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알렉산드로스 [아토다 다카시]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1권
아토다 다카시
등장 인물
네아르코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미에자 학사 출신으로 헤타이로이. 배에 정통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동정군 가운데 수군의 지휘를 맡는다. 인도에서 돌아올 때 인더스강 하구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
그리스강의 하구에 이르는 신항로를 개척한다. 이로 인해 바다로 가는 또 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고대의 탐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달레이오스 3세: 흔히 다리우스 3세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왕. 이수스에서 알렉산드로스와 첫 전투를
치르지만 태후와 왕비, 공주 등을 버린 채 도주길에 오른다. 결국 부하 베소스 일당에게 죽임을 당하는
최후를 맞는다.
로크사네: 알렉산드로스의 비. 소그디아나를 지배하던 옥시아르테스의 딸로 권세욕이 있는 여자이다.
알렉산드로스 4세를 낳으며 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인다.
바르시나: 알렉산드로스의 애첩. 원래는 이름을 떨친 용병 멤논의 형수이지만 남편이 떠나자 멤논의
아내가 된다. 그러나 멤논이 돌연 병사하자 알렉산드로스와 만나게 되어 헤르쿨레스 왕자를 낳는다. 왕
이 죽은 후 왕위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자 왕자와 함께 자객에게 암살 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자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필리포스 2세와의 인연으로 알렉산
드로스의 스승이 되며, 미에자 학사 시절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을 추구할 것"이라고 해준
말을 알렉산드로스는 평생의 신념으로 삼는다.
안티파트로스: 필리포스 2세의 장군. 알렉산드로스가 왕좌에 앉은 후 동정길에 오를 때 마케도니아의
국정을 책임지는 재상이 된다. 재상 자리에 머무는 동안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밀고에 시
달린다.
알렉산드로스: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식 이름이며 사자왕이라
고도 불린다. 왕위에 오른 후 동정길에 나서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인도까지 그 영토를 넓히나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원정지에서 죽는다. 흔히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린다.
올림피아스: 필리포스 2세의 비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알렉산드로스는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
여 필리포스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에는 이혼 당한다. 그러나 필리포스가 암살 당하자 태후로서 권력을
휘두른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결국에는 돌에 맞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크라테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전략에 뛰어나 부장군까지 승격한 알렉산드로스의 절친
한 친구이다. 동정길을 반대로 돌아가 나이 든 안티파트로스를 대신하여 마케도니아의 내정을 담당하게
된다.
클레안드로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왕의 암살 음모에 연루된 파르메니온을 죽이는 일을 맡는다. 후에
엑바타나의 태수가 되지만 횡포가 심하여 알렉산드로스 왕의 분노를 사 처형된다.
파르메니온: 필리포스 2세의 장군으로 필리포스가 암살되자 알렉산드로스를 지지한다. 부장군이 되어
동정길에 나서지만 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아들 필로타스와 함께 죽는다.
페르디카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알렉산드로스가 죽을 때 곁에 있다가 옥새를 맡게 되는
것을 계기로 로크사네를 앞세워 권력을 쥐려 한다. 한창 암투가 벌어지는 중에 부하에게 암살당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현인으로 불리는 장군으로 알렉산드로스왕이 세상
을 떠난 후 페르디카스가 장례를 치르려 하자 유체를 탈취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간다. 이집트에
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운다.
필로타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파느메니온의 장남으로 알렉산드로스와는 오랜 지기이지
만 왕의 신성을 믿지 않고 동정을 중지하도록 병사들을 선동한다. 왕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죽는
다.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의 부왕. 선왕에 뒤이어 필리포스의 큰 형이 왕위에 오르지만 어머니 에우
리디케의 책략에 의해 살해당하고 작은 형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등 왕위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가
운데 왕이 된다. 딸 필리피아의 결혼식장에서 암살된다.
헤페스티온: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미에자 학사 출신으로 뛰어난 예지 능력의 소유자로 중
요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신적인 영감을 받는다. 왕이 "크라테네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친구이고 헤페
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왕이 진심으로 아낀 인물이다. 동정군이 귀로에
오른 후 엑바타나에서 말라리아로 죽는데, 알렉산드로스도 같은 병으로 죽는다.
신의 아들
비가 내리고 다시 비가 그쳤다. 베르미온 구릉의 산기슭을 굽이치며 흘러내려 가는 시냇물은 그 양을
늘려갔다. 빛이 여울에 부딪혀 눈부시리만큼 반짝이다 흩어지곤 했다. 산새는 요란스럽게 지저귀며 소란
을 피워댔다. 그리스 반도 북동쪽 부근을 점령한 마케도니아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남쪽 근방의 제국
에 비하면 강우량이 많은 편이다. 1년 내내 적당량의 비가 내려 땅도 비옥하고 큰 강도 있다. 태고 적부
터 농작이 발달한 데다가 주위의 산림에서 양질의 목재가 벌채되고 있어서 사람들의 생활은 윤택했다.
에게해의 북단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태양의 빛도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 특유의 격렬
함을 나타내고 있다. 사방 어느 곳이나 눈부시고 밝다. 이 밝음과 검은 숲의 부조화는 그렇게 공존하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질에 미묘한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일까?' 기묘한 현상은 오랜만에 빛나
는 태양의 장난일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여울의 바위에 멈춰 서서 반대편 기슭의 수풀 덤불을 응시했다.
검게 뒤덮인 숲 속에 빛을 발하며 흔들리는 작은 물체가 있다. 파란 구슬 같은 광원이 흔들흔들 움직이
고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숲 속에 비슷한 광원이 또 하나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
지 않을 정도로 조금 색깔이 달랐다. 바로 눈앞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짙은 청색이다. 자줏빛을 띤 청색
에 가깝다. 멈춰 있는 쪽은 녹색을 띠고 있다. 그런 생각은 하는 사이에도 둘은 서로 겹쳐지고 섞이고
그러다가 다시 둘로 나뉘더니 녹색의 큰 구슬이 달아나 버렸다. 남겨진 하나는 잠시 반짝반짝 빛나더니
사라졌다.
'이상하다?'
소년은 머리를 흔들었다. 짐승은 아니다. 산새도 분명히 아니다. 풀잎의 초록빛이 개울에 비쳐 춤추듯
흔들리는 빛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소년에겐 처음으로 보는 현상이다. 세상은 넓고 소년의 지
식은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둡다. 주위로 눈을 돌려보면 불가사이하고 신비한 일과 만나게 되는 건 결코
드물지 않다. 소년은 생각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징조일까?'
헤페스티온이라고 불리는 이 소년은 마케도니아 귀족의 아들이다. 모계는 대대로 신전을 모시는 집안
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헤페스티온도 어렸을 대부터 자신의 예지 능력을 느끼고 있었다. 늘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 이상한 현상을 보았고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그럴 때면 마음을 차분하게 집중시켜
그 의미를 찾았다. 뇌리에 홀연히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지금부터 일어나게 될 미래를 암시할
뿐 아니라 어떤 사실의 진상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소년은 두 빛이 사라지는 것을 계속 지켜보면서 눈
을 감고 뭔가 뇌리에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같은 시간, 숲의 남쪽 큰길에서는 또 다른 소년이 물가에서
말을 쉬게 하며 물을 먹이고 있었다. 새까만 갈기가 인상적인 비범해 보이는 말이다. 물을 먹다 머리를
치켜든 말의 얼굴이 유독 새하얗다. 그리고 땀으로 번들거리는 어깨는 떡 벌어져서 보기에도 늠름하다.
강변에는 무성한 잡초를 밟고 지나간 수레바퀴 자국이 남아 있다. 동쪽으로 가면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 이르고, 서쪽은 멀리 그리스 반도 서안의 나라 에페이로스로 통한다. 양치기들이 서로 왕래하던
산 속의 오래된 길이었다. 이곳 주변은 '미다스왕(역주: 흔히 마이더스로 알려진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의 정원' 이라고 불리는 경승지로, 이렇게 불리게 된 데는 그리스 신화와 관련이 있다. 미다스왕은 마케
도니아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소아시아 반도의 작은 나라의 주인이었다. 그의 손에 닿는 것은 전부
황금으로 변해 버린다는 이야기와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 외에도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데, 영지 내에 요정이 찾아오는 정원을 갖
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곳은 맑은 샘물과 신록으로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었으리라. 그런 추측에서
유래하듯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예부터 아름다운 베르미온 구릉의 산기슭 지역을 '미다스왕의 정원' 이라
고 부르고 있었다. 수도인 펠라로부터 200스타드(약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오래된 신전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곳을 새로 개축하여 마케도니아의 젊은 귀족들을 위한 학문의 장으로 만들었다. 다름 아
닌 미에자 학사이다. 말의 안장을 바로 하던 소년은 큰길 저편으로부터 다가오는 사람 그림자를 알아채
고는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턱을 몸 쪽으로 당겨 비스듬히 바라보는 것은
이 소년의 버릇이다. 소년의 이런 눈길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오만불손하게 비치겠지만, 볼 언저리를 보
면 아직은 어린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새어 나와 소년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금발로 덮인 단정한 생김생김, 단련된
듯한 늠름한 체구. 마케도니아 국왕 필리포스 2세의 적자 알렉산드로스 3세이다. 친근한 사이에서는 사
자(레온타리)라 불리곤 하는데, 그에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왕자는 어린 사자처럼 용맹스러운 풍모
를 가진 데다가 사자는 왕가의 심벌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저 남잔가 보군."
다가오는 남자는 올리브색 키톤을 입고, 그것보다 약간 짙은 색의 히마티온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의상의 색채는 세련되어 보이는 데 비해 인상은 오히려 빈약했다. 키는 작고 몸은 야위었으며 얇은 슬리
퍼 모양의 신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품이 마치 말라비틀어진 산양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뭘
하는 사람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곳 사람은 아니다. 무인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뻔하
다. 예전부터 부왕으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일류 학자를 미에자로 보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내 어린 시절 친구다. 아테네에서 학문을 닦았지. 열심히 배워라." 라고 가까운 시일 안에 도착한다는 연
락도 이미 왔었다.
'일류 학잔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반발심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래도록 머물며 학문을 수양한 아테네는 문화의 중
심지이다. 누가 뭐라 해도 당대 제일의 도시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모든 좋은 것은 그곳으로부터 분출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직 아테네 땅을 밟아 본 적은 없지만 소문을 들어서 대강을 알고 있었
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문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그곳에서 학문을 수양한 자라면 어떤 사람
일까 하는 호기심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소년의 가슴속에서는 호기심과 반발심이라는 상반되는 두 개의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표정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었다. 불그스레한 얼굴에 머리숱은 적고 코는 큼직했다. 작은 눈은 움푹 들어갔고 움직임도 둔
했다. 좋게 말하면 사색적이지만 나약하고 어두워 보였다. 얼굴 생김은 그가 입은 세련된 옷차림과는 전
혀 어울리지 않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정말로 아테네 학자다운 위엄을 부렸다면 왕자의 반발심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편안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웃으며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나서
왕자 옆에 있는 말을 가리켰다.
"이 녀석이 부세팔로스로군요."
이것도 의외였다. 갑자기 일격을 당한 왕자는 어안이 벙벙해져 "네" 하고 순진하게 대답했다. 이때 아
리스토텔레스는 마흔 한 살이었고, 알렉산드로스는 열 세 살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철학자는 소년의 마
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람에게 다가서는 방법도 능숙했다. 왕자의 애마에게 친근함을 보이고 난 그
는 자신을 밝혔다.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약간은 우쭐한 채 자신을 소개했다.
"알렉산드로스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류시마코스와 레오니다스 두 사람에게서 교육을 받았었다. 두 사람 모두 엄격했지만,
특히 어머니 쪽의 친척이었던 레오니다스는 사정없이 왕자를 단련시켰다. 일상 생활의 예의범절이 너무
엄해서 왕자의 풍부한 인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왕자는 어릴 때부
터 무엇에서든 1인자이고 싶다는 자존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레오니다스의 조기 교육에도
잘 순응했다. 예의범절의 엄격함 따위에 견딜 수 없어서야 어떻게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겠는가. 왕자
는 이를 악물며 참고 극복했다. 이야기가 앞질러 가지만, 후에 전쟁 중이던 알렉산드로스에게 어느 귀부
인이 일류 요리사를 보내 주며 맛있는 음식을 들도록 권했다. 그 제의를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에 레오다니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훌륭한 요리사를 붙여 주셨다. 맛있는 점심을 위해서는
새벽에 행군을, 맛있는 저녁을 위해서는 가벼운 점심을. 이보다 더 훌륭한 요리사는 없다."
왕자는 전쟁 중에 술은 자주 마셨지만 진수성찬은 전혀 찾지 않았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받았던 교육
의 한 면을 전해 주는 에피소드이다. 이런 준엄한 가르침을 받아 온 탓에 열 세 살 난 알렉산드로스는
자존심이 유난히 세면서도 연장자, 특히 스승으로 모셔야 할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또 한
편으로는 왕자로서의 위엄을 결코 흩트리지 않으려 했다. 멀리서 온 스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
리스토텔레스와 악수를 나눈 왕자의 곁에서 흑마가 살짝 두 사람의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은
사색에 깊이 빠진 듯이 보였다. 그 표정을 살피면서 마치 소개라도 하듯이 알렉산드로스가 득의에 차서
말했다.
"영리한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띤 얼굴로 천천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왕자가 캐묻듯이 물었다. 부세팔로스의 영리함을 멀리서 온 손님이 어떻게 알아챘을까? 내 말이 영리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당히 얼버무리려 한다면 용서하지 않으리라. 왕자는 일상의 잡다한 일에 대해서도
이치에 맞게 대응하는 것을 좋아했다. 경솔한 추종은 싫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색을 왕자를 바라보고
는, 미간을 찌푸리며 타이르듯이 그리고 마치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기라고 하듯이 말했다.
"한눈에 왕자님의 역량을 꿰뚫어 봤으니, 영리한 말이지요."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이 무의식중에 온화해졌다. 몇 년 전 궁전으로 팔려 온 부세팔로스는 감당하기 힘
든 거친 말이었다. 필리포스왕의 가신들조차 잘 다룰 수가 없어 팔려고 하던 차에 알렉산드로스가 나타
났다.
"이런 명마를 팔려고 하다니 모두 말을 다룰 줄 모르는군!"
필리포스왕은 "그래? 자신 있게 말하는구나. 왕자가 탈 수 있겠느냐?" 라며 말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가라앉은 듯한 말의 눈빛은 무서웠다. 경험이 많은 마부도 다룰 수 없었던 말을 과연 어린 왕자가 탈 수
있을까.
"탈 수 있습니다."
왕자는 말을 응시하며 오만하게 대답했다.
"재밌겠구나! 타보아라."
"예."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지켜보는 가운데 알렉산드로스는 우선 말머리를 햇살이 비치는 쪽으로 틀었
다.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겁내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말의 갈기를 몇 번이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진정시키며 천천히 말에 올라탔다. 이윽고 말고삐를 가볍고 능숙하게 다루며 훌륭하게 몰아갔
다. 우레와 같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음, 참으로 기특하구나."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던 필리포스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뜻밖에 보게 된 왕자의 용맹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까지 어렸다. 그 동안 전쟁터에서 동분서주했던 국왕에게는 느긋하게 자식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새삼스레 왕자가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음을 확인하게 된 왕은 더 많은 기대를 품게 되
었다. 청년기에 접어든 알렉산드로스는 매사에 비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왕과 왕자의 부자 관계
를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가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복잡한 관계로 바뀌어 가지만, 부세팔로
스의 일화만은 왕이 처음으로 왕자의 비범함을 확인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에자
학사로 오기 전에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말은 말대로 자신의 몸을 맡길 상대를 고른다. 영리
한 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말은 사람을 본다. 그러므로 왕자를 보고 전폭적인 신뢰를 갖게 되었겠지.'
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마술은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좋아하는 무예 중 하나다. 그 후 부세팔로스는 왕자
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왕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애마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우
회적으로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은근한 의도였지만, 목
표는 과함도 부족함도 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학사는 저쪽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릉의 남쪽을 가리켰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왕자가 말고삐를 쥐고 걸어가기 시작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질질 끌면서 뒤쫓아갔다.
"아테네는 어떻습니까?"
왕자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거만한 어조로 물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왕자로서의
하문이었다. 장래 왕이 될 자가 이웃 나라의 정세를 묻는다는 의식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질문이므로 위
엄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자의 어린애 같은 치기에 일일이 대꾸할 수 없다
는 듯이 태연한 태도로 그저 "병들어 있습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어떻게 병들었단 말입니까?"
"전염병입니다. 테베도, 코린토스도 병들어 있습니다."
"스파르타는 어떻습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테네가 병들고 나면 헤게모니를 장악할 나라가 달리
있을는지. 이대로 가다가는 제대로 된 것이 없을 겁니다. 중한 병일 테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헤게모니라는 말에 특히 힘주어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생각해 볼 때
이 말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당시에는 소국가가 각지에 할거하면서 어느 한 나라가 패권을 쥐고 번
영하며 균형을 이루어 공영공존을 획책했다. 즉 지도력에 의한 연합체의 유지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모습이고, 역사적으로 보면 아테네가 중심이 되었던 적이 많았다.
"헤게모니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테네의 상황이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림도 없겠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쪽 어깨를 움츠리고 왕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의 대답을 유도했다. 그 의도는
들어맞았다.
"마케도니아가 쥔다..."
"바로 그런 기개를 가져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전염병에 걸려 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약
100년 정도전의 일이다. 기원전 5세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페리클레스 시대야말로 아테네의 최전성기였
다. 고대 데모크라티아는 제구실을 다했고 제국간의 융화도 델로스 동맹을 체결한 아테네의 지배하에 일
단은 무난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인류 문화사에 찬연하게 빛나는 수많은 극작가, 철학자, 역사가, 조각가를 배출시킨 것도 바로 이 시대
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거대한 파르페논 신전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 시기였고, 건축물
의 웅장한 모습은 민족의 영광과 아테네의 힘을 천하에 역력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페리클레스의 죽음을
계기로 아테네의 번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파르타와 싸워 패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종말
이었고, 게다가 이 전쟁이 한창일 때 페스트가 크게 유행해서 번영의 도시를 단번에 쇠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도 국력을 소모한 탓에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동
방의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간섭이 노골화되었고 그리스 제국은 점점 소아시아의 식민지를 잃어 갔다. 명
장 에파이메이논다스가 이끄는 테베군이 스파르타를 정복하여 당장은 헤게모니를 쥔 것처럼 보였지만,
역시 그 정도의 역량은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리스 반도는 어디를 보아도 힘없는 소국들이 우왕좌왕하
는 모습 뿐이었다. 후세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소국이 할거하는 정황 속에서 헤게모니를 거머쥔 강
대국이 나타나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라는 인식 하에 전체를 통합하는 정치 형태 그 자체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명백하게 대국 지배의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리스 반도에서
는 경제력의 현저한 쇠퇴가 도의의 저하를 불렀고, 이러한 그리스 사람들은 자부심이 어디에 갔는지 눈
앞의 이익만 추구하게 되었다. 자랑스러운 데모크라티아는 중우의 양상만을 추하게 드러냈고, 민중은 페
르시아를 비롯한 바다 건너편 세력의 감언에 쉽게 현혹되었다. 변변히 해야할 일이 없게 된 민중 가운데
는 용병에 지원하는 사람이 증가했고, 같은 그리스인끼리 여타세력의 부하가 되어 전쟁을 하는일이 빈번
해졌으며, 그런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아테네는, 아테네를 맹주로 하여 변영해 온 그리스 반도는 그렇게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인들
은 페리클레스 시대를 그리워했고 어떤 이들은 소리지르며, 어떤 이들은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헤게모
니를 쥘 나라가 다시 도래하기를 대망하고 있었다. 그리스 반도의 북동쪽 땅 마케도니아에 필리포스 2세
가 등장한 것은 정확히 이런 정황 가운데였다. 마케도니아인은 민족적으로는 그리스인과 다름없다. 드넓
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점령한 도리스계 그리스인과 조상이 같다. 언어나 풍속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 정도 차이라면 그리스반도 각지에서 흔히 보고들을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마케도니아인은 그리
스인과 같은 종족이다. 단지 그리스 반도의 선진 제국에 비하면 마케도니아인은 뒤늦게 발달한 왕국이기
에 민도가 낮다. 아테네, 테베, 코린토스, 스파르타 등 화려한 역사를 가진 순수 그리스인들의 눈으로 보
면 마케도니아가 촌스럽고 미개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뭐야, 마케도니아 원숭이들이" 라며 얕잡아 본 것도 사실이었다. 같은 민족이면서 마케도니아인을 대
등하다고 보는 것은 아주 극소수일 뿐 대부분은 유사한 수준 정도로 생각하는 일조차도 우습게 여겼다.
이런 현실은 이 시대를 바라볼 때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필리포스
왕으로부터 약 10대 정도 거슬러 올라간 알렉산드로스 1세 (기원전 495-452년 재위) 시대에 마케도니아
는 비로소 그리스인의 제전인 올림피아 경기에 출전을 인정받았다. 같은 민족으로 인정받게 되는 신호탄
이었지만, 그 이후 100년 정도의 세월로는 차별이 완전히 불식될 수 없었다. 반도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눈에 띄게 부상하는 마케도니아를 무시했고 차별 의식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쪽은 그리스 민족의 추세에 적잖은 관심을 품고 있었으며 어린 왕자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아테네에 몇 년 간 계셨습니까?"
"20년 정도 있었습니다."
"플라톤 학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있지요. 플라톤 아카데미아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을 깜박거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동쪽에 위치한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에게해의 최북단 칼키디케 반도가 세 갈래로 뻗어나와 있는 반도 동쪽 부근
의 탁 트인 어촌으로, 그리스인의 식민지로서 발전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마케도니아처럼 뒤진 곳으로 간
주되던 지역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대로 마케도니아 왕가에 봉사하고 있었던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 역시 필리포스왕의 아버지인 아민타스 3세의 주치의였다. 어린 시절
에 펠라 왕궁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왔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에서 비슷한 또래의 필리포흐와 만
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필리포스보다 두 살 위였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부터 마케도니아 왕가와 친밀한 관계였고 많은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필리포스왕이 '내 어린 시절 친
구' 라고 한 것은 이런 사실은 근거로 해서 한 말이었다. 어려서 아버지와 사별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
아시아 서안의 마을 아탈네우스에 사는 이복 형제 집에 몸을 맡겼다가 열일곱 살에 아테네로 나와 플라
톤 아카데미아에 입문했다. 이 시기에 플라톤은 시칠리아 섬으로 갈 일이 많아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석학에게 직접 교육받을 기회는 충분하지 못했지만, 소위 플라톤 학파의 훈도를 받아 눈부신 두각을 나
타냄으로써 마침내 걸출한 문하생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서히 플라톤 철학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스승으로서는 충분히 존경했지만 학설은 별개의 문제였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타향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테네의 정세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는데 예기치 않은 플라톤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소아시의 앗소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앗소스 지방의 영주 헬미어스가 불러 주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는 이미 필리포스왕의 시대로 접어들
고 있었다. 필리포스왕과 헬미어스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소아시아에 야심을 품은 필리포스왕은
해안의 요지를 점령한 앗소스의 영토를 수하에 넣어 두고 싶었다. 한편 헬미어스 쪽도 페르시아가 해마
다 노골적으로 압박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했다. 두 나라는 이처럼 정
치적인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다.
앗소스가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게 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강 건너 레스보스섬으로 피난을 가서 생물
학 연구에 전념했다. 레스보스섬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포스왕의 초빙을 받아 왕자 알렉산드로스
의 스승으로서 오랜만에 마케도니아 땅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필리포스왕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소아시아의 정세를 파악해야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게다가 사정만 허락한다면 헬미어스와 내통하는 밀사
로 써먹겠다는 복안도 없지는 않았다. 물론 비범한 자질을 나타내기 시작한 왕자의 스승도 필요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그것이 그럴싸한 위장도 되는 일석이조의 방편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이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은 익히 알고 있는 터였고 신뢰도 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토 필리포
스왕의 의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당시의 학자는 정치 고문의 역할을 맡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케도
니아 왕의 의도가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출생에서 보더라도 마케도니아에 대해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했고, 실제로 주위에서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친마케도니
아파로 주시하고 있었다. 아테네에 있기가 불편했던 이유도, 예를 들면 데모스테네스 같은 식자들 중에
서 신흥 세력으로 주목받는 마케도니아를 경계하는 소리가 높아졌고, 마침내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도 규
탄당할 수 있는 정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왕자의 교육이 문제가 아니지.'
알렉산드로스에 대해서는 흔치 않은 준재라는 소문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이런 왕자의 교육 자체
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 고문이 되는 것은 조금 걱정스러웠다. 레스보스섬에서는 여러
가지 생물을 관찰, 채집하며 체계화할 것을 연구하면서 앞으로는 연구 생활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는 생
각을 하기도 했었다. 자꾸 그런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더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로 향하
기 직전에 아내를 얻기로 했다. 앗소스의 영주 헬미어스의 여동생이다. 연구와 결혼, 안정된 생활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를 가까이 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목숨을 잃는다. 미에자 학사는 맑
은 샘물과 신록으로 뒤덮여 풍부한 자연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레스보스섬에서의 생물 연구와는 전혀 다
른 수확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
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스보스섬에서 함께 연구했던 문하생 테오프라스토스도 미에자로 데려오려고 했
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땅을 밟자마자 '정치는 정도껏 해두지 뭐'하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 심정까지 어린 알렉산드로스에게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걸으면서 물었다.
"플라톤은 뛰어난 학자였습니까?"
질문할 때마다 하얀 볼이 금세 붉은 빛을 띄었다. 마케도니아의 왕자에게도 플라톤의 명성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얼굴을 마주쳤던 강가의 길에서부터 학사까지 두 사람이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었
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 침묵을 지키며 계속 걸어왔다. 가끔 알렉산드로스가 질문을 던졌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짧게 대답하면 왕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생각을 거
듭한 끝에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질문을 했다. '도대체 왕자는 어떤 성격일까?' 하고 생각하며 아리스토텔
레스는 왕자의 옆모습에 자신의 옆모습을 나란히 한 채 눈치를 살폈다.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것 같았다. 통제가 안 될 만큼 격렬하지는 않겠
지. 볼에 나타나는 수줍은 홍조는 의문의 출구를 찾아 활활 타오르는 정열의 반사처럼 느껴졌다.
"제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플라톤이 죽은 지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도저히, 도저히..."
겸연쩍어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차이를 구태여 소년에게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다. 또다시 침
묵이 이어졌다. 석양이 산자락에 걸터앉으려고 한다. 수많은 철새들이 붉은 하늘에 검은 점을 그리며 날
아간다.
"중우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테네 민중이 전부 멍청해져 버렸단 뜻인가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뜻밖의 질문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놀라서 왕자의 얼굴을 훔쳐보며 '알고
서 하는 말일까?' 하고 의아해 했다. 중우라는 말은, 아테네에 있을 때 몇 번인가 언뜻 들었던 말이다. 역
사가 도키디데스가 처음 사용했던 것 같다. 이 견해는 플라톤도 동조하고 있다. 아테네의 정세를 보면
무리도 아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어리석은 자들이 눈앞의 욕망에 날뛰며 난동을 피울 뿐이다.
"이제는 국왕이 철학자가 되든지 철학자가 국왕이 되는 수밖에 없다."
아고라 난동을 한탄하며 플라톤이 중얼거린 말이다. 언젠가는 정말로 현명한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
다면 이 나라의 골격이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테네와 플라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에 중우라는 말을 물어 온 것이다. 왕자는
속으로 아테네의 상황과 플라톤과 중우, 그 셋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놀랐지만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마음 속으로 그렇지 않으리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말했다.
"왕자님, 중우라는 말의 뜻은 많은 민중이 모여서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란 뜻이지요."
'알아들었을까, 이 말의 뜻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면을 바라본 채 가만히 왕자의 반응을 살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겉모습은 그야말
로 촌사람이었지만, 사물을 보는 눈은 전혀 혼탁하지 않았다. 작은 눈으로도 보아야 할 것은 확실히 본
다. 왕자의 옆얼굴은 사색의 실마리를 더듬고 있는 듯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의 의미를 대충은 이
해한 것 같았다. 그러나 대답은 없이 "저곳이 학사입니다." 라고 했다. 턱으로 가리키는 곳에 길이 두 갈
래로 나뉘어 있고 구릉 기슭에 신전의 문이 보였다.
"음."
이번에는 알렉산드로스 쪽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옆얼굴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영리한 학생들만 모여 있습니다."
이 말은 조금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대한 가벼운 반발을 내포한 것처럼 들렸다.
"학생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사전에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을 굳이 물었다.
"열 여덟 명입니다."
"많은 수는 아니군요."
중우에서 군중이라는 것은, 아고라 광장을 가득 메우고 떠들어대는 몇백 몇천 명의 군중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설명만은 피했다. 열여덟 명이라도 중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던 것이다. 학사의 문을 들어서자 다시 어두운 숲이 터널을 길게 만들고 있었다. 아리
스토텔레스는 숲의 모습을 찾으면서 아무 이유 없이 '어둠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숲이 아니라 왕자의
머리 속에 대한 느낌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기품이 있고 두뇌 회전도 빨라. 지식도 열세 살 나이에 비해서는 넓은 것 같다. 조숙하게도 보이고.'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부세팔로스를 칭찬했을 때 웃는 얼굴은 정말 천진난만했었다.
'혼돈스럽구나.'
여러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마구 소용돌이쳤다. 자신조차도 자신의 생각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마치
마케도니아 땅 그것처럼 빛과 그림자가... 상반하는 무언가가 마음 속에 잠들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
신도 젊은 시절에는 그랬었다. 머리 속에 어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혼돈(카오스)이 조
화(코스모스)로 조금씩 변해 갔다. 인간도 머리 속에서 천지창조와 같은 이치를 더듬어 가는 것은 아닐
까. 한편 알렉산드로스도 상대를 탐색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촌
부 같은 모습 안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맞춰 학사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
갔다. 지름길을 택한 헤페스티온이 먼저 학사에 되돌아와 있었다. 미에자 신전의 일부는 학사로 쓰고 신
전 내에 취침을 할 수 있는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었다. 단련장도 있고 왕자를 포함한 열여덟 명의 젊은
이들이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밤을 낮으로 삼아 공부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사로서의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헤페스티온은 '사자가 돌아올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숙사로 향하
는 길모퉁이에 서서 바라보았다. 숲의 터널이 만든 잿빛 공간에 말을 끌고 오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
쳤다. 멀리서 보기에는 사이 좋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사자, 즉 알렉산드
로스이다. 틀림없다. 또 한 사람은 조그만 체격에 발을 질질 끌 듯이 걷고 있었다.
'누구지?'
의아스럽게 생각했지만, 모습으로 봐서 틀림없이 아테네에서 공부하신 선생님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헤페스티온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까운 시일 내에 도착하리라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키가 작아서 무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틀림없었다. 가만히 쳐다보니 미묘한 기색
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를 이어 주는 친화력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서로 통하고 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질투심
이 일 정도의 친밀함으로...
'아니야, 그것과는 달라.'
헤페스티온은 금방 부정했다. 망설이는 이유를 자신도 모른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까지
두 사람이 먼저 다가왔다.
'헤페스티온, 저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얼굴을 돌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말했다.
"헤페스티온입니다."
한 발짝 내디디며 자신을 소개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손을 내밀며 살짝 다가섰다. 헤페스티온이 목 하
나 정도 더 컸다. 몇 명의 학생이 눈치채고 뛰나왔다.
"크라테레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라고 합니다."
"카산드로스입니다."
각자가 한마디씩 자기 소개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
했다. 집사가 황급하게 뛰어나와, "내일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기거하실 방은 이미 준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에자 학사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기거할 집을 마련
해 그곳에서 아내를 맞이할 작정이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기숙사 안에도 방이 준비되어 있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조금 늦을 겁니다."
레스보스섬에서 함께 연구했던 제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열네 살 어리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든
든한 큰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후 그
의 방대한 학술 연구의 상당 부분을 편집하여 후세에 전해준 인물로, 그 자신도 어엿한 그리스 철학자로
서 이름을 남기게 되지만 이때는 아직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었다. 대표작 중의 하나인 <성격론>은 자신
의 결점을 드러내는 노악, 아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리석음, 애교 등 인간의 성격을 상세하게 설명하
여 완벽한 논술을 거침없이 펼치고 있다. 인간 연구의 효시로 보아도 될 것이다. 미에자 학사는 두 사람
의 학자를 맞이하게 되어 학생도 하인도 모두 들떠 있었던 것이다.
집사가, "선생님께서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어린 학생들은 저녁 식사 전에 훈련이 일과로 되어 있어서"
라며 먼저 나갔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생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보다 먼저 단
련장으로 사라졌다. 저녁 식탁에는 모두 모여 주연이 벌어졌다. 소년들도 술을 마셨다. 가까운 장래에 용
맹스런 장군이 되기를 원하여 약속했고, 스스로도 희망하는 자들뿐이었다. 술을 마실 줄 아는 것도 장군
에게 필요한 소양의 하나였다. 구릉지에서 생산한 포도주는 쓴맛은 강해도 알코올 농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임 인사를 끝내고 모두가 원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짧은 강의를 하게 되었
다. 대리석을 세운 칠판의 하얗고 매끄러운 면에 흑연석으로 길고 짧은 두 선을 긋고 나서 "어느쪽이 길
지?" 라고 물었다. 말의 어조도 표정도 본격적인 수업의 양상을 띠고 있다. 몸집은 볼품없이 초라하지만,
얼굴에는 학문의 수라장을 뚫고 나온 사람의 품격이 깃들여 있다.
"위쪽."
소년들이 제각각 분명하게 답했다. 어쩐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에 찬 밝은 표정을
지은 알렉산드로스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버릇처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할 것도 없이 한눈으로 봐도 위의 선이 길고 아래의 선이 짧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럴
까?" 라며 키에 비해서 큰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긴 선의 중점이 있다. 여기다. 짧은 선에도 중점이 있다."
그리고선 두 개의 선의 중점을 찾아 그것을 가는 선으로 연결했다.
"그것을 다시 반으로 잘라서... 반으로 갈라진 선에도 각각 중점이 있다. 그리고 또 남겨진 선에도 중점
이 있다."
짧고 긴 두 개의 선에서 중점을 찾아서는 다시 그것에 의해 잘려진 부분의 중점을 찾고, 계속해서 중
점을 연결했다. 순차적으로 잘게 일곱 번 정도 잘랐을 즈음 그가 말했다.
"그림으로는 그릴 수 없지만 중점은 한없이 있을 것이다. 두 개로 나뉜 선의 중점은 무한하게 찾을 수
있다. 위의 긴 선의 중점에 대응하는 점이 반드시 짧은 선에도 있다. 선이 점의 집합이라면 항상 대응하
는 점들로 서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끊고 살며시 웃으며 "긴 선과 짧은 선은 같은 길이라는 결론이 된다." 라고 말을 맺었다. 그
러고서는 전부를 한 번 둘러보았다. 이러한 기하학적인 사고는 고대 그리스에서 특히 발달했던 학문의
하나이다. 미에자 학사에 모여 있는 소년들에게도 낯선 것은 아니었다. 상하의 선 사이에 반드시 대응하
는 선이 있다면 점의 수는 같다는 결론이 된다. 점의 수가 같다면 두 선은 같은 길이가 된다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이상하다.
"긴 것은 깁니다." 라고 큰소리로 말한 것은 클레이토스였다. 피부색이 검기 때문에 깜상 클레이토스라
불렸다. 성격이 외곬인 탓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논리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대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답했다.
"긴 선과 짧은 선이 같다고 해서야 곤란해지지."
프톨레마이오스가 중얼거렸다. 이 소년은 유달리 얼굴이 잘생긴 미남이며 머리도 출중하다.
"정말이야."
"잘게 잘려지기 때문에 안 돼."
"왜 안 되지? 중점은 어디까지라도 있을 거야."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했다. 소년들에게 잠시 생각하게 한 뒤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양팔을 벌리고 중단
시켰다. 양팔에 걸린 외투가 장막처럼 퍼지면서 떨어졌다. 이것을 신호로 막이 내리고 드라마는 끝났다.
"분명히 길이가 다른데 그럴싸한 논리를 갖다 붙여서 길이가 같다고 말해 버리지. 이것을 궤변이라고
부르면서 말이야, 하하하. 아테네에서 지금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군들, 아테네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도 궤변은 숨어 있다. 끝까지 밝힌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사고라는 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선 전제가 있고 추론을 거듭하여 결론에 도달한다. 전제가 잘못되어 있지 않은가, 추론이 잘못되
지는 않았는가 충분히 음미해서 확실한 결론을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알겠나? 두 개의 선이지만..."
열변을 토하다가 그는 갑자기 칠판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은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점의 집합이 선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의 근원이다. 그래도 상관없을
경우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 전제가 치명적이다."
심장 언저리를 손끝으로 푹 찌르는 시늉을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점이라는 것은 크기를 갖지 않는 추상적인 위치이다. 한가운데라는 위치이고 크기는 아무것도 아니
다. 크기가 없는 점을 아무리 나열한다고 해도 길이를 갖는 선이 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긴 선과 짧은
선이 대응하는 점이 같은 수만큼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과 선의 길이와는 어떤 관계도 없다. 하지만 실
제 생활에서는 크기를 갖지 않은 점 따위는 있을 수 없지. 아무리 작더라도 작은 대로 면적을 갖고 있
다. 그 때문에 점을 나열하면 선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지금 누가 말했지 긴 것은 길다라고 그 말이
맞다.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다. 눈앞에 있는 것을 확실히 관찰하고 올바른 추론을 하여 진리를 찾
아내는 것 이것이 학문이고 반드시 여러분이 습득했으면 하는 방법이다. 궤변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진리를 여러분에게 전해 주기 위해 미에자에 온 것이다."
다시 한 번 양팔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작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버릇 같아 보였다. 아니면
혹시 아테네 학자들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박수가 나오자 강의가 끝났고 주연도 여기서 끝났다. 아리스
토텔레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년들의 얼굴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짧았지만 소년들의 이성을 압도
하는 훌륭한 강의였다. 소년들은 식당을 나왔다.
"조금 걸을까."
"음."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을 불러서 산책을 나섰다. 비늘처럼 희미한 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저것
은 어떤 천체일까. 왕자의 심중에는 미묘한 초조감이 일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약간 메슥거렸다.
그 이유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말로는 재미있다고 오늘의 강의를 평가했지만 마음속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그 사실은 왕자의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
스에게 교묘하게 놀림을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저의가 없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
고,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분했다.
'좀더 교묘한 대응이 없었을까.'
의심스러운 논리를 깰 수 없었던 것이 유감스러웠다. 아테네에서 오랫동안 실적을 쌓은 학자와 비교할
때 학식 부분에서 자신이 능가한다는 멍청한 자만심을 알렉산드로스가 갖고 있을 리는 없다. 특히 이런
종류의 논술은 아테네의 학자가 특출하다.
'지는 것이 당연해. 칼을 쥐었다면 질 염려는 없겠지만...'
이런 생각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가? 완력으로 한다면 미에자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했다는 사실이 더 더욱 분했다. "재미있다"고 한 것은 기껏해야 허세였
던 것이다. 헤페스티온은 왕자의 심경을 읽는 일에는 익숙해 있었다.
"굉장한 선생님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야. 그러니까 국왕이 불렀지."
반대로 "형편없는 선생이"라고 말했다면, 전혀 다른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점점 더 명료하게 빛을 발
해 가는 달을 우러러보면서 두 사람은 숲 속 작은 오솔길을 묵묵히 걸었다. 헤페스티온이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동료를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동료는 영원한 동료야... 류시마코스 선생님에게 배웠잖아." 하고
달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류시마코스는 펠라 궁전에서 왕자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
었다. 지금도 가끔씩 미에자 학사에 나타나서 알렉산드로스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위대한 서사시 일
리아스에 대해서 알렉산드로스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이 선생이다. 류시마코스는 그 방대한 일리아
스를 거의 다 암기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일인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얼굴을 붉히며 노하고 손짓발짓을
섞어 가며 들려주었다. 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야말로 어린 왕자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이야기다. 아킬레
우스가 얼마만큼 용맹한 영웅이었던가.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이미지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결정
할 만큼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 심원은 옛날 류시마코스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류시마코스는 그리스의 현인인 체하며 잠언 같은 교훈을 훈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헤페스티온이
중얼거린 것도 그의 말투를 흉내낸 것이었다.
"뭐였지?"
알렉산드로스는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왕자에게는 유능한 학자도 동류 중의 한 사람이다, 그거지?"
헤페스티온의 웃는 얼굴을 보고 알렉산드로스는 눈치챘다. 여러 달 전 미에자를 찾아왔던 류시마코스
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었다. 우리에게는 헤페스티온 그리고 크라테레스가 있지 않은가. 미에자 학사
에서는 학술이든 무예든 젊은 동료들끼리 매일 경쟁했다. 왕자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에서는 누군
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분명한 결과가 나타난다. 지는 것을 억울하다. 그 중에서도 무예의 경우는
잔혹하고 특히 왕자의 입장은 괴롭다. 알렉산드로스는 여느 사람과는 다른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그 역시
동료에게 지는 일이 있었다. 굴욕을 맛보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흔히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
다. 굴욕에 떨고 있는 왕자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류시마코스가 훈시했던 적이 있다.
"세상에는 강한 적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주위 사람끼리 누가 첫 번째고 누가 두 번째라고 정
해 두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순서요, 좁은 우물 안에서의 우열 정도의 가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넓게 둘러보면 미에자에서의 실력 비교 따위는 도토리 키 재기와 같은 일입니다. 오히
려 강한 동료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즐거워하십시오. 그리고 그 동료를 언제까지나 자신의 동료로 둘 것
을 염두에 두십시오. 진정한 경쟁은 미에자에 있을 때가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나갈 때입니다. 미에자의
동료가 그때에도 동료인 것이 정말 소중하며, 원망이나 질투를 품고 동료를 잃는 것은 하찮은 일입니다.
자신이 두 번째라면 첫 번째를 자신의 동료로 만드십시오. 그렇게 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왕이 될 분의 지혜입니다."
류시마코스의 가르침은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의미를 잘 이해했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감정은 좀처럼 탄력있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초조함이 생기는 것을 피할 길이 없었
다. 헤페스티온은 볼에 웃음을 품고서 왕자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길 가망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이기기 어려울 만큼의 강자가 가까이에 많이
있는 편이 낫다.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다.
"알았어."
망연자실하며 중얼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뒤엉켰다. 알렉산드로스의 눈 색깔은 좌우가 달랐다. 오른
쪽 눈의 푸른빛이 짙었다. 이 미묘한 눈길에 신비한 기색이 더해졌다. 더욱 이상한 것은 헤페스티온도
눈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단지 헤페스티온은 왼쪽 눈의 푸른빛이 짙었다. 이런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두 사람의 성격이 대조적이라는 사실을 흥미롭게 암시해 주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과격하고 헤
페스티온은 조용한 성격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행동하는 사람이고 헤페스티온은 사고하는 사람이다. 알렉
산드로스는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헤페스티온은 어른스럽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숲 속 오솔길을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헤페스티온이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 속삭였다.
"오늘 오후, 강 건너편의 숲에서 푸른 두 물체가 빛나는 것을 보았어. 마침 사자가 선생님과 만나고 있
을 때였어."
"뭔데?"
"무엇인지 파랗고 아름다운 빛이었어. 숲 안쪽에서 홀연히 하나가 나타났는데 한 쪽에서 또 다른 파란
빛이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더니 두 개가 하나로 되어 큰 구슬이 되었어."
"그래?"
"그러고서는 다시 두 개로 갈라지면서 사라져 버렸는데..., 그게 뭔지 지금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이었어."
"만남이라고, 어떻게 되지?"
"그건 몰라. 아마 나쁜 징조는 아닐 거야. 아름다운 빛이었으니까... 멋진 해후지. 무슨 계시일지도 몰
라."
헤페스티온에게는 예지 능력이 있었다. 이성을 초월한 불확실한 것에 감응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당
사자도 그렇게 말하고 알렉산드로스도... 여하튼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의 지기이기 때문에 체험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헤페스티온이 무표정한 얼굴로 불쑥 기묘한 한마디를 중얼거릴 때 그것은 인
지를 초월한 무언가를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의 진상을 암시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도 몇 번이나
놀란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오만하리만큼 자신의 판단을 믿는 알렉산
드로스였지만, 이런 종류의 초능력에 대한 경의와 두려움은 갖고 있었다. 영감은 신의 존재와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고대 사회에서 신들이 차지한 영역은 매우 크다. 당시 마케도니아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신
들이 빈번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신인지도 모른 채 어릴 때는 막연하게 존경
했었지만 요즘 알렉산드로스는 '신이란 무엇인가?' 하는 신의 존재와 자신과의 관련성을 생각하게 되었
다. 헤페스티온과도 몇 번인가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신이 있을까?"
오늘 밤도 다시 물었다. 푸른 빛은 무언가 신이 발한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존재할 거야."
"어떻게 알아?"
일단은 확인하지 않으면 속이 시원치가 않다.
"논리적인 게 아냐, 느낌이야."
헤페스티온의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한순간 흐릿한 기운에 싸여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시키면 갑자
기 뇌리에 떠오르는 무엇이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알렉산드로스도 유사한 감촉을 느끼고 혹시 이런 걸
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헤페스티온처럼 그렇게 분명하게는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이 답답했다.
"신이란 뭐지?"
"믿는 것."
"믿을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지?"
알렉산드로스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일상적인 의식에서는 믿고 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도 남아 있었다. 헤페스티온만큼 신을 가까이 있는 존재로 느낄 수가 없었다. 신의 존재는 왠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믿지 않으면... 없어."
"망상과 어디가 다르지?"
헤페스티온은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하며 단호한 말투로 반박하고서는, "사자도 잘 알고 있을 거
야. 삼라만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의 배후에 신이 있어. 그것을 느낄 수
있어." 하고 말했다.
"제우스야?"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신의 이름을 들었다.
"음, 그렇게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몬일지도 몰라."
아몬은 멀리 이집트의 위대한 신이다. 아주 옛날 바다 저편에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전래해 왔다.
"그러니까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물어 볼까?"
"재미있겠군."
아테네에서 공부한 학자는 뭐라고 대답해 줄 것인가. 이것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긴 선과 짧은 선의
문제처럼 명쾌하게 대답해 줄지 어떨지 두 사람은 마주보며 동의했다.
"야."
두 갈래 길 저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학사의 친한 친구들인 크라테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였다. 크라테
레스가 갑작스럽게 알렉산드로스 눈앞에서 격투하는 시늉을 하며 공격해 왔다. 헤페스티온도 프톨레마이
오스도 가세했다.
잠시 장난친 뒤 넷은 모두 학사로 돌아갔다. 취침 전에 한 번 더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그들의 일과이
다. 정원 뒤에는 이미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나름대로의 기량으로 몸을 움직여 단련에 힘쓰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달은 반짝이는 은화로 변하여 하늘 위에 잠들어 있었다.
미에자 신전을 학문의 장으로 삼은 것은 필리포스왕의 발상이었다. 왕자인 알렉산드로스를 중심으로
마케도니아의 젊고 뛰어난 수재들을 모아서 심신을 단련시킨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또 다른 절실한 목적이 필리포스왕의 심중에 숨겨져 있었고 적어도 발단은 이 때문이었다. 왕자
를 언제까지나 옹비 가까이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 이유였다. 왕과 왕비 올림피아스의
갈등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원래는 금실이 좋았었다.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 서쪽에 위치하는 에페
이로스의 공주였고 원시적 종교의 열광적인 신자였다. 그 종교의 신은 제우스아몬으로 불렸다. 제우스는
이미 기술했듯이 그리스 신화의 위대한 신이며, 아몬은 고대 이집트의 수호신이다. 제우스아몬은 그 이
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두 문명에 뿌리내린 범지중해적인 대신이며, 올림피아스의 신앙은 이 신을 지
상으로 여기고 모시는 우너시적인 신앙이었다. 교리는 분명치 않지만 여러 가지 토속 신앙과도 융화할
수 있는 신축 자재한 신인 것 같았다. 올림피아스의 신앙은 다분히 열광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띠고 있
었다. 제사 때에는 술과 약초에 취하여 광기로 난무하며, 성적으로 문란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고
황홀한 지경으로 승화해 갔다. 올림피아스는 제사를 마감하는 여사제이고 요염한 무용수로서 무시무시한
뱀도 제멋대로 다루었다. 필리포스왕과의 만남 그 자체가 사모트라케섬에서 열린 제사 때였다. 참가자에
게 종교적인 도취와 이성의 포기를 재촉하는 의식이었다. 그 광란 속에서 필리포스왕은 올림피아스의 요
염한 매력에 매료되어 그녀의 포로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왕은 호색을 즐기기에 충분히 젊은 남자였다.
올림피아스가 이웃 나라의 공주라는 정치적 판단도 더해져 마케도니아 왕의 왕비로 맞아들였지만, 이 생
각이 아무리 얕은 술수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결단일 것이다. 두 사람의 성격은 너무나도 달랐다.
올림피아스는 거만하며 고집이 세고 질투심도 많으며 잔인한 여자라는 나쁜 소문이 퍼져 있었지만, 이
런 평가가 항상 공평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대충 생각해 봐도 올림피아스는 매우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왕가의 온화한 생활을 유지해 가기는 어려운 성격이었다. 특히 필리포스왕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왕비의 주술적이고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신앙심이었다. 침실에 뱀을 불러들여 신
의 화신이라고 어루만지기까지 하니 아무리 용맹을 자랑하는 필리포스왕이라고 해도 질릴 정도였다. 자
연히 침실을 따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전쟁에 나가는 일이 많았던 왕에게는 왕비와 동침할 기회
도 적어졌다.
왕비 자신의 말에 따르면, 올림피아스는 벼락을 맞아 전신이 불타는 꿈을 꾼 직후에 임신했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태어날 아들, 즉 후의 알렉산드로스를 "벼락은 제우스아몬의 증거입니다. 신의 아들이 그
속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라며 신의 아들이라고 역설했다. 사실의 진위는 어떻든 간에 날이 갈수록 이
주장이 거세진 것은 사실이었다. 같은 시간 필리포스왕도 꿈을 꾸었다. 젊은 왕비의 몸에 사자의 각인이
새겨진 반지로 봉인하는 내용이었다. 사자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심벌이었기 때문에 이 꿈은 마케도니아
왕가의 피가 왕비의 몸 속에 살아 있다는 해석이 되지만, 당사자인 올림피아스는 결단코 인정하지 않았
다. 왕비는 "신의 아들입니다."라며 고집스럽게 우겨댔다. 밤마다 어둠 속에서 "필리포스왕의 아들이 아
닙니다."라고 주문을 외웠다. 이런 생각은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 후에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주
장은 더욱 강해졌다. 덧붙여 말하면 알렉산드로스라는 명명 자체가 (탄생할 때 왕이 국외에 원정하고 있
었다는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왕비의 종교적인 기지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
은 마케도니아 왕가에서 유서 깊은 이름이기 때문에 필리포스왕도 추인했지만, 이 하나의 사건에서부터
도 왕자의 출생에 대해 국왕이 적잖이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을 발단으로 알렉
산드로스가 제우스아몬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왕비 마음 속에 왕에 대한 원망이 뿌리내린 가벼운 신봉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굳은 신앙이 되어 엄연한 사실로 변해 갔다.
필리포스왕은 앞서 말했던 꿈속에서의 봉인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징조를 보았다. 징조를 보았다며 태평
스럽게 즐거워한 적도 있다. 예를 들면 야영지의 숙소 지붕에 두 마리의 큰 독수리가 앉아 있었다. 궁금
한 마음에 점술사를 불러서 물으니, "이것은 왕자가 태어나시고, 두 왕자가 두 나라를 지배한다는 전조이
옵나이다." 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왕자가 탄생했기 때문에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왕
자의 생일에는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아끼는 수하의 장군인 파르메니온이 대승을 거뒀고, 또 필리포스 자
신의 말이 올림피아 제전의 큰 레이스에서 우승했다는 소식도 날아왔다. 경사가 겹쳤다. 무척 기분이 좋
아서 펠라에 개선했지만 왕비의 기분은 심상치가 않았다.
"무슨 일 있었소?" 하고 묻자, 왕비는 다짜고짜로 "신의 아들입니다." 라며 쌀쌀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올림피아스의 생가인 에페이로스 왕가는 그 옛날의 아킬레우스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아킬레우스라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며 호메로스가 찬양한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의 주인공이다. 이렇게 보면 알렉
산드로스는 아킬레우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셈이 된다. 한편 마케도니아 왕가 쪽은 그리스 신화에서 으뜸
가는 호걸 헤라클레스의 후예이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당연히 이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 때문에 알렉
산드로스를 두고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의 후예'라고 말하면 필리포스왕은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않
지만, 왕비가 진심으로 "제우스아몬과 아킬레우스의 아들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앙의 문제 이전에
그 말 자체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정말 내 아들일까. 제우스아몬은 하나의 구실이고
그 뒤에 올림피아스의 부정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여러 정황으로 판단해 의
심은 대충 풀렸지만 신과의 교합은 올림피아스의 가슴속에서 점점 확고한 것으로 변해 갔다. 필리포스왕
이 전쟁터에서 한 쪽 눈을 잃었을 때도 "왕비님이 침소에서 큰 뱀과 장난치며 놀고 있었대. 뱀은 신의
화신이야. 왕이 그걸 훔쳐보았기 때문에..." 하는 소문이 떠돌았고 사람들은 신의 형벌이라고 믿었다. 올
림피아스가 고의로 소문을 퍼트렸다는 의혹도 충분히 있었다. 올림피아스에게서 멀어져 간 필리포스왕은
점점 애첩들을 거느려 갔고, 이것은 권력자로서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기품 높은 올림피아스에게
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자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험악해져 갔다. 그리스인들을 초대한 축
연이 벌여졌을 때에 필리포스왕이, "알렉산드로스는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
라며 대단히 기뻐서 영웅의 혈통을 자랑하려는 순간, 왕의 입술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왕비 올림피아스
가 말했다.
"왕자는 제우스아몬과 아킬레우스의 혈통입니다."
왕비가 정색을 하고 막무가내로 우겨댔기 때문에 왕의 진노는 극에 달했다. 진작부터 왕은 왕비 올림
피아스에게 왕자를 맡겨서 좋을 일이 없겠다는 염려를 마음 속에 늘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필리포스왕은 고민스러운 내전을 처리하고 전력을
기울여서 주변 세력들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야심도 커져 갔다. 전장을
각지로 옮겨 다니는, 문자 그대로 동분서주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왕자의 교육까지 세심하게 살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필리포스왕은 어린 시절의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약간 실망하고 있었다. 유년기의 알렉산
드로스는 시를 좋아하고 내성적이어서 쾌활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신비한 것에 대한 동경심도 강해 무장
보다는 신관이나 학자에 어울리는 성품으로 비쳤다. 큰 그릇이 못 된다고 가볍게 여긴 적도 있었다. 그
러나 왕자가 무능하다면 달리 만들면 될 것이다. 오히려 비범한 그릇이야말로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했
던 것인지 모르지만 국왕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필리포스왕이 왕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란 것은 거친 야생마였던 부세팔로스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던 때부터이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자연히 눈에 들어오는 점도 있었다. 침착한 것은 그만큼 사려가
깊기 때문이고, 시를 좋아하는 것은 지성의 발로이다. 체력도 누구보다 뛰어났다. 용기도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필리포스왕조차도 헤아릴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을 마음 속 어딘가에 숨겨 두
고 있는 것이었다. 그 어둠에 올림피아스의 광기가 파고든다면 큰일이다. 수도인 펠라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의 신전을 학문을 닦는 곳으로 바꿔서 열세 살이 된 알렉산드로스를 귀족의 자제들과 함께 공부
하게 한 것은 이러한 의도에서 나온 하나의 방편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로스
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그 정도를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어머니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갖
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물론 아버지에 대해서도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필리포스가 비범
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고, 마케도니아의 융성은 필리포스왕의 탁월한 능
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누구나 필리포스왕을 두려워하고 존경했다.
왕과 왕비의 굴절된 관계에도 불구하고 어린 알렉산드로스의 효심이 비뚤어지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두 스승의 공이었다. 몇 살 때에 자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 알렉산
드로스의 신조였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도의에 있어서도 인륜에 어긋나는 것은 알렉산드로스가 바
라는 바가 아니었다. 단지 부왕의 기대와는 별개로 요람에서부터 끊임없이 들었던 "당신은 신의 아들입
니다." 라는 어머니의 말만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깊숙한 부분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었다. 피
속에 올림피아스의 신비성이 흘러든 데다가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헤페스티온의 영향도 컸다. 헤페스티
온은 신관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그의 어머니는 디온 신전의 무녀였다. 그러므로 신비성이 몸에 배어 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헤페스티온을 지기로 선택한 이유도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
는 신비에의 동경이었을지 모른다. 올림피아스에게서 늘 "당신은 신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나
는 정말 신의 아들일까'라는 생각에 한때 방황도 했었지만, 마침내 알렉산드로스는 이성을 초월하여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믿는 부분이 뇌리에서 점차 커져 갔다. 그것이야말로 필리포스왕이 보았던, 그리고 아리
스토텔레스가 느꼈던 왕자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어둠일지도 모른다. 도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알렉산드로
스 내부에 광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어둠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신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미에자 학사로 부임하고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알렉산드로스는 오래된 의문을 아
테네에서 온 학자에게 제기했다. 베르미온 구릉 반대편의 완만한 언덕길을 걷던 중이었다. 아리스토텔레
스는 화창한 날 오후면 학생들에게 걸으면서 자연을 관찰하도록 하거나 호메로스 시 한 구절을 읊으며
설명하거나 문답을 주고받는 등 자유롭게 수업을 했다. 후에 소요 학파라 불리게 되는 습관은 이 시기부
터 시작되었다. 소요 학파는 페리파토스 학파라고도 하며, 이것은 지붕이 덮인 회랑을 걸으면서 강의했
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밖으로 나가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미에자에서는 신전의
회랑에서의 강의는 적었고 오히려 야외 산책 쪽이 많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스승의 오니편에서 걸었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헤페스티온, 크라테레스, 프톨레마이오스, 페르디카스가 있고 다른 학생들도 목소리
가 들리는 범위 내에서 따라왔다.
"그것은... 어렵군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예닐곱 발자국을 걸은 후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
"피하시는 건가요?"
알렉산드로스는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큰소리롤 따졌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혀 격해지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타일렀다.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이야기를 해도 알아들으실 지 모르겠군요."
"이치에 맞는다면 알아듣겠죠."
"왕자님은 알아들어도 다른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신에 대한 문제가 누구에게나 심각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강하고 용감한 무인이 될 것을 동경
하고 있는 열서너 살의 개구쟁이들 대부분은 신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외경하고 있
을 뿐이다.
"그러면 제게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언제 기회를 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굳이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망설임이 없는 것도 아니었
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은사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의문과 통하고 있었다. 이데아론은
난해하여 도저히 마케도니아 소년들에게 전할 수는 없지만, 요약해서 말하자면 플라톤은 "닭보다 먼저
닭의 이데아가 있다" 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데아의 설정은 조물주인 신에 근거한 것일 터
였다. 이성을 구사해서 삼라만상의 이데아를 파악하는 것이 플라톤 철학이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도
비가 내리는 것은 식물을 자라게 하기 위해, 오렌지나 포도를 열매 맺게 하기 위해, 인간을 양성하기 위
해서라는 사고로 기울어 갔다.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그 배후에는 신이 있을 것이다. 그
러나 플라톤처럼 사고에 의해서 성급하게 이데아의 존재를 단언하는 처사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처음에
이데아가 있고 그로 인해서 착오에 빠져 버린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디까지나 깊고 신중하게 자연과 현
실을 관찰하여,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 듯이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이 세계를 지배하
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신을 향한 존경이고, 그런 의미에서 신을 외경하는 사상과 과학은 일치하는 것
이지만 관찰과 사유의 이치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유한한 일생에서 신의 존재를 구명하는 첫걸음에
라도 도달할 수 있을는지. 알렉산드로스가 질문을 바꿨다.
"저는 신의 아들일까요?"
올림피아스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바로 대답했다.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신의 아들이라면 저절로 보이는 무
엇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 그럴까요?"
"분명 그렇습니다."
왕자는 일말의 만족감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만, 마케도니아로 부임했을 때는 아직 40대 초반이었고 학자로서는 암중모색의 시기였다. 필리포스왕은
아테네의 예지를 소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초빙했던 것이었지만, 소년들에게는 수준
이 너무 높았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교육보다는 자신의 연구가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
스는 말년에 젊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의 힘겨움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배경에는 미에자에서의 경
험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아버지한테서 부여받았지만, 잘 살아간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부여받았다."
미에자 시절을 한마디로 표현한 알렉산드로스의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은 대부분의 경우 난
해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천성적인 예민함으로, 때로는 제멋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의적으로 아리스
토텔레스의 언동 중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만을 이해했다. 불필요한 것은 사정없이 버렸다.
가까이 한 책은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였다. 원래 이 고전은 류시마코스에게 배워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읽어 두면 좋을 것이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건네준 일리아스의 파피루스 권본은,
후에 알렉산드로스가 원정지의 진중에서도 호신용 단검과 함께 머리맡에 두고 잠들 정도로 아낀 책이었
다. 일리아스에 그려진 트로이 전쟁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류시마코스에게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많이 들
었지만 그것은 귀로 들은 지식이었고, 전편을 다 읽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서였다. 일리아스
는 대작이다. 헤페스티온과 함께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밤이나 낮이나 읽은 후의 감상을 서로 나누었다.
"류시마코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지."
"정말 그랬었어."
류시마코스는 알기 쉽게 설명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독서를 계속하는 동안에 점차 원전이
갖고 있는 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성장기의 독서는 고대의 왕자에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귀로들은 이미지에 원전의 음률이 갖는 아름다움과 힘이
더해지고 증폭되어 감성에 침투해 이성을 계발했다.
"이 책은 정말 훌륭해. 그리스인들의 자랑이야."
일리아스는 류시마코스의 이야기를 초월하여 알렉산드로스가 평생동안 가장 소중히 여긴 책이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은 아킬레우스였다. 일리아스의 주인공으로 성격이 난폭한 영웅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킬레우스는 어머니 쪽의 혈통이 아닌가.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류시마코스는 "왕자가 아킬레우스라면 나는 결국 포이닉스잖아" 라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포이닉스
라는 인물은 어린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를 대신한 무인이다. 어린 시절에는 류시마코스의 말을 듣고 "나
는 아킬레우스다." 라고 아무 생각없이 이야기 중의 영웅인 체했으나,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성장하여 일
리아스에 대한 지식이 깊어짐에 따라 같은 말을 하면서도 밑바닥에 잠재한 것은 조금 달랐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테티스라는 이름의 여신이다. 여색을 밝히는 위대한 신 제우스도 첫눈에 반했
으면서도 이 여신에게만은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테티스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보다 강한 아들이
된다는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테티스와 잠자리를 하여 아들이 태어난다면 제우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
워진다. 결국 그토록 대단한 제우스도 테티스를 포기하게 되었고, 테티스는 테살리아의 왕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아킬레우스를 낳는다. 이 전설이 알렉산드로스를 적잖이 자극했다. 부왕 필리포스에게는 어느
정도의 존경심을 갖고 있었지만 반발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을 몹시 즐기는 데다 호색가이며 성
격은 거칠고 단정치 못한 아버지 필리포스. 청년기에 들어서자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눈에 띄게 깊어
져 갔다. 하물며 알렉산드로스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강한 개성을 갖고 있어 부왕과의 충돌은 해가 감에
따라 현저하게 드러났다.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에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말겠어.' 라는
자각이 점점 또렷해지자, "나는 아킬레우스다."라는 말에도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졌다. 아킬레우스는 숙
명적으로 아버지를 초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나
는 파트로클로스겠네."라며 웃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친구이다.
"정말 그렇군."
알렉산드로스도 한마디 거들며 웃었다. 두 사람은 서사시에 등장한 영웅을 자신들에게 빗대며 우쭐해
지는 기분을 즐겼다. 아무래도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영웅 아가멤논에 대해서도 서술하지 않
을 수 없다. 이 인물에 대해서도 알렉산드로스와 헤페스티온은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다.
"아가멤논은 왜 훌륭한 걸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리아스에 대한 감상을 물어 보자 알렉산드로스는 거꾸로 되물었다. 스승의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싸운 그리스군 총사령관이다. 1
만 명이 넘는 군대의 총사령부 대장이지만, 일리아스를 읽으면 오만하고 잔혹하고 비겁하며 욕심쟁이여
서 도저히 위대한 인물이라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음, 정말 그럴까?"
"어떻게 그런 사람이 훌륭하죠?"
"헤페스티온도 같은 생각인가?"
"예. 욕심쟁이여서 아킬레우스를 화나게 한 데다가 심지어 아트레스에서는 처녀를 산 제물로 하여 태
우기까지 했어요."
"그랬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짧게 대답한 후,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왕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아가멤논이 훌륭한 것은..."
"네에?"
"아가멤논이 훌륭한 것은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난 이상,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것이 지휘관의 임무다.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교훈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년을 다 채우지 않
고 마케도니아를 떠났다.
"국가는 배와도 같다. 승무원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안전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자의 역할은
정해져 있으며, 각자의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 선이다."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교훈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리아스 외에도 자랑할 만한 그리스 극작가
들의 작품에 대해서, 특히 마케도니아 궁전에서 말년을 보낸 에우리피데스에 대해서도 미에자 학사에서
가끔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후에 알렉산드로스가 이런 희곡의 대사를 가끔 입에 올린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의학이나 박물학 지식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에게 전수 받았
다. 알렉산드로스는 의술에도 상당한 지식이 있었고, 이국의 동식물이나 지형에 대해서도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으며, 채집이나 자연의 기록에도 열심이었다. 학자의 길을 선택했더라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미에자 학사의 수확이라고 한다면, 우선 첫 번째로 동년배의 친구들과 가까이 지낸 일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필리포스 왕이 의도했던 저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미에자에
서 얻은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을 빼놓고서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헤페스티온은 일생 동안의 지기였으며 알렉산드로스의 반쪽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존재였다. 크라테레스
에 대해서는 사자 사냥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함께 사자 사냥을 갔을 때 무모하게도 알렉산드
로스가 사자에게 달려들어 하마터면 사자 발톱에 긁힐 뻔한 것을, 크라테레스는 자신의 몸을 내던져 사
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끌어 왕자를 구했다. 이 인물 또한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친구로서
활약했다. 그러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사자 사냥의 일화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수도의 궁전 바닥을 장식했고, 마침내 땅에 묻혀 유유하게 2000년 동안 기나긴 잠을 잔 후 20세기에 들
어서서 다시 마케도니아 유적으로 되살아났다. 오늘날 그리스 북쪽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자갈들을 채워
서 만들어 놓은 모자이크를 유적 일대에서 볼 수있다. 이 모자이크화는 유명한 화집에도 자주 실린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한참 후의이야기이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이집트에 왕조를 세운다. 이 후예가 세운
왕조 최후의 여왕이 세계 역사상 최고의 미녀로 일컬어지는 클레오파트라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필로타스, 클레이토스, 카산드로스, 페르디카스, 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있다. 울창한 숲에 싸여 있는
미에자 학사로부터 하나의 역사가 그 빛나는 등장 인물을 둘러싸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원전 340년, 알렉산드로스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수도 펠라로 돌아와 섭정에 임하게 된다. 수도의
정세는 베르미온 구릉처럼 태평스럽지는 않았다. 외교, 전쟁, 음모, 왕과 왕비와의 갈등 등으로 복잡한 현
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왕자는 두려워하지 않고 엄연하게 현실에 맞섰다. 알렉산드로스가 열
여섯 나던 해 가을이었다.
수염없는 용사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더듬어 볼 때, 부왕 필리포스의 업적을 빼고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마케도
니아 건국 영웅 필리포스 2세 역시 역사적으로 걸출하고 수완이 뛰어났던 대왕이다. 필리포스는 기원전
382년에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3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두 형이 있어 처음부터 왕위를 약속받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필리포스는 주위의 여러 나라들이 눈독을 들이는 훌륭한 인
질감이었다. 전설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에게해 주변의 역사서에 마케도니아가 국가로서 명확하게 인
식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 초 무렵이다. 그후 100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왕국은 급속한 발전을
보이지만, 예외없이 왕위를 둘러싸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필리포스의 큰형이 부왕에
뒤이어 즉위하지만 사위를 앉히려던 어머니 에우리디케의 책략에 의해 살해당했고, 둘째형인 페르디카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여 일단을 어머니의 간섭을 배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끝내는 에우리디케와 공모한
내외 세력과 싸워 요절하고 말았다. 결국 아민타스 3세의 사위도 살해당한 후, 이러한 처참한 혼란 속에
서 국왕으로 선택된 것이 스물세 살의 필리포스 2세였다. 필리포스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피로 피를 씻는 처절한 권력 싸움을 낱낱이 보면서 자랐다는 사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몇 번이
나 인질로서의 쓰라린 경험을 맛본 일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튼 많은 고생을 겪은 인
물이었다. 그렇지만 10대 중반에, 즉 가장 감성적인 시기에 여러 해 동안 인질로 테베에 보내진 것은 이
준재에게는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테베는 아테네만큼은 아니지만 마케도니아보다는 훨씬 발전해 있었
다. 모든 것이 뒤떨어진 나라의 왕자가 이렇게 수준이 다른 두 선진 도시 국가를 알았다는 것은 매우 의
미가 깊다. 두 나라를 비교함으로써 두뇌가 예리한 필리포스는 지난날의 그리스적인 세계란 과연 어떠한
것인지 대략을 파악할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덧붙여서 말하면 당시의 테베는 군사에 있어서만큼은 뛰어
났다. 테베의 군대는 에파이메이논다스와 펠로피다스라는 역사에 남을 두 사람의 유명한 장군의 지도를
받아 잘 훈련되어 있었으며 충실하게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인질이었던 어린 왕자는 이 실정을 빠짐없이
눈으로 보며 국가는 군대가 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고 마음 깊숙이 새겼
다. 원래부터 탁월한 자질이 갖춰져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필리포스는 군사에 관해서만큼
은 천재적이었다. 그는 테베에서 얻었던 지식을 더욱 증진시켜 고대에서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의 본격적
인 군대를 완성해 냈다. 이를테면 그때까지의 군대가 전시에 일시적으로 동원되는 잡병으로 채워지던 것
에 비해 필리포스의 군대는 문자 그대로 군인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당연히 의식에 있어서도, 전투의 기
술에 있어서도 전자와는 달랐고 저만큼 앞서 있었다. 무엇보다도 평상시의 훈련이 조직적이고 본격적이
었다. 병사들이 농사에 종사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련을 위한 것이며 훈련 중의 여가
를 노동으로 대체시켰을 뿐이었다. 농민이 갑자기 무기를 들고 싸울 수는 없다. 이기기 위한 훈련을 받
을 때에 전쟁에 강해진다. 실제로 필리포스의 군사는 많은 승리를 거뒀다. 필리포스는 또한 기마병을 정
비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진영의 어디에 기마병을 두고 어떤 전투를 담당시킬 것인지 효율 높은 전술
을 고안했다. 테살리아 지방에서 키운 명마를 끌어 모으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술사를 살펴볼
때 기마대의 겸비는 철포 발견에 필적할 만큼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이런 뛰어난 혜안은 주목해야 할 것
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필리포스는 전쟁보다 외교를 중시한 책략가이기도 했다. 제국
의 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하여 약점을 잡아 권모술수를 부리기도 하고 많은 뇌물을 부리기도 했다.
"이 성문이 황금을 실은 나귀도 지나갈 수 없을 정도의 요새란 말이냐!"
난공불락의 성벽을 눈앞에 두고는 이렇게 큰소리쳤다. 싸우지 않고 목적이 달성된다면 그것이 가장 좋
다고 일관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맹스러운 풍모에 반해 이런 일에는 빈틈없고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근세의 전략가 크라우제비츠도 "전쟁은 다른 형태의 외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필리포
스는 강력한 군대를 배후에 숨겨두고 교묘한 흥정을 하여 그에 따르면 후하게 대접하지만 거슬리면 죽
여 버리는 냉혹함이 있었다. 계략에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재물을 투자했다. 무시무시한 왕이었지만, 인간
적으로는 정의를 중시하고 민중을 사랑하며 부하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결코 폭군은 아니
었다. 그랬기 때문에 파르메니온이나 안티파트로스 같은 유능하며 성실한 부하도 많았다. 결점이라고 하
면 여색을 즐기는 것이었다.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는 말 그대로, 이것은 왕의 참모습이었다. 필리포스
는 철학을 사랑하고 치정에 관해서도 흔들림 없는 이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다.
모든 판단은 이 이념에서 나왔다. 필리포스 최대의 장점이 이런 이념에 있었다고 말해야 할런지도 모른
다. 그것은 그리스적인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한결같은 경애심이었다. 필리포스의 소원은 일찍이 아테네
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그리스 민족을 번영시켰던 것처럼 마케도니아가 그것을 실현하는 일, 바로 그것이
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마케도니아가 강국이 되는 일, 페르시아의 간섭을 배제하는 일, 그리스 반도의 평
화를 확립하는 일,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왕은 페르시아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제압해야 할 적
이고 증오해야 할 야만족으로 생각했다. 그리스 도시 국가에 대해서는 전쟁을 일으켜 지배하에 넣을 수
는 있어도 거기에는 반드시 '범그리스적인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대의가 내재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테네 같은 나라는 몇 번이나 필리포스 뜻에 반하는 태도를 보였고 배신 행위도 서슴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필리포스의 대응은 놀랄 만큼 관대했다. 필리포스의 가슴 속에는 아테네를 멸망시킨다면 그리스의
번영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절대적인 신조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리스에 있어서 단 한순간이라도 군주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영원히 훌륭한 인간이라고 불려
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필리포스의 이 말은 결코 단순히 자신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었다. 모든 그리스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비록 그 중심에는 마케도니아가 있다 하더라도 목적은 마케도니아의 번영만이 아
니었다. 전쟁도, 협박도, 배신도, 모든 것이 그 이상을 위한 것이었다. 표면에 나타난 횡포나 잔학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널리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이념이 단지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떳떳함이 필리포스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포스는 거칠고 호색가이며
정열적인 성격이었다. 얼마나 많은 새로운 여자를 가까이에 두었던가. 이 방면의 결백은 철저하게 결여
되어 있었다. 이것이 왕비와의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다. 무수한 전쟁터에서 얻은 상처들은 아름답기는커
녕 흉측스럽기까지 했다. 술에 취하면 추태를 부려 왕의 위엄조차 잃어버렸다. 금광과 은광을 개발하고
화폐를 주조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은 그 당시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낭비도 심
해 벼락부자라는 인상을 씻을 수가 없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까지 성장시킨 능
력있는 사장같은 이미지로, 선견지명도 있고 능력도 있고 촌스러운 구석도 많아 친근감을 가질 수는 있
지만, 술에 취한 모습이나 여색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만은 혐오감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왕
비 올림피아스가 이것을 싫어했다. 그렇다면 왕자 알렉산드로스는 어떠했을까.
기원전 340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미에자 학사를 폐쇄한다는 소문이 퍼지더니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
는 듯 알렉산드로스를 소환하는 칙명이 도착했다. "미에자를 떠나 펠라로 가서 구원대와 합류해 페린토
스 전투지로 급히 가라"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학수고대 하던 명령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학사의 동료
들과 함께 곧장 미에자의 숲을 뒤로하고 떠났다. 페린토스(현재 에레크리)는 마루마라해 북안에 있는 식
민 도시로 동북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비잔티움(현재 이스탄불)과 나란히 번영을 자랑하
고 있던 도시였다.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로부터 에게해 북안을 따라 동으로 동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
던 필리포스왕에게 페린토스와 비잔티움은 반드시 지배 하에 넣고 싶은 요새였다. 당시에 그리스에서는
"시노페에서 키리키아까지"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퍼져 있었다. 이것은 소아시아 반도를 흑해에서
지중해까지 남북으로 잇는, 즉 돌출한 반도를 통째로 반으로 잘라 버리는 라인이다. 동유럽에서 번영한
그리스 제국이 이 일대까지 지배하고 싶어 영토 확장의 도이쪽 한계선으로 이루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
현으로, 예부터 이 말이 구전되어 왔던 것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이 라인 서쪽을 넘어 세력을 키우고 있
었고, 후에는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을 넘어 동으로 영토를 확장해 갔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정복의 특
징은 실로 이 "시노페에서 키리키아까지"의 라인을 넘어섰다는 사실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적인 상식을 일탈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필리포스왕의 야심은 이 라인까지였다.
그것은 한낱 헛된 몽상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독립과 그리스의 안녕을 위해서는 그곳까지는 반드시
수중에 넣어야 한다"며 이미 마음 속으로 한계를 설정한 뒤의 야망이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실현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목표였다. 마루마라해의 남동쪽을 목표로 소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서도 그 양안에 있는
페린토스와 비잔티움을 함락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두 도시 모두 만만치 않았다. 페린토스와 비잔티움을
둔 마루마라해 북안은 원래부터 아테네인들의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아테네의 식민지라 해도 손색이 없
을 정도였다.
"야만인 필리포스의 야심은 멈출 줄을 모른다. 모든 것은 약탈하고 모두를 노예화한다."
아테네의 정치인 데모스테네스는 날카로운 언변으로 경종을 울리며 페르시아의 협력을 얻어서라도 도
시를 지키자고 집요하게 민중들을 선동했다. 그리스인끼리의 분쟁에 강대국 페르시아의 원조를 받는다는
일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게다가 바로 얼마 전에 아테네와 마케도니아는 화약을 맺었다. 데모
스테네스의 언동은 배신이고 마케도니아와 아테네와의 관계를 단번에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만, 필리
포스왕은 "아테네에는 별의별 놈이 다 있어"라며 굳이 소수파의 책동으로 돌리며 무시했고, 아테네의 의
향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마루마라해의 공격에 나섰다. 그리스 철학자로도 널리 알려진 데모스테네스는 일
생동안 마케도니아의 위협을 민중에게 호소하며 마케도니아를 적대시 했던 유력한 정치가였다. 아테네의
민의는 웅변강의 주장에 움직였다. 데모스테네스는 적절한 시기를 골라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열변을 토
했다. 그의 속마음에 있는 것은 아테네의 복권이며 아테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그리스 세계의 재구축
일 테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이념 자체가 현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테네 시민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지금이야말로 무기를 들고 일어설 때다."
데모스테네스의 변함없는 반마케도니아 논조는 아테네에게 기분 나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다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점이 가장 큰 고
민거리였다. 급기야 데모스테네스는 간계를 짜낸 끝에 궁여지책으로 페르시아와 내통을 하고 말았다. 그
러나 필리포스는 이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수단과 전망과 책략도 갖고 있었다. 한편
데모스테네스는 외교가이고 군대의 지휘권도 쥐고 있었지만 그의 주특기는 명문장과 명연설이었다. 데모
스테네스의 필치는 참으로 유려했고 그의 웅변 역시 유례가 없었다. 데모스테네스의 화술에 대한 이야기
를 들은 필리포스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만약 내가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을 듣는다면, 나 역시 그를 장군
으로 삼고 싶어할 거야" 하고 일생일대의 적을 평가했다고 한다. 데모스테네스는 끊임없이 마케도니아를
규탄했으나, 필리포스왕은 그런 소리에 개의치 않고 야망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실행에 옮겼다. 피차간의
갖가지 권모술수는 역사의 전환기에 연출되었던 또 하나의 드라마였다. 상대를 페르시아가 지원한 탓도
있겠지만, 그토록 대단한 필리포스왕도 페린토스 공략에서는 만족할 만한 전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 도
시는 높은 성벽으로 에워싸여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자주 쓰던 뇌물도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군량을 이용한 공격도 꾀해 봤지만 해로를 통해서 페르시아가 구원물자를 보내
왔고 마케도니아는 이것은 격퇴할 해군이 부족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전쟁은 길어졌다.
게다가 페린토스에는 페르시아의 지원군이 도착하여 승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알렉산드로스가 애마 부
세팔로스를 타고 동료들과 함께 도착한 것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때였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알렉
산드로스에게 있어서 페린토스야말로 처음으로 싸움을 벌인 땅이다. 필리포스왕은 왕자에게 실전을 보여
주리라는 얕고 즉흥적인 생각에서 불러들인 것인데 애마를 몰고 전장에 나타난 알렉산드로스는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늠름했다.
"저건, 누구냐?"
"왕자님이옵니다."
"음."
필리포스왕은 알렉산드로스의 용감한 모습에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왕자란 사실을 알고 있으
면서도 기쁨을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주위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물론 처음 전쟁에 나선 왕자가 전세
를 단번에 호전시킬 만큼 눈부신 활약을 보여 준 것은 아니었다. 페린토스의 방비가 그 정도로 허술하지
는 않았다. 다만 알렉산드로스의 용기는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
며 겁이 없었다. 자신도 용맹스런 전사이므로 필리포스왕은 그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용기 있는 자가 이긴다. 하지만 누구나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필리포스왕의 지론이었다. 왕자가 자신의 생각을 훌륭하게 실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페린토스의 공략에는 실패했어도 이 수확만은 컸다. 한 사람의 영웅은 여러 번의
전쟁을 제패하고 그 권력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필리포스는 본진이 있는 높은 곳에서 왕자의 활약을 지
켜보면서 곁에 서 있는 준장 파르메니온에게 살짝 속삭였다.
"그립구나!"
"예..."
파르메니온은 망설이면서 왕의 의중을 살폈다. 알렉산드로스는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눈부시게 활약했지만 왕자를 둘러싼 정예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활약을 펼치고 있었
다. 미에자 학사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일 것이다. 그 모습은 틀림없이 필리포스 자신의 모습이었다. 젊
은 시절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전쟁터에서 과감하게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 헤타이로이
즉 '동료들'이라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필리포스 시대 무렵부터였다. 본래는 식사를 같이하
는 전우들을 의미했던 이 말은 마케도니아 군대에서는 왕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묶인 근위병 집단을 이
르게 되었다. 글자 그대로 식탁을 같이하고 생사를 함께한다는 동지적인 결합이다. 필리포스 옆에 선 파
르메니온이 그 일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필리포스와 파르메니온은 예전에 자
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가 되어 싸우는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동료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헤타이로이
의 탄생을 본 것이다. 헤타이로이의 존재야말로 필리포스 군단의 강인함의 원천이며, 이 날 두 사람이
예측했던 대로 후에 알렉산드로스의 강력함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성장하게 된다.
"제법 강하군."
"예."
"하지만 일단 펠라로 돌려보내야겠어."
필리포스의 명령에 파르메니온은 잠시 망설였다.
"왕자를 말씀이옵니까?"
왕의 의중을 조용히 살피며 말했다. 젊은 왕자가 혈기를 앞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용기가 어느 정도인
지는 충분히 알았으니 일단은 물러섯 대국을 지켜보는 일도 중요하다. 왕자가 배워야 할 것은 아직도 많
이 있다.
"음."
"이곳은 전쟁이 길어질 듯 하옵니다."
파르메니온은 얼떨결에 동의했지만 필리포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는 알 리가 없다. 여기로 오기 직전
에 필리포스는 전장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스타게이로스 근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났다. 알렉산드로
스의 교육을 끝내고 마케도니아를 떠났던 철학자로부터 보고를 받기 위해서였다.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왕자에 대해 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첫마디였다.
"그래, 무엇을 가르쳤나?"
"그리스인의 위대함을 가르쳤습니다."
"잘했군."
"시는 호메로스, 철학은 플라톤, 정치는 페리클레스, 전술은 에파이메이논다스, 모든 좋은 일은 그리스
에서 나온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사실이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영광을 부활시킬 것이다."
"그것도 전했습니다."
"왕자의 인품은 어떻게 보는가?"
"참으로 기품이 높은 듯합니다."
"나쁠 것은 없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영리합니다, 매우 영리합니다."
필리포스왕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대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면 왕자도 만족할 것이다."
"그저..."
이번에도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
"무엇인가? 기탄없이 말하라!"
"저도 잘은 모르지만 머리 속에 어두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어두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것과는 다릅니다. 어두워 보이는 것은 왕자의 재치일지도 모릅니다. 왕자는 상대를 조롱하고 있습니
다."
"무슨 뜻인가?"
"왕자는 자신의 성격 중에 쉽게 격해지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러 모르
는 척하거나 하여 분명한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첨꾼이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반
대의 반응이겠지요. 즉시 대답할 수 있을 때에라도 일부러 무관심한 척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합
니다."
"과연 그렇구나."
"그것도 영리함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둡다는 것인가?"
"머리 속에 혼돈이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늘 있습니다.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논리적인 사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신비감을 믿습니다. 냉정하면서 정열적
이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가 하면 노인처럼 간교하고, 부드러운가 하면 잔혹합니다."
"그건... 잘 모르겠구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신을 느끼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힘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곳일지 모릅니다."
"아냐, 그런 성질은 올림피아스 탓이다. 왕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지껄인 탓에."
"틀림없는 마케도니아 왕의 아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말을 하고는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필리포스가 왕자의 출생에 대해 의심을 품
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사자의 새끼는 사자입니다. 보리 씨앗에서는 보리 싹이 나오는 법입니다. 왕자의 지혜와 용기는 분명
히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에페이로스의 신비의 혈통도 이어
받고 있습니다. 혼돈은 이 두 이질적인 혈통이 섞인 데서부터 시작했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페이로스는 왕비 올림피아스가 태어난 고향이고, 주술적 신앙을 중요시하는 것은 그 고장의 풍습이
었다.
"성가신 일이구나."
분명 왕과 왕비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달랐다. 물과 기름은 도저히 서로 섞일 수 없다.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미에자에 오래 두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빨리 현실에 대처하게 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뛰어난 재능이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 부딪히면 언제까지나 혼돈
속에 있을 수는 없지요."
"사실이다. 전쟁에 진다면 신의 아들이라는 어리석은 생각 따윈 섣불리 할 수 없을 게야."
"그것은... 글쎄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진짜 신의 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필리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저는 관찰자일 뿐입니다. 왕자에게는 이상한 매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끌어당기
는 힘이 있습니다."
"나와 비교한다면, 어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작은 소리로 웃었다.
"마케도니아 왕은 인간적인 매력입니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필리포스왕입니다. 알렉산
드로스는 왕의 그런 매력과는 조금 다릅니다. 마력일지도 모르고요."
"마력이라고?"
필리포스가 아랫입술을 쑥 내밀었다.
"불덩어리가 되어 타오르는 태양에도 흑점이 있습니다. 엄청난 힘으로 주위 물체를 끌어당기는, 그런
마력일지도 모르지요."
그리스 학자는 막연하지만 태양의 흑점을 상상하고 있었다.
"분명히 왕자에게는 알 수 없는 구석이 있어."
"미에자에서 불러들이면 어떻겠는지요."
"그럴 셈이다. 여자는... 어떻겠느냐? 이제 열 여섯 살이 되는데."
국왕은 그 말을 하면서 음탕한 웃음을 흘렸다.
"글쎄요. 마케도니아 왕과는 약간 취향이 다른 것 같군요. 정열이 그쪽으로 쏠리지 않으니 말입니다."
"좋다. 여하튼 전장으로 부르지."
"무인으로서는 아마 나무랄 데 없을 겁니다. 훌륭한 동료들도 있고요. 전쟁터에 모이면 알렉산드로스의
헤타이로이(동료들)가 탄생하겠지요?"
"믿음직스러운 일이구나!"
"무인으로서는 아무 걱정이 없지만, 마케도니아 왕으로서의 정치력도 빠른 시일 안에 충분히 가르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만큼 영리하니 펠라 궁전에 둔다면 틀림없이 눈부신 수완을 발휘할 것입니다."
"펠라에 두면 혹시라도 올림피아스가 뭔가 교사할지 모르는데."
수도를 비우는 일이 많은 필리포스왕은 이미 왕비의 간교함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제가 본 바로는 왕자는 이미 왕비를 초월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왕비의 요람 안에 있을 리가 없지
요. 권한을 주어 왕비 위에 앉히는 것도 하나의 계략이 아닐까 합니다. 주의 깊게 살피게 한 후에 말입
니다."
"그거 재미있겠군."
그제야 납득했는지 흐뭇한 표정은 수염이 무성한 턱에까지 번져 갔다.
"왕자를 이곳으로 부른 후..."
소아시아 정세에 관해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뒤 두 사람은 헤어졌다.
"무사히 학문 연구에 힘쓰도록 하오."
"국왕께서는 아무쪼록 옥체 보존하십시오."
"후일 다시 만나세."
그러나 이것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전장으로 되돌아온 필리포스는 "왕자를 불
러라!" 하고 명령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미에자 학사로 사자를 보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명령에 따랐다. 민첩함 또한 이 영웅의 특색 중 하나이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페린토스
전투에서 혁혁한 활약을 보이며 첫 출진을 장식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군.'
조숙한 재능은 현실에 맞닥뜨리게 해서 단련시키는 편이 좋다. 필리포스는 볼에 화살이 스치는 가벼운
부상을 입은 왕자를 불러들여서는 이번에는 "펠라로 돌아가라" 하고 느닷없이 명령을 내렸다. 국왕은 취
해 있었다. 명을 들은 왕자는 내심으론 불만이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물었다.
"왜이옵니까?"
눈빛에도 반발보다는 부왕의 취한 모습에 대한 경멸 같은 것이 감돌고 있었다.
"명령이다. 전쟁에서의 활약은 나무랄 데 없다. 만족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펠라로..."
계속해서 묻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필리포스왕은 말했다.
"전쟁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지금은 펠라로 돌아가라. 가서 테살리아의 정세도 방심하지 말고 살펴야
할 때다. 네가 전투에서 보였던 투지는 잘 알았고 충분히 믿을 만하다. 지금부터는 나와 너의 쌍두마차
로 달려갈 것이다. 전과를 가지고 펠라로 돌아가라!"
"돌아가서 무얼 하옵니까?"
"궁정에 군림하라. 내 빈자리를 너의 생각대로 다스려 보아라. 앗타로스가 펠라로 개선하고 있을 것이
다. 앗타로스가 잘 보좌해 줄 것이다."
쉬지도 않고 한 번에 말하고 나서는 술 냄새가 지독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숨을 가다듬고 나서
근엄하게 말했다.
"섭정을 하라."
"섭정이라고 하셨습니까?"
"내 대신이다. 마음껏 펼쳐 보아라!"
필리포스왕은 만취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왕자의 과감한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뻤던 것일까. 국가의
통치를 왕자에게 전부 맡기다니...
"알겠습니다."
"좋아. 올림피아스는 참견하지 못하게 하라. 너의 판단으로 하라. 만약 실패하면 네가 책임질 것이니
라."
몸은 취해 있어도 지혜만은 취하지 않았다. 열여섯 살 난 왕자에게 섭정을 맡기다니... 섭정의 역할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례적인 결단이었다. 필리포스는 왕자가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에 과감하게 도박을
한 것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펠라 정세에 대해서 필리포스는 그다지 불안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유
사시에는 50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이니까 말을 타고 급히 돌아가면 되고 유능한 부하도 배속되어 있었
다. 앗타로스 군대도 분명 돌아와 있을 것이었다. 염려스러운 것이 있다면 단 한 사람, 왕비였다. 올림피
아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대수롭지 않지만, 궁궐 내에서의 획책에는 불온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
이었다. 그러나 왕비는 국왕에게는 거역하지만, 왕자에게는 순순히 따를 것이다.
'그다지 나쁜 생각은 아니야.'
이런 유의 음모가 필리포스의 마음의 깊이이며 비범한 점이기도 하다. 섭정을 하는 왕자이지만, 왕비
와 짜고 국왕에게 맞선다면 지금 여기에서 단번에 쳐부수는 편이 낫다. 왕비의 야망을 캐기 위해서는 알
렉산드로스라는 미끼를 주변에 뿌려 놓는 편이 훨씬 알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왕자의 진심을 알아내기에도 썩 좋은 방법이다. 처음부터 첩자를 보내어 세심히 지켜보게 한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이런 내분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후일에 있을 만의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여 준
비해 두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자신의 부며 형제들 사이에 있었던 왕위계승을 둘러싼 처참한 내분을
보아 왔던 필리포스는, 친족들 간의 항쟁이 어떤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실수 없이 하여라."
희미한 눈빛 속에 섬뜩한 빛이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왕자의 성장을 기뻐하면서도 완전하게 마음을 놓
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 섭정을 명받고 펠라로 돌아가겠습니다. 힘껏 해보겠습니다."
열 여섯 살 왕자는 왕이 놀랄 정도로 거만하게 보고했다. 그날 날이 어둡기 전에 알렉산드로스는 전쟁
터를 뒤로하고 펠라로 돌아갔다.
마침 마케도니아 수도에는 페르시아 왕의 사절이 방문해 왔다. 특별한 용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예방이었지만 목적은 내정 간섭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섭정으로서 보고를
듣고, 또한 섭정으로서 곧바로 호화로운 연회를 열도록 명했다. 알현도 하기 전에 먼저 황금
을 잔뜩 안겨 주어 상대를 압도했다.
"여기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는 어느 정도의 거리인가?"
술잔을 주고받으면서도 위엄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젊은 섭정은 물었다.
"어느 정도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는가?"
"아득히 먼 곳입니다."
"여행하려면 며칠이나 걸리느냐?"
"석 달 남짓 걸릴 듯하옵니다."
"길은 막힘 없이 다닐 수 있는가?"
"물론이옵니다. 페르시아 왕의 위력은 땅 끝까지 빛나고 계십니다."
"오코스 대왕은 직접 전장에 나가시는가?"
알렉산드로스는 연회석에서의 형식적인 예절은 무시하고 묻고 싶은 것을 쉬지 않고 질문
했다. 대답을 망설이고 있으면 다시 다음 질문을 연거푸 묻는 통에 사절들이 먼저 질려 버
렸다.
"페르시아인에게 있어서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명예인가? 전사자의 유족
은 충분한 보상을 받는가? 사후에 혼은 어디에 묻히는가?"
질문은 심원한 생사관에까지 확대되어 끝날 줄을 몰랐다. 말투는 차가웠지만, 가만히 응시
하는 눈길은... 미묘하게 눈빛이 바뀌며 빛나는 눈에는 빨려 드는 듯한 신비한 매력이 있었
다. 사절들은 아직 어린데도 범상치 않은 왕자로, 필리포스왕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감탄
보다는 두려움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귀로에 올랐다. 알렉산드로스의 조숙한 재능을 전해
주는 에피소드이다. "잘하셨습니다" 하고 보좌하던 앗타로스가 눈을 찡긋하며 웃어 주었고,
친구 헤페스티온도 웃으며 "잘했어" 하고 왕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웃음은 어딘
가 달랐다. 헤페스티온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함 유쾌함이었다. 수도에서 지내는 나
날은 참으로 평온했다. 왕비 올림피아스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알렉산드로스를 찾아왔지
만, 왕자는 아들로서의 예만 표할 뿐 어딘지 모르게 서먹서먹하게 대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한두 마디 정도는 부드럽게 말을 걸어 주었지만, 그 이상은 다가와 주지 않았다. 올림피아스
가 국왕의 난폭한 행동에 대해 마구 떠들다가 마침내 흥분하여 사납게 욕을 해대기 시작하
자, 왕자는 맑은 눈빛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올림피아스는 자신의 천박함을 깨닫
고 당황했다.
"사자여, 당신은 신의 아들입니다. 반드시 부왕을 뛰어넘어 훌륭한 왕이 될 것입니다."
왕비는 창피함을 무마하기 위해 평상시의 대사를 한 번 더 들려주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
었다. 펠라로 돌아온 후 두 번째 보름달이 하늘에 걸릴 무렵, 트라키아 오지에서 야만족의
반란이 일어났다는 전갈이 날아왔다.
"사자가 동쪽 하늘 다섯 개의 별을 쏘아서 떨어뜨리는 꿈을 꾸었어."
그날 아침 산책할 때 헤페스티온이 하는 말을 별뜻없이 듣고는 "별까지는 얼만큼 멀까?"
하고 대꾸했었다.
"태양의 직경은 별의 스무 배나 된대. 그렇다면 별까지의 거리도 태양까지의 거리의 스무
배 정도는 되겠지."
"그럴까."
왕자는 고개를 돌려 동북쪽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두 사람 다 꿈의 내용을 마음에 두지
않고 바로 화제를 천체에 대한 것으로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궁궐로 돌아와 트리키아
지방의 봉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마이다라고 불리는 산악 지방
의 부족인 것 같다. 그런데 정확하게 동쪽 다섯 별이 걸리는 방향이 아닌가. 그 무렵 필리포
스왕은 마케도니아 북방 지배를 오늘날의 불가리아와 터키 사이에 있는 에브로스강을 넘은
지방에까지 펼쳐갔다. 먼 지방에 이르면 그만큼 지배력도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작은 부족들
의 반정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섭정은 수도로 한정되어 있고 국정에 전념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앗타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설득해 보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과 시선을 맞추더
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채러 내가 가겠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헤타이로이를 불러모아 300의 기마대와 함께 출전할 것을 선언했
다. 군대의 사기는 높았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동료들 대부분이 페
린토스에서 전투를 체험하여 전쟁의 열기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길 수
없었지만, 전투 때 끓어오른 뜨거운 피가 각자의 가슴에서 배출구를 찾고 있었다. 모두들
'이번에야말로 이겨야지' 하며 굳은 결심을 했다. 펠라에 되돌려 보내진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궁궐 생활은 지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헤페스티온이 왕자의 활이 동쪽 다
섯 별을 쏘아서 떨어뜨리는 꿈을 꾸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승리의 징조가 아니
고 무엇이겠는가. 올림피아스도 성대하게 제사를 준비했다.
"제우스아몬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여. 당신은 이 정벌에 승리하여 세계의 왕이 되는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빛나는 전도를 예언했다. 신비한 향이 나는 풀잎을 태워 모
락모락 타오르는 연기에 취해 활홀하게 중얼거리는 올림피아스의 가슴속에는 이미 국왕 필
리포스의 모습은 없었다. 머지않아 신의 아들이 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생각이 흔들림없는
사실로서 뇌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또한 어머니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이성을 초월해서 수긍했다. 이 전쟁에는
이긴다. 틀림없이 내가 신의 아들이라면 응분의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밤낮없이 말을 달
려 암피폴리스에서 북상하여 현재의 소피아인 남쪽 분지로 쳐들어갔다. 기마군에게 분지에
서의 전투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반란을 진압한 알렉산드로스는 여세를 몰아 마이
다족이 바다로 도주한 요새를 덮쳐 그곳에 도시를 세운 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로
폴리스라고 명명했다. 폴리스는 말할 필요도 없이 도시를 뜻한다. 이 명명은 왕자의 강렬한
자기 주장이며 후에 몇 개의 알렉산드리아를 각지에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첫 시도였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수년 전에 부왕이 트라키아 오지에 필리폴리스를 만들었던 것
이다. 이것은 아버지에게 질 수 없다는 알렉산드로스의 평범치 않은 대항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 소식은 동서로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서쪽의 수도 펠라에서는 올림피아스가 미
친 듯이 기뻐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무공을 새삼스럽게 과장하며 떠들어댔다.
"생각했던 대로 역시 신의 아들이야."
왕비는 왕자의 신성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애썼다. 젊은 왕자의 선명한 전투 모
습은 서사시의 한 구절처럼 요란하게 꾸며졌고, 멋진 무용담으로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아킬레우스의 후예가 아킬레우스처럼 싸웠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만세!"
왕자의 인기는 민중들 사이에서 단번에 올라갔다. 한편, 동쪽으로 날아간 정보는 페린토스
공략에 실패한 비난의 화살을 비잔티움으로 바꾼 필리포스 진영에 도착했다.
"기쁜 소식이옵니다. 왕자께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기까지 소식을 전한 전령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점점 안색이 바뀌더니 목소리가 떨
렸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령은 필리포스 앞에 무릎을 꿇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왕의 얼굴은 검붉게 변했
고 눈빛에는 그윽한 빛을 띠며 노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말하라!"
"예!"
그렇게 노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마음대로 군대를 움직였느냐?"
"그렇게 알고 있사옵니다."
"도시를 세웠다고? 건방지군."
알렉산드로폴리스의 건설은 젊은 왕자의 단순한 치기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왕
자를 은밀히 살펴보라는 임무를 주어 보냈던 사자로부터는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접
촉에 대한 여러 가지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소식도 있지만 용서할 수 없
는 것도 있었다.
'올림피아스의 마음은 벌써 알고 있었지.'
필리포스왕은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 표면으로는 어쨌든 간에 올림피아
스의 속마음은 훨씬 전부터 왕에게 거역하고 있었으며 이젠 배신을 하려 하고 있다. 필리포
스 따위는 남편도 아닐뿐더러 국왕도 아니라는 생각이 올림피아스의 본심일 것이다. 뉘우치
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알렉산드로스 쪽이다.
'어린 왕자가 거기에 동화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고 있었지만, 아직 어린 알렉산드로스는 오히려 가슴속 깊은 곳에
거무칙칙한 무언가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는 엄청난 밀고도 귀에 들어왔다. 단정한 용모...
그 무표정 속에 어두운 무언가가 숨어 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필리포스는 이 때 처음으로
알렉산드로스라는 하얀 얼굴의 잘생긴 용모 속에 있는 적의 존재를,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존재를 느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왕자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은 적도 있다. 필리포스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생각
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마케도니아 국왕은 만신창이에 술 주정뱅이가 아닌가. 걷는 모습
조차도 꼴불견이다. 왕자는 무얼 생각하는지 분명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가 말한 대로 머리 속에 어두운 부분이 있다.
'바보 같은 생각이야.'
필리포스는 머리를 세게 흔들며 흔들거리는 망상들을 지워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여
섯 살 난 왕자가 왕을 배신할 리는 없다. 왕자는 영리하다. 영리하다면 더 더욱 그렇다. 영
리한 왕자라면 마케도니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그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필리포스의 용기, 필리포스의 지혜, 필리포스의 정열, 그
것을 빼고서는 마케도니아의 영광을 생각할 수 없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라. 다가온 미래를
생각해 보라.
'5년 후는 모르지만 지금은 알렉산드로스가 그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필리포스왕은 그렇게 판단했다. 잔뜩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잠들었지만 한밤중에 깨어났
다. 항상 있는 일이지만 숙취에 머리가 무거웠다. 필리포스왕은 깨어나자마자 묘한 생각을
떠올렸다.
'내 피 속에도 거무칙칙한 것이 흐르고 있어.'
밤의 어둠은 늘 불길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필리포스의 어머니 에우리디케는 간사한 지
혜에 능한 마성의 여자였다. 현재로서는 진상을 알 길이 없지만, 사위를 왕위에 앉히려는 음
모를 꾸미다가 마침내는 그 사위와 정을 통하게 되었고, 사위를 딸에게서 빼앗아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며..., 그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왕의 죽음에도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났었고, 그녀의 친자식인 필리포스의 두 형의 죽음에도 에우리디케가 관련되어 있었
다. 적어도 큰형이 암살당한 것은 분명히 에우리디케의 사주였다. 실컷 이용했던 딸도 결국
은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필리포스는 누나의 모습을 몇십 년이나 볼 수 없
었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났다.'
물론 알렉산드로스에게도 그 피가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알렉산
드로스의 영리한 용모에는 어딘지 모르게 에우리디케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왕
가가 왕가의 피로 더럽혀질 때가 올 것이다. 아침 햇살이 비침에 따라 생각도 밝음을 되찾
았다. 망념은 사라지고 필리포스 본래의 냉정한 판단이 되살아났다. 필리포스왕은 술에 지쳐
있을 때를 제외하면 현실에 소홀함 없이 대응한느 교활한 현실주의자였다. 마침내 알렉산드
로스를 불러들이자는 결론을 내렸다. 얼마 동안은 눈앞에 두는 편이 좋겠다. 펠라로 보낸 것
은 실수였다.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병들게 하는 세균이고 주위 사람에게 달라붙어
서 그들을 부패하게 만든다. 알렉산드로스도 전쟁터에서 돌아와 흥미 있는 별다른 일이 없
었음에 틀림없다. 전쟁의 무시무시함을 좀더 체험시켰으면 좋았을 것을. 페린토스에서의 활
약은 대단했지만 그많나 일로 우쭐해 하다니. 제멋대로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절대 용
서할 수 없어. 설사 하늘의 신일지라도 알렉산드로폴리스라고? 웃기지 마라! 또다시 분노가
치밀러 올랐다. 이것은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며 질투 따위는 결코 아니다. 왕자가 아니었다
면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자신의 역할인 섭정의 직무를 일탈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왕자에게 벌을 줄 것이다. 왕과 왕자가, 아버지와 아들이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왕자라고 해도 국와으이 뜻에 순순히 복종해야 함을 뼈에 사무칠 때까지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필리포스왕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령은 있느냐, 왕자를 불러들이라!"
아침을 막 맞고 있는 진영을 향하여 큰소리를 질렀다. 밖에 있던 파르메니온이 들어왔다.
"벌을 내릴 생각이신지요, 왕자님께."
"괜찮겠느냐?"
"괜찮기는 하오나 반항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십시오. 왕자는 아직 어리옵니다."
"알고 있다."
"영리한 분입니다. 이치를 통하면 알아들을 것입니다."
"음."
흥분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천진난만했다. 이 청년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라면 깊이 사고하는 힘
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통틀어 조망하는 것이 허
락된다면, 이 영웅에게 어울릴 만큼만 그 힘이 부족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
다. 기록에 남은 알렉산드로스의 언동은 용의 주도할 만큼의 관조와 직감에 의한 즉단, 이
두 가지의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상반하는 경향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알렉산드
로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관조와 즉단이 얼룩무늬처럼 섞여서 나타난 이상한 일이지만 둘
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입
장에서 보면 페린토스 전투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평소의 단련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흔쾌히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전쟁을 좋아하는 것 같아"라며 헤페스티온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실전은 분명 무섭지만 위험과 대치한 순간의 흥분이 너무
좋고 목숨을 건 도저닝 정말이지 즐거웠다. 피가 들끓고 혼이 불타는 것 같아 자신을 잊을
만큼 황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흥분을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펠
라로 돌아가라는 부왕의 명령을 받게 되었고, 확실히 섭정의 지위는 자존심을 채우는 데에
는 도움이 되었지만 실전에 비해 너무나 무료했다. 전쟁의 흥분을 이미 알아 버렸기에 이
일은 김빠진 포도주였다. 크라테레스, 프톨레마이오스, 필로타스, 클레이토스, 카산드로스...는
말할 것도 없고 조용한 헤페스티온까지 혈기 왕성한 헤타이로이들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체험한 그들의 일체감도 펠라에서는 나날이 진
부해질 뿐이며 모처럼 길러진 실력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철은 달구어졌을 때 두드려
야 하고 매듭은 묶을 때 세게 묶어 두어야 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직감은 전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외치고 있었다. 강을 건너려는데 마침 나루터에 배가 있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
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또한 펠라에 있으면 어머니의 존재도 고민스럽다. 신의 아들이
라... 그것은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다. 요람에서부터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들어 온 말이 아닌
가. 하지만 그것도 증거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잇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말을 믿고 싶었다.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신의 아들이라면 저절
로 보이는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적은 신의에 어긋나는 반역을 저질렀기 때문에 마이다족 토벌에 주저는 없었다. 결과는
대승이었다. 헤타이로이의 훌륭한 용사와 피와 땀과 진흙이 뒤섞인 환희. 동지의 결속은 다
름아닌 전장에서 길러진다. 군사를 모아 마이다족의 거점지를 공격하여 항복시키고 바닷가
근처에 알렉산드로폴리스를 건설하고 나서는,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왕께서는 섭정으로서 마음껏 해보라고 명령
했고 자신은 힘껏 하겠다고 대답했다. 지휘관은 상징으로서의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고,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널리 떨치는 것은 마케도니아의 발전에도 관계가 있다.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알렉산드로폴리스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점이 될 것이며, 트라키
아를 주시하기 위해서도 해안 지방은 매우 유리하다. 모두가 "이보다 더 훌륭한 결단은 없
을 것입니다. 필리포스왕을 능가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라며 충심으로 격찬해 주지
않았던가. 어머니 올림피아스도 곧바로 편지를 보내 신의 아들다운 업적이라며 부끄러울 만
큼 호들갑스러운 칭찬을 하지 않았던가. 어머니는 차치하고라도 민중의 환희와 같은 찬탄은
결코 단순한 아부나 추종은 아닌 것 같았고 그 정도는 간파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알
렉산드로스는 일련의 행동과 결단에 관해 아무런 걱정이나 반성이 없었다. 오히려 국왕으로
부터 노고를 치하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르메니온이 말했듯이 역시 아직은 어렸던 것이다.
전령으로부터 전쟁터로의 소환을 명받고 현지 상황을 들었다.
"부왕께서 격노하셨다고!"
"예."
그것이 사실인 것은 분명했다. 짐작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일은 관점을 바꾸면 예상
정도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난생 처음으로 난폭한 아버지의 심중에 있는 자신과 적
대하는 어떤 존재를, 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어떤 존재를 언뜻 보았다. 이를테면 부왕은 질
투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것말고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제우스아몬의 아들은 필리포스를 능가합니다. 알렉산드로스여! 필리포스의 질투를 조심하
소서. 원한을 이짖 말고 언젠가 국왕의 음모로 인해 위험에 처할 것을 각오해 두십시오. 나
는 맹세코 언제나 왕자 편입니다."
원래부터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의 말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 난폭하고 천박하며 주색에
바져 있는 필리포스의 모습은 정말 한심하지만 그가 뛰어난 장군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
가 없었다. 군인들의 신뢰도 두터우며 용감하고 책략에도 뛰어나 주위 제국들이 모두 두려
워하고 있었고, 인간적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나의 아버지일까?'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 이것을 신의 존재에 관한 문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부
왕을 신뢰는 하지만 어머니의 조언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신의 아들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는 접어두더라도 언젠가 부왕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아니, 자부심이라기보
다는 그것만이 살아가는 목표이며 신의 아들이라는 증거였다. 스스로를 돌이켜보아도 자신
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새로운 도시를 알렉산드로폴리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무의식중에 부왕에게 도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왕도 반감을 느끼겠지.
더구나 소심한 사람이라면 질투도 느꼈을 거야. 권력을 등에 업고 벌을 주는 일도 많지 않
았을까.
'부왕의 솜씨 좀 볼까.'
알렉산드로스는 피할 마음은 없었고 피할 정도의 사태도 아니었다.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알렉산드로스는 헤타이로이와 부하들을 몰고 야영하는 마루마라해 북안의 전쟁터로 말머리
를 돌렸다.
전쟁터의 마케도니아군은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페린토스 공략에 실패하여 목표를 비잔
티움으로 바꾸어 봤지만 여기도 난공불락이었다. 두 도시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그곳을 통해 페르시아로부터 계속해서 풍족한 원조를 받고 있었으므로 강력한 해군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함락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에게는 그런 힘이 부족했다. 굳게 믿고
있던 군사들은 점점 죽어갔고 병참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필리포스의 군선은 비록 약하긴
하지만 마케도니아로서는 귀중한 해군이었으며, 자칫하면 흑해로 들어가 탈출이 불가능하게
되어 나포될 위험성까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필리포스도 패배를 인정했다. 비잔티움과
화해를 모색하며 고의로 교섭을 질질 끄는 동안 마케도니아군은 허점을 노려 흑해로부터 군
단을 탈출시켰으며, 그것을 확인한 다음 포위를 풀어 북쪽으로 진격하는 결단을 내렸다. 패
배한 채 철수하는 것은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라는 것
을 알면서도 어려운 상황하에서 두 도시와 화의를 맺지 않고 작전 변경을 가장하여 북방에
있는 트라키아로 군대를 전진시킨 것이다. 페린토스와 비잔티움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과거
수년에 걸쳐 지배하에 넣었던 트라키아 지방에서 반마케도니아 운동이 활발해지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럴 때에는 표면적으로라도 승리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선전될 필
요가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부하들과 함께 진영에 도착한 것은 마침 퇴각을 하려던 때였다.
필리포스의 심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버님! 도와 드리러 왔습니다."
용감하게 외치는 왕자에게 왕은 소리쳤다.
"어리석은 녀석! 너 같은 녀석의 도움은 필요 없다. 섭정의 임무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느
냐? 군기를 어겼으므로 엄벌에 처할 것이다."
왕은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탁한 눈동자는 분노를 품고 타올랐다.
"마이다족의 반란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알렉산드로폴리스는 동방 정벌의 요
새가 될 거점 도시입니다."
"핑계대지 마라. 뭐라고? 알렉산드로폴리스? 자만하지 마라. 20년이나 빨랐어.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킬 때에도 그 이름을 지껄여 주면 좋겠구나."
"페르세폴리스이옵니까, 언젠가 기필코 이루겠사옵니다. 페린토스도 비잔티움도."
알렉산드로스는 부왕의 패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새삼스레 그것을 내세
워서는 필리포스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다.
"까불지 마라! 풋내기가 뭘 알겠느냐. 군기 위반에다 왕권 침해다."
"마음껏 해보라고..."
"경우가 달라. 그런 것도 모른단 말이냐!"
왕자의 항변을 가로막으며 즉시 진중의 임시 가옥에 감금시키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불문
곡직하고 처벌을 받은 알렉산드로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욱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충신인 헤타이로이에게도 제재가 가해졌다. "왕자를 보좌해야 할 입장
이면서 공연한 소란을 틈타 살육을 범한 것을 엄벌에 처한다"며 중심 인물이었던 10여 명이
축사에 구금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비록 죄가 있다고 해도 책임은 나 한 사람이 져야 한다
며 격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료들에게도 면목이 서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왕의 부당한 처사
에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필리포스의 진노를 무마시킨 것은 역시 파르메니온이었다.
"왕이시여, 적당히 하소서. 왕자님도 마케도니아를 위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일이옵
니다. 지나친 행동이었지만 악의는 없었다고 사료되옵니다. 아직 어립니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들이옵니다."
"그래."
다음날 아침, 필리포스왕도 술이 깨고 나서 어린 왕자에게 어른답지 못한 태도를 보여 주
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로스와는 쌍두마차로 잘해 보자고 얼마 전에 결심하
지 않았던가. 정신을 가다듬은 필리포스왕은 얕은 생각이었다는 점은 잊지 않도록 하기 위
해 왕자의 수염을 밀어 버리는 벌을 내림으로써 모든 것을 마무리 지었다. 마케도니아의 무
인들은 대부분이 수염을 길러 용모를 용맹스럽게 보이게 했다. 젊은 알렉산드로스의 턱에도
간신히 수염이 텁수룩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국왕은 수염을 밀어 버리는 것은 가벼운 징계
라며 벌을 달게 받으라고 말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이 처사에 굉장한 모욕을 느꼈다. 수염
이 깎인 얼굴로 필리포스를 노려보는 눈빛은 너무나 섬뜩했다. 국왕 자신이 주눅이 들 정도
의 분노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최초의 충돌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때의 일을 오래도록 기
억했다. 그는 자존심에 상응하는 반역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영웅의 모든 초상에서 알 수
있듯 알렉산드로스는 이 일이 있은 후 평생동안 수염을 기르지 않았던 것이다.
마루마라해를 떠나 트리키아로 진격한 필리포스의 군사들은 이 땅에 할거하는 스키타이족
들을 굴복시켜 많은 노예와 명마를 거두어들임으로써 패전의 울분을 다소나마 풀 수 있었
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방심한 것은 아니지만 산 속의 협곡에서 날래고 사납기로 이
름 난 트리바로이족의 습격을 받아 군단은 몇 갈래로 흩어져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필리
포스는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미끄러졌는데 비틀거리는 그의 허리에 창이 꽂혔다. 쓰러지는
필리포스의 몸을 겨냥하여 적의 칼이 머리 위로 높이 쳐들렸을 때, 위기일발의 바로 그 순
간에 말없이 뛰어들어 방패를 내밀어 적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인가.'
그 자리에서 두 명의 적이 쓰러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쓰러진 부왕을 방패로 비호하며 도
주했다.
"상처가 깊이..."
왕은 수염이 텁수룩한 얼굴에 희미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필리포스는 걸음도 변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용기를 내십시오. 영광의 발걸음으로..."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왕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광의 발걸음이라고... 분명히 오늘까지
한걸음 한걸음 영광의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그 발걸음으로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필리포
스가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들판을 휩쓰는 불길처럼 필리포스의 죽음은 소문
이 되어 그리스 반도를 달렸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곳은 아테네였다. 수년 전에 맺
은 화약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와 아테네 사이에는 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직접적인
전투는 비하면서도 테베, 포키스, 에우보이아, 테살리아, 델포이 등 근린 제국들을 끌어들여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어 자국의 세력을 팽창 하든가, 상대의 압력을 약화시키든가, 힘을
합쳐 강대국에 대항할 지혜를 짜고 있었다. 아테네의 정치가 데모스테네스는 필리포스의 사
망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예로부터 아테네인들은 '고달픈 민족'이라 불리는, 좀처럼 웃
지 않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춤출 듯이 기뻐했다. 북방의 괴물 필리포스만 없어지면
사태는 모두 아테네에게 좋은 방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북방의 괴물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한쪽 눈을 잃고 왼쪽 어깨는 부상으로 축 처져 있고 이번 전투에서 왼쪽
다리마저 다쳐 한쪽 다리가 짧아진 절름발이가 되었어도 필리포스는 되살아났다. 데모스테
네스의 얼굴에는 다시 깊은 고민이 쌓이게 되었다.
"전쟁입니다. 자존심 강한 아테네인이여! 이제 더 이상의 양보는 없습니다. 싸워야 합니
다."
데모스테네스의 주전론이 아테네 민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리포스 역시 한 번은 아테
네와 싸워야 하리라고 생각했었다. 마케도니아 주도하의 그리스 제국의 융화라는 필리포스
의 이념은, 아테네인에게 있어서는 이해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는 일이며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필리포스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테네인은 어리석게도 오로
지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무디며 앞날에 대한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온종일 쓸데없는 논의를 반복하며 눈앞의 손익에만 매달리고 있다. 자칫하면 페르시
아가 이런 때를 틈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저항하
는 세력을 일소하고 전력을 다해서 마케도니아의 이상을 아테네로 하여금 소상히 알게 해야
하고,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전운이 무르익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
스 반도의 진정한 승자를 기리는 전쟁이 임박해 왔다. 즉 기원전 338년 여름의 케로네아 대
전이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기 전에 마케도니아를 뒤흔든 또 하나의 전쟁, 즉 아버지와 아
들의 갈등을 기술해 둘 필요가 있다. 필리포스에게 있어서 트리키아 산속에서 왕자가 자신
의 목숨을 구해 준 사실은 복잡한 문제였다. 전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부상당한 전우를
전쟁터에서 구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
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알렉산드로스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니,
'왕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를 그 상황에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설마 나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하
는 의심이 일었다. 국왕에게 질책을 받을 때 알렉산드로스의 눈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
을 만큼 원망과 분노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왜 나를 구해 주었느냐?"
필리포스는 취한 탓에 멍청한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
왕의 얼굴을 쳐다보며 '도대체 본심으로 묻는걸까' 하고 의아해 했지만 한심스럽기 짝이 없
는 물음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눈에는 순간 경멸의 빛이 흘렀고 그것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입술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필리포스는 왕자의 경멸을 정확하게 감
지했다. 왕자는 천천히 대답했다.
"저는 마케도니아 왕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런가. 잘 기억해 두지. 고맙구나."
알렉산드로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의 행동에 다른 뜻은 없었다. 부왕의 위험을 알았으
니 순식간에 달려왔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
한 불만을 품고 있지 않을 리는 없었다. 지난번의 징계는 부당했고 용서하기 힘든 굴욕이었
다. 그게 아니더라도 술에 취해서 횡포를 부리는 단정치 못한 국왕에 대해 증오심을 느낀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국왕이 누구보다 용감하고 뛰어난
수완가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번영을 바라는 국왕의 마음은 개인의 사리
사욕이 아니며, 비록 왕의 모습은 흉하지만 그 뜻은 훌륭했다. 그리고 온몸의 흉측한 부상
하나하나가 큰 뜻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만취했을
때의 단정치 못한 모습조차도 힘든 일을 견뎌온 괴로움의 증표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저렇게는 되지 않을 거야. 용서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것이 부왕에 대한 알렉산드로스의 심경이었다. 위험하게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구해 주
어야 한다. 이것은 감정적인 반발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왕으로부
터 뜻밖의 질문을 받은 후 그 한심함, 어리석음, 초조함에 오히려 증오심이 되살아나고 말았
다. 내가 신의 아들이든 아니든 부왕을 능가하겠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알렉산드로스는 그
리스 반도의 정세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는 외교에도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
헤페스티온, 프톨레마이오스, 필로타스는 적을 찾아내는 일을 정말 훌륭하게 해냈다. 각자
정보를 수집하여 다같이 모여서 의논하며 제국들의 동향과 이해 관계를 파악했다. 왕비 올
림피아스도 눈에 띄는 저항은 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 왕가는 소강 상태 속에서 기원전
338년의 여름을 보냈는데 무더위와 함께 한순간에 아테네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갔다. 이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기마군의 지휘관으로 출전해 힘껏 싸워라!"
국왕은 엄숙하게 명령을 내렸다. 전쟁을 앞 두고 있는 지금의 필리포스는 몰라볼 정도로
늠름했다. 군대는 신전으로 명망 높은 델포이에서부터 동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케로네아
(오늘날의 헤로니아)로 진격했다. 현재 이곳 헤로니아에는 이날의 전몰자를 기리는 거대한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 일생을 전쟁으로 보낸 알렉산드로스에게 케로네아 전투의 지휘는 가
장 눈부신 활약 가운데 하나였다.
빛과 그림자의 세월
아폴론 신전을 모시는 델포이는 그리스인의 신앙의 거점이다. 이 델포이의 북서쪽에 위치
한 작은 마을 안피사가 신성한 땅을 침입했다는 이유로 델포이와 대립하였고 강국 테베가
안피사의 입장을 옹호했다. 델포이는 민족의 신앙심으로 유지되었던 인보 동맹에 의해 지켜
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인보 동맹의 맹주는 마케도니아였고 필리포스 2세가 도맡아
서 관리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신성 전쟁 때 이 지역의 분쟁에 개입했던 필리포스왕은 눈부
신 승리를 거두어 델포이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적인 동맹 기구의 맹주로서 지위를 획득했
다. 물론 그것을 허용치 않는 세력도 있었지만 필리포스는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때 마침 델
포이가 안피사의 횡포를 호소하여 필리포스는 옳다꾸나 하고 델포이에 원조의 손길을 뻗쳤
던 것이다. 대충 지도를 그려 보면 그리스 반도 북방에 마케도니아가 있다. 그 남쪽으로 테
살리아가 펼쳐져 있는데 이 나라는 마케도니아 동맹국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포키스, 델포
이, 테베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아테네는 그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동맹이라는 형태로 테
살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필리포스왕으로서는 반도 중앙부에서 아테네 가까운 지역에까지 세
력을 신장시켜 두는 일은 바라지도 않았던 계략이었다. 게다가 이 진격의 이유가 델포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리스인 전체에 대해서도 권위를 세울 수 있다. 페린토스와 비잔티움을
함락시킬 수 없었던 지난번 사태도 여기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아테네는 마케
도니아와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이상
할 게 없을 정도의 배신을 거듭해 왔다. 아테네에서도 필리포스 편을 드는 세력이 없는 것
은 아니지만 열광적으로 반마케도니아를 주장하는 데모스테네스 일당이, 이 웅변가의 집념
덕분인지 그들보다는 민중의 지지를 얻기 쉬웠다. 마케도니아가 반도의 중앙부로 병사들을
움직이려고 하면 아테네는 당연히 경계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데모스테네스는 날카로운
언변으로 북방 마케도니아의 위협을 민증에게 호소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꾸며대면서
필리포스를 마구 욕하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노골적으로 규탄했다. 분명 상식이 결여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웅변가답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은 갖고 있었다.
"마케도니아는 우리를 증오하고 있으며 드디어 학살을 꾀하고 있습니다. 타협의 여지는
없습니다. 죽이든가 죽든가 길은 둘 중 하나입니다."
데모스테네스의 개인적인 적개심, 그리고 이 정도의 격심한 적의를 표하면 필리포스는 결
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이 두 가지가 아테네인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 철학자는 실감하고 있었다. 즉 아테네인은 자신처럼 필리포스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
고 또한 품고 있어야 마땅하며, 만약 마케도니아에게 패배했을 때에는 엄중한 보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 고지식한 철학자는 예측하고 있었다. 과연 데모스테네스에게는 '죽이든
가 죽든가'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었다. 그것이 아테네인 모두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것은
필리포스왕의 성격을 충분히 감안한 결과겠지만, 이 점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파악한 것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위기를 느낀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의 민심을 선동했고 이번에는 힘을
합해 마케도니아에 대항하자고 테베까지 설득했다. 이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보면 서로 반
목했던 적이 훨씬 많았던 관계였지만 데모스테네스의 열변은 테베의 민심에도 커다란 영향
을 끼쳤다. 테베도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처지였다. 한편 필리포스왕은 전사했다는 소문
이 날 정도의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움직여, 테살리아를 빠져 나오자마자
테베에 동맹을 재촉하는 사자를 보냈다. "지금까지의 일은 깨끗이 잊자. 마케도니아와 협력
하여 평화를 유지하지 않겠는가"라는 대단히 관대한 제안을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필리
포스왕은 아테네에게도 "전쟁을 피할 용의는 없는가. 악의 있는 조언자를 숙청하면 제군들
의 제의를 들을 용의가 충분히 있다" 라며 회유의 손길을 내밀었다. 악의있는 조언자가 누
구를 가리키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데모스테네스와 그 일당이다. 필리포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테네의 전통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아테네 없이 그리스의 번영은 있을
수 없다고 오랫동안 고집해 오던 생각을 피력했다. 사실 이 마케도니아 왕은 진심으로 아테
네인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싶다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한결같은 소원을 늘 품고 있었던 것이
다. 엘라테이아는 델포이에서 북방으로 30킬로미터, 테베로부터는 북서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요새로 이 근방이 마케도니아 지배권의 남방 한계선이다.
"필리포스왕이 엘라테이아에 와 있어. 이런 상황이라면 테베도 필리포스와 손잡고 공격해
오겠군."
전광석화 같은 진격에 엘라테이아인들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마케도니아군의 강력함
은 이미 전설이 되어 반도 각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데모스테네스는 하마티온을
펼쳐서 민중의 동요를 진압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필리포스왕이 엘라테이아에 머물고 있는 것은 테베가 그들이 원하
는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마케도니아와 테베가 협력한다
면 이미 적은 아테네 성문에 다가와 있을 겁니다. 아테네보다 오히려 테베가 더 위험합니
다."
데모스테네스도 여기에서는 냉정한 판단을 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직접 테베로 갔고 테베
의회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턱대고 그를 따르게 되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광적인 정열이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때도 또한 그 일례였다. 이
리하여 아테네와 테베 두 강대국이 힘을 합쳐 필리포스왕과 싸우는 사태에 이르렀다. 게다
가 다른 제국 중에서도 아테네와 테베에 가세하는 나라가 나타나 그리스 연합군 양상을 띠
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연합군은 서전에서는 몇 번인가 승리를 거두었다.
"필리포스 그까짓 놈, 뭐 하는 놈이야."
데모스테네스의 명성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함정은 언제나 승리의 곁에서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엘라테이아에 진격한 필리포스왕은 서장을 쓴 후 명령을 내렸다.
"전령을 불러라!"
"예, 저에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것을 서둘러서 안티파트로스에게 전하라."
필리포스왕이 신뢰하는 준장 안티파트로스는 테살리아 국경 근처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
었다. 필리포스의 편지에는 "트라키아로부터 반란의 보고가 있다. 즉각 출진하라. 나머지도
이 지역에서의 전투를 일단 포기하고 트라키아로 향하라. 판가이온 광산을 사수해야 한다"
라고 씌어 있었다. 눈앞에 적을 두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전령이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필리포스왕은 몰래 아끼는 병사를 불렀다.
"지금 보낸 전령을 적에게 잡히게 하라. 완벽하게 해야 몇 사람의 군사라도 구할 수 있느
니라."
"예, 실수없이 완수하겠습니다."
병사는 전령의 뒤를 따라갔다. 이 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적잖은 역사가들이 유난히 이
책략을 칭찬했지만 필리포스왕의 책략은 훨씬 다양했다. 가끔 이런 일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에 불과하다.
"필리포스왕이 북으로 향했대."
"이겼다는군."
트라키아로의 전진은 충분히 예측된 상황이었다. 연합군의 장군들은 감쪽같이 속았고 당
연히 안피사의 방비가 허술해졌다. 필리포스왕은 밤 그림자를 타고 산기슭의 비탈진 곳을
내려가 안피사를 공략하여 함락시켰고, 동맹국 델포이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개선했다.
"그리스의 구세주, 필리포스왕 만세!"
델포이의 지원은 아폴론의 가호라는 말과도 통하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했따. 무력이라는
것은 뭔가 다른 신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여세를 몰아 테베의 서쪽 레바디아로 돌진
했다. 엘라테이아로 되돌아온 필리포스왕은 다시 한 번 아테네와 테베에 사자를 보내 화평
을 촉구했다. 테베는 마음이 기울었지만 아테네는 승낙치 않았다. 데모스테네스는 분노하며
테베를 심하게 힐책했고 결국 설득시켜 전쟁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젠 더 이상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필리포스왕은 그런 가능성도 충분히 읽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를 불러라!"
수도 펠라에 칩거시켰던 왕자와 그의 헤타이로이를 모두 불러들였다. 그리고 용감하게 전
쟁터로 달려나온 알렉산드로스에게 왕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깨끗이 잊어버리겠다. 다시 쌍두마차로 달려가자. 왕자와 나 둘이서."
"예."
"기마대 지휘관을 맡기겠다."
"빈틈없이 완수하겠습니다."
장군들을 모아 밤을 새워서 작전을 짰다. 기원전 338년 여름, 동녘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올 무렵 케로네아 계곡에 필리포스왕이 이끄는 군대와 아테네와 테베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
군이 긴 행렬을 이루며 대치했다. 케로네아는 암맥을 드러내는 산등성이를 사이에 둔 평지
이지만 부근에는 강이 흐르고 그 계곡은 움푹 패여 있어서 작전을 쉽게 펼칠 수 있는 좋은
싸움터는 아니었다. 전투를 시작하면 임기응변의 대응이 의외로 많이 필요한 지형이었다. 양
군 모두 10만을 넘는 군사로 숫자로서는 맞먹고 있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왼쪽에 카레스 장
군이 이끄는 아테네군이 1만의 보병과 600의 기병을 배속하고 있었고, 중앙에는 코린토스와
아카이아 등지에서 갑자기 참가하게 된 군사로 용병을 합해 1만 5000의 보병과 600의 기병
이, 오른쪽에는 테아게네스가 지휘하고 있는 테베군이 1만 2000의 보병과 800의 기병을 모
아 놓고 있었다. 테베군 중에는 신성 부대라 불리는 한 부대가 역사적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잘 조직된 동지적 결합이며 동성애적 집단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케도니아의 헤타이로
이도 아마 이런 성격을 이어받은 군대일 것이다. 연합군 중에는 이 테베 부대가 가장 강력
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편 여기에 대응하는 마케도니아군은 왼쪾에 테베군과 직면한 알렉
산드로스의 기병대가 결집해 있었다. 2000이 넘는 기병대의 대부분이 여기에 모였고 뛰어난
장군 파르메니온이 보좌를 맡았다. 중앙부에서 오른쪽에 걸쳐서는 필리포스왕 자신이 몸소
지휘할 보병대 군단이 있다. 당시의 군대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중장 보병대였는데, 이들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을 하고 긴 창과 방패를 지녔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
으나, 이 보병의 규모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횡으로 여섯 줄, 종으로 여섯 줄의 한 소대를
만들고, 이것을 다시 종으로 횡으로 몇천 명이나 모여 철벽같은 대열을 이루며 몰려들었다.
마케도니아군은 종횡으로 16열씩 총 256명의 대대가 표준이 되는 한 단위이며 이것이 똑바
로, 옆으로, 비스듬하게, 활 모양으로, 브이자 모양으로, 때로는 상자 모양으로 몇십 명이 무
리지어 밀집해서 싸웠다. 지휘 계통이 세밀하게 정해져 있어 하나의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여럿으로 나뉠 때의 대오의 편성 방법도 잘 훈련되어 있어서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앞
쪽의 몇 줄은 긴창을 세워 숲을 만들어 적의 투석을 차단한다. 병사는 어깨와 어깨를 서로
모아 방패를 나란히 하여 빈틈없는 방어를 유지한다. 또한 유격대로서의 경보병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가장 인기있는 기병대가 전황에 맞춰 신속하게 종횡무진으로 질주하여 적을
찌르고 짓밟고 교란한다. 마케도니아의 기병대는 수적인 면에서 그리고 좋은 말을 모아 사
람과 말이 함께 착실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의미의 질적인 면에서도 다른 군대와 비교해서
탁월했다. 적어도 기병대의 전력은 마케도니아군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의심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다. 먼저 아테네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지휘관과 나란히 서서 지
켜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괴로움에 가득한 표정을 하고 서 있지만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
고 있었다.
"마케도니아 원숭이를 쓰러뜨려라!"
"모두 죽여라!"
"아테네의 영광을 지켜라!"
이 군대의 지휘를 맡은 카레스는 경험이 풍부한 장군이었지만 데모스테네스가 부추기는
바람에 몹시 흥분했다.
"필리포스를 쳐죽여라! 포상은 충분히 하겠다."
"자, 공격하라!"
카레스는 군공을 보이려는 마음에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전을 승리한 탓에 마
케도니아군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나팔이 처량한 소리를 내며 울리자 그 소리에 대답하듯
군대가 퇴각하기 시작했다.
"적은 이미 기가 꺾였다!"
"도망가지 말라!"
"뒤를 쫓으라!"
아테네군은 여세를 몰아 추격하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군은 빠르게 도망쳤다. 고대한 대
열은 잘 훈련되어 있어서 나팔 소리 하나에 횡으로 길게 정렬 짓다가도 네모지게 한 무리가
되거나 하며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었다. 그러다가 동쪽 방향으로 정렬을 비틀었는데 때마
침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눈이 부셔서 적을 정면에서 볼 수가 없었다.
태양의 눈부심까지도 필리포스의 작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일단 군사를 퇴각시
켜서 적의 진형을 흐트러뜨리려 한 것은 지난밤 늦게까지 현지 지형을 확인한 후에 결정했
던 계획대로였다. 연합군 중에 위험을 느낀 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하지만 연합군은 숫
자는 많아도 실전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이 한순간을 노리고 기다리던 알렉산드로스가 1000
기가 넘는 기마대와 함께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테베군을 공략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선두를
달리고 헤타이로이가 뒤질세라 계속 달렸다. 모두 말고삐를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했고 말
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허공을 뚫고 달려나갔다. 말 위에서 수백 개의 창이 튀어나왔고 다
시 그 창이 벽을 만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휘날리는 모래 먼지 속에 부세팔로스
의 검은 머리가 보였다. 부세팔로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영리하고 용감
한 말이다. 두려움에 떨기는 커녕 오히려 독수리처럼 잽싸고 사자처럼 용맹스러웠다. 말의
무리에도 리더가 있다. 부세팔로스가 바로 그 리더였다. 리더인 말이 과감하게 공격하면 다
른 말들은 그에 따랐다. 야성이 갖는 군중 심리는 인간보다도 더 철저하고 탈락은 절대 용
납되지 않는다. 부세팔로스의 눈길이, 콧김이, 온몸에 넘치는 박력이, "나를 따르라! 처지면
안된다" 하며 1000마리가 넘는 말들을 질타했다. 이 예기치 못한 통찰력, 알렉산드로스는 정
말 훌륭한 동지를 가지고 있었다. 테베의 신성 부대도 노도처럼 밀려드는 적의 기병대의 엄
청난 공격에 압도되었다. 속도가 달랐다. 수가 달랐다. 글자 그대로 성난 파도였다. 하나가
지나가면 몸을 바로 잡을 틈도 없이 그 다음 파도가 밀려 왔고, 다시 그 다음 파도가 덮쳐
왔다. 그나마 대비하고 있노라면 스쳐 지나갔던 파도가 되돌아와서 맹렬히 공격하여 짓밟고
는 달려나가 버렸다. 뒤돌아보면 앞에도 등뒤에도 없다. 파도는 벌써 회오리로 변해 휘몰아
치고 있었다. 더구나 신성 부대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약점이 있었다. 한 사람이 부상을
당해 쓰러지면 동지를 내버려둘 수 없어 전쟁보다는 동료의 부상을 치료하기도 마음을 바꾸
고 가능성 없는 전쟁은 그냥 포기해 버렸다. 순식간에 전투에서의 승리는 결정되어 버렸다.
테베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고, 신성 부대가 무너지자 진형의 중앙부를 차지한 집합 소대가
쉽게 공략되어 버렸다. 어차피 이런 부대로는 이길 가망이 없으며 성급하게 참가한 전쟁이
었으므로 투지도 그만큼 약했다. 소국들의 군대가 섞여 있고 용병이 많은 탓인지 통제도 제
대로 되지 않았다. 고대 전쟁사에서는 이러한 취약점이 있는 군사들은 진형의 한가운데에
배치하는 것이 통례였다. 용병들이 도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오른쪽을 담
당하는 테베군이 무너지면 중앙부는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껍데기가 찢겨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퇴다, 후퇴!"
"도망가자!"
한 명이 도망가면 그 다음에는 다섯 명이 도망가고 그리고 모두 도망가기 시작한다. 일단
퇴각하는 기미를 보이던 마케도니아 군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반격을 개시했
고, 어느 사이에 횡으로 정렬을 가다듬고 더한층 공격을 가해 왔다. 그들을 뒤쫓는 아테네
군의 등뒤에는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기병대가 몰려왔다.
전투의 귀추는 이미 보였다. 테베의 장군 테아게네스는 전사했고, 아테네의 장군 카레스는
몇십 명의 부하와 간신히 살아서 도주했다. 데모스테네스는 패색이 짙다고 판단되자 바위에
서 바위로 건너뛰며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갔다. 키톤이 바위 틈에 걸리자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며 기도를 하다가 옷자락을 찢고 겨우 목숨만 건진 채 도망쳤다.
"이제 됐다. 더 이상 쫓지 말라! 죽이지도 말라!"
필리포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나팔이 울려 퍼졌고 전투가 끝났다. 마케도니아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마케도니아에 영광이 있으라!"
"빛나라, 필리포스왕이여!"
"알렉산드로스 만세!"
환호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필리포스왕은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서서 몇 번이나 양팔을 벌
려 전승을 축하하며 병사들의 용기를 치하했다. 이때 파르메니온이 다가왔다.
"축하드립니다."
"음, 기병대의 활약이 컸도다."
필리포스왕이 파르메니온의 지휘를 치하하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왕자님의 공적입니다. 선두를 달리며 눈부신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랬는가."
"모든 군사들이 왕자의 용기에 고무되어 굳센 기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군신 아레
스처럼 전장을 뛰어다니며..."
이 순간에 알렉산드로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대승입니다. 아버님 무사하셨습니.까?"
알렉산드로스가 자랑스럽게 언덕을 뛰어올라왔다. 왕의 눈빛에 분노를 품은 기색이 희미
하게 스쳐 갔다. 왕자는 그런 눈빛을 눈치채고 자신도 왕을 흘긋 노려보았다. 한순간 두 사
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필리포스왕은 곧바로 웃으며, "수고했다. 대
단한 활약이었다" 하며 양팔을 펴서 왕자의 어깨를 감싸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왕자도
왕이 하는 대로 따랐다. 계속해서 전사들이 왕과 왕자에게로 가까이 달려왔다. 전장은 환희
로 들끓었다. 부상자의 치료를 서둘러야 하고 사망자의 숫자도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
다. 알렉산드로스는 헤타이로이의 대열에 끼여들었다. 헤페스티온, 필로타스, 칼레이토스, 크
라테레스,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심한 부상은 커녕 철과상을 입은 사람돟 한 사람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주 유쾌한 대승이었다.
"국왕이 나를 노려보더군."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에게만 살짝 말했다.
"왜?"
"글세, 질투일지도."
"설마."
"그럼, 뭐지?"
"사자의 활약이 훌륭했기 때문에..."
사자는 알렉산드로스의 애칭이다. 친한 사이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부른다.
"전장에서 그렇게 활약했는데 노려보다니... 참을 수 없어."
"그 정도로 훌륭했었나?"
"전장에서 용기 있는 자가 이긴다는 부왕의 말을 실천한 것뿐인데 말야."
"국왕은 가끔 이유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사람을 봐. 버릇이겠지, 뭐!"
"그럴지도 모르지."
"미움받을 이유라도 있는 거야?"
"없어."
"사자는 국왕을 원망하고 있어?"
"아니, 원망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지. 미워하면 미움받고 원망하지 않으면 원망받지 않겠지."
"걱정하지는 않아."
헤페스티온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국왕의 예리한 눈빛에는 심상치 않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잠시 후 기분은 한결 나아졌지만 불안한 마음은
남아 있었다. 필리포스왕은 준비성 있게 간부들을 모아 앞으로 나가야 할 방침을 피력했다.
그때 누구보다 먼저 테베에서 마케도니아 왕의 자비를 청하는 사자가 왓다. 그러나 필리포
스왕은 스일의 잔을 나누면서 거친 말을 내뱉었다.
"테베만은 괘씸해서 용서치 않겠노라. 나를 배신하고 아테네와 손을 잡다니 반드시 벌하
겠다."
"아테네는..."
파르메니온이 왕의 의중을 물어 봤다. 테베 이상으로 제재를 가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생
각한 파르메니온은 다시 한 번 더 다그쳐 물었다.
"아테네는 어찌하실 건가요?"
필리포스왕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테네를 이겼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벌은 이 정도로 하고 아테네와는 손을 잡겠다. 포로
로 잡힌 장군들을 연회장으로 불러들여라. 죽여서는 아니 된다."
벌써 거나하게 취해 있었지만 아직 정신은 또렷한 말투로 명령했다. 머리를 약간 수그려
듣고 있던 파르메니온이 왕의 심중을 알아차리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술책은 필리포
스왕의 장점이었다. 언제나 아테네에게는 관대했다. 마케도니아가 아테네와 손을 잡고 그리
스의 화평과 번영을 확립한다는 것이 필리포스왕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케로네아에서 완승
을 거두어 마케도니아의 위신을 천하에 떨친 이상 아테네를 제재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부터는 아테네의 요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남김없이 유화하고 회유해야 한다. 아테네
인 중에서 많은 수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데모스테네스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힘주어 말하는 필리포스에게 유감이 있다면 이 숙적을 놓쳤다는 사실이다.
"테베도 용서할 수 없다."
이번에는 멸시하는 듯이 말했다.
"예..?"
개전 바로 직전까지 유화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를 걷어차고 아테네
와 손잡은 테베를 동등하게는 취급할 수 없었다.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용서해 주고,
용서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벌을 주는, 예측할 수 없는 절묘함이 필리포스 외교의 묘미였
다. 필리포스왕은 당연히 아군이 되었어야 할 테베에 대해서는 엄한 징벌과 보복을 명했다.
전승의 축연이 열리고 모두가 술에 만취했다. 특히 엉망으로 취한 필리포스왕은 아테네
의회의 변사들의 말투를 흉내내며, "파이아니아구 출신의 데모스테네스가 제안합니다. 마케
도니아를 멸망시킵시다. 필리포스를 처단해야 합니다. 버러지 같은 놈을 죽여라. 하하 하하
하" 등의 추태를 부리며 소리를 마구 질렸고, 술을 마시며 가슴에 흘렸다.
"데모스테네스, 이제 뼈저리게 느꼈느냐! 다시 얼굴이 찌푸려 지겠구나. 네 놈의 목은 쓸
모도 없어!"
바위 덩어리를 데모스테네스의 목이라 생각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바로 세우지도 못하는
몸을 비틀거리다가 발을 질질 끌면서 춤추기 시작했다.
"필리포스 만세! 마케도니아 만세!"
전사한 사람들의 시체를 밟으면서 자화자찬하는 환성을 지르다가 잠시 후엔 다시 욕설을
퍼부어대더니 갑자기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쳤다.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그러고 나서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알렉산드로
스가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 것은 여기까지였다.
이날 밤, 포로 한 사람이 감히 필리포스왕을 힐책했다.
"마케도니아 왕이여, 운명은 당신에게 아가멤논 역을 맡겼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테르시테스를 연기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아가멤논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군 총지휘관이고,
테르시테스는 천박하고 수다스러우며 어리석은 남자의 대명사였다.
"정말, 네 놈이 말한 대로다."
필리포스왕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 포로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여느 때처럼 냉철한 위정자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역사가들이 자
주 들려주는 에피소드이지만, 취해서 자신을 잃었다가도 술에서 깨어나면 냉정해지는 것은
필리포스왕 아니 마케도니아 왕가의 혈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포로가 지적한 것은 하나의
계기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알렉산드로스도 승리의 잔을 나누며 취할만큼 취했지만
부왕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다. 몇 번이나 칭찬을 받으면서도 알렉산드로스는 "겨우 그
정도 일로"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받아넘기고 오히려 군중을 피해 혼자서 사색에 잠
겼다. 그곳으로 크라테레스가 쇠가죽으로 만든 진기한 칼집을 들고 나타났다.
"뭔가?"
크라테레스는 먼저 칼집을 허리에 묶었다. 그러고 나서 긴 창을 들고 칼집에 넣고는 수평
으로 바로잡았다.
"한 손으로 창을 사용할 수 있어."
"정말?"
중장 보병은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으로 창을 다룬다. 창을 던질 때는 오른손 하나라
도 불편하지 않지만 찌르기 위해서는 조금 불안하다. 칼집을 허리에 고정시켜 놓으면 그런
불편을 없앨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궁리해 낸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도 서서 시험해 보았
다.
"괜찮은데!"
크라테레스는 이런 종류의 연구에는 재주가 있었다.
"몇 개 더 만들어 봐."
"좋았어."
알렉산드로스도 승리에 취해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취기는 다음 전쟁에의 동경으로
이어져, 술에 취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무기를 궁리하는 쪽이 오늘밤의 흥분을 더욱더 기쁘게
해 주었다. 필리포스왕은 훨씬 기분이 좋았다. 케로네아의 승리가 쾌거인 것은 당연한 일이
지만 매사에 왕자의 이름을 들면서 아들의 공적을 선전했다. 알렉산드로스의 헤타이로이에
대해서도 왕이 직접 불러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장에서의 활약상을 듣고 후하게 금품을
내리며 치하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전승 직후에 본 아버지의 예리한 눈빛을 다시 떠올리며
'내가 착가했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헤페스티온이 말한 대로 국왕의 버릇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늘 주위를 위압해야만 하는 자신의 위치 때문에 그런 눈빛이 어느 사이엔가 몸에
배어 버렸던 것일까. 부왕이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위선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편인 왕자에게는 하늘 아래 특별히 두려운 존재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 있다면 역시 부왕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누구한테라도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
재였다. 그것도 물론 두렵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진짜 두려움은 그것이 아니었다. 무언의 압
력. 굳이 말하자면 국왕으로서의 역량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부왕을 초월하겠다는
평범하지 않은 자부심을 품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표일 뿐 달성된 사실은 아니다.
잔을 들고 있을 때는 추태를 부리는 한낱 술 주정뱅이에 불과하지만 부왕의 통찰력은 보통
이 아니다. 통찰력이 깊으면서 도량도 넓고 추진하는 실행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실력으
로는 지지 않을 자신도 있고 권력에도 거역할 자신이 있지만, 그의 머리 속의 지혜는 함부
로 얕잡아 볼 수가 없다. 다만 그 저력이 두려울 뿐이었다. 예를 들어 금화 주조가 그랬다.
어린 시절 알렉산드로스에게 금화를 하나 던져 주며 필리포스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만들었다. 내 장난감이다."
그러고는 아들을 바라보며 천진하게 웃었다. 조금 자라나서 금화를 볼 때마다 '너무 허세
를 부리셨어, 이렇게 비싼 장난감을 만드시다니'라고 생각한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에 대해
약간의 경멸심마저 느꼈었다. 필리페이오스라 불리는 이 금화는 그리스에서는 최초로 주조
되었던 화폐이다. 당시는 페르시아의 달레이콘 금화만 유통하던 시기였다. 필리페이오스에는
표면에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뒷면에는 전차 두 대가 새겨져 있었고 이것은 그리스를 상징
하는 의장으로 장식한 것이었다. 페르시아에 대항해서 그리스에서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필
리포스왕의 허영심에도 잘 어울렸다. 왕 자신도 "내 장난감이다"라고 말해 놓고는 자신의
유치함에 웃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필리페이오스는 어느 사이엔가 그리스 반도는 물론 국
경을 넘어 제국에서도 유통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몰래 양화인 필리페이오스를 구하려고 했
고, 그만큼 마케도니아의 경제력이 제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것은 한낱 치기도 장난
감도 아니었다. 모두가 필리포스왕이 의도했던 일이었다. 치기를 가장하면서 이 정도까지 예
상했다는 점이 필리포스왕의 위대함이다. 이런 면은 알렉산드로스도 쉽게 초월할 수 없는
면이었다. 역시 부왕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무래도 예리한 눈빛은 단순한 기우였던
것 같았다. 알렉산드로스에게 또다시 명령이 내려졌다.
"알렉산드로스, 아테네로 가라."
"예?"
처음 방문하는 동경의 도시이다.
"나의 대리인으로서 협상의 절충을 네가 맡아라."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긴장감 속에서 왕의 교시를 들었다. 케로네아 전투의 승리를 인정받고 떠나는 아테네 사
절단의 대표였다. 전쟁의 성과는 전장에는 없으며 늘 그 후에 결과가 나타나는 법이다.
"안티파트로스를 동행시킨다. 너와 지위는 대등하나 잘 보좌해 줄 것이다."
"예."
명목은 전사자의 유해를 전달하는 것이었지만, 강화 조약 체결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더 없이 중요한 임무였다. 출발을 앞두고 필리포스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너는 위엄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지만 정복자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아테네인들을 접해
야 하며 항상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 마케도니아의 왕자로서 아테네인을 압도하라. 알겠느
냐."
"명심하겠습니다."
'왜 내가 뽑혔을까?'
그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날 필리포스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필리포스왕은 준엄
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나의 바람은 마케도니아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그리스에 화평과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테네의 협력은 꼭 필요하다. 알다시피 이미 테베에게는 엄한 벌을 내렸다.
테베를 수하에 넣는다면 아테네의 횡행은 두려울 것도 없다. 아테네 해군을 해체하여 마케
도니아 해군으로 편입시키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아무쪼록 관대하게 대하여 아테
네인의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라. 마음이 있는 요인에게는 넉넉하게 금품을 주어라, 알
겠느냐. 아테네에게 보복하는 일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테네를 네 눈으로 잘 보고 와야 한다. 유감이지만 마케도니아보다 훨씬 뛰어난
면이 많을 것이다."
왕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아들을 보고 웃었다.
사실 아테네는 필리포스왕의 제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테베에 가해진 징벌은 정말 가혹
했고, 따라서 아테네에게는 분명히 훨씬 더 가혹한 조건을 들이댈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
었다. 아테네인 대부분이 필리포스가 공격해 올 거라는 예측을 하며 남자들은 무기를 들어
싸울 각오를 하고 있었고, 부녀자들은 피레우스 항구에 피난시켜서 언제라도 해외로 도망시
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리포스와 가까운 인물을 뽑아서 절충할 수 있는 대책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케도니아 왕은 절대로 군대를 아테네에 입성시키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고 편지를 보내 왔다. 편지 내용대로 2000명의 포로도 무사히 귀환시키고 전사들의 유해도
되돌려 보낸다는 것이다. 배상금에 대한 어떤 요구도 없으며, 굳이 요구라고 한다면 해군의
해체와 군선의 양도 정도였다. 곧 왕자가 화평의 사절로서 방문해 온다고 적혀 있었다. 이것
을 알고 아테네 시민들은 알렉산드로스를 환호로 맞아 주었다.
"알렉산드로스 만세!"
왕자의 행동거지는 아테네인의 미의식을 만족시키고도 남았다. 겉모습은 정말 나무랄 데
없는, 마치 아폴론 조각처럼 아름다웠으며 눈빛은 신비한 매력을 띠고 있었다. 왕이 될 자에
게 걸맞는 용모였으며 그리스 말도 유창하게 잘했다. 더없이 화려한 방문이었다. 평화 협상
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아테네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좋은 조건이었으므로 교섭이 난항할
이유가 없었고 왕자도 도처에서 환영을 받았다. 아테네 문화에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만
큼 놀랐다. 알렉산드로스는 지나친 환대에도 냉정하게 아테네의 전통과 힘을 관찰했다. 필리
포스왕은 모든 것을 내다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자신에게 돌아올 영광을 왕자에게 돌려
준 것이었다. 그리스 전국에 울려 퍼질 위세를 아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아
버님은 대단해"라며 자기 자신도 모르게 헤페스티온에게 흘린 말은 본심이었다. 케로네아에
서 눈부신 공을 세운 것과 아테네에서 멋지게 사절 역할을 해낸 것, 이 두 사실은 알렉산드
로스의 데뷔를 멋지게 장식하는 하나의 쾌거가 되었다. 아테네에서 돌아온 왕자의 인기는
국왕을 능가할 만큼 커져 갔다. 필리포스왕도 젊은 시절에는 어엿한 미남이었지만 지금은
온몸이 병들어 있었다. 애꾸눈, 절름발이, 부상당한 왼쪽 어깨 등으로 몸의 움직임도 변변치
못하고 주색을 즐긴 탓으로 안색도 병적으로 부어 보여 천박해 보였다. 왕자 쪽이 단연 훌
륭하며 쇠처럼 강하고 늠름해 보였다. 모든 대중은 젊은 왕자의 등장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돌아옴과 동시에 필리포스왕은 코린토스로 출발했다.
"명심해라. 몇 번이나 말했듯이 나의 목표는 그리스 전체의 평화와 번영이다. 마케도니아
가 지도력을 갖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다. 머지않아 나는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난다. 소아시
아에서 페르시아 세력을 일소하여 영원한 안녕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
스 제국이 일치 단결하여 이 계획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까지 해온 것은 모두가
그러한 거사를 이루기 위한 준비였다."
필리포스왕의 신념은 조금도 동요가 없었다. 필리포스왕의 강인함은 분명 그러한 훌륭한
신념의 산물일 것이었다. 신념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자연히 거기에 거는 정열이
달라진다. 하물며 왕이 가진 훌륭한 신념이라면 각지에서 보이지 않는 찬동자들이 저절로
모일 것이며 다른 이에 대한 설득력도 우월하게 나타날 것이다. 코린토스는 그리스 반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경계선에 있는 도시이다. 그리스 관광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명승지이
며 두 바다를 잇는 운하가 너무나도 신비스런 광경을 이루지만, 현재의 것은 19세기에 완공
된 것으로 이 지역은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던 도시였다. 필리포스왕은 스파르타
를 제외한 그리스 제국의 각국 대표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아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했다. 마
케도니아왕 필리포스를 맹주로 하는 범그리스 동맹기구이며, 우선은 필리포스의 이상을 실
현하는 역사적인 지표로 보아도 될 것이다. 강국 스파르타의 불참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참가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리포
스왕으로서도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페르시아를 향한 동방 정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 제국과의 화평을 확립하고 물심양면으로 그들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아마도
이 동맹 조약의 체결은 아테네로 떠났던 알렉산드로스보다 훨씬 힘든 교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포스왕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외교 수완과 압력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예
상외로 쉽게 타결시켰다. 사전에 각국의 요인에게 많은 금품을 뿌려 두어 충분히 준비가 되
어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케도니아의 주도하에서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갖가지
많은 조약이 제안되었고, 이 자리에서 필리포스왕이 전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그리스라는 이름을 걸고 페르시아를 정벌하는 일이 허용되었다. 이 사건의 의미는 매우 크
다. 공통의 적을 가지면 내부는 저절로 결속을 다지게 되는 법이다. 그리스의 발전을 위해서
는 어차피 페르시아를 지중해 연안에서 내쫓아 버려야 한다. 각국이 원정에 어느 정도의 자
금을 분담하고 어느 정도의 군대를 파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군함과 군마 그리고 무기의
강제적 회수에 이르는 문제까지 주도적인 타협을 하여 무난하게 마무리 지었다. 병력을 페
르시아로 쏟는다면 내란은 일어나기도 힘들며 용병들에게 직장을 준 것도 사회 정책의 일환
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케로네아의 완승이 제국들에게 무언의 압력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필리포스왕에게 거역하면 순식간에 테베와 같은 운명에 빠지게 되고, 그를 따
르면 아테네처럼 된다는 사실도 모두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하게 했다. 더불어 필리포스
왕이 주장하는 이상도 단순한 명목은 아닌 것 같고, 만약 제대로 실현된다면 페르시아의 횡
포는 경멸받을 것이며 그리스는 번영을 되찾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각국의 입장
이 판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코린토스 동맹은 순조롭게 조인되었던 것이다.
필리포스가 부재중인 수도 펠라에서는 올림피아스가 극구 필리포스의 악행을 왕자에게 주
입시키려 애썼다. 어느 정도로 잔혹한 남자인지, 어느 정도로 시기심을 불태우는 남자인지,
품성은 야수에 뒤지지 않으며 왕으로서의 자격을 도무지 갖고 있지 않는 버러지 같은 인간
이라고 떠들어댔다. 알렉산드로스는 묵묵히 들으며 냉정한 표정으로 왕비가 지껄이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들으면서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술 주정
뱅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분별없이 비난만 해대는 왕비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구석이 더 많
았다. 마케도니아를 이만한 나라로 키워 낸 것은 한낱 변변찮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
니며 왕에 대한 부하들의 신뢰도 두터웠다. 왕비에 대해서는 어머니로서의 애정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증오심에 가득 차서 내뱉는 그런 말을 지나치게 신용한다면 위험 천만한 일이다.
왕비는 피로 피를 씻었던 왕가의 추악한 가족사를 낱낱이 들추어냈다.
"사자여, 방심해서는 아니 됩니다. 왕은 배신하기 전에는 반드시 후하게 대하지요. 늘 하
던 수법입니다. 방심하고 있으면 아니 됩니다. 그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나는 낮이고 밤이고
왕자의 안녕을 제우스아몬에게 빌고 있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어요."
올림피아스는 필사적으로 호소하며 자신의 모성애가 얼마나 깊은지 스스로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 왕자는 마지못해서 간단하게 답했다.
"감사하고 있어요, 어머니."
왕비가 알렉산드로스의 가호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필리포스에 대한 주문을 신에게 빌
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코린토스에서 돌아온 필리포스왕은 알렉산드로스를 친히 불러 동맹 결성의 성과에 더없이
만족해 한다는 것과 아울러 동방 정복에 대한 야심을 들려주었다.
"너와 나의, 우리 둘의 쌍두마차로 가자, 알겠느냐."
"예, 아버님."
"좋다."
만족한 듯 웃고 나서 잔에 남은 술을 전부 마셨다.
"여자를 주겠다. 가장 빼어난 계집이다. 내가 네 나이였을 때 쉰 명도 넘는 여자를 경험했
었지. 하하 하하하."
필리포스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천박한 웃음을 사정없이 내질렀다. 그로서는 알렉산
드로스가 여색에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는 점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말씀은 그것뿐입니까?"
"많이 귀여워해 주어라."
"그럼."
물러나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필리포스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새 왕비를 맞는다. 우선 네게 말해 두는 거다."
알렉산드로스는 문턱을 넘어서려는 순간에 부왕이 던진 이 말을 어깨 너머로 듣고는 '또
야'라며 그대로 방을 나왔다. 부왕의 바람기는 이미 진력이 나 있었고 너무나 잘 알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부왕은 끊임없이 여자를 만든다. 도무지 분별력이 없다. 조금이나마 마음에
켕겼는지 왕자에게도 여자를 안겨 주자는 속셈일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도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결코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단지 여자와 놀아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나누
는 동지적인 결합이나 육체 단련, 지식을 넓히기 위한 독서 쪽이 훨씬 마음에 들었을 뿐이
었다. 부왕의 호색에는 혐오감을 품고 있었고, 성적인 발산 따위는 위대한 야심을 가진 왕자
에게는 별의미 없는 그저 하찮은 문제였다. 부왕의 말대로 사흘째 되는 날 밤에 잠자리를
같이할 여자가 알렉산드로스의 침실로 보내졌다. 알렉산드로스의 눈에도 확실히 아름다운
여자였다. 동양의 피가 섞여 있는지 검은 눈동자와 갈색 피부가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가만
히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왕자는 다음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가 몹시 슬퍼하며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했다. 본의 아니게 여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달래려
고 말동무를 해줬는데 그녀의 자그마한 입술에서 뜻하지 않은 사실을 듣게 되었다.
"왕의 새 여자는 앗타로스 장군 친척의 딸이라지요."
"앗타로스?"
금시초문이었다.
"네. 조카딸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앗타로스는 파르메니온이나 안티파트로스에 필적하는, 마케도니아군에서 으뜸가는 유능한
장군 중의 한 사람으로서, 군사뿐 아니라 내정에서도 국왕의 한쪽 팔로 주목받는 인물이었
다. 앗타로스의 조카라면 단순한 첩은 아닐 거라고 염려한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은 적중했다.
부왕 자신이 "새 왕비를 맞는다"로 하지 않았던가. '왕비'라고 말한 것은 결코 듣기 좋으라
고 한 말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호색을 미화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알렉산드로스 쪽이 정
보 파악에 뒤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부왕은 앗타로스의 조카딸 칼메이라
를 왕비로 맞을 것을 이미 결심한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알렉산드로스가 진의를
물어 보려 해도 부왕은 필리폴리스에 가서 부재중이었고, 어머니 또한 디온 신전에 틀어박
혀 수도 펠라에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부왕의 귀환을 따져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것이온지요."
"그렇게 화내지 마라. 너한테도 전에 말했을 텐데."
"앗타로스의 질녀라고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마음대로 방을 나가지 않았느냐."
그건 그랬다.
"새로운 왕비라고요?"
"왕의 부인은 왕비다. 뭐가 잘못되었느냐?"
오히려 아버지 쪽이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 되옵니까?"
"이혼하겠다고 전했다. 이미 사자가 디온에 도착했을 것이다."
"무슨 죄가 있어서?"
"무슨 죄? 부정이다."
"부정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너도 잘 알고 있을 게다. 나는 믿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네가 태어난 후 올림피
아스는 제우스아몬과 하룻밤을 지낸 후 너를 낳았다고 공언하고 있다. 남편이 아닌 자의 아
들을 낳는 것, 이것이 부정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당사자가 말한 것이니까 믿을 수밖에 없
지 않느냐."
"그것을 이제 와서 세삼스레..."
알렉산드로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막혔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은 오로지 내가 죽기만을 바라고 있다. 디온에 간 것도 그것
을 기원하기 위해서겠지. 신들이 어떻게 대답하실지 나는 모르지만 그런 여자를 왕비로 더
이상 총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맘 같아서는 사형시켜야 마땅하지만 네 생각을 해서 이혼으
로 끝내는 것이다. 너의 생모인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니냐."
"왕비에게... 어머니에게 이의는 없을까요?"
"이의를 말할 입장이 아니다. 소란을 피우면 얼마든지 증거를 보여 줄 수 있다. 너도 궁궐
내에 내분을 일으킬 만한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야. 이상한 모임에 쓸데없이 가담하
지 마라. 이미 정해진 일이다. 알렉산드로스라 할지라도 죄가 있으면 벌을 받을 것이다."
국왕은 희미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알렉산드로스를 노려봤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명한 생각을 찾아내야 하겠지."
필리포스왕은 투덜거리더니 드디어 할말을 찾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인이 아니다. 왕비가 마케도니아 출신이기를 바라는 자도 많아."
"다음 왕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알렉산드로스는 기품은 내팽개치고 물었다. 흥분으로 볼이 홍조를 띤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호색가인 국왕에게는 많은 서자가 있기 때문에 올림피아스와의 이혼은 알렉산드
로스의 입장을 상당히 악화시킬 것이다. 거지처럼 왕위를 구걸해야 하는 것일까. 필리포스는
조소하듯이 웃었다.
"네가 그것을 물어보느냐. 경쟁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뛰어난 왕이 탄생하겠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올림피아스의 귀경을 기다렸다가 닷새 후에 혼약의 축연을 성대하게 열 것이니 반
드시 참석하거라. 이것은 국왕으로서의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침울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물러났다.
왕위 계승으로 말하자면 필리포스왕에게서 알렉산드로스에게로 장래의 양위가 정식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올림피아스가 왕비의 자리에 있는 한 적자는 알렉산드
로스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필리포스왕도 적자로서의 지위와 실력, 인품 등으로 보아 다음 국
왕은 알렉산드로스라는 뜻을 넌지시 비쳤었고,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주위
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기색이 짙었지만, 정식 절차를 거쳐 천하에 널리 공표된 사항
은 아니었다. 왕위 계승의 후보자로는 알렉산드로스 이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아리다
이오스와 아민타스였다. 아리다이오스는 필리포스왕이 테살리아의 라릿사 출신의 여자에게
서 낳은 서자였는데, 그녀에 대한 왕의 총애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아들에게
도 과분하게 대우했다. 이미 성년이 되었는데도 지능이 떨어지고 성격도 여려, 국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은 아니라고 보지만 오히려 무력한 국왕을 바라는 중신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리
다이오스의 장애가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가 음식에 독약을 넣은 탓이라는 꺼림
칙한 소문도 있었다. 물론 이것은 후일의 왕위가 계승을 노리는 라이벌을 사전에 탈락시켜
두기 위한 음모였다. 전위야 어찌되었든 올림피아스의 인격에는 이런 풍문이 나돌기 쉬운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민타스. 20여 년 전 필리포스왕은 둘째 형 페르디
카스 3세의 급사 이후 갑자기 떠밀 듯이 왕위에 즉위했었는데, 맡았던 것이라면 돌려주어야
한다. 아민타스라 불리는 이 청년이 페르디카스의 적자이므로 왕위 계승의 근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필리포스왕의 업적과 권세를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
다고 보아도 되지만 걸림돌이 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올림피아스
가 왕비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면 새로운 왕비가 왕자를 낳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
다.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은 아니지만 이 가능성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도 대단히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결국에는 그쪽이 적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국왕의 방에서 나온 알렉
산드로스는 곧바로 헤페스티온을 불러 국왕과의 대담을 전했다.
"사자에게는 안됐지만, 어머니 문제는 방법이 없을 거야."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을 살피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이혼이란 말인가."
"우리가 곁에서 지켜보아도 국왕을 업신여긴 일이 없진 않았잖아."
"그래."
그것은 사실이었다. 올림피아스는 에페이로스 왕가의 출신이며 현재 에페이로스 왕의 누
나였다. 마케도니아에게 있어 에페이로스는 절대적으로 우호를 잃어서는 안 되는 이웃 나라
이며, 필리포스왕은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감안하여 올림피아스의 방자함을 용서한 것이 틀
림없었다.
"이번에는 앗타로스의 조카딸이래. 부왕과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가 봐. 당치 않는 새어
머니야."
"나도 오늘 알았어. 칼메이라라던가."
"아아, 맞아."
"나이가 어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앗타로스가 더욱 세력을 확장하겠지."
"그것보다도..."
알렉산드로스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비록 상대가 헤페스티온이라 할지라도 왕
위 계승이 순조롭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았고 사실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
였다. 왕위라는 것은 아무 문제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일로 누구와 다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누가 필리포
스왕의 위업을 계승하여 마케도니아의 번영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시시비비
를 묻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 쓸 것 없어, 사자말고 어느 누가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르겠어."
과연 헤페스니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을 뚫어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가 허락지 않아. 그리고 민중이 허락지 않고."
"성가신 문제야."
표정에 미묘한 위기감이 비쳤다 사라졌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약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면
일 것이다. 차원이 낮은 싸움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존심에 위기를 느끼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국왕의 마음은 정해져 있어. 국왕은 무엇보다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인물이지. 무서운 면도 있지만 훌륭한 면도 있어. 알렉산드로스 이상의 후계자가 없다는 점
을 이미 잘 알고 있어. 국왕은 난제를 훌훌 털어 버리고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야. 다른 곳
에서는 알렉산드로스 자랑만 하고 있는데?"
"오히려 불안해."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마."
"아냐, 만일의 경우에는 나한테도 생각이 있어."
"그야말로 마케도니아의 사자로군."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를 격려해 주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마음 속에 도사린 채 사
라지지 않았다.
필리포스왕과 앗타로스 장군의 조카딸 칼메이라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연이 수도 펠라의
궁전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국왕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참석은 했지만 불만스러운 알렉산드
로스에게는 도무지 재미없는 일 뿐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뭐가 저렇게 신이 나서 떠드는
것일까 하며 아버지를 불만스럽게 쳐다 봤다. 필리포스왕은 어린 신부를 맞이한 게 그렇게
도 기쁜지 볼썽사나울 만큼 볼이 일그러지도록 웃어대더니 이번에는 음탕한 미소마저 띠웠
다. 앗타로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척의 혼사라 빈객들을 겉보기에는 공손하게 대하고
있는 듯했지만 표정에는 의기양양한 빛이 역력했다. 국왕과의 인연을 연줄로 일약 제일의
장군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조바심 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칼메이
라였다. 틀림없이 굉장한 미인이었다. 괴물 같은 부왕에게는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름
다움 바로 밑에 사악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지 한순간의 눈빛에도 간교함이 감도는 듯했
다. 분명히 10년 후에는 무서운 인상이 될 것이다. 교활함은 나이를 먹어감과 함께 표정에
달라붙는 법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장래가 두려워졌다.
"알렉산드로스님이 제우스아몬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불륜의 증거이며,
더구나 본인께서 직접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인정해 주시는 게 좋겠어요."
소문으로 듣자하니 칼메이라가 이런 말로 부왕과 올림피아스의 이혼을 재촉했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배후에는 앗타로스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겠지만, 아직 어린 몸으로 뻔뻔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앞으로는 어떤 말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의 앞에서는 "길이길이 후의를 베풀어 주십시오"하며 갸륵하게 말했지만 본심은 알 수 없었
다. 알렉산드로스의 헤타이로이는 모두 수상한 듯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도 직감적
으로 위태로움을 느꼈다. 올림피아스도 참석했지만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거의 표정을 보
이지 않다가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소란해지기 시작할 무렵 앗타로스
가 알렉산드로스의 바로 옆에서 천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위대한 신랑 마케도니아 왕의 건강을 기원합시다!"
"필리포스 만세!"
건배한 후 앗타로스는 한 번 더 잔을 채우고 높이 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이번에는 하루 빨리 정통한 왕실의 후계자가 탄생할 것을 기원하지 않습니까?"
알렉산드로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통하다니, 무슨 뜻이냐? 무례한 놈. 알렉산드로스가 첩의 아들이란 말이냐?"
고함 소리와 함께 앗타로스의 머리를 향해 술잔이 내던져졌다. 술잔은 앗타로스의 이마를
명중했고 붉은 술과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앗타로스도 격분하여 무서운 기세로 자신의 잔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내던졌다. 식탁을 뒤집으며 공격을 피한 왕자가 앗타로스를 치려고 다가
서는 순간, 필리포스왕이 칼을 빼들고 식탁에서 식탁으로 날아가는 왕자에게 다가갔다. 핏발
이 선 왕의 애꾸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술에 취한 탓인지, 절름발이
인 탓인지, 왕은 비틀거리며 식탁에서 굴러 떨어졌다. 보기 흉하게 쓰러진 왕의 모습을 흘끗
보며 왕자는 증오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잘 보셨는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겠다고 작정하신 분이 식탁 두 개를 못 건너서야."
날렵하게 몸을 돌려 술자리를 빠져 나온 알렉산드로스느 그 길로 올림피아스와 함께 에페
이로스로 떠났다. 그곳은 올림피아스의 고향이었다.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레스가 뒤를 따랐
다. 국왕은 그대로 쓰러졌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는 다시 후회를 했다. 그때 마침 코린토스
에서 오랜 친구 데마라토스가 찾아왔다.
"기분은 어떻습니까?"
"음, 좋지 않네. 그리스인들은 어떤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가?"
데마라토스는 축연의 밤에 있었던 소란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케도니아 왕이여, 당신은 자신의 집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으면서 그리스인들에 대해
묻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필리포스왕도 기분 좋게 웃음으로 화답하며 데마라토스가 에
페이로스로 가서 알렉산드로스와 올림피아스를 위로하고 달래줄 것을 부탁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를 에페이로스로 보낸 뒤 친구 몇 명과 함께 북방의 산 속으로 들
어갔다. 그곳은 오늘날 알바니아와의 경계를 이루는 산악지대로 펠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어린 시절 단련을 위해 몇 번인가 부왕에게 이끌려 왔던 적이 있는 곳이었다. 왕위
따위는 시시하다며 염세적인 기분에 빠져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왕위에
앉게 된 알렉산드로스가 코린토스에서 방랑의 철학자 술꾼 디오게네스를 만났을 때, 누구에
게도 구속받지 않는 이 철학자의 생활을 부러워하며 "내가 만약 왕이 아니라면 디오게네스
처럼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던가. 이 유명한 에피소드가 암시하듯이 알렉산드로스는 혼자서
사색하기를 좋아해, 권력의 자리에서 떠나 은둔 생활을 하는 것에도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
았던 모양이다. 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던 '상반되는 두 가지 성격의 공존'인지도
모른다.
"사자여, 눈을 떠라. 마케도니아가, 그리스가, 전세계가 알렉산드로스를 원하고 있어. 신의
아들에게는 신의 아들의 사명이 있는 법이야."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레스가 알렉산드로스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데마라토스도 왕자가 있
는 곳을 알아내어 필리포스왕의 뜻을 전했다. 왕자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이 근방에서 아버
지와 장난치며 놀았던 나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싸워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돌아가라고 하는 거야, 그 더러운 도시로?"
"그러는 게 좋아."
알렉산드로스는 마지못해 펠라로 돌아왔다. 올림피아스도 에페이로스에서 펠라로 되돌아
왔지만, 그녀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펠라를 떠나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올림피아스에게는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는 사정이 충분히 있었다.
"잘 돌아왔다."
필리포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뻐하며 알렉산드로스와 올림피아스의 귀환을 반겼
다. 펠라의 궁궐에 소강 상태가 계속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알렉산드로스가 궁궐을 비웠
던 사이에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났다. 외교와 전쟁에 다망한 필리포스왕이 펠라에 머무는 시
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연히 왕궁에 있는 며칠 동안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결단의
신속함도 이 왕의 장점이었다. 작은 형의 아들 아민타스와 유력한 산악 민족 우두머리 딸과
의 결혼을 결정한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또 한 사람의 왕위 계승자인 아리다이오스
를 소아시아의 강국 카리아의 공주와 혼인시키려 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자극적이었다. 카
리아 왕가로부터 우호를 위해 반드시 왕자를 신랑으로 맞고 싶다는 제의를 받자 필리포스왕
은 두 번이나 회신을 보내 아리다이오스를 추천했다. 카리아는 여왕 상속의 전통이 있는 나
라이며, 왕가의 사위가 되는 것은 후일 카리아의 왕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알렉산드로스의
헤타이로이 중에 수도에 남아 있던 프톨레마이오스를 중심으로 하르팔레스, 네아르코스, 프
리기오스 등 궁궐 내정에 내통하고 있던 자들도 이 소식을 듣고는 술렁거렸다.
"왜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지?"
"아리다이오스는 머리가 모자라잖아."
"카리아의 왕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마케도니아에도 화가 미칠 거야."
모두 모여서 협의한 끝에 제국을 돌아 다니는 광대인 테살로스를 기용해서 그를 카리아로
보내어, "아리다이오스는 머리가 모자라니 당연히 알렉산드로스를 뽑아야 한다"라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일의 성격상 이 유언비어가 고의로 아리다이오스를 비방하는 내용이라는 점
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올림피아스도 어느 단계에서 이 정보를 입수했는지
는 모르지만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계획을 지지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올림피아스 쪽의
음모가 좀더 심했다. 올림피아스는 우선 알렉산드로스를 카리아 왕의 후계자로 만들어 두겠
다는 결심을 했다. 이 일과 마케도니아의 왕위 계승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두 왕위를 모
두 갖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정도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
다. 그러나 만일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얻을 수 없을 경우, 다시 말해 교활한 칼메이라가 적
자를 낳고 그 아이가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는 경우, 알렉산드로스가 카리아 왕이 되어 있다
면 기필코 마케도니아를 함락시켜서 결국 두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 올림피아스의 바람이자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미숙한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비밀 공작이 마케도니아 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필리포스왕은 모든 것을 알고는 분노의 망치를 내리쳤다.
"멍청한 녀석들, 알렉산드로스를 당장 불러들여라!"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공작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필리포스는 그
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흔들리는 왕좌
필리포스왕 앞에서 공공연히 알렉산드로스를 얕잡아 본 것은 왕의 측근인
무장 앗타로스였다. 그는 심심찮게 필리포스왕을 부추기는 언동을 내비쳤
다. "왕자는 마케도니아의 장래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일지도 모
릅니다." "왜지?" 술자리였지만 필리포스왕은 하나도 흘려 듣지 않고 앗타
로스를 응시하다가 바로 물었다. "아아뇨, 그저 날개 없는 생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장군은 왕의 진지한 눈빛에 적이 당황한 듯 부정을 하며 농담인
척했다.
날개 없는 새는 하늘을 날 수 없다. 그 때문에 경계심이 강해 주위의 하
찮은 기색에도 부들부들 떨며 소란을 피운다. 어리석은 노파심을 지적한 비
유이겠지만, 동양의 고사성어에 비유한다면 결국 기우인 것일까.
"상관없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말해 보아라!" 왕이 예리한 눈빛
으로 노려보고 있어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앗타로스에게 자신감이 있었기때문이었다. 누구보다 국왕의 신임이 두터우
며 조카딸인 칼메이라가 왕비가 되어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나라의 근심
거리를 직언하는 것은 중신된 자로서 마땅한 책부였다. "왕자는 정말 영리
합니다. 하나 영리함만을 믿고 언젠가 왕위를 노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 앗타로스는 말끝을 흐렸다. "걱정 없다." 왕은 단호하게 부정
했다. "원래부터... " "여자들의 방에서 나오는 실없는 말만 듣고 흔들려서
야. 조치해 두었으니 개의치 말아라." "대충 알고는 있사옵니다." 앗타로스
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물러갔다.
왕이 말하는 여자들의 방이란 전 왕비 올림피아스와 그 주변의 무리들을
뜻했다. 왕자와 가까운 무리가 알렉산드로스를 소아시아 반도의 왕국 카리
아의 사위에 앉히려고 획책했다는 사실은 이미 필리포스왕의 귀에 들어왔
고, 조사해 본 결과 알렉산드로스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일단은 왕자를 불러들여 격노한 척했다.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는
냐!" "아닙니다. 저는 모릅니다." "분명, 틀림이 없겠지?" "예." 힘주어 대
답하는 왕자를 보자 필리포스왕은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내 마음을 모
르는 패거리들뿐이다. 카리아에는 아리다이오스가 좋다. 알렉산드로스 네게
는 마케도니아가 있다. 너마저 현혹되어서는 안 되느니라." 필리포스왕은
아들을 느긋하게 타일렸다.
왕의 말뜻은 명료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복형이며 왕위 계승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아리다이오스는 신체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바랄 수
없다. 그래서 카리아에서 요청이 있는 것을 기화로 카리아 왕녀의 사위로서
적극 추천했을 뿐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마케도니아 왕위를 준비해 놓고
있으니 이성을 잃지 말라는 말은 중요한 언질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알
렉산드로스의 마음은 단번에 누그러졌다.
궁궐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앗타로스는 왕과 왕자의 대화 내용 역
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국왕의 판단에 견제를 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앗타로스는 왕자의 어둡고 알 수 없는 재능에 경계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필리포스왕은 무서운 면이 있으면서도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든 데가 있다.
적어도 앗타로스 자신에게만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리포스왕의 마음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알렉산드로스에게 기울
어 있다면 이 이상 왕자의 흠집을 들추어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교활한
장군은 '기다리면 날씨도 바뀌는 법이지' 라고 생각하며 훗날을 기다렸다.
지금은 민중들 사이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인기가 매우 높지만 세간의 평판
만을 믿을 수 는 없고, 그런 평판은 금방 달라질 것이며 국왕의 심경도 곧
변화할 것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젊다젊은 왕비가 자기편에 있는 앗타
로스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앗타로스라 하더라도
왕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국왕은 착실학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를 회유하자마자 당장
프톨레마이오스, 하르팔레스, 네아르코스, 프리기오스 등 알렉산드로스의
동료들을 펠라에서 추방했다. 모두가 카리아에 밀사를 보내 아리다이오스를
비방한 자들이었다. 국왕의 의지를 무시하고 암약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처벌을 당연한 것이며, 아울러 이 명령에는 알렉산드로스가 마음대로 군대
를 움질일 수 없도록 헤타이로이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목적도 있었다.
전 왕비 올림피아스를 펠라로 다시 불러 응당한 대우를 해주는 한편 전격
적으로 에페이로스의 왕과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그리고 덧불여
서 내외 정세가 좋지 않다며 혼인 날짜를 한 달 후의 아폴론 축일로 결정해
버렸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 페르시아 정벌을 위해 파르메니온과 앗타
로스 두 장군을 소아시아 반도로 출발시켰다. 원대한 동방 정벌 계획의 선
발부대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에페이로스는 올림피아스의 고향이며 마케도니아에
게는 매우 중요한 근린 동맹국이다. 필리포스왕이 올림피아스에 대해 어느
정도 배려하는 것은 이런 외교적인 고리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림피아스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다른 유대 관계를 맺어야 햇다. 에
페이로스 왕은 올림피아스의 딸이었다. 따라서 이 결혼은 올림피아스에게도
또 하나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지만,실제로는 남도생이 누나의 영향력
에서 벗어나 필리포스왕과 직접 손을 잡는다는 의미가 자명하게 드러나는
결연이었다. 이것이 성립되면 필리포스왕은 더 이상 올림피아스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조속한 결혼 결정은 참으로 필리포스왕 다운 계략이 내
포된 결단이었다.
필리포스왕의 머리 속에는 우선 에페이로스와의 친목을 유지하면서 올림
피아스의 영향을 마케도니아로부터 일소하고 새로운 왕비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는 것과, 알렉산드로스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여 혼란스럽게 하는 자들
을 떼어놓고 왕자와 국왕의 관계를 밀접하게 한다는 것 두가지 목적이 있엇
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에 젊은 왕비가 왕자를 낳았으니 왕위 계승에 관한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니다. 한동안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맡겨서 꿈
을 갖게 해두는 게 좋다. 그 꿈이 실현될지 아닐지는 제우스의 뜻이지 지금
부터 사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올림피아스의 놀라움은 굉장했다. 남동생과 딸의 결혼이므로 크게 기뻐해
야 할 경사였지만 필리포스왕의 의도가 뻔히 들여다 보였다. 이 결혼으로
인해 남동생도 딸도 결국은 올림피아스를 버리는 길을 택할 것이었다. 이런
짓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눈앞에서 함정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도 늘 가까이에 있던 동료들이 추방당한 결정에 대해
처음에는 불복했지만 사정을 들어 보니 벌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임을 인정
했고, 지금으로서는 어쩌면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무리들과 멀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주모자 중에 헤페스티온이 있었다면 좀더 깊이 생각했겠
지만. 차라리 국왕의 분노가 어느 정도 누그러든 후 하루빨리 동료들을 용
서에 달라고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필리포스왕의 의도대로 왕자에 대한 회유가 주효했다. 알렉산드로스로서
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미처 놀랄 새도 없이 사태는
빠르게 진척되어 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왕자에게 칼라노
스라는 이름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마케도니아에서는 유서 있는 이름 즉 왕
위 계승자에 흔히 주어지는 야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도 이 사건이 일
어난 며칠 후였다.
기원전 336년 여름, 마케도니아의 고도 아이가이에서 에페이로스 왕과 마
케도니아 공주의 결혼이 거행되었다. 그리스반도 북부 민족의 관습에 따라
남자가 먼저 여자의 집으로 아내를 데리러 왔다. 두 나라의 왕가를 맺는 혼
인이지만 집안끼리의 의식을 치른 후 하객과 민중을 한데 모아 성대한 축하
연을 열기로 되어 있었다. 필리포스 동방 정벌의 출정을 격려하는 의식의
성격도 띠고 있어 각종 경기, 축연, 연극 공연 등 갖가지 행사가 기획되었
다.
필리포스왕은 이 결혼의 성립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야회 극장으로
향했고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스와 신들 앞에서 혼약을 맹세한 에페
이로스 왕도 동행했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 좋지 않은 소문이 아이가이시에 퍼지고 있었다. 페
르시아의 자객이 필리포스왕을 노리고 마케도니아에 잠입했다는 것과 자객
을 보낸 사람은 아테네의 귀족이라는 소문이었다. 게다가 축제 공연물의 하
나로 올림포스 12신상을 짊어지고 가장 행렬을 하는 행사가 개최되는데 12
신상이 아닌 13신상이라느니 마지막이 필리포스왕상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것은 마케도니아 왕이 천상계에 속하게 되는, 즉 죽어야 할 운명임을
암시하는 것이라며 아주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델포이 신전에
서 날아온 신의 계시는 "위대한 왕이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라는 내용이며,
이것은 페르시아 왕에게 일어날 일일지도 모르지만 마케도니아 왕에게도 적
영되는 것이 아니 겠는냐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필리포스왕 주변에는 늘 이런 종류의 소문이 맴돌고 있었기 때문
에 일일이 신경 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필리포스왕은 오히려 더 신명이
나 있었다. 공주의 결혼도 경사스러웠지만,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마음은
적잖아 신바람이 나 있었다. 오늘의 축연 자체가 그 출정을 격려하는 행사
인 것이다. "얼마간은 자리를 비우게 도리 터이니 잘 부탁하네." 이제는 처
남이자 사위가 된 에페이로스 왕의 어깨를 두드리며 손을 잡고 부탁했고,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긴 원정이 될지 모른다." 알렉
산드로스도 동정군의 장군으로서 동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제발 헤타이로이를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알렉산드로스는 왕과 긴 시간 서
서 이야기하는 동안에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복권을 호소했다. "생각해 보
자. 전쟁은 길어질 테고... 나 한 사람만의 수명으로는 완수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어이 하여 그런 심약하신 말씀을... " "그렇기 때문에 너를 데리
고 가는 것이다. 2대에 걸쳐서라도 페르시아는 격퇴해야 한다." "예... "
바로 그때 국왕의 입장을 알리는 나팔이 울렸다. "가자." 극장으로 이어진
계단은 호위병과 멀어지게 했다. 공주는 무대 뒤에서 나타나기로 되어 있었
다. 남자 세 명이 계단으로 발을 옮겨 갔다.
필리포스왕이 정중하게 손을 내밀며 에페이로스 왕과 알렉산드로스를 먼
저 보내 주었다. 자신의 발걸음이 젊은이들과 나란히 걷는 것에 적합치 않
다고 판단했던 것인지도 모르나, 여하튼 젊은 두 사람은 환호 속을 경쾌하
게 걸어 나갔다. 두 사람에게 영광을 돌렸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렇지 않으면 자객이 있다는 소문 따위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민중들에게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필리포스왕이 하얀 계단 중간까지 왔을 때 왼쪽 벽의 틈새에서 검은 그림
자가 새처럼 날아갔다.
이미 에페이로스 왕과 알렉산드로스는 계단을 다 올라가 되돌아가는 복도
입구로 다가가고 있엇다. 필리포스왕은 검은 그림자는 전혀 눈치도 못 채고
몸을 비틀거리며 왼편 계단 밑에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조금은 과장된 몸짓
으로 인사를 보냈다.
검은 그림자는 칼집에서 뺀 칼을 숨기고 있다가 곧바로 왕에게 달려들어
왼쪽 어깨 바로 아래를 꿰뚫고는 재빨리 칼을 빼서 오른쪽의 좁은 통로로
도망갔다. 그곳은 사제들이 계단 높은 곳으로 제물을 옮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통로였다.
멀리서 떼지어 있던 호위병들이 술렁거리다가 너더댓 명이 황급하게 자객
의 뒤를 쫓았지만 자객은 빠른 속도로 도망갔다. 통로 아래쪽 끝에 있는 수
풀 속에 준비해 둔 말 위로 검은 그림자가 올라타자마자 말밠굽 소리가 났
다. 호위병의 발걸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말의 뒤
를 쫓아서 달려갔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변을 먼저 귀로 들었다. 떠들썩하던 군중의 소리가 미
묘하게 변했다. 순간 숨을 죽인 듯한 긴장감이 흐르고 수상한 외침 같은 소
리가 섞여 뒤를 돌아보았다. 부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극장 계단에 몸을 움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왕자는 왕이 또 무슨 일
을 벌였다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필리포스왕은 예전부터 민중들 앞에서 배우 같은 과장된 연기를 보
이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눈언저리로 도망가는 그림자와 호위병의 당황하는 모습
이 보였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슨은 불길한 생각이 문득 스쳤고 재빨리 계
단을 뛰어내려 갔다. 에페이로스 왕도 알렉산드로스와 거의 같은 생각을 했
는지 즉시 왕자의 뒤를 쫓았다. "아버님!" "어서, 의사를 불러라!" 10여 명
이 동그랗게 에워쌌다. 알렉산드로서가 안아서 일으켜 국왕으 겉옷을 치우
자 하얀 키톤을 걸친 어깨가 시뻘겋게 젖어 있었다. 견갑골 아랜은 상처조
차도 못 알아볼 만큼 피가 거품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
다. 국왕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없었다. "아버님!" 입술이 떨렸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필리포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의사가 달려왔지만 국
왕의 죽음은 명백했다. "옮겨라!" 이렇게 외친 사람은 안티파트로스 장군이
었다. 여하튼 군중이 당항하게 해서는 안 되므로 노골적으로 국왕의 죽음을
드러내서도 안 될 것이다. 너더댓 명이 껴안고 계단을 서둘러 내려왔다. 다
가오는 군중들을 쫓으면서 국왕을 위해 마련한 임시 병실로 서둘러 갔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조금 전에 알렉산드로스의 친구 헤페스티온은 극장
계단의 오른쪽에 서 있엇다. 미묘하고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 것은 이 사내의 예지 능력 탓이었는지, 아니면 떠들썩한 죽제 전
에는 늘 그렇게 느낀 때문인지 자신도 잘 모른다.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
스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국왕과 젊은 왕비 그리고 앗타로스 장군, 세 사람의 관계는 왕자 칼라노
스가 탄생함에 따라 한층 더 친밀해져 가고 있었다. 지난번에 알렉산드로스
는 세 사람의 친한 모습을 흘끗 보고 연극조로 말했다. "장인도, 신랑도,
신부도... " "무슨 말이야?" "장인도, 신랑도, 신부도, 그냥 놔두지 않겠다
고 하는 거야." 배우 같은 몸짓을 곁들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하, 그
래." 미에자 학사에서 자주 읽었던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메데이아>의 한
구절인 것 같았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마케도니아와 인연이 깊기 때
문에 호메로스 다음으로 많이 배웠다.
장편 희곡의 한 구절을 아직도 알렉산드로스가 외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
회엿지만 사자의 기억력은 매우 뛰어났다. 그 시절에는 두 명이 한 조가 되
어 자주 희곡의 한 구절을 읆으며 연기하곤 했었다. <메데이아>라면 분명
사자와 둘이서 읆조린 적이 있었다. 딴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헤페스티온
에게는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장인도, 신랑도, 신부도... 그것
은 바로 앗타로스와 국왕과 젊은 왕비의 관계가 아닌가. 비극의 주인공인
메데이아는 이 세 사람을 저주하여 장인과 신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메
데이아>는 살벌한 질투와 복수의 드라마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이 비극의 한 구절을 외운 이유는 명백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웃고
있지만... 설마 본심은 아닐 거야.' 헤페스티온의 불안은 이러한 짐작에 있
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던 헤페스티온이 갑자기 눈을 들자 위험스럽게도
극장 외벽 높은 곳에 전 왕비 올림피아스가 보이는 것이엇다. 올림피아스에
게 오늘의 축연은 도저히 즐거운 일이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부는 자신의 딸
이다. 어머니로서 이런 저런 것들을 챙겨 줘야 할 것이다. '저런 곳에 서
있어도 괜찮을까.' 헤페스티온은 수상히 여겼다.
올림피아스는 계단을 밟고 있는 세 사람을, 즉 에페이로스 왕과 알렉산드
로스와 국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 없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때 참극이 일어났다.
헤페스티온도 검은 그림자를 처음에는 큰 새로 보았고, 큰 새로 보였던
그 칼이 왕의 등에 꽂히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헤페스티온의 위치에서 현
장은 너무 멀어 바로 갈 수가 없었다. 빠른 길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
봤을 때 한 번 더 올림피아스의 얼굴이 보였다. 헤페스티온이 조금 전의 웃
음을 떠올리며 그 진의를 찾으려고 했을 때 이미 올림피아스의 모습은 외벽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자객이 헤페스티온 쪽으로 달려왔다. 바로 밑의 통로를 빠져도망가는 것
같았다. 헤페스티온은 발소리를 듣고 뛰어내려 뒤를 쫓아 달려갔다. 자객은
말을 타자 재빨리 내달렸다. 호위병들이 뒤를 쫓아갔다. 헤페스티온도 조금
늦게 따라갔다. 자객은 뒤를 보면서 말을 달리게 했지만 숲 속의 오솔길에
접어들자마자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
졌다.
추격자들이 서둘었다. 그중에서 특히 발 빠른 자가 재빨리 넘어진 자객을
따라잡았다. "죽여라!" 헤페스티온은 즉시 외쳤다.
왜 그렇게 외쳤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엇다. 순간적인 판단이었을 뿐이
다. 깊이 생각했다 하더라도 별달리 좋은 생각이 떠오를 리도 없었다. 순간
의 판단에도 깊은 사려가 담겨지는 경우가 있다. "죽여라!" 이렇게 외친 것
이 한 번이었던가 두 번이었던가. 자객이 그 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다.
후에 한 호위병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왕자님이라고 생각했다고 보고했
다. 알렉산드로스와 헾스티온은 용모 그 자체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옷차림
이 비슷하고 나이도 같고 어린 시절부터 친했기 때문에 행동거지에 어딘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사람들이 둘을 착각한 적이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다.
자객은 의식을 되찾아 곁에 서 있는 호위병을 향해 쓰러진채로 칼을 찔렀
다. 반항하게 되면 죽이는 것이 용사의 반응이며, 게다가 죽이라는 명령을
이미 들었다.
헤페스티온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객의 죽음을 확인하고 바로 발길을
돌렸다. 알렉산드로스를 찾아야 한다. 국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극장 통로
를 달렸다. "알렉산드로스, 사자여!" 처음 보는 호위벙이 알렉산드로스가
있는 안쪽을 가리켰다.
국왕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필리포스왕의 죽음을 알았다. 많은 군신들의
표정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축연은 중지다." "물론이다." "에페이로스 왕께서는 공주와 함께 일단 본
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안티파트로스가 그렇
게 말한 뒤 바로 가까이에 에페이로스 왕이 서 있는 것을 알고는 당사자에
게 의중을 확인했다. "어떨까요?" "그게 좋다면... " 이 중대한 위기에 다
른 나라의 국왕이 방문해 있다는 사실은 불편하고 무용한 일이며 예의도 아
닐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혼인은 이미 성립되었으므로 차비가 끝나는 대로
왕비를 모시고 에페이로스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군중이 술렁거리는 것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수선한 모습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국왕이 다쳤다고... 우선은 그렇게 알리게, 축연을 전부 취
소하는 것도 말야." "하객들에게는?" "똑같다." "그러나 국왕의 서거는 숨
겨야 돼." "중태라고 알리면 되겠지, 새나가면 할 수 없고, 추후에 정식으
로 발표하자." 중신들을 중심으로, 물론 알렉산드로스를 포함하여 조용하게
앞으로의 대책을 세웠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동시에 호위병 대장과 몇 명의 병사가 달려와서
보고했다. "자객이 밝혀졌습니다." "누구냐?" "파우사니우스라는 호위병입
니다." "파우사니우스? 들은 적이 있는데. 얼굴이 유난히 창백한, 그 파우
사니우스 말인가?" "그래. 그놈은 어디에 있느냐? 그 파우사니우스는?" "호
위병이 죽였습니다." "죽였어? 곤란한데." "저항을 해서... " 그때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옷자락을 날리며 올림피아스가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
왔다. 그녀는 국왕의 시신으로 다가가 불을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한바탕
슬피 울고 난 후 올림피아스는 엄숙한 자세로 서서 팔을 뻗으며 알렉산드로
스를 가리켰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돌
아가신 국왕의 뜻입니다." 말투도 몸짓도 중대한 신의 계시를 내리는 제사
의식을 따르고 있었다. 미묘한 침묵이 흘렀지만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는 아
무도 없었다. 유언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일까.
새 왕비가 낳은 왕자 칼라놋스는 너무 어리다. 젊은 왕비의 후원자인 장
군 앗타호스는 동방 정벌을 위해 출발했다. 더구나 근래 몇 달 동안은 아리
다이오스와 카리아 공주의 결혼 이야기가 나온 뒤에도 필리포스왕의 의지는
틀림없이 알렉산드로스로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마케도니아에는 알레산드로스가 있다"라며 이 왕자만이 왕위 계승자
인 듯이 의중을 내비쳤다.
민중의 인기는 압도적으로 알렉산드로스에게 기울어져 있었고, 올림피아
스의 발언도 오랫동안 왕비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가볍게 여겨지지는 않았
다. 올림피아스에 대한 필리포스왕의 처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동정하는 소
리도 많았다.
필리포스왕이 급사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즉위가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었
다. 파르메니온과 앗타로스가 군대를 이끌고 동방정벌을 떠난 정황에서는
또 한 사람의 장군 안티파트로스가 수도를 장악하고 있었다.
안티파트로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알렉산드로스가 숨이 막힐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깼다. "마케도니아 왕위에 내가 앉는다. 이론이 있는 자는 지금
여기에서 말하시오." 머뭇거리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의연하게 선언했
다.
필리포스왕의 왕비 칼메이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산후 경과가 좋지
않아 펠라 궁정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 자리에 있었
다. 하더라도 젊은 왕비로서는 어떤 참견도 어려웠을 것이다.
마케도니아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수도의 군 회의에서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즉위는 이 순간 아이가이에서 실질적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될 것
이다. 그것은 역사의 필연으로도 보이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악조건을 극복
하고 허를 찔러서 성취한 정변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알렉산드로스가
즉위할 수 없는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교묘하게 기
선을 제압함으로써 성공한 조용한 쿠데타라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주위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오만하게 선언했다. "좋다. 지
금부터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한다. 국난을 맞아 일치 협력하여 국왕에 따
를 것을 엄명하노라." "뜻하신 대로" 헤페스티온이 소리 높여 대답했고 올
림피아스가 무릎을 굽혀 머리를 숙였다. 혼란 속에서 지금 이 순간만은 승
복의 기운이 흘렀다. "마케도니아 국왕, 알렉산드로스 만세!" 안티파트로스
의 함성에 따라 주위 사람도 소리 높이 외쳤다.
서둘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백성에게 왕의
죽음을 알리는 일, 장례, 그리스 제국에게의 통보, 반대 세력에 대한 경계,
회유, 견제, 혹은 일소...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국왕을 살해한 파우사니우
스의 살해 동기와 그 배후를 밝혀 내야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사신의 머리
맡에서 나누었던 협의를 확인하고 실행을 명령했다. 여전히 결단은 신속하
다. 아무런 주저도 없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외톨이가 되어 버린 알렉
산드로스에게 헤페스티온이 놀리듯이 한마디 던지며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
주었다. 헤페스티온의 얼굴을 마주하자 알렉산드로스의 빰에 비로소 잔잔한
웃음이 살아났다. "부탁하네." "무엇이든지. 한번에 정리하고 신속하게 일
을 끝내자." 이것도 미에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주저
하고 있는 것도 힘으로 밀어붙여 빨리 마무리짓는다는 뜻이다. "그럴 작정
이야." "나에게는 암살의 내막을 조사하게 해주게. 자칫하면 골치 아플지도
몰라." "좋다. 대역적 사건의 조사를 헤페스티온에게 명하노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주종 관계에 걸맞는 말을 주고 받은 헤페스티온은 암살자의
배후 관계를 밝혔다. 암살자의 사체는 병사들의 손에 의해 극장기둥 높이
매달아졌다.
이 사건에는 두 명의 파우사니우스가 연루되어 있었다. 고대인 중에는 동
명이인이 많아 복잡하다.
한 사람은 창백한 파우사니우스라고 불렀던 사나이인데, 앗타로스 장군의
친척으로 군인 귀족이며 별명대로 얼굴이 하얗고 미남이었다. 여자 같은 눈
빛과 다혈질적인 성격으 소유자였다. 필리포스왕의 각별한 총애를 받자 동
료들 사이에서는 시기하는 자도 있었다. "외모만 보고 말야." "국왕도 취미
가 특이해." 외설적인 소문도 떠돌았다. 특히 이 소문을 남몰래 퍼트린 자
가 또 한 사람의 파우사니우스로, 국왕의 친위병인 이 사나이도 굉장한 미
남자였다.
그 시대에 남색은 그다지 희귀한 풍습이 아니었지만 군인으로서는 자랑거
리가 전혀 못 되었다. 창백한 파우사니우스는 특히 자신에게 연루된 이 풍
문을 매우 치욕스러워했다. 몇 달 전 국왕이 산악인에게 급습당했을 때 몸
을 던져 적으 진두에 막아서서 국왕의 신변을 지킨 것도, 무용을 지니고 국
왕을 모시는 병사인 것을 천하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빈사 상태의 중상ㅇ르
입은 창백한 파우사니우스는 호위병 파우사니우스한테 이유 없는 중상을 당
했다며 허위 사실을 앗타로스와 그 일당들에게 호소하고 숨을 거뒀다.
앗타로스 일당은 이 남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음험한 수단으로 보복을 꾀
했다. 남색으 적은 남색으로라는 것일가. 호위병 파우사니우스를 만취시킨
다음에 신분이 낮은 남자들에게 노리개로 주었는데, 이것은 용사에게 있어
서는 더없는 굴욕이었을 것이다.
호위병 파우사니우스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하가 났다. 원칙대로라면
앗타로스 일당에게 통분해야 할 일이엇지만 앗타로스는 이미 동방 정벌에
나선 뒤였다. 눈물을 흘리며 국왕에게 호소하여 엄벌을 구했지만 매몰차게
쫓겨났다. 국왕이 이런 사소한 일로 유력한 장군을 처벌할 리가 만무했고
애당초 이치에 맞지도 않는 호소였기에 무시당했으나, 국왕의 대응 역시 파
우사니우스에게는 모욕적이었다.
그 또한 격정적인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그 증오심이 국왕에게도 돌아갔
다. 마침 호위병으로서 아이가이로 떠나게 된다면 국왕을 암살할 가능성이
없지도 않았다. "필리포스왕을 죽일 거야." 몰래 친한 동료들에게 이 말을
흘렸다. 그러나 살해한 후에는 국외로 도망갈 생각이었는지 그 역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 이상은 알 도리가 없었다. "페르시어도, 아테네도, 배후
관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파우사니우스의 개인적인 원한입니
다." 조사를 맡았던 헤페스티온은 이렇게 보고했다.
암살 직후 파우사니우스를 죽인 호위병은 극장 쪽에서부터 "죽여라"라는
명령을 들었다며 목소리의 주인공이 알렉산드로스 같다고 말했지만, 그 시
각 알렉산드로스는 계속 국왕 곁에 있었다. 자연히 그 호위병의 말은 무시
되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헤페스티온은 자신의 보고와는 다른 어떤 예감을
갖고 있었다. '암살자가 말을 타고 도망가려 한 곳은 에페이로스가 아니었
을까'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호위병 파우사니우스의 고향은 오레스티스
라는 서부 산악 지역으로 지금은 마케도니아 지배하에 있지만 원래 에페이
로스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게다가 파우사니우스의 생가는 제사와 관련이
깊은 사제 집안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분명히 올림피아스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문도 부인할 수 없었다.
직접 동기는 필리포스왕에게 무시당한 것이라고 해도 자존심이 센 이 사
나이를 배후에서 부추긴 자가 있다는 의심은 씻을 수가 없었고 범행은 치밀
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한낱 호위병 혼자만의 지혜로는 살해는 가능하여도
그후의 계획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그런 것보다도 헤페스티온은 국왕의 죽음 직전에 틈새로 보았던 광경을,
불과 얼마 안 되는 잛은 시간 안에 우연하게 목격했던 왠지 모르게 불길한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올림피아스가 극장 높은 곳에 모습을 나타내 국
왕의 행동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암살 순간에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
다. 웃는 얼굴 자체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전신의 느낌이 만족해 하는 웃
음이었다. 까닭도 없이 계획이 성취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
다. 이 직감은 버릴 수 없었다.
이 암살에 젊은 에페이로스 왕까지 연루되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
다. 필리포스왕과는 친부자처럼 친밀한 관계였고 성격도 아주 비슷했다. 에
페이로스는 마케도니아와 동맹을 맺음에 따라 많은 실익을 얻는다.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알고 필리포스왕의 공주를 왕비로 맞은 것이며, 사건은 마침
그때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에페이로스 왕이 필리포스왕과 아무리 절친하다 해도 그 누나의
입장은 다르다. 오히려 남동생이 마케도니아 왕과 인연을 깊이 맺으면 맺을
수록 누나 쪽은 소외된다는 사실이 잠재하고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올림피
아스라면 에페이로스 왕에게 가려져 암살자의 신병을 보호하는 일도 얼마든
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에페이로스 안팎에 흩어져 있는 신전이
있는 지역 등에서는 아직도 올림피아스의 뜻에 응해 줄 곳이 얼마든지 있
다.
또한 마케도니아 왕을 살해한 범인을 실제로 숨겨 줄지 어떨지 하는 문제
는 접어 두고라도, 암살자 본인에게 그것을 믿게 하는 정도의 능력을 올림
피아스는 갖고 있다. 올림피아스 이외에 격분하고 있던 파우사니우스를 교
묘하게 부추길 만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이 암살자로 인해 많
은 이익을 얻는 것도 올림피아스였다.
마케도니아의 왕비 자리를 뺏기고 남동생 에페이로스도 믿을 수 없게 되
어 그녀의 입장은 갈수록 불리해질 것이다. 유일한 희망은 알렉산드로스이
지만 새로운 왕비가 왕자를 낳았으니 알렉산드로스의 위치도 어떻게 변해
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아...
확고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에페스티온의 의심은 확신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기에서 올림피아스를 규탄해서는 안 된다.' 헤페스티온은 무엇보
다 알렉산드로스의 지기이다.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이라는 신념에는 흔들
임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이기에 알렉산드로스와 올림피아스의 친금함도 잘
알고 있었다. 올림피아스의 성격에 꺼림칙한 점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알렉
산드로스는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현실 문제에 대해 알렉산드
로스는 어린 시절과는 다른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지만, 헤페스티온
은 그의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는 탓에 이 모자의 애정의 깊이를 좀 지나
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올림피아스 또한 틀림없는 알렉산드로스 편이었다. 이유
야 어떻든 간에 이 점에서는 함께 손을 맞잡고 나가야 할 유력한 동반자였
다. 언제나 권력 다툼은 깨끗하게 끝나는 법이 없다. 국왕이 암살당한 직후
에 호위병을 향하여 범인을 죽이라고 외친 것은 일순간의 판단이었지만, 어
떠한 판단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영특한 두뇌의 번뜩임이었다.
헤페스티온은 '이 사건에는 올림피아스가 연루되어 있어. 어쩌면 알렉산
드로스도 무관하지 않을지도 몰라. 범인이 생포된다면 모든 것이 밝혀지겠
지.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오점이 될 수 있을 거야.' 하고 생각했던 것이
다.
하나하나 따져 본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직감은 모든 것을
집약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진해서 암살자의 배후를 밝히는 일을 지원한 것
역시 이 직감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조사는 처음부터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헤페스티온은 꿈을 꾸었고 타고난 예지 능력에 관련한 계시라고
느꼈다. 갑옷을 입은 한 사내가 하얀 조각상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를 걷어
내고 있었다. 안개는 숯검정처럼 까맸다. 조각상은 알렉산드로스 같고 안개
를 걷어 내고 있는 사내는 헤페스티온 자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의미를 생각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왕위 계승은 지명한 현
실이 아니다. 장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러한 정변에 도사리고 있는
불길한 부분을 "헤페스티온, 네가 맡아라!" 하는 신의 암시일 것이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헤페스티온은 주위 사람들에게 일생 동안 명쾌한 인
상을 준 용사였다. 인품이 성실하고 인망도 두터웠으며 무엇보다도 눈빛이
소년처럼 아주 맑았다. 하지만 흉측한 책략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아니
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관련이 있었다. 암살, 숙청, 모략... 그런데도 눈
빛은 추악하지 않고 맑았다.
아마도 모든 것이 높은 확신에서 시작한 때문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선하고, 선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며 알렉산드로스를 빛 속에 두고 자신이
그림자 부분을 담당하는 일에 대해 조금의 의심이나 망설임을 갖고 있지 않
았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와 헤페스티온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렉산드로스에게
가세할 것을 표명한 안티파트로스 장군, 더불어 암약하는 올림피아스... 아
이가이 정변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다음날 수도 펠라로 서둘러 돌아왔다. 각
자가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하며 새로운 세력으로서 지반을
굳혔다. 반항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적당한 회유와 가혹한 숙정이 감행되었
다.
필리포스왕의 장례식이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졌고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는 암살자 파우사니우스의 개인적인 원한과 착란, 배후에는 페르시아의 유
력한 집안의 사주가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페르시아으 사주는 알렉산드로스가 마음대로 덧붙인 부분이었다. "근거
는?" 하고 묻는 헤페스티온에게 새로운 국왕은 "내 생각이야"라고 대꾸했
다. 분명히 그것은 사실을 초월한 알렉산드로스의 개인적인 판단일 것이었
다.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그러므로 페르시아를 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미 동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젊은 왕비 칼메이라는 불안의 구렁텅이에 있었다. 며칠 사이에 아들을 낳
고 남편을 잃었다. 말하자면 왕자의 탄생과 국왕의 서거를 동시에 맞은 것
이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여자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출신은 퓨도나
항구에 거정을 둔 상인 귀족 집안이지만 아버지는 오래 전에 타계했고 후원
자라고 하면 어머니 쪽의 숙부인 앗타로스밖에 없었다. 앗타로스의 딸처럼
자랐으며 그의 주선으로 필리포스왕의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필리포스왕은 급사하고 앗타로스는 수도를 떠나 멀리 있다. 사실
자리에 드러누울 만큼 큰 충격을 받았지만 조문객들이 쉴새없이 찾아오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젖먹이를 가슴에 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에 떨며 괴로워했다.
의구심을 느끼면서도 학수고대하던 앗타로스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
었다. 산후병도 조금씩 차도가 있고 선왕의 비라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래에는 왕자 칼라노스에게도 반드시 좋은 운명이 찾아올 것이
라고 막연하고 안일한 전망을 한 것은 나이가 어린 탓일까. 그다지 머지않
은 과거에 올림피아스를 왕비 자리에서 쫓아낸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잊지
는 않고 있었지만 경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필리포스왕의 군세하에서 무엇
이든 마음먹은 대로 쉽게 누렸었기에 그녀는 올림피아스를 배척했던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처음 보는 노예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물이
담긴 큰 항아리를 들고 왔다. 보기에도 무서운 얼굴의 남자였다. '지금 아
기 목욕을 시키려나.' 칼메이라는 의아했다. "누구 없느냐?" 손뼉을 쳐서
시녀를 불렀지만 쥐죽은듯 아무 대답이 없었다. "네 이놈, 뭐 하러 왔느냐?
어서 돌아가라!" 당황한 칼메이라는 노예를 꾸짖었다. "조용한 밤이군요"
웃음을 머금은 말소리가 나며 또 다른 점은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누구냐?" "모르는 사람처럼 이상하게 왜 이러실까." 얼굴을 가린 베일을
걷어 내자 올림피아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칼메이라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님의 말씨는 부드러웠지만 태도에는 흡사 저승
사자처럼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놈이 칼라노스냐? 참 귀엽구
나." 올림피아스는 아기가 잠든 챔대로 다가갔다. "돌아가 주세요." 칼메이
라는 소리치면서 침대로 달려갔지만 올림피아스가 한발 빨랐다. 잡아채듯이
아기를 안아 들더니 시커먼 노예에게 던졌다. "무슨 짓이냐!" 칼메이라는
노예의 팔에서 아기를 빼앗으려고 다가닸지만 그대로 발길질만 당하고 쓰러
졌다.
젖먹이는 마루에 내던져졌고 큰 항아리 속의 뜨거운 물이 전신에 부어졌
다. 그것도 모자라 남자는 그 큰 덩치로 아기 목을 짓밟았다. 악 하는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칼메이라가 미친 듯이 기어갔지만 시커먼 두 개의 기둥이 가로막았다. 아
무리 발버둥쳐 봐도 다리 울타리를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다리를 때리고
울부짖었다. "누구 없어요! 칼리노스가... 도와 줘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등뒤에 서 있던 올림피아스가 긴 끈을 품속에서 꺼내어 칼메이라의 목덜
미에 늘어뜨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가엾은 것이로군. 이제 너도 살 수는
없을 거야. 마침 좋은 선물을 갖고 있지." 그건 그렇고 왕비에게 딸린 시녀
와 호위병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어떤 이는 협박을 받고, 또 어떤 이
는 금품을 받고 자리를 비우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올림피아스는 이런 계
략에는 능숙했다. "자, 늦지 않으셔야죠, 사랑하는 칼라노스가 기다리고 있
는데." 올림피아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끈을 흔들어 어린 왕비를 부추겼다.
스스로의 의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칼메이라의 방이 크고 작은
두 개의 그림자를 토해 냈을 때, 천장의 들보에 묶인 끈이 어린 왕비의 몸
과 함께 공중에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후 이 사건을 알게 된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를 심하게 질책했지만
특별히 벌한 것은 아니었다. 칼메이라와 칼라노스의 죽음을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젊은 왕비는 필리포스왕의 서거를 너무
슬퍼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왕자를 뜨거운 물에 빠뜨려 죽인 후 자신도 목
을 매어 자살했다"라고 발표되었다. 의혹이 있어도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사
람은 없엇다. 권력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사정을 잘 모르면서
호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알렉산드로스만 "나는 제우스아몬의 아들이다"라고 확신하며
공언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은 구세주가 되어야 한다라고 헤페스티온
도, 올림피아스도 그 말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음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필리
포스왕 암살 직후의 충격과 혼란이 잠잠해졌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위정자
로서 강렬한 의지와 신속한 판단, 더불어 강한 운도 갖추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민중의 인기도 얻고 있었다. 그 외모, 역량, 무훈, 어느
것을 들더라도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걸맞았다. 꺼리는 사람이 있긴 해도 소
수에 지나지 않았다. 급류에 밀려오듯 민중의 의견은 알렉산드로스에게로
모아지고 있었고, 이런 경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볼 수
있었던 일이다. 새로운 왕은 알렉산드로스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에 흔들림이 없다면 전체의 방향은 저절로 정해진다.
안티파토로스 장군이 군대의 뜻을 모아 새로이 알렉산드로스에게 충성을
표명했고, 그것을 따라 수도 펠라를 중심으로 마케도니아 내부의 모든 세력
이 알렉산드로스를 지지했다. 올림피아스의 책동도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
었을 것이다. 전 왕비는 여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여전히 잃지 않
고 있었다. 소수파가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적대시하려 해도 의지할 곳이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회유당했다. 대립하는 문벌이나 귀족
들에게 가해졌던 피으 숙청도 본보기로서 적당한 효과를 올리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정식으로 국왕에 즉위하자마자 안티파트로스에게 재상의
지위를 주었고, 또한 전에 추방당했던 프톨레마이오스, 하르팔레스, 네아르
코스, 프리기오스 등 헤타이로이를 불러들여 신변을 확고히 했다. 물론 헤
페스티온, 필로타스, 클레이토스, 카산드로스, 크라테레스 등 미에자 이래
의 친위들을 요직에 앉힌 것은 당연한 처우였다.
문제는 오히려 국외에 있었다. 동정군 총지휘관 파르메니온은 원래부터
군사적인 면에서는 알렉산드로스의 후견인이며, 나이차를 뛰어넘어 서로 동
지감을 갖고 있었고, 필리포스왕과 갈등이 있을 때에도 늘 알렉산드로스를
감싸 주었던 인물이다. 파르메니온은 본국의 정세와장래를 짐작하고 재빠르
게 새로운 왕에게의 복종을 표명했다.
일이 이쯤 되자 같이 동정을 떠났던 또 한 사람의 장군 앗타로스의 거취
가 주목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앗타로스를 페르시아와 내통하고 있었다며
제거했다. 소아시아 주둔지에 밀사를 보내 파르메니온이 이끄는 군대가 포
위하는 사이에 앗타로스는 처형되었던 것이다. 앗타로스 일족도 물론 같은
운명을 걸었다.
이미 칼메이라의 수상쩍은 죽음을 보고받은 앗타로스는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르메니온은 앗타로스의 장인이었다. 페르시아와의 내통은
접어 두더라도 앗타로스가 아테네 데모스케네스의 회유에 넘어가 파르메니
온을 자기편으로 만든 후에 반알렉산드로스군의 봉기를 획책했던 것은 사실
이었다. 만약 필리포스왕의 아들 칼라노스가 살아 있었다면 좋은 핑계가 되
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올림피아스는 너무나 잔혹했지만 정말 책
략가다웠고 목표 또한 정확했다.
앗타로스는 페르시아인과 내통하여 필리포스왕의 둘째형의 아들인 아민타
스를 왕위에 앉히려 했다는 이유로 반역자로서 처형당했다. 그러나 냉정한
눈으로 살펴보면 죄상에 의심이 가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페르시아
의 누구와 손을 잡고 아민타스가 어떤 음모를 꾀했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 장군도 최후에는 데모스테네스를 배신하고 알렉산드로스에
게 충신으로서 복종하려 했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 위험한 인물임에
는 틀림없었다. 사실은 어떻든 간에 알렉산드로스의 의중에 따라 처형되어
야 할 인물이었다.
국외의 문제는 한층 더 복잡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제국에
서는 필리포스왕의 죽음으로 인해 그때까지 마케도니아에게 불복하고 있었
던 제세력에 반항의 기운이 한꺼번에 되살아나게 되었다. 또다시 데모스테
네스였다. 이 아테네인은 '마케도니아 증오'의 감정으로 약간은 이성을 잃
고 있었다. "내 꿈속에 제우스와 아테네 여신이 나타났소. 아하하하, 머지
않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알려 주었지. 그것이 필리포스의 죽음이오. 기
쁜 일이오. 드높은 의지의 용사 파우사니우스에게는 영광의 관을 주어서 길
이 칭찬해야 할 것이오." 머리에 꽃을 장식하여 제사 의상을 걸치고 의회에
서 이렇게 떠들어댔다. "알렉산드로스 따위, 한낱 교활한 어린애밖에 안 되
지." 있는 일, 없는 일 다 들추어내며 조소 거리로 만들었다. 앗타로스에게
친서를 보내 동조를 호소한 것도 바로 이 남자인 것 같다.
데모스테네스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필리포스왕의 죽음을 기뻐하는 세
력은 그리스 제국에 많은 수가 잠재해 있었다. 일제히 마케도니아로부터의
이반을 도모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움직임이 현저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새 중신들을 모아서 격문을 띄었다. "그리스 제국의 배신
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신께서도 살펴주신다. 배신하는 자는 철저하게 벌
하겠노라. 나는 제우스아몬의 아들이다. 그리스 전국토를 통합하고 머지않
아 페르시아를 멸할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아버님의 간절한 바람이었지만,
오늘부터는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른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의 숙원이자 신이
내려 주신 사명이다. 적은 동방에 있다. 마케도니아가 나아갈 길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진심으로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다."
때마침 태양이 검은 구름을 뚫고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을 비추었다. 볼은 홍
조를 띠어 장밋빛으로 빛나고 눈동자는 신비한 빛을 발했다. "사자왕, 만
세!" 왕좌를 딛고 늠름하게 선 모습은 정말 이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신비한 기운에 싸여 사람들의 혼을 매료시켰다. 알렉산드로스는 새삼
스레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따라 졍해졌다는 확신을 굳건히 다졌다. '마침내
사자가 나타나 포효할 때가 왔다' 하고 생각하며 헤페스티온도 옆에서 끄덕
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개막을 맡았던 배우이다. 정황을 갖
추어 놓고 극적인 순간을 예측하며 물러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주인공인
사자의 순서이다. 모든 정황이 이런 사실에 부합하고 있으며, 비록 곤란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그것은 필경 드라마의 줄거리 구상에 불과하다. 두려
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할 것은 조금도 없다. 곤경은 반드시 극복
하게 된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영웅의 증거이다. 조금도 무서워하
지 않겠다. 신의 섭리는 태양이 동쪽 바다에서 떠올라 서쪽 산으로 떨어지
듯 흔들림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자." "어디로?" "가야 할 곳으로." 빙
긋이 웃으며 소년의 모습으로 헤타이리이에게 알렸다.
우선 동요하는 그리스 제국을 제압해야만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애마 부
세팔로스에 올라타 민첩하게 정예 부대를 이끌고 그리스 반도읭 동해안으로
남하했다. 도중에 진로를 서로 바꿔 테살리아를 빠져 나와 프티아에서 군대
를 쉬게 했다. 여기까지 왔다면 테메, 아테네, 코린토스, 모두 멀지 않다.
프티아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고향이다. 스스로 아킬레우스
의 후예라고 믿고 있고 이 영웅을 동경하던 알렉산드로스는 눈부실 만큼 빛
나는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자신의 영광을 호소하는 연설을 이 땅에서 했
다. 평소는 과묵한 청년이었지만 연설은 무시무시한 열변으로 자신을 태우
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태우고, 적까지도 뜨겁게 달구어 이상한 힘에 말
려들게 했다. "매력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닌 마력이었다"라고 동시대의 역사
가는 전하고 있다.
프티아의 교훈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역정의 강자들은 나이 어린 국와
으이 변설에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경청하며 '엄청난
일을 벌일 국왕이 될지도 모른다'며 경의와 두려움을 가슴에 새겨 두었다.
이때 신이 깃들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이 깃들여 있다고 적어도 알레산
드로스 자신이 믿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군대는 테르모필레라는 고지를 쉽게 통과하여 테베를 침입했다. 테베는
굴복했고 아테네는 부들부들 떨고 있엇다. 케로네아 패전의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마케도니아군의 강인함은 상상보다 월등하고 덧붙여 말하
면 실제 이상으로 무시무시하게 그리스인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대항하
면 좋은 일이 없을 거야."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만큼은 부드럽지 않아."
마케도니아 국내에서 강행된 가혹한 숙청은 그리스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알렉산드로스는 "배신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으며, 아테네인들은 스스로 반
성하고 배신의 자각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필리포스왕의 급사와 동시에 환희하며 마케도니아와의 사슬을 끊으려고
했던 자들은 나라 안에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뒤가 켕기는 만큼 당황하고 허둥대며 이치에 맞
지도 않는 핑계를 대면서 필리포스왕과 맺은 코린토스 동맹의 약속을 새로
운 국왕에 대해서도 충실히 지키려 한다는 것을 머리를 조아리며 서약했다.
즉 마케도니아 패권하에 그리스 동맹이 서로 협력하며 제각기 역할을 맡아
공통의 적인 페르시아를 정벌한다는 약속이었다.
이 주변의 땅은 수년 전에 강한 조약을 맺으로 내방했던 알렉산드로스를
환호하며 맞았던 곳이기도 하디. 이때 알렉산드로스의 명력에 복종했던 것
은 공포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의 구세주일지도 몰라", "훌륭한 젊은이
다"라는 기대 심리도 없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공포와
기대라는 두 가지 심리를 민중에게 주는 인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테네를 굴복시켰고, 더구나 운하 도시 코린토스까지 진
격하여 그리스 제국 대표를 모아서 필리포스와 맺었던 동맹을 한 번 더 각
국에 확인시켰다.
유명한 에피소드이지만, 술꾼 디오게네스와 만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커
다란 술통을 집으로 삼고 마치 걸인 같은 생활을 하는 키니코스 학파의 대
표적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몸을 일으키며 이국의 젊은 왕을 쳐다보고 투덜
거렸다. "소원이 무어냐고?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주게." 디오게네스의 이런 천진무구한 모습에 알렉산드로스는 크게 감탄하
여, 다시 한 번 권위에 굴하지 않는 그의 일관성을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
다. "내가 만약 왕이 안 되었다면 디오게네스처럼 되고 싶구나." 어느 정도
자신의 성격을 감추고 있던 젊은 왕이 철학자의 은둔 생활에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에피소드는 후세에 조작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왕과 철학자, 두 사람의 인격을 묘하게 대
치시키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때의 진격 도중에 알렉산드로스는 아폴
론의 계시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에 들렀다. "내 장래에 대해서 신의 뜻을
듣고 싶소." 신관에게 부탁했다. "갑작스럽게 말씀하시니 무리인 줄 압니
다." "무엇 때문인가?" "오늘은 신의 계시를 묻는 날이 아닌 줄로 아옵나이
다. 무녀도 준비하고 있지 않사옵니다." "어서, 준비를 서둘러라." "아니
됩이다. 사흘 간 목욕 재계한 다음에 신의 뜻을 듣는 줄 압니다." "무녀는
어디에 있는냐?" "없습니다." 말리는 것도 안 듣고 신전에 올라가 무녀를
찾아냈다. "내 장래에 대해서 신의 계시를 듣고 싶다." 팔짱을 끼고 막무가
내로 물었다.
무녀는 늙은 노파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자, 물끄
러니 젊은 왕을 쳐다보고 있던 무녀는 자신의 위치도 잊고 약간 당황하며
젊은이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당신은 좀체 지지 않는 인물이군요." "분명
히 들었소, 이것으로 충분하오." 알렉산드로스는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웃음을 감추며 엄숙하게 말하고는 뒷모습만 보이며 훌쩍 신전을 떠났다. 동
행했던 헤타이로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들었는가 헤페스티온, 나는 지지
않는 남자다. 신의 계시야, 무녀가 말하지 않는가."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용감한 무사였지만 생각의 유희에는 익숙지 않은 클레이토스가 "그것
은... "하며 이론을 표했다. 그러자 헤페스티온이 고개를 내저으며 "무녀가
말한 대로야, 그것이 사자왕의 장래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톨레마이오스
가 헤페스티온에 동의 한다는 듯이 "무녀 말이라면 분명 신의 계시다. 그
렇게 생각하는 편이 맞아"라며 웃었다. "말하지 말라, 이것이 신의 뜻이다.
내가 원한 바대로 들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거리낌없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
갑자기 기쁜 듯이 웃었다. 만족했던 것일까, 자조하는 것일까.
알렉산드로스는 이성적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고지식하리만큼 신을 믿는
사람이기도 했다. 때로는 모순을 보일 수도 있는 이 두 가지 성격이 머리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스로운 점이
다. 무녀가 말했던 혼자만의 중얼거림을 이때만은 의외로 강하게 믿고 있었
는지도 모른다.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에는 눈에 띄는 몇 가지 징조가 있었고, 그 모든
징조가 알렉산드로스의 앞날을 축복하고 있었다. 아니, 알렉산드로스가 그
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믿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을 믿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코린토스 동맹을 확실히 해두고 수도 펠라로 돌아가자 북방
산악 민족이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필리포스왕의 죽음을 알고 마케도니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꿈틀거리
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자칫 큰 반란이 될 수도 있었다.
소아시아로 건너간 채 대기하며 주둔하던 파르메니온이 이끄는 군대를 일
단 서쪽 트라키아로 불러들이고,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2만 군사를 이끌고
암피폴리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북상하여 각지에서 세력을 떨치며 할거하던
강력한 부족을 하나씩 하나씩 진압하고 다시 한 번 마케도니아 지배하로 거
두어들인 후 멀리 도나우강까지 진격했다. 지도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
듯이 이곳은 현재으 불가리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코스이다. 직선 거리라
해도 300킬로미터가 넘고 도중에 험준한 산맥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을 생각
하면 상당히 힘든 원정이었을 것이다. 정벌 기록은 극도로 격렬했던 전쟁사
였음과 동시에 동반 역사의 효시이기도 했다.
야만족의 저항도 완강했지만 마케도니아군은 더한층 용맹 과감했다. 군대
의 강력함은 필리포스왕의 유산이었지만 새 왕의 치하로 더욱 강력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언제나 부세팔로스를 타고 앞장서서 가장 위험한 전쟁에
도전했다. 병법상으로는 총지휘관이 쓰러져 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에 결코 칭찬받을 만한 전법이 아니겠지만, 군대의 사기는 대단히 고양
된다. 전군이 좋든 싫든 간에 무모한 군단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알렉
산드로스의 일관된 전술이었다.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신의 계시를 가슴
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이때의 원정에는 해군을 흑해로부터 도나우강을 거슬러 올라 가게 하려
강과 육지 두 방향에서 공격한다는 작전을 채택했지만, 밀물 때의 격류에
막혀서 실패로 돌아갔다. 국지전뿐만 아니라 전략 그 자체도 대부분이 무모
하리만큼 적극적이었으므로 그만큼 적대할 세력에게 주는 충격이 컸다. 그
리고 시위 행동으로서도 결코 적잖은 효과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부족을 수
하로 거둔 다음 한숨을 쉴 새도 없이 놀랄 만한 보고가 날아왔다. "마케도
니아 본국이 위험하다." 마케도니아 북서를 점령한 일리리아족의 왕이 수도
펠라를 목표로 진군을 개시했다는 것이었다. 빈자리를 맡은 안티파트로스
군대만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인적이 드문 산악 지대를 동에서 서로, 말
하자면 지금의 불가리아 산악 지대를 마치 원숭이처럼 빠져 나가 적군을 배
후에서부터 급습했다. 적군은 동맹한 세력과 힘을 합쳤기 때문에 예상보다
벅찬 상대였다. 서전에 실패한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몇 갈래로 나누어 양
동 작전을 반복하여 마케도니아군이 어디에서 공격해 올 것인지 알 수 없게
하여 적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잘 훈련된 마케도니아군은 기민하게 움직였고 이와는 반대로 적은 어느
곳을 지켜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너무나 정신없이 이리저리 허둥댄 탓
에 불안해져 빈틈이 생기게 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곳을 노려 공략했
다. 이번에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아킬레우스다." 군사들의 뒤에서
지휘를 하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취향이 아니다. 항상 최전선에 선다. 피가
들끓고 마음은 더없이 격해진다. 아킬레우스는 언제나 용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무모하게 전투에 임한 나머지 전사했다는 소문이 그리스 반도에
온통 퍼지기도 했다.
아테네의 정치가 데모스테네스는 또다시 뛸 듯이 기뻐했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마케도니아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아테네인들 앞에 등장하여 이
렇게 외쳤다. "보아라, 신의 징벌이 내렸다. 아테네 만세!" 페르시아와 손
잡고 마케도니아를 타파할 것을 미친 듯이 호소했다. 상처투성이인 병사를
민중 앞에 데리고 나와 "전장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주검을 두 눈으로 본 남
자"라고 소개했다.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었다. 페르시아로부터
많은 금품을 받고 이런 공작을 실행한 것 같았다.
아테네인도 동요했지만 더욱 심하게 선동된 것은 바로 테베의 민중이었
다. 알렉산드로스가 테베를 감시하기 위해 남겨 두었던 군인을 죽이기도 했
으며, 페르시아와 손을 잡으려고 했다.
이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절대로 죽
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 모조기 다 한심한 놈들
뿐인군. 신의 뜻을 어떻게 알고!" 일리아족과의 전투를 일단락지은 다음 알
렉산드로스는 성난 파도처럼 그리스 반도를 남하하여 테베까지 육박해 왔
다. 하루에 30여 킬로미터를 행군하여 열흘 남짓 만에 도착했다. "정말 알
렉산드로스일가?" "안티파트로스 군대일 테지." "페르시아가 원조해 줄 리
가 없을 텐데."알렉산드로스의 생존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테베성 아래에까지 밀어닥친 알렉산드로스는 몇 가지 강화 조건을 내세웠
지만 거절당했다. 테베는 몇 가지 조약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로
스 앞에서 페르시아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가장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총공격이 개시되자 일곱 개의 성문을 가진 고도 테베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함락되었다. 3만에 이르는 테베 사람들은 노예로 전락되었다. 대부분
이 여자와 어린애였다. 남자는 거의 다 전사하고 살아 남은 자는 몇 안 되
었다. 단 하루 사이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마케도니아 병사가 테베의 귀부인 집을 습격하여 강제로 욕을 보인 뒤 금
은보화가 있는 곳을 캐물었다. "값진 물건은 어디에다 숨겼느냐?" "정원의
우물 속에 숨겼습니다." 병사가 우물 속으로 고개를 밀어 넣고 들여다보는
순간, 그 귀부인은 병사를 우물 속으로 밀어뜨리고 돌을 가득 집어 넣어 죽
여 버렸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그 귀부인을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알렉산드로스 앞에 끌려 나온 귀부인의 옷은 온통 흙투성이로 더럽혀지고
찢겨져 있었지만 표정만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차 있었다. "누구인지 이
름을 대시오." 귀부인은 대답했다. "그리스의 자유를 위해 케로네아에서 당
신의 아버지와 싸우다 전사한 장군 테아게네스의 누이동생입니다." 그 이름
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랬었는가." 알렉산드로스는 귀분인의 용기와 의연
함에 감동받아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이러한 여성 숭배 사상은 알
렉산드로스의 독특한 미의식의 하나이다.'강하게, 아름답게'라는 것이 이
용사의 이상이었다.
테베의 비참한 항복을 보고 아테네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
스는 부왕의 방침을 충실하게 답습했다. 아테네를 멸망시켜서는 안 된다.
포키온이라는 이름의 고결한 정치가가 아테네의 대표로 뽑혀 알렉산드로스
와의 교섭에 나섰던 것도 그리스 제국에게는 행운이었다. 포키온 또한 마케
도니아 패권하에서 그리스의 평화를 지킬 것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다. 마
케도니아 왕은 고상한 인품에도 깊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물론 유력한 배신자는 엄중하게 규탄받았지만 아테네는 이때도 페르시아
원정에 협력할 것을 약속하여 치명적인 파멸은 모면하게 되었고 다른 그리
스 제국도 여기에 따랐다. 그리스의 중심부에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권위를 쌓은 알렉산드로스는 이해, 즉 기원전 335년 가을 전그리스 사령관
으로서의 영광을 한 몸에 받고 수도 펠라로 돌아왔다.
선왕이 세상을 떠난 지 불과 1년 남짓한 동안에 주변 국가를 복종시키는
위업을 이루어 낸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역량이었다. 고대인들이 젊은 국
왕의 배후에 신의 존재를 떠올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꿈은 페르시아
로!' 원정군의 준비가 착실히 진척되었다.
붉은 반궁
침대 옆에 마련해 둔 커다란 책상 위에 한 장의 확대 지도가 펼쳐져 있
다. 미에자 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친근하게 가르침을 주었던 테
오프라스토스가 선물로 준 귀중한 자료이다.
지도에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동지중해, 소아시아를 거쳐 멀리 페르시아의
큰 도시 페르세폴리스까지 그려져 있다. 북쪽에는 도나우강에서부터 흑해,
카스피해가 보이고 바다에는 크레타섬, 이르는 지역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의 지도와 비교하면 방향이나 거리에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고대 그리스인
이 자신들이 견문한 세계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한 지형을 탐지하고 있었다
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여행객에게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이 지도에 다시 그려 놓었다.
지도는 젊은 국왕의 야먕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간만 있으면 쳐다
보았다. '세계는 넓다. 그리스 따위는 하찮은 것이야!'라며 자신의 꿈을 펼
쳤던 것이다.
보고 있는 사이에 잠시 졸고 말았다. 누군가가 지도 위에 반궁을 얹어 두
었다. 활도 시위도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깜
박 잠이 들었는데 수행원의 말소리에 깼다. "태후님이 오셨습니다." 눈앞에
는 지도만이 조금 전과 복잡한 모양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올림피아스가 가볍게 절하고 치소 입구에 들어왔다. 태
후는 요즘 혈색이 아주 좋아 보이며 표정에도 활기가 넘쳤다. 선왕이 타계
한 후 태후는 생기를 되찾았고 궁궐 내에서도 조금씩 예전의 권력을 회복하
고 있었다. "얼굴이 밝으시군요." "특별히 그렇지도 않은데요." 올림피아스
는 대답을 하며 지도 쪽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알
렉산드로스가 조금 전의 기묘한 꿈을 이야기하자 올림피아스는 고개를 끄덕
였다. "빨간 활을 둔 것은 제우스아몬신이지요." "그럴까요? 여기에 두었어
요." 뇌리에 남은 진상을 지도 위에 손가락으로 그려 보였다. "바로 그것입
니다. 활시위는 도도나에서부터 시와 오아시스까지 직선으로." 올림피아스
는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확신에 찬 말투로 알려 주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도도나에서 시와까지." "예." 도도나는 올림피아스의 고
향 에페이로스에 있으며, 제우스아몬 신전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
다. 그리스 반도에 있는 아몬신의 본산지이다. 한편 시와 오아시스는 이집
트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데, 이 또한 아몬신의 신전으로 유명하다. 이집트
최고 신이 잠든 마지막 성지이다. 본래 이집트의 수호신이었던 아몬이 교역
바람을 타고 그리스 반도로 전해져 토착 제우스 신앙과 결합하여 탄생한 것
이 제우스아몬신이며,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신앙은 바로 이
신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우스아몬신의 그리스 거정이라고 할 수 있는 도도나와 그 뿌
리인 성지 시와 오아시스를 잇는 라인이, 이 신을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단
순한 직선일 수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제우스아몬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도 바로 하나의 암
시로서 이해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 직선을 활줄로 상아 반궁을 동으로 그리면 붉은 활은 마케도
니아에서 에게해 북해안을 지나 게리볼 반도, 트로이, 소아시아 반도 서안,
바다를 가로질러 나일강 하구 근처까지, 즉 그리스인이 마음속에 그리는 이
상적인 그리스 세계가 본토와 식민지와 속국과 바다를 한꺼번에 감싸 버린
다. 이 반궁이 제우스아몬신의 최고 신전을 잇는 활시위에 끌려 강력하게
휘어 있다면 이것이 신의 계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느가. 그리고 잠에서 깨어
나자마자 올림피아스가 나타난 것도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좋은 꿈인가요." "신의 뜻입이다." 올림피아스는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펠라를 비워 두실 건가요?" "들어서 알고 있습니
다." 모자는 잠시 동안 신의 암시를 서로 주고받았다. 국왕은 대체로 듣는
쪽이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 결의를 밝혔을 때 대부분의 중신들은 난색을
표했다. 분명히 날로 성장하는 페르시아에 대해서는 제약을 가해야 하지만,
현재의 마케도니아로서는 시기상조이기 때문이었다.
중신 중의 중신인 안티파트로스가 대표로 젊은 국왕에게 간언했다. "선왕
이 돌아가신 뒤 아직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습니다. 국내으 정세를 가다
듬는 것이 선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아니오. 국내의 정세
는 이미 안정되어 있소 그대를 재상으로 임명한 이상 조금도 걱정이 없어
요. 오히려 나보다 안심이오. 나는 외적을 정벌하겠소. 신의 계시가 내린
이상 이제 주저할 이유가 없소." "신의 계시입니까?" "그렇소." 오만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선 왕비를 맞고 왕자를 얻지 않으시면 왕도
에 어긋나겠지요. 왕이 된 자에게는 자손을 남기는 일도 중요한 책무이옵니
다. 전장에서는 날아온 화살 한 자루가 왕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없지 않을
줄 아옵니다. 마케도니아 왕가의 존속도 반드시 배려해 주십시오." "평벙한
왕이라면 자손을 남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겠지. 하지만 나는 평범한
왕이고 싶지 않소. 우선 용감한 사자왕이라는 사실, 그것이 먼저요. 만약
내가 평범한 왕이라면 자손을 남길 필요도 없소. 사자왕이 되어서 사자의
아들을 남기겠소.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의 순서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이 이상 거론하지 말도록 하오." 명쾌하게
답하고 이론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원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안티파
트로스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아버님의 유지오. 유언을 받았소." "정
말로... " "부자가 2대에 걸쳐서라도 페르시아는 반드시 격퇴시켜야 한다,
이것이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소." "부왕의 유지라 해도 지금이 그 시기
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마케도니아의 권위가 고조되고 있는 바로
지금이 적기오. 민중의 사기도 충천해 있고, 그리스 제국의 협력도 지금 놓
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오. 때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하오."
"재정도 어려워져 가고 있어 원정군에게 조달한 재원을 찾을 수가 없을 텐
데요." "걱정할 것 없소, 안티파트로스. 군수품은 전장에서 조달할 것이오.
국고는 축내지 않을 거요." "그러나... " "내가 없는 동안 국정에 관한 전
권을 그대에게 맡기겠소. 국가 운영에 전력을 다해 힘써 주시오. 나는 외환
을 평정하겠소. 내 결심은 변함없소. 국왕의 명령이오." 알렉산드로스의 표
정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부득이하니 빨
리 생각하시오."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주십시오." "좋소." 대답을 한 알
렉산드로스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멀리 창 밖을 응시했다. 구름 사이로 아
름다운 붉은빛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부심을 감상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필사적인 표정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안티파트로스는 무언가에 매료된 듯한 젊은 국왕의 표정을 살피며 오싹해
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왕은 무엇을 보려 하는 것일까?' 알렉산드로스 마
음의 어두운 부분이,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이 잠들어 있는 듯하다는 것은 이
미 선생에게서 듣고 있었다. 그것을 안티파트로스도 느끼고 있었다. '이것
일까.' 갈망하듯이 멀리 있는 무엇가를 찾고 있다. 필리포스왕은 난폭하고
술 주정뱅이인 데다가 가끔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때도 있
었지만 위화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언제나 동지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
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조금 달랐다. 서 있는 대지가 다른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먼 하늘을 응시했다. "나는 부왕을 초월해야 된다." 안티
파트로스는 알렉산드로스가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국왕의 방을 나
왔다. 그리고 밤새 깊이 생각했다.
이야기는 빗나가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일생을 더듬어 볼 때 이 영웅이 몇
번인가의 행운을 만난 때를 알아낼 수 있다. 위대한이 행운을 잡는 것인지
행운을 잡는 것이 위대함인지 그것을 파헤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이 행
운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위업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할
만큼 행운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것은 수많은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점이
다.
최측근으로 안티파트로스를 얻은 일 역시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안티파
트로스는 군인으로서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판단력과
실행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불어 인격도 고결하고 상당한 지식인이기도 했
다. 마케도니아 패권하에 그리스 민족이 유화 협력하고 평화와 번영을 유지
한다는 선왕필리포스 이후의 신념은, 안티파트로스 자신 속에도 살아 숨쉬
며 부동의 신념이 되어 자라고 있었다. 그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고 진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리포스왕이 죽은 지금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알렉산드로스 외
에는 없다. 젊은 국왕에게 그것이 가능한지 어떤지는 접어 두더라도, 가능
한 일이라면 알렉산드로스를 제쳐놓고서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유능한
정치가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분명히 지금은 마케도니
아의 정세도, 그리스 제국의 의향도 알렉산드로스의 동정으로 기울어져 있
다. 반대하는 자도 많지만 앞으로 지금보다 좋은 상황이 쉽게 오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하나의 호기인 것이다.
게다가 어떻게 해서라도 국왕은 동정을 단행할 것이다. 두 갈래 길이 준
비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안티파트로스의 생
각은 그것밖에 없었다.
자신 없는 정치가였다면 다른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졌을지도 모른다. 필
리포스왕 이후 이 과제는 마케도니아 일국을 위해서도 이루지 않으면 안 된
다. 점점 성장하는 페르시아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반격을 보일 필요도 있었
다.
어느 정도의 반격이 될지는 모르지만 알렉산드로스라면 무언가 할 수 있
다. 그는 이상한 힘을 갖고 있다. 확실히 안티파트로스 자신이 내정을 담당
하면 걱정할 건 없을 것이다. 국고의 축적은 부족하지만 없는 건 어쩔 도리
가 없지 않은가. 원정에 필요한 조달은 국왕에게 맡기자. 또 필요한 비용을
전쟁터에서 마련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만약 혹독한 패배를 당하면 국왕
의 생각도 바뀔 테지. 그때 가서 다음 대책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
이 없는 것 같다. '만에 하나 알렉산드로스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그때는 내가' 하는 생각, 즉 반역의 유혹과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이 안티파
트로스의 인격이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결론에 이른 그의 심경은 늙은 아버
지 같은 후견인 입장이 되어 철없는 아들을 모험으로 보낸다는, 그런 정황
과도 가까웠다. 깊이 생각한 끝에 이중신은 왕에게 말했다. "페르시아 원정
건에 동의 하겠습니다." 굳은 각오로 대답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는 다른 사람에
게 과묵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과묵했다. 굳이 그 심중을 표현한다면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마케도니아 패권을 확립할 것, 이것은 반드시 실현해
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함에 따라 부왕을 초월한다는, 어린 시
절부터 늘 품어 왔던 숙제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는 한 부왕보다 위대한 국왕은 없었다. 술에 취한 모습
은 추했지만 국왕으로서는 유능하고 용감했으며 선견지명이 있었다. 부하에
게 신뢰받고 사랑받으면서도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부왕을 초월하
는 것이야말로 정말 왕 중의 왕이 되는 것이다.
머리 하나 정도 능가해서는 만족할 수 없다. 모든 의미에서 명백하게 부
왕을 초월했을 때 진짜 대왕이 된다는 것만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열렬히
타오르는 진정한 야망이었다. 자존심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
나름대로 자신도 충분히 있었다.
깜박 졸았던 사이에 꿈꾸었던 붉은 빈궁에 대해 언급하자면,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신의 아들이라면 이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 것이다. 요증은 때
때로 신의 기척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신의 존재가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어머니 올림피아스만큼 자명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이성적인 면모를 지닌 알렉산드로스는 합리성을 중시하고
모호한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속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끊임
없이 추구할 것. 신의 아들이라면 저절로 보이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말이다. 신에 대해 이보다 확실한 지적을
들은 적이 없었고, 신의 존재는 이 말 속에 있을 것이었다.
끊임없이 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끊임없이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때의 동방 정벌이, 마케도니아 패권하에 그리스의 안녕을 확보
하는 일이 하나의 선인 점은 의심하지 않지만, 과연 그것은 진실일까, 지극
히 당연한 선이 그 속에 잠재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확실
히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숨겨 두고 있었던
것이다.
국왕의 결의가 굳어지고 아티파트로스가 국왕의 의지에 순응하게 되자,
드러내고 원정 계획에 불만을 주장하는 자는 줄어들었다. 동방 정벌의 준비
는 단숨에 진행되었다.
마케도니아 군대는 선왕 필리포스왕의 치하에서 정비되고 강화되었던 것
이지만,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새로이 진용을 가다듬어 강력한 조직이 되
었다.핵심을 이루는 헤타이로이는 본래는 국왕과 같이 식탁을 둘러싼 측근
을 의미하는 말로서, 필리포스왕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있었으나 그 말년부
터 형태를 조금씩 바꿔 가고 있었다. 눈에 띄게 인원 수를 증대시켰고 그에
따라 호칭도 기병 헤타이로이라든가 보병 헤타이로이라는 식으로 변형되었
다. 발전적인 개칭이라면 듣기 좋겠지만 일종의 외형상의 증가일 뿐이었다.
"너를 헤타이로이로 임명한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 병사는 더 이상의 명예
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커다란 충성심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었다.
군대 확장과 더불어 헤타이로이가 비대화한 것은 이런 이유이며, 실제로
도 수백 명이 넘는 부대가 전부 헤타이로이로 구성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
다. 알렉산드로스가 국왕에 취임할 무렵에는 의도적으로 이 방책이 쓰였고
보편화하여 마케도니아 군인의 충성심을 자극해 결속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이제는 도저히 왕과 같이 식탁을 둘러쌀 정도의 인원이 아니었
다. 그래도 여전히 병사들은 이 역사적인 명명에 어느 정도의 기쁨을 느끼
고 있었던 것이다.
에타이로이가 변질되었으니 본래의 '왕과 식탁을 둘러싸는' 친숙한 동료
병사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군대의 정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친위 동료
라고 해석해야 할 말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실제로 알렉산드
로스 주변에는 그런 친한 동료들이 존재했다. 대부분은 미에자 학사 이래의
동료였지만 그 외에 새로 가세한 자들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친위 동료라고 생각되는 이름을 열거해 보면 헤페스티온,
필로타스, 클레이토스, 프톨레마이오스, 페르티카스, 카산드로스, 크라테레
스, 네아르코스, 하르팔레스, 칼리스테네스 등이다. 그들이 알렉산드로스
체제하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직무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왕이 원정중일 때에 국정은 안티파트로스가 국왕대리로서 처리
할 것을 정식으로 명받았고, 원정군의 부장군에는 파르메니온이 임명되었
다. 국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수도 펠라의 궁전에 머물면서 태후로서의
신분과 권한을 다시 장악하게 되었다.
원정군의 군비를 염출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는 국왕 개인의 재산이긴 하
지만 궁궐의 전재산을 처분했다. 더불어 여러 가지 권리도 금품과 교환하여
군수품을 충당했다. 너무 선심을 쓰기에 재무를 담당했던 페르디카스가 경
탄하며 왕에게 물었다. "이것은 너무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남길 작정이십니까?" 젊은 국왕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나를 위해? 희망을
남기면 그것으로 충분해." 진위야 어떻든 간에 알렉산드로스의 심경이 여기
에까지 이르러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모든 결심이 이 한마디에 집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원전 334년 봄, 알렉산드로스는 올림포스산 기슭성지 디온에
서 출진을 위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축연과 각종 경기 시합 등을 순조
롭게 진행시킨 후, 3만의 보병과 5000의 기병을 이끌고 에게해 북안에서 동
쪽으로 향했다. 하얀 깃털 장식을 단 투구에 금색 갑옷, 애마 부세팔로스를
타고 선두에 선 국왕은 신으로 착각될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를 따르는 군
대도 제각기 장비를 고루 갖춘 대단한 용장이었지만, 사실은 이 군대를 꾸
려 가기 위한 군량과 마초가 단 1개월 분밖에 없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
다.
원정을 가는 도중에 암피폴리스에서 그리스 제국의 지원 부대와 합류하기
로 했다. 코린토스 동맹 회의에서 약속한 지원이었다. 도중에 다시 지원군
을 모아 용병을 모집하고 먼저 동정길에 나선 파르메니온 군대도 가세하여,
총병력이 5만에 가까운 진용이 되어 게리볼 반도의 항구 도시 세스토스에
집결했다. 해협 건너편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로 유명한 트로이가 있다. 현
재 지도에서 보면, 이 반도 자체도 터키 최서단 영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좁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끼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정에 급히 나선 군선은 160척, 대부분이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반도
제국의 배였다. 해군은 알렉산드로스군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마케도니아와 대적할 페르시아 사정에 대해서도 대충 언
급해 두어야겠다.
페르시아(아케메네스 왕조)는 이란 고원 서북부를 기점으로 아리아계 페
르시아인, 메디아인이 서아시아 일대에 수립한 국가이다. 기원전 6세기 중
엽 키루스 2세가 왕위에 즉위하여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키며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에 넣었다. 그 수년 후에 세기의 교체기에 나타난 달레이오스
(영어식으로는 다리우스) 1세 오아은 한층 더 왕국의 세력을 확대하여 동으
로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서로는 소아시아 반도, 이집트, 트라키아, 마케도
니아에 이르기까지 일대 제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에 마케도니아는 아직 건
국 도상에 있었고 페르시아의 종속국이라는 입장이었다.
소아시아를 장악한 페르시아는 에게해 근방의 그리스 식민지를 차례로 점
거하여 그곳에 왕의 대리인을 두어 민중에게 납세와 병역을 부과했다. 그러
나 왕후의 횡포가 심해짐에 따라 반란이 일어났고, 그 반란에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제국의 원조가 가해지게 되었다. 식민지를 빼앗겨 해
상의 패권을 위협받고 그리스 반도 자체에도 간섭의 손길이 뻗치게 되면 그
리스 제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직접적인 대립이 격화되어 기원전 490년 페
르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마라톤 전투에서 일단 그리스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쌍방의 갈등이 이것으로 종결될 리가 없었다.
"우리 군사가 이겼습니다"라며 승전의 소식을 가슴에 안고 42.195킬로미
터를 달려와 숨을 거둔 전령의 일화를 그리스 역사에 남긴 후 기원전480년
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고,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테네를
점령했다. 그리스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반격을 가했지만, 강대한 페르시
아 제국의 무력에 의한 간섭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힘에 의한 압력으로 그리
스제국은 침식당하고 착취당하여, 어느 사이엔가 직접적으로 페르시아에게
복종하며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스 민족의 자존심도 꺾이고 인심도 적잖
이 황페해져 버렸다.
페르시아 제국의 위세는 무시무시했다. 그 하나의 예로서 두 개의 거대
도시 수사와 페르세폴리스를 중심으로 광대한 영토를 뚫은 사통팔달의 도로
를 깔아 놓았다. 수도인 수사에서 사르디스(오늘날의 이즈미르 동쪽 50킬로
미터)까지의 왕도는 훌륭하게 정비된 2500킬로미터의 대로로, 그 사이에
111개의 숙박 시설을 마련하여 여행객은 하루 25킬로미터를 걸으면 다음 숙
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중에는 왕의 친위대의 주둔지와 검문소가 점재하
여 왕의 명령과 치안이 두루 미치고 있었다. 각지마다 총독을 두었고, '왕
의 눈', '왕의 귀'라 불리는 직속 감찰관을 두어 막대한 조세를 착취하면서
반역을 막아 전국 방방곡곡의 정보를 모았다. 재력에 있어서도, 무력에 있
어서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명실상부한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했을 때에는, 대제국의 왕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에서 달레이오스 3세로 바뀌고 200년 넘게 번영한 제국의 영광에도 약간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후대의 눈으로 조망해야 비로소 느
낄 수 있는 것이며, 대왕국의 번영과 영화는 변함없이 찬연히 빛나며 주위
를 압도하고 있었다.
특히 그리스 제국에 대한 간섭은 빈틈이 없고 노골적이며 위압적이었기
때문에, 그리스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페르시아 침략에 반격을 가하는 일
은 글자 그대로 선이었다. 동포들이 개척한 식민지의 자유를 회복하여 그리
스인의 자부심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감한 알렉산드로스의 야망이
부풀어오른 것도 역사와 개인의 관계로 보아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뭐라고? 적군 속에 멤논이 있다고." 세스토스항에 선 알렉산드로스에게
여러 가지 정보가 밀려왔다. "소아시아 연안 지역의 경비 장관이라는 직책
입니다. 페르시아 왕의 생각도 어리석지요... 벌써 몇 번이나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 장군 파르메니온의 숨염에는 부쩍 하얀색이 눈에 띄
었다. "출세했군." "맞습니다." 당시의 정세를 알기 위해 이 멤논이라는 사
나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해 두겠다. 멤논은 로도스섬 출신의 그리스
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형과 함께 용병대에 참여하여 눈부신 두각을 나타냈
다. 페르시아군 용병 대장이 되면서 누나가 프리지아 호족 알타바조스에게
시집간 것이 인연이 되어 이 호족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더구나 형이 알타
바조스의 딸 바르시나를 아내로 맞게 되어 이 형제와 알타바조스의 관계는
한층 더 친밀해졌다.
기원전 350년대 페르시아 태수들이 국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발발
하고 알타바조스도 거기에 참가하지만 패하여 마케도니아로 망명하게 되자,
멤논 형제도 동행하여 필리포스왕의 보호를 받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아직
어렸을 때지만, 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멤논은 마케도니아 왕가와는
인연이 깊다. 마침내 알타바조스가 복권되어 페르시아로 돌아온 멤논은 형
이 죽었기 때문에 권한을 계승하여 말단 호족이 되었으며, 페르시아 왕의
보살핌을 받아 소아시아 서해안 지방 경비를 담당하는 용병 장관의 한 사람
이 되었다. 형의 아내 바르시나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르
시나는 후에 알렉산드로스와도 관계를 갖기 때문에 조금 복잡하다.
아무튼 멤논이라는 한 사나이의 편력을 통해 당시 그리스인의 입장을 들
여다볼 수 있다. 페르시아는 그리스인을 교묘히 조종하여 그리스인 용병을
거느리고 그리스인끼리 싸우게 했던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통합
과 배반이 반복되며, 그런 이유 때문에 교활한 인간은 교묘하게 처세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길을 택한다. 멤논은 유능한 무인으로, 마케도니아
왕가의 은혜를 입은 몸이면서도 알렉산드로스와 정면으로 적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어." 그리스에게 칼날을 돌린 그리스인, 젊은
국왕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였다. 보고를 받고 분노에 휩싸이며 보이지 않는
적의 지휘관을 매섭게 노려봤다. "흥분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개인적인 분
노는 작전을 헤치고 맙니다."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오. 그리스인의 피가
노하고 있는 것이오." 이때 등뒤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프로테시라오스
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칼리스테네스였다. "무엇이라고?" "잊으셨습니까?
트로이 전쟁의 영웅 말입니다. 조금 전에 상륙한... " 칼리스테네스는 아리
스토텔레스의 친척으로 이 원정에서는 전쟁사를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었
다. "아아, 그 장군 말인가. 호메로스 군함 앞쪽에 이름이 씌어 있었어...
테살리아 장군이었지." "네. 그리스군 중에서 제일 먼저 배에서 뛰어내려서
싸웠고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에게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장하다. 무
인의 자랑이다. 가보자, 안내하라." 군사들이 바다를 건너는 것은 파르메니
온에게 맡기고 세스토스에서 조금 떨어진 항구를 찾아갔다. 사령선은 해안
선을 따라 달리게 하고 자신은 말을 타고 갔다. "프로테시라오스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듣고 슬퍼한 나머지 남편과 닮은 목상을 만들어 밤마다 안고
잤답니다." "정말이냐." "네. 그래서 정부를 끌어들였다는 의심을 받았고,
진상이 판명되자 이번에는 그녀의 슬픔을 그치게 하기 위해 목상을 태웠습
니다. 그러자 그 불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합니다." "슬픈 이야기로구
나." 프로테시라오스의 묘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중턱의 느릅나무
숲에 둘러싸여 쓸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도 지역적인 신앙을 모으고
있을 터였다. 아담하게 가꾸어져 있었으며 발길이 잦은지 공물을 바친 듯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가장 용기 있는 자에게." 알렉산드로스는 중얼거리며
이 성스러운 곳에 어린 양을 제물로 바쳤다.
그곳에서 사령선으로 갈아타고 직접 키를 잡고 트로이로 향했다. 헬레스
포투스 해협 한가운데에 이르러 바다에 술을 붓고 의식을 치르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가호를 빌었다. 목표로 하는 해안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호메로스가 찬양한 빛나는 서사시의 무대이다. 그리스 군함이 이 바
다에서부터 트로이로 공략한다는 전설적인 바로 그 전장이다.
프로테시라오스 묘소를 참배하던 때부터 알렉산드로스의 표정이 눈에 띄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심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익
은 호메로스의 세계, 수많은 영웅들, 그 영광과 죽음... 흔들리는 파도를
타고 흥분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는 아킬레우스의 후예다!' 아니, 트로
이 바닷가가 가까워짐에 따라 마음은 아킬레우스 그 자체로 변해 갔다. "야
앗." 우렁차게 큰소리를 지르며 건너편 기슭에 창을 던졌다. 창은 밑동이
흔들리며 공중을 날아 모래땅에 꽂혔다. "훌륭합니다." 우레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이것은 그야말로 동방의 땅에 화살이 아닌 창을 최초로 꽂는 의
식이었다. 아시아 정복을 의미하는 제일보인 셈이다. "이 땅은 신들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새로이 무장을 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배
에서 뛰어내려 대지를 밟았다. 흡사 오랜 전설을 확인이라도 하듯 바다와
언덕을 바라보고 나서 트로이 성터를 올라가 아테네 신전에 참배했다. "내
무구를 바치로 싶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대답하는 신관
에게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대신 신전에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무구
를 갖고 싶소." 거절할 것도 없이 교환은 성립되었다. 신전의 무구는 트로
이전쟁 이래의 보물이며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름 있는 장
군이 쓰던 것임이 틀림없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에 꼭 맞는 물건이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이 무구를 전장에 반드시 가져가서 진중에 걸어 놓았
다고 한다.
여기에는 아킬레우스와 그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묘도 있었다. 두 묘소
를 꽃으로 꾸미던 알렉산드로스가 불쑥 "아킬레우스가 부럽군"하고 말했다.
"왜?" 동행한 헤페스티온이 물었다.
헤페스티온의 머리 속에 '아킬레우스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파트로클로스
가 있듯이,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내가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스쳐 갔지
만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에는 왠지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알렉산
드로스도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었다. "호메로스가 없어!" 알렉산드로스는
진심으로 탄식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무리 공을 세우더라도 그것을 훌륭한
시가로 노래할 자가 없다면 위업을 후세에 알릴 수가 없다. 칼리스테네스의
글솜씨는 호메로스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사자다운 말이군." 헤페스
티온이 어깨를 살짝 움츠리고 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언젠가 호메로스가
나타나겠지." 위로를 했지만 젊은 국왕은 그 말에는 수긍을 할 수 없었다.
단지 시선을 저 멀리로 보내어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석양이 비치는 해협을 뒤돌아보자 많은 군선이 바다를 건너기 시작하고
있었다.
헤레스폰투스 해협은 어디를 가도 그 폭이 30~40스타디아(6~7킬로미터)
정도가 넘지 않는 좁은 수로다. 그러나 조수의 흐름이 빨라 160척의 배로 5
만 군사를 건너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병사만이 아니라 수행
원과 말, 병기류도 옮겨야하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파르메니온의 지시에는 빈틈이 없었으나, 바다를 건너는 중에 적의 공격
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척우병을 멀리 해안에까지 흩어 놓고 적의 배가 밀
어닥쳐 올 것을 두려워하면서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강행한 작전이었다.
"신의 가호만 있다면... " 알렉산드로스는 파르메니온의 보고에 냉철한 얼
굴로 답했지만 사실 원정은 처음부터 실패할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역으로
말하면 페르시아군 쪽에 빈틈이 있었다는 뜻도 된다. 누군가 평범한 지도관
이 작전 포인트를 놓쳐서 지게 된 탓도 있다.
용병대의 장관 멤논은 이 땅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이집트 정세가 불안
하여 페르시아 쪽 지휘관의 눈은 거의 소아시아 반도 남쪽으로 쏠려 있었
고, 페르시아 해군도 대부분은 나일강 하구 근처에 정박하여 북방의 알렉산
드로스의 원정에 대해서는 "아직 풋내기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며, 이때뿐
만이 아니라 이 이후에도 한동안은 가볍게 여겼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어렵사리 해협을 건너 알렉산드로스 군대는 좁은 해도를 따라 동진했다.
해협이 끝나 마루마라해가 보이는 근처에서 내륙으로 들어가 그라니쿠스강
서쪽에 진을 쳤다. 그라니쿠스강은 전설적인 이다산에 발원지가 있고 반도
서부를 북상하여 마루마라해로 흘로 드는 큰 강이다.
페르시아 군대가 강 동쪽에 진치고 있었다. 대충 보아도 3~4만, 숫자에
있어서는 서안에 모인 마케도니아군과 맞먹는다. 하지만 아무리 페르시아군
이라 해도 몇 개의 군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휘 계통이 똑같지는 않다. 일
이 있을 때마다 몇 사람의 지휘관이 머리를 모아 작전을 짜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판단이 느리다. 그리고 전투 이외의 의도가 개입한다.
용병 대장 멤논은 이 전진에 뒤늦게 참석하게 되었다. 눈빛이 예리하고
용감하며 눈도 귀도 입도 모두 큼직한 미남자다. 피부가 거무스름한 것은
몇 번인가의 전화를 경험한 탓일까. "마케도니아군을 우습게 봐서는 큰일납
니다. 적의 보병대는 잘 훈련되어 있으며 기병대도 좋은 말을 모아서 매우
날렵합니다. 게다가 문제는 우리 쪽 총대장이 아직도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
니다." 멤논은 냉정하게 분석했다.
총대장이라고 하면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를 이른다. 역전의 강자는
총지휘관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명령의 혼란과 사기 저하가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상대는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으로 직접 선
두에 서 있는 것이다. "국왕도 이쪽으로 오시고 있소. 아무리 강력한 군대
라도 우리가 마케도니아 따위에 질 리가 없소." 지도를 보면 잘 알겠지만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는 크기가 현격하게 다르다. 국력에 큰 차이가 있다
고 보는 것이 다른 지휘관들이 갖는 공통적인 선입관이었다.
멤논은 얼굴에 있는 흉터를 눈에 잘 보이게 하려는 듯 한 번씩 웃었다.
"지도의 넓이로 싸우는 것은 아니지요.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위험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말해 봐요!" 자리를 같이하
고 있는 지휘관 중에서도 신분의 상하는 당연히 있다. 그리고 용병 출신은
대장이 될 수 없다. "마케도니아의 군량미와 마초는 곧 바닥이 납니다. 우
리 군이 후퇴하면서 마을을 태우고 밭에 불을 질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퇴각하면 적군은 금세 전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멤논의 제안은 대담한 초
토화 작적이었다. "그건 안 되오." 무뚝뚝한 표정을 한 지휘관이 자세를 바
로하고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페르시아 왕의 자애를 뭐라 생각하시오! 나
는 이 땅의 민초를 국왕을 대신해서 맡고 있고. 내 눈앞에서 단 한 채라도
집을 태워서는 안 되오. 밭도 마찬가지오. 애써 지은 작물에 불을 지르다
니... 백성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처사구료. 한심스럽소." 자신의
말에 취한 듯 절규하며 일동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이 지역 태수이다. 그가 평소에 얼마만큼 민중의 행
복을 바라고 있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지만, 이런 자리에서 정론을 들고
나오면 회의는 기능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초토화 작전은 자신의 손실을
각오하고 더 큰 손실을 피하는 작전이다. 그 나름의 예측과 배포가 없으면
결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멤논의 제안에 몇몇은 "흥, 용병 출신이라
속 편한 소리도 하는군. 하기야 제 땅을 못 갖는 신분이니 말야."라고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마저 지어 보였다.
실제로는 멤논도 상당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토착 호족과는 비교할
수 없다. 타관 사람으로 취급해도 하는 수 없다. "맞소. 들을 태우는 것은
안 되오." "우선 도망쳐서는 비웃음을 사게 될걸. 또 국왕에게도 면목이 서
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따끔한 맛을 보여 줍시다." 멤논은 더욱더 자신의
작전을 고집했지만 주위의 냉랭한 반응ㅇ르 받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멤
논을 부정하는 일이 회의의 주요 안건인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어 당면 전
투에 대해서는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검토도 하지 않았다. "각자의 군대가
전력을 다하면 아무 불안도 없을 것이오." 어느새 애매한 결론을 내린 채
해산해 버렸다.
이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행운일 것이다. 초토화 작전이 채택되었다면 마
케도니아군이 내륙으로 전진하는 일을 도저히 불가능했을 테니까.
마케도니아군의 진영에서는 군량미와 마초 부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
다. 젊은 국왕은 오로지 진격할 생각만 했다. 겁이 없는 것이 치명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군은 낮 동안에는 강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심야를 기다려 강을 건너는 것이 상책입니다." 파르메니온이 이렇게 제안했
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반대했다. "아니, 기다릴 필요 없소. 헬레스폰투스 해
협도 쉽게 건너지 않았소. 이 정도 강에 주저해서야 앞날이 걱정되오. 바로
진격하시오!" 파르메니온을 좌측 총사령관으로 삼고 자신은 우측으로 돌아
가서 애마 부세팔로스를 타고 선두에 섰다. 헤타이로이들의 얼굴이, 그리고
보병대, 장창을 든 기병대, 궁대, 투석대가 뒤를 이었다. 요격하는 페르시
아군은 2만 기병에 2만 용병으로 구성된, 보병대가 주력 부대였다. "공격하
자!" "실수하지 말아라!" "강을 건널 때 죽여라!" 장창을 내밀어 방어진을
치고 하나의 거대한 생물처럼 돌진해 오는 마케도니아 보병대도 강을 건널
때는 대열이 흩어졌다. 페르시아군은 이들을 물가에서 넘어뜨리려고 전력을
다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기병대가 츠견에서 우르르 밀려들어 왔고 중장의
보병대가 뒤를 이었다. 창이 날고, 활이 날며, 돌이 날아다녔다. 무모한 도
하 작전이었지만 아무리 쓰러뜨려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용감하게 공격해 왔
다. 마침내 페르시아측 전진에 구멍이 생겼고 알렉산드로스의 기마병이 배
후를 둘러쌌다. 강을 건넌 대군이 육지전을 개시했다. "나아가라! 겁내지
마라!" 알렉산드로스의 전술은 항상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고, 그런 이유에
서 부하들에게도 능력의 한계를 요구했다. 전장에서는 용기 있는 자만이 이
긴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였다.
적어도 그라니쿠스 강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전술의 우열 보다는 용기
가 전운을 판가름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모함이 전의를 압도하여
열세로 보이던 마케도니아군은 어느 사이엔가 도처에서 기세를 회복하여 갔
고, 페르시아군의 형세는 약해졌다.
말 위의 알렉산드로스는 하얀 깃털 장식을 단 투구에, 한층 더 훌륭하게
반짝이는 갑옷을 걸치고 언제나 선두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끌지 않
을 수가 없다. "저놈이 마케도니아 왕이다." "알렉산드로스를 죽여라!" 실
력 있는 강자가 알렉산드로스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창이 부러져 부하로부터 창을 건네 받자마자 알렉산드로스는 말을 달려
한 페르시아군 지휘관과 몇 번이나 창 끝을 부딪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멋지게 차려입은 그 지휘관은 페르시아왕의 사위였다. "이얏!" 소리와 함께
상대방 얼굴을 찔렀다. 공포로 표정이 얼어붙었고 결국 붉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알렉산드로스의 머리를 겨냥한 언월도가 휙 하고 바
람을 가르며 세게 머리를 때렸다. 투구의 귀가 날아갔다.
알렉산드로스는 국왕의 투구를 만든 자에게 감 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투구는 만가졌지만 간신히 언월도의 무겁고 예리한 칼날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낮은 자세에서 역
습하는 자세로 바꾸어 수창을 던져 상대의 가슴을 찔렀다.
또 한 사람, 언월도를 높이 쳐든 적병이 알렉산드로스의 목덜미를 겨냥했
다. "위험해! 사자!" 간발의 차로 적의 팔을 내리친 것은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인 클레이토스였다. 미에자 학사 이래의 친구로서 피부가 거무스름하여
'깜상 클레이토스'로 불리는 용사였다. 알렉산드로스 유모의 남동생이자 헤
페스티온, 크라테레스와 함께 가장 친한 부하였다.
눈짓을 서로 주고받은 후 시선을 돌리니 페르시아군의 패주가 시작되었
다. 멍하니 선 채 꼼짝도 못하는 적병도 있었다. 패전을 눈치챈 적이 방향
을 틀려고 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그보다 먼저 자랑스러운 밀집 보병을 서둘
러 보냈고 기병대에게도 공격을 명했다.
오히려 허망하게 승패가 결판났다. "지나친 추격은 하지 마라! 물러나
라!" 알렉산드로스의 눈은 페르시아군에 가당함 그리스 용병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멤논은 재빨리 도망쳤음에 틀림없었다. "이놈들은 용서 못해!" 용
병대의 투항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기를 버린 적에게도 공격을 가하며,
죽음을 면한 2000명을 노예로 사로잡았다. '비록 적이라 해도 용감하게 싸
운 자는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그리스를 거역한 그리스인은 용서할 수 없
다.'라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일관된 의지였다.
전쟁은 끝났다. 여기저기에서 승리의 노래가 들려 왔다. 헤페스티온이 눈
부신 승리를 희고하며 웃으면서 평가했다. "사자는 시로 싸운 것이야." "시
로 싸워?" 바로 조금 전 알렉산드로스의 목숨을 구해 준 클레이토스는 이런
종류의 수사법을 납득할 수 없었다. "마치 호메로스의 시처럼 싸웠다는 거
야. 그러니까 전쟁이 시처럼 아름답고 극적이지." 헤페스티온의 표정에 이
미 전쟁의 흥분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도 감동했어." "맞아." 붓은 들지
않았지만 헤페스티온은 예술의 여신 뮤즈의 은총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호
메이로스의 시로 싸운다"라는 미사여구는 알렉산드로스의 전투의 일면을 나
타내고 있다. 조금 과장한 점도 없지 않지만 알렉산드로스가 그렇게 싸우고
싶다고 바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말대로 젊은 국왕의 전
투는 호메로스의 시처럼 주위에 감동을 주는 묘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라니쿠스 강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을 얻고 막
강한 기세로 소아시아 반도를 남으로 내려가서 사르디스, 에페수스, 마그네
시아 등 점재하는 도시를 손안에 넣었다. "페르시아의 멍에로부터 민중을
해방한다." 이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명목이며 이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고민스럽다. 필리포스에게서 알렉산드로스로 전승된 이데올로기는
고대 사회에서는 상당히 선진적이며 양질의 것이었다. 민주적이라 해도 반
드시 크게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 사회의 테모크라티아이며, 그 이념을 두 국왕에게 가르친 철학
자들의 공적일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그리스 철학의 중핵을 이루는 테마였고, 두 국왕의
치세에는 항상 그것을 고려한 느낌이 현재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 패권하
에 그리스의 안녕을 확보하겠다고 두 국왕이 고했을 때, 이 그리스는 당연
히 좋은 그리스를 지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페리크레스가 지도했던 번영한 그리스이다. 현실적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지만 고대 사회로서는 드물게 설령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데
모크라티아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민족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회였다. 그것을 방해하고 파괴하여 소수 특권 계급의 횡포를 허락하는 야
만적인 압정을 행사한 것이 페르시아이며, 그러므로 페르시아를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생각도 미묘하게 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강력한 무력을
가졌다. 따르는 자에게는 분명 관대한 것 같지만 반항하면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잔인한 면이 있다. 페르시아의 멍에에서 해방된 것은 기쁘지만 과연
기뻐하고만 있을 수 있을런지 모를 일이었다. 소아시아 반도에 점재하는 도
시들은, 어떤 곳은 알렉산드로스의 무력을 겁내고, 어떤 곳은 그의 신념에
기대를 걸고 일단은 공손하게 복종의 뜻을 표명하며 원정군에게 편의를 제
공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격렬하게 반항하는 도시도 있었다.
사르디스, 에페수스, 마그네시아에 대해서는 일단은 포위 후의 '가벼운
지배'라는 말로 표현해 두자. 사정은 제각각 달랐지만 대략적인 것은, 우선
무력으로 압력을 가해서 화목하게 만든 다음 반알렉산드로스 세력을 일소하
여 원정군을 위한 군량미와 마초와 숙소를 제공받고 자치는 인정하는 식이
었다. 페르시아왕과 태수들의 과두제를 해체하고 자유 시민의 데모크라티아
를 확립한다는 방침으로 원정길을 넓혀 갔다.
그러나 밀레토스에서는 강력한 페르시아 해군의 반격을 받은 데다가 400
척 대 160척이라는 수적 열세 때문에 고전했다.
가끔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원정군의 연락선 가까이에 있는 바위 근처
에 멈춰 서 배를 곁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독수리는 제우스의
왕림을 뜻한다. "좋은 징조입니다. 여기에서 적의 해군에게 타격을 주면 원
정 전체에 좋은 영향을 가져옵니다. 설사 패하더라도 아군의 주력 부대는
육군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손실은 없을 겁니다." 파르메니온은 항구를 배
경으로 좋은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점을 중요시하며 싸우기를 재촉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유리한 위치를 잡은 데에는 이겼어도 해전은 상대가
우리보다 고수요. 눈앞에서 귀중한 병사들을 잃어서는 안 되오. 여기에서
지면 애써 육지전에서 이겨서 얻은 영광마저도 잃게 되오. 적은 기를 쓰고
그리스인 반란에 연관할 가능성도 있소." 알렉산드로스는 평소와 다르게 신
중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혈기 왕성한 국왕도 해전에는 자신이 없었다. 바
다의 신 포세이돈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
나 제우스의 사자가... " 파르메니온은 정말로 무슨 의미라도 있는 듯이 암
석에 앉아서 바다에 있는 선단을 노려보고 있는 독수리를 가리켰다. "그것
은 육지에서부터 배를 제압하라는 경고요. 잘못 본 거 아니오?" 듣고 보니
그렇게도 보였다. 독수리는 육지에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명령에 따라 원정군은 항구라는 항구는 철저하게 지키고
공격은 오로지 밀레토스항에 집중했다. 적의 선단은 수적으로는 월등해도
항구가 봉쇄되어 있으니 상륙할 도리가 없고 따라서 물의 보급도 곤란했다.
아무리 도발해도 알렉산드로스 선단은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적이 없으니
전쟁을 할 수가 없다. 어느 사이엔가 열 척, 스무 척 모습을 감추더니 밀레
토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 해군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도시는 원정군의 압력에 견딜 수 없어 함락되었고, 알렉산드로스는 여기
에서도 가벼운 지배를 베풀었다. 용감하게 싸운 시민에게는 오히려 그 무용
을 칭찬하여 자유민으로서의 협력을 촉구했지만, 그리스에 반항했던 그리스
인에게는 가차없는 벌을 내렸다.
전후 처리가 일단락되었을 즈음이었다. "해군을 해체한다." 알렉산드로스
는 밀레토스항을 바라보면서 결단을 선언했다. "어찌하여?" "군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 해군을 유지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해군 없이는... " "아니다, 어차피 페르시아 해군에게는 이길 수
없다. 항구를 봉쇄하는 것만으로 적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밀레토스
에서는 그랬었다. 한 마리 독수리가 보여 준 몸짓도 알렉산드로스 마음속에
서 하나의 계시로서 움직이고 있었다. 독수리는 육지에서 바다를 제압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원정군은 잠시 동안 해군에 의존하지 앟게 되었던 것이
다. 이 결정이 올바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알렉산드로스 동정
의 하나의 약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밀레토스를 함락한 군대는 카리아 지방의 큰 도시 할리카르나소스로 진격
했다. 이곳은 멤논의 거점으로 요새는 더없이 견고했다. 페르시아인 군대와
용병대도 적잖게 주둔하고 있었다. 아마 멤논도 여기로 퇴각하여 반격 대책
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할리카르나소스는 성문을 굳게 닫고 원정군의 가
벼운 지배 마저도 완강하게 거부했다. 성벽이 높아서 공략은 용이하지 않았
다. 포위를 해도 번영한 도시는 장기간의 논성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
회할까요?" "아니, 공략하자." 카리아 지방의 요새를 그냥 둔 채 동정을 전
진시킬 수는 없고 위신에도 관계가 있었다. 남겨 두면 적의 거점이 되어 언
제 까지나 맞설 것이다. 드디어 격렬한 공방전이 개시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처음에는 이 도시에서 바다로 나가는 출구가 되는 마을
민도스를 공격했지만, 민도스는 지형의 이점을 살려서 계획된 곳으로 그토
록 대단한 알렉산드로스도 함락할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 할리카르나소스
를 함락시켜라." 몇 군데 성문에 총공격을 가하는 작전으로 돌렸다.
성벽 바로 밖에는 해자가 있어서 이것을 메우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었
다. 공병대를 보내 해자를 메우는 작업을 시작하려 하자 위에서 돌과 화살
이 마구 쏟아졌다. 할 수 엇이 그 공격과 싸우면서 해자를 메웠다.
성채 공략에는 공성탑과 파성추가 쓰였다. 공성탑은 바퀴가 달린 높고 길
다란 탑으로, 상부에 방어벽으로 쌓여진 발코니가 여러 층 만들어져 있다.
적의 성채에 가까워지면 가운데 계단을 올라 발코니로 나온 병사들이 방어
벽에 숨어 성채에 무리지어 있는 적병과 대응하는 높이에서 싸우다가, 기회
를 틈타 성채 위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알렉산드로스군의 기
술자가 고안한 것이라 전해지며, 그 진위는 어찌되었든 알렉산드로스군의
특이한 병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파성추는 거북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름대로 작은 방의 외벽을 단단하게
덮어씌운 것이다. 안에는 횡목을 얹어 놓고 거기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당
목을 절의 종을 치듯이 끌어당겼다가 놓으면서 추를 친다. 거북이에도 바퀴
가 달려 있기 때문에 성문에 더가가서, 위에서의 공격에는 견고한 벽으로
대항하면서 몇 번이고 추를 쳐서 성문을 부수는 식이다. 이것 또한 알렉산
드로스군이 자주 쓰던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성문을 부수면 도시는 함락한다. 성문을 부수는 데는 공성탑, 파성추가
유효하다. 그리고 그것을 쓰기 위해서는 해자를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해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성벽으로부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조금씩 공사를 진
행시키는 수밖에 없다. 일진일퇴의 사투가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델포이 무녀의 말대로 알렉산드로스는 '지지 않는 사람'
이었다. 성문 하나가 부서지고 알렉산드로스 군대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공
략했다. 적군은 당황하며 순식간에 패색이 짙어졌다.
멤논을 포함한 지휘 본부는 곧 이 전쟁에서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망탑과 무기를 두는 창고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 불은 바람을 타고 마
을로 번졌고 원정군 공격에 가세하여 도망치기 급급한 군중을 쫓아 소용동
이쳤다. "반항하는 놈은 죽이고 순순히 말을 듣는 자는 살려 줘라!" 불에
쫓기는 사람들을 구해 준 것은 오히려 마케도니아 병사들이었다. 알렉산드
로스는 여기에도 가벼운 자비를 베풀고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보병 3000과 기
병 200을 맡겨 도시의 방비를 맡겼다.
이 일을 계기로 카리아 지방의 도시들이 차례차례 알렉산드로스에게 복종
하게 되었고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카리아 지방에는 여성 지도
자를 받드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호족의 피를 이어받은 여인 아다를 태수로
임명하여 마케도니아의 우국으로서 존속시킬 대책을 세웠다. 아다는 알렉산
드로스의 어머니 정도의 나이로, 나이 든 여성의 공로도 젊은 국왕의 잠재
심리가 표현된 것 중의 하나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을 바람이 차다. 산야는 마른 빛을 띠기 시작
했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병사들 중에는 고향이 젊은 아내를 두고 온
자들도 많을 것이야." "무슨 뜻이온지." "겨울 동안 일부를 마케도니아로
돌려보내라."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다." 겨울은 전쟁하기에 적합지 않으
므로 가능한 한 큰 전투는 피하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병사들에게 약간의
휴식을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사들을 일단
귀국시키며 돌아오는 봄에는 더욱 많은 기병과 보병을 모아서 전장으로 돌
아오도록 명했다. "알겠습니다. 분명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파르메니온
에게는 군사를 일부 주어 사르디스로 돌아가서 겨울을 보내도록 지시했다.
이것은 리디아에서부터 카리아에 이르는 일대에 베푼 가벼운 지배를 관리하
는 역할이었다."내년 봄에 고르디온에서 모두 재회하기로 하자." 고르디온
은 소아시아 반도의 중심부로, 오늘날의 앙카라에서 그리 머지않은 산간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젊은 국왕에게는 무슨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사자왕
은?" 이렇게 묻는 파르메니온에게 알렉산드로스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동
남 해안을 살펴보겠소." "부디 몸조심하시길." "자네도 몸조심하시오."
"네." 한편, 카리아 지방의 태수로 임명받은 아다는 국왕의 출발을 듣고,
"여기에서 겨울을 지내셔도 좋을 것이옵니다." 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겠지." "그럼, 진중에서의 건강을 위해 훌륭
한 요리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마음에 두고 계시는 사람이라도 있으십니
까?" 이 말에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어린 시절 엄한 교육을 받았던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레오니다스 선생님께서 나에게 훌륭한 요
리사를 붙여 주셨지. 맛있는 점심을 위해서는 새벽에 행군을, 맛있는 저녁
을 위해서는 가벼운 전심을. 이 이상 훌륭한 요리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
렇게 말하며 아다의 호의를 완곡히 거절했다. 혹독한 원정 생활 중에도 스
스로 모범을 보이며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비해서는 민중의 심리를 잘 헤아리고 있었다.
그라니쿠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목숨을 구해 준 클레이토스가 식사
를 하면서 전투를 되돌아보며 "사자는 용기가 너무 지나쳐"라고 간언했다.
"부왕에게 배웠지. 전쟁에서는 용기 있는 자만이 이긴다고." "알고 있어,
그러나 누구나 용기를 가질 수는 없어. 그것도 끊임없이 말야." 페르티카스
가 옆에서 한마디한다.
월동을 앞두고 헤타이로이도 각지로 흩어졌다. 일동은 카리아 산 독한 포
도주를 나눠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리스어가 통용되지만
미에자 학사 이래의 친구들이 모이면 마케도니아 방언이 섞여 완전히 스스
럼없는 말투로 바뀌었다. 국왕도 사자라 부르며 말씨도 허물없던 시절로 돌
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분 좋았고 또한 헤타이로이의 입장에서 보면 커
다란 특권 의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말인데." 알렉산드로스가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한마디 찾은 듯이 투덜댔다. "물론 용기도 중요하지
만, 용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해. 마찬가지로 마케도니아군은
강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 짧은 침묵
이 흘렀다. 각자 알렉산드로스의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사자는 처음
부터 그럴 셈이었는가." 침묵을 깬 것은 할리카리나소스 방비부터 합류했던
프톨레마이오스였다. 그라니쿠스강의 전투에서도, 할리카리나소스 공방전에
서도, 알렉산드로스는 분명히 지나친 용기를 보였다. 계속 그렇게 무리한다
면 몸이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전시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면...
원정 서전에 있어서도 터무니없을 정도의 지나친 용기와 강인함을 보여
주었다. 나중에는 그 소문만으로 적은 겁을 먹는다. 아군들은 고무될 것이
다. 강인함도 중요하지만 강하다는 소문도 도움이 된다. 사자왕은 처음부터
그것을 의도하고 있었는지, 프톨레마이오스가 알고 싶은 부분이다. 사자왕
부하 가운데 가장 현인이라고 불렸던 장군이다. "차츰 그랬지." "효과는 이
미 나타나고 있어. 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은 도망가니까." "효과가
나타났으니 지금부터는 조금 더 자중해 주게. 앞으로는 우리가 하겠네. 믿
고 맡겨 주게." "정말 사자는 대단해." 헤타이로이들이 차례로 칭찬했다.
"우리들은 이 점이 다르다니까." 자신들의 머리를 가리키며 툭툭 쳤다. "책
략이 있기 때문에 무서워." 한순간의 용감함에까지도 인심을 조작하는 의도
가 내포도어 있다면, 그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예측할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일
지도 모른다.
모닥불이 소리를 내며 활활 타고 있고 고기 굽는 냄새가 고소하다. 주위
에는 온통 어둠이 펼쳐지고 각자의 얼굴만 붉게 비치고 있다. 모두 다 젊
다. 이야기가 활기를 띠는 가운데 동료 의식이 고양된다. 너무나 행복한 한
때다. 하지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자리 중앙에 앉은 알렉산드로스도 전
혀 주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날 밤의 환담에 대해 모두가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열 명이 넘는 미에자 이래의 친구들이 이렇게 친목
을 도모하며 마음을 터놓고 서로 이야기한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이
다음부터는 모두가 전투로 세월을 보냈다. 언제까지나 순수한 청년일 수만
은 없다. 친한 친구 중에서도 대립이 생기고 이해가 충돌하며 의견이 갈라
진다. 미묘한 시기심도 싹트게 되고 다른 생각을 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사자의 마음을 알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이날 밤만은 기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조짐이
어른거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1만 군사를 뽑아 리키아 지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터키
서남부, 로도스섬 동쪽에 동그란 혹처럼 커다란 반도가 돌출되어 있는데,
이곳을 포함한 일대를 리키아라 생각할 날도 머지않았다. 얼마간은 혹 모양
의 반도 남쪽으로 접근해서 바다를 따라 진군하며 점재한 도시들을 가벼운
지배하에 넣었다. 알렉산드로스군의 강력함은 이미 들판을 달려가는 불길처
럼 빠르게 널리 각지에 전해지고 있었다. 협력을 표한다면 가혹한 지배를
받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정보도 똑같이 선전되고 있었다. 원정군은 각지
에 위신을 보이며 대체로 무사히 행군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군의 강적은 대잔연이다. 파셀리스에서 페르게로 이르는 행로
는 지금 말한 혹 모양 반도의 동해안 100킬로미터에 해당한다. 페르게는 현
재 안탈리아 근교 도시로 추측되지만 이해안에는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
등성이가 해안선 바로 앞까지 뻗어 나와 있어 길다운 길이 별로 없다. 바다
가 다시금 온화해 질 때를 기다렸다가 물가에 접근라는 것 외에는 달리 방
법이 없는 아주 험난한 지역이다. 한겨울에는 그런 날씨조차 바랄 수 없다.
잿빛 바다는 밤이나 낮이나 높은 파도가 일어 기슭에 부딪치며 거대한 하얀
색 용의 무리로 변하여 그칠 줄 모르고 몸부림치며 미처 날뛴다. 근처에는
빠른 물살이 흘러 배로 가는 것도 곤란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군대가 접근하자 격렬한 남풍에 대항하는 북풍이 갑
자기 불어와 바다는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잔잔해졌고, 그 틈을 타고 물가
로 서둘러 올라갈 수 있었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
렉산드로스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헤페스티온에게 말했다. "당연한 일."
"조짐이 있었나?" "아니, 언제나 그럴 수는 없지." 헤페스티온의 영감은 때
때로 마음 깊숙한 곳까지 내려온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그럴 때의 예
감은 정확하다. "헤페스티온, 아버지를 죽인 자가 누구야? 흑막이 있었던
거지?" 알렉산드로스가 갑자기 물어 왔다.
바로 며칠 전, 페르시아 왕의 사주를 받고 알렉산드로스를 암살하려 했던
남자가 잡혔다. 반역과 모략에 대한 조사는 헤페스티온이 맡았다. 숙청 역
시 그의 일이었다. "아냐, 그것은 호위병 파우스니우스의 개인적 원한이라
고 흑막이 있다면 페르시아 왕의 의향을 따랐던 누구겠지." 이전과 다름없
는 대답을 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가 태후를 의심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눈빛은 언제나 맑다. "그렇다고 해두지." 알렉
산드로스도 헤페스티온의 심중을 대충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
번에는 화제를 바꿨다. "멤논은 어떻게 하지?" "만만찮은 놈이니까... 그래
도 강적이야." "알고 있어." 멤논은 제국을 전전하며 각 군대들이 지닌 장
점을 배우고 있었으며 새로운 무기에도 정통했다. 필리포스의 전술에서도
많은 부분을 도용했을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전장에 있어 일류 참모인 점은
분명했다. 회유를 시도해 보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마케도니아에
반항한 이상 이제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용서 받을 수는 없다고, 그것도 예측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적구에 가담하여 철두철미하게 도전해 올 것이라고
마케도니아 왕은 예측하고 있었다.
페르게에서 시데로, 거기서부터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아스펜드로 군대를
다시 전진시켰다. 내륙으로 행로를 바꿔 아스카니아호를 지나 프리지아 지
방의 수도 케라이나이로 진공했다. 작은 싸움은 있었지만 결국은 이 지역
대부분의 도시나 마을에 대해서도 가벼운 지배를 베풀고, 약간의 수호병을
남기고 다음 지역으로 전진하는 방식을 채용할 수 있었다.
케라이나이에서부터 산간 협곡을 북상하여 고르디온에 들어 갔을 때에는
이미 기원전 333년의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혹한 추위가 닥쳤던 산악지
야산에도 새로운 초목의 새싹이 싹트기 시작했다. 산의 기운이, 강의 모습
이 고향 풍경과 닮았고 숲의 깊이나 물의 풍족함이 마케도니아 자연에 가까
웠다. 이것은 병사들에게 기쁜 일이었을까, 괴로운 일이었까.
상가리오스강 기슭에 세워진 고대 프리지아 왕국의 수도였던 고르디온은
한때는 행정, 군사, 교역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창했던 도시였지만, 알렉산
드로스가 찾아왔을 무렵은 동앙카라에 번영을 빼앗겨 몰락의 내리막길을 걷
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래된 도시의 신전에는 예전부터 군림했던 전설의 왕 미다스가 남긴 한
대의 짐수레가 모셔져 있고, 그 짐수레의 채를 연결하는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는 전승이 남겨져 있었다. 미다스왕이라고 하면, 미
에자 학사에는 이 왕에게서 연유한 미다스왕의 정원이 있지 않았던가. 도저
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복잡한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
의 지배자가 된다니...
알렉산드로스는 왕궁의 자취가 남은 성채로 올라가 신전을 방문했다. 분
명 오래된 짐수레가 봉납고 안에 안치되어 있고 층층나무 껍질이 복잡하게
짐수레를 묶고 있었다. 매듭은 거대한 나무 열매처럼 둥그렇게 되어 끈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도 없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물러나는 것은 체면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성격에도
맞지 않았다. "에잇." 한순간 칼을 뽑아 내서 매듭을 끊었다. 툭 하는 소리
를 내며 짐수레 채는 끈에서 떨어져 나와 땅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고르디
온의 매듭을 끊다.(cut the Gordion knot)'라는 것은 '비상 수단으로 어려
운 일을 해결하다'라는 의미의 관용구로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사건의 자
세한 내용은 어찌되었든 간에 알렉산드로스의 인품을 전해 주는 일화로서는
아주 그럴싸하다.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을 지지하듯 파르메니온
이 월동지로부터 수하 군대와 함께 진군해 왔다. 고향 마케도니아에서 겨울
을 보낸 젊은 장병들도 명령대로 새로운 마케도니아 병사와 용병을 모집해
서 되돌아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진영 침소에 큰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붉은색 활과
활시위를 그렸다. 뜨거운 야심의 심원이 어디인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열망에 가슴을 태웠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불타는 열망 없이는 존재할 이유
가 없었다.
페르시아 왕과의 첫 전투
페르시아측 용병군의 중진인 멤논은 에게해 동남단에 떠 있는 로도스섬의
항구 도시 린로스의 선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섬은 50킬로미터가 채 안 되
는 바다를 끼고 소아시아 반도 남안으로 통하며, 크레타섬과 이집트 왕국과
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온화한 기후에도 복을 받아 해안가에는 오래
전부터 몇 개의 항구 도시가 번영하고 있었다.
상인이나 뱃사람은 그리스 반도에서 온 이주자가 많은데 멤논의 생가도
그중의 하나이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7대정도 전에는 피레우스의 호
족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멤논의 용모를 보면, 특히 이마에서부터 조금도
패이지 않고 똑바로 선 콧대를 보면 그리스인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그리스 콧대. 고귀한 인상을 주는 생김새지만, 거무스
름한 피부는 사막 민족인 것 같다. 예리한 눈빛, 꼭 다문 입술, 정말 무인
다운 풍모를 갖춘 미남자이다. 뺨에 난 상처까지도 너무나 어울린다.
집안 소유의 선박은 단 세 척으로 생업을 이어 가기엔 쉽지 않았다. 나무
열매를 채집하고 고기잡이도 부지런히 하여 겨우 일가가 살아가는 정도의
생활이었다.
소년 시절의 추억이 하나 있다. 이웃 마을에 아기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있었는데 멤논보다 나이가 많았다. 소문난 대단한 미인이었다. 제대로 본
적은 단 한 번뿐으로 나머지는 멀리서 보았을 뿐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지
만 어떤 얼굴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는 어렵다.
아기는 페르시아 태수가 원해서 배를 탔다. "대단한 출세다."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잖아." "진짜야, 이렇게 큰 보석을 가슴에
달았어." 어른들이 떠들어대는 말이 황금색으로 빛나며 소년의 뇌리를 올렸
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여자라면 이 세상의 온갖 부귀 영화
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형 멘톨이 용병이 되어 공을 세운 이야기
를 하며 용병이 될 것을 권유했을 때 쉽게 응했던 것도 이 추억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이왕 한 세상 사는 것이라면, 좋은 생활을 누리면서 살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몸을 내던져서라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가난한 것
은 지긋지긋했다. 용병에게는 입신의 길이 열려 있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 싸움을 잘하고 용기도 있다. 명석한 두뇌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
이 있다고 생각했다.
형 멘톨은 행운도 따라겠지만 상당한 재능과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형은
무용을 보여서 용병 대장이 되었고 프리지아 태수 알타바조스의 총애를 받
았다. 게다가 누나를 태수의 침실에 밀어 넣은 후 눈에 띄게 출세했다.
페르시아 왕가의 친척인 알타바조스는 한때 왕에게 반역하는 내란에 가담
했다가 패하여 마케도니아로 망명, 필리포스왕의 비호를 받았다. 당연히 심
복인 멘톨도 동행했고 동생 멤논도 이들을 따라 마케도니아 땅을 밟았다.
마침내 페르시아 궁정 내의 세력 다툼에 편승하여 알타바조스가 복권하자,
형제도 프리지아로 돌아온 다음 멘톨은 알타바조스의 딸 바르시나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아마 전도 양양한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 멘톨의 가슴은 두근 거렸을 것
이다. 그러나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고 말았다.
단숨에 멤논의 운이 열렸다. 형의 권익을 계승받게 되었고 알타바조스의
보살핌을 더욱더 확실히 다지기 위해 바르시나를 자신의 아내로 맞았다. 그
리고 재능과 학식을 나타내고 노력을 거듭하여, 국왕이 딜레이오스 3세로
바뀐 것을 계기로 국왕으로부터 총애를 얻어 페르시아 용병군 증진으로서의
기반을 구축했던 것이다.
고향 로도스섬에는 카친이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호두를 막대기로 쳐서
구멍에 넣는 놀이로 오늘날의 골프와 아주 비슷하다. 이 놀이에서는 힘이
강해도, 약해도 안 되며 적당한 힘의 조절이 중요했다.
멤논은 '인생은 카친이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재능도 노력도 적당
한 조절이 중요하다. 특히 용병의 입장은 더 더욱 그렇다. 용병에게는 뜻에
죽고 살 이유가 없다. 목숨을 잃는다면 모든 것이 허사이고 순조롭게 전쟁
에 이겨 출세하는 것이 용병의 길이다. 충성에는 하계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적당히 활약해서는 안 된다. 왕과 태수를 납득시
킬 만큼의 실적과 충성을 보이지 않으면 출세는 막연하다. 동료에게 빼앗기
게 되고 부하한테도 무시당한다. 겉치레나 체면, 입에 발린 추종으로 속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뜻은 적당한 정도에서 머물러 있고 행동도 그 정도에서 멈
춰 있다. 원래부터 그런 성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왕에게도 태수에
게도 인정받아 목숨을 잃는 일도 없다. 용병에게는 이런 재능이 필요한 것
이다.
바르시나는 외모가 아름답고 총명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웠다. 형
의 아내였를 때부터 동경했었다.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되었
다는 사실만으로도 용병의 길을 택하기를 백 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된 바르시나는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순종적으로 남편 멤논을 섬겼
는데, 딱 한 번 두 사람 사이에 찬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알렉산드로
스를 어떻게 생각하오?" 마케도니아군 동정 소식을 들었을 무렵일 것이다.
바르시나는 아버지 알타바조스가 페르시아로 되돌아온 뒤에도 얼마 동안 마
케도니아 궁정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를 잘 알고 있었다.
아내 바르시나가 대답하기를 머뭇거리자 답답해진 멤논은 다시 다그쳐 물
었다. 바르시나는 깊은 숨을 마신 뒤 천천히 내쉬고 나서 대답했다. "스승
의 뜻을 이어받아 그리스를 위해 싸울 생각을 갖고 있지요. 그것은 나름대
로 더없이 귀중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표정이 굳어지며 엄숙하게 대답했
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아닌데도, 멤논은 순간 불 같은 분노를 느꼈
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자각했다. "여자가 뭘 알고 떠드느냐!"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르시나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는 나가
버렸다. 별일 아니었는데 언제까지나 껄끄러운 듯한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
았다. '그 풋내기가.' 멤논이 마케도니아에 있었을 때는 알렉산드로스는 아
직 어린 나이였으므로 아무런 인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멤논은 군중 속에
묻혀서 씩씩한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출신이 좋을 뿐이다.' 당시의 멤논은
용병대 부장 정도의 처지였기 때문에 가벼운 선망을 느낄 정도로 신분이 너
무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멤논도 태수에 준하는 신분으로 상승하여, '나는 자신의
힘으로 이 지위에 앉은 것이다. 옥숨을 걸어서 말이야'라고 큰소리로 외치
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만큼 타고난 왕후 귀족에게는 적대감
을 품고 있었다.
일국의 왕이라면 높은 뜻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르시나가
그것을 격찬한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질투인지도 모른다. 그
날 밤 멤논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흠뻑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형이
죽었을 때조차도 눈시울을 약간 적셨을 뿐이었다.
눈물이 나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독한 술을 마신 탓은 아닐까. 어두운
정막 속에서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잔재가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페르시아 때문에
그리스인끼리 서로 죽이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근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워도 없어지지 않고 남는 것이 있었다.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것
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왕후 귀족으로 태어났었더라면.' 나의 재능
도 무용도 높은 뜻을 위해 바로 쓸 수 있었을까.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
해 보아도 평범하지 않으며 역사에 이름을 남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재능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심야에 혼자서 본
의 아니게 용병이 되었음에 애석함을 느끼고 만 것이다. 그런 말을 여자에
게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기에 너무 당황한 탓에 흘린 눈물일지
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는 새삼스레 안이한 생각을 가져서 마음의 당황함을 씻어
내기 위해서였음에 틀림없다. '알렉산드로스를 죽이겠다.' 흥분으로 몸이
떨려 왔다.
다시 결심할 겨를도 없이 마케도니아를 공격한 것은 페르시아 왕과 나눈
서약이자 사명이었고 입신 출세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내의
말에 대한 회답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지지 않는다.' 재능을 믿고, 충
성을 다하고... 그러나 적당한 정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라니쿠스강 전투를 앞두고 멤논은 두 가지 전략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진격하는 지역의 마을과 밭을 태워 적군이 군량과 마
초를 구할 수 없도록 하는 초토화 작전이었다. 또 하나는 그와 동시에 알렉
산드로스 진격 지점과 마케도니아 본국과의 사이에 길게 뻗은 동방 정벌의
노상 위에, 어딘가 공격하기 쉬운 해안에 대선단을 보내 라인을 끓고 배후
에서 적군을 맹렬히 공격해 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용병 대장은 동시에 두 가지 제안을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멤논
은 그렇다. 하나로 충분하다. 태수들은 교활해서 두가지를 말하면 "좋은 생
각이군. 참고하지" 하고는 애써 생각한 것을 가로챌 뿐 아무런 보상도 없었
다. 전부를 보이지 않고 조금씩 내보이는 것, 그것도 적당한 정도의 하나였
다.
게다가 두 번째 생각은 규모가 너무 커서 멤논의 재량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국왕의 지원이 필요하고 계획의 세부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첫 번째 안을 제시했지만 배포가 없는 다른 지휘관들의 반대
에 부딪혀 초토화 작전은 채택되지 않았고 오히려 멤논은 전장에서 쫓겨났
다. 그 결과 페르시아군은 그라니쿠스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다.
멤논의 판단이 정확했고 국왕 측근의 생각이 어리석었던 것은 사실이지
만, 할리카리나소스 공방전은 방심으로 인한 실수였다. 정직하게 말하면,
설마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고 알렉산드로스의 역량을 우습게 보기도
했겠지만, 멤논이 체험한 전투 상식으로는 성벽이 함락될 이유가 없었다.
함락될 이유가 없는 성채가 무너진 것은...
적군은 공격에 몇 번 실패해도 지치지 않고 함락될 때까지 계속 공격했
고, 마침내 알렉산드로스가 진두에 서 광기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무모한
총돌격을 감행하여 무너질 리가 없는 성벽이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멤논이 재빠르게 전장을 도망친 것은, 물론 이것도 그의 장점인 정도의
조절력이다. 전투는 항상 이긴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도 필사적
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질 것인가, 그리고 다음에 어떻게 이길 것인가, 이
것도 참모의 중요한 판단이다.
일단 부하들과 함께 고향 로도스섬으로 물러났지만, 그곳으로 딜레이오스
3세로부터 에게해 연안 지역 방위군 총사령관에 임명한다는 친서가 날아왔
다. 용병이 아닌 알렉산드로스와 싸울 페르시아측 해군의 총지휘관을 맡긴
다는 칙령이다.
진작부터 가슴속에 두었던 작전을 왕에게 전달했다.
이런 날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몇 가지 사전 교섭을 펼쳐 두었다. 마케도
니아 본국과 알렉산드로스 동정군을 맺는 라인을 절단할 뿐만 아니라, 오히
려 적극적으로 마케도니아를 공략하여 동정군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전략이
다. 제대로만 되면 마케도니아를 다시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두게 되는 것이
다.
아테네 주변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데모스테네스가 반마케도니아 세력을
모으고 있다. 코린토스 동맹에 참가하지 않았던 스파르타는 마케도니아에
대해 적잖은 적의를 품고 있다. 페르시아 대군을 중추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의 지원을 얻는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없는 펠라를 공격하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마케도니아를 지배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멤논의 보고에 대해 다시 달레이오스왕으로부터 친서가 날아왔다. 전면
지원이라는 문구가 움직이며 국왕의 환희가 넘치고 있었다. 300척의 군선과
10만 군대를 보증해 주었다. 군비도 "필요한 만큼 전부"라고 씌어 있었다.
전투 개시를 노리면서 그리스 제국은 물론이고, 마케도니아 내외에 잠재해
있는 친페르시아파 세력에 대해서도 "달레이오스 대왕의 이름을 걸고" 협력
을 요청할 것을 약속해 주었다.
달레이오스왕으로부터의 지시를 기다리는 사이에 키오스섬, 레스보스섬에
진공하여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에우보이아섬도 멤논의 움직
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에게해의 섬들은 페르시아군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
었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면 협력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이번엔 나에게
승산이 있어.' 멤논의 야심은 더 더욱 크게 부풀어 갔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르디온에서 앙카라로 군대를 전진시
키고 있었다. 아름다운 땅 카파도키아를 거쳐 남하하여 키리키아의 관문을
빠져 나와 타르수스로 들어갔다. 오로지 전진하는 것만이 젊은 국왕의 마음
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해군을 포기한 마케도니아군은 역시 에게해의 정보
에는 어두웠다. 동정길은 충분히 지배하에 넣었고 수호대도 남아 있었으니
연락망도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타이로이인 헤페스티온이 알렉산드로스의 숙소로 찾아왔다. "마음에 걸
리는 게 있어." "뭔데?" "창 밖의 낮은 가지에 독수리가 앉아 줄곧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어." 낮은 가지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
다. "음." "그러더니 보란 듯이 날개를 퍼덕이며 서쪽 하늘로 날아갔어. 마
케도니아에서 변괴가 일어날 거야." "무언가... 떠올랐어?" 알렉산드로스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아." 헤페스티온이 짧게 대답했다.
독수리는 신의 사자다. 하지만 독수리 한 마리가 서쪽 하늘을 날아갔다고
해서 그것이 마케도니아를 가리킨다고는 할 수 없고, 하물며 변괴의 징조라
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헤페스티온의 뇌리에 무언가
심상이 떠올랐다면 문제가 다르다. 헤페스티온에게는 예지 능력이 있다. 다
른 사람은 몰라도 알렉산드로스는 그것을 믿고 있었다."언제였어?" "어제.
밤새 생각했어."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어." "어째서?" "서장을 보냈거
든." "누구에게." "태후와 안티파트로스에게." "그래... " 헤페스티온이 모
호에게 수긍했다.
알렉산드로스 입장에서 보면 고국에 대한 염려는 하나밖에 없다.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서 원정지로 가끔 편지가 날아오곤 했는데, 내용의 태반이
안티파트로스에 대한 불만이나 비방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안티파트로스가
정사를 제멋대로 하며, 대부분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가신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한편 안티파트로스로부터 오는 편지는 태후의 반도 안 되지만, 정사 보고
에 덧붙여서 아주 짧게 한 줄 정도 "태후의 심기가 좋지 않으십니다."라고
넌지시 알려 주는 정도였다.
이 정도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태후는 있는 일 없는 일을 떠들
어대며, 안티파트로스는 거기에 일일이 대응하는데 수고하고 있음에 틀림없
었다. 안티파트로스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가신이다. 그런 믿음이 없다
면 모든 국사를 맡기고 국왕이 동정에 출진하는 일 따위는 도저히 꿈꿀 수
도 없다.
태후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적대할 리는 없다. 자식에 대한 애정은 보통 사
람보다 훨씬 뜨겁다. 알렉산드로스도 이 점에서는 어머니를 충분히 믿고 있
다. 하지만 올림피아스는 사태를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 아니며 편견이 있고
질투가 심한 데다 야망이 크고, 신에 관한 일을 차치하고라도 정사나 인사
에 관한 판단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안티파트로스 쪽이 훨씬 신뢰할
만한 인물이다.
태후가 재산을 뒤흔들려고 하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예측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알아듣도록 말하고 떠나 왔는데도 본성은 고쳐지지 않았다. 태후와
재상의 관계가 뒤틀어지면, 어머니에게는 이사오한 집념이 있기 때문에 당
치도 않은 일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이 수도 펠라에 남겨 둔 최대의 불
안이었다.
태후의 거듭되는 참언을 읽는 사이에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다고 직감했
고, 지난밤 상당히 심한 내용을 글로 적어 보냈다. 이번의 동정은 알렉산드
로스의 숙제이며 신께서 내리신 사명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중요사이다.
그 동정을 가능하게 하기위해서는, 안티파트로스가 정사를 봄에 있어 다소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내정을 맡긴 것은 유일 절대의 방책이다. 그
런 사정을 차근차근 써서 올림피아스에게 보냈다. "안티파트로스의 명령은
곧 국왕의 명령으로 생각하라고." "정말 그렇게 썼어?" "그래, 재상이냐 태
후냐라고 묻는다면 재상을 택한다고... 너무 지나치게 나오면 설사 태후라
하더라도 금고를 명할 것이야." "그 말도 썼나?" "썼지. 내 본심이야. 원정
을 성곡시키기 위해서는 안티파트로스는 빼놓을 수 없어." "사자답군." 헤
페스티온은 올림피아스가 어느 정도로 알렉산드로스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을 어린 시절부터 눈으로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이 모자의 정을 극도로 친밀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지만, 적어
도 알렉산드로스 쪽은 상당히 냉정한 것 같았다.
확실히 올림피아스는 그다지 훌륭한 인격을 갖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헤페스티온도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호감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질투에 사로잡히면 분별을 잃는 여자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이
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경의를 표하고 우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지 인간 자체로서는 안티파트로스 쪽이 훨씬 믿음이 갔다.
더군다나 안티파트로스는 국왕의 동정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재
이며, 역량이나 인격에 있어서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가 없다. 안티파트로
스 외에 홀가분하게 내정을 맡길 수 있는 인물이 달리 없다. 때문에 사정이
뒤틀어져서 태후냐 재상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이르면, 젊은 왕
은 재상을 택할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젠가 올림피아스의 존재가 국왕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헤페스
티온 자신도 진작부터 염려하고 있던 일이었다. "죽여서는 안 돼, 아직은."
알렉산드로스는 친구의 의중을 훔쳐보듯이 중얼거렸다. "무시무시한 말인
데." "헤페스티온은 무서워." 알렉산드로스는 웃으면서 밝은 목소리로 대꾸
했다.
헤페스티온은 이 말을 들으며 속으로 '사자는 원정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작정인가 보군' 하는 생각을 하며 인식을 새로이 했
다. "펠라는 너무 멀고 사자는 대왕이야. 손을 더럽히는 일은 내가 대신하
겠어." 헤페스티온도 웃는 얼굴로 말하며 평소의 결의를 전했다. 알렉산드
로스는 웃는 얼굴로 말하며 평소의 결의를 전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말꼬리를 돌렸다. "안티파트로스에게도 적어 두었어.
겸손할 필요 없다고, 지금부터 태후는 비정상적일 때가 있을 테니 몸조심하
라고도." 뜻하는 것은 충분히 알았다. 안티파트로스는 음식에도 충분히 주
의를 기울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까지 심하게 적어 두었으
니 펠라의 일은 이제 걱정할 것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독수리 한
마리가 서쪽 하늘로 날아간 것은 태후와 재상의 갈등을 암시한 것뿐일까.
만약 그렇다면 대책은 얼마든지 있지만... 헤페스티온은 이유도 없이 불쾌
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불안은 이때도 적중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앙카라 진영에 두
가지 정보가 날아왔다. 하나는 암피폴리스의 수호 대장으로부터 적의 움직
임과 그 근거가 되는 정보를 소상하게 적은 편지였다. "페르시아 해군이 일
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500척에 가까운 대선단이 마케도니아에 대한 총공격
을 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적의 용병 대장 멤논은 에게해의 섬들을 공략하
여 각지의 영주들을 회유하였고, 그리스 제국에게도 동맹을 촉구하고 있습
니다. 물론 이 움직임도 페르시아 해군의 행동과 목적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 소식의 진위를 망설이고 있는 진영으로 얼마 뒤에 또 하나
의 정보가, 펠라의 안티파트로스에게서 긴급 극비 정보가 날아왔다. "페르
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의 명령에 따라 멤논이 총지휘관이 되어 이미 면밀
한 마케도니아 공략 작전이 세워져 있고 부분적으로는 실행에 옮겨지고 있
습니다. 상당수의 페르시아 군선이 북으로 침로를 돌리고 있는데 이것은 칼
키디케 반도 서해안에 거점을 만들어 단번에 펠라를 공략하려는 작전으로
추측됩니다. 군대는 페르시아 병사, 용병을 다 합해서 10만에서 15만 정도
로 이미 키오스섬, 레스보스섬, 에우보이아섬은 적군에게 협력할 것을 결정
했고 아테네의 데모스테네스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케도니
아 왕은 군대와 함께 급히 귀국하십시오." 이렇게 다급해진 정세를 호소하
는 서장을 보냈다. 정보의 정확도는 높았다.
국왕을 중심으로 헤타이로이들을 모아 긴급 회의를 열었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보고를 들어 보면 오히려 충분히 있
을 수 있는 일이었다. 페르시아 왕이 어느 선까지 멤논을 믿고 대군을 맡길
것인가가 관건이며, 믿고 맡겼다면 이 정도의 일이 일어나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마케도니아로서는 달레이오스가 거기까지 용병 대장을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대로 대군이 공략해 온다면 펠라는 위험하다. 안티파트로스가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 해도 현재의 마케도니아 잔류군으로서는 견뎌 내지 못한
다. 정세가 마케도니아에게 불리하게 비치면,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제국
과 더불어 테살리아나 트라키아 등의 주변 지역의 불만 분자가 반기를 들
것이다.
회의에서는 발언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모두가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을 걱
정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분노에 차서 시종일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결코 물러
서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날아온 정보가 사실이라면 펠라는 함락되고 마케
도니아는 페르시아에 점령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때마침 국왕이 대군과
함께 조국을 비워 두고 있으므로 안전할 리가 없다. 방위군의 사기도 눈에
띄게 저하되어 간다. 마케도니아를 지지하는 동맹국도 점점 데면데면하게
굴고 이제 전진할 건지 후퇴할 건지, 결론은 명백하다.
그래도 알렉산드로스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보다 자신의 강렬한 의지를
버릴 수 없었다. 이 갈등을 해결할 단서를 찾아 회의는 공연히 침묵을 계속
할 뿐이었다. "멤논의 아내가 바르시나던가?" 알렉산드로스가 느닷없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네. 10년 가까이 펠라 궁전에 살았고 알타바조스의 딸입
니다." 파르메니온이 대답했고 다시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멈출 수는 없
지." 국왕이 결단을 내렸다.
약간의 수호군을 프리지아에 남겨 두고 본진은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일단
서쪽으로 전진할 것을 결정했다. 출발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조용히 분노했다. 분노가 치
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럴 때가 가장 무섭다.
할 수만 있다면 저주를 퍼부어 멤논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언젠가 반드
시 내 손으로 죽여 버리겠다.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겠다.' 그것을 지금 당
장 할 수 없는 현실이 분할 따름이었다. 안타까움에 어금니가 부득부득 갈
렸다.
멤논에게는 지금까지 새 차례나 수하에 들어올 것을 청한 일이 있다. 그
러나 언제나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스인이 페르시아 용병 대
장이 되어 뭐가 좋다는 건지. 결국은 이용만 당할 것 아니겠는가. '어리석
은 자식.' 어금니에 금이 갔다.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
다.
멤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을 만난 기억이 있다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아무 기억도 없었다. 듣자 하니 상당한 기량을 갖춘 무인이라던데, 뜻은 어
디에 있는 건가. 한번 더 최후의 서장을 보내 보자.
바르시나 그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자였고 누구나 그녀
의 현명함을 칭찬했다. 페르시아 왕가와 관계 있는 알타바조스의 딸이면서
도 그리스 교양을 습득하여 지성의 빛을 유감없이 발하고 있었다. 그리스극
을 사랑하고 호메로스의 시를 좋아하는, 결코 평범한 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영웅의 뜨거운 의지에도 동경을 품고 있는 여자가 아닌가. 호메로
스가 그렸던 현명한 여자처럼...
알렉산드로스는 잠시 머리 속에 젊은 발르시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유
없이 숭고한 인품을 상상해 보았다. 혹시 바르시나가 멤논을 설득해 주지
않을까 하고 잠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리는 듯한 심정으로 몽상을 해보
았으나, 금세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빠져 나갔다. '바보같이,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 바르시나는 페르시아 여자가 아닌가.' 한순간이라도 여자에
게 기대를 걸었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제아무리 훌륭한 여자라 해도 뻔한
일이다. 잠시 헛생각을 했을 뿐이다.
뜻밖에도 꿈속에 바르시나가 나타났다. 바르시나의 머리 위에는 열여섯
개의 동그란 빛이, 마케도니아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바
르시나는 역시 마케도니아 편을 들어 주었군' 하는 생각에 통쾌해 하는 순
간, 갑자기 바르시나의 얼굴이 변했다. '아냐, 바르시나가 아니야. 아테네
여신이야'라고 깨닫자 행동 거지가 여신임을 나타내고 있다. "마케도니아에
영광 있으라." 도저히 여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낭보다." 이것은 분명히 남자 목소리다. 목이 쉰 노인의 음성이
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스는 눈을 떴다.
이때 멤논은 레스보스섬에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났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게도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실감이 물결처럼 밀어닥쳐 왔다. 날마다 마음속에서 밀물처럼
다가왔다.
낮에는 산하에 모여든 군선 수를 헤아리고 저녁에는 새로운 부하들과 주
연을 펼치며 기쁨을 나누었다. 밤에는 다가올 승리를 생각하며 뒤척이다가
혼자서 가슴이 들떠 자리에 들었다. 전혀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마음은
최고조로 흥분되었다. '마케도니아 왕이 된다.'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전쟁이며, 여기에서 이기면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마케
도니아 지배를 위탁받겠지. 싫어도 그렇게 된다. 로도스섬의 보잘것없는 선
주의 아들이 마케도니아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런 흥분을 어떻게 억누를 수
있겠는가.
어차피 잠들 수 없다면 한번 더 카로니만에 정박하고 있는 군선의 모습을
바라보자.
벌써 동녘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 오고 서쪽 하늘에 걸린 달은 점점 그 빛
을 잃어 가고 있었다. "수고하네." 위병에게 근엄하게 말을 건네며 해안의
구릉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올라갔다. 지난밤의 취기가 아직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무겁고 약간의 구토기를 느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몸을 최대한 혹사시키게 될 것이다. 이제 곧 마
흔 살이 되지만 젊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멤논은 몸을 좀 따뜻하게 해야겠
다는 생각에 가파른 언덕길을 단숨에 뛰어올라 갔다.
숲을 헤치고 바위산 정상에 서면 눈 아래로 수많은 군선이 멀리 한눈에
내려다보이겠지. 모두가 멤논의 지령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명령 하나만
내리면 배는 북상하여 마케도니아를 공략한다.
달려감에 따라 점점 숨이 가빠졌다. 심장의 고통이 귀에 들렸다. 고동 소
리가 고전을 호소하는 북소리처럼 울렸다.
조금만 더...
구릉의 정상을 가까웠다. 멈춰 서서 숨을 깊게 들이쉬려 했다. 숨이 매우
막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누구... " 하고 부르다가 심한 구토를 느
꼈다.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곳은 바다 저편이다. 펠라일지도 모른다.
머리가 멍해지고 북소리가 둥둥 하며 들리다 멈췄다.
"사자왕, 낭보입니다." 희미한 어둠 속에 파르메니온이 서 있는 것 같았
다.
의식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여기는 앙카라 진영이며 자신을 깨
우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르시나도, 아테네 여신도 아닌 부장군 파르메니
온 같았다. 노인 목소리라고 들은 것이 이제야 납득이 갔다. "무슨 일이
오?" "멤논이 죽었습니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사실이오. 언제?" "사흘 전 아침이라 합니다." "어디에서?" "레스보스섬에
서, 미티레네로부터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레스보스섬은 구석구석까지 페
르시아 해군의 수중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섬 최대의 도시 미티레네는
멤논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원조와 보호를 바라고 있기 때문
에 정보도 얻기 쉬웠다. 더구나 멤논의 죽음은 진영 밖에서 일어난 일같고
발견자는 몇 명의 양치기였는데 함구령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새어 나가 버
린 모양이었다. "병사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더구나 파르메니온의 보
고라면 정보의 정확도는 아주 높다. "당장 조사한 자를 데리고 오시오."
"이미 왔습니다." 멍청하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웅의 재빠른 판단이 스
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의 총출동은 중지한다. 필로타스가 이끄는 군대
만 펠라로 움직이게 하고 잔류군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하도
록 하라. 멤논의 죽음이 사실이라면 이제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멤논의
조카인 파르나바조스라는 자가 있는데, 이자는 무능한 녀석입니다." "무능
은 대환영이다." "정말입니다." 계속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날이 감에 따라
에게해의 섬들에서 작은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멤논의 죽음과
직접 결부되는 것인지, 원래부터 페르시아 해군에 대한 반발이 잠재하고 있
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반격은 각지로 불똥이 번져 마케도니아
총공격의 기운은 적잖이 약해졌다. 파르나바조스뿐 아니라 아마 다른 무장
들도 멤논처럼 유능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유일하게 멤논만이 예외였던 모
양이다.
확실히 결과적으로 보자면 멤논처럼 유능하지는 않았다. 그에 대한 개인
적인 신뢰가 널리 주변 세력에 침투해 있었을 뿐이었다. 멤논이 지휘권을
쥔다는 전제하에 대부분의 세력이 가세를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일 먼
저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
다. 일단은 파르나바조스 등에게 전권을 맡겼지만 그후의 상황을 보고 멤논
만큼 역량이 없다며 단념했다. 대체로 대국의 왕은 변덕스러운 법이다.
달레이오스는 페르시아를 위해 이미 몇 가지 눈부신 공을 세웠던 멤논에
게 홀딱 반해 있었다. 그랬으니까 해군을 맡길 마음도 생겼던 것이고,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없었던 것이다.
총애하는 신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갑자기 열기가 식은 달레이오스는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되겠어, 내가 나서야지' 하고 방침을 원점으로 돌리
고, 육지전에서 당당히 알렉산드로스 군대와 대치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멤
논이 의도했던 마케도니아 본국 총공격은 알렉산드로스도 예측할 수 없었듯
이 주변 세력 지도에서 생각해 낸 하나의 기책이며, 멤논으 집념 없이는 쉽
게 실행할 수 없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정세 변화가 확실해짐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조금도 안도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 번 더 배후 라인을 굳건히 다지고 나서 다시 동정
으로 군대의 항로를 되돌렸다. 밀레토스에서 해군을 해산했던 실수를 인정
하고 바다 사정에 정통한 헤게로코스 등에게 명령을 내려 다시 선단 편성을
착수시켰다. 요며칠 동안 허둥댄 것을 생각하면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늘이 도우시는구나." 알렉산드로스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헤페스티온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신의 아들이라면 저절로 보이는 것이 있지." 아리스토텔레스가 해준 말을
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멤논의 죽음은 심장 발작 때문이었으며 그의
형도 같은 병으로 급사했다. 이 형제의 죽음은 그런 채질 탓이었지만, 알렉
산드로스는 그 사실을 몰랐으며 알았다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멤논이 죽지 않았다면 동정 계획은 허물어져
버렸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의 소원에 응해 저
절로 일어난 일임에 틀림없다. 헤페스티온이 한 마리 독수리의 모습을 본
대로 본래는 고국 마케도니아에 위기가 닥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것의 탐구를 수행시키기 위해 신이 신의 아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알렉산드로스는 다
시금 그것을 굳게 믿었다.
이날을 계기로 알렉산드로스는 조금씩 달라졌다. 마음의 어두운 부분이
작아졌다.
마치 거대한 버섯을 늘어 세운 것 같은 카파도키아의 기이한 절경도 갈
길을 서두르는 알렉산드로스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길을 남하하여 타우
로스 산맥으로 다가갔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이 연이어진 봉우리는 하
얗게 눈을 이고 있다. 길을 전진해 갈수록 양측 절벽은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있다.
이 다음은 키리키아의 관문이라 불리는 협곡이 기다리고 있다. 산맥 골짜
기를 지나는 협로는 그 근방에서 더 더욱 좁아져 말 한 필과 사람 네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 계속되었다. 고대로부터 이곳을 지나 군
대를 전진시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알렉산드로스에게 다시 행운이 내렸다. 페르시아측 수호
대장은 키리키아의 관문을 필사적으로 지키기보다는 전에 그라니쿠스강에서
멤논이 제시했던 전략, 즉 초토화 작적으로 마케도니아군을 곤경으로 몰아
넣을 것을 떠올렸다. 싸우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때문에 키리키아의 관문의 방비는 허술한 상태였고, 그 낌새를 알아챈 알
렉산드로스는 야습을 감행했다. 그러자 소수의 수호대는 순식간에 도주하게
되어 마케도니아군 대부분이 저항다운 저항도 받지 않고 그 어려운 난관을
지났다. 그것만이 아니라 초토화 작전은 키리키아의 관문에서부터 해안 인
접 도시 타르수스까지의 평원에 불을 지를 예정이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너무나도 민첩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미처 불을 붙이기도 전에 먼저
수호대가 패주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고, 알렉산드로스는 단 한 명의
병사도 잃지 않고 번영의 도시 타르수스로 입성했다.
계절은 초여름이었다. 낮에는 더위가 심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차가웠
다. 에게해의 해풍을 받아 습기도 많은 곳이다. "날이 몹시 덥군." 알렉산
드로스는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흐르는 키드노스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겼
다. 키드노스강은 수량도 풍부하고 여기저기에 작은 폭포도 있어 물은 의외
로 차가웠다. 잠시 동안은 헤타이로이들과 수영으로 우열을 겨루었다. 그러
나 추위 때문에 강 기슭에 올라왔을 때는 입술이 죽은 사람처럼 보랏빛으로
변했고 심한 오한이 들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경련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진영에 옮겨 놓고 전신을 마사지한 덕분에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회복되었
지만, 열이 아주 많고 발한이 심했다. 급기야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더니 여
기저기에 청색증이 나타났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급성 폐렴에 해당할까. 잠
자는 시간조차도 아까워하는 생활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젊은 육체였지만
피로가 쌓았던 것이다. "멤논이 동행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나쁜 소문이
돌 정도로 용태가 심상찮았다.
누구의 눈에도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원정군에는 몇 명의 의사
가 수행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당황하여 허둥대고, 어떤 사람은 부들부
들 떨고, 만족스럽게 치료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특히 외상과 달라 이
런 종류의 병에는 어떤 의사도 지식이 별로 없었다.
사흘 낮 사흘 밤 고통이 계속되고 나흘째 이른 아침에 파르메니온으로부
터 사자가 달려왔다. 파르메니온은 본진를 떠나 키리키아의 관문 북동을 점
령한 야만족을 토벌하고 있었는데, 한참 전투중에 측근의 사자를 보낸 것이
다. 사자는 국왕의 용태를 확인한 후 머리맡에 꿇어앉아, "빠른 쾌유를 기
도드립니다."라며 파르메니온으로부터의 전언을 엄숙하게 전했다. 알렉산드
로스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전황은 어떠하냐?" "머지않아 승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이렇게 속삭이면서 이불 밑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국왕의 손을 찾아서 왕의 눈을 응시하며 살며시 편지를 쥐어 주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수고하게. 파르메니온에게
곧 좋아질 거라고 전해 주게." 사자가 물러갔다.
알렉산드로스가 친서를 읽은 것은 그후 모두 다 돌아가고 홀로 침소에 남
아 있을 때였다. 그리고 같은 날 정오 가까울 무렵, 필리포스라는 이름의
나이 든 의사가 말을 달려 진영의 침소에 도착했다. 이름만 선황과 같을 뿐
아무런 혈연 관계도 없는 시의로서, 오래 전부터 펠라 궁전에서 봉사해 오
던 터라 어린 시절의 알렉산드로스를 잘 알고 있었다. 의사로서 알렉산드로
스의 성장기의 건강을 지켜보았던 남자이다. "왕자님!" 옛날 그대로의 호칭
을 부르며 병실로 달려왔다. 허둥대며 달려온 발걸음에 이 의사의 나이와
충성이 드러났다.
알렉산드로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숨쉬기가 힘들고 잠자는
것조차도 괴로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아아. 의사 할아버지군." 약간
눈을 뜨며, 왕도 옛날식으로 불렀다. "언제 왔어요?" 의사 필리포스는 그리
스 반도 서해안 지방 아칼나니아 출신으로 이번 원정에도 알렉산드로스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앙카라에 친척이 있기 때문에 잠시 그곳에 머물고 있었
던 것이다. "지금 금방 왔습니다. 변고를 듣자마자." 대답을 하면서도 바지
런하게 움직여 손바닥으로 열을 재고 호흡 상태를 확인하며 가슴에 귀를 갖
다 대더니 천천히 미소를 떠올렸다. "왕자님의 몸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
다." "그렇지." "물약을 드리겠습니다. 약간 독한 약이니 마시기가 거북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나으셔야 하니... "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제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의사가 내미는 약사발을 받아 들고 약을 먹기 전에 한마
디했다. "이것을 봐주게." 알렉산드로스는 이불 밑에서 사자에게 받은 편지
를 건넸다. "예. 뭡니까?" 노의사는 의아스러운 얼굴로 왕에게서 서장을 받
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물약이 든 약사발을 손바닥으로 감
싸 쥐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의 태도를 관찰했다. 노인의 눈썹이 일그러
지더니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면서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천천히 약사발을 비우고 나서 노의사가 시선을 돌리기를
기다렸다. 파르메니온에게 받은 친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밀고 있음.
의사 필리포스는 페르시아 왕과 내통하여 마케도니아 왕의 암살을 기도한다
는 의혹이 있음." "걱정 마세요. 내가 의심할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몇 번이나 내 목숨을 맡겼잖아요." 양손을 펴서 물약을 완전히 마셨다는 것
을 몸짓으로 보였다. 비틀거리면서 쓰러진 노의사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
기 시작하더니 소리 내어 울었다. "감사합니다. 말을 달려서 날아온 보람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당신만한 의사는 없소." 그리고 한동안 노옹의 기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알렉산드로스는 "믿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도 자기 자신도"하고 혼자말
처럼 중얼거리며 드러줍더니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믿는다고 정했으면 무시무시할 만큼 대담하게 믿는다. 그것이 알렉산드로
스였다. 그러나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목숨을 맡겼던 의사라 할지라도 이렇
게까지 신뢰해도 괜찮은지 그것은 의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마 자신의
마음속에서 신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헤타이로이 클레이토스가 입을 열었
다. "사자왕은 그런 사람이야, 한번 믿는다면 끝까지 믿어. 마치 영리한 말
이 사람을 알아보듯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아닌지 순간적으로 알아볼 수
있단 말이야." 이 말이 일생 동안 영리한 말처럼 충실하게 알렉산드로스에
게 봉사했던 클레이토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이 사실을
기억해 두자.
의사 필리포스의 치료가 효과를 보여 알렉산드로스의 통증도 누그러지고
병세도 차도가 있었지만, 완쾌해서 체력을 회복하기까지에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현재의 타르수스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터키의 지방 도시에 불과하지
만, 당시는 상당히 변화했던 것 같고 지금보다 좀더 바다에 가깝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 시대부터 300년 정도 후에 고대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처음 만나 역사적인
사랑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 도시 일대였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뒤에 성바
오로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이곳에서부터 경이적인 전도를 위한 포교 여행
이 시작되었고, 도시 중심부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다녔던 교회가 세워졌고
또한 바오로의 생가 유적지가 남아 있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어디에서 회복
의 나날을 보냈던 것일까. 그와 관련된 흔적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르수스에서 50킬로미터 남짓 북쪽에 있는 그리스 협곡에는 "나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알렉산드로스의 말을 고대 그리스어로 새려 넣은 비석이 남
아 있지만, 이것도 알렉산드로스보다 훨씬 후대인 고대 로마 시대에 접어들
고 나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런 그렇고, 병이 쾌유된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
을 수는 없었다. 병상에서도 그의 야망은 한층 더 커져만 갔다.
동으로, 동으로!
파르메니온을 선발대로서 출진시킨 뒤 자신은 타르수스의 인근 도시 솔로
이를 가볍게 지배하에 넣었는데 이것은 병한 후의 준비 운동이라는 느낌마
저 들었다. 일생을 전쟁으로 지내온 왕에게는 병상에서 일어난 후 몸을 푸
는 방법 또한 가벼운 전투였던 것이다. 할라카르나소스 수호를 맡긴 프톨레
마이오스의 다른 동료들에게서 카리아 주변의 적대 세력을 평정했다는 낭보
를 들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성대한 축제를 열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
오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타르수스에서 보낸 두 달은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억울한 정체기이지만, 역
사를 결과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반드시 유감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
는 변함없이 타고난 행운아다.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가 대군을 이끌고 시리아의 관문 동쪽에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시리아의 관문은 소아시아에서 시리아 지방으로 들어가는
협곡이 있는 통행하기 어려운 곳이다. 파르메니온에게 보고를 받은 알렉산
드로스는 페르시아의 대결을 생각하고 분발하여 곧바로 군대를 움직였다.
맛로스를 빠져 나와 이수스를 지나 시리아문 서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수
스에 부상병을 남긴 것은, 병사 중에 키리키아 열병이라는 전염병을 앓느느
사람이 많아서 동행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 근방을 후위 기지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단숨에 시리아의 관문을 빠져 나와 적의 본부를 급습하는
작전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페르시아 군대는 15만, 아니 40만 또는 60만
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대왕국에 결맞는 대군이 시리아 평원에 주둔하
고 있었다. 한편 마케도니아군은 4~5만 정도로, 수직인 면에 있어서는 압도
적으로 페르시아군이 이기고 있었고 평원에서 싸운다면 수가 많은 쪽이 유
리한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용기 있는 자가 이긴다"는 말처럼 돌격하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최고의 전술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때의 공격이 그대
로 실현되었다면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 되었을 것이다. 군대의 규모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뜻밖에도 페르시아군 쪽이 먼저 초조해져서 동요하고 말았다.
평원에 주둔하며 알렉산드로스가 공격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알렉산드로스가 겁먹은 것은 아닐
까", "우리들은 여기까지 군대를 진두시켰으니 기다리고 있는 것만이 능사
가 아니다", "마케도니아군은 이 근처 지리에 어둡다. 오히려 배후에서 공
격하면 간단히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말이 퍼졌다. 마땅히 준수했어야 할
방침을 바꿔 버렸던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알렉산드로스 쪽도 평원에 주둔하는 페르시아군을 급습하
는 길을 택했을 터인데 왕의 병이 모든 것을 빗나가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달레이오스를 끌고 나쁜 방향으로 회전했다고밖에는 말
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결단이었다.
바다를 따라 남하하는 마케도니아군과 다른 루트를 찾아 신중을 북상하여
배후를 노리는 페르시아군은, 너더댓새 사이에 산맥 하나를 사이에 끼고
스치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행군이 감행되었고, 페르시아군은 2~3일 전에 알
렉산드로스가 통과했던 이수스 마을을 공격하여 그곳에 남겨진 마케도니아
의 부상병을 참살하면서 대단한 기세를 올렸다. 마케도니아군은 신중에 그
런 루트가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던 것이다. 지리에 어둡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지도가 갖춰져 있던 시대가 아니다. 알렉산드로스 전공에는 이런
종류의 위험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다. "뭐, 페르시아군이 이수스에?" 알
렉산드로스는 기겁을 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의 대군은
분명히 배후에 있었다. 남다마스쿠스에도 상당한 군대가 주둔하고 있를 것
이므로 대단한 협공을 펼칠 모양이었다. 그토록 대단한 사자왕도 간담이 서
늘해졌다. 그러나 완전히 돌변하여 더 적극적이 되었다.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재빠른 판단이 알렉산드로스의 뇌리를 멤돌았다.
이수스는 바다의 산을 끼고 있고 게다가 몇 개의 강이 흐르는 기복이 심
한 지형이다 바로 전날 지나왔던 길이라 잘 알고 있다. 대군에게 유리하다
고만은 말할 수 없다. 기동력이 모든 것을 말한다. 신속한 행동과 투지, 그
것만 있으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지휘관을 불러모아 격문을 띄웠다. 온화하게
시작한 연설은 점점 열기를 띠었다. "제군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위험을 극
복해 왔으니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싸움도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하면 반드시 이긴다. 이것은 어느 사이에 승자의 지위에 있는 제군
들이 패자를 맞아 치르는 싸움밖에 안 된다. 적군은 탁 트인 평지에서 험난
한 협곡으로 군을 옮겨 왔다. 이것이 얼마나 아군에게 유리한 것인지 실전
경험을 가진 제군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신의 처분은 이미 내려져 있
다. 적은 스스로 폐배의 길을 택했다. 더구나 적은 예부터 겁 많고 나약하
다고 알려진 페르시아인이 아닌가! 게다가 의지가 약한 용병들이다. 자유민
으로서 싸우는 제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적병의 야만성은 제군들의
동료를, 부상 병사를 무참하게도 고통 속에 죽어 가게 한 그 잔학상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신들께서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제군
들을 이끄는 이 사람은, 페르시아왕과 싸우는 이 사람은 다름아닌 신의 아
들 알렉산드로스다." 경솔하게도 배후에 둘러싸인 실태 따윈 내색도 하지
않았고 그것조차도 신의 은혜라고 말했다.
연설은 훌륭했다. 자신도 흥분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열변 후에 알렉산드로스는 지난날 공을 세웠던 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거명하여 그 공적을 칭송하고 격려하며 논공 행상
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것이 최후의 일전이 될 것이라는 것도 선언했다. 예
전에 그리스인이 현재의 자신들보다 훨씬 빈약한 군대로 페르시아군에게 공
격을 가했던 역사도 덧붙여 설명하여 일동을 고무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연
설이 끝났다. "마케도니아 만세!" "페르시아를 물리쳐라." "반드시 이기
자." 장병들은 저마다 외치며 국왕 주위에 몰려들어 악수를 나누었다. "출
진이다." "겁내지 마라." 대단한 분발이었다.
전장에서의 공복은 두려움을 더하게 만들므로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병사
들에게 충분한 식사를 제공하도록 했다. 또한 체력을 쌓는 것은 병사들을
침착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댜ㅏ. 예부터 모든 명장들이 다 알고 있는 전
략의 하나이다. 식사가 끝난 뒤에 각 부대 지휘관을 모아서 면밀한 작전을
짰다. 누가 어디를 담당하고,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공격을 취할 것인가,
유사시의 급격한 전환도 포함하여 세심하게 검토하는 헤타이로이들의 얼굴
이 빛났다. 용장 프톨레마이오스도 카리아로부터 급히 달려왔다.
간발의 차도 두지 않고 출진을 명했다. 밤을 세워 행진하여 새벽녘에 전
장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전군에게 휴식을 취하게 한 다음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많은 수호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드렸다.
결전의 땅 이수스는 휘우듬하게 굽은 곳과 접하는 해안 지대로, 급경사진
산등성이가 바로 근처에까지 인접해 있고 해안선으로 뻗은 평지의 폭은 1~2
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 뒤편에는 피나로스강이 흐르는 복잡한 지형으
로 약간 높은 절벽이 있으면서도 여기저기에 소나무숲이 흩어져 있다.
일출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는 지형을 살펴보고 진영을 정비했다. 페르디카
스, 프톨레마이오스, 크라테레스 등등 헤타이로이들이 각자의 군대를 이끌
고 요소요소를 굳건히 지켰다. 좌익 총지휘는 파르메니온에게 맡기고 알렉
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와 함께 우익에 서서 기병대 지휘를 맡았다.
페르시아측의 진열을 언뜻 보아서는 공격할 것인지 방아할 것인지 잘 파
악할 수가 없었다. 공격을 위해서 여기까지 진군해 왔을 터인데 곳곳에 방
비 군사와 방어용 무기를 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
다.' 접전을 앞두고 오로지 방어만 굳히려고 드는 군사도 많다. 알렉산드로
스는 그것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알렸다. "이미 적은 우리한테 패하고 있
다.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다." 전군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달리면서 각 부
대마다 공적 있는 병사의 이름을 불러 주며 미칭을 붙여서 칭찬하고 격겨했
다. 병사들은 환호성으로 응하며 사기가 충천했다. '적의 약점은 어디일
까?'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은 독수리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피 속에 흐르고
있는 본능적인 직감일지도 모른다. 혹은 약점이라 믿고 과감하게 돌격하는
것이 적의 진영에 약점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령을 받고 오른
편의 보병대가 천천히 전진하다가 정면의 적과 작은 전투를 벌이자마자 뒤
로 물러난다. 추격해 오는 적의 진형이 흐트러지고 틈이 생기면 그곳을 노
려 강력한 기병대가 공략한다. 적의 측면을 덮쳐 적진 뒤쪽을 빈틈없이 둘
러싼다는 것이 작전의 요점이었다. "나가라." 예상대로 적의 진형이 흩어지
는 것을 보고 알렉산드로스는 애마 부세팔로스에게 채찍질을 했다. 늘 그랬
지만 이번에도 역시 선두에 서서 힘차게 달렸다.
부세팔로스는 잘 알고 있다. 그때까지는 주인이 명하는 대로 조용히 처신
하고 있었지만, 호령과 함께 그도 말갈기를 흔들어 다른 말들에게 '실수하
지 마라. 나를 따르라'는 신호를 보낸다. 말들의 사기도 어마어마하다.
페르시아군은 바다 쪽에 주력을 두고 공략해 왔다. 이들을 맞이하여 진격
을 저지시키는 것이 파르메니온의 역할이며, 끝까지 버티는 동안 알렉산드
로스가 이끄는 기병대가 적의 배후를 둘러싸더니 보병대가 밀어닥쳐서 적을
패주시킨 다음 남겨진 자들을 협공하는 것이 마케도니아군의 기본적인 전술
이었다. 이수스 전투는 여기저기 곳곳에서 격심한 공방이 있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이 작전이 훌륭하게 성공했던 일례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니발
에서부터 카이사르까지 대부분의 고대 무장들이 참고로 했던 전술이기도 했
다.
페르시아군 총지휘관 달레이오스 3세는 전차를 타고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목표는 페르시아 왕 바로 그였다. 바싹 뒤쫓던 적병을 쫓아
버리고 몇 명의 기마대가 페르시아 왕에게로 다가갔다. 부세팔로스도 달레
이오스를 노리고 곧바로 질주했다.
갑자기 화제가 바뀌지만, 독자 가운데 이탈리아의 나폴리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도시의 국립고고미술관에는 이수스 결전
을 그린 저명한 모자이크화가 걸려 있다.
폼페이 화산 잿더미 아래에서 발굴된 벽화로서 곳곳이 볏겨져 있는 것이
유감이지만, 결전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와 달레이오스의 표정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그 치열했던 전투의 전모를 짐작할 수 있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다. 대부분의 미술서나 역사서에도 복제되고 있는 명장면이다.
애당초 원화를 그린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본 광경은 아니겠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 전투 당시의 현장감까지 느껴진다.
달레이오스는 페르시아군의 낙승을 믿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뿐 아니라
페르시아 대군에게 대항할 적군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고 생각
하고 있었고, 실제로 군대의 규모도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상식을 벗어난 돌격을 받고 진영은 뿔뿔이 흩어졌
고 도주하는 자도 속출했다. 그 순간에 발 옆에 알렉산드로스가 무서운 기
세로 공격해 왔다.
눈을 크게 뜨고 창을 던지려 하는 알렉산드로스, 투구 아래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달레이오스, 빽빽히 들어선 창살과 쓰러지는 말, 이수스 대
전에서는 모자이크화에 묘사된 모습 그대로 두 사람의 대왕을 접근시켰던
순간이 실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페르시아군에게도 승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투의 해방은 병사의 수
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 또한 어느 정도 의미를 갖고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우익 군사가 적군의 측면을 갑자기 공격하고 뒤에
서 에워싸는 협공을 시작할 때가지 과연 파르메니온이 이끄는 병사들이 견
딜 수 있을런지. 만약 견딜 수 없다면 반대로 마케도니아군이 협공을 당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군의 목숨을 불사르는 맹공격을 받고 적의 일부는 패주하였
고, 그것을 지켜보던 달레이오스가 "안 돼!"라고 외치면서 자신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재빨리 전차의 말고삐를 뒤로 돌려 버렸다. 좀더, 조금만 더
페르시아 왕이 머물러 있었더라면 파르메니온 군대도 패색을 보이기 시작했
었을 것이고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길 것만을 생각하고 공략했던 알렉산드로스와 전체적인 이해 득실을 생
각하고 행동한 달레이오스, 총대장의 용기만이 아니라 철학의 차이가 승패
를 가른 전투였다.
이 전장에서 시종 알렉산드로스와 행동을 함께한 프톨레마이오스는 국왕
의 눈부신 활약을 지켜보면서 '과연 사자왕이야' 하고 환희에 떨며 자신을
고무했지만, 승리가 확실해짐에 따라 스스로 경탄했고 그 경탄은 어렴풋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4~5만의 군세로 20~30만이 넘는 적을 패배시킨 것이다.
'언제나 잘되리라는 법은 없지'라는 판단이 일순간 프톨레마이오스의 뇌리
를 엄습했지만, 두려움의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혼자서 가만이 생각했다.
사자왕은 이긴다. 언제, 어디에서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있어서 그것은
확신해 가까웠다. 사자왕은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사자왕은 무언가 어긋나고 있다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희미한 어
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곰곰이 생각했다. '철학의 차이인가.'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 그 득실
이 어떠한가, 그런 걱정이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선을 추구하는 일, 진
실을 추구하는 일, 바꿔 말하면 신의 졔시를 실현하는 일만이 알렉산드로스
의 마음을 쏠리게 했다.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면 반드시 이기겠지만 이
긴 다음에는 무엇이 남을까? 보통의 왕이라면 이기면 분명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고 그렇기 때문에 승리는 이익과 결부된다. 그 이익이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쟁을 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다는 사
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자왕은 어딘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에자의 은사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깊이 연구함에 따라 신이 창조
해 내신 우주를 알게 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쟁에 이
겨 세계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우주를 알겠다."라고 결심한 것일까. 그 때문
에 자신의 목숨조차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톨레마이오스는 누구나 인정하는 지성인이었다. 막연한 불안이 이수스
야영지에서 잠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마음을 스쳤다가 사라졌다.
본디 모두 나의 것이다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가 도망치는 발걸음은 너무나 빨랐다. 현란하
게 장식한 국왕의 전차는 화염을 뚫고 시체를 넘어 전차 머리를 흔들며 사
라져 갔다. 희부연 먼지 저편에서 그것을 본 알렉산드로스가 "서라!" 하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쫓아가려 해도 적병이 가로막고 창을 내던지며 검을 휘둘렀다. 격렬한 공
방전이 아직 결말을 본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데
총지휘관이 전장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머리를 돌려 고전중인 바다
쪽 전장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머리를 돌려 고전중인 바다 쪽 전장
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파르메니온이 좌우로 말을 움직이면서 목이 쉬도
록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계속하라!" 알렉산드로스의
목소리와 함께 기마대를 필두로 좌익 군대가 페르시아 왕을 따라 도망가는
적병은 그대로 두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해변에서 싸우고 있던 적병은 금세
무서워서 안절부절 못하고 도망가려 했다. "파르메니온, 이곳을 맡으시오."
알렉산드로스가 애마 부세팔로스를 달려 페르시아 왕의 추적에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달레이오스는 전차를 버리고 말을 갈아타고 멀리 달아난 것
같았다. 아무리 쫓으려 해도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저물었다. 추격자가 본진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
는 수 없이 다시 말고삐를 돌렸다. "이건 뭐지?" 달레이오스는 어지간히 당
황했던 모양이다. 페르시아 왕이 버리고 간 호화로운 방패와 외투, 활을 줍
고 전차까지 끌고 전흔이 남아 있는 전장으로 돌아왔다.
흡사 그리스극의 돌림노래처럼 환희의 개가가 연이어 일어나 메아리 치고
있었다. 전투는 모두 끝났다. "알렉산드로스 만세." "마케도니아에 영광 있
으라." 이날 페르시아군의 사상자는 5만을 넘었고 국왕의 친족을 비롯한 많
은 무인이 죽었다. 한편 마케도니아군에서는 알렉산드로스가 대퇴부에 부상
을 당했고 그 외 부상자가 다수를 헤아렸지만 전사자는 1000을 넘지 않았
다. 이수스 전투는 두말할 나위 없는 대승리였다.
전장 바로 옆에는 달레이오스를 위한 진옥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놀랍
게도 그곳에는 국왕의 가족이 남겨져 있는 게아닌가! 태후, 왕비, 그리고
두 공주와 어린 왕자가!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왕의 진옥을 언뜻 보고 그 화화스러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늘어뜨려진 화려한 문양의 휘장, 융단, 가구, 식기 그리고 욕
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눈부시리만큼 아름다웠다. 전쟁중의 진옥에서조차
도 이렇다니... "이것이 왕의 생활이라는 것이군." 거의 질린 듯이 중얼거
린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왕이 버려 두고 간 가족은 다음에 만나겠다며
매정하게 말하고 발길을 돌렸다. "쓸 만한 인질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아
니오, 반드시 정중하게 대해야 하오." 짧게 대답하고 전장으로 되돌아와서
파르메티온의 군사를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남쪽의 대도시 다마스쿠스로
보냈다. 페르시아군의 또 다른 전투 기지가 그곳에 있으리라는 추측 때문이
었다. 군자금와 무기, 군량미, 마초 등의 군수 물자가 주둔하고 있을 것이
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쉬지 않고 부상병을 위문했으
며 치료도 도와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기 때문에 의술에 대해서
도 일가견이 있었다. 더불어 사망자를 확인하여 성대한 장례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의기가 높은 병사들에게 눈을 돌려 눈부신 무훈을 세웠던 자들에게
는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며 포상을 주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장 부근의 주민들에게는, "페르시아의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다."라며 면세 조치를 선언했다. 여전히 빈틈없고 바쁜 일정으로 사자분신
(역주: 미쳐 날뛰듯 그 기세가 격렬함)의 움직임이었다. 여기까지 마무리해
야만 알렉산드로스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끝으로 축연을 열어 승리
를 축하하는 술에 만취해 쓰러져 잠들었다.
그대로 한나절 이상 계속 잠들었는데 어딘가에서 들려 오는 여자들의 통
곡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냐?" 시종이 왕의 물음에 대답했다.
"페르시아 왕의 가족이 페르시아 왕의 서거를 알고 저렇게 울고 있습니다.
" "서거라고? 달레이오스 왕은 죽지 않았어. 멀리 달아났다구. 만나 봐야겠
구나."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레이오스는 평범한 왕은 아니었다.
그때 나이 겨우 마흔, 모든 페르시아인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잘생
긴 남자라는 평가에는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당당한 체구의 대장부이며 학
문을 좋아하고 그리스어를 능숙하게 하는 교양인이기도 했다. 무용에 있어
서도 전쟁에서 무수한 공적을 남긴 결코 나약한 인격자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하여 허둥지둥 전장에서 달아나 버렸던 것일까. 달레이
오스 자신도 그 점이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도
망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열세를 자기 눈으로 보고 '이럴 리가 없느
데' 하며 매우 당황하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엉겹결에 도망의 길을 선
택하여 헤매게 된것 같다.
처음부터 달레이오스는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 자신이 나서는 것을 탐탁
지 않게 여겼다. 마케도니아는 페르시아 주변에 몰려 있는 소국 중 하나였
다. 한낱 소국의 왕이 공격해 온다고 페르시아 대왕이 일일이 얼굴을 내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멤논선에서 적당하게 처리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
데, 기대를 걸었던 멤논이 급사하는 바람에 일이 꼬이게 된 것이다. 궁정의
추종자들이 한마디씩 떠들었다. "이쯤 해서 주제넘게 건방지게 구는 알렉산
드로스를 한번 혼내 주시면 어떠하올런지요?" "갓난아기의 손목을 비트는
것과 같을 터입니다." "대왕님의 위광만으로도 적은 벌벌 떨 것입니다." 그
러자 이윽고 페르시아 왕도 '그것도 좋겠어' 하고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과장에서 말하면 달레이오스는 '무력만이 나라의 힘은 아니다'라고 생각하
는 입장이다.
그리스 문화는 확실히 호메로스의 시나 아이스킬로스의 비극등을 보면 뛰
어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요증은 용병의 완력만이 눈에 띈다. 어차피
지능도 재력도 페르시아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특히 장인 기술에서는 페르
시아의 호화로움과 섬세함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하물며 그리스 변경에
있는 마케도니아 따위야 그저 야만인 나라 아니겠는가. 그래도 야만인이니
까 싸움은 강할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그런 놈들과는 전쟁을 안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아냐, 오히려 머리를 쓰면 된다. 재력으로 지배하는 것
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당시의 그리스 반도는 군웅할거로 형편이 좋지 않았으며 다루기도
힘들었다. 페르시아가 한 나라와 동맹을 맺으면 다른 나라가 반항하는 상황
이었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토를 장악했으니 그 마케도니아를 페르시아
산하에 넣는다면 오히려 다루기 쉬워질 것이다. '한낱 알렉산드로스 같은
풋내기야. 요즘 와서 위세가 당당해진 듯하지만 이번에 조금 혼내 주고 다
음에 잘 다루어서 포섭하면 되지 않겠어.'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유람
하는 기분으로 군을 출동시켰던 것이 가족을 최전선에까지 불렀던 이유다.
또한 때로는 전쟁을 지켜보게 하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가볍게 생각했고, 자
신의 용감한 모습을 과시할 속셈도 있었다.
아마노스 산맥을 넘어가서 마케도니아군 배후로 군을 전진시킬 때까지는
쉽게 이기리라고 믿었으며, 그때까지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적은 이 산길
이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라며 기뻐했고, 다마스쿠스 쪽에도 지원
군대를 불러 남북에서 몰아 세우면 적군은 파멸할 것이므로 오히려 지금까
지와 비교해 손쉬운 전투가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다시 전운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내가 나설 때가 아니었어' 하며
후회도 했다. 쓸데없는 말에 넘어가 덤벼든 게 왠지 불길한 마음마저 들어
전투가 시작되어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갈등하고 있었
다.
게다가 느닷없이 날아든 적의 창이 뺨을 스쳐 지나갔고, 순식간에 전진이
흐트러지더니 이번에는 엄청난 기세로 적의 기마대가 뛰어들어왔다. 성난
파도처럼 물밀듯이. 그 반은 미약해져서 없어지더라도 나머지가 가까이 밀
려올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사납게 날뛰는 모습도 보았다. 도저히 이 세
상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대항하는 병사를 밀쳐 내고 추격해 왔
다. '야만인과 싸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말고삐를 당겼다. 말이 먼저 위기를 느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왕 도망가
기로 마음먹었다면 멀리 도망가는 것이 좋다. 이것도 전쟁의 철칙이다. 남
아서 버틴다면... 버티는 데도 체력과 기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싸울 기력
마저 없는데 적은 쉴새없이 추격해 올 테고, 그러면 추격해 오는 그들과 싸
워야 하는데 적군은 추격하는 힘이 그대로 싸우는 힘으로 변해 더 더욱 강
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추격하는 자와 도망가는 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
다.
전차를 버리고 말로 갈아탄 뒤 다시 도망쳤다. '전장에서 지더라도 이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전쟁에서 이길 것만을 생각하는 알렉산드로스와 이
점이 달랐다. 태후와 왕비 생각이 난 것은 한참을 도망가고 나서였다. 가족
을 전장터 가까이에까지 데려오다니,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
래서였는지 그만 깜박 잊고 있었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벌써 붙잡혔을 텐데. 아니야,
걱정할 것 없어. 인질을 죽일 이유가 없겠지. 마케도니아는 돈이 없는 놈들
이야. 돈만 몇 푼 주면 태후도 왕비도 아이들도 그냥 되돌려 주겠지. 별탈
은 없을거야.' 곧바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달레이오스 자신이 멀리 도망가서 진영을 재정비하고 위
엄을 되찾아서 다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짜 용기는 바로 지금
부터야'라고 생각하고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달레이오스는 칠흑 같은 밤을 뚫고 열심히 말을 달렸다. 20여기의 기마대
가 페르시아 왕을 호위하듯 추격만 했을 뿐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수염을 깎고 나서 매무새를 가다듬고 헤타이로이 헤페스
티온을 불렀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이 된 후에도 여전히 수염을 기르려 하지 않았다. 지
금은 부왕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수염을 기르지 않는 편이 더 활기 있고
미남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헤페스티온은 보통 마케도니아 남자들
처럼 뺨에서 턱까지 수염을 가지런히 기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페르시아의 후궁은 좀 놀랍구나." 진영 깊숙한 곳 일대를 페르시아 왕의
가족이 쓰도록 했다. "하하하, 사자한테도 두려운 자가 있으십니까?" 시종
에게 안내를 받으며 두 사람은 나란히 그윽한 향기가 감도는 안채로 들어갔
다.
정면에 달레이오스의 어머니가 의연하게 서 있었다. 베일을 걷으니 표정
은 초췌하지만 큰 눈에는 기품 어린 아름다움과 위엄이 느껴졌다. 두 공주
와 어린 왕자는 머리 하나 정도의 키 차이로 나란히 서 있었다. 가장 커보
이는 공주가 열 살 조금 넘었을까. 왕비는 얇은 베일로 얼굴을 감추고 어린
왕자의 어깨를 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태후는 순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용히 걸어나와 헤페스티온 앞에서 무릎
을 굽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궤배라는 인사법이다. 페르시아인이 귀인에
게 표하는 의례이며 훗날 원정군 진영 내에서 분쟁의 씨가 된 예법이지만
태후의 동작은 물 흐르듯이 아름다웠다.
시종이 당황하여 알렉산드로스 쪽으로 손을 향했다. "이분이 국왕이십니
다." 헤페스티온 쪽이 조금 키가 크고 두 사람이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었
기 때문에 태후가 착각한 모양이었다. 태후의 얼굴이 소녀처럼 빨갛게 물들
었고 사랑스러울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무마했다. "태후님, 신경 쓰실 것 없습
니다. 이 남자도 또 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니까요." 이런 재치가 그 자리
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태후님' 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던 것도 그
의 출중함이었다.
다시 태후로부터 궤배의 예를 받고 나서, "페르시아 왕은 무사히 도망가
셨습니다."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알려 줬다. "정말입니까?" 전리품 중에 페
르시아 왕의 전차와 무구 그리고 의상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왕비가 불길한
사태를 짐작하고 통곡했던 모양이었다. "말을 타고 도망가셨소. 버려진 물
건들을 주워서 돌아왔을 뿐이오." 여자들 사이에 안도의 기색이 흘렀다.
알렉산드로스는 태후와 왕비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일을 열었다. "한 말씀
드리겠소. 나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페르시아를 친 것이 아니오. 페르시아가
그리스 민족에게 가한 많은 횡포에 대한 정의의 제약을 가하기 위함이며,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 아시아 지배권을 쟁탈하려는 것뿐이오. 왕가의
여자들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추호도 없소. 얼마 동안은 부자유스럽겠지
만 안심은 추호도 없으니 정중히 대할 생각이지만 불편한 점이 있다면 무엇
이든지 말씀하시오." "깊은 배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후는 예순이
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언제나 이 정도 나이의 귀부인에게는 관대했다.
태후도 또한 젊은 왕의 늠름함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페르시아 왕가에
대한 정중한 배려는 의외였고 그것만으로도 지대한 감사를 하기에 충분했
다.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천진하게 다가오는 왕자에게
"오 그래, 아버지보다 용기가 있어, 믿음직스럽구나"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왕비의 어깨가 흔들린 것은 기쁨의 표시였을 것이다.
마케도니아 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전쟁은 조금 더 계속될 것이오. 그
럼."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작별을 고했다. 왕비는 먼발치에서 모습을 숨긴
채 다시 궤재 자세로 절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헤페스티온과 헤어졌다. 곧바로 등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부장군 파르메니온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왔소?" "바로 지금 돌아왔습
니다." 파르메니온은 이수스 전승과 동시에 왕병을 받고 다마스쿠스로 군을
진격시켰었다. "수고했소." "요행히 적진의 패배 소식보다 아군의 도착이
빨랐던 것 같습니다. 이렇다 할 반격도 없이 후위의 진옥을 점거했고 현재
는 필로타스가 지키고 있습니다." 필로타스는 파르메니온의 장남이자 헤타
이로이의 한 사람으로 용감하고 유능한 무장이다. "그걸로 충분하오." "굉
장한 물건들을 압수했습니다. 금화며 무기며 군량미, 마초도 대략 여기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실어 왔습니다." 보고하면서 둘둘 말을 보고서
를 내밀었다. "그래." 받아 들고는 대충 훑어 봤다.
알렉산드로스가 얼굴을 들기를 기다렸다가 부장군이 방금 알렉산드로스가
나왔던 문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어땠습니까?" "훌륭한 어머니
오." "왕비는?" "상당히... 애들이 많아, 셋이나 있더군." "시중들게 할까
요?" 승리자의 당연한 권리지만 공주는 너무 어리다. "아니, 필요 없소."
"왕은 왕자를 두어야 합니다." "안티파트로스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소."
"지당합니다.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겠소. 그러나 오늘은 괜
찮소."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나중에." "그보
다 식후에 작전 회의를 하려는데 지휘관을 모아 주시오." "알겠습니다." 등
을 휙 돌려 다친 다리를 살펴보며 방으로 돌아가 혼자 침대에 몸을 누었다.
"여자라."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여색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왕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부질없는 쾌락에의 욕망은 엄하게 자제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 따위에도 거의 관심이 없었고 몸을 치장하는 일에 대
해서도 마찬가지며, 단지 왕으로서의 위엄을 표시하기 위한 차림 정도였다.
누구라도 뿌리치기 어려운 첫 번째 적은 수면과 여색의 유혹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늘 쉽게 잠들지 못해 편안한 수면에 대한 욕망과 힘들게
싸우다 지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여색의 유혹은 그다지 대
단한 것은 아니다.
음란한 욕망에 현혹되는 것은 평범한 남자의 마음이다. 왕이 될 자는, 왕
중의 왕이 될 자는 더 더욱 견뎌 내지 않으면 안된다. 금욕주의라기보다는
자존심의 발로였다. 내심 '그런 평범한 놈들과 같아서야, 참을 수 없지'라
며 자신의 비범함을 스스로 인정했다.
병사들에 대해서는 전장에서의 능욕은 어느 정도 너그럽게 대했고 대부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부녀자에게 난폭하게 행동하
는 것은 용서하지 않았다. 너무 지나치게 행동하면 엄하게 꾸짖었고 그렇게
한 이상 자신에게는 더 엄격하게 굴었다.
밑도끝도없이 미에자 학사를 소요하는 풍경이 마음에 떠올랐고 은사 아리
스토텔레스의 목소리까지 들려 왔다. "행복 추구가 위정자의 목적이어야 한
다. 쾌락의 추구도 행복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은 훨씬 수준이 낮다. 정의의
추구가 상위이고 가장 높은 것이 관조이다." 관조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의
참모습을 규명하는 일이며 보다 높은 것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쾌락에 연연
해서는 안 된다.
여자를 찾아 헤매 다닌다는 것은 보기 흉하지 않은가 하는 미의식과도 얽
혀 있다. 이미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 아이의 엄마
에게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갑자기 조금 전의 정경이 마음에 떠올랐다. '또 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
라. 정말이야.' 헤페스티온은 마치 자신이 알렉산드로스인 것처럼 알렉산드
로스의 심리를 너무 잘 안다. 조금 전에 한 한마디는 순간적으로 무의식중
에 나온 말이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이 표현은 너무나 적절했다. '또 다른
알렉산드로스, 하하하... ' 헤페스티온에게는 독특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
정체를 생각하려는 순간이었다. "식사 준비 다되었습니다." "이리로 가져오
너라." 침대 옆에 펼쳐진 지도를 심상치 않은 눈으로 쳐다보면서 늦은 점심
을 들었다. 시선은 지중해 동안으로 쏠렸고 눈빛이 희미하게 빛났다.
작전 회의에서 지중해 동안으로 진격을 선언하고 침소로 돌아오니 문 가
까이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멈춰 서 있었다. 한 사람은 파르메니온이고, 다
른 한 사람은 그림자가 가까워짐에 따라 곱게 차려입은 여자의 뒷모습이라
는 걸 알았다.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왕비를 데
려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자가 돌아보며 공손하게 절했다. "오랜만입
니다."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바르시나 아닌가?" "네." "몇
년 만이냐?" "마지막으로 뵙고 나서 7년 만인가요. 미에자 학사에서 돌아
오신 후... "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처녀 시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
군.' "마치 꿈처럼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자님은 훌륭한 대왕님이 되시
고... 만나 뵙게 되어 너무나 황공하옵니다." 예전에도 부끄러움이 있었을
까.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새삼스레 말씨
가 곱게 느껴졌다. 그리스 말을 쓰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비록 여자라
하더라도 명쾌하게 말하는 편을 좋아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우물쭈물하는 것은 정말 곤혹스럽고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파르메니온이 등뒤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다마스쿠스 진영에 계셨습니
다." 그 말을 받아 바르시나가 받았다. "네, 전리품이옵니다." 어깨를 들썩
거리며 웃는 것이 용감하게도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다. "부군이 세상을 떠
나서 안됐구나." "심장병이었습니다. 살아 있으면 적이 되었겠지요. 한층
더 분노하셨으리라 시료됩니다." "굉장한 인물이라고 들었다만은, 살아 있
었다면 죽여야 했겠지. 너에게도 못할 짓을 할 뻔했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국왕께서 나라를 생각하시는 것은 지당한 일이지요. 인간사에서
은혜와 원한은 오직 신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아버님은? 알타바조스는 어
떻게 되었는가?" "수사에 계십니다. 대단치는 않으나 병환중이시라고 들었
습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아버지께서는 진심으로 그리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의 입장은 미묘하리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믿는다. 너는 어
떠냐? 멤논의 아내인 너는?" "멤논의 아내라고 하신다면 대답은 정해져 있
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따르는 것이 본분이겠지요. 국왕이 나라를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럼 다시 묻겠다. 지금은 어떠냐? 멤논이 죽은 지금
은 그리스를 사랑하느냐? 그리스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마케도니아의
국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번에 이렇게 많은 걸 물으시면 곤란합니
다." 바르시난는 조용히 웃었다. "다시 묻겠다. 마지막 한 가지가 가장 중
요하다. 알렉산드로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유의 몸이 아닙니다. 뜻대
로 하소서." "너의 본심을 묻고 있는 것이다."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
습니다. 그 이상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아내
였을 때보다도 노예의 몸인 지금이 마음은 자유롭습니다."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보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이 여자는... 괜찬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아한 자태나 현명함도 정말 마음에 들어.' 알렉산드로스는 마음속으로 이
렇게 생각했다.
약간 떨어져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파르메니온이 한마디 거들었
다. "바람이 차졌습니다. 어서 방으로 드시오소서." 두 사람을 방으로 들어
가게 한다.
그러자 마케도니아 왕은 한마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바르시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들어가도 좋고 들어가지 않아도 좋
다." 알렉산드로스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가자 바르시나는 잠시 머뭇거
리다가 파르메니온에게 조용히 머리를 숙이며 인사한 뒤 단호한 태도로 뒤
를 따라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날 밤 바르시나는 왕의 침소에서 머물렀다.
"왕실에 경사가 생길 거야." "그거 기쁜 일이군." "지금 당장 말야." 약
간 쓴웃음을 띤 파르메니온의 말을 들은 헤타이로이들의 얼굴에 흥분의 빛
이 감돌았다.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었던 것이다. "바르시나구나."
카산드로스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시종일관 미소만 짓고 있는 헤페스티온은 왕과 바르시나의 해후에 무언지
모를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후손을 보는 일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도
전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좀더 비속한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알렉
산드로스의 극기심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지만 총대장이 여색에 냉담해
서는 주위 사람들이 거북하기 짝이 없고, 금지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심적으로 위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절제를 좋아하지는 않
지만 아직 모두가 젊은 병사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욕구 불만에 빠지게 되었
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철저하게 충실한 클레이토스는 자신의 격에 맞지 않게
스스로에게 금욕령을 내렸다. 그래서, "야, 그러다 몸이 일자로 뻗칠걸" 하
며 놀려대는 동료들 사이에서 '막대기 클레이토스'라는 외설스런 별명이 붙
여질 정도였다. '이것으로 사자왕도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어'라며 알렉산드
로스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도 기뻐했다. 더구나 바르시나의
인상은 나쁘지가 않은 데다가 참으로 아름답고 현명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리스 말의 구사력은 보통 수준이 아니 어서 헤타이로이 중에서 가장 유창
하게 아테네 말을 구사하는 칼리스테네스를 능가한다. 페르시아 말이나 풍
습에는 당연히 정통하고 있으므로 바르시나의 지혜는 알렉산드로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바르시나를 반려자로 택한 알렉산드로스의 직감과 사람을 보는 눈은 이때
도 물론 정확했다. 바르시나는 원래부터 오직 한길로만 살아가는 영혼을 소
중히 하는 여자였다. 뜻하지 않게 기구한 운명에 농락당하고 말았지만 바르
시나는 교묘한 처세보다는 이상을 택하는 편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멤논
이 품었던 질투도 그다지 예상이 빗나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은 자유의 몸이 아니라고 비천한 신분도 감수하며, "자유로운 마음으
로 대왕을 모시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구태여 왕비의 신분을 바라
지도 않았다. 고생을 겪은 만큼 배려하는 마음도 깊어 어른스러운 마음을
가진 여자였다. 그에 비하면 어리고 여린 성격을 갖고 있는 알렉산드로스에
게 훌륭한 조언자가 되었다. "대왕님은 마음이 깊으시니까." "내가 대왕이
냐?" "네. 위대한 왕이 되어 주소서." 바르시나는 유달리 사자왕을 대왕으
로 불러 어느 사이엔가 그것이 가신들 사이의 호칭으로 변했다.
해군의 전력이 뒤처져 있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크나큰 고민이었다. 대
국 페르시아의 심장부에까지 깊이 공략하려 해도 배후에 있는 바닷가가 불
안해서 공략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또 다른 멤논이 나타나
지 않는다고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항구 도시들을 모조리 지배하에 넣겠다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당면 과제
가 되었다. 밀레토스 공방전에서 체험했듯이 항구를 폐쇄해 버리면 배는 육
지전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 동지중해에 점재하는 항구들을 하나하나 마케
도니아의 세력하에 넣는다면 바다로부터의 공격을 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해군을 정비하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전진하는 것, 싸우는 것,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 그런 유혹이 알렉산드로스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해군이 증강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젊은 대왕의 성격
에는 맞지 않았다.
이수스 승리에서 장병들의 사기는 더없이 높아졌고, 다마스쿠스에서 수많
은 전리품을 얻어서 군수품도 꽤 많이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전승지 가까이에 도시를 세워 알렉산드리아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터키의
도시 이스칸데룬도 발음이 잘못 전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으로부터
지중해 동해안의 남쪽을 향해 진공했다. 이 주변에는 예전에 페니키아인들
이 적자색 깃발을 걸어 배를 드나들게 했던 항구 도시들이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하나인 마라토스에 들어갔을 때에 페르시아 왕의 사절이 왕의 친서
를 들고 방문했다. 페르시아 왕의 편지는 정중한 의례를 갖춘 후에 자국과
마케도니아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전전대의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
스 3세와 마케도니아왕 필리포스 2세 사이에 우호 동맹이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반우호적인 부정 행위를 저질렀고, 게다가 이번에는 알렉
산드로스가 아무런 교섭도 없이 갑자기 군대를 이끌고 아시아로 침공하여
페르시아에 막대한 위해를 가했다. 달레이오스왕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없이 무기를 든 것이며, 결국은 누군가의 신의
계시 덕분에 이런 사태가 되고 말았지만... " 이렇게 쓴 뒤에 충분한 금품
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태후와 왕비와 아이들의 인도를 요구하였고, 더불어
양국 간의 사절을 교환하여 국경을 정하고 국왕끼리도 우호를 확립하며 동
맹을 체결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친서에는 아시아 대륙을 다스리는 페
르시아 대왕에게 걸맞는 거만한 문구들이 멋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달레이오스가 견식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아시아에 군림하는
대왕이라면 이 정도의 태도가 보통이었지만 단지 상대가 부적당했다. 알렉
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몽땅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쟁에서 진 주제에
웬 오만함이냐? 금품을 마구 뿌리면 그것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건방
진 놈. 지난번 전쟁은 제우스아몬의 올바르신 은혜로 마케도니아군이 이겼
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 자리에서 답장을 적어서 사절을 쫓아 보냈다.
"페르시아의 역대 왕들은 제멋대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각지를 침략하였고
그리스인들에게 계속해서 막대한 손해를 입혀 왔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적대 관계를 야기시킨 것은 첫 번째가 당신 나라의 횡포였지 그 이상은 아
무것도 없다. 나는 그리스 전국토의 맹주로 천거되었고 그 이름에 걸맞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아시아로 건너온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페르시아인이 저지른 무도한 처사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선왕이신 필리
포스 2세의 암살도 당신의 사주를 받은 페르시아인의 계략이며, 당신 자신
의 왕위도 비도덕한 암살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는 것, 이 모두가 명명백백
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듣자 하니 요즘은 각지의 그리스인에게 서장을 보내
어 나를 거역하게 부추기는 수많은 음모를 꾀하고 있다는데 이 또한 용서할
수 없다. 페르시아인이 우리 동포를 타락시켜 그리스의 번영과 평화를 해치
려고 책동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이 당신의 계략에 의한 것이다." 페르시아
왕과 페르시아인들의 죄상을 낱낱이 적은 뒤에 이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신의 뜻에 따라 승리를 얻었다. 따라서 점령지는 신의 이름으로 내 것으로
하며 인질도 내가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당신의 어머니, 왕비, 자
제들에 대해서도 내가 납득할 수 있으면 당신의 희망에 부응하는 일도 주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지금 이후로 내 앞으로 사자나 서장을 보낼 때에는 전
아시아의 대왕에게 대하는 예의를 갖추도록 하라. 결단코 대등한 입장을 취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에 불복한다면 여기에 남아서 싸우는 게 좋을 것
이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디까지든 추적하여 정당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 매우 고압적인 글로 적어서 도전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달레이오
스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리라는 것과 이것을 보고 불같이 분노하며 날뛸
것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일부러 오만불손하게 썼던 것은 알렉산드로
스의 자신감과 젊음, 그리고 또 하나 페르시아 왕을 화나게 하는 것이 좋겠
다는 직감적인 전략이었다.
어느 사이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용맹은 제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
라토스를 출발하여 비블로스, 시돈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항복시켜 마케도니
아의 가벼운 지배 체제하에 넣었다. 그러나 티루스만은 그렇게 간단하게 마
케도니아군에게 무너지지 않았다. 현재 레바논령 수르, 예전에는 페니키아
인의 거점으로서 아주 번영했던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이며 그것만으로도 자
부심이 대단하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만, 페니키아인의 도시 정비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
었다. 그들은 육지에 가까운 작은 섬을 택하여 도시를 건설했다. 외해로 향
하게 항구를 만들어 육지와는 좁은 해협으로 배를 건너는 방법으로 교역을
했는데, 여기에서는 바다 그 자체가 도시를 지키는 일종의 요새 역할을 했
다. 섬 주위에는 성벽을 둘러 세워 이중으로 방어하는 셈이었다. 비상 사태
가 벌어지면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갔고 바다로 나가면 페니키아인에게 대
항할 수 있는 민족은 없었다. 티루스 도시 설계는 바로 이 전형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수르를 방문하면 작은 반도가 바다로 도출해 있는데 그
곳이 구도시이다. 알렉산드로스 시대에는 이 돌출 부분이 작은 섬이었고 좁
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크게 번영했던 것이다.
티루스의 수호신이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라는 말을 들은 알렉산
드로스는 무릎을 치며 "그럼 반드시 참배하여 제물을 바쳐서 제사지내고 싶
구나"라고 말했다.
마케도니아 왕가는 헤라클레스의 후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
만이 아니라 알렉산드로스는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 또한 자신의 선조라
생각하며 경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참배에는 또 하나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즉 헤라클레스 신
전은 작은 섬 안에 있었고 알렉산드로스는 그곳으로 군사를 전진시키기 위
한 하나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 티루스인들이 숭배하는 헤라클레스는 현지
에서는 멜카르트라고 불리며 그리스인이 말하는 헤라클레스와는 전혀 다른
출생을 가진 신이라는 전승도 있지만, 그런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
다. 섬으로 군을 전진시키기만 한다면 어떤 압력도 가능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티루스측도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
다. 티루스는 페르시아 해군의 중요 기항지이고 페르시아와의 관계도 아주
긴밀했다. 마침 공교롭게도 티루스 왕은 페르시아 군선을 타고 섬을 비우고
있었다. 따라서 섣불리 알렉산드로스의 편이 되었다가는 티루스 왕은 그대
로 페르시아의 인질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작은 섬은 옛날부터 불멸을 자
랑하는 요새로 굴복하지 않고 참고 있으면 페르시아가 도와 줄것이라는 신
념이 있었다.
섬을 핑계로 협의한 끝에, "모처럼의 요청이지만 군사를 철수시켜 주셨으
면 좋겠습니다. 육지에도 헤라클레스 신전이 있고 실은 그곳이 본전입니다.
제물을 바치신다면 저희도 꼭 본전에서 받고 싶습니다."라며 은근히 거절을
표해 왔다. 어떻게 해서라도 섬에 있는 신전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대
왕님 한분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넌지시 뜻을 비추었다. 그리고 티루스는
마케도니아와 동맹 정도라면 맺을 용의가 있지만 어떠한 의미에서든 지배는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무엇이라!" 젊은 대왕은 불쾌감을 나타
냈다. 티루스에서 온 회답은 정중했지만 명백히 알렉산드로스의 의향을 거
부하는 것이며, 젊은 정복자를 초조하게 만드는 만만찮은 태도를 보였기 때
문이다.
저항을 받으면 더 세고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독
특한 방식이다. 티루스의 대응은 대단히 의심스러웠다. 한편으론 마케도니
아와 동맹할 것 같은 태도를 풍겼지만 언제 페르시아측으로 붙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동정을 생각할 때 티루스는 전략상의 거점으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으므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티루스를 상대로 협의가
여러변 되풀이되었지만 쉽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
간부들을 모아서 격문을 띄웠다. "우리 원정군은페르시아가 해상을 제압
하고 있는 한 무사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티루스는 페니키아인의 거점이며
이 땅을 방치해 놓고, 그것도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모르는 채 달레이오스를
추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 그들이 페르시아와 손을 잡고 배후에서 우
리를 위협할지 너무나 불안하다.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스파르타도 아테네도
페니키아인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제군들이여 발상을 바꿔 보자. 이 땅을
굴복시키면 페니키아인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며 곳곳에 할거하는
페니키아 해군 세력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우리가 그
들의 고향을 수중에 넣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반마케도니아 세력에게도 타격을 주며, 나아가서는 키
포로스섬과 이집트와의 우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동정을 위해서
티루스 정벌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과제다." 강대한 페르시아 국왕
조차도 얕잡아 봤던 알렉산드로스다. 섬 하나를 요새로 하는 티루스쯤이야
자신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다행
히 꿈속에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섬의 성벽 위에서 손짓으로 부르는 게 아닌
가. "헤라클레스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다!" 육지와 섬 사이에 있는 바다에
제방을 쌓는 작전을 세웠다. 주변 마을을 부수어 석재를 모아 왔다. 해안의
찰흙은 돌과 돌사이의 틈을 메워 석재를 연결하여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
배후의 산야는 레바논 삼목 산지이기 때문에 큰 나무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섬까지의 거리는 대략 1킬로미터도 채 안 되었다. 제방을 건설하는 공사
는 육지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쉽게 진척되었지만, 육지에서 멀어짐에 따라
바다의 수심이 깊어지고 조류의 흐름도 빨라져 점점 힘들어졌다. 특히
50~60미터의 수심이 공사를 가장 곤란하게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티루스측에서 공격을 개시해 온 것이다. "알
렉산드로스! 여기까지 와봐라." "마케도니아 원숭이 새끼들아! 우리가 누군
지 실감했느냐!" "멜카르트님이 있어, 우리에게는." 온갖 욕설과 함께 성벽
위에서 돌이 떨어지고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화살도 비 오듯 쏟아졌다. 공
격을 막으면서 공사를 계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작업하기에는
가벼운 차림을 해야 하는데 가벼운 차림은 방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
방 건설은 목숨을 건 작업으로 변했다.
그것뿐인가. 티루스는 제방을 완성한 부분에도 빈틈을 발견하기만 하면
가치없이 버먼을 몰고 와 부딪쳐서 엉망으로 만들었고, 군선으로 급습을 감
행해 와 작업원을 공격하여 살해하거나 작업원을 투망으로 끌어올려 성벽에
달아 놓고 참살시키기까지 했다.
여러 달에 걸쳐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사망자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
는데도 마케도니아군은 방어하고 공격하며 작업을 계속하여 제방을 조금씩
늘려갔다.
그런데 완성을 눈앞에 둔 순간 어느 사이엔가 제방의 끝 부분이, 섬에 접
하는 부분의 성벽이 높게 증축되어 있지 않은가. 높은 탑에 바퀴를 달아 성
벽 가까이에 접근시켜 성벽 위에 운집해 있는 적을 무찌르는 병기인 공성탑
도, 마케도니아군이 자랑하는 대도구들도 키가 닿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성탑의 키를 높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적도 다
시 성벽을 쌓아 성벽의 높이를 더 높게 했다. 마케도니아군이 다시 공성탑
의 키를 높이자 이번에는 공성탑에 망을 내던져서 위에서 좌우로 흔들어 넘
어뜨렸고, 넘어진 병사들 위로 뜨거운 모래와 불에 녹인 유황이 떨어졌다.
그것이 갑옷 속에 스며들어 너무나 뜨거워 미쳐서 죽어 가는 병사도 생기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공략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
은 페니키아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길러 낸 강고한 도시 방비에 대한 역
사적 도전이었으니 쉽게 공략될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대단했던 알렉산드로스도 곤혹스러워했다. 제방으로부터의 공격이
갖가지 수단을 다 써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바다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여기에서는 페니키아인 사이에 불화가 일어 알
렉산드로스 편이 되었다. 오랫동안 각지에 분산해서 서로 경쟁해 온 일반
백성들은 동지로서 피의 결속이 부족했다. 마라토스, 시돈, 로도스섬, 키프
로스섬등 부변 지역의 혈기 있는 페니키아인 군사들이 이수스에서 페르시아
왕의 패배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많은 군선을 보내어 협력
해 주었는데, 지원된 총수는 200척을 넘었고 선원들은 해전에는 익숙했다.
이들이 티루스 해군과 대치하여 공격을 가했고 그동안에 공성탑을 다시
고정시킨 대선이 바다 쪽에서부터 섬의 성벽에 다가가서 성벽을 향해 파성
추를 부딪쳤다. 배와 배 사이에 거대한 추를 고정시켜 배를 능숙하게 조절
하면서 저어 전력을 다해 쿵 하고 부딪쳐 왔다. 이 작전이 어느 정도 효과
를 나타내는 순간에 사방의 바다에서 조금이라도 취약한 곳이 보이면 그곳
을 노리고 집중적으로 공격을 해댔다.
알렉산드로스는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전황을 파악해 가며
과감하게 지휘했고 병사들을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로운 공격법을
고안해 내어 그 자리에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티루스측은 대군의 격렬한 공격에 생각 외로 잘 견뎌 냈지만 여러 방면으
로 숨쉴 틈도 주지 않는 공격을 받고 서서히 반발심을 잃어 갔다. 티루스
해군이 항구 내에 봉쇄되고 드디어 남쪽 항구 근처의 성벽이 크게 허물어져
밖에서 들어갈 수 있는 침입구가 열리게 되자 침입을 허락하지 않으려 필사
적으로 방어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에서 일단 군사를 대기시켜 놓고 며칠동안 면밀한 작
전을 전개했다. 침입구를 격렬하게 공략하면 적의 방비를 집중시키게 될 것
이므로 그 사이에 남북 두 개의 항구에 배치시켜 놓았던 군선에게 상륙을
노리도록 지시했고, 또 다른 군선에게는 성벽 어딘가와 연결되도록 길다란
판자 다리를 놓고 건너가서 집중적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무너질
기미가 보이는 곳부터 침입하는 총공격 작전이므로 어느쪽에서 공격을 개시
해도 상관없는 유동적인 작전이었고, 헤타이로이를 비롯한 각 부대 지휘관
의 용기와 통솔력이 모든 것을 말하는 작적이므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이런 이유에서는 정황의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공격 개시, 출발!" 곳곳에
서 맹공격이 개시되었다.
알렉산드로스를 실으 군선이 재빠르게 성벽에 판자를 깔고 건너가는 데
성공했고, 그중에도 특히 용감한 장병들이 성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
서는 어디가 어떻게 무너지고, 어디에 판자가 놓여지고, 어떻게 몰려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체 거리 5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섬은 모든
방향에서 무너져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쫓는 자, 쫓기는 자, 죽
이는 자, 피로 물든 자, 불을 지르는 자, 불에 타서 데굴데굴 뒹구는 자...
이미 전투는 7개월이 경과했다. 어차피 전투는 처참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더라도 공방을 반복하는 사이에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알렉
산드로스의 군사들도 많은 동료들이 참살당하거나 참혹하게 다치자 복수의
원한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전투보다도 더 난폭해져 갔다.
알렉산드로스도 격노하여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있었다. '티루스, 반드시
함락시키겠다.' 쓸데없이 겪었던 많은 고난에 화가 났고 잔학하게 죽음을
당한 부하가 너무나 측은했다.
8000명에 이르는 티루스인이 전쟁에서 죽었고, 2000명이 포로로 잡혀 알
렉산드로스의 명령에 따라 기둥에 묶어 놓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책형에 처
해졌다. 노예로 전락된 자가 무려 3만 명... 자존심이 강한 페니키아인의
고도 티루스는 고대사중에서도 가장 격심한 국지전 끝에 파멸한 도시였다.
전투의 종료와 함께 알렉산드로스가 논공 행상으로 마음을 돌리고 수많은
용사들의 용맹을 칭찬하며 전승의 기쁨으로 성대한 축연을 배푼 것은 두말
한 필요도 없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신들에게도 감사드리며 대부분의 무
기를 봉납하였고 산 제물을 태워 연기를 피움으로써 모든 행사를 무사히 마
쳤다.
이야기의 앞뒤 순서가 바뀌지만, 티루스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가 두 번째 사절을 보내 왔다. 사절은 "페르시아 대
왕은 관대한 마음을 베푸셔서"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째,
태후, 왕비, 자제분들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1만 달란트를 알렉산드로스에게
바칠 준비를 했다는 것. 둘째, 유프라테스강 서쪽에서 에게해에 이르는 지
역을 알렉산드로스 왕의 영역으로 인정하겠다는 것. 셋째, 알렉산드로스왕
이 페르시아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 왕의 친족이 되어 신속하게 동맹자가 될
것"을 제안했다.
달란트의 환산은 조금 고민스러운 문제다. 오늘날로 계산하면 1만 달란트
는 약 7조 7000억 원에 상당하는데 당시의 금 산출 유통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실제로는 그 5분의 1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할 뿐이다. 아무튼
알렉산드로스가 동정을 위해 펠라를 출발했을 당시의 준비금이 1000달란트
정도라고 추측하면(이것이 군비로서 매우 소액이었다 하더라도), 페르시아
왕이 제시한 금액은 결코 적잖은 것이었다.
두 번째 제안의 지역은 소아시아 반도 전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해 연안의 시노페에서 지중해 연안의 키리키아까지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
하며, 이 '시노페에서 키리키아까지'는 그리스인이 자신들의 영토의 바람직
한 동쪽 경계선으로서 지금까지 마음에 품어 왔던 이상을 나타내고 있는 곳
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페르시아 왕가가 누차 써왔던 회유와 친목의 수단인 것이 분명했
다. 매우 자존심이 강한 페르시아 왕이 대단히 양보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
의 강화 조건이 아닌가.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언제부터인지, 아마 이수스로 군대를 진격시켰을
무렵부터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거처에는 언제나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고 지도 위에는 붉은색 반궁이
그려져 있다. 활시위는 제우스아몬신의 신전이 있는 도도나와 시와 오나시
스를 연결하고, 반궁은 원을 그려 소아시아 반도를, 즉 '시노페에서 키리키
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수도 펠라에 있을 때 태후 올림피아스는, "이것
이 마케도니아왕께서 지배해야 할 지역입니다."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날 아침 알렉산드로스가 꾸었던 꿈데는 붉은 반궁만 나타났었는데 '활
에는 화살을 메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일가. 신은 반궁으로써 암시를 하
여 알렉산드로스가 스스로 활시위를 당겨 목표물을 쏠 것을 재촉한 것이 아
닐까. 생각할수록 더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소아시아 반도를 너무나 쉽게
공략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아직 출발점 정도밖에 안 되는데.' 활은 단순
한 죽세공품밖에 안 된다. 활은 시위를 메겨서 아시아 오지까지 날아가야
비로소 제 일을 다하는 것이다. 선한 것을,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그리스의 예지를, 그리스의 치세를 세상 끝까지 반드시 펼칠 것, 그것
만이 중요한 일이다. 그 땅을 찾아가면 반드시 새로운 치세와 새로운 철학,
새로운 신의 은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원정군의 부장군 파르메니온은 페르시아 왕의 제안을 듣고는 강화 조약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했다. "기회가 왔습니다. 저라면 이쯤해서 타협을 보겠습
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소년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내가 만약 파르메니온이라면 말이오." 연극 대사 같은 수사법으
로 대답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르메니온이 앞으로의 곤란함고 위험을
아무리 말해도 양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왕의 심중에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전쟁에서 이긴 데다가 각지의 세력들도 자
진해서 복종해 오고 있지 않은가. 멤논의 뒤를 잇는 파르나바조스는 무능하
니 에게해의 적군은 무섭지 않고, 이제는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가만히 있는
데 무슨 걱정이 있단 말인가.
이리하여 페르시아 왕에게는, "금은 필요 없다. 영토도 마찬가지다. 당신
의 손에서 일부만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본디 금도 영토도 모두가 나의
것이니까. 귀하의 딸을 비로 맞고 싶다면 귀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스스
로 그렇게 할 것이며, 이런 일에 일일이 지도를 받을 이유가 없으므로 일체
를 거부한다. 귀하께서 그 어떤 관대한 처우를 나에게 구한다면 직접 와서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다. 나는 듣는 귀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대답이었다. 확신 안에 페르시아 왕비가 산후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앞으로도 왕의 일족을
정중하게 대할 것을 약속하면서, 그것과 이 문제는 엄연히 다른 별개의 문
제라는 것을 고자세로 보여 주었다.
제 분수도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해도, 과대 망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종잡을 수는 없었으나,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속에
서는 목표를 찾고 또 찾아서 '찾아낸 그곳에는 반드시 신의 계시가 있다.'
는 강한 확신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르메니온뿐만 아니라 선왕 필리포스라도, 아니 그 어떤 왕이라도 이쯤
해서 원정의 길을 그만둘 것이다. 이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기 때문이
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나라가 크다는 것이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나라를 아무 탈없이
다스리는 데는 적절한 규모가 있다. 마케도니아의 국경은 아니 그리스 세계
의 동쪽 한계선은 시노페에서 키리키아까지면 충분하다. 우선은 공략도 힘
들겠지만 훌륭한 공략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기울여야 할 노력
이나 비용이 막대하며 많은 희생도 뒤따라, 이긴다 해도 이익을 만들기는
불가능한 전투가 될 것이다. 더구나 만약의 경우 지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고 말 텐테... 이런 멍청한 도박을 누가 하
겠는가. 국왕은 좀더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언을 하고 싶지만, 알
렉산드로스는 명석하고 냉정한 대왕이 아니던가.
알렉산드로스의 방침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헤타이로
이의 대부분은 그것을 사자의 용기라고 믿었다. "계속 승승장구하는데 물러
설 이유가 없다." 기세 당당한 발언에 젊은 무장들은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
거렸다. 헤타이로이도 알렉산드로스의 예측할 수 없는 의욕에 여전히 아무
런 눈치도 채지 못했으나, 헤페스티온만은 사자왕의 신성을 믿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단 한 사람 프톨레마이오스만은 왕의 심중에 눈에 보이지 않
는 것과 어둡고 불확실한 무언가가 있음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오랜만에 아테네로 거처를 옮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편지를 썼다. "선생님께서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신의 의지를 찾는 것과 마
찬가지로 왕인 저는 치세를 함으로써 신의 의지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정치는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페르시아 정치에도
수용해야 할 것이 있겠지요. 무슨 일이든 진리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으니, 그 말뜻은 추구하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지 저편에서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시노페에서
키리키아까지'의 경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내일은 더욱더 나아가서 이성
의 힘으로 신의 의지를 찾겠습니다." 이렇게 단단한 결의를 적어서 보냈다.
여기에서 한마디해 둔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이상은 왕 자신의 성격과도 깊
은 관련이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마음 깊은 곳
에 미에자에서 배웠던 교육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신의 의지에 대한 집요한
탐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자연 속에서 찾았고 알렉산드로스는 정치
속에서, 지도상에서 구명하려고 했다. 예전에 헤페스티온이 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보았던 파란 빛의 결합은 인류 역사 속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뛰어난 재능의 해후를 암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군대를 남으로 진공시킨 알렉산드로스는 해안선의 구릉지에 형성된
도시 가자에서도 격심한 저항을 받았다. 가자는 옛날 삼손과 데릴라의 무대
가 되었던 곳으로, 현재는 이스라엘령이면서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자치
구로 지정되어 있다. 고래로부터 분쟁이 일기 쉬운 지역이었던 탓일까. 그
당시에는 유향과 향신료의 거래가 활발하고, 환관인 바티스가 페르시아의
총독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알렉산드로스의 지배를 완강히 거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공방전을 앞두고 점술사의 당부를 들었다. "대왕님, 도시
공략은 성공하지만 몸에는 부상을 입으실 수도 있사오니 부디 조심하십시
오."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두를 가르며 군사들을 지휘했다. 가
자는 섬의 요새 티루스와는 완전히 사정이 달랐다. 도시는 약간 경사진 언
덕에 있었고 주위는 단단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성벽 밖에 흙을 쌓아
서 파성추를 끌고 가서 부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적의 저항은 끈
질겼다.
아니나다를까 알렉산드로스는 활탄에 맞아 어깨에 증상을 입었다. 하지만
조금도 겁내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점술사의 말이 맞구나. 그렇다
면 이 도시는 함락된다." 하나가 적중했다면 또 다른 하나도 적중할 것이
다. 알렉산드로스는 늘 자기 편의에 맞추려는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으
며 이것이야말로 참로로서의 가장 탁월한 재능일 것이다.
그리고 과연 구릉지의 요새 가자는 난공불락의 티루스를 함락했던 알렉산
드로스 대왕의 군대에 의해 두 달에 걸친 공방전 끝에 패배를 당했다. 총독
바티스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굴하지 않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도전하며 칼을 휘둘렀다. 알렉산드로스도 몇 군데 부상을
당하면서도 싸웠고 적장을 죽였을 때에는 숨이 당장 끊어질 것 같은 상태였
다.
예상 밖에 고전과 부상의 고통으로 대단히 격노한 알렉산드로스는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 바티스를 알몸으로 전차에 묶어서 질질 끌고 다니며 본보기
로 보여 주었다. 마치 호메로스의 서사시 중에서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헥토
르에게 했듯이. 바티스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고
살아 남은 남자는 별로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에서도 또다시 반항했
다는 사실에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대부분의 주민이 노예가 되었고 텅 빈
도시는 근방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기원전 332년 세모가 다가올 무렵 알렉산드로스는 군대의 일부를 팔레스
타인과 시리아에 남기고 오래도록 바라고 바라던 이집트 땅으로 향했다. 호
위 선단이 헤페스티온을 태우고 바다를 달렸고 알렉산드로스가 끄는 군단은
육로를 밟아 나일강의 동쪽 끝에 있는 도시 펠루시움에 도착했다. 마케도니
아 해군의 정비를 맡았던 헤게로코스도 주변 해역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리
며 해상에서 선단을 모으고 있었다.
이집트로 들어온 마케도니아군은 대단히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환영을
받았다. "왜들 이러지?" 대왕 자신도 의아스러울 정도의 환영이었다.
이수스의 승리가 이미 알려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페르시아 왕 대신 마케도니아 왕의 지배를 청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
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좀 이상하잖아... " "이곳에서는 페르시아의 평판
이 좋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번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했고 정복자
는 늘 제멋대로 압정과 잔악을 휘둘러 왔습니다. 특히 전전대의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인이 숭배하는 신전을 파괴하고 성스러운
소 아피스를 죽여서 잡아먹기가지 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폭거였지
요. 그후로 몇 번의 반란이 일어났었지만 그때마다 실패하여 혹심한 보복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적은 바로 자신들 편이라는 것입니
다." "그렇군." "사자왕이 아몬신을 믿는다고 소문으로 듣고 있는 것 같습
니다." "그건 사실이다." "예." 그것만이 아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수년 전 페르시아에 의해 쫓겨나서 행방을 감춘 늙은
파라오가 언젠가 젊은 용사의 모습으로 귀환하여 외적으로부터 이집트인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예언이 공공연히 나돌았고, 대부분 이 말을 믿고 있
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용감하고 씩씩한 젋은이라는 것을 그들은 한
눈에 알아보았다. 대단한 용사이며 아몬신을 믿고 있다는 것과 그의 아들이
라는 소문도 있지 않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부활한 우리의 파라오다."
이집트인이 파라오의 부활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던 것도 그들로서는
무리가 아니다.
군단은 전진함에 따라 더욱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피를 흘리지 않고서
도 수월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부근 해역에 있던 페르시아측 군선
의 선원들 대부분은 이집트인 용병이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에게 복종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허점은 없었다. 아몬신은 마케도니아에 있을 때부터 믿
고 있었고 임시 방편으로 가장된 신앙은 아니었다.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여
신전에 정중하게 참배하여 제물을 바쳤고 금품을 봉납하여 제사지냈다. 또
한 알렉산드로스는 신전의 건축이나 개수 공사에도 많은 힘을 기울여 이집
트인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들은 바로는 나일강 하구는 몇 군데 지류를 만들어 부채 모양처럼 퍼지며
광활한 습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강 주변 지역은 답사도 하기 어려울지 모른
다고 했다. 그러나 해군 선단에게는 거슬러 올라갈 것을 명하고 육지 군단
은 강을 오른편으로 보면서 답사하여 멤피스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도 환대
를 받은 알렉산드로스는 민중의 뜻대로 제사를 열라고 명하고 이집트인이
믿는 신들을 이집트인의 관습에 따라 공경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피스신
에게 재물을 바치며 성대한 제사를 거행하게 했고, 더불어 그리스식 각종
경기 대회와 음악회를 개최하여 병사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이집트인의 신앙은 다양한 다신교로 통일된 계보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남매가 원조로 이 남매는 결혼하여 이집트
를 지배하지만, 결국 오시리스는 남동생 세트에게 살해당하여 시체는 나일
강에 버려졌다. 슬픈 이시스는 시신을 찾아 제국을 헤매다가 비블로스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남동생 세트가 다시 시체를 잘게 토막쳐서 각지에 뿌린
다. 이시스는 이것을 다시 주워 모아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들지만 오시스는
이것을 다시 주워 모아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들지만 오시리스는 이미 다시
살아날 수 없는 몸이 되어 결국 사자 나라의 왕이 된다. 이 신화는 문명의
전파와 사자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 외에도 태양신 라가 신들의 제왕으로 경애받게
되는데 이 신이 바로 아몬이다. 또 이 지역의 오랫동안의 야생 생활을 반영
하여 동물 신도 많았고, 거기에다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인간 생활의
영위와 모랄에 관련한 신도있었다. 목우의 신 아피스는 멤피스의 수호신 부
탄의 화신이며 부탄은 기예의 신이기도 하다. 들개나 고양이, 악어의 신이
있었던 사실은 벽화 등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신전의 비문을 바라보며 신화의 결말을 듣고 나자 알렉산드로스는 마음속
에서 미묘한 흥분을 느꼈다. "먼 옛날의 기억과 연관 있어." 한참 기도를
올리던 중에 그것을 느꼈다. 이국의 신에 대해 아무런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몬신의 아들이라면... " 헤페스티온이 사자왕의 의도를 눈치채
고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명해. 옛날에 나는 이 신의 품속에서 살
았던 적이 있었는지도 몰라." 뜨겁고 메마른 이집트의 대기가 한없는 상상
을 불러왔다.
몇 군데 유적을 방문하고 나일강 주변을 탐사하면서 이 나라의 부와 웅대
함을 생각했다.
군단의 일부는 오지 조사를 위해 보내고 알렉산드로스는 군단과 함께 대
하의 주류를 따라 내려가 바닷가에 있는 마을 카노포스에 도달했다. 마을에
인접한 말레오티스 호수를 한바퀴 돌고 나서 바다에 접한 넓은 평지에 상륙
했다.
언제부터인지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결단하게 된 시점을 알 수 없었다. 다
만 그 조짐은 이미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를 출발했을 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정이 이집트로 향하고 나일
강에 가까워짐에 따라 확실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대하를 내려가면서 가슴
속으로 구상을 키워 갔다. 말레오티스 호수 일주는 조사의 첫 단계였다. 왕
의 생각은 꿈에도 나타나 이집트의 신이 해변의 땅을 가리켰다. 꿈이 현실
로 변했다. "여기에 도시를 세우고 싶은데... " 결심이 서자 동행했던 기술
자 디노클라테스의 의견을 구했다. 로도스섬 출신의 이 건축가는 탁월한 기
술을 터득하고 있으며 웅대한 에페수스를 재건했던 경험도 있다. 디노클라
테스는 주의 깊게 왕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왕과 함께 해변 지역을 조사
하며 걸었다. "황송합니다만 발전할 항구 도시로서 이보다 더 좋은 지역은
없겠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직감을 칭송했다.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파로스섬이 있는데 이곳은 호메소르의 서사시
에서도 찬양했던 지명이다. '정말 훌륭한 곳이야.' "도시를 만들어 내 이름
을 붙여 주게." "분부 받들겠습니다." 왕의 구상을 기초로 하여 디노클라테
스가 설계와 시공 감독을 맡고, 많은 자금과 노력을 투입해 하나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이후 지중해에서 으뜸가는 항구 도시로서 교역과 학술에 있어
서 역사적인 큰 업적을 남겼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원정지의 곳곳에 도시를 만들었고 그 대부분을 알렉산드
리아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그중에서도 가장
찬연하게 빛났고 최고의 영광을 누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절세의 미인 클레오파트라 시대에는 수도로서 번창하였고, 학술.예술의 중
심지가 되어 이슬람 지배하에서도 굴지의 도시로서 크게 번영했으며, 오늘
날에도 지중해의 항만 도시로 또한 관광지로 혁혁한 존재 가치와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현대의 여행객들에게는 마케도니아 정복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도시
의 이름을 빼고는 거스이 전무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빈 들판 한복판에 홀
로 서 있는 둥근 기둥을 보며 '이건 대도서관 기둥이구나' 생각했다가 다시
지중해의 파도를 맞으면서 서 있는 카이트 베이 요새를 바라보며 '저곳에
파로스의 등대가 있었구나' 하고 상상할 때면, 문득 어디선가 병사들의 환
호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유구한 역사의 흐름이 바로 곁에서 울릴 것
같기도 하다.
마케도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이 땅에 거대한 항구 도시를 계획했던 사실
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알렉산드로스의 웅대한 구상을 엿볼 수 있다. 그 구
상 자체는 높이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과대 망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는 작다. 마케도니아는 더 더욱 작다. 나는 부왕을 훨
씬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바다 저편을 바라보면 지난
세월을 그렸고, 하늘 저편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장래를 생각했다. 잠시 황
홀해져서 머뭇거리다가 시간의 흐름조차도 잊었다.
도시 설계를 디노클라테스에게 맡긴 후 부하 몇 명을 대동하고 동쪽으로
향했다. 목표는 시와 오아시스, 바로 아몬 신전이 있는 곳이었다. 이것 또
한 이집트를 방문한 목적의 하나였다.
가장 권위 있는 신전에 삼가 배례하며 아몬신의 뜻을 묻고 싶었다. 신의
아들인지 아닌지, 무슨 계시가 분명 있을 것이다. 시와는 이집트 사막 한가
운데 있으면서도 그리스인의 신앙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만큼 그리스인의 진
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화 속에 페르세우스나 헤라클레스, 그리고 마라톤
전쟁에서 활약했던 장군 키몬도 이곳의 신의 계시를 믿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300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전진해 갔다. 그곳에서부터
도저히 길이라고도 할 수 없고 표시도 없는 사막 가운데를, 지금까지 왔던
거리만큼 그것도 도보로 걸어가야 했다. 낙타의 등장은 이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기 때문이다. 늘 있는 일이지만 무모한 여행이었다. 계절은 봄, 그다지
안 좋은 시기는 아니지만 사막의 여행은 언제나 목숨을 거는 일이다. 오직
계속 걸어가야만 했다. 끝없이 황량한 풍경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피로, 목
마름, 사막길은 아무리 걸어도 전혀 앞으로 나아간 것 같지도 않았다.
이상한 일은 뜻밖에도 계절에 맞지 않은 비를 만난 것이다. "신의 은혜구
나"라며 알렉산드로스는 너무나 기뻐하였고 누구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
다.
그러나 잠시 후에 다시 강한 남풍이 불어 모래 언덕을 움직이자 모든 표
시가 지워져 버렸다. 사방에 똑같은 모래 언덕이 지평선 저편까지 뻗어 있
을 뿐이었다.
안내인도 길을 잃었다.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니다. 가
자." "하오나... " "이 방향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말하고 모래를
밟아 나갔다.
동행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나중에, "뱀이 네 마리 나타나서 말이지, 울
면서 길을 안내해 주었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한 현명한 무장의 참뜻
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환시였을지도 모른다. 기적이라고 한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신념이 기적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사막 저편에 마치 신기루가 보이듯 올리브와 대추 야자가 떠올랐다. 급히
달려갔다. 틀림없는 아몬 신전의 모습이었다.
물도 샘솟고 있었다. 그 물은 낮에는 차갑고 밤에는 따뜻하다는 전승도
사실이었다. 구멍을 파면 소금도 얻을 수 있는데 순도가 높아 신의 소금이
라 하여 소중히 여겼다.
신전 자체는 석조 건물로 소박한 인상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 조촐하게 서 있는 모습이 성스럽게 비쳤다. 그 안에는 몇
명의 신관이 신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산 제물을 바
쳐서 일행과 함께 형식대로 삼가 배례를 마친 뒤에 왕 한 사람만 초대를 받
아 신탁이 내려지는 본전으로 들어갔다. 아몬 신상이 금색으로 칠해진 배를
타고 정면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나이 많은 신관이 다가와 조용하게 말했다. "아몬신은 대왕의 기나긴 여
행을 치하하셨습니다." 분명 길고 힘든 여행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보다
더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신관의 말에 자극받은 알렉산드로스는
원정을 이룰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아몬신이여, 제가 이 세상의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신관은 아몬 신상에 기도하더니 "됩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왠지 불안하게 들렸다. 너무나 어이없이 선선한 대답에 알렉산드로스는
약간의 의문을 품었고, 한순간 정말 대왕다운 발상이 뇌리를 스쳤다. "부왕
의 살해자는 모두 벌을 받았습니까?"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을 무심코
내뱉었다.
마음속에 맺혀 있던 의문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신을, 아니 신이라기보다
는 신의 사자인 신관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오만한 유혹에 사로잡혀 억누를
길이 없었던 것이다.
무책임한 대답은 용서하지 않겠다. 태후 올림피아스의 이름이 나오는지
숨을 죽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신관은 천천히, 변함없이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 "말을 바로잡겠습니
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아버지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 " 아버지는
필리포스가 아니라 신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뜻일까. 신이라면 누구라도 죽
일 수는 없다. 알렉산드로스가 조금씩 다가가서 다시 물으려 했다. "신은
가셨습니다." 이것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알렉산드로스는 고국 펠라에 사는 태후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에 관한 위대한 비밀에 대해 신의 계시를 받았지만 상세한 것은
귀국해서 말씀드리지요"라고 썼다. 어머니에 대한 의혹을 아몬신 앞에서 토
로했던 사실에 가책을 느껴서인지 상세하게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
다.
어쨌든 신의 뜻에 따라 '나는 신의 아들이다'라는 알렉산드로스의 확신이
한층 더 깊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2권에 계속>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2권
지은이: 아토다 다카시
옮긴이: 이경희
출판사: 도서출판 우석
등장 인물
네아르코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미에자 학사 출신으로 헤타이로이. 배에 정통하여 알렉
산드로스가 이끄는 동정군 가운데 수군의 지휘를 맡는다. 인도에서 돌아올 때 인더스강 하
구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하구에 이르는 신항로를 개척한다. 이로 인해 바다로
가는 또 한사람의 알렉산도로스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고대의 탐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달레이오스 3세: 흔히 다리우스 3세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왕. 이수스에서 알렉산드로스와
첫 전투를 치르지만 태후와 왕비, 공주 등을 버린 채 도주길에 오른다. 결국 부하 베소스 일
당에게 죽임을 당하는 최후를 맞는다.
로크사네: 알렉산드로스의 비. 소그디아나를 지배하던 옥시아르테스의 딸로 권세욕이 있는
여자이다. 알렉산드로스 4세를 낳으며 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인다.
바르시나: 알렉산드로스의 애첩. 원래는 이름을 떨친 용병 멤논의 형수이지만 남편이 세상
을 떠나자 멤논의 아내가 된다. 그러나 멤논이 돌연 병사하자 알렉슨드로스와 만나게 되어
헤르쿨레스 왕자를 낳는다. 왕이 죽은 후 왕위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자 왕자와 함께 자객
에게 암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자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필리포스 2세와의 인연
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며, 미에제 학사 시절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
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이라고 해준 말을 알렉산드로스는 평생의 신념으로 삼는다.
안티파르로스: 필리포스 2세의 장군. 알렉산드로스가 왕좌에 않은 후 동정길에 오를 때 마
케도니아의 국정을 책임지는 재상이 된다. 재상 자리에 머무는 동안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밀고에 시달린다.
알렉산드로스: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식 이름이며
사자왕이라고도 불린다. 왕위에 오른 후 동정길에 나서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인도까자
그 영토를 넓히나 서른두 살의 나이에 원정지에서 죽는다. 흔히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린다.
올림피아스: 필리포스 2세의 비이지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알렉산드로스를 신의 아들이
라고 주장하여 필리포스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에는 이혼당한다. 그러나 곧 필리포스가 암살
당하자 태후로서 권력을 휘두른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결국에는 돌에 맞아 죽는 비참
한 최후를 맞는다.
크라테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전략에 뛰어나 부장군까지 승격한 알렉산
드로스의 절친한 친구이다. 동정길을 반대로 돌아가 나이 든 안티파르토스를 대신하여 마케
도니아의 내정을 담당하게 된다.
클레안드로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왕의 암살 음모에 연루된 파르메니온을 죽이는 일을
맡는다. 후에 엑바타나의 태수가 되지만 횡포가 심하여 알렉산드로스왕의 분노를 사 처형된
다.
파르메니온: 필리포스 2세의 장군으로 필리포스가 암살되자 알렉산드로스를 지지한다. 부
장군이 되어 동정길에 나서지만 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아들 필로타스와 함께 죽는
다.
페르디카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알렉산드로스가 죽을 때 곁에 있다가 옥새
를 맡게 되는 것을 계기로 로크사네를 앞세워 권력을 쥐려한다. 한창 암투가 벌어지는 중에
부하에게 암살당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현인으로 불리는 장군으로 알렉산드로
스왕이 세상을 떠난 후 페르디카스가 장례를 치르려 하자 유체를 탈취하여 이집트의 알렉산
드리아로 간다.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운다.
필로타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파르메니온의 장남으로 알렉산드로스와는 오
랜 지기이지만 왕의 신성을 믿지 않고 동정을 중자하도록 병사들을 선동한다. 왕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죽는다.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의 부왕. 선왕에 뒤이어 필리포스의 큰형이 왕위에 오르지만
어머니 에우리디케의 책략에 의해 살해당하고 작은형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등 왕위를 둘러
싼 암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왕이 된다. 딸 필리피아의 결혼식장에서 암살된다.
헤페스티온: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미에자 학사 출신으로 뛰어난 예지 능력의
소유자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신적인 영감을 받는다. 왕이 "크라테레스는 마케도
니아 왕의 친구이고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왕이 진심
으로 아낀 인물이다. 동정군이 귀로에 오른 후 엑바타나에서 말라리아로 죽는데, 알렉산드로
스도 같은 병으로 죽는다.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는 시와 오아시스 신전을 방문하는 길에도 키레네 사절단과 동맹을
맺어 친교를 돈독히 했다. 키레네는 이집트 서편에 위치하는 고도로 오늘날 리비아령 키레
나이카 지방 일대에 널리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친교를 돈독히"하자 말하면서도 알렉산드로스는 등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생
각하면 이 친목도 또 하나의 가벼운 지배인 것이다. 하여튼 후대의 역사가 알렉산드로스 왕
국의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한계선을 리비아령에까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 키레네 영
역에까지 넓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와의 아몬 신전에서 이집트의 멤피스로 되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여전히 정역적으로 활
동했고 몇 가지 결단을 내려 실행해서는 경의를 표했다. 이 나라의 지배에는 사제들의 협력
을 무시할 수 없었다.
본래부터 이집트의 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품고 있었던 알렉산드로스는 황폐한 흔적이
현저한 신성 구역인 룩소르를 개수하여 호화로운 신전을 건립했다. 신전 벽면에는 이집트의
대신에 경의를 표하는 대왕 자신의 모습을 조각했지만, 이곳의 알렉산드로스는 왕년의 초강
대국을 다스렸던 파라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수완으로 "나는 이 나라의 주인 파
라오의 후계자이며 이집트 신들을 공경하는 사람이다"라며 내외에 널리 선전했다. 룩소르를
방문하는 사람은 지금도 신전에서 성소에 이르는 이 벽화를 볼 수 있다.
이집트 통치에 대해서는 행정관에게는 현지의 지배 계급을 두어 종래의 관습을 답습시키
는 한편, 그들을 감시하는 수하의 무장들을 수호 대장으로 임명하여 그들의 공을 치하했다.
또 성대한 사열식을 열어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였고 투기와 음악 대화를 열어 병사들을
위로했다.
이 와중에 장군 파르메니온의 어린 아들이 실수로 물에 빠져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헤티
아로이의 일원인 필로타스의 남동생이다. 사지왕은 비탄에 빠진 부자를 배려해서 성대한 장
례를 치르게 했다.
"참 안됐소."
"신의 뜻이지요."
파르메니온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한 것은 무인으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
다는 결연한 의지에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자리를 떠나는 장군을 지켜보았다.
"그래? 신의 뜻이구나."
같은 말을 혼자서 되풀이했다. 가까이 다가온 헤페스티온에게도 일부러, "아들의 죽음이
신으 뜻이라는군"하고 턱으로 파르메니온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에 채 반년도 못 있었다. 대왕은 기원전 331년 늦봄, 이 땅에서 또
하나의 위업인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 건설을 디노클라테스 일행에게 맡기고 시리아 지방
으로 군사를 돌렸다.
나중에 지중해의 여왕이라고 까지 칭찬받는 이 도시의 번영을 알렉산드로스가 이때 명확
하게 의식하고 있었을 리는 없으나, 이 건설 사업을 빼고서 알렉산드로스의 공적을 말할 수
는 없다.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헬레니즘 문화의 거점으로서 사상, 과학, 예술의 메트로폴리
스로서 그리고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이 도시가 해낸 역할을 정말 대단하다. 알렉산드
로스의 야망을 길이길이 역사에 남긴다는 점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두드러진 유산이
었다.
서둘러 군대를 북방으로 귀환시킨 첫 번째 이유는 일단 평정되었어야 할 시리아 지방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에서는 수호 대장이 참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
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알렉산드로스가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저절로 진정되었다. 티루스에
서 진영을 재정비하고 제국에 격문을 띄웠다. 이 땅과 인연이 깊은 헤라클레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리스극을 하는 배우들을 초대하여 연극 공연과 떠들썩한 경가를 열어 장병들을 기
쁘게 했다.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었다.
"스파르타의 움직임이 마음에 걸리는데."
이번에는 현재 머물고 있는 시리아 연안보다 그리스 본토 쪽이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 스
파르타는 마케도니아를 맹주로 하는 코린토스 동맹에 등을 돌리고 있엇고, 전에는 멤논의
봉기에도 가담하려 했었다. 스파르타 국와 아기스 3세는 아테네의 반마케도니아 세력과 손
잡고 마케도니아를 배척하는 또 다른 그리스 동맹을 만들 야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까지 지배하에 넣었고 시와 오아시
스에서 신의 계시도 들었으나 고국을 떠난 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몇 가지 사정
을 감안하나 철수하여 그리스 반도의 방비를 위해서 군대를 옮길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
다.
파르메니온이 스파르타를 치자고 설득하려 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스
남쪽을 차지하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아직 만족할 만큼 마케도니아에 복종하고 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여기에서 스파르트의 반항을 누르고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도 마케
도니아로 개선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한편에서 "병사들의 사기는 전에
없이 드높습니다"라는 헤타이로이의 보고도 들어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승 때마다 병사들에게 충분한 포상을 준데다가 "사자왕은 결코 지지 않
는다"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병사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병사들은 승리함으로써 얻어
지는 재화와 이국 여자들에게 적잖이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어차피 싸움에서는 이길 것이
고 그렇다면 좀더 싸워 막대한 페르시아의 부를 얻고 여자들로 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속에 잠재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로서도 그리스로 귀환하는 것보
다 앞으로 전진하는 편이 성격에 맞았다. 처음부터 페르시아 정벌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가.
때마침 아테네에서 사절이 와서, "제발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일단 마무리 짓는 대로 포
로를 되돌려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간청을 했다.
그라니쿠스강에서 승리했을 때 페르시아측에 가담했던 아테네인을 많이 잡아 포로로 만들
고 노역을 시켰던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석방을 구하는 진정이 아테네로부터 있었지
만 알렉산드로스는 언제나 말끝을 흐리면서 거절했었다.
"좋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절대 스파르타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맹세코 서약하겠습니다. 아테네인 누구라도 사자왕에게 거역한 스파르타와 내통
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 말 잊지 않겠다."
구두로 한 약속을 믿고 아테네 포로를 풀어 주었다.
헤티이로의 한 사람인 필로타스는, "사자왕은 왜 아테네에게는 약하지"하고 고래를 갸웃
거리며 빈정거렸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다. 좋든 나쁘든 알렉산드로스는 선진 문화를 동경하
며 부러워했다. 일종의 열등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분명히 아테네에 비하면 마케도니아
는 아무리 분발해도 모든 면에서 훨씬 뒤처져 있으며 너무나 촌스럽다.
선왕 필리포스의 아테네에 대한 경애는 노골적인 편애였다. 마케도니아 왕가는 아테네를
소외한 그리스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 명제가 옳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편애한 때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이 젊은 대왕도 아테네인이 약간 부드러운 태
도로 대해 주면 자신도 모르게 기쁨을 느끼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한참 후의 이야기지만,
이것은 장치 화려한 페르시아 문화와 접촉했을 때에도 똑같은 형상을 엿볼 수 있는 알렉산
드로스의 특징이었다. 물론 단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 느끼는 게 나쁜가?"
알렉산드로스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문화에는 탄력성 있게 대응하며 재빠르
게 좋은 점을 섭취할 수 있었던 점은 알렉산드로스를 한낱 야만적인 정복자로 끝나지 않게
만들어 준 장점의 하나일 것이다.
그 평가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때 즉 티루스에서 아테네 사절단을 맞았을 때 쉽게 포로
를 해방시켜 준 것은 아테네에 대한 편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제압한
다면' 하는 의도가 대왕의 심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라기보다는 필요라고 잘라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스파르타가 겁없이 날뛰는 것을 아테네 힘으로 견제헤 주었으
면 하는 것이다.
시리아 오지에서는 달레이오스 3세가 대군을 정비하여 총력을 다해 알렉산드로스를 무찌
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수르에서 패한 페르시아 왕은 당연히 반격을 꾀하고 있을 터였다.
페르시아의 동향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들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신속하게 결정됐
다. 망설임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생각은 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달레이오스를 없애자.'
이수스에서의 접전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달레이오스는 도망쳐 버렸다. 페르시아 왕국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국지전에서 거둔 승리는 그리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은 전투
에서는 이겼지만 달레이오스는 점점 더 오지로 도망갔다. 붙잡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추적만
거듭한다면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무한한 궁지에 빠질 우려마저 있다. 달레이오스가 전군
을 이끌고 싸우러 온다는 보고가 확실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뜻밖의 행운이 아닌가. 바라고
바라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병사들의 사기도 높다고 하니 또 한번 신의 은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서 경비를 굳건히 하겠다는 생각 따윈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스파르타
의 봉기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선은 아테네를 믿고 진압을 맡겨 두자. 어차피 스파르타가 가담하지 않으면 그리스 본
토에서 위험한 반란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자왕은 아테네에게는 약하다는 필로타스의 말이 전혀 빗나간 것은 아니지만, 알렉산드
로스에게는 나름대로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각지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반란에 대비하여 해군만을 그리스 해역으로
들여보내고, 알렉산드로스는 전군을 이끌로 티루스에서 북상하다가 도중에 동으로 진로를
변경하여 다마스쿠스의 여름 사막 지대를 향해 들어갔다.
괴로운 행군이었다. 태양은 매일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대지를 태우고 바람까지 살갗에 달
라붙어서 태웠다. 가다가 쓰러지는 병사가 날마다 늘어났다. 더위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아 제
대로 된 생각이 나올지도 의심스러웠다. 한여름의 시리아 사막은 사람이 갈 곳이 아니었다.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씩 쇠잔해져 갔다. '저편에는 페르시아 대군이 단단히 준비하고 있을
텐데'하는 공포심만 더할 뿐이었다.
알렉산드로스 곁에는 바르시나가 있었다. 페르시아 태생인 바르시나는 이 주변의 풍물이
나 자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페르시아에는 불타는 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왕이 석유를 알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더운 거냐?"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바르시나의 지식이 대왕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훌륭한 위로가 되었다.
폭서에는 견딜 수 없었지만 적군의 방해는 적었다. 탑사쿠스는 대하 유프라테스의 도하
지점이다. 6000이 넘는 적병이 양가슭에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한 정도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군이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도 적은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매우 의아스러웠지만 적군의 목적은 도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하를 건넌 후에 알렉
산드로스군이 남으로 진로를 찾아서 직접 바빌론으로 진격해 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합인 것
같았다. 달레이오스 또한 어딘가 적당한 지역에서의 결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
로스군을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다리를 가설하여 강을 건너 우선 북으로 전진했다.
달레이오스는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확실한 정보를 캐낼 수가 없었다. 주변 지세에 대한
알렉산드로스군의 지식이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을 적군은 훤히 알고 있을 것으므로 어쩔 수
없이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에 없이 서두르지 않으며 정
보 수집에 전념했다.
조사를 해가면서 대왕은 여기서도 니케포리온이라는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날 시리
아령 라카 근처에 유적이 남아 있다.
야영하는 동안 틈틈히 알렉산드로스는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인 크라테레스를 불러 이야기
를 했다. 물론 두 사람의 식탁에 붉은 포도주는 빠질 수 없다. 대왕은 술잔의 술을 목으로
흘려 보내면서 지난날을 그리워했다.
"미에자 학사에서 마을 사람들고 씨름을 한 적이 있었지."
마케도니아의 씨름은 오늘날의 레슬링에 가깝다.
학사 내에서 열렸던 운동회의 여흥으로 인근 주민들을 초청하여 대항전을 했던 것이다.
모여든 인근 주민들 쪽은 힘센 젊은이들이 100명 남짓, 학사 쪽은 10여명. 상대편이 많은 것
을 보고 "패싸움이라면 완전히 지겠는걸" 하고 외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는 1대1로 싸워서 이긴자가 진출하는 토너먼트전이었기 때문에 미에자 동로들
이 강했다. 평상시부터 단련하고 있고 크라테레스가 스물여덟 명을 연거푸 이기는 대단한
기염을 토했다. 마지막에 알렉산드로스가 일곱 명을 쓰러뜨려 학사 쪽이 간신이 체면을 세
웠다.
이때의 일은 크라테레스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저쪽 편에 굉장히 센 놈이 있었는데 발을 미끄러지게 해서 다행이었어. 큰일날 뻔했지."
추억담으로 얘가가 활기를 띠었다.
"조가였어, 그라니쿠스강 싸움에서 전사한..."
"아냐, 조가가 아니야! 또 한 명 얼굴이 약간 거무스름한... 사자하고 말고 나하고 싸웠던
상대야. 키가 내 목 하나만큼 더 크니까 덤벼들자마자 머리부터 누르려는 거야. 하도 거침없
이 밀어붙여서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크가테레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몸짓을 섞어 가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더
이상은 듣지 않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드문일이 아니었다.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자신의 생각속에 틀여박혀 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크라테레스는 이야기를 멈추고 새로 술을 따르며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로 얼버무리고
는 혼자서 쑥스러워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무언
지 모를 사냥감을 발견해 낸 것 같았다. 늘 있던 일이기 때문에 크라테레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뇌리에 무언가를 찾아내어 추적하고 있었다.
티그리스강도 쉽게 건넜다.
'달레이오스는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 걸까. 어디에서 싸울셈인지, 원.'
만족스러운 정보가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적군의 위치를 모르면 아무리 용맹한 알렉산드
로스로서도 공격을 가할 수가 없다. 시리아 사막은 맹목적으로 적을 찾가에는 너무나 광대
하다.
초조함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초초해 해서는 안 됩니다."
파르메니온 이렇게 충고할 때 초조하지 안핟고 하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는 것 자체가 초조
하다는 증거였다. 그것을 자신도 잘 알기 때문에 더 더욱 초조함을 느꼈다.
아무리 태연한 척 가장해도 부하들은 대왕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똑
같은 초조함을 느꼈다.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입에서 입으로 번지는 이야기는 무성했
다.
"굉장한 대군 같은데."
"사막을 새카맣게 메울 정도의 수야."
적의 크기만 계속해서 선전됨에 따라 공포는 더 더욱 커졌다.
대개 병사들은 무아지경에서 싸우게 하든지 풀어놓고 긴장을 해소하게 하든지 둘 중의 하
나가 좋다.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채 공포를 가슴에 계속 담고 있으면 좋지 않다. 정
신력의 소모가 눈에 띄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체력까지도 약화된다.
알렉산드로스는 진영의여기저기에 날마다 공포와 권태가 커져 가는 데에 위기감을 느꼈
다. 그러나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무심결에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막사를 뛰어나와 점술사를 불러댔다.
"아레크산드로스는 어디 있느냐? 아레크산드로스를 불러라."
밤하늘의 달이 조금씩 파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월식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황급하게 달려온 점술사의 어깨를 뒤흔들며 하늘을 가리켰다.
"어떻게 보느냐?"
"예?"
점술사는 눈만 깜박였다.
"달은 페르시아의 상징이고 나는 태양이다, 알겠지."
월식이 태양의 작용에 의해 알어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달이 페르시아의 상징
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 점술사는 페르시아와 달과의 관계를 믿고 있었다. 페르시아
군기에 반달이 그려져 있었던 것도 같았다.
"예..."
태양은 사자와 더불어 틀림없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표장이다. 16갈래로 빛을 발하는 태양
은 왕실용 가루류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이 왕의 의향인 점
역시 왕을 모시는 점술사가 헤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빨리 맞춰 보아라."
"알겠사옵니다."
점술사 아레크산드로스는 즉각 준비를 하고 신중하게 신의 뜻을 물었다.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를 공략할 전조입니다."
"그래."
"이달 중이옵니다."
"좋다. 그 뜻을 널리 전하라."
제사지낼 준비를 했고, 대왕은 제물을 바쳐서 신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병사들의 공포심은 당연히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월식이 어떤 징조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페르시아가 달이고 그것이 파먹혀 들어
간다는 것은 결코 페르시아에게 좋은 징조일 리가 없다. 첫째, 우리의 사자왕은 지지 않는
다. 반드시 이긴다. 결전을 앞두고 이렇게 획실한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니 이것이 승리의 전
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사에 관련한 근원적인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쓸데없이 의
심했던 부분은 깨끗이 불식되어 장병들의 사기는 다시 올라갔다.
헤타이로의 기세도 높아졌다. 사자왕의 명령을 받고 병사들을 격려한 뒤,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몇 사람디 모여들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의 아들답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말했다.
그러나 필로타스는 이때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자왕을 평가했다. 왕
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고 기탄없이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남자다. 친근함의 과시로도 보이겠
지만 파르메니온의 아들이라는 자신도 있기 때문이다. 동정군 중에서 이만큼 훌륭한 인물도
드물다.
옆자리에 앉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맞장구를 쳐주었으면 했는데, 고개를 약간 흔든 것은 동
의를 피하는 의지가 표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지."
헤페스티온이 필로타스의 말을 감추려는 듯이 말했다. 이것은 빈정거리면서 한 말이 아닌
본심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신의 아들인 것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클레이토스가 돵의했다.
"사자왕은 절대지지 않아."
다소 추앙하는 뜻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신의 아들이라면 질 리가 없을 것이다. 크라테레
스와 카산드로스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모두가 뛰어난 용사들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헤타이로이는 능력에도 성격에도 차이가
있으나 모두가 탁월한 무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알렉산드로스군의 강인함이기도
했다. 결속만 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각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충분한 사고력도 갖추
고 있었다.
가장 단순하고 명쾌하고 충실한 것은 클레이토스다.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드로스 유모의
님동생으로 말 그대로 요람에 누워있을 때부터 줄곧 함께 자란 사이이다. 한 살 연상인 알
렉산드로스를 경애하며 소박한 마케도니아인의 진실한 마음으로 추종하고 있어 알렉산드로
스의 말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왕 스스로가 "신의 아들이다"라고 칭하면 클레이토스
는 '반드시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가장 뛰어난 충성심과 순박한 인품은 마케도니아군
의 하층 병사들에게도 신뢰받고 있었다.
크라테레스도 충실한 측근이었지만 신의 아들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반신반의하고 있었
다. 사실대로 말하면 '신과 태후가 어떻게 잘 수 있을까?"라며 믿을 수 없었지만 반론할 근
거도 별로 없었다.
현대인에게는 약간 기이하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고대에서는 문명이 진화함에 따라 신과
인간과의 융화가 빈번해졌다. 적어도 변경 지역의 마케도니아인보다는 좀더 발달한 그리스
본토쪽의 주민은 신과 인간과의 융화를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신이 인간과 교합하여 자식
을 얻는다는 그런 이야기는 그리스인에게는 그다지 진가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그와 같은 종류의 에피소드가 넘칠 만큼 있었고 철인 플라톤도 신과 처녀와의 결합에소 태
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리스인에게는 '이 세상에서 두드러지게 뛰어나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었고, 왕이나 예언자나 위대한 인물은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신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리스인은 깊
이 생각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며 위대함이 한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박한 마케도니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군림하는 신들을 공경하고는 있
어도 가까운 일상에 관해서는 현실적인 판단을 고집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과는 다르
다, 교합은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신을 공경하는 마음이 깊은 헤페스티온은 '신의 아들'을 한결 같이 믿었다. 이것은 잘 알
지 못하면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며 신의 존재를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속에서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
한편 지성의 예리함이 돋보이는 필로타스는 '적절한 방편이군'하고 생각했다. 소박하고 입
이 무거운 병사들은 움직이기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좋은 예가 오늘 방의 월식이다. 신
의 계시든 아니든 병사들의 불안은 적잖게 해속되지 않았는가. 도움이 될 수 잇는 것은 활
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 알렉산드로스는 자기 자신마저도 속일 만큼 훌륭하게
연기해 내야 한다. 어차피 속마음은 알 수 없다. 신을 믿는다는 것과 믿는것처럼 가장하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필로타스는 사자왕을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도 여기에 가깝지만 태도는 전혀 달랐다. '그의 말대로 속마음 모르
는 일이다. 그렇다면 의문점일 있더라도 사자왕과 같이 우리도 연기 좀 한들 어떻겠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만약 사자왕이 정말로 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 태도는 별다른 문제 없이 무난하
게 넘어간다. 그러나 필로타스처럼 자신의 의혹을 아무리 좋은 시기라 해도 노골적으로 드
러내서는 병사들에게 언제 그 연기를 간파당할는지 모르는 일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신중
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헤타이로이를 포함한 마케도니아군의 간부들은 대체로 크라테레스의 생각에 가까
웠을 것이다. 다소의 의문점이 있어도 우선은 사자를 믿겠다는 것이다. 신의 아들이라면 그
것으로 족하다. 월식이 승리의 전조라면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다. 그리스인 용병들은 훨씬
더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소의 의문점이 있어도 이런 기운이 대세를 제압했다.
'나는 신의 아들이다.'
시와 오아시스를 방문한 알렉산드로스의 신념은 더욱더 확고한 것으로 변했고 몇번의 승
리가 그것을 입증했다. 그렇다고 해도 월식을 보고 점숙하를 부른 것은 순간적인 판단이엇
다. 그래, 하나의 책략이었다. 달이 페르시아의 상징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왠지 그런 마음
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때마침 월식이 일어난 것은 역시 신의 계시가 아니겠는가. 아리스토텔
레스가 말했다.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신의 아들이라면 저절
로 보이는 것이 있다."
이것이 그 '보이는 것'은 아닐까. 결단을 앞두고 병사들의 불안은 밀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만월이 일그러지는 것이 신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대로다. 의심할 수 없다."
밤새도록 헤페스티온이 곁에 있었다.
조금씩 정보가 날아들었다. 달레이오스는 대군을 모집하여 뜻밖에도 가까이까지 진군해
와 있는 것 같았다. 이 지방의 중심지인 아르벨라에 주둔하고 잇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윌실이 있었던 사흘째 되는 날, 마케도니아 전선의 부대가 적의 기병대를 확인했고 알렉
산드로스는 바로 정예군을 모아서 그파했다. 몇 명을 살상하고 도망가는 적군을 추격하여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 왔다.
포로의 입에서 달레이오스 군사의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즉, 가우가멜라라는
신중 도시로, 아르벨라에서 600스타디아(약 100킬로미터)를 진군하여 도시에서 떨어진 평지
를 격전지로 결정했다. 알렉산드로스 진영에서부터 100스타디아도 안 되는 곳이었다.
적군의 규모도 대충 알게 되었다. 기병 4만, 보명이 50만이 넘고 커다란 낫이 달린 전차
200량, 약간의 전투용 코끼리가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소의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놀랄
만한 대군임에는 틀림없었다.
전번의 이수스 해안은 협곡이 있었어 기복이 심한 전장이었다. 대군을 움직이기에는 불리
하도고 판단한 달레이오스는 이번에는 구릉으로 싸여 잇는 넓은 평지에 포진할 작정인 모양
이었다. 어디에서 싸움을 시작하더라도 이수스 때와는 크게 달랐다.
알렉산드로스는 열심히 부근 지형을 조사하게 했다. 자신도 부세팔로스를 달려서 결전장
을 살펴보았다.
"한번 더 달려다오"
그토록 훌륭한 애마도 눈에 띄게 노쇠했다.
한편 병사들에게는 상세한 정보를 주지 않고 충분한 휴식만을 취하게 했으며, 후위 진영
의 방비를 견고히 하고 군량과 마초를 가득 채워 병사들에게 안도감을 심어 준 뒤에 전군을
전진시켰다.
페르시아군도 정세를 파악하고 군을 평지로 옮겼다. 알렉산드로스도 구릉을 감듯이 진군
했다. 60스타디아(10킬로미터 정고)의 간격에서는 보이지 않던 적의 모습이 30스타디아까지
좁혀지자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임전 태세로 돌입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에서도 혈기를 앞세우지 않고 한 번 더 지형을 확인하여 적군
의 진형과 방비의 상황을 찾아내오 자군의 배치와 전략을 짰다. 그리고 지휘관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조용하게 말했다.
"전투를 앞두고 새삼스럽게 제군들을 격려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미 제군들의 의기는
매우 왕성하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투는 시리아와 페니
키아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라 누가 아시아에서 군림할 것인지, 세계의 지배를 둘
러싼 전쟁이다.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쳐라! 충분한 포상을 약속하겠다. 용사에게는 바라는 이
상의 영예가 주어질 것이라고 제군의 부하 병사들에게도 전하라. 단결을 우선으로 하고, 소
리를 내지 않고 전진할 때는 굳은 침묵을 지키고, 환성이 필요할 때에는 큰소리로 외치라!
명령은 더없이 신속하게 전해져야 하며 그리고 엄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적의 대군을 무
서워할 필요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명심하여 준수하고 결코 소홀해 해
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이것이 내가 할 말의 전부다. 한 사람이 자신의 임
무를 게을리 했을 때에 그것이 전체에 위험을 미친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말고 각자가 본
분을 다해야 한다. 적의 대군에 대해서는 이미 작전을 강구하고 있다."
일동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며 파피루스로 만든 작전도를 펴서 진용을 보여 주었다. 지
휘관들이 그것을 확인하고 있는 동안, 바로 곁에 서 있던 프라테레스에게 물었다.
"알겠느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군은 비스듬히 진형을 만든다."
파피루스에는 횡으로 일직선인 페르시아군에 대해 마치 기러기 행렬처럼 비스듬하게 대치
하는 진용이 그려져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프라테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런 진형을 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 차를 두는 것이다. 미에자에서 했던 씨름과 같은 이치다. 한 번에 싸운다면 수가 만
은 쪽이 당연히 유리하지만 진형을 비스듬히 만들면 제일 앞의 부대는 계속해서 적의 일부
와 싸우게 되므로 수의 차가 시간 차로 경감된다는 이치다. 적어도 사전은 그렇게 나가고
그러다고 전진이 흩어지면 어차피 예측 불가능하다. 빈틈을 노려서 적의 본진을... 달레이오
스만을 노린다."
손짓발짓을 해가면 온몸으로 설명했다.
"과연."
어제 둘이서 술을 마셨을 때 사자왕은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더구나 이런 기러기 진형은 약점이 쉽게 적에게 드러나지 않아 적도 공략하기 어렵다.
실전으로 경험했던 일이다."
설득력이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기러기 진형의 어느 부분을 어떤 부대가 맡을 것인지, 측면에서의 공격에
는 어느 부대가 나설 것인지, 기회를 틈타 돌격을 감행하는 것은 어디와 어디인지, 또 전황
을 확인하고 지원하는 것은 어느 부대인지, 적의 응원 부대를 가로막을 군사는 어디에 대개
시킬 것인지... 상세한 지시를 내리며 하나하나 확인시켰다. 각자 임무를 엄중하게 지키려고
철저하게 노력했다. 기러기 진형은 선황 필리포스가 테베 명장에게서 배워 실천하였고 알렉
산드로스에 이르러 완성한 것이다. 이후 고대 무장들이 그대로 이용했던 뛰어난 전법이다.
"대군과 맞서 싸우기에는 야습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제안하는 파르메니온에게 알렉산드로스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
몇 개의 명언을 남긴 대왕의 에페소드로 자주 인용되는 것 가운데 하나지만 단순한 긍지
가 아니라 의외로 의미 심장한 말이다.
야습은 적도 당황하지만 아군에게도 오산이 생길 수 있다. 얻둠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들
고 혼란은 공포를 낳는다. 확실한 작전과 통솔력만 있다면 밤을 틈타 요행을 훔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렉산드로스는 '이것이 마지막 전투다'라고 마음으로 결정하고 있
었다.
달레이오스를 죽이는 것만이 목적이었고 달레이오스를 죽이면 자연히 페르시아 왕국의 명
운은 끝난다.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어도 달레이오스가 도망간다면 전투는 언제까지나 계
속될 것이고, 안으로 안으로 광대한 산지를 헤매며 달려야 한다. 달레이오스를 절대 놓쳐서
는 안 된다. 밤에 도주하는 것은 달레이오스에게는 구원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이므로 야습은
절대 안 된다.
파르메니온은 젊은 왕의 심리를 잘 읽고 있었다. 완전히 파악한 다음 반대로 권하면 왕은
더욱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게 되고, 그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사기 진작에 적잖
은 도움이 되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페르시아군은 알렉산드로스가 야습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대군에
비해 규모가 작은 마케도니아군이 결전을 벌인다면 역시 한 밤의 습격이 순리일 것이며 기
습을 좋아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성격과도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오늘 밤 올 거야!"
병사들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철야 경계를 계속했다.
그리고 무사히 밤이 지나고 그 다음날 밤이 되었다.
"오늘 밤에는 꼭..."
"각오는 되어 있다."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임전 태세로 보내는 밤의 긴장감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 공포는 쌓이고 피로도 더하다. 마
케도니아군이 월식이 있었던 밤을 경계로 불안을 던 것과는 반대 현상이 페르시이군에게 일
어나고 있었다. 대군임에는 틀림없는데 소위 말하는 오합지졸이므로 결속력이 부족하여 전
군의 지휘는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전, 전야, 알렉산드로스는 밤이 깊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파르메니온이
깨우러 올 때까지도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흔들어 깨우는 파르메니온이 태평하다는
듯 비난하자 "여기까지 궁지에 몰아넣었으니 편히 잠잘 수 있지 않소. 이미 이긴 전쟁이니"
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기원전 331년 9월 30일, 낮은 구릉을 끼고 대치해 있던 양군이 진격을 개시했다.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마케도니아 측에서 보면 오른쪽에 베소스 장군의 군대, 왼쪽에 마자
이오스 장군의 군대, 달레이오스 자신이 지회를 맡은 군대가 중앙에 있었다. 전위군으로서
베소스 진영 앞에 박트리아인 기병대와 스키타이인 기병대가, 또한 마자이오스 진영 앞에
아르메니아인 기병대와 카파도키아인 기병대가 있어 오른쪽에서의 신속한 공격에 중점을 두
고 있었다. 50대의 전차와 50마리의 전투용 코끼리도 진영의 최전선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본진은 긴 횡대를 만들었고 베소스군은 또 하나의 박트리아인 기병대, 다인 기병대, 아라
코시아 기병대, 페르시아인 보병. 기병 혼성대, 수시아나인 가병대, 카두시아나인 기병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렬하고 있었다. 한편, 마자이오스군도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
로 카파도키아 기병대, 알바니아인 기병대, 히르카니아인 기병대, 타파르인 기병대, 시케인
기병대, 파르티아인 기병대, 메디아인 기병대, 메소포타미아인 기병대, 시리아인 기병대가 차
지하고 있었다. 중앙의 달레이오스왕은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친위대를 한가운데 두고,
마르드인 궁병대, 카리아인 정예대, 인도인 기병대, 그리스인 용병대를 끌고 와서 자리를 지
키고 있었다.
후위 공격은 시타케니아인, 에리트라 해안의 백성들, 바빌로니아인, 우크시엔인 등 마치
구름처럼 모여든 많은 보병대로 그 수는 헤아릴 수도 없으며, 거의 30만 가까이는 될 것 같
다. 전에 마케도니군이 잡았던 포로의 입에서 들었던 수보다는 보병이 적은 것 같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대군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딘 오합지졸이군!"
알렉산드로스가 띄운 격문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들어 보지도 못한 종족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르시아가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서 징용된 병사다 대세를 차지하고 있었고,
상호 연계도 그다지 긴밀해 보이지 않았다.
아에 대응하는 알렉산드로스 군사는 페르시아군만큼 다양하지는 않았다. 마케도니아 무인
을 중추로 그리스인, 테살리아인, 고국 북방에 사는 아그리아네스인, 트라키아인, 크레타인,
그리고 전쟁에 익숙한 용병들이다. 기러기 진형의 오른쪽 맨 앞을 헤티이로이 필로타스가
지휘하고 중앙에 알렉산드로스의 주력 부대가 정렬해 있고 후위는 파르메니온 부하들이다.
필로타스 진영의 최전선에는 역시 헤타이로이 클레이토스가 기병대 정예를 모아서 선진을
살필 것이다.
헤타이로이의 강자가 각자 부대를 맡고 명령이 내려지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
여 새로운 공을 세우려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기병수는 8000이 안 되며 보병대는 우수
한 조직 집단인 파란쿠스 1만 2000명을 포함해도 전체 5만 명을 못 넘어, 수에 있어서는 압
도적인 열세였다.
그러나 이쪽은 결속력이 대단하다. 잘 훈련되어 있으며 더불어, "승리를 의심하지 마라.
제군의 지휘를 맡은 사람은 신의 아들의며 불패의 장군 알렉산드로스다"라는 우렁찬 외침에
는 힘겨운 상대와 싸워서 이겨낸 실적이 있으며 신뢰가 있다. 대왕의 투구는 은빛으로 빛나
며 무구에는 화려한 세공으로 박힌 보석이 춤추는 듯 보이기 때문에 상스럽기까지 하다.
전투는 오른쪽 맨 앞에서부터 시작했다. 필로타스가 이끄는 군대는 오른쪽에서 더 오른쪽
으로 움직이면서 싸우며 굴곡이 심한 들판으로 적을 유인했다. 그것을 쫓아오던 베수스 진
영이 지치기 시작하여 마케도니아의 기병대가 빈틈을 노려서 공략하면 상대도 지원 군대가
한꺼번에 모여들어 반격을 개시했다. 적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는 듯 형세가 불리하다고 보
여지는 순간에 이쪽에서 지원군이 가세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페르시아의 전진대
가 알렉산드로스를 목표로 커다란 낫이 달린 전차를 타고 요란한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 왔
다.
"작전 준비!"
이미 대책은 강구되어 있었다.
눈앞에까지 전차를 유인해 놓고 그 순간 대열을 열면 전차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지나가
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기복이 심한 곳이다. 대열을 벌였던 마케도니아군이 방향을 바
꾸어 뒤에서 창을 던지며 전차를 덮치자 적병은 쓰러졌다. 이리하여 전차 공격은 아무런 효
과를 보이지 못하고 궤멸되었다.
파르메니온 군사가 뒤늦게 전투에 가담하자 마자이오스 군세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파
르메니온은 적의 대군의 맹공격을 받고 매우 고전하면서도 왼쪽으로 도망가며 적의 진용을
유인했다. 중앙에서는 마케도니아군의 군진 파란쿠스가 거대한 생물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
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소영돌이쳐
서 전투의 전모를 예측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어디가 우세
하고 어디가 열세인지, 대군을 움직이는 방법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한정된 범위의 국지전
이라면 결속이 돈독한 마케도니아군이 당연히 유리할 것이었다.
마케도니아군은 적진의 중앙부에 빈틈이 생겼을 때 소속 기병대와 함께 일체의 작전을 포
기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아니, 이것이 바로 작전의 비결이었다. 파란쿠스의 돌진으로 달레
이오스 친위대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그곳으로 노도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가병대가
발려왔다. 달레이오스의 눈에는 흙먼지를 가르고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검은 격류처
럼 보였다.
주위를 둘려보며 "도망가지 마라"하고 아무리 외쳐도 페르시아군의 패주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넓은 싸운터를 일일이 확인한다면 우세한 페르시아 부대도 적잖게 있었을 테지만
전모를 알 수는 없었고, 전투가 지연됨에 다라 페르시아군 중앙부가 약화되고 그곳을 집중
적으로 공격받자 도망하는 병사가 생겼다. 달레이오스의 눈에는 그것만 보였다.
역시 용가가 부족했던 것인지 모른다. 달레이오스는 자신이 알렉산드로스의 불패의 소문
과 신의 도움을 등에 업었다는 전설에 떨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공포
가 밀려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수스 패전의 재현이었다. 전차의 방향을 돌려 단숨에 도주를 시작했다.
"기다려라!"
허술하기는 해도 달레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는 많은 군사들이 있었다. 도주가 시
작되었지만 적의 대군은 여전히 도처에 정예를 남겨 두고 있었다. 추격하는 기마군은 길을
가로막는 적을 상대로 격심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파르메니온이 위험하다!"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급히 외쪽으로, 지원을!"
전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전의 총지휘관에게는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왼쪽에 있는 파르메니온이 위험
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전투의 추세를 살피면서 노장 파르메니온이 교묘하게
적의 공격에 응대해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시간은 견딜 수 없을 것
이다.
외치는 소리, 병사들의 움직임, 형용하기 어려운 전황 속에서 왼쪽의 파르메니온이 위험하
다는 것은 알렉산드로스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순간 갈등했다. 그러
나 외침이 먼저 튀어나왔다.
"딜레이오스를 쫓아라."
하지만 전령의 목소리를 듣고 알렉산드로스가 거느린 기마 몇 기가 즉시 말머리를 왼쪽으
로 틀어 지원하러 가려 했다.
'아니다, 이쪽이다'하고 외치기도 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찌된 일인지 부세팔로스가 방향을 왼쪽으로 돌려 달리기 시작했고, 이것을 본 기병대가
한꺼번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을 다투어 몰려들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애마의 배신에
놀란 나머지 당황했다.
"아냐, 달레이오스를..."
말고삐를 잡아당려도 부세팔로스느 앞으로 달려만 갔다. 현마는 이수스 전황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달레이오스를 쫓지 않고 파르메니온을 구했다. 일단 달리기 시작
한 군사들의 움직임을 멈출 길이 없었다. 좋든 싫든 간에 전투는 시작되고야 말았다. 대왕
자신도 좌익을 공략해 오는 적군에게 포위되어 버려 싸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흙먼지 속에 서 있는 파르메니온의 볼에 회색이 감도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페르시아군도 정예를 모으고 있었다. 처절한 공방전이 시작되었고 적군도 아군도 죽음에
저항하며 미친 듯이 싸웠다. 죽은자, 부상당한 자, 그들을 밟으며 달리는 자... 한동안은 우열
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거느린 기마대는 마케도니아군 최고의 강자만
모여 있다. 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총지휘관조차도 예기치 못했던 것을 적이
알아차릴리가 없었다. 적군은 협공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차츰 기세를 잃어 갔다. 한번 열세
에 빠지면 전황은 순식간에 판가름 난다.
마케도니아측에 승기가 보이자마자, "달레이오스를 쫓아라"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성난 목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화가 치밀어 목에서부터 화가 넘쳐 나왔다. 말머리를 되돌리면서도
'이젠 늦었어'하는 절망감이 뇌리를 스쳐 갔다.
'그렇다면 패배야.'
달레이오스의 목을 자르는 것이 이 전투의 첫쩨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쫓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이번에는 부세팔로스도 거역하지 않고 달렸다. 수백의 기
마대가 뒤를 쫓아 반항하는 적을 뿌리치며 달려갔지만 이미 페르시아 왕의 자취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도 이수스전의 재현이며 이미 추격을 불가능했다. 끝까지 추격해
봐도 잡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추격을 포기하고 허탈하게 전장으로 되돌아오자 전쟁은 대
충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승이다."
"알렉산드로스 만세!"
그런 승리의 함성에도 아랑곳 않고 그 자리에서 추격군을 조직했다. 며칠 아니면 몇십 일
이 걸릴지도 모르는 추격이다. 적군의 반공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부상이 적은 기마병을 모아서 뒷일을 파르메니온과 부하들에게 맡기고 출발했다. 이미 밤
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했는데도 이 대하의 지류를 건너야 했다. 페르시아측 병사가 달아났
던 후진을 습격하여 전리품을 모았고 부하 병사들에게도 휴식을 취하게 했다.
한밤이 지나서 달레이오스가 아르벨라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급히 출진을 명령했다.
아르벨라는 가우가멜라 결전을 앞두고 페르시아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도시이다. 달레이오스
가 숨었다면 그곳이 틀림없을 것이다.
밤을 세워서라고 추격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이
빗나갔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지만 달레이오스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아르벨라에서 다
시 도주한 모양이었다. 당황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이 있었다. 엄청난 양의 재화와 왕의 소
지품을 거두어들였지만 달레이오스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페르시아측의 사상자는 십수만 명, 포로는 그 수를 상회했고 노획한 전리품도 어마어마했
다. 한편 마케도니아측도 사상자로 우수한 장수를 상당수 잃었고 군마에도 막대한 순상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피해는 적군의 10분의 1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이리하여 가우가멜라 전투는 마케도니아측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으나 알렉산드로스만은
이겼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무엇이든 이수스 전투와 똑같은 꼴이 아닌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고서야 어떻게 승리했
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급기야는 '이것이 딜레이오스의 전술이 아닐까'하는 의아심마저 품게
되었다.
일리는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렉산드로스도 페르시아의 광대함을 깨달았고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영토가 광대하
고 군자금이 풍족하다 못해 넘치면, 이길 것 같은 때에는 반드시 이기고 질 것 같은 때에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재빨리 도망가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오히려 추격하는 쪽이 더 지
친다. 전쟁을 반복하다 보면 항상 이기던 군대도 언젠가는 질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적의 전법이라면 이수스도, 가우가멜라도 그 틀 안에서 만들어진 사건밖에 안 된
다. 달레이오스의 재빠른 도주를 생각하면 그것이 예정된 전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었
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초조함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그래도 역시 추격하는 것 되에 달리 방법이 없다. 적의 전술에 맞추면서 땅 끝까지 추격
하여 결국 달레이오스를 제거하지 않은 한 필경 페르시아는 세력을 만회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승리를 축하하는 술에도 기분 좋게 취할 수가 없었다. 뒤틎게 아르벨라에
도착한 파르메니온이 축하를 전하러 왔지만 대왕은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으로 노장을 무
섭게 노려보았다.
"왜 그때 나를 불렀지?"
"예?"
파르메니온은 바로 알아차렸다. 가우가멜라 전장에서 좌익군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왜 대
왕의 가마병에게 도움을 청했는가.
대왕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전략대로..."
노장은 알렉산드로스의 분노를 알면서도 일단을 해면을 해보았다. 열세에 빠진 부대가 재
빨리 주의의 아군에게 지원을 청하는 것은 치밀한 결속을 자랑하는 마케도니아군이 언제나
쓰고 있는 전략이다. 그리고 함부로 전략을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달레이오스를 쫓고 있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부세팔로스가 갑자기 내달리는데..."
짧게 당시의 정황을 설명했다. 부세팔로스의 심경까지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르메
니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되물었다.
"그 놈이 아니었어라면 저희를 버릴 생각이셨습니까?"
"달레이오스를 죽이는 것이 이 전쟁의 목적이고, 그것을 위한 전투였다. 지휘관이라면 알
고 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노장은 아버지가 자식을 타이르듯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버렸어야 마땅
했습니다'라는 말이라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삼켰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
는 법이다. 대왕의 짐작은 예리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사자왕의 표정이 노기를 띠고 있었고 파르메니온도 입을 닫고 침묵으로 대항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이겠지요.'
무언중에 눈과 눈을 서로 깊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의 정황으로는 파르메니온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정당한 일아며 조금도 잘못
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는 때마침 페르시아 왕을 죽일 수 있는
절대의 호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달레이오스의 목, 바로 그것을 많은 병사를 희생해서라도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전투의 최대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파르메니온을 버리고서라도 페르
시아 왕을 쫓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총지회관 알렉산드로스 외에는 아무도
없다. 판단을 잘못한 사람은 다름아닌 대왕 자신이며 죽었을지도 모르는 파르메니온을 꾸짖
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잡기 직전에 놓친 고기가 너무나 커보이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러
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분함을 파르메니온에게 터트리고 말았다. 무심결에 "이젠 너무 늙었
어"하고 애마 부세팔로스를 나무랐는데, 파르메니온은 순간 서운함에 슬픈 눈빛으로 바라봤
다. 부장군의 수염에는 하얀 털이 부쩍 눈에 띄었다.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달레이오스에게, 그리고 파르메니온에게도 심한 굴욕을 느꼈다. 특히 의기 양양해 보이는
파르메니온의 얼굴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헤페스티온이 나타나, "또 기회가 올것입니다"라며 느긋하게 웃기
시작했다.
"부세팔로스가 뭘 착각했을까..."
"부세팔로스가 명하신 신의 계시인지도 모릅니다. 좀더 아시아 오지의 땅까지 밟으라는..."
그 말읊 들으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부세팔로스의 행동은 보통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마
치 다른 누구에게 명령을 받은 것처럼...
"밟으라고?"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라고."
"그럴지도..."
"힘내셔야죠!"
오랜 친구의 설득을 듣고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지만 영혼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분노
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왕의 심중이 어떻든 페르시아 왕에게 가우가멜라의 패배는 하나의 전
술로만 생각하고 간단하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전군을 다 동원해서 승리를 꾀했음에도
불구하고 궤멸하다시피 패한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마케도니아군이 강했기 때문이다. 즉 마케도니아는 선왕 필리포스 시
대 때부터 군제의 개혁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군대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예전의 군제는 좀 심하게 말하면 수에 의존하여 대규모 군대를 거느리고 위
압적인 군비를 과시하며 공략해 갔고, 그후에는 논공 행상을 목표로 하는 자들의 공명심과
무용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에 비해 마케도니아군은 훨씬 조직적이었고 평상시에 훈련받은 직업 군인을 중심으로
하여 치밀하게 작전을 세워 통치하는 전술이 획립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면에
서 군대로서는 한 발짝이나 두 발짝 정도 앞서 있었던 것이다. 수적으로는 다섯 배나 넘는
페르시아군이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패주하는 달레아오스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쉽게 이길 수 있
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이다.
미쳐 날뛰는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짐작할 수 없는 예사 인물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전장에서의 용맹성과는 달리 포로로 잡힌 태후와 왕자, 공주에게는 더없이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대한다고 하지 않는가. 왕비를 능욕하지도 않았고 병으로 죽었을 때에는 정중하게
묻어 주었다는 보고도 들었다. 그런 걸 보면 훌륭한 인물인 것 같기는 한데... 신일지도 모른
다는 소문도 들었다.
다섯 배나 많은 대군에게도 태연하게 맞서 싸웠고 실제로 이겼으니 불사신인 것만은 확실
하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지만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었어도 죽은 적이 없었으니 신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며 신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달레이오스에게는 이런 생각이 가
장 두려웠다.
'신과 싸워서는 이길 리가 없다.'
달레이오스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신의 분노를 살 만한 소행은 없었는지, 새삼 그
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알렉산드로스라는 무서운 괴물이 나타난 것은
어쩐지 자신의 과거의 죄상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떳떳하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신을 모독한 몇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왕위
찬탈 그 자체가 피와 독약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살육, 잔학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
다. 그때마다 신들에게 정죄를 빌며 산 제물을 바쳤으나, 페르시아 신과 마케도니아 신이 달
라서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라면 어떻게 하나, 잘되도록 빌기 위해서 감행한 일에도 조금은
후회를 했다.
왕은 몹시 당황했다.
달레이오스 3세는 인품이 있는 교양인이었다. 페르시아 왕가의 계보를 볼 때 이것은 대서
특필해도 될 만큼 사실이다. 패주중에 마케도니아 왕의 인격을 생각하고 숙적의 늠름함에
충격을 받아 신성를 생각했다는 사실, 그 가체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대페르시아 왕국의
귀족으로 자란 달레이오스의 왕위 계승에 대해서만은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지만 왕으로서
의 평판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성격도, 행동도 품위가 있었고 보기에 따라서는 느슨한 면도
없잖아 있었기에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적국의 왕이 경애심을 표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달
레이오스는 솔직히 감사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역사가의 전송에 의하면 이 시기에 달레이오스는 다음과 같이 신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페르시아 왕가의 수호신이여,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은혜를 내리소서. 제가 먼저
죽어도 이 땅에 페르시아의 부흥을 실현하시어 예전의 번영을 다시 직접 펼쳐서 저에게 보
여 주소서. 그리하면 제가 패배자로서 받은 일체의 불행을 승리자로서 알렉산드로스에게 되
돌려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저의 몸에 신의 분노가 내리기사 우리 왕가의 지배
가 이 지상에서 사라질 운명이라면, 그때는 위대한 대왕의 자리에 알렉산드로스를 앉혀 주
소서."
첫 번째 바람은 당연히 자신의 권세의 부활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바
로 페르시아를 공략한 당사자인 적군의 총사령관 알렉산드로스에게 대아시아의 대왕이 되기
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것은, 패사에서 볼 수 있는 일화라면 몰라도 현실로서는 지나친 미담
이다. 어찌되었든 달레이오스의 심중에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적이지만 훌륭했다고 생각하며
외경한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도망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도주중에 가세한 병사를 합쳐서 달레이오스를 따른 군사는 기마병 4000기와 보병 3만
5000으로 상당한 대군이었다.
"바빌론이나 수사는 곤란하다."
달레이오스는 행선지를 변경했다.
이때만 해도 패배의 충격을 엿볼 수 있다. 패자의 무력함이 엿보인다. 아르벨라에서 바빌
론, 수사를 거쳐 대도시 페르세폴리스에 이르는 코스는 페르시아가 자랑하는 왕도이며 대왕
국을 관통하는 중요 도로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여세를 몰아 이 길을 동으로 달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러나 지금 여기에서 추격을 몰아붙인다면 진실로 파멸할 것이다. 국왕의 명령도 왠지 불안
했다.
북동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아르메니아 산악을 빠져 나와 메디아 지방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마케도니아군은 이 방면의 지리에 어둡기 때문에 추격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달레이오스는 얼마간의 시간을 벌고 싶었다. 태세를 다시 갖추기 위한 시간의 필요성보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므로 보다 안전한 길을 택하거 싶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쪽은 달레이오스의 퇴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지만, 상당
수의 군사가 페르시아 왕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막다른 지경에까지
몰아넣고 싸울 것을 생각하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군사를 갖고 있어야 했다.
'또 놓쳤단 말인가.'
한동안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가우가멜라 전장의 뒷정리도 끝나지 않았고 아군 전사자들을 정중하게 장사지내
줘야 했으며 공적을 세운 병사에 대한 상도 내려야 했다. 이 모든 일을 지휘관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적군의 전사자를 처리하지 않을 경우 질병이 발생하고, 그러
면 새로운 도시를 세울 수가 없게 되며,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위업과 은혜를 보여 주는
데도 많은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대왕에게는 가신에게만 맡겨 둘 수 없는 중요한 임무가
몇 가지 있었다.
며칠 후에 달레이오스와 그의 병사들이 아르메니아 산악 지대로 도망갔다는 정보가 들어
왔다.
"아르메니아 방향이라 해도 너무 넓어서 말야."
"그러하옵니다."
거기에서부터는 보고가 몇 가지로 나누어졌다. 지형이 확실치 않다, 신뢰할 만한 지도를
그릴 수 없다, 달레이오스는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바빌론이나 수사로 들어갈 것이라는 관축
도 나왔다. 왕이 쉽게 도시를 버릴 리가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왕도의 동쪽으로 진격
하기로 했다.
우선은 바빌론까지, 오늘날로 말하면 약 500킬로미터의 거리를 20일 만에 행지했다.
바빌론은 말할 필요도 없이 고바빌로니아와 신바빌로니아 두 왕국의 수도로 대단히 번영
했던 도시다. 특히 알렉산드로스보다 300년 정도 전에 군림했던 네브카드네자르 대왕 때에
는 세계 제일로 칭송되었던 상업 도시였다. 알렉산드로스 시대에는 어는 정도 쇠퇴하는 듯
했지만 그래도 번영했던 시절의 자부심만은 남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시 입성을 앞두고 군용을 정비하여 전투에 임할 각오를 하고 있어지만,
도시의 유력자가 모두 마중 나와 있었다. 주민들도 꽃 장식을 한 채 환영 대열을 만들고 있
어 글자 그대로 무혈 입성이었다.
알렉산드로스도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
환영 인판 속에는 태수 마지아오스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환송해 하고 있
었다.
마지아오스는 달레이오스 3세의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그보다 며칠 전 가우가멜라 전장
에서 마케도니아 군과 대치하며 페르시아군의 일익을 담당했던 바로 그 지휘관이었다. 비록
적이었지만 마자이오스가 이끄는 군대가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는 사실은 기억에도 새로운
데, 그가 일찌감치 임지 바빌론으로 돌아와서 태수 임무를 계속하고 있었다니...
바빌론은 달레이오스의 충신을 태수를 받들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그 이름
대로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로니아인이었다. 페르시아인과는 다른 마자이오스는 가우가멜라
전장에서의 참패와 바빌로니아인들의 반페르시아적 감정을 깊이 고려하여, 이번 기회에 알
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복종하는 것이 상책이겠다는 액삭빠른 판단을 내렸다.
페르시아군이 쉽게 무너진 것이 이렇게 빨리 변신하게 된 이유겠지만 또한 난세를 헤쳐
하는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것을 양해하고 마자이오스에게 계속해서
태수의 지위를 주었다. 이것은 일종이 정치적인 판단에서 나온 조치였다. 페르시아인 유력자
를 무시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정 도중에 페르시아 왕의 고관을 알렉산드로스
의 직속 고관에 앉힌 첫 번째 신호탄이며 이후에도 여러 번 시행되는 정략이었다.
한편으로 바빌로니아인에 대해서는 그들의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사제의 제안을 대폭적
으로 받아들여 예전에 페르시아인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파괴한 베로스 신전의 재건에도
아낌 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 일로 인해 이집트 원정 때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의 멍에로
부터 민중을 해방한 영웅으로서 바빌로니아인으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게 되었다.
바르시나는 언제나 대왕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었다. 항상 싸움터에 가까운 막사에 기거하
며 대황의 휴식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왕의 일은 엄청나게 바쁘고 복잡했다. 전투, 회의, 집무, 외교, 포상, 연설, 제사, 단련,
독서, 환담, 주연... 잠잘 새도 없었다. 거처에서 지내는 시간은 너무나 적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중에도 두 사람은 사이 좋게 보냈다. 웃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밤도
많았다.
중신 중에는 "페르시아 여자인데 대왕을 암살할 우려는 없을까"하며 바르시나를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전혀 경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설마 살해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
지만, 지나친 기대를 거면 실망하는 법, 처음에는 방심할 수 없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바르시나는 특별한 여자였다. 어느 사이엔가 마음을 다 털어놓게 만들어 버렸다.
같이 있으면 도저히 페르시아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케도니아 여
자도 아니었다.
"왜 그렇지?"
알렉산드로스가 물어 볼 때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곱게 미소지었다.
"저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아테네에서 자랐고 마케도니아에서 처녀 시절을 보냈습니
다. 사람은 태어난 고향으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사람은 국경을 초월하여 어디에도
있는 법이니까요. 나쁜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페르세아인이 더 좋지?" 하고 놀리면, 애교 있게 눈을 흘기며 이렇게 반문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찌 마케도니아 대왕을 곁에서 모실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렇구나."
대화는 언제나 짧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예리한 지성은 바르시나라는 존재 자체에서 나오
는 미묘한 힘을 알아채고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아니면 바르시나의 현명함이 그것
을 말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전했을지도 모른다.
미묘한 힘, 그것은 인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는 것, 현대식으로
말하면 코스모폴라타니즘과 페미니즘이 복합된 듯한 감정이라고나 할까. 그런 감정의 조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대충은 짐작하고 있겠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고대의 권력자로서는 드물게 여성을 존중
하는 인물이었다. 물론 근대적 모랄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말이다. 남성 우월 사상이 철보다
도 단단했던 시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대에 살던 알렉산드로스는 '여자의 생각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며 여성에게 어느
정도의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태후 올림피아스의 영향이 있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부왕은 전쟁에만 열중하여 왕자를 돌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린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고 지식이나 도덕도 누구보다 어머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올림피아스는 광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결코 지성이 모자라는 여자는 아니었다.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소년기에는 때때로 포악한 술 주정뱅이인 아버지보다 어머
니 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성장함에 따라 아버지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어리석음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성인이 된 후의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의 광적인 성격과 권모 술수에 혐오감마저 갖게 되었
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에 길러진 감성은 떨쳐 보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전도 연령의 여성
에게는 항상 예를 다해서 대했고, 또 여잔가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도리에 맞는 말
이라면 귀기울여 듣는 귀를 가지고 있었다. 가신의 말보다 부드럽게 말하는 쪽을 들어주는
일도 있었다. 바르시나는 그런 귀에 통하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대왕의 감성에 호소하는 기
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여자에게 암살당한다면, 그것은 괜찮은 일이지!'
여자에게 반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는 어디까자나
자존심 때문이었다. 바르시나의 악의를 미처 간파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눈이 형편없다면,
자신의 감성이 잘못되어 있다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하는 심리였다.
바르시나가 발하는 기운을 알렉산드로스는 무실결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처음부터 옳다고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케도니아를 출진했던 알렉산드로스는 몇몇 도시에서 가벼운 지배라는 명목의 승리를 되
풀이하고 많은 사람을 다스림에 따라 '마케도니아만을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통감
했다. 이국인 중에서도 좋은 신분, 좋은 능력,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찾
아내어 도움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조금씩 깨달았다.
물론 고향을 같이하는 동족의 충성심은 존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의 끝까지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젊은 시절에는 마케도니아의 소박한 충성심만을 믿고 있었지
만 충성을 바라보는 견해도 한층 더 비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빌론 통치에서 약간은 절조가 결여된 마자이오스를 중용한 것도, 또한 바빌로니아 사제
들의 요구에 따른 것도 이러한 알렉산드로스의 심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내부의 적
바빌론에서 수사까지는 티그리스강의 주류를 따라, 그리고 대하를 건너서 약 400킬로미터
이다. 현재의 지도에 의하면 여가에서 이라크로부터 이란으로 국경이 넘어간다. 가는 도중에
는 자그로스 산맥의 험준한 산등성이가 마치 인간의 도래를 거부하는 듯이 높고 길게 우뚝
솟아 있다.
수사가 어니냐고 물어 보면, 공항이 잇는 도시 드즈풀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30분 정도 달
리면 거친 사탕수수밭이 계속되는 들판이 나오는데, 그곳을 가리키며 "바로 여깁니다"라고
그다지 미더워 보이지 않는 가이드가 태평스럽게 웃으며 가르쳐 준다.
궁전 유적 같은 석주와 벽과 초석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어 언뜻 보기에도 오래되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20세기 초, 바로 여기에서 발견되었다고 했
던가.
고대 페르시아를 건축한 대와 키루스는 파사르가다이, 엑바타나, 바빌론으로 왕도를 옮겨
갔다. 마찬가지로 대왕으로 불렸던 달레이오스 1세는 바빌론에서 수사로 천도하였고, 다시
파사르 가다이 근교에 대도시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지만 완성은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대규모 계획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시대에 대부분이 준공을 보았다. 그후 그 상태
로 거의 100년이 경과하여 달레이오스 3세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알렉산드로스가 동정길을 떠났을 때 페르시아 수도는 페르세폴리스였고, 수사에
는 동궁, 즉 혹한을 피하기 위한 궁전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란 고원에 위치하는
페르세폴리스는 아무리 호화로운 궁전을 가지고 있어도 삼엄한 겨울 추위에는 적합하지 않
았다.
그래도 알렉산드로서는 갔다.
기원전 331년 늦가을, 예사롭지 않은 한기가 감돌기 시작할 무렵에 가우가멜라 승리를 뒤
로한 채 동정군은 수사로 향했고, 여기에서도 바빌론처럼 전쟁을 하지 않고 무혈 상태에서
점령하여 왕가 소유의 재화를 거둬들였다. 신에게 재물을 바치고 각종 경기 대회를 열어 잔
치를 베풀었고 이 땅의 태수 자리에 페르시아인을 앉힌 것도 바빌론 때와 갔았다.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의 도망은 이미 주위에 널이 알려져 있었지만 200년이 훨씬
넘도록 번영을 자랑한 페르시아 왕조가 그렇게 간단히 무너지라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국왕께서는 엑바타나에서 대군을 모으고 있어. 이번에는 그깟 알렉산드로스한테 이길 거
야."
"그러나 두 번이나 졌기 때문에..."
"아냐. 방심했기 때문이지, 그것만 아니라면 졌을 리가 없어."
"우리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잠시 동안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낫겠어."
"그래."
달레이오스의 반격도 충분히 예측된 정황이었기 때문에 관망하는 것이 좋겠고, 우선은 알
렉산드로스에게 복종하는 것이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잠지 주둔한 뒤, 다시 동정의 진로를 수사에서 페르세폴리스로 잡았다. 고
국 마케도니아로부터 대망의 신규지원 부대 1만 5000명도 도착했다. 페르세폴리스까지는
700킬로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였지만, 이번에는 험준한 산골짜리를 빠져 나가는 어려운 코
스였다. 게다가 때는 한겨울, 그것만이 아니라 주위에는 독립심이 왕성한 토착 부족 세력이
할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국의 정복자 따윈 필요 없어, 뭐 하는 놈이야!" 하고 적의를 드
러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주의 지형이나 그 땅의 이점을 잘 파악하
고 있었다.
수사를 출진한 지 얼마 안 되어 주요 통로 주변을 소굴로 하는 산악 부족이 전언을 보내
왔다.
"우리는 페르시아 왕한테도 통행료를 받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너희들도 이 경계를
넘어가려면 소정의 재화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따르는 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성격이 아니다. 격렬한 전투를 벌어 이 약속을
깨고 반대로 조공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또다시 그들 앞에는 페르시아의 관문이라고 불
리는 협곡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수 아리오발자네스는 이 협곡을 지키며 동정군에게 복종하
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의 관문 주변에 군세를 모아서 수도 페르세폴리스로의
침공을 저지하려고 했다. 알렉한드로스 쪽은 지금까지의 연전 연승, 무혈로 승리를 거둔 것
까지도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헤이해져 있었다.
사자왕은 예전처럼 강행 돌파를 명했지만 적의 반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암석이 머리 위
에서 이 세상의 종말을 고하듯이 우박이 되어 쏟아졌다. 동정군은 머리 위에 방패를 일렬로
펴서 막으려고 했다. 이 방책은 여태까지 몇 번이나 성공을 거우었지만, 페르시아의 관문에
서는 주위 절벽이 높이가 그 경우들과는 달랐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서 거대한 암석이
굴러 떨어지다 도중에 몇 개로 깨어져 무서운 기세로 경사면을 달렸고 겨냥은 빗나가지 않
아 정확하게 길 위로 낙하했다. 절벽보다 약간 낮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사출대가 도망가
려고 갈팡질방하는 마케도니아군 병사를 향해 돌멩이를 정확하게 조준하여 사살했다.
퇴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적은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부상자도 없는데, 알렉산드로
스 군사만 부질없이 죽음을 당하고 중상을 입어 손해가 막심했다. 페르시아의 관문에 발을
디딘 자 가운데 상처 없는 병사는 한 사람도 없을 지경이었다.
국지전이라 해도 알렉산드로스가 처음으로 맛보았던 완벽한 패배였다. 총지휘관의 실책인
것이 명백했다.
"후퇴하라!"
분노가 머리로 치밀어 오르고 굴욕감에 가슴이 떨렸다. 이러다간 불패의 신화가 무너져
버린다.
'반드시 대책이 있을 것이다.'
지형을 확인한 뒤 면밀한 작전을 세웠다. 알렉산드로스의 구상은 이 부근 자리에 밝은 자
들조차 주저할 만큼 무모한 진격이었지만, 왕은 "내가 갈 것이다"라고 분노하며 말했다.
우선 헤타이로이 크라테레스에게 군사의 절반을 맡겨 페르시아의 관문에 대기시켜 놓고
사자왕 자신은 남은 군사와 함께 샛길로 우회하여 적의 배후에 포진했다. 한밤중의 강행군
이었다. 도중에 헤타이로이 필로타스에게 페르세폴리스에 이르는 다리를 가설할 것을 명령
하고, 같은 헤타이로이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적이 도주하리라 예상되는 분지에 병사들을
숨겨 두도록 명령했다. 그런 다음 사자왕 자신은 정예 병사와 함께 가장 험준한 산을 넘어
적군이 발 아래로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좋다!"
크라테레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절벽 위에 진을 친 적군을 상하에서 협공하기로 했다.
적군은 당황하여 허둥대는 바람에 응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뒤편 높은 지대에서 자신
들이 써먹었던 전법대로 돌이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데 맞서서 싸울 수도 없고, 산을 내러가
서 도망치려 해도 거기에는 크라테레스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행히 산속을 빠져 나간다
하더라도 프톨레마이오스군이 숨어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사상당한
가운데 태수 아리오발자네스는 간신히 몇 명의 기병의 보호하에 탈출에 성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거기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전군을 모아 팔로타스가 놓은 다리를 빠져 나
와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서둘러 진격했다. 모든 것이 마치 유회를 즐기듯이 계획대로 착착
성공했다. 페르시아의 관문의 공방전은 실패도 컸지만 성공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이 전쟁
의 결과는 사자왕이 오히려 자신감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신속한 행동이 공을 세워 동정군은 누구에게도 왕궁의 재물과 보화를 약
탈당하지 않은 가운데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입성하는 거사를 이루었
다. 귀금속 종류만도 12만 달란트, 마케도니아의 예산을 상회하는 금액이었다.
잔혹한 피비린내 나는 난전을 치른 직후였다. 동정의 목적은 이 도시였고 '페르세폴리스까
지만 견디자'는 것이 암묵의 약속이었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던 총지휘관은 병사들의 약탈을
묵인했다. 번영의 도시는 한순간에 탐욕스런 짐승들 손에 송두리째 빼앗겨 지옥을 방불케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러 해 동안 페르시아가 휘두른 횡포에 대한 그리스인의 보복이므
로 신들도 용서해 줄 것이다"라며 정당화했지만, 수도는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너무나 비참한 참상에 알렉산드로스마저 당황했다.
"이젠 그만해라. 규율 바른 병사로 되돌아가거라."
새로운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전쟁터가 아닌 마을을 습격하는 잔학 행위는 원정군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드문 일이었
다.
측근 중에는 틀림없이 사자왕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
에서는 혹독한 겨울 동안 장병을 휴식시킬 필요도 있어서 세 달을 보내기로 했다. 알렉산드
로스가 또 다른 수도 파사르가다이를 점거하여 막대한 보물들을 차지한 것도 이 시기 전후
며 홍해를 본 것도 이때쯤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그 이름대로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왕도지만, 페르시아 왕의 지배라는 시
점에서 보면 이 부근의 고원 지대까지가 지배의 동쪽 한계선이었다. 물론 대왕국 지도상의
영토는 여기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멀리 인더스강까지 미치지만 치정은 그렇지 않았다. 몇
몇 부족이 각자의 지역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었으므로 국왕의 입장은 통치라기보다 회유에
가까웠다. 페르시아의 관문 부근에 살던 산악 부족이 "우리는 페르시아 왕한테도 통행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일례이다. 그리스인이 여기보다 더 동쪽
으로 들어간 일도 극히 드물었다.
즉, 동정군은 이때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방인의 땅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지금까지의 행로는 이국임에는 틀림없지만 전혀 낯선 미지의 세계는 아니었다.
'드디어 야만족의 땅에 발을 내딛는구나.'
예민한 알렉산드로스는 무의식중에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하듯 또 하나
의 사건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할 때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겨우 가라앉은 것은 어느 봄날 저녁 무
렵, 알렉산드로스는 각별이 아끼는 중신들을 주위에 불러모아 주연을 열었다. 주연이 시작되
기 바로 직전에 달레이오스가 엑바타나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들어왔
다.
알렉산드로스는 만취했다.
거나하게 취해 있었어도 계속 술잔을 기울여 단숨에 들이켜 마시고는 손등으로 뺨에 흘린
술을 닦아 냈다.
"왜 수염을 기르지 않으시는지요?"
옆에서 시중을 들던 아테네 출신의 아리따운 여가 타이스가 물었다.
"이렇게 하는 쪽이 더 미남으로 보이지."
"네..., 하지만 선왕에게 받은 벌이라던데요."
타이스는 뜻밖에도 옛날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10대 중반이었을 때 맘대로 군을 출동시켜
그 벌로서 수염을 깎아 버렸다. 벌은 그것으로 끝났는데, 이 반항아는 지금까지도 수염을 기
르는 풍습을 따르지 않는다.
"아하하하."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마이다족 반란을 진압한 뒤 거기에다 알렉산드로폴리스를 세웠었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시였다. 그것이 부왕의 노여움을 사게 만들었고 "어리석
은 녀석, 자만하지 마라! 20년이나 빨랐어.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킬 때도 그 이
름을 지껄여 주면 좋겠구나!" 하며 심하게 매도당했었다. 페르세폴리스가 뭔지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다. 아버님의 얼굴이 보고 싶구나.'
뺨에 흐르는 엷은 미소는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타이스는 대왕의 씁쓰레한 미소의 참뜻을 알지도 못한 채 화제를 바꿨다.
"페르시아 왕이 아테네 신전에 불을 질렀다고 하더군요."
"잘 알고 있구나. 크세그크세스다. 이 왕궁도 그가 지었지.
"아테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위대한 대왕은 여느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을 하니
까 후세에까지 이름이 남는 거군요!"
"글세?"
타이스도 꽤나 취해 있었다.
"그렇다면 사자왕께서도 크세르크세스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여기에 불을
질러 전부 태워 버려야만 위대한 그리스 사자왕이시지요!"
"재밌구나."
나중에 타이스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항변했다.
"오, 그렇구나."
그리스의 대표자라면 아테네 신전에 가해졌던 난폭함에 대한 보복을 보여 줘야 한다. "눈
에는 눈, 이에는 이"이것은 이 나라의 속담이 아닌가, 취한 머리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벌떡 일어나서 바로 전에 헌상품으로 가져온 불타는 물을 바닥과 벽이 뿌
렸다.
"여봐라. 모두 불태워라. 이 야만인들과 함께 그들의 집도 모두 다 태워 버려라!"
횃불을 쥐고 불을 붙이며 돌아다녔다. 술에 취해 있어도 동작만은 민첩했다. 몇 사람이 따
라 했다. 왕궁을 불태우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단순하게 판단한 탓인 것 같다. 나머
지 무리들도 취해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파르메니온이 말리려고 달려왔을 뿐 대부분은 어
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불은 순식간에 주위로 번졌고 기둥도 타기 시작했다. 불길이 거세지는 것을 보고 "불을
꺼라"라고 대왕 자신이 망연 자실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일단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을 쉽게
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세가 더해 갔다. 워낙 거대한 왕궁이었기 때문에 전소는 피할 수
있었지만 상당 부분이 불타 버렸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횃불을 들고
원숭이처럼 불을 지르며 달리는 자신의 모습뿐이다.
왜 그런 난폭한 짓을 했는지 가만해 생각해 봐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타이스가 부채질한
기억도 없을뿐더러 설사 부추겼다 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소유인 아름다운 궁전에 자기 손으
로 불을 지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또 설령 타이스가 무슨 말을 했다 하더라도 술자리에
서 나눈 농담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리스인으로서 크세르크세스한테 복수
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낯선 타국 땅에 와서, 만취 상태에서 무의식중에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라는 야릇한 흥분
이 잠재하고 있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페르시아인의 신앙은 신의 상징으로서 화염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이다. 배화교라고 불
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배화교 신전은 그리스 신전과는 달리 후세의 사람들은 판
별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당시의 건축 미술의 정수를 엿보려면 페르시아에
서는 신전보다도 왕궁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페르시아 궁전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오늘날에
그 훌륭한 기예를 전해 주는 유적은 매우 적다. 페르세폴리스 왕궁 유적이 거의 유일한 존
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르세폴리스 왕궁 유적이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된 것은 1930년에서 1940년 사이의 일인
데,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왕궁 중추부에 확실히 불탄 자국이 확인되었다. 실화인지 방화인
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방화설도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며
적어도 시대적으로는 잘 부합되고 있다.
이 소설의 필지로서는 만취 상태에서 한순간의 광기에 사로잡혀 원숭이처럼 불을 지르며
날뛰던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을 믿고 싶다. 이 탁월한 이성의 소유자가 광적인 단면을 숨기
고 있었던 점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폭발했다면 바로 이때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
던 그 시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횃불을 높이 쳐들고 광란하는 알렉산드로스와 매우
화려한 왕궁이 이루는 대비는 인간의 영웅과 문명의 정수가 경쟁하다 뒤얽힌 아이러니컬한
회화로써 흥미롭게 비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전소를 면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오늘날에 남은 유적은 전모의 위대한, 석벽
과 석단의 웅장함, 조각의 화려함 등으로 모두가 탁월한 유물이다. 성문을 기키는 인간의 머
리를 하고 날개가 달린 목우, 기둥머리에 장식된 머리가 둘 달린 괴물, 괴수와 싸우는 대왕
의 용감한 모습, 행렬하는 인물의 무리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움직일 것만 같다.
의장과 기술의 정교함은 2천 몇백 년 전의 위용을 느끼에 하며, 망가져 있어도 조금도 흠
잡을 데가 없다. 페르시아의 번영과 부가 생생하게 떠올라 보는 이들은 한결같이 밀려오는
감명에 압도당하게 마련이다. 인류가 자랑할 만한 굴지의 유산임에는 분명하다. 아마도 마케
도니아 대왕의 눈에도 이 세상이 압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거기에 불을 지른 충동인 도대
체 무엇 때문일까.
술에 만취한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해서 잤다.
이틀 밤낮이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는데 일어나자 두통이 너무나 심해서 현기증이 날 지
경이었다. 구토를 느꼈고 갈색의 위액을 토하기까지 했다. 술에는 상당한 강한 체질이지만
너무 많이 마셨던 탓인지, 술이 별로 안 좋던 탓인지 숙취가 좀 심했다.
어렴풋이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왕궁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기억이 없었다.
수행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헤페스티온을 불러서 다시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왜 말리지 않았지?"
"그럴 틈이 없었어. 아무 기억도 안 나?"
"그래, 횃불을 들로 춤췄던 것 같은데,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완전히 남의 일이군."
"머리속에서 내가 튀어나왔어."
"그랬을지도 모르지."
"신이 하라고 시켰을지도."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후회를 했다. 아니, 수행원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불경스러운
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마음에 변화가 생겨 후회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다.
"뭐라고?"
의아해 하는 헤페스티온에게 말을 이었다.
"일부러 불을 질렀다면 불을 끄게 하는 일은 없어야지. 그런데 내가 불을 끄라고 했지?"
창밖에 늘어서 있는 석주는 궁전이 전소를 면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음."
"신이라면 다 태웠을까?"
오만하게 내뱉었다.
"글세."
헤페스티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신은 아름다운 것을 끝까지 없애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그럴지도 모르지. 언젠가 복구시킬 거야. 하지만 얼마 동안은 이대로 두겠어."
"마음내키시는 대로."
회랑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파르메니온이었다.
"기침하셨습니까."
"오냐."
위의 불쾌감은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지난밤의 화재 사건은... 그래, 예전에 그리스 신전에 불을 지른 페르시아 왕에 대해 보복
하기 위해 사자왕이 자신의 재산이 된 궁전에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이것으로 양쪽 다 유
감이 없어졌다고 알려 주게. 그리스인에게나 페르시아인에게나, 알았지?"
물러가는 헤페스티온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벌써 그렇게 조치했습니다."
파르메니온이 눈짓으로 헤페스티온을 가리켰다. 이미 헤페스티온의 제안으로 그런 방침을
택했다는 눈짓이었다.
"그런가."
대왕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헤페스티온에게 월권하는 일을 없었다. 그러나 헤페스티온은 언제나 정확하게 알렉산드로
스의 의도를 알아맞혔다. 사자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이 친구는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월
권한다 하더라도 헤케스티온이라면 용서했다, 그는 바로 또 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이기 때
문이다.
파르메니온이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달레이오스의 근황을 알아냈습니다. 엑바타나에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베소스가
호위하고 있으며 병사를 모아서 주변 부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는 도주로를 찾고 있습니다. 파르티아에서 박트리아의 끝까지. 오지로 도망간다면 쉽게는 잡
을 수 없을 듯하옵니다."
엑바타나는 수사에서 북으로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메디아 지방의 중심지로서 번영
하고 있던 대도싱이다. 달레이오스가 북쪽으로 도망간다면 그 부근을 근거지로 한다는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보다 더 깊은 속으로, 예를 들어 박트리아로 간다면 이름
조차도 생소한 곳이다.
"베소스가 있었구나, 충실하군."
가우가멜라에서 적진이 좌익을 지휘했던 장군이다. 우익을 맡겼던 장군 마자이오스는 이
미 배신할 것 같은 인격의 소유자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베
소스는 박트리아 태수이기 때문에 도주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베소스는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녀석입니다."
"좋다. 출격이다. 오지로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되지."
오랫동안 숙취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왔다. 고국에 있던 재상 안타파트로스가 스파르타군과 싸워 승리를
거뒀고 많은 인질도 사로잡았다는 소식이었다. 훗날의 걱정이 없어져 앞으로의 징조가 참으
로 좋았다.
며칠 후에 달레이오스를 쫓는 군사들이 알렉산드로스 지휘하에 엑바타나를 향해 달렸다.
현재의 하마단, 300킬로미터 북방에는 벌써 카스피해의 넓은 바다가 펼쳐저 있었다.
봄이라고 해도 고원 지대의 행군은 힘들다. 우회로를 찾아 강행군하여 엑바타나로 서둘러
갔지만 달레이오스는 모을 수 있는 재화를 모아서 허물 벗은 뱀처럼 빠져 나가 오지로 도망
가고 없었다. 다와 주리라 믿었던 주변 부족한테서도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던 모양이었
다.
카스피해까지 진을 끌고 가서 싸울 작정이라는 판단이 섰다. 카스피의 관문은 카스피해
남쪽, 엘부르즈 산맥 기슭을 빠져 나가는 주요 협곡을 장악하는 난코스이므로 복동 오지로
퇴각하는 적군은 반드시 이 지역을 방위의 요지로 할 것이다.
'장기전이 되겠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엑바타나에서 동정군의 진용을 일신했다. 즉, 코린토스 동맹의 해산이다.
페르시아 원정은 본래 그리스 민족 공동의 적을 정벌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코린토
스에서 동맹을 맺었고 그리스 각지에서 병사를 모아서 진격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목적
은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며 동정군에게 있어서 그리스병은 그리 대단한 전력이 아니었다.
위로금을 쥐어 주며 고향으로 귀환시킨 것도 훗일을 생각하면 하나의 방책이었다. 그런 다
음 군의 조직과 편성을 새로이 하여 새로운 병사들을 모집하고, 군량미와 마초를 충분히 준
비하여 오지로 군세를 전진시켰다.
달레이오스가 있는 위치를 알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쫓았기 때문에 대열에서 탈락하는
자도 속출했다.
카스피의 관문 바로 앞에 와보나 노리는 상대는 며칠 전에 산간의 협곡을 빠져 달아난 후
였다. 반격할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달레이오스는 오로지 앞으로만 도망갔고 달레이오스와
동행한 측든도, 병사도 점점 이탈해 갔다. 카스피의 관문을 넘어설 무렵 들어온 정보에 의하
면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는 포로의 몸이 됭어 마차에 의해 구금되었으며, 실권은 베
소스가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용서할 수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감히 베소스 따위가!"
적어도 달레이오스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대페르시아 왕국의 대왕이 아닌가. 적군의 왕이
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어느 정도 경의심을 늘 표해 왔다. 베소스 같은 놈에게 무시당해도 좋
을 만한 신분이 아니다. 의아심이 나는 부분에 대한 알렉산드로스의 찬양과 동경이 마음속
에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달레이오스 3세만큼 슬픈 운명을 걸었던 국왕도 들물다. 200여 년 전
에 위대한 정복자 키루스가 신바빌로니아를 쓰러뜨리고 페르시아 왕국을 창건했고, 제 3대
왕위를 물려받은 달레이오스 1세 시대에 국위는 점점 더 높아져 유례없는 대왕국이 건설되
었다. 왕국은 번영의 일로를 걸었고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등 비난과
칭송의 갖가지 세평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강력한 국왕을 배출시켜 대왕국의 기초가 철벽
처럼 강고하게 보였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조카의 아들로 태어난 달레이오스 3세는 혈통적으로 보면 왕위
계승이 약속된 신분은 아니었으며 유력한 후보조차도 못 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
의 왕위 계승에는 음흉한 수단이 횡행한 것이 많았다. 환관 바고아스는 꼭두각시 왕을 세워
마음대로 정권을 농락하고 독재하려 했다. 그래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시해하고 그
아들 아르세스를 왕위에 앉히지만, 이 사람도 다시 암살한 후 바고아스의 계략에 말려 왕위
를 이은 사람이 바로 달레이오스 3세였다.
달레이소스는 선왕의 진철을 밟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바로아스를 독살했다. 피투성이로
이뤄 낸 왕좌를 이어받아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는지 하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지체 높은 왕가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인품에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가문도 좋고 잘생겼
으며 키도 훤칠했다. 어린 시절부터 무예에도 걸출한 역량을 보여 주위를 감탄시켰다. 그리
고 영리했다. 왕위에 오르고 나서는 정말 그 지위에 어울리는 인품이라고 평가받아 대왕이
되어야 할 인물로서 많은 기대를 받았으며, 비할 데 없는 권세를 갖고 잇는 대페르시아 왕
국의 원수로서 이상적인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본성은 아주 부드럽고 온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무예에도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
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습장에서 만이었을 뿐 전장에서 적을 죽이는 용기는 별개의 문제
다. 결과적으로 후세에 명성을 남기는 명군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업적을 전할 전승은
극히 부족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의 충돌을 보면 이 왕에게는 귀인의 느긋함을 느낄 수 있
어 전시보다는 평화시에 돋보이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덧붙여 말하면 어머니 시시감비스가 대단한 여인이었다. 포로의 몸으로 알렉산드로스 진
영에 머물 때에도 늘 청렴한 위엄을 지니고 있어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보여 준 예의와 온정도 이런 인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어려운 입장이면서도
차분하게 현실을 파악하여 무슨 의견을 말할 때도 자신의 처지를 알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방 정벌중에 알렉산드로스가 감행한 피정복인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 이 태후가 때때로
"너그럽게 대하시옵소서"라며 자비를 베풀도록 청할 때는 '훌륭하신 대왕국의 어머님'이라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었다.
아마도 현모였을 것이다. 이런 어머니 슬하에서 훌륭한 귀공자로 자라난 달레이오스는 태
평 무사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는 적합해도 존망의 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 자체가 불운이었다.
그라니쿠스강에서의 전쟁은 하찮은 것이었고, 이수스전에서는 방심하고 있었으며, 가우가
멜라에 이르러서는 적군이 어느 사이에 막대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그 세력이 무서워 벌벌
떨었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때에 타고난 본성인 소심함이 본의 아니게 튀어나와 적에
게 등을 보이고 말았다.
'여기에서 지더라도 다음에 이기지 뭐!' 하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늠름한 영단을 읽고 말
았다.
부하는 적보다고 먼저 예리하게 자신들의 지도자를 지켜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적
보다도 두려운 존재다. 위험한 때에는 동승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데 뜻밖에도 낙하 시작부
터 파멸해 가는 마지막까지 전부를 직접 보게 되었다. 비록 목숨을 잃는 패전이라도 공적을
남기며 전사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예감이 있었다.
애마 부세팔로스는 늙어서 이젠 절박한 때에는 도움이 안 되었다. 새로운 준마에게 심한
채찍을 가해서 힘차게 달리게 했다.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추적했다. 초여름에 접어들
자 그렇게 추웠던 고원 지대도 완전히 맹서로 돌변했다. 지름길을 찾았다. 앞길은 더 더욱
험준했고 하룻밤 사이에 산길을 400스타디아(약 70킬로미터 정도)나 달려왔다.
뒤따라 오는 부하들에게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며 사자왕 자신은 글자 그대로 잘래 달린
야수처럼 날아갔다. 대왕을 따르는 자는 마지막에는 60기를 넘지 못했다.
어느새 먼저 출발한 달레이오스를 가둔 수레의 뒷모습을 포착했다. 화려한 장식은 틀림없
는 페르시아 왕가의 것이었다. 적병은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을 보고는 싸울 마음도 먹지 못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신속함 하나만으로도 적을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달레이오스를 가둔 수레를 끌고는 제대로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적군은 일제히 마차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주 직전에 베소스의 심복이 달레이오스를 찔
렀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왕이여, 달레이오스 왕이시여!"
알렉산드로스가 다가가서는 수레의 문을 열었을 때에는 페르시아 왕의 고귀한 얼굴은 이
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신차리시오."
아무리 뒤흔들어도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치밀어 오르는 안타까움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눈을 깜박거렸다. 죽이려 마음먹었던 상대의 죽음을 막상 제 눈으로 보며 무엇이 아쉽다고
하는 걸까. 그토록 바라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무튼 슬픔이 느껴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슬픔을 지나 분노가 가슴을 뚫고 올라왔다.
시선을 멀리 한곳으로 모았으나 이미 적병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 추격을
하더라도 이미 늦었고 여기까지 질주해 온 말들은 힘을 모조리 다 썼을 것이다.
사자왕보다 먼저 마차에 달려가서 달레이오스의 최후를 지켜본 병사는 페르시아 왕이 "알
렉산드로스"라고 외마디를 지르며 한 쪽 손을 겨우 들더라고 전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것
을 달레이오스의 감사의 표시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자신이 버린 왕가 가족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준 것에 대한 감사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주권을 양도한다는
뜻으로 생각한 것은 확실히 아준인수 격 판단이었으리라.
"유체를 정중하게 모시고 돌아가라. 반드시 대왕의 예우에 맞는 장례식을 치러 줄 것이
다."
달레이오스의 시체에게 말하듯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달레이오스 3세의 장례는 후일 페르세폴리스에서 성대하고 엄숙하게, 참으로 대왕의 죽음
에 걸맞고 역대 어떤 왕들에게도 조금도 뒤지지 않게 치러졌다. 알렉산드로스는 남아 있는
왕자에게 훌륭한 훈육을 시킬 것도 약속했고 달레이오스의 딸을 아내로 맞을 것도 알렸으며
나중에 약속대로 실행했다. 장례를 주관한 알렉산드로스는 속으로 '나야말로 진정한 아시아
의 맹주이며 페르시아 왕의 후계자가 되리라'하고 다짐했다. 달레이오스를 죽이려 했던 목적
오, 그의 장례식을 주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베소소를 죽여야만 했다. 후계자라면 국왕을 시해한 역적을 용서할 수는 없는
일, 새로운 명분이 생겼다. 이제부터의 전쟁은 페르시아인과 싸우기는 해도 구리스인의 보복
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역적을 죽이는 셈이 된다. 이치는 당연히 그렇게 바뀌어야 했고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그런 위화감을 없애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자신도 이제는 페르
시아의 적이 아니고 달레이오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페르시아의 우방국이라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기쁜 일이 하나 있었다.
"저런, 알타바조스는 건재하다고."
굴복한 페르시아 고관에게 소문을 듣고 알렉산드로스는 수줍은 듯이 웃었다. 왕이라는 입
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평소에는 나이에 비해 말투나 표정이 근엄했다. 하지만 이
때는 오랜만에 보이는 젊은이의 표정이었다.
알타바조스는 애첩 바르시나의 아버지이지 부왕 필리포스의 친구로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
라로 망명해 와서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 사자왕보다 훨씬 연장자이지만 오랜된 친구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알타바조스는 달레이오스의 충신이기 때문에 요 몇 년 간 동정군에게 적대하는 입장이었
지만, 언제나 알렉산드로스에게만은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은 알타바
조스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본의는 아니지만 그의 입장은 페르시아 고관이다. 패전하여 퇴각
하는 순각까지 달레이오스와 군사들을 끄고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사자왕은 현재의 정황 속
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도피중에 베소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바로 빠져
나온 모양이었다. 베소스에게는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이 달레이오스에 대한 최소한의 충성심
일 것이며, 역모 같은 거친 행동은 좋아하지 않는 인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동정군 중에서 그와 성격이 비슷한 클레이토스는, 뜻이 있는 자라면 페르시아 왕을 지키
고 베소스와 싸워야 했다며 분개했다. 알타바조스의 인격에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클레이토
스가 깊은 뜻을 알 리가 없었다. 확실히 선왕 필리포스의 비호를 받았으면서도 알렉산드로
스에게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 점이나, 베소스에게 도전해서라도 달레이오스를 지키려 하
지 않았다는 점등으로 보아 충성심이 결여된 아쉼움은 있지만, 알타바조스는 훨씬 더 큰 것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인이면서 그리스인의 마음도, 마케도니아 사정도 잘 파악
하고 있었다. 도량이 넓고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있으므로 융화를 꾀할 때에는 반드시 필요
할 인물이었다.
"아버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이따금 바르시나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알렉산드로스도 희미하게나마 그의 지혜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그의 성품은 딸인 바르시나에게도 잘 전해져 있었다. 이러한 지혜자를 확보하
고 있는 것이 바로 페르시아의 힘일 것이다. 민도의 우수함일 것이다. 그 점은 아테네에 대
해서도 느끼는 것이었다. 무력으로 급해 성장한 마케도니아에는 나타나기 어려운 인격이라
고 알렉산드로스는 깨닫고 있었으나 클레이토스는 달랐다.
"알타바조스는 무인이 아닙니다."
"그래. 분명 알타바조스는 무인이 아니다. 전쟁의 목적은 평화다. 평화를 찾으로 한다면
그런 형세도 파악할 줄 알아야 도움이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설득해도 클레이토스는 막무가내였다.
"저는 죽을 때까지 사자왕을 따를 것입니다."
어색할 정도로 예의를 갖추며 화가 난 듯이 자리를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처음과
같은 웃음을 떠올렸다. 마케도니아 군인이 가진 이러한 우직함도 알렉산드로스가 매우 좋아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페르시아 왕을 죽여야 한다는 집념과 페르시아와 융화해야 한다는 신념이 알렉산
드로스의 마음속에서 타협하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페르시아 국내에서 인망있는 국왕을 추
격해서 시해했다면, 그후에 민중과 쉽게 화해할 수 있었을까.
전국토를 황폐화시킨 전쟁에서 죽어 간 수많은 페르시아 병사들은 민중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아니 민중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국왕을 추종하고 있던 고
관이나 유력한 상인, 부족이 우두머리들의 평판과 역량도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니루스와
기자에서처럼 두목만 죽이면 나중에는 가벼운 지배 체제로 충분할 것이라고 젋은 사자왕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대로 말하면 알렉산드로스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처음에는 페르시아
왕을 죽이겠다는 거의 본능적이라할 목적이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품었던 이 목적은 웅대
했으며 그 목적대로 페르시아는 장대하고 페르시아 왕도 위대하게 보였다. 달레이오스를 죽
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을 죽인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그후의 대책이 현실로서 알렉산드로스
마음속에 싹트고 성장하게 된 것은 동정군이 도정을 상당히 전진하고 나서였다. 마케도니아
국왕에서 비약하여 그리스 전국토의 왕임을 의식하고, 다시 웅대한 페르시아 땅을 밟고 이
집트를 알게 되고 나서 아시아의 왕이 되겠다는, 그리고 이상적인 통치를 세계 구석구석까
지 펼치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차지하게 되었다.
바르시나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리스의 자유
로운 예지에 의해 길러진 자질과 동경, 바꿔 말하면 진실에의 추구가 짧은 시간에 젊은 뇌
리에서 자라나서 정세 변화에 대응하며 구체성을 띠게 되는 과정을 겪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로 말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반추
해 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정말 신의 인도인지 모른다. 동정이 진
척되고 성동함에 따라 점점 더 이상이 커져 갔다.
처음에는 페르시아를 정복하여 제압하면 마케도나아 또는 그리스의 지배하에 두고 통치할
생각이었다. 명확한 의식은 없었다고 해도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에 있었던 것은 그것에 가까
운 이미지였을 것이다. 펠라를 출발하던 단계에서는 광대한 페르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영토
와 아시아인의 범유라시아적인 시점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영토로, 자신의 백성으로 생각하
는 발상은 도저히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불확실한 것으로 움트고 있을 때 한 손으로 페르시아 왕을 제거해도 되는가. 페르
시아 왕을 죽인 자가 페르시아 왕을 죽인 자가 페르시아 민중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까. 석
연치 않은 것이 당연하다.
사실 달레이오스가 살아서 도망갔다면,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살인자가 되었다면
사태는 미묘하게 변했을 게 분명하다. 또다시 행운이 찾아든 것이다.
달레이오스왕을 시해한 자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페르시아의 충신이지 알렉산드로스가 아
니다. 반역자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상황이 돌변했고 이 명분은 너무나 이해하기 쉬웠다. 누
구에게라도 쉽게 납득되었다.
'페르시아 왕을 죽인 다음은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
닫자, 쉽게 눈앞의 난관을 뛰어넘고 있었다. 난관이 사라져 버렸다.
알렉산드로스의 추측으로는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위하감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위대한
페르시아, 위대한 페르시아 왕.... 자신의 목표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대상의 위대
함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위대한 왕을 살해하고 부당하게 왕위 찬탈을 꾀하고 있는자, 베소스 일당을 켤코 용서
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에 알렉산드로스는 달레이오스를 매우 경애하고 경애한 탓에 그
적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친구로 변해 버렸다.
이전부터 달레이오스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목표를 크게
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더욱 크게 부풀린 점도 있었다. 여하튼 지금은 그런 감정으로 일관하
는 것이 한층 더 편했다. 반면에 베소스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더 커졌다. 민중도 납득하게
될 것이다.
베소스를 죽여야 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뀌었지만 집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앞으로 지나갈
과정은 달레이오스를 추격할 때와 큰 차이는 없지만, 지금은 페르시아의 편이 되어 페르시
아의 역적을 죽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페르시아인을 보호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런 생각은 페르시아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페르시아인의 입장에서
보면 달레이오스는 이미 죽어 버렸으며, 베소스는 역적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불패 전설은 페르시아 오지에까지 전해지고 있었으므로 겉보기에도 대왕의
자리에 걸맞았고, 게다가 이 정복자는 페르시아게게도 이해를 구하는 것 같으니 지금은 알
렉산드로스호를 타는 쪽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도처에 알렉산드로스군에게 굴복하는 자가
나타났고 베소스 측에는 그만큼 가담하는 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원래부터 국경에 사는 사람은 페르시아인만이 아니었으며, 페르시아인과 같은 마음은 가
진 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각기 독립심이 강한 부족이 일단 페르시아 통치하에서 타협
하는 상황이 많아졌고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대응도 여러 가지였다.
사지왕은 언제나 그랬듯이 대항하는 자는 철저하게 싸워서 굴복시켰지만, 순순히 투항하
는 자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여 그들의 영토는 가벼운 지배 체제로 두었다. 이렇게 해서 적과
아군을 선별하면서 히르카니아, 파르티아, 아레이아로 진격했다.
베소스는 또 다른 오지 박트리아의 태수이며, 그곳에 세력의 기반을 갖고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하먼 베소스는 페르시아 왕관을 쓰고 왕의 옷을 입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5세라고 자칭한다고 했다. 이것이 왕위 계승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누구 맘대로!"
알렉산드로스의 분노는 예사롭지 않았다. 분노는 화염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아레이아 지방에서는 베소스의 심복 사티바르자네스가 항복해 왔다. 무장을 해제하고 재
산을 모두 내놓고 눈물을 흘리며 복종의 뜻을 보였다. 이 남자는 달레이오스를 찌른 상해범
의 한 사람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알렉산드로스가 그를 태수 자리에 앉힌 것은, 나머지 세력
을 회유하여 앞길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미케도니아 병사 사이에서 사자왕도 도리없
이 페르시아인에게는 약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국의 펠라를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을 함께한 병사들에게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는 아들과 함께 항복해 온 알타바조스를 후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애첩
바르시나의 일족이며 오랜 지기이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라 해도 사티바르자네스의 경우는
어떤가. 사자왕은 본심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요즘은 자주 페르시아인 옷
차람을 하고서는 흐뭇해 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가. 게다가 페르시아 말까지 배워서 편지에
는 가끔 페르시아 왕의 옥새를 쓴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진영 내의 그런 의혹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아버님 일, 오라버니의 일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사옵니다."
무릎을 꿇어 절하며 기뻐하는 바르시나에게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턱으로 막사
바닥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일어나서 지도 위에 손끝으로 크고 작은 두 개의 원을 그
렸다. 작은 원은 그리스 반도를 에워싸고 큰 원은 아시아를 에워쌌다.
"그리스는 작아, 나는 대아시아의 왕이 되고 싶다."
알타바조스 일족에게 후의를 베푼 것은 그런 자신의 희망를 이루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풍기고 있었다. 페르시아를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시아의 맹
주는 될 수가 없다.
"이미 폐하의 발 아래 있습니다."
바르시나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참으로 대왕의 발 바로 아래에 아시아가 펼쳐져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만 더.... 이제 곧
유린할 수 있다.
바르시나의 재기는 언제나 대왕을 기쁘게 했다.
"페르시아인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겠다."
"예."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이 마케도니아 병사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
다.
그러나 사티바르자네스는 경험이 많고 교활한 인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레이아에 약
간의 마케도니아 경비병을 남겨 두고 베소소를 쫓아 서둘렀는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
티바르자네스가 봉기를 했다. 처음부터 베소스와 연락을 서로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만 복종하는 척했을 뿐이었고 수호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반역의 신호로 봉화를 올렸다.
충실한 마케도니아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알리려고 급히 달려갔다. 그는
사자왕에게 사티바르자네스의 배신을 알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뭣이라고!"
알렉산드로스는 화내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바로 군대를 돌렸다. 그나마 신속하게 대처하
여 다행이었다.
가티바르자네스가 주변의 불만 분자를 모아서 진영을 강화하는 것보다 먼저 동전군이 되
돌아왔다. 신속함과 사차없는 공격은 사자왕을 호위하는 친위대의 장점이다. 최강의 기병 군
단이었다.
일부 지역이서 격심한 전투가 있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여졌고, 사티마르자네스의 군사
는 산으로 도망가다가 항복을 했으나 용서하지 말하는 사자왕의 엄명을 맏은 부하들은 사방
에서 불을 질러 화염 속에서 모두 태워 죽일 계획을 세웠다. 주변 마을에 몰래 잠입한 자들
도 샅샅히 색출하여 참살시켜 버렸다. 그러나 사티바르자네스는 진작에 도망치고 없었다.
이 반역은 진압하는 데 많은 노고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사건 자체는 사사로웠지만 남은
불씨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무언중에 이
방인들을 믿어서 좋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무언중에 이방인들을 믿어서 좋을 리가 없으며
역시 마케도니아인을 중용하는 것만이 알렉산드로스군의 단결에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의 군사들은 대왕에 대해 수군거리게 되었고 이를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대왕은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왕을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고참 병사들
은 다소의 불만이 있어도 모두 충실한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들이었다. 모두가 딱할 정도로
오로지 대왕을 경애하고 있었고, 그런만큼 대왕의 동정에 관한 집념을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는 편치가 않았다. 그런 기운을 상장하기라도 하듯 켤코 사소사하고 할 수 없는 사건이 일
어났다.
대왕은 카스피해를 본 뒤 히르카니아, 파르티아를 빠져 나와 아레이아레서 남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드랑기아나 지방의 작음 마을에 이르러서 막사를 치고 도시를 세우려
는 계획을 세웠다.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가능성이 실감과 함께 울컥 치밀어 왔다. 도시
이름을 예견이라는 의미의 프로프타시아로 정했다. 어려풋한 미래가 조금씩 보이는 듯해 가
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만을 골똘해 하고 있던 중에 황급히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헤페스티온이
심각한 얼굴로 나타났다.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뭐라고?"
알렉산드로스는 옆에 있던 수행원헤게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필로타스한테서, 무슨 말 들었느냐?"
필로타스는 알렉산드로스 부하 중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었고 그의 부친은 부
장군 파르메니온이다. 파르메니온이 나이 든 지금 실질적으로는 젊은 필로타스가 부장군의
지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중에도 활약상이 뛰어나 많은 공을 세우고 있다. 알
렉산드로스와의 친밀함에 있어서는 헤페스티온이나 크라테레스에게는 뒤지더라도 무인으로
서의 평가는 높다.
베소스 추격군 중에서 최전선에 군사를 끌고 가 충분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고, 갖가지 단
서를 찾아내어 정보를 모으는 탁월한 능력도 있었다. 그리고 둘도 없는 지장이기도 했다.
"베소스 때문이냐."
"아닙니다."
헤페스티온은 다시 한 번 더 주위를 살피며 다욱 잦은 소리로 속삭였다.
"사자왕의 암살 음모입니다."
"암살? 금시 초문인데."
"이 문제에 대해 최근에 아무런 보고가 없었습니까?"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데없다니, 무슨 말씀이옵니까?"
"그럼, 무슨 내용이냐?"
"디무노스는 알고 계신 것이옵니다."
"그래."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으로 마케도니아를 출전할 때부터 함께한 충실한 병사다.
"디무노스가 페르시아인과 내통하여 사자왕 암살 계획을 꾸몄다고 하옵니다."
"그놈은...."
믿어지지는 않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에 비해서
는 잔재주가 뛰어난 사내였다.
헤페스티온의 이야기는 조금 복잡했다.
디무노스는 니코마코스라는 젊은 병사와 특별한 사이로 이 암살 음모를 연인에게 털어놓
으면서 한패에 끌어들이려고 권유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니코마코스는 형인 케바리노스에
게 이 일을 의논했다. 케바리노스 역시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이엇다. 너무나 놀란 케바리노
스는 자신의 상관인 필로타스에게 이 일을 의논했다.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단 사자왕께도 조심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알았다. 대왕님께 보고하겠다. 그 대신 너는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마라!"
필로타스는 격려의 뜻으로 어깨를 두르려 주었고 일단은 안도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필로타스가 대왕에게 보고한 것 같은 기색이 없었다. 케바리노스는 그 일을 필로타스에게
독촉하면 다시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엄명할 것이고, 묵살한 내색조차 비치지 않을 것이라
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케바리노스는 펠라에 있을 때 헤케스티온과 가까이 살아서 누나들끼리도 사이가 좋았다.
케바리노스 자신은 지금까지 필로타스 부하에 속해 있었지만, 헤페스티온과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인시하는 정도의 친분을 있었다. 그 인연을 믿고 헤베스티온에게 의논을 하고 은밀
히 갔던 것이다.
헤케스티온은 직감적으로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다행이
도 필로타스는 막사를 비우고 있었고 비밀리에 진상을 밝힐 만한 증거를 찾았다.
"그랬더니...."
조사 내용을 보고하기도 전에 알렉산드로스가 재촉했다.
"디무노스는 뭐라고 하더냐?"
사자왕의 판단은 언제나 빠르다. 핵심을 찔렀고 초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헤페스티온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방금...."하고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었습니다. 막사 뒤편에서."
디무노스는 무언가 낌새를 차렸던 것이다. 조사는 그것으로 끝나 버렸다.
"음."
"바로 전에 잡았어야 했는데...."
헤페스티온은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필로타스를 포박하여 자백받을 수는 없는 일
이다.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순간 상대는 죽음을 택했고 그것만으로 근거 있는 계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사자왕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필로타스는 오늘 아침에도 만났다. 이야기도 나누었고 보고도 들었고 우스갯소리도 했는
데...."
좋지 않은 소문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십니까?"
알렉산드로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두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무슨 생각이 떠
올랐는지, "어딘가 수상해"라고 중얼거렸다.
"이집트에 있을 때부터...."
한마디 덧붙이고는 말끝을 흐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던 듯합니다."
헤페스티온도 수긍했다. 두 사람은 벌써 한차례 의심한 것이 있었다.
동정군이 이집트에 머물고 있을 무렵,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필로타스의 음모 소문이 떠올
랐다. 그의 아버지 파르메니온도 가담했고 대왕의 끝없는 욕망을 제지한다는 그러듯한 대의
명분도 덧붙여졌다.
소문에는 암살은 시기상조로 생각되오 달레이오스를 죽인 후로 미루었다는 아주 그럴싸한
판단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라며 무심코 들어 넘겼던 알렉산드로스를 젖혀놓
고 헤페스티온이 조사를 감행했지만 음모를 증명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의
혹 대상은 알렉산드로스에 버금가는 비중있는 인물 두 사람이었다.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결국 일부 병사들의 욕구 불만이 형태를 바꾸어 나타난 것, 즉 소문 자체는 아무 근거도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후의 필로타스의 공적은 뛰어났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거슬리는 행동이 없지는 않
았다.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며 동정을 비판하였고, 특히 요즘에는 방만한 생활을 하
며 "동정군의 승리는 나와 아버지 파르메니온의 덕택이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지껄이는
것 같았다. 어딘가 수상하긴 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했다.
노장 파르메니온은 엑바타나에 물러나 있고 필로타스는 산악지대에 흩어졌던 적병을 찾아
내어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올 것이다.
"니코마코스와 케바리노스를 불러라. 필로타스도 돌아오는 대로 즉각 출두하도록 수배령
을 내려라."
대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헤페스티온은 빈틈없이 자신의 부하들을 산지로 보내어 필로타
스의 도주에 대비했다.
슬프게 우는 니코마크스의 말에는 충분한 신빙성이 있었다. 케바리노스도 헤페스티온이
들은 소문을 다시 입증했다. 게다가 조사해 보니 자살한 디무노스와 친분이 있는 두 사내가
이미 행적을 감추었다. 디무노스가 처음 보는 페르시아인과 은밀하게 만났다는 증언도 얻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음모의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져 갔다.
이윽고 필로타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불려 왔다.
"무슨 일이옵니까?"
여유를 보이면서 대왕의 막사로 들어왔으나 주위의 심상찮은 표정을 보고 순간 미간을 찌
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듣고 싶은 게 있다."
대왕 앞에서 엄중항 심문이 시작되었다.
"케바리노스에게 장난 같은 소문을 들은 것을 사실입니다."
필로타스는 일단 인정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허무 맹량한 것이라 대왕님의 귀를 거슬리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
여 흘려 버렸습니다."
말하는 내내 필로타스는 태연했다.
하지만 헤페스티온의 조사는, 필로타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면서도 진지하게 소문
의 진위를 밝히려 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결단코 필로타스는 흘려 버렸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능성이 짙었다.
그 부분이 찔리는지 필로타스의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았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당치않습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전부터 그럴 가능성은 있었다."
"맹세코 그런 일 없었습니다."
"아니다. 있어."
이집트 원정 이후부터 생각했던 몇 가지 소문을 들이댔다. 필로타스의 얼굴이 비통하게
일그러졌고 그 순간 케바리노스가 불려 나왔다.
"한 번 더 그때의 상황을 소상히 말하라."
왕이 재촉하자 케바리노스는 머리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예. 저는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만, 대장은 절대 입 바께
내지 말라는 엄명만 내렸습니다."
힐끔 필로타스를 훔쳐봤다.
"케바리노스!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모함하느냐! 그건... 진영 내에 쓸데 없는 혼란을 일
으키지 않으려 했을 뿐입니다."
필로타스는 항변했다.
하지만 지난밤에 필로타스와 디무노스가 만나는 것을 목격한 테살리아린 용병까지 증인으
로 나왔다. 진영 내에서는 알아주는 술꾼으로 그때도 흠뻑 취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알아봤느냐?"
"달이 비쳤습니다."
분명 반달이 뜬 밤이기는 해도 구름이 걷혀 있었다. 올리브나무 그늘에 서성이던 두 사람
은 확실히 필로타스와 디무노스라고 잘라 말했다.
"아니, 이 목소리가 틀림없습니다."
증인은 추궁을 당하자 쓸데없는 말까지 하며 우겨댔다. 이러한 증언을 진실로 받아들일지
는 알렉산드로스의 재량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케바리노스의 진지한 주장을 들으면서도 내밀하게 디무조스를 심문하는
것을 간과했음을 깨달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반역을 묵인하려 했던 의혹은 분명해졌다.
"아버님을 불러 주십시오. 저의 충성심은 누구보다도 아버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네 아버지도 의심스럽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렇게 많은 공을 세우신 분을."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깊은 의혹으로 긴장한 나머지 필로타스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신의 아들이라면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뱉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마침내 대왕의 한쪽 뺨이 조금 일그러졌다. 자
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신의 아들은 다 알 수 있지."
필로타스의 유죄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필로타스는 많은 공을 쌓은 지휘관이므로 일단은 군사들을 모아서 재판을 열었다.
증인은 모두 다 필로타스에게 불리한 증언만을 했다. 몇 안되는 증거도 그럴싸하게 제시되
었다. 거기다 피고는 고문을 당하게 되고 자백을 강요받았다. 모든 것이 유죄라는 인상을 심
어 주기 위한 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자조는 이런 결과를 예측
하고 있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필로타스에게 마지막으로 형식적이나마 해명의 기회가 주
어졌다.
하지만 이미 실신해 있었고 변명은 희미하고 나약한 목소리로 동정심을 끌었지만 유죄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죄인에 대한 벌로 돌팔매질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필로타스의 절친
한 친구인 대왕의 눈짓을 신호로 창이 던져졌다.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그리고 비통한 울
부짖음이나 호소를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한편, 재판을 열기 직전 대왕은 사자에게 세 통의 편지를 건네주며 엑바타나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자는 폴리디마스로, 그는 노장 파르메니온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세 통의
편지 내용은 하나는 대왕이 파르메니온 앞으로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이고, 또 하나는 필로
타스가 아버지 파르메니온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것은 당연히 조작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대왕이 엑바타나 부관에게 보내는, 즉 파르메니온 밑에 있는 클레인드로스에게 보내는 공문
이었다.
필로타스를 처형하기로 결정한 후에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과 더불어 크라테레스를
불러서 상의했다.
"파르메니온 문젠데... 이집트를 나올 때, 알다시피 막내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지."
필로타스의 남동생 말이다.
"예?"
"파르메니온은 아들의 죽음을 '신의 뜻'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이 말 한마디에도 두 사람의 헤타이로이는 쉽게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을 꿰뚫었다. '대왕은
이번에도 파르메니온의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라고 필로타슬의 죽음도
신의 뜻인 것이다. 그러나 크라테레스가 진언했다.
"엑바타나에는 파르메니온 지휘하에서 3만 명의 정예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쪽 군사는 전부 모아야 겨우 그 정도가 될까말까 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같은 편에 적이
있을 때입니다. 아군의 결속만 단단하다면 외부의 적 따위는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사자왕!
결단을...."
확실하게 '내부의 적'이라는 말을 썼고 파르메니온의 봉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
다. 크라테레스는 전략에 뛰어난 장군으로 전대 방심하지 않는 철저한 사령광이었다.
"그러면...."
알렉산드로스가 말하려는 것은 헤페스티온이 가로마고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을 살피며 의지를 확인했다.
헤페스티온이 모든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는 대왕의 손은 전대 더럽혀서는 안 된
다고 다짐했고,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자신이 죽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엑바타나로 가던 사자 폴리다마스는 자신의 진짜 역할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일을 신중하
게 실행에 옮겼다. 오로지 극비 사항이므로 시급히 해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매우 시급한 일이었다. 필로타스가 처형된 사실이 엑바타나에 전해지기 전
까지....
폴라다미스는 필로타스가 죽은 사실조차도 몰랐다. 1300킬로미터라는 엄청난 거리를 사지
는 열하루 만에 달려간 것이다.
반역이 시작되다.
전선 가지에서부터 낙타를 달려서 엑바타나에 도착한 폴리다마스는 마중 나온 파르메니온
에게 먼저 알렉산으로스의 친서부터 건너주었다.
엑바타나에는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지휘관인 파르메니온과 부관 격인 클레인드로스
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폴리디마스는 파르메니온의 막사로 들어갔다.
"파르메니온, 건강은 어떤가?"
"자네 덕분에 무사하네."
서로가 다가서서 반갑게 어깨를 껴안았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절실한 친구 사이였다.
"사지왕의 편진데... 아참! 자네 아들 필로타스가 준 편지도 갖고 왔네."
"수고했네. 정말 수고했어."
파르메니온의 얼굴에 회색이 만면했다. 그는 먼저 왕이 보낸 서찰을 펼쳤다. 편지는 전선
에서의 무운의 호조를 전한 다음에 파르메니온의 영예를 칭찬하며 그의 누구의 안위를 걱정
하는 내용이었다.
"대왕께서는 별고 없으신가?"
안부를 물으면서 필로타스의 편지를 폈다.
"변함없이 의기 왕성하시다네. 어디까지 군을 진격하실는지."
"그래."
파르메니온은 한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그러나 불길함의 원인은 막사 밖에 감도는 희미한
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발자국 소리와 동시에 부관 클레안드로스가 몇 명의
부하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이 부관과는 처음부터 뜻이 맞지 않았다. 직책상 어쩔
수 없이 적당ㅇ히 대하고 있지만 친구인 폴리디마스가 찾아온 지금 불쑥 들어와서 방해하다
니 기분 나쁜 일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아냐?"
불쾌감이 얼굴에 드러냈다.
"폴리다마스님."
출입구에 서 있던 병사가 밖을 가리켰다. 사자 폴리다마스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밖을 가
리켰다. 사자 폴리디마스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밖을 살피며 어둠 속으로 한두 발 걸어 나
갔다. 파르메니온도 똑같이 "무슨 일이냐"라는 친구가 나간 쪽으로 고래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칙명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단검이 파르메니온의 등을 찔렀다. 몇몇 병사가 뛰어들어 가슴과 배를 거
푸 찔렀다.
"무슨 일이냐?"
소리를 들고 밖에서 뛰어들어온 폴리디마스는 뜻밖의 광경을 보고 망연 자실하여 허둥대
며 칼을 꺼내려 했지만, 병삳들이 양쪽에서 말렸다.
"칙명이다."
클레안드로스가 친서에 찍혀 있는 대왕의 옥새를 보여 주었다. 그의 목소리도 손도 떨고
있었다. 폴리디마스는 그제야 바로 자신이 친구를 방심하게 만든 미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급히 친서를 확인해 보았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가혹한 역할을 맡게 된 폴리다마스의
입장에서 고려한 치밀한 계획이었다. 필적은 헤페스티온의 것으로 짐작되나 이런 일에 있어
서 헤페스티온의 지위는 대왕에 준하고 있었고 대왕의 서명과 옥새만 있으면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발 밑에 쓰러진 늙은 친구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파르메니온의 마지막 절규는 작고
짧았지만 막사 내의 소동은 곧장 진영을 지키던 병사들에게 알려졌다.
"칙명이다! 대왕의 명령이야. 파르메니온에게 반역 음모가 있어서 대왕이 주살을 명했다!"
부관 클레안드로스는 10여 명의 직속 부하를 불러들여 친서를 높이 쳐들고 크게 외쳤지
만, 몰려든 모든 병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파르메니온이 암살당했다."
이미 밤의 장막이 내려져 있었지만 진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모여 있던 병사들은
클레안드로스 등의 주모자들을 에워쌌다.
"잠깐만 기다려라! 침착해라!"
사자 폴리디마스도 부관의 입장에 서서 왕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했다. 장군들의
눈으로 대왕의 서명과 옥새가 확인되자 일단 소동은 진정되었다.
"무슨 이유냐!"
석연찮은 느낌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정군은 확실히 대왕 알렉산드로스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군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심정적으로는 파르메니온을 총사령관으로 여기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선왕 필리포스가
치세한 뒤부터 계속 파르메니온의 지휘를 높이 평가해 왔던 고참 병사들에게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했다.
그러니 알렉산드로스의 옥새 하나로 파르메니온이 살해당한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
이었다. 파르메니온이 급사한 기금 주둔군의 지휘는 부관인 클레안드로스의 손에 맡겨지는
것이 군대의 규율이지만, 오히려 클레안드로스 일당이 포위되어 있었다. 진영 전체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전선 기지에서 계획을 세웠던 헤페스티온은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폴리다마스를 사자로 보낸 직후에 알렉산드로스의 막사로 클레이토스를 불렀
다.
"사자왕의 명령이야. 이 일을 해낼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이 일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간청했고 결국 납득시켰다. 즉시 알렉산드로스의 명령
이 떨어졌고 대왕의 바람 또한 간절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클레이토스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폴리다마스 뒤를 따라갔다. 그 군사가 도착한 것은
마침 엑바타나 진영이 파르메니온을 잃고 혼미해 있던 때였다.
"나는 클레이토스다. 잘 들어라! 파르메니온은 반역 음모를 꾸몄고 그 아들 필로타스도 이
미 처형당했다. 이 모든 것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칙명에 따른 것이므로 만약 거역하는 자
는 역적으로 간주하겠다."
그는 이렇게 큰소리로 외쳤다.
외곬에다 순박한 클레이토스는 마케도니아 고참 병사들 사이에서도 많은 신뢰를 받는 인
물이기도 했다. 클레이토스를 직접적으로 모르는 군사들까지도 "클레이토스는 우리 편이야"
라고 말하며 그 이름에 남다른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파르메니온을 대장으로 생각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클레이토스는 부대장
격이었다. 그를 택한 것은 훌륭한 작전이었다.
주둔군 중에 산재하는 불만 분자도 "클레이토스가 하는 말이라면" 하며 알렉산드로스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클레이토스가 전군의 통솔을 맡았기에 별
탈없이 수습되었다.
며칠 뒤에 새로운 지휘 임명이 발표되었다. 필로타스가 장악하고 있던 군대는 둘로 나뉘
어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레스가 각각 지휘를 맡았다. 카르메니온 후임에는 클레이토스가 임
명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를 보좌하게 되었다. 모두가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신임하는
헤타이로이이다. 마케도니아 군사는 선왕 필리포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시절의 용장
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한 선왕의 영향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끈을 끊어 버리고 진
정한 의미에서 알렉산드로스 체제를 확립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필로타스의 반역은 사실일까. 정말 파르메니온은 그 일에 가담했
던 것일까. 이런 혐의에 대해서 알렉산드로스는 어디까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확증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면 반역 그 자체의 존재에 대해서는 중요시하
지 않았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부왕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알렉산드로스
체제의 확립을 위한 것이었고, 여기에 동정군 중에서 상당한 세력을 떨치고 있는 필로타스
의 존재가 장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별문제가 없지만 앞으로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필로타스 또한 오랜 지기이고 헤타이로의 한 사람이 것은 분명하지만 언동에는 불손한 점
이 자주 비쳤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신성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게다가 동정군의 침공
에 대해서는 이쯤 해서 싸움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면서 심
심찮은 병사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알렉산드로스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행동이었으며
동정군 중에는 이런 그의 주장에 찬성하는 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국을 떠나온 지 어언 4년. 그것도 만리 타향에서 언제나 고
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해 하는 병사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대왕은 더욱더 깊은 오지
로 진군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하튼 피롤타스의 언동이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유쾌할 리가 없었는데, 날이 감에 따라 그
런 주장이 눈에 띄게 퍼져 갔다. 오늘의 반역은 근거가 희박해도 내일의 반역은 충분히 있
을 수 있는 일이다. 직감은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필로타스의 죽음은 그런 위험을 사전에
잘라 내겠다는 계산이었으며 이런 마당에 확실한 증거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파르메니온에 대해서는 노령인 데다 대왕의 곁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시로도 반역 의혹은
더욱 희박했다. 게다가 이 인물은 선왕 때부터의 충신이며 공적도 눈부신 장군이다. 알렉산
드로스의 왕위 계승도 파르메니온의 강력한 지지로 인해서 비로소 실현된 일이었다.
둘도 없이 소중한 공신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러만큼 알렉산드로스에게는 거북
한 존재이기도 해서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전장에서의 처신에도, 예를 들면 가우가멜
라 전장에서 달레이오스를 잡을 뻔하다가 놓친 일이라든지, 파르메니온 역시 비위에 거슬리
는 언동을 한두 번 보인 게 아니었다. 젊은 필로타스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자의 노회한 면
이 있었으나, 아들 필로타스와 마찬가지로 군대를 마케도니아로 돌리는 것을 대망하고 있었
고,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을 사주한 적도 있었다.
적어도 원정군 중에 파르메니온 필로타스파라고도 할 수 있는 일당이 잠재하고 있다는 사
실은 의심의 여기가 없었다. 필로타스를 처벌한 이상 파르메니온 일당이 한꺼번에 반격하고
나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파르메니온도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이 제거
해야만 하는 중신이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개운치 않은 응어리가 남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사자왕은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고국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이대로 끝도 없
는 진군을 계속하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가디라고 있는 것은 영광보다는 죽음이 아닐까. 그
래 틀림없어. 아마 영광과는 아무 상관없는 한낱 비참한 죽음일지도 모르지. 믿었던 파르메
니온마저 알 수 없는 죄목으로 살해당하고 말았잖아. 병사들은 이런 생각들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국왕에게 늘 충성의 뜻을 보이던 병사들은 그런 충성심과는 달리 가슴속에 불순한 생각들
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불안이 한순간에 나쁜 방향으로 파급되지 않았던 것은 병사들에 대한 클레이토스의
위로도 있엇지만, 뜻밖에 고백이 알렉산드로스 진영에서 전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 장의 유서였다. 이 유서를 남긴 병사는 대왕 암살을 꾀하다가 자살한 다무노스
의 친구로 사태를 짐작하고는 재빠르게 행방을 감추었지만, 자신의 불충을 부끄럽게 여겨
프라티아의 깊은 산속에서 목을 매고 죽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디무노스한테 유혹을 받
고 일단 대왕 암살의 한패가 되었다가 계획이 발각된 것을 눈치채고 도망쳤지만, 곰곰이 돌
이켜 생각해보니 마케도니아의 충실한 병사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매우 부끄
럽게 여겨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유서에는 왜 자신이 디무노스의 꼬임에 생각 없이 놀아났던가 하는 후회도 있었다. "대왕
님의 깊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나날이 병사들의 불만이 커져 하는 것을 알아야 한
다"는 진심 어린 호소가 씌여 있었다. "부끄러워해야 할 병사였다"고 고백하면서 깊이 사죄
하면서도, "제발 마케도니아의 자랑스러운 병사들의 심정에, 대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수많은
병사들의 간절한 소망에 대왕은 하해와 같은 자애심을 가지시어 귀기울여 주소서"라며 병사
들의 심정을 필사적으로 대목도 없지 않았지만, 목숨을 바친 호소에는 간절함이 넘치고 있
었다.
그러나 유서 내용은 동시에 디무노스의 반역에 필로타스가 관련한 사실과 배후에 베르시
아의 유력한 자가 가담하고 있다는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다. 따라서 절실한 호소보다는 이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이 팔로타스가 음모를 꾸몄다는 유력한 증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피론타스의 처형은 정당하고 파르메니온의 주살도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대왕은 처사에 의혹을 품었던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도 우선은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평정을 되찾은 듯 가장했지만 마음속은 편할 리가 없었다. 필로타스는 제
쳐놓고라도 파르메니온은 가장 믿었던 심복이었다.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고 수많은 추억을
함께 나누었다.
"저희들은 더욱더 잘 모시었습니다."
플레이토스가 어깨를 치켜 올리며 힘주어 충성을 맹세했고, 파르메니온이 없는 앞으로의
동정군에도 지장이 없다는 것을 호소했다.
"그래. 지장은 없을 테지."
알렉산드로스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느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클레이토스만이 아니
라 다른 헤타이로이 대해서도, 가장 신뢰가 두터운 헤페스티온에게도 혼다 있고 싶다며 아
무도 만나 주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체제의 확립을 생각하면 헤페스티온의 계략은 성공했지만 대왕에게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대왕은 나흘이 지나서야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헤페스티온, 크라테레서, 자네즐은 조금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자왕의 표정에는 한겨울의 태양처럼 따스함속에 차가움이 숨어 있었언
것도 사실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동으로 진격했다.
무엇을 위해서?
선한 것을 추구하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고.... 그것은 동쪽 끝에 정말 있는 것일까. 누구
도 알 까닭이 없다. 기원전 330년 가을, 알렉산드로스는 필로타스의 음모를 '예견(프로프타
시아)'한도시 프로프타시아를 출발하여 헤르만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은 오늘날 아프
카나스탄의 산악 지대로서, 산기슭에 있는 도시 판다하르는 사자왕이 세운 알렉산들리아 폴
리스라는 이름이 오랜 역하의 흐름 속에서 전와된 것이다. 칸다하르는 알렉산드로스의 변형
된 말이다.
그 칸다하르에서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의 수도인 카불로, 동정군이 하늘과 경계를 짓는 힌
두쿠시 산맥을 바라볼 쯤에는 혹한의 계절을 맞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는 몇몇 산
악 부족이 할거하고 있었고, 그 지역에서 독립심이 왕성한 야만족들은 지배는 물론이고 길
을 빠져 나가는 것조차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싸우고, 화약을 맺고, 다시 배신하고, 다
시 싸우고, 회유를 하며 나아갔다.
전진할 때마다. 새로운 사상자를 헤아려야 했고 그때마다 고국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밀려오는 추위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굳게 얼어붙은 설원은 생명이 있는 존
재를 거부하여 짐승은커녕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번 마람이 불면
냉기는 예리한 칼날로 바뀌어 살같을 찌르고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굶주림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병으로 쓰러지는 자, 추위에 목 견뎌서 정신을 잃는 자, 쓰러져서 혼수
상태에 빠진 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군이었다.
병사들의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인내심의 한계였다. 그래도 병사들이 동정길을 계속
나아간 것은 순박산 마케도니아군을 중심으로 하는 군대의 한결같은 충성심과 알렉산드로스
의 불가사의한 힘 때문이 아닐까.
병사들에게는 우선 대왕의 위광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며 또한 신뢰도 있었다. 이 젊은
대왕은 병사들을 끌어들이는 매력도 갖추고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었다. 따라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병사들의 마
음 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 자신을 맡기는 체념이었다.
단 한 사람, 알렉산드로스만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달레이오스 3세를 배신한 역적 베소스
의 추적은 당면 문제일 뿐이다.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일. 세계의 맹주가 되는 일. 야망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세계는 얼마나 넓은지,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알렉산드로스는 체력도, 정신력도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났다고 한다. 혼자서 행
군길을 되돌려서는 수마에 쓰러져 하는 병사들을 찾아내오 두드려 깨우면서 돌아다녔다. 걸
어갈 수 있을 때까지 부축해 주었다. 혹한 속의 행군에는 활동을 멈추면 순식간에 동상이
엄습해 와 잠이 들면 여지없이 죽고 만다.
"여기에서 죽어서 어쩔 셈이냐! 영광을 목표로 걸어라."
어떤 때는 병사를 등에 업고 전진했다.
대왕의 이런 깊은 마음은 야심 많은 횡포와는 달리 병사들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뭣이라고!"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박트리아로 들어간 사타바르자네스가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
식이었다.
만만차 않은 페르시아인이다. 달레이오스의 충신이면서 도망중인 페르시아 왕을 죽였고,
한 때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항봅하여 아레이지 지방의 태수로 임명받았지만 곧바로 배신하고
공격을 해왔던 바로 그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배소스와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잡아서 능지처참에 처해도 울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마라."
이 주면 지역에 기반 세력을 둔 알타바조스, 애첩 바르시나의 아버지인 알타바조스와 그
의 부하들을 진압에 침투시켰지만, 서전에 사티바르자네스가 전사하자 그의 목만 알렉산드
로스에게 가져왔다.
죽은 얼굴은 살짝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입술은 다부지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가 고전하리라는 예측을 했다는 듯 조소하고 있었다.
베소스는 사티바르자네스를 매우 의지했던 모양이었다. 베소스는 박트리아 산중에서 동정
군을 협공하는 작전을 세웠지만 사티바르저네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겁을 먹고 항전
보다는 다시 북쪽 오지 소그다아나 지방으로 후퇴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이것을 보
고 지금까지 베소스를 지지하던 주변 부족들도 구에게 협조하기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소굴
인 산속으로 들어가 흩어져 버렸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며 조직을 짠 것은 스피타메네스라는 토착 호족이었다. 알렉산드로
는 한동안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 수피타메네스의 본심을 꾀뚫어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유력한 페르시아인으로서 후하게 예우해 주었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을 지나 짧은 봄을날아서 맹서의 여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날마다
더위가 심해지고 박트리아 사막 지대는 화염 지옥으로 변했다. 바로 몇 달 전에 추위에 떨
었던 군사는 무정하게도 이번에는 더위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날마다 태양이 하늘
에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불타고 있었다. 바위가 불타고 모래가 불탔다. 온통 뜨거운 아지랑
이만 자욱하여 대기가 마치 화염처럼 뜨겁게 흔들리고 있었다. 불의 바다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폭염 그 자체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알타바조스를 박트리아 지방의 태수로 앉히고 베소스를 추격했다. 군대는
견디기 힘든 폭서에도 참아내고 의식을 잃을 정도의 갈증도 극복하며 전진해 갔다.
베소스는 초토화 작전을 감행하면서 도망갔다. 추격대는 군령미와 마초를 구하는데에 어려
움이 많았지만, 이부근 최대의 옥수스강(현재 러시아의 아무다리아강) 기슭에만 도착하면 물
부족은 해결할 수 있었다.
"배를 모조리 태워 버렸습니다."
"베소스가?"
"예. 물살이빠르면서 강밑은 완만하여 가교를 건설하기에 어려움이 많겠습니다."
"천막을 모조리 모아라. 안에 마룬풀을 채워 넣고 양쪽을 맞춰서 꿰매라."
이것은 수년 전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도나우강을 건널 때 실행했던 방법이었다. 야영용
가죽 텐트에 바짝 건조시킨 억새풀을 쑤셔 넣어 끈으로 묶어서 입구를 막고 물 위에 띄워
강을 건넜다.
얼마 전에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인 고참 병사와 그리스에서 온 파견병을 900명 정도
골라서 충분한 수당을 지급한 뒤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부대 내에 응어리져 있던 불만을 가
라앉니는 동시에 실질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노병들을 제대세키는 조치이기도 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마라칸다는 현재의 사마르칸트이다.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관문에 있는 도
시로서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인도, 그리고 동쪽은 멀리 중국을 바라보고 있어 예날부터 교
통의 요지로서 발전한 도시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이 도시에 들어가기 직전에 스피타메네스
로부터 베소스를 연금했다는 전갈이 왔다.
베소스와 스피타메네스는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쩌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알
렉산드로스에게 반공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사티바르자네스가 전사한 뒤 베소스는 스
피타메네스를 의지했음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타메네스가 등을 돌렸다. 베소
스 입장에서 보면 예상이 빗나갔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베소스의 신변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알몸으로 밧줄을 묶어서 길거리에 목을 매달아 놓아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베소스는 동정군이 지나가는 길에 방치해 두었다가 박트리아 지방의 수도 박트
라로 보내져서 결국 처형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분발하여 마라칸다로 입성했다. 그리고 다시 침략의 노정을 북동쪽
으로 바꾸었다.
'왜 또 가는 거지?'
병사들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 하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베소스를 체포하여 달레이오스왕을 시해한 주모자를 처형시킨 지금, 대체 알렉산드로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대왕 자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사정을 생각하면 의문을 품는 것
이 당연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주위 정세가 위급함을 알리는 전갈이 날아왔다. 군수
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떠났던 마케도니아 병사가 부근에 할거하던 부족에게 참살당한 사건
이 일어난 것이다. 적은 3만에 가까운 대군은 것 같았다.
'어느 사이에? 누가 모은 군사란 말인가?'
산악 부족이 복종하는 체하며 다가왔다가 결집하여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는 격노했고 토벌에 착수했다.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앙렉산드로스 자신도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겁내지 마라! 다 죽여 버려라!"
동정군에게 막대한 피해가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사자왕의 진타가 효과를 나타내며 3만 적
군을 거의 다 죽임을 당하거나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이 전장 근처에 세워진 도시가 알렉산드로아 에스카테로, 오늘날 타지키스탄 공화국의 수
도인 레나나바트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코칸트로 추정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에스카테라고는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말은 '맨 끝'이라는 뜻으
로 대왕이 만든 3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도시 중에서 이 도시가 결과적으
로 북동쪽의 맨 끝에 위치하게 되어 후세인들의 지혜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
도 없다.
동정군의 실정을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진해 가려 해도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생수를 마시고 배탈이 나서 숨이 끊어질 것처럼 아픈 대왕의 막사에 정보가 속속 날아왔
다.
"뭐라고! 이번에는 스피타메네스가?"
베소스를 동정군에게 넘겨준 그 페르시아인이 반란군을 조직하여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
것도 꽤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도처에
서 보고가 들어왔고 각지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부대가 참패를 당하고 있었다. 사자왕은 북통
을 앓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페르시아 호족들은 이다지도 쉽게 배반
하는 놈들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오지에서 각지에 흩어져 할거하는 호족들의 독립심이 매우 강하여 간단하게는 지배
를 받지 않으며 국지적인 유격전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술이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스피타메네스가 그들의 심리를 충동질하여 적개심을 부추겼고 교묘하게 군대를 조직하
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알렉산드로스는 내심으로는 사티바르자네스도, 베소스도 모두 처음에는 만만
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정강이뼈를 다쳤고 심한 설사로 체력이 많이 상해 있었다. 매일같이
날아드는 뜻밖의 고전 소식에 애를 태우며 정예군을 마라칸다로 보냈지만, 이것도 스피타메
네스의 작전에 휘말려 사막으로 끌려들어 가서 전멸당하고 말았다.
"어찌된 일이냐!"
알렉산드로스는 관자놀이에 핏발을 세우며 격노했다.
"이번 일은 일절 입 밖에 꺼내지 마라!"
위반자는 그 자리에서 사형에 처할 정도로 패배에 대해 엄중한 함구령을 내렸다.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초조함은 더해지고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불만 없이 가
벼운 지배 체제하에 있던 무리들이 일체의 선무 공작을 거부하며 조소하듯이 각지에서 조금
씩 반격의 불을 태웠다.
하지만 때마침 동정군에게는 그리스 본토에서 유력한 새로운 지원 부대가 도착했다. 3만
이 넘는 대군은 이 땅에 주둔하는 군사와 맞먹는 숫자였다.
체력을 회복한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격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몰랐
다.
"다 죽여라! 다 태워라! 다 빼앗아라!"
자신이 직접 전투에 나서서 잔혹한 작전을 감행했고 몇 군데 촌락이 파멸의 고배를 마셨
다. 그래도 적은 반항항 기색을 잃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봉화를 올렸다.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은 더한층 가혹해졌고 잔혹함도 더해 갔다. 광기라고 할 만큼.... 아니,
사자왕은 정말 미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용맹스런 사자는 몇 마리의 사냥개에 둘러싸여도
물러서지 않고 포효했으나 사냥개들은 아무리 쫓아도 끊임없이 공략해 왔고, 아무리 쓰러뜨
려도 지치지 않고 다시 또 다른 사냥기들이 덤벼들었다. 사자는 여기저기 물리고 찢어져 이
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쳐드는 전황이었다.
쌓이고 쌓였던 초조와 불안이 냉철한 사자왕을 미치게 만들었던 것도 의심할 수 없는 사
실이다. 동정군을 뒤흔든 대사건은 바로 이때에 일어났다.
대왕의 직속 부하 병사들의 마음도 편안할 리가 없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원정에 휘말
려 부상과 죽음에 직면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워 거칠어진 영혼이
잔학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더욱더 거칠어져 갔다. 신출귀몰하는 스피타메데스의 반격에 알
렉산드로스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초조해 하고 있었다.
마라탄다 진영에서 이 땅의 수호신에게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냈고 주연고 베풀었다. 술
자리는 떠들썩하여 평소와 같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뭔지 모를 무거운 분위가가 감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안을 감추는 데는 술밖에 없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마구 마셔댔다.
그리고 잊었다. 그래도 또다시 무거운 불안이 앙금처럼 술자리 여기저기에 가라앉아 있었다.
대왕을 모시는 시인이 어제 전사한 한 무장의 비겁함을 한편의 풍자시로 꾸며서 즉흥적으
로 불렀다. 시인으로서는 비위를 맞추려고 보여 준 것이다.
그때 곁에 있던 헤타이로이 클레이토스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순박한 클레이토스다. 요
람에 있을 때부터 사자왕 함께 자라나 그라니쿠스강의 접전에서는 몸을 던져서 왕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그 새까만 얼굴의 용사 클레이토스다. 이 남자는 마케도니아인의 소박함으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오로지 알렉산드로스만을 경애해 온 정직한 무인이면서 부하 병사들에
게도 매우 신뢰받고 있었다.
파르메니온 주살 작전에서는 병사들의 반감을 위로해 주는 어려운 역할을 맡았고, 자신의
이런 인품 덕분에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 냈으며, 전장에서는 언제나 가장 힘든 전투를 도
맡아서 처리해 왔다. 군공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주제넘게 그런 노래를...."
클레이토스가 새카만 얼굴을 붉히며 시인일 나무랐다. 시인은 풀이 죽어서 물러갔다.
"과연 그럴까."
알렉산드로스가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클레이토스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전에 없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사자왕에게 반발했다.
시선이 얽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똥이 튀기며 험악하게 변했다. 분위기는 숨을 죽여야
할 만큼 무서웠다.
"건망지게 굴지 마라!"
"흥! 사자왕이야말로."
"뭐라고! 한 번 더 말해 봐!"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어!"
대왕과 가신의 관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래된 친구 사이다. 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속시
원하게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참아왔지만....
"사자왕 한 사람의 공로가 아니다!"
"그럼 네 녀석의 공이냐!"
"나라고는 안 했어, 모든 병사들의 것이지. 죽은 자나 부상당한 자 모두 말이야. 묘비에
왕 이름부터 병사들 이름을 다 새기면 되겠지."
마음속의 응어리가 터지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았다.
"거창한 소리하지 마라!"
알렉산드로스가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말했다. 이럴 때가 가장 무서웠다. 그러나 클레이
토스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주변에는 재빠르게 사태의 위험성을 눈치채고 모두
들 돌아가고 아무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뭐야. 모든 것이 우리 덕분이야. 이 팔을 봐라. 이 팔이 그라니쿠스에서
사자왕을 구해 주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자왕은 무덤 속에 있을 테지."
"말 다했느냐!"
알렉산드로스가 뛰어나와 식탁위의 사과를 던졌고 다시 수호병의 작은 창을 빼앗아 던졌
다.
멀리에서 지켜보던 프톨레마이오스가 달려왔다.
"기다려! 잠깐만. 제발 잠깐만."
대왕을 말리고 클레이토스의 어깨를 안고 막사 밖으로 끌로 나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바
로 발길을 돌려서 뒤쫓아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술 탓이야. 두 사람 다 취했어"라며 두 사
람을 뜯어말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대왕의 작은 창에 찔린
것 같았다.
"알았어. 어서 치료나 해라!"
알렉산드로스는 턱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상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프톨레마이오스를 재
촉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로 곁에 있던 수호병에게 치료를 맡겼다.
하지만 그때 일단 돌아갔던 클레이토스가 다시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자왕! 다시 한 번 생각하라. 대왕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어야 좋겠는가!"
클레이토스는 취하기는 했지만 죽음을 각오한 간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양팔을 아래로 내
리고 무방비의 상태로 호소했다. 마치 죽일 테면 죽이라는 듯이....
사자왕은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작은 창을 다시 쥐어 그대로 클레이토스의 가슴에 꽂았
다. 창 끝의 움직임에는 분명히 살기가 서려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쓰러진 클레이토스를 왼팔로 누르며 창을 빼내어 창살을 벽에다 꽂더니
스스로 자해하려고 창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프톨레미오스가 사자왕의
몸을 밀쳤다. 다행이 목을 살짝 비켜갔다. 두 사람은 바닥에 뒹굴었고 병사들이 창을 빼앗아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자왕! 지금 죽어서 어쩌자는 거야. 대업은 아직 반밖에 이루지 못했어."
알렉산드로스는 일어나서 쓰러져 있는 클레이토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몸을 돌려 자신의
막사로 서둘러 돌아갔다. 몇 명의 가신이 그의 뒤를 따랐다.
먼저 대왕의 막사로 들어온 프톨레마이오스가 모든 무기를 치워 버린 것은 순간적인 기지
이지만 현명했다.
"껴져 버려. 다 나가!"
모두를 쫓아내고 알렉산드로스 혼자만 남았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입구 가까이에 멈춰 서
서 방안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시 자해하려는 것은 아닌지 희미한 소리에도 떨
었다.
마침내 낮은 흐느낌이 들려 왔다.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클레에토스는 절명하고 말았다. 진영을 떠나 있던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레스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가장 친한 헤페스티온이 아무리 애원해도 알렉산드로스는 출입구를 단단히 닫고는 열려고
하지 않았다.
천하의 알렉산드로스에게도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음은 뼈아픈 일이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우직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무시해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
만큼 마음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만큼 신뢰한 자도 없을 것이다. 가장 용감하고 가장 충실
한 부하였으며 천진무구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를 술에 취한 끝에 죽이고 말았다. 중신들
은 막사를 멀찌감치에서 둘러싸고 수근거렸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누워만 있어."
"자고 있는 걸까."
"아니, 침울해 하고 있어."
알렉산드로스는 한동안 자신의 좁은 막사에 틀어박힌 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병사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을때는 클레이토스에 관한 일체를 무시했다. 클레
이토스의 죽음 따원 마치 없었던 일처럼, 클레이토스라는 무인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했다.
정황이 달랐다면 알렉산드로스도 좀더 그럴싸하게 애도의 뜻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겸연
쩍은 생각을 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스는 그럴 때가 아니었다. 또 다른 번
거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것을 생각하면 클레이토스의 간언을 지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
다.
그 귀찮은 문제는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며 부득이하게 야기된 문제는 더 더욱 아니었다.
바빌론에서 수사, 수사에서 페르세폴리스의 동정길을 전진함에 따라 알렉산드로스가 의도적
으로 감행해 왔던 일에 대한 병사들의 초조, 불안 혹은 반감일지도 모르는 의혹ㅇ이 진중에
잠재해 있었다.
광대한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서 페르시아인의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알렉산드로스
의 확고한 신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없는 번영을 이루어 낸 페르시아의 예지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장점도 많이 있다. 아시아 대륙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 페르시아인을
요직에 중용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의 하나였으며, 대왕 자신이 스스로 자진해서 페르시아의
풍습과 친숙해지려는 것도 범아시아적인 사고로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에게는, 특히 마케도니아 병사에게는 '무엇을 위한 동정인가'라는 민족적
인 감정이 뿌리깊게 장재해 있었다. 옛날부터 전쟁이라는 것은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하여 좋은 생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필사적인 도발이다. 그런 시점
에서 바라볼 때 사자왕의 페르시아 편애는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전쟁에서 진 페르시아인을
높은 지위에 앉히고 측근으로서 중용하여 헤타이로이가 페르시아인을 윗사람으로 모셔야만
하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대왕은 페르시아인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페르시아 의상을 차려입고, 페르시아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봐란 듯이 페르시아의
습관을 따르며, 이제는 그리스인에게까지 궤배라는 인사법을 요구하고 나왔다. 자존심이 얽
힌 문제라는 점에서 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궤배의 예절, 그것을 페르시아 궁정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습관이었다. 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까지 붙이고 예배한다는 것은 경의의 표현이고, 이런 인사를 받고서야
비로소 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페르시아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인처럼 왕이
병사와 어깨동무를 하는 것은 야만족이라는 증거였다.
페르시아에서 군림한 알렉산드로스는 대왕으로서 이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페르시
아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었으며, 마케도니아인의 왕과 병사처럼 허물없이 지내서는 궁정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었다. 어느 사이에 알렉산드로스의 주변에서 궤배의 예가 빈번
하게 실행되었고 그리스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자처하는 알
렉산드로스에게 이것은 결코 기분 나쁜 관습이 아니며 권력이 커지면 그만큼 위엄을 과시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은 물론이고 그리스인은 원래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군대의 중추를 이루는 헤타이로이라는 말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잇다. 상대가 비록 대왕이라 하더라도 엎드려서 머리를 바닥에까지 붙여서 절하는 것은, 신
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것과 같아 참을 수 없는 관행이었다.
마라칸다에 진주한 동정군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절충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었다. 페르시아인은 페르시아 풍습을 지키면서 궤배의 예를 상징적으로 행했
고, 그리스인은 그리스인대로 자신들의 관습을 지키면서 궤배의 예를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
다. 그리고 이른 아슬아슬한 균형은 대왕 자신의 의향을 맞추어서 조금씩 페르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클레이토스가 이런 경향에 반발심을 느꼈던 것은 분명하다. 누구보다도 마케도니아 병사
들의 마음을 하는 부대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자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함부로 말하는 일조차
도 없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동방병에 물든 것을 본 충성스런 무인은 상당히 괴로웠을 것
이다.
그러므로 취한 탓에 폭언을 한 것과 궤배의 예에 다한 저항과는 적잖은 관련이 있었으며,
뿌리는 같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도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
하기 어려웠다. 마라칸다에서는 그리스인 대부분이 대왕의 뜻에 맞추어 무릎을 구부리는 평
신저두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동서 융화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고 있었던 것이
다. 클레이토스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을 했어도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건은 여전히 여운을 남겼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한사람의 헤타이로이
에 대해서 언급해야 한다.
칼리스테네스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에자 학사에서 함께 공부한 적도 있는 웅변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이며 무용보다는 학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예지는 도저히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미칠 수 없었지만 외모는 많이 닮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각나튼구
나"라며 이 사내를 곁에 두고 나름대로 후하게 대해 주었다. 도즘으로 치면 종군 지가 같은
역할로 전사를 기록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와 관련하여 말하면, 칼리스테네스가 남긴 기록은 모조리 유실되어 버렸고 알렉산드로
스의 동정을 전하는 사료로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후세에 조금 미심쩍은 알렉산드
로스 실록이 날조되어 나왔었는데 이 작자를 칼리스테네스라고 부르는 해프닝도 있었다. 역
사적인 사실은 아니지만 재미는 있다. 이런 위작은 먼 옛날에 몇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
리 유포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켤코 적지 않다. 이것이 칼리스테네스 위서라고 불리는 고
전이다.
아무튼 칼리스테네스는 궤배의 예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유를 존중하는 그리스 민족의 전
통에 어긋나며, 노예법이라는 것을 만든 자부심을 가진 시민이 켤코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고 방식은 하나의 양식이겠지만, 그 문제와는 별개로 그는 그다지
평판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인 것을 늘 자만하며 오만 불손하게
변설을 휘두르는 버릇도 없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도 가끔씩 이런 말을 하곤했다.
"사자왕은 분명히 왕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대왕이며, 용사 중에서도 가장 용맹스러운 용
사이고, 사령관 중에서도 가장 그 이름에 어울리는 총사령관으로서, 인간으로서도 최고의 인
격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신은 아니다. 궤배의 예는 신에게만 하는 것이다.
굳이 그것을 행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대왕을 깔보
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대왕에 대한 칭찬은 아낌이 없었지만 터무니없이 자존심이 강했다. 최근의 좋지 않은 평
판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은 대왕의 페르시아병에 불만을 가진 병사들의 마음을 아주 후련하
게 해주었다. 병사들의 뜨거운 응원이 날아오고 인기가 높아졌다. 대단한 영웅이 된 듯한 기
분을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임이 있은 직후였는데도 위험의 기색을 이 남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우쭐거리던 자만심이 강했던 만큼 판단이 어긋났다. 사자왕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의 조카인 자신을 무시할 리가 없다고 믿었고 그리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후대받고 있었
지만, 그런 후대도 자신이 잘나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인 양 마치 호메로스나 된 듯한 착각
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자왕의 위업도 그것을 전해 줄 사가기 없으면 헛된 것이다. 전해 줄 자가 있음으로 해
서 영웅은 진짜 영웅이 된다.
"사자왕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서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단언한 것도 있었으니 약간은 과대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발언을 되풀이하는 이상 자신이 궤배의 예를 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
런 예를 요하는 기회를 스스로가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식전에 참
석할 것을 강요당하게 되자, 다른 중신들이 무릎을 구부려서 머리를 숙이는 사이에 팔리스
테네스는 그것을 살짝 건너뚸고 바로 대왕의 입맞춤을 받으려 했다. 원래는 궤배를 하고 나
서 대왕의 입맞춤을 받는 것이 순서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불경스런 행동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뒤늦
게 곁에 있던 시종의 말을 듣고 매우 분노를 느꼈다. 이날의 식전은 마케도니아인이 대왕의
명령에 따라 빠짐없이 궤배를 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칼리스테네스는
그다지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왕에게 입맞춤을 거부당했을 때도 "저런, 입맞춤 하
나 손해봤잖아"라고 익살을 부렸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허세를 부렸으나, 알렉산드로스는 불
쾌하게 느끼며 칼리스테네스의 이름을 그의 뇌리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
또다시 음모의 소문이 흘러 나왔다. 한낱 소문으로 넘기기에는 근거가 아주 충분했다. 대
왕 측근 중에 헤르모라오스라는 이름의 젊은 사관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수렵할 때 무심코
대왕보다 먼저 가서 첫 번째 창을 던져 야수를 죽인 일로 태형에 처해져 채찍으로 맞게 되
었다. 태형은 신분이 낮은 이에게 내려지는 굴욕적인 형벌이었다. 이 젊은이는 대왕에게 커
다란 원한을 품고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같은 시간에 진영의 여기저기에서는 "이대로 지구 끝까지 데리고 가겠지!", "그래서 결국
죽는 거야. 비참하게 말이야", "마케도니아를 위해서가 아냐. 대왕의 방자함 탓이야" 등등
동정에 대한 불만이 잔 물결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대옹이 모두를 죽일 거라는 불안은 현실감을 띠고 있었으며, 이런 불안
심리는 대왕을 암살하는 길만이 정의라는 명분으로 이어졌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특히 그렇
게 흐르기 쉽다. 헤르모라오스의 가슴속에 있는 원한과 정의감이 섞여서 동조하는 자도 속
속 나타나고 여하튼 대충의 계획이 세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대왕은 취하면 숙면에 빠지지, 그때를 노리면 쉽게 실행할 수 있어."
사관들은 대왕의 신변 보호를 맡고 있었다. 야간 경호를 맡은 몇 사람이 마음만 하나로모
으면 모략을 쉽게 성취할 수 있었다. 비밀리에 동지를 모았고 적절한 때에 동지들끼리만 경
호하는 밤이 왔다.
"오늘 밤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다. 실행에 옮기자."
"좋다."
몸을 떨면서 맹세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알렉산드로스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지 않
았다. 시리아인 여가 점술사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귀띔을 했다는 소문까
지 들려왔다. 그러는 가운데 암살을 계획했던 패거리 중 한 명이 두려움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상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비밀을 고백했다.
신중하게 조사가 시작되었고 줄지어서 반역자들이 잡혔으며 주모자가 판명났다. 대왕 앞
에 끌려 나온 헤르모라오스는 이제 더 이상 살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대왕을
노려보며 모여든 병사들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대왕이 우쭐대는 것과 횡포와 동방병에 걸
린 것을 외치며 규탄했다.
헤르모라오스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투성형에 처해져서 죽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헤르
모라오스는 팔리스테네스의 수제자로서 그가 주장한 내용은 모두 다 칼리스테네스의 평소의
언동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바로 며칠 전에 "어떻게 하면 유명하게 되지요?" 라
는 제자의 질문에 팔리스테네스는 "가장 유명한 인물을 죽여라"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모두가 다 칼리스테네스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 사관들끼리 저지른 일
치고는 계획이 너무나 대담했다.
칼리스테네스는 체포되고 탄핵당하여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병사라고 전해지지만 이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인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 지역에서의 전투는, 첫 번째는 산간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국지전을 해야 하고, 두
번째는 모든 부족들이 용맹 과감하며, 세 번째는 무엇보다도 지리적 조건이 적에게 유리한
점 등의 이유로 인해 동정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몇 번이나 패전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
이라는 것은 굴복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집요하게 공방을 계속한다면 대군이 전면적으로 패
하는 일은 없는 법이다. 이길 때까지 싸우는 것이 사자왕의 장점이며 계속해서 공략하면 좋
은 결과를 만나게 된다.
우선 흑해 동쪽에 절대적인 세력을 가진 스키타이족의 변화였다. 알렉산드로스에게 늘 호
의적이지 않던 왕이 타계하고 새 왕이 즉위하자 새로운 방침을 채용하여 친목 사절단을 보
내 왔다. 고마운 일이었다. 군수 물자 확보에도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도 동정군은 배후에 큰
불안을 갖지 않고 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행운 하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집요한 공격을 받자 야만족의 통일 전선에도
혼란이 생겨 분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피타메네스의 능력에도 한계가 찾아온 듯했다. 이
페르시아인이 반알렉산드로스 부족을 조직하여 어느 정도의 세력을 쥐고 있는지 정확한 내
용은 알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동정군을 에워싼 지역은 상상도 못할 만큼 방대하다. 아무리 유능한
호족이라 해도 스피타메네스라는 개인이 매일매일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하여 이렇게 광대한
지역을 연계시키고 회유하고 조직화하는 것은, 하늘을 날아 다니는 날개를 가진 것도 아니
고 단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동정군이 받았던 인상은 그것에 가까웠다. 각지에 스피타메네스의 냄새가 뿌려져
있었구 꿈틀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야만족 단독의 지혜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전략이 도처
에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전쟁의 상황이 변했다. 처음에는 열세였던 동정군도 1년을 넘는 전투를 겪
자 조금씩 승리의 개가를 올리게 되었고, 박트리아의 산속에 스피타메네스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코에누스라는 민첩한 헤타이로이를 추격하러 보냈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갔다.
"알렉산드로스가 온대."
이 정보가 스피타메네스에게 가담한 박트리아인을 떨게 했다. 여태까지 있었던 전쟁을 빠
짐없이 돌이켜보면 국지전에서 이기기는 했어도 사자왕이 오면 결국 패했다. 패하면 모두가
죽어야 할 운명을 만나게 된다.
박트리아 지도자가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와서 "스피타메네스"하며 친근하게 부렀다. 그
리고 "무슨 일인가?" 하는 그에게 부족장들이 느닷없이 세 방향에서 칼을 빼내어 찔러댔다.
스피타메네스의 목을 알렉산드로스 앞으로 가지고 언 곳은 예전의 사티바르자네스 때와
마찬가지였다.
"정말 스피타메네스냐?"
알렉산드로스는 생전의 스피타메네스를 아는 페르시아인들에게 보여 주어 확인했다. 그렇
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여려 차례 속았고 배신을 당했던 것이다. 죽었다고 했는
데 실제로는 죽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허를 찔린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을 가져온 야만족의 소원은 이것을 대가로 화약을 맺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알렉산드
로스 쪽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부장군 격으로 승진한 크라테레스가 대왕에게 말했
다.
"산악 야만족은 페르시아인과 달리 근본이 순박했기 때문에 일단 항복만 하면 다루기가
쉽습니다."
"음."
"그 대신 이쪽이 소극적이면 철저하게 항전에 도전해 올 것입니다."
가능한 이야기였다. 순박하다는 말을 들을 알렉산드로스는 순간 클레이토스를 생각했다.
'소중한 친구를 잃었어.'
다시 한 번 크게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다.
"다음은 소그디아나 요새다."
화제를 돌려 버렸다.
"상당한 난관이 될 듯합니다."
"그곳을 함락시키고 남으로 향한다"
"남으로!"
"인도다. 그곳이 지구의 끝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 동정길을 페르세폴리스 부근에까지
진격했을 때였다. 페르시아 반대편에 있는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신기한 나라 같았다. 그리
스와도, 페르시아와도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고, 사는 사람도 다양해서 배꼽 한
가운데 얼굴이 달려 있는 인간도 있다고 했다. 심오한 철학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인도라는 존재 그 자체는 고국에 있을 때부터 들었지만, 그것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이
미지였다. 동정길을 나아감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전해져 왔다. 인도를 찾아내어 그 반대
편에 있는 바다에 이르면 거기가 지구의 끝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지도를 그렸다. 그곳은 마
우리타리아(아프리카) 바다와 이어져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인도에까지 다다르면 무슨 계시가 있을까.
달레이오스를 추격하고 베소스를 추격하며 배후자의 안녕을 확보하기 위해 공교롭게도 아
시아 북부 산악 지대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인도야말로 정말 세계의
끝이라고 반신반의의 판단을 뇌리에 그리고 있었다.
아시아 북부는 그저 황량한 산등선이 하늘과 땅을 나누어 경계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매
력은 별로 없다.
"앞으로 한 번이나 두 번...."
남은 정복은 이 정도뿐이라고 생각했다.
소그디아나 요새에서 벌였던 공방전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전투를 상징하는 처참한 과정을
거친 전쟁이었다.
소그디아나는 박트리아 지방의 동남부 어딘가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름이 같은 이 도시
에는 왕궁도 세워져 있어서 이 지방의 호족 옥시아르테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동정군의 추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옥시아르테스는 용감한 산악 부족과 함께 산중에 있는
요새에 틀어박혀 있었다. 옥시아르테스는 충분한 군량미와 마초를 마련해 놓았고, 험준한 산
세는 아무리 강한 적의 공격도 뿌리칠 수 있는 요새였다. 정말이지 날개를 달지 않은 이상
이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동정군은 먼저 산기슭을 진압하고 투항을 권고했지만 옥시아르테스는 "하늘 위에서 공략
해 오너라, 하하하"하며 비웃었다.
공격을 맡았던 크라테레스도 고개를 내저었다. 공략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공략해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작전을 세워 지휘를 맡았다.
"뒤쪽의 산밖에 없다."
아래쪽에서부터 올라가서 공략하는 방법은 있을 수 없고, 오직 방법이 있다면 오새 뒤쪽
에 있는 고지로 올라가서 공격을 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절은 겨울이라 그런 등반은 더 더욱 힘든 일이었다. 예전에 그런 등반을 경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만큼 험준한 절벽이었다.
"올라가라."
300명의 정예군이 선발되었고 성공한 자에게는 이례적인 상금이 약속되었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밤중을 택해서 결행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이 대못과
밧줄을 써서 필사적으로 등반에 도전했으나 목숨을 읽은 자도 적지 않았다. 꼭대기까지 올
라간 자도 너무 지쳐 도저히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후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소그디아나성 공략에 관해서 "전쟁사에 기록할 만한 것이 아니
라 등반사의 효시로 들어야 할 난행"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요새에 틀어박혀 있던 옥시아르테스는 "알렉산드로스는 날개를 가지고 있어, 신의
아들일지도 몰라"하고 경탄했다. 등반에 성공한 병사가 싸울 수 없는 상황인 줄도 모르고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고 그대로 항복했다. 어리석은 판단이었지만, 산악
에 사는 자들까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옥시아르테스는 완전히 돌변하여 알렉산드로스에게 순순히 복종하는 길을 택했고 사자왕
의 힘에 놀라서 두려움에 떨었다. 진심으로 감복하여 존경의 수준까지 마음이 움직였던 모
양이다. 이러한 태도를 접하게 되면 알렉산드로스는 이해심이 부족한 왕은 아니었다.
화약을 축하하는 주연이 열렸고 알렉산드로스는 웅변을 했다.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지만 나의 본심이 아니다. 나의 진정한 소망은 모든 나라의 평화와
번영에 있고, 내 지배하에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번영을 구가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이상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아테네 패권하에 번영한 그리스의 국가관이다. 그리스 도시 국가군은 몇
몇 빗나간 나라도 있지만 우선은 이 이상에 따라 조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도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선왕 필리포스의 생각이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것을 알렉산드로스에
게 가르쳤다. 물론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에도 이런 고전적인 국가관이 자라나고 있었다.
통역관은 사이에 두고 문답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이 대화가 옥시아르테스
에게 전해지고 있는지, 그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매우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들 또한
소부족이 독립해 있으면서 전체 우두머리의 지배하에 통치받는 형태를 지금까지 택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논리는 납득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크라테레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일단 진
심으로 복종하기만 하면 그들은 충실하고 배신하는 일도 적었다. 알렉산드로스의 훌륭한 이
념은 이민족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역을 대상으로 하여 실현되기에는 조금은 미숙하고 고대
사회적이며, 이상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납득을 시켰다.
축연이 한창일 때, 옥시아르테스가 "오래도록 우호를 지키기 위하여"라며 말하며 최고의
진상품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바쳤다.
"받아 두겠다."
부하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왕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것도 주연의 과정이었다. 거절할래야 할 수 없는 일아며 거절할 만큼 귀찮은 일도 아니
었다. 오히려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미모가 뛰어나기로 평판이 자자한 옥시아르테스의 딸 로크사네가 대왕의 비로 바쳐졌던
것이다. 정략 결혼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굳이 옥시아르테스의 심정을 덧붙인다
면 페르시아 궁정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딸을 시집보낼 적당한 상대를 찾
을 수가 없었다. 산악의 야만족이 딸의 상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므로 훌
륭한 안물이 알렉산드로스에게 딸의 일생을 맡기려고 결심했다.
"진심으로 모시겠사옵니다."
이렇게 말하며 로크사네는 자신이 화려한 융단이라도 된 것처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
로 납작 엎드려 아버지의 결정에 따랐지만, 청순하고 아름다운 얼굴과는 반대로 권세욕과
무관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로스의 측근 사이에는 소문이 돌았다.
"사자왕도 로크사네의 미모에 반해 버렸어."
로크사네의 미모가 출중하게 빛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왕비로 맞는다는 것
은 알렉산드로스답지 않았다. 취향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여자는 얼
마든지 만나 왔기 때문이다. 역시 민족 융합이라는 이념이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
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선두에 서서 본을 보이는 것이 알렉산
드로스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자왕과 가장 친밀하며 때때로 신적인 영감을 받는 무장 헤페스티온은 '사자왕은
자신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 아닐까?'하고 어렴풋이 불안감을 품었다.
헤페스티온은 이 의혹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도 부정했다. 하지만 정
말 어렴풋한 의혹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자왕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단명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무의식중에도 자손을 남기려는 쪽으로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하고 대왕의 친구
는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의 사자왕은 이러한 상상이 무리가 아닐 정도로 자신의 목숨을 소
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지역이서 코리에네스 요새라고 불리는 견고한 산성을 굴복시킨 뒤 박
트리아 지방의 수도인 박트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여가를 내서 편지를 썼다.
이것도 알렉산드로스의 독특한 습관이었다. 미음에 걸리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충고하고
명령하며 간절히 부탁하는 글을 썼다. 편지 쓰기를 매우 좋아했으며 간결한 문장으로 요점
을 정확하게 적고 막힘이 없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고국의 수도 펠라에 있는 태후 올림피아스에게, 그리고 그 다음으로
재상 안티파르로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양의 답장이 날아왔다.
태후는 최근에는 거의 평정을 되찾고 있다. 불만이 있어도 예전처럼 사나운 행동을 하는
일이 없다. 언젠가 겁을 준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알고 있겠지."
알렉산드로스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단순한 협박은 아니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에게 태후의 존재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다면
헤페스티온이 예민하게 눈치채고 비상 수단을 단행했을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단독으로 재빠르게 강행했을 것이었다. 헤페스티온만이 해낼 수 있
는 일이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것을 태후가 느꼈던 것은 아닐까.
속으로 '어머니는 바보가 아니지' 하고 생각하며 자조하듯 웃으면서, '안타파트로스를 재상
에 앉힌 것은 정말 현명한 판단이 었어'하고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7년 전 출진할 때 깊이 생각한 끝에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제일가는 충신에게 가장 무거
운 역할을 맡겼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파르메니온이었다면 어쩌면 멀리 고국에서 반역
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안티파스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처럼 현명하고 클레이토스처럼 충
실하다. 그런 결단 덕분에 후일의 걱정 없이 동정에 전념할 수 있었다. 태후는 일일이 안티
파트로스의 어림석은 행동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 왔지만 안티파트로스를 바꿀 수는 없었
다.
편지에 카산드로스를 후하게 대우하라는 내용을 썼다. 카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큰아
들이자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이다. 지금은 펠라에서 아버지의 정무를 보좌하고 있으나 이
아들의 영달이 안티파트로스를 즐겁게 하는 제일의 방편일 것이다.
막사 밖에서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렵지 않게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르시나인가?"
"네."
목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어쩐 일이냐?"
"잠시 괜찮겠습니까?"
"괜찮다."
바르시나는 잠깐 머뭇거린 뒤에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계신 곳에 잠시 머물다 돌아왔으면 합니다."
부친인 알타바조스는 이젠 박트리아 태수를 그만두고 은둔생활을 하는 처지였다.
"질투하는 것이냐."
로크사네에 대한 소문은 바르시나도 듣고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딱 잘라 부정했다.
"그럼 무엇 때문이냐?"
"허락해 주십시오."
"아니다, 말해라. 말하면 허락해 주고 말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겠다."
두 번, 세 번을 다르쳐 물으니 이제야 바르시나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대왕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뭘 모른단 말이냐?"
붉은 입술이 열리기까지 또다시 시간이 걸렸다.
"애당초부터 대왕님께서 옳으십니다. 저 같은 계집이 틀렸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저 같은 계집의 어리석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사옵니다. 파르메니온
님도 그랬고, 클레이토스님도 그랬고... 신의 아들의 마음을, 저는...."
바르시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허락해 주십시오서."
조용하게 머리를 숙이더니 재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세 섰거라!"
"말만 하면 허락하신다는 약소, 잊지 않으셨죠?"
알렉산드로스가 다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르시나가 먼저 막사 밖으로 나가다 말고 뒤돌
아보며 입을 열었다.
"임신했습니다. 아들이겠죠."
그리고 나서 재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헤라클레스를 능가한 왕
박트라의 길모퉁이에서 자칭 성자라고 부르는 걸인 같은 차림의 노인이 동정군의 중진인
프톨레마이오스를 불러 세웠다. 노인은 뱃사람들이 잘 쓰는 그리스 방언으로 떠들어댔다. 그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제국을 방랑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누구한테 지배받느냐?"
물어 오는 걸인에게 프톨레마이오스는 대답했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도에서 사자왕은 허물을 벗고 꼬리가 생겨서 하늘러 춤추며 오르는 용이 된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허물을 벗는다?"
"그래."
"재밌군."
동전을 던져 주고 헤어졌다.
거지 노인의 헛소리 따위에 신경 쓰지는 않지만 "허물을 벗는다"는 말은 프톨레마이오스
의 가슴속에서 어느 정도의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사자왕도 허물을 벗는구나.'
요즘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는 일이다. 마치 뱀이나 벌레가 허물을 벗듯이 옛것을 속속 벗
어 버리며 알렉사늗로스는 변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를 떠나올 때는 소아시아 반도를 공략하여 외적으로부터의 위협을 뿌리치고 그
리스 전국토를 통합하는 일, 그것이 목표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프톨레마이오스는 사자왕의
심중을 그렇게 헤아리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사실들을 곳곳에서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침내 정복의 꿈은 시리아 해안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지역으로 확장되어 페르시아
를 붕괴시켰고 아시아의 맹주로 변했다. 그런데 이제는 인도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아서 세
계의 끝을 찾아가려고 한다.
마케도나아에서 그리스로, 페르시아로, 다시 세계로 야망이 커져 감에 따라 사자왕의 인품
도 변했다. 사자욍의 심중에 구국 마케도니아가 차지하는ㄹ 부분은ㄹ 점점 작아지고 이집트
를 생각하고 페르시아를 떠올리고 마침내 인도에 대한 생각까지 덧붙여진 것이다. 참으로
성장을 더해 감에 따라 허물을 벗듯이 알렉산드로스는 민첩하게 변모해 갔다. 어떤 때는 전
그리스의 융화를 갈구하는 아테네인처럼 행동했으며, 어떤 때는 페르시아인처럼 생활했다.
이국인을 중신으로 중용하며 자신도 아테네인이나 페르시아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영리하고 현명항 인물로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로 사자왕의 빠른 변신에 약간은 당황할
정도였다.
어느 사이에 군대도 변했다. 마케도니아를 떠나올 때의 병사들은 눈에 띄게 숫자가 감소
해 버려 마케도니아인 병사는 3분의 1도 안된다. 나머지는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동방인이
차지했다. 수치상뿐만 아니라 정예 부대의 중추에도 페르시아에서 징병되고 페르시아에서
훈련받은 젊은이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동정군은 어떤 사각으로 보아도 이젠 마케도니
아 군대가 아니었다.
사자왕의 염원은 세계의 끝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을 프톨레마이오스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이상 세계의 끝을 알아내고 세계의 왕이 되는 것은 아
무나 해낼 수 없는 영광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많은 노고와
바꿀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의문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모험인 것도 사
실이다.
역사에 찬연히 빛날 정복자라는 수확이 눈앞에 있다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왕
중의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그런 집념을 잃었다면 사자왕이 아니
다. 사자왕이 숭배받고, 공경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바로 이 집념 때문이다. 그것
이 없으면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며, 알렉산드로스의 상실 그것은 바로 죽음과도 같다.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이 사자왕에게 공손과 우애와 동경심을 바치는 것도 사실을 이런 그
의 비범한 인격 때문이며, 자신을 끊임없이 변모시켜 가는 영혼의 유연함 때문이다. 언젠가
용이 될지도 모른다. 용은 신이다.
거리의 성자가 했던 말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들려 주었다.
"사자가 허물을 벗는다고, 인도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자왕은 그 땅에서 다시 탈피한답니다."
"나는 피부색을 바꾸겠어. 마우리타라아(아프리카)의 도마뱀, 카멜레온처럼 말야."
아리스톨텔레스의 제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야생 동물의 변색 본능을 알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사자왕은 순식간에 정황에 맞게 바꿔 버리니까. 페르시아에서는 페르시
아 색으로."
"이번에는 인도 색으로 물들여 볼까."
"정말요."
미에자의 친구들은 쾌활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이때에는 명석한 프톨레마이오스나 알렉산드로스는 인도가 어느 정도로 든넓은
더지인지, 그리고 세계가 어디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는지 그 엄청난 광대함을 알 수가 없었
다.
기원전 327년 여름. 알렉산드로스는 힌두쿠시 산맥 남쪽을 넘어서 지도로 정확하게 설명
할 수는 없지만 카불에서 인도 방면으로 군대를 진진시켰다.
아주 오래 전부터 변경의 중요 지점으로 알려졌던 카이바르 고개를 넘어가면 오늘날의 파
키스탄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는 도중에 할거하는 야만족들과 싸우면서 전진을 계속했다.
야만족이라는 호칭 자체가 동정군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을
경험한 병사들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 후진한 부족들이었다. 용맹
함은 있지만, 무기나 전쟁 기술 면에서 많이 뒤처져 있었다.
물론 동정군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의 연속이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동정군은 지세에 어두우며 지리적으로 불리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것은 진격
하는 쪽보다는 자기 고향을 필사적으로 방위하는 쪽이 결속하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도 동
정군이 이기며 전진한 것은 군사력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우수하고, 지휘관에서 하급 병사에
이르기까지 전투 체험을 쌓아서 전투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마사가라는 마을을 공략할 때는 유난히 심한 반격을 받아서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심한 부
상을 당했고 많은 군사를 잃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도 중상을 당했지만, 사자왕의 정확한 치
료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군의 희생을 지켜본 사자왕의 분노는 대단했다. 일단
휴전을 성립시킨 뒤에 상대를 끌어내자마자 포위하여 전멸시켰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도 흘
러 나왔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변명했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그쪽이야말로 비검하게 협정을 위반하려고 했다."
마사가의 의용군이 순수하게 복종한다고 하면서 도망가서 새로운 군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낌새가 없었던 것도 분명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공격
이 이때부터 점점 더 흉폭함을 더해 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상대를 원숭이에 가까운
야만 부족으로 취급하며 깔보는 면도 있었으나, 그 반면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산악 부족
의 거센 반격에 너무나 불안한 탓에 제정신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마사가 다음은 아오르노스 요새였다. 이 부근의 협곡은 페르시아와 인도를 잇는 중요한
통로이고 적대할 세력을 방치해 두면 화근이 되는 곳이며, 그것만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서 가장 뛰어난 영웅 헤라클레스조차도 공략할 수 없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었다.
전설의 전위는 매우 의심스럽다. 아무리 천하무적의 강자라 해도 그리스 영웅이 정말 여
기까기 왔을까? 정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리스인에게 알려 주기 위해 헤라클레서의 이름을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겠다.
"뭐라고? 헤라클레스 해내지 못했다고."
이 말을 들은 사자왕은 투지가 샘솟았다.
자신을 헤라클레스의 후예라고 믿고 있고 또한 헤라클레스에게 뒤지지 않는 용사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지를 놓치고 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정보를 모으고 정찰해 보니 요새가 있는 산꼭대기로 가는 데는 꼬불꼬불한 좁은
길 하나밖에 없고 게다가 가파른 비탈길만이 계속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산꼭대
기는 샘물이 풍부하여 밭농사가 가능한 땅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산기슭을 포위
하고 지켜보아도 성안에 버티고 있는 적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했다.
'헤라클레스를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지.'
이렇게 결심한 알렉산드로스는 1년 전에 수그디아나 요새를 공략했던 작전을 감행했다.
즉 적의 요새와 맞서서 대항할 수 있는 높이까지 아군을 올려 보내는 전략이다. 먼저 적군
의 요새에 가까운 적당한 고지를 찾아낸 후, 알렉산드로스 부하와 프톨레마이오스 부하를
둘로 나누어 적군의 격렬한 공격에 맞서서 양쪽에서 공격하며 등정하여 고지를 점령했다.
험준한 바위산이라는 사실만 생각해도 매우 어려운 전투였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겠지
만, 그래도 적군의 요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접한 고지에 알렉산드로스군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자왕은 즉시 흙담을 쌓으라는 허무 맹랑한 명령을 내렸다. 진을 친 고지에서 적군이 있
는 요새까지 흙담을 만들어 접근하겠다는 작전이었다.
병사들에게 제각기 100그루의 나무를 베어서 흙담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을 비
스듬히 해서 못을 치고 안에는 흙을 담아서 인공 지붕을 축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길
이까지 연장하면 돌멩이를 날릴 수도 있고 더 연장한다면 공성탑을 접근시킬 수도 있을 것
이다.
단 하루 작업으로 1스타디아(약 200미터) 정도의 흙담을 만들었다. 적은 작업하는 군사들
을 노리고 공격해 왔다. 이쪽은 작업과 동시에 방어를 하며 발판을 단단히 굳히고 공격에
나섰다. 사자왕 자신이 토목 공사를 지휘하여 적군의 사기는 더한층 고무되었다. 이틀, 사흘
쉬지 않고 작업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나흘째 되는 날에는 적의 요새에 연결되는 지붕에까
지 접근시킬 수 있었다. 소부대가 요새가 있는 산으로 쳐들어갔고 그 사이에 더욱 튼튼한
흙담이 만들어졌다. 불패로 널리 알려진 알렉산드로스군이 떼를 지어 공략에 돌입한 태세로
나왔다.
아오르노스에서 버티고 있던 적군은 알렉산드로스군의 뛰어난 용맹함에 놀라서 항복해 왔
고 사자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편 달아나려는 적병은 추격하여 가차없이 죽였다.
"해냈어!"
이리하여 헤라클레스를 초월한 알렉산드로스의 공적의 하나가 되었다.
덧붙여 말하면 전략에서 토목 공사 같은 작전이 가미되는 것은 알렉산드로스군의 특색이
었다. 무기를 배치하여 전투 가진을 다지기 위해서 전장 내외의 대규모적인 작전을 가끔씩
짜내기도 했다. 동정길에는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혹은 병참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도로 정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시 건설과 함께 이러한 종합적인 전략은 당
대의 예지로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후대 헬레니즘 문화의 전파도 이 업적고 무관하지난 않
다.
그건 그렇고, 알렉산드로스는 아오르노스 요새를 함락시켜 사기가 충천한 가운데 진영으
로 날아온 낭보를 들었다.
"바르시나님이 왕자를 생상하셨습니다."
"그래, 둘 다 건강하지...."
목이 메었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격스러웠다. 이런 난공불락의 산성을 함락시킨
바로 이때에, 헤라클레스의 위업을 뛰어넘는 이때에 이런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어쩐지 신
의 뜻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건강하십니다."
바르시나는 아버지 알타바조스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바르시나와의 이별을 정식으로
허락하지는 않았다. 이제 왕자가 태어났으니 더더욱 왕자의 어머니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알타바조스의 보호에 맡겨 두자. 보호를 위해서 약간의 부하들을 알
타바조스의 집으로 보내야겠다. 전장은 어린아이를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곳이다.
그렇게 결심한 다음 사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헤르쿨레스라고 명명해 주게."
마케도니아 왕가에는 왕자에게 걸맞는 이름이 몇 개 있었다. 예를 들면 아민타스, 페르디
카스, 선왕인 필리포스도, 또 사자왕 자신의 이름인 알렉산드로스도 그렇다. 하지만 구태여
이러한 인습을 피해 첫 번째 왕자에게 헤르쿨레스라고 이름을 지어 준 것은, 그저 단순하게
낭보를 들었던 시기가 헤라클레스도 함락할 수 없었던 요새를 공략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
는 그 하나의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의 왕이 되어
달라는 알렉산드로스 자신의 꿈을 왕자의 이름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었다.
사자왕의 위업을 계승할 왕자는 마케도니아 일국의 지배자가 아니다. 그리스는 말할 필요
도 없고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 멀리 인도까지 다스려야 할 입장인 것이다. 세계에 알려
질 이름이 아니면 안 되겠지.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 헤라클레스 위업은 전
승의 형태를 바꾸며 여러 나라의 말로 세계 각지에 전해지고 있다. 하물려 아오르노스 요새
까지 그 힘든 난공불략을 알리기 위해 헤라클레스 이름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 이름만이 나의 위업을 이어 갈 왕자에게 걸맞는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로르노스 산기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굿에 뉴사라는 도시가 있는데, 다름아닌 그리스
신화의 또 다른 신인 디오니소스가 세운 옛날 도읍지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주신 바커스와 동일한 신인데, 제우스를 필두로 하는 저명한 올림포스 12신
중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스 과정에서 그 지역의 신앙과 함께 합해져 새롭게 그리스 신
화에 덧붙여진 별칭이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지방에서도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제사 때
에는 술에 취하여 이성을 잃고 광란에 빠지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이것을 미개 사회
에서는 있을 수 있는 신성이며, 소아시아에서도 디오니소스 신앙은 널리 성행하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느 인도에까지 왔고 오는 도중에 만든 도시가 뉴사라고 한다. 이
도시가 카이바르 고개 근처에 있는 이유는 일단은 이치에 맞다.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제우스아몬신을 믿고 있지만 제사 때에는 술에 취하
고 약초에 취하여 난무하며 주술을 하는 것이 의례적이었다. 선왕 피리포스와의 만남도 이
제사가 인연이었고, 이런 의식이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이었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이상을
생각해 볼 때 디오니소스는 알렉산드로스와는 대단히 인연이 깊은 신이었다.
헤라클레스의 위업을 능가한 사자왕은 디오니소스가 만든 도시라는 말을 듣고 새로운 흥
미를 품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도시의 우두머리가 찾아와 화평을 간절히 청했다.
"우리 도시는 디오니소스와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제발 멸하지 마시고 지나가 주옵소서."
"그럼 디오니소스와 연관한 증거라도 있느냐."
사자왕이 반문하자 우두머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도시 이름 자체가 디오니소스를 키운 요정 뉴사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내려
다보는 산을 메로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디오니소스가 대신 제우스의 허벅지(그리스어로
메로스)에 숨어서 자라났다는 사실에 유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왕님께서 친히 부근
산속에 들어가 직접 보이면 산의 기운이 그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디오니소스가 풍부한 자연을 저희 조상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송악은 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리스 송악과 같은 종류인데, 디오니소스 제전에서는 이것으
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고 춤추는 점도 동일하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산속으로 들어가자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고향과 똑같다며 눈물을 흘릴 만큼 풍경이
비슷했다. 포도도 같은 종류가 열렸다. 알렉산드로스도 마케도니아의 산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좋구나."
디오니소스가 만든 도시를 파괴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도시를 번영시키는 게 좋겠어."
"황공하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기병 300기와 뛰어난 인재 100명을 우리 마케도니아군에게 제공해 주시오."
그러자 도시의 우두머리는 낙담한 듯했다.
"기병 300기는 준비하겠사오나 뛰난 인재 100명은...."
"안 된다는 말이냐."
"예. 대왕님께서는 방금 도시를 번영시키는 게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한 도시에 뛰어난 인재가 100명이나 없어지는데 어찌 번영할 수 있을런지요."
"그 말이 옳구나."
알렉산드로스는 웃으며 인재의 징용을 포기했다. 사자왕은 확실히 무시무시한 침략자였지
만, 동시에 전승해 오는 민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해학을 즐기는 낙천적인 지성인
이기도 했다. 뉴사의 우두머리는 정말 현명했다.
이야기의 앞뒤가 바뀌었지만, 아오르노스 요새를 공략하기 전에 사자왕은 헤페스티온의
군대를 먼저 보내 인더스강을 건널 다리 건설을 명령했다.
인더스강 동쪽에 있는 탁실라를 다스리는 왕은 알렉산드로스의 군사에 대해 처음부터 호
의적이었다. 동정군은 여기에서 한달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오랜만
에 맛보는 평온이며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인도의 지세나 문화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축적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자왕은 탁실라 왕에게 감사하며 1000달란트가 넘는 재물을 그동안의
후의에 대한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매우 만족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알렉산드로스를 무시하고 어떤 무장은 불만
스럽게 투덜거리며 냉랭한 시선으로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
"대왕은 1000달란트짜리 친구를 찾아내기 위해 이 먼 땅까지 왔다는 거야?"
탁실라에 진군하기 직전에 건넜던 강은 인더스강 상류를 차지하는 본류로, 인더스강은 이
지역에서 몇 갈래로 나뉘어 동으로 가다가 다시 네 갈래의 대하를 건너는 지형으로 되어 있
다. 서쪽부터 순서대로 보자면 히다스페스강(현재의 젤럼강), 아케스네스강(현재의 세나브
강), 히드라오테스강(현재의 라비강), 히파시스강(현재의 베아스강)이다.
휴식의 땅 탁실라에서 동쪽으로 첫 번째 강 히다스페스 동쪽에 군림하는 것은 명성 높은
포로스왕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조공을 요구한 것에 대해 거부의 뜻을 표했다.
"무기를 준비해 좋고 기꺼히 맞이하겠습니다."
사자왕은 당연히 싸움에 나섰다. 사실대로 말하면 탁실라 왕과 포로스왕은 대하를 사이에
두고 이전부터 대립하고 있었고 이런 사정도 알렉산드로스에게는 호조건이었다. 왜냐하면
탁실라 왕에게서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하를 사이에 두고 포로스왕의 군사와 대치해 보니, 놀랍게도 적군에게는 200마리가 넘
는 코끼리 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코끼리 떼를 보는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강기슭을 빈틈
없이 메우고 있는 데다가 훈련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정군이 자랑하는 텐트로 만든
배를 이용하더라도 간단하게 상륙할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병사들을 힘을 내서
싸울 수 있다하더라도 말이 거대한 코끼리 떼를 보고 놀라서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사자왕은 매일같이 아군축 기슭으로 군사를 움직이며 적당한 자리를 찾이 도하를 감행하
려는 적극적인 작전을 시도했다. 적의 눈을 그곳에 붙잡아 놓고는 그것과는 별개로 멀리 상
류에 도하하기 적합한 자리를 찾도록 몰래 군사를 보냈고, 텐트에 건초를 쑤셔 넣은 도하용
뗏목도 준비시켰다.
포르스왕의 군대와 마주보는 강기슭은 크라테레스에게 맡기고 사자왕은 명령을 내렸다.
"준비됐느냐. 우리는 상류에서 도하하여 적을 공격한다. 코끼리 떼가 강을 건넌 우리에게
덤벼들 때까지 여기 있는 군사는 절대 움직이지 마라. 대신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재
빨리 행동하여 강을 건너라. 작전은 이것이 전부다."
사자왕 자신이 상류 도하 작전의 총지휘를 맡았고 군사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우회하거나
야음을 틈타서 이동시켰다. 전부 기병 5000과 보병 6000을 헤아렸다. 비가 내리고 번개가 쳤
다.
"대신 제우스가 오셨어!"
밤의 어둠과 비가 그들의 작전을 은폐해 주었다. 비 때문에 물이 불어 강 가운데 떠 있는
섬을 건너편 기슭으로 착각한 병사도 있었지만 어쨌든 선도 부대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
때마침 포로스의 왕자가 2000기의 군사를 이끌로 상류 기슭을 순회하고 있다가 알렉산드
로스군의 도하를 발견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병사 대부분이 강을
넌넌 뒤였다. 왕자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 순찰하는 병사들을 여럿으로 나누어 지켜보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왕자는 알렉산드로스 군대에 덤벼들기 시작했다. 싸움을 하는 사이에 동정군은 점점 강을
건너와서 수가 늘어갔다. 왕자는 분전했으나 헛되게 전사하고 말았고 이 소식을 들은 포로
스는 분노했다.
"뭐! 왕자가 죽었다고! 알렉산드로스가 죽였느냐?"
즉각 강기슭에 포진해 있던 본진에 철수 명령을 내려 예상대로 상류로 이동하고 코끼리
부대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하류 강기슭에서 크라테레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
던 군사들이 일제히 도하를 개시했다. 모조리 맞은편 기슭으로 상륙하자 포로스왕의 군대는
협공을 당하게 되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믿었던 코끼리 부대도 좁은 전쟁터에서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고, 코끼리 위에
올라타고 있던 병사는 알렉산드로스 병사의 창에 쓸러졌다. 코끼리도 사방팔방에서 무기가
날아와 공격을 받게 되고 도끼에 찍하는 상처를 입게 되자 적군, 아군도 구별 못하고 날뛰
기 시작했다. 사실 코끼리 때문에 당한 포로스측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격렬한 공방전
을 거치면서 전황이 조금씩 동정군 쪽으로 기울었다. 포로스왕의 군대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승리를 확신한 사자왕은 적군 진영에서 특히 용감하게 분투하는 강자를 보게 되었다. 그는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어깨를 다쳤으면서도 혼자 남아서 창을 휘두루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포로스왕이다.'
죽음을 각오한 항전으로 보였다.
그런데 포로스왕이 더 깊은 상처를 입자, 코끼리는 주인의 몸을 코로 안고 풀밭에 살짝
내려놓더니 적의 공격을 방어하며 왕의 몸에 꽂힌 창과 화살을 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코
끼리도 길러 준 주인의 은덕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알렉산드로스는 사람을 보내 포로스왕을 위로하며 만남을 제의했다. 포로스왕은 신장이 2
미터 가까이 되는 대장부로스 용모도 고상하며 용감했다. 사자왕은 말에서 내려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포로스와,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소. 지금 왕이 원하는 건 무엇이요?"
"생사는 묻지 않겠고. 바라건대 왕으로 대해 주시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소. 하지만 바람은 사람에 따라 다른 법, 왕으로서 어떻게 대접받
고 싶으오?"
거듭해서 물었다.
"그냥 왕으로스. 대답은 이 말 속에 전부 포함되어 있소."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알았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이 나라를 다시리시오. 단 우리에게 우호를 지켜야 하오."
용사는 용사의 예로 대해야 한다. 그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방식이다. 포로스도 또한 훌륭한
무인이며 충분히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
"호의에 감사하오. 오래도록 우호를 내려주시오."
눈과 눈을 마주치자 사자왕은 빙그레 웃었고 이로써 화해가 성립했다.
오랜만의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가벼운 지배를 완수할 수
만 있다면 아쉬울 게 없었다. 굳이 포로스왕의 목이 필요할 까닭이 없었으며, 주변 세력들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도 강력한 자기편을 만들어 그 세력을 남겨 두는 것이 중요했다. 앞으
로 얼마 동안은 포로스왕의 협력을 받아서 주변 야만족을 정복하고, 정복한 지역의 지배를
포로스왕에게 맡기기로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 전쟁 직후에 사자왕의 애마 부세팔로스가 죽었다. 천하의 명마도 오래 전부터
실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땅까지 데려왔던 것이다. 사자왕은 이 따
에 새롭게 만든 도시의 이름을 애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부세팔라라고 지었다. 그것이 오
늘날의 어디쯤인지는 연구자들의 답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
계절은 벌써 우기로 접어들었다. 비가 계속 오면 펀자브 지방은 대하의 강폭이 한없이 넓
어지면서 온통 황토색 물 세계로 바뀐다.
그래도 사자왕은 동으로 동으로 전진했다. 포로스왕을 항복시킨 일은 주변 제국에게도 빠
르게 전해졌고 이것은 도중에 있는 다른 부족들을 신속하게 복종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강한 부족들이 오히려 꼼꼼하게 준비를 갖추고 알렉산드로스
군대를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두 번째 아케스네스강에서는 사납게 출렁이는 거센 물살 때문에 곤란함을 당했고, 세 번
째 히드라오테스강에서는 용맹한 부족의 살벌한 공격을 받아 2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생
겼다. 독화살, 독뱀과 전갈의 피해도 있었고 까닭 모를 열병과 피부병이 만연했다. 멀리 이
국 땅에서 온 병사들에게는 전혀 낯선 미지의 세계에서 당한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바
로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는 길은 정말 심상치 않았다.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 끝에는... 거기에 이르는 길 중
간중간에는 온갖 사악함이 횡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행방도 모르는 탁류, 으스스한 동식
물, 살고 있는 야만족들은 같은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고 발걸음이 피로와 공포로 납을 붙인 것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겁내지 않았다. 군사들을 달래고 격려하며 질타해서 전진시켰다.
그리고 30개나 넘는 도시들을 지배하에 넣었다. 그렇지만 히드라오테스강을 건너는 지역에
있는 상갈라라는 도시는 공납을 거부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격렬한 공방전이
되었다.
상갈라는 동정군을 우습게 보았다기보다 이렇게 많은 대규모 군사의 공격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한편 사자왕 쪽은 백전의 노장이다. 많은 경험을 쌓고 있어서 도시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도 어느 방면에서 어떤 전술로 공략하면 좋을지 신속하고 유효한 작전을 짜냈다.
성을 공략할 무기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포로스왕의 협력을 받아 군대는 더욱더 수를 늘렸
고 지세를 아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코끼리 군단도 가세했다.
"공격하라! 전멸시켜라!"
사자왕의 신호를 받아서 지칠 대로 지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
면 병사들은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승산의 기미가 보이면 용기도 절로 솟아나는 법이
다.
사자왕은 본보기를 보여 주겠다는 의미도 있어서 철저하게 공격했다. 유인해 내서 죽이고
마을을 공격해서 죽이고 도주로에 잠복해 있다가 죽였다. 몰살을 감행하여 파멸시킨 다음
포로스왕의 영지에 편입시켰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부족들은 전의를 상실하여 알렉산드로스의 의도대로 무저항 무혈
로 항복의 길을 택했다. 사자왕의 대응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국을 떠나온 이래 변함없이 일
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순히 지배에 응하면 관대한 치정을 베풀어 종래 있던 체
제를 대부분 존속시키고 종교나 습관도 충분히 존중했다. 병사들의 약탈이나 폭행에는 엄격
한 제제가 가해졌다. 그런 다음 공납을 명하고 병참에 필요한 병력과 그외의 노동력의 제공
을 촉구하며 가벼운 지배를 시행했다.
그러나 반항하면 반드시 군대를 보내어 이길 때까지 싸우고 그에 상응하는 삼엄한 지배를
실현했다. 그리고 배신 행위 따위가 있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파멸시켜 예
전에 그 나라가, 그 도시가, 그 부족이 존재했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죽이고 태우
고 붕괴시켜 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항복하는 것이 최선의 상책이었다. 이라하여 동정군은
인더스강 동쪽 지류 히파스시강 부근까지 이르렀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의 파키스탄을 가로질러 아라비아해로 흘러 들어가는 인더스강은 본
류 외에 네 개의 거대한 지류를 가지고 있다. 전체 길이 3000킬로미터 중류에서 합쳐지는
큰 지류는 다시 다섯 줄기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그 때문에 이 유역은 펀자브, 즉 5대강
지방으로 불리고 있었다.
지류의 이름은 이미 서술했으나 가장 동쪽으로 흐르는 지류는 사툴레지강아며 이것은 다
시 상류에서 둘로 나뉘어져서 서쪽지류가 베아스강이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고생 끝에 찾아
온 히파시스강이 여기에 있었다. 인더스강 본류를 포함하여 4대 대하를 건너온 동정군이 히
파시스강 기슭에 섰을 때, 이 강은 다시 건너편 서툴레지강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동정군
은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알렉산드로스가 그린 지도는 엉터리였다. 동정길에 오면서 조금
씩 정보를 얻을 때마다 수정이 가해졌으나 더 더욱 실제 지형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밖에 가
질 수가 없었다.
그리스인의 지혜로 페르시아 영토까지는 그런 대로 정확하게 그렸다. 그러나 카피스해는
바다이며 아랄해와 연결되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약사르테강(현재의 스일다리아강)은
상류에서 인더스강과 만나고 인더스강은 또다시 나일강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펀
자브 지방에까지 발을 내디딘 알렉산드로스는 이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
더스강은 나일강과는 전혀 다른 강이며 또 인더스강 건너편에는 이 대하에 뒤지지 않는 갠
지스강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사이에 있는 인도를 매우 작게 생각하고 있
었고 갠지스강을 넘으면 이제 그곳은 세계의 끝을 둘러싼 대양이, 그리스인이 말하는 오케
아누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강 하나, 많아야 둘, 대하를 건너기만 하면 동
쪽 끝에 도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라고 해도 겨우 파키스탄 북부를 답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는 그보다도 다섯 배나 넓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광대한 아시아 대
륙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는다.
시점을 바꾸어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시대는 마가다 왕국의 난다 왕조 말기에 해당
한다. 기원전 6세기경 갠지스강 하류 지역이세 발흥한 마가다 왕국은 북쪽의 코살라 왕국
제압을 시작으로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여 크게 융성하였으나, 기원전 4세기에 접어들 무렵
부터 왕족 내부의 내분이 끊이진 않아 국력은 서서히 쇠퇴해 갔다. 알렉산드로스가 몇 가지
정보를 통해 마가다 왕국은 무서워할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고대 인도의 영웅 찬드라굽타가 마가다 왕국을 발전시켜 마우리아 제국을 건국한 것이 기
원전 317년인데, 이것은 알렉산드로스가 펀자브의 강기슭에 섰을 때로부터 헤아리면 꼭 9년
후의 일이다. 고대 인도도 통일을 이루는 찬란한 시대의 개막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것만으로도 바로 직전의 시기는 왕국도 매우 약화되어 있었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기 쉬
운 상태였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하 바로 건너편의 정황은 설령 숱한 어려움이 예측된다 하더라도 알렉산드로스에게 결
코 불리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끝없는 원정에 지쳐 의기 소침한 기색이 완연했다. 사자왕은 그것을 눈
치채고 간부를 불러모아 설득하려 했다. 연설은 언제나 능숙했다.
"마케도니아인 들이여! 그리고 우리와 동맹한 제국들의 용사들이여! 잘 들어라."
첫머리는 친근하게 호소하고 나서 오만하게 선언했다.
"제군들이 지금까지 참아 왔던 간난 신고에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듣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차라리 어서 돌아가는 편이 좋다. 말리지는 않겠다.
단, 뜻 있는 자들은 우리가 고국을 떠난 뒤 얼마나 많은 나라를 평정해왔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카파도키아, 리디아, 카리아, 리키아, 팜필리아,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바빌로니아,
메이아, 파르티아, 팔필리아,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가 없지 않은
가. 그리고 지금 인도에 있는 몇 개의 대학유역이 우리의 지배에 굴복하고 있다. 우리는 여
기까자 오는 두중 많은 부족들을 정복하여 모두 수중에 넣었다. 뜻이 있는 자에게 영광이
있는 한 어려움은 없으며 그것이 무인의 영혼이다. 이제 원정은 얼마 남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저 강을 건너 인도로 진입하여 갠지스강까지, 동쪽의 대양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으며
인도해는 갠지스강까지, 동쪽의 대양까지는 그다지 멀기 않았으며 인도해는 페르시아해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홍해로도 이어져 있을 것이다. 어느 바다로 통한는지 찾아내기만 하
면 고향 바다도 결코 멀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되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인도는 바로 반란
자들 손에 함락되고 그렇게 되면 제국의 반란 분자가 일제히 봉기할 가능성도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화근이 남는 법이다. 우리의 대과업도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가장 중요
한 시기다. 제군들은 단지 일신의 안녕만을 바라고 생을 마치려고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그
렇지 않으면 눈부신 공훈을 가슴에 달 것을 바라는가. 명예를 버리고 싶으면 버려도 좋다.
하지만 뜻이 있는 자여! 이곳에 끝까지 남아서 나와 함께 전진하지 않겠는가! 다 같이 난관
과 싸우고, 싸운 자들에게는 전리품을 똑같이 나눠 주겠다. 이 말을 신께 맹세하겠다. 최후
의 도정을 함께 나가 최후의 전쟁을 함께 싸워 자랑스럽게 개선하여 고향에 보여 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열변을 토해 내고, 일동을 날카로운 눈으로 둘러보며 연설을 마쳤다.
그러나 울려 퍼져야 할 환호가, 당연히 일어나야 할 환호성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
과는 달랐다. 그저 침묵만이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반론도 없지만 동의도 없이 모두가 싸
늘하게 조용했다.
"왜 그런가? 무슨 말이든 해라!"
재촉해도 반응은 여전했다.
"생각이 있는 자는 말하라. 어떤 말이든 용서하마."
두 번 세 번 재촉하자 코에누스라는 무장이 앞으로 나왔다. 코에누스는 마케도니아 산악
지방에서 세력을 떨친 호족 출신의 무용이나 충성심에 있어서 누구보다 신뢰가 돈독한 무장
으로, 이 때 나이 마흔이었다. 사리 분별도 갖추고 있는 수염을 기른 정결한 용모가 사자왕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무슨 발언을 하든지 용서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감히 제 생각을 기탄없이 말씀드리겠습니
다."
"좋다."
코에누스는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자신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군대 대다수를 차지하는 병사들의 외침이
며, 동시에 우리의 사자왕을 위해서도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말씀드리
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주십시오. 대왕과 함께 고국을 출전했던 자들 가운데 몇 명이나 여
기에 남아 있습니까? 대부분이 죽고 부상당한 채로 아시아 각자에 남겨져 있습니다. 살아
남아서 동행하고 있는 자들도 옛날처럼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친 나
머지 이젠 기력조차 읽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를 생각하고
아내를 생각하고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았던 공적을 갖고 고향으
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뜻이 있는 자도 충분히 그 뜻을 보
였습니다. 용기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격의 의지도 쇠잔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나간다 해도 변변한 결과는 보일 수 없을 것입니다. 제일선의 지휘관으로서 이 한 몸은 죽
어 없어지더라도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전언입니다.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
이며 전쟁을 아는 자의 판단아리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자왕이시여! 제발 대왕
님께서도 한번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태후님께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원정의 공훈을
말씀하시고 그리스 본토의 정세에도 신경을 써주십시오. 선왕의 영혼에게도 보고하실 것이
많은 줄 압니다. 그 다음에 새로운 원정군을 모집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새로운 전
쟁을 위한 힘을 비축한 차후에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분발하겠사오니 저를 동해시켜 주십시
오. 이번의 무훈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용감한 원정군이 결성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겠지요. 그것을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입니다. 현재의 군사와는 비교도 안 될 것입니다. 정예를 모집한
후에 이번에는 동쪽 바다 끝이든, 서쪽 마우리타리아 끝이든 원하시는 곳으로 진격하시면
될 줄 압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만 현재의 군사로는 변변한 승리를 바랄 수 없음은 물
론 패배도 충분히 예측됩니다. 전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자왕이시여! 신의 은총을 받고
계실수록 자제가 중요하며 용기 중에는 한걸음 물러나는 용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왕님
께서 신의 계시를 받고 계신다는 것을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때도 있는 법입니다. 제발 군대를 일단 되돌려 주십시오. 간절히 호소드립
니다."
코에누스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지고 눈에는 눈물까지 어른거리는 듯 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장군들 사이에 조용한 술렁임이 일었다. 누구 한 사람 그를 비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찬성의 증거다. 모두의 눈빛이 코에누스의 발언을 시인하고
있으며 작은 탄식으로써 지원하고 있었다.
"반박하는 이는 없느냐!"
사자왕의 얼굴도 약간 창백해졌다.
"...."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코에누스의 뜻을 모두가 찬성하는 것이냐!"
"...."
역시 말이 없었다.
"헤페스티온...."
헤페스티온을 불러 봤지만, 그는 사자왕의 명령을 받고 거기에서 강을 두 번이나 건녀야
하는 먼 곳에서 또 하나의 도시를 세우고 있었다.
사자왕은 말을 하려다가 삼케며 다른 이름을 불렀다.
"크라테레스! 프톨레마이오스!"
헤타이로이의 이름을 부르며 중신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한 번 더 살폈다. 크라테레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흐른 뒤에 프톨레마이오스가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
다.
"저의 생각은 차후에 들으시고 지금은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서서."
모여 있는 장군들의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여전해 답답
한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알았다. 비겁자는 돌아가라! 말리지 않겠다. 고향에 돌아가서 왕을 적진 속에 버려 놓고
왔다고 알려라! 이젠 믿지 않겠다, 그 누구도!"
사자왕은 분노의 눈빛만을 남기고 훌쩍 발길을 돌려 막사로 돌아왔다. 프톨레마이오스와
크라테레스가 허둥대며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사자왕은 두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필요 없다! 혼자서 생각하고 싶다."
그대로 사흘 밤낮을 그림자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나흘째 아침이 되자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불렀다. 사자왕은 수염이 자라 초
췌한 모습이었으나 얼굴에는 오히려 순진 무구하게 보이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병사들은?"
말투로 보아 사자왕은 자신이 칩거하는 동안에 장군들과 병사들 심경에 변화가 생길 것으
로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고개를 크게 저으며 진지 내 상황이 사자왕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
고 있지 않음을 온몸으로 전했다. 사자왕은 그 자리에서 생각에 빠졌다.
"그랬어. 겁쟁이 녀석들...."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프톨레마이오스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정도의 중대사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프톨레마이오스도 사흘 밤
낮을 생각했었다. 거의 결론이 나와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어리석었다고 후회할
만큼 솔직하게 말했다.
"코에누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일리야 있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적어도 반 이상은 옳은 말이지요."
"알고 있다."
"제일선에 있는 지휘관이 피부로 실감하고 있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화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알렉산드로스의 표정은 온화했다.
"코에누스의 말뜻은 알아. 하지만... 왜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지, 모두."
"모두가 알렉산드로스는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지만, 이 자명한 이치 안에 모든 뜻이 담겨
져 있을 것이다.
"신의 뜻을 듣겠다."
"그렇지만... 누가?"
프톨레마이오스가 망설인 것은 제사를 담당하는 아리스탄드로스는 여기까자 수행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묻겠어. 프톨레마이오스가 들어라."
"제가요?"
헤페스티온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다. 분명히 들어라!"
"....."
한 사람이 묻고 다른 한 사람이 신의 뜻을 듣는 형태의 제사는 자주 지내고 있었다. 이는
신의 말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굉장한 외경심을 느꼈다. 전신에 긴장이 스쳐 지나갔다. 저쟁보다 두려
웠다.
"진중에서 가장 현명한 너에게 명하노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신의 뜻을 들어라."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예."
"좋다. 부탁한다."
"예."
같은 대답만 힘주어 되풀이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헤페스티온이 있었다면 그가 할 역할이
며 그가 없는 지금 부장군 크라테레스의 임무가 아닌가 말이다. 무엇보다도 사자왕 자신이
묻고 대답을 듣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 아닌가.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심으로 기뻐하며 다시 한 번 깊이 생가하며 마침내 확신에 이르렀다. 생각은 한 쪽으로
달렸다.
'사자왕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는 타고 났어. 언제나 사려도 깊지. 보통 사람과는 달라.
설령 내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목숨을 버리면 그걸로 족하다.'
무서운 각오를 했다.
제단이 만들어지고 사자왕이 제물을 바치고 엄숙하게 신의 뜻을 물었다. 프톨레마이오스
는 옆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신의 뜻을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흉하다. 도하는 안
된다!"라며 소리 높여 외쳤다.
사자왕의 표정이 미묘하게 움직이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똑바로 쳐다보기가 두려웠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 뜻을 따라야겠군."
쓴 약을 삼킨 듯 사자왕이 떫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의 길을 선언했다.
큰일을 치른 프톨레마이오스는 막사로 돌아온 뒤 일단은 한사름 놓았다.
점술사 아리스탄드로스가 제사 때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헤페스티온을 가끔씩
찾아온다는 영감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신의 뜻은 들리지 않았으나 그저 눈을 감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을 때 뇌리에
서, '그게 옳다. 그것으로 결정해!' 하는 판단이 떠올랐다. 그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신의 뜻이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의 판단이었다. 아마 알렉산드로스도 간파하고 있
을 것이다. 예측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의 명령이나 응답, 즉 신탁은 제사장의 입을 통하거나 어떤 일에 정통한 사람의 입을
통해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모르지만 후자는 판단의 주체가 그 사람 자신이다. 무의
식중이거나 무의식을 가장하여 자신의 판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 그 자체가 탁월해야 한다. 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서 본질을 꿰뚫어 보고
관계자 전부의 의사에 입각한 판단이 아니면 안 된다. 국왕으로 대표되는 권력자에 대한 아
부나 어리석은 대중의 바람이 아닌 국가의 대계를 위한 최선의 판단, 그것만이 신의 뜻으로
서 존중받고 제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는 자는
그 일에 걸맞는 인격과 지혜를 갖춘 인격자이어야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경우는 틀림없이 그 적절한 예이다.
히파시스강을 건너 인도로 진격하는 것은 의심의 여기 없이 사자왕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길이었다. 병사들을 아무리 질타하고 격려해도 이미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피폐해 있었고 심
신이 완전히 힘을 읽고 있었다. 예측보다 훨씬 광대하고 거친 인도땅으로 들어가서 계속해
서 공격을 받게 될 때, 그것에 대항해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상태
였다.
코에누스의 판단은 철두철미하리만큼 예리했고, 현명한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의 숙원과는
다르게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니, 사
자왕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으로 철회를 결정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려 해도 그 굴욕감에 참을 수가 없었다. 비록 명목이라 하더라
도 신의 의지에 따르는 결단이 바람직했던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가 기탄없이 말한 것은 코에누스의 주강에 대한 찬성이었다. 그는 전면적
으로 두 손을 들어 찬성을 표했다.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 것은 사자왕에
대한, 사자왕의 뜻에 대한 깊은 배려였음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성격과 사고 방식을 아는 자
라면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사자왕이 신탁을 받는 사람으로 프톨레마이오스를 택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중신의 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다. 크라테레스라면 인도로의 침공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있고 오로지 무용만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프톨레마이오스와는 크게 다르
다.
프톨레마이오스를 선택한 일 자체에 알렉산드로스의 신중한 판단이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탁은 객관성도 보장된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지만 프톨
레마이오스가 침공을 말했더라면 그때는 정말 그것이 신의 뜻인 것이다.
사자왕은 한 가닥 기대를 걸면서도 진격을 철회해야 된다는 것을 각오했다. 그것이 사흘
밤낮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며, 현명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사자왕의 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저 마음을 정화시켜 신의 의지를, 자신의 내심으로부터 떠오
르는 판단을 말했는데, 결국 사자왕의 생각과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태는 의도한 대로 진행되었다. 명령 전달과 함께 진영 내에 조용한 환희가 바람이 되어
퍼져 갔다.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병사들의 주고받는 눈빛이 한결 느긋해졌다.
"과연 우리의 사자왕이야."
군사들 사이에 대왕에 대한 신뢰가 다시 높아졌으며, 알렉산드로스가 의도했던 바는 아닐
지라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었다.
사자왕은 히파시스강에 열두 제단을 만들어 이렇게 먼 땅에까지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해
모든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다시 이 땅에 와서 대하를 건너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기도했다.
"사자왕, 만세!"
"우리 대왕님께 영광 있어라!"
모든 군사들의 환호는 보통 때보다도 더 높아졌다.
기원전 326년 한여름의 일이다. 오늘날 베아스강 항목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은 이 땅의 서안에까지 이르렀다."라고 이 역사적인 사실을 전하고 있다. 파키스
탄 국경을 넘어서 겨우 인도 땅에 들어갔던 강기슭의 부근이었을까. 이 또한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는 왔던 길을 되돌려 히드라오테스와 아케시네스 두 줄기 강을 이번
에는 동에서 서로 건넜다. 거기에는 전에 헤페스티온에게 건설을 명령한 두 개의 도시가 완
성되어 3만을 넘는 지원 군세가 각지로부터 모여 있었다. 군수품과 약품, 전투용 코끼리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인도 원정 준비는 나름대로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이지? 준비는 계획대로 다되었는데...."
사자왕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도, 코에누스도 언제쯤 대왕으로부터 소환
을 받을지, 그때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헤페스티온이 대왕을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자왕에게는 세가지 인격이 잠들어 있습니다."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면서 조금씩 울분을 삭이게 했다.
"무슨 뜻이냐?"
"첫째 마케도니아인의 기질입니다. 절대 적에게 속마음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탁월
한 그리스인의 이성,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올바르게 판단하는 냉정함이죠. 그리고 마지
막은 신의 축복, 용기를 초월하고 이성을 초월하여 신비에 감응하는 영혼을 갖고 계십니다."
헤페스티온의 분석은 예리했다. 확실히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세 가지 성격이 섞여 있었다.
"과연."
"마케도니아 기질은 잠시 삼가시고...."
"그리스인의 이성으로 판단할까?"
"그렇지요. 신의 뜻도 그것입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해."
헤페스티온은 사자왕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거울 앞에서 오래도록 화낼 수가 없다.
도리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사이 냉정함을 찾게 된다.
그렇다 해도 동정해 왔던 길을 그대로 서쪽으로 되돌리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 귀국
선언을 들은 병사들은 힘을 되찾았고 새로운 군사도 정비되었다. 아울러 신뢰할 만한 정보
도 들어왔다. 인더스강은 아라비아해로 흘러 들러가고 다시 그 바다는 페르시아만으로 통하
고 있으며 이집트해로 연결되어 있어 고국으로는 해로를 택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남쪽에 있는 대양 오케아누스는 알렉산드로스가 꼭 답사하고 싶었던 목표의 하나였다. 오
케아누스는 마케도니아해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신의 뜻이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흥미와 희망이 솟구쳤다. 인도로 침공하는 것보다 수확이 더
클지도 모른다. 기대가 확신으로 부풀어 갔다. 대양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세계의 전모는
파악할 수 없다.
몇 개의 대하가 흐르는 펀자브 지방에 들어갔을 때부터 배를 준비해 두라고 명령했지만
새롭게 대선단 제조를 착수하도록 네아르코스를 선단의 지휘관에 임명했다. 네아르코스도
물론 미에자 학사에서 공부했던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이다.
10년쯤 전에 선왕 필리포스의 의도에 반대하여 알렉산드로스를 카리아 왕의 사위에 앉히
려고 책모했던 반역의 무리가 있었는데, 최초의 친알렉산드롯파의 결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계획은 선왕 측근에게 발각되어 전원이 수도 페라에서 축출되는 벌을 받았었다. 네아르
코스는 그때의 일원으로 사자왕과의 우의는 어제 오늘의 것의 아니다.
원정군이 시리아 지방 해안을 남하하던 시기에는 수군의 지휘를 맡고 있었으며, 이집트
나일강에서도 군단의 운항을 맡았다. 얼마 전까지 동정지의 태수로 있었으나 갑자기 알렉산
드로스의 소환을 받아 다시 군단의 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당초는 항해 목적도, 규모도 정확하지 않았고 사자왕 자신이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태수에서 경질되었다는 안 좋은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네아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믿고 있었고 수군의 중요성을 숙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언젠가 이날이 오기
를 기대하고 었었을지도 모른다.
"부탁하네, 네아르코스."
"알겠습니다."
하강하는 선단의 총지휘자라는 임무를 떠맡은 네아르코스는 세 달 후에 크고 작은 배
1000척이 넘는 대선단을 만들어 냈다. 물론 사자왕의 대사업이지만 네아르코스의 수완도 간
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메케도니아 호족 출신이지만 선조가 크레타섬의 상인이었던
덕분에 배에도 정통했다. 게다가 보기드문 쾌남이며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우애심도 돈독하
여 앞으로의 원정에서 이 남자가 보여 주는 언동은 극적이며 너무나 호쾌하다. 미에자 학사
시절부터 훌륭한 친구를 두었다는 점, 이것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타고난 행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용기를 내어 사자왕에게 철퇴하라는 진언을 퍼부었던 코에누스가 원통
하게도 이 땅에서 병사하게 된다. 살아 남았더라면 새로운 공을 보일 기회가 있었을 텐데....
사자왕은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어 코에누스의 충성을 기렸다.
선단의 출항을 앞두고 알렉산드로스는 펠라에 있는 태후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인
더스강에도 악어가 서식하고 잇다는 것, 나일강 유역과 비슷한 콩이 이 땅에도 자라고 있다
는 것, 그리고 풍경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 등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일강과 인더
스강을 같은 계통의 강으로 추측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러나 대양
오케아누스로 흘러 들어간다로 생각되기 때문에 두 개의 강을 답사하게 되면 머지않아 마케
도니아해로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페르시아만 저편에 펼쳐진 바다는 4년 전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을 때에 멀리까지 나가서
보았던 그 바다(오늘날의 홍해)로 통하고, 그 바다는 이집트에서 연결되는 것 같다고도 적었
지만 그 바다와 나일강, 즉 자신이 만들라고 명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로스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을지, 그것까지는 상세하게 알지 못했다.
편지에는 바르시나가 낳은 아들 헤르쿨레스도 보고 싶으니, 바르시나를 설득하여 빠른 시
일 안에 모자 둘 다를 펠라의 왕궁에 머물도록 애써 달라는 내용도 씌여 있었다. 사자왕은
편지쓰기를 매우 좋아했는데, 조목별로 여러 가지 화제를 맥락 없이 열거하는 것이 그 편지
의 특징이다.
성대한 제사를 열어서 신들의 은혜를 기원하고, 앞날의 장도를 축하하는 경기회를 열어
장병들을 위로하고 칭찬했다. 선단은 히다스페스강을 내려가서 아케시네스강으로 흘러 들어
가 마침내 본류인 인더스강과 합류했다.
네아르코스가 기함에 승선하여 전체 지휘를 맡고, 강 주변 지역의 통채는 포로스왕에게
맡긴 후 사자왕 자신도 함께 배를 탔다. 크라테레스의 군대가 오른편 기슭으로, 헤페스티온
의 군대가 왼편 기슭으로 전진하고 육로 쪽을 코끼리와 가축을 이끌로 선단을 따라갔다. 수
상에서는 병첩을 담당하는 작은 배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축제로 소란스
러운 것을 알고 전송하랴 구경하랴 근처 주민들도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희색이 만면하여 흥분했다.
사자왕이 붉은 포도주를 강으로 콸콸 부으며 출진 의식을 끝냈다.
"출발!"
호령과 함께 선단이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강 양안의 군사도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
했다. 군중들이 환호하며 소란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배는 각양각색의 돛을 달고 깃발로 화
려하게 꾸몄으며 음악도 울려 퍼졌다.
때마침 날씨도 좋아 만추의 강바람도 상쾌했다. 들뜬 기분을 반영하듯 들놀이 가는 기분
으로 출발한 여행이었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 앞에 펼쳐진 지도는 모든 사람의 상상을
뒤엎는 광대하고 미개한 대지와 대해였다.
처음은 1000킬로미터에 가까운 탁류의 흐름이며 이르는 곳마다 사납고 무서운 야만족들이
날뛰고 있었다. 게다가 독성을 띤 동식물과 갖가지 풍토병, 사막의 폭서, 기아와 갈증을 어
떻게 알았겠는가! 다수의 인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축제의 노래가 끝나지 슬픈 바람소리가 희미한 휘파람을 불며 사라졌다.
죽음의 사막
노장 파르메니온과 그의 아들 필라토스가 반역을 도모한 이유로 처형당하고, 클레이토스
는 사자왕의 진노를 사는 바람에 창에 찔려 죽었고, 코에누스는 병으로 죽었다. 때문에 알렉
산드로스 아래에 원정군의 중추는 크라테레스, 헤페스피온, 프톨레마이오스, 네아르코스, 거
기에다 페르디카스, 레오나테스, 필리포스, 페이톤 등이 차지하게 되었다.
페르디카스 그 이름 자체가 마케도니아 왕가와 연고가 깊다. 역대 국왕과 왕자 중에도 이
름이 같은 인물이 여럿 있다. 미에자 학사 시절부터 뛰어난 인물로 주목받았으며 헤타이로
이의 일원이기도 하다. 레오나테스도 마케도니아 귀족 출신으로 대대로 왕가의 근위병으로
서 왕실에서 인정받는 집안의 자손이다. 필리포스는 우연하게도 선왕과 이름은 같지만 혈연
관계는 없고 형 하르팔레스가 미에자 학사 이래의 헤타이로이인 것을 인연으로 해서 사자왕
이 보살펴주고 있었다. 형은 바벨로니아 태수로서 원정 배후 지를 수호하며, 동생은 사자왕
을 수행하며 무용을 자랑하는 충성심을 보이고 있었다. 페이톤은 테살리아 지방 출신으로
동정 초기부터 마케도니아 군에 가담하여 그 군공에 따라 점점 지위를 높여 갔던 무장이다.
나란히 앉아 있는 중신들 중에서 부장군 격인 크라테레스와 헤페스피온 두 사람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로 두 사람 모두 사자왕의 훌륭한 헤
타이로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쪽이 더 많은 신임과 총애를 받는가 하는 미묘
한 경쟁의식이 생긴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원정지에서의 군인은 자칫하면 마음의
여유를 잃고 하찮은 일로 쓸데없는 싸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다행스럽게 알렉산드로스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만은 냉정했다. 인도로 들어간지 얼마 되
지 않았을 무렵, 크라테레스와 헤페스피온늬 언쟁이 격화되어 하마터면 유혈 사태로까지 번
질 뻔했는데 사자왕이 두 사람을 직접 만나 엄하게 나무라며 엄명을 내렸다.
"앞으로 이런 일이 한 번 더 발생한다면 이유는 차치하고 둘 다 사형에 처하겠다."
그와 동시에 사자왕 자신도 두 사람을 대할 때에 조금의 기울어짐도 없도록 적절하게 배
려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사이는 많이 호전되었다.
"대왕께서는 어느 쪽을 가장 좋은 친구로서 생각하시는지요?"
그 무렵 페르시아의 요인이 두 사람의 중신을 비교하며 물었을 때 사자왕은 태연하게 대
답했다.
"크라테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친구며 헤페스피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다."
과연 대왕다운 수사법이 아닌가. 두 사람의 체면을 세우면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표현
하는 말이다. 마케도니아 왕을 보좌하며 공무를 수행하는 점에서는 크라테레스가 약간 더
높은 위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군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알렉
산드로스에게 좋은 우정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헤페스피온을 뛰어넘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고 있는 지기였다.
그러고 보니 원정군의 하강 작전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 양기슭을 타고 전
진했다. 수군 지휘는 선박 전문가 네아르코스가 맡았고 사자왕도 기함에 함께 올라타 뱃머
리에 서서 히다스페스강을 내려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유격군 지휘를 맡아서 강을 내려가
면서도 도처에 닻을 내려 주변도시와 부족을 굴복시키는 작정을 감행했다.
긴 뱀처럼 떠내려가는 선단은 히다스페스강에서 드디어 아케시네스강으로 흘러 들어갔고,
합류지점이 가까워짐에 따라 폭이 급격하게 좁아져 역류가 생기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용솟음치는 파도가 귀를 찢을 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거품을 일으켰다.
"소용돌이를 피해라! 노를 저어라!"
네아르코스의 필사적인 명령도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사태에 노 젓는 병사가 망연자실하고 당황하여 손을 멈추고 말았다. 노의 리듬이 깨져 버렸
다.
"저어라, 저어라. 어서 끝까지 저어라."
흡사 수중의 요물처럼 느닷없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소용돌이를 피해 가면서 좁은 급
류를 단숨에 헤쳐나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속도를 늦추면 뒤에서 따라오는 배가
부딪히고, 배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순식간에 소용돌이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둥그스름한 모양의 운반선은 회오리에 말려도 어찌된 일인지 빙글빙글 돌면서 가
라앉지도 않았다.
"신이시여."
기도하는 사이에 운반선은 슬며시 회오리를 빠져 나와 강 하류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닌
가!
무서운 것은 가늘고 긴 모양의 군선 쪽이었다. 모양으로 봐도 소용돌이를 끌어들이기 쉬
운 데다가 노 젓는 데가 2, 3층으로 설계되어 있고 맨 밑바닥이 수면에 닿을락말락하게 만
들어져 있기 때문에, 높이 솟구치는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받아 순식간에 물 속에 잠길 것
같아서 얼떨결에 뒤로 기울이자 말려들어 버렸다. 선체가 비스듬히 뒤로 젖혀짐과 동시에
배 안에 있던 사람이 모두 물보라 속으로 내던져져 빙글빙글 돌면서 수마에 빨려 들어 모습
을 감추었다.
"어찌된 거냐."
사자왕을 실은 기함은 네아르코스의 뛰어난 판단 덕택에 재빠르게 난관을 빠져 나왔지만
뒤쪽을 바라보니 그저 굉음과 물보라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수많은 배들만 보일 뿐이었다.
휩쓸려 내려온 병사들은 쉴새없이 건져 올렸지만 사육용 가축까지는 구할 수가 없었다. 파
손된 배는 그대로 강줄기의 흐름에 맡겼다.
난관을 빠져 나오자 강폭은 갑자기 넓어지고 흐름은 완만해졌다. 온통 물에 젖은 병사들
이 한숨을 돌릴만한 모래톱도 펼쳐져 잇고 배를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깊은 강도 있었다.
"인도의 강은 예측할 수가 없구나."
완만하다가도 급해지고 급하다가도 완만해지는 변화에 어이가 없어 알렉산드로스가 투덜
대며 한마디하자, 네아르코스가 대꾸했다.
"강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세계의 끝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돼."
이렇게 말할 때의 사자왕의 모습은 소년처럼 눈동자를 빛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배를 수리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유역에 사는 야만족들이 떼지어 몰려와서 강을 내려온 사자왕 군사를 두려워하여 대부분
항복하고 가벼운 지배 체재에 응했다. 그러나 말리라는 부족은 주변에 몇 개의 촌락을 만들
어 세력을 떨치며 투쟁심도 대단히 왕성했다. 독립에 대한 의기가 넘쳐 간단하게는 원정군
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원정군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저항하는 말라인의 거점을 하나하나 쳐부수고 남으로 진격
했지만, 히다스페스강을 흡수한 아케니시강이 다시 히드라오페스강과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한층 더 단단한 수비를 갖춘 무루탄이 있었다. 높은 방위벽을 이중으로 둘러쌓고 그 사이에
무장한 군사의 모습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었다. 곳곳에 망을 보는 탑이 있고 창문에는 화
살을 날리는 장비가 있었다. 언뜻 보아도 공략하기 힘든 요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자왕은 먼저 마을을 포위하고 며칠동안 적을 긴장 시켰다. 아군 병사들에게는 휴식을
주고 꼼꼼하게 작전을 세웠다. 성급한 대왕에게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장군들이 익숙지
않는 하강과 몇 번의 전쟁으로 지치고 고달픈 것은 이해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행동이 느
려진 변화가 사자왕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자왕의 공격 명령에 민첩하게 대응하던 기동
력이 어딘지 모르게 저조해진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친 군대를 재충전하기 위해
사기를 올리려 애써도 그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말라인들의 전법은 패색이 짙다고 판단되면 기존 취락지를 버리고 다른 취락으로 도망가
버리는 것으로, 하나씩 하나씩 공략하면 한도 끝도 없어 유역일대를 평정하려면 한꺼번에
공략하지 않으며 소용없는 일이었다. 크라테레스, 헤페스피온, 프톨레마이오스, 페이톤 등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들의 소굴로 출두시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 사자왕은 무루탄의 공략에 전념했다. 수하군사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을 페르디
카스에게 맡기고 양쪽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아쉽게도 공성탑은 대부분 하강도중에 물에 떠
내려갔고 급히 서둘러서 만들어 보았지만 수량도 모자라고 높이도 충분치 않았다. 사자왕
수하 군대는 횡으로 넓게 펼쳐진 진열을 만들어 일시에 성벽에 접근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
라가 공략하는 작전을 세웠다.
"돌격! 사다리를 세워라! 공략하라!"
단번에 전투에 돌입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사자왕의 호령이 떨어져도 병사들은 동작이 느릴 뿐 아니라 머뭇거리기까지 했다.
돌격할 때에는 먼저 뛰어나가는 자가 가장 위험하며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앞장서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만 적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
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부하 병사들은 언제나 그렇게 싸워왔는데 이번에는 뒷걸음치며 앞
장서려 하지 않았다. 그 기색을 눈치챈 사자왕 자신이 선두로 뛰쳐나갔다.
"겁쟁이 녀석들! 전쟁은 이렇게 하는 거다!"
눈을 부릅뜨고 사다리로 달려가서 방패로 몸을 보호해 가면서 원숭이처럼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몇 명의 장군이 당황하며 뒤쫓아갔으나 그 무게에 사다리가 부러져 발을
디디려는 찰라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꼭대기에 있던 사자왕은 재빠르게 한 발을 흔들거리
면서 다른 발로 성벽 위에 뛰어 올랐다. 비틀거리는 자세로 방패아래쪽으로 작은 창을 던져
바로 앞에 서있던 적병 두 명을 찔렀다.
한사람의 무사로서, 아니 그리스인이 존경해 마지않는 한 사람의 혁명가로서 알렉산드로
스가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은 의심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의 육체는 단련되어 있었
다.
칼을 꺼내 다시 세명을 성벽에서 떼어 내버리자 적군은 그 기세에 지레 겁을 먹고 한 발
두 발 물러섰다. 성벽 위는 접아 일단 후퇴한 적은 방패를 세워 방어했다. 그리고 다시 한
발 한 발 바짝 다가섰다.
바로 그때 적병 중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알렉산드로스다!"
은빛으로 빛나는 투구, 아름다운 갑옷, 행동거지로 보아 신분이 높은 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사자왕, 그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해도 저렇게 무모하리 만큼 적진 한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홀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적병의 시선은 일제히 성벽 위에 서 있는 용맹스런 모습에 집중되었다.
아래쪽에서부터 창이 날아왔다.
"죽여라!"
"놓치지 마라!"
적은 이렇게 외치며 몰려들었다. 성벽 위에서는 좌우에서 살금살금 조금씩 다가서며 퇴로
를 막았다. 주위에 세워진 망루에서도 많은 눈이 지켜보며 빛나고 있었다. 활을 가진 자는
살며시 활시위를 당기고, 투석기도 조준을 맞추었다.
위기 일발의 순간이었다.
"물러서십시오!"
"사자왕, 뛰어내리십시오."
성벽 바깥쪽에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군사들이 외쳐댔다.
날아온 창이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관자놀이를 스쳐 지나갔고 돌이 정강이를 때렸다. 사자
왕은 비틀거렸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깨닫고 뛰어 내렸다.
맞다. 본능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자왕이 뛰어내린 곳은 성벽 바깥쪽
아군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성벽 안쪽이었다. 결단코 지치지 않는 끈질긴 투쟁심, 그것이 사자
왕의 본능이었다. 공훈을 세우기 위해 멈추지 않는 용사의 본능이며, 만용을 부려서 휘하의
장군들을 고무하는 지휘관의 본능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적 둘을 죽였다.
그러나 적도 겁내지 않았다. 사자왕을 둘러싸고 이때다 하며 공격했다. 수많은 칼이 날아
왔다. 아무리 물리쳐도 적의 칼이 눈앞에서 번쩍거리며 난무했다.
"야만인들!"
"이쪽으로 덤벼."
사자왕의 근위병 셋이 마침내 성벽에 올라와서 안쪽으로 뛰어 내렸다. 이 또한 죽음을 겁
내지 않는 용맹이었다. 사실 한 병사는 뛰어내리자마자 이마에 화살을 맞아 눈알이 튀어나
와 쓰러졌는데도 그 자리에서 칼을 마구 휘둘렀다.
돌아볼 틈도 없이 적의 칼이 사자왕의 어깨를 찔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치른 전투 중에서 이때만큼 처참한 전쟁은 없을 것이다. 화살 하나가 사자왕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왕은 쓰러지면서도 칼만은 쥐고 있었다. 살아 있는 두 병사가 왕을 지켰다.
상처는 깊어 피가 거품을 내며 흘렀다. 숨을 쉴 때마다 피가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방패로
왕을 지키는 두 병사에게도 적은 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어 댔다. 그때 계속해서 원정군 군사
가 뛰어내려와 여기에 가세했다.
"의사를 불러."
"사자왕이 위험하다!"
"어서 옮겨라."
사자왕을 방패 위에 싣고 성벽 밖으로 끌어 내렸다. 사자왕은 눈을 공허하게 뜨고 "건방
진..." 하고 중얼거렸지만 의식을 잃었다.
때마침 페르디카스가 이끄는 군사들이 성벽일부를 부수고 몰려들어 왔다. 순조롭게 사자
왕을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은 도망치려고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성
벽 안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갔다. 사자왕이 이끌던 군사도 뒤질세라 성벽을 넘어 공략
해 왔다. 순식간에 성벽을 에워싸더니 원정군의 우렁찬 외침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아무리 용감한 말라인이라도 승산이 없었다. 공격하는 쪽이 그저 에워싸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벽 안의 적은 가만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페르디카스는 그대로 작
전을 몰고 갔고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말리인이 항복을 청해 왔다.
처음에 페르디카스는 항복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자왕이 부상을 입은 것을
떠올리는 순간 분노가 폭발하여 모든 것을 죽이고 빼앗고 불태워 버렸다. 이 또한 원정군이
저지른 가장 처참한 잔학 행위 가운데 하나였다.
"대왕이 돌아가셨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도 모르게 소문은 요원의 불길처럼 진영내에 퍼졌다.
병사들은 전장에서의 많은 경험으로 인간이 어떻게 죽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숨이 거칠
면서 피가 거품이 되어 쏟아져 나오면 더 이상 살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자왕의 부상
을 목격했던 병사들은 그런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병
사들은 어느 누구도 사자왕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어떤 이는 통곡을 하며 흐느껴 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초연하고 땅을 응시하기도 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그림자도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독선적이기는 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왕이었다. 전장에서는 무서웠지만 평소에는 부드러
웠고, 비겁한 것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이 용감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은 매우 검소하고 꾸밈이 없었다. 모두가 사자왕을 경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이 사람을 잃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지.'
사자왕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는 없다. 불안
감이 밀려들었다.
네아르코스의 선단에도 침울한 소문이 도달했다. 크라테레스는 소문을 듣고 멍해졌고, 헤
페스피온은 칠흑 같은 밤을 뚫고 자신의 전쟁터에서 사자왕의 진영으로 말을 달려 날아왔
다.
'거짓말이야,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말에서 힘껏 채찍질을 가하면서 그렇게 빌었다.
기도가 신에게 들린 것일까?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는 목숨을 건졌다.
근위대 군의는 필사적으로 수술을 강행했다. 왕의 가슴 깊숙이 화살이 박혀 있어 갑옷을
벗기기 위해서는 화살을 잘라 내야만 했다. 톱의 진동이 상처에도 그대로 전달되었지만, 왕
은 이를 악물고 "빨리 해라! 주저할 것 없다." 라고 명령했다. 가슴을 절개하여 갓난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의 화살촉을 빼냈다. 왕은 엄청 나게 많은 피를 흘렸고 몇 번이나 정신을 잃
었다. 그래도 호흡만은 잃지 않았다. 놀랄만한 체력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아니면 정
신력일까. 역시 신일지도 모른다.
수술을 마치고 간신히 죽음을 모면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대왕이 살아있다는 새로운 소문
이 퍼지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믿는 이는 적었다. 누구나 책략이라고 생각했다.
사자왕의 죽음이 주위에 흩어져 있는 야만족들에게 알려진다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않
을 것이며 일제히 봉기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우호 관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격을 받아 도망가려 해도 연이어서 새로운 적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보복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의 모든
도시가, 마을이, 길이, 강이, 산이, 사막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렉산드로스의 이
름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던 것이다.
왕이 죽어 그 이름이 없어진다면 휘하의 군사들이 걸어야 할 운명은 너무나 뻔한 것이다.
누가 뒤를 잇는다 하더라도 시간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동안은 죽은 자가 살아주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 적이며, 정상적인 인간의 지혜다. 거꾸로
말하면 사자왕이 입은 상처는 그 정도로 치명적이었고 직접 본 사람이라면 살아날 가망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만큼 결정적인 부상이었다.
소문은 어떻든 간에 전쟁터의 진지 내에서는 치료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만약의 경우 적
의 역습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했다. 마침 이때의 원정군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네
아르코스 지휘하의 선단이 아케시네스강 하안에 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자왕을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들것에 실어서 작은 배로 옮기고 히드라오테스강을 내려가서 아케시네스강
으로 들어갔다.
사자왕은 배 위에서 힘겹게 눈을 뜨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적은?" "무루탄은 함락했습
니다." "그랬구나." "대왕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아케시네스 강가의 진지에 다가서자 대왕이 살아 있는지 의심하며 수군대는 병사들의 소
리가 들렸다. 그러자 사자왕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하려고 친 차양을 뱃전에서 걷어 내도
록 명령했다. "차양을 걷어라." "아니 되옵니다."
용태는 아직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괜찮다."
의사가 마지못해 차양을 치웠다.
사자왕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기슭에서 정말 살아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인지 의심
스러운 눈길로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말이야?"
"정말 대왕일까?"
그래도 여전히 대왕과 닮은 인물이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하는 자가 대다
수였다. 그런 낌새를 알아챈 알렉산드로스는 강기슭에 다가서서 상륙하자 명령했다.
"부축 좀 해다오."
"무리입니다."
"아니, 괜찮다. 병사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며칠 전에 틀림없이 목숨을 잃을 치명상을 입었던 남자가 서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평
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제군들, 알렉산드로스는 죽지 않는다!"
진실은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 갔다.
"사자왕, 만세!"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영광을!"
"대왕은 불사신이다!"
"정말 신의 아들이다!"
어마어마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사자왕의 모습을 좀더 확실히 보려고 뛰어오르는 자, 앞으로 달려나오는 자, 신에게 기도
하는 자, 꽃을 꺾어서 던지는 자, 춤추며 기뻐하는 자... 가우가멜라 전장에서 대왕한테 도움
을 받았던 병사는 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조금씩 다가왔다. 힌두쿠시 산맥을 넘을 때 사자
왕이 부축해 주었던 장교는 기뻐서 한없이 소리를 질렀다. 카불강 습지에서 독뱀에 물렷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한 족 팔을 잘라 목숨을 건진 취사 담당 병사는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
다. 모두의 얼굴에 희열이 넘쳤고 전군이 기쁨으로 술렁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군사들의 뜨
거운 흥분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귀청을 찢을 것 같은 환호를 몽롱한 의식 속에서 들었다. 의식이 없는 상
태에서 손을 흔들며 막사로 옮겨졌다.
"이제 ... 됐다."
눈을 감았다. 초췌한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놀랄 만한 회복력이었다. 며칠 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자왕의 침대를 둘러싸고
친구들이 모여 앉았다.
"옥체, 소중하게..."
"지휘관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자제해 주십시오."
한마디씩 간언 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사자왕은, 표정은 찌푸리고 있었지만 무척 기뻐하며 입을 열
었다.
"자네들 말은 다 옳다."
그러고 나서 부상당한 팔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음 번에 그런 일을 당할 때는 나도 용기 잃게 되어... 어느 사이에 달레이오스
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옳은 것보다 용기를 더 사랑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용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용기를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은 얼
마든지 있다. 그러나 구실을 찾는 순간 용기는 위축되고 만다. 그렇지만 전장에서는 용기 있
는 자가 이긴다. 용기는 한산 집요하게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며 겁쟁이에게 구실을 주어서
는 안 된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자왕의 강인함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세폴리스에서 전리품으로 거두어들였던 커다란 거울을 언제나 침대
가까이에 두고 있었는데, 상처를 치료받을 때는 벌거벗은 몸으로 그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했다.
"필리포스 대왕처럼 되려면 조금 더..."
선왕은 죽기 직전 한족 눈을 잃었고 어깨는 부상으로 축 처져 있었으며 다리는 절름거렸
다. 알렉산드로스도 벌거벗으면 많은 상처가 온몸에 있었다. 그러나 선왕의 비하면 아직 영
광의 상처가 부족하다. 필리포스 왕은 보기 흉한 상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사자왕은 전신에
넘칠 만큼 상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찰과상 하나 없어 단정한 외모는 조금도
망가지지 않았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곁에 서 잇는 시종이 그것을 넌지시 말하자 사자왕은 자신의 뺨을 톡톡 치며 "나이가 다
르지 않은가" 라고 만 대답했다. 젊음은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예..."
머뭇거리는 시종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머지않아 이 상처 자국도 없어질 것이다."
상처를 가볍게 문지르며 옷을 입었다. 그 모습을 부고 시종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신비한 외경심을 느꼈다고 훗날 술회했다.
얼굴에 상처자국 하나도 없는 것처럼 몸의 상처도 잠깐 사이에 없어지지는 않을까.
'신의 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몰라.'
사자왕은 달이 한번 일그러지는 시간보다도 빨리 원래의 정기를 되찾았다.
이미 무루탄 마을은 전멸해 버렸다. 용맹하기로 소문난 말리인도 새삼 사자왕의 무서움을
알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잇는 마을과 취락에서는 이 흉폭한 정복자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리를 모아 대책을 세우려 했다. 사자와의 관용을 받았던 인더스강 서쪽 뉴사 마을의
정보도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은 뉴사처럼 자진해서 항복했고 공납에도 순순히 응하며 가벼운 지배 체재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사자왕은 그것이 기본 방침이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여 병사와 군수물품 그리고
배를 조달해 가며 다시 남으로 내려갔다.
아케시네스강은 히파시스강도 삼켜 버리고 드디어 본류인 인더스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신인 필리포스와 페이톤을 정복지의 태수로 임명하고 영토를 확보하면서 원정을 계속했
다.
두 강의 합류점 부근에 인근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왕 무시카노스
는 처음에는 "그깟 야만족 놈들!"하며 우습게 여겼다가 원정군의 진격을 알자마자 완전 돌
변하여 비위를 맞추며 자진해서 공물을 잔뜩 바쳤다. 알렉산드로스는 예에 따라 가벼운 지
배를 택해서 무시카노스를 계속해서 왕으로 머물게 했지만, 무사카노스 쪽은 원정군이 통과
하기를 기다렸다 반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페이톤이 이끄는 군대를 토벌하도록 보내고 짧은 전투를 끝낸 뒤 무시카노스를
사로잡았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도 함께 사자왕 앞으로 잡혀와서 너그러이 용서하여 목숨만
은 붙여 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열 명이나 되는 야만족이 목이 잘리는 효수형에 처해졌다. 브라만 승려들도 많이 잡혀와
같은 효수형에 처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중에 "이젠 됐다."라며 처형을 중지 시켰다.
"무슨 연유로?"
페이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저놈들은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러고 싶구나."
짧게 대답하고 막사로 돌아갔다.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에 숨어 있는 하나의 선망이었다.
이런 경향은 젊은 시절 코린토스에서 술주정뱅이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만났을 때에도 엿
볼 수 있었다. 걸인 같은 철학자와의 짧은 문답을 나눈 뒤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가 욕
심 없는 것에 탄복하며, "내가 만약 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처럼 되고 싶구나"라고
말 한적이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잘 알려 진 에피소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기 실현을 지향하는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상의 욕망
과는 다른 영혼의 욕망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도 꼬리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브라만의 은둔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무시키노스왕에게 협력하여 자신의 앞길
을 가로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브라만의 승려들 또한 영혼
의 참모습을 찾으며 목숨도 아끼지 않는 금욕자들이기 때문이다.
인다스강은 두 줄기로 나뉘어 삼각주를 만들며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그
토록 원하던 해양 오케아누스에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다로 나서기 전에 육지의 안녕을 확보해 두어야만 했다.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정복해왔
던 도정에 전혀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곳곳에 태수를 두었고 당연히 군사를 주둔시켜
왔지만 불온한 정보가 날아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일부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사자왕 자신의 입으로는 "바다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그편이 더 빠를 것이다." 라
고 주장하고 있어도 사실 자신도 믿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희망일 뿐이고 군사들을 위로하
기 위한 발언이기도 했다. 앞에는 여전히 커다란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게다가 여행
을 계속함에 따라 사자왕의 마음속에 또 다른 새로운 기대가 솟구쳤다. 동정을 단념해도
먼 쪽 바다에는 새로운 발견, 새로운 모험이 있을 것 같았다.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
면 그냥 지나갈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고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한 견지에서 주위를 들러보면, 히파시스 강변에서 코에누스가 호소했던 것처럼 군 내
부에는 마음속에 불만의 응어리를 안고 있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이럼 병사들은 동행해 보
아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크라테레스를 불러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정복해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 더 지원할 게 없는지 살펴보게. 자네가 사자왕이 되어
통치하고 불순한자는 용서하지 말게!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병사들을 동행시킬 테니 이일
도 잘 부탁하겠네. 도중까지만 가주게. 나와 재회하는 곳은 카르마니아일세."
정복지에는 야만족이 아니라 태수와 그곳을 지키는 장군들 중에도 잘못된 마음을 품고 있
는자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책을 세워 크라테레스 직속 군단과 귀
국 군사들을 함께 출발시켰다. 그리고 코끼리 부대도 맡겼다. 이 군단은 대하를 거슬러 올라
가 카이바르 고개를 지난 후 남하하여 아라코리아, 드랑기아나로 들어갔다. 재회의 예정지
카르마니아는 그곳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가면 있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아직 그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단지 5년전 페르세폴리스를 점거했을 당시에 사절을 보냈기 때문에 일단
은 가벼운 지배 체재가 시행되고 있다.
사자왕은 인더스 하구에서부터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전진하다가 도중에 북상
하여 북에서 내려오는 크라테레스와 만날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구 근처에는 파탈라라는 도시가 번영하고 있었다. 파탈라는 삼각이라는 뜻으로 대하를
이루는 삼각주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은 틀림없으나 강의 흐름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파
탈라의 소재지는 지금의 하이델라바드(카라치 북동 150킬로미터)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파탈라의 우두머리는 사자왕의 배까지 일부러 마중 나와 항복을 자청하였다. 그러나 실제
로 도착해보니 마치 허물을 벗은 뱀처럼 텅 비여 있었다. 주민들은 원정군이 무서워서 도망
친 모양이었다.
"도망갈것까진 없다. 복종만 한다면 족하다."
도망자를 추적해 끌고 와 지배에 따르게 한 다음 요새를 만들고 우물을 파는 등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복구할 때까지 상당한 고생을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정복지를 폐허
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고대 왕들 가운데는 드물게 항상 건설적인 비젼이 있었다.
물론 전멸시킨 정복지도 있었지만,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본심에서 나왔다기보다 분노가
시킨 무분별한 행동이었다. 그의 본심은 정복지에서 가벼운 지배를 베풀어 번영시켜 그곳의
민중들부터 훌륭한 대왕이라는 칭송을 듣는 것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바람이기도 했지만, 이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참 모습이었다.
정의를 중시하고 자애로 넘치며, 민중을 윤택하게 만들고 외적을 물리치며, 문화수준을 높
이고 철학에 정통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선의 추구를 구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
다는 알렉산드로스의 규범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파탈라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것도 그곳이 정복의 거점이 될 수 잇다
는 관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많은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었던 것도 공통
하는 이념의 발로이며 사자왕의 선의이기도 했다.
파탈라는 하구에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외해까지는 1000스타디아(약 150 킬로미터) 정도
유유히 내려가야 한다. 사자왕은 "바다는 반드시 봐야 한다."라며 매우 빠른 선단을 만들게
했다. 현지 뱃길 안내인이 도망치고 때마침 우기에 접어들어 대부분의 배가 파손되었으나
그럭저럭 바다에는 이를 수 있었다.
육지에 상륙하여 해안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큰일입니다."
선장 한 사람이 달려와서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정박시켜 두었던 배들이 어느
사이에 물살에 떠밀려 어느 것은 기울어 있고 어느 것은 서로 부딪쳐 뱃머리가 망가져 있었
다.
알렉산드로스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고 신이 하신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짧은 시간에 소리도 없이 이렇게 많은 배를 육지로 밀어 올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네아르코스는 놀라서 입을 열지도 못했다. 이런 일은 본 것은 물론이고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당황함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바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도가 점차 거칠어져 어리둥절해서 보고 있는 사이에 좌초한
배를 점점 떠밀었다. 배는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서 움직였다.
사자왕을 비롯하여 원정군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에게해는 가만의 차가 극히 적다. 그만
큼 눈앞의 변화는 글자 그대로 오묘하게 비쳤다. 인더스강이 흘러 들어가는 아라비아해는
조수의 간만이 특히 심한 곳이다.
"틀림없이 우리는 대양 오케아누스에 도달했어. 대해이기 때문에 조수의 간만의 차도 크
겠지."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에 머리를 나부끼며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바다 저편을 노려보던
사자왕이 말했다.
"그런 듯합니다."
네아르코스도 진심으로 동의했다.
두 사람은 그저 가만히 서서 일찍이 그리스인은 본 적이 없는 대해를 끝없이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를 성취했다는 느낌이 드는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음날 폭풍이 사라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잇는 섬들에 상륙하여 여러 신들에게 산 제물을 바치
고 기도했다. 특히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는 정중하게 기도를 올렸다. 병사들 중에는 땅 끝
에는 대양 오케아누스가 펼쳐져 있는데 그곳은 지옥의 입구이며 본적도 없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말을 믿는 자가 많았다. 사자왕 자신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이국 땅에서 신들이든
괴물이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것에 대해 진혼제를 드리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었다.
다시 배를 앞 바다까지 나가 그 앞에 또 다른 육지의 그림자가 보이는지를 확인했다. 10
여일 동안 주면 지역을 조사한 뒤,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에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시
설인 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목재 조달을 명했고 상류에 있는 파탈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을이 명령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이번에는 두 갈래로 나뉜 강의 동쪽
이 흘러 내려가는 주위 지형을 조사하기로 계획했다.
약 1800스타디아( 약 300킬로미터) 정도 만하하여 넓은 바다로 나왔다. 만은 강의 일부이
면서 바다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물은 짜고 물고기의 종류도 많았다.
그 만을 빠져 나와 명확히 바다라고 알 수 있는 수역에까지 배를 끌고 와서, 전에 헤페스
티온에게 자재 조달을 명령했던 하구보다 동쪽 하구가 항구로서 입지 조건이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인더스강으로 가는 통행이 편하고 적당한 평지도 바다와 면하여 펼쳐
져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한 사람의 어엿한 토목 기사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이 땅에 배의
정박지를 만들어 독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파탈라를 정점으로 하여 동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강줄기는 바다로 이르는 두 개의 변을
이루고 있었다. 이 부근 삼각주의 답사를 대충 끝낸 알렉산드로스는 이곳 역시 지배하에 넣
었다.
"여기를 거점으로 해서 서해로 달려나가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하구에 도달한다."
오래도록 생각했던 것을 새삼 확인했다.
그렇게 믿으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나가는 육로는 상상도 못할 만큼 험난하여 무사히 빠져나간 사람은
고대로부터 단 한 명도 없다고 하옵니다. 아시리아의 세미라미스 여왕도,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도 발은 디뎠으나 겨우 목숨만 건져 부하들과 함께 도망쳐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가
십시오."
이런 보고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키루스 대왕도 만족하게 해낼 수 없었던 이 일이 더한
층 마음에 끌렸다. 게다가 육로를 통해 페르시아로 이르는 길은 진작부터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남으로 향하는 군사는 수륙 두 방향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율로의 지휘는 주변에 사는
야만족을 평정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당연히 사자왕 자신이 할 것이다. 해로 역시 무슨 일
이 일어날지 모르고 해도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으므로 역시 네아르코스 말고는 해낼 사람이
없었다.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내가 육지로 간다. 도처에 정박지를 만들면서 말야. 큰일은 없을 거야."
"물론이지요."
막역한 친구도 기분 좋게 동의해 주었다. 여기에서 네아르코스가 거부한다면 항해 자체의
안전성이 희박해진다. 네아르코스가 할 수 없는 항해를 누가 해내겠는가. 네아르코스는 설령
가슴속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사자와의 부탁이므로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육지와 바다를 동행하는 두 사람, 남자끼리의 우정이 걸려 있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불
안한 내색도 않고 기분 좋게 따르며 준비에 착수했다. 항해에는 날씨가 고르지 않으면 안
된다. 하해는 육지를 따라 나아갔다. 육지로부터의 보급을 받으면서 가지 않는다면 긴 여행
은 힘들다. 우선 육로로 가는 군사가 해안으로 나가 정박지를 찾아 해군에게 공급할 군량미
와 마초를 확보해 두면, 항해하는 선단은 그것을 찾으면서 항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자왕이 4만 군단을 이끌고 삼각주가 있는 도시 파탈라를 출발한 것은 기원전 325년 8월
이었다. 주위는 여기저기에 야만족이 흩어져 있는 땅이다. 사자왕이 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금세 복종하는 부족도 있었지만 격한 저항을 보이는 부족도 있었다. 정복 방법은 지금
까지 해왔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으나, 알렉산드로스로 하여금 이국 땅에 왔다는 사실을 절
실하게 느끼게 만든 것은 대자연의 변화였다.
현저한 조수간만도 그중 하나지만 동식물도 매우 희귀한 것들이었다. 사람 말을 흉내내는
새, 엄청나게 긴 뱀, 덩치 큰 원숭이, 게다가 바다에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등지느러미만
을 보이며 달렸다. 감송나무의 뿌리는 강한 향기를 풍겼는데 그 수액을 의복에 뿌리면 언제
까지나 향기가 따라 다녔다. 냄새는 기억에 분명히 남는다. 병사들은 일생동안 이 냄새를 맡
을 때마다 이 황량한 이국 땅에서 맛보았던 숱한 노고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해변에는 월계수나무와 아주 비슷한 잎을 가진 교목이 우거져 있었는데, 만조 때 바닷물
에 흠뻑 잠기는 것으로 수분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막에는 키가 크고 거친 가시나
무가 무성했다. 그 가시는 매우 단단해서 일단 휘감기면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말을 탄
병사한테 달라붙은 것을 떼어내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말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재밌는데, 막사 방비에 도움이 되겠어."
미에자 출신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답게 하나하나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전진해 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 시기의 알렉산드로스는 은사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 머물고 있어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최근 몇 년간 편지만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였으나 나날이 멀어지는 느낌을 피
할 수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자로서의 실적을 쌓고 매우 존경받는 지위로 변해 갔
다.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했고, 편지 내용도 때로는 의도적으로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하여 이
해하기가 어려웠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선생의 가르침에 눈을 반짝이던 시절의 소년이 아
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제까지나 스승으로서의 입장을 잊지 않았다. 편지의 어딘가에
서 그런 느낌이 엿보이면 대왕에게는 즐겁지 않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존경심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거북했다. 그런 거북함이 두 삶의 관계를 소원하
게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자신의 손으로 다루기에 벅찬 거친 말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으면 조금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알렉산드로스로서는
꽤 오래 전부터 이젠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며 경원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시기에 칼리스테네스 사건이 일어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인 그를 처형시켜 버렸
다. 표면적으로는 병사로 처리되었지만, 사실 사자왕의 분노를 사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조카에게 그다지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처형 하나
로 사자왕과 은사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나빠질 이유는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칼리스테네스
의 처형 뒤에도 두 사람 사이가 회복될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알렉산드로스로서
는 뭔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점점 편지 쓰기가 싫어졌다. 특히 왕으로서
철학에 관해 은사로부터 조언을 받겠다는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튼 젊은 시절에 가졌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은 뿌리깊어서 이런 흥미는 일생
을 통해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었다. 원정 가는 곳곳에서 보였던 우물 파는
일에 대한 관심도 집요했고, 그때마다 채택했던 지질학적 지식을 엿볼 수 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자. 네아르코스의 선단이 파탈라를 출항하여 인더스강의 지류를
따라 내려가 바다로 나온 것은 10월 중순 무렵, 사자왕이 출진하고 나서 두 달 정도 후의
일이다. 이 해는 특히 계절풍이 심하게 불어서 좀처럼 결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라고 해도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온화하고 잔잔한 에게해와 황량한 아라비아
해는 크게 다르다. 앞 바다로 나가 보면 금세 바다 색이 변하고 물살이 매우 빨랐다. 그 위
에 있으면 순식간에 밀려 없어져 버릴 정도로 간만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어제의 바다가 어
느새 암초로 변해 있었다. 물길 안내인의 조언도 여기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다에 나가자마자 역시 출항 시기가 너무 빨랐음을 깨달았다. 네아르코스 선단은 폭풍우
에 휩쓸려 여러 척의 배를 잃었지만 육지를 따라 바다로 전진을 계속하여 아라비스강의 하
구를 찾아냈고, 파가라라는 항구 도시에 도착하여 물과 식량을 보급 받았다. 사자왕이 이끄
는 근대에 대해서는 약간의 소문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코카라에 도착하자, 사자왕의 부하 레오나테스가 상처투성이의 얼
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사자왕은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을 계속하면서도 요소요소에 군사를
두고 떠났다. 코카라도 그런 도시중의 하나였으나 본부대가 지나간 뒤 현지민들의 격심한
저항이 있어 레오나테스는 6000명의 적군을 죽이고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였다.
네아르코스는 여기에서 열흘 분의 식량과 물을 보급 받은 후 내친 김에 항해에 맞지 않는
병사들은 육지의 레오나테스에게 맡기고 반대로 그만큼의 보충병을 다시 안수 받았다. 레오
나테스는 사자왕으로부터 네아르코스의 부탁만은 반드시 들어주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네아르코스는 수호 대장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여전히 현지 정세는
평정했다고는 할 수 없는 사정인 데다가 군량미와 마초, 우수한 병사까지 해군 편에 지원해
주었으니 레오나테스는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을 휴식시킨 뒤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네아르코스의 가슴속에는
밝은 희망은 조금도 없었다. 단지 웃음은 주위에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레오나테스의 보고에 과장은 없었을 것이다. 항복했던 현지인한테 급습을 당하고 수호명
전원이 분투한 끝에 그럭저럭 겨우 진압하기는 했지만, 아군의 정예 부대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새로운 지원군은 과연 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 정세는 일단 진압이 되
었어도 앞날은 모르는 법이다.
불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훨씬 심각한 또 다른 의구심이 있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너무 쉽게 사자왕의 마력에 빠져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후회는 않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선단 지휘를 맡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자부심도 컸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이라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까닭도 없었다.
사자왕이 육지를 가고 네아르코스는 바다를 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합류한다. 몇 달 전
에 강을 내려오던 때를 생각하면 위험을 충분히 예상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힘있는 각오와
계획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바뀌면서 오히려 의욕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사자
왕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사실 사자왕은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도 반드시 성취해 냈다. 지금
까지도 그랬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할 수 있어.'라고 파탈라에서는 생각했었고 물론 지금도
그런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전에 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라비아해의 거친 파도가 무서워서 그러는건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육로는 무사할까'하는 의구심이었다.
레오나테스의 웃음 띤 얼굴은 결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자
왕의 앞길에도 불안이 비치고 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앞으로 해안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
간다지 않는가. 바다에는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절벽이 있어 대군의 앞길도 순탄하지는 않
을 것이다. 아마 배를 정박시키기도 곤란할 테고 야만족의 습격도 있을 수 있다.
육지를 따라 선단을 이끌고 항해하면서 순간적으로 깨달은 사실이지만, 멀리서 바라본 육
지는 너무나 황량하고 쓸쓸하여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아내기도 힘들 것 같았다. 어설프게
다가가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야만족의 급습을 당하게 될지 도 모른다. 코카라에
서 레오나테스와 해후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졌다.
알렉산드로스와 약속했던 대로 해안 곳곳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을는지, 네아르코스는 경
험이 많은 사람의 직감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당초의 약속은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본대가
해안으로 난 육로를 더듬어가서 해변에 우물을 파고 신호로 깃발을 세운 곳에 식량을 숨겨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카라를 떠난 이래 아직 깃발을 못 보았다. 육로를 잃으면 해로도 잃게 된다.
네아르코스의 우려는 적중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본대는 코카라를 지나서 며칠은 큰 문제없이 육지로 진격해 갔다. 야만족
과의 충돌이 몇 번 있었지만 늘상 있던 일로 대항하는 상대에게는 공격을 가하고 따르는 자
에게는 가벼운 지배를 베풀었다.
대군이 내륙으로 전진하게 되어 해안에 소부대를 보내기가 곤란해졌다. 안내인도 바다로
나가는 길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네아르코스에게 보급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 앞길은 어떻게 되느냐?"
지리에 밝은 노인을 찾아내어 통역을 사이에 놓고 답답한 문답을 반복했다.
세 가지 길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단연코 해안 길을 찾는 것이다. 두 번 째는 바
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오래 전부터 있던 통상의 길, 그리고 세 번째는 북으로 가는 우회
로이다.
사자왕은 해안길을 주장했지만 저 멀리까지 꽤나 높은 바위산의 해안이 이어져 있어 군단
은 말할 것도 없고 소부대조차도 진격하기 힘들 것 같았다. 두 번째의 오래된 길은 마크란
사박을 넘어가는 길이므로 이 계절에 맞지 않고, 세 번째의 우회로는 바다로 연락을 취할
길이 전혀 없는 반대 방향이었다.
"사막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은 있느냐?"
두 번째 안이다. 사자왕은 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막을 서쪽으로 전진해 가면서 수시
로 남쪽의 바위산을 넘어서 소부대를 바다로 보낼 방법이 있을까 싶어 물은 것이었다.
"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기야 바위틈에 어민도 살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있느냐?"
"어떻게든 갈 정도는 ..."
"좋다. 그럼 사막을 넘는다."
이집트에서도, 시리아에서도 사막을 넘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
"뭐가 문제냐?"
"가실 길은 사막입니다."
"괜찮다. 키루스가 항복한 것도 사막이지."
"그 ..."
"좋다. 애썼다."
결국 마크란 사막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통상의 길이라 해도 그것은 계절이 가장 좋을 때 재상들이 다녔던 길로 그리 좋은
행로는 아니었다. 그저 망망한 사막과 바위의 평원이 펼쳐지고, 길다운 길은 좀처럼 눈에 띄
지 않았다.
군단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끼여 있었다. 4만 군중이 사자와의 명령을 신호로 사막으
로 전진의 발을 내디뎠다.
한낮의 더위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발에는 온통 물집이 생기고 일사병에 걸려 행군이 어
려운 자가 속출하여 할 수 없이 밤을 택해서 전진했다. 그러나 어둠 속의 행진은 순식간에
길을 잃게 만들었다. 사막을 헤매고 있었다. 안내인도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푹 빠져 들어가는 곳도 있었다. 마차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대규모의 장비는 오도가도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열기는 밤이 되어도 견
디기 힘들 정도로 쉽게 식지 않았다. 물은 부족한데 보급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이 살 만한 마을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식량 조달도 힘들었다. 상황이 하루하루 악
화되어 갔다. 해질녘을 기다렸다 출발하여 일출보다 빨리 다음 야영지에 도달할 수만 있으
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그대로 몸을 한낮의 사막에 눕혀
놓고 밤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몸을 가릴 나무 그늘조차 없었다. 천막을 덮고 갈증과 싸
우면서 사막의 화형을 견뎠다. 부상당한 사람, 탈진 상태에 빠진 사람, 그리고 죽어가는 가
축이 속출했다. 치료해 줄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도 함들 지경이니 쓰러지면 버리고 보려지면 죽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와 여자가 죽어 나갔다. 식량도 우선 여자와 아이들 몫부터 줄여 갔다. 군단은 차례차례
시체를 버리면서 비틀거리며 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을을 찾아내면 싸우면서 서로 물을 마시고 식량을 조달했다. 약탈도 했다.
"반은 손대지 말고 남겨 두어라."
사자왕은 네아르코스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식량을 보급해 주지 않으면
선단은 매우 곤궁에 빠질 것이다. 물은 있어도 암초뿐인 해안에서 식량을 얻는 것은 힘들다.
또한 배에는 그리 많은 식량을 실을 수가 없다. 육로와 연락을 취하면서 나가는 수밖에 없
다.
적은 수로 부대를 조직하여 산등성이를 넘어 바다로 나가 네아르코스 군단에게 보급할 식
량과 물을 옮기도록 명령했다. 바다까지의 거리는 거의 150스타디아( 약 100킬로미터)정도였
으며, 산너머에도 협곡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하 군단에 물과 식량의 부족이 눈에 보이는 데
도 불구하고 사자왕은 소부대를 두 번이나 바다로 보냈다. 엄숙한 결단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물자는 도달하지 못했다. 네아르코스가 육지로부터 원조 받았던
것은 앞에서 말한 코카라에서 정박해서 레오나테스를 만났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산 너머의 소부대는 물자에 사자왕의 봉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운반하는 인부, 아니
병사들까지도 자신들의 위에 채우고 말았다. 그 사정을 듣고 사자왕은 서둘러서 소부대의
군사들을 불러 놓고 힐문을 했다. 왕 앞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병사들은 이미 극형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랬느냐?"라고 묻는 사자왕에게 힘없이 대답했다.
"산 속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그곳에서 죽을지 나중에 죽을지, 그것
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군단 실정이 이들의 말 그대로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며 이 일
을 용서했다.
죽은 가축은 물론 식용으로 내 놓았다. 더러는 살아 있는 것까지 죽인 다음 자연히 죽은
것으로 거짓말하고 먹어 치워 버렸다.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엄하던 군기는 어디로 갔는지... 자부심 강하던 알렉산드로스의 군단도 그저 굶주리
고 목말라서 지쳐 쓰러지고 문자 그대로 반죽음의 상태에 빠졌다.
산악 지대로 들어가서 실개천을 찾아 오랜만에 갈증을 해소했던 그날 밤, 곤히 잠든 야영
지에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다! 물이다! 신의 은총이야!"
그러나 환히 하는 순간, 물다운 물을 한번도 흘려 보낸 적이 없는 사막의 구덩이가 순식
간에 암석이 뒤섞인 거대한 탁류로 변해서 밀어닥쳐 왔다.
"도망쳐라!"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대부분이 떠밀려 갔고 끝까지 살아 남은 사람도 달랑 몸 하나만
건졌을 뿐이었다.
전투무기는 대부분 떠내려갔고 살아 남았던 가축도, 얼마 안돼는 식량도 탁류에 실려 없
어져 버렸다. 사자왕의 전투용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은 음푹패인 곳을 야영
지로 정한 탓에 그곳에서 대부분 죽고 말았다. 그러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쓸데없이 밥
만 축내는 밥벌레들! 잘 됐구나, 귀찮았는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병사들의 마음은 삭막해져
있었다.
호우는 순식간에 멈춰, 행군을 시작하자 주위는 바싹 메말라 버린 땅으로 되돌아가고 다
시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이
때만큼 가혹한 행군은 없었다.
식량이 없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폭염 속에서 의 갈증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이 며칠씩 계속 되었다. 필사적으로 참으려고 해도 몸은 탈수 증상을 일으켜 두통, 현기
증, 환각 상태, 급기야는 발광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샘이 있습니다."
안내인의 말을 믿고 태양이 뜨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행군을 계속해 왔으나, 있다는 샘은
도대체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병사 한 명이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나서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 죽음을 확인하는
이도 없었다. 다시 걷기를 계속했다.
"여긴 것 같습니다."
"여기라고?"
바위 사막 한가운데에 몇 그루의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서서 관목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
는 곳이 보였다. 불과 몇 안돼는 잎사귀가 사막의 뜨거운 열기로 오그라든 데다 흙모래를
뽀얗게 뒤집어써서 생기도 없이 시들어 있었다. 그리고 샘은 메말라 있었다.
나무 아래 쓰러져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아
그저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병사하나가 바위 밑바닥의 웅덩이에 아주 조금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투구에 담아 조심스레 달려왔다.
"대왕님!"
사자왕의 앞에 공손하게 바쳤다.
"무어냐?"
"물이옵니다."
쇠약한 병사들의 귀에도 이 한마디만은 잘 들렸다.
사자왕은 그것을 받아서 투구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물을 바라보았다.
"네가 마시지 않고?"
"..."
"고맙구나."
사자왕은 상쾌하게 웃으며 병사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는 투구를 재빨리 거꾸로
뒤집어 물을 버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모두가 없는 물을 마셨다."
대왕은 조용하게 선언했다.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없다면 자신만 마실 수는 없다. 모두가 똑같이 목마르다는 것
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페스피온은 눈을 감았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구세주의 왕림을 느끼게 하는 성스러움이 알렉산드로스의 주위에 감돌고 있었다. 지쳐 있는
병사들에게도 사자왕의 기개는 전해져 힘없고 나약하지만 환호가 일어났다.
'그래, 모두 다같이 괴로운 거야.'
병사들은 어느 정도의 용기를 되찾았고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다.
이리하여 사자왕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군단은 완전히 지친 몸으로 게드로시아의 푸라에
겨우 도착했다. 60일에 걸친 마크란 사막의 횡단으로 4만의 군사가 실로 1만 5000으로까지
축소되었던 죽음의 행군이었다.
푸라에 들어갈 즈음에 사자왕은 마을에서 가져온 술을 전원에게 마시게 하고 거나하게 취
해서 피리를 불고 북을 울리며 창부나 걸인들과 뒤섞여 난무하며 행진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떤 심리에서?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술을 위해서 공연히 그렇게 하
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신적인 긴장감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광란을 부려서라도 떨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사
자왕의 성격이기도 했다.
푸라는 아주 작았다. 사자왕은 지난밤의 광기는 어디에 갔는지 정력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뒤 사흘간의 휴식을 병사들에게 주었고, 극도로 지친 자들을 남겨 놓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네아르코스에 대한 소식은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살아만 있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
면서도 단념하는 마음이 앞섰다.
알렉산드로스로는 자신들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열흘이나 보
름 정도 늦게 푸라에 도착했더라면 더 더욱 많은 사망자를 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네아르코
스의 선단은 육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으면 정처 없는 떠돌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안선이 험
한 지역이므로 식료품과 물의 보급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었다. 아직도 계절풍이 세차게 불
어대고 있으므로 선단을 정박시킬 수 있는 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무책임함에 대한 수치감이 알렉산드로스의 폐부를 찔렀다. 아무리 육로의 행군이
어려웠다 하더라도 약속을 어기고 네아르코스를 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기대
감을 버리지 않고 좀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앞으로의 여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푸라에서 웬만한 물자는 보급할 수 있었고 여로도 대충
잡았다. 마크란 사막 같은 지옥은 더 이상 없었다. 인더스강 하구의 도시 파탈라를 출발한
이래 100여 일을 허비하여 겨우 카르마니아 지방의 제일 큰 도시인 사르무즈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처절한 여로였다.
사르무즈는 현재의 진도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의 북안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들
어가나 지역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나 것은 알 수 없다. 산 속의 중요 지점에 세워진 고읍
이었을 것이다. 사자왕은 여기에서 크라테레스가 이끄는 군대와 성공적으로 재회했다. 고난
뒤의 쾌거였다.
크라테레스는 사자왕의 명령을 받고 부하 군사와 함께 히파시스강 하반에서 동정길을 반
대로 되돌아가서 각지의 지배를 재정비한 뒤, 일부 잔병을 그리스로 되돌려 보내고 이곳 카
르마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본대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크라테레스는 차질 없이 왕
명을 수행하여 무사히 군대를 이끌고 사르무즈로 들어왔던 것이다.
"수고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크라테레스와 그의 군단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사실 사자왕의 군단 쪽이
더 심한 고생을 했다. 돌이켜 보면 많은 병사들에게는 그날 어느 군단에 속해 있었는가, 자
산이 속한 군대가 사자왕과 가는 것인가 아니면 크라테레스와 가는 것인가가 운명의 기로였
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렇고 크라테레스의 보고에 의하면 예상대로 각지에서 반갑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야만족들의 반란만이 아니라 사자왕이 임명하여 통치를 맡겼던 태수들까
지 명령대로의 치세를 하고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크라테레스를
보냈던 것이다. 부하의 태만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자왕은 신속하게 실정을 조사하여 비행이 확실히 드러나면 극형으로 단죄했다. 태수든
중신이든 용서하지 않았다. 일벌백계라며 가차없이 처단했다. 그 가혹함은 각지의 태수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르무즈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열흘 정도 면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곳은 5년전에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승리의 개가와 함께 입성한 감회가 새로운 도시였다. 왕
궁을 태워버린 쓰라린 추억도 있었다.
동으로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마라칸다까지, 서로는 고국 펠라까지 중요 지점은 이미 통과
하면서 모두 지배하에 넣었다. 앞으로 어찌할지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뜻하지 않던 보고가 날아들어 왔다.
주위의 산야를 조사하라는 명령에 따라 둘러보고 있던 병사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뱉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산 속에서 마케도니아 말을 하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야망은 다시 서쪽으로
시간을 여기서 조금만 과거로 되돌려 다시 알렉산드로스의 도정에서 수백 스타디아 남쪽
의 네아르코스의 항해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 두자.
사자왕은 파탈라를 먼저 출발하여 육로의 서쪽으로 전진하면서 요소요소에 뒤따라올 선단
을 위해 적당한 기항지를 찾아내어 식료와 물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
하자면 네아르코스의 선단이 육로를 행군하는 군사로부터 원조를 받았던 것은 해안의 마을
코카라에 잔류하라는 명령을 받은 레오나테스의 수호 군과 해후했을 때, 단 한번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육로를 가는 여정이 참담했기 때문이었다. 마크란 사막을 넘어간 군사는 자신
들이 살아 남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으므로 남을 생각하는 것은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자왕은 늘 네아르코스와의 약속이 마음에 걸렸다. 지킬수만 있다면 지키고 싶었고
결단코 잊지 않고 있었지만, 눈앞에 비참한 일을 당하고 있으니 멀리 있는 병사들에게까지
배려를 베풀 수는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약속한 병사들을 해안으로 보내려 해도 식료품도, 물도, 가는 길조차도 없었
다. 이 외진 변경에, 이 살인적인 폭염에, 이 광활한 사막에... 결국 사자왕의 판단이, 애초부
터의 계획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체력도 기력도 떨어져 기진맥진하여 부득이하게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네아르코스 쪽은 배 위에서 아무리 육지를 살펴보아도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물
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어도 네아르코스는 용감하고 침착하며 냉
정했다는 점이다. 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선단을 맡을 수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네아르코
스는 오히려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미에자 학사 이래의 친구인 알렉산드로스가 명령을 내린 것은 아라비아해의 서쪽으로 향
해하면서 지세를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었다. 원조 없이 혼자 해내겠다는 결심도 있었지만,
네아르코스는 실제로 고대의 뛰어난 탐험가였으며 바다를 가는 또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였
다.
여기에 항애기를 상세하게 쓸 여유는 없지만 네아르코스는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해의 자연을 관찰하고, 조류를 연구하고, 암초가 있는 곳을 찾고, 여러 해안을 탐사
하여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
연안은 인가로 보이는 곳도 별로 없는 미개척지였으며, 사람이 있어도 원숭이와 같이 착
각할 만큼 이상하게 생긴 민족이었다. 해안은 불그스름한 갈색 바위만 끝없이 이어져 있을
뿐 무성한 수풀을 찾아내기도 힘들었다. 네아르코스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식생활습관, 즉
바다 생선을 먹고산다고 해서 그들을 어식민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식민들은 작은 촌락을
만들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육로의 아군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상 자력으로 식료품과 물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안에 인접한 산 속에 촌락을 발견하자 선단을 접근 시켰다. 야만인들은 장창을 준비해
놓고 싸울 작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장창 끝은 철이 아니었다.
네아르코스는 바위에서 화살을 날려서 위협했다. 수영을 잘하는 정예를 선발하여 물가에까
지 헤엄쳐 가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에 세줄로 진열을 만들게 했다. 야만족은 만약의 경우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네아르코스는 준비가 충분히 마무
리된 시점에서 일제 공격을 명했다.
무기에도 전술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야만족은 당황한 듯 뒤편의 산지로 도망갔다.
잡힌 자들을 살펴보니 온몸에 털이 나 있었다. 그들은 짐승과 같은 손톱을 갖고 있었는데
그 손톱을 사용하여 마치 단칼을 다루듯 나무를 자르고 생선을 가르며 해초를 썰었다.. 그
밖의 도구는 대부분이 석기였다. 몸에는 동물의 가죽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거대한
생선의 가죽을 걸치고 있는 자도 있었다. 이렇듯 네아르코스의 관찰은 면밀했다.
생활 모습에 다소의 차는 있으나 어식민, 즉 게드로시아 해안에 사는 야만족은 그 이름대
로 물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날것도 먹지만 햇볕에 바짝 말려서 두들겨 어분을 만들
었고, 곡물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이 어분을 물로 반죽해서 곡물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촌락을 찾아도 먹을 만한 것은 드물었고, 습격해서 약탈하는 방법도 써봤지만 전리품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물 하나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말라비틀어진 산양 한 마
리를 빼앗았고 낙타를 죽여서 먹어 치워 버렸다. 새우, 굴, 홍합 따위가 걸리면 꽤 괜찮은
편이고 참치도 붉은 살이지만 맛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대추야자 열매를 보고는 그리움
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단은 우연히 고래를 보았다. 난데없이 거대한 파도가 솟아오르며 바닷속에서 거대한 괴
물이 나타나자 이를 본 선원들은 정말 간이 콩알만해질 정도로 매우 놀랐지만, 네아르코스
는 눈 하나 깜짝 하지도 않고 침착했다. 오히려 일부러 배를 가까이 몰고 가서 관찰했다.
"겁낼 것 없다. 이놈이 소문의 괴어야!"
그러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야만족의 촌락에서 조사해본 결과 괴어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얕은 바다에 남
겨지는 일이 왕왕 있는 것 같았다. 뼈만 모래톱에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야만족은 뼈를 집
의 기둥이나 지붕에 사용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네아르
코스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몇 가지 표본과 함께 채집한 지식이었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린 힘든 항해였지만 아마 육로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특히 어식민
이 사는 해역을 뚫고 카르마니아 지방으로 들어가자 주위의 정황은 선원들이 겪었던 풍경에
가까웠다.
30여 일을 지나 1만 스타디아(약 1800킬로미터)에 가까운 해로를 떠돌았던 선단은 간신히
하르모지아에 도달했다. 많은 배와 선원을 잃고 숨이 곧 끊어질 것 같은 초췌한 몸으로 흘
러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르모지아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 북측에 위치하는 곳으로 예전
에는 동서 교통의 요지였다. 마르코폴로가 방문한 유적이 남아 있다. 선단의 병사들은 조촐
하고 보잘것없지만 이 땅에서 둘도 없는 귀한 생명을 향유했다.
네아르코스는 곧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소식을 찾았고 굳은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해로가 힘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육로도 가혹한 행군이 되었을 것이다.
최악의 사태도 있을 수 있다. 병사들을 몇 갈래로 나누어 산 속으로 정찰을 보냈다.
한편 사르무즈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는 처절한 참회를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사
정이 어찌되었든 간에 자부심이 강한 대왕으로서 약속을 내팽개친 것은 다시없는 수치였다.
자존심이 상했고, 자신의 과오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도 가시에 찔린 듯이 아팠다. 알렉산
드로스 역시 또다시 네아르코스의 소식을 찾아서 부하 병사들을 해안으로 출발 시켰다.
두 군대의 병사들이 산중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리스 말이야."
"마케도니아 사투리가 있어."
놀랍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해서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자 순식간에 환희가 터져 나왔
다. 이야기를 하는 둥 마는 둥 둘 다 왔던 길을 황급히 되돌아갔다.
선단의 병사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가 네아르코스를 사자왕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야
만 했고,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는 재빨리 이 기쁜 소식을 왕께 전해야만 했다. 포상도 있을
것이다. 밤을 낮 삼아 달렸다.
"산중에서 마케도니아 말을 하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네아르코스님의 부하였습니다."
사자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이냐?"
금방은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네아르코스는 만났느냐? 무사하냐? 어디에 있어?"
흥분한 사자왕은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어 댔고 미천한 병사들은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사자왕은 안절부절못했다.
병사들은 분명히 마케도니아 사투리가 섞인 그리스말을 들었지만 만난 사람은 아는 얼굴
이 아니었다. 네아르코스라는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선단이 도착한 항구 도
시도 듣기는 했는데 확실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추궁하자 모호한 말뿐이었다.
"아무튼 대왕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쪽에서 찾아오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겁먹은 태도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대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멍청한 놈들!"
사실이라면 더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기대한 만큼 정확한 보고가 아니어서 더 화가 나고
초조했다. 새로운 척후병을 보냈지만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찾아와야 할 네아르코스
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스말을 하는 남자들과 만났던 것은 사실이었겠지?"
"예..."
"꿈은 아니었겠지?"
"아닙니다."
낭보를 가져왔던 병사들은 의심을 받게 되고 일단은 체포되어 신병을 구속당하는 불운에
빠지고 말았다. 선단이 도착한 하르모지아에서 사자왕이 주둔하는 사르무즈까지는 의외로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한편 네아르코스는 사자왕이 건재하다는 소식을 듣고 몇 명의 부하들과 바로 출발했다.
산을 넘는 길은 너무나 험준해서 우회로를 택한 탓에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 게다가
호우도 만났다. 그리하여 닷새 만에 마침내 사자왕의 주둔지를 찾아 냈을 때에는 상당히 지
쳐 있었다.
더구나 네아르코스 일행은 고달픈 바다 여행을 겪은 직후였다. 피부는 야만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그을린 데다가 거친 바닷바람에 갈라지고 햇빛 때문에 짓물러진 눈
은 제대로 뜰 수도 없어 인상까지 바뀌어 있었다.
막사 출입구를 헤집고 들어오며 "사자왕!"하고 외쳤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불쾌한 듯 노려
볼 뿐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누구냐?"
"제가 바로 ...네아르코스입니다."
"네아르코스라고? 정말이냐."
"그렇게 변했습니까?"
"오, 그래. 무사했구나."
알렉산드로스는 벌떡 일어나 달려와서 네아르코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두 팔로 어깨를
감싸며 끌어안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네아르코스의 눈도 젖어 있었다.
잠시 포옹을 한 채 흐느껴 울고 난 후 사자왕은 네아르코스 부하 병사들을 한 사람씩 포
옹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그래. 살아 남은 것은 자네들뿐이냐. 바다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야겠구나."
선단의 슬픔 운명을 물었다.
못 알아볼 정도로 마르고 지친 네아르코스와 그의 병사들의 표정을 보며 알렉산드로스는
생존자는 이들뿐이고 나머지는 바다의 쓰레기로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육로로 온
쪽이 4분의 3의 군사를 잃었는데 해로도 대부분을 잃었음에 틀림없을 거라고.
네아르코스는 눈물을 닦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사자왕, 제게 맡게 맡겨 주신 병사도 배로 반 정도는 무사합니다. 그 사실을 한시라도 빨
리 전해 드리고 싶어 이렇게 달려 왔습니다."
"세상에! 정말이냐?"
"하르모지아라는 항구 도시에서 모두들 사자왕의 다음 명령을 가다리고 있습니다."
"정말이냐."
"예."
사자왕은 무심결에 양팔을 하는 높이 치켜들어 신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엄
숙하게 고했다.
"네아르코스, 자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목소리는 떨렸고 다시 눈물이 넘쳐흘렀다.
"자네의 소식을 듣고, 나는 전아시아를 정복한 것보다 더 기뻤다네."
이 말에는 털끝만큼의 거짓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일생 동안 가장 기쁜 순간 중의 하
나였다.
"네아르코스, 수고했다. 이제 다시 자네를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겠네. 얼마 동안 육지에
서 심신을 편히 쉬는 게 좋겠어."
알렉산드로스는 항해 보고서를 소상히 듣고는 매우 만족하여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네아
르코스는 투지를 불태웠다.
"안 됩니다, 대왕님.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까지 해온 수고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수사
에 도착할 때까지 에리트라해를 답사할 수 있는 명예를 저에게 주십시오."
에리트라해는 오늘날의 페르시아만을 가리킨다. 해안의 북쪽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
대하가 흘러 들어오고 그 안쪽에 페르시아의 대도시 수사가 있다는 것은 대충 알려져 있었
다.
"진심인가, 네아르코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가거라."
사자왕도 힘이 나서 청을 받아들였다.
"후일, 수사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세."
네아르코스는 축연을 마친 뒤 다시 선단의 닻을 올려 출항 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
나와 페르시아만의 북안, 즉 오늘날의 이란 부근해혁을 물을 따라 계속 항해 했다. 곤란하리
라는 예상은 했지만 불모의 땅 게르도시아 해협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카르마니아 지방
을 통과하기만 하면 훤하게 아는 페르시아의 바다다. 예측을 불허하는 앞바다의 조류와 진
흙의 퇴적등에 대해서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항해이므로 어쩌다 하나라도 잘못 판단하
면 크나큰 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료품과 물의 보급에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예상했다. 야만족의 급습은 거의 없었
다. 네아르코스는 꼼꼼하게 항해 일지를 기록하면서 이 해역의 항로를 개척해 나갔다. 그리
고 순조롭게 선단을 지휘히려 바다에서 강을로 역행하면서 예정대로 알렉산드로스와 약속했
던 수사에서의 해후를 이루어 냈다. 쾌거였다. 서양 인명 사전의 네아르코스에 대한 항목에
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장군, 아버지는 크레타인이다. 대왕을 따라 동정에 나섰고 원정 귀
로에 인더스 하구에서 키그리스, 유프라데스 하구까지 항해하여 신항로를 개척했다. 그의 저
서 연항항애기는 아리아누스의 인도지에 인용되어 있다."
"한 장수가 공을 세우는 데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른다."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알렉
산드로스의 부하로서 매우 드문 인물이다.
마크란 사막의 횡단 길에서 공전의 고난을 경험한 사자왕이었지만, 카르마니아로 돌아가
서 예정대로 크레타레스가 이끄는 군대와 재회하고 네아르코스 선단도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의욕을 되찾아 야망을 불태웠다.
페르시아만의 맞은편 기슭에는 광활한 아라비아 반도가 펼쳐져 있으며 다시 그 건너편 홍
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가 있을 것이다. 정복지와 정복지를 선으로 잇고 그 선을 넓히면
세계의 왕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지만이 아니라 바다도 지배해야 한다. 야심을 가슴에
품고 사르무즈에서 파사르가다이로, 그리고 5년전에 자신이 군림했던 도시 페르세폴리스로
되돌아가 보니 애초의 구상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파사르가다이에서는 카루스 대왕의 묘소가 황폐하게 내버려져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는 이 페르시아의 대정복자에 대한 경애심이 대단하여 묘소의 엄중한 수호를 명령해 두었음
에도 불구하고, 묘실은 마구 파헤쳐지고 약탈당하여 유체에까지 능욕이 가해져 있었다. 진상
을 규명하려 애썼지만 그 원인조차도 알아 낼 수 없었다. 사자왕의 명령이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단서로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하자마자 정보를 모아 보니 어찌된 일인지 명
령에 대한 위반 행위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정복지의 통치를 맡겼던 태수나 수호 부대가
제멋대로 날뛰며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문은 이미 사르무즈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탐관오리를 색출해 내어 극형에 처했지만, 정복지를 더욱더 깊이 파 해쳐 보자
배신 행위는 한층더 현저히 드러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통치를 맡은 중신들은 사자왕이 살아 돌아오리라고는 도저히 생각지
도 않았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측근인 그들은 대왕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있어서, 그
가 지구의 끝까지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아마도 어딘가에서 전사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
다. 대왕은 죽을 때가지 야망을 키워가는 인품인 것을 잘 알고있었다. 억세게 운이 좋은 행
운아 알렉산드로스를 우습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위정자도 이런 배신을 용서하지 않
겠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유난히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성격이었다. 순식간에 숙청의 회오리
가 세차게 불었다.
배신 행위가 명백한 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의혹이 있는 자까지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
고 처단해 버렸다. 중신도, 중견 간부도, 말단 병사도 엄중하게 죄를 물어 평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처벌이 가해졌고 도처에서 사형이 단행되어 수많은 핏줄기가 흘렀다. 글자 그대로
피의 숙청이었다.
클레안드로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자왕의 명에 따라 에바타나에서 노장
파르메니온을 주살 했던 그 부장군이다. 그때의 공적으로 에바타나 지방의 태수에 임명되었
는데 횡포를 부린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카르마니아로 돌아온 시점에서 바로
처형되었다. 공적이 큰 중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외를 두어서는 본보기가 못 된다는 생각
이었다.
그보다도 중신의 배신 행위는 대왕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를 가장 화나게 했고 절망감까지 느끼게 했던 것은 하르팔레스의 배신이었
다. 하르팔레스는 미에자 학사 이래의 친구이며 헤타로이중서도 유력한 인사였다. 이수스 전
투에서는 전선에서 도망을 쳐서 많은 이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자신도 충분히 잘
못을 인정하고 뉘우쳤으리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전장의 용사는 못 되었고 그런 탓에 원
정군의 재정을 맡겼고 바빌론 지방의 통치자로 임명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주었다. 재정적인
면에서는 알렉산드로스보다 정통해 있었고 군사와는 다른 방면에서 중요한 한 쪽 팔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하르팔레스는 바벨론 땅에서 마치 자신이 대왕이나 된 듯 횡포가 극에 달하여 사
복을 채우며 여색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다.
"하르팔레스가..."
알렉산드로스는 그 소식을 듣고 말문이 막혔으나 배신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잡아들여라."
바빌론으로 엄명이 내려졌다. 그러나 하르팔레스도 빈틈이 없었다.
"사자왕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얇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다부지게 웃었으나 공포심을 얼버무리려는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사자왕의 엄명이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하르팔레스는 은밀하게 모아둔 막대한 재물
과 부하 장군들을 거느리고 도망갔다. 타르투스에서 해로를 통해 아테네로 향했다.
"아테네인이여, 일어나라. 알렉산드로스의 횡포를 용서하지 마라."
이렇게 떠들면서 많은 뇌물을 주며 망명허가를 요구했다. 이 또한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싫어하는 선동이며 용서의 여지도 없는 분명한 배신 행위였다.
"하르팔레스는 아테네와 손잡을 셈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 소식을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양미간을 찌푸릴 뿐 무표정하게 받아들였다. 가장 격심한
분노는 오히려 평손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 대왕의 특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찬가지로
조용히 말했다.
"나를 암살한 것보다 더 무거운 죄다."
하르팔레스의 사형은 어차피 정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와 대항할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하르팔레스의 입장에서라면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정말 '그
럴 수 있는'인물이었다.
그때부터 알렉산드로스는 아테네에 대한 몇 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아테네의 식민지로 되어 있는 사모스섬을 해방시키고 알렉산드로스를 신으로 섬길 것을 명
했다. 최근 몇 년 국력이 쇠퇴해 가기만 했던 아테네와 상승세를 달리는 알렉산드로스와의
관계는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사자왕은 냉정한 판단으로 교활한 아테네인에게 압박을 가
했다. 아시아의 왕은 아테네를 제압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더한층 강력한 지배를 아테
네에, 그리고 그리수 전국토에 가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르팔레스를 없애려는 목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아테네는 알렉산드
로스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는 옛날의 아테네가 아니었다. 힘이
없으면 자부심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아테네인들은 완전히 무기력해 져서 겁을 먹었다. 사
자왕의 위협은 충분히 효과를 거두고 있었고, 한번 배신한 놈은 어차피 믿을 수 없다고 생
각하는 아테네인도 있었다. 하르팔레스의 행동은 누구의 눈에도 지나치게 비쳤고 특히 강직
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좋은 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하르팔레스에게 가담하는 사람은 소수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마케도니아에
가차없이 반기를 들었던 철학자 데모스테네스가 손길을 뻗어 왔다. 그러나 이 웅변가의 힘
도 이젠 쇠잔해져서 자칫하면 알렉산드로스가 육지와 바다로 한꺼번에 공략해 올 것을 상상
하며 겁먹고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 때문일까, 사자왕의 위력 때문일까.
하르팔레스에 대한 사자와의 분노는 심상치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테네는 지금까지
심심찮게 알렉산드로스의 비위를 거슬리는 짓만하고 있었고, 그런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도
저히 씻을 길이 없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하르팔레스 망명은 아테네
인에 의해 거부당했는데 현명한 판단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하르팔레스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고, 아테네인이 생각한 대로 만약 하르팔레스를 받아들였다면 그 도한 절대로 영서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한다면, 알렉산드로스의 또 하나의 요구에 대해서도 아테네인은
"신이 되고 싶으면 되라지" 하며 마케도니아 대왕을 신으로서 섬기는 것도 납득하기로 했
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뭐! 알렉산드로스가 신이라고? 그런 신을 섬긴다면 신전에 들어갈 때가 아니라 나올 때
에 몸을 깨끗이 씻어야겠지."
아테네인답게 통렬한 비판을 했지만, 그것이 여론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쇠퇴의 길
로 가는 증거였다.
하르팔레스는 하는 수 없이 크레타섬으로 도망갔고 결국 그곳에서 배신한 부하한테 암살
당했다.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사자왕은 건재했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로 귀환한 것을 알고 해이해졌던 각지의 상
황은 단숨에 긴장된 상황으로 돌변했다. 사자왕도 잇달아 새로운 정책을 표방했다. 사병을
철폐하고 일체의 군사를 왕의 군대로 편성시켰다. 행정군을 축소하고 문관과 무관을 명확하
게 분리했다. 즉 태수는 병력을 가질 수 없고 왕 직속의 수호 대장이 왕의 병사를 맡아서
군무를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규율이 회복되고 대왕 중심의 직제가 의욕적
으로 만들어졌다.
황폐되어 버린 키루스 대왕 묘소를 복원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예전에 페르시아 왕궁에
있었던 호족 한사람이 그것을 지켜보던 어느 날 사자왕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냐?"
"페르시아 왕가에 한 가지 더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무엇이냐?"
"대왕님은 분명 달레이오스왕의 공주님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약조를 하셨습니다. 왕의
영혼 앞에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기억이 떠올랐다. 페르시아 왕의 후계자로서 그것을 유해 앞에서 약속한
기억이 있다.
"공주는 어찌 지내고 있느냐?"
"수사에 있는 별궁에서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 역시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의 장점가운데 하나였다.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애첩 바르시나는 대왕의 곁을 떠나 지금은 박트리아의 부친에게 몸을 맡겨 왕자 헤르쿨레
스를 키우고 있다. 또 한사람의 비 로크사네는 아주 빼어난 미인이지만 산악 부족의 딸이기
때문에 속마음을 이해하는 데 조금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스말이 서툴고 그리스 사정에 대
해서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페르시아 공주라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알렉산드로스의 부름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가엾기도 했다.
우선 헤페스티온을 불러들여 의논했다.
"어떡하지?"
"뜻대로 하세요. 스타테이라 공주는 마음씨도 고운 분이지요."
"이름이 스타테이라던가?"
"모르셨습니까?"
"잊어버렸지."
"이제부터는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야겠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은 딴 곳으로 갔다.
헤페스티온이 찬성하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 페르시아인
과의 융화는 불가결하다. 그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헤페스티온이었다. 헤
페스티온은 사자왕 자신보다도 페르시아인과 친하고 페르시아 말도 유창하게 잘했다. 페르
시아인과의 교섭에는 언제나 헤페스티온을 지명해 왔다.
그러나 또 한사람의 중신인 크라테레스는 어떻게 생각할는지... 미처 깊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크라테레스가 고문을 듣고 사자왕을 찾아왔다.
"새로운 왕비를 맞으신다고요?"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왕비라고 정한 것은 아니지만..."
국왕이 많은 후비를 두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자들끼리 신분의 상하가 모호해진
다.
"소홀히 대했다가는 오히려 불편하지 않으실까요?"
"물론이다."
크라테레스는 오히려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하는 헤페스티온과는 정반
대의 역할을 맡아 왔지만, 그런 그도 페르시아인과의 친화의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했던 것
같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그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이제는 마케도니아 군사의 대변인이
아니라 좀더 높은 견지에서 정세를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크라테레스의 웃음 속에서 그런 심정을 짐작하고 매우 만족했다.
"좋다. 결정했다."
"결혼하시는 쪽입니까?"
"그렇다. 나는 내 한 몸이 아니다."
엉뚱한 생각을 개진했다. 그 생각은 이전부터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이
지만, 심사숙고를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크라테레스의 얼굴을 보고있는 사이에
왠지 무엇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결심한 것이었다.
크라테레스는 사자왕의 진의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대왕 자신은 이 즉흥적인 생
각에 점점더 말려들어갔다. 아무튼 함께 동고 동락했던 병사들에게 뭔가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돈도 주고 여자도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간의 벽을 허물지 않으
면 진정한 화합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합법화된 약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수사에서의 합동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역사에는 이 결혼식
을 기며하게만 묘사되어 있지만, 이 사건은 알렉산드로스의 복잡하게 뒤얽힌 성격을 정확하
게 반영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일은 달레이오스 3세의 유해 앞에서 맹세한 약속에
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면도 정말 알렉산드로스다운 행동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노고를 함께한 병사들에게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기쁨을 고루 나
누어주겠다는 배려에서 여자를 주고 결혼 수당을 나누어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사자왕
은 전쟁에서 일어나는 약탈과 능욕을 좋아하지 않았다. 폭행은 보기에도 안 좋으며 당당하
지도 못하다. 전쟁에서 억누르고 있던 병사들의 욕망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는 목적도 있었
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달레이오스의 딸 스타테이라 외에도 달레이오스 바로 전 왕이었던
오코스의 막내딸인 파리사티스도 아내로 맞았다. 헤페스티온에게는 스타테이라의 여동생을
주었는데, 장래에 헤페스티온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과 이종형제가 되기를 바랐던 까닭에서
였다. 더불어 크라테레스에게는 누구, 페르디카스에게는 누구,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누구,
네아르코스에게는 누구 하는 식으로 거의 80여명에 가까운 페르시아 처녀를, 그것도 모두
페르시아에서는 고귀한 집안의 딸들을 중신들에게 짝 지어 주었다. 또 사자왕의 명령에 따
라 충분한 결혼 수당이 지급되었다.
병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케도니아인으로서 아시아 여자와 결혼한 자는 남김없이 신
고하도록하여 축하금으로 여느때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의 결혼자금을 주었다. 신고한 수가
1만에 가까웠다고 한다.
혼인의식은 닷새 간에 걸쳐 거행되었다. 당연히 성대하고 화려하고 떠들썩한 행사였다. 사
자왕의 명령에 따라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혼례방식이 채택되어 페르시아 의상을 입고 엄숙
하게 거행되었다. 열광하는 군중들속에 더러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 마케도니아 병사도 있었
다.
"또 사자왕의 동방병이 도졌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결혼식이 치러진 수사에서 또 하나의 기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흉사였다. 카라노스라는 인도의 승려가 분신 자살한 사건이다.
카라노스는 원정군이 인더스강 유역에 머물렀을 때 세상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이 생활하
는 승려에게 흥미를 느낀 사자왕이 굳이 동행을 요구했던 자였다. 본명은 따로 있는 것 같
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카라라고 불렀고 이것이 다시 카라노스라고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
는 수사에서 심한 위장병을 않고 있었는데 나을 가망이 없어 보였다.
"목숨은 아깝지 않으니 불에 타서 죽었으면 좋겠소."
사자왕은 카라노스의 간절한 소망을 받아들여 장작을 쌓아서 화장시킬 준비를 하도록 명
령했다. 카라노스는 전신에 포도주를 부은 다음 머리를 뽑아서 태우며 스스로 장작더미 위
로 올라갔다.
"군중들이여, 기분 좋게 축하해 주게. 그럼 안녕히. 사자왕이시여, 머지않아 바빌론에서 만
납시다."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여대며 불을 지를 것을 명했다.
너무나 태연한 자살이었다. 말라빠진 몸은 순식간에 타서 없어졌다.
카라노스를 알게 된 것은 그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보면서였
다. 알렉산드로스의 물음에 그는 한 겹의 얇은 가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잘 건조되어 푹
패인 가죽은 한 쪽 끝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다시 다
른 곳이 튀어나왔다. 한가운데를 눌러야 비로소 가죽은 평정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한가운데를 다스리라는 뜻인가?"
카라노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나는 계속 돌아다닐 것이다."
카라노스의 죽음 앞에서 사자왕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때는 그저 그 정도에서 그쳤다.
알렉산드로스는 결혼한 뒤 곧바로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달랠 새도 없이 곧바로 모든
병사들이 지고 있는 빚을 자신이 갚아 줄 것을 선언했다. 병사들 중에는 빚 때문에 괴로움
을 당하는 자들이 적잖게 있었던 것이다. 증거가 되는 문서를 가지고 신청만 하면 그 금액
을 주는 것으로 전사들의 노고에 보답하겠다는 알렉산드로스의 호의였지만, 호의가 지나쳐
서 왠지 불쾌감 마저 들었다. 말단 병사로서는 사자왕의 깊은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
다.
병사들은 사자왕의 그런 조치를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를 색출해 내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빚을 신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그 동안 갖은 고생을 해온 군사
들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하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이다.
"좋다. 그러면 책상 위에 돈을 두겠다. 이름은 묻지 않겠으니 증거 문서의 금액을 나눠주
어라."
이번에는 매우 기뻐하며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고참병들
이 수군거렸다.
"기쁜 일이야."
"이것으로 빚이 없어졌다."
"그것도 기쁘지만 역시 사자왕은 우리의 대왕님이셔."
빌린 돈을 다 갚는 것보다 사자왕이 자신들에게 진심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더 기
뻐하며, 오로지 알렉산드로스의 보살핌에 감사하는 소박한 영혼이 많았던 것이다. 이 사실의
중요성을 사자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까.
이어서 알렉산드로스는 성대한 잔치라도 해도 될 만큼 선심을 쓰는 논공행상으로 감행했
다. 말리족 마을을 침공했을 때 혼자 맨 앞에 나가 성벽으로 뛰어든 사자왕을 뒤에서 도운
페우케스타스에게, 해안선 마을 코카라에 주둔하며 네아르코스에게 물자를 보급했던 레오나
테스에게, 그리고 신항로를 개척한 네아르코스는 물론 공을 세운 중신들에게는 차례로 융숭
한 포상이 주어졌다. 사자왕의 진의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혹을 품을 만큼의 흡족한 보상
이었다. 자신의 부를 부조리 잃을 정도의 향응이었다.
때마침 지금까지 정복했던 각 마을과 도시에서 새로 징집된 수만 명의 젊은 정예 병사가
도착했다. 페르시아인을 중심으로하는 동방인의 아들들로 그들은 출신에 상관없이 마케도니
아식 군사 훌련을 받았다. 복장도 장비도 군단의 편성 방법도 모든 것이 마케도니아 정규군
과 다름이 없었으며 전술도 똑같이 터득하고 있었다. 사자왕이 제각각 지역의 태수들에게
양성시켜 두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그 젊고 활기찬 위용을 본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젊은 장병들은 에피고노이라고 불렸는데, 후계자라는 뜻이
었다. 모두들 '후계자란 무슨뜻이지'하고 의아심을 품기 시작했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자꾸 의심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새로운 야망에 불타는 알
렉산드로스에게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군사 조직에 대해서도 사자왕의 뇌리
에는 펠라를 출진했을 당시처럼 마케도니아 정규군만을 중추로 둔다는 생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함돈 결혼까지 감행하여 민족간의 벽을 걷어치워버린 것이다. 군대에는
마케도니아 인도 그리스인도 페르시아인도 있을수 없고 얼굴 생김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었
다. 잘 휼련된 간한 군대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념을 알고보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마케도니아 병사에 대한 배
려가 부족함은 부정할수 없다. 왕의 나이가 어려서 일까 성격이 급해서일까.
아니다. 이것은 원대한 이상주의자와 소박한 병사 사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갈등이
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거리낌없이 자신의 방침을 추진해 나갔다. 결단도 행동도 보통 사람보다
민첩했다. 놀라 당황해 하는 사이에 이미 돌진했다. 석연치 않은 생각이 마케도니아 병사들
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 동안에 새로운 조직 편성이 착수 되었다. 페르시아인과의 화합
에 뛰어난 페우케스타스를 후대 했고 페르시아인을 점점 군의 요직에 앉혔으며, 그 한편으
로 헤페스티온을 육군과 함께 페르시아만으로 출발시키고 사자왕 자신도 배를 타고 티그리
스 유프라테스강 하구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새로운 군사와의 새로운 모험을 생각하면 날이
면 날마다 꿈이 부풀어갔다.
오피스는 티그리스 하반에 있는 도시이다. 진지를 수사에서 오피스로 옮긴 알렉산드로스
는 여기에서 1만 명이 넘는 마케도니아 병사에 대해 제대 명령을 내렸다.
"제군들에게는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시켰다. 보상금을 등에지고 당당하게 고향으로 개선
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일생동안 제군들의 무훈을 잊지 않겠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또한 호의에서 나온 처사였다. 대상은 노령자와 부상자
들이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히파시스강 하반네서 코에누스의 발언에 찬성하며 인도로의 전
진을 거부했던 무리들 아니었던가. 고향으로 귀환시켜 줄 것을 호소했던 마케도니아 병사들
아닌가.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다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생각을 실천한 것이다. 3
만에 이르는 마케도니아 병사중 2만을 남기고 1만 병사를 제대시켰다. 그 1만은 쇠약해지고
나이가 들어 실전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병사들이었다.
한편 사자왕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계획이 움트고 있었다. 그것은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
아 반도로, 다시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의 ... 그러기 위해서는 노명들은 제대시키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해야만 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전쟁은 힘들고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
었다. 더구나 몹시 지친 자들은 더욱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고 또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에 몸을 두고 지금까지 사자왕과 함께 싸우고 사자왕과 함께 죽는 것
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고, 그런 긍지를 단 한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었다. 비록 어쩔수
없는 혼자만의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열렬히 사자왕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이야 말로 마케도니아 군의 강대함이며 그렇기 떄문에 지금까지 필설로 다할수 없는 고난에
도 견디며 살아 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젠 쓸모가 없어졌으니 그만 돌아가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게다가 노
골적으로 페르시아의 젊은 병사가 마케도니아 병사와 똑같은 모습으로 행진하는 것을 똑똑
히 보고는, 그리고 그들이 후계자로 불려지는 것을 알고서는... 진작부터 사자왕의 동방병에
는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불만을 품은 것은 제대를 명받은 자들만이 아니었다. 잔류 병사들의 심경도 마찬가지 였
다. 제대 군사들에 대한 처우을 생각할수록 내일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군 조직 중에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입장이, 가장 신뢰되어야 할 그들의 셀력이 조금씩 수가
줄고 비율이 감소하여 힘이 경감되어 가는 현실이 떠나는 자에게도, 남는 자에게도 무엇보
다 견다기 힘든 괴로운 일이엇따. 그리고 그것이 틀림없이 알렉산드로스의 징의이며 의도적
인 방침이기 때문에 불복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모두 불만을 드러냈다. 몇 년 간 참아 왔던 불만이 한계를 넘어 폭
발했다. 한꺼번에 복받쳐 나왔다.
"대왕은 우리를 뭘로 생각하는 거지?"
"돈만 주면 끝이야?"
"평소에 말했던 그 뜻은 어디에 갔어!"
어조가 격해졌다. 마침내는 통렬하게 비난하는 이도 나왔다.
"아! 이제 알았어. 부왕 필리포스를 버리고 그깟 아몬신이나 애비로 섬기면 되겠군. 페르
시아인하고 같이 어디라도 가는게 낫겠어."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은 선왕 필리포스 시대부터 양성되었으므로 아직도 선왕을 경애
하는 자가 많았다. 사자왕이 "아몬신만니 나의 아버지"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어
이없어했고, 페르시아병은 원래부터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이런 비난은 마케도니
아 병사들의 불안을 단적으로 나타낸것이었지만, 동시에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아픈 부분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었다.
"뭣이라고!"
알렉산드로스는 군중의 불만의 소리를 듣고 연단에 섰지만 통렬한 비난은 멈춰지지 않았
다. 이렇게 불손한 행동은 지금까지 없었다.
"무례한 놈들!"
알렉산드로스는 너무난 흥분하여 연단에서 뛰어내려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병사들을 색출해 냈다.
"불한당들은 체포하라. 이놈하고 이놈, 이놈도!"
왕의 시종이 왕명에 따라 몇 명을 체포했다.
사형이다. 즉시 처형하라."
군중은 일순간 기가 꺾였다.
그러나 잔잔한 물결처럼 다시 불만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조금씩 퍼져 갔고 높아져 갔
다. 원망, 분노, 절망... 설기마저 감돌았다. 이들이 한꺼번에 폭도로 변한다면 사자왕의 목숨
을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헤페스피온도, 크라테레스도, 중신들은 대부분 오피스를 떠
나 있었고 왕을 수호할 근위병은 스무명도 채 안되었다. 칼을 빼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대
왕에 대한 경애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재빨리 냉정을 되찾아싿. 그리고 다시 연단에 서서 여느때와 변함없는 말
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용사들이여!"
군중의 존재가 의심스러울 만큼 정적이 감돌았다. 그것을 깨고 알렉산드로스의 목소리가
퍼졌다.
"마케도니아의 용사들이여!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가라. 나는 말리지않겠다. 마음
대로 해라. 하나 마케도니아의 용사들이여, 그대들에게 귀가 있다면 들어 보아라."
일동을 응시하며 차근차근 말을 시작 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듣는 군중에게 사자왕의 오
른쪽 눈동자가 한층 더 파랗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먼저 부왕이 통치하던 시절부터 말하겠다. 그 무렵의 제군들은 모두 다 불쌍한 모스 이
었다. 정해진 거처도 없고 들짐승 가죽을 걸치고 몇마리 안 되는 양을 치며 근근히 살고 있
었다. 그런 제군들을 모아서 용사로 변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바로 나의 아버지 였다. 마
케도니아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고 제군들은 지배당하던 자에서 지배하는 자로 바뀌었으며
트라키아는 제군들의 영토가 되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테살리아인도 제군들앞에 엎드릭게
되었다. 테배도 굴복했고, 아테네도 마케도니아의 힘을 인정했다. 그리스 전체가 마케도니아
를 매우주로 받들게 되었으니 제군들이 부왕르 경애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부왕
이 제군들에게 배푼것은 여기까지이다. 내가 부왕에게 물려잗은 것은 60달란츠의 금화와
500달란트의 빚이 전부였다. 듣던 대로 마케도니아군은 강했지만 주위의 압박을 받으면 그
시절의 군대로는 잠시도 버틸수가 없었고 여전히 취약했다. 그러나 마침내 헬레스폰투스를
건너서 몇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이집트를 제압하고 다시 시리아를, 페르시아를 수하
에 넣었고 인도에까지이르렀다. 이 모든 나라가 제군들에게, 그리고 마케도니아에게 한복했
던것이다.전복지의 통치는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제군들도 쓰디쓴 체험으로 잘 알것이다. 수
많은 방겻에도 우리는 지배를 지켰고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모든 것이 제군들의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제군들만이 진정한 지휘관인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라.
수많은 고난을 겪어 온 지금 내손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왕의 옷과 왕관과 가슴에 달린 쓸
모없는 리본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제군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걸치고, 제
군들과 같이 잔다. 그리고 잠네서 깨어나면 언제나 제군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낸
몸도... 보고 싶다면 보여 주겠다. 만신창이, 상처없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모든 게 제군들을
위해서, 제군들의 친형제, 가족들을 위해서 흘린 피의 흔적이다. 언제어느때라도 내자신을
의해서는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마케도니아를 의해서 였다. 전사자를 위해서 성대한 장례
식을 치러 주었고, 살아남은 자를 의해서는 많은 포상을 내렸다. 제군들의 공적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대로다. 그리고 소리 높여서 알렉산드로스의 승리와 영광을 마케도니아인에게 알
려 주기 바란다. 또한 지금도 전쟁에 견딜수 있고 건강한 자는 조금더 남아서 싸워 줬으면
하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등을 돌리고 싶으면 돌려도 좋다. 어디든 도망가서 왕을 적진속
에 두고 왔다고 떠벌려도 좋다. 그리고 다시들지승 가죽을 입고사는 집도 없는 불쌍한 마케
도니아인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지!"
말을 마치고 한번더 병사들을 노려본후 훌쩍 몸을 돌려 군중들만 남겨졌다.
측근인 수호병 이외에 뒤를 따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입이 열리
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한숨만이 새어 나왔다.
사자왕의 웅변을 들은 병사들의 가슴에는 감동이 물결쳤고 몹시 기뻤다. 그러나 이상하게
도 가슴 한구석에 석연찮은 응어리가 만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한동안 초연하게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서서히 두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흩어
져 어디론가 갔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엇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납득할수 있는
정도라면 소박하고 충실한 마케도니아 병사드이 그렇게 까지 대왕에게 반항할 리가 없지 않
겠는가.
알렉산드로스는 우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순박한 병사들에게 괘변을 늘어놓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진심을 호소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왜 새삼스럽게
밝혀야만 햇나 하는 씁씁한 생각이 마음속에 남았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내가 세계의 맹주가 되는 순간 내 곁에 있는
이는 언재ㅔ나 마케도니아인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지언정 알렉산드로스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을 중용하는
일이 있어도 그성느 하나의 방편이며, 마케도니아인은 자신의 심중을 당연히 헤아려 줄 것
이라고 생각했다. 회를 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종잡을수가 없었다.출발점이'마케도니아를 위함'이었던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확신
의 근거가 거기에 있다 하더라도 결과가 나빴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대왕의 생각이 그대
로 마케도니아 병사의 생각이 될 수 는 없으며 엄연히 입장이 다르다. 더구나 마케도니아를
위해서 라고 말하면서 현실적으로는 페르시아인을 중용하고 있지 않은가? '에피고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아테네에게도 꽤나 너그럽게 베풀고 있다.
세계의 맹주를 목표로 한다면 어차피 마케도니아는 그 일부 밖에 될 수 없다. 중요한 일
부라고 하더라도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대왕의 의
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막을수 없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박사로 들어갔고 뜻이 맞는 측근과 페르시아인만을 불러 놓고 독자적인
방침을 강했한다. 즉 새로운 군제실시였다. 페르시아인의 중용문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지지 않는다. 적군에게도, 아군에게도...'
알렉산드로스의 가슴은 다시 투지로 불탔다. 히파시스강 하반에서는 아군 병사들의 반항
에 인도 침공을 단념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설령 마케도니아병사 전
원이 탈락한다 해도 그들을 대신할 군사는 이미 전비되어 있다. 바로 에피고노이, 후계자들
이다.
모든 마케도니아 병사가 그렇다 해도 중신들까지 모조리 떠나지 않을것앋. 그 이상의 이
탈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타격이 있다 하더라도 사후의 대책이 전혀 세워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괴로운 쪽은 대왕에게 거역한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아닐까.
전장의 용장은 평상시의 심리전에도 뛰어났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병사의 반항에
대해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했다. 마케도니아 병사 앞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야기를
나눌기회도 주지 안았으며 오히려 1만명의 제대 명령을 기정 사실로서 추진해 갔다.
사흘 밤낮 동안 침묵의 승부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사자왕이 이겼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마치 유순한 양떽 축사 입구에 몰려 들 듯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알
렉산드로스의 막사앞에 하나 둘 끊임없이 모여들어 무기를 버리고 엎드렸다.
"용서해 주십시오. 대왕님."
"버리지만 말아주십시오."
"어디라도 따라가겠습니다."
"사자왕! 그자태를 보여주십시오."
어느새 1000명도 넘는 집단이 되어 울면서 호소했다. 이들이 그렇게 늠름하던 병사들의
무리인가 의아스러울 만큼 의기 소침한 모습으로 대와의 자애를 빌었다.
아렉산드로스는 곧바로 복장을 갖추고 밖으로 나왔다.
한 병사가 나와서 호소했다.
"대왕이시여 우리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슬퍼하고 있는 이유는 단한가지, 대왕께서 페르시
아인을 동포라고 부르며 후하게대하는 것, 단지 그것 뿐입니다. 대왕은 툭하면 페르시아인의
어깨를 끌어안고 입맞춤까지 해주십니다. 마케도니아 병사는 지근까지 그런 대우를 받은 적
이 한번도 없습니다."
확실히 페르시아인에게 하듯이 어깨를 안고 뺨에 입술을 맞추는 그런 과장된 태도는 마케
도니아 병사들에게 는 보여주지 않았다. 버릇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군. 나는 제군 모두를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동포보다 더 믿
을수 있는 친구로 믿고 있다.신도 굽어 살피실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드 높은 기상을 보여
다오."
"대왕님 만세!"
"마케도니아여 영광 있어라!"
울려 퍼지는 환호 속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병사들과 어깨를 끌어
안고 수염투성이인 뺨에 입맞춤을 했다.
이렇게 화해가 이루어졌다. 1만 명의 마케도니아 병사는 예정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
었고 나머지는 사자왕의 진영에 남아서 한층 더 충성하게 되었다.
사자왕은 어느때 보다도 성대한 향연을 베풀어 마케도니아 병사의 마음을 위로했다. 대왕
을 중심으로 먼저 마케도니아 병사가 둘러싸고, 페르시아인은 그 바깥쪽에, 다른 부족은 다
시 그 바깥쪽에 배치시켜 특히 신경을 썼다. 이정도의 배려에도 마케도니아 병사는 나름대
로 만족감을 느꼈던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제대하는 맠도니아 병사 중에는 이미 동방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진
자도 많이 있었다. 집단 결혼의 결고로서 임신한 여자도 적지 않았다. 사자왕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수당을 지급한 다음에, 원칙적으로 단신으로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대부분이 고국에 가족을 가진 몸으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들 사이에
도 성가신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남겨진 여자에게는 위로금이 지급되었다. 사내아이는 마케도
니아의 젊은이로서 훌륭하게 키울 것을 대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
"내가 어엿한 청년으로 키워서 너희들의 아버지와 만나도록 해 주겠다."
대왕은 그렇게 약속했다.
이러한 배려는 합동 결혼식을 거행한 이상 어차피 당연히 마련해 놓았어야 할 대책이었지
만,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마케도니아 병사의 반란이 사자왕의 마음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다.
크라테레스에게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들과 함께 귀국하도록 명령했다. 고참병들을 버
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런 개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케도니아 병사
들의 심정을 생각해서 취한 조치였으나 언제나처럼 알렉산드로스의 의도는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다. 예리하게 노려보는 눈빛에 그것이 숨겨져 있었다.
첫 번째는 실력있는 크라테레스를 펠라로 보내어 마케도니아와 그 부변을 굳건하게 만드
는 일이었다. 출진해서 이제 10년, 사자왕 자신이 귀국해서 내우외환은 일소하고 조국의 안
보를 다지는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대신할수 있는 장군을 보내어 마케도니
아는 물론이고 트라키아, 테살리아, 그리고 그리스 본토를 통괄할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아울러 안티파트로스를 소환했다. 고국의 통치는 안티파트로스를 재상에 임명하여 일체를
맡겨 놓고 있었으며 이 일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안티파트로스는 유능하고 충실하지만
태후와의 관계가 최근들어 부쩍 악화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에 대해서 변함없는 애정
을 갖고 있었지만 공인으로서는 신용하지 않아, 내정에 대한 태후의 간섭에 대해서는 "열
달동안 배를 빌린 대가치고는 좀 비싸게 드는구나"라며 곤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어
찌되었건 어머니의 말 속에는 들어야 하는 것도 몇가지는 있었다.
이런때에 안티파트로스를 장군으로 국외로 불러내고 크라테레스에게 내정을 맡기는 방법
도 하나의 책략이겠다는 생각과, 원정지 에서는 항상 사이가 좋다고 할수 없는 크라테레스
와 헤페스티온 두 사람을 때어놓는 것도 또다른 목적 이었다. 나이 많은 안티파트로스에게
는 한직을 주어 위로했다.
물론 다소의 번민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의 이념에 근원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렉산
드로스는 깨닫고 있었다. 왕에게는 '내가 어떻게 마케도니아를 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무슨일을 해도 결국은 마케도니아의 이익과 결부될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이 원하듯
이 오로지 마케도니아만을 사랑하고 있으며 대사는 성취하지 못한다. 목표를 앞두고 물러설
수 없는 자신을 알렉산드로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괴로워할 필요
없이 포기해 버리자. '결국에는 마케도니아를 위해서다' 라는 생각이 보든 것을 가려 줄 것
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로 귀환하는 병사들을 지켜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떠올렸다.
다음 목표는 이미 정해졌다. 수십척의 대형선이 머지않아 준공될 것이다. 이제 곧 알렉산
드로스의 대선단이 탄생한다. 그 선단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의 하구를 나와 페르시아만
서안으로 향한 다음 아라비아 반도에 상륙할 것이다.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광활한 지역인
것 같다.
'얼마나 넓을까, 어떤신기한 풍물을 볼수 있을까? 자원이 풍부한 곳일까...'
아직도 대략적인 지도밖에 없었다. 선단은 반도를 돌면서 아마도 홍해로 들어가게 될 것
이다. 상륙한 군사들도 광대한 대지를 횡단하여 아마 홍해에 이를 것이다. 지역이 광대하다
면 군대는 셋으로 나누어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가운데를 가고 부쪽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남쪽은 헤페스티온에게 맡기자. 동해의 건너편에는 이집트가 있고, 다시 그 건너편에는 끝조
차도 알 수 없는 마우리타리아(아프리카) 황야가있는 것같다. 해로는 네아르코스의 것이다.
하나하나 지도를 만들면서 지배 지역을 넓혀간다. 세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가슴이 두근
거려서 견딜수가 없다.
"어때, 헤페스티온."
이 친구에게는 모든 야망을 털어놓았다.
"굉장합니다. 정말 사자왕답습니다."
"인도보다 재미있어."
"인도에서 철퇴한 것은 역시 신의 계시입니다."
"그래, 이국에 들어가면 다시 새로운 발견이 있을거야."
"정말입니다."
"새로운 철학이 있어."
"철학."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답다.
"그래, 인도의 철학자들은 정말 자신을 버리고 있었지. 물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목
숨조차 아까워하지 않았지."
카라노스가 좋은 예였다.
"신을 보고 있는 걸까요?"
일체의 욕망을 버렸기 때문에 몸안에 신이 사는 것일까.
"나는 아직 신을 만나지 못했어."
"선한 것을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추구할..."
계속해서 추구하면 그곳에 신이 있지 않을까.알렉산드로스가 헤페스티온의 말을 가로막았
다.
"인도 승이 재미있는 말을 했었지."
"카라노스 말입니까?"
"아냐, 그게 아냐. 브라만승이야."
"네에?"
"자기 완성을 추구할 것과 세계 구제를 실현할 것, 그 두 가지가 합치했을 때 신이 나타
난다고 말이야. 그놈들 말투는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런 뜻이었을 거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
한 관조의 극치와 비슷해."
그것은 마침내 대승과 소승으로, 두 개의 불교로 분리되어 가는 길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 해탈과 구제와...
"자신을 향상시키면서 민중을 구할수 있다면 확실히 신과 가까워질텐데."
알렉산드로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헤페스티온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까다
로운 문답에 빠질때가 아니다.
"헤페스티온."
"예?"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다오. 내가 신을 만날때까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몇 번의 배신이 있었다. 그러나 헤페스티온만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사
자왕은 친구의 눈 속을 들여다봤다. 똑같은 눈빛이 이상하게 빛나더니 다시 여느때의 눈빛
으로 되돌아 왔다.
가장 강한 자에게
기원전 324년의 늦여름, 이미 고원에는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알렉산드로스는 메디아 지방의 대도
시 엑바타나로 들어갔다. 6년전 달레이오스를 사로잡기 위해 입성했던 적이 있는 낯설지 않은도시였다.
고지에 위치하는 엑바타나는 하절기에는 지내기가 괜찮았다. 페르시아 왕가의 여름용 궁정이 여기에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가혹한 원정으로 몹시 지친 사자왕은 사막 지대 도시를 피해 이 땅에서 여름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각지에서 심기에 거슬리는 사건이 일어나 그 처리에 쫓기다 보니 엑바타나에 오는 것이 늦어지
고 말았다.
도시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한기가 들었다. 기후가 좋고 나쁨에 따라 행동이 좌우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굳
이 우회로를 택한 것은 예전에 정복한 동방 지역에 지배자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쁜 일이라고 하면 바르시나가 낳은 아들을 처음으로 대면 한 것이다. 세 번째 생일을 지나 한참 귀여울
때였다. 전장의 맹장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정에 희색이 만연해졌다.
"영리하십니다."
"그래, 몸은 튼튼하냐?"
"예."
"그럼, 이제 펠라로 가거라. 태후도 보고싶어하니 펠라궁정에서 왕자로 키워라."
일반적인 명령을 듣고 바르시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금만 더 박트리아에서... 아버님이 그리 오래 사실 것 같지 않습니다."
바르시나는 사자왕의 곁을 떠난 뒤 줄곧 아버지의 집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노령인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
켜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왕명에 거역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쯤은 그녀 자신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
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구실일 뿐이었다.
"왕자는 왕궁에서 자라야 한다."
"로크사네님이 계십니다. 스타테이라님도..."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바르시나는 새로운 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들의 몸에서도 왕자가 태어날 것이다.
"힘있는 자가 왕자가 된다. 나도 그랬다. 이 녀석 잘생겼구나!"
아이를 안아서 머리위로 높이 쳐들면서 말했다. 놀란 헤르쿨레스가 울기 시작하자 시녀들이 손을 내미는 거
을 만류하고 바르시나가 왕자를 받아들고 가슴에 안으며 물었다.
"펠라로는 언제 돌아가십니까?"
"머잖아서, 한번은 돌아가야겠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달랐다.
"예?"
"아직은 이루어야 할 일이 좀더 남아 있다."
바닥에 펼쳐진 지도로 눈을 떨구었다. 어디에서나 대왕의 방에는 거대한 지도가 펼쳐져 있다.
"대왕님께서 귀국하실때에 불러주신다면 맹세코 바로 왕자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음..."
바르시나의 염려를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펠라의 정세는 반드시 바르시나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로크
사네와 스타테이라에게도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마. 아무튼 박트라는 펠라에서 너무 멀다. 불렀을 때는 바로 와야 하느니라."
"허락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왕자의 어머니라고 해도 바르시나 자신은 정식 왕비의 입장이 아니고, 일단은 자진해서 대왕의 곁을 떠날
의사를 밝혔던 과거가 있다.
"좋다. 내가 명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신경쓸 것 없다."
"아버님의 병환을 보고... 시리아 근처라면 몸을 맡길 곳이 있습니다."
한때는 페르가몬에 머물렀었다. 거기에서 에게해의 동쪽으로 가면 펠라는 그리 멸지 않다.
"페르가몬에는 내 지기도 많이 있지. 아버님께는 안부전해 다오."
"틀림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만나고 싶구나."
"언제라도 오십시오"
"그래, 알았다."
대답하고 다시 한 번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대답과는 달리 바르시나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있는 박트라
까지 길을 되돌릴 여유는 없었다.
바르시나는 열흘간 에바타나에 머물렀다가 다시 박트라로 돌아갔다.로크사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스타테
이라도 파리사티스도 대왕의 비로 들어와서 얼마 되지 않았다. 여자들의 질투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왕자를 낳은 사람에게는 살벌하게 대한다. 유리하다면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지만 그만큼 질시도 받기 쉽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날아오는 것 같아 웬만큼 권세욕이 없으면 대항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바르시나는
그런 성격의 여자가 아니었다.
'헤르쿨레스라고 해서 안전할 수는 없어.'
바르시나는 왕자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자신의 아들이 편안한 일생을 보내기를 바라는 것은 바르시나 만이
아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틀림없이 그것은 이루어질수 없는 바람일 것이다. 헤르쿨레스의
용모는 벌써 대왕과 닮아서 늠름했다.
엑바타나의 궁전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사자왕은 보통때보다 한층더 성대하게 모든 신들에게 산 제물을
바쳐서 제사를 지낸다음 무예와 음악, 경기회를 개최했다. 일정은 열흘 남짓을 예정하고 있었다.
경기를 관람하는 대왕 곁에는 오른편에 로크사네, 왼편에 스타테이라와 파르사티스가 앉아있고 중신들이 그
바깥을 둘러싸고 잇었다. 승자에게 환성을 보내면서 술을마시는 것도 평상시의 습관대로였다.
헤페스티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엑바타나에 오자마자 건강이 나빠져서 누워 있었던 것이다.
경기회도 이레째로 접어들어 사자왕은 모처럼 왕비들과 중신들을 상대로 미에자 학사에서 단련했던 무렵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무렵의 친구들도 이젠 눈에 띄게 줄어들어 버렸다.'
이런 회상을 하면 기분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음을 생각할때는
정말 괴로웠다. 요즘은 꿈에 자주 클레이토스의 망령이 나타났는데, 오랜 친구 는 언제나 원한 어린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시종이 급하게 뛰어와 귓속말을 했다.
"송구하옵니다만..."
"사실이냐?"
이 한마디만을 하고 알렉산드로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떨치며 취기를 쫓았다.
"무슨일이라도..."
측근들이 차마 묻지도 못하고 어물거렸다.
"헤페스티온이 심상치 않아."
이렇게 대꾸하고는 몸을 뒤로 돌렸다. 마음이 초조해 시간이 아까웠다. 헤페스티온의 거처는 그리 멀지 않았
다. 쉬지 않고 달렸다. 알렉산드로스는 서둘러 가면서 머리 속으로는 끊임없이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켰어. 얼마동안 휴식을 취하게 해야지. 지금하는일은 아무에게나 맡기자. 프톨레마이오
스로 할까, 그렇지 않으면 최근 눈에 띄게 두각을 드러내는 셀레우코스를 기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니
면 안티파트로스와 함께 펠라에서 오는 카산드로스에게 전군 지휘를 맡길 좋을 시기일지도 모르지.'
카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이다. 노장의 공헌에 보답하는 데는 다른 어떤 보상보다 카산드로스를 중
용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한동안은 헤페스티온을 제일선의 격무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
하게 해주자고 생각했다.
"헤페스티온!"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밝은 목소리로 부르며 친구가 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시종이 뛰어나와
맞아 주었다.
그런데 주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헤페스티온은?"
그들을 헤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헤페스티온!"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렀다.
의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큰소리를 자제시키려는 뜻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헤페스티온은 잠들어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며 생기를 잃어 거무스름해져 있었다.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
다.
"왜 그러느냐?"
옴몸으로 껴앉으며 쓰다듬어싿. 갑자기 몸을 돌려 의사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살려내라!"
"그건..."
"왜 죽였냐?"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왜 안 불렀느냐?"
"아닙니다. 오후까지 의식도 맑았고 대왕님을 부를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셔서..."
대답없는 얼굴을 응시하며 뺨을 때렸다. 오열이 터지고 점점 더 소리를 높여 울부짖었다. 초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
"죽여라! 너는 사형이다!"
의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용서해 주십시오."
"안 돼, 바로 처형해라!"
시종들이 화급하게 데리고 나갔다. 사자왕이 칼집에 손을 대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다가 벽을 치고 바닥을 차고 자신의 목에 칼을 대기도 했다. 이것도 시종들이 황급
히 만류했으나 이성을 잃고 미쳐서 날뛰다가 지치면 다시 통곡을 하다가 그렇게 하루 종일 헤페스티온의 유해
와 있었다.
어디에서인지 모르지만 독살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의사는 다시 한 번 사자왕의 심문을 받았다.
"고열인데도 차가운 술을 계속 마시셨습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나..."
"왜 말리지 않았느냐?"
"말렸습니다."
"말렸는데 왜 마셨지?"
"아무리 말려도 제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독살당한 시체는 사후에 흉측한 증거가 살갗에 나타난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헤페스티온의 피부가 언제
까지나 깨끗한 채로 있었던 것은 의사로서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암살 혐의는 풀렸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말리지 않은 죄는 무거웠다.
"이 무능한 놈이!"
"용서해 주십시오."
엄한 태형은 피할 수가 없었다. 병사드은 그런 처사를 의아해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며칠 동안 식사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오로지 비탄에 빠져 있었다. 헤페
스티온은 틀림없이 중신이었지만 그 진가는 반드시 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예전에 사자왕 자신이 페르시안
인의 질문에 "크라테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친구이고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라고 대답했듯이,
그는 틀림없는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의 친구였다. 이 진실은 공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며, 더불어 활약의 범위
도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뜻을 헤아린 헤페스티온이 꺼림칙한 일에, 모략과 암살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경우에 있어서나 철학에 있어서도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주변에서 확인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아들 같은 존재라는 것을 믿는 것이 헤페스
티온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진가였다.
대왕의 연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물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당시에 남색은 일상적인 일이었으므로 연인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연인이
었을 것이다. 왕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그저 성적 욕망을 채워 주고 아들을 낳으면 충분했고 마음의 친구는 되
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경우 지적 수준이 달랐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 부분을 채워줘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헤페스티온은 연인이며, 친구이며, 전우이며, 같은 신을 믿는 신도였다. 그의 갑작스런 죽
음은 바로 또 한사람의 알렉산드로스의 상실이며 자신의 일부를 잃는 일과도 같은 통탄스런 사건이었다.
역경어세의 회복이 빠른 알렉산드로스도 이때만은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성대한 장례식도 슬픔을 더하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산악지에서 설치고 있는 코
센족 정벌이 기분 전환이 되었다. 헤페스티온을 위해서 몰살을 감행했고 산 제물이 바쳐진 피의 제전이 되었
다.
"엑바타나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구나."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알렉산드로스는 예정대로 바빌론으로 행했다. 멀리 이집트에서 도착한 디노크
라테스가 새 도시 건설을 맡겨 두었던 기술자와 동행하여 장대한 도시 조성을 설명하며 대왕의 슬픔을 위로했
다. 게다가 페르시아로 가는 도중에 사절단이 찾아왔고 이 일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사절단은 카르타고, 이디오피아, 이베리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사자왕의 위업은 모든 땅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그 너머에도 드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갈 길은 반만 남았어."
사자왕은 드디어 타고난 투지를 되찾았다.
엑바타나에 있을 때에 카스피해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궁금한 점이 많았다. 광활한 해역은 어디에 맞닿아
있는 것일까, 오케아누스로 들어가는 만일까, 아니면 몇 개의 강을 삼켜서 내뱉은 내해일까, 몹시 궁금했다. 그
런 조사에도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적잖게 움직였지만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답사는 가
신에게 맡기고 자신은 주저하지 않고 아라비아 반도를 향해 떠났다. 이쪽이 더 큰일이며 범위가 넓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감추고 있는 풍요로운 지역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홍애, 이집트, 그리고 지중해 끝에는 헤르쿨레스 기둥이라 불리는 해협이 대해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오늘날로 말하면 지브롤터 해협이다. 꿈은 점점 더 부풀어 갔다.
유프라테스 하안에 있는 대도시 바빌론에 거점을 마련하는 일 자체가 첫 걸음이었다. 이 시기에 여러 가지
예언이 난무했다.
아포로드로스라는 한병사가 동지들이 억울한 혐의로 계속해서 처형되어 가자, 불안을 느끼고 점술사인 아우
에게 편지로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했다. 그러자 그의동생은 "누구를 가장 두려워하느냐?"라고 물어왔다. 아포
로드로스는 사자왕과 헤페스티온의 이름을 들었다. 헤페스티온이 죽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점술사는 제물의
간을 확인하며 먼저 헤페스틴온을 점쳤는데,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 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헤페스티온의 죽음이 현실로 되었다.
그 다음 마찬가지로 같은 제물을 바쳐서 간을 파헤치며 사자왕을 점쳤는데, 이쪽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답장을 받은 아포로드로스는 먼저 헤페스티온일이 있었기 때문에 왕에게 충성심을 보일 기회라고 생각하
여 점술사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증거로 사자왕에게 보고 했다.
사자왕은 편지를 읽어보고 나서도 태연했다.
"정말 대단한 점술사로구나."
"예?"
"네 충성심은 잘 알겠다. 하지만 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하고 크게 웃었다.. 점술사가 말한 대로 '왕이 너를 의심하는 일은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라는 의
미였다.
"신변 보호에 신경 쓰셔야..."
"알았다. 그러마."
애초에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또한 바빌론으로의 입성에 대해서는 신전의 신관들이 입을 모아 대왕의 위험을 미리 알렸다.
"신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서쪽에서 바빌론에 입성하는 것은 흉하니 피해야 합니다. 아끼는 친구를 잃었다고
해서 자포자기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예리한 이성의 소유자 였지만 신의 계시에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알겠구나."
양미간을 찌푸리며 뱉은 말은 늘 가까이에 두고 즐겨 읽는 일리아스 안에서 영웅 아킬레우스가 친구 파트로
클로스의 죽음을 맞아 "이렇게 슬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먼저 죽었으며 좋았을 것을"하고 탄식하는 대목을
넌지시 빗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자신과 헤페스티온의 사이를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에 견주었던 것
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헤페스티온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이런 식으로 호소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슬픔의 깊이는 확실해도 말은 액면 그대로의 본심은 아니었다.
신관들에게도 구린 구석이 있었다. 신전 보수 공사를 구실로 가만히 앉아서 상당한 이익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자왕이 바빌론으로 돌아오면 규율을 재점검하게되고 신전 수리도 실시하여 신관들은 부수입이 생기
지 않게 될 터이니 사자왕이 바빌론에 돌아오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 입성하는 것
을 저지하고 싶었던 신관들은 신의 게시에 그들의 입장을 반영했던 것이었다.
사자왕은 그 사실을 듣고 알겠노라고만 기분 좋게 대답해 주었다. 서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쁘다면 동쪽으
로 가면 된다. 바빌론을 그냥 통과하여 반대 방향으로 전진해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서쪽이 아닌 다
른 방향으로 바빌론에 입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쪽은 늪지로 뒤덮여 있어서 군사들의 전진이 쉽지 않아 결국
신의 계시를 어기게 되었다.
"교활한 놈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도착했는데, 이 땅의 왕궁에는 그리스에서 온 사절단이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찾아왔고, 유
프라테스강에는 훌륭한 선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정박해 있는 것이 아닌가.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
는 페케니아 선원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음속으로 '신의 뜻은 내가 갖고 있어'라며 불안을
단번에 지워버렸고, 언젠가 저 몹쓸 신관들의 음모를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새로운 결심도 했다. 그러
나 먼저 그보다 시급한 문제인 항구의 건설을 명령했다.
아라비아 반도로 갈 생각을 하면 점점 기대가 커져 갔다. 아직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 있는 것 같았
고 자원도 풍부한 듯했다.
배의 준공을 기다리며 정보를 모으는 한편으로 사자왕 자신이 조사를 진두 지휘하며 유프라테스강의 관개
공사에도 착수했다. 군사뿐만 아니라 국정에까지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 이정복자의 비범한 면이다.
몇 가지 계획을 입안하여 그 실행에 분주한 사자왕의 거처에 로크사네가 찾아온 것은 바빌론 왕국에 자리잡
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뭐냐?"
요즘은 그녀를 찾을 틈도 없었다.
"곧 왕자가 탄생하십니다."
로크사네의 잉태소식을 들었지만 왕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를 터였다.
"왕자라고?"
"의사도 점술사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쨌든 몸조심 해야 하느니라."
"예, 이름을 지어 주셨으며 합니다만."
"생각해 보겠다."
"아니 되옵니다. 지금 여기에서."
로크사네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자세히 보니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고 떨고 있는 것이었다. 미인인 만큼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악마의 여신처럼 무섭게 비쳤다. 단단히 각오하고 찾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크사네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스타테이라님을 왕비로 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국왕의 결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4년 전 로크사네는 산악 부족의 우두머리에게서 확
실한 왕비로서 맞이하겠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새로 스타테이라와 파리사티스가 후비로 들어왔고 이들 모두
가 왕비였다.
이렇게 되자 왕비 중에도 서열이 없으면 곤란했고, 없으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었다. 파리사티스는 제쳐놓
더라도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의 딸 스타테이라는 가볍게 대접할수 없었다. 여하튼 이 문제는 사자왕이 페르
시아 왕가를 계승하게 되면 그 근거가 되어야 할 결혼이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빠른 시일 내에 스타
테이라를 정실, 즉 첫 번째 왕비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로크사네는 그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
으나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 말대로다."
대왕은 나무라듯이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 최소한 왕자 이름이라도 지어 주셔야..."
로크사네는 더듬거리며 말했지만 결심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정실 문제는 양보 했으니 이 문제 만은 자신
의 원대로 했으면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둔 이름이라도 있느냐?"
로크사네의 얼굴을 보니 세심한 부분까지 생각을 한 끝에 찾아온 것임을 알수 있었다. 여자들의 싸움은 골
치아픈 법이다.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다소의 타협을 택하는 편이 낫다.
"알렉산드로스라고... 성인이 되고 나서라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약속만이라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너무나 불
안해서."
땅바닥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다. 이것도 작정하고 하는 몸짓일 터였다.
"알렉산드로스라고?"
"예."
로크사네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너무나 명백해서 노골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점에서는 사자왕도 선왕과 아주 닮았다. 필리포스왕도 자신의 후계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
다. 이젠 10년이 지난 일이다. 그때 뭇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이미 청년이 된 알렉산드로스만이 후계자라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도 아리다리오스와 아민타스가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결혼으로 태어난 왕자 칼라노스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필리포스왕은 "지금 그렇게 성급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필리포스왕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권력의 자리는 칼로 쟁취하는
것이므로 이름따윈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으로 로크사네의 기분이 진정된 다면 원하는 이름을 약속해 줄수
있었다.
"그러면 옥새를 찍어 주십시오."
어쩌면 그렇게까지 신경을 썼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지금 말이냐?"
"늘 바쁘셔서 만나 뵙기도 힘드니 나중으로 미루지 마시고 제발..."
대왕의 옷자락을 잡고 엎드리는 것이었다.
"좋다."
약간은 머쓱해하면서 요구에 그냥 응해 주었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안티파트로스가 군사를 이끌고 펠라에서 바빌론에 막
도착했던 것이다. 시종의 종종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안티파트로스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알았다."
대왕은 한걸음에 안뜰까지 달려나갔다.
"안티파트로스, 오랫동안 수고하셨소."
어깨를 껴안으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사자왕도 무사하시니 너무나 기쁜일입니다."
10년만에 보는 준장은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 등뒤에 서 있는 아들 카산드로스는 젊은 시절의 안티파트로
스와 쏙 빼 닮았고 한층 늠름해졌다.
알현 의식도, 환영주연도 베풀어진 그날 밤 늦게 펠라에서 온사자가 아무도 모르게 사자왕의 거처에 찾아왔
다. 누이동생 필리피아(저자주: 본명은 클레오파트라이지만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여왕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
해 이름을 바꾸었다)가 보낸 사자였다. 그녀는 에페이로스 왕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식장에서 아버지 필리포스
왕이 죽임을 당했다. 그 에페이로스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필리피아는 생모인 태후 올림피아스와 손을 잡고
고국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재상을 맡은 안티파트로스와는 정면에서 대립하는 상대였다.
그 필리피아가 두터운 서장과 함께 안티파트로스의 반역을 고발하려고보냈던 것이다. 지금까지 태후에게서
받았던 수 많은 참언은 적당히 흘려 들었지만 누이동생의 밀고에는 많은 증거가 제시되어 있었다. 믿기는 부
분도 없지 않았다.
남몰래 안티파트로스와 카산드로스 두 사람만 불러서 엄중하게 심문했다.
"억울합니다. 왜 그런의혹이..."
안티파트로스는 횡성수설 대답했고 늙어서 그런지 변명도 시원찮았다. 원래 언변이 능란한 무장이 아니었고
머리 회전도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었다. 그 대신 카산드로스의 변명이 훌륭했다. 하나하나 심문에 속시원하게
해명해서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무고함을 호소했다.
"이제 와서 이런 연세에 그런 나쁜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황송하오나 그게 사실이라면 대왕님께서 한창 원
정길에 계실때에 반역을 일으킬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언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고국을 아무 탈 없이 다스리는 일,
이보다 더한 충성의 증거가 있겠습니까?"
"그래."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안티파트로스에게 사심이 있었다면 10년 전에 그 반역은 실현되었어도 되었을 것이
었다.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뻔뻔스럽게 바빌론까지 늙은 몸을 끌고 올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늙어버린 중신의 모습을 대적하고 보니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한 달전 엑바타나에서는 또 한사람의 노장 파르메니온의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명에 따라
엑바타나에서 주살되었던 중신이다. 백발의 장군은 꿈에 나타날때마다 슬픈 듯이 서 있었다. 아들 필로타스는
마르지만 파르메니온에게 반역의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파르메니온의 뒤를 이어 수호 대장이 된 클레안
드로스가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 것을 생각하면 파르메니온이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수가 없었다. 지금
은 후회하고 있었다.
같은 실수를 두 번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누이니지만 태후와 한 패가된 필리피아의 밀고도 어
느정도 믿어야 할지 잘 모르는 일이고, 안티파트로스는 이미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 노인이 아닌가. 섣부른 판
단은 금물이니 좀더 펠라의 실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무고함을 인정했다.
"카산드로스, 정말 훌륭하구나!"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두둔하는 마음씨를 칭찬했다.
"황공하옵니다."
안티파트로스에게로 눈을 돌리자, "헤페스티온이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되다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라고 위
로의 말을 건넸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소."
"정말입니다. 훌륭한 묘소를 만들어서 위로해 주십시오. 아몬 신에게도 보고하시고."
알렉사늗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이말이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빨리 헤페스티온의 묘소를 세워야겠다고 생
각했다. 자신이 서쪽으로 떠나고 없을 때에 동방의 정복지를 헤페스티온이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빌
론에 묘소를 만들기로 했다 안티파트로스의 권유에 따라서 했던 것은 아니지만, 서둘러 시와 신전에 물어보니
아몬신의 뜻도 마차가지 였다. 영웅신으로서 제사지내기로 했다.
'이로써 헤페스티온도 신이 되었다. 모든일이 순조롭다. 무서울 만큼...'
아몬신의 계시를 가져온 사자들을 치하하는 연회석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미열을 느꼈으나 흥분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심신이 흥분한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차가운 슬을 마셔서 목을 즐겁게 했다. 헤페스티온이 같은
증세를 호소했던 사실을 알렉산드로스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열이 고열로 변했다.
그러나 마음은 더더욱 흥분되어 갔고 계속해서 유쾌한 전갈이 날아왔다. 기분좋은 화제로 궁궐 내부가 활기
를 띠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였다.
새로운 헤타이로들을 모아 느긋하게 허물없이 술을 나눠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것은 사자왕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이야기는 장황해지고 사자왕 자신의 전투담을 자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듣는 사
람은 따분했지만 사자왕은 수다스럽게 떠들고 뺨에 홍조마저 띠었다.
최근 며칠간은 특히 그랬다.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낸뒤에 으레 있는 주연에서는 더욱 엉망으로
취해서 아랫사람들의 술자리에도 거침없이 끼였다.
몸이 타는 불처럼 뜨거웠다. 차가운 술을 단숨에 비우고 거실로 돌아가서 목욕을 했다. 일단 잠들었다가 깨
어나자 아직도 어딘가에서 주연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을 낮삼아 계속해서 마셨다. 그리고 또 다시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고, 잠깐의 수면... 열은 여전히 높고
몸의 나른함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현기증을 느꼈으며 때때로 오한이 들었다.
체력에는 자신있는 대왕은 이런 증상들을 가볍게 여겼다. 신의 아들이 진실한 것을 찾아내려 하는데, 이런
멋진 시간을 마음껏 향유하지 않고 어찌 현세를 살아갈 보람이 있겠는가!
아무리 몸이 약해졌다 해도 신들에게 하는 기도도 거르지 않았다. 신에게로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은혜가 필요했기 때문에... 들것에 실려 신전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쳤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런 와중에도 몇가지 명령을 내렸다.
"너는 5000군사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하안을 내려가라. 나흘후 아침에 출발하라."
"예."
"알았지, 자네의 선단은 닷새 후에 출항이다. 게을리 하지 말고 준비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자리에 들어서도 이것저것 궁리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지시를 내렸다. 필여하면 들것에 실려 시찰을 돌앗
다. 그래도 차가운 슬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의사의 충고 따윈 조금도 듣지 않았다.
고열은 전혀 내려가지 않았고 발한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안색은 벌겋게 달아올랐으면서도 이상하게 거무스
름해지고 오한이 더 잦아졌다.
"사자왕, 좀 쉬시오소서."
중신들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여느 때와 다른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흥분에 들떠 있었다. 몸의 열기는 마음의 열기에서 온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못다 이룬 꿈을 그리며 너무나 기쁜 나머지 도취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용태는 더욱 악화되어갔다.이젠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지경이었다. 머리맡에 충신들을 불러놓고 회의를 열어
지시를 내렸다. 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네아르코스에게는 여전히 출진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준비는..."
"지체없이 잘 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나."
"그러나 사자왕께서는..."
"농담하느냐, 사흘후에 출항이다. 멋진 여행이 될게야."
의욕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네아르코스와 함께 기함을 탈 일정을 변경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들것
에 실려서라도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시킬 것이다.
"..."
네아르코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유프라테스강은 지금이 항해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들었다."
"분명 그렇습니다."
"잘됐다! 아라비아해에서는 계피와 몰약(역주: 향수나 구강 소독 및 건위제 등에 쓰임)을 손에 넣을수 있다
던데."
"듣자니 사막도 많은 곳이라던데..."
알렉산드로스는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그것마저 힘겹게 되자 아라비아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네아르코스에게 명령했다. 눈을 감고 듣다가 깜빡 졸고나서 다시 눈을 뜨면
"계속하게"라고 재촉했다.
잠은 혼수 상태같은 기미를 띠기 시작했다.
중신들이 대기실에 모였다.
"페르디카스"
행정을 담당하는 중신을 가까이 불렀다.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급한 일들을 처리해 주게."
출항을 앞두고 인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항이 몇가지 있었다.
"예."
국왕의 옥새가 페르디카스에게 전해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한편 병사들 사이에는 "대왕이 위급하다", "이미 죽은 것 같다"는 등의 소문이 무섭게 퍼져 나갔다. 침실 창
문에까지 와서 대왕을 부르는 병사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겨우 눈을 뜨고 병사들의 불안을 들었다.
"내가 직접 만나야겠구나."
의식이 희미한 채로 명령했다.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엄명이었다. 수많은 병사가 병실로 와서 열을 지어 침
대 곁을 지나갔다. 대왕은 말도 할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손을 내밀고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웠다.
가까운 시종이 대왕곁에 다가가서 왕권을 물려받을 후계자에 관해 물었다.
"만일의 경우 대왕의 왕국은 누구에게?"
"가장 강한 자에게."
이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기원전 323년 6월 10일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저무는 태양을 따라 사자왕 알렉산드로스는 눈을 감았다. 서
른 두 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인도 승려 카라노스가 예언했던 것처럼 이로써 두 사람은 바빌론에서
재회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이상한 말에 조금이나마 신경을 써야 했었다.
독살이라는 의혹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지만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마 헤페스티온도 같은 말
라리아로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병이 들어서도 몸을 함부로 했던 것이 죽음을 자초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헤
페스티온의 사후 알렉산드로스는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일생동안 사자왕이 자신의 죽음을 재
촉했다는 인상을 씻어 버릴수가 없다.
병사들의 통곡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신들은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앞으로의 대책이 세워지지않았
다. 앞일을 몰라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두 달후 로크사네가 아들을 낳았다. "대왕의 환생"이라며 소리높여 선언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왕의
옥새가 찍힌 증서를 높이 쳐들고 그 자리에서 갓 태어난 왕자에게 알렉산드로스 4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로써 처절한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피로 피를 씻는 후계자 쟁탈 투쟁이었으며, 일단락 지
어지기까지에는 4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필요했다.
에필로그
알렉산드로스가 지배한땅과 바다는 매우 광대했다. 부하 장군들이 사병을 갖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는 각지에 태수를 두고 그 밑에 상당한 군사를 두어 통치를 맡겨 두었다.
대왕의 죽음과 함께 장군들의 봉기가 일기 시작했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장군들은 크라테레스, 안티파트로
스,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페르디카스, 셀레우코스, 안티고노스, 리시마코스 등이었다. 대왕바로 밑의 부
장군 격이었던 크라테레스, 오랫동안 마케도니아의 재상을 맡았던 안티파트로스, 그리고 대왕의 동료로서 많은
공적을 쌓은 프톨레마이오스, 페르디카스 등의 대두는 당연한 결과라 해도 될 것이다.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
산드로스는 젊은 나이이지만 전에부터 눈에 띄는 수완을 보였었다. 그리고 셀레우코스, 안티고노스, 리시마코
스는 모두 다 사자왕의 중신이었으나 오히려 대왕의 사후에 이름을 역사에 드러낸 인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
니다.
후계자는 왕가의 혈육에서 나와야 한다는 대의 명분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었고, 또 그렇지 않고서는 폭
넓은 지지를 얻을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알렉산드로스 4세로 만든 로크사네는 페르디카스 등의 지지를 얻
어 앞으로 화근이 될지도 모르는 스타테이라와 파리사티스를 죽여 버렸다.
스타테이라는 페르시아왕 달레이오스의 공주이며 파리사티스도 페르시아왕가의 지체 높은 딸이었다. 수사의
축하연에서 대왕의 아내로 받아들인 여자들이며, 적어도 스타테이라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알렉산드로스
의 첫 번째 왕비였다.
스타테이라는 잉태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포박되어 우물에 빠져 죽게 되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로크사네는 현장에서 스타테이라의 죽음을 지켜보고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크사네는 산악
부족 출신 이었지만 미모는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미모에 배어있는 섬뜩함은 제아무리 역전의 용사라
해도 움츠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헤르쿨레스도 살려 두면 안 된다.'
로크사네는 심중에는 이런 불길한 생각도 불타 오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애첩 바르
시나가 낳은 아들 헤르쿨레스는 벌써 네 살이 되었다. 대왕이 그렇게 귀여워하며 안았던 유일한 아들이며 왕
위를 계승할지도 모를 존재였다.
그러나 바르시나는 멀리 소아시아 해변의 도시 페르가몬에 있었고 로크사네의음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크
사네로서도 그 것은 먼 훗날의 일이며 당장 시급한 일은 바빌론을 중심으로 동방의 세력을 자기편에 끌어들이
는 것이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군의 중심을 이루는 마케도니아 본국의 병사들 사이에서는 마케도니아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옛날부터 뿌리깊었다. 그들은 왕가의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아리다이
오스에게 눈을 돌렸다. 이 이라다이오스를 필리포스 3세라고 부르며 크라테레스가 후견인이되고 안티파트로스
가 통치에 나선다는 책략을 들고 나왔다.
아리다이오스는 선왕 필리포스 2세의 애첩의 몸에서 태어난왕자로, 사자왕의 이복형이며 정신 지체라는 장
애를 갖고 있어 왕으로서의 자질에는 큰 문제가 있으나, 그 때문에 이전부터 여러 세력에 이용당하여 꼭두각
시로 추대되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이번에는 영예롭게도 선왕 필리포스 2세의 이름을 계승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4세와 필리포스 3세, 이름만으로는 부족할게 없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왕이 옹립한 셈이지
만, 한 사람은 어린아이이고 한 사람은 무능했다. 누구라도 그들이 오래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민첩하게 파악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를, 리시마코스는 트라키아를, 레오나테스는 프리지아
를 태수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굳히는 일에 전념했다. 셀레우코스도 기병 대장의 지위를 이용해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대왕의 유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또하나의 중대사 였다. 성대한 장례식을 관장하는 일은 후계자가
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자왕 츠근에 있던 페르디카스는 유체를 왕도 펠라로 옮겨 그곳에서 대왕에 상응하는 장의를 거행할 예정
이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가 사자왕의 유체를 페르다카스 같은 놈에게 맡길수 없다며 이송하는 도중에 탈취하
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그리고 사자왕의 위대함을 생각하면 소박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입장으로
짐작하면 매우 성대한 장의를 거행하여 화려한 사당을 만들어 유해를 모셨다.
그의 심적 동기는 단지 사자왕에 대한 존경심과 사모, 우애의 표시였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이 자신의
존재를 천하에 알리는행위가 되었던 것도 의심할수 없다. 경애심과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또 한사람, 여기에서 또 한번 암약한 사람이 요부로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올림피아스, 사자왕의 어머니인
태후였다. 올림피아스는 딸 필리피아를 현재의 실권자인 페르다키스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페르디카스 쪽애
서도 안티파트로스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있었으나 오래된 부인과 이혼하고 새로운 결합으로 마음이 동요했다.
페르디카스는 사자왕이 죽기 직전에 옥새를 받았다. 게다가 대왕은 후계자에 대해서 "가장 강한 자에게"라
고 유언했다. 페르디카스는 두뇌회전도 빠르고 민첩하게 활약하여 급속하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태후 올림
피아스의 눈 빛은 변함없이 예리했다.
그러나 다른세력들이 이렇게 날뛰는 꼴을 지켜보고 있을리 가 없다. 모든 장군들이 손을 잡고 페르디카스와
대항하는 전투가 순식간에 터져싿. 전투중에 페르디카스는 부하 무장에게 암살당했고 또 한사람의 유력자 크
라테레스도 전장에서 죽었다. 이미 노령이 었던 안티파트로스도 병으로 죽었다.
이제는 대의 명분은 사라지고 가장 강한 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과 야심이 충돌할 뿐이었다. 서로가
힘을 합쳐 강적에 대항하는 분쟁이 반복되어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가 되고, 어지럽게 뒤얽힌 실타래처럼
사태 파악이 쉽지 않았다.어느 때는 안티고노스가 우세하다가, 또 어느때는 카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본국을
중심으로 지배력을 과시했다.
꼭두각시 국왕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의 비 에우리디케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그녀는 능력이 없는 왕을
누르고 자신이 섭정을 하여 수도 펠라를 지배하려 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후 올림피아스는 고향인 에페
이로스에서 군사를 일으켜 펠라를 공격해 왔고, 에우리디케를 자살하게 만든후에 아리다이오스마저 죽여 태후
자시이 마케도니아의 통치에 나섰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진격하고 있던 카산드로스는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군대를 철수시켜 펠라를
공격했다. 태후 올림피아스는 잡혔고 사형에 처해졌다.
"원한이 있는 자는 처형에 가담해도 좋다"라고 선언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장 잔혹한 벌인
돌로 쳐서 죽이는 형에 처해전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녀는
갓 쉰을 넘긴 나이였다고 한다. 태후와 손을 잡았던 로크사네와 어린 알렉산드로스 4세도 이때 카산드로스에
게 잡혀 감옥에 갇혔고, 6년 후에 카산드로스의 명에 따라 살해당했다.
한때는 태후 얼림피아스의 주선으로 페르디카스의 안가 될뻔했던 누이 필리피아가, 이번에는 이집트의 지배
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내가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자와의 장례를 거행할 사당을 만들어 고인의 영혼을 모
셨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점점더 세력을 확장하여 야심을 펼쳐 나갔다. 대왕의 누이를 바로 맞는 것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필리피아도 마음이 내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티고노스가 이 계획을 방해했다. 자객을 보내 그 혈통 탓에 일생을 권력자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필리피아를 암살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자왕을 둘러싼 혈통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자는 바르시나의 아들 헤르쿨레스뿐이었다.
현명한 바르시나는 일찍부터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세력 다툼의 소용돌이에서 몸을 피하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중요했다. 헤르쿨레스는 대왕이 생전에 품에 안았던 유일한
왕자이며 그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한 영웅과 비슷하지 않은가. 임종때에 대왕의 뇌리에 있었던 후
게자는 왕자 헤르쿨레스를 두고 달리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었다.
헤르쿨레스를 왕위에 앉히려 했던 자는 폴리페르콘이라는 무장이었다. 사자와의 부하 중에는 중견에 속하는
자였고, 마케도니아의 노장 안티파트로스는 임종의 병상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이 폴리페르콘을 지명했다. 친아
들 카산드로스를 제쳐놓고 이런 유언을 남긴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조치에 카산드로스가 기분 좋았을리
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급속하게 기울었다.헤르쿨레스를 수중에 넣어서 세력을 확장하려던 폴
리페르콘의 야심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한편 두각을 나타내던 카산드로스는 이제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혈통따윈 해가 되면 되지 이익이 될게 없다
고 판단하기에 이르렀고, 카산드로스의 의향ㅇ르 받아들인 폴리페르콘 자신이 바르시나와 어린 헤르쿨레스가
있는 곳으로 자객을 보냈다.
폴리페르콘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자객으로 마케도니아와 관련있는 고참 병사를 피하고 동방 출신의 젊은
병사를 택했는데, 이것은 암살을 성공시키려는 적절한 판단이었다.헤르쿨레스는 사자왕을 꼭 빼어 닮은 데다가
사자왕을 경애하는 병사들이 여전히 많아 자객이 헤르쿨레스의 모습의 속에서 사자왕을 보고 겁멱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309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던 밤,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고 검은 그림자 몇 개가 달렸다. 먼저 바릇
나가 희생량이 되었다.
"위대한 대왕의 아들입니다.섣부른 짓을 했다가는... 후회하게 될거요!"
이렇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칼로 베어 버렸다.
헤르쿨레스는 열여덟살의 어엿한 젊은이가 되어 있었지만, 무용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눈을 깜박이며
스스로의 운명을 깨달았는지 "대와의 왕자에게 어울리는 죽음을"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가슴에 예리한 칼을
꽃고 쓰러졌다.
슬픈 일이지만 상처는 치명적인 중상이 되지 않았는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왕자의 등에 자객 한 사람이 창
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이제는 가장 강력한 자가 천하를 쥐어야 할 세상으로 변했다. 기원전 311년에는 유력한 지배자들 사이에 협
정이 성립되는 듯하다가 바로 결렬되고 말았다.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가 화려한 무훈을 내세우며
등장하여 이 분쟁에 다음 세대마저 끌어들였다. 그리스 본토도 전투에 가담했지만 이 땅에는 이제 왕년의 실
력자는 없었다.
40년이 넘는 기나긴 혼란 끝에 사자왕 알렉사느돌스의 왕국은 세 개의 얼굴을 지닌 지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 셀레우코스 왕조인 시리아 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인 이집트 왕국, 그리고 안티고노스 왕조
인 마케도니아 왕국이다. 시리아 왕국은 소아시아에서 동으로 펼쳐지는 영토를 다스렸고 가장 컸다. 이집트 왕
국은 나일강 주변 지역을 지배했고, 마케도니아 왕국은 필리포스왕 등장 이전의 마케도니아 영토와 그리스 본
토의 일부를 영토화하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전쟁도 하나의 문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에 따라 세계는 눈에 띄게 확대되어 동서
의 예지가 섞이고 교역이 활발해졌으며 고대사에 찬연히 빛나는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음은 주지의 사실이
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는 32년, 미에자 학사에게 아리스토 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부터 헤아리
면 불과 20년이 채안되는 시간이었다.후계자 분쟁의 40년에 비교해도 짧은 세월이었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자라나서 함께 공부하며 함께 싸웠던 친구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면서 영광을
누렸고, 대와의 업적을 오래토록 후세에 전해준 인물은 프톨레마이오스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시자이
며 오늘날 사서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라고 불려지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수도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하구를 차지하는 큰 도시였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발상에 위해 구축되었고 명명되어 준공후에 많은 전란을 지켜보면서도 커다란 번연을 이
루어 낸 도시다.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30여개늬 도시 가운데 가장 웅대하고 가장 오
랫동안 번창한 곳도 이 도시였다. 오늘날에는 이집트의 제2의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말년의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다를 마주하고 세운 왕궁의 테라스에 서서 때때로 회상에잠겼다. 그의 가슴에
수많은 추억들이 밀려들었을 것이다.
눈아래 펼쳐진 망망한 바다 저편에는 마케도니아가 있고, 펠라가 있다. 그리운 미에자는 지금쯤 어떻게 변모
했을까. 생각하면 미에자에서 알렉산드로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젊은 청년이었다.
눈을 가만히 감으면 젊은 시절의 사자왕이 떠올랐다. 알렉산드로스를 생각할때면 언제나 그는 위대한 인격
자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친구 헤페스티온은 미에자 숲 속에서 파란 빛이 서로 합쳐지는 것이 아리스토테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만남
이었다고 말했었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유일의 철학자가 되어 생애를 마쳤다는 소식은 프톨레마이오스
의 귀에도 들려왔다. 훌륭한 사람은 죽고나서 더한층 칭송받고 있었다. 왕으로서의 알렉산드로스의 역량은 누
구보다도 프톨레마이오스가 잘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의 뛰어난 예지의 만남이었다.프톨레마이오스는 그 만남에 자신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진심으
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기억은 몇몇 가르침을 빼면 희미했지만, 사자왕에 대한 추억은 너무나 많아 뇌리에
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만 하면 언제라도 뇌리에 밀려들었다. 간추려서 한두가지 만 말하라고 해도 어느것을
말해야 좋을지 알수 없었다. 어떤 대왕이었느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말하자면 역시 '위대한 인격자였
다'는 말 이외에는 할말이 없다.
누구보다도 용감했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으며, 오로지 하나의 이상만을 목표로했다. 그리고
이세상 누구보다도 신에 접근해 있었다.
대왕의 애첩 바르시나는 대와의 마음을가장 잘아는 여자였다. 바르시나는 입버릇처럼 "대왕님이 옳으십니다.
그렇지만 저같이 어리석은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말했었다. 명석한 두뇌에 있어서는 뒤
지지않는 프톨레마이오스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후에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매
사에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소박한 군인, 신을 공경하고 자신도 신이라고 생각하는사람, 합리를 존중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제자, 호메로스의 늠름한 기사, 필리포스왕의 피를 물려받은 정렬의 광인, 이런 여러 가지 특징들이 높이
비약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도저히 한마디로 설명할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곁에서 수많은 것을 배웠다. 수많은 체험을 맛보았다. 알렉산드로스없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자신도 없었을 것
이다 훨씬 왜소한 인간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사자왕에게도 단하나 약점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자왕의 인격 그자체이며, 그 인격을 고결하다고 보는 이상 약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점이
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그것은 이상을 지나치게 좇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하
늘의 높은곳을 좇는 나머지 현실의 부조리를 간과해 버린다. 미숙한 세계를 잊어버린다.
세계의 끝을 찾아서 인도 저편까지 통치라는 도구로 자신의 이상을 펼쳤었다. 그러나 과연 번영이, 평화가
제대로 향수될수 있었을는지.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예지라 하더라도 어렵지 않았을까. 그것은 신의 업적에
가까운 것, 아니면 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그리스 도시 국가는 작은 지역이지만, 공존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인도의 끝까지 영토를 펼
쳐가서는 그것도 이루지 못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성은 부정적인 판단으로 기울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상에 동경ㅇ르 품으면서도, 프톨레마이오스 스스로는 운명이 내려준 이집트 왕국의 번영
에만 부심하기로 결정했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사자왕의 현실적인 예지를 가장 잘 이어받아서 하나의
왕국을 세워 번영을 이룩해 냈다. 다행이 행운도 뒤따랐다. 이집트는 풍요의 땅이며, 위치상전란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천혜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고 당대 최대의 항구도 이미 먼들어져 있었
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후계자 선택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했고 영단을 보였다. 이상을 향하는 알렉산드로스를 흠
모하면서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성은 항상 현실에 두발을 디디고 있었다. 이집트왕국을 넘어서 지배의 폭을
넓히지 않았는데, 그것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사자왕의 생애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이야기 했듯이 알렉산드로스의 지도를 나누어 성립된 세 개의 왕국 가운데 가장 오랫
동안 존속하며 역사에 영광을 남긴나라는 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열었던 이집트왕국이다. 왕도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와 고대 중세문화의 교류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여 대왕의 이름과 업적을 후세에 알렸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15대 300년이 지난후에, 역사에 이름높은 미녀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간섭에 무너
져 자결함으로써 끝났다.헬레니즘에서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 또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전환점이
었다.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의 변천을 왕궁의 테라스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노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
르가 알 까닭이 없었다.그러나 사자왕의 됨됨이와 위대한 인격에서 시작하여 역사의 흐름속에 거대한 발자취
를 남긴사실을 프톨레마이오스가 실감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1995년 2월 6일자 아사히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집트 서쪽 시와 오아시스에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가 발견되었다. 매장품
등의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 의문을 나타내는 학자도 있지만, 현장을 확인한 이집트 최고 고고학회 위
원장은 1월말, "그규모로 보아서 대왕의 묘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카이로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렉산드리아를 경유하여 해안선을 따라서쪽으로 달려 다시 남하하는 육로 900킬로미터를 거쳐 발굴현
장으로 들어갔다. 장엄한 석조 건물의 잔해는 미지의 역사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발굴의 개요를 소개한 뒤에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대왕은 알렉산드리아의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져 왔다. 그러나 묘는 아몬 신전이 있는 시와밖에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라며 발굴에 임하는 그리스의 여성고고학자 리아나 슈바르지 씨는 말했다.
리아나 슈바르지 씨는 변호사이자 비문 학자이기도 한 남편 마수뉴 슈바르지 씨와 1978년 이후 수차례시와
를 찾아왔다. 1986년 시와 중심부에서 북서로 20킬로미터 떨어진 말라키라는 곳을 찾아가서 높이 쌓여 있는
모래사막을 보고 그곳에 알렉산더의 묘가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었다고 말했다.
말라키라는 지명은 아라비아어로, 그 지방 말도 아닌 그리스어로' 요절'이라는 의미를 가진 밀라키오가 변화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1989년부터 그리스의 헬레니즘 연구협회의 조사 대장으로서 발굴을 시작했고 먼저 돌을 쌓아 올린 입구의
문을 발견했다. 그 북쪽으로 뻗은 길이 35미터, 폭 10미터정도의 복도 맞은편에 세 개의 방이 나란히 놓여진
윤곽이 나타났다. 전체 길이는 51미터였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 왕의 묘의 전형이지만 이렇게 거대한 묘는 그리스 본국에도 없다"고 말했다. 보통
은 가장 안쪽 방에 유체가 매장되어있다.(중략)
유적에는 트리그리포스라는 세 개의 세로 기둥 장식 등 그리스 건축의 특징이 여기저기에 있고, 출토한 석
재에는 참나무 잎과 장미꽃 모양과 이를 드러낸 어린이 머리만한 크기의 사자머리 부저 등 여러 가지 의장이
가미되어 있었다. 보통 개 정도 크기의 사자상도 출토되었다.
올해 1월 중순, 남문 근처의 2.3미터 깊이에서 비문이 새겨진 석재가 잇달아 발견되었다. 한 비문에는 "내가
이집트 사령관이었을 때 알렉산더의 유체를 이곳으로 가져와 매장했다"라고 씌여 있었다. 여기의 '나'는 알렉
산더 대왕의 장군중 한사람이며 , 대왕이 세상을 떠난후 이집트왕이 된 프톨레마이오스 1세라고한다.
리아나 슈바르지 씨는 "내가 믿어왔던 사실이 증거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상세하고 현장감 넘치는 기사다.
글에서도 알수 잇듯이 이 유적을 알렉산드로스의 묘라고 판정하기에는 아직 약간의 의문이 남아있는것같다.
그리스 정부의 고고학대표단도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의 고향인 마케도니아 지방에서도 최근 10년간 정력적으로 발굴이 진행되었다. 테살로니
키에서 가까운 베르기나에서는 눈부신 왕가의 보석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이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
스2세의 유품이며 여기가 그 묘소였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부근에 무혀있지 않
을까 하는 추측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자왕의 묘소가 있다면 고향 마케도니아 보다는 대왕의 신앙의 거점이 되는 시와 오아시스와 가까
운곳, 그리고 절친한 친구 프톨레마이오스의 손이 미치는곳, 즉 오늘날의 이집트어딘가라고 추정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다. 사자왕의 의지는 마케도니아를 넘어서 보다 넓게, 보다 멀리, 보다 장대한 세계로 나아가려 했
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와 오아시스에 가까운 말라키... 정말, 역사의 로망으로서 격에 맞다.
그 땅의 이름에 요절이라는 뜻이 있다면 이야말로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고, 남겨진 자
들의 아쉬운 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하겠다. 참으로, 참으로 바람처럼 불처럼 물처럼 역사를 달려
나와서 사라져 간 용맹스런 왕자, 그는 왕 중의 왕이었다. 온갖 칭송과 비난이 있었다 하더라도 긴 역사를 통
하여 그만큼 위대한 대왕은 없었다. 언젠가 그 영광이 대지 밑바닥에서 되살아나서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지
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