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롬멜 장군과 식당칸
롬멜 장군과 식당칸
옛날에 무슨 책을 읽다가, 롬멜 장군이 열차의 식당칸에서
비프 커틀릿*을 먹는 장면과 맞닥뜨린 적이 있다.
장면이라지만 특별히 상세한 정경 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를 들면 '파리를 향하는 식당칸 안에서, 롬멜 장군은 점심
식사로 비프 커틀릿을 먹었다.' 는 정도의 문장이 실려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딱히 비프 커틀릿에 얽힌 얘기도 아니다. 요컨대 롬멜 장군이
비프 커틀릿을 먹었다는 단순한 얘기일 따름이다.
내가 어째서 이 별 볼 일 없는 문장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색깔의 조화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우선 롬멜 장군의 빳빳한
감색 사지 군복, 하얀 테이블 크로스, 막 튀겨 낸 옅은 갈색의
비프 커틀릿, 버터에 가볍게 볶은 누들, 그리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북 프랑스의 푸르른 전원 풍경─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문장을 읽어나가며 퍼뜩퍼뜩 떠오르는 것이 그런 색깔들의
어울림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다 할 의미도 없는 그런 문장이
언제까지고 머리 한 구석에 들러 붙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문장의 미덕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를테면 퍼짐새가 있는 문장
말입니다.
가령 소설 같은 걸 쓸 때는, 이런 퍼짐새가 좋은 한 줄로 시작하면,
얘기가 점점 확대되어 간다. 반대로 아무리 공을 들인 아름다운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게 닫혀진 문장이면 얘기는 거기에서 그만
멈춰지고 만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이런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참을 수 없이 비프
커틀릿이 먹고 싶어진다. 나는 비프 커틀릿의 우수한 맛에 대하여
여기저기에다 썼는데, 좀처럼 그 훌륭함이 인정되지 않아(특히 관동
지방은 지독하다), 정말 유감스럽다.
아직까지도
'예? 쇠고기를 커틀릿으로 한단 말입니까? 어쩐지 맛없을 것 같은데요.'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식당칸의 메뉴에도 대개 비프 커틀릿은 들어 있지 않다.
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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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프 커틀릿(Beef Cutlet) : 얇게 저민 쇠고기 살에 옷을 입혀
튀겨낸 것. 우리나라에서는 '돈가스'의 가스가 커틀릿에
해당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