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리키, 로저 르윈] 제6의 멸종
제6의 멸종 The Sixth Extinction
리처드 리키, 로저 르윈
(저자 소개)
* 리차드 리키
리처드 리키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부부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의 아들로 태어났다.어려서부터 발굴 작업에 바쁜 부모를 따라다니느라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양친의 학문적 가르침을 받아 마침내 생존하는 최고의
인류학자이자 고생물 관장직에서 물러난 이휴, 5 년 동안 테냐 국립 야생동물
보호국의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토끼리의 밀렵을 성공리에 중단시켰다.
1977 년 발표한 '오리진'은 과학계 초유의 베스트샐러가 되었으며, 국내에서도
번역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바 있다.
* 로저 르윈
로저 르윈은 영국 리버풀대학에서 생화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1977 년 리처드 리키와 함께 '오리진'을
공동 집필해으며, 이외에도 과학계의 명저로 손꼽히는 '논쟁의 원인 Bones of
contention'과 '컴플렉시티'등 많은 책을 저술했다.
특히 런던 왕립협회에서는 그의 책 '논쟁의 원인'을 1988 년 영국에서 출판된
가장 훌륭한 과학 저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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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오리진'의 저자의 리처드 리키와 로저 르윈, 아프리카
대평원, 널부러진 코끼리 시체와 불타는 상아, 대멸종 이 정도의 단어
나열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느낌은 한편의
서정적인(?) 묵시록으로 확인된다. 이 채 '제 6의 멸종 The Sixth Extinction'은
뚜렷한 주제와 분명한 의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생물의 과거와 인류의 기원에
관한 글로 친숙한 리키와 르윈이 여기서는 종말의 조짐이 보이는 생물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통찰력 있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지구상의 장구한 생물 역사를 통틀어 일찍이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마지막
6천5백만 년 전의, 백악기 대멸종에서는 모든 공룡 종이 놀랍도록 짧은 기간에
사라졌다. 이들 대멸종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파멸적이어서 한순간의 지질 연대에
최소한 전체 생물 종의 65%가 사라졌으며, 심지어 페름기의 대멸종에서는 무려
전체 종의 95%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이러한 멸종의 원인이 무엇인가는 아직
뜨거운 논쟁 거리로 남아 있지만 그 패턴만큼은 두드러지게 일관된다.
예컨대 중생대 지상의 왕자였던 공룡은 왜 멸종했는가? 이 주제는 너무나 자주
들먹여져 해답이 나오기도 전에 다 닳아빠져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6천5백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저편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그토록 연연해
하는가? 한때 공룡이 육상을 지배했고 무슨 이유에선가 깡그리 멸종했다. 자,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을 두고
시끄럽게 왈가왈부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어쨌든 그들은 사라졌고 지금은 진화의
최고 정점에 있는 인간의 시대인 것을.
문제는 공룡이 보다 월등한, 말하자면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후계자에게 왕위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당시 가장 잘 적응한 적자 생존의 표본이었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 자리를 위협받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왕국을 무너뜨린 것은 같은 진화 경주에 나선 경쟁자들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파충류의 뒤를 이어 오늘날의 위대한 인간 시대를 있게 한 포유류가
아니었다. 공룡과 함께 수많은 생물 종을 절멸시킨 백악기 대멸종의 원인은 바로
우연한 사건(그것이 기후 변화든, 소행성 충돌이든, 화산 폭발이든 간에)이었다.
포유류가 1억 4천만 년 동안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공룡보다 특별히
영리하거나 환경에 더 잘 적응했기 때문에 생존 대열에 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쥐처럼 볼품없이 작았던 포유류의 조상은 무려 1억 년 동안이나 공룡의 눈치를
살피면서 숨어 살아야 했던 야행성 동물이었다. 만일 소행성이 지구를 비껴가서
공룡의 절별이 아예 없었더라면 과연 포유류의 전성 시대가 개막되었을까?
그렇다면 인류의 탄생은? 르윈의 직관처럼 생태계의 평형에는 카오스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생물 역사의 긴 흐름에서 아주 잠깐, 그것도 우연의 산물로서
우리 인간이 위치하고 있음을 통렬히 일깨워준다. 나아가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명확한 논리로 여섯 번째 대멸종이 현재 진행 중임을 경고하고, 대량 멸종이라는
생물 위기의 잠재적인 동인으로 우리 자신을 고발한다. 매년 적어도 3만 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사람이 원인이 되어 사라지고 있으며 이 비율은 놀랍도록 정확히
다른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 필적한다.
실제로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 인간을 가리켜 '환경의 비정상적인 암'이라고 하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탐욕스런 행동이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깨닫지 못한다면 암으로 인한 환경의 뜻하지 않은 취약성으로 호모 사피엔스
종도 다른 희생자들의 뒤를 이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시대의 멸종'은 무슨 소설 제목이 아니다. 인간의 활동이 종의 절멸을
가져올 때마다 우리 각자는 유일한 생물의 일부를 영구 소멸시킨 책임을 조금씩
나눠갖게 된다. 그리고 여섯 번째 대멸종의 혐의자인 호모 사피엔스 역시 그 멸종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 독불장군이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에서 일관하고
있는 주제는 다분히 협박에 가까운 경고성 발언들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지구의
지나온 역사와 그 미래, 또한 그 속에서 활약했던 모든 생물의 도도한 흐름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만일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미약하나마 그런 소감을 느낀다면 번역의
모자람에 대한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다소 덜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저자의 장황한
문체를 좇는 데 급급했던 역자의 글을 맛깔스럽게 다듬느라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편집부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황현숙
(감사의 말)
우리 두 사람은 다양한 경험 분야에 걸쳐 우리의 학문적 삶을 풍요롭게 해준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여기에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는지는 이미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책임자로 재직하는 동안 나의 작은 노력과 견해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케냐
국립 야생동물보호관리국의 직원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한다. 무엇보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다리를 잃은 후,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 미브에게
찬사를 보낸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그녀 덕분이다.
(리키.)
생물의 패턴과 그 의미를 찾아다녔던 내게 각별한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36,36^스티븐 제이 굴드, 데이비드 야블론스키, 토머스 러브조이, 로버트
메이, 스튜어트 핌, 데이비드 라우프, 에드워드 윌슨 그리고 여기 미처 이름을
적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로저 르윈.)
1. 개인적인 전망
1989 년 4월 어느날 오후, 나이로비의 박물관 사무실. 느닷없이 뛰어든 동료 한
명이 들뜬 목소리로 "축하하네."하고 소리쳤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축하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반문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내가
야생동물보호관리국 책임자로 임명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라디오를 통해
다니엘 아랍 모이 대통령의 이와 같은 결정이 발표되었다고 덧붙였다.
"이거, 정말 뜻밖이군." 나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그대로 내팽개쳐 둔 채, 서둘러
박물관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왔고, 야생동물
관리의 방향 전환에 대해 나와 의견을 나누고 싶다며 만나자고 했다. 거기에는
빗발치듯 퍼붓는 밀렵꾼들의 총탄 세례에 멸종 위기를 맞은 코끼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내 생애에 가장 도전적인 시기들 중 하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지난 20 년간 지켜 왔던 케냐 국립박물관의 관장직으로부터, 또 고스란히
그만큼의 세월 동안 화석이 풍부한 케냐 북부의 퇴적층과 투르카나 호 동쪽과 서쪽
호숫가에서 수행해 왔던 인류 기원에의 탐구와, 고인류학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부터
나를 떼어 놓았다. 반면에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마음 속의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부드러운 공기 내음, 때묻지 않은 자연과 야생 동물들의 정겨운 풍경, 그리고
한밤중에 드리는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울음 소리. 이 부든 것들은 어린 나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 대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심어 놓았다. 어렸을 적에 나는
케케묵은 뼛조각보다는 살아 있는 생물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부모님인 루이스와 메리가 왜 그토록 화석에 집착하는지 당혹스러웠고 더러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동아프리카를, 인류의 초기 조상에 관한 증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지역으로
올려놓은 그분들의 발견은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일련의 연구사에서 거의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언제나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던 아버지는 한편으로
열렬한 자연학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지역의 동물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1958 년 아버지는 동아프리카 야생동물협회를 설립했는데, 이 협회는
지금까지도 케냐의 생태 연구와 보존에 커다란 역할을 맡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와 형제들^6,36^조나단과 필립을 데리고 올두바이
조지 계곡의 아프리카 덤불 숲 사이를 걸어가며 끝없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새로운 화석 유적지의 단서라도 발견할까 기대했으며,
우리들은 사냥감을 죽이는 사자나 어슬렁거리는 표범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씩 동화책 속에 펼쳐지는 풍경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밤이면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찬 야영지에서 아버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우리의 넋을
빼앗았다.
나중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나 역시 열렬한 자연주의자가 되었고, 특히 초기에는
정신없이 딱정벌레와 나비에 빠져들었다. 얼마가 지난 후 나는 보다 큰 동물들의
경이로움을 인식하게 되었고, 생물의 다양성과 각각의 생물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과
긴밀히 상호 작용을 맺고 있는지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1969 년 나는 마침내
케냐 야생동물 클럽을 조직했다. 이 클럽의 목적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조국의
다양한 생물에 관해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땅, 케냐를 사랑한다. 무덥고 습한 해안 서식지로부터 눈 덮인
케냐 산(킬리만자로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또 메마른 사막에서 많은 비가 내리는 산기슭에 이르기까지 케냐의
자연 환경은 실로 대조적이며 다채롭기 그지없다. 이처럼 케냐는 천차만별의
서식처에서 번성해 온 생물 다양성이 그 지역 자연의 다양성과 조화를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소년 시절, 나는
'자연(계)의 균형'이라는 말은 잘 알지 못했으나 그것은 아주 간단히 내가 야생
속에서 더불어 공명했던 바를 표현해 주고 있었다.
가능한 한 나는 야생 속에 있고자 하는 마음의 충동을 따랐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왜냐하면 자연은 딱히 더 어울리는 말이 없어 내가 '영혼'이라 부르는 그
무엇을 정화하고 재충전시켜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야생의 자연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우리 형제들은 말라리아의
잦은 발병으로 고생해야 했으며, 때로는 빌하르츠 주혈흡충증(기생충병. 주혈흡충이
기생하는 뱀이 숨어 있는 물에서 수영하다가 걸린다)으로 진땀을 빼기도 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뱀에게 물리기도 일쑤였는데 이 경우에는 대개 생명의 위협을
준다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광경이 훨씬 더 야단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조금 창피한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표범을 잡기 위해 설치해둔
우리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한동안 문을 잠그고 있어야만 했다. 굴욕적이었지만
표범에게 영원히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일시적으로 그 안에 붙잡혀 있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인 듯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로 나는 그전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선보다 한층 더 주의 깊게 행동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10 대 청소년 시절, 나는 언젠가 수렵구 감시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나이로비 근교의 이웃집에 살던 영화제작자 아먼드 데니스와 미카엘라
데니스를 위해 동물을 사로잡아 주는 일에 만족스러워했다. 수많은 영국의 TV
시청자들은 이들 데니스 형제의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야생의 아프리카를 접했다.
데니스 형제는 이따금씩 내가 붙잡아 온 동물들을 이용해서 찍은 근접 사진을
상연하기도 했다.
야생 상태에서 위험한 동물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당시로서는 그것이
합리적인 기술이었다. 동물을 사로잡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행동 양식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동물들을 넘겨주고 보수도 받았다.
말하자면 내 나이 13살 때 자연학자로서의 훈련 과정은 은행 예금 계좌를
불려나가는 일과 겸해졌던 셈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독립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 좋았다.
자연과 돈벌이는 극심한 가뭄이 온 땅을 휩쓸었던 1960 년과 1961 년, 또 다시
나의 훈련 과정에서 함께 맞물렸다. 수만 마리의 동물이 쓰러졌고, 들판은 온통
그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청소부 동물들이 처리해 내기에는 그 수가 너무나 많았다.
무수히 많은 시체가 이빨이나 부리에 물린 자국 하나 없이 온전한 상태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던^6,36^그때 내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나에게 이 가혹한 자연의 하사품은 하나의 기회 정도로
여겨졌다. 빌린 돈으로 랜드로버 중고차를 샀다. 그리고 그 차를 끌고 죽은
동물들^6,36^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을 수집하러 나섰다.
집에 돌아와서는 낡아빠진 기름통에 동물을 넣고 푹 끓여 살을 제거한 다음,
깨끗이 뼈만 추려내 분해해서 전세계의 박물관과 대학에 보냈다. 흡족한 수준의
이익을 챙긴 것을 물론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비교해부학에 대하여
상세히 알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뼈대를 재조립할 수 있도록 각각의 뼈에
꼬리표를 붙이고 번호를 매겨야 했기 때문이다. 해부학을 배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고인류학자들은 종종 단순한 화석 뼛조각 몇 개만으로 그
동물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 따라서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처럼 뼈장수 노릇을
했던 초기의 내 짧은 경력은 그후 고인류학자로서의 기나긴 경력에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인류 기원에 관한 연구에 깊이 빠져들기 전에 나는 사파리 회사를 차렸다. 그것은
멀리 떨어진 야생의 땅에 가볼 수 있고, 또 그 대가로 돈도 받을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온 방문객들에게 아주 작은 난초꽃에서부터
탄자니아의 세렌게티 국립공원, 케냐의 마사이 마라로 이동하는 대규모 영양떼에
이르기까지, 내 조국의 엄청난 생물 다양성diversity of life을 소개하는 일은
그야말로 짜릿한 흥분과 벅찬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종횡무진 활동 무대를 누볐고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나 솔직히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나 자신이 무언가 다른 일을 원하고
있건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늘이 두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의 직업만큼은 따르지 않겠노라던^6,36^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겠노라던맹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고인류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1968 년 투르카나 호의 동쪽 호숫가로 역사적인
첫 탐험길에 올랐다.
나는 단 한 번도 당시 내가 내렸던 결정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몇 분의
훌륭한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고, 인류 진화 역사의 소중한 유적을
발견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종으로서 우리들
인류의 기원을 알고자 하는, 거의 원초적이며 깊은 충동을 경험하곤 한다. 고대의
퇴적층에서 이러한 유적을 찾는 작업은 곧바로 우리 종의 역사와 직접 대면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이다. 따라서 이 연구 대열에 낀 우리들은 진정코 특혜받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나는 20 년간 케냐 국립박물관^6,36^전국에 흩어져 있는 10개의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야외에서 화석을 찾고 발굴하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투르카나 호수의 동쪽과 서쪽 주변에는 초기 인류 화석이 놀랄
만큼 풍부히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들 화석은 약 4백만 년 전부터 비교적
최근에까지 걸친 인류의 진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는 20년 전에 비해 한층 더 완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투르카나 호수 양쪽 가장자리에서 이루어진 극적인 발견을 통해,
인류에게 보다 중요한 지식 축적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대의 퇴적층 위를 걸으면서 화석을 찾고 발견하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뼈를 줍는
것 이상의 값진 의미가 있으며, 또한 특정한 하나의 종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고생물학의 창을 통해 과거
세계를 들여다보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들의 운명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생물학의 창을 통해 본 것들로부터 받은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변화'이다. 생물의 흐름은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변화' 속에 있다. 때때로
그것은 기후의 변동에 의해 추진된다. 예컨대 한때 메말랐던 지역이 비가 많은
지역으로 바뀌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물들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폭발적인
진화적 변동에 의해 변화가 야기되기도 한다. 한때 존재했던 생물들이 사라지고
어느덧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 그 뒤를 잇는다.
이렇게 한바탕 이루어진 멸종과 종 분화는 생물 흐름의 변화를 일으키는 주기적인
힘으로 작용하여 일정한 변화 형태를 만들어낸다. 고생물학의 창을 통해 보이는
생물들은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만화경 속의 상과도 같다. 그곳에서의 변화는
자연적인 것일 뿐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이 우리들 삶의
일부이듯이 멸종 역시 생물 흐름의 일부인 것이다.
모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야생동물보호관리국 책임자로 취임한 나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실제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그 중에서 특히 절박했던 사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탐욕스러운 코끼리 밀렵 행위를 끝장내는 문제였다. 게다가
인구 성장에 따른 더 많은 '토지의 필요성'과 자연 서식지를 점점 빼앗기고 있는
'야생 동물의 보호'라는 상충된 입장을 조정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지구 역사의 불가피한 측면, 즉 '지속적인 변화'라는 관점을 통해 일련의 문제들을
바라봄으로써 생물 다양성의 본질과 그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이 가령 '코끼리가 길을 잃고 농촌으로 들어갔을 때 종종
일어나는 농작물의 피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준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가령 '코끼리 개체군과 그들의 출현으로
언뜻 파괴되는 것처럼 보이는 서식처 사이의 상호 작용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앞서 가졌던 관점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나는 흔히 말하듯 자연이 변화하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변화해 가는 과정^6,36^변화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애쓰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이며
심지어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신념을 펼쳤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다시
이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물의 역사 전반에 걸친
변화'라는 관점이 한 종으로서 갖는 우리 인류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지구상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종의 권리를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로서 작용한다는
점이다.
어떤 종류의 책을 쓸까 궁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고인류학자로서, 또
보호론자로서의 개인적인 경험이 우리가 현재 처한 곤경을 극복하는 문제에 독특한
견해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세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놀라운
속도로 생물 다양성을 파괴함으로써 엄청난 생물학적 재앙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주장은 물론 이 책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예컨대 경제 개발로 인한 열대림과
야생지의 감소는 머지않아 매년 10 만 종의 생물을 멸종 위기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가 긴 역사와 먼 미래를 가진 도도한 생물 흐름 속의 한
종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제만 현상을 다룬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하나의
종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알고 천지만물 가운데 우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공간과 시간 모두를 포함한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야만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보다 큰 실체를 사실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적이다.
이 관점은 우리를 겸허하게 하며, 특히 우리가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를 심각한
상태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힘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이 책에는 몇 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중심은 결국 '변화'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연속적인 생물 흐름에서 한순간에 불과할 뿐,
결코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변화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이
비단 세상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위상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찾는
생물 흐름의 본질이 바로 변화 속의 '유형'에 있다는 사실이다. 유형은 생물 흐름을
부양하는 기본 과정의 외적 신호이다.
그러면 여기서 '유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전체적인 화석 기록을
철저히 조사했을 때 드러나는 상을 의미하며, 또한 생태 군집 전체를 완벽하게
조사했을 때 드러나는 상을 가리킨다. 이들 각각의 상은 물론 개별적인 존재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지질 기록에서 개별 종들의 화석 잔재로 남는, 생태계를
이루는 개별 생물 종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진정한 본질은
종들 간의 관계에서, 그리고 현재와 그 이전의 군집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상images을 보려고 애쓰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의미없이 흩어져 있는
매직아이 그림의 점들 속에서 떠오르는 3차원의 영상을 보는 것과 같다. 처음에
한참 동안 매직아이 그림을 들여다보면 점점이 점만 보일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으로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고 표면 형태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되면,
그제서야 저 너머 있는 보다 심오한 시각적 실체가 보이게 된다. 바야흐로
진화생물학과 생태학 분야는 생물 흐름에 있어서의 보다 깊은 실재를 인식하기
직전에 놓여 있다.
아직 그 상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세상의 새로운 실재를 볼 수 있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이것은 이른바 지적 혁명과 다름이 없다.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불과 몇 해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이다. 이제 화석 기록상에
나타난 대량 멸종의 유형을 살펴보자. 그러면 이 사건들이 단순한 생물 흐름의
중단이 아니라, 오히려 생물 흐름을 형성하는 중대한 창조적 힘이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진화의 과정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뭔가 제비뽑기를 연상시키는 구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생태 군집의 유형을 보고 그들이 어떻게 조합되었으며,
어떻게 그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원동력이 솟아나는지 다시 한 번 새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에서 나온 참신한 인식들이 서로
결합되어 우리 주변의 생물계를 구성하는^6,36^믿기지 않은 정도로 단순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여러 가지 현상들을 헤쳐나가고 있다.
'과학에서의 위대한 지적 도전은 물리학에서 발견된다'라든가, 물리학은 '하드'하고
생물학은 '소프트'하다 등의 잘못된 인식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사실 세계와 화석
기록에 요약되어 있는 역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역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앞에서 나는 '자연계의 균형'이라는 말을
썼다. 이것은 얼핏 '생물은 단순하고 자연은 조화롭다'라는 뜻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그것은 틀렸다. 자연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섣불리 상상된 조화는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백만 종의 다른 생물과 이 세상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경외스러울 만큼 복잡한 생물 다양성을 이루고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의 목적은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의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생물의 다양성과 그들의 운명에 다한
한 차원 높은 이해를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생물 다양성의 근원과 그 정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왜 오늘날 지구상에는 1백만 종이나 5억여 종이 아닌,
5천만 종의 생물만이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다양성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생물 흐름의 필연적인 산물로 그 정점에 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생물
다양성에 미치고 있는 인간의 영향력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 인류라는
종은 다른 수백만의 생물 종을 파괴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파괴는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가? 또한 우리는 생물 다양성의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유형'을 통해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가? 인류의 기원
연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깔려 있는 우려를 십분 이해한다. 그것은 인류의 미래에 배어
있는 불확실성에서 연유하며, 대개 질문자들은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대답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앞으로 전개해 나갈 대답은 결코 안도감을 주는
내용이 아니며, 그래서 종종 환영받지 못한다.
이전에 펴낸 몇 권의 책들처럼, 이 책도 로저 르윈과의 공동 집필로 이루어졌다.
생물의 역사를 통해 그 본질과 미래를 드러내는 패턴을 찾는 일렬의 여정에서
고인류학자이자 보호론자로서의 경험에 의존하는 나와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의
전문지식에 의존하는 로저,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다른 관점을 하나로
결합시켰다.
긴 여행을 함께 했지만, 다른 공동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나의
목소리로 쓰여졌다. 이것은 국제 무대에서 보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무시키고 있는
나의 역할을 일부 반영한 결정이며, 부분적으로는 저작상의 편이를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처럼 목소리를 합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자연 세계에 대한 공통된
전망과 우리 동요 종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과 변화)
우리는 현재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형성한
진화 과정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나 다름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항소 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그러한 창조성의 기본 특징^6,36^그리고 그 영원한
수수께끼일부를 훑어 보고, 생물의 역사에서 종종 일어나는 위기가 얼마나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지 알게 될 것이다.
2. 생물의 두드러진 수수께끼
투르카나 호수 서쪽 가장자리. 으스스한 광경 하나가 눈에 띈다. 그곳은 1984 년
우리가 160 만 년 전에 죽은 소년의 뼈대를 발굴한 장소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무수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서 그 옛날
얕은 늪이 있었던 흔적을 무심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메마른 호수 퇴적물
속에서 뒹굴다 돌처럼 굳은 하마처럼 보였다. 내가 처음으로 이 이상한 '생물'을 본
것은 이후에 '투르카나 소년'이라고 불리게 된 그 뼈대를 발굴하던 초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아는 뜨거운 열대의 태양 아래 일하고 있는 동료들 곁을 떠나 호수를 뒤로 한 채
야 1 마일 가량 서쪽으로 걸어갔다. 프랭크 브라운Brown, 앨런 워커Walker와
함께였다. 앨런은 존스홉킨스대학 출신의 인류학자였는데, 나와는 수 년간 절친한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로 일해 왔으며 고인류의 수많은 유골들을 함께 발굴하기도
했다. 지질학자인 프랭크는 유타대학을 졸업한 후 투르카나 호수 지역의 지질학사를
조사하고 그 지역을 형성한 여러 종류의 힘을 밝혀내는 데 10여 년을 보냈다.
우리가 발굴 캠프를 벗어나 짧은 탐험길에 오른 이유는 프랭크가 최근에
바로 이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발견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리는 투르카나 소년의 뼈대가 누워 있던 나리오코톰 강 북쪽에
이웃한 어느 강바닥에 이르렀다. 8월 건조기 때라 두 강 모두 바짝 말라 있었다.
호숫가로부터 3마일쯤 떨어졌을까, 놀라울 만큼 일정하게 늘어선 둥그스름한 형태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저만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둥근 용암석으로 덮인 높고
건조한 산등성이 아래쪽이,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프랭크의 설명처럼 1백만 년 전 그곳이 얕은 물로 덮여 있었다면 당시의 투르카나
호는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단세포 조류와 다른 미생물들의 군체로, 복잡한
미소 생태계를 이룬다. 군체는 아마 처음에 하나의 모래 알갱이를 중심으로 모인
미생물의 얇은 층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이들은 미세한 침전물이 바깥쪽의 살아
있는 층을 덮으면, 파묻힌 생물들이 다시 표면으로 밀고 나와 또 다른 얇고 편평한
미생물 군집을 이루면서 서서히 자란다. 스트로마톨라이트에서 생물은 언제나
가장자리에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납작한 구 모양을 이룬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지름이 1m 가까이 되어 마치 작은 식탁만하다.
투르카나 호의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가운데 일부는 둘로 끊어져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층을 드러낸다. 그것은 미생물로 이루어진 연속적인 군체의 자취이다. 그들의
존재는 1백만 년 전 투르카나 호수 지역의 환경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메마른 사막으로 변해 버린 이 지역에 한때 호수가 펼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또한 과거의 생물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오늘날 전세계에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샤크 만의 짠 바닷물은 아직까지 그들이 번성하고 있는 몇
안되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36,36^화석 기록에서 흔히 발견되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상에 최초로 등장한 생명체의 흔적이기도 하다.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 중의 하나는 생명이 너무나 초기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46억 년 전 지구는 발생 초기 태양계의 먼지로부터 응축되어 방사성을 띤
채 녹아버린 암석 덩어리로, 어떤 형태의 생명체에게도 해로웠다. 불 뿜는 탄생의
열기가 서서히 가시면서 40억 년 전 조금 못 미친 시기부터 이론상 생물의 서식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예컨대 생성되자마자 분해되던 불안정한 유기 분자들이 더
이상 그렇게 분해되지 않았고, 단숨에 수증기로 증발되던 물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조건은 생명체의 출현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론상의 가능성은 이내 현실이 되어 원시 생명체가 단순한 단세포 생물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흔적은 약 37억 5천만 년 된,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대륙의 암석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단순한 형태를 가진 이 생물들은
핵이 없는 세포, 즉 원핵 생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태양 에너지와 주변의 화학적
환경을 이용해서 증식,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그리고 집합체였던 이들이
미생물층을 이룸으로써 전시대를 통해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특징적인 군체를
창출했던 것이다.
이렇듯 일찌감치 시작된 생물의 역사는 그 즉시 훨씬 더 복잡한 형태를 향한
점진적이고도 꾸준한 진보의 과정으로 접어들었으리라 추측된다. 처음에는 보다
복잡한 세포, 즉 유전 물질이 핵 속에 든 진핵 생물이 등장하게 되었고, 뒤이어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는 분화된 세포 소기관^6,36^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이
나타났으며, 그 다음에는 다세포 생물 단계로 나아가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양서류와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마침내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방금 언급한 생물의 단계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엉뚱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지구상에 존재한 생명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생물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물에 있어 점진적이고 꾸준한 것이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이것은 프랙탈 무늬처럼 전체에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척도에
적용된다).
이처럼 급하게 최초의 발판을 마련한 이후, 놀랍게도 20억 년 동안이나 가장
복잡한 생물 형태는 원핵 생물과 그것들의 복잡한 조직인 스트로마톨라이트
군체에서 머물러 있었다. 생물들은 어디로 나아가기 위해 별로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았다. 약 18억 년 전 비로소 진핵 세포가 등장했을 때, 그것은 마치 다음 단계인
다세포 생물로 향하는 경주를 위한 안정적인 무대가 마련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다세포 생물이 진화하기까지는 또 다시 10억 년 이상이 더
흘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났을 때조차도 그 생물들이란 기껏해야 간신히 눈에 띄는
정도라서, 우리가 다세포 생물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복잡한 조직을 갖고 상호
작용을 하는 '선구자'는 분명 아니었다. 복잡한 다세포 생물^6,36^여기서는 다소
수수하고 이상야릇하게 생긴 바다 무척추동물을 의미의 출현은 약 5억 3천만
년 전까지, 그러니까 현재의 지구 역사가 85%나 기록되고 난 뒤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이 시작되었을 때는 너무나 장관을 이루어서,
고생물학자들이 '캄브리아기 대번성'이라 부르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후 몇 백만 년 사이에 오늘날 지구상의 생물을 대표하는 주요한 계획안, 즉
동물 분류상의 문이 진화적 혁신의 격동 속에서 모두 창안되었다. 이들 가운데
지금의 창고기를 닮은 작은 생물에게 '피카이아'라는 학명이 붙여졌다. 피카이아는
호모 사피엔스를 위시한, 일련의 모든 척추동물을 포함하는 척색동물문의 유력한
창시자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극도로 수수한 출발이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분교의 고생물학자 제임스 발렌타인Valentine은 '비길 데
없이 탁월한'이라는 말로 캄브리아기 대번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적절하긴
하지만, 오히려 조금은 절제된 표현이다. 캄브리아기 대번성에는 분명히 폭발성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비록 늦긴 했지만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 출현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즉, 화석 기록으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전기간을 통해서 꾸준한 진보가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결국 예상대로 오늘날과 같은
자연 세계를 이끌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시 이러한 기대는 무산되고 만다. 캄브리아기 대번성 이후 생물은
'번성'과 '파멸' 두 낱말로 특징지어져 왔다. 종은 놀랍도록 다양해졌지만 이따금씩
일어나는 대량 멸종에 의해 엄청난 수가 절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멸종은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전쟁을 묘사할 때 간혹 들먹여지는
경구인 '권태로운 긴 시간이 한순간의 테러에 의해 깨어진다'는 겉으로 나타나는
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속도면에서는 지구상의 생물에게도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1세기 전 다윈 혁명은 '생명은 신의 창조물'이라는 전통적인 해석을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전환시켰다. 다윈 혁명이 남긴 유산 가운데 하나는 서구의 지적 사고에
당시로서는 매우 특별한 세계관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다윈의 관점에 따르면 그들의
경쟁자보다 어떤 면에서든 우월하기 때문에 하나의 종이 번성하며(요컨대 다윈이
말한 '생존 경쟁'에서 이기는 것), 같은 맥락에 따라 경쟁에 뒤쳐지면서 종은
소멸하기 시작한다. 이 경우 종은 생물 경쟁에서 실패자인 셈이다.
이는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위대한 통찰을 극히 단순하게 해석한
것이지만, '노력에 의한 성공'이라는 서구 정신과 기분좋게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사조가 때로는 명확하게, 때로는 암시적으로 생물 교과서에 드러나 있으며, 특히
인류학 교과서에는 더 빈번히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수십 년 전의 책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생물 다양성(각기 다른 서식처를 차지하는 생물 종의 수)은 지구 역사상
거의 절정에 가깝다. 우리는 무수한 종들 가운데 하나이며, 이제껏 지구의 주인
노릇을 했던 생물들 가운데 가장 번창한 족속이다. 방금 언급했던 '우월성을 통한
진화적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응당 스스로를 칭찬할지도 모른다. 또한
호모 사피엔스를 환경에 지속적으로 가장 잘 적응한 종의 총체적 산물 중 하나라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진화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이와는 다른 의견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대량 멸종의 와중에서는 우월성이 아닌 '행운'이 나중에
어떤 생물이 생존할 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인류는 과거의 우월성이 현대적으로 표명된 존재가 아니라 지구 역사의
천재지변에서 살아남은 극히 운좋은 생존자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생물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물 패턴과 그러한 패턴을 이끄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즉 '어떻게 새로운 종이 발생하고, 어떠한 상황에서 종이
사라지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생물 패턴을 이끄는가?
바로 종의 생성 및 소멸 역학의 상호 작용이 어느 시점에 놓인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을 결정한다. 예컨대 우세한 생물 다양성은 과거의 산물이자 미래를 향한
무대가 된다.
여기 '시간과 변화'에서는 오늘날 세계의 풍부한 다양성을 이루어낸 생물학적
토대, 즉 '캄브리아기 대번성'에 대해 다룰 것이다. 또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물이 헤쳐 온 대량 멸종의 호된 시련을 설명하고, 오늘날 풍부한 생물 다양성
속에서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차지하는 위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찰스 다윈은 캄브리아기 대번성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운은
많은 종 무리의 갑작스런 출현은 채 여물지 않은 자신의 진화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자연 선택의 핵심은 우세한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조금씩 변화된 행동이나 구조가 쌓여 점진적인 변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윈은
오랜 기간이 지나면서 간혹 새로운 종을 생성하는 중대한 신화적 변화가 생겨날
수도 있지만 그 이행만큼은 서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가장
초기의 역사에서 다분히 폭발적으로 등장한 생물의 출현은 어떤 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다윈은 불완전한 화석 기록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에서 한 장을 모두 할애하여 이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는
캄브리아 대번성이 극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오로지 이 생물들의 조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윈의 시대에는 캄브리아기 이전의 생물에
대한 어떤 화석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윈은 아마 선캄브리아대의 생물이 화석으로 남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후의
지질학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화석이 소멸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이
시대와 관련된 화석들이 지금은 바다 밑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은 대륙에 퇴적되었고,
따라서 고생물학자들의 한도 바깥에 있다고 추측하기까지 했다(현대의 지질학
이론은 이런 식의 대륙 생성과 소멸을 배제하고 있지만, 1세기 전만 해도 이러한
과정은 상당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졌다).
다윈이 애석해 한 것처럼 모든 고생물학자들은 화석 기록이 때때로 여러 가지
지질학적 이유로 인해 실망스러우리만큼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류의
선사 시대에 관심을 쏟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동아프리카에서 4백만 년^36,36^8백만
년 전 사이의 시간대를 드러내는 훌륭한 지층을 발견하고 싶어 안달이다. 왜냐하면
그 시간적 간격 사이에 흥미 있는 진화가 일어났음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지층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화석 기록의 불완전성에 대한 다윈의 집착은 자포자기가 아닌, 불운한
지질학적 실체에 대한 탄원이며 간청이었다. 그는 캄브리아기에 뚜렷이 나타난
폭발적 사건을 예고하는 긴 전주곡을 밝힐 증거가 언젠가는 발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때 점진적이고 진보적인 변화의 궤도가 명확해지면서 다윈이
성가시게 여겼던 복잡한 생명체의 돌연한 출현이 비로소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1세기가 지나서야 선캄브리아대의 생명체에 관한 증거가
나타났다.
1947 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질학자 R.C.스프리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 있는
플린더스 산맥 에디아카라 언덕의 고대 지층에서 해파리를 닮은 생물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실로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캄브리아 대번성기보다 1억여 년이나 앞선, 약
6억 7천만 년이라는 지층의 나이가 이 발견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뒤이어 계속된
탐험에 의해 해파리와 비슷해 보이는 또 다른 생물을 비롯, 오늘날 전세계에서
우리와 친숙한 환형동물, 절지동물, 산호 등 여타 다른 생물들이 목록에 더해졌다.
그 중의 일부는 현존하거나 혹은 멸종한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았다.
'에디아카라 동물상'으로 알려진 이 생물들은 모두 연한 몸체로 되어 있었다. 즉,
석회질의 껍질이 없었다. 캄브리아기 동식물의 '선구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들의 몸이 너무 연해서 화석화되기가 쉽지 않았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지질 환경 아래에서만 이처럼 연한 선캄브리아대 생물의 간단한
흔적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디아카라 언덕의 사암 퇴적층은 이러한 조건을
확실히 갖추고 있어 이 생물들의 모습을 훌륭히 간직하고 있다.
이 첫 번째 발굴 이후 대략 반세기에 걸쳐 선캄브리아와 같은 시간대에 속하는
비슷한 연체생물군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됨으로써, 에디아카라에서 발견된
흔적이 어쩌면 일시적 변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깨끗이 없앨 수
있었다. 에디아카라 동물상은 단세포 생물이 보다 더 복잡한 생물 형태로, 결국
다세포 생물의 가장 복잡한 생물 형태로 가는 지극히 중요한 단계의 구성 요소였다.
그러나 간단한 생물에서 복잡한 생물로의 진보라는 '역사'는 불변하거나 쉽게
앞으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이 아니었다.
다 알다시피 다세포 생물의 출현은 지구의 역사에서 비교적 뒤늦게 이루어졌고,
그들의 출현이 가증했던 이유는 최근에야 밝혀졌다. 하버드대학의 지질학자 앤드류
놀Knoll은 "다세포 동물의 출현은 대기 중 산소량의 현저한 증가를 비롯, 지구 물리
환경의 전례없는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대기 중의 산소량이
1%에서 오늘날의 21% 가까이 증가하기 전까지 단세포 이상의 생물은 전혀 살 수
없었다.
'산소'라는 장벽이 복잡한 생물 형태의 출현을 막았다는 생각은 30 년 전까지
역사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갑작스런 산소의 증가를 뒷받침하는 지구 화학적
증거는 최근에서야 발견되었다. 물리 환경의 변형은 진화적 변화의 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나는 약 5백만 년 전의 사건인
'인류의 기원'에서도 그러했다고 믿는다. 환경 변화가 호모속Homo의 기원에 분명히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약 6억 3천만 년 전에 일어난 다세포 생물의 첫
등장에서도 그것은 예외없이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설명은 다윈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생물의
'생존 경쟁'이 다른 생물과 자연 환경 양쪽 모두와의 상호 작용을 포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에디아카라 동물상의 발견으로 '오랜 세월에 걸친
점진적인 발달'이라는 다윈의 견해를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었던 지질학계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캄브리아기 생물의 조상뻘인 동물상이 여기 있었다.
따라서 캄브리아 대번성을 결코 갑작스런 등장이 아니었다.
다윈의 예측 그대로 그것은 단순히 불완전한 화석 기록이 낳은 잘못된 해석이었을
뿐이다. 캄브리아 세계 이전에 '광막한, 그러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시간대'가
실제로 다윈이 썼던 내용처럼 '생물들로 붐비고 있었다'. 단세포 생물의 기나길
전조는 의심되지 않을지라도, 어쨌든 이 시점에 와서야 보다 복잡한 생물의 기원은
뜻밖의 돌연한 사건이 아닌 점진적인 발달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후 에디아카라 동물상의 진정한 본질을 둘러싸고 수많은
의문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에디아카라 동물상의 일부 생물은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더러는 이후에 등장한 어떤 생물 형태와도 연결지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캄브리아기 동물이나 다른 종류의 조상으로 밝혀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1980 년 이후 해면동물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연결의 대부분이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해석에 최초로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독일 튀빙겐대학의 고생물학자 아돌프 셀라처Seilacher였다. 셀라처는
에디아카라 동물과 이후의 종들 사이의 표면적인 유사성은 인정했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생물은 다양한 내부 관계를 통해 양분과 호흡 기체를 수송한다. 그러나
셀라처는 에디아카라 동물상이 그러한 계통 없이 '누비 이불처럼 채워진 독특한
기강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렇듯 에디아카라 동물의 내부 구조가
이후의 생물과 완전히 다르므로 그들은 결코 캄브리아 둥물군의 조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에디아카라 화석은 '현재의 동물과 식물의 조상이 아닌,
선캄브리아대 진화의 실패한 실험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셀라처의 견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널리 받아들여졌다. 예컨대 1989 년 10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지질학자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Morris는 (사이언스
Science)지에 '에디아카라 동물상과 이후의 캄브리아기 동물상에서 보여지는 현저한
연속성의 결여'에 대하여 기고했다. 그는 지질학상의 인공물이 이러한 차이를
이끌었을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이러한 불연속성이 에디아카라 생물군의
주요한 멸종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4 년 후 그는 (네이처 Nature)지에서 이러한 결론을 다시 한번 상세히
설명하고 선캄브리아대와 캄브리아기의 생물표를 제시했다. 이 표는 에디아카라
동물상이 처음 출현하고 난 후 광범위한 생물의 멸종을 거치면서 이 동물상이 거의
완전히 소멸하고, 이후 그와 비슷한 생물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약 1억 년 동안 에디아카라 동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생물 형태였으며,
이들의 등장으로 기존의 미생물 군집은 크게 파괴되었다. 이후에 단세포 진핵
생물과 합쳐진 원핵 생물은 30억 년 넘게 최고의 생물 조직으로 군체를 이루어
살았다. 새로운 종이 등장하고 멸종하는 속도는 간혹 달랐지만 어떠한 대량 멸종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색적인 에디아카라 생물군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크게
달라졌다. 스트로마톨라이트에서 살아 있는 층을 이루던 단세포 생물의 약 75%가
새로 나타난 큰 생물들에게 먹혀 멸종되었다.
그러나 그후 에디아카라 동물들 역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의 희생물이 되어
사실상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에디아카라 동물의 대다수는 어느 종의 조상도
아닌, 그저 실패한 대규모 진화 실험의 잔재물이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캄브리아 세계의 선구자로 다윈이 예측한 점진적인 진화를 제공했으리라 기대되었던
에디아카라 동물상이 소멸함으로써, 캄브리아기 대번성은 또 다시 예외적인 설명이
요구되는 불가사의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것은 '생물 역사상 두드러진 수수께끼'라는
말로 일컬어지고 있다.
3. 진화의 요인
차차 알게 되겠지만 5억 년 전의 캄브리아기 대번성은 생물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그리고 이후에도 결코 되풀이되지 않았던 전무후무한 진화적 분출이었다.
새로운 생물 형태의 구색은 아주 짧은 기간에 갖추어졌다. 생물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이 '생물의 두드러진 수수께끼'를 이끌었는지 너무나 궁금해 하고 있다.
시카고대학의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야블론스키Jablonski와 데이비드
보트제Bottjer는 '대진화의 주요 원인을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대진화'라는 말은 꽃식물의 기원이나 진정한 포유류의 진화 요소인 태반의 기원과
같은 생물사의 중요한 변동을 가리킨다. 대진화는 생물역사에서 보다 큰 양상을
설명하는 말인데, 지구 역사의 진화 무대가 본질적으로 다 갖추어진 캄브리아기
대번성보다 크고 극적인 양상은 그 이후에도 없었다. 오늘날 다세포 생물을 이루는
구조의 기본 형태는 모두 이 짧은 '진화의 혁신기'에 마련된 것이다.
최근까지 이 기간은 약 2천만 년에서 3천만 년 정도 지속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는 참으로 짧은 기간으로, 특히 이 시기에 수반된 변화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1993 년 하버드대학의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로 구성된 팀이
캄브리아기 대번성의 지속 기간이 기껏해야 1천만 년 정도, 아니면 5백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며 기존의 수치를 절반 이상 깎아내렸다.
역시 하버드대학 교수인 내 친구 스티븐 제이 굴드는 캄브리아기 대번성의 존재를
발견할 당시 이렇게 논평했다. "이것은 모든 진화적 분출 가운데 최대 규모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다." 사실, 다윈 진화의 점진적인 속도로는 이 사건의
규모와 빠르기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다른 메커니즘을
찾아야만 한다. 야블론스키와 보트제는 생물학자들이 이 예외적인 사건에 작용한
주요 원인을 설명해야 하는 만만찮은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가장 극적인 종류의 진화 사건, 즉 주요한 혁신major innovation은 진화
과정에서는 오히려 가장 이해가 덜 된 요소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 장은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첫째, 캄브리아기 대번성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몇 가지 가정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둘째, 지구의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에 도전하는 최근에 인식된 이 사건의 예사롭지 않은
특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야생 동물을 보기 위해 케냐를 찾은 관광객들의 시선은 코끼리, 사자, 표범,
코뿔소, 물소 등에 머문다.그들에게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낭만적인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을 첫손가락 꼽는다. 대자연 속으로 가까이 들어간 사람들은
야생에서 이 동물들을 보고 돌아가지 않으면 어쩐지 속은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장대한 동물들의 광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외경심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나라, 내 대륙의 풍부한
생태계에서 멋진 구경거리를 선사해 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배우들이다.
인간은 어떤 극적인 것에 이끌리는 듯하다. 암코끼리가 이끄는 코끼리 무리와
사냥에 열중하고 있는 사자, 위협적인 물소떼가 극적인 느낌을 준다는 데에는
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아프리카 생태계의 단지 일부분일 뿐이며,
전세계 모든 생태계에서 보면 더욱더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대부분의 포유류 종은
이 웅대한 동물들보다 훨씬 몸집이 작다. 이들의 수는 약 4천 종이며, 현재 지구
생물상을 구성하는 수백만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생물 게임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단역'들이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이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진귀함에 매료되는 것이다. 척추동물은 현재의 약 30여
동물 문 가운데 하나인 척색동물문에 속한다. 우리는 흔히 나머지 29문의 대부분을
보잘것없는 생물 형태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예컨대 절지동물(거미,
곤충, 가재 등), 환형동물(지렁이 등), 강장동물(산호 등), 해면동물, 연체동물(대합,
달팽이, 오징어 등), 극피동물(성게, 불가사리) 등이다.
현재의 지질연대인 '신생대'는 흔히 '포유류의 시대'라고 불리는데, 이는 생물에
대한 극도의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생물 게임에서 성공에 대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면,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절지동물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절지동물은
지구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우위를 차지했고 현존하는 생물 종의 약 40%를
구성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지구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많은 수의 동물 종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각각은 30가지 기본 계획안(동물 문을 가리킴) 가운데 하나의 독특한
변형이다. 진화의 전기간을 통해 이루어진 이같은 생물 다양성의 증가는 지구상
생물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30가지 남짓한 계획안의 기원은
캄브리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5억 3천만 년^36,36^5억 2천5백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혁신의 대향연'에 이른다. 즉 잠재적인 동물 문이 캄브리아기에 존재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내내 없게끔 운명지어진 셈이다.
그것은 마치 새롭고 중요한 기능을 생성하는 진화적 도약의 능력이 캄브리아기가
끝났을 때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그것은 마치 진화의 주된 태엽이 그
힘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캄브리아기 대번성을 그처럼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혁신의 강도에서뿐만 아니라, 감히 필적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창조력의 측면에서도 역시 '아주 특별한 것'으로 인식되어야만 했다. 대략 5억 년
전에 작용한 대진화의 메커니즘에는 지극히 특별한, 아마도 유일무이한 무언가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분교의 생물학자 제프리 레빙턴Levinton은 이와 관련된
생물학자들의 난제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표현했다. "과거 수억 년 동안 왜
새로운 동물 계획안이 계속해서 가마솥 밖으로 기어나오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답변이 최근에 공식화되었다. 하나는 생태학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학에 입각한 것으로 둘다 고도로 이론적이다. 물론 다른 대답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보다 추론적인 성향이 강해서 명확하지 않다.
생태학적으로 말해서 캄브리아 초기의 지구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수십만 종의 단세포 생물과 에디아카라 동물상의 잔존 개체군이 있었지만, 현재
다세포 생물이 차지하고 있는 생태적 지위에 이르려면 한참은 더 채워져야 했다.
따라서 초기 캄브리아 세계는 생태학적으로 무한한 기회를 제공했다. 굴드는
"생태계는 모든 이들에게^6,36^기어다니는 것, 걸어다니는 것, 굴을 파는 거, 포식자
등등여지를 제공해 주었고, 생물은 전대미문의 대점령으로 여기에 응수했다.
캄브리아 대번성에서 한 차례 개발이 이루어지고 나자 이러한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이용 가능한 생태 공간이 그처럼 비어 있는 경우란 이후에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0여 년 전 버클리대학의 제임스 발렌타인Valentine이 제시한 '비어 있는 생태적
지위'라는 생각은 외부의 영향이 모든 세계를 결정하는 것처럼 여기는 모범적인
다윈주의의 틀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 생각에 따르면 진화적 혁신은 과거 5억 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었으나 그 혁신의 산물이 생존할 가능성이 달라졌다고 한다.
초기 캄브리아기에서 문 단계의 혁신은 경쟁이 거의 없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중에 모든 가능한 생태적 지위가 채워지자 문 단계에서의 주요한 혁신은 더 이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거기서 더 개발될 새로운 생태 공간이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비어 있는 생태적 지위' 가설은 언제나 훌륭한 명제를 제시하는 전통적인 생물학
원리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특히 관심을 끌었다. 1987 년 발렌타인은 이 가설을
적어도 이론 영역에서 시험한 바 있다. 그는 이를 위해 현재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연구소에 있는 더글러스 어윈Erwin, 시카고대학의 잭
세프코스키Sepkoski와 힘을 합쳐 화석 기록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들은 2억
2천5백만 년 전 페름기 말에 일어난 지구 역사상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 전체 바다
생물 종의 96%^6,36^이것은 모든 대량 멸종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를
전멸시켰다는 데 주목했다.
'페름기 대멸종'으로 알려진 이 거대한 전지구적 재앙은 지구가 생태적으로
빈약해졌을 때 지구 역사의 다른 두 기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를 비교할 수 있는
자연 실험을 제공했다. 가설에 따르면, 생태 공간이 두 기간 모두 비슷하게 비어
있었다면 적어도 비슷한 반응^6,36^진화적 혁신의 분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렌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두 시기의 바다 생물권에 수백 종, 혹은 1천여 종
이상의 다세포 생물이 공존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마다
강력한 다양화가 뒤따라 일어났다."고 말했다. 화석 기록의 유물은 페름기 대멸종
이후에 분출한 진화적 혁신이 캄브리아 대번성 이후의 혁신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양적인 면에서의 일치이지, 질적인 면에서는
아니었다.
생물학자들은 가장 낮은 단계인 '종'에서부터 사실상 가장 높은 단계인 '문'(그
위에 '계'가 있다)으로 나뉘는 분류 체계로 생물을 배열한다. 그 사이에 '속', '과',
'목', 그리고 '강'이 위치한다. 이 체계의 중간 단계에서 두 기간의 혁신은 보다
가깝게 일치하고 있다. 가령, 캄브리아기 동안 전체적으로 약 4백70과가 새로
등장했고, 페름기 이후에는 4백50과가 새로 등장했다.
'과' 단계 아래의 경우 캄브리아기 대번성에서는 비교적 적은 종이 생겨난 반면,
페름기 이후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이 갑자기 출현했다. 그러나 '과' 단계 위에서는
페름기 후의 방산은 주춤해져 몇몇 강이 새로 생겼을 뿐 문은 생기지 않았다.
진화의 주된 요인이 두 기간 모두에서 작용했지만 페름기 이후보다는
캄브리아기에서 더욱 극도의 실험이, 캄브리아기보다는 페름기 이후에서 기존
테마의 더 많은 변이가 추진되었던 것이다.
언뜻 이것은 '빈 생태적 지위' 가설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중요한 진화적 혁신이 성공할 기회가 페름기 재앙 이후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불고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렌타인과
그 동료들은 그렇지 않다고, 즉 '빈 생태적 지위' 가설은 그대로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96%의 바다 생물 종이 페름기 대멸종에서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머지가 생태적 지위의 완전한 스펙트럼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비록 절대적인 수는
철저히 감소했을지라도.
그것은 마치 대멸종 이후 생물들이 희박하게 퍼져 있기는 해도 몸의 계획안(동물
문)은 여전히 다양해서 전체 생태 지도에다 자신들의 권리를 표시해 두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는 중요하고 새로운 몸의 형태를 지탱할 여지가, 기존의 것들과 크게
다른 신출내기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비어 있는 생태적 지위가 전혀 없었다. 기존
주제의 변형은 가능했을지라도 그들로부터 야기된 어떤 주요한 발전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왜 이 가설을 지지하는지 안다. 직관적으로 훌륭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적 가설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야만 한다. 생태학적 가설과는
반대로, 이 대체 모델(유전적 가설)은 캄브리아 초기와 이후 시기의 진화의 주요
원인은 질적으로 전혀 달랐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가설에서는 주요한 진화적
혁신이 다세포 생물의 초기 역사에서 훨씬 더 풍부하게 생겨났다고 단정한다.
그러한 차이는 초기에 유전자 꾸러미, 즉 '게놈'이 '훨씬 느슨하게'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게놈의 다른 요소들이 더 많이 결합되고 또 한층 정교해져서
'계'의 동요를 점점 더 허용치 않게 된 것이다. 유전자 변화가 클수록, 그 결과 형태
변화가 클수록 단단히 결합된 게놈보다 느슨하게 조직된 게놈에서 진화적 혁신이 더
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캄브리아기 생물의 진화는 문 단계를 포함하는 큰
단계에서의 도약이 가능했던 반면, 이후의 생물은 훨씬 더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강
단계까지의 온건한 도약만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상이 유전자 가설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 가설이 어떻게 검증될 지 상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실험실에서 조사할 수
있는 원시 게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이 그러했듯이
게놈도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다. 캄브리아 초기에는 종의 변동이
유난히 빨리 일어났다. 다시 말해 지구 역사의 다른 시기에 비해서 훨씬 더 빨리
종이 생겨나고 멸종했던 것이다. 추측컨대, 과거 캄브리아 초기에는 느슨히 조직된
게놈 때문에 진화의 제약을 덜 받았던 게 아닐까? 글쎄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생태학적 가설 역시 뭔가 외부적 요인, 환경의 유다른 상태가 그러한
변화를 이끈다는 개념을 내놓을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종의 빠른 변천이 다세포
생물 종에서뿐만 아니라 단세포 생물 종에서도 일어났다는 관찰에 의해
뒷받침된다.여러 가설이 환경 변화^6,36^석회질 골격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바닷물의 화학 조성 변화 등를 지적하고 있으나, 캄브리아기 대번성을 이끈
물리적 추진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 발렌타인 다방면의 권위자들이 제안한 가설 20가지를 정리했다. 이처럼 긴
목록은 그들 중 어느 하나에 의해 그 문제를 모두 통찰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안목으로 해답을 찾으려는 생물학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6,36^'모든 자연은 하나의 생물이 다른 생물과 치르는
전쟁 중에 있다'라는 다윈에게서 유래된 표현처럼경쟁은 자연 선택을 통하여
해부학적 설계가 시험받는 장이다. 우수한 설계는 생물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고
열등한 설계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콘웨이 모리스와 휘팅턴이 1979년 그들의
초기 연구 과정에서 발표한 논문의 간략한 설명이다.
그들은 "수많은 캄브리아 동물들은 다양한 다세포 생물군에 의한 선구적인 실험인
것으로 추측된다. 진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그들의 자리에는 머지않아 환경에 더
잘 적응한 생물들이 대신 들어앉게 될 것이다. 또한 캄브리아기 적응 방산 이후의
흐름은 다른 많은 무리의 절멸을 대가로 아주 적은 무리의 종이 살아남아 숫적으로
풍부해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버지스 셰일Burgess Shale'(캐나다 록키 산맥에 있는 캄브리아기 화석층.
기이한 동물상으로 유명함)의 재해석을 둘러싼 혁명의 첫 단계는 그것이 사라져가는
존재의 세계를 드러낸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결국 살아남은 것보다 더
많은 생물 형태가 진화했다. 두 번째 단계는^6,36^진정한 다윈주의의
방식으로이 대량 멸종의 희생물이 열등한 설계 때문에 굴복했다고 규정짓는
것이다. 이 관점이 정석처럼 되어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세 번째 단계가 있다. 휘팅턴과 그의 동료들은 캄브리아기 동물을
연구하면 할수록 살아남은 동물의 뚜렷한 경쟁적 이점이나 사라진 동물의 미약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굴드는 자신의 저서 '놀라운 생물 Wonderful Life'에서 "휘팅턴과 그 동료들의
발표를 듣고 '경쟁이 그 해답이 아닌 것 같다'는 깨달음을 단계적으로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굴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원시적인' 설계에 대해 가급적 덜
언급하고 버지스 동물의 기능적 분화를 밝히는 데 훨씬 더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미리 예측이 가능한, 그리고 잘 적응하지 못한 패자에 대해서는 많이 쓰지 않았다.
또 우리가 모르는 산타카리스가 왜 주요한 생물군의 사촌뻘이며, 오팔비니아는 돌
속에 갇힌 기억으로만 남았는지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했다."
만일 생존과 멸종이 종이 잘 적응하고 못한 것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굴드는 여기에 대해 "우리는 버지스 멸종이 '경기'가
아닌 대규모 '제비뽑기'에 훨씬 더 가깝고 신속하게, 또 강력히 작용했다는 강한
의혹을 이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콘웨이 모리스는 1989 년 (사이언스)
10월호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글을 실음으로써 이에 분명히 동의한 바 있다.
"현생대(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이루어진) 생물에 공인된 대진화의 형태는
임의적인 멸종과 우연성이다."
우세한 해부학적 설계, 꾸준히 진보하는 적응력과 복잡성을 지닌 종들이 살아남아
이 세계를 만든다는 개념은 이제 사라졌다. 철저히 운에 맡겨진 승부다툼에서
살아남은 지극히 운좋은 생존자들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인류의 기원'과 많은
사람들이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는 '생태계의 복잡성'에 대해 강의할 때면, 나는
생물 역사의 모든 것이 그저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간혹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삼라만상이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들이 그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는 어떤 확신을 갖게 되기를 열망한다.
나는 다음 장에서 이 주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 복잡한 생물의 시작에
대한 개요에서는 '우연성의 요소가 생물 역사를 이끈다'는 강한 의구심을 이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앞서 나는 캄브리아 대번성을 '지구 역사의 나머지 부분을 위해 마련된 진화
무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의 오직 일부분만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때
현존하는 모든 '문'이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일 임의성이 지구 역사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초기에 출현한 생물의 생존이 훌륭한 해부학적
설계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배역진이 현재의 세계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굴드는 이를 "탁월한 테이프 재생 장치는 그 안에 무수한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테이프를 다시 돌리면 그 결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날 것임을 암시한 말이다.
콘웨이 모리스는 1989 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그의 논문에서 이 '역사적
우연성'이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처음에 일단
"캄브리아기 대번성이 재연된다면 어떨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나서 깊이 생각한 뒤
"멀리 후생 동물의 세계는 거의 지금과 드리지 않을 것이다. 버지스 셰일의 대다수
기이한 동물들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생활 양식을 따를 것이고, 따라서 그 생태
무대의 거주자들 역시 같은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등장하는 각각의 배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생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훌륭한
공상과학 소설이라 표현하면 딱 알맞은 생물상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나는 투르카나 호 서안의 스트로마톨라이트로부터 출발, 캄브리아기 대번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과학적 공상으로 끝을 맺었다.
그것은 분명 눈앞이 핑핑 돌 만큼 혼란스러운 여행이었겠지만, 천지만물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와 미래에 우리가 담당할 역할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나는 역사의 우연성이 지구상 생물의 전개를 구체화하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옹호한 굴드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는 우리의 세계를 다양한 생물 세계
가운데 단지 하나로만 보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종'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자연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생물 역사 전체를 폭넓게 구체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국부적인
영향으로 보여진다. 또한 이러한 생각을 화석 기록을 통해 체득한 우리의 경험과
보조를 같이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도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처럼 굴드가 확실히
지나친 면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진화는 계획인가, 우연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양쪽 모두에 어느 정도씩의 진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제프리 레빙턴의 대답에 동의한다.
지구 역사는 확실히 임의적인 힘에 크게 좌우된다. 특히 대량 멸종이 희생물을
선택하는 면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생물의 구조와 행동 모두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 진보한다'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보아도 명백하다. 한때
하나의 세포만한 생물들이 차지했던 세계에는 지금 서로 다른 종류의 수많은 세포로
구성된 무수한 종이 살고 있다. 또 한때 오토매턴(자동 장치)처럼 환경에 단순히
반응하던 생물들이 차지했던 세계에는 지금 행동하기 전에 곰곰히 생각하는 수많은
종이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때 자의식을 지닌 생물이 단 한 종도 없었던 세계에 지금
적어도 한 종만은 그러한 축복을 누리고 있다. 진화의 요인은 이처럼 참으로
생산적이다.
4. 생물상의 위기, 5 대 멸종
사람들은 흔히 나와 내 동료에게 어떤 식으로 화석을 발견하느냐고 묻곤 한다. 그
답은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다. 우리는 그저 화석을 찾아 돌아다닐 뿐이다. 물론
적절한 장소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령 수백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가 지금은
침식으로 드러나 있는 암석을 조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 암석을 형성한
퇴적물의 침강은 강과 호주 부근처럼 뼈가 보존되기 쉬운 환경하에서 이루어졌어야
한다.
1969 년 이후 내가 고대 인류의 화석을 발굴하고 있는 케냐 북부 투르카나 호의
주변 퇴적물은 대개 1백만 년^36,36^4백만 년 전 사이의 지층에 놓여 있다. 바람과
비, 주기적으로 흐르는 강물이 고대 퇴적물을 침식시키는 동안 지질 연대의 책장이
뒤로 쭉 넘겨져 오래 전 그곳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뼈를 드러내는 것이다.
투르카나 호에서 우리는 초기 인류의 유물 외에도 돼지, 악어, 코끼리, 원숭이,
여러 종류의 영양 등 다른 많은 종의 돌로 굳어진 뼈를 찾아내곤 했다. 여기에
상상력을 약간 동원하면 이들 고대 생물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낼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 그곳에 사는 생물들과 매우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고대의 한 장면을 상상할 때 등장하는 모든 종은 어떤
면에서건 현존하는 종의 군집과는 다를 것이다. 물론 어떤 종은 약간, 또 다른 종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든지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예컨대 당시에는 주둥이가 비정상적으로 긴 악어, 오늘날의 모습과는 달리
어금니가 위로 치켜올라가지 않고 아래턱 밑으로 내려간 코끼리, 몸집이 아주 작은
하마 종이 있었다. 게다가 그 때에는 3종의 코끼리, 3종의 하마, 여러 종류의 돼지를
비롯하여 종의 수도 훨씬 많았다. 따라서 투르카나 호 주변의 사암 지역을 가로질러
걷다가 2, 3백만 년 전, 또는 4백만 년 전에 살았던 동물의 유골을 보노라면 단순히
고대 생태 군집의 화석을 보는 것 이상의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군집의 증거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멸종했다.
고생물학자들에게 있어 죽음은 생물의 사실fact이고 멸종은 진화의 사실fact이다.
캄브리아 대번성기에 다세포 생물이 처음 진화한 이후로 지구상에는 약 3백억 종의
생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의 계산에 따르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약
3천만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종의 99.9%가
멸종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느 익살맞은 통계학자의 표현처럼 "소수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근사값으로 따지면 모든 종을 멸종한다고도 볼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모든 종이 멸종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이 자리에서 이렇게, 자연의 불가사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대한 생물의 지배력은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는 훨씬
불확실한 것이 분명하다. 캄브리아 대번성 이후 5억 3천만 년 동안 약 3백억 종이
진화했다. 그 중 일부는 존재 양식을 약간 변형시켰을 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에 반해 어떤 종들은 턱이나 양막류의 알,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등과
같이 중요한 적응 형태를 새로 도입했다. 생물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혁신을
일으키는 메커니즘, 특히 새로운 종을 만드는 과정을 중심으로 재무장했다.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의 연구는 주로 종 분화와 군집 내에서 종이 어떤 상호
작용을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동물 종의 평균 수명이 4백만 년이므로 똑같은 5억
3천만 년 동안 3백억 종보다는 훨씬 작은 부분만이 사라져갔다는 결론이 나온다. 종
분화와 멸종 사이의 균형은 지구 생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주
최근까지도 진화생물학자들은 멸종 문제를 한편으로 밀어놓고 무시해 왔다.
이처럼 멸종 문제가 무시당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2가지 요인이 다시 이 문제를 환기시켰다. 첫 번째 요인은 약 10 년 전에
제시된 것으로 6천5백만 년 전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을 때 공룡이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태계를 마구 침해한 인간이 재앙을 부르고
말았으며, 이로 인한 현대의 멸종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된
것이다. 전자는 불가피해 보이는 각본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시켰고 후자는 현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수명, 즉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계속되어 온 과정, 즉 진화에 대하여 최근 폭발적이라 할
만큼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멸종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가정^6,36^그 원인에 대한,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그 결과에 대한이
뒤바뀌고 있다. 이 장에서는 멸종, 즉 지구 역사에 존재하는 종의 상당 부분이
절멸했던 시기인 대량 멸종의 2가지 측면을 다룰 것이다. 첫째는 대량 멸종의
사실fact로, 다윈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강력하게 부인했던 측면이다. 둘째는
이러한 대규모 죽음의 원인cause으로, 전자에 비해 더욱 논란이 많고 좀체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주제이다.
다음 장에서는 대량 멸종에 대해 한층 깊이 들어가 2가지 문제를 더 다룰 것이다.
그것은 첫째, 생물 역사에 미치는 영향, 특히 이 멸종에서 어떤 종은 살아남게 하고
어떤 종은 굴복하도록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그 여파, 즉
대량 학살에 대한 생물상의 반응이다. 수많은 불확실성이 이 몇 가지 주제들을
둘러싸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졌다. 한때 진화 과정에서
열세에 해당하는 요소로 여겨지던 대량 멸종이 이제 진화의 결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로 인식된 것이다.
진화생물학의 많은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멸종과 관련된 오늘날의 인식에 다윈이
끼친 영향은 무척이나 크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멸종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종의 멸종에 대해 나만큼 놀라워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현상의 4가지 핵심적인 특징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멸종은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그는 " 종과 종의 집단은
처음에 한 지점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지점에서 점차 사라지다가 마침내
전세계에서 사라진다."고 했다.
둘째, 멸종의 속도는 본질적으로 일정해서 다윈이 살았던 동시대의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간혹 갑자기 속도가 증가하여 대량 멸종을 이끌지는
않았다. 다윈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지구상의 모든 거주자들이 대이변이 잇따르는
동안 사라져간다는 오랜 믿음은 일반적으로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셋째, 살아남지 못한 종은 어떤 면에서든 경쟁자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멸종된
것이다. 이는 "자연 선택설은 각각의 새로운 변종, 결국 새로운 종이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갖기 때문에 계속해서 생성되고 유지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던 선호되는 형태의 멸종'이라는 결과가 불가피하게
뒤따른다.
넷째, 멸종은 자연 선택에서 절대적인 구성 요소이다. 이것은 앞의 인용문에서도
암시되어 있다. 그는 또한 "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생성과 오래된 형태의
소멸은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종은 경쟁에서의 실패로
멸종된다'는 견해와 전시대를 통한 '멸종의 속도', 이 두 가지 주제는 오늘날
과학계에서 여전히 치열한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적응의 열세와 멸종을 동등시하는 다윈의 견해는 분명히 그의 자연 선택설에서
연유된 것으로 아주 최근까지도 생물학자들의 사고를 강하게 지배해 왔다. 다윈
시대의 많은 고생물학자들은 화석 기록이 생물 역사에서 이따금씩 돌발하는 멸종의
위기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이에 대해 그러한 대량 멸종의 증거는
불완전한 화석 기록^6,36^실체의 반영이 아니라 기록의 모조물일 뿐인에
기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멸종은 급작스런 증가 없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그의 주장은 다음 2가지 요소에서 비롯되었다.
그 하나는 자연 선택이 점차적인 과정이므로 이와 연결된 멸종 역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은 지질학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패러다임인 '균일설'(역주: 지질의 변화는 부단히 균일적으로 작용하는 힘에 의한
것이라는 학설)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늘날 많은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비슷한
편견들^6,36^운석 충돌이 공룡의 멸종을 이끌었다는 가설에 대해 사람들이 나타낸
반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는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윈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근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멸종 사실은 18세기 말 매머드의 뼈가 오늘날 코끼리의 뼈와 전혀 다름을 보인
프랑스의 해부학자 바론 조지 퀴비에에 의해 입증되었다. 매머드 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되고 만 것이다. 퀴비에는
파리 퇴적 분지의 화석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연구를 벌여, 이주 짧은 기간에 많은
수가 멸종한 대이변의 시기라고 추측되는 지질 연대를 계속 확인해 나갔다.
그의 관찰 결과는 19세기 초반 다수의 지질학적 연구를 불러일으켰다. 이
연구들에 의해 주요한 변화들 사이의 간격이 확인되었고 지질 시대를 구분짓는
이러한 경계를 근거로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석탄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팔레오세, 에오세, 올리고세, 마이오세, 플라이오세,
홍적세, 충적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름들은 현재 쓰이고 있는 지질 연대
구분의 일부로 남아 있기도 하다.
퀴비에는 특히 파괴적인 재앙을 지적함으로써 현생대로 알려진 다세포 생물의
역사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이렇게 3개의 대로 구분지었다. 고생대는 5억 3천만
년^36,36^2억 2천5배간 년 전에 해당하며 중생대는 2억 2천 5백만 년^36,36^6천
5백만 년 전, 신생대는 6천 5백만 년 전에서 현재까지이다. 흔히 지질학자와의 대화
속에는 '대'와 '기'의 이름이 난무한다. 퀴비에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있어 이
이름들은 곧 생물 역사의 진정한 기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물론 퀴비에는 진화론
이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대격변'을, 존재하는 생물을 전멸시키고 창조의 새 물결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는 일종의 개별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노아의 홍수' 역시 그러한
사건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결국 이러한 위기의 총계는 약 30번으로 추정되었다.
이후 퀴비에의 안은 '격변설'(또는 천재지변설)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격변설은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이전에도 찰스 라이엘^6,36^그는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로, 역시 같은 나라 사람인 제임스 허턴이 일찍이 닦아놓은 길을 밟고
있었다이 주창한 일련의 움직임에 의해 크게 질타를 받은 바 있다.
1830 년대 초기 라이엘은 3군으로 된 '지질학 원리'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지질학적 과정^6,36^비바람에 의한 침식, 지진 화산
등은 지구 역사를 통틀어 일어난 모든 지질학적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지질 시대에 벌어졌던 크고 뚜렷한 변호를 설명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동인에 호소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결코 용인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축적되어 온 작은 변화가 결국은 큰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라이엘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과거의 사건과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너무나 짧은 시간을 살았다. 지구를 구체화할 수 있으며 발생 가능성마저 있는 모든
지질학적 과정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질학적으로 가능한 사람의 경험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라이엘의 구상은 '균일론'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얼마 동안 균일론과 격변론
사이에 말 그대로 '지적 교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균일론의 깨끗한 승리였고,
격변론은 과학적 연구보다 종교적 사고에 지배되었던 초창기 사고의 유물로서
토론의 장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다윈의 입장에서 보면, 지질학에서의 '균일론'의
우세는 생물학으로 와서 그의 '점진주의자 이론gradualist theory'의 기초를 제공해
준 셈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연 선택'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진 작은 변화들이 쌓여 결국
커다란 진화적 변동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엘이 '지질 역사의 대이변은
비정상적인 동인에 기인한다'는 견해를 거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윈은 생물
역사의 위기가 초자연적인 간섭, 즉 격변에 기인한다는 견해를 거부했다. 그는
'환경에 대한 생물의 절묘한 적응'이라는 자연적인 설명으로 초자연적인 설명을
대체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그는 수많은 종의 갑작스런 절멸에 뒤이어
창조의 물결이 밀려왔다는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은 무엇이든
부정했다.
격변론은 앞서 언급했듯이 학술계에서는 거부되었다. 그러나 지구 역사의 생물
양식에 관한 격변론자들의 생각은 계속 끈덕지게 남아 있었다.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은 고대의 발견물에서 대량 죽음의 흔적을 더 많이 보게 되면 될수록
이따금 재앙이라 할 만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다윈이 애태워했던 빈틈이 여기저기 채워져 화석 기록이 보다 완전해져가는
동안에도 주기적인 위기에 관한 증거는 훨씬 더 강제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지구
역사는 라이엘과 다윈이 그토록 강렬히 희망했던 점차적인 진보의 하나가 아니라
분명히 산발적이고 발작적인 이변의 하나이다. 이러한 이변 중의 일부는 해양 동물
종의 15--40%가 사라지는 비교적 온건한 수준에 그쳤지만, 몇몇 소수의 경우는
대멸종이라 일컬을 만큼 엄청난 수의 생물이 사라졌다.
'5 대 멸종the Big Five'으로 알려진 이들 몇몇 사건은 적어도 해양 동물 종의
65%가 지질 시대의 극히 짧은 순간에 멸종하게 된 생물상의 위기로 구성된다.
페름기와 고생대를 마감시킨 이들 대멸종 중 어느 한 시기에는 해양 동물 종의 95%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시카고대학의 지질학자 데이비드 라우프는
페름기의 멸종을 두고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이 수치들이 상당 부분 정확하다면
지구의 생물상은^6,36^최소한 고등생물에 대해서는총체적인 파괴에
직면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구 역사상의 수많은 대변동은 바다의 화석 기록을 통해 추측되는데, 이는
바다의 화석 기록이 육상의 기록보다 훨씬 완전하기 때문이다(뼈는 실트층에 곧바로
묻혀서 이내 화석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시체가 썩은 고기를
먹는 청소부 동물에 의해 유린되고, 수백 년 동안 덥고 건조한 바람에 시달려
먼지로 부서지므로 퇴적층에 온전하게 묻힐 수가 없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육상에는 바다 속보다 10배에서 1백 배나 더 많은 동물 종이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상으로 알려진 25 만 종 가운데 약 95%는 해양 동물이다.
이것은 왜 우리가 과거의 육상 생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멸종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 '대량 멸종'의 성격을 띠게 되면, 이것은 곧 전지구적인 사건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로 인한 파괴적인 결과가 바다와 육상 기록 양쪽 모두에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에 관한 화석 기록을 살펴보면, 다시
말해 각각의 시기에 존재하는 종의 수는 캄브리아기에서 처음 시작할 때는 아주
낮았다가 현재에 와서 높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윈은 이러한 증가가
꾸준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5대 멸종이 주기적으로
급격히 새울 다양성을 위험할 정도의 낮은 수준까지 몰아넣음으로써 생물 종수의
상승을 중단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도표에서는 전통적인 시간의 척도에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직선이 아니라 들쭉날쭉한 톱니 모양의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과거의
것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것에 이르는 이 주요한 사건들로는 오르도비스기 말(4억
4천만 년 전), 데본기 후기(3억 6천5백만 년 전), 페름기 말(2억 2천5백만 년 전),
쥐라기 말(2억 1천만 년 전), 그리고 백악기 말(6천5백만 년 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고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생물 위기가 단순한 생물 흐름의 중단
이상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매 사건 때마다 생태 군집의 특성이 변했고,
더러는 그 변화가 아주 극적이었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퀴비에가 '새로운 창조의
물결에 의한 결과'로 설명한 내용이었다). 물론 이러한 변동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억 4천만 년에 걸친 공룡의 육상 지배를 종결지은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의 사건이었다.
바로 이어지는 신생대에서는 포유류가 공룡의 뒤를 이어 육지의 지배적인
척추동물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페름기의 대멸종은 약 8천만 년 동안 육상
생물을 지배했던 포유류형 파충류에 거의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들은 결코
회복되지 못했고 공룡이 이내 그들의 자리를 계승했다. 대량 멸종마다 똑같은
양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것은 육상과 해양 생물계에서의 자세한 변화까지
고려한 것은 아니다. 고생물학은 이제 그것을 탐구해야 한다. 멸종의 형태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생물의 역사를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전개되는 연극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막간이 되풀이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무대 위의 배역진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역에 가깝던 배우가 아예 사라지거나 별볼일 없는
역을 맡게 되고 무대 옆에 있던 배우가 이제 주역으로 무대 정면에 나서는가 하면,
때로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끝임없이 변화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식(역주: 동화의 내용 전개처럼 어처구니없음을 뜻함) 효과를 낳는다. 등장
인물의 기본적인 변동은 당연히 이야기 전개상의 기본적인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서의 호모 사피엔스는 백악기 말
마지막 대량 멸종의 격변에 영향을 받았던 배역진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최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문제는 '배역진의 변화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대량 멸종 사건에서 '살아남는 종과 굴복하는 종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알아볼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무엇이 그 위기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이다.
과연 대량 멸종의 원인은 무엇일까? 풍자가 윌 쿠피Cuppy는 적어도 공룡에
대해서만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한 바 있다. 1941 년 그는 자신의 저서
'멸종에 이르는 길 How to become Extinct'에서 "파충류의 시대는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고, 그것이 애당초 완전한 실수였기에 결국 종말을 맞이했다."고 썼다.
쿠피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대량 멸종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는 꽁무니를 빼왔다.
그후 수십 년 동안 대량 멸종 사건을 야기시킨 동인이 적잖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초신성의 폭발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둥 거의
신빙성이 없는 것도 있으나, 지구 기온의 하강, 해수면의 감소, 포식, 종 간의
경쟁과 같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가설도 있었다. 이들 각각의 가설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증들이 제시되었으며, 또 열렬한 지지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가설들은 데이비드 라우프가 말한 대로 과학적으로 좀 그럴듯하지
못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1991 년 자신의 저서 '멸종, 나쁜 유전자 때문인가 나쁜 운 때문인가?'에서
"예측 가능한 멸종 원인들이 단순히 개개인으로서의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여기에서 의인화의 낌새, 그 이상을 본다. 멸종이 일종의
소름끼치는(?) 매혹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만일 공룡처럼 수백만 년 동안이나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던 종이나 종 집단이 진화의 기억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 역시 그처럼 취약하게 무너지고
말 것인가? 사람들은 멸종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이처럼 으레 과학적인 관점과
감정적인 부분을 동시에 반영하곤 한다.
5 대 멸종의 각 기간 동안 우세했던 지구 환경을 비교한 결과 해수면의 감소, 즉
바다의 후퇴가 공통적인 요소로 지목되었다. 해수면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내려갈 수 있다. 예컨대 극 빙하의 확산이나 지각을 형성하는 움직이는 판 위에
얹힌 대륙의 형상 변화와 같은 이유들이 그것이다. 이들이 얕은 바다의 해양
생물에게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은 실로 극적이라 할 만큼 강력하다. 해수면이
내려감에 따라 대륙붕이 드러나게 되고, 그리하여 얕은 바다에서 사는 종이 이용할
수 있는 서식처는 현저히 줄어든다.
생물학자들은 이용 가능한 서식처와 종수 사이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한 원리이다. 즉, 이용 가능한 면적이 작을수록 존재할 수 있는 종의
수는 작아진다. 따라서 바다의 후퇴는 대량 멸종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됨직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량 멸종은 얕은 바다의 생물 뿐만 아니라 깊은 바다와
육지의 생물에도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영국 리즈대학의 고생물학자 폴
위그널Wignall이 페름기 말의 멸종에서 지적한 것처럼 해수면의 감소와 육지의
대량 멸종 사이에는 가능한 한도가 이미 정해져 있다.
페름기의 멸종 사건은 95% 이상의 해양 동물 종과 그만큼의 육지 생물을
절멸시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당시 작용한 요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
효과가 놀랄 만큼 확실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페름기의 종말은 세계의 모든 대륙이
'대륙 이동'을 통해 극에서 극으로 뻗은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Pangea'로 합쳐지던
시기와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이 사실만으로도 얕은 바다의 종이 이용할 수 있는
서식처는 현저히 감소되었다.
각 변의 길이가 1cm인 4개의 정사각형을 상상해 보라. 이때 각 변을 합친
총길이는 16cm이다. 이제 이들을 합쳐 한 변의 길이가 2cm인 정사각형 하나를
만들어보자. 그러면 전체 변의 길이는 단지 8cm로 이전 모양의 꼭 절반이 된다.
이와 똑같은 양상이 각 대륙과 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천해shallow-water
서식처에서도 일어난다. 따라서 수 년 전 스티븐 제이 굴드가 주장한 것처럼 이러한
메커니즘 하나만으로도 판게아의 형성은 이들 서식처에서 종을 파멸시켰음에
틀림없다.
또한 이것이 바다의 후퇴와 결합되면 가뜩이나 공격받기 쉬운 서식처의 종들
앞에는 치명적인 재앙만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 된다. 위그널은 대륙붕이 드러나
마르면서 침식되는 동안, 한때 깊은 해저 바닥에 있던 유기물의 산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유기물의 산화는 대기로부터 산소를 빨아들이고
탄소를 내놓았다. 그래서 당시의 대기 중 산소량이 오늘날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육상 동물, 특히 활동성이 강한 척추동물은 이러한 대기
변동에 대단히 취약했을 것이다.
페름기 말엽 해수면은 다시 한번 빠르게 상승했다. 이 과정은 육상 서식처를 감소
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소 불분명한 메커니즘에 의해 바닷물의 산소량까지
감소시켰다. 그 결과에 대해 위그널은 "페름기^36,36^트라이아스기 대량 멸종은
육상과 바다 생물 양쪽 모두에게 '질식사'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한 바 있다.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더글러스 어윈Erwin은 최대 규모로 번진 이 대량 멸종에
하나 이상의 원인이 작용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하나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진' 결과 해수면의
감소와 재상승, 초대룩의 배치, 이산화탄소^6,36^이것은 엄청난 용암이 시베리아에서
분출될 당시에 발생했다. 용암 분출의 규모는 바이칼 호 부근에 지름 1,400km의
화산암 지대를 형성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로 인해 야기된 기후의 불안정
등이다.
내가 굳이 이것을 설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원인들이 사실로 판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규모 종의 죽음을 이끌었던 사건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바다의 후퇴가 대량 멸종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결국 다음과
같은 논의로 마무리되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량 멸종은 해수면의 감소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바다의 후퇴가 언제나 대량 멸종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다른 요인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대규모 죽음을 몰고 온 두 번째 사자로는 지구 기후의 변동, 특히 '지구의
냉각화'를 들 수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스탠리Stanley는 "생물
역사에 위기를 야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후의 변동이다."라고 밝혔다.
스탠리는 북아메리카에서 천해 동물 사이의 종 멸종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기후 냉각'이 멸종의 주범임을 확인했다. 거기에 작용한 메커니즘은
단순하고 직접적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다와 육상 생물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스탠리는 "기후 변동은 아주 간단하게 대량 멸종의 일반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광범위한 기후 변화가 수많은 종을 비교적 쉽게 절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생물 종은 북극이든, 온대든, 열대 지방이든 어디에 살든
간에 그들의 지역 환경^6,36^이용 가능한 먹이원과 대체적인 기온 등을
포함한에 이미 적웅해 있다. 예컨대 서식처는 기온의 분포 범위로 결정되는데,
만약 지구가 식으면 서식처는 열대 지방 쪽을 향해 줄어든다. 지구 역사의 전지간에
걸쳐 지구의 기온은 충분히 그리고 바르게 변동해 왔다.
이러한 변동에 대한 종의 전형적인 대응 방식을 바로 '이주'이다. 기후 변동에
따라 추워지면 적도 쪽으로 이동하고 더워지면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지난 2 만 년
동안에 걸친 남북 아메리카의 숲 분포도는 이러한 결과를 놀라우리만큼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는 기후상으로 이제 막 빙하기를 벗어나 간빙기인 오늘날의
기후로 옮아간 무렵이었다. 초기 아마존의 삼림은 그저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고,
낙엽수림과 침엽수림은 북아메리카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옮아갔다.
그러다 빙하가 물러가자 아마존 레퓨지아(역주: 피난권. 살아가기 곤란한 시기에
생물이 집단적으로 피난했다고 추정되는 지역으로 화석 등이 많이 출토된다)의
삼림은 확장되어 한데 합쳐졌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참나무와 낙엽송이 침엽수의
뒤를 따라 북쪽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이주'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서식처가 통째로 옮겨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종은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나중에 다른 조성의 군집을 이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은 기후 변동에
따라 종이 이동할 필요성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때때로 기후 변동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광범위해서 종이 미처 대응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강과 산맥 같은 지리적 장벽이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차단시킬 수도 있다. 이 경우 종은 거의 정해진 수순에 따라 멸종된다.
대규모의 빙하가 지구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대량 멸종과 동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다라서 지구의 냉각화가
많은 생물 위기에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스탠리의 주장처럼 모든 위기의 주원인이었다고 볼 수도 없다.
바다의 후퇴와 지구 기온의 변동은 각각 멸종을 불러일으킨 근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서 근인은 맨틀이나 지각판 배치와 변동, 지구 궤도의 변화 등과 같은
궁극적인 원인의 결과일 수도 있다. 궁극적 원인과 근인, 이 두 가지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인간의 경험이나 최근 역사의 범주 내에 있다. 그래서 대량 멸종에 대해
적잖이 고민해 온 많은 고생물학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에는 균일론의 패러다임이 거의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1979 년 물리학자 1
명, 지질학자 1 명, 그리고 2 명의 화학자가 모여 '백악기 말의 대량 멸종을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생긴 결과'라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학계의
놀라움은 너무나 커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충돌시 상공으로
치솟은 먼지 입자가 지구를 사실상의 암흑 상태에 빠뜨렸고, 그것은 동물 종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식물을 죽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장기간 지속되었다."고
밝혔다. 나중에 굴드가 말한 것처럼 그 당시 고생물학자들의 반응이 '회의에서
조롱까지' 다양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수없이 언급됐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사회학적·과학적
관련 문제만을 선별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보기로 하자. 1970 년대 후반, 물리학자
루이스 알바레즈Alvarez가 이끄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분교의 과학자팀은
다양한 퇴적층에서 화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퇴적 속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아펜니노 산맥과 덴마크에서 작업하던 도중, 6천 5백만 년 전
백악기 말 대량 멸종을 나타내는 얇은 진흙층(역주: K-T 경계층을 말함)을
발견하고 이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소거에 무거운 불활성 금속인 이리듐이 비정상적이리만치 높은 밀도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리듐은 무겁기 때문에 암석의 상당 부분이 녹아 있던
지구 역사 초기에 내부로 가라앉았다. 따라서 지각과 대륙의 암석에서 이리듐은
극히 희귀하다. 그러나 운석 광물에서는 이리듐이 중요한 구성 성분 가운데
하나이다. 알바레즈와 그의 동료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해서 "백악기의 멸종 사건은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에 의해 일어났다."고 정확히 결론을 지어버렸다. 이 사건으로
고생물학자들이 아연 실색했음은 물론이다.
버클리 연구팀은 이리듐의 양을 측정하여 충돌한 소행성의 지름이 대략
11km였다고 계산했다. 이 정도 크기의 행성이 와서 부딪쳤다면 그 충돌로 인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수십억 배에 달할 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됐을 것이다.
그뿐인가. 충격을 받은 지구 표면에는 대략 지름 160km의 분화구가 생겼을 테고,
대기 중으로 내뿜어진 먼지는 태양을 가려 영구적인 밤을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처음에 알바레즈와 그의 동료들은 어둠이 몇 년 동안 지속되었으리라고
추정했으나 얼마 후 몇 개월로 정정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육상과 바다의 식물을 파멸시키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또한 먹이 사슬 구조상 근본적으로 식물에 의존하며 사는 동물들 역시 그 뒤를
따랐을 것이다. 1980 년 (사이언스)지 6월호에 실린 알바레즈의 발표는 소행성
충돌을 주제로 한 일련의 회의와 논문에 한바탕 돌풍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의
전개와 확장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라우프가 '하늘에서 떨어지 커다란
돌멩이는 일반 지질학자들에게 있어 거의 저주의 대상'이라고 그럴듯하게
표현했듯이 이와 관련된 논의는 한동안 잠잠할 날이 없었다.
라우프는 지질학자들에게 "자연적 사건에 대해 이런 식의 다급하고 부자연스런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분히 과학 초창기 신비주의로의 회귀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이런 발상은 피해야 한다고 배웠다."라고 말했다. 태양계에서 소행성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단지 달에다 쌍안경을 들이대기만 하면 된다.
달의 표면은 그 사실을 말해 주는 적나라한 증거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달이 폭격을 받았다면 지구 역시 그랬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육지에 소행성이
충돌했다는 증거는 상당히 불분명하다. 부분적인 이유겠지만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이기 때문에 분화구를 발견하기는 더욱 힘들고, 또 겨우 남아 있다 하더라도
해저면이 퍼져나가면서 결국 지구 내부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육지에 형성된 분화구도 이내 침식되기 시작하여 원래의 선명한 형태는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재 캐나다 퀘벡 주의 매니쿠건
분화구(지름 128km), 스웨덴의 실리얀 분화구(지름 64km), 구소련의 포피가이
분화구 등 12개 가량의 커다란 분화구가 남아 있다. 충돌이 멸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증거 항목들을
모아야만 한다.
첫째, 백악기 말 경계층이 드러난 퇴적물 어디에서든 높은 함량의 이리듐이
발견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사실로 판명되었고 지금까지 이러한 장소는 1백 군데도
넘게 조사된 바 있다.
둘째, 대규모 충돌에 대한 또 다른 단서가 명백히 남아 있어야만 한다. 예컨대
유리처럼 생긴 구립 형태의 증거물처럼 말이다. 그것은 엄청난 온도와 압력하의
암석 광물로부터 생성되었으며 지구 곳곳에 있는 71군데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셋째, 대충돌에 관련된 또 하나의 단서는 갑작스런 압력의 결과로 생긴 깨진 자국,
이른바 충격 수정 shocked quartz이다. 지금까지 충격 수정은 전세계 약
30군데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백악기^36,36^제3기 경계층에서 나온 단서가 소행성 충돌의 결정적인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대로 백악기 말의 충돌이 바다에서 일어났다면
쉽게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육지에서는 아이오와 주에 있는 맨슨 구조가
충돌의 증거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것이 시기적으로는 맞아떨어지지만 지름이
겨우 32km로 너무 작은 것이 흠이다. 한편 고생물학자와 지질학자들은 적당한
연령에 적당한 크기를 가진 몇몇 분화구를 밝혀냈다. 그 중 일부는 북아메리카에,
일부는 아시아에 있다.
알바레즈의 발표가 있은 지 꼭 10 년 뒤인 1990 년 6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북서쪽 끝에서 거대한 분화구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지질학계에 퍼졌다.
'칙수럽Chicxulub 분화구'라고 이름 붙여진 이 구조물은 그로부터 2년 뒤 가니스
커티스Curtis가 이끄는 버클리대 지질연대학자팀에 의해 연대 측정이 이루어졌다.
커티스는 1960 년대 초, 내 아버지인 루이스 리키와 협력하여 초기 인류 화석의
연대 측정 기술을 개척했던 분이다. 칙수럽 분화구 의 형성 연대는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의 멸종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작은 분화구들과 함께 소행성 혹은 소행성의
파편들이 지구에 쏟아졌음을 암시한다. (사이언스)지에 실린 칙수럽 분화구의 연대
측정에 관한 보고서는 이전에 충돌 이론을 믿지 않았던 일부 회의론자들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예컨대 같은 버클리대학의 윌리엄 클레멘스는 "우리는
확실히 분화구의 생성 비율을 과소 평가했다 충돌은 과거 6억 년 동안
환경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백악기 말의 충돌'이라는 견해는 받아들였지만, 이전의 많은
회의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만이 멸종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클레멘스는 같은 글에서 영국 버밍햄대학의 고생물학자 앤소니 핼럼Hallam의 말을
인용했다. "충돌 이야기를 인정하긴 하지만, 나는 그것이 기껏해야 최후의 일격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또한 대량 멸종은 바다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에 격렬히 반대했던 사람들이 이 거대한 충돌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일종의
진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격하게 지켜져온 '라이엘식 균일론'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지질학자들이 재앙을 지구 역사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인 것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큰 발전이었다. 그러나 논쟁이 시작된 초기부터
고생물학자와 지질학자 집단의 목소리는 서로 뒤질세라 드높기만 했다.
지질학자들은 이른바 충돌의 단서라고 일컬어지는 것 모두^6,36^높은 이리듐 함량,
구립, 충격 수정 등등는 대규모 화산 활동의 결과로도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산재는 종종 백악기 말 경계층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6천5백만 년 전 지구 속
깊은 내부로부터 현무암 용암이 엄청나게 흘러나온 예^6,36^일련의 거대한 계단을
이루는 인도의 데칸 트랩스 고원과 같은들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충돌과
대규모 화산 활동이 결합되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나오고 있다. 충돌시 나온
에너지가 녹아 있는 지구의 내부에 전달되어 지구 반대편에서 화산 활동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 관계의 고리는 칙수럽의 분화구와 데칸 트랩스의
화산 활동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이
백악기 말의 대량 죽음을 야기시켰거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그때의 충격은 단지 최후의 일격이었을 뿐'이라는 견해는 소행성이
부딪쳤을 당시에 이미 생물이 어느 정도 곤란에 처해 있었다는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 알바레즈와 그의 동료들이 내놓은 최초의 주장은 공룡과
암모나이트^6,36^이들은 육지와 바다에서 각각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당시 이미 심각한 정도로 몰락하고 있었다는 반대 주장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논란은 최근에 '화석 기록'이라는 인공 산물에 의해 일단락지어졌다.
공룡과 암모나이트는 충돌 당시 번성을 누리며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생물
집단, 특히 해양 생물 집단의 쇠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무렵
이미 바다의 후퇴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또
하나,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이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주요한 생물 위기가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을 포함한 여러 가지 해로운 영향들이 한데 결합된 결과라는
의견이다. 어쨌든 대량 멸종이란 확실히 복잡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은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이 백악기 말의 멸종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 그들은 삼키기에는 너무나 큰 알약까지 제공받았다. 1984 년
시카고대학의 지질학자 데이비드 라우프와 잭 세프코스키는 5 대 멸종을 비롯한
크고 작은 멸종 사건이 현생대에서 약 2천6백만 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20번
남짓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새로 축적된 해양 화석 종의 데이터 베이스에
기초를 두고 계산한 결과였다.
그들은 이러한 규칙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은 지구 바깥에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기적인 소행성과 혜성의 폭격이 분명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혜성은 한결 신빙성 있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앞서 알바레즈의 제안이 회의와 조롱, 비웃음을 받았다면 주기적인 폭격설의
결과가 어떠할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그들은 한마디로 전적인 불신을 받았다.
대규모의 재앙 외에는 달리 해답이 없다는 식의 반응이 차갑게 돌아왔다.
2천6백만 년마다^6,36^때로는 대규모로멸종이 일어났다는 라우프와
세프코스키의 주장은 이전 시대를 대상으로 멸종을 통계 분석함으로써 나온
것이었다(이 계산에 따르면 다음 번 대멸종은 약 13년 이내에 있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은 다소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기이다). 반대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폴란드의 고생물학자 앤소니 핼럼은 "그러한 양상은 지질 연대 척도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인공물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이들에게 맞섰다. 논쟁은 마치
탁구 시합과 같았다. 그들은 아무런 결론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말만 거듭하고
있다.
만약 라우프와 세프코스키 쪽이 옳다면 충돌의 증거와 흔적이 모든 주요한
멸종에서 함께 수반되어야만 한다. 예컨대 이리듐의 흔적은 지금까지 백악기 말을
포함한 20번의 멸종 사건 중 7가지 사례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멸종이
있었던 페름기 말에는 이러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6개의 분화구가
증거로 확보되어 있다. 이들은 주요 멸종기의 연대와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라우프와 세프코스키는 여전히 자신들의 통계 분석이 지닌 위력을 확신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옳다면, 현생대에 일어난 모든 멸종 가운데 60%가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 의해 일어났다는 결론이 나온다.(이 가운데 5%는 5대 멸종에서,
나머지는 훨씬 더 많은 소규모의 사건들에서 발견된다). 라우프는 층돌이라는 한
가지 요인만이 멸종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난 않았다. 그는 충돌을 일종의
'최초의 타격'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생물상을 약화시키며, 곧이어 일어날 수도
있는 다른 불리한 환경 작용에 견디지 못하도록 생물을 취약하게 만든다.
지구상의 생물이 주기적으로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로 습격을 받는다는 견해는
얼핏 듣기에 공상과학 소설의 허튼 소리쯤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미 항공우주국(나사NASA)은 보다 신중하게 그 '만약 '에 대처하고
있다. 그들은 운에 맡긴다는 식의 모험을 하지 않는다. 나사는 지구 기지의 망원경
시스템^6,36^날아오는 물체를 관찰할 수 있는과 우주 감시국^6,36^직격탄으로
전환, 발사할 수 있는 핵탄두 장착 미사일 등을 갖춘을 설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근 가까스로 빗나간 두 개의 소행성은 또 한 번의 대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소행성은 1989년 3월과 1991년 1월에 각각
스쳐갔으며 둘다 지름이 겨우 270m 정도로 매우 작았다. 하지만 이들은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만큼이나 가까이 스쳐갔다. 그리고 1994년 7월. 천문학자들은 약
21개의 혜성 파편이 목성의 표면으로 쏟아져 내려 행성의 두꺼운 대기층에 일련의
거대한 흠집을 내는 것을 목격했다. 그 중에는 크기가 지구만한 것도 있었다.
그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중거였다. 대충돌이 태양계에서 일어날 수도 있으며,
그리고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현재는 과거를
푸는 훌륭한 열쇠로 작용한다. 설령 다른 행성에서 목격된 '현재'일지라도.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은 대량 멸종의 원인이 충돌인지 화산인지를 놓고 논쟁을
계속할 것이다. 또한 나사는 웅장하긴 하지만 십중팔구 헛수고가 되어버릴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약 15 년 전 알바레즈 발표
이후의 경험들은 새로운 재앙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경험 범위를 넘어서는 힘, 외계에서 이따금씩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파괴적인 충돌이다. 이것은 20세기 지질학에서 두 번째로 중대한
혁명이었다. 덧붙여 첫 번째 혁명은 지각이 일련의 판으로 쪼개져 있으며, 장구한
세월에 갈친 지각판의 점진적인 운동이 대륙을 움직이게 한다는 인식이었음을
밝혀둔다.
5. 멸종, 나쁜 유전자 때문인가 나쁜 운 때문인가?
지구상 생물의 역사는 종종 '돌발적인 멸종'으로 중단되었다. 그것은 때로
온건하게 지나갔고, 때로는 파멸을 불러왔다. 여기에 대해서는 현재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이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든 다음과 같은 중대한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지구의 생물상은 이러한 멸종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가?
주요한 멸종major extinction의 에피소드들은 때때로 생물의 무대에 색다른
특징을 가진 배우들을 등장시킨다. 때로는 극적으로 진화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대체 무엇이 패자를 희생시키고 생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는가? 데이비드 라우프가
던진 간단명료한 질문처럼 패자에게 진화의 망각을 강요한 것은 나쁜 유전자인가,
아니면 나쁜 운인가?
무척이나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이 질문에 전혀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진화론이 무언의 가정을 이미 내리고 있었지 때문이다. 다윈은
종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그들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열등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종의 기원' 중 '생물의 지질학적 천이'(역주: 제 9장)에서 "세계 역사의 각
계승 기간, 예컨대 과도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서식 동물들은 생물 경쟁에서 그들의
조상을 물리쳤으며 그 한도 내에서 더 높은 자연 단계에 있다."고 썼다.
자연 선택의 핵심은 환경에 대한 종의 지속적이고도 안정된 적응이다. 경쟁자인
다른 종들도 환경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생물의 삶은 부단한 '생존 경쟁' 그
자체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의 또 다른 부분에서 잘 알려진 '쐐기의 은유'를 통해
이러한 생존 경쟁을 묘사한 바 있다. "자연의 얼굴은 1만여 개의 쐐기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유연한 표면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위를 쉴새없이 내리치고 두들기면
쐐기가 안으로 박혀 들어간다. 그런데 하나의 쐐기를 내리치면 때때로 더 큰 힘을
가진 다른 것이 나타난다." 즉 하나의 쐐기를 더 깊이 박으면 다른 하나, 또는 여러
개가 한꺼번에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자연은 생물 종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궁극적으로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종과 연결되어 있다. 종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최근 이 주제에
관하여 폭넓은 글을 쓴 스티븐 제이 굴드는 "쐐기의 은유는 생명의 질서에 관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점의 기초이자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생물은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것도 영원히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생명은 꾸준히 위를 향해 나아간다. 예측 가능한 개체들의 투쟁으로
생물이 복잡성과 다양성이 증가된 형태로 점점 바뀌어감으로써 자연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생물학적 향상을 향한 비정한 진보에서 승자는 번성하고 패자는 절멸의 길로
접어든다.멸종이 어떤 한 종의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는 아주 명백한 사실로
보였다. 그래서 검증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거의 고려조차 되자 않았다. 그래서
경쟁이 진화의 원동력으로서, 또 승자와 패자 사이를 구별짓는 기준으로서
받아들여졌던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것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생물 게임의
배우들은 각자 행동을 강화시키거나 구조를 진화시킴으로써 경쟁자들을 능가하려
애쓴다. 그러면 상대는 그에 따른 대응책을 진화시킴으로써 이에 응수한다(역주:
이는 흔히 서로 다른 2종이 대립적 경쟁을 벌이는 '진화의 군비 확장 경쟁'으로
비유된다). 그 결과, 종은 시대의 흐름을 통해 어느 정도 향상되어 가면서 변화한다.
그러나 그들의 상대자를 완전히 제압할 만큼 충분히 앞서나가지는 못한다.
시카고대학의 고생물학자 레이 판 발렌은 이러한 효과를 '레드 퀸 가설'이라고
불렀다. 단지 같은 장소에 머물기 위해 쉬지 않고 계속 달려야만 하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역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의 등장 인물 이름을 딴 것이다. 어떤
종이 달리기를 포기한다면 자연히 뒤처지게 되고, 그러면 이내 자연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운명은 나쁜 유전자 범주, 즉 유전자의 결함이 멸종의 원인이 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최근 생물학자들은 지역 개체군의 상호 작용과 진화 단계에서의 패권 경쟁이라는
가정에 슬슬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경쟁은 더 이상 예전처럼 강력한
힘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경쟁의 헤게모니가 손상된 예는 굴드와 그의 동료 C.
브래드 캘러웨이Calloway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연구 주제는 진화의
뿌리가 생물 역사 깊숙이까지 뻗어 있는 완족류와 대합조개와의 관계였다. 오늘날
대합조개는 바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완족류는 별반 중요한 부류에
끼지 못한다.
수백만 년 전에는 그 반대였다. 대합조개가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지위가
격상되어 마침내 우세한 종으로 변한 것이다. 굴드는 이러한 전환이 '쐐기'의
고전적인 예로 흔히 인용되어 왔다고 말했다. 한편 굴드와 캘러웨이는 화석 기록을
상세히 연구하다가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밝혀냈다. 즉, 대합이 번생했을 당시에
완족류 역시 번성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제히 나쁜 시기를 거쳤다. 오랫동안
가상되어 온 '점차적인 대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위의 전환은 단순히 사상 최대의
떼죽음^6,36^페름기의 멸종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의 결과였다.
대합은 실제로 그 재앙에 영향을 받지 않은 반면, 완족류는 심하게 해를 입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합은 이 단 한 번의 지질학적 손간에 완족류를 따라잡았고, 이후
자신들의 새로운 지위를 결코 내놓지 않았다. 즉 페름기의 와해를 성공적으로 거친
후 현재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위를
전환시킨 요인이 유전자인지 운인지는 바로 드러나지 않았다.
나쁜 운의 분명한 예는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냥감이었던
히스헨(역주: 지금은 멸종한 북미산 멧닭의 일종)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래
히스헨은 메인 주에서 버지니아 주까지 널리 분포했으나 1908 년에 이르러
집중적인 사냥과 인구의 팽창으로 서식처를 잃음으로써 겨우 50 마리로 줄어들었다.
그후 히스헨은 매사추세츠 주 해안에서 먼 바다를 넘어 마사스 바인야드 섬에
격리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식탁에 놓일 사냥감으로 각광받았다는 자체는 분명히
히스헨의 운이 나빴기 때문이지만 그것이 지금 말하고 싶은 요점은 아니다.
사람들은 소수의 남아 있는 새를 보호하고 개체군을 부양하기 위해 약 1천6백
에이커의 피난처를 마련했다. 이후 1915 년까지 계획은 차근차근 잘 추진되어 2천
마리의 새가 이 보금자리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재앙이 닥쳐왔다. 아니,
'재앙의 연속'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화재, 엄동설한, 동종 번식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 가금류의 질병이 히스헨 개체군의 수를 감소시켰다. 그러하여
1927년에는 고작 11마리의 히스헨 수컷과 2마리의 암컷만이 남았다. 1932년 3월
11일을 마지막으로 히스헨은 영원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 개체군은 나쁜 유전자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나쁜 운에 지고 만 것이다.
히스헨 종은 수천여 평방미터에 달했던 원래의 서식 범위 내에서는 멸종에 면역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작은 개체군으로 감소되면서 종 자체가
변덕스러운 환경에 취약해진 것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일련의 예들이 진화생물학의
영역에서 '경쟁'이라는 요일을 잊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예들은
생물학자들이 생물 역사의 다른 요인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경쟁은 자연 선택의 한 구성 요소로서 진화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은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서 가장 훌륭한 예는 포식자와 먹이 사이의 상호
작용이다. 예컨대 게의 집게발이 강해지면 연체동물을 포함한 게의 먹이들도
껍데기를 한층 두껍게 강화시켜 이에 대항한다. 곤충과 그들이 즐겨 먹는 잎 사이에
벌어지는 화학전, 갈아대는 힘이 더 강해진 방목 동물의 이빨과 식물의 방어
기작(풀이 개발한 실리카 결정 함유물과 같은) 등 이와 같은 예는 흔히 찾아낼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들이 끊임없는 생존 경쟁을 벌인다. 나아가 그것이 땅
속의 영양분이든 혹은 살아 있는 고기이든 간에 같은 자원(먹이)을 얻기 위해서
비슷한 종끼리도 부단히 서로 경쟁한다.
쐐기의 비유는 모든 가능한 니치(생태적 지위)가 채워져 있는 정도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고 있다. 의문스러운 것을 어떻게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멸종의
양식에 포함될까 하는 것이다. 멸종 양식에는 두 단계, 즉 종이 서서히 사라지는
'배경 멸종기background extinction'와 중대한 생물상의 위기가 포함된 '빠른
속도의 멸종기high rates of extinction'가 있다.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배경
멸종기에 우세한 힘을 발휘했던 요인이 자연 선택^6,36^이 경우 경쟁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빠른 속도의 멸종기에 일어난 폭발이란 무엇인가? 배경 멸종기들 사이에는 어떤
양적인 차이가 있는가? 해수면의 후퇴, 기후 냉각, 소행성이나 혜성 충돌 등의
악조건은 생물간 경쟁을 실제로 더욱 부추기는가? 대량 멸종은 단순히 대대적인
배경 멸종에 불과한가? 대량 멸종을 비롯한 대부분의 멸종은 주로 나쁜 유전자에서
연유된 결과인가? 최근까지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하게 '그렇다'였을
것이다.
20여 년 전 어느 겨울, 주말 저녁. 매사추세츠 주의 우즈홀 해양연구소에
데이비드 라우프, 스티븐 제이 굴드, 그리고 몇 명의 동료들이 모였다. 그들은
멸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라우프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현장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지질학자였다. 그는 멸종 패턴이 단순히
확률론적인 과정인지, 다시 말해 우연의 결과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통계 실험을
하자고 제안했다.
사람의 눈은 우연의 효과를 추적하는 데 다소 부적합하다. 심지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 패턴에서 중요한 의미를 이끌어내는 경향이 다분하다.
라우프와 굴드는 잭 세프코스키, 토머스 J. 스콥프, 다니엘 심버로프와 공동으로
일련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임의적인 우연에 의해서만 개별 종의 생존이
결정된다면, 생태 군집의 인공적인 세계(실제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가
과연 배경 멸종과 대량 멸종의 패턴을 나타낼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임의성'만으로는 현생대(역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이루어짐)의 생물 역사를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며 그 속에 어떤 선택적인 힘이
작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그들은 화석 기록에서
발견되는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그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패턴을 발견했다.
그것은 '온건한 멸종moderate extinction'으로서 많은 종이 동시에 멸종한 '우연'에
의해 일어났다.
그러나 백악기 말이나 페름기 말의 대규모 멸종이 우연히 일어나려면 실로 엄청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동전을 잘못 짚었네' 하는 식의 나쁜 운이 대량 멸종
사건에서 한 종을 소멸로 이끈 유일한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라우프와 동료들의 실험을 통해 '나쁜 유전자bad genes'가 생물 양식을 유일하게
설명하는 말은 아니라는 인식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선택과 나쁜 운이라는 요인이
조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9년 운석의 충돌과 대량 멸종을 연관시킨 알바레즈Alvarez 제안이
발표되었다. 이에 영감을 받은 시카고대학의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야블론스키는
이러한 선택(도태)의 본질을 밝히려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배경 멸종과
대량 멸종의 양식을 비교한 것이다. 그는 배경 멸종 시기 동안 여러 요인이
협력하여 멸종의 위기로부터 종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 화석 해양 생물 종을 대상으로 삼긴 했지만 똑같은 원칙이 육상 생물 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리적으로 널리 분포한 종은 평상시에는 멸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사람들의 마구잡이 사냥으로 그 수가 격감된 후 격리 보호된 소수의 히스헨
개체군이 '우연한 사건'에 너무나 쉽게 공격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약
히스헨이 이전에 살던 넓은 범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화재나 혹한, 일시적인
발병 등으로 일부 지역의 개체군이 죽었을지는 모르나 종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일리있는 얘기다.
둘째, 해양 생물 종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멸종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이들은
애벌레를 해류가 흐르는 대로 멀리멀리 넓은 데로 내보낸다. 생물학자들이
클레이드clade(역주: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모든 종들의 생물군)라고 부르는
관련 종들의 무리는 그 안에 많은 종을 포함하면 할수록 멸종 위기에 잘 견딘다.
따라서 만약 몇몇 종이 우연히 소멸한다면 20종을 포함하고 있는 클레이드보다 단
3종으로 된 클레이드의 생존 가능성이 훨씬 더 적을 것이다.
야블론스키는 백악기 말의 멸종을 거친 연체동물 종과 종 클레이드의 운명을
조사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이들과 기존의 상황이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발견했던 어떤 법칙도 적용되지 않았다. 단 하나, 그가
알 수 있었던 유일한 법칙은 관련 종의 집다, 즉 '클레이드'에 적용되었다. 여기서
다시 지리적 분포가 큰 역할을 수행했다. 예컨대 종의 집단이 넓은 지역에 걸친
지리적 분포를 나타냈다면, 클레이드를 이루는 종의 수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들은 지리적으로 한정된 종 집단보다 생물군의 위기 상황에서 훨씬 더 잘
살아남았다.
야블론스키는 "대량 멸종 시기 동안에는 적응력이나 적합성보다 특정 군집의
구성원, 지역 혹은 분포 범위가 더 중요하다."고 썼다. 이것은 최초로 배경 멸종과
대량 멸종 사이의 법칙들이 바뀌었음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생물상의 위기는 단순히 배경 멸종이 심한 경우만은 아닌 것이다. 생물 역사에서
번성했던 수많은 종, 그리고 종 집단이 대량 멸종에 의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위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공룡과 암모나이트는 수백만 년 이상 번창했으며 백악기 말의 멸종에서 그들이
사라져갈 무렵까지 그 종류 또한 전례없이 다양했다. 포유류가 공룡보다 어떤
면에서 더 잘 적응했다는 증거는 없다. 한편 바다에서는 우세한 현존 생물이
전멸함으로써 모래톱의 군집이 주기적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주요한 멸종
위기를 가져온 4번의 사건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일치했다. 각각의 재앙이 끝난 후
때로는 석회질 바닷말이 주위를 뒤덮었고 때로는 이끼 벌레가 번창했다.
어떤 때는 연체동물이 우위를 점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산호가 모래톱의
우세한 종으로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산호초는 단지 그
적응대의 일시적인 거주자일 뿐,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다른 종에 비래 절대적으로
우세하지 않았다. 캄브리아기 대번성에 뒤이어 문의 수가 크게 감소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대량 멸종으로 비롯된 중대한 동물상의 변화에서 승자가 적응상 우위에
있었다고 평가되는 예는 일찍이 없다.
물론 우리는 너무나 멀리서 판단하고 있으며 적응의 우위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 하더라도 그 요소는 너무나 미묘해서
우리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이다. 라우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멸한 사실을
빼고는 희생자가 승자보다 열등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간단한 적응 우위성^6,36^일반적인 다윈주의의 상식에서이
주요한 생물상 위기의 한 요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 선택은 지역 상황과 연관된 개체 수준^6,36^경쟁자와 우세한 물리적 환경에
의한 영향에서라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즉각적인 생물의 체험에
대한 강력한 반응이다. 그러나 미래의 사건을 예견할 수는 없으며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을 예측할 수도 없다.
만일 어떤 동물 종의 평균 수명이 4백만 년(이것은 화석 기록을 남길 만큼 성공한
종에 기초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대 평가되었을 것이다)이라면, 그리고
평균 2천6백만 년마다 한 번씩 돌발적인 멸종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종은 결코
그러한 위기 상황을 겪지 않을 것이다. 5대 멸종과 같은 대량 절멸을 더 드물게
일어나므로 자연 선택의 상황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라우프는
"성공적으로 번성했던 종을 멸종으로 이끄는 그럴듯한 원인은 자연 선택이 작용할
수 있을 만큼 짧은 기간에는 경험되지 않는 압력들로부터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결과이다. 굴드는 "만일 (동인에 의한) 대량
멸종이 완전히 생물의 예견력을 벗어난다면 생물의 역사 또한 듯한 바
그대로의 상태로 만들 수 없는 임의성^6,36^우리가 항상 생각했던 것
그대로을 가지거나, 평상시 예측 가능한 경쟁을 통제하는 법칙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새로운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대량
멸종의 결과는 특히 이때 사용된 측정 기준이 '적응의 질'이라면 어느 정도
무작위적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장 첫머리에서 대량 멸종의 결과는 생물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특성을 재형성하는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대량 멸종을 이끈 원인이 나쁜
유전자인지 나쁜 운인지를 물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제 그 답이 나쁜
유전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다시 백악기 말의 멸종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모든 생물 영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멸종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육상의 네발 짐승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버클리대학의 윌리엄 클레멘스는
이들 네발 짐승의 이름과 그들의 운명을 목록으로 작성했다. 거기에는 177속의 화석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가 포함되었다. 이 가운데 50속은 백악기 말의 생물
위기에서 사라졌으며, 이 중에서 22속은 공룡이었다.
이 위기는 공룡을 멸종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22속 가운데 단 1속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반 포유류는 단지 1속만이 사라졌다. 반면에 흔히 더
원시적이라고 여겨지는 유대류는 전체 속의 4분의 3가량을 잃었다. 언뜻 보기에
태반 포유류는 무언가 적응을 잘해 왔고 공룡과 유대류는 무언가 적응을 잘못해 온
것처럼 보인다. 약 1억 4천만 년 동안 공룡의 생활 방식이 지구를 지배했다(그 어느
때라도 약 50속의 공룡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알을 낳는 방법으로 생식하는
공룡도 있었다.
백악기 말의 멸종 이후 태반 포유류가 한층 더 우세해졌다. 이제 네발 3짐승의
세계에서는 새끼의 체내 발생이 가장 흔한 생식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짧은 기간
동안의 체내 발생에 이러 주머니 속에서의 반체내 발생을 거치는 유대류의 생식
방법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숫적인 면에서 드물었다. 다윈설의 '점진적
향상'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보면 태반 생식이 양막류의 알이나 유대류의 주머니보다
우월하다는 추론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멸종 위기 속에서 태반 포유류는
살아남았는데 공룡은 왜 그러지 못했는지, 그리고 유대류는 왜 그렇게 심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묻는다면 그 답은 자못 달라진다.
제한된 지리적 분포 때문에 공룡이 희생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룡은 몸집이 컸고 '커다란
몸집'과 '멸종되기 쉬운 정도' 사이에는 얼마간의 상관 관계가 있다. 그것은 작은
개체군, 넓은 서식 범위, 느린 번식율 등과 같은 인구통계학적 요인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타난 결과에는 개별적인 종의 적응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른 요인들도 분명히 포함되었을 것이다. 유대류의 경우는
어떤가? 클레멘스는 "그들의 운명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메리카에서의 지리적
격리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열등한 적응'이 아닌 '지리적 분포'가
작용했던 것이다.
대략 1백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포유류는 공룡과 함께 존재했다. 당시 포유류의
대부분은 몸집이 작고, 밤에 활동하며, 나무 위에서 살았다. 백악기 말의 멸종 이후
그들이 우세해진 이유는 분명히 좋은 유전자만큼이나 좋은 운 덕분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모든 생물 부문에서, 그리고 지난 6억 년 동안 이어진 지구 역사의 여러
기점에서 다른 여러 생물 집단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행해져 왔으며, 수많은 생물의
흐름을 인식하는 데 있어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틀을 제공한다. 대량 멸종은
한때 그러한 흐름의 단순한 중단으로 여겨졌다.
그렇기는 하다. 생물상의 본질은 때때로 계속되어 온 이 사건들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경쟁의 나사를 단단히 죈 결과로 간주되었다. 이제 전혀 다른 법칙이
멸종 기간 동안 적용된다는 것이 한층 분명해졌다. 다윈론의 경쟁을 잠시 떼어놓고
미처 준비되지 않은 종에게 힘을 가할 수는 없다. 대량 멸종은 단순히 진화의
시계를 다시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계의 모습 자체를 바꾼다. 그리고
새로운 생물의 양식을 창조한다. 데이비드 야블론스키는 "생물 역사의 대규모 진화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배경 체제와 멸종 체제의 변경이다."라고 주장했다.
배경 멸종 기간 동안에는 다윈론의 자연 선택이 작용하여 새로운 진화의 모습을
창조한다. 그리고 생물과 환경 사이의 '적자'를 창출한다. 이 체제에서는 '유전자'와
'운', 둘다 일정한 역할을 한다. 아마도 멸종이라는 측면에서는 나쁜 유전자가 나쁜
운보다 더 우세할 것이다. 그러나 대량 멸종 기간 동안에는 다윈론의 법칙들은
일시에 중지되고, 종은 그들의 적응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 때문에
살아남거나 무릎을 꿇는다. 여기서 나쁜 운은 종을 진화적 망각으로 떠넘기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대량 멸종은 급격히 감소한 생물 다양성의 세계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예측할 수
없는 생존자들로 생물권을 다시 재건한다. 적어도 15%에서 많게는 95%에 이르는
종이 사라짐으로써 생태적 지위는 비워지거나 혹은 예전보다 훨씬 덜 붐비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몇몇 행운아들에게 진화의 기회로 제공된다. 앞에서 나는 현생대의
생물 다양성 형태를 캄브리아 대번성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상승
추세^6,36^주요한 붕괴로 인해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로 묘사한 바 있다. 곧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 단순화시킨 모델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적어도 고생물학에서는 상당히 새로운 제안이었다. 1970 년대에
현생대의 패턴은 격렬한 논쟁과 토론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였다. 예컨대
버클리대학의 제임스 발렌타인은 '화석 기록의 지식에 기초하고 있는 현생대의
패턴은 동물 종의 다양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그것이 가속화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라우프는 이와 반대로 기록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생물 다양성이 초기에
최고로 올라갔다가 차차 감소하는 패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버지니아 주
고등기술연구소의 리처드 뱀바크가 제안한 절충안은 다시 화석 기록의 지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같은 기록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칫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항상 강조하듯이 기록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그것을 간단히
이해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수많은 가정이 만들어져야 하고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록이 퇴보한다는 것을 참작해야 한다. 어쨌든 이러한 의견
차이는 이후 잭 세프코스키와 그의 동료 3명이 모여 이들의 서로 다른 접근법을
분류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1981 년 10월, 이들 4명의 연구자가 공동으로 학계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논문에서 현생대 기간 동안 대체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다양성이 단계별로
증가했음을 설명하였다. 이는 어떤 변에서 뱀바크Bambach가 제안했던 중간적인
입장과 비슷했다. 이러한 주장은 여느 때처럼 주로 해양 화석 기록을 분석한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시기'적인 측면은 아닐지라도 '패턴'이라는 측면에서 육상의
척추동물과 식물 사이에 뭔가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대량 멸종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이들 멸종 사건의 반동으로 생물상이 회복되는
데 걸리는 기간 역시 서로 상당히 다르다. 백악기 종말 이후의 수천 년에서부터
페름기 멸종 이후의 수백만 년에 이르기까지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 여기에는 많은
요일들이 존재하는데, 그 종 하나는 멸종 위기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는 동물의
본성이다. 이는 세프코스키가 지속적으로 상세히 연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현생대의 전기간에 걸쳐 생물 다양성의 국면에 크게 3가지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첫 번째는 벤디아^36,36^캄브리아 단계로 선캄브리아 말기와 캄브리아기 폭발 그
자체, 그리고 캄브리아 후반의 안정기를 모두 포함한다. 두 번째는 오르도비스기의
방산이 시작된 고생대 후기 단계이다. 이 기간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물
다양성이 증가하여 바다의 동물속과 과의 수효가 3배 이상 늘어났다. 이후 약 2억
년 동안은 외견상의 평형이 지속되었으나 가끔 여기저기에서 서로 다른 규모의
다양성 붕괴가 일어나 생물 흐름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마지막 단계는 중생대^36,36^신생대이다. 여기서는 페름기 말 대량 멸종 이후
다시 생물 다양성이 회복되어 현세로 계속 이어지는 팽창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계단식 형태는 전체 종 군집 내에서의 합의된 다양화, 즉 평형 상태에서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은 단절된 집단, 즉 세프코스키가 말하는 진화적 동물상 내에서의
평형 상태를 의미한다. 벤디아^36,36^캄브리아 단계는 삼엽충, 연체동물, 극피동물
등 이른바 캄브리아 동물상에 의해 이끌어졌다. 이들 종은 처음에는 빠르게
확장되었으나 그 다음 간계가 시작되면서 점차 사라져 결국 한직으로 밀려났다.
대표적인 예로 삼엽충은 페름기 말의 멸종에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고생대
후기 단계는 완족류, 산호, 이끼벌레류, 두족류 등의 고생대 동물상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 생물들이 고생대 후기 단계에 생물 다양성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캄브리아기에 이미 존재하는 등 훨씬
더 이전에 생물 무대에 등장한 종들이다. 어쨌든 캄브리아 말기에 일어난 멸종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다.
중생대^36,36^신생대 단계는 쌍각조개와 복족류 같은 연체동물, 갑각류, 성게,
어류 등 세프코스키가 현대 동물상이라고 불렀던 생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집단들의 대부분 역시 고생대 초기에 진화해서 그동안 계속 눈에 띄지 않는
역할만을 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페름기 말의 엄청난 멸종에서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 개체수와 다양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결국 우리가 오늘날
바다에서 보는 생물들을 이끌어냈다.
'다양성 회복'이라는 역학 구조는 대단히 복잡하다. 또한 생태 군집 내에서의 종수
증가, 다른 수많은 군집 종류의 기원, 그리고 분화된 군집의 발달이 이 속에
포함된다. 이 모든 작용들은 오직 한정된 서식처에서만 일어나며 초기 회복
단계에서는 종의 전환점이 공통 요소로 작용한다. 개별 종의 일생은 일시적으로
평균보다 짧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진화의 불안정성, 즉 상당 부분 열려 있는 생태
공간에서 자유롭게 풀어놓는 진화 실험의 결과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회복의 초기 단계에서 생겨난 훨씬 더 많은 '진화의 참신성evolutionary
novelties'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새로 생겨난 참신성의 정도는 결코
캄브리아 폭발의 규모와 맞먹지는 못했다. 지독한 다양성 붕괴에 뒤이은 진화적
회복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빈 자리가 늘어난 생태계는 새로운
종의 침입을 이끌게 마련이다. 그러나 다양성의 증가, 특히, 마지막 단계인
신생대에서의 증가 추세에는 다른 설명이 분명히 있어야만 한다.
세프코스키의 관점은 그것이 동물상의 구성과 그들의 기본적인 생태 전략에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발렌타인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다양성의 증가를
대륙의 지형과 관련짓는다. 캄브리아기 동물상의 종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태적
일반가ecological generalists들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이 단계에서 시종일관
낮은 다양성을 유지한다. 제한된 생태적 요구를 갖는 전문가specialists들에 비해
일반가들은 광범위한 환경에서 잘 견뎌낸다. 전문가 종은 작은 서식처를 각각
차지하기 때문에 풍부하고, 일반가 종은 각 종들이 훨씬 넓은 영역에 걸쳐 분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숫자가 매우 적다.
세프코스키는 "2억 년간 다양성이 정체된 것은 어쩌면 지구의 생태계가 일종의
평형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태
공간이 꽉 찼다는 것이다. 현대의 동물상에서는 포식이 집단 역학의 매우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되어 있다. 생태학자들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그리고 실험 관찰을
통해 포식의 다양성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이는 주로 포식자들이
어떤 한 종이나 몇몇 종이 생태계에서 우세해지는 현상을 막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신생대 기간에 일어난 현저한 생물 다양성 증가의 기초를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세프코스키는 여기에 대해 "따라서 바다의 생물 다양성 수준은 드라마 속의
연기보다 배우들의 특색이 더 많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라고 비유한 바
있다. 한편 발렌타인은 종의 습성이 아닌 '서식처'에 주목했다. 지난 2억 년 동안
초대륙 판게아Pangea는 지각판의 이동에 영향을 받아 서서히 쪼개져 나갔다.
그리고 대륙은 지난 1억 년 동안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육지 덩어리의 수는 증가했고, 결국 극에서 극으로 배열되었다. 이러한
지형 배치는 바다와 육지 양쪽 모두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서식처의 수를
극대화시켰다.
어떤 메커니즘^6,36^아마 둘다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이 작용했든 간에
어쨌든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생물 다양성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진화하였다.
지난 2억 년간 대형 육상 포유류의 멸종^6,36^아마도 빙하기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이 물결처럼 이어져 그 다양성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우리는 5억 년에 걸친 생물 흐름의 산물이자, 여기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백만 종의 생물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는 파멸적이기 그지없는 5대 멸종을 비롯, 적어도 20차례에 이르는
생물상 위기를 무사히 넘긴 운좋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진화의 원동력)
진화는 5억 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캄브리아
대번성기에 확립된 기본 주제로부터 수많은 변종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
시간은 실로 비길 데 없는 진화 혁명의 시기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실상 지구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던 시점에 출현했다. 우리는 생물 진화의 흐름을 통틀어 최고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우리들 호모 사피엔스는 지각을 갖춘 종인 만큼 지구 다양성의 형태와 정도,
그리고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위는 실제로 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이기심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분명히 책임도 지니고 있다.
6.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진화의 정점인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얼핏 자명해 보인다. 물론 우리는 진화의 정점에 있는
존재이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 마지막장 서두에서 "자연 선택은 오로지 각
생물의 이익에 따라 작용한다. 따라서 모든 육체적, 정신적 재능은 완전한 상태를
향해 점점 진보하는 경향을 띨 것이다."라고 밝혔다.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은 약 15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남극의 혹독하고 거친 벌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대륙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극에도 한 걸음씩 발판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 잘 적응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우리의 육체적 재능을
입증해 주고 있다. 자연계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적 재능을 당할 자가 없다는
주장에도 의심의 여지란 없다. 우리는 지적 분석력과 예술적 창조성을 갖추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윤리 법칙도 창안해냈다. 우리 종이 비록 완전무결한 상태는
아니라 해도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이 점점 높이 최고점을 향해 발전해 나갔다는
사실은 적어도 확실하다. 우리는 진화의 정점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이 문제로 적잖이 고심해 왔다.
그리고 그 해답 역시 결코 간단하지 많다. 우리는 스스로 인간이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여긴다.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정의상으로는 각각의 종들
역시 유일하다. 따라서 유일하다는 것은 별다른 이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백만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내심 우리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여타 생물 종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탁월한 구어 능력과 내적 의식을 가졌고 머리 속에 있는 우리의
세상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종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어쨌든 이를 근거로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무리의 맨꼭대기에
올려놓는다. 19세기 중반 다윈을 시초로 진화 사실일 밝혀지기 전만 해도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신의 특별한 창조에 의해 정상에 우뚝 놓여졌다고 생각했다.
다윈설에 따르면 우리는 종 특성의 자연 선택을 통해 우세를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적인 근거가 바뀌었을 뿐 결과는 역시 똑같았다.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자연 세계의 정점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두 가지 가정을 포함한다. 그 중 하나는 내재적이며 다른 하나는
외재적이다. 내재적인 가정을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가 생물 진화의 흐름상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는 것이다. 외재적인 가정은 종으로서의 우리의 가치와 특성이 어쨌건
간에 상관없이 다른 자연 세계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가 참으로 월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진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물은 보다 복잡하고 진보된 모습으로
변모한다. 앞서 다윈이 말한 대로 생물은 자연 선택에 의해 '완전을 향해
진보'하려는 경향을 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애초에 진보의 화살이 겨냥한 바,
완전의 발현 그 끝에 있는 셈이다.
나는 일단 이 문제의 3가지 측면을 조사할 것이다. 첫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오늘날의 인류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학자들의 노력을 다룰 것이다.
그들은 자연 세계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적절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애서
왔다. 두 번째 측면은 일련의 생물 흐름에서 우리 종이 과연 필연성을 갖추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만일 생물의 역사가 근본적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흐른다면, 과연 호모 사피엔스가 생물의 거대한 다양성 속에서 또 다시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진화의 전시간을 통하여 자연 세계가 정말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변모해 왔는가를 물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자연 선택의 작용에서 실제로
진보의 화살이란 존재하는가?
자연계에서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인간의 관점'은 학문적인 정황의 변화를
꾸준히 반영하면서 몇 세기에 걸쳐 변화해 왔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이르러서야
인류학자들이 인류의 기원을 마치 굴이나 고양이, 원숭이의 기원을 다루듯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우리의 생물학적 인척들 사이의 경계를
유지하려는 열망은 지금까지도 여실히 드러난다. 예컨대 인류의 선사 시대에 관한
일부 학자들^6,36^여러 분이나 나와 같은의 이론, 특히 현대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문제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18세기와 19세기 초 학자들은 자연의 질서를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뿌리를
이루었던 '존재의 대사슬the Great Chain of Being' 형태로 보았다. 하버드대학의
과학사학자인 아서 러브조이는 이를 일컬어 '신성한 말sacred phrase'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개념을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1936 년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6,36^19세기 후반 '진화'는 지극히 축복받은 말이었다라는
말과 부분적인 동의어처럼 쓰였다. 가장 단순한 생물 형태인 세균으로부터 가장
복잡한 형태인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의 질서정연한 조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존재의 사슬'은 마치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그림처럼 인식되어 왔다. 또한 이
개념은 창조 이후로 계속 존재해 왔고, 또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으로 기대되었다.
만일 존재의 대사슬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완전성, 그리고 자연 질서에 관한 후세
학자들의 기대를 전적으로 반영하려면 그것은 절대로 끊어져서는 안된다. 자연
세계의 점진적인 분포에는 그 어떤 단절도 없어야 했다. 그러나 크고 분명한
틈이 있었다. 즉 광물과 식물 사이, 식물과 동물 사이, 그리고 당혹스럽게도
원숭이와 사람 사이에 이러한 틈이 있었다. 이 이론이 미친 영향력은 컸다.
1736 년^36,36^1758 년에 카를 린네는 그의 저서 '자연의 체계'를 통해 동물학적
분류의 기초를 세우면서 원시적인 인간형, 즉 혈거인의 존재를 설정하여 인간과
원숭이의 간격을 채웠다. 혈거인은 숲에서 살며, 밤에만 활동해야 했고,
쉿소리(치찰음)로만 의사소통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 시대의 탐험가들은 이처럼
'생동하는 반원숭이 ^456,34^ 반인간인 어떤 생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아프리카로부터 돌아왔다. 그들은 당시 유행했던 이론에 따라 보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을 '본'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세계 질서의 근원을 보는 방식은 달라졌다. 질서는
창조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의 결과 혹은 다윈의 말처럼 '계통의 변형'이었다. 모든
생물은 진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연결된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인간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의 세계관은 진화 이전의 입장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최종 한물을 나타내며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다른 나머지 자연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리적 분포^6,36^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서부터 유럽인들에 이르는에 따라
인종적 우월감도 단계적으로 증가했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Wallace(1823--1913)는 자연 선택론의 공동 창시자이다.
그는 진화가 '생물 형태와 사람이 수백만 년 동안 서서히 발달하면서 축적된
미'에 작용해 왔다고 믿었다. 스코틀랜드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브룸은 1940
연대^36,36^1950 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초기 인류의 화석을 찾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33 년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써 월리스의 생각에
본질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진화의 많은 부분은 마치 인간에
귀결되도록 미리 계획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른 동물과 식물은 인간이
살기 적합한 장소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정된 존재들처럼 보인다."
브룸은 인간을 아주 특별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는 나머지 자연 세계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브룸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대의 생각을
정확히 묘사한 것에 불과했다. 그때의 인류학자들은 인간 두뇌의 크기와 능력을
경외시했으며, 그것이 우리를 '만물의 영장'이라는 정상의 위치에 올려놓은 생물학적
재능이라고 확신했다. 유명한 영국의 인류학자 아서 키스Keith 경은 시대의 흐름을
통한 인류의 계속적인 진보에 대해 '인간을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의 지배자로
이끈 영광의 탈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가히 뻔뻔스러울 정도의 우월감이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예는 20세기 초부터 수십 년간 쏟아진 논문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진화의 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초기에는 어디까지나 창조의 산물로
여겨졌다. 여기에 인용하는 글은 충분한 실례가 될 것이다. 1923 년 영국의 저명한
해부학자 그래프톤 엘리어트 스미스Smith 경은 그의 책 '인류 진화에 관한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존하는 가장 원시적인 인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다.
이들은 원시적인 종 형태가 아주 경미한 변화를 겪은 후 고스란히 남겨진 생존자를
대표한다. 그 다음은 흑인종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보다 고도의
다각적인 분화를 거쳤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과의 가장 원시적인 특징인 피부의
검은 색소^6,36^원시인과 고릴라, 침팬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흑인종이 사람과의 주된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이후 색소 형성의
정도가 갑작스럽게, 그리고 매우 현저히 감소했다.
그후 또 다른 집단이 분리되어 뚜렷한 분화를 거치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바로
몽골 인종이었다. 몽골 인종이 분리된 후 피부 색소는 더욱 감소되었으며, 거기에서
최초로 알프스 인종(역주: 유럽인으로서는 중간 정도의 피부색을 가진 백인종)이
떨어져 나왔다. 여기서 다시 지중해 인종과 노르만 인종이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노르만 인종에서 색소 감소가 한 단계 더 진행되어 모든 인류 가운데 가장 피부색이
흰 백인종이 생겨났다.
이런 식의 공공연한 인종 차별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백인종보다 더 원시적이라고 보여졌던 '열등 인종'이 궁극적인 발현인 호모
사피엔스와 나머지 동물 세계를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모든
인종이 동등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야 이 다리는 사라졌다. 이 때문에 간격이 더
벌어져 현대 인류는 자연 세계로부터 더욱 분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인류학
논문들은 우리가 탄복하는 특징^6,36^큰 뇌의 용량, 언어, 기술에 초점을
두었으며, 이러한 특징들의 진화는 사람과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우리
역사의 일부였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시작부터 특별한 진화의 힘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위치로 발달해
왔다. 특별한 인간. 그래서 실제로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손자인 줄리언 헉슬리는
인간을 나머지 자연 세계와 완전히 독립시켜 분류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58년에 "진정한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은 대단히 높고 참신하며 성공적인 우위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 전달 방법에 의해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은 뚜렷한 등급으로 분류된 정신동물Psychozoan로
불리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간 이외의 동무로가 식물, 그리고 다른 모든 생물은
각각 수많은 종들과 함께 그들 나름의 다양한 계로 분류된다. 헉슬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자신의 생물계를 이루는 유일한 점유자가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창조하는 문화적 영역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헉슬리의 주장 이후로 우리는 다른 생물들, 특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대형 유인원'의 능력을 보다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곧잘 우리의
언어와 문화적 역량 등 여러 면에서 자연 세계와 우리가 뚜렷이 구별된다고 말하곤
한다. '오직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며, '오직 인간만이' 자의식을 가진다.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창출할 수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상징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다.
제인 구덜Goodall이나 다이앤 포시Fossey와 같은 자연 연구가들은 유일하다고
생각해 온 이 특성들을 기초로 하여 우리가 그토록 철저히 구축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예컨대 유인원Apes도 도구를 사용한다. 그들도 일종의
문화를 가진다. 자의식도 있다 비록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는 영역이긴 하지만,
유인원이 구어를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구어가 나타내는 상징성을 이해하고 교묘히
다루는 능력을 갖추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결국 우리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오랫동안 믿어져 오던, 우리의 조상이 본질적으로 '사람과'의 시초로부터
나온 '사람'이라는 견해 역시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는 현재 최초의 사람 종은 약
5백만 년 전에 진화하기 시작했지만, 확장된 뇌와 기술력의 잠재 속성을 약 2백50만
년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화석 증거와 고고학적 기록,
그리고 분자생물학에서 얻은 자료들을 통해 밝혀졌다.
선사 시대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는 두 발로 걷는 유인원이었다. 물론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사람과는 육상에 사는 수많은 대형 척추동물 집단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적응 방산'을 거쳐왔다. 집단의 창시 종으로부터 많은 새로운
종들이 진화했다. 원래의 제목에서 약간 변형된 간판을 단 것이다. 호모속
^6,36^현재 우리가 유일하게 살아 있는 호모속 구성원이다에서 일어난 '두뇌
확장'은 중요한 변화를 야기시켰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이족 유인원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적응^6,36^원시적 형태의 수렵과 채집을 시작했다. 거의
2백50 만 년 동안 뇌는 점차 커졌으며 수렵과 채집의 적응 방식은 훨씬 더
발달했다. 구어 능력 역시 점차로 발달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호모 사피엔스는 분명히 특별한 형질을 가진 축복받은 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보다 깊숙이 들어가면 결코 나머지 자연 세계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점점 진보된 형질을 이어받음으로써 자연계에 가담했던
것이다.
내 동료 인류학자들이 인류의 선사 시대에 관하여 너무나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면 나는 흥미를 넘어 심지어 재미를 느낀다. 그들은 현대 인류^6,36^우리가
지닌 행동 특성을 고스란히 갖춘 채로가 아주 최근에 갑자기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현대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모든 사람 종은 인간보다는 유인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인간의 초기 모습이 인식 능력, 의사 전달 능력,
생존 활동면에서 침팬지와 비슷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그들을 우리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때때로 우리를 능가하는 두뇌 능력을 가진 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20세기 초반의 인류학자들은 유인원과 같은 기반을 가진 인류의 진화 기원이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와 동시대에 사는 몇몇 사람들도
우리와 자연 세계와의 경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도달한
유일한 결론은 그들의 소망이 부질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주장해 온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원하는 바처럼 그렇게 많이 우리의
생물학적 친척들과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진화의 정점, 즉 이 창조적인 과정의 가장 복잡하고도 필연적인
산물이다.
1959 년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이자 철학자이며 고생물학자인 피에르 테이하르 드
샤뎅은 "생물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것이 우주에서 별난 기형이 아니듯, 인간 역시
생물 세계에서 기형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간 현상'에서 "에너지가 생물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는 것처럼 생물은 물리적으로 인간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고 썼다.
그의 확신은 자신의 철학, 즉 우주의 에너지 흐름은 신성하게 교도되며 미리 예정된
최종점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수반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똑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앞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판단 기준은 '과연 우리가 생물의 물리적 흐름을
이해하고 유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진화의 필연성 문제는 생물 역사를 통해
생물학적 복잡성이 증가하는 문제와 얽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주제를
일단 따로 떼내어 다룬 다음, 마지막에 다시 합칠 것이다. 찰스 라이엘이 말한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명언은 확실히 일리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현재의 경험에 의해 속박을 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지금 손으로 셀 수 있는 횟수보다 더 많이 투르카나 호수를
방문했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 호숫가를 구성하는 사암 퇴적물에서 고대 인류
화석을 찾았다. 투르카나 호는 남북으로 약 1백50 마일, 동서로 30 마일 가량 뻗은
개 다리 모양의 거대한 호수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황량하고 메마른 땅, 그곳에
자리잡은 드넓은 호수. 누구나 그 모습을 보면 가슴 설레는 감명을 받을 것이다.
아침 목욕을 위해 캠프에서 호숫가까지 걸어가는 산책길이 훨씬 더 길어졌다. 1968
년 내가 최초로 그곳을 찾은 이후 호수의 수면이 18m 가량이나 더 내려갔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전에 19세기의 여행자들이 호수면의 폭넓은 변동에 대해 기록한 글을
읽었다. 그래서 이러한 급강하에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르카나 호수는 여전히 거대하다. 비교적 최근에 투르카나 호수에서 나타난 이
정도 규모의 변동은 선사 시대에 이 호수가 겪은 변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유타대학의 프랭크 브라운은 20 년 가까이 투르카나 호수와 그 주변을 직접
조사했다. 그리고 과거 4백만 년에 걸쳐 변모한 이곳의 자료를 도표로 만들었다. 그
결과는 실로 놀랄 만하다. 현재의 거대한 호수가 아주 작게 보일 만큼 그 옛날
투르카나 호의 규모는 엄청난 수치로 표현되었다.
한 예로, 1 만 년 전만 해도 지금의 10배나 되는 면적에 물이 채워져 있었다. 또
어떤 시기에는 투르카나 지역에 아예 호수가 없었다. 다만 같은 자리에 흐르는
강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면서도 나는 마음 속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내 눈앞에 펼쳐진 호수의 존재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호수가 없다는 것은 아예 상상할 수조차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는 세계를 떠올리려고 노력할 때도 우리는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의 자의식은 한 개인으로서, 또 한 종으로서 너무나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바깥에서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비록 수억 년
동안 인류가 지구의 생물 흐름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을지라도.
테이하르 드 샤뎅은 "인간이 겪는 제반 현상은 본질적으로 그 시초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이것은 종교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개인적
체험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는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인류의
진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쉽사리 단정짓게 된다. 필연성은 생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이 곧 그것이 의미하는 방식이라고 믿는 데 확실한
보호막이 되기 때문이다.
필연성에 대한 이러한 열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 역사에 관한 지식에 얼마나
들어맞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전지구'와 '각 지역'이라는 두 가지 수준의 답을
해야만 한다. 전지구 수준은 생물의 역사를 변동시킨 생물 위기, 특히 5대
멸종에서의 중요한 변동을 포함한다. 각 지역 수준에서는 인류의 선사 시대부터
역사를 고찰해 보자. 그러면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 그리고 원시적인 생물에서 고등한 생물로의 뚜렷한 진보를 깨닫게
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만일 진화가 이러한 진보의 일직선을 따라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진보'는 굴드의 말처럼 일정한 논리를 지닌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라고 가정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허위라는 것을
참으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캄브리아 대번성이 그후 생물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생물의 기초가 된 광범위한 도면, 즉 문을 생성한 전례없는 진화적 실험기였음을
안다. 도면의 범위는 1백 가지나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전과정이 다시 전개되어
똑같은 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되돌릴 만한 이론적이거나 혹은 실험적인 주장이 없다. 사실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생물학적 건축물에는 주로 생물 역학과 관련된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예컨대 바퀴를 가진 생물은 없다). 그러나 많은 수의 캄브리아 동물은
이미 우리의 생물 경험을, 그리고 우리의 경박함을 속박하고 있다. 형태는 무한하지
않을지라도 캄브리아기는 단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여러 세계 중의 하나였다.
굴드의 비유, 즉 '테이프를 감아 다시 돌려보라. 그러면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를 이 사고 실험에 다시 적용해 보자.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척추동물의 근원인 척색동물문은 캄브리아
대번성기에 나타난 도면 중의 하나였다. 생물 형태의 폭발적인 생성이 또 일어난다
해도 척색동물을 다시는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만일 최초의 '창조적 폭발기'에 하나의 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후손도
결코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물 테이프를 되돌려 나타나는 세계는 등뼈가 없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고기도, 개구리도, 도마뱀도, 사자도, 결국 우리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캄브리아 대번성은 고맙게도 찰스 월코트가 피카이아 그라실렌스Pikaia
gracilens라고 이름붙인 지극히 수수한 생물, 즉 '척색동물'을 만들어냈다.
피카이아는 버지스 셰일 동물상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그래서 캄브리아 생물
중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피카이아는 분명히
존재했다. 여러분은 지금 아무런 지적 가치도 없는 정신적 게임을 하고 있다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우리는 캄브리아 대번성기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이러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의 진실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척색동물은 살아남았고,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한 생물
역사의 시련기를 살펴볼 수 있다.
앞 부분에서 나온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생물 위기가 '적응'을 또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다윈의 법칙을 일시적으로 보류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다윈의 자연 선택은 생물의 적응을 구체화하는 데, 다시 말해 위급한 생물 위기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들은 맞춰나가는 데 더없이 중요한 개념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이제 막 무언가를 알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한
가지만큼은 알고 있다. 어떤 종은 살아남고 어떤 종은 왜 그러지 못했는가를
결정하는 데 '기회'가 너무나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캄브리아 대번성기에 생성된 1백여 가지 기본 설계도의 향후 운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뭔가 임의적인 힘이 작용하여 그들을 현대 생물의
기초를 이룬 30가지로 줄여놓았다. 피카이아는 최초의 그 생물 제비뽑기에 굳건히
살아남아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한 모든 척추동물의 근간을 이루었다. 생존은 훌륭한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우연성'의 문제였다. 이것은 최근 굴드가 설득력있게
전개한 주제로 그의 저서 '놀라운 생물 Wonderful Life'에 자세히 나와 있다.
평범하게 시작된 척추동물은 처음에는 어류로, 다음에는 육상의 네발동물로
진화했다. 그러한 이행은 소수 물고기 집단인 폐어, 실러캔스, 리피디스티안
무리로부터 이루어졌다. 굴드는 "테이프를 돌려라. 그리고 멸종으로 리피디스티안을
지워보라. 그러면 우리의 육지는 곤충과 꽃들로 이루어진 무적의 왕국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쨌든 리피디스티안의 이행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약 2억 년 전인 트라이아스기 말 공룡과 거의 동시에 포유류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포유류는 1억 년 이상 무시무시한 도마뱀이 육상 생물을 지배하는 동안 미미한
생태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공룡이 백악기 말 지구에 충돌한 혜성의 여파로
전체 생태 군집 중 거의 수백 만 종과 함께 갑작스런 멸종을 맞을 때까지 번성을
누렸다. 만약 그 혜성이 비껴갔더라면 공룡은 아직까지 육상의 지배적인 네발동물로,
포유류는 여전히 어두컴컴하고 울창한 숲에서 허둥지둥 달리는 쥐 크기만한 생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혜성은 충돌했고, 공룡은 조류를 유일한 후손으로
남긴 채 사라졌다.
한편 최초의 영장류인 '푸르가토리우스'라는 작은 생물을 비롯, 태반 포유류는
비교적 해를 입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만약 푸르가토리우스가 그때 살아남지
못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확실한 해답이 없는
'만약 라면?' 식의 말장난을 한다며 나를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생물 흐름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 굴드가 옳았다고
믿는다. 너무 지나치게 그 주장을 밀어붙이기만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긴 하지만.
자, 조금 냉정하게 살펴보자. 대량 멸종은 생물의 역사를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어류로부터 우리 사람에 이르는 '진보'가 진화의 역사를 통해 그저
우연히 일어난 것이지, 반드시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과정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생물의 역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아무런 필연성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굴드의 말처럼 우리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는 '일어날 성 싶지 않는 진화적
사건'이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역 수준에서의 역사도 전지구적인 규모의 역사에서 살펴본 것과 비슷한 결론을
이끈다. 2천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는 서부에서 동부를 가로지르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12종 이상의 유인원(꼬리없는 원숭이)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원숭이(꼬리가 있는 원숭이)는 생태 군집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이후 1천5백만 년 동안 주로 땅 속 깊은 곳의 지질학적 힘에 의한 급격한
변화가 아프리카 대륙을 관통했다.
그 당시^6,36^5백만 년 전에는 유인원 종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고
원숭이는 수없이 많았다. 또 이즈음 사람과의 동물이 동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진화했다. 2백50 만 년 후 지구의 기온은 급속히 떨어졌으며 거대한 빙하가 북극과
남극에 형성되었다. 이어서 인류를 이끈 큰 두뇌를 가진, 계통, 호모속이 진화했다.
이것이 생물 역사의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이제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자.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을 변화시킨 지질학적 힘은 북쪽의 홍해에서 남쪽의
모잠비크로 이어지는 2개의 판 구조가 갈라지면서 생긴 것이다. 솟구쳐오른
마그마가 2개의 거대한 '원형 돔'을 쌓아, 적어도 180km에 이르는 고도에
에티오피아 원정구와 케냐 원정구를 각각 만들었다. 두 개의 판은 계속 멀어졌다.
이 때문에 그 위에 놓인 대륙 암석이 더욱더 양쪽으로 잡아당겨졌다. 마침내 약
1천^36,36^1천2백만 년 전 대륙 암석이 끊어지면서 단층이 생겨났다. 곧이어 융기가
일어나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라고 불리우는 길고도 깊은 계곡을 형성했다. 이것은
지구 궤도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형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물리적 변화가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극적이었다. 대서양에서 얻은
수분으로 전대륙의 삼림을 부양했던 서동풍이 이제 장벽^6,36^리프트 밸리의 융기
부분을 만난 것이다. 위로 상승하게 된 바람은 습기를 잃음으로써 계곡의
동쪽 지역을 비그늘(역주: 비를 내리게 하는 바람이 산맥 등에 막혀 강수량이
적어진 지역)로 만들었다. 수분을 빼앗긴 숲은 점점 줄어들어 파괴되기 시작했고,
이어 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는 숲으로 바뀌었다가 결국 초원으로 대체되었다.
얼마간 연속적으로 이어지던 숲 서식처는 이제 기존의 서쪽 숲과 새로 형성된
동쪽의 모자이크 숲과 초원, 이렇게 두 개의 생태 구역으로 나뉘어졌다. 모자이크
숲은 추운 고지대에서 계곡 바닥의 덥고 건조한 사막에 이르는 서식처를 제공하는
리프트 밸리에 의해 더욱 풍부해졌다. 생물학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서식처가 서로 다른 종류의 수많은 적응 기회를 안겨줌으로써 진화의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날 이 지역의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이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생성이 생태계에 끼친 영향은 사람과의 진화에도 적잖이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현대의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으며, 약
5백만 년 전에 따로 갈라져 나왔다. 숲이 울창한 계곡의 서쪽 땅에서 유인원은
이전에 적응했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이곳은 오늘날 침팬지와
고릴라가 살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계곡의 동쪽 땅에서는 강수량이 감소하면서
숲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따라서 유인원이 더 이상 살 장소가 없어졌다.
사람과를 특징짓는 이족 보행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 중, 널리 흩어져 있는
먹이를 찾아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동하기 위한 '적응'이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 다른 이론들도 몇 가지 있지만, 당시의 서식지 변화를 고려하면 이 이론의
생물학적으로 가장 잘 들어맞는다. 약 4백만 년 이전의 화석 기록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의 초기 선사 시대에 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사람과 아프리카 유인원의 유전자 비교 결과와 최근에 발견된 화석 기록을
통해 사람과의 기원은 약 5백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략 3백만 년 전쯤의 화석 기록은 몇몇 사람 종^6,36^이족 보행 유인원이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에 공존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정확히 새로운
적응 진화, 여기서는 새로운 이동 방식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새로운 종이 생겨나고 어떤 종은 멸종하면서 원래의 기본 주제로부터 수많은 변이가
생겨나 진화했다. 사람과의 기본적인 적응 형태는 작은 뇌를 가진 상당히 작은
체격의 이족 유인원이었다. 이들은 보통의 유인원보다 훨씬 질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들 사람과의 초기 구성원은 잘 알려진 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이었다.
약 2백50 만 년 전 사람과에서 또 다른 진화의 파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비슷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적응 형태가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원래의 적응형이 훨씬 커진 것으로, 건조한 환경에서 살며 질긴 식물을 먹었던 이족
유인원의 생김새를 닮았다. 두 번째 적응 형태는 강건한 체격과 보다 큰 두뇌의
발달, 그리고 육식의 시작 등 여러 가지 중대한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다. 육식의
시작은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최초로 석기를 제작하고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이들이 호모속이었으며, 이미 그 이전부터 여러 종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양쪽 형태 모두 진화의 방향은 건조한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돌발적으로 일어난 진화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 중요한 일이
2백50 만 년 전에 실제로 일어났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환
파동turnover-pulse 가설'이라 부르는 엘리자베스 비르바의 연구 결과가 여기에
대한 좋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르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류학자이며
현재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수 년간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
영양의 진화 역사에 대하여 연구해 왔다. 비르바는 지구의 기온이 크게 떨어진 두
번의 시기, 즉 5백만 년 전과 2백50 만 년 전에 진화의 파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기온 하강의 영향은 환경을 변화시켜 생태 군집이 이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서식처를 작은 동강으로 갈라놓았다. 동물 종은
그들이 이미 적응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서식처를 따라 이주하기 위해 애쓰곤
한다. 그러나 때때로 방해를 받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장벽에 부닥치는 경우일 수도
있고, 혹은 이전의 넓은 구역에서 분리된 피난권에 갇히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갇힌 종에게는 두 가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 종은 멸종할 수도 있다.
또는 유전자 격리를 통해 변화된 새로운 종이 출현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5백만
년 전과 2백50만 년 전의 빙하기와 같은 기후의 중대한 변종은 멸종과 아울러 종
분화의 분출을 이끈다. 가령 이 두 빙하기 중의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사람과 영양뿐만 아니라 설치류와 많은 식물 종에서도 진화적 파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결과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고전적인 다윈설에서는 진화의 원동력이 내부 경쟁에 의해서 야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히 외부의 환경 변화가 진화를 이끌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앞서 나는 사람과가 약 5백만 년 전에 유래되었으며 이러한 추정은
유전자 증거와 에티오피아, 케냐에서 새로 발견된 화석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연대는 전환 파동 가설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지구 냉각화'라는 커다란
사건이 그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과의 출현에 필요한 진화의 원동력을
제공했다고 추측되나 이에 대해 확신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다시 '만약 라면?' 게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일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를 형성한 지각 변동의 힘이 없었다면 아직도 아프리카 대륙은 울창한 숲으로
덮인 채 많은 유인원 종들의 고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족
유인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후 계곡이 발달했고 이에 따라 작은 뇌를
가진 이족 유인원이 등장했다. 만일 2천5백만 년 전에 빙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진화의 파동^6,36^건조해진 환경에 적응하도록 생물학적 자극을 줄 수
있는은 결코 뒤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호모속의 종도, 우리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진화의 원동력이 외부의 힘^6,36^이를테면 변덕스러운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한, 진화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각각의 종은 역사에 나타난 우연한 사실일 뿐이다. 역사적 사건이 설명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종의 진화를 이끌었던 사건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그러한 사건들이 꼭 그런 식으로만 전개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우연히 그랬을 뿐이고, 또한 그것이 전부이다.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복잡성'에 관한 문제보다 더 강한 의견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도 없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진화 과정이 생물학적 복잡성으로
귀착된다는 견해를 둘러싸고 있다. 언뜻 보면 '그렇다'라는 답이 너무나도 명백해
보인다. 생물은 단순한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무척추동물을
거쳐 어류, 양서류, 포유류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의 진화를 고찰할
수 있는 종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가장 원시적인 포유류조차 단세포 생물보다는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을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다세포 생물에 한정해서 이러한 의문을 품는다면, 예컨대 포유류와
파충류 사이를 비교하면 어떨까? 포유류가 보다 활동적이고, 보다 높은 체온을
유지하며, 대개는 보다 사회적이다. 물론 뇌도 훨씬 크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들은
'복잡성'이 보다 크다는 일련의 증거들처럼 보이며 나 역시 이를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에는 지각, 철학, 그리고 실제적인 측면과 관련된 3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는
대형 척추동물에 속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생물 세계에 초점을 맞춰 놓고
거기에서 발견되는 사회성이나 지능 등과 같은 특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무는 가들의 화학적 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나방은
바람결에 실려온 단지 몇 개의 페로몬 분자로도 몇 킬로미터 밖에 있는 짝짓기
상대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능력 역시 사회성이나 지능처럼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지각'의 문제이다.
'철학'적인 문제는 그 자체로도 복잡하다. 또한 진화의 진보에 대한 본유적인
갈망은 흔히 복잡성의 증가와 결부된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본유적인 갈망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일찍이 인류 진화의 진보라는 개념이 백인 외의 다른 인종은
열등하거나 덜 발달했다는 주장을 어떤 식으로 정당화시켰는지 직접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문제'는 어떤 잣대나 기준으로 복잡성의 정도가 결정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을 측정하는 확실한 방법은 아직 없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 일부분을 6장의 주제에 적용해 보려 한다. 인간은 진화의
정점인가?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 이 질문은 사람의 두뇌와 비상한 능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우리의 몸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 더 복잡하다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정점인가'라는 질문은
우리의 뇌가 분석력과 창조력, 그리고 자의식 면에서 '현재' 진화 과정의 정점을
나타내고 있는지 아닌지로 바꾸어 묻는 편이 오히려 더 합리적일 것이다.
자연 선택론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보자. 오늘날 진화에 대해 가장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되는 스티븐 제이 굴드는 "본유의 진보에 대한 암시적인
부정은 다윈의 자연 선택설을 19세기의 다른 진화론과 뚜렷이 구별되도록 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이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진화에서의 진보를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들어보자.
"다윈의 진화설은 일반적인 '향상'을 완전하게 뒷받침하는 아무런 원칙도 보장도
제시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자연의 진보를 편드는 정치 풍토에서 이 이론이 일반
대중의 찬동을 받을 만한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자연 선택은 한순간에
작용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적응 양상을 구체화한다. 지배적인 환경에 알맞게
반응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역적인 현상이지 결코 전체적인 측면은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보다 큰 복잡성을 가리키는 개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종의 기원'과 그 외의 다른 저서에서 때로는 그것을 부정하고
때로는 수용하는 등 모순된 태도를 보여왔다.
가령, 1872 년 다윈이 미국의 생물학자 앨페우스 하이야트에게 쓴 편지에서는
"나는 오랜 심사숙고 끝에 점진적인 진화에 대한 본유의 경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네."라고 썼다. 게다가 '종의 기원' 중 '생물의 지질학적
천이'에 관한 장에서는 "만일 이전 시대의 종이 오늘날의 종과 경쟁하게 된다면
과거의 종이 패하여 멸종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과거에 패배한 생물과 비교해 볼 때, 나는 이러한 진보의
과정이 좀더 최근의 승리를 거둔 생물 체제에 현저히 영향을 미쳤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진보를 어떻게 검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윈과 동시대에 살았던 몇몇 사람들^6,36^예컨대 찰스 라이엘 등은
인간이란 단순히 도덕적 관념을 가진 진보한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연의 진보'라는 견해에 몇 차례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자연스럽게 '진화'와 '진보'는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적자 생존'이란 말의 창시자인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스는 1851 년 "진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라고 말했다. 그 얼마 후 20세기 초반에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관장을
지낸 헨리 페어필드 오스본이 또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디윈주의는
점진적인 진화의 수단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이것은 그가 대다수 자기
동료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었다.
약 10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진보'라는 말과 '복잡성'이라는
말을 자유롭게 바꿔 사용했다. 그리고 진화의 결과로 복잡성이 증가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일종의 신경 과민(?)이 도지면서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진보'에 대해서는 이제 그렇지가 않다.
진보는 계속해서 향상되고자 하는 일종의 불가사의한 내적 경향을 내포한다고
주장되며, 또 지나치게 신비적이라는 평가도 듣는다.
따라서 1987 년 시카고 야외박물관의 매튜 니텍키가 '진화와 진보' 회의를 개최한
것은 대단한 용기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 회의에서 프랜시스코 얄라,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발언자가 진보의 실체를 부정했다. 그는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적절히 처리하고, 또 그에 따라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생물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과 자원을 찾고 부적당한
것을 피하도록 해주므로 대단히 중요한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적응이 진화의 역사를 통해 점점 개량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중요한 논점이므로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굴드는 가장 노골적으로
진보를 부정했던 사람이다. 그는 진보에 대해 "입증할 수도 없고 다룰 수도 없다.
이것은 깊숙이 뿌리박힌 유해한 생각에 불과하므로 역사의 패턴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필히 대체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굴드는 진보가 유해한
이유를 '인종 차별주의,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해 온 사회 정황'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카고 회의 이후 복잡성이 실제로 진화의 전기간을 통해 증가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는 일부 동물
집단^6,36^다람쥐, 반추동물, 낙타의 등뼈 구조가 3천만 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실제로 보다 복잡해졌는지를 측정하는 시도도 포함되었다.
암모나이트^6,36^앵무조개 비슷한 연체동물로서 공룡과 함께 멸종할 때까지 3억
3천만 년간 존재했다의 속구조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작업이 수행되었다.
이 두 가지 연구 결과, 복잡성의 증가에 관한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것은 좀처럼 하기 힘든 가치 있는 시도였다.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조지 게일로드 심프슨은 "현세의 인간이 데본기의 갑주어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지극히 용감한(?) 해부학자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연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이
측정하던 대상에서만 복잡성의 증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어쩌면
연구자들은 애초에 잘못된 대상을 측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집단 내에서가 아니라 집단 사이의 어떤 특성을 조사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변화라는 전반적인 경향이
진화에 있어서의 진보를 확실히 특징지어 주었다."는 심프슨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조금은 무모하고 위험스러운 작업이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그것은 현생대 전반에 걸친 뇌의 진화를 조사한 후 전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크기, 특히 '상대적 크기'이다.
예컨대 몸 크기의 차이를 감안할 때 인간의 뇌는 초기의 어떤 양서류나 파충류의
뇌보다 적어도 1백 배나 더 크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다윈은 1871 년 '인간의 유래'에서 "사람 뇌의 크기는 몸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할 때 고릴라나 오랑우탄에 비해 확실히 크다. 그리고 이 점이 인간의 지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확실히 다윈은 옳았다. 그의 말 속에 함축된 두 가지 가정^6,36^하나는 클수록
영리하다는 것, 또 하나는 척추동물의 뇌 진화가 궁극적으로 사람의 뇌처럼 강력한
무언가로 발달했다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널리 믿어지고 있다.
20여 년 전 캘리포니아주립대 LA분교의 해리 제리슨은 널리 정평이 나있는 그의
저서 '뇌와 지능의 진화'에서 척추동물의 뇌 진화 역사를 묘사한 바 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내용을 보완해 가고 있다. 그는 몸 크기에 대한 뇌의 상대적 크기를
측정한 '대뇌화 지수'라는 개념을 전개한 수 진화의 역사를 통해 그 변화를 추적해
나갔다. 대체적인 양상은 이렇다. 파충류는 초기 진화에서 이미 그 집단의 양상이
정해졌다. 3억 년 전의 파충류도 뇌가 작았고 오늘날에도 이 크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현존하건 멸종했건 찾아낼 수 있는 모든 파충류 종을 대상으로 몸 크기에 대한
뇌의 크기를 점으로 찍는다면(로그^36,36^로그 x 좌표상에서) 하나의 직선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파충류의 역사를 통해 변함없이 일정한 대뇌화 지수를 입증해
준다. 현존하는 파충류보다 몸집이 대부분 훨씬 더 컸던 공룡은 이 직선상에서 따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한정된 지능 때문에 멸종했다는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약 2억 년 전 최초의 포유류가 진화했다. 작은 몸집을 가진 이 야행성
동물들은 대뇌화의 도약을 이루어 파충류의 평균치보다 4--5배나 더 머리가
커졌다.
앞에서 했던 것처럼 많은 종들의 몸과 뇌의 크기를 점으로 찍었을 때 고대형
포유류에 와서 거의 직선이 얻어졌다. 이것은 파충류의 경우와 기울기는 같지만
위치가 위로 옮겨져 대뇌화의 증가를 반영한다. 우연히도 이 변화는 대뇌
신피질^6,36^전뇌를 싸고 있는 얇은 세포층으로 궁극적으로는 고등한 인지 기능을
맡는다의 첫 출현과 동시에 일어났다. 이 대뇌 신피질은 포유류에서만
유일무이하게 나타나며 대뇌화의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피질에 의해 뇌의 다른
부분 역시 커졌기 때문이다. 포유류에 이어 곧바로 진화하여 같은 수준의 대뇌화를
달성한 조류도 신피질만큼은 분화되지 않았다.
이처럼 고대에 이미 확립된 포유류의 뇌는 적어도 이후 1억 년 동안 같은 수준의
대뇌화에서 머물렀다. 그후 현대형 포유류가 나타나면서 약 6천5백만 년 전과
3천5백만 년 전,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다시 대뇌화의 도약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뇌 크기가 4--5배나 증가했다. 맨 선두는 영장류였으며 유제류와 육식
동물에서도 이러한 증가가 두드러졌다. 원원류^6,36^영장류의 초기 형태로서
오늘날의 여우원숭이나 안경원숭이와 같은 종을 포함한다가 이 기간 중
초기에 현대형 포유류 수준과 가깝게 진화했다.
꼬리있는 원숭이와 꼬리없는 원숭이,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유인원류의 대뇌화
지수는 이보다 더 높다. 원숭이의 대뇌화 비율은 현대형 포유류의 평균 2--3배이며
사람의 경유는 약 6배이다. 사람은 돌고래 등 일부 고래류와 함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대뇌화 도약에 현존하는 모든 포유류가 가담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버지니아 어포섬(주머니쥐의 일종)과 같은 식충 포유류는 고대형
포유류 수준에 가까운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조류는 화석 기록이 빈약해서 변화의
양상을 자세히 식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록을 조사한 결과 초기
조류는 고대형 포유류 수준에 가까운 반면, 오늘날의 조류는 현대형 포유류의
평균치에 근접하고 있을 뿐이다.
굵은 선으로 그려진 척추동물의 뇌 진화 그림은 분명히 중요한 세부 묘사가 빠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몇 가지 주제는 확실히 드러난다. 첫째는
'항구성'이고, 둘째는 이따금씩 뚜렷하게 일어난 '변화의 중단'이다(단속 평형).
전체적인 양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사실 각자 갖고 있는 기본 철학에 달려
있다. 진화에서 방향성을 지닌 변화, 즉 '진보'에 관한 어떤 것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은 주요 집단 내에서의 '항구성'을 강조한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으로는
굴드가 대표적이다.
반면 진화를 일으킨 근본적인 동인을 찾는 사람들은 '변화'를 강조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분교의 고 앨런 윌슨이 특히 이러한 관점을 선호했다.
윌슨은 "뇌가 자신의 진화를 스스로 추진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개체군의 개체가
새로운 행동을 보이면 곧이어 그 행동은 개체군 내의 다른 개체에 의해 학습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그것이 굳어져 유전적으로도 그런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과 학습에 의한 유전적 소질은 자연 선택에 의해 추진되어 시대의 흐름을
통하여 그러한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일종의 '피드백 고리'를 이룬다.
윌슨은 기후 변동이나 기타 외부적인 힘이 아닌, '행동'이 진화를 이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큰 뇌가 더 큰 뇌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1억 년 남짓 고대
포유류형의 대뇌화에서 나타났던 상황은 피드백 고리의 정 작용에 대한 증거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나 윌슨은 시대의 흐름을 통해 나타난 주요한
변동^6,36^파충류에서 고대형 포유류, 현대형 포유류, 유인원, 사람으로
이어지는을 '피드백 고리'에 기입하면 변화의 비율이 차츰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윌슨은 죽기 얼마 전인 1991 년 초 강의 중에 "이러한 모양을
가진 곡선은 그 과정이 '자가촉매적'임을 시사한다. 이는 인간을 이끄는 계통상에서
뇌가 스스로 진화를 추진시켰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얄라는 진보하는 경향을 띤 적응 형태로 '정보를 얻고 처리하는 능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진화 기간 동안 일어난 주요 집단
사이의 '뇌 크기 증가'는 충분히 일리있는 얘기임을 알 수 있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복잡성 증가'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끝끝내 '경향'이 아니라 '효과'로 묘사한다.
그들은 '효과'라는 말로 '레드 퀸' 상황(역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Red
Queen은 같은 장소에 머물러 있기 위해 계속 전력질주를 해야만 한다)에서의 경쟁
결과를 표현하려 한다.
가령 포식자와 먹이 사이의 군비 확장 경쟁은 이후 더 날렵한 포식자 종과 더욱
영리한 먹이 종을 등장시킨다. 개량은 경쟁적인 상황에 대한 국부적인 대응이지,
진화 메커니즘 자체의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복잡한
'계'로서의 생물이 정보를 얻고 처리하는 능력을 개량하도록 이끈다면 진화적 변화가
잠깐 멈춘 단계에서도, 특히 주요한 혁신의 시기에 더욱더 '큰 뇌'를 향한 동인은
존재할 것이다. 나는 생물학적 순수주의자들이 이 주장을 달가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지나치게 '뇌 중심적'이라고 비난하리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곧이어 뉴런 집합체의 작용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쳤던 많은 특징들을
지적할 것이다. 그들의 얘기도 물론 옳다. 세균이 그러하고 균류가 그러하다. 굴드는
다음과 같이 뇌에 대할 편견을 시사한 적이 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그리
모호하지 않은 협의 사항은 인간 의식과의 관계이다 만일 여러분이 진화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뇌 크기가 엄연히 증가한다고 믿는다면 이제 인간의 의식은
변덕스러운 우연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뇌의 실재적, 생물학적 복잡성과 사람 두뇌의 명백한
우월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에드워드
윌슨의 "우리가 마음 속으로 진실이라고 믿는 철학을 애써 부인하려 하지 말라."는
말에 동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분명히 진화의 정점이며 생물학적
계산이 최고로 발현된 결과이다. 우리는 수많은 우연의 결과로 운좋게 이 지점에
도달했다. 테이하르 드 샤뎅이 주장한 대로 우리 종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가 필연적이었다는 말에서도 더
이상 위안을 얻을 수 없다.
우리와 같은 수준의 지능 진화, 우리와 같은 정도의 자의식은 아마도 지구 역사의
어느 시접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되었던 일일 것이다. 때마침
우리가 그 특징들이 발현되었던 종일 뿐.
7. 지극히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라는 명저를 남겼다. 이 중에서 특히 마지막 문장은
서정적인 표현으로 유명하다.
생명은 그 여러 가지 능력과 함께 처음에는 소수의 형태 또는 단 하나의 형태에
불어넣어졌다는 이 견해, 그리고 또 우리의 행성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회전하는 동안 그렇게도 단순한 시작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경탄스러운
무한한 형태가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이 견해에는 장엄함이 있다.
약 5백만 년 전 최초의 사람종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단지 '지극히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 다시 말해 호모
사피엔스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와 이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종들은 영고성쇠하는
생물의 산물^6,36^계속되는 '진화' 과정에서 때때로 변덕스럽게 작용하는 '멸종'이
서로 엇갈려 작용한 결과로서 거의 미증유의 다양성을 지닌 채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다.
앞장에서 미리 살펴보았듯이 지난 1억 년 동안 다세포 생물 역사상 일찍이 견줄
데가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종 다양성의 순수 증가가 이
시기만큼 두드러진 적도 없었다. 물론 최초의 폭발적인 시작(역주: 캄브리아기
대번성)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백악기 말의 멸종으로 잠시 극적인 중단 사태를
맞기는 했지만, 이와 같은 다양성의 증가로 세계는 지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물 종이 존재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은 "풍부한 생물의 흐름은 화석 기록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학자로서 활동했던 많은 기간 동안 나의 전공은 사람과의 역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역사가 전개되기까지의 한층 더 광범위한 생태적
배경을 언제나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나에게 가장 친숙한 동아프리카의 생물상은
과거 1천5백만 년 동안 주로 대규모 지질학적 변동에 의한 카다란 진화적 변화를
거쳤다.
그 1천5백만 년 을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하나의 드라마로 가정해 보자. 우리는
복잡한 군집들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등장 인물들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각각의 군집들은 생물 흐름의 생물 흐름의 일시적
발현이었으며 그 자체로서 완전했다. 또한 화석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의
역사와 함께 미래도 갖고 있었다. 나는 생물 다양성의 본질에 관한 고생물학자들이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생태학자들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게 되었다.
야생동물보호국의 책임자가 되고 난 후 나의 관심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절멸된
종에서 멸종 위기의 종으로 바뀌었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생물 다양성
정도에 거의 필적할 만큼 케냐의 야생 생물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내가 맨 처음
책임자로서 맡았던 역할은 '비상 조치'를 강구하는 일이었다. 특히 파괴적인 밀렵,
특히 코끼리와 코뿔소의 밀렵을 중단시키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
따라서 내 나라의 폭넓은 생물 다양성은 적어도 잠시 동안 개인적인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책임자로서의 급박한 의무에서 벗어나 경비행기를 타고
나이로비에서 남쪽의 차보 국립공원과 해안가로, 또는 서쪽으로 마사이 마라, 드물긴
하지만 북쪽의 투르카나 호로 날아가는 동안이면 풍부한 생물의 흐름이 다시 가슴
속에 되살아났다.
생물학자들은 생물 다양성의 3가지 척도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알파 다양성'이다.
이것은 하나의 생태 군집 속에 존재하는 종 수를 반영한다. 두 번째 '베타 다양성'은
일정한 물리적 특성^6,36^예컨대 고도와 같은하에서 서로 다른 이웃 군집
내에 속한 종 구성을 비교한 것이다. 세 번째 척도인 '감마 다양성'은 한층 더 넓은
지리적 범위에 걸쳐 있는 군집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서식처를 가진 지역은 이 속에 들어갈 수 있다. 나이로비에서 투르카나
호까지의 비행은 이들 3가지 척도에 관한 연구의 일환이다.
나이로비는 해발 5천 미터상에 위치한다. 1천5백만 년 전만 해도 거의 해수면
높이였던 대륙 지각이 끌어올려져 이제는 최정상의 높이가 9천 미터를 넘어섰다.
그래서 마치 거대한 지질 돔 위에 얹힌 것처럼 보인다. 나이로비를 벗어나 북쪽으로
날아가려면 도시 위로 4천 미터 가까이 솟아오른 리프트 밸리의 등성이를
빠져나가야만 한다. 이 지역은 매우 비옥해서 기름지고 붉은 화산 흙이 차 농장이나
커피 농장, 그리고 작은 도시들을 떠받치고 있다.
사방으로 펼쳐진 육지와 위아래로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구름을 굽어 보며
지구대의 등성이를 박차고 오르는 것은 언제나 극적이다. 이윽고 잠시 후
위험스러워 보이는 봉우리를 벗어날 때면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서쪽으로 가면
가파르게 깎여진 계곡 절벽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푸르른 고지대, 바싹 마른 계곡
바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항로의 동쪽에 위치한 에버데어 산맥은 강우량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곳에 내리는 비는 우아하게 생긴 흑백콜로부스 원숭이와 표범
등 놀라울 만큼 다양한 생물들을 부양한다.
한때는 이 산맥에 수만 마리의 코끼리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밀렵이 횡행하고 농지가 확대되면서 코끼리 수는 10분의 1 수준으로 격감했다.
그리고 현재 약 5천만 마리가 살고 있을 뿐이다. 에버데어 산맥 너머 동쪽은 케냐
산으로, 1만 7천 미터에 이르는 산 정상에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다. 그 주위를
둘러싼 원경에서도 선명한 대비가 나타난다. 케냐 산을 따라 산꼭대기의 빙하, 고산
지대의 초원, 울창한 온대림이 차례차례 보이고 에버데어 산맥의 낮은 비탈은
무성하고 축축한 숲을 이룬다.
계곡 바닥에는 메마른 사막도 있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하는 복잡한 식생들이
펼쳐져 이들 사이를 잇는다. 나는 몹시 추운 빙하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들의 각
서식처 모두 동식물의 다양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알파 다양성'이
높은 것이다. 한편 케냐 산의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가면 반나절의 등반만으로도
아열대에서 고산 지대에 이르는 서로 다른 생물 세계와 마주치게 된다. 즉 베타
다양성도 높은 것이다. 거의 3시간에 걸쳐 나이로비에서 투르카나 호 동쪽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지극히 대조적인 생태 군집들 사이를 지나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언급한 것, 아니 그 이상을 포함할 만큼 놀라웠다.
레이키피아Laikipia 고원 언저리를 통과한 후 마지막 1시간 반 동안 용암류와
분화구, 메마른 호수 바닥, 건조한 땅에서 사라져가는 물길의 그늘,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호수의 동쪽변을 이루는 사암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착륙한
곳은 알파 다양성이 다소 적은 지역이다. 낮은 강수량과 높은 온도가 그것을
경정하는 요인이 된다. 그렇지만 이 지역에도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잠깐 보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물이 살고 있으며 흰수염누와 토피(영양의 일종)의 무리,
사자떼, 심지어 표범이 살기에도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여행으로 나는 상당한 지리적 범위에 퍼져 있는 군집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었다. 또한 케냐의 높은 '감마 다양성'을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감마 다양성을 생성하는 데 있어 지형적인 변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높고
낮은 고도의 풍부한 모자이크가 서로 다른 미소 기후적 특성^6,36^매일매일의 기온
분포, 물의 이용 가능성 등을 띤 수많은 서식처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태 군집의 풍부한 모자이크가 지탱된다(실제로는 창출된다).
만약 내가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가는 대신, 서쪽으로 리프트 밸리를 가로질러
우간다와 그 너머로 날아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오래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열대림의 푸른 융단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아프리카 대형 유인원들의
고향이다. 사실 열대림의 다양성은 매우 크다. 그러나 리프트 밸리에서와 같은
지형적 변이는 없다. 따라서 감마 다양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비(현저한 차이)도
없다. 여기에는 초원에 사는 동물들이 무리도 없으며 건조한 사막에 적응한
도마뱀도 없다. 고산에 피는 꽃도 없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서식처를 가진 리프트 밸리 동쪽 지형의 변이가 사람과의
초기 진화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고생물학과 케냐의 야생동물보호국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이 장의 주제인 '현 세계의 생물 다양성' 개념을 도입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제
나는 케냐와 아프리카를 넘어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영역으로까지 관점을 확대할
것이다. 또 그럼으로써 오늘날 진화생태학에서 중심 테마로 떠오른 7가지 질문을
여기에 제기할 것이다.
첫 번째는 생물 다양성의 모양과 그 생성 과정에 관계된 것이다. 그것은 국부적인
규모와 전지구적인 규모 양쪽 모두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다양성의 모양은 우리
눈앞에 분명히 나타나므로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다양성 기원의 기초가 되는 생성 과정은 전혀 확실치가 않다. 두 번째 질문은
'얼마나 많은 종이 지구의 다양성을 구성하는가'라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선뜻
대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이제 나는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생물 다양성의 전체적인 모양을 형성하는 데는 많은 요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첫 번째는 지구상의 생물 분포,
즉 어디에서 가장 많은 종이 발견되는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해양 생물과 육상
생물 사이의 다양성을 비교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 해양과 육상에 사는
생물들은 진화의 원동력과 생태계의 역학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세계에 걸친 생물 다양성의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고르지 않은 분포'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종의 다양성은 적도 부근에서 가장 높고 고위도로 갈수록, 다시
말해 극점을 향해 북쪽이나 남쪽으로 갈수록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북미, 유럽
등지에서 살다가 케냐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러한 '대비'를 즉각 알아차리게
된다. 이것은 동물계에서 한층 분명히 드러난다. 방문객들의 넋을 빼앗는 거대한
이주떼와 사자, 표범, 치타는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나게 많은 새들, 들끓는 곤충들의
세계에서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식물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많은 종의 나무들과 거기에서 자라는 착생 식물,
다시 거기에서 자라는 미세한 착생 식물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축축한 숲에서
이러한 차이는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좀더 작은 세계^6,36^이를테면 균류와
세균를 들여다보자. 여기서도 역시 대다수 방문객들의 고국에서 볼 수 있었던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케냐 생물 종류의 '초다양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독특한 자연의 신호는 '위도에 따른 종 다양성의 기울기(변화도)'로 불리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여러 해 동안 이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그 결과
수업이 많은 가설들이 제기되었으며 나중에 이들이 축적되어 이론 생태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보존생물학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대 지방에서
파괴된 1평방마일의 서식처는 잠재적으로 온대 지역에서 비슷한 면적이 손실되는
경우보다 최소한 10배나 많은 종을 위태롭게 한다.
열대 우림은 생물 다양성이 특히 풍부한 지역이다. 이곳은 면적상으로 보면 지구
육지 표면의 약 16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생물학상으로는 전체 종의 절반
이상이 서식하는 중요한 보금자리이다. 따라서 열대 우림의 무분별한 파괴는 대단히
심각한 우려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 우림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 때문에 다른 열대 서식처를 희생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클라호마대학의 생물학자 마이클 메어스Mares는 남아메리카의 포유류 약 1천
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적어도 일부 종의 경우에는 건조한
지역^6,36^예컨대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나무 없는 대초원, 브라질의 세라도
초원과 카팅가 잡목림,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당시 (사이언스)지에 실은
보고서에서 "건조한 지역은 흔히 다양성이 낮은 지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포유류의 경우 건조 지대는 대륙에서 가장 종이 풍부한 지역이다."라고 밝혔다.
메어스의 발견은 열대 우림이 높은 생물 다양성을 지닌 소중한 지역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성' 발견 지역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다. 테네시대학의 생물학자 스튜어트 핌과 존 지틀맨Gittleman은 메어스의
논문에 대해 "우리는 어디에 다양성이 존재하며 왜 그곳에 있는지, 또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너무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열대 지방에서 종이 풍부한 이유를 몇 가지 설명하기 전에 먼저 간단히 급격한
다양성 변화의 예를 들어보자. 만일 개미 애호가인 당신이 가는 곳마다 개미 종의
수를 세면서 알래스카에서 브라질까지 여행한다면, 처음에 단 3종으로 시작되었던
목적지에서는 약 2백22종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거의 1백 배에 가까운
차이이다.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87 년 그는 워싱턴에서 열린 '생물 다양성'을 주제로 한 모임에서 "나는 페루
지역의 나무 한 그루에서만 43종의 개미를 발견했다. 이것은 영국의 전제도를
통틀어 발견되는 수치와 거의 맞먹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와 나무에 열성을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결과를 내놓고 있다. 예컨대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피터
애쉬턴Ashton은 보르네오 섬의 삼림 25에이커에서 무려 7백 종에 이르는 수목을
구별해냈다. 이 수치는 북아메리카 전지역에서 발견되는 수목 종의 수와 같다.
알래스카에서 열대 아메리카 지역으로 가면서 육지 새의 종수를 계산해 봐도 역시
극적인 결과^6,36^20에서 6백까지 뛰는가 나온다. 이들 두 지역에서 한동안
생활했던 생태학자 조지 스티븐스는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알래스카 주변을 여행할 때 여러분은 이곳이 얼마나 생물학적으로
단조롭고 지루한 곳인가를 실감하고 충격을 받곤 한다. 그렇다. 지리적으로는
매혹적이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거기에는 변함없이 일관된 동물상과 식물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지형적으로 별 차이없이 비슷비슷해도 서식처상으로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종 다양성의 기울기' 형태는 육지 영역에서 훨씬 뚜렷하다. 최근까지
생태학자들의 눈이 접근하기 힘든 해양^6,36^특히 심해의 생물과
관련해서에서 '종의 기울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대부분 추측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때 생물학적 사막으로 여겨지던 심해는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
종류를 숨기고 있는 보고로 밝혀졌다. 또 1970 년대에는 열곡^6,36^구조지질학의
화산 활동과 관련된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로 지속해 가는 생물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그후 이 생물 형태들 중 일부는 아주 기이한 종류들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파도 밑에서 새롭게 떠오른 생물 그림은 육지의 그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이는 1993 년 말 미국과 스코틀랜드, 오스트레일리아의 연구팀이 공동으로 행한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최고의 다양성은 적도 주변에 집중되어 있으며 고위도의 바다
아래로 가면서 종의 풍부도가 차츰 떨어졌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위도에 따른 다양성의 기울기 변화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왜냐하면 지면
환경에서 대규모 패턴을 이끄는 환경 변화가 아주 깊은 바다에 사는 군집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심해는 생태학적으로 위도에 상관없이 단조롭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래서
당연히 위도가 달라도 다양성의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가정되었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발견이 육상의 서식처 파괴와 마찬가지로 보존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채광, 석유 탐사, 쓰레기 투기 등이 북극 바다와 열대
바다에서 행해졌을 때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자못 달라질 것이다.
심해에서의 종 변화도를 '예기치 못한 결과'라고 말한 것은 '무엇이 지구의 생물
패턴을 이끄는가'라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종
다양성의 변화도는 중요한 물리적 요소^6,36^온도, 햇빛과 같은의 변화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우리는 육상과 심해의 서식처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심해의 수많은 서식처들은 칠흑같이
어둡다. 또 바다 속이라는 완충적 효과로 온도의 변동이 크지 않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부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여기에서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상당히 다른 환경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생물 패턴을
이끄는 메커니즘이 무엇인가를 식별하는 문제에 관한 가설이 몇 가지 제시되었다.
여러 해 동안 발표된 이 가설들은 종종 서로 모순되는 면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모순의 발생은 우리가 얼마나 그 문제의 해답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지 반증해 주는
증거가 된다. 이 가설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끈 가설은 이른바 '시간 이론'이다. 여기서는 온대 지역에
비해 열대 지역의 환경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온대
지역에만 치우쳐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친 주기적인 빙하 작용을 꼽고 있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은 열대 지역에 더 오랜 시간 축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북쪽에
위치한 범위를 포함한 일부 지역은 빙하 작용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또
이들 지역에서 더 풍부한 종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시간 이론의 예측은
명확히 적용되지는 않았다.
한때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생산성 가설'도 마찬가지다. 열대 지역은 자연의
축복을 한아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 지역은 상쾌한 기온과 풍부한 햇빛의
혜택을 듬뿍 받고 있으며 수많은 지역에서 넘칠 정도로 충분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이러한 조건에서 식물이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동물은 식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동식물의 높은 다양성은
자연히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다양성'이^6,36^즉, 높은 생물량이필연적으로 높은 '종의
다양성'을 낳는 다고 가정하는 것은 논리상 비약이다. 왜 이런 자양분 풍부한 환경을
소수의 종이 무성히 번창하여 차지하지 않고 수많은 종이 함께 공유하는 것일까?
북쪽 지역의 침엽수림은 거대한 생물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종 수는 적고, 초원은
생물량이 낮지만 종 수는 많다. 생산성 이론의 약점은 높은 생산성과 많은 종수의
발생 사이에 명백한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 가설은 종의 축적을 위한 부가적인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특별한 열대의
진화적 특성을 찾아내지 못했었다. 반면에 생산성 이론은 그러한 특수성을 예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온대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더 높은
비율의 종 분화를 촉진시키는 그 무언가가 열대 지역에 있음을 시사한다. 덤불이
우거진 사바나 지대나 울창한 우림 속을 지나갈 때면, 여러분은 마치 여러 종들이
뒤섞인 만화경 속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프랙털 형태처럼 모든 수준에서 풍부한 생물은 그 자체가 진화의 창조성을
웅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열대 지역이 '가장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를 높은 비율로
생성하고 생물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가정은 얼핏 옳은 듯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설명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열대 지방은 고위도 지역보다 멸종
사건의 빈도가 훨씬 적은, 이를테면 한결 관대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언뜻 이 가설
역시 설득력이 있다. 고위도 지역의 동식물은 사망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가혹한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지역적으로 수가 감소되어 약화된 개체군은 유난히 혹독한 겨울이 닥치면 멸종
위협에 굴복해 버릴지도 모른다. 생존 경쟁은 계절적 변동의 폭이 큰 고위도일수록
더 치열하게 나타난다. 최근까지도 열대의 축적된 다양성이 예외적인 진화 혁신의
결과인지 개선된 멸종 비율의 결과인지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몇 년 전
데이비드 야블론스키가 화석 기록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생태학자들의 이러한
의문에 관해 다룬 적이 있다. 그는 만일 화석 기록상 새로운 종의 첫 번째 출현이
열대 지방에서 더 자주 일어났음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이 문제의 답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추론했다.
야블론스키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약 2억 2천5백만 년 전 중생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양 무척추동물의 종 기록을 선별했다. 그 결과 열대 지방에서 첫
출현의 빈도가 높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징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1993 년
1월호 (네이처)지에서 "이것은 열대 지방이 진화적 신형태의 중요한 산실이며
단순히 낮은 멸종률 때문에 다양성이 축적된 피난처가 아니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소중한 결과는 생물학자들의
질문을 보다 명확히 하나로 집중시켰다. 즉 열대 지역의 특수성이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그것은 진화의 혁신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종이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가 이른바
'이지역성 종 분화'라는 데 동의한다. '이지역성 종 분화'란 간단히 말해 존재하는
1종의 개체군이 여러 이유에서 2개 이상의 작은 개체군으로 분리되고, 그후 상당히
짧은 기간^6,36^수천 년 정도동안 충분한 유전적 차이와 적응 형태가 쌓여
마침내 독립적인 종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이것은 앞서 설명한 엘리자베스
비르바의 전환 파동turnover-pulse 가설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열대 지역의
환경 조건이 어떻길래 이지역성 종 분화를 부추기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이 가설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적해 둘 일이 있다. 열대의 각 서식처들이
한결같이 비옥하고, 또한 이 지역이 고위도보다 높은 비율로 진화적 혁신을 마치
'우물에서 물 퍼올리듯' 거듭한다는 식의 상상은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같은 서식처라도 각각의 종 개체군을 지탱하는 잠재력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같은 서식처에서 사는 어떤 개체군은 번성하여
확장하고, 반면에 어떤 개체군은 쇠퇴할 수두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동물과 식물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6,36^식물은 씨의 분산을 통해
이동한다에 개체는 최초의 서식처로부터 이동, 두 번째 서식처로 이주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지역에 동일한 개체군이 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 두
서식처는 각각 출몰지와 침몰지로 뚜렷이 나뉘어 언급되고 있다. 출몰 서식처와
침몰 서식처는 종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획일적인 열대
우림에서 베어진 자리^6,36^생물상이 구별되는 곳처럼 보이는 지역이 실은
다른 서식처들의 짜깁기^6,36^이런 지역은 종 분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크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열대 서식처의 환경 안정성에 근거하여 이러한 잠재성을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영국 선더랜드폴리테크닉(종합기술전문학교)의 생태학자
월리스 아더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후가 안정될수록 자원의 공급도 더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종은
그들의 먹이를 훨씬 까다롭게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즉 그들은 '좁은
먹이'라는 생태적 지위를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전문가 종들은 먹이 생태적
지위의 편협 덕분에 요구하는 먹이원이 있는 한정된 지리적 범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은 수많은 종이 처음 주어진 지역에 그대로 서식할 수 있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한편으로 종 분화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또한 비교적 동일한 열대
지방의 기후는 그 언저리에 있는 작은 개체군들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다."
아더는 반면에 보다 격심한 기후 변동을 겪는 고위도 지역에서는 그러한 개체군이
훨씬 더 사라지기 쉽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고위도 지역에서는 새로운 종이
상대적으로 덜 생겨날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후의 안정성은 진화의
동력으로, 그리고 많은 종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연 이 시나리오는 옳은가? 아니, 보다 최근에 전개된 가설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가설에서는 불안정성이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1970 년대^36,36^1980 년대 초 진화생태학자들은 군집의 구조를 구체화하는 힘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논쟁이 벌어졌던 초기에는 종 간의
'경쟁'이 군집의 조성, 특히 어떤 종이 다른 종과 공존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지식이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불과 10 년 사이에 비록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경쟁'이라는 요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무시되고 있다.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의 생태학자 조지프 코넬Connel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그는 경쟁론자로서 신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초 군집을 연구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를 찾았다가 자연에 의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관점을 바꾸게 된 일을 상기하곤 한다. 허리케인이 그의 연구
기지와 서식처 내의 수많은 군집 대부분을 순식간에 휩쓸어갔던 것이다. 그것은
코넬에게 있어 자연 세계에서는 경쟁 이외의 다른 힘이 보다 중요하다는 확실한
증거로 자리매김되었다. 허리케인이 다소 극적이고 흔치 않은 환경 변동의
형태일런지는 몰라도 그보다 작은 규모의 자연 교란은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들은 또한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훨씬 더 '창조적'이다. 군집이 교란에
익숙해지면 이내 소수의 종이 우세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울창한 숲에 빈
자리가 생기는 등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다른 종이 그 군집의 일부가 될
기회를 갖게 된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러한 자연의 반복적 압박은 새로운
종의 진화를 촉진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얼핏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은혜롭고 안정된 환경을 진화의 요람으로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어쨌든 압박과 불안정성이 진화의 산파 구실을 한다는 의견은 점점 더 확실해
보인다. 풍부한 종을 지닌 아마존의 열대 우림을 예로 들어보자.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끝무렵과 기후가 훨씬 고르게 분포했던 최근에 이곳은 엄청난 혼돈을 겪어야
했다. 초기의 몹시 추운 기간 동안에는 대륙에 넓게 펼쳐진 열대 우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삼림 조각'들이 적당한 서식처, 즉 따뜻한 기후에 적응한 종을 보호해
주는 미소 기후에서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화가 어떻게 종 분화를 촉진시키느냐'를 둘러싼 논쟁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고 있다. 삼림 조각, 즉 레퓨지아(역주: 피난권. 빙하기처럼 생물이
생활하기 곤란한 시기에 이들이 집단적으로 피난했다고 생각되는 지역으로 화석이
많이 나온다)에 종의 개체군이 격리되면서 이때 유전적으로 다른 레퓨지아의 유사한
개체군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지역성 종 분화' 가설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레퓨지아를 확신할 만한 뚜렷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이러한 환경 교란을 일으킨 요인은 진화의 동력, 말하자면 완전한 '안정성'과
완전한 '불안정성' 또는 '혼돈'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 창조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위대한 마야 문명은 아마존 열대 우림 일부 지역에 존재했던
많은 숲은 쓰러뜨림으로써 이러한 교란을 가중시켰다). 안정과 혼돈 사이에 놓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창조성'. 이것은 기이한 형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해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해는 바다 세계의 대규모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안
군집은 상당히 빈약하다. 새로운 종은 처음에 양쪽 지역 모두에서 발생하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심해에서 더욱 풍부하게 번성한다. 그러나 최대의 진화적
'신고안품'^6,36^기존 형태에서의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 적응된 형태를
갖춘, 전혀 '새로운 종'은 해안 군집에서 한층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
가설은 실제로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해안에 진화적 괴짜가 나타나는 것은
무언가 더 큰 '혁신'이 일어난 결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현상의 확실한 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여기서 뚜렷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파도의 작용으로 해안 군집이 심해보다 훨씬 더 교란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압력이 진화의 혁신을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 만일 교란이
진화의 산파 구실을 했다면, 열대와 온대 지역 사이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지 스티븐슨은 최근 "열대의 종은 흔히 좁은 환경 범위에
적응한 전문가인 반면, 온대의 종은 계절 변화에 따른 기온과 햇빛의 변동을 견뎌야
하는 등 적응해야 할 폭이 훨씬 더 넓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다른 설명을 들어보자. 열대의 종은 온대에 사는 종에 비해 교란에 공격받을
확률이 크며 이것은 종 분화의 진화적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온대 종은 교란을
견뎌내는 내성이 강해서 결과적으로 진화적 창조를 경험하는 빈도가 열대에 사는
종에 비해 현저히 적다. 심해는 육지처럼 '위도상의 종 변화도'가 유발되는
지역이다. 과연 심해는 어떤 곳인가? 심해에 대해서는 거의 변화가 없는 끝없이
단조로운 지역 혹은 환경 변호와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란설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존 게이지와
로버트 메이는 최근 '심해 종 변화의 발견에 관한 해설'에서 "결국 심해저는 그렇게
광범위한 균일성을 띠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심해를 생물학적 사막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곳에 따라서는 열대 우림과 맞먹는 풍부한 생물 다양성 수준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는 생물 다양성의 모습이 더 이상 두드러진 명백한 형태가 아님을
알았다. 또 '지극히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생물학자들의 이해가 닿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의 흐름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구의 생물 다양성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째 형태는 육지와 해양계를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기록된 종의 총수 가운데 15%에 못 미치는
수가 바다에서 산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심해저나 심해저 부근에서 살고 있다.
그 나머지는? 물론 육상에서 산다. 바다가 지표면의 약 4분의 3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불균형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얼핏 보기에도 육상은 바다보다
훨씬 더 큰 생물 다양성을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두 영역을 비교하는 데에는 하나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그것은
생물 분류 체계상의 단계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나는 생물 분류 체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문 단계에서 바다와 육지의 다양성을 비교한다면 종의 다양성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게 될 것이다. 33개의 동물 문 가운데 32문을 대표하는 생물들이
바다에서 살고 있으며 오직 12개의 문만이 육상에서 생활한다. 더욱이 문의 약
64%는 오직 바다에서만 발견된다.
이에 반해 오로지 육상에서만 살아가는 문은 기껏해야 3%뿐이다(나머지는 육지와
해양 양쪽 모두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이러한 척도에서 보면 바다는 육상
서식처보다 훨씬 더 큰 생물 다양성을 지탱한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바다에는 적은 변이를 가진 많은 주제가 있고, 육상에는 적은 주제에 대해 많은
변이가 있다는 얘기다. '위도에 따른 종 변화도' 외에도 문과 종 단계에서의 육상
^456,34^ 바다의 다양성 차이에 대한 설명은 무수히 많다. 이는 바로 '불확실성'의
확실한 반증이다. 때로는 '육상에서 우세한 곤충 종이 왜 바다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가' 등과 같은 단순한 질문에 대해서조차 답하는 것이 어렵다.
어쨌든 캄브리아기 대번성 당시 바다에서 다세포 생물이 나타났으며, 따라서
당연히 바다에 더 많은 문이 존재한다는 설명이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성 있어
보인다. 현존하는 모든 문은 캄브리아기 대번성이나 그후 잇따른 시기, 그러니까
생물이 최초로 마른 땅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기 훨씬 전에 이미 진화했다. 따라서
현존하는 모든 문은 바다에 자손을 남길 기회를 가졌으며, 이에 반해 육상에는
바다로부터 육지에 나가 성공적으로 적응한 생물만이 자손을 남길 기회를 가졌을
뿐이다.
여기서는 바다 생물이 왜 육지 생물보다 몸의 도면에 훨씬 변화가 적은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어쨌든 바다 생물이 육상 생물보다 수억 년이나 먼저
유리한 상태로 출발했다. 이제 이들 두 가지 환경에서 일어난 각각의 진화에 더욱
큰 동력을 부여하는 뭔가 뚜렷한 차이점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심해가 최근까지
지속된 가정 그대로 끝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뻗어 있는 지역이라면 당연히 종
다양성이 낮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지형과 기후면에서 불균일한 환경과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걸친 변화가 종의 진화를 촉진한다.
그러나 심해 환경은 여러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이 예상과는 다를지도 모르며,
아마도 미리 예측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불균일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최근까지 거대한 삼림에 둘러싸인 열대, 그리고 온대 지역은 바다에서는 흔치 않은
'공간의 복잡성'을 제공한다고 알려져 왔다(바다에서 높은 종 다양성을 지탱하는
산호초는 예외로 하고). 물론 공간의 복잡성이 종의 분화를 촉진하는 데 일부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던 로버트
메이는 다음과 같은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육지와 바다의 종수 차이는 85:15에
이른다. 그러나 단지 공간의 복잡성만으로 이것을 확실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는 흔히 동격으로 간주되는 열대 우림과 산호초 사이에 기이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산호초에는 유별난 동물들이 풍부하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역대 우림에 사는 척추동물들 중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이것은 무척추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왜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실히 대답하지 못한다. 이밖에도 육상 ^456,34^
바다에서의 종 다양성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가설들이 제시되었다.
이 중에서 종의 크기와 범위에 관한 가설이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인다. 바다 종은
육상의 생물 종보다 평균적으로 몸집이 작기 때문에 더 넓은 지리적 범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지리적 범위가 넓을수록 전체적으로 대개 종수는 더 적다. 이
설명은 진화생태학적 관점과 더불어 확실히 유력해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뚜렷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제 나는 전체 생물 다양성의 모습에서 그 다양성 내부의 구성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자, 오늘날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이 존재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로버트 메이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많은 종과 공유하며 살고 있는지 한 자리수 내에서는 알기
힘들다."고 대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존하는 종을 5백만 종^36,36^5천만 종
사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1억 종이라는 높은 수치를 들먹이기도 한다.
이처럼 거의 제멋대로라고 할 만큼 불확실성이 만연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러한 답을 찾기 위해 시도라도 해본 생물학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빙성 있는 수치를 얻기까지 감내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압박을 느낀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물을 측정하는 데 어떤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또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연 사물에 대해서는 이토록 부정확하게 알고 있다니!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은하계, 즉 은하수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는지 꽤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다. 그것은 약 1천억 개에 이른다.
우리는 또한 인간의 유전자 청사진을 구성하는 핵산의 염기 수가 30억 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1994 년 7월 16일 오후 4시(미국 동부의
서머타임 기준)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혜성이 목성에 몇 시간 이내에 충돌할
것인가' 등등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현재의 종 다양성에 대해서는
안정권 내의 수치를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은 그 값을 구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안.다.
그것은 단연코 실행 부족에 기인한다. 미국 정부는 항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매년 수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지만 바로 우리들이 사는 이 지구의 자연에
대해서는 지극히 적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의 질서를 찾고자 하는 연구는 원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연사가 서양 과학에서 어느 정도 존중받는 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그후 거의 2천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였다. 식물과 동물의 분류는 처음에 신의
창조 작업에 의한 산물을 드러내려는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자연사라는 새로운 학문의 주요 분야로 부상하게 되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현대적 분류 체계는 18세기 중반 린네의 저서 '자연의 체계'에서 확립된 것이다.
그는 약 9천 종에 이르는 식물과 동물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 하나의 체계로
만들었다(물론 역사의 개념에서가 아니라 창조의 개념에서).
린네의 시도는 자연 세계 연구에 대한 최초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작 뉴턴이 최근의 혜성목성 충돌을 계산하는 데 기초가 된 '중력 법칙'을
발견한 이후 꼬박 1세기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린네가 생존했던 시대 이후
기록으로 남겨진 종의 수는 계속해서 풍부히 증가해 왔다. 오늘날 그 수는 대략
1백40만에 이른다. 나는 여기서 '대략'이라는 표현을 썼다. 모든 종의 기록을 담는
중앙 저장소가 없으므로 이 수치는 당연히 추정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분자 생물학연구소에서 생산되는 DNA 염기 서열을 위한 중앙 보관소는
있으면서도 유전 물질을 얻을 수 있는 생물에 대한 저장소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모순이다.
기록된 종의 85%는 육상에서 서식하며 이들 중 상당수에 달하는 약 85만 종이
절지동물(곤충류, 거미류, 갑각류 등)이다. 그리고 절지동물 종의 대부분은 곤충이며,
이 가운데 거의 절반은 딱정벌레류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J.B.S. 할데인은 이를
대변하는 유명한 풍자를 남긴 바 있다. 어느날 몇몇 성직자들이 할데인에게 물었다.
"자연계에 관한 연구로 당신은 신에 관해 무엇을 밝혀냈는가?"라고.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신이 딱정벌레를 유난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다.
출처가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 비유는 상당히 적절하다. 만일 최근의 연구
결과가 믿을 만한 것이라면 오히려 실제보다 딱정벌레를 과소 평가(?)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알려져 있는 30 만 종의 식물 가운데 대부분은 꽃이다(곤충과 꽃은 각각
독립적으로 풍부하다. 이것은 분명 우연은 아니다. 그들은 과거 수억 년 동안 서로
'공진화'를 통하여 발달해 왔다). 그리고 최근 약 6 만 9천 종에 이르는 균류와 거의
같은 수에 이르는 단세포 생물의 존재가 밝혀졌다. 근래 들어서까지 이 수치에
육박한 것은 박테리아(5천 종)밖에 없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척추동물계는 총
4만에 달하는 종수를 자랑한다. 이 중 4천 종은 포유류이며 9천 종은 조류,
나머지는 파충류, 양서류, 어류이다.
4천 종의 포유류라면 능히 박테리아 종수에 필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다음 이야기에 주목하라. 최근 노르웨이
연구팀은 너도밤나무숲의 흙 1g과 노르웨이 해변 근처 먼 바다에서 얻은 비슷한
양의 퇴적물 속에 든 박테리아를 분석했다. 그리고 두 가지 조건에서 서로 중복되지
않는 5천 종의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5천 종의 박테리아가
아주 작은 실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자연계의 종수는 확실히 과소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목록도
여러 측면에서 왜곡되어 있다. 첫째, 곤충이나 선충류, 박테리아보다는 조류,
포유류를 연구하는 분류학자들이 훨씬 더 많다. 이것은 부드러운 털이나 깃털로
덮인 생물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 조류와
포유류의 새로운 종이 매년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 수는 매우 적을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인 총계 또한 현재 수치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예를 통해 증명된 것처럼 자연계의 나머지^6,36^실제로는 거의
모두경우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두 번째 경향은 북반구의 온대 지역에
대다수 분류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종은 열대 지방
가까이에 집중 서식하고 있다. 게다가 온대 지방에 사는 종은 열대 지방에서도
살지만 북반구의 위도가 높은 곳에만 사는 종은 단지 둘 뿐이다.
1964 년 '자연 조화의 형태'라는 책을 펴낸 영국의 생태학자 캐링턴 윌리엄스는
곤충의 종수를 추정하는 최초의 과학적인 시도를 행한 바 있다. 그는 여러 지역에서
표본을 추출하여 외삽법(어떤 범위 내의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이 범위 외의
값을 추정해서 얻는 방법)에 의해 추정된 3백만이라는 수치를 내놓았다. 그후 20
년간 자료가 계속 수집되었다. 그동안 주로 독립적인 연구 활동을 해온
현장생물학자들이 다른 수많은 서식처들을 뒤져 알아낸 결과였다. 그 중 일부는
심해저처럼 새로운 것이었으며, 어쨌든 그 결과 전체 종의 총계는 거의 1천만에
육박했다.
1982 년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테리 어윈Erwin은 곤충 종만 해도 최소한 3천만
종 정도가 주로 열대 우림의 임관층에 서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생물분류학 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어윈은 파나마 우림에 있는
나무에서 큰 표본을 추출한 후 곤충 개체군의 수를 세어 추정치를 얻어냈다. 이
작업은 살충제를 임관층 높이 살포하여 땅에 떨어진 곤충들을 수집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을 위한 이 대담하고도 중요한 작업은 불행히도
대부분 무시당했다.
몇 년 후 에드워드 윌슨은 이렇게 논평했다. "만일 천문학자가 명왕성 너머에서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면 그 뉴스는 전세계 신문의 1 면을 장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물 세계가 일찍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는 발견은 실제로
인류에게 훨씬 더 중요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무덤덤할 뿐이다." 어윈의
발표 이후로 학계의 관심은 점점 더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것은 전혀 상호 협조적인 연구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것은 생물학자들이 각자
독자적으로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땀을 흘려온 결과였다.
영국의 큐에 위치하고 있는 국제균학연구소의 데이비드 혹스워스Hawksworth는
현재 약 6 만 9천 종이라고 알려진 균류의 추정값은 적어도 20배쯤 과소 평가된
수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 지역의 서식처에서 자라는 관다발식물의 모든 종마다
각각 약 6종의 균류가 있음을 입증했다. 관다발 식물의 수가 약 30 만 종이므로
균류는 거의 1백80 만 종에 가까울 것이다. 만일 식물 종이 더 많이 발견된다면
현재 크게 증가된 이 수치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임에 틀림없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피터 해먼드Hammond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선충류에서도
역시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이 작은 벌레들은 그동안 약 1 만 5천 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해먼드는 흔히 동식물에 기생하거나 혹은 바다와 민물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들 선충류 종이 적어도 30 만을 헤아릴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정을 종합해 보면 전체 종수는 거의 5천만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치조차
너무 낮을런지도 모른다.
로버트 메이는 전체 종수를 1억 종으로 제시하면서 이 수치에 대해 '경솔하긴
하지만 완전히 터무니없다고는 볼 수 없는 시나리오'라고 묘사했다. 그는 또한
"절지동물과 관다발식물의 모든 종은 그들에게 맞춰 분화된 적어도 하나의 기생
선충류, 하나의 원생동물, 하나의 세균, 하나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이제 여러분은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생물 대부분^6,36^전체
종의 총계가 3천만이든 5천만이든, 또는 1억이든이 열대 지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대형 척추동물과 식물의 세계는 생물 다양성
전체에서 보면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생물 다양성의 실체는 극히 적은 수의 대형
생물과 무수히 많은 작은 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생태 군집을
통한 에너지 흐름의 일부로서 각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의
정도를 확실히 예측하기란 힘들다. 현재 지구상에 배치된 대륙들이 1백만, 1천만,
3천만, 5천만, 아니며 1억 종의 생물을 지탱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말해
주는 생태학과 진화생물학의 이론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종의 수는 모두 불확실한 수치이다. 하나같이 몇몇 현장
측정으로 추정한 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부 계산에서
얻어진 종수 사이의 비율^6,36^예컨대 식물에 대한 곰팡이의 비율과 같은을
다른 지역에 적용해 보면 틀릴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이
현장 측정이 종수를 계산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실행 가능성이 크다. 75 만 종의
곤충을 생물학자들이 동정(생물 분류학상의 소속을 정하는 것)하는 데만 약 2백30
년이 걸렸다.
만약 어윈이 추정한 대로 약 3천만 종이 실재한다면, 곤충분류학자들이 과거의
속도로 작업해 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1 만 년은 족히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큐 식물원의 책임자인 길레앙 프랑스Prance는 지금까지의
속도대로라면 분류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식물을 모두 파악하는 데 거의 4세기
가량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이들 곤충, 식물 분류학자들은 단순히 종을 세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목록으로 묘사해냈다.
그 결과 얻어진 각 목록들은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유산이다. 우리는 그 엄청난
유산 중 극히 일부의 독특한 생물 형태를 여기에 담았다. 서구 과학이 지금껏 이
일에 전념했건만 목록의 수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쏟은 노력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메이는 지구상의 막대한 생물
다양성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다음과 같이 논평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종이 지구 위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한 자리수
내에서는 알지 못한다."
한편 에드워드 윌슨은 "정말로 우리는 지구상 생물의 총수를 완전한 목록으로
작성하는 것 외에 달리 목표로 할 만한 것이 없는가?"라고 역설했다. 목록의 완전한
작성은 분명히 비용이 많이 드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연간 1억 5천만 달러가
드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나 총 비용이 약 3백억 달러에 이르는 '우주 정거장
건설'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이 들 것이다. 나는 야생동물보호국^6,36^취임한 지 약
1년이 지난 후 케냐 야생동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책임자로서 거의
매일같이 '종의 보호'를 위해 드는 비용을 실감했었다. 보통 보호의 대상이 되는
종은 상당히 특이한 종류들이다.
나는 많은 국가들이 한해 1억 달러 정도만 지출한다면 족히 인구의 지속적인
성장에 맞서 야생 생물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윌슨의 말은 분명히 과학적 가치가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류를 위해 가치가
있다. 우리는 진화 과정의 정점에 서있는 지각있는 종이다. 따라서 이 지구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지극히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8. 다양성의 가치
생태학자들이 강박 관념에 시달린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다. 생물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요즘 늘상 그 가치를 정당화시켜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약 25년 전만 해도 일부러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강박 관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다양성의 가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초엽에도 다양성의 가치는 역시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유는 조금 달랐다. 당시에는 생물의 다양성을 이루는 구성원들, 즉
주마등처럼 변화무쌍한 종들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물 요소로 인식하고 있었다.
종을 신의 손에 의한 산물이라고 보는 부류건 진화의 과정이라고 보는 부류건
자연학자들은 입장을 막론하고 다양한 종이 나타내는 창조성에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생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논의는 럭거스대학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에렌펠트Ehrenfeld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가내 공업' 수준이 되었다.
그는 "우리들 수십 명은 각자 자기 집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 다양성 보존의
찬반을 둘러싼 경제적, 철학적, 과학적 이유를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태도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맞물려 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중요한 이유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화생태학이라는 학문이
성숙하면서 '자연계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또
한층 풍부해졌다. 생태학은 수많은 세대에 걸친 자연학자들의 예리한 관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생태학이 찰스 엘톤, 에벌린 허친슨, 로버트 맥아더와 같은 선구자들에
의해 하나의 과학으로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50여 년 전에 불과하다.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이 결합된 것은 이보다 더 세월이 지난 뒤였다. 이에 따른
주요한 산물 중의 하나는 바로 '연속적인 변화'라는 맥락에서 현재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 우리는 개개의 생물을 단순히 고립된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서로 더불어 진화하는 생태계의 구성 요소로 본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이란 전체적인 변화의 표현이다. 다양성의 발생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아직도 많은 비밀에 싸여 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우리는 이 현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셈이다. 다양성의 복잡함과 상호 연관성은 가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다양성을 기계론적으로 깊이
파고듬으로써 19세기 자연학자들이 가졌던 '자연에의 경외'로 복귀했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적인 맥락에서 비롯되지 않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그대로 다양성의
가치를 판단한다.
그러나 오늘날 생태학자들이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그토록 빈번히 들먹이게 된
보다 절박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최근 생물 다양성이 점점 가속화되는 파괴의
위협 앞에 놓여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생태학자들은 다양성 손실에 따른
결과를 알고 싶어할 뿐 아니라^6,36^이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그러한
손실을 멈추도록 하기 위한 논의가 가급적 빨리 정리되기를 원한다. 종의
멸종^6,36^주로 계속적인 인구 성장에서 비롯된 공업과 농업의 팽창으로 서식처가
파괴되어가는 데 기인한다이라는 망령은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이 장에서는 나날이 증가하는 '다양성의 위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로 인해 촉구되는 '다양성의 가치 평가'라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오늘날 지구에는 약 5천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생물 종 가운데 일부를 잃는다고 해서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될까? 19세기의 자연학자들은 각각의 종이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가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개별 종들이 각각 전체에 기여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생태학자들 역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의 주제는 아주
상이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있다. 다양성에 대한 위협은 물질 자원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생태학자들의 반응도 주로 물질적인 말로 표현되어 왔다.
벌목, 광산 회사들은 자연 서식처를 파괴하면서 나무를 베고 땅 속에서 광물을
캐내면 얼마나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삼림을 일시적인 목초지로
바꾸는 목장주들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에렌펠트가 언급한 가내 공업에 관한
논의 중 상당 부분은 영리적 이득을 위해 개발됨으로써 사라질 수 있는 '서식처의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을 종과 생태계를 구하는 것이 파괴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경제적 가치를 보장한다는 것을 눈앞에 보여줄 수만 있다면,
생태계를 구하자는 주장이 좀더 강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에렌펠트는 "생태학자들은 두려움과 관심을 적절한 언어로 나타내지 못할 경우
행여 남들이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한다."고 비평했다. 그 결과 생태학자들은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둘러싼 쟁점을 경제학자들이 해결하도록 내버려두고 말았다.
그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마치 사자굴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후 결국 사자의 만찬거리로 끝나는 것과 같은 꼴이었다.
생물 다양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문제는 지극히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다. 경제도
물론 중요하다. 나는 케냐 야생생물국의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매일매일 이 중요성을
절감했다. 예컨대 지역 주민에게 있어서 '생존'만큼 중대한 관심사는 없다. 야생
생물이 번성하도록 공원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좋다 하더라도 이 경우 지역
주민들에게 뭔가 경제적인 이득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들에게 목축이나 농업을 위해 땅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며 해결 방법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논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오로지 경제가 그러한
논쟁의 한계를 설정하는 요인이 될 수는 없으며 절대로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이
한계를 개척해 보려 한다. 내가 앞으로 개척할 영역은 최근 생물 다양성을 관심사로
부각시켰던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분야이다.
또 다른 견해들도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내가 30년 동안
열정을 쏟았던 자연계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전체적인 복잡성, 즉 생물권의 많은 종 가운데
단지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는 우리를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진화의
산물이다.
생물 다양성을 평가하는 데에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내가 앞서
언급했던 경제적 영역에 딱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속한 것은 음식물, 원료, 의약 등
환경에서 추출할 수 있는 유형적인 이익이다. 두 번째 방법은 기체와 화학 물질,
수분의 순환을 통해 물리적인 환경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덜 유형적이지만 중요성의 측면에서는 결코 덜하지 않다. 또한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동료 종이 전적으로 생존을 의존하고 있는 지구 환경을 한층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치를 평가하는 세 번째 영역은 주변의 다양성을 경험함으로써 비롯된 각
개인들의 심미적 즐거움이다. 이것은 셋 중에서 가장 비유형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 나 역시 다양성의 경험이 단순한 추상적인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두드리는 구체적인 경험이다. 생물 다양성의
감상과 정신적인 의존은 기나긴 진화 역사의 산물, 즉 생물학적으로 이루어진 호모
사피엔스 정신의 일부이다. 만일 생물 다양성이 인위적 혹은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빈약해진다면 인류 존재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도 더불어 황폐해질 것이다.
'생물 다양성'과 '경제적 고려'라는 쟁점은 최근 가장 광범위하게 파급된 가치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서 이에 대한 언급을 간단하게나마 하고 넘어갈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생태학자들은 활기차게 이 경제적 논의를 계속해 왔다.
그리고 설득력 있다고 판단되는 여러 가지 경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왔다. 여기서
금전적인 액수는 흔히 가장 설득력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숫적 근거에 기초한 주장은 서구인들의 사고와 대화에서 으뜸을 차지한다. 그
영향력은 바로 명백히 나타나며 제시된 수치가 옳을 경우 더 이상 발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생물 다양성 옹호론자들이 이러한 대화선상에 아무런 준비 없이 이끌려
나올 경우 자칫 함정에 빠지게 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주변의 생물 다양성으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는다. 그러한 이익 가운데 직접 눈에 보이는 것으로
3가지^6,36^음식물, 원료, 의약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익은 '음식'으로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불과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지구상에서 극히 작은 무리를 이루고 살았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이
적어도 10 만 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광대한 환경 범위를 배경으로 수렵, 채집
생활을 했다.
얼어붙은 스텝에서 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온대의 초원에서 타는 듯이 더운
사바나 지역까지, 해안가에서 높은 고원까지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무수한 음식
제공처를 개발해 왔다. 다양한 음식물은 결국 풍부한 다양성을 제공하는 자연을
인간이 충실히 개발해 왔음을 뜻한다. 1만 년 전 사람들은 식량 생산, 즉 농업을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을 재배하고 사육할 수 있는지의 경험이 차곡차곡
축적된 결과였다. 인위적인 교배^6,36^처음에는 우연히 이루어졌으나,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일부 동식물의 식량 가치를 높여주었다.
그 결과 점점 더 적은 종이 사람의 식단에서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책임지게
외었다. 오늘날 약 20종의 식물이 전세계 사람의 위에 들어가는 식물성 음식물의
90%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단 3종^6,36^옥수수, 벼, 밀이 농작물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다지 많지 않은 식물 종에서 얻어지고 있는 이 놀라운
생산력. 이것은 얼핏 현대 농업의 승리로 보일지 모르며 실제로 자주 그렇게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단지 몇 종^6,36^본질적으로 단종 재배에 집중된 식량 생산은
질병으로 인한 대규모 파괴에 더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병원균이 잘 현재의 잡종이 방어하지 못하는 돌연변이를 거쳐 악성으로
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엄청난 피해^6,36^다종 재배라면 쉽게 막을 수도
있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것은 생태학자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논법이다. 경제학자들의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전에
환영받지 못했던 작물의 변종들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역사 시대 동안 작물로 재배되었던 7천 종 남짓한 식물이 이러한 통합의 풀pool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식용 식물은 최소한 이 숫자의 두 배,
족히 3만 5천 종은 될 것이다. 이들이 불리한 환경 조건 혹은 종래의 작물에게
치명적인 병원균이 나타날 경우에도 꿋꿋이 잘 자랄 수 있는 품종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잠재적 풍부함을 무시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
예컨대 재배 종과 교배된 옥수수와 토마토의 야생 변종은 최근의 농경 산업을
변화시켰다. 이 종을 발견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이제 생물학자와 농학자들 사이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두 경우의 야생 변종 모두 처음에는 작은
개체군^6,36^우연히 또는 경제적 개발과 서식처 파괴에 직면하여 쉽게 멸종했거나,
아니면 끝끝내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으로 존재했었다.
어쨌든 극적인 감은 떨어지지만 전문 보고서들마다 이와 유사한 예들로 넘쳐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현재의 생물 다양성 수준은 보다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
농업을 이룰 수 있는 자원으로 재평가되어야만 한다. 나는 지금 야생 식물의 엄청난
잠재력을 개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본래의 작물로서 그리고 유익한
특성^6,36^질병에 대한 저항성 등을 기존 작물에 부여하는 교배의 배우자로서
말이다. 최근 등장한 분자생물학은 야생 식물의 유전 자원을 농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확대시켰다.
10여 년 전 코넬대학의 식물학자 토머스 아이스너Eisner는 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하여 생생한 비유를 들었다 그는 하나의 종이 각 페이지에 유전자가 나타나 있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했다. 또한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 즉 유전 정보의
보고라고도 표현했다. 그리고 이 책은 모든 페이지가 그대로 묶여 있는 양장본이
아니라 페이지를 마음대로 뺐다 끼웠다 할 수 있는 루스리프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각 페이지, 즉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옮겨 다른 종의 변형에 이용할 수도
있다.
이제 농학자들은 이로운 유전자의 효과를 한 종에서 가까운 종으로 부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전공학을 통해 원칙적으로 관련이 없는 종들을 서로
무한히 재조합할 수도 있다. 이 무수한 유전자 장서들은 캄브리아기 대번성 이후로
계속해서 공진화해 왔다. 종이 절멸할 때마다 재조합의 가능성은 고갈되어가고
그것은 결코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해 되찾아질 수 없다. 물론 한때 관심
밖이었던 종을 개발하면 현재 거두는 농경 수확의 얼마만큼을 더 산출할 수 있는지
정확한 수치로 나타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연간 5억 달러를 초과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누가 부리티 야자,
마카, 나무토마토, 날개콩, 녹색 이구아나, 비쿠냐 등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기타
야생 동식물 종을 그대로 식량 자원으로 활용할 때, 또 다재다능한 유전자의 풍부한
풀로 개발할 때 이러한 활용과 개발이 식량 생산의 주된 흐름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치리라고 섣불리 예측할 수 있겠는가? 이들 종의 일부는 주종을 이루는 농업의
특징이 그러하듯 많은 수를 재배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연 서식처에서
소량을 수확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자연 서식처에서 외국산 종을 한정적으로
개발한다는 생각은 생태학자들 사이에 결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한쪽에서는 만일 생태계의 자원 개발을 한정시켜도 충분히 생활해 나갈 수 있다면
생태계는 보다 쉽게 보존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것은 나 역시 강력히
동의하고 있는 '그것을 이용하느냐 잃느냐'의 철학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영향이든 간에 인간의 손길이 미치면 생태계는 그만큼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생태계의 보존은 모든 접촉이나 개발을 막음으로써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6,36^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상관없이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의견을 입증하기 위해 찰스 피터와 앨윈 젠트리, 로버트 멘델슨은 최근
1헥타르 면적의 페루 열대림이 지닌 경제적 잠재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이러한 서식처의 가치는 대개 그곳에서 일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목재에 의해
측정된다. 그러나 그 삼림에서 가치있는 물질이 꼭 목재만은 아니다. 수많은 식량
자원 외에도 기름, 라텍스, 섬유, 그리고 즉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약
등이 있다. 피터와 그의 동료들이 연구한 1헥타르 면적의 페루 삼림에는 842그루의
나무들^6,36^이들은 약 275종을 대표한다이 자라고 있었다.(같은 면적의
온대림에는 기껏해야 6종 정도가 자랄 뿐이다)
풍부한 잠재력과 다양한 개발은 바로 이러한 종 다양성에서 나온다. 그들은 페루
삼림에서 연간 생산되는 다양한 음식물과 섬유, 기름 및 다른 시장성 있는 물질들의
값어치를 약 4백 달러로 계산했다. 그러나 이것은 해마다 되풀이될 수 있는 유지
가능한 산출액이므로 전체적인 실제 가격(경제학자의 측정치)은 6천 달러 이상이다.
여기에다 나무의 선택적 벌목을 더하면 그 값어치는 6천8백20 달러에 이른다.
이것은 같은 면적에서 완전히 목재를 벌채했을 때의 1천여 달러와 수 년간에 걸쳐
가축 목초지로 이용했을 경우 산출되는 3천 달러와 비교되는 금액이다.
피터와 그의 동료들은 1989 년 (네이처)지에 실은 연구 논문에서 "목재 외의 삼림
자원을 지속 가능하도록 개발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 없이 아마존 열대 우림의
이용과 보존을 통합하는 가장 즉각적이고도 유익한 방법이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1헥타르의 삼림을 벌채하여 그 목재를 펄프 제재소로 보냈을
때 1천 달러라는 수익을 그 즉시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임산물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고 같은 돈을 벌자면 거의 2 년 반이 걸린다. 이것은 언뜻 큰
차이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흔히 단기 수익은 장기적인 가치보다
우선시되곤 한다.
이와 같은 삼림의 '지속 가능한 개발 가치'에 관한 계산은 너무 높이 평가되었다는
둥 너무 낮게 평가되었다는 둥 여러 가지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수치가 대략적인 값이라는 반증일 터이다. 사실이 어떠하든 여기서는 우림의 가치를
오직 제재소에서 쓰일 재목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좋게 말해 근시안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범죄성 파괴라는 사실을 대변한다. 이쯤에서 다시 요점을
말해 보자. 삼림의 가치는 적절히 개발만 한다면 생태 군집을 구성하는 종의
다양성으로부터 다시 새롭게 샘솟는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메릴랜드대학의 줄리언 사이먼의 견해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삼림을 개간하여 외래종인 유칼립투스와 소나무 등의 대단위 재배장을 만든다면 그
땅이 훨씬 더 가치를 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주 명백히 잘못되어
있다. 잠재된 경제적 이익은 현존하는 생물 다양성, 특히 열대 우림 종의 다양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최근 이 열대 우림 종이 몇 가지 이유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의약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은 토착민들이 주변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 종의 상당 부분을 식량 자원
뿐만 아니라 치료 행위에도 이용한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도
이러한 사례를 내 나라, 특히 마사이족의 생활 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종종
케냐의 건조 지대에서 자라는 다육다즙 식물인 산시바리아로부터 즙을 짜내어
항균제나 염증에 효험있는 약으로 사용하곤 한다. 민간 의학의 약초 치료는
오랫동안 기이하고 신비스럽게만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서양 의학에서도 민간의 약초 요법이 강력한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지침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실제로 현재 서양 의학에서 쓰이는 약품의 상당
부분^6,36^약 25%은 식물에서 얻어진 산물을 원료로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스피린이다. 톱니꼬리조팝나무의 성분에서 추출된 이 평범한 화학
물질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품이 되었다. 서양 의약품 가운데 또
다른 13%는 미생물의 산물로 만들어지며 3% 가량은 동물로부터 만들어진다.
생물체로부터 얻어진 의약품이 첨단 기술 의학에서 거의 절반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치료약의 상당수는 페니실린처럼 수십 년 동안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저
역사적 우연 혹은 아주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기 쉽다. 마다가스카르 섬의 로지
페리윙클에서 얻어낸 2종류의 알칼로이드, 빈크리스틴과 빈블라스틴을 비롯한 다른
치료약들도 최근 들어 크게 각광받고 있다. 우연히 발견된 이 화학 물질들은 급성
백혈병과 호지킨병을 앓고 있는 치명적인 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로지
페리윙클과 그것이 서양 의학에 가져온 혜택에 관한 성공담은 천연 자원에서 강력한
의약품을 개발해낸 훌륭한 예가 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쁜 예가 되고 있기도
하다.
식물은 다목적 화학 공장이다. 그들은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광범위한 분자들은
때로는 종의 일상적인 물질 대사 과정에서, 때로는 포식자에 대한 방어의
수단으로서 생성해낸다. 이를테면 식물의 알칼로이드는 풀이나 나무를 뜯어먹는
동물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방해한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폭넓은 환경 조건 아래서
수억 년에 걸쳐 진화해 온 약 25 만 종의 식물이 존재하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둘
때 알칼로이드 무기와 여기에서 응용 가능한 화학 물질은 거의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다.
빈크리스틴과 빈블라스틴은 자그마한 로지 페리윙클에서 생성되는 60가지
알칼로이드 가운데 단지 두 종류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하면서 동시에 연간 2억 달러에 가까운 판매 수익을 올리고 있다. 생명의 구제는
자연이 제공하는 것을 개발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가치의 한 예가 된다. 이것이
바로 로지 페리윙클 이야기의 미덕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감스러운 사실은 자국의
유전적 유산을 개발하여 제약 회사들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식물의 원산지인 마다가스카르공화국은 정작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도양에 위치한 이국적인 섬 마다가스카르는 엄청나게 풍부한 동물상과 식물상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많은 종류가 마다가스카르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만일
삼림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알기만 한다면, 예컨대 그곳에서 발견된 의약에서
나오는 잠재적인 수입원을 알기만 한다면 이 나라 사람들은 기꺼이 자국 삼림의
대규모 파괴를 늦추거나 아예 중단할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유전적 유산은
예컨대 광물처럼 그 나라의 천연 자원인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그 유산을 개발하고 있는 서구 회사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마땅히 지불해야만 한다. 최근 서구의 제약 회사들이 열대 지방의 다양한
식물로부터 유망한 의약품을 찾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공정한 접근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1992년 거대 제약회사인 머크사가
코스타리카의 풍부한 삼림에서 실용화할 수 있는 약을 찾고자 했다. 이 회사는 당시
특권의 대가로 2년에 걸쳐 코스타리카에 1백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것이 좋은
선례가 되어 그후 이와 같은 예가 잇따르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의 제약회사는 연간 40억 달러 이상을 합성 의약품 연구
개발을 위해 쏟아부었다. 같은 시기 동안 천연 식물로부터 직접 추출한 처방약의
판매액은 그 수치의 꼭 2배(약 8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고등식물로부터
새로운 약을 찾아내려는 적극적인 계획을 가진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서구 과학이 식물을 뛰어난 화학 합성자로, 전통 의학을 일시적 기분을 넘어선
그 이상으로 보게 됨으로써 이러한 추세는 점차 바뀌고 있다.
여러 주요한 회사들과 많은 국가 연구 기관들이 이 연구에 가담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천연 약품의 목록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화학 물질 하나의 약효를
밝혀내고 치료약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여러 해가 걸린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이러한 의약품의 금전적인 가치가 실로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금전적 가치는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구성하는 전세계 생태
군집에 사용될 수도 있다.
새롭게 개량된 농작물의 출처로서, 또한 물질과 신약의 출처로서 자연 세계의
생물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논쟁을 벌일
때는 여기에 달러 수치를 덧붙일 수도 있다. 최근 자연 서식처에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일부 생태학자들은 반대 입장을
나타낸다. 줄리언 사이먼을 위시한 다른 생태학자들의 도전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휴 일티스Iitis는 위스콘신대학의 식물학자로 지난 10여 년 동안
8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낸 토마토 품종을 발견했다.
그는 '생물 다양성'을 주제로 한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력히 지적한 바
있다. "나는 개발업자와 경제학자, 인도주의자들의 허위에 가득 찬 요구를 더 이상
참아낼 수가 없다.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 생물학자들이 확고한 증거를 갖고
생물 다양성의 '가치'와 열대림 개간의 '피해'를 증명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확신하건대 그것은 그들을 위해 무분별한 파괴의 보증인이 되는 것과 같다. 또한
사회가 그것의 파괴를 허용할 때까지 어떤 식물이나 동물 종, 또는 이국적인
생태계가 아무런 쓸모도 없으며 생태적으로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증명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생태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일티스와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원하는 조건으로 그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생태계를 금전적 수치로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다분히
위험한 전술이다. 비록 달러 수치가 신뢰성 있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결코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보증하거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완전한 방어를 의미할 수는 없다.
장래의 물질적 혜택이 25 만 종의 모든 식물을 유지하는 데 달려 있다고 누가
진정으로 주장해 주겠는가? 물론 우리는 이들 종 가운데 어떤 것에 에이즈
치료약이나 새로운 주요 작물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수의 절반 정도라도 우리가 적절한 노력만 기울인다면 그들은
우리가 찾는 혜택을 끄집어낼 수 있는 방대한 유전자 도서관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잠재적 물질 혜택을 주지 않는 종은 어떤가? 그들은 정말로 가치가
없는 것인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물론 그렇다. 데이비드 에렌펠트는 "만일 내가
수많은 생물 다양성의 개척자 혹은 파괴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면 결국 나와 반대
입장에 서있는 보호론자와 하등 다를 바 없이 가치 평가의 문제로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환경이 변하면 가치도 변하게 마련이다. 깃대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한때 널리 이용되는 필기구였다. 그래서 당연히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지녔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전세계 식물이 지닌 새로운 의약 출처로서의
가능성은 새로운 약품 생산 방법이 개발되면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제약업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이론화학이 등장했으며 미리
조절된 환경하에서 화학 약품을 '진화'시키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로 인해 제약업은
이미 열대림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생태학자들은 열대 우림의 중요성에 대한 주된 논거를 잃게 될
것이고 오랜 논쟁은 경제학자들의 승리로 마감될 것이다. 에렌펠트는 "다양성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서 우리가 단순히 다양성을 없애는 그 과정^6,36^어떤 중요한
결정에서 문제가 되는 첫 번째 요건은 경제적 비용과 이익의 확실한 크기만을
합법화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잣대를 그대로 놓고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명백히 하기만을 계속 주장한다면 소동이 가라앉고 난 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행동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이러한 논리에 동의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이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처럼 현실에서의 보존을 일상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 경제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예컨대
공원이나 보호구로서의 생태계는 관광이라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물론
공원이나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혜택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보존'해야 할 아무런 동기도 부여하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학을
기본틀로 놓고 그 속에서 생태계의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며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줄리언 사이먼과 그의 지지자들은 열대 우림을 조림이나 목장으로 대체함으로써
땅의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들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또한 얼마 안 있어 제약업이 수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다양한 화학적
산물들을 불필요하게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생태학자들에게는 더 이상 생물
다양성을 보호할 아무런 논거도 남지 않게 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식량과 물질이
천연 자원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를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드러내주긴 하지만,
이외에도 우리를 둘러싼 자연 환경에서 얻는 많은 혜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식량 등 물질적인 것보다는 덜 직접적이지만 결코 중요성이 덜하지는
않다. 스탠퍼드대학의 생물학자인 앤 에를리히와 폴 에를리히는 이것을 가리켜
'생태계의 서비스(유용성)'라고 이름붙였다. 그러나 줄리언 사이먼은 전세계
열대림의 제거가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말로 전세계 종^6,36^식물 뿐 아니라 동물도 포함해서을 절반 이상
파괴하는 것이 지구 생물상의 기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약 10억 년 동안 지구의 대기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모두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것은 처음에 순전히 바다에 사는 광합성 생물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후
육상에서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생물의 활동 결과로 바뀌었다. 물은 지상의
'동일한 대리인'을 통하여 순환된다. 이를테면 열대 우림의 나무 한 그루는 일생
동안 약 3백만 갤론의 물을 흙에서 빨아들여 공기 중으로 내보낸다. 나머지
지역에서의 강우량은 적도 부근의 수많은 나무들이 이처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과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열대림은 바로 지구의 허파인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열대에서든 온대에서든 저희들만 따로 떨어져서 살지 않는다. 최근
덴마크의 연구자들은 자국 내에 있는 단 1평방미터의 숲 지면에서 약 4만 6천
마리의 곤충을 발견했다. 같은 장소의 흙 1g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그 속에는
1백만 마리의 세균, 10만 개의 효모 세포, 무려 5만 개의 곰팡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숫자들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울지 모르나 사실 숫자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그 수치를 통해 보는 것은 단순히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 종류가 아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생물 종 사이의 풍부한 상호 관계, 생태계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물들의 연결망을 본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끝부분에서 이러한 상호
연결의 생생한 이미지를 진화의 산물로서 그려내기도 했다.
온갖 종류의 수많은 식물과 덤불 위에서 노래하는 새들, 이리저리 휙휙
날아다니는 갖가지 곤충, 축축한 지면을 기어다니는 벌레들로 뒤덮여 붐비고 있는
강둑을 찬찬히 살펴보라. 서로 너무나 다르고 또 매우 복잡한 연쇄로 얽혀 있는 이
정교한 구조의 생물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법칙에 의해
생겨났다는 사실을 곰곰이 돌이켜보라. 너무나 흥미롭지 않은가!
이러한 상호 관계의 예는 바로 얼마 전에 발견되었다. 흔해빠진 진흙 속 곰팡이는
고등식물의 일상적인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생물학자들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너무나 놀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균사가
식물 뿌리와 긴밀하게 공생하여 필수 무기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관계가 끊어진다면 그 식물은 죽고 말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 생태계에서
미생물과 고등식물, 무척추동물, 척추동물은 서로 미로처럼 얽힌 상호 의존 관계를
맺으며 공존한다.
이들은 대기와 토양의 조성, 화학 물질이라는 물리적 환경을 창출하고 지탱하는
협력자들이다. 개별 생태계 속의 종들은 각각 그저 다른 종과 떨어져 있는 무리
속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서 작용한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도 그 상호
의존의 원형에서 한 단위를 차지하고 있다. 20여 년 전 영국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러브록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전지구 차원에서 생태계의 상호 의존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가이아 이론'으로 불리는데, 지구의 모든 생태계는
본질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며 하나의 전체로서 작용하고 주변의 자연 환경과 풀리지
않게 서로 뒤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 상호 의존성의 결과는 생명에 필요한 자연
환경의 설립과 유지이다.
가이아 이론의 일부 열광적인 지지자들은 이 이론을 너무나 비약시켰다. 그들은
지구의 생물상이 스스로 살아나가는 목적을 가진 하나의 생물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약이 심한 것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가이아
이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너무나 신비주의적으로 보였던 탓이다.
그런데 최근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신비주의의 언저리를 빠져나와 러브록이 옳았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개별 생태계의 생존력이 그것을 구성하는 생물 종의
상호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것처럼 지구 생물상의 환경적 안녕은 모든 생태계의
상호 관계로부터 나온다.
생물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 가이아 이론이 지니는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게 크다. 이 이론의 창시자인 러브록은 가이아 이론에 관한 회의가 열렸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지닌 식물이 자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근거로 열대 우림의 존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가이아 이론은
열대 우림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열대
우림은 막대한 양의 물을 수증기로 증발시켜 하얀 반사구름으로 덮인 태양 차단막을
설치함으로써 지구의 온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유지시킨다. 그러므로
열대림이 농경지로 바뀌면 전지구적인 규모의 커다란 재앙이 야기될 수 있다."
대규모 재앙의 예언은 일단 별도로 해 두자. 현재 가이아 이론의 핵심은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 입증된 상태다. 이를 통해 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화학
물질의 균형잡힌 순환이 생태계의 작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직도 가이아 이론을 신비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미 가이아는 진지한 학문 분야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이제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생물을 떠받치는 자연 환경의 보존 여부는
통합된 전체로서 작용하는 지구의 생물상을 유지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가 생물 다양성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앞서 던진 문제를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해 보자. 가이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정말로 현존하는 5천만 종 모두가 필요한가? 현재 존재하는 25 만 종 전부가
아니더라도 10 만 종의 식물이 그러한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60 만
종의 딱정벌레가 진짜 다 필요한 존재인가? 전세계의 생태계는 각각의 생물 종이
존속할 수 있는 한,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서 작용할 것이다. 이따금씩 일어나는
혼란^6,36^예컨대 폭풍이나 들불과 같은에 직면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그러한 지속(또는 안정성)이 높은 종 다양성에 달려 있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 다양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만일 안정성이 굳이 풍부한 종 다양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생물
다양성을 가치 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생태계의 안정성에는 높은 생물
다양성이 필수적 하지만 그 이외의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성^36,36^안정성'이라는 등식을 둘러싸고 수 년 동안 생태학자들, 특히
현장연구가들과 이론가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채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해답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야외생물학자들은 생태계 내의 종들 사이에 얽혀진 복잡한 상호
관계가 그들의 안정성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확실히
증명된 사실보다는 직관에 더 많이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연에서 생태학 실험을 한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의 규모는 당연히 엄청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감히 엄두를 못내는 게 보통이다. 어떻게 자연 생태계를 배열하여
조절이 가능하도록 바꾸고, 그런 다음 반세기 동안이나 묵묵히 결과를 기다린단
말인가? 그래서 지금껏 생태학에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실질적인 관찰이 거의
없었다.
둘째, 야외생물학자들은 매우 실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번 생태계
연구에 열중하기 시작하면 하나하나의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전체 속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뼛속
깊이 박힌 실재적 감각은 오랫동안 생물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1970
년대 초반 하나의 생태계에 포함된 종의 수가 적을수록 그 생태계는 더 안정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이론적 모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모델들은 주로 옥스퍼드대학의 로버트 메이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본래 계
내의 구성 요소가 많을수록 사물이 잘못 나아갈 가능성이 더 많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만일 구성 요소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계의 한 부분에서 무언가
잘못될 경우 그것은 계 전체의 붕괴로 파급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관과
강력한 수학적 모델 사이의 이 팽팽한 균형은 그후에도 수년 동안 계속되었다.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생물학자들의 의문은 그치지 않았다. 만일 생태계가
풍부한 다양성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왜 그토록 종이 다양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리벳 포퍼Popper 가설'과 '종 과잉설'이 그것이다.
'리벳 가설'은 에를리히에 의해 전개되었는데 많은 리벳이 모여 비행기를 지탱하는
것처럼 각각의 종이 생태계의 작용에서 작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몇몇 종의 손실은^6,36^마치 리벳 몇 개가 빠져나가는 것처럼전체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이 경우 반드시 위태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좀더 많은 종을 잃게
되면 특히 그 계가 생태계의 환경적 격변이나 비행기에서의 난기류와 같은 엄격한
실험에 직면하면 그제서야 어렴풋이 재앙의 기미가 나타난다. '과잉 가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학자 브라이언 월커가 제안한 것으로 핵심은 대부분의 종이
과잉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비행기 조립 부품인 리벳보다는 비행기에
탄 승객에 가깝다. 이 가설에 따르면 건강한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 소수의 중요한
핵심 종 뿐이다. 그래서 계 안에 포함된 수많은 종들 가운데 일부만으로도 생태계의
기본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 과연 어느 모델이 옳은가? 그즈음 제임스 러브록이 자신이 이론적 모델을
들고 다시 경쟁 무대에 나섰다. 그 모델은 미소 생태계를 구축해 놓은 컴퓨터
시뮬레이션^6,36^데이지월드형태였다. 데이지월드 실험 결과 생태계에 종이
많을수록 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이것은 생물 다양성과 안정성 간의 직접적인 관계,
말하자면 리벳 포퍼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론학자들은 처음에 러브록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다. 그러나 1993 년과 1994 년에 혁신적인 생태
실험의 결과들이 속속 알려지면서 그들도 러브록의 가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영국과 미국의 연구자들도 독자적으로 생태계의 생산성과 안정성에 미치는
다양성의 영향에 관한 실험을 벌였다. 생산성은 간단히 말해 하나의 생태계가
주어진 일정 기간 동안 산출할 수 있는 모든 생물량을 가리킨다. 이것은 자연
생태계 뿐만 아니라 농업계에서도 역시 중요하다. 케냐의 UN 열대토양생물학,
산출력계획국의 생물학자 마이클 스위프트는 농업계에서 나타나는 종 다양성의
혜택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예컨대 옥수수 밭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더 많은 옥수수를 빽빽이 심는 게 아니라 멜론류나 나무, 질소고정 콩과식물 등을
심는 것이다.
존 로톤과 그의 동료들 역시 영국 임피리얼대학의 야외조사국에서 행한 실험에서
종의 다양성이 생산성을 북돋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한
종의 개체는 동일한 자원, 특히 '공간'을 놓고 상호 경쟁할 것이다. 오히려 다른
종의 개체는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중간이며 어떤 것은 도리어 크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공간 영역을 이용할 수 있다. 유효할 공간이 더 많이 이용될수록 더 많은
개체를 부양할 수 있고, 따라서 자연히 생산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대다수 자연 생태계의 높은 종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수준까지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평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동남아시아의 삼림에 있는 나무 종의 다양성은
북아메리카 삼림의 6배, 유럽 삼림의 8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삼림의 생산성은
모두 비슷하다. 생산성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그것은 해답의 단지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면 안정성이 그 나머지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미네소타대학의 데이비드 틸만과 몬트리올대학의 존 다우닝은 종의 다양성과 자연
생태계의 건강을 잇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가장 중요한 발견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미네소타 주 고유의 초원
생태계에 관한 연구를 11 년간 수행했다. 그런데 운좋게도 지난 50 년 이래 이
지역이 겪은 최악의 가뭄도 그 속에 포함되었다. 가뭄은 대재앙이었을지 몰라도
실험 측면에서는 거의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이 풍부한 생태계와
종이 빈약한 생태계 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종이 풍부한 생태계는 가뭄 때 생물 종과 생산성의 손실 정도가 현저하게 낮았다.
그리고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들은 1994 년 1월 호 (네이처)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얻은 결과는^6,36^다양성안정성 가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생태계의 기능이 생물 다양성에 민감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가뭄에 대한
생태계의 저항력과 회복에 생물 다양성이 예외없이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험 결과는 결코 종 과잉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종은 좌석에 앉은 승객보다 오히려 비행기를 조립하는 리벳에 가깝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리벳을 잃어야 비행기가 위험해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아낼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생물학자들은 다양성^36,36^안정성 관계를 강력히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은 높은 종 다양성을 옹호하는 깃발을 효과적으로 내건 것과 같았다. 1994 년
초 UN 환경계획 산하 부서인 환경문제과학위원회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이
문제에 관한 증거와 의견을 조사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아무도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위원회는 그것을 인정하는 용기를 한껏 과시하면서 높은 종 다양성이 생태계에
유익하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많은 생태계에서 다소간 과잉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해서 누가 감히 그것에 손대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야생과 오지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또한 동물에 대한 강한 흥미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10 대의 소년 시절, 내 소원은 하나 뿐이었다. 나는 수렵구
관리인이 되어 위험한 야생 동물을 덫으로 잡으며 모험에 가득 찬 생활을 영위하고
싶었다. 야생생물국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나는 개발에 맞서 야생 생물을 보존해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와 부딪쳤다. 그리고 매일매일 코끼리 밀렵의 약탈품을 눈으로
보아야 했다. 그것은 거의 악몽과도 같았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깊고 본능적인
열정은 이전보다 한층 강해졌다.
어린 시절 나는 초기 인류의 유물을 찾아나선 부모님과 동행하면서 동물과 그들의
자연 환경에 관한 생생한 지식을 체득했다. 또한 야생에서 혼자 힘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를테면 불모의 사막으로 보이는 지역에서 물과 음식을
찾는 방법, 야생 동물을 추적하여 붙잡는 방법 등이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을 존중하고 또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험은 인간의 정신에 숨겨진 근원적인
무언가^6,36^대부분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부인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얻기 위해
애쓰는 것와 나를 연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거의 15만 년 동안 우리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왔다. 이러한 고도의 존재 방식은 그보다 2백만 년 이전에 이루어진
호모속의 진화와 그 기원을 같이하고 있다. 뇌의 확장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간 정신의 발달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렵 채집인의 생활
방식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자연과 지극히 친밀한, 심지어 자연 의존적인
생활이었다. 또한 자연의 모든 측면에 반응하는 날카로운 감수성도 요구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들 세계의 다른 종들을 여러 종류의 식량 자원으로 보았음이
분명하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동굴과 비위 그림을 살펴보자. 당시 그들은 훨씬 더 무수하고
경이로운 사건을 목격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나는 비록 우리가 현대의 기술 사회를 살고
있지만 가슴 속에는 수렵 채집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누누히 강조해 왔다. 소년
시절 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매료되었을 때, 그리고 올두바이 조지의
황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씩씩하게 헤매고 다녔을 때 나는 이러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15 년 전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함 본능을 가리켜 '생물 선호증biophilia'
(역주: 생물 보존증, 생명애라고도 한다)이라고 이름붙였다.
최근 윌슨은 생물 선호증을 '다른 생물에 대한 인간 본유의 감정적 관계'라고
정의했다. 그는 인간의 정신 깊숙이 깃든 그 무언가, 다시 말해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를 거치면서 바로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된 그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성의 본질, 다름아닌 우리 역사의 정수를 민감하게 건드리는 감정적 반응이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감정적 반응은 때로 부정적인 것^6,36^많은 사람들이 뱀에 대해,
심지어 추상적인 뱀의 개념에 대해서 생각할 때조차 혐오감을 떠올리는
것처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사람들이 황야를
찾음으로써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벗어던지고 위안을 얻는 것을 달리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것보다 실은
동물원에 가는 횟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또 사람들이
가능하면 시골에 집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 로저
울리히Ulrich는 도시와 시골 풍경을 두고 시간적 선택을 해야 할 경우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증명했다.
이러한 선호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어서 아마 우리 조상의 먼먼 이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시골 풍경들을 놓고 다시 시각 선택을 해야 할
경우 사람들은 드문드문 나무들이 자라는 완만한 구릉에 압도적인 선호를 보인다.
나무 중에서도 가지가 옆으로 뻗어 윗부분이 평평한 나무를 더 좋아한다.
워싱턴대학의 생태학자 고든 오리앤스Orians는 이러한 선호를 우리의 동아프리카
기원에 대한 깊은 정신적 교감으로 설명했다. 선호된 풍경은 숲이 있는 사바나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주장이 당치 않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딱 잘라말하지만 이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떤 동물을 좋아하고 어떤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생물 선호증 가설에서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야생의 자연을 향한 우리의 반응 일체를 뿌리깊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으로 본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수렵 채집인으로 지내던 아득한
옛날의 유산이다. 고도의 기술 문명을 가진 서구 문화는 지구나 태양계 저 너머
세계에 대한 존재 가능성을 강조한다.
반면에 인간 정신과 자연 세계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도 그 관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한편 다른
문화에서의 가치관은 서구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반세기 전에 아메리카 원주민인
루더 스탠딩 베어Bea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와 더불어 자란 새와 짐승들을 사랑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물을 마셨고 똑같은 공기로 숨을 쉬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또한 그렇게 믿고 있기에 우리의 가슴에는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한
크나큰 평온과 기꺼운 호의가 자리하고 있다."
서구 문화는 호모 사피엔스를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 생각해 왔다(실제로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급기야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현재와 같은
완전히 완성된 형태로 지구의 생물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어느날 갑자기
착륙했다는 말과 같다. 물론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를 기나긴
진화 과정의 산물이자 정점으로 생각하기는 쉽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특별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여하튼 다른 창조물 중에는 우리와 견줄 만한 생물이 없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아프리카 유인원들의 정신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먼 조상이 유인원에서 인간에 이르렀던 진화의
행로를 따라 다시 그 길을 재구축하는 데 누군가 한평생을 바친다면 그 격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를 우리 조상의 뿌리^6,36^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빌리스와 연결시키는 종을 육체적으로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 관한 묘사도 자세히 할 수 있으리라.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화가 일어난 전후 관계와 끊임없이
변하는 생태계^6,36^우리의 조상이 반드시 필요한 일부로서 존재했던를
새로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루더 베어가 본능적으로 암시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친밀감'이다. 오늘날 우리들 각자는 다른 식으로, 그리고 조금은 약해진
감정으로 이러한 친밀감을 경험하고 있다. 요컨대 식량, 자원, 의약과 같은
직접적이고 경제적인 이익과는 별개로, 또한 우리의 정신적 생존상 생태계 서비스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를 생물 다양성의 일부로 보는
가치 부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역시 이러한 친밀감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종의 가치는 이제 인간의 영혼까지 이른다. 과학적
맥락으로 말하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것은 일리있는 얘기다. 우리가 생물
다양성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 인간의 영혼,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보다 풍요롭게 배양해 주기 때문이다.
(자연계의 균형?)
생태 군집은 항상 지극히 조화로운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혼돈스럽고, 때로는 임의적인 많은 힘에 의해 새롭게 형상화된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끊임없는 동적 변화가 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이 참으로 군집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생태계가 한 종의 침범에 의해 얼마나 공략 당하기 쉬운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코끼리가 처한 곤경은 자연에 미치는 우리의 잠재적인 영향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복잡한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도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9. 생태계의 안정과 혼돈
극에서 적도까지 지구를 가로질러 간다면 여러분은 필시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지독하게 추운 툰드라 지대와 고산 지대의 초원에서부터
온대의 숲과 목초 지를 거쳐 열대림과 탁 트인 사바나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생태 군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바로 북미 사람들이나
유럽인들이 해마다 나의 조국 케냐를 찾는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고국과 방문한 나라의 환경은 확실히 대조적이다. 특히 동식물과 곤충, 새 군집의
차이는 확연하다.
고위도에서 저위도로 가면서 생태 군집의 종수는 증가한다. 뿐만 아니라 군집
내에 속한 종의 종류 역시 변화한다(북극곰은 열대 생태계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인간을 제외한 대형 영장류는 온대나 극지방의 자연 동물상에서 볼 수 없다). 물론
이 광범위한 형태는 종이 기온과 습도로 대표되는 지역 환경에 각각 부분적으로
적응한 결과이다. 따라서 지역 생태 군집은 개별적인 차이를 지님과 동시에 지역
환경 조건에 대해 공통적으로 적응한 종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다양성^6,36^무한하지는 않을지라도 실로 엄청난을 보기 위해 세계를 일주할
필요까지는 없다.
지구상 어디에 있든 여러분은 서로 다르며 때때로 너무나 대조적인 생태 군집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케냐의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를 덮고 있는 지극히
대조적인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이러한 다양성의
중요한 근원을 확인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계곡의 밑바닥에서부터 높이 깎아지른
단층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소 기후들이 널리 퍼져 다른 종류의 종에
대조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진화와 적응은 모든 종에 작용하며 모든 종의
유형을 창출한다. 생태학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뉴멕시코주립대의 생태학자 존
빈스Wiens의 말처럼 '자연 생태계의 유형을 추적하고 그것의 기초가 되는 원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진화의 주된 과정이 지역 환경에 대한 종의 적응임을 넌지시
비쳐왔다. 그러나 숲이나 초원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거닐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천편일률적이 아닌 패치워크(역주: 색깔이나 모양이 다른 천이나 가죽을
여러 모양으로 잇대어 붙인 것)처럼 각양각색인 자연 속을 지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산책하면서 얼마 동안은 어떤 종류의 나무가 빈번히 나타나더니 어느 틈엔가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하고, 초원의 남쪽 끝에서는 간간이 눈에 띄던 꽃이
북쪽에서는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의 패치워크는 유사하지만 서로 독특한 별개의 생태 군집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형을 만드는 '공정'은 무엇일까? 초원의 양끝은
서로 두드러지게 다른 환경 조건이 전혀 없는데도 왜 생태계가 똑같지 않을까?
그러나 제아무리 예리한 관찰자라도 토양의 화학적 성질이나 지하수면 높이 변동과
같은 결정적인 환경 차이는 미처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해석은 일부 생태학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생물학자 세스 라이스Seth Rice는 주요 평론지의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모든 생태계의 모든 환경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환경의 패치워크는 도처에 존재하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물계의 유형은 '지역 적응'이라는 과정을 거쳐 물질 세계의 기본적인
패턴에 따라 결정되며 또 그 패턴을 반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비록
생태계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직관적으로는 타당해 보이고 심지어
명백해 보일지라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보다 훨씬 덜 명백하기 하지만^6,36^
직관적으로 온당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분명히 다른 힘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지금 군집생태학에 속하는 영역을 헤매고 있다. 그것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다루기 힘든 문제를 제시한다. 핵심은 간단한 질문 하나, 즉 '생태
군집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는가'로 요약될 수 있다.
오래도록 인기를 누려온 대답은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지역 환경 조건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있다는 것이다. 또 보다 중요하게는 군집의
구성원들이 일제히 이러한 제반 조건에 단단히 적응하고, 또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6,36^실제로는 서로 의존한다다른 종으로 구성된 군집은
도저히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다소 과장된 감은 있지만
이것은 이론생태학에 불고 있는 최근 사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생태
군집의 기본 구조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자연계의 균형(생물 사이의 생태학적
평형)'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이 말과 이 말이 암시하는 속뜻에는 직관적으로 타당한 뭔가가 있다. 만일
생태계가 반드시 그렇게 존재해야만 한다면. 어찌어찌해서 교란이라도 벌어질 경우
자연은 신속한 복원을 위해 작용을 시작할 것이다. 몇 년 전 헨리 페어필드
오즈번의 아들인 페어필드 오즈번은 이러한 의견을 그의 책 '약탈당한 우리의
행성Our Plundered Planet'에 담았다. "자연은 아름다운 하나의 교향곡이다.
그러나 변치않는 본질과 거리감, 외관상의 정적 및 무변화에 둘러싸여 있긴 하지만
자연은 본디 역동적이며 목적을 위해 공동 작용하는 기계이다." 이 기계, 즉 자연은
군집을 균형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작용한다. '자연계의 균형'이라는 말은
생태학에서 지배적으로 쓰이는 은유가 되었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진실을
일깨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계의 기본적인 균형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마련했다. 그
결과 한동안 생태학은 뚜렷한 신비주의 경향을 나타냈다. 20여 년 전 이러한
신비주의가 사라진 후에도 그 말은 그대로 남았다. 모든 목적성의 개념은
배제되었고 '자연계의 균형'이라는 말은 이제 혼란을 견뎌내거나 회복하는 생태
군집의 능력을 가리키게 되었다. 또한 이제는 '안정성'이라는 보다 객관적인 말로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자연계의 균형'이라는 말을 쓰든 '안정성'이라는 말을 쓰든
스튜어트 핌이 말한 그대로 이들 용어에는 모두 틀림없이 '희미한 뭔가'가 있으며,
생태 군집이 어떻게 조립되는 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일단 형성된
군집의 행동과 특성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이들 문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많은 변수, 다시 말해 개별 종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 모두는 이따금씩 격변하는 물리적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복잡다단하다. 따라서 잠재적인 유형은 엄청나며 심지어
무한정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어떤 유형이 나타나는 이유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얼핏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다분히 학구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며 생물 다양성^6,36^우리 역시 그
일부이다의 출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강박 관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을 보존하려면 먼저
그들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극히 중대한 문제이다. 가령 서로
다른 군집의 종 조성을 설명하려면 우선 무엇이 군집 내에서 종의 개체군을
변동시키는지 알 필요가 있다.
또한 무엇이 어떤 군집을 교란에 대해, 특히 사람에 의한 소요에 취약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똑같은 조건하에서 다른 군집은 잘 견디게 만드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일부 군집은 파괴로부터 빨리 복원되는 데 반해, 어떤 군집은 왜
서서히 복원이 진행되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군집은 외래종이 쉽게 침투하는 데
비해 왜 어떤 군집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또 이러한 침입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알아두어야 한다. 나아가 어떤 종이 멸종하기 쉬우며 군집에서 중대한
역할^6,36^자신의 멸종으로 군집 멸종을 더욱 촉진시키는을 하는 종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이 질문들은 생태학자들의 대학 교재나 보호주의자들의 안내서에서 똑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장에서는 종의 개체군이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변동하는^6,36^때로는 규칙적이며, 때로는 난폭하고 종잡을 수 없는이유에
대한 반직관적 견해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의 근거는 모두 최근에
발견되었다. 이것은 자연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혀 균형 상태에 놓여 있지 않으며
오히려 혼돈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너무나
당혹스런 자연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얼핏
기본적인 조화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는 생태학자들이 군집 형성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들을
언급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생태계의 컴퓨터 생성 모델을 이용하도록
종용받는다. 생태 군집은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스스로 진보하여 외래종의 침입에
대한 내성이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마치 생태 군집 속에 '정신'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종 침입의 역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무엇이 성공적인 침입자를 만들고, 무엇이 그러한 사건의 영향을 결정하는지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보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경고성 발언을 할 것이다. 그것은 보호주의자들이 어떤 식으로
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지, 생태계의 변화를 허용함으로써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군집 생태학에서 배운 많은 부분과
비교할 때 마치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국립 자연사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을 하나같이
소름끼치게 하는 전시물이 하나 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마리는 됨직한
바퀴벌레들이 온통 바닥을 뒤덮은 채 우글거리고 있는 실물 크기의 부엌 모형이
바로 그것이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혐오감을 간신히 억제하고 그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읽은 관람객들은 그들 앞에 놓인 곤충 떼거리가 단지 한 마리의 암컷이
일생동안 번식시킨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다행히도 이러한 잠재적 생산력은 거의 현실화되지 않는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생물은 실제로 살아남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이 잠재력을
저지한다(바퀴벌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그
'무언가'에는 한정된 먹이, 경쟁자, 포식자, 기후, 질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포함된다. 한 개체군의 평균 개체수는 장기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단기간을 놓고 보면 개체수는 평균치 주변 여기저기에서 튀어오른다.
이러한 변동은 때때로 온건하고 때로는 극적이며 거칠기까지 하다. 생태학자들은
극적 변동을 개체군 폭발과 붕괴, 또는 급격한 증가와 파열 등으로 부르고 있다.
단기간^6,36^10년 또는 수십 년 정도에 이루어지는 생태 군집의 역학을
이해하는 열쇠는 무엇이 개별 종 개체군의 변동을 이끄는가에 관한 정확한 통찰력을
얻는 것이다. 로버트 메이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러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실질적인 응용성도 지녀서 한 개체군을 수확하거나 기후
형태가 변할 때와 같은, 자연 또는 사람에 의한 변화의 영향을 예측하는 데
유용하다." '자연계의 균형'이라는 제목하에서 개체군의 변동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쉽게 설명된다(물론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종의 개체군과 그것을 포함하는 군집은 평형 상태 혹은 거기에 가까운 것으로
추측된다. 외부의 간섭으로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한 군집을 구성하는 식물과 초식
동물, 육식 동물 사이의 상호 작용은 안정된 상태(평형)에 도달한다. 그리고 종
개체군들이 서로 신중한 균형 상태를 이룬다. 페어필드 오즈번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매끄럽게 잘 돌아가는 '조정된 기계'와 같다. 한정된 먹이와 경쟁적인 상호
작용, 포식자에 의한 희생, 심지어 질병의 영향까지 모두 이 조정된 기계 작용의
일부이다. 일단 종의 군집이 평형에 도달하면 이제 이 균형을 방해하는 주요한 힘은
'기후'이다.
여기에는 장기적인 변동과 폭풍, 기온 변동과 같은 갑작스럽고도 돌발적인 사건,
이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된다. 기후 변동은 일분 종에게는 유리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종들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다. 가령 폭풍은 어떤 식물 종을 10분의
1수준으로 감소시킨다. 그러면 그 식물을 먹고 사는 초식 동물 역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차례로 이 종들을 먹고 사는 포식자들도 자신들의 먹이가 감소했음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한 개체군의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동시에 이 포식자들의 다른
먹이 종은 더 나은 생존 기회를 얻게 되며 자연히 개체수가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한 차례의 폭풍은 일부 종의 개체군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한편, 다른 종은
아예 절멸시킬 수도 있다. 다른 종 개체군이 변동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자연의
평형은 깨지게 된다. 그러나 개체군이 몇 번 균형점을 지나며 왔다갔다한 후 마침내
다시 평형이 회복될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외부의 방해물이 침입한다면 이 평형은
다시 흔들릴 것이다. 생태 군집은 외부의 시달림으로부터 장기간 자유로운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개체군 역시 많은 기간 동안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캐나다 스라소니의 최근 역사는 가장 고전적인 생태학 논문의 예이다. 1735
년^36,36^1940 년까지 2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라소니는 모피를 얻기 위해
쳐놓은 덫에 붙잡혔다. 그후 무역 회사가 갖고 있던 털가죽 관련 자료를
생태학자들에게 넘겨주었으며, 이것은 스라소니 종의 개체군 역사 연구를 위한
새로운 자료가 되었다. 학자들은 이 자료를 통해 스라소니 개체군이 극적인 증가와
감소를 거쳤던 변화 유형을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1830 년^36,36^1910 년까지의
기간 동안 이 개체군은 9년이나 10 년을 주기로 절정에 달했다가 다시 급속히
감소했다.
이 유형은 분명히 어떤 규칙성을 띠고 반복되었지만 개체군의 절정은 1만
마리에서 6만 마리까지 큰 폭으로 달라졌다. 생태학자들이 처음 이 역사를 분석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 유형이 스라소니와 이들의 주요한 먹이인 멧토끼 사이의
관계(포식자 ^456,34^ 먹이)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포식자가 먹이 개체군을 극히
낮은 수준에 이르도록 먹어치우면 먹이는 급격히 감소하고 포식자 개체군 역시
줄어든다. 이제는 호식 압력이 감소하여 먹이 개체군이 회복될 수 있다. 그러면
회복된 포식자 개체군은 다시 지금까지의 전철을 밟는다. 캐나다 스라소니와
멧토끼가 계속 이 일정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 얼핏 먹이 공급의 변동
때문에 토끼 개체군의 크기가 변했고, 스라소니 개체군이 그것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시나리오는 상당히 논리적이어서 보다 긴 상호 작용의 사슬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유형이 완전히 일정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부분적으로는
변덕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다소의 '규칙성'과 가끔 뚜렷이 나타나는
'임의성'의 결합은 많은 종 개체군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변동이다. 해충도 자주
이러한 유형을 따른다. 대서양 북서부의 성게와 태평양 북서부의 은행게(역주: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걸쳐 자라는 식용게)의 폭발적 발생 역시 이 유형의
예가 될 수 있다.
어디에서 생태 군집을 조사하든 개체군의 변동뿐만 아니라 그 변동에서 뚜렷한
'임의성'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해양 플랑크톤에서부터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나방에서 쥐에 이르기까지 상황은 다 똑같다. 자연계의 균형과 개체군 평형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개체군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6,36^규칙성이든 뚜렷한 임의성이든 아니면 이 둘의
결합이든기후 변동과 같은 외부 압력이 직접적으로 미친 결과라고 말해진다.
개체군의 역사가 때때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들 혼란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아니, 반영한다고 그동안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일부 생태학자들이 약 20년 전부터 이러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도 생태 군집 자체의 내부적 동인과 관계된 무언가가 이러한
유형은 창출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뚜렷한 임의성은 사실 전혀 임의적이지
않으며, 대신 '카오스(혼돈)'로 알려진 현상의 일면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돈 또는 무질서로 묘사되는 계가 당연히 임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변덕스런 행동을 간단히 분석할 수 있는 아무런 토대가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러나 제임스 글릭크의 '카오스'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최근 수학자들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결코 임의적이지는 않은 계를 밝혀 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계의 행동은 수학 방정식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계의 행동은
수학적 법칙에 따라 일어나지만 너무나 복잡해서 실제로는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은
사뭇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수학자들이 '결정론적 카오스'라고 부르는 개념을 대강
정리한 것이다. 현재 이러한 계는 기후 형태나 유체의 교란(역주: 난류를 말함)과
같은 수많은 물리계 현상에서 이미 분석되었다. 그러나 생태 군집의 개체군 변동이
처음에 '혼돈 행동의 가능한 출처'로서 연구된 최초의 현상 가운데 하나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구 작업은 20여 년 전 로버트 메이에 의해 행해졌으며 전통 과학 잡지인
(네이처)에 실리기도 했다. 생물학자들은 좀처럼 메이가 밝혀낸 방식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자연계의 균형'과 '개체군의 평형'이라는 개념에 아직도 강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러한 류의 생물계가 그 어떤 물리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분석하기 어려워서였다. 메이는 언젠가 "일부 생태학자들은 (카오스가) 검은 주술의
분위기를 풍긴다고 여긴다."고 쓴 적이 있다. 생태학자들은 '평형'이라는 개념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만 계속 찾았다. 반면에 무언가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혼돈스런 행동은 무시해 왔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오랫동안 찾아왔던 '생태 군집의 진정한 혼돈 행동'에
관한 증거가 현장 실험과 이론적 모델에서 밝혀졌다. 이제 우리는 자연 세계와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유형을 구체화하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갖도록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좀처럼 인정하기 어렵다. 철저히 직관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읻자. 1980 년대 중반 미네소타주립대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틸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서로 다른 토양의 질소 함량은 팬트
덩굴식물(미국산 야생풀의 하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처음 이 실험을
계획했을 때 틸만은 카오스 현상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나중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 존재를 솔직히 인정했다.
질소가 낮은 수준일 때는 씨를 듬성듬성 뿌리거나 빽빽하게 뿌리거나에 상관없이
생장량이 5년에 걸쳐 일정했다. 그러나 질소 함량이 높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카오스 행동의 전통적인 징조^6,36^임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증가와
감소가 나타났던 것이다. 한 지점에서 팬트 덩굴식물의 개체군은 이전 수준의
6천분의 1로 떨어졌다. 그것은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른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실제로 그 평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토양의 높은 질소 함량이 빠른 생장을 부추겨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겨울 동안 죽은 이들의 잎이 두터운 층을 이루어 이듬해 봄 식물의 생장에
해를 미쳤던 것이다.
이에 따라 급격한 증가와 감소의 유형이^6,36^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번갈아 나타났다. 적당한 질소량에 의한 보다 적당한 생장이 훨씬
안정적인 개체군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1991 년 말 틸만이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자 학계는 놀라움과 흥분에 휩싸였다. 틸만이 행한 자연 실험은 유난히
설계와 이행이 쉽지 않아 이론 연구가 강세를 띠는 생태학 분야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생태계의 실험적 조작은 지독히 까다롭다. 틸만의 보고에 이러 로버트
메이와 두 명의 동료가 틸만의 계와 아주 흡사하게 행동하는 어리기생충과 그
숙주의 수학적 모델 결과를 발표했다.
이것은 외부의 방해 없이 종들이 서로 상호 작용할 때 그후의 많은 세대에 걸쳐
종잡을 수 없는 개체군의 변동이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 메이는 이 모델에서 종과
그들의 상호 작용을 수학 방정식으로 설명했다. 이 경우 계의 복잡성은 내부로부터
흘러나왔으며 결코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똑같이 중요한 것은
뚜렷이 임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 간단한 수학적 관계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카오스의 징조이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분교의 앨런 해스팅스와 켈빈 히긴스는 은행게
개체군의 모델에서 무언가 앞의 예와 비슷한 것을 보았다. 연구자들은 간단한 수학
방정식을 이용해서 그 종과 이론상의 추이에 따라 종의 행동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그 행동은 안정된 기간과 심한 개체군 변동 기간을 거쳤다. 그들은 1994 년 초
(사이언스)지에 실린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개체군의 폭발적 증가는 생태
역학의 기본 특성일지도 모른다. 단, 물리적 생물학적 조건의 변화가 없다면."
개체군의 크기는 계 내부에서 벌어진 상호 작용 결과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이 경우 외부적인 변화가 없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하다'라는 설명은
자연계의 여러 유형을 보다 진보된 눈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애리조나주립대의 생태학자 윌리엄 사퍼와 마크 콧은 생태계의 카오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많은 공헌을 해왔다. 그들은 "카오스 개념은 흥분과 다소간의
위협을 내포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개체군 변동은 순전히 외부적인 혼란의
결과'라는 생각에 결정론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동시에 카오스는 현대 생태학의
개념틀을 밑바닥에서부터 잠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태학의 개념이 카오스에 의해 흔들리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생물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면 카오스는 분명히 플러스의 힘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안정된
군집은 하나 또는 소수의 종에 의해 우세해질 수 있다. 반대로 개체군의 변동이
군집을 보다 높은 종 다양성으로 이끌 수도 있다. 따라서 생태 군집의 내부
역학으로부터 나오는 혼란스런 행동은 모두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힘인 것이다.
카오스는 이보다 더 많은 경악스러움을 생태학자들에게 안겨주었다.
나는 이 장의 첫머리를 수많은 환경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패치워크^6,36^서로
비슷하지만 사실은 각각 독특한 생태 군집으로 이루어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판에 박힌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작지만 중요한 물리적 환경 조건의
차이를 반영한다. 하지만 카오스는 이와는 다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로버트
메이와 그의 동료들은 어리기생충과 그 숙주에 관한 연구에서 개체군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크기만 변동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서의 분포 역시 고르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론상 균일한 풍경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3종 이상의 모델을 연구했으며,
그 결과 흔히 상호 작용의 역학이 종을 서로 격리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은
1994년 여름 (네이처)지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
이것은 서식처 내에 작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섬'을 생성한다." 서식처를
가로질러 나타나는 종 분포에서의 변이^6,36^삼림의 나무와 초원의
꽃식물처럼는 생태계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는 경쟁과 분산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동안 서식처의 물리적 조건에 따른 반응의 일부로서 설명되었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이라는 반직관적인 관점에서는 더 이상 이 설명은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다. 설령 다른 군집이 살고 있는 지형이 정확히 같다 해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짜집기 유형은 생태계의 내부 역학으로부터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자연의 세계는 평형 상태가 아니다. 자연계는 조화를 위해
애쓰는 '협력 기계'도 아니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재미있는 곳이다. 지역 물리
조건에의 적응과 기후 등 외부적인 힘이 우리가 보는 세계를 구체화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인식하는 유형의 상당 부분이 시간과 공간 두 가지 측면 모두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것 또한 명백해졌다. 이것이 비록 보호지역 관리인들의
일을 훨씬 힘들게 만들었지라도 어쨌든 흥미진진한 통찰임에는 틀림없다. 한동안은
가능한 한 외부 조건들을 관리함으로써 개체군의 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더 이상의 용이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그들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거의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무한한 변화와
복잡한 과정 속에 놓인 자연계를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1789 년 레버랜드 길버트 화이트라는 영국 남부의 성직자가 '셀본의 자연사'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펴냈다. 이 책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놀라운
작품이다. 그는 이 책 속에 태어나고 자라서 성직 생활을 했던 마을과 그 부근의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담았다. 개별 종의 행동에 대한 관심은 거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군집의 구성원으로서의 종에 초점을
맞춘 사람은 레버랜드 화이트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는 현대 군집생태학의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조립
법칙assembly rules, 먹이 그물, 영양 단계 등을 들먹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화이트는 상호 의존의 수준과 다른 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인식했다. 그것은
현대 군집생물학이 당면한 가장 도전적인 문제, 즉 '무엇이 생태 군집을 그런 식으로
나아가도록 지배하는가'라는 문제의 중심에 서있다. '계획'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인가 라는 미숙한 이분법이 여기서 하나의 응답으로 제시된다.
보다 명확히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일정한 군집의 종과 관련된 특별한
무언가^6,36^그 서식처에서의 최적의 종 조립 등과 같은가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질서가 다윈이 말한 '생물로 뒤얽힌 강둑'의 기초가 되는가? 실제
세계를 조사하여 이에 쉽게 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생태계의 시간적,
공간적 규모 자체가 손쉬운 분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집 생태계의
기초 연구는 대부분 컴퓨터 상에서 연구자들이 실험적 생태계를 조작함으로써
진행된다. 이러한 계들은 자연 세계에 비해 훨씬 간단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로부터 강력한 메시지가 대두되었고 카오스에서 비롯된
통찰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반직관적이다. 예컨대 10여 년 전
테네시주립대의 스튜어트 핌과 맥 포스트는 식물, 초식 동물, 육식 동물에 각각
동시에 1종을 보탬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생태계를 조립했다. 이들 각 종은 형태와
크기, 분포 범위와 먹이 자원에 대한 요구를 포함하는 일단의 행동에 근거하여
수학적으로 설명되었다.
핌과 포스트는 화재 이후, 혹은 화산 섬과 같은 처녀지가 개척될 때 자연에서
본질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컴퓨터에서 행했다. 생태 군집은 '천이'라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조립된다. 처음에는 척박한 서식처에서 번성할 수 있는 간단한
생물에서 시작하여 점차 이미 존재하는 생물에 의존하는 더 많은 종을 포함하게
된다. 가령, 식물 종이 확립되기 전까지 초식 동물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먹이
종이 번성할 때까지 생태계는 포식자를 가질 수 없다.
컴퓨터 모델에서는 종을 임의적으로 군집에 더한다. 특정한 군집을 만들려는
의도도 없다. 오히려 군집이 발전해 나가는 대로 그저 내버려둔다는 식이다. 그러나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식물 종은 초식 동물에 선행되어야만 했고, 초식 동물은
포식자에 선행되어야만 했다. 군집을 형성하는 역학은 참으로 놀라웠다. 처음에는
종이 쉽게 더해질 수 있었다(생태적으로 논리적이기만 하면 말이다). 그러나 군집의
크기(종의 전체 수)가 커지면서 새로운 종이 그 군집의 일원이 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생태계가 약 12종을 가질 때쯤 침입은 극히 어려워졌고,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하나 또는 그보다 많은 기존 종을 잃는 결과를 가져오기 일쑤였다. 이것은 다윈의
쐐기 비유^6,36^종이 빽빽하게 포개져 있어 새로운 쐐기를 때려박으면 기존의
쐐기가 밀려나온다는를 상기시켰다. 핌과 포스트는 생태학적인 면에서 기존
군집에 침입한 외래 종의 성공과 그것이 군집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다. 외래 종의
성공은 종이 빈약한 군집에서는 쉬운 반면 종이 풍부한 군집에서는 힘들었다.
30여 년 전 영국의 생태학자 찰스 엘튼은 '이러한 유형은 자연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이런 유형이 나타나는 것일까?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군집의 종수가 증가함에 따라 생태적 지위가 점점 채워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미 가득 차버린 생태적 지위를 찾아든 침입자는
비어있는 생태적 지위를 침입한 종보다 자리잡기가 훨씬 어렵다. 전자의 경우,
침입자는 군집의 일원이 되기 위해 기존의 종과 과다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침입자는 그러한 경쟁과 맞닥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생태학적으로 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 잠재적인 침입자는 우선적인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존 종이 아닌, 군집 전체의 도전을 감당해내야 한다. 이 점은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분교의 테드 케이스Case가 세운 컴퓨터 군집 모델에서
보다 명확해졌다. 그는 여러 종류의 서로 다른 컴퓨터 군집을 구성하고, 각 종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어떤 경우에는 강하게 또 다른 경우에는 약하게 하는 식으로 그
정도를 조작했다. 케이스는 그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적었다. "많은 종이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군집은 대다수 종의 침입 가능성을 제한한다. 이들 군집은 침입자가 설령
막강한 경쟁자라 할지라도 일종의 '활성 장벽'을 구축하여 적은 수로도 능히
침입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친다."
만일 생태적 지위설이 옳다면 기존의 종보다 경쟁적으로 우위인 침입자는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종의 군집은
상호 작용이 약한 군집보다 외래종의 침입에 비교적 덜 취약하다. 침입하려는 종이
우월한 경쟁자일지라도 말이다. 케이스는 "이 모델들은 침입자 성공 비율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침입자의 속성보다는 오히려 '군집 단계'를
지목한다."고 결론지었다. 만일 이 가설이 옳다면 여기서 도출된 결과는 생태계의
역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보존의 차원에서도 지극히
중요하다. 흔히 보존지역 관리자들은 '침입하는 외국산 종에 비해 경쟁적으로 열등한
군집 내의 종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케이스의 모델로 보아 열등한 종은 풍부한 군집, 즉 방해받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군집에서 가장 높은 생존 가능성을 지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군집 전체의
교란을 막으면 군집 내에 방어망이 창출되어 가장 취약한 종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보호망'이라는 말은 어쩐지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정답은 '먹이 그물'이다. 다윈은 이
먹이 그물을 '어떻게 군집이 이루어지며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생물로 뒤얽힌 강둑의 도로 지도'로 묘사한 바 있다. 이 지도는 '누가 누구를
먹는가'와 같은 군집 내 종 사이의 상호 작용을 나타내며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지도에 매료되어 왔다.
먹이 그물의 형태는 이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복잡해 보여서 생물학자들은
처음에 각 군집마다 독특한 먹이 그물을 가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피상적인
복잡성을 파헤쳐가는 동안 그들은 모든 먹이 그물이 서로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군집의 종류에 상관없이 먹이 그물은 몇 가지의 공통적 특성을
가지는데 여기에는 먹이 연쇄의 길이, 포식자 종과 먹이 종의 비율이 포함된다. 어느
곳의 자연을 둘러보든 비슷한 유형이 그 안에 존재한다. 서로 다른 군집들 사이의
공통점이 무한한 다양성을 지닌 또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은 자연의
밑바탕에 깔린 그 무언가 기본적인 질서를 감지하게 한다.
이러한 질서는 계 자체의 내부 역학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며 외부 환경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 테드 케이스가 자신의 컴퓨터 모델에서 조작한 종 간의 상호
작용은 실제 세계의 먹이 그물을 나타낸다. 따라서 케이스가 강한 상호 작용을 지닌
군집에서 발견한 보호망은 기초적인 먹이 그물의 유형이 갖는 속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가 행한 반직관적 관찰을 설명하기 위해 그 어떤 신비한 힘도 끌어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튜어트 핌과 맥 포스트의 컴퓨터 모델에서 스스로 조립된 생태계는 실제 세계의
먹이 그물 형태와 거의 닮은 종들 사이의 상호 작용망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것은
비록 그 모델이 단순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러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여기에서 더 깊은 인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첫 번째 결과^6,36^종이 풍부한
군집보다 종이 빈약한 군집이 훨씬 더 쉽게 침입을 받는다를 상기해 보자.
여기서 주목할 것은 종이 풍부한 군집으로의 침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만약 풍부한 종을 가진 군집이 성숙해지도록 그저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정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대신 서서히 종의 변동을 겪게 된다. 침입의 일부는 성공적이며 이
경우 대개 기존 종의 손실을 가속화시킨다. 군집 조성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
지극히 동적이다. 그러나 일단 성공한 종이라도 후속 침입의 희생물이 되어 군집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지속된 존재라도 군집에 모래밭의
발자국처럼 흔적을 남긴다.
핌과 포스트의 연구에서 드러난 두 번째 결과는 종이 풍부하며 성숙한 군집은
새로 이루어진 군집보다 침입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는 것이다. 마치 성숙 과정 중에
뭔가 군집 내에서 나타나는 방어망을 강화시키는 작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군집은 거의 의도적으로 보다 나은 방식^6,36^정의하기 힘들긴 하지만을
취하며 스스로 진보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결과는 결코 난해한 컴퓨터 모델에서
나온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에서도 똑같은 일이 정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령, 하와이에는 2종류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고지대 삼림이다. 따라서 이들은 성숙하고 종이 풍부한 생태계를 나타낸다. 두
번째는 인간의 활동으로 교란되고 있는 저지대 삼림이다. 이러한 교란으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설령 종은 풍부하다 할지라도 조립의 미성숙 단계에 있게
된다. 하와이는 최초의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이 약 1천5백 년 전에 도착한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개척되었고, 이 시기를 통해 많은 외래종이 고의적으로 혹은 우연히
함께 들어왔다.
그래서 하와이에는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새와 식물 종이 도입되어 있다.
하와이 제도 곤충의 28%와 식물의 65%는 고유종이 아니다. 포유류는 모두 최근에
도입된 종들이다. 30여 년 전 찰스 엘튼은 '동식물에 의한 침입생태학'에서 이
상황을 가리켜 '세계 동물상과 식물상의 역사적 최대 회선의 하나'로 묘사한 바
있다. 외래종은 매시기마다 생태계 내에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으며 그만큼
고유종의 개체군 크기를 감소시켰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문제는 이렇다. 외래종은 어디에 자리잡았는가? 저지대의 미성숙한 생태계였는가
아니면 고지대의 성숙한 생태계였는가? 전자가 압도적이다. 성숙한 생태계는
미성숙한 생태계에 비해 아주 확실히 침입에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생태학
이론에서는 이를 일컬어 성숙한 생태계가 영속적인 단계에 도달했다고 표현한다.
성숙한 군집은^6,36^실제 세계든 컴퓨터상에서든미성숙 군집에서 거부되는
중요한 생태 특성을 띠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명백히 추론하건대 조립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월한^6,36^가령, 식물 종에서의 생산성
우위라든가 포식자 종에서의 빠르기 혹은 몰래 접근하는 기술의 우위와
같은종에 대한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자명한 논리겠지만 우위 종의 군집은 열등한 종으로 구성된 군집에 비해
생태학적으로 역시 우위에 서있을 것이다. 그러나 핌과 포스트가 컴퓨터 모델상의
영속적인 군집에서 종의 행동 특성을 조사했을 때 그들은 우월함의 어떤 징후도
찾아낼 수 없었다. 생태적인 면에서 침입에 성공한 종은 군집의 일원이 되는 데
실패한 종들과 차이가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정확한 매개 변수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추측'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
퍼듀대학에 재직 중이던 생태학자 짐 드레이크Drake가 비슷한 컴퓨터 모형 작업을
수행했을 때 보다 분명해졌다.
드레이크는 핌과 포스트가 행했던 방식처럼 임의로 종을 하나씩 더함으로써 생태
군집의 조립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그는 총 1백25종으로 한계를 설정했다. 설령
어떤 종이 처음 한 번의 기회에서 침투하지 못했더라도 다음 시도에 이용될 수
있었다. 지속적인 군집은 12종쯤에 와서 완성되었다. 그런 다음 드레이크는 똑같은
종 집단을 이용하여 작업을 다시 시작했고, 역시 지속적인 군집은 약 12종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다른 군집이었다. 두 번째 군집과 첫 번째
군집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종은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그는 이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하며 매번 성숙한 군집을 얻었고 그들 각각의
조성은 다른 군집과 전혀 달랐다. 게다가 군집 속의 종 가운데 다른 종보다 어떤
면에서 '월등하다'고 확실시되는 것도 전혀 없었다. 어떤 종일지라도 제때에
더해지기만 하면 지속적인 군집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중요성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매혹적이다. 우선 무엇보다 우리는 영속적인 군집이 임의적인
종의 첨가라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지속성'
또는 '안정성'이라는 생태학적으로 결정적인 특징이 종의 우월한 성질을 통해서가
아니라 군집 내 종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웃한 생태계 간의 차이는 전통적으로 다른 물리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되어 왔다. 그리고 이제 핌, 포스트, 드레이크의 연구로 우리는 지역
환경에의 적응, 즉 역사를 포함하지 않는 두 번째 짜집기의 근원을 갖게 되었다.
지속적인 생태계의 최종적인 조성은 성숙한 계의 일부가 되기 위해 시도를 거듭하는
종의 순서에 의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때때로 일찌감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이익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늦게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어떤 종이 이미 조성된 군집의 일부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앞장에서 '내력'이나 '우연성'이 생태계의 진화를 구체화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었음을 알았다. 반면, 적응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오히려 그 역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서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보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짐 드레이크는 자신이 컴퓨터 종으로
했던 작업을 다시 미생물^6,36^거의가 다양한 종류의 조류을 대상으로 삼아
실험적인 검증을 거쳤다. 그는 종을 임의적으로 보태어 서로 다른 다수의 지속적인
군집을 얻었다. 이 경우 역시 '내력'이 문제가 되었다.
얼마 전 스미스소니언연구소와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마틴 부자스와 스티븐
쿨버라는 2명의 고생물학자가 이 현상에 관한 화석 기록의 조망을 수행했다. 그들은
북아메리카 대서양의 해안 평원과 가까이 있는 바닷가 군집의 조성을 조사했다. 이
지역은 지난 5천5백만 년 동안 해수면이 여섯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여섯 번에 걸쳐 이 지역의 종 집단으로부터 새로운 군집이 근해 서식처에
형성되었다. 또 여섯 번 모두 군집의 조성이 달랐다. 이 관찰 결과를 두고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생태학자 제레미 잭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긴밀히 통합된 해양 생태 군집'이라는 개념의 종말을 고하는 조종임에 분명하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인 우연성이 진화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가 반직관적인 것처럼 느껴지는가? 짐 드레이크가 행한 관찰을
자세히 살펴보면 갑절은 더 그렇게 여겨질 것이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내 컴퓨터 모델에서 만든 영속적인 군집들은 매우 작동이 잘 된다.
따라서 나는 이들 중 한 군집을 택해 군집을 구성하는 오직 12종 남짓한 종만을
이용해서 처음부터 다시 재건해 볼 작정이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재건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군집을 해체한 후에는 그 종을 어떤 순서로 더하든 간에 상관없이
다시 되돌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핌은 이를 '험프티 덤프티 효과'(역주: 험프티 덤프티는 영국 동요에
나오는 알 모양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담에서 떨어지면 깨져 버린다고 함. 즉, 한번
깨지거나 넘어지면 원상으로 되돌리지 못하는 것을 뜻함)라고 불렀다. 이 설명은
수학적으로 생각할 때 다소 난해하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지속적인 상태 Z에
도달하기 위해 생태계는 A단계에서 Y단계까지 거쳐야만 한다. 이것은 생태학
회에서 떠드는 탁상공론쯤으로 들릴지도 모르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최근
줄어들거나 파괴되는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한층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중서부의 대평원과 플로리다 주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복원 작업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생태학자들은 종종 역사 기록은 통해서 때묻지 않은 군집의 종
구성을 알게 되곤 한다. 방금 설명한 연구가 행해지기 전까지 생태학자들의 관심은
단순히 복원 계획 중인 생태계의 필수적인 종을 수집하여 선택된 서식처에 방출하는
것에 머물렀다. 그러나 매번 의도대로 작용되지 않았고 그들은 매번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눈에 보이는 자연만이 전부는 아니다. 생태 군집 내에는 반직관적인, 따라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동력이 작용하고 있다. 군집은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얼핏 목적을
갖고 스스로 진보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연'과 '역사'가 진화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이러한 역학을 드러내고 시간의
흐름을 통한 변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장차 보호주의자들에게 유익함이 될 실제
생태계의 이야기로 이 장을 맺으려 한다. 보츠와나 북부의 초베 국립공원은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 있는 여러 생태계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곳에는 많은 대형 초식 동물들^6,36^기린, 물소, 코끼리, 얼룩말, 누, 임팔라
등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이주하며 살아간다. 사자, 하이에나, 야생개,
자칼은 풍부한 육식 동물군을 이룬다. 초원에 아카시아 숲이 듬성듬성 자리잡은
모자이크 서식처는 다양한 새와 곤충 종을 숨겨준다. 요컨대 초베 공원은 사람들이
'야생 동물'이란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바로 그런 종류의 풍부한 종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원 관리자들은 이 다양성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도 해야 하지만 원래대로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더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아카시아 숲이
코끼리들에 의해 마구 파괴되어 가는데도 새로운 나무는 전혀 자라지 않고 있다.
숲이 줄어들어 단지 옛 자취로 남게 되면 관리자들은 자신이 다양성의 보존에
실패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들은 모든 것이 지금처럼 유지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유지하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잘못이다. 뿐만 아니라 유지 자체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 공원의 생태 역사를 들여다보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다.
사부티 수로는 주변 지역의 표면수 공급원으로 매우 중요하다. 물이 가득 찰 경우,
이 수로는 앙골라에서부터 린얀티 늪지를 경유하여 사부티 소택지^6,36^지금은
초원으로 변했다로 흘러들어간다. 1800 년대 말에 가득 찼던 이 수로는 1900
년대로 접어들면서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기 1950 년대 중반까지 계속 말라있는
상태였다. 그후 물이 좀 차는가 싶더니 1982 년에 다시 말라 지금까지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 사부티 수로가 마르고 난 직후, 그곳에서 우역(역주:
소 전염병. 반추동물의 급성 바이러스 병)이 창궐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오늘날
아카시아 숲이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해냈다.
물의 부족은 코끼리가 물을 찾아 사방을 헤매도록 했으며(사냥도 코끼리의 숫자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우역이라는 풍토병은 유제류 개체군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의 방목 압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아카시아 묘목^6,36^많은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이다은 나무로 완전히 자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즈음 코끼리의 유제류가 다시 회복되었고 광대한 아카시아 숲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지역에서 상세한 연구를 수행했던 브라이언 월커Walker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수많은 코끼리와 광대한 아카시아 숲의 공존은
시간상 매우 한정된 장면을 나타낸다. 이 공존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이 지역에서 코끼리와 유제류 무리가 번성하는 한
아카시아 묘목은 다 자랄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숲이 다시
무성해지려면 동물들이 제거되어야만 할 것이다. 월커는 "문제는 관리자들과
관광객들이 사실상 동물을 볼 수 없게 되는 10 년에서 15 년 동안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초베 공원의 종 다양성은 자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는
실질적인 환경 변화에 의해 생겨난 결과이다.
공원 관리자들은 흔히 그러한 변화를 거스른다. 적어도 가치있는 무언가가 뚜렷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렇게 한다. 생태계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모두 일정한 혼란 상태에 있으며, 어느 시점에서 일부 개체군이 감소하는 반면 또
다른 개체군은 번성할 수도 있다. 일정한 변화는 종 다양성의 원동력이 되므로 변화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월커는 "보호주의자들은 특정한 식물이나 동물 종의 존속을
걱정하는 데 쏟는 시간을 좀 줄일 필요가 있다. 대신 이제는 생태계 과정의 본질과
다양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군집 조립의 카오스적인 측면이나 역학을 이해함으로써 생태계의 본질에 대한
안목을 갖춘다면 월커가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 내용이 옳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무릇 인간만사가 다 그러하듯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을
관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리고 줄어드는 숲,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수수방관하며 지켜보기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그렇게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10. 인간이 과거에 미친 영향
2백만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구는 몹시 추운 빙하기와 따뜻한 간빙기가 번갈아
되풀이되는 빙하 시대의 영향 아래 있었다. 지질학자들이 '홍적세'라고 부르는 이
시대가 1 만 2천년 전에서 1 만 년 전 사이에 갑작스럽게 끝나고 그후 '충적세', 즉
'현세'로 이어졌다. 간빙기에서 빙하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이행할 때마다 매번
지구상의 식물 군집은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지구의 기온이 뚝 떨어지면 열대림은 조각나 줄어들었고 고위도의 삼림대는 적도
쪽으로 이동했다.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식물에 그들의 생존을 의지하는 동물
종들 역시 가능한 한 식물들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나 간빙기가 시작되자 이와는
반대 양상이 벌어졌다. 홍적세는 서서히 지구 생물상에 동요를 일으켰다. 그러니 이
시기에 종의 생성과 멸종이 유달리 많았다는 사실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평형 상태의 멸종 양상에는 묘한 불균형이 있었다. 큰 종, 특히 몸무게
45kg이 넘는 대형 포유류가 두드러진 취약함을 보였던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
살았던 도울 가운데 최대의 종인 흰긴수염고래가 오늘날 살이 있긴 하지만 현재
우리가 속한 육상 척추동물계에는 매머드와 매스토돈, 디노테륨과 디프로토돈과
같은 거대 동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비대칭적인 동물상을 이끈
소위 '대형 동물상의 멸종'은 홍적세를 특징짓는 증거로서 수 세기 동안
고생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해왔다.
홍적세에서 일어난 비대칭적인 현상, 즉 대형 동물상의 멸종은 단순한 사실
자체를 넘어서 아예 수수께끼처럼 인식되고 있다. 아프리카 외의 지역에서
대부분의 멸종은 홍적세 말에 일어났다. 그리고 빙하가
마지막으로^6,36^현재까지는퇴각하던 맨끝 무렵 많은 수의 멸종이 집중되었다.
가령,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50종의 대형 포유류가 약 1만 2천 년 전 당시를 전후한
2백만 년 동안에 멸종되었다. 그러다가 1만 2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 잠시
동안의 파괴적인 동물상 붕괴로 약 57종의 대형 포유류가 사라지고 말았다.
빙하기에서 간빙기로의 이행 과정과 이들의 죽음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어떤 명백한 결론을 이끈다. 1876 년 자연 선택설의 공동 주창자인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당시의 멸종은 빙하 시대로 알려진 근래의 현저한 물리적 변동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온 상승으로 인한 대규모 식물 군집의 붕괴가
동물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고 믿었다. 월리스는 또한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월리스는 마음을 바꿔 다른 '용의자'를 지목했다. 1911 년
그는 "그토록 많은 대형 포유류가 급속히 멸종한 데는 사실상 사람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생각을 달리한 까닭은 빙하
작용이라는 환경의 영향이 사실 너무 한정적이어서 그 시기에 나타난 엄청난 멸종을
일으키기에는 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홍적세 말의 멸종이 인간에 의한 작품임을 주장했던 경우는 물론 월리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1860 년 영국의 해부학자 리처드 오웬 경은 '전인미답의 한정된 땅에
유령처럼 출현한 인류'로 인해 그러한 멸종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서 스코틀랜드 태생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은 인간의 사냥에 의한 종의
절멸은 '거의 모든 자연학자들이 무엇보다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자연학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의 말은 다소 과장된 것이긴 했다(1850년대 이전만 해도 인간이 홍적세의
동물들과 공존했다는 증거는 여전히 논쟁거리였고, 이런 상황에서 남획으로
멸종했다는 가설은 아무래도 지지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월리스가 20세기 초 '인간이 야기한 멸종'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이 가설은 카다란 지지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멸종의 원인이
'기후'냐 '인간의 영향'이냐 하는 문제는 계속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이 장에서 대개
이전에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이 개척되면서 인간이 생태 군집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는 두 가지 이유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첫째, 원시의 때묻지 않은 땅을 사람이 거주지화한 것은 종의 침입과 그 침입이
기존의 군집에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완전히 발달하여 풍부한 종은 지닌 군집은 대부분 종의 침입 시도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여느 다른 종과는 다르며
이들의 침입 시도는 거의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또 거의 언제나 기존의 군집을
파괴해 왔다.
둘째, 오늘날 우리가 자연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평가하려면 그에 따른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다. 이 장은 바로 이러한 시각을 제공한다. 오랫동안 자연계를
유린하는 사람 종의 능력은 멸종 수준이 큰 경우 비교적 최근의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월리스 시대의 생물학자들은 17세기 이후 유럽인들의
식민지화 열풍이 자연계의 균형에 뚜렷이 파괴의 흔적을 남겼다고 인식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태평양 제도의 폴리네시아인과 같은 초기의 이주자들은 파괴라는
면에서 결백하며 그들 역시 자연스러운 조화의 일부였다고 생각했다(실제로
원시적인 사회에 대한 서양의 정서는 크게 바뀌었다. 원주민들을 거칠고 야만적인
짐승처럼 여기다가 이제는 그들을 루소식의 고귀한 미개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립대 LA분교의 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어먼드는 유럽 이전의
많은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조상에 대해 똑같은 감정을 느꼈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2천 년 전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본성의 자유 의지로
정직하고 정의로웠을 때 황금 시대가 처음 찾아왔다네." 그는 그리스 문명의 변절과
전쟁에 비교하여 그 이전 시대가 얼마나 정직하고 순수했는지를 언급했다. 동시에
그러한 순수한 상태라야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여겼다.
월리스가 사람 사냥꾼이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 포유류를 대량으로 살상했다는
의견을 지지했을 때, 나아가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홍적세의
멸종에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일부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가 시작된 직후부터 다른 자연계에 파괴적인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우리 인간은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진화해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이 장은 아메리카의 홍적세 말 멸종 이야기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있었던 사건과 비교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지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아주
최근의 뉴질랜드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사람에 의한 멸종의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하와이 제도와 같은 대양 섬들의 원시 생태계가 초기
폴리네시아인과 이후의 유럽인들이 처음 거주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쉽게
파괴되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생태계의 복잡성^6,36^사람에 의한 파괴와의
연결성과 취약성이라는 메시지는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홍적세 말의 아메리카 대륙은 지금과는 너무나 달라서 사실상 거의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우선, 북아메리카 대륙의 3분의 2 가량이 엄청난 두께의 얼음에
덮여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운데 길게 뻗은 얼음 없는 지대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로렌시아 빙관, 서쪽에는 코르딜레라스 빙관이 있었다. 남아메리카의
서쪽(지금의 칠레 지역 대부분) 역시 얼음 아래에 놓여 있었다. 이들 얼음덩어리
사이에서 코끼리 매스토돈, 큰나무늘보 및 커다란 보호 등껍질을 가진 육중한
글립토돈트와 같은 초식 동물을 비롯해서 다양한 대형 포유류가 번성했다.
이들 거대 동물들은 사자, 큰곰, 검치호의 먹이이기도 했다. 20cm에 달하는
위압적인 송곳니를 가진 스밀로돈은 검치호의 하나였다. 또한 말이나 낙타와 같은
다소 이국적인 느낌이 덜한 생물도 있었다. 1만 2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라는
짧은 지질 시기 동안 이 동물들은 북아메리카에서 멸종한 약 57종의 비슷한 대형
포유류 종 가운데 속해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훨씬 더
많은 수가 멸종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작은 포유류 종은 단지 소수만이 사라졌으며,
특히 쥐는 별탈없이 이 시기를 넘겼다.
이처럼 '빙하기 말'이라는 시기와 '대량 멸종'이라는 사건은 정확히 동시에
발생했다. 이러한 시기적 우연은 빙하기가 멸종의 원인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떻게 멸종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상세한 가설은 현재까지
거의 없다. 하지만 식물 군집이 혼란에 빠졌고 이에 따라 동물 종이 멸종했다는
말은 어딘지 석연치 않아 보인다.
1967 년 애리조나대학의 고생물학자 폴 마틴이 월리스와 오웬의 '남획에 의한
멸종론'을 되살려 이 현상을 '홍적세의 과잉 살육'으로 이름 붙였던 이유 중의
하나가 비로 이것, 즉 멸종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지 기후 변화만이 홍적세 말의 멸종과 동시에 발생한 유일한 사건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에 새로운 포유류 종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약 1만 1천5백 년 전 북아메리카에서 시작되어 드러난 베링 해협을
거쳐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직후 1천 년간 계속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 만 5백 년 전 남아메리카의 남단에 위치함 티에라 델푸에고에
도착했다. 바로 이 종이 뛰어난 사냥꾼 '호모 사피엔스'였다. 이들의 놀라운 약탈
기술은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서 수만 년 동안 갈고 닦은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신대륙의 이주자들을 '클로비스인'이라 불렀다. 이것은 1927 년 이들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칼끝 모양의 첨두기 표본이 처음 출토되었던 뉴멕시코 클로비스
지방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틴의 계산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 입성한 후 3백50 년이 흐르는 사이에
클로비스인 무리는 그 수가 60 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곧이어 무리 전체가 멕시코
만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폭발적 팽창은 무한정한 자원^6,36^땅과
음식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막힘없는 진보를 거듭했다.
신세계에서의 첫 번째 '천년 왕국'이 끝나기도 전에 클로비스인들은 대륙의 남쪽
끝에 도달했다. 북에서 남으로의 인구 팽창, 이때 바야흐로 이들의 수는 수백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대형 동물들은 이 새로운 포식자들에게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쉽게
동물들을 죽일 수 있었고 곳곳에 파괴의 흔적을 남겼다. 사람없이 진화해 온 세계
여러 지역^6,36^주로 섬에서 흔히 그러했듯이 아마도 동물들은 사람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유능한 사냥꾼들에게 일차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사냥꾼 역시 처음 보는 사냥감에 친숙하지 않았고, 따라서
대량 살상은 한 후 느끼는 거북함 같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마틴은 그것이 문자
그대로 '죽음의 결합'이었다고 주장한다.
남북 아메리카 전역에서 종종 클로비스인들의 첨두기와 함께 화석화된 먹이 종의
뼈가 발견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마틴에 의하면 자연계에 치명타를 입힌 인구
팽창의 방향은 화석 유적지의 연대기를 살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화석 유적은 북쪽에서, 가장 근래의 것은 남쪽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모든
고생물학자들이 이처럼 그 유형이 명확하다는 사실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과잉 살육설의 장점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 가설이 인간의 최근 역사를 다루는
인류학에서 점점 열띤 논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밝힌다. 논의의 쟁점은 '언제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가'이다. 20세기 초 클로비스인들의
첨두기가 처음 발견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비슷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유물들은 확실히 침입 사건의 흔적처럼 보였다. 첨두기의 연관 물질을 방사성
동위 원소로 측정해 보았더니 1 만 1천5백 년이라는 수치가 얻어졌다. 그리고
거기서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1 만 1천5백 년 전으로 추정되는 클로비스 유적지보다 훨씬
앞선, 약 3 만 5천 년 전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새롭게 제시되었다. 그리고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 선클로비스 유적지의 증거 일부는 다소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선클로비스 유적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빙하
작용으로 베링 해협의 해수면이 드러나 알래스카와 시베리아를 연결할 만큼
낮아졌을 때 북아메리카를 향한 일련의 이주가 진행되었으리라고 상상할 뿐이다.
이때 선클로비스인들의 이주는 극히 희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며, 어쨌든
고고학적 흔적들은 이후의 현저한 인구 성장이 그들로부터 비롯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클로비스인이 출현하고 나서야 숫적으로나 차지한 영역에서나
급격한 인구 팽창의 증거가 제시되었다. 첫 입성 시기가 언제이든 간에 그것이
홍적세 말의 클로비스인 팽창과 관련된 '과잉 살육설'을 흠집낼 만큼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마틴이 자신의 가설을 옳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건이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만일 빙하기의 기후 변동이 아메리카 대형
포유류의 멸종을 결정하는 데 그만큼 중요했다면, 어째서 이전의 빙하 작용과
간빙기의 시작에서는 동물상의 손실이 뒤따르지 않았을까? 이점이 다소 확실치가
않다."고 밝혔다.
실제로 홍적세 말의 동물상 붕괴가 있기 2백만 년 전, 수 차례의
빙하기^36,36^간빙기 이행 과정에 의해 진화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대형
포유류와 연관된 거대 멸종은 없었다. 마틴은 이렇게 묻기도 한다. 홍적세 말의
이행 과정에서 동물상에 치명적인 어떤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오스트레일리아나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에서는 왜 비슷한 멸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더욱이
'기후'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물들이 의존하고 있는 식물 군집을 파괴시킨
범인이라면, 가령 매머드와 땅나무늘보의 주된 먹이였던 식물 종이 이들 포유류
종이 멸종하고 난 후에도 널리 풍부하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들은 모두 과잉 살육설을 지지하는 설득력 있는 지적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를 다른 측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냥꾼들이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류 종을
죽였다면 왜 들소와 말코손바닥사슴, 고라니, 사향소 등 일부 종들은 살아남았는가?
과잉 살육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일 사냥의 영향이 그토록
파괴적이었다면 왜 이들 종은 무사히 남겨졌을까? 아마도 그 해답은 이 동물들의
특별한 역사와 행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틴은 "아메리카 대형 동물상의 생존자들은 대다수가 구대륙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이. 그들은 신대륙에 건너오기 전부터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사냥을
당했고 분포 범위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들은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구대륙의 종들은 수백만 년 동안 인류와 함께 진화해 왔다. 따라서
인간의 사냥 기술이 크게 발달하는 동안 이들도 더불어 인간에 대한 경계심과
그들의 약탈 습성을 피하려는 본능을 획득했던 것이다.
이 종들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줄 특성도
함께 지니고 갔다. 생존자들의 일부, 특히 순록, 들소, 영양은 예측이 불가능할 만큼
이리저리 움직여 다녔고 말코손바닥사슴, 안경곰, 맥 등 일부 종들은 인간의 추적을
피해 깊숙이 들어가 살았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홍적세 말엽에
이르러 대형 포유류 종의 오직 일부만이 살아남았다. 기후설을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설명이 너무나 단순한 묘사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전세계적인 기온 강하가 단순히 식물 군집을 위축시켜 조각냄으로써 식물에
생존을 의존하던 동물 종의 개체군을 감소시킨 데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서식처를 찾아 어떤 종은 이 곳으로 어떤 종은 저 곳으로 이주했다. 자연히 군집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 결과 기후 변동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군집이
형성되었다. 일리노이 주립박물관과 텍사스대학의 생물학자인 러셀 그레엄과
어니스트 룬델리우스는 이러한 현상을 '공진화의 불균형'이라고 불렀다.
그레엄은 10 년 전 이 주제를 놓고 중요한 회의가 열렸을 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홍적세 말기 군집의 특징은 지리학적, 생태학적으로 분리된 종들의
공존이다. 이것은 군집이 온전히 그대로 이주하지 않고 자신의 허용 한계에 따라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했음을 의미한다. 많은 동물 종들은 섭식 전략을 현저히
조정해야 했다." 물론 그레엄과 룬델리우스도 땅나무늘보가 먹고 살았던 식물 종의
일부를 이 동물들이 멸종해 버린 지역에서 지금도 발겨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땅나무늘보는 살아가기 위해 확실히 다른 식물들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식물 종들은 당시 나무늘보의 서식처에서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불행히도 이 견해를 검증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물론 이 논쟁의 절충안으로
사냥의 치명적인 영향과 기후 변동을 결합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애팔래치아
산맥 지대의 동식물 전문가 존 길데이에 의해 제안된 시나리오이다. 그는 홍적세
말의 격렬한 기후 변동이 동물 종의 개체군에 당연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길데이 역시 사냥이 멸종해 한몫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1982 년 너무 일찍 세상을 뜬 그는 "먹이 종의 멸종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만큼 가혹했던 원시 사냥이 눈앞에 선하다. 그러나 멸종은 오직 사냥의 압박 그
자체와 직접 관련된 상황하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종의 전체적인 생태 건강과
연관이 있었다."고 짧게 기록한 바 있다. 그는 사냥만이 멸종의 범인인 양
몰아세우는 것은 어리석다가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대형 포유류 분류군이
생태적 평정의 장면으로부터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규모 생태
소요의 시기 동안 생물상은 새로운 기후 변수하에서 조정되고 사라지고 다시
형성되었으며, 충적세에 이르러 더 크게 변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확립되어 있던 기존의 생태적 지위가 사라지고 새로운 지위가 확립되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공진화한 생태 군집이 새로 특별히 조성되었을 때 불운한
대형 포유류는 얼마나 의존적이었는가? 큰 의존성은 그들을 변화에 취약하게끔
만들었을 것이고, 작은 의존성은 생존 전략상 그들을 새로 확립된 군집으로
이행하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홍적세 말
아메리카 대륙의 동물상에 미친 '사냥'과 '기후 변동'의 상관적 영향을 밝혀낼
방법이 없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사건은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다. 일단 한 과정이
개체군의 크기를 감소시켜 동물상을 취약하게 만들면 두 번째 과정이 그들을
멸종시키기란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길데이의 "여하튼 그 둘의 결합으로 극히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났으며 세계는 한층 빈약해졌다."라는 말 그대로였다. 앞서
나는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홍적세 멸종 형태가 아메리카 대륙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곳에서는 홍적세 말^6,36^1만 2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에 아메리카에서와 같은 극적인 동물상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홍적세 동안의 '종 솎아내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사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메리카 이상으로 해를 입었던 지역이다. 대형
포유류 종의 약 85%를 잃었던 것이다. 아프리카가 이보다 조금 나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홍적세 초기에 심각한 규모의 멸종을 겪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프리카 대륙의
대형 동물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각각 진행된 홍적세 멸종의 차이는 아메리카 대륙 멸종의 원인이 기후 변동이라는
주장을 확실히 부정한다.
기후 변동은 전세계에 걸쳐 나타난 현상이므로 동시대의 모든 대륙에 비슷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차이는 대량 살육설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선 아메리카 대륙의 멸종
사건은 클로비스인의 현지 확산과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홍적세 초기에 심각한
멸종을 겪은 아프리카나 그보다 조금 늦은 시기^6,36^약 6 만 년 전에 멸종이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는 어떤가? 인간의 현지 도착과 중대한 멸종이 동시에
발생했다면 이 사실 역시 과다 살육설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1세기 전 찰스 다윈이 이미 언급했듯이 아프리카는 인류의 요람이다. 약 5백만 년
전 사람과의 첫 일원이 그곳으로부터 진화했다. 그러나 이들 초기 사람 종의 생존
양식은 유인원과 매우 흡사했다. 우리가 진화 경력상 이주 초창기부터 사냥꾼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추적해 보면 3백만 년 전에서 2백만 년 전 사이의
어느 시기에 대뇌의 학장과 더불어 육식이 중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약 2백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하면서 수렵 채취라는 생존 양식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최근까지, 그러니까 1 만 년 전쯤 농경 방식이 고안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오늘날의 원주민들처럼 탁월한 사냥꾼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스탠퍼드대학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클라인은 약 10 만 년 전 현대인이
진화하면서 사냥 기술이 상당 수준으로 발달했음을 설득력있게 제시라고 있다.
그보다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유순하고 잡기 쉬운 먹이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뒤
점점 아프리카물소와 같은 위험스런 동물에도 손을 댔고 이것은 나중에 흔한
사냥감이 되었다. 호모속의 일원은 탁월한 사냥꾼으로서 2백만 년 이상이나
잠재적인 사냥감과 더불어 진화했다. 폴 마틴은 "이처럼 긴 공존 기간 동안 동물은
사람의 약탈 습성을 피하는 수단을 진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홍적세 멸종의 차이점은 한 대륙에서는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대형 동물과 함께 점차적으로 진화하며 발전해온 데 비해, 다른 대륙에서는
이미 절정에 달한 고도로 진보된 사냥 집단의 맹습이 갑작스레 찾아왔다는 점이다.
인류 기원의 중심지가 구대륙이 아닌 아메리카였다면 홍적세 말의 멸종 기록은
거꾸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적세 초기 대형 동물상의 멸종
역시 잠재적인 먹이 종이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새로운 푸식자^6,36^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첫 충격을 받은 결과인가? 이러한 동시성은 과잉 살육설을
또 한번 뒷받침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 판단할 실이
없다. 기후 변동이 그 원인이었다 해도 역시 그러하다.
다소 의문점이 있긴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는 보다 명쾌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곳은 오래도록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홍적세
말기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유 동물상은 다른 어느 대륙과도 달랐다. 코뿔소
비슷한 생물, 땅나무늘보, 왕캥거루, 맥 비슷한 동물, 거대한 카피바라 등의
초식동물 외에 육식 동물로는 사자와 개 단지 2종류가 있었다. 물론 이들은 모두
태반류가 아니라 유대류였다(세 번째 대형 육식 동물로 코모도 왕도마뱀보다 더 큰
거대한 도마뱀이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과는 달리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코끼리만한 포유류나 큰나무늘보가
없었다. 홍적세 말 멸종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4분의 3이 손실된 아메리카
대륙보다 더 많은 비율의 동물을 잃었다(그러나 전체 종수로는 더 적었다). 6만 년
전에 존재했던 50종의 대형 동물 중에서 고작 4종만이 살아남았는데 모두가
캥거루였다. 한편, 아메리카의 경우에서처럼 작은 포유류는 극히 적은 수가
멸종되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멸종된 포유류의 화석
퇴적물을 보고 그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10만 년
전부터 1만 2천 년 전 사이, 아마 약 6만 년 전 정도라는 추정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고고학적 증거로 측정된 바에 의하면 사람이 이 대륙에 입성한 시기와
상당히 가깝다. 이러한 동시성에 의해 대륙 전반에 걸친 살육의 가해자로 또 다시
호모 사피엔스를 지목, 기소하는 것인가? 폴 마틴은 이에 대해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이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달리는 커다란 육식 동물, 그러나 식육목에는
속하지 않는 동물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상륙했다. 이처럼 강력하고 치명적인 종
'호모 사피엔스'의 입성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 없이 과잉 살육에 꼭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대형 포유류의 손실이 비교적 천천히, 그러나 더욱 현저하게 일어난
것은 따라서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을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잉 살육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응수해 줄 만한 증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돌창에 찔려 죽은 왕캥거루의 화석 뼈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시체와 고대 무기가 함께 있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 대량
살육설의 약점임에 틀림없다. 마틴은 고고학적 실제 증거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상륙과 뒤이은 인구의 팽창, 그리고 종의 절멸이 매우
단기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화석 등 고고학적 기록은 빠르게 진행되는 작용이 아닌, 서서히 변화하는
상을 포착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틴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는 약점은 여지없이 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따라서
인간이 생태 군집에 끼어들어 실제로 어떻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이에 대한
증거는 대체로 '정황적'이다. 홍적세 멸종의 원인이 인간이든 아니든 간에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이 군집들의 파괴는 그들의 연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약간의
외부 환경 변동에도 그들은 붕괴할지 모른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거대한 동물들을 멸종시킨 것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의문은 아직도 많다. 그러나 적어도 뉴질랜드에 대해서만큼은 그러한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두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시
남반구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격리된 이웃이기도 하다. 뉴질랜드는 최근까지도
유일무이한 생물상을 지니고 있었다. 재러드 다이어먼드는 이 지역의 생물들에 대해
"얼마나 이상하게 생겼는지 만일 이전의 그들 존재를 확신시켜 주는 화석 뼈가
없었더라면 아마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옴직한 상상으로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곳은 이상한 증류란 종류는 모두 모인 새의 왕국으로 이들 중 많은 수가 날지
못했다고 한다. 이 무대를 빛낸 스타는 거대한 모아였다. 모아는 타조 비슷한
생물로 키는 3m에 달하고 몸무게는 5백30파운드나 나갔다. 번성을 누린 모아는
모두 12종으로 이 중 가장 작은 모아 종의 키는 고장 90cm 정도였다. 수백만 년에
이르는 선사 시대 전기간을 통해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진 진화 실험은 생태적 기회에
관한 연구와 같았다. 또한 포유류가 전혀 없어^6,36^박쥐만 있을 뿐새들과
기타 다른 생물들이 포유류와 같은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이어먼드는 "모아가 사슴을, 날지 못하는 거위와 물닭이 토끼를, 큰 귀뚜라미와
작은 벌새가 쥐를, 그리고 거대한 독수리가 표범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구의 생물이 진화를 거친 다른 비옥한 행성에 도착했을 때 처음 접하게 될지도
모르는 장면에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무게 약 30파운드로 당시 최강의 공중
포식자였던 독수리만이 모아의 유일한 적이었다. 적어도 사람이 상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약 1천 년 전 폴리네시아 정착민으로 알려진 '마오리족'이 뉴질랜드 섬에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발견한 섬에는 방금 내가 묘사했던 그런 낯선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세기 내에 이 낯선 세계는 대량 멸종에
의해 변모하여 예전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결국 섬에 살던 종의 50% 가까운 수가
사라졌다. 거기에는 커다란 새 전부와 날지 못하는 새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대다수 관찰자들은 마오리족이 신중한 자연보호주의자들이며
섬의 생물상 파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오리족이
도착하기 전에 일어났다고 추측되는 그 어떤 기후 변동이 멸종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은 한때 비옥했던 환경이 갈가리 찢겨져나간
흔적을 발견했을 것이며 단지 그들을 완전히 끝장내는 데 작은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라고 간주되었다. 즉, 사람은 이 파괴의 무대에서 단지 단역이었을 따름이라고
추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집된 두 가지 증거는 이러한 믿음을 사정없이 내동댕이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 확실한 증거는 홍적세 말 이후로 뉴질랜드의 기후는 한결같았고
조류의 생활에도 적합했다는 것이다. 다이어먼드는 "모아는 먹이로 배를 가득 채운
채 죽었으며 수만 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멋진 기후를 즐겼다."고 지적했다. 모아가
악화된 환경에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마오리족이 살았던 거주지 주변의 쓰레기들이다.
이것은 처음 인간이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모아가 여전히 번성했음을 명백히
밝혀준다. 그 증거물은 바로 풍부한 뼈다. 뼈가 모여 있는 유적지는 알려져 있는
것만 해도 1백 군데가 넘으며 일부는 대단히 크다. 모아의 잔재물들은 마오리족이
새를 흙화덕에서 요리해 먹고, 껍질은 옷으로, 뼈는 낚시바늘과 장식물 등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구멍난 안을 물통으로 쓰였다. 지금까지 50 만 마리
분량의 모아 뼈가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 살던 개체수보다
10배나 많은 분량이었다.
마오리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모아가 멸종할 때까지 도살했음이 분명하다. 몸집의
크기와 근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능력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모아가 적들에게
심지어 숙련된 사냥꾼으로서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존재였음은 쉽게 짐작이 된다.
또 지세가 험하고 산지가 많은 뉴질랜드의 지형으로 보아 그들이 쉽게 추적당해
궁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는 어땠을까? 아마도 모아를 비롯한
여타 뉴질랜드 토종들은 사람이 없는 가운데 진화했기 때문에 성질이 매우
유순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니 그들을 잡을 만큼 충분히 가깝게 접근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섬의 생물 종이 사람에 의해 고통받았던 것이 단지 사냥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모아와 함께 뉴질랜드의 이상한 귀뚜라미, 달팽이, 굴뚝새, 박쥐
등 다른 종들도 모두 멸종되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먹이 종은 아니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요인은 삼림의 개간이었다. 마오리족이 정착을 위해 땅을 개간하면서 종들이
의존하던 서식처를 없애버렸다. 또한 마오리족은 쥐를 들여와 땅에서 서식하는
조류와 다른 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둥지는 새로 들어온 사납고
다재다능한 포식자들에게 쉽게 파헤쳐졌다.
쥐의 도입에 따른 대규모 생태 파괴를 겪은 지역이 비단 뉴질랜드만은 아니었다.
쥐는 별 문제없이 다른 생태계에 침입하며 그 결과는 대개 잇따른 멸종이다.
처음에는 모아의 개체수가 차츰 줄어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자
거대한 독수리가 먹고 살 만한 먹이가 없어졌다. 독수리는 아마 사람을 먹이로
대신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아처럼 사람도 두 발로 걸었으며 키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오리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히 조치를 취했고
맞대결의 결과는 오직 하나였다. '근절자로서의 인간'이라는 시각은
뉴질랜드에서라면 꼭 들어맞는다.
존 길데이와 같은 기후 변동설의 지지자들조차도 여기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인정한다. 길데이는 이 경우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1800년대 당시
유럽인들이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곳을 원시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주변 환경과 뚜렷이 조화를 이루고 사는 한 민족을 발견해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유럽인들의 쟁기는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는 이국적인
새의 뼈와 알껍질을 파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들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중요한 비밀을 처음 내비친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최근에야 비로소 밝혀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첫 등장이
뉴질랜드 기존의 생태 군집을 파괴했다는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리라는 정황 근거를 더해 준다.
뉴질랜드와 같은 대양 섬은 다른 세계와 격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뉴질랜드
지역은 정상적인 진화 과정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히 이 섬들은
'우연'^6,36^그리고 자연 환경이 빚어낸 종들, 그리고 그 자손들로 채워지게
된다. 외따로 떨어진 섬에는 전형적으로 포유류가 없다(박쥐는 예외로 해두자).
그래서 대륙과 전혀 동떨어진 생태 군집을 이룬다 조류와 파충류가 이 군집에
서식하며 종종 이들은 다른 세계의 동종들과 닮은 모습을 띤다. 섬의 생태 군집은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외래종, 특히 사람이나 쥐^6,36^이들은 대개 함께
들어온다와 같은 포유류의 침입과 그들의 약탈에 공격받기 쉽다.
일례로 오늘날 조류의 단 20%만이 섬에 살고 있지만 역사상 멸종된 조류의 90%
이상은 본래 섬에 살던 종이었다. 더구나 대양 섬은 현재 가까운 장래에 멸종
위기에 놓일지도 모른다고 인정되는 조류 종 절반의 원산지이다. 하와이는 세계에서
가장 격리된 제도에 속한다. 그 걸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 종을 지니고 있다. 생태학자와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있어서 하와이 제도는 거의
천국이다. 때때로 원시 상태에서 생물이 어떤 기본 과정을 거쳤는지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게 되면서 이곳 역시 엄청난 파괴를 겪게 되었다.
예컨대 조류 종의 70%가 사람이 존재한 결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 제도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현재 엄청난 개발의 물결이 닿지 않은 고지대 삼림의 일부만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아주 최근까지도 학자들은 18세기 후반
유럽인들의 식민지화에 이어 생태 파괴가 이 섬을 찾아왔다는 데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이를테면 20여 년 전 하와이대학의 한 생물학자는 "하와이 환경이 심각한
붕괴는 쿡 선장과 그의 후임자들이 도착한 후 몇 년 사이에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적기도 했다.
학자들은 1천5백 년 전 하와이 제도를 도착한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이 그곳의 생태
군집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와 마찬가지 경우였던
것이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마치 하와이의 꿀새처럼 자연 환경의 일부처럼
생각되었다. 전혀 자연에 해를 미치지 않는 포유류 종인 호모 사피엔스(여기서는
폴리네시아인)가 최근에 수용한 원시 생태계를 쿡 선장과 연이은 후임자들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등등, 아주 최근만 해도 실제로 이렇게 믿어져 왔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하와이의 초기 생물을 짜집기하면서 이러한 관점은 점차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
1970 년대에 최초로 모로카이 섬의 아마추어 자연학자 조안 에이뎀이, 그
다음에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스터스 올슨과 헬렌 제임스가 이러한 의견을
내놓았다. 부서지기 쉬운 해의 화석 뼈를 대상으로 연구를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하와이 섬의 생태 군집이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색다르던 군집 대부분은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이 처음 도착한 수 몇 세기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5년간의 탐험을 통해 상당한 결실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섬이 한때 희귀한 식물들로 이루어진 원시림으로 덮여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시림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으며 그 속의 식물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종들이었다. 그러나 그 삼림이 사람의 손에 의해
대다수가 급속히 멸망한, 본디 놀랄 만큼 다양한 조류 고유종의 보금자리였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2년밖에 되자 않는다."고 말했다.
50종이나 되는 새가 폴리네시아인들이 살던 선사 시대에 멸종했는데 거기에는
따오기, 거위, 뜸부기, 올빼미, 매, 독수리 등과 숱한 맹금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올슨과 제임스는 화석 새의 뼈에 깊이 빠져들었다. 죽은 새의 명단을 작성할 당시만
해도 그들은 날지 못하는 새의 비율이 그토록 클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50종
가운데 무려 17종이 날지 못하는 새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 진귀한 새들이
하와이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10 년 전까지만 해도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었다."고
밝혔다.
멸종한 새들은 오래 전에 사라진 불명확한 계통의 일원이 아니었다. 오리, 거위,
뜸부기, 따오기 등 모두 우리와 친숙한 종의 후손이었다. 그들의 조상은 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만약 날 수 없었다면, 가장 가까운 대륙이라 쳐도 이
외떨어진 제도까지 2천 마일이나 되는 긴 여행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과
함께 진화한 포식자들의 관심권^6,36^그들로서는 치명적인에서 벗어나자 이
종들 가운데 많은 수가 날기를 포기했다. 이는 '[진화적 전환'으로 섬에서 종종
일어난다고 생물학자들이 인정하는 현상이다. 굳이 날기 위해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어지면 많은 종이 그렇게 변화한다.
이것은 진화의 측면으로 보면 상당히 빨리 진행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와이
제도의 가장 오래된 주섬 카우아이는 기껏해야 6백만 년 전에 생물이 전혀 없는
화산으로 처음 바다에서 솟아났기 때문이다. 이 새들이 사라진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몇 세기 심지어 수십 년인 것으로 측정되었다. 올슨과 제임스는 학계에서
이미 인정받은 가설을 언급하며 "하와이 제도에 처음 유럽인들이 등장했을 때 이
섬의 조류상은 자연적인 평형 상태에 있었다고 결론짓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하와이의 조류상이 섬의 자연적 종 다양성의 단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가령 오아후 섬에는 7종의 새가 있다고 알려져 왔으나 화석 퇴적물에는 그보다
4배나 많은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 엄청난 파괴는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의 도착과
동시에 일어났다. 연구를 더 깊이 해보면 선사시대 하와이 제도의 운명이 진화적
측면에서는 별다른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렵 태평양의 또 다른
지역에서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연구자 2명과 여러 동료들이 모여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대양 섬 어디에서든 조류 종의 화석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첫째, 현재의 생태 군집은 선사 시대에 비하여 황폐할 정도로
빈약하다. 둘째, 종의 멸종은 언제나 최초의 이주민들이 정착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났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예는 헨더슨 섬에서 발견된다. 태평양 제도의
피트케언 섬에 속하는 헨더슨은 비교적 작고(37m2) 특별히 마음을 끌 만한 구석이
없는 곳이다. 가파른 석회암 절벽이 심해로부터 솟아 있고 평탄하지 않은 지형에
식물은 무성하지만 물을 얻을 만한 수원은 드물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동물과 식물 종이 여기에 살아서 얼마 전까지 이곳은 '온난한 지역에
위치하면서도 아직껏 사람의 활동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몇 안되는 섬 중의
하나'로 묘사되었다.
생물학자들은 헨더슨 섬이 비교적 원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이곳에 사는 종을 기록할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이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하게 기능하는 군집의 구조와 상호 작용에 대해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올슨은 뉴욕 주립박물관의
데이비드 스테드만과 연계하여 헨더슨 섬의 화석 퇴적물을 탐사한 결과 전혀 다른
상황을 밝혀냈다. 최소한 3분의 1 가량이 없어졌다. 아마도 실제로 사라진 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5백 년 전^36,36^8백 년 전 사이의 어느 시기엔가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이 이 섬에
잠시 거주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섬을 떠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헨더슨은 지금까지 '신비의 섬'으로 불리웠다. 태평양에는 이러한 신비의
섬들이 12개 이상 있다. 하지만 헨더슨 섬의 경우, 견디기 힘든 생존 조건하에서도
왜 정착민들이 그토록 오래 머물렀는가 하는 점이 아직껏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섬에 살았다고 사라져버린 종의 명단은 이미 밝혀졌다. 이들은 왜
절멸했을까?
그것은 사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 조류 종들을 사냥했다. 그 결과
분명히 종의 일부가 멸종되었을 것이다. 사냥 외에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연
생태계에 극히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 사냥은 하나 혹은 소수의 종에만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다른 수단들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가령,
하와이 제도의 정착민들은 저지대 삼림의 많은 부분을 개간함으로써 서식처를
파괴하고 동강냈다. 숲이 인간에 의해 베어지면 그곳에 살던 생물들은 비슷한
서식처를 찾아 떠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숲이 마구 파괴되다 보니 결국 연속된 장소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거나 돌아다니던
종들이 방해받거나 완전히 격리, 차단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연속적인 멸종으로
치달았으리라 추측된다. 영국과 미국 생태학자들이 행한 연구 중 최근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들 멸종의 일부가 예기치 못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최초의 교란 이후 오래도록 지체되었다는 것이다. 조각조각 동강나고 방해받은
서식처는 여러 계절에 걸쳐 종을 잃는다.
이를테면 먹이를 찾기 위해 상당히 큰 구역을 필요로 하는 종들은 동강난
서식처에서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정상의 육식 동물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개체군 수가 적은 종은 우연한 사건에 취약하다. 이
불운한 종들의 취약성은 쉽게 파악된다. 그러나 미네소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틸만, 로버트 메이와 그 동료들이 복잡한 군집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연구를 행했을 때 그들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발견했다.
군집에서 가장 취약한 종 가운데 가장 잘 적응한 종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취약성의 본질이 명백해지기까지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지역 환경에 잘 적응된 종과 그보다 덜
적응된 종, 이렇게 두 종류의 식물로 구성된 생태 군집을 상상해 보라. 잘 적응된
종은 서식처에서 자원을 이용하는 데 온 힘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가령, 낮은
지하수면에 닿거나 주기적인 화재에 견뎌내기 위해 그들은 깊은 뿌리를 내리다.
키작은 종보다 한결 수월하게 햇빛을 받기 위해 길게 줄기를 뻗는다.
이때 덜 적응된 종이 선택하는 전략은 씨의 분산을 통해 기동성을 갖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서식처로 이주할 수 있는 잠깐 동안의 기회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생태 군집이 서식처가 동강나면서 고립되기 시작하면 가장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종은 기동성이 적은 종 말하자면 잘 적응된 종이다. 격리된 땅에 갇힌
이들 작은 지역 개체군은 질병과 화재, 양분 부족 등 이따금씩 일어나는 재앙에
취약해진다. 시간이 흐르면 하나씩 하나씩 격리된 개체군에서 국부적으로 멸종이
시작된다. 그리고 결국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희귀해지거나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 그들은 서서히 잊혀진다. 틸만과 그의 동료들은 "멸종은
서식처가 동강난 뒤 그 이후 세대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멸종은 미래에 우리가
치러야 할 빚이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5백 년도 훨씬 넘은 그 옛날, 오래 전에
있었던 서식처 파괴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세계 도처에서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저지르는 환경 파괴의 악영향은 이후
5백년이나 우리 자손의 자손에게 찾아갈 것이다. 결국 우리는 멸종의 빚을 쌓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서식처의 파괴와 단편화가 하와이 제도가 겪었던 멸종
파동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착지를 찾아 단독으로 이동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고양이, 개,
돼지, 염소와 같은 동물은 일부러 데려가며 쥐처럼 무임승차한 동물을 무심결에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까지 포유류가 없었던 섬 생태계에 이 생물들이
들어오면서 경쟁이나 약탈 등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연한 잎을 뜯어먹는 데 명수인
염소는 고유종을 과다하게 먹어치워 점차 자연 경관을 헐벗게 만든다.
2백 년 전 갈라파고스 군도의 여러 섬에 도입된 염소는 일부 섬을 사실상
벌거벗은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포식자는 한 군집의 생물들이 위험을 느낄 정도로
크거나 공격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들은 훨씬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과
동반한 포식자 무리 가운데 쥐가 멸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랄지도 모른다. 잡식성인 쥐는 조류와 파충류의 알과 어린
새끼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생물 순환의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알다시피 생태 군집은 그저 같은 지역에 우연히 함께 살게 된 종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들은 복잡한 먹이 연쇄를 통해 약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상호 작용을
한다. 그 결과 한 종의 멸종은 군집 전체에 파장을 미쳐 더 많은 멸종을
야기시킨다. 일례로, 하와이 제도의 많은 식물 종들은 구부러진 길다란 부리에 꽃의
수분을 의존하던 꿀새가 사라짐으로써 그만 멸종 직전에 놓여 있다. 이것은
직접적인 의존의 한 보기이나 의존의 사슬이 다소 간접적일 수도 있다. 대형 초식
동물들은 종종 그보다 작은 초식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큰 종의 활동
결과로 서식처가 트이기 때문이다.
이들 대형 초식 동물에 의한 파괴의 영향으로 그 서식처 식물 사이에 다양성과
생산성이 촉진된다. 이러한 '쐐기돌 초식 동물'이 제거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의 훌루훌루웨 야생동물보호구에서 코끼리가
사라졌을 때를 상기해 보면 된다. 1세기도 지나지 않아 3종의 영양이 국부적으로
멸종했고 누와 워터벅 개체군까지 감소했다. 코끼리가 사라졌을 때 그보다 작은
초식 동물이 살아가면서 서식처를 만들던 그들의 습성 또한 사라진 것이다.
생태 군집은 복잡한 '계'이다. 복잡성이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군집의 파괴가 자연계에 미치는 영향에서 보다 뚜렷이 나타난다. 이제는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러한 파괴의 주요 원인이 인간의 존재에 의해 구체화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생태 파괴의 정도, 특히 지난 수천 년 동안 대양 섬에서 일어난 생태
파괴의 규모는 최근에서야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이 번쩍 드는 확고한
깨달음이었다. 세계의 많은 부분이 생태학자들이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6,36^다시 말해 온전한 자연계의 구성을 보여주는 원시 상태가
아니라우리 사람 종이 아주 최근까지 진화해 온 전체 생태계의 치명적인
충격을 가했다는 사실로부터 더 이상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환경을 크게 남용한다고 해서 굳이 대량 벌목용 기계를 쓸 필요는 없다. 원시
사회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숱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스토스 올슨이 '지구 역사상 가장 신속하고 가장 심각한 생물학적 재앙의
하나'라고 부르는 일을 마구 몰아붙였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에서의
대량 절멸까지 덧붙이면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의 원인으로서 참으로 긴 역사를 갖춘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뒤로 한 채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코끼리가 같은 '거대한 개별 종의 손실'과 '전체적인 영향',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파괴에 직면해 있음을 확신한다. 나는 지금까지
과거에 인간이 미친 영향을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엄습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초기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정확한 역사적 조망을 통해 현재의 양식을 고찰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1. 현대판 코끼리 이야기
코끼리는 현존하는 육상 동물 중 가장 크다. 풍채와 거동이 위엄에 가득 차
있으며 행동이 복잡하고 불가사의하리만큼 민감하다. 코끼리는 수많은 신화를
탄생시켰다. 인도의 힌두교에는 코끼리 얼굴을 가진 '가네샤'라는 이름의 신이
있는데, 그는 전지전능하여 어떤 장애물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어진다. 가네샤는
문학과 학문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예배를 시작하거나 무슨 일에 도전할 때, 혹은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무언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할 때 기원의 대상이 된다. 힌두
전설에 따르면 한때 코끼리는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벵골보리수에 내려 앉았다가 은둔자의 집으로 떨어져 집을 부수고
말았다. 화가 치민 그 은둔자는 코끼리에게서 영원히 비행 능력을 빼앗았다. 그래서
지금처럼 대지에 남아 있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에게 있어
코끼리는 태양과 달, 별을 숭배하는 불가사의한 동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끼리를 가리켜 '사물이 영혼에 접근할 수 있는 것만큼 사람에 가까이 근접해 있는
동물'이라고 묘사했다. 위대한 로마의 역사가 대 플리니우스 역시 동물의 세계에서
이 웅장한 후피 동물들이 인간에 가장 가깝다고 인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와
의견을 같이 했다.
코끼리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도덕적 윤리적 감각을 지니며 비록 사람의 것과는
달라도 복잡한 정신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현대의 코끼리는
'야성'의 전형으로 보인다. 이들은 강력하며 자유롭고 영리하다. 게다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코끼리는 자연의 훌륭한 창조물로서 저 멀리 떨어진
비밀스런 과거를 잇는 고리의 실체이며 도전받지 않은 평원의 지배자이다. 만일
야생 동물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간다면 그것은 곧 코끼리를 보러가는
것이다. 나는 케냐 국립 야생동물보호국의 책임자로 재직했던 지난 5년간 거의
코끼리에 전념하다시피 했다.
그것은 심미적인 이유나 학문적인 관심에서가 아니었다. 코끼리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정착지가 끝없이
팽창하면서 한때 무한하다시피 했던 코끼리의 구역은 크게 줄어들었고, 상아를 얻기
위한 욕심에 예사로 살육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코끼리 개체군은 10년
동안 크게 반감했다. 1989 년 4월 책임자로 임명되었을 무렵 나는 어떻게든 이
급격한 감소율을 억제해야 했다. 아니면 서로 대등한 이 두 파괴의 힘^6,36^인구의
팽창과 살육의 자행은 20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코끼리를 진화의 망각 속으로
밀어넣을 판이었다.
새로운 1천 년이 인간의 손에 의해 흩뿌려진 훌륭한 한 종이 피로 시작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무책임과 탐욕에 대한 구역질나는 증언이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다행히 멸종을 향한 거센 돌진은 어느 정도 멈추었고 거기에는 내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다. 대량
살육을 중단시킨 것은 어렵고 불확실한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첫 걸음일 뿐이다.
우리 자손들의 자손, 다시 그들의 자손에게 야생 코끼리가 경외감^6,36^오늘날
우리가 그들에게 느끼는 것처럼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어떨지는 순전히 이
여정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나는 코끼리를 멸종으로
밀어넣었던 상황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보존생물학과 정치, 통상 관계가 한데 맞물린 최근의 이 사건에 대해
무작정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언과 오리아 더글러스 해밀턴이 쓴 근간 '코끼리를 위한 전쟁'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헌신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이들 두 저자와 나는 친구로서 또한
동맹자로서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 앞으로 나는 코끼리로부터^6,36^그들의
역사와 현재 처한 곤경, 그리고 불확실한 장래로부터배울 수 있는 교훈에 더욱
주목할 것이다.
코끼리와 그들의 서식처는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의 중심 소재와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일련의 변화를 보게 될 것이며 자연의 다양성
생성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 말했듯이 최대의 육상 동물 종인
코끼리는 인간가 공존하는 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다지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장기적인 공존으로 가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불확실하다. 이 모험에 착수하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가네샤를 안내자로 삼아
그에게 기원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물학적 맥락은 참으로 넓다. 저 먼 진화적 과거와 함께 현대의 종으로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이 맥락에 코끼리를 넣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일보다는 코끼리 종의 최근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려 한다. 이야기의 본질적인 핵심은 그들과
사람^6,36^아니면 사람에 의한 개척과의 관계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개입에
의해 그들이 멸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멸종 가능성은 현재 매우 높다.
마지막으로 암보셀리 국립공원^6,36^케냐 남서부 킬리만자로 산에 위치하고
있다에 있는 이들 놀라운 생물 개체군에게 닥친 도전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이것은 코끼리를 구하는 것과 관련하여 생태적 생물 다양성의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그리고 코끼리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간과 공간을
통틀어 진행되는 전세계 생물 다양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코끼리에는 현재 아프리카코끼리(학명: 록소돈타 아프리카Loxodonta africana),
이렇게 2종이 있다. 둘 중 인도코끼리가 최대를 뜻하는 '맥시무스'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일견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인도코끼리의 몸집이 사실은 더 작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코끼리는 현재 2종류의 변종(또는 아종)이 있다. 하나는 록소돈타
아프리카나 아프리카나Loxodonta africana africana이다. 이들은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숲지대에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대륙을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이다. 다른 하나는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의 삼림 지대에서 사는
록소돈타 아프리카나 사이클로티스Loxodonta africana cyclotis이다. 이 종은
몸집이 다소 작다.
이들 소수의 거대한 짐승 그룹은 사실 장비목^6,36^과거 5천5백만 년에 걸쳐
우세했던으로 알려진 대형 포유류 무리의 잔재이다. 장비, proboscidea라는
이름은 코를 뜻하는 라틴어 'proboscia'에서 유래되었다. 이 이름은 코끼리가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붙여졌다 할
수 있다. 길들인 코끼리에게 가까이 다가가보라. 그러면 그 코가 얼마나 다방면에
쓰이는 기관인지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코끼리에게 있어서 코는 단순히 먹이를
먹거나 장애물을 쓰러뜨리는 여분의 솜씨좋은 팔 이상의 기관이다. 코끼리는 자신의
코를 공중에 휘두르거나 몸통 깊숙이 살그머니 넣어 냄새를 찾는 등 세상을 상세히
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코끼리와 가장 가까운 현존 생물은 바다소^6,36^매너티와 듀공 등이다.
여기에 관한 주제가 논의될 때 생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대개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다. 바다소는 포유류 가운데 유일한 수생 초식 동물이다. 이 동물이 현대의
코끼리와 진화적 유연 관계가 가장 가깝다는 주장은 단순히 커다란 몸집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뼈와 이빨의 구조를 더 많이 참작한 결과이다. 또한
바다소는 대부분의 포유류처럼 배에 젖샘이 있지 않고 코끼리처럼 가슴에 있다.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유사성을 인정하여 바다소목과 장비목을 묶어
'subungulata'라는 하나의 상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장비 목의 기원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이들이 백악기 말에 뒤이어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진화 활동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 지구는 거대한 혜성(혹은 소행성)과 충돌하는 바람에 공룡 시대의 종말을
맞았다. 지구 역사상 마지막 다섯 번째 대멸종 시기였던 것이다. 당시의 대량
멸종으로 지구의 다양성은 급격히 감소했다. 장비목의 진화는 다양성의 신속한 재건
과정에서 살아남은 생물상이 불가피하게 취한 대응의 일부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다수의 새로운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근래에 최초의 장비류로 알려진 동물^6,36^정확히 말하면 이 동물의 화석화된
두개골이 알제리 나무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물은 약 5천4백만 년 전
마이오세 초기부터 습지에서 살아왔다. 키는 분명 1m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머리의
구조에서 모든 장비류의 보증서인 코의 특성^6,36^물체를 잡을 수 있는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어떤 환경에서 유리했을까? 얼마 후 발견된 장비목
화석은 그 생태적 배경이 수생이나 반수생 동물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것은
알제리의 종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이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자연 선택상 얕은 물에서 식물을
따먹을 수 있는 기관의 진화를 부추겼다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입술과
입천정, 콧구멍으로 형성된 코가 기본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코는 장비류의 중요 기관이 되었으며, 그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엄니의 진화가 수반되었다. 코끼리가 나무를 뿌리째 뽑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와 엄니의 결합이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엄니는 또한 수컷들끼리의 경쟁에서 과시용으로도 중요하다(암코끼리보다
수코끼리의 엄니가 훨씬 크다는 사실은 몸 크기의 차이를 고려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장비류 역사의 꼬박 절반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그 기간
동안 몇몇 주요한 작은 무리들이 나타났다. 약 2천만 년 전부터 등장한 이 무리의
후손들은 마침내 남극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주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선사 시대의 시점에서 볼 때 전세계 장비목의 종수는 거의 2백에
가까운 수치로 나타난다. 이것은 엄청나게 성공적인 동물 종류의 분산이었다.
포유류 시대에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코끼리 무리들은 오늘날 전세계를 통틀어 단
2종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세'가 영원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생물의 역사에서 영원한 우세란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으리라는 사실에
귀기울여야 한다. 주요한 장비목 무리를 이루었던 많은 동물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빙하기의 극적인 장면으로 자주 묘사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동물상에서 두드러지게 많았던 매머드와 매스토돈이
포함된다. 이들이 형상은 약 2 만 5천 년 전 유럽의 동굴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장비류들은 이들에 비해 덜 친숙하다. 곰포테륨은 엄니가 넓적한 아래쪽
앞니로 되어 있었으며 멀리 남아메리카에까지 분포했다. 몸집은 육중했고
이들에게는 윗엄니도 있었다. 디노테륨이라는 무리도 있었다. 역시 아랫엄니를
갖췄지만 곰포테륨과 달리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모양이었다. 이들은 윗엄니가
없었다. 우리는 사람과 동물의 화석이 발견된 투르카나 호 부근 퇴적층에서 몇몇
근사한 디노테륨 표본을 발굴했다. 한편, 현대 코끼리 종의 직접적인 조상은 2백만
년 전에 시작된 홍적세 빙하기 이전에 진화했다. 이 중 인도코끼리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나 구대륙의 나머지 지역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아프리카코끼리는 5백만 년 전부터 2백만 년 전 사이, 플라이오세 어느 시기에
아프리카 대륙의 울창한 삼림에서 처음 진화했다. 현대 코끼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호모속^6,36^현대인을 유일한 후손으로 둔의 첫 출현과 거의 동시에
진화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컬하다. 홍적세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여러
장비류 종이 멸종^6,36^아마도 환경의 변화 탓인 듯하다되었으며 홍적세가
끝날 무렵인 1만 년 전에는 매머드와 매스토돈이 종말을 고했다.
앞장에서 살펴본 바 그대로 이들은 어쩌면 사람의 손에 의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지금은 아프리카코끼리와 인도코끼리만이 장비목의 유인한 대표로
남게 되었다. 사람과 코끼리는 적어도 다음의 관점에서는 거의 동등한 관계를
가지도록 운명지워졌다. 즉, 이 둘은 대략 같은 시기에 진화의 시련으로부터
출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코끼리는 어디에 분포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들의 영토 범위를 인도와 서남 아시아의 일부 지역,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인구가 점점 영토를 잠식함으로써 코끼리들이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저 현대 세계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불과 수천 년 전만 해도
인도코끼리는 중국과 중동에까지 펼쳐진 아시아 대부분 지역의 생태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리고 아프리카코끼리는 지금처럼 남부 아프리카에 작은
개체군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걸쳐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걷잡을 수 없는 '인구 팽창'과 '상아에 대한 갈망'이라는 두 힘이
치명적으로 결합된 결과 이들은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인간은 오랫동안 상아의
아름다움에^6,36^그리고 상상 속의 신비한 힘에매혹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각상^6,36^독일의 포겔하트에서 나온 작은 말의 입상은 매머드의
엄니, 즉 상아를 파서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중동과 이집트, 크레타, 그리스에
이르는 초기 문명의 일부로서 뚜렷이 억제할 수 없는 표현 형태의 시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질을 고도의 예술로 발전시킨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상아로 중요한 상징을 지닌 작은 입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상아로 실용적인 대상^6,36^예컨대 묘지와 같은을 장식했으며
커다란 상과 가구에 멋으로 상아를 놓아두었다. 또 상아 타일로 방에 선을 둘렀으며
심지어 화폐로 쓰기도 했다. 상아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자 코끼리 개체군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기원전 2세기 경
아프리카 북부와 아시아 동부의 분포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코끼리들이
살해되었다. 로마인들은 상아에 대한 자신들의 열망이 상아를 지닌 동물들의 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더글러스 채드웍은 그의 명저 '코끼리의 운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대
사회와 비교해서 로마인들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야생 동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상아의 남획으로 코끼리가 사라져가는 동안 플리니우스는 여전히
코끼리의 주된 천적을 용이라고 쓰고 있었다." 실제로 다른 혈통의 용(역주: 인간을
가리킴)이 나라 밖에서 이 거대한 후피동물을 향해 치명적인 불기둥을 내뿜고
있었다. 당시 여타 앞선 문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 제국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코끼리를 이용했다. 막강한 코끼리의 힘은 건축과 수송에 쓰였으며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로 대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용도는 상아 수렵에 비하면 코끼리 개체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서식처 파괴면에서도 영향력이 크기 않았다. 한때
유라시아에 광범위하게 뻗어 있던 삼림 지대는 조각조각 동강나고 개간되었다.
다투어 출현하는 인간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목재 수요가 끊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생태적인 상황도 엄청나게 바뀐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유라시아 지역과
이보다 더 최근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현대 산업 사회의 경제 발전이 빚어낸
결과물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 본질상 인공적이며 인위적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 서식처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때 이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1989 년 7월 18일 이른 오후, 케냐의 다니엘 아랍 모이 대통령은 휘발유에
적셔진 2천5백 개의 코끼리 엄니에 횃불을 놓아 3백만 달러 상당의 상아를 불태워
없앴다. 전세계 약 8억 5천만 인구가 TV 생중계로, 또는 그날 뉴스와 잡지 기사로
이 값비싼 화재를 목격했다. 나는 당시 화염의 열기를 등뒤로 느끼며 ABC TV의
쇼 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와의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상아를 사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코끼리는 머지않아 멸종하고 말
것이다." 나는 모이 대통령으로부터 야생동물보호국의 책임자로 임명받은 지 만
4개월이 지난 후부터 이 일을 계획했다.
마구잡이식 상아 밀렵이 아프리카의 코끼리를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닥친 목표는 바로 코끼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취임하고 곧바로 직면한
문제는 지난 4년간 밀렵꾼들로부터 압수한 수많은 상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당시 보호국의 재정 상태는 거의 절망적이었고, 따라서 세계
시장에 상아를 내다파느냐 마느냐의 선택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나는 3백만 달러라는
큰 돈을 흥정할 수 있었고 솔직히 한동안 마음이 솔깃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수선 상태는 엉망이었으며 연료 공급도 저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어떤 지역은 아예 공급조차 되지 못했다).
반밀렵 동맹의 대원들은 일단 화력에서 밀렵꾼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렇다,
3백만 달러라면 보호국의 활동을 크게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무렵 나는 밀렵꾼에게 희생된 코끼리의 시체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잿빛 몸뚱아리가 부푼 채 드러누워
있는, 대머리수리의 허연 배설물이 그들의 죽음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 그런 광경을.
부풀어 오른 몸통은 내장^6,36^한때 살아있었던의 사정없는 부패 작용으로
인해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끈적이는 액체와 기체로 바뀌면서 이윽고 터져버릴
것이다. 최악의 광경은 그들의 얼굴이었다. 밀렵꾼이 도끼나 사슬톱으로 엄니를
베어내는 몇 초 동안 장엄한 얼굴은 금세 피투성이의 살덩이로 바뀌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넌더리나도록 잠적을 들끓여 놓는 광경이었다. 여기에 살해된 어미를
깨우기 위해 애쓰는 당황한 어린 코끼리의 애절하고 야윈 모습이 겹쳐졌다. 살육을
끝장내라는 이성적인 촉구는 이제 감정적인 강박 관념이 되어버렸다. 나는 무언가를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해야만 했다. 3백만 달러는 정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녁에 샤워를 하면서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 그 엄니를 팔
수는 없어. 우리는 전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들을 불태워야 해."
나는 코끼리가 처한 곤경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리라 믿었다. 그것은 3백만 달러에 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대대적인
광고가 될 것이다. 밀렵의 상아 거래에 대한 처리 방안을 둘러싼 논쟁은 그때 한창
결정적인 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상아를 불태우는 광경은 반드시 전세계 사람들을
가장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리라. 이언과 오리아 더글러스 해밀턴은 내 계획에
한층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나이바샤에 있는 한 친구의 목장에서 주말을 보내면서
우리는 상아 조각을 화덕에 던져넣고 간단한 실험을 했다. 저녁 무렵 상아는
시커멓게 변했지만 불에 타지는 않았다. 우리는 산더미같은 상아를 불태우려면 훨씬
더 높은 온도의 불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친구가 어느 정도 양의
휘발유를 저장된 엄니에 들이부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을 맡았다. 불길도 꺼지지
않고 대통령과 수행장관들이 불길에 휩싸이지 않을 만큼 아주 적절한 양이어야
했다.
7월의 그날 오후, 우려했던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성공적인 화염이 성공적인 정치로, 그리고 아프리카 대평원의
성공적인 전투로 전환될 것인지의 여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테지만. 이언은 여러
해 동안 '엘리펀트 맨'이었다. 그는 처음에 탄자니아의 마냐라 국립공원에서
코끼리의 행동을 연구하다가 이후 아프리카 전지역에 걸쳐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여
밀렵의 영향을 상세히 기록했다. 또한 1969 년 케냐 남동부의 차보 국립공원 위를
비행하면서 코끼리 개체군의 수를 세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의 작업에 대해 "메마른 야생의 대지는 붉은 코끼리로 가득 차 있었다.
몇 시간이고 비행하는 동안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동쪽 변방으로
날아가 1천 마리 이상의 코끼리떼가 관목림 속에 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코끼리는 여기서부터 곧장 킬리피 지구를 가로질러 거의 인도양에서까지
발견된다."고 기록했다. 이언은 왜 코끼리들은 붉다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이들이
전통적인 코끼리 왕국^6,36^삼림과 평원, 그리고 드문드문 흩어진 연못으로
이루어진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그 지역의 비옥한 화산흙을 뒤집어 썼기
때문이다.
이언은 차보 공원과 그 주변에 최소한 4만 마리의 코끼리가 있다고 추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개체군의 하나로 만들었다. 차보 공원이 코끼리
왕국으로 두드러진 데는 공원 감시자 데이비드 셀드릭Sheldrick의 공헌이 컸다.
헌신적인 '야생인'이었던 그는 지역 주민들을 대원으로 뽑아 코끼리를 지키는
강인하고 헌신적인 감시대를 구성했다. 그러나 차보 공원은 결코 안정된 자연의
조화 속에 평화로움을 구가하는 에덴 동산이 아니었다.
이언은 "땅딸막한 콘크리트 기둥처럼 서있는 공원의 거대한 바오밥나무는 건조기
동안 코끼리에게 먹이와 물을 공급해 주었다. 오늘날 급속히 늘어나는 코끼리떼는
수풀을 짓밟고 들어가 엄니를 마치 칼처럼 바오밥나무 줄기에 쑤셔넣는다. 그들은
거칠게 껍질을 벗겨내고 속에 수분이 있는 연한 펄프를 찾는다. 이 장대하고 오래된
나무들 중 상당수는 수천 년 이상 이곳에 서있었다. 그러나 불과 10년 사이에 이들
중 많은 수가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고통받는 것은 비단 바오밥나무만은
아니었다. 숲 속의 다른 수많은 나무들도 역시 파괴되어갔다.
이언의 말처럼 코끼리들은 공원의 일부를 마치 탱크가 밀고 지나간 듯한 형국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셀드릭은 모든 야생동물관리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야생동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얼핏 진부한 물음처럼 들리겠지만
앞서 암시한 바 그대로 이 질문에 답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제한되고 일시적인 시각과 생태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한정된
지식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셀드릭은 일단 문제의 크기와 본질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가 원치 않았던 한 가지 해결책은 코끼리떼를 추려내는 것이었다.
일단은 사냥꾼들로 하여금 상당 비율의 코끼리를 쏘아 죽이게 함으로써 개체군의
크기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체수를 추려내야만
코끼리와 그들의 먹이가 되는 식물 사이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방법은 이미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 실행된 적이 있다. 셀드릭은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상관의 명령에 따라 차보 공원에서 '시험적인 추려내기'가 진행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3백 마리의 코끼리가 죽임을 당했다. 눈앞의
광경에 간담이 서늘해진 셀드릭은 더 이상의 살육을 중지하도록 했다.
그는 많은 동물들이 때때로 굶주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연이 하는 대로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낫다고 결정했다. 그는 삼림이 코끼리에 의해 짓밟히는 동안
새로 생긴 서식처에 얼룩말이나 영양과 같은 다른 동물이 번성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최소한의 간섭이 야생을 관리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내가
강력히 뒷받침하게 된 철학이기도 하다.
차보 공원의 망령은 추려내기의 묘안을 놓고 또 다시 논쟁을 증폭시켰다.
추려내기가 야생동물을 관리하고 그 서식처를 유지하는 과학적 방법이라고 믿는
지지자들은 추려내기의 반대자들을 감정에 치우친 아마추어라고 비웃었다. 반면,
추려내기의 반대자들은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자연과 인간의 합작으로 그러한 논쟁을 무색케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가뭄'과 '격화된 밀렵'이 그것이었다.
이언이 차보 공원을 답사한 지 꼭 1년만에 혹독한 가뭄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휩쓸었다. 평원과 숲은 바짝 타들어가 잎이 돋지 않았고 굶주린 코끼리들은 나무를
통째로 먹어치웠다. 숲은 황폐해졌고 이언의 표현 그대로 그것은 마치 집중 폭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쇠약해진 코끼리들은 먹이와 물을 찾아 들판을 헛되이
배회하다가 이내 엄청난 숫자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차보 공원에서만 최소한 1만
마리의 코끼리가 사라졌다. 추려내기의 지지자들은 가뭄의 결과를 인위적인 코끼리
개체군 감축을 정당화시키는 하나의 예로 삼았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추려내기를 진작에 시행했더라면 코끼리는 그나마
가뭄에 덜 고통받았을 것이고 서식처도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반대자들도 이에
질세라 즉각 이렇게 응수했다. "가뭄은 개체군을 조절하는 자연적인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서식처는 자연의 주기상 언제나 그러했듯이 머지않아 다시
회복될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추려내기 반대자들이 옳았다.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새로운 식물들이 차보 공원과 주변 지역에서 자라났다. 우기에 흠뻑 비를 맞은
식물들은 금세 무성해졌다. 그러나 차보의 삼림은 여전히 '압박'을 받았다. 왜냐하면
코끼리 개체군 역시 자연적이라기보다는 다소 비자연적인 이유로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코끼리들이 주면 지역에서 점차 심해지는 밀렵을 피해 비교적 안전한
공원 경계 내로 피난을 온 것이었다.
이 무렵 코끼리 전문가들의 모임이 나이로비에서 열렸다. 케냐 국립 수렵보호국의
연구관 피터 자만Jarman의 주최에 의해서였다. 이 모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했다. 그 일례로 케냐의 코끼리 개체군 수가 보고되었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자연 코끼리 수를 최초로 조사, 측정한 결과였다. 측정치는 대략 16만 7천 마리로
밝혀졌다(이후 6년 사이에 전세계 대륙의 코끼리 개체군 수는 1백50만 마리로
추정되었다). 모임의 두 번째 주요한 의미는 케냐를 비롯, 세계 어디서나 널리
행해지던 상아 밀렵의 정도를 파악했다는 데 있었다.
1973년 아프리카 전체의 상아 수출 추정치는 1억 6천만 달러였다. 이 수치는
코끼리로 따지면 20만 마리가 죽었다는 얘기이다. 이 놀라운 숫자는 한 종의 미래가
어떠할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복잡미묘한 정치적
배경'이라는 진창 속에 빠져버렸다. 또한 지극히 민감한 사안이기도 했다. 그것은 내
나라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임의 결과는 극히 상반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편으로는 상아 때문에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
코끼리를 보호해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 지역에서 코끼리 개체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들의 수를 적절히 조절해야만 했다. 차보 공원의 경우에서처럼
이들은 서식처를 손상시키거나 농경지로 들어가 작물을 망치는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대립은 15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사람들은 일단 초점을
다른데로 돌리기로 했다. 바로 상아에 대한 관심이었다. 상아를 시장에서 입수할 수
있는 한 그것은 경제적 가치를 지닐 것이다. 또한 경제적 가치가 있다면 상아는
종의 운명에 개의치 않고 개발될 것이다. 치솟는 상아의 가격과 함께 코끼리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다. 아니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었다.
1973 년^36,36^1989 년 사이 코끼리 전문가들은 종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둘러싸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로마가 불타는 동안 보존학자들이 바이올린이나 켜고 있는 것과 같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코끼리의 안녕에 적지 않은 책임을 지고 있는 국제
단체^6,36^CITES: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의장이 바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논쟁은 다시 불이 붙었다.
이번 쟁점은 첫째, 아프리카의 코끼리 개체군에 밀렵이 미치는 충격의 정도였다.
두 번째는 밀렵된 상아의 불법 거래를 막고 합법적인 상아 거래를 지속시킬 수
있느냐 였다. 논쟁은 점점 고도의 정치색을 띠게 되었고 그것은 코끼리의 실질적인
보존 문제를 흐려놓았다. 상아 교역은 은밀히 암흑 세계에서 이루어졌으며 사기성이
농후했다. 도살된 짐승의 소중한 약탈품은 흔히 아프리카에서 극동으로 혹은 유럽과
아메리카로 흘러갔다. 상아는 1천 년 전부터 장신구, 보석, 조각상, 도장 등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정신을 현혹시켜 왔던 것이다.
홍콩은 상아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상아는 보다 가치있는 물건으로
조각되었다. 1979 년^36,36^1989 년 사이에 4천 톤이 넘는 상아가 홍콩에서
거래되었다. 이것은 죽은 코끼리 50만 마리에 상당하는 노획물이었다. 상아의
가격은 파운드당 1백20 달러까지 치솟았고 상아 교역에서만 수억 달러의 순익이
쏟아졌다. 상아는 일부 사람들을 순식간에 갑부로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법으로
상아 교역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정도
액수의 돈이 오간다면 사람들이 이처럼 아둥바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상아 교역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기 때문에 새삼 여기서 이 문제를
논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다음 얘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상아 교역의 주통제기관인 CITES 사무국 상아부대는 사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상아 교역 당사자들의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했다. 내가 야생동물보호국에 취임했을 때 상아 교역을 둘러싼 논쟁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6,36^남아프리카공화곡, 짐바브웨, 보츠와나은
교역의 지속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추려낸 동물의 상아를 상품으로
삼아 소규모 교역을 하자고 했다. CITES는 이들의 주장을 열렬히 지지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보호론자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중무장한
밀렵꾼들의 손에 자행되는 명백한 살육을 경고했다. 사실 법적으로 허용된 것보다
더 많은 상아가 실제로 유통되고 있었다. 통제는 모험적인 사업, 무엇보다 돈벌이가
잘 되는 일에는 부적절한 조치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른바 제한된 교역이 코끼리
개체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였다.
그래서 이언 더글러스 해밀턴이 주축이 되어 대륙 전체에 걸친 개체군의 수를
조사했다. 이언의 자료는 상아 교역 평가단^6,36^독립체이긴 하지만 6개 보존
단체의 지원을 받는다의 보고서에 반영되었다. 이로 인해 1989 년 6월 코끼리
종의 위기가 만천하에 공포되었다. 보고서의 결론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나는
자료 수치의 일부를 여기에 열거해 놓을 작정이다. 1980 년^36,36^1989 년까지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프리카코끼리의 개체수는 1백30 만 마리에서 62 만 5천
마리로 반감되었다. 이때가 마침 상아 교역의 통제가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시기임을 기억하라. 이 조사는 또한 중앙아프리카 삼림에 방해받지
않은 대규모 코끼리 개체군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인식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단지 일부일 뿐이다. 더구나 62 만 5천이라는 숫자는 아직도
많아보여서 멸종의 위기에 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숫자의 뒤에는
명백한 살육의 충격이 숨어 있다. 다 자란 수컷이 가장 큰 엄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밀렵꾼의 일차 표적이 되었다. 그러니 오래지 않아 자연히 수코끼리가
희귀해졌다. 케냐의 경우 다 자란 코끼리의 22%만이 수컷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탄자니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수컷의 비율이 1%가 채 못 되었다. 그 수치는
본래 50%여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이 불균형이 짝짓기에 미친 영향은 다분히 '파멸적'이었다. 암컷은
3개월 주기를 통틀어 단 이틀 동안만 수정할 수 있다. 수컷과 암컷의 교배 확률
역시 수컷의 감소와 함께 뚝 떨어졌다. 탄자니아 개체군의 경우 사실상 교배 확률이
'0'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62 만 5천이라는 수치가 많아보일지 몰라도 이것은
짝짓기 형태의 파괴를 통한 명백한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수컷을 해치운 후 밀렵꾼들은 시야를 암코끼리로 돌렸다.
그 결과 상아 교역자들의 창고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1979 년 약 4 만 5천
마리의 코끼리로부터 9백 톤 이상의 상아가 거둬들여졌다. 그런데 8 년 후 3 만 5천
마리의 코끼리가 떼죽음을 당했지만 거둬진 상아의 양은 그전의 3분의 1 수준인
3백만 톤에 불과했다. 통계적으로 엄니의 평균 무게가 점점 하락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점점 암코끼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으스스한 현실을 대변하는 결과이다.
코끼리 사회는 성숙한 암컷을 중심으로 집단 관계를 이룬다. 또한 암컷들에 의해
세상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는 모계 중심제이다. 따라서 암컷의 손실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탄자니아의 어느 개체군에서는
15%의 사회 군집만이 모계였다. 그러나 방해받지 않은 개체군에서라면 모계 군집의
수치가 적어도 75%에 달했을 것이다. 암컷이 손실되어 지도자가 없어진 무리는
환경의 변덕에 쉽사리 공격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62 만 5천이라는 수치는 짝짓기
형태의 파괴뿐만 아니라 사회 형태의 파괴까지 은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숙한 암컷의 살육은 그녀가 이끄는 무리의 사회 구조를 장기적인 측면에서 한층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것은 또한 아직까지 어미에게 먹이와 보호를 의존하는 어린
자손들의 직접적인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모든 상황은 '갑작스런 개체군 붕괴'에
이르는 완벽한 처방 그 자체였다. 물론 보다 강력히 밀렵 행위와 정면으로 맞선
나라도 있었다. 1973 년만 해도 16 만 7천 마리에 달했던 케냐의 코끼리 개체군
수는 1989 년에 2 만 마리로 뚝 떨어졌다. 차보 공원에는 간신히 5천 마리가
남았을 뿐이다. 우간다의 경우 상황은 더 나빴다. 이디 아민 독재 정권하에서
사실상 코끼리 개체군이 전멸되었기 때문이다. 탄자니아는 1979 년^36,36^1989 년
사이에 75%의 코끼리를 잃었다.
이에 반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짐바브웨 같은 나라에서는 동일한 기간
동안 오히려 개체군 수가 증가했다. 이는 상아 거래를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던 다른 나라들과 좋은 비교가 되었다. 아프리카 각 나라마다 엄격히 야생
동물을 관리했는데 그 안에는 '추려내기'도 포함되었다. 추려내기를 시행하는
나라들은 이 방법이 균형잡힌 개체군과 건강한 서식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얻은 상아나 피부, 고기를 판매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수입원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때는 지역 주민들이 공원 밖에서 야생동물의
소유권을 나눠가졌다. 그들은 제한된 방식에 의해 추려내기를 이용하는 편이 오히려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이용 개발'이란 농담은 여기서는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루거 국립공원에는 약 7만 5천 마리의 코끼리가 서식하고
있다. 해마다 이 중에서 6백 마리 가량이 추려졌으며 그로 인해 얻어진 고기와
피부, 상아로 벌어들인 연간 수입은 3백만 달러에 이르렀다. 짐바브웨 야생동물국도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약 4백50 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수익의 일부는
공원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지역 공동체에 돌아갔다. 추려내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재정적인 이익을 얻는 지역 주민들 스스로 야생 동물을 보호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추려내기 정책은 소위 '지속가능한 이용'의 한 예가 되었고 보호론자들의 논의는
이 때문에 점점 가열되고 있었다.
나는 야생 동물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의 열렬한 후원자이다.
우리는 코끼리와 영양을 학교와 병원, 그리고 농경 시설을 확보할 수 있는 '부'를
창출하는 데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어떻게 이 일을 가장 훌륭히 해낼
것인가'로 귀착된다. 나는 오랫동안 어떤 종류의 사냥도 멀리해 왔다. 따라서
'사냥이란 단순히 기념물을 얻기 위한 스포츠'라는 생각을 절대로 용인할 수가 없다.
코끼리를 추려 죽여서 그 전리품을 시장에 내다 팔고 돈벌이를 한다는 생각 역시
용납할 수 없다. 코끼리와 잠시라도 함께 있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개체로서의
민감성'과 집단으로서의 복잡성'을 지니고 있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참으로 영리한 사회적 동물이다. 또한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의사 소통과 이해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때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들은 쿵쿵거리며 걸어다니는 미련한 짐승이 아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숙달되어
있고 정교하며 행동 또한 지적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윤리적으로도 코끼리를 추려
죽이는 데 반대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추려내기를 부정하는 것은 곧
지구상에서 이종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공존의 본질은 복잡미묘하다. 만일 여러분이 돌아다니는 코끼리떼에 의해
한해 농사를 몽땅 망쳐버린^6,36^사실 그런 일도 종종 일어난다농부라면 아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땅에서 그들은 꺼져버려야 해.
이상 끝." 케냐의 코끼리 중 약 40%가 공원이 아닌 사유지를 배회한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서방 국민들은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옥수수밭에서 풀을 뜯는 들소나 가축떼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늑대를 관대히 대하는
미국 농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매년 4억 2천만 달러의 관광 수입이 케냐에 들어오며 이
가운데 약 3백만 달러가 코끼리에 의한 소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죽여 판매함으로써 얻는 한해의 이익금이 아닌, 해마다 지속되는 금전적인
가치를 개개의 코끼리에 부여한다. 보호론자들과 정부는 이 수입을 주로 이 집단을
이롭게 하면서 동시에 코끼리와 주민들의 평화 공존을 확보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것도 그들이 맞닥뜨려야 할 일종의 '도전'인 것이다.
거대한 육상 초식 동물인 코끼리의 본성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킨다. 그들은 매일 엄청난 식물을 얻기 위해 역시 엄청나게 넓은
범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보호구가 적을수록 살아남는 종의 수가
적다는 사실을 일고 있다. 코끼리는 육상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넓은 서식 범위를
요구한다. 따라서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공원을 제공하여 사유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면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나야 한다.
이러한 필요에 적합한 야생의 땅을 찾아내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나 이것이 만약
가능하다면 서식 범위가 코끼리보다 작은 다른 많은 종들도 더불어 보호하는
부가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989 년 10월 스위스 로잔에서 CITES 국가들의
주요 회합이 열렸다. 이 모임에서 상아 교역의 장래를 둘러싼 논쟁은 거의 절정에
달했다. 동아프리카의 대표자들은 상아 교역을 끝장내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그것은 코끼리를 '부속 Ⅰ군'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코끼리의 교역이 종의 존속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교역의 통제가 실패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밀렵에 의한 불법 거래의
동기는 너무나 컸고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은 너무나 많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짐바브웨는 '추려내기'의 산물에 한해서 제한 교역을 희망했다. 그들은
만일 지역 주민이 야생 동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면 그들을 보호할 동기 역시
잃게 될 것이고, 그러면 머지않아 코끼리를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단히 중요한 사안인 만큼 회합은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돌았다. 코끼리는 단순히
생존이 위태로운 한 종이 아니었다. 이제 코끼리는 자연을 보호하려는 사회 집단의
의지를 타나내는 표상이 되었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웨스턴의 말처럼 그것은 '보존의
기함'(사령관이 타고 있는 배)이 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평원의 대형 육상 포유류를
멸종의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없다면 대체 어떤 종을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야생 동물의 경제적 혜택을 지역 사회로 돌리자는 생각을 인정한다. 그러나
제한 교역을 허용하는 것은 더욱 파멸적인 밀렵을 야기시켜 조만간 코끼리는 멸종
위기 종이 아닌 아예 멸종된 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가 막상 시작되자 어떤
식으로 의결이 될지 아무도 단정하지 못했다. 결국 회의 참석자들은 투표를 통해
코끼리를 '부속 Ⅰ군'의 상태에 놓기로 결정했고, 1990 년 1월 드디어 전세계적으로
상아 교역 금지령이 발효되었다. 곧이어 세계 시장에서의 상아 가격을 파운드당
1백20 달러에서 고작 4 달러로 폭락했다.
개인적으로는 1989 년 7원의 바로 그 날, 전세계를 향해 띄워 보낸 불길 신호가
10월의 결정적인 투표에서 대표자들의 시각에 영향을 끼쳤다고 믿고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른 인간을 노예로 삼는 일이 많은 이들에게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 진화상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고릴라를 죽이는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같은 맥락에 따라 코끼리 역시 우리의
경의와 보호를 받을 만한 종이라고 믿는다.
앞서 나는 코끼리 추려 죽이기를 반대하는 윤리적 이유를 설명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절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측면의 반대 이유도 있다. 추려
죽이기의 지지자들은 흔히 그것이 야생 동물 관리의 과학적인 방법이며 서식처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제공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과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태계의 작용 방식을 정적으로 보는 시각, 즉
'자연의 균형'에서 비롯된 견해이다. 이 책에서 내가 계속 피력해 온 메시지는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상관없이 '동적인 변화'가 자연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결코
정적인 균형 상태가 아닌, 동적인 변화 말이다.
만일 '종의 보존'과 '생물 다양성의 보호'를 성공시키려면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 케냐 남부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을 방문해
보면 이와 같은 논지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암보셀리는 대부분의
기준에서 소규모 공원으로 분류된다(넓이는 약 1백50제곱마일). 게다가 바로 옆에
불쑥 솟아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에 위압당하고 있다. 해발
5천8백95m에 이르는 킬리만자로 산의 꼭대기는 일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다고
한다. 초기 유럽의 탐험가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목격담을 이야기했을 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반응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그토록 적도 가까운
곳에 어떻게 눈덮인 산이 있을 수 있어?"
불과 몇 년 전 이 지역을 찾은 방문객 중 이전에 지도를 공부했던 사람들은 낮은
구릉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대부분 메마른 평원으로 이루어진 지역을 '암보셀리
호'라고 묘사한 것을 발견하고 적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암보셀리가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진수를,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서식처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지역은 삼림과 초원, 늪지, 그리고 계절따라 흐르는
시내가 짜집기된 수많은 동물 종의 고향이다.
1973 년부터 이곳에서 코끼리 개체군을 연구했던 신시아 모스에 따르면 "코끼리,
코뿔소, 하마, 기린, 버펄로, 얼룩말, 13종의 영양, 4종의 영장류, 3종의 대형
고양이류, 야생개, 2종의 하이에나, 3종의 자칼, 여러 종의 작은 고양이류, 몽구스,
재닛(사향고양이의 일종), 다람쥐, 산토끼를 비롯해서 땅늑대, 조릴라(족제비의
일종), 큰개미핥기, 나무타기하이렉스, 아프리카라텔, 호저와 같은 기묘한 종들이
여기에 살고 있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삼아 이 동물들과
사진을 찍었다.
1991 년의 암보셀리 호에 대한 언급은 실제보다 더욱 역사적인 논평이었다.
킬리만자로의 존재는 시각적으로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한 호수를 위시한 물리적인
면에서도 암보셀리를 위압하고 있다. 5백만 년 전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지금과
매우 달랐다. 특히 산이 없었다. 그 대신 비교적 평탄한 들판^6,36^지금의
암보셀리을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인도양으로 흘러들어가는 큰 강이 있었다.
그러다가 4백만 년 전^36,36^2백만 년 전 사이 어느 시기에 화산 활동이 평지를
하늘 높이 들어올려 마침내 오늘날의 킬리만자로 산을 형성했다.
그 결과 강의 흐름이 막혀 약 2백30제곱마일 넓이의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다.
그리고 수백만 년에 걸쳐 엄청난 양의 퇴적물과 화산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쌓인
부스러기가 호수를 메우고 강의 흐름을 바꾸어 암보셀리는 결국 더욱 건조한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후 건조와 범람이 반복되면서 이 유역은 주기적인 서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약 1만 년 전 건조 작용이 호수 서쪽변의 주기적인 범람을 제한하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날 암보셀리 지역에 서식처가 생긴 근거이다.
만일 암보셀리의 식물 생장은 비에 의존해야 했다면 이 지역은 사실상 사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킬리만자로는 주변 지역 기후에 영향을 미쳐 암보셀리의 연간
강우량을 대략 3백mm로 제한한다. 반면 산비탈에는 훨씬 많은 비가 내린다. 그러나
킬리만자로는 빼앗아갔던 것을 다른 형태로 되돌려주고 있다. 지하수를 간직한
대수층이 다공질의 용암을 따라 25마일을 흘러 빗물, 눈 녹은 물을 산으로부터
지상에 있는 암보셀리의 샘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 차고 깨끗한 샘이 암보셀리
분지의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서 늪지와 연못, 강바닥에는 사초, 파피루스 등의 풀을
비롯해서 아카시아수풀, 키큰유칼립투스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다.
암보셀리의 지질사는 오늘날의 식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그곳에서 어떤 야생
동물이 살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오랜 기간에 걸친 퇴적은
염분의 농도를 높게 만들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염분에 강한 식물만이 이
지역^6,36^한때 호수였다가 말라버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빗물이
염분을 지하 깊숙이 씻어감으로써 염분에 강하지 못한 식물들도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전히 염분이 도사린 채 지하수면의 변화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어 있다. 또한 그것은 마치 먼 과거로부터 울리는 메아리처럼
오늘날의 식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결과는 내가 오늘날의 암보셀리를 설명하는 지금 이순간에도 어떤 방문객은
아프리카의 최고봉을 배경으로 평원과 숲에서 넘쳐나는 야생동물에 강한 인상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5백만 년 전의 풍경은 이와 사뭇 달랐으리라. 강이
가로질러 흐르는 범람원에는 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요즘과는 전혀 딴판인 동물
무리들이 뛰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산의 발치에는 큰 호수가 어렴풋이 반짝이고
있었다. 동식물은 다양했지만 식물만큼은 염분에 강한 종류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의 동물이 이용 가능한^6,36^섭취할 수 있는먹이를 한정시켰다.
장구한 시간에 걸친 커다란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일견 진부해 보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가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이유는 오늘날의 지질의 장엄함에 크나큰
경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진화적 시간 범위로 보면 한순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진화의 시간에서는 한순간의 존재에
불과하다. 몇 백만 년 이내에 킬리만자로는 침식과 시간의 흐름, 변화에 의해 그저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암보셀리를 보존 및 생물 다양성과 관련된 일반적 유형의 구체적인 실례로
삼아 두 가지를 더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단기간 동안이라도 급격한 서식처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산의 형성이나 호수의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강우 유형과 연관된
훨씬 온건한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온건한 변화조차도
존재하는 생태계의 종류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앞서 나는 다양한 동물 종이 살고 있는 풍부한 '모자이크 서식처'에 관해
설명한 것이 있다. 그런데 그 모자이크 서식처는 단순히 땅과 공급되는 물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생성된 산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서식처의 모양을 결정짓고 높은
생물 다양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바로
아프리카코끼리이다.
처음에 내가 오늘날의 암보셀리를 설명할 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의
방문객들은 지도에 표시된 것과 실제가 너무나 다른 데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10
년 동안 이 지역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이전보다 한층 건조해졌으며 식물이
자라는 면적도 현저히 감소했다. 늪은 얕아졌고 무성했던 파피루스는 듬성듬성
나있는 수준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숲이 두드러지게 황폐해졌다. 공원의 중심부에서
10여 년 전 무성히 자라고 있던 식물 종의 절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뜨거운
회오리바람이 비쩍 마른 나무 줄기 사이를 휙 스쳐지나갔다.
여러 종의 새와 일부 작은 포유류, 그리고 대형 초식 동물들도 사라졌다. 가젤,
영양, 제브라^6,36^이들은 모두 초원의 풀을 뜯어먹고 산다들은 여전히 많지만
기린, 임팔라, 쿠두처럼 연한 잎을 먹는 동물은 보기 힘들어졌다. 한때 흔했던
베르베트원숭이도 이젠 희귀해졌고 비비의 수도 절반 이상 줄었다. 암보셀리는 더
이상 아프리카의 에덴 동산이 아닌 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이 파괴적인 변화를 이끌었음은 거의
확실하다.
흔히 지목되는 범인 중 하나는 코끼리이다. 코끼리는 공원 바깥의 땅을 짓밟고
식물을 감소시킨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그래서 또 다시 코끼리 개체군을
추려내자는 해묵은 주제가 등장했다. 이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공원의
코끼리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1백50제곱마일의 면적에 7백50마리라면 아마
아프리카 대륙 어느 곳에 비해서도 밀도가 높을 것이다. 코끼리 수가 증가한 이유는
이들이 공원 경계선 너머에서 밀렵의 위협을 피해 도망쳐 왔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실이다.
공원 안에서 코끼리는 안전했고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코끼리 밀도는 불가피하게 식생에 압력을 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코끼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1마리당 하루 3백75파운드의 식물을 먹어치워야
한다. 이러한 압박은 물의 공급이 감소되었을 떼 더욱 심화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암보셀리 서식처의 파괴를 놓고 전적으로 코끼리 개체군의 높은 밀도에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자연에서 진행되는 주기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탐험가 조지프 톰슨이 1세기 전 이 지역을 여행했을 당시 암보셀리는
1981 년의 모습보다는 1991 년의 모습에 훨씬 가까웠다. 톰슨은 1887 년에 펴낸
그의 저서 '마사이족 영토를 지나며 Through Masailand'에서 암보셀리 땅을
황폐하고 메마른 불모지로 묘사했다. 나무가 없는 먼지투성이의 무미건조한 평원, 이
묘사는 바로 몇 해 전의 이곳 풍경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그러나 사냥감은 많았다.
물론 훨씬 더 풍성했던 시기보다는 분명히 적었을 테지만 말이다.
암보셀리에 대해서는 1880 년대, 1980 년대, 그리고 1990 년대 초의 묘사 외에는
달리 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먼지투성이의 우묵한 땅에서 무성한
모자이크 서식처로, 다시 먼지투성이의 우묵한 땅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지연 순환이
이곳에 진행되고 있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세기
동안 암보셀리 공원의 식생이 동아프리카의 여느 지역처럼 울창한 삼림에서 황량한
평원으로 크게 변동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역사적 자료가 있다. 이러한 변동은
대개 강우 유형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암보셀리의 지하수면 변화는 종종 고대의 염분을 지표면 가까이로
끌어올려 뿌리에 해를 줌으로써 나무를 서서히 죽게 만들었다. 나는 지하 염분
분포의 변동이 최근 지상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규모 코끼리떼와 그것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암보셀리
서식처에 미치는 영향을 도외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하나의 요인일
뿐 전체적인 원인을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상황을
개선하려는^6,36^이를테면 추려내기를 통한단기간의 노력은 모두 헛된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비상시나 안정된 시기, 두 경우 모두 그대로 두는 것이 그리고 인내롭게 지켜보는
것이 야생 동물을 관리하는 보다 현명한 방법이다. 나는 케냐 야생동물보호국의
책임자로 재직하던 초기에 이러한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암보셀리의 역사는 끝없이
변모하는 자연의 얼굴을 확연히 보여주는 듯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의지 앞에
자연을 굴복시키려 드는 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또한 그 점을 강조라도
하듯이 암보셀리는 지금 다시 변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지하수면은 조금씩 올라가
늪지가 넓어지고 있으며 먼지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치던 바짝 마른 땅에 샘물이
반짝이고 나무와 수풀이 다시 무성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밀렵의 중단으로 공원 경계 너머에서도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기에 코끼리의
영향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공원에서 사라졌던 일부 종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자리잡은 땅, 암보셀리는 우리에게 생물의 흐름을
이해하고 유의하라는 생생한 교훈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코끼리가 나무를 잘라내거나 어린 식물을 뿌리째 뽑는 광경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파괴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게 마련이다. 내가 몇 년 전의 암보셀리를
묘사했던 장면에서도 코끼리의 힘은 대량 파괴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생물학자들은 코끼리의 파괴력을 다른 측면, 즉 창조적인 힘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생각의 전환같지만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코끼리가 삼림의
나무를 파괴한 결과 관목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창조된다. 또 사바나 관목
지대에서의 관목 파괴는 풀이 자라날 공간을 마련해 준다.
울창한 삼림을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름드리 나무들이 치솟아 있는 그
웅장함에 감명을 받게 마련이다. 이 나무들에는 각종 착생 식물들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둘러보면 주위는 온통 침묵뿐이다. 기묘한 정적이
그제서야 의식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큰 동물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거기에 없거나 있다 해도 고작 몇 종류밖에 되지 않는다. 숲과 초원이
펼쳐져 있건만 정작 풀과 나뭇잎을 뜯어먹는 동물은 없다.
이제 생물학자들은 다른 종이 번성할 수 있는 모자이크 서식처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바로 코끼리임을 깨닫고 있다. 새로 형성된 관목 지대에는 연한 잎을 먹는
동물들이, 새로 형성된 초원에는 풀을 뜯는 동물 종이 살아가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종을 '쐐기돌 초식 동물'이라 부른다. 쐐기돌이
빠지면 아치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쐐기돌 초식 동물이 멸종하면 생태계 역시
붕괴할 것이다.
위차터스랜드대학^6,36^요하네스버그에 있다의 생물학자 노먼 오웬
스미스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러한 대규모 붕괴가 이미 발생했었다고
주장한다. 오웬 스미스는 1 만 년 전 홍적세 말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형 초식
동물이 멸종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약탈
때문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때 사냥꾼들의 관심은 매스토돈과
곰포테륨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오웬 스미스는 사냥에 의해 희생되지
않았을 법한 다수의 작은 포유류와 조류 종들 역시 멸종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형 초식 동물이 절멸하면서 탁 트였던 숲 속의 빈터는 다시 막혔고 관목 지대는
삼림으로 바뀌었으며 다양함을 자랑하던 초원은 획일적이고 지루한 초원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식생의 변화는 화석상의 꽃가루 기록에서 구별된다. 화석 기록은
통해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작은 초식 동물이 살 수 있는 서식처를 한정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종의 절멸로 이어졌을 것이다. 오늘날 코끼리가
멸종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 이와 유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코끼리가 사라지면 풀이나 연한 잎을 뜯어먹는 동물들의 서식처는 풍부함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훨씬 적은 종만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그 뚜렷한 예로
암보셀리의 북부 지역을 들 수 있다. 울창한 관목이 그 일대에 똑같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만일 끔찍하게도 통찰력의 부족이나 의지의
결여로 코끼리가 멸종한다면 더 많은 종이 그 뒤를 따라 진화의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쐐기돌 초식 동물로서 코끼리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그동안 상아
교역의 장래나 추려내기의 지혜 등등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에서 간과되어 왔다.
코끼리는 그저 멸종 위기에 놓인 한 종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보존의 기함으로서
단순히 우리의 의지^6,36^자연을 경외하고 보존하려는를 검증하기 위한
도구처럼 인식되어서도 안된다. 코끼리의 생존에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엄청난
다양성을 이루고 있는 다른 수많은 종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이들은 모두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얻어진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미래)
진화생물학, 생태학, 고생물학에서의 새로운 통찰을 종합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저
역사의 우연한 산물일 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우세한 종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우리의
영향력은 재앙이 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계속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한다면 이
세계의 종 절반 가량이 21세기 초에 멸종하기 시작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역시 역사 속의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멸종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종들을 보호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
우리의 역할은 결코 자연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기에.
12. 역사의 우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사고를
대전환시켜야 할 기로에 서있다. 그 변화의 크기를 '지적 혁명'으로 묘사한다 해도
결코 과장은 아닐 것이다. 앞장에서 나는 변화의 요소를 종합했고 이제 우리는 진화
초기의 상황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따로 나뉜 어슴푸레한 선이 하나로
뭉쳐 단일하고 분명한 초점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상이 오래도록 생각해 왔던
관점과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 흐름의 개념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새로운 개념을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조명하려면 이 책에서 앞서
말했던 주제들을 되풀이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기를. 이
새로운 개념^6,36^실제로는 일련의 개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천지만물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기분좋은 수많은 견해들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지적 틀
속에서 우리를 분명히 인식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미용 지출은 오히려
경제적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가 더 완전하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인식은 다음 세기와 그 이후로 인류가 보다
효율적으로 나아가도록 준비시켜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4부에서 설명할 것은 바로 이러한 '미래'^6,36^사물의 방대한 계획에 따른
즉각적인 미래이다. 이제부터 나는 보다 대담하게 말하려 한다. 우리가 분명히
위기^6,36^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것 중의 하나에 직면해 있고, 만일 우리가
어떤 전망을 가지고 협상하는 데 실패한다면 다음 세대에 가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번 12장에서는 현재 우리 주위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지적 혁명의 본질'과 생물 흐름^6,36^많은 동료 승객들과 함께
우리가 몸을 싣고 있는을 보다 깊이 통찰하도록 이끄는 '지적 혁명의 의미'를
명확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3장과 14장에서는 우리가 왜 인류 역사의 분기점에 와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그 분기점은 지구 역사상 전례없는 재앙으로 치닫는 하나의 방향과
자연 세계와의 조화를 지향하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분기점을 어떻게 구축해 왔는지를 밝힐 것이다. 만약 내가 경고주의자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미리 의도한 바 그대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책을 통해 보다 독특한
관점을 펼쳐나갈 것이다. 그것은 '지구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설명하는 것이며, '지구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손쉬운 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정서는 지구상 생물의 시간 기준인 수억 년이 아니라 수십 년
혹은 몇 세대의 관점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밟아가며 인류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지구 역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하찮음이 동시에 드러난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분명히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종은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이라는 쌍둥이 과학은 온통
인류의 정신에 대해 확신을 준 생물관으로 물들여졌다. 이러한 관점은 위대한
자연학자 찰스 다윈과 위대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의 혁명적이고도 강력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생물학과 지질학이라는 두 영역에서 한결같이
지구의 역사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느릿느릿 진행되었다고 주장했다.
깊은 협곡이나 높은 산 등 거대한 지질 구조물들은 작은 변화들이 일정하게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며, 대륙의 표면과 깊은 바다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들이 살게 된 것도 모두 이 작은 변화들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처럼 엄청나게 다양한 수백만 종의 생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점진적 세계관에 대한 다윈과 라이엘의 확신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이전의 지적 전통^6,36^지구와 그 위에 사는 생물들이 때때로
일어난 재앙, 즉 '격변의 운 나쁜 산물'이라는 주장 등에 얼마나 크게
반발하고 있었는가를 되새겨보아야만 한다. 각각의 격변이 찾아올 때마다 엄청난
홍수나 대륙 변동이 지구의 생물상을 영원히 사라지게 했고, 곧이어 더욱 발달한
형태의 새로운 생물 그룹이 이를 대체했다. 격변론의 지지자들이 모두 종교적인
정황에 그들의 생각을 짜맞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물들여지고 말았다. 격변론의 요지는 신성한 힘이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듯이 또 다른 신성한 힘이 파괴를 이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성한 힘'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지구와 그 속의 생물들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에 널리 믿어졌다. 그러나 라이엘이 엄청나게
거대한 지질 구조도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밝혀내고, 다윈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다는 무수한 생물 형태의 기원을 하나의
이론으로 공식화함으로써 그들은 하나의 전망^6,36^점진주의을 공동으로
제안해낼 수 있었다. 이 이론은 신의 개입을 빌지 않았기에 격변론보다는 훨씬
'과학적'이었다. 격변론은 죽었다. 이후 점진주의의 개념은 널리 대중적으로
퍼져나갔고, 이를 산파로 해서 현대 생물학과 지질학의 시대가 문을 열었다.
다윈의 관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은 생물의 흐름이 끊임없는 생존 경쟁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적자는 살아남아 번성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굴복한다. 하나의 생물 종은 '다른 종'과 '물리적 환경' 두 가지 요인에 맞서 부단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연 선택'에 의해 가장 알맞은 적응 형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두 가지 도전^6,36^다른 종과 물리적 환경에 대응한다.
'생존'은 그 경쟁에서의 성공을 나타내며 '멸종'은 실패를 뜻한다.
앞장에서 나는 다윈의 말들을 수 차례 인용했지만 여기서 다시 그들 중 하나를
반복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윈이 말할 당시에 분명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고, 또한 1백년이 넘도록 계속 앙금처럼 남아 있던 하나의 감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말이다. "자연 선택은 오직 개개의 존재에 의해, 그리고
개개의 존재를 위해 작용한다. 따라서 생물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자질은 완전한
상태를 향해 진보하려는 경향을 띤다." 우리는 이러한 다윈의 관점으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첫째, 화석의 형태로 적힌 생물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승되는 투쟁사의 기록이다.
생물은 최초의 시간으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쟁'을 통해 패자와 승자로 갈라져
왔다. 자연 선택은 조금씩 조금씩 작은 증가분을 더해 적응 형태를 쌓아간다.
그래서 진화적 변화의 궤도는 더디고 꾸준하다.
둘째, 생물의 흐름은 보다 우월한 종의 성공에 의해 진행된다. 그러므로 흐름의
방향과 모양은 '필연적'이다.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로의^6,36^그리고
마침내 우리 인간에 이르는진보는 단순히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했던'
생물의 전개를 반영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연적인 요소, 즉 임의성은 생물 흐름의
방향과 모양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후의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도
역시 필연적이다.
앞서 나는 이 전통적인 관점이 인간의 정신에 위안을 준다고 말했었다.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불확실성에 언짢아하고 임의성에 반발한다.
우리의 '존재'와 관련해서 특히 그러하다. 우리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주사위를 던져 우연히 나온 결과'라는 생각 자체를 혐오한다. 방금 언급한 전통적인
관점은 두 가지 이유로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첫째는 다름아닌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우월성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라는 것이며, 둘째는 생물이 처음부터 내내
우리의 방향으로 이끌어졌다는 것이다.
1933 년 고생물학자 로버트 브룸이 그의 책 '인간의 도래, 우연인가
계획인가'에서 했던 말을 기억해 보자. "진화의 상당 부분은 마치 인간에 이르기
위해, 그리고 그 인간이 살아가기 적합한 장소로 세상을 만들어주는 다른 동물과
식물에 이르기 위해 계획된 것처럼 보인다." 브룸의 말은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당시 모든 학문 영역에 널리 퍼졌던 사고 방식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한다. 생물의 역사 전반을 통해 간단한
생물에서 복잡한 생물로의 꾸준한 진보란 없었다. 초기 단계에 간단한 생물이
나타났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초기의 간단함은 수십억 년 동안 가기 질릴
정도로 무변화로 지속되었다. 지구 역사의 7분의 6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단세포
이상의 복잡한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5억 3천만 년 전 마침내 다세포
생물의 형태로 '복잡성'이 나타났다. 이후 폭발적인 진화가 계속되었다. 진화적
혁신은 5백만 년^6,36^지질 연대에서 보면 한순간에 불과하다사이에 무수한
다세포 생물 형태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생물의 흐름은 결코 순조롭지 않으며
지독하게 변덕스럽다(실제로 스티븐 제이 굴드와 닐스 엘드리지는 자신들의 '단속
평형설'에서 대부분의 진화적 혁신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의 폭발적인 변화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캄브리아 대번성의 실체가 이렇다 해도 그것은 그저 우리의 신경을 약간
건드렸을 뿐이다. 진화의 본질이 비록 변덕스럽다 하더라도 생물 흐름의 방향은
여전히 어느 정도의 예측이 가능했으며, 우리 역시 여전히 필연적인 진화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캄브리아 대번성 이후의 생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이러한 주장을 한꺼번에 불식시켰다. 거칠기 그지없는
캄브리아 대번성의 실험은 몸의 설계도, 즉 1백여 가지의 서로 다른 생물 형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몇 백만 년 사이에 이들 중 오직 일부만이 살아남아 오늘날
변화무쌍한 생물의 만화경에 떠다니는 구성원이 되었다.
생존자들은 타고난 우월함으로 멸종을 모면했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자의
후손이며 여기에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초기 대량 멸종에서는 생존자의 우월함도 희생자의 열등함도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최근 굴드가 말했던 그대로 '지상 최대의 제비뽑기'가 행해졌으며 우리는
우연히 그 운좋은 승리자들 가운데 하나의 후손이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운좋은 승리자의 후손들과 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 제비뽑기가 다시 행해진다면
승리자들이 또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면 현대 생물의 기초가 된 몸의 설계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초기 멸종에서 사라졌던 기이한 생물 형태로 미루어 보아 이들 중
많은 수는 아주 색다른 유형일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생물 세계^6,36^우리 역시 그 일부를 차지하는가
필연적이며 유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있을 수 있는 세계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존 세계는 단지 역사의 우연한 사실에 불과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적 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멸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기억해 보라. 다윈은 대량 멸종설 이론을 수상쩍게 여겼다. 그래서
화석 기록에 나타난 대량 죽음의 뚜렷한 증거를 불완전한 기록으로 인한 인위적인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대량 멸종은 격변설의 기미를 풍겼고
그것은 그에게 저주나 다름없었다. 결국 간헐적인 대량 멸종의 실체는 반박할 수
없는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생물 흐름의 순조로운 변화라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생각을 약화시켰다.
우리가 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5 대 생물상의 위기는 존재하던 종의 95%를
눈깜짝할 사이에 절멸시키면서 생물 흐름을 일시에 중단시켰다. 오늘날 대량 멸종은
생물 역사의 패턴에서 주요한 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본질에
대한 연구는 무시되고 있다. 대량 멸종의 본질은 오랫동안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자들은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대량
멸종이 생존 경쟁을 강화시켜 단기간 내에 현저히 많은 종은 멸종시킨다고
가정했다. 대량 멸종은 그동안 일반적인 멸종, 즉 배경 멸종과 똑같으나 규모가 좀더
큰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정상적인 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건에서의 생존은 우월한 적응의
표시로, 멸종은 열등한 적응의 표시로 간주되었다. 최근 들어 대량 멸종은 특별히
두드러진 배경 멸종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진화생물학의 중요한 견 가운데 하나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대량 멸종은 배경 멸종에서 지배적으로 작용했던 것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다윈설에 따른 진화^6,36^배경 멸종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는 생물상의
위기 동안 잠깐 보류되며, 이러한 위기 사건에서의 생존 여부는 종의 적응 소질이
아닌 '지리적 분포'나 '몸의 크기'와 같은 특성에 좌우된다(한정된 지역의 종은
공격받기 쉽다. 그래서 이들보다는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종의 생존 가능성이 더
높다. 또 몸집이 큰 종은 작은 종에 비해 훨씬 취약하다).
이제 대량 멸종 시기 동안 한 종이 생존하느냐 마느냐는 데이비드 라우프의
견해처럼 훌륭한 유전자보다 행운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앞서
지적한 대로 공룡이 멸종한 후에도 포유류가 살아 남는 이유는 유전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주사위 굴리기의 결과가 우연히 그렇게 나왔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 생존에 크게 기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모든 포유류
계통이 6천5백만 년 전의 그 사건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멸종했다. 영장류 계통이 생존자들에 속했다는 사실 역시 '우월성'이 아닌
'운'의 문제였다.
푸가토리우스가 패자 쪽에 속했더라면 원원류도, 원숭이도, 유인원도^6,36^따라서
인간도없었을 것이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는 여러 면에서^6,36^특히 창조성과
의식에서특별하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의 존재는 필연적이지
않다'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욱 난감한 것은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기
어려운 정도의 '임의성'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5장에서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단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백만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5억 년 생물 흐름의 산물이자, 5대 멸종을 포함해서 최소한
20차례의 생물 위기에서 살아남은 운좋은 생존자들이다.
한정된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현재의 지적 혁명에 대한 한층 심오한 통찰력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세계 전체로 볼 때 결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대량 멸종은 한때 진화를 구체화하는 현상이 아니라 많은 종에 치명타를
가하여 생물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인식되었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진화를
구체화하는 요인이 '자연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멸종 기간 동안에
적용되는 죽음의 법칙은 평상시와 다르며, 생존에는 '임의성'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포함된다는 것을 안다.
종의 생존과 멸종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 선택이 아니라 바로 이
요인들^6,36^특수한 죽음의 법칙과 임의성이다. 이들은 대량 멸종이 생물
역사의 패턴을 구체화하는 주된 힘이 되도록 한다. 실제로 이 요인들은 전체적인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동인'에 속한다. 데이비드 라우프는 "멸종, 특히 대량 멸종은
복잡한 생물 진화에서 실로 중대한 구성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인식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대량 멸종과 관련해서 나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멸종 사건의 기원은 지극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현재 진화생물학자와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의 하나가 되고 있다. 내가
'원인이'라는 전제를 굳이 앞에 둔 것은 이러한 배경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지구의 온도 변호와 해수면의 후퇴(하강) 등 몇 가지 동인을 설명했다.
그러나 4장에서 보았듯이 이제 적어도 하나의 사건^6,36^6천5백만 년 전의 백악기
멸종만큼은 거대한 소행성(또는 혜성)의 지구 충돌로부터 촉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대량 멸종이 지구 역사를 구체화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이식은 진화론의
발달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또한 이 사건들이 지구 외적인 충격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는 참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으로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힘'에 의해 구체화되는 다윈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
'생물의 흐름이란 지극히 순조롭고 예측 가능하다'는 기존의 인식은 그 필연적인
정점이 인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이며 현재 우리의 위치는 커다란 행운에 의해 우연히 획득된 것이다.
격변설은 부활하여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고 이제 그것은 현실이다.
나는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이라는 쌍둥이 과학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그것은
오늘날의 지적 혁명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전자, 즉
진화생물학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이제 생태학으로 눈을 돌려보자. 생태학에서도
진화생물학의 경우와 비슷한 세계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생태 군집이 어떻게
지금처럼 존재하게 되었을까'에 관해서 그러했다. 9장에서 이야기했듯이
생태학자들은 최근까지도 생태 군집이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극히 단순화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생물학자들의 견해가 다윈설의
관점^6,36^진화의 시간을 통한 생물 흐름의 필연성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보다 짧은 시간의 틀 속에서 생태 군집을 조합하는 데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은
자연 선택을 통해 생물의 적응 형태를 만드는 법칙과 동일했다. 생물 종은 '다른 종'
및 '물리적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조화^6,36^자연의 균형이라는 말로 쉽게
요약되는를 이끌어간다. 생태학자들은 특정한 장소의 군집 구성은 그 장소의
환경을 반영하며, 다른 환경을 가진 다른 장소의 또 다른 군집들과는 분명히
구별된다고 믿었다.
군집의 구성에서 종의 상호 관계는 더없이 중요하다. 균류는 식물의 뿌리를
부양하며 식물의 잎은 곤충을 먹여 살리고 곤충은 새를 부양하는 식으로 말이다.
종이 일정한 지역의 물리적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9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제 생태학자들도 종간의 상호 영향력은 '군집이 왜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가'의 단지 일부밖에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생물의 흐름에서 '임의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힘겹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태학자들 역시 그들의 관심 분야에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생태 군집의 구성원은 자연의 균형 속에서 서로 멋지게 평형을 이루며 살고 있지
않다. 군집의 모양과 행동의 상당 부분은 혼돈스런 상호 작용과 미리 준비된 설명을
허용치 않는 돌발적 특성^6,36^침입에 대한 저항력과 같은에 의해 결정된다.
이전의 관점에 따르면 군집은 예측 가능하고 정적인 것이었다. 반면, 변화된
관점에서는 군집을 예측 불가능하고^6,36^심지어 신비스럽기까지 한 동적인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동적인 상태는 현존 세계의 생물 다양성에 기여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머문다.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겠지만 꾸준한 변화^6,36^동적 상태^6,36^는 군집의
장기적인 안정을 가져오는 근원이다. 단기간의 변화를 차단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해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인간은 우리 주변의 자연
세계, 특히 우리 자신의 존재와 우리의 미래에 관하여 예측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진화생물학과 생태학 분야에 있어서 우리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며,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역사의 우연한 산물에 불과하다.
현존 세계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그리고 적어도 몇몇 경우에 있어서는 우리의
즉각적인 이해를 벗어나는 힘에 영향받는 수많은 가능성의 장소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확실한 면이 많다. 그러나 사실 이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13. 여섯 번째 대멸종
우리는 역사의 우연한 산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우세한 유일종이라는 데에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진화의 무대에 뒤늦게, 지구의 생물 다양성이 거의 최고의 정점에 달한 시기에
등장했다. 그리고 10장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가는 곳마다 생물 다양성을 황폐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우리는 이성과 통찰력의 축복을 받아 21세기를 본질적인
인공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다. 기술의 창조는 물질적 안락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으며, 생활의 여가와 레저는 전례없는 예술적 창조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이성과 통찰력은 전례없는 지구 자원^6,36^생물 자원과
천연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만큼 깊지는 못했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생물상에 극적인 충격을 가한 최초의 생물은 아니다. 약 30억 년
전에 등장한 광합성 미생물은 대기 중의 산소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그래서 10억 년
전 산소량은 거의 오늘날의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 극적인 변화로 기존의 것과는
매우 다른 생물 형태, 이를테면 다세포 생물이 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산소 비율이
낮은 환경에서 번성했던 수많은 생물들은 변두리 서식처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 변화는 자신의 물질적 풍요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지각 있는 유일
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물질 대사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지각 없는 종'에 의해 집단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진화 역사에서 나타난 우리의 이성과 통찰력은 우리 종에게 행동의 유연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환경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했다. 인류
지성의 진화는 인구 팽창과 성장이라는 광대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따라서 전체
약 60억에 달하는 오늘날의 인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원형질 비율을 나타내게
되었다.
우리는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방법으로 자연계로부터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그 '하사품'을
감소시킨다. 에드워드 윌슨의 지적대로 우리는 '환경의 비정상적인 암'이다. 하지만
비정상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며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윌슨은 "잘못된
종의 지성은 생물계와의 치명적인 결합으로 이미 운명지어져 있었다. 만일 이
진화의 법칙이 지성은 대개 스스로 소멸한다는 것이라면 말이다."라고 과감하게
말했다. 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해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과연 이러한 운명을 피할 길이 있는가'에 쏠려 있다. 앞서
나는 '자연 하사품의 감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은 다양한 인간 활동의 결과,
현재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의 절멸'을 가리킨다. 나는 10장에서 선사
시대를 비롯한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인류가 새로운 환경에 당당히
입성하는 과정과 이 와중에 남긴 생물상의 파괴 흔적에 대해서 설명했다. 새로운
땅의 정착민들은 사냥과 서식지 개간을 통해 수많은 종을 끝장냈던 것이다.
오늘날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인류의 경력에서 단지 스쳐가는 일회성의 사건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오늘날 폭발적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른 종의 절멸은 허위라고 주장한다. 이미 앞서 말한 몇 구절의 어조로
미루어 짐작했겠지만 나는 분명히 그들 중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인류에 의한
멸종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도 심상치 않은 정도로 가속화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는 이러한 견해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지구상 생물 종의 약 50%가 21세기 말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를 밝힐 것이다. 또한
보다 큰 지질학적 관점에서 우리 종을 세계의 나머지 거주자와 함께 놓는 지구의 먼
미래에 관해 다룰 것이다. 우리는 앞장에서 공식화한 '지적 혁명'으로부터 통찰력을
획득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물 다양성^6,36^우리 역시 그 안에 속해 있다에
어떤 충격을 미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한 윤리적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인간은 3가지 방식으로 생물 종의 존재를 위협한다.
첫째, 직접적인 개발에 의한 위협이다. 이 경우 사냥을 예로 들 수 있다 .예로부터
인간은 수많은 야생 동물을 수집하거나 먹어치웠다. 이와 같은 인간의 그릇된
욕망은 무수한 종을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그것은 나비에서부터 명금류,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가림없이 이루어졌다.
둘째, 생물학적 파괴의 위협이다. 그것은 때때로 외래종을 새로운 생태계에
도입^6,36^의도적이든 우연이든함으로써 일어난다. 나는 앞서 하와이 제도에서
벌어졌던 생물학적 변동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초기 폴리네시아인들과 그후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수많은 새와 식물을 하와이에 도입했다. 생물학적 변동은 이로
인해 발생되었다. 그리고 지금 비슷한 규모의 참상이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 년 동안 2백 종이 넘는 물고기가 이곳에서 사라졌다.
이 사건을 자세히 연구해 온 보스턴대학의 생태학자 레스 카우프만은 이를 '더
많은 재앙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생물학적 계시, 증명, 경고의 히로시마'라고 불렀다.
이 사태는 남획, 오염 등 상호 작용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일어났지만
주범은 바로 게걸스러운 나일퍼치였다. 이 물고기는 약 40년 전 낚시질용으로
빅토리아 호수에 도입되었다.
셋째, 서식처의 파괴와 단편화, 특히 열대 우림의 가차없는 벌채이다. 이것은 셋
중에서 가장 위협적이며 멸종을 이끌 가능성도 가장 높다. 삼림은 전세계 지표면
가운데 단지 7%를 차지할 뿐이지만 전세계 종의 절반 가까이가 살아가는
서식처이며 진화적 혁신의 도가니 구실을 한다.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나날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농지를 확장하거나 마을과 도시를 개발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교통 시설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작업은 결과적으로 야생
서식처를 침해한다. 서식지는 자연히 줄어들고 이에 따라 생물 유산을 유지하는
지구의 역량 또한 감소된다.
1979 년 옥스퍼드대학의 생태학자 노먼 마이어는 그의 책 '가라앉는 방주'에서
삼림 개간의 절박한 위기에 관하여 논한 바 있다. 그는 이 주제에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측정한 바에
의하면 매년 2%씩의 속도로 나무가 계속 베어져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천 년 경에는 모든 종의 4분의 1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1세기
뒤에는 나머지 종의 3분의 1이 사망자 명단에 보태질 것이다." '가라앉는 방주'가
출판되고 나서 15년이 흐른 후 그 실제적인 수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쟁이 일었다.
과연 그가 주장한 속도대로 삼림이 사라지고 있는가? 설령 그렇다 해도 정말로
전체 종의 50%나 사라지게 될까? 마이어의,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예언은 처음에는
공감을 받았다. 그리고 생물학자들과 정치가들 사이에 일종의 순수한 공포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비중있는 인물들의 입에서는 엄숙한 말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편, 1986 년 9월 워싱턴에서 생물 다양성 회의가 열렸다. 지구 클럽은 이 회의
초반부에 발표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 있다. "종의 멸종 위기는 핵전쟁에
버금가는 문명의 위협이다." 최근 발표된 미 국립 과학아카데미와 런던 왕립 학회의
공동 성명은 이러한 경고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환경 변화의 전반적인
속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최근의 인구 팽창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리
지구의 미래는 환경 변화와 인구 팽창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에 달려 있다."
생태학자들 역시 똑같이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 중에서 가장 저명한 두 사람의
의견을 인용해 보자. 스탠퍼드대학의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는 워싱턴 회의에서
"주류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생물 다양성의 위기를 인식하지 않는 사람을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모임에서 에드워드 윌슨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실
멸종 과정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현재 생물 다양성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가 다름아닌 인간에 의해
전적으로 야기되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더욱 거센 반발이 쏟아졌다. 그들은 불길한 예언가들이
자신들의 사례를 과대 포장하고 있으며, 더 나쁘게는 아예 거짓을 꾸며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여러 정기 간행물을 통해 회의를 품은 글들이 잇따라
쏟아졌다. 그들은 증거없이 주장된 위기를 불신했던 것이다. 한 예로 최근 발행된
(사이언스)지에 '멸종, 생태학자들은 양치기 소년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그리고 1993 년 12월 13일자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최후의 날에
관한 신화'라는 제목으로 멸종에 관한 논란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바 있다.
이 두 가지 예를 포함한 여타 기사들은 생태학자들이 기본적으로 많은 종이
멸종하고 있거나 아니면 멸종 직전에 놓여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매릴랜드대학의 줄리언 사이먼은 가장
유명한 반경고주의자이다. 그는 지난 10 년 동안 이러한 주장을 거듭해 왔고, 그의
목소리는 최근 들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1986 년 그는 어떤 기사를 통해
"(멸종에 있어서) 유효한 사실은 걱정하는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2 년 뉴욕에서 벌어진 노먼 마이어와의 논쟁에서도 사이먼은 이러한 견해를
되풀이했다. "종 분화의 속도를 직접 관찰한 결과, 실제적인 자료는
위험하다는 소문과는 크게 모순된다." 1993 년 5월 13일자 (뉴욕 타임즈)지에
발표한 여론 기사에서 그는 보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밝혔다. "많은
생태학자들은 현재의 멸종 속도가 대량 멸종의 속도와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토대가 없는 완전한 엉터리 혹은 순전히 추측에서 비롯된 주장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사이먼 교수는 환경에 대한 팽글로스 박사(역주: 볼테르의
작품 '칸디다'에 나오는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교사)라고 불릴 만하다.
과학자들은 생물 다양성의 역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전문 지식에 관해 왜 이런 흠잡기가 계속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여기에
회의를 품는 한 가지 이유는 인간에 의한 대량 멸종 자체를 믿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 메시지가 너무 놀랍고 엄청나서 단순히 듣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그것을 듣기는 듣더라도 내심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에 의한
대량 멸종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생물학자들의 예언은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토머스 러브조이가 표현한 대로 '지나치게 겁먹은 생물학적
카산드라(역주: 호머의 시에 나오는 여자 예언가.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믿는
사람이 없었음)의 발설'로 여겨지게 되었다.
회의를 품는 또 다른 이유는 학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멸종의 규모가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다. 학계의 권위자들마다 임박한 멸종의 규모가 달라, 한 해에
멸종하는 생물 수만 해도 1 만 7천 종에서부터 10 만 종에 이르기까지 크게
오르내린다. 멸종의 규모에 대한 의견이 전문가들마다 이토록 다른 것은 사실
'불확실하다'는 말과 같다. 비평가들이 잔뜩 의심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무언가'를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이 문제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여기에는 자연의 불확실성과 관련된 보다 깊은 이유가 있음을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과 관련된 것이다. 만일 우리 스스로 생태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종이 쉽사리 멸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의 종속 기간은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것보다 더 짧아질지도 모른다.
즉, 우리 역시 생물 다양성에 속한 하나의 종으로서 멸종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종의 기원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싫어한다. 그리고 우리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더욱더 싫어한다.
이 시점에서 다음 두 가지 질문이 적절할 것 같다. 열대림의 변화 속도는 노먼
마이어와 그외의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 속도에 가깝게 맞아떨어지고 있는가? 만약
그들이 주장한 대로 열대림이 변화하고 있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종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 이 가운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보다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직접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79 년 마이어는 해마다 숲의 2%가 베어져나간다고
했다.
이 수치는 세계 각 지역에서 관찰한 단편적인 결과들을 조합하여 이를 근거로
나머지 지역까지 추정한 것이다. 이 비율은 매년 약 8 만 제곱마일, 또는 초당
1에이커의 면적에 해당하는 숲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1980 년대부터 1990 년대 초반까지 수십 가지에 이르는 연구가
행해졌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마이어의 수치가 과대 평가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부에서는 과소 평가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 수치에 대해 의심을 품을 필요가 없다. 광범위한 위성
사진을 통해 세계 지표면의 많은 부분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90 년대 초
워싱턴의 세계자원연구소와 UN 식량농업국에서 발표한 별개의 두 보고서는 각각
매년 8만 제곱마일의 숲이 사라진다는 수치를 내놓았다(이것은 10 년 전보다 무려
40--50%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파괴 속도가 계속된다면 20세기가 끝날 즈음
열대림은 원래 면적의 10%로 급격히 줄어들어 2050 년에는 자투리숲만 남게 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수치를 부인할 사람은 신중한 우매주의자들뿐이다.
이러한 추세의 감소는 숲에 사는 종의 생존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쁜 소식이 있다. 최근 위성 사진을 판독, 연구한 결과 숲이
벌목되지 않은 지역에서조차 삼림이 작은 '섬'^6,36^생태적으로 깨어지기
쉬운으로 부서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1970 년대 말 토머스 러브조이와
그의 동료들은 브라질 삼림에서 역사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크기를 달리한 그와
같은 '섬'들의 종 부양 능력에 관한 연구였다. 2.5에이커에서 2 만 5천 에이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섬들에서 행해진 이 모험은 역사상 가장 방대한 생물학적
실험이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 미리 예상된 결과는 큰 땅보다는 작은 땅에서 한층 빠르고
광범위하게 종이 멸종하리라는 것이다. 일부 취약한 종들은 다양한 이유로 넓은
면적을 요구하는 생물들이다. 그리고 앞장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종들의 멸종은 흔히
넓은 면적을 요구하지 않는 또 다른 종의 멸종까지도 이끈다. 예컨대 이 실험
초기에 3종의 개구리가 2백50에이커 구획에서 사라졌다. 진흙에서 마구 뒹굴어
개구리들을 위한 연못을 만드는 페커리(역주: 멧돼지의 일종)가 살아가기에는
서식지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멸종의 연쇄 반응은 섬 계획이 세워진 이후에 수년
동안 계속되었다.
작은 섬에서 충분히 존속할 수 있는 종이라도 개체군의 크기가 서식지에 비해
너무 작으면 멸종에 취약해질 수도 있다. 또한 작은 개체군은 돌연한 질병의
발작이나 폭풍우와 같은 외부 변동에 희생될 확률이 높다. 반면, 큰 개체군은 똑같은
상황에서 보다 잘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실험을 한 결과, 미처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큰 숲이라 사더라도 생각만큼 위기에 완강히 버티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이른바 '가장자리 효과' 때문이었다. 삼림 깊숙한 곳의 서식처는
외부 변동에 대해서 일종의 보호 효과를 누린다. 숲이 바깥의 변화를 막아주는
것이다.
반면, 삼림과 초원 사이의 경계에 있는 서식처는 바람, 짧은 거리마다 극적으로
달라지는 소기후, 비삼림 동물과 사람 사냥꾼의 침입을 비롯한 여타, 불리한 상황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 결과 숲속으로 반 마일 정도 들어가는 구역 안에 사는
동식물 종들은 멸종에 대개 취약하다 "가장자리 효과는 넓은 면적의 삼림에도 잘
나타난다. 최근 거듭된 벌목 때문에 아마존 열대 우림이 생각보다 가장자리 효과에
취약하다는 것이 위성 조사로 밝혀졌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이 발견은 더욱
중요성을 띠게 되었으며 연구자들은 (사이언스)지에 다음과 같이 발표하기도 했다.
"생물 다양성은 그 유망성으로 의미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제 열대
삼림의 개간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부가된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요한
변수는 삼림의 감소와 분열이 종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러나 이 점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서식처의 감소가 비단 열대림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예컨대 1995 년 2월 미국 국립생물국의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의 절반 동안 미국의 자연 생태계는 극히 위험한 지경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바야흐로 전체 군집이 멸종하기 직전에 있는 것이다.
몇 달 뒤에 발표된 두 번째 연구에서 생물국은 또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만일
이러한 추세를 억제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인간의 활동은 종 상호 작용의 균형을
뒤집고, 생태계를 바꾸어 놓고, 넓은 서식처를 마구 훼손하여 감소시킬 것이다."
생물학적 유산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전세계적인 인구 증가는
야생 서식처를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 마을과 도시를 만들고 그들 사이를 잇는 교통
시설을 건설하며 식물과 가축으로부터 식량을 생산함으로써 서식처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다 알다시피 최근 들어 인구는 급격한 증가율을 보였다. 1600 년에 5억이었던
인구가 1800 년에는 10억이 되었고, 1940 년에는 거의 30억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 50 년 동안에 이 숫자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나 57억 명이 되었으며, 다음 반
세기 동안에 다시 두 배가 되어 인구는 거의 1백억 명을 웃돌게 될 것이다. 만일
전세계 사람들 모두가 오늘날 많은 개발 도상국에 만연해 있는 빈곤을 벗어난 생활
수준을 영위하려면, 세계의 경제 활동은 최소한 지금의 10배 정도 증가해야만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육상의 '순1차 생산량NPP'의 40%를 소비하고 있다. 순1차
생산량이란 광합성으로 산출된 총에너지량^6,36^전세계 기준에서 식물 자신의
생존에 쓰이는 에너지량을 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상의 모든 종이 이용할 수
있는 전체 에너지 가운데 거의 절반을 호모 사피엔스가 독식하는 셈이다.
스탠퍼드대학의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와 앤 에를리히는 이를 불길한 징조로 보았다.
"두 측면에서의 팽창, 즉 인구와 그에 따른 자원의 동원은 생태학적 흐름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류에 의한 육상 NPP의 감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답은 이미 명백하게 나와 있다." 에를리히는 또한 "사람들은 그 모두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향후 수십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전세계 NPP의 나머지를 1%씩 징발하여 쓸
때마다 나머지 자연 생물들은 1%보다 더 많은 양을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1차 생산성은 생산자들을 위한 공간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히 감소할 것이고,
계속해서 아래로 치닫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그러면 전세계의 생물 다양성
역시 생산성과 함께 아래로 곤두박질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이 모든 파국에서
예외적인 존재인가? 아니다. 인간도 생산성에 생존을 의존하는 바, 인류 문명의
미래 또한 당연히 위협받게 된다. 물론 이러한 '지구 최후의 날'에 대한 전망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는 않는다.
특히 줄리언 사이먼이 대표적이다. 마이어와의 논쟁에서 사이먼은 다음과 같이
단언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다음 70억 년 동안 성장하는 인구를 먹이고
입히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을 손에 넣었다." 이 말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견해보다 무모하고 낙천적인 예측으로 손꼽힌다. 어쨌든 이들
시나리오^6,36^임박한 파멸의 위협이냐, 아니면 본질적으로 무한한 인간의
팽창이냐가운데 분명히 어느 하나는 틀렸다.
1963 년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로버트 맥아더와 에드워드 윌슨은 섬
생물지리학을 전개시켰다. 현재 이론 생태학자들은 크기가 줄어든 서식처에 사는
종의 운명을 추정할 때 이 이론에 기초를 둔다. 섬 생물지리학은 부분적으로 실험
관찰의 결과이고, 부분적으로 수학적인 논의의 결과로서 오늘날 생태학작 사고의
많은 부분에서 토대를 이루는 이론이기도 하다. "전세계 섬의 동물상과 식물상은
섬의 면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종수 사이의 일정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섬의 면적이 클수록 종의 수도 더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윌슨은 다시 한 번 이 점을 상기시켰다. 맥아더와 윌슨은 영국 제도와
갈라파고스 제도,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 등 그들이 조사한 곳마다 이러한 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관찰에 의해 단순한 계산 법칙을
추론해냈다. 그것은 면적이 10배씩 증가할 때마다 종의 수는 약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면적과 종수 사이의 질적 관계^6,36^면적이 클수록 종수도
많아진다는는 직관적으로 보아도 명백하다. 한편, 양적 관계는 실험적인
관찰에 의해 도출된다.
간단하긴 하지만^6,36^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단순하기 그지없지만이 이론은
확고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보다 엄밀히 검증한다면 분명히 한층 가치있는
이론으로 발전될 것이다. 러브조이가 브라질의 열대 우림 실험을 수행하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이 실험은 앞으로 수십 년간 더 계속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이 이론의 대전제에 관한 어떤 심각한 의혹이라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어냈다. 물론 일정한 크기의 서식처에서 살아가는 실제 종수의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밖에도 많다.
예컨대 1천 에이커의 밋밋한 평지는 극히 다양한 지형을 가진 똑같은 1천
에이커의 땅보다 종수가 더 적다. 지형이 복잡할수록 소서식처가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대 지방의 1천 에이커는 고위도 지방의 비슷한 면적에서보다 훨씬
많은 종을 부양한다. 이것은 앞서 7장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다. 적절한 비교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6,36^이를테면 비슷한 위도, 비슷한 지형섬 생물지리학
이론은 생태 예측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또한 이것은 종을 하나씩 세는
방법^6,36^이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줄리언 사이먼은 윌슨의 수학적 모델에 대해 '단지 억측에 근거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또한 여기서 나온 예측들에 대해 '종 손실에 대한 통계적
겉치레'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린다. 그는 이 이론의 밑바탕에 깔린 사실을 완강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열대림이 원래 면적의 10%로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섬
생물지리학 이론에 따르면 종의 5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된다. 그러나 그
시기는 서로 조금씩 다르다. 일부에서는 즉시 멸종된다고 하고 일부에서는 수십 년,
심지어 몇 세기에 걸쳐 멸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만일 대부분의 생태학자들이 이 실험 관계를 합당한 지침으로 받아들였다면,
어째서 다음 세기의 멸종 예측들은 그토록 서로 심하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왜
어떤 권위자는 매년 1만 7천 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고, 또 다른 권위자는 10만
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할까?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7장에서 이미 말했듯이 종수는 1천만에서 1억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따라서 종 손실의 비율로 같은 50%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높은 수치를 이용한
사람은 낮은 수치를 선택한 사람보다 한 자리수나 더 큰 값을 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혼란을 가져오는 다른 요인들도 있다. 예컨대 파괴를 피할 수
있는 서식처 조각의 크기나 대다수 종 분포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예컨대 만일 중요한 종의
비율이 작은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면 종의 감소는 50%보다 더 클 것이다. 그러면
이 경우 종의 감소 비율은 잃은 서식처의 비율에 근접할 수도 있다. 러브조이는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추정에 어느 정도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그는 덧붙여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비율을 추정하는 사람들이 모두 50%라는 큰 수치를
산출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종의 일정한 비율^6,36^즉, 절반에
가까운 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세계 모든 종의 50%란 실로 엄청난 수치이다. 낮은 추정치를 적용한다 해도,
이를테면 매년 3만 종이 사라지더라도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여전히 엄청나다.
데이비드 라우프는 화석 기록을 통해 정상적인 종의 감소^6,36^배경 멸종 기간
동안의 감소는 4 년마다 평균 1종씩 일어난다고 계산했다.
따라서 1 년에 3 만 종이라는 멸종 비율은 배경 멸종에 비해 무려 12 만 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것은 지구의 기온 변화나 해수면의 후퇴, 소행성 충돌에 의해
야기되지 않았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지질 역사상 5 대 멸종과 거의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이 지속적인 멸종은 지구상의 한 거주자에 의해 비롯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한순간의 지질 역사를 통해 전세계 생물 종의 절반을 파괴함으로써
6천5백만 년 전 지구에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한 이후 최대 재앙의 원인이 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수치는 현재와 같은 추세로 서식처 파괴가 계속된다는
가정하에 21세기 초의 멸종 비율을 예측한 것이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예측의
타당성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생태학자들에게 오늘날 인간에 의해 엄청난 수준의
멸종이 이루어진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대보라고 요구한다. 멸종에 관한 포괄적이며
전지구적인 조사가 행해진 적은 없다. 따라서 실제로 생태학자들은 완전한 멸종
목록의 형태로 증거를 제출할 수 없다. 비평가들은 이에 대해 사실상 인간 활동의
결과로 사라지는 종이 없기 때문에, 아니면 있다 해도 극소수이기 때문에 그러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강변한다.
그러나 포괄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계 여러 지역의 수많은
서식처에서 독립적으로 행해진 연구들이 있다. 비평가들은 '단순한 일화'처럼
넘겨버리고 있지만 이 연구들은 전체적으로 우리가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빅토리아 호수에 살던 물고기
종의 대량 감소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다. 이 경우만 보아도 20년만에 2백 종이
사라짐으로써 이미 4년마다 1종씩이라는 배경 멸종의 속도를 훨씬 넘어선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배경 멸종의 속도를 그대로 새에 적용한다면 생태학자들은 1백 년에
한 번씩, 아니면 그보다 더 적은 빈도로 조류 종이 멸종하리라고 예측해야 한다.
그러나 스튜어트 핌의 보고에 따르면 태평양에서만 해마다 거의 1종씩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 한다. 핌의 야외 연구는 하와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의
전문적인 관심 대상은 바로 새이다. 하와이 제도는 관광객들의 눈에 열대의
낙원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섬들은 생태학자들에게 있어 최근의
비극적인 멸종의 상혼을 지닌 곳으로 인식된다. 하와이 제도에 서식했던 조류 종
가운데 약 절반 가량이 인간과 첫 대면한 이후 멸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극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1백35종 가량의 새들 가운데 오직
11종만이 21세기까지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핌은 "12종은 너무나 희귀해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이란 거의 없다.
또 다른 12종은 법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는 곧
그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쯤 농지를 얻기
위해 숲으로 덮인 한 산등성이를 개간했을 때 거기에서 자라던 90종의 식물들이
사실상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산등성이의 이름은 센티넬라.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서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생태학자들 사이에서
'센티넬라'라는 이름은 사람에 의한 비극적인 멸종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1978 년 생태학자 앨윈 젠트리와 갤러웨이 도드슨은 우연히 센티넬라를 방문하여
운무림(역주: 항상 구름에 덮여 있고 안개가 많은 열대 지방의 삼림)에서 최초로
식물 조사를 벌였다. 젠트리와 도드슨은 이 서식처가 부양하고 있는 다채로운 생물
다양성들 속에서 그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90종의 식물을 발견했다. 그 속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낯선 풀 종류와 난초류, 착생 식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센티넬라는 격리된 채 독특한 식물상을 발달시킨 '생태학적 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8년 사이에 산등성이는 농지로 바뀌었고 고요한 종들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센티넬라는 독특한 식물상을 가졌지만 생태학적 섬으로서
유일무이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와 같은 수많은 산등성이가 안데스 산맥의 전체
길이를 따라 존재하고, 그 대부분 역시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종들을
발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유독 센티넬라 서식처가 유명해진 것은
서식처가 파괴되기 전에 식물 조사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생태학적 섬이
개간될 때마다 그 속에 사는 생물 종은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오늘날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사건을 지칭할 때 '센티넬라 멸종'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지나가려 한다.
첫째, 종의 감소는 거의 언제나 일어나며 더러는 파멸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태학자들이 서식처의 교란 이전과 이후, 어쨌든 가능한 때마다 조사를
벌인 결과 도출해낸 결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식처 파괴는 그들의 식물상과
동물상이 미처 조사되지 않은 지역에서 일어난다. 생태학자들이 그들의 존재를 채
알기도 전에 셀 수 없이 많은 종이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니 '추정'
이외에 생물 다양성을 상세히 기록할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둘째, 열대 서식처의 파괴는 흔히 종의 즉각적인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센티넬라의 식물들처럼 많은 종이 매우 한정된 지역, 특히 열대 지방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미리 예측된 종의 감소 수치,
즉 50%라는 감소 비율이 과대 평가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과소 평가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일화적'인 증거는 너무나 많다.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민물고기의 절반, 필리핀
제도 세부 섬에서 10종의 새, 하와이 제도 오하후 섬의 나무달팽이 41종 가운데
절반, 테네시 강 모래톱의 얕은 물에서 사는 68종의 홍합 중 44종 등등
수많은 종이 멸종해 갔다. 이러한 증거는 체계적인 조사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일화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거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스튜어트 핌과 그의 동료 두 명은 이미 알려진 멸종
자료를 양적으로 표시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가 생물학적 위기^6,36^이 위기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에 직면해 있는지 어떤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연구를 시행했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기록적인 사태를 남긴 몇몇 경우들을 분석한 것이다.
여기에는 북아메리카의 홍합과 민물고기, 오스트레일리아의 포유류, 남아프리카의
식물, 그리고 전세계의 양서류가 포함되어 있다. 핌과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묻는다.
"무엇이 멸종을 이끄는가?"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의 사례
연구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외래종의 도입과
자연 서식처의 변질이 멸종의 최우선 요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록되어진
멸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핌의 저서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것들을 분석함으로써 도출되는 결론에 주목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수준의 멸종이 전세계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지금의
멸종은 배경 멸종에 비해 거의 몇 천 배에서 몇 만 배나 높은 속도로 치닫고 있는
셈이 된다. 회의론자들은 이러한 예가 극히 높은 수준의 멸종을 나타내므로
일반적인 표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핌과 그의 동료들은 "설령 현재
알려져 있는 멸종이 극단적으로 높은 수준의 절멸이고, 또한 이 종 집단에서 일어난
유일한 경우라 할지라도^6,36^그다지 있음직한 일은 아니지만그 속도는
여전히 배경 멸종에 비해 2백 배에서 1천 배나 더 높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대량 멸종, 바로 그것이다.
학계의 권위자들은 이 경우 그 어느 것도 인구 밀도가 특별히 높은 지역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죽음의 손길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각각의 사례들이 높은 인구 밀도 속에 있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핌은 이것과 여러 연구 결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결론내려야
할 것인지를 요구한다. "높은 멸종 비율을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아니, 아마도 그들은 알고
있어도 일부러 모르는 체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멸종을 고증하는 작업은 우리가 생물 위기의 한가운데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또한 바로 이것이 회의론자들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시체도 없는데 살인이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만일 특정한 종의 개체군이 어딘가에 일부 존재한다면, 서식처 파괴로 전체 분포가
감소했을지언정 그것이 곧 '멸종'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현재
우리 앞에 닥친 위기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둘다 과소 평가하는 것이다. 다니엘
심버로프는 "특정한 종의 모든 개체가 운석이나 허리케인 등에 의해 동시 절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멸종은 어디까지나 다단계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5장에서 자세히 이야기했던 히스헨을 기억할 것이다. 심버로프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히스헨을 예로 들고 있다. 멸종의 원인은 대개 사람에 의한
사냥 혹은 서식처의 파괴이다. 히스헨의 서식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해서 미국 동부
해안 지대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냥과 서식지의 파괴로 말미암아
1908 년 히스헨의 수는 50 마리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때서야 부랴부랴
멸종으로부터 이 새를 구하기 위해 보호구가 설치되었다. 그후 20 년간에 걸쳐
개체군의 수는 탄탄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결국 히스헨은 화재와 질병 등 연이은
불행을 견디다 못해 그만 멸종하고 말았다.
히스헨 이야기의 요점은 이러하다. 일단 히스헨 개체군이 작은 수로 감소했다면
이 종의 궁극적인 멸종은 사실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말했듯이 작은
개체군은 질병이나 재앙으로 인한 일반적인 개체수의 변동에도 극히 취약하다.
예컨대 1천 개체를 가진 개체군은 1백 개체로 줄어든 개체군보다 변화에 견뎌내는
힘이 더 강하다. 똑같은 변동 상황이라도 단지 1백 개체를 가진 개체군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히스헨의 경우 사냥과 서식처의 변동이 멈췄을 때조차도
종의 생존 여부는 사실상 불확실했다.
따라서 인간 활동이 현재의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확률론적인 변동에 쉽게 희생될 만큼 작아졌거나 적어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개체군까지 계산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스튜어트 핌이 '하와이 제도의
새들에 대한 전망'에서 설명했던 정확한 내용이다. 21세기에도 생존할 것이라고
확실시되는 새는 오직 11종뿐이다. 남아 있는 124종의 개체군은 이미 감소하였고
어떤 경우는 거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종수를 집계해
보고는 여전히 125종이 존재한다고 기록한다. 어떤 멸종도 기록으로 보고되지 않을
것이다.
심버로프는 이러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일부 종의 최후
개체군을 비롯해서 수많은 개체군이 사실상 산송장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건강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태학자들이 현재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전세계의 '일화적'인 멸종 보고가 아주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대재앙의 실체에
대한 극히 단순한 힌트일 뿐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활동으로 운명을 마감한 모든
종들의 죽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바람에 실려
오는 이런 희미한 메아리에 날카롭게, 그리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물 역사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생물 역사상 그 어느 종보다 높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엄청난 생물학적 위기, 즉 과거 5억 년 동안 일어났던 5대 멸종에 뒤이은 여섯
번째 대멸종을 한창 이끌고 있는 중이다. 다른 생물들처럼 우리 호모 사피엔스 역시
산송장과 다름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14.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생태학자들은 얼마나 많은 종이 멸종 위기에 있는지 정확히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추정되었을 뿐인 생물 다양성이 절박한 붕괴 상태에 놓여 있다고 경고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위해 폴 에를리히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비유를 들고 있다. 이것은 최근 (사이언스)지에 보낸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그것은 마치 전세계에서 유일한 유전자 도서관이 불타고 있는데도 그 속에 든
'책'의 권수가 한 자리수 이내로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절반 이상의 책이 화재로
20년 내에 타버릴 것인지 아니면 50년 내에 타버릴 것인지에 대해 화재 분석가들의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단언하건대, 몇몇 과학자들은 대화재가 발생해도 각 지점에서의 정확한 화염 온도를
알 수 없다면 결코 소방서에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금 다른 비유를 들까 한다.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의 충돌 경로 위로
떨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금세 걱정과 우려에 휩싸일 것이다.
왜냐하면 흔히 이러한 충격에 의해 과거에 대량 멸종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줄리언 사이먼과 그 동료들의 논리대로라면 소행성 충돌의 여파로 대량
멸종이 일어났다는 가설은 순전히 억측에다 어림짐작이기 때문에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대멸종 사건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쩌면 소행성은 지구 옆으로 빗나갈지도 모른다.
만일 소행성을 살짝 비껴가게 하는 몇 가지 수단이 있다면 그것을 강구하지 않은
대가는 대파멸이 될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사이먼의 견해가 틀렸음이 밝혀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 번째 멸종에 대한 그의 견해가 틀렸을 경우 우리에게 남겨질
대가는 무엇인가? 세계 생물 종의 절반이 21세기의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와 나머지 절반의 생물상에게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주어진 시간 기준이 어떠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긴 안목으로 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반경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로 이 답을 제시하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반응이 생물 역사의
형태와 그 속에서의 우리 위치에 대한 철저한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앞서 8장에서 생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3가지 영역, 즉
경제성과 생태계 서비스, 그리고 심미적 기능에 대해 언급했다. 여기서 그 내용을
다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꼭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어느 영역에서 가치가 확인되든 다양성의 손실은 곧 그 가치의 손실을 의미하게
된다. 만일 동물과 식물이 새로운 물질과 식량, 약품의 잠재적인 출처라면 종의
손실은 그러한 면에 있어서의 가능성을 분명히 감소시킬 것이다. 만일 식물과
동물의 상호 작용망이 대기와 토양의 화학적 성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종의
손실은 이러한 서비스의 효능을 감소시킬 것이다. 그리고 만일 풍부한 종 다양성이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종의 손실은 딱히 표현하기 힘들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를 약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이 3가지 영역에 맞는 합리적인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경제적 가치,
생태계 서비스, 심미적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종이 꼭 필요한가?
아니면 이 3가지는 손상시키지 않은 채 일부 종만 잃을 수는 없을까? 줄리언
사이먼은 이에 대해 명백히 답변하고 있다. 그는 정착민들이 미국의 중서부를
개척했을 때 발생한 종의 대량 손실을 예로 든다. 노먼 마이어와의 논쟁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때 사라진 종들이 지금 존속한다고 해서 우리의 현재
상태가 엄청나게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어디에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종의 경제적인 가치를 의문스럽게 만든다."
사이먼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 측정 기준은 경제적이고도 직접적인 실용성이다.
이것은 그가 논쟁을 벌일 때 계속 언급한 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의 과학
기술 진보^6,36^특히 종자 은행과 유전 공학는 자연 서식처에서 종을
유지시키려는 노력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감소시켰다." 레스 카우프만은 이와는 아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책 '최후의 멸종'에서 자연 서식처에 사는 종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미국의 정신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나그네비둘기, 평원의 물소, 아메리카밤나무의 절멸과 더불어 죽었다."
전세계의 모든 종을 구해야만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특히 인류 복지를
유지하는 비용 소모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의 감정만큼은 사이먼보다 카우프만에 더 가깝다. 인간은 자연 세계 속에서
진화했다. 자연의 감상과 자연 회귀에 대한 욕구는 인간 정신에 분명히 실재하고
있는 뿌리깊은 구성 요소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계의 풍요가 잠식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마치 인간의 영혼이 잠식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생각을 좀 해보자.
인간의 정신이 과연 생태적으로 황폐해지고 외상을 입은 세계에 길들여질 수
있을까? 현재와 미래의 과학 기술이 우리가 지금, 그리고 잠재적으로 자연계에서
빼앗고 있는 모든 물질 자원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과연 줄리언
사이먼의 주장처럼 우리는 다음 70억 년 동안 계속해서 성장하는 인구에게 먹이고,
입히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를 통해 삶의 물질적 질은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높아졌다. 사이먼의 주장은 이러한 과거
역사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유형^6,36^꾸준히 높아지는 물질적 삶의 질은
무한히 미래로 확장될 것이며, 우리 자신과 자연 자체에 손상됨이 없이 인류가
자연계로부터 취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무한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의 계속적인 자연 감상이 한결같은 자연계의 유지와 분명히 양립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유용한 길잡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로 그것
때문에 최근에 생겨난 실재를 우리가 전혀 못 알아볼 수도 있다. 과학 기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의 안락함을 증진시켰지만, 바로 그 안락함이 지구 환경의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대부분은 인공적인 도시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 자연
경제의 투입과 산출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투입과 산출은 식물의
잔뿌리를 부양하는 균사로부터 물과 산소, 이산화탄소 등 지구의 물질 순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크기의 생물 종과 종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이다. 투입과
산출은 앞서 언급한 생태계 서비스이기도 하다. 지구 전체의 생물상은 복잡한
역학에 의해 작용한다. 투입과 산출은 이 생물상으로부터 나오는 안정성과 건강성의
실체적인 요소이다. 그러면 이러한 건강성과 안정성은 정확히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 우리는 여기에 대해 알지 못한다.
모든 생태적 영역에서 종의 비율을 감소시킴으로써 개체군의 크기가
줄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생태계가 효율적일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도 역시
알지 못한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가? 이에 대해서는 단지
불완전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비롯한 모든 생물을 지탱하는 '계'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고 어떤 종이나 종의 무리만 제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불완전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연계에 대해
우리는 이토록 무지스럽다. 실로 실망스러울 정도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8장에서 다룬 것처럼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것만은
똑똑히 알고 있다. 다른 모든 생물의 삶을 지배하는 법칙으로부터 호모 사피엔스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건강한 지구
생물상을 유지하기 위해 현존하는 생물 다양성의 얼마만큼이 필요한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과연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1) 생물 다양성 전체를 필요로 하는지 어떤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아예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2) 우리가 사는 계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생물 다양성 전체를 필요로 한다고
가정한다.
이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더 책임있는 태도인가? 그 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왜냐하면 첫 번째 가정이 틀렸을 경우 우리가 치러내야 할 대가가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불완전하긴 하지만 생태계 서비스의 구조와 역학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많은 생태학자들이 유추하건대, 현재 우리가 가진 생물 다양성 전부 아니면
적어도 대부분을 필요로 한다고 믿어진다. 경제 성장에 따른 생물 다양성의
계속적인 파괴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자연계가 스스로를,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까지도 몰아갈 수 있다.
계속적인 파괴를 멈추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여섯 번째 멸종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그 희생자의 하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간다. 우리 주위의 세계를 바라보노라면 장구한 시간에 걸친 변화를
인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이 몰아가고 있는 생물학적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그리고 한 종으로서의 우리의 미래가 어디에 놓일
것인지 제대로 알려면 '시간'에 대한 조망이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우리는 생물의
화석 기록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에게 현재의 경험과
상상을 넘어 저 만 시간대에 존재했던 생물계의 역학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의 역사 기록이 주는 가장 즉각적이 메시지는 중대한 생물 다양성의 붕괴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생물 흐름상의 위기는 대단히 빠르고 거꾸로 역행할 수 없으며 자칫 예측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자연계^6,36^우리 역시 그 일부로 존재하는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통찰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종과 종 집단은 외부의 손상에 무한정
탄력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공격받기 쉽고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는 대량
멸종이 지구와 외계 물체와의 충돌에 의해, 그리고 갖가지 지구의 변화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그러한 생물학적 위기의 잠재적인 동인으로 보지는 않는다.
매일같이 베어져나가는 열대림과 야생 서식처의 잠식은 소행성의 충돌보다 극적인
감은 덜하지만 어쨌든 생태계에 충격을 주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결국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알게 모르게 대량 멸종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마치 자연계가 우리의 공격을 끄떡없이
견뎌낼 수 있을 것처럼 그것을 마구 다루고 있다. 그러나 벌목과 서식처 파괴 등
자연에 해를 입히는 모든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순간 우리 자신의 위험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화석 기록은 지구의 전역사를 통해 생물의 흐름이 결코 정적인 현상이 아닌,
오히려 동적인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결코 안정된 진보를
거듭하지 못했다. 그것은 대량 도살에 의해 중단되었고 그 희생자들^6,36^개개의
조이나 종 집단, 또는 생태계 그 어느 쪽이든은 영원히 사라졌다. 한 종의
죽음은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진 유전자 고리의 사슬을 끊어놓는다. 유일무이한
유전자 더미가 지구의 다양성으로부터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이 종의
절멸을 가져올 때마다 우리들 개개인은 유일한 생물의 일부를 영원히 소멸시킨
책임을 조금씩 나눠갖게 된다.
나는 이러한 책임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반경고주의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다시 화석 기록을 살펴보자. 그러면 생물
종의 삶이 어쨌거나 평균 1백만 년에서 1천만 년 사이로 한정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비교적 오래 산 종은 자연계에서 수명이 다소 짧다). 어떤 종은 꾸준히
되풀이되는 배경 멸종 과정에서 자신의 임기를 마쳤고, 또 다른 종들은 대량
죽음이라는 격변에 의해 종의 일생을 마감했다.
반경고주의자들은 종을 구하려는 시도에 대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 낭비'라고
말한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 종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응수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모든 인간이 결국은 죽게 되어 있으므로 쉽게 고칠 수 있는
어린 아이의 병을 치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할 작정이다. 왜냐하면 이 쟁점 안에는 지질학상의 시간과 그 속에서의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지위를 둘러싼 윤리적인 논쟁의 중요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석 기록의 두 번째 메시지. 진화는 불가사의하고도 강력한 창조 과정이며
각각의 대량 멸종 후에 남겨진 빈 자리를 채운다. 현세의 생물 다양성은 5번의
주요한 생물 위기와 12번이 넘는 작은 생물 위기를 거쳤다. 그후 거듭해서 되풀이된
재회복의 결과, 다양성의 정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은 상태이다. 가끔씩 멸종
사건 이후 새로운 종이 갑작스레 출현함으로써 우세한 생물 형태가 변형되기도
한다.
우리는 현재 포유류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 시대는 6천5백만 년 전 공룡의
멸망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에 가장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춘
종은 영장류이며 그 무리의 최정상에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서있다. 여섯 번째
멸종이 끝나고 난 뒤에도 다양성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그러면 파괴의 원인^6,36^오늘날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역시 당연히 과거의
일로 지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과거에 비추어 미래를 평가할 수
있다면 생물의 다양성은 지금보다 훨씬 확장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더욱 새로운 진화의 '신고안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만일 자연이
대량 멸종에 뒤이어 그처럼 떠들썩하게 회복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대량 멸종을
이끄는 데 굳이 개의치 않아도 좋을 것이다. 자, 이 모두에 대한 답은 우리가
돌이켜보고 있는 '시간대'에 달려 있다. 대량 멸종은 사실상 그후의 회복 기간에
비하면 순식간이나 마찬가지다. 소행성 충돌에 의한 멸종은 대략 몇 년 혹은 몇
세기에 걸쳐 일어나며, 지구상에 있는 무언가가 원인이 된 경우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나 회복은 너무나 느리다. 거의 5배간 년에서 2천5백만 년 정도의 기간이
꼬박 걸린다. 물론 느리다는 것은 인간의 잣대이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 개념에서도 느릴 뿐 아니라 한 종으로서 예상되는 우리의
'임기'라는 개념에서도 역시 느리다. 다른 종의 수명은 평균 1백만 년에서 1천만 년
사이다. 우리가 여기에 적용되지 말란 법은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거의 15 만 년
가까이 존재해 왔으며,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1백만 년 정도는 더 존재할 것으로
기대된다(우리와 같은 대형 육상 척추동물은 수명이 다소 짧다). 물론 우리의 파괴
능력이 스스로의 종말을 재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거대한 소행성이나 혜성이 우리의 행성과 쾅 부딪쳐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은 종을 일순간에 절멸시킬지도 모른다. 최근에만 해도 여러
개의 작은 소행성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1천 3백만 년 후에 닥칠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전조라고 보기도 한다. 만일 '예기치 않게 우연히'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들이
그때까지 계속 지구상에서 번성하고 있다면, 그 충돌의 여파는 인구의
대부분^6,36^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을 틀림없이 절멸시킬 것이다.
설령 일부가 처음의 충돌에서 간신히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문명이 산산히 부서져
두 번 다시 회복되지는 못할 것이다. 생물 흐름과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힘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며 지구와 그 위의
거주자들은 우리 없이도 계속되리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생물 법칙을 깨뜨리고 영원히, 아니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후 팽창하는 태양 때문에 대기가 몽땅 타버려 지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까지 꿋꿋이 존속할 거라고 장담한다. 줄리언 사이먼 역시 이렇게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는 다음 70억 년 동안 우리는 변함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주 여행이나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방법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우리가 얼마든지 종말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그 행성이 우리를 지탱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손상을 그곳에 입히는가는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둘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머지 다른 자연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며, 더 나아가 그 위에 버티고 있다는 거만한 믿음에서 나온
망상이다.
마치 '우리를 정복할 자 그 누구냐'라는 헛된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생물의 역사와 종을 전체적으로 번성케 하는 역학을 정밀히 조사하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가운데 어느 쪽도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보금자리를 더럽히지 않고 우리의 생존과 정신을
의존하는 생물 다양성을 파괴시키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구상에서 하나뿐인 지각있는 생물로서 전세계
무든 종의 삶을 보호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세계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종들은 단순히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보호를 받을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간곡한 권고이며 호소이다.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로서나 전체적인
종으로서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우리의 행동을 재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곧 매일 1백 종을, 1시간당 4종씩을 진화의 망각 속으로 몰아넣는 교묘한
대량 파괴를 멈추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처럼 인간 중심의
관점이 아니라 나머지 자연 종의 관점에서 하나의 명령을 더 덧붙이고 싶다. 이것은
지구 역사를 조망한 결과 자연스럽게 비롯된 관점이다.
여섯 번째 멸종은 이전의 생물 격변과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 이를테면 가장
공격받기 쉬운 종은 지리적 분포가 한정된 종, 즉 열대 지방과 그 부근 지역의
종이다. 특히 몸집이 큰 종이 쉽게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여섯 번째 멸종은 이전의
경우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특히 수많은 식물 종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위기와 비교해 볼 때 전례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그러나 결국 5백만 년이나 1천만
년 혹은 2천만 년이 지나면 이러한 식물 종의 소멸과 또 다른 생물상의 뒤틀림에도
불구하고 크나큰 반동이 일어날 것이다.
굴드가 말한 바 그대로다. 그는 "지질학적 잣대로 보아 우리의 지구는 스스로를
돌볼 것이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간의 불법 행위가 야기한 어떤 영향이든 깨끗이
처리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 긴 안목으로 볼 때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무엇을 하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왜 우리처럼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종의 생존에 우리가 이토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것은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고 해도 우리 또한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우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 결론적으로 이들의 생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지구의 생물을 다룰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채
외계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생물 다양성의 한복판에 착륙하듯 지구에 오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든 종들과 마찬가지로 5억 년 전 생물 형태의 급격한
번성과 그 이전의 생명 자체의 기원으로까지 이어지는 많은 '우연한 사건'들의
산물이다. '생명의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와 나머지 자연 세계와의 깊은 관계를
이해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윤리적인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우리의 의무는 그들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지구상에 있는 다른 모든 종과 똑같은 발판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결코 지구상에서 하나뿐인 우월한 지적 생물로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전체론적인 의미로 지구의 생물상을 이해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그 전체 생물상의 일부로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생물상을 개척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종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생물 자체와 그들의
안녕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윤리적인 원칙이다. 결코 맹목적인 목적 수행을 위해 다른
종들을 짓밟아서는 안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젠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을 마구
파괴해도 좋다고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너무 '이상적'인 말만
한다고 이의를 단다면 기꺼이 인정할 용의가 있다. 나는 고생물학자이며
보호주이자이다. 이런 이중적인 경력이 나에게 '생물 다양성의 가치'와 '시간의
흐름에 의한 변화'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실질적인 관점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6,36^다시 말해 주위의 자연 세계을 개발함으로써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지켜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 파괴를 막는 한편,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은 21세기에 인류가
감수해야 할 최대의 도전이다. 이것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각기 서로 다른
요구가 합의점을 찾아야만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부유한 국가가 개발 도상국의
국민들을 영구적인 가난 속에 묶어두는 방법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대량 멸종은 오랫동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대부분
생물 흐름의 단순한 중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쉽게 간과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대량 멸종은 생물 흐름을 구체화하는 주요한 창조력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작용은 앞으로 수십억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와 그 후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까마득한 미래까지도 틀림없이 지금처럼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대량 멸종의 수수께끼는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그것을 이끄는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풀 길이 없다.
데이비드 라우프는 그의 책 '멸종, 나쁜 유전자 때문인가 나쁜 운 때문인가'에서
이렇게 썼다. "곤혹스러운 사실은 과거 지질 역사에서 뚜렷이 기록된 수천
가지의 멸종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그 멸종이 왜 일어났는지 확실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5 대 멸종 각각에 대해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는지에 관한 몇 가지
이론들이 있다. 또한 그들 중 일부는 주목을 끌 만하다. 하지만 사실상 모두 이론일
뿐, 그 어느 것도 증명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섯 번째 멸종의 범인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