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과 전제 [엘빈 토플러]
@[ (저자 소개)
*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뉴욕대학 졸업
과학, 문학, 법학부문의 5개 명예박사 학위 취득
5 년간 공장노동자로 일함
Fortune지 부편집장
코넬대학 객원교수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교수
Russell Sage Foundation 초빙학자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특별회원
Institute for the Future, Rockefeller Brothers Fund Study, IBM Corporation
고문
Fortune, Life, Reader's Digest, Horizon, The Saturday Review, Show, The New
Republic, The Nation, Playboy, Think, Technology and Culture, Encounter,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지 등에 기고
Prix du Meilleur Liver ^45^Etranger(프랑스), Mckinsey Foundation Book Award
수상
저서: '문화소비자(Culture Consumers)', '미래 쇼크(Future Shock)', '에코스패즘
리포트(Eco-Spasm Report)', '제3 물결(The Third Wave)', '예견과 전제(Previews
& Premises)', '적응기업(The Adaptive Corporation)'
편저: '내일을 위한 교육(Learning for Tomorrow)' '도시의 교사(The
Schoolhouse in the City)' '미래주의자(The Futurist)'
한국은 지금 평화시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격동기의 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가속화되고 있는 변화가 한국인들의 마음과 가슴에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두 가지 전환점에 직면해 있다.
그 하나는 정치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것이다. 한 분야에서 내려지는
결정은 다른 분야의 귀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은 지난 세대 동안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한국은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속력으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또는
'굴뚝'사회('smokestack' society)로 탈바꿈했다. 한국사회가 이처럼 빠르게 변천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다른
요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숙련된 기술자와 관료, 많은 뛰어난 기업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현재의 소비욕구 억제 등 이 모든 요인들이 급속한 변천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외부요인들도 그러했다. 월남전쟁 중에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쏟아 넣은
수십억 달러의 파급효과가 그 예이다.
그러나 그와 똑같이 중요한 것은 한국이 본받을 수 있는 뚜렷한 발전모델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 앞서 산업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이 유럽, 미국, 일본으로부터 교훈을 얻었건 어쨌건 간에
그에 앞서 산업화를 위한 방향이 이미 제시되어 있었고 취해야 할 조치들을 알고
있었다. 수출주도형 전략, 세계시장에서의 저임금 노동에 의한 상품판매, 대량생산
기술의 도입 등 이러한 모든 정책들이 도시화와 결부되어 다른 나라에서 먼저
실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그리고 많은 다른 국가)이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발전을 위해 잘 만들어진 청사진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본받을 만한 발전모델이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진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모방을 하기보다는 독특한 미래의 발전 전략을 창안해
내야 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세계에서 선진경제가 되려면 이전에는 필요로 하지 않던 어떤
상황을 요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점차적으로 '산업화 이후'
또는 '제3 물결' 경제 발전의 핵심이 되고 있는 정보에 대한 태도의 변화이다.
미래의 경제적 성공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값싼 육체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두뇌와 혁신의 판매를 늘려 나가는 것일 것이다. 굴뚝 사회가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반복적이고 단순하고 비창조적인 노동을 하도록 요구한 반면에 새로운
경제사회는 어떤 계층이거나 모든 노동자가 그들의 육체는 물로 정신을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혁신적인 능력을 사용하기를 요구한다.
유순한 노동자들은 값이 싼 노동집약적인 수출품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세계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되고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경제 사회는 낡아빠진 가정과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소련의 비극적인 실례가 보여 주듯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관리들이나 검열관들에
의해 억압당하고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이단적인 견해를 표명하기를
두려워하고 교육제도가 권위주의적이고 소련의 공산당 정치국(Politburo)이나
국가보안위원회(KGB) 또는 그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기관들이 언론을 통제하거나
언론자유를 제한한다면 혁신은 어느 경제사회에서도 번성할 수 없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Mikhail S. Gorbachov)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소련이 기술적, 경제적 발전 면에서 서방세계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개방(glasnost)'사상을 도입했다.
정보개방정책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정치적 관심의 대상만은 아니다.
정보개방정책은 새로운 세계경제사회에 있어서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익이나 좌익, 자본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서방측이나 동구권,
선진국이나 개도국을 가지지 않고 모든 정치 집단에 어려운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새로운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21세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세계에서 영원히 저개발국가로 남게된다.
필자는 새로운 문명이 낡은 문명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과 강은 전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보다 큰 도전과 연관시켜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특수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책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앨빈 토플러
@[ (동기와 경위)
1970 년 7월에 '미래 쇼크(Future shock)'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후
전세계적으로 700 만부 이상이 팔렸는데 할리우드나 섹스를 다룬 책이 아니었음을
생각할 때 이것은 놀라운 판매실적이었다. 이 책은 처세술이나 돈벌이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이 책은 사회 분석과 비평에 관한 딱딱한 내용으로서
각계각층의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미래 쇼크'라는 용어 자체가 일상어로
되어 지금은 여러 사전에 수록되게 되었다.
1980 년에 '미래 쇼크'의 저자인 토플러(Alvin Toffler)는 '제3 물결(The Third
Wave)'을 출판했다. 이것은 '미래 쇼크' 보다도 더 한층 학술적^5,23^분석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이 분명한 책이었다. 이 책도 역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도서 판매 기록을 깨뜨렸다. 이 책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는
말할 것도 없고 덴마크어, 히브리어, 터키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이 책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판매 금지되었으나 북경에서는 출판되었다. 바르샤바에 계엄령이
선포될 당시에는 폴란드어로 번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인터뷰를 할 당시 토플러는 전세계의 보다 광범위한 시청자에게 토플러의 메시지를
전달해 줄 쇼 프로그램으로서 '제3 물결'을 토대로 한 대형 TV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일본, 캐나다, 미국의 TV 제작팀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이 책들은 토플러의 대부분의 초기 저서들과 함께 상호 관련된 사상들의 응집체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사상들은 독자의 찬반을 불문하고 아주 참신하고도 도전적이다.
이 사상들은 변화를^36,36^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다루고 있다. 그것들은 심리학,
경제학, 기술, 역사 등 본질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 분야로부터 정보를 종합하고
있다. 또한 현대 세계에 관한 놀라운 사고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 양변에서 색다른 저서인 이 '예견과 전제(Previews and Primises)'에
제시된 핵심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 이 초기 저서들은 읽어 볼 필요는 없다. 이 책은
그 자체로서 완성되어 있으며 참신한 자료와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여러가지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토플러의 저서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 쇼크'와 '제3 물결'에 대한
몇 가지 언급이 불가피하다. 토플러의 저서를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 주로 처음의
두 개 장에서 개관한 몇 가지 개념들은 그의 저서에 친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이미
낯익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견과 전제'는 토플러의 종전 저서들의 범위를 뛰어넘어
남녀의 역할, '정신근로자(mind worker)'의 정치학, 산업정책, 역사철학 등 그의
초기의 저서에서는 별로 취급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미래 쇼크'의 핵심적 주제^56,36^이 책이 처음 출판될 당시만 해도 새로운
발생이었다^36,23^는 사회적^5,23^기술적 변화의 가속화로 인해 개인과 조직체의
대응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적응해야만
하는 것은 단순한 변화만이 아니라 가속화 그 자체이다. 토플러는 변화의 방향 및
내용과는 전연 별개로 변화의 속도 자체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의
때 이른 도래'에 관해 집필하는 가운데 변화의 과정들을 놀랍도록 참신한 용어를
구사하여 분석하면서 앞으로 민주주의가 살아남으려면 보다 확산적이고 참여적일 뿐
아니라 보다 예상적(anticipatory)인 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제3 물결'은 '미래 쇼크'를 보완하고 변화의 방향에 중점을 둠으로써 토플러의
사상 체계를 확대시키고 그 이론적 전제들을 더 한층 심화시켰다.
'제3 물결'의 주제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한 세계의 산업사회가
지금 '전반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데 있다. 토플러는 1 만년 전의 농업혁명이 인류
사회에 최초의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300여년 전에 시작되어
사회적, 정치적 투쟁의 조류를 수반한 산업 혁명은 지구상에 두 번째 변화의 물결을
확산시켰다. 그리고 토플러의 견해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현대의 기술, 경제, 정치,
가정 생활, 에너지 사용 등 그 밖의 생활 영역들의 추세가 세번째의 문명 단절을
예고함으로써 새롭고 중요한 과도기^56,36^'제3의 물결'적 사회형태로 이행하는
과도기^36,23^에 처해 있다.
이러한 관념들이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미래 쇼크'는 일찍이 솔제니친
(Alexander Isayevich Solzhenitsyn), 오든(Wystan Hugh Auden), 더럴(Lawrence
Durrell) 등에게 수여된 바 있는 프랑스의 최우수 외국도서상(Prix du Meilleur Livre
Etranger)을 받았다.
미국 코넬대학의 객원 교수, 러셀 세이지 재단(Russell Sage Foundation)의
초빙학자,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New School for Socila Research)의 교수 등을
역임한 토플러는 미국 의회와 백악관, 일본 국회, 영국 하원 등의 모임에서 연설한바
있으며 또한 미국의 전국공화당 주지사 회의와 민주당 전국대회에서 같은 날 중요한
연설을 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수많은 대학과 기업체뿐 아니라
모스크바의 미국학연구소, 동경의 일본 생산성본부, 뉴델리의 국립물리학연구소,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연구소에서도 연설했다.
토플러는 연설 때마다 현대 사회제도들의 시대착오적 성격에 대해서, 우리들의
사고방식, 정치적 행동 방식, 경제 및 가정 생활의 조직 방식에 있어서의 혁명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혁명의 가능성을 높여 줄 사회
발전의 궤도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의 견해들은 심오한 정치적 함축을 지니고
있는데도 토플러 자신은 현대의 정치 구조에서 좌익이나 우익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의 정당제도와 정부조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거대한 경제적 변혁을 촉구한다. 그는 평등, 그리고 자기 동일성(identity)과 목적의
고결함을 추구하려는 여성과 모든 소수민족의 권리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플러는 어떠한 기존 정당이나 운동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고도기술국가(high-technology nation)들에서는 좌익^5,23^우익이라는 정치의 축이
더욱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또한 사회를 분열시키는 주요
분파들의 전연 엉뚱하고 잘못된 노선에 따라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옳을까? 오늘날의 정치운동은 시대착오적인가? 우리 사회의 인종, 계급,
성, 연령, 종교 등의 전통적 갈등은 보다 뿌리가 깊고 인과관계상의 충격이 큰
일련의 다른 갈등들의 종속적인 것인가? 아니면 바로 토플러가 설명하는 변화의
물결 자체가 종속적이어서 보다 낯익은 여러가지 정치적 관계나 모순관계의
맥락에서 볼 때 뒤떨어진 것인가? 그의 주장처럼 좌, 우익 모두의 정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아직은 우리 시대의 과제와 관계 있는 것인가?
그가 이른바 '물결의 충돌'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차적인 잘못된 노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오늘날의 급속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이해하고
순조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그의 모델은 우리에게 변화를 통제할 새로운
무기를 제시해 주는가? 토플러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적 추세에 대해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는 이 추세들의 궁극적 귀결점을
결정하고 또 만일 우리가 제때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를 토플러가 보는 '제3
물결' 비전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만들게 될 그 밖의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와
갈등들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의 새로운 분석들은 우리가 미래를
인간화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인가?
'예견과 전제'는 당초 '사우스 엔드 프레스(South End Press)' 멤버들이 제안했던
일련의 장시간의 인터뷰에 토대를 둔 것이다. 이 인터뷰 내용은 현존하는 우리의
사회제도들이 우리 시대와 시민들의 필요에 부응하기에 위험할 정도로 부적절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격동기를 극복하려면 현존하는
사회제도들을 조속히 변혁시켜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종류의 변혁이 필요하며 또는
가능한가? 우리 사회가 불평등과 착취의 기반 위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생존 그 자체는 새로운 차원의 공통성과 참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사회적 다양성을 요구할 것인가? 이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1)현시대적 변화의 일차적 결정요인과 그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2)우리는
시민으로서 이러한 사회적 과정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개입할 수 있는가의 여하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토플러가 이 책을 함께 집필하자는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후 우리는
편집인 한 사람을 정해 일련의 광범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의견
불일치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플러는 오늘날 좌익적이라고 인정되고
있는 대부분의 생각을 절망적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이에 반해
그를 인터뷰한 사람은 좌익의 정치와 투쟁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토론장이 될 수는 없었다^36,36^중요한 것은 모든 의견차이를 해소하려는 데
있지 않았으며 이처럼 제한된 과정에서 그러한 순진한 희망을 건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대신 우리는 도전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토플러가 그의 지난날의
설명들을 보충하고 이를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며 또한 인터뷰의 흐름이 허용하는
경우 좌익적인 분석시각에 뿌리를 둔 비판적인 질문에 응답하도록 한다는 데 희망을
걸었다.
이러한 점에서 토플러의 일부 독자들은 전세계에 걸친 시청자와 기업가에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또 훨씬 더 큰 출판사들을 이용할 수 있는 저자가 무슨
이유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정치적 시각에서 마련된 이같은 집중적인 인터뷰에
응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토플러에 의하면 그 대답은 이 인터뷰가 서방의 주요 언론이 그에게 좀처럼
질문해 본 적이 없는 좌익에서 제기된 몇 가지 특정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토플러는 소유, 계급, 정치적 권위, 인종차별, 남녀차별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심각한 취약점 등 여러가지 이슈와 관련된
문제들을 검토하고 맞부딪쳐 보기를 원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든 독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오래지 않아 직면하게 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에 대한 '사우스 엔드 프레스'의 관심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주요 언론 매체에서의 이 문제들에 대한 취급이^56,36^설사 모두 취급되는 경우라
하더라도^36,23^ 피상적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예견과 전제'는
직접적인 대결의 형식이 아니고 또 대담자와 저자간의 의견 불일치가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많치 않았지만 우리는 의견 교환이 유익하며 또한 이
인터뷰가 유용한 선례를 남기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그 자체가 비재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견'이라는 제목하에 제 I부는 오늘날의 경제적 위기, 미래의 노동과 실업,
일본에 관한 신화, 그리고 산업사회의 붕괴에 직면한 다른 나라들의 전략 등 최근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토플러의 견해를 담고 있다. 토플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전망을 검토하고 또한 급속도로 등장하는 내일의 사회 속에서 여성과 소수민족이
담당할 새로운 역할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전제'라는 제목하의 제II부는 이와는 전혀 다르며 또한 보다 개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토플러의 세계관에 깔려 있는 기본적 가정들을
평가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자서전적인 내용부터 시작했다. 현재와 같은 그의
비정통적 견해는 그의 경력상 어떠한 경험들에 의해 형성된 것인가? 뒤이어
미래학(futurism)에 관한 간단한 역사적 고찰이 뒤따르고 그 다음에는 토플러의
연구방법론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어떻게 연구작업을 조직하는가?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 여러가지 개념과 정보를 하나의 통일된 지적 구조로 통합하는가?
그는 변화를 어떻게 모델화하는가?
장시간의 대화가 끝난 후 방대한 원고작성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단순한
첨삭이나 소제목의 삽입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토플러는
첨삭과 문체교정에 덧붙여 참신한 사상들^56,36^새로운 항목, 질문, 대답들이
추가되었다^36,23^을 집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종원고는 공식적인 인터뷰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내용이 크게 확대되고 다듬어져 마치 어떤 산문집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다. 원래의 원고는 축어적인 인용의 근거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지침으로서 활용되었다. 우리는 '예견과 전제'가 독자들에게^56,36^여기에 표현된
특정 견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36,23^미래에 대한 독자들 자신의 안목있는
예견과 그 바탕에 깔린 전제들을 새로이 재검토하도록 고무해 주리라고 확신한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사우스 엔드 프레스
@[ 제1부 예견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마음속에 간직하면서도 그 기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1급 지능의 시금석이다.
사람은^5,5,5^ 사물이 절망적임을 인식하면서도 사물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의 '붕괴(The Crack-Up)'에서
@[ 1. 경제적 대변동
우리는 현재 경제적 지진의 최초의 진동을 느끼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흔히 말하듯이 서방 자본주의 세계는 지금 1930 년대 대공황 이래 어느 때보다도
가장 높은 수준의 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공산국가들은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져 있다. 소련 경제도 비틀거리고 있다. 세계 금융 체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더욱 동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기의 본질은 크게 잘못 인식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개념들 중에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많다. 보수파나
진보파, '우익'이나 '좌익'도 모두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양측이 모두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지면을 휩쓸되 땅덩어리 자체는 그대로 남겨 놓는
태풍과 같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지진의 초기 상태와 흡사하다. 우리의 모든 경제
현상의 바탕이 되고 있는 지층구조 그 자체가 지금 삐걱거리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붕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면서도 참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심층구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표면 현상만을 다루고 있다.
앨빈 토플러
* 귀하는 오늘날 우리 경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 또는 일어나기 시작한
사태를 묘사함에 있어서 '지진'이라는 도전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귀하가 임박한 대규모의 경제 변화에 관해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5 년에 출판된 '에코스패즘 리포트(Eco-Spasm Report)'에서도 귀하는
오늘날의 여러가지 경제적 사태를 예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책에서나 또는 '제3
물결'에서도 귀하는 오늘날의 위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혜택을 주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길거리를 방황하고 일자리를 잃고 복지 혜택을 삭감 당하게 되리라고
시사하지는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미국에서는 임박한 위기라는 것이 고의로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실업이라는 처방을 쓰는 경우 노동자들이
고분고분해진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동원되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인다. 여성과
소수 민족은 여러 해 동안 추구해 온 승급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득 격차가
커지고 경제 위기의 부담이 불평등해짐에 따라 우리 사회는 더욱 불공정해진다.
더구나 복지 혜택이 삭감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기를 쓰고 노동시장을 찾아가
저임금에 응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을 수락하게 된다. 요컨대 실업자의 풀(pool)이
확대되면 기업은 한꺼번에 임금을 낮추고 생산을 올리고 이윤도 늘릴 수 있게 된다.
^26,26^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똑같은 위기가 지금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고의로 조작되었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고도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더구나 이러한 생각은 훨씬 더
근본적인 여러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다.
언론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경기후퇴(recession)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경기 후퇴가 어떤 사람에게 개인적인 타격을 주게 되면 그것은 느닷없이 '경기
후퇴'가 아니라 '불황(depression)'이 되고 만다. 나는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사람들이 지금 타격 받고 있으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항상 약자라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을 계속 경기후퇴 또는 불황이라고만 부른다면 현 사태의 실상을
은폐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증세에만 관심을 두는 태도이다.
종전의 불황기에는 기초산업 부문에 위기가 있었다. 일시해고(layoff), 재고 누적,
파산, 유질처분, 대기업의 공장폐쇄 등.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에 강력한 새 기업이 일어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오늘날은 대량생산 산업들^56,36^전통적 산업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자동차, 철강,
고무, 섬유 산업 등^36,23^이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다. 벨기에의 철강 노동자,
영국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 그리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와 일본의 섬유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현재 전자, 컴퓨터, 정보, 유전학, 우주항공, 환경재생, 특정
서비스, 대체 에너지 산업 등의 폭발적인 성장을 목격하고 있다. 이 모든 산업이
비록 약간의 기복은 있지만 확대되고 있다.
현재의 사태는 경기후퇴 그 자체라기보다는 전체 기술경제적 사회기반의
재편성이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지형을 들어올리는 지진과도 같은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금리, 세제, 임금 및 물가정책이나 통상관계를 아무리
만지작거려 봐야 우리는 구제받을 수 없다. 파업이나 데모도 마찬가지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제2 물결'에서 '제3 물결'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좀더
부연하자면^5,5,5^.
* 이에 앞서 우선 '제3 물결'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그 용어를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26,26^ 이 용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충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수천년 전에
농업화 물결이 시작되었다. 유목민과 수렵인, 어부와 목축인들이 농부가 되었다.
마을이 생겼다.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이 탄생했다. 편의상 이를 변화의 '제1
물결'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러던 중 300여년 전에 두 번째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각종 기계, 대량생산
및 소비, 대중매체와 대중교육, 다시 말해 공장에 기초한 일체의 생활 방식이 지구의
약 4분의 1에 걸쳐 낡은 농업문명을 대체했다. 나는 산업화의 이같은 파급을 '제2
물결'이라고 부르고 있다.
* '제1 물결'이 농업을 가져왔고 '제2 물결'이 산업화 시대의 대중사회를
가져왔다면 '제3 물결'은 무엇을 가져오고 있는가?
^26,26^ 이 새로운 혁명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다.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산업혁명 당시에 태어났던 사람이 그 당시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그 복잡성 때문에 어리둥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지금
그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마치 외견상 서로 관계없는 여러가지
변화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컴퓨터이지만^56,36^그러나 컴퓨터만은 아니다. 그것은 생물학적
혁명이지만^36,23^그러나 단지 생물학적 혁명만도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 형태의
변화이다. 그것은 세계의 새로운 지정학적 균형이다. 그것은 가부장제도에 대한
반발이다, 그것은 크레딧 카드에 비디오 게임과 스테레오와 '워크맨(역주: 일본제
소형 카셋트 라디오)'을 합한 것이다. 그것은 지방주의에 세계주의를 합친 것이다.
그것은 전자식 타이프라이터와 정보산업 근로자(information worker)와 전자식
금융업무를 합친 것이다. 그것은 탈중앙집권화(decentralization) 운동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우주왕복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자기 동일성 추구이다.
그것은 자유근무시간제(flex-time)이고 로봇이며 또한 지구상의 흑인과 갈색인,
황색인들의 호전성 제고이다. 그것은 이 모든 요인들의 결합된 충격으로서 전통적인
산업화시대의 생활방식을 집중적으로 분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변화의
가속화 그 자체로서 우리 시대를 역사적으로 특징지어 주고 있다.
우발적이거나 서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변화를 이해하려면 강력한 새
모델이 있어야 한다. 내가 '제3 물결'에서 제시하고자 한 것은 이 모든 변화들간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모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새로운 경제적
모델들도 필요로 한다. 경제를 이 새로운 요소들과 관련시키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경제를 재편성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경제가 그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전체 문명이 재편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날 경제를 침체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6,26^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생산성 저하에 있다고들 한다. 게으른 노동자,
어리석은 경영, 지나친 복지, 부적절한 투자, 노동윤리의 상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제 수입품 탓이라고도 하고 미국의 금리 탓이라고도 하고 아랍인, 흑인, 유태인,
이주 노동자, 거만한 자본가 탓이라고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56,36^마치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체제는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는 듯이^36,23^그것이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라도 주장한다.
이상의 여러가지 진단 중에서 정곡을 찌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 저서의 중심적 명제는^56,36^경제학에 영향을 줄 만한 것으로^36,23^오늘날의
위기가 재분배상의 위기도 아니고 과잉생산이나 과소생산 또는 생산성 저하(의미야
여하튼간에)의 위기도 아니며 오직 '재편성의 위기', 즉 낡은 '제2 물결' 산업화시대
경제의 붕괴와 이와는 다른 원리에 의해 운용되는 새로운 '제3 물결' 경제의 등장에
따른 위기이다.
그리고 '제2 물결'식 처방은^56,36^소위 좌파의 처방이건 우파의
처방이건^36,23^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 무언가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옛날식 자본주의 위기라고만은 할 수 없고 따라서
귀하의 말대로 현재의 여러가지 경제이론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기 바란다. 귀하가 말하는 '제3
물결' 경제는 '제2 물결' 경제와 어떻게 다른가 ?
^26,26^ 그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선 준거의 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말하는 변화는 범세계적인 것으로서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그것은^56,36^협의의 정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포괄적인 사회변혁을 함축한다는
의미에서^36,23^혁명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산업화의 위기이다.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모두 동요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제2 물결' 문명이 일으켰던
경제는 지금 그 종말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비록 한국,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
아직도 작용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산업주의(industrialism)를
일으키고 확산시켰던 문화적, 기술적인 요인들은 지금 힘이 빠진 상태에 있다.
새로운 요인들이 세계무대에 등장하여 새로운 세번째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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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이 된 공장굴뚝
*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기 바란다.
^26,26^ 대량생산의 경우를 보자. 이것보다 더 산업화 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미 대량생산, 대량소비 경제로부터 내가
말하는 이른바 '탈대량화(de-massified)'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전통적인 대량생산에서는 공장들이 똑같은 물건을 수백만개씩 쏟아내 놓는다.
'제3 물결' 부문에서는 대량생산이 그 반대인 탈대량생산에 의해^56,36^컴퓨터와
수치제어(numerical control)에 기초한 단기생산, 심지어 개별 주문생산에
의해^36,23^대체되고 있다. 동일한 부품이 수백만개씩 생산되는 경우에도 주문을
받아 최종 제품을 완성하는 경우가 더욱 더 늘어가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품이 현재
단순히 다양화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생산공정 자체가 변혁되고 있다.
산업화시대의 조립라인 사회(assemblyline society)의 상징인
공장굴뚝(smokestack)들이 유물화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대량생산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첨단
경제부문에서 대량생산이 이미 구식 기술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구식 대량생산
산업들이 경쟁력을 무한히 유지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공장의 현장 실태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획일적 제품만큼 싼 비용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여러 산업들은 현재 주문생산이냐 아니면 파멸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것은 '제2 물결' 경제에서 요구되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이것은
실제로 산업화 이전(pre-industrial) 시대의 1종 1제품 생산으로의 변증법적 회귀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기술적 기반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추세는 유통체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 직접우송 표적 마케팅(역주: direct mail
targeting: 회사, 백화점에서 광고 팜플렛, 안내장 따위를 직접 가정에 보내는 선전
방식), 전문 상점, 그리고 심지어 홈 컴퓨터(home computer)나
전화쇼핑(teleshopping)에 기초한 개별적 배달 체제 등을 더욱 자주 목격하게 된다.
사람들이 더욱 다양화하고 그 결과로 대량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규모의
부문들로 분할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이 이제는 더
이상 '선진적 방법'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이제는 후진적 방법이다.
전체 경제가 탈대량화하고 있다. 이것은 중대한 변화이며 역사적인 변화이다. 그것은
대중사회를 벗어난 단계인데도 우리의 인습적인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탈대량화 원리를 고려하지 않는 한 고용문제나 총수요의 문제, 심지어
행정부서의 문제들도 올바로 다룰 수 없다. 그것은 산업혁명이래 가장 중요한
시장경제의 성격 변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비교환(non-exchange)',
'비시장(non-market)' 경제에서의 주요 변화들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또한 교환이 아닌 사용을 위한 생산의 확대를 목격하고 있다. '제3 물결'
경제는 단순한 탈대량화가 아니며 내가 말하는 이른바 '생산소비(prosuming)'에
기초한 중요한 성장 부문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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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생산자
* 정확히 말해서 무슨 얘기인가?
^26,26^ 정부는 국민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며 세금을 피해 재화와 서비스를
맞바꾸거나 '야간부업' 일자리를 얻는 사례를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조세제도에 영향을 주게 마련인 이러한 사실의 발견을 크게 떠벌이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이다. 그것은 교환체제에서
계산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다 중요한 또 다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 실제로 판매용도 아니고 심지어 물물교환용도 아닌 오직
스스로의 사용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더욱 많이 생산하고 있다. 그것은 '소량
상품 생산'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생산자의 소비를 위한 생산이다. 나는 이것을
'생산소비'라고 부른다. 그것은 소비자와 생산 공정과의 관계를 뒤바꾸어 놓고 있다.
오늘날 그것은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손수 만들기(do it yourself) 시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생산자들은 도구와 재료는 시장에서 구입하지만 그 사용은 교환 체제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산소비'는 또한 수많은 자조집단(self-help
group)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 부문은 소비자나 제3자가 생산 과정에서 역할을 맡는 이른바
'공동생산(co-production)'의 사례들로 점철되어 있다.
공동생산의 가장 보편화된 예로 셀프 서비스 주유소를 들 수 있다. 전에는
운전자는 차안에 앉아 있는 채 주유소 종업원이 휘발유를 넣어 주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운전자가 밖으로 나와 직접 휘발유를 넣는 주유소가 많다. 전에 판매자가
수행하던 기능을 구매자가 떠맡게 되었다. 최종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는
소비자가 그 결과를 공동생산하고 있다.
정보 및 서비스 부문에 눈을 돌려보면 그 한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정부 기관이 병충해 방제 계획을 발표한다. 계획의 성공 여부는 새
방법을 사용하는 농민들에 달려 있다. TV방송국이(정부기관의 비용부담 없이) 새
방법의 효과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그 TV방송국은 필요한 정보도
제공한다.(이러한 서비스가 없었더라면 정부 기관은 돈을 들여 팜플렛을 제작하거나
농사지도원을 파견했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TV방송은 생산 공정 자체의 일부로,
그리고 TV방송국은 농작물 개량의 공동 생산자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여기서 소비자와 제3자는 생산자에 의해
외부화(externalization)된 작업을 직접 떠맡고 있으며 그 결과 종전과 같은 명확한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
누가 어떤 정보를 어떠한 비용으로 누구에게 공급하느냐의 문제,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어떠한 작업을 외부화하느냐의 문제, 그리고 소비자의 자체 소비를 위한
시장 밖에서의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은 우리가 산업화 경제를 벗어남에 따라
더욱더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생산성의 정의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지의 생산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경제의 탈대량화에 덧붙여 생산자, 소비자 및 제3자의 역할도
변경시키고 있다. 지금은 체제 전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재편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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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산업
* 그러면 이 새로운 산업들은 어떤 점에서 귀하의 '제3 물결' 경제에 적합한가?
^26,26^ '제2 물결'의 대량생산 산업을 새로운 '제3 물결' 산업으로 바꾼다는 것은
단순한 대체 이상의 일이다. 새로운 산업은 종전의 산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분명히 새로운 제품들이 있다. 물론 여러가지 새로운 기술도 있다. 그러나
종전과 똑같은 동기와 낯익은 사회적 관계들도 있다. 이 '제3 물결' 산업들을
기본적으로 옛 것과 동일한 것 이상의 것, 즉 옛 것의 새로운 연장이라고 보아서
안될 이유가 무엇인가?
^26,26^ 그것은 수많은 차이점 때문이다. 제품의 종류도 다르고 참여한 사람의
종류, 그 조직 구조, 그 스타일과 문화도 다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원^56,36^지식의 차원^36,23^에서 볼 때 이 산업들은 관계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대표하고 있다.
'제2 물결' 산업은 폭력적인 기술을 사용했다^36,36^원료를 찍고 두드리고 말고
때리고 쪼개고 자르고 구멍 뚫고 부숴서 우리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이같은 기초적 제조 공정은 인간의 지각운동과 유사했다. 심지어 동굴
인간조차도 썰고 잘랐다.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기계들은 인간의 완력과 감각기관의
예민함을 연장시킨 것이었다.
'제3 물결' 산업들은 훨씬 더 심오한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어떤 것을 두드려서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이를 다시 프로그램
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든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분자 또는 그 이하의 차원에서 작업하고 있다. 우리는 물건을 되풀이하여 자르고
찍거나 두드리는 단순한 기계를 발명하는 대신 기계에 지능을 부여함으로써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여 개별화된 제품을 경제성 있게 만들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노력과 어떤 유사점이 있다면 그것은 완력이 아니라
정신이다. 새 기술은 폭력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력을 연장시켜 주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제3 물결' 산업들은 전연 다른 사회적, 조직적, 문화적, 환경적인
함축을 지니게 되었다. 마치 레이저 광선이 공성(칠 공, 재 성)망치와 전연 닮지
않은 것처럼 '제3 물결' 산업들은 대량생산 산업들과 닮지 않게 되었다.
* 이 새로운 산업에는 어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26,26^ '제 3 물결' 산업에는 전자, 레이저, 광학, 통신, 정보, 유전학, 대체 에너지,
해양학, 우주공업, 환경공학, 생태계 농업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현재 일상
경제생활에서 구현되고 있는 인간 지식의 질적 도약을 반영한다.
이 새로운 기술들을 새로운 탈대량화 생산 및 분배과정과 관련시켜 생각할 때,
그리고 생산자, 소비자, 제3자의 역할 변경과 관련시켜 생각할 때 누구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재편성의 심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껏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집중적인
체계 속에서 연결될 때(예컨대 컴퓨터나 통신 부문에서 막 이루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비로소 '제3 물결'의 기술적 기반이 갖는 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2 물결' 경제구조는 이같은 새로운 힘을 수용할 수 없다. 역사상 이
시점에서 이같은 새로운 산업들이 세계 무대에 갑자기 등장했다는 것은 현재 그처럼
많은 국가경제들이 위기에 처하게 된 이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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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대 국가
* 이 새로운 기술들이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가져올 것인가^56,36^또는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36,23^의 여부에 관해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우선은
논란거리가 될 만한 귀하의 또 다른 주장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귀하의
저서에서는 또한 현재와 같은 국가 경제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26,26^ 그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개편의 또 다른 차원에 불과하다.
산업주의시대에 우리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기업으로부터 국가적
규모로 운영되는 더욱 큰 회사로 이행해 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산업기술, 모든 국가를 하나로 묵는 새로운 수송, 통신체제, 전국적 유통기구에
봉사하는 대중매체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수십년 동안에 다국적기업이 등장했다. 기술의 힘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함에 따라, 그리고 컴퓨터와 새로운 통신체제의 정비로 국제금융체제가
거대 다국적기업에 봉사하도록 개편됨에 따라 국내시장보다는 다국적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생산의 비중이 더 한층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추진된 그 반대의 추세로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전국적인 생산이 그보다 작은 규모의 생산으로 이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 남부의 규수 지방이나 스코틀랜드, 퀘벡, 텍사스지방 등을
살펴보면 우리는 지역 경제들이 불과 수십년 전의 국가경제만큼이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화적, 기술적 추세 때문에 종전 같으면 전국적 시장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었던 특정한 재화를 지금은 지역적 또는 지방적 시장을 상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7번째 또는 8번째로 큰 경제를 이루게 되었다.
뉴욕주나 텍사스주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거대 단위로서 어느모로 보나 전국적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 운영되는 각종 법령,
세제, 규정 그리고 중앙은행 시책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 이러한 지역경제들은
앞으로 더욱 더 국가경제의 틀을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역경제들은 더욱 분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시에서 요리에
이르는 문화분야에서, 그리고 물론 정치분야에서 대두하고 있는 지역주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 그렇지만 예컨대 캐나다나 서유럽 등의 분리주의운동은 대부분 일차적으로
문화운동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26,26^ 물론 벨기에와 캐나다에서의 언어분쟁이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인종적,
역사적 차이점과 같은 문화적 요소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지역들은
경제적 자립^56,36^또는 자립 가능성^36,23^이 증대할수록 더 한층 자치를 요구하게
된다. 지금 스코틀랜드는 북해 석유를 갖고 있으며 퀘벡주는 잘잘못을 불문하고
뉴잉글랜드 지방에 수력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지역'이건 '국가'이건 이러한 지역단위들이 지금 집중되고 있지
않고 분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경제단위들을 워싱턴, 동경, 파리,
런던 또는 모스크바 등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중앙집권적으로 관리하기가 앞으로
더욱 더 힘들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중앙계획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세제나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규제 등 여러가지
국가경제정책적인 낡은 도구들은 재화 위주의 대량생산 경제를 위해 고안된
조잡하고도 무차별적인 정책수단이다. 이러한 정책수단들은 국가적 경제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서 국민경제보다는 다국적^5,23^지역적(심지어 부문별) 경제가
중요시되는 경제체제를 위해 고안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수단들은 탈대량화
경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조잡하고 둔감하고 비선별적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적 중앙은행 간부나 사회주의적 국유화론자 모두에게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나는 이를 '아드레날린 문제(adrenalion problem)'라고
부른다. 나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병원을 예로 들곤 한다. 우리 경제는
여러가지 긴장과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통화론자이건 복지국가론자이건
사회주의자이건 우리의 경제학자와 정부들은 마치 회진을 한 후 다리가 부러진
환자나 뇌종양 환자를 불문하고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약^56,36^모든 환자에게
아드레날린^36,23^을 처방하는 의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에도 획일적인 국가정책은 지역 또는 지방경제에 더욱 더 위험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또한 세계경제 전체에도 예기치 않은 파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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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의 영향
* 지금까지 귀하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탈대량화, 공동생산, 지역주의 등의 말로
설명했다. 요즈음 누구나 자주 듣게 되는 '정보화사회'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6,26^ 제조업의 쇠퇴에 따라 화이트칼라 및 서비스직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56,36^사무자동화의 확대로 인해 이 과정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의문이지만^36,23^자료에 의해 충분히 입증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정보화사회의 몇 가지 함축에 관해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그것은 경제개편을 이해하는 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정보혁명은 왜 일어나고 있는가? 그 원인에 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경제의 탈대량화 및 사회적 다양성 제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론적으로 상세히 논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대중사회가
분열하면 할수록 더 한층의 탈대량화가 이루어지고 경제가 분화하면 할수록
체제통합을 위한 정보교환의 필요성이 증대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는 정보혁명은 대량생산 및 대량유통의 붕괴를 가능케 할 뿐
아니라 그 붕괴에 의해 더욱 촉진되다. 이 두 가지는 하나의 전자 칩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탈대량화는 정보혁명의 핵심적 원인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혁명적이다.
* 어째서 혁명적인가? 새로운 정보기술을 사용하기만 하면 부와 권력의 기본적
배분에 변화가 생기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인가?
^26,26^ 근본적인 권력이동과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통상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그러한 잘못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적이라는 말이 타당성을 갖는 이유는 새로운 사실들이 우리가
갖고 있던 낡은 가설들을 뒤집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 여기서
'정보가치설(information theory of value)'을 제시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인 '생산요소'^56,36^토지, 노동, 자본^36,23^를 살펴보면
그것이 모두가 유한한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남의 땅에 밀을 심으면 그 사람은
동시에 그 땅을 이용할 수 없다. 내가 남의 노동이나 자본을 이용하면 그 사람은
같은 시간에 그것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노동은 단편화하고 균질화하여
엄격하게 규제될 수 있다. 그러나 정보는 이와 다르다.
전에도 생산에는 언제나 정보라는 요소가 개재되었다. 심지어 돌도끼를 만드는
데도 어느 정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마르크스도 지식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사태를 보면 정보는 더 한층 중요한 요소로 되어 가고 있으며 또한 정보는
다른 요소들과 다를 뿐 아니라 심지어 변증법적인 대립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정보를 사용하면 나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이 모두 그 정보를 사용하면 보다 많은 정보를 생산해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보는 다른 자원들처럼 '소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성적(generative) 이다.
그것만으로도 종전의 경제 이론들은 붕괴되고 만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정보가 직장과 가정의 분할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보혁명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중앙집권적인(centralized) 사무실과
공장에서 집 근처의 작업장이나 심지어 가정으로 이전시킬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여기서도 산업혁명의 기본 추세의 한 가지가 정반대 방향으로 역전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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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운동
* 이같은 정보의 돌파구가 별로 유익하지 않은 여러가지 가능성의 길까지 열어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이것이 귀하가 말하는 '가내(집 가, 안
내)전자근무체제(electronic cottage)'를 의미하는 것인가?
^26,26^ 그렇다. 1980 년에 '제3 물결'이 출판될 때만 해도 그러한 개념은 미친
생각으로 간주되었었다. 2 년 후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지는 이 생각이
'노사관계의 기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 했으며 그 당시 이미 미국
전문가들은 1990 년대 중반에 가면 약 1500 만개의 직종이 가정에서 수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경제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 그러나 가정내에서의 근무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요소를
상실케 함은 물론이고 가혹한 성과급 작업 제도로 쉽사리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소속감과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교류를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근무처를
인간적이고 참여적인 장소로 만들기만 한다면 사회적 요소가 긍정적인 속성으로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가내근무를 하면 엄격한 감독과 통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경영자들이 과연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도록 하겠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6,26^ 그러한 비판들은 상쇄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감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장이 종업원의 가내근부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36,36^노동자를
통제하기가 너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즉 기계를 사용하면 노동자들을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감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실성 여부는 아마도 각 직종의 특성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며 또한
가내전자근무체제에서 일하는 각자가 어느 정도 자기보호책을 강구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56,36^흔히 간과되고 있는 점이지만^36,23^이 사람들이 방금
봉건 장원에서 온 무식한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교양을 갖춘
근로자이며 실제로 각자의 홈컴퓨터, 비디오, 원격통신 연결망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조직망, '전자근무자 동업조합(electronic guild)', 새로운 전문직 협회 등 여러가지
자주관리 또는 자기보호 그룹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단체행동도
가능할 것이다. 언젠가는 '전자파업(electronic strike)'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사무실과 공장에 남아서 일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더 우려된다.
노동조합은 가내근무를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근로기준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내근로자들의 노조조직을 지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상상력을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직장이 사회생활 문제에 관해서 말한다면 이것은 가내전자근무체제가
거론될 때마다 튀어나오는 문제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사회적 접촉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러한 접촉을
오늘날의 대부분의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접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무실이나 공장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여러가지 사회적 접촉을 가져
왔다. 공자이나 사무실에 가보지 않은 인간의 대다수가 정말로 인간적 접촉, 우정,
정서적 따뜻함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 역이 진리이다. 공장생산은 여러가지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파괴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장 생활에서 오는 사회적 소외를
비판해 왔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그 대안이 역사적으로 가능해지게 되니까 공장이
이상적인 존재로 찬양 받고 있다! 터무니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의 통근 근로자들이 밤중에 집에 돌아와 TV 앞에 털썩
주저앉고 있다. 그것은 처량한 노릇이다. 그러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저녁에 일을
마치고 나면 집을 '떠나고' 싶어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친구를
사귀고 지역사회 활동에 참가하고 싶어할 것이다.
통근제도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많은 교외주택지구는 마치 사회적인 공동무덤처럼
되어 왔다. 그러나 가내전자근무체제에서는 가내근로자들이 밤중에 외출하여 지방
연극단체나 교회, 정당, 친목단체 등에 참가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을
고립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사회적 접촉이 별로 없던 가내 근로자들도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는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가내전자근무체제가 사회적 고립을 가져온다는 생각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나는 또한 우리가 한 가지의 획일적 패턴을
보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며칠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며칠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사무실에서 3주 동안 일한 후 1주일은 집에 돌아와서
전화호출과 사무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해 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업종과 제품과 일의 종류가 다양한 것만큼 여러가지 패턴이 생겨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가내 근무는 현재 사회에서 '비생산적' 역할을 맡도록 강요받고
있는 불구자와 노인들에게도 전연 새로운 선택 가능성을 열어 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새롭고 더욱 강력한 가정과 지역사회의 유대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동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여성들 중에는 절박한 경제적 필요 때문에 나선 사람도
있지만 단지 텅빈 집안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나선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가정이
근로와 교육, 그리고 그 밖의 여러가지 가족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면 가정 자체가
덜 공허하고 덜 외로운 장소로 변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현재 미국에는 여성이 소유하고 있는 약 35 만개의 가정경영업체가 있다.
이런 업체들은 탁아소와 연회준비 등의 서비스업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건축설계,
경영상담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경제체체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으로서 문자 그대로
수십억 달러짜리 사업에 해당된다. 또 그것은 어떠한 기술적 지원이 없어도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당장 값싼 컴퓨터와 값싼 원격통신, 비디오 시설 같은
것이 주어진다면 이런 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제 잠시 전체 문제를 역사적 시각에서 조명해 보기로 하자. 산업혁명은
임금노동을 가정에서 떼어내 공장과 사무실로 옮겨 놓았다. 이에 따라 사회가
변혁되고 가정생활이 변모되었다. 교육이 가정 밖으로 이전해 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량 통근이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패턴이 생겨나 우리의 도시와 삶의 모습을
뒤바꾸어 놓았다.
이같은 사실은 노동의 상당부분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낼 때도 큰 변화가 수반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 그러나 귀하는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는 확신을 가졌는가?
^26,26^ 어느 누구도 무슨 일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형성되고 있는
압력을 보라.
우선 에너지 비용이 장기적 상승추세에 접어들었다. 수송비용이 상승할 때마다
사용자들은 임금을 올려 주지 않을 수가 없다. 한동안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근로자들을 출근하게 하려면 결국은 교통비를 보조해 줄 수밖에 없다. 이 압력이
당장 임금구조에 끼어들게 된다.
다음으로 통근체제 전체가 보이지 않는 비용요소가 된다. 어떤 중심지로
종업원들을 출근시키는 회사는 부동산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고 세금이나 관리비,
임금도 더 많이 내야 한다. 또 구내식당, 탈의실 등을 설치해야 하고 교외에
위치하는 경우에는 주차장을 마련해야 하는 등 통근 과정을 뒷받침하는 온갖
지원시설이 뒤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에 반해 주지하는 바와 같은 원격통신, 컴퓨터, 비디오 시설 등
'통신통근(telecommuting) 수단의 비용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여기서 두
개의 강력한 경제적 곡선이 교차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생산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온갖 방안이 나와 있다(생산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있지만).
의심할 여지도 없이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반생산적'인 일은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직장과 집 사이를 오고 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낭비이며 인간의 창의력과 수백만 배럴이나 되는 재생 불가능한 연료의 낭비일 뿐
아니라 공해와 교통혼잡 등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근로자 측의 부담은 더욱 크다.
가내근무의 인간적 영향을 우려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통근제도는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가? 대부분의 근로자에게는 통근이란 것은 실제로 무보수 근무의 일부이며
^36,36^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한 번에 몇 시간씩 사회적으로 고립당하는 멍청하고도
처량한 일과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생활의 이 부분을 증오한다.
통근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지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라!
대부분의 근로자가 공장에서 물질적 재화를 다루어야 할 때는 통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제3 물결' 산업이 확대됨에 따라 많은 근로자들이 정보,
아이디어, 숫자, 프로그램, 공식, 디자인, 기호 등을 취급하는 작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를 정보에 접근시키기보다는 정보를 근로자에게 접근시키는
편이 금전적으로는 물론이고 에너지 절약의 측면에서도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또한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온갖 종류의 문화적, 가치적인 변화도 아울러
나타나고 있다. 가정 생활의 부활이 새삼 강조된다. 탈중앙집권주의운동
(가내근무보다 더 탈중앙집권적인 것도 없다),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직장이
바뀌어도 이사갈 필요가 없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중앙집권식 생산이야말로 가장
큰 오염 원인이다) 등등.
이상과 같은 모든 압력을 생각해 보면 특정한 직종의 가정으로의 이전이
가능해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같은 사태발전을 따로 떼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산과 분배의 탈대량화, 각 지역으로의 탈중앙집권화, 정보의
중요성 제고, 전혀 새로운 전대미문의 산업의 출현, 경제적 규제 또는 운용을 위한
국가적 수단의 붕괴, 공동생산 및 비시장 생산의 중요성 제고,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가지 상호 상승 작용을 하는 변화들과 연관시켜 파악해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 이 모든 분야에 걸쳐 한꺼번에 경제를 개편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 용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 지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제3
물결' 경제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 기본적인 경제개편이 일어나고 있다는 귀하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사회정의,
평등 및 인간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현재의 변혁과정이 완성되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은 어떻게 될 것인가?
탈락되는 수백만 근로자들에게는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성과 소수민족은? 노령자는? 그리고 우리는 혹시 소수의
고학력자가 소득이 좋은 일을 하고 나머지 힘없는 사람들은 천한 일을 해야만 하는
지금보다도 더 비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게 될 위험은 없는가? 귀하가 말하는 '제3
물결' 경제가 지식인, 경영자, 과학자를 새로운 운전석에 앉혀 놓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땀흘리고 지치고 혹사당하면서 엔진을 돌리도록 만드는 사태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26,26^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미래의 노동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2. 노동의 미래
누가 일을 할 것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인구의 2%가 로봇을
사용하여 모든 유급노동을 수행하고 나머지 98%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러한
디스토피아(역주: dystopia 음산하고 악이 난무하는 상상의 세계)적 환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50 년대 말과 1960 년대 초에 공장자동화가 도입되면서 대량실업에 관한
예측들이 나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완전고용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다고(또는
소망스럽지도 않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취업자와 실업자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최저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노동력의 구성이 변화하면서 1950 년대와 1960 년대의 이같은 공포는
줄어들었다. 여러 나라에서 제조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수백만의 화이트칼라
및 서비스직 일자리가 새로 마련되었다.
오늘날 기술적 실업이 증대하리라는 공포심이 재연되고 있으며 또한 자동화가
가장 빨리 확산되는 곳이 사무분야임을 생각할 때 화이트칼라 부문이 또 다시
고용감소를 메워 줄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된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일자리를 마련할 것인가?
일 자체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앨빈 토플러
* 귀하는 사회제도와 가치관의 심한 격변과 함께 경제생활에서도 중요한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이 개편에서
혜택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기술의 변화가 이루어질 경우 제도적 관계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이 부문에서 자본가, 경영자와 전문가, 노동자, 남자와 여자, 백인과
흑인들간에 이해 충돌은 없겠는가? 서방 국가들에서는 약 3,000 만 명이 직장을
잃고 있다. 그밖의 수많은 사람들은 영혼을 파괴하는 노동으로 생활을 해 가면서도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경제 위기가 더욱 악화하리라는 위협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세계의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되어 있다.
그런데도 귀하는 낙관론을 펴고 있는 것 같다. 이유는 무엇인가?
^26,26^ 나는 단기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결코 낙관론자가 아니다. 나는 더욱 큰
경제적 재난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에코스패즘 리포터'가
출판된 1975 년 이래로 줄 곧 이렇게 말해 오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책은
은행도산과 해고에 관한 뉴스가 넘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기는 종전의 그 어느 불황과도 같지 않다. 오늘의 위기는 1933 년의
재판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려면
그것이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위기가 다른 점은 그것이
붕괴가 아니라 하나의 철저한 재편성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구조개편의
위기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내일의 경제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우리의 당면 문제를 다룰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 우리는 새로운 개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실업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우리는 새로운 사회에서 '노동'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지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노동이라는 말이나 실업이라는 말도
종전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귀하가 말하는 노동이란 무슨 뜻인가?
^26,26^ 나는 항상 교환경제에서의 유급노동과 '생산소비' 활동이 이루어지는
비교환경제에서의 무보수 노동을 정신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생산소비라는 것은
여성 또는 남성이 자녀를 양육 할 때^5,5,5^ 남성 또는 여성이 집을 증축할 때 하는
행동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채소밭을 가꿀 때, 집에서 옷을 만들 때, 또는 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할 때 하게 되는 행동이다. 이런 사람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그들은 노동을 한다. 그러나 보수를 바라고 하는 노동이 아니다.
생산소비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유급 노동문제에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이라고 할 때 유급노동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면 귀하는 이러한 노동 자체가 변모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26,26^ 이 문제에 관해 글을 쓴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스스로 여러 해
동안 몇 가지 아주 힘든 공장노동을 하면서 지냈었다. 블루칼라 노동, 육체노동,
조립라인 노동 등을 해보았다. 나는 또한 세계 각지의 공장들을 방문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가장 첨단적인 공장과 사무실도 몇 군데 찾아가 연구해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토해 나는 노동에 관해 우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분업과 마르크스의 소외이론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보다 최근에는 밀즈(C. Wright
mills)의 사무실 본질론에서 영향받았다. 우리는 아직도 노동이란 것을
채플린(Charlie Chaplin)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라든가 클레르(Ren^45^e
Clair)의 '우리에게 자유를(A Nous La Liberte)' 정도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과 비평들은 전에는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통적 산업주의에 적용되는 것일 뿐 오늘날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체제에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적 제조업에서의 단편화된 공장노동이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비참한가를 잘 알고 있다.
이같은 공장식 노동은 사무실에까지 옮겨져서 각 개인이 자기 일의 전체에 대한
관계를 알지 못한 채, 기능이나 숙련에 대한 긍지도 갖지 못한 채, 자유재량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하찮은 반복적 업무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이러한 일자리들^56,36^이런 비인간적 형태의 작업^36,23^이
사라져 가고 있다.
내가 늘 어처구니없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노동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이런 노동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 귀하는 그 모든 것을 마치 과거의 일이기나 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26,26^ 물론 그런 뜻은 아니다. 심지어 기술적인 선진국들에서조차도 조립공에서
타이피스트에 이르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지금도 그런 종류의 노동을 요구하는
비참한 일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 노동의 핵심은 일상적, 반복적, 단편적인 노동이 이제는
비능률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 있다. 고도 기술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노동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자리는 회사나 노조,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 감소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슬퍼하거나 애통해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이를 대신할 일자리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앞서 설명한
경제 개편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제3 물결' 부문의 확대는 종류가 전혀 다른
노동의 출현을 함축하고 있다.
여러가지 새로운 직종이 벌써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병원의
PET(주: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 방사 단층 X선 사진촬영.
주사기는 뇌의 에너지 흐름의 횡단적 영상을 제시해 준다.) 주사기술자, 자원재생공,
음성인식기기 수리공, 가정용 제품 설치 및 조정자, 해양 망간 채취공, 재료
디자이너, 태양광전지판 설치공, 해저 고고학자, 섬유광학계열 종사자, 우주실험실
건축가, 직접방송위성 프로그래머, 학습이론가, 비디오 교사, 원격지간
회의(teleconference) 상담역 등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직종들 중에서 과거의 대부분 직종의 특징을 이루었던 단순 반복적인
테일러식 노동(Taylorized labor)에 적합한 것은 별로 없다.
* 그러나 종전에도 항상 다양한 직종이 있었다. 이런 예들은 기술적인 별종이
아니겠는가? 보다 평범한 직종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기술 혁신을 취사선택 하에
엄격한 노동의 위계 질서와 작업의 단편화를 보존할 수는 없겠는가? 이를 방임할
경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은 무시되고 현재의 위계적 관계를 보존케 하는
기술만이 대거 생산에 투입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26,26^ 물론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하위직인
십장이나 최고위직인 중역도 구식의 근로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들에게 불리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제2 물결' 산업에서는 단편화되고
반복적이고 따분한 작업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같은
일을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며 위험한 일은 로봇이 해낼
수 있다. 낡은 형태의 노동은 수익성과 생산성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낡은 형태의 노동을 변화시킬 인센티브가 있다.
얼마 전에 나는 실리콘 밸리(Silicon Vally)에 있는 어떤 컴퓨터회사의 조립구역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곳은 반도체칩 제조공장은 아니었다. 반도체 제조과정은
아직도 대체로 '제2 물결' 방식대로 조직되어 주로 아시아계 여성 노동자들이
줄지어 앉아 비참한 반복적인 공장 노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아직도
대량생산 업종에 속한다. 그러나 내가 방문한 회사는 이 칩들을 받아서 그것들을
가지고 최종제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여기서 내가 목격한 것은 전연 다른 형태의
노동이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탈대량화 생산이었다. 물리적 환경은 깨끗하고 조용했다.
조립실은 밝고 명량 했으며 작업대 위에는 화초와 가족사진, 기념물 같은 것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근로자들은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으며 '워크맨' 스테레오
카셋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작업내용 자체가 상상 밖이었다. 조립공들은 사소한 업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루에 극소수의 기계에 대한 여러가지 복잡한 조작과 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기계적 조립라인 같은 것은 전연 없었다.
그들은 작업이 모두 재미있는 게임 같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곳의 작업과 구식 작업간의 차이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제3 물결' 작업이 확대되고 반면에 '제2 물결' 부문은 감소하고 있다.
'제2 물결' 산업에서는 일시해고와 임금삭감, 복지혜택의 연기 등으로 근로자에
대한 압박이 날로 증가되고 있다.
'제3 물결' 산업에서는 의사결정상의 종업원 경영참가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또한
직무의 단편화가 아니라 직무확대와 보강, 정시근무가 아니라 자유근무시간제,
규격화된 특별급여가 아니라 종업원에게 선택권을 주는 셀프서비스 식당식의 특별
급여, 그리고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창의성의 조장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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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적 작업 형태
* 그러나 귀하가 목격한 그 조립공들에 비하여 얼마나 많은 대만 여성들이 열악한
근로조건하에서 부품을 만들고 있는가? 또한 이 곳 미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근로자들이 완전 실직을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에는 원래부터 교육받은
숙련공의 일자리가 많을 뿐이다. 누구나 다 귀하가 설명한 것과 같은 근로조건을
향유하도록 하려면 생산뿐 아니라 조직이 개편되어야 하며 또한 교육과 사회진출
기회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의 계급 구조가 압축되어
거의 모든 사람이 매우 협동적인 전체 구조 안에서 일종의 전문인, 경영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56,36^그것이 소망스러운 일이라고 가정할
때^36,23^지식과 특권이 훨씬 더 평등화하는 방향으로 큰 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현재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반발하지 않겠는가? 귀하가 설명한 일부
고도 기술 산업에서의 보다 인간적인 근로조건은 대체로 이 공장들이 누리고 있는
아주 높은 수준의 성장과 수익성의 기능이 아니겠는가?
^26,26^ 사실 그렇다. 새로운 고도기술산업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가 쉽다. 그리고 숙련공의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에 숙련공들의 교섭력이
커지게 된다. 이 모두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현사태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제2 물결' 산업은 수익성이 높았던 시기에도
근로조건이 잔인하고 비참했었다. 사실 작업의 잔인성은 수익성 제고에 직접
기여했다. 근로자를 착취하면 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많은 '제3 물결' 산업에서는 사정이 정반대이다. 작업장의 잔혹성은 더 이상
수입을 높여 주지 않으며 오히려 반생산적이다.
'제3 물결' 회사들은 종업원 착취를 통해 수익을 늘리지는 않는다. 이런 회사들은
노동의 강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의 '두뇌화'를 통해 성공을 거둔다. 종전과는
달리 착취는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안된다.
이 차이점을 더욱 분명히 표현하자면 옛 대량생산 산업에서는 완력이 중요했으나
첨단적인 탈대량화 산업에서는 정보와 상상력이 중요하며 이로 인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동경에서 소니사(Sony Corp.)의 공동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와 대화를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이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장 노동자에게는 아침 7시 정각에 출근하여 일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원이나 엔지니어에게는 7시에 출근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말할 수 없다.' 모리타는 이 점을 알고 있으며 성공한 다른 '제3 물결' 기업인들도
이점을 알고 있다. 일이 생기면 애플 컴퓨터사(Apple Computer Inc.)의 잡스(Steve
Jobs)나 탄딤 컴퓨터사(Tandem Computers Inc.)의 트레이빅(Jim Treybig)에게나
따져 보라. 그리고 '제3 물결' 회사가 난관에 빠진다면 그것은 제품 설계의 잘못,
마케팅의 차질, 조직상의 결함 등의 이유 때문이며 종업원을 제대로 착취하지 못한
때문이 아니다. 일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전연 다른 종류의 근로자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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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근로자
* 귀하의 견해로는 신식 근로자가 구식 근로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26,26^ '제3 물결' 근로자는 보다 독립적이고 보다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기계의
부속물이 아니다. 전형적으로 기능이나 전문지식을 갖춘 근로자이다. 그리고 자신의
손연장(hand-tool)을 지니고 다녔던 산업 혁명 이전의 장인처럼 이 새로운 '정신
근로자'들^56,36^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경우^36,23^은 자기 자신의 두뇌연장
(head-tool)이라 할 수 있는 기능과 정보를 지니고 다닌다. 그들은 미숙련 공장
노동자들과는 달리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새로운 근로자들은 상호교환이 가능한 조립라인공들과는 달리 보다 독자적인 직능
근로자이다. 그들은 보다 젊고 교육 수준도 높다. 그들은 판에 박힌 일과를 단연코
증오한다. 그들은 상사의 간섭 없이 혼자서 자기 방식대로 일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발언권을 원한다. 그들은 변화, 모호성, 융통성 있는 조직에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새로운 세력을 대변하며 그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경제가 '제2 물결'에서 '제3
물결'로 이행해 감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기능과 함께 일련의 새로운 가치관을
획득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치관은 사용자, 정부 정책, 마르크스 경제학,
노동조합^5,5,5^ 등에 여러가지 뜻깊은 함축을 지니고 있다.
* 이러한 종류의 '정신근로자'가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근로조건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한 근로자가 다소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또한 어느 정도의 융통성과 참여 의식을 요구하고^56,36^때로는
관철하고^36,23^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노동을 향한 추세가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귀하는 기술변화와 생산에서의 지식의 중요성을 중요한 요소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사회집단의 상대적 기득권 유지 욕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자본가들은 지적 근로자들의 자율성 및 발언권 증대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자신들의
지위와 권한의 침해에 반대하지 않겠는가? 현재의 전문가와 관리자들은 지적
근로자에 대한 자신들의 상대적 독점권과 이에 따른 일반 근로자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한 입장'을 한사코 수호하려 들지 않을까? 미국의학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tion)는 심지어 지금도 의사의 수를 제한하려고 하지 않는가? 또한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Corp.) 등의 경영층은 지금도 지나친 근로자
참여운동에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귀하가 생각하는 새로운 산업에서는 이 기본적인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피고용자는 어디까지나 피고용자로서 온갖 개인적, 사회적 희생을 무릅쓰고 회사를
위해 이윤을 실현하도록 요구될 것인가?
요컨대 귀하는 모든 사람이 기계적 과제를 분담하면서 회사의 전체 산업계획에
동등한 자율적 경영파트너로 참여하는 새로운 작업장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귀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약간만 달라진 상황^56,36^지적 근로자가 물론 늘어나겠지만
여전히 상사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고 수많은 전통적 근로자들이 여전히 기계적
작업을 수행하는 상황^36,23^을 예상하고 있는가?
^26,26^ 나는 유토피아론자가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결정권한, 기계적인 일,
경제적 보상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 완벽한 작업장의 출현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또 만일 그러한 것이 성취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일정한 여건 하에서는 잘 운영되는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여건하에서는 파국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업체에서 일하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사회라면 최대한의 다양성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떤 사람을
위해 마련한 일자리도 있고 그 사람이 스스로 마련한 일자리도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참여를 요구하는 일자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자리도 있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이상론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제2 물결'식 획일성 위에서
생각하고 있다.
사회의 탈대량화에 관한 나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는 앞으로 극히 다양한 여러가지
새로운 조직형태의 폭발적 증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사기업이나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경제체제 또는 그 혼합체제 대신에 우리는 '가내전자근무
생활협동조합(electronic co-op)', 종교적, 가족적 생산팀, 비영리 근로 조직망 등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가지 조직 형태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중에는 자주관리기업(self-managing enterprise)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자주관리기업이 크게 성공한 예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신근로자'들에 관해 간과되어 온 사실 중의 하나는 이들이
과거의 전형적 근로자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자주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새로운 자주관리 형태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를 놓고 보면 나라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국영기업이나 사기업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기업체들은 보다 덜
관료적이고 덜 위계적인 라인을 따라 개편되도록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경제와
사회가 '제3 물결'로 이행하면 할수록 이 전통적 조직형태들은 효율성을 더욱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윤추구에 관해 말한다면^36,36^회사는 물론 이윤을 추구하겠지만 단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도 현명한 회사들은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뭐라고 말하건 상관없이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재론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근로문제에만
국한시키기로 한다. 내가 여기서 근로의 성격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함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의 성격이 변화함에 따라 거의 누구라도 두 개의 뚜렷한 노동계급^56,36^이
용어가 아직 적당하다면^36,23^의 등장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노동계급을 여러가지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나 좌익,
급진운동 등의 이상은 항상 단결, 통일, 공동노력, 균등한 대우, 동일 임금, 동일
특별급여 등의 언저리를 맴돌아 왔다.
자본주의 국가와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모두에서 산업 생산체제는 표준화된
획일적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며 노동조합은 이 점에서 사용자 측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그 전체적 체제는
다양성과 개별성을 억압했다. 마르크스는 공장체제 그 자체가 의식의 집단화를
촉진했으며 따라서 모든 근로자는 궁극적으로 자기들 자신을 동일한 계급의 구성원,
즉 '근로대중'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현재의 사태는 그 변증법적 대립물이며 마르크스가 물구나무를 선 형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 경제의 성장부문에서는 획일적이고 표준화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체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능력있고 혁신적이고 교육수준이 높고 심지어 개인주의적인 근로자들이다.
이러한 종류의 근로자는 현재 경제의 첨단산업 부문에서 수요가 많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이러한 사람을 가입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독자적인 새로운
조직 형태^56,36^연합 체적인 성격이 강하고 동질성이 적은 조직형태^36,23^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설사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노동조합의
구조, 관행, 이데올로기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작업형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다양성과 개별화는 생산, 소비, 통신,
에너지, 가족구조의 탈대량화에 완전히 적합한 것이다.
사실 이 모든 다른 영역들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경제영역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규정하는 데 도움이 되며 따라서 경제가 체제의 나머지 분야까지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소비자들이 재화와 서비스의 주문생산을 더 한층 요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로자들도(모자만을 바꿔 쓴 똑 같은 소비자인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의 대우를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제2 물결' 기술이 획일성을
조장했다면 '제3 물결' 기술은 사회적 다양성을 조장하고 실제로 이를 촉진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강화적 현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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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상과 복지
* 귀하는 우리가 지금 고등교육을 바도 전문직 기능을 갖춘 사람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경제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우리가 특정한 직종을
인간화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직종의 취업에서 전반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교육과 경제체제를 만든다면 좋을 것이 무엇인가?
^26,26^ 만일 우리가 인식능력만을 중요시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한다면^5,5,5^ 만일
추상적 논리전개와 말재간에 능한 사람들, 즉 '지식계급(literocracy)'에게만 보상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비극일 것이다. 나는 그러한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3
물결' 경제가 비록 거대한 정보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주 순수한 지력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간의 재능과 기지를 필요로 한다. 또한 나는 그 경제체제가
그밖의 모든 기능에 대해서도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예컨대 우리는
수많은 훈련, 재훈련 전문가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다루는
기능이나 시각적, 그래픽적, 연극적인 기능을 요구한다. 우리는 감정이입에 능한
사람, 미학적, 체육적 기능을 갖춘 사람, 감수성이 예민한 관리자와 조직 전문가
등을 필요로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인식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투사와 화해자, 그리고 교차문화적(cross-cultural)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등 여러가지
형태의 인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회나 심지어 유급경제가 영혼과 분리된 지능지수만 가지고 응용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테크너크랫들이 이런 생각을 퍼트리고 있지만 순전히
허구일 뿐이다.
문제는 요구되는 아주 다양한 기능들을 어떻게 보상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껏 모든 기능을 동등하게 보상한 문명은 한 번도 없었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농업문명 또는 '제1 물결' 문명은 특정한 장점과 기능, 특히 신체력을
보상해 주었다. 산업문명 또는 '제2 물결' 문명은 여러가지 다른 기능들을 보상해
주었다. '제3 물결' 문명도 역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장점과 기능을 지닌 사람들을
보상해 줄 것이다.
각 기간마다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내에서 덜
중요한 역할을 수락하든지 아니면 그 보상체제를 변경시키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나는 미래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생산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최저소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프리드먼이 제안한
것으로 생각되는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통해서 이루어지건 또는
디어볼드 (Robert Theobald) 등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방향에 따라 이루어지건
간에 모든 고도기술사회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체제들은 중앙집권화되거나 표준화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체제는 심지어
민간부문에서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매우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도기술국가들이 이 문제들을 다루지 않는 한 폭발적인 사회적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의 복지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공격을 보면 우리는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26,26^ 나는 '복지'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내가 말한 것은 생산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복지제도와도 다르고 취업자만을 보상해 주는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이 두 가지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익이나 좌익, 진보나 보수 등 종전의 범주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나는 일부 복지제도의 경우처럼 사회의 비생산적 구성원들까지도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부와 가치를 생산하면서도 재래식
경제학자나 사상가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점이다. 즉 인지되지
않은 생산자들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제3 물결'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환 경제의 바깥에서 생산에
기여하는 소비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실물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사회의 부담을 덜어 주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교환경제 자체의 가치에도 기여하고 있다. 다만 그들은 '사용경제(use
economy)'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내가 말하는 '생산소비자'들이다. 또한 심지어 교환부문내에서도 가치를 공동
생산하면서도 인지되지 않는 수많은 제3자들이 있는데 농업 생산의 증대에 기여하는
TV 방속국의 경우가 그것이다.
생산소비자와 공동생산자들은 결코 비생산적이라 할 수 없고 그 반대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태의연하고 불공정한 계산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생산성에 대한 참다운 기여를 인정하고 이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가 실업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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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의 7가지 흐름
* 귀하는 우리가 지금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실업이라는 가장 오래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의
실업문제는 어째서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것과 그처럼 다른가?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26,26^ 우리가 대가를 지불할 용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을 일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전쟁이 그것이다. 전쟁은 경제적인 암페타민(역주: amphetamine, 일종의
각성제)이지만 진짜 암페타민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쓸데없는 일 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지금도 경제체제는 이러한 일자리로 가득차 있다. 소련은 관료적인 불필요한
일자리를 늘리는 간단한 방법으로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 있다.
서방의 실업 해결책은 적어도 케인스(John Marnard Keynes)와 루스벨트(Frankin
Delano Roosevelt) 이후로 경제성장이었다.
그러나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거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성장정책 자체만
가지고는 높은 수준의 실업을 해소할 가능성이 없다.
그것은 실업문제가 단순한 양적인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일자리만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일자리를 어디서, 언제,
누가 채우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그것은 질적인 문제이다. 이 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한 양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금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기능을 요구하며 그 기능은 가속적인
속도로 계속 변화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노동력이 보다 다양화되고 있다. 경제
자체가 더욱 분화되고 보다 열광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되었다. 오늘의 경제는
변덕이 심해 호황산업의 바로 다음 차례에 불황의 늪이 기다리고 있기가 일쑤이다.
그 결과 우리는 단순히 전면적인 대책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실업 자체의 원인이 다양해지고 있다.
* 혼자서 두 세 자녀를 키워야 하는 실직한 어머니나 50세된 자동차공장
해고근로자에게는 실업이라는 것이 설사 원인이 다양하더라도 똑같이 느껴질
것이다.
^26,26^ 그렇다. 그러나 이 병을 한 가지 약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실제로는
대여섯 가지가 넘는 서로 다른 질병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실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암을 단순한 질병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업 치유책은 대개가 마치 전신 방사선
치료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로 나는 실업에는 대충 7가지의 서로 다른 흐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제2 물결' 산업에서 '제3 물결' 산업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stuctural)' 실업이 있다. 이러한 실업은 세계적인 규모로 발생한다. 종전의
전통적 산업이 붕괴되거나 아니면 태국이나 멕시코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산업화된
경제체제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수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러한 대격변의 결과로 국제무역상의 압력이 가중되고 경쟁관계, 덤핑, 국제수지
불균형 그리고 세계시장의 급격한 기복이 심화된다. 이로 인해 실업의 두 번째 흐름,
즉 '무역과 관련된' 실업이 나타난다.
기술수준의 향상으로 일정한 수준의 생산에 필요한 근로자의 수가 더욱 감소하게
되면 취업문제가 또 한 가지 일반적인 압력을 받게 된다. 이것이 잘 알려져 있고
논란많은 '기술적(technological)' 실업이다.
또한 순전히 지방적 또는 지역적 원인^56,36^지방적인 과잉생산, 소비자 선호의
변화, 기업합병, 생태문제 등^36,23^때문에 발생하는 실업이 있다. 이것을
'정상적(normal)' 실업이라 부르기로 하자.
또 통상적 수준을 넘는 '마찰적(frictional)' 실업이 있다. 이것은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실업이다. 사태의 진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리고 변화의 속도가 더욱 가속화할수록 마찰적 실업자의 수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또한 거의 전적으로 정보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실업이 있다. 분업이 더 한층
세분화되면 교환가능한 직종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판에 박힌
일상적 작업이나 교환가능한 작업을 하던 때는 비교적 쉬웠던 기능별 업무배정
문제가 훨씬 더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보체제가
필요하게 된다. 이 체제가 마련되기까지는 심각한 '정보적(imformatoinal)' 실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의원성(iatrogenic)' 실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56,36^고의적인 실업증대 정책^36,23^에 기인하는 비의도적
실업을 말한다.
나는 현재의 비구조적 실업 중의 매우 큰 부분이 이러한 성격의 실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의사가 일으킨 질병으로서 치명적일 수가 있다. 불행히도
정치가와 경제전문가들은 부정치료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밖에도 여러가지 흐름의 실업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실업은 교차,
중복된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가지 실업을 열거한 것은 실업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여러가지 문제가 얽히고 설켜 있어서 엄청나게
복잡하다.
예컨대 기술이 실업을 일으킨다고 말할 때 그것은 기술의 여러가지 효과 중에서
한 가지만을 살피는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술은 체제의 다른 부문에서 취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사실 심지어 실업조차도 고용을 증대시킨다. 실업은 사회사업 종사자, 의사 및
경찰관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실업은 특정 산업의 임금수준을 변경시키며 또한
저임금 수준의 고용기회를 새롭게 창출해 주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복수의 결과를 가져오며 각 결과는 차례로 그 자체의 2번,
3번, n번째의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체제가 탈대량화하고 보다 복잡해짐에 따라
우리의 기존 모델들은 종전에 갖고 있던 힘을 상실하게 된다.
어쨌든 '실업'이 단일의 총체적 문제라는 생각, 그리고 질적인 문제가 아닌 양적인
문제라는 생각은 전형적인 낡은 산업화시대의 개념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아직도 전통적인 대량경제를 취급하고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경제체제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실업도 그 원인의 면에서, 그리고 그 해결책의
면에서 더욱 더 분화되고 있다. 이 여러가지 형태의 실업은 각기 그 특수한 조건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면밀하게 대상별로 선정된 '멋진' 의약품이
아니라 광대역(broadband)의 항생제를 가지고 질병을 치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 그러면 이러한 여러가지 실업의 흐름들 중에서 귀하는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26,26^ 대체적으로 '제2 물결' 산업의 붕괴로 인해 발생하는 실업과 새로운 기능
및 문화적 태도에 기초한 새로운 실업의 등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조적 실업이다.
고전적인 경기후퇴나 불황에서는 공장이나 사무실이 문을 닫으면 사람들은 그
공장이나 사무실이 문을 열어 종전과 똑같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까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는 문을 닫은 공장이나 사무실이 다시는 영영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설사 문을 열더라도 종전과 같은 이 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종전과 같은 해결책이 들어맞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화론자의 처방이나 케인스학파의 처방도 안되고 프리드먼이나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의 처방도 효과가 없다. 이데올로기적 순수성, 자유 기업, 국유화,
근로자 통제 등에 기초한 어떠한 단순한 프로그램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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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의 재정비
*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구조적 실업자를 다시 취업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수많은 실업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철강노동자^5,5,5^ 섬유노동자^5,5,5^ 자동차노동자^5,5,5^ 등은 어떻게 되겠는가?
^26,26^ 가혹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 해고근로자들 중의 다수가 옛 직장, 즉 '제2
물결' 경제부문의 어떠한 일자리에도 다시 흡수되지 못하며 또한 이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제3 물결' 부문에서 마련될 새로운 직종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이것은 퇴직^5,23^재훈련 두 가지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이란 말하자면 강제된 퇴직이다. 그러나 현대의 어떠한 사회도 해고당해
근근히 살아가는 수많은 근로자들을 감당해 낼 수가 없다. 대량 실업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보조금이나 급부를 제공해 주지 않으면 위험한 정치적 불안이 조성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문제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노동력으로부터 퇴직 당하는 것을 어떻게 보상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업체들로 하여금 이윤감축을 통해 각 회사의 잉여근로자들을 부양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고를 가장 많이 하는 업체는 바로 이윤이 가장
낮은 업체이며 심지어 이미 사실상 도산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회사들에게 과잉 노동력의 부양을 영구적으로 강요한다면 그 회사들은 가격인상의
형태로 그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야만 할 것이다.
그 대안으로 우리는 이 비용을 사회화하여 정부가 부담하도록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그 비용은 궁극적으로^56,36^이번에는 세금의 형태로^36,23^국민에게
전가된다. 어느 경우이건 비용은 많은 국민들에게 분산되며 그 부담은 엄청난
규모의 것일 수 있다.
가능하기만 하면 또 다른 선택^56,36^재 훈련^36,23^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앞으로 훈련과 재 훈련 사업이 엄청난 규모로 등장하리라고
믿는다. 이 일을 민간 부문이 맡건 교육제도^5,23^군대^5,23^매체 또는 이 모든
부문이 함께 맡건 간에 모든 고도 기술 사회들은 이 사업에 자원을 쏟아부어야
할것이다.
당국자들은 지금 막 이같은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재훈련 전략의 결여가
'미국 경제부흥의 주요 장애물'이라고 주장하는 보고서가 최근 미국 의회에
제출되었다. 나는 바로 이 문제를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토의할 기회를 가졌었는데
자유시장정책을 고수하는 행정부내에서 조차도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증하고 있다.
문제는 '제3 물결' 산업 내에서의 직업훈련 또는 재훈련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직업상의 기능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산업들은
새로운 문화 속에서 운영되거나 그러한 문화를 창조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새로운
태도와 생활양식을 보상해 줌으로써 새로운 가치관을 실현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직 당한 철강 노동자가 제철소에서 새로운 고도기술산업으로 건너 띈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적 기능의 변화일 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도약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훈련이란 매우 복잡한 것이다. 우리는 훈련 방법을 잘 알지 못하며
훈련은 또한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훈련은 이런 근로자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나서 그들의 퇴직
생활을 영구히 보조해 주는 것보다는 훨씬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점진적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 한^56,36^그들이 새로운
경제체제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에 들어서도록 도와주지 않는 한^36,23^우리 사회는
분열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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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양산업의 안락사?
* 귀하의 말대로 우리가 지금 경제체제의 기본적 개편에 직면하고 있다면 이
이행과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6,26^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직업'^56,36^교환경제에서의 정식
유급의 생산직을 의미하는 경우^36,23^을 갖게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생산소비'를 통해 사람들이 판매용이나 물물교환용이 아닌
자가소비용 생산을 하는 방법을 탐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종의 금융지원과 더불어
새로운 도구와 원료, 생산소비를, 위한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소비의 생산성을 대폭 늘릴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지금 당장은 그러한 정책이
이상론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이러한 정책들이 정치적 안건들의
웃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까지는 재래식 정책들을 더 많이 시행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이러한 정책들마저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70 년대 중반의 카터(Jimmy James Earl Carter) 행정부나 집권 당시의 영국
노동당, 또는 이 두 나라의 좌파 및 진보파 정당들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 새로운 '제3 물결' 산업을 무시하고 낡은 '제2 물결' 경제를 지탱하고
보존하는 데만 열중했다.
미국에서는 지금 크라이슬러사(Chrysler Corp.)를 구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브리티시 레일런드(British Leyland)사를 준 국영 회사로 만들고 있다.
프랑스, 서독 등 서유럽 여러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 산업의 경영자,
노동조합 및 주주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경제정책이다. 그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구조개편을 외면하는 것이며 인간의
생명과 노력을 낭비하는 짓이다.
레일런드사를 둘러싼 토의과정에서 나는 영국 정부가 단지 레일런드사의 자동차
사업을 존속시키기 위해 이 회사 종업원 모두에게 7개년 분의 상근 급여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출할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이 돈이
주어지고 그와 더불어 훈련과 새 기술 등의 지원 책이 강구되었더라면 그
근로자들은 7 년 동안에 자신들의 생활과 지역사회를 개편함으로써 자동차 생산에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가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국은 보다 새롭고
건실한 산업과 지역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귀하는 기본적으로 사양산업의 해체와 새로운 '제3 물결' 산업으로의 전환을
정부 시책을 통해 의식적으로 조장해야 한다^56,36^시장 원리에
방임하기보다는^36,23^고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양 산업의 조심스러운 안락사
같은 게 아니겠는가?
^26,26^ 그렇데. 우리는 임시적인 지원이라 할지라도 극히 선별할 필요가 있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산업의 폐쇄가 한 지역 전체를 파멸시킬
위험이 있을 때는 그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5개년간의 단계적 폐쇄 기간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정한 회사들을 그밖의 다른 이유로 예컨대 국가적,
국제적 비상시의 급속한 확장의 기반으로서 존속시키고자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철강이나 대형 차량을 전적으로 해외시장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적 이유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인해 어떤 특정한 회사나 산업을 계속 운영하고자 할 때가 있다.
나는 이 정책에 반대하는 논거를 대부분 알고 있지만 모두가 어리석은
논거들이다. 자유시장론자들이 정치적 결정이 사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마련된
정책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일리가 있다. 프랑스^36^영국의
콩코드(Concorde) 항공기 제작 결정을 보라! 국제 석유 값이 떨어지는 시기에
수십억 달러를 합성연료 개발에 쏟아 붓는 미국 의회를 보라. 투자 결정에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면 이익집단들이 저마다 야단법석을 떤다. 더구나 산업정책이 잘
운영되려면 그 나라가^56,36^제2차세계대전 후의 일본처럼^36,23^본받을 만한 분명한
모델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더 힘들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사태를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것도 별 효과가 없다.
* 그것은 자유시장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 아닌가?
^26,26^ 나는 순수한 시장론자는 아니다. 나는 자유시장(실제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지만)이란 것이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경제력을 정치력과 분리시키는 커다란
장점을 지닌 훌륭한 조정제도라고 생각한다. 시장은 또한 여러가지 경제적 결정을
탈중앙집권화 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시장 메커니즘을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면 실업, 도시 문제, 노령자 보호, 오염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제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그 한계는 제도의 개념정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독단적이어서는 안된다. 시장은
종교가 아니며 도구이기 때문이다. 도구만 가지고 모든 일을 다 해낼 수는 없다.
오늘날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과감하게 공공 자금을 창의적으로
사용하여 특정한 '제2 물결' 산업들을 단계적으로 해체시켜 나가야 한다. 그 목표는
이러한 산업들을 계속 존속시키고 그 경영자와 근로자들의 봉급을 지불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 지역적인 전환과정을 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 핵심은 지원이 아니라 전환에 있다. 나 같으면 업계 스스로가 현재의 기술과
제품으로부터 아주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기술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을 작성하고 또
그 경영자와 노동력을 철저하게 재훈련시킬 계획을 내놓지 않는 한 그 사양산업을
지원하는 데 단 한푼도 쓰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 위크'지는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사양산업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물었다. 이 잡지는 미국인의 대부분인 56%가 이 '구제책'보다는
자유시장원리에 따라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는 정책적 접근에 찬성했다고 신이
나서 보도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양자택일 식의 접근방법은
단순한 발상이다.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맹목적인 적자생존 정책도 아니고
맹목적인 선심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전환을 돕는 것이다.
전환이란 것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미국이 전시경제에서 평화시 경제로
전환하고자 했던 제2차 세계대전 말에 그 방법론을 둘러싸고 중요한 토론이 있었다.
보다 최근에는 영국의 루커스 항공우주사(Lucas Aerospace plc.) 종업원들이 군사
발주의 삭감을 이유로 해고당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대체로 같은 기술, 같은
노동력을 가지고 대체 상품을 생산하는 독자적인 계획을 작성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사람운반기와 의료전자제품 등의 생산으로 전환하는 세부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이 루커스사의 접근방법은 교조적인 노조와 이에 못지 않게 교조적인 회사측의
상호비난 속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여러가지 본받을 점이 많다.
그것은 온갖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환계획이 성공을 거두려면 회사
단독으로 계획을 작성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회사, 노조
및 종업원(노조와 같지는 않다)이 납품업자와 고객대표, 그리고 회사가 영업을 하는
지역사회의 공공 기관 대표들과 함께 공동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전환'이란
말은 가까운 장래에 경제학 용어의 핵심적인 단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어떤 의미에서 귀하는 전환으로 영향받는 모든 사람이^56,36^비단 기업주와
경영자뿐 아니라 근로자와 소비자 및 지역사회 주민들도^36,23^전환과정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기업과 정부가 함께
산업정책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더욱 자주 듣게 된다.
귀하의 모든 저서는 계획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래
쇼크' 이래로 장기전략적 사고방식을 촉구하면서도 또한 탈중앙집권화와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귀하의 사고방식에 모순은 없는가?
^26,26^ 나는 '미래 쇼크'의 말미에서 산업주의적, 중앙집권적, 하향적, 관료적인
계획과 내가 '예상적 민주주의(anticipatory democracy)'라고 부른 보다 공개적,
민주적, 탈중앙집권적인 스타일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경제위기가
심화하면서 나는 전략적 계획이라는 개념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의 대기업 이사나 최고경영자들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나는 계획의 필요성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비단 기업체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예컨대 현재 미국에서는 일본식, 서독식 또는 프랑스식 계획모델에 관한 토론이
늘어나고 있다.(이 나라들도 큰 난관에 봉착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아이러니라고
생각된다. 또한 '선진적 사고방식'으로 통용되는 것도 대부분 낡아빠진 모델을
바꾸는 데 불과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언론은 '정경협력'의
장점을 내세우는 금융업자, 경제전문가, 급진이론가, 다국적기업 간부들의 발언으로
가득차 있다. 보다 너그럽고 세상 물정에 밝은 경영자들은 종종 노동조합도 계획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건 간에 이러한 논지를 지지할 것이 틀림없다.
대기업들이 이를 원하고 있다. 정부도 언급을 하건 않건 이를 원한다. 그리고 영향력
면에서 허약한 제3자에 불과한 노동조합도 협상 테이블에 참석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만연해 있는 바보짓보다는 어느 정도 나은 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일조의 국내적 '3자 상호 협력 촉진 정책 (trilateralism)'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1920 년대에 파시스트들이
농간을 부렸던 구식 '협동조합주의(corporatism)'에 다름이 없다.
이 모델에는 여러가지 나쁜 점^56,36^그리고 위험한 점^36,23^이 있다.
첫째, 우리가 지금 건설하고 있는 복잡하고 탈대량화한 경제에서는 이 모델을
전국적 규모로 실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이 모델은 기업과 노동조합(미국에서는 노동력의 4분의 1 미만을 그나마
때로는 아주 비민주적 방식으로 대표한다)과 정부를 한자리에 모아 놓기만 하면
모든 사람을 '대표'할 수 있다는 오만한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거대한 조직체들 자신을 '대표' 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 번째 문제는 보다 더 심각하다. 이러한 종류의 국내적 3자상호협력촉진정책이
실현되면 극단적인 보수 세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 세력은 '현상', 즉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취약한 부품산업을 경영하는 회사는 그
부품사업을 계속하기를 원한다. 노동조합은 일자리와 노조 회비를 원하는 나머지 온
세계가 그 부품을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회사가 계속 그 부품을 생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정부도 피할 수만 있다면 이 두 세력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그 부품공장은 무한정 계속되어 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계획이 설사 필요한 경우라 할지라도 여러 개의 작은
부분으로 쪼개져야 한다. 즉 소비자, 납품업자, 공공기관에서 인종, 민족, 성, 직업별
등 각종 지역사회 단체들에 이르기까지 보다 많은 집단들을 계획과정에 참여시켜
기본 계획을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지방적, 부문별, 지역적 규모로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계획은 단기적인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장기적 이여야 하며 또한 생태, 노동의
질 등 모든 비경제적 요인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다 보면 이런 일을 제대로 하려면 문서에 파묻혀야 한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여러가지 지방적인 실험이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전망이
밝다. 쌍방향 유선 TV(cable television)와 같은 새로운 통신기기들은 창의적인
새로운 선택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껏 유선 TV
가입자들을 정의, 재정의하고 그들을 합법화하고 이 전체적 절차를 예산 및
조세과정(이것 없이는 말뿐인 것일 수밖에 없다)과 연결시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참다운 예상적 민주주의를 위한 방법과 제도를 '창안'해
내야만 한다.
나는 이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처지가 못되며 실제로 여러가지 모순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우리가 후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제2
물결' 산업 및 노동조합과 큰 싸움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일차적 역점을
'제3 물결' 부문의 육성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선별적 세액 공제와 그밖의 여러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새로운 산업들의 확장을 가속시켜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 (R&D:
research and development)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 분야의 중소기업에 융자를
해주어야 한다. 학교 교실마다, 그리고 빈민가의 상점마다 마이크로 컴퓨터와 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주: 미국 의회에 이를 위한 두 가지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애플
컴퓨터사가 추진하는 한 가지 법안은 학교에 소형 컴퓨터를 기증하는
컴퓨터회사에게 세제상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정리치(Newt Gingrich)
의원(공화당, 조지아주)이 제안한 또 한 가지 법안은 영업용 또는 교육용 홈
컴퓨터를 구입하는 가정에 일종의 투자세액공제와 같은 혜택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하고 환경통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존속시켜야 한다. 환경통제는 첨단적 '제3 물결' 산업에 간접적인 도움을 주어 그
이행을 촉진한다. 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이 새로운 산업들은 종전의 산업에 비해
보다 청결하고 보다 에너지 절약적이기 때문이다.
이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와 대대적인 재훈련 외에도 우리는 또한 급속도로 확대되는 서비스 부문에
보조금을^56,36^직접적으로 또는 민간 부문을 통해^36,23^지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환경정화와 같은 것뿐 아니라 기본적인 대인 서비스도 필요하다. 예컨대 노령자
보호는 인구가 노령화함에 따라 비단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초미의 정치적 우선 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이 분야는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대량생산 부문에서 해고된 수많은
사람들을 '제3 물결' 산업에 취업하도록 재훈련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
중 다수는 '제3 물결' 서비스 업종에서 일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역사회 개발 문제^36,36^지역사회, 예컨대 공장도시가
서비스센터나 고도기술 경제권으로 이행하도록 지원하는 문제에 창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민간부문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대폭 찬성한다. 그러나 민간 부문에 의해서건 공공부문에 의해서건 폭력은 물론
자포자기의 확산을 막으려면 이 사업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제3 물결' 경제로의 이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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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에 의한 구조?
* 귀하는 낡은 산업의 단계적 해체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스스로를 변혁시킬 수는 없겠는가? 지금도 일부 대기업들이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26,26^ 예를 들어 공장의 로봇화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물론 참신하고
혁신적인 회사들은 자력으로 새로운 경제로 이행해 갈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지금
여러 회사들이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로봇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낙후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적 처방은 있을 수
없다.
원칙적으로 '제2 물결' 기업들은 육체노동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두뇌인력을 더
많이 고용함으로써 자체적으로 생존에 적합한 '제3 물결' 기업으로 이행해 갈 수
있다. 로봇화와 자동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치 종전에 육체노동을 에너지로
대체했듯이 우리는 지금 에너지와 육체노동 양자를 정보(넓은 의미에서)로 대체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변혁을 위해서는 회사나 기업들은 그밖에도 여러가지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들은 자체의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종업원들을 개성 있는 인간으로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생산과 분배를 주문화해야 한다. 하청을 늘여야 한다.
더욱더 쇠퇴해 가는 전략인 수직적 통합을 재평가 해야 한다. 소규모 단위로
이행해야 하고 또한 종업원 참여제도로 나아가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단
로봇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 그러면 이 모든 과정에서 제외되는 근로자들^36,36^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근로자들, 귀하가 말하는 이 새로운 사회에 당장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26,26^ 내 생각에는 도덕적 원칙은 분명하다. 어떤 큰 회사가 난관에 처해 있다고
할 때 경영진은 왜 그 난관을 예상하여 미리 막지 못했단 말인가? 경영진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왜 외국제 소형차들이 시장을 빼앗아 가기까지 지켜보고만 있었는가? (설사
단기적으로는 대형차가 수익성이 높았다 하더라도, 휘발유 값이 떨어졌었다고
하더라도 재앙의 전조는 여러 해 전부터 있었다.) 어째서 용광로가 고장나고 기술적
우위를 빼앗기도록 방치해 두었단 말인가? 또는 왜 새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았더란 말인가?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난관을 근로자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경영진이 그 책임을 쳐야 한다. 근속 18 년의 50세된 섬유노동자나
자동차노동자는 많은 '땀'을 회사에 투자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해고할 수는
없다. 회사를 재정비하려면 그 인원도 재정비하도록 도와줄 책임을 져야 하다.
* 그것은 윤리적으로 훌륭하지만 사태가 갖는 경제적 측면은 어떻게 되겠는가?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 종업원을 도와주고 싶어도 돕지 못할 것이 아닌가?
^26,26^ 만일 회사가 이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런 회사는
기능적으로 파산한 것이므로 그에 알맞게 처리해야 한다. 장기 근속자의 재훈련
요구는 법적으로 납품 업자의 채무 상환 요구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것은
미불 임금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만일 회사가 이를 지불할 수 없다면 공공
자금이나 지원 금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지원은 정부측에 아무런 부담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출 보증, 보험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어떠한 것이건 간에 그것이 공짜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전환 계획의 집행을
조건으로 삼아야 하며 최고 경영자가 이를 수행하지 못할 때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어느 쓰러져 가는 회사의 사장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조합에
대해 임금감축을 요구하면서도 연봉 40 만 달러가 넘는 자신의 봉급을 인상한다면
그것은 불쾌한 일이다. 회사 중역이 더러운 돈이라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에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에 대한 보상 이여야지 실패에
대한 보상이어서는 안된다.
투자와 혁신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모두 '제3 물결' 경제에 맞게 바뀌어져야 한다.
새로운 기계에 1 달러를 투자한다면 훈련, 교육, 배치전환, 사회복귀, 문화적 적응
등의 인적 자본에는 여러 달러를 투자해야 할 것이다.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에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 비용을 회사가 얼마나 외부로 전가하느냐, 국민이 얼마나 이를 흡수하느냐
하는 것은 나라마다 다를 것이며 냉혹한 정치와 경제적 투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심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산업이 차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기계뿐 아니라 사람까지도 전화되어야 한다.
* 귀하는 사양산업에 대한 '구제책'을 비난하고 있는데^5,5,5^.
^26,26^ 전환을 위한 어떤 전략이 없다면 그러한 시책은 향수병(nostalgia)일
뿐이다. 즉 쓸데없는 낭비이다.
* 자유시장 접근방법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6,26^ 이미 말했듯이 그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에서는
선의의 의도라는 매력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경제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한 접근 방법은
낡은 산업이 쇠퇴하고 근로자들이 해고되면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서 잉여 노동력을
흡수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가정은 경제기구를 조절하여 실업을 적정선에서 유지하고 임금요구를
적어도 생산성 증가 수준으로 억제하면서도 나라를 위태롭게 할 사회적 혼란 같은
것을 야기시키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가정은 또한 금융, 조세, 재정정책을 적절히 배합하면 이러한 여건을
조성하여 실업자의 대부분을 원래의 직장에 복귀시키거나 새로운 산업에 취업시킬
수 있을 만큼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 옛 일자리는 대부분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해고된 섬유노동자, 주물노동자, 자동차노동자, 철강노동자, 고무노동자,
봉제노동자들이 컴퓨터, 통신, 유전 등 '제3 물결' 경제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도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자유방임정책은 낡은 부문의 맹목적 구제에 못지 않게 바보짓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본질적으로 향수병 적이라 할 수 있다.
자유방임정책은 근로자들이 상호교환적이라고 전제하는 접근방법이다. 이 정책은
'제3 물결' 부문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 '제2 물결' 부문의 기능과 동일한 것이며
또한 이 두 부문이 필요로 하는 근로자의 형태, 태도, 생활양식 및 가치관도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같은 노동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56,36^'제3 물결'
부문이 '제2 물결' 부문의 실업을 흡수하도록 하려면^36,23^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일자리의 절대 수가 감소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재훈련과 적응훈련을 받아야만 새로운 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훈련
등의 후속지원 노력없이도 이러한 재정비 과정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황당무계하다.
* 그러나 대기업이 지배하는 정부가 그러한 정책에 동의할 리가 있겠는가?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정치적 동향에 비추어 볼 때 귀하의 제안은 대중운동을 통해
싸워야만 실현될 수 있지 않겠는가?
^26,26^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 정치적 투쟁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제2 물결' 기득권자들(기업, 정부, 노동조합 세력 등을 포함)과 '제3 물결'
세력들(일부 기업, 일부 노조원, 일부 시민집단^56,36^소비자, 환경보호론자, 지역
주의자^36,23^등을 포함)간의 대결이다. 인간적, 산업적 전환 및 갱신문제를 중심으로
이른바 '제3 물결 연합세력'이 형성될 기반은 조성되어 있다. 우리가 상당한 지원을
얻어내야만 할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분명히 교육 ^456,34^ 훈련이다. (주: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확고하게 과거에 집착하고 있어 심지어 장기계획조차도 배격하고 있다.
미국 노동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 회장인 커플런드(Lane Kirkland)는 2000 년을
내다보는 착상을 비웃고 있다. 이에 반해 전화시스팀을 주축으로 65 만 조합원을
거느린 미국 통신 노조(CWA: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는
'정보화시대'의 노조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미래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이 위원회의 일차적 목표는 조합원들의 재훈련을 강화하여 그들이 미래의 첨단
통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두고 있다. 일부 노동조합들은 '제3 물결'
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최소한 잠재적인 동맹세력이 될 수 있다. 비록
노동조합 자체는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상당수의 조합원은 동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앞서 말했던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훈련, 재훈련 그리고 더 한층의 훈련을 통해 노동력의 배치를
전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이다. 훈련은 '제3 물결'의 모든 산업들 중에서도
최대의 산업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수출산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내가 훈련에 관해서 말할 때 그것은 키펀칭(keypunching)과 같은 어떤
특정한 기계적 기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훈련, 즉 사람들이 전연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이행하도록 돕기 위한 훈련이다.
그것은 훈련이나 교육 또는 그밖의 어떤 것으로 부르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분열을 막고자 한다면 이러한 종류의 이행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설사 우리가 그 방법을 안다고 하더라도 민간부문만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수천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아야 할 것이며 또한 세제상의
대책이나 그밖의 방법을 통해 민간부문의 훈련을 대폭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교육제도를 철저하게 재고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상당한 분열과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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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착오적인 직업
* 지금까지 여러 분야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제 그 요점들을 정책권고의
형태로 요약해 줄 수 있겠는가?
^26,26^ 1. '직업'이란 개념은 산업혁명의 산물인 시대착오적 개념이다. 산업화
시대가 종결됨에 따라 이 개념은 궁극적으로 사라져 없어지거나 생산적이면서도
보수를 받지 않는 여러가지 활동들을 포함하도록 현실적으로 재정의 되어야 할
것이다. '직업', '고용', '실업'과 같은 용어들의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
2. 지금부터 위협받고 있는 모든 '제2 물결' 산업들의 전환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기초' 산업들은 앞으로 다시는 기초적인 산업이 되지
못할 것이다.
3. 새로운 기초산업으로서 원격통신, 생물공학(biotechnology), 해양공학,
소프트웨어, 정보, 전자산업 등을 육성해야 한다.
4. 또 다른 새로운 기초산업으로서 미래의 고용에 핵심이 될 서비스 산업들을
발명, 확대해야 한다. 노령자, 보건, 고독, 육아, 등 인간문제들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이 부문은 정부 관료체제의 아성으로부터 소규모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단위들을 토대로 하고 중소기업, 비영리단체, 협동조합, 공공기관들로
구성되는 탈중앙집권화된 기업부문으로 변환될 수 있을 것이다.)
5. 훈련을 다시 해야 한다. 사실 훈련 자체가 비디오 시설, 컴퓨터, 오락기계, 영화
등 여러 제품의 거대한 고객인 동시에 대형 고용주로서 일자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6. 대중교육제도를 해체해야 한다. 오늘날의 학교들은 앞으로 없어지게 될 직종에
취업할 공장형 근로자들을 여전히 배출하고 있다. 다양화하고 개별화하고
탈중앙집권화해야 한다. 소규모의 지방 학교들을 늘리고 가정교육을 확대하고
학부모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 창의성을 강조하고 기계적 암기를 줄여야 한다.(가장
빨리 소멸되고 있는 직종은 기계적 암기 직종이다.)
7. 이상과 같은 모든 조치를 취해도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시장 '외부'에서 필요하고 가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들도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약간의
지도와 지원을 받아 스스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여러가지 새로운 제품, 원자재, 도구
그리고 심지어 새로운 작물들까지도 고안해 내야 함을 의미한다. '생산소비자' 또는
자조부문은 교환부문의 짐을 덜어 주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게 될 것이다.
8. 끝으로 최저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생산소비자들도 약간의 현금수입이 있어야
한다.) 이같은 이전 지출은 재래식 경로를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이전 지출은
역소득세처럼 취급하거나 아니면 탈중앙집권화, 민영화하여 가정, 교회, 학교, 기업,
지방정부 등의 수천가지 경로를 통하여 지급토록 함으로써 '대형'(역주: 큰 대, 맏
형. Big Brother,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 년' 에 등장하는 익명의
독재자)이 장악하고 있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와 권력의 축적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가지 재래적 정책들을 하나의 일관성 있는 종합정책으로
통합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실업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종전의 협소한
생산개념을 깨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이^56,36^비록 그들 자신은 정식직업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36,23^생산을 가능토록 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제3
물결' 경제가 우리에게 열어 주는 참신한 선택 가능성들에 어울리는 전적으로
새롭고 인간적인 보상체계를 위한 도덕적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 제1부 예견
@[ 3. 일본(및 기타 국가)의 신화
어렸을 때 나는 일본제 장난감들을 가지고 있었다. 조그만 종이우산, 장난감
트럭과 승용차, 하모니카 등^5,5,5^ 그 당시 장난감은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었고 가장
그럴듯하게 모방한 대량생산 제품의 본보기로서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오늘날에는 서방측의 의견이 크게 뒤바뀌어 일본 제품은 그 우수한 품질로 널리
칭찬 받고 있다. 언론은 갑자기 일본을 거의 마술적 기능을 소유한 행정관들을
가지고 있는 초강국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어떤 영향력 있는 책은 그 제목에서
일본을 '넘버 원' 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아내 하이디(Heidi Toffler)와 함께 여러 차례 일본을 여행했었다. 우리는
일본의 수상, 교수, 최고경영자, 노조간부, 계획자, 경제전문가, 건축가, 작가 등을
만나 보았다. 우리는 일본을 자주 방문할수록 우리가 이 오래된 복잡한 문화에 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더욱 더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즉 그것은 지난 날 일본에 대한 서방의 인종주의적이고 선심쓰는 체하는
태도가 우리의 눈을 가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는 이 복잡한 나라에 대한
소박한 오해에 기초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적 일본의 신화의 희생자들이다.
앨빈 토플러
* 우리는 이제부터 일본의 새로운 역할에 관해, 그리고 또한 산업사회의 쇠퇴에
적응하려는 다른 나라들의 노력에 관해 중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그러나 먼저
귀하의 경험담부터 듣기로 하자. 일본을 처음 방문한 것은 언제였는가?
^26,26^ '미래 쇼크'가 출간되기 직전인 1970 년 4월에 나는 국제 미래학 회의
(International Future Research Congress)에 참석하기 위해 교토에 갔었다. 그
이후로, 특히 최근에 와서 하이디와 나는 꽤 자주 일본을 방문했다. 강연 여행을
하거나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경우도 있었고 나의 저서와 관련한 방문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 방송회사인 NHK(Nippon Hoso Kyokai)와의 TV 공동제작 문제로
다녀왔다.
* 귀하는 전에 이 TV 프로그램이 캐나다, 미국 및 일본 방송진이 참여한
복수문화적 노작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판 프로그램이 서방판과 같은
것이었는가?
^26,26^ 아니다. 공동으로 촬영한 것이 많기는 했지만 일본의 TV스타일은 우리와
달랐다. 따라서 편집과 표현 방법도 달랐다. 일본에서의 반응은 굉장했다. 일본측이
어느 금요일 저녁 골든 아워에 이 프로그램을 처음 방영했을 때 예상 시청자 수는
700 만 명이었으나 실제 시청자 수는 1,200 만 명에 달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일본 최고 TV상 중의 하나를 받게 되었다.
* 귀하는 전에도 일본 TV에 출연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26,26^ 있었다. 1980 년 겨울에 이 나라의 최고 지도층을 상대로 몇 차례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강연이 골든 아워에 70분 동안 중단없이 전국에 걸쳐
방영되었다. 사실상 전 일본 국민을 상대로 연설을 한 셈이었다.
* 그 강연의 요지는 무엇이었는가?
^26,26^ 일본의 1960 년대와 1970 년대의 놀라운 경제적 성장은 일본이 산업화
게임의 기법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고 해서, 그리고 단지 일본이 값싸고 품질 좋은 승용차나 철강, TV 등을
만들 줄 안다고 해서 미래의 개편된 경제체제에서도 반듯이 잘해 나가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 최근 서방에서 우리가 자주 듣는 말 중에 한 가지는 일본이 우리보다 생산성이
높다고 하는 것이다. 그 말에 대한 귀하의 반응은 무엇인가?
^26,26^ 그것은 오해이다. 사실 하이디와 나는 그 문제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생산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학 개념
중에서 가장 허점이 많고 부정확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물질생산의 세계를
위해 고안된 개념으로서 일정량의 스커트나 동봉을 생산하는 데 몇 명의 노동자가
몇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가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이른바 '제3 물결' 경제로 나아가게 되면 정보, 서비스, 경험
등으로 구성되는 생산물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소비자 자신의 행동이 더욱 더
생산자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우리는 경제적 '생산성' 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회계학과 허용 가능한 외부와의 인위성 이상의 개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 '생산성' 이라는 바로 그 용어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종전의 시대에 맞지 않는 개념정의를 그대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일본의 생산성이 높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는 서방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엉터리 잡동사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처음에
우리는 일본을 '나비부인(Madame Butterfly)'과 '미카도(천황)'라고 크게 써 붙인
이국적인 조그만 나라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일본을 까닭 없이
우리를 침략했던 피에 굶주린 제국주의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전쟁 후에는 우리는
보호 자적인 태도로 일본을 미국의 손아래 동반자 정도로^36,36^서방으로부터 열심히
배우고자 노력하는 낙후되고 키작은 황인종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를 기술 혁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기술 기밀을 훔쳐 가야만 하는
다루기 힘든 경쟁국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종전에 인종주의자들이 쓰던
'비열한 동양인(sneaky Oriental)'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연상케 한다. 이상의 모든
이미지들이 만화처럼 터무니없는 것인데도 서방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지성적인 기업인과 정부 지도층 인사들조차도 이러한 이미지를 그대로
믿고 있다.
존경받는 학자들은 지금^56,36^마치 야구팀처럼 국가나 문화들도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듯이^36,23^일본이 '넘버 원'이냐의 여부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어쨌든 일본은 생산성이 높지 않은가?
^26,26^ 특정한 산업^36,36^소수의 큰 수출 기업들은 분명히 높다. 다른 나라들의
경쟁 상대는 바로 이 기업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 기업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도요타사와 파나소닉(Panasonic)사 제품들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그 값싼 제품들이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데 놀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한쪽으로 치우친 예일 뿐이다. 그밖의 여러가지 다른
산업들을 살펴보면 종전의 척도로 비교하더라도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 공동
시장(Common Market) 국가들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그 분배 체제가 비생산적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고 있다. 긴자에 있는
미쓰코시나 한큐 등 백화점의 카운터에 서 있는 종업원의 수를 세어 보기만 해도
도대체 저 사람들이 다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것이다.
또한 일본은 조그맣고 노동집약적인 구멍가게의 나라이다. 농업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재래식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일본이 경제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나라라는
생각은 확실히 반론의 여지가 많다. 흥미를 끄는 것은 그 반대의 생각이다. 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회적 생산성이 높은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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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가게 문화
* 사회적 생산이란 무슨 의미인가?
^26,26^ 내가 방금 언급한 두 가지 부문, 즉 소매업과 농업을 예로 들어보자.
재래식 경제학자는 조그맣고 노동집약적인 농가들을 정부가 간접적으로 지원해 주는
일이 비능률적이라고 말하겠지만 이 부문의 보존이 상당한 사회적 안정을 유지시켜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부문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반은 산업경제에 속하고 반은
산업경제를 벗어나 있는 생활방식을 제공해 준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장과
논밭에서 반반씩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찬가지로 수십만의 조그만 구멍가게들은 경제적 구조를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일정한 종류의 가정생활과 문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가족적인
유대가 특히 강한 가게 주인 계층이 형성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자민당(미국이나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보수정당)은 이 부문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그대신 그들을 직, 간접의 보조금으로 보호해 주고 있다.
표면을 들추어 보면 이 생산성이라는 허구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출부문의 생산성은 높지만 다른 부문은 낮다. 수출용
자동차나 철강의 생산성은 높지만 국내의 공공사업부문과 그밖의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낮다. 미국과는 달리 알루미늄, 의약품, 화학제품, 식품 등 산업의 생산성은
낮다. 사양길에 접어든 대규모 대량생산업체의 생산성은 높지만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하이트칼러 부문의 생산성은 낮다. 실제로 일본의 사무실은 저생산성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에서처럼 뒤죽박죽으로
어수선한 서류더미 속에서 수많은 남자직원들이 일하는가 하면 한 떼의 젊은
아가씨들이 문을 열어 주고 심부름을 하느라 뛰어다니고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한다.(주: 일본의 화이트칼라 부문이 낙후한 원인의 하나는 일본어 그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어 등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들은 문자 수가 적기 때문에
타이프라이터 키보드와 파일 시스팀을 조작하기가 쉽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서방은
마치 산업혁명 이후에 공장노동을 표준화한 것처럼 사무를 표준화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일본의 여러 표음문자와 함께 표의문자인 수천 개의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무업무의 대부분을 아직도 손으로 하고 있다. 요컨대 일본의
사무실은 지금도 '제1 물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발명된 일본어
워드프로세서는 커다란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몇몇
'개발도상국'들처럼 일본의 사무실 업무도 '단계를 뛰어넘어' 직접 '제1 물결'에서
'제3 물결'로 이행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칼라의 생산성 연구를 전공하는 동경공과대학의 구로사와 가즈기요 교수에
의하면 미국 사무실들의 생산성은 일본의 경우보다 30--50%가 높다. 일본에 관한
책을 써서 여러가지 학문적 의문을 해결해 준 워러노프(Jon Woronoff)는 그의 저서
'일본의 노동력 낭비(Japan's Wasted Workers)'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일본도 역시 경제구조 개편과정에서 서방과 똑같은 왜곡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컴퓨터, 반도체 칩, 생물공학 등
'제3 물결' 부문들에 자원을 쏟아 넣고 있으나 동시에 '제2 물결' 부문에서 곤경을
겪고 있다. 일본 철강업계는 서방과 경쟁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가동률은 66%밖에
안된다. 섬유산업도 곤경에 처해 있다. 대부분의 전통적 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 귀하는 종신고용제도도 사회적 효율성의 예라고 생각하는가?
^26,26^ 서방 사람들은 일본 근로자들이 절대로 해고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근로자가 한 번 고용되면 회사에 영원히 남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제도를 봉건적 잔재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이 생각은 두 가지가 모두 틀린
것이다.
우선 종신고용제의 근원을 직접 봉건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아 낼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 제도는 업종에 따라 1930 년대와 1950 년대의 여러 시기에
도입되었다.
또한 이 제도는 모든 산업 또는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고 있지도 않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고용을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대기업에서조차도 이 제도가 모든
직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여성 근로자들은 임시직으로 분류되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젊은 남성근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제도는 비공식적인 것이어서 고용계약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로자의 몇 퍼센트가 여기에 포함되는지를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다.) 경영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사(McKinsey Co.)는 최근에 실제로 보호받고 있는 일본 근로자는
35%에 불과하다고 추정한 바 있다.
또한 '종신' 보장의 기간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나는 비싼 집세와 일본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주택면적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관한 일본인들의 농담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주거면적을 피트나 미터법으로 표시하지 않고 보통
다다미의 장수로 나타내곤 한다. 방의 크기는 다다미 장수에 따라 6조 방일 수도
있고 10조 방일 수도 있다. 최근 방의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다다미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농담이 나오게 되었다. 마찬가지 현상이 '종신'의 길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종업원들^56,36^최고 경영자들을 포함하여^36,23^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기 퇴직하는 경우가 날로 더 불어나고 있으며 때로는 종전에 받던
기본급의 일부만 받는 조건으로 재 고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도성장기에 잘 운영되었던 이 제도가 지금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급격한 경기위축기에 일본 회사들이 과연 얼마나 오래 종신고용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가 계속되는 한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부침으로부터
보호받게 될 것이다. 이 제도는 종신고용을 보장받은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안전장치가 되며 일본의 기술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 어째서 그런가?
^26,26^ 근로자들은 자기들이 보호를 받고 있는 한 최신기술을 겁내거나 배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36,36^일본 근로자들은 컴퓨터나 로봇 등 기술혁신을 환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일종의 사회적 생산성으로서 결국은 경제적
생산성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에서 생각하고 있듯이 일본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미래에
더 빨리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넘버 원' 국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1차원적이다. 전체 산업문명이 변혁되는 과정에서
나라마다 각기 장^5,23^단점을 지니게 된다.
--------------
@[ 향수: 영국병
* 이 점에 관해 귀하는 미국, 일본 및 유럽을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26,26^ 일본은 내가 방금 이야기한 것 말고도 여러가지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36,36^일본은 컴퓨터 기술을 포용하고 있으며 첨단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미래지향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같은
섬나라 백성인 영국인들은 영원히 과거 속에 파묻혀서 잃어버린 제국을 애도하고
맹목적인 애국심을 과장하고 엘리자베스(Elizabeth) 시대나 빅토리아 (Victoria)
시대에 관한 대형 TV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서점과 잡지들에는 과거에의 향수가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미래상에 관해 생각하고 말하고 토론하고 상상하고
다투고 서로 자극하기를 가장 즐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과거를 상실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과거는 영국보다도 일본에서 훨씬 더 강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일반국민은 미래와 변화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열쇠는 일본인들이 지니고 있는, 편집광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집단적인 불안감에 있다고 생각된다.
영국인들은 그 반대의 성향을 보여 눈앞에 다가온 재난에도 멍청한 자기만족에
빠져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심한 걱정군들이다. 나는 현재 영국 지도층이
영국의 힘과 영향력에 관해 과장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이 나라가 지난 날에 거둔
식민주의적 성공에서 크게 영향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모험이 엄청난 고통과 파괴만을 가져다 주었음을 뼈저리게
의식하고 있다. 나는 이같은 뼈저린 의식이 일본의 생존을 가능케 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영국은 어떠한 변화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문화적 태도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기술적 기반은 노쇠하고 정치권력은 사실상 '제2 물결' 산업에 얽매여 있는 2 대
정당에 의해 분할되어 있다. 비례대표제, 정당 내부조절 기능, 선거제도 등의
결함으로 인해 대권이 한쪽은 거대한 노동조합에, 그리고 다른 한쪽은 거대한
사용자 단체에 의존하는 양대 정당으로 집중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은 노선이 매우 선명했던 1930 년대로의 복귀를 동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당내 일부 파벌은 그 비전이 1917 년으로 소급되는 교조주의적
트로프키(Leon Trotsky)파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보수당 역시 기회만 있으면 1830
년의 전성시기로 복귀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틈바구니에 자유당과 군소정당인 사회민주당이 있다. 오언(David Owen)과
윌리엄스(Shirley Williams)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만든 이들 정당은 본질적으로 보다
개방적^5,23^건설적이고 비(아닐 비)교조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정당 정책은 현재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에 관한 확고한 이해를 갖지 못한 채 오히려 구태의연한
중용의 추구를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로 영국에서는 혁신에 대한 저항이 격렬해지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작전
연구가들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오늘날의 정보, 통신분야의 발전을 이룩할 기반을
닦아 놓았다. 그러나 영국의 업계는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제3 물결' 산업을 일으켜
이러한 기술혁신들을 이용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 영국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전화선 및 무선방식에 의해 사용자 TV 스크린으로 자료를 전송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심지어 지금은 밀턴 케인스(Milton Keynes)에 광섬유 기술에 토대를 둔
실험적 유료 TV 시스팀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한동안 망설인 끝에 마침내 유선 TV 허용을 발표하자 구세력들은
즉각 사나운 반응을 보였다. BBC(British Broadcasting Corp.)는 유선 TV가 국민(즉
BBC 시청자)을 분열시킬 것이라고 비난했으며 노동조합은 유선 TV가 고용을
감축시킬 것이라는 그럴듯한 구실로 (실제로는 그 역의 가능성이 컸다) 공격에
나섰다.
석탄, 철강, 자동차, 방송 등의 어느 분야에서이건 중앙집권적 구(오래
구)엘리트들의 지배를 약화시킬 것으로 생각되는 어떠한 움직임도 즉각 조소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산업화시대를 탄생시켰던 영국이기에 이제
산업화시대를 앞서 가려는 어떠한 노력에도 분개하는 것 같은 양상이었다. 영국은
양당 정치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장래가 암담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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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지리멸렬
*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어떠한가?
^26,26^ 프랑스는 이따금씩 발작적으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일본처럼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되어 있다.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정부는
정부의 탈중앙집권화와 파리의 탈중앙집권화를 거론했었다. 그러나 경제적 권한에
관한 한 더 한층의 중앙집권화를 밀고 나갔다.
다른 한편 프랑스인들은 영국인과는 전연 달리 자신들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이른바 '정보과학(informatique)'^56,36^원격통신 및 컴퓨터^36,23^에 커다란 관심을
보여 왔다. 이 분야에서도 최근의 프랑스 정부는 거창한 탈중앙집권화 계획을
발표했다가 실제로는 중도에 포기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컴퓨터와 자료처리의 민주화를 거론했다가 이 새로운 기술을 사회적
관점에서 육성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전화시스팀의 혁신 노력의 일환으로 3,000 만대의 컴퓨터 단말기를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화번호부를 모두 전자화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 걸음
물러서서 전화번호부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마치 전원에서 플러그를
뽑아 버리는 격이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는 전자업체들을 하나의 국가지원 회사로 통합한다는 거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컴퓨터 본체와 소형 컴퓨터들의
제작, 음성인식기술의 개발 등에 역점을 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모든 것을 이
거대한 통합체로 묶으려고 시도하면서 단지 일본을 모방하려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계획은 완전히 잘못된 것을 모방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지나친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있거니와 나는
이 대형계획이 성공할 가망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프랑스는 특히 제3세계에 대한 프랑스제 컴퓨터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가지 널리 알려진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제3세계 지역에서는 미국이 아직 선두
주자의 지위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주로 동아시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는 제3세계 문제에 대한 컴퓨터 적용을 연구하기 위해 매우 주목할
만한 연구소를 설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것이다.
미국 같으면 이 경우 대학과 산업체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해 주었겠지만 프랑스는
이를 위해 단일 연구소를 설치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프랑스는 또한 제3세계에 대한 컴퓨터 보급에 관심을 가진
35개국으로 구성된 기구인 정부간 정보과학 사무국(IBI: Intergovermental Bureau of
Informatics)의 주요 후원국이기도 하다. 그 동기가 상업적인 것이건 이상주의적인
것이건 또는 그 모두이건 간에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는 또한 그밖의 몇몇 새로운 과학분야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에는 강력한 생태보호운동이 있다. 교양높은 대중도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프랑스의 참다운 약점은 엘리트 테크노크러시(technocracy), 국유화에 대한 역점,
TV에 대한 계속적인 과잉통제, 그리고 전화사업 독점에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단순히 옛 산업을 토대로 하여 경제를 개편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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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독의 기술공포증
* 귀하는 지금까지 영국과 프랑스에 관해 언급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어떠한가?
^26,26^ 각국의 복잡한 상황을 몇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독 역시 우리가 논의한 바 있는 경제적, 사회적 구조개편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스스로를 표준화되고 중앙집권화 되고
동시화(synchronization)되는 등 매우 뛰어난 산업사회로 재건했다. 서독은 대량소비,
대량생산 사회의 완벽한 모범국가가 되었다.
서독은 전형적인 '제2 물결' 산업으로서 현재 가장 큰 곤경에 처해 있는 대량생산
부문에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얼마 전 서독 정부의 연구기술성(Ministry of
Research and Technology)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서독에서 가장 취약한 산업이
기초 금속, 화학, 기계공학, 고무 등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산업들은 바로
서독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분야들이다.
서독은 오늘날 30 년만에 가장 높은 실업을 기록하고 있으며 AEG사
(AEG-Telefunken AG)의 붕괴는 종전 이후의 가장 심각한 파산 위기였다.
그러나 서독은 경쟁력 있는 '제3 물결' 부문을 창조하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서독은 생물공학 분야가 취약하다. 서독은 새로운 통신 분야에서 예컨대
소비자정보를 가정용 TV 화면에 보내 주는 비디오텍스(videotex) 등 몇 가지
실험을 해 왔다. 그러나 통신 분야의 탈중앙집권화는 매우 느리게 진전되고 있으며
또한 교육제도도 경직되고 지나치게 전문화되어 기술 혁신, 창의력 또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있다.
실제로 서독 정부는 젊은이들 사이에 대중적 기술공포증을 심어 주었다. 서독
정부는 대규모의 중앙집권화된 기술을 추진하고 국내용, 수출용 핵발전에 지나치게
개입함으로써 미래의 기술은 반드시 크고 중앙집권화 되고 비인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인상을 조장해 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독 정부는 세련미의 부족을
드러냈다. 슈미트(Helmut Schmidt) 수상은 미국이 민간항공기 및 컴퓨터 분야에서
너무나 크게 앞서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서독의 핵수출 노력을 정당화한 적이 있었다.
마치 다른 분야에는 수출 가능성이 없다는 말투였다. 이같은 핵수출 추진 때문에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 같은 나라들의 핵개발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서독은 지금 양극화되어 있다. 한편에는 '제2 물결' 세대가 있어 낡은
산업들을 다시 일으키거나 수정하면서 근본적으로는 옛 기술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청년층은 더욱 더
좌절당하고 소외된 가운데 과거 '제1 물결' 당시의 독일의 낭만적 영광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들은 '제3 물결'이 열어주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이같은 분열은 전쟁 전의 독일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독일의 정치 상황이 불안해지면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위험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다른 나라들^36,36^예컨대 스칸디나비아 제국들의 경우에는 이같은
경향이 서독처럼 뚜렷하지 않다.
* 스웨덴은 정치, 경제이론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시험 케이스가 되어
왔다. 이 나라의 형편은 어떠한가?
^26,26^ 스웨덴은 시장이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56,36^어쨌거나 스웨덴의 인구는
800 만밖에 안된다^36,23^컴퓨터와 같은 고도기술 분야에서 대국들과 경쟁할 처지가
못되었다. 이 분야는 아직도 IBM사가 지배하고 있다. 스웨덴의 컴퓨터산업도 역시
고도로 중앙집권화되어 있어 지방 정부와 금융기관 등이 중앙 데이터 뱅크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국민이 사생활 침해문제에 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스톡홀름에 갔을 때 나는 사생활 보호문제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데이터감시국(Data Inspection Board)의 프리즈(Jan Freese) 국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기관은 개인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는데 심한 중앙집권체제로
인해 필요해진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 국방성은 최근 발표한 한 보고서에서
스웨덴이 군사적^5,23^사회적으로 취약한 것은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된
데이터시스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제3 물결' 컴퓨터 체제^56,36^탈중앙집권화와 퍼스널 컴퓨터^36,23^를 향한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부터는 이 추세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확신한다.
스웨덴은 또한 사무자동화가 급속도로 보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사용자
단체와 최대의 노조 연맹인 LO간에는 새로운 화이트칼라 기술의 도입을 관리하는
협정이 체결되어 발효 중에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스웨덴은 이미 1,000 대의
로봇을 배치해 놓고 있으며 1990 년까지는 그 수가 6,000--9,000 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또한 몇몇 영민한 기업 경영진이 있다. 예컨대 볼보사(AB Volvo)는
자동차사업 부문의 난관을 인식하고 공장작업의 인간화를 실시하는 한편 10 년 전에
이미 자동차사업에 대한 전적인 의존을 탈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사업이
볼보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 년의 75%에서 지금은 불과 25%로 떨어져 있다.
더구나 볼보사는 현명하게도 자동차 판매시장을 좁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웨덴의 또 다른 대기업체인 ASEA사(ASEA AB)는 이미
로봇을^56,36^놀랍게도^36,23^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이처럼 스웨덴에서는 '제3 물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 소련은 어떠한가?
^26,26^ 소련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하기로 하자. 지금은 다만 소련의 상황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용어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소련의 체제는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너무나 중앙집권적이고 억압적이고 반혁신적이어서 실제로 기술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가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적 상황의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은 기술을 매입하거나 훔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문제는 그처럼 손쉽게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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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강점
* 그러면 다시 일본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귀하는 미국을 어떻게
보는가?
^26,26^ 미국은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큰 장점을 지닌 나라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일본과 달리 자체의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또 일본이나 유럽과는 달리
석유자원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모든 고도기술국가들 중에서 가장 탈중앙집권화된
정부와 교육수준이 높은 국민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통신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탈대중화되었고 가장 앞서 있다. 미국은 매우 강력한 R&D 기반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종의 서민 민주주의에 관해 가장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또한 애플 컴퓨터사와 같은 갑작스러운 성공을 가능케 한 기업 정신의
전통을 지닌 나라이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 같으면 두 명의 20 대 엔지니어가 홈
컴퓨터를 만들고 회사를 세워 5 년만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끝으로 아마도 미국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은 사회적^5,23^정치적^5,23^리적
다양성과 남녀 차별, 인종적 편견 등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그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들보다 이러한 문제들을 더욱
폭넓게 논의한 나라이다. 이 모든 것은 전통적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고자 할 때
유리한 장점이 된다.
그렇지만 어느 한 나라가 '앞섰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이것은 단선적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토의의 시발점인 일본에 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나라는^56,36^사회적^5,23^교육적^5,23^문화적 문제에는 직면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36,23^경제 문제만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욱 의식적으로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 그렇다면 국외자로서 일본인들이 왜 그처럼 취약성을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26,26^ 그 질문에 대해서는 일련의 통계 숫자를 가지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은 에너지의 90--95%와 식량의 약 절반을 수입해야 한다. 일본은 원자재
공급의 기복에 극히 민감하다. 일본은 무역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36,36^이
점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의견이 다르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인종적^5,23^문화적
동질성과 관계된 것이다.
나는 이같은 획일성이 일본이 산업화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경제체제로 이행하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일본인들에게서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동질성이라는 것이 지난 세기에 산업주의적 대중사회를 만드는
투쟁 과정에서는 장점이 되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가
된다. 모든 고도 기술 국가들은 급속도로 분화되고 있으며 다양성은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것으로 밝혀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직면하게 될 도전은 급속하게 높아지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기술적
다양성^56,36^획일성이 아니라^36,23^의 수준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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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합의 이면
*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계급갈등이 없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노사가 의견
차이를 조화롭게 해결하는 사회, 근로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스스로
열성적으로 생산에 뛰어드는 화합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귀하의 관찰과
어떻게 부합되는가? 그리고 앞으로 대두할 사회가 탈대중화 사회일 것이라는 귀하의
견해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26,26^ 그러한 이미지는 피상적인 것이다. 이견의 조화, 즉 '와카이'라든가
컨센서스(consensus)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정말로
의견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몇 년 전 동경 외곽의
나리타 공항을 파괴한 농민^5,23^학생^5,23^환경보호론자들의 격렬한 항의 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1960 년대의 학생운동이라든가 좌익 그룹간에 계속되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 사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이 국외자가 생각하듯이 그처럼 '일치'가 잘되는
나라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나이든 세대 중에는 이 점을 통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마쓰시타 전기 회사를 창설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같은 사람은
오늘날의 일본을 '사람들은 크게 분열되어 모두가 자기의 목적만을 추구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나이든 세대에 비해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며
회사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행복하다는 신화에 관해 얘기하더라도, 예컨대 도요타사의 노사관계는
결코 원만한 것이 못된다. 일본의 노조는 서방 노조처럼 공격적이거나 독자적이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일본 노조가 고분고분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허구이다. 예컨대 나와
함께 TV프로그램을 만든 일본인 직원들은 줄곧 노조 규정의 준수를 고집했으며
실제로 우리 서방측의 틀에 박힌 노조원들보다 꼼꼼하게 규정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계급간 갈등이 조용해 보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많은 갈등이 있다. 일본에는 공격적인 환경 보호 운동이 있고 소비자 운동도 있다.
여러 산업, 금융권간에도 조용한 갈등이 많다. 일본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갈등이 없는 나라는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본은 판에 박힌 사람들의 사회가
아닌 현실의 사람들로 구성된 실제의 사회이며 1억 1,800 만 명간의 온갖 의견
차이로 시끄러운 곳이다. 일본은 나름대로 심각한 내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국이 일본의 경영 방식을 배워야 한다거나 일본에 존재한다고
하는 정^5,23^경 협력 체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천진난만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 세계가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이 전연 없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사실 배울 것은 많다. 다만 오늘날 세계에 알려진 대로의 단순화된 허구적
모습에서가 아니라 실제의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일본이 이미 버리려고 하는
여러가지 관행들을 서둘러 채택하려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실상이다.
일본인들은 일본이 거둔 성공의 한계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 미래에는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인류가 어떤 새로운 종류의 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제 사정이 바뀌어 우리가 그들에게 연구팀을
파견하게 되었다는 데 대해 우쭐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호기심조차도 서방의 인종주의를 밑바탕으로 하는 뿌리깊은 문화적 몰이해에 의해
그 한계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 서방이 필요 때문에 갑자기 일본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수출 지향적 경제라는 좁은 분야의 경영 시스팀을 연구하고 있을 뿐
전체적인 일본, 일본의 문제점, 그 편견과 정치 등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나는 내 경험을 통해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 앞서 내가 일본에서 강연을 했다고
말했지만 최근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Asian Wall Street Journal)'지에 이
강연에 대한 논평 기사가 나왔다. 이 토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어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업계^5,23^정계^5,23^학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그의
강연회에 참석했으며 그 강연 내용은 일본의 전국적 TV망을 통해 방영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의 이런 구절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본인이
강연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인의 강연이 미국 TV로
방연된 적은 좀처럼 없었다.' 문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들은 수많은 외국
도서를 번역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최근의 법석 중에서도 일본 도서들을 번역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인들이 알고 있는 일본의 작가의 이름은 얼마나 될까?
아마 미시마 유키오 정도일 것이다. 그것도 그의 책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극적으로
할복자살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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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무장 움직임
* 미시마 유키오는 극우 파시스트였지 않은가? 그의 자살은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시키려는 시도였지 않은가? 그것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군비 증액 압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26,26^ 그 점에서는 미시마가 그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그가 무리를 형성하여 군부대로 행진해 갔다는 점이다.
그 정도의 재능을 갖춘 작가가 그렇게까지 정신이 이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서글퍼진다. 그러나 10여년 전에 있었던 미시마 사건을 통해 미국 정부는 일본
내에 아직도 재군비를 추진하는 소규모의, 그러나 표독하고 위험스런 정치 집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전투기를 늘리고 태평양 항로 보호를 위해 해군 규모를
확장하도록 압력을 넣을 때마다 본의 아니게 이 극우 세력^56,36^말할 것도 없이
국수주의적이고 반미적인 세력^36,23^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정책은 또한
스스로를 '좌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간에도 반미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일본 문화를 전연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중도 우파까지도 소외시키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 결과 무역과 경제적인 압력이 악화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분노의 감정이 대두하고 있다.
* 그렇다면 귀하는 재무장 움직임에 반대하는가?
^26,26^ 나는 일본에 가서도 미국에서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했었다. 내가
일본인이었다면 미국 압력에 굴복하여 군사 예산을 늘려온 집권 자민당의 현행
정책에 반대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재빨리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가능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중^5,23^소 화해의 징조가 보인다면 나는 공군과
해군의 증강을 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일본의 재무장, 특히 핵무장을 방지하도록 되어 있는 일본 헌법 9조에 크게
감복하고 있다. 그것은 주목할 만한 독특한 정치 문서이다. 나는 이 문서가
폐기되거나 수정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정치(realpolitik)' 세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평화조항'이란 것은 미국의 경제적 지배와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미군의 주둔이 약화되고
미^5,23^일간의 경제적 경쟁관계가 치열해지는 경우 9조를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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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상의 잔영
* 귀하는 미국과 일본이 언젠가 태평양에서 실제로 군사적 충돌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시사하고 있는 것 같은데?
^26,26^ 불행하게도 그런 섬뜩한 생각을 완전히 쫓아 버릴 수는 없다. 전연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번 태평양 전쟁의 원인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니 상기해 두어야 할 여러가지 망각된 사실들이 있었다.
예컨대 1908 년에 리(Homer Lea)라고 하는 미국인 작가가^56,36^초기
파시스트지만 명석하고 달변이었다^36,23^ 30 년 후의 태평양 전쟁을 예언하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태평양이 결국 대서양을 대신하여 세계 통상 및 문화
교류의 주무대가 될 것이고 미국과 일본은 경제적 적대관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문화적 몰이해와 상충되는 도덕적^5,23^종교적
체계 때문에, 그리고 미국의 동양계 소수민족 학대^56,36^미국의 '황화론'적
인종주의^36,23^때문에 이러한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 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인용해 보면, 그는 오늘날 태평양 연안지역이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지역이며 미국과 일본 양국의 자본이 태평양 전역에
걸쳐 투자대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또한 인구동향 연구결과는 지금부터 1995 년
사이에 미국내 소수민족 중에서 동양인이 가장 빠른 증가를 나타낼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리는 또한 미국이 '황화'의 위험지역으로 중국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작 두려워해야 할 상대는 일본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상되는 태평양
전쟁의 모습을 놀랄 만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하와이, 필리핀, 알래스카가
갖는 핵심적인 전략적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런 후 일본군의 미국 서부해안
상륙상황을 묘사하면서 일본군이 실제로 사용하게 될 항만과 도로, 그리고 그들이
차단할 급수망까지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 책은 미국을 도발하여 군비를 증강하도록 만들기 위해 의도된 엉뚱한
'저서'였으며 위태위태한 내용도 많다. 그러나 오늘날 그 10여년 후인 1920 년대에
제국주의 열병이 일본을 휩쓸어 중국 침공을 준비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일본은 동아시아 전체를 '관리'할
작정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에 석유를 공급하고 만주는 석탄을, 그리고 중국은
시장과 인력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1930 년대에는 진짜 무역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일본은 서방이 독점해 온 시장을
파고들면서 전세계에 걸쳐 서방보다 싼값으로 수출했다. 예컨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사(GE: General Electric Co.) 선풍기는 일본제 선풍기보다 3배나 비싼
값으로 판매되었다. 일본제의 면제품, 직물, 유리병, 가죽제품 등이 모두 서방
제품보다 싼값으로 판매되었다. 영국 랭커스터에서는 일본제 섬유제품을 랭커스터
제품보다 싼값으로 살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오늘날과 같은 덤핑, 보호주의
정책, 인종주의적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같은 무역전쟁, 그리고 인도네시아산 석유가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일본의
불안감^36,36^이 모든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일본은 지금도 에너지
공급 차단에 취약성을 느끼고 있으며 실제로 일본 경제 전체가 미국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대외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 역사가 반복하는 것이라고 암시하려는 것인가?
^26,26^ 아니다. 나는 역사적 유추를 믿지 않으며 오늘날의 세계는 크게 달라져
있다. 예컨대 동남아사아 나라들은 지금은 정치적 식민지가 아니다. 종전의
제국주의적 게임이 지금은 전처럼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원료품보다 정보에 의존하게 될 경제체제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리고 일본 자체도 그 당시와는 달라져 있다. 지금은 군부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
않으며 맥아더(Douglas MacArthur) 민주화 조치 이후의 세대가 등장해 있다. 모든
규칙이 바뀌었다. 그러나 역사적 유추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거를 모두
잊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는 섬뜩한 '잔영'이 감돌고 있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은 그것이 겨냥하게 될 소련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게 비극적인
것이 될 것이다.
소련은 이러한 압력을 강화하여 태평양으로 함대를 이동시킴으로써 암암리에
일본의 경제적 생명선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군의 증강은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자극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중국은 최근에 일본의 중국 침략을 왜곡한 일본 교과서에 대해 신랄한 항의를
제기했다.
지난 10 년 동안 일본의 재군비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완화된 것처럼 보인다.
첫째, 일본은 대폭적인 재무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둘째, 중국은 소련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태평양 지역의 반소련 군사력의 증강을 암암리에 환영했다. 셋째,
일본은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경제적 대국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지금은 뒤바뀌었다.
내가 만난 어떤 중국의 고위 당국자는 나에게 1930 년대에 있었던 일본의 중국
침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최근 수십년 동안 일본의 군부가 약화되기는 했지만
일본에는 지금 일본이 국제적인 군사력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정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일본은 현재 세계의 으뜸가는 경제권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합쳐져 중국의 반응을 바꾸어 놓았으며 또한
우리 모두가 한숨을 돌릴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또 다른 중국 관리는 문제의 핵심은 군비의 수준이며 또 그 군비가 방어적이냐
공격적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공격적 군비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즉석에서 서슴없이 대답했다. 만일 일본이 핵무기, 중장거리 미사일, 공격용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을 건조하거나 구입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자위'를 위한
군대가 아님을 의미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아는 여러 일본인 친구들은 미국 정부의 압력에 분개하고 또한
미^5,23^일간의 긴밀한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면서 미국이 일본의 목을 조일 뿐
아니라 일본 내의 모든 최악의 정치적 추세들을 조장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일본 자위대 출신으로서 경제 전문가이며 국제 문제 전문가인 매우
지성적인 내 친구에게 일본^5,23^미국 유대의 약화와 일본^5,23^중국 동맹 관계의
긴밀화 가능성에 관한 그의 견해를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러한 사태를 환영하지 않는다. 세계가 인종적 블록으로 쪼개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간의 긴밀한 관계는 인종적 관계를 초월하는
것이며 그런 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다.'
그의 이 말은 그 후로 줄곧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그러면 지금까지의 말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겠는가?
^26,26^ 우리는 단지 경제체제만을 개편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전세계에 걸쳐
지정학적인 관계도 개편해 가고 있다. 전후의 유럽 동맹 관계는 금이 가고 있다.
태평양 지역은 하나의 경제 세력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여러 고도 기술 국가들은
각국의 고전적 산업들이 사양화하고 새로운 산업들이 지평에 떠오르는 가운데 현재
등장하고 있는 세계 질서 속에서 각자의 위치를 찾고자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대규모 변동은 새로운 문명의 등장^36,36^그 완전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제체제, 새로운 사회적 형태, 그리고 필연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구조
등의 등장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것들은 마치 지각구조판의 균열과 융기^56,36^
구질서의 껍질을 뚫고 치솟아 올라오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36,23^와도
같다.
새로운 세계 구조가 구체화되려면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극도의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4.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
세계는 경제적, 정치적 위기만이 아니고 이데올로기 위기에도 사로잡혀 있다.
자본주의적 자유시장 개념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검토해
보더라도, 또는 자유주의, 복지국가주의, 제3세계 개발에 관한 여러가지 전통적
이론들을 살펴보더라도 이 모든 것은 사건들이 우리의 이론적 설명보다 앞서
진행됨에 따라 더욱 더 적용하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같은 이데올로기 붕괴는 미래의 포괄적이고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등장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56,36^정지 작업^36,23^일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저서가 종전의 여러 이데올로기적 참호들을 섭력하고
있다는 데 대한 만족을 느끼고 있다. 예컨대 '제3 물결'은 프랑스의 주요 사회주의
잡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공산국가들에서도 출판되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보존
도서클럽(Conservative Book Club)의 선정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가 정열적으로 지녀온 가정들을 현미경으로 살펴볼 때이다. 그러한
가정들이 이제는 대두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앨빈 토플러
* 귀하의 저서나 강연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귀하를 우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좌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귀하는 어느 쪽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26,26^ '우익'과 '좌익'이라는 용어는 현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다. '우익'과 '좌익'은 누가 무엇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36,36^산업주의체제의 부와 권력이 어떻게 분할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양자간의 투쟁은 침몰하는 여객선 위에서 갑판
의자를 놓고 싸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사회가 산업화시대로부터 매우 급속하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종전의
정치적인 분류표들은 이제 경제적 범주들에 못지 않게 시대에 뒤떨어지고 판단을
그르치는 개념이 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어떤 국회의원의 경우처럼 교조적인 자유시장론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권리, 낙태자유화, 소수민족의 시민권, 환경보호와 시민참여
등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반유태주의를
공언하는 좌익 운동가는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또 대기업과 금융기관을 매도하는
우익 집단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붉은 여단(Red Brigades)'은 우익인가 아니면 좌익인가? 아니면 단지 자기들의
편집광적인 연극행위를 정당화하기 의해 마르크스주의의 상투용어를 사용하는
허무주의자와 권위주의자들에 불과한 것인가? 그리고 인종주의자이면서도
테크너크랫적 엘리트와 금융기관들을 비난하고 생태보호를 지지하고, 무엇보다도
레이트릴(역주: laetrile, 복숭아씨에서 뽑은 암 억제제)을 지지하면서 의학계의
과학적 권위주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포괄적인 이데올로기를 전연 갖고 있지 않으면서 오직 한 가지 문제에
관해서만 정열을 불태우는 집단이 있다면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반핵운동가들은
모두 '좌익'인가? 나는 그들 중에는 사상이 철저한 자유 기업인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단지 반핵 입장이 필연적으로 제3세계와 사회주의를 편들게
된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모자라는 사람들이라고만 보아야 할 것인가?
나는 그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여러가지 다른 현상들을
모두 단 한 가지의 스펙트럼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 생활의 다면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좌익 ^456,34^ 우익'이라는 용어는 항상 1차원적이었다.
오늘날에는 이 용어가 지난날보다 더욱 사태를 왜곡하고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사태가 이처럼 혼란스럽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여러 문제들의 배열이
변화하고 문제들 상호간, 그리고 집단들 상호간의 관계가 더욱 많아지고 다양화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데 있다.
* 확실히 '좌익'이나 '우익'과 같은 분류를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런 점에서 '제2 물결'이나 '제3 물결'과 같은 분류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러 문제와 관계들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융통성을 부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을 분류해야 하지 않겠는가?
^26,26^ 물론이다. 그리고 또한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나 우선 순위에 맞추어
분류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스펙트럼을 가지고 분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가지 이유를 내가 가지고 있는 우선 순위의 척도에 의하면 핵심 문제는 산업사회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와 이에 도전하여
일어서고 있는 새로운 문명간의 갈등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이 역사적 충돌에 비하면 그밖의
모든 갈등들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몰락해 가는
산업사회 체제를 지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과 맞서
이미 다음 번 문명을 건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초투쟁(super-struggle) 이라 부른다.
* 일부 사람들은 귀하가 이른바 거대 투쟁(mega-struggle) 또는
초투쟁^56,36^귀하가 말하는 문명들의 충돌^36,23^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좌익과 우익,
부자와 가난한 자, 권세있는 자와 힘없는 자 등을 갈라놓는 다른 의미깊은
구분들로부터 주의를 돌리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귀하의 입장이 '좌익'과 양립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익세력에게는
현상유지와 보다 소망스럽고 전적으로 혁신된 미래간의 긴장이 핵심문제이기
때문이다.
^26,26^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에도 역시^56,36^'제3 물결'의
경우처럼^36,23^정통적 '우익'이 찬탄해 마지않을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대중적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중앙적 조직체가
아닌 가정의 재등장,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에 대한 반대를 강조한다.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는 이같은 가치관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왜 종전의
범주에 무엇인가를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한단 말인가?
어떠한 문명이든지 그 '내부'에는 갈등이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를 들 수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 때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간의 갈등일 수도 있고 또는
여러 엘리트들간의 갈등일 수도 있다. 때로는 또 다른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변화로부터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가 무엇이건 간에 수많은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기본법칙이 바뀌고 있다는 것, 보다 큰 갈등이
일어나 다른 모든 갈등들을 외소화 시키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다음 번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즉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관계에서의 위상을 설정하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의 문제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는 보다 예상적이어야
하며 각자의 위상은 초투쟁에 대한 관계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물론 귀하의
말대로 나는 추상적으로 동의할 좌익 인사는 많지만 미래의 사회가 어떠한 모양을
갖출 것이며 또는 갖춰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의견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예측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현재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단지 보다 진전된 '제2 물결'
산업사회를 아마도 모습을 약간 바꾼 형태로 생각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익' 인사들에게도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이야 어떠하든 미래를 현재의 단순한 직선적
연장으로 보고 있다. 나는 그들이 크게 놀랄 만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한 세대의 종말에 도달해 있으며 그 점에서 모든 내기는
끝났기 때문이다. 직선적 미래는 벽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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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충되는 세력
* 귀하는 산업주의가 '전반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몰락하는
산업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강력한 집단들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5,5,5^.
^26,26^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체제의 붕괴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만의 붕괴도 공산주의 체제만의 붕괴도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포용하고
있는 산업주의 체제의 붕괴이다.
* 그러나 귀하가 구체제의 옹호자에 관해, 즉 산업주의 체제를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관해 말할 때^36,36^그들은 정확하게 무엇을 보존하고자 하며 또 귀하는
누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6,26^ 산업주의라는 것은 하나의 문명^36,36^하나의 사회체제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5,23^정치적 체제가 아니라 문화이고 일련의 사회제도이고 인식론이며 하나의
종합적 생활 방식이다. 모든 계급, 모든 분야, 모든 직업마다 그러한 생활 방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투자는 경제적^5,23^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심리적^5,23^성적^5,23^문화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전통적인 폭력적 산업^56,36^철강, 섬유, 자동차 등^36,23^을
옹호하는 대기업들과 비인간적 작업방법을 포함하는 전통적인 대량생산 방법을
대하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산업과 생산방법을 옹호하는 노동조합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전통적 에너지 형태를 옹호하는 석유회사나 핵발전 업체도 목격하게 된다.
핵가족을 유일한 합법적인 가정생활 양식으로 떠받드는 종교단체들도 있다.
미국에서 대규모 상업통신망을 운영하는 회사나 다른 나라들에서 국영통신망을
운영하는 회사 등 대중매체의 세력을 보존하고자 싸우는 대형 통신 재벌들도 있다.
영국의 유선 TV에 대한 BBC방송국의 반대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낡은 대중교육
모델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교육자도 있다. 대체로 농업시대나 초기 산업화시대에
맞게 고안된 구태의연한 정치구조를 보존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나 정당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직업과 자아, 그리고 체제 내에서의 지위를 이
체제의 존속에 걸고 있는 일반인들을 합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말하는 '제2 물결
세력'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옹호하는 대체로 무의식적인 이 거대한 연합 세력은 결코 단일의
계급, 인종, 성, 종교를 이루고 있지 않다. 심지어 가난하고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
사회 체제나 문명 사회에서 가장 박해받고 힘없는 구성원들이 체제의 변화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보조해야 할 문화적^5,23^심리적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
* 물론이다. 어느 누구도 어떤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어떤 특정한 문제에
관해, 또는 귀하가 말하는 체제 전반에 걸친 '초투쟁'에 관해 어느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은 집단,
투쟁의 어느 한쪽으로 구성원들을 몰고 갈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밝히는 것은
유용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귀하의 주장처럼 산업주의가 현재 붕괴되고 있다면
앞으로 무엇이 이것을 대체하게 될 것인가? 귀하가 예상하는 변화에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할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없는가?
^26,26^ 몇 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은 개략적인 스케치밖에 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내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글을
쓴 바 있는 그 문명을 의미한다고 하는 점이다. 결국 '제3 물결'에서 쓴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문제를 올바르게 다룬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충 요약하자면 우리는 지금 낡은 산업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기본적
하부 체제들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에너지 면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화석 연료에 대한 전적인 의존으로부터 탈피해
가고 있다. 이러한 이행을 둘러싼 갈등은 수십년 동안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예컨대 2010 년이나 2020 년의 에너지 체제를 오늘날의 화석 연료 체계의 확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음은 생산문제이다. 산업사회의 생산을 특징짓는 것은 대량생산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대량생산은 이제 가장 앞선 생산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재화와 서비스 모두에 걸쳐 정보에 기초한 그리고 고도로 주문화 한 생산 및
분배로 이행해 가고 있다. 그것은 경제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적 구조에
걸쳐, 심지어 퍼스낼리티 개발에 있어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구조는 어떠한가? 핵가족은 이제 더 이상 지배적인 가족 형태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자녀를 키우는 다섯 가정 중 한 가정 꼴로 편친(치우칠 편, 친할
친)이 가정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구조와 장치를 가진 복잡한 형태의
가족 제도를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상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기업은
어떠한가? 이런 조직체의 내부 구조들도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복잡한
변화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전적인 관료적 형태로부터 보다 애드호크러시(역주:
ad-hocracy, 영속적 기구로 상징되는 전통적 관료직의 기능적 부서들과는 달리
초산업사회에 적합한 조직 형태로 여러 팀들이 모여 특수한 단기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임시기구)적인 조직체로, 보다 큰 모듈적 프레임워크(modular framework)
내의 보다 작고 다양한 단위들로 급속히 이행해 가고 있다.
통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매체의 탈대중화와 유선 TV, 카셋, 퍼스널 컴퓨터,
비디오, 인공위성 등 여러가지 새로운 매체에 관해서는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이 모든 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또한
문화, 인식론 등 다른 차원을 살펴보더라도 이와 비슷한 속도의 변화와 혁명적인
사태발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제3 물결'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이 모든 것^36,36^단지 경제적 개편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으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이 '제3 물결' 체제 또는 사회에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수많은 새 집단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산업에서 교육과 가정생활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 걸쳐 이같은 변화를
일으키고자 싸우는 사람들과 지속될 수 없는 산업사회적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간에 갈등이 점증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도 각 기본적 집단들은 계급, 인종, 성, 종교별로 형성되지 않고
좌익이나 우익 또는 기존 정당들과도 제휴하지 않는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이 문제들 자체와 이 문제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집단들의 재형성이다. 지금은
초보적이고 무의식적인 '제3 물결 운동'(이러한 용어의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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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병 환자
* 그렇다면 귀하가 우리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고 보는 주요 갈등은 산업주의
^56,36^'제2 물결' 사회^36,23^와 이른바 '제3 물결' 문명간의 싸움이라고 하겠다.
환경보호운동이나 서독의 '녹색당(Green Party)', 그리고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핵운동 같은 것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26,26^ 산업사회 질서의 여러가지 제도와 관행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산업사회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중앙집권화와 거대 규모, 억압적인
획일성 등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주의를 비난하는 이러한 사람들 자신은
분열되어 있다.
산업주의체제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미래에는 전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란 것은 어떤 신화적 과거로의 복귀 정도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향수병 환자들이다. 나는 그들을 복고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제3 물결'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제1 물결'적 과거를 찬양하며 '제2
물결'형 인간에 못지 않게 우리의 생존에 위험을 줄 수 있다.
이 복고주의자들은 기술과 산업주의를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아주
새로운 기술, 인간적인 기술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제철소와 컴퓨터를 구별하지
않으며 대중매체와 제록스 기계도 구별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기술을
무차별적으로 증오한다. 그들은 도시를 싫어하면서도 새로운 원격 통신 기술이
탈도시화(de-urbanization)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 그들은 큰
것(bigness)을 선호하는 산업주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자동적으로^56,36^반사적으로^36,23^작은 것(smallness)을 선호한다.
그들은 소규모의 전원적^5,23^농업적^5,23^기술화 이전(pre-technological)의
환경에서 살았던 대부분의 인간이 사실은 민주주의도 없고 정당한 사법적 절차나
개인적 권리, 외부 세계와의 접촉, 자기 운명을 결정할 발언권 등이 모두 없는
상태에서 지방적 폭군의 비참한 희생자들이었음을 망각하고 있다. 복고주의자이며
과거 찬양론자인 그들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노^36^예생활에 불과했던
생활방식을 예찬하고 있다.
민주적인 미래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해 두어야 한다. 나 역시
존재한 적도 없는 어떤 목가적 유토피아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내가 이에 관해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지금 등장하고 있는 특정한 '제3
물결'적 형태들이 산업화 이전의 '제1 물결' 사회에 존재했던 특정한 사회, 경제적
형태들과 닮았다는 것은 사실이다.^36,36^다만 지금의 형태들은 고도의 기술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 의견으로는 모든 경제발전, 모든 기술, 모든 큰 것,
모든 중앙집권화를 비난하는 것은 반동적이다. 그것은 어리석고 낭만적이고
멜러드라마적이며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녹색당원이나 환경보호운동가들, 그리고 산업주의적 대중사회를 비난하는
그밖의 집단들이 절망을 선전하고 다니거나 비민주적이었던 과거를 찬양하는 일을
중지해 주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통조림공장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회상하는 식의 애수적인 소설을 쓸 때는 지났다. 사실은 아름답지도
못했었다!
사람들이 기술을 맹목적^5,23^무차별적으로 매도하고 핵발전소와 퍼스널 컴퓨터가
마치 똑같은 사회적^5,23^환경적 영향을 미치기나 한 듯이 두 가지를 싸잡아
비난하고 또한 제철소와 테이프 레코더를 모두 '기술'이란 엉성한 제목하에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제1 물결'적
과거로 되돌아가도록 재촉함으로써 '제3 물결'적 미래로의 이행을 저지하고자
원하는 '제2 물결'세력을 지원해 주는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산업세계의 억압과 불행, 생태계 악화, 불평등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어떤 상상 속의 과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이다. 그들은 이 새로운 도구들^56,36^예컨대 소형
컴퓨터, 유선 TV, 직접 방송용 인공위성 등^36,23^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새로운 선택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이 미래지향적 사람들이 바로 '제3
물결'세력이다.
* 귀하는 귀하의 저서에서 역사의 단절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귀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오늘날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귀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자체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나 현존하는 이른바 '사회주의'가 20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6,26^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인가? 살아남지
못한다! 두 가지는 각기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변화의 물결은 두 가지를 모두
시대에 뒤진 것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두 체제의 첨예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산업주의는 양자에 중요한 공통적 특징을
부여해 주었는데 지금 '제3 물결'에 의해 도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구조적
특징들이다.
이 두 가지를 방금 우리가 살펴본 목록과 대조해 보기로 하자. 자본주의적
산업세력과 현존하는 사회주의적 산업세력은 모두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양자가 모두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중교육, 대중매체, 대중오락에 의존한다. 양자
모두 핵가족을 사회의 기본 모델로 삼으며 대도시와 국가 위에 세워져 있다. 양자
모두 표준화, 동시화, 중앙집권화, 극대화(maximization)등 동일한 원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적인 구조적 특징과 원리들은 우리가 흔히 강조하는 차이점보다 한층
중요하다.
* 그래도 두 체제를 동등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26,26^ 물론이다. 소련과 미국이 어떻게 해서든 '수렴'할 것이라는 생각은 여러
사회가 동질화되어 가고 있다는 '제2 물결'적 신념에 기초를 둔 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정반대이다.
두 체제를 동등시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처벌받을 걱정없이 마음놓고 말하거나 출판할 수 있다. 내가 이른바 사회주의적
민주국가의 시민이었다면 나는 위축되어 이런 말을 은밀하게 속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극히 중요한 차이이다.
나의 저서들은 루마니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이념적으로 순화된 형태로
출판되었고 소련에서는 소위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었다.
소련어판 '미래 쇼크'는 한정판으로 배본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일반인들은 책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제3 물결'이 출판되려는 즈음에 군부의
단속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여러달 동안 번역자와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
전화선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두 체제 사이의 극히 중요한 차이점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언제인가는 우리들의 손자나 증손자들이 지난 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대규모의 세계적 투쟁을 재미있게 그리고 안스러운 기분으로^56,36^마치 우리가 지금
교황당(Guelph)과 황제당(Ghibelline)간의 싸움을 회고할 때처럼^36,23^회고하는 날이
올 것이다. 황제당과 교황당은 13세기와 14세기에 이탈리아를 둘로 갈라놓았으나
15세기에 와서는 잊혀졌다. 지금 그 전쟁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56,36^그리고 양자간의
긴장도^36,23^산업화시대의 산물이다. 산업화시대가 지나가면 그것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제2 물결'의 산물이라고 그처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들의 기원은 산업혁명보다 더 오래 전의 과거로 소급될 수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26,26^ 물론 그렇다. 예컨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모스(Amos)와 호세아(Hosea)는
항상 부자를 매도하는 사회주의 동조자였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시장에 대한 입장에 의해 규정되는데 산업 혁명 이전에는
인류역사상 시장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이었다.
* 그렇다면 귀하는 현대 자본주의와 현존하는 사회주의를 교환 지향적인
산업사회의 두 가지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인가?
^26,26^ 약간 말을 달리하여 산업화 시대의 두 가지 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오늘날 소련과 폴란드^56,36^그리고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36,23^는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위기는 어느 한 체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해 있은 것은 산업 주의 체제^56,36^전체적인 '제2 물결'
문명^36,23^이다.
* 귀하도 알다시피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들을 애당초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5,5,5^
^26,26^ 물론이다. 협잡꾼들만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그 이름을 내세우고 있을
뿐 '진짜 사회주의(real socialism)'(주: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용어는 서방과 소련
블록 국가들에서 전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라는 용어는
이상적 또는 순수한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폴란드와 소련의 당국자들은 기존 체제를
진짜 사회주의라 부르고 있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진짜 사회주의의 '타락물' 또는 '국가 사회주의'등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론과 선동이 시작된 지 1세기 반이 지난 오늘날 그것은
산업사회에서 전개되어 온 유일한 형태의 사회주의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시사해 주고 있다. 중앙집권 화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는 '제2 물결' 체제에서
가능한 유일한 사회주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산업주의 그 자체는 '진짜 사회주의'^56,36^그것이 무엇이건간에^36,23^의
안티테제일지도 모른다.
이와는 별개로 우리는 '진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자본주의 국가조차도 순수한 경쟁 모델과는
아무런 유사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우선 정부의
수입쿼타, 각종 규제, 토지의 양도, 각종 보조금 등이 없었더라면 형성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기업들이 반경쟁적 방법으로 가격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2 물결' 정부들이 어린이들을 산업사회 노동력으로 사전 적응시키는
대중교육체제를 창설하여 업계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에 제공하는 거액의 숨겨진 보조금이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온갖 종류의 숨겨진 보조금과
교차보조금, 그리고 허용된 외부화라는 모순된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보기 쑥스러운 것 못지 않게 이런 나라를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르기 쑥스러운 경우가 많다.
어떠한 이론도 들어맞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자유시장
이론도 그렇고 사회주의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잠시 용어 따위는 잊어버리고 세계를
한 번 둘러보자. 미국과 영국에는 통화론과 자유시장 정책을 내세우는 두 개의
정부가 우리들이 처해 있는 경기 침체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스스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가 개혁 정책을 도입하여 미국과
영국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경제가 더욱 악화될 뿐이다.
동유럽은? 파산이다. 소련은? 파멸이다. 소련혁명 65 년이 지난 지금
'프라우다(Pravda)'지는 건축자재, 전기, 합성섬유, 육류, 우유, 닭고기들의 부족
사태를 시인하고 있다.
나는 얼마 전 베네수엘라에 다녀왔다. 이 나라 경제의 대부분은 정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 나라는 석유회사들을 국유화했다. 이 나라 최대의 은행은 노조가 운영하며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다. 그밖의 여러 업체들은 국영기업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베네수엘라는 OPEC의 출범을 도와 수십억 달러를 받았는데도 지금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다. 제철소들은 짖다가 말았고 철도공사도 완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는
일편단심 '제2 물결'식 개발 전략을 추진하다가 국제 석유값이 떨어지고 철강을
수입하려는 나라가 없어지게 되자 이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국유화 정책은
베네수엘라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제 남쪽 칠레에 가보자. 이 나라에서는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Ugarte)가
국제전신전화사(ITT: International Telephone & Telegraph Corp.)와 중앙정보국
(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의 도움을 얻어 민선 아옌데(Salvardor
Allende)정권을 전복시키고 프리먼드의 제자들을 불러들여 진짜 자유 시장경제를
운영하도록 했다. 프리드먼의 '시카고 아이들'이 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을
자유화하자 경제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파산이 늘어나고 실업이 치솟았으며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이상의 모든 현상은 우리가^56,36^이데올로기의 여하에 상관없이(또는 이데올로기
때문에)^36,23^모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국가 보안 위원회(KGB: Komitet Gosudarstvennoi Bezopasnosti)나 CIA,
또는 좌익이나 우익, 다국적기업이나 테러리스트, 유태인이나 아랍인 등의 탓으로
돌리기는 쉽다.
브레즈네프(Leonid I. Brezhnev)가 사회주의 수사학을 동원하여 폴란드
노동자들에게 독립적 노동조합을 가질 권리가 없다고 설명하는 말을 들을 때 이것이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레이건(Ronald W. Reagan)이 미국방성에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56,36^미국방성은 방위산업체들과 함께 미국 경제 내에 준
사회주의적 부문을 형성해 가고 있다.^36,23^'사회주의적' 복지사업 예산의 삭감을
요청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인가?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은 이제 그만 따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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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가 중앙 계획을 벗어날 수 있을까?
* 원래의 문제로 되돌아가자.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가 '제3 물결'에서도
현재의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귀하는 이 두 가지가 각기 모순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귀하의 생각으로 현존하는 '사회주의'의
모순은 무엇인가?
^26,26^ '제3 물결' 사회에서는 소수의 엘리트가 장악하는 중앙 계획이 통하지
않는다.
산업 혁명은 대중사회를 만들어 냈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획일성이
조장되거나 부과되었다. 산업주의는 제품, 언어, 주택, 교육, 시간표, 생활양식 등을
표준화했다. 이 모든 것은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중앙 계획자들이 만들어 주었다.
다양성이 낮은 사회는 하향식으로 운영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체제에서조차도 대단위의 중앙경제계획은
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도하는 일마다 엄청난 실패로 귀결되었다. 고대
중국이나 파라오의 이집트에서라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동질적인
산업경제체제라 할지라도 이런 식의 하향식 통제를 받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이제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회, 표준화가 아니라 다양성이 유행하는 사회,
탈대량화가 이루어지고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대량생산이 아니라
정밀한 기술에 기초한 주문 생산이 늘어나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공장굴뚝이 매우
적고 또한 반복적인 작업을 하고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모두 같은 시간에
기상하도록 동시화된 교환가능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없는 그러한 사회를 상상해
보자. 슈퍼마켓이 대부분 사라지고 단편화된 마케팅과 개별적인 취향에 기초한
새로운 유통체제가 나타난다고 상상해 보자. 대중매체가 쇠퇴하고 직접방송
인공위성, 유선 TV, 카셋, 임시 네트워크, 사회내의 상상가능한 모든 집단을 상대로
한 소규모 발행부수와 소규모 시청자를 가진 매체,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정보의 홍수 등을 상상해 보자. 중앙집권화된 데이터 뱅크나 컴퓨터가 아니라
부엌마다 설치되어 항상 변하는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는 애플 컴퓨터나 TRS-80
컴퓨터를 상상해 보자.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며 그것은
중앙계획자들에게는 악몽과 같다.
이러한 종류의 사회는 하향식으로 통제하기가 훨씬 더 힘들다. 계획자들의 '결정
부담(decision load)'은 문자 그대로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만다.
여기에 해답의 열쇠가 있다. 즉 사회가 다양화하거나 분화할수록 지방적 조건이
더욱 다양해지고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그때 그때의 변동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3 물결'은 이 두 가지 과정^56,36^다양화와 가속화^36,23^모두를
가져온다.
중앙계획자들은 추세^36,36^폭넓게 일반화된 결정 사항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지방적^5,23^단기적 조건에 맞추어 융통성 있고 주문화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다. 그들은 특정한 지역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해도
알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결정 사항의 결과를 계속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사태의 진행 상황을 보고해 줄 사람이 그 주변 지방에 주재해야 한다.
정보가 필요하며 그것도 제때에 입수되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오류에
관한 정보이다. 이것을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중앙계획자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항상
상사에게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출세는 과오의 부정 위에 세워진다.
그러므로 아랫사람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정보에 사탕발림을 하거나 아^36^예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뒤늦게 보고하거나 아니면 그밖의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보를 가지고 농간을 부리게 된다.
이렇게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결정이나 쿼타 책정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지도 않는 사람은 상사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거나 가능한 한
보고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사는 쓸데없는 정보에
파묻히게 된다. 아랫사람들은 정보가 어디에 사용되건 그 이용방법을 통제할 권한이
없다. 그 정보는 자신의 최선의 이익에 불리하게 이용될지도 모른다.
중앙계획자는 최소한 통제받는 체제의 요소요소에 뻗쳐 있는 다중적이고 평행적인
정보채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말대꾸해서 잃을 것이 없는 내부의 트집장이,
밀고자, 비판자, 반대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중앙계획경제체제에는
이와 비슷한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한
체제에서는 정직하게 운영하면 중앙계획자에게 줄곧 위협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참여적 체제내의 중앙계획자는 거짓말, 환상, 시대착오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 그 결과 경제체제 전체가 파멸될 수 있으며 실제로 파멸되고 있다. 역사는
제법 지성적인 중앙계획자들이 내린 어리석은 결정들로 점철되어 있다.
* 귀하도 알다시피 오늘날의 급진적 좌익 중에는 테크너크랫의 중앙계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중앙계획경제체제들이 내부적 압력을 받아 보다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56,36^근로자, 소비자, 소수 민족, 여성 및 지역사회 전반과의
커뮤니케이션^36,23^의 채널을 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은 폴란드를 그 방향으로, 그리고 한 결음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중앙을 경유할 필요 없이 참여자 상호간을 횡적으로 이동하는 보다 참여적인
계획체제를 향해 몰고 가려는 운동이 아니었던가?
^26,26^ 자유노조운동의 일부 구성원은 그러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분명히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동유럽이나 소련의 중앙계획기구에
변화를 강요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의
대부분에서는 관료 체제와 당의 저항이 매우 공고하기 때문에 이것을 실현하려면
정치적 혁명과 유사한 사태가 일어나야만 한다. 더구나 이 나라들이 일차적으로
산업 국가 또는 '제2 물결' 국가로 남아 있는 한 중앙집권화를 향한 압력은 계속
강력하게 지속될 것이다. 나는 예컨대 자유 노조 운동이 군사 정권을 보다 민주적인
정권으로 대체하면서도 여전히 하향식 경제 계획을 시도하는 그러한 사태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계획작성을 위한 일반적 가능성에 관해 말한다면 누구나
소규모이고 지방적 규모로 이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설사 그렇게 하고자 하더라도
전통적인 대중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중앙계획 엘리트들의 단기적 이기주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사 중앙계획자들이 체제를 민주화하고자 하는 경우라도 피드백의
채널을 개방하면 그 계획자들은 소화되지 않은, 그리고 심지어 소화할 수 없는
지방적 세부사항에 파묻히게 될 위험이 있다.
나는 계획자들이 얼마나 지성적인가, 그들이 박사학위 소지자를 얼마나 많이
채용하는가, 그들이 권한 위임에 얼마나 능한가, 또한 그들이 얼마나 큰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가 등은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고도로 다양하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그들은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일들에 관해 너무나도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있다.
* 말하자면 귀하는 '제3 물결'이 경제^5,23^사회체제에 다양성을 도입하면 할수록
그 체제를 중앙에서 관리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것인가?
^26,26^ 그렇다, 참다운 해결책은 단지 시민이나 소비자, 근로자 등이
의사결정자에게까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채널을 개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참다운 해결책은 결정의 부담 자체를 재분배하여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 재량권과 권한을 보다 많이 밑으로 위임하는 데 있다. 일부 의사 결정은 또한
국가로부터 새로운 초국가적 기관(transnational agency)으로 이전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다른 문제이다. 내 말의 요점은 만일 현재의 중앙계획경제체제가 실제로
상당 부분의 의사결정을 밑으로 이전한다면^56,36^그러나 소련이나 그밖의
중앙계획경제체제들의 공고한 엘리트들이 치열한 투쟁없이 이런 일을 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36,23^또 만일 그들이 실제로 변화를 수행하고 보다 큰
지방자치를 허용한다면 그러한 경제체제는 이미 우리가 논하고 있는 의미의 중앙
계획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3 물결'은 소련 스타일의 모든 나라에 위기를 불러일으킬 징조를 보이고 있다.
'제3 물결'은 계획자들을 엄청난 정보의 무게에 짓눌리게 만들려 하고 있다.
* 내가 보기에는 좌익 인사들 중에서도 중앙계획에 반대하는 한 가지 추가적
주장으로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 보다 큰 직접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찬성하는 윤리적 핑계를 덧붙이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참다운 사회주의 경제학은 경제의 조직 방법을 창출함으로써 시장에 의하거나
하향식 계획기구를 통해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경제적 생활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차지하고 인간적
요소^56,36^사람들 자신의 태도^36,23^에 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6,26^ 여기서 우리는 중앙계획자들이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현재 등장하고
있는 사회유형간에 더욱 깊은 모순^56,36^진정으로 폭발적인 정치적^5,23^사회적
모순^36,23^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주의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가정되어 왔다. 나는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제3 물결' 경제를 운영하려면 전연 다른 종류의
근로자^56,36^'대중'의 한 사람이 아닌 개인^36,23^가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자면 자질이 풍부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독립적이고 위험을 감수하고 창조적인
근로자들이 필요한데 이런 노동자야말로 바로 소련의 엘리트들이 용납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내가 앞서 소련의 '사회적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였다. 내가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소련도 최신의 '제3 물결' 사회가 갖는 이점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이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다양성과 자유를 허용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소련은
외부에서 새 기술을 사들임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물질적 오인을 과대평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제3 물결'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제3 물결'경제는 '제3 물결' 문화와 '제3 물결' 정치체제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소련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결국은 탈중앙집권화,
민주화되어야 하리라는 점이다. 소련은 오류를 허용해야 할 것이며 네거티브
피드백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하나가 아니라 100개의 자유노조가 형성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요컨대 선진경제의 혜택을 원한다면 소련은 체제 전체를
변혁시켜야 한다.
'제3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소련의 체제는 모순으로 인해 와해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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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 좌익의 강박관념
*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귀하는 '제3 물결'이 오늘날 소련과 현존하는 그밖의
여러 '사회주의' 사회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억압적인 중앙통제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생산수단의 태반을 소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체로 경제적 지배계급과
중복되는 또 다른 극소수의 집단이 정치권력의 최상층 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위계체계가 존속 될 수 있는가? 존속할 수 없다면 그 '치명적' 모순은 어디에
있는가?
^26,26^ 모순은 자본주의의 심장부^36,36^사유재산 개념에 있다. 좌익은
재산^56,36^소유권 ^36,23^이라는 개념에 집착한 나머지 사태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유의 개념 자체가 지금 뒤집혀지고 있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배자가 된 것은 통합수단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욱 더
명확해지고 있다. 그들은 경영자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라고 하는 미국에서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소유라는 것이 그 중요성을 상실해 왔다.
미국 사회의 미래에 관한 기본적인 결정들은 자본이나 기계 같은 것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회사간부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또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핵심적 결정들은 또한 박봉의 정부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관료들은
투자를 이 지역에 할 것인가 또는 저 지역에 할 것인가, 그리고 이 기술에 투자할
것인가 저 기술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들이 내리는 결정 중에는 회사
주주의 결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도 많다.
물론 예외가 있다. 아직까지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기업이나 소수의 주주
집단이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그것이다. 누구든지 아직 소유주가 장악하고 있는
몇몇 대기업의 이름을 쉽게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주축이 되는 정말로 중요한 기업체들을 살펴보면 소유주의 지배가
비교적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껏해야 연금 기금 정도지만 그나마 그 일부는
노동조합이 소유하거나 공동 관리한다.
물론 그 사정은 나라마다 다르며 아직도 지배적인 기업들이 개인 소유로 되어
있는 나라들도 있다. 나는 얼마 전 스웨덴 왕립과학원(Royal Swedish Academy of
Engineering Sciences)에서 보수적인 스웨덴 기업인들과 엔지니어, 과학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 곳 강당은 청중들을 상대로 즉각 여론조사를 할 수
있도록 전기 배선이 되어 있는 특이한 장소였다. 나는 그 기회에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스웨덴 산업의 소유가 지나치게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의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질문에 정확히
9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나는 미국의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싶지 않으며 또한 '소유의 집중'에 대한 정확한 개념규정 문제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기본적인 문제는 중요한 결정을 누가 내리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소유자가 아니라 경영자들이 투자와 사업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옛 스승인 버넘(James Burnham)은 그의 저서인 '경영혁명(The Managerial
Revolution)'에서, 그리고 벌리 2세(A. A. Berle, Jr.)는 '소유없는 권력(Power
Without Property)'에서 각각 수십년 전에 이미 이같은 추세를 지적했다.
갤브레이스는 '기술 구조(technostrure)'에 관한 논설에서 단순히 소유 패턴을
추적하고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라는 협소한 동기에 의해 운영된다고 가정함으로써
기업의 주요 결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현실을
더욱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래에 권력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소유의 구성요소가
무엇인가, 그리고 '제3 물결'이 이를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가를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확실히 경영자, 관료, 행정가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또 그들이 시장과
소유주의 압력에 순종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외에도 자기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또한 법인시장 체제에서는 회사들이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등 회사의 경제적 위치를 보존하기
위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경영자와 소유주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전후관계는 역시 후자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반사회적 결정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26,26^ 동일한 전후관계가 반사회적 결정만이 아니고 사회에 이익이 되는 극히
긍정적인 결정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 정책들이^56,36^옳건 그르건
^36,23^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광적인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회사의 주식시세는 분명히 의사결정 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책임있는 회사간부라면 주식이나 회사의 시장에서의 위치를 해치는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들, 특히 사업분야가 다양한 대기업들은 여러가지 사업에 관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사업만으로 주식 배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투자가들은 '순수한 도박'을 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 신종의 비누나 새로운 셔츠,
또는 심지어 원자로를 판매한다는 결정은 실제의 주주가 받는 이익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소유가 아니라 결정권한과 지배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말을 그 이상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전에는 소유권이 핵심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배를 의미한 적이 있었다. 수많은 중소기업에서는 지금도 사정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은 결코 주도적 세력이 아니다.
사실 소유문제에 초점을 두고 질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제1
물결' 또는 '제2 물결'적인 문제이다. 모든 좌익적 분석은 소유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강박관념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분석은 100 년 전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더 그 타당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제1 물결'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일한 재산은 토지였다.
'제2 물결' 사회에서 중요한 재산은 이미 토지가 아니라 '생산수단'^56,36^제너럴
모터스사(GM: General Motors Corp.) 조립 라인의 기계, 공장 등^36,23^의 소유였다.
더구나 자본주의적 산업국가들의 소유는 종이 한 장으로 표시되는 주식의 형태를
취했다. 그 종이는 이미 실체의 상징적 추상물이었다. 그것은 건물이나 기계의 한
조각을 상징했다. 그래도 그것은 적어도 물질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소유는 대체로 국가 소유로서 이론적으로 한
사람의 소유권은 그가 시민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시민으로서
2억분의 1에 해당하는 경제의 몫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중요시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재산은 기계^5,23^시설^5,23^건물 등 가시적인 것이었다.
'제3 물결' 사회에서는 여전히 토지와 하드웨어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정보가
본질적인 재산이 된다. 이미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비물질적^5,23^비가시적이고 잠재적으로 무한한 최초의 재산 형태라는 점에서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내가 만일 IBM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관심 가져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소유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IBM사가
빌딩 몇 채를 가지고 있는 유크타운 하이츠(Yorktown Heights) 지구에 관해서는
조금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 캘리포니아주 산 호세(San Jose)나 콜럼비아의
보고타(Bogota)에 있는 IBM사의 공장들에 관해서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빌딩이나
기계까지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회사가
장악하고 있는 조직화된 정보이다.
이제 나의 재산은 실체로부터 이중으로 추상화되었다. IBM사 주식은 한 장의
종이, 즉 상징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하드웨어나 부동산의
상징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다른 표상의 상징물이다.
마지막으로 전술한 바와 같이 '정보재산(info-property)'은 유한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물재산(real property)'과 구별된다. 이 재산은 갑도 사용할 수 있고
동시에 을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재산은 여러 사람이 사용할수록 보다 많은
정보를 창출해 내게 된다.
이처럼 소유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와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관한 이론을
구축할 당시와는 달라져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치명적 모순이다. 지금까지 사유재산은 자본주의를
규정짓는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제 필수적 재산이 상징물에서 초상징물
(meta-symbolic)로, 그리고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희귀성과 물질성에 바탕을 두어 온 소유의 개념과 상반된다.
* 물론 귀하도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오로지 소유관계만을
강조하지는 않고 그밖의 여러가지 사회적 관계에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26,26^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태 발전과 '제3 물결'의 등장으로
모든 낡은 경제이론에서^56,36^자본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이론을
불문하고^36,23^이데올로기의 알맹이가 제거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소유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지금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 5. 정보정치
내일의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 그 대답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전망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정치생활에서 차지하는 정보의 새로운 역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회의 급속한 등장은 정보와 관련된 폭넓은 정치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켜 주고 있다. 컴퓨터 시대의 프라이버시, 국경을 초월한 정보의 인공위성
전송, 데이터 보호론, 저작권, 정보의 자유 등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의 가시적인 일단에 불과하다. 그 밑바탕에는 민주주의에 관해 장기적인
함축을 갖는 보다 심오한 문제들이 깔려 있다.
우리들의 토론 전반을 통해 화제는 항상 정보와 이를 처리, 조작, 창조해 내는
사람들, 즉 '정신 근로자'들의 정치적 역할에 관한 문제로 되돌아가곤 했다.
앨빈 토플러
* 정보혁명에 관한 글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분석한 글은
별로 없다. 우리가 지금 소위 '정보화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째서 100 년 전도 아니고 100 년 후도 아닌 지금인가?
^26,26^ 사회적 인과관계는 복잡하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정보혁명을 설명해 줄
몇 가지 요인들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정보혁명의 추진 연료는 다양화와 가속적 변화가 결합된 가연성
혼합물이다. 이 두 가지를 합하면 정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대략 1950 년대 중반부터 낡은 산업주의적 대중사회의 균열을 경험해 오고
있다. 기술에서 인종문제에 이르는 수십가지 분야에서 다양성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
'제3 물결'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함에 따라 그것은 보다 분화되고 전문화된
부분들로 구성되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가고 있다.
어떤 단순한 유기체, 예컨대 지렁이를 생각해 보자. 지렁이는 분화된 기관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사람과 비교해 보면 인간은 폐, 신장, 각막, 외피 등
상호관련되면서도 기능적으로 전문화된 수많은 신체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부분들이 올바로 상호 작용하도록 하려면 엄청난 양의 정보가 각기 어떤 '메시지'를
표상하는 전기적 파동, 화학적 폭발, 호르몬 분비 등의 형태로 신체를 통해 흘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예컨대 어떤 신경중추의 파동은 근육의 수축이나 동공의 팽창을
지시하게 된다. 이러한 '메시지'에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데 신체 각 부분이
상호조정되고 동시화 하려면 엄청난 양의 정보가 신체를 관류해야만 한다.
그리고 신체 부분들이 전문화, 다양화할수록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게 된다.
인간의 신체에는 지렁이의 신체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가 관통하고 있다.
이제 이 원리를 사회에 적용해 보기로 하자.
만일 내 생각대로 우리가 지금 대량 생산^5,23^분배 및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면, 분업이 보다 세분화하고 조직구조의 다양성이 증대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규모가 보다 작고 수가 많고 더욱 더 탈중앙집권화된 단위(때로는 매우
큰 조직체의 테두리 안에 조직된)들을 향해 이행해 가고 있다면, 우리의 법률이
복잡해지고 우리의 제품, 가치관 및 태도가 날이 갈수록 이질화되어 가고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 체제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만도
훨씬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요컨대 '제3 물결' 사회의 이질성은 '제2 물결' 사회의 동질성에 비해 더욱 높은
수준의 정보 교환을 요구한다.
* 귀하는 다양성이 정보를 생성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도 역시 다양성을
생성시킨다는 의미에서 볼 때 그 말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26,26^ 그렇다. 엔지니어들이 포지티므 피드백 고리(positive feedback loop)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예컨대 유선 TV는 이 사회에 보다 다양한 상징물과
메시지^56,36^보다 많은 정보^36,23^가 흐르도록 해준다. 이것은 사회적 다양성의
증대를 촉진한다. 한편 다양성은 사회적 조정과 통합에 필요한 정보의 수준을
높인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다양성은 스스로를 먹고살면서 체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의 수준을 계속적으로 높여 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간과되기 쉬운 또 한 가지 요인이 있다. 그것은 변화의 속도 그 자체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이를 다루기 위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진다. 이것은 내가
방금 언급한 원칙의 한 가지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다. 변화라는 것은 시간의
다양성(diversity in time)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의 존재의 상태는
다음 순간에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날수록 계속 적응력 있는
결정을 내리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지금 정보 폭발을 경험하게 된 근본 원인이 다양성의 증대와
급속한 변화의 결합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말하자면 지렁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며 이러한 변혁 과정은 매우 빠른 속도로^56,36^1 만년 전의
농업혁명과 300 년 전의 산업 혁명보다 빠른 속도로^36,23^이루어지고 있다.
* 그러면 보다 높은 정보 교환 수준으로의 이같은 도약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26,26^ 벨기에에서 영국^5,23^일본^5,23^미국에 이르는 모든 산업사회들의 고용
상태를 살펴보면 1950 년대 중반이래 육체노동의 현격한 감소와 함께 화이트칼라
노동의 증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체제는 내부적으로 복잡해지고 다양화되고 또 정보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에 그
사회들은 하나의 위기점에 도달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한 가지만 하려 해도 너무나 방대한 사무 처리, 조정, 회의, 결정, 정보
교환이 요구되기 때문에 우리는 문자 그대로 삐걱거리며 정지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최근 수십년 동안 화이트칼라 직종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0 년 또는 20 년 전부터는 그 누구도 이를 억제할 수 없었다. 문서 업무가 모든
통신 채널에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압력이 폭발점에까지 이르게 되자
이 체제는 기술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원래 과학 분야의 계산을 위해 설계되었던
컴퓨터가 간단한 행정 업무를 취급하도록 개작되었다. 컴퓨터가 세계 도처의
사무실에 보급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설치된 통신 채널^56,36^예컨대 전화 시스팀^36,23^은 업무량
과다로 인해 컴퓨터 화된 자료의 새로운 홍수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 20 년 동안 새로운 통신 채널들이 무더기로 개설되었고 자료 처리를 위한
새로운 도구들^56,36^워드프로세서, 광학 주사기(opticla scanner), 마이크로 필름
기억장치 등 수많은 관련 기술들^36,23^이 나타났다. 그것은 정보의 과중 부담을
덜기 위한 폭발적인 기술 혁신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이클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즉 다양성 및 변화의 증대는
정보의 증가로, 그리고 이를 취급하기 위한 기술의 증가로 이어지며 그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한층의 다양성 및 변화의 증대를 가져온다.
그것은 바로 정보혁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며 정보혁명은 현재 낡은 산업사회를
말살시키고 있는 보다 큰 변화의 물결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모든 추가 정보를 늘리고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관한 우리들의
과학적 이해가 깊어져 생산 공정 자체를 변혁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우리는
지금 카메라와 TV세트를 만드는 데 다수의 육체노동에 의한 조립 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정보와 지식을 더 많이 사용하여 부품의 수를 줄여 가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기계 그 자체에 정보를 주입시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비단 경제뿐
아니라 문화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정보혁명은 어떤 방식으로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26,26^ 산업화시대에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사물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사물을 관리하는 방법이 우리의 일차적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는 방금 내가 신체에
대해 사용한 것과 같은 정보 유추를 더욱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보
이론에 의하여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심리학의 형태론적 설명에서
인식론적 설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그람시(Antonio
Gramsci)에 (주: 그람시는(1891--1937)는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이론가이며 그의
저서들은 정치적^5,23^사회적 변화에서의 지식인과 문화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많은
관심을 두었으며 문화, 이데올로기, 인식론 문제 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학에서는 내가 이미 시사한 바와 같이 정보의 통제, 프라이버시, 정보흐름의
관리 등의 문제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러 나라들이 신국제정보질서(New International Information
Order)와 같은 제안들을 놓고 다투게 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되어 가고 있다.
'전방위 정보(meta-information)'가 모든 분야를 통제하는 열쇠가 되고 있다.
지식이 힘이라는 관념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힘을 가지려면 지식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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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사회를 누가 운영할 것인가?
* 우리에게 권력을 가져다주는 것^36,36^그것이 정치의 모든 것이다. 귀하는 현재
등장하고 있는 '제3 물결' 사회가 산업사회 질서보다 민주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는데.
^26,26^ '될 것이다'가 아니라 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심지어 '1984 년'식의 기술파시즘(역주: techno-fascism,
오웰의 소설 1984 년에 나오는 독재체제)같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보다 그럴듯한 가능성으로 '제3 물결', 특히 그 일부를 이루는
정보혁명으로의 이행은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를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사제가 윗자리에 앉아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피라밋을 떠받치고 있는 새로운
위계체제로 변화시키지는 않겠는가?
^26,26^ 새로운 기술들 중의 일부는 확실히 위협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기술들은
그 반대로 국가에 대한 개인의 힘을 키워 준다. 기술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중앙집권적인 것도 있고 탈중앙집권적인 것도 있다. 그것들은 한데 묶어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 현명한 정치는 어느 한 가지 형태의 기술은 억제하고 다른 기술의
보급을 장려함으로써 '기술파시즘'의 가능성을 배제할 뿐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를 촉진시킬 것이다.
몇 가지 구체적 예를 들어보자. 산업화시대의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정부나 대기업에 의해 중앙에서 통제되는 대중매체였다. 그것을 예컨대 테이프
레코더와 비교해 보자. 소비자는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만들어
전달하고 그 메시지를 복사^5,23^재복사 할 수 있다.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이
'대형'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란에서
팔레비 (Mohammed Reza Pahlevi) 반란세력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테이프
레코더는 중앙에서 통제할 수 없다.
또는 불법 사상을 출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를 생각해 보자. 소련은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싶겠지만 복사기가 보급됨에 따라 단속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는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최초의 컴퓨터들은 중앙집권화된
것으로서 정부와 기업 이용자의 권한을 높여 주었다. 새로운 컴퓨터들은 누구나,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또 유선 TV를 방송 매체와 비교해 보자. 구식 시스팀은 일방적이었다. 새
시스팀은 상호작용적이어서 시청자가 송신자에게 대답을 할 수 있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우리 생활에 대한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귀하가 제기한 또 하나의 문제도 매우 흥미 있는 것인데^36,36^계급 관계에 관한
문제^5,5,5^.
* 우리는 새로운 테크너크랫 계급^56,36^전문직업인, 경영자, 과학자, 컴퓨터 요원
등^36,23^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 새로운 경제적 계급의 출현이
나머지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대체로 우리 서방에는 지금까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그리고 자본가들을
위해 일하는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도 갖는) 소규모의 '테크너크랫형' 계급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보의 중요성이 증대해감에 따라 규모와 권한이 커지는 것은 이 제3의 계급이
아닌가? 귀하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앞으로 민주주의가 아닌 이 제3의 계급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테크노크러시를 맞이하게 될 분명한 위험은 없는가?
^26,26^ '계급'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이다. 엄격한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계급'이라고 말할 때는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즉 소유의 관점에서 계급을
정의한다. 부르좌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프롤레타리아는 노동력^56,36^본질적으로
완력^36,23^만을 소유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앞서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소유가 반드시 지배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 자신이 비산업사회의 소유 개념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생각할 때 특히 흥미 있는 일이다. 여러 비산업사회에서는 권력이 토지의
실제적 소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서 군주의 대표로서 봉직하여
봉록을 받는 데서 나왔다. 그것은 '봉록적(pre-bendal)' 재산이었다.
베버(Max Weber)에서 콘래드(George Konrad), 젤레니(Ivan Szelenyi)에 이르는
수많은 저술가들은 산업화시대 이전에는 실제적 소유가 권력의 열쇠가 되는 일이
좀처럼 없었으며 따라서 소유에 입각한 계급관념은 비산업사회의 실상과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비산업사회로 복귀하게 되는데, 다만 이번에는
고도기술에 토대를 둔 비산업사회이다. 이렇게 해서 소유의 상대적 중요성이 다시
한 번 감소하게 된다. 그것은 변증법적 과정이다. 오늘날 마르크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 아이러니를 보고 한바탕 크게 웃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새로운 계급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어쨌든 소유가 계급을
정의하는 유일한 토대는 아니며 계급은 확실히 역할, 일의 유형, 훈련 등에 더
기초를 두고 있다.
^26,26^ '제2 물결'이 우리에게 '무산계급(proletariat)'을 가져다주었다면 '제3
물결'은 지금 '유식계급(cognitariat)'^56,36^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5,23^두뇌의
사용에 바탕을 둔 집단^36,23^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식계급은 조직화된 정보와 상상력 등 생산에 필요한 그밖의 여러 가지
문화적 자질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이 계급은 필수적인 원료라고나 할까, 아니면 정신적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 유식 계급은
무산계급이 가질 수 없었던 큰 힘을 가지고 노사 교섭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관연 이처럼 엄격하게 경제적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옳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 집단을 사회적 계급으로^36,36^아니면 문화적 계급으로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경제적 중요성은 2차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집단의 규모가 예컨대 1,000 만 명에서 3,000 만 명으로 (순전히
가정적인 숫자이지만) 커진다고 할 때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참다운 경제적
자유나 참여적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에 바탕을 둔 미래 사회를 보장해
주겠는가?
^26,26^ 아니다. 그러나 이 집단적 두뇌의 내부 정보가 경제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 집단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집단이 다수 세력이 되는
경우에는 국가에 대해 새로운 관계에 서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집단은 성격상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고 세상 물정에 밝으며
세련되어 있다. 이 집단은 첨단 통신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독자적인
매체^56,36^수많은 전문적 출판물, 테이프, 컴퓨터 네트워크^36,23^를 소유하고 있다.
이 집단은 자본가인 소유주나 국가에 대해서도 결코 무력하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식계급은 무산계급과 전연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귀하는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이 새로운 '유식계급'의 구성원이 되리라고
생각하지^56,36^아니면 희망하고 있지는^36,23^않는가?
^26,26^ 아니다. 모든 사람이 유식계급의 구성원이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나는 사회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이 높아질 것이며 따라서 이른바 '우둔성
문제(stupidity problem)'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모든 사람이 정신노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정신적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56,36^또는 갖출 수 있다고^36,23^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신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추상적 추리와 조어의 재능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일에 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성의 문제도 아니다. 고도로 지성적인 사람들 중에도 조어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56,36^적어도 나는^36,23^추상적
추리에 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반적 지성이라고 말할 처지에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정보를 가지고^56,36^즉 추상 세계에서^36,23^일하는
사람들도 역시 구체적 경험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원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체관리와 건강관리를
의미한다. 그것은 예컨대 신체적 활동, 정원 가꾸기, 요리, 항해, 터치 풋볼, 춤,
건축^56,36^산 속에 집이나 오두막집 짓기^36,23^등의 일을 통해 환경과
촉감적^5,23^감각적으로 관계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또한 고도의 추상 세계에서 잘 해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일거리와 사회적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다 정신
근로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아마도 일부 사람들이 '정신노동'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훈련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정신노동'의 일자리가 부족하리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들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종류의 작업에 스스로를 사회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어디에 있건 간에 어떤 사람은 '정신노동'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보다 전통적인 형태의 노동을 하게 된다면 결국은 정신 근로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지배하게 되지 않겠는가? 소유주나 비정보(non-information) 근로자들의 이익에
대항하여 이 집단의 이익을 신장하는 정당들이 출현하지 않겠는가? 유식계급은
상대적인 '정신노동' 독점 덕분에 사회적 영향력을 얻기 위한 어떠한 경쟁에서도
크게 유리한 입장에 서지 않겠는가? 또한 아직도 육체노동을 하거나 직접적인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26,26^ 우리가 잘못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유식계급의 등장은
이 사회의 분화과정과 직접 관련된 것이다. 다양성이 증대하지 않으면 조정자,
기술자, 지식 취급자, 조작자들로 구성되는 이처럼 커다란 계급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양성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신 근로자들이
'대중 처럼^56,36^즉 통일된 세력으로서^36,23^행동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치분야에서의 단일쟁점 집단의 등장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며 반핵운동이나 낙태법을 둘러싼 투쟁 등 여러 가지 특정화된 목표들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것도 바로 이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적^5,23^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하며 또한 촉진하다.
마르크스는 공장제도가 노동계급의 단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 주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나는 전통적 형태의 공장제도의 종언, 그리고 탈대량화 생산 및 분배로의
이행은 역조건을 조성하고 있다고^36,36^탈대중적 정치운동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나의 견해로는 정신 근로자들이 단결하여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을 억압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다른 어떤 집단들보다도 통일된 다수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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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 환경
* 결국 귀하는 정신근로자의 등장이 민주주의의 증진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26,26^ 실제로 민주주의 그 자체를 사회 내에서의 정보 및 의사 결정의 기능을
가지고 파악하는 시각이 있다. 물론 정치를 단순한 결정체제로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극장의 한 형태이고 게임이며 종교의 한 형태인 수도 많다. 그러나 정치는
또한 우리가 여러 가지 매우 중요한 집단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치의 결정의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새로운 민주적 형태를 발전시키려는 운동에 찬성하지만 '제3
물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울한 생각 중의 하나는 어느 시기에도 사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수, 즉 민주적 참여에는 한계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 귀하는 어떠한 종류의 의사 결정에 관해 말하는 것인가?
^26,26^ 나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적인 결정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사회적 의사 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경제적^5,23^정치적 의사 결정을 포함한다. 참여와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의미하는 결정이다.
* 귀하가 말하는 한계 때문에 테크너크랫들이 모든 의사 결정 권한을 장악하게
되지 않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귀하가 말하는 이 새로운 정신 근로자 계급의
등장은 정치적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26,26^ 대규모의 정보근로자 또는 정보처리자 집단을 거느리는 고도로 탈대중화된
사회에서 정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한다면 앞을 내다보기 전에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명백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산업화 이전의 사회들은 동시에 민주화 이전의
사회(pre-democratic society)였다는 점이다.
옛 농업사회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기본적인 정치적^5,23^경제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농업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 적이 좀처럼 없었다. 그
반대의 예가 되는 아테네조차도 다수의 노^36^예를 바탕으로 하는 소수를 위한
민주정체였다. 여하간 농업사회에서는 소수의 권위주의적 지배계급이 통치하는 것이
상례였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가능케 해준 것은 산업화였다.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폭발적인 민주적 혁명과 개혁이 일어나 참여의 폭을 확대했다.
한 가지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 산업사회를 운영하는 데는 기술화
이전의 농업사회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옛 농업
사회에서는 한줌도 안되는 귀족과 그들의 온갖 친척, 소수의 지방 성직자들이 전체
지역사회를 위해 모든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그룹을 형성했다.
봉건 농원이나 장원을 운영하는 데는 많은 결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민의 90%를
차지하는 농민은 권리도 없었고 교육도 받지 못했고 또한 이 결정에 참여 하고자
하는 욕구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산업혁명이 일어나 이제는 단순하고 탈중앙집권화된 경제
대신에 여러 가지 활동을 조정해야만 하는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인 경제와 사회가
나타난 것이다. 의사결정의 질과 양이 변화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산업사회를
운영하는 데는 산업화 이전의 사회보다 상호관련된 보다 많은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토지의 인간부양 능력을 파괴하거나 하천유역을 범람시키는
등으로 물리적 환경이 변화되면 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재조직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사회구조는 전략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의
변화는 물론이고 물리적, 기술적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환경(decisional environment) 이라는 것도 있다.
사회는 이 보이지 않는 결정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역시 반응한다. 산업혁명이
이룩한 여러 가지 일중의 하나는 이 결정환경을 극적으로 변경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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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 부담의 분산
* 그러면 이 결정 환경의 변화는 정치적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26,26^ 결정 부담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순간에도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의사결정부담이라는 것이 있다.
즉 일정한 시간 내에 내려야 할 일정하게 복잡한 일정한 수의 결정이 있다.
'제2 물결'은 낡은 '제1 물결' 농업질서를 밀어내면서 공장굴뚝들만 가져왔을 뿐
아니라 조정과 통합의 필요성을 훨씬 더 전대시켰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많은 결정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경제, 정치, 지역사회 생활에서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이 집단은 엘리트와 준엘리트
(sub-elite)의 위계질서로 조직화되어 중산계급의 뼈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산업주의의 도래는 사회의 결정부담을 크게 증대 시켰다.
과거의 소수 엘리트들은 이제 새로운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결정업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의사결정자들을 추가로 모집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소수의 폐쇄적이고 세습적인 엘리트 대신에 보다 규모가 크고 개방적인 엘리트 및
준 엘리트 체제가 나타나 확대된 결정 부담을 처리하게 되었다. 이것이 산업혁명에
수반하여 이루어진 '민주혁명'^56,36^의사 결정과정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 것^36,23^의 본질이다.
* 귀하는 마치 모든 사람이 혜택받은 것처럼^36,36^마치 진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나 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소수만이 그 모든
결정에 참여하여 귀하가 말하는 결정부담이라는 것을 처리했다.
^26,26^ 옳은 말이다. 민주주의의 확산이 모든 사람을 포용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중산계급은 이 새로운 의사 결정 구조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민주개혁을
위한 투쟁에 동원된 노동자와 농민들은 그 대가로 가끔씩 투표할 권리를 얻었다.
그것은 제한된 형태의 참여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일상적 결정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의 실질적 참여 없이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대체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결정 부담이 갑자기 증대하면서 부분적 민주주의^56,36^이를
준민주주의 (semi-democracy)라 해도 좋다^36,23^가 나타났다.
오늘날 결정부담이 또 다시 확장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은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 되고 있다.
* 귀하는 노동계급과 농민들이 지금 갑자기 체제내에서 세력을 얻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처럼 갑자기 참다운 참여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있다는
말인가?
^26,26^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이러한 집단은 규모와 중요성 면에서
위축될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농민이 인구의 4%에 불과하다. 제조업
근로자의 수도 결국 그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핵심문제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세 가지가 우리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정신근로자 수의
증가이다. 둘째, 새로운 결정부담의 엄청난 증가이다. 그리고 셋째는 컴퓨터이다.
에너지와 생산에서 가정생활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탈대량화하고
있다는 나의 생각이 옳다면 앞으로 보다 많은 정보가 이 사회를 관류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정보근로자와 결정이 더욱 늘어나게 될것이다. 그것은 또한 현재의
지배적 엘리트 및 준엘리트가 혼자서 결정부담을 처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산업혁명
당시의 봉건 엘리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매우 지성적이라는 사람들이 정치, 산업, 투자,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날로 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의사결정의 질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담당한 사람들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여러가지 사항에 관해 너무나도 빨리, 너무나 많은 결정을 내리는 등
운영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영 엘리트들은 엄청난 결정
부담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엘리트들은 결정 부담을 덜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밖에 없다. 최근 참여적 경영^36,36^근로자 참여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은 애타심 때문이 아니라
낡은 결정체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정치분야에서는 대중적 참여의 확대를 시사한다. 그것을 중산계급의
더 한층의 확대라고 부르건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부르건 아니면 참여제도라 부르건
간에 그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전적으로 배제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줄곧 결정에 관한 이야기뿐인데.
^26,26^ 그렇다. 핵심적 결정에 반드시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리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이나 지역사회, 조직을 계속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낮은 수준의 일상적 결정^56,36^의사 결정의 허드레 일^36,23^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사람들은 적어도 체제내에서 일정한 이해관계, 일정한
자기동일성, 일정한 지위를 갖게 된다. 결코 이를 비웃어서는 안된다.
* 그것을 민주주의의 확대하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36,36^배를 떠 있도록 하기
위해 넘겨준 명목상의 권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테크노크러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6,26^ 어떠한 용어를 사용해도 괜찮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결정부담이 기존의
엘리트가 혼자서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지게 되면 사회적, 조직적,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과 여러가지 차원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사람들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또한 이 모든 일이 아무런 갈등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실제로 나는 앞으로 참여의 권리를 둘러싸고 엄청난 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결정 구조의 새로운 문호^56,36^준엘리트와 엘리트가 될 기회^36,23^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조건으로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들은 특정한 집단에게는 불리한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는 여성, 흑인, 스페인계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 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어떻게 해서든 의사결정자 대열에
합류하지만 인종주의와 남녀차별 때문에 그나마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개념은 사회의 구조^56,36^그 복잡성, 다양성 및 변화의
속도^36,23^가 그 사회의 결정부담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결정을 통해
사태를 장악하는 엘리트 및 준엘리트들의 구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정보는
권력 및 정치와 밀접한 상호연관을 가지게 되며 우리가 '정보정치(info-politics)'의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더욱 더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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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와 정치
* 컴퓨터 기술은 이 모든 것에 어떻게 적응하는가?
^26,26^ 컴퓨터는 정치체제에 매우 여러가지 영향을 미친다. 엄격하게
중앙집권화된 대형 컴퓨터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탈중앙집권화된 소형 컴퓨터와 컴퓨터망은 개인의 권한을 강화하도록 이용될 수
있다. 컴퓨터는 군사 전략적인 균형과 정치적 여론조사, 그리고 심지어 정치적
문제들을 규정하는 방법까지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컴퓨터는 현재 미국의
정치 집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직접 우송 표적 마케팅을 가능케 함으로써
단일 쟁점 집단의 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밖에도 컴퓨터가 갖는 여러가지
정치적 함축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역시 결정 부담 이론과도
관계가 있다.
엘리트층은 원래 컴퓨터가 자신들의 결정부담을 줄여 주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계라고 인식했었다. 그들은 컴퓨터가 자신들의 통제를 중앙집권화 하는
수단으로서 여러가지 일상적 결정을 자동적으로 내려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보다 높은 차원의 결정을 내리고 통제권을 유지하도록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또한 그들이 의사결정자의 수를 추가적으로 대폭 늘리지 않고서도 그들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지금까지의 사태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컴퓨터의 도입 이후로
결정부담은 계속 급속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결정부담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 탈중앙집권화가 불가피 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 종전의 엘리트들은 상상도
못했던 여러 장소에 컴퓨터가 등장하고 있다. 하향식으로 통제되는 소수의 거대한
컴퓨터 대신에 지금은 수십만, 수백만 대의 컴퓨터가 중앙 컴퓨터의 통제에서
벗어난 임시적 네트워크와 연결된 채 가정, 학교, 교회, 차고 등 사회 전반에
보급되고 있다.
나는 그 전체적인 결과가 궁극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높이리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는 투표함 이후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친구가 될 가능성^56,36^가능성이란
말을 강조해 둔다^36,23^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있다.
* 그러나 설사 귀하의 이론이 옳다고 하더라도 누가 참여할 수 있느냐 또는 누가
참여할 것이냐 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귀하의 견해로 지식 근로자, 조정자,
통합자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26,26^ 그것은 아직은 256K비트짜리 질문이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종교적 편협성 그리고 전반적인 외국인 배척 풍조로 심하게
물들어 있는 사회에서 아직까지 불리한 처지에 놓인 집단들은 결정 구조에 파고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사건건 투쟁해야 할 것이다.
* 귀하가 지금까지 묘사한 내용은 찬^5,23^반의 입장을 떠나 정보화시대의 정치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결정부담'과 같은 귀하의 핵심적 개념조차도 정보와 그
이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귀하도 시사하듯이 그 어느 것도 인종주의나
남녀 차별과 같은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을 반드시 제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요인들은 내일의 정치에 관한 귀하의 견해와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
^26,26^ 그 문제는 다음 번에 논하도록 하자.
@[ 6. 역할의 혁명
수백 만년 동안 발전해 오면서도 인류가 아직도 남녀차별과 인종주의의 질병에
걸려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적으로 남녀차별과 인종주의는 어느 한 성이나 인종의 지배를 정당화해 주는
신념이다.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남자와 여자가 동일하다거나 인종적 특성이
중요치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과
그같은 다양성에 기초한 억압체제를 구축하고 용인한다는 것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지금까지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커다란 열의와 창의력을
발휘해 왔다. 지능에서 예술, 경제학에서 범죄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이론들은
지금까지 소수민족과 여성에 대한 학대를 합리화하도록 날조되어 왔다.
현재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소수집단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공적, 개인적으로 맞서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가 증오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앨빈 토플러
* 우선 보다 개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보자. 귀하의 독자들 중에는 귀하를
여권신장론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사실인가?
^26,26^ 남녀차별주의에 관해 나는 나 자신의 성장기간 중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모든 사화에 관해^56,36^이른바 '여성 특유'의 따뜻함, 감정이입, 분담 및
양육의 용의는 말할 것도 없고 두뇌, 용기, 추진력, 유머, 창의력, 책임감, 인내심에
관해서도^36,23^한시라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이러저러한 요구와 전술에 관해서는 조직적인 여권운동과
의견을 달리해 왔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여권신장 투쟁을 항상 선량한 싸움, 즉 남녀
모두를 위해 보다 품위 있고 인간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압력이라고 생각해 왔다.
여성에 대한 각종 제한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항상 이에 상응하는 남성에 대한
일련의 제한을 수반해 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고통스러운 질문은 왜 싸움이 필요하게 되었느냐^36,36^왜 여성은 사실상
모든 문화권에서 남성에 의해 지배받고 폭행 당하고 제한 받고 구속받고 또는
기껏해야 교묘하게 조종 받아 왔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항상 특수한 예외는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수천년 동안의 일반적인 역사 패턴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적어도 나로서는 가부장제^56,36^남성 지배 체제^36,23^를 하느님이나 유전인자
탓으로 돌려 토론을 가로막을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 우리는 남성지배가 여러가지 형태의 규범으로 되어 있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내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성 우위의 개념을 흡수하게 된다. 귀하의
태도는 전형적인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태도를 갖게 되었는가?
^26,26^ 나의 태도는 틀림없이 네 명의 주목할 만한 여성과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형성된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확대 가정에서 조부모, 부모 및 삼촌 내외와 함께
살았다.
나의 할머니는 90세가 다 되도록 사셨는데 그 분은 매우 강인하셔서 미국 서부의
개척자 오두막집이나 폴란드의 유태인 부락, 북극지방, 찌는 듯한 아마존 강의 열대
밀림 등 어디서나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그 분은 담력이 있었다. 내 어머니는
지금도 부드럽고 내성적이시지만 매우 사려 깊고 지적인 호기심이 강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셨는데도 가끔씩 칸트(Immanuel Kant)나 흄(David Hume)
또는 버클리(George Berkeley) 주교의 저서를 읽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숙모는
보헤미아의 가치관과 시에 대한 사랑을 내 생활에 심어 주는 데 도움을 주셨다.
그 이후로 내가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고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여성은
나의 동반자이고, 편집자, 동료, 반려자, 비판자인 내 아내이다. 그려는 내가 아는
가장 명석하고 다재다능한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아내는 신경근육병에 관한 의학
서적을 읽고 카뷰레터(carburetor)를 고치고 재봉틀로 자기 옷을 만들어 입고 강단에
올라서서 경제학 문제를 토론하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고 머리를 깍고 여러 집안을
돌보고 사과를 따며 세법을 이해한다. 아내는 나와 함께 지상 정비 학교에 가서 내
비행기의 전기 및 수압 시스팀을 배웠으며 천연색 레이더의 장점에 관해 토론할 수
있다. 아내는 다른 세 여성의 놀라운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섯
번째 여성인 내 딸이 완전한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내 인생에는 매우 강력한 남성들도 있었다. 내 아버지와 삼촌이 그런 분이다. 두
분 모두 수줍거나 퇴영적이거나 의존적이거나 나약한 면이라곤 없었다. 그 분들은
나에게는 강력한 역할 모델이었기에 나는 그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다. 그 분들은 나에게 축구, 목수일, 전동기 수리법 등 온갖 '사내'의 일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 분들은 나에게 정치를 가르쳐 주었고 신문 기사를 분석하도록
격려하는 등 많은 것을 전해 주었다. 지금은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지만
어쨌든 그 어느 분도 나에게 여성이 '열등'하다고 설득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귀하의 견해를 뒷받침하기에는 충분치 못할 것
같다. 수많은 다른 남자들도 훌륭한 여성들과 함께 성장했지만 그래도 남성의
궁극적인 우월성과 남녀간 분업의 '자연스러움'을 신봉하고 있다.
^26,26^ 사실 그렇다. 그러나 내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실에 의해 그
관찰이 일반화되고 이념화되었다. 그 강시 우리는 나치즘과 싸우고 있었으며
나치즘은 여러가지 끔찍한 잔혹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여성에게
'육아^36,36^부엌^36,36^교회'의 일을 운명지으려 했고 실제로 일부 여성을 나치
친위대원의 번식기계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나치에 대한 나의 증오심은 여성 학대가
유태인, 흑인 등 사회내의 여러 집단에 대한 학대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인종주의, 남녀차별주의 및 종교적 편협성이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이들간에서 간단한 유사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들간의 상호관계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병리들은 다루기 힘든 한 가지 이유는 그 병리들이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치면서 무한히 많은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나라의
직업차별, 법령, 신용관행, 음담패설에서 인종주의와 남녀차별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인종이나 민족 또는 소수 인종집단에 관한 상투적 표현에서,
그루지아인이나 우즈벡인에 대한 러시아인의 우월감에서, 그리고 '영^5,23^미인'이
스페인계 미국인에 대해, 앵글로색슨계가 캐나다의 퀘벡인에 대해,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 등 수많은 패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우월감에 앞서 남성우위의 가정이 선행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혁명 후 3분의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농민들이 아들 아닌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구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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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차별의 기원
* 가부장제의 근원은 무엇인가? 귀하는 남성지배가 하느님이나 유전인자에
기인한다는 생각을 배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26,26^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여러가지 그럴듯한 인류학적^5,23^고고학적 추론이
있다. 그러나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이 별로 없다. 남성우위가 유전적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서 생물학을 내팽개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은 자녀를
낳기 때문에 초기 인간사회에서는 남성에 대해 타고난 불이익 하에 생활했다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인간이 단순한 식량채취 생활에서 수렵생활로 옮겨가게
되자 남자가 여자보다 멀리, 더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고 근육조직이 우월하기
때문에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식량을 찾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냥은 남자의 약탈적 성격과 강압적 기술을 조장하여 여성을 지배하는
남자의 사회적 힘을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작가 장센 쥐레(Marielouise Janssen-Jurreit)는 남성은 여성에 비해
자녀를 더 많이 갖고자 원할 만한 이유가 있었으며 또한 여성은 임신을 자주 하면
할수록 남성과 세력을 다툴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
놓았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생존능력 상실 후에 자신들을 돌봐 줄 자녀를 필요로
했다.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결속되었다. 그러나 자녀가 어머니하고만
결속된다면 부족내의 노령의 남성의 입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남성은
어린 소년들에게 어머니와의 단합을 깨고 남성 세계에 편입하도록 공작을 한다는
것이 장센 쥐레의 설명이다. 이러한 설명은 그 수많은 원시공동체에서 남성의
성년식, 통과 의식, 비밀의식이 성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추측일 뿐이다. 장센 쥐레는 실제로 알려진 것이
매우 적다고 시인하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읽을 때 부담이 적다. 정말로 중요한
질문은 가부장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조건이 크게 다른
여러 사회들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존속되어 왔느냐 하는 것이다.
* 잘 알겠다. 우리는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주의가 산업혁명 훨씬 이전에도
존재했음을 알고 있다.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가? 왜 다른
여러가지 가치관이나 제도처럼 소멸되지 않았는가?
^26,26^ 남녀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여성이 산업주의체제에서도 여전히
일정한 생물학적인 취약점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1 만년
동안의 농업사회에서 태어난 낡은 문화, 낡은 이데로올로기들은 지금까지도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인류가 농경지에서 공장으로 옮겨간 후에도 새로운 노동
형태는 여전히 주로 육체적 힘에 의존했다. 비록 여성도 농가, 광산, 공장 등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하기는 했지만 거칠고 힘든 일을 하는 데는 여전히 남성이 귀중한
존재였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깡통우유 등 조제된 유아식품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어린이를 떼어놓고 멀리 돌아다닐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머니가
집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기를 공장으로 데리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하면 건강에 나쁘고 위험할 뿐 아니라 작업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주: 좀더 지나 육체노동의 중요성이 감소한 후에도 경제 내에서
여성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계속되었다. 또한 여성은 임신과 자녀 양육 요구 때문에
신뢰할 만한 종업원이 못된다는 이유로 이같은 편견이 정당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여성은 임금이 낮고 승진 속도도 느려지게 되었다. 결국 사용자들은 이 체제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체제가 여성을 값싼 노동예비대로서 계속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은 비록 기술^5,23^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생물학적 불평등은 여전히 남겨 두었다. 생물학적인
요소는 지금까지도 인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체제들 중에서 가장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산업혁명은 남녀간의 관계에 전혀 새로운 성격을 부여해
주었다.
* 귀하의 저서에서 귀하는 가정을 여러가지 변화의 핵심으로서 강조하고 있다.
귀하의 생각으로 가정 자체가 변화해 온 가장 중요한 방식은 무엇인가?
^26,26^ 대부분의 '제1 물결' 또는 농업사회에서는 가족의 규모가 커서 여러
세대가 하나의 생산단위를 이루어 함께 일했고 한 지붕밑에서 함께 살았다. 논밭
가까이에 위치한 집은 작업장이었으며 생활의 중심이었다. 집은 또한 학교였고
병원이었으며 노령자들을 돌보는 장소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이 모든 기능을 가정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시장을 상대로 한
임금노동이 공장과 사무실로 옮겨가면서 남성의 일차적 영역이 되었다. 학교가 교육
책임을 떠맡았다. 의사와 병원이 환자를 떠맡았다. 국가는 노령자를 간호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가정의 중요성은 크게 감소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철저하게 재 규정되었다. 자레츠키(Eli Zaretski)가
지적한 것처럼 남성은 상호의존적인 노동의 세계에 진출하여 집에 돈을
가져다주었다. 여성은 집안에 남아 낡은 형태의 생산^56,36^무급이고 상호 의존성이
적으며 또한 공적이 아니고 사적인 생산^36,23^을 수행했다.
* 그러나 산업혁명이 낡은 가부장적 가치관을 온존시켰다고 한다면 이 가치관은
귀하가 강조하고 있는 기술적^5,23^경제적인 혁명보다 구조적으로 더욱 뿌리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인과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26,26^ 몇 가지 사회적 과정은 서로 밀접한 피드백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분리하기가 힘들다. 이 과정들은 서로간에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확실히 이 두 가지 역학 관계는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심지어 가부장적 태도가 산업혁명의 필요한 전제조건이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전체적 과정을 자연에 대한 남성적인 공격성의 표현, 즉 일종의
추진력으로서 환경을 상대로 한 성적인 공격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견해에 별로 동조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남녀차별의 문화는 대중매체에 의해 다듬어지고 새롭게 꾸며지고
보급되었다는 점이다. 이 문화는 여성이 처한 불이익을 정당화하고 여성을 밀폐되고
사적인 세계에 갇혀 살도록 만들고 그들에게 부과된 제약을 수락하고 심지어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이용되었다.
임금노동 경제에 발을 들여놓은 여성들도 저임금의 하위직으로 돌려졌다. 집안에
남은 여성들은 '여자다운' 미덕을 칭송 받았다. 그러나 육아와 가사가 간접적으로
생산에 매우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심지어 기생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업계, 정부, 언론계, 교회 등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여성의 수가
적다는 사실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성의 지위는 낮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프리던(Betty Friedan)의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가 출간되어 현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1960 년대 중반까지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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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신장론의 대두
* 프리던의 저서가 남성우위에 도전한 최초의 책은 아니지 않은가?
^26,26^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책은 하나의 이정표였다. 물론 여권신장론의
길고도 자랑스러운 문헌의 역사는 여러 세기 전으로 소급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호즈(Elizabeth Hawes)가 1948 년에 '사랑만은 안돼요(Anything but
Love)'를 썼다. 이 책에서 그녀는 미국 여성 잡지들의 남녀차별주의를 공격했다.
나는 그 책을 1953 년에 읽었는데 그것은 잊혀진 노^36^예폐지론자이고
여권신장론자이며 작가인 차일드 (Lydia Mariachild)의 전기 집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차일드는 미국에서 최초로 노^36^예제도 반대 책자를 쓴 놀라운
여성인데 나는 아직도 그 당시에 쓴 메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권 신장 운동은
1952 년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두하지 않았다.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제2의 성(The second Sex)'^56,36^분명히 이
분야의 대작이다^36,23^이 1953 년 미국에서 출판되었을 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운동도 항의도 행동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성의 신비'가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갑자기 새로운
여권 신장 운동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말하자면 1953 년의 보부아르와 1964 년의 프리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귀하는 새로 나타난 조건들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26,26^ 물론 그 한 가지는 프리던 자신이었다. 한 가지 설명해 둘 것은 나와 내
아내 하이디는 '여성의 신비'가 나오기 전부터 20 년이 넘도록 프리던과 알고
지냈다는 점이다. 그 책은 여성들간의 새로운 감정을 구체화하여 이를 설명하고
하나의 개념적 구조 안에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프리던 자신은 위대한 조직가로서 역사상 자기 시대의 핵심적인 사회활동가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자기의 거실에서 전국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를 출범시켰다. 이렇게 하여 프리던의 문필력과 활동력, 추진력 그리고
전술적 재능은 현대적 운동을 출발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운동은 그 후
모든 성공적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새로운 형태로 확산되었는데 그 중에는
당초에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 많았다.
그러나 외부적 조건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하이디는 성장한 자녀들을 학교에
입학시킨 30 대 이상의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완전한 한 세대가 1964 년경에
등장하여 여성운동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게 된 것이 핵심적 요소였다고 항상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영리하고 정력적이고 마음이 들떠 집안에서 뜨개질이나
하면서 지낼 수는 없었다.
이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하고 믿었으며 직장 생활과 어머니 역할을
결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자녀들이 성장한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거나 다시 취직하려고 했을 때, 또는 대학으로 돌아가 보충 교육을
받고자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아 왔고 기만당했고 학대받았으며 앞으로도 '생산적'인 역할을 봉쇄
당한 채 집안에서 오랫동안 공허한 나날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여권신장론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국 경제의 어떤
특정한 발전 단계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1930 년대 대공황 중에는 수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났다. 남성이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 중 수많은
남성이 사라져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자 리벳공(riveter)인 로지(Rosie)와 같은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여성이 예비노동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종전 후
남자들이 돌아오자 여자들은 다시 부엌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1950 년대
초에는 실업의 공포가 엄습했다. 갑자기 모든 여성 잡지들이 '단란한 가족', 미취업
여성의 미덕을 떠벌이기 시작했다. 노동 예비대가 이제는 불필요했던 것이다.
1960 년대 중반에 미국 경제가 다시 호황을 맞이하면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을 '빈 둥우리 증후군'(역주: empty nest syndrome, 자식이 없는 부부,
둘만 남게 된 부부)을 겪고 있는 수많은 고학력 여성들과 연관시켜 볼 때 이 시기는
여성운동을 재개하기에 적절한 때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취업과 경제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곧 이어 사회 전체의 밑바탕에 까려 있는 역할구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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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산업주의의 종말
* 이 모든 것이 산업주의의 쇠퇴와 새로운 사회의 등장에 관한 귀하의 논제와
어떻게 부합되는가?
^26,26^ 나는 '제2의 성'과 '여성의 신비'가 출간된 바로 그 시기에 여러가지 매우
중요한 일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전통적 산업주의가 그 절정에 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2
물결'은 절대적 정점에 달했고 변화의 '제3 물결'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10 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예컨대 1956 년은 미국 경제에서 화이트칼라 및 서비스직 근로자의 수가 블루칼라
근로자를 앞지른 최초의 해였다. 제조업으로부터의 이행이 더 한층 진전되었다.
같은 시기에 컴퓨터의 상업적 이용이 최초로 이루어졌고^5,5,5^ 주요 대량발간
잡지들의 폐간과 특수지들의 증가^5,5,5^ 민간제트 항공기의 도입^5,5,5^ 전세계에
걸친 전후의 반식민지운동의 절정^5,5,5^ 피임약의 도입^5,5,5^ 스푸트니크(역주:
Sputnik, 1957 년 10월 4일에 소련이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등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 10 년 동안에 버클리대학의 폭동이 종식되고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가 암살되었다. 산업사회의 전반적 위기가 시작되었다. 이 위기 중에
무엇보다도 산업주의 시대의 낡은 역할 구조들^36,36^선생과 학생의 역할, 의사와
환자, 경찰과 변호사^5,5,5^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관해 의문과
도전이 제기되었다. 정치학자 존선(Chalmers Johnson)은 참다운 혁명을 이해하려면
왕궁이나 방송국을 점령한 사람을 보지 말고 역할 구조가 변혁되었는지의 여부를
살펴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나도 현대의 여성운동을 산업혁명에 의해 정해진 역할 규정을
변화시키려는 투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이 운동은 전통적
산업주의를 벗어나려는 커다란 역사적 운동의 일환이다.
모든 사화운동과 마차 가지로 이 운동에도 광신자가 있고 전술적 실패가 있고
극단적이고 잘못된 요구와 혼란이 있다. 모든 사화운동과 마찬가지로 이 운동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지 않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기간 중에 전개된
민권운동, 학생운동, 반식민지운동 등과 마찬가지로 이 운동 역시 산업혁명에 의해
생성된 세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 운동의 일부였다. 이 운동은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었고 또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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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할의 다양성
* 그렇다면 남녀관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제2 물결' 산업 문명이 '제1
물결' 농업문명을 대체했을 때처럼 '제3 물결' 문명도 가부장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26,26^ 그 질문은 좀 다르게 제기되어야 한다. 한 가지 모델, 즉 획일적인 제도가
생길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전체 사회질서가 새롭고 보다 분화된 노선에 따라
분열^5,23^개혁되고 있다는 내 생각이 맞다면 남녀관계에서 어떤 단일의 지배적
패턴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보다 큰
것은 만화경처럼 다양한 역할 장치^36,36^각기 독자적인 가치관과 독특한 역할
구조를 갖는 여러가지의 서로 다른 공동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모든 사람이 핵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강요받는
나라가 아니라^56,36^그리고 '처녀'나 '총각'과 같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거나 아니면 자식이 없다는 것이 '불임'이나 '성불구'의 증좌로 간주되는 문화가
아니라^36,23^여러가지 다양한 가족구조가 나타나 번영하고 수용되는 그러한 시기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모와 젊은이가 함께 일하는 가내전자근무
가정이건 맞벌이 부부 가정이건 편친 슬하의 가정이건 자녀를 키우는 레즈비언이건
생활 공동체(commune)나 그밖의 여러가지 형태의 가정이건 간에 각 형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남녀관계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다양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 약간 놀라운 말이다. '제3 물결'의 특징이 다양성, 참여, 창의성 등에 있다고
하기에 나는 귀하가 가부장제는 미래의 '제3 물결'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리라고
기대했었다. 귀하는 이러한 다양성에 남녀차별적인 형태들까지도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26,26^ 나는 가부장제적 가치관을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공동체들^56,36^예컨대
모르몬교 공동체와 그밖의 전통주의적 종교 공동체들^36,23^이 존속하리라고 상상해
본다. 나는 그러한 공동체들이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전통주의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남녀관계를 갖는 공동체들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한다. 탈대중화 이론이 옳다면 어떤 단일의 지배적 패턴이 나타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구직 전선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가지 좌절, 여성의 권리에
적대적인 정부,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성운동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낙관해도 좋을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는 지금 체력에 바탕을 둔 경제체제로부터 정신력에 바탕을 둔 체제를
향해 명확하게 옮겨가고 있으며 그것은 여성의 중요한 핸디캡 한 가지를 제거해
주고 있다.
그 다음에 현재의 여성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산아 제한^56,36^임신의 시기와
횟수^36,23^을 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또한 지금은 가정의 여러가지 기능이 회복되고 있기 때문에 자의 또는 타의로
집안에 머물러 있는 여성들도 원하기만 한다면 집에서 일함으로써 교환 경제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서방의 젊은 여성세대는,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갖지 못했던 여러가지 역할선택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보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젊은 남성들에게도 반영되어^36,36^적어도 일부 젊은
남성들은 남성에게 지배권을 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자를 임금근로자로
전락시키고 자녀를 양육하는 정서적 기쁨을 빼앗아 간 구시대의 남녀역할에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갓난아기와 어린이들을 열심히 돌보아
주는 젊은 남성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 중에는 심지어 이런 일에 전적으로 매달려
자기 배우자가 수지맞는 직장에 나가거나 전문직업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얼마 전에 어떤 식당에서
우리 옆자리에 앉은 젊은 부부를 본적이 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남자가 가슴에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는 마치 젖이라도 빨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젊은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부모노릇'이 공동의 책임이며 공동의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보급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예를 들어 일본에서조차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일본에서 내 책을 발간하는 출판업자가 나에게 일본에서 번역할
만한 책^56,36^어머니나 아버지 노릇에 관한 책이 아니라 부모 노릇에 관한
책^36,23^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 귀하는 남성지배가 매우 확고한 일본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26,26^ 서방에서는 일본인들의 남녀역할 및 책임의 구분을 아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복종 정도로 일본인들의 남녀역할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의 일면만을 파악한 것이다. 일본 남성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자기 자신의 영역에서일 뿐이다.
여성은 대체로 집안에 얽매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여성의 권위는
일반적으로 절대적이며 도전 받지 않는다. 전형적으로 일본 여성은 월급봉투를
관리하며 그 돈의 사용처를 결정한다. 또한 자녀교육에 관한 문제도 모두 여성이
결정하는 것이 상례이다.
일본 여성이 중요한 지위에 올라가 있지 못하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제3
물결'의 TV 프로그램 제작을 발의하고 그 핵심적 교섭을 진행하고 프로젝트를
조정한 사람은 바로 NHK의 국제 관계 담당 고위 여성간부인 고바야시 치즈코였다.
그 여자는 뛰어난 유머감각과 컴퓨터 같은 머리를 가진 명량한 사람이다. 그 여자는
여러 해 전 경쟁시험에서 많은 남자들을 제끼고 합격하여 NHK에 일자리를 얻었다.
일본의 가장 중요한 언론인들 중에 우리 부부의 친구인 시모무라 미치코라는
여성은 최근에 미국 퓰리처상에 해당하는 중요한 상을 받았다. 시모무라와
고바야시는 여성으로서 '성공'한 몇 안되는 사람들에 속하지만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초여성(super-women)이 되었어야 했을 뿐 아니라 매우
너그러운 남편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했다. 우리 부부는 또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최고 경영자의 아내이면서도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장에 나가는
몇몇 여성들을 알고 있다.
집 밖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겉으로 존경을 나타낸다. 그러나 집안에서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나는 지금 20세기 초 오사카의 상가에 있는 어떤 상점을
무대로 한 야마사키 도요코의 소설 '본치'를 읽고 있다. 그 상점은 여러 세대 동안
여인들에 의해 경영되어 왔는데 이 여인들은 종업원인 수석점원들과 결혼하여
살림을 주도해 왔다. 섹스와 계급에 관한 테마가 엮어진다. 남자주인공이 사업을
성공시킨 후 이 여자 저 여자를 따라다니며 바람을 피우지만 그의 사생활은 그의
결혼생활을 조종하고 파괴하고 또한 그의 가장 은밀한 개인문제까지도 관장하는
어머니와 할머니에 의해 철저하게 지배받는다. 그는 바깥 세계에서는
'본치(도련님)'나 보스로 행세하지만 집안에서는 여가장제의 희생물에 불과하다.
일본 남성이 한 영역에서의 지배로 얻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의 속박에 의해
상실되는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일본에서도
여러가지 새로운 가족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그 차이점과 분업의
양상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체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
순전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보면 일본은 중요한 자산을 낭비하고 있다. '제3
물결'에서 성공하려면 일본은 과거보다 더 한층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자면 경제 부문에서 여성의 잠재력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또한 수십만 명의 고야시와 시모무라가 꽃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현재의 구조와 같은 일본의 가정생활이 '제3 물결'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중에는 전략적인 경제적^5,23^기술적 계획만으로
새로운 사회로 전진할 수 있다고^36,36^가정생활과 사회제도를 크게 바꾸지 않고서도
일본의 기술^5,23^에너지 및 산업기반을 혁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역할의 혁명이야말로 '제3 물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하고자 한다. 나는 '제3 물결'이 남녀차별의 모든
흔적을 일소하고 수천년 동안 존속해 온 문화적 특징들을 몇십년내에 제거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도기술사회에서도 가부장제의 잔해가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리라고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화의 기본 방향이 현재
남녀평등의 진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믿는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변화했다.
새로운 기술 및 경제적 제도와 함께 새로운 가치관이 등장하고 있다. 내가 너무
낙관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성의 역사적인 해방에 역행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촉진하는 하나의 문명이 사상 최초로 지평선에 떠오르고 있다고
믿는다.
@[ 제I부 예견
@[ 7. 인종^5,23^권력 및 문화
미래는 결국 누구의 것인가?
우리가 갑자기 컴퓨터, 인공위성, 비디오 영상의 세계에 접하게 되고 낯익은
산업이 쇠퇴하고 낯선 산업들이 일어나며 이웃, 사업, 가정생활이 변혁을 겪게 됨에
따라 고통스러운 정치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제기되고 있다.
모든 문명은 계급, 성, 인종 그리고 심지어 지역간에도 각기 특징적인 권력배분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산업문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감에 따라 현재 등장하고
있는 문명이 과연 인종, 민족, 종교적 배경 때문에 차별받고 시달리고 억압받는
지구상의 수백만, 수십억 사람들에게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인지를 알아야겠다는
강력한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종전처럼 미래를 방탄유리를 통해 내다보게 될 것인가^36,36^아니면
우리가 지금 창조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그들도 환영받게 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위태로운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앨빈 토플러
* 귀하가 생각하는 새 문명은 지구상에 백인의 지배를 종식시킬 것인가, 아니면
상석에 일본의 자리를 하나 남겨 놓은 채 백인의 독무대가 될 것인가? 다른
인종들은 미래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우리가 다음
번으로 직면해야 할 문제이다.
^26,26^ 미래의 권력과 경제적인 부가 일본을 동반하건 하지 않건 간에 백인의
독점물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나중에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먼저 몇 가지 정의를 내려보자. 일상적인 용어에서 사람들은
아직도^56,36^마치 인종이란 주로 피부색의 문제이며 몇 가지 범주만 가지면 인간의
가능성을 모두 망라할 수 있기나 하다는 듯이^36,23^이 세계가 주로 백인, 흑인,
황색인, 갈색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인종은 어떤 여러가지 생물학적 특징^56,36^예컨대 피부색, 골격, 머릿결^36,23^들이
다른 집단들에 비해 보다 빈번하게 나타나는 개체군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떠한 점을 보느냐, 어떠한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과학자는 인류를 9가지 인종으로 구분하고서도 이에 꼭 들어맞지
않는 32개 집단이 있음을 발견했다. 또 다른 분류 방식은 200가지나 되는 범주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유전학의 지식이 늘어나면 우리가 인종을 더욱
세분하게 될 것이며 또한 이미 반월상 적혈구증(역주: sickle cell anemia, 빈혈증의
일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러가지 질병에 대한 감염 가능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에 의해서도 분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또는 문화적인 경우가
많으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종집단', '종교', '국적' 등과 같은 용어들조차 모두
엉터리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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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의 막간극
* 물론 용어의 정의상 큰 문제점이 있다. 예컨대 나는 인종 구분을 위한 확고한
생물학적 기준이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잇는 인종적
경계선은 사회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어떤 식으로
결합하더라도 우리는 '인종'이라는 말의 뜻을 대충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일상적인
용어로도 본질적인 문제를 분명히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귀하가 내다보는
미래는 백인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6,26^ 오늘날 이 세계가 아직까지는 기본적으로 백인의 지배하에 있다는
사실에는 별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초강국과 경제대국들은 주로
북반구에 위치해 있으며 주로 백인이 거주하거나 백인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자연스러운 생활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지구의 대부분을 백인이 지배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최근의 일이다.
백인 지배는 약 300--400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쇠퇴기에 있다.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부터 1000 년 전을 돌이켜 보면서 그 중 마지막 몇 백년 동안을 '백인
막간극(white interlude)' 정도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 시기는 유럽인들이 자신의 대륙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신세계를 발견하는 즉시 인디언들을 정복하고 남^5,23^북 아메리카를 차지했다.
그들은 인도양 항로를 발견한 후 원래 지중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의
측면을 포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했다. 그들은
흑인 노^36^예무역을 확대했다. 나중에 유럽의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식민지 진출도
본격화하여 유럽 국가들은 확대 일로에 있는 그들의 경제에 값싼 식량과 에너지,
원자재를 공급해 주는 깔때기(feeder) 나라들의 체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개략적인 묘사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제3 물결'에서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을 붙여 상세히 설명하면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 산업국가들의
필요에 봉사한 방법들을 지적한 바 있다.
어쨌든 '제2 물결'이 이처럼 전세계를 휩쓴 것은 산업주의의 확장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비백인 세계의 정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거대한 백인진출에서 기록된 최초의 좌절^56,36^세계 인종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면서도 미국의 교과서에서 거의 전적으로 묵살되고 있다^36,23^은 1904 년
러시아가 일본군에게 패배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의 열강이 수세기만에
처음으로 비백인국가에 의해 저지당한 사건으로서 아시아 전역에 걸쳐 인종적
자부심을 고취해 주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에 관해 시를 썼다.
일본의 이 승리는 일차적으로 인종의 문제였던가, 아니면 공장굴뚝과 기관총
덕분이었는가? 일본은 그 당시 '제2 물결'식 산업국가로 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얼마 후부터 일본은 약간의 견강부회를 무릅쓰고 '제2 물결'식 제국주의 게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중국^5,23^한국 등의 새 시장과 원료자재를 강탈하면서도
그것이 이 나라들을 백인 제국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이 노선을 견지했다.
* 귀하는 문화적 요소보다 경제적 사항들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인종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26,26^ 그렇지는 않다. 나는 반드시 인종문제보다 노골적인 낡은 경제적 수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물론 그런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나는 제국주의가
단순히 경제문제인 것만은 아니며 식민지 주민들에게 종교^5,23^문화 그리고
열등감을 강요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특히 식민지
주민들이 수세기 동안 주로 백인 제국주의에 의해 뼈아픈 고통을 겪고 난 오늘날에
와서 인종적 감정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그러나 귀하는 이제 그 막간극이 끝나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귀하는 '백인
막간극'의 시작을 어느 정도 산업주의의 도래와 연관시키고 있다. 귀하는 '제3
물결'의 도래가 막간극 종식의 시작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가?
^26,26^ 인과관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제3 물결'이
시작된 1955--65 년의 10 년간은 또한 전세계에 걸쳐 탈식민지화가 절정에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시기에 종전의 여러
식민지들이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후로 전에 유럽, 미국,
소련, 일본 등에 종속되었던 전세계의 수십억 국민들간에 호전성과 인종적 자존심이
고조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 상처받은 자존심은 여러가지로 표현되었다. 그 범위는 노골적인 폭력에서 언어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컨대 최근 몽고인민공화국은 '다운 증후군(Down's
Syndorme)'을 '몽고증'이라고 부르는데 항의했다. 서방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몽고인들은 이 용어가 인종적 모욕에서 나온 것임을 잘 알고 있다.(1860 연대에
다운'Down' 박사가 이 병에 걸린 환자를 '몽고 바보'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이
질병이 '열등인종'에게 격세유전된다는 근거에서였다.)
세계 권력의 인종적 분포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70 년대와 1980 년대에
시작된 아랍의 금융, 정치적 세력의 눈부신 성장은 이미 그 절정에 달해 있다.
OPEC내의 약점과 오도된 개발 전략 때문에 갑자기 얻은 이 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아랍국가들은 지금 세계 권력 구조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에는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에서 극적인 급성장이
이루어졌으며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매우 급속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주민들도 멀지않아 미국, 소련 및 유럽인 들과 함께 국제적 영향력을 공유하게 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아시아에 컴퓨터가 보급됨에 따라, 또한 중국인(그리고 화교)들이 표의문자를 다룰
수 있는 독자적인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고 고립되었던 태평양의 여러 지역
상공에서 인공위성이 자료를 중계하게 됨에 따라, 인도나 싱가포르의 박사들이
맨해튼이나 미니애폴리스에서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게 됨에 따라 앞으로
우리는 동방에서 서방으로 흘러가는 금융^5,23^문화 등 여러가지 영향력의 강력한
흐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컴퓨터의 보급으로 그들의 문화가 서방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비서방적
문화가 들어와 서방인이 컴퓨터나 소프트웨어를 생각하고 디자인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성격을 띠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불분명하지만 변화의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의 중심지가 옮겨지고 있다. 금융업은 지금 전처럼
런던, 뉴욕, 취리히 등에 크게 집중되어 있지 않다. 멕시코 시티는 오늘날 지나친
도시화로 하수구처럼 오염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여섯의 유럽의 수도보다도
지적이고 활기를 띠고 있어 예술가, 정치적 망명가, 지식인들이 들끓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소설은 지금 남미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다 물질적인 두 가지 다른 요인들도 세계 권력의 분산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전세계에 걸친 무력 배분의 변화이다. 여기서 그 타당성이나
위험성을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엄연한 사실은 지금은 매우 작은
나라들이라 할지라도 매우 치명적인 무기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작은 나라들이 백인 막간극 시기(전기간은 아니고)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말대꾸'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옳건 그르건 이 역시 세계 권력 균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전적으로 간과되어 온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자원이다. 아직도 '제2 물결' 대량생산의 필요성에 기초하고 있는 현 체제는 몇 가지
자원의 대량 소비에 의존하고 있다. '제3 물결'의 탈대량화 생산 방법이 보급되고
생산 그 자체가 탈중앙집권화되면 우리는 보다 다양한 여러가지 자원을 소량으로
색다르게 소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구상에 경제력의 철저한 재배분이 더 한층
진전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여러가지 차원에서 세력과 권한의 역사적
재배분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순전히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이다. 나는 지구상의 나머지
나라들이 '제3 물결' 문명에서 제외되거나 미래가 어떤 한 종족의 전유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백인 막간극이
'총천연색' 미래에 의해 대체되리라고 생각한다.
* 귀하는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26,26^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나는 추측하는 수밖에 없지만 아프리카는 가장 힘든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제2 물결' 제국주의 열강이 아프리카에 강요한 광적인 정치
패턴^56,36^부족 체제 위에 첨가된 가짜 민족국가, 가짜 의회, 가짜 옥스퍼드와 가짜
소르본 등^36,23^에 그 일단의 원인이 있다. 아프리카는 그 남단에서 곪아터지고
있는 인종주의적 상처와 그 지역이 갖는 엄청난 전략적 중요성과 더불어 앙골라에서
케이프 혼에 이르기까지 초강국의 게임과 대리전쟁의 일차적인 놀이마당이 되어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부족간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고삐 풀린 부정부패와 여러
정권들의 잔혹성 등 여러가지 내부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 귀하는 어쨌거나 초강국인 미국과 소련의 중심 세력이 쇠약해지고 피압박
민족의 세력이 성장하는 등 변화로 소용돌이치는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5,5,5^.
^26,26^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억압도 중요한 문제이며 오늘날 수많은
전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의 통치자들에 의해 야만족으로 억압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억압은 별개의 문제이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재와
같은 세계 권력의 조잡한 불균형 상태가 안정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산업화시대를 벗어나 '제3 물결' 문명으로 이행해 가면서도 지역간, 인종간의 세력
배분이 지금과 같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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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천연색 문제
* 귀하가 말하는 '총천연색' 권력배분은 미국에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는가? 비단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적 문제들도 제기되지 않을까?
인종주의 전통에 젖어 있고 초강국 지위에 익숙해져 있는 미국인들은 국내에서조차
인종적^5,23^민족적 소수집단과의 권력공유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
하물며 '제3 물결' 세계에서의 권력공유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26,26^ 미국인들은^56,36^그리고 소련인들도^36,23^마치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의
상실에 익숙해져야만 했던 것처럼 앞으로 20--30 년 동안에 세계 권력의 새로운
배분에 익숙해져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적,
문화적 타격으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문화적 오만과 일종의
지역감정같은 것이 아직도 미국인 기질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상기해야 할 것은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소수 집단의 학대는 결코 양키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역사기록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또
어떤 점에서는 미국 쪽이 더 낮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적어도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국민적인 자기반성이 있었다. 이 나라는 멜팅 포트(역주: melting pot,
잡다한 인종이 뒤섞여 사는곳. 미국을 가리킨다), 민권운동, 베드퍼드
스타이버선트(Bedford-Stuyvesant)와 와츠(Wats)의 불길을 겪으며 내 왔다. 그리고
별로 잘 시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종적, 민족적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법률과 판례들이 나와 있다. 다른 나라의 사정들이 반드시 이와 같은 것은 아니며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1960 년대 할렘과 와츠 등 여러 흑인지역사회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영국
언론들이 마치 관용의 전통이 있는 영국에서는 결코 인종주의가 그 추악한 머리를
들지 못하리라는 듯이 미국이 당한 불행을 악의적인 즐거움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런던과 그밖의 여러 지역에서는 파키스탄과 서인도제도 출신
청소년들과 영국인 깡패들간의 공방전이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영국에서도
실업률은 소수집단에게 불리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주: 나라마다 백인과
비백인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영국의 센서스는 인종 문제를 직접 조사하지는
않지만 신뢰할 만한 추정치는 영국의 비백인 수를 약 400 만으로 잡고 있다.
1972--81 년 중에 전체 실업은 138%가 늘었다. 그 중 비백인의 실업은 325%가
증가했다.) 또한 지하철역과 공공건물들에서 인종주의적인 낙서를 볼 수 있다.
인종차별이라고 해도 좋고 소수민족 박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에서도
알제리인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증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1981 년에
프랑스 공산당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흑인, 반아랍 감정에 호소했었다.
프랑스 공산당 입후보자인 마르셰(Georges Marchais)는 청중에게 '파리 교외에
새로운 할렘이나 새로운 소웨토(Sowetos)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위 좌익과 우익 모두에 반흑인, 반아랍, 반유태주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파시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최대의 노동조합 연맹인 노동총연맹 (CGT:
Conf^45^ed^45^eration G^45^en^45^eral du Travail)은 실제로 경쟁 노조를 이른바
'시온주의' 단체라고 공격했다. 또한 최근 아랍인에 의한 것이건 프랑스의
반유태자들의 소행이건 간에 파리에 있는 유태 교회당들이 폭파되고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의 병폐를
생각나게 해주고 있다.
한편 서독에서는 하층민인 터키 이주민들에 대한 증오가 매우 광적이어서 심지어
사회민주당 정치인들까지도 이 증오심에 호소할 정도이다. 슈미트 자신도 최근
터키인들의 '마늘냄새'를 조롱했는데 이것은 미국으로 치면 수박을 빗댄 농담에
해당한다.
일본인들은 '인종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물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미국의 상황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56,36^내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는 극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수민족과 이질문화에 대한 억압을 뜻할 뿐이다^36,23^가 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그 뿌리가 매우 깊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소련인들의 주장처럼 양키의 음모도 아니고 자본주의적 현상도 아니다.
실제로 나는 모스크바에서 지낸 어느날 밤 백인 인종주의의 고전적인 한 단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 그것이 언제였는가?
^26,26^ 1976 년이었다. 우리 부부는 미국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에 가
있었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 두 명의 젊은 아프리카인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한
사람은 모스크바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이미 모스크바의 어떤
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여러 해 동안 소련에서 생활한 그 두 사람은
모스크바를 몹시 증오하면서 모스크바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관해 털어놓았다.
우리는 함께 호텔 여자 종업원에게로 가서 어떤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 아프리카인들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나와 내 아내 하이디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들 중 한사람이 호텔 종업원에게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그 종업원은 마치 그 아프리카인이 엘리슨(Ralph Ellison)의 '보이지
않는 인간(invisible mam)'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꿰뚫어 보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엉터리 영어로 띄엄띄엄 우리에게 직접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
여자종업원에게는 두 명의 아프리카인 이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련에 사는 일부 비러시아계 소수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소련의
유태인 박해는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회교도와
그밖의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비열한 인종차별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러시아인들이 중국에 의한 소위 '황화'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소련은 복수민족국가이지만 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붉은 군대 내에서 인종적^5,23^민족적 폭력사태가 일어났다는 보도들이
있지만 이 경우 장교들은 러시아인이고 하사관은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사병들은
대체로 다른 민족이나 인종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종차별적인
러시아인들은 자기 나라의 중앙아시아계 주민들을 '추르카(churka)'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멍청이 또는 쓸모 없는 바보를 뜻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발트지역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을 '쿠크(cuke)'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돼지라는 뜻이다.
한편 또 하나의 노동자 천국인 체코슬로바키아는 베트남과 쿠바에서 값싼
노동력을 수입해 오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모잠비크에서도 대규모의 노동력을
들여올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프라하의 베트남인들은 서독의 터키인이나 미국의
흑인들이 익숙하게 당해 왔던 것과 같은 종류의 대우를 직접 경험했다. 이 곳
불량배들이 베트남인들의 합숙소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졌던 것이다. 다음날 밤에
베트남인들이 반격을 가했을 때 체코 경찰은 그들이 어느 편을 드는지를 분명히
들어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어느 신발공장의 체코인 노동자들이 베트남인 고용
금지 정책을 요구했다.
여기서도 사우스 보스턴이나 리버풀의 경우처럼 인종과 계급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컨대 건설업 분야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이 체코
노동자의 3분의 1 도 안된다. 베트남인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당국은 합숙소의 전기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유럽 언론은 이 베트남 노동자들이 체코에 대한 베트남의 전쟁 채무를 갚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정상 임금에 못 미치는 푼돈을
받고 일하고 체코 정부는 그 차액을 챙기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더 있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만 덧붙이고자 한다.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자들 중에는 개인적으로는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우고 또한 그들의 의식 속에서 인종주의적 태도를 뿌리 뽑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자체는 온갖 평등주의적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적 불의를^56,36^남녀차별
문제의 경우처럼^36,23^하나의 부차적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그 논거는
계급투쟁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평등이 불가능하다는 데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여권신장론자와 흑인들, 그리고 인종차별과 싸우는 라틴 아메리카나 아시아인들은
지금까지 거듭 그들의 목표를 연기하거나 또는 노동계급의 목표에 종속시키도록
요청 받아 왔다^36,36^대체로 노동계급의 주류는 바로 남성 노동자들이다. 이런 말이
'제3세계' 국민들에게 먹혀 들어갈 리 없다.
그리고 우리가 다 잘 아는 일이지만 소위 '제3세계'도 그 점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 나는 수단에서 피부가 검은 비회교도인이 되고 싶지 않다. 또 피지에서의
피부가 검은 피지인과 동인도인간의 싸움이나 말레이시아에서의 중국인과 마라야인
간의 싸움에서 지는 쪽에 서고 싶지도 않다.
요컨대 그것은 비참한 광경이다. 이 모든 점에 비추어 나는 미국의 실태를
성적표의 꼭대기나 맨 밑바닥에 매기고 싶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외국인 배척
사상이 도처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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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동일성의 층
* 귀하의 저서가 제시한 개괄적 고찰에서 귀하는 사회분석에서 흔히 간과되기
쉬운 여러가지 요인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남녀차별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서도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기술경제적 변화의 물결들에
일관되고 있는 일련의 태도와 사회 관계들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귀하의
변화 이론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26,26^ 내 생각에는 인종적^5,23^민족적^5,23^종교적인 것과 그 밖의 차별
형태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일정한 형태의 집단적 자기동일성 확인(group
identification)을 원하는 개개인의 진화론적 필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느 정도의
응집력을 갖춘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살아남기가 유리했을 것이다. 모든
사회는 내가 말하는 이른바 '정신영역(psycho-sphere)'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역사회 및 자기동일성에 관한 개념들을 망라한다.
그러므로 '소속'또는 '공동체'라는 개념과 다른 사람들과의 자기동일성 확인행위는
모든 인간사회제도의 기본적인 접착제와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논의해 온 변화의 물결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상 변화의 물결이 있을 때마다 개인적,
집단적 자기 동일성의 성격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농업이 지구를 지배했던 1 만년 동안, 즉 '제1 물결' 문명의 기간동안에
개인들은 어쨌든 출생시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가족, 씨족, 부락, 종교 등 여러
집단에 대해 자기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동일시했다. 누구나 어떤 한 가족 또는
인종 집단의 일원으로서 태어났으며 자기가 출생한 부락에서 평생 동안 살았다.
그의 종교는 부모와 그 곳 공동체가 정해준 것으로서 평생 동안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처럼 개인과 집단의 가장 기본적인 충성심은 출생시에 결정되었다. 이
문제에 관해 개인은 선택의 여지가 적거나 없었으며 집단적인 자기동일성은 평생
동안 변치 않는 것이 상례였다.
산업혁명이 변화의 '제2 물결'을 전지구상에 확산시켰을 때 소속의 필요성은
여전했지만 개인 및 집단적 결연관계의 성격은 크게 변했다. 이제 개개인은 자기
자신을 자기 부락이 아니라 국가에 동일시하도록 권장되었다. 계급의식이 또 다른
형태의 자기 동일성 확인체 및 소속감을 제공해 주었다. 분업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집단들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사실상 '제2 물결'이 자기 동일성의 새로운
'층(layer)'을 마련해 주었다.
종전의 여러가지 자기동일성 확인형태가 그대로 남아있기는 했으나 자기동일화
특성(identifying feature)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층과 통합되었다. 새로운
자기동일성 확인형태가 대두됨에 따라 낡은 확인 형태들은 그 정서적 호소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예컨대 '제2 물결'이 가족의 기능을 박탈함에 따라 가족의 유대가 약화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노령자 부양의 책임이 자녀에게서 국가로 옮겨간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화되고 지방적 유대관계가 약화한 것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직업에 대한 유대관계를 제외하면 지배적인
자기동일성 확인형태는 여전히 출생에 의해 정해지거나 아니면 크게 영향받았다.
이제 '제3 물결'이 도래하면 이 역시 자기동일성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
변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우리가 보다 이질화되고 분화된 사회로 이행해 간다는 나의 견해가 옳다면
앞으로 훨씬 더 다양한 자기 동일성 확인체와 집단들이 나타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태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지금 미국 등 여러 고도기술국가들의 정치 조직체들이 보다 많은 단편들로
분해되고 있고 소비자 시장도 보다 다양한 개인적, 집단적 필요를 반영하고 있다. 또
보다 많은 소문화(sub-culture)들이 주류 집단의 지배적 가치관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원심분리적 과정은 소수집단들 자체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각 사회의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소집단들 자체가 보다 작고 자기 규정적
(self-defining)이고 보다 다양한 미니 그룹들로 쪼개지고 있다. 이제는 미국 흑인을
동질적 집단으로 보거나 스페인계 미국인들을 모두 동일집단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정치적인 소수집단의 구성요소가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 자체가 변화되어
가고 있다. 전에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차이점들이 문화적^5,23^정치적인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노령자, 신체장애자, 동성연애자 등 대중사회에서
학대받았다고 생각되는 집단들간에 호전적인 조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자기동일성 집단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격동하는 이러한 사회적
과정은 탈대중화 매체, 즉 특수집단 발간물, 유선 TV, 직접방송 인공위성, 비디오
카셋 등에 의해 결정적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더구나 개인은 출생에 의한 속박에서 점점 벗어나 자기 규정의 선택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가족^5,23^인종집단 등의 구성원으로서 출생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3 물결'이 진척됨에 따라 새로운 사회구조에서의 개성과
이질성의 증대에 부응하여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범위를 늘려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제3 물결'의 등장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뚜렷한 가속화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택하는 자기동일성 확인 체도 역시 보다 일시적인
것으로 되어 각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기 동일성의 일부를
채택하기도 하고 벗어버리기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보다 오래되고 아마도 보다 뿌리깊은 인종적, 민족적 자기동일성의
층위에 겹쳐져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논거에 비추어 볼 때 '제3 물결'의 도래는 가장 오래된
인간문제 ^56,36^자기동일성^36,23^에까지도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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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우월성
* 그러면 이제는 이론에서 현실로 되돌아가 보자.
^26,26^ 좋다.
* 귀하가 설명한 여러가지 변화에도 불구하고 넓은 의미에서의 인종주의 세력은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귀하가 말하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등장하는
경우 소수 민족들은 품위 있는 직업을 얻기가 더욱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현재 이미
모든 고도 기술 국가들에 존재하고 있는 하층민의 규모가 커질 위험에 직면하지는
않겠는가? 예컨대 미국의 경우 현재 유력한 소득과 지식에 접근할 기회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일 미국 경제가 계속 컴퓨터, 전자 등 '제3 물결'
산업으로 가차없이 이행해 간다면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이 직장을 얻기가 더욱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26,26^ 그것은 기술이 아닌 사회정책에 관한 질문이다. 나로서는 실업이나 인종적,
민족적 차별을 해결해 줄 어떤 비법도 갖고 있지 못하다. 나는 또한 소수 집단
청소년들의 생활 기회에 관해 무작정 낙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따라서 현재의 정치적 소강상태가 오래 지속될 가망성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만일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에서 오는 모든 부담을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운다면 이 문제를 국회나 법원에서 길거리로 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내 의견으로는 현재의 정부정책은 심지어 소위 '좌익'에 대한 정책조차도 이러한
위험성을 크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민란이 발발할 가능성과 장기간
지속될 수 없는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불안이 일어날 가능성을 조금씩 조성해 가고
있다. 국민은 궁지에 몰리면 결국 반격으로 나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주
소규모의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예컨대 흑인 빈민가가 불에 탄 1960 년대 말 같은 상황이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과거를 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그 반작용은 실제로 악화될 수도 있다. 나는 온갖
종류의 전율할 만한 사건과 함께 폭력사태, 면밀하게 조직된 테러활동이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사태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분노한 흑인들이 방화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이웃지역의 방화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다음
번에는 방화하겠다'는 협박이 흑인에게서만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다수집단의
가난한 실업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밖의 여러 집단들도 깊은 좌절감과 불만을
지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라. 이제 '제2 물결'은 쇠퇴하고 여기에 토대를 둔 일자리는 고갈되거나 값싼
노동력이 있는 다른 나라들로 옮겨가고 있다. '제3 물결'이 일어나 새로운
일자리들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얼마나 많이 생기느냐는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현명하게 이 이행을 계획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그들이 어리석게 대응한다면 무정부적 폭력사태를 포함하여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은 항의운동에 관한 한 길거리가 비교적
평온하다. 그것은 오늘날의 실업이 한 세대 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당수의 실업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겸업
가정과 심지어 맞벌이 가정들이 있다. 또한 직업 세분화(job sharing)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고 파트 타임 근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아직 고르지
못해서 런던을 벗어나면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길거리를 걸어다니는데도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영업이 안된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큰
타격을 받았으나 댈라스는 그 정도가 덜하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면 정치적 안정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으며 이 점은
시대에 뒤진 구식 정치인이나 경제계 거물들도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현재 이 모든
나라의 상류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야단났군. 노동자들이 살벌하게 휩쓸고
다니는군'하는 식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사업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불쾌감, 당혹감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려하는 점은 일종의
1930 년대의 재판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달라지고 이제는 항의 운동의
형태조차도 더욱 탈대량화, 탈중앙집권화하여 예측하기도 힘들고 진압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즉, 소수 민족들^36,36^모든 종류의 소수민족과 심지어
미니집단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 곳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아픈 곳이며 또한 분쟁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이 소수민족과 미니집단의 지도층에게는 어떠한 충고를 하겠는가?
귀하는 그들이 어떠한 전략을 사용해야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26,26^ 오늘날 소수민족 지도층이 저지르고 있는 핵심적인 실수는 기업과 정부의
최고 지도층이 저지른 실수의 거울 또는 동전의 뒷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실수이다.
곤경에 처한 소수민족에게 충고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자, 나는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당신들 문제는 당신들 스스로 풀어야 한다.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리고 특히 배부른 사람은 말하거나 글을 쓰기가 아주 쉽다.
힘이 없으면 이 모든 필요한 일을 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나는 또한 이제는 낡은 전략, 낡은 정책, 낡은 접근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책도 그것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면 가망이 없다고 말해 줄 것이다.(주: 워섬(Offie Wortham)이
1980 년 7월 29일 미국 조지아주 아틀랜타 소재 마틴 루터킹 2세 센터(Martin
Luther King, Jr., Center)의 비폭력 사회변혁연구소(Social Change Institute on
Non-Violence)에서 행한 연설문 '조직 종교는 새로 등장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가?'(Can Organized Religion Be Relevant in the New Emeiging Society?)를
참조.)
한 조각의 '제2 물결'적 '조치'^56,36^예컨대 사양산업의 취업기회^36,23^에만
매달린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전략은 충분치 못하다.
나는 경제의 '제3 물결' 부문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경제의 '제2 물결' 부문에서보다는 성장하는 '제3 물결'
부문에서 어떤 소득^56,36^예컨대 훈련 프로그램^36,23^을 얻어내기가 훨씬 용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의 것을 얻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내일의 것을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보다 큰 의미가 있다.
그러자면 현재 고도기술국가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숨겨진 구조개편^56,36^경제적
격변^36,23^을 면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즉 컴퓨터, 통신과 같은 새로운 산업, 보건과
같은 최신의 서비스 산업, 전자의료와 같은 지원산업으로의 이행이 그것이다. 그것은
지방적, 지역적 생산으로의 장기적 이행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생산의
탈중앙집권화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탈도시화가 갖는 함축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56,36^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36,23^'제3 물결'
취업 기회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이미 실업자가 발생한 곳에서는
'제3 물결' 취업기회를 창출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것은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집에서 할 수 있는 노동형태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설사 취업기회가 많이 마련되더라도 연령, 자심감 결여, 퍼스낼리티 파탄 등의 이유
때문에 새로운 산업부문에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그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것은 자조사업, 지역사회 개발,
노동제공형 특별주택소유제도(역주: sweat equity, 황폐 건물에 입주자의 노동력을
부가시켜 일정 기간 저가임으로 거주시킨 후 소유권을 주는 정책) 등의 새로운
접근방법들을 면밀히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량생산 부문에서
소수민족 노동자들의 취업 기회만이 아닌 수많은 취업기회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서비스와 재화를 '발명'하고 그 시장을 발견하도록 문자 그대로
함께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관계 당국^56,36^국가기관뿐 아니라
주로 지방적, 지역적 당국^36,23^에 대해 이러한 정책을 지원하고 위기극복에 필요한
구제자금을 제공하도록 최대한의 정치적 압력을 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녀교육과 병행하여 훈련과 재훈련이 모든
종합계획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3 물결'이 밀어닥침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소수집단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문화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침입군이
어디에서인가 쳐들어와 느닷없이 모든 사람은 에스페란토로 생각하면서 한 발로
스키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배워야 할
일도 많고 적응해야 할 일도 많다.
최근 우리는 일곱살이나 열살짜리 자녀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부모나 조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듣고 있는가. 어른의
자존심은 항상 '나는 그런 것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어'라든가 '나는 세상일에
뒤떨어지고 있다니까'하는 말로 귀결되곤 한다. 우리 주변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인식이 점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컴퓨터만이 아니라
비디오이기도 하고 노동, 성, 국가, 여가, 권위 등에 대한 새로운 태도들이다.
'제2 물결' 사회에서는 대중문화가 있었으며 우리는 이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제3 물결' 사회에서는 단일의 문화라는 것은 없고 단지 계속
변화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들이 있을 뿐이다. 이 문화는 소수집단 구성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누구라도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가 '제3 물결' 경제로 나아갈수록 문화는 더욱 중요시된다. 이러한
산업들에서는 대부분의 새로운 직종들이 문화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새로운 경제는 상징물 취급능력, 이미지와 추상물 취급능력, 논리적으로 말하고
표현할 줄 아는 능력 등을 우대하는데 이러한 능력들은 오늘날까지도 산업화 이전의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에게는 전연 불필요하고 대우받지
못하던 기능이었다.
'제2 물결' 시대의 낡은 경제는 시간엄수, 단일의 중심적 권위에 대한 복종,
관료체제의 기능에 대한 이해, 평생을 체념적으로 기계적, 반복적인 일을 하는 자세
등을 높이 평가했었다.
새로운 '제3 물결' 경제는 또한 내가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특질들도 높이 사지만
그 정도가 반드시 같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인식능력과 교육에 후한 보수를 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밖에도 장차 공급부족 상태가 될 여러가지 개인적 능력이 있다.
또한 '제3 물결' 경제는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사람, 융통성이 있는 사람, 한
사람의 상사보다는 여러 명의 상사를 섬기며 나아가서는 동시에 상사 노릇까지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대할 것이다. 이 경제체제는 호기심과 탐구심이 강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이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기를 열망하는 사람, 혼란하고
모호한 가운데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우대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평생을 한 분야의 전문가로 지낼 자질은 없지만 그 대신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아이디어를 이곳 저곳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을 우대할 것이다. 이
경제체제는 개성과 기업가 정신을 우대할 것이다.
이 경제체제는 중재자와 조정자의 구실을 잘하고 분쟁조직들을 오가면서 쌍방의
말을 들어 이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기업가 정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능력은 지금 당장이라도
빈민가나 길거리 깡패들 중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제3 물결' 경제는
자수성가한 사람, 실천가를 우대하지만 동시에 창조적 몽상가들도 전보다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그것은^56,36^이 점이 중요하다^36,23^주로 과거 속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을 우대할 것이다. 어떠한 일개
인종적^5,23^민족적 집단이나 종교 또는 국민도 이러한 특질을 독점할 수는 없다.
서인도제도 문화이건 필리핀, 알제리, 터키, 쿠바 또는 한국의 문화이건 간에 모든
문화는 각기 수세기 동안 발전해 온 독자적인 사회적 성격을 지닌 채 '제3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각 문화는 이러저러한 특질을 우대하기도 하고 처벌하기도 했다.
그것은 과거의 문화와 새로 등장하는 미래의 '제3 물결' 문화간의 결합으로서
새로운 문명^56,36^과거의 대중사회보다 소수집단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자이크의
성격을 훨씬 더 강하게 띨^36,23^에서 여러가지 소수집단들이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를 크게 결정하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이 모든 기량과 특징들이 적어도 읽기와 같은 초보적인 능력을 수반해야
할 것이며 또 이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쓰기와 어느 정도의 (높은 수준일 필요는
없다) 수학 능력도 수반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주변의 반문맹자와
문맹자들을 보면서 이러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지 에 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이 새로운 기량들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우주침략자(Space
Invader)'와 같은 비디오 게임을 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폭탄이 아니라 콤마를
떨어뜨려 어린이가 문장 속에 올바른 콤마를 찍음으로써 보상을 받게 된다. 이것은
잘만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량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전연 새로운 학습
도구의 최초의, 그리고 매우 원시적인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수학이라고? 좋다.
삼각법이나 미적분학을 익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는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소형의 휴대용 계산기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나는 조금 전에 여러 문화는 각기 다른 인간적 특질을 높이 산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각기 잃어버린 자기 동일성 회복을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서 자신의 역사를 열심히 재발견하고 있는 시기에 살고 있다.
억압받은 민족들은 열등하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그들의 강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시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문화는 어떤 호박과 같은 보석 속에 결정체로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제3 물결'은 수많은 문화들을 포용하게 될 것이다.
흑인 정신과 의사 파농(Frantz Fanon)이 쓴 자랑스럽고도 강력한 책 '검은 피부와
흰 얼굴(Black Skin White Mask)'은 세계의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지만 나 자신도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유색인의 과거에서
나의 기본 목적을 끌어내지 않을 것이다^5,5,5^. 나를 과거의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하여 과거를 찬양하고 싶지 않다.'
과거만으로 불충분한 것은 비단 소수민족들^56,36^고도기술국가에서 사는 흑인
소수민족이건 지구상의 백인 소수민족이건^36,23^뿐만이 아니다.
@[ 제II부 전제
삶이란 불충분한 전제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예술이다.
버틀러(Samuel Butler)의 '노트북스(Note-books)'에서
이리로 오라, 잃을 것이라곤 선입견밖에 없다.
셰클리(Robert Sheckley)의 '옵션스(Options)'에서
@[ 8. 전제적인 말
전제는 출발점이며 시초이다. 우리는 흔히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속된 말로 그의 '출신(coming from)'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앞서 이 대담의 일부를 나의 개인적 배경, 연구
방법론, 그리고 지적 모델에 할애하기로 합의했다. 나의 일대기를^56,36^또는
개략적인 약전도^36,23^제시할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 제시된 생각들에 어느
정도의 맥락을 제공할 정도의 정보는 필요하리라. 또한 우리는 어떠한 저자가
자기의 모든 가정들을 남김없이 표출토록 한다는 것은 아무리 능숙하게 부추긴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설사 그 중
몇 가지만이라도 검토할 수 있다면 나머지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보다 사적인 이 질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이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배운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 기술, 통신, 인종차별, 남녀차별, 경제학, 철학 및
가정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제부터의 대화는 아주 다른 방향을 취하게 될 것이다.
앨빈 토플러
* 토플러는 누구인가? 귀하는 전세계에 사상적으로 영향을 미친 몇 안되는 현대의
저술가들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인간으로서의 귀하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나머지 인터뷰에서는 그 영향과 그것이 갖는 철학적 뿌리를 밝혀 보고
싶다. 그러면 귀하 자신의 자아상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귀하는 스스로를
본질적으로 작가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사회비평가나 미래주의자라고 생각하는가?
^26,26^ 그건 좀 거북한 질문이다. 내가 '저자', '사회비평가', 또는
'미래주의자'라는 생각은 1차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밖에도 행복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버지, 6척 장신, 비행기 조종사, 아들, 형제, 영화애호가, 납세자,
지식인, 미국인 등으로도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누구'냐를 묻는 당신의 질문은
나의 어느 측면에 적용되는 것인가? 그리고 어느 시점의 나를 말하는 것인가?
* 귀하는 그처럼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가?
^26,26^ 나는 전에 '연속적 자아(serial selves)'라는 개념에 관해 쓴 적이
있는데^36,36^우리 모두는 물론 시간적으로 변화한다. 당신이 내가 30 년 전에
'누구'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용접공, 주물공장 기계공, 천공 프레스 운전공,
대장장이 조수였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그 밑바탕은 대학 졸업자,
야심많은 시인 겸 소설가, 정치적 과격파, 낭만주의자였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 그러면 지금은? 이러한 설명들 중에 아직도 해당되는 것이 있는가?
^26,26^ 물론이다. 나는 지금도 대학 졸업자이다.
* 지금도 시인인가?
^26,26^ 나는 지금도 시를 쓴다.
* 정치적 과격파인가?
^26,26^ 재래식의 의미로는 그렇지 않다.
* 그러면 귀하는 지금도 낭만주의자인가?
^26,26^ 나는 이상주의자로 잘못 불리어지고 있다. 나는 약간의 낭만주의적 기질이
있다. 지금도 우주왕복선의 장면이라든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보면
흥분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사물들을 낭만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회의주의자이다.
* 귀하가 다른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다른 점 중의 한 가지는 5 년 동안 노동자
생활을 했다는 데 있다. 공장이나 주물공장 노동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도약이 아닌가?
^26,26^ 그렇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작가가 되기를 원했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줄곧
여러가지 사회문제와 정치적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은
내가 공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 그러나 귀하는 왜 공장노동을 선택했는가? 공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은 선택
가능성을 별로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귀하는 그것을 선택했다. 왜 선택했는가?
^26,26^ 여러가지 동기가 섞여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여자친구였던 하이디도 나와
함께 가서 경험을 나누었다. 내 동기의 일부는 심리적인 것이었다^36,36^집을 떠나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자 하는 젊은이의 정상적인 욕구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수천명의 제대군인들과 함께 대학에 들어갔다. 그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보다
성숙하고 세상물정에도 밝았다. 그들은 과달카날(Guadalcanal)이나 노르망디를
둘러본 사람들이었다. 나는 연령이 6개월 모자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중서부 지방의 공장으로 가면 상아탑 세계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에 뛰어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는 문학적인 동기도 있었다.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은 포도를 땄고
런던(Jack London)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었다. 내가 존경하는 그밖의 작가들도
트럭을 운전하는 등 여러가지 일을 했었다. 나는 그것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고 또
노동계급의 생활에 관해 위대한 소설을 쓰기를 꿈꾸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치운동가였다. 1940 년대 말에 나는 남부지방을 돌아다니며
인권 운동을 했었다. 나는 데모에 참가했으며 공장이야말로 우주의 중심부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산업계'로 뛰어든다는 것은 또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도울 기회가 있음을 의미했다. 이 모두가 무모한 짓이었다.
* 무슨 일을 했는가?
^26,26^ 천공 프레스 운전공이었다. 또 제철소의 기계공이 되기도 했고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금속 마무리 공으로도 일했다. 그밖에도 소형 착암기(jack hammer)를
사용하고 포크 리프트를 운전하는 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 자전거에 줄무늬를
칠하기도 했고 승용차와 트럭도 만들었고 창살유리에 쓰는 격자를 찍어내기도 했다.
고장난 컨베이어 벨트로 수리했고 배기관도 청소했고 아프리카 광산에 보낼
집진설비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이디는 여러 해 동안 알루미늄 주물 공장에서 일한
끝에 미국 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 Workers)의 직장대표로 선출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 못지 않게 공장에서 배웠다. 한편으로 나는 미국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고양'을 표방하는 좌익 지식인들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영자들의 어리석음^36,36^위험한 작업조건을
방치하는 무정함, 육체 노동자를 다루는 사무직원들의 사악함과 건방진 태도 등도
직접 목격했다.
나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중에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이나 '영광스러운
프롤레타리아' 같은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계급을 낭만화하는 태도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불결하고 따분하게 때로는 잔인한 일자리에 갇혀 있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서 풍부한 지성과 품위, 그리고 유머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조립라인이나 천공 프레스 앞에서도 단 하루도 일해 보지 않았으면서도
유식한 글을 쓰면서 노동자들은 결국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그러한 지식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평생 동안 키워
왔다. 또 그들은 노동자들은 책임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또한 영어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즉 박사학위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다른 학자들만 읽을 수 있도록
학술용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것보다 평범한 문장으로 글을 쓰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일생에서 노동자로 일한 기간을 더 단축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실제로 노동자 생활을 증오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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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관의 용접공
* 귀하는 어떻게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저술생활로 옮겨갔는가?
^26,26^ 언론계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내가 일하면서 배운 용접에 관한 글을
썼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노사관계, 파업, 경제문제,
노동조합 문제, 근로조건 등에 관해 글을 썼다.
나에게 공장은 대학원인 셈이었다.
* 귀하는 노조신문에서 일했고 나중에 노동계의 언론인이 되었다. 귀하는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일하다가 1950 년대 말에 어떤 신문의 워싱턴 주재 특파원이
되었다.
^26,26^ 맞다. 나는 펜실베이니아의 어떤 일간지를 위해 백악관과 국회를 3 년
동안 취재했었다. 나는 아마도 백악관에서 일한 유일한 용접공 출신일 것이다! 나는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취재했고 또한
군축문제에서 반트러스트 문제 등 온갖 문제에 관한 상원과 하원의 청문회도
취재했다. 나는 노동성, 상무성, 내무성 등 여러 부서와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및 연방무역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 등의 기관들도 취재했다. 나는 자유기고가로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지, '위싱턴 스타(Washington Star)'지와 심지어
외국 언론에까지 기사를 송고했다. 미국의 핵정책에 관한 내 글이 일본의 '아사히
신문'에 게재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 후 워싱턴을 떠나 '포천(Fortune)'지에
취직했다.
* 그것은 사상적으로 커다란 전환이었음이 틀림없다. 노동신문에서 대표적인
경제지로 옮겨갔단 말인가?
^26,26^ 나는 그 잡지사에서 노동담당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내가 한 일은 어느
누구에게 사상적인 지식을 공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를 해설하는 일, 즉 그
복잡한 관계를 어느 정도 쉽게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딱 한 번 어떤 편집자가 나의
칼럼에 노골적인 반노조 선전문구를 집어넣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철강업계의
노사교섭에 관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나는 내 주장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얼마 안가서 보다 일반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크라이스러사에서의 금리 스캔들에 얽힌 어떤 구역질나는 이해대립을 조사하였으며
코카콜라사(The Coca-cola Co.)의 마케팅을 연구하기도 했다. 나는 또한 미국
예술계의 경제문제에 관한 기사를 제안한 끝에 그 기사를 쓴 적도 있다.
* 귀하가 기술문제와 그 사회적 의미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26,26^ 최근에 나는 내가 학생시절에 편집했던 오래된 대학잡지 복사본 한 권을
발견했다. 그 잡지에는 기술과 사회변화에 관해서 언급한 내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내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의 경험을 통해 그
관심이 첨예화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포천'지를 떠난 직후인 1961 년에 IBM사가 나에게 컴퓨터와
사무자동화의 장기적인 조직문제에 관해 백서를 써 줄 것을 요청해 왔다.
그것은 참 오래 전의 일로서 워드프로세서와 이른바 '미래의 사무실' 문제가
거론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또한 교육시설연구소(Educational
Facilities Laboratories)라는 어떤 연구재단을 위해 정보검색에 관한 연구도 했다. 또
전국을 누비면서 오늘날의 인공두뇌 발달의 기초를 다진 학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 저술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26,26^ 나는 여러 잡지를 상대로 다시 자유기고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유기고가라는 것은 고약한 직업으로서 여러 분야의 연구를 하도록 훈련받아야
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조사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잡지에
실을 수 있는 형태로 집필하되 이 모든 일을 마감시간에 맞추어야만 한다. 나는
이때부터 책도 쓰기 시작했다.
* '문화소비자(Culture Consumers)' 말인가?
^26,26^ 그렇다. 이 책은 1964 년에 출판되었는데 미국 예술계의 경제문제를
분석한 것으로 문화적 엘리트주의를 공격하였다.
* 예술문제와 문화적 엘리트주의 공격에 관한 책에서 어떻게 그 6 년 후에 '미래
쇼크'로 옮겨갈 수 있었는가?
^26,26^ '미래 쇼크'는 실제로 그 전에 내가 워싱턴에서 겪은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책이다. 나는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사회적^5,23^기술적인 중대한 변화가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뒤만
돌아다보고 있었다. 즉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고 심지어 아주
기본적인 변화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치가들이란 다음 번 선거
이후를 내다볼 능력이 좀처럼 없다.
여기서 나는 시간과 시간 범위(time horizon)에 관해,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변화와 미래를 올바로 다루지 못하고 있고^5,5,5^ 대응할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정부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 '미래 쇼크'를 집필하는 데 몇 년이나 걸렸는가?
^26,26^ 착상에서 탈고까지 5 년이 걸렸다. 그러나 물론 이 기간동안에도 나는
여러 대중잡지뿐 아니라 '기술과 문화(Technology and Culture)'라든가 '미국정치,
사회학회 연보(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등 학술전문지들에 글을 쓰고 있었다. 또한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미래사회학
강의도 시작했으며 코넬대학의 객원교수로서 다른 교수와 함께 기술과 가치관의
관계에 관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우리들은 가치변화와 기술발전간의 피드백에 관해
복잡한 모의실험을 개발했다.
러던 중 1970 년에 '미래 쇼크'가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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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 속의 라디오
* '미래 쇼크'의 출판은 귀하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26,26^ 여러가지로 바꾸어 놓았다. '미래 쇼크'가 얼마나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는 그 충격을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미래 쇼크'가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충격은 내가 처음으로 일반 독자와 직접
서신을 주고받는 저술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전에도 미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잡지들에 글을 실은 적은 있다.
그러나 잡지에 실린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대체로 하찮은 것이어서 운이 좋아야
편지 몇 통이 고작이었다. 비교적 반응이 좋아 '뉴욕타임즈 북 리뷰(New York
Times Book Review)'지가 1 면에서 취급해 주었던 '문화 소비자'의 경우에도
독자의 편지가 기껏해야 몇 통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래 쇼크'의 경우에는
독자에게서 홍수처럼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새벽 2시에 전화를 걸어와 방금 그
책을 다 읽었다면서 여러가지 문제를 토론하고 싶다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 그 사람들은 평소에 모르던 분들이었는가? 귀하와 전혀 접촉이 없던
사람들이었는가?
^26,26^ 그렇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책의 내용에
흥분하여 한밤중이나 새벽에 전화를 걸어^56,36^때로는 장거리 전화도^36,23^책의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반응을 보이고 논평하고 비판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여
주는 것이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그리고 종국에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예를
들어 '미래 쇼크를 읽다 보니 마치 당신이 최근 몇 년 동안 내 생활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식의 논평을 해오곤 했다.
때로는 다음과 같은 심히 개인적인 반응도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가족이 이사가는
문제를 의논해 왔지만 집안의 뿌리를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그같은 이사가
왜 혼란을 가져오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다.' 때로는 '나는 미래 쇼크를 읽기
전까지는 자살할 생각으로 있었다^5,5,5^'라든가, 아니면 '당신은 생물학의 새로운
발전에 관해 언급했는데 우리 집 아이가 이러저러한 병으로 앓고 있으니 도움을 줄
과학자를 소개해 줄 수 있겠는가'라는 등의 매우 감정적인 편지도 있었다. 또는
보다 학문적인 내용의 편지들도 있어서 '당신은 인구문제에 대해 미흡하군요'라든가
유전학 또는 그 밖의 여러가지 문제를 이론적으로 진지하게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편지를 받는 작가가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편지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 귀하는 그 후로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하기 시작했는데^5,5,5^.
^26,26^ 아니다. 그 전부터도 여러 해 동안 강연을 해 왔다. '문화 소비자'가
출판되었을 때 강연알선업자가 나에게 제의해 왔었다. 그래서 그 후로 약간의
강연을 하고 있었다. '미래 쇼크' 이후에 일어난 사태는 내 강연회가^56,36^뭐랄까,
말하자면 정치집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제는 보통의 청중이 아니라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군중들을 상대로 하게 되었으며^36,23^뭐랄까, 일종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분위기는 감전된 것 같았다.
엄청난 토론과 성토와 비판이 뒤따랐다.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난 1970 년과 1971
년은 미국이 60 년대에 대한 계속된 반동과 베트남 사태, 백악관의 닉슨(Richard
Milhous Nixon)등 그 당시의 모든 극적인 사건들로 들떠 있던 시기였다.
* 청중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26,26^ 주로 대학생들이 많았다. 대학마다 강당이 꽉 들어찼었다. 그러나 대학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경제계 단체와 정신과 의사에서 금융인에 이르는 각종
전문직업인들의 단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그러나 '미래 쇼크' 때문에 그처럼 흥분한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다른 점은
없었는가?
^26,26^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었고 주로 중산층의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청중들이 많았다. 그러나 독자층은 대학 캠퍼스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젊은 회사간부, 가정주부, 지역사화운동가, 교사, 목사, 도시계획자,
공무원 그리고 장발의 자녀들을 걱정하는 부모들까지 광범위했다.
이 책의 성공은 우리 부부뿐 아니라 출판사까지도 놀라게 하였다. 이 책이 종이
표지의 보급판으로 출판되었을 때 그 당시 판매된 보급판 중에서 가장 비싼 정가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책은 날개돋친 듯이 팔렸다. 보급판을 출판한 밴텀
북스(Bantam Books)의 편집장은 '미래 쇼크'가 전체 출판계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것은 이 책이 미국에서 그처럼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최초의 학문적인 저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래 쇼크'는 또한 프랑스, 서독, 일본 등 수십개 국가들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후 이런 나라들에서 와 달라는
초청장이 잇달았고 이렇게 해서 나의 국제화가 달성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 1963
년에 나와 내 아내는 한 달 동안 잘츠부르크 미국학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부부가 유럽의 지식인들과 함께 지낸 최초의 기회였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 부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사태를 미국인의
시각에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미래 쇼크'와 특히 '제3 물결'은
초국가적인, 또는 전세계의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것이었다. 집필을 위한
연구와 사례의 선정 등도 모두 그 점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미래 쇼크'에 대한
반응은 국제화 과정을 완성시켰고 또 여러가지 기회를 열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전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국가원수, 노벨상 수상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 어느 나라의 국가원수들을 만났는가?
^26,26^ 루마니아에서 우리 부부는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와 여러 시간
동안 함께 지냈다. 또 캐나다에서는 트뤼도(Pierre Elliott Trudeau),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휘틀럼(Edward G. Whitlam), 일본에서는 스즈키 젠코와
미키다케오를 만났다. 우리는 뉴델리에도 갔었는데 내가 국립 물리학연구소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간디(Indira Gandhi)가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한동안 함께
지내자고 초청했다. 우리는 그 초청을 받아들였다. 간디는 그 당시 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연설하는 가운데 '미래 쇼크'를 인용하고 있었다.
한 가지 실토할 것은 우리는 당초 '미래 쇼크'를 급속도의 기술적^5,23^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는 고도기술사회의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비기술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변화로 인하여
엄청난 압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냈다. 시골부락에 사는 사람들도 역시 '미래
쇼크'를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 간디 여사의 인상은 어떠했는가?
^26,26^ 그 분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우리에게 아대륙의 지정학에 관한
초보적 강의를 해준 데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 그분은 실제로 벽에 걸린 지도 앞에
서서 친절한 여교장처럼 우리에게 강의를 했다. 최근 간디의 권위주의적 발작에
비추어 그 분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비웃는 인도인들이 많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간디가 아마도 그 모든 무거운 긴장으로부터 잠시 쉬기 위함인 듯
우리를 가르치는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당시 그분의 바깥
사무실에는 군장성들로 가득차 있었다.
* 무슨 일 때문이었는가?
^26,26^ 그 당시는 마침 동파키스탄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방글라데시를
수립한 직후였다. 그 당시 파키스탄군의 약탈을 피해 600 만이 넘는
동파키스탄인들이 국경을 넘어 인도로 쏟아져 들어왔다^36,36^전쟁이 끝날 무렵
피난민의 수는 1,000 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인간비극이었는데도
서방측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아무도 이 사태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지금 돌이켜 보건대 닉슨은 파키스탄 쪽에 '기울어져' 살인자들에
대한 무기공급을 늘리고 있었다.
인도는 최선을 다해 피난민들에게 식량과 주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실제로
루스러(P. N. Luthra)라는 퇴역장교가 주도한 인도의 피난민 구호사업은 훌륭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찾아가 만났었다. 루스러는 하루 20시간씩 현장에서 일하면서
승용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는 여전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당시 간디 수상의 사무실 밖의 장군들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피난민 행렬에 대응하기보다는 파키스탄과 전쟁을 벌이는 편이 오히려 더 값싸고
손쉬운 일이라고 설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 간디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26,26^ 우리는 그 분에게 국경을 폐쇄할 의향인지를 물어 보았다. 간디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피난민 중의 상당수가 인도에 친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난을 막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더니 그 분은 자기가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간디는 자기가 국경을 봉쇄하려고 시도하면
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날 간디가 어떤 편집증적인 기분에 젖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어떤 음모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 다음 날 나는 간디의 도움을 얻어 비행기를 타고 캘커타 동쪽의 국경지대로
가서 먼지투성이의 뜨거운 길을 따라 쏟아져 들어오는 피난민들을 만나 보았다.
나는 피난민 수용소를 찾아가 그들이 올려다보기 힘든 정도의 3층으로 높이 쌓은
콘크리트 하수구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비참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해 언론의 관심을 촉구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언론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내가 디크 카베트
쇼(Dick Cavett Show)에 출연하여 방금 목격하고 온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던 일이
생각난다. 카베트가 나를 신경질적으로 저지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쇼가 끝난 후 그가 나에게 사과하면서 그 날의 주제는 '진정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시청자들이 TV 스위치를 끄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시청자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말을 중단시킨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일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으며 또 용서하지도 않고 있다. 그는 내가 그 쇼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그 후에 간디 수상을 다시 만나 보았는가?
^26,26^ 만나보았다. 뉴욕에서 열린 어떤 파티에서였다. 그 곳에는 긴즈버그(Allen
Ginsberg), 케이지(John Cage)와 몇몇 방송인과 예술가 등 미국의 지식인들이 많이
참석했었다.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도 왔었고 러너(Max Lerner)와
에릭슨(Erik Erikson)도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우리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 때문에 그 날 저녁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는 시시하고 하찮은 화제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긴즈버그는
마약문제에 관해 떠들어댔다. 그러니 간디가 우리 모두를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우리는 그 일로 기분이 울적했다.
* 귀하는 제왕처럼 '우리(역주: we, 영어에서는 제왕의 자칭인 짐을 'we'라
한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26,26^ 그것은 제왕의 자칭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작가이며 집필은 혼자서 한다. 나는 책의 내용을 구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집필한다. 그러나 항상 대단한 동반자 한 사람이 거들어 주고 있다. 하이디는 나의
여러가지 의견에 대한 상담자이고 엄격한 비판자, 편집자이며 지적인 동료이다.
아내는 나와 함께 순회강연을 다니면서 연단에서 질문을 받기도 하며 혼자 강연을
할 때도 많다. 내가 연구나 집회, 회의참석을 위해 여행할 때 하이디는 내
아내로서가 아니라 정식 동료 또는 참여자로서 동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하이디가 브라질에서 유럽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국가원수, 각료 그밖의 거물급
인사들과 독자적인 교류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의 필자명은 단수이다. 그것은 내가 그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밖의 일에서는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말은 제왕의 자칭이 아니라 1인칭 복수일 뿐이다.
* 그러면 두 사람은 이러한 여러 나라에서 어떠한 테마를 강조하는가?
^26,26^ 우리는 경제개발 문제와 변화속도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논하며 또 물론
내가 말하는 이른바 '예상적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토론하곤 한다. 우리가 1976 년에
폴란드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우리가 만난 공산당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기에레크(Edward Gierek) 동무가 1 년에 한 번씩 공장을 방문하고 있고
게다가 노동자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적이건 또는 그 어떤 다른
형태이건 특별히 민주화할 필요가 없다고 다짐했었다. 기에레크 동무에 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주: 기에레크는 1970 년에서 1980 년까지 폴란드 공산당
당수로 있었으나 자유 노조 운동이 일어나 권좌에서 밀려났다.)
남아메리카에 갔을 때 우리는 제3세계의 미래에 관해 토론했다. 보고타에 도착해
보니 그 곳 밀림에 있는 13개 라디오 방송국에서 농민들에게 '미래 쇼크'의 내용을
방송하고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 그것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을 들었는가?
^26,26^ 그 당시 라디오 방송망과 인쇄소를 경영하는 훌륭한 분이 농민들에게
초보적인 공중보건, 소독, 공중위생, 육아법 등 삶에 필요한 지식을 방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미래 쇼크'에서 몇 구절을 선정하여 방송하게 된
것이었다.
일본에 갔을 때 삿포로 중심부에서 '미래 쇼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는데 히피 차림의 서방의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일렬종대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들은 자기들이 직접 샀거나 아니면 부모에게서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미래
쇼크'를 손에 들고 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촬영하던 지역 주변의 산 속에서
살고 있던 스위스, 미국, 독일의 젊은이들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온갖 종류의 믿기 어려운 경험을 했는데 그것은 그 책이 매우
개인적이고 또 정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같은
모든 변화는 한 작가의 미래를 뒤바꿔 놓게 마련이다. 여러 사람 앞에 일종의
권위자로서 등장한다는 것은 어딘지 쑥스럽고 불안한 노릇이다. 나는 그같은 위치에
서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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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리비전 매체
* 귀하는 최근에 또 하나의 영화 촬영을 마쳤는데^36,36^이번에는 '제3 물결'을
토대로 한 TV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다. 맞는가?
^26,26^ 그렇다.
* 제작자는 누구인가?
^26,26^ 지난 번 '미래 쇼크'를 TV 특별 프로그램으로 제작할 때 우리는 저작권을
메트로미디어 퓨로듀서즈사(Metromedia Producers Corp.)라는 제작회사에 팔아
넘겼었는데 그렇게 해놓고 보니 제작결과에 대해 발언권을 별로 가질 수 없었다.
우리는 제작자 겸 감독과 프로그램 내용을 놓고 심하게 다투었는데 그 사람은
기술^56,36^모든 기술^36,23^의 놀라운 미래의 모습에 관해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이디가 그러한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 하이디는 공동제작 협정을 맺는 등 그 프로젝트의
여러 측면에 깊이 참여했기 때문에 직접 제작담당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를 처음 추진한 것은 일본의 BBC라고 할 수 있는 NHK방송국이었다. 일본에서
'제3 물결'을 출판하기도 했던 NHK는 이 책을 토대로 6시간 내지 10시간 짜리
연속물을 제작하자고 제안해 왔다.
운이 좋게도 나는 비행기에서 마침 연속물 제작을 완성하고 돌아오던
갤브레이스를 만나게 되었다.(주: 경제학자 갤브레이스의 TV 연속물은 여러
나라에서 방영되었다.) 나는 그 연속물의 제작이 얼마나 오래 걸렸으며 그의 반응은
어떠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3 년이 걸렸다고 말하면서 갤브레이스 특유의
간결한 말로 '말 한 마디가 사진 1,000장과 맞먹는다'고 털어놓았다.
* 귀하의 반응도 그러했는가?
^26,26^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완성된 책 한 권을 토대로 연속물을 만드는
데 3 년 동안이나 소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내용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압축했다. 결국 우리는 NHK와 캐나다 최대의 교육방송망인
TV온타리오(TV Ontario)와 공동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점에서 참다운
복수문화적 제작이었다. 각 단계마다 일본인, 캐나다인, 미국인들을 참여시켰다.
제작팀이 촬영하러 나갈 때는 3개국 사람들이 모두 참여했으며 대개는 촬영 국가의
현지주민들도 참여했다. 우리는 9개국에서 촬영했다.
* 귀하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26,26^ 나는 내레이터 역할을 맡았고 또한 많은 집체교육을 받아 대본도 썼다.
* 그것이 책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는가?
^26,26^ TV는 책이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일을 해낼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작가로서 공동사업^56,36^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옮기는 데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사업^36,23^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내가 함께 일한
사람들은 맹렬하여 짜증을 부리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단지 책에 담긴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런데도 그 매체가 갖는
여러가지 요구 사항은 엄청났고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다.
우리는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했다. 또한 가장 좋은 카메라와 매우 정교한
오디오 장비를 사용했다. 편집실은 마치 휴스턴 우주비행 관제실 같은 모습이었다.
그 결과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함께 영상시가 곁들여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TV라는 것은 그다지 손쉽고 자연스러운 매체가
못된다.
* 귀하가 인쇄물 지향적이기 때문인가?
^26,26^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이디와 나는 모두 고질적이고 대단한
영화광이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관에 간다. 어느 나라에 가건 어떤
언어로 된 영화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TV를 이용하여 복잡한 아이디어를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멋있는 방법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었다.
*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 TV형식에 갖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귀하의 정치적^5,23^사회적인 사상을 전달할 수 있었는가?
^26,26^ 물론이다. 그 프로그램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쓴
책에서처럼 우리의 모든 정치기구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우리는 정치구조뿐
아니라 다수결 원리에 관한 가정조차도 재고해야 할지도 모르며 인권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또한 교육제도의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과 전통적 사양산업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도 논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고 또한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도 중앙집권화와 에너지로부터 가정생활, 프라이버시, 환경오염,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개발, 그리고 고도기술국가들의 경제위기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TV에 대한 귀하의 견해가 달라졌는가?
^26,26^ 물론이다. 시각적 양식으로만 표현 가능한 것이 무척 많다. TV는 위력이
있으나 또한 여러가지 커다란 한계도 지니고 있다.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려면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5,5,5^.
내레이션을 작성하는 일조차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번 미국의 다큐멘터리 뉴스
쇼를 시청할 때 잘 들어 보라. 내레이션이 전보문처럼 생략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TV 언어에서는 '그리고', '또는', '그러므로'와 같은 단어들^36,36^요컨대
문어에서 논리적 관계를 설정해 주는 단어들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여러가지 논리적 관계들이 미결 상태로 남게 된다.
이렇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내레이션은 시각 영상이
흐르는 동안에 짤막하게 등장한다. 논리적 어구를 생략하면 편집자가 내레이션을
화면에 일치시키기가 쉬워진다. 화면이 이기고 논리가 지는 것이다. 시각영상은 또한
내레이션의 진행 속도로 결정하는 때문에 여러가지 한정사와 제한문구가 밀려나게
된다.
* 그러나 TV는 수많은 시청자에게 전달된다는 점 말고도 그 자체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26,26^ 지당한 말이다. 예컨대 우주 발사체가 꽃잎처럼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장면이라든가 예쁘장한 어린 소녀가 들판을 달려가는 장면 등^36,36^이런 장면들은
시적인 상징력을 갖고 있다. 연상작용을 통해 여러가지 개념을 동시에 전달한다.
나는 시각적 연상작용을 좋아한다.
* 그밖의 다른 교훈은?
^26,26^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는 속임수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교훈도 있다.
배경을 조작하고 음향을 일치시키고 삭제된 소재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편집
기술을 사용하는 등 수천 가지 농간을 부릴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신문들도 기사
내용을 왜곡하고 적당히 뜯어 맞추는 등으로 개관적 현지 보도처럼 보이는 내용
속에 편집자의 편견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TV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그 어떤 정치적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전혀 새로운 비디오 기술 세대가 등장하고 있어 감독이나
편집자들은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해 내기가 더 한층 쉬워지게 될 것이다.
나는 디즈니사(Disney Studios)의 영화 '트론(TRON)'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화는
지적인 면에서는 따분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충격적인 역작이었다. 그 영화는
컴퓨터에 의한 애니메이션과 이미지 조작으로 어떠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를
암시해 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제3 물결'을 제작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필름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실제로
최첨단 컴퓨터 애니메이션 시설을 사용했었다. 이 시설의 공학적 모델에서 여러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시설을 사용하면 어떤 이미지^56,36^그림, 사진 또는
심지어 맥주 깡통 같은 물체 등이라고^36,23^를 거의 무한 정화수의 다른 이미지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암소 한 마리를 추상적인 그림으로, 그리고
이 추상화를 다시 움직이는 소용돌이 모양의 이미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
결국 나는 현장 로케이션을 통해 실제로 촬영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수많은 영상들이 스튜디오 안에서 전자적으로
제작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실제 인물^56,36^그것이 대통령일 수도 있다^36,23^의
사진 한 장만 가지면 그 보통 사진을 전자적으로 움직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자는 또한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자에게 크림 파이를 던지거나 뇌물을 받는
등 제작자가 원하는 무슨 일이든지 하도록 테이프를 꾸며낼 수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 기술자들은 이런 기술을 '장면 시뮬레시션(scene simula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이 함축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이 우리들의 현실 감각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
^26,26^ 현실 자체에 대해 어떤 작용을 하느냐고? 결국 현실의 시뮬레이션도
현실의 일부이다. 그것은 거울의 무한한 연속과도 같은 것이다. 이같은 비디오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특히 컴퓨터,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 및 데이터 저장과 결합될
때 단순한 오락물이나 다큐멘터리 또는 일반적 의미의 정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56,36^사고의 수준^36,23^과 우주내에서의 인간에 대한 인식
자체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 9. 델피의 신탁과의 차이
최근 수십년 동안의 학문적 발달 중에서 가장 널리 오해를 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미래학'의 등장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베네수엘라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두뇌집단(think-tank)들이
미래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세계미래학회(World Future Society)는
기업체 기획담당자와 급진적 환경보호론자에서 교사, 컴퓨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공칭 회원수가 수만명에 달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 모험적인 사업을 조롱하면서 석유수출금지 조치와 같은 커다란
사건을 예로 들어 즐거운 듯이 이러저러한 미래주의자들이 그 사건을 '예언'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곤 한다.
반면에 진지한 미래주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예언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을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현재를 연구하고 의사결정자들에게 정책대안들을 제시하고 간과되고
있는 위험과 선택대안, 그리고 결정의 결과 등을 지적하면서 가끔씩 몇 마디 귀중한
'예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분야의 인간들처럼 그들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56,36^그리고 알 수 없는 것^36,23^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델피(Delphi)의 신탁과는 참으로 천양지차라고 하겠다.
앨빈 토플러
* '미래 쇼크'와 '제3 물결'이 모두 부분적으로 미래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귀하는
'미래주의자'라고 불리울 때가 많다. 그 용어가 귀하를 설명하기에 적절한가? 귀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귀하는 이 용어에 귀하를 '미래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의미하는 바와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26,26^ 나는 '미래주의자'라는 용어를 배척하지 않는다. 그 용어는 매우
존경스러운 지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일차적으로
'미래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일차적으로는 스스로를 저술가, 작가
그리고 사회비평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인정하지 않으며 역사를 위한 역사도 신봉하지 않는다.
또한 미래를 위한 미래^56,36^내일의 세계에 관한 일종의 형체 없는 호기심 같은
것이라는 의미에서^36,23^도 신봉하지 않는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에서라면 몰라도 그 누구에게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사실상 현재의 결정을
개선하는 한 가지 방편에 불과하다.
물론 나는 어느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래를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내가 알기로는 신문의 점성가들이나 허풍장이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미래에 관한 가정을 세우는 데 정신적 활동의
상당한 부분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단 10분도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커피잔을 집으려 할 때 나는 은연중에 미래에 관한 가정을 세우게 된다. 즉 커피
잔은 내 손이 닿을 때까지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것은 물론 극히 단기적인 예측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사태에 대한 어떤
가정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개인들이 계속적으로 이같은 가정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 문화들도 미래에 관한 어떤 강력한 이미지들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각 문화마다 시간에 대해 상이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화들은 과거에 크게 편향되어 있다. 그러한 문화에서는 어린이들이 지혜와 지식이
과거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양육되는데 실제로 어떤 문화에서는 그것이 대체로
옳다고 할 수 있다. 극히 느린 속도로 변화하여 동일한 생태환경, 동일한 사회제도,
동일한 기술 체제가 수백년 또는 수천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문화에서는 어린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의 하나는 아마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던 일,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의 부모가 하던 일을 그대로 흉내내는 일일 것이다. 구세대의
지식은 수천년 동안의 실행을 통해 연마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모의
지혜가 현 세대의 지혜보다 더 완전할 것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와 문화에서는, 특히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변혁기에는 과거는 현재의 결정과 미래의 가능성으로 이끌어 줄
지침으로서 그 확실성을 더욱 더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미래의
가능성에 관해 명확한 사고를 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 된다. 문화의 시간적 편견은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머리에는 과거에 관한 가정뿐 아니라 미래에 관한 가정들로
가득차 있다. 현재에서의 우리의 의식적 결정은 이 두 가지의 가정들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조정도 변화해야
한다. 나의 저서 '미래 쇼크'는 어느 정도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 그러나 현재 우리가 하는 행동 또한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확실하다.
심지어 여러가지 예측조차도 미래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자기성취적이면서도
자기부정적인 예언을 하고 있다.
^26,26^ 그렇다. 내 생각으로 그 대표적인 예는 역시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와 오웰이다. 이 두 사람은 산업사회의 미래를 황량한 조직 통제 사회로
예측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에 반대하는 압력을 가중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들의
미래상은 본질적으로 고전적 산업사회, 즉 '제2 물결' 문명의 직선적 예측이었다.
그들은 '제3 물결'이 함축하는 변증법적 전환을 내다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위대한 천재였으며 그들의 경고는 우리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 그러나 동일한 논법이 귀하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 않겠는가? 즉 미래에 관한
귀하의 예측도 미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26,26^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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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학의 창시자
* 귀하가 '제3 물결'에서 예측한 미래는 본질적으로 고정적, 불변적인 것인가?
우리는 그같은 미래의 필연성에 입각하여 계획을 짜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관해서는 수많은 예측이 가능하며 귀하가 '제3 물결'에서 예측한 미래는 그 중 한
가지^56,36^귀하가 가장 가능성이 높고 또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36,23^가능성에 불과한 것인가?
^26,26^ 바람직한 것(preferable)과 개연적인 것(probable)을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분명히 나는 사회비평가이지 중립적인 점장이는 아니다. 나는 내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집필하는 목적은
현실을 바라보는 신선하고도 새로운 방법을 고취하고 또한 저자인 내가
소망스럽다고 생각하는 사회 변화의 길을 순탄하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라고 있는 미래는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다.
사실 복수의 미래에 관한 이같은 생각은 오늘날 대부분의 미래주의자들의 사고에서
적대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미래에 관한 최근의 사회사를 살펴보는
것이 흥미 있을 것이다. 미래주의자라는 단어는 파란 많은 과거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의 최초의 현대적 용법은 아마도 예술 분야에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등장한 일단의 화가, 시인, 조각가들이
스스로를 '미래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들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장문의 수필을
집필하여 이 용어를 둘러싼 미학적 이데올로기를 창조했다.
시인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 화가 세이버리니(Gino Severini), 조각가
보우초우니(Umberto Boccioni) 등이 기계와 기계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예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그밖의 여러 나라에서 속도^5,23^행동^5,23^기술에 매혹되어
출발한 이 예술가들은 또한 폭력^5,23^전쟁 그리고 결국은 파시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상이 불신 받게 되면서부터 '미래주의자'라는 영어는 대체로 지식인들의
대화에서 사라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전연 새로운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그
최초의 인물은 독일인인 플레히트하임(Ossip Flechtheim)이었다. 그는 우선 미래
예측의 필요성과 학교에서의 이른바 '미래학(futurology)'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영어로는 괴상하게 들리고 어딘가 사기꾼 같은
느낌을 주지만 독일어 등 다른 언어에서는 전혀 다른, 덜 부정적인 연상을
일으킨다.)
1960 년대에 들어와서 나 자신을 포함한 일단의 학자, 작가, 언론인들이 변화의
장기적 함축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관심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그들(또는 우리)은
서로 아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서 여러가지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다.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언론인이며 민주주의자이고 반파시스트인 융크(Robert
Jungk)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래의 인간화를 촉구했다. 프랑스의 베르제이(Gaston
Berger)는 '프러스펙티브(Prospective)'라는 학술지를 창간했다. 소련의 어떤 고독한
역사가는 비스투지프라다(I. Bestuzhev-Lada)라는 가명으로 미래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폴라크(Fred Polak)라는 상원의원은 미래에 대한 문화적
태도에 관하여 방대한 역사적 조사서를 집필했다. 맥헤일(John Mc-Hale)이라는
스코틀랜드인과 헝가리 태생인 그의 아내 겸 동료 코델(Magda Cordell)은
풀러(Buckminster Fuller)와 함께 미래의 자원소요량에 관하여 상세한 연구를
시작했다. 경제학자이며 시스팀 사상가인 볼딩(Kenneth Boulding),
RAND사(Research and Development Corp.)의 수학자이며 철학가인 헬머(Olaf
Helmer), 우주공학자인 고든(Ted Gorand), 물리학자인 칸(Herman Kahn),
정치학자인 테이터(Jim Dator), 사회학자인 벨(Daniel Bell) 등이 모두 미래에 관한
연구에 나섰다. 나 자신도 이 무렵부터 체계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1965 년에
와서는 이 문제에 관한 집필을 시작했다. 1966 년에 나는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미래사회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저술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주브넬(Bertrand de
Jouvenel)이다^36,36^콜레트(Colette)의 의붓아들인 주브넬은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럼주 밀수업자로 일하다가 나중에 언론인이 되었고 그 뒤에 정치학과 경제학,
그리고 예측의 전체 개념에 관하여 매우 심오하고도 학문적인 저술을 남겼다. 그는
'휴처리블즈(Futurribles)'라는 단체를 창설했는데 이 단체는 지금도 그의 아들인
위그(Hugues)의 지도하에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 이 분야에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가 저술한 '추측술(The Art of Conjecture)'이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주브넬은 오늘날의 언어에 '미래들'이라는 단어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다시 말해서 주브넬과 오늘날의 대부분의 미래주의자들에게는 미래가
하나가 아니다. 복수인 미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순간에도 여러가지
가능성 있는 미래들(possible futures)이 존재한다. 이 가능성 있는 미래들 중에서
이보다 적은 수의 있을 법한, 또는 개연성 있는 미래들(probable futures)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개연성 있는 미래들 중에 이보다 더 적은 수의
바람직한 미래들(preferable futures)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관한 저술가들 중에서 일부는 가능한 것을 강조한다. 예컨대
공상과학소설가들은 '가능성 있는 미래들'을 폭넓게 제시한다. 이에 반해 정부나
기업체에서 예측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개연성 있는 미래들'에 관심을 갖는다.
이런 사람들은 가능성 있는 미래들에 관한 저서를 별로 실제성이 없는 유토피아적
또는 디스토피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게 될 가능성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여러가지 미래들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미래들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들도 그들의
예측에 얽매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 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누구보다도 먼저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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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적인 사상가
* 그들의 방법론은 어떠한가?
^26,26^ 그들 중에는 직선외삽론자(straight-line extrapolator)에 불과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어떤 분야^56,36^기술, 경제학, 에너지, 자원, 인구^36,23^에서든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추세들을 밝혀 내고자 노력하며 이를 단순히 미래로 연장한다.
그리고는 현재 진행 중인 과정과 현재 존재하는 제도는 사실상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래에도 그대로 운영되고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획작성 업무를 한다고 하는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실제로는 이런 식의
직선외삽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은 극히 취약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방법이다.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현재의 추세를 그대로 연장하는 것이 안전하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안전하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때가 많다.
직선외삽법은 지금과 같은 혁명적 격동기보다는 안정기에 훨씬 더 적합하다.
나는 이런 외삽론자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의 1인당 소득이 10 년 동안
'x'만큼 증가해 왔으므로 2000 년에는 'y'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세계인구가
이러저러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느니 70억 명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태가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설명해 주는 모델이 없는 한 기존 추세를
그대로 미래에 투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예측' 형식은 일반적으로 중립적이고 편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선추정법은 다른 예측 또는 추측형식에 못지 않게 편견에 흐르기 쉽다.
첫째, 무엇을 외삽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추적할 가치가 있는 추세는 무엇인가?
이 선택은 가치판단을 요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개재된다. 예컨대 기업체나 정부의 계획작성을 살펴보면 그 대부분이 경제문제에
크게 치중되어 있어 마치 경제가 추적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항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실제로는 또 한 가지 숨겨진 편견이 있다. 그것은 입수 가능하고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종류의 자료에 근거한 편견이다. 정부와 기업체의 두뇌집단은 이른바
우파이건 좌파이건 아니면 중도파이건 그 자체가 편견을 지니고 있는 기존의 통계를
외삽하고 있다. 1960 년대에 그로스(Bertram M. Gross)와 같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현존하는 통계적 데이터 베이스는 경제적 자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에
전형적으로 측정하기 힘든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정치적 변수들은
과소평가하거나 도외시하고 있다. 그 최종적인 결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예측하고
개연성 있는 미래에 대해 평가하고 양적인 '전망'을 제시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수치는 가정에 의하여 허점 투성이의 자료와 서투른 생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 미래학의 그밖의 다른 방법론을 예시해 줄 수 있는가?
^26,26^ 비외삽적인 방법(non-extrapolative method)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가능성 있는 미래의 사건들을 그들이 상호보강하거나 상호억제하는 정도에 따라
분류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또 우발사건 대비계획이라는 것도 있다^36,36^미군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고에 대비하여 50--60 가지의 대규모 유발사건
대비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가능성 있는 사건들을 그 영향면에서 분류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떤 것은 저개연성 고영향의 사건으로, 다른 것은 그 반대의 사건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도 있다. 소규모의 전문가 집단만이 참여하는 방법도 있고 다수의
비전문가들의 참여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다.
분야별로, 예컨대 기술의 미래라든가 새로운 통신 시스팀이 미칠 잠재적인 사회적
영향 등을 연구하려는 노력도 있다. 하와이의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10 년 이후에
법정과 법률 체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공법상의 문제들을 밝혀 보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수많은 지역사회에는^56,36^항상^36,23^'예상적 민주주의'
집단들이 있어 시민들을 전국적인 또는 지역사회의 목표설정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워싱턴시에 있는 '미래선택연구소(Institute for Alternative Futures)'의
베이촐트(Ciem Bezold)는 이같은 노력들을 추적하면서 미국 의회와 주입법기관들의
입법과정에 장기적 관심사를 도입하려는 체계적인 작업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의회
미래정보교환소(Congressional Clearinghouse on the Future)는 이같은 입법부의
미래주의에 동조하는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들의 방법론, 조직구조, 목표 및 절차는 매우 다양하다. 흔히
'예측'이라 부르는 것을 작성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세계의 미래상이나 그 일부에 관한 상상화를 그려보려는 시도이다. 그들은 미래의
어떤 사건을 미리 정해 놓고 나서 역순으로 작업을 하여^36,36^이 사건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먼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러한 질문을 거듭 제기함으로써
결국 변화의 시나리오를 얻게 된다.
* 이 모든 것 중에서 귀하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귀하는 연구작업을 어떻게
추진하는가?
^26,26^ 나 자신은 이와 다른 배경에서 출발한다. 나는 수학이나 물리학 또는
'사회물리학'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적^5,23^경제적 변화의 체계적이고
양적인 분석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이 방법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을
존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연구가 갖는 엄청난 제약성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 모든 양적인 도구^56,36^통계학과 체계적 모델, 컴퓨터 지원
등^36,23^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일단 결과를 얻으려면 그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커다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방법론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하던 관계를 드러내거나 조명해 줄 수 있다. 추세를 전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광범위한 가능성들의 모의실험을 가능케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진실'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며 더구나 그 결과를 숫자로
나타내기 때문에 이중으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 요컨대 모든 미래주의에는
역사 편찬^56,36^소위 계량 역사학을 포함하여^36,23^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주관성 개입이 불가피하다.
미래주의는 공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그러므로 내 견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과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기억해 둘 것은 내가 직접적인 관찰과 보고를 크게 중요시하는
전통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기자였고 언론인이었다.
각종 서적과 전문적^5,23^학술적 보고서 그리고 학술잡지를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것들을 많이 읽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보다 인쇄물을 중요시하도록 교육받아 온 대부분의 전문가들과는 달리 나는
통계와 학문적 연구결과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시각을 얻기 위해 실생활의 체험,
개인적 인상, 여행 그리고 관계인사들과의 직접적인 인터뷰 등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나는 과학자도 아니고 사이비 과학자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저술내용이
방부처리되어 있다는 환상^56,36^정치적^5,23^도덕적^5,23^사회적으로 중립성을
지니고 있다는^36,23^속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다.
@[ 10. 지적인 도구에 관하여
우리 모두는 피부 바깥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 물리적
자극은 미각, 촉각, 후각에 영향을 미치고 인식적 자극은 개념, 정보, 이미지, 상징의
형태로 우리를 엄습한다.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귀청을 때린다.
하찮은 TV 프로그램, 잡지 광고, 전화 메시지, 신문제목등 이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새겨지거나 저장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들어 오는 이 자료를 어떻게 조직하느냐 하는 것은 비단
일상생활을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영상의 의사결정, 교육, 정치적 조직 등
수많은 활동들을 위해서도 더욱 중요하다.
현재 등장하고 있는 미래를 구체화하려면 우리는 강력하고도 새로운 지적인
도구들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즉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복잡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변화 및 인과 관계에 관한 새로운 이론, 새로운 범주 및 분류 체계, 그리고
오늘날 우리를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시키려고 위협하고 있는 괴리되고 조화되지
않은 자료에 상호연관성을 부여해 줄 새로운 모델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적인 도구들은 공장굴뚝 시대의 여러가지 기계들처럼
박물관에 보내져야 할 처지에 있다.
이번 대화에서는 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도구들^36,36^나의
연구방법론과 그 배경을 이루는 전제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앨빈 토플러
* 귀하는 작가로서 다량의 자료를 모으고 있다. 귀하는 어떠한 근거에서 어떤
자료는 부적당하다고 버리고 또 어떤 자료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가? 귀하는
뒤죽박죽 상태인 사실들에서 선명한 사진을 현상해 내는 데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는가?
^26,26^ 진정한 답변에는^56,36^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경우에도^36,23^'육감'이라는 단어 또는 보다 고상한 용어를 쓰자면 '직관'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야 한다. 제아무리 대형 컴퓨터로 꾸미더라도 이러한 연구
작업에서는 육감이나 직관이 불가피한 요소이다. 우리 모두는 창자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그러나 창자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비단 작가나
미래주의자만이 아닌 모든 인간은 또한 현실에 관한 모델들을 창조해 내고 있다.
다량의 자료에 직면하게 되면 인간 정신은 자료에 질서를 부여하고 조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될 한 가지 모델^56,36^사실은 여러가지 모델^36,23^을 만들어
낸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러한 모델을 명시하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이 어떠한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현실을 모델화할 필요성을
모면할 수는 없다.
누구든지 애덤 스미스, 프로이트(Sigmund Freud),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등 사회사상가의 저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작가들^56,36^예를 들어 그
중에서 얼른 떠오르는 발작크(Honore de Balzac)와 졸라(Emile Zola)같은
작가^36,23^의 작품에서도 실제로 암묵적인 모델들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모델은 암묵적인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과학에서 사용되는
모델처럼 그렇게 엄격하고 정밀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모델의 절박성은 흔히
극적인 표현을 위한 불가피성을 고려하도록 변경 또는 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고도로 복잡한 모델이 여전히 존재한다.
* 귀하는 모델을 어떻게 구하는가?
^26,26^ 그러한 질문에 완전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델 설정에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여러가지 불가피한 가정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무의식적인
요소가 개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논외로 하면 나는 대개 내가
작성한 연구노트와 자료를 가지고 시작한다. 염두에 둘 것은 이런 것들이 아주
방대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노트와 자료는 5 년 이상의 탐욕적인 독서의
결과인 경우도 있다. 그 중에는 전문지, 외국신문, 학술보고서, 편지, 통계 요약과
여러 나라의 보고서는 물론이고 소설, 영화, 시에서 얻은 예지가 포함된다. 또한
경제학, 군사전략, 로봇, 음악, 육아법 등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 놓은 자료도 포함된다.
나는 우선 이 모든 자료를 이리저리 뒤섞어 여러가지 범주로 재배열한 다음 그
속에서 상호관계와 여러가지 패턴을 찾아낸다. 대개는 이 과정에서 모델이
도출되도록 한다. 모델은 자료에서 나온다. 일단 모델이 도출되면 연구 자료를
추가하게 되는데 이 경우 추가 자료가 모델과 맞지 않으면 모델을 조정, 확대,
제한하거나 버려야만 한다. 이와 다른 방법으로 작업할 때도 있다. 즉 우선 잠정적
모델을 설정해 놓고 연구를 진행시켜 그 결과에 따라 모델을 변경해 간다.
* '제3 물결'의 경우는 어떻게 작업했는가?
^26,26^ '제3 물결'의 경우에는 사회적 변화와 사회적 구조에 관한 부분적 모델을
가지고 시작했다. 이 책의 저술 과정은 그 모델을 계속적으로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유용한 모델을 개발하여 적용하면 그것이 자료를
조직화해 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가지 관계와 의미들이
분명해지게 된다. 여기서 잠정적 결론을 끌어낸다. 그것은 분명히 작가라면 누구나
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복잡한 내면적, 지적인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변화에 관한 내 저서의 경우 나는 우선 사회적 사건과 현상들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관련된 것이므로 변화라는 것이 학술분야에서처럼 일괄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정 생활, 에너지, 생태계의 변화를
파악하지 않은 채 경제적 변화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복잡한 피드백
고리에 의해 서로 얽혀 있다. 따라서 나는 상호관계를 밝히는 데 큰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또한 역사에는 단일의 추진력이 없으며 역사는 오히려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여러가지 요인과 경향들의 '수렴'에 의해 지배된다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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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동과 혁명
*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26,26^ 좋다. 생각나는 대로 1930 년대의 스탈린(Yosif Vissarinonovich Stalin)
재판들을 예로 들어 보자. 나는 요즈음 브라운(Anthony Cave Brown)과
맥도널드(Charles McDonald)의 공저인 주목할 만한 사회적, 정치적 역사물 '붉은
현장에서(On A Field Of Red)'를 읽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히틀러(Adolf
Hitler)와 스탈린의 등장, 독일의 인플레이션, 루스벨트의 출현 등 실로 그 당시의
전체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저자들은 그 책에서 스탈린이 거의 모든 고위 장성과
군 장교들을 숙청하게 된 일련의 국사범 재판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브라운과
맥도널드는 이로 인한 소련의 군사역량 위축이 시기적으로 히틀러의 급속한 독일군
확장과 일치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친구 프리고기네(Ilya Prigogine)
(주: 1917 년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프리고기네는 물리화학 부문의 공적으로 1977
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 브뤼셀 소재 국제물리, 화학연구소 'International
Institutes for Physics and Chemisty'와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의 통계역학, 열역학
연구소'Center for Statistical Mechanics and Themodynamics'의 책임자로 있다.
비평형체계'non-equilibrium system'의 열역학에 관한 그의 연구는 물리학이나
화학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여러가지 함축을 지니고 있다.) 같으면 내부적
변동(재판)이라고 부르게 될 사태가 외부적 변동(히틀러의 등장)과 시기적으로
일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부적 변화와 외부에서 발생한 변화간에 어떤
연관성이 발견되면 그것들이 서로를 보강하는 관계에 있는지의 여부를 따져 보게
된다.
내가 이해하기로 프리고기네가 말한 것은 모든 현상^56,36^그것이 화학적
화합물이건 사회제도이건 간에^36,23^은 말하자면 항상 내부적 변화, 즉
변동(fluctuation)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각 현상 또는 체제는 계속적으로
진동하거나 변동하는 독자적인 하부체제들을 갖고 있다. 때로는 그 변동들 중의 한
가지가 전체 구조를 분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증폭된다. 그러나 보다 큰 구조에
대폭적인 변동이나 혁명을 일으키려면 여러가지 하부체제의 몇 가지 변동들이
수렴하여 서로 보강해 줄 필요가 있을 때가 많다.
또한 모든 현상은 외부적 환경을 갖는다. 변동은 이 외부적 환경에서도 일어난다.
또한 대규모의 외부적 변동이 여러가지 내부적 변동의 발생과 시기적으로 일치하여
그 체제를 변혁이나 혁명적 변화에 대해 더 한층 취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프리고기네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변동의 결과로서
생긴 어떤 구조의 붕괴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보다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새롭고 보다 복잡한 구조의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낭비적 구조
(dissipative structure)'라고 부른다.
나는 인간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보다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새롭고 보다 분화된 사회구조들로
이행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프리고기네의 이같은 변동 이론은 나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러가지 사회적, 경제적 상황들이 이러한 종류의 공식에 적용된다. 예컨대 오늘날
모든 산업국가들은 부분적으로 기술혁명에 의해 야기되는 강력한 내부적 변혁을
겪고 있다. 자동차, 철강산업 등의 쇠퇴와 컴퓨터, 유전공학 등 전혀 새로운
산업들의 등장으로 나타나는 이 '내부적' 격변은 비산업국가들의 호전성 증대,
OPEC의 일시적 단결 등에 의해 생성되는 '외부적' 압력들에 의해 강화되고
가속화된다. 여러가지 내부적, 외부적 요인들이 수렴하여 고도기술국가들의 혁명적
구조개편에 압력을 형성하게 된다. 그 결과로 보다 높은, 훨씬 더 복잡한 발전단계에
있으면서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큰 '제3 물결' 경제가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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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원적인 마르크스
* 사회 변화에 대한 귀하의 접근방법과 마르크스의 모델간에 어떤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
^26,26^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많다. 나는 20 대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러나
사회에 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언론인으로서 여러가지를 직접 관찰하면 할수록,
그리고 고도기술사회들이 보다 급속한 변혁을 이룩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오류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사회현상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이 감격적인 계시로
받아들여졌었다. 마르크스는 우뚝 솟은 천재였다. 그가 푸가(fugue)와 같은 그
복잡한 사상으로 해서 나에게 바흐(Johann Sebastian Bach)를 연상케 했었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뉴턴(Isaac Newton), 다윈(Charles Robert Darwin), 프로이트
등 우리들의 세계관을 형성해 준 위대한 지성들에게서 계속 영향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를 경멸하는 사람들조차도 부지불식간에 그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르크스 이후에는 기술문제를 종전과 같은 방법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계급을 무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 역사를 단절 없는 연속체로 볼 수도 없데 되었다.
정치와 경제를 별개의 밀폐된 범주로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마르크스를 모른다는 것은 반문맹이나 마찬가지이다. 지구상 인구의 절반이 그의
말을 성경으로 떠받들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은 고전적인 '제2 물결' 또는 그
여러가지 가정들에 의해 형성된 산업사회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 가정들 중의
여러가지가 지금은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다.
나의 저서는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가 집필한 여러가지 문제들^56,36^사회변화,
기술의 역할, 갈등, 단절, 그리고 넓은 의미의 혁명^36,23^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현 위치와 마르크스의 입장간에는 여러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한 가지 핵심적 차이는 마르크스가 부여한 경제의 우위성(primacy)과 관련된다.
* 마르크스주의자도 경제는 하나의 체제이며 그것이 내부적 운동을 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는 또한 사회의 다른 모든 체제들이 경제에
종속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귀하는 경제를 여러가지 하부체제들 중의 하나로
간주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해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이 귀하가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하게 된 근본원인인가?
^26,26^ 그렇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경제외적인 것은 기술, 경제적 기반 위에
구축된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점에서 의견을 달리한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한 주요 원인은 아니다. 나의 마르크스주의와의 학문적인
단절은 여러 해 전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상적인 현실과 완전히 모순되는
예측을 한 때로부터 비롯되었다. 내가 학생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미국이 1930 년대의 재판과 같은 경제적 대공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들은 미국이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그 후에 찾아온 것은 50 년대와 60 년대의 번영이었다. 그밖에도
마르크스주의 모델에서 도출된 몇 가지 그릇된 예측이 있었다. 미국의 노동계급은
'비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미국에서는 성, 인종, 연령적인 각종 사회적
분열이 계급 분열보다 훨씬 더 중요했으며 이 모든 것을 계급분석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현실을 이론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만일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강력한 이론체계를 미국에 적용하여 그처럼 크게
잘못된 해답을 제시한 것이라면 누구나 마르크스주의가 변화를 이해하고 창출하는
도구로서 과연 일반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련에 국한된 '특수 케이스'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증거는
불가피하게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정확히 독재 그것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학문적으로 나에게는 마르크스주의가 고도 기술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는 잘못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를 이용하여 고도기술사회의 내적인 구조를 진단하는 것은 마치
전자현미경 시대에 확대경을 고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귀하는 오늘날에는 계급갈등이 변화의 중요 요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회들에서는 여전히 지배적인 문제이지만 고도기술국가에서는 더 이상
핵심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26,26^ 어느 경우에도 전혀 지배적이지 않다. 기술과 경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다른 모든 것이 '상부 구조'로서 단순히 얹혀 있기만 하는 그런 '기반'은
아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56,36^마르크스는 물론 그의 추종자들보다 현명하기
때문에 자기의 약점을 잘 감추고 있다^36,23^결국 마르크스는 사회 변화의 기본적
원천이 계급투쟁에 있거나 아니면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기술발전과 이에 부수되는
경제관계의 변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수단'의 발전이 '사회적 생산관계' 등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계급분석이 아직도 기본적인 이해를 위하여 도움이 되는 사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36,36^특히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필사적으로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결함부분이 매우 첨예화하기 때문에 그러한 특정 상황에서는 계급갈등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갈등이 된다. 그러나 그 점을 일반화하고 보편화하여 계급투쟁의
우위성을 주장하고 그것이 모든 시기에, 모든 사회에 선험적으로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끔찍하고도 비극적인 과오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계급투쟁이 심한 사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는 그 밖의
여러가지 갈등은 종속적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일시적일 뿐 영구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사실인 경우라 하더라도 계급 갈등이 인종,
민족, 세대간 갈등 등에 비해 어느 정도 지배적이고 현저한가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큰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는 '원시공산주의'와 '공산주의'의 중간에 있는 모든
사회에서 그밖의 다른 갈등들을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은 것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마르크스가 계급을 강조한 것은 유럽 중심적인 것이며 자기가 살던 초기
자본주의시대를 그대로 외삽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계급 편집증 때문이다.
* 계급분석이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밝혀 주리라고 생각하거나
계급갈등이 이 사회의 유일한 중심적 갈등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하는 것이 중대한
오류라는 데는 동감이다. 그러나 계급 분석이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
중의 하나이며 또한 계급투쟁이 갈등의 한 가지 중요한 형식임을 부정하는 것도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귀하도 그 점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26,26^ 그렇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원래의 분석은 그 숨막히는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 굉장한 업적이었지만 그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1차원적이라는 점이다.
* 1차원적이라고? 귀하가 마르크스주의의 업적을 인정하건 않건간에
마르크스주의는 삶의 모든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광범하고도 포괄적인
이론이다.
^26,26^ 옳은 말이다. 그러나 계급갈등은 여러가지 기본적인 사회적 긴장 중에 한
가지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 역사이론을 계급갈등을 중심으로 포장하는 것은
복잡한 현상을 하나의 조그만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인간사회의 전체 역사를 남녀간 갈등의 관점에서 기술할 수도
있고^56,36^누구라도 즉시 프로이트나 현대의 몇몇 여권론자들을 떠올리게
된다^36,23^또는 인종적 갈등, 지역사회의 갈등, 정치적 갈등 등의 관점에서 기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 여러가지 갈등의 축을 기준으로 사회를 여러 부문으로
분할하고 이들간의 상호관계를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를 이해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보다 덜 경제 중심적이고
보다 다차원적인 도구를 얻을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밖에도
이에 못지 않게 진실을 드러내 주는 여러가지 모델이 있으며 확실한 단일의
전지전능한 설명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 귀하 자신의 '제3 물결' 모델도 여기에 포함되는가?
^26,26^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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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 물결' 모델
* '제3 물결' 모델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계급갈등이나 그밖의 갈등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 모델은 어디로부터 출발하는가?
^26,26^ 나는 모든 문명에 공통적으로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밝혀 내는 다소간
귀납적 또는 경험적인 방법에서 시작한다. 예컨대 모든 문명에는 일종의 에너지
체계가 있다. 모든 문명에는 생존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방법도 있다. 또
이러한 재화와 서비스의 분배 체계도 있다. 이 에너지체계, 생산체계, 분배체계는
모두 매우 뚜렷하게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합해져서 하나의 '기술영역
(techno-sphere)'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모든 문명에는 말하자면 사회적 제도들의 생태계 같은 것, 즉
'사회영역(socio-sphere)'이 있다. 이같은 조직이나 제도들은 각 문명별로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핵가족 제도는
자녀가 대중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태세를 갖추도록 해주며 대중 교육기관은
젊은이가 기업체나 사회주의 생산기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이처럼
내가 말하는 사회영역 안에는 여러가지 상호작용 하는 하부
시스팀(sub-system)들이 있다.
기술영역과 사회영역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문명에는 또한 정보 전달 체계들이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정보 교환의
필요성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파발꾼을 보내거나 아니면
페르시아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탑을 세우고 그 위에서 목청 큰 사람이 다음 번
탑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부락을
벗어나면 커뮤니케이션이 별로 필요 없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발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회는 초보적이건 아니건 간에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가지게 마련인데 나는 이것을 '정보영역(info-sphere)'이라고
부른다.
이 정보영역은 다시 기술영역 및 사회영역과 긴밀하게 엮어져 있다.
더구나 모든 사회는 특정한 '생물영역(bio-sphere)'안에서 운영되는데 이
생물영역내의 여러가지 조건들은 문명에 따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모든 문명들은 권위가 공식적, 비공식적인 정치제도들을 통해 배정되는 '권력
영역(poewr-sphere)'을 가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사회는
'정신영역'^36,36^친분 관계, 주체성, 퍼스낼리티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56,36^기술영역, 사회영역, 정보영역, 생물영역, 권력영역,
정신영역^36,23^을 합치면 한 문명 또는 한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항(전부는 아니고)을 망라하게 된다. 이렇게 분류하고 나면 이 여러가지
활동영역들내의 상호작용과 그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모두 체계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된다.
* 문화는 어디에 속하는가^36,36^정보영역인가?
^26,26^ 아니다.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문화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차원에
속한다. 지금으로서는 다만 각 영역마다 복잡한 내부적 부분들이 있고 이 모든 것이
긴밀하게 상호연관되어 계속 변화하고 변동하고 발전한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이 각각의 영역들은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훨씬 더 상세하게 분석하여 그
구성 요소와 그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영역들 자체가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또한
상호의존체계 안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제3 물결'에서는 이
상호관계를 잠시 암시해 두는 데만 그쳤지만 이 역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여러가지 다른 영역들간의
'초관계(meter-relationship)'와 각 영역 내의 '미소관계(micro-relationship)'뿐
아니라 특정한 영역의 요소들과 다른 영역의 요소들간에 존재하는
'원격관계(tele-relationship)'도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모델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고 세분할 수도 있으며 또한
추상적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모델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저장하고
상호연관시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도록 배열해 줄 수 있다.
이 모델은 우리가 모든 문명을 검토하여 문명들간의 차이점을 구별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우 유동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대체로 연관되고 서로
자극하는 여러 가지 변화의 물결을 이루며 나타나는 사회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물결이라는 은유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물결이론은 역사를 정지된 사진들과 같은 여러 '단계'들의 연속으로
제시하는 대신 이 전체 사회를 과정 속에서 파악하도록 해준다. 예컨대 우리는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는 하나 이상의 변화의 물결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의 가족 제도는 지금도 핵가족 형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제2 물결'적 변화의 일부로서^36,36^말하자면 자기 자체를 완성하고 있는 전통적
산업화의 물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제3 물결'의 여러가지 측면들이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를 일원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대신 여러가지 동시적인
운동, 서로 연관된 여러가지 변화의 물결들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파악한다. 여러
사회는 제1, 제2, 또는 '제3 물결'적 요소들의 혼합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각
사회마다 변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관점 등에서 비교할 수 있다. 이 물결모델은
구조에만 바탕을 둔 것이 아니며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이 문명은 고도로 복잡한 과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내가 실제로 '제3 물결'의 집필 시에 사용했던 모델이 일부에 불과하다.
* 귀하의 저서에서 귀하는 구조적 변화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귀하는
또한 '문명적 원리(civilizational principle)'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들은
'제3 물결' 모델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26,26^ 그렇다. 내가 설명한 여러가지 영역들은 어떤 문명에서건 구조적
요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여러가지 복잡한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영역들을 전적으로 초월하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예컨대
모든 문명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와 우주에서의 자신이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활동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독자적인
'초이데올로기(super-ideology)'도 발전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포장
물로서 전체를 덮어씌우면서 그 구조가 형상을 갖추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가정 생활에서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들에 반영되어 있다.
또한 모든 문명은 그 문화의 일부를 이루는 몇 가지 확인 가능한 원리들에 따라
운영되는 것 같다. 내가 이 모델을 가장 체계적으로 적용한 산업문명에서는 이 모든
영역들이 산업사회들의 기본적 조직 원리인 표준화, 동시화, 전문화, 중앙집권화,
집중화, 극대화 등의 원리에 의해 영향받는다.
* '좌익'적 접근방법이 성, 인종, 경제, 사회적 관계 등의 개념을 조직원리로
이용하는 데 반해 '물결'적 접근방법은 표준화나 동시화 등의 원리들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26,26^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구체적이기도 하고 또한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조각들을 문명사회의 조각그림 맞추기처럼 고정된
요소들로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활동적 요소들로서 함께 모아 놓으면 전체와 흡사한
모습을 얻게 된다. 여기서는 전체의 모든 부분들이 계속 발전하면서 서로 작용하고
보강하고 동시적으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서로 견제하고 상쇄하거나 충돌하게 된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또는 계급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비록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전체 사회나 문명을 설명하고 그 발전방향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문명은 일상생활을 꾸려가고 싸우고 사랑하고 죽고 자녀를 출산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이가 아침에 이를 닦는 것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일생을 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학교로 가기 전에) 박물관이나 역사책을
장식하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나 정치지도자 못지 않게 우리들의 문명을 대표하고
있다.
어린이가 양육되는 방식, 어린이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표준화의 정도, 아침
등교시간의 다른 가족 스케줄과의 동시화, 다른 학생들의 집단 이동을 살펴보고
어린이의 일상생활이 의존하고 있는 기술과 에너지, 학교의 제도와 그것이 국가,
가정, 교회에 대해 갖는 관계를 검토해 본다면, 그리고 어린이를 형성하는
커뮤니케이션 매체, 어린이가 살고 있는 물리적 환경, 어린이가 태어난 정치적
권력구조를 검토해 본다면 우리는 전체 문명이 말하자면 하나의 구체적인 단일개체
속에 구체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개발한 모델은 그 모델의 여러가지 '영역', '원리' 그리고
'초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실생활에 연결된다. 그것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학문적이고
방부처리된 모델이 아니라 행동과 직접 연관지어지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러한 모델에는 몇 가지 강력한 잇점이 있다.
*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귀하는 사회 체제를
여러가지 영역들로 나누면서 모든 사회는 비록 초보적인 형태일지라도 그러한
것들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이 영역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를
전연 다른 방법으로 나눌 수도 있다. 예컨대 모든 사회는 정치적 의사 결정 체제,
생산 및 소비를 위한 경제체제를 가져야 하며 성별 역할, 남녀관계 및 사회화
관계를 규정하는 친족 영역(kinship sphere), 종교적, 민족적, 인종적 자기동일성을
규정하는 이른바 공동체 체제나 영역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
사회체제를 이러한 범주를 가지고 나누어 보면 역사상 변화의 매체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갖는 사회 관계와 사회집단들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역사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운동 속에 조직화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필요에 보다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또 이를
중심으로 사회적 운동이 정치, 경제, 인종, 문화 그리고 남녀문제의 변화를 조직하는
그 밖의 다른 영역들을 제쳐놓고 귀하가 강조하는 영역들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26,26^ 나는 다른 모델들을 선택하는 데 반대할 생각이 없다. 완전한 모델은 없다.
문제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어떤 모델이 가장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제3 물결' 모델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료들을 최대한 구조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최대한 포괄적이고 명료한 모델이 되도록 고안되었다.
나는 역사는 사회적 운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예컨대 맨해턴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서 일한 과학자들은
세계 최초의 핵폭탄을 발명함으로써 '역사를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신이 의미하는 '사회적 운동'을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처럼 특정한 사회적
운동이나 이 운동들이 형성하는 축을 중심으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몇 가지
목적을 밝히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제약이 너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말하면 나는 이 모델 문제를 묵살해 버리고 싶지 않으며 '제3 물결'
모델에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모델이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구축되었으며 또한 갈등 이론에 대해 여러가지 함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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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이론
* 일부 미래주의자들은 '산업사회'이후의 도래를 어느 정도 순조로운 과정으로
^4,246,5,135,4,136^ 있다. 그러나 귀하는 그렇지 않다.
^26,26^ 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등장하고 있는 세계를 갈등없는 세계로 그리지
않으며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4,246,5,135,4,136^ 있지도 않다. 오히려
나는 우리가 지금 치열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그
점을 이해하려면^56,36^세계적 규모에서이건 또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이건^36,23^갈등 이론이 필요하다.
* 그같은 갈등 이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26,26^ 그 이론은 우리가 겉보기에 고립되어 있거나 독립적인 여러가지
갈등들간의 관계를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그러한 관계들에 우선 순위를 정해
중요한 관계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귀하는 물결모델이 그러한 종류의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고 말해 왔다. 예를
들면 귀하는 '초투쟁'에 관해 언급했다. 귀하의 변화의 물결모델에서 도출되는
갈등이론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26,26^ 첫째, 내가 이 사회를 휩쓸고 있는 역사적 변화의 '물결'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특정한 단일의 변화^56,36^예컨대 기술의 변화^36,23^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서로를 강화하고 가속화시키면서 이 체제를 어떤 한정된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상호 관련된 변화들의 전체적인 체인이다.
그것은 변화의 '제1 물결'^56,36^농업의 보급^36,23^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나의
새로운 생활방식이 그 자체의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제도들과 함께, 그리고
그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체의 원리들과 함께 보급되었다.
산업혁명으로 변화의 '제2 물결'이 시작되었을 때도 역시 새로운 생활방식과
새로운 제도, 가치관 및 원리들이 보급되었고 농업문명인 기존의 '제1 물결'
제도들과 심한 갈등을 나타내게 되었다. 물론 물결이라는 개념은 은유법에 불과하다.
이 변화의 물결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며 개인, 조직집단, 군대, 교회, 연구소,
기업인, 정당 등이다.
농업시대의 생활방식에 경제적 이해관계를 두었던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일으킨
'신흥' 집단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더 한층 흥미로운 것은 한 사회가 동시에
여러가지 변화의 물결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하여 이 여러가지
물결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사회 전반을 통해 갈등의 흐름과 갈등의
조류^56,36^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충돌의 패턴^36,23^를 드러나게 한다.
예컨대 중국을 생각해 보자. 중국의 대다수 주민들은 농민으로서 지금도
본질적으로 '제1 물결' 문명에서 살고 있다. 공산혁명의 초기 국면들은 중국을
산업화시대로 이끌어 가는 데 목적이 있었으며 농민에게서 산업투자에 필요한
자본을 짜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 모든 일이 소련의 지도하에
이루어졌다. 요컨대 중국은 '제2 물결' 전략에 따라 전통적인 산업혁명을
점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중국의 제1차 5개년 계획에서는 총투자의 58%가
중공업에 배정되었다. 실제로 중국 사회에 산업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산당 내부와 주민들 사이에는 농업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제1 물결' 세력과 보다 많은 제철소와 섬유 공장, 산업을 보다 빨리 일으키기를
원하는 '제2 물결' 산업화론자들간에 격렬한 갈등이 일어났다. 1958 년에 시작된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과 1960 년의 소련 철수는 산업적 접근방법으로부터 농촌에
기반을 둔 접근방법으로의 이행, 즉 내가 말하는 '제2 물결' 전략으로부터 '제1
물결' 전략으로의 이행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중국의 그 엄청난 복잡성을 생각할 때 사태를 굉장히 단순화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한 번 더 전통적 산업화의 길^56,36^'제2 물결'적 개발^36,23^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제1 물결'식 농업화를 선호하는 사람들간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중국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이 이 나라
전체가 거대하고 분열적인 산업혁명을 겪지 않고도 첨단기술을 통해 선진경제를
창조하는 '제3 물결'식 개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탐색은
중국의 모습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여 중국 인민이 스스로를 집단화할 새로운 축을
만들어 주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물결들이 거시적 차원에서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고도기술국가들^56,36^주로 미국과 일본^36,23^이 '제3 물결' 산업을 도입하고
또 이와 관련된 새로운 시장들, 예컨대 전적으로 두뇌력의 적용에 기반을 둔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하려고 경쟁함에 따라 범세계적인 갈등의 증거를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개념들은 단일국가내의 갈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미국에서 쇠퇴하는 '제2 물결' 지역들과 확대되는 '제3 물결' 지역들
^56,36^예컨대 디트로이트와 댈라스^36,23^간에 정치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좀더 시야를 좁혀 보면 산업들간에도 갈등이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예컨대 철강산업과 자동차산업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며 컴퓨터 및
전자산업은 이러한 정책에 반대하면서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관세보호를 요구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자유무역정책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벨기에, 프랑스, 서독,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방문한 대부분의 대기업들에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제2 물결' 이해집단이
새로운 '제3 물결' 이해집단을 상대로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예컨대 사업내용이
다양한 여러 대기업들의 경우 회사의 구세력은 대량생산에 종사하면서 기본적으로
노동을 파는 일을 하고 있으며, 회사내의 새로운 세력은 고도기술 분야에
종사하면서 더욱 더 두뇌력의 대량 투입에 바탕을 둔 주문화한 생산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영정책, 근로자 대우, 조직형태, 투자배분 등을 둘러싸고 근본적인
내부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다른 제도들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예컨대 구식 교사들은
'제2 물결' 세계에 적합한 엄격하고도 표준화된 교육 방법을 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새로운 형태의 교육자들(대체로 젊은 교사들)은 학생 각자를 보다 개별화된
방법으로 대하고 교과과정과 교육방법의 다양화를 증대시키고 또한 수업제도 자체를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보건, 에너지, 통신체제 등 실로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이와 똑같은 '제2 물결'과 '제3 물결'간의 불화를 목격할 수 있다. 어느
조직체에서이건 표준화, 중앙집권화, 전문화, 집중화, 극대화 등 '제2 물결' 원리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또 대체로 이러한 원리들의 적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보면 '제2 물결'과 '제3 물결'의 진용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갈등분석을 해보면 산업, 교육, 정치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밝힐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정생활, 남녀역할, 인종, 문화 등의 문제들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한 문명이 분열하면, 즉 연관된 변화들의 강력하고도 새로운 물결이 기술과
에너지체계에서 가족구조와 정치문제에 이르는 모든 것을 관통하여 흐르기 시작하면
그 물결은 갈등 속의 갈등, 그리고 또 그 속에서의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즉 체제의
모든 차원에서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예를 들어 브라질과 같은 어떤 나라가 전국을 동시적으로 관통하는 3가지
물결 모두에 휩쓸려 있다면 우리는 3개의 동시적인 갈등 '머리 (front)'를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모든 계급, 인종, 집단을 거치면서 사회를 관통하는 이른바 '물결
머리(wave-front)'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오늘날의 정치문제^56,36^공공
생활의 정치문제, 심지어 여러 제도들 내부의 정치문제^36,23^들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정립하게 된다. 이와 같은 문명의 갈등들이 이른바 '초투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회 안에서는 그밖의 모든 갈등들은 중요성을 잃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변화의 물결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갈등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 11. 변화의 근원
우리는 왜 혁명을 겪으며 살아가는가? 신문 제목을 보면 가끔씩 이 지구가 심한
격동에 휘말려 대혼란에 빠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우리가
가차없이 어떤 고도기술의 미래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 즉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 변화의 방향 자체를 바꿀 방도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우연, 개별적 사건, 놀라운 일, 무질서, 불확실성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필연, 결정론 그리고 그 어떤 개인도 극복할 수 없는 폭넓고
전면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역사적 운동들이 놓여 있다.
개인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변화를 가져오는 여러가지 요인들 중에서
지배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예컨대 기술인가? 경제인가?
우리는 마지막 대담을 위해 이 문제들을 남겨 두었다.
앨빈 토플러
* 귀하의 저서를 읽은 많은 사람들은 귀하가 기술적, 경제적 결정론자라는 인상을
받는다. 때로는 귀하가 기술 또는 경제를 변화의 관건이라고 간주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귀하는 여러가지 소체제들을 도입한 다음 이를 서로간에, 그리고 그
전부를 관통하는 여러가지 특징들과 엮어 놓고 있다. 귀하는 또한 각 소체제의
내부에는 내부적 변동들, 즉 상호간 증폭되거나 중요한 외부적 변동과 시간적으로
일치하는 경우 커다란 구조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내부적 변동들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는 산업문명의 이러한 핵심적
원리^56,23^예컨대 표준화나 중앙집권화 원리^36,23^들을 다소간에 경제적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전개해 가고 있다.
심지어 인종이나 남녀 문제를 논할 때도 귀하의 사고방식은 경제적 편견에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마치 귀하의 개념들은 경제라는 용광로에서 담금질한
것처럼 보인다. 귀하의 저서가 기술적, 경제적 결정론에 흐르고 있다는 이 비난에
대해 어떻게 답변하겠는가?
^26,26^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재론할 가치가 있다.
나는 내가 기술적 또는 경제적 결정론자라는 견해를 단호하게 거부하며 내 책을
잘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점을 명백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기술적인 것이건 경제, 성, 인종, 생태적인 것이건 간에 어떤 단일 요소가 체제를
움직인다고는 믿지 않는다. 여러 순간마다 상이한 요인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므로
나는 어떤 단일의 지배적인 요인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사슬을 잡아당기는
유일무이한 고리'를 찾아보려는 그릇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개별적인 인과적 벡터(causal vector)라는 관점에서보다는 과정, 상호관계,
리듬, 비평형 그리고 분야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또한 일방적 인과관계의
관점에서보다는 상호작용 하는 개방체제들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인과관계를 대하는 이같은 태도는 나를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구별짓게
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 예술, 윤리, 가치관, 법률, 문화 일반 등은 단지 계급적 입장을
반영하고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며 이 계급적 입장은 경제적, 기술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체 사회체제를 이처럼 정연하게 두 개의
범주로 나누고 그 중 한 가지가 다른 것을 추진 또는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환원론(reductionism)적이다.
마르크스는 경제 문제에서 더 이상 환원시킬 수 없는^56,36^일종의
원자처럼^36,23^단일의 단위를 찾아내고 여기서 과학적인 경제이론을 구축하여 그
위에 마치 케이크에 입힌 설탕처럼 소위 상부구조하는 것을 바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가 모델로 삼은 과학은 아직 기본적으로 뉴턴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 이전의 과학이었다. 따라서 사회 자체는 개방 체제인데도 마르크스의
모델에는 질식할 것 같은 폐쇄적 성격이 부여되어 있다.
'제3 물결' 모델의 약점이 무엇이건 간에^56,36^나는 그것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밝혀 주는 모델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결코 없다^36,23^그것은 보다 산만하고 복잡한
여러가지 상호작용들을 고려하고 있다. 이 모델은 사회구조에 관한 보다 분화된
모습을 제시해 준다. 이 모델은 기술이 때로는 체제를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기술 그 자체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한 사회가 선택하여 중점을 두는 기술 체계는 비단 경제적 동기에 의해서만
영향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특정한 천연자원, 교육수준, 문화적, 종교적 금기
사항, 환경적 상황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기술적 결정론자의
입장과는 다르다.
나의 입장은 이른바 상부구조가 경제적, 기술적 토대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부류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도 뚜렷하게 반대된다. 그들은 그같은 피드백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이념, 법률,
가치관, 종교 등 그 자체는 단순한 계급적 입장의 반영일 뿐이며 이 계급적 입장은
기본적으로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논거는
동어 반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어쨌든 경제와 기술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 체제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나는 이같은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 받아들 일 수도 없다.
* 경제적 결정론 등을 이유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귀하의 접근방법이 동일한 비판을 받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귀하도 기술이나 경제가 다른 제도들에 영향을 미친다고 자주 말하고 있다. 예컨대
'제3 물결'에서 귀하는 가족이 생산체제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귀하는 그 반대되는 종류의 분석은 좀처럼 제시하지 않는다.
예컨대 귀하는 경제관계가 가족관계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26,26^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경제체제를 변경시키는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런 일이 과거에 있었으며 지금도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런
일에는 시차가 있을 것이다. 그 중요한 영향은 기준 싯점에서 예컨대 25 년쯤
지나야만 느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육이 어린이를 맡아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은 잠잠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느껴지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경우, 예컨대 경제와 가족간의 관계에서는 처음에는 경제가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 그 반대 방향으로의 상호작용이 오랜 기간동안 지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토대'가 '상부상조'를 결정한다거나 경제가
독립변수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모든 저서에서 나는 비경제적 요인들이 경제에 영향을 미쳐 왔음을 밝히려고
애써왔다. 예컨대 '미래 쇼크'에선 나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가속화가 경제관계에
원근법을 제시하며 또한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의 증대가 시장을 개편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또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계획 및 정부의 정책결정에서의
경제중심주의를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므로 나는 기술적 결정론이라는 비난과
마찬가지로 경제중심주의라는 비난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 귀하의 견해로는 우리가 '제2 물결' 가족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제3 물결'
경제형태로의 강력한 이행을 목격하게 될 가능성은 없겠는가?
^26,26^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5,5,5^.
* 그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26,26^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사회체제나 문명에서 어느 한 영역이
변화하면 다른 영역들도 여기에 맞추어 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실상을 모르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오그번(William Fielding Ogburn)이 문화적 지체(cultural lag)에
관해 설득력 있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는 한 사회 내의 여러가지 다른 체제가
서로 시간적으로 일치하지 않을 때 어떠한 사태가 일어나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그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여러가지 다른 변화속도^56,36^그중 어떤 것은
극도로 가속화되어있다^36,23^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사회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제도들은 다른 제도들의 속도에 적응하고자 애쓰고 있다.
대규모 기업의 구조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학교와 대규모 정부 관료체제의
구조는 보다 느린 속도로 변화한다. 사회는 급속도로 분화되고 더 한층 다양화된다.
정치체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의 다양성에 맞도록 짜여져 있다. 이같은 적응상의
시차 때문에 강력한 사회적 긴장이 조성된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나 리듬과는 전연 별도로 만약 가정 생활, 아니 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면 체제 내의 다른 영역들에서도 이에
적응하는 (또는 저항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 반대의 경우는?
^26,26^ 바로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고도기술국가들은 '제3 물결'로
이행해 감에 따라 가족생활의 구조에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또 이러한 변화는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은 예를 들면 우리 사회에 다수의 독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전체 주택시장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독신
남자가 교외주택지구에서 주택을 구입하거나 아파트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또 분명히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수천가지의 이같은 영향이 체제 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밝혀 내지 못한 영향들도 많다.
예컨대 나는 1975 년에 '에코스패즘 리포트'에서 높은 결혼 파탄 및 재혼율,
지리적 이동성, 그리고 사회변화 일반은 눈에 띄지 않게 인플레이션에 기여하고
있다고 썼다. 나는 이런 요인들이 통화의 회전속도를 가속화시킨다고 믿는다.
높은 결혼파탄율은 또한 손수만들기와 자조운동을 촉진시킨다. 이러한 운동은
우리 경제의 미래에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제3 물결'에서는 그 중 일부만
다루었다. 그러나 '제2 물결' 시대의 뒤떨어진 개념과 어휘에 빠져 있는 재래적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좀처럼 주목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측이
그처럼 자주 빗나가고 그들의 조작이 부머랭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기술이나 경제 그 자체만으로는 체제를 움직여 갈 수 없다고 할 때 귀하의
견해에 의하면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전적으로 정치 또는 그밖의 어떤 한
가지 문제에만 중점을 두는 급진적 행동가들은 그들의 보다 큰 목적에 극히 중요한
요인들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예컨대 문화나 남녀의 성문제를 주변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그러한 집단들의 경제적 또는 정치적 목표들에 대해서도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이다.
^26,26^ 옳은 말이다. 레닌(Nikolai Lenin)이 한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를 깨뜨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같은 말은 본질적으로 기계론적이고
'제2 물결'적인 사회적 인과율의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참다운 혁명을
이룩하는데^56,36^아니면 촉진하는데^36,23^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계급의
대체라든가 '국가기관'의 장악 또는 '겨울궁전(Winter Palace)'으로의 행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무엇인가 매우 다르고 보다 더 근본적인 것^56,36^전체 문명의
변혁^36,23^에 관해 이야기하는 법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혁명의 실현에 협력하기를
바란다면 전적으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요인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멸적인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러한 정치적 행동가나 '직업적인 혁명자'들 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한 변혁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과학자, 기업체 간부, 철학자, 여권론자, 교사, 간호원, 민권운동가. 환경보호론자,
소프트웨어 설계자 등 그밖의 온갖 사람들이 단지 어떤 '전위당(vanguard
party)'이나 계급에 끌려가는 종속적인 무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내가 '제3 물결'에서 말한 것이 옳다면, 그리고 기술영역, 사회영역,
정보영역, 생물영역, 권력영역 등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56,36^그리고 그 중
어느 것은 '토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상부구조'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면^36,23^변화는 이들 모든 영역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 모든 영역들에서는 지금 스스로를 행동가나 혁명가로 생각하지 않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 급속하고도 커다란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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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의 변화
* 귀하는 어떤 단일의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가능성 있는 미래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데^5,5,5^.
^26,26^그렇다. 그러나 미래는 전적으로 결정론적인 것이 아니므로 여기에는 아직
우리가 거론하지 않은 또 한 가지 측면, 즉 우연이라는 요소가 있다. 나는 우연이
사회변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매우 극적인
실례가 있다.
1981 년 봄 어느 날 나는 주요 일간지인 '휴스턴 포스트(Houston Post)'지의
사회기사 편집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어떤 여기자와 인터뷰 중이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제3 물결'이 필연적인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당시 미리 준비하고 있던
대답을 막힘 없이 해 나갔다. '아니다. 나는 역사의 필연성을 믿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인간사에서는 우연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인터뷰하고 있는 동안에도 과테말라의 어떤 10 대 소년이
군인에게 돌멩이를 던져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때 밖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3 대의 TV모니터 장치를 틀어 보니 고함과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5,5,5^. '대통령이 저격 당했다^5,5,5^.' 그리고는 편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TV수상기로 몰려갔다. 그때 헤이그(Alexander M. Haig)가
나타나 자기가 직무를 대행한다고 발표했다. 조명이 번쩍거리고 '기자들을 막아'하는
등의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 소름끼치는 장면이었지만 그 기회에 나는 다시 한
번 역사에서의 우연과 결정론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나는 반드시 어떤 특정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결코 '제3 물결'이 필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프리고기네의 견해에 동조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는 우연과 결정론이 모두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다^36,36^이 말 자체는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그러나
프리고기네는 이 두 가지를 새로운 방법으로 상호 연관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말을 대충 부연해 보면 그는 낡은 구조가 어떠한 변동에 의해서건 압력에
의해서건 혁명적 변혁의 시점에 도달하는 순간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그
순간에 우연이 작용한다. 체제는 그때 어떠한 방향으로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일단은 중요한 다음 번 조치가 취해지면 우연은 그 임무를 마치고 체제는 이 방향
또는 저 방향으로 방향을 잡게 되며 다시 변동이 또 다른 구조적 위기를 조정할
때까지 결정론이 사태를 장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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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의 개인(재론)
* 이 속에 인간의 영향, 계획, 조직이 개재할 여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개인이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26,26^ 물론 가능하다. 우연이 작용한다. 또한 결정된 방향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확고하게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분야들에도 항상 어느 정도 인간 영향의 여지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행동은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적어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억제하거나 심지어 방지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56,36^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36,23^'제3 물결'을 일거에 말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래를 고쳐 쓸 온갖 종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 20 년 전 쿠바에 미래주의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사람은 그
당시 주변 정세를 살펴보고 미래의 쿠바가 대강 오늘날의 과테말라나 그밖의 라틴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와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는
엄청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사람은 그것과는 다른 시나리오를
예측하면서 혁명과 대변혁의 가능성을 내다보았을 수도 있다. 그 혁명은 인간의
활동과 개입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간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혁명운동에 의해 좌우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카스트로(Fidel
Castor Ruz)는^5,5,5^.
^26,26^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역사적 요인^56,36^나 자신의
은유법으로는 변화의 물결^36,23^의 배우에 개인들이 있다는 점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요인'이나 '물결'은 사물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어떤 모델에 사용하기
위해 구상화해서는 안된다.
역사상의 모든 변화, 전쟁, 발전, 성공, 비극들은 결정과 선택을 행하는 인간에
의해^56,36^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하여^36,23^이룩된다.
당신은 질문에서 카스트로를 다른 혁명 지도자들의 상징으로 부각시키려 한 것
같은데 카스트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하다.
1) 우연적 요소(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정권이 외적인 한계에 도달하여 이에
대한 인민의 분노가 절정에 달한 바로 그 순간에 우연히 나타난 열정, 추진력, 지성,
초인적 자질을 갖춘 사나이. 카스트로가 10 년 후에 태어났더라면 동일한
퍼스낼리티와 능력을 지녔더라도 그 현장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바티스타와
카스트로가 역사상 동일한 순간에 함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2) 부분적인 결정론적 요소(카스트로는 그 순간에 쿠바에서 태어난 수많은 아기들
중의 한 명이었으며 역사적인 요인들에 의해 게릴라 지도자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해석하면 카스트로는 전혀 불가결의 인물이 아니다. 사람은 난국이 생기면 이에
대처하게 마련이다. 필요하면 외부적 조건이 카리스만적 인물을 만들어 낸다.
카스트로가 없었더라면 다른 인물이 나타났을 것이다.)
3) 무의미한 요소(쿠바혁명은 전적으로 계급과 그밖의 요인들의 작용, 즉 필연적인
투쟁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소련식 용어를 빌면 혁명의 순간은 '제요인의
상관관계 변화'가 가져온 결과였다. 그리고 카스트로가 있었건 없었건 혁명은
일어났을 것이다. 이 경우 역사상 큰 사건들은 예정되고 사소한 요소들^56,36^예컨대
사람들^36,23^만이 우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문제를 바라보면 한 가지 합리적인 방법은 이것들 중 몇 가지 요소를 결합해
보는 것이다. 대답을 양자 택일이나 양도론적인 의미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바티스타 정부는 수명이 다했기 때문에 정권 타도를 추구하는 세력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고 따라서 혁명은 말하자면 때늦은 것이었음이 사실일 수도 있다.
역사상 바로 그 순간에 카스트로가 성장하여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 그는 쿠바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바티스타가 타도되려던 바로 그
순간에는 그 정권이 어떤 방법으로 붕괴될 것인지, 누가 정권을 장악할지가
불투명하여 우연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일단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물론 붕괴의 촉진에 기여한 후에) 미래는 다시 한 번 확고하게 결정된다.
궁금한 점이 있다. 나는 카스트로가 의기양양하게 워싱턴을 방문하여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연설하던 일을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직
기억하고 있다. 나는 만일 그 당시 워싱턴의 의사결정자들이 끊임없이 적대감을
나타내는 대신 그에게 경제원조를 제안했더라면 오늘날 쿠바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이처럼 나는 우연의 작용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개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설사 인간의 개입이 비효과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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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현실주의에의 욕구
* 귀하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 말이 귀하에게도 적용되는가? 귀하도 행복하게
지내려면 '중요하다'는 환상이나 현실을 필요로 하는가?
^26,26^ 그렇다. 중요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문제에 구^36^애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화려한 약속과 함께
잔인함, 슬픔 및 분노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일을 겪으며 살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머 감각과 초현실주의에 대한 욕구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멋진 우주적 재담의 일부이며 그 안에서 언제나 영광을 누리고
농담을 즐기며 그 농담 때문에 웃고 우리 자신들 때문에 웃는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있기 훨씬 전부터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렇다. 나는
내가 도덕적, 지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또한 글을 쓰는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변화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 내 생각이 분명히 밝혀지며 나의 시간과 생활을 조직해 준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공허함과 불만에 빠져들기 때문에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주변의 혼란스러워 보이는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까지
주목하지 못했던 어떤 패턴을 얼핏 발견하는 데 성공하여 그 새로운 통찰력을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될 때 스페인의 탐험가가 '다리엔(darien)의 정상'에 서서
처음으로 태평양을 바라보았을 때 느낀 것과 같은 일말의 감동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