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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펜들턴] 킬러 (3),(4),(5)

Casey,Riley 2023. 1. 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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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펜틀턴의 킬러 제3권-미스터 포인터

돈 펜들턴
   
    1.도주
  맥 보란은 자면서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늘 꿈 속에서 헤매곤 했
다.
  꿈 속에서 그는 베트남 전우였던 <죽음의 특공대> 대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해변가 저택 
커다란 내실에 벌렁 드러누워 있었다.
  차퍼 폰테넬리와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마피아  조직 내에서 흑인의 위치에 대한  문제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플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는 건스모크 헤링턴에게 계속해서 시를 낭
소애 주고, 블러드 브라더 루덱은 붐붐 하파워가 위장 폭탄(머리 위에 떨어지도록 문 틀 위
에 올려 놓는 것)을 장치하는 동안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신호를 흉내내고 있었다. 지트카는 
파리를 향해 단검을 날렸고, 블랭카날레스와 갯지트  쉬바르츠는 전자 계기판을 만지작거리
고 있었다. 보란은 들여다보고 있던 계기판에 싫증이 났다. 끽끽거리는 계기판 소리  때문에 
그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보란은 잠에서 깨어났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는 그들이 꿈에서나마 자기와 함께 있어준 게 고마웠다.
  그는 널찍하고 커다란 라운지의 희미한 조명 아래 반쯤 기댄  채 서 있었다. 비밀 모니터
가 보란의 오른쪽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서 노란불을 반짝이며 삑삑하는 부저 소리를 내
고 있었다. 보란은 잠이 덜 깬 채 거실을 가로질러 창문가로 갔다. 그는 커튼을 다시 내리고 
어둠 속을 헤쳐 조심스럽게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누군가가 온 것 같았다. 
  불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침입자가 200야드 범위 내에 접근하고 있었다.
  보란은 자동 권총을 꺼내 들고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소리 없이 옆뜰로 이동해 갔다. 
  그곳은 산타 모니카 바로 위쪽, 거친 캘리포니아 해안선의 외진 곳이었다. 집 뒤쪽의 깎아
지른 듯한 절벽 아래는 바로 바다였다. 마치 천연의 요새 같은 곳이었다. 
  <죽음의 특공대>와 함께 마피아와 싸움을 할 때 본거지로 사용한 집이었으나 이제  보란 
혼자 남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곳은 고립된 위치에 걸맞게  죽음도 그 어느 것보다도 가
까이 있는 듯했다. 잿빛 구름, 파도 소리, 고독감 따위에 이제 보란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밖에서 자동차의 희미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보란은 서둘러 집 뒤로 나가 차의 뒷좌석에 가방을 던진  다음 시동을 걸었다. 그는 기어
를 중앙에 맞춰 놓고 다시 안뜰 쪽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 장치되어 있는 조명탄을 점
검한 후 각도를 맞추고 불을 붙였다.  조명탄은 연기를 토하며 펑하는 소리를 냈다.  보란은 
다시 각도를 바꿔 다른 방향으로 또 하나의 조명탄을 날렸다. 그는 쌍안경으로 그것이 어디
쯤 떨어졌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첫 번째 조명탄은 정문 위의 허공에서 터졌고, 두 번째 것은 그 중간쯤에서 빛을  발했다. 
2대의 차가 라이트를 끈 채 문 쪽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자 
자동차는 일단 멈추더니 앞차의 문이 열리고 두 사내가 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보란은 쌍안경으로 그들을 살폈다. 그들은 결코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바로 마피아의 
행동파 루이 페나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장거리 모젤 총의 조준경을 통해 바삐 움직이는 사
내들을 쫓아가다 차의 연료통에 한 방  쏘았다. 불길은 곧 뒤차에까지 옮아 붙었다.  누군가 
뭐라고 지시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응사하는 총소리가 주위를 흔들었다.
  모젤 총을 내려놓으며 보란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캘리버 50이 설치된 곳으로 달려 갔다. 탄창을 확인하고  30도 각도로 맞춘 다음 총
이 자동으로 발사되도록 조종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기관총은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을 내뿜
었다. 제대로 작동이 되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보란은 몸을 날려 자동차로 돌아와 자갈
길로 된 주차장을 향해 총을 쏘았다. 차도를 향해서도 쏘았다.
  잠시 후 희미하게나마 모든 물체가 그의 눈에 들어오자, 그의 목표물이 보였다. 그러나 그 
목표물이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그는 조금 당황했다.
  보란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순간 차 앞유리에 목표물이  부딪쳤다. 
보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창문을 통해 손이 들어 와 ㅡ의 어깨를 붙잡았
다. 
  자동차가 달려나가자 그 손도 떨어져  나갔다. 다가오던 사내들도 떨어져 나뒹굴었다.  차 
뒷바퀴가 모래에 파묻혀 잠시 헛돌다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비로소 탄탄한 길로 올라
섰다. 그리고 그는 바퀴에서 찢어질 듯한 소리가 날 정도로 차를 180도로 회전시켰다.  그의 
뒤에서는 산발적인 총소리가 나고 있었다.
  도로로 접어 들자 보란은 뒤를 돌아보았다. 몇 명의 사내들이 쫓아오고 어둠 속에서 드들
의 무기와 그리고 누군가가 흘린 핏자국이 번쩍였다. 고속도로에 접어 들었을 때 그들이 전
속력으로 그를 쫓아오고 있는 게 백미러에 비쳤다.
  보란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생각
했다. 그는 곧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길가의 표지판에 의하면 몇 마일만 달리면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돼 있었다.
  보란은 고속도로 상태를 재빨리 파악해 보았다. 달리는 차들  사이에 그의 차가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었다.
  보란은 어깨를 한번 으쓱 한 다음 커브를 돌았다. 그를 쫓는 차들이 더욱 속력을 내며 달
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경찰이든 마피아든 보란에겐 마찬가지였다.
  보란은 기관총을 다시 옆좌석에 놓았다. 거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 하나가 얌전히 놓
여 있었다. 돈가방이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기관총을 살펴보았다. 기관총에는 5개의 탄
창이 아직 남아 있었다.
  기관총,돈가방      . 그렇다, 그것뿐이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또 다른 것이  있음을 느꼈
다. 특공대 9명의 죽은 혼들이 있었고, 차가운  철창 안에서 일생을 보낼 두 사람의  눈빛이 
있었다.
  그는 잠시 우울한 생각에 잠겼다. 마피아에 대한 끝없은 저주의 불꽃이 온통 그를 감싸고 
있었다. 직업적인 군인 정신이 한없이 질질 끄는 이 전쟁에  대하여 새로운 투지를 불어 넣
고 있었다.
  보란은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살폈다.
  그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 그곳에서 해야 할 일들을 알고  있었다. 
뼈저리게 느껴져 오는 고독감 때문에 그는 더욱더 이를 악다물었다. 죽은 동료들의 혼을 더 
외롭게 하지 않기 위하여 마피아와 다시 한 번 싸우는 것이다.
  이겨야 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잘 알려진 얼굴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짐 브랜튼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부상당한 얼
굴을 성형하는데 우수한 기술을 보여준 의사였다. 그는 이곳에서 지름길로 100마일 정도 떨
어진 팜 빌리지에서 개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보란이 슈퍼맨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100마일이  1000마일로 생각될 때도 
있는데, 이렇게 추격을 받을 때면 특히 더 그랬다.
  보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커브를 돌아 좁은 길로 되돌아갔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상에
서 마피아의 씨를 말리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계속해서 마피아의 차는 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앞으로의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아득함이 먼저 떠울랐다. 그리고 죽음, 그것도 동시에 떠올랐다.
  
    2.도주
  줄리앙 디조르쥬는 팜 스프링스  휴양지, 그의 작은 서재에서  전화와 시계를 번갈아보며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보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디조르쥬는 다시 전화를 바라보았다. 왜 전화가 오지 않을까? 루가 지금쯤 한방 먹였을테
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 할 텐데      . 디조르쥬는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보란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디조르쥬는 창문가로 다시 다가갔다.
  그가 서부 지역의 마피아 보스로 임명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적어도 한 지역
의 보스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 그였
지만 보란에 대해서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재 문고리가 조금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그는 재빨리 책상으로 달려가 니켈로  도금한 
리볼버를 꺼냈다.
  "누구야?"
  문에 바짝 다가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아빠, 문 잠그고 뭐하세요? 가정부하고 연애해요?"
  디조르쥬는 문을 열었다. 안드레아 디조르쥬  다고스타-긴 머리가 눈길을 끄는 따리었다. 
그녀는 순간 그의 손에 들려있는 리볼버를 발견하고 질린 듯한 표정이 되었다.
  "조심하세요.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아빠를 다치게 할지도 몰라요!"
  "찰리를 데리고 있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디조르쥬는 총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아무렴요! 그 쓸모없는, 차리라는 무서운 무기가 잘 지켜 주는데 어련하시겠어요? 그 사
람이 제풀에 안 넘어가나 두고 봐요. 아빠, 그런데 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세요?"
  전화벨이 울렸다. 아드레아는 갑자기 말할 상대를 잃었다. 디조르쥬의 눈이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는 딸의 곁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 수화기를 들었다.
  "디스      ."
  루이 페나의 침울한 음성이 들렸다.
  "어떻게 됐나?"
  디조르쥬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안드레아는  벌써 나가고 없었다. 그는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어떻게 됐나, 루?"
  전화 저쪽에서는 침묵이 계속됐다.
   디조르쥬는 피가 마르는 듯한 초조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놈이 달아났어요, 디스."
  그는 침통하게 말했다.
  "달아나다니, 무슨 소리야!"
  디조르쥬의 음성이 떨려 나왔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줄리오와 몇 명이 뒤쫓아 갔는데       모르겠어요."
  "뭘 모르겠다는 건가!"
  "글세 그놈을 잡아 올지 어떨지를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 녀석 잘도 도망가던데요.  차도 
빠르고! 그리고 저       랄프 스친페티가 죽었어요. 레기노도요. 또  2, 3명이 좀 다쳤어요. 
심하진 않지만      ."
  디조르쥬는 책상 위의 리볼버를 조용히 바라보면서 침착하게 루이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
렸다.
  "우리 차 2대가 불에 탔어요. 그리서 전화하는  게 조금 늦어진 겁니다. 애들을 몇 명  더 
보내 주십시오."
  디조르쥬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책상 모서리에서 일
어섰다. 
  "뭐야! 더 보내 달라구? 응? 그래 15명이 머저리 한 놈을 쫓다가  2명은 죽고 몇 명은 다
치고, 차는 2대씩이나 불타고      ."
  디조르쥬의 음성이 심하게 떨렸다. 그는 다시 넥타이를 더 풀었다.
  "내 말 좀 들어 봐요. 디스. 그는 군대였어요. 한 사람의 군대. 공중에다  조명탄을 쏘았어
요. 우리가 접근한다는 것을 그는 벌써 알고 있었어요. 어둑어둑하긴 했지만 조용히  접근했
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펑하고 조명탄이  터지고. 그 후 무지막지하게 기관총을  갈겨대더군
요. 이렇게 살아서 전화하는 것만도 천만 다생이라구요."
  "그래, 알겠어! 지금 어디야?"
  "공중 전화 부습니다. 산타 모니가 북쪽이에요. 그리고 그곳을 나오다가  순찰차를 만났습
니다. 내 생각엔 누군가가      ."
  "잔소리 마, 루! 애들을 데리고 돌아와!"
  "그러죠. 그런데 말입니다      ."
  디조르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손을 쓰고 있어요. 그놈보다 앞지르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주유소, 버
스 정류장, 네거리, 교차로에 애들을 배치했습니다. 경비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어요. 곧 보
란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디조르쥬는 힘이 쑥 빠졌다.
  "어떻게 믿어!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우고 빨리 돌아와! 계획을 다시 세워야겠어. 더 이상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돌아와!"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디조르쥬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래, 당연히 죄송한 일이지!"
  보란은 험한 산길로 차를 몰았다. 갈라진 언덕, 가파른 골짜기 사이로 계속 달렸다.
  먼 마을에서 불빛이 보였다. 차의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 갔다. 이런 속력으로 두  시간이
나 달렸으니 기름이 떨어질 수밖에      . 멀리 불빛이 반짝이는  곳이 팜 빌리지가 틀림없
을 거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이런 산중에서 주유소를 찾을 수 있을까? 오른쪽 발목의 통증이 어느 틈엔가 그에게 벨보
어에서의 전투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도 결국 총에 맞아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언제 죽느
냐였다. 그러데 도대체 그 죽음이 왜 빨리 안 오고 이렇게 질질 끄는 건지      . 그의 나약
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처참한 얼굴을 한 자존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왜 자신의 죽음이 연장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죽는 장소와 시간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란은 죽음의 의미를 마피아와의 
싸움에서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마피아와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보란은 모든 생각을 잊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의 마음은 차차 평온을 되찾
고 있었다.
  결국 인간이란 자기의 수명대로 살다 가든지, 아니면 쉽게  자기의 생명을 바겐 세일하든
지 두 가지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스스로 선택한  마피아와의 싸움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다.
  그는 다시 커브를 돌아 바로  앞에 환하게 불이 켜진 교차로로  들어갔다. 길가 표지판에 
씌어진 <가스, 오일 키이프>란 글자가 눈에 선명히 들어 왔다.
  한쪽 구석에 한 개의 주유기가 있는 조그만 주유소였다. 그는 속도를 서서히 늦추면서 희
미한 불빛 속으로 들어가 가스 범퍼 앞에 차를 대었다. 차에서 내릴 때 그는 오른쪽 발목의 
고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건물 옆에 2대의 차가 주차하고 있었다. 보란은 가볍게 발목을 움직여 본 다음 건물 안으
로 들어 갔다.
  벽의 선반 위에는 몇 가지 실료품들이 쌓여 있었고, 낡은 핀볼기계는 어두운 구석에 버려
져 있었다.
  둥근 스탠드에 있는 4개의 의자가 겨우 카페라는 기분을  들게 했다. 카운터 뒤쪽에는 중
년의 여인이 지저분한 에이프런을 두르고 서 있었다. 캔 맥주를 마시고 있던 노인들이 보란
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보란은  테
이블 한쪽에 앉으며 중년 여인에게 말했다. 
  "기름이 필요합니다."
  "밖에 있으니 알아서 넣으세요."
  의외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커피라도 좀 마실 수 있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요. 커피가 다 떨어졌어요. 맥주는 어때요?"
  보란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는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가지 마시오, 젊은이!"
  카운터에 앉아 있던 노인이 보란에게 소리쳤다. 보란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 노인을 돌
아다보았다. 노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보란은 순간 긴장했다.
  "밖으로 나가면 안 돼."
  "      ."
  보란의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길 저쪽에 아지도 차가 있나?"
  보란은 그가 들어 올 때 길 저쪽의 차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쪽을 황급히 내다보았다.
  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에서 슬며시 떨어졌다.
  "그 안에 세 남자가 타고 있어. 그들이 여기 와서 자네 같은 사람에 대해 묻고 갔다네, 조
금 전에."
  "그들이 찾는 사람이 나인지 어떻게 아십니까?"
  보란이 물었다. 노인의 눈이 보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그 친구들이 자네를 잘도 묘사했어. 그들은 총도 가졌더군."
  "어떻게 알죠, 총을 가졌는지?"
  "지금 자네의 허리 부근에 있는 것과 같은, 총신이 짧은 권총을 갖고 있었어. 경찰은 아닌 
것 같았는데      ."
  보란은 다시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중고 픽업이 저 뒤쪽에 있네."
  노인이 속삭이듯 말했다.
  "아, 그래요?"
   보란은 태연하게 보이려고 밝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네거리에 있는 차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여길 무사히 빠져나가고 싶다면 내가 도와 줄 수 있네."
  보란은 이 친절한 제의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난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
  노인이 다시 말했다. 보란은 일단 노인을 믿기로 했다.
  "내 창 안에 있는 가방을 가져가야 할 텐데      ."
  보란이 중얼거렸다.
  노인은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섰다.
  "내가 나가서 차 뒤 트렁크를 열어 놓고 기름 호스를 대고 있을 테니 그때 나와서 가져가
게."
  보란은 차 2대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만약 마피아가 차 안에 있다면 보란의 차와 
주유소 건물 사이에 있는 것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차 트렁크가 열려 있다면
      .
  "내가 나가서 가방을 가지고 온 다음 영감님의 차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보란이 제의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 보란의 차 트렁크가 
열렸고, 보란은 재빨리 차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차에서  가방을 꺼낸 다음, 그 작은 주
유소 건물을 돌아 뒤뜰로 나갔다.
  중고 픽업이 지저분한 찻길에 세워져 있었다.
  보란은 가방을 뒤에 싣고 재빨리 앞자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몸을 구부린 채 총을 꺼냈다. 
노인은 아무 말없이 시동을 거었다. 차가 주유소 건물을  완전히 벗어나 고속도로로 올라서
자 보란은 다소 마음이 놓였다. 마피아들이 탄 차가 아직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노인은 빙
그레 웃었다.
  "그들은 자네가 이 차에 타는  것을 알지 못했어. 자네가 자네의  차로 다가가는 것도 못 
볼 정도였으니      ."
  보란은 조심스럽게 주의를 살핀 다음 자리에 바로 앉았다.
  "더 속력을 내보십시오. 저자들이 언제까지 빈 차만 쳐다보고 있진 않을 테니까요."
  보란이 말했다.
  "자네는 그들이 속은 것을 알고 분통을 터뜨리며 따라 올까 봐 두려운가?"
  "좀 가다 세우기 좋은 장소에 내려 주십시오. 그들이  영감님을 잡고 물으면 내가 총으로 
위협했다고 말하세요."
  "웃기지 말게! 난 저런 버러지 같은 놈들에게 굴복하진 않아. 10마일만 가면 팜 빌리지야. 
난 거기서 내 길로 가겠네."
  보란은 지갑을 꺼내 100달러를 노인의 셔츠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럴 필요는 없어."
  "영감님도 아시겠지만 마피아는 소탕되어야 합니다."
  보란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노인도 역시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나는 처음부터 자네를 알고 있었네. 1주일  동안 내내 TV에서 자네 
얼굴을 보았어."
  보란은 뒤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피아가  따라오고 있었다. 보란은 얼굴을  찡그렸다. 벌써 그의 
손은 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좀더 빨리 달려야겠는데요?"
  보란의 목소리가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녀는 왜 그런 곳에서 주유소를 하는지 모르겠어. 나처럼 결코 한창 때는 아닌 것 같은
데 말이야?"
  노인은 한가하게 엉뚱한 말만 하고 있었다.
  보란은 속도계를 절망적으로 쳐다보았다. 픽업은 도저히 더 속력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총의 안전 장치를 풀었다.
  맥 보란-그의 눈은 무섭게 불타고 있었다.
  
    3.희생자
  팜 빌리지 서쪽 후미진 교차로에서 중고  칙업은 잠깐 멈춰섰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키 큰 사내가 가방을 집어 들더니 운전사에게 소리 없이 웃어 보이고 차에서 내렸다.
  얼굴이 검게 그을은 늙은 운전사는 키 큰 사내에게 미소로 답하고 곧 그곳을 떠났다.
  보란은 우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약간 저는 다리를 끌고 
나무가 우거진 어둠 속으로 향했다. 교차로에서 10야드쯤 떨어진 곳에서 그는 다시 잠깐 멈
춘 다음, 나무 뒤로 돌아가 적당히 몸을 숨기고 가방 위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교차로에서 잠깐 정차하더니, 곧 보란이 있는 쪽으로 미끄러져 왔다.
  "이봐, 여기서 내린 것 같아. 이 부근을 뒤져 보자구! 넌 계속 그 픽업을 쫓아!"
  둔한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차가 떠나는 소리도 들렸다.
  보란은 만년필식 플래시로 숲속을 비치며 조심스럽게 숲속으로 들어가 가방을 그곳에  숨
겨두고 다른 만년필 플래시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두 사내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느티나무 뒤에 숨어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한 사내가 희미한 
플래시 불빛을 따라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접근해 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만한 미소가 떠
올랐다. 사냥감을 앞에 둔 사냥꾼의 득의에 찬 표정 같았다. 보란은 소리없이 찻길로 내려와 
그들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두 사내는 총을 들고 희미한 플래시 불빛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
갔다.
  그 중 한 사내가 희미한 불빛에 비친 가방을 발견하곤, 곧 가방에다 총을 쏘았다.  그러자 
가방은 허공으로 튀어오른 뒤 저만치 굴러 떨어졌다.
  "바로 그놈이다, 그놈! 그놈을 잡았어! 우리가 그놈을 해치웠어!"
  총소리와 흥분한 목소리들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저 불빛은 또 뭐지?"
  "이상한데!"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사내들의 몸이 순식간에 꺽어
졌다. 비명 소리가 총소리에 말려 들었다.
  "으악, 프랭크……하느님!"
  비명소리가 주위에서 메아리쳤다.
  보란의 총에서 다시 총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잠시 후, 그들이 완전히 쓰러졌음을  확
인하고 그는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보란은 시체를 처리하는 시간도 아끼고 싶었다.
  그는 플래시로 가방을 비추어 보았다. 그리고 교차로로 내려왔다. 길가의 작은 덤불  속에 
숨어 그는 다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는 담뱃불을 붙여 맛있게, 그리고 깊이 들이마셨다. 그 순간 동쪽 도로가 환하게 밝아졌
다.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보란은 천천히 담뱃불을 밟아 끄고 총의 상태를 살폈다. 교차로 지
점에서 차가 멈추었다. 바로 보란이 숨은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엔진도 끄지 않고 헤드라이트도 켜놓은 채 한 사내가 바삐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지막
하게 소리쳤다.
  "프랭크, 콜리, 조심해. 그 친군 픽업에 없었어!"
  보란은 차 뒤로 다가가 살며시 몸을 붙였다. 그리고 쉰 목소리를 흉내내어 조용히 말했다.  
  "그 놈이 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았어!"
  사내가 대답했다.
  "뭐라구! 그놈……"
  갑자기 긴장한 사내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그는 묘하게 차 
바퀴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보란이 총을 겨누자, "보란!  안돼!"하고 그는 절박하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보란의  총소리와 함께  뒹굴었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보란은 사내의 몸 위로 총을 던지고  가방을 챙겨 차에 올랐다. 팜 빌리지를  향해 그는 전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분 후 그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보란은 조금 전 자신이 타고 왔던 중고 픽업을 볼 수 있
었다. 차는 찌그러졌고, 노인은 차옆에 다리를 뻗은 채 누워 있었다.
  순찰차가 가까이에 있었다. 경찰이 길 한쪽에 서서 보란의 차를 향해 플래시를 흔들어 댔
다. 차도에는 다른 차은 보이지 않았다.
  놀란 얼굴을 한 사람들 속에서 한 사내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해리 톰슨이 웬일이야! 이 지경이 되다니!"
  "총에 맞았어요"
  다른 목소리의 사내가 말했다.
  보란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조금 숙이고 경찰
관에게 공손히 말했다.
  "또 누가 다쳤소?"
  젊은 경찰관은 차를 앞으로 빼라는 손짓을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빨리 가시오. 곧 앰뷸런스가 올 테니……"
  "아직 살아 있습니까?"
  "신경 쓸 것 없소. 가시오, 어서!"
  "1마일쯤 떨어진 곳에서도 총소리가 났었는데 이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닌지……"
  보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조사해 보겠소. 그만 차를 빼주시겠소?"
  보란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찰관은 계속 신경질적이었다.
  보란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그곳을 떠났다. 그의 손은 자동차  핸들 위에서 분노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그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는 데서 더 참을 수 없었던 것
이다.
  그 노인이 죽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모든 것  잊기 
위한 듯 최고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주차장에 차를 댈 
즈음에는 그의 머릿속에는 분노도, 노인의 죽음도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는 걷는 동안 가방을 이 손 저 손으로 옮기기도 하고, 가끔 발목을 주무르기도 했다. 자
정이 훨씬 지난 시각에 그는 꽃으로 둘러싸인 뉴 호라이슨 요양소를 찾아냈다.
  그 요양소의 이름은 그에게는 퍽 친숙한 단어 중의 하나였다.
  베트남에 있을 때 짐 브랜튼은 그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었다.
  그는 마음을 쉽게 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누구와도 친할 수 있는 텁텁하고 소박
한 면도 있었지만 자신의 속마음만은 결코 털어놓는 법이 없었다.
  보란이 브랜튼의 목숨을 구해 준 일이 있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씩이나.  그러나 
그것 때문에 브랜튼을 찾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보란은 아직도 그가 자신을 반갑게 맞아 줄지 의문스러웠다.
  그는 자신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마피아에 의해서 차례차례 살해 당하고 있는 사실을 떠올
렸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뉴 호라라슨이란 간판을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들었다.
  '난 그들의 죽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9명을 죽게 했다. 아니  10명이
나…….'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들려 왔다. 보란은 뉴 호라이슨이란 간판에서 눈
을 돌렸다.
  본관 빌딩의 문이 열리고 불빛이 그 주위를 밝혔다. 낯익은  목소리가 보란의 귀에 와 닿
았다.
  "뭐하는 거요? 거기서 밤을 새울 거요, 들어올 거요?"
  
    4.불안
  팀 브래독 주임은 차에서 내려 해변가의  저택을 향하면서 공연히 모래를 걷어차고  있었
다.
  젊은 형사 칼 라이온스-그는 보란 사건을 맡으면서  줄곧 브래독과 함께 행동했다-는 건
물 주위를 돌아보고 주임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당했는데요. 주임님!"
  라이온스의 음성은 상상 외로 차분했다. 그러나 브래독은 아무 말도 않고 모래가 덮인 길
을 따라 걷기만 했다. 가면서 그는 곧 모래에 선명히 찍힌 타이어 자국을 발견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이나 그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이 자국으로 봐서 무슨 차종 같나?"
  그는 라이온스를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라이온스가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그 바퀴 자국을 살펴보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는걸요. 저쪽에도 이런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그쪽엔 위장 텐트도 처져  있어
요"
  "또 다른 건?"
  브래독은 힘들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라이온스가 그에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마 이곳이 그들의 본부였나 봅니다. 두 개의 바주카포, 연막탄, 수류탄 등 각종 무기들
이 있었어요. 절벽 아래 해변 쪽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에는 타깃과 화약고도 있었어요. 
아, 그리고 이것도……"
  그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주임에게 건네 주었다. 브래독은 봉투 속에 든 스냅 사진들
을 훑어보았다.
  "비버리 힐스의 디조지가 사는 곳입니다. 그들은 그곳을 샅샅이 조사했던 것 같습니다."
  브래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진을 라이온스에게 다시 건네주고 건물 가까이로 걸어 
갔다.
  "이 사진들을 본부로 보내!"
  라이온스에게 지시하고 그는 다시 덧붙여 말했다.
  "좋은 증거물이 될 것 같은데……. 그래, 나중에 아주 중요한 증거물이 될 거야!"
  그들은 건물 주위를 빙 돌아보았다.  브래독은 위장 텐트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폭력 가중죄, 불법 무기 소지죄, 송신기 불법 사용……. 이런 죄목으로도 이미 보석은 신
청할 수가 있어."
  리용이 브래독을 바라보며 거들었다.
  "우린 그들 모두를 감옥으로 보낼 만한 혐의 죄목을 충분히 갖고 있는 셈이군요."
  "혐의가 곧 처벌이 되는 건 아니야. 자네도 그 차이를 알아야 돼. 한 가지 기억할 점은 존 
그랜트 같은 일급 변호사를 동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
  "그랜트는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요구할 텐데요?"
  라이온스는 그렇게 말하며 주임을 따라 안뜰로 들어갔다. 브래독은  총알 구멍이 뚫린 타
깃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표적을 보니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존 그랜트 같은 변호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만한.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
입니꺄?"
  라이온스가 다시 물었다.
  브래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잘난 매춘부들한테서지. 또 그런 멍청이 같은 질문은 하지 말게! 자네도 알잖아? 보란
은 마피아의 돈을 몽땅 털어갔어!"
  "아, 그렇겠군요."
  라이온스가 풀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지에서 온 보고서를 보고 알았는데, 폰테넬리의 아이들을 위
해 많은 신탁 기금이 예치되었다는 거야. 잊었는지 모르지만  폰테넬리는 보란과 같이 행동
하다가 첫 번째로 희생된 자야. 비버리 힐스의 총격 사건 때였지."
  "아, 그래요? 그 보고대로라면 보란은 죽은 자와 그 가족에게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나 보
죠?"
  라이온스는 중얼거리며 보린이 자기 집을 찾아 왔을 때를 생각했다. 거실 입구에 서 있던 
그 키 큰 남자를…….
  "물론이지. 언젠가 보란과 일하다 희생된 자들의 가족을 찾아가 물어 보았더니 보란이 계
속 도와 준다고 했어. 보란은 돈이 필요하면 마피아를 치면 되는 거야. 그러니 희생된  가족
들에게 송금되는 돈, 그 돈의 발신지를 계속 추적하면 보란을 결국 만날 수 있다는 얘기야."
  라이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젯밤 이후, 그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브래독은 얼굴을 찡그리며 저택에서 도로까지 연결된 바퀴 자국을 바라보았다.
  "이 흔적은 뭐라고 보고하지?"
  라이온스는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저…… 모든 입구에서 전자 방책과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보란은 그 장치를 이용
해 방 안에서도 건물 밖의 상태를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의 솜씨는 일류급에 속하죠. 길바
닥에 나 있는 두 군데의 포탄 자국을 봤어요. 실험실에서 그 파편들을 조사 중이지만 제 생
각에는 보란은 고성능 라이플로 갈겨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모젤 총이 그곳에서 발견되
었습니다."
  라이온스는 브래독을 뜰의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 기관단 총을 보여 주었다.
  "여기 이 장치를 보십시오. 보란은 자동으로 방아쇠가 당겨지게 한 다음 재빠르게 자동차
를 타고 사라진 겁니다. 마피아들의 포위망을 뚫고서요. 차가 불탄 자리에 바퀴자국이  선명
하게 있잖습니까?"
  브래독은 몸을 구부려 기관 단총의 발사 장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낮게 내뱉었다.
  "이젠 지겨워! 생각해 봐, 만약 우리가 마피아보다 먼저 보란을 잡으러 이곳에 왔다고 가
정해 보게.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참상이 벌어졌겠지?"
  브래독은 힘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라이온스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보란이 우리에게 저항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의문이라구? 이 봐, 자넨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옛말도 못 들었나?"
  브래독이 똑바로 선 자세로 손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글쎄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난 그 친구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있었어요. 또 그와 이
야기도 나누었죠. 그는 상식을 넘어서는 악한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진 않아. 보란은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어. 생각해 보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의 심정을 말이야. 자네가 그를 계속 구석으로 몰고 간다면 그는 총을 사용하겠지. 
어젯밤 여기서 했던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말도 꺼내지 말게. 난 지금 아주 난처하단 말이야. 보란이 벨보어에서 자네 차를 타
고 우리들의 포위망을 빠져 나갔다는 사실로 말이야."
  라이온스는 화가 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브래독 주임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라이온스가 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브래독은 
허공을 행해 주먹질을 해대며 소리쳤다.
  "난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어, 잊지 못해!"
  브래독 주임에겐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수년 동안 집요하게 
갈구하던 목표였다. 시민의 지팡이로, 이 분야에서 일한 대가로 언젠가는 경찰의 최고  우두
머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 전쟁에서  쓰던 게릴라 전법 
같은 방법을 이곳에서도 은밀히 서로를 견제하며 자신들의 출세에 이용하고 있어  브래독의 
계획에 심각한 방해요소가 되고 있었다.
  브래독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도 보란을 잡아야 했다. 이 일이 실패하면 능력 있는 경
관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을 입게 되지 않겠는가?
  브래독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차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경찰 교환실과 연
결되어 있는 무전기 마이크를 들었다.
  "브래독이다. 죽은 시체더미밖에 보이지 않는다. 곧 돌아가겠다."
  "포스터 경감이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교환이 알려왔다.
  "그래? 바꿔 줘."
  곧 앤디 포스터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팜 빌리지 근처에서 어젯밤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어젯밤? 왜 이렇게 보고가 늦었나?"
  브래독의 음성이 한 옥타브 높아졌다.
  "그곳 경찰서에서 잘못 판단한 때문입니다. 들어오시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빨리 헬리콥터를 보내 주게. 그리고 현장으로  빨리 가게. 내가 도착하기 전엔  아무것도 
손대지 마!"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그는 순찰차 밖으로 뛰쳐 나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라이온스!"
  라이온스가 저택안에서 달려나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브래독 앞에 섰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자네 차와  내 차를 본부에 갖다 두라고  해. 우린 헬리콥터를 타야 
하니까."
  "네?"
  "그 쥣새끼를 쫓을 기회를 너에게 한 번 더 준다. 그 쥐새끼 말이야! 라이온스. 유럽의 로
빈 후드를 흉내내는 그놈 말이야! 알아듣겠어?"
  "물론입니다!"
  라이온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대답했다.
  '이젠 놓치지 않겠다. 넌 꼭 내 손에 붙잡혀야 한다.'
  라이온스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건물 한쪽 구석으로 뛰어 갔다. 브래독은 안절
부절 못하며 손을 마주잡고 마구 비벼대고 있었다. 아직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꿈이 사라지
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까짓 보란 같은 악당 때문에 그 계획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자제력을 잃을 정도롤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눈을 치켜 뜨고 심
복 루이 페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내 말 좀 들어! 난 네가 울면서 용서를  비는 건 바라지 않아. 넌 팜 빌리지가 이곳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인지 알고 있나? 이제 그 구역질 나는 변명 따위는 그만둬!"
  "다른 할 말은 없습니다, 디스. 나도 그 쥐새끼 같은 자식이 그렇게 빠를 줄 은 몰랐어요. 
정말 뭣에 홀린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얻은 것도……."
  페나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얻었다구? 그 힘없는 노인과 다 부서진 픽업  한 대? 그러나 넌 날랜 부하 다섯을  잃었
어. 뭘 얻었다는 건가? 더 이상 할 말 있어?"
  "내 말은…… 그 보란이란 놈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냈다는 거죠."
  "그것을 도대체 말이라고 하나? 여기  이리로 온단 말이야! 알고  있어, 루? 이미 여기에 
와 있을지도 몰라! 이미 와 있을 거라구!"
  "걱정 말아요, 디스. 밖에는 30명이나 되는 애들이  지키고 있어요. 여기선 어젯밤처럼 날
고 길 수는 없을 겁니다."
  디조르쥬는 신경질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천장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페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도대체 너희들을 어떻게 믿겠나?"
  디조르쥬는 의자를 걷어차고 또 걷어찼다.
  페나의 눈이 담배 연기를 쫓아 천장으로 향했다. 그는 엉거주춤 서서 지나가는 말로 이렇
게 묻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이 뭐죠, 디스?"
  "자넨 이제 한물 갔네, 루."
  갑자기 디조르쥬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네?"
  "자넨 물러설 때가 된 것 같아."
  "아, 디스. 왜 그런 말씀을!"
  "그렇다면 보란의 머리를 갖고 와!"
  "꼭 갖고 오겠습니다, 디스!"
  "잘해 봐. 차 5대를 가지고 가, 루. 솜씨 좋은 애들로 골라 가! 빨리 보란을 내 앞에  끌고 
오란 말이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올 생각을 마!"
  "기필코! 디스, 믿어 주세요!"
  "이 세상에서 보란의 머리보다 더 필요한 게 없어. 내 말 알겠나, 루?"
  "명심하겠습니다."
  "당장 나가! 뭘 꾸물거려!"
  페나는 허겁지겁 그의 앞에서 물러 나왔다. 디조르쥬가 말한  대로 보란은 이곳으로 쳐들
어 올 게 분명하다. 디조르쥬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루이 페나는 그 물음이 쓸데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계속 묻고 있었다.
  그의 목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없다. 보란의 목, 그게 전부다.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보란, 네 놈의 목은 내가 가져야겠다!
  
    5.성형 수술
  세상에는 자기 나름대로 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짐 브랜튼도 그들 중의 하나였
다. 그는 물질적인 부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도박 따위도 싫어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필요
로 하는 사람에겐 아낌 없이 의술을 베풀었으며, 그야말로 의학의 한 특수한 분야를 연구하
는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는 성실한 의사였다.
  그에게 있어 성형 수술이란 예술이며,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창조적 행위였다. 그는  아름
다움이란 피부에서 우선 가늠된다고 생각하며, 개성이나 정신과 육체적인 것은 그 다음으로 
미루는 괴팍한 의사였다. 그는 개성이나 정신이 황폐해지면 그에  따라 외모도 볼품없이 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짐 브랜튼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
고, 무엇보다 외부에 나타나는 건강한 피부를 제일로 치는 성형 외고 의사임을 모르는 사람
은 없었다.
  짐 브랜튼은 베트남 전쟁에 군의관으로 자원 입대했었다. 거기서 맥 보란을 만났다.  그는 
보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키 크고 냉정해 보이는 이 특수 부대 중사는 때때
로 상처 입은 베트남 어린이를 그의 야전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치료가 끝
날 때까지 천막 밖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브랜튼은 그 보란이라는 
자가 소문과는 달리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군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곤 했다.
  브랜튼은 전쟁과 그에 따르는 파괴행위를 싫어했지만 보란과 같은 타입의 남자는  좋아했
다. 그는 전장에서의 인간성 상실과 전술의 야비함을 증오했지만  반면에 군인들이 죽기 아
니면 살기로 덤벼드는 그 자세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브랜튼은 물론 보란의 특이한 성격도 알고 있었다. 보란이  살인을 계획하고 군사적인 암
살을 자행하고, 그래서 킬러란 별명을 갖게 된 연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보란을  좋아했
다. 보란이 어떠한 위험 앞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았다. 부상당한 어린이를  야전 
병원으로 안아 나르는 보란의 눈빛에서 어떤 연민에 찬 괴로움 같은 걸 본 적도 있었다. 그
러나 보란은 군인이었다. 직업적인 군인답게  정확하고 용기 있는 그의  행동은 브랜튼으로 
하여금 존경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하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끔 해주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보란이 국내에서  마피아와 싸우고 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빠뜨리지 않고 보아 왔다. 베트남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마피아와의 외로운 투쟁은 불가능한 
것이리라고 생각하며…….
  법과 암흑 세계 양쪽으로부터 쫓기는 신세인 맥 보란이 곧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는 예감
을 브랜튼은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만약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맥 보란에
게 얘기해 준다면 그는 두  말 않고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두 가지 
길밖에는 없었다. 위장된 얼굴로 살아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대로의 얼굴로  싸우다가 
죽음을 당하는가는 모두 보란 자신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었다.
  브랜튼은 맥 보란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만남은 
거의 형식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굳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몇 마디를 나누었다.
  "자넬 기다리고 있었네!"
  브랜튼이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겠나?"
  보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알아, 자넨 아름답게 변신하고 싶어진 거지?"
  "그 짓을 하다 마피아에게 당할 거야, 자네도."
  보란의 빈정거림에 브랜튼은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속된 인간은 아니라구."
  "내가 말하는 뜻을 알겠나, 짐?  그 친구들은 다른 사람이 제일에  끼어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
  브랜튼은 보란을 데리고 텅 빈 로비를 지나 구석진 조그만  방으로 데려 갔다. 늙은 독신 
남자에겐 적당한 방이었다.
  "자넨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군."
  브랜튼이 보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네의 그 얼굴은 누구도 즐겁게 해줄 수 없는 울상이라구, 맥. 새로운 얼굴로 여자를 흥
분하게 만들고 싶지 않나? 젊은 미인? 중년 부인?"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끝낼 수 없겠나?"
  짐 브랜튼은 껄껄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스케치북을 보란에게 던져 주었다.
  "그게 내 솜씨야. 어느 것이라도 가능해. 자네 맘대로 골라 보게."
  보란은 스케치북을 넘기던 손을 갑자기 멈추고 낄낄대고 웃었다. 다음 장으로 넘기려다가 
그는 다시 자신을 웃겼던 페이지로 되돌아갔다. 이번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스케치
북을 툭툭 쳤다.
  "자넨 오랜 생각 끝에 이 타입을 만들어 낸 건가, 아니면 우연히 이런 게 나왔나?"
  브랜튼은 몸을 구부려 스케치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중
얼거렸다.
  "아, 그게…… 비슷한데…… 비슷하긴……."
  "내 옛날 친구야. 아주 그대로 쏙 뺐어. 자네 날 이렇게 만들어 줄 수 있나?"
  브랜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렇게 잘생기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자네가 원한다면야……. 맥,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그래. 자네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보란이 스케치북에 눈을 준 채 물었다.
  "전화를 하면 보조 간호사가 5시까진 도착할 거야. 그러면 6시엔 수술에 들어갈 수 있네."
  브랜튼이 대답했다.
  "빠를수록 좋아. 일어서서 걸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건 언제야?"
  "국부 마취를 해야 돼. 침대에 누울 필요도 없어. 눕지 않는게 더 낫지. 자넨 몸이 건강하
니까. 그래도 아마 며칠쯤 이곳에 있어야 할 걸세."
  보란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전에도 부상 덕분에 누워 있은 적이 있었어, 짐. 그때처럼 오래 걸리면 안 돼. 난 이곳을 
빨리 떠나야 하니까."
  "최선을 다하겠네."
  브랜튼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흉터가 완전히 감춰지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브랜튼은 웃었다.
  "내 기술이면 여기와 여기만 살짝 자국이 날 뿐이야,  맥. 코는 빼놓고. 코는 마지막에 치
료해야 해. 1주일이면 충분해. 아주 까다로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기술적으로 다  해결된다
구. 극히 사소한 문제야."
  보란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에? 더 빨리 시작할 순 없나?"
  "급하게 서둘면 실수를 할 수도 있어."
  보란이 얼굴을 찌푸렸다.
  "서둘러 주게, 난 여길 몇 시간 내로  떠나야 될 입장이야. 내 발목도 이젠 좀  쉬게 해야
지."
  "고통이 따를 텐데?"
  "지금까지 난 줄곧 고통 속에서 살아 왔어."
  "그래 서두르지……. 마지를 빨리 오라고 해야겠군. 그녀에게 의심 살 만한 말은 삼가해야 
해. 자네 얼굴은 사람들에게 너무 알려져  있어. 미리 준비를 완료해 놓고 그녀에겐  체크만 
하라고 해야겠네. 자넬 알아 볼 수 없도록 말이야."
  "그녀가 없으면 수술이 안 되나?"
  "글쎄 그게……."
  브랜튼은 망설였다.
  "베트남에선 자네 혼자 했잖은가?"
  "그땐 극한 상황이었으니까."
  브랜튼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금은 아니구?""
  보란이 싱긋이 웃으며 물었다. 브랜튼도 심각한 표정으로 보란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음
을 터뜨리며 말했다.
  "좋아, 중사! 마음의 준비를 하라구!"
  보란은 스케치북을 브랜튼에게 돌려주며 눈짓을 했다.
  "환자 대기 완료, 의사 선생님!"
  
    6.평화스런 마을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데스벨리 지역으로 들어  가기 전에 쉬어가던 팜 빌리지가  최근에 
와서는 한적한 농경 지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혜택도 못 받고 20세기의 급진
적인 산업 발전의 대열에도 끼지 못했던 팜 빌리지는 휴양차 놀러 오는 사람들이나 은퇴한 
시골 출신 노인네들이 돌아와 사는  것으로 차츰 변해 갔던 것이다.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 조용히 변모하고 있었다.
  4각형 모양의 이 마을은 원래는 광산촌으로 개발되었는데, 주민들이 고속도로가 세워지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점점 낙후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도 오래된 살롱과 쓰러질 듯한 맥주
집들이 길가에 즐비했고, 토요일이면 카우보이와 농부들이 벌이는 싸움판을  볼 수 있는 곳
이기도 했다.
  이 마을에도 매춘부가 여럿 있었는데 워낙  주민수가 적다 보니 경찰들도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매 주말마다 자진해서 경찰서에 출두해 21달러 20센
트의 벌금을 물곤 했다. 이런 일들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때문에 마을의 풍속이 파
괴되는 일은 없었다. 더구나 노인네들이 특별히 그들을 옹호하고 나섰는데, 그 이유는  사람
들은 이성과 논리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데 그걸 깨닫는 데는 그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었
다. 한편, 경찰측에서는 그들이 내는 벌금으로  경비지출을 할 수 있어 모두 만족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로버트 콘은 5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리호리하고 단단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
었다. 젊어서의 고생으로 인해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는 이 키 큰  남자는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게리 쿠퍼를 연상시켰다. 실제로 콘 역시 2차 대전이 끝난 그 직후부터 경관 
노릇을 해왔고 작은 파출소의 소장을 지낸 적도 있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경찰 아카데미를 나왔는데 잠깐 LA경찰서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
다. 그곳에서 한국 전쟁에 참가하기 전까지 텍스스 주에서 근무를 했다. 한국 전쟁에서 돌아
온 후로는 팜 빌리지의 요직을 맡아 일개 시 보안관 사무실을 마를의 행정에 관여하는 대표
기구로 바꿔버렸다.
  콘 자신은 이런 변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런 변화조차 인식하는 사람이 없었다. 팜 빌리지는 그에게 대도시 못지 않은 안정된 생활과 
안락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크고 작은 싸움을 너무나 많이 겪었다. 그는 더  이상 그런 꼴을 보고 싶
지 않았다. 이제는 폭력이 개입된 일이라면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었다. 콘과 그의  아내 
돌리는 적당한 크기의 집에서 편히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 이상 더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편안함과 조용한 일상 속에서 세월은 마
냥 흘러 가고 있었다.
  10월 5일 아침, 콘은 이제까지 유지돼 왔던 안락한  생활이 느닷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
을 지켜보아야 했다. 도시에서나 일어날 듯 싶은 사건이 이 팜 빌리지에도 들이닥쳤던 것이
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는 폭력으로 인한 살생이 일어난 것이다.
  장례식장에는 낯선 건달 3명의 시체가 있었다.
  LA에서 큰 사건만을 주로 다루는 팀 브래독 주임이 콘을 만나러 그곳에 와 있었다.
  "이곳에 맥 보란이라도 나타났나요?"
  "여긴 이렇게 항상 더운가? 대체 어떻게 이걸 견디나?"
  브래독 주임은 다짜고짜 날씨에 대한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그는 이마의 땀을 손으로 훔치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우 32도밖에 안 됩니다."
  콘이 대답했다. 그는 약간 과장해서 덧붙여 말했다.
  "아침은 비교적 서늘한 편입니다. 오후는 더 심할걸요."
  그는 시청과 감옥 그리고 경찰서로 쓰이는 건물로 브래독과 라이온스를 안내했다. 브래독
은 라이온스를 앞장세우고는 뒤로 처져 걸었다. 세 사람은 시민 봉사실이라고 쓰인 문 앞을 
지나 좁은 복도로 들어섰다.
  에어컨이 풀 가동되고 있는 복도가 거의 끝나는 곳에 콘의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 창문
에는 열대 지방용 쿨러가 장치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불투명한 유리가 달린 문 깊숙히 
처박힌 그물 침대 그리고 책상 건너편엔 감방 문이 열린 채였다.
  "이게 감옥입니까?"
  칼 라이온스가 물었다.
  "그렇소. 손님이 하도 드물어서. 토요일이면 가끔 들어차는데 그들이 풍기는  냄새를 참지 
못할 거요. 월요일마다 타일 기름을 붓고 그대로 마르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열쇠 구멍에 넣어 보면서 콘이 말했다.  브래독과 라이온스는 앉으란 말도 
없었지만 스스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라이온스는 더러운 얼룩이 묻어 있는 가죽 소파에, 브
래독은 책상위에 걸터 앉았다. 콘은 방 가운데 놓인 의자에 편안히 몸을 기댔다. 모자를  뒤
로 넘겨 이마를 문지르면서 콘이 말했다.
  "이곳에, 제가 관할하는 이 마을에 맥 보란인지 뭔지 하는 놈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이유는 뭡니까?"
  "육감이야, 즉각 동원할 수 있는 이곳 병력은 몇 명쯤 되나?"
  "12명. 저를 제외하고 그렇습니다. 3명씩 교대로 근무를 시키고 있습니다."
  권태로운 음성이었다. 콘은 피곤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전원이 근무하는 날은 토요일뿐입니다. 그땐 철야를 하죠. 차는  2대밖에 없고, 그 중 고
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건 1대뿐입니다. 가끔 6명이 근무를  할 때도 있는데 나머지는 집에
가서 발 뻗고 잠이나 자는 거죠."
  그는 콧소리를 내며 시거를 집어 들었다.
  "우리 경관들 월급이 얼만지 궁금하지 않소?  감격의 눈물 한방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요. 전 매일 20시간씩 근무합니다. 가끔  아내와 LA까지 가서 진탕 마시고 오는  일 외에는 
말입니다. 으음, 그러니까 주임님 말씀은 저 장례식장에 누워 있는 세 구의 고깃덩어리가 맥 
보란에 의한 것이란 얘기신가요?"
  콘은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브래독을 주시하며 물었다. 브래독은 불편
한 듯 앉은 자세를 바꾸었다.
  "1주일 전부터 보란을 잡아 들이기 위해 온 정력을 다 쏟고 있다네. 그래서 전 지역에 도
움을 요청해 두었지. 우린 이 마을 같은 외곽 지대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다네. 자네가  조금
만 일찍 어젯밤 사건을 보고해 주었으면 지금쯤 우리가 보란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
을 텐데……."
  콘이 브래독의 말을 가볍게 되받으며 설명했다.
  "어젯밤 우리 부부는 공교롭게도 LA행이었지요. 그리고  경비상태를 말하자면 우리 서의 
경관들은 그렇게 먼 곳에서 일어난 일까지는 신경을 못 쓰는 형편입니다."
  그는 시거의 끝을 이로 잘라 내고 그것을 질근질근 씹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마을 밖에서 벌어진 사태를 책임져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여기서 2마일이나 떨어진 곳인데다…….
  브래독은 씁쓸한 표정이 되어 라이온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콘을 돌아보며 말했
다.
  "이곳에 임시 수사요원을 배치해도 되겠나, 콘?"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콘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인가?"
  "이 마을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 주십시오.  우리 마을의 평화가 깨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이곳 치안은 우리가 할 일이니까.  보란을 원하신다면……좋아요. 이곳을 뒤
져 그를 데려 가십시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곳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는 마십시오."
  "물론,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네."
  브래독이 확언했다.
  "그리고 또, 주임님의 부하들이 이곳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브래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일을 해결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브래독은 한숨을 쉬며 라이온스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만……."
  라이온스가 말했다.
  콘은 손바닥을 펴고 씹고 있던 시거 조각을 그 위에  뱉어 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
로 눈을 똑바로 뜨고 LA의 경찰 간부를 쏘아보며 말했다.
  "무슨 뜻이오?"
  "우리가 보란을 발견하게 되면 분명히 마피아의 총잡이들도 달려들겠죠?"
  "전 이 마을에서 총소리가 나는 걸 절대 원치 않습니다. 브래독 주임님! 조용히 해결해 주
십시오."
  콘이 다시 부탁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이 전화 쓸 수 있나?"
  브래독이 전화기를 끌어당기며 콘에게 물었다.
  "요금만 내신다며."
  "뭐야?"
  "요금 말이요. LA까지 45센트입니다."
  라이온스는 씩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브래독의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재미있
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이 전화기의 숙자 버튼을  톡톡 두들기는 옆에서 라이온스
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응답이 없습니까?"
  콘이 브래독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그는 담배를 깊이  빨아 들였다가 연기를 내뿜으며 
웃었다.
  "아, 통화중인 모양이네."
  라이온스는 손으로 목을 가르는 흉내를 내며 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또다시 콘에
게 윙크를 보냈다.
  콘은 젊은 형사에게 윙크로 응수하며 다시 시거의 끝을 자라  그것을 씹었다. 그는 이 젊
은이의 밝은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브래독이란 친구는……. 콘이 주임을  못마땅해 
하는 것을 라이온스는 알고 있었다. 브래독도 그런 눈치를 채고 있을 것이다. 그의 얼굴에도 
역력히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콘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중요한 새 사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맥 보란이 
아직 이 마을 부근에 있다면 그것은 그의 관심을 끄는  무엇이 여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마 LA의 거물급 형사 나으리들고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이룩해 놓은 이 도시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는 이 사건을 얼마간 지켜보리고 마음을 굳혔다.
  
  7.계획
  코사 노스트라는 루이 페나가 알고 있는 유일한 친척이었다. 
  페나는 20년대 초 동부 할렘 가에서 폐렴으로 다 죽어  가는 어머니와, 감옥에 자주 드나
드는 등 거렿게 자랑스럽지 못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거의 이웃 사람들의 도움에 으존
해 자라났다.
  이 팔자 사나운 어린아이는 일찍부터 길에서 자는 법을 배웠고, 사람들이 던져 주는 빵조
각을 달갑게 받아 먹는 자세도 익혔다. 그의 출생지는 유태인과 이탈리아 인, 아일랜드 인들
이 섞여 사는 곳이었다. 따라서 인종끼리의  불화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 
페나에게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아일랜드 인들이 건네 주는 
수프 한 그릇이면 더 욕심부릴 게 없었다.
  페나의 나이 8살 때, 그의 인생은 극적인 궤도 수정을 하게 되었다. 죽은 어머니의 조카가 
어린 그를 데려다 키워 준 것이다. 
  페나는 21살의 쿠지나 마리아라는 그 여인에게서 가족의 따뜻함을 맛보았고, 그가 이타리
아 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게 되자 처음에는 그 생활이 싫었으나 차츰 익숙해져 나중에는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시작했다. 페나는 6년 동안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러던 중 마리아는 <180번 가의 습격자들>이란 갱 조직에 끼여 들게 됐는데 어린  루이
는 그 새로운 환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14살의  페나는 마리아 몰래 학교를 집어 
치우고 때때로 습격자들의 일을  도왔다. 마리아의 애인이기도 한  <제3의 다리>라는 조니 
밑에서 일했다. 그 당시는 갱들이 판을 치던 암흑 세계였다. 코사 노스트라 가도 이때  튼튼
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페나는 14살 때 그 해의 반을, 그 다음해의 3분의 1을 감화원에서 보냈다. 그때  운동장에
서 동료를 칼로 찌러 죽인 일이 있었으나 요행히 미친 사람 행세가 통해 주립 병원으로  옮
겨졌었다. 그는 16살의 생일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노 늘 법망을 피해 다니다가 코사 노스
트라 가에 입문하게 되었다. 마피아로서 그는 차차 실력을 인정받았다. 행동 단원으로  카포
의 수행원이 되더니 드디어 가문의  간부로 들어 앉을 때까지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활 중에 현재의 보스 디조르쥬를 만났다. 디스는 당시 로스엔젤레스 가의 초기 무
렵 카포레짐(부지부장. 카포의 다음자리) 카토 지배 체제의 지배층에 있던 인물이었다.  <변
태 루이>란 별명이 오랫동안 페나를 따라다녔는데 얼굴만은 말끔했다. 그는 맥 보란이 디조
르쥬의 심복들을 몰살한 그 뒤에, 즉 비버리 힐스 사건 뒤에 바로 카포 밑으로 들어오게 되
었다.
  마피아와 결혼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충성스런 페나는 디조르쥬에게도 쉽게 인정을  받
았다. 그는 이런 신분적 상승은 그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 내에 별다른 인물이 없
었던 덕분이었다. 그는 우둔한 편이었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패기와  마피아 조직에 대한 맹
목적인 충성으로 그 핸디캡을 극복해  냈다. 어느 누구도 <변태  루이>의 계승을 반대하지 
않았고, 그는 카포가 기뻐할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맹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게
다가 맥 보란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 카포의  코 앞에 바치겠다고 큰 소리까지 치고 있었
다.
  페나는 10우러 5일 아침 5대의 캐러밴을 일끌고 팜 빌리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서
적 세일즈로 위장한 윌리 워커(그는 조제프 지아나미의  친척이다)란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
다.
  위커는 로드타운 스퀘어에 상가를 하나 빌어 사무소로 쓰고  있었다. 그는 차를 그곳까지 
들어오도록 했다. 테나의 부하들이 차 뒤 트렁크에서 책을 부리는 동안 워커는 경관과 잡단
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25명이나 되는 페나의 부하들이 건물 안으로 어슬렁거리며 사라지자 워커는 경관
에게 이곳 미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을 붙였다. 페나도 
거들었다.
  "차라리 건물 안보다 차에 에어컨을 틀고 그 속에 앉아 있는 편이 낫겠어."
  "그래도 세금은 내야 할 거요."
  경관이 웃으며 대꾸했다.
  "많진 않소. 당신이 장사를 잘 하도록 그들이 지켜 줄  거요. 한 사람당 5달러, 이 보급소
를 빌리는 데 주 50달러, 그리고 상공 회의소에서 회비 조로 50달러를 거둬 가죠."
  워커는 음흉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하긴 다 살려는 짓이니까, 윌리."
  테나는 은밀히 뭐커를 한쪽으로 불러 말했다.
  "조건은 어쨋든 좋아. 아이들이 짐을 푸느라고 바쁘군. 조심하라고  해! 책 밑에는 중화기
들이 있어."
  "알겠습니다."
  "책을 쌓아 놓으라구! 보기 좋게 말이야. 상자들은 상표가 붙어  있는 쪽을 잘 보이게 해. 
누구든기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자구."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천장 모서리를 바라보며 페나는 말했다.
  "빨리빨리 하고 차로 돌아가 있어. 이곳의 습시를 없애는 일이 급해. 망할!"
  그는 손을 뻗어 워커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명단 좀 주게. 이 근방에 누가 사는지 알아 봐야겠어. 잘 친해 둬야지. 나중에 도움이 될
지 모르니까."
  위크를 하며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그는 보급소 입구로 걸어가다가 워커를 돌아보았다.
  :차 안에 선풍기라도 하나씩 설치하고 뒤 유리창엔  책을 쌓아 두게. 부하들에겐 각자 책 
한 권씩을 손에 들고 있도록 지시하고, 차 한 대는 비상시를 위해 통로에 바짝 대 놓게."
  워커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페나가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그의 지시대로  되어 있었다. 진짜 서적 도매상처
럼 점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워커는 시청에서 산 이 도시의 지도를 벽에 붙여 놓았다.  각 지구마다 이름이 자세히 명
기되어 있었다.
  "이 도시를 다 커버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페냐가 물었다. 윌리 워커는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3,4시간이면 모든 집 대문을 다 한  번씩은 두드릴 수 있을 겁니다. 행동을  빨리 한다면 
말입니다. 정확히 점검하려면 대략 5,6시간쯤?"
  "빠를수록 좋아. 저 주차장을 특히 잘 감시하도록 해."
  "네?  주차장을?"
  지도에서 눈을 뗀 워커가 자신의 보스에게로 눈을 돌리며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줄리오의 차, 보란이 분명 그걸 저곳에다 처박았을 거야. 지나가다 얼핏 봤는데 핏자국이 
묻은 시트하며 키도 그대로 꽂혀 있었어."
  "어떠헤 할 생각이십니까. 루이?"
  "경찰들이 차를 끌어갈까 봐 그래.  그런데 윌리, LA경찰국 소속의 형사  2명이 경찰서로 
들어갔어."
  "그래욤?"
  "틀림없었어. 자넨 우리 애들을 시내로 내보냈나?"
  "그럼요"
  "윌리, 난 <그럼요>라고 대답보다 <당연하죠>라는 대답을 원해!"
  "알겠습니다. 애들이 팔아 올 겁니다. 모두 세금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요."
  페나는 코를 쓱쓱 뭍지르며 그 도시를 크게 확대시킨 지도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 빨리 행동 개시해! 줄리오의 차를 지키도록 하라구! 그리고  경찰의 잔꾀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 그리고 모두에게 보란의 사진을 한 장씩 나눠 줘. 그자와 마주쳐도 몰라본다
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윌리……."
  "네 루이?"
  "한 가지, 우린 보란을 없애기 위해  이 도시로 왔다는 사실을 애들에게 꼭  명심시켜. 닭 
쫓던 개 꼴이 되긴 싫다. 그렇지만  보란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를  반드시 사로잡아야 돼. 
시체를 보았다는 정보를 가지고 오려면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 게 나아. 내말 알아듣겠나?"
  "알고 있습니다. 루이.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정예 전투원입니다. 그 까마귀  같은 보란을 
꼭 생포해 오겠습니다."
  "그래. 디조르쥬도 우리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어."
  "경찰이 먼저 선수를 치면, 루이?"
  "글들에게 사상자가 생기겠지. 이 일을 경찰에게 선수를  빼앗기면……어떻게 되는 지 알
고 있겠지?"
  보급소 내의 분위기가 돌연 살벌해지는 것 같았다. 윌리  워커네게는 특히 그렇게 느껴졌
다.
  베테랑급 마피아의 행동 대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루이!"
  
  8.지옥으로 가는 길
  맥 보란은 짐 브랜튼의 침실에서 커다란 안락 의자에 누워 취고 있었다. 몇 주일 전 동부 
지역에서 떠나올 때 믄발이었던 머리칼은  검은 빛이 돌았고, 귀 밑  구레나룻 부근은 좀던 
묘한 빛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곳의 털은 모두 다 그랬다. 양쪽 눈두덩이  부근
과 광대뼈에는 플라스틱을 삽입시키는 수술을 했다. 보란의 코  주위엔 붕대가 감겨져 있었
다.
  "기분이 괜찮나?"
  브랜튼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물었다.
  "굉장해. 역시 생각대로야."
  겨우 달싹이는 입술로 보란이 말했다.
  "바람 좀 쐬겠나?"
  브랜튼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모란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야. 이게 나라니! 이 너절한 붕대를 풀어 내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
나?"
  "그 붕대 덕분에 상처가 아무는 거야. 건강 상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 1주
일쯤이면 돼. 혹 2주일이 될 수도 있겠지. 그게 꿰맨 데가 아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시간
이야. 맥! 그때까지 참아. 그대로 놔 두면 저절로 아물 테니까. 그 신비한 현상을 기다려 봐. 
그때는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분홍빛 살결이 나타날 거야."
  "이렇게 간단한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어."
  보란은 조금씩 입술을 움직이며 말햇다. 
  "그렇게 간단하지만도 않았어.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면 쇠로 긁는 듯한 통증을 느낄 거야. 
이곳과 또 이곳에 원래의 뼈를 빼내고  플라스틱 뼈를 삽입했어. 코에서도 많이 긁어  냈지. 
아주 천천히 플라스틱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거야. 그리고  우넣나다면 다시 원상태로 바
꿔 놓을 수도 있어. ……그러나 그러고 싶은 생각은 안 들 거야."
  "정말 다시 바꿀 수도 있나?"
  짐 브랜튼은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론이지. 다시 그대로 환원시킬 수도 있어. 날씬한 여자의 가슴. 히프 선들을 예술
적으로 뜯어 고치는 광경을 자네가 직접 봤어야 하는데."
  보란은 웃으려 했으나 얼굴의 근육들은 석고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 여자를 남자로 뜯어 고칠 수도 있나?"
  "물론 그것도 할 수 있지. 자네가 한 성형은 우리가  보통 하고 있는 수술 중에서도 기초
적인 거야. 난 자네의 신경 조직을 재결합할 필요도 없었어. 이쪽과 이쪽의 방향만 틀어  주
면 되었거든. 자네 얼굴을 유심히 관찰해 보게. 자넨 이제 내 지시에만 따르면 돼."
  "흉터가 남지 않을까?"
  "재 지시대로만 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또 다른 의사를 찾아가 수술받지 않는 이상
은……."
  보란은 다시 손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스케치북 속의 모습처럼 된 것 같군. 이상해. 붕대로 가려져 있는데도 알겠어. 거울 속에 
나타난 건 내가 아니야."
  "그 얼굴은 마스크일 수도 있네. 자네의 본 얼굴이 영원히  그 속에 숨어 있는 마스크 말
이야."
  "또는 그 뒤에서 남몰래 투쟁하는……."
  보란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의사는 눈을 내리깐 채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디.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네."
  "그건, 짐, 행동이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나는 늘 이겨야 
하고 또한 죽을 때까지 싸워야 돼."
  "베트남 전쟁은 이미 끝났어. 이 지구상에는 이제 사소한 투쟁만이 남아 있을 뿐이야."
  브래튼은 위로하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럴까?"
  보란은 잠시 주춤거렸다. 그리고는 손 끝으로 뺨을 가볍게 긁었다.
  "자넨 잠시도 발을 가만 두지 못하는군. 맥."
  브랜튼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게 아니야. 누군가가 나를 야구 방망이 같은 것으로 공격했었다구."
  "그게 마치였더라면……."
  "웃기는 소리 집어 치워."
  보란이 웃으며 소리쳤다.
  "아무도 자넬 도와 주지 않을 거야. 맥!"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네. 내 마음은 정해졌어."
  등을 침대 모서리에 대고 몸을 폈다 굽혔다 하는 동작을 계속하며 보란이 말했다.
  "이미 마음을 정했어."
  "뭐가 그리 급한가? 이봐,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시작해도 늦지 않아."
  보란은 눈을 들을 옛 전우를 바라보았다. 그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자신에 대한 브랜튼의 
애정은 오히려 그를 감동시켰다.
  "자네 말도 옳아. 그런데 이곳에서 너무 지체한 것 같군."
  보란이 권총의 상태를 살펴보려 했으나 갑자기 고통이 그의  얼굴에 느껴졌다. 그는 탄창
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꼴로 어딜 가겠다는 건가?"
  "할 수 없어. 놈들의 냄새가 나, 짐. 그들이 가까이 와 있어."
  "그들이라니?누굴 말하는 거야."
  "사냥개들. 마피아의 개들! 이 부근까지 쫓아왔어. 난 느낌으로도 알 수 있네."
  브랜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자네가 말한 대로일지도 몰라. 그들이 이미 여기를 다녀갔을지도……. 자네에겐 말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튼 서적 외판원이 말을 걸거든 조심해. 보란."
  "무슨 일이 있었나?"
  보란이 총을 손질하며 물었다.
  "수상한 놈들이 아까 다녀갔어. 세일즈맨으로 변장한 두 놈이었는데 아주  서투르더군. 내
게 책 한 질을 주는 대가로 환자들에게 책을 팔 수 있게 해달라는 거야."
  브랜튼의 말은 보란의 흥미를 자극했다.
 "환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더니 그들은……."
  "그놈들이 무슨 냄새를 맡은 걸까?"
  브랜튼은 머리를 저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눈치를 챈 것 같진 않았어. 나를  보통 의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
어. 그들은 이것 저것 물어 댔어.  어젯밤 총소리를 들었느냐, 혹시 여기  오래 입원해 있는 
환자는 괜찮았으냐, 그런 식으로 나를 유도하더군. <이미  이곳엔 환자가 없다고 말했지 않
은가>라는 내 말에 그들도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저쪽 길로 해서  이층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어."
  "나오는 것도 보았나?"
  브랜튼은 말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 집을 가르쳐 줘.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기서 살짝 나갈 수 있는 길은 없나?"
  그때 가벼운 노크 소리가 났다. 보란은 말은 멈추고 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브랜튼이  들
어오라고 하자 흰 간호사복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섰다.
  "경찰서장님께서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계시답니다. 들어오시라고 할까요?아니면……."
  "들어오시라고 해요."
  브랜튼은 문을 닫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망할 것, 징기스 콘이 날 찾아왔군."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더니 쇳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카킷색 제복을 입은 키가 큰 경관
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사막의 먼지를 듬뿍 둘러 슨 경찰관 모자가 들려 있었다.
  "이건 공적인 방문이 아니라고 간호사에게 말했소, 닥터!"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브랜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보란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보란은 벽 쪽으로 돌아 누워 죽은  듯이 있었다. 그의 눈이 보란의 손이  놓여 있는 재킷의 
불룩한 부분에서 멈추었다. 다소 불안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브랜튼을 보며 콘은 말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오. 난 영웅이 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오. 또 누굴  다치게도 하
고 싶지도 않소."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란을 쏘아보고 있었다.
  "난……난 줄곧 환자와 같이 있었소, 징기스."
  브랜튼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소."
  브랜튼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소."
  콘은 모자를 테이블 위로 던지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시거를 꺼내 끝을 
뽑아 버리고 의자의 한쪽 손걸이를 어루만지면서 불을 붙였다.  그의 시선은 내내 보란에게 
못박혀 있었다.
  "폭력은 우리들 모두의 적입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거를 한 모금 깊숙이 발고는 보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
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집만 나는 언제나  이 작은 도시가 평화롭기만  바라고 있소. 난 
이곳 주민들이 원하는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저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오. 경찰이 하는 일이
란 게 뻔하지 않소? 난 평화주의자라구요."
  콘의 두 눈이 빛났다. 그는 브랜튼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거요, 닥터. 알고 있소?"
  브랜튼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신이 이제껏 이 도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소, 
징기스."
  브랜튼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란은 여전히 재킷을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때  안
락 의자에 몸을 똑바로 눕히고 긴장을 풀며 보란이 말했다.
  "무슨 일이야, 짐?"
  "아, 아무것도 아니오. 잠간 들러 본 것뿐이오. 닥터와 난 여러 번 전쟁과 평화에 관해 얘
기를 나눈 적이 있소. 그렇지 않소. 닥터?"
  브랜튼의 입이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지며 그렇다는 대답이 흘러 나왔다.
  "맞소. 그랬었지. 그 말을 듣고 싶었소. 당신은 혹시 죄 지은 일 없소?"
  콘이 보란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물었다.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보란이 대답하자 그는 동의의 표시로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물론 폭력이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확산되는 
저주받을 짓이오. 평화로운 마을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라오. 순식간에 황폐한 곳으로변해 버
리지. 난 이곳이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소.  젊은 친구, 이 도시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시
오?"
  "곧 떠날 겁니다."
  "내가 혹 도울 일이라도?"
  콘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보란과  브랜튼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브랜튼이  약간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메모지에 적혀 있는 대로만 하게. 고통이 느껴지거든 얼음 주머니로 가볍게 마사지를 하
도록.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반창고는 그대로 놔 둬. 수술한 곳이 곪는 것 같으면 곧 의사를 
찾게."
  말을 마친 브랜튼은 구석으록 가 보란의 가방을 갖고 왔다.
  "내가 들어다 주겠네."
  "집 뒤쪽에 차를 대기시켜 놓았소."
  콘이 앞장서서 안내하며 마랬다. 보란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그는 얼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브랜튼이 보란을 부축하며 로비까지 따라 나왔다. 그는 다란 선글라스를  보
란에게 내밀었다.
  "이걸 쓰게. 자네의 수술 자국이 감춰질 거야."
  보란은 그것을 받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자를 믿어도 될까?"
  "나도 모르겠어. 이상한 친구야. 아직 제대로 파악을 못 했어. 그렇지만 그는 자네가 누군
지 알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알았어. 내가 판단하겠네. 고마워, 짐. 자네 말은 명심하겠네."
  둘은 문간에서 잠시 멈춰 섰다. 콘은 벌써 차의 뒷문을 열어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보
란은 친구의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몇 년 전에도 그런 말을 하더니.  참, 저 징기스에게서 눈을 떼지  마. 아직 그의 본심을 
모르니까."
  "콘이란 친구 괜찮은 자 같은데?"
  보란은 친구의 손을 놓고 가방을 집어 든 채 차 쪽으로 다가갔다. 콘이 가방을 받아 차의 
뒷좌석에 놓았다. 보란은 경찰차의 앞좌석으로 오르며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콘이  시
동을 걸었다.
  "어디로 가겠소?"
  그가 조용히 물었다.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소. 이 도시는 점차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 가는 것 같소
이다. 서장!"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콘은 한숨을 내쉬며 액세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보란은 망치에  얻어 맞는 통증을 느꼈
다. 그는 간신히 눈을 들으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차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뉴 
호라이슨 가를 벗어나고 있었다. 뉴 호라이슨 가는 활동적인 인간이  살곳이 못 되는 것 같
았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조금씩 걱정되었다.
  "시내를 벗어나면 당신을 내려 주겠소. 그 다음부턴 당신이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겠소. 
원한다면 지옥에라도 가시오. 당신을 따라 다니는 모든 불행을 짊어지고 말이오."
  "그건 걱정 마시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니까."
  보란이 짧게 대꾸했다.
  "내 생각엔 당신 스스로가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경찰차가 뉴 호라이슨의 뒤쪽을 돌아  가로수가 죽 늘어서 있는 도로로  접어 들었을 때, 
흰 크라이슬러 차가 기다렸다는 듯이 차도로 뛰어들더니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또 다른 
차 한 대가 그들의 뒤 약 50야드쯤 되는 길목에 나타나는 것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다. 콘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차를 급정거시켰다. 브랜튼의 병원 맞은편  이층 집에서 뛰어나온 사
내들의 잔대를 가로질러 달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망할 놈의 브래독!"
  콘은 이를 갈았다. 보란은 어느새 재킷 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저들은 경찰이 아니오."
  보란은 소리치며 좌성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차가 급정거 하는 바람에 얼굴이 심한 충
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충격은 무서운 통증을 몰고 왔다. 그는 잠시 동안 통증을  참기 
위해 눈을 감고 그대로 있었다.
  콘의 오른손이 권총집을 여느라고 바쁘게 움직였다.  크라이슬러의 뒷유리창이 깨지며 자
동 기관 단총이 나타났다.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성의 목소리가 날아 왔다.
  "우리가 잘 볼 수 있는 장소에 손님을 내려놓아! 천천히 두 손을 들고 나와!"
  보란은 콘을 한 번 쳐다본 다음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제 발로 걸어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젊은 친구!"
  콘이 쉰 듯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아멘!"
  보란이 짓궂게 웃었다. 콘은 문이 열리도록 놔두고 그대로 차를 몰았다.
  "저 차의 옆구리를 받겠어!"
  콘은 보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발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큰 차는 거칠게 회전
하면서 길 위로 튀어올랐다. 캘리버 50의 탄환이 유리창을 두들겨 댔다. 차의 유리가 산산히 
부서지며 튀었다.
  "조심하시오!"
  경찰차로 크라이슬러 차를 들이받으며 콘이 외쳤다.
  잠시 기관 단총의 툭툭 끊기는 듯한 발사음이 멈췄다. 보란의  몸은 반쯤 차에서 밀려 나
와 있었고 콘은 부서져 내린 유리창을 통해 총을 쏘고  있었다. 뒤쪽에서 다시 총소리가 나
며 차 한 대가 달려 나왔다. 콘이 신음 소리를 냈다.
  "제기랄, 마증ㄴ 것 같아!"
  보란은 다리를 끌어안고 차 밑으로 몸을 굴려 두 차의 바닥을 통해 크라이슬러에 올라 탔
다. 그때 이마에 피를 흘리며 운전석에서  기어나오던 키 큰 사내가 그와 마주쳤다.  사내가 
보란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는 찰라 보란의 총알이  사내의 놀란 입 속으로 쑥 들어가 박혔
다.
  기관 단총을 든 마치아의 행동 대원이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보란은 한 손으로 그 무거운 총을 들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는 자신의 작은 권총을 버리
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기관 단총을 집느라고 조금 지체했다.
  콘은 경찰차 앞자리에 앉아 뒤쪽을 돌아보며 간헐적으로 총을  쏘고 있었다. 잔디밭을 가
로질러 오던 두 사내는 보란으로부터 약 30피트쯤  떨어진 나무 숲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
다. 그 중 한 사내가 뒤쪽 자동차에 총격을 가하라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보란은 자동 기관 
단총을 들어 그들의 차에 마구 쏘아댔다. 차 뒷 부분이 폭발했을 때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한 
사내 하나가 괴로워 하고 있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빙고!"
  콘이 크게 소리치며 나무 뒤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보란은  무거운 기관 단총을 
버리고 권총을 집어 들었다. 그가 차 밖으로 나오자 두 사내는 방해물을 걷어 차며 집 쪽으
로 도주해 가고 있었다. 보란은 콘이 그들의 뒤를 쫓는 것을 보았다.
  권총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도방치던  두 사내 중 하나가 피를 흘리면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총소리가 나자 나머지 한 명도  공중으로 가볍게 떠올랐다가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콘이 발길을 돌려 맥 보란에게로 달려왔다. 그의 초구에선  아직
도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보란도 총에 새 탄창을 끼워 넣으며 서장에게로 다가갔다.
  "굉장한 솜씨였어요. 평화를 원하는 서장님."
  콘은 빙그레 웃으며 총격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카키색 상의 오른쪽이 피로 흥건히 젖
어 있었다.
  "심하진 않습니까?"
  보란이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심하진 않소. 브랜튼 박사에게 가서 봐 달라고 해야겠는걸. 저 크라이슬러를 이용
할 수 있을까?"
  콘이 경찰차를 살펴보며 말했다.
  "괜찮은 생각이오."
  보란이 대답했다.
  "이제 당신은 당신 갈 길로 가시오. 1분간의 여유를 주겠소. 그때에도 내 시야에 보인다면 
당신을 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소. 다시 이 도시에 나타난다면 
당신은 죽은 목숨이 될 것이오.
  그는 차에 몸을 기댄 채 무전기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렸다.
  "난 솔직히 당신의 활약에 성원을 보내고  이소. 그러나 이 말은 안 들은  걸로 해주시오. 
아무래도 당신의 장래에는 기대를 걸수가 없소. 젊은 친구."
  보란은 뒷좌석에서 가방을 집어들면서 "고맙소."라고 짧게 인사를  했다. 가방을 크라이슬
러 뒷좌석에 던져 놓고 그는 그 차를 경찰차로부터 조심스럽게  빼낸 후 방향을 돌렸다. 백
미러는 통해 짐 브랜튼이 왕진 가방을 들고 경찰차를 향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보란은 커브길을 돌아 곧바로 나아갔다. 그 큰 차를 몰로  가는 그의 얼굴에 흥분과 고통
의 그림자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손을 넣어 셔츠 안쪽 옆구리를 더듬어 보았다. 피가  흥건
히 묻어나왔다. 수술 뒤의 후유증에다 잇따라 총상까지 입은 것이었다.
  맥 보란은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구역질을 
참으며 되도록 팜 빌리지에서 멀어지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눈두덩에서도 통증이 느껴
졌다. 코도잘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광대뼈에서는 불이  붙는 것 같았고, 턱뼈에서도 
칼로 베는 듯한 아픔이 뒤따랐다. 옆구리에 파고 드는 듯한 고통을 오히려 쾌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죽음의 특공대 대원의 한 사람인 플라워 차일드 안드로 메다가 떠올랐다. 그가 한번
은 이런 말을 했었다.
  "사는 것 자체가 지옥이야!"
  맥 보란은 자신이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평
선이었다.
  

  9.자유인
  공식적인 보도에 의하면 10월 5일 팜 빌리지에서의 피비린내나는 접전은 그곳 경찰서장이 
동쪽 지구 전체에 도로 차단 명령을 내린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지시는 불법이
라는 뒷공론도 있었다.
  어쨌든 작은 사막 도시는 전 미국 매스컴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는데, 그것은 맥 보란이라
는 악명 높은 살인마를 잡기 위해 로스엔젤레스 경찰국의 특수대와 LA 마피아 소속의 건달
들이 동시에 이 도시로 몰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징기스 콘은 그 도로 차단 명령이 LA의 특별 수사 본부의 팀브래독 주임의  지휘하에 이
루어진 것으로 알았으나, 곧 그것이 보란이란 자를 잡기  위한 마피아의 소행이었음을 눈치
챘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에 콘 서장은 2대의 자동 기관 단총과 그 밖에도 여
러 가지 무기를 소지한 8명의 사나이가 어떻게 단 한 명의 손에 의해 모두  살해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기겠습니까?  너무나 긴장했던 탓일 겁니다. 나 
자신도 겨우 갈비뼈와 긁히는 상처를 입고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들 몇몇은 그의 진술을 받아 적으면서 그 사건의 이야기가 자세히 언급되고 있지 않
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그들은  이번 사건에서 맥 보란이 벌였던  팜 빌리지에서의 첫 
번째 싸움과의 유사성을 발견해 냈다. 한때는 평화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던 팜 빌리지가 경
찰과 갱의 전형적인 충돌의 도시로 변해 버린 것은 이때부터였다.
  콘 경찰서장을 선두로 한 세 대의 로스앤젤레스 경찰차가 그 장소를 덮쳐 서적 외판원으
로 가장한 일당의 그룹과 격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총을 쐈스빈다."
  LA 특수대의 칼 라이온스 경위가 상황 설명을 게속했다.
 "난 그들을 알아 볼 수 없었어요. 아마 그들은 징기스 콘의 응사 소리를 듣고 그들이 맞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흩어지게 하려고 꽤 애를 쓰더군요. 차에는 나
하고 행크 에드워즈 순경이 타고 있었지요. 타이어가 뒤쪽에서 날아 온 총알을 맞고 펑크가 
나는 바람에 우린 당황했어요. 곧바로 차가 구르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된 게 오히
려 우리가 살아 날 수 있는 원인이 될 줄은 몰랐죠. 우리에겐 고성능 화력이 있었고 인원도 
다섯이었죠. 전복된 순찬차가 아주 좋ㅅ은 방패가 됐어요. 무전기도 망가지지 않았구요. 3명
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한 명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차에서 뛰어 내려 브
래독 주임에게 달려 가다 차가 충돌하는 바람에 죽음을 당했어요. 주임은 어깨만 조금 다쳤
을 뿐인데 차에선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죠. 한 사내는 콘이 총을 쏘는데도 계속 도망을 
치더군요. 우린 정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팜 빌리지에성 ㅣ 이 피의 난동으로 12명의 마피아 행동 대원이 죽고 한 명이 체포되었으
며 3명의 경관이 경상을 당하고 2대의 개인 소유 승용차가  약간 긁히는 사고가 있었다. 그
리고 2대의 LA 특수대 소유의 차가 전혀  못 쓰게 되었는데 최악의 결과는 아직  접수되지 
않고 있었다.
  이 도시의 경찰들 대부분이 처음 총격전이 일어난 곳에 모여 있는 동안에 팜 빌리지의 순
찰 경관은 어둠 속에서 최신형 링컨 콘티넨털 -  이 차는 아침 내내 시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 에 몸을 싣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그 사내는 방금 전까지 주차장 가까이 있
는 공터에 서서 이 차를 넑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의아심을 품게 되었다고 순찰 
경관은 말하고 있었다.
  "매번 그 차가 오랫동안 주차되어 있는  것을 눈여겨 보았는데 그때마다 다른 차에서  그 
사내가 꾸물거리는 것을 보았지요."
  그 순찰 경관이 후에 말하는 것을 게속 들어 보면 이렇다.
  "그래서 나는 곧 차에서 나오라고 했지요. 난 그저 그 자의 운전 면허증이나 보자고 그런 
건데 그의 얼굴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차에서 내린 그가  곧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것
이었어요. 순간 몸이 꼬이는 느낌과 함께 그자가 내 배를 찼습니다. 잠시 고통이 나를  엄습
했지요. 난 팔꿈치로 그를 가격했으나 이미 내 무릎은 바닥에 꿇려 있었어요. 바로 눈  앞에 
적의 총이 보였어요. 나는 그가 왜 날 쏘지 않았는지 지금도 전혀 모르겠어요. 총알이  귀를 
스쳐가는 소릴 듣고 눈을 감아  버렸지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면서  총에 맞았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정말 피가 흐르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곧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
요. 눈을 떠보니 사내는 길을 건너 도망치고 있더군요. 로드타운으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꺾
어지는 것을 보고 난 그의 뒤를 쫓았지요. 그는 구  브라운스 머천타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더군요. 빈 상가로 말입니다. 그는  거시거 서적 외판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내가 
몇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요. 그들은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난 도움을 요청하
려고 본부로 달려갔어요. 순찬 경관 중의  한 명인 진 퍼킨스를 찾았지요. 진은  비번이어서 
다운타운으로 내려가 쇼핑을 하고 있더군요. 그는 머처타일로,  나는 본부로 각각 향했어요. 
서장님을 찾는데 1,2분이 소요되었어요. 나는  내가 적의 본부를 방문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의사는 내게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다고 진단하더군요."
  진 퍼킨스의 설명은 이러했다.
  "내가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땐 검은 차가 브랑누스 머천타일 뒷골목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
오고 있는 중이었질요. 난 사복차림이었지만 리볼러를 갖고 있었어요. 아내는 언제나 그것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경관은 비번일 때에도 경관이거든요. 총을  꺼내들고 도로로 뛰어 나와 
차를 향해 정지하라는 신호를 보냈지요. 그런데 그 차는  방향을 꺾더니 골목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어요. 앞자리에 두 사내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공포를 쏘며 멈추라고  소
리를 쳤지요. 골목을 따라가며 계속 그랬지요. 그러자 빠른 속력으로 다시 되돌아 나오는 것
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난 피하기 위해 <알의  술집>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지요. 골목에서 
대략 10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렸어요. 먼저 창유리를 향해 한 방을 
쏘았더니 곧 응사해 오더군요. 그들은 그곳의 지리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어요. 차를 다시 돌
리더니 뒤를 돌아보며 총을 쏘더군요. 나는 벽에다 등을 바짝 붙이고 있었어요. 다시 그들의 
모습이 보였을 때 난 건물 구석으로 들어가 숨었어요. 그런데 골목에는 맥주는 나르는 트럭
이 짐을 부리고 있었거든요. 사내가 트럭을 치우라고 고래고래  소리 치를데도 트럭 운전사
는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했어요. 난 그들에게 위협 사격을 계속했구요.  사내가 
트럭 운전사를 총으로 때리면서 빨리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난 대낮에 반 블록도 채 떨어지
지 않은 거리에서 마구 총을 쏘았어요. 그들은 자동 소총도 갖고 있었는데 난 건물 벽에 몸
을 숨기고 왼손으로 총을 쏘아댔지요. 전에는 한 번도 왼손으로 사격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행운이라고나 할까요, 그게 되던데요. 난 맥주 트럭의 바퀴 옆에 서 있던 사내를 향해  집중 
사격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존 트라돌리노라는 노인네…… 그는  남쪽의 주택구에 살고 있
었는데 그는 매일 그 시간이 되면 차가운 맥주를 마시려고 로드타운으로 내려 오곤 했어요. 
<알의 술집> 가까이에 있는 세컨드 스트리트에 차를 세워 두고 그 술집으로 들어가 게임을 
즐기기도 하죠. 그 노인네가 나타난 거예요. 그는 사태를 파악하고는 차문을 열어 둔 채  차
를 몰아 골목으로 들어오려고 했어요. 마치 모험심에 불타는 10대 소년처럼 말이예요.  존은 
차에서 뒤어 내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총에 맞았
는지 빌리지 빵집의 담벼락에 머릴 처박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난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마의 따믕ㄹ 닦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검은 차의 사내들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그때서야 차를 버리고  브라운스 커
천타일의 뒷문 쪽으로 흩어져 달아나더군요. 내 생각에는 아서라는  순찰 경관이 날 도우러 
온 것 같았어요. 그때 그는 나의 구세주였지요. 정말 이 자리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
다. 길 한가운데로 나와 보니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보려고 다 나와 있더군요. 사람들이  방
해가 되긴 했지만 난 몸을 숨기며 머천타일 건물 입구로  향해 갔어요. 사내의 머리 하나가 
벽 모서리에 나타나자 즉시 쏴버렸어요. 그러나 총알이 빗나가 그가 서 있는 유리창에 맞고 
말았는데 효과는 그게 더 컸어요. 그는 곧 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난 그 자리에서 이
제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여유까지 갖게 되었지요. 그리고 서장과 특수
대가 도착하고  그들은 모두  사살된 겁니다.  우린 사실  그들의 죽음을  원치 않았습니다
만……."
  10월 5일의 로드타운 거리는 볼 많나 구경거리였다. 빌딩마다  불이 붙어 마치 축제의 불
기둥을 연상시켰다. 불은 브라운스 머천타일  건물의 상가에서 옮아 붙었는데  위기에 몰린 
마피아들이 도망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즉, 사람들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해놓고 달
아나려는 의도에서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건물 뒤쪽  출구 근처에서 불에 
타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한편 로드타운 거리에서는 경찰과 차에 탄 2명의  마피아간에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싸움도 팀 브래독 주임이 재빨리 병력을 증원해 줌으로써 서서히 사그라들고 말
았다.
  브래독은 이곳에서 활동했던 마피아 단원 중 한 명이 <변태 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페나
란 사실과 그가 디조르쥬 가문의 행동파로오래 전부터 지목되어  온 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의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  교전에서 그의 부하 3명이 부상당했는데 
한 명은 중상이고 다른 한 명인 인디언 조는 탄환이 너무 깊이 박혀 그만 죽고 말았다.
  마피아가 탈출할 때 요긴하게 사용했던 2대의 차는 이 시의 교외에서 버려진 채로 발견되
었다. 차 안에는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들도 총에 맞은 것이 분명했다.
  몇 시간 후 로드타운의 불길이 거의 잡히고 잿더미 속에 그 흔적만이 남았을 대쯤 징기스 
콘은 짐 브랜튼에게 이렇게 털어 놓고 있었다.
  "그게 필연이었소, 닥터. 당신 친구 보란은 이 도시가  꼭 필요로 했던 정화제가 된 거요. 
내 역할 역시 그렇소. 내 재산과 내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렸으니…….  그러
나 난 실망하지 않소. 당신이 다시 그 친구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내 말을 그대로 전해 주
기 바라오."
  "그렇게 전하지요. 그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브랜튼이 말했다.
  칼 라이온스 경위와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팀  브래독 주임은 전과는 아주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 보란인지 뭔지 하는 친구가 가져다  준 재앙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자네도  보았
지.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들리지 않도록 해야 돼. 그자가 자기 마음대로 이  거
대하고 조직력 있는 도시를 바다 속으로 쓸어내 버리지 않도록 보란을 잡아야 한다구. 그가 
모든 것을 망쳐 놓기 전에 그를 잡아야 돼."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라이온스가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구?"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 보란이란 녀석이 우리 측의 투망에서 유유히 빠져나간 사실을 생
각하면요."
  라이온스이 목소리가 차차 커졌다.
  "누구의 실수였나?"
  "그건 우리 모두의 실수였습니다. 주임님과 저 그리고 존과 제인, 우리들처럼 융통성 없는 
시민들……. 보란의 재앙 그 자체는 아닙니다, 주임님. 북극이 우리 지구의 한계점이란 평범
한 생각은 사라지고 있어요. 주임님이 날 죽여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총을 쏴도 좋습니
다. 그러나 주임님과 내가 충실한 경찰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보란은 파괴를 
즐기는 자가 아닙니다, 주임님. 그는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우리 사회를, 부조리
를 말입니다. 늘어나는 부패와 갈등……."
  "그만해 둬!"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이온스가 침착학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그들 사이를 가로 막았다.
  "자넨 해고야, 칼! 난 자네의 개인적인 의견엔 의의가 없어. 내 말은, 그러니까 자네의  말
뜻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야. 그런 감정들은  우리의 사기를 저해시킬 뿐이라구! 자넨 오
늘밤으로 해고된 걸세."
  "감사합니다. 그러나 절차를 불필요한 형식인 것  같은데요. 어쪴든 우린 다시 보란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걸 아나?"
  주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도 어떤 이유가 있어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증명해 보여 드릴 수도  없습니다. 우린 
이미 우리의 끝장을 본 셈입니다. 전 우리의 특수 조직이 와해됐다고 생각해요."
  브래독은 언짢은 듯 몸을 움찔거리며 시거를 집었다. 그는 이를 갈았다.
  "보란이라는 놈이 저 철창 속에서 찔찔  짜든지 내가 경찰 배지를 강물에 던져  버리든지 
사생 결판을 내겠다!"

  라이온스는 자동차에 속력을 가해 앞을 향해 달려갔다.
  "아! 이제 나는 자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제는  큰소리로 떠들 수도 있다. 난 
이것이 끝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어느 면에서는 칼의 말이 맞았는지도 몰랐다. 팜 빌리지 사거은 맥 보란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니까. 그것은 변신이었다.
  맥 보란은 이제 마스크를 쓰고 다시  마피아의 내부를 향해 위협적인 도전장을  디밀려는 
참이었다. 그는 줄리앙 디조르쥬의 가문으로 잠입할 것을 결심했다.

10. 가면 뒤의 얼굴
  팜 빌리지 사건으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여전히 루이 페나는 그 사건 이후로 줄리앙 디조
르쥬의 팜 스프링스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10월 5일 저녁,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윌리 워커가 짤막한 메시지를 전했다.
  "루이의 연락입니다. 그는 보란의 머리 없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전하라던데요?"
  디조르쥬는 그 후 며칠 동안을 경호원의 수를 두 배로 늘린 채 숨어 있었다. 10월 10일이 
되자 그는 이제 거의 몸이 회복된 워커를 불러 팜 빌리지 사건의 내막에 대해 다시 물었다.
  "아마 그자도 죽었을 거야."
  얘기를 다 듣고 난 디조르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카포다운 생각이었다.
  "시체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놈도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구.  경찰도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놓고 있겠지? 이젠 우리를 쫓는 일에 전력 투구를할 수 있게 된 거야."
  "글쎄요. 제가 알아 낸 바로는 보란은 그 마을에 없었어요. 줄리오의 차를  찾았는데 보란
은 필시 그 차를 버리고 또 다른 차를 타로 도망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걸 찾아낼 동안 
그가 그 주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보란에 대해 이제 그만 말해! 그가 무슨 짓을 했든 안 했든 그 따위 소린 그만두라고. 자
신이 꽤 영리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윌리, 애들을 몇 명 데리고  팜 빌리지로 가서 
그럴듯한 것이라면 뭐든지 쓸어와. 거기서 무슨 행동을 하든 난 상관 않겠지만 반드시 의문
점들은 해결해 갖고 와야 해. 난  보란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걸 알고  싶단 말이야! 이봐, 
내 말 알아듣겠나?"
  "알겠습니다.디스!"
  날이 지나면서 차차 디조르쥬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아갔다. 10월 12일에는 비밀리에 전용 
비행기를 몰고 아카풀코로 날아가 유쾌한 휴일을 보내고 멕시코의 마피아 연합회가  주최하
는 긴급사업  회의에도 참석하였다.
  그 회의의 중요 논제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지대가 강화되면서 마약 밀매 루트가 드러
날 위험에 처했으며, 수백만 달러가 걸려 있는 이 사업에 방해물이 되고 있는 그 요잉늘 어
떻게 제거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샌디에이고를 경유해서 돌아오는 길에 디조르쥬는 앤소니와 간간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앤소니 쿠팔레토가 정식 이름인 이 사나이는  캘리포니아 주 경계선 부근을 장악하고  있는 
카포로서 <토니 데인저>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디조르쥬는 멕시코산 헤로인과 마리화나에 
대한 기득권을 독점하기 위해 앤소니와 손을 잡은 것이었다.
  앤소니가 보란의 활동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이 마피아의 보스는 그 망할 놈
의 보란이 죽었을 거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리고 디조르쥬는 앤소니에게 그 유령 같은 존
재에 대해 걱정하고 있을 시간에 국경 수비대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연방 정부에선 우리에게 충분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모양인데  진짜 압력이 
어떤 것인가를 당신이 보여 주라구. 도덕이란 국경 너무 다른 땅에서나 필요한 것이라는 사
실을 말이야. 국경 근처에 조무래기들을 풀어서 상황을 계속 얽히게 만들어. 그 동안 우리는 
선박 편을 들어갈 테니까."
  팜 스프링스로 돌아온 디조르쥬의 머리속은 제2인자를 선정하는 문제로 복잡해져 있었다. 
9월에 보란에 의해 에밀리오 지오르다노가 당한 뒤로 아직도 그 자리는 공석중이었으나 부
두목이 될 만한 재목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보란이 이번에도 가장 가능성이 많은 제2인자감을 저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디
조르쥬는 초조했다. 잘못하다간 이 문제 때문에 마피아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코사 노스트라에서 그 서열에 든다는 것은 부와 권력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이 가문은 연방 정부의 행정 관리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제2의 정부>라고 통칭
되고 있을 만큼 대단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피아 조직에 대한 보란의 일격은 생각보다 큰 피해를 조직에 안겨 준 결과가 되었다.
  간혹 경찰에 체포를 당하는 인물이 생기긴 해도 그의 조직 내의 서열에는 변동이 없었다. 
그들은 안으로 굳게 결속되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간혹 가문끼리의 분쟁
이 이렁나면 마피아의 카포들이 모여 재판을 열게 된다.  디조르쥬의 경우 30년대에 있었던 
코사 노스트라 가 내의 대 암투 이후로는 지금까지 그런  재판이 열리는 걸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보란 때문에 그런 유의 마찰이 생길까 봐 디조르쥬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디조르쥬의 생각이 그의 심복인  행동 대장 루이 
페나에게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그는 페나가  능력 있는 행동 대원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보아 왔었다. 그는 중선심이 지극해 목숨까지도 불사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두목이 되기에는 좀  모자라는 인물이었다. 디조르쥬는 갑자리  자신이 홀로 
버려져 있다는 생가가에 몸을 떨었다.  마피아 조식은 안으로 수년 내에는  새 단원을 뽑지 
않기로 했었다. 따라서 조직 내의 서열은  젊은 혈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애들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부두목 자리를 물려 줄 순 없었다.
  디조르쥬는 회의를 통해 뽑기로 마음먹고 몇 명의 이름을 리스트에 올렸다. 귀미셔너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 회의는 국제 코사 노스트라 운영위원회라는 정식 명칭 아래 조직 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카포인 그는 여전히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10월 15일에는 팜 스프링스에서 디조르쥬가 주최하는  리셉션이 있었다. 완전하게 무장된 
6대의 캐딜락이 비밀 주차장에 숨겨져  있었다. 26명의 위원들을 맞아  들이는 역할을 맡은 
단원은 <긴 머리의 병사>로 알려진  리틀 존이었다.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속속 모여드는 
바람에 얼떨떨해진 존은 디조르쥬에게 더듬거리며, 페나의 소식은 아직  없고 이틀 전에 떠
난 윌리 워커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고 전했다. 행동 대장들이  모두 리셉션에 참가하는 바
람에 저택에는 경호원들만 남아 있었다. 디조르쥬는 즉시 필립  마라스코-그의 별명은 허니
였다-에게 그들을 통솔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현재42세로서 지난 멕시코  여행 때도 카포를 
수행했던 경호원이었다.
  디조르쥬는 지금까지 아무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었는데 최근 풀장 옆  파쇼(스페인 식 집
의 안뜰)에서 프랭크 램브레터란 사내와  대면하게 되었을 땐 깜짝  놀랐다. 풀장과 파쇼는 
이 팜 스프링스 별장의 비밀스런 장소였는데 거기에 낯선 사내가 와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몇몇 특수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는데, 딸 안드레아 디조르쥬 
다고스타가 마피아의 건달들이 출입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디조르쥬가 그녀를 위해  특
별히 지어 준 별장이었다.
  안드레아는 아빠인 디조르쥬가 하는 일과 그의 권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녀는 
디조르쥬가 코사 노스트라의 보스로 부상되고 난 다음부터는 한 집에서도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디조르쥬는 비버리 힐스에서의 사고 이후 딸이 대낮에는 늘 풀장 옆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건은 자존심 강한 디조르쥬의 입에서 <깨진 병에라도 엎질러진 술을 다시  담
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게 했을 정도로 마피아가 크게 당한 사건이었다.
  디조르쥬가 그때 깜짝 놀랐던 이유는 풀장의 풍경-안드레아가 그 우윳빛 피부 위에 아슬
아슬한 비키나 팬티만 걸친 채(물론 위는 안 입었다)역시 벗다시피한 사내 하나와 히히덕거
리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런 버릇 없는 계집애가 있나!"
  사내가 입고 있는, 물에 젖어 몸에 꼭 붙은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푸른색  플라스틱 
매트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안드레아, 그녀는 겨우 치부만을 가린 채 사내의 몸  위에 
엎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디조르쥬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빠!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목을 비틀어 버리기 전에 바리 내려오지 못하겠니? 어서 옷을 입어!"
  디조르쥬가 황급하게 다그쳤다. 그러나 이  말은 달은 더욱 흥분하게 할뿐이었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버티었다.
  "아빠가 고개를 돌리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좋아, 알았어! 제 몸뚱이는 망나니 녀석에게 굴리면서 아빠에겐 머리를 돌리라니!"
  그는 화가 나 어쩔 줄 몰라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발 밑에서는 빨강과 파랑 
무늬가 든 비닐 공이 구르고 있었다.
  "그 망나닌 누구냐?"
  그가 발로 공을 차면서 물었다.
  "아빠, 왜 흥분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프랭크는 망나니가 아니란 말이예요. 우린  곧 결혼
할 거예요. 사실……."
  그녀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비키니를 제대로 입으려고 몸이 숙인 때문이었다. 키가 자
그마한 이 젊은 과부는 몸무게가  100파운드나 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외모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미끈하고 육감적인 몸매로 가꾸기 위해 특별한 이탈리아 식 다
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망나니로 오해를 받은 그녀의  파트너는 <우린 곧 결혼할 거예요>라고  그녀가 
소리쳐도 전혀 동요의 빛이 없었다.  그는 매트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바지를 입고 안드렝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던졌다. 그리고는  디조르쥬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프랭크 램브레터라고 합니다. 디조르쥬씨."
  디조르쥬는 실눈을 뜨고 상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키가 크고 온몸이 근육질인 사내였
다. 나이는 33살 전후로 보였다. 제법 잘생긴 외모에 플레이 보이 기질오 엿보였다. 둘 사이
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디조르쥬는 딸의 무분별한 행동이 전혀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남자의 
얼굴을 손등으로 갈겼다. 키 큰 사내는 분명 상대의 손이 올라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피하
지 않았다. 사내의 얼굴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잠시 그의 눈에 불꽃이 튀었으나 그
는 참아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그  손이 자유로운 건 이번뿐이오.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말이오. 
내 충고를 잊지 마시오."
  "뭐라구? 이놈이!"
  디조르쥬가 내뱉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안드레아의 눈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아빠, 나빠요! 아빠 싫어!"
  그녀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순진한 사람을  아빠는 아빠가  늘 상대하는 깡패나  불량배들처럼 취금을  하다
니……."
  화가 치밀 대로 치민 디조르쥬의 손이 이번엔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그녀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램브레터라는 사내의 손이  늙은 디조르쥬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늙은이의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르르 떨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순간 마주쳤다. 그들 사이에 긴장은 램브레터가 먼저 입르 열변서 깨졌
다.
  "딸에게 사과하시오. 디스."
 "저년의 머리를 박살내 버리겠다!"
  디조르쥬가 화를 폭발시켰다.
  "어서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하시오!"
  램브레터는 상대의 다른 한쪽 손목도 잡으면서 말했다.
  "이 손 놓지 못해!"
  "난 당신을 저 물 속으로 처박아 버릴 수도 있소. 제발 그 바보 같은 생각일랑 집어 치우
시오."
  그는 디조르쥬의 손목을 놓아 주며  안드레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한  걸음 물러서며 
분노로 인해 새하얘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봐, 젊은 친구! 지금 자네는 누구에게 명령하고 있나? 이 촌뜨기야!"
  디조르쥬가 소리를 질렀다. 램브레터는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뜨덕이
며 말했다.
  "물론이죠. 내가 누구하고 마주하고 있는지 잘 알지요. 자, 이제 슬슬 수영을 즐기실 준비
나 하시지요, 디스."
  디조르쥬는 처음 보는 사내가 <디스, 디스>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아하게 생
각하고는 조금 부드럽게 물었다.
  "내 이름이 디스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안드레아는 그들의 수작을 바라보고 있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디조르쥬는 짐짓 화난 
듯한 눈빛을 보내면서 술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 안드레아! 내 딸. 이리 와. 이리 가까이!"
  그녀는 아빠의 내밀어진 판 안으로  뛰어 들며 얼굴을 어깨에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키 
근 사내는 다시 매트로 돌아가 그 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대리석 바닥에 놓여 있는 공
들을 발로 굴렸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 양말과 구두를 신고 있었다. 부녀는 다정하게 서로
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그에게로 다가갔다.
  "너무 갑작스런 일처럼 생각되는구나"
  디조르쥬가 딸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자네 이곳에 와서 자주 놀았나?"
  디조르쥬는 선보드를 슬쩍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불쌍한 딸년을  즐겁게 해주다니 고마운데, 언제  결혼할 작정인가? 언제부터 
이렇게 괸장한 사이가 된 건가. 응?"
  램브레터를 대신해서 안드레아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직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어요, 아빠"
  "빨리 서두르렴! 내가 놀라도록 말이야. 아깐 정말 기절할 지경이었어"
  디조르쥬는 짐짓 말을 꾸몄다. 램부레터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는 셔츠를 걸치고는 그 늙은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 앞으로 장인이 될 사람과의 악수라!"
  디조르쥬는 램브레터의 손목을 잡고 껴안으며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했다. 안드
레아는 킥킥거리며 문 쪽으로 달려 갔다.
  "옷을 갈아 입어야겠어요!"
  디조르쥬는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미소를 거두고 램브레터라는 사내에게  밀착시
켰던 몸을 떼내었다. 그의 눈초리가 갑자기 사나워지더니 음산한 어조로 사내에게 충고하는 
것이었다.
  "자네가 내 사위가 되겠다구? 자네를 좀더 가까이 두고 살펴야겠어."
  맥 보란은 램브레터의 가면 뒤에서 여유 있게 웃으며 대꾸했다.
  "얼마든지 좋습니다. 장인 어른!"
  
  11.파문
  마피아 내부에도 다른 어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특이한 전통적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서로의 프라이드와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
기 때문에 아무리 카포라 해도 신출내기 마피아 단원의 사생활을 갑섭하는 일은 없었다. 그
리고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의 아내를 범하지 않았다. 혹 자신이 원하는 여자의 남편
이 죽었더라도 그렇다. 맥 보란은 이런 그들의 야릇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의무 조항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는 주리앙 디조르뉴 앞에서 그들의 오랜 전통적 관습에 대한 불경과 동정의 감정
을 일부러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카포나 그밖에 영향력이 있는 마피아 단원들의 아픈 곳을 
건드려 이득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란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중
에야 어떻게 되든 현재로서는 조금 전과 같은 식의 자기소개 방법보다 더 좋은 생각이 달리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아는 상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블라우스와 화려한 무늬의 스커트를  입
고 디조르쥬가 다른 쪽 문으로 사라지자 곧 안뜰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프랭크 램브레터 
앞에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바보 같아요, 아빠는. 용서를 해주시는 거죠?"
  "나와 비슷한 데가 많은 분이더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분도 할 수 있겠지?"
  가면 속의 보란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댔다. 계속  시선을 
보란에게서 떼지 않은 채 그녀는 의자에 조심스럽게 걸터 앉았다.
  "사과하고 싶어요. 그리고 고맙다는 말두요. 결혼 얘기를  꺼낸 것 말이에요. 아빠의 기분
을 상하게 하려는 마음에 그만……. 만약 당신이…….
  "괜찮아. 난 당신이 원한다면 결혼을 할 수도 있어."
  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서 저의 샤레이드(제스처 게임. 몸짓으로 판단하여 말을 한 자씩 알아 맞히는 놀
이) 게임 상대가 되어 주신다면  저를 이 깡패들의 소굴에서 구해  주는 셈이 돼요. 아빠는 
이 게임엔 취미도 없으신 데다가 시대에 뒤떨어진 분이에요."
  순간 갬브레터의 얼굴에 승리의 기쁨이 넘처 흘렀다.
  "저녁 식사 시간에 담신을 데리러 올까?"
  그려는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들의 방식이 따로 있어요.  잊었어요? 아빠가 저녁 식사에 당신을  초대한댔어요. 
저녁 8시에 정장을 하고 오세요."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보란의 품 속으로 뛰어들며 열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의 숨
소리가 보란의 입으로 전해졌다. 그의 목구멍이 간지러울 정도로  여자의 혀가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여긴 날씨가 항상 따뜻해요. 식사 초대를 부감스럽게 생각지 마세요. 식사 후에  우린 어
디로 가죠?"
  그녀는 남자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보란은 그녀의 가슴을 톡톡 치고는 디조
르쥬가 사라진 출입구로 걸어가 잠시 멈춰서더니 안드레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대
는 벌써 그녀가 사라진 뒤였다.
  보란은 밖으로 나와 좁은 길을 걸어 별장의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주차장에 다다랐다. 별
장에 드나들었던 지난 며칠 동안 볼 수 없었던 덩치 큰 사내가 보란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누구요?"
  "글세, 차차 알게 되겠지."
  보란이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는 번쩍거리는 메르세데스 차에 몸을 파묻었다. 엔진이 달아
오르자 흰 배기 가스를 내뿜으며 차는 힘차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팜 비치 출신인 덩치 큰 
사내는 휘파람을 날리며 사라지고 있는 보란ㄷ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가보고 있었다.
  별장에서 반 마일쯤 벗어나자 보란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손가
락을 움직여 조심스럽게 피부 조직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디조르쥬에게 받
은 손자국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수술이 잘 됐다고 생각하며 그는 안드레아를  생각했다. 
기쁨과 후회의 감정이 한꺼번에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건  아주 우연한 인연이라고 그
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물으려 들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그는 디조르쥬의  딸에
게서 자신의 이익만을 얻어 내려는 자신의 계략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그
녀는 언제든지, 누구의 유혹에든 넘어갈 자세로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여자였다. 상대가  보
란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녀는 아버지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일을 꾸님 게 틀림없었다. 즉, 자신의 아빠를  괴
롭히고 상처를 주려는 의도에서 보란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그는 호텔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방으로 곧장 들어 가서 옷을 갈아 입고 난 그는 리볼버
를 옅구리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프런트로 내려가 지배인에게  고개를 끄덕해 보이고 20달
러 짜리 지폐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누가 날 찾지 않던가?"
  보란이 호텔 지배인에게 물었다. 그의 눈이 지페 위로 쏠렸다. 그는 보란을 뚫어져라 쳐다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램브레터 씨."
  "20달러면 충분할 텐데……
  "사실……."
  사내가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면서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채 한 시간도 못 되었어요. 어떤 분이 당신을 찾아와 저기 앉아 기다렸었지요."
  "그 사람에게 뭐라고 했나?"
  지배인의 눈이 다시 20달러짜리 지폐  위에 떨어졌다. 그는 온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저, 사실 말이죠…… 뭐라고  했느냐면요, 당신이 현재 이곳에  투숙하고 있으며, 카드를 
쓰지 않고 현금 지불을 해주는 분이라구요. 말이 없으신 편이고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그리고……."
  그는 보란의 얼굴에서 실망의 빛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배일 아침 출판업자와 함께 망아지 등 위에다 책을 100권씩  쌓는다고 말했
나?"
  보란이 불쑥 물었다. 지배인은 그저 벙긋거리며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기분 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램브레터 씨."
  그가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꼭 알고 싶다면 웃돈을 좀 얹으시죠."
  보란은 데스크에 몸을 기댄 채 20달러를 다시 집어 양복 주머니에 넣으며서 총이 보이도
록 했다. 그리고는 다시 50달러를 꺼냈다. 지배인의 눈이 현금과 권총을 번갈아 살폈다.
  "전 정말 잘 몰라요……."
  "ㅁ사실을 쉽게 털어놓으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 책상을 치우고  뺨이나 한 대 갈겨 줄
까, 어때?"
  그때 지배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의 입에서 조금  의외의 
말들이 흘러 나왔다.
  "그 분은 당신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래브레터 씨, 전 숨길 필
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당신이 며칠 전부터 이곳에 묵고 계시며 조용한 성격을 지닌 분이라
고 말해줬을 뿐이에요. 아! 그리고 다고스타 부인이 당신을 꼭 한 번 찾아왔다는 것도 말했
지요. 제가 잘못했나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다고스타 부인, 정말  과부라기엔 너무 젊고 
예쁘더군요. 불쌍해요……."
  "망아지에 대한 말도 했나?"
  "네,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나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
  지배인은 아랫입술에 경련을 일으켰다.
  "마라스코라고 한 것 같았습니다. 사랍들이 그를 허니 마라스코라고 부르는  것 같았어요. 
묘한 이름이었어요. 그 거친 외모하며……."
  "내 우편물에 대해서는?"
  지배인의 눈빛에선 갈등의 기미가 역력히 보였다.
  "전……아……마라스코는 줄리앙 디조르쥬와 관계가 있어요. 램브레터 씨.  알겠지만 디조
르쥬 씨는 다고스타 부인의 친아버지입니다. 이런 관게를 놓고 볼 때 전 도무지……."
  "자넨 내 우편물에 대새서도 얘길 했지?"
  "네, 선생님. 뉴저지와 플로리다에서 편지가 온다고 했어요. 난……그저…….
  "그래그래, 됐어."
  보란은 긴장으로 땀에 젖은 지배인의 손바닥에 50달러를 쥐어  주었다. 그는 로비를 가로
질러 밖으로 나갔다. 지배인은 미소를 띠면서 그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12.괴로운 과거
  "그놈은 망나니에 무일푼이야. 안드레아, 내 귀여운 공주."
  디조르쥬가 귀여운 공주라는 한물 간 단어를  쓸 때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딸에게 
애써 인식시키려 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안드레아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디조르쥬의 가정만큼 제멋대로인 집안은 또 없을 것이다. 안드레아와 그녀의 어머니는 한 
번도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모녀 사이에 유사점을 찾기는 어려운 형편이
었드며, 그 어머니란 여자는 마지막 인생의 황금기를 이탈리아의 리비에라 해변에서 모부림
치듯 즐기고 있었다.
  디조르쥬는 안드레아에게 3살 때부터 귀여운 공주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후 그 단어는 딸
과 타협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만 휴전하자는  뜻으로 디조르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되었
다.
   귀여운 공주란 말은 어쨌든 가끔이긴 했지만 부녀 사이의 대립된 감정을 무마시켜 주는 
경우도 있었고, 디조르쥬가 딸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할 때는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도 했
다.
  "그는 가족도 없이 혼자 제멋대로 떠도는 떠돌이야. 출신지도 불분명하고 이 세상의 모든 
호텔이 모두 그의 집이야. 내가 끼여 들고 싶지는 않지만  그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에 신중
을 기해 주기 바란다. 그런 사람들은 아빠의 사업에 방해만 될 뿐이란다. 얘야, 그리고 그런 
사내는 여자와 쉽게 사귀고 쉽게  떠나는 법이지. 내가 너희들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구.  안드레아, 넌 누구보다도 아빠를 잘  알고 있잖니. 모든 
일은 신중히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정보는 누가 갖다 바치던가요?"
  놀란 듯한 음성으로 안드레아가 물었다.
  "정보 수집은 나의 일 중 하나야."
  "알고 있어요. 아빠. 그러나 아빠의 이번 정보는 잘못된 것 같군요.  프랭크는……음, 그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르겠지만 상관 안 해요. 그는 이미 내 마음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어
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뿐이에요."
  그녀는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결국, 엄마가 30년 전에 아빠를 뒷조사하고 다녔다면 난 여기 있지도 않있겠지요?"
  디조르쥬는 안드레아의 말이 자신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히는 걸 느꼈다.
  "아, 아, 그래……. 그렇게 따지고 들지 말렴. 아빠를 궁지에 몰아 넣는 말이나  함부로 내
뱉구. 난 이제 혼자 고립된 느낌만 드는구나. 난 네가 해달라는 것이면 뭐든 다 해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그게 어떠헤 똑같을 수 있겠니? 시대가 변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무
일푼도, 무학도 관계 없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학벌과 재력이 없이는  살아 남질 못한단다. 
너는 이 아빠가 엄마를 늘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겠지?"
  "아빠는 이미 상처 입고 돌아온  엄마를 닦달했을 때부터 엄마의  숨통을 막았던 거예요. 
내게도 마찬가지구요. 아빠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에요. 아빠는 가정보다, 나라보다,  신보다 
더 아빠의 일이란 것에 충성을 바쳤어요. 우린 결국 뒤로 밀려난 거잖아요. 내 말이 틀려요.
아바?"
  디조르쥬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갔다. 딸의 입에서<아빠의 일>이란 말이 나왔을  때가 
제일 심했다.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생각해 낸 말이 아니지.  안드레아? 누가 우린 귀여운 공주에게  이런 황당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까?"
  "그건 옛날 애기도 황당한 얘기도 아니에요. 20년대  말, 30년대 초엽의 일이에요. 장소는 
뉴욕, 이미 이 얘기는 상식화되어 있어요. 난 이 이야기가 미국의 교과서에 쓰여 있다  할지
라도 놀라지 않을 거예요. 마피아와  코사 노스트라는 하나예요.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요. 
아빠는 그 세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시죠? 전 다 알고  있어요. 아빠가 하는 일이 무엇
이며 아빠의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 말이에요. 날 귀여운 공주니 하면서 타이를 생각은 하
지 마세요. 깡패의 딸이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되기에는 너무  과분하다는 말은 하지 말한 말
이에요. 도대체 우리 모녀를 이렇게 잡아 놓은 다음에 어디다 적절하게 쓰려는 것인가요?"
  줄리앙 디조르쥬는 놀랄 뿐이었다. 마음이 아프기 이전에 슬픔이 앞섰다.
  "그래, 넌 이 늙은 애비를 가슴 아프게 만드는구나. 넌 내 상처를 건드리고 있는 거다, 안
드레아. 그렇다고 네가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야. 속을 터놓아  줘서 기쁘구나. 네 말이 모두 
옳아! 귀여운 공주야. 아빠는 마피아가 되기 전까지는 빈털터리였었다.  아침도 거르는 형편
이었지."
  그는 한 손을 어깨 위로 올려 놓으며  화려하고 값비싼 가구로 장식된 방 안을 둘러보았
다.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은 다만 꿈에 불과한 것이었단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잘 기억해라. 
모두 코사 노스트라 가 덕분이다. 코사는 너에게도 옷과 음식들을 주었어. 그래서 이 아빠는 
그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거야. 네가 조금만 더 이해해 주면 좋겠구나. 네 말이 틀렸다는 게 
결코 아니다. 네 말이 옳기도 해. 그러나 내가 만일 카포의 귀여운 딸이라면 내가 하는 말이 
불쌍한 아빠를 얼마나 괴롭히게 될까 하는 생각도 할 것 같은데. 이 아빠는 피닉스 서부 지
역에서는 가장 위대한 인물이란다.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그것은 아래로 전해져야 해.  한 
명이 다치면 또 하나가 나서게 되지. 그 명령은 개인적인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 단다."
  디조르쥬는 몸을 일으켜 앉더니 서글푼 시선을 딸에게 던졌다.
  "얘야, 아빠와 딸이 이런 얘기나 나누고 있어야 겠니? 우리 다른 얘기하지꾸나."
  *아니에요, 아빠. 이제 그만두기로 해요."
  "램브레터에게 이사실을 털어놓을 작정이니?"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네. 그는 저녁 식사 때 올 거예요. 그때 그에게 모두 말하겠어요."
  "내가 직접 얘기해 줄까?"
  디조르쥬는 부드럽게 말했다.
  "차라리 그게 더 좋을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비쳤다. 그녀는 울면서 방을 뛰쳐 나갔다. 그리고 문  밖에
서 그녀가 말했다.
  "아빠, 미안해요!"
  쿵쾅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에 섞여 디조르쥬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 나
왔다.
  "나 역시 미안하구나. 귀여운 공주야!"
  그는 무거운 유리 재떨이를 벽에다 힘껏 던졌다.
  
  13.마피아의 소굴
  눈이 발갛게 충혈되어 몹시 피로해  보이는 하인이 보란을 디조르쥬의  서재로 안내했다. 
그의 옆구리 부분이 불룩했다. 하인은 보란에게 음료를 권하면서 잠시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보란이 가죽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기대려 하는데 왼쪽 팔꿈치에 걸리는 게 있었다. 재뗠
이였다. 하인은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서재 안은 어두웠고 그림들은 기
분 나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는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들을 쭉 훑어 보았다.
  누군가가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늘한 기분이 목 뒤로 해서 척추
까지 전달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성냥불을 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스카치 위스키 잔을 든 
채로 서성거렸다.
  보란은 빈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코트를 벗었다. 권총집을 확인하고 상의의 단추를 잠
갔다. 그리고 다시 서재에서 서성거리자  마치 럭비 선수 같은 사내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보란에게 다가왔다. 주차장에서 마주쳤던 사내였다. 그 사내는 38구경을 들고 문의 입구에서 
멈추었다.
  "무기를 갖고 다는 분이군."
  사내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어깨가  우람하고 흙빛의 피부였으나 발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런 건 누가 체크하지?"
  보란이 딱딱하게 물었다.
  "마라스코란 친구, 바로 나야."
  육중한 체구의 사내는 계속 빈정거렸다. 보란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을 옷 속으로 넣으
려 하자 마라스코가 재빨리 저지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여기에 기대. 두 손을 책상 위에 오리고."
  "난 자네 같은 친구들에게 등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보란이 빙그레 웃으며 재빨리 피스톨에 손을 댔다. 그러나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서퉅 짓이야. 그래, 그걸 책상 위에 올려 놔!"
  보란이 명령대로 하자 마라스코가 한 발 앞으로 나와 피스톨을 집어 코트 주머니에 넣었
다. 그는 서재 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이곳을 나갈 때 돌려 주면 되겠지?"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 이름이 램브레터라면서?"
  보란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뉴저지 출신의 록키 램브레터와는 어떤 사인가?"
  "록키는 내 삼촌이야. 62년도에 죽었지."
  보란이 담담하게 말했다. 마라스코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다시 문가로 
걸어 가다가 몸을 돌리며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 진짜 이름이 뭐야?"
  보란은 빙그레 웃었다.
  "스무 고개 놀이를 즐기나? 내 이름을 잘 알 텐에."
  "마이애미나 세인트 페트에서 일한 적이 있나?"
  "당신은 내 과거가 무척 궁금한 모양이굼."
  마라스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문을 열었다. 그 자세로 그는 말했다.
  "디조르쥬가 1분 내로 나타나실 거야. 그 동안 편히 쉬게."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진 편안했어."
  보란이 빈정거렸다.
  마라스코는 눈을 찡긋하고 웃어 보이더니 곧 서재를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보란은 무표
정하게 그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테이블로 다가가 술을 한 잔 따랐다.  아직도 
누군가의 시선이 그를 쫒고 있었다.  그는 그 시선이 오히려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 그는 이탈리아 인들과 이웃하며 자라났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경험 그
리고 피츠필드 전투 때 세르지오 프랭키 가와 맺었던 짤막한 인연 등에서 그는 이탈리아 인
들의 의식 구조를 알 수 있었다(그때의 일이  도움을 줄 것이다). 보란은 스카치 잔을 들고 
여전히 서재에서 서성거렸다. 그로부터 5분 뒤에 디조르쥬가 나타났다. 그는 인사말도  없이 
불쑥 물었다.
  "이 팜 스프링스엔 왜 왔나?"
  "별 일은 없소. 그저 지나다 보니 들르게 된 것뿐이오. 난 당신 딸에게 마음을 준 적이 없
소. 당신 딸과는 몇 번 같이 크게  웃고 떠든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괜히 당신이  문제를 
확대시켜 생각한 거라구요. 난 당신 딸의 얼굴에 우울한 빛을 없애 주려는 의도에서 그녀를 
가까이 했던 거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디조르쥬가 굳은 표정으로 다그쳤다.
  "대답은 이미 한 걸로 아는데요?"
  보란이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렇다면 왜 여길 들렀어? 내 딸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면 들를 필요도 없잖아!"
  "내 딸이라구요? 웃기시는군요."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지도 않고 그냥 물었다 뺏다 하는 동작만 반복했다.
  "이 봐요, 디스. 당신 딸 말이오. 나이에 비해 아직 싱싱하더군. 솔직히 얘기해서  이젠 처
녀도 아니잖소? 우린 내가 투숙한 호텔에서 만났고. 몇 번 같이 웃다가 친구가 된 거죠.  사
람들은 그녀가 당신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고.  하긴 당신은 디조르쥬고 그녀
는 다고사타인긴 하지만…… 그러니 내가 어떻게 당신 딸인지 알았겠소? 우린 서로가 상대
방의 신분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소. 우린 3일 전에 처음 만났다구요."
  디조루쥬의 어깨가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그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했다.
  "왜 여기까지 기어 왔나? 팜 스프링스에 말이야."
  보란은 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 책상 위를 탁탁 쳤다.
  "정말 알고 싶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뱉았다. 디조르쥬가 접혀진 신문지를 흘끗거리며 말했다.
  "그 신문이 어쨌다는 건가?"
  보란이 신문을 펼치자 보란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었고, LA경찰이 그를 잡기 위
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계약이란 재미있는 일이죠."
  램브레터로 변한 보란이 말했다.
  "그럼 일확 천금을 노리고 이곳에 왔단 말이가?"
  카포가 비양거리는 투로 말했다.
  "당신의 형편을 알고 있소. 괜찮은 게임이죠?"
  "보란은 어디에 있나? 브라질? 아니면 죽어서 팜 빌리지의 어느 곳에 경찰들에 의해 매장
당했나?"
  보란이 여유를 보이며 대꾸했다.
  "그는 바로 이 도시에 있소. 이 팜 스크링스에!"
  디조르쥬는 재미있다는 듯 웃어댔다.
  "어떻게 그걸 아는가?"
  "보란을 이곳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소."
  보란은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러자 4분의 1인치 정도의 상처가 드러났다.
  "45구경 총탄이 지나간 흔적이오. 맥 보란은  45구경 피스톨을 가지고 있소. 무슨  뜻인지 
알겠소?"
  "서툰 수작은 그만 두는게 좋겠어!"
  디조르쥬가 무시하려 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연극은 집어 치워! 무엇에 긁힌 상처를 가지고 그래?"
  "긁힌 상처라니요!"
  보란은 투덜거리며 디조르주가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가슴을  더 열어 보였다. 디조르쥬는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넨 행운아야, 프랭크. 오른쪽에도 1인치 정도의 상처가 있군. 치료하는 데 얼마나 걸렸
나? 1주일?"
  보란에게 그만 셔츠 단추를 잠그라는 눈짓을 보내며 디조르쥬가 물었다.
  "이제야 이 상처를 믿겠고?"
  보란이 단추를 채우며 물었다.
  "그래, 정말 행운아로군, 프랭크. 여기 애들도 보란과 싸웠다는 애들은 많지 않아. 정말 그
와 싸웠나?"
  그의 얼굴에는 상당한 신뢰의 빛이 감돌았다. 보란은 즉시 그 표정을 간파했다.
  "지난 화요일 밤 디저트 교차로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소."
  "여기서 겨우 반 마일 떨어진 곳어서 말이지?"
  디조르쥬는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소. 이 별장으로 오던 길이었소. 난 신문을 통해 그의 사진을 봐두었기  때문에 그가 
보란인 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린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소."
  "그래서 자네가 그를 쏘았나?"
  디조르쥬가 성급히 물어 왔다.
  "그런 거 같지 않소. 보란은 굉장히 빨랐어요. 솜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대였소. 우린 그
때 빨간 신호등 아래 나란히 서 있었죠. 순간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방화쇠를 당겼어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별장 쪽에서 강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바람에 그를 정확히 겨냥하지 
못했소. 보란은 곧 차를 돌려 사라져 버렸소. 언젠가는 또다시  나타날 거요. 그 후로 난 꼭 
무기를 휴대하고 다닌다오. 그때 이 상처가 생겼으니까."
  "그놈은 무슨 차를 타고 있던가?"
  "큰 차였소. 내 생각엔 크라이스러 같았소."
  "아하! 화요일 밤이면 바로 1주일 전인가?"
  손바닥을 치며 디조르쥬는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책상을 한바퀴 돌았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도 이 부근 어딘가에 있겠군."
  디조르쥬는 아플 정도로 자신의 손가락을 힘주어 깨물며 중얼거렸다.
  "아마 자네 총에 그자가 맞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래서 아직껏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일지
도……."
  "글쎄요……."
  이들의 대화가 안드레아 다고스타의 요란스런 등장에 의해 중단되었다. 그녀는 조그만 손
가방을 왼손에 달랑거리며 들어 왔다. 그녀는 가방을 책상 위로 집어 던지며 말했다.
  "저의 건달에게 얘기 다 했어요, 아빠?"
  "아직."
  디조르쥬가 허락할 수 없다는 눈치를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허벅지가 훤히 드
러난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빨리 끝내세요. 아빠! 나는 이 사람과 함께 갈 데가 있어요. 난 이 깡패들의 소굴에선 더 
이상 못 산다구요. 이리 와요, 프랭크. 여길 나가요!"
  "아무 데도 못 간다, 안드레아. 여기 앉아 있어!"
  디조르쥬가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내가 이곳을 나가면 아빤 아마 날 쏠 거예요. 남아 있더라도 난 감금당할 거구요."
  그녀는 유쾌한 듯 웃어 대면서 보란에게 팔짱을 끼었다.
  "어때요, 프랭크? 마피아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 자기  딸을 위협하는 아빠를 어떻게 생각
하세요? 세상 말세가 아니겠어요?"
  어디서 구했는지 그녀의 손에는 니켈로 도금한 22구경 권총이 들려 있었다.
  "자, 가요. 프랭크!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요. 아빠, 그렇다고 놀라진 않으시겠죠? 이건 아
빠를 닮았기 때문이에요. 난 아빠 딸이잖아요? 나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났나 
보죠?"
  그녀는 더욱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디조르쥬는 자신의 딸이 쏜 총에 맞고 바닥에 쓰러
져 죽어가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란은 한 손으로 안드레아의 뺨을 때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 재빨리 그녀의 권총을 빼앗
았다. 그녀는 소파 위로 벌렁 나자빠졌다. 하앟게 질린 얼굴에 보란의 손자국이 선명히 나타
나 있었다.
  "아, 이럴 수가!"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보란은 책상 위에  총을 내던지며 
안드레아에게 다가가 강렬하고도 짧은 키스를  퍼부었다. 자신의 손자국이 나  있는 뺨에도 
키스를 했다. 보란은 그녀를 힘껏 껴안으면서 그녀의 방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이층 복도의 오른쪽 첫 번째 방이네."
  디조르쥬가 서슴없이 대답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씁쓸해 보였다. 그들이 함께 복도를 걸어
가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허니 마라스코를 만나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안드레아의 팔이 보란의 어깨 밑으로 축 처져 있었다.
  "완전히 취했어."
  보란이 마라스코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앞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디조르쥬가 그 뒤를 따르다 마라스코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이 친구는 프랭크 럭키, 이쪽은 필이야. 서로 인사들 나눅게. 프랭크는 우리를 도우러 
온 사람이라네. 내 말이 맞지, 프랭크?"
  "맞습니다."
  보란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꾸했다. 그는 자신이 럭키라고  불리운 사실에 대해 조소
했다. 하긴 디조르쥬가 1주일 된 상처의 내막을 그대로 믿어 준 것 자체가 행운이긴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서 통쾌한 일은 디조르쥬 부녀 사이의 불화였던 것이다.
  그는 안드레아를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키스르 해주었다. 디조르쥬가 그의 옅으
로 다가서며 말했다.
  "프랭크, 고맙네. 딸과 잠깐 단둘이 있고 싶네. 이 애와 할 얘기사 있어. 아래층에 가서 저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누도록 하게.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나세."
  "기다리겠습니다."
  보란은 안드레아의 방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마피아의 대원들과 차례로 인사
를 나누었다.
  
    14.미스터 포인터
  -불치의 죄인-수사대로부터 전임된 칼 라이온스는 즉시 10일동안의 휴가를  얻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무사 태평한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으로 휴가를 보냈다. 그가 근무
지로 돌아온 날은 10월 20일이었다.  그는 충분한 휴식으로 인해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임무가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했다. 맥 보란에 대해 생각이 또다
시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도 그와 같은 이단자나 독자
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칼 라이온스는 항상 청렴 결백
한 경관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그는 맥 보란이라는 인물이 그의 공직  생활에 
어떤 형태의 영향이라도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보란은 그의 생에 짙은 그림
자를 드리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불치의 죄인-작전에서의 임무 포기와 함께 경찰서 내의 가장 흥미진진한 가십거리는 팀 
브래독 주임의 장래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라이온스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는 
강경하고 완고한 수사 주임 팀 브래독에 대해 존경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거
의 애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브래독이 맥 보란을 체포하는데 실패한 사실에 대해 라이온스도 물론 상당한 책임감을 느
끼고 있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의 선천적인 의무감과 직장에 대한 충성심은 계
속 그 일을 들쑤셔내어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그의 내적 갈등과 계속 싸워
야만 했다.
  경관에게 있어서도 역시 첫째 의무는 개인적인 윤리 의식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
는 보란 사태를 다루는 데 있어 그의 앞에 열린 단 하나의 길을 따라 행동했을 따름이었다. 
두 번 이나 그는 맥 보란으로부터 등을 돌림으로써  그가 달아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브
래독은 그의 이런 배반 행위를  결코 알지 못했다. 또한 라이온스는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배반행위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없었다. 지금 훌륭한 한  인간의 장래가 저울대에 올
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온스의 윤리 척도로 본다면 팀 브래독과 그의 야망은 누구의 
질타도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라이온스는 -불치의 죄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는 맥 보란
에 대해서는 다시 듣지도 보지도 않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의 전속 명령서를 집어 들었다. 봐이스의 야간 순찰대였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상관을 만나 보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 갔다. 라이온스는 그가 전속된 새로운 부서로부터 환
영을 받았으며 그들과 금세 친해져  잠시 이런저런 잡담도 나누었다. 잠시  후 젊은 경위는 
한 무더기의 지시사항과 메모지를 들고 그곳을 나와 대기실로 돌아갔다.
  자정이 조금 지난 뒤에, 아직  그가 지시 사항과 메모들이 적혀  있는 서류들을 훑어보고 
있을 때 그의 새로운 파트너인 알 매킨토시가 불렀다.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교환의 말에 의하면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자가 나타났다는군." 
  "봐이스에는 내 정보원이 아무도 없어. 알, 자네가 받아 보지 그래?"
  앞으로 읽어야 할 것들이 잔뜩 들어 있는 서류철을 지겹다는 듯한 눈길로 멀거니 바라보
고 있던 라이온스가 의아한 눈빛이 되어 말했다.
  "그 사람은 자네와 통화하고 싶다는 거야. 칼, 개인적으로 말이야."
  매킨토시가 말했다.
  라이온스는 놀라서 눈썹을 치켜 세웠다. 그는 곧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라이온스 경위요. 전화 바꿨습니다."
  "장거리 전화요. 그러니 빨리 끝냅시다. 나를  연방 마약 단속반들과 만나게 해줬으면  하
오. 그들이 좋아할 것 같은 정보를 갖고 있소."
  칼칼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어떻게 내 이름을 아셨지요?"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이 있소. 너무 겁내기 마시오. 나를 그들과 만나게 해주겠소?"
  "해보겠습니다."
  라이온스는 대답했다. 그는 매킨토시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매킨토시는 곧  옆방으
로 달려가 같은 선의 또 다른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름과 전화 번호를 알려 주십시오.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알잖소? 당신과 다시 통화할 수 있겠소? 새벽 5시
에 이 전화로."
  사내는 여유 만만했다.
  "조처를 취해 보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선 뭐라고 확답을 드릴 수 없는 처지입니다."
  "부탁하오. 정보를 직접 받을 사람의 이름과 전화  번호를 알려주기 바라오. 직접 말이오. 
이 일은 어마어마한 규모라는 것을 명심하고 극비에 붙여 주시오.  나는 오래 기다릴 수 없
는 사람이오."
  "왜 그 정보를 나한테 알려 주지 않는 겁니까?"
  라이온스는 슬며시 말을 돌렸다. 열린 문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있던 매킨토시가 슬쩍 윙
크를 보냈다.
  통화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당신은 이런 일에 관련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요."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 역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라이온스는 자신있게 대꾸했다.
  "이 일은 마약 밀매 전담반이 다룰 일이오. 마피아가 관계되어 있소. 라이온스, 큰 것이라
구요. 나는 지휘자의 이름도, 거사 날짜와 루트오, 게다가 화물 인환증이나 배의 종류까지도 
몽땅 알려 줄 수 있소. 전화로 얘기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화제 아뇨? 한 가지, 나는  중간에 
그 누구도 끼여 드는 걸 원치 않소. 그 점 유념해 두시오."
  "그러면 내가 선생을 직접 만나기로 하겠소."
  라이온스가 제안하며 문과 방을 가로질러 그의 파트너에게 미소를 보냈다.
  "정말 이 일에 끼여 들어도 상관 없겠소, 당신?"
  "그건 내 직업이오. 미스터……미스터……."
  "왜 당신은 날 포인터(정보를 제공하는 자,  누설하는 자)라고 부르지 않소? 생각해  보시
오. 이 건에 대한 내 얘기를 끝내기 위해서 5시에 다시 전화하도록 하겠소. 함부로 행동하여 
일을 망치지 마시오, 라이온스!"
  갑작스럽게 경위의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설마, 설마 당신이 보란은 아니겠지?"
  그에게 더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대답이 날아왔다.
  "내가 듣기로는 보란은 죽었다는데."
  "그래요?"
  "5시에, 그럼!"
  "내가 이 일을 직접 다루어도 좋은지 상부에 알아봐야겠소. 당신은 마피아 내부의 사람이
오, 미스터 포인터?"
  "물론 그렇소!"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매킨토시가 송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라이온스에게로 다가왔다.
  "이건 바라키(미국 마피아의 중간 보스로서 최초로 마피아에 대한 비밀과 조직 내의 활동 
상황 등을 증언하여 큰 파문을 일어켰던 인물)사건 이래 가장 큰 사건이 될 것 같은데?"
  젊은 경찰관은 흥분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괜찮은데?"
  라이온스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다리를 책상 위에 걸쳤다.  그리고는 서류 뭉치들을 옆으
로 밀쳐 놓았다.
  "가서 경감한테 얘기해 보세. 포인터는 장거리 전화라고 말했어. 얼마나 먼 거린지 모르겠
지만.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하고……. 대체 그자가 원하는 건 뭘까?"
  라이온스 경위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때까지 줄곧 의아심을 품고 있었다.
  한편 맥 보란은 팜 스프링스에서 대체로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의 생애와 운명은 새
로운 피륙을 짜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모두를  포함시켜 짜여지는 새롭고 피비린내 
나는 공포의 융단이었다.
  10월 21일 아침 7시 30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서는 극비에 붙여진 새로운 특수 작전이 
추진되고 있는 중이엇다. 암호명은 미스터 포인터로 정해졌다. 작전은 각 부서의 상호  협동 
작전의 형태를 취하기로 결정되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의 칼 라이온스와 알 매킨토시, 미 
연방 경찰 본부의 암거래 조사위원회 위원인 해럴드 브로렐라, FBI의 로스앤젤레스 지부 요
원인 레이몬드 포르토체시, 그리고 전 미국 국립 마약 요원인 조지 브루마이어와 마뉴엘 드 
라메르카 등이 그 구성요원이 되었다.
  맥 보란이 마피아의 굳게 닫힌 문을 법의 강제력이라는 신선한 대기 앞에 활짝 열어 젖히
고 있었다. 또한 거대한 범죄 조직에 대항하고 있는 맥  보란의 전쟁은 이로써 더욱 극적이
고 긴박한 국면으로 접어 들게  되었다. 여러 가지 날실과 씨실들이  직물속으로 같이 짜여 
들어감에 따라 고통과 공포와 폭력 그리고 대량 학살이 예고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
의 눈에도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부정으로부터 정의가 나올 수 없으며, 맥 보란이 지옥이라
고 규정한 이 세상으로부터는 항상 악과 피비린내나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는 것을.
  
    15.메시지
  윌리 워커와 그 일당이 며칠 전 돌아오면서 들고 온 보고서는 완전히 부정적인 것뿐이었
다. 맥 보란에 대해서도, 페나에 대해서도 그 상황이나 행방은 전혀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놈의 도시는 내 입 속처럼 말씀합니다, 디스. 만일 그 녀석들이 보란을  거기에다 묻어 
버렸다면……. 아무도 그걸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장으로부터 무덤 파는  노동자들까지 
다 캐물어 봤습니다만 아무것도 없었어요. 루이 페나도 그래요.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흔적
도 남긴 것이 없었습니다. 내 생각을 물으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루이 페나
는 숨은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 보란이라는 놈이 그를  잡아다가 아무도 몰래 무덤 속에
다 장사를 지내 버렸거나 말입니다."
  워커와 그의 동료들은 비상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팜 스프링스 근교
를 의심받지 않게 순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디조르쥬의 시골 별장을 찾아오는 모든 방문객들은 강력한 보안 조치에 의해 공항에 도착
했을 때부터 공항을 떠날 때까지 철저히 경호되었다. 별장은 무장 기지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최근에는 그런 중요한 방문객이 여럿 있었다. 안드레아 다고스타는 사실상 가택  연
금 상태였으며 집 밖으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때때로 잠시  동안 가족 풀장을 
배회하는 경우에도 그녀는 곳곳에 배치된 몇 명의 저택 경비원들에 의해 상당히 엄중한 보
호를 받았다.
  긴장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조되어 갔다. 10월 21일에  줄리앙 디조르쥬의 
불편과 거북함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오후 무렵 필립 허니 마라스
코를 그의 침실로 불러들인 다음 그 건장한 사내에게 말했다.
  "루이 페나에 대해서 신경이 쓰여 도저히 이대로 앉아 있질 못 하겠어. 그 녀석을 찾아낼 
수 있는 인물이 이곳에 없겠나?"
  무감각한 표정을 한 얼굴로 마라스코가 대답했다.
  "루이는 당신이 이런 식으로 걱정을 하고 있으리라는 걸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겁니다, 디
스. 그는 당신이 자신을 찾아내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우리는 뭐가 뭐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렇지 않나, 필? 
하지만 나는 루이가 자꾸 마음에 걸려."
  "그에 대해서라면 조금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건 그의 자존
심 문제입니다. 그는 보란의 머리통을 손에 쥐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그의 부하들에
게 큰소리 치고 떠났다고 합니다."
  마라스코는 솔직하게 말했다.
  "누굴 시켜서라도 루이에게 이곳으로 빨리 돌아오는 게 좋겠다는 말을 전하게 해야겠어."
  마라스코는 이 품위있는 대화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외부 사람에게는 디조르쥬의 불평은 다만 게으르고 무사 태평한 억만 장자의 안달 정도로 
들릴지 모르나 가문 내에서의 전언이란  군대에서의 명령만큼이나 확고하고 명료한  것이었
다. 마라스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복종의 뜻을 표했다.
  "말을 전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디스. 뭐, 또 특별히 루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
까?"
  디조르쥬는 손톱 끝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말했다.
  "이런 사태하에서는…… 우린 힘을 합쳐 함께 버텨 나가야  해. 아니면 소리도 없이 살해
당하고 말게 돼."
   마라스코는 디조르쥬의 책상을 손톱으로 토닥토닥 두들겨 댔다.
  "알겠습니다."
  "프랭크 럭키에 대해서는 계속 손을 쓰고 있나?"
  디조르쥬는 편안한 말투로 물었다. 그와 얘기하는 동안 처음으로 마라스코의 태도에서 감
정이 배어 나왔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우두머리에게로 돌아섰다.
  "모든 것에 대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디스. 하지만 빌어먹을, 저는 뭐가 뭔지 모르
겠습니다. 모든 녀석들이 다 그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칠고 강하죠. 바윗덩이 같습니
다. 그런데다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도, 남용하지도 않거든요.  그 녀석들한테 호감을 사려
는 것도 아닐 텐데…… 아시겠지만 그는 어떤 무제가  가로놓여 있어도 물러서지를 않아요. 
녀석들은 그를 참 좋아합니다. 말하자며, 그러니까…… 그를 우러러본다고나 할까……  당신
도 아시겠지만…… 그런데 난 웬지……"
  "알았어. 무슨 뜻인지 알아, 필. 역시 내게도 뭔가 걸리는 게 있긴 잇는데, 그게 뭔지를 딱 
꼬집어 낼 수가 없어. 그의 지나온 과거에 대해서는 확실히 조사해 봤겠지?"
  마라스코의 찌푸려진 얼굴이 더욱 험악스러워졌다.
  "그렇습니다. 모두 조사해 봤어요. 그는 많은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더군요. 내가 추측하기
로는 상당히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뉴저지에서 그를 안다는  자를 한 명 
찾아냈습니다. 그는 플로리다의 감옥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겠지?"
  디조르쥬는 조용히 다짐했다.
  "압니다. 벌써 관례적으로 해야 할 일은  다 끝냈습니다. 아시겠습니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한편으로는 빅터 포피를 내려 보냈습니다. 그와 충분한 얘기를 나눈 뒤에 아마 내일
쯤에는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 뒤에는 저절로 알게 되겠지요. 프랭크 럭키라는 자가 얼마나 
확실한 자인지 말입니다."
  "나는 그자에 대해 철저히 파악되기를 바라고 있어, 자네도 그 이유는 알겠지?"
  디조르쥬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입니다."
  "그 동안 자네가 그를 감시해 주어야겠네."
  "알겠습니다, 디스."
  "우리는 가문을 좀더 확대시킬 필요가 있어. 위원회에서 그 문제에 대해 토의할 예정이야. 
나는 이 프랭크 럭키라는 자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싶어. 내가  원하는 건 다만 조사가 얼마
나 완벽하게 끝났느냐 하는 거야, 알겠나?"
  마라스코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문을 한 손으로 붙잡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
었다.
  "그는 판단력이 뛰어난 자입니다. 신념도 가지고 있죠. 나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만일 보란이라는 녀석이  아직 이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다면 프랭크 
럭키라는 자야말로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그래. 또 루이 페나에 대한 일도 잊지 말게."
  디조르쥬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10분 안으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디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자네는 알겠지, 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디스!"
  이러한 단순하고 암시적이며 비공식적인 대화는 마피아의 살인 청부 계약에 관한  내용이
었다. 디조르쥬의 견지에서 보자면 스크루이 루이 페나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
비합리적인 행동이란 말이야`하고 디조르쥬는 계속 생각했다.   그런 짓이란 항상 죄의식의 
소산에 불과했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루이 페나가 고집스럽게 가문의 거처를 피하는 행동의 
배후에 숨겨진 까닭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는 앞으로 24시간 안에 그 이유들을 알게 
되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살인 청부 계약을 성립시키거나, 또는 그 둘 모두를 취하게 될 것
이었다. 그리고 필립 허니 마라스코는 이미 그의 카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백히 알고 있
었다.
  30분이 지났으나 디조르쥬 저택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가문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그 경악스러운 소식은 숨이 턱에 차서 당도한 한 대
원에 의해 디조르쥬 저택 내에 알려졌다. 그는 전세 낸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 토니  데인저
의 일당에 속하는 전투병인 그 전령은 즉각 카포와 회합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는 흥분에 떨
며 디조르쥬에게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완전히 박살내 버렸습니다. 디조르쥬님.  어디에서나 다 마찬가지에요. 그
들이 때려부순 게……."
  "잠깐, 잠깐만! 좀 진정해! 이 친구야! 그들이 누구란 말이야?"
  디조르쥬가 일단 그를 진정시켰다.
  "아마 연방 수사관인가 봅니다. 그들이 추라 비스타에 있는 우리 창고를 습겨해서 물건들
을 몽땅 빼앗겼습니다. 토니 데인저는 그 근처에 있었는데, 그는 바로 몇 분 전에 그곳을 떠
났거든요. 그가 화물의 선적이 끝나자마자 곧 멕시코 인들이 모랄레스를 붙잡았다고 당신한
테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그가 선장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거
에요."
  디조르쥬는 떨리는 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배는 어떻게 됐어? 배는 도대체 어떻게 됐나?"
  "저도 그 배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토니 역시 모를 겁니다. 그게 바로 제가 드리고 싶었
던 얘기입니다. 토니가 모르는 것은……."
  "토니 그놈은 제 엉덩이가 어떻게 돼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구만! 내 말은 배에 물건이 얼
마나 있었느냐는 거야!"
  디조르쥬는 발악을 했다.
  "아, 뭐 모든 재료가 다 있었죠, 디조르쥬님. 바로 그게 제가 아까부터……."
  "토니 데인저는 지금 어디에 있나?"
  "항구로 내려갔는데, 왜냐하면……."
  "돌대가리!"
  디조르쥬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들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 항구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것 아냐?  그 녀석
은 바로 그들의 아가리 속으로 기어들어 갔구먼. 그래! 좋다,  우리의 나뭇더미 속 어딘가에 
쥐새끼가 한 마리 기어든 것이라면……. 너는  당장 헬리콥터를 타고 샌디에이고로 돌아가! 
토니 데인저를 찾게 되거든 말해. 디스가 말하기를 다 죽여 없애라고 하더라고. 알겠나? 몽
땅이야. 모든 일은 다 뒤로 미뤄버려. 또 디스는 그 쥐새끼를 원한다고도 전해. 그리고 뭐든 
몸에다 지니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꼭 전해! 자, 어서가라! 가는  길에 윌리 워커와 
필립 허니한테도 얘기해. 내가 지금 당장 보잔다고 말이야!"
  몇 분 뒤에, 저택이 아까의 흥분 상태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디조르쥬는 워커와 
마라스코에게 사실을 있는 대로 털어놓았다.
  "얼마 전부터 느낌이 이상했었는데 무언가 일이 잘못됐어.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머릿속에 두 개의 이름이 떠올랐다. 누구인지 알겠나?"
  "루이 페나."
  마라스코가 말했다.
  "프랭크 럭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워커였다.
  "그렇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야!"
  디조르쥬는 경고하듯 내뱉었다. 그의 눈길이 염탐하듯 마라스코에게로 떨어졌다.
  "빅터 포피가 재기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그가 우리들에게 필요한 무슨 정보를 가진 것이 
없는지 알아보도록. 그러면 그 프랭크 럭키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게 되겠지."
  마라스코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화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디조르쥬가 윌리 워커에게 명령했다.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추적해. 스크루이 루이가 있음직한 곳이면 어디든지 뒤져  봐. 우리 
일과 조그마한 연관이라도 있는 곳은 샅샅이 뒤져! 그리고 번화가도 파고들어 가서 그 집승 
같은 놈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라면 무엇이라도 긁어 와. 무언가 낌새가 있으면 즉시 연락해!"
  워커는 눈을 굴리며 방을 나갔다. 마라스코는 작은 수첩을 꺼내었다. 그는 신호가 닿자 디
조르쥬의 눈을 바라보며 돌아섰다. 대화는 짧았다. 마라스코는  대부분 듣고만 있었다. 마침
내 그는 송수화기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거의 비탄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소식이란 뭐야?"
  디조르쥬는 고통스런 얼굴로 물었다.
  "빅터 포피였습니다. 그 사내는 프랭크 럭키를 벌써 5년이 넘도록 보지 못했다고 하는 군
요. 그가 프랭크에 대해 마지막으로  들은 얘기로는 그가 베트남에  파견되었으며 그곳에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 대개 그 정도뿐이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돼?"
  디조르쥬는 잔뜩 긴장하여 되물었다.
  "살해되었답니다, 디스."
  방 안은 정적에 휩싸여 버렸다. 곧 입을 연 것은 디조르쥬였다.
  "플로리다에 있다는 그 자가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어."
  "소문으로 들은 소식이라고 했으니까요."
  "프랭크 럭키에게 기회를 줘보도록 하자. 그런 소문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들어 봐야겠
어."
  "그게 좋겠습니다, 디스."
  다시 디조르쥬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그 일을 직접 처리하겠다. 빅터가 그 플로리다의  사내를 데리고 돌아오는 날이 언
제라고 했나?"
  "벌써 기름통에 연료를 가득 채웠답니다. 곧 출발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내일쯤에는 도
착될 것 같습니다.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 네가 프랭크 럭키에게 말해 줘. 내가 얘기할 게 있다고 말이다. 알겠지, 필?"
  마라스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16.배신자
  칼 라이온스는 10월 21일 저녁, 어둠이 시가지에 내려앉을  즈음 로스앤젤레스의 바로 동
쪽에 위치한 레드랜드 시에 도착했다. 그는 특허청  건물 뒤에 위치한 드라이브 인 극장(차
를 탄 채로 들어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으로 들어가 두 번째 줄에 차를 세웠다. 그
에게 지시된 대로 그는 즉시 차에서 내려 스낵 바로 걸어갔다. 사탕 하나와 옥수수 튀김 한 
봉지를 사들고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것 역시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때 승용차의 뒷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라이온스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화면을 바라보는 척하며 말했다.
  "미스터 포인터?"
  "그렇소, 어떻게 됐소?"
  "표적은 정확했소, 우리는 H(하시시, 마약의 일종)를  20킬로그램, 그리고 마리화나를 1톤 
가량 입수했소."
  "그놈들은 그걸 모두 한 것에 모아 두었었는데 국경 부근으로 옮겨다 놓으려고 온갖 노력
을 다 기울이고 있었다고."
  미스터 포인터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그들의 공급선을 모두 파악했다는 거요. 멕시코 쪽이었소."
  라이온스가 말했다.
  "그게 바로 횡재 루트요. 그들이 배급할 때 쓰는 기구의 한 조각을 여기 가져왔소. 뒷좌석
에 놓아 두겠소."
  "얼굴이라도 보며 얘기합시다."
  라이온스는 담담한 어조로 제의 했다.
  보란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좋도록 하시오. 그러나 당신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요."
  경위는 한 팔을 좌석 받침대에 올려놓으면서 몸을 돌려  뒷자라의 어둠 속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앉아 있는 사내의 희미한 윤곽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마 아래에 깊숙이 모
자를 내려 쓰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의 이름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소."
  그는 톤을 낮추며 말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도록 하시오. 당신, 블라이드라는 도시를 알고 있소?"
  "물론이오. 애리조나 접경에 있죠. 이쪽 지형과 흡사한 곳이요."
  그는 아직 상대방의 신분을 눈치챌  만한 것은 없을까 하고 눈을  바쁘게 굴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 유별난 정보원이 스웨드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만 알
아냈을 뿐이었다. 미스터 포인터가 힘껏  담배를 빨아들일 때마다 담뱃불이  희미하게 빛을 
발했고 라이온스의 격렬한 호기심은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틀림없이 보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럼 지금은?"
  "이제는 당신이 보란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목소리는 아주 비슷한데 얼굴은 딴 판이
로군요. 좋소. 미스터 포인터. 블라이드가 어떻다고 하셨습니까?"
  "여기 있는 상자를 열어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오. 그곳  가까이에 B-17기지가 있소.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있었을 거요. 지금은 단순한 공항으로 사용되는 모양입니다만 거
길 이용하는 항공기는 별로 없다고 들었소. 가글리아노라는 이름의  중위가 모든 책임을 맡
고 있소. 낡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격납고로 사용되고 있고 통제소로 쓰이기도 하오. 그곳이 
바로 그들의 공장이오."
  "뭐라구요?"
  "그들이 H를 가공하는 곳이오. 처음부터 포장하는 과정까지 모두 거기서 이루어지고 있단 
말이오. 구매자에게 배달해 두매로 넘기는  경우에 끝까지 모두 항공 우편만을  이용한다오. 
소매루트에 대한 정보는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소. 내 추측으로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
까지는 조직이 관여하는 것 같지 않았소."
  "시장은 어떻습니까?"
  "굉장하죠. 국경 반출이 금지된 이후로는 더 그렇소. 그 물건들을 멕시코 쪽에다  비축 저
장해 놓고 소매 판매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 같소."
  "가격이 상당하겠군요?"
  보란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들은 H를 가공하지 않은 채로 구입하죠. 1킬로그램당 약 2000달러를 좀 넘는 금액으로 
말이오. 최근의 도매 시세가, 가공한  H말이오. 1킬로그램당 1만 4000달러 이상으로  뛰었다
오."
  라이온스는 놀랍다는 듯 가느다랗게 휘파람 소리를 냈다.
  "엄청난 이익이로군!"
  놀라서 숨을 죽인 음성으로 그가 말했다.
  "그렇소. 지금 당장은 내가 그곳에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소. 오늘  아침에 당신
네가 멋진 습격을 벌인 대가로 말이오."
  "그들 배 중의 하나를 그냥  빠져 나가도록 방치해 두었소. 계속  우리가 감시를 하고 있
소."
  "좋은 생각이오. 그 배를 잘 다루기만 하면 그들의 사업 체제를 완벽하게 꿰뚫을 수가 있
을 거요."
  "정말이지 당신은 보란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의 승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도 그렇고 말투도 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가 팜 스프링스에서 죽었다는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좍 퍼진 줄로 아는데?"
  "우리는 그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소. 당신은 팜  스프링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
소?"
  "페나라는 이름의 늙은 총잡이가 그 지역을  책임지고 있소. 그런데 그는 행방  불명이오. 
아니면 그 비슷한 일을 당했든지. 그 도둑떼들은 그가  어찌되었는지 모두 궁금하게 여기고 
있소."
  "페나는 지금 구류중이오."
  "뭐라고 그랬소?"
  "흥미 있으시오?"
  "그런 것 같소. 내 정보와 교환합시다."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 아니면 곧 다 알려질 테
고. 브래독이 오늘 그곳으로 올라갔었소. 그리고는 사태의 전모를 공개해 버렸단 말이오."
  "무슨 얘기요? 무슨 사태를 뜻하는 거요?"
  "총격전이 있은 지 얼마 뒤부터 팜 빌리지 경찰서에서는 페나를 안전하게  보호 구류시켜 
두었다는 거요. 그 자신의 요청이었다고 했소. 그곳 경찰서의 우두머리는 좀 괴상한  인물인
데 페나를 자기 집에다 숨겨 준 모양이오. 아니, 아니오. 속단은 마시오. 그저 그곳이 불가침
의 지역이었기 때문이오. 브래독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오."
  경위의 눈꺼풀이 반쯤 닫히고 있었다.
  "브래독이 누군지 왜 당신은 묻지 않소?"
  "브래독이 어떤 자인지 잘 알고 있소."
  미스터 포인터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도 잘 알고 있소. 당신은 보란, 맥 보란이오."
  경위는 불쑥 말했다.
  "정신 나갔소, 당신?"
  보란은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유쾌해 했다.
  "훌륭한 분장이오, 보란. 당신이 이렇게 빨리  변신할 수 있었다는 건 미처 상상도  할 수 
없었소. 당신은 누구로 위장하고 있는 거요? 어쩌면 내가 당신의 위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
을 거요."
  "고맙소.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잠이 덜 깬 것 같군요."
  미스터 포인터는 문을 비틀어 열었다. 차 안의 실내등이  켜지자 라이온스는 그의 얼굴을 
분명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계획이 세워지면 다시 전화하겠소."
  "그렇게 해주시오. 새로운 작전 계획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당신에게 무척 
흥미를 느끼고 있소. 그는 정보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오.  당신에
게 이렇게 얘기해 보라는 부탁을 받았소."
  "그가 있는 곳이 어딥니까?"
  "연방 경찰 본부. 그는 브로렐라라는 사람이오. 공갈 협박이나 횡령 따위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소."
  "요즘 사람들은 모두 그 따위 일에 흥미를 느끼니까."
  보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브로렐라라? 내가 그런 작자를 좋아하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소."
  "그는 강직한 사람이오. 그의 이름이 이탈리아 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알았소, 알았소."
  미스터 포인터는 곧 변명했다.
  "내 친구들 중에도 이탈리아 식의 이름을 가진 자가 있소."
  그는 차에서 내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프랭크 럭키를 환영하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잔뜩 머금었다.
  "들어오게, 어서 들어와!"
  카포는 앞으로 다가서서 그를 얼싸안았다.
  "앉게나, 편히 앉아. 나는 마실 것을 마련하고 있었네. 자네 아직도 스카치로 하나?"
  프랭크 럭키는 피곤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필립 마라스코가 보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섰다. 디조르쥬는 한 손
에는 스카치 잔을 들고 나머지 손에는 얼음을 쥐고 자기 의자로 가 앉았다. 세 사람은 서로
를 마주 볼수 있게 자리잡고 있었다.
  보란은 생각했다. 과잉 친절과 접대가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
들은 자신의 긴장을 풀어놓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노력은 충분한 효과를 본 것 같았다. 그러나 보란은 속으로  이 삼자 회담이 가져올 엄청난 
결과에 대해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대비하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군. 프랭크!"
  디조르쥬가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자네는 훌륭한 정보원이 될 수 있겠어. 온종일 쉬지도 않고 열심인 걸 보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늘상 나 자신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에고이스트에 지나지 않습
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내 조직을 하나 마련해 볼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보란이란 작자에 대해선데, 뭔가 좀 실마리가 보이나?"
  마라스코가 조용하게 물어 왔다.
  "그렇다네, 또 다른 일도 있고……."
  "보란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마라스코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멕시코 창고 습격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
  "그렇고 그런 일들 중의 하나라네. 프랭크."
  디조르쥬가 재빨리 끼어 들었다.
  "힘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걸  배우는 거야. 잊어버려. 이보게,  자네는 지금까지 항상 
혼자서 일해 왔나? 자네는 육군이나 해군, 그런 데에 소속된 적은 없었나?"
  보란은 웃음을 터뜨리며 마라스코를 향해 말했다.
  "여보게. 필립 허니, 우리 두목은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건가? 나를 무슨 무골  호인이나 물
렁뼈로 보는 거 아냐?"
  디조르쥬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잔  뒤로 눈길을 감췄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멍청이들이나 제복을 입는다 이건가? 응? 자네는 징집 영장을 불태워 버린  건
가, 럭키?"
  "멍청이들이나 징집 영장을 불태우는 짓을 하죠."
  보란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신에 다른 녀석을 슬쩍 들여 보내는 방법도  있죠. 그
런 얘기 못 들었습니까?"
  디조르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의 눈길이 마라스코의 눈길과 얽혀 들었다.
  "그래, 그런 얘긴 나도 들은 적이 있네."
  디조르쥬가 주의 깊게 말했다.
  "그들은 프랭크 램브레터한테는 어떤  제복도 입히지 못했습니다.  제복을 착용한다는 건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천만에요. 난 그런 건 안 입습니다."
  보란은 마치 내친 김에 다 말해 버리겠다는 듯 손을 크게 내저었다.
  "디스, 들어 보십시오. 오늘 우연히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당신은 그걸 주의 깊게 들
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그 멕시코 습격 사건을 떠들어 대고 있는 판
국이니까요."
  "그래, 뭔가?"
  디조르쥬는 마라스코를 향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그의 시선은 곧 보란에게로 옮겨졌다.
  "오늘 하루 종일 어디에 있었나, 럭키?"
  "그 문제에 대해 지금 얘기하려고 하는 겁니다. 들어 보십시오. 내가 팜  빌리지를 어슬렁
거리고 있을 때 거기서 루이 페나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죠. 그 사람은 
아마 새장 속에 갇힌 새의 신세가 돼버린 모양입니다."
  마라스코의 손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담뱃갑을 꺼냈다. 디조르쥬는  훅 하고 숨을 내
쉬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자네?"
  "바로 이렇습니다. 루이는 팜 빌리지의 경찰들과 아주 느긋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죠. 
최근까지 계속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들어 주십시오. 그에게는 별다른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 자신이 경찰의 신세를 지겠노라고 요청했다는 정
돕니다."
  마라스코의 담배가 두 도막이 나더니 카펫 위로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다급하게 집어 들
고는 재떨이에 던져 넣었다.
  "맙소사!"
  하고 그는 탄식했다.
  "내가 뭐라고 하던가, 필!"
  디조르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몇시간 전에 그러지 않았나! 누군가 루이를 찾아가 만나 보아야 한다고 말이야."
  "도대체 왜 그가 우리를 배신했을까요?"
  마라스코는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문제는 누가 그를 다시 데리고 오느냐는 거야."
  디조르쥬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말했다.
  "그를 찾아오기를 바랍니까, 디스?"
  "그렇게 해주겠나, 프랭크?"
  그는 프랭크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내가 그 일을 맡죠."
  "자네의 용기를 나는 좋아한다네, 럭키."
  보란은 벌떡 일어서더니 빈 잔을 테이블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고맙습니다. 내 경우는 이른 아침에 뭐든 잘 떠오르죠."
  "남자란 그 자신의 일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법이야."
  디조르쥬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피곤해서 못 견딜 지경입니다."
  "그럴 거야. 그렇게 하게!"
  디조르쥬는 우울한 눈빛으로 필립 마라스코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는 항상 그런 식으로 일을 해왔으니까, 럭키. 이번 일에 자네는 후원자와  함께 일을 
하게 될 걸세. 이의는 없겠지?"
  "거 대단히 훌륭한 생각이시군요."
  프랭크 럭키 보란은 먼저 자리를 뜨는 걸 사과하고 방에서 나왔다.
  디조르쥬와 마라스코는 얼마 동안 침묵을  지키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먼저 마라스코가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끝났어. 확실해지지 않았나? 그는 말일세, 자기 대신에 헐렁한 허수아비를 내세울  줄 아
는 그런 사람이야."
  "그는 언젠가는 카포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마라스코는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히며 웃었다.
  "당신도 그렇게 보셨겠지요, 디스?"
  "그게 우리들의 일이 아닌가? 안 그런가?"
  디조르쥬는 조금 흥분하여 말을 계속했다.
  "나도 이제 후계자를 찾게 된 것 같군. 우리  현실적이 되기로 하세, 필. 그렇다고 자네에
게서 등을 돌리겠다는 얘기가 아니야. 잘 생각해 보게. 지금 이 일을 끝낼 만한 사람을 내가 
어디서 찾겠나?"
  "물론 나는 그런 인물이 될 수는 없겠죠?"
  마라스코는 짤막하게 답변했다.
  "애들한테 일러. 루이를 위해서 불을 환히 밝혀 두라고. 알았나?"
  "물론입니다, 디스."
  "궁금한 게 도 있어."
  카포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 게 또 하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프랭크 럭키가 아직도 안드레아와 깊은 관
계인가?"
  마라스코는 킬킬거리며 자신의 두목을 바라보았다.
  

    17.평화를 위하여
  팀 브래독 주임은 의자에 앉아 몸을 안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난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자네가 어떻게 스스로 그런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갔는지 말이
야, 징기스."
  콘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나는 혼란에 빠져든 게 아니오.  적어도 당신이 간섭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오, 브래
독. 나는 그 자를 난관에 빠뜨렸소. 그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는데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그를 그토록 놀라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그는 슬슬 나에게 접근하고 있었소. 이제는 내가 자
신의 일에 책임을 지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소."
  호리호리한 몸집의 사복 경찰관은 젖은 잎담배 조각들을 마룻바닥에 뱉어 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당신에게 무슨 근거가 있다는 거요. 팀?"
  "우린 갖고 있어."
  "무엇에 대한 걸 말요?"
  콘은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물었다.
  "자네가 이름을 붙이도록 해주지. 우리는 그걸 갖고 있다네. 형사 범죄 음모가 그 하날세. 
다른 하나는 타인을 살해하겠다고 공공연하게 공갈 협박한 죄일세."
  "어느 도시에서 그런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거요, 브래독?"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온 주임은 침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음모는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계획되었어.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  범죄 발생 
예정 지역만 해도 3,4개 군에 달한다네. 이 건에 대해서는 새크라멘토 팀도 우리와 같이  뛰
고 있어. 우리는 곧 이주에 있는  범죄 기지를 습격할 예정일세, 징기스.  군 경찰의 도움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도움이 없다 해도 작전은 수행할 걸세."
  "불치의 죄인 작전은 포기되었다고 들었소."
  콘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물론 그렇게 되었네. 그렇지만 나는 검찰 총장 휘하의 특수 업무 파트에  소속됐다네. 우
리는 이곳에서, 바로 자네의 훌륭하고 매력적인 이 마을에서 작전을 개시하고 있는  거라네. 
그러니 자네는 미리 변명거리나 궁리해 두라구, 무슨 이유로 자네의 깨끗한 마을에서 잘 알
려진 범법자를 감춰 두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일세."
  "누굴 두고 잘 알려진 범법자라고 하는 겁니까?"
  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꼬리를 붙잡고 나와 씨름을 할 생각은 말게."
  팜 빌리지의 경찰서장은 모자를 위로 밀어 올리고는 이마를 조급하게 문질렀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습격 사건과 페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당신도 알잖소? 단 한순간
도 그런 생각은 마시오. 그를 범법자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대법원으로 끌려
가 재판을 받으리라는 그 잘난 추측을 말이오. 사실 브래독, 당신이 얘기한 바로 그  사람이 
내 집에 귀한 손님으로 와 있소. 어쩌겠다는 거요?"
  갑자기 벌떡 일어선 콘은 모자를 벗어 마룻바닥에 내팽겨쳤다.
  "브래독! 당신은 지독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오! 그래 어디 한번 남자답게 얘기해 봅시다!"
  브래독은 큰 소리로 웃어 대다가 자신의 모자도 벗어 멀리 내던졌다.
  "그렇게 하세."
  "페나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넋이 나간 상태였소.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 맥 
보란 같은 자를 잡을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사실이오. 그는 초조해진 거요. 게다가  자존심
이 대단했던 그였으니 그야말로……. 그는 자신이 점차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도 겁을 먹
고 있었소. 그래서 더더욱 불명예로 얼굴에 먹칠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
하게 된 거요. 나는 그 자가 좋아졌소. 정말이오. 그가 이제까지 무슨 짓을 해왔는지 몰랐던 
탓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해온 사람인지를 내가 알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요.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무슨 거래를 제의했는지, 그게 어떤 일인지 들어 보고 
싶소? 보란을 잡는 일을 내게 맡긴 거요. 즉, 그는 내게  보란을 잡아 달라고 했소. 그 대가
로 내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현금으로 지불하겠다는 것이었소. 아시겠소?  그게 그가 나를 
찾아온 가장 큰 이유였소."
  "자네의 대답은 어떤 것이었나?"
  "날 모욕하지 마시오, 브래독."
  콘은 벌컥 화를 냈다.
  "내가 경찰관들의 기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당신도 알고 있잖소?  20년 
전이었다면, 나는 그를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고 영장을 신청하기  위해 법원으로 달려갔을 
거요. 당신이 지금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오. 이놈의 사막과도 같은  땅덩이에서 
사람이 배우는 게 있다면 그건 참는다는 것 뿐이오. 1년이 지나건 한 달이 지나건 여기에서
는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까. 아직 페나는 내 대답을 듣지 못했소. 나는 그를 갈고리에 매달
아 놓고 멀찌감치 앉아 즐기듯 그를 감시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것도 당신이 위협을 해대며 
쑤시고 들어오기 전의 일이지만."
  "갈고리?"
  브래독은 자신의 흥분된 감정을 애써 억제하면서 조용히 물었다.
  "우리는 흥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소. 내가 돈에는 별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소. 더군다나 내가 지금 무엇을 갖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해 주시오, 브래독. 그놈들이 이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소. 나는 그 사실을 
그냥 덮어둘 수가 없었소. 그들 모두를 잡아야겠단 말이오. 그놈들을 몽땅!"
  "어떤 형태의 거래요?"
  브래독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파리 평화 회담은 2주일 전에  끝났소. 나는 그에게 이렇게  얘기했소. '여보게, 페나. 내 
얘길 들어보게. 나는 마피아 세 놈의 머리통 대신에 보란의 손가락을 두 개 내놓겠네.' 그러
자 그가 이렇게 말했소. '이봐요, 징기스. 당신 말만 하고는 끝인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줘
야 할 게 아닌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에 그는 다른 제안을 들고 나왔소. 십중  팔구는 
무리한 제안이기 일쑤였소. 그래서 나는 내 제안에 대해 주가를 올리려고 애쓰고 있던 참이
었소."
  "나에게도 같은 얘기를 할 작정인가, 징기스?"
  "물론이오."
  "페나에게 어떤 식으로 그런 확신을 갖게 한 건가? 자네가 그를 만족시킬 만한 어떤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어떻게 확신시켜 줬나?"
  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에게 세뇌 요법을 쓴 거요. 보시오, 브래독. 그  자는 가문에 돌아가는 일에 겁을 먹고 
있었소. 그가 여기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있을수록 빈 손으로 가문에  돌아가는 일은 더욱 
힘들어 지는 거요. 내가 그 자를 갈고리에 매달아 두었다고  얘기한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었
소."
  브래독은 꿈꾸는 듯 창 밖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멍청한 짓이야, 징기스. 자네 쪽에 그 거래를 성립시킬 만한 어떤 카드가 없다면 어쩔 텐
가?"
  "나는 그걸 가지고 있소."
  콘은 시선을 떨구며,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엇인가?"
  "당신은 왜 지옥에라도 가지 않소?"
  브래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5분간만 자네와 얘기를 계속하겠네, 그 뒤에는……. 난 말일세, 나는 자네가 손도 얼굴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징기스. 만일  자네가 곤란에 처해 있는 보란을 그런  식으로 
조종하고 있다면 그때는……."
  "그건 협박처럼 들리는군요, 주인님!"
  "협박이라고 생각하게."
  콘은 허리를 굽혀 마룻바닥에 내팽개쳤던  모자를 집어들었다. 모자를 눌러쓴  그는 회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신선한 담뱃잎을 한 움큼  입속에 털어 넣고 몇 분동
안 빠른 입놀림으로 씹어 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 내더니 입을 떼
었다.
  "나는 확신하고 있소. 보란은 이곳 팜 빌리지에서 성형 수술을 한 거요. 그래서 우리가 못 
알아보고 있는 걸 거요. 틀림없소."
  브래독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콘을 노려보며 무섭게 추궁했다.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저 위, 뉴 호라이슨 가에서."
  "그곳에 성형의가 있었나? 바로 그게……  이런, 징기스! 뉴 호라이슨 가라구!  지금 성형 
수술에 대해 말한 건가?"
  "당신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콘은 열심히 담뱃잎을 씹어 대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콘, 너를 구속하겠다!"
  브래독은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약속한 5분은 아직 다 지나지 않았소."
  콘이 두 눈을 반짝이며 짧게 대꾸했다.
  "5분이라구? 널 5년은 처박아 둘 수 있어!"
  "그러시겠소? 어쨌든 당신은 나에게 5분을 허락하지 않았소?"
  콘은 다시 상기시켰다. 그는 자신의 갈비뼈 사이에 난 상처를  옷 위로 만져 보고는 이마 
밑까지 모자를 눌러 썼다.
  "이번에는 내가 5초의 여유를 주겠소. 당신의 그  뚱뚱한 엉덩이를 내 사무실에서 치우는 
데 말이오. 가서 영장을 갖고 오시오."
  디조르쥬 저택에서 자신이 폭도의 무리로 전락하고 만 것 같은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해 저
항을 느꼈던 보란은 팜 스프링스의 휴양 호텔에서 며칠 지낸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즐겼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그 저택을 출입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택 안에서의 그의 행동은 늘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고 있었다. 그는 어느 벽과 천장에 감시 카메라가 감춰져 있는지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의 호텔 방에서도 도청 장치를 발견해 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조직에서 벌이고 있
는 사업에 관계되는 중요 정보를 빼내려는 그의 노력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미
스터 포인터 작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칼 라이언스에게 그런 정보를 넘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안드레아 다고스타와의 접촉 기회는 매우 드물었으며 이루어졌다 해도 곧 끝나 버리곤 했
다. 그녀 쪽에서 나타내는 너무 노골적인 적의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보다 연하였던  남편이 
산페드로 근처에서 선박 사고로 익사한 것은 그녀 나이 겨우 20세 때였다는 것을 보란은 나
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곳 전투원들과의 지루한 대화를 통해서였다.
  보란이 그녀의 삶 속으로 뛰어들기 2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그녀는 저택 내의 사람들에
게 관대하고 호의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보란이  관찰한 바로는 디조르쥬 휘하의 
남자들은 그다지 그녀를 가까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카포네의 아이 였으며 그렇
기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미국의  아름다운 장미 라느니 미스 암코
양이 라느니 쓸모없는 말괄량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때로는 디스의 비참한 소녀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자신이 조직 내에서 머지않아 
높은 지위에 오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란은 자신을 비범하지 않은 흔한 전투
원의 하나로 모두들에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그들도 보란이 끼여 든 자리에서도 
안심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끔  보란이 그들의 대화 중에 슬쩍  끼여 들어 나누는 
유머 한 토막에 그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마냥 즐거워하곤 하였다. 그가 저택을 방문하기 시
작한 지 이제 겨우 1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찬양하고 뒤를 따르겠
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프랭크 럭키가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얘기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몇몇 가난한 저택 경호원들은 그의 패거리에 끼여 들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영광의 날이 올때를 고대하고 있었다. 보란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충동질하면서 비상시에 
이용이 가능하도록 몇몇 경호원들을 서서히 포섭해 나갔다.
  10월 21일 밤에 저택을 나서면서 그는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택
했다. 결국 그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사람 안드레아 다고스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수
영복 위에가운을 걸친 차림으로 풀 옆의 기다란 휴식용 매트  위에 누워 있었다. 보란은 그
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요즘은 어때? 안드레아."
  "아, 그저 그래. 괜찮아요."
  그녀는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보란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흔들렸다.
  "당신 친구들한테서 수영장 근처엔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얘기 못 들었어요?"
  "내가 잊어버렸나 보군."
  보란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지.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는 당신 속에 스며들어  가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
어."
  "당신은 너무 자주 나한테 부딪쳐 와요, 램브레터 씨!"
  그녀는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미안해, 안드레아."
  보란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가 그대로 자리를 뜨려  하자 그녀는 야유를 퍼붓
기 시작했다.
  "빅터 포피가 플로리다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그땐 더 미안하게 될 거에요!"
  보란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그 말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말의 억양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그녀가 누워 있는 매트 곁에 우뚝 섰다.
  "무슨 소리야?"
  그는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안드레아의 두 눈이 정원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리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입술을 내밀
었다. 보란은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그러나 안드레아의 입술은 보란의 목덜미를 핥고  있었
다.
  "그들은 당신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손을 놀려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뭐에요, 당신? FBI? 형사?"
  보란은 그녀의 매트 위로 기어올랐다. 그는 팔을 돌려  안드레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여
자의 귀 밑 부드러운 피부에 입술을 갖다 댔다.
  "플로리다란 무슨 얘기지?"
  "필 마라스코가 그리로 사람을 하나 보냈어요. 감옥에서 나온 사람을 데리고 오라구요. 그 
사람이 몇 년 전 뉴저지에서 당신과 알고 지냈다고 말했대요."
  보란은 여자의 입술에 강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상대에게 더욱  몸을 밀착시키며 
그의 바지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날 여기서 내보내 줘요, 프랭크."
  그녀는 신음하듯 가늘게 속삭였다.
  "염려하지 마. 내가 그렇게 해줄 테니까. 그저 침착하게 기다리고만 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당신의 대부에 대해서 이런 감정을 갖는다는 건 끔찍스러운 일이에요. 그래도 나는 그가 
싫어요."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외쳐 댔다.
  "나는 그가 미워요!"
  "그 증오도 모아 둬야 해."
  "좋아요. 그리고 뭔가 조사해 줬으면 싶어요. 날 위해서요. 프랭크, 약속해 줘요."
  그들은 다시 달콤한 애무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보란이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내 무엇이 당신에게 그런 확신을 심어준 건가, 안드레아?"
  그녀는 질문을 무시했다.
  "약속해요!"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조사해 달라고 했지?"
  "척이 정말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봐 주세요."
  보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척이 누군데?"
  "찰스 다고스타, 내 남편이었어요."
  보란은 순간, 몸이 굳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밀착시켰던 몸을 떼내 그녀의 눈 속을 살
피듯 들여다보았다. 안드레아는 그의 시선이 무얼 묻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머리를  흔
들었다. 보란이 짧게 내뱉었다.
  "그는 익사했다고 했잖아?"
  "척은 뛰어난 요트 기사였어요. 그는 걸음마보다 수영을 먼저 배운 사람이었단 말예요. 정
확한 사인을 조사해 보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보란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약속하겠어. ……이제 그 플로리다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지. 그 자가 누구야?"
  "나도 몰라요. 당신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데려온다는건 확실하지만요."
  "뭐든 들은 게 있을 게 아냐. 내게 모두 얘기해 줘."
  "그럼 당신은 정말 프랭크가 아니로군요."
  그녀는 흥분에 들뜬 채 속삭였다. 보란은 낄낄거리다가 그녀로부터 몇 걸음 물러났다.
  "나는 놀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야."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정원을 가로질러 사라져 버
렸다.
  그가 주차장에 이르는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어둠 저쪽으로부터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왔다. 그림자는 손가락 두 개의 평화의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보란은 안드레아 경호 임무
를 맡고 있는 그 부드러운 인상의 젊은이를 알아 보았다.
  "평화, 평화를 위하여!"
  젊은이는 낮은 소리로 외쳤다.
  "나 역시!"
  프랭크 럭키는 웃으면서 젊은 경호원의  어깨를 툭 치고 그의 차로  갔다. 젊은이는 그가 
차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고 서 있었다. 그리고는 유리창에 고개를 들이밀면서 탄복
한 시선으로 보란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여기를 떠날 때 내가 당신과 함께 동행할 수 있다면, 럭키, 난 정말 기쁠 텐데."
  보란은 그에게 윙크를 보냈다.
  "기억해 두겠네. 베니 피스풀."
  경호원은 즐겁게 웃었다.
  "어때? 한 번 멋지게 휘둘러 볼 만한 이름이 아닌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보란은 차의 라이트를 켜며 말했다.  그는 정문 수위를 흘낏 쳐다보고는  속도를 높여 날 
듯이 저택을 빠져 나갔다.
  "저기 프랭크 럭키가 무언가를 휩쓸어 버리기 위해 떠나는군."
  경비원 중의 하나가 말했다.
  "내 이름이, 검은 옷의 맥 보란이 아닌 게 정말 다행이야."
  또 다른 경호원이 대꾸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첫 번째의 경호원이 조용히 말했다. 그는 빠르게 사라져 가는 차의 범퍼에서 뿜어져 나오
는 불빛의 긴 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18.잔인한 살인
  10월 22일. 태양이 막 더오르기 시작할 무렵 필립 마라스코는 줄리앙 디조르쥬를 깨웠다.
  "애들 다섯이 없어졌습니다. 아마 페나와 합세하기 위해 달아난 것 같습니다."
  "누구 누구야?"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디조르쥬는 으르렁거렸다. 마라스코는  카포의 손에 커피 로
얄을 쥐어주며 담배 한 개비를 뽑아 그의 입술 사이에 끼워 주었다.
  "그 여우 같은 놈이 남겨 두었던 일당들입니다. 윌리 워커와 그 패거리들이죠.  그들은 지
금껏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프랭크 럭키에게 그 소식을 알리는 게 좋겠군."
  마라스코가 들이민 라이터에 불을 붙이며 디조르쥬가 조급하게 외쳤다.
  "그를 찾았지만 늦었습니다. 그는 벌써 이곳을  떠났답니다. 공작을 위해 이미 그곳에  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에게 다른 애들을 좀 붙일 걸 그랬나요?"
  디조르쥬의 시선이 벽시계 바늘에 맞춰졌다. 그는 알코올이 섞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담배를 빨아 들이면서 다시 한 번 시계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니야,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저 한번  두고 보는 거야, 필. 프랭크  럭키의 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이야."
  "너무 불리한 조건이 아닙니까, 디스?"
  마라스코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글쎄, 꼭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시체를 묻기 전에 잠시 기다리면
서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잖나? 자네는 곧 나가서 차를 몇 대 준비시켜 둬. 당장 쓸 수 있도
록 말이야."
  마라스코는 말없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뭔가 말할 듯 돌아섰다가 마음을 바꿔 먹고
는 스스로에게 투덜대며 밖으로 나갔다.
  "그게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면……."
  잠들어 있던 루이 페나는 몇 번 몸을 뒤척이다가 갑자기  벌떡 일아나 앉았다. 조용한 목
소리로 누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봐, 루이! 나야, 윌리라구!"
  침대 머리맡의 실내등이 켜졌다. 윌리 워커가 미소를 머금고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페나의 팔목을 철제 침대의 기둥에 얽어 매놓고 있던 수갑을 풀어 주었다.
  "언제 놈들이 이 더러운 것을 채워 놨나?"
  "바로 어젯밤이었어."
  페나가 말했다.
  "그래? 너무 오랫동안 고생했군!"
  그는 수갑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손목을  연신 문질러 대면서 급히 옷을 입기 시작했
다.
  "서장이 다 불어 버렸어. 그래서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나를 이꼴로 만들어 버렸다구."
  "그렇게 조심해서 말할 필요는 없어."
  워커가 루이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우리가 놈들을 붙잡아 뒀으니까……."
  페나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 늙은 여자도?"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그들을 빨리 해치우는 게 좋아. 프랭크 럭키란 놈이 언제 들이닥칠
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이니까."
  페나는 바짓가랑이에 걸려 비틀거리며 물었다.
  "프랭크 럭키는 또 누구야?"
  "아, 자네가 모르는 일이 그 동안 한두 가지만 벌어진 게 아니야. 프랭크 럭키란  놈은 동
부에서 온 총잡이야. 일이 잘못 꼬여서 그 녀석이 자네를  없애기 위한 살인 청부를 맡았단 
말이야, 루이."
  페나는 두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래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설마 디스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려구."
  "지옥에 발을 들여 놓고 싶거든 그 따위 소리를 하라구!"
  워커는 무릎을 꿇고 앉아 페나의 두발에 양말을 끼워 올리고 있었다. 예비역 카포는 자신
의 셔츠 속에서 허둥댔다.
  "당신이 경찰들하고 편안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어. 애들이 밤새도록 불
을 밝혀 놓고 있었다니까 무슨 일인가가 곧 벌어질 것 같아."
  페나의 손가락은 셔츠의 단추 구멍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꿈꾸듯 
중얼거렸다.
  "지금 그에게 가야 해. 그는 그런 야박스런 짓을 취소하게 될 거야. 이제 일이 다 끝나 가
려는 참이었는데……. 전화 좀 해줘, 윌리. 그에게 얘기해. 내가 지금 보란의 흔적을  제대로 
찾아냈다고 말이야. 디스한테 이렇게 얘기해. 보란이 성형 수술을  받았다구. 바로 이 팜 빌
리지에서. 이곳 의사에게서 수술을 받은 거야. 난 이제껏 그걸 알아내느라고 동분  서주하고 
있었다고 그래. 디스한테 얘기하게. 그자의 얼굴을 바꿔준 사람도 알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자의 달라진 얼굴도 알아볼 수 있다구 얘기해 줘. 윌리,  내 말을 정확히 전해야 돼. 그는 
틀림없이 그 어리석은 살인 청부 계약을 취소할 거야."
  워커는 우울한 얼굴로 페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머리를 끄덕여 그러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그러긴 하겠네만……. 루이, 그렇지만 이런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는 자네도 잘 알
잖아. 자넨 지금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야? 정확히 얘기를……."
  "내가 그 의사를 알아냈다니까. 너도 그곳을 알 거야. 동쪽에 있는 휴양소 말이야."
  워커는 당혹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지."
  그는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댔다.
  "잘 들어. 애들 넷이서 밖에서 망을  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들이 자네를  도와줄 거
야. 그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 나는 여기 남아 디스에게 연락을 취해볼 테니까. 그리고 나
중에 그곳에서 자네와 합류하겠어. 자,  재빨리 움직여야 해. 누가  여기 들어와서 경찰관과 
그 마누라릐 꼬락서니를 발견하게 되면 그 지긋지긋한 지옥이 또 이 마을에 쏟아져 내릴 판
이니까."
  페나는 코트를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너는 알겠지, 윌리? 내가 이번 임무를 얼마나 진지하게 수행해 왔는지 말이야."
  "물론, 다 알고말고!"
  워커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리고는 페나에게 총을 건네준 다음  그의 주머니 속에다 약간
의 탄환을 쑤셔 넣었다.
  "이걸 유용하게 써야 할 거야."
  보란의 메르세데스는 이른 아침의 시골 밭길 사이로 조용히  굴러 갔다. 그는 로드타운의 
더러운 폐선을 지나서 광장 너머 두 블록 건너편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징기스 콘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다시 차에 올라 탄 그는 세 블록
쯤 더 달려가 콘의 집으로부터 얼마쯤 떨어진 길 옆에 메르세데스를 세웠다.
  그는 가방을 열고 긴 총신의 38구경을 끄집어 냈다. 탄환이 제대로 채워져 있는지, 탄창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본 후  그는 총에 소음 방지기를 부착시켰다.  그리고 그는 차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길로 걸어 올라갔다.
  보란은 징기스와 돌리 콘을 피에  절은 그들의 침대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목이 잘린 채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는 끔찍하게 널브러져 있는 시체 위에 시트를 끌어다 덮어 주고는 
재빨리 집 전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그가 원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즉시 집에서 빠져 나온 보란은 차로 되돌아와 급하게  메르세데스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
고는 그 구역 일대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생각에 잠겼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벌
어지고 있었다. 그는 순간 한 줄기 섬광이 그 뇌리 속을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보란은 몸
을 떨었다. 그는 곧 핸들을 꺾어 뉴 호라이슨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는 검은  플라이
마우드 옆에 차를 세웠다. 그 차의 계기판에 무전기가 매달려 있는 것을 그는 보았다.  조심
스럽게 그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 안쪽에서 잠시 멈춰 섰다가 마치 공기의 냄새라
도 맡으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그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28구경을 꺼내 들고 언제라도 
응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었다. 다음 순간 그는 브랜튼의 개인 아파트로 미끄러져 들어가
고 있었다.
  브랜튼의 아파트 현관문 바로 안쪽에  팀 브래독이 쓰러져 있었다. 그  주위의 카펫 위로 
아직도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권총은 몇 피트 저쪽에 나뒹굴고 있었다. 보란은 무
릎을 꿇고 앉아 급히 브래독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차고 끈적끈적했다. 그는 너무나 처첨한 
광경에 신음을 뱉어 내며 주방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거기에 브랜튼이 있었다. 그는 잠옷 상의만을 걸친 채 식탁 밑으로 머리를 대롱거리고 있었
다. 식탁 위에는 펜치와 철사, 가위등이 흩어져 있었는데 모두 피가 엉겨 붙은 채였다. 보란
은 그에게로 성큼 다가설 수가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 왔다. 그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삼키며 친구의 조각난 몸뚱이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보란은  이미 베트남의 작은 촌락에서 
이 세상의 가장 잔인 무도한 것은   다 보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참혹스러운 광경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브랜튼의 가슴에
서 젖꼭지를 비틀어 뜯어내 버렸다. 아마도 펜치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는 몸뚱이 모두가 산
산 조각이 난 작은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살점이 뜯겨져 나가 시커멓게 드러난 구멍 사이로 
갈비뼈가 보였다.
  브랜튼의 오른쪽 손가락은 뼈가 드러난  채 잘려 있었다. 양쪽 귓볼도  모두 잘려 나가고 
없었다. 콧구멍은 찢겨서 콧잔등 위로 너풀거리는 살점이 올려 붙여져 있었다. 양쪽 눈 밑은 
깊이 흠이 패여 피가 흘러 내렸다. 그  모든 것들보다도 더욱 고약한 것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으로 갈갈이 찢긴 브랜튼이  아직 살아 있었으며 의식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호흡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요란스러운  그르릉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처
참한 콧구멍으로부터 피거품이 솟아 올랐으며 그의 그치지 않는 심음 소리는 보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가까운 선반 위에 진열돼 있던 위스키 병들은 피를 뒤집어 쓴 채 주인을 내려
다 보고 있었다. 테이블 저쪽에 타월이 담긴 대야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려는 이 용맹스런 친구를 계속해서 심문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리라.
  보란의 손이 친구의 머리 밑에 손을 넣어 지압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짐?"
  그는 금속성의 갈라진 음성으로 물었다.
  "누가 자네를 이렇게 만들었어?"
  브랜튼의 눈에 초점이 모아졌다가는 다시 감겨져 버렸다. 그의  애쓰는 모습은 보란의 분
노를 더욱 치솟게 했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그러자 비참한 신음 소리와 함께  피거품이 
튀어 올랐다.
  "그들…… 그를…… 루,루이라고 불렀……."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놈을 알아. 내가 복수해 주겠네, 짐."
  "그는…… 알아…… 스케치를…… 자네 얼굴……스케치를."
  "내가 지금 가서 그놈을 잡겠다. 짐!"
  "그가…… 그가…… 알아……."
  오른손이 허공을 움켜 잡았다. 눈물에 젖은 눈이 살점이 더  떨어져 나간 듯한 손을 응시
했다. 마침내 두 눈도 감겨졌다. 짐 브랜튼의 최후였다.
  보란의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오, 하나님!"
  잠시 후 그는 브랜튼의 머리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비틀거리며 그곳을 나왔다. 브래독은 
두 눈을 뜨고 이제는 바닥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보란은  그의 옆으로 가서 허리를 굽히고 
그의 상의 자락을 젖혔다. 그는 내장 깊숙한 곳에 탄환을 맞은 것 같았다.
  "이제 괜찮소?"
  "아니."
  브래독은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얼마쯤 전이오, 브래독?"
  "5분…… 아마 10분 전……."
  "참아요. 내가 구급차를 부를 테니."
  보란은 황급히 문을 빠져 나와 로비를 가로질러 브랜튼의  외과 진료실로 달려갔다. 그곳
에서 그는 압박 붕대를 발견했다. 그것을 들고 급히 쓰러져 있는 경찰관에게로 돌아왔다. 보
란은 그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 주며 말했다.
  "당신은 살아날 거요, 틀림없이!"
  보란은 그에게 용기를 주려 했다.
  주임은 그를 올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대답을 하기에는 고통이 
너무 심한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당신은 살아날 수 있소."
  구급차를 보내라는 전화를 한 후 보란은 서둘러 병원을 뒤쳐 나갔다. 어느새, 그의 강력한 
메르세데스는 포장도로를 박차고 팜 스프링스로 향하는 고가도로 위를 빠른 속력으로  내달
려가고 있었다. 그 잔인 무도한 살인마들을 어디로 가면 찾아낼  수 있으며 어디로 가서 그
자들의 앞길을 차단할 것인지를 보란은 알고 있었다.
  
    19.추적
  굉장한 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차 안에는 6명의 사나이가  타고 있었다. 운전사는 젊은 타
미 에드젤이라는 사내였다. 뛰어난 사격 전문가인 보넬리라는 사내가 윌리 워커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운전사는 한때 에드젤 자동차광 클럽에 있었다는 것을  늘 자랑하고 다녔는데, 끝내는 
에드젤을 그의 성으로 삼아 버렸던 것이다.
  온 얼굴에 기쁨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농담을 던지고 있는 스크루이 루이 페나는 뒷
좌석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최근에 롬포크에 있는 연방 교도소에서 석방
된 마리오 카피스트라노란 자가 앉아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59세 먹은 노인으로서 이름
은 해럴드 그레이저 스키아페넬리였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청부 살인의 전문가로서 
세 차례나 나라밖으로 추방당했었으나 단 하룻밤도 감옥에서 보낸 적이 없는 특출한 사내였
다.
  윌리 워커는 한 손을 등받이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그림 좀 구경하지, 응? 페나."
  "안 돼, 안 돼."
  페나는 기분좋게 자신의 상의 주머니를 톡톡 두들기며 대꾸했다.
  "디스가 이 보물을 처음 볼 수 있도록 해줘야겠어."
  그는 얼굴 전체를 일그러뜨리며 크게 웃었다.
  "무엇보다도 말이야, 이건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면허증 같은 거야, 윌리. 구경하다
가 이걸 차 밖으로 날려 버리는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나? 응?"
  "잊지는 않았겠지? 우리 아이들  모가지도 당신과 함께 그  보물에 달려 있다는 걸  말이
야."
  워커가 경고하듯 페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잊긴 왜 잊어?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윌리, 내가 디스한테 사실을 말하
기만 하면 그는 너를 적대시하기는커녕 더욱 신임하게 될  거야. 조금은 놀라겠지만 디스는 
정말 기뻐할 거야. 이 그림을 그가 보기만 하면…….  그가 나한테 얘기했었어. 보란의 머리
통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말이야. 이거 보라구. 나는 그 머리를 가지고 있어, 바로 보란의 머
리란 말이야!"
그는 다시 주머니를 톡톡 두들겨 보였다.
  "이봐요. 그건 머리도 아니잖소? 그건 그림일 뿐이라구요. 안 그래요?"
  타미 에드젤이 투덜거리며 끼여 들었다.
  "그렇지. 그렇지만 그림이면 다 같은 그림이냐  이 말씀이야. 성형을 위해 스케치한  거라
구. 보통 그림이 아니라니까. 알아 둬야 해. 이건 그의 사진을 복사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곳에 뒹굴고 있는 시체들을 생각하니 뱃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데?"
  카피스트라노가 화제를 바꿨다.
  "사람이 그렇게 튀겨 놓은 칠면조 꼴이 된 건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그럴 테지. 그렇지만 마리오, 노래를 부르는 칠면조였어.  나도 너희들처럼 그런 짓을 하
는 건 지겨워. 그러나 그자가 그렇게 되길 자초한 거야, 안 그런가?"
  "당신이 그자의 손가락을 짓이긴 것은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난 뒤였잖소?"
  카피스트라노가 페나의 말에 코웃음치며 반문했다.
  "그건 교훈을 주기 위한 거였어. 그놈들은 그 따위 짓을  하면 오래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돼. 이제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마리오. 속 뒤집는 말은 그만 하라구! 오늘
은 나의 날이다. 나는 그걸 즐겨야겠어. 네가 그놈의 스프링스로 되돌아 가고 싶거들랑 가라
구. 마음대로 해!"
  페나의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프랭크 럭키라는 놈은 누구야?"
  페나가 귀를 곤두세우며 다시 물었다.
  "황금빛 도는 아첨꾼 같은 녀석은 아닌가?"
  "왜 이래?"
  "윌리 워커는 낮게 말하며 의미 심장한 눈길로 해럴드 그레이저를 바라보았다.
  페나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해럴드는 외국 출신들한테는 신경을 쓰지 않아. 안 그런가. 해럴드?"
  해럴드가 뭐라고 혼자서 웅얼거리다가 웃을을  터뜨리자 페나도 같이 웃어  댔다. 그러나 
그가 외국인이 웅얼거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오늘은 모두 행복해 보이는군!"
  페나는 감회가 깊다는 표정으로 사나이들을 둘러보았다.
  "아마 프랭크 럭키를 제외하고는. 아봐, 루이…… 그 녀석은 냉혈 동물과 같아. 당신 표현
이 맞았어. 그자는 황급빛을 발하는 놈이야.  적어도 디스와 관련되어 있는 동안은 그럴  거
야. 게다가 그 녀석은 당신에 대한 살인 청부 계약장을 갖고 다닌다구. 디스의 말마따나  우
리는 그를 피할 수 있는 한은 피해야 해. 그게 최선일지도 모른다니까. 그 녀석이  디스한테 
전활 걸거나 터덜터덜 걸어 들어올 때까지는 말이야. 그자는 우리가 하는 얘기 따위는 듣지
도 않을 거야. 예의 바른 대화 같은 건 뒷전으로 돌려 놓고 우선은 총을 쏘아댈 테니까."
  "그는 혼자라고 했잖나?"
  페나는 생각에 잠긴 채 물었다.
  "그 녀석은 혼자요. 루이."
  보넬리가 말했다.
  "그는 어느 누구하고도 같이 다니지 않는다더군요."
  "그렇다면 젠장, 우리는 여섯이 아닌가? 아무리 날고 뛰는 놈이라 해도 우리 모두에게 총
질을 해대지는 못할 거 아냐? 도대체 무얼 걱정하는 거야?"
  운전을 하던 타미가 어때 너머로 뒤를 흘낏 넘겨다 보며 말했다.
  "그래. 굉장히 빠른 차종이야. 왜 그래?"
  워커의 질문에는 아랑곳없이 타미 에드젤은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시커먼 물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저건 틀림없이 그자야!"
  그는 불길한 예감을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눈길이 반 마일쯤  떨어져 있는 산아래 
도로로 몰렸다.
  "네가 나보다 훨씬 눈이 좋구나, 타미!"
  페나는 이마를 차창에 문질러 대며 말했다.
  "틀림없는 것 같소."
  여전히 앞쪽으로부터 시선을 떼자 않은 채 타미 에드젤이 외쳤다.
  "그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있어. 푸른 불빛을 찾아. 저기다! 보여? 아, 바로 저게  그자
야. 프랭크 럭키라니까! 저 달려오는 속도를 좀 봐!"
  경악의 외침들이 사나이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페나는 기어이 화를 냈다.
  "좋아, 좋아. 진정들 해! 아마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야. 만일 보란이라고 해도 그놈은  하
나뿐이고 우리는 여섯이라구. 어쨌거나  고속도로에서 우리와 결투를  벌이자고 덤벼들지는 
않을 거 아냐? 그냥 우리를 쫓아오면서 기회를 기다리겠지. 그것만은 분명하잖아!"
  "그게 프랭크 럭키가 확실하다고 보면 분명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워커가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두 길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나?"
  페나가 물었다. 그는 이제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여기를 지난 후 바로 다음 모퉁이에서. 도로가 언덕을 끼고 꺾여 드는 곳이오."
  "좋아. 그곳에서 놈을 따돌려 버리자!"
  페나가 외쳤다.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콧소리까지 내며 타마가 툴툴거렸다.
  "그런데 이놈의 작대기 같은 차는 메르세데스에 비하면 마치 장난감 같다니까!"
  페나와 워커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 다른 사내들은 좁은  공간 속에서 꿈틀거리며 자신의 
무기를 챙기느라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격 지점을 잘 계산해서 각자의 시선을 고정시켜 둬!"
  보란이 그의 표적을 찾아낸 것은 타미 에드젤이 그의 차를 발견해 낸 것과 같은 순간이었
다. 메르세데스는 산 위에 나 있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남쪽으로부터 북쪽에 이르는 지
평선과 넓게 펼쳐진 평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속도로 위에는  단 한 대의 차만이 꽁
지가 빠지게 달려가고 있었고, 그 외에는 눈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황량한 땅덩이 만이 잠
들어 있었다.
  달리는 차의 속도를 측량해 가면서 보란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음산한 미소가 그의 입
가에 떠올랐다. 이제 앞으로 10초면 교차로에서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10초면 충분
하다 그는 바람 부는 산위의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한껏 높은 속력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의 
특이한 신체적 구조가 아니고는 견뎌낼 수 없는 속력이었다.
  보란의 머리에 커다란 영상이 재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팜 빌리지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
는 참상에 대한 기억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온 몸이 분노로 타오르는 것을 
크꼈다. 예전에는 결코 경험해 본적이 없는 일이었다. 저격수로서의 그는 항상 냉혈  동물과 
전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 전투로 단련된 그의  본능이 임무에 임하는 보란의 행
동을 지배하고 인도했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분노로 해서 그의 행동이 좌우된 적은 없었다. 
그 자신의 아버지, 어머지, 그리고 누이의 죽음에 접해서도  그는 냉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분노는 그의 본능을 때려 누이고 급기야는 폭발하려 들고  있었다. 이제 세상은 맥 보
란의 모든 잠재력과 놀라운 광포성을 보게 될 것이다.
  
    20.통쾌한 복수
  메르세데스는 바퀴와 도로면의 마찰로  일어나는, 귀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교차로에 
멈춰 섰다. 차가 미처 정지하기도 전에 보란은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총기들을 길 한
쪽으로 던져 놓고 재빨리 차로 돌아왔다. 한 손으로는 클러치를 힘껏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기어를 느린 걸로 바꿔 넣었다.  그 다음에 그는 바퀴 액셀러레이터를  제껴 놓고 연접봉을 
완전히 억눌릴때까지 계속 힘을 가해 차 밑바닥에 당겨 붙였다. 그러자 엔진은 굉장한 소리
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보란에게 제트 엔진이 날아 오르는 순간을 연상시켜 주었다.
  그는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클러치 페달을 오른손으로 옮겨 누르고 왼손으로는 문
을 붙잡았다. 이제는 적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눈뿐이었다. 메르세데스의 엔진에서 뿜어 대
는 굉음 때문에 다른 차가 접근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 보란은 눈을 
부릅든 채 교차로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순간적인 반사  작용과 정확한 시간 맞추기가 
제대로 들어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고그마한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니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메르세
데스의 클러치 페달을 누르고 있던 손을 떼었다. 보란의 어깨를  스칠 듯 차가 앞으로 밀렸
다. 그리고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정면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보란은 재빨리  몸을 
굴려 길가로 벗어나며 두 손은 권총을 거머 쥐고 앞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앞섰다!"
  페나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소리쳤다.
  "우리 작대기가 더 잘 달렸어!"
  타미 에드젤이 말을 받았다.
  "빨리 멈춰 서!"
  바로 그때 환호하며 떠들고 있던 그들의 시야에 도로밖에 주차되어 있는 스포츠카가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페나는 사나이가 차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 
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필시 1000분의 1초 정도의 시간 동안 운전사 타미 에드젤의  반
사 신경은 브레이크를 밟고 차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푸른 번개
가 그의 반사 작용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은 곧 증명되고 말았다. 메르세데스가 엄청난 소
리를 내며 교차점을 덮쳐 들었을 때 그의 발은 아직 액셀러레이터를 힘주어 밟고 있었던 것
이다.
  윌리 워커는 비명을 질렀다.
  "멈춰!"
  그러나 그때는 이미 푸른 번개가 6인승 승용차의 범퍼를 덮치며 서로의 차체를 산산 조각 
내버린 뒤였다. 금속 조각이 튀더니 뒤를 이어 유리 조각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
고도 모자라 그 커다란 차는 메르세데스를 원심력으로 휘둘러  댔다. 간신히 승용차는 앞으
로 빠져 나갔으나 회전하고 있던 메르세데스도 따라 밀려 오는 바람에 또 한 차례의 끔찍한 
충동을 감수해야만 했다.
  윌리 워커는 보넬리의 어깨 위로  떠올랐다가 헝겊 인형처럼 앞유리창으로  내동댕이쳐졌
다. 타미 에드젤의 바로 앞쪽이었다. 해럴드 그레이저는 뭔가 이탈리아 말로 비명을  지르긴 
했으나 카피스트라노와 페나가 그 위로 덮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노련한 운전사인 타미 에드젤은 맞붙어 버린 차에서 그의  차를 빼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또다시 메르세데스로부터는 떨어져 나왔으나 이번에는 뒷바퀴가 빠지며 그대로 차의 측면에 
충격을 받는 바람에 그들은 모두 부드러운 모랫더미 속으로  처박혀 버렸다. 차는 기우뚱하
고 한쪽으로 기울더니 마침내 길 아래를 향해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다.
  보란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들과 총을 움켜 잡은 두 명의 팔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순간에 
불과했다. 곧 두 대의 차는 함께 얽히더니 도로를 따라 회전을 하며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갔
다. 벌써 보란이 있던 자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 차들을 따라 달렸다. 그러나 
차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메르세데스가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메르세데스는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쓸쓸한 사막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6인승 
승용차는 회전 방향을 따라 수백 피트 너머로 멀어져 가버렸다. 뒷바퀴가 떨어져 나와 모래 
위로 던져졌다. 그리고 그 무거운 차는 거대한 선을 그리며 길 한쪽으로 굴러가면서 교차로
로 돌진해 들어갔다. 보란은 그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가 여섯 차례를 구르고 나서야 바퀴를 
하늘로 향해 쳐들고 멈춰 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란이 그 파괴된 차체 가까이로 다가갔을 때 타미 에드젤은 여전히 휘어진 운전대를 붙
들고 있었다. 운전석은 송두리째 차 앞쪽으로 밀려나와 있었다. 그는 안전 벨트에 단단히 매
어져 있었는데 몸이 흔들릴 때마다 입 양쪽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아마도 튀어나온 운전대
에 부딪쳐 가슴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타미는 고개를 조금 돌리고 보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쪽으로 흘끔 거리는 눈길이었다. 보란은 타미의  두 눈 사이에 한 발을 명중시켰다.  그는 
차의 다른 쪽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보넬리는 지붕 부분에 온몸이 뒤틀린 채 죽어 있었다. 애써 그의 머리통을 찾아낸 보란은 
타미와 마찬가지로 그의 두 눈 사이에 한 발을 쏘았다.
  윌리 워커는 보넬리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의 머리  일부분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
고 없었다. 그의 두 다리는 그의 등 뒤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모양으로  꼬여져 
있었다. 두 눈 사이에 총알을 남기기 위해 보란은 심사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럴드 그레이저 스카아페넬리는 목의 일부분이 잘려 나가고 한쪽 손은 떨어져 나간 모습
이었다. 보란은 역시 그의 눈 사이에도 구멍 하나를 만들었다.
  마리오 카피스트라노는 한쪽 옆구리를 베고 모래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울면서 옆구리
에서 삐어져 나온 갈빗대를 들이밀려고 애쓰고 있었다. 보란은  마리오의 얼굴을 돌려 그의 
총구를 마주 보게 했다.
  "두 눈을 다 감아."
  그리고는 즉시 결코 감겨지지 않을 세 번째의 눈을 만들어 주었다.
  루이 페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보란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로부터 떨어져 나가 흉칙했다. 박살이 난 코하며 두 개의 이가 아랫입술을 꿰뚫
고 나온 것하며 그는 기묘한 도널드 덕을 연상시켰다. 그는 보란에게 애원조로 매달렸다.
  "그게 여기 있다. 나한테 보란의 머리가 있다니까."
  보란은 루이의 두 눈 사이로 한 발을 쏘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찢어진 몸뚱
이를 붙들고 주머니마다 손을 넣어 더듬거렸다. 페나의 가슴  앞쪽의 주머니로부터 그는 브
랜튼의 스케치를 찾아냈다.
  보란은 성냥을 그어 자신의 얼굴이  스케치 되어 있는 종이에 댔다.  그는 종이를 완전히 
태워 버렸다. 도로로 걸어 나오면서 그는 까맣게 타버린 스케치를  손 안에 쥐고 가루로 만
들어 바람속에 날려 보냈다.
  메르세데스로 돌아온 그는 차의 주유 탱크를 열어 젖히고 기름이 밖으로 흐르도록 해놓았
다. 자신이 완전히 위험 지점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되자 그는 휴지 조각에 불을 붙여 기
름 방울이 스며들고 있는 바닥에 던졌다. 불꽃은 날 듯이  가솔린의 줄기를 따라 혀를 낼름
거리며 차를 향해 달려갔다.
  보란은 이미 팜 스프링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차가 폭발했을 때에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맥 보란의 발걸음은 이제 그의 방문을 기
다리는 적을 찾아 검은 망토에 감쌍인 죽음의 마왕과 함께 팜 스프링스로 향하고 있었다.
  
    21.정보교환
  보란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팜 스프링스에  도착한 것은 거의 정오  무렵이었다. 택시를 
불러 그는 호텔로 갔다. 호텔 종업원은 그의 형편없는 몰골을 보고는 놀라서 물었다.
  "무슨 사고라도 있었습니까, 램브레터 씨?"
  "차를 도둑맞았어. 이봐, 똑같은 걸로 다시 하나 구해 주겠나?"
   종업원의 얼굴이 1인치쯤 숙여졌다.
  "물론입니다, 선생님."
  그는 활달하게 대답했다.
  "얼음을 두 통쯤 올려 보내 주게."
  "알겠습니다, 선생님. 위스키도 좀 올릴까요?"
  "얼음만."
  보란은 피곤하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한 시간 내로 차가 필요해."
  그는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 램브레터 씨. 색깔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할까요? 메르세데스 말씀입니다."
  "똑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이미 얘기했잖나?"
  방으로 들어선 보란은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자마자 욕실로 향했다. 그는 먼지로 더럽
혀진 그 자신의 얼굴에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 드러난 아직 익숙해지지않은 프랭크 램브레
터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쏟아지는 물줄기에 온  몸을 맡긴 채 몇 분동
안의 완전한 평화를 즐겼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어 물줄기를 정면으로 받았다. 긁혀서  너덜
거리는 목과 입 쥐위의 피부 껍데기를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침실로 돌아와보니 얼금이 가득 든 작은 얼음통 두 개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
가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 놓은  옷들은 벌써 치워진 뒤였다. 대신에  깨끗한 속옷과 리볼버 
두자루가 침대 곁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란은 얼음덩이를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전화국에도 등
록되어 있지 않은 번호를 돌렸다. 디조르쥬의 서재로 통하는 전화였다. 벨이 한 번 울리자마
자 곧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마라스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나 프랭크네. 명령대로 깨끗이 실행되었다고 디스에겐 전해 주게."
  짧은 침묵이 그들 사이로 오갔다.
  "좋아, 프랭크. 전하지. 지금 어디에 있나?"
  "호텔이야, 좀 지쳐 있어. 곧 그리로 가겠네."
  마라스코의 뒤에서 디조르쥬가 뭐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보란은 들었다. 그러나 내용은 파
악할 수 없었다. 곧 마라스코가 튀어나왔다.
  "디스가 그림에 대해 알고 싶다는데?"
  "그림이라니?"
  "외과의가 그렸다는 스케치 말이야. 그들이  가져올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걸 
갖고 있나?"
  "그런 건 없었어."
  보란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난 기념품을 모으러 간 건 아니잖아?"
  "디스가 그 계약이 실행된 지점이 어디였는지 알고 싶다는군."
  "산과 사막이 맞닿는 곳. 무언가가 그곳에서 자넬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좋아, 알았네.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디스가 기다리고 있네."
  "나는 햇볕 속을 5마일이나 터덜터덜 걸어왔다고 말하게.  그 사실이 잊혀질 때쯤 가겠다 
전하게."
  마라스코는 킬킬거렸다.
  "좋아, 프랭크. 좀 쉬도록 해.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리면 곧 여기로 오게. 자네가 알아 둬야 
할 일이 있어."
  "알았어."
  보란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동안 마룻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는 새 담
뱃갑을 뜯어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빨면서 그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래, 곧 가고말고!"
  그의 어둡고 음산한 목소리가 자기 자신을 향해 반복했다.
  "종을 울리면서……."
  필립 마라스코는 수색 작업을 위해 팜 스프링스와 팜 빌리지를 연결하는 좁고 편평한 사
막으로 전투원들을 이끌고 떠났다.
  각각 5명씩의 전투원들을 태운 2대의 차는 프랭크 럭키가 밝힌 그 공격 현장인 교차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0명의 마피아 전투원들은 공격 현장을 향해 흥분에 들뜬 채 곧장 달려갔다. 그들은 현장
에 이르렀을 때 공격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마라스코는 뒤집힌 차로 
다가가서 세밀하고 완벽하게 시체들의 사인을 조사했다. 그는 10명의 전투원으로 하여금 현
장 둘레에 원을 그리듯 차차 접근해 가는 방법을 썼다. 조사는 곧 끝났다.
  저택으로 돌아온 마라스코는 카포에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보고했다.
  "만일 루이가 그 스케치를 갖고 있었다면 그걸 먹어  치워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프랭크 
럭키라는 자가 그들한테 해놓은 솜씨를 당신도 한 번 보아야  할 겝니다. 그런 현장을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가 스케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니 이상한 일인데……."
  디조르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소매 속에라도 뭔가를 감춰 뒀거나 했어야 얘기가 되잖아? 아니면 왜 이곳으로 부랴부랴 
달려오려고 했겠나? 정말 그곳엔 온전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더란 말인가?"
  "거의 없었습니다."
  마라스코는 모서리를 치며 대답했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 참혹한 꼴이란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프
랭크 럭키라는 자는 대단한 파괴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공격에 별로 힘도 
들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간밤에 6대 1의 대결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있지 않습
니까?"
  디조르쥬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는 뜻이로군. 그런가?"
  "12대 1이었다 해도 그는 능히 해치웠을 겁니다. 디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프랭크 럭키가 보란의 몸뚱이를 한 조각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꼭 
그 현장에 붙어 있겠습니다. 그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디조르쥬는 깊은 생각에 잠겨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자네도 혹시 이른 의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 마라스코, 어떤 녀석이 이 늙은 디스를 가
지고 놀고 있는게 아닐까? 자네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마라스코는 카포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ㅓ았으나  아무런 낌새도 찾아 낼 수가  없었
다.
  "누가, 왜 당신을 가지고 논다는 겁니까, 디스?"
  "프랭크 럭키가 보란과 한 번 부딪친  적이 있다고 내게 말했었는데 그건 뭐였느냐  말이
야. 그 녀석은 이 부근 어딘가에서 보란을 보았다고 했거든. 보란을 분명히  알아보았노라고 
했어. 그래서 상대에게 총격을 가했다구.  그런데 그런 얘기를 했을  때가 언제였느냐 하면, 
보란이라는 놈이 우리를 묵사발로 만들고 난 후였단 말이야. 그 팜 빌리지에서 말이야. 그렇
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마라스코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며 대꾸했다.
  "그런데 그는……."
  그는 눈을 갑자기 커다랗게 치켜 뜨더니 소리쳤다.
  "맞아요! 윌러 워커가 전화로 얘기했습니다. 공격이 있던 바로 그 날, 보란이 자기 얼굴을 
고쳤다구요."
  "바로 그거야, 필립 허니! 보게, 누군가가 얘기를 얽히게 만들고 있어. 누굴까? 누가  그런 
일을 벌이고 있을까?"
  "왜 프랭크가 당신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겠습니까, 디스?"
  "그게 바로 나를 혼란시키는 일이야, 필. 지금 우리는 그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만일 스크루이 루이가 사실 그대로를  얘기한 거라면? 필, 자네는 루이가  거짓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단 한 번이라도 말이야. 중대한  사건에 부딪쳐서 거짓말을 하는 것
을 본 적이 있는냐구?"
  마라스코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루이는 당신에게 헛소리 따위나 떠벌릴 위인은  못 됩니다. 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디
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루이는 자신이 뭔가 중요한 정보를 
가졌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그런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지요."
  "자네 성형 수술에 대해 알고 있나, 필?"
  "네! 동부에서는 한참 동안 그런 일이 유행이었죠."
  "붕대를 풀 때까지 얼마나 걸린다던가?"
  "2,3주일쯤일 겁니다."
  "디조르쥬는 혀를 끌끌 찼다.
  "한 달이 지난 뒤에도 고양이 낯짝을 하고 반창고를 붙인 채 돌아 다니는  녀석들을 나도 
본 적이 있어. 지저분해 보였어. 얼굴 성형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면……."
  "요즘은 심장 이식하는 수술도 하는데요,  뭐. 이제는 얼굴 수술도 더  간단하고 부작용이 
없는 방법들이 개발되었을 겁니다."
  "그 방면의 전문가를 찾아봐."
  "알겠습니다, 디스."
  "그리고 프랭크 럭키는 당분간 요주의 인물로 경계하도록!  만일 보란이 얼굴을 바꿨다면 
바로 그 며칠 뒤에 프랭크가 이 도시 어느 구석에서든 그 자를 알아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가 보란과 맞부딪쳤다면 두 가지 경우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어. 붕대를 감고 있는 보란을 
보았거나, 아니면 수술이 이미 끝난 새로운 얼굴의 보았을 뿐이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명백
해지지 않나? 수술이 끝난 사흘 뒤에는 프랭크 럭키는 보란을 알아볼 수가 없었어!"
  "그렇겠군요, 디스."
  마라스코가 숨이 막힐 듯 놀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루이가 사실 그대로 알려준 것이라면 프랭크 럭키가 한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이 됩니다."
  디조르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거야, 허니! 그가 너무 참혹하게 처리했다고 그랬던가?"
  "그 참혹한 광경을 당신이 직접 보았다면 틀림없이 당신도 눈을 돌리고 말았을 겁니다."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야!"
  디조르쥬는 지친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프랭크 럭키가 바로 보란의 새로운 얼굴이라는 사실이 밝혀 지는 날에는……."
  마라스코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는 긴장으로 손가락까지 떨고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디스."
  "나는 웬지 그런 생각이 들어."
  디조르쥬는 무미 건조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뱉어 냈다.
  "난 카포야, 필립. 나는 그런 가정도 해야만 해. 빅터 포피는 언제 돌아오나?"
  "2시에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에 도착합니다."
  마라스코는 기계적으로 대꾸했다.
  "프랭크가 어쩌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디스. 보란과 마주쳤다는  이야기 말입니
다. 그저 당신의 주목을 받으려는 의도롤 말입니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야. 나는 뭐든지 다 고려해 봐야  하는 위치잖아, 
필? 걱정 말아. 계속 생각을 압축시키고 있는 둥이니까. 빅터가 우리에게 가지고 올 선물이 
몹시 기다려지는군."
  "프랭크 럭키가 사실을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디스."
  마라스코는 디조르쥬와 심한 논쟁을 벌일 각오를 하며 한마디 던졌다.
  "자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게, 필."
  디조르쥬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나는 나대로 생각을 해 볼 테니까."
  보란은 외딴 곳에 세워져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앞에 차를 세웠다. 칼 라이온스와 통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경위가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라이
온스가 즉시 응답해 왔다.
  "오늘 아침 팜 스프링스에서 있었던 사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게 있소?"
  라이온스가 먼저 물었다.
  "물론 알고 있소. 당신과 정보를 좀 교환해 볼까 하는데."
  "교환은 무슨 교환!"
  라이온스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팀 브래독은 지금 사경을 헤메고 있소. 사람을 그토록 소름끼치게 조각조각……."
  "나는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소. 칼, 브래독은 희생할 것 같소?"
  보란이 가로채어 말했다.
  "의사들 얘기로는 희망적이라는 얘기요. 그러나 살아난다 해도  당분간 일을 떠나 있어야 
할 거요."
  "그는 훌륭한 경찰이었습니다.
  보란이 대단히 애석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내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했소. 무엇 때문에 전화 했소, 미스터 포인터?"
  라이온스는 희미하게 자조의 빛을 띠며 대꾸했다.
  "내 신분이 들통나려 하오. 정보가 좀 필요한데……."
  "잠깐만 기다리시오.…… 브로렐라가 여기 와 있는데 좀 난처한 입장인 모양이오. 그는 우
리들과 브래독 사이에 끼여 곱으로 곤란을 겪고 있으니까. 그래서…… 잠깐만 기다려요.  마
스터 포인터."
  보란은 전화기 저편에서 전해 오는 속삭임을 들었다.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 상의하고 있
었다. 이어서 송수화기를 집어 드는 가벼운 소음이 들려 왔다.
  "됐소."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라이온스였다.
  "브로렐라가 왔소. 우선 당신의 정보를 전하시오. 오늘 아침에 거기서 일을 저지른  게 누
구누구요? 페나는 제외하고 말이오."
  "나도 다는 알아내지 못했소. 그렇지만 시체는 당신네들이 확인할 수 있을 거요.  팜 스프
링스의 두 도로가 만나는 지점 근처에서 말이오. 페나까지 포함해서 여섯이오."
  "모두 죽었소?"
  브로렐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끼여 들었다.
  "그럴 거요. 이제 내 문제에 대해 얘기해도 되게소?"
  "누가 그들을 죽인 거요?"
  "이중 살인 청부 계약에 의해서 였소. 페나가  정보를 누출시켰다고 디조르쥬는 생각했던 
거요. 다섯은 페나를 돕다가 당한 셈이오."
  "그렇다면 콘과 외과 의사를 죽인 살인자와 교차로에 널린 시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는 거요?"
  브로렐라가 추궁했다.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소."
  "이 사람이 지금 당신한테 농담을 하고 있는 거요.  헤럴드. 보란, 당신이 그 사람들을 처
형했잖소?"
  라이온스가 화를 버럭 냈다.
  "저 사람 지금 누구 얘길 하는 거요?"
  보란은 브로렐라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놈들은 브랜튼이 당신 얼굴을 수술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려
고 브랜튼에게로 간 거야! 그것은 뻔한 사실이니까 시간을 절약하는  의미에서라도 그런 농
담을 말란 말이오. 그 뒤에 그곳에 당도한 당신은 그놈들이  당신 의사 친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된 거요. 그래서 그들을 모두 쏴 죽였지.  자, 이제 당신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할까? 현재 당신이 위장이 탄로나게 됐다고 했던가? 페나가 죽기 전에 그 불한당들에게 무
슨 정보라도 보냈다는 거요?"
  "잠깐 기다리시오. 미스터 포인터. 그 대답을 듣기 전에 시간을 좀 주시오."
  브로렐라가 능숙하게 말을 막았다.
  "아직 전화를 끊지 말아 주세요."
  다시 보란의 귀에 그들 둘이 상의하는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미스터 포인터."
  브로렐라가 보란을 불렀다.
  "당신이 우리들을 위해서 해주고 있는 일의 중대성을 우리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소. 당신
이 어떤 인물이건 우리는 상관하지 않소. 당신에게 유죄 혐의를  돌릴 만한 어떠한 말도 당
신을 할 필요가 없소."
  "좋습니다."
  보란은 짧게 대꾸했다.
  "우리는 또한 당신의 신분에 의심을 품고 있지도 않소.  그러나 다만 이것만은 분명히 얘
기해 주기 바라오. 오늘 아침의  팜 스프링스 살인 사건은 줄리앙  디조르쥬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소?"
  "아니오. 그건 모두 페나의 생각이었을 뿐이오."
  "그렇다고 해도 페나와 그의 일당은 모두 죽었잖소."
  "그렇소."
  "디조르쥬의 명령에 의해서였소?"
  "페나에 대한 살인 청부 계약이 있었소."
  "알겠소."
  브로렐라는 약간 흔들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보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좋소. 라이온스. 당신네들이 내 정보를 의심하는 것은 바라지 않소. 당신이  옳았소. 지금
은 농담할 계제가 아니니까 말이오. 어쨌거나 나는 ㄴ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셈 아니겠소? 
나는 보란이오. 나는 디조르쥬 가문에 침투해 있으며 오늘 아침 페나와 일당을 처치했소. 그
러나 그 행동은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오. 그들이 브랜튼에게 얼마나 처참한 
짓을 했는지는 당신들도 보았거나 들어서 알고 있을 거요."
  "그렇소. 브래독을 도와준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입을 통해  인상 착의를 충분히 들어 두
었는데 언젠가 밤에 내 차 안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모습과 참으로 비슷하더군요. 레드랜드에
서 말이오."
  "그렇소."
  보란은 순순히 수긍했다.
  "내 문제에 대해서 얘기할 시간은 없겠소?"
  "아니오. 계속해 주시오."
  "소문으로 듣기에는 그들의 위원회가 개인적인 막료를 고용하고 있다는데 누가 지휘를 하
고 있는지 알아봐 주시오."
  "당신 부서 일이오. 헤럴드."
  라이온스가 말했다.
  "현재 위원회에는 10명의 두목들만이 출석하고 있소."
  브로렐라가 그들의 이름들을 줄줄이 주워섬기면서 말을 이었다.
  "디조르쥬의 이름이 없다는 것은 당신도 알 수 있을  거요. 2년전에 그는 마약 거래에 관
한 논쟁을 벌이다가 화를 내며 위원회를 떠났답니다. 그렇지만 가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논
의될 때는 참석하기도 하죠. 그는 아직도 위원회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있소."
  "그러나 위원회 내에는 으레 그렇듯 갈등이 있을 게 아뇨?"
  보란이 흥미 있게 물었다.
  "그렇소. 위원회는 가격을 정하고 싶어하고  디조르쥬는 그걸 반대하는 입장이오.  그들의 
마약 판매 수입 중에서 디조르쥬가 차지하는  몫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가격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우기고 있답니다. 다른 가문과의 마약  거래에 있어서도 자기 계획
대로만 밀고 나간다고 하오. 그들 사이의 긴장은 꽤 팽팽하오."
  "고맙소."
  보란은 브로렐라에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받은 것 같소. 나는 특별히 위원회의 카포들에게 흥미를 느
끼고 있소. 그에 대한 도 다른 얘기는 없소?"
  브로렐라는 헛기침을 해댔다.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카포의 일당은  텔리페로 형제라는 얘기가 있소.  이 형제는 보통 
패트와 마이크라고 불린답니다. 그들은……."
  "좋소. 패트와 마이크에 대해서는 나도 들은 바가 있소. 당신 얘기를 듣고  보니 분명해지
는군. 아마 나는 내 목숨을 보존해 나갈 수……."
  "조심하시오, 포인터."
  브로렐라가 충고의 말을 던졌다.
  "이 텔리페로 형제는 보통 문젯거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한 번 명령을 받기만 하
면 마치 전파 유도를 받는 미사일처럼 행동한다는 얘기도  있소이다. 그들을 빈손으로 돌려 
세운다거나 공격을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는 거요. 그들 일당 중의 저격수로 말하면 
게슈타포 가운데서도 정예들 같다고 합니다. 그들은 단지 패트와 마이크의 명령만을 따른다
고 합니다. 그 형제들 자신이 그들의 위원회를 지휘하는 거죠."
  "완벽한 정보로군. 이제 전화를 끊어야겠소."
  "아, 미스터……."
  브로렐라가 서둘러 불렀다.
  "뭐요?"
  "오늘 밤 나는 워싱턴으로 떠납니다. 당신의 입장을 대신하여  내가 해줄 만한 일은 없겠
소?"
  "무슨 뜻이오?"
  "비공식적인 건데 용서와 망각의 대표권 말이오. 내듯을 따를 의향이 있소?" 
  "이번엔 농담을 하는 거요?"
  보란은 낄낄거리며 물었다.
  "그는 대단히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요, 보란!"
  라이온스가 끼여 들었으나 브로렐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위층 관리들은 이곳에서의 당신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소. 처음엔 사실 당신의 진
정한 의도를 의심했었소. 그런데 이제까지 당신의 행동이 그 의심을 일소시켜 버렸소.  그래
서 얘긴데…… 내가 지금 뭐라고 분명히 약속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오만…… 내 생각으
로는…… 내가 당신에게 어떤 직위를 얻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소. 물론 이해하실 줄로 믿소
만 비공식적인 것이긴 하오. 거기에는 물론 단서가 하나 붙게 될 거요. 당신이 현재의  역할
을 계속해 준다는 것이오."
  "내가 죽지 않는 한 계속할 것이오. 이건 본래의 내 뜻이오."
  "당신은 죽지 않을 거 아뇨? 그렇제 않소?"
  라이온스가 키들거리며 끼여들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처하지 않는 한은!"
  "당신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소?"
  "아마 없을 거요. 이기건 지건, 아니면 그만둬 버리건, 이건 내가 벌여 놓은  판이니까. 아 
참, 약 2년쯤 전에 스무 살 가량의 나이로 죽은  찰스 다고스타 사인을 조사해 주었으면 하
는데요. 산페드로 외항에서 선박사고로 익사했다고 합니다."
  "마피아에 의한 살인이란 말이오, 보란?"
  라이온스가 물었다.
  "포인터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브로렐라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간섭했다. 그러나 보란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 사건은 당신에게 대단한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요. 조사해 주시겠소?"
  보란이 진지하게 물었다.
  브로렐라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하겠소. 또 다른 건?"
  "저……."
  보란이 망설였다.
  "브래독이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그랬소."
  라이온스가 말했다.
  "고맙소."
  전화를 끊고 난 보란은 새 메르세데스 승용차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권총 벨트를 살펴 
본 다음 그는 저택을 향해 출발했다. 경찰 사회와의 관계는  아무래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직위라는 것을 제안함으로써 무엇을 암시하려 했던 것일까? 맥 보란은 희미
하게나마 의아스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살인 면허증인가 본데……."
  그는 계속 중얼거리며 메르세데스를 몰아 갔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래!"
  깊이 생각에 잠긴 채 그는 덧붙였다.
  "죽어도 좋다는 면허증이기도 하겠지."
  어느 쪽이든간에 맥 보란에게는 면허증이란 관심 밖의 문제였다.  이 성스러운 전쟁에 임
하기 위한 그의 분노는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22.새로운 전우들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띠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 왔다.
  "이게 누구야, 프랭크! 오늘 아침  자네가 벌인 한바탕 소동에 대해  나도 들었어. 야성의 
사나이 같았다고 하던데 그래! 자네를 따라갈 걸 하고 생각했다구!"
  보란은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자네에게도 곧 기회가 올 거야, 앤드루 하디!"
  그는 침착하게 윙크를 해보이고 주차장을 향하여 천천히 차를 몰았다. 앤드루가 요란하게 
떠들어 대며 또 다른 경비원에게로 다다가는 것을 보란은 보았다.
  보란이 메르세데스에서 내리려고 할 때 베니 피스풀이 나타났다.  그는 보란에게 다시 승
리의 V자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2시간 동안이나 수영장 옆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미인이 있어. 아마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 그 여자는 크게 실망하고 말걸!"
  보란은 고개를 끄덕이곤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멈춰 서며 물었다.
  "왜 이리 소란스럽지, 베니?"
  "이 집 전체가 아침에 당신이 벌인 일에 대한 소식을 듣자 그저 놀라서 꼭 얼어붙어 버렸
다구!"
  그 젊은이는 태연한 척하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물론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지.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해낼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
었으니까."
  "이제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베니 피스풀!"
  보란은 젊은이의 어깨 너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네."
  베니는 그 순간 자신이 전문가나 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란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뿌듯한 기분으로 침착하게 말했다.
  "정확히 보았어, 프랭크!"
  "자네와 같은 사람은 때가 왔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줄 아는 법이지."
  "자세하게 얘기해. 자네가 바라는 게 뭔가?"
  "패트와 마이크도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이용해 왔다네."
  그는 순간 호흡을 멈춘 듯했다. 그는 가볍게 몸을 떨더니  곧 안정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
다. 그는 자신의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이럴 수가!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침묵을 지켜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적당한 시기가 오면  달려 나갈 줄도 알지. 바로 그
런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법이라네."
  보란이 젊은이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 당신 말이 옳아! 프랭크 럭키!"
  베니는 그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좋아. 제네도 가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게!"
  보란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퉁겨 버리고 폐쇄된 정원으로 들어갔다. 베니 피스풀을 몇 발
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태연한 척 자신의 근무 위치를 찾아 섰다. 그의 표정은 뭐라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보란은 곧 그에게로 되돌아와 다시 말했다.
  "잘 듣게. 나는 지금 결정을 보았어. 너는 앞으로 제2의 프랭크다. 알았나?"
  그 말을 베니 피스풀에게 너무 심한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입술을 마구 덜면서 숨
을 몰아 쉬었다. 그는 보란을 꽉 잡을 듯하면서 열렬하게 부르짖었다.
  "프랭크, 나는 당신 사람이야. 무슨 일이 벌어지나?"
  "얘기했잖나, 베니! 앞일을 아는 사람은 그의 생각을 바꿀 때가 된 거야. 디스를 잊어버리
게. 알아듣겠나?"
  젊은 경호원은 쇼크를 받았는디 얼이 빠진 채 멍청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잘 알아들었네!"
  잠시 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어. 그럼 저택을 한 바퀴 돌아보게. 자네처럼  현명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차자보게. 
쓸 만한 그런 사람들이 악당과 함께 사라지는 건 원치 않으니까. 베니! 이게 자네에게 내리
는 첫 번째 명령이야. 구해 낼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찾아 두라구. 알았지?"
  "알겠네, 프랭크!"
  "좋아. 그리고 그들을 한곳으로 모으게. 그들에게 내가 알려 줄 말이 있으니까."
  "뭔가? 프랭크 럭키."
  "오늘 아침 사막에서 있었던 사건은 다름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징조에 불과
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하는 얘기 알아듣겠나?"
  "스크루이 루이는 그걸 몰랐어. 이곳의 많은 녀석들도 아직 모르고 있고."
  "그들도 곧 알게 될 테니 염려 말라구!"
  보란은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에게 달려 있어, 베니! 다쳐서는 안 될 사람은 따로 구별 해 둬. 시간이 충분하지 않
아. 또 그들에게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해 두게.  그들에게 자네가 손가락을 딱! 
할 때를 기다리라고 하란 말이야."
  베니 피스풀은 기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내 손가락이? 아, 알았네. 프랭크! 그래, 내 손가락이 딱! 할 때를……."
  "빨리 가서 자네 패거리를 끌어 모아!"
  "지금 즉시 일을 시작하겠네, 프랭크."
  베니는 기우둥거리며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는 주차장을 향해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갔다. 보란은 혀를 굴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안드레아  다고스타가 기다리는 풀장으로 기분 
좋게 다가갔다.
  "꼬마 병사하고 무슨 얘길 그렇게 오래도록 소곤거렸어요?"
  "그를 설득했어"
  보란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별로 행복해 할 입장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당신을 기다렸어요. 
나는 두려워요. 이제 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아요."
  보란은 몸을 굽혀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무슨 소리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예요!"
  안드레아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플로리다에 갔던 빅터 포피가 그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어요. 그들이 지금 서재에서 당신
을 기다리고 있다구요."
  보란은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뭐지?"
  "빅터가 토니라고 부르는 걸 들었어요. 내가 아는 것 그것뿐이에요.  자그마한 사람이었어
요. 피부는 누런 데다 메마르고, 게다가 멍청해 보였어요. 마흔쯤 됐을까?"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나한테 감사해 할 필요는 없어요. 나를 그 대신 이곳에서 내보내 주기만 하세요."
  "당신은 지금 당장에라도 나갈 수 있어!"
  "누구하고 농담하자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보란은 안드레아의 위아래를 차근차근 훑어보다가 덧붙였다.
  "당신, 여행을 떠나기에 적당한 차림이군. 여길 나가면 어디로 갈 예정이지?"
  "가장 빠른 항로를 택해서 이탈리아로 가겠어요. 엄마와 당분간 같이 지내고 싶어요."
  "아버지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나건간에 관심없어?"
  안드레아는 잠시 동안 보란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아빠도 자기 사업에 관해서는 나와 상의한 적이 없다구요!"
  "좋아. 나를 따라와. 당신 소원을 풀어 주겠어. 그리고 그 다음에 내가……."
  그는 안드레아를 한 팔로 안아 매트로부터 일트켜 세웠다.  필립 마라스코가 안마당을 가
로질러 현관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보란을 향해 뭐라고 소치쳤다. 보란은 
그를 발견하자 팔을 흔들어 보였다.
  "디스가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빨리 오라구! 디스가 애타게 찾고 있다구."
  보란은 그녀를 안았던 팔을 풀면서 속삭였다.
  "준비 끝내고 기다려. 곧 돌아올 테니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안드레아는 불길한 눈길로 한숨까지 내쉬며 매트로 돌아가 다리를 쭉 뻗으며 누웠다.
  보란은 안뜰을 가로질러 활달한 걸음으로 현관 앞에 서 있는 마라스코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나도 모르겠네."
  마라스코가 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늙은이가 마치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펄쩍펄쩍 뛰고 난리야. 그 사람의 심리 상
태가 가장 고약스런 때에 자네가 만나게 된 것 같아!"
  그들은 서로 팔꿈치를 나란히 하고 디조르쥬의 서재를 향해서 걸어갔다.
  "명령대로 실행되었다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런데 도대체 뭘 걱정하고  있다는 
건가?"
  "만일 우리가 자네를 저지할 수만  있었다면 그 명령을 취소했을 거야,  프랭크.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카포와 싸우지는 말게. 그건 그를 더 신경질적으로 만들뿐일 테니까."
  "하지만 명령을 취소하지 않았잖아, 필립 허니."
  보란은 여유를 보이며 말했다.
  "자네는 마치 가문의 사람인 것처럼 얘기하는군."
  "난 자네를 좋아해, 필."
  보란이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마라스코도 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걸음을 늦추었다.
  "물론, 나도 자네를 좋아한다네."
  그는 놀라지도 않고 대꾸했다.
  "이런 얘기를 아나? 옛날 이집트나 그 주변 국가에서는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모든 왕궁
의 시중들도 같이 묻어 버리는 풍습을  따랐다는군. 하인들, 노예들…… 그 밖의 다른  여러 
물건들도 함께 말이야."
  "함께 묻었다구?"
  "그렇다니까. 이집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네. 왕의 생명이 끝나면 그의  주위 사람들
도 함께 삶이 중단된다고 말이야. 어리석지 않은가, 필?"
  마라스코는 걸음을 멈추며 반문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프랭크?"
  보란은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패트와 마이크가 말하기를 왕이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하더군, 필립 허니."
  마라스코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졌다.
  "아! 그럼 곧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자네가 고대 이집트 인이 되지 않기를 나는 바라고 있네. 필립 허니."
  보란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마라스코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더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것을 입술 사이
에 끼워 물었다. 보란이 재빨리 불을 당겨 주자 마라스코는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이집트 사람이 되기는 싫어, 프랭크!"
  "반갑네!"
  보란은 디조르쥬의 서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라스코가 다가서더니 
보란의 팔을 잡았다.
  "잠깐 기다리게! 들어가는 일이 그리 바쁜  것은 아니잖나! 그들이 자네를 위해 칠면조를 
하나 준비해 뒀다네."
  "칠면조라니?"
  보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었다.
  "자네를 옛날부터 안다는 자가 있어. 그런데 그자는  자네가 베트남에서 죽었다고 얘기하
고 있다네. 자네가 그의 이름을 빌린 건가, 프랭크?"
  "글쎄. 그자의 이름은?"
  "토니 에비나. 뉴저지에서 자네와 같이 자랐다고  하더군. 디스앞에서 이 일로 인해  자네 
입장이 난처해지지는 않겠나?"
  "그 녀석은 우리 조직 내의 사람인가?"
  "아니야. 그의 온 몸에서는 죄수 냄새가 풍기고 있어."
  "잠깐. 필."
  보란이 은밀하게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이름은 사실 프랭크 램브레터가 아니야."
  "그래, 나도 조금 전에야 눈치를 챘어. 그 칠면조를 어떻게 처리할 작정인가?"
  마라스코의 음성도 낮아졌다.
  "그놈이 놀라서 오줌이라도 찔끔거리게 말들어 줄 계획이야. 안심하고 따라오게."
  칼 라이온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브로렐라를 내려다 보며 마룻바닥 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오! 대단한 발견이라구. 해럴드! 우리가 이 정보를  보란에게 전해 주
기만 한다면 말이오! 누군가가 그 당시에 검시관을  매수했을 수도 있소. 당신도 그걸 알겠
죠? 그 검시 과정은 그의 사인과 더불어 신문에 공개되어야만 해요!"
  "그래 알았소, 알았다구!"
  브로렐라는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칼, 그렇지만 이 점을 명심해  두시오. 그때의 루이 페나는 지금처럼  세력있는 마피아의 
두목은 아니었다는 사실 말이오. 지금의 절반  정도도 안 되었소. 게다가 모터 보트를  묶고 
있던 루이 페나가 바로 요란했던 30년대의 악명 높은 그 루이 페나였다는, 그 둘이 동일 인
물이라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지 않소?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사고를 당한 시체를  조사했던 
검시관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잖겠소? 음모는 법정 밖에서 이루어 졌던 거요. 증인 심리 
과정에서도, 사건 조사팀에서도, 또 우리가 모르는 그 밖의 재판 과정에서도 잘못된 것은 아
니었소. 어쨋든 그들 모두는 법정이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려 주었다고 생각했던 거요."
  "그렇지만 사실은……"
  라이온스는 계속해서 따지고 들었다.
  "범선은 항상 동력 추진선을 추월할 수도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 있지 않소? 아무데도  책
임 지울 데가 없다면 지방 검사가  책임을 지는 수앆에 없는 거요. 페나는  간단히 그 작은 
범선의 앞길을 막고 달아났소. 자기 임무가 완벽하게 수행되었는지를 확인 할 수 있을 때까
지 주변에서 충분히 서성거렸을 거요. 그리고는 불행한 사고였다고 증언했을 게 뻔하죠.  살
아 남은 행운에만 정신을 빼앗긴 채 법정을 떠났을 거요. 그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오! 당신
이 뭐라고 말하건 절대 올바른 일이 아니오. 우리는 그 동기까지도 확인하고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당신이 맡은……."
  "돌이켜 보면……."
  브로렐라는 격분한 경찰관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말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내 직책으로는 그 기록들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소. 지금 역시 보통의 
상황에서라면 마찬가지죠. 내가 그 다고스타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
었다면 상황은 지금 여기까지도 진전되지 못했을 거요."
  "좋소. 내가 보란과 접촉하겠소. 그는 지금 독사가  우글거리는 굴 속에 뛰어든 셈입니다. 
우리는 그를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화기와 방어 수단을 제공해 주어야겠소.  우
리는 지금껏 그만큼 유능한 정보 제공자를 갖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잊고 있는 거
요?"
  "내가 모른다구요?"
  브로렐라는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동의하십시오."
  라이온스가 잘라 말하고 브로렐라에게 따지고 들었다.
  "점잔이나 빼고 있지는 말자구요. 우리측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데 논쟁이
나 벌여서야 되겠소? 보란이 우리한테 방법을 제공했으니까 그걸 이용하도록 하잔 말이오."
  브로렐라는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건은 당신이 결정했으니 때를 봐서 그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해도 좋
소. 그렇지만 후원해 달라고 나를 조르지는 마시오."
  라이온스는 묶어 두었던 서류 뭉치를 꺼내 그 중 하나를 펼쳤다. 거기에는 미스터 포인터
라고 불리는 한 남자로부터 넘겨 받은 정보와 그의 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서류 위쪽에는 -제1급 비밀 취급자에게만 열람이 허락됨-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그 밑에
는 렘브레터라는 이름과 팜 스프링스의 한 전화 번호도 적혀 있었다.
  "이 국번이면 어느 지역쯤일까?"
  라이온스가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직접 걸어 보면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거 아니오?"
  "전화국에 위치를 물어 봐야겠소."
  "그러는 동안에 막상 행동을 취할 적당한 시기를 놓치고 말겠소."
  브로렐라가 한숨을 쉬며 내뱉었다.
  "그럴까요?"
  라이온스는 망설이며 전화통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그는 그것을 앞으로 당겨 수화기를 들
었다. 외부 통화를 신청한 다음 그는 전화 번호를 되씹으며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곧  다
시 수화기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빌어먹을, 나는 이런 첩보 활동 같은 데에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아!"
  보란과 마라스코는 상대의 의심을 받기 위해 그럴듯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카포의 은밀한 
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라스코는 문 근처에 멈춰 섰고, 보란은 디조르쥬의 앞까지  걸어 
들어가서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는 가죽 의자에 가 앉았다.
  "휴식을 취했다구, 프랭크?"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서 디조르쥬가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쉬라는 얘기는 아니었을 텐데!"
  방 안에는 그들 이외에도 다른 두 사내가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는 보란에게도 낯익은 자
였다. 그는 그 사내가 빅터 포피라고 확신했다. 다른 한 쪽도 안드레아의 정확한 묘사  덕분
에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도 보란은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를 
세말히 관찰하고 있었다. 한순간 한순간이 그야말로 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보란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 토니! 언제부터 조용히 처박혀 사는 생활을 집어 치우기로 했나? 정말 오랜만이군, 토
니!"
  디조르쥬의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 빅터 포피는 좀 신경질적인  미소를 띠며 그의 두목을 
흘끗 쳐다보았다.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그 작은 사내는 놀란 장닭 같은 표정을 한 채 보란을 쳐다보고
만 있을 뿐이었다.
  "어, 프랭……."
  사내의 목소리는 거기서 그대로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는 숨이 막힌 듯  몇 차례 기침을 
해대더니 목청을 가다듬으며 가래를 돋우었다가  눈을 부릅떴으나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을 내려뜨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들기더니 무어라 형용키 어려
운 미소를 떠올리며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당신들 서로 아는 사이였나?"
  디조르쥬는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연극을 꾸미려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 방안에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란 세월따라 조금씩 변하는 법이죠. 저기 있는 토니는 대단한  장부였었소. 이웃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토니를 두려워했소……. 세월이 지나면 사람이란 변하게 마련인가 봅
니다."
  "내 생각에는 자네는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 프랭크."
  마라스코가 불쑥 내던진 말이었다.
  "여전히 촐싹대기 좋아하는 망아지 새끼 같다니까!"
  줄리앙 디조르쥬가 꾸짖는 듯한 시선으로 마라스코를 쏘아보는 것을 보란은 놓치지  않았
다. 보란은 낄낄거리며 농담처럼 말을 돌리며 대꾸했다.
  "아냐…… 나도 변했어. 요즘의 나를 보라구. 내 이꼴을 봐. 지치고 늙었어.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세월이 나를 이렇게 좀먹고 만 거야. 5년쯤 전만  해도 오늘 아침 일과 같이 
6명쯤 문질러 대고 나면 오히려 근육이 풀리곤 했는데 말이야. 이제는 항상 꼬리에 달고 다
니는 게 피고, 그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지."
  마라스코는 소리를 내며 웃어 댔다.  디조르쥬는 험악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라스코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빅터 포피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얘기 들었네. 프랭크,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내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어 안달
을 하더군. 그래서 나도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졌어."
  "닥쳐!"
  디조르쥬가 악을 썼다. 보란의 허풍에 대한 효과는 작은 칠면조의 얼굴에 이미 명백히 나
타나 있었다. 그 조그마한 사내는 유령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보란을 응시하며 어
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두 손을 비틀어 댔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데…… 프랭크."
  사내의 목소리는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디조르쥬는 꼿꼿이 세운 
손가락으로 토니 에비나를 가리키며 발악을 했다.
  "이봐! 무슨 소리야! 네가  프랭크 램브레터는 월남전에 징집되어  가서 전사했다고 말한 
지가 아직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말 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디조르쥬 씨."
  "그 사람 윽박지르지 말아요. 디스. 그가 떨고 있는게 보이지도 않습니까?"
  보란이 타이르듯 말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가? 도대체 자넨 자신을 자신을  뭘로 
생각하는 거야!"
  "당신은 날 뭘로 생각하시나요. 디스?"
  담담한 목소리로 보란이 반문했다. 그러자 디조르쥬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어 다음 말을 
잊은 채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프랭크 럭키가 이 방으로  들어선 이래 그자의 
생동과 말과 태도는 계속 디조르쥬의 신경을 자극해 대고 있었다. 건방진 표정을 하고 말대
꾸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자기가 카포인 양  명령을 하지 않나, 그 안드레아와의 
첫날처럼. 꼭 그때처럼…….
  어느새 디조르쥬의 생각을 억누르고 있던 단단한 얼음 덩이 같은 매듭이 서서히 용해되어 
가고 있었다. 간신히 그는 자신의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좋다. 이제 내가 질문을 하겠다, 프랭크. 그리고 넌 숨김없이 대답해야 한다."
  보란의 시선이 토니 에비나에게로 옮겨졌다.
  "대답해 주게, 토니. 내가 누군가를 이분에게 말씀드리게.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려."
  "이봐요, 난 솔직히 당신이 누군지…… 프랭크?"
  보란이 웃을을 터뜨리자 필립 마라스코가  그에 합세했다. 이어 빅터  포피의 웃음소리도 
섞여 들었다. 얼굴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던 디조르쥬는  경련을 일으키다 못해 뻣뻣하
게 굳었다. 보란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
듬는 시뉴을 했다.
  "맙소사,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보란은 이제 숨까지 헐떡거리며 두 팔로 자신의 양 어깨를 끌어안았다.
  "저 놈을 끌고가! 필!"
  카포가 간신히 소리쳤다.
  "형이상학적인 무제로 바뀌었군 그래. 나도 나 자신이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보란이 계속 낄낄거렸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마라스코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끼여 들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디스.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같이 일해왔습니다만 이 얘기는 꼭 해
야겠어요."
  "무슨 말인가?"
  "괜찮아, 프랭크?"
  아직도 낄낄거리고 있던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랭크 럭키에 대해서입니다. 그는 가문 내부의 사람입니다."
  "가문이라구?"
  순간 디조르쥬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바늘같은 시선으로 마라스코를 쏘아보며 물었다.
  "비토리니요."
  보란의 목소리 사이를 떠돌고 있던 모든 킬킬거림과 자질구레한 소음들이 순식간에  중단
되고 대신 그 자리를 무거운 정적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디조르쥬는 그의 사람이었던 프랭
크 럭키를 살펴보기 위해 천천히 돌아섰다. 자신이 후원자가  되어 그의 가문으로 끌어들이
려 했던 그 사나이를. 그리고 어느 땐가는 카포의 대를  이을 인물로 만들려고 했던 사나이
를 돌아보며 그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프랭크 럭키는 비토리니 가문이라는 얘깁니다. 그는 패트와 마이크를 섬기고 있습니다."
  마라스코가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 디조르쥬의  입은 딱 벌어졌다가 곧  다물어졌다. 그의 
시선은 보란을 향했다가 마라스코를 노려보았으며 다시 보란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이며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필립 허니!"
  "당신도 알고 있잖소, 디스?"
  보란이 오히려 반문했다.
  "아니야, 나는 몰랐다구."
  디조르쥬는 다리를 끌며 그의 책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필! 자네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지?"
  보란이 부드럽게 한마디 던지자 마라스코는 디조르쥬를 책상으로 밀어붙이고 그에게로 바
싹 다가섰다. 그러더니 그의 손이 상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무언가를 움켜쥔 채 더 이상 움
직이지 않았다.
  "아니! 네 놈들이 감히!"
  떨리는 음성으로 디조르쥬가 비명을 질렀으나 이제 그의 격노를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디스에게 찬 바람이나 쏘이게 해줄까, 프랭크?"
  "그래, 낯짝을 보니 그래야 할 것 같군!"
  보란은 안락 의자에 깊게 파묻히며 느긋하게 말했다.
  "찬 바람을 쏘여야 정신이 들 모양이지, 필."
  "감히 내게 이런 짓을 하다니!"
  디조르쥬는 울부짖었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디스."
  보란은 빅터 포피에게 미소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이봐 빅터. 자넨 친구를 데리고 플로리다로 돌아게게. 가서 푹 쉬도록 하라구. 토니를 보
니 햇볕이 좀 필요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당신은……."
  "이 날강도 같은 놈!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놈이 대체 누구야!"
  디조르쥬가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쳤다.
  "저자가 아직도 여기 있었나?"
  보란이 눈으로 빅터 포피를 주시하면서 물었다.
  "필, 지금쯤은 자네가 데리고 나가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고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직 여기 있었어?"
  빅터 포피는 토니를 앞세우고 마구 그를 재촉하면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곧이어 디조르쥬의 악쓰는 소리가 들려 왔다.
  "네 놈들이 이 따위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프랭크 럭키, 보란은 함숨을 토하며 낮게 내뱉었다.
  "이봐, 이제 겨우 시작이라구!"
  
    23. 카포의 최후
  허둥지둥 복도로 달려나가던 빅터 포피와 토니 에비나가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던  모양이
었다. 여자의 화난 듯한 목소리가 곧바로 날아왔다. 보란은 이내 그들이 용서를 비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안드레아 다고스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32구경을  쥐고 있는 보란의 
손은 문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그녀의 손에도 22구경의  권총이 들려 있었는데 주석으로 
도금된 멋진 것이었다. 그녀는 곧 방 안의 상화을 파악한 것 같았다. 방을 한 번 재빨리 휘
둘러보고 난 그녀의 시선은 보란을 정시하고 있었다."내가 원하는 것 아빠예요."
  "그 사람은 틀렸어." 보란이 짧게 대답했다. "나는  내 몫을 돌려 받겠어요. 빨리 그를 풀
어 줘요." "안드레아, 이곳에서 빨리 나가!"
  디조르쥬가 으르릉댔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나는 다 알아요."
  맥 보란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 속에서는 증오심이 불타 오르고 있었다.
  "당신은 이 사람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더 나빠요. 나는 당신에 대한 소문들을 믿고 싶지
가 않았어요. 그러나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군요. 당신을 살인광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내 
아빠를 죽이려는 거죠?"
  "빨리 나가! 남자들이 사업 얘기를 하는데 끼여 드는 게 아니야!"
  "이 여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디스!"
  보란이 그녀를 두둔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게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디조르쥬의 말은 탕!하는 리볼버의 총격 소리에 의해  잘려 나가고 말았다. 보란의 등 뒤
에 있던 꽃병이 박살이 나서 사방에 흩어졌다. 보란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저 여자가 우리들 머리위로 뭘 던졌군, 필!" "당신이 먼저 쓰러질 거라구요!"
  화를 참지 못하며 안드레아가 계속  소리쳤다. "내가 당신을 쏘지 못할  것 같아요? 천만
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구!" 여전히 얼굴에 웃을꽃을 피운 채로 보란이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빠!" "오, 제발! 안드레아.  그자는 너의 적수가 아니야. 네가  그자의 
움직임을 눈치 채기도 전에 그자는 너의 두 눈을 간단히 쏘아 버릴 수가 있어. 여기에서 당
장 나가거라. 내 말을 들어!"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 나가라, 디스! 당신의 귀여운 공주와 총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아."
  보란이 안드레아의 말문을 막으며 말했다.
  "네 놈은 이곳 구조를 잘 몰라! 그렇게 쉽게 빠져 나갈 줄  알아? 나를 내몰더라도 네 놈
이 무사하려면 네 패거리를 따라 보내는 일뿐이야. 그들이 등  뒤에서 나를 쏘도록 하는 것
뿐이란 말이야! 길 모퉁이나 차 안에서 또는  다른 어느 곳에서라도 좋겠지. 그렇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 여기는 내 왕국이니까!"
  "디스, 이 사람과 논쟁을 벌일 생각은 않는게 좋을걸."
  마라스코가 충고했다. 이때 안드레아는 총구를 보란에게 향한 채  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경고의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 떠나는 거에요. 아니면 쏘겠어요."
  보란의 32구경은 아직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는 그저  손가락질을 하듯 장난 스럽게 그
것을 디조르쥬의 가슴을 향해 겨누었다.
  "디스! 빨리 여기에서 나가!" 마라스코가 재촉했다.
  "너를 잊지 않겠다. 필립 허니! 너의 그 완벽한 속임수와 배신을 잊지 않겠어!"
  "꺼져!"
  보란이 명령했다. 디조르쥬는 등을 보이며 걸어갔다. 안드레아도 작은 총을 보란에게 겨눈 
채 그의 뒤를 따라나갔다. 그들의 뒤로 조용히 문이 닫혔다.
  "자, 이제……."
  마라스코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살인 청부 계약은 유효해."
  보란은 선언하듯 말했다.
  "디스는 멍청이가 아니야."
  마라스코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빨아 대며 대꾸했다.
  "그는 애들을 모을 수 있는 곳까지 가겠지? 그리고는 그들을 앞세우고 다시 이곳으로  되
돌아올 거야." "그를 그대로 달아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말을 마친 보란은 프랑스식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더니 빗장을 힘껏 끌어당겼다.
  "이런 와중에 그 여자가 끼여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이 일에 무슨 잘못된 일은 없었겠지, 프랭크?"
  마라스코가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다.
  "카포를 공격한다는 것은 매일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사건은 아니야. 먼저 그것부터 확실
히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
  "자네 미쳤나? 도대체 무엇을 알아봐야겠다는 건가?"
  그는 마라스코를 비난하며 문을 밀고 잔디밭으로 나섰다.
  마라스코도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 계약을 내건 사람은 누구지?"
  "정신이 나갔군. 지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놈이 카포를 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나? 
그들이 혹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나  싶어. 그들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보겠다는 건가? 필립 
허니! 자네가 물어 보겠나?"
  "아, 아니야. 프랭크!"
  보란은 마라스코를 외면한 채 허공에 대고 재빨리 세발을 쏘아 올렸다. 몇 사람이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그들 중의 하나가 도전하듯 물었다. "베니 피스풀에게 들었나?"
  보란이 소리쳤다. "아, 물론 듣고 말고. 이미 시작됐나? 벌써 그의 손가락이 딱 소리를 냈
나?" "당장 행동을 개시해! 우선 정문을 봉쇄하고, 아무것도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조처하란 
말이야!" "개미 새끼 한 마리라도!"
  그들이 복창했다. 보란에게 질문을 던졌던 사나이가 먼저  정문으로 뛰어갔고 다른 2명이 
곧 그의 뒤를 쫒았다. 네 번째 사나이는 얼간이처럼 보란을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보란
의 총구에서 불이 뿜었는가 싶더니 그는 선 자리에서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이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보란은 야만적인 코웃음을 치며 마라스코의 주의를 천천히 돌아 우뚝 멈춰 섰다.
  "이곳에는 지금 두 종류의 인간만이 있어. 산 자와 죽은 자. 베니 피스풀이 그  둘을 갈라 
놓는 심판관이지."
  "그 멍청한 녀석이?"
  마라스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래 소설과도 같은 얘기지, 안 그런가?"
  그는 이제까지의 램브레터의 가면을 모두 벗어 던지고 보란이 되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무감각하고 천치 같은 너희들 살인 미치광이들을 위한  일이라네. 베니 피스풀로 하여금 
염소 떼로부터 양들을 골라내게 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보람있는 일이 이 세상에 또 어
디 있겠나?" "뭐, 뭐가 어떻다구?"
  마라스코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자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나? 오, 그러고 보니…… 바로 네
놈이 보란이었군!" 그는 놀라 재빨리 권총을 뽑으려고 허우적 거렸다.
  "이제 알겠나?"
  어느 사이 보란의 총알이 날아가 그의 콧잔등 사이로  깊숙히 박혔다. 마라스코는 그대로 
뒤로 훌렁 나자빠졌다. 그는 배신감과 모욕감, 그리고 공포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이렇게 되어 미안하군, 필립 허니!"
  보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적진이다. 그런 감상에만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32구경에 장탄을 하고 또 다른  적들을 처치하기 위해 걸음을 재
촉해야 했다.
  저택의 이곳저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신이  나간 경호원들은 저희들끼리 얽
혀 마구 쏘아 대고 있었다. 보란은 이에 자신의 총을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문 근처에서는 톰프슨이 이끄는 한 떼의 경호원들이 그곳으로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제
지시키고 있었다. 주차장 쪽에서 불길이  일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
다. 부상당한 몸뚱이들이 널브러져 있는 저택 안의 풍경은  그에게 베트남의 전쟁터를 연상
시켜 주었다.
  보란은 자신의 표적을 포기하고 안드레아를  찾는 일에 모든 신경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벨보어의 벼랑에서 그로부터 교묘하게 
달아났던 사나이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마치 찢어진 모래 주머니처
럼 그 자신의 영토 위에 내장까지  다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그  자신이 그가 훈련시킨 
전투병들의 희생자가 된 것이었다. 거대한 캘리버 50의 탄환들이  그를 갈기갈기 조각내 놓
았으나 그 카포는 아직도 자신의 왕국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확인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
다. 손톱 미용사에게 손질받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내장을 거머쥐고  다시 뱃속으로 밀어 넣
으려 애쓰는 모습은 차라리 눈물겨웠다. 아마 그는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그 짓을 계속 하
리라고 그를 내려다보면서 보란은 생각했다. 짐 브랜튼이나 징기스 콘을, 그리고 죽음  앞에
서만 만날 수 있었던 달콤한 표정의 작은 여자를 떠올렸다. 또 디조르쥬의 얼굴에서 키다리 
킴 브래독의 고통과 경악에 찬 얼굴을 보았으며 머릿속에 뿌리박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
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의 얼굴도 보았다. 그는 죽음의 특공대의 아홉 전투원들의  참
혹한 시체를 보았으며 마피아 무리의 시체들도 보았고, 저격수의  안내를 받았던 무수한 주
긍ㅁ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자신의 왕국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줄리앙 디조르쥬
를 보았다. 자신의 시신을 뒤덮을 흙보다도 더 가치 없는 사나이. 보란은 궁금하게 생각되었
다. 이 세상에서 그 흙보다 더 가치 있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맥 보란의 인생 전반은 전쟁과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갑자기 보란은 자신이 
지나온 날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떨었다. 그의 코는 죽음의 
냄새에 마비되었으며 그의 두 귀는 죽어가는 자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신음으로 멍멍한 상태
였고, 조각나고 찢겨져 나간 시체와 그 주위를 물들이고 있는 피, 그 피로 그의 두  눈은 욱
신거렸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이미 이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나를 …… 쏴줘." "그런 짓은 못 해!"
  보란은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죽음의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아까 지나왔던 그  길로 
프랑스 식의 문을 통해 카포의 서재로 들어섰다.
  안드레아 다고스타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제 2의 프랭크 럭키인 베니 피스풀에게 붙들
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자신을 그곳으로 
끌고온 사나이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욕설들을 뱉어냈다.
  보란은 그녀를 측은한 듯 내려다보며 베니 피스풀에게 말했다.
  "멋진 공격이었어, 베니!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 그곳의 쓰레기들을 청소해. 경찰들이 보이
거든,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보란이 이곳을 공격하려고 했었다고 그들에게 말하
면 돼." "알았어. 프랭크!"
  베니는 즉시 문을 향해 달려가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돌아섰다.
  "저, 그런데 말이야. 다시 이리로 돌아와야 하나?"
  "물론이지!"
  보란이 웃어 보이고 말을 이었다.
  "네가 필립 허니의 자리를 차지해!"
  베니 피스풀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달려나갔다. 보란은 흐느끼고 있는  여자를 잠시 
내려다보고 있다가 전화를 끌어당겨 칼 라이온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해 줘서 고맙소."
  라이온스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당신과 접촉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소. 내게  요청했던 찰리 다고스타의 죽음에 
대해 조사가 끝났소. 서류철 속에서 여러 통의 편지들이 들어 있었는데 모두 그의 친필들이
오. 모두 조직적인 범죄에 대한 얘기였소. 지하 세계의 암거래에는 줄리앙 디조르쥬가 그 배
후 인물이었소. 바로 루이 페나가 그 사건에 있어서 의문의……."
  "좀 기다리시오."
  담담한 음성으로 보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시오." 그는  전화통을 안드레아 곁으로 옮긴 다
음 수화기를 그녀의 귀에 대주었다. "그에게 시작하라고 해."
  "시작하세요."
  그녀는 기계적으로 속삭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손은 수화기를 움켜잡고  있었다. 
안드레아가 경찰의 조사 보고를 듣는  동안 보란은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잠시 후 그녀가 
수화기를 돌려 주며 보란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옷을 주어 입은 다음 머리를 빗더니 그대로 방에서 나가 버렸다.
  보란은 전화통을 책상 위로 옮겨 놓고 디조르쥬의 의자에 앉아 통화를 계속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라이온스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 왔다.
  "집을 좀 청소했을 뿐이오."
  대답하는 보란의 음성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브로렐라? 그 사람에게 전해 주시오. 직위에 대한 건은 잊어버
리라고 말이오. 이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당신 정체가 드러났오?" 라이온스는 놀라는 듯했다.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끝났소. 디조르쥬는 죽었고 가문은 풍비박산이 났소. 경비원들은 지금 집 안을 
돌아다니며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소. 경찰 보병대를 좀 파견해 주시오. 진짜 총격전은 잠시 
후에 시작될 거요. 그들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을 때 말이오. 시간을 맞춰 당신들이 당도한다면 고기 부스러기 정도는 긁어갈 수도 있
을 거요.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 수사관은 놀라움을 감추기 위해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느 정도 자신이 서자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신의 바뀐 얼굴을 내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내 말뜻은……."
  "나는 그곳에 없을 거요."
  보란은 피곤을 느끼며 대답했다.
  "당신은 때에 따라 바보들을 조롱하고는 흐뭇해 할 수도  있을 거요. 그러나…… 아니 나
는 안 되오. 디조르쥬의 서랍에서 어떤 물건을 꺼낸 뒤에…… 그게 내 마지막 짐이 될 것이
오만……나는 갈 거요. 재빨리 사라지겠다는  얘기요. 라이온스. 당신에게 감사드리오.  정말 
고마웠소."
  "그곳에 자물통을 채워 놓고 열쇠는 내게 보내 주시오. 우리들 가운데도 당신에게 성원을 
보내는 사람들이 몇 있소, 보란. 우리들 중 일부이긴 하지만 말이오."
  "알겠소."
  보란은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책상 가운데 서랍으로부터 서류가방을 
꺼냈다. 그리고는 디조르쥬 소유의 여러 가지 비밀 서류와 물품들로 그것을 가득 채웠다. 그
는 가방을 들고 문으로 향했다. 카포의 본거지를 천천히 한 번 돌아다보고 있었다. 물  위에
는 반쯤 물에 잠긴 시체가 둥둥 떠 있었다.
  "나하고 같이 가겠나?"
  "어디로요?"
  그녀는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란은 어깨를 움찔하며 물었다.
  "어디건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머리를 흔들더니 한 손으로 보란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그의 새로운 메르세데스
로 다가갔다. 안드레아가 말없이 차에 올랐다. 보란은 문을 닫아 주고 차를 돌아가 운전석에 
앉아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가 정문에 이르자  앤드루 하디라는 별명이 붙
은 사내가 여자를 알아보고 보란에게 음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피로 더럽혀진 손수건이 
그의 손에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그는 차로 다가오더니  지저분한 손으로 차체를 어루만지
며 말했다.
  "대단한 구경거리였어, 프랭크!"
  "그래. 베니 피스풀에게 전하게. 내가 이 여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주
변을 잘 감시하라구 말이야."
  "베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게."
  하디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보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차를 몰아갔다. 정문을 빠져  나온 그들은 넓은 도로의 
끝없는 선을 따라 달렸다. 보란은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베니 피스풀은  자신이 
무었을 위해 싸웠는지를 아직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가문을 파괴하는 일이었다는 것
을 그가 깨닫게 될 때쯤이면……. 보란은 잠시 동안이나마 그 철모르는 폭도들에 대해 가책
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였다. 그들은 고용된 총잡이였을 뿐이었다. 자라날 루이 
페나의 싹이었던 것이다. 세상은 그들 없이도 잘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도로를 벗어날 때쯤 뒤를 돌아보던 안드레아가 몸서리를 쳤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어두
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보란 곁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쨌든 당신이 지금 막 나를 지옥에서 구출해 낸 
거에요." 보란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알겠지만 지옥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데는 두갈래의 길이 있었지."
  "우리는 그 중 어떤 길을 택한 건가요?"
  보란은 그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택한 이 길이 필연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에게 그늘진 삶이란  익숙한 것이었다. 보란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팔을 돌려 안드레아의 어깨를 껴안았다.
  "다른 건 볼 필요 없어. 저 지평선만 보고 있으면 돼." "그게 무슨 이익이 있죠?"
  "그러면 당신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지구가 아직도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또한 앞으로 일어날 무수한 일들이 우리와는 얼마나 무관한 것인지도 말이야."
  그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그들은 동서 고속도로의 교차점에 
닿았다. 보란은 서쪽 지평성네 걸려있는 핏빛과도 같은 사막의 붉은 석양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야.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게 아니야."
  맥 보란은 투덜거리며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에게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예견이 필
요치 않았다. 피의 붉은 빛은 이미 그의 그림자 자체에 부각되어 있었다. 모든 공포와  위협 
가운데도 가장 큰 공포와 위협인 맥 보란은 마피아의 활동 전반에 대한 크나큰 장애물로 남
을 것이다. 그의 다음 지평선 너머에는 패트와 마이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깐 동안이나마 그는 평화를 느꼈다. 그에게는 지금  훌륭한 차와 확트인 도로와 
무엇보다도 따뜻한 여자가 품안에 있었던 것이다. 안드레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가는 곳이 어디건 나도 따라가게 해 줘요." "내가 무섭지 않나?"
  보란은 이내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어요, 
맥." "안드레아, 이제 나를 뭐라고 부를 텐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그녀는 보란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보란은 그녀가 들을 수  없는 희미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를 럭키라고만은 부르지 말아."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
스했다.


    23.카포의 최후
  허둥지둥 복도로 달려나가던 빅터 포피와 토니 에비나가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던  모양이
었다. 여자의 화난 듯한 목소리가 곧바로 날아왔다. 보란은 이내 그들이 용서를 비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안드레아 다고스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32구경을  쥐고 있는 보란의 
손은 문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그녀의 손에도 22구경의  권총이 들려 있었는데 주석으로 
도금된 멋진 것이었다. 그녀는 곧 방 안의 상화을 파악한 것 같았다. 방을 한 번 재빨리 휘
둘러보고 난 그녀의 시선은 보란을 정시하고 있었다."내가 원하는 것 아빠예요."
  "그 사람은 틀렸어." 보란이 짧게 대답했다. "나는  내 몫을 돌려 받겠어요. 빨리 그를 풀
어 줘요." "안드레아, 이곳에서 빨리 나가!"
  디조르쥬가 으르릉댔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나는 다 알아요."
  맥 보란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 속에서는 증오심이 불타 오르고 있었다.
  "당신은 이 사람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더 나빠요. 나는 당신에 대한 소문들을 믿고 싶지
가 않았어요. 그러나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군요. 당신을 살인광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내 
아빠를 죽이려는 거죠?"
  "빨리 나가! 남자들이 사업 얘기를 하는데 끼여 드는 게 아니야!"
  "이 여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디스!"
  보란이 그녀를 두둔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게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디조르쥬의 말은 탕!하는 리볼버의 총격 소리에 의해  잘려 나가고 말았다. 보란의 등 뒤
에 있던 꽃병이 박살이 나서 사방에 흩어졌다. 보란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저 여자가 우리들 머리위로 뭘 던졌군, 필!" "당신이 먼저 쓰러질 거라구요!"
  화를 참지 못하며 안드레아가 계속  소리쳤다. "내가 당신을 쏘지 못할  것 같아요? 천만
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구!" 여전히 얼굴에 웃을꽃을 피운 채로 보란이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빠!" "오, 제발! 안드레아.  그자는 너의 적수가 아니야. 네가  그자의 
움직임을 눈치 채기도 전에 그자는 너의 두 눈을 간단히 쏘아 버릴 수가 있어. 여기에서 당
장 나가거라. 내 말을 들어!"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 나가라, 디스! 당신의 귀여운 공주와 총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아."
  보란이 안드레아의 말문을 막으며 말했다.
  "네 놈은 이곳 구조를 잘 몰라! 그렇게 쉽게 빠져 나갈 줄  알아? 나를 내몰더라도 네 놈
이 무사하려면 네 패거리를 따라 보내는 일뿐이야. 그들이 등  뒤에서 나를 쏘도록 하는 것
뿐이란 말이야! 길 모퉁이나 차 안에서 또는  다른 어느 곳에서라도 좋겠지. 그렇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 여기는 내 왕국이니까!"
  "디스, 이 사람과 논쟁을 벌일 생각은 않는게 좋을걸."
  마라스코가 충고했다. 이때 안드레아는 총구를 보란에게 향한 채  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경고의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 떠나는 거에요. 아니면 쏘겠어요."
  보란의 32구경은 아직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는 그저  손가락질을 하듯 장난 스럽게 그
것을 디조르쥬의 가슴을 향해 겨누었다.
  "디스! 빨리 여기에서 나가!" 마라스코가 재촉했다.
  "너를 잊지 않겠다. 필립 허니! 너의 그 완벽한 속임수와 배신을 잊지 않겠어!"
  "꺼져!"
  보란이 명령했다. 디조르쥬는 등을 보이며 걸어갔다. 안드레아도 작은 총을 보란에게 겨눈 
채 그의 뒤를 따라나갔다. 그들의 뒤로 조용히 문이 닫혔다.
  "자, 이제……."
  마라스코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살인 청부 계약은 유효해."
  보란은 선언하듯 말했다.
  "디스는 멍청이가 아니야."
  마라스코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빨아 대며 대꾸했다.
  "그는 애들을 모을 수 있는 곳까지 가겠지? 그리고는 그들을 앞세우고 다시 이곳으로  되
돌아올 거야." "그를 그대로 달아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말을 마친 보란은 프랑스식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더니 빗장을 힘껏 끌어당겼다.
  "이런 와중에 그 여자가 끼여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이 일에 무슨 잘못된 일은 없었겠지, 프랭크?"
  마라스코가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다.
  "카포를 공격한다는 것은 매일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사건은 아니야. 먼저 그것부터 확실
히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
  "자네 미쳤나? 도대체 무엇을 알아봐야겠다는 건가?"
  그는 마라스코를 비난하며 문을 밀고 잔디밭으로 나섰다.
  마라스코도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 계약을 내건 사람은 누구지?"
  "정신이 나갔군. 지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놈이 카포를 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나? 
그들이 혹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나  싶어. 그들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보겠다는 건가? 필립 
허니! 자네가 물어 보겠나?"
  "아, 아니야. 프랭크!"
  보란은 마라스코를 외면한 채 허공에 대고 재빨리 세발을 쏘아 올렸다. 몇 사람이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그들 중의 하나가 도전하듯 물었다. "베니 피스풀에게 들었나?"
  보란이 소리쳤다. "아, 물론 듣고 말고. 이미 시작됐나? 벌써 그의 손가락이 딱 소리를 냈
나?" "당장 행동을 개시해! 우선 정문을 봉쇄하고, 아무것도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조처하란 
말이야!" "개미 새끼 한 마리라도!"
  그들이 복창했다. 보란에게 질문을 던졌던 사나이가 먼저  정문으로 뛰어갔고 다른 2명이 
곧 그의 뒤를 쫒았다. 네 번째 사나이는 얼간이처럼 보란을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보란
의 총구에서 불이 뿜었는가 싶더니 그는 선 자리에서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이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보란은 야만적인 코웃음을 치며 마라스코의 주의를 천천히 돌아 우뚝 멈춰 섰다.
  "이곳에는 지금 두 종류의 인간만이 있어. 산 자와 죽은 자. 베니 피스풀이 그  둘을 갈라 
놓는 심판관이지."
  "그 멍청한 녀석이?"
  마라스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래 소설과도 같은 얘기지, 안 그런가?"
  그는 이제까지의 램브레터의 가면을 모두 벗어 던지고 보란이 되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무감각하고 천치 같은 너희들 살인 미치광이들을 위한  일이라네. 베니 피스풀로 하여금 
염소 떼로부터 양들을 골라내게 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보람있는 일이 이 세상에 또 어
디 있겠나?" "뭐, 뭐가 어떻다구?"
  마라스코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자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나? 오, 그러고 보니…… 바로 네
놈이 보란이었군!" 그는 놀라 재빨리 권총을 뽑으려고 허우적 거렸다.
  "이제 알겠나?"
  어느 사이 보란의 총알이 날아가 그의 콧잔등 사이로  깊숙히 박혔다. 마라스코는 그대로 
뒤로 훌렁 나자빠졌다. 그는 배신감과 모욕감, 그리고 공포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이렇게 되어 미안하군, 필립 허니!"
  보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적진이다. 그런 감상에만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32구경에 장탄을 하고 또 다른  적들을 처치하기 위해 걸음을 재
촉해야 했다.
  저택의 이곳저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신이  나간 경호원들은 저희들끼리 얽
혀 마구 쏘아 대고 있었다. 보란은 이에 자신의 총을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문 근처에서는 톰프슨이 이끄는 한 떼의 경호원들이 그곳으로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제
지시키고 있었다. 주차장 쪽에서 불길이  일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
다. 부상당한 몸뚱이들이 널브러져 있는 저택 안의 풍경은  그에게 베트남의 전쟁터를 연상
시켜 주었다.
  보란은 자신의 표적을 포기하고 안드레아를  찾는 일에 모든 신경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벨보어의 벼랑에서 그로부터 교묘하게 
달아났던 사나이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마치 찢어진 모래 주머니처
럼 그 자신의 영토 위에 내장까지  다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그  자신이 그가 훈련시킨 
전투병들의 희생자가 된 것이었다. 거대한 캘리버 50의 탄환들이  그를 갈기갈기 조각내 놓
았으나 그 카포는 아직도 자신의 왕국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확인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
다. 손톱 미용사에게 손질받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내장을 거머쥐고  다시 뱃속으로 밀어 넣
으려 애쓰는 모습은 차라리 눈물겨웠다. 아마 그는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그 짓을 계속 하
리라고 그를 내려다보면서 보란은 생각했다. 짐 브랜튼이나 징기스 콘을, 그리고 죽음  앞에
서만 만날 수 있었던 달콤한 표정의 작은 여자를 떠올렸다. 또 디조르쥬의 얼굴에서 키다리 
킴 브래독의 고통과 경악에 찬 얼굴을 보았으며 머릿속에 뿌리박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
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의 얼굴도 보았다. 그는 죽음의 특공대의 아홉 전투원들의  참
혹한 시체를 보았으며 마피아 무리의 시체들도 보았고, 저격수의  안내를 받았던 무수한 주
긍ㅁ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자신의 왕국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줄리앙 디조르쥬
를 보았다. 자신의 시신을 뒤덮을 흙보다도 더 가치 없는 사나이. 보란은 궁금하게 생각되었
다. 이 세상에서 그 흙보다 더 가치 있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맥 보란의 인생 전반은 전쟁과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갑자기 보란은 자신이 
지나온 날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떨었다. 그의 코는 죽음의 
냄새에 마비되었으며 그의 두 귀는 죽어가는 자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신음으로 멍멍한 상태
였고, 조각나고 찢겨져 나간 시체와 그 주위를 물들이고 있는 피, 그 피로 그의 두  눈은 욱
신거렸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이미 이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나를 …… 쏴줘." "그런 짓은 못 해!"
  보란은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죽음의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아까 지나왔던 그  길로 
프랑스 식의 문을 통해 카포의 서재로 들어섰다.
  안드레아 다고스타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제 2의 프랭크 럭키인 베니 피스풀에게 붙들
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자신을 그곳으로 
끌고온 사나이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욕설들을 뱉어냈다.
  보란은 그녀를 측은한 듯 내려다보며 베니 피스풀에게 말했다.
  "멋진 공격이었어, 베니!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 그곳의 쓰레기들을 청소해. 경찰들이 보이
거든,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보란이 이곳을 공격하려고 했었다고 그들에게 말하
면 돼." "알았어. 프랭크!"
  베니는 즉시 문을 향해 달려가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돌아섰다.
  "저, 그런데 말이야. 다시 이리로 돌아와야 하나?"
  "물론이지!"
  보란이 웃어 보이고 말을 이었다.
  "네가 필립 허니의 자리를 차지해!"
  베니 피스풀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달려나갔다. 보란은 흐느끼고 있는  여자를 잠시 
내려다보고 있다가 전화를 끌어당겨 칼 라이온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해 줘서 고맙소."
  라이온스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당신과 접촉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소. 내게  요청했던 찰리 다고스타의 죽음에 
대해 조사가 끝났소. 서류철 속에서 여러 통의 편지들이 들어 있었는데 모두 그의 친필들이
오. 모두 조직적인 범죄에 대한 얘기였소. 지하 세계의 암거래에는 줄리앙 디조르쥬가 그 배
후 인물이었소. 바로 루이 페나가 그 사건에 있어서 의문의……."
  "좀 기다리시오."
  담담한 음성으로 보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시오." 그는  전화통을 안드레아 곁으로 옮긴 다
음 수화기를 그녀의 귀에 대주었다. "그에게 시작하라고 해."
  "시작하세요."
  그녀는 기계적으로 속삭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손은 수화기를 움켜잡고  있었다. 
안드레아가 경찰의 조사 보고를 듣는  동안 보란은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잠시 후 그녀가 
수화기를 돌려 주며 보란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옷을 주어 입은 다음 머리를 빗더니 그대로 방에서 나가 버렸다.
  보란은 전화통을 책상 위로 옮겨 놓고 디조르쥬의 의자에 앉아 통화를 계속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라이온스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 왔다.
  "집을 좀 청소했을 뿐이오."
  대답하는 보란의 음성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브로렐라? 그 사람에게 전해 주시오. 직위에 대한 건은 잊어버
리라고 말이오. 이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당신 정체가 드러났오?" 라이온스는 놀라는 듯했다.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끝났소. 디조르쥬는 죽었고 가문은 풍비박산이 났소. 경비원들은 지금 집 안을 
돌아다니며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소. 경찰 보병대를 좀 파견해 주시오. 진짜 총격전은 잠시 
후에 시작될 거요. 그들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을 때 말이오. 시간을 맞춰 당신들이 당도한다면 고기 부스러기 정도는 긁어갈 수도 있
을 거요.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 수사관은 놀라움을 감추기 위해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느 정도 자신이 서자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신의 바뀐 얼굴을 내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내 말뜻은……."
  "나는 그곳에 없을 거요."
  보란은 피곤을 느끼며 대답했다.
  "당신은 때에 따라 바보들을 조롱하고는 흐뭇해 할 수도  있을 거요. 그러나…… 아니 나
는 안 되오. 디조르쥬의 서랍에서 어떤 물건을 꺼낸 뒤에…… 그게 내 마지막 짐이 될 것이
오만……나는 갈 거요. 재빨리 사라지겠다는  얘기요. 라이온스. 당신에게 감사드리오.  정말 
고마웠소."
  "그곳에 자물통을 채워 놓고 열쇠는 내게 보내 주시오. 우리들 가운데도 당신에게 성원을 
보내는 사람들이 몇 있소, 보란. 우리들 중 일부이긴 하지만 말이오."
  "알겠소."
  보란은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책상 가운데 서랍으로부터 서류가방을 
꺼냈다. 그리고는 디조르쥬 소유의 여러 가지 비밀 서류와 물품들로 그것을 가득 채웠다. 그
는 가방을 들고 문으로 향했다. 카포의 본거지를 천천히 한 번 돌아다보고 있었다. 물  위에
는 반쯤 물에 잠긴 시체가 둥둥 떠 있었다.
  "나하고 같이 가겠나?"
  "어디로요?"
  그녀는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란은 어깨를 움찔하며 물었다.
  "어디건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머리를 흔들더니 한 손으로 보란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그의 새로운 메르세데스
로 다가갔다. 안드레아가 말없이 차에 올랐다. 보란은 문을 닫아 주고 차를 돌아가 운전석에 
앉아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가 정문에 이르자  앤드루 하디라는 별명이 붙
은 사내가 여자를 알아보고 보란에게 음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피로 더럽혀진 손수건이 
그의 손에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그는 차로 다가오더니  지저분한 손으로 차체를 어루만지
며 말했다.
  "대단한 구경거리였어, 프랭크!"
  "그래. 베니 피스풀에게 전하게. 내가 이 여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주
변을 잘 감시하라구 말이야."
  "베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게."
  하디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보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차를 몰아갔다. 정문을 빠져  나온 그들은 넓은 도로의 
끝없는 선을 따라 달렸다. 보란은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베니 피스풀은  자신이 
무었을 위해 싸웠는지를 아직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가문을 파괴하는 일이었다는 것
을 그가 깨닫게 될 때쯤이면……. 보란은 잠시 동안이나마 그 철모르는 폭도들에 대해 가책
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였다. 그들은 고용된 총잡이였을 뿐이었다. 자라날 루이 
페나의 싹이었던 것이다. 세상은 그들 없이도 잘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도로를 벗어날 때쯤 뒤를 돌아보던 안드레아가 몸서리를 쳤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어두
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보란 곁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쨌든 당신이 지금 막 나를 지옥에서 구출해 낸 
거에요."
  보란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알겠지만 지옥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데는 두갈래의 길이 있었지."
  "우리는 그 중 어떤 길을 택한 건가요?"
  보란은 그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택한 이 길이 필연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에게 그늘진 삶이란  익숙한 것이었다. 보란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팔을 돌려 안드레아의 어깨를 껴안았다.
  "다른 건 볼 필요 없어. 저 지평선만 보고 있으면 돼."
  "그게 무슨 이익이 있죠?"
  "그러면 당신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지구가 아직도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또한 앞으로 일어날 무수한 일들이 우리와는 얼마나 무관한 것인지도 말이야."
  그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그들은 동서 고속도로의 교차점에 
닿았다. 보란은 서쪽 지평성네 걸려있는 핏빛과도 같은 사막의 붉은 석양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야.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게 아니야."
  맥 보란은 투덜거리며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에게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예견이 필
요치 않았다. 피의 붉은 빛은 이미 그의 그림자 자체에 부각되어 있었다. 모든 공포와  위협 
가운데도 가장 큰 공포와 위협인 맥 보란은 마피아의 활동 전반에 대한 크나큰 장애물로 남
을 것이다. 그의 다음 지평선 너머에는 패트와 마이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깐 동안이나마 그는 평화를 느꼈다. 그에게는 지금  훌륭한 차와 확트인 도로와 
무엇보다도 따뜻한 여자가 품안에 있었던 것이다. 안드레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가는 곳이 어디건 나도 따라가게 해 줘요."
  "내가 무섭지 않나?"
  보란은 이내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어요, 맥."
  "안드레아, 이제 나를 뭐라고 부를 텐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그녀는 보란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보란은 그녀가 들을 수  없는 희미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를 럭키라고만은 부르지 말아."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돈펜들턴의 킬러 4권
돈펜들턴

 
  
     1.둘레스 국제 공항
   주위의 사태를 잠시 관망하던 보란은 자신이 죽음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러나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소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는 적들의 눈에서 당황과 망
설임, 그리고 공포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보란은 아직도 자유로운 상태였으며 전투원으로서
의 오랜 경험으로 훈련된 그의  본능이 즉각적으로 다음의 행동을 결정  짓게 했다. 생존을 
위해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정면에 있는 적에게로 한 걸음 나아가자 거의 동시에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
작했다. 그러나 보란이 조금 빨랐다. 보란의 일격으로 적의 총구는 심하게 흔들리며 곧 아래
로 처졌고 사내의 몸도 구겨지듯 땅 위로 나동그라졌다.
   보란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적의 몸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가 유연한 동작으로  적이 떨어뜨린 45구경 기관총을  집어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또 한 명의 적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란의 몸은 곧 다음 행동으로 이어졌다. 쓰러진 적의  몸을 뛰어넘는가 싶더니 어느 사
이에 그는 땅 위를 구르고 있었다. 쓰러진 적의 기관총이 보란의 손에서 불을 뿜었다.  그러
자 적들도 격렬하게 반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보란을 노리던 적의 모습이 없어졌다고 생각된 순간 칙칙한 목소리가 그 모습
을 대신했다.
   "보란! 다 소용없는 짓이야! 얌전히 기다리시지."
   보란은 기다리지 않았다.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의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쓰러진 마피아 졸개의 몸을 넘은 그는 맨 끝에 위치한 건물을 향해 소리 없이, 고
양이처럼 재빨리 달렸다.
   그러나 위험은 거기에도 도사리고 있었다. 보란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시무시한 총격이
었다. 보란이 기대고 있던 벽은 퍽퍽 하는 소리를 내며 흙을 떨어뜨렸다. 그는 몸을  움츠리
며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죽음에  직면한 마피아 졸개를 음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보란은 이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빌어먹을..."
   보란은 자기 스스로 이런 곤경에 발을 들여놓은 것에 대해 잠시 후회를 했다. 그러나 마
피아들은 그 짧은 시간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칙칙한 목소리가  다시 어둠을 뚫고 날아왔
다.
   "보란!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넌 우리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 얌전하게 
두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이 낫지 않아? 그 다음은 서로  상의하기로 
하자구. 자, 얼른!"
   그 다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리란 것을 보란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마피아들의 숫자만큼 총알이 자신의 몸에 박힐 것이라는 생각
을 하자 그는 소름이 끼쳤다.
   그렇듯 잔악한 한 떼의 마피아들이 자기들에게는 전혀 이득이 없는 비행기 납치를 위해 
이 둘레즈 국제 공항까지 왔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보란은 이제 그들의 함정에서 헤어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마피아의 동태에 대한 가
벼운 감시로 시작되었던 것이 이토록 처참한 총격전으로 비화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매
복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보란은 마피아들에게 많은 빚을 
지게 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 빚을 갚기 위해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보란은 빚을 갚기 위한 
그들의 계획에 때늦은 감탄을 하고 있었다.
   마피아들이 얼마나 오랜 전부터 보란의 항공 작전을 눈치 채고 있었으며 계속 그를 감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의 이 매복이 기막히도록 치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았다. 만에 하나라도 이 매복이  다급하게 계획된 것이라면 
분명 거기에는 허점이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탈출할 수 있는 작은 구멍이라도 있을 것이었
다. 그러나 보란이 함정에 빠져들 것을 예상하고 그들이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라면.... 보란은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쓰러진 마피아  졸개의 관자놀이에 45구경의 총구를  갖다 댔다. 그 
졸개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란은 알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그러나 위협적인 목소
리로 물었다.
   "모두 몇 명이나 되지? 10명? 20명? 도대체 모두 몇 명이야?"
   마피아 졸개는 심한 고통을 참기  어려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란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눌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보란은 
그러한 그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한 상태로 보란은 한숨을 몰
아 쉬며 눈동자에 힘을 모았다. 두 귀가 뻣뻣해짐을 느꼈다. 눈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귀가 눈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가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판단하는 동안 얼어붙은 듯한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마
피아들이 어둠 속에서 포위망을 조금씩 조금씩 조이고 있는 소리를 보란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공항에서 한 대의 거대한 제트기가  이륙하고 있었다. 다른 한  대의 제트기가 착륙하며 
착륙등을 밝히자 그 불빛이 여러 개의 창고를 핥으며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보란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들여다볼 수 없는 지역, 밤이 
깊으면 아무런 활동도 없는 지역, 그곳에서 보란은 동그마니 서 있는 것이다. 밤하늘을 찢을 
듯한 총소리도 비행기의 엔진 소리에 묻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보란은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32구경 권총을 꺼내 익숙한 
동작으로 탄창을 확인했다.
   권총을 움켜쥔 그는 마피아 졸개로부터 빼앗은 45구경 기관총을 힘껏 집어 던졌다. 보란
의 손을 떠난 기관총은 비탈진 콘크리트  바닥을 굴러가면서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불꽃을 
튀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것 봐! 녀석이 조의 총을 빼앗았어!"
   보란은 그 목소리를 향해 어림짐작으로 한 방을 쏘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피아
들이 격렬하게 응사해 왔다. 그러나 보란은 이미 그곳을 벗어나 창고의 그림자를 밟으며 조
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보란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날카로
운 비명이 터지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마피아의 졸개, 조라고 불리던 사내의 비명 소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곧 이어 마피아들의 환호성이 들려 왔다. 
   "야! 드디어 맞았다. 녀석의 비명 소리가 들렸어!"
   "조심해! 속임수일지도 몰라!"
   "아냐! 분명히 맞았어!"
   "그렇지 않을 거야! 가만있어 보라구. 확인할 때까지는 조금도 방심하지 마!"
   계속되는 환호로 보란은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냈다.  그들은 4개조에 각 조마다 
3명씩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2개조는 보란의 맞은편 건물의 그늘에 있었으며, 나머지  2개
조는 보란으로부터 양옆으로 각각 퍼져 보란을 포위하고 있었다.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자는 
그의 정면에 있었는데 말투로 보아 그가 지휘자임이 거의 확실했다.
   보란의 두뇌가 재빨리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면에 있는 2개조가 보란에게 접근하려면 불
이 밝혀진 넓은 지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양옆의 2개조도 자
신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이나마 그의 전술적인 본능은 곧 바로 이런 사실을 판별해 
냈다. 이제 이 지형상의 유리함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은 결정지어 지는 것
이다.
   보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잠시 잠잠하던 그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놈은 분명히 맞았어.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잠잠할 리가 없잖아!"
   "어리석은 소리 말라구! 그게 조의 비명일지도 모르잖아?"
   "아냐! 자네가 더 잘 알잖아. 보란이란 놈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그 녀석이 그때까지 조
를 살려뒀을 것 같아? 밤이 새도록 여기서 기다릴 수도 없잖아. 날이 밝으면 경찰들도 몰려
올 것이고 또..."
   숨을 죽인 채 잔뜩 웅크리고 있던 보란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건물 그림자의 끝까지 조용히 나아갔다. 창고의 벽과 왼쪽 공격조 사이의 중간 지점에 
가깝도록, 가능한 한 창고의 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였다. 보란이 동작을 멈추었을 
때 다시 웅성거림이 들려 왔다.
   "비명 소리를 듣고서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
   "좋아! 그럼 가서 조사해 보도록 해!"
   정면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보란이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보란! 제기랄... 듣고 있는지 어쩐지도 모르겠군. 아까처럼 총질을 다시 해봐! 그때는 완
전히 널브러진 고기 조각을 만들어줄 테니까."
   마피아들은 자기들 멋대로 떠들면서 보란의 왼쪽을 가로지르기 위하여 희미한 달빛 속으
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보란은 숨을 죽인 채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왼쪽 공격 
조가 자신들의 뒤를 엄호할 사람 하나 남기지 않고 차츰차츰 보란이 쳐 놓은 덫으로 들어오
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은 보란과 건물의 중간 지점에 들어섰다. 엎드린 자세에서도  보란
은 그들을 충분히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재빨리 아래를 향해 몸을 굴리며 그는 미리 계산
된 한 발의 탄환을 날렸다.
   예기치 못했던 공격에 놀란 마피아들은 잠깐 당황한 듯했으나 곧 일제히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격은 보란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인  셈이었다. 
이제 탈출에 성공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보란이 고안한 덫은  이제 왼쪽의 공격 
조에서부터 그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마피아의  무리들은 서로를 향해 모
자비한 총격을 주고받으며 아우성을 쳤다.
   보란은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왼쪽 통로로 재빨리 뛰어들었다. 그는 희미
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는 좁은 통로를 재빨리 통과하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보란
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때 분노에 찬 외침이 등뒤에서 들려 왔다.
   "그만 해!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총질을 하고 있는 거야. 보란이란 녀석은 벌써 빠져나가
고 없어! 빌어먹을. 그만두래도!"
   보란은 의미 있는 미소를 띤 채 그들의 등뒤에 서 있었다. 그들이 아우성을 치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대해 후회하는 소리를 보란은 들었다. 자기 편의 총에 맞아 쓰러진 채 신음
하고 있는 마피아 졸개의 비명도 똑똑히 들렸다. 이제는  귀에 너무나 익숙해진 소리들이었
지만,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지긋지긋하고  역겹기까지 한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보란 스스로 선택한 일들이었다.
   보란은 별 어려움 없이 작은 트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탈된 의약
품의 운반과 공급에 사용되었던 트럭이었다. 트럭의 운전석 옆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운전
사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였다. 창고  바로 안쪽에서 어정쩡한 
상태로 트럭을 세운 채 서 있는 두 사내는 전투 태세를 갖추어야 할지 도망을 쳐야 할 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위를 계속 흘끗거리고 있었다.
   32구경 권총을 든 보란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놀라서 창고 안쪽으로 도망쳐 버렸
다. 보란은 겁을 먹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운전사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너도 들어가. 빨리!"
   보란의 명령에 대꾸 한 번 해보지 못한 운전사는 창고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보란은 곧 기어를 바꾸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앞으로 달렸다. 바로 그때 한 무리의 
마피아들이 트럭의 앞과 옆으로 들어오며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보란은 최대한으로 몸을 웅크리고 그들의 중앙을 향해 트럭을 몰았다. 보란의 이 저돌적
인 공격에 마피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에 따라 총격도 잠시 뜸해졌다.
   다음 순간 보란은 기어를 바꿔 트럭을 후진시켰다가 다시 방향을 옆으로 바꿔 총구를 떠
난 탄환처럼 빠른 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는 트럭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보란
은 개의치 않았다. 트럭이 엔진이 곧 파열된다 해도 보란  자신의 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
지만 가면 된다는 뚜렷한 계산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란의 차는 창고 뒤에 있었다.  탈
출할 수 있는 적당한 위치에 서 있는 셈이었다. 자신의 차가 희미하게나마 시야에 들어오자 
보란은 트럭의 모든 장치를 그대로 둔 채 가볍게 땅으로 뛰어내렸다.
   이제 트럭은 하나의 성난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트럭은  제멋대로 건물 벽을 들이받기도 
하고 곡예를 하듯 껑충껑충 뛰기도 하다가는  급기야는 건물의 벽에 정통으로 머리를  박곤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갈팡질팡하던 마피아들이  쓰러진 트럭으로 몰려들자  보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차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속은 것을 
알아차린 마피아들이 외쳐 대기 시작했다.
   "없다! 그놈은 여기에 없어! 빨리 흩어져서 그놈을 찾아라! 너는 북쪽, 너는 남쪽, 그리고 
베니는..."
   보란이 승용차에 올라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야 그를 발견한 마피아들은 다시
금 사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란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화물 운송 지역으로부
터 빠져나가는 Y자 형의 도로에 이르렀을 때에야 보란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몰아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뿐이었다. 오른쪽에서  두 대의 차량이 토해 내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가르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숨을 몰아 쉬던 보란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
은 발에 힘을 주며 공항의 중앙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보란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대로 마피아들은 오래 전부터 이 작전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 비로소 증명되었다. 조직적이고  두터운 인간들의 덫에 빠져든 것이었다.  그 
덫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에 대해서 보란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또 다른 한 쌍의 차량이 
반대쪽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결전이 벌어질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었다. 
   보란은 이제 싸움이라는 것에 싫증이 났다. 죽든 살든 바로 지금 모든 걸 끝내버릴까 하
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것은 사실  간단한 일이었고 상대적으로는 고통
도 덜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을 싣고 달리고 있는 승용차를 바리케이드 앞에 세우고 최후의 
총격전을 벌인 다음 영원한 망각으로 빠져든다는 것...
   그러나 보란은 이미 그 장소에 와 있었다. 마피아의  차량들은 좁은 도로를 점령하고 그
를 에워싼 채 달려들고 있었다. 보란의 모든 신경 조직은  조금 전의 생각과는 달리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기민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바리케이드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바
리케이드를 지키던 마피아의 졸개들이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재빨리 비켜섰다. 100분의 1초
의 차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정확한 시간을 맞추기 위한 긴장으로 보란의 손과 발은 미세
하게 떨렸다.
   자신의 차가 바리케이드와 충돌한다고  느낀 순간, 보란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대를 
한쪽으로 급하게 틀었다. 다음 순간 기어를 바꿔 넣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액셀레이터를 밟
아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바리케이드를 종이 한 장 정도의 간격으로 비켜 지나가며 차는 큰 
원을 그리면서 방향을 바꿨다. 다음 순간 그의 차는 도로 한쪽의 얕은 도랑을 향해 미친 듯
이 달려가고 있었다. 보란은 있는 힘을  다해 방향을 꺾었고, 차는 쇠사슬 담장을  스치면서 
가까스로 활주로 위에 올라섰다.
   결국 마피아들의 도로 차단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보란과 같은 사람에게
는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는 작전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공항의 활주로 위에서 경찰의 순찰 차량이 붉은 등을 번득이며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순
간부터 그의 가슴은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피아의 공격이  끝나고 곧 경찰들이 달려
드는 것은 하나의 공식과 같았다.  그들이 전투 병력을 몰고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태였다. 보란은 6대의 순찰차가 꼬리를  물며 접근하는 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 둘레즈 공항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오늘밤 안으로는.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보란은 결코  경찰의 권위에 도전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될 수 있는 한 경찰과의 마찰만큼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
도 피해왔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들은 먼저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보란에게 달려들 것이다. 경찰의 그 의례적인 방법을 
보란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자유로운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찰과의 마찰을 피
할 수가 없었다. 보란에게 있어 경찰과 마피아는 똑같은  적이었지만 적어도 경찰만큼은 죽
이거나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마피아들은 뒤에서 그를 추격해 오고 있었으며 경찰들은 앞에서 압박해 오
고 있었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보란은 재빨리 승객 대기실의 주차 지역으로 차
를 몰았다. 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비장한 각오를 한 듯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섰다.
   그가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 두 대의 순찰차가 경고  등을 번뜩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다
른 쪽에서는 여러 대의 화물차들이 보란의 위기와는 무관하게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보
란은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훅 하고 한숨을 쉬며 부지런히 주위를 살폈다.
   순간, 보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바로 몇 걸음 앞에 탈출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었
던 것이다. 어떤 수단으로든 몇 분내에 이륙할 저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이었다.
   전쟁에 이력에 난 맥 보란에게 결정이란 뻔한 것이었다. 어찌됐든 비행기에 오르고 죽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는 게 그의 결정이었다. 죽음이란 그의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언제나 그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보란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의 개인적인 전쟁은 국제적인 규모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범죄 집단의 해외 지부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보란은 입술을 깨물며 새로운 전선으로 이동할 각오를 새로이 다지고 있었다.
  
     2.이륙
   큰 키에 후리후리한 몸매의 한 사내가 거의 텅 비다시피한 공항 대기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유난히 긴 팔과 다리를 가진 그는, 검은 양복에 잘 손질된 푸른 색 와이셔츠와 넥타
이를 맨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검은머리가 
반쯤 얼굴을 가린,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와 텁수룩한 콧수염, 그리고 칙칙한 느낌을 주
는 구레나룻이 특징인 사내였다. 
   대기실 유리를 통해 거대한 제트 여객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수
가 조종실을 등지고 선 채 여객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엔진이 작동되는지 주위가 소란스러
워졌다.
   검표계 책상에 앉아 있던 제복을 입은 사내는 불쑥 100달러짜리 지폐를 내밀자 눈이 휘
둥그레졌다. 큰 키의 사나이가 지그시 그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파리행 비행기에 내가 탑승할 수 없다는 쪽에 100달러를 걸겠소."
   검표원은 사내에게 빙그레 웃어 보이며 대꾸했다.
   "그 내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손님."
   그는 옆에 있던 사내를 툭 치며 명령했다.
   "앤디한테 달려가서 얘기해. 빨리 트랩을 준비하라고 말이야.  VIP 한 분이 좀 늦으셨는
데 꼭 타셔야만 한다구."
   그로부터 얼마 뒤 보란은 좌석표를  들고 비행기로 향하고 있었다.  한 승무원이 지루해 
못 견디겠다는 듯한 얼굴로 여객기의 출입구 앞에 서 있었다.  이 지각한 승객은 유융히 객
실로 들어갔다. 승무원이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보란은 좌석을 찾아 앉은 후 안전 벨트를 맸다. 그때 다시  문이 열리더니 이제 막 도착
한 승객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그는 보란이 앉은 좌석의 반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
가 마지막 승객이었다. 여객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향해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보란은 그 마지막 승객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그를 자세히, 주의 깊
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보란 나이 또래의 평범한 남자처럼 보였다.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아 시선은 정면
에만 주고 있었다. 보란과 비슷한 몸집에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듯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달려왔는지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승무원 대기실 문이 열리고 스튜어디스가  메모판을 들고 왔다. 늦게  도착한 두 승객의 
이름을 승객 명단에 추가 기입하기 위해서였다. 보란은 여권을 펼쳐 보였다. 그 평범한 사내
는 길 마틴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스튜어디스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사내는  당황하여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봐요. 아가씨.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비밀을 지켜야 해. 나도 역시 그럴 테니까."
   스튜어디스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조종실 쪽으로 걸음을 옮
겼다. 그 사내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저자의 정체는 무엇
인가? 보란은 수상쩍은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는 느린 속도로 활주로를 향해 미끄러져 갔다. 공항 건물들이 서서히 뒤쪽으로 흘
러가고 있었다.
   그때 활주로의 철책 너머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붉은 경고
등을 번쩍이며 순찰차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고, 경찰들도 이곳  저곳 홀린 듯 부산하게 
뛰어다녔다. 그는 별안간 피로를 느끼며 몸을 좌석 깊숙이 묻어 버렸다. 그의 옆에 앉아  있
던 창백한 표정의 젊은 여자 승객이 소리를 질렀다.
   "오, 저게 무슨 일이죠?"
   "왜 그러십니까?"
   보란은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친절하게 물었다.
   "당신은 저게 안 보여요? 무슨 큰 일이 벌어졌나봐요."
   보란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경찰 말이오? 아, 당신 죄를 지은 모양이지요?"
   그녀는 놀라면서도 그 말에 흥미를 갖는 눈치였다.
   "아녜요. 당신은 저 사람들이 행동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세요? 걱정이 되지 않느냐구
요? 이 비행기 안에... 폭탄이 장치돼 있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공중 납치를 기도하는 괴한이 
타고 있을지도 모르구요."
   보란은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높은 분을 위해 경호 조치를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하!"
   그 여자가 감탄사를 뱉어 냈다.  그러나 표정으로 보아 그런  평범한 대답으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보란은 그녀를 완전히 무시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도 부산하게 움
직이고 있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른 것 같았다. 비행기가 완전히 이륙하여 이곳을  벗어나
기 전까지는 호흡주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곳 경찰이 완벽한 솜씨를 발휘한다면 보란이 파리에 도착하는 즉시 그를 체포할 수 있
을 것이다. 아니면 마피아의 환영식에 경찰이 말려들 수도 있을 것이다.
   혹 국내선이 좀더 안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우선 이 
둘레즈 공항을 벗어나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고, 따라서 파리행  여객기를 잡아탄 것은 그에
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점차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파리가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프랑스 식의 습관을 몸에 익히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테고, 다른 공식적인 법 절차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는 한  가지
뿐이었다. 그의 여권 문제였다. 마이애미  경찰의 해럴드 브로렐라와의 계약에 따른  선물로 
이 여권이 그에게 주어졌을 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얼마나  훌륭한 위장 여권인가? 
그는 이제까지 한 번도 조국을 떠난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이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 여권은 그가 저격수라고 불리는 바로 그 자라는 것을 밝히는, 교활하기  이
를 데 없는 표시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한 일일 것이다. 보란은 근거도 없는 공포감 
속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살인과  보복과 적들의 감시의 눈초리
가 있을 뿐이었다.
   보란은 옆자리에 앉은 창백한 여자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면서, 그녀가 느끼는 공포와 그 
자신의 공포가 똑같이 황당 무계한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애를 써봤다.
   그 생각이 정말 황당 무계한 것일까? 마피아와의 이 전쟁이 그의 모든 세계를 장악해 버
리고 다시 그것을 찢어발기고, 형체도 알  수 없는 공포를, 육체적인 현실감이 있는  공포가 
아니라 더 참혹한 정신적 공포를 영원히 그에게 짐 지운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의 모든 분
노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는 그 자신의 모든 용기와 정의까지도 팽개쳐 버리고 두려움에 떨
면서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 투항하는 일이 벌어질까 봐 은근히 화가 났다.
   그는 말없이 서류 가방을 끌어내려 무릎 위에 놓고 여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객기는 
이제 활주로 바로 바깥쪽에 서 있었다. 엔진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조종실의 문이 열리
고 보란이 앉은 쪽을 담당한  스튜어디스가 다시 나타났다. 열린 문  저쪽에서 제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 길 마틴이라고 소개했던 사내를 슬쩍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문은 다시 닫
혔다. 스튜어디스도 자기 좌석에 가 안전 벨트를 맸다. 그녀 역시 길 마틴을 향해 미소를 보
냈다. 마틴이라는 사내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도  응당 나타내야 할 표정
조차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보란은 다시 그 사내에 대한 의문에 휩싸였다. 여권  문제는 닥치면 해결하기로 하고 운
선은.... 그는 코트의 윗주머니에 여권을 쑤셔 넣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내려진 거의 
무의식적인 결정이었다.
   잠시 후 여객기는 이륙했다. 둘레즈 공항은 점차 희미한 점으로 변하더니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선을 돌리며 보란은 좌석의 질 좋은 쿠션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정말 몇 시간뿐이지만 마음 푹 놓고 휴식을 취해도 좋을 것이다. 
경찰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허락했다. 유명 인사임이 틀림없는  길 마틴이 공항에 늦게 
도착함으로 인해 보란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덕을 보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저절로 감탄
이 새어 나왔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길 마틴과 그는 많이 닮아 있었다.
   보란은 관제탑과 조종사 사이에 오고가는 교신 내용을 눈에 보듯 환히 떠올릴 수가 있었
다.
   "경찰이 사람을 찾고 있다. 30대의 남자, 키가 크고 검은머리에 구레나룻을  하고 단단한 
체격에 차가운 밤색 눈동자의 사내다. 그는 아마 파리행 여객기의 마지막 탑승자일 것이다."
   "그렇다. 그런 자가 이 여객기를 타긴 탔다. 그런데 그는 바로 길 마틴이다. 그는 당신도 
잘 아는 유명 인사다."
   보란은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란은 스스로에게도 낯선 자신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
를 그처럼 달라 보이게 만든 것은 잘못 손질된 머리와  수염 덕분이었다. 참 기이한 행운도 
있구나! 길 마틴이라는 자의 유행에 대한  관심이 머리 손질에까지 미친 데  대해서는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남자들은 대부분 수염이나 구레나룻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
히려 촌스럽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쨌든 보란으로서는 윗부분은 좁게 아랫부분은 넓
게 손질된 구레나룻과 말끔히 다듬은 콧수염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우선은 적에 대항할 힘을 비축하고 머리를 식히며 흥분했던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편안
하게 휴식을 취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위기에 처할수록 여유를 갖고 임해야지. 잘못  손질된 
콧수염과 구레나룻은 파리에 도착하는 즉시 다시 손보면 되는 일이 아닌가?
   긴장이 풀리자 그는 다시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자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녀는 창가에 
앉은 승객이 멀미를 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을 붙이고 있었다.
   "...라이트 뱅크는 너무나 상업적이라는 얘길 들었어요.  겉치레뿐이지요. 그래서 난 레프
트 뱅크에 있는 작은 호텔로 가서 묵을까 해요. 얼마나 좋겠어요. 아마 소르본 지역쯤일  거
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럴듯한 생각이죠? 비싸지도 않을 거구요. 화려하고 또 재미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요. 그 예술가들하며 학생들하며... 그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서  산대
요. 레프트 뱅크 말예요.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안전한 곳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보란은 소리 없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들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눈앞에 파리가  나
타나면 그때 파리에서의 문제를 걱정해도 충분하다. 멋과 낭만과 방탕의 도시, 파리에서  미
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조용히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에게 다소나마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보란은 곧 전세계가 전쟁터가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조용히 숨어서 휴식을 취
한다는 것은 그에게 결코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3.유다의 키스
  쌕쌕이 토니 레버니는 워싱턴의 빈민가, 상점  뒷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날 
벌어들인 수익금을 계산하는 중이었다. 할렘가 남쪽 지구를 상대로  하는 사업에 대한 대가
였다. 까맣다 못해 짙푸른 피부의 윌슨 브라운은 쌕쌕이 토니의 곁에 서서 냉담한 표정으로 
토니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토니의 지휘를 받는 자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눈은 정확해서 
결코 사소한 것일지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시거 조각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이 30대 사
내의 온몸 구석구석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 
하나, 눈만이 생기를 띠고 있었다. 흑인이라는  운명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의 
몸 전체에서 풍기고 있었다.
   토니는 벌써 40대를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은 불과 같아 사소한 행동에도 곧잘 
흥분하고 일을 저지르는 행동파였다. 그러한 그의 성격이  그에게 '쌕쌕이'라는 별명을 얻게 
해주었다.
   정문 앞에서는 브라운의 동반자인 두 사내가 이마를 맞댄  채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가
끔 어두운 시선으로 방 안을 흘끔거리는 것으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듯했다.
   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을 뿐 침묵만이 계속됐다. 백인인 쌕쌕이 토니는 
몸을 벽에 기댄 채 종이 조각에 기재된 숫자의 계산에 몰두해 있었다.
   토니는 계산을 다 마친 후 실눈을 뜨고 현금 총액을 곰곰이  계산해 보았다. 얼마 후 그
가 갑자기 침묵을 깨뜨렸다.
   "브라운, 50이 부족한데?"
   "아냐. 그건 조지타운에 있다고 했잖아."
   흑인 사내 브라운은 토니의 어깨 너머로 주머니들을 살피며 대꾸했다.
   "아, 맞아. 조지타운에 남겨둔  게 있다고 했지? 그런데  그렇게 많이 남겨둔 이유는  뭔
가?"
   "욕심 부리지 마! 우린 잘못하면 떡이 될 판이라구. 만일..."
   그때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리며 브라운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는 재빨리 수화기를 들
고 몇 차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상대방의 얘기에 화가 치밀었는지 물고 있던 시거
를 씹어 바닥에 뱉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가장 지독한 놈들에게 50을 풀도록 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또 50을 푼다구?"
   브라운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쌕쌕이 토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날카롭게 물었다. 그는 
50이라는 말에 화가 난 듯  얼굴이 벌개진 채 씩씩거렸다. 그런  그를 브라운이 진정시키려 
했다.
   "진정하라구! 내일은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 토니, 자네도  알다시피 요즈음 경기가 그렇
고 그렇잖아. 가만히 있어도 재수 없는 일만 생기잖아. 물건도 그대로 쌓여 있다구!"
   그러나 이탈리아인인 토니는 브라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종이 상자에 돈을 쓸어 넣기 시작했다. 브라운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외쳤다.
   "아니, 지금 돈을 모두 가져갈 거야, 토니?"
   토니가 잠시 손놀림을 멈추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래! 이제 끝장이야. 내일 꼬마를  시켜서 나에게 영수증을 보내.  정확하게 계산을 할 
테니까. 빌어먹을..."
   "끝낸다구? 날 믿을 수 없다는 건가?"
   브라운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봐.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자네는 잘 이해해야 돼. 이건 모두 보란 그 녀
석 때문이야. 분명히 그 녀석은 이 거리 어디에선가 우릴 노리고 있을 거야. 난 그 녀석에게 
우리 돈을 빼앗을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을 뿐이라구. 내 말 알아듣겠나?"
   브라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이런 제길... 난 자네가 그걸 갖고 내빼는 줄 알았잖아."
   "설마 내가 그럴려구.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는 녀석들도  있긴 있을 거야. 그렇지만 난 
그렇지 않아. 날 믿게, 친구!"
   토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브라운이 수화기를 집어들자 토니는 
전화의 내용이 불안스러운지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문을 밀치고  나가려는데 브라운의 
목소리가 덜미를 붙잡았다.
   "그래, 토니 말인가? 여기 있어. 바꿔줄 테니 잠깐 기다리게."
   토니가 궁금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브라운이 수화기를 내밀었다.
   "자네 전투원이야. 몹시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야."
   수화기를 받아든 토니는 진정하려는 듯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낮은 톤으로 입을  열
었다.
   "아, 그래. 무슨 일이야?"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던 토니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안 돼! 바보 같은 녀석들. 될 수 있는 한 경찰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그렇지만 그 
녀석을 경찰에게 빼앗기면 안 돼!"
   그의 고함 소리에 창문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그는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비행기까지 몽땅 뒤져! 그  시가 전후에 이륙한 비행기를  모조리 뒤지란 말이야! 승객 
명단을 훔쳐서라도 조사해야 돼... 제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상대방은 승객 명단을 어떻게 빼내느냐고 묻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소리를 지르던 토니는 수화기를  내던지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욕설을  퍼부었
다.
   "이 자식! 눈앞에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어!"
   토니가 이성을 찾기 시작했을 때쯤 브라운이 한마디 던졌다.
   "보란이 또 빠져나갔나 보군."
   "빌어먹을..."
   토니는 욕설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봐. 내가 그놈을 잡아 줄까?"
   "뭐야? 지금 날 놀리는 건가? 너처럼 느린 녀석이 보란을 잡아? 이 나라 구석구석에  전
투원들을 쫙 깔았는데도 난 당하기만 했어. 그런데 감히 네가..."
   그러나 브라운은 미소까지 지으며 자신 있다는 태도로 대꾸했다.
   "난 그 녀석을 키스 한 번으로 붙잡을 수 있어."
   "야! 지금 나에게 부채질을 하고 있는 거야? 난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구!"
   "이봐! 난 그 녀석하고 임무를 같이 수행한 적이 있어. 석 달 동안이나 함께 논바닥을 헤
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났었지."
   토니는 처음 듣는 이 말에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지?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구!"
   "토니. 난 자네와 달라. 자네가 알다시피 난 마피아가 아니잖아? 난 그저  여기에서 일을 
할뿐이라구. 내가 보란을 안다고 해서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
까지 보란과 난 아무 이해 관계가 없었어."
   브라운의 얄밉도록 계산적인 대답에 토니는 버럭 화를 냈다.
   "정말 더러운 근성이로군! 난 지금 자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보란이란 놈하고  빵을 
구워먹었는지 개똥을 삶아 먹었는지 내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느냐구?"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내는 방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됐는지 팔을  건들거리
며 들어섰다. 그러나 브라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것 봐. 난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신부 앞에서 고해 성사를 하고  있는 
기분이라구. 내가 자네를 위해 보란을 꽁꽁 묶어다 주겠다는 데도 계속 화만 낼 텐가?"
   그러나 토니의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은 여전했다.
   "도대체 이유가 뭔가? 자네하곤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네 입으로 분명히 말했잖아. 
자넨 지금도 충분히 내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어. 그러니 그 위험한 일은 자청하지 말게. 자
넨 이제 돈도 많이 모았잖아?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다는 거야?"
   브라운은 답답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얘길 하자면... 자네가 알다시피 난 그저 나일  뿐이야. 사실 난 아무 것도 아
니잖아. 그렇기 때문에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
어. 그렇지 않은가? 만일 내가 맥 보란을 잡는다면 얼마 정도의 돈을 만질 수가 있겠나? 어
때, 한번 해볼까?"
   브라운은 어떻게든 토니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쌕쌕이 토니는  바로 그 점이 브라운
다운 영리함이라고 생각하며 말싸움을 끝내려 했다. 그는 조용히  흑인 브라운의 계획을 숙
고해 보았고, 평가해 보았다. 토니는 윌슨 브라운에 대한 이용 가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브라운 자네도 알고 있듯이 보란에게는 10만 달러의 살인 청부 계약이 걸려 있어. 농부 
어니가 거기에다 또 10만 달러를 추가했지. 자기가 직접 그놈을 처형하도록 생포해 와야 한
다는 조건으로 말일세."
   브라운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결론적으로 20만 달러라는 얘기군. 그 정도의 액수라면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어. 
내가 그놈을 붙잡아서 돈 보따리를 삼켜야겠어!"
   그러나 토니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봐, 브라운! 내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난 이권을 가지고 있네."
   "알아. 자네에게도 두둑히 한몫을 떼어 주지. 그럼 됐나?"
   브라운은 토니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승낙했다.
   "농부 어니도 나처럼 이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할 텐가?"
   "이권이 있다면 어쩔 수가 없지. 한 손으로는 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모조리 빼앗겠어."
   토니는 브라운의 영리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역시 자네는 뛰어난 사업가야, 브라운."
   그는 시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브라운, 내가 이권을 강조하는 건 세금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농부 어니와 같이  만나 
명백히 결정을 하는 게 좋겠어. 자, 함께 출발하지, 브라운."
   브라운은 기분이 좋은 지 키들거렸다.
   "나를 거물에게 데려가겠다는 건가?"
   "그래. 그렇지만 명심해서 들어둬. 기분이 나쁘더라도  반드시 존경의 뜻을 표시해야 돼. 
나를 대하는 식으로 그를 대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부를 때도 농부 어니라고 하
지 말고 카스틸리오네님이라고 불러. 내 말 알겠나?"
   "빌어먹을, 돈이 생기는 일인데 무슨 짓을 못하겠나?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쌕쌕이 토니는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좋았어. 자넨 성공할 수 있겠어. 틀림없이... 자네의 성공을 빌겠네."
  
     4.지옥으로 입성
  카스틸리오네는 뉴저지의 남부로부터 사반나에 이르는 동부 해안 전체의 지하 조직을  장
악하고 있었다. 그의 지하 제국은 항구와 임야, 소나 양,  말 등의 가축 방목장과 통조림 산
업, 정치와 노동 운동, 도박과  매춘 등 인간의 능력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의 착취와 조작, 
매점매석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귀족적인  저택, 
흔히 '농장의 성채'라고 알려진  곳에서 지배되고 있었으며, 그  '농장의 성채'는 워싱턴에서 
조금 떨어진 버지니아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스틸리오네는 마이애미에서 발생한 전투에서 한쪽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사실 
다리라기보다는 엉덩이에 총탄 세례를 받은 것이었다-  그는 그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기를 쓰며 달아났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몇 주일 동안이나 침통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
었다. 그때의 부상은 지금도 완쾌되지 않아 가끔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의사는 그에게 항상 
베개 위에 앉으라고 지시했고, 그의 일상 생활이랄 수 있는 과격한 운동을 중단하라고 했다. 
육체적으로 불편을 겪을 때마다 농부 어니는 화가 치밀었고 자기를 그 지경으로 만든 보란
을 증오했다. 
   "보란! 두고 보자. 언젠가는 너에게 진 빚을 꼭 갚을 테니까!"
   어니는 뉴욕의 콘크리트 빌딩 속에서 자라났다. 그런 덕에 12세가 되기 전까지는 콘크리
트 빌딩 숲을 벗어나면 흙과 풀과 이끼가  있는 향기로운 땅덩이가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광대한 농장의 수유자라는 것에, 멋있고 튼튼한 말을 사육
한다는 것에 대해, 시골의 의젓한 신사라는 것에 대해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순종 말 경연 대회나 행진에서 말을 즐겨 타곤 했다. 그의 에펠루자 주식은 버지니
아를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지 오래였다. 농부들이 대부분인 버지니아의 
품위 있는 사회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존경을 받는 위치에 군림해 있었다. 지역 사회를 위한 
여러 가지 공공 사업에 그는 헌금을 아끼지 않았으며, 몇몇 기업에서는 그를 후원자로 추대
할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동부 할렘 구역에서 독학으로 자수 성가한 인물의 빛나는 오늘이었으며, 마
이애미 사태 이후에 풍비 박산이 됐다가 간신히 그것을 수습해 낸 인물의 이미지이기도 했
다. 보란 때문에 그가 받은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카스틸리오네는 데이드 군 사법 당국에 체포되어 손가락의 지문을 찍고 구금되었다가 보
석금을 내고 가까스로 풀려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아직도 그는 여러 가지 죄명으로 법정
에 출두해야 하는 신세였다. 그 모든 것들 중에서도 그가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은 나라 안
의 모든 신문과 잡지들이  그의 행적을 폭로하기에 정신없다는  것이었고, 버지니아의 범죄 
위원회에서도 그의 지하 세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사실이었
다.
   이처럼 농부 어니에게는 보란을 증오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들이 많이 있었다. 그의 증오
의 불꽃 하나만으로도 보란의 시체는 충분히 불태워지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아니 카스틸리
오네는 기꺼이 보란의 몸뚱이, 그 신경 하나 하나를 차례로 자극하여 보란이 내지르는 고통
의 비명을 즐기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왜 그가 그토록 보란에 대해 잔인한 생각을 하게 됐는가? 그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
한 것이다. 바로 보란이 그 자신과 가문들에게 카스틸리오네는  토니 레버니에게 말했던 것
이다.
   "토니, 난 보란이 간단히 죽는 걸 원치  않네. 타인의 손에 의해 죽는 것도 물론  원하지 
않아. 그 녀석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고통을 느끼게 하면서  죽어야 해. 토니, 자네는 내 심
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 녀석을 멀리서 한 방 쏴버릴 수고 있지만,  고통을 주
는 방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카스틸리오네 씨. 그러나 여기 있는 윌슨 브라운은  그 
자에게 똑바로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자연스럽게. 그 녀석을 잡아올 수가 있다
는 얘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스틸리오네 씨?"
   어니는 몸을 움직여 엉덩이로부터 삐어져 나간 베개를 끌어 당겼다. 
   "토니, 자네는 벌써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했어. 난  자네의 표현이 맘에 들지 않아. 알
겠나? 앞으로는 그 말을 삼가해 주기 바라네.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네."
   기분이 언짢아진 토니가 대답조차 하지 않자 농부 어니는 덩치가 큰 브라운에게로 시선
을 옮겼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보란은 성형 수술을 했어.  그런데도 자네는 옛 전우를 자칭하
며 접근할 자신이 있겠나? 보란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성형  수술을 한 그 녀석에게
로 반갑게 달려들어 봐. 어떻게 생각을 하겠나?"
   브라운은 쉽게 단념할 수가 없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빈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두목이 증오스럽기까지 했다. 이 늙은이가 흑인과 가까이 지낸 위인으로는 전혀 생
각되지 않았다. 상당한 거리감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브라운은 긴장을 떨쳐  버리
기 위해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 꺾으며 입을 열었다.
   "침착하게 행동할 생각입니다. 언젠가 성형 수술을 한 그 친구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변한 그의 얼굴을 알 수 있다는 얘기죠. 내가 그 친구에게 접근을  하면 그 친구가 먼저 정
색을 하며 반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잔뜩 긴장을 한 브라운의 입에서는 단어 하나하나가 툭툭 잘려져 나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무슨 근거라도 있나?"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외로운 자입니다. 의지할 사람은  물론 편
안히 누울 자리조차 없는 신세죠. 그러한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할 것이 분명합니다. 과거의 그와 난 제일 가까운 친구였죠. 그가 날 보기만 하면  반갑
게 달려들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니 카스틸리오네는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브라운
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흑인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정도면 기대
를 해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카스틸리오네는 한참 후에 침묵을 깨뜨렸다.
   "좋아, 자네를 믿겠네. 일을 분명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게. 자네가 마
이애미에서의 사건을 안다면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알 거야.  내 말뜻을 알겠
나?"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보다도 난 현상금에 대해 분명히 해두고 싶은
데요?"
   "얼마면 되겠나?"
   다른 얘기에는 신중을 기하던 카스틸리오네가 현상금이라는 말이 나오자 건성으로  물었
다.
   "지금 흥정을 하자는 얘깁니까? 당신들은 이미 결정해  뒀잖습니까. 전세계 사람들이 알
고 있듯이 보란을 잡으면 10만 달러, 그리고 당신이 내건 10만 달러를 합하면..."
   브라운의 말에는 불만이 묻어 있었다.
   "자네가 그걸 모조리 차지하겠다는 건가?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야. 계약한 사람이 
모두 다 갖는다는 건 하나의 상식이야. 이것도 다른 사업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지.  사업가
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방법을 채택하고 임금을 지불하거든. 계약한 사람은 바로 나야. 자네
를 고용한 사람은 나라는 얘길세. 브라운,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
   "다 집어치웁시다. 토니! 난 돌아가겠네."
   브라운은 카스틸리오네를 무섭게 노려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도 토니 레버
니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계속 방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스틸리오네가 팔을 내저으
며 말했다.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구.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며 협상을 하면 되잖나? 자네는 아
직 애송이로군.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고 해서 화부터 내는 건 잘하는 짓이 못돼. 그 정도는 
자네고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좋소. 협상을 합시다. 난 그 돈을 모두 갖고 싶습니다.  왜 그 돈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요."
   브라운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농부 어니가 턱을 쓰다듬으
며 말했다.
   "흠. 모두 갖고 싶다 그거지? 그렇다면 자네가 진행비를 모두 부담하게. 전투원들에 대한 
비용까지도 말일세. 우리는 다만 자네의  움직임을 계획하고 자네를 중심으로  모든 계획을 
추진하겠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노력과 시간, 그리고 많은 돈이 든다는 말일세. 어떤
가, 브라운. 일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지 말고 그 돈을 공평하게 나누기로 하
세."
   어니 카스틸리오네의 수완은 보통이 아니었다. 브라운은 그제서야 웃으면서 다시 앉았다.
   "공평하게 나눈다는 건 나에게 돌아오는 게 절반이라는 얘기겠죠?"
   "아니, 그렇게 해석하지 말게."
   카스틸리오네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브라운의 해석을 부정했다.
   "그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난 싫습니다. 더  이상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얘깁니
다."
   카스틸리오네의 부드러웠던 표정과 음성이 다시  냉혹하게 변하면서 브라운을 노려보았
다. 
   "닥쳐! 자네는 욕심이 너무 많아! 그 욕심 때문에 자네는 목숨을 잃고  말 거야. 내가 마
음만 먹으면 그건 간단한 일이라구!"
   카스틸리오네의 호통에 놀라기라도 한 듯 흑인 브라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그런 일에는 숙달된 사람이외다.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긴 사람이란  말입니다. 난 
당신의 말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화가 치미니까 당신을 위해 보란은 
잡아 주지 않겠다는 말이죠. 그러나 기쁜 면도 있으니까 보란의 시체를 잘 엮어서 당신에게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브라운의 이상한 논리에 카스틸리오네는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보란 녀석 때문에... 좋아, 이 덩치 큰 친구야! 우리가 자네를 기쁘게 해줄  테
니까 자네도 나를 기쁘게만 해주게."
   "대신 현상금의 절반은 분명히 내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카스틸리오네님."
   "좋아. 우린 거래가 깨끗해!"
   힘겹게 흥정이 끝나자 카스틸리오네의 시선은 토니 레버니에게로 옮겨졌다. 토니는 얘기
가 진행되는 동안 잔뜩 긴장한 채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이봐, 자넨 그 비행기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겠지?"
   "그럼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항공편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셋  뿐입니다. 시카고, 
애틀랜타, 파리 이렇게 셋입니다."
   "그건 벌써 몇 차례나 들었어."
   "죄송합니다. 애틀란타로 달아났을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그 다음은 시카고구요. 파리행 
비행기는 보란이 도착했을 때 이미 출발하고 있었으니까 파리의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렇지만 그 세 가지 도주 방향에 대해서 똑같이 주의를 기울여야 해. 보란이란 놈에게
는 불가능한 게 가능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는 시거에 불을 붙인 다음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토니, 파리에 누가 있는지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에게 연락해서 처리하라고 해.  그 
비행기의 이륙 시간도 정확히 알려 줘야 해. 그렇다고 대서양을 오가는 전화에다 내 이름을 
떠벌이지는 말구."
   "알겠습니다, 카스틸리오네 씨."
   토니 레버니는 계속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카고나 애틀랜타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거긴 내가 직접 조처할 테니까.  자네는 
전투원들을 여기에 모이도록 해. 각자 여권을 소지하게. 그리고..."
   그는 브라운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친구를 재단사에게 데리고 가게. 그럴 듯 하게 꾸며서 여행 중인 바이어처럼 보이게 
해야 하니까. 그리고 신용장도 마련해 줘. 아무튼 필요한 모든 걸 준비해 주게. 그렇지만 절
대 내 이름이 팔리게 해선 안 돼. 자네의 임무가 중요하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서 처리하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카스틸리오네 씨."
   카스틸리오네의 농장을 나선 그들은 곧장 차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며 브
라운이 낄낄거렸다.
   "자네가 그처럼 예의 바르게 구는 건 처음 보았어. 토니! 마치 고양이 앞의 쥐 같은 꼴이
더군."
   쌕쌕이 토니는 자존심이 몹시 구겨지는 걸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듯 투덜거렸다.
   "그것도 하나의 처세야. 제길... 자네도 그런 건 배워야  해. 그는 그렇게 대해 주면 좋아
하는 사람이야. 그가 건강을 회복하면 자네도 오늘의 나처럼 변하게 될걸."
   토니는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비굴함을 합리화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무서워할 만한 사람 같지는 않던데 뭘 그러나? 그건 그렇고, 내가 맥 보란이 아니
란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난 그처럼 맹렬한 증오는 본 적이 없어. 앞으로도  아
마 볼 수가 없을 걸세."
   "10만 달러라는 상금을 내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근데 자넨 애틀랜타나 파리에 가 
본 적이 있나?"
   "그걸 말이라고 해? 젠장, 난 안 가본 데가 없는 사람이야. 보란도 마찬가지겠지만..."
   브라운은 좌석 깊숙이 몸을 묻으며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바빠지게 생겼군. 이럴 땐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쌕쌕이 토니가 냉정한 목소리로 공박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넨 보란을 엮기만 하면 돼. 그 나머지는 모두 내가 처리할 테
니까."
   "알았어. 알았어."
   브라운은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이른 아침, 보란이 셀프서비스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스튜어디스가 들어왔다.
   "루기 씨, 30분 후면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게 돼요."
   "고맙소."
   보란은 짧게 대답했지만 여자의 입에서  나올 다음의 말이 몹시  궁금했다. 그 얘기만을 
하기 위해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왔을 리는 없었다.
   "당신은 마틴 씨와 동행이신가요?"
   보란의 생각대로였다.
   "마틴? 난 그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소. 그 사람은 대체 뭘 하는 사람이죠?"
   "당신은 날 놀리시는군요. 당신은 그 사람의 대역임에 틀림이 없을 텐데..."
   "대역이라뇨?"
   보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여자는 전형적인 국제선 여객기의 
스튜어디스 타입이었다. 날씬한 몸매에 머리칼은 윤기가  흘렀으며 발랄한 귀여움과 애교가 
있었다. 보란은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 사람, 마틴 씨가 나의 대역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녀의 진지함은 보란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보란을 뚫어
질 듯이 쳐다보고 있다가 손을 뻗어 구레나룻을 쓰다듬었다. 보란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자
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마틴과 나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긴장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부분 부분을 비교하면 당신의 말이 맞아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그만둬요. 당신은 그런 걸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
   "맞아요.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보군요. 그  사람이 가짜였어요. 내가 첫 눈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당신이 남의 눈에 띄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사람을 데려온 거예요."
   피츠필드 출신의 예비역 육군 중사인 보란은 항공 전술에는 전혀 상식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이 오인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보란의 견해로는 그녀가 스튜어디스
의 특성을 완전히 뒤엎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그녀가 보내고 있는 어떤 신호들을 이해하
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냘프고 예쁜 손을 살며시 놓으
며 보란은 미소 지으려고 노력했다.
   보란을 올려다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파리에서 오래 계실 건가요?"
   "며칠 동안."
   "당신의 대역은 로마가 행선지예요. 비행기표를 보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보란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가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내 말이 사실이란 걸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되겠소?"
   그러나 스튜어디스는 자기의 할 말만 할뿐이었다.
   "오를리는 내가 되돌아가게 되는 기착지예요. 저는  금요일까지 거기에 머무를 예정이구
요."
   보란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가  보내는 신호를 판독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있었다. 
   "아, 그래요?"
   "난 이곳에 올 깨마다 팡숑 드 생 제르맹에 묵어요."
   "이유는?"
   보란의 직접적인 질문에 그녀는 약간 당황한 빛을 보였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값도 싸고 깨끗하기 때문이죠. 당신은 나와 반대로 라
이트 뱅크를 좋아하시겠죠? 맞죠?  떠들썩한 술잔치 같은... 월급쟁이인  우리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곳이죠."
   "당신이 묵는다는 팡숑은 어떤 곳이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보란은 질문을 던졌다. 
   "하숙집 같은 곳이죠. 가정집 같은 형식의 호텔이라고 하는 게 어울리겠군요.  방을 하나 
얻고 하루에 네 번 식사를 하는데 비용은 30프랑밖에 하지 않아요. 정말 좋은 곳이죠.  레프
트 뱅크 말이에요."
   보란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30프랑? 그게 싼 겁니까?"
   그녀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겨우 5달러밖에 되지 않잖아요?"
   보란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말장난을 이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
   "정말 싸군요. 나도 기회가 있으면 레프트 뱅크를 찾아가 보죠."
   "팡숑 드 생 제르맹이에요."
   "알았습니다. 팡숑 드 생 제르맹."
   "고마워요. 저는 낸시 워커에요."
   보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스키 상표와 비슷한 이름이군요."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채 돌아서며 말했다.
   "위스키보다 전 와인이 좋아요. 낭만적이고, 부드럽고, 맛도 더 달콤하구요.  게다가 마시
고 난 후엔 부작용도 없잖아요?"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보란에게서 멀어져 갔다. 다시 혼자가 된 보란은 커피를 다 마시
자 좌석으로 되돌아왔다. 편안한 쿠션에  몸을 묻었을 때 안전 벨트를  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보란은 안전 벨트를 채우며 통로 건너편 좌석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자신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그 스튜어디스가 어떻게 하여 그런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됐는지 보란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틴을 무뚝뚝한 성격의 사내 같았다. 그는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줄곧 책에서 눈을 떼
지 않았다. 가끔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제일 먼저 찾는 건 바로 그  책이었다. 
계속해서 접근하는 스튜어디스들에게도 그는 무관심했다.
   갑자기 보란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광경이 눈앞에 그린 듯이 상
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보란이 마틴으로  오인될 수 있다면 마틴이  보란으로 오인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냐? 오를리 공항에서 보란의 얼굴이 그려진 몽타주를 소지한 마
피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승객 출구에서는 웃지 못할 난센스가 벌어질 것은 뻔한 일
이었다. 사태는 순식간에 뒤바뀔 수도 있었다. 마틴을 대신해서 보란이 몰려오는 환영객들의 
환호와 깃털 세례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대접이라면 보란의 입성은 그야말
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란의 손은 안전 벨트의 버클 위에서 서성거렸고, 그의  마음은 이 새로운 희망 속에서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그는 전개될 상황을 다시 한 번 상상해 보았다. 몇 사람이  어울려서 벌여 놓은 흥미 있
고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장난을 잠시  즐겨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보란은 자신을 나무랐다. 그의 두 손은 살인을 하기 위해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
이지, 환영객들에게나 흔들어 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풍만한 여성의 육체를 어
루만지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보란은 자기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서구 세계에 흔해 빠진 
바람둥이가 아니다. 빌어먹을, 난 저격수란 말이다.
   보란은 즉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잡념과 공상을 몰아내버렸다. 이제 그에게 있어 그
를 기다리는 것은 환상의 도시 파리가 아니라 오히려  지옥이었다. 굳건하고 냉혹한 발걸음
만이 지옥을 통과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그는 그런 발걸음으로 살아야 했다. 그를 기다리
는 또 하나의 전쟁의 입구가 보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외쳤다.
   다시 만났구나, 파리여!
   그는 다시 만난 이 지옥에 입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5.즐거움의 집
   공항에는 안개가 잔뜩 끼여 있었다. 그 짙은 안개  때문에 시간이 잠시 지연되긴 했으나 
그들이 탄 항공기는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승객들이 트랩을 내려 공항 건물로 꾸역꾸역 
몰려가자 보란은 그의 시야에서 길 마틴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말끔한 제복 차림의 
검사원들이 상냥한 태도로 그 소중한 증명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여객들을  통과시
키고 있었다. 날마다 하는 일과이기  때문에 권태롭기는 하겠지만 너무  소홀히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란이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걸어 들어가자 한 검사원이 
손을 내밀며 상냥한 목소리고 말했다.
   "보트르 파세포르 실 부 플래."
   "오케이!"
   보란은 점잔을 빼며 작은 안경을 꺼냈다. 그리고는 권태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르 부아시."
   그는 실로 오랜만에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에게는 몇 년 동안 프랑스어를 사용할 기회
가 없었다. 간혹 프랑스어로 말하는 인도계 중국인을 만났을 때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사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익숙지 못한 프랑스어로나마 일상적인 
대화를 나룰 수 있다는 것이 몹시 즐거웠다.
   길 마틴 역시 그의 몇 걸음 앞에 멈추어 있었다. 보란은 흐뭇함을 느끼며 그에게서 시선
을 떼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어로  지껄이는 검사원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듯한 검사원이 그를 위해 다가가고 있었다.
   보란의 여권을 검사하고 있던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여권에 있는 사진과 비
교했다. 그러자 보란은 싱긋 웃으며 자신의 얼굴에 붙어  있는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가리켰
다.
   "콧수염과 구레나룻 때문에 많이 달라 보이죠?"
   검사원은 웃으며 대꾸했다.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루기 씨."
   그는 보란이 얼마나 오랫동안 프랑스에 머물 것인가 물어 왔다.
   "며칠 동안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겠습니다, 루기 씨."
   검사원은 다시 미소 지으며 여권을 돌려주었다. 보란이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출구를 
빠져 나오자 포터가 막아서며 그의 가방에 손을 댔다. 
   "적은 비용으로 빠른 시간에 목적지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보란은 한 마디로 거절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그 때까지도 길 마틴은 조사
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보란은 느긋한 마음으로 담배를 뽑아 물었다. 그가 담배 한 대를 다 
피웠을 때쯤 조사를 마친 길 마틴은 바쁘게 출구를 빠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게 접
근한 포터가 그의 작은 여행용 가방과 커다란 슈트 케이스를 들고 걸어가자 마틴은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보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
한 여행자의 행차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보란은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마틴은 한 무리의 사복 경찰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고, 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
이에 특별 조사실로 유도되어 걷고 있었다. 포터의 뒤를 바짝  따르던 길 마틴은 거의 마지
막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깨닫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다음  말을 이을 사이도 없이 사
복 경찰들에 의해 떠밀려서 문 안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문은 닫히고 말았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보란 외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보란은 통쾌한 웃음을 날리며 통관대로 향했다. 그곳 역시 검사는 형식에 지
나지 않았다. 보란은 더 이상 조사를 받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몇 분 동안에 길 
마틴의 생각을 하느라고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보란 자신이 마틴처럼 
특별 조사실에 이끌려 들어가게 될 행동이었다. 그는 한시 바삐 위험 지역에서 벗어나야 한
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이 빨라진 그는 첫 단계로 화폐 교환소에 들러 달러를 프랑으로 교환한 다음 곧장 
매표소로 향했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각에 출발하는 뉴욕행 비행기의 표를 사기  위해서였다. 
표를 구입한 그가 돌아서자 '보관소'라는 간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망설임 없
이 그곳에 들어가서 개인 금고를 찾아냈다. 코트를 벗고 슈트 케이스에서 권총과 가죽 벨트
를 꺼내 몸에 착용했다. 홀가분한 몸이 된 그는 도시로  들어가기 위하여 공항을 빠져 나왔
다.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걷히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음산하고 기이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몰
려다니며 택시를 잡는 광경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보란은 황폐한 곳에 혼자 버려진 듯한 소
외감을 느꼈다. 그곳의 그러한 분위기가 저격수인 보란에게 경보를 발했다.
   그는 가능한 한 공항 입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모든 상황을 감시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입구의 주위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으나 건물 뒤는 그림자와 안개에 싸여 
음산했다. 사람을 가득 태운 공항 버스가 클랙슨은 요란스럽게  울리며 그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택시 정류장의 불빛이 안개 속에서 흐느적거렸다. 불과 몇 야드밖에 되지 않는 거리
였다. 두 대의 개인 차량이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퇴색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발하며 느리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 개인 차량이 보란의 앞을 막 통과하자, 불이 환하게 밝혀진 출입구로 걸어 나오는 길 
마틴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으며 아까의 그 포터가 길을 안내
하고 있었다. 보란이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발을 멈춘  마틴은 뒤를 돌아보며 
울상이 되어 있는 포터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봐! 난 더 이상 가지 않겠어. 곧장 로마로 갈 테니까 택시를 잡아 줘! 이 너저분한 도
시로 내가 들어갈 것 같아? 내가 왜 그 따위 미친 녀석들에게..."
   입장이 난처해진 포터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짐을 땅에 내려놓고 출입구 쪽을 향해  무슨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내 한 명이 재빨리  출입구에서 나와 마틴의 앞에 멈추었
다. 마틴은 그 사내를 보자 얼굴이 창백해지며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버렸다. 작은  가죽 
가방이 그의 손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바로 그 때 보란이 조금 전에  보았던 차 한 대가 미
끄러져 오더니 그들의 앞에서 멈추었다. 차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내리더니 마틴을 차안으
로 구겨 넣듯 밀어붙였다. 그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보란은 마틴을 납치하는 그들의 재빠른  행동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파악하고 그 일에 끼여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마틴을 태운 차가 안
개 속으로 사라지자 두 번째의 차가 소리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마틴을 안내하던 포터는 납치 당한 사내가 떨어뜨린 지갑을  줍기 위해 몸을 굽혔다. 자
신들의 행동을 보고 있는 자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포터는 떨어진 손가방의 바로 옆에 못
박힌 듯이 서 있는 하나의 발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그가 허리를 숙인 상태로 위를 올려다  
보았을 때, 거기에는 보란의 32구경 권총의 총구가 그를 냉혹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터
는 예기치 못했던 상환에 놀라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했다.
   "케스크세 무슈, 케스크세?"
   그러나 보란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아! 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똑바로 얘기해 봐!"
   보란은 무서운 얼굴로 윽박질렀다.
   "즈 느 페 파 파를레 앙글레(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건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습
니다요.)"
   보라는 그 사내를 뒤로 밀어붙이며 이마에 32구경 권총을 디밀었다.
   "좋다. 그렇다면 너에게 총알을 한 방 먹이고 다른 곳에 가서 알아봐야겠구나."
   그제서야 사내는 영어로 답변했다.
   "잠깐! 잠깐만요.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선생님?"
   보란은 땅에 떨어진 길 마틴의 검은 손가방을 집어들고 어두운 건물 뒤쪽으로 사내를 끌
고 들어갔다.
   "그 남자를 납치한 놈들이 누구지?"
   보란은 총부리로 사내의 배를 쿡 찌르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
은 보란의 눈빛에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제발, 제발! 이 총을 치워 주세요. 무서워서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란은 더욱더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사내를 위협했다.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넌 이 세상을 하직하는 거야. 어때, 그렇게 할까?"
   포터는 숨을 몰아 쉬며 그 와중에도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사람들이 사람을 잘못 알았던 겁니까? 그건 아닐 테죠?"
   "바로 그거야. 바로 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야. 자, 지금부터 
10초의 여유를 주겠다. 그때까지도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총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포터는 한동안 보란을 바라보다가 체념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그 사람들과 같은 패거리가 아닙니다.  200프랑을 주겠다는 말에 그만... 정말입니다. 
믿어 주세요."
   "그걸 묻는 게 아냐! 납치범들이 누구냐고 물었잖아!"
   보란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권총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아, 말하겠어요, 제발... 마르셀이라는 사람입니다. 레메종 드 주아에에서는 그 사람을 모
르는 이가 없죠. 그를 아십니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어디를 가면 그를 만날 수가 있나?"
   이 질문에 포터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입을 열었다.
   "레 카페, 무슈."
   "지하실에 있는 술집? 좋아. 100개 정도밖에 없으니까 쉽게 찾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줘야겠어."
   보란은 포터의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빼냈다. 한참 동안 신분증을 조사하던 그는 그것
을 자신의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장? 이름이 장인가? 이제 됐어. 지금까지 네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거야.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직도 기회는 있으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
으면 해. 앞으로 이런 기회가 계속 있는 건 아냐!"
   "레메종 드 주아에라는 곳이 있습니다. 생 미셀 거리가  센 강과 교차되는 곳에 있는 갈
랑드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가 바로 마르셀의 본거지인 셈이죠. 그의 성과 이름을 정확
히 알 수는 없지만 마르셀이라고만 하면 어린애들도 알아요."
   보란은 포터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받은 후 곧 놓아주었다.  포터는 순식간에 공항 
건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보란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다
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그러나 택시 운전사는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멀뚱거리며 보란을 바라보기만 했다. 보란
은 그때서야 아차, 하며 짧은 프랑스어 실력으로 간신히 말했다.
   "메트로, 메트로."
   그때서야 택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개로 뒤덮인 거리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곤충
의 지느러미처럼 더듬으며 전진했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그런 날씨였다. 보란은 좌석  깊숙
이 몸을 묻고 자신의 운명을 택시 운전사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 보란은, 파리 출신의 택시 운전사들은 수호 천사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의 보란은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런 
공상보다도 더 긴급히 생각해야 할 일이 있었다.
   보란 개인에게 길 마틴은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짧은 비행 
시간 동안 길 마틴이라는 남자를 미워하게 됐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
틴은 자신을 잡기 위해 쳐놓은 마피아의 그물에 대신 걸려 주었다. 얄미운 사내이긴 하지만 
보란은 그러한 사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는 
건 용납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마틴이 떨어뜨린 손가방 속에서 그는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에는 마틴의 여권과 프랑스 
지폐 한 뭉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크레디트 카드, 그리고 할리우드에 위치하고 있는  미
국 인디펜던트 스튜디오에서 발행한 신분증 등 중요한 것이  모두 들어있었다. 지갑의 작은 
주머니 속에는 접혀진 신문지 조각이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최근의 영화에서 마틴이 맡
은 역할에 대한 평이 실려 있었다. 그렇다면 길 마틴은 영화 배우였단 말인가?
   보란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배우들에 
관해 알고 있는 상식도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길  마틴이 영화 산업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보란은  이 새로운 사실에서 앞으로의 
일이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란 걸 감지할 수가 있었다.
   마틴은 이번의 곤경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실감나는 열연을  할 것이다. 황당 무계한 생
각에 잠겨 있던 보란은 그의 지갑을  다시 한 번 뒤져보았다. 중요한 증명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면서 보란은 새삼스레 마틴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마틴의 처지가 거리의 차
가운 안개처럼 심각하게 느껴졌다.
   영화 배우 길 마틴이 마피아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것은 보란
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마피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기 위해  어떤 설명을 해야 한
단 말인가? 잔악한 마피아들은 마틴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면 맥 보란은 그들의 
손에 잡힌 꼴이 되고 말겠지? 보란에게 위협을 받았던 포터가 약속을 지킨다면 그것은 얼마
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이곳이 뉴욕이거나 미국의 다른 도시였다면 마피아들은 납치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
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틴은 공항 출입구를 나서자마자 붉은 피를 도로 위에 쏟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프랑스 마피아들은 더 조심스러운 것일까? 대로상에서  총격을 벌일 만큼 그들은 
대담하지 못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납치를 한 걸까? 보란은 갑
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세를 고친 그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있는 운전사
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속력을 더 낼 수 없소? 좀 달려요, 달려!"
   이런 안개 속에서는 택시를 타느니 차라리  지하철을 타는 것이 불편하긴 해도 몇  배나 
빠를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렇듯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보란이 빠른 시간 
안에 지하철을 탈 수 있다면, 그리고 포터 장이 보란에게 알려준 정보가 사실이라면, 또  납
치자들이 안개 때문에 차를 천천히 몰고 있다면 보란은 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 나타나서 
그 불쌍한 마틴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보란의 인생은 애초부터  도박으로 시작되지 
않았던가? 적어도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란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득이 없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바로 그 점이 자신과  적들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그는 아직도 깨끗하고 
정직한 인생에 대한 존경심을 잃고 있지 않았다. 만일 그가 그 존경심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보란이 지금 쳐부수려고 하는 마피아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자신을 변질시키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결국 보란의 전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방을 뒤져 총의 소음기를 꺼내 자동 권총에  부착시켰다. 운전사의 표정을 한 번 
살핀 보란은 권총 벨트로부터 소음기를 부착한 자동 권총을 뽑는 동작을 반복해 보았다. 부
자연스러움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 살인 도구의 준비까지 끝낸 그는  다시 
쿠션에 몸을 묻으며 파리에 대한 기억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가 제일 최근에 파리를 방
문했던 것은 독일에서 근무를 했을 당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지금도 눈에 선
한 파리에서의 두 주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파리는 그에게 있어서 즐거운 휴가지가  아니라 오히려 지옥이었다. 악마가 
득실거리는 지옥의 영토인 것이다. 하지만 보란은 지옥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그 사실에 대
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받
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이 지옥이라면 그 역시 지옥에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면 되는  것뿐이었다. 가짜 맥 
보란이라 할지라도 마피아들에게 자신의 허수아비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보란이 찾아가고 있는 목적지는 '즐거움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
의 집도 보란이 도착하는 순간에 비탄과 죽음의 집으로 변할 것이었다.
  
     6.파리의 마피아
   보란은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에 가짜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떼어버렸다. 마침내 지하철이 
생 미셸 역에 도착하자 출구를 빠져 나온 그는 짙은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거리의 한복
판에 멈춰선 그는 방향 감각을 되찾기 위해 휴가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소르본과 에 콜
드 뷰 아르트르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대학구에 그는 서 있었다.
   생 미셸은 호화로운 카페와 서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넓은 거리였다. 그러나 이 아
침 시간에는 사람들의 발걸음 대신 짙은 안개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망설이던 끝에 서쪽
으로 방향을 바꿔서 완만한 경사를 이룬 거리로 접어들었다.
   그는 그 거리를 거쳐 곧 생  자크 거리로 내려섰으나 갈랑드 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거리는 다른 곳보다도 더욱 생기가 없어 보였다. 고요한 정적과 안개의 물방울만이 거리
를 지배하고 있었다.
   상점과 낡은 호텔, 목로 주점 그리고 레 카페라고  알려진 무허가 지하 술집들이 즐비한 
좁은 거리를 안개가 핥으며 지나다니고 있었다. 미군 병사이던 시절 그가 이곳을 찾았을 때
는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 저녁이었다.
   엄한 규율과 제한된 시간의 지배를 받던 그때에는 뉴욕의 떠들썩하고 열기로 가득찬 재
즈 바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음산한 정경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를 배회해야만 했다.
   소음기 때문에 조금 길어진 그의 32구경 자동 권총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안개 
속을 조용히 걸어갔다. 그 짙은 안개는 보란을 돕는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앞쪽의 어딘가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곧 이어 여자의 즐거운 듯한 키들거림이 안개 
속으로 퍼져 나왔다. 보란은 보이지 않는 그 여자의 발소리를 따라 조용히 걸어갔다. 갑자기 
발소리가 그치자 보란도 멈춰 섰다.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들갑스러운 말투로  헤
어지는 인사말을 늘어 놓고 있었다.
   담배를 문 보란이 잠시 기다리고 있자 똑같은 소리가  다시 반복되었다. 여자의 교태 어
린 웃음소리, 조용한 남자의 목소리,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들이 계속해 들려왔다. 보란은 미
세한 소리 하나조차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듣고 있는 그 소리들이 바로 그가 찾고 있는 '즐
거움의 집'의 표시인지도 몰랐다. '즐거움의 집'에서 밤을 세운 사내들이 피곤한 몸을 가누며 
떠나는 것이리라.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보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담뱃불을  가리
며 가게 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인 한 사내가 보란을 지나쳐 도로로 
내려서고 있었다. 보란은 그가 모퉁이를 지나 차츰 멀어지는 걸  발자국 소리로 알 수 있었
다. 이제 보란은 목적지를 찾아낸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레메종 드 주아에, '즐거움의 집'은  이 매혹적인 고도에서 자연스레 받
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제 쾌락의 도시였던  파리에서 쾌락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  금지령에 
의하여 조직적인 범죄 집단이 개입될 소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피
아들은 말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보란은 좀더 가까이 접근했다. 다시 문이 열렸을 때 보란은 불빛  아래 서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여자는 키가 크고 늘씬했다. 짧은 머리를 한 검은 머리칼은  정
결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허리를 감은 금빛 벨트가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곧게 뻗은 다
리는 아침의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정장 차림이었다. 그가  중얼거렸
다.
   "안녕, 셀레스테!"
   여자의 반응은 틀림없이 요염한 웃음소리일 거라고 보란은  추측했다. 추측하고 있는 웃
음소리를 이미 두 차례나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녕, 폴."
   보란의 추측은 정확했다. 여자는 호들갑을 떨며 갖은 애교를 부렸고 사내는 만족한 웃음
을 지으며 문을 나섰다. 여자의  배웅을 받으며 사내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보란은 
소리 없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한 곳에만 신경을 쏟고 있던 여자는 보란이 갑자기 나타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버렸다. 한 손으로는 문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훤히 내비치는 얇은 실크 블라우스 속의 젖가슴을 감싼 채 그녀는 보란을 올려
다보았다.
   보란은 놀라지 말라고 달래듯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봉쥬르, 셀레스테."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 당황과 놀라움의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란을 잔뜩 경계하
던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려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나  보란의 동작이 여자보다 조금 빨
랐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보는 여자는 안개 속에서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옅은 풀색의 
아이섀도를 바른 큰 눈과 짙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화사했다. 그 짙은 화장은 여
자 자신의 서글픈 직업과 그로  인한 쇠퇴의 징후를 감추는 역할을  할 굿으로 추측되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여자의 육체는 아직도 싱싱했다.
   보란은 순간적으로 욕망을 느꼈다. 그들은 작은 호텔의  로비로 사용되었을 것임에 틀림
이 없는 아주 작은 방 안에 있었다. 두 개의 커다란 카우치(침대 역할도 하는 커다란  소파)
와 몇 개의 평범한 의자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뒤쪽에  나있는 계단은 더 크고 호화스
러운 접대를 위한 객실로 통할 것이었다. 영업 중일 때는 가구들과 여러 가지 집기들,  그리
고 값비싼 장식품으로 훌륭하게 꾸며질 것이라고 보란은 추측했다. 그리하여 방탕스러운 놀
이와 외설스러운 춤을 추는 사이사이에 현란하고 노골적인 정사를 그들은 즐길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이른 아침에는 이층의 객실도 지저분하게  어지럽혀져 있을 것이다. 싸구려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뒤섞여 있고, 온갖 쓰레기까지도 남아 있을 것이다.
   방안의 분위기와 구조를 대충 파악한 보란이 권총을 꺼내 들자 여자의 두 눈은 더욱  커
졌다. 그녀, 셀레스테를 놀라게 한 것은 총에 부착되어 있는 소음기인 것 같았다.
   "아, 왜 이러시죠? 뭘 원하시는 거죠?"
   보란은 조용하고 침착한 어조로 대꾸했다.
   "마르셀을 만나고 싶어."
   "농! 아메리칸? 마르셀! 셀라메니칸!"
   그녀는 보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곧 로비 뒤쪽의 문이 열
리더니 25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섰다. 키는 작았으나  건강해 보이는 체격의 프랑스 
남자였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낯모르는 침입자에게 웃음으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의 당당한 미소는 보란이 들고 있는 총을 발견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음기가 부착되어 조금 길어진 자동  권총을 보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의 뒤로 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두 번째 사내는 보란의 정체를 한눈에 파악한 듯 싶었다. 두 사내는 눈이 마주치자 보란
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더니 허리에 매달려 있는 권총을 향해 재빨리 손을 이동시
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이 권총에 닿기도 전에 보란의 자동  권총이 둔한 소리를 뱉어냈다. 두 
번째로 나타났던 사내의 양 미간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그가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며 앞으
로 고꾸라지자 첫번째의 사내가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보란의 권총이 두 번째로 발사되
었다. 둔한 화약의 폭발음과 함께 달아나던 사내는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마담 셀레스테는 눈을 꼭 감은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
는 상태에서도 방 안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운명을 하늘에 
맡겨 버린 듯 싶었다.
   보란은 떨고 있는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잠자고 있는 어린애를 깨우듯 조용히 흔
들었다.
   "이봐,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돼. 이놈들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는
지 영어로 얘기해. 날 속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자는 답변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으나 공포 때문에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다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농, 농!"
   보란은 여자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보란의 손에서 해방된 그녀는 뼈가 없는 인간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여자의 쓰러짐이 신호이기나 한 것처럼 계단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보란은 재빨
리 뒤돌아보았다. 새하얀 피부와 금발 머리를 가진 20세쯤 돼 보이는 여자가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우뚝 멈춰 서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거의 벌거벗은 상태였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얇은 슈미즈 하나 뿐이었다.
   보란이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내려와!"
   보란의 한마디에 여자는 질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꽤나 대담함을 보였
다. 셀레스테의 옆에 선 그녀는 보란을 노려보며 물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 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녀의 영어 발음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지성미까지 곁들여 있기도 했
다. 이 악의 소굴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
다. 
   "난 프랑스 어를 잘 모르오. 옆에 있는 셀레스테에게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얘
기해 주시오. 모든 정보를 빨리 털어놓으라고 말하시오. 난 지체할 시간이 없는 사람이오."
   보란의 말이 끝나자 두 여자는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이윽고 금발 머리의 여자가 보란에게 말했다.
   "미국 사람 한 명이 여기로 오게 되어 있대요.  그 미국 사람은 여기에 감금될 예정이구
요."
   "미국 사람을 감시할 패거리는 몇 명이나 되지?"
   보란이 재빨리 물었다.
   "그건 잘 몰라요. 아, 잠깐만요. 셀레스테가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
   금발 머리 여자는 다리 셀레스테와 프랑스 어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녀
는 다시 보란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차 두 대를 타고 일곱 사람이 공항으로 갔대요.  벌써 도착했어야 할 시간인데 안개 때
문에 늦는 것 같다는군요."
   "알았고. 그게 바로 내가 알고 싶어했던 거요."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보란은  그 영국여자에게 정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요구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너저분한  전쟁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보란은  하체가 
뻐근해짐을 느끼며 금발 머리에게 말했다.
   "셀레스테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시오.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
어질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있을 거요."
   여자는 안도의 숨을 몰아 쉬고 셀레스테를 부축하며 이층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두 여자를 보며 보란은 셀레스테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두 사내 때문에 고통스러
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층으로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보란은 물을 끄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집 안에서는 비참한 살인극이 있었으나 밖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거리는 여전히 조용
했고 짙은 안개는 전혀 걷힐 기미가 없었다. 현관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란은 
자리를 잡았다. 안개 속에서 그는  안전하게 몸을 감추고 곧 들이닥칠  마피아와 길 마틴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이층에서 불이 켜졌다. '즐거움의 집'치고는  너무 일찍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예상하며 32구경 자동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는 중
에도 자꾸만 금발 머리의 영국 여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끓어오르는 욕정을 누르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바로 그때, 자동차 소리가 안개 속으로부터 들려 왔다. 그 소리에 이어 헤드라이트의  희
미한 불빛이 커브를 돌아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또 한 쌍의 헤드라이트가 따랐
다. 두 대의 차는 보란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헤드라이트가 꺼지고 차 문이 열리자 기다
란 사내의 다리가 보였다. 다리의 주인공이 땅에 내려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빨리 해!"
   보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행동을 재촉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짙은 어둠과 안개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의 문이 여닫히고 남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의  문이 여닫히고 남자들의 조
심스러운 웅얼거림이 낮게 깔렸다.
   그들의 행동에 여유가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 보란은 조용히 '즐거움의 집' 입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피아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보란
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자뿐인, 형체 없는  유령처럼 여겨졌다. 보란은 
달려드는 그림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가 부착된 총은 공기 빠진 볼을 찼을 때와 
같은 둔한 소리를 냈다. 쓰러지는 몸뚱이를 받쳐든 보란은 소리나지 않게 땅바닥에  뉘었다. 
바로 몇 미터의 거리에서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세 그림자가 '즐거움의 집'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가운데에 있는 그림
자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고, 양쪽의 그림자는 보란으로 오인된 길 마틴이 틀림없었다.  상황
을 판단한 보란은 양쪽의 두 그림자를 향해 자동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두 
그림자는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허리를 꺾고 있던 가운데의 그림자도 정면으로 쓰러졌다.
   보란은 재빨리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고래를 쳐들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놀라지 마시오. 당신은 조용히만 하면 되오."
   보란은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한쪽 팔로 부축하며 생 자크 거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
다. 그들의 뒤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엉켜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보란은 뒤를  돌아보
지도 않았다. 불이 켜지기 전에 가능한 한 '즐거움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만 하기 때
문이었다.
   정지했던 두 대의 차에 다시 헤드라이트가 밝혀지고 흥분한 목소리들이 외쳐 대기 시작
했다. 보란은 잠시 한바탕 일을 벌일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이내 그 생각들을 지워야만 했
다. 보란은 자유스러운 몸이 아니었던 것이다. 옆에 겨우 의식만 남아 있는 길 마틴이  있기 
때문이었다.
   위험 구역을 벗어나 생 자크 거리에 들어서자 비로소 이마의 땀을 훔친 보란은 마틴에게 
물었다.
   "괜찮소?"
   "아, 그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요. 악마들이 내 손, 손가락을 모두 부러뜨렸소. 거기
에다가 지독한 구타... 살아있다는 게 이상할 지경이오."
   길 마틴의 대답은 차라리 괴로운  신음이었다. 그러나 보란은 동정의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오. 더 갈 수 있겠소? 살기 위해선 계속 걸어야 합니다."
   "좋아요. 그 길이 사는 길이라면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갑시다, 가요."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생 자크 거리를  따라 생 미셸 로를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보란은 왠지 얄미워 보였던 마틴에  대해 전혀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생 
미셸 로의 초입에서 휴식을 취했다. 보란은 정신을 가다듬고 최종적인 목적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순간 보란의  머리에 미국산 위스키의 상표와 
비슷한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그를 분명히 초대한 적이  있었다. 
'저는 항상 팡숑 드 생 제르맹에 머물러요'하고 그녀는 말했었다.
   보란은 그곳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 거리가 어디쯤인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그 거리는 수많은 호텔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는  마틴을 부축하며 지하철 정거장으
로 향했다. 옛날을 더듬는 그의 기억이 정확하기만 하다면  오데옹 지하철이 그들을 운동장 
근처 어딘가에까지 데려다 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는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가 있을 것
이다.
   그들이 거의 정거장에 도착했을 무렵 마틴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요? 이제 이만큼 도망쳐 왔으면 경찰을 찾아야 할 것 아니오. 그
악마들을..."
   "안 돼요."
   보란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안 된다니? 그 이유는 뭐요?"
   "이유? 그건 내 마음이오."
   갑자기 마틴의 얼굴에 불안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보란이 이끄는 대로 따
랐다. 마침내 정거장에 도착되자 보란은  처음으로 마틴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의 
얼굴은 엉망으로 터져 있었으며 상처 부위가 부어 한쪽 눈은 완전히 감겨져 있었다. 코트로 
가리워진 몸에는 더 많은 상처가 있으리란 걸 보란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악당의 
무리들은 맥 보란으로 오인된 길 마틴을 친절하게 영접하진 않았을 것이란 건 자명한 일이
었다. 그는 동정이 담긴 목소리로 마틴에게 물었다.
   "이제 결정을 하시오. 혼자서 경찰을 찾아가겠소, 아니면 날 따르겠소?"
   영화 배우 길 마틴은 망설이는 듯한  눈길로 생명의 은인인 보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
다. 그의 온전한 한쪽 눈에서  은인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눈치와 함께  따뜻한 동료애 같은 
것이 빛나는 것을 보란은 보았다.
   "날 데리고 가시오, 보란."
   보란이라고 불러준 데에 대해 그는 미소로서 답했다. 보란은  미소를 띤 채 마틴을 부축
하여 계단을 내려섰다. 사태가 이처럼  엉망으로 꼬이지 않았더라면 마틴은  프랑스에 잠시 
머물렀다가 로마로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보란은 반드시 항공사의 애교 넘치는 스튜어디스
와 며칠 밤을 오붓하게 보냈을 것이다. 만일 보란이 원하기만 했다면 그녀는 파리에서의 휴
식을 위해 도중하차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보란은 자신의 욕망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
는 육체적 향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에게는 안전
한 곳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서 마피아의 총알이 날아올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오로지 두 가지  길밖에는 없었다. 죽음, 아니면 마피아의  피였
다.
   그렇지만 보란에게는 그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7.또 한번의 변신
  보란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  젖히고 길 마틴을 현관으로 끌어  들였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여자가 깜짝 놀라 용수철처럼 일어서자 보란은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는 몹시 지쳐 있어. 격식을 차릴 여유조차 없다구."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던 그녀는 보란이 부상당한 사내를 침대에 누이자 비로소 상
대방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거의 벗은 상태였고 작은 목욕 타월이 터번처럼  그녀의 머리에 감겨 있었다. 그
녀의 피부는 빛나는 분홍빛이었다.
   여객기의 스튜어디스 제복을 입었을 때보다도 한결 요염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베
개를 가져다 조심스럽게 마틴의 머리를 받쳐 주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놀라고 있지 않
았다. 모든 사실을 눈치챈 듯 그녀는 보란을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란이 
변명할 말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모든 걸 알겠어요. 당신은  가발 같은 것이나 뒤집어쓰고 변장을  하로 다녀야 할 
사람이군요. 저 불쌍한 남자가 오죽했으면 저 꼴을 당했겠어요?  그게 모두 당신 때문이죠? 
당신으로 오인당한 거겠죠. 당신은 어떻게 됐나요, 마틴 씨? 마틴이란 가면을 쓴 당신은  여
자들의 영접을 받았고, 저 남자는 그 여자의 성난 남자 친구들에게 영접을 받는 건가요?"
   보란은 낸시 워커가 여객기 안에서  자기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했던 걸 후회하고  있음을 
알았다. 보란은 뭐라고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는 마틴의 여권을 그녀의 손에 건네주며 말했
다.
   "난 당신이 잘못 알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보란은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여권에 붙어 있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
를 흘끗 돌아본 그는 마틴에게 물었다.
   "좀 어떻소?"
   "죽지는 않겠습니다."
   길 마틴은 꽤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까지도 보란이 생명의 은인이란 생각을 버리
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란은 그의  상처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틴의 찢어진 셔츠를 풀어헤치고 속옷을 말아 올렸다. 마틴의  가슴에는 붉은 피멍이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이군!"
   보란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며 그의 갈비뼈 하나하나 더듬어  나갔다. 마틴은 고통을 참
느라고 얼굴을 험하게 찡그렸다. 마틴의 상처를 훑어본 보란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소."
   "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손, 부러진 이 손가락은..."
   마틴은 다음 말을 하기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낸시 워커가  젖은 타월을 갖고 와서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며 말했다.
   "제가 의사를 부르겠어요. 당신은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할 자격조차 없잖아요?"
   냉정한 말투였다. 그러나 감수해야 하는 말이기도 했다. 보란은 방 안을 몇 차례  오락가
락하다가 침대 옆으로 돌아가서 마틴에게 말했다.
   "이제 당신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됐소. 음...  이런 얘기는 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렇
게 상처를 입게 해서 미안하오."
   마틴은 한동안 보란을 올려다보더니 찢어진 입술을 달싹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곧 나을 거니까요. 이까짓 상처쯤이야..."
   보란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해 보았다. 이런 식으로는 이 사내를 떠날 수가 없었다.  마피
아들은 계속해서 추적해 올 것이 분명했다. 보란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는 마틴의 지갑을 침대에 올려 놓았다.
   "이게 필요할 거요. 여권은 여자가 갖고 있소."
   그는 말을 마치자 낸시 워커의 곁을 지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
   "보란!"
   마틴의 목소리가 보란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보란이 돌아서자  마틴은 시선을 벽 쪽으
로 향한 채 말했다.
   "그 여권이 필요한 사람은 나보다 당신일 거요."
   "그게..."
   보란은 할 말이 없었다.
   "당신이라면 그걸 그럴듯하게 꾸며서 쓸 수 있을 거요. 당신이 당분간 길 마틴이 되시오. 
어차피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니까 그 동안 난 좀 쉬기로 하겠소."
   보란은 길 마틴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틴은 경찰관들을 경계하고 있는 듯했
으나 보란은 마피아와의 관계 외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낸시 워커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차츰 부드러워지는 것으로 보아 보란에게 품
고 있는 적개심이 녹아 내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길 마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분증도 모두 가져가시오. 필요하다면 돈도 모두  가져가고 부족하다면 크레디트 카드
를 쓰도록 해요. 그렇다고 낭비를 하면 안 돼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난 부자가  아니니까 
말이오."
   보란은 가슴이 찡해옴을 느꼈다. 그는 지금껏 감정이 메마른 채 세상을 살아오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흐뭇한 기분이었다. 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그는 참된 우정의 순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우정의 손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우정의 따뜻함을 느끼며  보
란은 자신의 지갑과 여권을 마틴에게 내밀었다. 낸시 워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말을 한 보
란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신분증을 바꿈으로 해서 서로가 받을 위험은 1대 1이라고 그는 계산했다. 악당들은 힘겹
게 납치한 길 마틴을 빼앗겼기 때문에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그 영
화 배우를 보란으로 착각하고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 것은 분명했다. 보라는 그들
의 눈에 길 마틴이 발견되느니 차라리 자신이 발견되길 바라고 있었다.
   살인이라는 것은 상상조차도 해보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할리우드의 영화 배우가 잡히
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마틴을 마피아의 눈에 띄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보란은 몇 차례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마틴은 경찰에 출두해서 
지금까지의 사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본래의  자기 세계로 되돌아가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자유로운 대중의 우상으로서, 영화 배우로서의 생활을 영위하면 될 것이다.
   낸시 워커는 비록 원래의 남자와 바뀌기는 했으나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배우를 자신
이 직접 간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기뻤다. 그녀는 이 관계가 지속되다가 결국에는 남녀
가 흔히 이루게 되는 사랑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까지도 하게 되었다.
   지하철에 몸을 실은 보란은 다시 파리의 번화가에 모습을 나타냈다. 길 마틴이라는 이름
으로 그는 샹젤리제의 커다란 호텔에 방을 하나 예약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강경
히 주장하여 아무도 자신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끔 조처한 그는 호텔 보이를 시켜 공항의 
임시 보관소에 있는 짐들을 가져오게 했다.  그 일이 끝나자 자동차 한 대를  전세 낸 그는 
호텔의 주차장에 대기시켜 두라고 지시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보란은 돈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객
실로 돌아가 아침 식사를 한 뒤 샤워를 끝내고 포근한 침대에 피곤한 몸을 뉘였다.
   보란이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전쟁을 끝내고 자리에 누운 것은 아침 9시가 막 지나고 있
는 시각이었다.
   피를 뿌려 놓은 길을 계속 걸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보란은 깊은 잠  속으
로 빨려 들어갔다.



     8.마피아의 대사
  쌕쌕이 토니 레버니는 전화기 저쪽에서 감돌고 있는 정적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농장
의 성채' 주인인 어니 카스틸리오네의  목소리가 들려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수화기를 
잡은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 후 카스틸리오네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차갑고 냉혹한 음성이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었지? 그놈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행하는 걸 잊지 말라고 말이야! 그런
데 자네는 어떻게 했나? 보란을 납치했다가 놓쳐 버렸다는 얘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
   쌕쌕이 토니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카스틸리오네 씨, 전 그 녀석들에게 충분히 주의를 시켰습니다. 보란이란 녀석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녀석들은 납치에 성공했다는 기쁨으로..."
   토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스틸리오네의 호통이 다시 전해져왔다.
   "너저분한 변명은 그만둬!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얘길 잘 들어. 유능한 전투원을 데리고 
가. 윌슨인가 하는 검둥이도 함께 말이야. 이번에는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해야 해! 보란이란 
놈을 옭아서 데려오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또다시 기회를 주시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런 얘긴 보란을 잡고 난 다음에나 해. 프랑스엔 전투원이 몇 명이나 있다고 했지?"
   "6,7명뿐입니다. 그 밖에 몬추르 루돌피의 개인 경호원이 한  명 더 있을 뿐입니다. 슈피 
카타노라는 이름의 사내죠."
   "그럼 자네는 몇 명이나 데리고 갈 작정인가?"
   쌕쌕이 토니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답변했다.
   "적어도 12명은 데리고 가야 되겠죠?"
   "뭐? 12명? 정말 답답한 친구로군. 대가리 수만 많으면  해결이 되나? 여러 명이 소란을 
피우면 더 어렵게 된다는 걸 알아야지. 당장 나한테 와. 직접 만나서 얘길 해야겠어. 답답한 
친구 같으니라구. 뚱뚱이 안젤로와 셰미 슈브 그리고 검둥이면 돼! 좋아, 무엇보다도 자네에
게 제일 급한 건 나에게 오는 일이야. 지금 당장 오라구. 알겠나?"
   "잘 알겠습니다, 카스틸리오네 씨."
   쌕쌕이 토니는 한숨을 몰아 쉬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윌슨 브라운을 바
라보았다.
   "이봐, 친구. 이제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네. 그놈을 잡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됐어. 무슨 뜻
인지 알아듣겠나? 그놈을 잡지 못하면 카스틸리오네 씨가 용서하지 않을 거란 얘기야."
   토니 레버니는 신중하게 얘기했지만 윌슨 브라운은 그 커다란 덩치를 흔들면서 킬킬거렸
다.
   "알았네, 알았어. 언제 기회가 있으면 보란에게 직접 사정해 보지 그래?"
   다른 때의 토니라면 브라운에게 이런 모욕을 받고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은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돌부처처럼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  토니의 모습을 보고 있던 브
라운은 갑자기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보란을 사로잡아
야만 했다.
   파리의 마피아들은 그들의 존재를 위협당하고 있었다. 토머스  몬추르 루돌피는 이제 완
전히 실패한 사람이었으며 불행한 사람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프랑스로 파견된 미국의 조
용한 전권 대사, 사회의 은밀한 이면에 봉사하는 대사인  루돌피는 45세의 변호사이기도 했
다. 그는 60년대 초부터 파리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에 있는 미국  사
업체의 조언자요, 브로커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는 파리장의 사회에서도 최고급  그룹에 섞여들 수 있었고,  또한 높은 지위에 
있는 정부의 관리들이나 정치가들과도 은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파리의 어
떤 문화 행사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독신인 그의 이름은 영화계나  패션계, 
혹은 연극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입에 곧잘 오르내리곤 했다.
   이처럼 그의 모든 것은 표면적으로는 호사스러웠지만 사실상의 그는 실패와 좌절의 뼈아
픈 경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그가 신디케이트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소질
을 발휘했던 적은 있었다.
   마피아는 세계적인 작전을 실행함에 있어 강력한 제국주의적 경향을 띤 봉건적인 왕조를 
형성했다. 각 영주는 '카포'라고 불렸으며, 그들은 각기 전세적인 권력을  소유한 제국주의자
였다. 해외의 영토는 계속 확장되었으며  미국의 각 가문들에 의해서 보호되었다.  그리하여 
'라 코미숑' 또는 '카포위원회'라고 불리는 강력한 기구로  통합되었다. 이 위원회는 물론 미
국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이나  본토에 있는 가문들은 철저히  비밀의 베일에 
싸여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인의 마피아란 있을 수가 없는 존재였다. 물론 프랑스 출신의 깡패들이나 
강도, 조직적 범죄 집단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라 코사 노스트라의 미국 
가문들과 공존해야 했고, 사실상 그 가문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다.
   비국의 몇몇 가문들이 프랑스에서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간섭하기도 했으나, 토머스 몬추
르 루돌피의 권위는 아주 확고한 것이었다. 따라서 루돌피는 제국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
이다. 그는 위원회에서 외교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미국 마피아들이 국제적으로 형
성된 사업에서 챙기는 해외의 이득을 관리하는 일에 직접 개입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미국 가문들의 모든 계약 행위의 핵심에 그가 위치하고 있
었고, 프랑스의 교역 통로를 정기적으로 내왕하는  신디케이트와 비신디케이트의 범죄 행위
를 연결하는 연락 책임자이기도 했다.  수년간에 걸쳐 그런 봉사 행위를  해오는 동안 그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프랑스의 '무슈 마피아'란 위치로  발돋
움할 수 있었다.
   그의 수입은 위원회에 의해서  결정되었는데, 사업의 이득에서 적당한  액수를 할당받는 
것이었다. 그가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자적인 사업 행위를 벌이는  것은 위원회에 의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카포위원회'의 이익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데에 일반적인 의견이 일치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제한 규정에 대한 훌륭한 보상으로서 위원회는 그들 범죄의 전권 대사에게 호화
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높은 보스를 제공했고,  프랑스 사회의 높은 지위에 끼여
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바로  그런 점이 본국의 가문들에 대한  봉사를 좀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루돌피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끝없는 욕심을  가진 그에게 그런 약속이란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서 자기 실현의  충족감을 갈구하는 작은 목소리에 
비할 때, 그러한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만일 그에게 적당한 대우를 해주겠다
면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카포라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의 응당한 칭호였다.
   프랑스에서 생기는 많은 돈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데에 그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런 이익을 가능하게 해준 자신에게는 보잘것없는 비율의 돈만이 돌아온다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항상 생각해 왔다. 자신의 공로를  생각하면 근소한 분량만이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큰 야망이 있었다.  언젠가는 프랑스에 루돌피 자신의  가문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야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아담한 별장의 창으
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겨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짙은 안개도 이제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대서양을 건너온 국제 전화를 끊었다. 철저한 보안을 요구하는, 난해한  암
호로 계속되는 통화는 항상 그를 내면적인 번민에 빠뜨리게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의 통화
는 내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면적인 표정까지도 뒤바꿔 놓았다.  그의 꿈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 양식과 이미지까지도 흔들어 놓는 듯한 통화였다.
   한때는 조화와 쾌적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생활이 이제 차츰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
처럼 여겨졌다.
   맥 보란이 파리에 있다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란은 본국인 미국의 문제였
다. 루돌피는 대륙과 대양을 건너 온 이 사건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피에 굶주린  싸루겨 
총잡이들의 복수전에도 그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벌써 몇 달  전에 사살되었어야 할 
미친개 한 마리가 파리까지 탈출한 것은 미국 가문들의 말못이  아닌가. 미친 개 보란이 프
랑스에서도 주목할만한 인물이라면 그의 몸은 달러나 프랑으로 환산되었어야 했다.
   루돌피는 벌써 오래 전부터 자신을  프랑스 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말을 
고국의 말처럼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나 다른 나라 말을 할 때는 프랑스 식의  악
센트를 붙이곤 했다.
   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마피아는 프랑스에서 영토와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권력 
체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화국들의 압력을 견디며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차츰 번영을 이룰 것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카스틸리오네란 자가 누구기에 파리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파리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곧 위원회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
었다.
   한낱 농부에 지나지 않는 그가 파리의 문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카포이면
서도 사실상은 독립된 가문이 아닌 그에게 어느 누가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파리의 최고 
사령부는 침묵을 지키는 다섯 명의  형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니,  이제는 네 명이었다. 
다섯 번째의 형제는 지금 시체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루돌피에게  있어서 이 일은 큰 타
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의 모든 가문들의 군대가 한꺼번에  모여서도 이룰 수 없었던 일
을 프랑스의 이 소규모 가문이 실패했다 하여 농부 카스틸리오네는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던 
것이다. 한 마리의 벼룩조차 잡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등의 조롱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보란이라는 이름의 벼룩은 마치 사자처럼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서는 그 사자가 외치는 소리를  잠깐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건방진 농부는 프랑스에 
주재하는 그에게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호통을 쳐도 된단 말인가?
   루돌피는 카스틸리오네의 속마음을 훤히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카스틸리오네뿐 아니
라 미국의 모든 가문들은 루돌피 자신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분명했
다. 그래서 무조건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호통을 치는 것이리라. 그들은 프랑스의  위원회를 
힘이 없는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속셈일 것이다 .거창한 사업을  벌이는 에 있어서도 소외시
키려는 음모이리라. 정해진 예산에서 극히 사소한 항목까지도 일일이 설명하도록 하려는 수
작일 것이다. 사소한 일에 매달리도록 유도하여 거대한 제국을  꿈꾸지 못하게 할 술책이겠
지. 프랑스의 작은 집단이 붙잡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기대 대신에  실패
하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실패를 비난하고  조롱하려는 음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프랑스 주재 마피아 대사는 한숨을 내쉬며 창으로부터 떨어졌다. 그러나 몽상으로부터는 
떨어질 수가 없었다. 창 밖의 풍경은 흔히 '승리의 월계관'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루돌피는 
바로 그곳에서 사자를 사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일 필요하기만  하다면 자신도 직접 
총을 쥐고 거리로 나가 싸울 용의도 있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는 꼭 승리해야만 
했다.
   루돌피는 그 자신의 지역적 세력이  약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필요하기만 
하다면 그는 한 시간 내에 1000명 이상의 총잡이들을 모아서  지휘할 수도 있었다. 그는 정
부 관리들의, 법정의, 그리고 경찰 전체의 협력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
은 단순한 힘의 시위와 전쟁이 아니라 한 사나이의 영혼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런데도 이 토머스 루돌피를 형편없는 작자로 생각한단 말인가? 그가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자 거기에는 루거 권총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전쟁  중에 그가 상으로 받은 것이
었다. 총의 손잡이에는 나치 기호 같은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권총을 꺼내 
몇 차례 작동을 시험해 보고 허리에 찬 다음 차고에 전화를 했다.
   "차를 대기시켜! 정비를 철저히 하고!"
   그의 결심은 완전히 굳어졌고 꿈은 와해되지 않았다. 그의 거대한 꿈은 보란의 시체라는 
비옥한 토지에 뿌리를 박고 성장하는 것이었다.
  
     9.꽃들의 양심
   보란이 잠에서 깨어난 것은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그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의 행동을 계획했다. 다음의 계
획을 결정한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검은색 스킨 슈트를 입었다. 45구경 
자동 권총과 권총집은 점검하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계획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란은 45구경 권총보다도 더 훌륭한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계획
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결정을 한 그는 작은 서류  가방에 총과 탄환 케이스를 집어넣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보란은 로비를 향해 방을 나섰다.
   프런트 계원은 당번에게 전세 계약이 된 보란의 차를 대기시키라고 이른 다음 쪽지를 내
밀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달링. 그런데 왜 연락을 하지 않으셨죠?'
   '지지'라는 서명으로 메모는 끝났다.  
   보란이 쪽지에서 눈을 떼자 프런트 계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드모아젤 카르소도 여기에 묵고 계십니다, 무슈.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분께 
전화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느 사이에 계원의 손은 전화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 괜찮소."
   계원의 친절을 거절한 보란은 차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잠깐 쪽지의 내용을 생각
해 보았으나 곧 그것이 암시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마틴은 유럽 
전체에도 잘 알려진 이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이곳  파리에서 여자와 개인적인 관계
를 갖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보란은 인간의  애매모호한 지각력을 잘 알고 있었
다. 그래서 영화로만 마틴을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저명  인사 노릇을 한다는 것에 전
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마틴을 알고 있는 여자는 바
로 자신이 마틴과 흡사하다는 이유만으로는 그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런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하루빨리 길 마틴의 가면을  벗어 버려야만 했다. 그는 단 
하루만 더 마틴의 가면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대기하고 있는 차는 프랑스 산 작은 세단이었다. 보란의  목적에 맞게 남의 시선을 끌지 
않는 평범한 모양이었다.
   그는 곧 차에 올라 오페라를 향해 차를 몰았다. 성능이 좋은 차는 오페라를 금방 지나쳐 
블르와르에 들어섰다. 그는 몇 개의 다른 이름들이 붙은  거리들을 달려서 빈곤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거리에 이르렀다. 그는 그곳도 지나쳐 극장과 음악홀과 상점, 그 밖에 파리의 운치
가 엿보이는 수많은 흥미로운 집들을 지나치며 달렸다.
   그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공산당 사령부를 지나 몇 개의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마침내 
그가 찾던 거리를 발견했고 그 거리를 벗어나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그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자 커다란 색안경을 끼고 차에서  내려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
을 물으며 5분쯤 걸었을 때 그는 좁고 음산한 거리에 닿을  수 있었다. 한때는 파리에 거주
하는 알제리아 반란자들의 중요한 거점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센강의 라이트 뱅크에 속한 
지역이었다. 대부분의 알제리아 인들은 라틴쿼터에 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음식이라고는 전혀 없고, 알제리아  본토의 요리인 고기와 풍부한 소스,  그리고 
독한 알제리아 산 술만을 파는 작고 허름한 카페로 들어갔다. 곧 그는 카페의 밑에 있는 지
하실로 안내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뚱뚱하고 구역질나는, 미리  약속된 프랑스인을 만났다.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500달러를 내밀자 그는 가볍고 최신식이며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기관총을 보란에게 건네주었다. 1분에 25구경 탄환을  450발이나 발사할 수 있는 
성능의 자동 소총이었다. 그가 내민 500달러는 탄환과 삽탄  장치와 운반하는 데 필요한 소
형 케이스까지 포함된 가격이었다.
   250달러만으로도 그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란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는 흥정을 하지 
않았다. 큰 이익에 기분이 좋아진 상대방은 알제리아 본토  요리와 술을 무료로 제공하겠다
고 했으나 보란은 점잖게 거절하고는 차로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난 뒤 보란은 갈랑드 거리 부근을  배회하고 있었다. 한 차례 전투를 
벌였던 '즐거움의 집' 부근이었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볕을 받으며 걷는 사람들의 표정
은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보란은 지금 즐거움의 가치를 운운할 정도로 마음의 여
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도로가 뚫린 방향과 건물들의 위치 등, 여러 가지 전투 지역의 형세
를 파악하느라 그의 머리는 지도를 작성하는 사람처럼 치밀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갈랑드 거리가 보란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는 곳이란 것을 그는  분명
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그에게는 또 하나의 출발 거점이었다. 그곳이 출발지
가 아니라면 어느 곳도 출발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마담 셀레스테의 집 앞을 지나쳐 달리다가 생 자크 거리에 차를 세워 두고 작고 초
라한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은 셀레스테의 현관문과  정면으로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하나에
서 열까지 모든 걸 감시할 수가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시킨 보란은  20여분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그 집을 드나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밝은 대낮이었기 때
문에 손님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의 30분 동안이나 앉아 있던 보라는 카페를 나와 '즐거움의 집' 바로 맞은편에 있는 작
지만 품위가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가벼운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가 
정한 삼층의 방은 사방으로 창문이 나 있어 어디든 내려다볼 수가 있었다.
   나이가 50세쯤 돼 보이는 지배인은 보란에게 그가 이 방을 얻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
라고 침을 튀겨 가며 설명했다. 사실상 그 호텔은 그날 아침까지 스웨덴의 단체 관광객들로 
완전히 만원이었다. 그런데 바깥 거리에서 총격전이 일어나자 불안해진 그들은 총격전이 끝
난 직후에 모두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실상 이 부근은 대단히 조용하고, 아침의 총
격전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고 지배인은 말했다.
   보란은 떠들어대는 그에게 몇 프랑의 팁을  쥐어 주며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불상사에는 부근에 사는 주민은  한 
명도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불청객들이 벌인 거리의  짤막한 소동에 지나지 않았다
는 것 등.
   그리하여 보란은 마담 셀레스테의 집이  한두 가지의 루트로부터 공식적인 보호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동이 있은  뒤 경찰들이 몰려왔지만 그녀의  집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란은 그 보호가 얼마나 높은  권력층에서 오는 것인지 의아스러웠
다. 관리들이 쳐놓은 보호의 장막이 적들을 이롭게 한다면  보란에게도 역시 이롭다는 사실
을 그들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수다를 떨던 지배인이 허리를 굽히며 방을 나가자 보란은 소총 케이스를 열고 자동 기관
총을 조정했다. 목에 거는 벨트까지도 꺼내어 기관총에 장치했다. 완전 무결하게 탄환과  클
립까지 갖춰진 기관총을 침대 위에 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몸에 꼭 붙는 검은 색 슈트를 제외하고는  옷을 모두 벗었다. 서류 가방
에서 꺼낸 45구경 자동 소총을 몇 차례 점검해 본 뒤 벨트를 단단히 채웠다.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그는 새로 구입한 기관총을 목에 걸어보고 불편하다는 사실을 발
견했다. 그는 다시 경기관총의 벨트를 어깨에 걸어 보았다. 그것이 훨씬 나았다. 하나하나의 
동작까지도 점검해 본 그는 두 정의 무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크레이프 고무창이 두텁
게 깔린 운동화도 서류 가방에서 꺼내어 무기와 함께 놓았다. 그제서야 보란은 창가에 자리
를 잡고 밖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보란 자신이 부근 사람들에 대해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명백해졌다. 거리의 변화 하나하나를 그는 민감하게 판별해 내고 있었다.  시트로엥
으로 보이는 기묘하게 생긴 자동차 한 대가 거리를 계속  순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보란은 시계를 보며 그 차가 한 번 나타났다가 다시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을 재었다. 평균 5
분 정도였다. 그러나 보란은 그 차에 탑승한 사람들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정각 5시가 되자 거리에는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한 사내가 셀레스테의 집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집 문  앞에서 몇 분동안 
어슬렁거리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셀레스테의 집에서 불이 밝혀졌다가 곧 꺼졌다. 그러나 다시 밝혀지는 
것을보란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러자 그 불빛이 무슨 신호이기나 한 것처럼 사라졌던 사
나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보란이  내려다보고 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즐거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나이가 모습을 감추자 그와 비슷한 다른 사내들이 하나 둘 거리의 양쪽에서 나타나
기 시작했다. 보란은 사내들의 수가 11명이라는 걸 파악했고, 그들 모두가 셀레스테의  집으
로 들어가는 걸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모두 다 간편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었다.
   초저녁의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도  순찰차 시트로엥은 계속 순찰을 돌고  있었
다.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불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고, 노천 카페의 걸상과 책상은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대신 목로 주점의 불빛들이 희미하게나마 제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란이 보고 있는 길의 건너편은 로비의 희미한 불빛을 제외하고는 어둠에 휩싸여있
었다.
   6시가 조금 지나자 셀레스테의 집 이층에 불이 밝혀졌다. 창문의 커튼은 활짝 열린 상태
였다. 그러나 곧 한 사내가 창문으로 다가와 커튼을 쳐버렸다. 조금 후에 삼층 발코니의  문
이 열리고 한 명의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불빛이 희미했기 때문에  보란은 그녀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판별할 수
가 있었다. 그녀는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온몸을 뒤틀며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이방 저방에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보란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밤의 꽃들이 자기네들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그녀들이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몇 분 뒤에 한 사내가 그 집으로 접근하여 벨을 눌렀다. 곧 셀레스테가 모습을 나타냈고 
두 사람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된 사내는 길 건
너편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만으로도 보란은 그 사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그 사내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으나 곧 왔던 길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 뒤의 1시간 동안 또 다른 서너 명의 사내들이 그  젊은이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
때까지도 시트로엥은 순찰을 계속하고 있었다.
   보란은 끈질기게 기다리고 감시하며 생각해 보았다. 셀레스테는 분명히 영업을 중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란이 알고 있는 적어도 11명의 사내들이 그 안에 있었다. 어떤 파티를  열
고 있는 것일까? 보란에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란이 바라고 있
던 일이기도 했다.
   가능성이 희박한 어떤 예측이 보란으로  하여금 행동을 저지시키게 했다.  그 안에 있는 
11명의 사내가 경찰관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강력하게 수사를 펼친 유능
한 경찰관들이 이 사건의 발생지를 알아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란 거
의 희박했다. 11명의 사내는 분명히 마피아일 것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만일 그들이 경찰관이라고 한다면 보란은  경찰관들을 다치게 할 생각
은 추호도 없었다.
   보란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인내는 그의 장기 가운데 하나였다. 베트콩들이 수색
을 하고 있는 열대의 풀밭 속에서도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던  적이 
있었다. 곡창 지대의 저수지 속에서 10시간 이상을 견딘 적도 있는 그였다.
   밤이 차츰 깊어지자 거리의 분위기도 무르익어 갔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
이 거리로 몰려 나왔다. 거리는 갑자기 시끄러워졌으며 먼 곳에서 연주되는 재즈와 록 뮤직
의 리듬이 도시의 소음과 뒤섞였다. 그러는 중에서도 시트로엥의  순찰은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때까지도 창가에 선 보란은 움직이지도 않고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10시를 알리는 괘종 시계의 종소리가 들리자 셀레스테의 집에서 움직임이 관
찰되기 시작했다. 순찰을 하던 시트로엥이 집 앞에서 클랙슨을  울리며 멀어져 가자 그것이 
신호이기나 한 것처럼 2명의 사내가 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거리로 스며들었다. 보란의 시
선은 자연히 그 차의 꽁무니를 따랐다. 어느 사이에 시트로엥이  나타나 그 차의 옆에 차를 
세웠다. 그러자 두 사내는 재빨리 뒷좌석으로 몸을 숨겼다. 운전사는 차에서 내려와  능청을 
떨며 서성거렸다. 밖의 분위기를 살피던 두 사내가 다시  차에서 내리자 운전사는 차안으로 
스며들었고 차는 곧 출발했다.
   두 사내는 길을 건너오더니 보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들은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길을 가로질러 가더니 다
시 셀레스테의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또 다른 사내 2명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 전의 
사내들과는 다른 쪽으로 총총히 사라져 갔다. 바로 그때 한 사내가 거리의 위쪽에서 갑자기 
나타났고 한 사내가 길을 건너가는 것을 보란은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넷이 된 것
이다. 네 사내는 길모퉁이에 서서 잠깐 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나타난 두 사내는 집
을 향해 걸어갔고, 집에서 나온 사내가 가게와 길 건너를 향해 각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보란은 킬킬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병목 작
전이었는데 순찰차 시트로엥이 지휘 본부였다.  그 사내들의 정체는 바로  그들의 행동에서 
밝혀진 셈이었다. 보란이 알고 있는 한 그것은 마피아들의 전형적인 작전이었다.
   보란은 그들이 다른 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하였
다. 그는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45구경 자동 소총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경기관총의 벨
트를 어깨에 걸쳤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마지막으로  크레이프 고무창이 붙은 운동화를 
신고 복도로 나섰다. 호텔의 계단 위에 있는 전구는 희미하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래층
의 로비에서 들려 오는 라디오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와 보란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렇
지만 방음 장치가 돼 있어 방에서 나는 소리는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보란은 희미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높은 곳에 매달린 전구를 뽑아 냈다. 촉수가 낮은 전
구마저 갑자기 뽑혀지자 보란은 방향 감각조차도 잃어버렸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보란
은 발자국 소리에 신경을 쓰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안쪽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이라
고 부술 수가 있었다. 목재도 자물통도  낡고 허술한 것이었다. 보란은 쉽게 자물통을  열고 
옥상에 올라설 수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몹시 좁은 공간이었고 그  공간 외에는 모두 
경사진 지붕이었다. 지붕으로 기어 오른 보란은 조심스럽게 주위의 지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평범한 건물과 평범한 지붕이 어둠 속에서 거의 평행을 이루고 서 있었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여 몹시 컴컴했지만 건물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의해 주
위를 관찰할 수는 있었다. 그는 건물 뒤에 설치되어 있는  좁고 가파른 비상 계단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계단이 끝나는 밑은 몹시 좁고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골목을  향해 열려진 문이 하나 있
었지만 사람의 왕래가 없었던 듯 쓰레기와 거미줄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굴뚝 옆에서 잠깐 멈춰선 그는 그을음을 떼어내 얼굴에 문질렀다. 아무리 어두운 곳일지
라도 얼굴에선 광택이 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보란은  갑자기 월남전에서의 매복 
작전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지금 월남전의 경험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지붕을 가로질러 건물의 끝까지 전진했다.  누가 보든지 자신은 한덩이
의 검은 그림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건물의  끝에서 잠시 멈춘 보란
의 눈에 계속해서 순찰을 하고 있는 시트로엥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지나치기를 기다리
고 있던 보란은 정확한 시간을 계산하며 재빨리 비상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로부터 잠시 후 보란은 갈랑드 거리 맞은편 쪽에서 낡을 대로 낡은 건물 지붕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지붕은 평탄하지 않았고, 콘크리트는 금이  가 있었으며, 건물 사이마다 
나지막한 난간이 세워져 있었다. 지붕 위에서는 방 안의  말소리는 물론 부스럭거리는 소음
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것으로 미루어 생각래 보면  자신이 움직이는 소리를 방 안에
서도 들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한 염려 때문에 보란은 작은 기척에도 허리를 깊게 숙이
며 몸을 도사려야만 했다. 보란 자신이 임의로 정해 둔 목적지를 향해 반쯤 갔을 때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계속하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보란은 그
가 빨래를 마칠 때까지 엎드린 채로 조용히 기다려야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
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빨래를 하던 그가 돌아가자 보란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출발 지점인 호텔을 측량의 기점으로 평행선을 그었고, 그 평행선과 교차하는 직선
의 지점이 바로 보란 자신의 위치라는 걸 확인했다. 몸을 최대한으로 작게 웅크리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는 10여분을  보냈다. 사람의 기척을 찾으려는  목적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주위는 고요함뿐이었다. 그는 문을 발견하자 그 문을 열기 위하여 곧 행동을 개시했다.
   몇 분 동안의 긴장되고 조심스러운 작업이 있은 뒤 자물통은 둔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 자물통이 열리자 문은 활짝 열려 젖혀졌다. 맥 보란이 또 하나의 지옥을 건설하기 위한 문
이 열린 것이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해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계단을 내려가 손
쉽게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때 계단 부근에서 우뚝  서 있는 하나의 물체를 발견했
다. 보라는 재빨리 자세를 낮추어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나무토막이었다. 잔뜩 긴장한 보란의  눈이 착각을 일으킨 것이었
다.
   삼층에는 여섯 개의 문이 있었다. 보란의 뒤쪽으로는 밖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었다.  음
산하고 무거운 침묵이 삼층을 지배하고 있었다.  가끔 아래층으로부터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가벼운 음악 소리가 있을 뿐 그 외의 소음은 없었다.
   보란은 한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훅 하고 숨을 토하며  계단을 
향해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6개의 방 앞을 
통과할 때마다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방 안의 기척을 들으려고 했다.
   고양이 걸음으로 전진하던 그는 계단 꼭대기에서 바짝 마른 한 사내를 발견했다. 가지가 
잘린 고목처럼 미동도 않은 채 웅크리고 있는 그 사내는  잠에 취해 있음이 분명했다. 손등
으로 이마를 한 번 쓱 문지른 보란은 단숨에 덤벼들 수 있는 거리가 될 때까지 조용히 접근
했다. 한순간에 그는 몸을 날려 그 사내의 목과 임을 단번에 움켜쥐었다.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가하며 그는 그 파수병을  불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내의 몸은 축 처졌고 몸은 식어 가기 시작했다.
   비명 한 번 질러 보지 못하고 죽은  사내를 복도 구석에 두고 보란은 삼층에 있는  방을 
하나하나 염탐하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방 안에서는 붉은  빛깔의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
뜨린 젊은 여자가 화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는 화장용 솔로 커다란 젖가슴에 앙증맞
게 매달려 있는 젖꼭지에 분홍색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다.  그녀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잠옷과 짧은 가운만을 걸치고 있었다.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두 개의  눈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그녀는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거울 속에서 보란의 눈과  마주쳤
다. 여자는 눈을 크게 떴다.
   "조용히 해!"
   작지만 날카로운 보란의 음성은 여자를 얼어붙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조용히 방 안으
로 들어간 보란은 복도를 다시 한 번 살피고 문을 닫았다. 팽팽한 젖가슴,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젖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여자는 보란을 바라보며  부르르 떨었다. 보란은 
여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들은 무얼 하고 있지?"
   여자는 머리를 저으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나는, 나는..., 여자들은..."
   보란은 그녀의 눈앞에 기관총을 들이대며 말했다.
   "여자는 필요 없어. 난 남자들과 볼 일이 있는 사람이야. 그자들 지금 무얼 하고 있지?"
   보란은 커지려는 목소리를 억눌렀다.
   그녀는 도리질을 하면서도 무엇인가 대꾸를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프랑스 어로 더듬거
리는 걸 보란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의사 전달이 되지 않는 일에 불안을 느
꼈는지 흑 하는 흐느낌과 동시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신, 당신이 바로 그, 그 미국인?"
   "아, 그래. 내가 바로... 난 여자들을 해치지는 않아. 난 남자들과..."
   그녀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빛은 그래도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
다.
   "자, 이곳에 있는 여자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모아. 내 말 알겠지?"
   이번에도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한 것이었다.
   "내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세요?"
   보라는 이 여자와 언제쯤이나 대화가 통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붙잡아 세우
고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이 집에 있는 금발 머리를 여기로 데려오란 말이야!"
   겨우 뜻이 통했다. 여자는 알아들은 것이 대견하다는 듯 더듬거렸다.
   "네, 주디 존스. 데려올께요."
   보란은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권총을 흔들며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 죽음을 각오하라는 뜻을 전하고 문으로 향했다. 복도
를 살핀 그는 그녀에게 먼저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계단까지 함께 간 보란은 벽에 몸을 붙
이고 서서 그녀를 혼자 내려보냈다.
   그것이 위험한 짓이란 건 보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이란 보란의 생활을 지칭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일 뿐이었다. 비록 매춘부들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여자들을 총격전 속
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모든 신경을 계단에 집중시키고 뻣뻣해진 손가락을 방아쇠
에 걸어 놓은 채로 기다렸다.
   얼마 후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그림자 속으로 한 걸
음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날 밤을 통틀어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의 긴장을 견디며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세대에서 세대로 걸쳐 내려온 의문이 보란의 마음속에서도 자리잡고 있었
다. 그것은 밤의 꽃인 매춘부들의 양심을 믿어도 좋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10.죽음의 집
   토머스 루돌피는 굳은 얼굴로 시트로엥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루돌피의 심
복인 비토 베르톨루치가 앉아 있었는데 그 역시 굳은 표정이었다. 앞자리에 혼자 앉아서 걱
정스러운 얼굴로 운전을 하는 사람은 고향이 필라델피아인 뺑뺑이 찰리 구에비치였다. 그는 
투덜거리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닥쳐, 구에비치!"
   루돌피는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팔걸이에 내장된 작은 바를 열었다. 그는 바에 들어있는 
브랜드를 꺼내 한 잔을 따라 마시고 곧 바를 닫아 버렸다. 그의 동료들이 술을 마시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간단히 무시해 버힌 것이다.
   그는 갑자기 뒷머리가 마비되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괴로울 
때면 항상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그는 맥 보란이 자신에게 한 충고를 의
심하고 있었다. 한 차례 사건을 벌인 장소에 또다시 나타날 만큼 어리석은 보란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파리에서, 그가 행동을 시작한 곳이 어디인가?  바로 이곳이 아니면 어디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만일  보란이 파리에 대해서 테러 행위를  할 작정이라면 그가 
이곳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이곳 외에 그가 아는 곳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루돌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베르톨루치에게 말했다.
   "다시 한 번 연락해 봐."
   베르톨루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동차에 부착된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발신음이 떨
어지자 그는 음산한 눈으로 그의 두목을 바라보았다. 루돌피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르톨루치
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로잔느요? 나 베르톨루치인제 집에 무슨 일 없소?"
   상대방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 한참동안 듣고만 있던 베르톨루치가 손바닥으로 수화기를 
가리고 루돌피에게 말했다.
   "찾아온 사람들이 있답니다.  토니 레버니와 그  동료들이죠. 로잔느에게 뭐라고  전할까
요?"
   "될 수 있는 대로 술을 잔뜩 먹이라고 해!"
   루돌피는 한숨을 내쉬며 손목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저택으로 안내하라고 해. 자정쯤에는 우리도 갈 수  있다고 전하고. 
그 사람들에게 극진한 대우를 하라고 해."
   루돌피는 될 수 있는 한  불필요한 말은 피했다. 베르톨루치는  루돌피 지시를 반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한 동작  중
에서도 그의 눈은 창 밖을 감시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지역을 반복해서 돌았다.  인적이 전혀 없는 지역에서만  잠시 멈춰 필요한 
몇 마디를 나눈 뿐이었다. 베르톨루치가 곁눈질로 두목을 쳐다보며 말했다.
   "소변을 좀 봐야겠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 모두들 기분 전환을 할 필요가 있으니까."
   백미러를 통해서 보이는 구에비치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아주 오래 참았거든요. 사실 너무 무리를 했나봐요. 설마 쉬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지
는 않겠죠?"
   "닥쳐!"
   화를 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도 루돌피는 목청을 높였다. 자신의 내부에서도 쉬는 
동안 혹시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것이 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불안감이 더욱 커진 것
이다. 보란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가 오리라는 걸 루돌피는 확신하고 있었다.
   구에비치의 방정맞은 입놀림으로 인하여 루돌피는 잠시 쉬겠다는 생각을 다시 바꾸었다.
   "계속 돌아. 셀레스테의 집 앞에서 차를 세우도록 해!"
   차는 속도를 줄이며 길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이제 몬추르  루돌피가 보란을 보게 될 순
간이 임박하고 있었다.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 머리가 나풀거리며 계단을 올라와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그
때 벽 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와 금발 머리의 앞을 가로막자 여자는 숨을 멈추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곧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맙소사! 당신이... 당신이...이러시면 안돼요. 이건..."
   보란은 재빨리 여자의 입을 막았다.
   "쉿! 조용히 해! 조용히 얘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구!"
   보란은 어둠 때문에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놀란 탓인지 호흡이 
고르지 못한 걸 알 수 있었으며, 여성 특유의 미묘한 냄새를 맡을 수는 있었다. 그는 새벽에 
보았던 매력적인 그녀의 육체를 잊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안내를 받으며 희미하게 불이 밝
혀진 침실로 들어섰을 때 보란은 억제하기 힘든 욕정을  움켜잡아야만 했다. 그녀가 침대에 
걸터앉자 보란은 문을 닫았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서 심한 공포를 발견했다.
   그러나 보란은 여자를 안심시킬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의 눈은 여자의 구석구석을 핥
고 있을 뿐이었다.
   보란은 이제 더 이상은 여자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시선을 벽쪽으로 돌리며 보란이 말
했다. 
   "왜 내가 다시 왔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12명이나 돼
요. 모두 완전 무장을 하고 있죠.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기름을 안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
에요."
   여자는 안정을 찾은 듯 차분히 말했지만 입술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러나  난 위험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총격전이  시작되기 
전에 여자들을 모두 데리고 피해 줘."
   여자는 할 말을 잊은 듯 보란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보란이 다시 입을 열었
다.
   "아래층에 있는 남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
   "회의를 하고 있어요. 무슨 얘기들인지는  몰라도 몇 시간째 계속되고 있어요.  여자들이 
손님을 받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요. 줄리오는 우리에게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줄리오가 누구야?"
   "아마 우두머리일 거예요. 마흔 살 정도에  키가 크고 거친 남자죠. 셀레스테는 그  남자 
때문에 굉장히 겁을 먹고 있어요.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지만요."
   여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보란에게는 의문스
러운 점이 생겼다.
   "그럼 마르셀이 그 여자의 남편이란 말인가?"
   "그런 건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가 그 정도로 뜨겁다는 얘기죠."
   긴장한 보란은 목마름을 느꼈다.
   "마르셀은 언제나 태도가 뚜렷하질 않아요. 여러 가지 일에 관련되어 있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셀레스테가 그들의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겠군."
   "그럴 가능성이 커요. 종잡을 수 없는 여자라 확신하기는 어렵지만요."
   이제 여자의 얼굴에서 공포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란의 질문 공세는 그치지 
않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화가 잔뜩 나 있어요. 그녀는 하루라도 장사를 못하면 좀이 쑤신가 봐요. 조금  전만 해
도 당신을 얼마나 욕했는지 몰라요, 보란."
   "당신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몇 시간 동안 계속 당신 이름만 들었는걸요. 남자들은  지금도 당신 얘길 하고 있을 거
예요."
   이제 보란에게는 욕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앞에 있는 여자는 여자이기 이전에 정보
를 제공하는 동료일 뿐이었다.
   "이층에는 몇 명이나 있나?"
   "8명이예요. 일층에도 몇 명이 있고 나머지는 거리에 있어요."
   "여자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어요. 파티 때나 쓰는 커다란 방인데 일층에 있어요."
   보란의 머리는 재빨리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을  벌이기 이전에 가능성을 계산해야 
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생각에 잠겨 있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보란, 여긴 어떻게 들어왔죠?"
   "지붕으로. 그곳이 당신이 나갈 길이야. 남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여자들을  모두 데
려와. 여자들의 생사는 당신에게 달려있는  셈이야. 모든 일을 2분 안에  끝내야 돼. 정확히 
10시 30분에 공격을 개시할 테니까 알아서 행동하라구. 10시 30분이 되기 전에 모두 피신을 
해야 된다는 뜻이야."
   보란은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평온했던 여자의 얼굴에  다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
다. 문을 향해 뒷걸음질치던 여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셀레스테는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하느냐는 거지?"
   "그 여자는 당신을 미워하고 있어요.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면..."
   여자의 계산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보란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죽음을 택할 만큼 날 미워하지는 않겠지? 일단은 사는  게 목적일 테니까. 그런데 여자
들을 어떻게 데려올 수 있지? 남자들이 모르게 말이야."
   "무슨 방법이 있겠죠."
   "이렇게 하면 될 거야. 저  녀석들은 지금 지루해서 죽을 지경일  테니까 특별한 여흥을 
베풀겠다고 말해 봐.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 여자들이  이층으로 모두 올라가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해. 누드 쇼나 그 비슷한 걸 준비한다고 하면 반대하진 않을 거야."
   그녀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 손잡이를 잡은 여자가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보란, 다시 생각해 봐요. 꼭 싸움을 해야 되나요? 제 생각엔..."
   말을 끝내지 않은 채로 그녀는 보란을 응시했다. 그러나 곧 몸을 돌려 복도롤 걸어 나갔
다.
   보라능ㄴ 계단이 있는 곳까지 그녀를 따라 갔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숨었다. 잠시 후 아
래층으로부터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머리카락의 젊은 여자가 제인 
먼저 계단을 오르며 벽에 붙어 있는 보란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메르씨(고마워요)."
   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보란에게서  멀어져 갔다. 붉은 머리의  여자뿐 아니라 모든 
여자가 고맙다는 인가를 잊지 않았다. 그녀들은 벌써 보란의  침입을 알고 있었으며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간드러진  웃음소리만큼 여자들은 경거 망동하
지 않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아래층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이 얼마나 
조심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보란은 그들이 모두 몇 명인지 세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셀레스테와 주디가 올라오자 조
용히 물었다.
   "당신들까지 모두 10명이군. 모두 나온 거야?"
   셀레스테보다 한 발 앞선 주디가 대답했다.
   "모두예요. 1분만 더 기다릴 수 있어요? 아래층에 코트가 있어서 그래요."
   그러는 사이에 셀레스테는 보란에게 싸늘한  눈길을 주며 아무 말  없이 스쳐갔다. 바로 
이런 눈초리가 보란이 싸움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싫은 일 중  하나였다. 저격수의 그림자 
속에, 욕정에 시달린 여자들의 슬픈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보란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껴야 했다.
   그러나 보란은 잡다한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찮은 동정 때문에 자신의 일
을 그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붕으로 향하는 낡은 계단은 여자들의 중량을 견디느라고 요란스럽게 삐걱거렸다. 모두
들 전투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한 사람, 셀레스테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
녀는 복도 중앙에 버티고 서서 매서운 눈초리로 보란을 쏘아보고 있었다.
   보란은 그러한 셀레스테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보란이 싸우는 광경을 보고 
싶어할 것이었다. 부산을 떨던 여자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래도 
셀레스테는 움직이지 않았다. 셀레스테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보란은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
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전투를 시작해야 할 시각이었다.
   그의 손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경기관총을 소리없이 꺼내  들자 재빨리 탄창을 점검하고 
안전 장치를 풀었다. 총으로 인한 실수는 없을 것임을 확인한 그는 일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방문 바로 맞은 편 커다란 소파에 늘어져 있던 3명의 사내가 보란의 첫 번째 표적이  되
었다. 드럼을 난타하는 듯한 총격과 함께 그들은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창가에 서 있던 두 사내가 두 번째 표적이었다. 한 사내는 두개골을 흩뿌리며 무너져 내
렸고, 또 다른 사내는 유리창으로 굴러 떨어졌다.
   보란의 경기관총은 쉴 새 없이 울부짖었다. 베레모를 쓴  프랑스 인은 너무 당황한 나머
지 권총 케이스에서 총이 뽑히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배를 쏘며 피거품을 물었다. 
여기저기서 마피아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표적은 멈춰 주지를  않았다. 
보란은 곡예사처럼 몸을 굴리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
관총을 난사했다.
   나뒹구는 마피아들의 시체를 넘어서며 그는 기관총에 새 탄창을 끼워 넣기도 했다. 그는 
미친 듯이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집 안에 있던 마피아들을  모두 소탕한 것은 첫 번째
의 총성이 울린 지 겨우 몇 초만의 일이었다.
   보란이 숨을 돌리자 거대한 몸집의 두 사내가 양쪽 손에 총을 들고 동시에 집 안으로 뛰
어들었다. 그러나 그들도 기관총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관총의 총성과 동시에  그들
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으나 이내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보란의 총구에서 연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한 사내의 그림자가 문 앞을 스쳐  지나갔
다. 그러자 안쪽에서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공기를 뒤흔들었다.
   "줄리오! 줄리오!"
   보란은 소리나는 쪽을 향하여 사격을 가했다. 사격을 중지하지  않은 채 그는 도로로 난 
문으로 재빨리 몸을 돌렸다.
   보란의 예감은 적중했다. 거기에는 뾰족한  얼굴의 사내가 싸늘한 미소를  띤 채 보란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미소에는 음산함까지 묻어 있었다. 그는 우뚝 선 상태로 침착하게 겨
냥을 하고 있었다. 보란이 움직일 때마다 발사된 그의 총탄은 보란의 그림자를  적중시켰다. 
포착하기 힘든 표적을 향한 총탄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날아들었다.  똑같은 상황이 몇 
차례나 반복되자 그 사내의 반대편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집어 치워, 구에비치! 집어치우라니까!"
   그러나 짜증 섞인 사내의 명령은 보란이 받아들였다. 자신을 잡으려는 뾰족한 얼굴을 향
해 일직선으로 경기관총을 난사했다. 이제 구에비치의 손에 들려져 보란의 그림자를 적중시
키던 총은 한낱 쇳덩어리일 뿐이었다.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며  총은 바닥에 떨어졌고 구에
비치의 몸은 고목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쓰러진 구에비치를 향해 경의를 표한 후 짜증 섞인 목소리를 향해 몸을 돌리자, 그와 동
시에 단발의 총성과 함께 총구를 이탈한 탄환이 귀 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실로 아찔한 순
간이었다. 몸을 돌리기 전에 총탄이 발사됐다면 보란의 두개골은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었다.
   보란은 재빨리 몸을 낮추며 공격 목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닿는 거기에는 45
구경 자동 소총을 거머쥔 커다란 몸집의 사내가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옛날 알 카포
네 패거리의 총잡이였으며, 최근 미국의 마피아 세계에서 잠적한 사내, 바로 비토  베르톨루
치가 거기에 서 있었다.
   보라는 문 뒤로 몸을 날리며 그의 심장을 향해 작은 원을 그리며 기관총을 난사했다. 전
설적인 사나이 베스텔루치도 머나먼 이국의 도시, 파리의 외곽에서  맥 보란의 제물이 되어
야 했다. 그는 명성만큼이나 질긴 사내였다. 숨이 끊기기  전에는 바닥에 뒹굴지 않았다. 죽
는 순간까지도 자존심을 생각하는 그런 사내였다.
   보란은 순간적으로 인생의 허무를 느꼈다. 그러나 1초 이상 명상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인 것이다. 맥 보란은 재빨리 문 가로 
달려나가 허공을 향해 공포를 쏘았다.  그쪽으로부터 공격해 올 마피아들을  주저하게 만들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의 통행이 있는 거리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사격을 멈춘 그는 몸을 날려 벽에 몸을 붙이고 주위를 살핀 다음, 마
담 셀레스테의 개인 거실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그 방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양
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있었으며, 피묻은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가 바로 보란인가?"
   보란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 이제 이 집에서 호흡하는 사람은 당신과 나 둘뿐이군."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권총을 내던지며 조용히 말했다.
   "항복하겠다."
   보란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껏 수없이 많은 전투를 해
왔지만 적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보란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서 있기만 하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보란. 난 사업가이지 거리의 전투원이 아냐."
   "그렇지만 예외가 될 수는 없어. 그들과  어울린 당신은 그들과 똑같은 꼴로 죽어야  돼. 
바로 이렇게 말일세."
   말을 마친 보란은 숨을 거둔 채 방에 뒹굴고 있는 한 마피아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
쇠를 당겼다. 단발의 총성이 유리창을 흔들자 멋쟁이 신사의 눈썹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제발 날 살려 주게, 보란. 나하고 거래를 하면 되잖나? 난 돈 많은 사업가야. 어때?"
   "좋아. 당신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어. 그러나 재빨리 해치워야해!"
   "보란, 당신이 파리 전체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네.  행동이 필요한 
것은 파리가 아니라 지중해 연안이야. 마르세유,  니스, 바로 그런 곳들이 행동의  중심지야. 
거기라면 악독하게 행동을 할 수 있을 거야. 마약, 총기 밀매, 총격전, 백인 노예 제도 등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성행하는 곳이지. 보란 자네는 바로 그런 곳에 있어야 할 사람
이야."
   신사는 바로 코앞에 경기관총의 총구가 버티고 있는데도 태연하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
았다. 보란은 그러한 상대방의 신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당신은 누구야?"
   "아직 내 이름도 모르고 있었나? 난 토머스 루돌피라고  하네. 마피아의 프랑스 주재 대
사지."
   "그래? 그런데 루돌피, 거래에 대한 얘기는 왜 한마디도 않는 거지? 난 잔소리를 싫어해. 
앞으로 10초의 여유를 주겠네. 10초가 지나면 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겠어."
   "좋아. 내 거래 조건은 돈이 아니라 정보야. 모든 이름을 알려 주겠네. 아, 벌써 5초가 지
났군. 아몽 드 샹 실바데리, 러인셋, 보란. 남쪽이야. 당신이 남쪽으로 가면 돼."
   "알았어!"
   보란은 짧게 대답하며 루돌피의 뒤통수를 총구로 내리쳤다.  루돌피가 비명을 지르며 앞
으로 고꾸라지자 보란은 다음의 행동을 결정하며 잠시 그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보란은 기관총의 탄창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집으로  들어서던 한 사내가 
보란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보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사내를 향해 어림짐작
으로 총격을 가했다. 총격에 의하여 문설주가 내려앉자 피를  토하며 나뒹구는 사내의 모습
이 보였다.
   보란은 죽음의 현장을 빠져 나와 걸으면서 손목 시계를  보았다. 기록에 남을 만한 일전
이었다. 처음 사격을 개시한 지 겨우 3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루돌피와의 대화가 없었다면 2
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마담 셀레스테는 삼층의 계단 위에 못 박힌 듯 우뚝 서 있었다.
   그녀 곁으로 다가서며 보란이 중얼거렸다.
   "셀레스테, 미안하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소."
   그러나 셀레스테는 고개를 홱 돌리며 보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더 이상의 접근을 포
기한 보란이 지붕을 뛰어오르자 금발 머리의 영국 여자가 그를 맞았다.
   "보란, 믿을 수가 없어요. 어쩌면 당신은..."
   말을 맺지 못하는 여자에게 작게 웃으며 보란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보란의 뒤를 따랐다.
   "왜 날 따라오는 건가?"
   보란이 묻자 여자는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그럼 나더러 시체가 나뒹굴고 있는 거기로 가라는 건가요?"
   "다른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그 여자들을 따라가면 되잖아?"
   "그건 저도 알 수가 없어요. 당신의 싸움을 지켜보는 동안 모두 흩어져 버렸어요."
   "그럼 나와 함께 가겠다는 건가?"
   "글쎄요,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경찰에게로 갈까요?"
   "그렇게 하지. 경찰은 당신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보란은 걸음을 멈추고 아무리 봐도 아름답기만 한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바로 그때 움
직이는 물체 하나가 보란의 눈에 들어왔다. 보란이 서 있는  지붕 끝과 환하게 불이 밝혀진 
셀레스테의 집 지붕의 문가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추적이 시작되고  있었다. 
보란은 여자를 부축하고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지붕 끝에 
매달린 강철 사다리에 도착했다. 보란은 망설이는 여자에게 재촉했다.
   "자, 빨리! 빨리 내려가!"
   뒤쪽으로부터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여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보란
의 손을 잡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디, 날 따라올 생각이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야. 사냥개들이 날
뛰고 있어. 자, 어서 서둘러!"
   그녀는 보란을 따르기로 결심한 듯 사다리에 발을  올리더니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
는 도중에도 그녀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보란은 이렇게 첫 번째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마피아의 견고한 소굴을 완전 무
결하게 파괴했고 상처 하나 없이 빠져 나온 것이다. 게다가 루돌피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얻
었으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전리품까지 획득한 것이다.
   그는 이제 길 건너의 좁지만 평화로운  그의 영토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화려한  도시 
파리에서의 황홀한 순간을 얼마든지 즐길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란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황홀과 안락함은 그에게서 떠난 지 오래였다. 그는 오직 죽음과  위
험을 동반하여 사는 저격수일 뿐이었으며 그렇게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11.낯선 미녀
   보란은 창가에서 거리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발 머리의 여자는 몸을 웅크린 채 
침대에 앉아 보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두려움의 그림자도 
없었고 평소의 모습 그대로 요염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보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여
자가 침묵을 깨뜨렸다.
   "마치 악몽과도 같아요."
   "그렇다면 그 악몽 속에 내가 있다는 얘기겠군?"
   보란이 돌아서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한동안 다시 침묵이 흐른 뒤 여전히 창 밖을 내다
보고 있던 보란이 말했다.
   "프랑스 경찰은 꽤나 부지런한 것 같은데... 여기에도 곧 그들의 손길이 뻗치겠어. 그렇게 
되면 난 할 수 없이 당신에게 옷을 벗으라고 해야 돼. 그래야 경찰들이 우리말을 믿을 테니
까 말이야."
   "좋아요, 당신의 말이라면 그 이상의 것이라도 하겠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이런 생활을 
하는 거죠?"
   보란은 여전히 대답을 않은 채 자신의 할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경
찰관들이 붐비고 있었다. 거리의 양쪽 입구는 폐쇄되었고 보란이 서 있는 바로 아래쪽은 미
처 빠져 나오지 못한 많은 차들로 혼잡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흥분하여 제각기 떠들어 대고 
있었다. 
   보란은 아슬아슬하게 도피해 온 이곳이 사실은 제일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
달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정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10미터만 
더 떨어진 곳이었다 해도 보란은 봉쇄된 도로에 갇혀 있을 것이 뻔했다.
   그는 창가에서 물러 나와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던 보란은 그제서
야 여자가 했던 질문에 답변했다.
   "주디, 나는 다른 방법으로 사는 것을 몰라. 태엽만 감아 놓으면 주먹질을 사며 달려드는 
장난감과 같은 인간이야. 왜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는 없어.  마찬가지로 
이런 생활을 그만둬야 한다는 이유도 없고."
   보란의 목소리는 매우 침울했다.
   "당신은 그곳으로 돌아올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보란과 반대로 여자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보란이 대꾸를 하지 않자 뒤로 벌렁 누운 
여자는 보란을 향해 두 다리를 들며 말했다.
   "좀 내려 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보란은 그녀의 잠옷 바지를 벗겼다. 그는 조용
히 눈앞에 펼쳐진 여자의 미끈한 다리에 눈을 고정시켰다.  아름답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
만 침이 말라 버린 입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조금 전의 미쳐 날뛰던 저격수가 
아니었다. 본능에 몸을 떠는 한 남자, 맥 보란일 뿐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몸에 꼭 붙는 슈트를 벗어 재빨리 둘둘 뭉쳐 화기와 함께 
서류 가방 속게 밀어 넣었다. 그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을 때 여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시선
으로 보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의 커버를 정리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당신의 몸은 어쩌면 그렇게 멋있어요?"
   여자의 한마디에는 보란을 움직이게 하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침대  곁에 장승처럼 서 
있던 보란은 두 팔을 뻗어 여자를 끌어안았다.
   "이미 얘기했었어. 경찰을 속이기 위해서는.... 어쨌든 경찰을 속여야만 해."
   "아, 알겠어요.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보란의 입술에 뜨겁고 정열적인 키스를 퍼부었다. 그들은 한덩어리가 되었다.
   "난 당신이 정말 좋아질 것 같아서 무서워요."
   그리고 되는 대로 입을 놀리던 여자는 한 팔을 풀어 정성 들여 정리한 침대의 커버로 두 
사람의 몸을 덮었다. 그녀의 입술은 잠시도 닫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보란은 그녀의 입술에
서 새어 나오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자가 갑자기 보란의 행동을 방해했
다.
   보란은 여자의 가냘픈 팔에 밀리며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왜? 무슨 일이야?"
   보란 자신이 듣기에도 이상할 만큼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뭔가 대답할 말을 미리 생각해 두세요."
   "무슨 뜻이지?"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 행위에 대해서두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보란은 1초라도 빨리 일을 해치우고 싶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한 마리의 동물이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는 이상하리만큼 냉정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전 작가예요."
   여자가 말했다.
   "그럼 직접 체험을 하기 위해 뛰어드신 건가?"
   보란은 그녀의 진지한 말을 비웃고 있었다.
   "몇 년 동안이나 지루하게 학교 수업을 하고 나자 사물에 대해 얘기를 하는 훌륭한 방법
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나 자신한테서는 얘기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보라는 그런 얘기들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오직  온몸으로 투쟁하며 살았을 
뿐이었으니까.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믿지 않으시는군요."
   "글세..."
   보라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에 답변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믿지 않아도 좋아요. 내가 파리에 온 건... 이 짓을 하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매춘을 하
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체험하고, 맛보고, 관찰하러 온 거예요."
   "맛? 그래 그 맛이 어땠어?"
   "지독해요. 그렇지만 멋지기도 하죠. 파리에서는  매춘 행위도 그다지...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들이 아주 많아요. 그러나 초보자들에겐 위험스런 일이죠. 첫째 
경찰의 등쌀에..."
   "그래서 셀레스테가 당신을 보호해 주고 있었나?"
   "그렇죠. 나와 같은 여자들은 모두  허수아비인 셈이죠. 그러나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파리에 나와 있는 많은 외국인들에겐 굶어 죽지 않기 위한 논리적인 삶의 방식이에요."
   한동안 보란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던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나는 자유를 획득하고 싶어요.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고 싶다는 얘기
죠. 당신도 나를 차지하지는 못해요. 어느 누구에게도 나는 빚을 지고 있지 않거든요."
   보란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봐, 주디. 난 심판관이 아냐. 나에게 복잡한 얘길 할 필요는 없잖아?"
   "맞아요. 당신이 심판관이라면 난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아요."
   "당신은 언젠가는 'J양의 고백'이라거나 그와 비슷한 글을 쓸 수가 있겠군."
   "그럴 테죠. 그래서 부패한 돈으로 부자가 될 수도 있겠죠."
   여자는 남의 얘기를 하듯 쉽게 말했다.
   "당신의 본명은 주디가 아니지? 그건 필명인가?"
   "둘 다 아니에요. 그건 침대에서의 이름일 뿐이에요."
   보란은 점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흥미를 연장시킬 수는 없었다. 이제 문 밖에 올 것이 
온 것이다.
   두 사람이 엉겨 붙으며 자리에 눕자 몇 차례의 노크 뒤에 호텔 지배인의 나지막한  음성
이 문 틈으로 흘러 들어왔다.
   "무슈 마틴?"
   보란은 입 속으로 다섯을 센 뒤에야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봐요! 당신은 눈치도 없는 사람이오? 제발 귀찮게 하지 마시오!"
   "용서하십시오. 사실은 경찰이 찾아와서요. 잠깐이면 되겠습니다."
   "빌어먹을, 처음에 뭐라고 그랬소? 조용한 호텔이라고 하지 않았소?"
   보란이 계속 버티자 문에서 열쇠 꽂히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문이 활짝 열렸다. 보란
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화를 버럭 내며 상체를 일으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여자도 슬그
머니 따라 일어나며 침대 커버로 몸을 가렸다. 남이 보기에는 정사를 즐기던 연인, 바로  그
런 광경이었다. 복도에서는 지배인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무슈."
   정복을 입은 경찰이 거수 경례를 하며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또 한 명의 
경찰이 따랐다. 그들은 방 안을 한 차례 휘둘러보더니  호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지배
인에게 빠르게 프랑스어로 지껄였다. 그러자  지배인이 허리를 굽히며 방으로  들어와 입을  
열었다. 
   "무슈, 이 앞에서 또 총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경찰들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는데... 그
런데 영어를 잘 못 하기 때문에... 제가 통역을 하겠습니다."
   지배인의 말이 끝나자 보란은 소리를 질렀다.
   "당장 이 방에서 나가라고 통역을 하세요! 난 참을 수가 없소. 이런 인권 침해를 미국 영
사관에 보고하겠소!"
   한 경찰관이 시선을 외면한 채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자 나머지 한 명도 침대 위의 광경
이 민망스러웠는지 침대 발치에 서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누르기는 어려웠
는지 여자의 젖가슴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창가에 있던 경찰관이 보란을 향해 말했다."
   "여권(파세포르)"
   "내가 싫다면 어쩔 테요?"
   보란은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경찰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파세포르."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보란은 지배인에게 말했다.
   "코트 주머니 안에 있소. 코트는 옷장..."
   흥분한 듯 소리치던 보란은 옷장 속의 서류 가방에 생각이 미치자 벌떡 일어섰다.
   "좋소, 내가 직접 보여 주겠소."
   그가 방바닥에 내려서자 경찰관이 그를 다시 침대 위에 앉혔다.
   "나도 영어를 압니다. 여권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두 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서 대단
히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부인. 몇 가지의 질문에 답변만 해주십시오. 그런 후에는  곧 
나갈 테니까요. 우리 직업 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좋소."
   보란도 그것까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총소리는 들으셨겠죠?"
   "총소리인지는 몰라도 그와 비슷한  소릴 듣긴 들었소. 무슨  일인가 하고 일어났었지만 
그땐 벌써 잠잠해진 위였소. 그래서 우린 다시 침대에..."
   경찰관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됐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보란은 이제 방을 떠나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경찰관들은 
처음과는 반대로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비로소 그들이 나가자 주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는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았죠?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훌륭한 경찰관은 그러는 거야. 당신도 프랑스의 족속들을 알아 둬야 해. 그들은 아무 것
도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얼간이들이야. 도덕적인 문제가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
되면 그들은 몸을 사리거든. 바로 그것이 내 여권을 보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일 거야. 그들을 
알기 때문에 난 이길 수가 있었던 거야."
   "당신은 정말 연기를 잘 하더군요."
   "그건 연기가 아냐. 전투였어."
   "당신은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해내는군요. 그렇죠?"
   "글세..."
   보란은 계속되는 여자의 질문 공세에 당혹감을 느꼈다.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질문은 그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어떻게 처리하죠?"
   "이런 일이라니?"
   "그러니까... 지금 우리 둘이 한 방에 있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여자의 가슴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안식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여자는 보란에게 직업적인 사랑의 행위와 자발적인 사랑의 행위 사이에 있
는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은 인간의 유대에 대해, 점진하는 쾌락의 순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육체
를 애무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젊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나란히 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축복의 말을 주고받았다. 보란은 그녀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그것이 점점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조용히 얘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풍만한 몸을 출렁
이며 보란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몸을 움직여 보란의  다음 
행동을 재촉할 뿐이었다. 보란은 지칠 줄 모르는 사내였다. 결국 그녀는 긴 신음과 함께  가
쁜 숨을 토해 놓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절정이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녀
는 무서운 힘으로 상체를 일으켜 보란의 허리를 껴안고는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방 안은 다시 고요함이 물결 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길고도 격렬한 얘기가 끝난 것이다. 그녀는  반쯤 눈을 감고 보란을 바라보
다가 만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보란은 헝클어진 침대에서 빠져 나와 옷을 입기 시작했다.
   "보란, 당신은 뭐든지 멋지게 해치우는 분이군요."
   여자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보란을 향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보란, 이 옳지 못한 전쟁으로 당신 자신을 탕진하지 마세요."
   "옳지 못한 전쟁이 아니야. 주디, 당신도 분명히 삶을 맛본다고 얘기했지? 난  여자에 대
해서만은 무뢰한이야. 그러나 남자들은 목숨을 바칠만한 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
로 사는 것이 아니야."
   "당신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제부터는 당신 덕분에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란."
   보란은 웃었다. 그의 흰 이가 희미한 빛을 받아 빛났다.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는  짐
을 챙기기 위해 옷장으로 향했다. 짐을 문 앞까지 운반한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주
디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새로운 소설의 제목이 'J양의 고백'이 되지는 않겠지?"
   "천만에요. '죽음의 끝'이라고 할까 생각중이에요."
   "무슨 뜻이지?"
   "저도 확실히 설명을 드릴 수는 없어요. 다만 나 자신이 요 몇 년 동안 죽어가고 있었다
는 것, 그리고 그 죽음에 훌륭한 이유가 될 만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걸 알았을 뿐이
에요. 전 지금 그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보란은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며 일어섰다.
   "당신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여자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 이제야 당신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냉소적인 논리의 신비한 비밀을 
지닌 사람이에요. 진실된 의미로 살아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는 얘기예요. 그렇죠, 보란?"
   그러나 보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등을 돌린 채 문을 향해 걸었다. 
   "안녕, 주디!"
   보란이 문을 닫으려 하자 여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보란!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다시만나요, 라고 하면 안되나요?"
   "그렇군. 나도 그렇게 되길 빌겠소."
   보란의 음성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이제 그는 조금 전의 욕망을 채우던 사내가 아니었다. 
다음 전쟁을 위해 떠나는 한 저격수일 따름이었다.
   그는 여자가 헤어져 계단을 내려갔고, 이윽고 거리로 나섰다. 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
다. 거리는 황량하게 비어 있었고 붐비는 인파 대신 정적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보란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해외 여행을 즐기는 사람처럼 샹젤리제로 향했다.
   보란은 문득 루돌피를 떠올렸다. 루돌피를 그 죽음의 궁전에서 살려 두었다는 것은 커다
란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루돌피의 생존은 루돌피를 압도하는 일에 실패했고, 그리하여 그
가 생명을 구걸하도록 허용했으며, 그 자신은 자비로움을 베푸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
다.
   마피아의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온 남자라면, 스스로의 자부심을  상처 입히는 구걸의 기
억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루돌피라는 사내도 이제는  자신의 생존을 다른 
식으로 변명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는 그런 변명은 하지 않
을 것이었다. 주디가 냉소적인 논리라고 부른 그 형태에 따라 답변이 진행되리라는 것은 믿
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루돌피는 이제 자신의 변명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전격적인 살
인을 감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보란이 벌이고 있는 성스러운 전쟁의 제
물이 될 뿐이다. 보란은 루돌피가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죽이려 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보란을 죽이지 못할 경우 루돌피는 그 세계에서 매장 당할 건 뻔한 사실이었다.
   보란은 또한 영국 여자 주디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안다기보다는 부분적으
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보란은 자신의 삶과 그녀의  삶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으
려하다가 이내 포기해 버렸다. 그런 지적인 연습은 보란에게 있어 걸맞지 않은 일이라고 스
스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의 마음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을 하기
도 했다.
   보란에게 있어서 여자들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타인의 마음을 부드럽게 순화시키는 한 마
리의 동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삶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냉소적이긴 하지만 그
는 삶을 긍정하고 있었다. 그의 최고의 긍정은 그 자신의 죽음 부근에 놓여 있었다. 그 죽음
과 긍정은 그가 사는 곳마다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주디와 함께 있었던 일로 인하여 생긴 부담감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는 최고의 속력으로 차를 몰아 볼테르 광장과 센 강을 스쳐갔고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계
속 달렸다. 하늘은 티없이 맑았고 도로 사정도 쾌적했다. 그는 파리의 넓은 도로를 유연하게 
달렸고 스피드를 유쾌하게 즐겼다. 그러나 그가 호텔의 차고에 차를 밀어 놓으며 느낀 것은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미련뿐이었다.
   졸린 눈을 두꺼비처럼 껌뻑이는 차고 담당자에게 차를 맡긴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예
약된 방으로 돌아왔다. 객실로 들어서며 그는 파리의 레프트 뱅크와 라이트 뱅크 사이의 차
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마치 양단된 두 개의 세계와 같았다.
   객실의 불을 켠 그는 얼굴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될 일에  부딪쳤다. 텅 비어야 있어야 할 
그의 침대에 알몸의 여자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보란이 고개를  돌리며 언뜻 본 것은 매혹
적이고 가냘픈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여자의 몸 구석구석까지도 보란은 충분
히 상상할 수 있었다.
   여자는 낮은 채로 보란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갑자기 밝혀진 불빛에 의해서인지 그녀
의 눈은 감겨진 채로였다. 팔을 벌린 상태로 여자가 입을 열었다.
   "마틴, 밤새도록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은 항상 바쁜 사람인가요?"
   그녀의 음성에는 심한 투정이 묻어 있었다. 보란이 어떻게 답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망설이는 동안 불빛에 익숙해진  여자가 눈을 떴다. 눈을 뜬  그녀는 보란에게로 뻗었던 
팔을 재빨리 거두며 침대 시트로 벌거벗은 몸을 가렸다.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것은 당혹감
이 그것뿐이었다.
   "어머! 당신... 당신은 마틴이 아니잖아? 대체 누구시죠?"
   보란은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몰랐다. 냉소적 논리 같은 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당혹감과 신비로운 향기만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12.배신의 대가
   언제나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 속에 묻혀 있는 파리 외곽의 저택은 밝은 불빛에 감
싸여 있었다. 그러나 오늘밤에는 그 끊기지 않던 환락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택과 가까
운 순환 도로 위에는 대형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으며 정중한 옷차림의 사내들이 저택을 드
나들고 있었다. 모두들 심각한 얼굴로 분주히 움직일 뿐 이야기를 하는 광경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천장에 여러 개의 샹들리에가 달려 있는 연회실에서는 쌕쌕이 토니 레버니가 우아한 차
림의 프랑스 여인과 함께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은 토머스 루돌피의 
믿음직한 비서이자 정부이기도 한 로잔느 루루였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이름난 여자처럼 몸
놀림 하나하나에도 품위와 교양이 깃들여 있었다.
   당구대의 주변에는 5명의 사내가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카스틸리오네가 
가장 신임하는 총잡이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10명 정도의 총잡이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었다. 농부 카스틸리오네는 직접 그들을 선발하여 파견한 
것이다.
   파리로 들어온 이들은 전문적인 살인자들로 관광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카스틸리오네로부터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사내들이었다. 
잡담을 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로잔느의 얼굴에는 극심한 공포와 당혹감이 나타나 있었
다. 눈치 빠른 그녀가 사내들의 잔악함을 모를 리가 없었다. 유창한 영어로 그녀는 토니  레
버니에게 말했다.
   "토니 레버니 씨, 루돌피 씨가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들을 오라고 할 건 분명합니다. 그러
니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토니는 애교 섞인 로잔느의 부탁을 무시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요? 우리가 이 먼 곳까지 잡담이나 하려고 온 줄 아쇼? 루돌피가 우리
의 지원을 꺼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소. 이번 일은 사적인 게  아니라 공적인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죠. 전 루돌피 씨의 비서예요. 저와 얘기를 하도 괜찮다는 얘기죠."
   토니는 킬킬거렸다.
   "그건 당신이 몰라서 하는 말이오. 정확한 장소에서 정확한 얘기가 오가야  한단 말이오. 
그래서 일이 결정되면 곧 행동을 개시해야 하니까. 그래야 내 졸개들이 바스티유 감옥에 들
어가는 일이 없을 거요."
   토니는 로잔느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잔느는 불쾌감을 나타내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있는 서류의 명단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감옥 운운하시는데 그건 염려하실 필요가 없어요. 여기에  있는 한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좋아요. 그러나 그 얘기를 루돌피 씨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토니는 계속 빈정거렸지만 로잔느의 말을 믿는 건 아니었다.
   마피아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여자라면 보통은 넘는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도로 쪽에서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우람한 체구의 검둥이 윌슨 브라운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왔나보군..."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현관 앞에  정차한 페라리 스포츠카의 창문으로 루돌피의  모습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루돌피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는 주위를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관광 버스를 훑어보고 있었다. 페라리  승용차의 문을 닫아둔 채로 그는  관광 버스를 향해 
움직이고 시작했다. 그러나 곧 발길을 돌려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루돌피를 본 로잔느는 토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현관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그런 상황에
서도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여자였다. 루돌피의 앞에 선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루돌피의 오른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으며  이마에는 퍼렇게 멍든 혹이 튀어나와  있었
다. 그것뿐 아니라 얼굴 곳곳에는 하얀 색의 연고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루돌피의 입을 다문 채 모자를 벗어 로잔느에게 주었다.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는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머리칼은 듬성듬성 빠져 있었고 온통 접착성  붕대투성이였다. 
그러한 루돌피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로잔느는 루돌피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 질문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저택 안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뿐이었다.
   "저... 연회실에는 지금 미국인들이 모여 있어요."
   처음으로 루돌피의 입술이 움직였다.
   "알고 있어.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이 집을 본부로 삼겠다는 거야."
   "몹시 화를 내고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일에 진력이 난 거죠."
   이때 쌕쌕이 토니가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시오, 몬추르 루돌피. 대체 어디에 있었소?"
   루돌피가 잘라 말했다.
   "병원에 있었소. 내 몰골을 보면 모르겠소? 할  얘기는 내일로 미루면 좋겠는데, 어떻소, 
토니?"
   "우린 밤새도록 당신을 기다렸소.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소. 위원회에서  당신에게 전
하는 소식도 있고... 하여간 더 기다린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소."
   말을 마친 토니는 루돌피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고 연회실로  들어가 버렸다. 토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로잔느가 입을 열었다.
   "무서워요.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사업을 정리하고 저 사람들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어떨까요?"
   떨고 있는 로잔느를 한동안 바라보고 섰던 루돌피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토니를 따라 
연회실로 들어갔다. 로잔느가 그의 뒤를 따랄 들어가며 코트를 벗겼다. 붕대로 칭칭 감긴 손
이 코트의 소매를 빠져 나올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잠깐 얼굴을 찡그린 로잔느
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렇게 됐어요?"
   "보란, 그놈 때문이야."
   짤막하게 답변을 한 루돌피는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는 듯 연회실로 성큼 들어섰다. 
   로잔느는 그의 모자와 코트를 옷장 속에 넣고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연회실에서는 쌕쌕이 토니가 졸개들을 루돌피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루돌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입 안으로만 웅얼거리고 바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토니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렇소."
   루돌피는 답변을 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은 늘어놓지 않았다.  워싱턴에서 온 카포의 친위 
대장 토니가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루돌피, 이게 바로 전언이오. 휘갈겨 쓴 글씨라 읽기가  힘들거요. 내가 대신 읽어 주겠
소. 난 지금, 당신에게 전달하라는 두목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중이오.  '토머스 J. 루돌피, 
파리. 앤소니 P. 레버니에게 모든 협력과  지원을 보장하라. 성공적인 관광이 될  수 있도록 
비용이나 어떠한 사적인 불편함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라. 모든 공적인, 그리고 법적인  약
조들을 선량한 회원으로서 충실히 이행하라. 이번 관광의 계획에  방해가 되거나 영향을 끼
칠 만한 행동이나 계획을 취하지 말라.' 자, 이게 모두요. 베터 트레이드 카운실이라고  서명
이 되어 있소. 국제 전보로도 곧 같은 내용이 도착할 거요."
   루돌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전언을 무시할 사람으로 보이오? 상부에서 하달된 명령은 한 번도 어기지 않은 
루돌피요. 당신들의 활동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소."
   "고맙소.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오. 그런데 그  상처는 
도대체 뭐요?"
   루돌피는 토니의 질문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모두 몇 명이오?"
   "57명. 10여명을 데리고 올 계획이었으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증원을 했소.  우린 제트기
를 한 대 전세 냈소. 돌아갈 때도 전세기를 이용할 생각이오."
   "언제쯤 돌아갈 예정이오?"
   루돌피는 될 수 있는 한 긴 말을 피했다.
   "글쎄요. 아무래도 목적이 달성돼야 출발하겠죠? 돌아갈 때는  아마 58명이 제트기에 탑
승하게 될 거요. 모든 중요한 서류는 로잔느에게 주었소.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 말썽이  생
기지 않도록 그 서류들을 잘 살펴봐 주시오. 국제 경찰들과  우리 사이에 의견 충돌로 인한 
말썽이 생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국제 경찰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들은 보통 수완가들이 아니오. 프랑스의  어느 경
찰관에게든 그들은 상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실정이오."
   "그렇다면 당신의 짐이 더 무거워진다는 얘기군요. 분명히 말하지만 내 졸개들이 마스티
유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시오. 감옥에 투옥된 졸개들을 탈옥
시키는 일보다는 들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 더 쉬울 것이오. 그렇지 않소, 루돌피?"
   "그것보다 무덤 속에 남겨 놓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오."
   루돌피는 처음으로 토니의 말에 반박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당신은 이마에 혹이  생기도록 뭘 하고 있었소? 농
부 어니가 당신은 이제 좀 쉬는 게 좋겠다고 하던데, 지금에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소."
   "어니가 프랑스를 지휘하는 건 아니지 않소?"
   루돌피는 가시 돋친 말로 반박했다.
   "물론 프랑스 전체를 지휘하는 건 아니오. 그러나 우리  조직 내의 그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오. 그러한 그가 명령하는 거라면..."
   이것은 루돌피에게 있어 위협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을 죽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자에게까지 명령을 할 수는 없겠지?"
   "사자? 그게 무슨 뜻이오?"
   "보란이라는 이름의 사자 말이오."
   이 말을 들은 쌕쌕이 토니의 목소리가 쇳소리로 변했다.
   "루돌피, 보란은 사자가 아니오! 주위에 고양이들만 득시글대니까 잠시 사자 흉내를 냈을 
뿐이란 말이오!"
   루돌피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는 오늘 하룻동안 무장한 사내 20명을 죽였소.  그 20명의 사내들은 결코 고양이들이 
아니었소. 당신의 고양이들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역시 
뻔할 것이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이 말에 토니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유쾌하다는 듯이 
휘파람까지 불었다. 그는 루돌피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당구대 주위에 모여 있는 사내들
을 불러모았다.
   "지금부터 행동을 개시한다. 각자 미리 정해진 위치에서 철저히 근무하기 바란다. 보란을 
잡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치 말아라. 경우에 따라서는 파리 시민 모두를 죽여도 
좋다. 보란을 체포하기 전에는 미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 모두 알았지? 자, 그
럼 모두 출발해!"
   잘 훈련된 냉혈한들은 토니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 일당 중 저택 안
에 남은 거 쌕쌕이 토니  레버니와 뚱뚱보 윌슨 브라운밖에 없었다.  윌슨 브라운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편안히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토니의 입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그는 멍한 상태로 서 있는 루돌피에게 말했다.
   "나도 이제 사라질 시간이 된 것 같소. 내가  어디에 있을 것인지는 당신의 비서 로잔느
가 잘 알고 있소. 차나 한 대 내주시겠소?"
   "내 차를 이용하시오."
   루돌피는 몹시 신경질적이었다. 마음대로 지껄이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토니가 보란보다 
더 미웠다.
   "고맙소. 명령받은 내용을 절대 잊지 마시오. 그럼..."
   토니는 마지막 경고를 던지고 로잔느에게 눈을 껌뻑해 보인 다음 밖으로 나갔다. 브라운
은 샌드위치를 움켜쥔 채 루돌피와 여자에게 손을 흔들며 앞장선 토니를 따라 나섰다. 스포
츠카가 붕붕거리는 소리를 남기고 떠나자 루돌피는 로잔느에게 말했다.
   "오늘밤에야 나는 나 자신을 만났어."
   "그게 무슨 뜻이죠?"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는 루돌피를 바라보았다.
   "난 이제 하나의 허수아비일 뿐이야."
   루돌피가 한 말은 처절한 흐느낌과 같았다.
   "아직은 아니에요.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세요."
   "상처는 저절로 치료되겠지. 그러나 내 자존심을 결코..."
   "루돌피... 제가, 제가 도울게요."
   "아냐, 나는... 그레 당신이 도울 수 있는 사소한  일도 있어. 우리 친구 무슈 앙드루와를 
만나줘. 그를 만나거든 셀레스테의 집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줘. 그리고 모든 여자들을, 마
담까지도 알지에로 보내라고 해."
   "뭐라구요, 토머스? 그건 안 돼요!"
   로잔느의 음성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루돌피의 목소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로잔느, 그 계집들은 가장 추악한 노예 시장으로 보내야 해. 단 한 명도  남기지 말라는 
얘기를 강조해서 전해."
   "루돌피, 그건 너무..."
   "아냐, 생각을 해보라구. 그 계집애들이 배반하지 않았다면 난 오늘밤에 그  사자를 사로
잡을수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이 꼴을 봐."
   "그렇지만 루돌피, 알지에는 너무 심해요.  차라리 죽이는 것이 여자들로서는 편할  거예
요."
   "안 돼! 그 계집애들은 배신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해. 그것들은 알지에에서 끌려 
다니며 왜 그런 혹독한 고생을 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해. 내 눈에 흙이 들
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로잔느, 나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마."
   흥분한 루돌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알았어요, 또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어. 다른 일은 내가 직접 하겠어. 보란 그놈도 꼭 내 손으로 잡고 말거야."
   로잔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루돌피, 그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을 막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도 당신이 보란을 잡는다
는 건 좀..."
   로잔느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그녀는 이처럼 흥분한 루돌피를 본 적
이 없었다. 그녀는 루돌피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미치광이처럼 벌겋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아프리카의 야만적인 노예 시장에 여자들을 팔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 
사나이는 그녀의 토머스 루돌피가 아니었다.
  
     13.여배우 지지
   파리 경찰국 사령실에는 사법 경찰관들이 모여 피곤하고 고민스러운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의 의장인 듯한 간부 한 사람이 한 묶음의 서류를 탁자 위에 놓으며 입을 열었
다.
   "결론은 하나뿐이오. 그 냉혹한 미국인에 대한 소문이 라틴쿼터 지역에서는 꼬리에 꼬리
를 물고 퍼지고 있소. 알제리아의  테러단도 단 하루만에 그 정도의  일을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오."
   간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젊은 경찰관이 손을 들며 일어섰다.
   "반장님, 그렇지만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전혀 없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 흉악범을 
미국인 보란이라고 단정한다는 건 성급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사 반장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 봅시다.  첫째, 우리는 미 합중국으로부터 급전을  받았
소. 맥 보란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워싱턴 발 파리행 여객기 721기에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
는 내용이었소. 오를리 공항에서 우리는 그 남자와 인상 착의가 비슷한 남자를 만났소. 그러
나 그 미국인은 의삼할 여지도 없는 미국의 유명한 영화 배우 길 마틴이었소. 바로 그 직후 
길 마틴과 닮으 또 한 명의 미국인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통과했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되었소."
   "그건 저희들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까의 그 젊은 경찰관이 끼여들었으나 반장은 그의 말을 저지했다.
   "생, 나와 함께 사태를 계속 검토해 봅시다. 721기가 오를리 공항에 착륙한 지 채  한 시
간도 되지 않아서 생 미셸  역 부근에서 총격전이 발생했소. 피해자들의  신원은 잘 알려진 
지하 세계의 마피아들이었소. 그때부터 그  흉악한 미국인의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오.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는 길 마틴이 샹젤리제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소. 그런데 그 길 마
틴이 바로 영화 배우 길 마틴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여기에 도착한 후 2시간 동안 그는  어
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호텔의 수위는 그 사람이 도보로 도착했다고 강력하게 주
장했소. 그리고 그는 객실에 들기도 전에 호텔 프런트에서 차를 세내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반장님, 왜 길 마틴에게로 얘기가 흘러가는 겁니까?"
   "그래서 같이 정리해 보자는 거요. 차근차근 얘기하다 보면 뭔가 집히는 게 있을거요. 객
실에 들어간 길 마틴은 분명히 잠을 잤을 거요. 오후 늦게야 그는 모습을 나타냈소. 그는 다
시 호텔의 프런트 계원과 만났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만나겠느냐는  제의를 
무시한 채 세 낸 차를 타고 가버렸소."
   그 밖에도 반장은 셀레스테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얘기했다. 몇 시간 동안 계
속된 회의의 결과, 파리의 경찰관들은 논리적인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길 마틴이라고 칭하는 맥 보란은 파리의 경찰들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보란은 호흡을 조절하고 눈앞의  여자를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매끄럽고 아름다운 
피부, 많은 얘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눈동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는 새까만 머리카락, 그
가 결코 만난 적이 없는 아름다운 여자가 바로 눈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보란은 깨달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여자, 어떤 사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난감한 것인가를 보란은 한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여자
를 바라보고 있던 보란은 침대 옆에 의자를 갖다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보란의 탐색하는 듯한 시선 앞에서 그녀는 몸을 사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전 당신의 신분부터 알아야겠어요."
   보란은 갑자기 굳어진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이 방은 내 방이고, 그건 내 침대요. 그러니까 당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말하는  게 순서
가 아니겠소?"
   "천만에요. 여긴 길 마틴의 침실이에요."
   보란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주장을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말이 틀리진 않소. 내가 지금 그를 대신하고 있으니까. 자, 이제  얘기하시오. 내 
침대를 점령하고 있는 당신은 누구죠?"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신한다구요? 그렇지만 난 무슨 소린지... 어머,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어쨌든 난 길 마틴이오. 만일 당신이 나의,  아니 길 마틴의 여자가 돼줄 수 있다면  난 
침대 옆에 앉아 당신을 바라보는 걸로 시간을 소비할 생각이오."
   그녀는 보란의 말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습관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여자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길 마틴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꽤나 급한 성격이시군.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그는 지금 조용한 아침을 맞고 있을 테니
까요."
   "내가 누군지 알고 계세요?"
   "모르오. 당신이 누구든 난 상관하지 않소."
   그녀는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분이군요. 미안하지만 내 옷을 주고 고개를 돌리세요, 빨리요."
   보란은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 나오자 급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됐어요. 이제 돌아서도 되요. 난 곧 칸으로 떠날 거예요. 신사 양반, 죄송하지만 길 마틴
에게 전해 줘요. 지지가 사랑을 보낸다구요."
   "지지? 지지가 누구요?"
   "바로 나예요. 당신은 정말 형편없는 대역이군요. 지지 카르소도 모르다니."
   외출 준비를 마친 그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란을 쏘아보았다.
   "그렇지만 날 모른다고 해서 바보 취급은 할 수가 없군요. 당신은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
도 시원해 보여요. 어쩌면 길 마틴보다 나을지 모르겠어요. 지지가 그 얼굴을 점점 사랑하게 
되나 본데요? 미스터 대역, 지지가 가지 않는다면 무얼 하시겠어요? 그저 멍청히 앉아서 바
라보는 일만 하시겠어요?"
   보란은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글쎄... 지금 생각하는 중이오."
   그녀도 따라 웃었다.
   "그렇다면 빨리 대답해 주세요."
   "음...당신은 칸으로 가겠다고 했소? 당신을 따라 그곳으로 간다면 환영할 수 있겠소?"
   커다란 그녀의 눈이 더욱 커졌다.
   "어머! 정말이세요? 환영이에요. 혼자 차를  몬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지겨운 일이에요. 
제발 나랑 함께 가요."
   "당신이 운전할 거요?"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아마 당신이 하게될 거예요."
   "좋소, 지금 당장 떠납시다."
   보란은 유쾌하게 승낙했다.
   "아, 멋져요. 지금 당장이라니. 내 방으로 가서 옷을 좀 가져 와도 되겠지요?"
   보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웃었다.
   "그 모습 그대로도 내가 보기엔 훌륭한데?"
   "놀리지 마세요. 하지만 난 그런 미국인들이 좋아요. 대단히 충동적이니까요."
   보란의 볼에 가볍게 키스한 그녀는 깡총거리며 말했다.
   "미스터 대역, 15분 뒤에 로비에서 만나요."
   "차고에서 만납시다."
   "그래요, 전 아무래도 좋으니까요. 그렇지만 만나지 말자는 말만은 삼가해 줘요."
   수다를 떨며 그녀는 뛰쳐나갔고 문이 닫혔다.  보란은 뒷짐을 진 채 방안을  서성거렸다. 
정말로 그녀가 이 방안에 있었던가하는  의혹이 앞섰다. 그는 지금까지  그처럼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여자와 같이 있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 여자는 분명히 여기에 있었어."
   보란은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도 그녀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던 것
이다. 이제 그 여자로 하여 게임의 방향이 바뀔 것은 분명했다. 그는 이제 에덴 동산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것이다.
   보란은 지지라는 여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동안만이다."
   보란은 수차례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약속 시간이 되자 보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
장 차고로 향했다. 로비를 피하려는 속셈이었다. 차고에 도착한 그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근
무자에게 말했다.
   "지지 카르소가 나올 거요. 차를 준비해 주시오."
   차가 준비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출구로 나왔다. 번쩍번쩍 윤이 나는 롤스로이드가 대
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상한 예감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주위의 어느 
곳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그는 차의 뒤 트렁크에 짐을 넣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는 몹시 서두
르는 기색이었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뒤에는 두 개의 커다란 슈
트 케이스를 든 포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따르고 있었다.  지지가 포터에게 팁을 주는 것을 
보며 보란은 그녀의 슈트 케이스를 받아 넣었다. 지지는 굳은  얼굴에 입을 다문 채로 차의 
뒷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나란히 앞자리에 앉을 것으로  예상했던 보란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과 나란히 앉았으면 하고 생각했었는데..."
   보란이 말끝을 흐리자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핸들 밑에 모자가 있어요. 운전사가 쓰는 모자죠."
   "뭐라구? 나더러 그걸 쓰라는 거요?"
   보란은 지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객실에서의 상냥한 여자가 아
니었다. 
   "그걸 쓰는 거 저도 싫어요. 그러나 꼭 써야 돼요. 빨리 서두르세요."
   그녀의 눈동자에는 애원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녀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보란의 머리를 스쳤다. 모자를 쓰자  보란은 검은 안경을 
꺼내 코 위에 걸치고 서서히 차고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차고의 바깥 모퉁이에서 정복 경찰관들에 의해 그들은 정지 당했다. 그의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지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경
찰관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그는 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행동을 개시할 
정확한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자동
차의 문을 벌컥 열어 경찰관의 머리를 강타하고는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란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었다. 경찰관이 보란에게로 접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때 지지  카르
소가 창으로 얼굴을 내밀며 미소를 머금은 채 경찰관에게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유
명한 여배우지지 카르소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들은 미인과의 만남에 기분이 좋은 듯 뒤쪽
의 창으로 달라붙었다.
   "차를 정지시켜서 죄송합니다."
   경찰관은 모자를 쓴 채 앞을 주시하고 있는 보란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어서 가 보시죠."
뒤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보란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액셀레이터를 밟아 혼잡
스런 거리로 스며들었다. 그 거리는 경찰의 순찰차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
을 정도의 수많은 정복 경찰관들이 호텔 현관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보라는 그때서야 비로소 지지가 왜 자신에게 모자를 쓰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는 짐짓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길이 칸으로 가는 길입니까?"
   "할 말이 그것뿐인가요?"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정부리듯 말했다.
   "나는 충실한 운전 기사일 뿐입니다."
   지지는 보란의 등을 가볍게 꼬집으며 앞좌석의 등판을 눕히고 곧 보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충실한 나의 기사, 리용으로 가라는 도로 표지판을 죽 따라가세요."
   간드러지게 웃고 난 지지는 보란에게서 모자와 안경을 벗겨냈다.


   "무엇 때문에 파리의 경찰관들이 길 마틴을 찾는 거죠?"
   "아하, 그래서 경찰관들이 죽 깔려 있는 거군요?"
   "저에게까지 시치미를 뗄 작정인가요?  제가 그들을 만난  건 로비에서였어요. 경찰들이 
로비의 프런트에서 얘기를 하다가 당신을 체포하기 위해 객실로  몰려갔단 말예요. 이제 당
신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길 마틴의 행세를 하고 길 마틴은 그럼... 
아, 무서워요. 그럴 수가 없어요."
   보란은 이제 얘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용히, 어느 정도는 정직하게 대답했
다.
   "그건 당신이 잘못 생각한 거요. 길  마틴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저 
경찰들은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녀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잠시 보란을 바라보았다.
   "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모든 게 귀찮은 듯 좌석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보란의 옆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침묵을  지켰으며 자동차는 빠른 속력으로 달렸다.  그들의 
귀에 들리는 건 자동차의 엔진 소리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운전에 열중하고 있던 보란이 지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칸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까요?"
   "글쎄요. 그건 당신의 운전 솜씨에 달려 있겠죠. 그러나 앞으로 여덟 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없을 거예요."
   보란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과장된 제스처를 쓰며 말했다.
   "오호, 그렇게 먼 거린가요?"
   "당신 때문에 늦어졌어요. 열차를 탔어도 절반은 갔을 거예요."
   "미안하오."
   "미안한 표정이라곤 전혀 찾아볼 소가  없는데요? 그저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일  뿐이예
요. 어쨌든 미안해 할 건 없어요. 기차보다는 이 차가 더 편하니까요. 그리고 매력적인 남자
가 옆에 있고..."
   그녀는 어느 틈에 명랑한 기분으로  돌아와 있었다. 카 스테레오를  틀자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맞춰 휘파람을 불던 지지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난 타고난 사기꾼인가 봐요. 사실 영화라는 게 뭔지도 모르거든요. 영화에  출연은 하지
만 말예요. 그리고..."
   지지는 되는대로 지껄이며 보란에게로  다가와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보란은 갑자기 
당한 여자의 접근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음, 음..."
   그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어머, 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녀가 공박했다. 지지는 보란이 당혹해 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맞아, 당신이 총을 감춘 내 가슴을 쓰다듬고 있다는 뜻이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키들거리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잠
시도 쉬지 않았다. 보란은 그녀의 손놀림에 심한 전율을 느끼며 큰 소리로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도 연기의 하나인가요?"
   보란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고 보란에게서 떨어졌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미안해요, 미스터 대역."
   "아니오, 잘못 한 건 오히려 나요. 내가 괜히..."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도록 지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보란을 향해 몸을 밀착시키지도 
않았으며 죽은 듯이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렇다고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보란에게서 한번도 떨어지지 않았
다.
   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새 그들 앞에는 훤하게 뚫린 고속도로가 나타났다. 리용으로 향하
는 고속도로였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보란이 불을 붙이기  위해 차의 속도를 줄이자 지지
가 몇 시간동안 계속되던 침묵을 깨뜨렸다.
   "몇 년 동안 나는 프랑스의 거리에서 젊은 여자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는  얘기를 들
어 왔어요. 당신은 그 얘기를 믿나요?"
   보란은 이 엉뚱한 질문에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지지의 표정은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아니, 몇 시간 동안 겨우 그런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소?"
   "글쎄요, 갑자기 그런 얘기를 믿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납치범들이 여자를 훔쳐
다가 아프리카에 팔아 치운대요. 백인  노예 시장 같은 곳  말예요. 당신도 그런 얘길  믿어
요?"
   "믿지 못할 것도 없잖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수없이 일어나는 더러운 세상이니까."
   보란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언젠가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봤을 때 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신문에 난 
기사가 거짓말이 아니었나 봐요."
   보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저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하는 얘기로
만 생각하고 있었다. 지지는 보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그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
았다. 보란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이번에는 10명의 여자가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라틴쿼터 지역에 있는 
한 저택에서 그 사건이 발생했대요.  갈랑드 거리에 있는 집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군
요."
   보란의 얼굴을 살피던 그녀는 그에게서 어떤 반응을  발견했다. 정면을 주시하며 운전에 
열중하던 보란의 얼굴 근육이 갑자기 뻣뻣해지는 걸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미스터 대역, 파리 시민 중 그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그 집에서  많은 
악당들이 맥 보란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에게 살해당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납치됐다는 그 
여자들이 그를 도와 줬다나요? 그 벌로 악당 두목이 그 여자들을 납치해 지하 세계의 루트
를 통해서 알지에로 보내 버렸대요."
   보란은 자신이 뛰놀아야 할 에덴 동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마치 어
두운 하늘에서 활활 타오르며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 같은  꿈이었다. 그의 발이 액셀러레이
터에서 브레이크로 옮겨졌고 차의 속력이 서서히 떨어지더니 조용히 멈추었다.
   "왜 그래요? 무슨 볼 일이라도 있나요?"
   보란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돌아가야겠소. 당신과는 리용 공항에서 헤어져야겠군요."
   "안 돼요! 파리는 당신에게 위험한 곳이에요! 이제  그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결코 없어요!"
   보란은 지지가 왜 흥분하며 자신을 말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지, 난 돌아가야 해요. 아주 긴급한 일로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해요."
   보란은 셀레스테릐 집에서 생명을 구걸하던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미스터 대역, 당신이 찾는 그 사내는 파리에서 행방을 감춘 지 오래예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보란은 갑자기 불안을 느꼈다. 지지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란은 자신의 발이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인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지지?"
   보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전혀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답변했다.
   "나를 믿으시죠? 내 입에서 토머스 루돌피라는 말이 나와도 나를 믿을 수 있으시죠?"
   보란은 예기치 못했던 지지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는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당신이 루돌피에 대해서 무얼 알고 있소?
   그들이 탄 차는 도로의 한 옆에 멈춰 서 있었다. 지지는 보란의 질문에 대답대신 자신의 
손가방 속에 손을 넣어 신문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보란을 의식하지 않고 신문을 펼
쳤다가 다시 집어 운전대 위로 내밀었다. 보란과 비슷한  얼굴의 몽타주가 거기에 인쇄되어 
있었다. 몽타주 위에는 검은 색의 활자들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맥 보란이 파리에!"
   보란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속삭였다.
   "이제는 맥 보란이 파리에 없다고 하는 게 옳겠죠?"
   보란은 답변을 피했다. 
   "당신은 루돌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소?"
   "내가 루돌피를 안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에요.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루
돌피에 대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파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강조하는 거예요. 이젠  당신
이 파리로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잖아요? 거기에선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보란은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당신은 나에 대해 나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래, 앞으로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속해서 칸으로 차를 몰아요. 그리고 안전한 그곳에서 다음 계획을 세워요."
   보란은 갑자기 지지 카르소에 대해 무서움을 느꼈다. 태연자약한 그녀의 행동이 그런 생
각을 갖게 만들었다.
   "지지, 몽땅 털어놓기로 합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 모두를 나는 다 듣고 싶소."
   보란의 말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지는 보란의 간절함  따위에 말려 들지 
않았다.
   "안 돼요. 지금 모든 걸 털어놓는다는 건 시기 상조예요. 제발 날 믿으세요. 힘껏 당신을 
도울 테니까요, 맥 보란."
   지지는 이제 미스터 대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보란은 할 말을 잊은 채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제압 당한 듯한 자신이 조
금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를 몰면서 그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지지, 난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잔혹한 사람이오. 내가 만지는 것은  모두 잿더미
가 되고 말아요. 진정으로 날 위한다면 다음 도시에서 날 내리게 해 주시오."
   "보란, 난 잿더미 정도에 마음이 변하지 않아요. 강조하지만 끝까지 절 믿어 주세요."
   보란은 그녀의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를 몰랐다.
   "지지, 제발 부탁이오. 당신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겠소?"
   "당신이 아는 것처럼 난 평범한 영화 배우예요. 이름은 지지 카르소이구요.  그리고 보란
이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절대로 위험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려 드릴게요."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몹시 유쾌하다는 듯이. 보란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서서
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여자의 내부네 있을지도 모르는 계획적인  위험은 도전해 볼만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좋소! 당신의 말을 따르기로 하겠소. 그러나 당신이 만약 나에게 위험을 끼친다면 그만
한 대가를 당신은 치르게 될 것이오."
   보란의 위협적인 말에 그녀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유쾌하게 말했다.
   "계속 칸으로 달려요!"
   그러나 보란은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의 관계는 원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소.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다는 얘기요. 
그렇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행동한다면...  그러다가 당신이 내 적이라는 걸  발견하면... 
무슨 뜻인지 알겠소? 당신은 아마 엄청난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요."
   "듣고 싶지 않아요. 정면을 똑바로 보고 운전하세요."
   그녀는 보란의 말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보란은 신경질적으로 액셀러레이
터를 힘껏 밟았다. 지지 카르소의 내부에 뭔가 비현실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
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동료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 상황에
서 그녀의 연기를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보란은 그녀를  믿으면서도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
았다. 납치 당한 10명의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지지  카르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
다고 보란은 생각했다. 자신이 에덴  동산에서 뛰놀 수 없다 해도  그녀들의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4.리비에라의 별장
   리용으로부터 해안까지의 여행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계속되었다. 그들이 탄 롤스로이드 
차가 니스로 들어서서 장 메데상 간선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워진 시각
이었다. 보란은 생각에 잠겨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지는 보란이 찾는 특별 목적지까지 그
를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목적지란 한 미국 신문의 유럽 지사 지중해 사무국이었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차를 세운 그들은 각자의 갈 길을 향해 그곳을 떠났다.
   "난 당신에게 아주 특별하며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라구요."
   헤어지면서 지지는 그렇게 말했었다.
   보란은 전신 전화국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 다음 파리의 팡숑 드 생 제르맹에  전화를 
했다. 잠시 시간이 지체되고 나서 낸시 워커의 숨죽인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왔다. 
보란이 물었다.
   "난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천사야. 그저 걸어본 건데 거기는 어때? 아무 일 없어?"
   "아, 하나님! 그들이 당신 그림자를 찾아 도시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있어요! 지금 어디
예요?"
   "안전한 장소."
   "조심하세요. 국제 경찰까지 덤벼 들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오늘 새벽엔 그  사람들이 이
곳에 들이닥쳤었다구요."
   "그곳에? 당신 호텔에 말이야?"
   "그렇다니까요. 정말 무시무시한 자들이었어요. 길 마틴은 그들이 멍청하다고  화를 내지
만 내가 보기엔..."
   "이 전화를 어디에서 받고 있는 거요, 낸시?"
   "왜요? 내 방 바로 밖 복도에 있는 전환데요."
   "내가 길 마틴과 얘기할 게 있는데 그와 통화할 수 있겠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 사람 손을 다쳐서...  내가 전화기를 귀에 대주면 혹 모르
겠군요."
   "그 사람과 꼭 통화하고 싶소, 낸시."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요."
   짧은 시간이 흐른 뒤 곧 길 마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 당신은 나의 대역을 할 수가 없게 됐소. 그들은 가짜 길 마틴을 찾으려고 파리 시 
전체를 이 잡듯 뒤지고 있으니까. 그뿐 아니라 당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까지 들볶이고 
있으니. 국제 경찰이라면서 폼만 잔뜩 잡는 녀석들이 오늘 아침 이곳에 들렀다니까요."
   "그자들이 당신을 심하게 괴롭히던가요?"
   "빌어먹을. 그렇진 않았소. 난 침대 밑에 숨어 있었소. 죄 없는 낸시 워커만 닦달을 당했
죠."
   "그럼 당신은 그자들의 얼굴도 보지 못했겠군요?"
   "놈들이 떠나고 나서 창문을 통해 보기야 했지. 그런데 이것만은 분명하오.  그들은 틀림
없는 마피아였소.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소?"
   보란은 정중하게 대꾸했다.
   "지지와 같이 있소."
   "지지라니? 그게 누구요?"
   "당신의 사랑스런 옛날 친구 지지 카르소 말이오. 당신의 호텔 방에서 그녀를 만난 이후
로 늘 같이 지내고 있소."
   "참,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 그런데 난 그 여자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하긴 한 번
은 같이 일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마지막 순간에 그만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계획이 
전면 수정되었었소. 그런 여자가 내 사랑스런 옛 친구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오. 왜 그런  생
각을..."
   "길, 난 지금 농담하자는 게 아니오. 알겠소?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란 말이오. 분명하
게 대답하시오. 지지 카르소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요?"
   "직업상 평판을 통해 아는 사이일 뿐이오. 최근 들어 가장 반응이 좋은 여배우고 유럽의 
새로운 섹스 심벌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여자요.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오."
   보란의 목소리가 갑자기 침울해졌다.
   "알겠소. 이제 들을 얘기는 더 이상 없는 것 같소. 당신 말대로 내 정체는 백일하에 폭로
되었소. 당신이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이 떳떳이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게 해주겠소. 그
렇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시오. 경찰을 부르시오. 섣불리 당신을 경찰을  찾아 
거리로 나가면 곤란할 테니 말이오. 그들은 우선 총부터 쏘아대고 신원 확인은 나중에 하는 
족속들이니까."
   "빌어먹을, 싫소. 난 좀더 이런  생활을 즐기겠소. 어차피 위험한  건 마찬가지니까 말이
오."
   낸시 워커의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희미하게 들려 왔다.
   "알겠소, 영화관에서 만납시다."
   통화는 끝났다. 그리하여 에덴 동산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이내 그곳을 떠나 신문사 사무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지나 좁은 사무
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마침 볼일을 끝내고 나오던 한 남자와 마주쳤다.
   사무실 안은 무척 분주했다. 텔레타이프와  타이프라이터가 각각 한 대씩  서로 등을 진 
채 놓여 있었는데, 여사무원 둘이 그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보란과 그 사내는 잠시 동안 얼어붙은 듯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사
내의 시선이 여러 번 보란의 위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사무실 안으로 되돌아서며 
말했다. 극히 사무적인 태도였다.
   "들어오시오!"
   보란은 그를 따라 개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내가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은 그느 상대
를 덤덤한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사내는 문을 잠근 후 찬장으로  가서 술병과 두 개의 글라
스를 꺼냈다. 
   "얼음도, 믹스할 재료도 없지만 한 잔 하겠소?"
   "고맙지만 아무 것도 마시지 않는 게 내겐 좋을 것 같소이다."
   사내는 곧 술병과 글라스를 치웠다. 찬장문을 닫은 그는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에 걸터앉
았다.
   "새삼스레 내 소개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보란이 물었다.
   "아, 물론이오. 당신을 알고 있으니까.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해 주시오."
   그러나 보란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당신이 론 윌슨이오?"
   "아니오. 난 데이브 샤프라고 하오. 사무국장이죠."
   보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낸 신문의 기사를 읽고 자세히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소. 아마 두세 달 
전 같은데 마피아의 수출 관계에 대한 것일 거요. 약물 수송에 관한 거였던가? 그 기사보다
는 당신들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더 자세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소?"
   "담당자라면 그렇겠지요. 그건 론이 맡았었는데 그는 지금 터키에 나가 있습니다."
   "사무실에도 그 기사와 관련된 자료가 보관돼 있을 텐데?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의 명단과 
주소뿐이오. 이 지역 마피아와 사업상으로 관계가 있는, 또는 그렇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명
단과 주소를 얘기해 주시오."
   샤프는 음산하게 미소 지었다.
   "아,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  모두란 말이죠? 내가 왜 론  윌슨을 터키로 보내야 했는지 
짐작되지 않습니까?"
   보란은 만만찮은 사내라고 생각했다.
   "교환 조건이라면 명단을 넘길 수 있겠소? 하나의 정보를 주겠다는 얘기요."
   "뭐라구요?"
   "내가 왜 그 이름들을 원하는지,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당신께 알려 드리는 조건
이오."
   샤프는 보란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성냥이  다 
탈 때까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는 신경질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말했다.
   "당신이 그걸로 뭘 하려는 지는 천치라도 다 알 거요. 그리고 또한 어떤 천치가 그걸 제
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제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겠지요?"
   보란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난 그 명단이 이 신문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소. 마피아들의 명
단은 공공 기관에도 보관되어 있을 테니까. 내가 자유로운 몸이기만 하다면 일은 훨씬 쉬워
지겠죠. 그러나 난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없고 시간이 급하오. 난 지금 즉시 정보가  필요한 
입장이오."
   "무슨 이유로?"
   "그 이유가 거래의 몫 아니오? 내 교환 물품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잖소? 나는  단언할 
수 있소. 이 정보로 전 프랑스가 전율하게 될 것이오."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있소?"
   보란은 미소 지었다.
   "나는 사실만을 말하오."
   국장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늘 아침 파리의 '즐거움의 집'에서 납치  당한 10명의 여자들과 
관계 있는 얘기요."
   사무국장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럼 그 여자들은 정말 납치 당한 겁니까? 아프리카로?"
   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분명히 그렇소. 나는 그들을 이곳으로 다시 데려올 작정이오."
   "어떻게 말인가요?"
   "그건 당신에게 달린 일이오.'
   샤프는 당황했다. 그는 도의적인 사내였기 때문에  납치란 말을 듣자 더욱 몸이  떨렸다. 
잠시 동안 그는 담배만 뻑뻑 빨아 댔다.
   "캐비닛을 열어 보십시오. 세 번째 서랍이오.  IW라고 표시된 서류철이 있을 겁니다. 난 
화장실에 좀 다녀올 생각이오. 1분도 채 안 걸릴 겁니다. 내가 나가고 없는 동안 당신이  이
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내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오. 그건 당신 혼자의 문제니
까."
   보란의 상대방의 제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망설였다.
   "혹 화장실에 경찰과의 직통 전화가 설치되어 있는 건 아니오?"
   사무국장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난 천치가 아니오, 친구."
   그가 나가자 보란은 캐비닛의 문을 열고 세 번째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는 서류 속
에서 작은 메모 수첩을 발견했고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연필로 스케치된 인물상과 이
름들로 가득 메워진 그 수첩에는 그들의 나이와 기타 경력 사항들도 자세히 기재되어 있었
다. 봉투 속에는 마피아 요원의 사진도 몇 장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도 모조리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샤프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보란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돌아서며 의미 있는 미소
를 지어 보였다.
   "더 이상 당신의 시간을 빼앗지 않겠소. 내가 필요한 건 모두 구한 것 같소. 당신에게 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나를 위해 뉴스를 퍼뜨려 주시오. 해줄 수 있겠소?"
   샤프는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사망 예고 같은 것 말입니까?"
   "그렇게 불러도 무방하겠지. 그런데  중요한 점은 누구에 대한  소식이냐 하는 것보다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일이오.. 이제 곧 시작될 사건을 말입니다. 
기자 양반, 그들이 그 10명의 여자들을  붙들고 있는 한, 매 시간마다 마피아의  우두머리가 
한 명씩 죽어갈 것이란 얘기요."
   무슨 얘긴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사태
의 흐름을 알아챘는지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맙소사! 그러니까 그게 바로 당신의 방법..."
   보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게 바로 내 방법이오. 난 지금 내 말이 퍼뜨려지기를 바라고 있소. 마피아 녀
석들은 자기들이 죽어 가는 이유를 알아야 하오. 그들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그게 바
로 기사의 요점이오."
   "매 시간마다라고 했습니까?"
   "대략 그렇게 될 것 같소. 그 여자들이 자유롭게 풀려날 때까지 계속. 또  여자들이 돌아
오면 사실을 확인하는 일을 맡을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구해 주시겠소?"
   보란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빌어먹을, 좀 기다려요. 언제쯤 이 얘기를 퍼뜨리는 게 좋을까요?"
   "내게 두 시간만 여유를 주시오. 그 뒤엔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소. 어쨌든  일은 빠를수
록 좋소. 그리고 여자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은 어떤 방법으로 전하는 게 좋겠소?"
   "당신, 니스 텔레비전의 방송 프로를 보시오?"
   "보도록 해보겠소."
   보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후 그는 곧 사무실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피아에 관계된 서류 수첩, 이제 모든 정보는 보란의 주머니 속에 있는 셈이었다.  아마 
경찰들도 열이면 열 모두 그 명단을 갖고 있을 것이다.  명단에 기재된 쟁쟁한 마피아 간부
들의 이름은 전 세계를 상대로 일을 벌이는 조직 범죄 리스트에도 제일 먼저 오를 정도이니 
그들의 신경이 전부 그쪽으로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과 
법적인 승인을 얻어낼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법적 효력이 있는 증거를 손에 쥐고 있다 하더라도 기소를 시키거나 유죄 판결을 내리기까
지는 많은 과정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맥 보란에게는 그런 법적인 증거나 정치적인 
영향력 따위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보란은 그저 사실을 사실대로만 알면 그만이었다.  그
런데 그는 지금 그 비밀을 입수한 것이다,
   마피아의 토끼들은 그들이 숨을만한 구멍은 마련해 둘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 당장은 아
니라 해도 첫 번째 희생자가 고꾸라지자마자 곧 하나둘씩 구멍을 찾아 동분서주할 것이 뻔
했다. 보란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그가 가진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는 무슨  일
이 있어도 그것을 꼭 해내고야 말 것이다. 어쩌면 이제까지  그가 애써 피해왔던 거대한 악
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죽음도 불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승리란 매력적인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맥 보란은 다시 한 번 승리를 위해 그의 목숨을 저
당잡히게 되었다.
   그에게는 지지 카르소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었다. 현재의 상태로서는 그녀가 어느 편이
라고 단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그녀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의 성공을 위해 그녀를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는 결론
에 도달했다.
   지지는 그 지방을 잘 알았고 주민들과도 친교가 두터웠으며 무엇보다도 보란을 돕는 일
에 열성적이었다. 그 도움이 무슨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든, 보란의 입장으로서는 뿌리칠  필
요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혼자인 것이다. 지지는 차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좌석 
시트 위에는 묵직해 보이는 갈색의 커다란 물체다 길게 뉘어져 있었다.
   "어때요? 당신이 부탁한 건 찾아냈어요. 사냥용품  가게에서요. 끔찍한 무기더군요. 그걸 
운반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무슨 문제는 없었소?"
   "선량한 프랑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은요. 그런데  왜 이런 거대한 무기를 필요로 
하죠?"
   "사냥이 거대하기 때문이오."
   "판매원의 얘기로는 이것 정도면 성난 물소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달려
드는 물소를 향해 꽝! 그런데 애석하게도 리비에라 물소 따윈 없어요."
   지지는 몸 전체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일이 걱정이오? 그것이 걱정이라면 내게 맡겨요. 난  물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태도를 바꿔 말했다.
   "조금 전에 길 마틴과 통화했는데 그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더군, 지지."
   아주 조용한 음성이었다.
   "아, 저런..."
   "설명해 주지 않겠소?"
   "싫어요."
   한마디로 보란의 말을 거절한 그녀는 돌변한 태도로 말했다.
   "칸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세요. 별장은 중간 지점에 있어요."
   "우리 줄 모두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게 지옥으로 가는 중간 지점이  아니기를 바라겠
소."
   지지는 작지만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천국과 지옥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에요. 난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보란. 당
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 사실만은 알아 둬야 해요."
   "날 배반하면 안 돼요, 지지!"
   아름다운 해안 도시를 등지고 그들은 종려나무가 늘어선 해변 도로를 따라 달렸다. 잠깐 
동안 그는 마이애미와 팜 스프링스를,  또 다른 여러 전투지를  생각했다. 떠오르는 얼굴들. 
그는 순간적으로 그를 엄습하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느꼈다. 
   리비에라는 에덴 동산을 방불케 하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그러나 보란은 이미 에덴 동
산에서의 쾌락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자신의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상의의 앞섶을 열고 손 끝으로 
권총 케이스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지지는 그로부터 조금 떨어져  앉아 말없이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앞 유리창에 고정시킨 채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빠져 있어."
   "저도 당신에게 빠져 있는걸요!"
   그녀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대꾸했다.
   "우린 서로 잘 어울리는 협잡꾼인 모양이야."
   "그런가 봐요. 그렇지만 난 당신을 배반하지 않았어요."
   "왜 날 이리로 데려온 거요?"
   "당신을 구하려구요."
   "아, 천사같은 말이로군. 이런 큰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가 단지 나 같은 낯선  사람을 위
해서라니...."
   "내게도 내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당신과 함께 지낸  몇 시간동안에 그 이유가 점점 더 
명확해져서 이젠 거의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됐어요."
   보란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지, 만일 그 별장이 우릴 특별히 환영한다면 우린 둘 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그
걸 깨달아 주기 바라오."
   "환영이라니요?"
   "함정 같은 것 말이오. 덫, 올가미."
   "지지의 별장에는 복병 같은 건 없어요."
   보란은 그게 사실이기를 바랐다. 사실 그녀를 믿고 싶다는  감정 뒤에는 이 아름다운 리
비에라의 휴양 도시를 앞으로 그가 치러야 할 계획과 작전을 용이하게 해줄 사령 기지로 삼
고자 하는 계산이 숨어 있었다. 모나코와 니스, 칸,  생 트로페, 몬테카를로, 그리고 주앙 레
피나, 생 카페라 같은 국제적인  고급 사교 클럽들과 하릴없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을 
사정권 안에 두는 공격 지점이 그에게는 꼭 필요했다. 그 별장이야말로 지지의 얘기가 사실
이라면 보란의 계획을 위해서는 완벽한 장소였고 그러니만큼 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찾아
볼 만한 곳이었다.
   "당신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아요."
   지지가 넌지기 말했다.
   "아니, 화나지 않았소,지지."
   그러나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또 다른 협잡꾼을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매춘부가 
됨으로써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그 세련된 영국 여자 때문이었다. 지옥 속으로 뛰
어들어 삶의 참된 맛을 보고 싶다는  그녀는 바로 이 순간, 세상에 남겨진  모든 지옥 중의 
최악의 지옥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커다란 젖가슴을 자랑하며 
곱게 화장된 젖꼭지를 가진 붉은 머리칼의 여자와, 그의 몸을 벌거벗은 따뜻한 몸으로 문지
르며 '메르씨'를 연발하던,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여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여자도 있었다. 사는 것에 대해 고통으로 찌푸린 얼굴에 입술을 짓씹으며 그를 노려보
던 여자, 그렇다. 보란은 화가 치밀었다. 이제 그  분노는 무시무시한 폭풍을 몰고 리비에라
의 하늘을 가득 덮을 것이었다.
  
     15.선전포고
   별장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보란의 작전 계획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장소였다. 작은 만과 해변을 굽어보는 나지막한 벼랑 위에  지중해 특유의 양식으로 세워진 
이층의 원형 건물이 감춰져 있었다. 자물쇠가 채워진 대문, 양쪽으로 펼쳐진 평평한  빈터는 
이 별장으로 침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설계된 것  같았다. 뒤쪽으로는 우아하게 가꾸
어진 정원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판판한 바위 포석이 깔린 길이 보였다. 정원 너머에는 해변
과 보트 선착장이 있고 해변에는 새로 칠을 한 멋있는 쾌속정이 지중해의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란의 제안에 따라 지지는 별장지기와 잡일을 맡고 있는 늙은 사내와 그의 딸을 내보냈
다. 그들이 떠나자 보란은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사냥용품 가게에서 사들인  짐꾸러미
를 별장 안으로 옮긴 다음, 그 거대한 라이플을 일일이 작은 조각으로 분해했다. 그는  부속 
하나하나를 세밀히 조사하고는 기능을 검토해 본 뒤에 기름칠을  해 재조립을 해두었다. 그
것은 탄창 삽입식의 벨기에 모델이었다. 444구경의 강력한 강철 탄피의 탄환을 사용하게 되
어 있었는데 총대에는 20배의 확대 망원 렌즈와 파인더가 부착되어 있었다.
   보란은 라이플과 탄환 한 꾸러미를 들고 만으로 나갔다. 시험 사격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지지는 그의 곁에 다리를 꼬고 앉아 거대한 라이플을 움직이며 조준하고 망원 렌즈를 사용
하여 사격하는 보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일로 20분이 소비되었다. 사격이 끝났을 때 그녀가 물었다.
   "성능은 어때요? 좋은 총인가요?"
   그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렇소, 지지. 완벽한 총이오."
   그는 지지에게 망원 렌즈를 통해 시야를 잡는 방법과 라이플을 다루는 방법 등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직접 한 번 해봐요."
   상의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며  보란은 몇 번이고 라이플의 사격 반동에  유의할 
것을 주의시켰다. 그녀가 원하는 표적을 정하고 망원 렌즈를 조절해  준 뒤 그는 뒤로 물러
섰다.
   여자가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표적을 시야에서 놓친 그녀는 사격 후의 극심한 라
이플의 반동 때문에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보란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화를 내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어깨를 문지르며  라이플
을 쏘아보았다. 그때 총대가 햇빛을 받아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왜 남자들은 이런 것을 좋은 총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보란은 반동 때문에 충격을 받은 그녀의 어깨에 장난스럽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두 손
으로 보란의 얼굴을 가볍게 감싸쥐고 이번에는  진짜 마음에 드는 표적을 발견했다는  듯이 
상대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둘은 어느새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하나
로 겹쳐졌다. 보란의 손이 여자의 젖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때 갑자기 뒤로 한 걸음  물
러서며 지지가 소리쳤다.
   "저길 봐요!"
   보란이 돌아다보았으나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뿐이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
렸을 때 지지는 이미 보란을 지나쳐서 앞을 달리고 있었다.
   "아, 지지!"
   보란은 투덜거리며 그녀를 따라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지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준비하는 동안  보란은 라이플을 다시 분해해 기름칠을  하고 
있었다. 먼저 일을 끝낸 그녀는 말 한 마디 없이 그의 옆자리에 돌아와 앉더니 조용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커피와 샌드위치만의 간단한 점심 식사가 끝나자 그녀가  물었다. 오랫동안 참아 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 말해 보세요. 당신 내부에 가득찬 게 뭐죠? 내가 알아맞혀 볼까요? 그건 살기예요. 
당신의 첫 희생자가 될 인물은 누구죠?"
   "난 여자들을 구출해야 해, 지지."
   "어떻게 말인가요? 그 흉악한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얘기겠죠?"
   "그래, 바로 그걸 이용할 거야."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뭐예요?"
   "프랑스를 무대로 활약하는 지방  조직 범죄단의 우두머리들 명단이야.  난 이미 여자들 
모두가 무사히 풀려날 때까지 그들을 매 시간마다 한 명씩 살해할 것이라는 말을 퍼뜨려 놓
았소. 지금쯤 TV 전파를 타고 그 뉴스가 쫙 퍼져 나갔을 거요."
   그녀는 깜짝 놀라 보란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그건 단순히 선전 효과를 노린..."
   "그렇지 않소. 여기 내 첫 번째 희생자가 될 크로르 드 샹이 있소. 누군지 알겠소?"
   그는 수첩을 뒤적이다가 그 속에서 연필로 스케치된 몽타주  한 장을 꺼냈다. 지지는 천
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아는 사이예요. 그는 지금 카지노에 있을 거예요. 요트를 굉장히 좋아하죠."
   "표면적인 정보뿐이오. 그래선 안 되지. 그자는 매년 비합법적인 약품 거래로  약 2000만 
프랑을 긁어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수품까지 암거래하고 있소. 마르세유에서만 해도 불
법적인 사업에 대한 대리 행위로써 매주 1만 프랑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지. 그런 녀석이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 봤소, 지지? 그런 녀석이  납치된 10명의 여자들 목숨만한 가
치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느냔 말이오?"
   "당신을 돕겠어요."
   지지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당신이 도와줄 거라고 믿고 있었소. 그러나 방법은 하나뿐이오. 리비에라의 지도를 하나 
구했으면 싶은데... 자세하고 선명한 것이면 더 좋겠소."
   "네, 있어요. 측량 지도, 해양  지도, 게다가 도로 사정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도 있어요. 
어떤 걸로 드려요?"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거주지를 표시하려는 거요. 그 일을 도와 줬으면 좋겠군. 바로 지
도 위에 표시를 해 줘요. 내가 그들의 주소를 부를 테니."
   그녀는 여러 장의 몽타주를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리비에라 주민은 모두 한식구나  다름없어요. 이 사람들 대부분은  잘 아는 사람들이란 
말예요. 그런데 정말 이 사람들이 맞나요? 너무 놀라워서 그래요. 당신 정보가 정말 확실한
가요?"
   "확실하오."
   "이제는 개인적인 흥미까지도 일어나는데요,  보란. 그런데 더  나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지지는 리비에라를 손바닥처럼 잘 알거든요. 그러니 내가 당신의 기사가 될 수 있지 않겠어
요?"
   "그건 안 돼."
   "그럼 소문을 내 버릴 거예요."
   "진정으로 하는 소리야?"
   "내게 정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세요, 보란."
   그는 다시 몽타주를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지도를 가져 와요."
   지지는 보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며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한 뭉치의 지도
를 들고 나타났다. 하나하나 검토해 가며  보란은 주의 깊게 그것들을 분류했다. 결국  그는 
리비에라의 해변 지역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지도 몇 장을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
   지지가 연필과 테이프를 가져 왔다. 보란은 한동안 지도를  자르고 다시 이어 붙이는 일
을 계속하였다. 지지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그믐 몇  장의 지도를 종합하여 해변 지
역 전체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 장의 지도를 완성해 냈다. 그 다음 작업은 연필을 사
용하는 일이었다. 모나코로부터 마르세유까지의 해안 지역을 그는 여러 개의 바둑판 모양으
로 분류했다. 그렇게 해서 나누어진 각 구역마다 그는 사진을 붙였다. 생 트로페에는  3장이 
붙여졌고, 그 3장의 사진은 지지의 별장을 중심으로 삼각형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었다.
   작업을 끝낸 그는 일어서며 지도를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됐어. 이제 순서가 정해졌어."
   "난 혼란스럽기만 한데요?"
   시계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보란이 설명을 시작했다.
   내 다음 행동을 그 자들이 알아챈다면 곤란한 일이니까 우선 그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거요. 무슨 소리냐 하면, 내 갈 길이  뚜렷한 직선이라면 누구나 내 다음 행동을 짐작할  수 
있을 테지. 그러니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서 그들의 정신을 혼란시킬 거요. 지그재그 식
으로 오락가락 그들 앞에 얼쩡거리는 거지. 드샹, 최초의  목표물이오. 그를 찾을 수만 있다
면 정각 2시가 그 공격 시간이 될 것이오. 만약의 경우 실패한다면 뷰카루가 다음 표적이오. 
모엔느를 조금 벗어난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최후를 맞게  되겠지. 둘 중에 하나를 처치하
고 난 다음에는 니스 바로 아래의 제 4번 구역을 공격할 예정이오. 그곳에서는 첫째 코르뷰
니를, 그게 불가능하다면 대신 베나르를 처치할 예정이고. 그리고는 다시 몬테카를로로 되돌
아 와서 헤베르를 처치하는 거요. 사진 갖고 있소?"
   지지의 몸이 고통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네, 있어요."
   그는 여자의 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냉혹하게 계속했다.
   "대낮에 공격하는 거요.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들이 내뿜는 피의  색깔이 어떤 빛인지 
모든 사람들에게 볼 수 있도록 하겠소. 그건 흔한 영화의  촬영 수법에서 쓰이는 초콜릿 시
럽이나 물감이 아니오. 진짜 뜨거운, 그러나 더러운 피요. 숨이 끊어졌는데도 다시 일어나서 
코카콜라를 마시는 영화 촬영이 아니란 걸 알아둬요, 지지. 그들의 몸뚱이 일부가 떨어져 나
가거나 심하면 그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될 거요.  죽음의 순간에서는 그들도 비명을 지
르고 짐승처럼 벌벌 기며 끝내는 발악하겠지. 예의상 단 한 방으로 완료할 생각이지만 뜻대
로 안 될 경우에는..."
   "알았다고 했잖아요."
   "아까 만에서 당신에게 총을 만지게 했던 것은 눈앞의 분명한 현실과, 현실을 안다는 것
과의 차이를 당신 스스로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소. 어깨의 충격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일을 그 총은 해치우는 거니까. 그건 장엄한 죽음의 축제를 위한 무대 음악이오.  총
구 끝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이 두렵다면 그 방향으로 나서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얘기
요. 달려드는 물소라도 능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판매원의 얘기는 전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오, 지지. 라이플의 파괴력은 4000파운드의 농축 화약의 효과를 발휘하는 거요. 다
시 말하자면 이 거대한 444구경 탄환이 한번 발사되면 인간의 뼈와 살덩이 정도는 모두  그 
자리에서 박살나고 마는 거요. 물론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이지."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 장소에는 결코 당신을 데려갈  수 없다는 얘길 하고 있는  거요. 어떤 경우에라도 
말이오."
   "내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런 경우에도 물론. 당신이 나를 방해할 작정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조용히 앉아서 마
음을 가다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요."
   "난 당신이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있기를 바라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요?"
   "왜 그런 생각을?"
   그녀는 미묘하게 몸을 꼬며 보란을 올려다보았다. 유럽  최고의 섹스 심벌다운 몸짓이었
다.
   "난 그 동안 정직한 편은 아니었잖아요?  지금 당신이 날 그처럼 믿는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요. 정말 날 믿는 거예요?"
   "가끔 인간은 본능을 믿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는 법이오."
   "그럼 당신은 지지를 믿는 게 아니고 본능을 믿는 건가요?"
   그는 웃었다.
   "그게 그 얘기 아니오?"
   그녀도 따라 웃었다.
   "그래요?"
   "좋소. 이제 일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당신은  지도 위의 이 지점들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도록 날 도와주시오. 한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돼요. 아주 작은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이에요. 절 믿으시잖아요?"
   보란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들
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서 지도 위에 표시된 순서대로 전투 지역을 따라 손가락을 짚어 
갔다. 그 일이 끝나자 보란은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차고에 세워둔 또 다른 차 한 대는 어떤 종류요?"
   "미국산 스팅레이예요."
   "성능은 좋소?"
   "그럼요. 그걸 쓰시겠어요?"
   "글쎄."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쩌죠? 이 사람들이 여자들을 구출하는 데 아무런  역
할도 할 수 없다면요."
   "그들 스스로가 방법을 제시해 주겠지. 내가 원하는  뉴스가 제대로만 퍼져 준다면 말이
오. 아 참, 잊을 뻔했군! 이곳에서 니스 텔레비전의 채널을 잡을 수 있소?"
   그는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그것을 켰다.
   "텔레비전은 왜 갑자기?"
   그는 장비들을 챙기는 일에 열중하면서 대꾸했다.
   "내가 원하는 뉴스가 발표될 시간이오. 혹 망원경 같은 거 있소?"
   "네, 잠깐만요."
   그녀는 옷장 문을 열고 가죽 케이스에 싸인 것을 꺼냈다.
   "내 장비들과 같이 놔둬요."
   그녀는 몸을 조금 떨었다. 꽤 흥분한 모양이었다.
   "당신은 텔레비전도 쌍안경으로 보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키들거리며 말했다.
   "지지, 당신은 대체 언제쯤이나 진지해지겠소?"
   그러면서 보란은 웃음을 거두고 텔레비전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지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보란의 시선을 따랐다.
   세계적으로 공통 현상인 메마르고 위압적인 말투로 뉴스 캐스터는 작은 네모 상자 속에 
갇힌 채 빠르게 말을 쏟아 놓고 있었다.
   "저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요?"
   뉴스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지지는 대답했다. 
   "당신에 관한 뉴스예요. 납치당한 여자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범죄 조직의 각 
고위 간부들이 한 시간마다 살해될 것이라는 얘기였어요. 당신을  피에 굶주린 악마라고 표
현하는군요. 경찰 측은 당신을 방해하기로 걸정했다는 거예요."
   그는 갑자기 킬킬거리며 웃어 댔다. 커다란 라이플을  어깨에 둘러메고 나머지 장비들을 
두 팔로 안은 그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는군. 날 돕고 싶거든 계속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말아요. 여자들이 풀려
나면 그 즉시 그 채널에서 소식을 전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지지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맥 보란은 스팅레이의 트렁크 속에 장비들을 쑤셔 넣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떨며 남자
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가 뒤에서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보란은 몸을 돌려 여자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여자를 밀치며 그대로 차에 올랐다.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문에 전등이 있어요! 낮인데도 그 등이 켜 있거나 밤인데 그 등이 꺼져 있으면 집 안
에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는 경고로 생각하세요. 아셨지요?"
   "알았소."
   보란은 음울한 미소를 흘리며 엔진을 작동시켜 도로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나갔다. 잠시 
후 그는 대문을 벗어나 예정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제 1의 목적지는 모나코 남쪽 구역이었다.
   목표물은 사교 클럽 간부인 클로드 드 샹. 총기는 벨기에제 맹수 사냥용 라이플.  임무는 
적을 처벌하는 것. 방법은 사형 집행. 이것으로서 리비에라 전투의 막이 오른 것이다.
  
     16.물소 사냥
   윌슨 브라운은 두려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들어섰다.
   "이봐, 그 보란이라는 고양이 같은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래, 그래! 나도  들었어! 애들을 이미  공항으로 보냈어. 이제  새미가 돌아오기만 하
면..."
   쌕쌕이 토니는 중얼거리며 손을 전화기 위에다 올려놓았다.  당장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
면 그대로 박살을 내버리겠다는 투였다. 그러나 브라운은 계속 지껄여 댔다.
   "빌어먹을, 내 생애에 가장 기막힌 얘기였어. 보란이란 놈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 버렸
으니. 알겠소? 우린 닭 쫓던 개 꼴이라구..."
   "그놈은 멍청한 자야! 그런 말을 함부로 떠벌이다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수
작이지. 곧 우리는 그놈을 붙잡게 된다. 두고 보라구. 염려할 것 없어, 브라운."
   "바로 그게 기막히다는 얘기요.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어  있다는 사림을 그자도 모를 리
가 없잖소. 그런데 바로 그게 보란의 방식이거든. 베트남에서도 같이 일할 때도 그런 식이었
으니까. 병든 아이, 늙어빠진 이들을 일일이 보호해 주려고 기를 쓰는 친구였지. 베트콩들이 
바로 뒤에까지 따라와도 그런 일에 더 신경을 쏟았소. 그래서 난 그가 황인종, 그  노랭이들
을 정말 좋아하는가보다고 생각했었다오. 한 번은 이런 일도..."
   "그만 닥쳐! 그 녀석에 대한 영웅 대접은  자네 혼자 실컷 하라구. 내 앞에서 다시  그런 
말을 늘어 놓았단 봐라. 그래서? 자네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보란한테 반했나? 새미가 돌아
오는 대로 우린 니스를 향해 출발해야 한단 말이야. 정신차리라구!"
   "내 짐은 벌써 꾸려 놓았어."
   검둥이 거인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의 두 눈은 마치 도굴된 무덤처럼 뻐꿈해 보였다.  그는 문을 나서며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그렇지만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얘기는 아니야."
   사실 좀 일찍 태어나기만 했더라면 클로드 드 샹은 바글바글 볶은 노랑 가발을 쓰고  보
석으로 장식된 코담배를 물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루이 16세의 법정에 서서 늘어지게 하
품을 한다거나 근엄한 눈빛으로 초라한 범법자를 날카롭게 쏘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
니면 특권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농노들이 굶주림 속에서 죽어 가고 있는 동안 거창하고 
호화스러운 왕궁의 파티 석상에서 방탕한 귀부인들과 춤에 열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는 자신이 철가면의 직계 후손이며 정통 귀족의 핏줄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얘기를 액면 그
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또한 무조건 반박할 수도 없다는 점이 주위 사람들의 두통거리
였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왕에 의해 무참하게 처형된 그 인물은  아직도 그 역사적 존재 유
무조차도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로드 드 샹은 그 철가면이 왕의 감춰진 아들이며 동시에 프랑스 황태자의 형제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가끔 칸  근교 마르케리트에 있는 요새를 방문했다. 거기서  그는 
그의 조상이 11년 동안이나 죄수로 투옥되어 있던 음침한 돌 감방을 슬픈 눈으로 들여다보
곤 했다.
   그는 또 해변에 있는 자신의 저택 대문 양쪽에 철가면의 복제품을 걸어 두고 있었다. 마
치 성채와 같은 그 별장의 무도장에는 거대한 칼이 열 십 자로 교차되어 있었는데 그  아래
에 육중한 갑옷과 투구를 놓아 두었다.
   그러나 막상 철가면을 썼던 사람은 그처럼 훌륭한 갑옷이나  투구, 칼 따위는 결코 가져
본 적이 없었을 것 같았다.
   그것은 클로드 드 샹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가 이중 생활로 큰 돈을 만지기 전까지는 엄
두도 낼 수 없었던 값비싼 장식품들이었으니까.
   그는 제 2차 대전 중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시 현재의  부를 이룰 만한 일보를 내디뎠다. 
젊은 드 샹은 레지스탕스보다는 적과 내통하거나 공모하는 일이 훨씬 더 실제적이고 안전하
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항상 영리한 기회주의자였던 드  샹은 파리를 해방시킨 연합
군이 파리로 진주하자 레지스탕스 요원들이 쓰던 라이플을 손에 들고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거리고 나섰으며 프랑스의 영원한 보배인 여러 가지 예술  작품들, 즉 전리품들을 효과적으
로 이용하기 위해 잘 감춰 두었다. 이때의 처신이 평생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
가 될 줄은 영리한 그도 아마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전리품들을 팔아 넘기는 과정에
서 그는 점점 더 불법적인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50데 중반이 되었을 무렵의 드  샹은 
좀더 안전한 프랑스의 거대한 범죄 조직의 고위 간부가 되는 길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믿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그의 사회적인 야망도 점차 커져  갔
다. 맥 보란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합중국 육군에 입대했던 그 시기에  클로드 드 샹은 
호화로운 국제 여객기에 몸을 싣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에 그는 그의 영광스러운  과거와의 
관계를 조작해 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맥 보란에 대해 품고 있는 개인적인 경멸감은 거의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막
역한 친구이자 사업상 밀접한 동료이기도 한 폴 뷰카루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조금도 걱정할 필요없어, 폴. 우선 떠들썩하게 소리부터 길러 놓고 시작하는  게 미국식 
아닌가? 그건 위협뿐이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얘기 모르나? 그 녀석이  프랑스에 온 건 
겨우 하루나 이틀이고, 그를 추적하는 그림자가, 우리 친구들만이 아니라 경찰도 그렇고, 들
끓고 있지 않은가? 그 녀석은 현재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인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를 
찾아낼 것이며 혹 찾아낸다 한들 무슨 수로 우릴 처치하겠나?"
   그러나 사회적 명사였다가 몇 년 전에 맏은 재정적인 타격으로 드 샹의 영향권 내에  발
을 들여 놓게 된 뷰카루는 몹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얘기야. 그러니까 하는 소린데 어떻게든 우리가 루돌피를 만나서 그 
미친 녀석을 미리 처치해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루돌피에게 전화해 주겠나?"
   "물론 걸어보겠네, 폴. 루돌피와 만날 약속을 정하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다이얼을 돌리
기로 자네와 약속하겠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침묵을 지키며 절대로 반응
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거지. 공포란 결코 우리의 동지가 아니거든. 이런 때 당황한 꼴을 보
인다는 건 우리가 죄인이라는 걸 스스로 만천하에 고백하는 결과가  되는 거니까. 내 말 알
아들었나?"
   뷰카루의 한숨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그는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내 처한테 그렇게 얘기 좀 해주게, 클로드. 난 비비안느가 내 비밀을 알아 버린 날을 저
주한다네. 그 사람은 아직도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지하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네."
   드 샹은 여유 만만하게 낄낄거렸다.
   "내 생각에는 자네가 그녀와 결혼했던 날을 저주해야 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비비안
느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도 잘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가? 그건 그렇고 자네에
게 전해줄 말이 있네, 폴. 그 미치광이를 처치하고 나서 우리 같이 카프리로 요트  여행이나 
갈까? 어떤가? 건장한 두 사내와  가장 섹시한 프랑스 미인을 데리고  말일세. 이런 정도의 
제의면 제아무리 비비안느 같은 여자를 아내로 둔 자네라도 군침이 돌걸?"
   뷰카루는 피곤하다는 듯 대꾸했다.
   "어서 루돌피나 찾아 주게, 클로드. 이번엔 그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뭐라고 변명하든 
말하지 않을 작정이네. 물론 비난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시기가 아주 나빴어. 그에게 전
하게. 여자들을 다시 데려다 놓으라고 말이야."
   "염려 말라니까!"
   드 샹은 온갖 장식품으로 가득 찬  방으로 들어가 그의 자랑스러운 조상이 남긴  엄청난 
값의 수집품들을 흡족한 눈으로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발코니로  걸음을 옮겨 자신의 작은 
왕국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미국의 하찮은 깡패 나부랑이가 이 엄청난 왕국에다 도전장을 내밀 수 있
단 말이냐? 이 땅은 리비에라의 명소이며  그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이다.  그의 발 아래에 
있는 무도장은 유럽의 온갖 왕족들과 특권 계급들이 열광해 마지 않았던 곳이며 이 저택의 
주방은 상류 계급들의 가장 까다롭고 미묘한 입맛을 감탄시켰던 일류급 요리사들의  집결지
였다.
   사실 겁에 질린 뷰카루와 통화하면서 그가 나타냈던 태평함 뒤에는 약간의 위선이 숨어 
있었다. 그 역시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늙은 뷰카루의 불안함에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드 샹은 헛기침을 하면서 남
쪽으로 펼쳐진 숲을 내려다보기 위해 난간에 바짝 다가섰다.
   자신을 향해 총알이라도 날아오기나 하는 것처럼 불안해하던 뷰카루와의 통화를  생각하
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 되지. 나 드 샹은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나...
   여러 마리의 그레이트 데인이 안쪽 울타리 주위를 코를 킁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겁 
없는 그 미국 총잡이가 울타리 안에서 발버둥치는 꼬락서니를 그는 보고 싶었다. 그러면 그 
미국놈은 사자 우리에 갇힌 것처럼 겁에 질릴 테지. 그렇다. 나는 그런 분명한 결과를  위해 
싸운다. 두고 보자. 이 철없는 건달 녀석아!
   개들 주위에 조련사인 피에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그의 애완 동물들의 훈련 실적
에 대해 기뻐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드 샹은 피에르를 향해 소리쳤다.
   "그놈들 아주 당당한데! 그런데 배가 고픈 것처럼 보여!"
   조련사의 허리에는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총신을 툭 건드려 경의를 표하
며 소리쳐 대답했다.
   "무슈,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이놈들은 사냥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습니다!"
   드 샹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들어 저택의 남쪽 경계선 부근을 바라보았다. 해안
으로 이르는 국도가 그의 영지를 관통하고 있었다. 저택으로부터 약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서부터였다. 그 부근에 밝은 갈색의 차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띄었다. 사람으
로 보이는 물체도 있었다. 그는  곧장 기념품을 쌓아두는 방으로 되돌아  가 망원경을 찾아 
들고 다시 발코니로 나왔다. 그는 자동차의 바퀴에 초점을 맞추고 눈을 크게 떴다. 점차  표
적이 뚜렷해졌다.
   "피에르, 남쪽 문을 열게."
   그는 다시 한 번 표적을 살피기 위해 주의 깊게 망원경에 눈을 들이댔다.
   자동차는 미국식 모델이었다. 차의 지붕  위에는 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가 뭔가를 들고 
길게 엎드려 있었다.
   드 샹은 렌즈의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는  흥미 있다는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 순간 
그는 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가 된 것이었다.  그를 달아나도록 권유하는 그의  본능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은 뿌리를 내린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망막에 새겨진 마지막 광경은  커다란 라이플의 총신에 부착된 
조준 망원 렌즈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 사나이와 긴 라이플 총구 끝에서 풀썩 솟아 나온  희
미한 연기뿐이었다.
   강력하 추진력을 자랑하는 444구경의 탄환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정확히 목적지에 도달했
다. 그것은 먼저 망원 렌즈를 통과해서 그의 목에 구멍을 내고 쏟아져 나오는 피에 젖은 채 
그 부근의 모든 살점을 짓이겨 버렸다.
   망원경은 풀잎처럼 알아서 정원으로 떨어졌다. 그 망원경의  주인은 뒤로 밀려나 프랑스 
식의 문에 부딪히면서 기념품들이 빽빽이 들어찬 방에 널브러졌다. 벚나무로 만들어진 마룻
바닥 위로 시뻘건 피가 흘렀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의 작은 지하  왕국을 지배하던 한 위선적인  군주는 목숨을 잃었다.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철가면마저도 그의 목숨을 위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스팅레이는 국도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사냥용 라이플이 일으켰던 커다란 굉음의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의 빠른 시간이었다. 보란은 모엔느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리하여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운 해변 도로를 들어섰다.  거기서부터 그는 가장 가까운  출구를 통해 
남쪽 순환 도로를 지나쳐 내륙 지방으로 연결된 차도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니스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코스를 택하여 계속 달려갔다. 그는 운전대 위에  지도를 올려놓고 그 지도에 따
라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그 동안  그는 두 번 뒤를 돌아보았고 한  번은 양떼들이 도로를 
가로막는 바람에 차를 세우기도 했다.  그가 도시의 남서쪽 외곽 그의  목표 지점에 다다른 
것은 계획보다 5분이나 빠른 시간이었다. 그는 알레 코르뷰니의 저택을 향해 지름길일 택해 
달려갔다.
   운전석 앞의 계기판 위에는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과 숱이 많은 
눈썹, 굵게 주름진 앞이마, 넓은 턱, 그리고 음산한 입술을 가진 사내였다. 터키로 달아난 신
문 기자 론 윌슨의 보고에 의하면 코르뷰니는 2차 대전 뒤의 음울한 이탈리아에서의 시절부
터 거물로 성장할 기미가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패전국  이탈리아에 제공되는 미국의 구호 
물자를 실은 비행기를 공중 납치하여 그  물건을 지급받아야 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엄청난 값에 팔았던 것이다. 이때 그는 암시장을 통한 거래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모든 지
하 세계의 국제적인 회합과 관련을 맺기 시작하면서 급성장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마약
과 장물을 다루는 일에 수완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수입원 가운데  가장 달콤하고 입맛 
당기는 일은 유럽에 주둔한 미합중국 군인들과 손잡고 벌이는 소규모의 불법적인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이었다. 코르뷰니는 1961년 프랑스 시민권을 받은 이래 단 한 번도 체포된 일
이 없었다. 대부분 상류 계층인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빈틈없는 국제적 금융업자로 인
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의 그는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살인까지도 불사할 사람이었다.
   보란은 코르뷰니의 저택을 관찰하기 위해 그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저
택을 관찰하기에 용이한 높은 지면을 찾아냈는데 4분의 1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그 지점은 
앞뒤의 출입구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가려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저택은 작은 산 전체를 점거하고 있었다. 약간 뒤쪽에서부터 집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곳
에는 수수하게 지어진 창고가 있었다. 망원경을 통하여 보란은 마굿간과 작은 가축 우리, 저
택 앞뒤에 각각 한 대씩 주차되어 있는 값비싼 미국산 승용차를 볼 수 있었다. 정문 앞에는 
흰 작업복 차림을 한 한 사내가 옆구리에 엽총을 끼고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건물의 뒷문
에도 또 한 사내가 있었다. 무장을 한 다른 무리의  경호원들이 언덕 위를 서성거리는 모습
도 보였다.
   보란은 망원 렌즈를 조금 들어놀려 집 주변의 상항을  살폈다. 그때 저택에서 반 마일정
도 떨어져 있는 도로에 자동차 행렬이 나타나더니 정문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경
찰이었다. 
   보란은 즉시 일을 해치워야만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렌즈에 눈을 밀착시켰다. 지금이 아
니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창문은 하나같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층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갑자기 건물의 뒷문일 열리고 작달막한 키의 사내가 반쯤 모습을 나타내더니 근처를 니
키던 경호원에게 뭔가를 지시하고는 재빨리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사나이를 발견하자 보
란의 얼굴에 음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주름살투성이의 이마와 숱이  많은 눈썹의 그 사내는 
그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이제 제일 먼저해야 할 일은 그를 집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었다.
   보란은 스팅레이에서 무기를 찾아들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조준 망원 렌즈의 시야
가 너무 접근되어 있다고 판단한 그는 직경 5인치 정도의 실측 초점으로 시야를 낮춰  조정
했다. 제일 먼저 그의 목표가 된 것은 저택의 뒷문이었다. 그곳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고 나자 
다시 조준 렌즈의 초점을 뒷문으로 옮겨 다시 거리를 재보았다.
   몇 차례에 걸쳐 그는 경호원과 뒷문 사이를 오가며 렌즈의 초점은 움직여 가며 망원  렌
즈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거리에 대한 감각을 익히
려는 것이었다. 익숙해졌다고 판단되자 그는 언덕 위를 더욱  치밀하게 살펴보기 위하여 땅 
위에 엎드렸다.
   경호원이 보란을 정면으로 향한 채 다리를  벌린 자세로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
다. 엽총의 손잡이는 땅을 향한 채였다. 총구는 그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보란은 엽총의 개
머리판을 겨냥하고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라이플의 강한 반동을 느끼며  그는 자신이 
조준한 표적을 살펴보기 위해 조준 렌즈를 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경호원의 엽총은 땅바닥
에 떨어져 있었다. 보란은 침착하게 총구를 옮겨 뒷문을 겨냥했다. 그가 처음 발사한 총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보란의 총구는 정확히 뒷문을 노리고 있었다. 
   코르뷰니의 찌푸린 얼굴이 갑자기 시야에 나타났다. 그는  이를 드러내면서 무어라고 소
리치고 있었다. 조준 렌즈의 십자 표시가 천천히 그 얼굴 위에 겹쳐졌다. 수년간 숙달된  그
의 전투 본능과 선천적인 반사  작용이 동시에 손가락 끝으로 몰려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방아쇠가 당겨지고 작은 불꽃과 무시무시한 굉음을 동반한 탄환은 실로 놀라운 위력을 갖고 
있었다. 코르뷰니의 너덜너덜해진 두개골 조각들과 고무처럼 끈적거리는 뇌세포 덩어리들이 
거품을 일으키며 뒷문에 늘어 붙었다.
   보란은 즉시 조준 렌즈에서 눈을 떼고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일으킨 파문
의 결과를 재빨리 알아챘다. 첫 번째 목표였던 경호원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산산 
조각이 난 그의 엽총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한 명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첫 번째 표적과 두 번째 표적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집의 다른 쪽으로부터 달려온 
한 사내는 눈 앞의 소름끼치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곧 보란의 시야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고 있는 한 사내
가 들어왔다.
   앞문을 지키고 있던 사나이는 보란이 있는 언덕 쪽을 손가락질하며 대문 기둥 뒤로 재빨
리 몸을 숨겼다. 바로 그때 경찰들이 도착했다. 곧 이어 정복 차림의 경찰관들이 차에서  뛰
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보란은 침착하게 경찰차의 왼쪽 앞바퀴에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각각 한 방
씩 탄환을 명중시키고 총구를 돌려 저택 안에 주차되어 있는 차의 바퀴에도 탄환을 날렸다.
   보란이 다시 망원경을 통해 저택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싸늘한 미소를 띠며 스팅레이로 돌아가 사냥용 라이플을 트
렁크에 밀어 놓고, 지도 위에 두 번째의 X자를 그렸다. 조용히, 거의 무관심한 태도로  그는 
자신의 출현으로 인해 비탄과 경악에 싸여 있을 저택을 등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기다
리는 새로운 표적을 향해서였다.
  
    17. 탈출 작전
  장거리 전화의 수화기에서 폴 뷰카루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는 겁많은 사람 
특유의 히스테리를 간신히 억제하면서 로잔느 루루를 윽박질렀다. 
  "그를 못 찾겠다는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마시오,  로잔느. 당신은 그를 찾아내야만 해. 그
로 하여금 그 미치광이의 행동을 중지시키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그  미친 놈이 공약한 대
로 실행하고 있다는 걸 잘 알잖소! 내 말 알아듣겠소? 그놈은 공갈협박 내용을 그대로 실천
하고 있단 말이오!"
  비탄과 고민에 싸인 로잔느는 중얼거렸다. 
  "폴, 경찰이 곧 그를 체포할 거예요. 물론 나는 그 동안 열심히……."
  "경찰이라구! 그 겁없는 미치광이가 사방 천지를 쏘다니며 멋대로 일을 저지르는 동안 지
도 앞에 앉아서 전략이나 짜는 경찰 말인가? 난 그들을 신뢰할 수  없어!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오. 그들은 소파에 푹 파묻힌 채 손바닥이나 비비며 다음 희생자는 누굴까 하는 내기나 
하고 있을 거요. 틀림없어! 지금  위협받고 있는 게 우리 조직이라는  걸 당신은 아는 거요 
모르는거요, 로잔느? 도대체 어디에 조직의 영향력이 있으며 보호막이 있다는 거요? 당신과 
루돌피가 내게 강조했던 약속은 지금 어디에 있소?"
  "제발, 폴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만 화난 게 아니
라는 걸 알아 주세요. 손쓸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나를 믿어 줘요. 애
를 쓰고 있다구요, 폴.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까 그렇게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마세요. 
혹시 누가 도청이라도 하는 날엔  ."
  "아, 아, 로잔느  . 우리가 처한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당신은 알려고도 않는군! 내 말을 
들어요. 그 미치광이가 계획을 공표한 지 채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드 샹이 죽었
고 코르뷰니가 나자빠졌고 바로 얼마 전에는  헤베르가 당했소. 아무도 안전하지가 못해요! 
어느 곳이든 안전하지 못하다구! 그놈은 제멋대로 마구 날뛰고 있소. 헤베르가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들었소?"
  로잔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오, 폴. 아직  ."
  "그럼 내가 얘기해 주지. 그럼 당신도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조금은 이해
가 될 테니까.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이란 한 군데도 없다는 걸 당신은 깨닫게 될 거요. 그놈
은 감쪽같이 은신처까지 찾아내는 귀신 같은 놈이오. 사실 몬테카를로의 카지노만큼 안전한 
곳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소? 헤베르는 그 곳에서 벌어진  파티에 참석중이었소. 수백 명
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지. 헤베르는 그 미친 놈이 체포될 때까지 카지노에서 한 
발자국도 떼놓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소. 그런데 전화가 왔던 거요. 4명의 경호원이 그와 동행
하고 있었소.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그가 탁자 곁으로 다가갔을 때  그때 한 방의 총성이 울
렸소. 천장에 있는 창이 박살나고 경호받고 있던 헤베르는 그들 한복판에서 쓰러졌소.  즉사
했단 말이오. 아직도 모르겠소, 로잔느?"
  폴 뷰카르는 흥분한 것 같았다. 로잔느의 목소리도 이미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예요, 폴.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걸  제발 믿어 주세요. 그리고 
당신도 이해해야 해요. 이건 보통의 경우가 아니에요. 나도 개인적으로 지시 사항을  전달받
은 게 있지만 루돌피는 이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그는 이 일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 못 되니까요. 우리는 외국인 몇을  샀지요. 조직은 모든 힘을 기울여서 당신들을  이 
흉악한 억압 상태에서 해방시키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시겠죠? 조금
만 기다리세요. 물론 당신들도 그 동안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죠."
  뷰카루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난 체포를 요청할 거요! 경찰한테 부탁해서 날 안전한 감옥에 넣어 달라고 하겠소!"
  "경찰은 당신을 돕지 않을 거예요. 좀 진정하세요. 그들은 당신에게 끝없는 진술을 요구할 
거예요, 폴!"
  "그래도 그 편이 오히려 나아, 로잔느! 드 샹하고 코르뷰니, 헤베르 뒤를 따르니보다는 백 
배 낫다구!"
  "기다려요! 한 시간만 더 기회를 주세요. 조직이 당신을 도울 거예요, 폴!"
  "로잔느, 한 시간 후면 당신은 이  폴 뷰카루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될 거요. 싫소. 30분만 
기다려 보지. 그래,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막상 루돌피는 종적을 감춰 버렸다는 사실을 나
는 절대로 잊지 않겠소. 절대 잊지 못할 것이며 용서할 수도 없단  말이오, 로잔느! 다른 친
구들도 마찬가질 거요."
  그녀는 간신히 대꾸했다.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폴."
  통화는 끝났다.
  모든 상황은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이 그녀의 어깨 위로 쏟아
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군요, 루돌피. 우리가 이처럼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도대체 당신은 어
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 때문에 친구들이 죽어 가고  있는 판인데 개인적인 복수라
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당신을 프랑스  남쪽으로 이끈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요? 그래서 당신이 얻은 것은요? 당신과 당신의 그 치떨리는 에이스 카드라니! 
  갑자기 그녀의 눈이 빛났다.
  "그래, 그래. 지지에게 도움을 청해 보자. 아아, 당장 지지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맥 보란은 포위망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보란 쪽에서 보자면 일은 성공적으로 진행되
고 있는 편이었다. 모나코 공국은 마치 뚜껑이  닫힌 병 같은 땅이었다. 보란은 그 병  속에 
갇힌 꼴이었다. 모든 도로는 프랑스 경찰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모나코를 벗어나는 모든 차
량과 사람들은 모두 수색을 당했다. 모나코  시내의 사정도 별로 나을 게 없었다.  관광객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 구석구석을 장악하고 있는  수상쩍은 사내들을 최고 통치
자의 경호원들로 착각, 혹 계엄령이 선포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정도였다. 사내들
은 눈에 띄는 여행자마다 불러 세워 여권 제시를 요구했다. 이렇듯 모나코 고욱ㄱ과 지중해 
연안 지방, 그리고 프랑스 전체가 불안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30분 동안이나 스팅레이는 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막다른 곳-많은 도로들
이 차단되었다-에 이르러 방향 바꾸기를 거듭하다가  그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요트 선착이라도 이용할 수 있을까 조사하기 위해 그는 그 
부근을 잠시 배회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백만 장자들의 기착지요, 국제적 명사들이 자기  소
유의 배를 대는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해상을 통한 퇴각로도 이미 봉쇄된 뒤였다. 그
는 공중 전화 부스 앞에 차를 세웠다. 잠시 기다린 뒤에야 그는 지지와 통화할 수 있었다. 
  벨이 두 번 울렸다. 곧 이어 발랄한 여자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여보세요?"
  "지지? 별일은 없소?"
  그녀는 빠른 프랑스 어로 대꾸했다.
  "내가 프랑스 어를 못 한다는 걸 당신은 잘 알 텐데.  웬일이오? 혹 누구와 같이 있는 게 
아니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프랑스 어를 썼다. 
  "알겠소. 당신 계속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소?"
  "그래요."
  " 내가 기다리는 소식은?"
  "없었어요."
  그는 길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헤베르를 처치하느라고 너무 큰 모험을 한 것 같소. 지옥이 나를 부르고 있소."
  "  몬테카를로?"
  그녀가 무어라고 질문을 했으나 그가 알아들은 것은 한마디 뿐이었다.
  "그렇소. 난 포위당한 천사지."
  거의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은 싫어요, 미스터 천사."
  "램프가 켜진 모양이군?"
  "아녜요, 램프를 여유조차 없었어요. 경찰들이 어디에나 쫙 깔려 있어요. 고속도로도 그렇
고, 해변도 그렇고  . 수사관들이 상의할 일이 있다며 방금  정원으로 나갔어요. 그래서 
이런 말이나마 할 수 있는 거예요. 당신, 함부로 나다니면 안 돼요. 거기 어디예요? 요트 선
착장으로 갈 수 있겠어요?"
  "체포된 거요, 당신?"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설명을 했더니 날 믿는 눈치예요. 난 당신이 평범한 관광
객인 줄 알고 차를 태워 주었다고 얘기했어요. 니스에 도착하자 당신은 곧 차에서 내렸다구
요. 롤스로이스는 여기 있는데 당신이 없으니  내 얘길 조금씩 믿는 모양이에요.  여보세요? 
당신 듣고 있어요? 요트 선착장까지 갈 수 있겠어요?"
  "난 지금 그 근처에 와 있소. 왜 자꾸 묻지?"
  "수사관들이 가고 나면 요트를 타고 내가 그리로 가겠어요."
  "그런 짓은 위험해, 지지. 그냥 얌전히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
  "난 지금부터 그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곳으로 가서 잠시 기다리고 있을 작정이오."
  "무슨 얘기예요?"
  "너무 걱정 말아요, 지지.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소."
  한동안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전화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수화기를 들고 니
스의 번화를 다이얼을 돌렸다.
  여자는 미끈한 영어 발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긴  ."
  그는 상대의 말을 중도에서 잘랐다.
  "데이브 샤프와 통화하고 싶소."
  "실례지만 어디라고 전할까요?"
  "라 만차에서 온 남자라고 전해 주시오."
  "죄송합니다만 라 만차에서 온 남자라고 하셨나요?"
  "그렇소. 전에 풍차 세일즈맨이었던 남자라고 하시오."
  여자가 키들거리며 말했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기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즉시 들려 왔다.
  "틀림없이 당신이리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하긴 난 이 세상에  생존해 있는 마지막 멍청이니까. 이제  이 목숨마저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소. 난 지금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는 상태요.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지도 의문이오. 그쪽 반응은 어떻소?"
  "공포 그리고 경악. 당신 아주 거친 사람이더군, 친구."
  "그건 시작에 불과한 일인데. 잘 들어요. 우선 전략적으로 후퇴를 해야겠소. 또 하나의 전
달 사항이 있는데 퍼뜨려 줄 수 있겠소?"
  "그게 내 임무 아닙니까?"
  샤프는 한숨을 내쉬며 반문했다.
  "잠시 휴전을 제의했다고 하시오. 지금 시간이 5시를 조금 넘고 있으니 마피아들에게 8시
까지만 시간 여유를 주겠다고 말이오. 납치한 여자들을 풀어 주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오. 그
때까지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에는 나는 대대적인 처형 작업을 감행할 것이오."
  "그거 정말 흥미 진진한 얘기군요.  사실 당신은 벌써 이 유럽  대륙을 온통 들쑤셔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 당신 텔레비전을 보았겠지요?"
  "글세  . 계속해서 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친구에게 대신 봐 달라고 부탁해  뒀는데 
방금 전에 그 친구와 통화를 끝냈소. 별다른 소식은 없다고 하더군."
  "아직 송출되지 않은 소식이 재게 있소. 조금 전 중계소 책임자한테서 전화를  받았소. 극
서도 두 번이나. 한 번은 파리에서, 또 한번은 마르세유에서.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했
소. 그것은, 당신의 요구 조건을 그대로 실행할 테니 시간적 여유를 좀 달라는 거였소. 그때
까지는 행동은 중지해 달라는 얘기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소?"
  보란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싫소. 그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소. 그대신 내  공개 발언을 좀 바꿉시다. 마피아의 요
구대로 시간 여유를 주긴 주되 8시까지라고 말이오. 8시가 지나면 나는 조금도 지체없이 무
시무시한 대학살을 감행할 것이오. 난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진다는 걸 명심해 줬으면 하오."
  "당신은 생각 외로 무서운 친구요. 정말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경탄이 절로 나오는군
요. 그렇지만 내 이름을 입에 떠올리는 일은 삼가 주시오."
  보란은 소리내어 웃었다.
  "당신의 부도덕한 지원에 대해 감사하고 있소.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날 일이 생기겠지."
  "당신의 재판 과정은 내가 취재하겠소."
  보란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체포된다면 난 10분 이상은 살아 있지 않을 작정인데?"
  "그 말을 그대로 기사에 인용해도 되겠습니까?"
  "좋도록 하시오. 그러나 당신은 내 재판을 방청할 수 없을 거요. 당신도 그렇고 모든 마피
아들도 그건 알아 둬야 할 것 같소. 나를 감금시킨다는 건 곧 내겐 사형 선고니까. 그러니까 
고맙긴 하지만 그런 일은 사양하겠소. 내가 임의로 선택한 장소에서 내 상애의 마지막 순간
들을 보낼 권리는 나에게 있는 거요."
  "당신은 마치 그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것 같군."
  "그런지도 모르겠소. 아마도 난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천치일지도 모르오. 그러나 천
치는 아니지. 죽음이란 언젠가는 닥칠 일 아니겠소? 좀 빠르거나 늦을 뿐이지."
  신문 기자는 기가 조금 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인터뷰같이 돼  버렸는데 어쨌든 고맙소. 꼭 좀  묻고 싶은 일이 하나 
있는데, 당신은 모나코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내가 모나코에 있다는 얘긴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도 없었죠.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니까. 적어도 프랑스 경찰은 그렇게 단정하
고 있을 거요. 당신은 현재 모나코에 있고 결코 모나코를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을 거요. 마지노 선이 무색할 정도의 포위망이 이미 구축된 걸로 난 알고 있소. 모나코 
공국을 기점으로 해서 그 주변으로  말이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탈출할 자신이 정말 
있는 거요?"
  보란은 화가 치미는 걸 참으며 물었다.
  "내 말 못 알아들었소? 정각 8시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게 헛소리같이  생각되
오?"
  "네, 듣긴 했소만  ."
  "난 분명히 전략상의 일시 후퇴라고 얘기했소. 그 말이  당신에게 어떤 상상을 불러 일으
켰든 그건 당신 자유지만 적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해서는 곤란하오. 여자들이 돌아오지 않
는 한 나는 정각 8시에 그들을 공격하겠소. 그들은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거요."
  "그렇다면 당신은 벌써 모나코를 벗어난 거요?"
  "제기랄, 난 그런 문제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았소. 경찰들이 알아 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소."
  상대의 질문을 무시한 채 보란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즉시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몇 
가지 생각 때문에 그는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제일 큰 의문은 왜 경찰들이 이다지도 소란스러울까 하는  것이었다. 관광객들과 속된 호
기심을 만족시키려는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8평방 마일밖에 안  되는 이 공국에. 게다가 완
전 무장한 마피아의 총잡이들이 맥 보란을 사살하기 위해서 벌떼같이 몰려들 것이라는 사실
을 경찰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또 하나의 의문은 가장 중대한 문제였다.  죽, 8시 정각이라고 큰소리쳤던 대대적인  살육 
작전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실행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잔인한 보란도 내심으로는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들이 무사히 되돌아왔어야 했다. 보란의 극적이며 통쾌한 활약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대체 지금쯤 어떤 상황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들이 되
돌아오고 대규모의 살상극은 그대로 무마되는 것? 아니면 여자들이야 어찌됐든 자신들의 호
기심을 위해 거리에서 총잡이들이 날뛰는 걸 용납함으로써 도시 전체가 피와 시체로 뒤덮이
는 것? 그것도 아니면 보란이 경찰 또는 마피아의 총성에 사살되는 것을 오히려 더 바라는 
건 아닐까?
  보란은 과연 자신이 8시까지 살아 있을 수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한 발은 지옥에  들여 놓고 살아온 보란이었다. 모나코  전체를 통틀어 그런 
그가 숨어 지내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는 어디일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장소는 어디일
까?
  물론 왕궁 근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한 시간 전에 사람이  죽어 자빠진 몬테카를로의 
전설적인 카지노보다 더 훌륭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보란은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머리도 단정히 빗었다. 그가 자신의  지난 
생애를 통틀어 가장 위험 천만한  도박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갖춘  작업이란 이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몬테카를로의 도박판 위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몬테카를로의 6시는 라스베이거스의 자정과도 흡사했다. 이른  저녁부터 거리마다 인파들
이 붐벼대고 있었다. 피에르 가르댕이나 크리스찬 디오르의 옷집에서  금방 나온 듯한 여자
들과 예의 바른 정장 차림의 신사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편한 차림의 관광객들은 그들 
사이를 누비며 입을 딱 벌리고 얼이 빠져 있거나 소리치며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
가의 까페에도 빈 자리가 없었다. 여기저기 요트 모자를 맵시 있게 눌러쓴 사내들과 기름이 
줄줄 흐르는 옷차림의 멋쟁이들도 보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제의 사건 탓인지  날카로운 
눈들을 번득이며 거리거리엔 정복 차림의 경찰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조건 의
심스러운 눈초리로 사람들을 쏘아보았고 특히 보란의 인상 착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
이면 영락없이 불심 검문을 했다. 분명하게 신분이 증명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나머지는 
모두 연행되어 갔다.
  카지노 입구에도 경찰차가 세워져 있었다. 보란은 카지노를 행해 달렸다. 그곳 100미터 근
방에서 차를 세울 때까지 다행히 그는 한 번도 불심 검문에 걸리지 않았다. 보란은 인파 속
에 묻혀 무사히 입구 근처까지 접근했다. 문 바로 바깥쪽에  정복 차림의 경찰관들이 서 있
었다. 보란은 당당하게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카지노의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그는 정장을 한 예의 바른 두 사내들에  의해 최초의 검문을 다앴다. 다만, 카
지노의 입장을 허락하기 전에 하는 관례적인 질문 정도였다.
  보란은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데에 대해 미소를 떠올렸다.  그는 코트의 앞섶을 펼쳐 
보였다. 어깨에 멘 권총 벨트와 권총이  카지노의 호화로운 불빛 아래 번쩍 빛났다.  보란은 
지갑을 꺼내 그들 눈앞에 슬쩍 디밀었다가 재빨리 넣으며 말했다.
  "경찰이오."
  두 사람은 권총에 얼이 빠져  그 지갑은 제대로 눈여겨보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무사 통과되었다. 5프랑의 입장료도 무시되었다.
  거대한 도박장은 평상시처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는 바로 한 시간 전에 그의 표적
이 쓰러졌던 지점을 찾아간 것이다. 박살난 유리창은 벌써 새롭게 끼워져 있었고 전화가 놓
였던 탁자 주위에 있던 피의  흔적들도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헤베르가  서 있었을 만한 
지점에는 작은 천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아마 살펴본 보란은 그 사격이 참으로 성공하기 힘
든 가능성 가운데서 실현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전화가 있는 책상이 6인치 정
도만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면 그는 실패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신비스런 힘이 자신을 돕고 
있는 것 같아 보란은 스스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룰렛 게임이나 카드 게임에 몇 프
랑씩 걸면서 계속 움직여 갔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복  경관들을 알아보았고 그들로부터 얼
마쯤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신경을 썼다. 7시가 조금 넘어서  그는 로비를 통과하여 슬롯 머
신이 설치된 방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한 편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 편안했다. 보란은 여러 사람의 시끄러운 대화 속을 비집고 들어가서 빈 기계 앞에  섰다. 
천천히 그는 기계에 동전을 밀어 넣었다.
  30분이 지났다. 그는 카운터에서 동전을 더 바꿨다. 그가 기계로 되돌아 가려는데  덩치가 
큰 흑인 사내 하나가 그를  가로막고는 미소를 보냈다. 보란은 어디에서  봤던가 하고 잠깐 
생각했으나 곧 상대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사내
에게 미소로 응답하고 다시 슬롯 머신으로 돌아왔다. 
  옆눈으로 슬쩍 보니 그 흑인  사내도 슬롯 머신에 동전을 넣고  있었다. 친숙한 베이스의 
음성이 보란에게 날아 왔다. 
  "그냥 그대로 있게, 중사. 자네는 포위되어 있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보란이 대꾸했다.
  "당신, 고향이 그리워서 이쪽으로 온 건가, 소위? 누가 날 포위했다는 거야?"
  흑인 사내는 다시 동전 몇 개를 넣고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어떤 녀석들이. 자네는 아주 고약한 지경에 빠졌지?"
  "그렇다네. 내게 위로라도 하려고 온 건가?"
  "글세. 자네의 운명을 가져왔네, 중사. 자네 목소리는 여전하군. 그게 바로 자네지. 그런데 
얼굴은 좀 달라진 것 같군."
  "날 어떻게 찾아냈지, 소위?"
  "누굴 놀리는 건가? 바깥에서는 벌써 자네 기념 사진을 파는 녀석들도 있다구."
  보란은 키들거리며 슬롯 머신에서 쏟아져 내리는 동전을 내려다보았다.
  "자네는 고국에서 멀리도 떠나왔군 그래. 축구 시즌도 아닐 테고  ."
  흑인 사내는 보란의 어깨를 툭 치고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거대한 손바닥이 동전들을 거
둬들이고 있었다.
  "내가 축구 선수였던 시절은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었다네. 중사. 우리가 송 레이에서 헤어
진 두 달쯤 뒤에 클레모어에 당했거든. 1년 가까운 세월을 가짜 다리를 끌며 다녔었지."
  "빌어먹을, 그런 불운한 일이 있었군 그래!"
  "동정 같은 건 바라지 않아. 그런 면에서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니까."
  "남자라면 그래야지."
  "이거 봐. 한때는 내가 누군지도  잊고 살았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난 검둥이 
자식으로, 나 아닌 놈팽이로 지냈던 것 같아 서글프다네."
  "당신이 검둥이 자식이라니 그런 얘기는 말게, 소위."
  윌슨 브라운은 손바닥 안의 동전들을 짤랑거리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
를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의 엄청난 활약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네, 중사. 그러면서 점차 자네가 좋아지더군. 
자네 속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특징들 때문이었어. 옛날 일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우린 항상 멋지게 일을 같이 했었지, 소위."
  "그랬지. 난 마피아와 함께 여기 왔어. 우리 같이 이곳을 빠져 나가세."
  보란은 다시 슬롯 머신 속에 동전을 넣었다. 갑자기 쉰 듯한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뭐라고?"
  "그래. 내 임무란 게 말일세  자네를  재빨리, 그리고 소리없이 저 밖으로  유인해 내는 
거라네."
  "그보다는 차라리 난데없는 총탄이나 맞는 게 낫겠어."
  "이것 봐, 중사. 이건 장난이 아니야. 자넬 죽여서는 안 된다는군. 보란을 산 채로 잡아 들
이는 게 이 게임의 규칙이라네. 미국에 있는 높으신 양반은 자넬 산 채로 잡아 바비큐 요리
라도 만들 모양인가 보던데?"
  보란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자네 목적은 뭔가?"
  "10만 달러라면 어때? 자네도 구미가 당길 테지, 중사?"
  "그렇다면 왜 자넨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이미 얘기했잖나? 자네에게 있는, 내가 좋아하는 점들이 생각났다구. 자넨 내  영혼의 형
제라는 걸 깨달았어, 친구. 언젠가는 나도 지폐의 힘보다는 영혼의 힘에 이끌려지리라고  믿
고 있었거든."
  보란은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의 몸속으로 따뜻한 피들이 돌기 시작했다. 그
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슬롯 머신에 동전을 쑤셔 넣으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네도 이미 알겠지만 그들도 경찰 때문에 골치라네."
  보란은 낄낄거렸다.
  "그래, 경찰이 공국을 꽉 채우고 있는 형편이니까."
  "우리 일당의 보스는 쌕쌕이 토니야. 그치를 알지?"
  "말은 들었어. 어떻게 생겼나?"
  "작달막한 친구야. 통통한 편이고 아주  야비해. 특히 그 눈빛이  그래. 지금 저기 로비에 
있네. 시간이 이렇게 흐르도록 내가 나타나지 않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거야. 아니, 이
제 곧 그 친구는 내가 어디서 무얼 하나 알아보려고 찾아나설걸."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야?"
  "그들은 이곳 경찰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어. 게다가 이  지방 악당들은 마피아들에게 
커다란 불만을 픔고 있거든. 그러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토니는 지금 50명의 졸개를 데리
고 있다네, 중사."
  보란은 지나칠 정도로 제스처를 쓰며 말했다.
  "야아! 그거 대단한데!"
  "그래, 대단히 날렵한 놈들뿐이라네. 보트 선착장은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어."
  "요트들도 말인가?"
  "그렇지. 그걸 이용해 토니는 자네를 끌고 경찰의 방해  없이 이곳을 빠져 나가려고 생각
하고 있다네."
  보란은 이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깐 동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그는 브라운에게 물었
다.
  "그러면 난 끝장이 아닌가? 자넨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저 아래 보트가 있다고 말했었지? 자네와 난 이곳을 빠져 나가 곧장 그곳까지 달려야 하
네."
  본능적으로 보란에게 잡히는 무엇이 있었다.
  "소위, 자네 말을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군. 이미 난 자네의 미끼에 걸려든 건 
아닌가?"
  브라운은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보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네.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게. 나를 의심한다 해서  자넬 비난
하지는 않겠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자네와 함께 행동한다는 사실이야."  
  보란은 이제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보트에 몇 명이나 있나?"
  "적어도 다섯 정도일 거야. 게다가 남자 한 명과  그의 아내도 있다네. 보트 주인이지. 계
약은 쌕쌕이 토니가 했는데 그들은 그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더군. 계약 내용은 극비에 붙
여져 있어. 보트에는 문제가 없어. 문제는 보트 앞에 있는 50피트 높이의 부교야. 거기만 무
사히 넘을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라니까. 그만큼 힘든 난관이라네. 또 놈들과 한번 붙어  볼 
만한 일이지. 그렇게 해서 자네를 보트에 쑤셔 넣고 니스를 향해 신나게 내뺀다는 계획이라
네. 10마일쯤 달리다가 비행장으로 가서는, 그때는 파리여 안녕! 둘레즈 공항으로 직행이지."
  보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슬롯 머신에 동전을 넣고  핸들을 잡아당겼다. 동전들이 쏟
아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이 돈들이 내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이를테면 징조 같은 것 말이야."
  브라운은 삭막하게 웃었다.
  "그걸 세지는 말게. 내 생각으론 그게 만일 30개가 넘는다면 자넨 성공할  것이고, 29개라
든가 뭐, 28개라면 자넨  ."
  보란은 동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물었다.
  "50피트짜리 부교를 내가 잡히지도, 총에 맞지도 않고 통과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지?"
  키 큰 흑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의 희박해. 그런데다 명령은 자넬 산 채로 잡아  들이라는 것이었지만 막상 자네가 응
사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보란은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그렇겠군. 그런데  . 이제 우린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브라운은 무겁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오래도록 서로 소식을 몰랐던 다정한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며 이곳을  빠져 나가
는 걸세. 그리고는 곧장 선착장으로  향하는 거야. 경찰들은 토니의  부하들이 맡아줄 거야. 
토니는 아까부터 줄곧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네. 그러니까 내가  좀 술수를 꺼야겠어. 자, 우
리 반갑게 다시 만나 볼까?"
  보란은 낮은 베이스의 음성을 들은 이래 처음으로 덩치 큰 흑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
였다. 긴장된 미소가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그는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
다. 얼굴 전체를 일그러뜨리며 그는 웃고 있었다.
  "야, 이게 누구야! 브라운 소위 아냐! 그렇지? 이런 멋진 옷을 입고  있으니까 전혀 딴 사
람 같은데!"
  보란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검은 사내의  찌
푸려져 있던 표정은 순식간에 유쾌한 표정으로 뒤바뀌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
다.
  잠시 뒤에 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곳을 벗어났을 때에도 보란의 슬롯 머신에서 쏟
아져 나온 은화들은 그대로 그곳에 놓여 있었다.
  그냥 얼른 보기에 그 은화들은  30개가 훨씬 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눈대중으로는 
모를 일이었다.
  
    18. 전권 대사의 최후
  두 사람은 인파를 헤치고 카지노를 빠져 나왔다. 그들을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란은 차의 문을 열었다. 그는 머리 위로 손을 뻗쳐 나일론 끈  같은 것을 차의 천장에 끼
우더니 코트 속으로 또 무엇인가를 감췄다. 재빠른 동작이었다. 차 안이나 도로가  어두웠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몇 발자국 떨어진 가까운 곳에서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동안 브라운은 차에 기댄 채 서 있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선착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윌슨  브라운이 그의 옛 전우에게 물었
다.
  "자네가 방금 감춘 게 기관총인가?"
  "그래. 30연발짜리가 하나 끼워져 있고, 그런 탄창은 2개가 더 있네. 내가 하! 하고 소리치
면 지체 말고 물 속으로 뛰어들게, 소위."
  브라운은 약간 불만스런 음성으로 반문했다.
  "무차별 사격인가?"
  "그래. 난 혼자가 아닌가? 저 뒤에서 어정거리고 있는 놈이 쌕쌕이 토니인가?"
  "그놈이야. 또 셰미 슈브와 그  졸개들도 보이는군. 그러니까  . 가만 있자,  5명이 보트 
안에 있고 12명이 우리들을 따르고 있는 셈이지. 자넨 지금  자네가 걸어 들어가고 있는 곳
이 어딘지 알겠나, 친구?"
  "내가 어디로부터 빠져 나왔는지는 잘 알고 있다네."
  "어디를 향해 들어가고 있는지도 알아 두는 게 좋아.  부교 끝은 40여개의 총구가 조준하
고 있을 거네. 보트에도 몇 쯤 있을 거고, 또 내 추측이지만 숨겨진 보트를 타고  총을 겨누
고 있는 놈들도 있을 거야. 자네 다른 총은 없나?"
  "자네가 필요한 모양이군."
  "사실 그렇다네. 쌕쌕이 토니는 내게 총도 주지 않는다네. 날 바보로 만들  생각인 모양이
야."
  브라운은 킬킬거리며 떠들어 댔다. 보란은  사내의 등을 탁 치며 그의  손에 32구경 권총 
한 정을 쥐어 주었다.
  "약실에 탄환이 하나. 모두 합해도 6발뿐이야, 소위."
  "그래? 옛날 일이 떠오르는데. 우린 이보다도 더 적은 탄환으로 일한 적이 있었지."
  보란의 음성이 다시 냉정해졌다.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는 지는 쪽에 합세한 거야. 그들은 자네의 이 배신 행위를 결코 잊
지 않을거야. 또 용서하지도 않을 거라구."
  "난 패배를 즐긴다네, 친구. 내 걱정은 말게. 그들은 내가 어느 쪽에 합세했는지조차 모를 
테니까."
  "지금 내 기분 알겠지? 자네에 대한 내 심정 말이야."
  "알아. 뭐, 신경 쓸 것  없어. 도대체 10만 달러라는 게  영혼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게 어떻게 자네와 비교될 수 있겠나? 그렇다고 내 다리를 새로  살 수 있나, 만들어 붙일 
수가 있나?"
  "자넨 아주 잘 걷잖나?"
  보라닝 킬킬거리고 있는 브라운에게 유쾌하게 물었다.
  "그럼, 뛸 수도 있다네. 그런데 축구는 할 수가 없어. 악마 같은 태클은 도저히 막아낼 수
가 없다구. 세상 모든 돈을 몽땅 긁어 모아도 그 다린 다시 내게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성
기 때의 내 다리,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것뿐이라구."
  브라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넨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잖아? 사내가 그까짓 것 가지고 뭘 그래?"
  부교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보란은 마음속으로 전투 태세를 가다듬었다.
  "아냐. 현재는 도둑질로 살아 간다네. 난 내가 그런 방면에는 타고났다는 걸 깨달았지. 그
래서 쌕쌕이의 장부 계원 일까지도 겸하게  되었다네. 책상에 앉아 코를 박고 하는  일이지. 
난 쌕쌕이 토니를 위해서 장부를 허위로 기재한다네. 완전한 숫자 놀음이지."
  그들은 이제 부교 위에 있었다. 두 사람  다 걸음을 빨리 했다. 그들 뒤를 따르던  12명의 
마피아들은 이제 막 입구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두세 명의 낯선 사내들이 그들 뒤를 추적하
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시절에 내가 한 일이라곤 축구밖에 없다는 걸 자네도 알지? 내게 주어진  모
든 시간을 축구를 위해 바쳤었다네.  축구를 전공한 셈이지. 나중에는  전쟁 그리고는 불구, 
이제는 범죄를 전공하고 있지만. 그래, 사실이야. 윌슨 브라운은 제로 지점에서 태어나서 꾸
준히 그 제로를 지켜 나가고 있는 사내라네."
  "그런 소리 말아!"
  "아니야, 바로 그게 진실이라니까. 내가 자넬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나?  바로 
그 든든한 배짱이야, 중사. 자넨 엄청난 배짱과 따뜻한  애정을 지닌 드문 인물이지. 놀랍게
도 자넨 그 둘을 아주 잘 조화시키고 있어. 그게  바로 평범한 사람과 자네와의 차이점이긴 
하지만."
  "그건 자네 얘기 같은데?"
  보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검은 사내는 껄껄거리고 웃었다. 32구경 권총은 그의  커다
란 손 안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글세, 자넨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군.  언젠가 베트남에서도 그랬었지. 기억 나나?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준비를 해두게. 자네 왼쪽 옆이야.  범선 말일세. 선실 안에 서 있는 
저 녀석을 보라구. 그 앞에 있는 거대한 보트가 바로 우리의 첫째 목적지야. 저 보트를 어떻
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도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중사."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한동안 묵묵히 걷기만 하던 보란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디쯤 도착할 때 그들의 행동이 개시될까?"
  "앞으로 스무 걸음쯤 남았어. 이제 곧 우리의 앞에 10명의 사내들이 나타날  걸세. 동시에 
뒤에서도 10명이 나타날 거고. 자네는 그들 가운데 박히는 꼴이 되겠지."
  얘기를 하는 사이에 그들은 거의 20보 앞까지 전진하고 있었다.
  "소위, 고맙네!"
  보란은 빠른 동작으로 난간으로 브라운을 밀어붙여 물 속에 빠뜨렸다. 그 다음 순간 그는 
몸을 날려 첫 번째 목적지였던 범선에 뛰어올랐다. 범선의 선미에  몰려 있던 한 무리의 사
내들이 부교 위로 올라설 준비를 하고 있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보란을 바라보았다. 예기
치 못했던 보란의 행동에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보란의 자동 소총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불을 뿜자 사내들은 낙엽처럼 물 속으로 떨어졌
다. 그가 부교 위로 기어올랐을 때에야 그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곧 서치라이트가  밝혀지고 
부교 위와 물 위를 훑기 시작했다. 보란은 다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서치라이트는 빛
을 잃었다.
  어디에선가 격앙된 목소리가 외치고 있었다.
  "부상을 입혀! 죽이면 안 된다! 다리를 겨냥해라!"
  빗발처럼 날아드는 탄환 때문에 보란은 고개조차도 들 수가  없었다. 순간 보란은 왼팔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탄환이 팔꿈치 위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상처를 확인할 틈도 없이  또 
하나의 탄환이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곳에 엎드려 있으나  몸을 움직여 이동을 하나 
위험은 마찬가지인 것만 같았다. 보란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몸을 보호해  줄 만한 장소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박용 기둥 뒤에 다다른 그는 기관총에 새 탄창을 끼워 넣고,  자
신을 산 채로 잡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목소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사격은 적중했다. 명령을 계속하던 목소리가 짤막한 비명으로 변하여 이내 잠잠해졌
다.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외쳤다.
  "토니가 맞았다! 모두들 사격을 중지해! 범선에  타고 있는 사람만 사격을 계속하고 나머
지는 다음 명령을 기다려!"
  새로운 전략을 짜기 위해 사격을 중지한 그 시간이  보란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보란은 
한 손으로 허벅지를 움켜쥔 채 범선의 그림자 속에서 부교를 따라 포복을 개시했다. 그러면
서 그는 전투 태세를 재정비하는 마피아들의 부산함을 피부로 느꼈다.
  또 하나의 서치라이트가 밝혀지며 지금까지 보란이 엎드려 있던 곳을 핥으며 지나갔다.
  부교의 끝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총소리를  들은 경찰들이 몰려 오고 
있었던 것이다. 
  보란은 부교와 주 갑판이 같은 높이로 맞닿는 곳까지  도달했다. 부상당한 다리를 시험해 
보기 위해 그는 몸을 조금  세워 보았다. 피는 계속 흘러  바짓가랑이가 축축할 정도였지만 
활동하는 데 큰 지장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몸을  웅크린 그는 범선의 갑판으로 날쌔게 
몸을 날려 마스트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갑판에서는 마피아들의 그림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보란의 잠입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5명의 총잡이가 범선에 배치되어 있다던 브라운의 말이 떠올랐다. 만일 보란이 그들을 한
꺼번에 해치울 수 있다면 탈출의 성공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범선의 보조 엔진은 작동된 채였다. 잠시 동안 탈출 계획을 재검토하던 보란은 뱃전 쪽으
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선실의 열린  창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가 있었다. 선실 안에는 멋진 차림의 남녀가 불안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보란은 기관총의 총신을 창문에 올려놓고 그들을 겨냥한 채 조용히 명령했다.
  "입을 열지 말아요!"
  총구에 시선을 고정시킨 남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슈, 나는 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자의 두 눈은 공표로 인하여 기관총의 총구보다도 더 커졌다.  그 모습을 본 보란은 갑
자기 지긋지긋한 전쟁에 회의를 느꼈다.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던 보란은 그를 죽여
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소지하고 있는 몽타주에는 그와 비슷한 얼굴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보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얌전히만 있는다면 당신들의 목숨은 보장하겠소. 이 배에는 모두 몇 명이나 있소?"
  "예. 모두 4명입니다. 그들은 모두 갑판에 올라가 있죠."
  고개를 끄덕이던 보란이 작은 소시로 명령했다.
  "여자에게 안심하라고 이르시오. 그리고 곧 이 배를 출발시켜요."
  "어렵습니다. 지금 이 배는 정박 기둥에 묶여 있어서  ."
  "그건 걱정 마시오. 최대 속력으로 기어를 넣어 봐요!"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기어에 손을 댔다. 그의 손이 몇 차례에 걸쳐 빠르게 움직이자 
범선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박 기둥에 매어 있던  로프가 팽팽히 당겨지자 웅성대
는 소리가 갑판으로부터 들려 왔다. 보란이 몸을 돌려 문으로 향하고 있을 때 4명의 총잡이
들이 가교의 난간으로 몰려들었다. 무슨 일 때문에 선체가  흔들리는지도 모르고 우와 좌왕
하던 그들과 보란의 시선이 마주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러나 대비를  하고 있었던 쪽은 
보란이었다. 이미 방아쇠를 손가락에 걸려  있던 보란으로서는 공격 자세를  취할 필요조차 
없었다. 간단한 손가락 운동만으로도 사내들은 볏단처럼 일시에 쓰러졌다. 
  사내들이 쓰러진 걸 확인한 보람은 범선을 붙잡고 있던 로프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로프
가 끊기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부교 위에서 한 사내가 외치기  시작했다. 보란은 그의 
외침을 무시한 채 선미를 향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사방에서 범선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발악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탈출에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부교 쪽에서는 서치라이트를 밝힌 두 척
의 경찰 순양함이 범선을 향해 추격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그 순양함이 범선을 앞지를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바로 그때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는  꿈결에서처럼 자신을 부르는 아리따
운 여자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보란! 미스터 대역!"
  보란이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좌현  바로 밑에는 장난감처럼 작고 예쁜 요트를 탄 
지지가 그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 지지!" 
  보란은 뭐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그런 연
습을 한 사람처럼 볌선의 난간을 기어올라 재빨리 지지의 요트로 옮겨 탔다. 허벅지와 팔에 
부상을 당한 사람이 움직이는 그런 행동이 아니었다. 
  요트에 옮겨 탄 보란이 몸을 웅크리자 그녀는 부고를 향해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
러는 동안 범선은 해협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경찰의 순양함도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보란은 의미 있는 미소를 떠올리다가 요트의 바로 옆 물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하나의 물체
를 보았다. 그 물체에 시선을 고정시킨 보란은 비로소 검둥이 브라운을 생각했다. 그는 그때
까지도 물 속에서 나아가지 않고 주위가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운의 
치아가 달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그는 지지에게 속도를 멈추라고 말한 다음 브라운을 향해 외쳤다.
  "소위! 이리 다가와!"
  그러나 브라운은 움직일 기미조차 없이 조용히 답변했다. 
  "어서 가. 이 친구야. 이제는 날 곤경에 빠뜨리지 말게."
  보란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따뜻한 마음에 손을 흔들어 보답했다. 지지는 다시 속도를 높
였고 요트는 경쾌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니스와 칸 사이의 은폐된 만에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9시가 지나고 있었다. 보란의 
상처는 지지에 의해 치료되었다. 팔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행동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
었다. 
  치료를 끝내자 보란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탄창을 기관총에 끼웠다. 그것을 들고 침
대에 걸터앉은 그는 무릎 위에 총을 놓고 담요를 덮었다.  그리고는 남녀의 정사 현장이 방
영되고 있는 텔레비젼의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지지는 그의 옆에 잠자코 앉
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가 지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할 때 갑자기 텔레비전의 정
규 방송이 중단되고 딱딱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란은 <저격수>라는 말과 <보란>이라는  두 마디를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물었다.      
  "무슨 얘기요?"
  목쉰 듯한 소리로 지지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뉴스예요."
  잠깐 뒤에 다시 사진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조명 상태가 좋지 못했고, 잘 계획하여  찍은 
필름도 아니었으나 보란이 이제껏 보아 온 어떤 필름보다도  더 멋진 장면이었다. 경찰서로 
보이는 어떤 건물의 내부를 텔레비전은 보여 주고 있었다. 한 떼의 여자들이 복도에서 커다
란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주디 존스가 거기에 있었다. 마담 셀레스테도 보였다. 다른 8명
의 여자들도 모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울고 있었는데  모두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 마치 지옥에서부터 돌아온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보란은 생각했다. 그들은  정
말 생지옥으로부터의 귀한일 것이리라. 
  보란은 눈이 축축하게 젖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 이거 대단하군 그래. 저기가 어디요, 지지?"
  "마르세유예요. 항구 근처에 있는 경찰 청사라는군요.  아나운서가 그러는데요, 이름을 밝
히지 않은 사람이 경찰서로 전화를 해서 항구 근처에 있는  빈 창고로 가보라고 했대요. 그 
여자들은 모두 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대요. 여자들 모두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서 건강을 체크받을 예정이구요."
  지지는 조용히 보란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볼이 눈물로 젖어들고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흐느낌이 묻어났다.
  "정말 감동적이에요. 이걸 당신이 해냈어요. 보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악당들을 당
신이 죽여야 했는지는 상관없어요. 당신 정말 멋져요!"
  이제 그날 하루의 격렬한 일과로 인한 피로가 한꺼번에 보란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피
로와 생명력의 고갈도 성공과 함께 뒤따라왔다. 그가 아무리  불굴의 결단력과 활발한 행동
력을 가졌다 해도 피로는 불가피했다.
  지지는 텔레비전을 끄고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당신 이제 침대로 가세요. 이제 일도 끝났으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그의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지가 보란을 향해 방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살벌한 모습의 사내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총
이 들려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거대한 혹이 달려 있었다. 그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커다랗게 
외쳤다. 
  "드디어 내가 사자를 사로잡았다!"
  보란은 깜짝 놀라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희미하게 지지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루돌피! 안 돼요!"
  보란은 말했다.
  "여기에서 나가요, 지지. 주스나 한 잔 가져다 줘요."
  루돌피는 눈을 번들거리며 외쳤다.
  "그렇지. 최후로 한 잔 마시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지. 지지, 또 한 잔 만들어다 줘. 그렇지
만 너무 많이 만들 필요는 없을 거야. 이 녀석은 그걸 다 마실 시간도 없을 테니까. 안 그런
가, 사자 나으리?"
  그는 만족감에 빠져 안하 무인격으로 소리쳤다. 보란은 침착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보란의 
얼굴에서 이미 피로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 이제는 슬그머니 협상할 생각이 들지 않나? 난  몇 시간동안이나 저 어둠 속에 앉아
서 너를 기다렸다. 우리가 협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하면서. 바다로부터 슬며
시 나타나시다니! 난 그런  일은 생각도 못했었어. 아무튼  오래 기다리다보니까 이 마지막 
잔치가 더욱 흥겨워지는군 그래. 얘기해 봐, 보란. 자네 목숨과 교환할 만한 건 없나?"
  그러나 전혀 동요의 기색도 없이 보란은 말했다.
  "여긴 괜찮소, 지지. 이 사람은 그저 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니까 가서 주스나 만들어요,
지지."
  망설이며 그녀는 부엌 문을 향해 걸어가서 거기에 멈춰 섰다. 그녀는 잠시 동안 루돌피를 
살펴보고 있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보란이 말했다.
  "난 그 여자들을 귀환시켰어."
  이 지고의 순간에는 루돌피로부터 그 승리감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의기 양양했고 들떠 있었다. 너무 흥분하여 다른 문제는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보란에게도 자신의 승리와 그 승리를  얻기까지의 고투를 자랑하고 싶
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만 모든 일들이 유쾌하고 흥겨울 뿐인 것 같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잘됐군 그래. 그게 우리가  원만한 거래를 할 품목이라고 생각하
나, 보란? 나한테 10명의 창녀들을 되돌려 주겠나, 자네 목숨을 대신해서?"
  고양이가 한 마리 쥐를 놀리고  있는 꼴이었다. 그의 마음 한편에서는  산산 조각난 쥐의 
시체를 감상하는 가슴 뛰는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야. 그 여자들을 귀환시키기 위해 난 너무 많은 피와 땀을 흘렸어. 다른 품목을 생각
해 보는 게 빠르겠는데."
  "그게 아니지, 그게 아니야! 이번엔 네가 생각을 해야 할 차례야. 내가 아니야. 5초의 여유
를 주겠다. 그 동안 잘 생각해 봐, 알았나?"
  보란은 담요 속에서 걱정스레 몸을 비틀었다.
  "내가 마지막 잔을 비울 때까지는 시간을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 되겠나?"
  "물론 줘야지. 지지! 보란에게 마지막으로 숨 돌릴 걸 하나 갖다 줘! 미국에서 온 그 깡패
들은 네 행동을 중단시키지 못했어. 내가 그럴 줄 짐작했지. 그놈들은 거리의 건달들밖에 안 
돼. 총과 배짱이면 다 되는 줄 아는 무식한 놈들이라구. 생각도 없고 영혼도 없는  고깃덩이
들이지. 그놈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루돌피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위대한 순간순간을 그는 소중한 재산인 양 감상하고 
있었다. 
  "아하, 당신은 그럼 상당한 영혼을 가진 모양이군. 그 젊은 여자들을 아프리카까지 보내는 
데에는 총과 배짱보다도 더한 것이 있어야 하겠지. 그래, 당신은 정말 사나이다운 친구로군, 
루돌피."
  미치광이와 같은 루돌피의 눈동자가 잠깐 동안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러나 곧 다
시 희생자를 옭아낸 기쁨으로 되돌아와서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심히 생각해 봐, 이 친구야."
  지지가 야채 주스를 들고 나타나는 바람에 날뛰는 광인의  얘기는 중단되었다. 보란이 그
녀에게 부탁했다.
  "그 주스는 이제 마시고 싶지가 않소.  그걸 내려놓고 이 담요를 좀 치워  주시오. 그리고 
나가 있도록 해요, 지지. 루돌피가 내 부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그걸 보면 한창 즐
겁겠지, 루돌피?"
  프랑스 주재의 지하 세계 대사는 기쁘게 미소 지었다. 
  "부상당한 사람이라 해서 내가 총을 안 쏠 줄 아는  모양인데, 그게 바로 자네의 거래 수
단인가? 이런 형상에서 루돌피가 얻는 게 대체 뭐라는 거야, 응?"
  지지는 담요를 치우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보란이 움켜쥐고 있는 기관총 위에  떨어졌다. 
그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녀는 담요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루돌피는 그 기관총을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코브라를 보듯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보란
이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얘기하고 있었다.
  "이 예쁘장한 놈은 사람을 죽이는 방아쇠를 갖고 있어, 루돌피. 내 손가락이  조금만 까딱
하면 이 예쁘장한 게 소리를 치기 시작할 거야. 1분에 450발이 튀어나가는 거지. 무슨  뜻인
지 설명해 줄까, 루돌피? 당신 배꼽으로 30발 이상의  탄환이 즐겁게 날아가 박힌다는 얘기
야. 내가 너무 오래 이놈을 만지고 있으면 당신 몸은 넝마 조각이 될 수도 있고 발가락에서
부터 목까지 산산조각이 나버린단 말이야. 그게 내가 당신한테 제안할 수 있는 유일한 거래
야, 루돌피. 당신이 준비되면 나도 준비돼 있는 거야. 나가! 없어져, 루돌피!"
  승리감도, 의기양양함도, 생기에 차 있던 모든 삶의 의욕도 다시 한 번 죽음에 직면한  순
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보란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보란이 알고 있음을 루돌피도 알 수 있었다. 패배함으로 순식
간에 10년은 늙어 버린 듯 보이는, 아예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루돌피의 창백한 얼굴과 멍
청한 눈동자가 기관총의 총구를 처음 보는 것인 양 멍청히  보고 있었다. 배짱도 없고 생각
도 없고 따뜻한 가슴도 없으며, 영혼마저도 없는 한 사내가, 살 권리도 없으며 죽을 만한 이
유란 더욱 없는 한 사내가 보란의 앞에 겁을 집어먹고 서 있었다.
  "나가라니까, 루돌피!" 
  그가 들고 있는 총이 아래로 늘어졌다. 루돌피는 겁먹은 얼굴로 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 
  그가 문에 닿기 전에 보란은 그에게 마지막 충고를 했다.
  "다음 번에 내가 널 만나면 루돌피, 널 죽이겠어. 또다시 그 젊은 여자들이 아프리카로 납
치되어 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당장 지옥으로부터 되돌아와서 이 나라를 산산 조각으로 
부숴 버리겠어. 네가 결코 상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혹독하게."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루돌피는 뒷걸음질치며 문 밖으로 나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보란은 의자에서 일어나 불을 끄고 다리를 절룩이며 창으로 갔다. 
  지지가 달려와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보란은 지지에게 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요. 마지막 한줌의 용기마저도 이제 잃었으니까."
  "당신이 그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지는 숨을 몰아 쉬며 속삭였다.
  피곤하다는 말투로 보란은 말했다.
  "죽였소. 가장 고약한 방법으로."
  그는 기관총을 팔 밑에 끼고 침실을 향해 발을 옮겼다.
  "게다가 당신이 거기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를 산산  조각낼 수는 없었소. 말하자면 당
신한테 내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되었으니까. 그 사내를  위해서 당신은 일을  해왔소,지
지?"
  마치 그가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에요."
  그녀는 다만 입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를 이끌어 침대로 가는 것을 도와 주었다. 
침대에 누운 그를 그녀는 내려다보았다.
  "좋소, 그에 대해 나한테 얘기할 기분이 되면......"
  "벌써 얘기할 기분이 되었는걸요."
  그녀는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순식간에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어 그의 곁으로 파고들었다. 
  "당신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게요. 당신이 자는 동안 당신을 부드럽게 껴안고 있겠어요. 그
래서 당신이 기운을 회복하면 그때는 당신이 그냥  앉아서 날 바라보는 것 말고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볼래요." 
  그는 지지의 알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보드라운 몸이 그의 널찍한 가슴에 파묻혔다. 그녀는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루돌피에 대해서라면요...... 오늘 아침의 역겨운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나는 그를 
모르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죠. 로잔느가 나한테 전화를 했
었어요. 굉장히 영리한 여자예요. 언니 말예요. 언니는 다른 무엇보다도 대체 길 마틴이라는 
사람이 정말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던 거예요. 언니는 맥  보란보다는 오히려 루돌피를 두려
워해요. 그래서 이 위험스러운 남자를 파리로부터 쫓아내고 싶었던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렇지만 언니는 이 흉악 무도한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사실 그대로 나에게 말해 주지는 않
았어요. 그래서 오늘에 와서야 나도 이 잔인한 사내의 정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루돌
피라는......"
  "그만둬요, 지지. 이제 에덴 동산에 온 것을 환영하오."
  보란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녀는 머리를 들고 그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자신이 그다지 크게 피로하지는 않은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말을 하지 않고도 그런 그의 생각을 전할 수 있었다. 그의 키스가 더욱 뜨겁
고 격렬해졌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남자에게는 각기 에덴 동산이  있는 것이다. 맥 보란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수 없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한순간  한순간 죽음을 직면하며 살아 
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사나이에게는 에덴 동산에 잠깐 머물렀던 시간이 영원일 수도 있
었다. 잠시 동안 그는 삶의 의욕과 사랑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지지 
카르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러나 보란은 그것을 좀더 일찍 알아보았어야 했다. 창을 통하여 지옥의 한 조각이 침입
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총성이 귀를 울렸고 화약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9밀리미터의 탄환이 그의 
배를 태울 듯 가깝게 스쳐갔다. 총성과 불꽃은 계속되었다. 매트리스가 산산 조각이 났고 베
개에서 흩어져 나온 깃털이 허공을 날았다. 무엇인지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보란의 상체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지지의 신음 소리가 들려 왔고 그녀의 호흡이 정지된 것 같았다. 
  보란은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기도 전에 침대  아래로 굴러 내려 기관총을 거머쥐고  있었
다. 다음 순간 그는 침실의 창문을 향하여 열 십 자를 그리며 기관총을 난사했다. 창 너머에
서 어떤 물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창  밖에서 무엇인가가 땅 위로 쓰러지
는 소리가 뒤를 이었고 곧 총격은 그쳤다.
  이제 보란의 마음은 지지로 꽉 채워져 있었다. 지지는 한  팔을 짚고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배에서는 붉은 핏덩이가 밀려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
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는 지지의 눈빛에서는 이미 죽음이 엿보이는 듯 했다. 
  에덴 동산의 바깥쪽 어디에선가 루돌피의  죽어 가는 목소리가 구원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란에게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한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는 침대 
시트를 뜯어 내려 지지의 상처를 단단히 처매고 그녀의 손을 끌어내려 그것을 꼭 누르고 있
게 한 다음,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침실을 허겁지겁 빠져 나왔다. 병원과 통화가 되자  긴
급히 앰뷸런스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지지가 벗겨 주었던 옷들을 재빨리 입었다. 그 
동안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용감한 지지는 보란이 마음놓고 있었던 것에 대한 
대가를 고통 속에서 지불하고 있었다.  지지는 그가 옷을 입는 것을  지켜보며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재촉하였다.
  "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보란."
  그녀는 힘들여 얘기하며 문을 가리켰다.
  그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별장의 진입로에 
들어서자 그는 그녀에게 이별의 키스를 했다.
  곧 그는 집 뒤로 빠져 나왔다. 루돌피는 거기 정원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 어깨로부터  왼
쪽 엉덩이까지 갈갈이 찢겨진 모습이었다. 
  보란은 그를 지나쳐 보트 선착장으로 갔다. 요트를 출발시켜  그는 지중해의 검은 물결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의 뒤에는 삶이 아니라 죽음만이 남겨져  있었다. 참다운 의미의 승리가 아니라 끝없는 
전쟁의 일시적인 연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새로운  전쟁터가 있었고 루돌피와 쌕
쌕이 토니의 후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음울한 진실이, 확고 부동한 진실이 그의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게 해주었
다. 세상에는 길 마틴과 같은 사람이, 그리고 윌슨 브라운과 같은 영혼의 형제가, 낸시 워커
와 같은 여자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아마도 지지 카르소와 같은 여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그런 여자의 용기와 희생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요트를 전속력으로 몰아 내일의 전선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나아갔다.
  아니었다. 지지 카르소와 같은 여자는 둘도 있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는 자신의 운명
을 받아 들였다. 그의 완강한 마음을 이처럼 따스하게 녹일 수 있으며 그의 사랑에 대한 욕
구를 이처럼 강렬히 자극할 수 있었던 여자, 그리고 최초로  그로 하여금 에덴 동산을 동경
하게 한 여자, 그런 여자는 다시 있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안심해도 좋은 적이란 죽어 나자빠진 적뿐이었다.  보란의 마음속에서는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또 하나의 계획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안심해도 좋은 적들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한숨을 내쉬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지중해의 신선한  대기 속에 뿜어 
대며 그는 이제 시야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해변을 돌아보았다.  그에게 귀중한 진실을 가르
쳐 준 지옥과 낙원 사이에는 건널목조차 없었다.
  안녕, 에덴 동산이여.
  또 만났구나, 지옥이여.
  마피아들이여, 보라.
  맥 보란이 가고 있노라.

 

  킬 러 [제1부 - 5권]
  소호 대격전



차례 
1. 도버 해협
2. 사드 미술관 
3. 죽음의 안개 
4. 례쇄된 밀림 
5.질 주 
6.위 기 
7. 카포들의 협의회 
8.추 적 
9.함 정 
10. 노인의 최후 
11.포 로
12. 심 문
13. 전쟁과 평화
14. 소령의 정체
15. 런던의 아침 
16. 죽음의 상징 
17. 까마귀 메
18. 두 사내
19. 에필로그


1. 도버 해협 
적의 모습은보이지 않았다. 그러나보란은 어둠속에서 자신 을 노리고 있는 적의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것 을 느낀 것은 칼레에서 카페리를 탄 그 순간부터였다. 도버 해협 을 가로질러 영국에 도착하기까지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퍼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프랑스로부터 의 탈출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앞에 가로 놓여 있던 방해물들을 제거해 준 것 같았다.  무사히 영국까지 도착할 수는 있었지만 이곳 역시 그를 노리 는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마치 무거운 추가 그의 목 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이곳으로, 바로 이 시간에 오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적들도 그의 뒤를 쫓아 도버 해협을 건 너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는코트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는 권총 케이스에 꽃혀 있 는 베레타 자동 권총을 재빨리 뽑는 연습을 몇 차례 한 후 탄창 을 살펴보았다. 언제라도 사격할 수 있도록 해놓은 뒤 그는 총을 다시 케이스에 넣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그는 탈출이 가능한 거리를 살피고 관측하면서 선착장을 벗어 나 철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는 그의 뒤를 밟는 조심스런 구둔발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었다. 그가 걸음 을 늦추면 그들도 천천히 뒤쫓았고, 그가 속도를 빨리하면 그들 의 걸음도 발라졌다 선창을 50야드쯤 걷는 동안 그는 그의 양옆 에도 적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양옆과 뒤 쪽에서 서서히 포위되고 있는 셈이었다. 앞쪽으로 계속 가다 보 면 그는 곧 적들이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소굴을 발견하게 될 것 이고 바로 그곳이 적들이 주의 깊게 선택한 최종공격 지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곳은 탈출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일 것이다.  보란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갑자기 왼쪽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들이 다급하게 작은 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대답을 하며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림자들이 재빨 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뜻하지 않은 방향으로나아갔기 때 문에 계획을 바꾸는 모양이었다. 그의 오른쪽 옆에서 새로운 발 자국 소리들이 들렸다 지금이 공격할 기회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모 른다. 그들은 그가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선 데 대해 즉각적인 대 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 의 적들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했다. 이제껏 보란은 단 한 번도 

경찰을 향해 총을 뽑아본 적이 없다. 지금도 또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짙게 퍼어나는 안개 때문에 가로등은 무기력한 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그 가로등 바로 밑에 멈춰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두 귀는 다가오는 적들의 움직임을 감지해 내 려고 잔뜩 곤두서 있었다. 아직도 그들이 새로운 포위망을 구축 하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무관심 한 척 태도를 바꾸고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소리 하 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만은 활짝 열어 놓았다.  지금이다! 그는 순식간에 담배를 앞쪽으로 춰 던지면서 총을 뽑았다. 다 음 순간 그는 오른쪽으로 재빨리 몸을 굴렸다. 베레타는 그의 손 아귀에서 방아쇠가 당겨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란은 이미 사격 자세를 취하고 엎드려 뒤쪽을 보고 있었다.  한순간 보란은 지체했다.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안성맞춤인 시간을, 그는 그들이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 소비했 다 그러나 그 확인은 단 한순간이면 족했다. 그는 자신의 정확 한 타이밍이 감탄스러웠다. 적들은 바로 그 가로등 밑을 걸어오 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본능적인 판단은 옳았다. 그들은 보란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마피아의 무리들이었다.  그날, 배를 타기 전에 보란은 아침 일찍 새로 구입한 베레타 자동 권총을 면밀히 조사했고 25야드 밖에서 웅직이는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사격 연습을 했었다. 그는자신의 예감에 대해 감사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연습 때보다도 훨씬 가까운 거 리에 그의 목표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적들은 10야드 전방, 사 격하기에 가장 좋은 거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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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은 경쾌하게 방아쇠를 당기며 몸을 굴렸다. 보란이 다시 엎드려 그쪽을 보았을 때 몇몇은 이미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 다. 그들은 졸지에 당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적들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 오는 것이었다. 보란은 시선을 그쪽에 고정시키고 재빨리 몸을 굴렸다. 적들의 탄환이 조금 전까지 그가 엎드려 있던 시멘트 바 닥을 두들겼고 머리 위에서도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보란은 이번에 만난 적들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 다. 그는 끓어 오르는 전투 의욕을 느꼈다. 탄환이 그의 털 코트 를 뚫고 지나갔다. 또 하나의 탄환이 그의 구두 됫굽을 위협적으 로 스치고 시멘트 바닥을 두들겼다. 보란은 베레타를 들어 어둠 속에서 토해져 나오는 불꽃을 향하여 9밀리미터짜리의 탄환을 날렸다. 절망적 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보란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위치를 이동하고 베레타에 새로운 탄창을 끼워 넣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한떼의 적들을 발견 했다. 그들은 한꺼번에 무더기로 띨쳐나와 중화기를 휘둘러 댔 다. 보란은 적들이 그의 코 앞에서 사격하고 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탄환이 소나기처럼 그의 옆을 스쳐갔다. 보란은 상자 뒤 로 몸을 굴렸다. 베레타가 미약하게 그들에게 응사했다. 그러나 그 미약한 응사는 적들의 죽음이라는 반응을 얻어냈다. 적들 쪽 에서 잠깐 사격이 멎자 누군가가 신음하는소리를들을수 있었 다.  보란은 다시 한 번 몸을 굴려 가능한 한 그 적플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를은 다시 보란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림자들이 벽 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니 총을 든 적이 되어 

보란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때 갑자기 찬란한 불빛이 그들에게로 쏟아졌다. 적들의 그림자가 시멘트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보란 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불빛에 드러난 적을 향해 8개의 탄환을 날렸다. 8개의 그림자들이 비명을 울리며 기묘한 포즈로 몸을 뒤 틀다가 땅바닥에 나◎굴었다.  이제 그 불빛은 보란을 향해 타원을 그리며 접근하고 있다. 그 것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였다. 안개 때문에 자동차는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보란은 그 불빛에 자신의 모습이 곧 노출될 위기에 놓였음을 깨달았다 적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갑작스런 불빛 때문에 총성은 멎었다. 시멘트 바닥과 나됩굴고 있는 몸뚱이 위에 정적 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는 헤드라이트 뒤에서 날아왔다.  「보란! 어서 타요!」 적들이 있던 쪽에서 또다른 목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차다! 저 차를 잡아!~ 그 목소리에서 미국인의 악센트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란은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곧 이어 다시 총성과 불꽃뙤 터져 나오면서 그 차를 향해 탄환을 퍼부었 다 보란은 더 이상 그 목소리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차 는 총탄을 맞아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보란이 재빨리 달려 그 차 옆에 이르자 곧 문이 활짝 열렸고 보란은 차 안으로 뛰어들었 다 차는 순식간에 방향을 되돌리더니, 전투 현장을 뒤에 남겨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보란은 한숨을 내쉬면서 옆에 앉은 따자를 살펴보았다. 풍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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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매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피부 는 거의 투명해 보일 만큼 깨끗했다. 나이는 스물다섯쯤 되었으 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그녀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 는 엉덩이가 거의 드러나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천장에 붙은 램프의 불빛을 받아 그녀의 횐 넓적다리가 눈부시게 빛났 다. 날씬한 종아리는 무릎 높이의 가죽 부츠에 싸여 있었고 그 다리는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차는 철로가끝나는 부분에서 다 시 한 번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더니 좁은 거리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먼 곳으로부터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 오기 시 작했고 그 소리는 안개 속으로 잦아들었다 보란은 베레타에 새 탄창을 끼워 넣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고맙소만 쓸데없는 모험을 한 것 같소.」 그녀는 그를 흘낏 쳐다보았다 뜻밖에도 그녀의 시선은 차가 웠다.  「그런 소리 말아요.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거의 )0명이나 된 CR요.」 「그런대로 잘 처리하고 있던 중이었소.」 그는 곧 그녀를, 그리고 그 차도 알아보았다 차는 재규어 스 포츠카였다 그녀는 칼레에서 카페리를 탈 때 인사를 나누었던 여자였다. 그는 갑판에서 그녀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기까지 했 었고 두 사람은 안개가 뒤덮인 속에서 레이더로 방향을 탐지하 여 항행하는 일에 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었다 이제 차는 안개로 뒤덮인 거리를 달려가고 있었고 보란은 레 이더 없이 울적한 기분으로 탐색을 해내야 했다 

그녀는 긴장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도버 해형을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당신 뒤에 모자 상자가 있어요. 그 안에 당신을 위 해 준비한 것이 있어요. 빨리 그것을 쓰세요.」 (그것)이란 타는 듯한 붉은 색의 가발과 보란의 몸집과 비슷 한 사이즈의 선원 재킷이었다. 보란은 마음속으로 이와 같은 사 태의 추이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가발과 재킷을 말없이 들여다보 았다 이 구출은 계획된 것임이 분명했다. 우연히 취해진 행동이 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보란에게 재촉했다.  「우린 곧 차를 바꿔 타야 해요. 빨리 가발을 쓰고 뛰어나갈 준 비를 해요.」 보란은 왠지 불안했다 이 비싼 차를 타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왜 그녀는 보란의 전투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서 그녀는 그를 구출할 계획을 세웠는가? 어떤 목적으로? 밤거리 이곳저곳에서 다시 들려 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로 미루어 보아 아마 경찰에서도 보란을 환영할 준 비를 단단히 해두었던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사람 들이 보란의 움직임을 눈치채게 된 것이란 말인가? 교묘한 농간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보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는 궁금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이런 교묘한 구출, 또는 올가미를 계획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순간에 안이하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그의 본능은 여자와 함께 행동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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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재킷을 갈아 입고 있을 때 그들이 탄 차는 VW 버스 앞에 서 타이어를 찢을 듯 급정거했다. 하나의 그림자가 재규어 스고 츠카로 재빨리 다가왔다. 또 하나의 그림자는 VW버스의 운전 석으로 기어오르더니 다음 순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버스의 시 동을 걸고 있었다 보란과 그 여자는 재발리 그 버스에 올랐다 재규어 스포츠카는 곧 작은 차고 속으로 사라졌다 경찰차 한 대 가 버스를 스치고 지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버스의 운전석에 앉은 사내는 킬킬거리더니 경찰차들의 흥수 속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보란과 같이 됫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 는 몸을 떨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위기의 순간이 지나자 긴 장이 풀린 탓인지 , 그녀는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가 그 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 왔다.  보란은조용히 생각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가 영국에 온 이유는 가능하다면 수첩에 있는 몇 개의 이름 을 재빨리 처치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는 이 나라에서도 그의 방법대로 전투할 것을 요청받은 셈이었 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뿐이었다 밀림이 다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그 밀림을 헤치고 나가야 했다.  그의 생애는 이미 오래 전에, 선택할 여지도 없이 어떤 적과 연관지어졌다. 보란이 가는 곳은 어디건간에 곧 전쟁터가 되어 버린다는 분명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 었다 그러나 그는 방어만을 위한 전투 방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 았다 세력이 강한 적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최대의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 인 것이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울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며 그녀를 끌어당겨 부드럽게 안았다 그를 도와 주게 된 그 녀의 동기가 무엇이건간에 그는 그녀에게 빛을 진 셈이었다 그 녀는 위기 일발의 순간에서 그를 구출해 내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는 그가 반격 작전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 련해 주고 그가 영국을 떠나 무사히 미국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길 을 밝혀 줄지도 몰랐다.  별로 나쁜 교두보는 아니로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부 드러운 몸이 그에게로 밀착되어 오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그녀 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 

럴 사드 미술관 
그녀는 제법 꿋꿋한 마음을 가진 여자였다. 잠깐 동안 흐느끼 고 난 그녀는 곧 눈물을 닦고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VW 버스는 도버 서쪽 변경에서 경찰이 지키고 있는 바리케이드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두 팔을 그의 목에 감았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얘기는 우리가 하겠어요. 당신의 미국 악센트를 들키면 안 되니까요.」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운전석의 창가로 다가왔다. 그는 억양 이 없는 어조로 운전수에게 몇 마디 건렌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는 면허증을 넘겨 주었다 경찰관은 그것을 찬찬히 조사해 보더니 되돌려 주고 운전수의 눈앞에 무엇인가를 들이밀었다.  두 사람은 잠깐 동안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다 경찰관은 됫좌석으로 다가왔다. 그는 유리창을 주먹으로 가볍게 몇 번 두 들겼다. 그녀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포옹을 풀고 웬일인지 모르겠다는 뜨였다 「대노를 보냈다고! 정말이오lJ 마리넬로가 끼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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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노는 대단한 실력의 사내요. 누구라도 그건 인정할 거요. 닉 트리거가 그 일을 맡도록 한다고 해서 내가 대노를 믿지 못한 다는 뜻은 절대 아니오. 닉 얘기로는 대노하고도 상의를 했다고 했소. 대노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고 하더군요. 잘 들어 두시오. 자존심이 상한다고 기분 나빠 할 문제가 아니오. 여러분,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보란이라는 놈을 잡아야 한단 말이 오.그놈을잡지 못하는한우리는점점 더 많은것을 잃고궁지 에 몰릴 뿐이오.』 「청부 살인 계약금은 어떻게 생각하시오?J 펜실베이니아에서 온 사내가 물었다 농부 어니는 목청을 높 여 외쳤다.  「난 이제 계약금의 두 배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소!」 다른사내들이 몹시 놀라며 그를바라보았다. 농부 어니는 술 잔을 들어 다시 입술을 적신 다음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계약금을 100만 달러로 올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오. 생각해 보시오. 우리는 그 녀석 때문에 이미 1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소. 그놈이 살아 있는 한 그보다도 더 막대한 손실을 계속 입게 될 거요. 게다가 그놈은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지 않소? 그놈이 계속 살아 있다면 앞으로 우리들은 사업을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형편이 아니오?J 그의 말을 부정하는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적이 다시 그들 주변에 무겁게 내려 앉았고 한동안 그 정적을 깨뜨리지 못했다.  뉴저지의 보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계약금을 높인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오.」 농부 어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카포들의 협의회 Hl 
「아니 ,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거요? 당 신도 보란을 쉽사리 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소?J 마리넬로가서둘러 얘기에 끼여 들었다.  「그 대답은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이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소. 그러나 문제는‥‥‥」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보란을 잡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 이 누구죠?J 모든 눈들이 뉴욕 변두리 지역의 보스인 조 스타치오에게 쏠 렸다. 누군가가 외쳤다.  「자네 미쳤나, 조?J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는지금까지 옛날사람들처럼 행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옛날사 람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다고는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는 겁니다. 」 스타치오는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오기 마리넬 로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조 스타치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타 치오의 얘기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는지 카스틸리 오네는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입술을 셀룩거렸다. 뉴저지에서 온 사내는 마리넬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카스틸리오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건가, 조? 손을 들고 그놈에게 )비를 구하라는 건가?J 회의실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마리넬로가 입 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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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주시오. 우리들 모두가 적어도 한두 번은 생각해 보 았을 만한 문제를 조가 꺼냈소. 그러니 이제 우리들 모두 그 문 제를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아마 조가 옳을지도 모르겠소. 모두가 이 문제를 잘못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오.」 스타치오는 조용히 입을 열어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얘기는 살바토레 마란자노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의 시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쏴죽였습니다. 남은 아무도 믿을 수 없었죠. 말하자면 그런 전쟁은 우리들의 손을 벗어나서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만일 찰리 럭키가 평화를 수립하지 않았더라 면,모든 과거를 용서하고 잊어버리지 않았더라면,그래서 사태 를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은 얘기네, 조.」 동의의 말을 던진 사람은 마리넬로였다. 농부 어니는 냉정하 게 대꾸했다.  「찰리 럭키 루치아노와 맥 보란은 전혀 다른 사람이야.」 스타치오는 농부 어니를 보면서 말했다.  「옳아요, 어니 .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오. 전쟁을 끝내는 데 에는 한 가지 길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 뉴저지에서 온 사내가 끼여 들었다.  「우린 이제까지 일방적으로 막대한 상처를 입었어. 끔찍스러 운 상처를. 그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우리는 어떤 식으 로든 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해.」 「조,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어떤 건가?자세히 얘기해 보 

카포들의 협의회 Of 
fl .」 「협상이오.」 「어떤 협상?J 「그가 우리를 용서하고 우리도 그를 용서하는 거요 과거는 깨 끗이 묻어 버리고.」 농부 어니가 얼굴이 벌겋게 되어 분노를 터뜨렸다.  「우리가 용서받을 게 뭐란 말이야?J 변두리 지역에서 온 사내는 침착했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어니 . 보란은 자기 가족을 모두 잃었습니 다 그는 가족이 죽은 것이 우리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요. 우리가 먼저 그가 저지른 모든 난동을 잊지 않는다면, 그도 우리 들이 저질렀다고 생각한 그의 원한을 결코 잊지 않을 거요. 그러 니까 서로서로 그 빛을 청산해 버리기로 하자는 얘깁니다. 현실 적으로 생각해서 이 전쟁을 끝랠 방법을 궁리하자는 겁니다. 」 농부 어니는 입에 거품을문 채 입을다물어 버렸다 마리렐로 가 말했다 「좋소. 그럼 양쪽이 모두 과거사를 잊어버리기로 했다고 가정 합시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조?J 스타치오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찰리 럭키 루치아노가 했듯이 하는 겁니다. 」 「그럼 보란을 우리의 조직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게로군.」 마리넬로가조용히 말했다. 스타치오는다시 침착하게 반문했 다 「그래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일이 처리되곤 했잖습니까?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처리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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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요. 그가 우리 쪽에 서면 아주 훌륭한 전투원이 될 거요. 때 가 되면 우리는 모두 그를 신뢰할 수도 있을 거요.」 농부 어너는 벌떡 일어서더니 눈을 부릅뜨며 강경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엉덩이에 골프 공만한 구멍을 가지고 있소. 바로 보란이라 는 놈이 만들어 놓은 구멍이오 나는 결코,평화라는 미명 아래 잠자코 있지만은 않겠소.」 스타치오는 냉소를 띠고 말을 받았다.  「당신 혼자만 당한 게 아닙니다 우리들 모두 그놈을 미워할 이유는 충분히 갖고 있어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거요. 총으로 이 전쟁을 끝내려는 시도는 모두 다 실패했소. 그렇다면 머리로라도 이 전쟁을 끝내야 하오.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산산 조각이 나버릴 겁니다. 우리는 옛날의 그 무자 비한 전쟁과도 같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 위기를 직시 하여 그것을 극복해 내야 합니다!」 카스틸리오네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머리를 저었다.  「보란과 협상을 한다‥‥‥‥ 전혀 가능성이 없소, 전혀 ! 그런 방 법은 마음에 들지 않소. 난 싫소!」 마리넬로가 진정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이봐요, 냉정해지시오. 당신들 두 사람 얘기는 충분히 알아들 었소. 이제 좀 진정들 하고 상의해 봅시다. 」 카스틸리오네는 마지 못해 자리에 앉았으나 여전히 소리를 질 러 댔다.  「당신이 보란에 대한 우리의 원한을 묻어 버리려 한다면 그건 곧 우리들 모두의 멸망을 자초하는 거요, 오기 우리는 막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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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입었소. 용서하거나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큰 피해이고 원한이오.」 「알아요, 알아. 그러니 지금 상의해 보자는 것 아니오.」 펜실베이니아의 보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협상할 생각이라 해도 보란이 그것을 그 대로 받아들일지 의심스럽소.」 스타치오가 고개를 o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그는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이오. 쉽게 믿으려 하지 않을 거요. 진지하게 협상을 요청한다 해도 그가 믿어 줄지 의문 이 오.」 농부 어니가 또 나섰다.  「우리가 그따위 것을 논의한다는 것은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오. 그따위 쓰레기 같은 생각으로 왜 황금 같은 우리들의 시 간을 허비하는 건가, 조?~ 펜실베이니아의 보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소. 그라면 보란과 얘기할 수 있을 거 요.」 마리렐로는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레오 퍼시 말이로군.」 「그렇소. 세르지오의 조카요. 그는 지금 피츠필드의 내 구역에 서 일하고 있소. 그라면 충분히‥‥‥」 스타치오가 끼여 들었다 「보란과 같이 돌아온 그 사람 말이오?J 「그렇지 그가 설득을 시킬 수 있을 거요. 우리 생각을.」 카스틸리오네가 손을 내저으며 다시 외쳤다.  

  
「무슨 설득?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소!」 펜실베이러아의 보스가 카스틸리오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일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말이오.」 「시간을 절약합시다. 난 그런 결정에 동의할 수 없소.」 마리넬I가 다시 나섰다.  「얘기하는 데에는 아무런 손해도 없지 않소, 어니? 하나의 가 능성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두 가지 대응책을동시에 추진 시킬 ◎도 있을 거요. 알아듣겠소?J 농부 어니 카스틸리오네는 어림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난 모르겠소.」 「자,가능성을 얘기해 봅시다 우리가두가지 계획을 갖고있 다고 가정하고 조는 조대로 자기 계획을 추진하고, 어너는 어니 대로 자기 계획을 추진하는 거요. 그래서 누가 먼저 목표에 도달 하는지 한 번 두고 봅시다. 」 「어처구니없는 얘기로군!~ 「그러지 마시오. 난 진지하게 얘기하는 중이오.」 마리렐로는 펜실베이니아 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레오 퍼시가 정말 보란과 접촉할 수 있을 것 같소?~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그가 하는 게 훨씬 나을 거요.」 마리넬로는 스타치오에 게로 시선을 옳겼다.  「어떤가 조? 레오 퍼시와 만나 상의해 볼 의향이 있나?J 「해보겠습니다. 」 변두리에서 온 그 사내는 분명하게 고개를 」1덕였다. 카스틸 리오네가 차갑게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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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없는 짓들이오. 나도 그런 식으로 이미 해보았소. 보란을 붙잡기 위해서였소. 보란의 검등이 전우를 그에게 보냈었는데 보란은 사라지고 나한테는 시체들만 도착했소. 우리 전투원들이 었지 .」 「그래도 다시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스타치오도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마리 넬로가 제안했다 「좋소. 그럼 그 방법을 해봅시다. 아니, 당신은 청부 살인 계 약을 좀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시오. 닉 트리거가 아주 유용할 거요 또 대노와 그의 전투원들도 당신 계획에 따르는사람들이 오. 당신이 판단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면 사람이건 돈이건 다 쓰시오.다음 조,자네도 보란을 사로잡기 위해서 필 요한 것은 뭐든지 다 쓰도록 하게. 어떻소, 좋은 해결책 아니 오? 당신들 모두에게 묻』81소. 어떻게 생각하시오?J 어니는 아직도 불만이었다. 그러나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입 을 열었다.  「내 생각엔 그것은 쓸데없는 낭비요. 그러나 결정을 따르겠소. 그것이 한푼 가치도 없는 계획이라 해도 모두를 그 계획에 찬성 한다면 따라야지 . 그러나 이걸 알아 두시오. 조나 레오 퍼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건 내 책임이 아니오. 우리는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할 뿐이오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보란을 발견하 는 즉시 사살할 것이오.」 「왜 계속해서 내 계획이 한푼 가치도 없다고 고집하는 겁니 까?J 스타치오가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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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레오가 보란과 접촉할 수 있다면 총을 들고서 보란 을 만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협상이 무슨 소용인가? 쏴죽여야지 .」 「당신이 모르는것은,보란이 평범한총잡이가 아니라는사실 이오.그에게는 우리들에게 대항하는육감이 있습니다. 나는 마 이애미 사태 이래 그놈에 대해 연구해 왔소. 탤리페론 형제에 대 해서도 생각해 봤습니다. 또 나는 팜 스프링스에서의 그의 놀라 운. 거의 환상적인 작전을 겁토해 봤습니다. 디조르쥬와 그의 전 투원들을 보란이 어떻게 쳐부됐는지 생각해 보았소. 그에게는 우리들이 갖지 못하고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러나 이걸 기억해 두십시오. 세계의 모든 경찰들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들을 농락하듯 그 경찰들을 농락 하면서 이리저리 멋대로 내wㅂW고 있단 말이오. 그게 바로 육감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우리가 함정을 만들려고 하면 그는 함정을 만들기도 전에 알아채 버립니다 그는‥‥‥」 뉴저지의 보스는 조용히 웃음을 띠고 그의 말을 막았다.  「아마 그놈은 마술이라도 부리는 모양이군. 조, 그놈은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더군 그래서 악마나 마술사로 변신하는 모양 이야.」 다른 사내가 투덜거렸다.  「그런 말은 장◎으로라도 하는 게 아니오.」 스타치오가 두 손을 깎지 끼고 음울하게 얘기를 이어 나갔다 「내 얘기는 다름이 아니라, 아주 진지하고 솔직하게 내 계획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겁니다. 함정도 술수도 부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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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대로 할 겁니다. 농부 어니와 나와의 경주는 내가 보란과 접촉하는 그 순간에 결판이 나는 겁니다. 내가 보란과 어떤 결정 을 내리건 말이오. 내가 일단 보란과 맺은 협정은 이 협의회의 권위하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모든 가문이 그 협정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만이 아니라 카스틸리오네와 버 지니아의 블루 블러드를 포함한 모든 가문이 그 결정에 승복해 줘 야겠습니다. 」 조 스타치오의 얘기가 계속되는 동안 마리넬로는 카스틸리오 네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리넬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의 말은 곧 우리들의 명예와 직결되네, 조.」 「줬소. 우리들 모두가 이제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소.」 카스틸리오네는 멋적은 듯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조는 아마 미신을 믿는 모양이야.」 「아냐, 조가 옳아요. 나도 자네 생각을 따르겠네, 조. 우리가 여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이상 다른 가문에게도 모두 연락을 해서 이 결정을 확고 부동한 것으로 만들어 놓기로 하겠네.자, 어떻소, 여러분? 모두 이 계획에 찬성하시오?J 「일의 진행 과정을 나도 세밀히 알아야겠소. 그 조건으로 찬성 01오.」 「그럼 밤을 새워서라도 이 일을 모두에게 연락해야겠군.」 카스틸리오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내 얘기를 끝내야겠소. 나는 벌써 보란에게 당할 만큼 당한 몸이오. 그래서 각 가문에서 사람들을 지원받아야겠소. 말 하자면 피해도 모두 같이 나누어야 된단 말이오?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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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포테이토와 그 전투원들을 빌려 주겠소.」 펜실베이니아의 보스가 제일 먼저 말했다.  「나는 토미 렐슨과 그 일당을 보내겠소.」 마리넬로가 말했다.  「스쿠터 리조.」 다른 뉴욕의 보스도 말했다 「뤘소. 대단하군요. 전화 협의회가 성립되면 각 가문에게 실력 있는 전투원들을 요구하겠소.」 마리넬로가 머리를 o덕였다.  「자, 이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오.◎럼 이제 다른 계획을 논의 해 봅시다. 조, 우리가 자네를 어떤 식으로 지원해 줬으면 좋겠 나?J 「헌저 내가 보란에게 제공해야 하는 선물에 대해 결정을 내려 야 합니다. 멋진 선물이 되어야겠죠. 평범하고 단순한 뇌물이 아 니라 보란이 정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미래를 약속하는 그 런 선물이라야 할 거요. 우리 조직 안에서의 직위도 포함해서. 탤리페론 형제가 죽어 버렸으니까 우리에게는 위원회를 담당할 실력자가필요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아니,그럼‥‥ !~ 카스틸리오네는 탁자를 내리치며 외쳤다 조 스타치오가 하려 는 얘기가 무엇인지 그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넬로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시켰다 「아아, 기다려요. 기다려 , 어니 . 조가 얘기를 계속하도록 내버 려 둡시다. 계속하게, 조.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으니까.」 「좋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보란을 바로 그‥‥‥‥~ 

카포들의 협의회 91 
이렇게 마피아들의 긴 밤은 더욱더 깊어지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마피아들의 협의회에서 내린 최후의 결정은 맥 보란에게는 대단한 충격이 될 것이다.  보란의 길고 긴 밤의 행로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추 
f 적 
보란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는눈을 뜨자마자 베개 밑의 베레타를 거머쥐고 현재 위치가 어디며 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가 생각날 때까지 꼼짝 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는 곧 그가 있는 곳을 생각해 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벗은 몸에 밀착해 오던 부드럽고 따뜻한 여자의 감 촉도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는 그 기억이 꿈이었나 현실이었나 를 잠시 생각해 보아야 했다. 지금 그는 침대에 홀로누워 있었 다. 손으로 주위를 이리저리 더듬어 보았으나 곁에는 아무도 없 었던 것이다 그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 나와 아파트 안을 수색해 보았다. 아파트 안에는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 인한 뒤에야 그는 침실로 돌아와 램프를 켰다.  그는손목 시계를들여다보았다 퀸스 하우스에 들어온 지 열 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뱃속이 완전히 텅 비어 있엇다 너무도 

추 적 93 
오래도록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지낸 것이었다 그 아파트의 난 방 시설은 잘 작동되고 있었다 벌거벗고 서 있는데도 그는 전혀 한기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검은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야간 전투복을 입고 권총 벨 트를 걸친 다음에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 안에는 달걀, 우유, 베이컨이 들어 있었다.  그는 우유를 큰 컵에 따르고 달걀 두 개를 깨뜨려 그 잔 속에 넣었다 달걀은 묵직하게 우유 속에 가라앉았다. 그는 그것을 단 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배가가득해지는듯했다 그리고 가스 불을 켜고 커피포트를 올려놓고는 침실로 되돌아왔다.  그제야 그는 앤 프랭클린이 써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그것은 가방에서 꺼내 놓았던 돈뭉치 위에 놓여 있었다.  (소호 사이크에서 오후 11시에 만나요.) 그 메모 위에는 조잡한 종이 성냥이 놓여 있었고, 그 종이 성 냥의 표지 인괘로 미루어 볼 때 소호 사이크라는 곳은 런던에서 도 대단히 난잡스러운 곳인 것 같았다. 성냥에는 전화 번호도 인 쇄되어 있었다.  보란은 야간 전투용 복장 위에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 이를 맸으며 트위드 바지와 재킷을 걸쳤다. 그는 돈뭉치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지폐의 일부를 야간 전투복의 허리 부 분에 달린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머지는 7장의 소액권 지폐 들이었다. 2장은 미국 지폐로 50달러짜리였고,나머지 5장은 영 국 지폐로 10파운드짜리였다 그는 그것만을 지갑 속에 챙겨 넣 었다 9시 30분에 그는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와 우유로 배를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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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뜨거운 커피로 몸을 덥혔다.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됫계단을 이용하여 소리 없이 차고로 내려가 마피아들에게 서 빼앗은 링컨 콘티넨털의 트렁크를 열고 병기고를 점겁했다.  그는 이스라엘제 우지 반기관총을 한뭉치의 탄창과 함께 앞 좌석 밑에 감췄다. 그것은 나토군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 는 작지만 성능 좋은 무기였다. 길이는 17인치로 다른 기관총들 보다 휠씬 짧아 사용도 간편했다. 잠시 동안 머릿속으로 궁리를 거듭하다가 보란은 웨더비와 탄약 벨트를 들고 아파트로 다시 올라가서 그것들을 침실 옷장 속에 감추었다.  다시 차고로 내려와서 그는 차를 타고 소호 지역의 변두리로 차를 물았다 재즈 클럽 조니 스코트 근처에서 그는 주차장을 발견했다. 차 를 그곳에 세우고 그는 프리드 거리의 행인들 속으로 스며들었 다 20세기 후반, 휘황 찬란한 런던의 밤 풍속도가 바로 거기에 괼 쳐져 있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와 피셔맨스 와르프가 있었고, 스트립 쇼와 값싼 음식점 , 세계 각국의 온갖 요리를 제공하는 호사스런 레스 토랑, 게다가 디스코테크와 나이트 클럽이 있었다 네온사인의 밀림 속을, 그 지역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면서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재즈와 전자 플래시 장치의 명멸과 로큰를 뮤직의 강 렬한 앰프 소리 사이를 보란은 그 구역의 지형과 분위기를 파악 하기 위해 잠깐 돌아보았다.  (프리드 가 광장 옆)이라고 소호 사이크의 성냥갑에 인쇄된 그대로 보란은 쉽게 약속 장소를 찾았다 셀프서비스의 레스토 

추 적 95 
랑이 눈웨 띄었다. (찻집)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기는 했으나 그 곳은 분명히 카페테리아였다. 그곳에는 창문 근처에 탁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보란은 앤 프랭클린의 아파트에서 배불리 먹었 으므로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 레스토랑은 거리를 살펴보기에 적합했다. 그는 그 집으로 들어가서 음식이 죽 놓여 있는 바를 지나면서 쟁반에 몇 가지 음식들을 조금섹 덜어 놓었다.  계산대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가 들고 있는 쟁반을 보고 말 했다.  「6하고 6이에요.」 보란은 장갑을 꺼내며 그 여자에게 물었다.  「뭐가 6이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보란을 빤히 쳐다보았다.  「미국인이세요?J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10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냈다 「계산이 6실링 6펜스예요.」 그제야 그녀는 그가 꺼내 놓은 10파운드 지폐를 보았고 동시 에 미소는 사라져 버렸다 「잔돈 없으세요?J 「미안하오.」 그녀는 78센트의 물건을 사면서 25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놓는 사람에게, 미국인들도 흔히 그러듯 못마땅하다는 태도로 돈을 바꿔 주더니, 거스름돈을 쟁반 위에 놓고 되돌아가는 그를 쏘아 보았다.  보란은 창 바로 옆 탁자에 앉았다. 40분 동안 거기 앉아서 스 테이크와 양파 푸딩 , 간 토마토, 그리고 그 밖의 영국 음식을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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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그곳에서 그는 거리를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그는 소호 사이크를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조용히 관 찰하며 그들의 특징을 머리에 새겨 두었다.  11시 10분 전에 택시 한 대가클럽 앞에 멈추었다. 됫좌석에서 앤 프랭클린이 내렸다. 보란은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녀는 택시 안에 있는 내릴 뜻이 전혀 없는 어떤 사내와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다. 택시는 곧 떠났고, 그녀는 클럽 안으로 사라졌다 보란은 계속 기다리며 관찰했다. 1,2분 뒤에 또 한 대의 택시 가 나타났고-보란은 그것이 아가의 택시와 같은 차라고 추 측했다-한 사내가 내렸다 보란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도버로부터 그와 앤을 런던까지 태워다 준그운전사였다 그녀 가 그를 해리 파커라고 하던 것도 기억해 냈다 그 택시를 바로 뒤따라 또 한 대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 는 것을 보란은 보았다. 그것은 영국제의 조그마한 차였다. 두 남자가 그 차에서 내리더니 몇 발자국 뒤에 처져서 해리 파커를 뒤따랐다 해리 파커가소호 사이크로 들어가자 그들도 클럽 안 으로 들어갔다. 그 차는 좀더 앞쪽으로 이동하였다. 클럽의 바로 윗길에서 또 한 사내가 나왔다. 그는 도로를 가로질러 보란이 있 는쪽의 인도로 올라섰다. 보란은 이 마지막 사나이를바라보았 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 보란은 그를 차근차근 주의 깊게 훌어보았다. 그 사나이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가로 등에 기 대어 섰다.  보란은 그 사내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한숨 을 내쉬며 상의의 단추를 풀고 베레타를 뽑아 무릎 위에 놓고는 소음기를 총구 끝에 부착시켰다. 보란은 다시 베레타를 권총 벨 

추 적 97 
트에 넣었다.  함정은 완전히 구축된 듯 보였다. 이제 그들은 다만 주빈이 나 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 같한다.  그래서 주빈은 밖으로 나섰다.  그는 모퉁이에 서서 더욱더 촘촘한 그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은지 도로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더 이상은 없었다. 그 러나 가로등에 기대어 섰던 사나이는 즉시 그에게 주의의 눈길 을 보냈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짐짓 모르는 체하고 피우고 있던 담배를 허공에 날렸다. 그 거리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파수꾼이 바로 그 담배 꽁초가 허공으로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는 것을 보란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또 찬 명의 사나이가 도 로를 바삐 가로질러 와서 자리를 잡았다 보란의 오른쪽이었다.  보란은 흔자서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클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미행이나 감시에 대하여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적과 친구를 구별해야 하는 때가 온 것뿐이었다 앤 프랭클린과 사드 미술관의 사내들이 어떤 쪽의 사람들인지를 명백하게 알게 될 때가 온 것이었다. 그가 클럽으로 들어갔을 때 뒤에 처져 있 던 두 사내도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왔다.  흠 하나 없이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은 늙은사내가로비의 데 스크 바로 안에 서 있었다 데스크 위에는 회원만이 입장할 수 있다고 씌어 있었다. 보란은 곧 그 책상으로 가서 노인에게 말했 다.  「아름다운 아가씨를 여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 노인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회원증을 보여 주십시오. 이곳의 엄격한 규칙입니다. 회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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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경우에는 입장료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 보란은 지갑을 꺼 냈다.  「입장료가 얼마요?J 노인은 자못 유쾌하다는 듯 킬킬거렸다.  「당신 같은 미국인한테는 파운드니 실링이터 하는 계산이 아 주 힘들 거요.」 두 사나이는 이제 클럽으로 들어와서 문 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보란과 그 노인에게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한 태 도를 애써 꾸미고 있었다 노인은 수첩에 씌어진 것을 잠깐 들여다보고는 물었다.  「선생님이 만나기로 한 분이 미스 프랭클린 아닌가요?J 「그렇습니다. 」 미국인을 경멸하던 노인의 태도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아, 그렇다면 실례했습너다. 선생님 . 선생님은 입장료를 지불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방금 근무 교대를 해서 아직 당직표를 들여 다보지 못했습너다. 」 「들어가도 된다는 뜻인가요?J 「물론입터다. 선생님 . 바를 지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십시오. 클 럽 룸을 가로질러 계속가시면 됩니다 )호실입니다. 」 보란은 10파운드 지폐를 데스크 위에 놓고 말했다.  「그걸 비밀로 해주시오.」 10파운드 지폐는 순식간에 노인의 손바닥 안으로 사라졌다.  「문 가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은 선생님과 동행이십니까?~ 「아니오. 아는 사람들이오?J 「저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야드 경찰관입니다. 」 

추 적 99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란은 깜짝 놀랐다.  「고맙소.」 그는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돌아서서 나갈 수는 없었다. 경찰들을 쏘아 쓰러뜨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 하나 남은 길은 곧장 밀림 속으로, 그 것이 보란이라는 나방을 잡기 위해 쳐진 것일지라도 그 거미줄 속으로 들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저0 하ㅁ 
소호 사이크는 근래에 런던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전형적 인 로큰를 뮤직 클럽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클럽은 대개 놀 랄 만큼 빠르게 나타났다가는 어느 틈에 다시 사라져 버리곤 했 다. 소호 사이크는 그런 와중에도 계속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 때문에 독특하였다. 런던에서 이 클럽의 경쟁자들이 나타났다가 하루 밤 사이에 사라져 버린 데 반하여 관광객들과 밤을 새우는 남녀들로 계속 성황을 이루고 있는 소호 사이크 클럽은 벌써 여 러 시즌에 걸쳐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클럽은 관광객들에 게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음악 애호가들이나 음악광들에게도 사 랑을 받는 장소가 되었다. 대개의 도시에서 그렇듯 어린 소녀들 과 젊은 여자들은 로큰를 뮤직 그룹을 쫓아다녔다.  흘 안에는 생음악이 연주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유리 상자나 커다란 유리 튜브 속에서 벌거벗은 모델들이 갖가지 요염한 포 

함 정 101 
즈를 취하고 있는 것 정도가 전자 매체를 통하지 않고 제공되는 유일한 여흥거리였다 바에는 서서 마시고 지껄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막을 울리는 로큰롤과 함께 그들의 떠들썩한 대화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흘 안은 캄캄했다. 빛이라 고는 누드 모델들이 들어 있는 유리 튜브로부터 홀러나오는 것 뿐이었다. 그 빛은 음악에 따라 바러었고 그 빛의 변화에 따라 벌거벗은 모델들도 포즈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보란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금발 머리의 , 동상과도 같은 포즈를 취한 여자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로비에 있는 두 사나이 가 왜 홀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는지 그는 의아스러웠다. 아마 도 그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태도는 삼가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았다.  보란은 여자가 들어 있는 튜브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두 사 나이가 흘 안으로 들어왔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호기심으로 그는 튜브 속의 , 살아 있는 마네킹의 시선을 붙잡아 보려고 했 다. 그러나 그녀는 앞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하였다. 그때 튜브의 불빛이 바러었다. 붉은 조명이 사라지고 진 한 자줏빛 조명이 튜브 안을 채웠다. 그러자 그녀는 나무로 조각 한 님프와도 같던 포즈에서 이국적인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듯 한 포즈로 바꾸었다. 한쪽 무릎을 들어 다른쪽 다리 위에 포개더 니 엉덩이를 위로 들어올렸다. 보란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곳 을 떠났다 런던이라는곳은 놀 시간이 많은사람에게는 괜찮은 도시인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보란에게는그렇지 못 했다. 스코틀랜드 야드의 형사들이 바로 그때 흘 안으로 들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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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었다.  보란은 계단을 찾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현란한 사이 키델릭 조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천지를 뒤혼드는 듯한 거친 음 악이 풍랑처럼 흔들리고 있는 커다란 홀이었다 중앙에는 악단 을 위한 스탠드가 있었고 그 위에서 날뛰고 있는 로큰를 뮤직.연 주자들은 그 밴드 스탠드 한쪽에서 독립된 마이크로 거의 악을 쓰며 노래인지 절규인지를 외치고 있는 가수와 큰 소리 지르기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했다.  그는 그 혼란과 소음을 떠밀고 홀을 가로질러 맞은편 끝에 있 는 계단으로 갔다. 계단에서 그는 슬쩍 뒤돌아보았다. 두 형사는 헐레벌떡 그를 뒤쫓고 있었다 보란은 계단을 달려 올라가서 좁 은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방의 번호를 확인하며 걷다가 3호실 을 발견하자 그는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곳은 감옥의 독방보다 조금 큰 작은 방이었다. 촛불만으로 밝혀진 방 안은 어두웠다. 커튼이 내려진 창 밑에 두 사람을 위 한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창으로는 클럽 룸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한쪽 벽에는 얕으막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할렘 스타일의 베개가 한 쌍 올려져 있었다. 그 방에서도 역시 음악 소리는 들렸다. 밑의 클럽 룸으로부터 들려 오는 희미한 로 큰롤이 벽을 미세하게 흔드는 듯했다.  앤 프랭클린은 두 손으로 물을 한 잔 받쳐 들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커튼 틈으로 클럽 룸을 살피고 있었던 것 같았 다. 보란이 들어서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을 향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그의 얼굴에 나타나있는 어 떤 표정이 그 미소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도 미 

함 정 103 
소는 곧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리 파커라는 사나이는 침대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다가 몸 을 일으키며 소리 쳤다.  「당신 늦었군.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우린 걱정을‥‥ 보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경찰들이 당신을 미행하여 여기까지 왔소. 적어도 4명이 이 클럽 안에 있을 거요.」 파커는 걱정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나도 앤한테 누가 우리 뒤를 밟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 고 있었소. 그래서 당신이 오지 않기를 바랐지 그들이 당신을 못 알아본 게 다행이군.」 「그들은 날 알아보았소. 날 쉽사리 체포할 수도 있었을 거요. 그런데 그러지 않더군. 그들이 왜 날 체포하지 않았을까?그들 에겐 무언가 계획이 있을 거또. 그게 무슨 계획인지 알아내야겠 는데 .」 파커가 문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그걸 알아보겠소.」 「조용히 .」 보란이 말했다.  「나도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소.」 파커는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보란은 앤 프랭클린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두사람의 다리 가 탁자 밑에서 얽혔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자기 다리를 뽑아 냈 다 그녀는 보란에게 놀랐다는 듯한 시선을 던지더니 갑자기 눈 을 내리깔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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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를 따뜻하게 해줘서 고맙소.」 「아,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일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싶소.」 보란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 다시 그녀의 태도를 경직되게 한 것 같았다. 그녀는 팔을 뻗어서 그의 손을 쥐었다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해요. 잘못하면 큰일나요.」 「앤, 나도 알아요. 그러나 당신이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 거요 왜 만나자고 했소?J 「사실은 스톤 소령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던 거예요. 벌써 오 셨어야 하는데 아직 안 오는군요. 걱정이에요.」 그녀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보란도 역시 걱정이 되었다.  「왜 약속 장소를 여기로 정한 거요?사드 미술관에서 만나기 로 하지 않은 이유가 뭐요?J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 에요. 제발 떠나세요.」 「안 가겠소. 얘기를 다 듣기 전에는.」 「무슨 얘기요?J 「난 거의 포위당해 있소.난그런 건 싫소, 앤.그러니 얘기하 시오. 사실을 그대로 얘기해요.」 「미안해요.」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분명히 더 이상의 얘기는 하고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알았소, 그럼 떠나겠소.」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문으로 갔다. 그때 그녀가 외쳤다.  

함 정 105 
「아, 기다려요!」 그녀는 의자에서 퉁기듯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보란은 두 팔 로그녀를끌어안고 뜨겁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런 행동 이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 잠시 동안 그녀는 반항을 했다 그러나 곧 포옹 속으로 휘말려들었고 그녀는 온몸을 보란의 열 정적인 키스와 애무에 맡겼다. 그가 그녀를 놓아 주자 그녀는 신 음을 하며 그에게 매달려 왔다 그는 갑자기 냉정하게 물었다.  「사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보시오. 왜 맥 보란에게 이다지도 관심을 갖는 거요7J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었다. 아직도 포옹의 열기에 서 빠져 나오지 못한 듯했다 「난 자세히 알지 못해요.」 「그럼 아는 대로만 얘기해 봐요.」 그녀는 그에게서 몸을 떼고 문에 기대어 섰다. 그녀는 평정을 되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보란,내가이렇게 행동해서 미안해요.」 「그런 것은 괜찮소.자,나한테 대답할 말이 있죠?지금은 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시간이오.」 그녀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미국인 마피아들이 런던으로 이주해 왔어요. 아마 당신도 아 실 거예요. 그들은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차지하려고 해요. 나 도 들은 얘기예요. 거대한 세력을 갖고서 하는 행동이래요. 정 치 , 산업 등등 온갖 분야가 망라된 세력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 들은 노력에 비해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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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스톤소령의 클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있기 때 문이죠. 그런데 그들은 아주 강력한 세력으로. 정치적으로 막패 한 세력으로 그곳을 차지하려고 호시 탐탐 노리고 있어요. 증거 를 갖고서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위협하는 식으로요.」 보란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알 것 같소. 당신네 클럽에는 VIP 회원도 있소?J 그녀는 머리를 2덕였다.  「바로 그 사람들이 아주 곤경에 처해 있는 거죠.」 「어떤 정도_E?J 「심각해요. 60년대의 프로퓨모 스캔들에 대한 얘길 들은 적이 있죠?J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아니오?~ 보란은 그녀의 얘기에 온 신경을 다 집중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그때보다도 10배나 더 심각해요. 이 마피아 들은 정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어요. 정부 를 거꾸러뜨릴 수도 있을 거예요.」 「소령이 그런 스캔들에 직접 관련되어 있소?J 「직접적으로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는 책임을 느끼죠. 그는 보안을 담당하고 있었거든요.」 「그에게 전하시오. 내가 생각해 보겠다고.」 「끔찍스러운 악몽 같아요. 이 모든 일들이‥‥‥‥」 그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너무 염려 말아요. 곧 무슨 대책이 세워질 거요. 어디로 가야 소령을 만날 수 있겠소?J 

함 정 107 
보란은 이미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왜 그가 이렇게 늦는지도 모르겠구요. 여기 에서 빠져 나가시거든 곧장 쥔스 하우스로 플아가세요 거기에 서 소령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보겠어요.」 보란이 소리 내어 웃었다 「좋소. 생각해 보시오. 우리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잖소? 바로 퀸스 하우스에서 말이오. 당신과 내가 하다 만 일이‥‥‥ J 그녀는 입가에 보일듯 말듯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이며 작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는 문을 조금 열고 밖을 재 빨리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그는 밖으로 빠져 나 갔고 문은 그 뒤에서 닫혔다.  해리 파커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당신이 옳았소, 친구 경찰들이 덫을 놓은 모양이오.」 보란은 다른 쪽 끝의 계단을 가리켰다 「저건 어디로 통하는 거요?J 「다음 층이요. 침실들이오.」 「그 위층은 뭐요?~ 「알려고 해본 적이 없는데. 거기로 나가겠다는 거요?J 「그래야겠소.」 「그럼 나는 다른 길로 나가야겠군. 저 경찰들을 혼란시키기 위 해서라도.」 「그러는 게 좋겠소.」 해리 파커는 킬킬거리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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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특기가 달아나는 거요.」 곧 해리는 주 객실용 클럽 쪽을 향해 복도를 따라 움직였다.  보란은 반대 방향으로 바삐 걸어갔다. 계단을 발견하자 그는 아래쪽을 먼저 살펴보았다. 잠시 그는 기다렸다. 누가 올라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스톤 소령이 아래에서부터 바삐 올라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순간 서로를 보았다. 보란의 베레타는 어 느새 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소령은즉시 발을 멈추더니 아래쪽을 가리키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정문을 빠져 나가요. 당신은 아주 위급한 처지요.」 「거리로는 안 돼요. 경찰들에 의해 봉쇄되었소.」 스톤은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왔다.  「바로 내가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 셈이군 나를 미행하고 있던 니콜라스 우스를 떼어 버리느라고 20분 동안이나 헤매고 다녔 소. 결국 그놈의 차를 따돌리고는 골목으로 차를 몰아 여기로 오 긴 했지만 내가 정말 그놈의 미 행을 피해 온 건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소.」 「니콜라스 우스가 누구요?J 「이곳의 마피아요. 당신이 그를 모른다니 놀랐는걸. 그놈은 또 닉 트리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자요.」 「아, 알았소. 그들은 몇 명이었소?J 소령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적어도 5명 이상이었소.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들이닥칠 지도 모르겠소.」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쪽을 택해야 할 것인지 그는 생 

함 정 109 
각했다. 경찰들 사이로 몸을 날려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를 추격해 온다면 보란에게는 더 이상의 방법이란 없 었다. 그러나 소령의 미행자들과 맞부딪친다면? 그것은 경찰들 보다는 몇 배나 강력한 마피아의 부대와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스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줬소.나는 지붕으로 올라가겠소. 앤이 당신을 )호실에서 기 다리는 중이오.」 보란은 위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 꼭대기에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작은 체구의 사내가 낡 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보란의 손에 들린 베레타를 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이게, 이게 뭐요?J 해리 파커의 거친 말투를 흥내 내어 보란이 말했다 「저 아래 도둑놈들이 있어, 친구.사람들을 모두밖으로 내보 내. 빨리 !」 그 남자는 등 뒤에 있는 단추를 눌렀다 보란은 비상벨이 아래 층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내는 일어서서 계단 아래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보란은 그를 붙잡았다.  「그 길로는 못 가!」 보란이 외쳤다 그 작은 사내가 또 다른 출입구를 알고 있기를 바라며 ‥‥‥ 「다른 길은 없어요!」 그 사내는 비명을 지르면서 보란의 손을 뿌리치더니 곤두박질 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벌써 복도에는 온갖 기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의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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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벗은 남녀들이 혼비 백산하여 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 젊은 이가 바짓가랑이에 바지를 페려고 애쓰면서 보란 곁으로 스쳐 달려갔다. 그는 구두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고 셔츠는 입에 물 고 있었다. 벌거벗은 젖가슴을 출렁이며 아름다운 여자가 달려 갔다 그녀는 블라우스를 여미며 젖가슴을 가리려고 애를 썼으 나 벌거벗은 채 노출된 하체에는 아직 신경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보란은 마치 지옥을 보는 듯했다. 쾌락에 잠깐 방해를 받은 이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면 곧 평온을 되찾게 되리라는 것을 그 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란이 평온함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는 불운한 사람들의 숨가쁜 흐름이 다 지나간 뒤에 소호 사이크의 이층을 재발리 조사하기 시작했다. 복도를 사이에 두 고 한쪽마다 3개의 침실이 있어서 이층에는 6개의 침실이 있었 다. 정면을 향한 3개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꽉 막힌 벽들뿐이 었다. 건물의 윗부분은 아랫부분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거 리를 향하고 있으면서도 창문이 없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다른 쪽에 있는 3개의 방에는 골목길을 향한 작은 창문이 있었 다.  보란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그것들을 모두 살펴보았 다 보란은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 닫게 되었다. 비상구를 나타내는 표지도 없었고, 지붕으로 나갈 수 있는 길도 없었다 30피트나 아래에 있는 골목으로 뛰어내리 는 수밖훼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보란은 나갈 수 있는 길이 하나쯤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끝 방의 옷장 위 천장에 다락으로 나가는 통풍구가 있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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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 길도 밖으로 통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뚜껑을 열고 몸을 이끌어 올린 뒤 조심스럽게 다시 뚜겅을 닫았 다 그는 라이터를 켜서 어둠을 밝혔다. 그가 상상했던 대로 다 락은 대개의 건물처럼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뚫려져 있었다. 그 리고 아주 낮았다. 그것은 지붕에 박공들이 있으며 따라서 지붕 의 표면이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보란 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박공이 있으므로 창문이 있을 것이며 , 그 리하여 지붕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보란은 라이터를 켜들고 주변을 비추며 엉금엉금 기기 시작 했다. 어디에서든지 빛이 새어드는 곳을 찾아내야 했다. 여기저 기에서 쥐들이 그가 나아가는 통로를 뛰어다녔다 보란은 소름 이 끼쳤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먼 곳에서 빛이 흘러드는 것을보았다 희미한 장방형의 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보란은 그곳을 향해 기어갔다. 단 1초라 도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빛은 격자가 있는 통풍창으로부터 흘러들고 있었다. 통풍창은 천장의 들보로부터 몇 피트 위의 지붕에 수평으로 설치되어 있 었고 격자는 나무로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나무는 몹시 삭았고 너비는 보란의 어깨가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있을 정 도였다.  창의 격자는 보란이 슬쩍 힘을 주자둔한소리를 내며 쉽사리 부러졌다 보란은 부러진 격자들을 빠른 동작으로 창에서 떼어 냈다. 보란은 그 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 위아래를 재빨리 훌어 보았다 그 창 바로 밑에 지붕의 평평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아주 좁았다. 그 아래로는 프리드 가가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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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은 몸의 자세를 바꾸어 발부터 그 구멍으로 내보내기 시 작했다. 클럽 바로 앞의 거리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 것 같았 다 그러나보란의 시야는가려져 아무것도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쪽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통풍창 을 빠져 나오자 그는 조심스럽게 박공을 돌아 뒤쪽으로 움직였 다 보란은 그 지붕이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평평하지 않고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간 뒤 보란은 건물 뒤쪽 끝부분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낡은 벽돌 속에 철제의 사다리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 바로 그 사 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땅에 내려서자마자 곧 거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야, 거기 뭐야!」 그리고 그 건물로부터 몇 피트 아래쪽 그늘 속으로부터 하나 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 말투는 분명 미국인의 악센트였다.  보란은 그 그림자의 손에 쥐어진 리볼버를 볼 수 있었다.  보란은 땅으로 뛰어내린 직후였기 때문에 손을 상의 속으로 넣을 시간이 없었다. 보란은 빠르게 몸을 굴렸다 그와 동시에 손을 넣어 베레타를 뽑았고, 다음 순간 작지만 강력한 무기는 소 음기를 통해 죽음을 부르는 탄환과 함께 불꽃을 토했다 슈욱 1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그림자는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건물의 벽 에 부딪치더니 땅바닥에 나됫굴었다.  그러자 곧 골목 어귀에서 기다란 코트를 입은 사내가 나타나 며 외쳤다.  「조니? 무슨 일인가?J 

함 정 11) 
베레타가 이번에도 무섭게 불을 토했다. 긴 코트를 입은 사내 는 소리도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나◎굴었다. 그가 쓰러진 곳은 골목 바로 앞이었다 보란은 권총을 손에 쥔 채 큰 대자로 뻗은 시체를 남겨 두고 당장에라도 어느 쪽을 향해서건 사격할 수 있도록 베레타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인도로 뛰쳐나갔 다.  바로 그 순간 도로 아래쪽 모퉁이에서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 쩍하고 밝혀지더니 그 불빛 너머로부터 몇 개의 총구가 불을 뿜 었다. 보란의 귀 옆으로 음산한 휘파람을 불며 탄환이 날았고 보도 블록 위에 탄환이 박히며 불빛을 발했다 그러나 보란은 이 미 날쌔게 몸을 날려 총탄이 닿지 않는 곳에 몸을 감추고 베레타 의 총구를 자동차에 맞추고 있었다. 그의 베레타가 요란한 적의 총성에 불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보란의 표적들이 곧 풀썩풀 썩 나가 떨어졌다 경찰의 호각 소리가 프리드 가 위쪽에서부터 들려 왔고, 여기 저기에서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구석과 양쪽 보 도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왔다.  영국인의 악센트인 듯한 굵직한 목소리가 위엄 있게 소리쳤 다.  「경찰이다! 즉시 총격을 중지하라!」 보란의 총격은 이미 중지된 뒤였다. 그는 이미 차들의 봉쇄선 을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차 안에 있던 누 군가가 경찰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조준하고 있던 경찰들의 총 구들이 그 총격에 즉시 반격을 가했고 프리드 가는 때 아닌 총성 으로 뒤흔들렸다 보란은 이미 길 모퉁이를 지나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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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마피아와 경찰들의 함정을 그는 다시 한 번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 동안 이나 안전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함정과 올가미 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그의 생명과 임무를 위협할 것인가? 얼마나 오래도록 그는 이 스코틀랜드 야드의 수사관들을 피하며 적을 분쇄할 수 있을 것인가? 런던 전투는 명백히 개인적인 경향을 띠고 시작되고 있었다 보란은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식의 방어적인 싸움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살아 남 으려면 먼저 공격을 가하여 기선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그런 공격을 주저하였으나 전투에 단 련된 그의 육체와 본능은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대대 적인 규모의 전투,다시 말하면 보란자신이 계획하고그 계획에 따라 그 자신의 리드로 진행되는 전투-그것이야말로 그가 영국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전투가 어디에서 출발되어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링컨 콘티넨털로 되돌아오자 이스라엘제 우 지 반기관총을 앞좌석 밑에서 꺼냈다. 차가운 죽음의 감촉이 전 해지자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드 미술관을 향 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제 영국에서의 전투는 서서히 본격적인 규모로 전개되어 가 고 있었다 

』θ 노인의 최후 
보란은 전투를 위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몸에 꼭 끼는 검은 색의 야간 전투복에 역시 검은 색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우지 반기관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권총 벨트에는 베레타를 꽃았 다. 그리고는 최종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런던의 밤거리 는 고요했으며 대기는 차가웠고 칠혹처럼 어두웠다. 그는 전투 용 복장 위에 겹쳐 입었던 바지와 상의를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그는 그 옷들을 거리 건너편에 주차시켜 놓은 링컨 콘티넨털 안 에 넣어 두었다 그는 미술관 맞은편으로부터 광장의 입구로 들어서자 잠시 걸 음을 멈추었다. 광장에는 어둠의 장막이 두텁게 드리워져 있었 다 모든 것이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두 귀를 곤두세우고 조용히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난 뒤 그는 기다림에 대한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인기척을 들었던 것이다. 앞쪽에 펼쳐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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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어디선가 구두가 시멘트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짤막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기침 소리도 들렸다 적은 바로 보란의 눈앞에 있었다.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목표물이 나타날 때를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가로등에도 어떤 조처를 취한 것이 분명했다. 모든 가로 등의 불은 꺼져 있었다. 이제는 귀기울여 듣는 것만이 사태를 파 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보란은 도로 저편에 위치한 미술관을 건너다보았다. 제일 아 래층에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창문마다 드 리워져 있던 두터운 커튼을 상기했다. 그 미술관은 지금 외양으 로 보이는 것처럼 비어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 다.  그는 건물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조그만 소리 하나라도 놓치 지 않도록두 귀를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가 행동함에 있 어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발을 읖겨 놓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누군가가코를 훌쩍거렸다. 발소리가 들렸다. 보란은 그 자세에서 몸의 모든 움 직임을 멈추고 앞쪽을 쏘아보았다. 캄캄한 어둠을 배경으로 거 의 식별할 수 없는 검은 물체가, 아니 검은 물체의 희미한 윤곽 만이 보였고, 그 윤곽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란은 발견했다.  보란은 의아스러웠다. 이 자들이 언제부터 밤 전투에서 검은옷 을 입는 법을 배웠던 것일까? 그는 숨을 죽이고 앞으로 움직여 갔다. 그 사내 바로 뒤로 손을 뻗으면 그의 몸에 닿을 수 있는 거 리까지 조심스럽게 움직여 갔다 그 사내는 벽을 등진 채 두 손 을 코트 주머니에 찌르고 있었고, 모÷◎를 이마 밑까지 깊게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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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있었다.  한밤중에 소리 하나 내지 않고온몸을바짝 긴장시킨 채 오랜 시간 동안을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를 보란은 잘 알고 있었다. 신체의 모든감각이 칼끝처럼 예민해지는 순간 이 있는가 하면 때로 그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는 듯한 때도 있게 마련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선 채로 잠들어 버리기도 했다 이 사내도 반은 수면 상태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는 코가 막 히는 듯 이따금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렸 으며 보란의 얼굴과 맞닥뜨려겼다.  그 순간 보란은 앞으로 성큼 발을 내디디며 한 손으로 그의 목 을 움켜쥐어 벽으로 밀어붙였고, 그와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입과 코를 막아 터져 나오는 비명을 짓눌렀다. 동시에 목덜 미를 쥐었던 손을 떼어 주먹을 단단히 쥐고 목을 힘껏 강타했고, 벽을 등지고 무너지는 사내의 양 어깨를 붙들고는 무릎을 곤두 세워 연거푸 배를 가격했다.  사내의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 나가며 보란의 품으로 안겼 다. 그의 몸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보란은 느꼈다 보란은 그 를조용히 땅 위에 뉘었다 그는제대로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 고 마치 처음부터 생명이 없었던 물체처럼 널브러졌다. 보란은 그가 완전히 숨이 끊어졌는지를 살폈다. 호흡 소리는 들리지 않 았다 그의 호흡 기관은 갑작스런 공격과 급소에 받은 충격으로 말미암아 마비된 것이었다. 밀림의 검은 표범은 런던에 펼쳐진 밤의 밀림 사이로 다음의 표적을 찾아 앞길을 재촉했다 그는 광장 다른 쪽에서 기침을 하는 사내를 찾아내기 위해 서 서히 나아갔다. 그를 찾아내자 보란은 곧 그를 괴로운 기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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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시켜 주기 위해 죽음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 다음그가 발을 멈춘 곳은포르노 가게의 문 앞이었다 이 곳은 사드 미술관 지하로 연결돼 있는 바로 그 건물이었다. 가게 의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나 보란에게 있어서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어깨에 힘을 주어 칼날을 서너 차례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생각대 로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보란은 문으로 들어섰다.  건물의 지하로 내려서자 보란은 통로를 따라 미술관 아래에 있는 에드윈 찰스의 비밀 보안 하수도로 향했다. 그가 처음 이곳 을 통과했을 때는 다만 이곳의 통로 구실에 대해서만 유의했었 다 그는 이곳으로부터 빠져 나가기만을 원했으며 그래서 이곳 의 보안 장치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제일 우선적이며 중요한 문제였다.  그날 밤 찰스가 그를 인도한 길은 아래층으로부터 지하로 계 단을 내려가 좁은 하수구를 통과하여 맨흘에 이르는 길이었다 보란은 그 좁은 하수구 양쪽 끝에 묵직한 철문이 있는 것을 보기 는 했으나 그때는 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그 노인이 그 철문들 너머에서 자신의 술래잡기 놀이를 지휘하고 모의하는 것이리라고 추측했다.  지금그 두 철문은모두조금씩 열려 있었다 보란은그문너 머를 수색해 보기로 했다. 철문을 밀고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넓고 정교하게 꾸며진 지하의 아파트였다 방 하나 안에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구조였으며 잠재적인 필요가 있는것까지도모 두 갖춰져 있는 아파트였다 멋진 전자 제품들까지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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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안에 사람은 없었다.  그 아파트의 맞은편 문 너머에서 보란은 보안 경보실을 발견 했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정교한 장치였다. 전자식으 로 감응, 작동하는 폐쇄 회로 텔레비전이 가장 큰 경보 장치였 다 그 외에도 필름을 편집하는 탁자와 영사기를 포함한 갖가지 의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에드윈 찰스의 모습은보이지 않았 다.  제일 먼저 보란의 관심을 끈 것은 텔레비전 모니터였다 모든 모니터들이 다 작동되고 있었으며 그 복합 장치들은 건물의 일 층과 이층 모두를 다 감시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한 스크 린은 입구의 홀을 비추고 있었고, 다른 한 스크린은 그날 밤 보 란이 갇혔던 그 클럽 룸을 와이드 앵글로 포착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스크린은 에로틱하게 장식된 할렘의 방을 여러 가지 앵 글로 포착하고 있었다. 이층에 있던 작은 방들에도 따로 감시하 는 모니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예전에 보란이 사드 미술관에 왔을 때에는 그 방들은 모두 텅 빈 채로 희미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방들이 텔레비전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처럼 전부 환하게 밝혀 져 있었고 비어 있는 방은 하나도 없었다.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모두 벌거벗은 채 여러 가지의 형태로 감금되어, 그 부자유스러 움을 견디고 있는 듯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모니터가 나타내고 있는 할렘의 방은 이와는 좀 달랐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와 (로마의 잔치)를 뒤섞어 놓은 듯이 여러 카지위 사치스러운 물건들과 같 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파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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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보적인 파티 , 그리고 감각적으로 성적인 기쁨과 환희가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는 파티였다. 대개의 남자들은 중 년의 나이거나 그보다 더 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젊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은 로마 인들이 입던 갑옷과 할렘의 잠옷들, 또는 여자 노예의 의상이었다 이런 남녀들이 어우러져 있는 방의 중앙에는 회전 쿠대가 있 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십자가 위에 팔과 다리를 넓게 벌린 채 묶인 혹인 남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아주 광포한 성적인 격동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 았다.  키가큰 금발의 젊은 여자가 역시 벌거벗은 채 아주도발적인 춤으로 그를 자극하였다. 그녀는 가끔 그의 하체에 몸을 앉힐 듯 앉힐 듯 하다가 다시 일어섰고, 그의 상체에 자신의 풍만한 두 젖가슴을 문질러 댔다. 그러나 그 여자-는 흑인 사내가 격정을 이 기지 못해 몸부림칠 듯한 상태가 되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 다 시 도발적인 춤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흑인 사내가 격정으로 몸 부림칠 때마다 그는 또 한 명의 여자에게 채찍질을 당하곤 했다.  그녀는 보기에도 으스스한 가죽 채찍을 든 아마조네스의 여자처 럼 보였다 이곳은 사드 미술관 극장인 셈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보란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 다. 이 작은 무대에서 얼마나 많은 또 다른 행위들이 공연되었는 지를 보란은 생각해 보았다. 회전 무대에 있는 사람들은 공연자 즉 배우인 셈이었다. 작은 방들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모두 맡은 연기를 연출하고 있는 배우들이었다. 관객들은 원하는 대로 회
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진기한 쇼를 구경하거나 각 방에서 연 출되는 기묘하고 고통스러운 쾌락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보안 경보실에서는 그 모든 광경들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보안 경비실의 장비는 단 순한 보안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여흥에 초점을 맞춰 설치 된 것 같았다. 보란은 그들이 비디오 테이프 녹화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가 궁금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위층 에서 그 환락을 즐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카메라에 포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 까? 만일 그 구경꾼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 녹화 테이프가 공갈 과 협박에 이용된다면‥‥ 그렇다면 이곳은 공갈 협박으로 어 떤 야심을 성취하려는 자에게는 금광과도 같은 곳이 아닌가? 보란은 이번에는두 손목을 천장의 고리에 묶인 채 널판지 위 에서 아슬아슬한 균쳔을 취해야 하는 장치가 있는 방에 포착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아마조네스의 미인 한 명이 이제 막 그 방 에서 카메라의 시야 안으로들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은 넓적다리까지 오는 기다란 검은 가죽 부츠와 허리를 꼭 조 이고 있는 코르셋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완전히 노출되 어 있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소리가 날 듯한 엉덩이는 등출고 풍 만했으며 마치 정교한 솜씨의 조각처럼 아름다고 단단한 젖가슴 이 허공을찌를듯곤두서 있었다. 숱이 많고윤기 있는검은 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얼 굴은 기묘하고 무시무시한 화장을 하여 사탄과도 같은 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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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겼다.  굽이 높은 부츠를 제외해도 그녀의 키는 6피트 정도 돼 보였 고, 손에는 무시무시한 검은 채찍을 쥐고 있었다.  사지가 잘 발달된 젊은 남자가 그 널빤지 위에 서서 균형을 잡 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등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벽으로 향하고 있었고 두 손목은 천장에서 늘헉뜨려진 강철 고 리에 묶여 있었다. 악마와도 같은 얼굴의 여자는 즉시 맡은 배역 의 연기를 시작했다. 가죽 채찍을 높이 들어 그 벌거벗은 남자의 옆구리를 휘갈겼다. 지옥 같은 고통을 표현하는 그 젊은이의 연 기는 훌룬했다. 그는 널빤지 위에서 균형을 잃더니 손목을 죄는 강철 고리의 아픔에 절망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보란이 그 방을 지나면서 예상했던 대로의 연기를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보란이 보기에 그 연기는 너무나 실감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채찍이 가죽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어져서 맞더라도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젊은이 의 연기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보고 있는 사람이 옆구리에 통 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텔레비전 스크린으 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찰스는 어떻게 된 것일까?보안 경보실을 텅 비워 두고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 모든 관중들이 화면에 비춰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어디로 갔 단 말인가? 분명히 오늘밤은 사드 미술관으로 보아서는 파티의 밤이었고 보안 경비를 게을리할 시간이 아닌 것이 명백했다.  보란은 빠른 동작으로 지하층을 수색해 보았다. 아무런 이상 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몇 분 뒤 그는 다시 보안 경보실로 되돌아 왔다. 그가 없는 사이에 그 혹인 사내는 파티가 열리고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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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사라지고 다른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벌거벗은 두 남자가 서로 등을 맞대고 묶인 채로 각 각 채젝을 들고서 있었고, 역시 벌거벗은 두 젊은 여자는 각각 한 팔씩 서로 묶인 채 역시 채찍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 두 쌍의 남녀는 서로의 채찍을 피하려고 발버등치고 있었다. 네 사람의 벌거벗은 남녀가 벌이는 연기는 희극적이면서도 또한 몹시 무시 무시하고도 에로틱한 서커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보란의 주의력이 갑자기 다른 스크린 위로 옮겨졌다. 또 다른 방을 비추는 스크린에 아주 기묘한 움직임들이 비춰겼던 것이 다. 악마와도 같이 화장을 한 여자가 카메라 렌즈 앞을 비틀거리 며 지나갔는데 그 표정은 끔찍스러운 충격을 받은 사람의 그것 이었다 그 여자가 갑자기 그 작은 방에서 나가 버리는 것이 스 크린을 통해 보였다. 보란은 스크린 앞에 바짝 붙어 섰다. 거기 포착된 광경은 첫눈에도 아주 전형적인 것이었다.  한 피해자가 불안정한 받침대 위에 포박되어 있었다. 분명히 그것은 어떤 악마적인 성격의 인물이 고안해 낸 장치일 것이었 다. 그 널빤지는바닥에서 몇 인치 위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피해 자의 두발목을묶어 조일 수 있는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로뒤 에는 바닥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또 하나의 널빤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널빤지에는 목과 두 발목을 낄 수 있도록 구멍이 뚫 려 있었다.  보란은 간밤에 그곳을 지나오면서 그 장치를 보았었지만 그 기구의 용도가 무엇인지 하는 것은 오래 생각지 않았었다. 피해 자는 몸이 꺾여 반으로 접히 게 되고 말 것이었다. 아마도 머리가 두 다리 사이에 박히도록 몸을 완전히 꺾는 자세까지도 강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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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장치였다. 너무 심한 육체적 곡예요, 너무 잔인한 사더 즘적인 여흥이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조금이라도, 어떤 방향오 로라도 작은 실수가 생기기만 하면 피해자로 지정된 사람은 크 게 부상당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뿐 아니라 균형을 잃는 경 우에는 목뼈가 부러져 버릴 것이었다 보란츤 그날 밤 이것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제야 보란은, 자신이 간방에 이 악마적인 장치의 잔 인 무도함을 완전히 파악했던 것은 아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 금 그 장치는 피해자가 등쪽으로 몸을 굽혀 꺾도록 이용되고 있 었다. 그뿐이 아니라 또 하나의 특징이 발견되었다. 톱과 비슷하 게 생긴 또 하나의 기다란 널빤지가 피해자의 등뼈와 평행하게 그의 몸 밑에 밀어 넣어져 있었는데, 그 널빤지에는 무수한 강철 못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것이 일반 무대에서 공연되는 쇼였다면 아마 이런 역은 탁월한 곡예사에게 맡겨져야 할 것이 었다.  그러나 그 피해자는 분명히 곡예사가 아니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보란의 등에는 소름이 끼쳤고 입안은 순식간 에 바짝 말라 버렸다 그 피해자는 결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너었다 그는 제법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그런 위험하고 소 름 끼치는 곡예를 부릴 수 있을 만한 체력도 갖춘 것 같지가 않 았다 보란은 카메라의 각도가 나빠서 광선 때문에 그 피해자의 모습을 명확히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 피해자의 뒤통수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보란은 이제껏 그가 궁금 해 하고 있던 사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에드뀐 찰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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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신음이 보란의 꽉 다문 이빨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다음 순간 보란은 그곳을 뛰쳐나와 맹렬한 속도로 일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머리가 행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이미 그는 어떤 작은 방으로 들어섰고 클럽 룸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방탕한 호사가들을 밀치며 클럽 룸을 가로질 러 갔다. 반기관총을 든 검은 옷의 사나이가 그 많은 사람들 사 이로 몸을 낮춘 채 기어가는 것을 보란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 는 다른 어느 것도 볼 수 없었다. 단 하나, 그 부서질 듯한 에드 윈 찰스의 벌거벗은 영상만이 그의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입술과도 같은 모양을 한 출입구 근처에서 보란은 최초로 저지당했다. 가죽 부츠를 신은 두 명의 아마조네스 미녀들이 다 리를 벌리고 우뚝 서서 그곳을 막고 있었다. 두 여자 모두 팔짱 을 끼었으며 손에는 가죽 채찍을 들고 있었다 보란이 위압적으 로 성큼성큼 다가서자 악마처럼 분장한 그녀들은 웬일인지 모르 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보란이 앞으 로 바싹 다가가자 한 여자가 보란의 가슴에 채찍을 날렸다 다른 한 여자는 보란의 앞을 막고 섰다 그 채찍은 아주 부드러운 나 일론이었기 때문에 보란은 아무런 고통이나 상처도 입지 않았 다. 그러나 그 채찍을 휘두른 여자는 그 채찍과는 달리 대단히 큰 몸집에 강해 보였다.  「그 늙은 남자한테 큰일이 생겼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보란은 여자들을 거칠게 한쪽으로 밀어붙 이고 입술 모양의 그 문을 빠져 나와 계단으로 올라갔다. 한 여 자가 그의 뒤를 맹렬히 따라오고 있었다 복도를 바ㅂㅂ1 걸어가면서도 보란은 그가 무엇을 향하여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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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에 맞부딪히게 될 것인지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복도 한켠에 쓰러져 있는 벌거숭이 여자를 발 견하자 보란은 이제 평범하지 않은 어떤 사태를 목격하게 되리 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나 보살펴 !」 그는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여자에게 외쳤다 그는 쓰러져 있는 여자를 지나쳐서 텔레비전 카메라로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경악스러운 현실 속으로 들어섰다. 기묘한 향 수 냄새와 뒤섞인 피비린내가 보란에게로 확 덮쳐 왔다. 공포에 찌든 육체의 냄새가 그 작은 방에 가득 차 있었다 죽음의 신이 인간의 무모한 욕망과 비참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 방 속에 침 입해 들어와 있었고 보란은 방에 들어선 그 순간 그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늙은 군인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어디론가 사 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에드윈 찰스는 끔찍스러운 물골로 죽어 있었다.  잔인한 등받침대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한쪽 면에는 밑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못이 수십 개나 박혀 있었다. 손목과 발목을 고정시키는 널빤지에 부착된 철제의 고 리는 아직도 따뜻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보란은 그 방 한쪽 구 석 마루 위에 등잔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손발을 묶 는 철제 고리를 뜨겁게 달구기 위해 사용되었으리라고 보란은 짐작하였다. 그것은 중세기의 고문 기구들에서 힌트를 얻은 것 이리라. 등잔은 또한 등쪽으로 몸이 잔뜩 꺾인 그 불쌍한 노인의 등 밑에 놓여졌다가 차츰 위쪽으로 올려졌으리라. 그리하여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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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더 이상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게 되어 몸을 뒤틀면 그의 등은 못이 박힌 등받침에 걸려 갈갈이 찢겨졌을 것이다.  찰스는 등뼈뿐만이 아니라 다른 뼈들도 다쳤을 것이 분명했 다.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 그 등받이의 못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보란은 이제야 왜 그 악마의 분장을 한 여자까지도 공포에 질 려 방을 뛰척나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보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시체를 조사하며 중얼거렸다 「이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이란 말인가!」 보란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그 늙은 군인의 최후의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분노가 그 내부에서 심하게 소용돌이쳤 다. 이 늙은 사내가 사드 미술관에 대해 한 얘기가 무엇이었던 가? 무엇인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던 것 같았다 보란은 밖으로 나왔다 괴상 망측한 분장을 한 두 여자가 옆방 에서 몸서리를 치며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죽었나요?J 보란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온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 다 「물론 죽었소. 이 빌어먹을 파티가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 9B소?J 「11시부터였어요.」 보란은 손목 시계를 보았다 지금 시각은 막 12시를 넘고 있었 다. 그는 머리를 저었다 「이 불쌍한 늙은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저 방에 있었는지 모르 겠소. 그러나 적어도30분 전까지는 죽지 않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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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판단이 암시하는 것이 즉시 보란의 머릿속에 파문을 일으 켰다 아래에 있는 파티 장소에서 들려오는온갖소리들이 찰스 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내지르는 그 고통스러운 신음과 비명을 은폐하였던 것이다 보란은 조용히 여자들에게 말했다.  「저 쓸모없는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그는 죽어가고 있었 소.」 정신을 잃고 문 가에 쓰러졌던 여자는 금방이라도 다시 기절 할 것처럼 보였다 「난 그 방을 여러 번 드나들었어요. 그렇지만 정말 몰랐어요 그분이‥‥ 그렇게 그끔찍스러운 냄새가방안에 ‥‥」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토할듯한표정으로보란을 바라보았다.  「누가 그에게 이런 고약한 짓을 하도록 충동질한 거요? 왜 찰 스는 가만히 있었을까요?J 보란은 마음속에 떠오른 의문을 여자들에게 던졌다. 다른 여 자가 띄 엄띄 엄 대답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원했을 거예요. 누구라도 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모두 장난으로 하는 거니까. 누가 알겠 어요? 자신들의 행동이 죽음을· .」 그녀의 벌거벗은 젖가슴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파르 르 떨렸다 보란은 그녀를 붙잡아 바로 세워 주며 중얼거렸다 「장난이라· 장난 죽음에 이르는장난이로군.」 그는 그들을 떠나 아래층의 클럽 룸으로 되돌아왔다. 그곳에 서의 광경은 아까와 바꿔 것이 거의 없었다.  찰스가 최후의 고통을 견딘 그 방은 생생한 육욕의 잔치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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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고 있는 이 클럽 룸의 바로위였다 그 방을 지나가면서 보 란은 베레타를 꺼내 조용한 동작으로 텔레비전 카메라를 사격했 다 그 노인의 최후의 고통을 대가로 하여 이 해괴 망측한 파티 는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 나와 계단을 내려가 지하층으로 갔 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다시 위로 올라와 사드 미술관의 현 관으로 접근했다. 현관문으로 다가가면서 그는 우지 반기관총을 언제라도 사격할 수 있도록 옆구리에 바짝 끼고 손가락을 방아 쇠에 걸었다. 맥 보란은 이제 적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사형을 집 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If 
포 
로 
대노 질리아모는 커다란 검은 세단의 됫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차가 세워져 있는 곳은 사드 미술관 근처의 광장 바 로 옆이었다. 차 안에는 대노와,운전석에 앉아 역시 말을 잃고 있는 사내가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또 한 대의 차가 광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 차는 조용히 질리아모의 차가 세워져 있는 모퉁이의 반대편에 멈춰 섰다. 한 사내가 그 차에서 내려서자 그 차는 다시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겼다. 곧 질리아모가 앉은 쪽 의 문이 열리고 닉 트리거가 차에 올랐다. 그는서둘러 문을 닫 았다.  질리아모는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옳았던 것 같소, 닉. 그놈은 여기 안 나타날 모양이 오. 당신이 감시한 쪽에서도 아무 일 없었겠죠?J 「그렇소. 아무것도 없소. 아니, 그건 아너지.그놈은참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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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녀석이로군. 미꾸라지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질리아모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럼 . 그놈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단 말이오?J 「그렇소. 달아나 버렸소.」 「그럼 여기로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겠군.」 질리아모는 신경질적으로 담뱃갑을 꺼내어 한 개비를 뽑아 입 에 물었다. 그가 라이터를 켜자 그 불빛 안에서 긴장으로 뻣뻣이 굳은 얼굴이 드러났다.  「그래 어떻게 된 거요? 자초지종을 들어 봅시다. 」 트리거는 좌석 깊숙이 몸을 묻었다.  「소호에 물샐 틈 없는 포위망을 만들어 놓았었소.놈이 그 안 으로 들어가는 것도 확인했고. 그런데 그놈은 귀신같이 사라져 버린 거요. 그게 전부라오. 깨끗이 실패했소. 경찰관들이 소호 광장 부근에 확 깔려 있었는데도 말이오.」 트리거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을 끝냈다.  질리아모는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뿜어 올리더니 다시 물었다.  「우리 전투원들의 피해는 없었소?J 트리거는 한숨을 내쉬며 질리아모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자유 계약 청부업자들이 6명 죽었소. 루니와 로키는 체포되었고. 그건 걱정 마시오. 내일 아침이면 내가 그들을 빼내 올 테니까.」 「이제 내가 상대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알 만하오, 닉?J 런던의 세력가는 팔참치로 좌석의 등받이를 쳤다 「알 만하오. 그런데 여기를 감시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소, 대노. 애들이나 몇 명 남겨 감시를 계속하도록 하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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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떠나는 게 어떻겠소? 쉬어야 할 테니까 보란 그놈이 소호 사 이크에서 빠져 나간 게 얼마 전인데 하루 밤 사이에 또 여기 나 타나서 공격할 것 같지는 않소. 농부 어니와 그의 전투원들이 내 일 아침 작업을 개시할 거요. 그 사람들하고 뒤섞여 일을 해야 된다니‥‥‥‥ 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것 같소.」 「나도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 이 일에 매듭을 짓고 싶소. 농 부 어니를 당신은 아시오?J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소. 내 생각에는 내가 농부 어니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당신이 가진 생각과 같은 것 같은데, 어떻소?J 「참 불편한 사람이오, 농부 어니는 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벌써 불편하고 불쾌해지거든.」 닉 트리거는 머리를 8덕였다.  「나도 동감이오. 농부 어니는 불한당이오. 난 그놈이 여기로 온다는 게 아주 못마땅하오.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을 일이지 .」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우리 가 보란을 잡을 수밖에 없겠소.」 뉴저지에서 온 사내는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등을 쏘아보았 다 「이런 얘기 , 남들한테는 않겠지 지오?J 운전사 지오 스칼디치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물론입니다. 질리아모 씨 . 난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 누구 한테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J 됫좌석에 앉은두 남자는 한동안 불안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 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닉 트리거였다 「같이 돌아가는 게 어떻소, 대노. 여기를 떠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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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기다립시다. 살한테 밖을 돌아보고 오라고 시켰소 곧 돌아을 거요.」 )명의 마피아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네 번째 사 나이가 다급히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숨이 턱에 차서 당황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저기‥‥ 시체가세 구나 있습니다 대노.」 「무슨 얘기야?J 뉴저지의 보스가 펄쩍 뛰며 물었다.  「월리 이어스, 잭 빌더, 빅 안젤로가 죽어 있었습니다 피도 흘리지 않고 말예요. 그냥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더군요. 목이 부 러졌거나 맞아 죽은 것 같아요.」 질리아모는 말을 잃었다. 그는 옆자리의 닉 트리거의 어깨를 붙잡더니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트리거가 그를 붙잡아 앉히 고 마세리에게 물었다.  「그 아이들이 죽은 지 얼마나 된 것 같던가, 살?J 「10분쯤‥‥‥ 15분 이상은 안 된 것 같아요. 다른 애들한테 주 의하라고 경고를 해두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못 보았다고 하더군요. 쥐새끼 한 마리도 못 보았대요.」 트리거는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10분이나 15분이라· . 그렇다면 그놈은 소호 사이크를 떠 나서 곧 바로 여기로 왔다는 얘기가 되는군.」 질리아모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미술관 부근을 이리저 리 살펴보았다. 그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틀림없어 ! 그놈은 미술관으로 감쪽같이 스며들었다가, 또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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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같이 빠져 나온 거야. 놈이 이 근처에 있는 게 틀림없다구. 이 부근을 조용히 돌아보자. 지오, 천천히 차를 저 버스 정류장 바 로 앞에 세워라.」 차는 소리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곧 지시받은 대로 미술관 너 머의 .Ef. 건너편에 멈췄다.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가실 건가요?J 살 마세리는 몹시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물론 들어가 봐야지 . 가서 애들한테 그렇게 전해.」 마세리가 그 명령을 받아 움직이기도 전에 그림자 두 개가 차 옆으로 달려들었다. 질리아모는 유리창을 내리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다가선 한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보고했다 「뭔가 발견했습니다. 바로 저기요!」 그는 손을 뻗어 광장 맞은편을 가리켰다 다른 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서점입니다 됫문이 열려 있는 게 이상합니다. 」 「좋아. 애들을 데려가서 조사해라.」 질리아모가 명령했다 사내들이 가게 쪽으로 달려갔다. 마세 리가 두 사내가 사라지는 쪽을 보며 말했다.  「저도 가서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대노.」 닉 트리거가 허튼 소리 말라는 듯 내뱉었다.  「살은아마도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이 미술관에서 떠나 고 싶어 몸살이 나는 모양이군.」 질리아모_E. 머리를 』1덕였다.  「사실 그래. 살, 넌 바로 여기를 지켜야 해 알았나? 그 가게 를 조사하는 일은 스티비에게 맡기겠다. 그리고 우리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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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트리거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 소. 목격자가 너무나 많다는 얘기요. 그뿐이 아니오. 우린 바로 저 미술관에 대해 상당히 큰 관심을 갖고 있소.」 지오 스칼디치가 다시 됫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런 소름 끼치는 곳은 무엇 때문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트리 11 Dl ?J 「필요한 것이라면 뭐든 다 해야 하는 거야, 이 사람아. 그걸 절대로 잊지 말아. 네가 소름 끼치는 곳이라고 부른 저 미술관은 우리들이 이곳 영국을 장악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 소라는 걸 알아둬. 난 이 미술관이 엉망진창이 되는 걸 원치 않 아.」 닉 트리거는 기분 나쁜 미소를 흘렸다.  또다시 4명의 사나이들은 묵직하고 긴장된 침묵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들의 번득이는 눈은 모두 길 건너의 그 건물을 쏘아보 고 있었다. 또 한 사내가 기를 쓰며 그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 다. 그는 차 옆으로 뛰어오더니 숨을 몰아 쉬며 보고했다.  「스티비가 지하로 통하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 질리아모가 그 사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해 ! 그 안에 보란 이라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전령의 임무를 맡은 사내는 다시 헐레벌떡 어둠 속으로 사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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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트리거는 리볼버를 꺼내 안전 장치를 점검하고 탄창을 살 펴보았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 봐야겠군, 대노.」 살 마세리는 톰슨 반기관총을 옆구리에 끼고 보스에게 다가앉 았다 「다른 애들을 불러 오겠습니다. 대노.」 「그렇게 해 .」 「대노, 할 얘기가 있습니다 빅 안젤로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누구든 보란을 잡을 수 있겠죠.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놈을 잡으 면 제가 그놈에게 총을 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알았어 , 살 네 기분이 어떤지는 알고 있어 .」 마세리도 톰슨을 팔에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닉 트리거는 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섰다.  「어쩐지 보란을 만날 듯한 예감이 드는군.」 「나도 그렇소.」 질리아모는 긴장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도 문을 열고 거리 로 나섰다. 그는 차의 지붕 너머로 미술관 건물을 바라보며 중얼 거렸다.  「그놈은 틀림없이 이 근처 , 아니면 저 건물 안에 있을 거요.」 바로 그 순간 길 건너편에서 문 하나가 열리면서 검은 물체가 문 가에 나타났다. 그는 문 가의 희미한 불빛을 등지고 잠시 멈 춰 서 있다가 그가 갖고 있던 반기관총으로 한바탕 허공에 난사 하더너 몸을 굴려 사방에 드리워져 있는 암혹의 장막 속으로사 라졌다. 이제 보란은 미술관 안에는 없는 셈이었다.  마피아들이 탔던 차의 운전사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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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 저 녀석을 잡아라!」 그러나 그의 얘기에 반응을보이는사람은 없었다. 대노질리 아모는 벌써 차 뒤의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닉 트리거는 차 안으로 몸을 감추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반기관총이 정적을 뒤흔 들었다. 그 커다란 차의 유리가 박살이 났다. 유리 파편비 폭포 처럼 차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지오 스칼디치의 머리가 마치 그 속에 포탄이라도 장치되어 있었던 듯 산산조각이 나면서 시 뻘건 피와 허연 뇌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시작되었다. 사드 미술관 부근은 갑자기 기관총과 리 볼버의 격렬한 불꽃과 총성으로 비명과 피비린내가 가득 찬 지 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맥 보란이 미술관의 문을 열고 나서면서 어둠 속으로 무작정 기관총을 난사한 것은 마음에도 없는 충동적인 행위였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소용돌이 치는 분노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 다. 그러나 전투에는 이미 이력이 나 있던 그는 자신이 무슨 짓 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판단하고 있었다.  그 충동을 실행에 옳기는 순간 그는 자신의 행동이 적들을 놀 라게 하고 적의 질서를 무너뜨리며 적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 으리라고 계산했다 그리하여 결국옌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보란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떤 사태가 야기되리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 다.  미술관 맞은편 건물에서 마최아한 명이 문을 열고나온 순간 불이 밝혀진 차가 보였다는 것은 그에게 내려진 축복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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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불이 환히 밝혀진 곳에서 나온 직후였고 어둠께 전혀 눈이 적 응하지 못했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보란은 그 불이 밝혀진 차 안팎에서 사내들이 무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의 표적이 되었다. 우지 반기관총의 두 번째 난사는 멋지게 명 중했다. 그는 지오 스칼디치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았 고 됫자리에 있던 덩치 큰 한 사내가 차 바닥에 엎드리는 것도 보았으며 대노 질리아모가 광장 너머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강력한 화기들이 사방에서 보란에게로 불꽃과 죽 음의 냉새를 토해 놓기 시작했다. 보란은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 는 어둠을 밝혀야 했다 그의 세 번째 사격은 차의 기름 탱크를 표적으로 삼았다. 주변 을 훤히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차는 거대한 화염으로 뒤덮이며 굉응과 함께 폭발했다.  그러나 어둠 속 어터엔가 톰슨 기관총을 가진 적이 있었다. 보 란은 그 강력한 화기 앞에서 우뚝 선 채 한자리에서 계속 총을 난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차가 폭발함과 동시에 그 불길을 싸고 돌며 달렸다. 적들의 공격 부대 후면으로 가야 했다. 거기에서는 불을 등지고 선 그들의 모습을 또렷이 식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가 달리고 있던 통로의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섰다.  보란은 순간적으로 우지 반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그림 자는 피를 토하며 길바닥에 나됫굴었다.  거의 대부분의 적들이 불타고 있는 차 주변에 숭어 있는 듯했 다. 그들은 이쪽 저쪽에 함부로 총질을 해댔고 흥분자 당황 속에 서 서로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을 질러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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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은 왼했던 바로 그 장소에 도달하자 교차로 모퉁이 땅바 닥에 엎드렸다. 광장의 모습은 전투에 이력이 난그에게는 참으 로 보기 좋은 것이었다. 적들은 타오르는 차의 불길 이쪽 저쪽에 서 그림자들을 길게 늘어뜨리고 동분 서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 들을 향해 3개의 탄창이 완전히 빌 때까지 우지 반기관총을 난 사했다. 적들이 나무 토막처럼 여기저기에서 쓰러졌다. 순식간 에 광장에는 더 이상 사격을 할 수 있는 표적이 될 만한 것은 아 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보란은 귀를 곤두세우고 사방의 소리를 들으며,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눈여겨보며 한동안 그대로 엎드린 채 기 다렸다 참혹한 정적만이 광장 위에 내리덮였다. 소리라고는 차 에서 솟아나온 불길이 투닥투닥 불꽃을 날리는 소리뿐이었다.  보란은 다시 총성과 사격에 의한 불꽃이 터져 나오기를 기대하 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그곳은 피비린내로 뒤덮여 있었고 시체와 죽어가는 사내들이 광장에 널려 있었다.  너무 간단하다고 보란은 생각했다.  보란은 톰슨 기관총으로 맹렬히 사격을 해대던 사내 곁으로 갔다. 불타고 있는 차의 반대쪽에 그 사내는 나됫굴고 있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으나, 죽음의 일보 직전까지 이른 것 같았 다. 보란은 그의 손에 쥐어 있는 총을 발로 걷어차 버린 후 그의 귀에 대고 물었다 「이름이 뭐야?J 「개자식 !」 사내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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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노인에게 그런 짓을 한 자가 누구야?J 「개‥‥ 자식 !」 보란은 시체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 는 대노 질리아모를 찾아야 했다. 타오르는 차는 아직도 음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총격전이 끝나고 정적이 내리덮이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주 변의 건물들로부터 그 총격전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 다. 건물 창가에 두텁게 드리워졌던 커튼이 조금씩 열리고 두려 움에 찬 사람들의 눈동자가 밖을 내다보았다.  보란은 물론 그 눈길들을 의식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눈길보 다도 더 중요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미술관의 문이 열리고 총을 든 )명의 사내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장총을 들고 있었다. 보란은 본능적으로 우지를 들고 사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신분을 확인 하기 위해 잠간 망설였다. 그들은 광장 가득 널린 대학살의 모습 에 잠시 넋을 잃은 듯했다.  그 순간이 보란에게는 아주 긴 시간처럼 느겨졌는데 그때 장 총을 든 사내가 외쳤다 「보란이다!」 그것은 그 사내의 운명을 결정짓는 외침이었다. 그 외침에 대 답한 것은 보란의 우지 반기관총이었고 동시에 장총을 든 사내 의 몸뚱이는 공중에 튀어올랐다가 땅 위로 떨어졌다. 나머지 두 사나이도 몸뚱이가 거의 반동강이가 되다시피 해 바로 문 곁에 서 나됩굴었다.  잠시 후 보란은 작고 뜨거운 무엇이 자신의 늑골 속으로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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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것을 느꼈다. 보란은 그것이 탄환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 었다. 그는 재빨리 돌아서서 그가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곧 경찰들이 이곳을 덮칠 것이 분 명했다. 그리고 그의 늑골에서는 계속 따뜻한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광장을 가로질러 포르노 가게를 지났다. 그때 그근 일종의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골목 어귀에서 발을 멈추고 우지 반기관총 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당황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 쏘지 마시오, 쏘지 마! 난 총알도 떨어겼소.」 보란이 신경질적으로 외 쳤다.  「먼저 총을 버려 ! 그리고 손을 머리에 얹고 나와.」 보도 블럭을 치는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덩치 좋은 사나이가 망설이듯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보란은 그 사내의 배에 우지 반기관총의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 사내는 숨을 훅 들이쉬더니 애원조로 말했다 「아 그만둬요.이제 그만‥‥」 보란은 기관총을 치우고 그 사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며 그의 몸 을 샅샅이 뒤졌다.  「걸어 ! 곧장 앞으로.」 「어디로 가는 거요?J 「몰라도 돼. 네 이름이 뭐야?J 「스티비 카본이오. 대노의 총잡이요., 살 마세리 밑에 있죠. 아니 이제는 있었다고 해야 되겠죠.」 보란은 총으로 그의 등을 쿡 찌르며 물었다.  「이제 살 만큼 다 살았다고 생각지 않나, 스티비?J 「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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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그 사내는 대답했다.  그들은 잰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갔다. 보란은 링컨 콘티넨 털을 향해 그를 밀고 갔다 「계속 걸어 빨리 ! 그러나 쓸데없는 짓은 말아! 뒤돌아보지도 말고.」 「어디로 가라는 거요?J 「지옥으로!」 보란은 한 손으로는 늑골을 꼭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목에 건 우지 반기관총의 벨트를 쥐고 있었다 그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난 당신 같은 사랑과는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내가 당신을 미워할 개인적인 이유가 뭐겠소?J 「멍청한 소리 말아 개인적인 것이란 애초부터 없었어.그런데 한 늙은 노인이, 몸이 갈갈이 찢어지도록 고문을 당해 죽은 걸 본 순간 갑자기 이 모든 게 개인적인 일이 돼 버렸지 .」 
는 
「그럼 남자답게 얘기해 보십시오, 보란. 날 죽일 거요? 아니면 · J 「그건 너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어 , 스티비 .」 「나한테서 무엇을 원하시오?~ 「넌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나한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 711.」 「난 아무것도 몰라요, 보란. 게다가 난 침묵의 서약을 한 사람 
이오. 침묵의 서약이 뭔지는 당신도 알 거요.」 「그럼 그 서약과 더불어 죽어 자빠지는 수밖에 없겠군.」 「아, 아니오. 난 그 서약과 같이 살고 싶습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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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보란은 그 사내보다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먼 곳으로부터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 다.  그들은 링컨 콘티넨털에 이르렀다. 고통스런 신음을 삼키며 보란이 명령했다.  「차를 몰아.」 「어디 .2_5.?J 「이미 얘기했잖아. 지옥으로 곧장 달리는 거야.」 그들은 차에 올랐다 그 사내는 뭔가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얘기를 하겠소, 보란.」 「먼저 차를 몰아. 입은 그 뒤에 열어도 되니까.」 보란은 이 스티비 카본이라는 사나이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보란은 그 이 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옆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 사나이가 스티비 카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 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한 사람의 카포를 붙잡은 것이었다.  그의 포로는 다름 아닌 대노 질리아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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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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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거의 반 이상을 동지들을 위하여 전투를 벌여 왔던 닉 트리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같은 치욕과 창피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눈앞에 들이닥친 죽음에 대해 자신이 취한 비겁한 행동이 그를 부』1럽고 굴욕스럽게 했다. 그런데도 그는 살아 있 었다 그는 자신에게 쉴 새 없이 (나는 살아 있다)는 얘기를 반 복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죽은 영웅이 된다 하여 가문에 어떤 이득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 니었으니까. 사태가 엄청나게 비화해 가고 있고 한 사람의 힘으로는 그 사 태의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지경이라면, 만용을 부려 개죽음을 당 하느니보다는 후일을 기약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현명한 처 사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죽음이란 결국 저주받은 종말이었다.  죽음과 직접 맞부딪치지 않는 한 문자 그대로 존재를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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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때에 보란을 만났다 하여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그 저주받은 차에서 순간적으로 빠져 나온 것은 바로 하느님의 계시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때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등골에 식은땀 이 흘렀다 1초만이라도, 단 1초 만이라도 더 그 차 속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닉 트리거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 다 그는 다만 한줌의 잿더미로 화해 있을 것이 뻔했다. 만일 그가 차 안에서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1초만이라도 늦게 했더라 면 그때는‥‥‥ 닉은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그는자신을 그 차로부터 벗 어나게 한 것이 전투 감각이 아니라 단순히 겁에 질린 충동이었 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했다. 지오 스칼디치의 피와 뇌수가 온 차 속에 흩뿌려지자 됫좌석에 엎드려 있던 닉은 확 끼쳐 오던 피 비린내와 소름 끼치는 광경에 벌벌 떨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 으켜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가 차로부터 미처 열 발자국도 떼어 놓기 전에 차는 굉음자 함쩨 화염에 쉽싸였다.  동시에 그는 생명 부지의 본능으로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바로 그때 보란은 대노의 대 전투 부대를 처형하고 있었었다 검 은 옷을 입은 보란이 시체들 사이를 서성거리는 동안에도 그는 겁에 잔뜩 질려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보란이 살 마 세리에게 질문하는 소리도 그는 들었다. 대노의 총은 그가 엎드 려 있는곳에서 불과 몇 인치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그는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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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엎드린 채 죽은 시능을 했고 제발 목숨만 건질 수 있게 해달 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보란이 스티비 카본과 그의 두 졸개를 처형하는 동안에도 그 는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스티비 카본과 두 졸개는 서점으 로들어갔다가 비밀 통로를통해 미술관으로 나온 것이었다 보 란이 광장을 가로질러 사라진 뒤에야 닉 트리거는 반대 방향으 로 기기 시작했다. 광장을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안전한 장소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서자 그는 벌떡 일어 나서 죽어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자신의 행동을합리화하려고무던히 애를 썼는데도불구 하고 수치심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펴 왔다 닉은 이제야 비로소 이 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그의 동지들이, 그 수많은 전 투원들이 보란을 없애려고 기를 쓰고 덤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란이 살아 남을 수 있었는지를! 왜 대노가 그놈을 그토록이나 두려워하며 그 자신의 가문이 아닌 외부의 가문에 도움을 요청 하게 되었는지도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보란이 일단 공격을 했다 하면 그것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 고 반면에 그놈은 이쪽의 모든 허점을 철저히 이용한다는 것을 그는똑똑히 깨달았다. 보란은 단순히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니었 다. 그놈은 눈앞에 지옥의 모든 상황을 펼쳐 놓는 것이었다. 맙 소사. 도대체 상황이 이 지경인데 어떻게 감히 머리를 들고 대항 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그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 었다.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적이 없는 어떤 새로운 대책이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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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의 구태 의연한 작전으로는 보란을 잡 을 수 없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닉에게 보란은 그저 단순한 공격의 대상으로, 마피아의 처단자 리스트에 오른 하나의 이름, 그가 맡은 또 하나의 임무였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 들이 이제는 변했다 그는 방금 보란의 전투 능력을 목격했던 것 이다.  닉 트리거 자신도 이미 1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사 했다 그러나 그는 맥 보란과 같은 사내가 자신에게 죽음을 선물 하기 위해 기다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 지 닉 트리거는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두려움을 보란 과 합께 나누고 싶었다 맥 보란에게도 그 공포를 느끼게 해야 했다.  그날 밤의 대실패에서 가장 운좋은 것은 적어도닉이 생각하 기에 다른 사람 아무도 닉의 그 비겁함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 다 그 전투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는 맥 보란뿐인 것이 분명했 다. 닉 트리거가 죽은 사람 흥내를 냈다는 것을, 그리하여 사냥 꾼 보란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사라지기까지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사태가 벌어겼을 때 닉 트리거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아니, 다만 닉 트리거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천천히 토튼햄을 돌아서 리젠트 공원을 향해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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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질리아모는 결정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대답 을 회피했다. 그는 흔해 빠진 전투원을 아주 그럴듯하게 흥내내 었다. 보란은 그가 그런 연기를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러나 한동안만이었다. 그들은 매리리본으로 들어서서 파크 가 로 향했다.  「공원으로 들어가.」 보란은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라구요?J 「그렇다. 스티비 .」 질리아모는 불안하다는 듯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안에서 뭘 하겠다는 거요?J 「윌하건 그건 내가결정하겠다 물론나의 결정은너의 행동에 달려 있지만.바로 앞에 야외용 극장이 보이겠지?거기서 차를 세워 , 스티비 .」 보란의 늑골에서 흘러나오던 피는 이제 멈추었다. 탄환은 늑 골 근처를 파고들었을 뿐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 부분이 고통스러웠다. 보란은 그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차는 원형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곧 멈추었다. 보란이 명령했 다.  「열쇠를 내게 주고 차에서 내려 .」 질리아모는 보란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보란도 역시 차에서 내렸다 「저쪽으로!」 보란은 우지 반기관총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어디 말이오?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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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 질리아모는 한동안 말얼이 보란을 바라보더니 걸음을 옮겼다 보란이 그 뒤를 쫓았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질리아모가 투덜거렸다 「이 위에서 윌 하자는 거요?J 「너는 연기를 좋아하더군, 대노. 그래서 무대를 마련해 주기로 작정한 거야.」 맥 보란의 차가운 목소리는 빈 극장 안에 메아리쳤다.  덩치 큰 사나이는 깜짝 놀라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그의 목소 리는 공포와 분노로 떨려 나왔다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당신은 왜 내가 계속 연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소?J 「잔소리 말고 무대 중앙으로 나가!」 보란은 담담하게 말했다. 질리아모는 보란이 얄미워 죽을 지 경이었다.  「빌어먹을! 날 죽일 작정이라면 지금 여기서 죽이란 말이야!」 보란은 우지의 개머리판으로 그의 얼굴을 힘껏 갈겼다. 질리 아모는 휘청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보란이 명령한 대로 무대 중앙으로 비틀거리며 갔다.  「무릎을 꿇어 .」 뉴저지의 카포는 보란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보란이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얼었다 「어디에서 죽고 싶나?J 「난 죽고 싶지 않아, 보란.」 「넌10분 동안이나 날 속였어, 대노.네가날 속이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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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 도 힘이 드나?J 「제발!」 질리아모는 애원했다 반면에 보란의 목소리는 싸늘하고 침착 했다.  「살고 싶으면 모든 걸 털어놓으라구!」 「내가 입을 열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 내가 말을 해서 당신이 날 죽이지 않는다 해도 가문에서 날 죽일 거야.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것을 택하겠어 .」 「네가 얘기했다는 사실을 누가 알 수 있겠나? 네 가문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누가 있나, 대노?J 뉴저지에서 온 사내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물었다.  「뭘 알고 싶은 건가?J 「그 늙은 신사에게 그런 짓을 한 놈이 누구야?J 「이미 열 번이나 그 질문을 했잖아! 도대체 당신이 무슨 얘기 를 하는지 난 모르겠어 .」 「미술관에 있던 그 늙은 신사 말이야. 누가 그를 칠면조처럼 묶어 놓고 등 밑에다 불을 지펴 댔나?~ 「보란, 난 정말로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라구.」 「네 졸개들이 그 짓을 안 했다는 건가?~ 「정말 난 모르는 일이야.」 「너는 그 미술관에 들어갔었지 , 대노?~ 「물론이지,한 2분 동안 거기 있었지.나와 닉,그리고 살, 또 ·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한 사람이 들어갔었어.그렇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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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한테 우리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 .」 「닉이 누구야?J 「닉 앙당트라고도 알려져 있는사람인데.잠깐 동안돈만차카 티 밑에서 일한적이 있었지.」 보란은 심문의 결과가 점점 더 만족스러워겼다. 질리아모는 고분고분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래? 그럼 닉 트리거는 영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지?J 「가문의 일을 하지 .」 「오늘밤 그 미술관에서 그와 너는 무슨 일을 했나?J 「나는 여기 와서야 닉을 만났을 뿐이야. 난 2주 전에 도착했 고, 아직 당신이 프랑스에 있을 때 말이야. 이것 봐, 난 쓸데없이 남의 일에 질문받기도 싫고, 당신한테 아무런 개인적 감정도 없 어. 하지만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하라고 하니까 이 대노 질리아모는 하는 것뿐이야. 그건 이해해 줘야 해, 보란.」 「그래, 이해해 주지, 대노. 그런데 그 닉 트리거라는 친구 얘 긴데 그가 그 미술관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J 뉴저지의 카포 대노 질리아모는 이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서 있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내심 진땀을 홀리고 있었으나 그는 보란을 올려다보며 킬킬거렸다.  「날 아주 궁지에 몰아넣는군. 날 아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단 말이야.」 「너와 나 사이만의 일이다. 대노. 어서 결정을 해 밤새도록 여기 서 있기는 싫다. 」 「내가 모든 것을 얘기한 다음에 당신이 날 쏘지 않으리라는 걸 어떻게 보장하지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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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너한테 남은 유일한 기회 아닌가, 대노? 또 중요한 건 난 친구를 죽이지 않아? 비록 일시적인 친구라 해도.」 질리아모는 심호흡을 했다.  「좋아 나한테 뭘 물었었지?~ 「닉 트리거와 미술관 사이의 관계가 어떤 건지를 알교 싶다고 했어 .」 「좋아. 닉은 그 미술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함정을 파놓았 어 정확히는 나도 모르지만 동성 연애자나 그 비슷한 놈들일 거 라는 게 내 추측이야. 닉은 그런 녀석들 속에다 밀정을 심어 놓 았을 거야.」 「좋아. 그런데 내가 거기 있으리라는 걸 그는 어떻게 알았을 까?J 「신에게 맹세하지만 정말 난 몰라. 보란. 닉은 말이 없기로 유 명한 사람이야 아니. 어제 그는 시체가 돼 버렸을 테니까 말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해야겠군. 어느 날 밤 그가 날 부 르더니 보란이란 놈을 잡으려면 도버로 가보라고 하더군 그는 당신이 탄 배의 이름과 도착 시간 등 자세한 것까지도 모두 나에 게 알려 주었어.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거기서 놓친 뒤에는 또 그가 당신을 그 미술관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일러 주더군 그게 내가 아는 전부야.」 「그에게 밀정이 있다는 건 네 추측이었군.」 「그래. 하지만 그건 뻔한 사실이잖아?~ 「이제 오늘밤에 대한 얘기를 하자구. 너도 미술관에 들어갔었 다고 얘기했지 ? 그게 언제였나?J 「10시 30분쯤?아니면 10시 45분쯤일 거야. 하지만 그 노인은 

심 문 15) 
보지 못했어. 괴상 망측한 꼴들만 보았지. 병적인 꼴들을 보고 기이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야.」 보란은 갑자기 턱에 경련이 일고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 꼈다.  「이층의 작은 방들에는 안 가봤나? 거기에는 뭐가 있던가7J 「괴상한 기구들뿐이었어 . 당신도 알잖아.」 「사람은 없었나?J 「우리들뿐이었어 그건 왜 묻나?J 「그 조그만 사내 말이야. 키가 5피트 5인치나7인치쯤 되고 아 주 간간해 보이는 사내는 못 보았나?J 「아 그사내! 봤어.우리를 마치 더러운 물건 취급을 하더군. 기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 「너희들은 그와 무슨 얘기를 했지?J 「난 얘기 안 했어. 닉이 그와 얘기를 했지. 두 사람이 저희들 끼리 나가서 뭔가를 속삭이고 돌아왔어. 그리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어 닉은‥‥」 「거기서 그 외에 누구를 보았나?J 「아래층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어. 파티인지 뭔지를 고대하 고 있는 것 같더군.」 「알았어 닉에 대해 얘기를 계속해 봐.」 「무슨 얘기였더라?J 「너희들이 미술관에서 나온 대목에서 그만두었어. 그 다음에 닉은 어떻게 행동했지 ?J 「아, 그래 닉은 우리와 함께 한동안 차에 앉아 있었어 . 그런데 한 10분쯤뒤에 그자가나오자 닉은 차에서 내리더니 어디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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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버리더군.」 「누가 누구와 같이 떠나갔다는 거야?J 「닉과 그 기분 나쁜 뻣뻣한 사내 말이야. 두 사람이 같이 사라 지고난 뒤 몇 분이 지나자 다른 괴상한 놈들이 나타나더군.화 려한 리무진을 타고 온 놈들도 있었어 . 사람들이 내리자 차들은 그냥 떠나가 버리더라구. 그 뒤로는 난 거기 들어가 보지 않았 1.」 생각에 잠겨 있던 보란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광장에서 총격전을 하는 동안 세 녀석이 미술 관 안에서 나왔어 . 그놈들이 나한테 덤벼들었잖아.」 「아,그건 다른 얘기지.그 아이들이 통로인지 뭔지를 발견했 다고 했어.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지 . 그게 당신이 드나드는 통로라고 생각했지. 당신이 목을 비틀어 죽였다는 아이들 얘기 도 들었고. 그 세 아이들은 당신을 잡으려고 그때 그 속으로 들 어갔던 거야. 보란,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야.」 「사실대로 얘기한 것 같긴 한데 ‥‥‥」 보란은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말했다.  「사실이야.」 「하나만 더 묻겠어 이 도시에 있는 가문의 사령부는 어디인 가?J 「아, 이런! 그건 절대로 얘기 못 해. 보란 그건 제발 묻지 말 아 줘 . 그걸 얘기하면 난 살아 남을 수가 없어 .」 보란은 오래도록 그를 쏘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 네가 옳은 것 같군. 살려 주겠네, 대노.」 「날‥‥‥ 보내 주는 건가?J 

심 문 155 
「약속은 약속이니까. 가보게, 대노.」 「내 등 뒤에다 대고 총질하는 건 아닐 테지 , 보란?J 보란은 우지 반기관총에서 탄알을 꺼내고 총을 목에 걸었다.  「쌕 꺼져 버려 !」 뉴저지의 카포는 자신의 이 행운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 다. 그는 일어서자 바지를 툭툭 털며 말했다.  「난 정말 중요한 얘기는 당신한테 하지 않았어 그리고 산다는 문제가 수치스러을 건 없겠지 .」 「물론.」 보란은 가볍게 대꾸했다.  「이것 보게, 보란. 당신은 무자비한 악당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런 이익도 없이 우리들과 싸우지 말고 이제 우리와 손을 잡 는 게 어떻겠나?J 「전쟁이야,이건 잔소리 말고 떠나.다음에 너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우리 둘 중 하나는 죽게 될 거야.」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란 걸 난 잊지 않겠어 .」 질리아모는 무대 끝으로 가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돌 아서서 잠시 보란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둠 속으로 바ㅂㅂ1 사라져 갔다 보란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정직하지는 않아, 대노.」 그는 다시 우지를 손에 쥐고 탄창을 끼워 넣자 계단을 내려가 차로 돌아왔다. 그의 바지와 셔츠가 됫좌석에 놓여 있었다. 그는 사랑스럽다는 듯 반기관총을 몇 번 쓰다듬고 됫좌석의 바닥에 놓았다. 이제 오늘 다시 그것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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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천천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  전쟁이란 마치 지옥을 창조해 내는 것과도 같다고 그는 생각 했다.  어떻게 악당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인 가? 만일 마피아들이 늙은 신사 에드윈 찰스를 고문하여 죽인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일까? 그리고 그 이 유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다시는 사드 미술관과 관계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관계가 성립되고 말았다. 사태는 아주 고약스럽게 얽혀들고 있었다. 보란은 대노 질리아모가 한 얘기가 사실이라 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얘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앤 프랭클린의 양아버지 되는 스톤 바로 그 자가 첩자 란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리고그모든것들이 보란에게는 어떤 뜻이 있는 것이며 이 나라 를 탈출하려는 보란의 목적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사태는 분명 뒤얽혀들고 있었다. 이제 적과 동지를 분 명히 구분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의 눈앞에 찰스의 갈갈이 찢긴 몸이 어른거렸다 보란이 늙은 신사와 만났던 것은 아주 짤막한 시간뿐이었으나 그가 마음에 들었다.  따라서 뒤얽혀든 사태의 어느 지점에서 보란은 사디즘에 걸린 살인자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정의가 어떤 것인지 를 보여줘야 했다.  지금 보란에게는 더 급하고 더 큰 주의력을 기울여서 해내야 

심 문 117 
할 당면 과제가 있었다. 옷을 다 입자 보란은 링컨 콘티넨털을 천천히 몰아 조용히 공원 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보란은 공원의 3번 문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는 서쪽으로 방향 을 바꾸었다. 대노 질리아모가 약간 비대증에 걸린 몸을 이끌고 보란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시간에 공원을 벗어나 안개 속 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란은 관목 숲속에 링 컨 콘티넨털을 세우고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적당한 거리를 두 고 보란은 조금 전까지의 그의 포로였던 대노를 뒤따르기 시작 했다 그렇다. 보란은 그렇게까지 정직하고도 고지식하지는 않았다 적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방법이 단 하나뿐인 것은 아니었다. 대 노가 그것을 알건 모르건 대노는 아직도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고, 심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었다 맥 보란은 서서히 적의 기지로 접근해 가고 있었다. 런던 습격 의 제 2막이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절 전쟁과 펑화 
그들의 본거지는 런던의 외곽 지대에 있었다. 잔디가 탐스럽 게 깔린 뒤뜰이 있었고 철제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저택이었다.  어떤 귀족의 시골 별장쯤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그런 저택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저택은 역사상 가장 조직적인 범죄 집단이 방문객을 유치하거나 회의를 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 저택은 피커딜리 부근의 혈란한 네온사인이 빛나는 번화가 로부터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젠트 공원으로부터는 아주 먼 거리였다 질리아모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을 그다지 서두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런던 의 지하철은 자정이 지난 뒤에는 운행되지 않지만 그때까지 택 시들은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마피아의 카포는 지나는 택시는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걷고만 있었다.  그것은 보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미 행을 더욱 손웜게 

전쟁과 평화 119 
해주기 때문이었다. 질리아모는 두 다리로 오랜 시간 걸어가는 것으로 그가 가문에 대해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생 각인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는 단지 분노와 절망과 치욕 으로 온몸을 떨며 걷고 있는 것이리라. 그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리젠트 공원으로부터 소호를 돌아가 는 길은 몹시 멀고 피곤한 것이었다. 더구나 새벽이었고 질리아 모는 런던의 지리에 그다지 익숙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가 하면. 한 도로를 한 바퀴 빙글 돌기도 했고, 피커딜리 광장 부근에서는 방향을 잃은 듯 한동안 서성거 리기도 했다. 드디어 그는 철제 담장이 있는 그 저택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저택이 가까워질수록 대노 질리아모는 발걸음을 늦추었다.  불쌍한 녀석 ! 보란은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보란은 그 저택 반대편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벌어질 일들이 궁금했다. 방마다 불들이 휘황하게 밝혀 져 있었고 대문으로부터 집에 이르는 순환 도로에 차들이 줄줄 이 늘어서 있었다. 한떼의 사내들이 불이 환히 밝혀진 포치에 서 있었고, 또 한떼의 사내들은 주차장 근처를 한가하게 서성거리 고 있었다 질리아모가 포치로 접근해 가자 그들이 큰 소리로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아, 대노, 도대체 어디 가 있었나?J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보란에게까지 들려 왔다. 곧 그 사내들 은 질리아모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한 사내가 몇 분 뒤 나오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차 주변을 서성거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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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에게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무엇인가 지시를 내리자 그들은 곧 흩어졌다. 그 중 몇 사람들은 차에 올랐다 그 러자 포치에 나왔던 그 사내가 무언가 또 다른 소리를 질렀다 보란이 듣기에 그는, 「대문! 대문을!」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맨 앞에 주차해 있던 차에서 한 사내가 내리더니 대문으로 달 려가 그 거대한 철제 대문을 열어 젖히고 다시 차로 되돌아갔다.  포치에 있던 사내가 다시 외쳤다 「문은 내가 닫을 테니까 빨리 나가라구!」 차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보란은 헤드라이트에 자신의 모 습이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을 숨겼다 차들은 피커딜리를 향하는 듯했다. 마지막 차가 사라지자 포치에 서 있던 사나이는 대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대문을 곧장 닫지 않고 그는 대문 한쪽에 서서 도로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담배가 그의 손 끝을 떠나 도로 가운데로 퉁겨졌다. 그는 도로 위로 나가 그 담 배를 밟아 불을 」1고 또 하나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 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뒤에도 그는 오래도록 라이터를 켠 채 들 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그 불빛 속에 한동안 드러났다 그 얼굴을 알아본 순간 보란의 몸에 전율이 스쳐갔다. 그는 다 름 아닌 레오 터린이었다. 마피아와 경찰의 이중 역할을 하고 있 는 사나이 . 그는 피츠필드의 경찰이었다. 보란은 한때 그를 피츠 필드의 마피아의 부두목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꺼이 그 작은 이탈리아 사내를 처형할 작전이었다. 그러나 보란이 성 공적으로 마피아 내부에 침투하여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처 리하는지를 알게 된 뒤에는 그리고 레오 터린이 어떤 사람인지 를 알게 된 뒤에는 보란은 터린과 한편이 되기도 했었다. 그 당 

전쟁과 평화 161 
시에 보란은 (피의 보복)을 해야만 했었다 그는 위기에 처한 보 란을 도와 주기도 했었다 보란이 그의 정체를 몰랐던 때 다른 마피아들과 함께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 다 레오터린은경찰의 첩보원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 얼굴을 여기에서 발견하자 보란은 복잡한 감정을 느 꼈다. 레오는 보란과 같이 계속적인 위험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 이다. 레오 터린이 자신과 친밀하게 지냈었다는 것에 대해 아주 조그만 단서라도 발각된다면 터린은 당장 마피아로부터 제거될 것이고, 5년 동안 지속췄던 경찰의 마피아 침투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작달막한 사내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 었다 터린은 더 큰 목적을 위해서라면 보란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경찰관들이란 모두 다 그런 작자들 인 것이다. 한때는 친구였다 해도 때로는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란의 내면적인 갈등은 즉시 해결되었다 그는 베레 타에서 탄환을 한 알 꺼내 터린의 발치께의 _I-2.위에 던졌다.  그 작은 사내는 허리를 굽혀 탄환을 집어 들고 그것을 손바닥 위 에 올려놓았다 그는 탄환을손바닥 위에서 한동안 굴려 보고는 집과 건물로 이르는 도로를 재빨리 살펴보더니 침착하게 도로를 건너왔다.  보란은 어둠 속으로부터 걸어나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 다 「네온사인이라도 켜두시지 그랬소.」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터린은 보란에게 담배를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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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대노 한테 무슨 짓을 한 거요. 보란? 꼭 지옥에 빠졌다가 살아나온 사 람 꼴이니 .」 「바로 보았소. 그런데 당신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 「모두 당신 때문이오.」 「그럴 것으로 생각했소. 이곳에서 지원군을 잔뜩 부르는 모양 이죠?~ 보란은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도 있소.웃을 일이 아너오.심각 하게 생각해 봐야 할 일이오.」 보란의 얼굴에서 이제 웃음은 걷혀 있었다 「다른 일이라니 ?J 「그들은 평화 조약을 원하고 있소.」 「평 화라‥‥‥‥」 보란이 중떨거렸다.  「진지하게 들어요. 단순한 음모는 아닌 것 같소. 진짜 평화 조 약이오. 스타치오가 담당하게 되었소.」 「조 스타치오? 뉴욕 변두리 지역을 맡고 있는 자 말이오?J 「그렇소 그가 당신과 평화 협상을 하려고 여기로 오고 있는 중이오. 그는 다른 보스들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지나 않나 하고 걱정을 하는 모양이오 당신도 알잖소?이 녀석들은 서로를 완 전히 믿는 법이 없는 놈들이라는 것을.」 「당신 역할은 뭐요?J 「그들은 당신이 한때 내 부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소. 그래서 내가 당신과의 접촉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전쟁과 평화 IEI 
있소. 그런데 당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소? 현재 피츠필드 영역 이 내 수중에 들어와 있소 내가 그곳 카포라오.」 터린은 낮게 소리내어 웃었다 「축하하오. 몫이 좋은 영토 아뇨? 여자들도 더 많아졌을 테 죠?J 보란은 킬킬거렸다 터린도 소리 없이 운었다.  「그리고 이름도 바꾸었소.」 「무슨?J 「레오 퍼시라는 이름이오.」 「아하, 내 이름보다 좋구려 .」 레오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보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영국에 온 목적은 뭐요?유럽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 들어 보자는 속셈이오?J 「난 그저 본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소. 그런데 이 늙고 노쇠한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주 지독한 악취가 나는 걸 발견했소. 그래서 좀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손을 본다‥‥‥ 그건 두들겨 부수겠다는 얘기 아니오?~ 「좋도록 생각하시오.」 「그런데 좀 냉정해지는 게 좋을거요, 보란 이곳 런던의 경찰 들은 좀 유별나거든. 할 브로뇰라를 기억하오?J 「물론 정부기관 사람 아니오?J 「그래요. 브로뇰라가 상당히 압력을 받고 있는 모양이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그는 당신을 위해 어떤 타협안 을 지방 정부에 꾸준히 제출하려고 모색중이오. 그런데 다른 사 람들은 그런 일에 끼여 들기가 싫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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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브로뇰라의 생각은 어떤 것이오?J 「그가 당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는 당신도 알 거 요. 그는 당신이 국가적인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그의 견해를 비공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 람들이 아주 많아요. 그러나 그건 연방 정부적 성격의 판단이오. 또 지방 정부 수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가 않 고. 게다가 당신이 계속 여기저기서 사건을 터뜨리고 다니는 동 안에는 더욱 그렇소. 그래서 브로뇰라는 거의 한 달 전부터 런던 마피아들의 정보를 얻고 싶어하고 있었소. 하지만 나로서는 도 와 줄 방법이 없었소.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싶다고 마피아들에게 요구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나의 이번 여행은 할 브로뇰라한테는 축복이었소. 우리가 런던 지하 세계로 들어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아직 냄새를 못 맡았소?J 「무슨 냄새?J 「이곳에 온 이후로난 썩은 냄새를 맡고 있소. 만일 이 냄새의 근원이 파헤쳐지면 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거라는 얘기를 나 는 듣고 있소.」 「정치적인 문제요?J 「바로 그거요.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는 사건이 될 거 요. 프로퓨모 사태보다도 더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얘기들이오.」 터린은 무언가 말을 할 듯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야드 경찰들이 더 혈안이 돼 있는 거요. 아마 그들도 이미 냄새를 맡은 모양이오. 그래서 그 사건이 왈칵 터져 사람들한테 알려지기 전에 무마하려고 하는 모양이오.」 

전쟁과 평화 165 
「글쎄 그럴까? 이곳 중앙 정보국 사람들이란 워낙 자존심이 강해요. 그래서 당신이 멋대로 뛰는 것을 내버려두고 싶지가 않 은 것일 거요.」 「자, 그 얘기는 그 정도 해둡시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을 수 있75소?J 터린은 작은 수첩을 꺼내 전화 번호를 휘갈겨 쓴 다음 그 페이 지를 찢어서 보란에게 주었다.  「오늘 안으로 나에게 전화를 해주시오.」 「알았소. 차들은 어디로 간 거요?J 「공항이오. 농부 어니 카스틸리오네가 대부대를 이끌고 6시에 도착할 예정이오. 스타치오가 주장했소. 우리들이 농부 어니보 다도 먼저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구.」 「무슨 활동을 개시한다는 거요?~ 터린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거창한 계획이오, 보란. 마피아들은 한 손에는 평화를 또 한 손에는 전쟁을 들고 있소. 우리가 먼저 당신과 접촉하여 평화 협 상을 성사시키면 농부 어니는 총을 놓고 우리들의 의견을 따르 기로 되어 있소.」 「그러나 어니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테지 .」 「바로 그거요. 그렇지만 스타치오도 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지 를 받고 활동하는 거요. 당신과 협상한다는 것은 위원회에서도 대환영이었다오.」 「카스틸리오네도 그 위원회에 일원이잖소?J 「그렇소. 그러나 그는 당신을 몸서리 치게 증오하고 있다는 걸 당신도 알 거요.」 

IH  
「그 늙은 농부의 초상날도 멀지 않았군.」 「그 정도 알아두고 행동하시오. 이건 나의 추측에 불과하오. 더 이상 자세한 내막들은 잘 모른다오. 스타치오는 이 일을 아주 중대하게 여기고 있소. 난 다만 당신과의 협상을 모색하기로 되 어 있는 것뿐이오. 스타치오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 주는 게 좋 을 거요. 그래야 당신도 편안히 은퇴할 수 있을 것 아니오?~ 「누가 은퇴하고 싶다고 했소?J 터린은 미소 지었다.  「이런 식으로 영원히 계속할 수는 없을 것 아니오?J 보란은 특유의 음산한 미소를 흘렸다.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봐야 할 거요.」 「알았소. 아무튼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오.」 「정보가 좀 필요하오.」 「할 수 있는 찬 돕겠소. 뭘 알고 싶소?J 「70이나 75세쯤 된 에드윈 찰스라는 노인에 대해 알아야』K소. 죽음을 그에게 선물한 사람에 대해서도. 내 추측이지만 그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 055(전략 사무국) 연락 대원으로 활약한 것 같 소. 오늘밤 그는‥‥‥ 죽소.」 터린은 보란에게 총알을 돌려 주며 물었다.  「적인지 동지인지 알고 싶다는 거요?J 「그렇소.」 「좋소. 브로뇰라에게 연락을 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소.」 「또 머빈 스톤 소령에 대해서도 조사해 주시오. 지금은 은퇴했 는데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의 이름뿐이오. 하지만 찰스와 그 사 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오.」 

전쟁과 평화 If- 
「무슨 은밀한 관계요?J 「그렇소. 중대한 문제요. 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어야 할 지경 1오.」 「알았소. 알아보겠소.」 터린은 천천히 도로를 건너갔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그는 문 을 꼭 닫고 건물로 이르는 도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그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보란은 그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보란은 그가 오래도록 살아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의 목숨이 보란의 목숨만큼이나 짧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보란은 훌 룬한 경찰관에 대한 동정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 다.  

f# 소령의 정체 
보란이 러셀 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쥔스 하우스의 이곳 저곳 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고 앤 프랭클린의 창문에서도 희미한 불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심하게 주변을 살펴본 뒤에 보란은 됫문으로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가 그에게 주었던 열 쇠로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앤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문 바로 맞은편의 의 자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조금도 졸리는 얼굴이 아니었 다. 게다가 그녀는 커다란 웨더비 마크 V를 꼭 움켜쥐고 문으로 들어서는 보란의 배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는 문을 닫고 조용히 물었다 「날 벌써 잊어버렸소?J 그녀는 냉정하게 대꾸했다.  「아니오. 당신을 잊은 게 아니에요.」 

소령의 정체 169 
「그 총을 들고 뭘 하는 거요?J 「나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나 때문에?~ 그녀는 계속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보란 은 여유를 보이며 웃으려고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음! 담배를 좀 피워도 되겠소, 총잡이 아가씨?J 「담배를 꺼내는 척하며 총을 꺼낼 작정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 을 거예요.」 보란은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이것 봐요.난 장난할 기분이 아니오.보병들은 전투를끝내 고 돌아오면 기진맥진하는 법이오. 난 보병이오. 알겠소? 난 종 일 싸우고 다녔소. 이 두 다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소. 그런데 당 신은 왜 이러는 거요?~ 「당신의 다리가 나 때문에 지치지 않은 걸 하나님께 감사드려 야겠군요.」 「다리뿐이 아니오. 이 어깨도 마찬가지요.특히 총을 메고 다 녔던 이쪽 어깨는 더욱 그렇소. 그 커다란 총이 불꽃을 토해 내 는 순간 개머리판이 어깨를 성난 황소처럼 들이받는 법이오. 내 가 아는 어떤 사람은 사격장에서 총을 쏘다가 뼈가 어깨 밖으로 튀어나온 적도 있었소.」 「나도 총을 여러 번 쏴봐서 알아요.」 보란은 자신을 쏘아보는 그녀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싫었다 지금 무엇보다도 보란은 스톤 소령이 어디에 있는지 몹시 궁금 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서 총을 쏴보았다는 거요? 오락실 사격장에서? 지금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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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들고 있는그총은장난감총이 아니오, 앤 1000야드밖의 사람까지도 즉사시키는 파괴력을 가진 총이오. 3000피트란 말이 오. 당신네들 단위로는 1킬로미터하고 맞먹는 거리지. 그런 정 도의 파괴력이라면 총개머리판이 받는 반동도 그만큼 세게 마련 이오. 4000파운드 이상이 되는 거요. 바로 거기서 성난 황소가 뛰쳐나온단 말이오. 그뿐인 줄 아시오? 그 웨더비 탄환은 아주 강력한 파괴력을 갖도록 고안되어 있소. 충격 또한 수류탄을 능 가하고 물체를 산산조각을 내며 레뚫어 버리오. 작은 폭탄과 같 소. 만일 그 자리에서 이 만큼밖에 안 떨어진 나를 그 총으로 쏘 게 되면 내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벽이고, 천장이고, 가구, 바닥 등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게 될 거요. 당신은 살점을 하나하나 다 치워야 할거고 또내 몸의 일부는 이 방을 벗어나 복도에까 지 흩어질 거요. 만일 당신이 좀더 잔인한 취미를 갖고 있다면 내 두 눈에다 총구를 갖다 대고 쏘는 것도 볼 만할 거요. 그리고 만일‥‥‥‥」 「이제 그만 해요.」 그녀가 소리치며 보란의 말을 막았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 졌고 입술 끝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보란이 입을 열었다 「그만 하기로 하지 그런데 정말 당신이 날 쏠 생각이라면 왜 탄창을 안 끼웠소?J 「뭐라구요?J 「탄창 말이오. 왜 총에 장진도 안 했소?J 그녀의 얼굴에 절망스러운 표정이 스치면서 들고 있던 총을 내려다보았다.  보란은 그녀에게 다가가 총을 빼앗았다.  

소령의 정체 171 
「멍청하게 !」 그녀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보란은 침착하게 웃으며 대답했 다 「전혀 멍청한 게 아니오. 나로 봐선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 사실 이 총은 이미 장전되어 있었소. 이 종류는 탄창을 끼우는 게 아니거든.」 보란은 볼트를 풀고 묵직한 탄환을 하나 뽑아 내었다. 그 탄 환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 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아주 무겁소.」 그녀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당신 때문에 난산산조각으로 찢겨 런던의 하늘로날아갈 뻔 했소.」 「그랬군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으며 말투는 냉정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요?J 그녀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찰스는 남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한테 얘기해 줬잖 아요. 그 분을 죽일 이유는 조금도 없었어요. 아주 무섭고 잔인 하고 소름 끼치게‥‥‥‥ 당신은 짐승 같은 짓을 했어요. 용서할 수 없어요.」 보란은 모욕감과 어이없음을 동시에 느꼈다.  「아가씨, 만일 당신이 정말 내가 그 늙은 신사를 죽였다고 생 각한다면 당신이야말로 정신 나간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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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웨더비를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옷장 속에 넣어 두 었던 물건들을 모조리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그 강력한 파괴 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케이스에 쑤셔넣고 있을 때 그녀가 문 가 에 나타났다.  「보란!~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는 냉정한 눈길로 그녀 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두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침대 발치에 섰다. 보란은 그녀가 지난 밤과 아주 똑같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란은 그것이 우연인지 의아스러웠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요. 생각의 자유야 누구에 게나 있으니까. 나는 살인자요. 그건 당신이 옳아요. 사실 나는 오늘밤 벌써 2,30명을 죽였으니까. 이제 난 시체의 머릿수 따위 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로 단련됐소. 그렇지만 난 늙은 사람 을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지는 않아요. 그건 내 방식이 아 니오. 당신은 그런 방식을 즐길지는 모르지만 난 그렇지 않소.」 그녀가 고개를 떨구며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경솔했어요.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날 용서해 주시겠죠?J 그는 슈트케이스에 자신의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쑤셔넣으며 대.답했다.  「벌써 용서했소. 그렇지만 이제 떠나는 게 좋겠소 한 곳에 너 무 오래 있으면 불안하니까 그 동안 고마웠소.」 그는 가방을 들어 바닥에 놓았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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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은 일단 나가서 결정하겠소.」 「이러실 필요 없어요. 정말이에요. 여기 있어 주시는 게 저한 테는 더 좋아요.」 「아니오. 나로서는 가는 게 좋겠소.」 「그럼 우리를 저버리시는군요. 우리를 곤경에 빠뜨려 놓고 흔 자 달아나겠다는 건가요? 우리가 당신을 그토록이나 도와 주었 는데‥‥‥」 그녀는 원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소. 당신들은 날 많이 도와 주었소.도버의 함정에서 당 신이 날 구출해 주었소. 그렇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당 신들은 날 도와 주었소.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소 무 슨 말인지 알겠소?J 그녀는 숨을 몰아 쉬었다 「당신이 찰스를 안 죽였다면 누가 죽였을까요?J 보란은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는 침대 끝에 걸 터앉아 담배를 붙여 물었다 「나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소.」 「아주 참혹하게 죽었어요.거기 가서 나도 봤어요.중앙 정보 국 사람들도 거기 와 있었어요. 그리고 난 기술적으로 체포당했 01요.」 「그게 무슨 뜻이오7~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나는 런던을 떠낱 수 없게 됐어요.그 게 기술적인 체포죠 중앙 정보국에서는 당신을 범인이라고 생 각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당신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 기 위해 찰스를 고문하다가 죽였고, 그러는 도중 마피아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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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가 도착하자 그들을 보두 학살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보란은 고개를 」1덕 였다 「그럴듯한 추리요. 내가 경찰이었다 해도 그런 결론에 도달했 을 거요.」 그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뿜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와 똑같은 실수를 범했소. 나는 마피아들이 그 늙은 신사를 죽였다고 생각했었소. 그래야 사태가 일목 요연 하게 정리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 않소?J 보란의 얼굴에 진지한 빛이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보란?J 「그러나 마피아들도 찰스를 죽이지 않았소. 그건 확실해요. 누 가 그를 죽였을까? 보다 중요한 건 왜 죽였을까 하는 점이오. 앤, 찰스는 왜 살해되었을까?~ 그녀는 보란 곁에 앉았다. 무릎을 두 팔로 감싸안고 손은 깍지 를 끼고서 턱을 무릎 위에 얹은 자세로 생각에 골몰하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혀 모르겠어요.」 「그 미술관은 마피아 소굴 중 하나였소?J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대답했다.  「이미 얘기했잖아요. 마피아가 우리를 노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찰스가 어떻게 그걸 간파하게 되었을까?J 그녀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찰스는 그저 전자기를 주물럭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선량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는 전문적인 전자 기술자보다도 훨 씬 러어났어요. 그는 그 클럽의 운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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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이에요.」 「그는 지하실에서 방들을 모두 엿보았잖소?J 「그건 개인적 인 일일 뿐이었어요. 찰스는 그저 그걸 보고 즐기 는 것뿐이었거든요.」 「찰스가 카메라와 그 밖의 장치들을 설치했소?J 「찰스가 설치했다구요? 아니에요. 그 장치들은 찰스가 우리에 게 오기 전에 이미 설치돼 있었어요.」 「찰스가 당신들한테 온 건 언제였소.?J 「불과 몇 달 전이에요. 석 달, 넉 달쯤 됐나 봐요.」 「그건 모니터 시설의 작동이 시작된 후였소, 시작되기 전이었 소?J 「시작된 후였어요. 그건 틀림없어요 왜냐하면 스톤 소령이 그 곳을 24시간 경비하는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해서 찰스가 오게 된 거니까요. 찰스는 거의 그 안에서 살았어요. 지하실에 기거할 수 있는 곳도 갖춰 놓았구요.」 「어떻게 해서 소령이 찰스에게 그 일을 맡기게 되었을까?J 그녀는 뭔가를 생각해 내려는 듯 눈을 깜박였다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보란은 한숨을 쉬며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버리기 위해 침대 머리맡의 탁자로 팔을 뻗었다. 그녀는 피곤한 듯이 앉은 자세에 서 그대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는 생각에 잠겨 그녀를 바라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을 버려둘 수가 없소, 앤.」 「고마워요. 그렇지만 내가 당신을 놓아 드리겠어요. 당신이 나 를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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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의 속삭이듯 대답했다.  「이건 책임이니 뭐니 하는 문제가 아니오.」 그녀의 얼굴이 차츰 온화해졌다. 그녀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속 삭였다 「그래요? 그럼 무엇이 문제죠?J 그는 머리를 저었다.  「말하자면 이건 안전의 문제요. 누가 찰스한테 그 짓을 했건 간에 그는 곧 당신에게도 같은 짓을 하기로 결심하게 될 거요.」 「왜 나를?J 「왜 찰스를 그랬겠소?J 「그렇게 연관짓는 건 터무너없어요!」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그게 그렇게 완전히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인 듯했다.  「사드 미술관에서 당신의 직책은?J 그녀는 눈을 감고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는 무릎을 굽혀 한 쪽 발을 침대 위에 올렸다. 그녀는 불안하다는 듯 다리를 흔들었다.  보란이 재촉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요. 거기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거 요?~ 그녀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파티를 계획하는 거예요. 쇼의 순서를 결정하고 장식을 하고 음식과 마실 것을 준비해요. 모든 파티가 내 손을 거쳐야 꾸며져 요.」 「쇼를 준비하는 데 어떤 절차가 괼요하오?J 「여러 가지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들 각각의 특이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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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완전히 파악하는 거예요. 먼저 나는 어떤 회원들이 참석할 것 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 다음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로 쇼를 꾸미는 거예요. 쉬운 일이 아니죠.」 「배우들은 어디에서 데려오죠?J 「레퍼터리 컴퍼니의 사람들이에요. 우리 클럽과 계약을 체결 하죠. 그들은 급료도 많이 받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도 만족감 을 느끼는 것 같아요. 또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들 자신들이 특 이한 체질이어서 그런 쇼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구요.」 「당신은 어떻소?J 「뭐가요?J 「당신도 특이한 체질이오?J 그녀는 눈을 꼭 감고 얼굴을 붉혔다.  「나에게도 아주 특이한 점이 있어요.」 「어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 다.  「아주 심한 반항심이에요. 이 모든 일들이 아주 지긋지긋하고 또 이 일에 대해 반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럼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소?J 오래도록 대답을 않고 있다가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대 답했다 「한때는 내가소령 때문에 거기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우리는 실제로 아버지와 딸은 아니거든요. 우리들은 거의 그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아요. 내 생각에는 소령은 아버지의 역할에 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그는 내가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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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부터 내 아주머너가 돌아가신 뒤부터 날 길러 오셨어요. 이미 아시겠지만 그는 아주 냉정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의무감이 아 주 투철한 분이거든요. 아마 그가 내 마음속에 그런 의무감을 서 서히 주입시켰나 봐요.그는 여러 해 동안 나의 모든 생활을 보 살펴 주었어요.,나도 나이가 들면서 그의 일을 도와 줘야 한다 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죠 그런데 작년에 소령이 나를 놓아 주 었어요‥‥나한테 떠나라고요구하기도했어요.」 「그런데?J 그녀는 눈을 번쩍 뜨더니 팔꿈치를 받치고 몸을 반쯤 일으켜 보란의 얼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난 내가 왜 거기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 지긋지 긋함파 불쾌감이 만성화되었나 봐요.」 그녀는 한동안 낮선 사람을 보듯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내가 불쾌하고 싫증나나요?J 「아니 , 전혀 그렇지 않소.」 「난 아직도 숫처녀예요. 그걸 아세요?J 이제 보란이 다른 방향으로 얘기를 이끌어가야 할 때였다. 그 는 그녀의 얘기에 내심 놀랐다.  「아니오. 정말 몰랐었소.」 「요즘 세상에서 스물여섯 살 난 여자가 처녀라너 청춘의 나이 에 그건 시대 착오적인 일이겠죠?J 그녀가 씁쓸하게 내뱉었다.  보란은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간밤의 쇼도 당신이 꾸민 거요?J 
◎ 

소령의 정체 179 
FLtl .」 「찰스가 죽은 방에서의 고문 장면도 당신이 계회했소?J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요. 하지만 그 방에서 연기하기로 계획돼 있었던 것은 찰 스가 아니었어요.」 
「그럼 그 방에서 하기로 계회된 사람은 누구였소?J 「지미 토머스였어요.」 「지미 토머스가 누구요?~ 그녀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지미 토머스는 남색가예요 ‥‥음, 수동적인 
여자 쪽이 
죠.」 「못 알아듣겠는걸.」 그녀는 다시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는‥‥‥‥ 좋아요. 당신도 그 장치들을 보았잖아요 그는 자신의 몸을 거기 묶고‥‥‥ 희롱을‥‥‥ 받아들이는 거예 요.」 그녀는 몹시 거북한 듯 더듬거리더니 나중엔 단숨에 말해 버 렸다 보란의 입 안이 바싹 말라들어 갔다.  「알겠소. 그런데 왜 지미가 거기 엄었을까요? 왜 그 늙은 신사 가 대신 거기 있게 되었죠?~ 그녀는 망설이는 듯했으나 곧 입을 열었다.  「소령의 얘기로는 찰스는 어떤 회원의 요구로 스스로 그· . 1‥‥‥」 「뭐요?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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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중 한 사람이 파티가 열리고 있는 동안 개인적으로 지미 를 만나고 싶어했대요.」 「그게 언제였소? 「내 생각에는 마지막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난 조금 일젝 떠 났어요. 당신을 소호 사이크에서 만나기로 했잖아요.」 보란은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소령도 거기 오기로 돼 있었잖소?J 「그도 왔어요. 방 바로 밖에서 당신을 만나 부딪칠 뻔했다고 하던데요.」 「그랬소 그는 20분이나 늦었소.」 「그것도 당신한테 설명했다고 했어요. 마피아들이 그를 미행 했다구요. 그래서 마피아들을 뿌리치고 오느라고 늦었다구요. 듣지 않았나요?J 보란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녀와 의견이 상반된 얘기를 하 지 않기로 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당신은 스톤 소령과 감정적으로 어떤 연대감을 갖고 있는 거 요?J 「별것 아녜요. 그건 벌써 다 설명한 것 같은데요?~ 「스톤 소령이 그 늙은 신사를 죽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그녀의 눈이 그 말에 놀라 등그래졌다.  「터무니없어요!」 「그럴까?J 「그래요.」 「그럼 , 그렇다고 해두고 일단 그가 찰스를 살해했다고 한번 가 

소령의 정체 101 
정해 봅시다. 그를 죽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J 그녀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령이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겠죠?J 「만일 그가 찰스를 죽여 버렸다면, 난 그를 없애 버리게 될 거 요.」 「뭘 한다구요?J 「이 사건 전체에서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있소. 난 지 금 성적인 도착 현상을 말하는 게 아니오. 아주 추악한 어떤 것 이 이 사건의 배후에 놓여 있다는 거요. 찰스가 어떤 미친 녀석 의 순간적인 발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난 내기 를 걸어도 좋소. 그는 분명히 아주 고약한 어떤 이유로 살해된 거요. 그리고 바로 그 이유는 내가 런던에 온 것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오. 또 그 살인자와 나는 이 사건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만나야 할 거라고 믿고 있소. 앤, 그때 난 그를 죽일 거 요.」 「당신은그드러나지 않는살인자가스톤소령일 가능성이 있 다고 생각하세요?J 「그건 가능성 이상이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인디언처럼 침대 위에서 두 다리를 모아 책상다리로 앉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그녀는 보 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하지만 만일 찰스가 바로 마피아의 첩자라면 어떻게 될까 요?J 「그럼 사태는 바러는 거지 그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 고 있소?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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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난 도무지 모르겠어요. 」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갔다 커튼을 젖히고 그녀는 말없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날이 밝아 오_고 있어요. 하루 24시 간이라는 길이는 날마 다 엄청나게 다른 거로군요.」 보란은 그녀에게 모든 사태를 확고 부동하게 이해시켜야 한다 고 생각했다.  「이 모든 얘기의 요점은 말이오, 앤. 내가 당신의 가장 극악한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점이오.」 그녀는 여전히 창 밖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몇 분 전만 해도 당신은 내 머리를 박살낼 작정이었지 않 소?~ 그녀는 머리를 창에 기대었다.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난 너무 놀라고 당황하고‥‥ 정말 정 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난 그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을 거예 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 봐요, 맥.」 「알겠소.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소. 하지만 그게 이 사태의 어떤 것도 바러 놓지는 못할 거요. 앤, 난 이 사건을 끝까 지 파헤칠 작정이니까.」 그녀가 그에게로 돌아섰을 때 그녀의 창백한 볼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 협상을 해요.」 「무슨 혈상을 말이오?J 「서로를 사랑하기로요‥‥‥‥죽음이 우리를 떼어 놓을 때까 

소령의 정체 183 
지만이라도.」 「앤!~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두 팔로 꼭 안았다.  그녀는 이제 모든자제력을 잃은듯했다. 온몸으로 그에게 매 달리며 눈물로 젖은 뺨을보란의 얼굴에 비벼댔다. 눈물이 이제 는 거칠 것 없이 흐르고 있었다 보란은 그녀의 등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앤, 그만, 그만 해요.」 그녀는 젖은 입술로뜨겁게 보란의 입술을 찾으며 미친 듯을 다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흐느꼈 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온몸을 긴장시키며 고개를 들고 창 밖을 노려보았다 「보란! 당신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했나요? ‥‥‥하지만 혹시 ‥‥‥ 택시를 타고 오지 않았어요?J 그는 그녀를 따라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래요. 하지만 내가 택시를 내린 곳은 유스턴 가였소. 창 밖 에 뭐가 있소?J 「내가 그걸 잊었었나 봐요. 택시 회사에도 당신을 찾기 위해 비상망이 쳐져 있다고찰스가 알려 됐었는데.저 밖에 이제 보니 
보란은 커튼을 다시 닫아 버리고 아주 조긍만 열어 놓았다. 러 셀 광장에는 경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안았던 팔을 풀고 웨더비를 넣은 케이스를 움켜쥐더니 문으로 바삐 걸 어갔다.  앤은 그의 슈트케이스를 움켜쥐고 그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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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여기 있어요!」 보란이 외쳤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했다.  「싫어요! 내가 임대한 차가 골목에 있어요. 싸우는 걸로 시간 을 낭비하지 말아요.」 그녀의 마지막 충고를 보란은 받아들였다. 그는 재빨리 방 안 의 불을 a고 앤의 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복도를 빠져 나와 됫계단을 뛰어내렸다.  운이 좋아야만 빠져 나갈 수 있을 듯했다.  「내 말 들어요, 앤. 만일 경찰이 사격을 시작하면 그걸로 모든 게 끝장이오 하지만 당신은 연기를 잘 하면 빠져 나갈 수도 있 소. 경찰에게 당신은 이렇게 얘기하는 거요. 내가 당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고 말이오. 명심해요. 당신은 내 포로요 그렇지 않 으면 저 경찰들은 당신도 죽일 거요.」 「우린 빠져 나갈 수 있어요. 걱정 말아요.」 그녀는 침착했다 그런 그녀가 보란은 자랑스러웠다. 그는 그 녀를 다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를 남겨 둔 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협상을 한 셈이었다. 사랑의 협상이었다. 죽음이 두 사 람을 떼어 놓기까지 그들 두 사람은 함께 행동할 것이었다. 보란 은 사랑의 행로를 생각했으며 그 길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간절 히 희망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그 사랑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f5 런던의 아침 
차들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질리아모와 터린은 그들을 영접하 기 위해 현관 밖으로 나왔으나 스타치오는 집 안에 람아 있었다.  그는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차들이 꾼임없이 대문 안으로 밀려들자 질리아모는 터린을 돌 아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애들은 몇이나 데려오는 거지 ?J 터린은 질리아모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이건 모두 어니의 개인 부대일 뿐이야. 다른 보스들도 각기 자기 부대들을 보내기로 약속했어 .」 첫 번째 차에서 내린 운전사가 재빨리 됫문을 열어 주었다. 그 속에 앉아 있던 농부 어니가 전투원들의 배치에 대해 그에게 지 시하는 것 같았다. 운전사는 다시 자동차문을 닫고 줄줄이 늘어 선 차들을 따라달리며 명령을 전했다. 전투원들이 차에서 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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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집 앞의 도로는 사람들로 혼잡스러 워졌다 그들 중 지휘자들이 나와서 그들을 질서 정연하게 정렬 시켰다.  두 무리의 사내들이 저택 바깥의 도로로 나가더니 어딘가로 사라져 갔다. 또 한 무리의 사내들은 뜰 이곳 저곳에 배치되었 고, 또 다른 무리들은 담벽 아래쪽으로 배치되었다. 나머지 사나 이들은 질리아모와 터린의 곁을 인사 한마디 없이 무표정하게 지나쳐 가더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 집을 점령하기 위 해 들어가는 개선군과도 같이 당당한 태도였다 터린은 그들의 행동을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지켜보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질리아모에게 말했다.  「대단하군! 대통령인들 저런 규모의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겠 나?J 질리아모는 그 엄청난 힘의 과시에 기세가 눌린 듯이 보였다.  그도 역시 목소리를 낮추어 대꾸했다.  「난 농부 어니를 비난할 생각은 없어. 보란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알기 때문이야.나도거기 있었으니까.」 「자네가 어디 있었다는 건가?J 뉴저지에서 온 그 사내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나?난 그 보란이라는 놈에 대해 알고 있어 그 얘기를 농부 어니한테 해줘야겠군 그래야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될 테니까.」 터린은 킬킬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 얘기 없이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제 막 험악한 표정의 사내가 카스틸 리오네의 차로 다가가 문을 열고 쉰 목소리로 무슨 얘기인가를 

런던의 아침 187 
속삭였다 그러자 두 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신경질적으 로 감시하며 동상처럼 우뚝 서 있었다 또 다른 두 사내가 양쪽 됫문으로 재빨리 뛰어내렸다. 그들은 몸으로 차의 정면을 막고 우뚝 서서 역시 사납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때야 비로소 농부 어니가 내렸다. 그는 곧 4명의 남자들에 의해 사방이 차단된 벽 속에 들어섰고, 그렇게 한떼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가운데에 있는 농부 어니 카스틸리오네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이 계단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터린이 질리아모에게 중얼 거렸다.  「그의 앞에서 농부라고 하면 큰일 나. 염두에 두게.」 질리아모는 머리를 」1덕이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만나서 반갑소, 카스틸리오네 씨 요증 이곳은 엉망진창이라 오. 이렇게 와줘서 정 말 고맙소.」 그러나 농부 어니의 옆을 본 순간 그의 미소는 사라져 버렸고 경악한 듯 시퍼렇게 질렸다. 그는 닉 트리거를 보았던 것이다.  그 위대한 사람 옆에 서 있는 닉 역시 유령이라도본듯한 표정 이었다.  카스틸리오네는 생각에 잠긴 듯한 시선으로 질리아모를 노려 보았다.  「나도 당신을 만나서 반갑소, 대노. 닉 트리거가 차 속에서 당 신의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고 나찬테 얘기하고 있던 중 이었소.」 「정말이지 , 나는 닉 트리거가 그렇게 죽은 걸로 알았었소.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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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닉 ,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 나온 거요?J 「모르겠소, 난 그때 정신을 잃었던 것 같소.」 닉은 당황한 듯 미소로 얼버무리더니 농부 어니의 눈치를 살 폈다.  카스틸리오네가 잔뜩 위엄을 갖추고 말했다 「내 생각엔 말이오, 모두 다 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소. 안으 로 들어가서 좀더 상세히 얘기해 봅시다 이놈의 날씨, 참 더러 운 날씨로군! 대노, 여긴 항상 날씨가 이 모양이오?J 터린은 날씨에 대한 그의 얘기를 듣고 어니의 관심이 질리아 모에게로 쏠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질리아모도 역시 그것을 알아차렸다 「여긴 날씨가 항상 이렇답니다. 공해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하 지만 요즘 공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소?내 생각으로는 공해가 이 더러운 안개와 뒤섞여서 아주 고약한 날씨가 되는 것 같소. 옷을 좀 두껍게 입어야 할 거요, 카스틸리오네 씨. 그 옷으로는 이곳에서 독감 걸리기 딱 좋겠소.」 그들은 레오 터린 곁을 지나갔다. 농부 어니가 그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터린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던 터린은 대노가 주목할 가치가 있는 마피 아의 정치가라고 생각했다. 개방적인 듯 보이면서 항상 미소를 띠롸있고, 쾌활하고 시원스러운 표정의 대노 질리아모.그러나 그의 손 안에는 항상 날카로운 칼날이 감춰져 있을 것이 분명했 다.  카스틸리오네의 차를 운전하고 있던 사내가 계단을 올라와 터 린 곁에 멈춰 섰다. 터린은그에게 담배를 한 개비 건네 주었다.  

런던의 아침 109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 사내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음울하게 내뱉었다.  「아니꼬워서 , 원‥‥‥‥」 터린은 킬킬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자네도 언젠가는 카포가 될 거야, 휠러.」 「난 카포가 된다 해도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겠어요. 배알이 뒤 틀려요, 레오.」 토비 횔러는 피츠필드 출신이며 레오 터린의 전투원이었다.  그의 이름은 마피아에게는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터린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가진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 다 한때 그는 자동차 경주 대회의 선수였다 그는 두 차례나 인디 애나 폴리스에서 개최된 거창한 규모의 선수권을 아주 근소한 시간차로 놓쳤다고 했다. 이제 그는 온갖 종류의 차를 능수 능란 하게 운전하는 탁월한 운전사가 되어 터린의 조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다시 몇 차례 맹렬히 랄아 대다가 레오 터 린에게 말했다.  「저 캐딜락을 U자 도로에 갖다 둬야겠어요, 레오. 차를 돌리 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미리 해둬야지, 안 그랬다가는 
「좋아. 그런데 지금 내가 들어야 할 얘기가 있어. 오는 길에 어니가 무슨 얘기를 하던가?J 「이런저런 잡담이죠. 계속 그 보란이라는 녀석을 어떻게 해치 울 것인가 하는 얘기뿐이었어요.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 이름이 뭐더라?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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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트리거 ?J 「그래요, 닉 트리거‥‥‥‥ 그런데 대노를 만났을 때 그 사람 표정을 보았어요? 그는 혼자서 어니를 만나겠다고 공항에 나와 있었다더군요. 여기 오는 동안 닉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아 요?줄곧 대노가 여기 일을 돼지처럼 망가뜨려 놓았다는 등 그 따위 얘기만 했어요. 대노가 보란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길바닥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렸다구요.」 터린의 얼굴에 미소가 넘척 흘렀다 「그렇게 되었었군.」 「그렇다니까요. 닉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대노한테 한 소 릴 들으셨죠? 거기서 도대체 어떻게 빠져 나왔느냐구요. 그런데 닉은 어니한테 자기는 대노와 같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지 뭡니 까. 그리고 또 그는 대노가 틀림없이 보란한테 속아서 당했을 것 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었어요. 내가 들은 얘기는 그 정도 뿐이죠.」 「알았네 가서 어니 차부터 돌려 놓게.」 터린은 조용히 충고했다.  「위대한보스에 대한존경심 때문에 모두털어놓은겁니다. 레 오 하지만 당신이 옳아요.먼저 그 일부터 해놓는 게 낫겠어요. 어니는 말이죠, 전에 자기보다 계급이 아래인 보스가 자기를 부 를 때 단 한 번 (씨) 자를 붙이지 않았다 해서 그에게 주었던 이 권을 모두 박탈해 버린 적도 있다더군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그는 자기를 (돈 카스틸리오네)라고 불러 주기를 바랄 거요. 그리고 다른 운전사를 한 명 구해 보십시오. 난 어니 의 차를 몰기 싫어요.」 

런던의 아침 191 
터린은 킬킬거렸다.  「걱정 말게. 어니는 곧 자기 운전사한테 차를 맡길 거야. 넌 스페어 운전사일 뿐이야. 나한테 할 얘기 다 한 건가?J 「아니에요. 당신이 옳았어요. 그들은 뭔가 꾸미고 있어요. 내 가 당신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아주조심하면서 앨기를 하 더군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얘기에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을 보 일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내가 그까짓 걸 눈치 못 챕니까? 분명 히 그들은 뭔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 「알았네. 고마워 , 휠러 .」 터린은 횔러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터린은 물론 그들이 무 슨 일인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 나 상관없었다. 터린은 그 계획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러셀 광장에 있는 공원은 경찰들로 완전히 뒤덮인 듯했다 명 령과 지시를 내리는 요란한 소리, 그리고 그들이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는 소리를 보란은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광장 근처의 모든곳을수색하고 있었다 앤이 차를몰겠다고 했을 때 보란은 곧 동의했다. 그녀는 운전석에 올랐고 보란은 짐들을 쑤셔넣은 후 됫자리로 뛰어올랐다.  그때 정복 경관이 그곳에 나타나서 외쳤다 「이봐요! 잠깐!」 그러나 차는 이미 맹렬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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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서 호각 소리들이 어지럽게 들려 왔다 이어 정복 경관 들이 이곳저곳에서 벌테처럼 몰려들었다. 보란은 쉽사리 탈출하 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앤이 운전하는 차는 러셀 광장 아래의 도로를 맹렬한 속도로 달려 동쪽으로 뻗은 가도로 치달렸다. 보란은 흔들리는 차 안에 서 간신히 자리를 옮겨 앞좌석으로 갔다. 뒤쪽으로부터 경찰차 의 사이렌 소리가 위협적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소?J 보란이 앤에게 물었다 「아직은 없어요. 걱정 말아요. 우리는 붙잡히지 않아요.」 그것은 믿을 만한 얘기였다. 그녀는 능수 능란하게 차를 몰았 다. 그녀는 런던의 차의 흥수 속을 지그재그로 달려나갔고 충돌 을 피하기 위하여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순간적으로 브레이크 를밟았으며 다음 순간에는 이미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그들이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는 것이 분명해졌 다 사이렌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대단한 순발력을 가진 운전사로군.」 그녀는 극도의 흥분으로 숨을 몰아 쉬면서 얼굴을 돌려 보란 을 바라보았다.  「이런 난폭한 운전은 처음이에요.」 그들은 이제 템스 강을 향하여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서쪽으 로 방향을 바꿔 달리고 있을 때쯤에야 도시는 서서히 잠에서 깨 어나 활동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곧거리는 버스와 승용차들 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제 갈 곳을 정했어요.」 

런던의 아침 19B 
앤이 보란에게 말했다 「어디로?J 「지금은 우선 소호 사이크로 가는 게 좋겠어요. 거기서 몇 시 간 동안 쉬었다가 소란이 좀 가라앉은 다음 브리튼으로 가는 거 예요. 거기 작은 별장이 하나 있거든요. 아주 멋진 곳이에요.」 보란은 멋진 곳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는 첫 번째 장소가 마음 에 걸렸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소호 사이크라구?J 「네. 거기엔 지금쯤 청소부들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또 누가 당신을 찾으러 거기로 오겠어요? 그 다음 브리튼으로 가면 돼요. 그 별장은 아주 완벽한 은신처가 될 거예요. 당신이 이 나 라를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할 때까지 거기서 숨어 지내기 로 해요. 그러면‥‥‥‥」 「잠깐 잠간만, 앤. 왜 하필이면 소호 사이크요?J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 내가 설명을 하지 않았군요. 당신이 알고 있을 것으로 생 각했어요. 소호 사이크는 내 소유예요. 적어도 반은요.」 「나머지 반은 누구 거요?J 「스톤 소령이 내 동업자예요. 그렇지만 염려 말아요. 당신이 아직 , 그 끔찍스러운 혐의를 소령한테 품고 있다고 해도 소령은 거기에 거의 오지 않으니까요. 간섭하지 않는 점잖은 동업자거 든요.」 그 모든 얘기들은 보란이 즉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 인 것들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그 얘기들을 곰곰이 되씹어 보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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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일단 가봅시다. 」 「난 그곳에 아파트를 갖고 있어요 아주 편안해요.」 「당신은 마치 런던 도처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 같군.」 그녀는 낮은 소리로 웃으며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말했 다.  「그렇지는 않아요. 퀸스 하우스에 있는 그 아파트는 그냥 편안 함을 누리려고 갖고 있는 거예요.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렇지 만 가끔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요. 쥔스 하우스는 그럴 때가 있는 곳이죠.」 「사치스러운 생활?J 보란은 예리한 눈초리로 그녀를 살펴보며 말했다.  「소호 사이크에 있는 그 아파트는 또 다른 장소예요. 사업장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곳도 역시 편안한 곳이에요. 가끔 나는 온 종일 거기서 지내요. 그곳은 기분을 전환하는 데에는 참 좋은 장 소예요.」 보란은 머릿속에 오가는 온갖 생각들을 정리하고 음미하며 말 했다.  「그렇다면 스톤 소령과 같이 지내는 또 하나의 장소도 있겠 군?J 그녀는 보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하지만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난 거기에서 잠만 잘 뿐이에요. 그것도 가능하면 거의 안 자는 편이에요. 가족 관념의 문제예요, 그건 난 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랬으니까요.」 「그리고 브리튼에도 또 집이 있고?J 

런던의 아침 195 
「그래요. 그곳은 내가 주말을 보내는 곳이에요. 브리튼은 바다 와 접하고 있어요. 아주 훌릉한 휴양지이기 때문에 난 그곳을 좋 아하죠. 바닷가라는 게 특히 마음에 들어요.」 그들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차를 몰았다. 그 동안 보란은 천천 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피커딜리를 지나 소호 지역 을 향해 달려갔다. 거대한 철문이 있는 그 저택을 그들은 지나쳤 다. 보란은 모든 차들이 돌아와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저 집은 누구 집이오?J 그녀가 그 집이 바로 자신이 옛날에 자랐던 집이라고 대답했 다 해도 보란은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옛날에는 무슨 공작의 저택이었는데 「현재 말이오. 거기서 누가 살고 있소?J 「전혀 몰라요.」 「정말이오?J 그는 거의 비웃듯이 물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려 하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에요? 사실, 당신은 내가 본 어떤 사 람보다도 가장 의심 많고 냉혹한 사람이에요.」 그는 한숨을 쉬며 거의 자신에게 말하듯 내뱉었다.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오.」 「하지만 자꾸만 날 의심하지는 말아요. 나는 이 아름다운 아침 에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멋진 계획을 설계하고 있으니까 요.」 「어떤 종류의 계회이오?J 그녀의 한 손이 운전대를 떠나 보란의 손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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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뭔가 증명해 주기를 요구할 작정이에요.」 「그게 뭐요?~ 이미 그 대답을 짐 작하면서도 보란은 짐 짓 물었다 「내가 평범한 여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내기에는 너무 때가 늦 은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J 보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당신은, 당신이 할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거 요.」 「난 이제 모든 걸 당신께 보여 주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뭐든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개방 적인 여자였다. 그러나 대담한 여자는 못 되는 것 같았다 「난 내 몸을 완전히 당신 손에 맡길 생각이에요.」 보란은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자신의 손에 맡겨진 그 모든 것 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었다. 그가 런던에서 가장 큰 행운을 잡 은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딱딱한 목소리로 말했 다.  「곤란한 일이오.」 「뭐가요7~ 「얘기가 잘못 되었소. 내가 나의 온몸을 당신한테 맡기고 있으 니까.」 그녀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몸을 부르르 떨더너 그를 바 라보며 말했다.  「날 믿어요, 보란.」 「그러는 수밖에 없잖소.」 

런던의 아침 197 
그러나 그는 앤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앤과 같이 아름 다운 몸을 가진 여자들은 곧 무적 함대를 소유한 영리한 군주와 도 같다는 것을 보란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런 여자들이 삼손을 쓰러뜨렸고, 시저를 멸망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보란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결코 그녀의 손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맡겨둘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까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16 죽음의 상징 
보란과의 아름다운 아침을 위한 앤 프랭클린의 계획은 그들이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 재조정되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바 안은 많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싸움을 벌이고 있 는 것같이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들의 떠들깩한소 리는 앤과 보란이 현관 로비에 들어설 때부터 들려 왔다. 입구 문 바로앞에서 몇 명의 여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앤 이 들어서자 반갑게 맞았다.  후리후리한 금발 미인이 꼭 끼는 핫팬티 속의 엉덩이를 흔들 며 말했다.  「와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미스 프랭클린. 안에 들어가셔서 저 인색한 도노번에게 우리의 급료를 빨리 지불하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들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죽음의 상징 199 
「아까 나에게는 청소부 몇 명뿐일 거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보란은 여자들을 쳐다보며 프랭클린에게 말했다. 그 여자들의 몸의 각 부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몸에 꼭 붙는 옷을 입고 앤에게 말을 걸었던 여자는 지난 밤에 보란이 여기 왔 을 때 유리 튜브 속에서 온갖 도발적인 포즈를 다 취하고 있던 금발 머리의 여자였다. 보란은 모든 게 궁금해졌다. 앤 프랭클린 이 이 클럽의 쇼도 제작하는 것일까? 앤은 보란에게 용서를 구 하고는 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금발 머리의 여자는 보란을 뒤 돌아보더니 엉덩이를 한층 더 요염하게 혼들며 안으로 들어갔 다 보란은담배를 붙여 물고로비를서성거렸다. 그는 자신이 이 곳에 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왜 내가 하필 이 곳으로 왔을까? 잠시 후 앤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얼굴을 붉 히며 열쇠를보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보 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먼저 올라가 계세요. 나도 곧 뒤따라 갈게요. 문제가 좀 생겼 어요.」 「어디로 올라가라는 거요?J 그녀는 두터운 커튼으로 가려진 로비 끝의 계단을 가리켰다.  다시 그의 뺨에 키스를 하고 그녀는 바ㅂhi 바로 돌아갔다 보란은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깜짝 놀랄 만큼 사치스러 운 아파트가 있었다. 쥔스 하우스와 같이 초라하고 텅 빈 곳이 아니었다.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 있었고, 동양의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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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그것은 사드 미술관의 클럽 룸과도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 켰다 장식들도 사드 미술관의 것과 느낌이 비슷했다.  온갖 포즈를 취한 남녀들의 실물 크기의 누드 사진과 그림이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보란은 그 진풍경을 낮은 휘파람 을 불며 돌아보았다.  아파트 안에는 커다란 방이 하나 있었는데 거실과 방 사이를 차단한 벽도 없이 훤하게 뚫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침대가 있었는데 그것은바닥보다조금높은곳에 놓여 있 었다. 그 침대로 가려면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무대와 도 같다고 보란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방 한쪽에는 평면보다 낮게 바닥의 아라비안 나이트풍의 욕조가 있었는데 그 욕조는 몇 쌍의 남녀가 같이 들어갈수 있는풀장과 같은 규모였다. 게 다가 분수까지도 설치되어 있었다. 대리석 계단이 욕조로 내려 가는 통로였다 욕조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사이키델 릭의 조명이 분수에 설치되었다.  또 그곳에는 소규모의 주방 설비도 갖추어져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작은 바도 있었다 보란은 앤이 한 얘기를 생각했다. 그렇다. 이곳은 사람이 가끔 기분을 전환하는 데에는 아주 완전 무결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언제라도 들어와서 피로를 풀고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이 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행운일 수도 있다. 보란은 이곳이 어떤 면에서는 앤 프랭클린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 다른 일면에서는 오히려 퀸스 하우스가 그녀에게 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장소는 지나치게 과장스러운 성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무대처럼 릎디 

죽음의 상징 201 
높은 곳에 놓여 있는 거대한 침대가 특히 그랬다.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처녀라? 과연 그럴까?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보란은 그 어머어마한 침대 한가운데에 전화가 있는 것을 발 견했다. 그는 미」1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몇 개의 얕으막한 계단을 올라가서 전화를 걸었다. 레오 터린이 그에게 준 전화 번 호를 돌렸다.  전화벨이 세 번 울리자 수상쩍은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요?J 「레오 퍼시와 얘기하고 싶소?J 보란도 퉁명스레 말했다.  「기 다리 시오.」 보란은 1분 이상을 기다렸다. 그 뒤에야 그는 전화가 연결되 는 소리를 들었고, 잠깐 뒤 레오 터린의 목소리가 나왔다 「누구요?J 「당신의 정보원이오. 전화하라고 했었잖소?J 「아, 그 철의 사나이시군.」 「그렇소.」 「지금은 얘기할 형편이 못 되는데 지금 회의중이요.」 보란은 킬킬거렸다.  「그것 참 당신도 거기에서 쇼를 하고 계시군요. 하지만 나도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이오. 도망 다니느라 몹시 지쳤소.」 「당신과 얘기는 해야겠는데, 친구. 어디서 날 만날 수 있겠 소?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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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해요.」 「런던 타워를 아시오?J 「찾아갈 수 있소. 시간은?J 「그럼 말이오, 사형 집행소에서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합시 다. 」 보란은 전화에다 대고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웃음을 간 신히 억제하고 그는 물었다.  「사형 집행소라는 게 뭐하는 곳이오?J 「관광 명소 중 하나요. 알 테지만 앤 보일런 왕비가 사형된 곳 이 바로 거기요. 역사적인 장소지 . 그냥 묻기만 하면 거기를 찾 아을 수 있을 거요.관광객들 틈에 섞여 태연히 들어와요. 이상 한 꼴을 보여서는 안 돼요.중대한 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이 있 소 당신에게도 아주 유익한 얘기가 될 거요.」 「좋소. 한 시간 후에 만나도록 합시다. 」 「아, 잠깐 기다려요. 그곳은 오전 10시까지는 문을 열지 않는 다는군요. 그럼 10시 반에 거기서 만나기로 합시다. 」 「좋소. 10Al )0분.」 「됐소. 괴상한 꼴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걸 잊지 말아요. 당신 을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기가 두려워 하는 얘기가 아니 오. 런던 경찰들이 우리들에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일은 없어야 겠기에 미리 당부하는 거요.」 보란은 그의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알았소.당신도 기억해 둘 게 있소, 레오.당신 혼자 오시오 아무도 데려오면 안 돼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난 떨리거든.」 터린은 웃음을 터뜨리며 전화 밖에 대고 옆에 있는 어떤 사람 

죽음의 상징 fOB 
에게 무슨 얘기인지를 지껄였다.  「염려 말아요. 난 혼자 가겠소. 당신은 당신 쪽이나 살펴봐 요.」 보란은 전화를 끊었다. 터린이 많은 사람들 속에 서서 얘기하 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회의 탁자 바로 옆에서였는 지도 몰랐다. 보란은 터린이 이 전화 통화로 인해 그와 접촉할 수 일는 사람으로 마피아 내부에서 지목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좋다.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터린 을 대신하여 보란과 접촉해 보겠다고 나선다면 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란은 다만 터린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믿기만 해 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 다 보란은그것이 싫었다. 밀림에서의 생존이란다만그자신에 게만 완전히 맡겨지는 것이었다.  방 건너편에서 들려 오는 어떤 소리가 그를 생각에서 깨어나 게 했다 보란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앤 프랭클린이 거기 서서 보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손을 혼들며 말했다 「이건 여러 명의 남녀들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됫구는 침대 아 뇨?당신처럼 훌릉한 여자가 이런 침대를 를고 윌 하는지 모르 겠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올라왔다 「이 침대가 좋다는 거예요, 나쁘다는 거예요?J 「당신이 이 속에서 뭘 하느냐에 달려 있지. 그들의 시위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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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되었소?~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무엇인가를 미0러져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드레스가 몸에서 발 아래로 떨어겼다.  보란의 두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거의 옷이라고 할 수 없 는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된 팬티와, 역시 가느다란 그래서 젖꼭 지만을 슬쩍 가리고 있는 브래지어만을 입고 있었다 보란은 목 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미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 넋을 잃고 그 녀의 몸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아. 앤!」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나는 당신 손 안에 있어요.」 그는 그녀를 힘껏 끌어당겼다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진 채 한 쪽 다리를 세우고 다른 한 다리는 곧게 뻗었다 그녀는 두 팔을 들어 머리 위에 올리고 유혹적인 눈길로 보란을 바라보았다. 그 는 그녀의 유리처럼 매끄러운 다리를 쓰다듬고 팔을 어루만졌 다. 그녀는 몸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한 숨을 토해 냈다.  「키스해 줘요!」 그녀는 가늘게 떨며 속삭였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탐욕스럽게 더듬었다. 그녀의 몸이 활처 럼 휘어 보란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의 내부에서 충동적으 로 남성의 본능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사랑일 수도 있으리라 「사랑해요, 보란!」 그녀는 그의 목을 두 팔로 꼭 끌어안고 귀를 깨물었다.  

죽음의 상징 201 
그는 그녀의 목과 가슴을, 다리의 은밀한 부분과 예민한 곳을 애무했다. 그녀는 거의 숨을 쉬지도 않는 듯 그의 손길 아래에서 한숨과 열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의 손이 떠나려는 듯한 기미를 보이면 힘껏 그의 목에 매달리며 그의 손길을 붙들었다.  잠시 후 그는 앤으로부터 몸을 떼고 일어서며 웃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 정말 이러기를 바라는 거요?J 그녀는 두 손으로 보란의 얼굴을 감싸쥐고 입술을 더듬으며 한숨을 쉬듯 속삭였다.  「물론이 에요.」 「당신이 하려고 하는 증명은 지금까지의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그녀는 머리를 힘껏 흔들었다.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보란은 미소를 보이며 침 착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자극에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법이오. 앤 .」 그녀는 애타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란은 그녀의 몸을 가슴으로부터 다리까지 쓰다듬어 내리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평범한 여자가 되길 원하는 거요?J 「보란! 제발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줘요.」 그녀는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알겠소.」 그는 침대에서 빠져 나와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몸놀림 하나하나를 거의 감은 눈의 눈썹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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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았다. 그녀는 마치 죽은 듯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가슴만이 크게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핑크빛을 띤 섬세한 혀의 끝부분이 조금 열린 입술 사이로 보였다 그는 권총 벨트를 풀어내고 침대와 가까운 거리의 바닥에 놓 았다. 그 다음 몸에 꼭 붙은 검은 야간 전투용 복장을 벗으려다 가 그녀의 눈길을 의식하자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는 키 득거리며 말했다 「어서 계속해요. 난 그걸 벌써 본 적이 있어요. 어제 내가 당 신을 침대에 뉘었던 게 기억나지 않나 보죠?J 「그때는 이런 상황이 아니었소.」 그는 전투용 복장을 벗어 그것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네 활개를 활짝 폈다. 보란의 몸이 그 위를 덮쳤다. 그녀는 그에게 매달렸고 두 사람의 입술이 뜨겁게 만났다.  그가 열정적인 키스를 끝내고 말했다 「먼저 목욕을 해야겠소. 같이 하겠소?J 그녀는 머리를 」1덕였다. 보란은 그녀를 무대와도 같은 침대 에서 끌어내렸다. 그들은 분수가 있는 작은 풀장처럼 보이는 욕 조로 내려갔다. 그녀는 투명한 브래지어를 몸에서 떼어냈다. 보 란은 한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키들거리며 보란의 어깨에 한 손을 기대고 가느다란 띠와 같은 팬티를 벗어 바닥에 던졌다 그다음순간, 그녀는 갑자기 얼어붙은듯한손을 보란의 어 깨에 댄 채 부르르 몸을 떨더니 짧게 비명을 질렀다. 다음 순간, 그녀는 보란의 몸에 달라붙었다. 보란은 깜짝 놀라 그녀를 풀로 

죽음의 상징 207 
부터 확 밀어냈다. 그의 힘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녀는 바닥에 나쥠굴었다. 그제야 그는 그녀가 본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2도. 온몸이 경련에 횝싸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물 속에서 해리 파커의 죽은 두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 었던 것이다. 시체는 등 쪽으로 완전히 꺾여 있었다 그의 머리 가 두 다리 사이에 있었다. 에드윈 찰스가 죽은 모습과 거의 똑 같은 형태였다 해리 파커는두터운 태퍼스트리의 밧줄로그자 세가 되도록 묶여 있었다. 묵직한 금속제의 널빤지에 그의 몸이 묶여 있었던 것이다.  앤 프랭클린은히스테리 환자처럼 정신을 잃고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보란은 물 속으로 들어가 해리 파커를 끌어냈다.  밧줄로 인한 흠집 외에 그의 몸에는 한 군데의 상처도 없었다.  해리 파커는 죽기 전에 폐와 위가 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뒤에 이와 같은 형태로 묶은 것일까, 아니면 이와 같은 형태로 묶은 뒤에 물에 빠뜨린 것일 까? 그러나 해리 파커의 멀겋게 뜨여진 두 눈에서는 아무런 대 답도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악마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보란은 해리 파커의 몸을 제대로 펴려는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그는 그 시체를 두꺼운 천으로 가리고 앤 프랭클린을 데리고 침대로 돌아왔다 바닥 이 곳 저곳에 떨어진 그녀의 옷을 모두 주운 그는 그녀에게 건네 주 었다 「옷을 입는 게 좋겠소.」 그녀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옷을 인었다. 보란도 재빨리 옷을 입고 곧장 그 옆에 설치된 바로 갔다. 그는 독한 술을 두 잔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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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침대로 가져왔다. 앤은 보란을 보지도 않은 채 잔을 받아 두 손으로 감싸쥐고 그 잔 속의 술에 씌어진 어떤 글자라도 해독 해 내려는 듯 곰곰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보란은 자신의 술잔을 단숨에 비운 다음, 잔을 높이 들어 먼 곳의 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 다. 앤은 깜짝 놀라 눈을 들었다.  「이제 이런 일들에 지 쳤어 !」 앤은 창백한 두 볼에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뻣뻣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쌍한 해리 !」 「불쌍한 해리가 죽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인 것 같소. 당신이 여 기에 올라왔던 게 언제요? 가장 최근에 말이오.」 「어젯밤에요. 잠깐 동안이었어요.」 「몇 시쯤이었소?J 「당신이 여기를 떠난 직후였어요 아니면 시간이 좀 지나서였 을까?경찰들이 나한테 몇 가지 질문을 했어요. 대답해 주고나 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올라왔었죠. 난 곧 다시 나갔어요. 해리 와 소령은 아래층 바에 있더군요. 그 사람들하고 작별 인사를 하 고 나는 곧장 퀸스 하우스로 갔어요. 그게 내가 해리를 본 마지 막이었어요.」 「그래, 그게 몇 시쯤이었소?J 보란은 추궁했다.  「아마‥‥‥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을 거예요. 난 당신이 곧 쥔스 하우스로 가리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새벽 2시까 지 기다렸어요 그래도 안 오기에 미술관으로 가봤죠.경찰들이 

죽음의 상징 209 
거기에 가득 차 있더군요. 그건 당신도 아는 일이겠죠?J 보란은 잠시 방을 서성거렸다.  「짐을 챙겨요. 여기서 나갑시다. 」 「밖으로 나가는 건 당신한테 위험해요, 보란. 브리튼으로 가는 것은 아직은 안 돼요. 적어도 시간이‥‥‥‥」 「여기는 당신이나 나 두 사람 모두에게 위험한 곳이오. 브리튼 도 마찬가지일 것 같소. 난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소. 갑시다!」 그는 획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나 아래로 내려갔 다 앤은 해리 파커의 주검 앞에 멈춰 서서 잠시 눈을 감고 서 있 다가 곧장 코트를 집어 들더니 곧 보란을 뒤따라 달려나왔다.  보란은 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다시는 이 아파트를 보지 않을 듯이, 그래서 그것을 기억해 남겨 두기라 도 하려는 듯이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앤도 그의 눈길을 의식하며 함께 아파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때에 내가 나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정말 부끄러워요.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결코 없을 거예요.」 그는 그녀가 하려는 얘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아주 멋진 곳이오, 앤.」 「그래요. 포르노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나죠?~ 「당신한테 그런 건 필요치 않을 텐데 .」 「아직 나한테 그걸 증명해 보이지 않으셨잖아요.」 「당신 스스로 이미 증명했잖소.자,서두릅시다. 어서 떠나야 겠소.」 문으로 나가며 그녀는 다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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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해리.저런 식으로죽다니‥‥」 그는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악마의 짓이오, 미친 놈의 짓!」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어찌‥‥‥」 그들이 로비를 빠져 나가는 동안 보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찰스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시대 의 상징이라고 말이오. 말하자면 이런 사디즘적인 것들 말이오. 그게 무슨 뜻이었겠소, 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포르노 영화의 시대라는 뜻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들은 로비를 빠져 나가 프리드 가로 나왔다.  「아니오. 그런 뜻만은 아니었소.」 그들은 바삐 모퉁이를 돌아 인도를 걸었다. 앤의 차는 좀 떨어 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보란의 마지막 얘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이 그의 말뜻을 정화히 알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렇게 단정 짓지 말아요, 앤. 그 대답을 직접 얻어내는방법 이 있을 거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보란7J 「런던 타워로 가는 거요.」 「아, 보란! 안 돼요! 이 밝은 대낮에 왜 사람들과 경찰들이 들 끓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거 예요?J 「우리 시대의 상징들을 한 번 봐두기 위해서요?~ 보란은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영국에 도 

죽음의 상징 211 착한 이래 그는 계속해서 어떤 상징의 그림자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죽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fr 까마귀 례 
보란이 레오 터린과 전화로 얘기를 나누던 그때, 마피아의 런 던 사령부에서는 두 개의 커다란 회의용 탁자 주변에 마피아의 보스들이 늘어앉아 있었다. 회의는 두 곳에서 열렸던 것이다. 서 재에서의 회의는 조 스타치오가 주최자였다. 레오 터린도 역시 그 회의에 참석했다. 평화 헙상의 지지자들이 그 탁자 주변에 모 여 있었다.  스타치오가 그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 중 어느 누군가는 의심을 할는지 모르겠소. 내가 왜 전투원들을 이다지도 많이 데려왔는지에 대해서 말이오. 그런 사람은 그걸 의심하기 전에 먼저 이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기 바 라겠소. 평화 협상에 필요한 사람은 단 한 명이오. 그 한 명이 바 로 나요. 여기에 있는 레오는 나와 보란을 접촉할 수 있도록 해 줄 사람일 따름이오.또한 그는 분명히 내 얘기를 보란이 다 들 

까마귀 메 21) 
을 때까지 보란이 공격 행위를 중단하고 기다리도록 할 수도 있 을 거요.바로 그것이 헙상의 과정이 될 거요.그러니까 당신들 은 의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시오. 왜 그 가 나와 터린을 데리고 왔느냐, 그 이유는 바로 이거요. 농부 어 니는 카포요. 그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를 존중해야 하오. 그러 나 그는 또한 속을 알 수 없는, 양손에 서로 다른 내용을 쥐고 이 쪽 저쪽으로 오락가락하는 쥐새끼 같은 교활한 사람이오. 그 때 문에 역시 우리는 또 한 번 그를 존경해야 하오. 그리고 바로 그 것이 당신들을 데리고 온 이유요. 나는 알고 있소. 농부 어니는 날 곤경에 빠뜨릴 작정이오. 난 분명히 그것을 이 뱃속으로부터 예감하고 있소. 그는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거요. 당신들 모두가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해 주기를 나는 바라오.」 스타치오 밑의 중간 보스 하나가 묵직한 재떨이를 마호가니 탁자 중앙으로 밀어 놓으며 투덜거렸다.  「그 녀석이 그따위 짓거리를 시도한다면 나도 가만 있지 않을 거요, 조!」 「분명히 그는 그렇게 할 거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 이오. 하지만 명심하시오. 그는 그 일을 하면 위법자가 되는 거 요. 이것도 당신들이 모두 명백히 인식해 두도록 하시오. 만일 어니 카스틸리오네가 날 처단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위원회의 엄숙한 의지와 명령을 배신하는 것이오. 내가 이 책임을 맡기 전 에 모든 카포와 보스들의 협의회와 위원회를 거쳐 이 평화 협정 은 결정이 되었소. 그러므로 당신들은 위원회의 입장을 대리해 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오. 내가 당신들을 데려온 것은 농부 어니가 위원회의 의지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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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요 당신들은 한 사람의 카포나 보스가 아니라 위훤회의 사 람들이오.」 그 뒤에는 맥 보란을 영광스럽고 값진 평화로 어떻게 끌어들 이느냐 하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전략 전술, 수단과 방법에 대한 가지 각색의 격렬한 논와가 뒤따랐다. 레오 터린은 피츠필 드에서 맥 보란을전투원의 한사람으로고용하고 있을 때의 경 험을자세히 얘기해 달라는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맥 보란이라 는 친구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터린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피츠필드에서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얘기해 주었다 이런 얘기들이 끝나가고 있을 즈음에 보란의 전화가 왔던 것 이다 터린은 조 스타치오의 평화 협상이야말로 이 지루하고 무 익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에 대해 한 차례 열변을 토한 다음, 전화를 받기 위해 회의 탁 자를 떠났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터린은 뉴욕의 보스에게 만면에 웃음을 띠 며 말했다.  「됐소. 내 척후병들이 벌써 활동을 시작하고 있소. 지금 전화 한 이 친구는 옛날부터 보란을 잘 아는 사람이오. 이제 우리가 쥐어야 할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소.」 스타치오는 생각에 잠겨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말했다.  「잘된 일이오. 그런데 이 부근에 있는 당신 척후병은 몇이나 되죠?J 웃음 가득한 얼굴로 터린은 대답했다.  「6,7명 될 거요. 그래서 나는 런던 타워를 만나는 장소로 선택 

까마귀 메 215 
한 거요.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는 농부 어니가 우리들의 회합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소. 어떻소. 조?J 「물론 우리는 지킬 수 있소, 퍼시.」 잠시 말을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조스타치오는 한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비, 네가 거기 나가 봐라. 잘 지켜. 수상한 동태가 엿보이 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고.」 보비는 즉시 그 방을 떠났다. 다른 사내들은 여전히 평화 군단 의 전략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한편, 같은 지붕 아래에서 또 하나의 회의가 농부 어니 카스틸 리오네와 그의 전투원인 우두머리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커다란 거실은 빈틈 없이 인간 사냥꾼들과 소두목들, 고참 전투 병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 방의 분위기는 그들이 맡은 임 무가 여간 중대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긴장과 흥분이 넘쳐 흐르 고 있었다.  물론 그 방의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은 카스틸리오네였다 커다란 탁자 중앙에 앉은 카스틸리오네의 양쪽 옆에는 닉 트 리거와 대노 질리아모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흠씬 두들겨 맞 고 비오는 거리로 내쫓긴 강아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농부 어니는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이 두 친구는 내가 여러분에게 하려는 얘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소. 보란은 이 두 사람들을 제멋대 로 희롱했소. 그가 이 두 친구들의 간담을 얼마나 서늘하게 했는 지는모르겠지만 이 두사람은여기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서로 다른 엉뚱한 얘기들을 주장하고 있단 말이오. 자, 이 모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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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보란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오. 벌써 본토에서도 여러 차례 겪어본바도 있으니 말이오.고국·에 있는 몇몇 늙은이들은 그 미치광이와 협상을 해서 그를 우리 편 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소.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수작이오. 도 대체 산짐승 같은 놈과 어떻게 협상을 하며 , 산짐승을 어떻게 우 리 같은사리 분별이 있는사업가로 만들수 있겠소?그것은 말 도 안 되는 헛소리요.」 「내 손을 좀 보시오. 새끼 악어를 기르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악어가 내 손을 이 꼴로 만들어 버렸소.」 시카고출신의 한 사내가자신의 한쪽 손을들어 보이며 말했 다. 그의 손에는 손가락이 없었다.  카스틸리오네는 탁자 주변을 둘러보며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떠들었다 「저 친구는 내 얘기를 잘 알 거요. 미치광이와 협상이란 말도 안 되는 개수작이오. 미치광이를 집 안에 초대해서는 안 되는 법 이오. 게다가 침실의 열쇠를 맡겨서도 안 되오. 미치광이에게 총을 줘서 경비를 부탁하는 것은 더욱더 삼가야 하오.」 「누가 그런 짓을 시도한단 말이오?J 또 다른 사내가 외쳤다.  「그렇소.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고국에 있는 몇몇 지쳐 빠진 늙은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짓거리가 바로 그거요.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너오. 난 어떤 특정한 가문에 대항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 오 몇몇 늙은이들, 멍청한 주장을 하는 몇 안 되는 늙은이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우리들은 어떻게 처 

가미』 떠1 217 
신해야 되겠소? 우리도 그에 따라야 한다는 거요? 들어 보시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하오. 평화 협상이니 뭐 니 따위의 얘기를 하는 자들은 10명도 안 된단 말이오. 당신들은 모두 미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오. 당신들은 뭣 때문에 여기 왔 소?나에게 합세하려고 온 것 아니오?그런데 당신들 중 그 미 치광이 보란이 위원회의 배지를 달고 탤리페론 형제들의 일을 대신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되오? 누가 그런 터무 니없는 일을 바라고 있소?J 그 얘기를 들은 닉 트리거와 대노 질리아모는 입 안이 바싹바 싹 타들어 갔고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동 은 어느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제각 기 흥분하여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구석에 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마치 그것이 어떤 신호이 기라도 한 듯 떠들색한 소리가 일시에 그치더니 그들은 모두 전 화기를 쏘아보았다 질리아모가 의자를 뒤로 ㅂㅂㅁ고 일어서서 조용히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전화벨은 이미 울리고 있지 않았으나 그는 조심스럽 게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터린과 보란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다 가 돌아서서 카스틸리오네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통화가 끝나자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회의용 탁자로 되돌아왔다 「무슨 내용이었소?J 농부 어니가 물었다. 대노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대답했 다 「레오 퍼시가 접촉을 시작한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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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됐군. 그 통화 내용을 말해 보시오.」 「레오 퍼시는오늘 10시 30분에 그의 척후병을 런던 타워에서 만나기로 했소. 그런데 말이오, 그 척후병 사내의 목소리가 꼭 보란의 목소리 같았소. 정확지는 않지만 참으로 비슷해요. 내 추 측으로는 바로 그 전화를 한 사람이 보란이었던 것 같소.」 카스틸리오네는 대노 질리아모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를 무서 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농부 어니와 눈치를 보며 닉 트리 거가 대노에게 쏘아붙였다.  「당신 도대체 언제 보란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는 거요?J 「난, 당신은 꿈도 못 꾸는 여러 가지 일들을 들었소. 내 얘기 가 옳을 거요. 전화를 한 사람은 바로 보란 그놈이었소.」 아니 카스틸리오네는 소리를 질렀다.  「둘 다 닥쳐 ! 지금 몇 시지 ?J 「8시 )0분쯤 되었을 거요.」 닉 트리거가 말했다 「알았소. 닉, 당신이 애들을 몇 데리고 거기로 가시오. 대노, 당신도 같이 가고. 닉이 또 어떤 일 때문에 넋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시오 두 사람이 서로를 보살피고 감시하는 거요.」 카스틸리오네는 두 사람을 경멸하는 듯한 눈길로 노려보다가 다른 전투원들에게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으시오. 또 보란에게 회롱을 당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오. 딱 한 번만 이 야기하겠소, 시간이 없으니까.」 닉 트리거와 대노 질리아모는 방에서 나왔다. 복도에는 그들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닉 트리거가 먼저 입을 

까마귀 떼 219 
열었다.  「저 더러운 늙은 자식 , 제가 뭔데 나한테 함부로 명령을 하는 거야?~ 대노도 담배를 붙여 물고 손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어젯밤 차 속에서 우리 둘이 한 얘기 생각나오? 우리는 농부 어니가 더러운 개자식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 같은 til‥‥‥」 「바로 그래. 그건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소.」 「그런데, 보란 문제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 저 늙은이가 하는 얘기는 당신도 듣지 않았소? 그들은 보란 사태를 핑계로 당신 사업을 빼앗으려는 것이 틀림없소. 당신의 사업은 당신의 권리 아니오? 만일 농부 어니가 보란을 먼저 잡는다면, 당신도 이미 눈치 챘겠지만 당신을 가만 내버려둘 것 같소? 당신은 영국에 서도, 우리네 위원회나 가문에서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영원히 매장될 거요. 닉, 알겠소?당신한테 남은 일은그것뿐이 오.」 닉 트리거는 뭐라고 불만에 찬 소리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알고 있소, 대노. 우리 둘은 아마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소. 같은 입장이란 말이오. 난 어젯밤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 잊어버리기로 했소. 그 일은 이미 지난 일이오. 우린 같은 배 를 타고 있소. 그러니까 뭔가 우리 둘이서 조치를 취해 두는 게 좋지 않겠소?J 「당신, 농부 어니가 보란을 잡도록 가만 내버려둘 거요? 바로 그낱로 당신은 끝장인데, 닉 .」 

「걱정 말아요, 대노. 그는 보란을 못 잡을 거요. 레오 퍼시도 보란을 못 잡을 거고.」 「당신 무슨 생각이 있군 그래, 닉 .」 「그렇소, 대노. 나한테 묘안이 있소.」 사실상 닉 트리거에게는 여러 가지 복안이 있었다 
보란과 앤은 한 시간 내내 차를 몰아 타워 힐 지역에 도착했 다. 레오터린과의 약속을지키기 위해서였다 보란은거의 30분 동안 세밀하게 그 지역의 도로를 답사했다 그는 먼저 그곳의 지 형을 파악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광 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앤에게 말했다 「저길 들어가는 데는 별 지장이 없겠지 . 그러나 문제는 저기에 서 나오는 일이오. 살아서 저기를 빠져 나오는 일 말이오.」 「안 돼요, 보란! 저기로 들어가시면 안 돼요.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거예요.그다음에는중앙 정보국요원들이 런던 타워에 가득 차게 될 거구요.」 보란은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대개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 는 법이오. 당신은 거리에서 친구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 사람 을 그냥 지나쳐 본적이 없소?저기 있는사람들은 모두 왕관의 보석이나 대영 제국의 역사를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을 거 요. 그것들을 모두 다 보기 위해 눈이 두 개쯤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오. 그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을 거요.」 「경찰이나 마피아들은 안 그래요.」 「그들에게는 나는 그저 또 한 사람의 관광객일 뿐이오. 걱정 

까마귀 메 221 
말아요. 이게 내 전투 방법이니까.」 그녀는 핸드백을 뒤져 가느다란 테의 색안경을 꺼내 그것을 보란에게 주었다.  「적어도 이 정도의 변장은 해야 해요. 훨씬 나을 거예요.」 그는 웃으며 그 안경을 받아 코 위에 걸쳤다. 그녀를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는 물었다 「어떻소? 잘 어울리오?J 「오, 보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그의 가슴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들은다시 열렬히 키스했다 그는조심스럽게 그녀를 떼어 놓 으며 말했다.  「당분간 떨어져 있어야겠소. 당신은 차를 타고 이 주변을 맴돌 도록 해요. 적어도 5분에 한 번은 이 장소를 지나도록 해주시오 하지만 총성이 단 한 방이라도 들리거든 재빨리 달아나도록 해 요. 내가 달아날 길은 내가 찾아볼 테니까. 서로 탈출에 성공하 게 되면 미술관에서 만납시다. 어느 누구도 내가 다시 그곳에 나 타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거요.」 그녀는 다시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죽으면 안 돼요. 이제는 당신이 죽으면 난 살아갈 수 없을 거 fl요.」 그는 듬직하게 웃으면서 그의 굳센 두 팔로 그녀를 꽉 껴안았 다. 그리고는 젖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몇 걸음 걷다가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 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마침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 는 관광객들 틈에 태연히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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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건물로 들어서는 데에 4실링의 요금을 지불해야 했고, 그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는 데에 또 2실링을 지불해야 했다. 그 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도 30분이 나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한때는 정복자의 성이었던 전설적인 장소를 느긋한 기분으로 구경하며 보냈다 그는 웬만큼 구경을 끝내자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기 에서 그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은 영국인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 누게 되었다 바로 타워의 경비원이었다. 그는 보란에게 날개가 찢겨 하늘을 날지 못하고 땅 위를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 까마귀 들을 보여 주었다 경비원 얘기로는 그 까마귀들이 바로 이 타워 의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보란은 생각했다. 찰스의 학대 음란증적인 상징과 마찬가지로 그 까마귀들도 바로 한 시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문명화된 인 간들은 항상 날개가 부러지는 듯한 좌절을 시대와 함께 체험하 게 마련이었다. 날개가 찢긴 까마귀들의 자유 그것은오늘날에 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것이었다. 날개를 ◎으려는 모든 적의 공략을 분쇄하고, 그 다음에야 진정한 한 인간이 될 수 있 는 것이리라. 보란은 또한 기억했다. 피츠필드의 경찰들이 보란에게 날개가 찢긴 까마귀와 같은 삶의 방식을 권했을 때 그는 단호히 거절했 었다 마피아에 대한 복수와 전쟁을 결심하면서 그는 독수리가 되기로 맹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앤 프랭클린에게 보 여준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그는 잘못하면 구운 오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시각은 10시 20분이었다. 그는 다시 여기저기를 서성거렸다.  

까마귀 메 223 
모조 왕관을 쓴 사람들이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그들 은 사진에 담았다.  사람들이란 배우기를 싫어하는 족속이었다. 권력에 대한 욕망 과 부에 대한 탐욕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반복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다 바로 그 타워가 그의 기분을 그 렇게 상하게 했다. 사드 미술관의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무 렇지 않았던 그의 기분을 이 타워는 몹시 뒤집어 놓았다. 이제 보란은 늙은 에드윈 찰스가 한 얘기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놈의 세상은 모두 피로써 세례를 받은 세상이 다. 인류의 모든 발자국마다에는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다. 사지 가 찢겨지는 고문으로 인한 비명과 신음이 아직까지도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되살아나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찰스가 말한 것이었다 인류의 탐욕은 어 떤 사람들이 추구하듯 비정상적, 비상식적인 육체적 경로를 통 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탐욕의 실체는 몇몇 잔인한 , 악인들이 학대 음란증적인 포르노 영화나 포르노 쇼를 보면서 헐떡이는 숨결 가운데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실 체는 다른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행사되는 온갖 권력과 다른 사 람들의 희생 속에 형성되는 부를 향하여 미친 듯 돌진하는 악마 들의 추악한 숨결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고맙소, 에드윈 찰스! 보란은 그에게 감사를 올렸다.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쏘. 시각은 이제 10시 25분에 접어들고 있었다 터린이 몹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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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운 얼굴로 바삐 다가오고 있었다.  보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 렸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까마귀 떼들이여. 오라! 와서, 악마들의 피를 포식 하라!」 

JFf 두사D 
보란은 색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면서 레오 터린에게 말했다.  「이 만남이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길 바라겠 소.」 「모르겠소. 이놈들이 하는 일은 이제 (보란을 잡아라)라는 이 름의 을림픽 게임이 돼가는것 같소 모든사람들의 게임이란 말 01오.」 경찰 겸 마피아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요? 그래서 호위병들을 데려왔다는 거요?J 「그렇소. 크게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지 말아야 할 텐데. 이런 얘기는 믿기 힘들 거요, 중사. 하지만 지금 현재 당신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4개 부대의 거대한 멍청이 마피아 군단을 갖고 있는 셈이오.」 「당신이 그들을 데려왔소?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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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소. 농부 어니의 대부대가 어디든 확 퍼져 있소. 마피아들끼리 전투가 벌어질 것 같소. 냄새가 나요. 그게 모두 당신 때문이오, 보란. 당신을 누가 먼저 찾아 감추느냐, 또 는 죽이느냐요.」 보란은 껄껄 웃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 빨리 합시다. 저희들끼리 싸우는꼴을구경하고싶으니 까.」 터린은 보란의 한 팔을 잡고 사형 집행소의 발판으로 데리고 갔다.  「좋소. 먼저 에드윈 찰스의 문제요. 브로뇰라가 그것 때문에 애를 많이 쓴 것 같소. 찰스의 군복무 기록은 비밀 문서 속에 보 관돼 있었소. 영국 사람들은 그에 대한 얘기를 전혀 입 밖에 내 지 않았소. 우리 육군 정보부를 경유해서 브로뇰라가 알아낸 건 이 정도요. 찰스는 15년 전 명예롭게 퇴역했소. 계급은 준장.」 보란은 깜짝 놀랐다 「그랬군!」 「그게 대단한 거요? 나한테는 별 의미도 없는 정보인 것 같은 데.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소. 찰스는 6)세 때 즉 1960년에 잠 깐 동안 다시 군에 복무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 약 8개월 동안이 오. 그 후에 그는 다시 은퇴했소. 그리고 약 4개월 전 찰스는 다 시 특수 임무를 띠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임무는 알려진 바 없 소. 이게 우리 정보 요원이 알아낸 모두요.」 보란은 점점 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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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의 8개월 동안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소?J 「브로뇰라는 알지 못한다고 했소.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영국 은 조직 범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소. 어떻게 생각하시 오?J 「조직 범죄? 그건 너무 심한 비밀이오.」 「자, 보란. 이번엔 내가 물어도 되겠소? 에드윈 찰스는 죽기 직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소?~ 「그는 도색적인 쇼를 하는 곳에서 보안 감시원으로, 그리고 전 자 장치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일했었소.」 터린은 뭔가 집히는 게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그렇다면 1960년의 일과 어떤 연관성이 발견되는 것 같소. 전자기들, 그건 찰스의 전문이오. 영국에서 전자 장치 첩 보 활동 기술에 있어 찰스를 당할 사람은 없었다고 하더군.」 「알았소. 그건 내가 천천히 생각해 보겠소. 그 외에 알아낸 건 없소?J 「스톤 소령 얘기요. 그에게는 비밀이란 없었소. 1956년 군에서 부하들에 대한 잔인성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소. 또 중동 지방에 서는 시민들에게 소름 끼치는 고문을 했다고 하더군 그는 퇴역 한 게 아니었소. 쫓겨난 거요. 불명예 제대란 말이오. 그는 그 고 약한 딱지를 늘상 붙이고 다녀야 하는 거요. 브로뇰라는 그에 대 해서는 아주 믿을 만한 정보를 갖고 있었소. 여기저기서 끌어 로 았다고 들었소.」 보란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더 없소?J 「찰스와 스톤에 대해서는 그게 모두요.그리고또 한 가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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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당신이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 정보는 내가 나오기 바로 직전에야 알 수 있었소.그래서 이 정보가 어떤 의 미를 갖는 것인지를 나는 생각해 볼 틈도 없었소. 닉 트리거는 니콜라스 우스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영국에 왔소. 그는 마피아 의 일개 전투원이었소. 특수 임무를 맡았던 적은 없는 인물이오. 따라서 그는 결코 많은 돈을 모을 수가 없었던 인물이오.돈이 생기는 대로 곧 그때 그때 다 써버리곤 하는 사람이었소 그걸 명심해 두시오. 그런데 니콜라스 우스가 영국에 나타난 거요. 갑 자기 그는 제네바에 두 개의 비밀 구좌를 갖고 있는 사람이 되었 소. 그 구좌에는 남은 평생을 터키 황제처럼 사치 속에서 먹고 지내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들어 있다는 거요.」 「갑자기라는 게 무슨 뜻이오?J 「지난 몇 달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는 거요.」 「알았소. 아주 재미있는 정보로군 하지만 땅이 꺼질 만한 정 보는 아니오.」 「만일 닉이 가문을 배신한 것이 아니기만 하다면 그렇겠지 . 그 는 분명히 이 영국 땅에서 자신의 개인적 일을 추진하고 있소. 그게 아주 상당한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오. 그것뿐만이 아니오. 그는또 이곳 런던에서 합법적인 사업을 하면서 막대한돈을 주 무르고 있소. 바로 그 사업과 스위스의 은행 예금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오.」 「그가 갖고 있는 합법적 사업 체가 무엇이오?J 「소호 사이크라는 이름의 나이트 클럽이오.」 보란은 몽등이로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의 얼 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자 터린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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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았다 「뭐가 잘못 췄소?J 「지금 당신이 내 뒤통수를 쇳덩이로 내려치지 않았소?J 「그나이트클럽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 모양이군 난 이 곳에 오래 있지 않아서‥‥‥‥」 「그나이트 클럽이 너무나 중대한 열쇠가 될 것 같아 두렵소, 레오. 닉의 동업자가 누군지는 브로뇰라가 얘기 않던가요?J 터린은 머리를 저었다 「그것까지 알아낼 만한 시간은 없었을 거요. 그리고 또 해야 할 얘기가 있소. 브로뇰라는 이 평화 협상에 응하라고 안달이오. 제발 부탁이라고 하면서 이 협상을 받아들이라고 절해 달라더 군. 그렇게만 되면 조 발라키의 애틀랜타 청문회 이후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으로 그는 생각하고 있소. 그러니 보란‥‥‥~ 보란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난 그런 수 없소, 레오. 난 저 마피아들이 승리했다는 착각마 저도 갖는 것을 허용할 수 없소.나는 내 최선을 다해서 저놈들 이 무너지고 와해되고 깨어지는 것을 지궈볼 작정이오.」 「조 스타치오가 당신에게 제공할 것이 어떤 내용인지를 들어 보지도 않을 작정이오? 그들은 당신이 막강한 실력자의 자리를 차지하여 조직의 권세를 장악하기를 바라고 있소.」 보란은 비웃듯 일그러진 미소를 띠었다 「그를 이길 수 없거든 그를 매수하라. 또는 그를 동지로 만들 어라. 그게 바로 저 마피아들의 철학이지. 그 철학이 과거에는 유효하였소. 그러나 이번에는 그 철학을 무용지물로 만들겠소.」 보란은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노려보고 있다가 다시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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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했다.  「싫소. 나에게 평화라는 건 헛소리에 불과하오. 난 나 자신의 밀림에 그대로 남아 있겠소.」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볼 일이오. 브로뇰라는 당신이 마피아들 의 위원회에 가입하기만 하면, 그때는 온갖 법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좋아하던데.」 보란은 고집스럽게 머리를 저었다.  「안 돼요. 날 내버려 두시오, 레오. 난 내 방식대로 살아가겠 소.」 작은 이탈리아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 다.  「할 수 없지 . 당신 결정을 존중하겠소. 그 결정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닉 트리거에 대한 정보를 잘 이용해 보시오. 난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없으니까. 내가 할 얘기는 다 했소. 이제 헤어지는 게 좋겠소. 빠를수록 좋아요. 어니가 쳐들어오기 전 11.」 보란은 침착하게 얘기했다.  「당신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되겠는걸. 당신네 평화의 사절에게 전하시오. 내가 고국에 돌아가기까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고 하더라고. 고국에 돌아간 뒤에나 만나서 다시 얘기해 보자고 말이오.」 터린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좋소 그 정도면 내 체면 유지는 될 것 같소.」 「이제 가시오. 나는 나대로 떠나야겠소.」 그들은 악수를 나누었다. 터린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속삭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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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벽을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내가 아는데.」 보란은 낄낄거리고 웃었다.  「나도 벌써 거기를 봐뒀소, 레오. 고맙소. 행운을 빌겠소.」 「조심해요, 보란.」 터린은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는 모퉁이에서 뒤를 돌 아보고 마지막으로 손을 흔든 다음 보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 렸다 사실 보란은 이미 보아둔 탈출구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경비원들과 날개가 찢긴 까마귀들이 있는 뜰을 지나 낮은 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벽 바깥 어디에선가 갑작스러운 총성이 터져 나왔다. 보 란은 또 하나의 지옥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톰슨 기 관총의 날카로운 연발음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단속적인 리볼 버의 총소리도 그에 뒤섞여 들렸다. 보란은 적들이 서로에게 총 질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터린 얘기가 옳았던 것이다 보란은 훌잭 뛰어올라 손으로 담의 꼭대기를 잡고는 다리를 뻗어올려 담 위로 기어올랐다. 거기에서 보란은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바로 그의 발 밑에 총을 든 한떼의 사나이들이 커다랗고 번쩍이는 리무진의 문 앞에 반원을 그리며 서 있었던 것이다 리무진의 문이 열리고 백발의 뚱뚱한 사나이가 내리더 니 둘러선 사나이들의 가운데로 들어섰다.  맥 보란이 농부 어니 카스틸리오네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 다. 보란은 카스틸리오네의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셈이었다. 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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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베레타를 재빨리 뽑아들고 외쳤다.  「어니 !」 하얀 색 머리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순간 어니 카스틸리오네 는 죽음의 사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농부 어니 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우뚝 서 버렸다. 보란의 사랑스러운 베 레타가 불꽃을 토해 놓았다. 그것은 불꽃만이 아니라 죽음이기 도 했다. 농부 어니의 경호원들이 춤추듯 길바닥에 나됫굴었다 다음 순간 남은 것은 그와 보란뿐이 었다 이너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저놈을 죽여 ! 저놈을!」 그는 죽어 넘어진 경호원의 손에서 떨어진 리볼버에 황급히 손을 뺀었다 그러나 그때 보란의 음산하고 차가운 목소리가또 렷하게 선고했다.  「농부 어니 카스틸리오네, 너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농부 어니가 리볼버를 쥐고 고개를 들어 담벽 위를 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미 보란의 모습은 없었다. 보란은 바로 어니의 번쩍 번쩍 빛나는 차의 지붕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밝은 불꽃이 베 레타의 총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니의 두 눈 사이에 공포의 구 멍이 뚫리고, 피가 울컥 쏟아져 그의 옷을 적시더니 길바닥으로 홀러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카포 농부 어니 카스틸리오네의 마 지막이었다.  참으로 조용하고 깨끗한 사형 집행이었다. 여전히 기관총과 리볼버의 총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거리를 등지고 보란은 거리를 달려 내려갔다. 그가 첫 번째 교차로로 접근했을 때, 그 는 앤 프랭클린의 차가아직 거기 세워져 있는 것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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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은 곧장 그 차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가 달려오는 것을 보 자 차의 문을 열어 젖혔다. 그는 재빨리 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첫날 도버에서 보란이 차 에 뛰어들었을 때 그녀가 보였던 것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 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란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는 차가 급한 커브를 도는 반동에 몸을 맡기며 베레타에 새 탄창 을 끼워 넣었다. 그때 그는 하나의 총구가 목 뒤쪽에 차갑게 닿 는 것을 느꼈다.  보란은 움직임을 멈추고 낮고 침착하게 내뱉었다.  「소령이로군.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알았소.」 메마른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 왔다 스톤 소령의 목소리였 다. 보란의 짐작이 적중한 것이었다.  「나라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미스터 보란?J 「모든 사건들이 딱 한 곳에서 만나는 걸 알게 되었소.」 보란의 번뜩이는 눈길이 앤 프랭클린을 쏘아보았다. 그는 다 시 한 번 말했다.  「모든 사건들이 .」 플랭클린이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란‥‥‥」 그러나 스톤 소령이 소리쳤다 「제발 조용히 해요, 앤!」 「당신 회원들의 보안을 염려해서 그렇게 외치는 거요? 당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회원들을 형박하여 금품을 갈취해 왔소. 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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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가 나타나기 횔씬 전부터 말이오. 그런데 왜 날 끌어들였 소?닉이 당신의 그 무시무시한돈벌이의 영역을 침범하였기 때 문이오?J 보란은 낮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얘기했다.  「닥쳐, 보란! 총을 뒤로 보내. 천천히.」 보란은 총을 넘겨 주고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실 수가 참으로 한탄스러웠다. 앤은 능란하게, 그리고 조용히 한낮 의 런던 거리로 차를 물았다. 교차로에서 그들은 두 번 기다려야 했다. 한 번은 런던 타워로 맹렬히 치달려가는 경찰차들의 행렬 때문이었다. 순간 보란은 차의 문을 박차고 달아나고 싶은 충동 을 느꼈으나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소령의 총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단념하였다. 그런 터무 너없는 탈출의 시도가 오히려 죽음에 몰린 사람들의 최후를 재 촉하는 것임을 보란은 알고 있었다. 보란은 서둘러 죽음으로 쇄 도해 들어가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그는 죽음이 닥쳐 오기를 기 다리며 마지막 한순간까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있을 것이었 다.  조용히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 을 듯했다. 앤은 사드 미술관 바깥의 모퉁이에서 차를 세웠다 그제야 보란은 이제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짐작되었다 차 에서 내릴 때,그리고 스톤 소령을 앞서서 계단을 올라갈 때 보 란은 그 고문 기구들로 가득 찬 방들을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그는 문 앞에서 발을 멈추고 차를 되돌아보았다. 앤은 여전히 차 안에 남아 있었다.  보란은 그녀를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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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소. 협상은 끝났소. 들어와서 거창한 퍼날레를 구경하는 게 어떻겠소?J 차 속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바짝 마른 작은 사내가 보란의 배를 권총 개머리판으로 갈기고 클럽 안으로 보 란을 밀어붙였다 닉 트리거가 클럽 룸의 바 곁에 서 있었다. 그 는 진을 병째로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보란이 들어서자 그는 분 명히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보란의 등에 겨누어진 스톤 소 령의 권총을 보자 곧 희색이 만면해졌다 그는 홀쩍 뛰어 보란에 게로 다가서더니 손등으로 보란을 갈겼다.  「이 나쁜 자식 !」 「고맙소.」 보란은 꼿꼿이 선 채로 중얼거렸다.  「그런 짓 하지 말아! 이놈이 얼마나 위험한 녀석인지 당신도 알잖아!」 소령은 닉을 책망했다.  「그래. 그러니 좀 참으시오, 닉 내가 신음하는 걸 곧 보게 될 거요.」 보란은 남의 말 하듯 비양거렸다.  「신음이 아니라 비명이야, 보란!」 소령은 보란의 말을 정정했다. 그는 보란을 밀어붙이며 클럽 룸을 가로질러 자극적인 장식들이 있는 복도를 지나갔다 보란 은 그제서야 여성의 엉덩이를 모방하여 장식된 문의 뜻을 알아 차렸다. 다시 뱃속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 이 아니었다. 태어난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보란은 희미하게 밝혀진 작은 방 속에 서서 외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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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에서 살아 있는 나를 감금하려는 건 아닐 테지, 소 령 .」 「그럴 생각은 없어 , 보란.」 보란은 스톤 소령이 총을 들어 자신을 내려치려는 것을 보았 다. 보란은 그것을 피하려고 했으나 총 개머리판은 보란의 어깨 를 강타했다. 갑자기 그쪽 팔에서 모든 힘이 쭉 빠져 버리는 것 을 보란은 의식했다. 그는 소령과 닉에게로 몸을 굴리며 쓰러졌 다. 세 사내가 동시에 모두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닉 트리거는 그 커다란 배를 깔고 엎드려 허우적거렸고 보란 은 그 두 사내를 뿌리치고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보 란이 제일 먼저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닉을 발로 차서 다시 쓰 러뜨린 후 몸을 굴렸다 그러나 그는곧스톤 소령의 손에 쥐어져 있는 리볼버를 보았 다. 소령은 리볼버로 보란의 턱을 힘것 갈겼다 보란은 맥없이 나자빠졌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으나 몹시 고 통스러웠고 온몸의 맥이 탁 풀려 버렸다. 그는 자신이 발로 채이 는 것을 느꼈고, 닉 트리거가 뭐라고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들었 다. 스톤 소령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다음 보란은 자신의 옷이 벗겨지는 것을 의식 했다. 닉 트리 거는 당황하여 소령에게 소리쳤다 「아, 빌어먹을! 이건 또 무슨 짓이야?J 소령은 사업과 쾌락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의도임이 분명했 다. 보란은 몽롱한 의식에서도 스톤 소령의 병적인 눈빛에 놀랐 다.  스톤이 닉에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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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쾌락을 맛본다고 해서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닉 , 왜 안 된다는 거지? 당장 이놈을 처치해야 한다고 한 건 바로 너야. 닉.난 이 녀석을 하루 이틀 더 살려둘작정이었어, 앤을 위해서 라도.」 닉은 언성을 높여 떠들어 댔다.  「맙소사, 지금은 쾌락을 찾을 때가 아니야. 당신도 그 계집애 도, 어느 누구도 쾌락을 얘기할 시간이 아니라구. 우리한테는 시 간이 없어. 이놈은 너무나 위험해. 잘못하면 다 망쳐 버린다구 난 그놈의 머리를 가져가야 해. 그놈을 지금 죽여야 한다구!」 소령은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보란의 이마를 무엇인지 차갑고 단단한것으로조여 댔다. 보란은반항을 해보려 했으나몸을움 직일 만한 힘이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스톤은 강경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지껄이고 있었다.  「염려 말아.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당신은 아주 기념비적인 공적을 세우게 되는 거야. 알았나? 당신은 여섯 달 동안이나 내 생활을 휘저어 왔어 닉 , 왜 나한테 요구만 하는 거야?J 보란의 발목에서는 또 다른 물체가 억세게 조여 왔다. 두 손은 이제 무의미하게 흔들릴 뿐 그의 통제력을 거의 벗어난 듯했다 보란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으나 이제 그의 온몸은 차례차례 완벽하게 결박당하고 있었다.  닉이 위형적으로 말했다.  「너는 미치광이야! 미 쳐도 더럽 게 미 쳤어 !」 「여기서 나가! 꺼져 버려 , 이 협잡꾼아!」 「내 엉덩이에 키스나 해라, 이놈아! 이 정신 나간 놈 넌 성도 착증 환자야! 미쳤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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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당이 뭐라고 하는 거야! 보란을 데려오라고한 건 바로 너야! 바로 네놈이 보란한테 책임을 다 뒤집어씌우라고 한 거라 구!바로네가보란한테‥‥」 「좋아, 좋아! 그러니 이제 그놈을 빨리 죽여 없애란 말이야. 그리고 이 골치 아픈 일을끝내 버리자구 이 일 때문에 난 아주 골치가 아파! 난 상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구.나는 여러 가문들 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어 . 만일 처음부터 내 말대로 그 늙은이를 강물에 빠뜨려 버렸다면 이런 골치 아픈 일은‥‥‥‥」 「이봐, 내 말을 들어봐. 그건 다 지난 일이야 에드윈 찰스 준 장을 템스 강에 처넣었다 해도 이놈은 틀림없이 자기 임무를 수 행하기 위해 불사신처럼 되돌아왔을 거야. 그럼 야심 만만한 니 콜라스 꾸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들의 금광인 사드 미술관. 사드 사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대로 말해서, 닉 너는 가끔 밥통처럼 행동한단 말이야. 이제 손 좀 빌려줘 .」 보란은 어디론가 옮겨겼다. 머리와 발목을 조인 벨트들에 압 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보란의 몸속의 뼈들이 고통스럽게 삐 걱거렸다 보란은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바로 에드윈 찰스가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 고문대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그의 두 손은 등 뒤로 묶여졌다. 그의 몸은 천장으로부터 늘어 뜨려진 3개의 쇠사슬에 매달렸다. )개의 쇠사슬 중 하나는 그의 이군를 조이고 있는 강철 벨트에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두 쇠 사슬은 그의 두 발목을 조인 벨트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바닥으로부터 몇 피트 위에 배를 아래로 하고 대롱대 롱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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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구석에 서서 스톤 소령을 쏘아보고 있었다. 스톤은 방 한 쪽에서 상자처럼 생긴 물건을 운반하는 중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란의 배 밑으로 옳기려는 생각임이 분명했다.  잠시 후 스톤의 얼굴이 보란의 머리 밑에 나타났다. 그는 보란 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 잘 췄어 . 우리의 우주 비행사는 아직 의식이 또렷하구먼 잘 들어. 우리의 이 재미난 놀이를 잘 설명해 줄 테니까 보란, 난 네 밑에 아주 영리한 기계를 갖다 놓았어. 그 안에는 스프링 이 들어 있지.바깥쪽에는 강철 못들이 튀어나와 있고.아주 단 순하고 귀여운 장치야. 내가 작동을 시키기만 하면 그 강철 못들 은 아주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야. 상자의 맨 위에 서부터 진동을 하면서 그러니까 네가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고 있으면 그 못들이 네 뱃가죽을 갈갈이 찢어 놓고 마는 거야.조 심해, 네 등뼈를 잘 조절해서 배가 이 상자에 닿지 않도록 조심 하라구 걱정할 건 하나도 없어 .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으면 보 는 것도 괜찮겠지 어떤가, 매달려 있는 기분이? 넌 네가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을 잃게 될 거야. 자존심 , 용 기 , 뭐 그런 것들 말이야. 자 준비해. 몸조심하라구!」 보란은 그의 몸 밑에 있는 무엇인가가 쉬쉬쉬 하는 소리와 함 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못이 앞뒤로 오락가락 하며 진동하고 그에 따라 공기가 진동하는 것을 그의 배 바로 밑 에서 느낄 수 있었다.  보란은 그 자신이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 었다 그는 언제든지,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죽음에 대한 굳건한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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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 식의 죽음이 아니었다. 이런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 한두 번,그 못에 긁힐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등뼈 주변의 근육이 경직되었다가 고통 속에서 툭 풀려 버리면 그의 몸은 아래로 늘어질 것이고, 그리하여 진동하는 못들이 그의 뱃속을 파고들 것이다 그의 몸 은 피부부터 다음에는 살이 , 그리고 내장이 , 이윽고 뼈까지 산산 조각이 나면서 흩어져 나갈 것이었다.  그는 그런 식의 죽음은 싫었다 그 자신은 항상 적들을 재빨리 그리고 고통 없이 죽여 왔다 그리하여 그 자신도 빨리 고통 없 이 죽고 싶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등뼈의 근 육을 풀고, 진동하는 못들을 향해 밑으로 온몸을 다 늘어뜨리기 위해 배에 힘을 주었다 그때 그는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것은 앤 프랭클린이었다. 그녀는 거대한 웨더비를 꼭 움켜쥐고 들어서고 있었다. 보란은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제 그녀가 보 란에게 순간적이고 고통 없는 죽음을 선물하려는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 거대한 웨더비 마크 V가 불을 뿜었다. 보란은 방의 한쪽 구 석에 서서 바지를 무릎 아래로 끌어내리고 두 손으로 자신의 성 기를 움켜쥐고 있던 스톤 소령이 피를 토하며 나자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 다음 방향을 바꾼 그 무시무시한 위력의 총이 다시 포효하였고 닉 트리거의 몸 속에서 튀어나온 피와 살점들이 방 구석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다음 순간 웨더비는 방바닥에 내팽개척졌다. 앤이 보란의 밑 

두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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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의 몸 아래에서 쉬쉬쉬 소리를 내는 작고 음산한 검은 기계 상자를 열심히 발로 걷어찼다. 그녀는 있 는 힘을 다하여 그 기계를 밀어낸 다음, 그를 묶고 있던 쇠사슬 과 벨트들을 풀었다.  그렇다. 이제야말로그는 완전히 앤 프랭클린의 손 안에 들어 가 있었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보란, 보란!」 그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고맙소, 앤. 정말‥‥‥ 고맙소.」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ff 에필로그 
무시무시하고 숨가빴던 영국에서의 순간들이었다 보란은 런 던을 숨가쁘게 습격했었고. 또한 런던도 보란을 똑같이 공격했 다. 지금의 런던이 보여 주는 것이 이 시대의 상징이라고 에드윈 찰스는 보란에게 얘기했었다. 그리고 그 상징은 다만 (이 해괴 망측한 우리의 미술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상징은 온 세계에 다 통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세계는 이미 잔인한 폭력과, 사람의 생명과 사랑과 즐거움에 대해 가해지는 엄청나게 잔인한 권력과 책략으로 얼룩져 있었 고, 그것은 학대 음란증, 그리고 피학대 음란증적인 것이었다 그것이 현대의 모습이었다.  그 짧은 40시간 동안 선량한 몇몇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 한 수많은 타락한 악인들도 죽음을 맞이했다 보란은 그것이야 말로 세계 정의의 균형에 알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필로그 243 
머빈 스톤 소령의 집에서 엄청난 분량의 포르노 영화 필름들 이 발견되었다. 그 모든 것들은 물론 소각되었고 그 재는 사드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 보관되었 다.  보란은 그것이 이 위대한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약간의 도움 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필름에 모습이 담긴 사 람들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리라 역사상 가장 부패한 범죄의 제국 내부의 여러 요소들 사이에 서 아주거대한규모의 총격전이 발생했다. 레오 터린은그것 역 시 인류를 위해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보란이 품고 있었던 수수께끼는 그가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해명되었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데 크게 도움이 되 었다 스톤 소령은 벌써 몇 해 전부터 그의 회원들을 공갈 협박하여 왔으며, 마피아들이 그 협박에 일익을 담당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반향이 정부의 고위관리들에게까지 나타났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자세한 수사가 시작되었었다. 이런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닉 트리거의 탐욕이었다. 그는 머빈 스 톤 소령과 비밀리에 물질적 이득을 목표로 하는 약속을 맺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그는 소령의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아무런 문제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늙은 경비원 이 대영 제국의 수사 요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경악하였 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보란이 나타났던 것이다 닉 트리거는 가문에 대한 그의 책임과 그 자신의 물질적 이득 을 위한 책략 사이에 팽팽한 밧줄을 매달아 놓고 그 사이에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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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하며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밧줄은 최후의 날이 오기도 전에 벌써 닳아 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란은 이 40시간 동안의 모든 전투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는충분한득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인류의 발전을 방해하는 무 리들에게는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퀸스 하우스의 목욕실에서 보란은 앤 프랭클린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받은 사소한 상처들뿐만이 아니라 앤이 입은 정신적 상처도 치유해야 했다. 그는 이마의 상처에 연 고를 바르며 말했다.  「그런 일들 때문에 당신이 스스로를 책망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오. 적어도 당신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못마땅하다 고 생각지 않는 한 말이오, 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애교 넘치는 눈길로 문에 기대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 Bl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도 그래요, 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했소.」 「내가 스톤 소령에게 전화를 한 게 잘못이었어요. 난 틀림없이 당신이 소령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바 보였어요. 난 너무나 놀랐어요. 나한테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난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에게 상의를 하곤 했거든요. 그래 서 이번에도 그가 우리를 도와 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 다.  보란은 킬킬거리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에필로그 241 
「가끔은 말이오, 친구와 적을 구별하기가 몹시 힘든 법이오. 그것은 마피아들도 마찬가지요. 오늘 런던 타워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마구 죽여 대더군.」 「그래도 나보다는 덜할 거예요. 사실이에요. 게다가 만일 그들 이 내 클럽에다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들보다도 훨씬 더 못된 짓을 당신한테 많이 한 셈이에요. 당신 은 아직도 모르는 게 있어요.」 「그게 뭐요?. 그녀는 볼 면목이 없다는 듯 그를 외면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나는 얘기를 해야겠어요. 그래야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아요. 사실대로 말하면, 맥, 나는 내가 그 방으로 직접 들어가서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도 소령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몰랐었어요. 그것은 그가 군대 생활을 오 래 했기 때문이었거나, 속임수에 능란해서였거나. 내가 그를 너 무 믿었기 때문이었거나, 아니 그 모두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는 언제나 나를 속여 왔던 거예요. 그가 런던 타워 근처에서 내 차 에 탔을 때 그는 말했어요. 당신 걱정은 할 필요 없다구요. 당신 목에 총을 들이대서라도 안전한 곳으로 당신을 피신시키겠다구 요. 어리석게도 난 그 말을 그대로 믿었어요. 내가 그 모든 말들 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당신이 클럽 입구에서 나한테 소리를 쳤을 때에요. 그때서야 나는 조금씩 소령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요. 그래서 들어가 보기로 했던 거예요.」 「당신과의 협정은 이제 모두 무효라고 말했을 뿐이오.」 「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그 협정이 정말 무효인가 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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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탐색하듯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게 제일 좋은 길이라고 생각지 않소?J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머리를 저었다.  「아니에요. 난 아직도 당신 손 안에 있어요. 당신 뜻대로예 _a. . J 가슴속에 전해져 오는 아픔 같은 것을 느끼며 그는 중얼거렸 다.  「참 좋은 일이오.」 「뭐라구요?J 그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보았 다.  「당신은 참 좋은 여자라고 했소. 당신의 그 소중한 것을 올바 른 때, 올바른 장소, 올바른 남자를 위해 간직해 둬요.」 「내 생각엔 당신이 바로 그 올바른 남자예요.」 「시간과 장소가 올바르지 못하오.」 그는 그녀 곁을 지나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권총 벨트를 어깨 에 걸치고 옷을 입었다. 다음 창문으로 가서 커튼을 조금 젖히 고 밖을 살펴보았다.  「지금 떠나시려는 거예요7J 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의 눈이 몹시 슬퍼 보인다고 느껴지자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렇소. 떠날 때가 되었소.」 「어디로 가실 건가요?J 「고국이오.」 

에필로그 247 
「어떻게 가시려는 거예요?J 그는 아까와는 달리, 자신에 넘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밀림을 통과해서 가겠소, 앤. 그것이 유일한 길이기도 하오.」 그는 짐을 들고 현관문으로 갔다. 그가 그녀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침실 안에 그대로 서서 그의 됫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 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녀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 였다.  「고마워요, 보란! 모든 일들이 잘 되길‥‥‥‥」 그는 따뜻하게 웃어 보이고 그녀의 곁을 떠나 밖으로 나왔다.  저 밖 어딘가에 펼헉진 축축히 젖은 밀림에 그의 집으로 가는 길 이 있었다. 그 길을 발견해 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발견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결국 그 길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라는 것 을. 
하나의 그림자 한숨 쉬며 소리 없이 밀림을 지난다.  그의 이름은 공포, 오, 작은 사냥꾼이여 , 그는 공포. 
그 작은 사냥꾼은 밀림의 그늘을 통과하는 순간 그늘 속에 파 묻혀 곧 그늘과 구별할 수 없는 그늘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었다 

248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살 곳이 바로 그 그늘 속이라는 것을. 그 리고 언제나 그가 죽어 넘어지는 곳도 바로 그 그늘 속이라는 것 을.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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