댁에 보
냈을  때야.  아저씨께서 신문을 읽으시려고 하는데  안경을 찾지 못하셨거
든.  딘디냐  할머니와 아저씨는 안경을 찾아  이구석 저 구석을 헤매셨어. 
그때  내가 나에게  구슬 살 돈 1또스땅(브라질의 옛 화폐 단위)만 주면 가
르쳐주겠다고  했지.  아저씨께서 조끼에서 돈 1또스땅을 가지고  오시면서 
'자, 돈을 줬으니 찾아주렴.'하시기에 빨래감이 담겨진 바구니 속에서 안경
을  찾아드렸더니  아저씨께서 '바로 네가 그랬구나, 이 나쁜녀석 같으니라
구!'하시며 내 엉덩이를 한 대 때리시고 돈을 다시 빼앗아가버렸어."
 또또까 형은 깔깔대며 웃는다.
  "매를 덜 맞을까 해서 거기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맞았구나. 자, 이제 가
자. 너무 늦겠구나."
 그래도 여전히 나는 에드문드 아저씨를 생각했다.
 "또또까 형, 어린 아이들도 퇴직자야?"
 "뭐라고?"
 "에드문드 아저씨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잖아.  일도 하지 않
는데 왜 시청에서 돈을 주지?"
 "그래서?"
 "아이들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잠만 자는데 부모님은 돈으르 주시잖
아."
 "제제, 퇴직자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냐. 퇴직자라는 말은 에드문드 아저
씨처럼  일을 많이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고, 느릿느릿 걷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제제, 제발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그렇게 알고 싶거든 아저씨에께 가
서 여쭈어봐. 나한테 복잡한 얘기는  묻지마. 제제, 너도 다른 애들처럼 행
동하렴. 말을 함부로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복잡한 생각으로 
너의  머리를 채우지는 말아. 그렇지 하지 않으면 너하고 다시는 같이 다니
지 않을 테니까."
  나는 기분이 나빠서 더  이상 형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노래도 부
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 속에서 노래를 부르던 작은 새가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또또까 형은 어떤 집을 가리켰다.
 "제제, 저 집이야. 어떠니?"
 내가 보기엔 아주 평범한 집이었다. 파란  창문이 있는 하얀 집이었다. 창
문들은 모두 잠겨져 있었으며 아주 조용한 집이었다.
 "마음에 들어,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로 이사를 해야 하지?"
 "이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란다."
 울타리 사이로 망고나무와 따마린드나무가 보였다.
 "넌 무슨 일이든 관심이 많고 눈치가  빠르니 우리 집의 사정을 잘 알겠지
? 아버지는 놀고 계시잖아? 아버지가 스코트월드씨와  싸우고 회사를 그만
둔 지가  벌써 6개월이 넘었단 말이야.  너는 라라  누나가  공장에서 일하
는 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또  엄마도 시내에 있는 영국인 방직공장에 다
닌다는 걸 모르고 있어. 안 그래? 이  바보야. 모두들 돈을 모아 새 집을 
마련하려고 그러는 거야.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벌써 8개월 치의 집세가 
밀려있단 말야. 하기야 넌 어려서 이런 슬픈 사정을  모를 거야. 하지만 난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성당에서 미사  돕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
아."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또또까 형, 검은 표범과 사자 두 마리도 이곳으로 가져올 거야?"
 "그럼, 가져오고 말고. 닭장을 옮겨올 사람이 이 형말고 또 누가 있니?"
 형은 나를 안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가 뜯어가지고 이곳에 다시 만들어줄게."
 나는 마음이 놓였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동생 루이스와 함께 놀 수  있는 
다른 놀이터를 짜야만 하기 때문이다.
 "제제, 이제 너와 내가 얼마나 친한 사인지 알겠지? 그러니  어떻게 그 일
을 해냈는지 나에게 알려 줄 수 있겠지?"
 "형, 난 정말 모르겠어. 맹세코 모른단 말야."
 "거짓말 하지마, 제제. 누군가가 네게 가르쳐주었을 거야."
  "정말 누구한테도 배운 일이 없어 형, 아무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 없다
니까. 만약 있다면 잔디라  누나가 말한 대로 나의 대부인 악마가 잠자는 
사이에 꿈을 통해서 가르쳐주었을 거야."

 또또까 형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내게  바른
대로 말하라고 내 머리에 알밤을 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무 얘기도 하
지 못했다.
 "혼자 힘으로 그런 걸 터득할 사람은 없는 거야."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도 그 일을 가르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였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집안 식구들이 온통  난리였다. 내가 딘디냐 할머니 댁
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던 에드문드 아저씨 곁에 앉아 있던 때부터 시작되었
다.
 "에드문드 아저씨!"
 "왜 그러니, 얘야?"
 아저씨의 안경이 다른 사람들처럼 콧등에 거려있었다.
 "아저씨께서는 언제 읽는 법을 배우셨나요?"
 "그건 왜? 아마 여섯 살인가 아니, 일곱 살쯤이었을 게다."
 "그럼 다섯 살에도 읽을 수 있나요?"
 "배우면 읽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배운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단다.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지."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글을 읽는 법을 배우셨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것처럼  글자  연습판을  놓고  배웠지. 가령 
B+A=BA가 된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누구든지 그렇게 해야 배우게 되나요?"
 "모르긴 해도 아마 그렇게들 배울 걸."
 "아저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
 아저씨는 약간 짜증이 나서 나를 쳐다 보셨다.
  "얘야, 제제. 모두들 그렇게 배워야 되는 거란다. 제제, 이제 신문 좀 읽
게 해주겠니? 뒷 뜰에 나가서 고야바 열매가 달려있는지 가보렴."
  아저씨는 안경을 다시  잘 쓰시고는 신문을 읽으려고  하셨다. 그러나 나
는 아저씨 옆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쳇! 속상해."
 어찌나 고함을 크게 질렀던지 치켜올린 안경이 다시 콧등으로 흘러내렸다.
  "아저씨! 신문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먼 이
곳까지 걸어왔단 말이에요."
 "꼭 할 얘기가 있다구? 그럼 어서 얘기를 해봐라."
  "싫어요. 우선 아저씨께서 언제 연금을 타게 되시는지 알고 말씀드리겠어
요."
 "내일 모레요! 왜?"
 아저씨는 슬쩍 바라보시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내일 모레면 무슨 요일인가요, 아저씨?"
 "금요일이다."
 "그럼 금요일날 시내에 가시면 <달빛>을 하나 사다 주실래요?"
 "<달빛>이라니? 제제, 도대체 그게 뭐냐?"
  "그것은 언젠가 영화에서 본 하얀  망아지에요. 그 하얀 망아지의 주인은 
후레드 톰슨이구요. 정말 잘 길들여진 망아지란 말이에요."
 "제제, 너는 그럼 바퀴가 달린 망아지를 사달라는 얘기냐?"
 "아니에요. 아저씨, 전 말고삐에 손잡이가  달리고 머리 부분이 까만 장난
감 망아지를 갖고 싶어요.  손잡이를 잡고 빨리 달릴 수  있는 것 말이에
요. 제가 이담에 커서 영화에 출련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하거든요."
 아저씨는 계속 웃고만 계신다.
  "알겠다,  알겠어.  그래  내가  그걸  사다 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테냐?"
 "사다 주시면 아저씨께 해드릴 일이 하나 있어요."
 "뽀뽀 말이냐?"
 "그것 말구요. 뽀뽀보다 더 좋은 거요."
 "그럼 뽀뽀가 아니면 껴안아 줄래?"
  금  말씀을 듣자  나는 에드문드 아저씨가 무척 불쌍해  보였다. 내 마음 
속의 작은 새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주 들어왔떤 이
야기인데 에드문드 아저씨는 아줌마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지만 서로 헤
어져 혼자 사시면서 자식들에 대한  외로움 때문에 천천히 걸어다니신다. 
그러한  아저씨의 속마음을 누가  알까. 그런데도 자식들은 한 번도 아저씨
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탁자를 돌아가 아저씨의  목을 꼬옥 껴안앗다. 에드문드 아저씨의 희
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스쳤다.
 "아저씨 지금  제가 한 일은 망아지를  사주시는데 대한 대가는 아니에요. 
 아저씨께 보여드리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글을 읽는 것을 보여드리겠어
요."
 "아니, 제제. 네가 글을 읽는다구? 아니 그게 정말이냐?"
 "도대체 누가 네게 글을 가르쳐주었니?"
 "아무도 제게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제제 너 아저씨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아저씨 곁을 나오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
 "만약 제가 금요일날 글을 읽지 못하면 망아지를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 때, 우리집은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회사에서 전기공급을 중단했
기 때문에 밤이 되면 잔디라 누나는 등불을  켰다. 누나가 등불을 켤 때면  
나는 <별> 표식이 되어 있는  신문을 보려고 
발돋움을  하곤  했다. 그 신문의 별표식 밑에는 집을 지켜달라는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잔디라 누나, 나 목마 좀 태워주지 않을래? 저걸 읽을 수 있도록......"
 "제제, 장난 하지마. 난 지금 바빠."
 "누나 나 좀 오려줘봐. 읽나 못 읽나 보면 알 거 아냐."
 "제제, 나한테 거짓말하면 혼날줄 알아!"
 그리고는 나를 목에 올려놓고 문 뒤로 바싹 다가서 주었다.
 "자, 이제 읽어봐. 못 읽으면 혼나?"
 나는 정확히 기도문을 읽었다.  그것은 집안을 보호하고 축복을 빌며 악령
을  몰아내달라는 축원문이다.
 잔디라 누나는 나를 땅에 내려 놓고 놀라서,
 "제제, 너 이걸 모두 외웠지? 지금 누나를 놀리고 있는 거지?"
 "누나, 나 정말 다 읽을 줄 안단 말야."
  "제제, 글은 누구나  배우지 않고는 읽지 못하는  거야. 에드문드 아저씨
가 가르쳐  줬니, 아니면 딘디냐 할머니가 가르쳐 줬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누나는  신문지 조각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것을 누나가 가리키는 대로 
읽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그러자 누나는 글로리아 누나를 불렀고 누
나는 흥분해서 알라이디를 불렀다. 그러자 금방 이웃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금 또또까 형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에드문드 아저씨가 네게  글을 가르쳐주고 나서 네가 잘  읽으면 망아지
를 사준다고 약속한 거지?"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내가 아저씨한테 물어볼 거야?"
  "그래.  가서 여쭈어봐.  형,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정말이야. 
내가 그걸  안다면 형한테 벌써 얘기했을 거야."
 "좋아, 두고 보자. 앞으로 뭘 해달라고 하기만 해봐라. 자 그만 가자."
 형은 화가 나서 나의 손을 잡아당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복수를 해줄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 바보야 잘됐다. 넌 너무 일찍 글을 배웠기 때문에 내년 2월에는 학교
에 가얌나 될 걸?"
  이 생각은 바로 잔디라  누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게 되면 오
전에는 집안이  항상 조용해질 테고 또 학교에 다니면 내가 얌전해지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리오  -- 상파울로> 도로변의  길 건너기 연습을 더 해보자. 학교에 갈 
때마다  보모처럼 따라 다니면서  길을 건네줄 수는 없지 않니. 넌 영리하
니까 무엇이나 알아서 잘 배우겠지만 말이야."

                  *             *            *

 "자! 이제, 망아지 여기 사왔다. 내게 보여준다는 거 보여주렴."
 아저씨는 신문을 펼치시고 어떤 약품광고 선전 구절을 지적하셨다.
 "이 약품은 약국이나 유사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
음."
  에드문드 아저씨는 깜짝 놀라시며 뒤뜰에 계시는 딘디냐 할머니를 부르셨
다.
 "어머니, 이 애는 약국이란 말까지 분명하게 읽었어요!"
 두 분은 내게 번갈아 읽을 것을 지적해주셨고 나는 모두 읽어 보였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세상이 뒤바뀌려는가 보다고 중얼거리셨다. 나는  에
드문드 아저씨를 또 한 번  껴안아드렸고 약속한 망아지를  얻었다. 아저씨
는 내 작은 턱을 어루만지시며 감격에  들뜬 목소리로,
 "오! 넌 정말 큰 인물이 되겠구나. 요 장난꾸러기야, 너를 제제(모세의 포
르뚜깔 말)라고 부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구나. 너는 우리를 아름답고 
환히 비춰줄 태양이나 별이 될 거야. 제제!"
 나는 아저씨의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형의 말대로 아저씨는 역시 얼
간이라고 생각했다.
  "제제, 넌 아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건 이집트의 요셉에 대한 
얘기야. 네가 좀 더 자라게되면 나의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나는 언제든지 이야기라면 미쳐있을  정도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일수
록 더욱 더  흥미가 있고 흥분이 되었다.
  나는 아저씨가 주신 내 망아지를 쓰다듬다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쭈어보
았다.
 "다음 주가 되면 아저씨는 제가 얼마나 자랐다고 생각하시겠어요?"

                               2 장

                    한 그루의 라임오렌지나무

  우리 집에서는 형제들이 각기 동생들 하나씩을 돌봐주고 있다. 잔디라 누
나는 글로리아 누나와 브라질 북부 어느 집에 양녀로 보낸누이를 돌보았다. 
안또니오(또또까  형의 본명)는 그 잔디라 누나의 귀염둥이였다. 라라 누나
는  나를  돌봐주었다. 누나는 나를 사랑하고 귀여워해 주었으나 통이 넓은 
바지와 짧은 저고리를 입은 멋진 애인이 생긴 뒤로는 내게 시들해졌는지 나
를 귀찮아했다. 누나는 그 짜리몽땅한 애인에게 와전히 빠져 있었다.
  우리는  일요일이면 역광장에 축구를 하려 가곤 했는데 그 애인은 나에게 
맛있는  사탕을  사주곤 했다. 그것은 아마 내 입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캐묻지 않는다면 들통이 날 
리 없기 때문이다.
 내 밑으로 두 명의 동생이 있었으나 어렸을 때 죽었단다. 그래서 얘기로만 
들었을 뿐이다. 얘기에 의하면 그 애들이 삐나제 족 인디안 이었다고 했다. 
둘  다 검고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여자애는 <아라끼>, 사내에는 
<쥬단디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에 태어난 막내 동생이 루이스이다. 
루이스를 가장 많이 돌봐준 것은 글로리아 누나였고 지금은 내가 돌보고 있
다.  사실 동생 루이스는 별로 보살펴줄 필요가 없다. 그 애는 너무나 예쁘
고 착하며, 조용한 아이였으니까......
  루이스는  말을 할 때에도 어찌나 깜찍하고 귀엽게 말하는지 밖에 나가서 
놀려고 하는 마음이 잊혀질 때도 있었다.
 "제제 형, 동물원 놀이 할래? 응? 오늘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잔아, 형?"
 루이스가 똑똑히 말을 하는 것은 곧 성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나를 따라오는 것이 귀찮을 땐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루이스! 너 미쳤니? 하늘을 보란 말야. 저기 폭풍이 오고 있잖아!......"
  나는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동생의 조그만 손을 잡고 뒷뜰에 있는 축대 
밑으로  갓다. 그곳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것은 동물원과 줄리뉴
씨 집 울타리 옆의 <유럽>이었다. 왜 유럽이라고 하는지는 내 마음 속의 작
은 새조차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빵 데 아수까리(리오에 있는 산이름 또는 설탕빵이라는 
뜻)  놀이를 한다. 단추에 실을 꿰어서 한쪽에 묶어 놓고 단추를 하나씩 천
천히  내려보대는 케이블카 놀이다. 우리는 케이블카인 단추 하나하나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려왔다가 다시 손의 놀림에 의해 올려가
곤 했다. 그 중에서도 단추가 까맣고 큰 케이블카는 비리낑뉴 전차같았다.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마다 뒷집 마당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건 흔한 
일이었다.
 "제제, 우리집 울타리를 망가뜨리려고 그러니?"
  "아녜요. 디메린다 아줌마. 괜찮아요. 저를 보세요. 동생과 놀고 있는 거
예요. 얌전하게요." 
 "그래, 착하구나. 동생하고 사이좋게 노는 것은 아주 착한 일이야."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대부인 악마가 장난치는 것보다 더 재밌는 일은 없
다고 나를 부추겼다.
 "아줌마, 올해도 작년 크리스마스 때처럼 달력을 또 주시겠어요?"
 "그걸로 무얼 하려고?"
 "빵바구니 위에 걸어두고 보려구요."
 "그래, 줄께."
  아줌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약속을 해주셨다. 아저씨는 <쉬꼬 프랑꼬>에서
식료품점을 하신다.
 또 하나의 장난감은 루씨아노였다.
 처음에 루이스는 그걸 몹시 무서워하며 내 바지를 잡아 끌면서 돌아가자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루씨아노는 내 친한 친구였다. 나를 보면 큰 소리로 
울어댔다.  글로리아 누나도 내 친구인 루씨아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박쥐를 흡혈귀이며 어린애의 피를 빨아먹는다고까지 했다.
  "누나  그렇지  않아.  루씨아노는  내  친구이고 또 나를 무척 좋아한단 
말야."
 누나에게 루씨아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넌 벌레나 무슨 물건들과 얘기를 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나에게  있어서 루씨아노는 <알폰소스>의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였
다.
 "저것 좀 봐라, 루이스!"
  루씨아노는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알아듣기라도 한듯이 행복하게 우
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루씨아노는 비행기야, 그리고 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당황했다. 아저씨께서 가르쳐주셨는데 잊어버렸
던  것이다.  극예라고 했는지 곡예라고 했는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 다시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쭤봐서 동생에게 바르게 가르쳐주기로 했다.
  루이스는 또 동물원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닭장 앞으로 갔다 그 
속에는  흰  암닭 두 마리가 닭장 안의 흙을 발로 파헤치고 있었다. 그러고 
너무  순해서 우리가 벼슬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는 검은 암닭 한 마리도 있
었다.
  "우선 입장권을 사도록 하자. 자! 루이시, 손을 잡아. 어린애드른 사람이 
많은 곳에선 잃어버리기 쉬우니 손을 꼭 잡고다녀야 돼. 일요일이면 이곳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동생 루이스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손을 잡았다. 매표소 앞에서 난 
배를 앞으로 불쑥 내밀며 매표원에게 물었다.
 "아저씨 몇 살까지 무료로 들어갈 수 있어요?"
 "음, 다섯살까지......"
 "그래요? 그럼 어른표 한 장 주세요."
 나는 표 대신 오렌지 나뭇잎 두 장을 따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루이스, 우선 멋있는 새부터 보여줄께. 앵무새, 멕시코산 무지개빛 앵무
새 그리고 야생하는 예쁘고 작은 새들이란다."
  루이스는 신기하고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우리는 여기저기를 구
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너무 자세히 살펴봐서 그런지 글로리아 누나와 라
라  누나가 둥근 의자에 앉아 오렌지를 까고 있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마
약 누나들이 그 얘기를 들었다면 이 동물원 놀이도 누군가가 볼기짝을 맞는 
것으로 끝나게 될 거야. 그 누군가란 바로 나겠지만.
 "제제 형, 이젠 뭘 구경할 거야?"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새로운 행동을 취했다.
  "자, 이젠 원숭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에드문드 아저씨는 늘 고릴라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바나나 몇 개를 사서 원숭이에게 던져 주었다. 원숭이나 짐승들에
게  먹이를 던져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
에서 경비원이 볼 수 있을라구.
  "루이스!  너무 가까이 가지마. 원숭이들이 네게 바나나 껍질을 던질질도 
몰라."
 "형! 난 사자가 보고 싶어."
 "그럼 그럼 그리고 가자."
 두 마리의 원숭이가 오렌지를 까먹고 있는 것을 보며 걸었다. 누나들의 이
야기 소리가 그곳까지 들렸다.
 "루이스, 다 왔다."
  나는  아프리카 종인 털이 누런 두 마리의 사자를 가리켰다. 그때 동생이 
검은 표범의 머리를 만지려고 했다.
 "루이스! 무슨 짓이야? 그 검은 표범은 이 동물원에서 가장 사나워. 그 표
범은 써커스단 사육사의 팔을 열여덟 개나 먹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루이스는 놀라서 팔을 얼른 뺐다.
 "형! 저 표범이 써커스단에서 온 거야?"
 "그렇단다."
 "제제 형, 무슨 써커스단인데?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나는 대답할 써커스단의 이름을 생각해봤다. 무슨 써커스단이었더라?
 "아! 생각이 났어. <로젠버그 써커스> 단이야, 루이스!"
 "형! 그건 빵집 이름이잖아?"
 '요녀석이 이젠 제법 영리해져서 속이기가 힘드는 걸.'
 "아니 그건 다른 거야. 그런 이름의 써커스단도 있단 말이야. 자, 이젠 많
이 걸어 다녔으니 뭘 좀 먹자, 루이스!"
 우리는 앉아서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누나들이 얘기하는 데 
가있었다.
 "라라! 우리가 제제를 이해해야 돼. 저렇게 동생과 잘 놀아주고 있잖니."
 "언니, 그렇긴 해. 하지만 제제처럼 장난이 심한 애는 보기드물정도야."
 "그 애 피속에 악마가 있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 그러나 참 이상해. 그
토록 장난꾸러기인데도 동네에선 그 애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잖아?"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는 날이 없지만 차츰 철들 날이 있겠지."
  나는 감사의 눈길을 글로리아 누나에게 보냈다. 누나는 항상 내편에서 도
와  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누나에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얘! 라라,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 저 애들이 너무 조용한 게 수상해."
  누나는  벌써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내가 돌담을 타고 셀리나 아줌마댁의 
?뜰에까지 간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긴 빨래줄에 수많은 팔과 다리들
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나는 아주 신기했다. 그러자 내 마음 
속의  악마가  발래줄에 있는 팔과 다리를 떨어뜨려 보라고 충동질을 했다. 
내 생각에도 그렇게 하면 무척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담 밑에서 아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주워가지고 오렌지나무 위로 올라가 나무에 매여있는 
빨래줄을 끊었다. 하마터면 나도 떨어질 뻔했다. 그때 큰 소리가 나고 사람
들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도와 주세요. 빨래줄이 끊어졌어요."
 그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빨래줄을 끊은 녀석은 바로 빠울로 씨 아들놈의 짓이예요. 그 녀석이 유
리조각을 주워 가지고 오렌지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똑똑히 봤어요."
 
 "제제 형."
 "왜 그러니? 루이스."
 "형은 어떻게 동물원에 관해서 그렇게 아는 것이 많아?"
 "응, 그건 여러 번 가봤기 때문이야."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모두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들은 이야기들이
었다. 아저씨는 나와 함께 동물원 구경을 가자고 약속도 했었다. 하지만 에
드문드  아저씨는 걸음이 너무 느리시고 동물원에 도착하면 우리가 볼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형은 전에 아버지와 같이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원은 <이자벨>시에 있는 바랑남작 거리에 있어. 
그곳을 넌 모르지? 모르는 건 당연해. 그런 것을 알기엔 아직 어리니까. 바
랑남작같은  분은 분명히 하느님의 친구였을 거야. 왜냐하면 하느님이 동믈
의  짝을 지어주실 때 도와주었나 봐. 그러니까 동물원도 만들었겠지. 그리
고 네가 조금만 더 크면......"
 누나들은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형 내가 더 크면 뭐가 어떻다고?"
  "이 녀석, 귀찮게 묻는군. 네가 조금 더 크면 동물원에 가서 동물의 수를 
세는  법도 가르쳐주겠단 말이야. 20까지 셀 수도 있도록. 이십에서 이십오
까지는 암소, 황소, 곰, 사슴, 호랑이가 있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있는 장
소는 잘 모르거든. 네게 정확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래."
  이제 동생 루이스는 동물원 놀이에 싫증이 났나 보다.
 "제제 형! <작은 오두막집>이란 노래 좀 불러줘."
 "여기 동물원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아니야, 사람들이 이젠 별로 없어."
 "루이스, 그 노래는 너무 길어서 네가 좋아하는 데만 부를께. 좋아하는 곳
이 매미가 나오는 부분이지?"
 나는 가슴을 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는 아는가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곳은 과수원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높은 산 언덕이 있어
 저멀리 바다가 보이지요.

 난 여기서 많은 귀절을 건너 뛰었다.

 가는 야자수 사이에서
 매미들은 즐겁게 노래하지요.
 황금빛 태양이 서산에 질 무렵
 처마끝 밑으로 긴 지평선이 보이지요.
 정원에서 분수가 노래하고
 분수가의 한 마리 검은 새가 노래 부르지요......

 나는 노래를 끝냈다. 그때까지 누나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누나들이 지칠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
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오두막집의 노래를 끝까지 빼놓지않고 모
두 불렀고 또 다시 한 번 부르고 나서 <사랑스러운 그대 여행자여>와 <라모
나>라는 노래까지 불러댔다. 라모나를 부를 땐 두 절에다 다른 가사까지 만
들어  부르고 나니 그 다음이 생각나질 않아 노래가 끊겼다. 눈앞이 깜깜해
오는  것 같다. 결국 오늘도 매를 맞을 것이 뻔했다. 할 수 없이 누나가 있
는 곳으로 갔다.
 "자...... 라라 누나, 각오가 됐으니 때려."
  나는  누나에게 등을 돌렸다. 누나는 너무 세게 때리기 때문에 참기 위해 
이를 꽉 물고 있었다.

               *                  *                *

 엄마는 한 가지 제안을 내셨다.
 "오늘은 모두 새 집을 보러가자."
 또또까 형은 나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소근거렸다.
  "너,  나하고  새  집에  갔었다고  말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혼날 줄 
알아."
 그러나 난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를 않았었다.
  엄마와 우리들은 새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손을 꼭 
잡고  식구들과 떨어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한 손으로 루이스
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엄마, 새 집으로 이사는 언제 해요?"
 엄마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글로리아 누나에게 대답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후에 이삿짐을 꾸려야 해."
  엄마는 피로에 지친 목소리로 대답을 하셨다. 나는 엄마가 불쌍하게 보였
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공장에 나가 일만 하셨는데 엄마가 너무 어리고 작
았기  때문에 청소를 할 때 책상을 닦으려면 그 위에 올라가서 닦으셨단다. 
엄마는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고 그래서 엄마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신단다. 
나는 그 얘길 들을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나 척
척박사가 되면 엄마에게 나의 시를 읽어드?다고 맹세했었다.
  거리의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창 돋구고 있었다. 모든 상점들의 
진열장에는 산타클로스로 장식이 되었다. 그리고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카드
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하나님의 
착한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해야겠다. 앞으로 좀 더 크고 철이 
들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이제 다 왔다."
 엄마의 말씀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집은 좀 작은 편이다. 또또까형은 엄마
가  잠가놓은  철사줄을 푸는 것을 도왔다. 글로리아 누나는 몸을 흔들면서 
집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망고나무를 껴안았다.
 "이 망고나무는 내꺼야. 내가 제일 먼저 잡았으니까."
 또또까 형도 나무 한 그루를 잡고 역시 누나와 같은 말을 했다. 나를 위한 
나의 나무는 없었다. 나는 속이 상해 글로리아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누나."
 "저기 뒤쪽으로 가봐. 그곳에 나무가 더 있을 거야. 요 바보야!"
  누나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았으나 나무는 없고 풀만 무성했다. 그리고 
가시가  많이 달린 늙은 오렌지나무와 담장 옆 조그마한 라임오렌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보로통해서 돌아와보니, 식구들은 집안을 둘러보며 각기 자기 방을 
정하느라 야단이었다.
 난 글로리아 누나를 잡아끌어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없잖아 누나?"
 "넌 잘 찾지를 못해서 그래. 내가 가서 찾아줄 테니 기다려."
 난 누나를 따라갔다 .그곳에서 오렌지나무를 훑어보았다.
 "제제, 넌 저 나무가 마음에 안 드니? 얼마나 멋지니?"
  그러나 멋진 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무마다 날카로운 가시들만 잔
뜩 돋아나 있고...... 모두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가시 많은 나무보다는 차라리 꼬마 오렌지나무를 가질 테야."
 "그 라임오렌지나무가 어디 있니?"
 누나와 나는 오렌지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쩜 정말 예쁜 오렌지나무로구나. 멀리서 봐도 금방 라임오렌지나무라는 
걸  알겠다.  누나가  너만한  나이라면  다른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겠다, 
제제."
 "그렇지만 나는 아주 큰 나무가 좋은걸?"
  "제제,  잘 생각해 보렴. 저 나무는 지금은 너와 함께 자리는 거야. 그럼 
너희는  장차 한 형제처럼 지내게 될 지 아냐. 제제, 저 나뭇가지들 좀 봐. 
마치 네가 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망아지같이 보이는구나!"
  나는  이 셋상 무엇보다도 가장 초라하고 운이 없는 짓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  문득  스코틀랜드 술병의 천사 그림이 생각났다. 그때도 라라 누나는 
이건 내 것하며 차지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글로리아  누나는 다른 것을 찾아 내었다. 그러자 또또까 형도 자기 것을 
찾아 골랐다. 그런데 난 뭐야? 왜 난 맨 꼴찌이어야만 하지? 날개도 떨어져 
나가 머리만 남아 있는 네번째 천사가 내 것이람? 어디 두고 보자. 내가 크
면  아마존의 정글과 밀림 속의 큰 나무는 내 것으로 만들 테야. 그리고 가
게도 하나 사서 그 안에 천사가 그려진 술병으로 가득 채울 거야. 아무에게
도 주지 않을 거야.
 나는 잔뜩 심술이 나서 오렌지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마음을 달랬다.
 "제제, 좀 있으면 이 누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풀릴거야."
 글로리아 누나는 씩 웃더니 가버렸다.
 나뭇가지로 땅을 헤집고 있자니 차츰 울적함이 풀어져 갔다. 그때 내 마음 
속 어디선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의 누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그래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틀리고 다른 사람은 모두 옳지."
 "그렇지는 않아. 네가 날 자?히 살펴보면 달라질 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린 오렌지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모든 것들과 특히 나무하고도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고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글너 나의 이상한 행동들이 모두 내 
마음 속에 있는 작은 새가 옮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야, 바로 네가 말을 하고 있는 거니?"
 "그래, 듣고 있는 것도 나야."
  그리고 나무는 조용히 웃었다. 난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치며 뛰쳐나
갈 뻔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대로 있었다.
 "나무야! 도대체 넌 어디로 말을 하니?"
 "나무는 몸 전체로 말을 해. 잎, 가지와 그리고 뿌리로도 한단다. 들어 볼
래? 네 귀를 나의 몸에 대봐. 그러면 내 가슴이 뛰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나무가 어리고 작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어 귀를 
나무에 대어보니 그 속에서 뭔가 툭 --- 툭 하는 소리가 정말 들려왔다.
 "제제, 들었지?"
 "나무야, 한 가지만 물어볼께. 누구든지 너와 말할 수 있니?"
 "아니야, 제제. 너하고 뿐이야."
 "정말이니?"
 "맹세할 수 있어. 어떤 요정이 나에게 너와 같이 조그만 아이의 친구가 되
면 말을 하게 되고 또 행복해지게 된다고 말했어."
 "나무야. 나를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기다리다니? 뭘?"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려면 일주일 정도 있어야 해. 그때까지 말하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어?"
 "그래, 절대로 잊지 않을께. 너를 위해. 내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볼래? 제
제?"
 "어떻게?"
 "그럼 내 가지에 올라타봐."
 나는 나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자, 됐어. 가지를 흔들면서 눈을 감아봐."
 나는 역시 시키는 대로 했다.
 "제제, 어떠니? 기분이 아주 좋지? 이처럼 좋은 망아지를 가져본적이 있니
?"
  "없었어. 아주 훌륭해. 내 달빛 망아지는 동생 루이스에게 줄 거야. 아마
너도 그 녀석을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오렌지나무를 쓰다듬으며 내려왔다.
  "가야해! 거리고 이사 오기 전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또 올께. 이제 난 가
봐야해. 식구들이 저기 나오고 있잖아?"
 "친구야! 이렇게 헤어지긴 싫은데?"
 "쉿! 저기 글로리아 누나가 온다."
 내가 나무를 껴안고 작별을 하고 있을 때 누나가 다가왔다.
 "잘있어, 친구야!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무야."
 "제제, 내가 말했지?"
  "누나 말이 맞았어. 이젠 누나와 나무와 형의 나무랑 바꾸자고 사정을 해
도 바꾸지 않을 거야."
 누나는 나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오! 귀여운 머리. 귀여운 녀석!"
 누나와 나는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왔다.
 "누나! 누나의 나무는 좀 바보 같지 않아?"
 "글쎄, 약간 그런것 같긴 한데."
 "그럼 또또까 형의 나무는 어??"
 "그건 아마 쓸모가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왜 묻니, 제제?"
  "지금 당장은 얘기해줄 수 없어도 언젠가는 누나에게만 나의 기적을 말해
줄 거야."

                              3 장

                     가난으로 찌든 손가락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나의 걱정들을 얘기했을 때 아저씨는 퍽 진지하
게 대해 주셨다.
 "네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거냐?"
  "그래요,  아저씨.  이사할  때  루씨아노가  함께 가지 않을까봐 걱정이 
돼요."
 "제제, 넌 그 박쥐가 너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니?"
 "그럼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니? 진심으로?"
 "물론이죠. 틀림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그 박쥐는 꼭 함께 갈 거야. 좀 늦을지는 몰라도 얼마 후
엔 꼭 너의 이사한 집을 찾아갈 거야."
 "난 벌써 박쥐에게 우리가 이사할 집의 주소를 가르쳐주었어요."
 "잘했구나. 그렇다면 더욱 찾아가기 쉽겠지만 만약 가지 못한다면 그건 다
른  약속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때는 가지 형제나 친척들을 보내게 될 거
야. 그래도 너는 다른 박쥐란 걸 눈치채지 못할거야."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된다. 루씨아노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면 주소를 가르
쳐주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작은 새들이나 사마귀나 나비에게 물어서 
온다면 참 좋으련만......
 "제제, 걱정하지 마라. 박쥐에게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단다."
 "네? 뭐가 있다구요?"
  아저씨가 방향감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주셨을 때 나는 아저씨의 지
식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나의 고민거리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
가  이사가게  된다는 사실을 이웃들에게 얘기를 해 주려고 거리로 나왔다. 
어른들은 모두들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제제, 너의 집 이사한다면서? 잘 된 일이구나. 넌 참 좋겠구나, 응?"
 그런데 기뻐하지 않는 한 사람은 비리낑뉴였다.
 "제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자주 놀러오고 사이좋게 지내자꾸나. 
그리고 참! 내가 말했던 얘기 생각해 봤니?"
 "그게 언제라고 했지? 비리낑뉴?"
  "내일 오전 8시에 <방구>시내 오락장 앞에서야.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
으니 주인이 장난감을 한 트럭 사오라고 했다는 거야. 너도 함께 갈래?"
 "루이스를 데리고 갈께. 그런데 나도 얻을 수 있을까?"
 "그럼! 네가 벌써 어른이 된 줄 아니? 요 꼬마녀석아?"
 그가 내 곁에 다가왔을 때 나는 아직도 어리고 작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
다. 그것도 비리낑뉴보다도 훨씬 작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얻을 수 있을까? 얻고 싶어. 그럼 내일 아침에 거기서 만나자."
 나는 집에 돌아와 글로리아 누나 곁에서 맴돌았다.
 "제제, 너 무슨 일이니?"
  "누나! 내일 아침에 루이스와 나를 시내에 있는 <방구> 오락실 앞까지 좀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장난감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온대."
  "제제, 누나는 내일 너무도 할 일이 많아. 옷도 다려야 하고 이삿짐을 꾸
리는 잔디라 언니도 도와야 하고 또 밥도 지어야 하고......"
 "<레알렝고> 시에서 사관생도들이 많이 온대."
  글로리아  누나는 루디라고 부르는 영화배우인 루돌프 발렌티노의 사진을 
사진첩에 모으는 것 외에도 사관생도라면 무작정 좋아하는 버릇이 있다.
  "아침  일찍 사관생도들이 오는 걸 어디서 봤니? 이 뚱딴지 같은 녀석아. 
까불지 말고 나가서 놀기나 해."
 누나는 때리기라도 하려는 기세로 나왔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누나! 난 괜찮아. 하지만 루이스에게 데리고 가겠다고 벌써 약속을 했단 
말야.  루이스는 아직 어리?아. 그만한 또래의 애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생
각만 한단 말이야."
  "이 녀석아, 내가 못간다고 몇 번이나 말했니? 그리고 네 말은 모두 핑계
야.  네 녀석이 가고 싶으니 그러는 거지? 살아가노라면 크리스마스는 매년 
있는 거야."
  "누나! 내가 만일 죽는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지 못하고 죽어버
린다면 어떻게 해?"
  "넌 일직 죽지 않아. 아마 모르긴 해도 에드문드 아저씨나 베네디뚜 씨의 
두배는 더 살 걸. 자, 이제 그만 귀찮게 하고 나가서 놀아, 응?"
  그래도  나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누나를 귀찮게 했다. 
누나가  일어서면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애
원하는  듯한  눈은 누나에게선 언제나 좋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의자에  계속  앉아 누나가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 것을 보고 있었으며, 또 
방으로  빨래감을  가지러 들어오면 침대에서 턱을 받치고 누나를 바라보았
다. 견디다 못한 누나가 폭발하고 말았다.
 "제제, 너 몇 번이나 얘기해야 말을 듣겠니?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나
가서 놀기나 해."
  누나의 호통에도 난 그대로 버티고 앉아 있었다. 누나가 어떻게 나오더라
도 나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기 때문에 꼼짝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누
나는  나를  번쩍 안아서 문 밖으로 나가 뒤뜰에 내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과 문들을 모두 잠가버렸다.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집안 이쪽저쪽을 돌
아다니며  창문으로 누나를 쫓아다니며 쳐다보았다. 그때 먼지를 털고 방을 
정리하던  누나가 나를 보자 이번엔 창문마저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안쪽에
서  창문을 모조리 잠가버렸다. 이제 창문이란 창문은 열려 있는 곳이 없었
다.
  "야, 이 악마야! 털이 빠진 러시아 고양이야! 넌 사관생도한테 절대 시집
가지  못할 걸. 난 네가 가죽 장화도 닦아 신을 여유가 없는 쫄병한테 시집
가길 빌겠어."
  공연히  시간만 버린 것 같아 난 한 마디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와 놀기로 
했다.  길거리에 나오니 나르디뇨가 웅크리고 앉아 넋이 나간 듯 뭔가를 들
여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처음 보는 큰 딱정벌레가 성냥갑속으로 만
든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와!"
 "굉장히 크지? 어때?"
 "나랑 바꾸자."
 "뭐하고?"
 "나한테 그림딱지가 있는데 그것하고."
 "몇 장하고?"
 "두 장하고."
 "제제, 이렇게 큰 딱정벌레와 겨우 딱지 두 장하고 바꿔?"
 "그까짓 딱정벌레는 에드문드 아저씨 담벽에도 많아."
 "그럼 세 장하고 바꾸자."
 "그래, 그 대신 고르면 안 된다."
 "그건 싫어. 두 장 정도는 골라 가져야지."
 "좋아."
 내게 <라우라 라 블란따>는 여러 장 있어서 그걸 한 장 주고 나머지는 <후
드 깊슨>과 <퍼스머 루스밀러>를 골라 가져갔다. 난 딱정벌레를 호주머니에 
넣고 그곳을 떠나왔다.
 
                   *             *             *

 "빨리 해, 루이스!"
  글로리아 누나는 빵을 사러 가게에 갔고 잔디라 누나는 의자에서 책을 읽
고 있었다. 난 루이스가 오줌누는 것을 거들어주고 나서, 우물가로 가서 우
리는 세수를 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루이스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
을  신겨주었다. 그리고 단추를 채워주고 빗을 찾아 머리도 예쁘게 빗겨 주
려  했으나 머리는 차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생각 끝에 포마드를 바르
려고 했으나 끝내 포마드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부엌에 가서 돼지기름을 조
금 손에 묻혀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약간 냄새가 나긴 해도 괜찮구나."
 루이스의 머리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니 머리는 아주 단정해서 머
리통이 등에 양텅을 뒤집어 쓴 성 조앙같이 보였다.
 "루이스! 머리 헝클어지지 않게 가만히 있어. 나도 옷을 갈아입을께."
 바지와 하얀 셔츠를 입는 동안에도 나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이스! 정말 귀엽고 예쁘구나. <방구> 시에서 아마 너만큼 예쁜 애는 없
을 거야."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다음 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신어야 할 운동화를 
신으면서도 동생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깜찍하고 예뻤기 때문에 마치 어릴 때의 소년 예수처럼 보였다. 루
이스는  선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동생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틀림없
이......  글로리아 누나는 식탁에서 상을 차리고 있나 보다. 빵을 사온 날
에는 포장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난 루이스의 손을 잡고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 루이스 아주 예쁘지? 내가 해 줬어."
  난 누나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아무 말없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볼 뿐
이었다. 누나가 고개를 내렸을 때 두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제제, 너도 아주 예쁜걸."
 누나는 무릎을 굽혀 나의 머리를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오! 산다는 것이 우리에겐 왜 이토록 힘이 드는 걸까?"
 누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들의 옷매무새를 다정스럽게 고쳐주었다.
 "난 너희들을 시내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제
제.  누난 할 일이 많아. 우선 식사를 해. 그리고 생각을 해 보자. 나는 같
이 가고 싶어도 몸치장 할 시간이 없어."
  누나는  커피가 담긴 손잡이가 있는 컵을 앞에 갖다논 다음 빵을 썰었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까짓 좋지도 않은 장난감을 얻으려고 저렇게 애를 쓰다니, 그리고 그들
은 가난뱅이에게 골고루 장난감을 나누어줄 수도 없을 텐데......"
 누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래, 이러한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몰라. 너희들이 간다고 하니 말릴 
수도 없고. 그러나 어떻게 하지?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너희들만 보낼 수도 
없고......"
 "누나! 걱정마, 내가 데리고 갈께. 손을 꼭 잡고 가면 되잖아. <리오-상파
울로>의 건널목을 건너지 않아도 되니까."
 "제제, 그래도 위험해."
 "괜찮아, 누나. 난 방향감각이 있거든."
 "누구에게 그런 말을 배웠니?"
  "에드문드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루씨아노는 그런 감각이 있대. 난 루씨아
노보다 크니까 감각이 더 많을 거 아냐?"
 "그렇다면 잔디라 언니에게 말해 볼까?"
 "그냥 나둬. 잔디라 누나는 책이나 읽고 애인이나 생각하며 아무것도 상관
하려고 하지 않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서 그 쪽으로 가는 사
람이 있으면 너희들을 데리가 달라고 부탁할께......"
 나는 늦을까봐 방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누나를 따라 밖에 나가 기다렸지
만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시간만 흘러갔다. 그때 한 사람이 지나갔
다.  우체부 빠이샤 아저씨다. 아저씨는 모자를 벗어 흔들어 보이며 누나에
게 인사를 했다. 글로리아 누나는 아저씨에게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아저씨는 누나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누나는 동생과 나에게 차례로 볼에 키스해 주며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웃
으며 말했다.
 "요 녀석아! 머리가 벗겨진 군인과 가죽구두가 어떻다고?"
  "누나, 그건 농담이야. 누나는 꼭 어깨에 별이 여러 개 달린 공군과 결혼
하게 될 거야."
 "제제, 그런데 왜 또또까 형과 같이 가지 않니?"
 "또또까 형은 가시 싫대. 우리와 같이 가는 게 귀찮아서겠지 뭐."
  우리는 길을 떠났다. 우체부 아저씨는 앞서 가면서 집집마다 우편물을 나
눠주며  가셨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이 가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 <리오-상
파울로> 거리에 다다르자 아저씨는 웃으시며 말했다.
 "제제, 난 너무 바빠서 안 되겠구나. 너희들 때문에 아저씨의 일이 늦어져
요. 이제 위험한 곳은 없으니 너희들끼리 저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리고는 우편가방을 메고 급히 가버렸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화가 났
다.
  "바보 고양이 같은 녀석! 누나에게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길거리에 애들을 버리고 그냥 가다니."
 나는 할 수 엇이 동생의 손을 꼭 쥐고 걸어갔다. 나의 걸음도 점점 느려지
기 시작했고 동생은 벌써부터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루이스, 힘을 내. 다 왔어. 그곳에는 장난감이 많아."
 그 말을 듣고 걸음이 조금 빨라지더니 다시 처지기 시작했다. 
 "형! 다리 아파."
 "그럼, 내가 조금만 업어 줄까?"
 루이스는 팔을 벌려 나의 등에 업혔다. 그애는 마치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쁘로그레수> 거리에 오자 나도 헐떡거리기 시작해서 루이스를 내려서 걷게 
했다.
 "루이스, 조금만 걸어가."
 그때 교회의 종소리는 8시를 알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곳에 일곱시 반까지는 가야 했는데, 하지만 트럭에 가득 싣
고 온다고 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거야."
 "형, 이제 발이 아파."
 나는 동생의 발을 내려다 보았다.
 "신발 끈을 조금 느슨하게 해 보자."
  동생과 나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만 갔다. 한참만에야 겨우 시장근처에 다
다랐고  또  한참 후에 국민학교 앞을 지나 <방구> 오락장을 돌아서 도착했
다.
  동생과 내가 기진맥진하여 그곳에 도착하니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모두 자리를 떠난 후였다. 장난감을 쌌던 구겨진 포장지만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꼬끼뉴 아저씨! 벌써 선물을 나누어줬나요?"
 "그래, 다 끝났다. 제제, 네가 너무 늦게 왔구나. 사람들이 홍수처럼 몰렸
었는데......"
 아저씨는 문을 반쯤 내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내 조카들에게 줄 것도 남기지 못했는걸."
 아저씨는 문을 마저 닫고 길거리로 나왔다.
 "제제,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음엔 조금 서둘러서 오도록 해라. 일찍 일어
나서 말야, 알겠니?"
 "염려마세요, 아저씨."
  나는 아저씨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실망이 컸으며 속았다는 
기분에 슬펐으며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루이스, 여기 좀 앉아서 쉬어가자."
 "형, 목말라."
  "루이스,  로젠버그  아저씨  가게에서  물을  한  컵  달래서 둘이 함께 
마시자."
 그때서야 루이스는 비극을 눈치챈 듯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더니 눈을 
하얗게 뜨고 나를 흘겨보면서 입을 불쑥 내밀어 보였다.
  "루이스!  걱정하지마, 너 내 달빛 망아지 봤지? 또또까 형에게 손잡이를 
고쳐달라고 해서 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께. 응?"
 동생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루이스, 울지마. 넌 왕이야. 아버지가 네게 루이스라고 세례명을 주신 건 
루이스가  왕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야. 왕이 길가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면 되겠니?"
 나는 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루이스, 내가 이 다음에 크면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의 자동차와 같은 아
주 멋진 차를 사줄께. 아니, 그보다 멋진 걸로 사줄 테니까 너 혼자만 갖도
록 해, 응? 자, 이젠 울지마. 왕들은 울지 않는 거야."
 내 가슴은 슬픔과 쓰라림으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꼭 사준다고 약속할께. 사람을 죽인다거나 훔치지 않고 말야."
  지금  하는 내 말은 진실한 마음이 하는 소리였지 결코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새의 소리가 아니었다.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 어째서 착한 아기예수는 나를 싫어하지? 외양간
의  황소나 당나귀 새끼까지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는 걸까? 그는 내가 
악마와 같은 어린애라서 내 동생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걸까? 만약 벌을 주
는 거라면 이렇게 천사와 같이 착한 내 동생에겐 옳지 않은 일이야. 하늘에 
사는  천사들도 우리 루이스처럼 착하지는 않을걸......' 그런 생각을 하자 
바보처럼 눈물을 흘러내렸다.
 "형, 왜 울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흘리는 거야. 난 너처럼 왕도 아니잖아. 난 아무
데도 쓸데없는 나쁜 애, 그리고 못된 애,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야."

                 *             *             *

 "또또까 형, 새 집에 또 가본 적이 있어?"
 "아니, 가본 적 없어, 넌?"
 "난 틈만 있으면 자주 가."
 "그건 왜?"
 "밍기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야."
 "밍기뉴란 또 어떤 악마지?"
 "그건 내 라임오렌지나무야."
 "썩 좋은 이름이구나! 너는 그런 생각을 해내는 데는 아주 천재야."
 형은 빙그레 웃으면서 나의 달빛 망아지를 상상해 보는가 보다.
 "그래 그 나무는 어떠니?"
 "좀처럼 자리지 않는 것 같아."
  "제제, 아무 때나 늘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자라지 않는 것 같은 거야. 
그리고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없어. 어때, 이 손잡이가 네가 바라는 손잡이
로 됐지?"
 또또까 형은 달빛 망아지를 들어보였다.
  "그래  형! 형은 어떻게 뭐든지 그렇게 잘 만들지? 닭장, 새장, 울타리와 
문짝까지 말야."
  "제제, 그건 모든 사람이 다 나비넥타이를 맨 시인이나 박사가 되려고 태
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배울 생각이 있으면 배울 수 있
어."
 "형, 난 못할 거야. 그런 걸 잘 하려면 소질이 있어야 되잖아."
  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에드문드 아저씨의 말씀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엌에서는  딘디냐 할머니께서 포도주에 적신 식빵을 만들고 계셨다. 그 
빵은 크리스마스 만찬에 쓸 것인데 우리집은 그게 고작이었다. 나는 또또까 
형에게 불평을 해댔다.
  "제제,  그것마저 없을 뻔했어. 내일 점심에 과일사라다를 만들어 주도록 
돈을 주신 분도 바로 에드문드 아저씨란 말이야." 
  또또까 형은 오락장 앞에서 루이스와 내가 겪었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
인지 열심히 내 일을 해 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적어도 루이스만은 내
가  쓰던 낡은 것이지만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제일 아
끼고 사랑했던 달빛 망아지를 말이다.
 "또또까 형!"
 "응?"
 "크리스마스 날 정말 우린 선물을 받지 못할까?"
 "아마 못 받게 될 거야."
  "솔직하게  말 좀 해봐, 형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나를 아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나쁜 애는 아니야. 문제는 네 핏속에 악마의 기질을 다분히 갖고 
있다는 것이야."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엔 그 악마가 나가 주었으면 좋겠어.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지금의 악마 소년에서 착한 아기예수가 내 마음속에 태어났
으면 해. 그렇게 기도할 거야."
 "제제, 혹시 아니. 내년에라도 태어날는지.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
고 나처럼만 해봐."
 "어떻게 형?"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를 않잖아. 그래야만 기분도 상하지 않는거야. 아기
예수도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 그리 좋은 애는 아니야. 신부님도 천주교리가 
가르치는 대로 꼭 실천하시지는 않잖아?"
  형은 말을 잠깐 멈추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해야 좋을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형, 무슨 소리야?"
  "좋아, 말하지. 너는 장난꾸러기라서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하자. 그렇지
만 루이스는 어떻지?"
 "루이스는 천사같은 애야."
 "그럼 글로리아 누나는 어떠니?"
 "누나도 마찬가지야."
 "음...... 형은 가끔 내 물건을 빼앗아 가긴 해도 착한 편이야."
 "그리고 잔디라 누나는?"
 "그저 그런 편이야. 나쁘진 않아."
 "그래? 도 라라 누나는 어떠니?"
  "때릴 땐 아주 아프게 때리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 언젠가는 내 나비넥타
이를 만들어 줄 거야."
 "또 엄마는?"
  "엄마는 너무 좋아. 나를 때릴 때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프지 않
게 살살 때리시거든."
 "아빠는 어떻구?"
  "아빠에  대해선 잘 모르겠는데. 아빠는 운이 없는 분 같아. 나처럼 우리 
식구들 중에서는 악마같은 사람일지도 몰라도."
  "그렇다면  네 말처럼 우리 식구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왜 
아기예수는 우리 식구에서 잘 해주지 않느냐 말야. 화울라베르 박사집에 가
봐.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이 있어. 빌라보아스댁도 그렇고 라이문드 빼
즈 댁은 말할 것도 없어."
 난생 처음 또또까 형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기예수는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만 
태어났다고  생각해.  조금 자란 소년예수는 부자들만을 소용있는 사람들로 
보았던  거야. 제제,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 두자. 이런 말을 하면 죄가 된
데."
 형은 풀이 죽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망아지만 쓰
다듬고 있었다.

                 *                *                *

 그날, 우리 식구들로서는 얼마나 가슴 아픈 만찬이었는지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울적한 성탄의 만찬을 대하고 있었다. 축복을 알리며 제야의 종
소리가  들려올  때 모두들 말없이 식사를 했고 아빠는 면도조차 하지 않은 
채로 새벽 미사에도 참석치 않으셨고 식빵을 조금 맛보는 정도이셨다. 더욱 
슬펐던  것은 아무도 얘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
기예수의 축복된 탄생이 흡사 우리집에서는 추도식같은 분위기로 감돌았다.
  아빠는 모자를 집어들고 말도 없이 슬리퍼를 신으신 채 나가버리셨다. 아
빠가 왜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셨는지 알 것 같다.
 딘디냐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돌아가
자고  말씀하셨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또또까 형과 나의 손에 500레이스 짜
리 은화를 쥐어 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마 돈을 더 주고 싶으나 
돈이 없으셨거나 아니면 아저씨의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던 돈이었는
지도  몰랐다. 난 아저씨를 껴안아드렸다. 그것이 성탄절 밤의 유일한 포옹
이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버리셨다. 아마 방에서 혼자 울고 계시겠지. 
식구들  모두가 울적하고 슬픈 표정들이었다. 라라 누나는 에드문드 아저씨
와  딘디냐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두 분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서 중얼거렸다.
  "딘디냐 할머니와 아저씨께서는 너무 늙으셔서인지 만사에 지쳐버리신 것 
같아."
  깊어가는 성탄절의 밤에 교회에 종소리가 멀리 울려퍼지고 밤하늘을 꽃으
로  수놓는 폭죽은 성탄을 축복하는 이웃들에게는 행복한 밤이 되었지만 우
리집 식구들에겐 가장 슬펐던 밤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글로리아 누나와 잔디라 누나는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누나들은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애써 보
이지 않으려 하면서 말을 했다.
 "얘들아! 이제 밤이 깊었구나. 자야 할 시간이야."
 그리고는 우리을 둘러보며 이곳에는 더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슬픔을 
맛본 어른들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성탄절밤에 쓰디 쓴 서러움을 
맛본 비참한 사람들뿐이었다.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전기회사에서 전기를 끊어버려 대신 밝혀놓은 등불
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우리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들어 있는 어린 루
이스  왕자님이었다. 나는 동생 루이스의 발 밑에 달빛 망아지를 놓아 주었
다. 귀여운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조용하게 속삭였다.
 "귀여운 녀석......"
 등불이 꺼져 어둠이 온통 휩싸인 속에서 나는 형에게 물었다.
 "오늘 식빵 맛있었어, 또또까 형?"
 "모르겠어. 한 입도 먹어보지 않았으니까."
 "형, 왜?"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아서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어. 제제, 이제 잠
이나 자자. 잠이 들면 모두 잊게 되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제, 어딜 가려고 그러니?"
 "문 밖에 운동화를 내놓으려고."
 "그냥 놔둬.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아니야,  밖에 놓아 볼 거야.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형! 난 
선물을  갖고 싶어. 단 하나만이라도 새 것으로 그리고 나만을 위한 선물을 
말야."
 나의 말을 들은 형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배게 ?에 머리를 묻어버렸다.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형을 불렀다.
 "형, 같이 나가 볼까?"
 "너 혼자 가 봐."
 "그래, 나가 볼께."
  난 방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실망한 나를 기다리는 듯 운동화는 텅 비
어 있었다. 또또까 형이 눈을 비비며 따라나왔다.
 "그것 봐, 제제. 내가 뭐라고 했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이 나를 울렸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증오와  슬픔 바로 그것이었다. 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
았다.
 "왜 우리는 가난한 아빠를 갖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말하며 운동화를 바라보는데 나의 눈 앞에 슬리퍼가 보였다. 아빠
가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아빠의 눈은 슬픔으로 젖은 채 커져 있었으며 마
치  <방구> 시내에 있는 영화관의 화면같이 보였다.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
도 울지 못하는 쓰라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지나가셨다. 형
과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아빠는 옷장 위에 있던 
모자를 집어들고 말없이 나가버리셨다. 그때서야 형은 내 팔을 때리면서,
 "제제, 넌 나쁜 녀석이야. 뱀같이 고약한 녀석. 그러니까......"
 화가 치민 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형! 난 아빠가 거기 계시는 줄 몰랐어."
  "나쁜 녀석, 인정도 없는 바보. 너도 아빠가 오래 전부터 놀고 계시는 걸 
알고  있잖아.  그래서 난 어제 밤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거야. 너도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되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
픈 것인지 알게 될 거야."
 난 형의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 아빠를 못 봤단 말야. 형, 정말이야."
 "내 곁에서 없어져. 넌 정말 쓸모없는 나쁜 놈이야. 어서 꺼져!"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가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실컷 울고 싶었다. 난 나쁜 
놈이며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며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무엇을 어떻
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침대에 주저앉아 구석에 놓여있는 
텅  빈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마음이 붕 뜨고 텅 비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비어만 있었다.
  "왜 내가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그랬을까? 그렇지 않아도 모두들 오늘따
라  슬퍼하고 있는데, 점심 식사 땐 아빠를 어떻게 쳐다보지? 그땐 난 과일
사다라조차 삼키지 못할 거야."
 아빠의 슬프고 커다란 눈이 영화관의 화면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를 바라보
는 것만 같았다. 발꿈치로 구두통을 차다가 퍼뜩 한 생각이 내게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아빠가 나를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나는  또또까 형의 구두통에서 구두약을 꺼냈다. 그리고는 구두통을 챙겼
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구두통의 무게도 잊은 듯 거리로 
나왔다. 나는 마치 아빠의 슬픈 눈 위를 고통을 주면서 걷는 것 같았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어른들은 자정미사나 만찬 등으로 모두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는 아이들만 몰려나와 장난감을 비교하기도 하고 자랑
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가게에서 사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이러한 눈 앞의 
광경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행복한 저 애들은 모두 착한 애들
이겠지.  누구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한 아이는 없을 거야. 나는 미제리아 이 
포미(재난과 기아) 가게 부근에서 손님이 있나 보려고 다가갔다. 이 상점은 
오늘 같은 날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재난과 기아라는 간판을 달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슬리퍼나 파자마를 입고 있
는 사람은 있으나 구두를 신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침을 굶었는데도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다. 내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배고픈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파지면 내 마음은 더 아파지는 
것이다.  <쁘로그레수> 거리까지 나와 시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로젠버그 씨
댁  빵집 앞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날씨가  점점 더 뜨거워지자 어깨에 맨 구두통이 어깨를 쓰라리게 만들어 
여러 번 구두통을 바꿔 메야만 했다. 목이 타서 공동수도가로 가서 물을 마
셨다. 그리고는 내가 입학하게 될 국민학교 교문 앞 층계에 주저앉았다. 그
리고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온 몸의 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나
는  인형처럼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아니,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아예 얼굴을 무릎에 묻어버리고 앉아 있었다. 생각대로 하지 못하
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구두통을 툭 치면서 낯익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기에 얼굴을 
들어보니 오락장에서 일하시는 꼬끼뉴 아저씨였다.
 "이놈아! 구두닦이가 돈을 벌지 않고 잠만 자면 어떡하니?"
  아저씨가 구두통 위에 발을 얹어놓자, 난 우선 헝겊으로 문지르고 구두를 
적신 후에 조금 마른 다음 구두약을 조심스럽게 발랐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바지를 조금 올려주시겠어요?"
 아저씨는 나의 요구대로 응해 주셨다.
 "오늘은 구두를 좀 닦았니?"
 "아뇨. 오늘은 아무도 닦질 않아요."
 "그럼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냈니?"
 "그저 그랬어요."
 내가 구두통을 솔로 두드리자 아저씨는 발을 바꾸어 올렸다. 나는 같은 방
법으로 다른 한 쪽의 구두를 다 닦고 나서 통을 두드리자 아저씨는 발을 내
려 놓으시며,
 "얼마니, 제제?"
 "200레이스예요."
 "왜 200레이스만 받지? 다른 애들은 400레이스를 받는데."
 "제가 일류 구두닦이가 되면 그렇게 받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 
받아요."
 아저씨는 500레이스짜리 지폐를 주셨다.
 "아저씨, 다음에 주세요. 거스름돈이 없는 걸요."
  "됐다.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것이니 네가 갖도록 해라. 그럼 
도 만나자 제제."
 "메리 크리스마스, 아저씨!"
  아저씨는 사흘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내가 구두를 닦으러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에 돈이 좀 생기자 다시 기운이 나고 용기가 생겼다. 어느덧 오
후  2시가  넘으니 사람들의 왕래를 많아졌으나 손님은 없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먼지를 털어 달라는 사람조차 없었다. <리오-상파울로>의 도로
변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작은 소리로 외쳐 봤다.
 "손님, 구두 닦으세요."
 "구두 닦으세요. 아저씨!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와주세요."
  그때  저쪽에서 멋있는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멈추어 섰다. 나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소리를 쳐봤다.
 "선생님! 가난한 살마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와 주세요."
  옷은  잘 차려입은 부인과 어린아이들이 차창 밖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
다. 그 부인은 동정어린 목소리로,
  "쯧쯧, 가엾기도 해라. 저렇게 어린애가. 여보 저 애에게 뭘 좀 도와주세
요."
 그러나 남편인 아저씨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저런 아이들은 교활하고 나쁜 애들이야. 저 녀석은 자기가 어리다는 것과 
크리스마스를 이용해서 동정을 바라고 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도와 주고싶어요. 이러 오너라, 꼬마야."
 부인은 지갑을 열더니 차창 너머로 손을 내민다.
  "고맙지만 받지 않을래요.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 정말 돈이 필요
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날 나온 거예요."
 나는 구두통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러자 차의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내게로 달려왔다.
 "자, 이거 받아! 엄마가 전해 주랬어. 우리 엄마는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
는 걸 믿으신대."
  그 아이는 나의 주머니에 500레이스 짜리 지폐를 넣어주고는 내가 고맙다
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전에 달려가버렸다. 오직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4시가 넘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 슬픈 눈은 아직도 나를 녹여
버릴  듯 나의 마음 속에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10또스땅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재난과 기아> 
상점에서  싸게  주던가 모자라는 돈은 외상으로 해 주고 나중에 갚도록 해 
줄지도 모른다.
  어느 집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구멍이 뚫어진 여자용 스타킹이었다. 나는 스트킹을 주워 손에 감아 
보니 무척 부드럽고 늘어지는 것이 뱀을 만들기에 훌륭했다. 스타킹을 구두
통에 집어 넣으면서 마음 속으로 오늘 같은 나른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자
신과 싸웠다. '이 다음에 해야지. 오늘만은 장난을 말자.'
 빌라보아스 댁이 가까워졌다. 그 집은 바닥이 전부 시멘트로 되어 있고 넓
은  정원도 있었다. 세르지뉴가 멋진 자전거를 타고 정원 사이를 돌고 있었
다.  나는 담장 사이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빨간색이었고 부속들
은  팔나색이었고  노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자전거는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세르지뉴는 나를 보더니 커브도 돌고 찌익찌익 소리를 내며 페달을 
밟아 보이며 자랑했다. 그러더니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어때, 멋있니 제제?"
 "그래,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 같아."
 "더 가까이 와서 봐."
  세르지뉴는 또또까 형과 나이가 같았고 같은 반이었다. 나는 그의 에나멜 
구두와  흰  양말, 빨간 가죽 허리띠를 보고 맨발인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거기다가 그의 구두는 모든 것을 반사시켰다. 심지어는 아빠의 눈까지도 그 
반사되는  빛 속에서 번뜩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제,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야, 정말 멋진 자전거야, 형.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거야?"
 "그래 맞아."
  그는  자랑을 더 하고 싶었는지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대문을 열고 다가왔
다.
  "굉장한  선물을 받았어. 뭐냐면 전축 한 대, 양복 세 벌, 동화책 1세트, 
색연필  1타스, 그리고 장난감도 큰 상자로 한 세트를 받았는데 그 속엔 프
로펠러가 달린 비행기와 하얀 돛단배가 들어 있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또또까 형이 아기예수는 부자들만 좋아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러니, 제제?"
 "아무것도 아니야."
 "참! 넌 선물 많이 받았니?"
 난 대답할 기운도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정말로 하나도 받지 못했단 말이야?"
  "금년에 우리집은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기로 했어. 아빠가 아직도 놀고 
계시거든."
  "아무렴 그럴 수가 있니? 그래서 밤이나 호도 그리고 포도주도 너의 집엔 
없단 말이야?"
 "그저 딘디냐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식빵과 커피만 마셨어."
 세르지뉴는 무슨 생각을 하더니,
 "내가 만약 초대한다면 오겠니?"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는 고프지만 그의 
초대에 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
 "들어가자 제제. 우리 엄마가 너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거야. 과자
도 많이 있어."
  그러나 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지금까지 잘 참아왔고 더 이
상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마음의 상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
는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더러운 깜둥이 녀석을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잖니? 세르지뉴!'
 "싫어! 형의 말은 고맙지만 말야."
 "그래! 그럼 우리 엄마한테 밤이랑 과자랑 싸달라고 한다면 가져다 루이스 
줄래?"
 "안 돼. 난 일을 끝내야 돼."
 그때서야 세르지뉴는 내가 앉아 있는 것이 구두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제,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누가 구두를 닦겠니?"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10또스땅밖엔 벌지 못했어. 그중에 500레이스는 
동냥으로 받은 거야. 아직도 2또스땅이 더 있어야 돼."
 "뭣에 쓰려고 그러니, 제제?"
 "말할 수 없어. 그러나 꼭 필요해."
 세르지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내 구두를 닦아 줄래? 10또스당을 줄 테니까."
 "싫어. 난 친구에게선 돈을 안 받아."
 "그러면 내가 돈을 준다면? 그러니까 빌려 준다면 받겠니?"
 "조금 늦게 갚아도 돼?"
 "그래, 네 맘대로. 나중에 구슬로 갚아도 되니까."
 "그렇다면 빌려 줘."
 세르지뉴는 주머니에서 2또스땅을 꺼내 주었다.
  "제제, 난 돈이 많이 있으니 걱정마. 아직도 저금통엔 돈이 가득 들어 있
어."
 나는 자전거의 바퀴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정말 멋있는 자전거야."
 "네가 좀 더 커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타게 해 줄께. 좋지?"
 "응. 정말 고마와."

             *                *                *

  나는 구두통을 메고 흔들며 <미제리아 이 포미> 상점으로 달려갔다. 나는 
가게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아저씨! 고급담배 남았어요?"
 아저씨는 나의 손에 놓은 돈을 보고는 담배 두 갑을 집어주었다.
 "설마 네가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겠지, 제제?"
 그때 뒤에서 누가 말했다.
 "어린이에게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보지도 않고 아저씨는 웃으며 대꾸를 한다.
 "그건 자네가 이 녀석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이 녀석은 못하는 것이 없는 
장난꾸러기야."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담배를 손에 굴리면서 마냥 기쁘기만 했다.
 "아저씨! 이게 좋을까요? 저게 좋을까요?"
 "그거야 네 맘이지."
 "하루 종일 아빠에게 선물을 사 드리기 위해 일을 했어요."
 "정말이냐? 제제, 아빠는 너에게 뭘 선물로 주셨는데?"
  "못  받았어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우리 아빠는 아직도 실업자라는 것
을. 지금 제 뱃속의 형편과 아빠의 형편이 똑 같은 걸요."
 "만약 아저씨께서 담배를 원한다면 어떤 담배를 고르시겠어요?"
 "물론 둘 다 좋아! 그리고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아빠들은 다 기쁜거란다."
 "그럼 이걸로 싸주세요."
 아저씨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셨다. 아저씨는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가게에  있는 사람들도 이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포장한 담배를 내
게  주려다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신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하시더
니 아무 말도 하시지 못했다.
 나는 돈을 지불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 크리스마스 기쁘게 보내세요."
 나는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집안엔 어둠이 깔려 있었고 부엌에선 등잔불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
다.  식구들은 모두 외출을 했는지 아빠 혼자 허공을 바라보신채 식탁에 팔
로 턱을 받치고 계셨다.
 "아빠!"
 "왜 그러니, 제제?"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원망도 없어 보였다.
 "온 종일 어딜 갔었니?"
 나는 구두통을 아빠에게 들어 보였다.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
서 포장해 온 것을 꺼냈다.
 "아빠! 풀어보세요. 아빠에게 드리려고 선물을 샀어요."
 아빠는 그것이 비싸다는 것을 아시고 놀라시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어때요 아빠? 맘에 드세요? 제일 좋은 담배래요."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담배를 뜯어 냄새를 맡으셨다. 그리고 피울 생각도 
하지 않으셨으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한 개피 피워보세요, 아빠."
 나는 부엌에 나가서 성냥을 가지고 와서 아빠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당
겨드리고  피우시는 것을 보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분이 매우 착
찹해졌다. 불을 붙여드리고 난 성냥개비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나니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종일 괴롭혔던 고통이 산산조각 흩어지는 것 같았
다.
 나는 수염을 깎지 않아 텁수룩한 아빠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
무 말도 하질 못하고 다만 울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빠, 아빠......!"
 내 목소리는 흐느낌 속에 점점 줄어들었다. 아빠는 나를 안아 주셨다.
  "제제, 울지 마라. 네가 마음이 이렇게 약하다면 일생 동안 울어야 할 날
들이 너무도 많을 거야."
 "그게 아니에요. 난 정말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뜻으로 말한 게 아
니었어요."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빤 화도 내지 않았지 않니?"
 아빠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아 주셨다.
 "이젠 됐지?"
 "네, 아빠! 이제 괜찮아졌어요."
 나는 손으로 아빠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영화의 화면 같
았던  아빠의  눈을 지워버리듯 손으로 아빠의 눈을 쓰다듬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아빠의 큰 눈이 언제까지나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자,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워야지!"
 나는 아직도 서러움에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아빠! 저를 때려 주세요. 가만히 맞기만 할께요, 아빠......"
 "아내야. 괜찮아, 제제!"
 아빠가 나를 바닥에 내려 놓으셨을 때 나의 가슴 속의 한숨도 땅으로 가라
앉는 것 같았다.
 아빠는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오셨다.
 "글로리아 누나가 너를 주려고 과일사다라를 조금 남겨두었단다."
  나는 사라다를 입에 넣었으나 심킬 수가 없었다. 아빠가 곁에서 먹어주셨
다.
 "먹어라, 제제! 맛있지?"
 나는 아빠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처음 몇 숟갈은 짠맛이 나는 것 같
았다. 눈물이 섞여 있는 사라다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4 장

                      새, 학교, 그리고 꽃

 새로 이사 온 새집에서의 생활, 작은 희망, 그리고 아주 소박한 꿈.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이삿짐을 나르는 아리스띠데스 아저씨와 그의 조
수가 이끄는 수레 위에 타고 새 집으로 오면서 마냥 기쁜 마음과 들뜬 희망
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수레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리오-상파울로>의 도로에 들어서자 아주 미
끄러지듯이  달렸다. 우리가 지나가는 수레 옆으로 마침 멋진 자동차 한 대
가 스쳐갔다.
 "야, 포르뚜깔 사람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차가 가네."
 우리가 <아스데스> 거리를 돌아 길을 건널 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아침 공
기를 가르고 내 마음 속에 와 닿았다.
 "아저씨! 저기 좀 보세요. 망가라띠바 기차가 지나가요."
 "제제, 넌 별걸 다 아는구나. 어떻게 알았지?"
 "기적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수레의 삐꺼덕 소리와 따가닥따가닥 하는 말굽소리가 거리 위로 흩어졌다. 
나는 이 수레가 낡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튼튼해 
보였다.  우리집의 이삿짐은 이제 두번만 실어 나르면 될 텐데 당나귀의 힘
이 별로 세어 보이지 않아 나는 아저씨의 비위를 맞추기로 했다.
 "아저씨는 참 멋진 수레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겨우 쓸만한 정도야, 멋지기는......"
 "당나귀도 아주 튼튼해 보여요. 이름이 뭐예요?"
 "시가노라고 한단다."
 아저씨는 별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아저씨! 오늘은 가장 재수가 좋고 행복한 날이에요. 오늘 처음으로 수레
를  타 보았고 포르뚜깔 사람의 멋진 자동차도 봤고 망가라띠바의 기적소리
도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않으셨다.
 "망가라띠바가 브라질에서 제일 큰 기차인가요?"
 "그건 아니다. 이쪽 노선에서만 제일 크단다."
  그 말만 하시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신다. 어른들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수레가 새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의 열쇠를 드리
면서 공손하게 말을 하려고 했다.
 "아저씨!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다. 네가 곁에 있으면 방해만 될 테니까 나가서 놀다가 돌아갈 때 부
를 테니 그때 오너라."
 나는 아저씨의 말대로 밖으로 나왔다.
  "밍기뉴,  날마다 우린 같이 지낼 수 있게 됐어. 어느 나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 거야, 이봐, 밍기뉴. 난 지금 여
기로  올 때 수레를 타고 왔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마치 영화에 나오
는 포장마차를 탄 듯 했었어. 앞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얘기해 
줄께. 괜찮지?"
  나는 담 밑에 잡초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밍기뉴, 우리가 저번에 저 강의 이름을 뭐라고 했었지?"
 "아마조네스."
 "그래, 그랬었지. 그 강의 하류에는 밀림 속에 사는 인디안들의 배들이 많
이 있겠지, 밍기뉴?"
 "물론이야, 굉장히 많은 인디안들이 있을 거야."
 겨우 몇 마디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리스띠데스 아저씨가 문을 닫으
며 나를 불렀다.
 "제제! 여기 남아 있을래, 아니면 우리와 같이 가겠니?"
 "전 여기 남아 있겠어요. 식구들이 곧 도착할 거예요."
 그리고 혼자서 나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              *             *

  이곳  새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처음에는 이웃들의 눈도 있고 잘 보이려고 
난 얌전하게 지냈다. 그러나 얼마 후엔 전에 주운 검은 스타킹을 다시 생각
해내고  찾아 꺼내어 발끝을 잘라내고 그곳에 실을 묶어 멀리서 잡아당기니 
마치  뱀 같았다. 어두운 밤이면 꼭 뱀같이 보여 장난을 치면 성공하리라고 
생각했다.  새로  이사를 온 뒤 밤엔 아무도 남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기로 
규칙을  만들었다. 밤에 가족끼리 오손도손 지내는 일은 이제 먼 옛날 일이 
된 것이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만든 커다란 나무들의 그림자 뒤에서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이고 앉아 망을 보고 있었다.
  공장에는 밤일을 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사람
들은 작업이 끝나면 몰려나올 것이고 그때 장난을 치면 모두들 기겁을 하며 
놀라 자빠지겠지! 과연 내 마음 속의 악마를 즐겁게 해 줄 사람들이 언제쯤 
나올 것인가!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9시가 조금 지날 무렵, 나는 공장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새벽이면 우리는 서글픈 작업 종소리는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마치 작업 시작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을 집어삼켰다가 밤이 되면 일에 지친 
사람들을  토해버리는  괴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 공장의 주인 
스크트휠드 씨는 아빠를 좇아내기까지 했으니 공장이 몹시 싫었다.
  그때  저쪽에서 한 여자가 오고 있었다. 옳지! 기회는 이때다. 한 여자가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긴 그림자를 밟으며 오고 있었다. 구두 발자욱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슬슬 
뱀을  잡아당겼다. 뱀은 잡아 끄는 대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여 마침내 길 
한가운데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일이 크게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뱀을 보자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깨워버린 것이다. 그 여자는 길에 털썩 주저앉아 있
었고  핸드백과 양산은 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 여자가 비명을 너무 
크게 질렀기 때문에 고요하던 밤거리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악!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주세요. 뱀이 나왔어요. 뱀이......"
  그 비명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나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부
엌으로  뛰어들어가 더러운 빨래통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고 뚜껑을 닫아버
렸다. 내 가슴 속에선 심장이 마구 뛰었고 밖에선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계
속 들려왔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뱃속에 있는 6개월 된 아이가 떨어지면 어떡
해요."
  나는 빨래통 속에서 질식할 것만 같았으며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왔다. 사
람들은  계속 웅성거리더니 그녀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고 그 여자를 진
정시키려 했다.
 "못견디겠어요. 금방이라도 그 뱀이 나올 것만 같아 기절할 것 같아요."
  "오렌지즙을  좀 마셔요. 괜찮을 겁니다. 사람들이 램프를 들고 몽둥이로 
잡으러 나갔어요."
 이제 겨우 조금 조용해진 듯하다. 그까짓 헝겊으로 만든 뱀한테 놀라 저렇
게  법석이람! 그런데 그 소란소리를 듣고 엄마와 잔디라 누나 그리고 라라 
누나까지 소동이 있는 곳으로 나가고 있었다.
 "뱀이 아닙니다. 이건 낡은 여자 스타킹이에요."
 누군가가 스타킹 뱀을 발견하고 외쳤다.
  '큰일이야,  그  여자가  너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뱀을 그대로 두고 
왔네."
  사람들이 뱀끝에 묶어놓은 실을 발견하고 실을 따라 우리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때 낯익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외쳤다.
 "바로 그 꼬마 녀석이 한 짓이야."
  이제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찾는 것이었
다. 침대 밑을 보기도 했고 집안과 집밖을 샅샅이 뒤졌으나 나를 찾지 못했
다.  나는 발래통 속에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잔디라 누나가 마
침내 빨래통을 생각해 내고 말았다.
 "나는 알겠어, 어디 숨어 있는지!"
 마침내 빨래통이 열리고 누나는 내 귀를 잡아끌고 식당으로 갔다.
 엄마는 이 일만큼은 용서를 하지 않으시고 화가 나시어 세게 때리셨다. 마
치 슬리퍼짝이 노래를 부르는 듯이 소리가 났고 나는 아픔을 억제하지 못하
고 송아지처럼 울어댔다.
 "이 악마 같은 녀석아! 넌 여자들이 6개월된 아기를 뱃속에 넣고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나 하니?"
 라라 누나도 비꼬듯이 한 마디 했다.
 "흥, 그런 나쁜 짓을 생각하느라고 길거리에 나가지도 않고 며칠을 얌전하
게 있었구나."
 "어서 가서 잠이나 자, 이 망할 녀석아!"
  나는 아픈 엉덩이를 만지며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다행스럽게 아빠는 
오늘 카드놀이를 하러 나가시고 안 계셨다.
 어두운 침대 위에 엎드려 매맞은 곳을 낫게 하는 데는 역시 침대가 좋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음을 삼켰다.

                *                *                *

  다음날  아치에 나는 일찍 일어났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밤 그곳에 가서 뱀을 찾아 셔츠 속에 숨겨와서 다른 곳에 다시 사용하
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뱀은 없었다. 그만한 스타킹은 구하기 힘들 텐
데. 정말 뱀과 똑같은 양말이였었다.
 나는 찾는 걸 포기하고 딘디냐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에드문드 아저씨와 얘
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퇴직자에게 있어서 지금 이 시간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일찍 찾아왔으니 좋아하시는 카드놀이를 하러 가
시지 않으셨을 테고 방안에서 신문이나 읽지 않으시면 화장실에나 가셨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아저씨는 응접실에 계셨다. 오늘 밖에 나가서 카드놀이를 하시기 위
해 카드로 금일 운수를 떼어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못들은 척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집
에선  언제나 아저씨가 말하고 싶지 않으실 땐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안 통할걸.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앞에서 귀머거리
는  될 수 없을걸. 아저씨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겼다. 하얀 와이셔츠 사이로 
검정 멜빵끈이 드러나 보였다.
 "으응, 제제가 왔구나."
 아저씨는 내가 옷 것을 보시지 못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며 말하셨다.
 "아저씨 지금 뭘 하고 계세요?"
 "응, 오늘의 운수를 알아보는 거야."
 "네에, 아주 재미있겠는데요?"
 "그럼 재미있구말구."
 나는 얼마 전부터 카드의 그림을 외워 알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카드는 
잭크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왕의 종처
럼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그래? 그렇다면 이걸 마저 끝내고 얘기하자.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겠니?"
 그러나 아저씨께서는 자꾸 카드를 섞으시고 다시 시작하시곤 하셨다.
 "떨어졌어요?"
 "아니."
 아저씨는 카드를 접어서 옆에 밀어 놓으시고 손바닥을 털며,
 "제제, 그래 할 말이란 게 돈이 관한 얘기겠지?"
 "아저씨 구슬이 사고 싶은데요?"
 아저씨는 빙긋이 웃으시며,
 "그럼 그렇지. 어디 보자, 구슬 살 돈이라......"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려는 순간 나는 아저씨의 손을 빨리 잡으
며,
 "아저씨 지금 한 말 농담이었어요."
 "그럼 할 얘기가 뭐니?"
  아저씨께서는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하고 영리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
각하신다는  걸 알고 있다. 더욱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을 깨우쳐 가
는 것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아저씨께 궁금한 게 있어요. 아저씨는 소리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세요
?"
 "소리를 내지 않고 노래를? 잘 이해할 수가 없구나."
 "자, 제가 부를 테니 들어보세요."
 나는 속으로 <작은 오두막집>을 불렀다.
 "네가 지금 노래를 불렀니?"
 "그래요. 노래를 불렀어요. 글쎄 소리를 내지 않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니까요."
 아저씨는 어리둥절 하시다가 싱겁다는 듯이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
지나 소리르 내지 않고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저씨  저는요, 어렸을 때는 제 마음 속에 작은 새 덕분에 소리를 내지 
않고 노래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오! 네가 그런 새를 갖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얘기구나."
 "아저씨는 잘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약간 의심이 생겨
요. 속으로 노래하고 속으로 볼 수도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내가 혼돈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웃으셨다.
 "제제, 내가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마. 그게 뭐냐하면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야. 네가 크면, 그때 네가 말하고 또 보는 것들을 생각이라 부
르는  것이야. 내가 전에 네게 한 말 있지? 네가 이제 곧 생각이라는 걸 갖
게 될 것이라고 말야."
 "그럼 철 들 나이란 말인가요?"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그 나이가 되면 점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다. 그 생각이 점차 성장해서 우리의 머리와 몸과 마음을 돌보게 하는 거란
다. 그때가 되면 너는 인생을 아주 새롭게 보게 된단다."
 "네에! 알겠어요. 그럼 작은 새는 뭐지요, 아저씨?"
  "그 작은 새는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느님이 
만든 거야. 그랬다가 어린애가 자라서 작은 새가 필요없게 되면 그 새를 하
느님께  되돌려드려야지.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 새를 너처럼 영리한 다른 
아이의 마음 속에 넣어 주신단다. 어때? 아주 아름다운 일이지?"
  나는  내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만족해서 웃음이 나왔
다.
 "참 아름다운 일이군요. 이제 됐으니 돌아가겠어요."
 "그럼 돈은?"
 "오늘은 돈이 필요 없어요. 저는 오늘 매우 바쁘거든요."
 나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가 아주 슬픈 일이 떠올랐다. 
언젠가  또또까  형은 작고 귀여운 참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 예쁜 
참새는  길이  잘 들어서 먹이를 줄 때면 속바닥 위에 와서 먹을 정도였다. 
새장  문을 열어놔도 날아가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또까 형은 새장을 
뜨거운  햇빛에  놓아둔 채 잊어버렸고 그 참새는 뜨거운 햇빛에 의해 죽고 
말았다.  또또까  형은 죽은 새를 뺨에 대고 하염없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형은 말했다.
 "다시는 새를 기르지 않을 테야!"
 나도 형의 마음을 위로하는 뜻으로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형, 나도 새는 기르지 않겠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곧 바로 밍기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슈르루까(제제가 밍기뉴에게 붙인 애칭), 한 가지 일을 좀 하러왔어."
 "일이라니, 그게 뭔데?"
 "잠깐 기다려."
 "응."
 난 오렌지나무 허리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게 뭐지, 제제?"
 "응, 우리가 기다리는 건 예쁜 뭉게구름이야."
 "뭘하게?"
 "이제 내 작은 새를 날려보내려고."
 "그렇다면 이제 그 새가 필요없어졌다는 거구나."
 우리는 뭉게구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밍기뉴! 저기 좀 봐, 어떠니?"
 마치 꽃잎을 닮은 하얀 구름 한 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맞아, 바로 거기야 밍기뉴!"
  나는 흥분되어감을 억누르며 셔츠 앞자락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새가 나
의 가슴으로부터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작은 새야, 날아라. 높이 날아라. 훨훨 날아가 하느님의 손끝에 앉으렴. 
하느님은  널 다른 애에게 보내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랬듯이 그 애를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야. 잘 자거라, 내 
예쁜 작은 새야!"
  새를 보낸 내 가슴은 왠지 텅 빈 것 같았고 허전한 마음은 오래도록 가시
지 않을 것 같았다.
 "제제, 저것 좀 봐. 작은 새가 벌써 구름 위에 앉았어!"
 "나도 보았어."
  나는 머리를 밍기뉴의 몸에 기대고 작은 나의 새가 앉아있는 구름이 멀리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작은 새와 친했었는데......"
 나는 밍기뉴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슈르루까!"
 "응?"
 "운다면 흉해 보일까?"
 "울면 바보야, 흉해 보이기도 하구. 왜 그래, 제제?"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 어른이 되질 않았기 때문인지, 익숙치 못해
서인지 아직도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하기만 해."
 
          *                     *                   *

 글로리아 누나는 이름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
 "제제, 어디 손톱 좀 보자."
 손을 내밀며 손톱을 보여주니 누나는 요리조리 살피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
았다.
 "그럼 귀 좀 보자."
 나는 얼굴을 돌려 귀를 보여줬더니,
 "아휴, 더러워."
 누나는 나를 수도가로 데리고 가서 수건에 비누를 칠하더니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삐나제  인디안의 사내가 더럽게 산다는 말을 나는 들은 적이 없어. 자! 
이제 옷을 갈아입자."
  누나는 옷장 설합을 뒤적거리며 찾았으나 마땅한 옷이 없었다. 뒤지면 뒤
질수록 낡고 기우고 헝겊을 댄 것 뿐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겠구나. 이 옷들만 봐도 네가 얼마나 지독
한  장난꾸러기인지 알 수가 있겠어. 자, 이 옷을 입자. 그래도 이 옷이 그 
중에서 좀 나은 것 같구나."
  누나와 나는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기적같은 일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
났다.  학교 부근에 오니 벌써 많은 아이들이 입학하기 위해 엄마들의 손을 
잡고 오고 있었다.
 "제제, 이제부터 말썽부리지 마, 응? 누나의 말 알아 듣겠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교실은 아이들이 가득했다. 차례를 기다리고 앉아 있
다가  우리의  차례가 되어 누나의 손을 잡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안경을 낀 여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동생인가요?"
 "네, 어머니께선 일하러 가셨기 때문에 오시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나를 자세히 보셨다. 안경이 두껍고 굵어서인지 눈이 크고 까맣
게  보였다.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교장선생님의 얼굴에는 남자처럼 수염이 
나  있었다. 그래서 교장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역주:브라질 혼혈족 중에
는 여자도 수염이 나는 사람이 있음).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요?"
  "나이에 비해서 허약한 편이에요. 그래도 글은 벌써부터 잘 읽을 줄 알아
요."
 "몇 살이지?"
 "2월 6일이면 여섯 살이에요."
  "음, 아주 똑똑하군요. 카드를 작성할까요? 우선 부모님의 성명부터 말해 
주세요."
  글로리아 누나는 아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을 말할 때
는  <에스떼파니아 데 바스콘셀로스>라고만 말했다. 나는 누나가 빼먹고 말
한 부분을 큰 소리로 말했다.
 "에스떼파나이 삐나제 데 바스콘셀로스입니다."
 글로리아 누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삐나제랍니다. 어머니는 인디안의 딸이랍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인디안 이름을 가진 유일한 학생이 될 것이 무척 자랑스
러웠다.
 글로리아 누나는 등록을 끝낸 후에도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가씨?"
  "교복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요.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
께선 실직자이시기 때문에 저희는 생활이 매우 어려워요."
 교장선생님이 내 키와 옷의 치수를 재기 위해 뒤로 돌았을 때 옷의 기우고 
꿰맨  곳이  드러나 가난을 충분히 증명했다. 선생님은 치수를 적은 종이를 
주며  에우라리아  부인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에우라리아 부인도 역시 
내가  너무  작은 것을 보고 놀랐다. 여러 옷들 중에서도 제일 작은 치수를 
골라 입었는데도 마치 병아리가 긴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제일 작은 옷인데도 크구나. 작긴 참 작구나. 곧 크겠지 뭐."
 "가지고 가서 줄일께요."
 우리는 교복 두 벌을 선물로 받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교복을 
입은 나를 보면 밍기뉴의 표정은 어떨까?
  학교에 나가 생활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애기해 주엇다.
  "학교의  종소리는 굉장히 커. 그러나 교회의 종소리만큼은 안 크지만 그 
소리를 듣고 애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각자 자기 선생님이 서 계신 곳으
로  말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는 네줄로 날나히 줄을 맞추어 교실로 데리
고  들어간단다.  그리고는 열고 닫을 수 있는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책상 
안의  학용품을  넣어 두지. 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국가를 배운단다. 우리 
선생님께선 훌륭한 국민이 되고 애국자가 되기 위해서는 맨 먼저 국가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셔싼다. 국가를 다 배우면 너에게 불러 줄께, 밍기
뉴."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친구도 사귀게 되지만 가끔 싸움도 했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자꾸 알게 됐다.
 "그 꽃은 왜 가지고 왔니?"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의 손에는 책과 포장이 잘 된 노트가 들려져 있었으
며 머리는 두 갈래로 땋아 내렸다.
 "우리 선생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어."
 "왜?"
 "난 선생님을 좋아하거든, 선생님을 좋아하는 애들은 꽃을 갖다드리거든."
 "남자 애도 그럴 수 있니?"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남자와 여자가 무슨 상관이 있니?"
 "아, 그래?"
 "응."
 그런데 우리 담임선생님은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께 꽃을 가져오는 아
이들은  없었다. 아마 선생님이 예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눈만 조금 예
쁘게 생겼더라면 그렇게 안 예쁘진 않을 텐데. 그러나 선생님은 점심시간이
면 가끔 내게 과자를 사먹으라며 돈을 주시는 분이었다. 다른 반 교실을 유
심히 봐도 탁자 위에 꽃이 없는 교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직 우리 선생
님의 탁자 위의 꽃병만 늘 비어 있었다.

            *                    *                    *

 그 무렵 나는 커다란 하나의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밍기뉴, 난 오늘 박쥐를 붙들었어."
 "네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던 루씨아노라는 그 박쥐 말이니?"
 "바보야, 아니야! 굴러다니는 박쥐말이야. 난 말야 요즈음 차가 학교 근처
를  천천히 지나가면 뒤에 달린 자동차 바퀴에 매달린단 말야. 한참 달려가
면  아주 멋진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차가 모퉁이에 서서 다른 차
가  오나 살펴볼 때 얼른 뒤어오르는 거야. 차가 빨리 달리 때타면 땅에 떨
어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팔을 부러뜨리거든. 그런 박쥐 말야. 그래도 못 알
아 듣겠니?"
 그리고 나는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나 애들과 놀았던 일들을 계속해 주었
다. 내가 국어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을 때는 밍기뉴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내가 글을 제일 잘 읽는 학생이라고 
칭찬하셨다. 가장 성적이 우수한 학생! 그런데 그 말이 의심스러워졌다. 에
드문드 아저씨에게 진짜 내가 우수한 학생인지 여쭈어 봐야겠다.
  "밍기뉴!  다시 박쥐 애기를 해 줄께. 그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밍기뉴 너를 말처럼 타고 달릴 때는 위험하지 않잖아?"
  "그건  진짜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야. 넌 진짜로 미친듯이 서부를 달리며 
물소나 들소를 사냥하는 박쥐가 아니잖아, 잊었니?"
  밍기뉴는 말로써는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땜누에 무조건 내 말을 믿어
야 했다.
 "그런데 밍기뉴! 애들이 넘보지 못하는 차가 하나 있어. 넌 뭔지 아니? 포
르뚜깔인 마누엘 발라디리스란 사람의 차야. 넌 그렇게 흉칙스런 이름을 들
어 본 적이 있니? 아주 좋지 않은 이름이지? 마누엘 발라다리스!"
 "그래,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난 밍기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모를 줄 아니? 이제는 너를 올
라타고 말타기 연습을 해 볼께. 그래서 모험을 한 번 해 보는 거야."

              *                  *                  *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선생니므이 탁자 위에 꽃병에 꽃을 갖다가 꽂아 드렸
다. 선생님은 기뻐하시 나에게 기사님이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 밍기뉴?"
 "기사란 왕자님처럼 교육을 훌륭하게 받은 신사를 말하는 거야."
 나는 학교 공부에 점점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학교와 집안에서
도  그러한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며 심지어 글로리아 누나는 그런 나를 
가리켜 작은 악마는 설합 속에 넣어두고 딴 사람이 됐다고까지 말했다.
 "밍기뉴, 너도 내가 요즈음 변했다고 생각하니?"
 "글쎄, 그렇기도 해."
 "그래? 그러다면 비밀 얘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그만 둬야겠다."
 나는 밍기뉴에게 화를 내고 왔다. 그러나 밍기뉴는 나의 화가 오래가지 못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비밀 얘기란 오늘 밤에 일어날 일이다. 나는 어떤 조바심같은 것으로 
들떠  있었다.  공장에선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사람들이 몰려 나왔
다. 긴 여름의 낮은 밤을 천천히 끌고 오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시간도 아
직  오지 않고 있다. 나는 뱀장난도 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문 앞
에  앉아 엄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디라 누나는 그런 내가 이상하게 생
각되었는지 풋과일을 먹어 배라도 아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피곤에 지친 엄마의 모습이 길모퉁이에 나타났다. 이 세상에 우리 엄
마의  모습을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에
게 달려가?.
 "엄마! 지금 오세요?"
  나는  엄마의 손등에 키스를 해드렸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엄마의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 많이 피곤하시죠?"
 "그래 제제, 기계에서 뿜어내는 열기를 견디기가 힘들구나."
 "엄마, 도시락 가방 이리 주셍. 제가 들겠어요?"
 나는 도시락가방을 받아들었다.
 "오늘도 장난 쳤니?"
 "조금밖에 치지 않았어요, 엄마."
 "그런데 제제가 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엄마는 뭔가 눈치를 채고 계시는 것 같았다.
 "엄마, 그래도 저를 사랑하시죠."
 "그럼 사랑하고 말고. 다른 애들과 똑같이 사랑하지. 그런데 왜 묻니?"
 "엄마! 나르딩뇨를 아시죠? 빠따 쇼카 아줌마의 조카 말이에요."
 엄마는 알 것도 같으신지 웃으시며,
 "그래 알 것 같구나."
 "그럼 됐어요. 그런데 그 애 엄마는 아주 멋있는 양복을 하나 만들어 주셨
는데 초록색에 흰줄이 있는 옷인데 목에는 단추를 잠그게 했고 칼라가 달린 
옷이에요.  그애한테는 작아서 입지 못한데요. 그걸 물려 줄 동생도 없어서 
팔려고 한대요. 엄마 그 옷 저에게 사 주시겠어요?"
 "제제, 그건 너무 어려운 주문이구나. 우리는 형편이 어렵잖니?"
 "돈은 두 번에 나눠서 줘도 된데요. 그리고 비싸지도 않구요. 그런 장식이 
있는 옷은 살 수도 없잖아요. 엄마!"
  나는  엄마에게 기회주인자인 야곱처럼 돈은 여러 번에 나눠 줘도 된다고 
몇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엄마, 난 우리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는 뛰어난 학생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엄마, 꼭 사 주세요. 새 옷이라곤 못 입어봤잖아요."
 엄마가 말씀을 하시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엄마, 그 옷을 사지 못하면 난 평생 시인의 옷을 못 입어 볼 거예요. 그
걸  사  주시면 라라 누나가 비단 헝겊으로 커다란 나비넥타이를 만들어 줄 
거예요."
 "알았다, 제제. 밤일을 일 주일 동안 해서라도 사 주마."
  나는  엄마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엄마의 손을 나의 얼굴에 댄채 집으로 
왔다. 그리하여 난 시이? 소을 입게 되었고 그 모양이 얼마나 예뻤는지 에
드문드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며 사진관으로 데리고 가셨다.
 
           *                 *                   *

 학교와 꽃, 그리고 한 송이의 꽃, 학교......
 한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고도푸레도 씨가 우리 교실에 들어와 우리 
담임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에게 별 문제가 없었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화병에 꽂힌 꽃을 가리켰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돌
아가고 난 후 선생님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수업이 끝나고 나
를 부르셨다.
 "제제,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기다리겠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망설이시는 듯 핸드백을 계속 뒤적
이셨다.  아마 핸드백을 정리하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계시는 것 같았다. 마
침내 선생님은 말씀을 하셨다.
 "고도푸레도 씨가 내게 좋지 않은 얘길 들려줬어. 그게 사실이냐, 제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꽃 말이죠? 그렇죠?"
 "왜 그런 행동을 했니?"
  "아침 일찍 하교에 오는 도중에 세르지뉴 씨댁의 정원을 지나다가 대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을 보았어요. 재빨리 들어가 꽃을 꺾었어요. 하지만 꽃이 
너무 많아서 표시가 나질 않았어요."
 "그랬었구나. 하지만 그건 옳지 못한 짓이란다. 꽃 몇 송이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건 도둑이나 하는 짓인거야."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 아니에요? 그
러니까 그 꽃들도 하느님의 것이잖아요."
 선생님은 나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시는 것 같았다.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또 꽃을 
사려면  돈도 필요하고요. 저는 선생님의 화병만 늘 비어있는 게 가슴이 아
팠어요."
 선새임은 나의 말을 듣고 침을 삼키셨다.
 "선생님께선 가끔 제게 과자를 사먹으라고 돈을 주셨잖아요?"
 "제제, 난 너에게 매일 조금씩 주려고 했지만 네가 그냥 가버리곤 했어."
 "매일 선생님께 돈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건 왜?"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는 애가 또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시더니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 올빼미 아세요?"
 "그게 누군데?"
 "머리를 돌돌 말아 끈으로 묶고 다니는 검둥이 여자애 말예요."
 "응, 알겠다. 도로띠리아 말이지?"
  "맞아요.  그 애는 저보다도 집안이 더 가난해요. 다른 아이들은 그 애가 
검둥이이고  가난뱅이라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께서 주
신 돈으로 과자를 사서 그 애와 같이 나눠 먹었어요."
 선생님께서 또 오래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께선 저보다도 그 애에게 돈을 주셨어야 했어요. 그 애의 어머니가 
남의  집 빨래를 해서 먹고 살아요. 형제들이 열 하나나 된데요. 그리고 아
직  모두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대요. 저의 딘디냐 할머니께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그 애 집에 쌀과 콩을 조금씩 가져다주곤 해요. 그래서 저의 엄
마  말씀대로 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먹으려고 그 애와 나눠 먹은 거
예요. 선생님!"
 선생님의 얼굴엔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예 닦을 생각도 하지 않으셨
다.
  "전 선생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님,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겠어요. 약속할께요, 선생님."
 "그래서 우는 게 아니란다, 제제."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넌 아주 고운 마음씨를 가졌구나. 그리고 네가 지금 한 말 지켜야 한다, 
제제?"
 "맹세할께요, 선생님. 그러나 전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가 아녜요. 선생
님께선 저를 모르셔서 그래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게는 네가 아주 착하고 고운 애야."
 "하지만 선생님! 저 꽃병은 언제나 저렇게 비어 있어야 하나요?"
  "이젠 꽃을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얻어오면 모르지만. 그리고 저 
꽃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야. 나는 꽃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이 선생님에게 그 꽃을 준 사람은 바로 제제, 
너야. 그럼 됐지 않니?"
 선생님은 웃으시며 내 손을 놓으셨다.
  "황금같은 마음을 가진 아이야. 네게 조그만 꿈을 준 이 선새임은 너로부
터 가장 크고 훌륭한 것을 받았구나!"

                             5 장

                         화요일과 노래

  학교에서 배운 요일을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 요일 가운데서
도 특히 기분이 좋은 날은 화요일이다. 화요일은 나를 송두리째 매혹시키는 
그가  오는  날이다. 화요일엔 언제나 역의 맞은편 길거리에서 그를 기다렸
다.  그래서  난 화요일마다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또또까 형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일러바치
지 못하도록 구슬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9시가 되어야 오는데 일찍 나와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슬
렁어슬렁 거리를 돌아다녔다.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집에서보다 훨씬 
좋다.  매맞을 염려가 없으니까. 우선 성당에 들어가서 초상화를 구경했다. 
촛불이 여기저기 켜져 있고 불빛 때문에 벽에 걸린 그림들이 조금은 무섭게 
보였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성인들의 그림도 번쩍거렸다. 저렇게 늘 서 
있어야만 하는 성인이 되는 것은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난 아직 모르겠다.
  나는  성당 안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자까리아스 씨가 다 타버린 
초를 새로 갈아끼우는 것이 보였다. 타다 남은 초들이 책상 위에 잔뜩 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까리아스 아저씨?"
 그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안경을 코 끝으로 내려 걸치더니 코를 킁킁하
며 뒤를 돌아보았다.
 "잘 지냈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나는  촛덩이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들을 삼켜버릴 듯이 바라보았
다.
 "괜찮아! 방해만 될 거야. 그런데 오늘은 왜 학교에 가지 않았지?"
 "갔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선 오시지 않은 걸요. 이가 좀 아프시대요."
 "오, 그래! 저런......"
 그는 돌아서며 안경을 바로 올렸다.
 "몇 살이지?"
 "다섯 살, 아니 여섯 살이에요. 아니 참! 다섯 살이에요."
 "이 녀석아! 도대체 다섯 살이냐 아니면 여섯 살이냐."
 난 학교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여섯 살이에요."
 "여섯 살이라. 그렇다면 교리문답을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나이구나."
 "저도 배울 수가 있나요?"
 "그렇고말고.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오면 된단다. 올 수 있겠니?"
 "글쎄요. 그렇지만 제게 촛덩이를 조금 주시면 꼭 오겠어요."
 "타다 남은 촛덩이를 뭘 하려고."
 내 망므 속의 악마가 또 충동질을 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연줄에 칠하려고요. 초를 연줄에 칠하면 아주 튼튼해지거든요."
 "그렇다면 가져가거라."
  나는  촛덩이를 뭉쳐서 책가방 속 구슬이 있는 통에 넣었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얘야, 그럼 꼭 목요일 3시에 오는 거다. 알겠니?"
  나는 그곳을 나와 거리로 향했다. 아직도 9시까진 시간이 있어 장난을 칠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오락장 앞으로 가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서 바닥에 칠했다. 그리고는 길을 건너와 오락장 닫힌 문 뒤에 숨어서 기
다렸다.  맨  먼저 넘어지는 사람이 누굴가를 기대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저쪽에서 손수건과 성경책을 든 부인이 대문을 나와 성
당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는 난제아제나의 
엄마인 도나 고린냐 여사로 엄마의 친구이자 그의 딸은 글로리아 누나의 친
구였다.
 "에그머니나!"
 나는 더 이상 보고 잇을 수가 없어 건물 모퉁이로 달려가 숨었다. 그 부인
은  바닥에 그대로 앉아 욕을 했다. 사람들은 그 부인이 다친 곳이 있나 보
살펴주고  있었다. 그녀가 욕하는 거로 보아서는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
았다.
 "이 근처에서 놀고 있는 어느 망나니 녀석의 짓일 거야!"
 내가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누가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네가 그랬지, 제제?"
  그는  머리가 빨간 울란도 까발로 씨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웃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네 녀석의 짓이지, 그렇지?"
 "우리 집에다 얘기하지 마세요."
 "말하지 않으마. 그러나 아직 너에겐 초가 남아 있어서 장난을 더 치게 되
겠지? 그러면 안 돼. 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쩔려구 그러니?"
 내가 공손하게 대답을 하자 나를 놓아 주었다.
  나는 화요일의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시장 부근을 한 바퀴 돌고 있었
다.
 로젠버그 씨 제과점 앞을 지날 때는 웃으며 인사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로젠버그 아저씨!"
  아저씨는 '그래'하고 쌀쌀맞게 대답을 했다. 나쁜 아저씨! 라라누나와 같
이 있을 때는 과자도 주더니.
  9시가 됐다. 그는 한 번도 늦는 일이 없었다. 그때 저쪽에서 그가 나타났
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여 그가 오고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쁘로그레수> 거
리로  접어들어 모퉁이에서 멈추어 섰다.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고는 조끼를 
벗어  왼쪽 어깨에 걸쳤다. 십자 체크무늬가 있는 셔츠가 아주 멋지게 보였
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멋진 셔츠를 입어야지. 그는 또 빨간 마후라를 
목에 매었고 모자를 뒤로 떨어질만큼 젖히고 그 자리에 서서 굵직한 목소리
로 노래를 불렀다.
 "자! 오세요 여러분, 새로운 소식이 왔습니다."
 그 바이아(브라질 원주민) 사람의 목소리가 매우 아름다왔다.
  "금주의 히트곡은 <클라우디오나르> <빼뜨랑> <쉬꼬비올라>의 최신곡입니
다.  또 <비센가 셀레시띠노>의 최신곡도 있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 오셔
서 최신 유행 음악을 배웁시다."
  노래를  부르는 듯 그의 목소리는 유창하고 아름다워서 나를 매혹시켰다. 
나는  그가 <화니>를 불러 주었으면 했다. <네가 감옥 속에서 죽는 것을 나
는 보리라>라는 구절을 부를 때면 듣는 사람을 애타게 만들었고 그 멋은 말
로는 설명이 되질 않았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드디어 <클라우디오나르
>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망고나무 언덕의 삼바축제에 갔지
 검은 피부의 여인이 나를 유혹했지
 그러나 난 갈 수 없네
 매를 맞을까 무서워
 당신의 남편은 힘이 세니
 날 죽일까 두려워
 난 클라우디오나르처럼 그런 짓은 못하네
 차리라 나의 식구들을 위해
 부두의 짐꾼이 되겠네

 그는 노래를 멈추더니 선전을 늘어놓았다.
 "여기 최신 가요집이 나왔습니다. 1또스땅에서 400레이스까지 마음대로 고
르세요! 최신 히트곡인 탱고와 60여 곡이 수록된 팜플렛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좋아하던 화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화니가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틈도 주지 않고
 양심도 인정도 없는 너는
 그녀를 칼로 찔렀지
 
(이때  그의  목소리는 어찌나 부드럽던지 굳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정도다.)

 고운 마음씨의 불쌍한 화니여......

 나는 네가 고통을 받도록
 하느님께 빌겠어
 나는 네가 감옥에서 죽어가는 걸
 보고야 말겠어
 너는 인정과 양심도 없이
 화니를 찔렀지

 고운 마음씨의 불쌍한 화니여!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어느 것이 제일 좋은지 생각하지도 않고 노래책을 
사갔다. 나는 팜플렛에 있는 화니의 사진 때문에 그의 곁으로 갔다.
 그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을 했다.
 "너도 하나 살래, 꼬맹아?"
 "저는 돈이 없어요."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그는 짐보따리를 어깨에 걸머지고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빼뜨랑>!  왈츠!  <담배를  피우며 기다려요>! <안녕 젊은이여>! <왕의 
밤>도 있습니다. 시내에서는 모두들 이 노래를 부른답니다. <밤하늘의 달빛
>은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입니까? 가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가슴을 펴더니 노래를 불렀다.

 밤하늘의 달빛을
 그대는 눈동자에 간직하고 있나요
 나에게 보여주오
 하늘에 떠도는 별의 반짝임을
 우주에 맹세코 그런 빛은 어디에도 없다네
 당신의 눈빛처럼
 황홀하게 나를 유혹하는
 빛은 없다네

 오, 나와 마주친 그대 눈빛은
 나의 옛얘기를 떠오르게 하네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사랑 속에 행복이 있다고
 난 말할 수 있네

  그는 이것 저것 선전을 허더니 몇 권의 노래책을 더 팔았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얘 꼬맹아. 이리 와 봐."
 나는 웃으면서 그애게로 갔다.
 "나를 따라 다닐래 아니면 돌아가겠니?"
 "따라 다닐래요. 아저씨! 전 이 세상에서 아저씨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사
람은 본 적이 없어요."
 
  그는  내가 아첨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화를 내진 않았다. 
나는 잠시 그가 쉬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말하려고 생각했다.
 "넌 꼭 뱀처럼 따라다닌단 말이야."
  "저는  아저씨가 <빈센떼 셀레시띠노나> <쉬꼬 비올라>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시는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역시 잘 부르는 것 같았어요."
 그는 소리내어 웃더니,
 "그 사람들의 노래를 들어봤니? 꼬맹아?"
 "들었어요. 라이문즈 빠즈 박사님의 아들 집에 있는 전축에서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 전축이 낡았던지 바늘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들렸을 거야."
  "아니에요. 그 전축은 새로 사온 것이었어요. 역시 아저씨는 노래를 멋지
게 부르세요. 아저씨!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지 말해 봐라."
  "저는 아저씨를 계속 따라다니고 싶은데 괜찮죠? 아저씨는 노래를 부르고 
저는 노래책을 팔겠어요. 어른들은 애들이 파는 물건을 더 잘 사거든요."
  "그래?  그건 별로 나쁜 생각이 아니구나. 그런데 네가 원하는 건 좋다만 
네게 줄 돈이 없어."
 "아저씨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럼 왜?"
  "저는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또 배우고 싶구요. 저는 
<화니>라는  노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노래 같아요. 대신 팔고 남으면 
노래책 한 권만 주세요. 우리 누나에게 갖다주고 싶어요."
 그는 모자를 벗고 뒤통수를 긁었다.
 "집에는 글로리아라는 누나가 있어요. 그 누나에게 갖다주고 싶어요."
 "그럼 같이 해 볼까?"
 그래서 나는 아저씨와 가팅 노래를 부르며 책을 팔기 시작했다. 나는 아저
씨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배웠다.
 점심 시간이 되자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점심 먹으러 안 가니?"
 "일이 다 끝나면 갈 거예요."
 아저씨는 또 머리를 긁었다.
 "나를 따라 오렴."
  우리는  <세레스>에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 속에서 샌드위치를 
꺼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무시무시한 칼을 꺼내 나에게 샌드위치 한 토
막을  잘라  주고는 아저씨는 술 한 모금을 마시고 가게에서 레몬쥬스를 샀
다.  아저씨는 그게 반주라고 말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먹었
다.
 "꼬맹아, 넌 내게 큰 행운을 주었어. 나는 배불뚝이 꼬마친구가 많지만 너
처럼 나를 도와주는 꼬마는 없었거든."
 아저씨는 레몬쥬스를 한모금 마셨다.
 "너 몇 살이니?"
 "다섯 살, 아니 여섯 살, 아니 다섯 살이에요."
 "다섯 살이냐, 아니면 여섯 살이냐?"
 "아직 여섯 살이 채 못됐어요."
 "넌 참 똑똑하고 영리한 애구나."
 "아저씨! 그럼 다음 화요일에도 함께 일하는 건가요?"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누나와 의견을 해 보겠어요. 하지만 이해할 거예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역 건너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아주 신이 
났다.
 "내가 그곳에 가는 걸 어떻게 알았니?"
 "저는 매주 화요일이면 아저씨를 여기서 기다렸어요. 한 번은 여기에 오셨
고 한 번은 오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저씨는 역을 사이에 두고 번갈아 다
니신다는 걸 알았어요."
 "너는 참 굉장한 녀석이구나. 이름이 뭐니?"
 "제제예요."
 "나는 아리오발도라고 한다. 기억해 둬라."
 그는 죽을 때까지 오래도록 친구가 되자고 거칠게 굵은 손으로 내 손을 꼬
옥 쥐었다.

              *                  *                 *

 글로리아 누나를 설득하여 납득시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제야. 일주일에 하루라면 학교 공부는 어떻게 하니?"
  나는 나의 노트를 누나에게 보였다. 나의 노트는 깨끗하게 정리됐으며 점
수도 매우 좋았다. 산수 노트도 물론 잘 정리되어 있었다.
 "누나, 읽는 건 내가 일등이야."
 그래도 누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른 애들은 내가 옛날에 배운 걸 되풀이 해서 배우고 있어. 바보같은 애
들이나 그걸 배우려고 시간을 버리지."
 누나는 웃었다.
 "제제, 다시 말해 봐."
 "하지만 누나, 노래를 배우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내가 그동안 무
엇을  얼마나 배웠는지 말해 볼까? 에드문드 아저씨도 나중에 가르쳐 준 말
들이야.  자, 들어봐. <부두> <짐꾼> <우주> <저주를 받다> 등이야. 거기다
가  일주일에 한 권씩 노래책을 가져와서 누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가르쳐 줄께."
 "그렇긴 해.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있어. 매주 화요일마다 네가 점심을 먹
으러 오지 않는 것을 아빠에게 아시면 어떡하지?"
  "아빠가 혹시 물으시면 거짓말을 하면 되잖아. 딘디냐 할머니댁에서 점심
을 먹었다든가 난제아제나 집에 심부름을 시켰다고, 거기서 점심을 먹을 거
라고 말이야."
  결국  누나는 나의 뜻에 장난끼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허락을 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를 때렸을 것이다.
  그 후부터 수요일이면 오렌지나무 밑에서 누나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것
이 나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화요일은 늦게 돌아왔다. 화요일이면 난 늘 아
리오발도  아저씨를 기다렸다. 기차를 놓치지 않는 이상 아저씨는 8시 반이
면 틀림없이 나타났다. 우리는 아저씨가 가져 온 노래책을 이곳저곳 돌아다
니면서  팔았다.  나는 과자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도 즐거웠고 역의 층층대 
앞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그것은 구두닦기 하기에 좋
은  장소였으니 글로리아 누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구두
를  닦으면  순경 아저씨들이 쫓아와 구두통을 빼앗아 가고 또 머리 위로는 
기차가  다니기 때문에 위험했기 대문이었다. 나는 이리오발도 아저씨가 손
을 잡아주어야만 다리 위의 철길을 건너갈 수가 있었다.
  오늘도 아저씨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나는 아저씨에게 <화니>외에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는 노래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공장의 마당이 보이는 돌담에 기대어 노래책을 놓고 노래를 불렀
다. 그리고 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하면 다른 곡을 불렀다.
 "이 노래는 새로 나온 <말괄량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한 번 더 불러보세요."
 아저씨는 마지막 소절을 다시 불렀다.
 "바로 이거예요. <화니>와 이 탱고라면 책을 몽땅 팔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뜨거운 햇빛과 먼지가 자욱한 길거리로 나갔다. 아저씨와 나는 여
름이라는 계절을 알리는 하나의 철새들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금주의 아니, 금년도의 최대 히트곡이 될 노래는 <쉬꼬 비올라>의 <말괄
량이>입니다."

 푸르고 높은 산봉우리에
 은빛 달은 떠오르고
 사랑하는 이의 창가에서 부른 노래는
 연인의 잠을 깨웁니다.
 고운 멜로디
 울리는 기타에 실어
 가슴 속에 싹트는 마음을
 연인에게 드립니다.

 그가 잠시 노래를 중단하고 나에게 머리를 두 번 흔들어 보이면 나는 부드
럽고 작은 목소리로 마저 불렀다.
 
 나의 마음을 온통 앗아간 아름다운 여인아
 내 힘껏 그대를 
 제단 위에 모시리라
 그대는 나의 등불, 내 꿈 속의 영상입니다
 그대는 일할 필요없는 말괄량이랍니다

  노래는  아주 멋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엇이 모두들 샀다. 나는 400레이스 
짜리와  500레이스  짜리 노래책을 팔고 있었는데 소녀들일 때는 무슨 책을 
살지 미리 알아차릴 정도였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아가씨!"
 "잔돈은 너 사탕 사 먹어."
 나중에는 나도 아리오발도 아저씨의 말투까지 닮아갔다. 점심때가 되면 늘 
그랬듯이 싸구려 식당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차가운 오렌지 쥬스를 마셨다.
  나는  주머니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았던 동전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 놓았
다.
 "아저씨, 여기 있어요."
 그리고 아저씨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러자 아저씨는 웃으면서,
 "넌 정말 정직한 아이로구나, 제제?"
 "아저씨는 지난 번엔 저를 꼬맹이라고 부르셨잖아요. 왜 그랬어요?"
 "응, 나의 고향인 <싼타바니아>에서는 너처럼 작고 어린 깜찍한 아이를 그
렇게 부른단다."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트림을 하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
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니 이쑤시개로 이를 쑤셨다. 그러나 탁자 위의 
잔돈은 여전히 집지 않았다.
  "제제,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오늘부터 거스름돈은 네가 갖도록 해라. 어
차피 너와 나는 동업자이잖니?"
 "아저씨, 동업자가 무슨 말인데요?"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한다는 뜻이지."
 "그럼 이 돈으로 <마리아>를 사도 돼요?"
 "그래라. 그 돈은 네 돈이니 네가 알아서 하렴."
 "고맙습니다, 친구!"
  아저씨는 나의 기쁨에 대답이라도 하듯 웃어 보였다. 나는 과자를 먹으며 
아저씨를 보았다.
 "아저씨, 제가 정말 동업자예요?"
 "그래, 틀림없어."
  "그럼  아저씨! 제가 <화니>의 다음 부분을 부르게 해주실래요? 아저씨가 
앞  부분을  힘차게 노래 부르면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음 부분을 부를께요."
 "참 좋은 생각이로구나. 그렇게 하자, 제제."
 "이제 한바퀴 돌도록 해요.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 준 <화니>부터 불러요."
 우리는 다시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거리에서 화니를 막 부르려고 했을 때 불행한 사건이 생겼다. 마리
아  다뻬냐 부인이 하얗게 분을 바른 얼굴을 양산으로 가리고 다가왔다. 그
러더니 화니를 부르고 있는 우리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바라다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예감이 불길했던지 나에게 노래를 멈추라는 신호로 옆구리를 쿡
쿡  찔렀다. 그러나 한창 노래에 열중하고 있는 나는 그냥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리아 다뻬냐 부인은 양산을 접어 나의 구두 등을 툭툭 쳐댔다. 그 부인
은 화가 나서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며 버럭 소리를 쳤다.
 "잘한다, 잘해. 이처럼 부도덕한 노래를 어린 녀석이 잘도 부르는구나."
 "부인, 이 일은 절대로 부도덕한 일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일하고 있기 때
문에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어요, 부인?"
  나는 아리오발도 아저씨가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걸 처으 ?보았다. 그러나 
그 부인도 싸울 기세가 당당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 애가 당신의 아들이요?"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그렇다면 당신의 조카나 친척인가요?"
 "그런 관계도 아니오."
 "나이가 몇 살이나 됐지요?"
 "여섯 살이요."
  그 부인은 의심스러운 듯이 나의 키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부인은 단념하
지 않았다.
 "당신은 어린 아이를 이용해서 돈을 번다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요?"
  "난 결코 이 애를 이용하지 않았소. 저 아이가 원해서 한 것입니다. 아시
겠습니까,  부인? 그리고 나는 저 애에게 노래 부르는 대가를 주고 있어요, 
그렇지 제제?"
 나는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나는 싸움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
서  가만히 있기만 했다. 만약 싸움이 크게 벌어지면 내 생각같아서는 머리
통으로 툭 튀어나온 배를 박치기로 받아 바닥에 쓰러뜨리고 싶었다.
  "안 되겠어요. 무슨 조치를 해야지. 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소년재판소에도 
가고 경찰소에도 고발을 하겠어요. 명심하세요."
  그렇게  기가 살아서 지껄이던 부인의 입이 갑자기 다물어지고 겁에 질려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아리오발도 아저씨가 칼을 
뽑아들고  그 부인에게로 다가간 것이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듯 멍하니 바
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해 보시지. 나는 본시 착한 사람이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여 말이 
많은 여자들의 혀를 잘라 버리는 좀 나쁜 버릇이 있는 사람이오."
 부인은 놀라 어쩔 줄 모르고 꼿꼿하게 서 있다가 뒤로 걸어가더니 양산 끝
으로 가리키며 한 마디 또 지껄인다.
 "어디 두고봐요!"
 "이 수다장이 마귀할멈아, 당장 꺼져버려!"
 그녀는 양산을 펴들고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굳은 표정으로 총총히 사라져
갔다.

           *                 *                  *

 해가 기울 무렵, 아저씨는 오늘의 수입금을 계산하였다.
  "이것 봐. 제제 네 말이 맞았어. 넌 나에게 행운을 갖다주었어. 참, 아까 
그 여유같은 할망구가 생각나는구나."
 "혹시 그 부인이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요, 아저씨?"
 "괜찮아. 고작해야 신부님께 말하겠지. 신부님은 이렇게 충고할거야."
 "뭐라구요?"
  "그냥 내버려 두시요. 북쪽 사람들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지않으니까요
라고 말이다."
 아저씨는 돈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늘 그
렇듯 한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더니 노래책을 꺼냈다.
 "자, 이건 너의 글로리아 누나에게 갖다주거라."
 나는 눈이 번적 뜨였다. 아저씨는 기지개를 켜시더니,
 "오늘은 운수가 아주 좋은 날이었어."
 우리는 휴식을 취했다.
 "아저씨!"
 "응?"
 "마귀할멈이 무슨 뜻이죠?"
 "나도 몰라. 그저 화가 나기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야."
 그리고 우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아까 칼로 혀를 자른다고 했는데 진짜였어요?"
 "아니야, 그냥 겁을 주려고 그랬을 뿐이야."
  "만약 칼로 찔렀다면 창자가 튀어나오거나 인형 속에 들어있는 더러운 헝
겊이 튀어나왔을 거예요."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제제, 한 가지 더 있다. 아마 똥물도 튀어나왔겠지?"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아. 난 내 아내가 빗자루만 
들고 나와도 겁을 먹는 사람이란다."
 우리는 일어나 천천히 걸어 역까지 나왔다. 아저씨는 내 손을 잡으며,
 "만일을 위해서 여기를 한 번쯤 오지 말자."
 그러더니 내 손을 더욱 힘차게 잡아 흔들면서,
 "자, 그럼 다음 화요일에 도 보자. 나의 친구!"
  나는 아저씨가 층층대를 올라가는 동안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다 올라
가더니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친다.
 "제제, 넌 천사야!"
 나는 웃으며 크게 말했다.
 "천사라구요? 아저씨는 저를 잘 몰라서 그래요......"
                         제 2 부
 
             아기예수는 슬픔 속에서 태어났다.

                           1 장

                           박쥐

 "빨리 해. 학교에 늦겠다, 제제."
 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와 빵을 천천히 먹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식탁 위
에 팔꿈치를 괴고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글로리아 누나는 몸
이 달아 재촉하였다. 언제나 아침이면 조용하게 가만히 있질 못했다.
  "이 녀석 아직도 머리를 빗지 않았잖아? 넌 왜 또또까처럼 부지런하게 준
비하지 않니?"
 그리고는 빗으로 나의 금발 머리를 빗겨 주었다.
 "이 러시아 고양이 털같은 머리는 빗질을 해 줘도 소용이 없단 말야."
 나를 세워 놓고 누나는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옷이 깨끗한지 보는 것이었
다.
 "이제 됐다. 제제, 어서 가."
 또또까 형과 나는 손가방에 책과 노트, 연필만을 넣었다. 오늘도 도시락이
나 간식따위는 없었다. 그건 다른 애들만을 위해서 있는거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가방 밑을 만져보았다. 구슬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빙
그레  웃었다. 우리는 운동화를 손에 들고 학교 근처까지 가다가 시장 근처
에서 신고 가곤 했다. 도로에 나오기가 무섭게 또또까 형은 나 혼자 오라고 
말한  뒤 달아나버렸다. 그러자 내 마음 속의 악마가 충동질하기 시작했다. 
아니 악마보다 내가 더 심할 때도 있었다.
  나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은 <리오-상파울로> 도로에 있다. 그것은 박쥐였
다.  물론 틀림없는 박쥐다. 달리는 자동차에 매달려가면 스치는 바람에 신
바람이  나고 애들은 누구나 그것을 좋아한다. 형은 뒤에서 오는 차가 위험
하니 꼭 붙들어야 한다고 백 번도 더 주위를 주었다. 그러나 공포심이 사라
지고  모험을 하고 싶은 충동으로 매달리기가 더욱 힘든 자동차에도 매달렸
다.  나는  이러한 장난에 홀딱 반해서 라디슬라우 씨의 자동차에도 매달려 
보았다.  아직 매달려보지 못한 차는 포르뚜깔 사람의 아주 멋진 차 뿐이었
다.  그 차는 바퀴도 언제나 새것처럼 반짝였고 차에 달린 쇠붙이들도 사람
이  비칠정도로 빛났다. 경적 소리도 아주 색다른 소리로 마치 들소가 울부
짖는  듯했다. 그러나 그 차의 주인은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는 사람
이었다.  아무도 그 차 근처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사람
을  때려죽였다고  하고 또 그는 차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때리고 반쯤 죽여 
놓겠다고 위협을 해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밍기뉴에게 이러한 말을 했을 때 밍기뉴는 나에게 말했다.
 "정말 아무도 못 매달리니?"
 "그럼, 아무도 용기를 못내."
 나는 밍기뉴가 내 계획을 알아차리고 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넌 자동차에 매달리는 장난에 미쳐 있잖니?"
 "그래 미쳐 있어. 내가 생각하는 건 ------"
 "네가 생각하는 게 뭐니?"
 그러자 웃어버린 건 나였다.
 "말해 봐 어서."
 "너도 호기심으로 미쳐있어."
 "넌 나에게 꼭 말하고 말 거야. 말하지 않고는 못견딜 걸?"
  "그래 좋아. 얘기할께, 밍기뉴. 나는 7시면 집에서 나가잖아? 길모퉁이에 
가면  7시 5분이야. 그런데 7시 10분에 포르뚜깔 사람이 차를 가게 옆에 세
우고  담배를 사거든. 그래서 난 요 며칠 동안 그 차에 매달려 보려고 망을 
보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
 "그런데 용기가 없어 포기했다는 말이니?"
 "용기가 없다구? 두고 봐, 밍기뉴."
 이제 내 마음은 흥분이 되었다.
 차가 멈추고 포르뚜깔 사람이 내렸다. 밍기뉴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망설여
졌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걸음을 차 쪽으로 재촉했다. 나는 상점 
앞을  지나 벽 모퉁이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운동화
를 꺼내 끈을 조이는 척했다. 내 가슴이 얼마나 방망이질 하는지 누가 들을
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는 내가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가더니 차의 문을 
열었다.
 '지금 타야 해. 아니면 영영 못 타겠지, 밍기뉴?"
 불안과 공포를 무릅쓰고 나는 힘껏 뛰어 그 차의 뒤에 매달렸다. 학교까지
는 아직 더 가야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학교 아이들에게 승리했다는 자랑
으로 들떠 있었다.
 "야호!"
  내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상점에선 누가 차에 치지 않았나 가까
이  몰려왔다.  나는 땅에서부터 50센티 정도 높이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
다.  그때 내 귀를 활활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나의 계획에 크나큰 
실수가 있었다. 그것은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확인하지 않고 매달렸던 것이
다.
 그는 어굴이 무섭도록 험악해져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번뜩이는 불꽃 같
았다. 그리고 격분하며,
 "이렇게 겁이 없는 녀석 봤나. 조그만 녀석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그는  나의 한쪽 귀를 붙잡고 땅에 내려놓은 다음 내 얼굴을 잡고 소리를 
쳤다.
 "이놈아. 네 녀석이 내 차를 망보고 있는 걸 내가 못 본 줄 아니? 어디 혼 
좀 나봐라. 다시는 못된 짓 못하도록."
 나는 그럭 욕을 먹느니 차라리 매를 맞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모욕을 당
하는 게 더 마음 아팠다. 큰 소리로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는 나를 놓아 주지 않고 나의 속 마음을 눈치챈 듯 한손으로 위협을 했
다.
 "이 녀석아, 할 말이 있거든 해봐. 왜 아무 말도 못 하니?"
 나의 눈물에서는 눈물이 자꾸 나왔다. 그것은 이 광경을 고소하다는 듯 웃
으며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흐르는 치욕의 눈물이었다. 그는 계속 나를 
다그쳤다.
 "이 꼬마녀석아, 왜 욕도 못하니?"
 참다못해 나는 큰 소리로 악을 썼다.
 "지금은 말 못하겠어요. 하지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다음에 내가 크면 
당신을 죽여버리겠어요."
 그가 내 말을 듣고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따라 웃어
댔다.
  "그래, 빨리 크거라.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 꼬마녀석아! 하지만 
그 전에 너의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마."
 그는 내 귀를 놓더니 나를 무릎 위에 엎어 놓고는 엉덩이를 세게 한 대 때
렸다. 딱 한 대지만 어찌나 아팠는지 궁둥이가 창자와 붙어버린 줄 알았다. 
그는 나를 놓아주었다. 정신이 멍하고 현기증을 느끼며 깔깔대며 웃는 사람
들  사이로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리오-상파울로> 도
로변을 왔을 때는 좌우에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조차 살펴보지 못하고 길
을 건넜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얻어맞은 엉덩이를 문질렀다.
 "어디 두고 바자. 망할놈의 자식! 꼭 커서 복수를 하고 말거야."
  나를 조롱하던 사람들의 곁을 떠나오니 아픔도 점점 덜했다. 한편으로 학
교  친구들이  이 광경을 봤을까봐 걱정이었다. 밍기뉴에겐 뭐라고 말하지? 
이제 그 상점 앞을 창피해서 어떻게 지나 다니지? 일주일 동안은 다른 곳으
로 돌아다녀야겠는데.
  나는 그런저런 걱정거리를 생각하며 시장 부근까지 왔다. 그리고 시장 안
에  있는  공동수도간에서 발을 씻고 신발을 신었다. 그곳에서 또또까 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일은 입밖에 내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시
치미를 뚝 떼었다.
 "제제, 날 좀 도와줘야겠구나."
 "뭘 어떻게?"
 "비예란 녀석 알지?"
 "그 까빠네마 동네의 <황소> 말야?"
 "그래, 그 녀석이 날 때리려고 하는데 네가 내 대신 싸워 줄 수 없겠니?"
 "그렇지만 그 녀석이 날 반즘 죽여놓을 텐데?"
 "그렇지는 않을 거야. 넌 싸움도 잘하고 용감하잖아."
 "좋아. 학교 공부 끝나고 하는 거야?"
 "응. 공부 다 마치고......"
 또또까 형은 언제나 싸움거리를 만들었고 그 싸움을 맡는 건 나였다. 그러
나  오늘은 마침 잘 된 일이다. 나는 조금 전에 포르뚜깔 사람에게 당한 모
욕을 비예 녀석에게라도 화풀이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날, 너무 많이 맞았다. 너무 맞아 눈도 발갛게 되었고 팔도 
조금 다쳤다. 또또까 형은 무릎 위에 내 책가방과 자기 가방을 얹어놓고 다
른 애들과 같이 땅바닥에 안장 구경을 했다. 그들은 내게 응원을 했다.
  "제제, 그 녀석의 배에 박치기를 해. 그 녀석은 비계 뿐이니까 물어 뜯고 
손톱으로 마구 꼬집어 뜯어."
 그렇게 응원을 하고 가르쳐주었는데도 얻어만 맞았다. 빵집 아저씨가 말리
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날 녹초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저씨는 비예의 옷
을 붙잡고 흔들어 댔다.
 "이 녀석아 부끄럽지도 않니? 그렇게 큰 놈이 저런 꼬마를 때리다니."
  로젠버그씨는 우리 라라 누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누나와 같이 있을 때는 
늘  어굴에  웃음을 띄우며 생과자며 사탕을 주었다. 그럴적마다 금니 또한 
반짝였다.

           *                   *                     *

  나는 참지 못하고 나의 실패담을 밍기뉴에게 말했다. 그토록 빨갛게 부은 
얼굴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시고 알밤
을  몇 대 주었다. 그리고 또또까 형에게도 야단을 치셨다. 아빠는 형을 따
리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에서 잘못과 말썽은 모두 내가 하는 것
으로 인식이 되어 매는 언제나 맡아놓고 내 차지였다.
 밍기뉴는 내 얘기를 열심히 들었다. 나는 그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내버
려  두기로 했다. 나의 말이 다 끝났을 때 밍기뉴는 몹시 화가 난 듯 한 마
디 했다.
 "바보같으니!"
 "밍기뉴 네가 나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싸움은 별거 아니야."
  나는  밍기뉴에게 그 박쥐때문에 일어났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내가 그런 
용기가 있었다는 것에 놀랐는지 나를 위로하여 주었다.
 "넌 언젠가 꼭 복수하게 될 거야."
  "그래,  꼭 복수를 해야겠어. 난 서부 영화에 나오는 톰 믹스에게 권총을 
빌리고  후레드 톰슨에게서 말을 빌려 가지고 코만도 인디안처럼 함정을 만
들거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놈의 머리를 대나무 가지고 꽂아서 돌아
올 테야."
 그리고 나서 그 분노는 사라지고 우리는 딴 얘기를 했다.
 "슈르루까, 넌 아직 모르는 일이 한 가지 있어. 나는 지난 주에 최우수 학
생으로 뽑혀 <요술 장미>라는 책을 상으로 받았어."
 밍기뉴는 <슈르루까>라고 불러주면 매우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렇게 불러
주면  내가 자기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
었다.
 "그래?"
 "그런데 아직 너에게 그 책의 내용을 얘기해 주지 않았지? 그 내용은 요정
에게서  붉은 요술장미를 얻는 왕자에 대한 얘기야. 그런데 그 미친 왕자는 
예쁜  말을 타고 다니며 세상을 온통 금으로 만들어 버려대. 때로는 위험한 
일이 닥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요술장미로 지독스런 연기를 내게 하
여  위험을 면했대. 왕자는 요술장미를 흔들고 다니며 이 세상을 자기 것으
로 만들려 했던 거야. 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모험이니, 밍기뉴? 그렇지? 이
거  내가하고  싶은 모험이 아니야. 나는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인 톰 믹스나 
빅  죤스 리챠드 탈마지의 모험을 할테야. 그들은 총과 주먹으로 신나게 싸
우다가 죽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잖아. 만약 그들이 싸우다가 위험한 고비
에서 요술장미를 흔들어 댄다면 얼마나 시시하고 재미가 없겠니. 슈르루까, 
그렇게 생각 안 하니?"
 "맞아. 나도 그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뭐냐면 장미가 진짜로 요술을 부릴 수 있을까?"
 "그래, 그게 좀 이상하긴 해."
 "어른들은 아이들이 뭐든지 믿어 준다고 생각하나 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야. 다른 애들이......"
 우리는 누군가가 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동생 루이스가 다가왔다. 루이
스는  나처럼 싸움꾼도 아니고 울보도 아니다. 날로 점점 예뻐져갔다. 아직
도 나는 루이스를 돌봐주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나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놀아주었다.
 나는 밍기뉴에게 조용히 말했다.
  "밍기뉴,  우리 다른 얘기로 바꾸자. 내가 이 얘길 루이스에게 해주면 저 
녀석은 아주 재미있어 할 거야. 우린 어린애들의 꿈을 빼앗아서는 안 돼."
 "형, 나랑 같이 놀자."
 "그래 지금 놀고 있잖니? 뭐하고 놀까?"
 "우리 동물원 놀이 하자, 형!"
  나는 힘없이 앉아있는 닭장 속의 검은 암닭과 두 마리의 병아리를 바라보
았다.
  "오늘은 너무 늦었어. 사자들은 벌써 잠자러 들어갔고 호랑이도 마찬가지
야. 이 시간엔 모두 문을 닫아 버려서 입장권도 팔지 않는단 말야."
 "그럼 유럽여행은 어때, 형?"
  요 녀석은 모르는 말이 없고 한번 들려준 말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
런데  난 유럽여행 놀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밍기뉴와 같이 얘기하며 
함께  있고 싶다. 밍기뉴는 내 상처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조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루이스를 곁에 앉혀 놓고 조용히 말했다.
 "루이스, 잠깐 기다려. 내가 놀이를 하나 생각해 볼 테니까."
 그때 해운의 요정이 수풀과 밍기뉴의 가지를 흔들어 대고 비단구름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밍기뉴의 잎사귀 하나를 내 얼굴에 떨어뜨려 주었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네가 그랬니, 밍기뉴?"
 "아니."
 "정말 멋있었어. 이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됐나 봐."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엔 여러 형태의 바람이 있었다. 구슬바람, 팽이바
람, 그림딱지를 모으는 바람, 그 바람 가운데에서 가장 멋진 바람은 연날리
는  바람이었다. 그때는 하늘이 가지각색의 연들로 가득 차는 것이다. 마치 
비행기의 공중전 같았다. 머리치기, 줄로 끊어내기, 꼬꾸라지기, 하늘로 높
이 치솟아 올라가기 등의 공중전이었다. 칼로 연줄을 끊으면 공중에서 뱅글
뱅글 돌며 내려오고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때는 온통 거리는 아이들의 세상이 된다. <방구> 시의 모든 거리가 모두 
마찬가지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 여기저기 전깃줄엔 뼈만 남은 앙상한 연들
이  걸려있다. 전기회사의 공사차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다. 그때 바람이 또 
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생각이 떠올랐다.
 "루이스, 우리 사냥놀이 할까?"
 "형! 나는 말도 타지 못하는걸?"
 "조금 더 크면 탈 수 있어. 거기 가만히 앉아서 내가 타는 걸 잘 봐둬."
  갑자기 밍기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말이 되었다. 바람이 세어지면
서  뒷뜰의  부드러운 풀들이 파란 대평원으로 변했다. 나의 카우보이 옷은 
금으로 장식이 되었고 가슴에는 보안관 뺏지가 빛나고 있었다.
 "이랴, 가자! 달려라, 힘껏 달려......"
 따가닥, 따가닥. 이미 톰 믹스와 후레드 톰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벅 죤스
는 웬일인지 우리와 합세를 하지 않았고 리챠드 팔마지는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었다.
 "자, 가자, 이랴. 저기 아파치족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구나."
 따가닥, 따가닥, 인디안족들의 말들이 요란한 말굽소리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달려라, 달려. 저 평원에 물소와 들소들로 가득하다."
 여보게들, 총을 쏴, 총을. 철컥, 탕, 탕, 탕, 위이, 위익, 위익."
 인디안들의 창들이 바람을 쪼개며 날아오고 있었다.
 사람과 말들이 울부짖고 바람소리, 말이 신나게 달리는 소리, 먼지가 구름
처럼 이는 속에서 루이스가 소리쳤다.
 "제제 형! 제제 형!"
 나는 말을 천천히 세우고 말에서 내렸다.
 "무슨 일이야? 물소라도 네 곁에 나타났어?"
 "그게 아냐. 우리 다른 놀이 해. 인디안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
 "무섭지 않아. 인디안들을 아파치족이야. 모두 우리의 친구란 말야."
 "그래도 난 무서워."

                                            
                           2 장

                        소중한 사람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동안은 상점 앞에 차를 세워 두는 포르뚜깔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와 길모퉁이로 조심스럽게 다녔다. 
거리는  가로수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리오-상파울로> 도로까지 가기는 괜
찮았다. 그곳에서 길을 건널 때는 손에 운동화를 들고 길을 건너 담벽 밑에 
달라붙어  학교로 가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걱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
라 점점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이제 그 일을 잊어버렸고 일을 당한 아이가 
빠울로 씨의 개구장이 아드리었다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욕할 때면 으례히 이런 말들을 했다.
 '이건 바로 빠울로 씨의 아들 녀석의 짓이란 말야' '그런 저주받을 망나니 
녀석같으니라구' 한번은 호되게 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방구>시에서 안다
라이  씨한테  매를  맞을  때도  '저 녀석은 이 <방구>거리에서 제일 못된 
애'라고까지 말을 했다.
 나는 가끔 그놈의 차가 길모퉁이에 서 있는 걸 봤다. 그럴 때면 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가 가곤 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커서 저 사람의 코를 납작
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이 <방구>거리에서 가장 멋진 차를 가진 
사람이 그런 난폭한 행동을 하다니, 두고 보자.
  어떤  때는 며칠씩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아주 살 것 
같았다. 아마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갔거나 며칠 동안 휴가 중인게 분명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그러는 동안에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
은 남아 있었다. 그건 차에 매달릴 때 느끼던 짜릿함 보다는 생각조차 싫은 
귀가 확확 달아오르는 고통만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길에서 놀았다. 드디어 연을 날리는 계절이 돌아 왔다. 하늘
엔 연들이 아름답고 찬란한 빛으로 떠있어서 마치 낮에 떠있는 별같이 보였
다.  연을 띄울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며칠 동안은 밍기뉴를 만날 틈이 없었으며 연싸움에서 졌을 때나 매를 맞았
을  때  찾아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루이스 왕을 예쁘게 단장해 주듯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치장하고 보살펴 줬다. 나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밍기뉴는 그의 가지를 높이 뻗었고 금방이라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처
럼  자라 주었다. 다른 나무들은 잘 자라지 않는데 나의 오렌지나무는 에드
문드 아저씨께서 날보고 조숙하다고 말한 것처럼 그렇게 잘 자랐다. 아저씨
는  그 후에 조숙이란 말의 뜻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은 다른 일들이 일어
나는  것보다 빨리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정확
히  설명할 줄 몰랐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조금 앞서서 자라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으면 될 것을 말이다.
 나는 병뚜껑에 구멍을 뚫어 실을 꿰어가지고 그것을 밍기뉴에게 장식해 주
었다. 그렇게 하니 더욱 밍기뉴는 아름답게 보였고 바람이 불면 병마개끼리 
서로  부딪쳐  후레드 톰슨이 달빛 망아지를 타고 은빛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이 보였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나는 국가를 전부 외우고 특히 '국기에 
대하여'  '자유 국민의 노래'등을 잘 불렀다. 그 중에서도 '자유 국민의 노
래'는  잘 알려진 노래였다. 나도 그랬지만 톰 믹스도 역시 이 노래를 좋아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사냥을 할 
때면 그는 언제나 정중하게 내게 청하곤 했으니까.
 "자, 삐나제 투사여, 내게 자유 국민의 노래를 불러 주시오."
  그러면 나의 작은 목소리는 화요일의 아리오발도 아저씨의 멋진 노래보다
도 더욱 아름답게 넓은 대평원을 가득 채우곤 하였다.
 화요일마다 언제나 학교 수업을 배먹으며 기차를 타고 오는 친구 아리오발
도 씨를 기다리곤 했다. 그는 노래책이 가득 담긴 두 개의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는 언제나 거의 팔았고 그래서 우리는 늘 기분이 
좋았다.
 쉬는 시간에 틈만 있으면 나는 구슬치기를 했다. 애들은 나를 보고 쥐새끼
라고  불렀는데 그건 내가 구슬을 백발 백중 잘 맞추었고 그래서 집에 돌아
올  때면 가지고 있던 구슬보다 몇 배나 더 되는 구술주머니를 흔들며 돌아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우리 담임 선생님의 행동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내가  동네에서 가장 못된 애라고 말해도 믿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보다 욕
을 잘하는 아이도, 나만큼 개구장이가 없다는 사실도 선생님은 결코 믿지를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내가 항상 천사같았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꾸지람을  들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다른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고 지금까
지 입학했던 학생들 가운데 제일 어리고 귀여운 아이라고 칭찬을 들었던 것
이다.
 우리 선생님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
이  점심을 먹는 점심시간이면 마음 아파하시며 나를 불러 과자를 사먹으라
고  돈을 주곤 하셨다. 그러한 선생님을 위해서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
도 나는 착해져야 한다고 다짐하였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달라졌다. 다른 날처럼 천천히 길을 걷고 있는데 <리
오-상파울로> 거리에서 드디어 포르뚜깔 사람의 차가 내곁을 천천히 지나간 
것이다.  그는 경적을 세 번이나 울리며 나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
러한  그의  행동은 내게 사리지고 있던 복수의 분노를 다시 되살아나게 했
다.  그러나 나는 자존심이 상할까봐 얼굴을 돌리고 못본 척해 버리고 말았
다.
 
               *                  *                  *

 "밍기뉴! 그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어. 그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경적을 울리며 내게 다가오지 않겠니? 그것도 세 번이나 말야. 그리고
는 '잘 가'하며 인사도 하지 않겠니."
 "그래서 넌 어떻개 했니?"
 "난 못들은 척해 버렸어. 그는 내가 무섭게 보였을 거야. 나는 곧 여섯 살
이 되고 또 어른이 될 테니까."
 "제제, 넌 그가 겁이 나서 네게 친절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그럴거야. 틀림없어. 잠깐만, 내가 상자를 찾아올께."
  밍기뉴는 많이 자랐다. 그래서 가지에 올라타려면 밑에 상자를 놓고 올라
타야만 했던 것이다.
 "자, 됐어. 얘기 계속하자."
 밍기뉴의 가지에 올라앉아 있으면 세상이 내 것인양 보였고 또 먼 곳도 확
실이  볼 수 있었다. 이곳저곳의 경치도 볼 수 있었고 작은 새들이 입에 벌
레를  물고 나는 것도 보였다. 아직 찾아 오지도 않았는데 루씨아노는 즐거
운  듯  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처음엔 밍기뉴도 다른 애들은 박쥐를 
무서워 하는데 나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루씨아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찾아간 
것이겠지.
 "밍기뉴! 너도 봤지? 아우제니아 여사의 고야바 열매가 노랗게 익은 거 말
야. 이제, 때는 고야바의 계절인가봐. 그런데 내 마음 속의 악마가 그걸 훔
쳐먹자고 충동질하잖아. 문제는 내가 벌써 세 번이나 얻어 맞았단 말야. 지
금 내가 여기 온 것도 매를 맞았기 때문이야."
 그러자 악마는 결국 담장 울타리까지 올라갈 손을 빌려 주었고 고야바나무
가 있는 곳까지 나를 떠밀었다. 저녁나절의 산들바람이 내 코에까지 향기를 
실어다 주었다. 악마는 이렇게 속삭였다.
  "뛰어가, 빨리.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잖아. 이 시간이면 그녀는 일본 사
람의 상점에 간단 말이야.'
  '베네디또  씨? 그사람은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야. 거의 장님인데다 귀도 
들리지 않잖아. 만약 그가 안다고 해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어.'
 나는 언덕이 있는 곳까지 울타리를 끼고 올라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우선 
밍기뉴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벌써 내 마음은 두근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아우제니아 여사는 결코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녀는 굉장한 수다장이다. 내가 숨을 죽이고 한 발자욱씩 가까이 걸어가고 
있을 때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가 부엌창문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구슬을 주으러 왔다는 거짓말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나는 헐레?떡 
언덕  밑의 도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 도랑에는 또 다른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아픈지 비명을 지를뻔했다. 그러나 소리를 질러 
발각되면 나는 매를 맞을 게 뻔하다. 나는 그만 유리조각에 발을 찔린 것이
다. 아픔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유리조각을 빼냈다. 흐르는 피가 도랑에 흐르는 더러운 물과 섞여지
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 하지? 유리조각을 대강 뽑긴 
했으나 흐르는 피를 멈추게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팜을 견디기 위해 
발목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될 것 같았다. 어둠이 다
가오고  있었다.  곧 아빠와 엄마 그리고 라라 누나도 돌아오게 될 것이다. 
나를  보면  때릴 것이다. 셋이서 번갈아 가며 때릴지도 몰라. 나는 도랑을 
절룩거리며 기어 올라와 나의 오렌지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앉아 있자니 토
하고 싶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밍기뉴, 이것 좀 봐!"
  다친 내 모습을 보자 밍기뉴는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밍기뉴도 피를 보
는 걸 싫어하는 걸까?
 "어떡하니? 이걸 어쩌면 좋지?"
  이럴  때 나를 도와 줄 사람은 또또까 형 뿐인데 형은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글로리아 누나는 아마 지금 부엌에 있을 거야. 그녀는 우리 집
안에서  유일하게 나를 감싸주고 내가 매를 맞는 걸 안스럽게 생각한다. 그
렇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달라서 내 귀를 잡아당기거나 벌을 줄지도 몰라. 
하여튼 부 쟤a 봐야겠어. 나는 어떻게하면 글로리아 누나가 나를 때리지 않
을까  생각하며  부엌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글로리아 누나는 수를 놓고 
있었다. 무슨 대책을 마련할 수 없었다. 하느님의 도움이 있겠지 생각했다. 
내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못하고 있을 때 누나는 내가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다. 나는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어버렸다. 누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영문을 몰라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왜 그러니, 제제?"
 "아무 일도 아니야, 누나. 그런데 모두들 왜 나를 좋아하지 않지?"
 "네가 너무 장난꾸러기이기 때문이야."
 "난 오늘도 벌써 매를 세 차례나 맞았어, 누나."
 "맞을 짓을 했으면 당연하지. 아니면 괜히 매를 맞았단 말이니?"
  "아니야. 그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무슨 일이
든지 이유와 구실을 만들어 때리려고 한단 말야."
  그러자 15세 소녀인 글로리아 누나는 감동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누나의 
마음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그 순간을 이용했다.
  "난 차라리 <리오-상파울로> 도로에 나가 차에 치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
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런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누난 널 무척 사랑하고 좋아해."
 "거짓말이야. 당장이라도 누가 때리려고 하면 그냥 놔둘 텐데 뭐."
  "이제 밖이 어두워졌잖니? 그러니 장난을 칠 시간도 없을 테고 그러면 누
가 널 때리겠니?"
 "하지만 이미 일을 저질렀는걸?"
  누나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홍건이 적셔져 있는 피를 보더니 소스라치
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제제?"
  일이 이쯤 되면 일단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글로리아 누나가 나에게 이런 
태도로  나올 때면 언제나 나를 보호하고 내 편을 들어줬으니까 말이다. 누
나는  나를 끌어안고 의자에 올려 앉혔다. 그리고는 그릇에 소금물을 타 가
지고 와서 내 발밑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많이 아프겠다, 제제. 그렇지?"
 "응, 굉장히 아파."
 "어머나, 손가락 세 개만큼이나 찢어졌구나. 어디서 뭘 하다가 이랬니?"
 "누나,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누나, 이제 정말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
할께. 오늘 밤 제발 매를 맞지 않게 해 줘. 응?"
  "그래,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께. 그런데 식구들이 네 발이 헝겊으로 묶
여 있는 걸 보면 당장 알게 될 텐데? 그리고 발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할 
거 아냐, 그럼 모두들 알게 되잖아."
  "누나, 학교엔 갈 거야. 길 모퉁이까지만 운동화를 신고 가면 되니까. 그 
다음엔 좀 쉬울 거야."
 "그럼 어서 가서 자렴. 발을 쭉 펴고 누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파서 내
일은 걷지 못하게 돼."
 누나는 나를 침대까지 부축하여 주었다.
 "식구들이 들어오기 전에 뭐 먹을 것을 갖다줄 테니 먹고 자거라."
  누나가  음식을 가져왔을 때, 나는 고마움을 참을 수 없어 누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런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                  *                  *

 집안 식구가 식탁 앞에 앉았을 때 엄마는 내가 없다는 걸 아시고, 
 "제제는 어디 갔지?"
 "머리가 아프다면서 누워 있는데 아마 잠이 들었을 거예요."
  나는 상처의 아픔도 잊은 채 긴장된 마음으로 식구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
었다.  나는 누나가 나를 감싸주는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글로리아 누나는 
안타까와 볼멘 소리로 말했다.
  "왜  온 식구가 그 애만 때리고 그래요? 오늘은 세 차례나 매를 때리다니 
그건 너무하잖아요?"
 "그러나 그 녀석은 어쩔 수 없어. 매를 맞을 때만 조용하고."
  "네, 꼭 때려야만 하나요? 때리지 않고 말로 야단을 치면 되잖아요? 나는 
어지간하면   때리지  않아요.  아주  장난이  지나치면  귀를  잡아당기는 
정도죠."
 집안 식구들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고 누나만이 나를 보호하려
는 듯 말을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얘기하지만 그 애는 아직 여섯 살도 되지 않았어요. 장난꾸러
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에요."
 나는 누나의 말을 듣고 굉장히 행복했다.

              *                  *                  *

  아침이 되자 누나는 내가 운동화를 신을 때 도와주었고 가방을 챙겨 주면
서 무척 걱정스러워 했다.
 "혼자 걸어갈 수 있겠니?"
 "응, 갈만 해."
  "제제,  <리오-상파울로>  도로에서  아무  일도  없겠지?  바보같은  짓 
하지마."
 "응, 안 할께."
 "네가 지금하는 그 말 믿어도 되지?"
 "그래 믿어도 돼.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난 불
행한 아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야."
  누나는  금발의 내 더벅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문 밖까지 따라나와 주었
다.  이렇게 아픈 걸 보니 큰 길까지 나가기도 힘이 들 것 같다. 신발을 벗
으면 그래도 조금은 아픔이 덜할 것 같았다. 신발을 벗어 보았으나 발이 땅
에  직접 닿을 때는 아픔이 더 해 공장의 벽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가야만 
될 정도로 아픔이 심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학교에 늦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내 앞에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세 
번씩이나 울려왔던 것이다.
  제기랄! 남은 아파 죽을 지경인데 모욕을 주려고 하다니. 그는 차를 옆에 
바싹 붙여 멈추더니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며 말을 건네왔다.
 "어이 꼬마야! 발을 다쳤니?"
  나는  남의 일에 상관할 바 아니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으나 웬일인지 
오늘은  깜둥이 녀석이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대여섯 
발자욱 더 걸어갔다.
 그러자 그는 자동차를 앞으로 몰고 오더니 나의 앞에 차를 바싹 세우고 차
에서 내려와 나의 다친 발을 보려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몹시 다쳤나 보구나."
 나에게 모욕을 주고 나를 때렸던 사람답지 않게 이토록 다정스럽고 은근하
게 말한다는 게 난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거리낌없이 
뚱뚱한  몸을 굽혀 나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따
뜻하고 온화한 애정이 담긴 듯 했다.
 "아주 많이 다친 것 같구나. 얘야, 어쩌다가 그랬지?"
 나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다정했는지 약간 울먹이는 소리로,
 "유리조각에 찔렸어요."
 "깊이 박혔었니?"
 나는 손가락으로 상처의 크기를 가르쳐주었다.
 "아이구, 많이 다쳤구나. 그런데 집에서 쉬지를 않고 학교엘 가니?"
  "집에서는 아무도 제가 다친 줄을 몰라요. 만약 식구들이 알면 매만 맞게 
되거든요."
 "이리 오너라, 내가 데려다 줄께."
 "고맙지만 싫어요."
 "그건 왜?"
 "학교 친구들이 지난 번 일을 모두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래가지고 어떻게 갈 수 있겠니?"
 나는 그렇긴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잘못하다간 내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아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는 내 턱을 치켜 올리더니,
 "우리 지난 번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자. 참, 너 차를 타본 적 있니?"
 "없어요."
 "그래, 그러면 태워 줄까?"
 "안 돼요. 아직 우리는 서로 원수인 걸요."
  "나는 그렇지 않아. 네가 부끄럽다면 학교 앞까지만 태워다 줄께, 괜찮겠
지?"
  너무 고마워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나를 번쩍들어 안더
니  차에 태웠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가서 시동을 걸기전에 다시 한 번 나
를 보더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젠 곧 좋아질 거야, 두고 봐."
 역시 이 거리에서 제일 멋진 자동차답게 자동차를 부드럽고 미끄럽게 움직
였다.  몸을 차에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니 후레드 톰슨의 달빛 망아지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상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눈을 뜨고 밖을 보니 
차는  학교 정문을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숨어버렸다. 그리
고 외쳤다.
 "학교 앞에서 내려주기로 했잖아요?"
 "생각을 바꿨다. 그런 상태로 그냥 놔둘 수는 없어. 잘못하면 파상풍을 일
으킬 수도 있으니까."
  난  아팜에 정신이 팔려 그 근사한 말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또 가기 싫다고 떼를 써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가만히 
있었다. 차는 <까지냐> 거리에 접어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넌 아주 용감한 사내아이같이 보이는데 진짜용감한지 시
험 한번 해볼까? 아마 너 정도면 증명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는  병원 앞에 차를 세우더니 나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라이문드 빠즈 
박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을 때 나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그 의사는 공장
의  담당의사일  뿐더러 아빠와도 잘아는 사이였다. 나의 두려움은 그가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넌 빠울로 바스콘셀로스 씨의 아들이지? 그렇지? 아버지께선 일자리를 구
하셨니?"
 나는 포르뚜깔 사람이 아빠가 실직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웠지
만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하고 계시는 중이에요. 여러 곳에 부탁을 하고 계세요."
 "자, 상처를 어디 좀 볼까?"
 그는 상처에 감아놓은 헝겊을 풀더니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신
음소리같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
다. 그러자 포르뚜갈 사람이 뒤에서 나를 잡아주었다.
  그들은 하얀 시트가 깔린 수술대 위에 나를 앉혀 놓더니 수술기구를 잔뜩 
들고 나왔다. 내가 몸을 벌벌 떨고 있으니 포르뚜깔 사람은 내 등에 자신의 
가슴을  붙이고 정성이 가득한 손길로 내 어깨를 감싸주었기 때문에 공포심
과 떨림은 사라져갔다.
  "많이 아프진 않을 거야. 치료가 끝나면 맛있는 쥬스도 사주고 과자도 사
주마. 울지만 않는다면 배우들의 사진이 그려진 그림딱지도 많이 사줄께."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물이 나왔으나 꾹 참았다. 찢어진 부
분을 꿰매고 피상풍 주사까지 맞았다.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
고 무진 애를 썼다. 아저씨는 나의 어깨를 감싸쥐고 마치 나의 아픔이 자기
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주었으며 하는 바람으로 치료를 지켜보았다. 치료가 
다  끝난  후에도 그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나의 땀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이제 모든 치료가 끝이 났다.
 나를 다시 안아 차에 태웠을 때 그는 매우 만족해 보였다. 그는 내게 약속
한  것들을 모두 사줬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
와  의사가  내 발끝으로부터 온 정신을 모조리 봅아간 것같은 느낌이 들었
다.
 "넌 오늘 학교에 가면 안 돼."
  차 안에서 나는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말을 하는 그의 팔을 만지작거
렸다.
  "집까지 데려다 주마. 무슨 구실을 하나 만들어 내면 돼. 집에 가거든 학
교에서 쉬는 시간에 다쳤는데 선생님께서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고 말야."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아주 용감한 꼬마야."
  난 아픔을 참으며 웃어 주었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
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포르뚜깔 사람이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2 장

                        소중한 사람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동안은 상점 앞에 차를 세워 두는 포르뚜깔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와 길모퉁이로 조심스럽게 다녔다. 
거리는  가로수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리오-상파울로> 도로까지 가기는 괜
찮았다. 그곳에서 길을 건널 때는 손에 운동화를 들고 길을 건너 담벽 밑에 
달라붙어  학교로 가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걱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
라 점점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이제 그 일을 잊어버렸고 일을 당한 아이가 
빠울로 씨의 개구장이 아드리었다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욕할 때면 으례히 이런 말들을 했다.
 '이건 바로 빠울로 씨의 아들 녀석의 짓이란 말야' '그런 저주받을 망나니 
녀석같으니라구' 한번은 호되게 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방구>시에서 안다
라이  씨한테  매를  맞을  때도  '저 녀석은 이 <방구>거리에서 제일 못된 
애'라고까지 말을 했다.
 나는 가끔 그놈의 차가 길모퉁이에 서 있는 걸 봤다. 그럴 때면 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가 가곤 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커서 저 사람의 코를 납작
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이 <방구>거리에서 가장 멋진 차를 가진 
사람이 그런 난폭한 행동을 하다니, 두고 보자.
  어떤  때는 며칠씩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아주 살 것 
같았다. 아마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갔거나 며칠 동안 휴가 중인게 분명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그러는 동안에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
은 남아 있었다. 그건 차에 매달릴 때 느끼던 짜릿함 보다는 생각조차 싫은 
귀가 확확 달아오르는 고통만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길에서 놀았다. 드디어 연을 날리는 계절이 돌아 왔다. 하늘
엔 연들이 아름답고 찬란한 빛으로 떠있어서 마치 낮에 떠있는 별같이 보였
다.  연을 띄울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며칠 동안은 밍기뉴를 만날 틈이 없었으며 연싸움에서 졌을 때나 매를 맞았
을  때  찾아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루이스 왕을 예쁘게 단장해 주듯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치장하고 보살펴 줬다. 나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밍기뉴는 그의 가지를 높이 뻗었고 금방이라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처
럼  자라 주었다. 다른 나무들은 잘 자라지 않는데 나의 오렌지나무는 에드
문드 아저씨께서 날보고 조숙하다고 말한 것처럼 그렇게 잘 자랐다. 아저씨
는  그 후에 조숙이란 말의 뜻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은 다른 일들이 일어
나는  것보다 빨리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정확
히  설명할 줄 몰랐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조금 앞서서 자라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으면 될 것을 말이다.
 나는 병뚜껑에 구멍을 뚫어 실을 꿰어가지고 그것을 밍기뉴에게 장식해 주
었다. 그렇게 하니 더욱 밍기뉴는 아름답게 보였고 바람이 불면 병마개끼리 
서로  부딪쳐  후레드 톰슨이 달빛 망아지를 타고 은빛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이 보였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나는 국가를 전부 외우고 특히 '국기에 
대하여'  '자유 국민의 노래'등을 잘 불렀다. 그 중에서도 '자유 국민의 노
래'는  잘 알려진 노래였다. 나도 그랬지만 톰 믹스도 역시 이 노래를 좋아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사냥을 할 
때면 그는 언제나 정중하게 내게 청하곤 했으니까.
 "자, 삐나제 투사여, 내게 자유 국민의 노래를 불러 주시오."
  그러면 나의 작은 목소리는 화요일의 아리오발도 아저씨의 멋진 노래보다
도 더욱 아름답게 넓은 대평원을 가득 채우곤 하였다.
 화요일마다 언제나 학교 수업을 배먹으며 기차를 타고 오는 친구 아리오발
도 씨를 기다리곤 했다. 그는 노래책이 가득 담긴 두 개의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는 언제나 거의 팔았고 그래서 우리는 늘 기분이 
좋았다.
 쉬는 시간에 틈만 있으면 나는 구슬치기를 했다. 애들은 나를 보고 쥐새끼
라고  불렀는데 그건 내가 구슬을 백발 백중 잘 맞추었고 그래서 집에 돌아
올  때면 가지고 있던 구슬보다 몇 배나 더 되는 구술주머니를 흔들며 돌아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우리 담임 선생님의 행동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내가  동네에서 가장 못된 애라고 말해도 믿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보다 욕
을 잘하는 아이도, 나만큼 개구장이가 없다는 사실도 선생님은 결코 믿지를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내가 항상 천사같았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꾸지람을  들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다른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고 지금까
지 입학했던 학생들 가운데 제일 어리고 귀여운 아이라고 칭찬을 들었던 것
이다.
 우리 선생님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
이  점심을 먹는 점심시간이면 마음 아파하시며 나를 불러 과자를 사먹으라
고  돈을 주곤 하셨다. 그러한 선생님을 위해서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
도 나는 착해져야 한다고 다짐하였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달라졌다. 다른 날처럼 천천히 길을 걷고 있는데 <리
오-상파울로> 거리에서 드디어 포르뚜깔 사람의 차가 내곁을 천천히 지나간 
것이다.  그는 경적을 세 번이나 울리며 나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
러한  그의  행동은 내게 사리지고 있던 복수의 분노를 다시 되살아나게 했
다.  그러나 나는 자존심이 상할까봐 얼굴을 돌리고 못본 척해 버리고 말았
다.
 
               *                  *                  *

 "밍기뉴! 그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어. 그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경적을 울리며 내게 다가오지 않겠니? 그것도 세 번이나 말야. 그리고
는 '잘 가'하며 인사도 하지 않겠니."
 "그래서 넌 어떻개 했니?"
 "난 못들은 척해 버렸어. 그는 내가 무섭게 보였을 거야. 나는 곧 여섯 살
이 되고 또 어른이 될 테니까."
 "제제, 넌 그가 겁이 나서 네게 친절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그럴거야. 틀림없어. 잠깐만, 내가 상자를 찾아올께."
  밍기뉴는 많이 자랐다. 그래서 가지에 올라타려면 밑에 상자를 놓고 올라
타야만 했던 것이다.
 "자, 됐어. 얘기 계속하자."
 밍기뉴의 가지에 올라앉아 있으면 세상이 내 것인양 보였고 또 먼 곳도 확
실이  볼 수 있었다. 이곳저곳의 경치도 볼 수 있었고 작은 새들이 입에 벌
레를  물고 나는 것도 보였다. 아직 찾아 오지도 않았는데 루씨아노는 즐거
운  듯  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처음엔 밍기뉴도 다른 애들은 박쥐를 
무서워 하는데 나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루씨아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찾아간 
것이겠지.
 "밍기뉴! 너도 봤지? 아우제니아 여사의 고야바 열매가 노랗게 익은 거 말
야. 이제, 때는 고야바의 계절인가봐. 그런데 내 마음 속의 악마가 그걸 훔
쳐먹자고 충동질하잖아. 문제는 내가 벌써 세 번이나 얻어 맞았단 말야. 지
금 내가 여기 온 것도 매를 맞았기 때문이야."
 그러자 악마는 결국 담장 울타리까지 올라갈 손을 빌려 주었고 고야바나무
가 있는 곳까지 나를 떠밀었다. 저녁나절의 산들바람이 내 코에까지 향기를 
실어다 주었다. 악마는 이렇게 속삭였다.
  "뛰어가, 빨리.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잖아. 이 시간이면 그녀는 일본 사
람의 상점에 간단 말이야.'
  '베네디또  씨? 그사람은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야. 거의 장님인데다 귀도 
들리지 않잖아. 만약 그가 안다고 해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어.'
 나는 언덕이 있는 곳까지 울타리를 끼고 올라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우선 
밍기뉴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벌써 내 마음은 두근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아우제니아 여사는 결코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녀는 굉장한 수다장이다. 내가 숨을 죽이고 한 발자욱씩 가까이 걸어가고 
있을 때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가 부엌창문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구슬을 주으러 왔다는 거짓말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나는 헐레?떡 
언덕  밑의 도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 도랑에는 또 다른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아픈지 비명을 지를뻔했다. 그러나 소리를 질러 
발각되면 나는 매를 맞을 게 뻔하다. 나는 그만 유리조각에 발을 찔린 것이
다. 아픔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유리조각을 빼냈다. 흐르는 피가 도랑에 흐르는 더러운 물과 섞여지
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 하지? 유리조각을 대강 뽑긴 
했으나 흐르는 피를 멈추게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팜을 견디기 위해 
발목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될 것 같았다. 어둠이 다
가오고  있었다.  곧 아빠와 엄마 그리고 라라 누나도 돌아오게 될 것이다. 
나를  보면  때릴 것이다. 셋이서 번갈아 가며 때릴지도 몰라. 나는 도랑을 
절룩거리며 기어 올라와 나의 오렌지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앉아 있자니 토
하고 싶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밍기뉴, 이것 좀 봐!"
  다친 내 모습을 보자 밍기뉴는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밍기뉴도 피를 보
는 걸 싫어하는 걸까?
 "어떡하니? 이걸 어쩌면 좋지?"
  이럴  때 나를 도와 줄 사람은 또또까 형 뿐인데 형은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글로리아 누나는 아마 지금 부엌에 있을 거야. 그녀는 우리 집
안에서  유일하게 나를 감싸주고 내가 매를 맞는 걸 안스럽게 생각한다. 그
렇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달라서 내 귀를 잡아당기거나 벌을 줄지도 몰라. 
하여튼 부 쟤a 봐야겠어. 나는 어떻게하면 글로리아 누나가 나를 때리지 않
을까  생각하며  부엌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글로리아 누나는 수를 놓고 
있었다. 무슨 대책을 마련할 수 없었다. 하느님의 도움이 있겠지 생각했다. 
내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못하고 있을 때 누나는 내가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다. 나는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어버렸다. 누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영문을 몰라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왜 그러니, 제제?"
 "아무 일도 아니야, 누나. 그런데 모두들 왜 나를 좋아하지 않지?"
 "네가 너무 장난꾸러기이기 때문이야."
 "난 오늘도 벌써 매를 세 차례나 맞았어, 누나."
 "맞을 짓을 했으면 당연하지. 아니면 괜히 매를 맞았단 말이니?"
  "아니야. 그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무슨 일이
든지 이유와 구실을 만들어 때리려고 한단 말야."
  그러자 15세 소녀인 글로리아 누나는 감동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누나의 
마음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그 순간을 이용했다.
  "난 차라리 <리오-상파울로> 도로에 나가 차에 치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
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런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누난 널 무척 사랑하고 좋아해."
 "거짓말이야. 당장이라도 누가 때리려고 하면 그냥 놔둘 텐데 뭐."
  "이제 밖이 어두워졌잖니? 그러니 장난을 칠 시간도 없을 테고 그러면 누
가 널 때리겠니?"
 "하지만 이미 일을 저질렀는걸?"
  누나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홍건이 적셔져 있는 피를 보더니 소스라치
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제제?"
  일이 이쯤 되면 일단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글로리아 누나가 나에게 이런 
태도로  나올 때면 언제나 나를 보호하고 내 편을 들어줬으니까 말이다. 누
나는  나를 끌어안고 의자에 올려 앉혔다. 그리고는 그릇에 소금물을 타 가
지고 와서 내 발밑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많이 아프겠다, 제제. 그렇지?"
 "응, 굉장히 아파."
 "어머나, 손가락 세 개만큼이나 찢어졌구나. 어디서 뭘 하다가 이랬니?"
 "누나,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누나, 이제 정말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
할께. 오늘 밤 제발 매를 맞지 않게 해 줘. 응?"
  "그래,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께. 그런데 식구들이 네 발이 헝겊으로 묶
여 있는 걸 보면 당장 알게 될 텐데? 그리고 발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할 
거 아냐, 그럼 모두들 알게 되잖아."
  "누나, 학교엔 갈 거야. 길 모퉁이까지만 운동화를 신고 가면 되니까. 그 
다음엔 좀 쉬울 거야."
 "그럼 어서 가서 자렴. 발을 쭉 펴고 누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파서 내
일은 걷지 못하게 돼."
 누나는 나를 침대까지 부축하여 주었다.
 "식구들이 들어오기 전에 뭐 먹을 것을 갖다줄 테니 먹고 자거라."
  누나가  음식을 가져왔을 때, 나는 고마움을 참을 수 없어 누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런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                  *                  *

 집안 식구가 식탁 앞에 앉았을 때 엄마는 내가 없다는 걸 아시고, 
 "제제는 어디 갔지?"
 "머리가 아프다면서 누워 있는데 아마 잠이 들었을 거예요."
  나는 상처의 아픔도 잊은 채 긴장된 마음으로 식구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
었다.  나는 누나가 나를 감싸주는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글로리아 누나는 
안타까와 볼멘 소리로 말했다.
  "왜  온 식구가 그 애만 때리고 그래요? 오늘은 세 차례나 매를 때리다니 
그건 너무하잖아요?"
 "그러나 그 녀석은 어쩔 수 없어. 매를 맞을 때만 조용하고."
  "네, 꼭 때려야만 하나요? 때리지 않고 말로 야단을 치면 되잖아요? 나는 
어지간하면   때리지  않아요.  아주  장난이  지나치면  귀를  잡아당기는 
정도죠."
 집안 식구들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고 누나만이 나를 보호하려
는 듯 말을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얘기하지만 그 애는 아직 여섯 살도 되지 않았어요. 장난꾸러
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에요."
 나는 누나의 말을 듣고 굉장히 행복했다.

              *                  *                  *

  아침이 되자 누나는 내가 운동화를 신을 때 도와주었고 가방을 챙겨 주면
서 무척 걱정스러워 했다.
 "혼자 걸어갈 수 있겠니?"
 "응, 갈만 해."
  "제제,  <리오-상파울로>  도로에서  아무  일도  없겠지?  바보같은  짓 
하지마."
 "응, 안 할께."
 "네가 지금하는 그 말 믿어도 되지?"
 "그래 믿어도 돼.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난 불
행한 아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야."
  누나는  금발의 내 더벅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문 밖까지 따라나와 주었
다.  이렇게 아픈 걸 보니 큰 길까지 나가기도 힘이 들 것 같다. 신발을 벗
으면 그래도 조금은 아픔이 덜할 것 같았다. 신발을 벗어 보았으나 발이 땅
에  직접 닿을 때는 아픔이 더 해 공장의 벽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가야만 
될 정도로 아픔이 심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학교에 늦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내 앞에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세 
번씩이나 울려왔던 것이다.
  제기랄! 남은 아파 죽을 지경인데 모욕을 주려고 하다니. 그는 차를 옆에 
바싹 붙여 멈추더니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며 말을 건네왔다.
 "어이 꼬마야! 발을 다쳤니?"
  나는  남의 일에 상관할 바 아니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으나 웬일인지 
오늘은  깜둥이 녀석이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대여섯 
발자욱 더 걸어갔다.
 그러자 그는 자동차를 앞으로 몰고 오더니 나의 앞에 차를 바싹 세우고 차
에서 내려와 나의 다친 발을 보려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몹시 다쳤나 보구나."
 나에게 모욕을 주고 나를 때렸던 사람답지 않게 이토록 다정스럽고 은근하
게 말한다는 게 난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거리낌없이 
뚱뚱한  몸을 굽혀 나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따
뜻하고 온화한 애정이 담긴 듯 했다.
 "아주 많이 다친 것 같구나. 얘야, 어쩌다가 그랬지?"
 나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다정했는지 약간 울먹이는 소리로,
 "유리조각에 찔렸어요."
 "깊이 박혔었니?"
 나는 손가락으로 상처의 크기를 가르쳐주었다.
 "아이구, 많이 다쳤구나. 그런데 집에서 쉬지를 않고 학교엘 가니?"
  "집에서는 아무도 제가 다친 줄을 몰라요. 만약 식구들이 알면 매만 맞게 
되거든요."
 "이리 오너라, 내가 데려다 줄께."
 "고맙지만 싫어요."
 "그건 왜?"
 "학교 친구들이 지난 번 일을 모두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래가지고 어떻게 갈 수 있겠니?"
 나는 그렇긴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잘못하다간 내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아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는 내 턱을 치켜 올리더니,
 "우리 지난 번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자. 참, 너 차를 타본 적 있니?"
 "없어요."
 "그래, 그러면 태워 줄까?"
 "안 돼요. 아직 우리는 서로 원수인 걸요."
  "나는 그렇지 않아. 네가 부끄럽다면 학교 앞까지만 태워다 줄께, 괜찮겠
지?"
  너무 고마워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나를 번쩍들어 안더
니  차에 태웠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가서 시동을 걸기전에 다시 한 번 나
를 보더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젠 곧 좋아질 거야, 두고 봐."
 역시 이 거리에서 제일 멋진 자동차답게 자동차를 부드럽고 미끄럽게 움직
였다.  몸을 차에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니 후레드 톰슨의 달빛 망아지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상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눈을 뜨고 밖을 보니 
차는  학교 정문을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숨어버렸다. 그리
고 외쳤다.
 "학교 앞에서 내려주기로 했잖아요?"
 "생각을 바꿨다. 그런 상태로 그냥 놔둘 수는 없어. 잘못하면 파상풍을 일
으킬 수도 있으니까."
  난  아팜에 정신이 팔려 그 근사한 말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또 가기 싫다고 떼를 써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가만히 
있었다. 차는 <까지냐> 거리에 접어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넌 아주 용감한 사내아이같이 보이는데 진짜용감한지 시
험 한번 해볼까? 아마 너 정도면 증명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는  병원 앞에 차를 세우더니 나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라이문드 빠즈 
박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을 때 나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그 의사는 공장
의  담당의사일  뿐더러 아빠와도 잘아는 사이였다. 나의 두려움은 그가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넌 빠울로 바스콘셀로스 씨의 아들이지? 그렇지? 아버지께선 일자리를 구
하셨니?"
 나는 포르뚜깔 사람이 아빠가 실직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웠지
만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하고 계시는 중이에요. 여러 곳에 부탁을 하고 계세요."
 "자, 상처를 어디 좀 볼까?"
 그는 상처에 감아놓은 헝겊을 풀더니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신
음소리같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
다. 그러자 포르뚜갈 사람이 뒤에서 나를 잡아주었다.
  그들은 하얀 시트가 깔린 수술대 위에 나를 앉혀 놓더니 수술기구를 잔뜩 
들고 나왔다. 내가 몸을 벌벌 떨고 있으니 포르뚜깔 사람은 내 등에 자신의 
가슴을  붙이고 정성이 가득한 손길로 내 어깨를 감싸주었기 때문에 공포심
과 떨림은 사라져갔다.
  "많이 아프진 않을 거야. 치료가 끝나면 맛있는 쥬스도 사주고 과자도 사
주마. 울지만 않는다면 배우들의 사진이 그려진 그림딱지도 많이 사줄께."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물이 나왔으나 꾹 참았다. 찢어진 부
분을 꿰매고 피상풍 주사까지 맞았다.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
고 무진 애를 썼다. 아저씨는 나의 어깨를 감싸쥐고 마치 나의 아픔이 자기
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주었으며 하는 바람으로 치료를 지켜보았다. 치료가 
다  끝난  후에도 그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나의 땀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이제 모든 치료가 끝이 났다.
 나를 다시 안아 차에 태웠을 때 그는 매우 만족해 보였다. 그는 내게 약속
한  것들을 모두 사줬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
와  의사가  내 발끝으로부터 온 정신을 모조리 봅아간 것같은 느낌이 들었
다.
 "넌 오늘 학교에 가면 안 돼."
  차 안에서 나는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말을 하는 그의 팔을 만지작거
렸다.
  "집까지 데려다 주마. 무슨 구실을 하나 만들어 내면 돼. 집에 가거든 학
교에서 쉬는 시간에 다쳤는데 선생님께서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고 말야."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아주 용감한 꼬마야."
  난 아픔을 참으며 웃어 주었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
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포르뚜깔 사람이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4 장

                      잊을 수 없는 아픔

 "여길 잡아봐. 접었으면 그곳을 칼로 똑바로 잘라."
 칼날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종이를 잘라냈다.
  "잘래  냈으면 그곳에 엷게 풀을 칠해. 가장자리만 발라야 돼. 이렇게 말
야."
 나는 또또까 형에게서 종이 풍선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풀로 붙인 
후 형은 빨래 집게로 풍선 주둥이를 접어서 뾰족하게 만들었다.
 "풀이 완전히 마른 뒤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으면 풍선이 되는 거야. 이 
바보야. 이제는 알겠니?"
 "응, 이제는 알 것 같아."
 나는 부엌 문턱에 걸터앉아 풀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형은 공
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곁에서 내게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땅제르식의 풍선을 만들려면 연습을 더 많이 해야 되니까 우선 처음 배우
는 애는 쉬운 것부터 배워야 해."
  "그럼 형! 지금부터는 나 혼자 만들어볼 테니까 입부분은 형이 만들어 주
겠어?"
 "생각해 볼께."
 형은 또 나에게 무슨 흥정같은 것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마 내 구슬이 탐이 나거나 아니면 <어떻게 자랐는지 아무도 몰라>에 나
오는 영화배우가 그려진 그림딱지를 요구할 것 같은 눈치였다.
 "난 형을 대신해서 싸움까지 해 줬고 매도 대신 맞아 줬잖아."
  "좋아.  그럼 이번만 공짜로 해주겠어. 하지만 다음엔 절대로 그냥은 안 
돼."
 "그래, 그렇게 할께."
  그 말을 듣고 나는 잘 보고 배워서 다음부터는 형이 손도 대지 못하게 해
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은 종이풍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꼭 나의 풍선을 만들겠어. 뽀르뚜까에게 이런 얘길하면 얼마나 좋
아할까. 또 내 손에서 흔들리는 풍선을 보면 슈르루까는 얼마나 놀랄까.
  나는 풍선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 빠져서 주머니에 그림 딱지와 구슬을 담
아가지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것들을 아주 싸게 누구에게 팔아서 종이 풍
선을 만들 은종이 두 종을 사고 싶어서였다.
 "얘들아, 내 구슬 사지 않을래? 1또스땅에 다섯 개 줄께. 아주 새 거야."
 그러나 아무도 살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1또스땅에 그림딱지 열 장 줄께. 로따 여사의 가게에 가도 이렇게 
많이 주진 않아."
 그래도 사겠다는 아이가 없었다. 나는 검둥이 애들에겐 돈이 없다는 걸 잊
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쁘로그레수> 거리로 또 <까마네마남작> 거리까지 
돌아다녔으나  헛수고였다. 아무도 나의 싸구려 그림딱지와 구슬을 사줄 애
들은 없었다.
  이젠 지쳐서 딘디냐 할머니댁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시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얘야,  나는 그림딱지나 구슬 같은 것은 필요 없단다. 그런 물건은 네가 
갖고 있는 게 더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와서 다시 새 것을 
사달라고 조를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대답하시겠지만 사실 할머니께선 돈이 없을 게 분명했다. 나는 다
시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발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 몹시 더러워져 있
었고 해는 벌써 기울어 곧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았다.
 "제제! 제제!"
 비리낑뉴 녀석이 나를 부르며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너를 사방으로 찾아다녔어. 아직도 팔 게 남았니?"
 나는 말 대신 주머니를 흔들어 소리를 내어 보였다.
 "앉아서 보도록 하자."
 나는 땅바닥에 주머니 속의 그림딱지와 구슬을 꺼내 펼쳐보였다.
 "얼마니, 이게?"
 "구슬은 1또스땅에 다섯 개고, 그림딱지는 열 장을 줄께."
 "얘, 좀 비싸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왈칵 화가 났다. 못된 놈 같으니라구. 다른 때는 그
림딱지는  다섯 장 구슬은 세 개만 달라고 사정하더니, 오늘은 싸게 판다고 
해도 비싸다고 트집을 잡다니.
 "네 녀석처럼 싼 것만 좋아하는 녀석은 이 정도도 비쌀 테지. 그만둬."
 "제제, 그럼 잠깐 고를 수 있니?"
 나는 주머니에 딱지와 구슬을 다시 주워 담으려다 말고,
 "얼마나 사려고 하는데?"
 "내게 3백 레이스가 있는데 2백 레이스는 쓸 수 있거든."
 "그럼 구슬 6개와 그림딱지 12장 줄께. 그럼 됐니?"
  나는  <미제리아 이 포미> 가게로 뛰어갔다. 뽀르뚜까와 있었던 지난번의 
일을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가게안에는 오란도 씨만
이  누군가와 카운터 곁에 앉아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뿐이었다. 공장의 작
업이  끝나면 싸이렌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몰려와 뭘 마실 때 외에는 늘 
한산하기만 하다.
 "은종이 있어요?"
 "있긴 있다면, 오늘은 돈을 가지고 왔니? 이제부터 아빠 앞으로 외상은 안 
된다."
 나는 다른 말은 하기도 싫었다. 은전 두 개를 보여줬다.
 "장미색과 호박색 두 가지 뿐이다."
 "그것 말고는 없어요?"
 "연을 날리는 계절이라 그런지 애들이 사갔어. 하지만 색깔이 무슨 상관이 
있겠니? 높이 잘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걸."
  "연을 만들려고 그러는 게 아니예요. 이번엔 종이풍선을 만들 거예요. 제
가 처음 만드는 거니까 다른 애들보다 더 예쁘게 만들려고 그래요."
  나는 그곳에서 지껄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쉬꼬 프랑꼬 상점까지 가자
면 괜히 시간만 허비할 것 같아 그냥 사기로 결정했다.
 "그냥 주세요. 아저씨!"
 나는 은종이를 가지고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제는 사정이 예전과는 
달랐다.  나는 책상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루이스 왕을 앉게하고 내가 종이
풍선 만드는 것을 보도록 했다.
  "루이스, 조용히 하고 있어. 난 지금 어려운 일을 할 거니까 너는 구경만 
해. 나중에 네가 좀 더 크면 공짜로 가르쳐줄 테니까 알았지?"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공장에서는 싸이렌소리가 들려왔다. 빨리빨리 
서둘러야할  것  같다. 잔디라 누나는 벌써 식탁 위에 접시들을 갖다놓으며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나는 나중에 식사하는 식구들을 성가시게 한다
며 우리에게 먼저 식사를 하라고 했다.
 "제제! 루이스! 어서 와서 식사해."
 우리가 밖에 있는 것도 아닌데 소리를 크게 내어 불렀다.
 "루이스, 먼저 가 있어. 금방 갈께."
 "제제, 빨리 오지 못하니? 늦게 오면 벌 줄거야."
 "그래 누나, 곧 갈께."
 누나는 오늘도 기분이 나빠 있었다. 애인 녀석들하고 다툰 모양이었다. 길 
위에 사는 녀석인지 길 아래에 사는 녀석인지와.
  풀도 거의 마르고 조금만 더 하면 종이풍선이 만들어지는데 손에 풀이 말
라붙어서 일을 더디게 했다.
  이제 주위는 점점 어두워 일하기가 자꾸 어려워지는데 누나의 고함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제제! 제제!"
 "그래 다 됐어. 갈께."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다보니 화가 나서 쫓아온 누나를 보지도 못했다.
 "너는 내가 식모인 줄 아니? 빨리 와서 식사하지 못하겠어?"
  누나는 나의 귀를 잡아 끌고 가더니 식탁 위에 나를 밀어버렸다. 나는 화
가 치밀어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
 "안 먹겠어. 안 먹는단 말야! 난 종이풍선을 계속 만들거야."
 나는 식당을 뛰쳐나와 조금 전 그곳으로 다시 와버렸다. 그러자 누나는 마
치  사나운 맹수처럼 책상 위에 만들지 못한 종이풍선을 갈기갈기 찢어버렸
다.  나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나를 다시 
식당 안으로 끌고가 내동댕이를 쳐버렸다.
 "말로 좋게 할 때 들어!"
 이때 내 마음 속의 악마가 살아나 뛰쳐나왔다.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반항
심도 태풍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입에서 튀어 나오는대로 막 해댔다.
 "널 뭐라고 그러는지나 알고 있니? 넌 갈보래."
  누나는 얼굴을 내 눈 앞에 바싹 내밀더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말했
다.
 "뭐라구? 다시 한 번 지껄여봐, 어서."
 나는 한마디씩 똑똑 끊어가며 다시 한 번 외쳤다.
 "갈 --- 보!"
 그랬더니 누나는 옷장 위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들더니 나를 무자비하게 정
신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나는 등을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
다. 그러나 매를 맞는 아픔보다는 분노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갈 --- 보! 갈보! 나쁜 놈의 계집애!"
 누나는 매질을 계속 해댔고 내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아픔과 쓰라림으
로 변해갔다. 그때 또또까 형이 들어왔다. 형은 나를 때리다가 지친 누나를 
돕는 협력자가 되었다.
 "죽여라, 죽여! 감옥이 내 대신 널 복수하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녀는 매질을 다시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쓰러질 것 같아 옷
장에 몸을 기대며 매를 견뎌내고 있었다.
 "갈보! 갈보 기집애!"
 형은 나를 일으켜 세워 앞을 보게 했다.
 "입 다물지 못하니, 제제? 누가 누나에게 함부로 그런 욕을 하니."
 "누난 갈보야. 갈보 계집애란 말야!"
  그러자 누나는 이제 더욱 심하게 때렸다. 눈과 코 그리고 입을 마구 후려
쳤다. 무엇보다도 입을 더 세게 때렸다.
  그러한 험학한 상황에서 나를 구해 준 사람은 글로리아 누나였다. 이웃집
에서 로제나와 얘기를 하고 있던 중에 나의 고함소리를 듣고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  방으로  들어온 글로리아 누나는 나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형을 저쪽으로 밀어 제치고 진다리 누나가 자기 언니라는 것도 
잊은  채 또 떠밀어버렸다. 나는 식당 바닥에 누워 눈도 못 뜨고 숨만 간신
히 내쉬고 있었다. 누나는 나를 방으로 데리고갔다.
  그러나 난 울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 루이스는 내 대신 안방 구석에 숨어 
무서운 공포에 질린 채 울고 있었다. 크나큰 이유도 없이 심하게 매맞는 것
을 보고 놀란 것이다.
 "언젠가 너희들은 이 애를 죽이고 말거야. 두고 보자, 인정이라곤 털끝 만
큼도 없는 괴물들아."
  글로리아 누나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상처를 씻어 줄 소금물을 대야에 떠
왔다. 또또까 형이 들어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그를 밀어
냈다.
 "저리 나가. 이 바보같은 녀석아!"
 "누나는 쟤가 무슨 욕을 했는지 못 들어서 그래."
  "이 애가 먼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분명 너희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을 거
야.  내가 밖에 나갈 때만 해도 제제는 책상 앞에서 이 풍선을 만들고 있었
단  말야. 인정머리 없는 것들. 어떻게 어린 동생을 이토록 심하게 때릴 수
가 있니?"
  누나가  피를 소금물로 씻어내고 있을 때 나는 부러진 이 하나를 뱉었다. 
부러진 이빨이 나오자 글로리아 누나는 화산이 폭발하듯 무섭게 변했다.
 "또또까! 봐라,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 겁쟁이 바보 녀석아. 네가 
싸울 때는 겁이 나서 동생을 대신 사우게 하면서, 이 나쁜 녀석아. 아홉 살
이나 먹어가지고도 아직도 침대에 오줌을 싸는 녀석. 매일 아침마다 장농에 
숨겨둔 오줌싼 바지와 침대 시트를 온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야."
  누나는 그들을 방 밖으로 쫓아내고는 방문을 잠가버렸다. 방이 어두워 불
을 켜고 내 셔츠를 벗긴 후 상처와 핏물을 닦아 주었다.
 "많이 아프지?"
 "오늘은 굉장히 아팠어."
  "내가  문질러 줄께. 아프지 않게 닦아 줄께. 그리고 마를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옷에 상처가 달라붙어서 더 아파."
 그러나 내가 정작 아픈 곳은 마음이었다. 뚜렷하게 큰 이유가 없는 지나친 
매질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누나는 나의 곁에 누워 나의 머리를 쓰다듬
어 주었고 그러는 동안에 나의 상태는 약간 좋아졌다.
  "글로리아 누나도 알거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내가 정작 매맞을 짓
을 했다면 맞아도 상관 안 해. 그러나 난 맞을 짓을 하지 않았단 말야."
 누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난 내 종이풍선이 못쓰게 돼서 가장 슬퍼. 정말 예쁜 풍선이었어. 루이스
에게 물어보면 알아."
 "그래 난 네 말을 믿어. 무척 예뻤을 거야.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마. 내
일  딘디냐 할머니 댁으로 가서 다시 종이를 사다 줄께 그리고 세상에서 가
장 아름다운 풍선을 만들도록 이 누나가 도와줄께.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
은 물론이고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질투를 하게 될거야."
  "누나 이젠 필요없어. 맨 첫번에 만다는 풍선이 가장 아름다운거야. 그러
니 그 첫번째의 풍선이 못쓰게 됐을 때 더이상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
야."
  "그래,  알겠다. 제제, 언젠가는 내가 너를 데리고 이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갈께. 우리 그곳에서 함께 살자, 응?"
  그리고 누나는 말이 없었다. 틀림없이 딘디냐 할머니 댁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러나 거기도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 돼 버릴걸.
  나의 오렌지나무와 내 환상의 세계에 누나가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제제, 내가 너를 톰 믹스나 벅 죤스가 살고 있는 목장으로 데려다줄께."
 "그렇지만 난 후레드 톰슨이 훨씬 좋은데, 누나?"
 "그래, 그렇다면 그곳에 데리고 갈께."
 그리고 누나와 나는 서글픈 마음에 소리없이 흐느껴 울었다.

             *                    *                   *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이틀 동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뽀르뚜까
에게 가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렇게  잔인스러운 행동을 어린애에게 했다는 사실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
았기  때문이다.  부었던 얼굴이 조금 빠지고 상처가 아물어서야 나는 전과 
같은  나만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루이스와 밍기뉴 옆에서 시간
을  보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아빠
는  내가 다시 한 번 상스러운 욕을 하면 아주 호되게 매를 맞을 각오를 하
라고  나에게  다짐을 받으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서움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차라리 내 오렌지나무 밑에 앉아 있는 편이 나았다. 뽀르뚜까가 사
준 그림딱지를 보면서 루이스에게 구슬치기를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동생은 
그런  장난엔 별로 취미가 없는지 빨리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렇지만 좀 더 
연습하면 숙달이 되겠지.
 나는 뽀르뚜까가 무척 보고 싶었다. 그는 분명히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며 만약 우리 집을 안다면 찾아왔을 것이다. 반쯤은 
가라앉은  묵직하고  애정과 다정함이 담긴 목소리로 '너'라고 부르던 그의 
음성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뽀르뚜까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의 검붉은 얼굴,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검은색 양복, 옷장에서 금방 꺼내입은 듯 빳빳한 칼라가 있는 체크
무늬의 조끼, 그리고 배의 닻모양으로 만든 카우스 단추까지도 떠올랐다.
  곧  몸이 좋아지겠지.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혼하면 병이 낫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보다 빨리 나아질 거야.
  그날  밤 아빠는 외출을 하지 않으셨다. 집안에는 루이스와 나 뿐이었다. 
동생 루이스는 자고 있었다. 엄마는 영국인이 하는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시
기 때문에 밤에야 돌아오시고 우리와는 일요일에만 같이 지내게 된다.
 나는 아빠 곁에 있기로 결심을 했다. 왜냐하면, 장난치지 않겠다고 아빠와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 옆에 있으면 장난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흔들의자에 앉은 채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고, 얼굴은 수염을 깎지 않아 꾀죄죄한 모습이었
으며 옷은 더러워 더욱 안 돼 보였다. 그날 밤은 돈이 없으신지 친구들과의 
트럼프  놀이에도 가시지 않으셨다. 불쌍한 우리 아빠! 엄마와 누나가 살림
을 꾸려나가기 위해 공장에 다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아빠는 얼
마나  마음이  슬프실까? 조그만 일자리 하나를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는 젊은 일꾼이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되돌아 오는 아빠는 실망으로 가슴을 메우셨겠지.
 나는 문옆 벽에 기얼로가는 하얀 도마뱀 새끼를 바라보다가 아빠를 바라보
았다.
  지금  아빠의 얼굴 표정은 크리스마스날 내가 보았던 얽루보다 더 슬프게 
보였다.  그러한  아빠를 위해 뭐 해드릴 게 없을까 생각했다. '아, 노래를 
불러드리면 어떨까? 그래, 내가 나지막한 목소로리 노래를 불러드리면 아빠
의 마음이 조금은 풀리시겠지' 머리 속으로 무슨 노래를 불러드릴까 생각하
다가 마침 최근에 아리오발도 씨에게서 배운 노래를 불러드리기로 했다. 그 
노래는  탱고곡으로 내가 들은 노래들 중에서 제일 멋지고 아름다운 노래였
기 때문이다. 아직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발가벗은 여자와 같이 있고 싶어
 달이 밝은 밤이면
 발가벗은 여자가 더욱 좋아

 "제제!"
 "네, 아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일어났다. 아빠는 내 노래를 들으시고 기분이 좋으
셔서 가까이 와서 불러보라고 하시는 걸거야.
 "너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는 거냐?"
 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누나 너에게 그런 노래를 가르쳐 줬니?"
 아빠의 두 눈은 노여움으로 불타고 있었으며 불꽃이 튕겨나올 것 같았다.
 "아리오발도 씨에게 배웠어요."
 "아빠가 그런 사람은 따라다니지 말라고 했지?"
 아빠는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었다. 아빠는 내가 길거리에서 아리
오발도  씨의 조수로 일한 것을 모르고 계신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말?
므을 하실까......?
 "다시 한번 노래를 불러봐."
 "이 노래는 요새 유행하는 탱고예요."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그 순간 아빠는 나의 뺨을 때리셨다.
 "어디 다시 불러 봐. 계속......"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아빠는 또 때리셨다. 몇 차례 얻어 맞으니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불러 봐, 계속 더 불러보란 말야."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내 얼굴은 부어올라 흐물흐물해질 정도였다. 눈을 떴다가도 다시 맞을 때
면 그 충격으로 눈이 감겼다. 나는 아바지의 말에 복종을 해야할지 그만 두
어야 할지조차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난 매를 맞는 고통 속에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것이 내가 맞는 
마지막  매이도록 맞고 죽어야겠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는 다시 
노래를  부르라고 고함을 치셨다.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대신 경멸과 원
망에 가득찬 눈으로 아빠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를 죽어여, 단번에 죽이란 말야. 감옥이 내 대신 복수하려고 기다리고 
있단 말야......" 
 아빠는 화가 나서 의자에서 난폭하게 일어나시더니 허리띠를 푸셨다?. 두 
개의  쇠고리가  달린 허리띠였다. 아빠는 그 허리띠로 마구 때리시며 욕을 
정신없이 해대셨다.
  허리띠는  머리 위에서 윙윙 울면서 나의 몸의 이곳 저곳에 감겼다. 마치 
천  개의 손가락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고 아빠의 욕은 장단을 맞추는 듯도 
했다.
  "이  강아지 새끼같은 녀석. 돼지처럼 더러운 녀석. 망나니 같은 새끼야. 
그런 말을 어떻게 아빠에게 지껄일 수 있느냔 말이다."
  나는  이렇게 난폭한 매질과 욕설 속에서도 글로리아 누나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나를 죽이려하는 순간 구원하러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나와 닮아 머리가 고양이 같았다. 
집안에서는 누구도 글로리아 누나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방에 들어온 누
나는 아빠가 내려치려는 손을 잡아 매질을 멈추게 했다.
  "아빠,  차라리  저를  때려  주세요.  제발  이  애만은 더 이상 때리지 
마세요."
  아빠는 식탁 위에 때리던 허리띠를 던져버렸다. 누나가 나를 일으켰을 때 
나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울
음을 터뜨리셨다.
 "저녀석이 나를 건드렸어. 내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말야."
 "그게 아닐 거예요. 저 애는 아빠를 위해서 그런 것인데 아빠가 오해를 하
신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정신이  나갔지.  난  나를  놀리는 줄 알았어. 그래서 
그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온 몸은 열이 오르고 여기 저기 아팠다. 엄마
와  글로리아 누나는 나의 머리맡에 앉아 다정하면서도 슬픔에 가득찬 목소
리로 위로하여 주셨다. 거실에서는 사람들의 모소리가 많이 들려왔다. 딘디
냐  할머니도 와 계셨다. 이런 일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정신
을 잃고 있을 때 의사가 다녀갔었다고 했다. 그러나 몸은 역시 아프기만 했
다.
  글로리아  누나는 스프를 들고 와서 숟갈로 먹여주려고 애를 썼지만 삼킬 
땜녀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고통이 심했다. 지독스러운 졸음이 쏟아져 잠
을  자고  깨어나는 반복 속에서 나의 몸은 차츰 고통이 덜해 갔다. 엄마와 
누나는 밤새도록 곁에 앉아 계시다가 새벽이 돼서야 일하러 가실 준비를 하
셨다.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시며 나를 그녀의 가슴에 안으며 안심을 시키
셨다.
 "별일 없을 거야, 제제. 이제 오늘이 지나가고 내일이면 다 나을거야."
 "엄마!"
 나는 흐느끼를 목소리로 내 일생에 가장 슬픈 일을 말하려는 듯 말했다.
 "엄마, 난 태어나지를 말았어야 하는 애였어요. 내 종이풍선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없어져야 했어요."
 엄마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운명이란다. 너 역시 운명이야. 너는 가끔 
심한 장난을 쳐서 매를 맞으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5 장

                     부드럽고 이상한 간청

  나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나는 매맞을 때 고통이
나  정신적인 아픔 때문에 얌전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은 나
에게  너무나 잘 대해 줬다 그러나 나의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고 아쉬웠
다.  나는 조용하게 지냈다. 사람을 믿고 호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생각
이 들었지만 나는 언제나 밍기뉴곁에 앉아 무관심 속에 그저 말없이 동생과 
노는  정도였다. 나는 루이스가 좋아하는 단추들을 실에 꿰어주면서 온종일 
올렸다  내렸다하며 케이블카놀이를 했다. 나는 동생을 잘 대해 줬다. 왜냐
하면 내가 이런 놀이를 좋아했을 때도 동생처럼 어렸을 때였다는 생각이 들
어서이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가 말이 너무나 없고 조용한 것이 염려가 되는 모양이
었다.  누나는 내게 그림딱지도 꺼내 주고 구슬주머니도 곁에 놓아주었으나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영화구경도 구두닦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고 다만 
내  가슴 속에서 커져가는 슬픔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나를 그토록 난
폭하게 이유없이 때리다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환상의 세계를 다시 되찾아 주려고 이것저것 물어왔
다.
 "그들은 이제 거기에 없을 거야. 모두 멀리 떠나 먼 어디에 있을 거야."
 누나는 후레드 톰슨과 그 친구들의 얘기를 확신이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누나는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변화를 알지 못했다. 그 변화는 내
가  즐겨보던 영화를 이제 바꿔야겠다는 결심이다. 카우보이니 인디안 영화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젠 사랑에 관한 영화를 보며 어른들
이 말하는 애정과 포옹 키스같은 장면을 봐야 한다. 항상 매를 맞고 살아가
는  나같은 애한테는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꼭 보아두어야 할 것 같
았다.
  드디어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오긴 했으
나 학교엔 가지 않았다. 그건 뽀르뚜까가 일주일이나 '우리들의 차'를 가지
고  나를  기다렸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한 주일 동안 
그곳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어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를 약속했던 것이다. 비밀스
러운 만남을 죽음으로써 지키자고 말했던 것이다. 그 누구도 하느님 외에는 
우리들의 만남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약속이었기 때문에......
  역  맞은 편 제과점 앞에 가까이 가니 그 멋진 우리들의 차가 서 있었다. 
그때서야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행복의 빛이 비치는 것 같았고 나는 그리움
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열어 젖히고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나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를......
  그때 역에서 아름다운 기적소리가 멋지게 울려퍼져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소리는 이 철길의 주인격인 망가라띠바의 소리였다. 기차는 날듯이 몸을 움
직이며  지나가는데 차 안의 사람들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여행을 즐기
고  있었다.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어렸을 때 망가라띠바가 지나가면 나는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은 루이스 나이의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제과점의 탁자 사이를 지나가다 그를 찾아냈다. 그는 마지막 탁자에 앉아 
있었다. 멋져 보이던 체크무늬 셔츠도 입지 않았고 소매자락의 단추도 잠그
지  않은 채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천천히 다가갈 때 현기증이 조금 났
었다. 내가 왔다는 걸 제과점 주인인 라디스라우씨가 알려 주었다.
 "잘 봐, 누가 와 있는지 아나?"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즐거운 웃음을 띄우고 팔을 벌려 나를 안았
다.
 "그래 오늘은 네가 올거라고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 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다 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아, 그 동안 어디에 도망가 있었니?"
 "많이 아팠어요."
 그는 의자를 당겨놓으며,
 "자, 여기 어서 앉거라."
 그리고는 내가 좋아하는 생과자와 마실 것을 주문했다. 난느 먹고 싶은 생
각이  없어 그냥 팔에 머리를 기댄 채 앉아만 있었다. 그는 내가 슬픔에 잠
겨 있는 것을 알았다.
 "먹기 싫으니?"
  대답을 하지않자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있었으나 곧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이녀석 보게. 왜 그래? 이 친구에게 얘기해 봐. 응?"
 "말할 수 없어요. 여기서는요."
 나는 한 가지만 얘기하기로 했다.
 "뽀르두까, 아직도 그 차가 우리들의 차가 틀림이 없나요?"
 "그럼, 아직도 믿지 못하겠니?"
 "그렇다면 저를 태우고 아무 곳으로나 갈 수 있나요?"
 아저씨는 나의 갑작스런 부탁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가도록 하지."
 그는 나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보더니 팔로 안아 자동차까지 가더니 문
을 열고 나를 앉혔다.
  빵값을 계산하기 위해 다시 들어간 그가 라디슬라우 씨와 얘기를 주고 받
는 게 들렸다.
 "저 애는 집에서 아무한테도 이해를 받지 못하고있어. 저렇게 똑똑한 애는 
아직 본 적이 벗거든."
  "아니 뽀르뚜까! 솔직히 말해봐. 자네는 정말 저 개구장이 녀석을 좋아한
단 말인가?"
 "이봐! 자네가 저 애를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 뿐이야. 저 애는 아주 
영리하고 깜찍한 녀석이야."
 그는 다시 차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아무 곳이나 가까운 곳으로 가요. 그러면 휘발유가 적게 들잖아요?"
 그는 웃었다.
 "넌 이제 보니 어른들의 문제까지 이해하고 있구나."
  우리집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어느 것이나 낭비하지 말라
는 것을 배워왔다. 돈을 많이 쓰게 되면 생활이 더욱 쪼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이브를 하면서 내게 아무 마? 걸어오지 않았다. 마음이 진정되
도록 그냥 놔두는 것 같았다. 동네를 벗어나 녹색의 풀들과 숲이 보였을 때 
그는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항상 그러듯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항상 
애정이  그리운 나에게 그는 그렇게 다정스럽고 따뜻한 미소로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다.
  "뽀르뚜까, 제 얼굴을 좀 보세요. 아니 얼굴 말고 주둥이를요. 우리 집에
서는  제 입을 주둥이라고 해요. 그건 제가 사람새끼가 아니고 짐승이며 악
마의 새끼이기 때문이래요. 전 삐나제 인디안이에요. 악마의 새끼구요."
 "난 오히려 네 얼굴이 보고 싶은걸."
 "잘 보세요. 매를 맞아서 얼마나 부었는지요."
 뽀르뚜까의 눈은 놀라움과 불안함 그리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이토록 매를 맞았니?"
 난 사실대로 그에게 모두 말을 해 줬다. 빠짐없이 얘기를 해 주고 났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애에게 이토록 심하게 매질을 하다니, 맙소사. 여섯 
살도 안 된 어린애를......"
  "저는 왜 그랬는지 알아요. 저는 쓸모없는 아이이기 때문이에요. 지난 크
리스마스  때에도 착한 아기예수처럼 되지 못하고 악마가 대신 태어나 버린 
거예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넌 아직 천사처럼 착한 꼬마야. 그렇기 때문에 심
한 장난꾸러기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나의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어 마음이 아팠다.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쁜  아이라고  엄마에게  말해 
버렸어요."
 그는 처음으로 말을 더듬거렸다.
 "그런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돼."
  "전 뽀르뚜까와 얘길 나누고 싶어요. 전 말이 너무 많아요. 전 아빠가 일
을  못하시고 계시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알고 있어요. 또 고통스러
워  하신다는 것도 알아요. 엄마는 아빠 대신 새벽부터 영국사람의 방직 공
장에 일을 나가요. 실이 담긴 통을 어깨에 메고 다녀서 곪고 그래서 붕대를 
감고  다녔어요. 라라 누나는 공부도 잘 했는데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는 처
지가 돼 버렸어요. 그러한 이유들이 아빠의 기분을 언짢게 하였으이라고 생
각은  해요. 하지만 아빠가 그렇게 심하게 때릴 수는 없다고 봐요. 지난 크
리스마스 날 내가 말을 잘못했을 때 나를 때려고 좋다고 내 입으로 말은 했
지만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그는 나의 얘길 듣더니 놀라며 그의 얼굴을 나의 얼굴에 부비면서,
 "어쩜 너같은 어린애가 어른들의 고통까지 이해를 한단 말이냐? 정말 너같
은 꼬마는 처음 보겠구나."
 그는 약간 울먹이는 듯 침을 삼켰다.
 "우리는 친구사이다. 그렇지? 그러니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마음을 털어놓
고  얘기를  해볼까? 때때로 너로부터 그런 애기를 들을때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으며  냉정해지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누나 뿐만 아니고 욕
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알아 듣겠니?"
  "하지만 저는 어려서 힘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말로 복수할 수밖에 없
었어요."
 "넌 네가 욕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거니?"
 나는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으면서 욕을 했다면 더욱 욕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우리는 잠시 얘길 중단했다. 잠시 후,
 "뽀르뚜까!"
 "왜?"
 "아저씬 제가 욕하는 게 싫으세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좋아요. 제가 죽지 않는 한 앞으로 욕을 하지 않을 거예요. 맹
세할께요."
 "좋다. 그런데 죽는다는 말은 무슨 말이니?"
 "잠시 후에 말할께요."
 우리는 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근심에 쌓여 있었다.
  "너는 내가 너를 믿고 있다는 걸 알아줘야 해. 그 일은 그 노래에서 비롯
된 것 아니겠니? 탱고라 했던가 하여튼 노래말야. 그런데 그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가 어떤 노래라는 걸 알고 있었니?"
 "당신께는 숨기고 싶지 않아요. 전 그 뜻을 정확히 몰랐어요. 저는 뭐든지 
들으면 배워서 외우거든요. 게다가 그 노래가 아름다워서 배웠는데 사실 그 
내용은  몰랐어요. 생각도 해보지 않았구요. 그런데 너무 심하게 때리지 않
겠어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뽀르뚜까......"
 나는 울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그를 죽여버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너 지금 뭐랬니? 아빠를 죽이겠다는 거냐?"
  "그래요. 전 벌써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벅 죤스의 권총을 빌려 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 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
러면 언젠가는 죽지 않겠어요?"
 "넌 굉장한 상상력을 갖고 있구나."
  이러한  얘기를 하는 중에 나는 언젠가 보르뚜까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도,
 "하지만 넌 언젠가 나도 죽이겠다고 했잖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아저씨를 죽였어욜. 그리고 제 마음 속
에  다시 태어난 거예요. 아저씨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유일한 
분이에요.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죠. 저에게 그림딱지나 구슬이나 생
과자를 사 주셔셔 그러는 게 아니예요. 저의 지금 이 말은 진심이에요."
 "그래, 믿겠다. 이제는 모두가 너를 사랑할거야. 너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와  형, 루이스까지도 말야. 아! 오렌지나무를 잊을 뻔했구나. 밍기뉴? 
그리고 또 뭐랬더라?"
 "슈르루까요."
 "그래, 맞아."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요. 슈르루까는 꽃 한 송이도 못 피우는 오렌지나무
에 불과해요. 정말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달라요. 당신은 제 친구이고 그래
서 우리의 자동차로 바람을 쏘이며 드라이블르 해 달라고 부탁했던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려고 온 거예요."
 "작별이라니?"
  "네, 그래요. 전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아이에요. 그리고 더이상 매맞는 
것도 못견디겠어요. 더이상 주둥이란 소리도 듣지 않을 거예요."
 나는 목이 메었으나 용기를 내어 마저 얘기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말이니?"
 "아니예요. 이번 한 주일 내내 생각해 보았어요. 오늘 밤 망가라띠바 기차
에 몸을 던지겠어요."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나를 끌어안더니 내게 무슨 얘기를 해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다가 위로의 말로 나를 달랬다.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돼. 제발 그러지 마라. 넌 앞으로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가  있어.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벌을 받게 돼요. 작은 머리에 그런 
생각이  있다니 두 번 다시는 그런 소리는 입에 담지 말아라. 넌 나를 사랑
하지  않니?  만약 사랑한다면 나를 생각해서 그런 소리는 다시 하지 마라. 
알겠니?"
 그는 나의 손을 놓고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난 너를 무척 사랑해, 정말이야.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
러니 자, 같이 웃어보자."
 나는 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져 겨우 웃어보였다.
  "모든  것을 곧 잊게 될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거리는 연들로 가득차게 
될  거야. 그땐 연날리기 챔피언도 되고 구슬치기 왕도 되고 또 너는 벅 죤
스같은 훌륭한 카우보이도 될 게고, 참 내게 좋은 생각이 한 가지가 떠올랐
는데 궁금하지 않니?"
 "궁금해요. 알고 싶어요."
  "이번  토요일엔 <엔깐따또>의 딸을 보러가지 않아도 돼. 그 애는 남편과 
시골로  며칠 휴가를 떠난다더라. 그래서 그날 날씨가 좋으면 낚시를 갈 예
정이란다. 그런데 같이 갈 사람으로 난 너를 생각했는데 어떠니?"
 난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고 기분이 즐거워졌다.
 "정말 저를 데려가 주시겠어요?"
 "그럼 너만 좋다면 말야. 억지로 가자는 건 아니란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 털이 수북한 얼굴에 나의 얼굴을 
갖다댔다.
  그렇게 즐거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음 속의 슬픔이 모두 사라져 
없어진 것 같았다.
 "그곳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란다. 한 군데를 봐 뒀거든. 우리가 그 
날 먹을 점심을 준비해 가야 하는데 넌 뭘 좋아하지?"
 "뽀르뚜까는요?"
 "나는 쏘세지, 계란, 그리고 잘 익은 바나나면 그만이야."
 "저는 무엇이든 다 좋아해요. 집에서는 음식을 가려먹으면 안 된대요."
 "그럼 같이 가는 거다?"
 "이 일을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잠이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한편 은근한 걱정이 내 기쁜 마음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얘야. 하루 종일 집에 얼굴을 비치지 못할 텐데 집에서 뭐라고 말
하지 않을까?"
 "무슨 핑계를 만들어야지요."
 "그랬다가 나중에 또 매맞는 건 아니니?"
  "이 달 말까지는 아무도 나를 때릴 사람이 없어요. 글로리아 누나에게 약
속을  했거든요.  글로리아 누나는 무서운 여자에요. 누나만이 우리 식구들 
중에서 나를 닮은 고양이 털같은 머리를 가졌거든요."
 "정말이니?"
  "네, 정말이구 말구요. 설사 때린다고 해도 한 달은 지나야만 돼요. 그래
야 내가 회복이 되거든요?"
 그는 차를 오던 길로 다시 돌렸다.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기로 하는 거다. 알겠니?"
 "그게 뭔데요?"
 "망가라띠바 기차 얘기......"
 "그건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어요."
 "그래 좀 더 두고 생각해 보는 거야."
 그런 얘기가 있던 얼마 후에 라디슬라우 씨로부터 들은 얘긴데 내가 좀 시
간을  두고  생각을 해본다는 약속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망가라띠바가 
지나가고 난 뒤에야 돌아갔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깊은 밤에.
 
                *                 *                   *

 우리가 탄 우리들의 자동차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길은 비
록  좁고 비포장이었지만 차창 밖에 펼쳐지는 나무와 꽃들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넓은 초원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맑았다.
  딘디냐 할머니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기쁨이란 언제
나 ?나는 마음 속의 태양>이라고 말이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내 마음 속의 
태양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얘기를 나누며 서서히 달리는 동안 그는 나의 얘기에 귀를 열심히 
기울여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넌 나하고 같이 있을 땐 참 착하고 상냥스러운 아이거든. 
너의 담임선생님 이름이 뭐랬지?"
 "도나 세실리아 빠임 여선생님이요. 선생님은 눈이 조금 이상해요. 모르시
죠?"
 그는 빙그레 웃더니,
 "글쎄, 그런데 그 선생님은 정말로 네 말처럼 네가 학교 밖에서 하는 일들
을 믿지 않으신단 말이지? 넌 네 동생 루이스나 글로리아 누나와 있을 때도 
착한 애였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
 "그건 저도 알 수가 없어요. 집에선 제가 좋은 일을 해도 나쁘게 생각하고 
동네에선  제가 나쁜 일만 하는 줄 알고 있어요. 잠자고 있던 제 마음 속의 
악마가 바람을 일으켜 제 귀에 속삭이며 시켰기 대문이에요. 그렇지 않고서
야  감히  제가 어떻게 그따위 철없는 행동을 했겠어요. 에드문드 아저씨께 
제가 했던 일을 알고 계세요?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았죠?"
 "얘기 한 적 없었다."
 "아마 육 개월 전이었나 봐요. 아저씨는 북부지방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그
물로 만든 침대를 선물로 받으셨는데 그 침대 하나 가지고 비싸게 뽐내시잖
아요.  그리고 만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정말 치사하게 말
이어요."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싶어서 그러니?"
  "좀  더 들어보세요. 그리고는 아저씨는 그물을 걷어가지고는 가버리셨어
요.  어느 날 제가 할머니댁에 갔었는데 할머니는 제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신문광고를  읽고 계셨기 대문에 보지 못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뒤뜰로 나가 고야바 열매가 있는지 둘러보고 있는데 그때 아저씨는 오
렌지나무  사이에  그물침대를 걸어놓고 마음을 푹 놓은 채 그 위에서 팔을 
밑으로  늘어뜨리고 입을 반쯤 벌린 상태로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고 있었어
요.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었는데, 저는 문득 땅에 떨어져 딩구는 신문을 보
자 제 마음 속의 악마가 충동을 하기 시작했던 거예요. 저는 아저씨의 성냥
을 살그머니 꺼내어 신문지를 주워 찢어가지고 그 종이 조각에 불을 붙였어
요. 침대 밑에서부터 불꽃이 위로 올라가자......"
 나는 잠시 하던 얘기를 멈추고,
 "아저씨! 볼기짝이라는 말 해도 돼요?"
 "그 말은 욕이 아니니까 괜찮아. 하지만 자주 쓰면 그것도 욕이야."
 "그럼 아저씨! 다른 말은 없나요? 볼기짝 말구요."
 "둔부(臀部)라고 하면 될거야. 그렇게 부르도록 해라."
 "말이 좀 어려워요. 다시 한 번 말해 주시겠어요? 외워둬야겠어요."
 "둔 --- 부."
 "알겠어요. 그래서 불길을 에드문드 아저씨의 볼기짝 아니, 둔부밑에 놔두
고는  얼른 문 뒤에 숨어서 어떻게 되나 하고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아저씨
의 고함소리는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같았고 침대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그물침대를 들어올리느라 야단이 났어요. 그때 딘디냐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호통을 치시는 거예요. '이제 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일도 지쳤다! 침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잖니?'라며 꾸지람을 하셨어요. 그리고는 
읽지 않은 신문이 불에 타버렸다고 중얼중얼 하셨어요."
  뽀르뚜까가  무척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대고 웃는 것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틀키지 않았니?"
  "저를 본 사람이 없었는걸요. 이 일을 슈르루까에게만 말했어요. 만약 제
가 들킨다면 주머니를 잘라 버릴 거예요."
 "얘, 뭘 잘라버린다고?"
 "네, 밍기뉴의 꽃주머니를 잘라 버린다구요."
 그는 다시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우리 차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흙먼지
가 보얗게 일어나 마치 구름처럼 보였다. 난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었다.
 "뽀르뚜까! 당신은 저에게 거짓말을 안 하시겠죠?"
 "그렇구말구, 그런데 무슨 말이니?"
 "저? 아직 이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당신은 들어보셨어요? 발로 볼기
짝 아니 둔부를 찬다는 말 말이에요."
 뽀르뚜까는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넌  한 마디로 괴짜 녀석이군. 나도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할 
수는 있는 걸나다. 둔부란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땐 그냥 엉덩이를 걷어
찬다고 하기도 하지. 얘,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 두자. 어찌나 꼬치꼬치 묻
는지 당해낼 수가 없구나. 그리고 저길 좀 봐라. 커다란 숲이 보이고 그 옆
으로 강이 흐르고 있지?"
  우리는 나무숲이 있는 오른쪽 샛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달렸다. 우리의 차
가 멈추어 선 곳은 넓은 들판이 있고 나무덩쿨로 덮인 큰 나무가 있는 곳이
었다. 나는 멋진 경치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어요. 아주 멋져요. 제가 벅 죤스와 만날 평원을 생각
해 뒀는데 이곳을 보니 그곳은 별로예요."
 그는 행복한 웃음을 띄우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좋니? 그렇다면 자주 데려 오겠다. 난 네게 이런 곳을 보여주고 
싶었어. 항상 착하고 훌륭한 꿈만을 꾸면서 살거라. 걱정일랑 다 잊고."
 아저씨와 나는 차에 실린 짐을 나무 밑 그늘에 옮겼다.
 "뽀르뚜까는 언제나 혼자서 이곳에 오세요?"
 "거의 그렇지. 너도 봤지? 나도 너처럼 나무를 가지고 있는 걸 말야."
  "이 나무의 이름이 뭐예요? 이렇게 큰 나무에겐 이름을 붙여 주셔야 되잖
아요."
 그는 뭔가를 생각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을 했다.
  "이건 내 비밀인데, 그럼 너에게만 얘기해 줄께. 이 나무의 이름은 <라이
냐 까르루따>라고 하는데 <여왕>이라는 뜻이란다."
 "그럼 이 여왕나무는 당신과 말을 할 수 있어요?"
  "말은 하지 못하지. 왜냐면 여왕은 자신의 신하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는 
법이야. 그러나 나는 언제나 여왕을 섬기고 여왕은 나를 존중하고 있어."
 "신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그건 여왕이 명령하는 것을 복종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그럼 전 당신의 신하인가요?"
 아저씨는 풀숲에 바람이 스칠 때 나는 소리처럼 이상스럽게 웃으며,
  "아냐, 난 왕도 아니고 또 네게 명령도 하지 않잖니. 무엇이든 네게 부탁
하고 요청을 하잖아?"
 "하지만 뽀르뚜까는 왕이 될 수도 있어요. 왕들은 당신처럼 모두 뚱뚱하고 
칼이랑  지팡이를 갖고 있어요. 또 카드에 그려진 왕들은 모두 당신처럼 멋
있게 생겼던걸요?"
  "알았다. 그만 해 두고 슬슬 낚시를 시작해보자꾸나. 얘기를 너무 하다보
면 언제 낚시를 하겠니?"
 그는 구두와 조끼를 벗어 놓고 낚시대와 지렁이가 담긴 깡통을 챙겼다. 조
끼를 벗은 몸은 더 뚱뚱해보였다. 아저씨는 강기슭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저기에서 놀도록 해라. 거기는 강물이 아주 얕아서 놀기에 좋을거
야.  그러나 멀리 들어가면 안 된다. 그곳은 깊어서 위험해. 그리고 놀다가 
내  곁에 있고 싶으면 절대 말을 시켜서는 안 된다. 만약 떠들게 되면 고기
가 모두 달아나버리거든."
  나는 그가 낚시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강기슭에서 놀았다. 물속에 발을 
담그면  작은  고기들이 몰려들었고 조약돌과 물 위에 떠내려가는 낙엽들도 
보였다. 물 속에는 신기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글로리아 누나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름다운 꽃들이 속삭이는 호수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나는 산에서 태어났으니
 바다로 데려가진 마세요

 나의 가지가 흔들거리면
 하늘에서 내려온
 깨끗한 이슬이 반짝인답니다
 맑고 차가운 옹달샘물은
 졸졸졸 속삭이며 호수에 모입니다

 나뭇잎 사이를 지나
 대지 위에
 꽃이 머물게 한답니다


 글로리아 누나의 얘기가 맞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
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삶의 알므다움이란 꽃과 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
이  아니라 나뭇잎이 떨어져 저 멀리 바다 위를 떠다니는 낙엽과도 같은 것
이었다.  그리고 강물도 역시 바다로 흘러가서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것
을 뽀르뚜까에게 여쭈어보고 싶었지만 낚시에 방해가 될까봐 그만 뒀다.
  아저시는  고기를 겨우 두 마리 잡았을 뿐이다. 해는 벌써 높이 솟아올라 
있었고  나의 얼굴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물가에서 놀았기 때문에 빨갛게 
익었다. 그때 그가 저쪽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새끼 염소처럼 그에게로 달
려갔다.
 "몸이 많이 더러워졌구나, 제제."
 "물 속으로 들어가고 땅 위에 앉기도 하며 정신없이 놀아서 그래요."
 "이제 배가 고프니 점심을 먹자꾸나. 그러나 이렇게 돼지처럼 더러워서 되
겠니?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서 좀 씻고 나오렴. 깊은 곳에 들어가면 위
험하니 얕은 곳에서 해야 돼."
 나는 그에게 벗은 몸을 보이기 싫어 망설였다.
 "저는 헤엄을 칠 줄 몰라요."
 "괜찮아. 헤엄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곁에 있을 테니 어서."
 그래도 내가 머뭇거리며 서 있으려니 그가 재촉했다.
 "옷을 벗는 게 그렇게 부끄럽니?"
 "그래서 그런 게 아니예요."
 나는 할 수 없이 등을 돌리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우선 멜빵이 달린 바지
를  벗고 나서 위에 입은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돌아섰다. 나의 
몸을 바라보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의 눈은 놀라움과 안타까움
으로  가득했다. 난 그가 나의 매맞은 자국의 흔적들을 보지 않기를 바랬는
데 보르뚜까는 봐버린 것이다. 그는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아직도 아프니? 그럼 물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
 "이젠 더이상 아프지 않아요."

              *                  *                    *

 우리는 점심으로 준비해 온 계란과 바나나, 그리고 쏘세지와 빵을 먹었다.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으며 밖에[ 나와 먹는 맛은 더욱 좋았다. 
우리는 강물을 떠서 마시고 여왕나무 밑으로 왔다. 그는 나무 밑에서 두 손
을 가슴에 모으고 나무에게 정중하게 경의를 표했다.
  "여왕이시여, 당신의 기사 마누엘 발라다리스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밑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겠나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그는 조끼를 바닥에 깔고 드러누우
며 말했다.
 "얘, 이젠 한숨 자자."
 "전 안 잘래요. 당신이나 주무세요."
 "안 돼. 너 같은 장난꾸러기를 이 물가에서 혼자 놀게 할 수는 없어."
  할 수 없이 나는 그의 곁에 누웠다. 그는 나의 가슴을 손으로 만져주었고 
우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난 이때가 좋은 기
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말을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
다.
 "뽀르뚜까!"
 "왜?"
 "주무세요?"
 "아직은 잠들지 않았어."
 "빵집 주인 아저씨께 저에 대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 잠깐 얘기를 해 주었지."
 "저도 차에서 두 분의 얘길 들었어요."
 "무슨 얘길?"
 "아저씬 저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그 말을 말예요."
 "그래, 널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게 잘못되기라도 했니?"
  나는 그의 팔에 안긴 채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은 반쯤 잠겨 있었으
나 가까이 보니 얼굴이 크고 몸이 뚱뚱해 꼭 왕같이 보였다.
 "뽀르뚜까! 당신이 저를 무척 좋아하신다는 그 말, 제가 믿어도 돼요?"
 "이 바보 녀석아, 정말이라니까."
 그리고 그 말이 진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힘껏 나를 껴안았다.
 "저는 한가지 생각을 깊이 해봤어요. 뽀르뚜까는 딸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
씀하셨죠?"
 "그래."
   "당신은  그렇게  큰  집에서  두  개의  새장만  있을  뿐  사시는  건 
혼자뿐이죠?"
 "응."
 "당신은 손자들도 없다고 하셨죠, 네?"
 "응, 그래."
   "그렇다면  우리집에  오셔서  우리  아빠에게  왜  절  달라고  하시지 
않으세요?"
 그는 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더니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너, 내 아들이 되고 싶니?"
  "사람은  태어난 후에도 아빠를 선택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전 당신을 택하겠어요."
 "그 말 진심이니?"
 "정말이에요. 맹세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먹기 위해 사는 살마
은  되지 않겠어요. 욕같은 것도 안 하고 장난도 치지 않고 매일 당신의 구
두를  닦아드리고요. 그리고 새장 속의 새들도 돌봐주고 학교에서는 착하고 
공부도  제일  잘하는 그런 사람이 될 거예요. 무슨 일이든 모두 잘할 거예
요."
  그는  나의 말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계시는 것 같았
다.
  "저의 집에서는 제가 기쁘게 해 주려고 해도 나쁘게만 생각해 버려요. 제
가  없어진다면 모두들 좋아할 거예요. 우리집의 부담도 적을 거구요. 글로
리아  누나와  형 사이에 누나가 하나 있었는데 북쪽 지방에 보내버렸대요. 
그곳에서 부자로 사는 사촌 누나집에서 크면서 공부하고 있대요."
 그는 말없이 얘기를 들으며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리집에서 저를 데려가지 못하게 하면 사겠다고 해 보세요. 아빠는 돈이 
한푼도  없으시니 아마 저를 파실지도 몰라요. 만약에 돈을 많이 내라고 하
면 몇 차례에 나눠서 내도 될 거니까 말예요."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묵묵히 앉아 계시기만 했다.
  "뽀르뚜까!  당신이 저를 원치 않으신다고 해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
요. 전 당신이 우시는 건 싫으니까요."
  "그게 아니다, 얘야. 인생이란 마음 먹은 대로 쉽게만 되는 게 결코 아닌 
거야.  그렇지만 네게 한 가지 약속을 할께. 너의 식구 모두가 너를 나에게 
주지  않을 거야. 왜냐면 그건 결코 옳지 못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앞
으로  너를 내 아들처럼 생각하고 사랑해 줄테니까 너도 나를 친 아빠로 생
각하고 마음을 그렇게 쓰려무나."
  나는 그의 말을 듣자 너무 기뻤다. 나는 너무나 기쁜 마음에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나며,
 "뽀르뚜까, 지금 한 말 믿어도 되죠? 정말이죠?"
 "네가 흔히 잘 하는 말로 맹세하겠다."
  나는  우리집 식구 외에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내가 
깊이 생각한 일을 한 것이다. 난 그의 커다란 얼굴에 입을 맞췄다.

                                             
                             6 장

                      사랑을 알게 한 대화

  "그렇다면 당신은 나무하고 말도 못하고 나무를 망아지라고 할 수도 없다
는 거예요?"
 "그래, 그렇지만 하면 할 수도 있겠지."
 "당신이 어렸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나요?"
  "그래.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모두 나무를 이해할 수 있는 기쁨과 행복
을  누릴  수는 없는 거야. 그 반면에 모든 나무들이 다 애들하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거니까."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얘기를 계속해줬다.
  "또 모든 나묻가 다 좋은 게 아니고 가지가 좋지 않은 나무도 있지. 그건 
덩쿨나무를  말한다. 예를 들면 덩쿨나무 같은! 포도나무 같은 것을 말하는
데  그 덩쿨에서 포도가 열리고 주렁주렁 달린 포도를 딸 때면 그처럼 멋있
는 게 없단다. 또 그 포도 열매를 터뜨려 포도주를 만들고......"
 이런 말을 나에게 얘기하고 설명할 때면 꼭 에드문드 아저씨처럼 자상하기
도 했다.
 "얘기를 더 해 주세요."
 "얘기가 재미있니?"
  "네,  아주 재미있어요. 계속 얘기를 나누며 달리는 브라질을 한 바퀴 돌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휘발류가 모자랄 텐데?"
 "맞아요. 그걸 미처 생각 못했네요."
 그리고 그는 풀들을 가리키며 이 풀들은 겨울이면 건초가 되며, 치즈를 만
드는  법 등등을 말해 주었는데 그는 많은 얘기들을 마치 노래를 하듯 계속 
이어나갔고  내겐  음악보다도 더 아름답게 들려왔다. 방금 그 얘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말을 멈추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도  이젠 곧 그곳으로 가서 늙은 여생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내고 싶
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뜨라우스 몬테스>의 근방에서 언젠가는 나도 낙엽
처럼 지고 말거야."
 내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가 아빠보다도 더 늙으셨다는 걸 알 수가 있
었다.  항상 윤이 나고 주름살이 적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
는 그 말을 듣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뽀르뚜까, 지금 하신 말씀 진짜로 하신 거예요?"
 그때서야 그는 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다.
  "아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훨씬 후의 일이란다. 난 네가 너무 
늦게 나타났다고 생각해. 아직까지 내겐 너같은 애가 나타나질 않았었어."
 "그건 저도 그래요. 그런데 그때 가서 당신이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왔다.
 "우리가 같은 꿈을 가지면 되지 않겠니?"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꿈속에 절 넣어 주시지 않는단 말씀이에요."
 그는 웃으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제 꿈의 모든 것은 당신의 마음 속에 저를 자리잡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톰  믹스와  후레드 톰슨하고 역마차를 타고 푸른 평원을 달릴 때도 지치지 
않도록 제 힘을 빌려 드릴께요. 당신은 제가 가는 어디든지 계신단 말예요. 
저는 때때로 공부를 하면서도 학교 교문을 바라보며 생각을 했어요. 혹시나 
당신이 학교에 오셔서 내게 작별을 나눌 것만 같아서요."
 "맙소사! 걱정하지 말아라. 난 너처럼 사랑에 가득찬 고운 마음을 가진 애
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걱정은 너무 하지 마라 알겠니?"
  나는 이런저런 많은 얘기들을 밍기뉴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내 얘기에 바
져 있으면서도 입을 뾰족히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슈르루까, 우리 아빠가 된 그는 그 뒤부터 날 따뜻한 사랑으로 더
욱  잘 대해 주셨다. 아빠도 그전처럼 날 미워하지도 않았고 간섭하지도 않
았어.  무엇이든  모두 잘했거든. 그런 나를 아주 좋게 생각하셨어. 하지만 
좋아졌다는  것과는  다른거야. 다른 사람들은 날더러 그 몹쓸 녀석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고들 해. 나에게서 나쁜 버릇이 없어진 건 사실이지만 말야. 
그래, 난 결코 <방구> 시내에 나가질 않았어."
  난 이제야 사랑이나 따뜻함이 뭔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밍
기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밍기뉴, 난 열두 명의 애들을 갖고 싶어. 아니 그 곱절이라도 괜찮아. 그
리고  그  애들이 어떻게 하든 난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 줄거야. 너 내말 이해하겠니? 그리고 애들에게 물어볼 테
야.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나뭇꾼이 되겠다구? 그래 좋구나. 여기 도
끼와  체크무늬 셔츠가 있다. 넌 커서 서커스단의 훈련사가 되겟다구? 그럼 
여기 채찍과 광대옷이 있다."
 "그럼 크리스마스 때 그 애들에게 무엇을 줄 거니?"
 역시 밍기뉴도 이젠 제법 생각하는 게 있단 말야!
 "그래 돈을 많이 벌어서 밤과 호도, 무화과와 건포도를 잔뜩 사주겠어. 또 
장난감도  많이 사다가 이웃집 애들에게도 나눠 주고 그리고 복권회사도 차
려 돈을 더 많이 벌거야."
  나는 밍기뉴를 흘겨보며 내가 말하는 도중에 불쑥 말을 가로챈 것에 화를 
내어 꾸짖었다.
 "애들과 얘기를 하는데 가만 놔두지 않고 중간에서 말참견을 하고 그러니? 
애들이 많아서 걱정되는 모양인데 그따위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마. 알겠지? 
또 다른 아들을 보면서 카우보이가 되겠다고 그랬지? 여기 말안장과 밧줄이 
있다. 오, 넌 망가라띠바 기차의 기관사가 된다고? 여기 모자와 호루라기를 
주마."
 "제제, 호루라기가 뭐가 어째? 너 혼자서 미친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있니?"
  또또까 형이 언제 왔는지 내 가까이 와서 곁에 앉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
리고  여느 때와는 달리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병뚜껑을 실에 꿰어 내 오렌
지나무에  주렁주렁 장식하는 것들을 은근히 바라보았다. 어째 심상치 않은 
말을 해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제, 너 돈 있으면 내게 400레이스만 빌려 줄래?"
 "안돼."
 "너 말하는 걸 보니까 돈이 있구나, 그렇지?"
 "그래 있어."
 "있으면서도 왜 싫다는 거지? 무엇에 쓸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난 돈을 모아야 돼. 여행을 가야 되거든."
 "여행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냐?"
 "말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
 "그래, 묻지 않을께. 하지만 돈은 어차피 쓸 거 아니니?"
 "그렇지만 400레이스의 돈은 빌려줄 수는 없단 말이야."
  "제제,  넌 뭐든지 잘 하잖아. 그러니 내일 구슬치기를 해서 구슬을 몽땅 
따가지고 팔면 그 정도의 돈은 금방 만들 수 있는데 왜 그래?"
  "그럴 수는 있어도 난 안해. 난 이제부터 착한 아이가 될거야. 그리고 싸
움도 안 할거야."
  "난  너하고 싸우는 건 싫어. 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이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인정머리도 없는 괴물같은 사람이 돼 버렸니?"
 "괴물이라구! 난 지금 인정머리가 없는 유인원이야!"
 "뭐라구?"
  "유인원, 언젠가 에드문드 아저씨가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여 주셨어. 손
에 배나무 몽둥이를 든 털이 까맣고 긴 원숭이였어. 그 원숭이는 깊은 동굴 
속에  살았던  최초의 인간이래. 외국 사람인데 이름이 어려워서 기억이 안 
나."
  "에드문드 아저씨는 머리 속에 지렁이 같은 쓸데없는 생각만 넣고 다닌단 
말야! 얘, 돈은 빌려 주겠지?"
 "그렇지만 난 머리 속에 지렁이는 넣고 다니지 않아."
  "그만 둬. 너무하는구나. 너와 함께 구두를 닦으러 갔을 때 내가 널 얼마
나 도와줬니? 그리고 네가 피곤해 할 때마다 네 구두통도 들어줬잖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형은 나에게 가끔 못된 심술을 부리긴 했지만 나에겐 
좋은 형이다. 나는 결국 돈을 빌려 줄 것만 같았다.
 "내게 돈을 빌려 주면 놀라운 두 가지의 얘길 들려 줄께."
 나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지금에야 말이지만 너의 오렌지나무는 내 따마린두나무보다 훨씬 멋져."
 "예쁘다는 얘기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정말 아름다워."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동전을 흔들어 보았다.
 "그 두 가지 얘기가 뭔데?"
  "제제,  우리  이제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돼. 불행이 끝난 거야. 아빠가 
<성  알레이쑤>  공장의 지배인으로 일하게 됐거든. 우리 이제 부자가 되는 
거야. 너도 기쁘지?"
  "아빠를  위하고 집안 식구들을 위해선 잘 된 일이고 기쁘지만 난 <방구> 
시를  떠나긴 싫어. 난 딘디냐 할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살다가 여행을 떠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함께 이사를 가는 것보다는 할머니 댁에 살면서 가
끔 우리가 있는 곳에 와 보겠다는 거지?"
  "그래, 난 그게 더 좋아. 형은 그 이유를 잘 모를 거야. 그리고 또 한 가
지는 뭐야?"
 "여기서는 말 못해.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되니까."
  형과  나는 밖에 나와 화장실 근처로 갔다. 그런데도 형은 속삭이듯 말했
다.
 "네게 미리 알려주는 거야. 알려주고 싶었어. 다른 게 아니고 시청에서 길
을  넓힌대. 하수구를 땅 속에 묻고 모든 집들의 뒷뜰까지 하수도를 만든다
는 거야."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이 바보야. 영리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길을 넓히려면 저기 나무
들을 모두 없애버려야 된단 말야."
 그리고는 손으로 나의 오렌지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나는 울 듯이 입
을 내밀었다.
 "형! 거짓말이지, 그렇지?"
  "울려고  하지 마. 난 너를 울리고 싶지 않아. 그리고 아직은 멀었으니까 
안심해."
 나는 주머니 속에서 동전들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렸다.
 "형, 그게 정말이야! 거짓말이지?"
 "아니야, 사실이야. 하지만 넌 사내잖니?"
 "그건 맞아."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눈에선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난 형을 붙
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또또까 형! 형은 내편이 되어 줘야 해, 알았지? 난 싸울 거야. 그 누구도 
내 오렌지나무에 손도 대지 못하도록 말야."
 "그래 알았어. 우리가 힘을 합쳐 막아보자. 그렇게 하면 돈을 빌려 주겠니
?"
 "돈 가지고 뭘 할거야?"
  "너는 <방구> 극장에 지금도 들어갈 수 없지? 거기서 지금 타잔영화를 한
대. 내가 보고 와서 네게 얘기해 줄께."
  나는 주머니에서 500레이스 짜리 은화를 꺼내 형에게 주고 옷자락으로 눈
물을 닦았다.
 "잔돈은 형이 갖도록 해."
  그리고는 입을 다물고 나의 오렌지나무 옆으로 다가갔다. 형이 말한 타잔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난 벌서 그 영화를 봤다. 뽀르뚜까에게 졸랐었다.
 "너 타잔영화 보고 싶니?"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전 <방구> 극장엔 들어 갈 수가 
없게 됐어요."
 그는 내가 그 전에 말한 이유를 생각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너처럼 영리한 머리가 아직 무슨 방법을 생각 못했었니?"
 "못했어요. 하지만 어른이 데리고 가면 괜찮을 텐데. 그러면 될거예요."
 "그 어른이 나라고 한다면...... 네가 바라는 게 바로 나지?"
 나는 기쁨과 행복한 마음에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하는데."
 "이런 시간엔 아무도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차에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하느니  사자와 호랑이 등의 맹수와 싸우는 타잔을 보러 가요. 누가 타잔으
로 나오느냐하면 후랭크 메일이래요."
 그는 주저하며 망설였다.
 "넌 장난꾸러기고 꼬마도깨비인데 --- "
 "두 시간이면 돼요. 보르뚜가는 부자이면서 뭘 그렇게 망설이고 계세요?"
 "그래, 좋다. 걸어서 가자꾸나. 자동차는 저 모퉁이 주차장에 세워두고 말
야."
  우리는 걸어서 극장에 갔다. 그런데 매표소의 젊은 아가씨가 들어가지 못
하게 했다. 극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1년 동안 금지를 했는데 기한이 지나
지 않으면 절대로 입장을 시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가씨! 내가 책임을 지겠소. 모든 것을 책임질테니 이젠 염려하지 마시
오.  저  애는  착하고  철이  들었어요.  말썽을  피우던  때는 벌써 옛날 
얘기요."
  매표원 아가씨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살짝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녀
의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해 줬더니 그제야 그녀의 마음이 달라진 것 같았다.
  "명심해야  된다, 제제. 네가 또 엉뚱한 장난을 쳐서 주인이 알게되면 난 
극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는 걸 말야. 알겠지?"
 나는 밍기뉴에게 말해 주고 싶지 않았던 이 말들을 얼마 가지 못해서 모두 
낱낱이 얘기해 주고 말았다.
 
                             7 장

                          망가리띠바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어느 날 누구든지 나와서 흑판에 생각나는 문장을 
한  구절 적어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자진해서 나갈 생각을 하는 아
이가 없었다. 그때 나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문장이 있기에 손을 들었다.
 "제제, 네가 나와서 해 보겠니?"
 나는 으쓱한 기분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흑판 앞으로 나갔다.
  "여러분들도 나와서 해봐요. 제제를 보세요. 우리 반에서 가장 어린 나이
잖아요?"
 나는 분필을 들고 못쓰는 글씨이지만 멋을 부려가며 글을 썼다.
 "곧 우리는 방학이 시작됩니다."
  나는  혹시 잘못 쓴 곳이 있나 하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빙그레 웃어주셨다. 그리고는 탁자 위의 빈 꽃병을 바라보
셨다. 빈 꽃병,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상상의 장미꽃을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이 조금만 더 예쁘게 생기셨더라면 선생님 앞의 꽃병이 저렇게 
비어 있진 않을 텐데'하고 생각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내가 써놓은 문장을 보며 만족하였다. 그건 며칠 후 
방학이 시작되면 난 뽀르뚜까와 실컷 놀며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 말고도 몇 명의 아이들이 나와서 문장을 썼으나 그날의 일등은 역시 나
였다.
  그때 제로니모가 지각을 하여 선생님의 허락을 얻고 들어왔다. 그는 겸연
쩍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내 뒷자리에 와 앉았다. 책을 책상 위
에 꺼내놓더니 옆의 애들과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 난 그런 쓸데없는 잡담
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훌륭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 열
심히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러나 그냥 못들은 체하지 못할 얘기가 들렸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그것은 망가라띠바 기관차에 관한 얘기였기 때문이
다.
 "뭐라구? 차를 들이받았다고?"
  "그래  큰 자동차야. 왜 있잖니.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의 멋진 자동차 말
야."
 난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지금 뭐라고 했니?"
 "망가라띠바 기차가 <루이쉬따> 철도 건널목에서 포르뚜깔 사람의 차를 받
아버렸어.  그래서 지각을 한 거야. 그 기관차는 자동차를 산산조각 내버렸
단  말야.  타고  있던  그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죽었는지도 
몰라."
 나의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제로니모는 계속되는 애들의 물음에 대답을 해 주느라 바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보지 못하게 했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몽롱하고 구역질이 나며 온몸엔 땀
이 흘렀다. 나는 비좁은 책상 사이를 나와 교실문쪽으로 걸어갔다. 몸을 제
대로 가누지 못하고 창백해져 있는 나를 보시고 선생님은 깜짝 놀라셨다.
 "왜 그러니 제제? 어딜 가려는 거야."
 그러나 난 대답할 힘이 없었다. 눈엔 눈물이 자꾸 흘러나왔고 크나큰 충격
에  미칠 것만 같은 마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교실을 뛰쳐나왔던 것이다. 나
는 정신없이 뛰어 길거리에 나왔으나 <리오-상파울로> 거리가 어느 쪽에 있
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가슴은 위경련을 앓는 환자처럼 쓰라렸
다.  나는 <까싱냐스> 거리를 지나 빵집 앞까지 와서 사방을 둘러보며 제로
니모의 말이 거짓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우리 차는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
르는 사이에 신음소리가 나왔다. 다시 뛰어가려는데 나를 붙잡는 것을 느끼
고 돌아서보니 제과점 주인인 라디슬라우 씨였다.
 "어디 가려고 그러니, 제제?"
 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요. 사고가 난 곳 말이에요."
 "넌 거기에 가서는 안 돼."
 나는 미친듯이 발을 구르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제제, 진정해라. 넌 그곳에 가면 안 돼."
 "정말로 망가라띠바 기차가 그를 죽게 했나요?"
 "아니, 방금 구급차가 왔어. 다행히 자동차만 크게 부서졌을 뿐이야."
 "거짓말 하시는 건 아니죠, 아저씨?"
  "그럼, 왜 내가 거짓말을 하겠니? 사고가 났다는 말까지 해 주었잖아. 며
칠 후에 그가 방문객들을 알아보게 되면 그때 너를 데리고 갈께. 약속하마. 
그러니 마음을 진정시키고 쥬스나 마시도록 하렴."
 그는 손수건으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좀 괜찮아졌니, 제제?"
 나는 말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집까지 데려다 줄까?"
  나는 역시 머리를 저었다. 그러고 혼자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
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망가라띠바는 그 무엇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기관차였다. 나는 방향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아
무  데나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걸으며 두어번 더 토했다. 그러나 나를 귀찮
게  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를 위로하며 나의 고통을 나눠가는 사람도 없었
다.
  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무작정 걸었다.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셔츠소매 
끝으로 닦아냈다. 나의 생활 속에 항상 존재했던 뽀르뚜까를 다시 볼 수 없
다고 생각하니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영영 가버린 것이다.
 나는 걷고 또 걷다가 멈추어 섰다.
  그곳은 뽀르뚜까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고 차에 매달리도록 허락해 줬던 
곳이다. 나무 밑에 앉아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앉아 있으려니 나도 모르
게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아기예수, 넌 아주 나빠."
 "이번만은 내 마음 속에서 아기예수가 태어나도록 착하게 지낼려고 했는데 
왜  너마저  다른 사람처럼 나를 싫어하는 거지? 난 이제 싸움도 하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욕같은 것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왜 나를 미워하는 
거지?  그리고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벤다로 했을 때도 화내지 않고 조금 울
기만 했을 뿐이야. 그런데 지금은 어쩌란 말야. 어떻게 해야 되느냔 말야."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기예수야. 뽀르뚜까가 돌아오도록 도와 줘. 넌 내게 아저씨를 다시 돌
려줘야 해."
 그때 너무나도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 들려왔다. 그건 아
마 내가 앉아있는 나무의 친근한 목소리 같았다.
 "얘야, 울지마. 그는 하늘로 가셨어."
  어둠이  물들기 시작했을 때는 기운이 없어 더이상 토하거나 울수도 없었
다.  나는 빌라보아스 여사 네의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있는 또또까 형을 만
났다.
 형은 나의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을 걸었지만 겨우 신음소리밖
에 나오질 않았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어, 제제?"
  그러나 신음소리 외엔 아무 말도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형은 놀라며 나
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 보았다.
 "열이 많이 나는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니? 자, 집으로 가자. 
천천히 걸어봐. 내가 부축해 줄께."
 나는 안간힘을 내어 겨우 조그만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날 내버려 둬 형! 난 이제 그 집에 가지 않겠어."
 "무슨 소리야. 우리집엘 안 가겠다니?"
 형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 애를 썼으나 내가 너무 기운이 없음을 알고 그는 
나의  팔을 그의 목 뒤에 팔로 나를 감싸 안고 집으로 데려와 침대 위에 눕
히고는 식구들을 불렀다. 
 "아무도 없어요? 잔디라 누나! 글로리아 누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잔디라 누나가 왔다.
 "누나, 제제가 몹시 아파."
 그녀는 투덜투덜대며 다가와서는,
 "또 말썽을 부렸구나. 그래서 사랑의 매를 맞은 거로군."
 그러자 형은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아니야, 잔디라 누나. 이번엔 사정이 달라. 제제가 너무 많이 아파서 죽
을려고 그래."

           *                     *                     *

  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았다. 몸은 열 때문인
지 조금만 무얼 먹어도 자꾸 토했다. 그러다 보니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희
미한 의식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주
위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소리도 들렸고 그 얘기 내용이 무엇인가도 짐작할 
수  있었으나 나는 묻는 얘기엔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마냥 하늘나라로 가
고 싶을 뿐이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아예 내 방으로 옮겨 밤을 꼬박 세우며 내 곁을 지켜 주
었다. 밤에도 불을 조그맣게 켜서 내 곁에 놓아두었다. 집안 식구들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 했으며 잘 대해 주었다. 딘디냐 할머니께서도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또또까 형은 줄곧 내 곁을 지켜주며 가끔 나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중얼거
렸다.
  "길을 넓힌다느니 오렌지나무를 베어버린다는 말은 모두가 거짓말이었어. 
내가 잘못한 거야."
 집안은 고용한 정적이 감돌았다. 마치 죽음이 휩쓸고 간 것같았다. 식구들 
모두가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기만 했다. 엄마는 매일 밤마다 
곁에서 나를 돌봐 주셨다. 모두들 그렇게 잘해주어도 난 그를 잊을 수가 없
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 그의 남다른 목소리, 수염을 깎을 때 쓰윽쓰윽 소
리를  내던 그 모습 등 나는 그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아
픔이었다.  아픔이란  매를 맞을 때의 그런 아픔이 아니라 마음의 아픔이었
다.  이제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발에 박혔던 유리조각을 병원에 
가서 뺄 때의 아픔은 아픔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얘기하지 못하고 
모든  아픔들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죽어야만 한다는 그런 아픔이었다. 팔
과 다리, 심지어 베개에서 머리를 돌려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고통이었다.
 나의 몸은 점점 악화되었다. 내 몸은 뼈와 가죽만 남을 정도로 쇠약해져갔
다. 화울라베르 박사가 나를 꽤 오랜 시간 동안 진찰을 했다.
  "큰 충격을 받은 겁니다. 외상성 정신장애라고 아주 심합니다. 이 증세는 
큰  충격을 마음 속에 받았을 때 일어나는 병으로 본인 스스로 충격을 이겨
내야만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글로리아 누나가 박사님을 배웅하러 나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박사님의  말씀이 옳아요. 저 애의 오렌지나무를 자른다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그랬거든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믿도록 해줘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었지만 믿지를 않아요. 그애에
겐  오렌지나무가 사람과 같이 소중하게 생각되나봐요. 아주 특별한 애이고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조숙한 애였어요."
  나는 누나와 나누는 박사님의 얘기를 모두 듣고 있었으나 나의 머리에 떠
오르는 생각들은 오로지 사는 것에 흥미를 잃고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하늘나라로 가고 싶기만 했다.
  약을 지어와서 나에게 집안 식구들을 정성스럽게 멱여 주었다. 그러나 토
해버리고 말았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즈음 한 가지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
문이  온  동네에 퍼진 것이었다. 동네는 서로 수근수근대기 시작했고 내가 
평소 못된 짓만을 했고,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의 자식이라고 욕을 하던 때를 
잊은  듯 문병을 와 주는 것이었다. 상점 주인 아저씨는 <마리아 몰리>라는 
맛있는  과자를 갖다 주셨고 아우제니아 부인은 계란을 가지고 와서는 내가 
토하는 것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 주기도 했다.
 "빠울로 씨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 아주 놀랍게도 듣기 좋은 말들만 해 주었다.
  "이제 곧 나을거야. 제제, 네가 밖에 나와 장난을 치지 않으니 동네가 슬
픔에 잠긴 것 같단다."
  세실리아  선생님께서도 학교에 두고 왔던 내 가방과 꽃을 사들고 찾아와 
주셨다. 나는 또 눈물이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뛰쳐나갔나 설명하셨다. 그러나 선생님도 나의 깊은 
마음속에 감춰둔 이 비밀을 모르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슬펐던 일은 아리오발도 씨가 찾아왔을 때였다. 나는 그의 목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을 때 잠을 자는 척했다.
 "그 애가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려 주시겠어요?"
 글로리아 누나가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그는 누나에게 간절하게 얘기를 했
다.
 "제 얘길 좀 들어보세요. 난 이 집을 찾기 위해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집집
마다 물어서 겨우 찾아온 겁니다."
 그리고 그는 큰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나의 어리고 착한 천사가 죽으면 안 돼! 저대로 죽게 해선 안됩니다. 아
가씨에게 제가 준 노래책을 전해 준 것도 저 애가 아닙니까, 받으셨죠?"
 글로리아 누나는 목이 메이는지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기만 했다.
  "아, 노래책이 문제가 아니죠. 지금 애가 저렇게 된 마당에...... 그러나 
곧  나을 거예요.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이렇게 포장도 안된 시골같은 변두
리 따위는 다니지 않겠어요."
 그는 마침내 방에 들어와서 내 곁에 앉아 나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갖다대
고 부비며 말했다.
  "제제,  내가 왔다. 눈 좀 떠 봐. 넌 이제 곧 나을거야. 그리고 나보다도 
노래를 더 잘 하게 될 거고. 너 없이 혼자 노래하며 노래책을 파는 것을 보
며  '어이 그 귀여운 당신의 꼬마 카나리아는 어디로 갔소?'하고 묻는단다. 
나에게 약속해 주겠니? 다시 건강해지겠다고. 응?"
  나는 눈을 뜨지 않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기만 했다. 글로리
아 누나가 아리오발도 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내 몸은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갔다. 조금씩이
지만 뭘 먹고 마실 수도 있었고 예전처럼 토해내지도 않았다. 몸의 열도 조
금씩 내려갔다. 그러나 뽀르뚜까를 생각할 때면 열이 오르고 떨렸으며 구토
가  있었다. 우리집 식구들은 살인마 망가라띠바의 기적소리가 울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나 또한 기적소리가 날 때면 그를 산산조각 내는 악몽에 헛
소리를  하기도 했다. 난 아기예수에게 그와의 추억을 잊지 않도록 나도 기
차에 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곁에 앉아 땀을 닦아 주며 헝클어진 머리도 만져주었
다.
  "제제, 울지마. 이제 모든 걸 잊게 될 거야. 네가 갖고 싶다면 내 망고나
무도 줄께. 그리고 그 나무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할께."
  나에게 무슨 이유로 늙은 망고나무를 준다는 것인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망고 열매도 열리지 않는데. 하긴 내 오렌지나무도 얼마 후엔 마술
의  힘이 없어지겠지. 그리고 나면 다른 나무들과 다를바없이 되고 말거야. 
그건 단지 가난한 소년의 꿈이었을 뿐이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기차가 지
나가면 그만이잖은가. 그러나 내가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렵
단 말인가. 아마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붙잡고 놔 주지 
않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글로리아 누나의 끊임없는 정성과 보살핌 덕분에 나의 몸은 나아져 조금씩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빠께서는 밤이면 일부러 밖에 나가 주시
기도  하셨고 또또까 형은 마음의 가책을 받아 그런지 조금 야위었다. 그러
나 형은 내 곁에 자주 있어 주었다.
 "그만하면 됐다, 또또까!"
 "누나는 내 마음을 몰라서 그래. 저렇게 되도록 제제에게 얘기한 건 나야. 
아직 더 사과를 해야 해. 마음이 너무 아파. 잘 때에도 제제의 얼굴이 떠올
라서 잠을 못 자겠어."
  "그렇지만 너마저 울어서는 안 돼. 곧 제제는 일어나 건강해질거야. 그러
니 이제 그만하고 상점에 가서 우유 한 통만 사오너라."
  "그래, 그러지만 돈을 줘야되는데. 이제 아빠 앞으로는 외상을 주지 않잖
아."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몸이 약해진 탓인지 마치 꿈만 
꾸는 것 같았다. 열은 아직 났으나 마음은 한결 안정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희미하게 글로리아 누나가 보였고 피로에 지쳐서인지 흔들의
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누나, 벌써 어두워졌어?"
 "그래, 어두워졌을거야."
 "누나, 창문 좀 열어 주겠어?"
 "머리가 아플 텐데?"
 "괜찮을 거야."
  누나가 창문을 열자 달빛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니 눈물이 왈칵 솟구쳐 왔다.
  "제제, 갑자기 왜 울어. 하늘이 아주 아름답잖아? 아기예수가 네 마음 속
에 태어날 수 있을 만큼 파랗고 아름답잖니? 널 위해 파란 하늘을 만든거라
고 오늘 내게 말했었어."
 그러나 누나는 저 푸른 하늘이 나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곁에서 손을 잡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얘기를 계속 해
줬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지쳐 보였고 야위어 보이기도 했다.
 "제제, 넌 곧 몸이 건강해질거야. 그래서 연도 날리고 구슬도 많이 모으며 
때로는 나무에도 올라가고 또 밍기뉴도 타면서 네가 잘 부르는 노래를 부르
고 말야. 그리고 내게 노래책도 또 갖다 줘. 그 모두가 얼마나 재미있는 일
들이니?  동네 사람들은 요즈음 마음이 모두들 아프대. 네가 거리에 나와서 
놀아야  동네가 즐거움으로 가득찬대. 모두들 그걸 바라고 있어. 넌 그렇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날거지. 그럼, 그렇구말구."
  "누나!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아. 만약 내가 낫게 되더라도 다시 
나쁜 아이가 될 거야. 누구를 위해서 착해진단 말이야?"
  "그래 맞아. 넌 억지로 착해질 필요는 없어. 그저 다른 애들처럼 어린 애
이고 소년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무엇 때문에 누나? 날 때리는 사람을 위해?"
 누나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얘기를 계속했다.
  "제제, 잘 들어봐. 내가 약속하는데, 네가 건강해지면 아무도 그 누구도, 
하느님조차도  네게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할 거야. 내가 송장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네게 손을 대지 못해. 믿어 주겠니?"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송장이란 말이 무슨 뜻이야?"
  오랜만에 누나는 기쁜 듯이 활짝 웃으며 나의 새로운 질문에 기뻐하고 있
었다.  내가 다시 어려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
미하기 때문이었다.
  "응,  송장이란 죽음 몸, 시체를 말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은 흔히 쓰는 
말이 아니야."
  나는 누나로부터 송장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뽀르뚜까가 죽은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송장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
다.  글로리아 누나는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해 주었다. 나는 그의 집에 갔을 
때  보았던 두 마리의 파랑새와 카나리아를 생각했다. 그 새들은 지금 어떻
게 됐을까? 아마 굶어 죽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혹은 누군가가 새장문을 열
어주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갔을지도 모르지. 아니야. 그 새들은 잘 날지도 
못할  거야. 오렌지나무에 떨어져 있는 것을 동네 개구장이들이 잡아갔을지
도 몰라. 아마 애들의 손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거야.
  이제 모든 생각과 몸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집안의 분위기도 
그 전과 같아져서 엄마도 일하러 나가시게 되었다. 흔들의자는 다시 제자리
로  옮겨졌으나 글로리아 누나만은 여전히 남아서 나를 보살펴 주는 것이었
다. 그러나 몸은 조금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고 있었다.
  "자, 일어나서 이 닭고기 국물 좀 마셔봐. 잔디라 누나가 널 주려고 검은 
닭을 잡은 거야. 냄새가 참 좋지?"
  숟가락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나는 또 걷잡을 수 없이 뽀르뚜까가 
생각났다.
  '네가  원한다면 나처럼 해 봐. 커피에 빵을 적셔서 먹으렴. 그러나 삼킬 
때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듣기에 아주 흉하거든.'
 이런 지난 얘기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나가 말을 시켰다.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죽은 암닭 때문에? 그 닭은 너무 
오래 살았어. 그래서 이제 알도 낳지 못하잖니."
 그러나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제제, 어떻게 우리집을 찾았니? 꽤 애를 썼지?'
 "나도 그 닭이 너희들의 동물원놀이에서 표범이라고 불리는 걸 알고 있어. 
진짜 검은 표범을 사오면 되지 뭐."
 '아니, 넌 그동안 어디로 도망갔기에 며칠 동안 보이질 않았어?'
 "누나, 지금은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먹으면 금방 토할 것만 같아."
 "그러면 조금 있다가 먹을래?"
 계속해서 뽀르뚜까와 나눴던 얘기들을 걷잡을 수 없을만큼 떠올랐다.
  '약속하겠어요. 착해지고, 싸움도 하지 않고, 욕도 하지 않고, 그리고 볼
기짝이라는 말도 쓰지 않겠어요. 그럴테니 당신과 함께 있게 해 주세요.' 
  글로리아  누나는 내가 나의 밍기뉴와 얘기하는 것으로 알고 슬픈 눈으로 
바라다보았다.

             *                  *                   *

 처음엔 그 소리가 창문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후엔 창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로 변했다. 그리고 밖에서 나를 조용
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제!"
 나는 몸을 일으켜 창가에 기대었다.
 "누구니?"
 "나야, 문 좀 열어 봐."
  나는 글로리아 누나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캄캄한 어둠 속
에서  온 몸을 아주 아름답게 꾸미고 빛을 뿜으며 밍기뉴가 서 있는 것이었
다.
 "제제, 나야. 들어가도 되니?"
 "그럼, 들어와. 조용히 들어와야 해. 글로리아 누나가 깨지 않도록 말야."
 "그래, 조심할께."
 그는 방안으로 성큼 들어와서는 내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아니?  이 녀석도 너를 굉장히 보고싶어 
했어."
  그가 팔을 내 앞으로 펼쳐보였을 때 나는 은빛 새가은 걸 발견할 수가 있
었다.
 "잘 모르겠어, 밍기뉴!"
  "너를  놀라게  해주려고  이렇게  은빛  깃털로  단장한  거야. 어떠니, 
예쁘지?"
 "아니, 넌 루씨아노가 아니니? 굉장히 아름다워졌구나. 예전에도 예뻤지만 
말야. 난 네가 <깔리바 스또르끄>의 얘기 속에 등장하는 매인 줄 알았어."
  나는 루씨아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세상 어느 박쥐의 머리보다
도 부드러웠고 사랑스러웠다.
 "넌 또 다른 것은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나를 자세히 봐. 난 톰 믹스의 황
금박차를  가졌어. 켄 메이나드의 깃털모자와 후레드 톰슨의 쌍권총도 있고 
리챠드 탈마즈의 가죽혁대와 장화도 그리고 아리오발도 씨의 체크무늬 셔츠
도 빌려왔단 말야. 이렇게 장식하니 어떠니?"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은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것들을 어떻게 구했지?"
 "그 사람들이 네가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내게 빌려준 거야."
 "난 내가 언제나 그런 장식들을 하지 못하는 게 유감이야."
 나는 밍기뉴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앞일을 알고 있는지 관찰해 봤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난 그에게 얘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밍기뉴는 내 침대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부드러운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말했다.
 "왜 그래, 슈르루까?"
 "밍기뉴! 슈르루까는 너잖아?"
  "맞아. 그렇지만 너도 작은 슈르루까야. 넌 더 이상 바랄 게 없을만큼 나
를 잘 대해 줬어."
  "그런 말을 자꾸 하지마. 의사 선생님이 울지도 말고 마음 아파하지도 말
라고 했어."
 "나도 네가 울거나 마음 아파하는 걸 원치 않아. 네가 건강해지고 착한 아
이가  되어  기쁘게 뛰노는 것을 보고 싶은 거야. 살다보면 모든 건 잊혀질 
거야. 너하고 산책을 하고 싶은데 같이 가겠니?"
 "난 아직도 회복이 덜 됐어. 몸이 약해, 지금도."
  "맑은  공기를 마시면 기분도 상쾌해져. 내가 창문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께."
 밍기뉴와 나는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밍기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저쪽에 흐르고 있는 강쪽으로 가보자."
 "난 <까마네마> 거리는 가기 싫은데? 그 거리는 다신 보고 싶지도 않아."
 "그럼, <이수데스> 거리까지만 가볼까?"
  그러자 밍기뉴는 말로 변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 어깨엔 루씨아노가 기쁜 
듯 날개를 치며 앉아 있었다.
 강가에서 밍기뉴는 우리의 배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손을 잡
아 주었다. 배에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분수처럼 물이 솟구쳐 올랐다. 물줄
기는 발바닥을 간지럽혔으며 옷은 물에 젖어가고 있었다. 정신은 약간 혼미
하고  현기증이 나긴 했지만 밍기뉴가 애쓰는 걸 보니 기분은 상쾌했다. 가
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이때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밍기뉴! 너도 저 기적소리가 들리니?"
 "그래, 멀리서 들려오는 소린데."
  그러더니 웅장한 소리와 기적소리는 조용한 주위의 분위기를 흔들어 놨고 
내 마음까지도 또 부숴버리고 말았다.
 두려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바로 저 놈이야. 저 놈이 바로 망가라띠바 기차란 말야. 살인자야!"
 망가라띠바 기차는 기차길을 미친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밍기뉴! 이리 올라와. 빨리 도망가!"
 그러나 밍기뉴는 번쩍이는 박차 때문에 배에 오르기가 힘이 들었다.
  "빨리 피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널 죽일거야. 너를 산산조각으로 만들고 
말거야."
  밍기뉴가 겨우 배 위에 올라왔을 때 그 망가라띠바는 기적을 울리며 꺼먼 
연기를 내뿜고 바람처럼 지나갔다.
 "살인자! 살인자!"
 달려가는 바람 소리가 마치 무슨 얘기처럼 들려왔다.
 "난 잘못이 없어. 내 잘못이 아니야. 난 잘못이 없어......"
  집안엔  모든 불들이 켜지고 반쯤 졸린듯한 식구들이 깜짝 놀라 모여들었
다.
 "나쁜 꿈을 꾸었구나."
 엄마는 나를 껴안으시며 흐느낌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셨다.
 "제제, 꿈을 꾼 거야. 가위에 눌렸었어."
 나는 또 다시 토해내기 시작했다. 글로리아 누나와 라라 누나의 얘기가 들
렸다.
 "제제가 살인자라고 소리치기에 깼어. 죽인다느니 산산조각을 낸다느니 하
면서 소리를 지르잖아. 맙소사, 저런 몹쓸병이 언제나 낫지......?"
 
             *                   *                  *

 며칠이 더 지나자 내 몸은 거의 정상적으로 되돌아 왔고 나는 어쩔수 없이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에 글로리아 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
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고통과 슬픔으로 뒤범벅된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제제, 이것 봐."
 누나의 손에는 하얀 꽃이 들려져 있었다.
 "밍기뉴가 첫번째 꽃을 피운 거야. 곧 어른나무가 되어 오렌지열매를 맺을 
거야."
  나는 누나의 손에 들린 꽃을 바라보았다. 난 이제 무엇을 보아도 울지 않
을  거라고  생각했다. 밍기뉴는 이런 식으로 내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던 
거야.  그도 이제는 내 꿈의 세계로부터 떠나 현실과 고통의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젠 아침을 먹고 밍기뉴도 보고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보자꾸나."
  그때  어린 루이스 왕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 식구들은 루이스가 내 곁에 
다가와도  내버려 두었다. 나의 몸이 아팠을 때에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
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머뭇거리더니,
 "제제 형!"
 "루이스 왕자님, 왜 그러지?"
  루이스는  정말 우리집의 유일한 왕이었다. 그림딱지 속에 나오는 더러운 
왕이 아니었다. 칼과 지팡이가 그의 손놀림 속에서는 반짝거렸으며 정말 왕
다운 왕이었다.
 "난 형과 놀고 싶어."
 "나도 그래. 넌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니까."
 "그럼 오늘 나와 함께 놀까?"
 "동물원놀이를 하고싶어. 그리고 난 후에 유럽에도 가고 아마존의 정글 속
에서도 놀고, 밍기뉴하고도 놀고 싶어!"
 "내가 피곤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다 해 줄께."
  우리는  글로리아 누나의 행복해 보이는 미소 속에 아침을 먹고 루이스와 
손을  잡고 뒷뜰로 나갔다. 누나는 문에 기대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닭장에 
도착하여 난 누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였다. 그녀의 눈빛은 기쁨으로 
마냥  빛났다. 갑작스런 성장 속에서도 나는 누나의 마음 속에 간직된 소망
을  알 수 있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다시 제제가 꿈의 세계로 돌아오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제제 형!"
 "웅?"
 "검은 표범이 없어졌잖아?"
  나는 믿지 않게 돼버린 일들을 말해 준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
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이 바보야! 그건 표범이 아니
야. 그건 늙어빠진 닭이였잖아? 내가 어제 먹었던 그 닭말야.'라고.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 어디 갔을까? 암사자 두 마리밖에 없는데? 아마 검은 표범은 아마
존의 정글 속으로 휴가를 갔나 봐."
 그건 내가 어렸을 때에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환상에서만이 가능한 그런 
얘기를 해주는 게 그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루이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정글 속에서......?"
  "무서워할 건 없어. 그 검은 표범은 너무 멀리 가버렸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거야."
  나는  쓸쓸히 웃었다. 아마존의 정글이란 열 두개의 오렌지나무 가지들과 
나뭇잎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봐, 루이스. 형은 지금 몹시 피곤해. 그래서 그만 놀고 돌아가야겠어. 
내일 다시 놀아 줄께. 내일은 <빵데 아수까루> 산에 케이블카도 매달아주고 
또 네가 좋아하는 놀이를 모두 해줄께."
  루이스는  내 말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루이스는 아직도 사실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나는 도랑 부근엔 얼씬도 하기 싫었다. 그 도랑을 <아마조네
스  강>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밍기뉴가 마력을 잃은 상태로 만나
기도 싫었다. 그 흰 꽃이 밍기뉴가 나에게 남긴 작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
르고 있을 것이다.

                                             
                            8 장

                      늙어가는 나무들

  아직 밤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 집안에는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기운은 우리집과 가족들을 보살펴 줄 것이 확실하리라 생각했다.
  아빠는  식구들 앞에서 나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히시고 어지럽지 않도록 
서서히 흔들어 주시며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다.
  "이제 모든 게 잘 될거야. 그리고 다 잊게 돼. 얘야! 너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아빠가  되게 된단다. 그러면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순간들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이  많다는 것을 알 때가 올 거야. 그 무엇이든 확실해 보이지 
않고  자포자기 속에서 절망을 하며 속을 태우는 때가 있단다. 그러나 지금
은  그러지 않아도 돼. 이제 아빠는 <성 알레이쑤> 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
게 됐으니까. 앞으로는 크리스마스날에 너희들의 신발이 비어 있지 않게 될 
거야."
  잠깐 말씀을 멈추셨다. 아빠께서도 결코 살아계시는 동안엔 그 일은 잊지 
못하실 것이다.
 "앞으로는 여행도 많이 다니자꾸나. 그리고 엄마도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돼. 또 누나들도 마찬가지야. 제제! 너 지금도 메달을 가지고 있니?"
 나는 주머니 속에서 메달을 찾아 꺼냈다.
 "그래 나에게 다오. 새 시계를 사서 그 메달을 달아야겠구나. 어느 날엔가
는 네 것이 될거야."
 '뽀르뚜까 아저씨, 까르보룬둠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빠는 계속해서 얘기를 하시면서 수염투성이의 얼굴을 나에게 갖다 대셨
다. 옷을 너무 오랫동안 입으셔서 냄새가 났다. 나는 아빠의 무릎에서 일어
나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서 어둠에 쌓여가는 뒷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가슴속에 분노는 아니지만 소리없이 화가 치밀었다. '저 사람
은  무엇 때문에 나를 무릎에 앉혔을까? 그는 이제 내 아빠가 아니야. 나의 
아빠는 돌아가셨어. 망가라띠바 기차가 아빠를 죽였어.'
 아빠는 내가 있는 곳으로 따라오셨고 내가 눈물흘리는 것을 보시더니 무릎
을 굽히며 말씀 하셨다.
  "울지 말아라 제제. 우리는 이제 큰 집을 갖게 된단다. 그집의 뒤에는 정
말 강이 흐르고 있고 커다란 나무들이 있단다. 그것들이 모두 너의 것이 돌
거야. 그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건 모두 하렴."
  그는  모르고 계셨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셨다. 이 세상의 어떤 나무도 
<까르루따> 여왕나무처럼 아름답지는 못할거야.
 "너는 무엇이든 먼저 차지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네 것이 될거야."
 나는 그의 발을 바라보았다. 슬리퍼 사이로 발가락들이 나와 있었다. 그도 
역시  칙칙한 덩쿨나무이며 늙은 뿌리를 가진 나무였다. 아빠 나무였다. 그
리고 내게는 거의 알 수 없었던 나무였더 것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어. 그리고 네 라임오렌지나무는 그렇
게 쉽사리 베어버리지 않을거야. 또 그 나무를 베어버릴 때는 넌 멀리 있어
서 느낄 수도 없을 거야."
 나는 그의 무릎을 붙잡고 흐느꼈다.
 "이제는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그리고는 아빠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빠, 오렌지나무는 이미 잘라 버렸어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일주일 
전에 잘라 바렸단 말이에요."

                                     
                            9 장

                        마지막 고백

 나의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디리스!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저도 마흔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움 가운데서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어 그때가 계속되는 착각을 하
곤 합니다. 정게 그림딱지와 구슬을 사 주시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당신
은 제게 따뜻한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까!
  요즈음도 나는 딱지와 구슬을 애들에게 가끔씩 나누어 주곤 합니다. 그것
은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 자신의 사랑에 만족합니다.
  옛날 그 시절, 우리 둘만의 그 시절 속에서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립니
다.
 옛날 바보가 제단 앞에 꿇어 앉아 눈물을 흘리며 환상의 세계를 향해 이렇
게 물어봤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는 건가요?"
 저도 너무 일찍 철이 들었어요.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까! 지금도 진정 보고 싶은 당싱! 당신은 나에게 따
뜻한 사랑과 꿈 그리고 인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뽀르뚜까!
 영원히 내 마음 속에 간직하렵니다.
 안녕......!

                                                                1967년

                                                    -- 우바뚜바에서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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