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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라 아야코] 총구

Casey,Riley 2023. 1. 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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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구 1권
마우라 아야코


  쇼와의 눈
  누구보다도 먼저 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 세이다로오가 밖으로 난 장지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밖을 내다보았다.
  " 야아! 아직도 눈이 오네, 류타야, 식사가 끝났으면 눈을 치우고 오너라."
  유리창 바깥쪽에는 굵은 창살의 격자문이 있다.  세이다로오는 탕 소리가 나게 
장지문을  닫고  큰 무늬가  있는  옷깃을  여민다. 가자미  조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류타는 눈을 아래로 깔고 억지로 대답을 한다.
  "으응."
  그  아들의  표정에  세디다로오도, 어머니  기쿠에도,  누나  미치요도,  동생 
야스시도 모두  류타를 보며  방긋이 웃는다. 류타는  조금 남은 밥을  부지런히 
입에 넣고 한 살 아래인 야스시에 다짐한다.
  "야스시! 너도 눈을 치워야 한다."
  "형은 아직까지 겁쟁이야. 좀 있으면 4학년이 되는데, 밤이 되면 혼자 눈을  못 
치우는 거야?"
  야스시는 빙긋  웃으며 먼저  일어나 현관으로 나간다.  형과 똑 같은  가스리 
무늬 솜옷을 입은 등이 둥글게 보인다. 
  확실히 야스시의 말이 맞다고 류타는 생각했다.  류타는 밤에는 자기집 마당이 
공연히 스산하게 느껴진다.
  류타의 집은  할아버지 대부터  전당포를 하고  있고, 아사히기와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당포라고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아사히기에는  30개가 넘는 
전당포가 있다니까 생활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검은  담에  둘러싸인 육중한  대문이  큰  길가에  우뚝  서 있는  기다모리 
전당포에는 처마  끝에 '시찌야'(전당포의 일본말)라고 곤색천에  물들인 노렌(발 
모양으로 문에 늘어뜨린 천-역자주)이 걸려있다.
  밤이 되면 이 검은  담을 낀 길모퉁이에 있는 희미한 등에  불이 켜진다. 밝은 
때에는 이  집의 석조로  된 창고나  검은 담이  무게 있고  웅장해서 훌륭하게 
보이는데, 담  위에 등이  켜지고 불빛이 희미하게  비칠 때는 어쩐지  으시시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특히 등  옆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가  그  흐린  불빛과 
어우러져서 더욱 스산한 불위기를 풍겼다.
  그것은  류타가  겁쟁이라서 아니다.  류타의  집  거실에는 매일  같이  사복 
형사가 있다.  어디서 도난 사건이 생기면  형사는 며칠이든 전당포에서 지킨다. 
도둑이 도둑질한 물건을 처리하는 곳은 대개 전당포 아니면 고물상이다.
  형사는 매일  오니까 소학교  2학년인 야스시, 3학년이  류타, 그리고 6학년인 
미치요와도 친하게  지낸다. 때로는  장기를 두거나  옛날 이야기도  해준다. 그 
중에서도 관서  지방 사투리를  쓰는 오사카 출신인  니시다형사는 이야기를 잘 
한다. 그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세 사람에게 해주었다.
  "그게  언제였던가? 류타나  야스시가  아직  학교에 가기  전이지.  미치요가 
2학년 때쯤이었을거야, 어느 눈이 오는 밤에  이 기다모리 전당포에 젊은 여자가 
어린애를  업고  겁을   내면서  물건을  잡히러  왔었지.  보자기에   싼  것을 
주저주저하며 내놓기에,  점원인 료키치가  열어 보고  놀랬지. 그  보자기 속에 
뭐가  들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모노도  아니고, 오비(일본  여자들이 
허리에 두르는 것-역자주)도 안고, 숄도 아니고, 가쿠마키(담요로 만든 어깨걸이, 
주로 동북  지방에서 눈이  올 때 여자들이  머리까지 씀-  역자주)도 아니었어, 
글세 어린아이  기저귀였지, 료카치가 이런  것을 가지고 돈을  빌리러 왔느냐고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화를 낼  때... 그 때는  아직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지.  할아버지께서는   정이  많으시다고  소문난  분인데   잠자코  지저귀를 
보자기에 싼채 친절히 물으셨지. '이  지저귀를 맡기면 어린애는 어떻게 하지요?' 
그리고는 '오늘  기저귀를 맡은 것으로 하고  돈을 빌려 드리겠소,'  하며 50전을 
그 여자에게 주셨지. 그리고  료카치에게 쌀과 숯을 보내 주라고 말씀하셨어. 그 
여자는 너무나  고맙고 기뻐서 울면서도 여러  번 절을 하고 갔단다.  그러나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 어떤 사정인지 모르지만 몹시 가난했을 거야. 보내 준 
쌀도 떨어지자 어린애도 죽고 그 여자도 죽었지.  그후 이 집의 버드나무 아래에 
여자가 어린애를 업고 가끔나타났다는 거야. 유령은  한이 맺혀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고마워서도나오는 것인가 봐."
  니시다 형사는  두 손을  앞에 늘어뜨리고 유령  흉내를 냈다. 그러니까  더욱 
무서웠다. 동생인  야스시는 2, 3일  만에 깨끗이 잊어  버리고 누나인 미치요도   
"유령이 어디  있어?" 하며,  진한 눈썰을  치켜올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류타는 그렇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어린애를 등에 업고 전당포  문을 들어서는 
여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가슴에  새겨져 갔다. 때문에  그 이후로는 등에  불이 
켜지면 혼자 밖에 나가기가 싫어진 것이다.
  "거짓말이야. 그 유령 이야기는 지어낸 거야."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니시다  형사가 큰  손을 옆으로저으면서  취소했지만, 
류타는 오히려  그 이야기가 진짜같이 생각되어  버드나무쪽을 보기가 무서워진 
것이다.
  지금도 류타는  어머니 기쿠에가 짜  준 밤색 모자를 쓰고  끈이 달린 장갑을 
양손에 끼고 현관을 나왔지만, 버드나무쪽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런 류타를 
동정해서 동네 사람들이 제안한 일 도 있었다.
  "차라리 버드나무를 베어 버리시면 어떨까요?"
  "아뇨, 류타도 언제까지나  겁재이는 아닐 거예요.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서  이 
전당포를  시작하실  때 이  근방에  큰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 기념으로 한 그루 남겨 놓으신 것이랍니다."
  아버지  세이다로오는  고개를 저으며  버드나무를  베어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
  동생 야스시는 체구는 작앙도  민첩하다. 나무판자에 양철판을 박은 좀바(눈을 
치우는  도구-역자주)를  두 손으로  밀면서    힘차게 눈을  치우기  시작한다. 
아사히기와의 2월의 눈을 아스리린처럼 말라서 가볍다.
  "왜?"
  "형은 정말 겁이 나?"
  "응, 나는 겁쟁이니까."
  "그래? 형처럼 공부 잘하면 겁쟁이가 되는가 보다."
  "너,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야스시."
  "아차, 말하면 안 되는거야? 나, 오늘 구스오에게 말했는데...."
  야스시가 둥근 눈동자를 미안한 듯 아래로 깔며 정직하게 말했다.
  "구스오에게 벌써 말했어? 곤란한데."
  마노 구스오의  어머니 도시코는  세이다로오의 여동생이다. 그러니까  류타의 
구스오는 사촌간이다. 같은  3학년이며 반도 한반이다. 성적도 류타와  1, 2 등을 
다투며, 집도 가까워서 매일같이 학교도 같이  다닌다. 보통 때는 사이가 좋지만, 
어느 때는 '어어' 라고 생각할 만한 말을 구스오가 할 때가 있다.
  금년 정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 고모인 도시코의 초대로구스오네 집에 미치요, 
류타, 야스시,  이렇게 셋이서 놀러갔을 때였다.  식구끼리 모여서 놀고  있을 때 
금만가라는 카드를 뽑은 구스오의 누이동생 가세코가 물었다.
  "금만가가 뭐야?"
  가세코는 1학년이다.
  "금만가? 금만기는 부자라는 뜻이야. 류타네 같은 집을 금만가라고 해."
  "뭐? 우리 집이 금만가야?"
  누나인 미치요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럼, 미치요  집은 금만가지, 하지만 전당포는  가난한 사람 때문에 돈을  벌 
있대. 가난한 사람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거라던데."
  류타는  놀란  얼굴로 구스오를  쳐다봤다.  구스오는  자기가 한  말이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전혀개의치  않고 자기  카드를 재빠르게  펴놓고 있다.  그때 
미치요가 홱 일어섰다.
  "류타, 야스시, 가자."
  규타는  누나 미치요의  화가 난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의 분함음 느끼지 못ㅎ다. 야스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왜 벌써 가는 거야? 나 아직 귤을 안 먹었는데?"
  "무슨 소리야? 귤은 집에도 있어."
  미치요는 야스시의 손을 잡아끌었다.
  "류타야. 가자."
  그리고  옆방에 있는  고모와 고모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구스오의 집을 
뛰쳐나왔다. 야스시만 큰 소리로 인사하며 현관을 나왔다.
  "고모님, 고모부님, 안녕히 계세요!"
  집까지  200미터가 채  안 되는  길을 미치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급히 
걸었다.  미치요는 6학년  중에서도 체격이  좋았고, 구령을  붙이면 누구보다도 
맑고  잘 울리는  체격이 좋았고,  구령을  붙이면 누구보다도  맑고 잘  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항상 웃는 모습이기에 그 웃음소리가 나는  곳에는 곧 
몇 명씩  모여들곤 했다. 그래서 가끔  화를 내도 그렇게 무섭지  않다고 류타는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누나는  무서웠다. 정말로 이렇게 화를 내는 누나를  여느 때에는 
본적이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  세이다로오와  어머니  기쿠에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계셨다.
   "왜, 벌써 왔니?"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11시였다.  언제나  정월이면  낮부터 가서  점심을 
대접받고 저녁 어두워질 때까지 놀다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응, 누나가 갑자기 가자고 그랬어요."
  "갑자기?싸웠니?"
  미치요가 잠자고 고개를 저었다.
  "싸움 같은 것은 안해요, 아버지."
  야스시가 순진하게 대답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왜갑자기 돌아온 거니?"
  미치요의 얼굴을 살피며 어머니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런데...구스오가...."
  미치요의 커다란 눈물이  흘럿다. 야스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류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굵은 창살문 너머로 밖의 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왜 그러니?"
  미치요의 눈물을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 구스오가 전당포는  가난한 사람 덕분에 돈을 버는 거라고  그랬어요. 
가난한 사람이 잇으니까 도움을 받고 있다고.... 정망이에요, 아버지?"
  미치요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좀처럼 울지 않는 미치요의  눈물 젖은 
얼굴을 아버지  세이다로오는 지그시  보며 듣고 있다가  어머니 기쿠에를 보며 
알했다.
  "전당포는 가난한 사람 때문에 돈벌이가  된다고? 옳은 말이야. 그렇게 말하니 
맞는 말이네, 여보."
  "누가 그런말을 구스오에게 햇을까요?"
  기쿠에가 눈살을 찌푸렸다.
  "글쎄, 하지만 구스오가 말한 그대로야. 가난한 사람 덕분에 돈을 번다는 것은 
맞는 말이야."
  세이다로오는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엇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미치요,   만일  전당포가   없으면  돈이  없어   쩔쩔매는  사람은 
곤란하겟지?너도  6학년이다. 잘  들어  두어라.  사람은 누구나  일생  동안 돈 
때문에  곤란을 받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된단다. 그럴  때 친척이나  아는 
사람에게 가서  1엔이라도 빌려달라고 머리숙이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 
어제까지  사이좋게 지내던  사람도 그렇게  좋은 얼굴로  빌려 주지는  않는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경멸하는  얼굴이 되지.  차가운 얼굴을  보일 때  사람들은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단다.  그런데   전당포라는  것이 있어서  하오리(일본 
사람이 입는  겉옷-역자주)한 장이라도  보자기에 싸서  가져가면 전당포에서는 
'어서  오십시오.'하고  맞이하지.   물건에  따라서는  1엔을  빌리려고  했는데 
50전밖에 빌리지  못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2엔을 빌릴  수도 있어서  어려운 
사정을 해결할 수 있게  되지. 맡긴 물건은 돈이 생겻을 때  찾으러 가면 그대로 
찾게 되니까. 물론 약속한  3개월이 지나도 찾아가지 못하면 처분되지만. 하여간 
전당포  덕택에 친척이나  아는 사람에게  머리숙이는  괴로움은 피할  수 있는 
거야. 전당포가 없으면  목을 매는 마음 약한  사람도 잇으니까,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면 아버지, 역시 가난한 사람 덕으로 전당포는 돈을 버나요?"
  "그ㄹ지.  그러니까 잡힐  물건을  가지고 오는  손님에게는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야지."
  "돈을 빌려주는데 머리를 숙여요?"
  눈물을 닦은 미치요가 겨우 평상시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돈을  빌려 주는 사람이  뭐 훌륭한 건  아니지. 특히 전당포의  경우는 
물건을 맡고서  돈을 빌려 주니까, 장사하고  있는 것 아니니?  그러니까 머리를 
숙여야지."
  "그러면 아버지, 돈만 빌려 주면 떳떳해도 되는 건가요?"
  류타가  얼굴을 들고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세이다로오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세이다로오가 귤 껍질은 벗기면서 말했다.
  "이  전당포를 시작한  너희들의  할아버지를 보고  사람들이 부처님이라고들 
말했는데 참 맞는 말이다. '돈이 있다고 잘난 척하지 마라.'고 하셨지."
  귤을 한입 가득 넣은 야스시가 괴상한 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돈 있는 사람이 잘나 것 아녜요?"
  "어떠냐? 미치요, 류타야. 돈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니?"
  류타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미치요가 말햇다.
  " 우리 사타베 선생님은 아주 작은 집에 살고 계시지만 나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
  명랑한 목소리였다. 류타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카베 선생님은 나도 훌륭하다고 생각해.'
  왜 그런지 그렇게  생각되었다. 어디가 훌륭한지는 잘  모르겟지만 말씀하시는 
거나 학생들을 보는 눈이 따뜻했다.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그래, 사카베 선생님은 훌륭하시지. 나 같은 사람보다 아주 훌륭해. 돈은 내가 
더 있지만...."
  기구에사 난로에 굵은 장작을 두어 개 던져 넣었다.
    2
  요란하게 교실 문이 열렸다.  3학년 2반의 학생 50명은 일제히 일어섰다. 검은 
쓰메아리(목깃이 올라오는 양복-필자주)를  입은 가와치 산조 선생은 교탁에  양
손을 짚고 학생들을 죽  훑어보았다. 그것을 신호로 반장인 류타가 "경례."  하고 
구령을 죽 붙였다. 6학년인  누나 미치요도, 3학년인 류타도 반장이어서 이들 남
매를 '남매 반장' 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가와치 선생이 말했다.
  "모두 글짓기 숙제는 해 왔겠지?"
  큰소리 작은 소리로 여기저기에서 "예" 하는 대답이 터져 나왔다.
  "잘 써 왔니?"
  "잘 안돼요!"
  이 대답은 남학생도 여학생도 모두 똑같았다.
  "글짓기 제목은 .... 국장이 뭔지 아는 사람?"
  가와치 선생은 칠판에 '국장이 있었던 날' 이라고 쓰면서 뒤돌아보았다.
  "하나, 둘, 셋 하는 체조입니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아사다가 말하니 모두 웃었다.
  가와치 선생의 눈이 번쩍 빛났다.
  아사다는 느릿느릿 선생 앞에 나와 섰다. 선생의 손이 아사다의 뺨을 쳤다. 아
사다가 비틀거렸다.
  "황공하게도 다이쇼 천황의 장례를 하나,  둘, 셋 하는 체조라고 말하다니... 무
엄하기가 짝이 없구나!"
  선생은 뺨을 때리고도 아직  노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머리를 쥐어박
았다.
  "모두 국장일은 언제였는지 알고 있는가?"
  서서 야단맞던 아사다가 손을 들었고, 선생이 지적했다.
  "2월 7일? 잘 알고 있구나. 좋다, 들어가."
  가와치 선생은 불쾌한 얼굴로 류타를 향했다.
  "그러면 반장인 류타, 너는 글짓기를 어떻게 해 왔는지 읽어 봐!"
  "예."
  류타는 글짓기한 것을  들고 일어섰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류타는 글짓기가 
좋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생각한  것, 본 것, 들은 것을 정직하게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대로 정직하게 썼다.
  국장이 있었던. 오늘은 다이쇼  천황의 국장 날입니다. 이 국장은 천황의 장례
식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가스리  무늬의 옷과 하오리의 무늬의 하카마(남자아이
도 입는 치마 같은 것으로 예복-역자주)를 새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밖에 나오니 싸라기눈이 내려서 몹시 추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식을 하는 날
이기 때문에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미끄럼을 방지하는 게다를 신고 가라고 하셨
습니다. 나는  고무신을 신고 싶었으나  어른들의 분부대로 게다를  신고 사촌인 
구스오와 동생 야스시와  다 같이 학교에 갔습니다. 도중에 장난을  치다가 게다
가 벗겨져서 다비(일본  사람이 신는 엄지발가락이 갈라진 버선-역자주)가  눈에 
젖어 발이 시려 왔습니다. 우리들은 가끔 털면서 2가에 6가까지 걸어갔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다비가 흠뻑 젖어서 너무나  발이 시려 왔습니다. 운동장에서 
식을 했습니다. 운동장  바닥이 얼음판같이 차가웠습니다. 덧신을 신었는데도 발
이 차가워서 발을 움직이고 싶었으나 차려 자세이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천화 폐하의 장례식 날이니 발이 시려운 것쯤은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습
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는  발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모두 큰 
소리로 국장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땅에 엎드려 천지에 기도했으나 보답 안 되
고 해뜨는 나라  국민은 창포꽃 피지 않는  어둠을 간다.' 라는 슬픈 노래였습니
다. 나는 국자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발이 시렵습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공
부하겠습니다. 끝."
  "뭐야! 그것으로 끝난 거야?"
  격앙된 외침과 동시에 교단에서 가와치 선생이 뛰어 내려왔다.
류타는 깜짝 놀라 어깨가 떨렸다.
  "이것이 3학년 2반 반장의 글짓기야! 국장의 날의 글짓기야!"
  순간 선생님의 손이 양빰을 쳤다. 류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선생님께 맞은 일
이 없었다. 너무나 떨렸다. 여학생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니, 천황 폐하의 장례식 날 너는  고작 발이 시려웠다고 썼단 말이냐? 선생
님은 부끄럽다. 방과후에  남아서 다시 써라. 이런  글을 교무실에 가져갈 수 없
다."
  류타는 왜 야단맞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글짓기는 본 것, 생각한 것, 들은 것, 
한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라고 늘 선생님이 말씀하셔서 그대로 썼을 뿐이다.
  류타가 매를 맞으니  교실 안이 조용했다. 침묵을 뚫고 가와치  선생의 목소리
가 교실 안에 퍼졌다.
  "그러면 구스오! 너는 어떻게 썼는지 한 번 읽어 봐."
  "예."
  구스오는 제일 뒷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스오는 반에서 키가 제일 컸다.
  "너는 부반장이다. 똑똑하게 읽어."
  "예. 제목 국장이  있었던 날. 나는 다이쇼  천황께서 승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천황 폐하는 일본에서 제일 훌륭한 분입니다. 백
성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자식과 같이 사랑해  주신다고 선생님께
서 말씀하셨습니다.
  국장의 날에는 눈이  왔습니다. 나는 류타와 같이 슬픔을 참으며  학교에 갔었
습니다. 식을 할  때 교장 선생님은 이것으로 다이쇼 천황  폐하와는 이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장의 노래를 부를 때도 슬퍼서 눈물이 흐르려고 했습니다. 그
러나 '나는 일본 남아이니 울어서는 안 되지.' 하고 참았습니다.
  아아! 이제 다이쇼 천황 폐하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그러나 섭정하시는 분
이 천황  폐하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그러나 섭정하시던 분이  천황 폐하가 
되셔서 우리를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안심하고 쇼와의 세상을 살아가면 
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국장의 날은 자기의 친부모가 승하신 것 같은 슬픈 날입니다. 끝."
  "좋다! 부반장이 쓴 것이 더 훌륭하다. 류타,  들었지? 그리고 모두들 구스오의 
글을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 구스오는 아직 3학년인데도 천황 폐하의 승하를 슬
퍼하는 마음이 생겼구나. 류타,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발이 시렵다.' 그 말밖에 
쓸 수 없었던  말이냐! 오늘 다시 잘 써서  고쳐 놓지 않으면 어두워도 집에  안 
보낼거다."
  가와치 선생의 말에 구스오는 의기양양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구스오! 자기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승하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기억해 두어라."
  선생님이 한마디 고쳐 주었다.
  모두 집에 돌아간  교실에 홀로 남아서 류타는 글짓기를 고치고  있었다. 난롯
불도 꺼지고 교실 안은 차차 추워졌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아무도 없는 교실
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쓸쓸했다. 류타는 구부리고 앉아서 연필로 한  자 한 자 
고쳐 썼다. 구스오가  글짓기한 것을 들으니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구스오처럼 '천황 폐하가 돌아가셔서 슬프다' 라고 쓰면 선생님은 용서해 주시겠
지...
  하지만 오늘 아침 류타와 함께 등교하던 구스오의 얼굴에는 천황 폐하가 돌아
가셔서 슬퍼하는 표정은 전혀 없었다.
  "류타야, 너는 너희 마당에 나온다는 유령을 진짜라고 믿냐?"
  구스오는 류타를 놀리면서 유령 흉내를 냈다.
  "바보! 지금은 문화 문명의  세상이야. 비행기도 기차도 자동차도 있는 세상이
라구. 유령을 믿는다는 것은 바보짓이야, 안 그래?"
하며 같이 가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러자 야스시도 "그래, 유령 
같은 것은  없어." 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원통하다... 원통하다..."  하며 
유령 소리를 내며 웃고 떠들었다. 류타는 다비가  젖은 것을 참으며 놀림감이 되
었다.
  '구스오는 거짓말을 썼다. 게다가..."
  류타는 알고  있다. 글짓기 숙제는  구스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도와주고 써 
주는 것을. 그런 구스오의 흉내를 내서 자기  글짓기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일본의 천황이 돌아가신  것은 류타도 슬펐다. 그러나 구스오가 쓴 것같
이 울고 싶을 정도로 슬픈 것을 아니었다.
  '한번도 만난 일도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잖아.' 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쁜 학생일까?'
  선생님께 매맞고 남아서 글을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나쁜가 하는 생각을 하니 
쓸쓸했다.
  '이세 글짓기 같은 것은 하지 않겠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은 무엇이나 정직하게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직
하게 쓴 것뿐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생각하지도 않은 것을 쓰라고 하신다.
  류타는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구스오의 글을  흉내내어 썼다. 겁쟁이인 류타지
만 오늘은  유령을 떠올리고 겁먹을 겨를이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참담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글짓기를 마쳤다.
  글짓기한 것을  교무실에 가져가니, 난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가와치 
선생이 "벌써 다  썼니?" 하며 류타의 글을 받아  들고 담배를 문 채 좀  심각한 
얼굴로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  정도면 됐다. 구스오보다도 잘  썼구나. 처음부터 이렇게 쓰면  될 것
을..."
  가와치 선생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돌와가도 좋다. 빨리 가거라."
  선생이 조금은 기분이 풀린 목소리로 말하며 턱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류타는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좋아서가 아니라 분하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
로부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타는 선생님께 인사하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교무실을 나왔다.
  집에 오니 동생 야스시가 뛰어나왔다.
  "형, 선생님께 매맞았다며! 정말이야?"
  놀람 섞인 큰 목소리로  묻는 동생 뒤엔 누나인 미치요가 우뚝  서 있었다. 류
타는 자기가 남아서 글짓기를 다시 한 것이며,  선생님께 매맞은 것을 벌써 아버
지도 어머니도 알고 있구나 하며 체념했다.
  거실에 들어서니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추웠지?"
  또다시 류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학교에  들어간 후 3학년이 되도록 매
를 맞거나 남아서 벌을 받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류타가 돌아온 것을 안 아버지 세이다오가 거실로 들어왔다.
전당포가 바쁜 시간은 저녁부터다. 아직 2월의 태양은 저물지 않았다.
"매를 맞았다지?" 매를 맞을 때도 있지. 어떻게 글짓기를 했니?"
  생각한 것처럼 아버지는  오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라는 기
색은 조금도 없었다. 류타는  흐느끼며 글짓기한 것을 아버지 앞에 내놓았다. 아
버지는 긴장된 눈빛으로 읽어 가더니 다 읽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발이 시렵다는 말뿐이니, 그래서 선생님이  때리셨
구나. 선생님으로서는 좀  곤란하셨겠다. 천황 폐하가 돌아가셔서 발이 시렵다고
만 썼으니..."
  갑자기 아버지는 류타를 똑바로 보면서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류타야, 너는  3학년이고 곧 4학년이 되지만  아직은 아이니까 천황 
폐하가 돌아가셔서 아주 슬프다는 생각이 안 들어도  할 수 없다. 어른이 아니니
까."
  옆에서 류타의 글을 일고 있던 어머니 기쿠에가 말했다.
  "여보, 류타는  어린아이답게 썼지요? 슬픈  감정은 차다는 것과  통하지 않아
요?"
  어머니는 하이쿠(일본의 간단한 시 - 역자주)를 하시는 분답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하니 그렇군. 그러나 선생님은 류타의 글에 슬픈 감정이 없다
고 생각하셨겠지!"
  "몰라 준 사림이 나빠요."
  "그것은 그렇다치고, 류타야! 사람은 일생 동안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
을 당할 때가 여러  번 있단다.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오해를  받거나 욕을 먹을 
때도 있지."
  "..."
  "아버지는 지금도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단다.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서 사
람은 정말로 어른이  되어 가는지도 몰라. 그러니 억울해도 참고  깊이 생각하지
는 마라."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누나인 미치요가 소리질렀다.
  "아버지, 나는 반대예요!  억울하게 당할 때는 억울함을 참을 것  없어요. 마음
속에 깊이 넣어 두겠어요. 나는  잊지 않을 것은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류타
야, 오늘 선생님께 당한 것은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별로 나쁘게 쓰지도 않았
는데 뺨을 때리고, 남아서 다시 쓰게 한 것은 선생님답지 않아. 나는 용서 못해."
  말끝이 떨렸다. 류타는 그 말에 누나다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류타에게 미치요
는 머리 좋고 치나  칠 정도로 엄격한 누나였다. 항상 웃고  있는 미치요는 머리 
좋고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누나였다. 항상 웃고 있는 미치요지만  어딘지 모르
게 엄한 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뭔지 가슴에 와 닿는 친밀함을 느꼈
다. 야스시가 웃었다.
  "누나, 그만둬. 원망할 거야, 마음속에 묻어 둘 거야?"
  어머니 기쿠에가 말했다.
  "미치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니? 너는 잘 웃고  명랑하고 친절하며 좋은 
성격인데, 심한 말도 하게 되었구나. 그렇죠, 여보?"
  "응, 그러나 혹시 미치요의 생각이 나보다 위인지도 모르지."
  생각이 깊은 아버지 세이다오의 말이었다.
    사키케 하시야 선생
 현관에서 덧신으로 바꾸어 신고 류타와 구스오는   쏜살같이 복도로 뛰어 갔다. 
두사람은 오늘부터 4학년이다.
  4학년 교실은 서쪽  계단을 올라가서 오른쪽에 있따. 이 계단  중간에는 큰 사
각형 거울이 걸려  있다. 그림틀같이 둘레가 금박으로 되어 있어  소학교에는 좀 
사취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두 사람은 거울은  본체만체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갔
다.
  오늘 아침,  두 사람은 우리들의  담임 선생님은 누구이실까  가슴을 설레이며 
학교로 발검음을 재촉했다.  학교로 오는 길에 구스오는  "나는 가와치 선생님은 
또 만나도 좋아."라고 했다.
  류타도 힘없이 맞장구를 쳤지만 '만일 가와치  선생님이 그대로 데리고 올라가
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이 되었다.
  가와치 선생님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담임을 하셨다.  열심히 잘 가르쳐 주시
는 선생님이지만  어떤 때는 다이쇼 천황의  "국장의 날" 글짓기 때문에  양빰에 
따귀를 맞았고,  남아서 다시 글짓기를 했었다.  그때까지 매맞은 일이 없었기에 
류타에게 그 일은 큰 굴욕이었다.
그 후부터 가와치 선생님이 싫어졌다. 어떻게  하든지 오늘부터는 새로운 선생님
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스오는 
  "나는 가와치 선생님도 좋지만 다니카와 선생님도 좋은데."
라며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 싱글벙글 웃는다.  다니카와 선생님ㅇ느 젊은 여선생
이고 양복을 입으셨다. 대부분의 여선생님들은 하카마를  가슴 높이 입고 복도를 
걸을 때도 책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크게 휘두르며 복도 중앙을 경쾌하게 똑바
로 걸은신다. 담임반 이외의 학새을 만나도
  "안녕! 건강하지?"
하며 쾌할하게 물어주시고, 때로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시고, 가볍게 어깨
를 두드려 주기도 신다. 구스오는 가끔 
  "다니카와 선생님한테서는 좋은 냄새가 나느구나."
라며 코를 움직이기도  한다. 그 다니카와 선생님이 좋다고 구스오는  길을 가면
서 말했다. 그러나 류타는
  '다니카와 선생님은 좀 곤란해'
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좋은 냄새가 나는 것도 곤란했다. 하여간 어
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까 기대했기에 두 사람은 복도에서도 계단에서도 쉬지 않
고 빨리 뛰어 교실에 간 것이다.
  류타와 구스오는 계단  오른쪽 4학년 2반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  출입구 위에
는 담임 선생님  이름이 나와 있을 것이다. 그 아래에  반 아이들 7, 8명이 모여 
와글 와글 떠들고 있다. 뛰어간 두 사람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이야."
  류타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쳐다보니 검게 색칠한  팻말에 흰 글씨로 4학년 2
반 사카베 히시야'라고 쓰여 있지 않은!
  구스오가 양손을 들어 "사카베 선생님이다.!" 라고 외치고는 
  "잘 됐지, 류타야."
하며 류타를  껴안았다. 류타도 구스오를 꼭  껴안았다. 류타는 구스오가 갑자기 
더 좋아진 기분이었다.
  그날 실내 운동장에서  시업식이 끝나고 류타네 반  아이들은 교실로들어왔다. 
남학생도 여학생도 모두 긴장한  얼굴로 새로 담임하신 사카베 선생님을 기다렸
다. 류타가 다니는 다이에이  소학교는 2층 건물인데, 3학년 이하는 아래층에 교
실이 있고 4학년  이상은 위층에 교실이 있다. 사카베 선생은  주로 고학년을 담
임했기 때문에 류타같이 저학년과는 별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누나인 미치요
가 사카베 선생님이 담인이어서  언제나 선생님 자랑을 했기에 언제부턴가 류타
도 구스오도 사카베 선생님이 좋아졌던 것이다.
  조금 있자 사카베 선생님이 들어셨다.
  "야, 안녕!"
  선생님ㅇ느 교실에  들어시자마자 명랑하게  말씀하셨다. 교단에 서신  사카베 
선생님은 미소를 띠면서 학생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보셨다.  한 사람 한 사람 똑
바로 보셨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시선이  닿으면 수줍어 고개를  숙이거나 기쁜 
듯 웃거나 머리를 긁거나 했다. 모두의 얼굴을 보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4학년 2반 여러분,  축하한다. 선생님은 감격했어요. 일본  안에 오늘 4학년이 
된 학생은 시십만 명이  있겠지. 그런데 그 중에 내가 담임한  학생은 너희들 50
명 뿐이야. 사이좋게 지내자."
 사카베 선생님은 기름기 없는  머리를 쓸어오리면서 다시 한 번 학생들을 둘러
보셨다. 아직 20대가 젊은 선생이다.
  "네."
  학생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응. 잘 대답했어. 대답을 잘 하면 행복이 온다."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셨다. 사카베 선생님은 눈썹이 짙다. 눈은 크지만 웃으면 
부드럽다. 키도  크다. 뭔지 모르게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듯하다.  검은 양복이 
좀 끼는 느낌이 든다.
  "먼저 내 이름을 기억해 두오."
  "압니다. 압니다. 사카베 쿠야다."
  웃기기를 잘하는 아사다가 이름을 마구 불러서 모두가 웃었다.
선생님도 웃으셨다.
  "야, 잘 아는데! 기쁘다.  그러나 선생님 이름은 히사야라고 읽는다. 가나를 붙
일 걸 그랬지. 잘 아는데! 큐야라고도 한다."
  선생님은 뒤돌아서서 사카베  하시야라고 칠판에 쓰고 '히시야'는 노란 분필로 
쓰셨다.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의 이름을 외워야겠다. 틀리게 부르면 용서해라.  이름
은 때때로 트릴게 부를 수도  있지. 이름을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해. 대답을 잘
하면 행복이 온다."
  류타는 왠지 행복해진 것같이 느껴졌다. "대답을 잘하던  행복이 온다."는 선생
님의 말버릇 때문인가 보다. 그 말이 왠지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선생님은 아
이우에오 순으로 차례로 이름을 불렀다.
  "야오키 사치코."
  "네."
  언제나 낮은 목소리인 사치코가 트게 대답했다.
  "응! 좋은 대답이야. 사치코의 집은 학교 옆에 있는 아오키 쌀집이지?"
  선생님 말씀에  사치코는 기쁜 듯이  끄덕했다. 사카베 선생님은  다음 이름을 
불러 나갔다. 어느 학생에게나  "야, 씩씩한데!"라든가 "너 씨름을 잘한다지?" 라
든가 "너는 그림을 잘 그린다지?"  라고 한마디씩 말씀하셨다. 류타는 사카베 선
생님이 학생들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셔서 놀랐다. 그러는  중에 류타의 
이름을 부르셨다.
  "기다모리 류타."
  "네."
  "미치요가 자랑하는 동생이구나. 씩씩하다."
  선생님은 또  빙긋 웃었다. 류타는 너무나  기뻤다. 구스오는 오십음 순이니까 
류타보다 꽤 나중에 불렀다.
  "마노 구스오."
  "네."
  구스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구스라는 나무는 좋은 향기가 나는 훌륭한  나무야. 좋은 이름을 지어 주셨구
나."
  구스오는 머리를 긁었다. 가끔 친구들과 싸우면 친구들이 "구스오,  구소, 굿소, 
구소."라고 놀려대곤 했다.  좋은 향기가 나는 나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모
두 웃었다. 출석 호명이 끝나고 난 후  모두의 얼굴에는 사카베 선생님과의 친밀
함이 넘쳤다.
  "그러면 오늘부터 너희들은 나의 귀한 학생들이다. 좋습니까?
너희들은 학교에 와서 대체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이라도 좋
으니 생각한 대로 말해 주기 바란다."
  모두가 일제히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제일 앞에 있는 여학생을 지명했다.
  "네,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 공부가 중요하지.  그러나 그것과 같이 중요한 것이 또  있다. 1학년 때 
처음에 수신 책에에서 배웠는데 잊었나?"
  "잊었어요."
  "잊었습니다."
  여거저기서 대답했다. 그래도 서너 명이 손을 들었다. 류타가 지명받았다.
  "네, 발 배우고 잘 놀아라 하는 겁니다."
  "응! 3년 전에 배운 것을 잘 기억하고 있구나."
  말씀하시며 칠판에 "잘 배우고 잘 놀자."라고 쓰셨다.
  "어른들은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 확실히 글자를 알고 계산 하는 것을 배우
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사람과 사
이좋게 지내는 것은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멋있는 것이야"
  학생들은 옆사람을 보면서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을 했다.
  "공부시간에는 모두 싸움을  안 하지? 그러나 노는 시간에는  가끔 싸운다. 그
리고는 '아, 내가 잘못 했구나.' 또는 '두고 봐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해!' 하고 사
이가 나빠지기도  하다. 그리고 친구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  얼마나 쓸쓸하기도 
알게 되지. 이렇게  해서 점점 너희들의 마음이 착하게도 되고  강하게도 되면서 
성장해 간다. 물론  수영을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몸도 점점  튼튼하게 자란
다. 알겠니? 모두 100점 받으려고  생각하지 말자. 더 중요한 것은 모두 다 사이
좋게 노는 거야. 우리 반은 잘 놀고 잘 공부하면 좋겠다."
  모두가 "네." 하고 대답하고 웃었다. 선생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굉장히 화를 낼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 그럴 것 같으냐?"
  모두 머리를 갸우뚱하며 생각했다. 구스오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께 말대답을 했을 때입니다."
  "그것도 그렇지!"
  사카베 선생님은 구스오를 보고 빙긋 웃으셨다.
  "하지만 선생님도 틀릴때가 있으니까  너희들이 '선생님! 지금 말씀하신 건 이
상합니다.' 해도  나는 화를 안 낸다."
  "어머나!"
  두세 명이 정말 놀란  듯 말했다. 류타도 놀랐다. 가와치 선생님은 "그것이 선
생님께 하는 말 버릇이냐!" 하고 가끔 화를 내셨다. 
  사카베 선생님은 진지한 얼굴로 말씀을 계속 하셨다.
  "모두들 잘 들어라. 내가 화를 낼 때는, 예를 들어서 우리 반에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 친구의 걷는 모습을 흉내 내거나  놀리거나 괴롭히거나 
하면 몹시 화를 낸다.  몸이 약해 체조를  못하는 아이나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
가 뒤떨어지는 아이를 업시여길 때도 절대로 용서  못한다. 또 집이 가난한 아이
를 괴롭히면 선생님은 혼내 주고 때리기도 할 것이다. 그냥 두지 않는다."
  사카베 선생님은 정말 무서운 얼굴을 하셨다.
  "우리 반에는 이런 학생은 없을 줄 알지만 주의하기 바란다. 숙제를 잊은 거보
다 영점은 받은 것 보다 아주 나쁜 것은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거이야. 잘 알아
두어라. 선생님도 조심하겠다."
  모두 잘 알아들었다. 류타는  저도 모르게 뒤에 앉은 구스오를 쳐다봤다. 구스
오는 가끔  약한 친구를 괴롭혔다.  영점받은 아이의 답안지를  모두에게 보이며 
놀리던 것을 생각했다.
  4학년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류타는 이 사카베 선생님과의  만남이 자
신의 일생을  좌우하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2
  류타가 4학년이 되어서  맞는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 거실에서는  아침부터 사
복을 입은  스가이형사가 와서 아버지  세이다로오와 장기를 두고  있다. 스가이 
형사가 앉은 자리에서 긴  노렌 너머로 가게를 볼 수 있다.  거실과 가게 사이는 
두껍고 검은 무명천의 노렌이 쳐 있으니까 가게 문이  열리면 곧 알 수 있다. 어
젯밤 시내 잡화상에 도둑이 들었다.  옷장 한 칸을 모두 털어 갔고, 잡화상 부부
는 손발이 묶여 있었다고 한다. 장기를 두면서도  형사의 눈을 가끔 가게쪽을 본
다. 가게는 점원인 료카치가  지키고 있고, 수배된 물건이 나타나면 크게 기침을 
하기로 되어 있다.
  그 옆에서 류타와 동생 야스시는 숙제를 하고  있다. 류타도 야스시도 산수 숙
제다. 가끔 바람이 창을 흔든다.  창밖의 하늘이 흐려 있다. 비가 올 것 같다. 숙
제라고 해도 사카베  선생님이 내준 것이 아니다. 사카베 선생님이  담임하기 전
에는 숙제란 선생님이  내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카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나는 숙제를 안 내준다.  숙제는 너희들 자신이 한다. 각각 자기가 스스로 숙
제를 내고 하도록."
  학생들은 놀라서 소리질렀다.
  "한자 한 글자라도,  계산 문제 하나라도 좋다.  나는 이것 만큼은 해오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해오도록 해라."
  모두 좋아서 손뼉을 쳤다.
  다음날 숙제로  정말 한 글자만 써  온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동그라미를 주셨다.
  "저는 읽기를 세 번  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한 글자도 써 오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  노트에도 동그라미를 주셨다. 산이라는  한자를 한 장 가득 써 
온 아이에게도 선생님은 동그라미를 주셨다. 일주일이  지나자 모두 서로 노트를 
보여 주며 어려운 한자 몇 줄, 계산 문제 10개등 자진해서 공부하게 되었다.
  오늘 류타는 수신책을 책상 위에 놓고 교육칙어(교육에 관해 천황이 준 말씀-
역자주)를 외우기로 하였다. 3학년까지는 교육칙어를 배우지 않았다.
  "짐이 생각하기에..."
  류타가 읽으려고 할 때 지금까지 산수공부를 하고 있던 야스시가 국어책을 펴
놓고
  "일, 대일본..."
  하며 큰 소리로  읽었다. 류타가 1학년 때 배운  국어다. 류타는 이 시를 모두 
암송한다. 류타도 같이 외우기 시작했다.
  대일본, 대이본
  신의 어예인 천황 폐하
  우리 국민 7천만을
  자기 자식같이 생각해 주신다.
  거기까지 외우자 야스시는 국어책을 놓고 말했다.
  "형, 모두 외우네!"
  "그야 외우고 있지."
  "그럼 '신의 어예인 천황 폐하' 라는 말 알아?"
  야스시는 자기가 배운 것을 형도 배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왠지 그렇
게 생각되지 않았다. 자기만  배웠다고 생각했다. 장기를 두고 있던 스가이 형사
가 말했다.
  "신의 어예라는 것은 신의 아들의 그 아들의 또 그 아들이라는 뜻이야."
  형사의 말에 야스시가
  "즉, 자손이라는 말이죠?"
하니까 세이다로오가 큰  소리로 웃었다. 왜 웃는지도 모르고 야스시가  계속 물
었다.
  "그러면 신과 천황 폐하 중에 어느 쪽이 높나요?"
  "그건 어려운 질문인데."
  스가이 형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그거야 선조가 휼륭하지. 신은 선조이고 천황 폐하는 지손이다. 책에 있는 그
대로야."
  류타는 가와치 선생님께 배운 것을 생각했다. 가와치 선생님은 
  "천황 폐하는 신의 자손이니, 역시 신이다."
라고 가르쳐 주셨었다.야스시는 세이다로오의 말에 동의하며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 우리 국민 7천만을  자식같이 생각하신다는 것을 천황 폐하가 
7천만 국민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신다는 뜻인가요?"
  "아니, 그것은 내  자식같이 생각한다는 뜻이야. 즉, 생각으로 말이다.  7천만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면 몇 년이 걸리지."
  스가이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 그렇게 되는구나."
  "그리고 아버지!  천황 폐하를 신으로  우러러보며 부모라고 생각하며  따르고 
섬기라고 써 있는데 천황 폐하가 신이라는 거예요, 부모라는 거예요?"
  세이다로오는 두고 있던 장기판을 치우고 말했다.
  "야스시, 너는 덤벙거리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각이 깊구나. 천황 폐하를 신
처럼 우러러보라는 것은 신이라는 것이 아니라 신처럼 우러러 받들라는 거이야."
  "부채로 부치면서  우러러보라고요?(일본어로 '아오구'는  우러러 본다는  것과 
부채질하는 것 두 가지 의미가 있음-역자주)"
  스가이 형사가 입에 넣었던 차를 푹하고 내뿜었다.
  "우러러본다는 것은 존경하고 높인다는 겅이야."
  "그럼 뭐야. 나는 부채를 부치는 것인 줄 알았어. 그러면 천황 폐하는 신이 아
니구나. 신 같고 부모 같으면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대 부모인가?"
  그러더니 야스시는 큰 소리로 그 다음을 읽었다.
  대일본, 대일본,
  이제까지 한 번도 적에게 진 일이 없고,
  해가 지날수록 나라가 빛난다.
  류타는 노트를 꺼내서 교육칙어를 다시 베끼기  시작했다. 쓰면서 배우지 않은 
글씨가 많이 나오고 어려운  말이 많은데 놀랐다. 쓰고 있는 이  글이 수신책 제
일 처음에  나오는 것으로 4학년부터  배워야 한다니... 자기가  공부하는 교과서 
안에 이렇게 어려운 말이 많은 것이 걱정이다.  이왕 배울 것이니 빨리 외우도록 
해애지. 사카베 선생님은 요전날 수신시간에 교육칙어를 펴라고 말씀하신 후
  "교육칙어는 4학년에게는 좀 어려우니 외우지 않아도 된다."
라고 하셨다. 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을 왜  책에 써 놓았을까? 류타는 이유가 있
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누나 미치요가 
  "교육칙어는 외우려고 하면  간단해. 말이나 글씨나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야. 
나는 별로 고생하지  않고 외웠어. 여학교 시험에 교육칙어를 쓰라고  해서 척척 
썼지."
하며 자랑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류타도 지지 ㅅ어서 외우기로 했다. 외우
는 대는 쓰면서 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되어서 류타는 연필을 다시 쥐고 
쓰기 시작했다. 그때 가게문이 드르륵 열렸다. 스가이 형사가 벌떡 일어나려다가 
여자의 가는 목소리가 들리니까
  "야, 놀랬다!"
하며 다시  주저않았다.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스가이 형사의 웃음소리가 제일 
컸다.
  3
  그날 아침 4학년 2반은 국어시간이었다.
  칠판에는 "제삼 요코하마"라는 제목이 분필로  써 있다. 지금 학생들은 일제히 
읽고 있다.
  "요코하마는 도쿄의 서남으로 8리  반쯤 떨어진 곳에 있고 대무역항이며 상선
의 출입이 끊이지 않는..."
  대무역항이라고 읽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흩어졌다. 오늘 처음 배우는 글씨다.
  "좋아. 다시 한 번 되풀이해서 읽어 보자."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때 선생님께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급히 교단
을 내려서서 교실문을  열고 복도로 얼굴을 내밀었다. 모두들 무슨  일일까 하며 
일제히 복도쪽을  봤다. 복도쪽 창의 아래  두 단은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복도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들어와요. 주저하지 말고."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의  소리가 들렸는지,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조촐한 꽃
무늬가 있는 솜옷 조끼를 입은 여자아이의 묶은   머리가 약간 흔들렸다. 여자아
이는 두 손으로 얼국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었다.
  "늦게 왔구나!"
  누군가가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은ㄴㄴ 엄숙한 얼굴로 소리나는 쪽을 보셨다. 
모두 조용해졌다. 류타는 여자아이가 울면서 들어온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아! 나카하라 요시코다.'
  나카하라 요시코는 시업식  다음날 탄광촌에서 전학온 학생이다.  전학할 때는 
대개 부모가 같이  오는데 요시코는 혼자 학교에 왔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
버지가 환자이고 어머니는 바빠서 요시코 혼자 왔다고 했다.
  "어떠냐, 장하지?"
하며 요시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리고 나서 보름도 지나지  않았고 류
타는 여학생과 이야기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요시코에 관한 일은 아무것도 몰
랐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런 일이 있었다. 세수하고 이르 닦고 있는데, 뒷문에서 낯
선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에 있던 루타가  문을 여니까 웬인지 거기에 요시코
가 서 있었다. 요시코는 볏짚 꾸러미에  싼 낫도(발효한 콩에 간을 해서 말린 것
-역자주) 몇 개를 넣은 대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낫도 안 사시겠어요?"
  요시코는 얼굴을 숙인 채 말했다.
  "어머니, 낫도 사래요."
  루타는 당황하며 부엌에  계신 어머니를 불렀다. 흰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기
쿠에가 내다봤다.
  "어머! 귀여운 낫도 장사네. 너 몇 학년이니?"
  "4학년이에요."
  "그래, 4학년! 어느 학교지?"
  "다이에이 소학교예요.:
  "그러면 우리 류타와 같은  학교네. 우리는 낫도를 좋아하니까 세 개 다오. 또 
오너라."
  어머니는 요시코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낫도를  세 개 건네면서 요시코는 
겨울 얼굴을 들고  살짝 웃었다. 그 눈과  류타의 시선이 부딪쳤다. 류타는 얼른 
머리를 숙였다.
  그런 일이  오늘  아침에 있었다. 류타가 일어났을 때가 6시 30분쯤이었다. 그
렇게 일찍 일어났을 요시코가 왜 지각을 했을까? 낫도를 팔러 다니다가 8시까지 
못 온 것일까? 류타는 왜 그런지 요시코의 지각이 자기 책임인 것 같았다.
  사카베 선생님은 앞줄에서 넷째  자리에 요시코를 않히고 교단에 올라가 모들
르 둘러보셨다.
  "지금 '지각생이구나.' 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모두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각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여 그랬을거다. 모두들 들
어라. 지각은  나쁘다고 누가 정했지? 요시코가  대체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아무도 손을 못 들었다.
  "그러면 들어 보자. 구스오, 너는 몇 시에 일어나지?"
  "네, 7시에... 그쯤입니다."
  "7시에 일어나는 사람 손들어!"
  7, 8명이 손을 들었다.
  "아사다. 너는 집이 학교 바로 옆이라 7시 반에 일어난다고 요전에 자랑했지."
  아사다는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아이구, 아파라!"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선생님도 조금 웃으시고 나서 말씀하셨다.
  "그래, 아사다의 좋은 점이 그거다. 그런데 요시코는 매일 아침 5시 전에  일어
난다.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을 짓고, 일터에 가시는  어머니를 도와서 도시락을 
싸고, 병든 아버지의 얼굴을 씻겨  드리고, 그리고 전날 사다 둔 낫도를 팔러 가
지. 낫도를 될 수 있는  한 다 팔아야 되는데 요시코는 걱정이지. 낫도가 팔리는 
날도 있고 안  팔리는 날도 있으니... 빨리 팔리면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있지만 
안 팔리는 날은 빈 속으로 학교에 온다..."
  사카베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상해진다. 모두 선생님을 쳐다본다. 류타도 숨을 
죽이고 보고 있다. 선생님의 입이 일그러지더니 떨리고 있다.
  "요시코는... 요시코는..."
  선생님 목소리는 드디어 울음으로 바뀌었다. 몇 사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요시코, 낫도 장사는  좋은 일이야! 낫도는 밭의  고기라고 하는 콩으로 만든 
영양분 많은 식품이야. 이것을  먹으면 몸이 튼튼해 지고 머리도 좋아진다. 우리 
모두 낫도를 먹기로 하자."
  "네에-."
  남학생도 여학생도 진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의 소학교 때  친구 중에 낫도를 팔던 효자 소년이  있었지. 그 사람은 
지금 어느 대학에서   어려운 연구를 하고 있단다. 두 학년  위에도 낫도 장사하
던 선배가 있었는데 이 사람도 소학교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
이 되었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옛날  부터 낫도 장사를 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단다."
  그때 얼른 아사다가 말했다.
  "그러면 사카베 선생님도 낫도 장사 하셨나요?"
  모두가 와아 하고 웃었다.  선생님도 요시코도 웃었다. 류타만 고개를 푹 숙이
고 있었다.
  '사카베 선생님, 멋있다. 훌륭하다.'
  어쩌면 이다지도 따뜻할까? 류타는 울고 싶어졌다.
  류타는 이상했다. 요시코는 바로 얼마 전에  전학왔는데 선생님은 요기코가 다
섯 시 전에 일어나는  것, 밥을 짓는 것, 환자인 아버지를 돌보는  것, 그리고 낫
도를 팔러 나가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실까?
  류타는 독서를 좋아해서 책이나 잡지 등을  많이 본다. 그래서 <효녀 백국화>
나 계모에서 구박받으며 효성을 다한 <도공 마사무네>의 이야기를 읽으면 감격
했다. 그러나 실지로 마음에 와닿는 어른은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어른들은 대
개 돈 이야기만 한다. 돈이야, 돈이 제일이다." 하고 말한다. 류타도 자기집  거실
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다! 나도 어른이 되면 학교 선생님이 되자.'
  류타는 이때 처음으로 그렇게 마음 먹었다.
  "그건 그렇고..."
  사카베 선생님은 평상시 어조로 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지각은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간단히 좋다 나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학생들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이다. 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들은 늦게 온 사람이 왜 늦었을
까 잘  생각해 줘야 한다. 아침에  어머니가 갑자기 아기를 낳게  되어서 산파를 
불러오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각하면 안 되니까 부
르러 갈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니?"
  모두 또 한바탕 웃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고 싶을때도 있을거다."
  "있어요. 그래요."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학교에 가야  되니 화장실은 나중에 간다고  하다가 길에서 실수하면 어쩌겠
니?"
  이번에는 모두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늦게 오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만약 길에서 놀
다가 또는 일부러 늦잠을 자서 지각하는 것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요시코가 때
때로 늦는 것은 아버지 병이 나을 때 까지야. 모두 알았지?"
  "네!"
  류타는 학교 선생님이 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여름 구름
  이제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류타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제부터 한 달 동안의 여름방학이다.'
  갑자기 몸 안에서 힘이 넘치는 기분으로 얼른  일어나 모지장을 갰다. 녹색 모
기장 속에서 모기 한  마리가 살살 도망치는 것을 모며 '그런데  한 달 동안이나 
사카베 선생님을 못 본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너무나 쓸쓸했다.
  여름방학 동안 선생님은 아사히가와에 안 계신다.  선생님 댁이 있는 와카나이
에 가신다고 했다.  맑은 날에는 와카나이는 류타에게는 아주 먼  곳이라고 생각
된다.
  모기장을 개고 동쪽 차을 활짝 열었다. 다이세쓰  산이 이층에서 우뚝 솟아 보
인다. 다이세쓰 산  위에는 구름 한점이 없다. 오늘도 찌는  듯한 하루가 되겠지. 
이제 6시 좀 지났는데 했빛이 뜨겁다.
  류타는 더  덥기 전에 방학책 숙제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세수도  이 닦는 
것도 나중 일이다. 잠옷 바람으로 방학책 첫 장을 폈다. 어제 구스오가
  "류타야! 우리 방학책이 빨리 하기 경쟁하자."
라고 말했다.
  "경쟁?"
  "응, 누가 먼저 다하는지. '시작!' 하고 하자. 우리 집에서나 류타네 집에서... 어
때? 재미있겠지?"
  "한 번에 다 써 버려? 그래, 재미있겠다."
  "그래. 재미있어. 반나절이면 끝나지. 그러면  여름방학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수 있지."
  "그렇구나!"
  류타는 좀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냐, 안 할래."
  "왜? 경쟁하는 거 재미있는데!"
  "응, 재미있지.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재미있을 때는  조심하라고... 그리
고 방학책을 주실 때 이것은 한 달 동안 매일 한 쪽씩 하는 거라고 선생님이 말
씀하셨잖아. 너도 들었지?"
  구스오는 좀 기분 나쁜 얼굴로
  "에-. 선생님이  그런 말씀 하셨나? 나는  못 들었어. 좋아. 그러면  나 혼자서 
다하고 말 거야. 류타야. 너는  매일 조금씩 하려무나!"
라며 비웃듯이 말했다.
  그 일을 생각하며 류타는 연필을 들었다. "매일 조금씩 하려무나!"라고 구스오
가 말했듯이 방학책은 한  쪽 하는데 10분 걸릴 정도의 숙제다.  매일 아침 10분
쯤 일어나는 대로 공부하는 것은 류타에게는 아무  부담도 안 된다. 방학책을 한
꺼번에 해버리는 것보다 류타는 자기 방식대로 하는 것이 좋았다.
  방학숙제는 금방 끝났다.  아래층으로 세수하러 내려가니 팥밥을  뜸들이는 구
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어머니! 오늘 무슨 날인가요?"
  빨간 앞치마를 하시고 무를 썰고 있던 어머니가 뒤돌아보면서
  "삼남매 아니니? 형제 생일쯤 기억해 ㄸ야지."
  "그렇구나, 야스시 생일이구나!"
  "다되면 야스시와 같이 마노네 집에 가져가거라."
  류타는 "네."하고 대답했다. 싫어서가아니라  기뼈서 그랬다. 기쁜 것만 아니라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다. 류타와 구스오네 집은 2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걸음에 갈 수 있다.
  류타의 아버지와 구스오의 어머니는 남매여서 어릴  때부터 자주 왕래했다. 일
주일 동안 한 번도  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학교에 갈때도  구스오가 가는 길에 
류타의 집에 들러서 같이 갔다.
  류타의  집 바로 옆에는 긴자 거리라는  번화가가 있다. 긴자는 영화관인데 가
끔 도쿄에서 연극공연도 온다. 객석이 칸칸이 막혀  있어서 연극을 보러 갈 때는 
모두 찬합에 스(김밥) 같은 것을 가지고 간다. 그 긴자가 있어서 그곳을 긴자 거
리라고 한다. 양복점, 야채가게, 과자점, 어묵가게, 철물점 등이 죽 서 있고 큰 시
장도 있다. 이 길을 약 4백미터쯤 가면 바로 학교다.
  그건 그렇고, 아까도 말했듯이  류타의 집과 구스오의 집은 아주 가깝다. 그래
도 류타는 구스오의 집에 심부름 가는 것ㅇ  왠지 즐겁다. 구스오의 아버지 마노 
소오스케는 조카인 류타에게 별로 말을 잘 안 하지만 마음이 내키면
  "이제부터 대학은 나와야..."
라고 말한다. 소오스케는 상인의 자식으로 태어나서도 대학에 갔다. 그리고 회사
에 근문한다. 그래서  중학교만 나와 가업을 이어온  류타의아버지 세이다로오에 
대하여 적지 않은 우월감을 갖고 있다.
  "류타야! 넌 구스오와 같이 제국대학 정도는 가야 된다."
  소오스케가  그렇게 말할 때는 기분이 좋을때다.  류타는 이 숙부를 보며 대학
에 가는 일이 그다지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숙부는 항상 불만이 있는 
듯한데 아버지는 훨씬 행복해 보인다.
  구스오의 집에 가라는 말을 들으면 요사이 류타는 저 낫도 장사하는 요시코를 
생각하게 된다. 그건 류타와 구스오의 집 중간쯤에  긴 판잣집에 있는데 이 가운
데 한 집에 요시코가  부모와 동생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긴 판잣집은 
한 채에 다섯 집이 나누어 살고 있고, 두 칸  폭 정도의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
주보고 있다. 그 골목 중간쯤에 두레박 우물이 있고, 우물옆에 나무로 만든 물이 
흐르는 장치가 있다.  여기서 10가구의 사람들이 쌀을 씻거나 야채를  씻거나 빨
래를 한다. 흘러가는 물이 많으면 물이  넘쳐서 쌀뜬물이 질척질척하게 골목길을 
적신다. 거기에는 침구사나 점쟁이, 요리사, 시장  점원 등 독신자와 세대주가 반
반씩 조용히 살고 있다.
  류타는 요전까지 이  집에는 노인들만 사는 줄 알았다. 로닝들이  사는 집이라
는데(로닝은 소속이 없는 무사들을 말함-역자주), 무사라고는  어디에도 없다. 기
품 있는 사람들만 살았을때도 있어서 스스로 로닝이 사는 집이라고 했는지도 모
른다.
  이 곳에 요시코의  집이 있다고 구스오가 알려 주었다. 3개월  전에 둘이서 이 
곳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구스오가 멈춰 서서 류타의 옆구리를 찔렀다. 세 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요시코가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류타가 좋아하는 애다."
  구스오가 속삭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런..."
  류타는 놀랐다.
  "얼굴이 빨개졌다, 빨개졌다."
  구스오가 손뼉을 치며 놀렸다.
  "빨개지기는 왜 빨개져!"
  이렇게 말했지만 류타 자신도 빨개지고 있다고 느꼈다.
  류타의 집에서는 매일  아침 요시코의 낫도를 팔아 준다. 다행히  식구들이 모
두 낫도를 좋아했다. 그러나
  '더러는 사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류타도 생각할  정도로 사주었다. 이상하게도 매일 아침 정한  시각에 요시
코가 나타나니까 기다려진다. 비가  오면 걱정이 되고, 바람이 불어도 신경이 쓰
였다. 매일 아침 요시코가 류타의  가슴에 있다. 혹시 안 오는 날이 있으면 쓸쓸
했다. 학교에 가서 건강한 요시코를 버면
  "왜 아침에 안 왔니?"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단지 그것뿐인데 구스오가  "류타가 좋아하는 아
이"라고 말했을 때 갑자기 얼굴이 뜨거웠다. 요시코는 7월에 들어서서는 낫도 장
사를 그만두고, 그 동네에서 심부름을  하며 1, 2전 받는 것으로 용돈을 벌고 있
었다.
  요시코가 낫도 장사를 할 때였다. 같이 있던 구스오가
  "잠깐 들여다볼까?"
하고 요시코의 집을 턱으로 가리켰다.
  "들여다봐?"
  구스오는 묘한 버릇이  있어 어디나 들여다보기를 좋아했다.  학교에서 복도를 
걷다가도 다른 교실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위생실도 들여다보려고 하고, 이과 
교재실도 보고 싶어했다. 때로는 여자 화장실을  들여다보려고 해서 류타가 말리
기도 했다.
긴자 거리를 걷고 있을 때도 긴자의 입구에서 가만가만 안을 들여다보며,
  "아저씨, 건강하세요!"
라고 말을 걸어 때로는  "조금 보고 가라." 고 아저씨가 허락하면 2, 3분쯤  오가
미 마쓰노스케의 연기를 보고 으스대기도 했다.
 요시코의 집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도 그 버릇인 줄 알면서도
  "그만두자.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건..."
하고 주의를 주는 류타에게.
  "오늘은 미치요가 와 있어."
라며 구스오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미치요는 매일 아침 자기집에  오는 요시코를 귀여워하여 때때로 낫도 장사를 
도와 줄까 하고 말해서
  "네가 무얼한다고 그러니?"
하고 아버지께 말씀을 듣는 것을 류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온르 여기 미치요가 
와 있는 것을 구스오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류타가 이상하게 여길 때  구스오는 현관에서 가만히 요시코의 집안을 들여다
봤다. 동시에
  "누구야? 집안을 들여다보는 건?"
하며 목덜미를 잡고 큰 소리를 친은 미치요였다.
  "아니, 구스오구나! 빈집털이인  줄 알았네."
  결국 빈집을 노리는 빈집털이가 있다느 것을 전당포집 딸인 미치요는 알고 있
었다.
  "자, 지금부터 내가 낫도 장사를 하러 간다. 낫도!"
하고 미치요가 자랑스럽게 말하니까 뒤를 따라온 야스시가 
  "낫-도오-!' 라고 외치는 것쯤 나도 할수 있어."
하고 뼈긴다. 구스오도 무안한 것을 감추며
  "나도 그것쯤은 할 수 있어."
라며 웃었다.
  요사코가 외치는 "낫도! 낫도!"의  목소리는 묘하게 애절한 듯 그러나 잘 들리
는 목소리다. 낫도를 팔아  주고 싶은 목소리다. 요시코가 보통 때처럼 광주리에 
낫도를 넣고 밖으로 나갔다.
  "자 야스시, 외쳐 봐!"
  미치요가 누나티를 내며 명령했다.
  "그거야 간단하지 뭐! 낫... 저...낫도!"
라고 작은 목소리로 우물쭈물 소리를 냈다. 모두가 웃었다.
  "뭐야? 모기가 우는 것 같네. 말한게 헛거야."
미치요가 말하자 요시코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구스오가 해봐."
  지금 막 큰소리친  터라 구스오는 싫다고 못한다. 구스오는 공연히  큰 기침을 
하고
  "아 저기 옆집 아주머니가 온다.!"
  "누가 오면 어떠니? 해봐!"
  "그래도 안돼. 아! 또 사람이 오네."
  "사람이 오니까  외치는 거야! 뭐야,  아무 소리도 못하네.  야스시보다도 못하
네."
  "나, 못해!"
라고 말하며 그래도 힘써서
  "낫-도-!"
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그러나 큰 소리는 못 냈다. 낫도라는 글씨를 읽는 것같이 
작은 소리였다. 그때 처음 류타는 "낫도"라고  소리내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이 아
님을 알았다. 남이 하는 것은 쉽게 보인다. 아마 요시코도 저렇게 맑은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바나나를 팔면서 좌판을 드들기는 것  하나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류
타는 생각하게 되었다.
  팥밥이 든 따뜻한 찬합을  들고 지금 류타는 빨리 걷고 있다.  도랑 옆에 피어 
있는 제비꽃이 여름 햇빛을  반사했다. 커다란 나비 한 마리가 그  꽃 위로 날고 
있다.
  '요시코는 있을까? 나갔을까?'
  요시코의 집 가까이 오니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야스시!"하고 동생을 부르는 
그 때였다.
  '아, 요시코다!"
  나팔꽃 무늬의 옷을 입을 요시코가 우물가에서  밥공기를 씻고 있었다. 류타는 
안 본 것처럼 똑바로 구스오의 집으로 걸어갔다.
  2
  8월 25일. 2학기가 시작되었다.  한 달 만에 사카베 선생님과 급우들과 만나는 
것이 류타는 왠지 쑥스럽게  느껴졌지만 시업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와 방학책
과 통시표를 선생님께 내고 나니 쑥스러운 기분은 사라졌다.
  "모두들 건강히 잘 지냈지? 선생님도 잘  지냈다. 오늘은 방학 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한 사람씩 말해 보자.  그것이 끝나면 넷째 
줄에 있는 남학생이 남아서 봉안전 청소를 해야겠다."
  교실이 떠들썩해졌다.  봉안전 청소 때문이  아니라 방학 동안의  아야기를 한 
사람씩 해보라는 것 때문이다.
  "바다나 산에 간 사람?"
  선생님이 물었으나  손을 든 것은  한 사람뿐이었다. 여름방학에  바다나 산에 
가는 습관은 아직  아사히가와의 소학교에는 거의 없었다. 첫째 줄  제일 앞에서
부터 차례로 학생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성묘가서 뱀을 만났다는 아이, 봉오
도리의 밤에 온 집안이 구경간 사이 도둑을  맞았다는 아이, 친척집에 가서 잠결
에 다른 방에  가서 잤다는 아이, 이것저것 재미있는 이야기가  차례차례로 나왔
다.
  '무엇을 이야기할까? 곤란한데...'
  류타는 생각했다. 방학 동안  겪었던 일 중 류타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몇 
가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재미있게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중 
야시장에서 바나나를 파는 아저씨가 바나나를 팔면서 말한 것이 생각났다.
  "좋습니까? 손님들! 이것만은 기억해 주십시오. 여자를 울리는 남자는 제일 못
된 사람이에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남자는 여자를 울려서는 안 돼요."
  이 말이 류타에게는 왜 그런지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이런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가장 생각  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까?
  또 하나 있다. 구스오와 내가 서로 양쪽 집에서 번갈아가며 잣다는 것이다. 모
기장 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즐거웠고, 마치 요도 가세코도  야스시도 류타
의 모기장에 들어와 불을 끄고 캄캄한 방에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재미있었다.
  또 하나 마음에 남는 것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어느 날 점원인 료카치가 가게
를 닫고 술잔을 기울이며
  "저 요시코는 가난한 집 딸이지만 현명한 아이야."
라고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 말에 류타는 왠지 기뼜다. 그때 아버지 세이다오가 
말했다.
  "너희들 지금 료카치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 생각도 없니?"
  평상시와 다름없는 목소리지만 어딘지 강한 말투다.  모두 얼굴을 서로 쳐다봤
다. 그 때도 구스오가 와서 자고 가려고 같이 있었는데 맨 먼저
  "별로 뭐라고 생각이 안 드는데요, 외삼촌!"
하고 대답했다. 류타도 미치요도 구스오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버지, 뭔데요?"
하고 물었다.
  "알았다.역시 그럴 거다."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잘 들어 보라. 료키치가 이렇게 말했지. 오시코는 집은 가난해도 머리가 좋다
고 말야. 어딘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사람들이 '저 아이는 가난한 집 자
식인데도 머리가 좋아.' 하고 말하는 것이 말이야."
  "아아! 그렇군요."
  류타는 깨달았다.  "저 사람은 부자지만 머리가  좋아." 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 아이는  가난한 집 자식인데 머리는 좋아." 라고는  말하기도 
한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다. '저 놈은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한다.' 그것이 보
통 생각이다. 가난한 것과 머리가  좋다는 것은 연관이 잘 안 되고, 가난하고 머
리가 나쁘다는 것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대체 왜 그럴까?'라
고 류타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도 저것도 뒤떨어져 있다.' 
고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저 아이는 가난해도 머리가 좋아."  라는 말을 조
금도 거리낌없이 쓰는 것이다. 이것이 류타의 마음에 강하게 남은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남은 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구스오 차례가  되었다. 대체 구스오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듣고 있으니까
  "요시코가 수영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여자가  저렇게 수영을 잘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랐습니다."
라고 말했다.  류타도 요시코가 수영하는 것을  봤다.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 
추베쓰 가으이 철교 아래로 물장난하러 갔을때다.  미치요와 가세코는 발만 담그
고 놀았고 요시코도 같이 있었는데 구스오가 말했다.
  "뭐야! 여자들은 아무도 헤엄을 못 치는구나!"
  그 말에 요시코가 발딱 일어났다.
  "헤엄칠 수 있어! 구스오, 나와 시합할래?"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옷을  벗고 아주 멋지게 헤엄을 쳤다. 그것보다, 구스오
는 수영을 잘한  것보다도 여럿이 있는 앞에서  벌거벗은 것에 놀랐는지도 모른
다. 그러나 벌거벗은 것은 차마 말하지 않았다.
  드디어 류타의 차례가  되었다. 류타는 요시코이 이름은 말하지 않고,  "가난해
도 머리가 좋아."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한 대로 말했다.
  "음, 류타의 이야기에 선생님도 제일 동감이다. 모두 여러 가지 생각나는 이야
기를 했지만 류타가 말한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사카베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화제로 삼아 주셨다.
  그 시간이 끝나고 넷째 줄에 앉은 남학생이 봉안전 청소를 하러 가게 되었다.
  4학년이 되었을 때 교감 선생님이  실내 운동장에 4학년 전체를 모아 놓고 봉
안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교감 선생님은 작은 칠판에 봉인전이라고 쓰시고
  "읽을 수 있는 사람?"
하며 모두를 돌아보셨다.
  대부분이 못 읽었다. 교감 선생님은 토를 달고  모두 소리를 맞추어 읽게 하셨
다.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이번에는 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직원실 현관으로  향한 창문 왼쪽에 붉은 벽
돌로 작은 건물인 봉인전이 서 있다.
  "이 봉인전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압니까?" 
  "고싱에이(천황 폐하의 사진)."
  학생들의 대답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왔다.
  "고싱에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지명받은 학생이 말했다.
  "천황폐하와 황후 폐하의 사진입니다."
  "그렇죠. 봉인전에는  고상에이와 교육칙어가 들어 있어요.  즉, 나라에서 맡긴 
중요한 보물들이 들어 있는 겁니다."
  교감 선생님은 엄숙한 얼굴을 하셨다.
  "왜 그렇게 중요한 보물을 학교 안에 두지 않고 여기 두는지 아는 사람 손 들
어 보세요."
  누구도 손을 못 들었다.
  "이것이 중요한 점이죠.  보물이니까 불에 타면 큰일이죠. 만일 교실  난로에서 
불이 나서 학교가 타면 황공하게도 고싱에이가 타버리죠. 자! 이렇게 되면 큰 일
이겠죠?"
  교감 선생님은 엄한 얼굴이 되었다.
  "어떤 소학교에서 고싱에이가  불에 탄 일이 있었어요.  교장 선생님은 너무나 
면목없어서 어떻게 했을까요?"
  학생들은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4학년들이 알 턱이 없다.
  "그 교장 선생님은 배를 갈라 죽었어요."
  소리지르는 아이도 있고, 한숨을 쉬는 아이도 있다.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보물이 들어 있는 곳이 봉인전입니다. 다
른 학교에서는 봉인전 청소를  사환을 시켜서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4, 5학년
이 청소를 하게 합니다. 4학년은 이제 충분히 선생님 말씀을 들을 줄 압니다. 진
실하게, 건방진 태도를 하지  않고 열심히 청소해 줄 것으로 압니다. 고등과 2학
년이 되면 좀 성실치 못한 점도 있어요. 그건 그렇고, 여러분 4학년이 이 중요한 
곳을 청소하기로 되었으니 잘 해주기 바래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교감 선생니ㅁㄴ 청소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엉덩이를 봉안전 쪽으로 향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풀을 뽑을 때도 비질을 할 
때에도 이렇게 뒷걸음질로 해야 됩니다."
  그렇게 말씀하면서 교감  선생님은 교단에서 떨어질 뻔했다.  교감 선생님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신 후로 4학년 2반에 당번이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 교감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겠지?"
  사카베 선생님이 봉안전 청소를 하러 가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엉덩이를 그 쪽으로 향하지 말아야죠."
  아사다가 대답했다.
  "아, 그렇다. 감독은 교감 선생님이 하신다. 야단맞지 않게 조심해라."
  "네!"
  모두들 그렇게 긴장하지 않고 교실을 나왔다.
  봉안전 앞에 가니까, 교감 선생님이 계실 줄  알았는데 전 담임인 가와치 선생
님이 엄한 태도로 모두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다. 류타는 왠지 싫었다.
  어쨌든 봉안전으로 등을 돌리면서 안 되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먼저 풀뽑기부터 시작했다. 모두  말이 없다. 입이 가벼운 아사다도 구스오도 조
용히 풀을 뽑고 있다.  풀을 뽑으면서 조금씩 뒷걸음질해 갔다. 류타는 부자연스
럽다고 느꼈다.
  손을 움직이면서  류타는 구스오 집에  있는 천황과 황후의  사진을 생각했다. 
주부잡지의 신년호에는 매년 천황과 황후의 사진이  나온다. 그것을 구스오의 부
모는 소중하게 틀에 넣어  걸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구스오의 방에도 사진
이 걸려 있는데  구스오는 늘 시진쪽으로 발을  뻗고 잔다. 즉, 누워서 쳐다보면 
잘 보이는 곳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 사진과 봉안전에  있는 사진은 같은 것이 아닌가? 구스오의  집에 만일 불
이 나서  사진이 타 없어지면  고모와 고모부도 배를 갈라  죽음으로 용서를 빌
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류타의 아버지는 황송하다고  하면서 천황의 사진을 걸지 
않았다.
  '그러면 고싱에이는 특별한 것인가?"
  사진을 불태우면 안  도며, 어느 집에나 봉안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 접이 
류타에게는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안 되는 것은 또 있다. 봉안전의 앞이나 옆
을 지날 때에는 경례를  하게 되어 있다, 차려 자세로 바로  서서 90도까지 머리
숙여 공손히 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 곳을 지날 때, 달리
기 시합을 할 때도, 술래잡기를  할 때도 똑바로 멈추어 서서 절을 하고, 그리고 
나서 쫓아가거나 쫓기거나 한다.
  그러나 류타가 보았을  때 봉안전에 절을 하는 것은 대부분  학생들뿐이다. 지
금도 이렇게 풀을 뽑으면서  바라다보면 어른들은 대부분 봉안전의 소재도 모르
는 듯  지나쳐 버린다. 학교 선생님들도  울타리 밖에서 절을 하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다. 교장 선생님이나 가와치 선생님  외에 다른 선생님들은 봉안전 정
면을 지날 때 외에는  절을 안 한다. 학생들에게만 절을 시키고  어른들은 안 하
다니 이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중에 천천히  이것에 대해서 사카베 선생님께 
여쭈어 봐야겠다.
  '맞아. 아사다도 이상한 말을 했지.'
  다시 류타에게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아사다의 집은 학교 정면 현관의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애, 류타야! 우리 집 변소는 봉안전쪽을 향해 있어. 그래도 벌받지 않을까?"
  큰 발견이나 한 것같이 아사다가 말했다. 그  때는 아사다와 둘이서 사카베 선
생님께 여쭈러 갔었다.
  "걱정하지 마라. 집안일은 집안일이다. 안심하고 소변을 봐도 된다."
  사카베 선생님은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큰 소리로 웃으셨다.
  풀뽑기가 끝났다. 학생들은  키보다도 큰 대나무 바로 또 뒤걸음  질하면서 뽑
은 풀을 쓸어모았다.  8월도 20일이 지나면 아사히가와는 시원해져서  그리 덥지 
않다. 선선한 날이었으나 모두 콧잔 등에 땀이 났다. 4학년으로서도 봉안전 청소
에 신경을 썼나 보다. 쓸어모은 것을  버리고 왔더니 가와치 선생님이 "류타" 하
고 갑자기 부르셨다. 류타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선생님쪽을 향하면서 어
찌할까 망설였다. 류타는  봉안전에 등을 돌릴까 봐 주의하여 선생님  얼굴을 봤
다.
  "청소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지?"
  "..."
  순간이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별로."
  "별로? 아무 생각도 안 했니?"
  "...예."
  류타가 대답한 그때 갑자기 성난 큰 소리가 났다.
  "이놈아, 아사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모두 놀라서 아사다를 봤다. 아사다는 청소가 끝난  대나무 비를 두 다리 사이
에 끼고 유유히  서 있었다. 아사다는 깜짝 놀라고, 모두의  눈은 둥그래졌다. 가
와치 선생님이 재빠르게 뛰어가서 아사다의 빰을 때렸다.
  "너, 황공하게도 봉안전 청소하는 대나무 비를 가랑이에 꼈구나!"
  다시 한 번 아사다의 볼에 철썩 소리가 났다. 그때,
  "가와치 선생님! 아사다가 뭘 잘못했습니까?"
  사카베 선생님의 목소리엿다. 류타는 '아! 잘되었다.'라고 생각했다.
  "이 아사다의 꼴을 보시오! 아사의!"
  가와치 선생이 아사다를 가리켰다.
  "그것이 어떻습니까? 가와치 선생님! 천황께서는  학생들의 두려움의 대상입니
까, 존경의 대상입니까? 가와치 선생님의 교육방침이 나는 이해가 안 됩니다."
  가와치 선생은 입술이 떨리며 뭐라 말려고 했다.
  "가와치 선생님! 천황은  아사다의 지금 이 모양을 보시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입니까, 귀엽게 보시는 분입니까? 봉안전에 등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은 천황
께서 요구하신 것입니까?  아니죠. 천황께서는 이런 아이들이 신경을  쓰면서 청
소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 안 하십니다.  황실과 국민 사이에 담이  있어서는 안 
되지요!"
  류타는 집으로 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몰라서 거기 서 있었다.
봉안전 옆에 서  있는 것은 피곤했다. 등을  안 돌리니까 피곤했다. 어느 학교의 
여학생들은 교정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저도 모르게 봉안전에 들을 돌렸다고 한
다. 그것을 본 교사가 힘껏 그들의 엉덩이를 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 돌아가도 좋다. 선생님이 같이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 가와치 선생님, 저
의 책임입니다. 벌을 주시려면 저에게 별을 주세요!"
  학생들은 한걸음에 뛰어서 집으로 갔다. 가와치 선생이 소리쳤다.
  "건방진 것! 반드시 후회할 때가 올 거다."
  가와치 선생은  모두에게 등을 돌려  현관으로 들어갔다. 아사다가  아직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류타도  갈 수가 없어서 있고... 가와치 선생님이 싫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카베 선생님은 아직도  흐느끼고 있는 아사다와  류타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아사다야, 가와치 선생님이 나쁜 것이  아니다. 세상이 이상해지고 있어. 고싱
에이가 불에 타서 배를 가른다든지, 교육칙서를 잘못  읽은 것 때문에 오랜 세월 
훌륭하게 근무하신 교장 선생님이 사표를 낸다든지,  이런 세상이니까 가와치 선
생님은..."
  사카베 선생님 눈에 눈물이 보였다.
  가구라오카 언덕
  '좋은 날씨라서 잘되었다.'
하고  류타는 가려고  하는  언덕을 보았다.  9월의  하늘에는  맑고 흰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오늘은 류타네  6학년 2반의  취사 소풍날이다. 사카베  선생님은 4학년 때도, 
5학년 때도, 취사  소풍을 데려가 주셨다. 각자 주먹밥을  가져오고 감자나 당근, 
우엉 등을  조금씩 가져온다.  돼지고기는 선생님이 사  오신다. 벌써 3년째여서 
모두 취사  소풍의 요령을 잘  알고 있다. 이  취사 소풍은  6학년에서는 사카베 
담임 선생님이 담임한 반만 가니까 다른 반 아이들은 무척 부러워한다.
  6학년 1반  선생님은 젊은  분이고 사범학교 출신의  남자 선생님인데 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뚱뚱한 분이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새하얀 이가  아주 건강하게 
보인다. 6학년 1반 학생들이 취사 소풍을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남자야. 취사는 여자나 하는 것이지."
라고 한마디로  거절한다고 한다.  3반 선생님은  40대 중반쯤 되신  선생님인데 
항상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복도를  걸으신다.  목소리도 적다.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이상하게  생기가 없다.  취사  소풍  같은 것은  말해야  소용없는 
선생님이다,  4반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인데   언제나  보라색  무늬의  명주 
기모노를 입고 보라색 치마를 입고 있다.
  "그것은 무리야."
라고  하는  말이  입버릇처럼  되어  있어서,  이  선생님께서  일요일에  자기 
학생들을 위해 취사 소풍을 데려갈 용기는 없어 보인다.
  선두에 걷고 있는 것은 구스오다. 구스오는 6학년으로는 매우 큰 키다. 허리에 
주먹밥이 들어 있는 보자기를 매고  망에 넣은 피구공을 어깨에 메고 기분 좋게 
걷고 있다. 류타는  제일 뒤에서 걷고 있다.  구스오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는 사카베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류타는 가슴속에서 되풀이하여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어제 선생님께서 류타를 남으라고 하셨다. 류타는 무슨 일인가 하고 불안했다. 
사카베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류타의 옆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너, 정말 중학교에 안 가니?"
  선생님은 좀 걱정스러운 얼굴로 류타를 보셨다.  왜 남을고 하셨는가 걱정했던 
류타는 안심했다.  6학년도 9월에  접어들고부터는 수험생을  위한 보충  수업이 
시작된다.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손을 들어 봐라."
  선생님이 물으실  때 반의  3분의 1정도가 손을  들었다. 구스오가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며  손을 들었다. 류타는  기뻤다. 요시코의  아버지가 요시코가 
4학년 때인 재작년 10월경부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근처에 있는 주류 제조 
회사 '기다노마쓰'라는  곳이다. 누나인  미치요의 소개로  양 집안  식구 모두가 
알게  된   지  2년이  지났다.   요시코의  아버지가  취직되었을   때  아버지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기다노마쓰'는 든든한 회사니까 잘 되었어."
  '기다노마쓰' 는  이름이 알려진 회사였다.  아사하가와는 강이 흐르는 도시다. 
이시카리 강과  그곳에 연하여 있는 우슈베쓰  강, 추베쓰 강,  비에이 강 등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수량도 풍부하고 물도 맑았다. 또 아사히기와를 
둘러싸고 있는 가미가와 분지는 가미가와 백만 석이라고 불리는 쌀이 많이 나는 
곳이므로, 류타의 집을 중심으로  반경 5백 미터 이내에만도 6, 7개의 술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선두를 다투는 회사에 취직되었으니 류타도 기뻤다.
  도저히  낫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병이  낫게 했는지,  하여간 판잣집에  사는 
침구사의 침에  효력을 봤는지,  뜸이 낫게  했는지, 하여간  요시코의 아버지는 
거뜬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요시코는  낫도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어머니도 일터에 나가지 않으셔도 되었다.
  사카베 선생님께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느냐고 물으셨을 때 류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왜지? 고등과를 나와서 곧 전당포 일을 하려고?"
  "저는... 전당포 일은 안 할 거예요."
  "그러면 무엇을 할 생각이지?"
  사카베 선생님은 류타의 얼굴을 들여다보셨다.
  "선생님, 저은 고등과를 나와서 사범학교에 사고 싶어요!"
  "사범학교?"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큰 소리로 되물으셨다.
  "네!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사카베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류타야."
  선생님은 뚫어지게 류타를 보셨다.
  "저는 사카베 선생님을 제일 존경해요. 선생님이 담임하셔서 모두  즐거워해요. 
왠지  모르지만 매일매일  즐거워요. 저는  이것이 아주  멋지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
  "제가 선생님같이 훌륭한  선생님은 되지 못한다. 해도  그래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중학교에 안 가고 고등과 2년을 마치고 사범학교에 가겠어요."
  "당했다! 당했어. 너에게 당했어."
  사카베  선생은  양 팔꿈치를  책상에  고이고  머리를  감싼  채 중얼거리듯 
말했는데 말끝이 좀 떨렸다.
  "안 돼요, 선생님?"
  류타는 진지했다. 2, 3일 전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
  "그렇구나! 너도 대학에 안 갈 거냐."
라고 말씀하셨다.  조금은 낙담하신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대견하다는 말씀 
같기도 했다. 그 말씀을 사카베 선생님께 전했다.
  "류타야."
  사카베 선생님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보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기쁘다. 지금까지  7년간 교사 생활 중에서 이렇게  기쁜 적은 별로 
없었지.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같은 길을 택하는 것을, 그 말을 들었을 
때..."
  선생님은 팔짱을 낀  채 천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뒤돌아 서서  류타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류타야! 일본  교육계를 위해 류타 같은  사람이 교사가 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중요한  결심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면 여러 
가지 일로 울어야 할  일이 많다. 예를 들면 류타도 신문에서  봤겠지만 두 달쯤 
전에 고등과 2학년 학생이 자살했다. 미야기겐에서다."
  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라면  류타도  알고 있다.  고등과 2학년 
학생이 아버지 명령으로  논에 물을 대러 갔다. 그런데 가뭄이  계속되어서 물은 
한 방울도 없었고, 논의 벼는  모두 말라서 죽어 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절망한 
끝에 자살했다.  농가의 어두운  장례를 생각하니  살아갈 의욕을  읽은 것이다. 
그런 소년의 고통을 선생님은 모두에게 이야기해  주셨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지. 자세한 것은  어떻든지, 지금도 죽은 아이가 불쌍하다. 
만약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  마음에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겠지!  그렇다고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었어도 무엇을 해줄 수 있었겠니?"
  류타도 동감이었다.
  '그렇다.  선생님은   멀리  미야기겐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그렇게  마음 
아파하셨다.'
  류타는 더욱 교사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류타야! 가난한 집 딸들이  몸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잇지? 불경기다, 
불경기다라는 말도 들었지?"
  "들었어요.  저의  집  근처에  이토야   은행에  예금했다가  은행이  망해서 
정신이상된 사람이 있어요."
  "아아!  그것은 다이쇼  15년 때의  일이지. 선생님은  말야, 류탸야!  내 학생 
50명에게 교과서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시코가 낫도 장사를 할 
때  선생님은  견디기   어렵게  가슴이  아팠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학생을 
가르치는건가?  자기 힘으로  독립해서 끗끗하게  걸어갈  인간을 교육한다고는 
하지만,  마루자와같이 갑자기  아버지가  도망갔다든가 여러  가지로  학생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 생각이 많단다."
  사카베 선생님은 다시 류타 옆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류타야! 너는 이  사회 전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을 택하기 바란다. 부자가 
안 되어도 좋다.  유명하게 되지 않아도 좋아.  성실한 한 남자가 되어서 사회에 
이바지하기 바란다. 교사의 길보다더 너에게 맞는 길이 있을 거야."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이 자기를 신뢰하고  대등하게 대해 
주시면서 이야기해 주시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 장래의  길을 결정하기에는 6학년은 좀  빠를지도 모르지. 지금은 일단 
중학교에 진학해서 2,  3년 공부해 보고, 그래도  꼭 교사의 길을 택하고 싶으면 
그때 사범학교에 가도 늦지 않아."
  사카베 선생님께서는 류타가 교사가  되는 것보다 다른 길을 택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물이 깨끗한 추베쓰 강에 길이 100미터  정도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여기저기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선두에서 걸어가시던 사카베 선생님이 멈추어  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발 밑을 주의해라. 이 강의 이름을  아는 사람? 그래, 추베쓰강이다. 다이세쓰 
산의 오른쪽에서 흘러가지. 좀더 있으면 고기가 올라오지. 무슨 고기인지 아니?"
  틈을 안 두고 아사다가 말했다.
  "시호비키!"(생선을 소금애 절인 것-역자주)
  모두 웃었다.
  "그렇다."
  사카베 선생님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씀하셨다.
  "시호비키는 연어를 절인 것이지."
  모두가 또 웃었다. 가미가와 신사는 이제 눈앞이다.
  2
  가구라오카라고 불리는  언덕에 가미가와 신사가  있다. 이 신사  경내의 숲은 
50헥타르나  되고  원생림인데 굵은  침엽수가  여러  종류 있다.  언덕  아래는 
유명한 벚꽃의  명소이고 넓은  운동장이 있다. 추베쓰  강은 이 언덕을  따라서 
흐르고 멀리 동쪽에 다이세쓰 산의 수려한 모습이 보인다.
  강과  운동장  사이에  넓은  강변이  있다.  그 일대가  아름다운  공원이다. 
일요인데 사람 그림자도 없다. 언제 와도 조용한 곳이다.
  사카베 선생님은 운동장 중앙에 서서 말씀하셨다.
  "지금 정각 10시다. 한 시간 동안  피구를 하는데, 남자가 피구 코트를 그린다. 
흰줄을 그릴 가루는  남자가 준비해 왔겠지?"
  "네.", "네.", "네.", 여기저기서 대답했다.
  "피구나 끝나면  남자는 강가에  아궁이를 두  개 만들어라.  그리고 선생님과 
같이 저  가게에서 냄비를 두 개  빈다. 여자는 가게  앞 펌프에서 감자, 야채를 
씻고 껍질을 벗겨 썰어  놓는다. 남자쪽 피구 책임자는 구스오다. 취사 책임자는 
류타, 여자는 요시코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돕는다. 알았지?"
  모두  즐거운 얼굴로  소리  높여 "네에-"라고  대답했다.  운동장에 흰  줄이 
그어지고 선생님이 전원을 2열 횡대로 세웠다.
  "번호!"
  구스오가 구령을  붙였다. 씩씩한  목소리가 언덕을  넘어 메아리  쳤다. 빠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 류타는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 한 사람이 빠졌는데, 친척의 
장례 때문이었다. 일요일이니까 출결은 자유다.
  전체를 홍백 두 팀으로 나누고 응원가를 부르기로 했다.
홍군의  응원가와 백군의  응원가는  다르다.  가위바위보로 이긴  백군이  먼저 
응원가를 불렀다.
  기다리고 기다린 지금
  평소 단련한 내 힘을
  오늘은 발휘한다. 이 장소에서...
  배군이  끝난  후   홍군이다.  류타는  홍군이다.  홍군의  응원가를  류타는 
좋아한다.
  하늘은 맑고 땅은 푸른 색
  높은 산은 빛나고
  태양은 하늘을 펼치고
  내 씩씩한 다리는 땅에서 춤춘다...
  노래하면서 류타는 슬쩍 요시코를  봤다.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시선이 간 
백군 속에  요시코가 보였다. 요시코도  류타를 쳐다 봤다.  류타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이겨라, 이겨라! 홍군, 홍군!"
  거기까지  응원했을  때 류타는  다시  요시코를  봤다. 요시코는  그  때까지 
류타를 보고  있었다. 백군  속에 구스오는  없었다. 구스오도 홍군이다.  남자도 
여자도  3분의  2는 기모노를  입고  있다.  무릎에서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겹옷이다. 양복을 입고 있는 아이는 의사나 변호사나 양복점 자녀들이다. 류타도 
가끔 양복을  입는다. 그러나 구스오같이 항상  입지는 못한다. 오늘은 구스오가 
기모노를 입고  있다. 류타가 별로 양복을  안 입는 이유는 양복을  입은 학생이 
적기 때문이다.  눈에 띠는  것이 싫다는 것보다  양복이 없는 친구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호루라기가 시작을 알렸다. 피구가 시작되었다.  홍군의 아사다가 의외로 세다. 
공이  강하게 던져진다.  구스오는  피구를  잘한다. 먼저  적군의  공을 놓치지 
않는다. 받아서는 바로  던지지 않는다. 적진에 던질까. 자기편 쪽에  보낼까? 좀 
망설인다. 그  사이에 적군은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구스오가  적군에게 공을 
던질 때는  여자를 공격한다.  여자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구스오는 
여자를 좋아해," 하며 놀린다.
  류타는  공을 받자마자  바로 제일  앞에  있는 적군  발 아래쪽으로  던졌다. 
류타의 예리한 던지기를  피할 사람이 없다. 한 사람만이 류타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요시코다. 류타가 요시코의 발 아래쪽을 겨냥해도 요시코는 
날쌔게  구부리고 받아넘긴다.  요시코가  때리는 공도  세차다.  그러나 류타도 
요시코도  서로를  겨냥하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서로는  알고 있었다.  류타도  구스오처럼 거리낌없이  요시코를  치고 싶었다. 
그런데 안 된다.
  낫도를  팔  때의 요시코는  왠지  모르게  약하게 보였다.  그러나  무엇에나 
눈치가  빠르고 명랑했다.  아버지 병이  나은  후에는 훨씬  명랑해졌다. 4학년 
2학기  때 요시코는    "요이도마케의 어머니"  라는  제목으로 글짓기를  했다. 
요시코는 선생님이 읽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읽었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병드셨을  때 요이키도마케의  일을  하셨습니다. 
수건으로  볼을  싸매고,  주인이  빌려준   반소래  옷을  입고,  몸뻬를  입고, 
지카다비(일할   때  신는   운동화   같은   신-역자주)를  신고   나갔습니다. 
요이도마케라는 것은  집을 지을 때의  기초작업인 땅을 다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럿이서 "영치기 영차" 하며 큰 소리로 소리 지르며 줄을 잡아당깁니다. 그리고 
굵은 나무토막을 쿵 하고 떨어뜨립니다.
  옆집의  아저씨가 "너의  엄마는  어디에 가서  일하니?" 하고  물으시기에  " 
요이도마케에 갑니다."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저런 미인이  요이도마케는 
아깝다. 요리집에라도  가서 일하면  돈을 더  벌 텐데."  하며 업신여기는 듯이 
웃었습니다.
  선생님,  오이도마케는 업신여김을  받는 일입니까?  힘껏  배가 고플  정도로 
일하는 것이 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가르쳐 주세요.
  당당한  글짓기였다. 그것을  부끄럼  없이 솔직하게  읽었다.  모두 숙연하게 
들었다. 류타도 그랬다. 그것보다 혀를 내둘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만일 우리 어머니가 요이도마케에 일하러 갔다면...'
  부끄러워했을 거다. 뭐가  부끄러운가? 요시코의 글짓기를 듣고 있을  때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왠지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여간해서  글로 쓰거나 사람들 
앞에서 읽지 못한다. 왜 부끄러울까?  왜 비밀로 해야 되는가! 잘 모르지만 그런 
기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여자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의 여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라고  사카베  선생님이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시코처럼 
쓴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하게 여겨졌다.  아마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요시코에 대한 모든 아이들의 눈이 달라진 것 같다.
  류타가 던진  공을 못  받아서 요시코가  밖으로 나갔을  때 잠깐  그 글짓기 
생각이 류타의 머리에 떠올랐다."
  피구 시합이 1시간 정도하고 끝났다. 류타네 홍군이 8대 6으로 이겼다. 시합이 
끝나고 양팀이  인사를 할 때 류타는  또 요시코를 봤다. 요시코는  똑바로 앞을 
보며 류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10분쯤  쉬고  모두  한걸음에  강가로  뛰어갔다.  냄비를  빌려 오는  사람, 
펌프에서  야채를 씻는  사람,  큰  돌을 가져다  아궁이를  만드는  사람, 모두 
떠들썩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카레라이스가  먹소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냐, 돼지고기 
찌개가 좋아."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나는 산뻬이시루가 좋아." 
라고 말한다.  산뻬이시루는 절인  연어에 당근, 우엉,  무, 감자,  양배추를 넣고 
만든다.  취사당번인 요시코는  익숙한 솜씨로  무를 엷게  썰고 감자를  두껍게 
썬다. 손이  뜨는 아이들은 주변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와서 쌓아 놓았다. 
재료를 넣은  큰 냄비가 두 개의  아궁이에 설치되자 불을 지폈다.  끓을 때까지 
모두 둥글게 앉아서 기다린다. 사카베  선생님이 사오신 2킬로그램의 돼지고기가 
눈에 선하다. 아무튼 다 될 때까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유-야케 고야케(저녁놀이 희미해짐-역자주) 고추잠자리...
  사카베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다. 모두 같이 노래한다. 류타는 평화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떼지어  나는  가을 하늘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고추잠자리"가 끝나고, 선생님은 계속 노래하신다.
  토끼 좇던 저 산이...
  노래하시던 선생님이 노래를 멈추고 말씀하셨다.
  "모두  잘  들어라. 토끼  좇던(우사기  오이시-역자주0의  오이시는   토끼가 
맛있다라는 뜻이 아니고, 토끼를 좇던 이라는 뜻이다."
  "아! 나는 토끼가 맛있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아사다가 말하니까 두세 명이 "나도", "나도" 하고 웃었다.
  마을의 수호신의
  오늘은 즐거운 축제날...
  노래하면서 모두  가마에 타고  피리를 부는  흉내를 내고 북을  치는 시늉을 
했다. 구스오가 큰북 치는 모습을 실감나게 흉내내어서 박수를 받았다.
  동네  수호신을  섬기는 가미가와  신사에서  노래하는  "동네  축제"  노래는 
모두에게 그리운 생각을 품게 하였다.
  "나는 바다의 아들"도 부르고  "황성의 달"도 불렀다. "여기는 고국 떠나 몇백 
리"도 부른 후 모두들 한바탕 노래에 빠져 있는데,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류타야, '가마쿠라'를 불러봐라."
  류타가 머리를 긁었다.  모두가 손뼉을 쳤다. 아사다가 일어서서  손뼉을 쳤다. 
류타는 머리를 긁으면서 일어서  멀리 보이는 다이세쓰 산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가마쿠라'를 불렀다.
  7리 해변가를 따라
  이네무라가사키 메이쇼오노...
  류타는 2절까지 부르고 앉았다.
  맑은 류타의 노랫소리가 귀기울이던 모두가
  "더 계속해! 끝까지 해라.:
하고 흥을 돋구는데, 선생님이 돼지고기 찌개 맛을 보시고
  "잘했다. 노래도 좋고 돼지고기 찌개도 맛있다."
하시니, 모두들 주먹밥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요시코와 몇몇 여학생이 나누어 
준 돼지고기 찌개를 먹으면서 모두는 "맛있다. 맛있다."하며 즐거워했다.
  "어떠냐, 맛있지?"
  사카베 선생님도 만족해 하신다. 간을 맞춘 것은 선생님이시다.
  "선생님, 이렇게 잘하시니 색시가 필요없겠네요!"
  약국집 딸이 말했다.
  "맞다, 맞다!"
  아사다가 맞장구를 쳤다.
  "아냐, 나도 신부를 얻어 결혼할 거다!"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모두 농담인가 하는 얼굴이 되었다.
  "선생님도 여자가 좋으세요?"
  구스오가 입안 가득 주먹밥을 집어 넣어면서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셨다.
  "모두 잘 들어 두어라.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친구지. 여자에게도 남자는 친구야.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친구지. 이것이  싫다면 세상이 성립이 안  된다. 너희들도 엄마가 좋지? 
누나가 좋고 여동생이  좋지? 여자도 아버지나 남자  형제가 좋지 않니?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중요한 것이야."
  류타는 듣고  있으면서 사카베  선생님이 지금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와  같이  세상을  살아갈  상대를  존경하고  좋아하지  못하면 이것은 
큰일이지. 나는 다음 달에 결혼한다."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정말?"
  "정말입니까?"
  "에-"
  "어머나!"
  여러 가지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너희들도 알고 있는 다니가와 사에코 선생이다."
  여학생들은 "야-"하고  소리지르고, 남자들은 "우-"하고  소리 질렀다.  사카베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으나 해맑은 얼굴이었다.
  '잘 되었다. 다니가와 선생님이어서...'
  가볍게 놀러갈 수도 있겠다고 류타는 생각했다.
  3
  돌아오는 길에 모두  신사 경내에 들어가 산책을 했다. 언덕  중간쯤의 도리이 
앞에 오니  나무 숲  너머로 아사히가와의  시가지가 보였다.  9월의 하늘  아래 
양철 지붕이 여기저기 번쩍거렸다.
  가까운  철교를 지나는  기차 기적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렸다. 검은  연기를 
활활 내뿜으면서 기차는 여럿이 서 있는 언덕  옆을 지나갔다. 기차가 지나간 후 
아사다가 도리이를  향하여 가시와데를  치고 정중히 절을  했다. 여학생이 7  ~ 
8명,  남학생이 5  ~  6명 아사다처럼  손뻑을  쳤다.  류타도 깊이  머리숙였다. 
구스오는 피구공을 어깨에  메고 건들건들 앞에서 걷고 있다. 한참  가니까 잡목 
숲을 자른 빈터가 나왔다. 풀밭이다.
  "좀 쉬었다. 자가."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모두  풀밭에 앉았다.  언덕에 이어서  야채밭이 
있고 누렇게 익은  논이 보이고, 그 너머로 거무스름한 침엽수  숲이 9월의 햇빛 
아래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그 숲은 외국 수종의 견본림이다.
  "야! 좋은 경치다."
  쌀집 딸 사키코가 말했다.
  "정말이야!"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산하고 논뿐인데 뭘, 별로다."
  누가 신통치 않은 듯이 말했다. 모두 웃었다.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  여러분들은 모두  6학년이다. 지금  신사 앞에서  손뼉 치고  온 학생도 
있으니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볼까?"
  구스오가  제일   먼저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있다.  없다  여기저기서 
이야기했다.
  "우리 아버지는 늘 '신도 부처도 있기는 뭘 있어?' 하고 말씀하셔."
  누군가가 말하니까 여학생 한 사람이 맞장구쳤다.
  "그래! 우리 집에서도 그랬어."
  "어른들이 그렇게 잘 말하지."
  몇 남학생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신도 부처도 있기는 뭐가 있어? 없지.'
라고 말하는 걸 보니 어려운 일이 많은가 봐, 어른들은."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요시코가 확실하게 말했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라."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신은 어떤 신이지?"
  사카베 선생님 말씀에 누가 얼른 대답했다.
  "하얀 옷을 입고 유령 같으며 어디에도 나타나죠."
  "유령과는 틀리지."
  자지도 모르게 류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유령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 유령과는 틀리지. 유령에게 절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모양도  안  보이고,  어느  집의가미다나(일본  집의  신을  모시는 
감실-역자주)에나 신이 있다니... 잘 모르겠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소근소근 무언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구스오가 말했다.
  "나도 잘 모르지만 신이 있다면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해. 사람보다 훌륭할 것 
같아!"
  "선생님, 천벌 받는다고 말하는데 신은 벌을 주나요?"
  한 여학생이 발 밑에 있는 풀을 뜯으면서 말했다.
  "벌주는 것은 부처님도 주셔."
  "그래, 그래. 부처님도 그렇고 말고. 조상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우리 할머니께서  밥을 흘리면  눈이 먼다고  하시면서 부처님도 벌주신다고 
그랬어."
  "선생님,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되는   것이  신도이고  부처가  되는  것이 
불교인가요?"
  학생들은 제각기  여러 가지로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은 하나하나  들으면서 
빙긋이 웃으신다. 세라복을 입은 여관집 딸 고마코가 말했다.
  "저, 선생님.  신도 여러  자지 계급이 있을까요?  큰 신사에  계신 신과 작은 
집에 계신 것이 있으니."
  고마코 쪽을 보면서 구스오가 말했다.
  "고마코야! 신의  계급? 그  계급을 누가  정하니? 사람이  신보다 훌륭한  것 
아니야?"
  아사다의 목소리다.
  "뭔지 모르지만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오이나리는 여우를  모셨다고 그런다. 
그러면 여우도 신인가? 모두들 참해하는데 계급이 낮은 건가? 높은 건가?"
  "선생님!"
  고마코가 동감이라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우리  옆집  사람이  가끔  시코쿠(일본  본토   남쪽에  있는  섬-역자주)의 
곤삐라에  참배하려 가요.  곤삐라에는 누구를  모셨나요, 선생님?  많은 사림이 
참배하는데요."
  사카베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좀 생각하더니.
  "곤삐라에는,  에... 스도구  천황을  모셨다고 하지.  실은 곤삐라는  군삐라는 
범어라고 한다. 범어는 선생님도 잘 모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고대 인도어라고 
한다. 그 범어로 군삐라는 악어라고 한단다."
  "응! 악어가 신이야?"
  모두가 놀랐다.
  "그렇지. 악어가 신이지  여우도 악어도 신이야. 여러 가지로나 전설이  있어서 
사람이나 동물을 신격화하여 신 취급을 하지."
  "신격화?"
  모두 얼굴을 마주본다. 류타가 말했다.
  "선생님, 이 신사 경내에도 새끼줄을 친 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를 신목이라고 
해서 절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무도 신격화된 건가요?"
  "아! 그런가? 그 나무도 신격화된 건가?"
  두세 사람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 모두 들어 봐라. 사람은 여러 가지를  섬기지. 사람으로서 무엇을 섬길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야. 그러나 사람들이 믿는 것을 금하거나  믿기 싫은 
것을 믿으라고 말해서는 안 되지."
  류타는 지금까지 알지 못한 세계를 들은 것이다.
  새집
  1
  '사카베 하시야' 라고 쓰인 새 문패를 쳐다보며 모두 얼굴을 마주봤다.
  "선생님이 계실까?"
  구스오가 말하며  현관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용 
구두와 여자용 게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실례합니다!"
  야스시가 큰 소리로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으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야, 자물쇠가 채워져 있네."
  "어디!"
하고 구스오도 열어 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큰 찬합을 세 겹 싼 보자기를 든 미치요가 물었다.
  "류타야, 너  사카베 선생님께  놀라시게 하자고  해서 나도  그것이 좋겠다고 
했지."
  "바보들! 이렇게 맑은 가을날 게다가 일요일인데, 집에 계실 것같니?"
  류타와 구스오는 풀이 죽었다.
  "뭐야, 빈 집이네."
  야스시는 화가 나서 돌멩이를 발로 차다가,
  "아아! 갑자기 배가 고프다."
라며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지금 막 정오 사이렌이 울렸다.
  "할 수 없지. 좀 기다려 볼까?"
  미치요도 보자기를  안고 앉았다. 류타와 구스오는  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세코는 스커트 주머니에서  활석을 꺼내서 땅에 여자아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왼손에는 축하하러 가져온  금색 은색 종이로 접은  종이학이 든 주머니를 안고 
있다.
  2, 3일 전의 일이다, 사카베 선생님 댁에 결혼 축하하러 가자고 누나 미치요가 
말했다.  류타는 "가자,  가자!"하고  찬성하고,  담임도 아닌  야스시까지  "나도 
간다."고 좋아했다. 그 말을  들은 구스오도, 여동생 가세코도 같이 가기로  했다. 
어머니 기쿠에가 커다란 찬합에 유부 초밥을 잔뜩 담아 주셨다.
  "선생님 댁에서 신부와 같이 유부 초밥을 먹고 오너라."
  어머니는 오늘 그렇게 말씀하시고 만들어 주셨다.
  사카베 선생님과  다니가와 사에코  선생님은 보름  전에 결혼하셨다.  류타네 
6학년 2반은 결혼식 다음날 학교에 오신  사카베 선생님을 위하여 "선생님, 결혼 
축하합니다."라고 빨간 분필로 크게 쓰고 모두가 각자 생각한 대로 축사를 썼다. 
선생님은 그것을 보시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맙구나! 사진기가 있어서 찍어 두었더라면..."
하시고 교탁에서 도화지를 꺼내서 모두가 쓴 말을 다 옮겨 적으셨다.
  류타는 "선생님!  앞으로ㄷ 우리들의 선생님으로  남아 계십시오."  라고 썼다. 
나중에  생각하니 '바보  같은  말을 썼구나.'  하고  후회가 되었다.  류타는 좀 
쓸쓸했다. 그래서 미치요가 선생님 댁에 가자고 그랬을 때 너무 기뻤다.
  류타는 자기 용돈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한 끝에 사카베 선생님은  트럼프가 없으실 것 같아서 트럼프를 선물하기로 
했다. 트럼프를 사러 일부러 사단 거리에 갔다.
  아사히가와에는 7사단이 있다.  역전에서 북쪽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상점이  있어서 사단 거리라고 한다.  양쪽 보도에 들이 달려  있는데 아주 
멋지다. 이 사단  거리 모퉁이에  강고오바라고 불리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있다. 나팔,  칼 같은 것이 다발로 묶여서  매달려 있고, 여러 가지 완구, 
셀룰로이드나 치요가미의  상자 등이 꽉 차  있다. 이 가게에서 무언가  산 것을 
아이들은 기뻐하며 자랑으로 생각한다.
  "이거 강고오바에서 샀단다."
라고  하면   구슬 하나라도,  주사위 하나라도  모두가 부러워한다.  류타는 그 
가게에서  트럼프를 사기  위해 용돈을  가지고 갔던  것이다. 야스시는  선물로 
지금 오다가 긴자  앞에 있는 좌판에서 5전어치 가루메야키(누런 설탕에  소다를 
넣어 살짝 구운 과자-역자주)를 샀다. 구스오가,
  "내 선물은 비밀이야. 선생님께 드릴 때까지 비밀."
하며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류타는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구스오는 
도화지를 말아서  고무줄로 맸는데 아마 그림이나  글씨겠지? 그런 것이 정성인 
것  같아서  류타는  좀  걱정이  되었다.  모두  선물까지  준비했는데  사카베 
선생님이 안 계셔서 낙심천만이다.
  선생님댁 옆에는 나무로 담을 쌓고 넓은 정원을  가진 큰 집이 있었다. 정원목 
한  그루는 열매도  잎도  새빨간  나나가마도였다. 길  건너편에는  토목공장의 
관사로서  소장이나  부장의 관사인지  담에  페인트칠을  한 멋진  집이  있다. 
아사히기와에는 담이  있는 집이  적어서 한  동네에 한  집이나 두 집  정도다. 
사카베 선생님 집도 물론 담은 없지만 그런대로 깨끗한 주택이다.
  "류타야, 저 들판쪽이 아사히가와 측후소야."
  미치요가 100미터  정도 저쪽을  가리켰을 때,  토목공장의 관사 옆  골목에서 
사카베 선생님과 다니가와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야! 사카베 선생님이다!"
  모두가 소리지르자, 구스오가 뛰어갔다. 류타도  야스시도 같이 뛰었다. 초록색 
투피스를 입은 다니가와 선생님과 곤색 양복을 입으신 사카베 선생님이 아주 딴 
사람같이  보였다. 늘  입고  계시던  쓰메에리 양복과는  아주  다르게 보였다. 
미치요만 집 앞에 우뚝 서서 사카베 선생님과 사에코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너! 너희들이 왔구나. 미안, 미안! 교회에 갔다 오는 길이다."
  사카베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류타는  울고  싶었다.  만일  오늘 
선생님과 못 만나면 선생님이 불행해질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카베  선생님께  등을  떠밀리며  모두  집에  들어갔다.  사에코  선생님은 
재빠르게  흰 스웨터로  갈아입고 앞치마를  두르시고  장작 난로에  불을 피워 
주셨다.
  "야, 너희들  오늘은 모두 양복을 입고  왔네! 그래, 자랄 때니까  양복도 자주 
입어야지 곧 작아진다. 모두 잘 어울리는구나."
  모두 칭찬을 받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미치요가,
  "선생님!"
하고 크게 불렀다. 그러자 모두가 약속한 대로,
  "사카베 선생님, 사에코 선생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하고 소리 맞춰 정식으로 머리를 숙였다.
  "고맙다. 기쁘다. 일부러 축하하러 와 주어서! 그렇지 않아요, 사에코 선생님?"
  "정말이에요! 우리들의 기쁨은 학생들의 축하지요!"
  사에코  선생님의  명랑하게  말씀하셨다.  학교에서도  명랑하신데  집에서도 
그렇다. 다다미 8장  정도의 거실과 다다미 6장의 방인 집이지만  아담하고 역시 
시혼 기분이 나는 느낌이다.
  "저, 어머니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모두 같이 드시라고...  이 말을 빠뜨리면 
큰일나요."
  웃으면서  미치요가 찬합을  열었다.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유부  초밥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야! 기쁘다. 이것은 내가 제일 좋아해."
  사카베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씀하시니, 사에코 선생님도 손뻑을 치면서,
  "나도 제일 좋아해."
라고 하셨다. 그러자 가만히 얌전하게 앉아 있던 가세코도,
  "나도 제일 좋아해."
하며 손뼉을 쳐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선생님, 제가 강고오바에서 산 트럼프예요."
  류타가  사카베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실까  약간  불안해  하며 트럼프를 
내놓으니까,
  "그래, 강고오바까지 일부러 가서 사왔니? 이것은 어른도 아이들도 같이 놀 수 
있으니 좋구나."
라고  말씀하셔서  류타는  안심했다.  가세코가  종이  주머니에서  두  마리의 
종이학을  꺼냈다. 소학교  4학년이 생각한  선물이다. 사카베  선생님과 사에코 
선생님이 똑같이 소리질렀다. 
  "야유, 예뻐라."
  두 사람은 한 마리씩 손바닥에 놓고 학을 보았다.
  "이것은 나고 이것은 당신이네, 예쁘게 장식하죠."
  사카베 선생님은 곧 일어나 거실 창가에 있는 기둥에 핀으로 꽂아 놓았다.
  "이걸 가세코가 접었니?"
  "네."
  가세코는  너무 좋아  얼굴이  빨개져서  단발머리를 흔들며  크게  끄덕인다. 
야스시가 머리를 긁으면서,
  "내 것이 제일 시원찮네."
하며  가루메야키를  신문붕지  채  사카베  선생님  앞에  내놓았다.  선생님은 
봉지에서 가루메야키를 꺼내며 말씀하셨다.
  "그것 참 이상하네! 오늘  아침에 가루메야키가 먹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렇죠, 
사에코 선생님!"
  사에코 선생님도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요, 당신이 아침에 말씀하셨죠."
  야스시는  두   주먹을  코   끝에  올리면서   자랑했다.  류타는   야스시의 
가루메야키를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했는데  야스시가 좋아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자-! 이쪽을 보세요."
  구스오가 일어서서 둥글게 말았던 도화지를 오른손에 들고 머리 위로 올렸다.
  "선생님, 이것이 뭔지 아시겠어요?"
  "글세,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꽃그림인가?  그런  꽃은   시들염려가 
없으니까?"
  "'맞아요.' 라고 할까 했는데 아닌데요? 아주 귀한 것이죠!"
  구스오는 정중하게 말했다. 류타가 말했다.
  "야! 알았다. 천황 폐하의 관계 있는 거지?"
  가끔  구스오는  교육칙어나 자기집에  걸어놓은  천황  폐하와  황후 폐하의 
사진을  보며 '귀하신'이라는  말을  쓴다.  3학년 때까지의  담임이었던  가와치 
선생님의 입버릇을 흉내낸 것이다.
  "역시  류타다.  선생님! 저요,  선생님  축하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밤새껏 
고민했어요. 가세코가 금은 색종이로 학을 접는 멋진 생각을 했으니."
  "정말 참으로 고맙다. 도대체 뭐지?"
  "생각한  끝에 더  이상 멋진  것은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  교육칙어에 있는 
말씀입니다."
  "뭐, 교육칙어?"
  "그렇습니다. 류타야, 너는 알지?"
  류타는 좀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가 교육칙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인데."
  "아냐!"
  구스오는 정중한  몸짓으로 양손에  떠받든 도화지를  펴서 모두에게  보였다. 
거기엔 "부부, 서로 화합하며"라고 씩씩하게 쓰여 있었다.
  "항복, 항복! 너에게는 정말 못 당하겠다."
  사카베 선생님은  머리를 긁었고,  사에코 선생님은  웃었다. 사카베 선생님은 
구스오에게서 받은 "부부, 서로 화합하며"라는 글씨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래!  이것은  중요한 말이지.  우리들은  몇  년이나  교제해  오며 사이가 
좋았으니까 이  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부부란 사이좋은 
것이 지나쳐도 되는 것이니까."
  구스오는 뜻을 이뤄 기쁜 표정으로 류타를 본다. 선생님은, 
  "일본에 사는 부부들이 모두 사이가 좋으면  일본은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다. 
부부는 사회의 중요한 단위야. 그렇죠, 사에코 선생님!"
  "그래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결혼하면 일 년간 신랑을 전쟁터에 안 보내는 
법이  있지요. 그런데  청일,  러일 전쟁  때  갓 결혼한  신부를  두고 3일만에 
소집당해 나간 사람도 있대요."
  사에코 선생님은 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쇼와  4년(1929)에 일본  공산당원이 몇백  명이나 검거되었다.  작년 3월에도 
1600명이 검거되었다.  또한 작년에  장작림이 탔던  기차 경봉선이 폭파당했다. 
관동군의  모략이라고  한다.  일본군은 작년  5월  제남에서  장개석의  군대와 
충돌하여 제남을 점령했다. 그 후에 특고 경찰이 신설되고, 헌병대에도 사상계가 
신설되었다. 지금  사에코 선생님이  말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류타에게는 민주나  중국에서 일어나는  국지적인  작은 싸움은  먼 이국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미치요가 "아주 사이좋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라고 연설조로 말하고,
  "저요, 선생님. 어른이 되면 선생님의 색시가 되려고 생각했는데..."
하며 유부 초밥을  접시에 덜면서 약간 토라진  것처럼 말하자 사카베 선생님이 
웃으며 응수하셨다.
  "그래? 그런 줄 알았으면 미치요가 크기를 기다릴 걸 그랬네!"
  사에코 선생님이 류타 앞에 차를 놓았다. 선생님은 아름다운 얼굴로 웃으셨다. 
사에코 선생님  특유의 좋은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구스오  앞에도 선생님이 
차를 놓았다. 그랬더니 구스오도 미치요의 흉내를 내어
  "나도 어른이 되면 사에코 선생님에게 장가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가세코가 끼어들였다.
  "거짓말! 오빠는요, 선생님. 요시코가 나의 미래의 색시라고 항상 말한대요!"
  모두 와 하고 웃었다.
  "거짓말이에요. 내가 그런 말 언제 했어?"
  구스오의 얼굴이 빨개졌다.
  "말했지, 응? 야스시야"
  야스시가  싱글벙글 웃었다.  류타는  웃을 수가  없었다.  가슴속이 선뜻함을 
느겼다. 구스오가 앉아 있기 거북해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모두 또 웃었다.
  "맛있는 유부  초밥이야. 기다모리의  어머니는 요리도  잘 하시고  담는 것도 
훌륭하게 하셨어."
  "저도 담을 때 도와드렸어요! 반은 내가 담았죠."
  "그랬니?  미치요도  장차 좋은  신부가  되겠네.  그러고 보니  벌써  여학교 
3학년이네. 여학교를 나와 바로 결혼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구나,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네!"
  2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 후, 구스오가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고향이 오카나이지요?"
  "그래, 그렇다."
  "선생님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철도원이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조부모님도  아키다  태생이지.  나에게는 
철도원으로 있는 남동생과  와카나이의 생선 가공장집에 시집간  여동생이 있지. 
이런 소보로도 여동생네 공장에서 만들고 있지. 이 다라도 만들지."
  미치요가 초밥을 집으면서 물었다.
  "아키다라면 지금  인기 있는 가니고오셍을 쓴  고바야시 다키지가 아키다 현 
출신이죠?
  "미치요야, 다키지의 책을 읽었니?"
  "네,  친구가 빌려  줘서요.  센기라는 잡지에  실려  있는데 ??가  된 부분이 
여기저기 있어서요!"
  "그래-?"
  사카베 선생님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공산당이 대량으로  검거당하는 
요즈음 공산주의에 관한 잡지를 읽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아버지께  들켜서  야단맞았는데, 이런  책  읽지  말고  돌려주라고 
하셨어요. 왜 인기 있는 책이 나쁜 건지 이해가 안 돼요."
  열심히 스시를 먹고 있던 야스시를 얼굴을 들고
  "나쁘다니까 나쁜 거지."
하고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댁  벽에 붙인  "부부, 서로  화합하며."라는 자신의 
글씨를 만족하게 쳐다보던 구스오가 이상하다는 듯이 소리질렀다.
  "아니, 선생님 댁에는 가미다나가 없네요!"
  가세코도  야스시도 미치요도  여기저기 둘러봤다.  류타는  가슴이 서늘했다. 
대부분  집에는  거실에  가미다나가  있다.  류타의  집에도  구스오의  집에도 
가미다나에 보라색 막을  둘러 장식해 놓고 매일  아침 물과 밥, 소금을 올린다. 
3학년 때 가와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 집에 가미다나가 없는 사람 있나? 있으면 손을 들어라."
  남학생 하나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책을  읽는 다카하시였다. 과자 가게집 
아들이었다.
  "뭐야, 너희  집에는 가미다나가  없어? 일본  사람으로 가미다나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일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니죠오거리에 가서  2원만 내면 훌륭한 
가미다나를 살 수 있다. 집에 가서 그렇게 말해."
  가와치 선생님이  큰 소리로  나무라셨다. 다카하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듣고 있었는데, 2-3일후에 가미다나를 샀다고 하면서 밝은 얼굴이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댁에 와서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을 
돌아보면서  가미다나가  없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난롯불  때문에  방안이 
따뜻해지니까, 다른  두 방도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가미다나는 
없었다. 류타는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구스오가  불쑥 말한 
것이다.
  "아, 가미다나? 우리는 사에코 선생이 그리스도인이니까!"
  사카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에! 그렇군요.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셨다고 모두들 그랬어요.
그럼 사카베 선생님도 그리스도인이세요?"
  "아니, 나는 공부하는 중이지"
  선생님은 밝은  얼굴이셨다. 류타는 잠자코 대구  요리를 먹고 있었다. 사에코 
선생님은 사단 거리에 있는 유명한 다니카와  시계점의 따님이라고 한다. 사에코 
선생님의  부모도 그리스도교  신자이고, 오빠는  두 사람이  가업을 돕고  있는 
번창한 가게라고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전당포에 온 손님이,
  "일부러 다니카와 시계점에서 산 좋은 것인데."
하면서 줄이  달린 회중시계나  손목시계를 내놓았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이 다니카와 시계점은  여기저기 시설에다 기부도  많이 
하고 있어, 신문에 여러 번 기사가 시린 것을 류타도 안다.
  구스오가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그래도 선생님, 그리스도교 신자도 가미다나를 모시면 안 되나요?"
  "응, 어려운 질문인데, 어른도 이런 문제는 바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야."
  사카베 선생님은 팔짱을 낀다. 사에코 선생님이  차를 마시면서 구스오를 보며 
웃으시고 말씀하셨다.
  "저, 구스오야. 어떤 신을 믿느냐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의사야. 이 
마을에 태어난  사람은 이 신을  믿어야 되고,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은  이 신을 
믿는  신자가 되라고는  정하지 못하지.  신앙이라는 것은  나의 영혼을  인도해 
주십사 하고 원하는 것이니까 오늘은 이쪽 신에게 부탁하고 내일은 저쪽 신에게 
절하면서 소원을 비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그것은 남편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든가 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야.  안    그래요. 사카베 
선생님?"
  "그렇지. 지난 달에 가구라오카 언덕에 갔을  때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말한 걸 
기억하고 있니?"
  구스오의 모른다고 하고 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섬기는데, 사람으로서 무엇을  섬길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하셨죠?"
  "그래, 잊지 않았구나. 한 가지 또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랬는데!"
  "네.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지 말라고  한다든가, 믿기  싫은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야, 잘도 기억하고 있구나. 류타야!"
  옆에  있는 주전자를  들고 구스오가  자기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솔직하게 
감탄한다.
   "나도  소설을 읽어보니  그리스도교에 대한  것이 나오는데  때로는 신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음, 그리고..."
  미치요가  어른 같은  말투로  말했다. 5학년생  야스시도,  4학년인 가세코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듣고 있다.
  "그리고 또 생각되는 것은 혹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한 
나라만  지켜  주시는 신은  아닐  것  같아요. 공평하시고  어느  나라나  어떤 
사람들도 사랑하시고,  엄하실 때는  똑같이 엄하신  분이며, 이  나라에서 나쁜 
것은 저 나라에서도 나쁘게 여기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거야. 내가 생각하는 신도 그런 신이야."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가세코가 말했다.
  "저어,  신은  손뼉을  치면  나오나요?  그리고  집안이  편안하기를, 장사가 
번창하기를 빌면 그렇게 되나요? 그래서  빌고 나면 또 손뼉을 치나요? 아마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인자하신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글세, 그렇게도 생각되네."
  사카베 선생님의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다.
  "그것이  가세코의  신앙이야. 커  가면서  변하겠지만.  야스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엄마한테 야단맞으니까 가미다나에 절하지만  신은 없다고 생각해요. 본 
일이 없으니까요. 보지도 못한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이상해요. 구스오 
형이 말한 것이지만요!"
  "맞아! 보지도 못했고 목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믿는다.'는 글씨는 사람의 말을 
뜻하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신이란 '이런 분이다.'라고 가르쳐 준 말을 믿는 
것이 신앙이야."
  야스시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억지야.  나는 신이든  유령이든 믿지  않아. 형은  믿지만 신이 없는 
것이 편해. 저것은 하면 안  된다. 이것도 하면 안 된다고 항상 지켜보고 있다면 
힘들어. 안 된다는 말은 아버지 어머니만으로도 힘들고 듣기 싫은데!"
  우스갯소리  잘하는 야스시의  말투에  모두  웃었다. 미치요만은  웃지  않고 
말했다.
  "나는 역시 신이 있는 것이 좋아. 신이 없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미치요 누나! 나쁜 짓하면 저기 감옥에 갇힌다."
  구스오가 감옥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사히가아 형무소의 콘크리트로 
된 높은 벽은 사카베 선생님 집에서 40-50 미터쯤 되는 곳에 있다.
  류타네는  사카베  선생님댁에 오는  길에  그  형무소 앞을  지나왔다.  모두 
형무소  담 밑을  지나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다섯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걸으면서 말했다.
  "이 안에 도둑이나 살인자가 들어 있을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감색 수의는 청색  수의보다 더 중한 죄인이라고 
들었어."
  "감옥 안을 한 번 봤으면!"
  "나쁜 짓을 하면 간단히 볼 수 있지."
  야스시가 그렇게 말했을 때 갑자기 서쪽 문이 열렸다.
  "앗, 열렸다!"
  제일 빠르게  구스오가 뛰어가고  야스시가 따라갔다.  류타도 뛰어갔다. 감옥 
안에서 짐을  실은 마차가  나오는 중이었다. 다섯  사람은 눈이 둥그래져서  담 
안을 봤다. 목조로 짖은 집이 여기저기 있고  화단이 보이고 푸른 수의복을 입은 
남자들도 보였다.  말고삐를 잡은 남자가 말을  몰고 문을 나서니까 곧  큰 문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것을  생각하며  모두가 사카베  선생님과  사에코  선생님에게  한 마디씩 
말했다. 구스오가 말했다.
  "선생님,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몹시 나쁜 사람들인가요?"
  사카베 선생님은 잠시 말없이 있더니,
  "형무소에 있다고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다."
  "네엣?"
  모두 소리지르며 노랐다.
  "너희들 암굴왕이라는 책 읽었지?"
  "네! 형이 가지고 있어서 읽었어요."
  야스시가 말했다.
  "그런 일도 있지 않니."
  "선생님, 그건 지어낸 이야기지요?"
  "아냐. 죄도 없는데 죄인 취급받아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일본에도 외국에도 
가끔 있단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들어가다니, 그것 참!"
하고 말한 류타를 보면서, 사카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카베 선생님은 
작년과  금년에 잡혀간  많은 공산당원의  일을 생각하신  것이다. 지금  문제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 가니고오셍이 다키지를 어두운 곳으로 잡아넣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선생님,  나쁜 사람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도 
들어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미치요가 심각한 말로 말했다.
  "나쁜 짓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란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는 거야. 신이 보실 때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이지. 그래서 나는 때때로 밤에 저 
감옥 옆을 지날 때는 하모니카를 분단다."
  "네엣! 하모니카요?"
  야스시가 놀란다.
  "그래, '황성의 달'이나 '아카돈보' 같은 것을 불지."
  미치요가 한참 사카베 선생님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선생님,  그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며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렸을 때 일이나 자기 아이들 생각을 하겠지요?"
  말소리가  눈물겹다. 류타는  저 높은  콘크리트 담  밑을 지나면서  죄수들을 
위로하려고 하모니카를 불면서 지나가는 사카베 선생님 모습을 상상해 봤다.
  "너희들도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바다의  아이'  라는  노래라도  불러주면 
어떨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류타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 어머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응, 평범하신  분이지. 상냥하고  절대로 화를  안 내시는  분이야. 꼭  한 번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지. 아니, 야단맞았다기보다는 울리셨어."
  "왜요?"
  가세코는 사에코 선생님이 내놓으신 초콜렛 은박 종이를 벗기면서 물었다.
  "내 동생은 직금 와카나이에서 아버지와 같이 철도국에서 일하지만 어렸을  때 
곧잘  밤에 오줌을  쌌단다.  매일  아침 어머니는  그  이불을  말리셨지. 아무 
말씀하지  않고. 아마  동생이 3학년  때인가  보다. 내가  동생을 오줌싸개라고 
놀렸지.  그랬더니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하시야, 너는  매일   
저녁 오줌 싸는 가쓰야의 기분을 생각해 봤니? 가쓰야는 싸고 싶어서 싸는 것이 
아니다. 병인 거야. 얼마나  부끄럽고 속상하겠니? 가쓰야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수 없니?' 하시면서 어머니는 앞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내어 우셨지."
  사카베 선생님의 목소리도 울먹이고 모두가 잠잠해졌다.
  송별회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한 장씩 뜯는 것은 아버지  세이다로오의 일이다. 
때로는 류타가  뜯을 때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다. 엽서 두  장 정도 
크기의 일력 뒷면은 메모지로 쓴다. 오늘 뜯은 일력 앞면에는 "쇼와 5년(1930년) 
3월 22일 토요일"이라는  글자가 크게 인쇄되었고, 왼쪽에는  "울고 지내는 것도 
한평생이고, 웃으며 사는 것도 한평생이다."라고 써 있었다. 일력에는 그날그날에 
따라 센류9에도시대 중기의, 풍자나 익살이 특색인 짧은 시-역자주)나 속담 같은 
것이 쓰여 있어 재미있다.
그 가운데  "22"라는 숫자가  큰 글씨로 인쇄되어  있다. 류타는  오늘의 속담을 
소리내어 읽어  봤다. 정말  그렇다. 모레는  졸업식이다. 오늘은 류타네  반에서 
송별모임을 갖는 날이다.  사카베 선생님과 3년간 공부한 것을  생각하니 웃으며 
지낸 것  같다. 3학년까지  담임하신 가와치 선생님도  열심히 가르쳐 주셨지만, 
가끔  학생을  때리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어젯밤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드리니까,
  "그런 선생님께 배우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란다."
하시면서  웃으셨다. 오늘의  속담을  보니까  가와치 선생님도  좋은  분이라고 
느껴졌다.
  부엌에서  밥이 뜸드는  좋은 냄새가  집안에 퍼진다.  류타는 평화라는  것이 
이것인가 하고 느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북국  특유의  비늘구름이  떠  있었다.  동생인 
야스시도,  2층을 청소하던  내려왔다. 모두가  밥상에  앉아 수저를  들려고 할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침 부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하며 사복을 한 사가미 형사가 거실로 들어왔다. 아직 독신인 인상 좋은 형사다. 
어젯밤에 무슨  사건이 생겼나 보다. 형사가  아침 일찍 오거나 밤  늦게 오거나 
모두  익숙해 있다.  사가미 형사는  기분 좋게  인사하며 회색  외투를 벗었다. 
미치요가 얼른  일어나서 그 외투를 받아  걸었다. 사가미 형사는 좀  미안한 듯 
머리에 손을 대면서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야아, 미안."
  야스시가 류타의 옆구리를 찔렀다. 류타는 잠자코  두부가 들어 있는 된장국을 
마신다. 사가미 형사는 일 년 동안 이 근방의 전당포 담당이다.
  "사가미 형사가 우리 누나에게 반했어."
  금년  4월에 6학년이  되는 야스시는  가끔 류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류타는 
반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야스시는  아마도 구스오로부터  반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류타는 요시코에게 반했다."
라고 구스오가 말했단다. 류타는 부지런히 식사를 마쳤다.
  가게에서 뭔가  세이다로오와 이야기하던 사가미 형사가  10분쯤 지나서 다시 
거실로 돌아와  난로 옆에 앉았다. 어머니가  내놓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편히 
앉더니,
  "정말, 아주머니! 어디를 가도 대단한 불경긴데요."
하며  아주 힘들어  하는 말을  했다. 작년  쇼와 4년(1929년)  하마구치 내각은 
대단한 긴축정책을  취했다. 먼저  관리의 봉급을  1할 감봉하는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나서  보름도 안  된 10월  24일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의 
대폭락이 일어나  즉지 세계를  대공황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그  날은 '암흑의 
목요일'이라고 불린다. 이 대공황은 쇼와 8년(1933)까지 실로 4년간 계속 되었다.
  "정말이에요, 사가미 씨! 이 근처에도 딸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집이 있어요."
  기쿠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딸을 파는  것은 농가만이  아니군요, 아주머니! 그런데  류타 군은 중학교에 
들어갔다면서요?"
  사가미 형사는 류타쪽을 봤다. 류타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수석으로 들어갔다면서요. 훌륭하군요."
  사가미 형사는 담배에 불을 불이며 말했다.
  "'대학은  나왔어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니까요.  정말 여기저기서  대학은 
나왔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 
불경기가."
  류타는 밥그릇에 더운 물을 따르면서 듣고 있다.
  "아이쿠, 위험합니다. 기다모리 씨!  이런  이야기하는 것을 고등계에서 들으면 
즉시 체포 됩니다."
  사가미 형사가 농담조로 말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류타도 웃었다. 지난 달 
2월 26일, 공산당의 대대적인 검거가 있었다.  먼저 쇼와 3년(1928년)에 1600명을 
검거하고, 작년 4월에 800명 이상을 검거한 뒤에 이어서였다.
  "맞아요,  언제  누가  검거될지 모르지,  내가  아는  17살  남자  아이는  형 
심부름으로 친구 집에서 자다가 잡혀갔답니다."
  세아다로오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전당포는 좋지 않습니까, 불경기인 것이?"
  사가미 형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미치요가  사가미 형사를  노려보더니 발소리를 크게  내며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류타와 야스시도  서로를 쳐다보며  미치요의 기세에  합세하여 
재빨리 현관으로 나갔다. 류타는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기분이었다.
  밖은 따뜻했다.  눈 녹은  길을 류타와 야스시  둘이서 장화를 신고  발뿌리를 
차며 걸었다. 길 위에 눈 녹은 물이 여기저기 길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가? 전당포는 불경기 때가 좋은가?'
  불경기는 전당포에도 똑같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류타는 아직 몰ㄹ다.
  2
  졸업식은 모레  월요일이다. 류타네  반에서는 오늘  대청소를 하고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모두가 정성껏  청소를 했다. 류타도 힘껏 마루를 닦았다. '이제 이 
학교에서 청소하는 것도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 하니 가슴이 찡했다.
  송별회를 하기  위하여 책상을  사각형으로 배열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서다.  류타가 칠판에  모두가 의논하여  마련한 프로그램을 썼다. 
사회는  구스오가  하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써  놓은 칠판을  여학생들이  흰 
종이로 만든  장미꽃과 오색  테이프로 장식했다. 책상  위에는 백지를 한  장씩 
놓고 긴자  앞에서 사온  구운 과자를  두 개씩  놓았다. 그리고 센베이  두 개, 
가운데 손가락만한 가린토를  세 개씩 놓았다. 이것이 6년간  공부한 송별모임의 
과자다. 회비는 5전이다.
  모든 준비가  다되어 요시코가 사카베  선생님을 모시러 직원실로  갔다. 잠시 
후 사카베 선생님 발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기립."
  류타가 구령을  붙였다. 선생님은 항상  입으시는 검은 쓰메에리  양복을 입고 
들어오셨다. 모두가 일제히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사카베 선생님도 자리에 앉으셨다.
  모두들 제자리에 앉았다. 구스오가 일어서서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들의   송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송별인사는  류타   군이 
하겠습니다."
  류타가 일어섰다.
  "선생님, 저희들은  사카베 선생님께  4학년, 5학년,  6학년 3년간  배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3년간 저희들에게 참으로..."
  류타의 말이 약간  끊어졌다. '친절하셨다.'는 이상하고, '상냥하셨다'도  아니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대담하게 계속했다.
  "선생님은  명랑하시고,  따뜻하고,   상냥하시고...  때로는  야단도  치셨지만 
꾸중하시는 것도 따뜻하셔서..."
  "알아요, 모두 다 알아요."
  아사다가 말했다.
  "조용해, 아사다!"
  두세 사람이 소리질렀다. 그리고 모두 웃었다. 류타는 말을 계속했다.
  "저는 선생님을  사람들에게 몇  시간이라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다  그런 심정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선생님께 대한 
감사와  우리들의 우정을  엮어서  송별회를  하려고 합니다.  프로그램에  있는 
것처럼  노래와 요술과  춤과 그  밖에  여러 가지를  할텐데, 선생님  아무쪼록 
재미있게  봐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모두  여기  전원이   모이는  것은 
모레뿐이니,  선생님  모습도  친구들의  모습도  확실히  가슴에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류타가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크게  박수를 쳤다.  사카베  선생님도 힘찬 
박수를 치셨다. 구스오도 손뼉을 치고는 말했다.
  "그런데 순서에 들어가지 전에 좀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다. 이 학교를 떠나면 
선생님과 정말로 이별인지 아닌지 이야기해 봅시다."
  곧 두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여자들이다. 지명을 받아  한 사람이 일어서서 
대답했다.
  "저, 가끔 선생님 얼굴을 뵈러 오면 되지 않을까요?"
  "찬성, 찬성!"
  대부분이 찬성했다. 류타가 말했다.
  "나도 찬성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졸업하면 선생님은 또 어떤 반을 
담임하실 거야. 그러면  가정 방문도 가실 것이고,  글짓기와 그림도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평을 써  주니까 매우 바쁘실  거야. 그래도  만나러 와도 좋아요, 
선생님?"
  "류타야, 너는 생각이 깊구나!"
  누군가가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만날 와도 좋아. 졸업은  둥지를 떠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어린 새가 자라면 
어미새를  떠나는 것이지.  선생님도  정으로는  너희들이 놀러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면 기쁘지만,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새로운  선생님이  생기는 
일터로 가는  사람도 있다. 직장에는  주인도 있고 선배도  있다. 특히 고등과에 
남는 학생은  먼저 담임에게  자구 찾아가면 새로운  선생님과의 사이가 나쁘게 
되지. 헤어질 때는 헤어지지만 가끔 만나러 오는 것은 좋다."
  51명의 학생 중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은 여자가 7명, 남자가 19명이었다. 
고등과에 가는  사람은 20명, 나머지  다섯 사람은 가업을  돕거나 일터로 간다. 
그래서 이별의 감정이 아이들 가슴마다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알았다.  방해가 안  될 정도로  선생님을  뵈러 와도  된다는 거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스갯소리  잘하는  아사다는  상업학교에  진학한다.  요시코가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 연하장을 보내고 되지요?"
  "고맙다. 기다리고 있겠다."
  학생들은 기뻐서 손뻑을 쳤다.
  "저, 자아..."
  사회자 구스오가 말했다.
  "고등과에  가는 사람도  중학교에  가는 사람도  통지표는  반드시  선생님께 
보이러 오자."
  갑자기  "에이_", "어어-",  "그건  안 돼!"  등등  모두가 한마디씩  떠들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구스오는 공부를 잘하니까 괜찮지만 나는 부끄러워서 못 가지고 온다."
  "그래, 그래." 하며 모두 말했다.
  "나는 이제 통지표 같은 건 안 받으니까 좋아."
류타는  '아차!'했다.  6학년을  마치고 어디의  급사로  가는  학생의  말이었다.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구스오도 눈치챘는지, 
  "그 밖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면서 모두를 둘러보았다.
  "저, 사카베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모두 장례식에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얌전한 이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보야, 선생님이 돌아가시냐?"
  아사다가 소리질렀다. 모두가
  "안 돌아가신다."
  "그래, 왜 돌아가셔?"
  "바보 같은 소리야!'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아냐! 좀 가만히 있어라."
  사카베 선생님은 앉으신 채로 모두를 조용 하라고 하신 후, 말씀 하셨다.
  "이히다는 좋은  말을 해주었다. 이히다가  말한 것이 맞아.  선생님도 죽는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태어났지만 다  죽어  갔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한 
사람도  안 남고  죽는다.  백 퍼센트  죽는다.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인간은 모두 죽는거야."
  "그러고 보니 우리가 3학년 때 천황 폐하도 죽었지."
  누군가가 심각하게 말했다. 모두 조용해졌다.
  "이히다는 내가 죽은 후까지 생각해 주니 고맙다."
  사카베 선생님은  기쁜 듯이  싱글벙글 웃으셨다.  이히다는 안심하고  머리를 
긁었다. 류타는
  '그렇다. 사카베 선생님도 죽는다.'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쓸쓸해졌다.  사카베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살아 계시는 줄 알았다.
  프로그램 순서  중의 하나로  잊지 못할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구스오가 요시코를 지명했다.
  "나는 4학년  때 전학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병이 나셔서  아주 힘들었습니다. 
낫도 장사를  해서 모두가  사주었지만 사카베  선생님께서 아침 일찍  여러 번 
아버지의 상태를  보러 오셨고,  '오늘은 다  팔렸니? 힘내라.'  하시며 매일같이 
격려해 주신 것은 일생 동안 잊지 못합니다.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사카베  선생님 말씀으로  낫도를  팔아준 
기억이  있다 그것이  반 전체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동기가 되었다.  다음에 
쌀집의 아오키 시키코가 지명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구스오는 여자만 시키네."
  모두가 웃었다. 구스오는 얼굴이 빨개져서
  "다음은 너다."
하고 지금 말한 학생을 노려보았다. 또 모두 웃었다.
  "나는 작년 12월 10일쯤 가와치 선생님께 야단맞은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키코의 말에
  "나도..."
  "나도..."
  "정말로 놀랐지?"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말했다. 류타도
  '그때 일은 누구나 잊을 수가 없을 거야.'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3
  작년 10월경부터 중학교에  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충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6학년 어느 반이나  똑같았다. 남학생도 여학생도 열심히 공부했다. 방과 
후 2시간  정도의 시간이었다.  사카베 선생님은  그 보충수업을  시작할 때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학교에  가려는  친구들을  위해 내일부터  보충수업을  시작하는데,  혹시 
고등과에 가는  사람이나 6학년을  졸업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보충수업을 받기 
원하면 남아서  공부해도 좋다.  나는 우리  반 전체가  서로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남아도 좋다."
  고등과에 가는 5-6명이 남기로 했으나 다른 친구들은, 
  "공부해도 상급학교에 못 가는데..."
라고  말하며  수험생에게 폐가  될까  봐  같이  공부하기를  사양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사히가와의 겨울  해는 짧다. 그  날은 12월 10일을  전후한 어느 날이었다. 
해는 4시 전에 지니까 3시  조금 지나면 교실은 벌써 어두컴컴하여 모두 집에서 
가져온  초에  불을 켜서  책상  위에  놓는다. 촛불을  켜면  모두의  그림자가 
천장이나 벽에 비춰서  왠지 기분이 언짢다. 그러나 그런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같이  공부하니 낮과 다른  친밀감이 생긴다. 하나의  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류타  앞에  요시코가 앉았다.  요시코는  가끔  뒤를 돌아보고  류타를  보며 
웃는다. 그 때마다  류타를 보며 웃는다. 그  때마다 류타도 같이 웃어야 되는데 
왠지  골이난  얼굴이 된다  보충수업  때는  모두 책상에  한  사람씩  앉는다. 
구스오는 류타의  오른쪽 줄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류타는  뒤에서 두 번째로, 
요시코는 그  앞이니까 구스오  자리에는 두 사람이  잘 보인다. 류타는  그것이 
신경쓰였다. 그래서  요시코가 말을  붙이거나 웃으면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요시코와 자기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튼튼한 유채가 
생기는 듯하여 만족스러웠다.
  보충수업이 끝나면  이미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교실에도 복도에도  전등이 
없기 때문에 교실에서 모두  장화를 신는다. 밖은 눈길이어서 신은 더럽지 않다. 
실내화를  신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어깨에  매고  한데 어울려  어두운 복도를 
나온다. 먼저 모두 화장실에 들린 후 돌아간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니 눈 때문에 환하게  창이 비쳐졌다. 교무실에는 아직 
전등이 켜  있고, 여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류타는 20미터 정도 건너가는 
복도를  걸어서  넓은 실내  운동장에  나왔다.  실내 운동장에도  전등이  없기 
때문에  거대한  동굴 같은  어둠에  기분이  언짢았다. 이  운동장을  비스듬히 
지나면 화장실이 있다. 모두 어깨를 맞대고 화장실에 갔다.
  40학급이 넘는 학교니까 화장실도 넓다. 이상하게 조용한 느낌이다. 혼자 남게 
되면  무서우니까 "기다려  줘!"라든가 "먼저  가지마!"라든가,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소리내어 볼일을 보곤 한다.
  모두 모여 같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갈 때 누군가가 말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길을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 소리에 누군지 모르겠지만 노래하기 시작했다.
  땅에 엎드려서 천지에
  기도한 진실이 헛되어
  해 뜨는 나라의 백성들이
  아무것도 분간 할 수 없는
  칠흙 같은 어두운 길을 간다.
  3년 전에 배운  노래인데, 그때 맹연습을 하여  외웠기 때문에 모두 한  자 한 
구절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다.  류타는  다비가 젖어서  발이  시려웠던  저 
국장날을  생각했다.  모두가  소리를  합하여  노래하며  복도로 왔다.  갑자기 
오른쪽의  숙직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빛이  확  복도에  비쳤다. 검은 
그림자가 복도 중앙에 섰다. 우뚝 선 검은 그림자가 소리질렀다.
  "몇 학년 몇 반인가?"
  모두 고개를 움찔했다. 1, 2, 3학년 때 담임이셨던 가와치 선생님이다.
  "6학년 2반입니다."
  류타가 크게 대답했다.
  "6학년 2반! 사카베 선생님 반이구나."
  "네, 사카베 선생님 반입니다."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생각하면서 류타는  그 곳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 이리 왓!"
  모두 두려운 몸짓으로 가와치 선생님 앞에 섰다.
  가와치 선생님 눈이 번쩍 빛났다.
  "너희들 지금 노래불렀지?"
  "네, 노래불렀습니다."
  '아, 노래 때문에 그랬구나.' 하고 류타는 생각했다.
  "너희들 무슨 노래를 불렀지?"
  "다이쇼 천황의 국장의 날 노래입니다."
  "뭐야! 그 노래인 줄 알면서 불렀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가 그 노래를 가르칠  때 말했지? 주의를 줬을텐데. 이 노래는  꼭 한 번만 
부른다고 했다. 두 번 다시  부르면 안 된다고 했어. 이 노래를 재미로 부르거나 
콧노래로라도 부르면  안 된다고  했지. 황공하옵게도  현재 천황은  건재하시고 
계시다. 그런데 지금 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엄한 일이아."
  "..."
  "6학년이나  된  것들이 존귀한  황실의  일을  월로 알고  있는  거냐!  모두 
여기에서  직금부터 한  시간 동안  벌  서 있어!  그리고 선생님이  말한  것이 
틀렸는지, 아니면 너희들이 나빴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봐라."
  류타는  가와치  선생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래한 
자기들의 기분에는 아무 악의가 없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근신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이라면 가와치  선생님같이 황실을  존귀하게 여기고  충성하는 국민이어야 
한다. 류타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가와치 선생님의  증오의 찬 그 
어조에 화가  났다. 그리고  사카베 선생님의 이름을  말할 때 가와치  선생님의 
어조에는 원수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악의가 느껴졌다. 그것이 싫었다.
  그때 2층에서 사카베 선생님이  내려오셨다. 류타는 앗 하고 소리지를 뻔했다. 
아마 가와치 선생님의 큰 소리가 2층 교실까지 들렀을 것이다.
  "가와치 선생님, 학생들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 지도했습니다. 내일 
잘  타이르겠으니  오늘은 돌려보내  주십시오.  여기는  춥고 더구나  집에  갈 
시간이 늦었습니다. 가와치 선생님, 부모들이 걱정할 겁니다."
  가와치 선생님은  대답이 없었다. 그때  사카베 선생님이 가와치  선생님 앞에 
무릎을 끓었다.
  "부탁합니다.!"
  저도  무르게  류타도  끓어  엎드렸다.  모두가  다 무릎을  끓었다.  사카베 
선생님만 무릎을 끓게 할 수는 없었다.
  "알았다.!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말도록. 사카베  선생! 당신  반은 성적은 
좋은지 모르나 일본 정신이 되어 있지 않아요. 나는 그것이 섭섭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가와치 선생은 숙직실로 가버렸다.
  사키코가 말한  것은 바로 이 일이었다.  그 다음날 왠지 사카베  선생님은 이 
일에 대하여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니,  그때부터 오늘까지 말씀을 안 
하셨다.  그래서  사카베 선생님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알  수가 
없었다. 학생들 때문에  머리숙이기 싫은데도 선생님이 머리를 숙이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류타는 속이  상했다.  류타는 몰랐지만,  사카베  선생님이 숙직실로 
가와치 선생을 찾아갔을 때 가와치 선생님은,
  "당신은  그리스도인이고 교회에  나간다면서요?  일본  정신과 그리스도교의 
정신과는 상반되는 것인가요?"
라고 물었다. 사카베 선생님은 대답했다.
  "일본 정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메지지 천황의 고세이에,
  세계 만방의 모든 동포라고 생각하니
  무슨 물결 바람이 소란한가?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  백성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정신과 천황의  시의 정신과는 같은 
것이 아닐까요?"
  가와치 선생은 팔짱을 끼고 사카베 선생을 노려보다가,
  "그 말도 맞네. 사람들이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라고 교회에서 말하겠지."
하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이 일을 아는  것은 사에코 선생님 뿐이니까 류타가 
알 턱이 없었다.
  지난 일을  이야기하는 순서는 서너  명 정도로 끝내고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검도를 배운  의사의 아들이  도복을 입고  검도의 기본을  보여 줬다.  3년이나 
배웠기에  모습이 그럴듯했다. 류타는 자기도 배울 걸 하고 부러워했다.
  다음으로 여학생 모두가 "아름다운 천연"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하늘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
  큰 물결 작은 물결...
  목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웠지만, 춤추는 모습은 한 사람  한 사람 
제멋대로였다. 새가  나오는 모양,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 모두 춤추는  모습이 
우아하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도  요시코의 춤추는 동작은  대담하고 
움직임이 컸다. 류타는  다른 아이를 보는 척하면서 쉬지 않고  요시코의 모습만 
봤다. 중간에 구스오를 쳐다보니까 구스오는 입을  반쯤 벌리고 요시코를 보면서 
넋이 빠져 있었다.
  곡조가 자유롭게 연주된다.
  신의 조화가 존경스럽다.
  춤추는  모두가 위를  쳐다보며 합장을  하면 기도하는  모습을 했다.  그것이 
보기 좋았다.
  "잘했다. 여학생들도 꽤 잘하는데!"
  사카베 선생님이 손뼉을 쳤다.  모두 다 손뻑을 쳤다. 여학생들의 노래와 춤이 
끝나고 아사다가 마술을  했다. 트럼프 마술이었다. 언제나 우스갯소리를 하여서 
사람들을 웃기는  아사다가 의외로  재주를 부렸다.  트럼프를 만지는  손놀림이 
아주  익숙했다.  그   아사다를  보면서  류타는  점점  쓸쓸해졌다.  아사다는 
상업학교에  마찬가지다.  요시코는   여학교에  간다.  이제  요시코의  쾌활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반짝 반짝  빛나는 동그란  눈동자를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구스오와는  같은 중학교지만  같은 반이  될지 어떨지  모른다. 사카베 
선생님과의 이별은 말할 수 없이 더 쓸쓸했다.
  "좋은 대답은 행복을 가져온다."
라는 정겨운 말씀도 못 듣게 된다. 실패를 해도,
  "이 세상에 실패 없는 사람은 없다."
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신 선생님이다. 남자, 여자, 남자, 여자, 번갈아가며 노래도 
하고 촌극도  하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류타는 쓸쓸했다.  드디어 
류타가  지명을 받았다.  류타가  일어나니  손뼉을 쳤다.  모두  류타의 노래를 
좋아한다.
  "'사쿠라이의 이별'을 노래하겠습니다."
  류타가 말하니까,
  "기다렸다. 와!"
하고 몇 사람이 소리질렸다. 이 노래는  싸움터로 가는 구스오기마사시게가 아직 
어린 아들  마사쓰라를 사쿠라이 역으로  불러서 이별을 고하는  노래다. 부자의 
최후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다.
  푸른 잎 우거진 사쿠라이의
  마을 근처 저녁 노을에
  나무 밑 그늘에 말을 세우고
  세상 삶을 곰곰이 생각하니...
  거기까지  노래한 류타의  음성이  막혔다.  오늘의 이별과  마사쓰라  부자의 
이별이 비교되어서 류타는  깊은 감동에 젖었다. 류타의 눈에 반짝  하고 눈물이 
비쳤다. 류타는 소리를 가다듬어 계속 노래했다.
  참고 참은 갑옷 소매 위에 
  떨어짐은 눈물인가 이슬인가...
  아리면서도  매우 애처롭게  노래한다. 모두가  잠잠해졌다.  계속해서 류타는 
2절을 노래한다.
  마사쓰라는 눈물을 손으로 털고...
  2절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을 때 코를  훌쩍이며 흐느끼는 사람이  몇 있었다. 
순서는 류타의 노래로 끝나고 사카베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사카베 선생님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려는 듯이 차례차례로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말씀하셨다.
  "드디어 모레가  졸업식이구나. 축하한다.  3년 동안  선생님은 너희들  덕분에 
행복했다.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라고  하지. 우리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많은 
헤어짐의 시작이라고  하지. 우리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거야. 그 하나하나에  마음을 다하여 헤어지는 것이 행복한 것이지. 오늘 
송별회 모임, 정말 고맙다.
  언제나 여러 가지 말을 했으니 새삼스럽게 할  말이 없지만 한 마디만 하겠다. 
인간은 모두  인간이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게이오 
대학을 창립한  후쿠자와 유키치도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아래에도  사람 없다.'고  말했다. 너희들은 중학교에  가는 사람, 고등과에 
남는 사람, 6학년만 하고 마치는 사람 등 각각 길은 다르지만 모두 친구다. 장래 
재벌이 되거나  대장이 되거나, 가난뱅이가 되거나  병자가 되거나, 훌륭하고 안 
하고의 차별이 없다. 모두 친구야. 그것을 잊지 말아라."
  모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모두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인연(1)
  9월말의 토요일 오후.
  열어  놓은 창가의  책상을 향해  앉아  류타는 영어  교과서를 읽고  있었다. 
창틀에는 잠자리 서너  마리가 가을 햇살에 날개를  반짝이며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게다 수선-, 게다 수선-."
  외치는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그쳤다. 류타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빠진 게다의 턱을  넣어 주거나 끊어진 끈을  갈아 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류타가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벌써 10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류타는 그가  하는 일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소학교 3, 4학년  때까지는 꼭 
야스시와  같이  뛰어가서 구경했다.  박박  깎은  머리며 어깨가  넓은  모습은 
이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야다이를 세운  장소도 같았고,  몇몇 아이들이 
이상한 듯이  둘러서서 보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야다이를  세우는 
곳은 두서너  집 건너편에  있는 빈터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느  집에서나 턱이  부러진  게다나  끈이 끊어진  게다를  가져간다. 
게다를 깨끗이 씻어서 가지고  가는 집도 있고, 흙이 묻은 채  가지고 가는 집도 
있다.
  손수레에다 야다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철봉으로 고정시키고 나서,  남자는 그 
야다이에 올라가서  가운데 깔아 놓은 얇은  방석에 앉는다.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랜  앞치마를 꼭  매서  입고, 남자는  늘어놓은 게다를  차례로 
고친다. 남자 옆에는  펜치, 톱, 작은 쇠망치, 그리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못이 
들어 있는 깡통이  나란히 놓여 있다. 남자는 굵은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펜치나 
톱을  쓰면서  열심히 게다의  턱을  넣거나  가죽을 걸고  끈을  갈기도  한다. 
야다이의  안쪽에는  빨강,  파랑,  보라, 검정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가죽이 
걸려있다. 구 중에 신품인 게다도 몇 컬레 걸려 있다.
  '게다 수선공'이라는  그 남자는  굵은 눈썹을  모으면서 일을  하는데, 그다지 
인상이 좋지는  않으나 눈길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게다의 턱을  물에 담갔다가 
단단히 넣을  때의 얼굴은  훌륭하게 보였다. 그  얼굴을 생각하고 류타는  왠지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힘있는 소리다.
  "류타 있니?"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문이 열렸다. 구스오다.  같은 중학교 3학년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스오의 몸은 건장하다.
  "야, 구스오구나."
  류타는 책상을 뒤로 하고 구스오를 봤다.
  "게다 수선공이  왔어. 어머니가 고쳐 오라고  하셔서 끈 떨어진  게다 두서너 
컬레 가져왔지."
  구스오가 책상 위를 보며 말했다.
  "뭐야, 이런 좋은 날씨에 영어공부 하니?"
  감탄한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모를 말투로 구스오가 말했다.
  "공부도 취미의 한 가지? 좀 별나구나!"
  "그런가, 이상한가?"
  류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류타는  공부가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 없었다. 
수학도 국어도  역사도 지리도 물리,  화학도 각각 그  즐거움이 있다. 어제까지 
몰랐던 세계가  오늘 눈앞에 전개되어 간다.  그것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이다. 그래도 확실히 공부를 취미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공부가 싫은 
사람은 그게 혐오감으로 들린다. 구스오는 건장하고  튼튼한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류타야, 너는 깊이 빠져들어가는 취미는 없는 것  같은데, 낚시 
가자고 해서 그다지 좋은 눈치가 아니고, 장기를  둘 때도 졌다고 섭섭해 하지도  
않고, 그러고 보면 독서가  취미라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그다지 좋은 현상이 
아닌 것 같아."
  구스오는 혈색이 좋은 입술을 잠깐 오무렸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다지 좋은 현상이 아니네."
  "좋지  안지,  당연하지. 나는  야구를  보러  도키와 공원까지  가기도  하고, 
낚시하러 아침 일찍 아버지의 낚시대를 메고 가고...영화도 보로 간단다."
  "뭐, 영화를 보러가?"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은 학부형 동반도 엄하게 금지되어 있다.
가끔  구스오가  가자고 했지만  류타가  한마디로  거절했지  때문에 구스오도 
가자고  권하지 않았다.  구스오는 몰래  아버지 외투를  입고 어른같이  꾸미고 
영화관에 출입한다.
  "뭘 그리 놀라니?"
  "너, 정학 처분 받으면 어떻게 해?"
  "그 때는  그 때고,  중학생이 신나는  무술영화 보러  갔다고 정학이  된다면 
아무래도 좋아. 웃기지!"
  구스오가  소리  높여  웃었다.  류타는  자기가  굉장히  유치하게  느껴져서 
부끄러웠다. 중학교 3학년쯤 되어 초등학교의  고등과를 나와서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다.  사회인으로소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긴 나이라고 새삼 느껴졌다. 
류타가 그렇게 말하니까 구스오가 또 한 번 큰 소리로 웃었다.
  "류타야! 너는 순진해서 좋다."
  "순진?"
  "그래, 학교  선생님들이 영화관  출입을 못하게  하는 건  영화 내용  때문에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영화관에 들어가서  여자 손을 만지거나  몸을 만지거나 
할까 봐 그것이 걱정인 거야!"
  "뭐? 정말?"
  "정말이고 말고! 영화관에 들어가서  뒤에서 보면, 어른들이 여자 허리 근처를 
만지거나  옷소매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가슴을 더듬거나  하지.  이건 
영화보는 것보다 더 흥분되더라!"
  류타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핑도는 것 같다. 
상기된 류타의 얼굴을 보면서 구스오가 말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컴컴한 영화관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거야. 그래서 
학부형을  동반해도 영화관에  가면 안  된다고  쓸데 없는  규칙을 만든  거지. 
그것쯤은 눈치채고 있지."
  "아무리..."
  또 한 번 구스오에게 놀림감이 된 기분이다.
  "그건 그렇고, 류타야! 너도 청춘의 고민이라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구스오의 정색을 하고 물었다. 구스오의 얼굴에는  커다란 여드름이 두세 개나 
있다.
  "청춘의 고민?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런 고민이 말이냐?"
  "바보야! 류탸야, 너 이불 속세 들어가면 바로 쿨쿨 자니? 여자생각 하나도 안 
나니?"
  "그건..."
  "생각나지?  나는  류탸야!   이  청춘  시절을  무엇  하나   잘못되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해.  그것이  매일   나의  고민이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지내는 류타를 보면  가끔 '이 자식,  이 위선자 놈아!' 
하고 욕하고 싶어."
  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좀  심하지만  구스오는  진지한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 위선자인지 모르지. 너무 내 자신의 일을 구스오 너같이 생각하지 않았어. 
용기가  없어서  그런지  나를  주시하기가  무서워.  후지무라는  17세  때  저 
벼랑끝에서의 느낌을 쓰고 '인생은 불가사의'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지."
  "응!  국어  선생님은  철학적  자살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실연이  아닌가 
생각했어."
  "뭐, 철학적 자살이 아니라구?"
  "16, 17세 나이에 찰학적 자살인지 뭔지 알 것 같아? 걷어채인거야, 채였어?"
라고 말하고, 구스오는 팔짱을  끼고 류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 보았다. 류타가 
책상 위의 센베이 통을 집어 앞에 놓으며 말했다.
  "먹을래?"
  "3시에 먹는 간식인가?"
  그리고 통에 손을 넣어 센베이를 집으며 말했다.
  "류타야, 너 여자에게 반한 적 있니?"
  "반해?"
  요시코의 얼굴이 금방 떠오른다.
  "그래, 반한 적 있어?"
  계속 추궁한다.
  "좋아하는 것과 반하는 것은 같은 거니, 구스오야?"
  "좋아하는 것과 반하는  것은 다르지. 반한다는 것은 전신이 황홀해지는  거야. 
그 여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야."
  "너는 어른이구나!"
  "아냐,  잡지책에서 본  것  뿐이야. 나는  덜렁거리니까  내 말은  틀리는 것 
투성이잖니."
  그런  말을 하는  구스오를 보면서  류타는  자기에게 없는  일종의 지혜라고 
느꼈다.  학교 성적은  내가 좋고  소설도 내가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것 
뿐이다. 실생활에서는  구스오가 모든  것에 앞  섰다는 느낌이다.  이 차이점은 
무엇 때문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 류타에게 구스오가 말했다.
  "나 이번 일요일에 교회에 가보려고 한다."
  "교회?"
  놀리는 류타에게 구스오는 태연하게 말했다.
  "요시코가 요즈음 사카베 선생님이 나가시는 교회에  다닌다고 하더라."
  싱긋 웃고 구스오가 일어났다.
  "게다가 다 고쳐졌겠지? 또 올게!"
  손을 번쩍 들고 구스오는 가버렸다.
  2
  구스오가 나간 뒤 류타는 다다미 위에 천장을  향해 누었다. 삼나무 판으로 된 
천장이 오늘은 높아 보인다.
  '아무렴. 구스오가 정말 교회에 가는 것은 아니겠지?'
  류타는 농담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쪽으로 생각하니  구스오니까 큰  결심 
없이 쉽게 갈 것 같기도 하다.
  류타는 갑자기  올봄의 일이 생각났다. 어느  일요일, 오늘처럼 게다 수리공이 
눈 녹은  빈터에 자리를 잡았다. 새싹이  파릇파릇한 아름다운 오후였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눈 올  때  신는 게다와  맑은  날씨에 신는  게다를  들고 수선을 
부탁하러  갔다.  근처의  아이들  서너  명이  끈을  익숙하게  매는  손놀림을 
구경하고 있었다.  류타도 아이들 뒤에  서서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등을 쿡 
찔렀다. 뒤돌아보니  양쪽 머리를  늘어뜨린 요시코가  빙긋 웃고  있었다. 그때 
류타는 전신이  얼어붙는 것같이  느껴졌다. 뭔지 알  수 없는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류타는 공연히 성난 얼굴을 하고 그 자리를 떴다.
  그때 세라복을 입은 요시코의  모습을 여러 번 눈에 그렸다. 그때  왜 나는 그 
장소를 떠났을까?  구스오 같으면 자기도  웃는 얼굴로 인사  정도는 서로 했을 
거다.  그런데 나  자신은 길에서라도  이성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칙을 
겁내서 그러치 못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은 요시코를 마음 깊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요시코 앞에서는 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누나인 미치요가 요시코를 귀여워해서 가끔 집에  부르기도 한다. 식사를 같이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류타는 가볍게 말을 걸지 못한다. 눈을 아래로 깔고 
식사를 하거나  동생인 야스시하고만  이야기한다. 그런데  구스오는 안 그렇다. 
때로는  요시코가 집에와  있을 때  구스오도  와서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구스오는 정직하게 기뻐하면서,
  "야! 요시코야, 여기 왔구나. 어쩐지 오늘 아침 꿈자리가 좋더라!"
하며 즐거운 듯이 말한다. 요시코도 명랑하게,
  "어쩐지 내 꿈자리는 나빴구나!"
하며 농담도 한다. 또 구스오는,
  "요시코야! 나는 여학교 교과서가 보고 싶은데, 이번에 좀 보여 주지 않을래?"
라고 가볍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  서로 친해 보이고  류타만 
소외된 것같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류타는 요시코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
  '저 자식, 정말 교회에 갈 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이  된다. 교회의 자리는  남녀별로 구별 되어  있지 
않다니까 구스오와 요시코가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
  류타는 벌떡 일어났다. 왠지 공부할 기분이 안  되어 긴자 거리라도 걸어 볼까 
생각했다.
  교복 단추를 끼면서 계단을 내려오니까, 어머니와 미치요가 차를 마시고 있다. 
오늘은 가게가  휴업이라 점원도  안 보이고 아버지께서도  모임이 있어 오후에 
나가셨다. 류타를 보고 미치요가 말했다.
  "어머,  어디  가니?  일이  좀 있는데.  류탸야,  가격표에  물감을  들이려고 
생각하는데 도와주지 않을래?"
  "가격표?"
  류타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가격표란 전당잡힌 물건에 붙이는  짐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짐표처럼 두꺼운  종이나 철사를  쓰지 않는다.  선화지를 세로 
20센티, 가로 3센티 정도로 자르고 거기에  손님의 이름, 전당잡힌 월이, 빈 돈의 
액수,  번호 등을  붓으로 두  줄로  써놓는다. 이  가격표는 꺼내거나  넣을 때 
편리하게 달별로 물을  드려서 놓는다. 즉, 1월은  노란 색, 2월은 보라색, 3월은 
녹색, 4월은  빨간 색  등 열두  가지색으로 물들여서  놓는다. 미야코 염색물감 
가루를 접시의 물에 녹여 가격표를 물들이면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다모리 
전당포는 손님이 많아 하루에 30명이 온다고 해도  한달에 9백 매, 일 년이면 약 
11000여 매라는 방대한  수의 가격표를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1년치를  한 번에 
물들이고 말리고 할 수 없어서 틈이 나면 두 달치씩 물들여 놓는다. 
  작년에 미치요가  여학교를 졸업하고 이  작업을 미치요가 맡았다.  류타는 그 
일이  단순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세  번 부탁하면  두 번쯤은  도와준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시원치 않은 대답을 듣고 미치요는 뜻있는 웃음을 웃는다.
  "좋아, 공부할 것이 많으면. 요시코가 도와주러 온다고 그랬으니까!"
  류타는 아차 했다.
  '요시코가 오는구나'
  "좋아, 나도 도와줄게"
  좀  얼굴이  빨개지며 말하는  류타를  보고어머니는  미치요와  눈짓을 하며 
웃는다.
  4시까지 온다면 아버지가 5시가 지나서도 오지 않는다. 류타와 미치요, 요시코 
셋이서  가격표에  물들이기를  했다.  야스시는  친구네  집에  가서  아직  안 
돌아왔다. 부엌에서 카레를 만드는 냄새가 풍겨온다.
  "다녀오셨네요!"
라며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 어머니에게 아버지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여보! 나 료카치의 아버지를  위문하러 갔다 오겠소. 오늘 모임에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나이먹은  사람은  환절기에 
조심해야 된대요!"
  "어머, 지금 가면 돌아올 때 어두워질텐데요."
  "뭐, 자전거로 한걸음에 가면  되지. 류타를 데리고 갈 거니까 괜찮아.  류타야, 
료키치네 집에 같이 가는거다."
  류타는  화가  났다.  오늘은  요시코와도  친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요시코의  얼굴을 보는  것이  눈부시고  즐거웠다. 마주앉아서  일하는  것만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점원의  아버지  이시다  헤이키치의  문병을 
가자고 그러다니...
  헤이키치가  자리에  누운 치  한  달이  넘었다. 원래  세이다로오의  아버지 
때부터 친한 사이고, 헤치키치가 쓰러졌을 때  아버지는 달려가서 문병했지만 그 
후에 들여다보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오늘 전당포  모임에서 삶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갑자기  헤이키치가 걱정이 된  것이다. 근본이 
착한 아버지  세이다로오다. 생각날  때마다 사람들을  위문하는 것이  보통이라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기에 기쿠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이  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류타는 말없이  아버지 뒤를 따라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와 요시코와는 인연이 먼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자기가 나간 뒤에 구스오가 
놀러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점원의  집은 가미가와  신사가 있는  가구리오카 언덕  근처에 있었다.  원래 
가구리오카는  천황의 별궁  예정지였다. 거기에  이어  약 8킬로미터에  달하는 
언덕지대는 전에 황실의 소유지로서 일반 사람들은  그곳을 성대라고 불렀다. 이 
성대에서 1922년부터 1924년에  걸쳐서 소작쟁의가 일어나, 궁내성에  이 토지를 
개방하라고 촉구하여  이제까지 없었던  분쟁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황실의  소유지는 가구라  마을에  불하되어, 그후  전차인  703명에게 한  집단 
5정보쯤을 가구라  마을에 분양하였지만  대지인 까닭에 수리시설이  없어 물을 
대는 토목조합이 설립되고,  1932년 4월에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세이다로오의 
점원인  설립되고,  1932년 4월에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세이다로의 점원인 
료키치의 집은 이 대지의 변두리 가구라오카 공원의 가까운 모퉁이에 있었다.
  추베쓰 강에  놓인 나무 다리를 두  사람 모두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건넜다. 
엷은 구름이  낀 저녁  하늘에는 서쪽 숲을  향해 까마귀가 5-8마리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다. 그 뒤를  한 마리가 떨어져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류타는 
왜 저 까마귀는 혼자 떨어져서 갈까 하며 이상하게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언덕길이다. 여기도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야 한다. 겨우 올라간 
왼쪽에 신사의 도리이가  있다. 6학년 때 취사 소풍을 온  뒤에 사카베 선생님과 
왔던 길이다.  세이다로오가 도리이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정성스럽게  왔던 
길이다. 세이다로오가  도리이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정성스럽게 절을 했다. 
류타도 같이 절했지만 자전거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 했다.
  그 앞의  숲속에 마차가 지날  수 있는 길이  있다. 다시 페달을  밝으며 뒤를 
쫓는 류타에게 세이다로오가 물었다.
  "구스오가 그리스도교 교회에 나간다고 하는데, 너보고도 자가고 그랫니?"
  류타는 놀랐다. 류타는 오늘  처음 들었을 뿐ㅇ. 그런데 아버지는 대체 어디서 
들으셨을까?
  "가자고 그러치는 않았어요."
  "그래."
  조용히 대꾸하고 세이다로오는 앞으로 갔다. 길  양쪽은 원생림 숲이고 낮에도 
어두운 곳이다.  류타는 이  숲속 어디에  사람이 죽어  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고, 그렇게  생각만 해도 그 근처  풀숲에 남자나 여자의 시체가  누워 있는 
것같이 느껴져서  소름이 끼쳤다. 한참 가니  숲을 지나 넓은 밭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그 길을 왼쪽으로  꺽여서 200미터쯤 가니 점원의 집이었다. 침엽수와 
벚꽃나무 등에 둘러싸인  농가였다. 집 건너편에 창고가 있고 그  옆에 마구간이 
있다. 말이 조용히  얼굴을 내밀고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온 것을 
알고 료카치가 뛰어나왔다.
  류타는  창고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창고  문이 열려  있어서  안을  보니 
어두컴컴한 곳에  삽이랑 괭이가 벽에 걸려  있고, 감자포대 같은 것이  몇 포대 
쌓여 있었다.  그때 창고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했다.  류타는 아마 쥐가 
있나 보다 하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아버지 뒤를 따라 료키치의 아니 하나요가 
작업복을 입은 채로 난로에 장작을 넣고 있었다.
  아버지 헤이키치는 안방에 누워 있고, 어머니 미사가 옆에 있었다. 헤이키치는 
세이다로오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운다.  류타는 그를  보지 않고  걸려 
있는 석유 램프의 불을 보았다.
  헤이키치는 원래  목소리가 크고,  항상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우는 얼굴을 보니  류타는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야!  생각한 것보다  좋아졌네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는데 참  잘왔네요. 
잘왔어!"
  그렇게 말하면서 새이다로오는 파인애플 통조림 몇  통을 그 머리밑에 놓았다. 
료키치에게서  들은 바로는  헤이키치의 뇌일혈은  그리 간단히  낫지 않는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류타가  보기에는 얼굴색도 좋고  그런대로 가면 
얼마 안에 건강을 되찾을 것 같았다.
  료키치가  일부러  오셨으니 우동이라도  잡수시고  가라고  권했지만 류타는 
초조했다.  집에  가면  류타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가  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요시코와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류타는 안절부절했다. 세이다로오는 
  "아냐, 집에서 저녁을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면서도 금년 농작물이  어떠냐, 불경기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또는 만주사변은 
어떻게 될까  등 료키치의  막내딸 하루에를 무릎에  안고 병자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자꾸 한다.  캐러멜을 받은 남자아이 둘은 오랜만에 온  손님이 반갑고 
좋아서 거실과 안방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뛰어다닌다. 참다못해  류타가 아버지 
양복을 끝을 잡아당기면서,
  "아주 캄캄해졌어요. 집에서 모두 기다리는데..."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더니 그제야 헤이키치의 자유로운 왼손을 잡으면서,
  "또 올께요. 아직  60인데 젊으니까 곧 나아서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집 
옆에도 이 병을 앓았지만 건강하게 나은 사람이 있어요!"
하고 일어났다. 류타는 기뻐서 인사를 하는 등 마는 등 일어났다.
  "벌써 가요?"
하며 아이들이 류타를 쫓아오니 할머니가 말렸다.
  "무서운 사람이 와요! 어두울 때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안 돼요!"
  류타는  왠지  이   아이들을  위해서  다시  오고   싶어졌다.  세이다로오와 
이야기하면서  료키치는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창고  앞에  세워둔 
자전거에  달려 있는  회중전등 스위치를  류타가  켜자. 밝은  빛이 창고  안을 
비췄다.  그때 류타는  흠짓 놀랐다.  순간적이나 확실히  사람 그림자를  본 것 
같다. 료키치의  집은 료키치  부부와 아이들  셋, 그리고  헤이키치 부부,  모두 
일곱 명이다. 그때 옆에 온 세이다로오에게 류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창고 속에 누군가 있어요."
  "누가 있어? 아무리... 또 겁쟁이 류타가 뭘 보았나!"
  료키치는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가만 있어!  그러니까 오늘  아침께 세이다이  공사장에서 조선 사람  다코가 
도망쳤다고 사람들이 찾으러 왔었어요!"
  료키치는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가만 있어!  그러니까 오늘  아침께 세이다이  공사장에서 조선 사람  다코가 
도망쳤다고 사람들이 찾으러 왔었어요!"
  료키치는  갑자기 긴장된  얼굴이  되었다. 류타는  가슴이  철렁했다. 다코의 
이야기는 소학교  때부터 학교에서도 들었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다코란 돈을 미리 받고 토목공사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다코의 방은 
감옥 같은 무서운 곳이라고  했다. 언제나 채찍과 몽둥이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때로는  물에 쳐넣기도  하고 산채로  땅에 파묻기도  한다고 들었다.  훗카이도 
길이나 선로  밑에는 많은  노동자의 뼈가  묻혀 있다고  한다. 다리를 놓을  때 
기둥 속에 처넣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세이다이의 토목공사는 다코나  죄수들이 많이 투입된 대공사라고  한다. 금년 
봄부터 시작한  공사인데, 직금까지  다코가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료키치에게서 
두세 번 들었다. 발견되면 마지막으로, 생명의 보장은 없다. 류타의 발이 떨렸다. 
혹시 이  창고 안에  다코가 도망쳐 와서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세이다로오가 
창고문 밖에서 침착한 어조로 불렀다.
  "누가 있어요? 있으면 나와요!"
  그 속에서는 조용하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세 사람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나와요, 걱정 말고 나와요!"
  세이다로오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다. 료키치는 떨면서,
   "아, 아무도 없어요. 주인님, 류타가 잘못 본 거죠?"
  료키치가  말했지만 그  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그때  안쪽 가마니  뒤에서 
일어선 사람이  일었다. 저도 모르게  류타는 뒷걸음질 쳤다.  볕에 타서 시커먼 
얼굴에 두려움으로 눈이 번쩍였다. 남자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더러운 셔츠를 
입고 다 떨어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류타는 도망치려고 했다. 남자는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듯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주인님!"
  류타는  아직까지  이렇게 처참한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거지보다도  더 
비참했다.
  "당신, 다코 방에서 도망쳤나요?"
  확인하는  식으로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남자는  납작  엎드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료키치 군! 자네 창고로 도망쳐 온 남자다. 어떻게 하겠니?"
  료키치는 손을 내저으면서,
  "주인님, 저는 어찌할지..."
  "알았다. 포수도 날아든  새는 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이 남자를 돕겠어. 
좋지? 료키치군!"
  "넷? 도와줘요?"
  혹시 현장감독에게 들키면 도와준 사람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해보자!"
  "어떻게 해요? 주인님!"
  "나에게  맡겨, 료키치  군! 창고에  들어가 문을  닫아라. 류타도  회중전등을 
들고 안으로 들어와!"
  세이다로오는 척척 지시한다.
  "료키치 군, 네가 입은 작업복을 내일까지 빌리자."
  "네!"
  료키치 군, 네가 입은 작업복을 내일까지 빌리자."
  "네!"
  료키치는  남자쪽을  보면서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빼고  가슴의 
주머니를 더듬어 보고 작업복을 벗었다.
  "이 사람에게 줘라!"
  료키치는 엉거주춤하고 작업복을 던졌다.
  "던지면 되나?"
  "그래도 이 놈은 조선 사람인걸요..."
  료키치는 관동대지진 때의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다. 조선 사람이  대지진 때 
우물에 독을 넣었다든지, 일본인을 습격했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믿고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조선 사람도 같은 인간이야."
  날카롭게  말한   아버지  세이다로오의  말에   남자의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남자는 던져진  작업복을 재빨리 입었다. 모두 밖에  나왔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남자가 류타의  자전거를 타고,  짐을 싣는 자리에  류타가 
걸터앉았다. 세이다로오가 앞에 서고 세게 페달을 밟았다.
  "주인님, 류타 군! 모쪼록 조심하세요!"
  료키치가  불안한  얼굴로  보낸다.  캄캄한  숲속  양쪽을  보면서  두  대의 
자전거가 달린다. 회중전등  불빛이 앞쪽, 좌우를 밝게 비춘다.  류타는 낯모르는 
남자의  허리를  꼭 붙잡고  있었으나  가슴은  두근거렸다. 이  남자는  어젯밤 
도망친 다코다. 발견되면 매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체온이 류타의  손에 따뜻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류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남자를 무사히  도망치게 하고  싶었다. 아직  22-23세를 넘지  않아 
보이는  젊은이다.  역시  부모도  형제도  있겠지.  세이다로오가  말한   "같은 
인간이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류타의 가슴에 와 닿았다.
  이 남자가 후에 류타를 위기에서 구할 줄은 물론 아무도 몰랐다.
  인연(2)
  밤  기차의 기적소리가  길게 들렸다.  류타는  이불 속에서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지금 아래층  방에서 자고  있는 조선인  김준명의 일이  걱정되어서 
잠이 오지 않는다.
  '괜찮을가?'
  김준명은 아버지  침실에 복도를 지나서 다다미  6장 방에서 자고  있다. 바로 
그 옆에 부엌이 있다. 번쩍거리는 칼, 회칼이 눈에 선하다.
  '칼을 치워 둘 걸.'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부엌에 가볼까 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자기 전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류타가 "괜찮을까요?" 라고 
작은 소리로 물으니까 세이다로오가 말했다.
  "괜찮다. 류탸야!  겁먹지 마라. 아버지는 매일  가게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지. 
조금은 사람을 볼 줄 안다. 김은 눈이 맑아!"
  류타는 아버지  말을 믿기로 했다.  류타는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댔다. 옆에서 
가늘게 숨소리를  내며 자던 야스시가  류타 쪽으로 돌아눕는다.  야스시도 잠이 
깼나 하고 생각했다.
  "야스시, 너도 깨어 있었니?"
  물었으나 야스시는 쌕쌕 자고 있다.
  '야스시는 장하다. 아무 걱정 없이 자고 있구나.'
  길거리를 지나는  짜루메라 소리가 들린다. 들을  때마다 슬프게 느껴진다. 그 
소리가 멈췄다.  아마 손님이  생겼나 보다. 아직  안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류타는 조금 안심이 된다.
  다시 짜루메라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멀어져 갔다.
  점원의 집에서  아버지의 류타와  김준명 세 사람이  자전거로 돌아오던 일이 
눈에 선했다.
  '그땐 정말로 놀랐어.'
  류타는 혼자  중얼거렸다. 약  100미터 정도만  더 가면  우리 집인데  갑자기 
골목에서 제복을  입은 순경이  칼을 차고  나타났다. 류타는  가슴이 철렁했다. 
김준명의 허리에 매달렸던 손이 굳어졌다. 그때 앞에 가던 아버지가 
  "야, 야마다씨, 수고하시네요!"
하고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순경도 응답하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류타는 안심이 되어 
  "안녕하세요?"
하고 자기도  인사하며 지나갔다.  야마다 순경은  류타의 집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파출소에 6개월  전부터 근무하는 젊은 경관이다. 언제나  폐를 끼친다고 
한  달에  한 번쯤  만두나  센베이를  사서  보내는데  기다모리는 전당포와는 
친하다.
  '그때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이제부터가 큰일이야.'
  류타는 이불 속에서  궁리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요사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사복 형사가 기키러온다. 아침부터 올 때도 있고 저녁에 올 때도 있다. 김준명의 
방은 다행히  부엌도 화장실도  가깝고 거실에 있는  손님과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언젠가 얼굴을  보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햇볕에 탄 낯선  남자와 마주치면 사복 형사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금방 발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다코가 도망치는  것은 가혹한 취급  때문이기에 현장에서도 
내놓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류타의 생각은 차차  김준명에게로 옮겨 갔다. 김준명은  세이다로오가 이름을 
물었을 때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일본식으로 읽으면 긴슈운메이라고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세이다로오가 
  "일본식으로?"
라고 되묻고 나서 잠시 생각하더니,
  "오늘부터  당분간  곤도시아키라고  부르기로 하지.  자네는  사투리도  없는 
일본인 같으니까!"
라고 말했다. 류타는  또 여러 가지 일을  생각했다. 현관에서 김준명을 처음 본 
미치요의  놀란 얼굴,  큰  눈이  깜빡이지도 못했다.  그  뒤에서  얼굴을 내민 
야스시가 미치요 이상으로 놀란  얼굴을 하고 민망할 정도로 뚫어지게 김준명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위아래로 쳐다봤다.  하여간 보통이  아니었다. 그럴 정도로 
보통 사람의 얼굴과는 다르게 검게 탔다.
  마지막에  나온 어머니  기쿠에는  역시  전당포의 여왕이었다.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다. 아버지 세이다로오를 흘끗 보고는 
  "자아! 어서 들어와요."
하며  밝게  말을  걸었다.  그  한마디로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던  미치요도 
야스시도 안심한  모양으로 거실로 왔다.  거실에는 요시코가 아직  있었고 탁자 
위에  식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류타는  요시코와   이야기할  틈도   없이 
세이다로오의  지시로 부엌  옆방  다다비 6장  방에  김준명을 안내했다.  몸이 
깨끗한 못한 것 같았지만 세이다로오가
  "굉장히 배가 고팠을텐데, 목욕은 나중에 하고 먼저 밥을 먹어야지!"
하며  곧 식사준비를  시켰다. 아버지와  류타가 김준명  방에서 같이  저녁밥을 
들었다. 결국 요시코와 같이 식사하는 즐거움은 틀어지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밤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게단 밟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류타는 몸을 움츠렸다.  다시 한 번 계단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층에는  부모님이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밤에 2층에 
올라오시지 않는다. 부모의 침실은 김준명의 방을 지나서 있다.
  '혹시?'
  김준명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해치려고 하지  않을까? 그  전에 2층의 기색을 
살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금년  정월  사쿠라다 문  밖에서  천황의  행렬에 수류탄이  던져졌다.  천황 
암살은 미수에  그쳤지만 류타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범인은  조선 사람이었다. 
천황 암살을 조선  사람이 계획했다고 해서 조선  사람 모두가 사람을 해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류타를 무섭게 
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는  두 번뿐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소리가  안 
들리니까 더욱 기분이  나빠진다. 2층의 기색을 살피는 김준명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언젠가 강도에게 당한  전당포의 노부부같이 신문 제 3면에 "부부 참살! 
흉악 살인!" 등등 크게 특종으로 신문에 나올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 활자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죽여도 저 남자에게 하나도 득이 안 되겠지...'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렇다. 김준명은 적어도 보름은  이 집에 숨어 있어야 할 
처지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있다는 오사카로 돌아갈수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 
살인을 하면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다.
  '그래,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야.'
  갑자기 걱정한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계단은 가끔 소리가 날 때도 있다.
  '나는 역시 겁쟁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자기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조그마한  일이 생겨도 
그것에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인간인 것 같다.
  '역시 나는 구스오같이 든든한 마음을 못 갖는구나.'
  구스오 같으면 김준명과 같은 방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잘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또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남이면 집안에 잘 안 들어오지만  사촌인 구스오는 
집안  어디나  볼 수  있다.  곧  김준명의 존재를  눈치  챌  것이다. 구스오는 
꼬치꼬치 나에게 물을 테고, 어떤  대답을 한 다 해도 금방 이해를 못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이상한 사람이 기다모리 집에 있다고 저희 부모나 친구에게 떠들고 
다닐지도 모른다. 혹은 다코에 관한 지식이 있어 알아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류타는 우울했다.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시고 저  사람을 집에  데리고 왔을까? 형사가  오는 
것도, 구스오 남매가 오는 것도, 요시코가 가끔 출입하는 것도 모두 생각한 후에 
사람을 도와주신 것일까?
  '아무리 할아버지를 닮은 친철한 분위기는 하지만...'
  류타는 원망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곤란한 사람들을  결코 지나쳐 
보내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아버지도 그 할아버지를  꼭 닮았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나는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 이런 걱정거리에 말려들기 싫다. 그러나...'
  류타는  다시 뒤척이면  잠을 못  이룬다. 안마하고  불고 다니는  피리소리가 
들린다. 밤중에 들리는 기차의 기적소리도,  짜루메라 소리도, 안마사 피리소리도 
왠지 이상하게 쓸쓸하고 슬프다. 갑자기 사카베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카베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소학교를 졸업하고 사카베  선생님과 헤어져서 3년을 보냈지만 류타는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사카베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까?'하고  생각한다.  사카베 
선생님은  가끔  "선생님도  인간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류타에게  있어서 
사카베 선생님은 행동의 규범이다.
  사카베 선생님과 사에코  선생님 사이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난지 꼭 일 년이 
되었다.  미치요의 둘이서  작년  이맘  때쯤 그  아기를  보러  갔다. 미치요는 
미키코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를  안고 "귀엽다,  귀엽다!"  라며 놓지  않았다. 
사카베 선생님이 
  "미치요는 정이 많은데? 미치요도 이제 시집가서 아기를 낳아야지?"
하고 말씀하시니, 미치요의 생긋 웃고 대답했다.
  "그렇죠. 나는 여학교  때는 사카베 선생님은 좋아했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이 
빨리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하며 웃었다.  그때 류타는 안심했다. 누나가  혹시 마음속으로 사카베 선생님을 
사모하여 일생을 마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때 그 말을 듣고  미치요 말대로 
사카베 선생님을 좋아한 것은 사춘기 때의  동경의 대상으로 서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으로  끝  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김준명의  일을 
생각했다.
  '사카베 선생님도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셨겠지.'
  아마 저  남자를 버리거나 내쫓거나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사카베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류타야!  어찌했으면  좋을지 모를  때는  자기에게  손해되는  쪽을 택해라. 
그러면 틀림없다."
  그리도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나의 이득이 되는  일이 다가왔을 때, 사람은 시험받는다고 생각해라.  이득이 
되었다고  기뻐할 때  크게  실패하는  수가 많다.  눈앞의  이익만  찾지 말고, 
그쪽으로는 눈이 어두운 편이 났다."
  사카베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역시 아버지는 좋은 일을 하셨다.'
  집 근처에서 "불조심, 불조심!"하는 딱딱이 소리가 들렸다.
  2
  김준명이 온 지 일주일이 후딱 쥐났다.
  걱정한 사복  형사도 한 번은 왔지만  한 시간쯤 있다가 갔고,  구스오도 오지 
않았다.  구스오의  어머니가 긴자  거리에서  과자를  사와서 차를  마시고  간 
정도였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한 주간이었다.  가게는 추위를  앞두고 전당 
물건의 출입이  잦았고, 그것  때문에 점원인 류키치도  준명을 두려워 할  틈이 
없었다.
  김준명이 온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류타는 준명의 방을 들여다보고 놀랐다. 
거기에 가격표 염색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푸른 기모노에다  각띠를 매고 
정좌하고 앉아서 가격표에 보라색 물을 들이고  있었다. 그가 준명이라고 생각한 
것은  얼굴에서  목덜미까지  검은  색이고  손이  검은  것  때문이었다.  아마 
어머니가 익숙한 솜씨로  머리를 깎았을 것이다. 산뜻한 오부 정도의  머리를 한 
그는  어제까지  더러운 장발의  준명과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보였다.  더구나 
아버지의 옷과  허리띠를 빌린  것인지, 아니면  전당포에서 처분된  물건인지는 
모르나  기모노를  입은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린다.  그을은  얼굴만  아니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턱수염도 깨끗이  면도한 준명은 눈썹은 짙은 
잘생긴 청년이었다.
  놀라서  보고 있는 류타에게 준명은
  "돌아오셨네요! 어제는 대단히 폐가 많았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아뇨!"
하고 머리를 긁으며 류타는 앉았다.
  "놀랐어요! 누군가 하고..."
하며 뚫어지게 준명을 쳐다봤다. 류타의 경계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제 
준명의 모습은 가짜이고, 지금의 모습이 정말로 준명의 모습인 것이다. 준명도,
  "다른 사람입니다."
하고  조용히 웃었다  그 얼굴이  상큼했다.  이제 준명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없어졌다. 류타도 휘파람을 불면서 자기 방으로 올라 갔다.
  그날부터 차차  준명은 기다모리 집  사람들과 친해졌다. 부모와  함께 어렸을 
때  일본에  왔고,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작년에  죽었고, 홋카이도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서 다코 방에 들어온  일, 감독이 자신이 조선 사람인 
것을 알고 매사에 짐승 취급을 해서 매일같이 매맞고 가죽구두로 걷어채이는 등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다코 방을  도망쳤다는 말을  말수는  적어 드문드문 
이야기했다.
  세이다로오는  그런 준명의  말을 들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듯하였으나 직접 
질문을 하여 신상의 일이나 다코 방의 내용을 묻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다.  그런 것은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고, 말하고 싶은 것은 묻지 않아도 자기가 이야기 한다."
라고 말했다.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도 그  생활이 대단히 어렵고 가난한 모습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린 모습은  사치하지만 이상하게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이다로오는 손님이 말할 때는 잘 듣고 있지만, 안 그럴때는 직접 
나서서 묻지 않는다. 김준명에 관해서도 같은 태도다.
  류타는 그런 아버지가 존경스럽다고도 생각하고 좀 아쉽다고도 생각했다.
  준명이  하는 일은  성실했다. 준명은  아침 일찍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조용히 복도를 닦고 마당청소를 했다. 검은 담에  둘러싸인 정원 일을 해도 남의 
눈에 안  띄게 했다.  사람 출입이  잦은 낮에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주어진 
일을  충실히 했다.  맡겨진 전당물의  옷에 오점이  있는가 조사하거나  구겨진 
옷은 다리미질하여 잘 개서 정리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는
  "이대로 당분간 집의 일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하고  어머니  기쿠에가  집안  식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할  정도였다. 
기다모리의 식구  누구나 준명과 익숙해졌다.  김준명이 와서 열흘쯤  지났을 때 
구스오가 놀러  왔다. 놀러온  것보다 류타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 달라고  온 
것이다. 두서너 문제를 푸는 동안 구스오는 빨리 이해를 해서
  "아아!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류타는 선생님보다도 가르치는 방법이 훌륭해."
하면서 감탄한다.
  "치켜세우지 마!"
  류타는  수학 문제를  풀었으면 구스오가  빨리 갔으면  했다. 한동안  준명의 
존재를 이야기하기 싫었다. 그런 류타의 마음을 알 리가 없이 구스오는 말했다.
  "류타는 역시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맞아. 그러나 이제부터는 대학 출신이 
출세하는 시대야. 이제 슬슬 사카베 선생님 숭배도 그만둘 때가 되었지."
  구스오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출세가 뭐야? 수입이 많다는 건가, 발언권이 세다는 건가?"
  "대개 그런 거지."
  구스오는 어른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기 권리를 무시당하면 속상하지 않니?"
  "그래. 하지만  나는 출세도 못해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인간답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그러나 언젠가 말했듯이 나는 대학에 갈 거야. 그러면 
류탸야, 너는 나 같은 놈의 명령에 복종해야 되지. 그래도 좋아?"
  "누가 말해도  이치에 맞으면  따라야지. 나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 말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반항할 거야."
  "그래, 저항해?  그러나 그렇게  될까? 우리  아버지는 인간은  간단히 따르고 
만다고 하셨어."
  "그래.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어른 상대가 아니지.  순진한 
아이를 상대로 살아갈 거야.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
  "맞아. 그러나 류탸야!"
  구스오는 똑바로 류타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소학교 선생은 아이들만 상대하니? 직원실에  상사도 있고 선배도 있고 교장, 
교감 선생도  있어. 부형들의 모임인 학부모회도  있지. 학부모회의 회장은 대개 
주도권을 잡은 자야. 그리고 문부성이 있어."
  류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너는 어떻게 그런 어른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니?"
하고 머리를 갸우뚱했다.
  "류탸야!  예를  들어서 내가  정치가가  되었다고  치자.  나는  만주 전쟁을 
찬성했다고 하자. 그런데  학교 선생인 류타는 전쟁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고 할 
때 그것이  장애물이 된다고  하면 나는  도청의 장학사나 시의  장학사에게 저 
선생을 어딘가로  좌천시키거나 사직시키라고 명령을  할 수 있어.  내가 시키지 
않은 것처럼 말야."
  "권력이란 그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건가?"
  "대개 그렇지.  우리 아버지의 회사의  높은 사람  욕을 하는 것을  들으면 이 
세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더니  구스오는 "화장실, 화장실!"하며  몸을 흔들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3분이  지나도  5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류타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구스오는 여려서부터  자주 류타의 집에 놀러오지만  화장실에 가서 
이렇게 오래 시간이 걸린 일이 없었다.
  '혹시...'
  김준명의  방을 들여다  본  것이  아닐까? 구스오는  별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방문이  조금 열려  있음녀  반드시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다.  지금도 
준명의 방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준명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못 
보던 사람이 있으면 어디서 왔고 언제 왔는지 꼬치꼬치 물을 것이다.
  이것  큰일났다고  생각하는데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나더니 구스오가 
들어왔다. 방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류탸야! 낯선 사람이 있네?"
  구스오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류타  앞에  앉았다. 생각한  대로  구스오는 
준명을 본 것이다.
  "낯선 남자?"
  류타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나는 처음 봤어, 그 남자."
  구스오는 류타의 무릎을 밀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옆방  문을 열었더니 그 안에 남자가 
있더라.  나는 잠시  낮에  나타난  유령인가 했지.  그  남자가  칼로 선화지를 
재단하고 있었어. 나를 보고 빙긋빙긋 웃으면서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던데?"
  "그래!
  "저 사람 이 곳에 점원이 된 거야?"
  "그런 거 나는 몰라!"
  류타는 모르는 척했다.
  "지금까지 뭐하던 사람이야?"
  찔끔했으나 류타는
  "아마 농가에서 왔다나 봐."
  "농가야. 그전부터 아는 사이니?"
  "아버지가  데려온 사람이니  나는  잘 몰라.  구스오는  그 사람에게  관심이 
많구나."
  "그야 관심 있고  말고. 그 사람은 무엇을  물어도 웃기만 하고 대답을  잘 안 
하더라. 귀가 잘 안 들리나?"
  "그렇지  않아. 날카로운  칼로  몇 장이나  겹친  선화지를 자르니까  신경이 
쓰이겠지."
  "아아! 그랬구나. 나는 뭐 비밀이 있는가 하고 살폈지."
하며 팔짱을 끼고 구스오는 말했다.
  "류탸야! 저 사람 나중에 미치요 누나와 같이 사는 거 아니니?"
  생각지도 않던 구스오의 말에
  "같이 살아? 말도 안돼!"
하고 류타가 큰 소리로 말하니까 구스오가 놀라서
  "그래! 안 그런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럴 수가 없지."
하고 대답한 후 류타는 언짢아져서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니? 실례야."
  "그건 내가 그 방에  있으니까 곧 미치요 누나가 들어와서, 도시아키 상, 너무 
힘들게 하지 마세요.' 하며  상냥하게 말하잖아? 미치요 누나는 우리들에게 그런 
말투로 말한  적이 없어.  항상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명랑한데... 그런데 애틋한 
목소리는 처음이야."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 같다. 준명은 그  방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데, 상을 
가져가는 것은 대개  미치요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도 낯익은 탓인지  햇볕에 탄 
스포츠맨 얼굴같이 씩씩하고 멋있게 보인다. 그리고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혹시 
미치요가  같은 지붕  밑에서  생활하는  준명에게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른ㄷ.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류타는
  '아니겠지! 민족이 다른데...'
하고 부정했다.
  '그러나 또 모르지!'
  미치요의 생각이 어떨지? 미치요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모두 같다고 
가끔 말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나이팅게일을 좋아하는  미치요는 여학교  때부터 이  말을 잘했다.  미치요가 
혹시  김준명에  대해서,  전장에서  부상병을  간호하는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친절을 다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동정이 연애  감정으로 변해 간다는  것을 
류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류타에게 구스오가 말했다.
  "류타야, 그 남자  어깨에 실오라기가 있더라. 그랬더니 미치요 누나가  가만히 
떼어 주더라. 그 느낌이 보통이 아니던데!"
  류타는 좀 화가 나서 말했다.
  "구스오야! 공연히  지레짐작하지 마.  우리 누나는  누구에게도 친절해.  나나 
야스시의  더러운  발을 씻겨  줄  정도야.  어깨에 실오라기쯤  집어내는  것이 
어때서 그래! 다다미 위에 있는 먼지를 집는 것과 같은 거야."
  "애! 류타야, 화났어?"
  구스오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화났어!  누나는 시집도  안  갔는데  이상한 소문이  나면  안  되지.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그래, 엉터리야?"
  팔짱을 끼었던 팔을 풀고 구스오는 중얼거렸다. 류타는 약간 소리를 높여서,
  "그래, 함부로  말했지, 누나가  저 사람이 좋다고  말한 것은  아니잖아. 네가 
맘대로 상상한 거 아냐?"
  "..."
  구스오는 빙긋이 웃었다.
  "구스오!  너는 대체로  불량스러운 생각을  해.  특히 남자와  여자의 일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
  언뜻 요시코의 얼굴이 생각났다.
  "불량해? 류타는 어린애야!"
  구스오는 업신여기는 듯이 말했다.
  "어린애라도 좋아!"
  류타는 좀 기분이 언짢았다.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마.  생각해 봐, 미치요는  나의 소중한  사촌 누나야. 
그런 누나의  일을 나도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아.  그러나 남자와 여자란  보고 
있으면 알 수 있지. 왜 그런 말이 있지? 눈은 입으로 말하는 이상이라고. 남자나 
여자나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분은 다르지. 촉촉하거나 빛나거나 그런 거야. 그 
눈의  빛이랄까, 이런  것은  자신이  억제하지 못하는  거야.  내가  말하는 게 
틀렸는지 어떤지 류탸야, 주의해서 봐. 그 점은 내가 너보다 조숙하니까."
  자신있게 말하는 구스오의 말에 류타는 속으로
  '구스오가 저 사람이 어디서 도망왔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  후부터 류타는  미치요와 김준명을  눈여겨보았다. 저녁  식사를 나를  때 
류타가
  "내가 가져 갈게!"
하니까 미치요는
  "아냐, 이것은 내 일이니까."
하면서 절대로 류타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류타는 어떻게든지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
  구스오가 왔다 간 4-5일 후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류타가 가방을 든 채 
곧바로 준명의 방에 갔다. 준명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도시아키 씨, 선물!"
  류타는  가방에서 아직  따뜻한 구운  빵을 내놓았다.  준명은 생각지도  않은 
류타의 후의에
  "고마워, 고마워!"
하며 목이 메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빵꾸러미보다 열려 있는  류타의 가방에 
가 있었다.
  "류타 군! 교과서를 좀 보여 주세요."
  "네, 얼마든지!"
  류타가 대답하니, 재빨리 손을 뻗쳐 준명은 교과서를 폈다.
  "그립구나!"
  손에 든 영어책을 펴서
  "아녹 아덴인가."
하고  낮은 소리로  읽었다.  류타는  놀랐다. 왠지  준명은  책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미치요가  들어왔다. 유창하게  영어를 읽는 준명을 
보고 미치요의 눈이 빛났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수일  후,  구스오의 아버지가  세이다로오와  무엇인가 
귓속말을 주소받았다.  김준명의 모습이  기다모리 전당포에서  사라진 것은  그 
이틀 후의  일이었다. 미치요가  마루 끝에 언제까지나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을 
류타는 보았다.


  숙직실 1
  류타는 어머니가 사카베 선생님께 드리라고 주신 양갱을 책상 위에서 솜씨 있
게 자르고 있다.
  오늘밤은 사카베 선생님이 숙직이라 구스오와 같이 다이에이 소학교 숙직실에 
놀러왔다. 전등 아래서 양갱이 반지르르하게 빛났다. 샤카베 선생님은 팔짱을 끼
고 류타의 손을 보고 있다가,
  "류탸야, 미치요가 없어서 쓸쓸하지?"
하고 위로의 말을 하신다. 류타는 양갱을 자르던 손을 잠시 쉬고 
  "별로요."
하고 대답하고 다시 칼을 잡는다. 구스오가 그런 류타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쓸쓸해. 류타네 집네  가면 미치요 누나가 없으니까, 왠지 불이 꺼진 것 
같은 기분이야.  누나는 가끔 '구스오야! 선생님  몰래 담배 피우는  거 아니니?" 
하며 옷 냄새를 맡는 시늉도 하고, 공부 잘하고 있니? 라며 잔소리도 했지만, 의
지가 되었는데!"
  류타도 내심 구스오와 같은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래층에 내려가며 미치
요가
  "류탸야, 언제까지 자고 있는거니?"
하고 쏘아붙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가 혼자서 무를  썰고 쏘아붙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가 혼자서 무를 썰고  계신 것을 보면 공연히 서글퍼
진다.
  미치요는 지난 달 말에  시내에 있는 양복집 장남과 결혼했다. 작년 9월, 세이
다이 공사장에서 도망친  김준명이 20일쯤 류타의 집에 숨어 있었다.  그 김준명
이 9월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후 미치요는  누가 봐도 눈에 띄게 말이 
없어졌다. 새해가 되고 봄이 되니 겉보기에는 이전의 미치요로 돌아왔지만, 류타
의 눈에는 미치요의 옆 얼굴이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그 미치요에게 같은 전당포 친구 부부의 소개로 혼담이 들어온 것이 금년 5월 
단오가 지난 때였다. 그 전에도 미치요에게 몇 번 혼담이 있었다. 그러나 미치요
는 보내온 사진도 안 보고,
  "내 신랑은 내가 찾을께요. 나는 선보고 결혼 안 하겠어요. 절대로."
하고 거절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혼담이 들어온 시내의 양복점집 장남과는 선을 보
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미치요가 말없이  선을 보겠다고 하니까 오히
려 당황했다.
  "미치요! 너 무리하게 볼 것 없다. 싫으면 거절해도 되는 거니까."
  아버지가 말했지만 미치요가 오랜만에 웃으며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어디서 어찌될지 모르는 거예요. 선보는 상대가 시원치 
않다고 할 것도 없고 연애 상대가 제일 좋은 것도 아니고..."
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생각지 않은 쪽으로 발전해  혼담이 순조롭
게 진행된 것이다. 그쪽에서는  내년 정월쯤 식을 올리자고 했는데, 웬인지 미치
요는 9월이 되기 전에 하고 싶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8월말 아름다운 신부가 되
어 집에서 좀 떨어진 오오하라 양복점집 장남에게 시집갔다.
  류타는 왜 미치요가  8월말에 시집간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9월은 김준명
이 기다모리 집에 숨어 있던 달이다. 그리고 떠난 달이다. 그1년 전의 생각을 털
어버려고 미치요가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만큼 미치요가 김준명에  대해 생각이 
진지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랑인 오오하라 키이치는 성실한 남자로 장사도  열심히 했다. 시집간 지 7일
째 되던 날, 미치요는 키이치와 같이 친정 나들이를 와ㅆ. 그때 미치요의 얼굴은 
행복한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조금도  그늘이 없었다. 류타는  뭔가 배반당한 
기분이었다. 미치요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류타가 생각하
기에 확실히 미치요는  저 김준명에게 강하게 마음이 끌려 있었다.  김준명이 떠
나고 몇 개월 동안 어두운 표정으로 지냈었는데 그것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치요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즐거운 기분이 아니었다.
  "맛있는 양갱이다."
  사카베 선생님은 미치요 이야기를 꺼낸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류타의 
얼굴을 살폈다.  오오하라 양복점집의 혼담이  들어왔을 때 사카베  선생님 집을 
미치요가 혼자서 간 일이 있었다.
  "봄이 되어 겨우 길이 깨끗해졌는데 또 눈이 와서..."
라고 말하더니, 눈물을 똑똑  떨구었다. 사카베 선생도 사에코 선생도 놀라서 축
하한다고 말을 못했다. 그런데 미치요가 금방 웃으며, 
  "기쁜 눈물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또 눈물을 흘렸다. 미치요같이 자존심이  강한 아가씨가 결혼한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니 무슨 말을 듣지  않아도 사카베 선생님은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
은 애처로움을  느꼈다. 그때 미치요는 김준명의  이야기를 처음 밝혔다. 사카베 
선생님은 미치요에게 말했다.
  "미치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는  줄 아니? 
대개는 무슨 고민을 가지고도 참고 결혼한단다."
  "선생님, 저는 그 사람이 좋은 것 때문에 결혼하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그 사
람은 조선 사람이에요. 나는 그 사람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다코 방에서 
감독에게 괴로움을 당했고 동료 다코까지도 바보 취급을 했다는 것이 분해서 나
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선생님! 인간은 어느 나라에 태어났거나 
모두 인간임에는 변함이 없죠? 인간은  모두 동등 하죠? 일본 사람만 특히 잘났
다는 그런 생각... 그렇게 잘났는데 왜 약한  사람을 괴롭히나요? 나는 그 사람과 
꼭 결혼하고 싶었어요."
  사카베 선생과  사에코 선생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인 미치요가 교사인  자기가 가르친 것을 잘  알아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견하고 기뼜다.
  "그러나, 미치요! 아무래도 잊지 못할 것 같으면 결혼을 보류하지 그러니?"
  미치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게도 생각했죠. 그러나 키이치 씨도 성실하고  좋은 사람 같아서 이 사람
에게 한 번 걸어 보려고 마음먹었어요."
  "맞다. 결혼은 일새의 큰 일이라는 것을 미치요는 잘 알고 있군. 자포자기해서 
결혼하는 것은 안 된다.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흰 천  위를 걸어가는 것
과 같은 것이지. 거기에 찍혀지는 자기  발자취가 비뚤어지는가 아닌가는 자기의 
책임이야. 미치요 결혼이란  상대의 인생을 불행하게도 행복하게도 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라."
  미치요는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했던 사람의 생각을 잊지 않고 결혼해도 될까요?"
  "글세... 미치요, 우리들은 사람이야, 누구나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의 생각은 전
혀 안 한다고는  못하지. 그런 일은 모두가  참고 결혼하는 거야. 결혼은 어딘가 
배반함을 수반한다고 나는 생각해."
  미치요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선생님,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이제 조금씩 알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용
서해 주시면 저도 안심하고 결혼하겠어요. 혹시  김준명이 나타나도 아마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현관을 나서며
  "선생님, 선생님 내외분은 행복하시네요!"
하고 사에코 선생과 사카베 선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체호프의 저 유명한 '고독이 두려우면 결혼하지 말라.' 하는 말처
럼 결혼하면 달콤하겠다는 꿈을 버리겠어요. 달콤한 것이 꼭 행복은 아니니까요. 
고독을 이기는 삶이 일생 걸려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멋있죠!"
  미치요는 그렇게 말고 돌아갔다. 그때 미치요의  말을 생각하며 사카베 선생님
은 말씀하셨다.
  "미치요는 불행하게 안 될 사람 같다.  인간으로서 중요한 자세를 알고 확신이 
있으니까."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의  말씀을 알 것 같았다. 구스오가 약간  고개를 갸우뚱
했다. 사케베 선생님이 설명하셨다. 
  "애를 들어서 불행과 불운은 좀 다르다.  지금 누구나 무서워하는 병은 폐병이
지? 그러나 폐병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 우
리 교회 신자  중에 쓰지야군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상당히 중한  폐병인데도 항
상 얼굴이 밝아  위문갔던 사람들이 오히려 격력받고 돌아가지. 그런가  하면 쓰
지야 군보다 훨씬 가벼운 폐병환자인데도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나 하고 아침
부터 저녁까지 불평  불만이고 결국 자살미수까지 한 사람도 있어.  미치요는 쓰
지야 군 같은 타입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되는데요!"
  구스오는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류타는 친정에 왔던  미치요의 웃는 
얼굴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2
  "딴 이야기지만, 선생님?"
  구스오가 양갱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며 말했다.
  "요전 일요일, 목사님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셨죠?  나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류타는 슬쩍 구스오를 봤다. 구스오는 1년 전부터 교회에 간다고 했다. 교회에 
가면 요시코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구스오의 농담이고,  구스오는 구
스오 나름대로  교회에 가고 싶은  구도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요시코나 
사카베 선생님이 다니는  교회를 다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구스오는 변함없
이 본심인지 농담인지 모르는 말만 하고 있고,  류타더러 교회에 가자는 말은 하
지 않았다. 류타도 권하면  갈 수도 있겠는데, 요시코가 다니는 교회에 자진해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요시코 만나고 싶어 교회에  간다."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구스오가 부럽
다.
  "그래, 구스오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걸리는구나. 그 말씀은, 
류타야!"
  사카베 선생님은 양갱을 집으시며 말씀하셨다.
  "...구약성경 첫장 제 1절의  말씀이지. 이 한 줄을 이해한 사람은 성경 전체를 
이해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말씀이야. 그런데  구스오는 어떻게 이해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말씀이야. 그런데 구스오는 어떻게 이해가  안 되지? 구스오의 말
을 들어 보자."
  "저는, 선생님!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는 것을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요. 
역시 무신론자인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 세상은 우연히 생긴 거
라고 생각해요."
  구스오의 아버지 마노 소오스케는 대학생이 별로 없던 메이지 시대 말에 대학
에 간 사람이어서 항상  '대학 줄신'  인 것이 유일한 자랑이었다.  자연히 그 점
이 구스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학교에 못가고 전당포를 하는 백부 기다모리 세
이다로오보다 자기 아버지가 훨씬 위라고 생각하고  있다. 목사나 초등학교 교사
보다도 상급의 대학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이 구스오에게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자기 의견을 말할  때도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마디 붙이는 버릇이 생겼다. 사카베 선생님은  구스오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
씀하셨다.
  "즉, 이 세상은 필연으로 만들어졌나 우연으로 만들어졌나 하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필연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연히 만나서 어느 날  우연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우연, 즉 나다. 이
것은 이해가 가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선생님, 하나님은 단  한 분이지요, 유일신. 인간은 이 지구상에  매일 
얼마나 태어납니까?  몇만 몇십만의 아기가 모두  하나님 마음으로 태어났어요? 
그리고 구 중에는 튼튼한  아이도 있고 약한 아이도 있고, 눈이  안 보이는 아이
가 있는가 하면 지능이  낮은 아이도 있죠. 나 같은 수제도  있고 선생님처럼 마
음이 따뜻한 인간도 있죠.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마음입니까?"
  "그것도 그렇다!"
  "신의 마음이면 신이 책임져 주겠지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이상 신은 어떻
게 책임을 져 주나요? 이것은 아버지 말씀이지만!"
  유쾌한 듯 구스오는 웃었다. 사카베 선생님도 웃었다.
  "그러나 구스오, 너의 마음은 그 우연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선생님,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이 세상을 비뚤게 보는 타입이죠. 
맛있는 쪽만 콕콕 찌르고 맛없는 쪽은 젓가락도  안 대는... 그래서 나는 학교 선
생님의 뒤를 이을 것 같은 생각은 못 해요."
  류타는 구스오와 비교할 때 자신이  아주 어린애 같은 기분이 들어 웃으며 말
했다.
  "구스오야!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맛있는 쪽과 맛없는 쪽이 따로 되
어 있는 건가요? 선생님?"
  "글세, 맛있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아무  영양가가 없거나, 시원치 않은  것이 
자기 마음의 양식이 되기도 한단다."
  "그 말씀이 맞네, 그렇까?"
  구스오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말했다.
  "이득만 보려고 하는 자세, 그건 벌써 승부가 결정된 것인가?"
  "구수오, 정말 좋은 말을 했다. 그것도 아버지 말씀을 전달한 것이니?"
  "우리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지요."
  "그러면 구스오도 상당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쪽으로 기울어졌구나."
  "그런데 선생님, 그렇게  보이는 것이 속상해요. 아버지가 다윈의 진화론을  말
씀하시며 그것이 현대인같이 느껴져요."
  "다윈의 진화론!"
  사카베 선생님의 조금 생각하시더니,
  "진화론으로 사랑의 문제, 죄의 문제가 해결될까?"
  진지한 목소리다. 류타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조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케베 선생님이 말했다.
  "구스오, 류탸야! 선생님은 지금 경솔하게 결론을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
들 나이에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정신 생활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류타는 깊이 알아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류타는  지금까지 신에 대하여 생
각 적이 없었다.  신을 구하는 일도 없었다. 신은 일생  동안 걸려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구하기 어려운  일을 구하며 살아가는 생활은 좋다고 생각했다. 구스
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래요, 선생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당분간 진화론과 천지창조론 사
이를 왔다갔다 할지 모르죠!"
  "그래, 좋아 하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인간은 여러 가지 과정이 있으니까 단
지 구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신을 부정하는 것은 좀 섭섭하구나."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이 현대의 청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
다. 사카베 선생님은 말했다.
  "신과 자연, 신과 전쟁, 신과 평화, 신과 정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류탸
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그리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데는 
신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네! 알았습니다."
  류타는 기뻐서. 구스오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집사람  사에코는 부모 대부터 신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대자연도 
인간도 만드셨다고  굳게 믿고 있지.  그래서 저녁노을이 아름다울  때 부엌에서 
나를 불러서 같이 보자고  한다. 감상하지. 넘어가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아내
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는 저녁  해는 정말로 신비롭지. 다시 되풀이되지
도 생명이 있어서  부부가 그것을 본다. 이것은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감동이고 감사지. 단지  우연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류타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천지창조의 신앙에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생긴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어떻까? 류타는 아무것도 읽어  보지 않았
지만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구스오는  붉은 아랫입술을 핥고 
나서 말했다.
  "알 것 같은데,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매번 '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해? 웃긴
다. 그런 것을 믿다가는 출세 못한다.'하세요 그러면 나도 그런가 하고 생각하죠,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가 생존경쟁이 심한 이 세상에서 소외
된다고 하시죠, 그건 그렇다고도 생각해요..."
  "구수오야, 그럴까?"
  류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구스오야! 사에코  선생님 아버지는 아사히기와에서도 손꼽히는 시계
점 주인이야. 아사히가와의 상점 중에서 출세한  우두머리라고 우리 아버지가 자
주 말씀하셨어. 의사도 대학교수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이 많아."
  사카베 선생님이 말했다.
  "좀 이야기가 옆길로 나갔지만 결론을 급하게  내릴 필요는 없다. 진화론을 주
장하는 사람  중에서도 학대받는 사람들을  목숨을 걸고 구하려는  사람도 있고, 
천지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서도  이웃을 사람하는 일에 몸을 바치는 사람
도 있단다."
  류타는 갑자기 금년 2월에 죽은 고바야시 다키지 생각을 했다.
다키지는 명작 가니고오셍으로 여명해진 소설가이다. 다키지는  2월 20일 오후 1
시 노상에서 체포되어 그날 오후 7시  반에 죽었다. 경찰에서는 심장마비라고 발
표했지만 그후 7개월  동안 여러 소문이 났다. 국민의 대다수는  고문 때문에 죽
었다고 믿고 있다. 그 죽음에 놀라서 밤샘하러  온 손님도 장례식에 온 사람들도 
대다수가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다키지는 오다루에서 자랐고  오다루 소학
교 출신이다. 아사히가와에  사는 류타에게는 가깝게 느껴지는  소설가여서 충격
이 컸다. 더구나  경관의 고문에 의한 죽음이라니 류타의 집에는  류타가 어렸을 
때부터 사복 형사가 일주일에 한 두 번  지키러 왔었다. 때로는 류타와 야스시와 
장기를 두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거나 팔씨름도 하며 놀아주기도 했고 보
통 사람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 형사들과 같은 경찰관이 죽음에 이르도록 고문을 했다는 것을 류타는 도저
히 믿을 수가 없다.
  "사상이 나쁜 사람이 잡혀 갔다는 건 들었지만..."
그래도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취조 중에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 2월에 죽은 고바야시 다키지는 경찰이 죽인 건가요?"
  "응, 그런가 보다. 경찰에서는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발표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지요? 나는 경찰이 거짓말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류타의 흥분한 표정에 사케베 선생은 잠자코  있었다. 구스오가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류타야! 우리 아버지가 고바야시  다키지 이야기는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래. 
다키지는 효자다든가,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든가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면 안 된다더라."
  "왜 그래, 좋은 것은 좋다도 칭찬하면 어때서?"
  "잘 모르지만, 세상 일은 그런 것인가 봐. 그렇죠, 선생님?"
  구스오가 사카베 선생님을 쳐다본다.
  "그래, 점점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구나. 만주사변의 비판을 해도  당국에서 
기피하고 그러나 국민들은 전후좌우를 참말로 악법이야. 무서운 것이지."
  "치안유지법요? 그러나 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회사와 국가의 명령대로 살아가
면 아무 일 없다고 하셨었어. 안전하게 살면 된다는 것이죠."
  구스오는 빙글빙글 웃었다. 사카베 선생님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하여간 류타나 구스오가 일기나 노트에 무엇을  쓰는 것도, 친구와 이런 이야
기를 하는 것도 점점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는구나."
  "넷, 선생님! 일기에 쓰는 것도 위험해요? 큰일이네. 그렇지, 구스오야?"
  구스오는 어른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류타야! 너희 집에는  항상 사복 형사가 오지 않니?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
네. 우리 아버지는 어디서 들었는지 여러 가지를 알고 있단다."
  "예를 들면?"
  "응, 예를 들면 헌 책을 파는 진학당에 가지 마라. 그 가게에 드나드는 사람은 
경찰의 불랙리스트에 올랐다 등등..."
  "뭐, 진학당? 나는 그 가게에 헌 잡지를 팔러 가는데..."
  류타는 놀랐다. 진학당은 류타네 집에서 세 마장 정도에 있는 헌책 가게다, 류
타는 까다로워서 헌 책은 사지  않는다. 책은 항상 신간 서적을 산다. 그 책가게
에는 헌 잡지를 팔기 위해 간다. 그것을  아는 구스오가 싱글싱글 웃으며 류타를 
안심시겼다.
  "괜찮아, 괜찮아! 경찰은 류타 같은 학생은 관심없어."
  "그것도 그렇다.  류타보다 구스오 쪽의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다윈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니까."
  사카베 선생은 웃었다.
  그때 복도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구스오가 놀라서 말했다.
  "야, 무슨 소릴까?"
  소사의 발소리는  무거운 고부 슬리퍼를 철걱철걱하며  걷는 소리이기 때문에 
금방 알수 있다. 류타와  구스오는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때 가벼운 노크소리
가 들렸다.
  "네!"
  구스오가 긴장한 소리도 대답했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야! 너희들이구나!"
  들어온 것은  요시코와 가세코다. 류타와  구스오는 안심이 되어  저도 모르게 
웃었다.
  "싫어요? 왜 웃어요?"
  가세코는 구스오에게 이렇게 말하고, 요시코는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그래, 잘 왔다. 들어와!"
  사카베 선생님이 말했다. 가세코가 말했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오빠, 옆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어!"
  "뭐, 옆집 아주머니가? 내가 아까 오늘 오후에 봤는데!"
  구스오는 즉시  일어났다. 류타도 그 아주머니를  안다. 언제나 미싱을 돌리며 
열심히 일하시는 아주머니였다.  여기저기서 바느질 부탁을 받는다고 했다. 구스
오는 다된  옷을 배달해 주고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혼자 사는  그 아주머니와 
구스오의 어머니  도시코는 같은 나이여서  자매와 같이 친하게  지낸다도 했다. 
그 사람이 갑자지  죽었다. 류타는 직접 관계는 없었지만 가세코가  말한 심장마
비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방금 고바야시의  다키지의 심장마비 이야기를 하던 
참이 아닌가.
  류타가 멍하게 있는데 구스오와 가세코가 뛰어나갔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긴 복도를 지나 들리지  않게 되자, 사카베 선생님이 말했
다.
  "요시코는 돌아가지도 않아도 되니?"
  "네,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지금 가세코가  여기에 같이 가자고 해서 
왔죠."
  요시코는 그렇게 말하고  사카베 선생님 앞에 앉았다. 류타는 조금  어색한 기
분이 되었다. 나도 집에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직 8시 반이다.
  이대로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한 시간쯤  금방 지나갈 것이다. 요시코와 
류타는 같은 방향이니까  데려다 줄 수 있다. 그러나 중학생과  여학생은 노상에
서 이야기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괜찮아! 요시코를 반쯤 앞에 가게 하고 뒤에서 지켜보면 문제 없어'
  재빨리 그런 생각을  하면서 류타는 불안한 자세로 요시코를 봤다.  누나 미치
요가 결혼하기  전에는 요시코가 가끔  류타의 집에 놀러왔다.  그러나 미치요가 
결혼 한 후 한  달 정도 류타는 한 번도 요시코를 보지 못했다.  그 요시코가 지
금 갑자지 눈앞에 앉아 있다. 류타는 한숨을 토했다.
  그 길게 땋은 머리를  자르고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했는데 클레오파트라 
같은 머리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앞머리가 눈썹 가까이 오게 잘 정돈되어 있다. 
요시코가 움직일 때마다  가늘게 흔들린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더 
눈이 커진 것 같다.
  원래 강한 빛을 발하는 검은  눈동자인데 거기에 어딘지 요염한 점이 더한 것 
같다. 류타는 낫도 장사하던 가련한 요시코의 모습을 생각했다. 지각해서 흐느껴 
울던 요시코의 땋은 머리가 눈에 선했다.
  숨을 죽이고 있는 류타의 모습을 사카베 선생님은 미소를 띠며 쳐다보다가,
  "요시코, 너 4학년이지?"
라며 조용히 물었다. 요시코는 사카베 선생님 앞에  있는 큐스에 더운 물을 부으
며,
  "류타나 구스오가 4학년이면 저도 4학년이죠."
하고 빙긋 웃었다.  그 눈의 광채가 류타는 영화배우에게서 본  것처럼 강렬함을 
느껴 허둥지둥했다.
  '야, 대단하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 옆 얼굴을 계속 보게 되었다.
  "그러면 요시코는 내년에 졸업이지?"
  홋가이도의 여학교는 4년제다. 요기코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아뇨, 선생님, 그것 때문에 상의드리려고 했어요. 저는 보습과에  가고 싶어요. 
2학기가 되어서 갑자기 그렇게 생각했어요."
  "보습과? 그러면 소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여학교를 졸업하고 보습과에 가면 대부분이 소학교 교사자격증을 받고 교사가 
된다.
  "그래? 요시코도 선생님이 되려고? 좋은 선생이 되겠지."
  사카베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즐거운 듯이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류타는 
자기도 뭐라고 말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선생이 되려는지 알아. 류타야?"
  "글세..."
  "나는 류타와 같은 일을 하고 싶었어!"
  "응? 아무리!"
  솔직한 류타는 요시코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요시코는  소리내어 웃으면
서 말했다.
  "아이, 싫어. 류타야, 나도 류타와 같이  사카베 선생님과 같은 선생이 되고 싶
다고 생각해."
  류타는 놀림을 당한 것 같았지만 기뻤다.
  석탄가루
  1
  1937년 9월 5일,  이날 류타는 그 부임지, 소라치군  포로시나이에 도착했다. 9
월 초순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햇볕이 따가운 일요일었다.
  류타는 이불 주머니에서 침구를  꺼내서 붙박이장 상단에 넣고 궤짝을 아래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쓰던 손때문은  작은 책상을 창가에 놓고 그
리 크지 않은 책장에 60권의 책을 꽂고  나니 모든 것이 정돈되었다. 아래층에서 
하숙집 딸인 아키코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의 생명인 순정은
  불타서 빛나는 금빛 별...
  작년부터 유행하는 '남자의 순정'이란 노래다.
  밝고 좋은 목소리다. 아키코의 노래를 들으면서  류타는 창으로 뒷마당을 내려
다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꽃무리와 빨강 파랑색의 토마토, 짙은 남색
의 가지, 잎이 무성한 줄넝클 콩,  15~16평의 야채밭이 보이고, 그 건너로 석탄가
루로 검게 물든 작은 시내가 흐른다. 건너편은  놓은 언덕이고 언덕 아래 탄광회
사의 사택이 있다는데 류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래, 잊을 뻔했다."
  류타는 혼자 중얼거리며  지금 넣었던 궤짝을 다시 꺼냈다. 궤짝에  넣었던 알
람시계와 방석을 꺼내고, 시계를 손목시계와 맞추어 책상 위에 놓았다. 이제 3시 
조금 지났다.
  류타는 알람시계를 쓰다들었다. 요시코가 취직 축하로 준 것이다. 요시코는 여
학교의 보습과를 나와서 벌써 시내의 게이세이  소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교사로
서는 류타의 2년 선배가 된다.
  "류타 씨, 이 시계는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요시코는 눈웃음을 지으며,
  "알아요?"
하며 류타를 보았다. 류타는 가볍게 생각 하는 듯했다.
  "저, 당신 생활을 깨우는 시계예요."
  요시코는 웃었다.
  "나의 생활을 깨우는 시계?"
  "됐어요. 모르면 그만둬요."
  요시코는 그렇게 말하고 휙 하고 기다모리 집 현관을 나갔다.
그 때의 요시코를 떠올리며 류타는 몇 번이나 '나는 바보구나'하고 생각했다. 즉, 
요시코는 자기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주었을  것이다. "서로 좋은  선생인 됩시
다." 하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요시코와 류타는 소학교  4학년 때부터 친구다. 류타에게 있어서  요시코는 소
학교 때부터 신경이 쓰이는 존재이며, 지금도 그렇다.
  사범하교 재학 중 2년간은  기숙사 생활이라 같은 시내에 있어도 류타는 기숙
사 생활을 했다. 사범학교의 생할은 5년간의  중학교 생활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였다. 기숙사 생활도, 상급생 학급생의 구별이 엄한 것도 학교라기보다는 군대와 
같았다.  아침에는 종소리로 일제히 일어난다. 그리고 급하게 세수, 건포마찰, 체
조, 청소, 식사  등 아침을 바쁘게 보낸다. 등교하고 기숙사으  문닫는 시간은 오
후 4시 반,  저녁 식사는 5시, 저녁 후에는  묵학시간이 있고 소등은 9시 반으로 
되어 있다. 물론 약간의 자유시간은 있으나, 요시코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없었
다.
  사범학교는 1부와 2부가 있었다. 소학교  고등과를 나와서 5년간 사범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1부 학생이라고 하고, 5년간  중학교를 좁업한 후에 2년간 사범
학교 교육을 받는 사람을 2부라고 했다.
  기숙사 한 방에 너덧 명이 생활하는데 상급생과  하급생이 섞여 있다. 이 상급
생의 심부름으로 하급생은  늘 바쁘고, 목욕을 할 때도 하급생은  상급생의 들을 
밀어 주어야 한다.  그 봉건적인 관습에 반항하여 어떤 학생은  3학년 때 학교를 
사퇴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그만두지 못했다. 사범학교 학생은 학비도 피
복비도 대여이고, 퇴학하는 자는 전액 학비와  피복비를 반환해야 되기 때문이었
다.
  사범학생은 대부분 수재이나  집이 가난한 사람이 많았다.  몇백원이라는 학비
의 반환을 부담할 수 있는 학부형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류타는 그 점이 다
른 학생이었다.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던 그  학생이 "일단 입학하면 그만두는 자
유도 이 학교에는 없구나."  하며 한탄하는 것을 류타는 들었다. 그러나 정말 그
만두려고 한 그  학생의 이유는 배속 장교가 엄한  교련시간 중 항상 말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 장교는
  "너희들은 황공하옵게도 천황 폐하의 훈도가 되는 몸이다,:"
학 늘 귀따갑게 말해 왔다. 하여간 류타는  요시코와 편지 교환도 허락받지 못하
는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 3월, 류타는  2년간의 공부를 마쳤다. 마치고 바로 졸업생들은 근
무지에 부임하기 전에  아사히가와 사단에 입대한다. 4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가 입대 기간이다. 그  총 훈련을 마치는 검열이 끝나야 처음으로  교단에 설 수
가 있다.
  "내이부터 이 탄광촌의 마을에서 살아야 한다.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류타는 어머니 기쿠에가 준 과자상자를  들고 하숙집을 나왔다. 하숙
집이라고 해도 아래층에는  생명보험 대리점을 하는 전  소학교 교장 부주와 그 
딸이 학교  부탁으로 두 사람의 하숙생을  두고 있는 정도인데, 그중  한 사람이 
전근가서 3개월간  비어 있던 방을 류타가  빌린 것이다. 옆방에는  삿포르 사범 
출신의 교사가 있다고  한다. 3년 선배라고 한다.  친척의 제사로 오다루에 있는 
집에 갔다는 그 교사는 오늘 막차로 온다고 한다.
  오늘 오후 1시에 류타가  포로시나이 역에 도착하니 하숙집 주인 미야가와 유
우치와 그 딸 아키코, 그리고 같은 학년을 담임할  젊은 남녀 교사 네 사람이 마
중 나와 있었다.  짐은 리어카 하나로 옮길  정도라서, 마중 나온 교사들이 두세 
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니 모두 끝났다.
  그런 후 아직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류타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이 느겨졌다. 흰  하이힐을 신은 여교사가 걸을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주름
치마를 보기 좋게 날리면서  젊은 남교사의 뒤를 약 3미터쯤 떨어져서 걸어가는 
모습을 배웅한 것도 오늘의 일이 아닌 것같이 생각된다.
  남자 교사는 호리 마츠오라고  하며, 여교사는 고야마 미츠코라고 했다. 두 사
람 다 털털하고 잘 웃어 왠지 내일부터 교사생활이 즐거울 것 같다.
  '인생은 이상한 것이다.'
류타는 역 앞의 다리를 건너  간호사가 창에서 내다보고 있는 탄광병원 앞을 걸
어갔다. 어제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과 알게 된다니... 류타는 생각했다. 
교무실에서 자기 앞에는 어떤 사람이 앉을까? 옆에는 누가 앉을까? 교장은 권위
주의적인 사람일까? 아니면  신사적인 사람일까? 그것도 모른다.  교감은 무서운 
존재라고 들었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류타는 큰 양복점 앞에  지나칠 뻔했
다. 그 옆에 파출소가 있다. 순경의 모습이 공연히 그리웠다.
  그 곳에서 한참을 집이 없고 낮은 소리도 웅웅거리는 세탄장만이 외쪽에 보인
다. 오른쪽 철로  건너 잘 정리된 산허리에는  판잣집이 정연하게 10동 서 있다. 
그 집 앞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 탄광촌은 좁은 산간에  있고 양쪽에 얕은 산이 있다. 이  마을을 동서로 종
단하는 길은  단 한길이고, 그 길  여기저기서 양측의 산허리에 좁은  길이 뚫려 
있다. 마치 잎사귀의 잎맥같이 되어 있다.
  '아사히가와에서 세 시간 정도 기차로 온 이곳에서 탄광촌이 있었나?'
  류타는 몰랐던 것이  왠지 미안한 느낌이다. 아사히가와에서  다키지와 역까지 
기차로 두 시간쯤 걸린다. 거기서 갈아타고 40분쯤 오면 포로시나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 하코다데 본선을 타고  다키지와 역을 통과했지만 류타는 이 산간에 물
놀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검은 시내가 흐르고 있는 것도,  산허리에 가난한 판
자촌이 많이 있는 것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길은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검은 쓰메에리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새 구두를 
신은 류타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소학교 교사로  알았는지 가끔 웃음도 보이고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책방, 잡화상, 식료품 가게, 쌀집, 우체국, 소방서 등이  늘
어선 시가지를 지나가니 아이들이 서너 명이 뛰어와서
  "선생님이다!"
  "이름이 뭐예요?"
  "몇 학년 선생님이세요?"
하고 쉴 새 없이 묻는다.
  "응, 내일부터 여기 학교의 선생이야. 이름은 기다모리 류타."
라고 하니까 무엇이 우스운지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다.
  "얘! 류타래. 류타? 이름이 안 어울려."
하고 재빠르게  류타의 손을 잡는  아이도 있다. 약간  떨어진 곳에 좀  키가 큰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 파리한  아이가 서 있다. 눈, 코가 뚜렷하고 붉은 
입술을 한 입을 벌리고 있다. 류타가 웃으니까 그 아이도 웃고 가까이 왔다.
  아이들의 빛나는 눈을 보니까 류타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사히가와의 아이들과는 또 다른 소박한 그 무엇이 이 탄광의 아이들에게 있음
을 느꼈다.
  왼쪽에 큰 학교가  보인다. 기차 창문을 통해  본 교정이 넓은 학교다. 그런데 
교정에는 놀이기구가 전혀  없었다. 류타가 다니던 아사히가와의  소학교에 있는 
그네도, 돌아가는 나무의자도, 회전탑도 없었다.  기계체조하는 낮은 철봉대만 몇 
개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교정을 가로질러 가려고 하는  류타에게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
고는
  "여기서 똑바로 가면 선생님들의 주택이 있어요."
  "교장 선생님 집이 제일 크니까 금방 알아요."
하고 뛰어가 버렸다.  류타는 교정을 가로질러 가면서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
었다. 일요일인데 교정에 아이들 그림자도 없다. 더구나 교정은 깨끗이 청소되고 
있고 저 한구석에 벽돌로 지은 봉안전이 잣나무와 아라라기 같은 침엽수에 둘러
싸여 있다.
  갑자기 가와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학교에도 몇 사람  가와치 선생 
같은 이가 있을 것 같다. 교장 사택은 지붕이  있는 두레박 우물 바로 옆에 자그
마하며 아담한 집이었다. 류타는 두려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실례합니다!"
하고 말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류타가 소리를 냈다. 그랬더니 문
이 약 5센치미터  쯤 열렸다. 류타는 거기에 아이가 있는  줄 알고 "아버지 계시
니?" 할 뻔했다. 그러나 저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류타는 놀랐다.  겨우 장지문을 5센티미터만  열고 손님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으나
  '혹시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하고 재빠르게 생각했다.
  "네, 이번에 신세지게 된 아사히가와의 기다모리입니다."
  "기다모리 씨, 몇 시 기차로 오셨는지요?"
  "네, 1시에 도착했습니다."
  그것으로 목소리가 끊겼다.
  '도착 즉시 인사를 올 걸 그랬나.'
  그러나 짐을 정리하고 왔다고 해서 그렇게 잘못한 것은 없다고 류타는 생각했
다.
  "좀 기다리십시오."
  장지문 저쪽에서 여자가 말했다.
  "저, 이건 별 것 아닙니다만." 
  류타는 보자기에서  과자상자를 꺼냈다. 그것은  아사히가와 일심암의 것이고, 
찰떡과 밤만두가 들어  있다. 류타가 문간에 놓았더니 겨우 장지문이  반쯤 열렸
다. 혈색이 나쁜, 그러나 눈썹이 아름다운  여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류타는 
다시 한 번 
  "기다모리입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다. 이상한 여자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좀 기다려 주세요."
하고 여자가 과자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니  집안은 다시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때
  "야! 안녕하십니까?"
하고 류타 뒤에서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중간  키의 체격이 좋은 남자가 싱글
싱글 웃고 서 있다. 여기저기 기운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대나무 비를 들고  있
다. 류타는 일하는 삭람인가 싶어서
  "네, 아저씨! 아사히가와에서 온 기다모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절을 했다. 남자는 크게 웃으며,
  "아니, 이쪽에서 잘 부탁해요. 들어오시오!"
하고 턱으로 안을 가리켰다. 류타는 깜짝 놀랐다. 교장인 다쿠모도 쇼헤이였다.
  "미안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십니까?"
  며칠 전까지 훈련받은 군대 말씨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아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교장이라고 볼 수 없지. 당연해."
  다쿠모도 교장은 웃으며 안으오 들어갔다.
  2
  손님방에 안내된 류타는  또한 번 놀랐다. 류타의 어머니 기쿠에도  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데, 이 집의 깨끗함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열어 놓은 복도는 거울
같았고, 햇빛이 반사돤  마루와 기둥도 아직까지 보지 못할 정도로  반짝반짝 닦
여 있다. 지금 겨우 5센티미터 정도밖에 문을  안 연 것은 밖의 먼지가 들어올까 
두려워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때까지도  류타는 아직 교장 부인을 
20여 명의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인 줄 몰랐다.
  "당신이 좋아하는 찰떡입니다."
  교장 부인은 말하면서 생긋 웃고 류타를 봤다.
  "당신도 들어요."
하고 류타 앞에도, 자기 앞에도 각각 접시에 놓은 찰떡과 밤만두를 권했다.
  "그것 참 고맙네!"
하며 굵은 손가락으로  교장은 찰떡을 들고 한꺼번에 삼켰다. 목줄기가  크게 움
직이는 것을 보며 류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맛좋다. 참 맛좋아! 일삼암의 찰떡은 과연 맛있어. 기다모리군! 신용이라는 것
은 무서운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 인간이 신용을  잃으면 죽는 것과  같다
고..."
  "네!"
  다쿠모도 교장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류타도 편히 앉을 수 없었다.
  '인간이 신용을 잃으면 죽은 것과 같은가?'
  류타는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편히 앉아요!"
  교장은 육체노동자 같은 득직한 손을 펴며 말하고 자기도 편히 앉았다.
  "기다모리 군. 이 기운 옷을  보고 놀랐지? 나는 이런 모습이 좋아. 빳빳한 신
사복을 입고  있을때보다, 모닝을 입고 있을  때보다 이 기운 옷을  입은 모습이 
제일 마음이 편하다네. 일본 남아답다는 마음이 가득해요."
  "네!"
  일본 남아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류타는 눌라 마시려던 차를 다시 접시에 놓았
다. 교장은 놀라는 류타는 아랑곳없이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자네의  성적은 대단하더군. 중학교 때도,  사범학교 2부 때도  대부분 
수석이던데. 나는 자식이 없어서 당신이 차남이면 아들 삼고 싶네."
  "아뇨, 별 말씀을."
  류타는 머리를 긁었다.
  "그런데 듣기로는 아사히가와  시내의 두세 학교 교장들이 자네를 데려가려고 
했다는데 자네는 탄광 소학교를 희망했다니, 왜 그랬나?"
  "네!"
  류타는 당연히  받을 질문이라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명을 잘할지 
어떨지 불안했다. 마루 끝에서 날아들어온 잠자리가 교장 어깨에 앉았다. 여기저
기 기운 작업복을 입은 교장이 갑자기 친밀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은 저은 탄광촌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희망했습니다."
  류타는 잠시 사카베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사범학교에 입학했
을 때 사카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류타, 자네 아사히가와의 선생으로 일생을 마칠 건가?"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의 말뜻을 잘 몰랐다.  아사히가와에서 마치지 말고 도쿄에
라도 나가라는 뜻인  줄 알았다. 중학교 때의 교사들도 류타보고  도쿄의 고등사
범학교 시험을 치라고 권했었다. 그러나 사카베  선생님의 깊이 생각하는 모습으
로 말씀하셨다.
  "나는 나 자신이 도시의 교사가 된 것을  조금 후회하고 있지. 가끔 부모가 살
고 있는 와카나이에 돌아갈까 생각도 하지.  그러고 와카나이 어부들의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은 생각을 하네. 어부들은 판자  한 장 아래는 지옥이라는 위험한 
바다에서 일하고 있지. 그런 부모를 가진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네."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아사히가와에는 없는 위험이  어부들에게는 매일 있는 것이다.  사카베 선생님
은 그런 집 아이들과는 같이 무거운 짐을  지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선생님이 류타에게 말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탄광촌에 마음이 가지. 탄광은 언제 낙반 사고가 있을지, 가
스폭발 사고가 있을지 모르는 곳이야. 일본 안에 사고가 없는 탄광은 없지. 그러
나 탄광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고로 죽어도 소학교를 졸업하면 또 탄광의 아이
들은 아버지가 사고로 죽어도  소학교를 졸업하면 또 탄광에서 일한다는 이야기
를 들었어. 그런 탄광의 아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고 때때로 생각했지."
  류타는 정말 이해할 수 있었다. 사카베  선생님은 도쿄의 고등사범학교에 가라
든가, 좀더 큰 도회지의 교사가 되라고는 절대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될 수 있으
면 류타도 탄광 마을의 아이들을  마음 깊이 끌어안을 교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
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이 사범학교에 들어간 자기에게 주신  축하의 말씀이
라고 류타는 생각했다.  그후 일 년 동안 류타는 아사히가와  시내의 소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했다. 그때 마쓰다 교장이 류타를 잘 봐서 초발집에 가자고 했다. 그
때 류타는 장래  탄광 마을의 소학교에 근무하고 싶다고 비쳤다.  진지한 류타의 
말에 마쓰다 교장은 감탄하며 듣고 있었는데, 그  교장이 시의 학무과장이 된 것
이다. 그리고 그 학무과장의 호의로 류타가 포로시나이의 교사로 보내진 것이다.
  그러나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의 말도, 학무과장의 말도  다쿠모도 교장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요, 단지 탄광을 몰라서 탄광의 소학교를 택했다는 말인가요?"
  약간 의심스러운 어조가 되어 다쿠모도 교장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네! 그것뿐입니다."
  류타는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다쿠모도 교장은 한참 류타의 얼굴을 보다가 물었다.
  "자네! 소설읽기를 좋아하나?"
  "철학은 어떤가?"
  "저는 유치해서 교과서 이외의 일은... 철학 같은 것은 전혀 모릅니다."
  류타는 하숙집 책꽃이에  있는 수십권의 책이름을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사실 
나쓰메 소세키, 아쿠다가와 류토스케, 모리 오가이,  시가나오야 등의 책 몇 권과 
니시타 아쿠타로오, 구라다 모산 등의 몇 권  정도로 소설이 좋다든가 철학을 읽
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 놀랐는데,  큰소리칠 수 없지만 나는  실은 빈핍물어도 읽고,  자본론도 
읽었지. 사회주의 연구 잡지도 읽었어. 물론 여공해사도 읽고, 성서도 읽었고, 나
가노 쥬우지나 고바야시  다키지도 읽었지. 그것이 나의 청춘이고 장년시대였어. 
지금도 장년이지만!"
  류타는 뭐하고 맞장구를 쳐야 좋을지 몰라 그저 교장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
다.
  "그런데 자네는 소설도 찰학도  안 읽고 무슨 청춘 시절을 보낼 작정인가? 지
금 자네는  20세가 좀 넘었는데  청춘의 가장 좋은 때에  단지 교과서만 공부했
나?"
  "네"
  류타는 머리를 긁었다. 막  군대를 나온 까까머리인데 3부 정도 자랐다. 그 머
리를 보면서 다쿠모도 교장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 나는  지금 국체의 참의미의 맹렬한  애독자지. 자네는 그 책을 
읽어 봤니?"
  "아뇨, 아직 못 읽었습니다."
  "뭐, 아직 못 읽었다고? 그건 안 되는데. 지금 일본은 중국 대륙에 본격적으로 
전쟁을 확대하려고 하지. 일본은 천황 폐하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안 
돼. 시대가 크게 변화되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싫든 좋든 매일 아침 수양시간
에 들을테니... 자네 밤만두 들게. 이 밤만두가 맛있네."
  류타는 자기가 사온 밤만두를 "먹겠습니다."하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자네가 수재라는 소문을 들어서 혹시  좌익인가 하고 생각했지. 물론 수
재가 모두 좌익은  아니지만, 이 탄광회사에는 가끔  마르크스주의자인 젊은이가 
섞여 있어 공산당 선전에 열을 올린다고 하는  소문이 있지. 탄광이라는 곳은 주
소를 듣기만 해도 회사 직원인지, 광부인지 알 수 있네. 하모니카 판잣집은 광부
들의 집이라고, 한 채  또는 두 채의 단독 주택은 직원의 집이니 바로  알 수 있
지. 계급투쟁을 선동하기에는 아주  쉽게 되어 있네. 자네도 그런 사람인가 했는
데 아닌 것 같구만."
  다쿠모도 교장은 어깨를 흔들면서 크게 웃었다.
  "자네 부친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나?"
  류타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전당포입니다."
  "뭐, 전당포? 가난한 사람을 울리는 전당포는 아니겠지? 아니, 이것은 농담, 농
담이야!"
  다쿠모도 교장은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소리를 낮추더니 말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장사이니 자네의 젊은 혼이 혹시 마음 아
파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주의해야 될 인물 아닐까?"
  류타는 교장댁을  나왔다. 교장 부인은 조용히  인사하며 류타를 보냈다. 푸른 
정맥이 보이는 손이다.
  류타는 교장댁을  나왔다. 교장 부인은 조용히  인사하며 류타를 보냈다. 푸른 
정맥이 보이는 손이다.
  류타는 지금  포로시나이에 와서 처음  식사를 하려고 하는  참이다. 참가자미 
찜과 가지를 기름에 볶은 것, 감자 튀김,  둥글게 자른 토마토, 그리고 조개를 넣
은 된장국이 상에 올랐다.  이것이 늘 노래를 잘하는 이 집  딸의 솜씨인가 하고 
생각하니 류타는 안심이 되었다.
  식사는 두 사람의 하숙인이 각각 방에서 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아키코가 상을 류타 앞에 놓고,
  "오키시마 선생님은 막차로 오신다니까 먼저 잡수시지요."
하고 똑똑하게 말했다. 도수가 높은 안경 속의 가느다란 눈이 부드럽게 보였다.
  "맛있겠습니다."
  류타는 꾸밈없이 말했다.
  "맛있게 보이죠?"
  친밀한 웃음을 남기고 아키코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더니 또 노래를 한다.
  여보하고 부르니, 여보하고 대답하네
  산 속의 산울림의...
하며 맑은 소리로 노래한다. 명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류타는 먼저 조개가 
들어 있는 된장국을 한 숟가락 먹었다. 집에서 먹던 맛과 비슷하다.
  식사 후 두 시간쯤 지났는데 아래층에서  아키코의 "어서 오세요. 오키시마 선
생님!"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외출했다.  돌아온 전 교장  부부의 목소리도 
웅얼웅얼 들린다. 그런데 오키시마라는 교사의 목소리는 안 들렸다.
  류타는 마중을 나가야 할지 어떻게 할지 망설였으니 자기 책상에 앉아 소오세
키의 마음이라는 책을 폈다. 몇 번이고 읽은 책이다. 친구를 배반한 남자의 고통
이 마음에 와 닿은 소설이다.
  '오키시마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류타는 책을 덮었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류타는 저도 모
르게 몸이 굳어졌다. 옆방에 있을 사람이고 곧  자지 방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
다. 자기가 인사하러  갈까 하는데, 방문 밖에서 "들어갑니다1"하고 낮은  목소리
가, 아니 잠에서 깨어난 듯한 소리가 들렸다. 류타가 급하게
  "네, 들어오세요!"
하고 문 쪽을 돌아보니 키가 큰 남자가 허리를 굽히며 들어왔다. 
  "오키시마입니다!"
  선 채로 약간 허리를 굽히고 다다미 위에 앉는다.
  "기다모리 류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류타는 긴장하고 양손을 가지런히 하여 허리를 굽혔다. 오키시마가 말했다.
  "아뇨, 죄송합니다. 당신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사가 있어서요. 그런데 선
볼 여자를 데리고 와서 당황했지요."
  류타는 놀라서 오키시마의 얼굴을 봤다. 콧날이  오똑하고 머리가 약간 곱슬머
리에, 웃으며 한쪽 불에 보조개가 생긴다. 류타는 지금까지 첫 대면에 이렇게 털
털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 털털한 것과는 다른 위압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
었다. 오랜 시간 사귄 것  같은 친밀감이 생겼다. 류타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
을지 생각하면서 내심 한시름 놓았다. 이 사람과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된 것이
다.
  "미안합니다. 제가 먼저 식사를 했습니다."
오키시마는 의아한 얼굴을 하더니 곧 아아 하는 얼굴이 되어
  "밥은 자기 좋은 시간에 먹읍시다. 여기는 사범학교와 다릅니다."
하며 흘러내리는 머리를 올리면서,
  "기다모리 선생! 당신 물론 교장 댁에 인사갔겠죠?"
하고 류타를 본다.
  "네! 갔다 왔습니다."
  "교장 부인이 문을 몇 센티미터 열었어요?"
  오키시마가 다시 빙긋 웃으니까  류타도 웃으며 "5센티 정도예요."하고 대답했
다.
  "5센티 연 것은 좋은 편이죠. 모두 당했으니까. 신경 쓸 필요없어요."
  "넷? 모두 5센티입니까?"
  "3센티도 있고 아주 안 열어 준  사람도 있죠. 월급을 전하러 가도 월급봉투가 
들어갈 정도만 연다고 해요.  결코 신경쓰지 말아요.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겠
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요."
  오키시마는 부드러운 어조이다.
  "네? 이유가 있습니까?"
  류타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현관에서 쫓겨났어요?"
  "아뇨, 저는 교장이 소사인 줄 알고 아저씨라고..."
  오키시마는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리고 들어가서 밤만두를 대접받고 왔습니다."
  "뭐요? 그것은 전에  들어본 일이 없는 일이에요. 문턱에  앉아서 차라도 마시
고 오면 좋은 것이죠."
  "아, 참! 이 밤만두..."
  류타는 책상 아래서 과자상자를 꺼내 오키시마 앞에 놓았다.
  "야, 고맙소! 그리고 사상조사는 없었어요?"
  오키시마는 한 쪽 볼에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첫 출근
  1
  새벽 5시를 조금 지났을  때 류타와 오키시마 선생은 같이 하숙, 집을 나왔다. 
하숙집 딸 아키코가
  "다녀오십시오."
하고 졸린 목소리로 인사하고는
  "기다모리 선생님, 첫 출근이시네. 힘내세요."
하고 격려해 주었다.
  "네! 고맙습니다."
  류타의 목소리도 졸린 소리다. 지난 밤에  류타는 오키시마 선생으로부터 출근
시간에 대하여 들었다. 교장이 직원 조회가  7시 반부터 시작된다고 했기에 류타
는 그 시간까지  가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오키시마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이 학교의 소문을 못 들었어요? 아마 들었으면 자기가 자원해서 희망하는 사
람은 없을 거요.  5시에 집을 나와 출근해도 벌써 대부분  선생들이 출근해 있어
요."
  "5시오?"
  류타는 놀랐다. 5시는 류타에게 자는 시간이다.
  "정말입니까?"
  "거짓말인지 정말인지. 내일 가보면 알아요."
  놀라는 류타에게 오키시마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새벽 5시에 가서 무엇을 합니까?"
  "별 것 아니죠. 교실 청소를 하거나 넓은 교정을 쓸거나... 특히 봉인전  둘레는 
더 깨끗하게 하죠."
  류타는 어제  보았던 종이 하나 안  떨어진, 놀이기구 하나 없는  넓은 교정을 
떠올랐다.
  "청소하기 위하여? 그런 일은 방과후에 학생들에게 시키면 되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러나 아침 일찍  교사들에게 청소시키는 것이 교장에게는 
의의가 있다는 것이죠."
  오키시마 선생은 다른  사람의 말을 하는 것같이 재미있는 듯  말했다. 류타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 5시부터 교사들을 출근시켜 교정 청소를 시킨다. 그
런 일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교장에게 순종하는 교사들의 학교.  상상도 못했던 
세계가 거기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오키시마 선생님도 아침 5시에 가십니까?"
  오키시마 선생은 그렇다고 하면서 말을 이었다.
  "할 수 없는 놈이지요.  나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속으로는 이 교
장이 하루라도 빨리 다른 학교에 갔으면, 병이  나서 눕든지 또는 죽었으면 좋겠
다고 생각하지요. 그래도 그건 생각뿐이고 어쩔 수 없이 모두 순종하고 있지요."
  스스로를 비웃는 어조였다.
  오늘 아침 일어난  시간은 4시 40분있다. 이불을 개켜 장에  넣고 세수에 그럭
저럭, 아침식사는 5`6분  사이에 마쳤다. 화장실에 갈 틈도 없었다.  '아침을 준비
하는 아키코는 몇 시에 일어날까? 하고 류타는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조용한 거리를 류타는 키가 큰 오키시마 선생과 나
란히 바쁘게 걸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요. 우리는 직원주택 선생들보다 멀리서 다니는 것이
니까요."
  오키시마 선생은 침착하다.  류타는 교문을 들어사다가 자기도  모르게 멈추었
다. 12~13명의 남녀 교사들이  말없이 묵묵히 대나무 바로 교정을 쓸고 있다. 비
로 쓴 자국이 남은  교정에 발자국을 내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바로 쓴 자국
이 남은 교정에  발자국을 내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오키시마  선생은 봉인전
에서 8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례를 했다. 류타도 같이 정중하게 절했다. 봉
안전에 절하는 것은 류타에게 아무 정항이 없다. 소학교 입학 아래 중학교, 사범
학교에서도 계속해서 절을 해왔다.
  오키시마 선생은 동료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낮은 소리로 인사했다. 동료들
은 낮은 소리로 서로 인사했다. 그러나 류타는 큰 소리로 인사했다. 교사들은 약
간 놀란 얼굴로 류타를 보았다. 그 모습이  무슨 비밀결사 같은 이상한 분위기였
다.
  "야! 아침 일찍 일어나 잘 오셨네요!"
  어디서 봤는지 교장이 가까이 와서 말을  걸었다. 류타는 교장에게도 씩씩하게 
인사했다. 교장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 아침은 정숙이 귀한 것이죠. 좀 낮은 소리가 좋은 것입니가."
  류타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아침 청소가 하나의 정신적인 
수양이라는 것을.
   "네! 알았습니다."
   류타는 낮은 소리로 대답하고 오키시마 선생 뒤를 따라서 직원 현관 앞에 섰
다.
   산 중턱에 세워진  이 학교는 1층이 교정보다  3미터쯤 높아서 2층같이 보인
다. 현관 앞에  서니, 높은 단상에서 전  교정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교정에 학생을 모을  때 직원들은 아마 이 직원  현관 앞에서 구령을 붙일 것이
다.
  류타는 현관에 한 발을 들여놓다가 또 놀랐다.  두 사람의 여교사가 무릎을 끓
고 현관 마루를 걸레로  닦고 있었다. 현관의 마루는 판자였다. 나무판자지만 직
원들이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곳이다. 그 곳이 매끄럽게 닦여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류타는 긴장해서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일어서서 답례를 했다. 그중 한 사람
이 어제 역에 마중나와 짐을 2층으로 운반해 준고야마 미츠코 선생이었다.
  "어제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야마 선생은 한쪽 눈을 가볍게 감으면서
  "천만에요!"
하고 조용히 대답한다.
  '역시, 정숙이 귀한 것이구나.'
 현관 바로 옆에  교실 두 개를 연결한 교무실이 있었다.  교무실에도 마루를 닦
는 남녀 교사가 몇 사람  있다. 오키시마 선생이 큰소리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고, 청소하던 교사들은 보통 음성으로 답한다.
  "신임인 기다모리 류타  선생입니다. 나와 같은 하숙집에 있습니다. 잘  부탁합
니다."
하고 교사들이 보통 음성으로 답한다.
  "오키시마 선생님, 여기서는 큰 소리 내도 됩니까?"
  오키시마 선생이 속삭였다.
  "교장 한 사람만 정숙이라고 믿으면 돼요. 임기웅변."
  류타는 알았다. 왠지 몹시 피곤할 것 같았다. 류타도 바로 걸레를 받아서 교사
들의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책상을 닦는  걸레는 걸레라기보다는 행주 같았다. 
흰 헝겊을 네 장  겹쳐 녹색 무명실로 곱게 꿰맨 것이다.  어느 책상에도 꽃병은 
없었다. 아니, 꽃병은   커녕 책 한 권 없었다. 책을 읽을  때만 담당상자에서 꺼
내는가 보다. 어느 담당상자  위에 보자기 꾸러미와 가죽가방이 놓여 있다. 그러
나 교장의 큰 책상 위에는 유리병에 한 송이 코스모스가 꽃혀 있다.
  직원 책상은 방 양쪽에 마주 보고 앉게  늘어놓았고, 교장과 교감의 책상은 그 
교사들을 감독하는 듯이 직원실 정면에 놓여 있었다.
  소학교에는 교장실이나 사무실이 없다. 사무원도 없고 급사도 없다. 차 심부름
은 여교사가 하는데, 이것은 류타가 졸업한 다이에이 소학교에서도 그랬다.
  교장 자리의 반대쪽 한 구석에 종이 자르는  대와 등사판이 있고 도화지, 시험
지, 각종 종이가 있는 유리창이  벽면에 불어 놓여 있다. 류타는 20여겨 정도 되
는 책상을  닦으면서 흘깃흘깃 교무실의  분위기를 보았다. 교무실  벽에는 행사 
예정표가 달필로 쓰여 있었다. 9월 6일 월요일 행사 예정이라는 말 아래에 "기다
모리 류타 선생 부임"이라고 쓰여 있다.
  류타는 책상을 힘있게 닦으면서
  "부임? 이것이..."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나의 교사 생활의 첫 시작이구나.'
  뭔지 모르나 "정숙을  귀하게"라는 말이 이상하게 무겁고 답답함을 느끼게  했
다.
  그후 교사들은 각각 자기 교실을 돌아보고 청소를 하는 듯했으나 류타는 아직 
교장이 몇 학년 몇 반을  맡으라는 말이 없었기에 오키시마 선생의 뒤를 따라서 
그 반에 가 보았다. 오키시마 선생은  3학년 남자 담임이었다.
  교실 뒤에 붙어  있는 그림과 붓글씨를 보니  무척이나 훌륭해서 류타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 작품을  봄으로써 오키시마 선생의 탁월한 지도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은 아마  소풍의 주제인 같았다. 어떤  학생은 두 줄로 서서  산길을 가는 
모양을 자세히 잘도  그렸다. 풀도 나무도 사람도 하나하나 자세한  점까지도 그
려 있어서 3학년  아이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옆의 그림
은 검은 강에 걸려 있는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두 사람의 아이를 그렸
다. 다른 그림에는 산길에  올라가는 모양이 즐거워 보이게 그려져 있었다. 먼저 
가는 학생 한 사람이  손짓을 하는 모양을 보며 류타는 웃었다.  그런가 하며 커
다란 주먹밥을 쥐고 있는 남자아이의 손과 그것을 먹으려고 하는 남자아이의 즐
거운 얼굴을 그린 것도 있었다.
  '그렇다!'
  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키시마 선생은 학생들에게  가장 마음에 남아 있는 
소풍의 모습을 자유롭게 그리게 한 것이다. 그림을  보기만 해도 학생에 대한 오
키시마 선생의 풍부한 애정이 학생들에게 전해진 것을  알 것 같다. 류타는 소리
질렀다.
  "선생님, 참으로 훌륭합니다!"
  오키시마 선생은 뭔지 작은 칠판에 쓰고 있다가 얼굴을 들고, 
  "기다모리 씨도 그림을 좋아합니까?"
하고 너그러운 소리로 물었다.
  "저는 아직 좋아한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나도 
학생들에게 빨리 그림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키시마 선생은 류타의 말에,
  "당신은 순진한 사람이군요."
하며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2
  6시 반 가까이 되자 오키시마 선생이 말했다.
  "지금부터 교무실에서 수양시간입니다."
  "네? 수양시간요? 어떤 일을 하나요?"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묵독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오키시마 선생은  작은 칠판에 쓰던  것을 멈추고 그것을  칠판옆에 매달았다. 
거기에는 달필로 "금주의 목표, 우정을  생각하자." 라고 써 있었다. 오키시마 선
생은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실은 기다모리 씨에게 책 이야기를 못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두 권 가져왔으
니까."
  오키시마 선생은 산타로오의 일기 라는 책을 주머니에서 꺼내 준다.
  "아, 미안합니다."
  류타는 오키시마 선생이  책에 대한 주의를 잊은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알맞은 책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기다모리 씨! 수양시간에 30분  묵독을 하고, 다음에는 7시 반까지 직원 조례
가 있습니다. 그때 당번인 사람이 읽은 책에 대하여 감상을 말합니다. 교장이 그
것을 듣고 비평을  합니다. '자네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라든가, '그 책은 두 번 
다시 읽지 마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경쓰지 마세요. 일불 나쁘게 말하지
는 않으니까요. 미리 적화사상을 경계하고 그 싹을 자르고 선도하려는 것이지요.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키시마 선생은 농담섞인 말투로 말하고 크게 웃었다.
  "젊은 선생 중에는  일부러 두 번 다시  보지 말라는 책을 자져오거나 양서를 
읽고 영어로 얼버무리는  선생도 있었죠. 요사이는 모두 얌전합니다.  나처럼! 오
늘 조례에서 기다모리  씨가 모두에게 소개될 것입니다. 당신이 읽은  책도 소개
됩니다."
  류타는 참 어려운  학교에 부임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
고 마음 깊이  오키시마 선생의 배려에 감사했다. 이런 이야기를  어젯밤에 들었
으면 류타는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고 이 학교에 온 것을 후회하며 잠을 이
루지 못했을 것이다.
  류타는 좀 일찍 오키시마 선생과 같이 교무실로  갔다. 교장은 무게 있는 밤색 
책상에 한쪽 팔을 고이고 옆에  앉은 교감인 만다 선생과 무언지 귓속말을 하다
가 오키시마 선생과 같이 온 류타를 보고 싱글벙글 웃었다. 류타는 다시 한 번
  "아시히기와에서 온 기다모리 류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인사하는 법이 되었습니다. 좋은 선생이 되겠지요. 힘껏 일해 주세요."
  교장은 따뜻한 어조로  말하고 옆에 있는 교감  만다 다다이치 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만다 교감 선생입니다. 잘 대해 주실 것입니다."
  교감은 조금 크게 웃으며
  "만다입니다. 열심히 해주십오. 사이좋게 지냅시다."
하고 말했지만 그의 눈을 웃지 않았다. 교감은 곧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 당신은 고등과 1학년을 담임하셔야 되겠습니다. 좋습니까?"
  어조가 정중했다. 류타도 정중한 말로
  "알겠습니다. 고등과 1학년이지요?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고 절을 했다.
  담임이 정해지고 같은  학년 교사들 전원에게 소개받았다. 고등과  1학년 담임
은 류타까지 4명이고 그 중에 두 사람은 어제 역에 마중 나온 호리 마츠오와 고
야마 미츠코 선생이다. 또  한사람은 학년 주임인 사키야 호시후미인데, 검은 바
지와 놀란  듯 한 큰 눈이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인상이다. 호리  선생과 고야마 
선생은 어제와 같은 밝은 미소로
  "잘 부탁합니다."
하며 가볍게 인사했고, 사카야 선생도
  "뭐,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슬슬 합시다."
하며 류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류타의 자리는 호리 선
생 옆이고, 바로 앞에는  고야마 선생의 자리이다. 류타가 자리에 앉아 1~2분 지
난 후 바로  수양시간이 시작되었다. 류타는 아까 오키시마 선생에게서  빌린 산
타로오의 일기 첫 장을 폈다.
  누구나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30명의 가까운  교사들이 사담 하나 없이 기침
하는 이도 없고 가끔 책 들추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5분, 10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류타는 일종의 감동을 느꼈다.
  '혹시 이 곳이 멋진 학교인지도 모른다.'
  학교 교사가 수업시간 몇 시간 전에 출근한다.  청소를 하고 수양 시간에 독서
를 한다. 이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 것이다. 교육자는 이런 긴장된 시간을 아
침마다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 된다. 단지  출근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것이 
걸렸다.
  류타는 활자가 여간해서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만약 출근 시간이 7시이고, 
격일로 청소와  독서의 날을 교대해서 가지면  그리 고통은 안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눈을 드니까  건너편에 50이 넘은 교사가 끄덕끄덕 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류타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기둥시계가 7시를  쳤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교장쪽을 본다. 
교장은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 교장 앞에는 틀에 넣은  일장기가 걸려 있
다. 교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소학교 교사에게 주신 칙어."
  직원들은 소리를 맞추어 읽었다.
  "국민도덕을 떨치어 일으키고 국운의 번창을 기하는 것은 소학교 교육에  기인
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자, 주야로 분투노력하라..."
  일동이 흐트러짐없이 명석하게  따라 읽었다. 계속해서 포로사나이  소학교 교
사의 노래가 이어진다.
  우리 천황의 적자인 
  자녀를 기르는 오늘도
  우리 영광된 일이요.
  아름다운 노래이나 류타는 모른다. 노래가 끝나니까,
  "일동 착석."
하는 교감의 구려으로 앉았다.
  "고야마 선생님, 오늘 아침의 감상을 들려주십시오."
  눈앞의 고야마 선생이  지명되어서 류타는 놀랐다. 아침 30분 독서  후에 감상
을 말할라고 한다는 것을 오키시마 선생은 말했지만 겨우 30분간의 독서로 그런 
감상을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류타는 의심스럽다. 고야마 선생님은  일어서서 입
을 열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사이토오 시게요시의  아카비카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의 눈을 끈 것은,
  옆방에서 사람이 죽어 가도 마냥
  하하키구사의 열매를 먹고 싶네.
라는 노래입니다. 옆방에서 사람이  죽었다는데 사이토오 시게요시는 하하키구사
의 열매를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옆방 사람이 부모는 아니라고 생각합
니다. 부모는 아니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인생의 일대 중대사이지요. 그 인
생의 중대사보다 하하키구사의 열매를 먹고 싶었다.  시게요시는 그런 자기의 사
람에 대한  냉정함을 생각하고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힙니다. 혹은  인간은 모두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냉담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하
나의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키비카리에는  유명한 어머니
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가 몇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의 어머니 죽어 가는 나의 어머니
  나를 낳으시고 젖을 먹이신 어머니
  혼자 와서 누에고치 방에 서니
  나의 슬픔은 극에 달하네.
같은 노래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는 시게요시도 울고 있지요. 그런 시게요시
의 슬픔을 알면서 다른 사람도  또 무엇이 먹고 싶다고 자기 멋대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적어도 교사로서 학생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기를 바랍니다."
  고야마 선생은 절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류타는 감격했다. 고야마 선생은 류
타보다 한두 살 위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 앞에서 거침없이 자기의 생각
을 말하는 그 말솜씨에 참으로 놀랐다. 교장이 말했다.
  "고야마 선생, 공부 많이 하셨네요. 훌륭합니다!  고야마 선생도 시를 쓰신다니 
좋은 취미를 가졌습니다."
  그 다음, 교장의 시선이 류타에게로 왔다.
  "기다모리 선생, 이쪽으로 좀 와 주십시오."
  류타는 깜짝 놀랐다. 교장 옆에 가니 교장이 말했다.
  "선생님들! 신임이신 기다모리 류타 선생입니다.  아사히가와 출신입니다. 아사
히가와 사범을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초임지입니다. 잘 지도
해 드리세요. 그럼 기다모리 군! 인사를..."
  류타는 당황해서 머리를 깊니 숙이고 절했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말을  못했다. 오
늘 새벽 5시부터 노라는 일뿐이므로 정신이 없었다.
  그때 현관의 가까운 입구에서 한 남자가 "안녕하십니까?"하고 큰  소리로 말하
며 교무실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남자 교사와 같은 양복을 입고 있다. 모두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그에게 답례했다. 좀 붉은 얼굴에 어깨가 넓은 사람이었다.
그는 중앙의 자리에 앉았다. 오키시마 선생 옆자리다. 류타의 옆에 앉은 호리 선
생이 낮은 소리로 류타에게 말했다.
  "기노시다 사도루선생이지요."
  그 어조에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존경심이 포함된  것같이 느껴
져. 기노시다 선생이 들어온 후  갑자기 교무실이 떠들썩해졌다. '정숙이 귀하다.'
는 시간이 이것으로 끝났구나 하고 류타는  생각했다. 손목시계는 아직 7시 25분
을 가리키고 있는데 아침  조례는 끝난 ㄷ하다. 직원실을 나가는 사람, 복도에서 
학생을 부르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그것은 어는 학교에
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렇게 교사 생활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3
  학생들의 조례는 8시부터  실내 운동장에서 행한다고 한다. 류타는  복도를 걷
는 학생들의 모습을 봤다. 맑은 유리의 직원실 창에서 복도의 모양이 잘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직원실 옆을 지나가는 학생들은 누구나  단정히 손
을 허리 아래에 대고 머리를 숙이고 지나갔다.  누구 하나 손을 흔들거나 뛰거나 
교무실을 들여다보거나 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
  "왜 머리를 숙이고 학생들이 지나갑니까?"
  류타는 고야마 선생에게  물었다. 오늘 고야마 선생은 검은 주름  치마을 입고 
흰 블라우스에 검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고야마 선생이 대답했다.
  "그렇죠? 이것은 학생들이 교무실을 못 들여다보게 하는 하나의 예법이죠."
  "왜, 들여다보면 안 됩니까?"
  "아마 불을 쬐거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겠죠."
  고야마 선생은 낮은 소리로 말하고 크게 웃었다.
  "별난 학교네요!"
  류타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별난 학교 정도가 아니에요."
  고야마 선생은 친근한 말투로
  "좀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하며 류타를 복도로 데리고 갔다. 교정에는  8시 조례에 맞추어 등교하는 학생들
의 줄서 있는  모양이 보인다. 고등과 학생인 듯한 학생에게  인솔되어서 오른쪽
과 왼쪽  출입문에서 두 줄로 정렬하여  등교한다. 그리고 봉안전 앞에서  두 줄 
횡대로 서서 경례를 하고, 자기들의 현관으로 향해 띈다.
  "매일 이렇게  줄을 서서 오나요?"
  "그럼요. 겨울도 여름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죠."
  "왜 그렇게 하나요?"
  저렇게 줄을  서서 등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왠지 즐거움이  없어진 것 
같다. 등교 하교  도중에 싸움도 하고, 쫓아가기도 하고, 까불고  길에 앉기도 하
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구령이 떨어지면 민첩하게 움직이는 훈련이 되어 있지요."
  "네, 그래요."
  "왜, 불만입니까?"
  "아뇨! 저는 잘 모릅니다..."
  그때 교감이 건너편 문간에서
  "고야마 선생님, 잠깐만."
하고 불렀다. 고야마 선생은 어깨를 움츠리며
  "남녀 교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안 되지요. 그런 규칙은 어
디에도 없지만... 그래도 사이좋게 지냅시다."
하고 생긋 웃었다.
  조례시간이 되었다. 교장의 뒤를 따라서 류타는 실내 운동장에 들어갔다. 들어
가서 숨을 죽였다. 1200명에 달하는 학생이 조용히 그 곳에 서 있었다. 심상과 1
학년부터 고등과  2학년까지 똑같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눈도 앞사람 머리를 
보며 꼼짝도 않고 서 있다. 교사들은 그 학생들 앞에 서 있었다.
  작은 단상에 교장이 올라  갔다. 그때 단 앞에 서 있던  고등과 학생이 똑바로 
교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림에 그려진 것 같은  똑똑한 얼굴이며 검은 눈썹 아
래 둥근 눈이  크다. 그 학생이 뒤로  돌아섰다. 교장에게 등을 돌리더니 똑똑한 
소리로 구령했다.
  "궁성을 향하여 멀리 절합시다."
  1200명의 학생이 일제히 뒤로 돌았다.
  "경례!"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경례를  했다. 어떤 아이든지 손끝이 무릎까지 닿는다. 
즉, 직각 90도 경례다.
  "바로!"
  "뒤로 돌앗!"
  학생들이 제자리로 돌았다.
  "교장 선생님께 아침 인사를 합시다."
  맑은 목소리가 실내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1200명의 목소리가 한결같다.
  "안녕하세요?"
  단상의 교장이 만족한 듯 인사를 보냈다. 교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도 군인들은 먼 중국에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열심
히 공부합시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학생이 됩시다."
  계속해서 류타가 소개되었다. 단상에 오른 류타가 말했다.
  "저는 신출내기 선생입니다. 그러나 씩씩합니다. 다같이 사이좋게 공부하며  놀
기를 바랍니다. 제가 소학교  1학년때 공부 잘하고 잘 놀자 라고 배웠습니다. 공
부도 중요하지만 노는 것도 중요해요. 놀 때는 잘 놉시다."
  학생들이 크게 끄덕였다. 류타가 단에서 내려오는데 교장이 쳐다봤다. 기분 나
쁜 얼굴이었다.
  류타는 고등과 1학년, 자기  담임 '히키리반'의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교
실은 2층이다. 52명 학생이 기립한 채 류타가 교단에 서기를 기다린다.
  반장이 "경례"하고 구령을  붙여 모두 일제히 45도 각도의  절을 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류타를 똑바로 쳐다본다.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말씀하셨는데 알아요?"
  너덧 명의 손이 올랐다.
  "네! 기다무라 류타 선생님."
  다른 아이가,
  "기다모리 류타 선생님."
  다른 아이가 손을  내린다. 류타는 칠판에 기다모리 류타라고 쓰고  옆에 가나
로 토를 달았다. 류타는  갑자기 사카베 히사야 선생님이 생각났다. 사카베 선생
님은 4학년 때 처음으로 자신을 담임 하셨다.
  "대답을 잘 하면 행복이 온다."
  사카베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며 출석을 부르셨다.  자기도 사카베 선생님 흉
내를 내기로 했다. 사카베 선생님 같은 선생이 되고 싶다. 출석부를 펴고 이름을 
불렀다.
  "아사노 히로시 군!"
  큰 소리로 대답한다.
  "좋아! 대답이 좋으면 행복이 온다."
  사카베 선생님 흉낼ㄹ  내면서 류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학생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52명의 이름을 한 번 죽 불렀다. 그리고 류타는 말했다.
  "나는 소학교 때 아주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그래서 그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
서 선생이 되었지만, 좋은 선생이 되도록 너희들이 도와주기 바란다."
  "워어터!"
  학생들이 일제히 소리질렀다.
  "워어터? 워어터가 뭐냐, 영어로는 물인데!"
  학생들은 또다시
  "워이터!"
라고 하며 웃었다. 아마 이 학교에서 즐거운 소리는 "워어터"라고 하는가 보다.
  "선생님은 너희들의 고민을 어떤 것이라도 들어주겠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형
님처럼 생각하고 오기 바란다. 나쁜 짓을 하고 싶을 때도 와주기 바란다."
  학생들은 다시 한 번 "워어터!"하고 소리쳤다.
  편지
  1
  류타가 포로시나이 소학교에 부임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 간다. 내일은 10월 
3일 일요일이다. 이쯤해서 한 번 아사히가와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그럴 틀이 없
었다. 아사히가와에 가지는커녕 목욕탕에 갈 시간도 충분하지 못했다. 조금 전에 
저녁식사를 마친 오키시마 선생이
  "목욕탕에 안 가시겠습니까?"
하고 권했지만
  "미안합니다. 편지 답장이 밀려서요."
하고 거절했던 참이었다.
  포로시나이에 대중탕이 없다. 4개의  탄광 회사가 각각 욕탕을 마련했다. 거기
에는 회사  사람도 일반 사람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욕탕은  회사에 따라서 
크기가 다르지만 어느  욕탕에도 넘칠 정도로 더운 물이 준비되어  있다. 류타가 
가는 욕탕은 하숙집 뒤로  흐르는 냇물 건너 언덕 위에 있다.  하숙집을 나와 동
쪽으로 50미터쯤 가면  오른쪽에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 있다. 말  그대로 가파른 
언덕이어서 젊은 류타도 숨이 찰 정도의 언덕이다.  이 30미터쯤 되는 길이의 언
덕이 힘들다.
  언덕을 올라가면 그 곳에  사택이 여기저기 있고, 커다란 욕탕이 있다. 입구가 
남녀별로 되어  있는 아사히가와의 대중탕과  같지만 계산대가 없다.  탄광 동네 
아이들이
  "오늘 나는 세 번째 왔다."
  "나도 세 번 왔는걸!"
하는 것을 보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는가 보다.
  포로시나이의 아이들은 사람을 잘 따라서 류타가 들어가며 모여들어
  "선생님, 색시는 없어요?"
  "집에 놀러가도 돼요?"
  "선생님, 어디서 오셨지요?"
등등 이야기를 건다. 류타가 욕조에 들어가면 아이들도 들어오고, 나오면 그들도 
나온다. 즐겁지만 하나하나 말을  받아주다 보니 류타도 피곤했다. 그 점에서 오
키시마 선생은 아이들의 머리를 탕 속에 처박기도  하고, 탕에 들어가서 큰 소리
로 노래도 하며 아이들을 익숙하게 잘 다룬다.
  류타는 욕탕에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이 고작이다.
  오키시마 선생이 목욕간  뒤, 류타는 전기 스탠드의 스위치를 켜고  책상 서랍
에서 편지를 꺼냈다. 어머니 기쿠에, 동생 야스시, 사촌인 구스오, 사카베 선생님, 
그리고 요시고의 편지 등 두세 통이 더 있다.
  먼저 부임했다는 인사와  송별해 준 것에 대한  감사편지를 엽서로 했지만 몇 
사람이 그 엽서에  회답을 보냈다. 그것을 답장해야 한다면서 바쁜  중에 미뤄놓
은 것이다. 류타는 편지지를 펴고 어머님이라고 썼다가 후회했다. 아버님을 먼저 
써야 했는데 하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고쳐 쓰기가 미안해서 다시 "아버님, 어머
님"하고 썼다. 류타는 자기반 학생 52명 중에 아버지가 없는 학생이 세 명, 어머
니가 없는 학생이 두 명 있음을 생각했다. 그  한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금년 여
름 대소집으로 중국 대륙에 갔다고 한다. 그  아들 사토오 마나부는 글짓기 시간
에 아버지의 출정이란 제목으로 썼다.
  아버지는 올 여름 40세의 나이로 출정하셨다. 어머니는 "일본에는 젊은 남자가 
없는가?" 하며 우셨다.  아버지는 잠깐 아사히가와의 민가에 묵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면회하러 아사히가와에 갔다. 아버지는  카키색 전투모를 쓰고 카
키색 군복을 입고 계셨다.
  찾아간 우리를 보고 아버지께서는 좋아서 웃었지만 갑자기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 전쟁터에  가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손
수건을 눈에 대고 있었다. 그때  놀랄 일이 생겼다. 같이 있던 군인이 갑자기 기
둥을 붙잡고  "무서워! 살려 줘!" 하고  소리쳤다. 아버지나 사람들이  달래도 더 
크게 소리치며 결국 울고 말았다.  가까운 곳에 묵고 있던 상관이 급히 왔다. 그
리고 그 젊은 군인은  몇 명의 군인에게 끌려 어딘가로 가  버렸다. 대체 어디로 
데려갔을까?
  아사히가와의 거리에는 민박하는 군인들로 가득 찼다.  저 많은 군인들이 전장
에 간다. 아버지도 가신다. 나는 아버지가 천황 폐하를 위하여 남자답게 싸워 주
기를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류타는 그 글짓기를 떠올리고 부모에게 할 말을  이었다. 매일 아침 조회 때마
다 교사들은 소학교 교사에게 주신 칙어를 읽으며, "밤낮 분투  노력 하자."고 끝
낸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 까지다. 교장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새벽 5시부터 
해가 지기까지 교사들을 학교에 남기고 싶어한다. 5시 퇴근시간이 되어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곧 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교장이나 교감이
  "선생님, 오늘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의심쩍은 얼굴을 한다. 교장은 학생 조회  때 언제나 정한 대로 "오늘도 군
인들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를 위하
여 쓰임받는 학생이 됩시다."하고 훈시를  한다.
  그 글짓기를 쓴 사토오는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와 주기를 원한다고 쓰지 못했
다. 쓰지 못하는 사정이 완연히 보인다.
  류타는 펜을 잡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님, 어머님! 소식 못 전해서  죄송합니다. 두 분 모두 안녕하신 줄 압니다. 
저는 '내가 교사가 되어도  되는가.' 하고 요사이 자주 생각합니다. 아직 나이 어
린 학생들이 각각 큰 짐을 지고서도 밝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 씩씩하고 기특
함에 마음 깊이  감격합니다. 인생을 있어서 어떤 교사에게 배었는가  하는 것이 
대단히 중대한 일인 줄 압니다.
  제가 사카베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새감스럽게 긴장이 됩니다. 
좀 잘난 척했습니다만 어머니가 만드신 된장국이  먹고 싶고, 카레라이스가 먹고 
싶을 정도로 식욕왕성한 나날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점원 료키치에게도  안부를 전해 주시고,  료키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넘었군요.  병분안을 갔을 때 다코  방에서 도망온 김준명 씨를  만난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모쪼록 몸조심하십시오.
  10월 2일, 류타가 아버님 어머님께!
  추신, 첫 봉급을 55엔  받았습니다. 곧 보내려고 했는데 여간해서 틈을 못내고 
오늘에 이르렀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일금 16엔을 우편으로 부칩니다. 그중 10엔
은 부모님께, 3엔은 누나에게, 2엔은  마노의 도시코 고모님께, 1엔은 야스시에게 
주십시오, 사카베 선생님께는  5엔을 여기서 보내겠습니다. 나중에도 부모님께는 
10엔씩 보낼 예정입니다. 적은 돈이지만 감사의 표시로 받아 주십시오.
  우편함을 편지에 넣고 봉했다. 다음에는 사카베 선생님께 쓰기 시작했다.
  사카베 선생님! 오랜  시간 뵙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곳에 
오기 직전에  인사하러 가서 뵈었으니 아직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셈입니다. 
제가 과연 제자들에게 이렇게  그리워함을 받는 선생이 될 수 있을까요? 교단에 
선 후에 더욱더 사카베 선생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길을 걷고 있다가 갑자기 "사카베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선생님이 
만약 이 학교의  교사라면 어떻게 지내실까? 저는  항상 "만약 사카베 선생이라
면..."하고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자립한 교사가 안  되었다고 
꾸중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 당분간 선생님을 모범으로 삼고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러나 배우면 배울수록 인격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처
럼 밝게 상냥하게 엄하게 할 수는 없지만 노력을 합니다.
  선생님 편지에 "시대를 확실히 주시하라."하신  말씀이 저에게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일본은 싸우고  있는데 이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요. 이 학교에 와서 
하루하루 익숙해지니까, 이곳 교장도 훌륭하다고 생각되며 친근감이 솟아납니다.
  "나뭇잎 사이에 숨는 무사도는 죽음을 보게 된다."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아니, 저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의 대다수가 
이 말에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생각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도 조금 말씀드렸습니다만 저희 학교는 아침 5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가 지나야 
퇴근합니다. 이 엄격한 법을 깬 한 사람의 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7시 반에 겨우 
출근하고 5시가  되면 재빨리 퇴근합니다. 30명  가까운 교사 중  수업을 잘하는 
사람은 그분밖에 없다고  합니다. 기노시다 사도루라는 교사입니다. 새해 처음에 
담임이 기노시다 선생으로  결정되면 부형도 학생들도 크게  기뻐한답니다. 그분
의 동료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봄부터 내 딸이 기노시다 선생 반이 되어서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이 기노시다 선생은 동화도 잘하시고  말씀도 누가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
난 힘을 가지고  잘하십니다. 어디서 이런 능력이 나올까요? 저는  아직 이 선생
님께 가까이 갈 용기가 없습니다. 멀리서 슬금슬금 보는 정도입니다.
  선생님, 첫 월급에서  적은 돈을 보냅니다. 책값으로라도 써주시면 기쁘겠습니
다. 아니, 사에코  선생님께 맛있는 것이라도 대접해 주세요.  모쪼록 몸조심하십
시오, 사에코 선생님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에게 쓴 편지를  다시 한 번 읽고 봉투에 넣으면서 기노
시다 선생을 생각했다.  기노시다 선생은 복도를 걸을 때도 직원실  안에서도 허
리를 곧게 펴고 항상  천천히 걷는다. 그렇다고 거만하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도 
거만하지 않다.  항상 침착하게 걷는다. 결코  조급하게 걷거나 뛰지  않는다. 그 
걷는 모습이 기노시다  선생의 인생을 사는 태도같이 보인다. 류타와  지나칠 때
도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할  때는 마음과 마음이 닿게  류타의 시선과 
자기 시선을  맞춘다. 그리고 싱긋 웃는다. 대부분 서서 이야기 같은 것은 안 한
다. 그런데 한 번은 정면 현관 계단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물었다.
  "기다모리 선생! 몇이시죠?"
  류타는 좀 긴장이 되어서 21세라고 대답했다.
  "21세입니까? 젊군요!  젊음이 어깨에서 발산됩니다."
  류타는 멋쩍어서 머리를 긁었다.
  "나는 21제때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13년간 지난 지금은 완전히 때가 무
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13년 지난 지금은 완전히 때가 묻었지요!"
  마음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류타는 그때  기노시다 선생이 34세인 것
을 알았다. 그리고  류타는 자기가 34세가 되었을  때, 젊은 신임 선생의 어깨를 
보고 역시 젊음이 어깨에서 발산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21세의 지금 나이는 
연배의 선생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귀중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
코 헛되게 21세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깊이 다짐했다.
  기노시다 선생은 독신이라고  한다. 류타의 학숙집은 학교에서  동쪽으로 수백 
미터 되는 곳에 있고, 기노시다 선생의 하숙집은  반대인 서쪽으로 수백 미터 정
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게다 가게다. 기노시다 선생은  왜 아침 청소 시간에 안 오
는지 류타는 한 번 묻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지난 주 직원회의에서  학생의 과외지도가 의제로 올랐다.  그때 훈육주임에게 
기노시다 선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포로시나이 소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군것질을 엄하게 금하고 있다.  얼마나 엄
한가는 금년 3월에 일어난 어떤 우등생의  사건에도 나타났다. 그 학생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읽도록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교사가 그 학생이 떡집 앞
에서 떡을 먹는  것을 보았다고 지적했다. 담임교사는 심히 미안해서  그 학생이 
대표로 답사를  읽는 것을 중지시겼다.  그런 내용을 오키시마  선생에게서 들어 
류타는 알고 있었다. 오키시마 선생은 그때 류타에게 
  "그러니까 기다모리 선생!  선생님도 가게 앞에서 빵을 먹고  있다가는 학생들
에게 군것질 선생이라고 소문납니다."
하고 반농담조로 말하며 웃었다.
  지난 주 직원회의에서  어떤 일로 이 군것질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훈육주임

  "최근 전학온 학생이 늘면서  군것질 금지의 좋은 학풍이 문란 해지고 있습니
다. 선생님들께서는 한층 더 협력해 주십시오"
  전부터 금지해 온 것이기에  누구나가 가볍게 듣고 다음 의제로 넘어가려느데 
그때 기노시다 선생이 발언했다.
  "군것질, 군것질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요?"
  말투는 조용했지만 모두가 흠짓했다.
  "그건 안 되지요. 기노시다 선생!"
  훈육주임은 약간 얼굴에 홍조를 띠고 말했다.
  "왜 그런가요?"
  "왜라니요? 군것질을 하면 안 된다는 교칙 때문이지요."
  "왜 그런 교칙이 필요합니까?"
  "즉, 먹고 싶다고  해서 자기 멋대로 부모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서 쓰는 것은 
불ㄹ화의 시작이지요."
  "그럴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탄광의 가정 중에는  아버지가 갱 
안에 들어가고 어머니는 선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가정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밥
을 짓거나 장작을 패거나 하면서 기사를 돕고  있죠.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는 때
로는 1, 2전의  용돈을 줍니다. 이것으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할 수 있습니
다. 그런  가정이 자꾸 늘어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군것질 
금지라는 교칙 때문에 몰래 사먹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사먹으라고 한 
돈인데도 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교사들은 침묵했다. 기노시다 선생은 계속한다.
  "나는 부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단 둘이서 생활했기 때문에  군것질을 
잘했지요. 과자집 아줌마가  귀여워해 주었지요. 그다지 상류계급의 사람으로 자
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속썩이지 않고 자랐습니다.  이쯤에서 군것질 교칙을 취
소하면 어떨까요? 교육은 모든  면에서 학생들을 자립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
이 아닐까요? 따라서 교칙은 될 수 있는 대로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기노시다 선생의 발언을 기쁘게 생각했지만 찬성한다고 말
하지 못했다. 오키시마 선생이 서서히 일어나더니 
  "군것질, 어떻습니까? 쓸데없는 교칙이지요. 자립 찬성."
하고 여유 있는 어조로 말했다.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며 왜 아침 5시에 출근하지 않는가라고 묻든 것은 너무
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노시다 선생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혼자라도 하고야 마는 용기 있는 사람인 것이다.
  2
  류타는 책상 위에 있는 구스오의 편지를 폈다. 열흘 전에 온 것이다.
  류타야!
  드디어 선생이 된 거야! 나는 류타가 불쌍한 생각이 든다.
소학교 때부터 교사가  된다고 하더니 그 희망대로 교사다 되었네.  사카베 선생
님이 언젠가 말씀하셨지.
  "성공이란 유명하게 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이 되면 그것이 성공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니? 그랬더니  웃기기 잘하는 아사다가 "거지가 되고 싶어서 
거지가 되면  성공인가?" 해서  모두 웃었지만  나는 그때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네가 되고 싶어했던 선생이 된 것을 마음으로  축하한다. 
  그런데 실은  나는 너에  대하여 지금 확실히  우월감을 갖고 있다.  인간이란 
바보  같은 것이지.  다른  사람보다  오래 학교에  다닌  것,  홋카이도의 작은 
도시보다 일본 최대의 도시 도쿄에 산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잘난 것 같은 
생각이든다. 높아진 것 같아!
  지금 나는 깊이 청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봉투에 쓰여 
있듯이 홍교오의  작은 하숙집이지만, 여기 생활은  그렇다 치고, 긴자에 나가면 
많은 여자들이 눈에 뛴다. 그리고 모두모두 예쁘지.
  아사히가와에 있을  때에는 교회에 다닌다고 "색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다." 라는 성서의 '간음'이란  말에 마음속으로 흥분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도쿄  한가운데서  젊은  야수처럼 흥분하고  있어.  온몸의 
말초신경이란   말초신경에   모두   전기가   통해서   여자를  보기만   해도 
찌릿찌릿하지. 특히 처치하기가 곤란한 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흥분한다.
  이런 것을 쓰면 너에게 경멸받겠지만 류타야! 이것이 청춘이야. 네가 보기에는 
어리석고 못났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청춘이지.
  때로는 어디론가  가는 군인들  모습을 본다. 젊은  군인들은 나와 같은  청춘 
시절이면서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닌가?   전쟁이란  무참하구나.  무참하다고 
생각하니까 나의 몸은 전기 미꾸라지 모양 짜릿짜릿한 욕정이 생겨난다.
  류타야!  나는 오래만에  센베이를  먹으면서  네 방에서  누워  있는  기분이 
되었다. 여자라면  우리들의 동경 대상은  요시코였지. '였지'라는 과거형의 말을 
썼지만 아사히가와에 있을 때는 쉴 새없이  요시코가 눈앞에 어른거렸어. 그것은 
그것으로 나의 청춘이었어. 류타에게는 아직 그녀가 과거의 사람이 아니겠지?
  그러나  학교에는 젊은  여교사도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류타의  가슴에서 
요시코의 모습이  사라질지도 모르지.  모두 흘러가는  것이야. 한  곳에 머무는 
사람은 없지. 그것이 인생이지.
  류타야! 봉안전에 인사 잘하니?  건강하게 지내라. 나는 졸업과 동시에 색시와 
같이 아이 하나쯤 낳아서 돌아갈지도 모르지. 아냐! 농담, 농담!
  구스오가 류타에게
  '도쿄인지?'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꼭  한 번 도쿄에  갔었다. 니쥬우바시 앞에서  학생 
일동의 기념사진을 찍었었다.
  다시 읽으니  구스오가 더욱 그리워졌다. 사촌  형제가 친형제와는 좀 다르다. 
가족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 같기도 하다.
  '그런가? 요시코는 과거형이 되었다고.'
  가슴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꼭  그렇다고  믿을  수가 없다.  구스오는  자기와 
달라서 필요하면  꼭 가지려는 성격이다.  일단은 요시코에게 마음이  멀어진 것 
같으나 조금도 멀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류타는 아침에 알람시계가 소리를 낼 때마다  요시코가 눈에 선하다. 요시코는 
류타가 출발하기 전날 알람시계를 송별기념으로 가지고 와서 류타에게 말했다.
  "당신의 생활을 깨우는 시계예요."
  그렇게 말하고 무엇이 우스운지 킥킥 웃었다.
  "내 생활을 깨우는 알람시계?"
  "됐어요, 모르면."
  되묻는 류타에게 요시코는 그렇게 말하고 기다모리 집을 휙 나갔다. 
  매일 아침 생각날 때마다
  '그것이 요시코의 마음을 전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할 수 없이 그리운 기분이다. 요시코가 말한 '생활을 깨우는 
시계'라는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넓고 깊은 것인지  류타는 몰랐다. 알아듣지 
못하는 류타에게 요시코는 수치심을  느껴서 현관으로 획 나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 나는 요시코에게 부끄러움을 준 것이다.
  '둔하구나, 나는.'
  둔하다고 하면  오키시마 선생도  둔하다. 아까  저녁식사를 때였다. 오키시마 
선생과  류타는  언제부터인지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키코가  노래를 
부르면서 상을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
  조롱 속에 새도 지혜 있는 새는
  사람 눈을 피해서 만나러 온다.
  언제나 들어도  좋은 목소리다.  상을 두  사람 앞에  차려 놓을 때  오키시마 
선생이 느린 말투로 말했다.
  "아! 기다모리 선생, 그때 선본 것 거절당했습니다."
  갑자기 말해서 류타는 멍했다. 그리고 생각났다. 류타가 처음 오키시마 선생을 
만난  것을 오키시마  선생이 제사가  있던 오다루에서  돌아온 밤이었다.  그는 
류타에게
  "미안해요.  당신이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제사가 있어서요.  그리고 친척이 
선을 보라고 상대를 데리고 와서 곤란했죠."
라고 했었다.  선을 봤으면 당연히  결과가 있을텐데 그  후에 한 번도  선을 본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류타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쑥 "선본  것 
거절당했어요."하고 오키시마  선생이 말한 것이다.  류타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아키코가 비명을 질렀다.
  "네? 오키시마 선생, 선을 봤어요? 언제, 누구와?"
  심문하듯이 물었다. 오키시마 선생은 여유있게 대답했다.
  "기다모리 선생이  여기 오던  날 내가  오다루에서 돌아왔죠?  그날 제사 때 
만났어요."
  아키코는 묵묵히 오키시마 선생을 쳐다봤다.
  "왜 그래, 아키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류타를 보며,
  "나, 왜 거절당했는지 알아요? 내가  그 아가씨와 마주앉아서 열심히 콧구멍을 
후볐대요."
하고  유쾌한 듯이  웃었다. 아키코는  아무 말  없이 방에서  나갔다. 오키시마 
선생은 류타에게 말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아키코가? 어제와 다른데요!"
  류타는 오키시마 선생  말에 놀랐다. 자기보다도 더 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류타는 구스오에게 답장을 쓰려고 구스오의 편지를 다시 읽었지만 요시코에게 
먼저 쓰고 싶었다.
  펜을  들고  무슨  말을  먼저  쓸까  하고  생각했다.  아래층에서  아키코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기분이 풀렸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쓸 말이 
생각났다.
  요시코에게
  지금 내 앞에 당신이 준 알람시계가 있습니다.  나의 하루는 이 시계와 동시에 
시작됩니다. 아무리  졸려도 요시코가 깨워  준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지요.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요키코에게 이 시계를  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가  요시코 씨에게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요전에 
알린 것같이 츨근시간이 일러서 이 알람시계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이  시계를 주면서  요시코  당신이 나에게  말했죠.  "당신의 생활을  깨우는 
시계예요."라고
  나는  그후  그  말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생활이  태만해지거나 
성실하지  못할  때,  청결한  방향을  잊을   때  이  시계가  아마  "성실하게 
살아요."라든가. "왜 게으름을 팝니까?"하고  경고해 주는 것이라고,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  요시코의 존재가  나에게  누나 같고  어머니 같은  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류타는 쓰던 펜을 놓고 다시 읽어보다가 좀 연애 편지 기분이 난다고 느꼈다.
  '연애 편지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릴 때 친구라고 하는  생각에 억제하는 
마음이 든다. 조금 생각하다가 류타는 또 펜을 잘았다.
  나와 같은 학년을 담임한 교사로 고야마  미츠코라는 교사가 있습니다. 쾌활한 
그녀의 특기는 가볍게  한쪽 눈을 감으며 동료 여교사라는 느낌보다 아가씨라는 
기분이 듭니다.
  내 바로 앞에 앉아 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이 윙크를 받습니다. 
단가를 지으며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재능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걸음걸이와 뒤를 돌아보는 모습에서 나는 요시코 당신을 느낍니다.
  내  이야기만   했습니다만 요시코  씨는  금년에 2학년을  맡았지요? 소학교 
교사의  진정한 맛은  저학년을  담임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고등과 
1학년을 맡았는데, 요전에 방과후 사토우  마나부라는 학생에게서 이렇게 질문을 
받았죠.
  "선생님! 전쟁은 좋은 것인가요, 나쁜 것인가요?"
  나는  대답이  궁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금년  대소집때  북중국에 
갔습니다.  그 배경이  있는  질문이기에  나는 신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면회갔을 때 아사히가와의  아버지 숙소에서 전쟁 때문에 정신이상이 된 
젊은  군인을 보았기  때문에 적당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대답을 못하고,
  "간단하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니 좀 생각해 보자."
  하고  말했습니다.  요시코  씨!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고등과 
학생들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은  2학년이면 
졸업을 합니다,  즉, 1년밖에 공부할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교과서에 없는 것도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나는  가볍게  알파벳과  로마  글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음악  시간에도 
일본이나 세계  명곡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가르치려고 합니다. 어떤  교사가 
진정한 교육은 자립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죠. 나도  그 말에 
찬성합니다...
  이런  편지가 좋을까?  요시코가 기뻐할까?  다시 읽어보면서  류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성에  편지쓰는  방법을  아무에게도 배우지 못했구나  하고 류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뒷산 
  1
  수요일  5교시는 글짓기  시간이었다. 류타는  조금  복잡한 감정으로  교단에 
섰다. 지난주 글짓기 시간에는  수업을 못했다. 그때 일이 왠지 가슴에 찜찜하게 
남아 있었다.
  지난주 수요일은 첫눈이 내리고 녹은 지 2, 3일 지난 후였다. 구름 한 접 없는 
맑은  날이었다.  류타는  이런  좋은  날씨에  학생들과  어떤  글짓기를  할까 
생각하면서 점심시간에 잠깐 교무실 자기 책상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교무실에 
들어온 교감이,
  "기다모리 선생! 잠깐만..."
하고 손짓했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보통때는 웃음이 적은  교감이다. 
류타는 교감 옆으로 가까이 갔다. 교감이 말했다.
  "다섯째 시간에 선생님 반은 무슨 시간입니까?"
  아주 상냥한 말씨였다.
  "네 글짓기 시간입니다."
  "아, 글짓기 시간입니까? 그러면 바꾸어도 괜찮겠죠?"
  "네, 바꾸어요?"
  류타는 물었다. 
  "아니, 글짓기  시간이면 산수나  국어 시간과  달라서 다른  작업을 할당해도 
크게 학과에 영향이 없지 않나 그런 말입니다."
  류타에게 대답할 여유를 주지 않고 교감은 계속해서 말했다.
  "실은  토끼장과 닭장  둘레가 조금만  비가  와도 질척거려서  보타(탄광에서 
좋은 것들  골라내고 남은 석탄  찌꺼기 )산에서 보타를 날려서  메꾸기로 했죠. 
협력해 주시겠습니까?"
  "자... 글짓기 시간을 없애고 말입니까?"
  "결국은 그런 거죠!"
  "..."
  류타는 간단하게  글짓기 시간을 작업으로 바꾸라는  교감의 태도에 저항감을 
느꼈다. 류타가 부임하고 며칠 후인가도 그런 일이 있었다. 역시 고등과 1학년을 
담임한  고야마 선생에게  교감이 글짓기  시간을  없애고 화단  손질을 하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고야마  선생은 그때 무어라고 입안에서 중얼거리더니, 결국은 
봉안전 둘레의 화단을 학생과 같이 묵묵히 정비한 것이다.
  류타가 바로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까 교감이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  학교라는  곳은  하나의  산  공동체입니다.  자기   생각만 
관철시킬 수는  없지요. 불만도 있겠지만  다음 시간은 소사의  상담하여서 보타 
산에서 보타를 날라 주십시오. 봄눈이 녹을때는 진창이 되어 때문에..."
  말끝을 흐리고  교감은 소리내어 웃었다.  류타는 자기도 모르는  학교 경영의 
방침이 있을 것이라고 할 수 없이 대답했다.
  "아,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이쪽은 이쪽  사정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때는 제 말에 따라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교감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절을 하고 나오려니까 교감이 말을 이었다.
  "학생들에게  오늘 작업한  감상문을 숙제로  내주면  좋겠지요. 그렇게  하면 
글짓기 시간이 없어진 것은 아니니까."
  류타는 불쾌해졌다.  교실은 교사의  왕국이라고 들었다.  교사가 생각한 대로 
학급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선배로부터  들었으나  이  교감과  같이 시간표를 
무시하는 간섭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왜 글짓기 시간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교감은 작업을 하라고 했을까? 
일주일  전에  예고해  주면  좋지  않은가?  작업도 교육인데  학생들과  작업 
요령이나 역할 분담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류타는 마음속에서 불쾌한  생각이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류타는  오키시마  선생에게  교감이  말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오키시마  선생은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아들이기에  말하기가 쉽다.  오키시마 
선생은
  "하하하하!"
하고 유쾌한  듯이 웃었다.  류타는 놀랐다.  자기의 불만이  웃음거리가 되었나 
싶어서 오키시마 선생에게 말했다.
  "오키시마 선생님, 이것이 웃을 일입니까?"
  "아뇨! 웃어서 미안해요."
  오키시마 선생은 계속 웃으면서
  "기다모리 선생! 나도 글짓기 시간을 작년에 대여섯 번 뺏겼어요."
하며 겨우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네? 대여섯 번? 왜요?  거절을 못하셨나요? 저도 거절하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만요."
  "기다모리  선생! 교사라는  것은 새입니다.  새! 사령장  한 장으로  어디에나 
날아가죠. 지금  이 학교 교장의 권위가  아마 후세 사람 입으로  신화같이 전해 
내려갈지도 모르죠. 그만큼 강력한 것이에요."
  류타는 아직  납득이 안  간다. 글짓기 시간을  다른 작업으로 바꾸라고  해도 
가만히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왜  글짓기 
시간을 그렇게까지 교감은 중요시하지 않는가?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둔해서... 오키시마  선생님, 그  교장의 강력한  권위와 글짓기  시간을 
작업으로 대체하는  거소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나는 교감이 글짓기 시간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교과라고 생각한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군요."
  두 사람의 그림 자 전등 아래서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움직인다.
  "그래요, 그렇습니까!  기다모리 선생은 글짓기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군요."
  "그래도 교감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류타는 농담조로  말했다. 오키시마  선생은 그의  특징인 유유한 표정을  약간 
긴장시키고 말했다. 
  "아뇨, 아뇨! 교감이 가장 관심있는 교과가 글짓기입니다."
  오키시마 선생의 가느다란 눈이 류타를 쳐다본다.
  "넷?"
  류타로서는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기다모리  선생이  교감과  글짓기에  관하여  들은  것이  없으면 그대로도 
좋습니다. 아마 포로시나이  소학교 교사 중에 그것을  정확하게  감지한 사람은 
늦게  출근하여 일찍  퇴근하는  기노시다 선생과  고등과  1학년의 학년주임인 
미스터 채플린  사키야 선생.  그리고 나  정도일 것입니다.  참! 고야먀  선생도 
알고 계실까?"
  "교감과 글짓기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키시마 선생님!"
  "실은   재작년   홋카이도에서  '홋카이도   글짓기교육   연맹'이라는   것이 
결정되었지요. 국어교육  향상에 열심인  교사들이 자주적으로 공동연구  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참가자는 누구나 전신을  교육에 바쳐 일하는  교육애가 철저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글짓기에  역점을  둔  것이지요. 그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문부성의 인간  중에는 그것을  색안경을 쓰고 봐서  문제삼기도 하지요. 
그 중의  한 사람과  우리 교장이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합니다. 교장은  원래 
좌익이었고  다이쇼  14년에  치안유지법이  생기자  그때  전향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일본의  교육은   천황의  소국민을   만드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우리들에게도 그  길을 가게  하려고 새벽  5시부터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죠. 
교장의  경험에  의하면 대개의  결사는  치아유지법에  저촉된다고  하는 것이 
지론이지요. 그래서 이 홋카이도 글짓기교육 연맹 은 신경이 쓰이는 것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아셨죠? 기다모리 선생."
  "알았습니다. 그래서 교장은 교감에게 글짓기  시간을 취소시키고 다른 작업을 
시키는 이상한 일을..."
  "그래요. 저 사람이 글짓기교육 연맹 에 입회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죠."
  "참, 그렇군요."
  류타는  처음 교장을  만난  날 사상조사  비슷한 질문을  받았던  것을 잠깐 
생각했다.
  "그러니까 교장이나 교감에게  무슨 반론을 했다가는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거죠. 그렇게 안 되려면 적당하게 나처럼 보조를 맞춰야죠."
  "그래서 교사들을 위해서  글짓기로부터 눈을 돌리게 한다고도  할 수 있네요. 
교장 교감이..."
  "글세,  자기  학교에서  치안유지법에 걸리는  사람이  나올까  봐  안절부절 
아닙니까? 내 몸이 제일이죠. 누구나요!"
  류타는 수긍이 갔다. 누구나라고 하는 말에  사카베 선생님만은 남을 사랑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사카베 선생님은 글짓기 연맹에 관계 안 하시겠지.'
  류타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류타야! 잘 들어라. 신념을 갖는 것은 귀중한  것이야. 그러나 그 신념을 가질 
때  생각없이 동지를  늘리지  마라.  이상하게도 그  신념이  일치되지 않는다. 
일치시키려고 하면 타협을 해야 되고 자기 신념의 순수성이 흔들리게 된다."
  사범학교에 입학했을 때니까 벌써 3년 전 일이다.
  '사카베 선생님이  혹시 글짓기  연맹에 관심이  있으시면 나에게  권하실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교회에 가시지만 세례는  안 받으셨다. 꼭  자기 길을 가시는 
분이다.'
  왠지 자꾸만 사카베 선생님이 생각난다.
  2
  교감 선생에게서 작업을 하라고 명령받은 수요일이  일주일 지난 오늘이다. 그 
일주일 사이에 류타의 생각은 미묘하게 변화했다.  지금까지 각별하게 관심을 안 
가졌던 글짓기  지도에 의욕이  생겼다. 될 수  있으면 글짓기 연맹에  가입하여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류타는 교장이나 교감이  걱정하는 치안유지법의 
혐의가 글짓기 연맹에  미친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교사들 대부분 
천황의 소국민을 육성한다는  기분 자세가 되어 있다. 우수한 교사가  될수록 그 
경향이  강하다고 류타는  생각했다.  교육계에만은 사상문제를  걱정할  징조는 
없다고 생각했다.  글짓기 연맹을 자세히는  모르나 그 연맹에  가까이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사가  된 지 겨우 3개월된  류타다. 꾸준히 교사로서의  힘을 길러야 
하고, 어떤 운동이나 흐름에도 아직은 생소하다. 류타는 그런 생각으로 일주일을 
지낸 것이다.
  토끼장과 닭장  둘레 정지(땅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를 주제로 한  글짓기는 
지난 토요일에  제출되었다. 그  50여 권의 글짓기  연습장을 류타는 교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 연습장을 보며 학생들 사이에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
  "너희들의  글을 읽었다.  다 읽고  너희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먼저 
다마다 미키오의 글짓기를 읽어  볼까? 선생님이 읽을 때 너희들은 들으면서 그 
느낌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다마다 미키오는 넷째 줄의 첫 번째 자리에서 
  "야! 큰일났다."
하며 머리를 긁었다. 모두가 웃었다. 다마다의  아버지는 탄광의 지주부다. 3남매 
중 제일 맏이고, 5학년과 3학년의 여동생이 있다.
  "좋은가?  읽는다. '금주의  수요일'이란  제목이다.  나는 수요일이  싫습니다. 
일요일이 지나  수요일이 가까워 오면  나는 점점 우울해집니다.  수요일 다섯째 
시간에는 글짓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와 하고 웃었다.
  "나도 수요일이 싫어."
  "나도."
  몇 사람이 동의한다. 류타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왜 글짓기가 싫은가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지 때문입니다.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할 때 너무  있는 그대로 쓰면 어머니께  매맞고, 칭찬만 
쓰면 거짓말이 됩니다. 자기가 제목을 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나는 겐하고 싸움을 했습니다. 나는 세 번 맞았지만 네 번 때렸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  것을 쓸  수도 없지요. 그런데  이번 주에  글짓기 시간을 안 
하고 닭장 정지작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글짓기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모두 
'워어터'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대신  글짓기는  숙제라고  해서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글짓기 시간이 없어진 것은 기쁜 일입니다. 구보타도 사토오도 '잘 됐다', 
'잘됐다'하며 기뻐했습니다. 끝"
  "쓸데없는 건 쓰지 마라."
  이름이 나온  구보타와 사토오가 말해서 모두가  깔깔 웃었다. 류타도 웃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같은 내용을 쓴 사람이 세 사람이 있다. 너희들 글짓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도 싫었지."
  류타는  글짓기가  싫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고,  모두의  얼굴을 
둘러봤다.
  "오늘은 글짓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하고 말하고, '글짓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를 칠판에 예쁜 글씨로 썼다. 류타의 
글씨는 사카베 선생님이  "상장을 쓰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글씨다."라고 
말할 정도로 잘 썼다.
  "글짓기가 좋은 사람 손들어 보자!"
  류타가 말하니 세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 중에 '아버지의  출정'을 쓴 사토오 
마나부가 있다.
  "싫은 사람 손들어!"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 손들어!"
  7, 8명이 손을 들었다.
  "그래,  알았다. 우리  반의 절반  정도는  글짓기가 싫다는  것을 알았다.  왜 
싫을까?"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역시 다마다가 쓴 것처럼 무엇을 써야 좋을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또 한 사람이 손을 든다.
  "제목이 결정되어 저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일동이 그렇다고 끄덕였다.
  "그렇다. 모두 말하는 것이 맞아."
  류타도 긍정하고,
  "그러나, 너희들!  혹시 우리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글짓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말이다. 
너희들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글짓기라는 학과를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마다가 큰 눈동자를 굴리면서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그래요."
  "그래요."
하고 활발하게 말했다.
  "그렇지, 그 증거로 글짓기 점수가 을이라도 그리 낙심하지 않지? 산수나 국어 
시험과 어딘지 다른지?" 
  "다릅니다."
  "다릅니다."
  "부모님들도 글짓기  점수는 을을  받아도 아무  말이 없지.  지난주의 글짓기 
시간이 작업으로 바뀔 때도 글짓기 시간 같은 것을 없어도 좋다고 생각했지?"
  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떡였다.
  "이것이  모두   학생들의  책임이라고는  말   못하지.  선생님들   책임이야. 
글짓기라는 학과가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잘 
가르치지 못했어. 선생님은 이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똑바로 류타에게 쏠려 있다.
  "예를  들어 산수라면  15*8=120이  정답이지.  119나 121은  120과  하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이  확실히 나타나지. 
그러나 글짓기는 어떤가?"
  류타는 자기 말에 대한 반응을 생각하면서 말을 했다.
  "산수나 국어에서는  자기 한 사람쯤  좀 틀려도  된다는 건 용납이  안 된다. 
그러나 글짓기는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본  것, 들은 것, 이야기 한  것, 한 
일, 생각한 것을 쓰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같을 필요가 없어. 예를 들어서 
때때로 선생님과  길에서 만나는  일이 있지?  그것을 글짓기에  쓰려고 한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쓰겠니? 오다케는 어떤가?"
  첫째 줄 제일 뒤에 앉은 오다케가 일어서서
  "에~, 갑자기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만난  선생님이 기다모리  선생님입니까? 
고야마 선생님입니까? 어느 경우를 말하까요?"
  학생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응, 어느 쪽이라도 좋아."
  류타는 아다케의 선택에 맡겼다.
  "고야마 선생님으로 말하면 지장이  있으니 기다모리 선생님으로 하겠습니다... 
기다모리 선생님이 저쪽에서 오셨습니다.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 정말이냐?"
  놀리는 소리가 났다.
  "왜냐하면 나는 기다모리 선생님의 노래가 좋아서 '가마쿠라'라는  노래를 듣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젠가 길을 걸으면서도  노래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노래해 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좋아. 그러면 세키가와, 너라면 어떻게 쓸까? 너도 요전에 선생님과 만났지?"
  "네...  나는   저쪽에서  오시는  선생님을  보고   '아차!'하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라고 하신  방화 주간  포스터를 아직  안 그려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뒤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그것도  비겁한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걸어서 
갔습니다.  마음속으로  선생님이  포스터의  일을  생각하지  않기를  하나님께 
빌면서 길옆을 빨리 걸었습니다."
  학생들이 소리를 높였다.
  "야! 잘했다. 두 사람 다..."
  "정말이야!"
  "어느새 잘하게 되었네!"
  학생들은 흥이 났다. 모두 조용해진 후 류타가 말했다.
  "어떠냐,  재미있지? 오다케와  세키가오는 '길에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라는 
같은 제목으로 글짓기를  했다. 그러나 제목은 하나이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지? 
이 점이 글짓기에서  중요한 점이야. 너희들이 '소풍'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도 
쓴 내용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지? 즉,  글짓기라는 것은 남의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것이야.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쓰는 것이다. 세계 
누구라도 흉내낼 수 없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여러 가지 생활을 여러 
가지로 보고 느끼고  사는 것을 쓰는 것이지.  너희들, 이 세계에서 꼭 하나만을 
창조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냐? 그것이  글짓기다. 그림이나 공작도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다만."
  뒤돌아보며 칠판에 붙인 그림을 보는 학생이 몇 명이 있었다.
  "선생님은  산수나 국어시험  문제에서는  0점을 매기지만  글짓기에는 0점을 
매기지 못하지. 그래서 선생님은 글짓기에는 동그라미 하나에서 다섯 개를 준다. 
결코 0점을 안 받는 것이 글짓기야. 재미있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시 어려워요."
  여러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이  다르다는  것,  자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말한  것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안  되는  거지. 자기가  살아가는  방법을   
자기가  꼭 생각하여  자기 발로  걸어가는 것,  이것이 어려운  것이야. 어른도 
어려운  일이지.  지금  선생님은  중요한  말을  했는데,  너희들이 나의  말을 
알아듣기를 바란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다.
  "즉,  선생님은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자기가 태어났다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나도 그런  집에 태어날 
걸 한다든지,  저 친구같이  머리가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등등 쓸데없는  말을 
하지마라. 너희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  선생님은 이 
교단에서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과 똑같은 인간은  지구가 시작된 이래  지구가 없어질 
때까지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글짓기는  그런 귀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누구의 눈치볼  것 없이 전부 토해  내는 것이지 .무엇이나  말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최고의 세상이다.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지  말고 자기  생각을 써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때는  무엇이나 잘 봐라, 그리고 느껴 봐라. 쓰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류타는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가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감격하게 된다. 다마다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정말 무엇이나 써도 되나요?"
  "그럼 좋지."
  "선생님께 야단맞는 것을 써도 됩니까?"
  "그럼,  그때  선생님이 미웠으면  미웠다고  써라.  내가  나빴으면  선생님이 
사과할게."
  "워어터."
  기쁨의 소리가 들린다. 계속해서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싸움을 써도 됩니까?"
  "그래... 좋다."
  "나는 훔치지도 않았는데 훔쳤다고 해서 속상했는데 그것을 써도 되나요?"
  학생들 마음속에 쓰고 싶은 것이 마구 솟아나는 듯하다.
  "물론!  안심하고  써라. 발표하기  어려운  것을  선생님은  삭제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걸렸으나 오늘  이야기한 것에 대해 느낌을  써 불 
시간은 있을 거야."
  류타는  반장  부반장에게  글짓기  연습장을  돌려  주라고  했다.  다마다가 
일어서서  쥬우노(탄불을 넣어  운반하는  기구)로 두  번쯤  큰 난로에  석탄을 
넣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뒷산의  나무들은 대부분 잎이  떨어졌으나. 산 밑의 
아카시아  나무들은  아직 푸르다.  '아사히가와보다  눈이  늦구나.'하고 류타는 
생각했다.
  수요일은  5교시로  수업이  끝난다. 글짓기를  완성한  사람은  대부분  없고 
그래도  두세 사람은  류타에게 제출했다.  다른 학생들  은 내일까지  써오기로 
했다.  류타는  청소당번 학생과  함께  교실  청소를 하면서  당번장인  사토오 
마나부의 표정에 신경이  쓰였다. 글짓기 시간 때 학생들은 모두가  밝은 표정을 
보였지만 사토오만은 이상하게 어두운 얼굴이었다. 원래  그 아이는 밝은 성격이 
아니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서 그러는지, 아니면 성격 때문인지 항상 무엇을 
생각하는 얼굴이다. 청소가 끝나고 당번학생 8명이 교단 앞에 횡대로 정렬했다.
  "청소 끝났습니다."
  당번장인  마나부가  말했다.   어떤  교사들은  창틀에  먼지가   있나  없나 
손가락으로 만져  보기도 한다지만  류타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소학교  때 
가와치 선생님이  늘 그렇게 하셨지만  사카베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 사카베 선생님이 하신 대로 류타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수고했다.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그렇게 말하고,
  "마나부야, 5분이나 10분 정도 시간 있니?"
  류타는 가볍게 물었다. 마나부는 흘끗 류타의 얼굴을 보며 끄덕인다. 학생들은 
모두 가버렸다.
  "아버지한테서는 편지가 오니?"
  난로 옆에 의자를 두 개 놓고 류타는 사토오 마나부와 나란히 앉았다.
  "네, 가끔 옵니다."
  "건강하시니?"
  "엽서에  꼭  건강하다고  쓰십니다.  어머니께서  '이것이  군대  엽서   쓰는 
법이겠지.' 할 정도로..."
  "그래, 군인은 힘들다거나 약해졌다고 쓰면 안 되니?"
  "군사우편에는 꼭 검열도장이 찍혀 있어요."
  사토오의  눈에  잠시  어두운  그늘이  비친다.  류타는  마나부가  자기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선생님, 실은 선생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마나부가 잠시 얼굴을 수그린다.
  "묻고 싶은 것?"
  "네."
  "무엇이나 물어봐!"
  "그래도 기분 나쁘실 것 같은데요."
  말투도 열네 살짜리 같지 않았다.
  "기분이 나쁠지, 안 그럴지 모르잖니? 어떤 일인지 주저하지 말고 말해봐라."
  "오늘 선생님께 글짓기 시간에 하신 말씀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글짓기에는 
0점을 매기지  못한다고, 자기와  같은 인간은  지구가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한 
사람도 없다는 건 멋있고 좋았지만..."
  마나부는 머리를  긁었다. '한참  머리를 안 깎았구나.'  하며 류타는 마나부의 
머리를 바라봤다. 류타의 머리도 8월말 군대에서  돌아온 이래 자라는 중이고 꽤 
자랐으나  끝을 깨끗이  정리하였다.  류타는  갑자기 마나부의  집에  바리킹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무엇이나  생각하는 것을 쓰라고  하셨죠? 그러나 아버지의 엽서를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맞는지 어쩐지 생각하니..."
  "그래, 그랬구나!"
  "군사우편에는 못 쓰는 것도 글짓기에는 써도 되나요?"
  "응, 아냐, 내가 당했다!"
  "우리 어머니는  말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그랬어요. 만약  우리 
아이들이 옆집 사람 욕을 쓰면 나가야에서 쫓겨날 걸요."
  "참, 그렇구나.  무엇이나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건가?"
  류타는 말을 못했다.
  "제가 역시 나쁜 말을 했나요?"
  "아냐, 좋은 말을 해주었다."
  말하면서  류타는  '나보다   사토오  마나부가  훨씬  엄격한   사회에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유복한  전당포집에 태어나서  고생다운 고생을  모르고 
자란 류타는 현실을 보는 눈이 아직 어렸다.
  "선생님, 우리  어머니요, 선탄장에서 일했지만  이번에 회사 기숙사의  식모가 
되셨어요."
  "그것 참 잘되었구나!"
  그러나 마나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선생님,  우리  어머니가  예쁘다고 하며  이상한  말을  하는  놈이 
있어요."
  류타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더러워진 눈
  1
  교무실 창에서 보이는 처마 끝에 쌓인 눈이  눈에 띄게 줄었다. 2월 중순 이래 
며칠간 눈이 오지 않아 그을음이 묻은 눈은 거무스름했다.
  류타는  홋카이도의  이  더러워진  눈  광경에  왠지  마음이  끌렸다.  눈이 
없어지고 봄이 가까워진 탓일지도 모른다.
  "기노시다 선생님! 교장 선생님 봉급, 부인께 무사히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류타는  기노시다  선생님 옆에  가까이  가서  작은 소리로  보고했다.  금년 
1월부터  류타는 경리  담당자가  되었다. 교사들은  학년  담임 외에  서무계나 
정비계 등  어떤 사무직도 안  맡았지만 금년 1월,  경리 사무  담당자가 가슴을 
앓아 휴직했기 때문에 그 뒤를 맡은 것이다.
  "무사히? 그렇습니까, 방문은 몇 센티미터 열던가요?"
  기노시다  선생도  작은 소리로  물었다.  류타가  경리계가 된  후  기노시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봉급 청구나  봉급 봉투에 돈을 넣은  것은 나와 고야마  선생 둘이서 할 수 
있습니다. 기다모리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의 봉급을 교장댁에 가져가면 됩니다."
  "교장 선생님 댁에 봉급을 가져갑니까?"
  류타는 약간 놀랐다.
  "가져가는 것!  기다모리 선생, 그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안  받아주지요.  방문을 2센티미터나  3센티미터  열고  나서 쓸데  없이  하는 
이야기를 증언부터  30분 들어야  되고... 그것이  듣기 싫어서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도 있을 정도지요."
  1월의 제일  첫 번째 방문  때는 교장 부인이  집에 없었다. 그후  1시간 뒤에 
찾아가니 방문이 1센티미터 열 바에는 차라리 문을 닫고 상대해 주는 것이 기분 
좋을 것 같았다.
  "저, 이달부터 경리계를 맡은 기다모리입니다."
  "네, 그래요!"
  문 안에서 가날픈 대답이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식 틀림없으면 도장을 찍어 주시지요."
  "..."
  잠시 침묵 후에 겨우 대답을 한다.
  "기다모리  씨!  그  인사는  당신이  생각하신  것인가요,  기노시다  선생이 
말씀하신 것인가요?"
  류타는 찔끔했다. 기노시다 선생이 가르쳐 준 말이지만
  "저의 말입니다."
하고 류타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요? 점점 인사도 잘하시겠지만 아이들 심부름도 아닌 것이니까요."
  가늘게 열린 틈으로 빈 봉투가 나왔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봉급날이다. 류타는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기다모리입니다. 봉급을 가져왔습니다."
하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랬더니 방문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렸다.  저도 모르게  류타는  한  발짝 물러섰다.  밤색에  검은  세로 무늬의 
명주옷을 입은 교장 부인이 젊게 보였다. 입에는 엷게 연지를 발랐다.
  "오늘은 따뜻하지요. 수고하였습니다."
  웃는 얼굴로 돈을 세어 보고 도장을 찍은 봉투를 내주면서
  "기다모리 선생, 학교 생활에 좀 익숙해졌습니까?"
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그  교장  부인의  말을  생각하면서  류타는  이상한 
기분으로 직원실에 돌아왔다.
  '왜 오늘같이 할 수 없을까?'
  사람이 싫은 병인가 생각하면 한편으로 교장  부인이 가엾게 생각된다. 류타가 
지금 기노시다 선생에게 '무사' 라는 말을  쓴 것은 이런 내막에서이다. 이야기를 
듣고 기노시다 선생은 천정을 보며 통쾌하게 웃고 다시 소리를 죽인 후,
  "그래요?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나  오늘은  교장이 왠지  기분이  나쁜 것 
같은데!"
라며  류타에게 교장의  봉투를  받았다.  류타는 힐끔  교장쪽을  봤다. 엄숙한 
얼굴을 하고 교장과 교감이 얼굴을 모은 채 뭔지 이야기하고 있다.
  류타가 제자리에 앉았을 때 교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지금부터 임시 직원회의를 하겠습니다. 좋습니까?"
  밀어붙이는 듯한 말투였다.  지금까지 직원실은 매월 봉급날과  같이 부드러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임시  직원회의 통지다. 교사들은 한동안 
소란했다가 곧  조용해졌다. 교감의 뒤에 있는  기둥시계는 지금 막  오후 4시를 
치려 하는 참이었다.
  "전원 모이셨죠?"
  오후  4시에는  교사들이  교무실로 오기로  되어  있다.  입구의  문을  열고 
오키시마 선생이 느릿느릿 들어왔다. 손수건에 손을 닦으며, 그는 재빨리 직원실 
공기를 알아차린 것 같다. 교감이 말했다. 
  "오키시마 선생, 임시 직원회입니다."
  "네, 무슨 일입니까? 또."
  오키시마 선생이  느린 어조로 말했다. 왠지  교사들이 웃었다. 어떤 경우에도 
넉넉한 말투로 말하는 오키시마 선생을 류타는  존경한다. 오키시마 선생이 자기 
자리에 앉으니까 교감이 개회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직원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문제가 
있습니다. 그  후에 진지하게  토의하겠습니다. 발언하실  분은 일어서서 발언해 
주십시오!"
  류타는  눈앞에 있는  고야마 선생을  봤다.  흰 스웨터에  짙은 곤색  슈트를 
입었는데 잘  어울린다. 류타의  시선과 마주친  자리에서도 교감의  자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각도에  있어서  때로는 혀를  쑥 내밀기도  하는  대담한 표정을 
짓는다. 그 때마다 류타는 아슬 아슬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 학생들은 조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장이 앉은 채 말했다.
  교사들  모두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생각지도  ㅎ은 데서  직원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다쿠모도  교장은 한  달에  한두 번  조회  때 전교  학생에게 
질문을  한다. 그리고  몇  학생에게 대답하게  한다.  대개의  경우 '5학년  1반 
반장'이라든지 '고등과 2학년 1반 반장' 등 반 대표에게 묻고 대답을 기다린다.
  오늘  조회  때도  그랬다.  궁성요배가  끝나고  교장에  대한  아침  인사를 
전교생이 마친 후에 교장이 말했다.
  "여러분, 오늘은 쇼와 13년 2월 21일 월요일지요?"
  학생들은 소리를 맞추어 "네" 하고 대답했다.
  "이 쇼와  13년 2월  21일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꼭 한  번 뿐입니다. 
알았습니까?"
  "네!"
하고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여러분은 한 달  좀 지나면 1학년은 2학년이  됩니다. 5학년은 6학년, 고등과 
1학년은 2학년이 되지요. 모두 한 학년씩 진급을 합니다. 작년 4월부터 오늘까지 
어떤 일이 가장 마음에 남아 있습니까? 즉,  3학년 학생은 3학년 때에 가장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생각과  일을, 5학년은  5학년을 지내면서  잊지 못할 일  등을 
나에게  말해  주기  바랍니다.  잠깐  눈을   감고  지난  1년을  생각해  보고 
대답하십시오."
  학생들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무엇인가 생각을  더듬는다.  1, 2학년의 
저학년 학생들은  실눈을 뜨거나  눈을 떴다감았다 하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2, 
3분 지났다.
  "눈을  뜨세요, 내가  물어보는 학생은  큰  소리로 똑똑하게  대답해  주세요. 
3학년 4반 반장?"
  "네"
  여학생의 목소리가 울렸다. 3학년 4반은 여자반이다.
  "여름방학에 오다루의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바다를 보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5학년 1반 반장!"
  이번에는 남자반이다.
  "네! 운동히 때 경주에서 1 등을 한 것입니다."
  "그래! 이번에는 고등과 2학년 2반 부반장?"
  "네! 저희집 고양이가 죽은 것입니다."
  교장은 잠깐 말이 없다.
  "6학년 3반 부반장!"
  "네! 산수 시험에서 모두 백점을 받은 것입니다."
  교장은 다음다음으로 지명을 했다. 20명의 학생들이 친구와 싸운 것, 선생님께 
꾸중들은 것, 전학을 간 학생과 이별한 것들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등과 1학년 
류타의 반의 부반장이 지명되었다.
  사토의 마나부였다. 마나부는 조금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는  작년 8월에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신 것이  제일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교장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묻고,
  "그래, 사토요 마나부 군인가? 아버지한테서 편지는 오나요?"
하고 물었다.
  "요즈음은 안 옵니다."
  마나부는  속상한 듯  대답했다. 지금  교사들은  오늘 아침  조회 때  상황을 
바쁘게 생각해  내고 있다.  교장은 그 교사들의  조금 당황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시 묻는다.
  "오늘 아침 조회에 대한 각자의 감상이 있으시겠지만."
  교장은 먼저 3학년 담임 여교사의 이름을 부른다.  교사가 된지 아직 1년이 안 
된 그 교사는 제일 먼저 지명되자 당황하며 일어섰다.
  "저, 큰 소리로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교사가 앉았다.
  "그것뿐입니까?"
  "네"
  여교사는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했다. 교장은  다음,  다음, 모두에게  감상을 
말하게 했다. 자기  체험을 통해 정직하게 답한  것이 좋다는 감상도 있고, 여러 
사람  앞에서  갑자기  물어  보는데도  그처럼  잘  대답했으면  우수하다든가, 
지명당하지  않은 학생들도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감상이 
계속해서 나왔다. 열 사람쯤 교사들의 감상을 들은 후에,
  "한심합니다! 참으로 한심합니다!"
하며 교장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교감도 같은 생각인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내가 지명한 것은 각 반의 반장이나 부반장이지요? 그런데 뭡니까? 고양이가 
죽었다든가, 친구와 싸웠다든가, 그것이 1년 동안  가장 인상에 남은 사건이라니! 
그리고  선생님들의 감상을  물었을 때  더욱 한심합니다.  약장 아래에  약졸이 
있군요."
  기노시다 선생이  빙긋이 웃는 것을  류타는 보았다. 교장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계속했다.
  "설마,  선생님들도 1년간  가장 인상적인  것이 고양이  죽음이나 싸움한  것 
정도는 아니겠죠?"
  또 한 번 기노시다 선생이 빙긋이 웃는  것을 류타는 보았다. 기노시다 선생의 
자리는 류타의  자리에서 네  자리 건너  아래쪽이어서 류타의 눈이  닿기 좋은 
위치에 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내가 무엇을 한탄스럽게 생각하는지 눈치챈  선생님이 
여기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알아차린 분은 손을 들어 주시지요."
  겁먹은  듯이  손을 든  사람이  5,  6명 있다.  그  중에는  오키시마 선생도 
기노시다 선생도  없었다. 류타는  손을 들려다가  도로 내렸다.  그때 기노시다 
선생이 의자에 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교장 선생님."
  조용하나 힘찬 말투였다. 손을 들었던 교사들은 손을 내렸다.
  "기노시다 선생, 용서입니까?"
  교장의 목소리도 조용했다. 류타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고야마  미츠코 선생이  머리를 돌려  교장쪽을  보고 또  대담하게 류타에게 
윙크를 했다.
  "오늘은 선생님들에게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작년은 일분에  있어서 
어떤  해였습니까?  제가  말씀드릴 것도  없습니다.  신문을  잘  안  읽으시는 
선생님들도  있기  때문에  군부와  정당이  대립하고  히로다  내각이  퇴진한 
것까지도 모르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에 하야시  내각이 들어섰지만 
겨우 4개월 간의 단명 내각이었죠."
  류타는  듣고  있으면서  이  학교의  교사들은  신문을  읽을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 5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 지나서야  퇴근한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는 교사들은 교무실에  오지만 다름 교사들은 교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신문을  볼 여유  같은 것이  없다.  신문은 담임이  없는  교장이나 오랜  시간 
신문의 구석구석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
  교장이 다시 말을 계속한다.
  "그  뒤를  이은  내각이  고노에 내각인데,  이  내각은  거국일치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이 내각이 성립된  것이 6월초, 그런데 거국일치의 목표를 세우고 
한숨 돌리는  것도 잠시이고,  7월 7일에  갑자기 로고오교  사간이 터졌습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하여  이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자는 방침을  교환했죠, 
국민들은 큰 사건이 안 될 것이라고  안심했는데, 8월에 상해사변이 일어난 것은 
선생님들께서도 아실 테죠,  그리고 8월 15일 긴급  각의가 열리고, 우리 대일본 
제국은  불확대  방침을  포기하고  단호히  응징하려는  결의를  하여  드디어 
전면전쟁에 돌입해서 국민이 하나가 되어 전진하게 된것입니다."
  교장은 잠시 말을 끊고 가만히 있더니,
  "저는 그때, 이  작은 일본이 몇 배나  넓은 영토를 가진 중국과  싸울 결의를 
했다는 것을  생각하자 몸이 떨리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황공하옵게도  그 때의 
대원수 폐하의 심증을..."
  교장의 목소리가  막혔다. 교사의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였다. 교장이 다시 
말을 계속했다.
  "선생님들! 지금  우리들이 여기에 이렇게    무사하게  있을 때도 우리  육군 
장병은  동양 평화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동양평화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아무 감시도 
하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다면  학생들이 1년간의  가장 중요한  일을 말할  때 
군인들을 역에서  전송했다는 생각을  한 학생이  한두 명쯤 나와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훈육주임이  깊이  느낀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류타의  보았다.  교장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훈육주임은  천황이라는 말이 나오면  긴장한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훈육주임을 교장이 보았다.
  "그리고 또 남경에 입성할  때의 전국민의 감격과 각지에서 등을 들고 행렬한 
사실이 학생들의  입에서 나오야  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들은  도대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까? 군인들에게 감사를  하지 않나요? 황공한 천황의 말씀과 그 
마음을 자세히 이야기해서 들려주지  않습니까? 오늘 학생들이 1년 동안에 가장 
인상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너무나 한심하고  한심해서... 그리고 
그것보다 아까  말한 선생님들의 발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의 교사의 말입니까?"
  교사들의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시선을 책상 위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훈육주임이 일어서서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노파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죄송할 
뿐입니다."
하고  깊이 사죄하며  고개를  숙였다.  류타는 이  훈육주임이  싫지는 않았다. 
아무리  젊은 교사에게도  정중하게  머리를 숙인다.  말씨도  그렇다. 경리계인 
류타에게도 정중하게 머리를  숙인다. 말씨도 그렇다. 경리계인 류타에게 용지를 
서류장에서  내달라고  할  때도   젊은  교사들처럼  "기다모리  선생,  시험지 
60매."하고 하지 않는다.
  "기다모리 선생, 바쁘신데 미안합니다만 시험지 60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하며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직원회의  때 오늘같이 교장에게  지적당하면 제일 
먼저 용서를 빈다.
  그 점이 류타에게는 납득이 안 간다.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2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기노시다 선생이 천천히 일어섰다. 모두가 기노시다 
선생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야마  선생이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박수를  쳐 
보인다. 그녀가 이름붙인 '큰 박수'다 기노시다 선생 자리는 직원실 중앙에 있다.
  "교장 선생님!"
하고 그는 날카롭게 부른다. 그리고 약간 웃으며,
  "저는 이렇게 큰 소리로 부를 정도로 교장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교장 선생님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딘지 저와 
다른점이 있죠. 아침 출근시간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고야마 선생이 킥 하고 웃었다.
  "교장  선생님!  저는  오늘  아침 학생들의  감상은  아주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다. 슬프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 
나쁩니까? 인간에게는 그런 정이 필요합니다.  아마 한가족처럼 생각하고 기르던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군인들을  생각하라고 교장  선생님은 말씀하지만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이들은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정한 군인들이  총을 메고 
배낭을 지고 대륙에서 빵빵 총을  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장은 뭐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아니,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은 적의 비행기  한 대  날아오지도 
않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전쟁을  피부로 실감한  경험은  없지 않습니까!  제 
동생이 대륙에 출정했습니다만, 그래서 처음 살아  돌아오라는 절실한 기분이 된 
정도입니다.  교장  선생님처럼은  되지  않죠!  인간이란 자기  발  등에  불이 
떨어져야  아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전쟁을  가깝게  못 느끼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뉴스, 영화는 물론이고 라디오조차 아이들은 모르니까요."
  류타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라디오가 있는 집은  류타의 반에도 없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교장이 자기를 자제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기노시다 선생, 당신은 전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가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교장 선생님이 느끼는  만큼 우리 
교사들도  학생들도  아직  전쟁을  가깝게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인가요, 기노시다 선생?"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빨리 끝나서 저의  동생도, 대륙에  있는 
군인들도 무사히  돌아와 주기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모두가 교장  선생님과 같은 느낌을 못 가졌어도 좀더 긴 
안목으로 교육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잊지 못할   추억 속에  전쟁에 
관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들도  전쟁  이야기를  하면  열심히  들고 
있습니다."
  교사의  대부분이  긍정의 표시를  했다.  오키시마  선생이  일어섰다.  "교장 
선생님! 오늘 교장 선생님이 지명한 학생은 1천 몇백 명  가운데 겨우 열몇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학생에게  물으면  또  다른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키시마 선생이 말을  시작하니까 조금 분위기가 바뀌었다.  긴장감이 풀어진 
것이다. 오키시마 선생은 말을 계속하며,
  "또한 학생이라는 것은 질문방법에 따라서 답도 달라집니다. 싸움터에 가 있는 
군인을  위해서 '너희들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  총에  맞아도 그  근처에는 
의사도 간호사도 없다. 교장 선생님께서 하신  1년간 제일 인상에 남은 일이라고 
하는 질문을  소학교 학생에게 좀  고상한 질문입니다. 평소에  하시던 말씀이나 
전쟁 이야기나  무엇이나 좋다고  부언하였으면 많은  이야기가 나왔겠죠,  교장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것같이 일본인 충군애국의 신념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교감이 오키시마 선생에게 말했다.
  "그럼, 교장 선생님의 질문이 나빴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감 선생님!"
  기노시다 선생이 재빠르게 말했다. 훈육주임이 일어났다.
  "하여간 오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중요한 말씀이고,  우리 학교교육을 맡은 
이들이  책임이 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에도 당직실에 라디오 한 대 비치 하면 안 될까요?"
  "찬성.", "찬성."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났다. 훈육주임은 계속해서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1학기에  한 번은 전교 학생을  인솔하고 뉴스 
영화를 관람시켜면 어떻겠습니까?"
  교장은 조금 씁쓸한 얼굴로 교감을 보고, 직원들을 보면서 말했다. 
  "수업을  전폐하고 뉴스  영화를 보러  가자는 것입니까?  좀 생각해  봅시다. 
입장료 문제도 있고,  뉴스 영화만 볼 수도  없을 겁니다. 이상한 영화를 겸해서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화관과  타협을 해야 되고,  포로시나이에는 한 
곳뿐인데, 한  번에 300명 들어간다고  해도 몇 번에  나누어서 봐야  되는 등등 
고려할 문제가 많군요."
  누군가가 말했다.
  "1학년에게 보여도 될까요? 1, 2학년을 무리지요."
  교사들은 서로 이야기했다.  임시 직원회의는 훈육주임 덕분에  일이 험악하게 
될 뻔한 것이 잘 수습되었다. 그때 교장이 
  "기다모리 선생?"
하며 손짓을 했다. 류타는 흠짓했다. 교장 옆에 가니까 교장은 의외로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 아침 조회  때 아버지가 전쟁에 갔다고  말한 것이 당신반 아이입니까? 
그 아이 대답 때문에 내가 좀 도움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류타는 당황해서
  "저, 그것은  제가 교육한  탓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출정한  그 사실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죠..."
하고 손을 옆으로 저었다.
  "그래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그 아이 집에 가정방문을 했습니까?"
  "아뇨, 한 번은 갔더니  비어 있었고, 그 아이 어머니가 선탄장에서 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또 
가보겠습니다."
  류타는 출정병의 가족을  아직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것을 나무라는 듯하여 
변명하는 말투가 되었다.
  사토요 마나부는 말했었다.
  "우리 어머니는 미인이기 때문에 기숙사의 식모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황하는 류타에게 교장은 좀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아니오, 방문하라는 말이 아니죠, 오히려 삼가시오."
  류타는 놀라서
  "왜 그렇습니까?"
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글세, 오늘 그렇다고  하기보다 출정병의 가족에게 여러 가지 소문이  있지요. 
오늘 낮에 교감 선생에게서  들었는데 사토오의 어머니는 눈에 띄는 미인이라고 
하던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돌아가는 길에 오키시마 선생과 이야기했다.
  "오키시마 선생님!  선생님 발언은 언제나 여러  사람의 긴장을 풀어  주니 참 
좋습니다."
  해는 저물어 왕래하는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길의 눈이  밟는 대로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잡화상 앞에서 서너 명 뛰어놀던 남자  아이들이 두 
사람을 보고 자세를 바로하더니,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하며 머리숙인다.  이곳 탄광촌의  아이들은 대부분  같은 각도로  인사를 한다. 
궁성요배  때와  봉안전에   절할  때는  90도,  교사들에게는  45도다.  이것은 
훈육주임이 정한 각도다.
  "그래, 잘 가라! 어두워졌으니 집에 가거라."
  류타가 쾌활하게 답했다.
  "네에!"
  대답하더니 아이들은 자기집으로 뛰어갔다.  오키시마 선생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  아이들은 좀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노는 것이  씩씩하게 
자라는 데 도움이 되지요. 그냥 놀리는 것이 나의 주의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은 너무 명령형으로 말씀을 안 하시는군요."
  류타는 감명 깊게 들었다.
  "지금 저 아이들이  순종하여 돌아갔지요.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알지만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꼭 일률적으로 할 필요는 없어요."
  "참 그렇습니다."
  류타는 긍정적이 되어 동의했다.
  "그 점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기다모리 군은 너무 솔직하군요."
  "그렇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지금   말씀하신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곤란하게... 그렇게 솔직하게 나오면..."
  오키시마 선생은 조금 웃고 나서 말했다.
  "오늘 직원회의에서  교장이 초조해  하던데요? 군국주의로  착착 단련시켜야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저쪽에서 라이트를  이마에 붙이  광부가 걸어온다.  육체노동을 하는  우람한 
체격이 아닌 남자다. 나이는 27, 28세일까? 여러  번 만나서 낯이 익다. 남자인데 
속눈썹이 길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이 가로등에 비춰진다.
  "피곤하시겠습니다."
  류타도 오키시마 선생도 인사를 했다.
  "수고하십니다."
  그도  답례를 했다.  다른  광부와  달리 근무가  6시에  끝나나  보다. 3교대 
근무에는 들어 있지 않은 듯하다. 그 남자와 만나고 한참 가다가,
  "그러나  기다모리 군,  기노시다 선생은  참  훌륭한 분이지요.  지금  시대에 
저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데요.  작년 12월  야마산당이 해산되고  솔직한 
이야기지만 나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저 사람은  덜렁덜렁하고 
시원치  않다고 보이며  사는 것이  신상에 안전하니까요.  왠지 세상이  일시에 
눈사태처럼 밀려 나가고 있는 것 같은..."
  오키시마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건널목 옆의 초소에서 파출소장이 나왔다.
  "아! 지금 가십니까? 오키시마 선생님."
  파출소장이 손을 들었다.  파출소가 하숙집 근처여서 장기를  즐기는 오키시마 
선생은 가끔 이 소장과 상대를 한다.
  "오늘 우리 아이가 운동장에서 뭔지 대답을 했다는데, 하하하!"
  파출소장은 유쾌하게 웃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교장 선생님이  가족이나 친척이 전지에 가 있는 사람 손들라고 
했다는데, 우리  친척 중에  전지에 간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아들이 손을  안 
들었다고 걱정을 해요."
  파출소장은 또 크게 웃고
  "교장 선생님께 이 사실을 잘 말씀드려 주세요."
하고 탄광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류타는 그 말에  깊은 뜻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방문자
  1
  숙직을 끝내고 하숙집에 돌아온 류타는 준비된  아침식사를 급히 마쳤다. 오늘 
오후 기차로 아사히가와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기분이 가라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류타는 다다미  위에 벌렁 누웠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무겁게 
흐렸다.
  어제부터  학교는 봄방학이  되어서 오키시마  선생은 어제  막차로 오다루에 
가버렸다.  그런  오키시마 선생  모습을  보며  류타는 어제  아키코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류타는 그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어젯밤 8시경, 누나 미치요가 숙직실에 있는 류타에게 전화를 했다.
  "류타야! 내일 온다는 것 정말이니?"
  미치요의 목소리가 평소보다는 상냥하다.
  "네! 1시 차로 이곳을 떠나요."
  류타는 미치요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그래! 그리고 언제까지 있을 거야?"
  "31일에는 돌아와야 하니까..."
  "그럼 내일이 24이니까 4, 5, 6..."
  미치요는 아마 손가락을 꼽으면서
  "6일은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무엇가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미치요에게
  "뭐, 일이 있어?"
하고 류타가 물으니까
  "아냐,  너 내일  가져올 선물은  후카가와의 비늘  모양의 경단이겠지?  그거 
맛있더라.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세 상자 여분으로 사오겠니?"
  "뭐야, 그런 일이야? 알았어요."
  류타는 웃었다. 그런데 미치요가 잠자코 있다.
  "누나! 무슨 일이 있어?"
  류타는 불안했다.  평상시의 미치요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한다. 좀 말이 
딱딱해도  그 산뜻한  성격을 류타는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밤의 미치요는  좀 
다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류타야! 요시코가 시집갈지도 몰라."
  미치요가 보통 때와 같은 어조로 크게 말했다.
  "뭐, 뭐라고 그랬어?"
  류타는 귀를 의심했다. 수화기를 설치한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류타는 멍하니 
있었다.
  '요시코가 시집을 가?'
  미치요는 '갈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류타는 '간다'고 결정짓는  것으로 들렸다. 
청천벽력이다.  요시코와 류타는  소학교 4학년  때부터 친구다.  누나 미치요와 
사촌 구스오가 요시코와 친하게 지내면서 류타는 두 사람 어깨 너머로 요시코를 
보며  속으로 좋아했다.  그리고 류타에게  있어서 요시코는  자기를 받쳐  주는 
지주같은  존재였다.  포로시나이에  부임하는  전날에도  요시코는  알람시계를 
송별기념으로 주었다. 그때 요시코는 이렇게 말했다.
  "류타 씨!  이 시계는  아침에 일어나기  위한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 생활을 깨우는 시계예요."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이 류타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류타는 시계를  받은 후 
자신이 인사편지에 쓴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이  시계를 주셨을  때  요시코 씨는  나에게  말했죠,  "당신 생활을  깨우는 
시계예요."라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그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활하는  가운데서 
게을러지거나  성실하지  못할때나 청결한  자세를  잊을  때, 이  시계가  아마 
"성실하게 사세요."라든가  "왜 게으름을 핍니까?"하는  경고를 해줄  것이라고 , 
이렇게  쓰면  요시코 씨가  나의  누나  같은, 어머니  같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류타는 '어머니'라는  말 대신 '연인'이라고 쓰고 싶었다.  아마 그 생각은 
요시코에게도 통했을  것이라고 류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편지의 답장을  
준  요시코의  편지 말미에는  "무서운  누나로부터"라고  농담조로  써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알람시계는 두 사람을 친구  이상으로 밀착된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확실하게 연인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류타의 수줍은 성격 
때문이다.  입밖에  내서 '결혼'이라든가  '사랑한다'라는  말은  더 신중학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사랑한다는  것은 일생  동안 그렇게  여러 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카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연예는  남성에게는  에피소드지만  여성에게는  올  히스토리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한 여성의 전 생애를 책임진다는  것은 스물 두 살의 류타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러나  류타에게 있어서 요시코는  결코 다른 여성과  같지는 않다. 한 
달에는 한두  통의 편지나 엽서를  보내고, 겨울 방학에  갔을 때도 두  번 정도 
함께  영화를  보고  추운  눈길을  걸으면서  학생들의  이야기도  했다.  그런 
정도지만 류타에게 요시코는 움직이기 어려운 존재다.
  그 요시코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류타는 온몸의 힘이 
빠져서 수화기를 잡고만 있었다. 그런 류타에게 미치요는 말했다.
  "류타야! 듣고 있니?"
  "아, 아!"
  류타는 이상한 소리로 대답했다.
  "뭐야? 멍청한 소리를  내고, 류타야, 요시코는 학생에게나 학부모에게  인기가 
좋은 선생이란다. 가정 방문을 가면  그 집의 장남의 색시로 올 수 없는가, 친척 
누구의  색시가 되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더라. 그래도  정식으로  중매인을 
세워서 진행한 것은 아니었지... 듣고 있는 거니?"
  미치요는 초조한 듯이 말했다.
  "응! 듣고 있어요."
  "그런데 요전에 우리 집  근처 불단 장사하는 집에서 우리집으로 상의하러 온 
거야.  댁에 가끔  오는 여선생을  자기  아들과 결혼시키고  싶다고 좀  소개해 
달라는 거야. 나는 깜짝 놀랐어..."
  "..."
  "요시코는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했어. 내 옆에 있으면 내 기분이 따뜻해졌어. 
그래서 아무  데서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어.  될 수 있으면 우리  류타의 색시가 
되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나  그  집  아들은  요새  젊은 
사람으로소 훌륭해. 역시 소학교 선생님이야."
  류타는  불단  장사집 아들이라는  그  청년이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되어서 
자기의 앞길을 막아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류타야! 지금은 학교 선생님께  딸을 시집보내려고 모든 부모가 원한단다. 왜 
그런지 아니?"
  "글세."
  "작년 여름,  동원령으로 아사히가와의 거리에  군인이 넘치게 되었지. 그리고 
남경이  함락되고, 전쟁은  확대되어  가고, 많은  사람이  전쟁터에 끌려  가지. 
그런데 사범학교 출신 선생은 뒤로 돌리며 당장은 싸움터에 안 내보내니까 딸을 
시집보내려면 선생인 좋다고 모두 그러는 거야."
  "응!"
  "그러니까 공평하게 생각하면  불단 장사집이 재산가라는 것 말고도 이야기가 
요시코에게는 나쁜 건 아니지."
  류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저  류타야! 나이  든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지금 무엇을  제일  초조하게 
생각하느냐 하면, 언제  소집령이 올지 모르는 아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좋은 
색시를 얻고 싶어하는 거야. 전쟁에 보내면 생명의  보장이 없지? 외아들을 가진 
부모는 그  일로 머리가  아프고 아들의  자식을 낳아  줄 여자가  없는가 하고 
얼마나 조바심을 내는지  몰라. 남자들은 또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빨간  쪽지 한 
장으로 전쟁터에  가야 하지. 자기 자식  하나 못 남기고 인생이  끝나는가 하고 
심한 좌절감에 빠져 있어. 지금 일본은 그런 상황이야. 눈독들인 여자들은  모두 
벌써 남의 아내가 되어 버렸지."
  "그래서?"
  "그래서 요시코가  시집가도 되느냐고  너에게 묻는 거야.  네가 좋다면,  내가 
불단 장사집에 소개할게."
  야무지게 말한 미치요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요시요는 누구에게도 못 준다!'
  누워서 천장을  쳐다본 채로  어젯밤의 전화를 생각하면  류타는 몸을 일으켜 
앉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한시라도  빨리 아사히가와에  돌아가지  않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한시라도 빨리  아사히가와에 돌아가지  않으면 요시코가  그 
남자와 선을  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안정이  된다. 교사의 세계는 
별세계와 같은  태평한 것이  아닌가? 오키시마  선생도 기노시다  선생도 결혼 
때문에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역시  교사는 병역을 면제받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키시마  선생은  결혼보다 제국대학의  야나이하라교수의 
사직 사건에 관심이 있었다. 야나이하라 교수는 중앙공론에 "국가의 이상"이라는 
논문을 실었는데,  그 내용이  일본의 대륙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사상통제를 
하는 정책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검열  당국에서 부분삭제 처분을 했다. 
그리고 제국대학의  교수 회의가  그 논문을 불온하다고  심하게 비난하여 작년 
12월 1일 야나이하라 교수는 사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키시마 선생은 말했다.
  "이런 때의 동료가  무섭구나. 인간이 여러 가지  사상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 
그런 일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 대학교수들이 아닌가?"
  12월 15일에는 야마가와 히도시, 가토오 간쥬 스즈키 시게시부로오, 칸무라 등 
일본  무산당과  노동파의  사람들 400명이  사상문제로  검거되었다.  이  때도 
오키시마 선생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차   일본이  어찌   될까요?   기다모리  선생에게서,   야나이하라교수가 
강연회에서 '일본은  이상을 잃었다. 이런 일본을  한 번 장사지내  주시오. 다시 
새로운  나라로소  태어나기  위하여!'라고  말했다도   들었어요.  이것이  바로 
애국심이죠,  전쟁을  일으키는  것만이 애국심이  아니죠,  불타는  심정으로요.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는 울고 싶습니다."
  식사 후  이젤을 향해  푸른 항아리를  그리면서 오키시마 선생은  그런 말을 
했다. 그것을 생각하니 요시코의 일을 생각해도 되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다시 
생각을  했다. 한  가정이, 아니  어떤 가정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스물 두 살이다.'
 결혼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다. 류타의  기분이 또  가라앉는다. 류타는 다시 
다다미 위에 누었다. 난롯불이 알맞게 따뜻했다.
  '내가 스물 두 살이면 같은 나이인 요시코도 스물 두 살이다.'
  류타는 지금  처음 안  것같이 흠칫했다.  요시코는 아직  스물 두 살인  나와 
결혼할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닐까? 단지 소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불단 장상의 아들은 스물  일곱 살이라고 미치요가  말했다. 스물 
일곱인  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니  내가 한심하게  보이지  않을까? 류타의 
마음은 자꾸 어두워지기도 했다. 만약 내가 아사히가와에 돌아갔을 때 요시코가 
  "류탸 씨! 나요, 오늘 선을 봅니다. 그리고 시집가요. 기뻐해 주세요!"
라고 아무 일없는 듯 말하지 않을까?
  내가 내  마음을 전했다고  해도 "어머!  류타 씨,  그런 생각을 했어요?"하고 
요시코는 소리내 웃을지도 모른다.  웃지 않는다고 해도 "류타씨! 류타씨는 너무 
젊어요. 당신은  아직 스물 두 살이에요.  한 가정의 주인이 스물  두 살이라면... 
역시 나는 스물  일곱이나 여덟 살이 좋아요."하고  가볍게 취급받을 것도 같다. 
내가 스물  일곱이나 여덟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면 "안 돼요!  스물 
일곱이나 여덟이 되면 어린애를 낳는 것이 늦어요."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시코를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운 같다. 류타는 자신을 비웃다가 눈시울이 젓었다.
  류타는 갑자기  몇 년 전 미치요의  모습을 떠올랐다. 류타의 집에  숨어 있던 
김준명이  돌연 없어진  다음날, 복도에  주저앉아서 멀거니  마당을 보고  있던 
미치요의 뒷모습이다. 그때 미치요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류타는 보았다.
  만일 요시코가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다면 나는 어떻게 
참아야  될까?  누나도  한참  동안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꼭 자살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사람들이 권하니까 양복점 
집의 아들과 결혼하고 말았다.
  '그렇다. 누나는 나의 기분을 알고 있었구나.'
  미치요는  자기가  당한  슬픔을  동생인  류타에게는  당하지  않게  하려고 
어젯밤에 그런  전화를 해준  것인가. 류타는  울고 싶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류타는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2
  '아사히가와에 가는 것은 그만두자.'
  류타는  삿포로나 오다루에  가서 여기저기  다니며 봄방학  일주일을 지낼까 
하고 생각했다.  요시코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  지내기로 
생각했다. 이제  편지도 쓰지 말자.  요시코에게 편지 쓸  때의 달콤하고 상냥한 
기분은 오늘로서 잊어버리자.
  '그래도... 결혼 전의 요시코 얼굴을 한 번 볼까?'
  류타는 아사히가와가  그리웠다. 류타는 아직 요시코의  손을 잡은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요시코의 손을  잡아  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허용될수 없을  것 같다.  류타는 새삼스럽게 전화를  해서 마음을 아프게  만든 
미치요가 원망스럽다.
  '요시코도 요시코다. 왜 나를 생각하는 척하고 알람시계까지 주었을까?'
  류타는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봤다. 초침소리가  보통 때보다 더 크고 급하게 
들린다.
  "아, 아!"
  류타는 소리내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래층에서  아키코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요즈음  유행하는  "로에이노 
두다"(출정 군인을 전송할 때 역에서 많이 불렀다)이다.
  이기고 돌아오마 씩씩하게
  맹세하고 고향을 떠나 왔으니
  공로를 세우지 않고 죽을 수 있나...
  동양 평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 아까우랴 내 목숨이.
  서너  살짜리  아이들도   모두  이  노래를  한다.  자기가   만든  일장기를 
나무젓가락에 붙여서 출정군인을  보내는 흉내를 내며 놀고 있다. 한  절 부르고 
"만세! 만세!"하고 소리지른다.
  아키코의  목소리는   맑고  순수하다.  아키코는  오키시마   선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왠지 가엾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쯤 요시코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니! 오늘쯤  불단 집과의 혼담에  마음이 쓸려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와 
결혼 약손을  한 것도 아니다. 그뿐인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것도 
없다.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찻집에 가서는 흘러나오는 
음악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그렇게  지낸  내가 요시코의  결혼을  반대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
  '사람들은 도대체 여성과 교제할 때 어떻게 할까?'
  류타는 갑자기  자기가 모는 세계가 있는  것을 겨우 안 것  같다. 포옹이라는 
글씨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키스라는 글씨만 봐도 얼굴이 붉어진다. 이렇게 
어린  내가 여자를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구스오가  보내 준 
편지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  깊니 청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긴자에  나가면 많은 여자들이 
눈에 띈다. 나는 지금 도쿄 한가운데서 젊은 야수를 가리지 않고 흥분하고 있어. 
몸의 말단이란  말단은 전기가 통해서  여자를 보기만 해도  찌릿찌릿하지. 특히 
처치 곤란한 말단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흥분한다.
  본질적으로 자기도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구스오와 같이  청춘을 구가하지 
못한다. 구스오는  소년 시절부터  여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잔 등을  쿡쿡 
찌르곤  했다. 그러나  류타는  아무리  해도 그러지  못했다.  동성에게 손대는 
것같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지만 여자아이가 가까이 오면 몸을 피한다.
  '이것이 나의 청춘이다.'
  요시코가 결혼해도 할 수  없다 하며 류타는 자기에게 타이르듯이 되풀이하며 
마음먹었다.
  아키코의 노래는 "애국행진곡"으로 바뀌고 있다.
  보라 동행의 하늘 밝아서
  아침 해가 높이 빛나니...
  아키코는 펌프 물을 긷고 있었다. 그 노랫소리와 펌프소리가 동시에 멎었다.
  "네에!"
  큰  소리가  나고  현관으로  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류타는  그저  천장을 
쳐다보는 상태다.
  "기다모리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아키코의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손님?'
  류타는 아마  학부형이라고 생각했다.  독신인 류타의  하숙집에 가끔  집에서 
만든 만두나  엿을 학부형들이  보내 준다. 지금  류타는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일어나 벽에  걸린 옷을  입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현관에 서 있는 손님의 허리에서 아래가 보인다. 여자다. 고동색 외투를 본 적이 
있다.
  '설마?'
  류타는 서둘러서 계단을 내려갔다.
  "요시코!"
  손님은 틀림없는 나카하라  요시코다. 좀 커다란 검은 백을 들고  외투와 같은 
색의 베레모를 예쁘게 쓴 요시코가 생긋 웃으며 서 있었다.
  "놀랐어요?"
  말문이 막힌  채 서  있는 류타를  보고 요시코는  웃었다. 거기 요시코가  서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류타는 요시코의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  요시코가 지금 눈앞에 서 있다. 그것은 류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류타 씨! 왜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해요? 내가 온 것이 기분 나빠요?"
  류타는 힘있게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놀라서요! 너무 놀라서..."
  류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요? 그렇게 놀랐어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류타는 웃으면서
  "하여간 올라오십시오."
했지만 목소리가  흥분되어 있었다. 먼저 류타는  방에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면 
요시코의 모습이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방에 들어갔으나 
가슴이 심히 두근거린다.
  '왜 요시코가 왔을까? 혹시...'
  이별하러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류타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요시코는 류타의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본다.
  "내가  상상한  그대로네.  나는  매일  류타  씨의  방을  상상했어요.  어머! 
알람시계, 책상 가운데 잘 놓여 있네. 기뻐요."
  요시코는  좀 수줍어하며  말했다. 요시코는  외투를 벗어  개어 다다미  위에 
놓더니 양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절을 했다.
  "류타 씨! 안녕하세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던 류타는 급히 고쳐 앉아 같이 절을 했다.
  "요시코 씨는 꽤 예절이 바르군요!"
  요시코는 썩 웃고 말했다.
  "나는  류타  씨의   하숙집에  찾아와서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고  가끔 
생각했어요. 여자란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머리를 숙이고 싶은 거예요."
  요시코의  입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  거침없이  나와서 류타는 
흠칫했는데,  그  말투가  너무나  가볍게  나오니  어떤  얼굴로  받아야  할지 
얼떨떨했다. 요시코의 말대꾸는 못하고 류타는 다름 말을 했다.
  "그렇게 구석에 있지 말고 난로 옆에 오지!"
  요시코는  난로 가까이  다가앉았다. 검은  머리를 안으로  말아 손질한  것도 
몹시 멋있게  보였다. 포로시나이의  여교사들은 모두  머리를 묶어  얹었다. 좀 
수그린 요시코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답다. 요시코가  얼굴을 들고 류타를 본다. 
요시코는 가끔  간절한 눈으로  볼 때가 있다.  그것이 류타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요시코의 눈을  항상 생기가 돈다. 시선을 올렸을 때,  시선을 아래로 또는 
옆으로 할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끈다. 얌전한  눈썹도 오똑한 콧날도 모양 좋은 
입술도 어딘지 좀  쓸쓸하게 보이는 듯하나 그  둥그런 눈이 요시코를 화려하게 
보이게  한다.  그것이  이상하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약간 앨토인  목소리가 
육감적이고  때로는  강하게   들릴  때도  있다.  낫도  장사할   때는  가냘픈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훌륭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류타 씨! 왜 그런지 오늘은 평소와 다른데요?"
  "그래요? 아니 그럴지도 모르죠. 어제 실은..."
  미치요한테서 전화가 온 말을 할까 하다가 류타는 다른 말을 했다.
  "내 담임  반에 사토요  마나 부란 아이가  있는데 어제  어머니와 같이 졸업 
후의 진로에 관하여 상담하러 왔지요."
  말하면서 류타는  자기를 바보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요시코가 와 
주었는데, 지금  이 방에  두 사람만이 있는데,  왜 마나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  어머니는 마나부를  사범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지요. 아버지가  작년 
대동원 때 사범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지요. 아버지가 작년 대동원  때 전지에 
가버렸거든요.  어머니는  기숙사에서   일하고  있고,  돈이  없으니까  학비도 
기숙사비도 피복비도 관비로 공부하는 사범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거예요."
  요시코는 정감어린 얼굴로 듣고 있다.
  "그때 마나부는 나에게 물어 왔죠. '어머니는 사범 출신은 전쟁에 안 나가니가, 
그래서 저를 사범학교에 보내고 싶답니다. 선생님!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이때   그런   생각을   해도   됩니까?   선생님도   그런  생각으로   사범을 
택하셨습니까?'하고요"
  "그래요. 류타 씨는 그 학생의 말을 잘 받아들여 주셨나요?"
  요시코는 금년으로 교사생활 3년째다. 학생 이야기가 나오면 열심히 듣는다.
  "나는 마나부에게  말했지요. 내가  사범학교에 간  것은 내가  배웠던 사카베 
선생님같이  따뜻한 선생이  되고 싶어서였다고.  그리고 그  때는 소집령  같은 
것이 없을  때였다고 말했죠.  군대를 피해서 사범에  간 것이 아님을  밝혔더니 
사범학교에 갈지 어떤지를 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그 아이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 있었군요."
  요시코가 약간 웃었다. 류타는 머리를 긁었다.
  "요시코  씨!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에요. 실은 어젯밤 누나에게서 전화를 받고 불단집 이야기를 들었어요."
  "불단집? 네에! 나를 색시감으로 달라는 말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요시코는 말했다.  
  "요시코 씨! 역시 알고 있군요."
  "알고 있지요."
  "그래서 시집갈 마음인가요?"
  류타는 강한 어조로 물었다.
  "왜요? 왜 내가 그 집에 시집갑니까?'
  "왜라니요? 나이는 스물 일곱이고..."
  "아니, 상대가 스물 일곱이면 내가 시집가나요?"
  요시코가  웃었다. 그녀가  웃으니까 왜  내가 그  집에 요시코가  시집간다고 
단정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류타는 웃음이 나왔다.
  "바보구나! 나라는 인간은..."
  류타의 얼굴이 그제야 웃음이 돌아왔다.
  "그러면 요시코는 지금 현재로는 누구에게도 시집을 안 가는구나."
  안심한 듯이 말하는 류타를 요시코는 애틋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랬군요.  류타  씨는  내가  시집가는  줄  알고  우울해  했나요?  그것이 
정말이라면 참 기뻐요."
  류타는  요시코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자기들이  서로의  마음을 숨김없이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류타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좀더 자기 
마음을  다른 형태로  전하고  싶었다.  좀더 불타는  심정으로  전하고 싶었다. 
하여간 요시코는 누구의 것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외치고 싶도록 기뻤다.
  "요시코 씨! 아, 요시코 씨의 지금 그 말을 진실하게 받아들여도 될까요?"
  류타는 바로 앉아서 말했다.
  "나의  말 언제나  진실로  받아주세요. 나요,  류타  씨 외에  다른 사람에게 
시집은 절대로 안 가요!"
  "고맙습니다. 요시코 씨! 그 말씀 믿겠습니다."
  류타와  요시코의 시선이  한데  엉컸다. 류타는  요시코를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뭔지 거룩한 것에 손을 대는 것 같아서  류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난로가 있다.  두 사람은  침묵했다. 요시코가  류타에게 무엇인지 
원하는  것 같았으나  꼼짝도 않고  있는  요시코를 보면서도  류타는 움직이지 
못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나더니, 아키코가 쟁반에 차와 카스테라를 가져왔다. 
아키코는 인사를 하고 나서
  "멋진 분이네요, 기다모리 선생님!"
하고 류타의 무릎을 쿡  찔렀다. 류타는 목을 쓰다듬었다. 아키코가 가버린 뒤에 
류타는 말했다.
  "요시코  씨! 어떻게  오늘 여기  오셨습니까? 나는  오늘 아사히가와에  가지 
않고  삿포르에  갈까 했죠.  요시코  씨와는  일생  동안   못  만나는가  하고 
생각했어요."
  "어머!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도  삿포로에  갈 예정으로  나왔어요. 6울에 
글짓기 연구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오늘  저녁으로부터 삿포로의 
파라-에도야에서  글짓기 연맹  사람들이 모이니까  가보라고 권했지요.  그래서 
마음먹고 떠난 거예요. 류타 씨 하숙집에 올 수 있는 구실도 되고..."
  류타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서서 요시코의 옆에 가까이  가서 그 손을 힘있게 
잡았다.
  버드나무
  1
  요시코의 손을 힘있게 잡은 순간, 류타는 전기가 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안해요. 나는..."
  류타는 얼른  손을 놓았다. 격정으로 흐르려는  위험을 느낀 것이다. 요시코가 
미소지었다.
  "나는 이런 류타 씨가 좋아!"
  요시코는 잡혔던 손을 무릎에 놓고 그윽히  바라보았다. 류타도 요시코의 손을 
잡았던 자기 손을 다시 보았다.
  '드디어...'
  요시코의 손을  잡았구나. 소학교 때부터 여러  번 잡고 싶었던  손이 아닌가? 
류타는  이  악수를 중요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악수 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하기 싫었다. 요시코가 말했다. 
  "오늘이 3월 24일이지요? 잊지 않겠어요."
  "요시코 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류타 씨와 악수했잖아요?"
  두사람의 시선이 엉키자 류타는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꼈다. 요시코의 빛나는 
눈동자가 너무나 매혹적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나고 
아키코가 올라왔다.
  "기다모리  선생님! 1시  기차로 아사히가와에  가신다고 말씀하셨었는데  4시 
차로 가실 건가요?"
  "아뇨! 5시까지 삿포로에 갈 일이 있어서 역시 1시 차로 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두 분께서 우동이라도 드시고 가시죠!"
  아키코는 안경 너머로 상냥한 눈길을 요시코에게 보냈다.
  "감사합니다."
  요시코는 안경 너머로 숙였다.  류타가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다. 지금부터 두 
시간을  요시코와  단 둘이서  이  방에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요시코와 한 방에서 있었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아마 5분이나 같이 있었을까? 
그런데 두  시간이라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될까 하면서  류타는 요시코를 
봤다. 요시코는 창가에 서서 집 뒤에 흐르는 강을 보면서
  "세상에 검은 강이네!"
하고 놀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이  녹아서  물이 불었어요?  강물이  넘쳤다가  옆으로  흐르다가 하면서 
세차게 흘러가네요. 어머!  저 버드나무 좀 봐! 그래요,  이것이 글짓기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네요. 아사히가와의 아이들은 강물이 검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죠. 
사람은 종종 생활 중에서 생각지도 않은 일에 부딪치게 되죠."
  "그렇습니다. 나는 빈대를  몰랐어요. 이 집에는 빈대가 없지만 광부들이  사는 
나가야에는  빈대가  있어요. 밤에  전  등을  끄면 낙하산  부대같이  천정에서 
빈대가  떨어져서 물기  때문에 잠을  못잘  정도래요. 처음  탄광에 와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빈대 때문에 곪아서 고통받고 고생한대요."
  "어머나! 그것 큰일이네요."
  "그런데 오랫동안  나가야에 산  아이들은 '선생님, 그까짓  빈대요? 괜찮아요. 
귀여워요.' 하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지요."
  "그래요? 나요, 이 거리를 걷고 싶은데 안내해 주시겠어요?"
  요시코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했다. 안으로 말린 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곤란한데! 요시코 씨,  나는 학생들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이 학교 이야기는 
안  했지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남자선생과   여선생이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2분에서 3분 이내라고 제한 하고 있어요."
  "네? 뭐라고요?"
  "놀랐지요? 교사가 이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둘이서 걷는 것은 안 되지요."
  "어머나! 그렇군요." 
  "남자  교사 중에는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교사는 거리의 
술집에서 마시면 안 되요."
  "그럼 어디서 마셔요?"
  "자기 집이죠. 송별회나  환영회도 학교 건물 안의 제일 구석진방에서  합니다. 
술을 마시고 떠드는 모습이나 소리가 학부형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별난  학교네요. 저희  학교의 경우는  환영회나  송별회는 여교사들이  만든 
요리로 재봉실에서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술집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은... 류타 
씨! 그런 곳에 계세요?"
  "아직  놀라기는  멀었어요.   저희는  새벽  5시에  출근합니다.  겨울은  좀 
늦지만요."
  "네! 5시에요? 류타 씨, 한 번도 그런 말하지 않았잖아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부끄러워서..."
  "그렇게 일찍 출근해서 뭘 하죠?"
  류타는 교정부터 복도, 현관, 교무실까지  청소한다는 말을 하고, 수양시간에는 
독서  명산  감상발표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정렬해서 등교한다는  것, 
조례시간에  1천 몇백  명  되는  학생이 꼼짝하지  않고  마치  놓인 물건같이 
정렬하고 궁성요배(천황이  있는 궁성  쪽을 향하여  절하는 것)를 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요시코는 듣고 있다가 말했다.
  "즉, 군국주의 교육이군요.  우리 학교는 정반대예요. 아침  8시에 학생 조례가 
있지만 벨소리  하나 나지  않고 조례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술래잡기를 하거나 
뛰어놀다가  모두  슬슬 실내  운동장에  모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서는  줄에 
서지요.  교사들은 그  뒤에 서서  '앞으로  나란히'도 '차렷'도  안 하니까  줄이 
구부러집니다. 그래도  그 상태로  조례가 시작되고... 궁성요배  같은 것은 없고 
봉안전도 없어요."
  "네? 봉안전도 없어요?"
  류타는 저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다. 포로시나이  학교에서는 매일  봉안전 
둘레를 청소하고 교사도 학생도 90도의 절을 하기로 되어 있다.
  "봉안전이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 되지만, 실내  운동장의 정면에 단이 있고 그 
단 뒤의  벽 속에 고싱엥이가 안치되어  있죠. 그 두꺼운 벽  저쪽이 복도이므로 
교사나 학생이나  실내 운동장에  들어올 때  그 벽의 뒤를  지나오지만 누구도 
경례 같은 것은 안 해요."
  류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가와치  선생과  같이  뒷걸음질하면서  청소하라는  선생도 없다는 
말이죠?"
  "없죠. 그리고  조례나 체조시간에  교사는 고싱에이 쪽으로  엉덩이를 향하고 
넓은 단  위에 서지요.  실내 운동장이니까  학생들이 장난치거나  놀기도 해요. 
뒷걸음질한다면 놀지 못하죠."
  "맞아, 그것이 정말로 천황과 국민의 관계지요."
  "천황의 적자니까요. 국민은."
  "적자."
  류타는 말하면서 구령  한마디로 뛰어가 모이는 일이  없는 학교 생활이 과연 
이  비상시국에 올바른  건지 어떤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요시코는  아키코가 
놓고 간 큐스에서 더운물을 따르며 말했다.
  "이곳 교장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나 새벽 5시부터 교사들을 모으는 것은 
그것대로 충신이라고  봐야겠네요. 우리  학교 교장은  자유주의를 제일  좋다고 
해요. 신설학교라서 2대째 교장인데 그 초대교장이 뛰어난 인물이었대요."
  "뛰어난 인물? 어떤 사람인데요?"
  "이건  절대로 흉내를  못낼 일인데,  천 명이  넘는 학생  이름을 교장은  한 
사람도 빼지 않고 외우고 있었대요."
  "뭐라구요? 한 사람도 안 빼고 다 기억해요?"
  "그래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도 부모의 이름도  가족관게까지도 전부 
머리에 들어  있었대요. 그래서  길에서 학생을  만나면 '애야,  너의 아버지께서 
다치신  발은  다  나으셨니?  라든가  '너희  형 퇴원했니?'하고  묻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대요.  담임교사도  교장보다도  학생의  가정을 자세히  모르니, 
처음부터 당할 수가 없어 항복을 했대요."
  "굉장한 교장 선생님이네요."
  "선생님들도  큰일이었겠죠. '아무게  선생.' 하고  교무실에서  부르면서 '요즘 
아무개의  가정  방문했습니까?'  하고  물으면서요,  이  교장은  전교  학생의 
그림이나 글짓기를  모두 보았대요.  특히 글짓기를  좋아해서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눈물짓기도 하면서 읽었대요."
  류타는 만나 보지 못한 그 교장의 온화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좋군요!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의  글짓기를 하나하나  읽는  것은... 더구나 
눈물짓거나 웃거나 하며 읽어 주는 교장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네요."
  류타의 말에 요시코도 동의하며 말했다.
  "들은 적이  없지요? 나도 놀랐어요.  류타 씨, 글짓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 
교장 선생님은 모든 교사에게  가르쳐 준 것이에요. 그건 그렇고, 우리 게이세이 
소학교에서는 운동회 때 김밥을 가져오는 아이가 하나도 없어요."
  류타는 요시코가 말하려는 뜻을 몰랐다.
  "김밥을 가져오는 아이가 없어요?"
  "그래요, 우리들의 소학교 시절에는 운동회 때 부모님이 찬합에 김밥이나 삶은 
계란을 잔뜩  담아서 갖다  주었잖아요?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 자리를 
떠나서 부모 곁에 가서 김밥이나 바나나를 먹었지요?"
  "그래요. 그게 운동회 때 제일 즐거웠어요."
  "그 즐거움이 아사히가와  게이 세이 소학교에는 없어요.  내가 처음 근무했을 
때 그 말을 듣고 놀랐죠. 왜 그런지 알아요. 류타씨?"
  요시코의 눈이 똑바로 류타를 처다보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그것 역시 초대교장의 의견이에요. 교장이 부임한 지 2년째 되던 해의 운동회 
때,  도시락을 전교  학생  모두  주먹밥으로 정했대요.  그리고  주먹밥을 자기 
교실에 모여서 먹으라고 그랬대요."
  "왜 그랬을까요?"
  류타는 혹시  교장이 전교  학생의 글짓기를  하나하나 주의 깊게  읽는 것과 
뭔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까 말한 것처럼 그 교장은 전교 학생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그 한 사람 
한 사람 가저의 경제상태도 자세히 알고 있었지요."
  "그랬지요."
  "그때 직원회의 때는 교사들이 반대했어요. 학생들이  일 년에 한 번 즐거움을 
느끼느 걸 빼앗는 것이라고요."
  "그랬더니요?"
  "교장이, 자네들 아이들 김밥을 만들기 위해  전날 전당포에 돈을 빌리러 가는 
부모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교사들에게 물었대요."
  류타는 잠자코  있었다. 류타의 집은  전당포다. 그 말을  들으니 운동회 때가 
되면  하오리 등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와서  망설이며 돈을  빌려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버지 세이다로오가 해주신 기억이 났다.
  "가엾어라, 내일 운동회 준비 때문이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전당포의  아들인 내가 잊고  있었던 일을 그  교장은 
결코 잊지 않았다. 요시코가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류타  씨! 교장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아이들이 
즐겁게 부모와  김밥을 먹을 때  교사 뒤에서 혼자 주먹밥을  먹고 있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나요?  단 한 사람의  학생에게도 그런 쓸쓸함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단  한 사람의 부모도  슬프게 해서는  안 되지요. 그것이 
나의 교육이에요.'하고 교장은 울었다고 해요..."
  요시코의 목소리도 울먹인다. 아이들의  운동회라고 해도 날품팔이하는 부모는 
그 일을 쉬지  못한다. 교장이 이 아이들의  사정을 안 것은 글짓기를 통해서다. 
교장의 눈물을  보고 누구  한 사람 반대의견을  말하는 선생이 없었다고  한다. 
그후 게이세이  소학교에서는 제일  가난한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어 모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대단한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그래서 글짓기라는 과목이  우리 교사들에게도 
중요한 과목이 된다는 것이예요. 요시코 씨! 7월의 연구수업이 걱정되겠네요!"
  류타는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와 요시코가  근무하는 학교의  차이점을 새삼 
생각하기에 되었다.
  "고마워요. 열심히 하겠어요."
  "그러나 포로시나이의 교장과 그 초대 교장과는 대단히 다르네요. 여기 교장은 
가끔 글짓기 시간을 없애고 작업을 하라고 하지요!"
  "뭐예요? 글짓기 시간을 그만두고요?"
  "그래요. 글짓기에  열심인 선생을 별로  환영하지 않아요. 전교생의 글짓기를 
읽는  교장과는  전혀 정반대이고,  그  대신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실로 
질서정연하지요. 조회나 체조시간 등은 정말 훌륭해요."
  "그래요, 군국조군요. 저, 우리 학교에서는 인간을 구령하나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지요."
  "응,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구령 하나로 인간을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류타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요시코 씨의 학교 학생들은 봉안전을 모르겠네요?"
  "그래요. 봉안전이라는 이름한 곳이 없으니까요."
  "그러면 게이세이 소학교 아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단 한 번도  봉안전에 
절하지 않고 학교를 다닌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정말, 나는 생각하지 못했네."
  "나도  요시코 씨도  다이에이  소학교 졸업생이지만  봉안전에  매일  경례를 
했지요! 같은 아사히가와지만 게이세이는 특별한데요."
  "정말이에요.  다이에이  소학교는  가와치 선생님이  열심히  봉안전  둘레를 
청소시키고 봉안전에 엉덩이를 향해서는 안 된다고 뒷걸음질시키고..."
  "그래, 그래. 안  웃기기 잘하는 아사다가 봉안전  청소를 마치고 대나무 비를 
가랑이에 끼고 있다가 이것을 본 가와치 선생님께 혼났지요."
  "나도 생각이 나요. 게이세이 소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러나  여기  포로시나이  소학교는 역시  고싱에이  중심이에요.  봉안전을 
향하여 90도 절을 안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요."
  "나는 게이세이 소학교에 근무해서 참 잘 되었네요."
  요시코는 깊이 있게  말했다. 류타는 난로에 석탄을  넣으며 2, 3일 전의 일을 
생각했다.
  2
  그  날은 월급날이어서  류타는 기노시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교장선생 댁에 
월급을 전하러 갔다. 아사히가와하고는 다르게 포로시나이의 눈은 일찍 녹는다.
  여기저기 맨땅이  보이고 교장 댁의 앞마당에도  후끼(이른 봄에 땅속  대에서 
잎이 나오고  흰색 줄이  있다.)의 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에  하얀 
솜을 뜯어 놓은 것 같은 구름이 떠 있었다.
  '오늘은 교장 부인이 장지문을 몇 센티미터쯤 열어 주려나.'
  생각하며 발소리를 죽여  가며 류타는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항상  하는 대로 
"실례합니다!"하고 소리를 내려고 할 때 안에서 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예요, 소장님? 내가 스파이에요?"
  생각지도 않은 말소리에  류타는 놀라서 멈칫했다. 현관에  커다란 가죽구두가 
놓여 있다. 작은 몸집의 교장 구두는 아니다.
  "아니, 아니. 침착하게 들어주세요. 교장 선생님!"
  남자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파출소장의 소리다. 아침저녁 류타는 파출소 앞을 
지나  학교에 가니까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한다.  파출소장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고서 일단  밖을 나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월급을  전하는 것은 극히  평범한 
일이다. 파출소장의 말이 계속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전교 학생들에게 가족 중에  출정한 사람이 있으면 손들라고 
하신  것은  아무  다른  뜻이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시입니다.  당국은   여러  방면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군인의 
동원수는 국가의 기밀에 속합니다. 그 숫자를  조사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것은 
큰일입니다."
  뭐라고 교장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다."
  소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교장 선생님도  수일 안에  국가총동원법이 가결된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 
국가총동원법 안에는 언론의 통제라는 항목이 있고..."
  류타는  거기까지 듣고  가만히 밖으러  나왔다. 그러나  월급을 도로  가져갈 
수도 없는 일이라 돌아서서
  "실례합니다."
하고 크게 소리내며 들어갔다.
  따라서 그 후에 어찌되었는지 모르나 파출소장의  말에 공연히 신경이 쓰였다. 
교장이  학생들에게  출정한 가족을  물어본  것조차  의심을  받으면 마음놓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포로시나이  국민학교의  교무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기노시다 
선생을 공산당이라고 하는 험담도 들린다. 공산당원이라고 의심받으면 큰일이다. 
언젠가 오키시마 선생이
  "치안유지법을 아시나요?"
하고 류타에게 물었다. 류타는 정치적 문제에는 흥미가 없었다. 정치하는 사람과 
자기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류타의 집이  전당포이고 
항상  형사가  출입하니 때로는  공산당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도 
열심히 들은 적이 없다. 오키시마 선생은 
  "공산당은  나도 잘  모르지만 당원이라고  점  찍히면 마지막이에요.  형사가 
미행하고, 만일 무슨 일로 잡혀가면 사형이나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무서운 벌을 받죠."
하고 말했다.
  "'국체의  변혁'과  '사유재산   제도의  부인'이라는  것을  정부에서는   제일 
두려워한답니다.  치안유지법,  이것은  확실히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서 세상이 
불안정해졌을 때 급히 만든 법입니다. 그리고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을 엄벌에 
처하고 여러  가지를 벌했지요. 잘 모르지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위험한 
세상이 되었으니...  기노시다 선생님은 보통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이 별로 없으니까 이상한 뒷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말을 소근소근하고 난 오키시마 선생이,
  "만일에 이런 일은 없겠지만  당신이 사상문제로 잡혀 가는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을 위하여  증언하는 일은  안 할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너도 같은  동료다 
하고  잡혀 가면  안 되니까요.  나는  매를 맞거나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에는 
약하지요."
  오키시마 선생은 그런 농담을 하고 크게 웃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요? 두려운 얼굴을 하고."
  요시코가 상냥하게 웃는다.
  "아니,  국가총동원법이란   어떤  내용일까요?  신문을  자세히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나요? 나의  글짓기 연구수업을  생각해 주시는가 
했더니..."
  요시코는 가볍게 눈을 흘기면서 대답했다.
  "나도 신문을  잘 안 읽어요. 교사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몹시  바쁘니까요. 50명이 넘는 학생들의 
글짓기와 그림에 하나하나  평을 써주어야 하고, 결석한 학생 집에  가정 방문을 
해야 하고, 매일 교안 작성 등..."
  "그래요? 요시코 씨도 신문을 읽을 틈이 없습니까?"
  "그래요.  가끔  제목만 읽을  정도죠.  그러나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사카베 
선생님과 만나지요. 그때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국가총동원법이란 대단한 것인가 
봅니다.  요즘 전쟁  중이니까 자원도  공장도 자본도  노동력도 통신도  운수도 
군수물자도 무엇이나  모두 국가의 통제를  받는 법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사정 
같은 것은  보지 않고 징용도 마구  하고 각종 파업,  쟁의 금지, 그리고 언론의 
통제, 전쟁이 싫다고 하면 잡혀 가고 하나에서 열까지 통제받는 것이래요."
  "와! 그러면 음식도 의복도 통제받아야 되나?"
  "그것보다도 언론의 통제는  나쁘죠, 자기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밥에 걸릴까 
하며 생각하며 말해야 되지 않아요? 의회에서 반대가 있었다는데 우익에서 정당 
본부를 장악했느니 무기로라도.."
  "그랬군요.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이었네요! 요시코 씨는 훌륭해요.  모든 것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
  "이것은  모두 사카베  선생님께 들은  것이지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교회도 
당국에서 주목한대요.  왜 그런지  몰라요.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데,  교회의 가르침이 국체의  변혁을 
노린다고 생각하는지? 그리스도교는 그런 정치단체가 아닌데요."
  "교회에 대한 것은  나도 잘 모르지만 정치단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하여간 
국가총동원이라는 것은 즉 이런 것인가요? 지금 일본은 국운을 기울여서 싸우고 
있지요. 그러니 국민은  물질도 정신도 노력도 모든 것을 나라에  바쳐서 전쟁에 
협력하여   이겨야  된다.   국가총동원법은  그것을   위하여  생긴   법이라는 
것인가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전쟁을  하는데,  나라  안의  사람들  마음이   제각지 
흩어지면 안 되지요.  그래도 일본 사람은 천황 폐하를 위하거나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을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하니까... 이  법률은  전쟁을  이기기  위한 
법이라고 하면 대개는 순종하고 참게 되지요."
  "그렇지요. 아직 그런 법률이 생기기 전인데도 우리 교무실에서는 모든 잠자코 
있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안 해요."
  "우리  학교도  그래요.  학교뿐  아니라  교회도  그래요.  교회학교   학생이 
'일본에는  하나님이 두  분 계세요?  예수님과 천황  폐하예요? 하고  선생님께 
물었는데, 선생님은 대답을 못했대요."
  "이곳  학교에서도  고등과  2학년  학생이  역사시간에  천황  폐하는  정말 
신이냐고 질문했대요."
  "그래서요? 그 선생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다.  '신의  후예인  천황  폐하'라고  써  있다.  신의 
자손이니 신이겠지요!"
  "그래요! 그것 현명한 대답이네요."
  요시코는 살짝 웃으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류타 씨,  이번에 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되면서  귀찮게 언론 통제가  되면 참 
큰일이네요."
  "그래요. 우리들  중학교 때  선생님이 황족의  이야기를 했을  때 경어를  안 
썼다고 경찰에 불려갔다고 그랬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성장 과정이 나빠서 경어를 잘 못 쓰는데, 
'아아, 왔다, 왔다.'하거나 마구 말하면 끌려 가겠네요?"
  요시코는 우울한 듯이 류타를 보면서 말했다.
  "류타 씨! 언론통제라면 글짓기도 큰일이네요."
  "나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류타는 큐스의  차를 자기 찻종에 따르며,  요시코의 찻종에도 따랐다. 그리고 
저 파출소장과 교장의 대화를 요시코에게 말했다. 요시코는 놀라서,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무리 전쟁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당국의 신경이 
너무 예민하군요, 교장선생이  조례 때 출정한 아버지나 형이 있는  사람 손들라 
했다고 해서..."
  "그래요. 아마 파출소장이 충고하러 온 것 같아요. 소장의 아들은 4학년이지요. 
교장은 새벽 5비부터 대나무  비로 봉안전 둘레를 청소하는 유명한 일본 정신의 
소유자이지만 그래도 충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군요."
  한 곳을 한참 응시하던 요시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류타  씨! 사카세  선생님이 요전  일요일에  무슨 말씀을  하다가 말했는데,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면  언론의  통제가  있대요.  스파이의  혐의가  엄하게 
되고요. 예를  들면서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고 해요. 
오른쪽  비행장에서 마침  비행기가 출발했다고  쓰면 국가의  기밀을 침범하는 
것이 될지 모른대요."
  "뭐요? 그런 것쯤 가지고..."
  "맞아요. 그러니 학생이  만일 그런 글짓기를 썼다고  하면 비행장이라는 곳을 
지우고 'ㄴ은 빈터'라고 정정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요."
  류타는 납득이  안 갔다.  비행장이 어디 있는  것쯤은 국가의 기밀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비행장을  지하에 만들기  전에는 사람  눈에 보이는  상태다. 그런  비행장의 
말을 썼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 사카베  선생님 말이라도 
조금 극단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요시코도 같은 생각인지, 
  "류타  씨! 사카베  선생님은  여러 가지를  공부하신  분이니까 사물을  깊이 
생각하시지요.  혹시 사카베  선생님이  염려하는  일이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맞아요. 시대가 어떻게 변하여 갈지 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그러나 알고 있는 
사람은 있겠지요. 그런데 언론을 통제하는 국가총동원법이 언제 결정되나요?"
  "오늘이 3월 24일이지요. 어머! 혹시 오늘이 결정되는 날 아닌가요?"
  "네! 오늘? 정말입니까?"
  "확실히 모르지만 오늘, 내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반대도 있다면서요."
  "반대하는  사람은 반대하고  있대요.  그래도 군이  강하니까...  그리고  국민 
가운데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이 있는데, 후방이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공기가 흐르고 있대요. 이것도 사카베 선생님 말씀이에요."
  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남녀의  이야기로는   감정이  무거워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류타에게는 아직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쟁은 바다  건너  멀리 대륙에서  하고 있고  적군의 
비행기가 한  번도 일본 영공에 나타난  적이 없고, 그리고 얼마  있으면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류타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지금은 
그저 요시코의 같은 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류타는 즐거웠다.
  연구수업
  1
  4월의 어느 날 방과 후, 류타는 교감에게 불려갔다. 류타는 학생들이 붓글씨를 
쓴 것을  붉은 붓으로  고쳐 주고  있었다. 다른  교사들도 각각 책상에  앉아서 
교재연구를 하거나 그림이 글짓기와 채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까이  가니까 교장과  교감이 자기 자리에  있는 가리게 
뒤로 류타를 오라고 했다.  거기에는 작은 의자가 세게 있었다. 류타가 앉으니까 
교감이 입을 열었다.
  "서둘러서 미안합니다만, 기다모리 선생!"
  교감은 류타의 얼굴을 찬찬히 본다.
  "네! 무슨 일입니까?"
  류타는 약간  불안했다. 교무실의 교사들은 수음도  조용해진 것 같다. 교감은 
소리를 죽여 가며 말을 꺼냈다.
  "실은 들은 말인데, 선생님께서는 지난 3월  봄방학 때 젊은 여성과 단 둘이서 
삿포로까지 여행을 했습니까?"
  교장은 아무 말이 없다. 류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했습니다."
  류타의 대답을 듣고 교장과 교감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도니 교장이 물었다.
  "그 사람과는 어떤 관계지요?"
  두 사람이 시선이 다시 류타에게 온다.
  "네..."
  류타는 좀 사이에 두고
  "장래 결혼할 사이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류타는 이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두 사람은  포로시나이 역에서  같이 기차를  탔다. 하코다데  본선에서 
삿포로 행으로  바꿔 탔다.  복잡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하게도 비어  있어서 
창가에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기차안에서  학생들의 이야기와  글짓기  수업 
이야기를 했다. 가끔 입을  다물고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단지 삿포로에 도착했을 때 먼저  개찰구를 나간 류타가 뒤에 오는 
요시코를 뒤돌아보며 갑자기 말했다.
  "요시코 씨! 내가 자립할 때까지 기다려 주겠어요?"
  요시코는 아무 말  없이 류타 앞에 섰다. 류타도 요시코도  사람들에게 밀려서 
역을 나왔다.
  "화났어요? 요시코 씨?"
  눈이 녹은  삿포로의 길은  말라 있었다. 요시코는  어깨를 나란히 한  류타의 
얼굴을 보면서
  "나요,  류타  씨!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지금  그  말을 듣는  것보다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말한 류타 씨에게  진실함을 느꼈어요. 기차  안에서 류타 
씨가 말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이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죠. 그렇게 멋쩍어 하는 
류타 씨를 나는 제일 좋아해요."
하며 웃는 얼굴이었다. 그 눈이 젖어 있음을 류타는 보았다.
  "그럼 기다려 주시는 거죠?"
  류타는 멋쩍어 하며 다짐을 했다. 요시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  다짐을 해야  되나요... 기다리지요.  그러나 류타  씨는 이제  훌륭하게 
자립한 남자 아닌가요?"
  "아니에요.  나는 아직  어리고 병아리  교사에요.  물론 언제  떳떳한 인간이 
될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3년쯤 기다려 주면 하고 생각해요."
  "3년? 기뻐요. 앞으로 3년이면 쇼와 16이네요."
  요시코의 얼굴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 같았다.
  "그래요. 16년까지는  앞으로 3년간, 나는 나대로  요시코 씨는 요시코  씨대로 
열심히 살아갑시다."
  "네! 열심히 살겠어요."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삿포로의 거리는 바람도  없이 따뜻했다. 두 사람은 잠깐 
침묵했다. 즐거운 침묵이다. 한참 걷다가 요시코가 말했다.
  "류타 씨! 내가 낫도 장사하던 것 생각나요?"
  "물론, 기억하고 있죠!"
  요시코의  낫도  장사하던 가련한  모습을  눈에  선하게  떠올리면서 류타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때 류타 씨 집에서는 매일같이 낫도를  사주었어요. 그 때부터 나는 어른이 
되면 류타 씨의 색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류타 씨의 아버님도 어머님도, 
미치요 언니도 야스시도 모두 따뜻한 사람뿐이어서..."
  요시코가 손수건으로  눈을 닦았다. 두 사람의  말이 끊어졌다. 글짓기 연맹의 
회합이 있는  '파리-에도야'의 간판이  보였다. 교장과  교감에게 꾸중들을  만한 
일은 없는 것 같다. 교감이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 그 여성과 사이를 부모도 아시나요?"
  "...아십니다."
  류타는  한숨쉬고   대답했다.  류타의  생각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야스시도 소학교 때부터 일고  있을 것이다. 사촌인 구스오도 알고 있다. 교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다모리 선생! 교사라는 직업은  항상 사람들의 사표가 되어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도 알다시피  교내에서도 남녀 
교사가 3분 이상 이야기하는 일은 금하고 있죠? 부모가 허락한 사이라도 조심해 
주세요. 사람들 입을 막을 수는 없지요."
  계속해서 교감이 다시 묻는다.
  "기다모리  선생!  삿포로에는  무엇  때문에  갔었나요?  개인여행  원서에는 
아사히가와에 가는 것만 쓰여 있더군요."
  "아! 그것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잊었어요?"
  "네. 갑자기  삿포로에 갈 일이  생겨서 그  일에 정신이 팔린  바람에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삿포로에 급한 이 생겼다니 무슨 일입니까?"
  교감의 말투가 좀 화난 듯하다. 교장이나  교감으로서는 가짜 게인여행 원서를 
내고 여성과  멋대로 삿포로에  간 것이  된다. 물론  교사란 학생을 맡은  이상 
공휴일에도 언제나 행방을  확실히 해야 된다는 것을 류타도 알고  있다. 열심히 
잘못을 빌 도리밖에 없다.
  "네! 실은  그녀는 아사히가와의  게이세이 소학교 교사입니다.  7월에 글짓기 
연구수업이  있답니다.  게이세이의  교장  선생님이  글짓기  연맹의  교사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그날  삿포로에서  열리는  화합에  나가라고 그녀에게 
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출석하고 싶어서 삿포로에 간 것입니다."
  교장과 교감이 다시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글짓기 연맹이요?"
  교장이 씁쓸한 얼굴로 말하고 교감도 한숨을 토했다. 교장이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  이것은 내  느낌인데 글짓기  연맹에는 가까이 안하는  것이 
좋아요. 나는 가지 말았으면 합니다."
  "말씀드립니다만, 제  소학교 시절의  담임교사 사카베 히사야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고  열심인 선생님입니다.  이 선생님이  입회 하신  모임이면 신용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맞아요. 선생의 순수한 기분은 잘 알아요."
  교장은 갑자기 부드러운 말투로 바뀌더니,
  "그러나  이 전시하에  사람들이  집회를 가질  때,  그것은 왕왕  불평분자의 
모임으로  보이기  쉽지요. 부탁이니  내가  교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너무  그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말아 주세요."
  류타는 대답이 궁했다. 교감이 또 말했다.
  "선생, 여행원을 속이고 그 모임에 나갔다고 하면 그리 작은 문제가 아니지요. 
특히 여성과 동반이면. 그날 숙소는 어디였나요?"
  류타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저는 밤차로  아사히가와로 돌아가고  그녀는 삿포로의 숙모  집에 갔습니다. 
말씀드립니다만  저와  그녀는  아직  한  번  악수한  일밖에  없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상상하시는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류타와 요시코가 '파라-에도야'에  도착했을 때, 글짓기 연맹  모임은 끝마무리 
단계였다.  게이세이의  교장은  연맹회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몇 
사람과   친해서    그   활동에    주목하고   있었다.   교장은    아사히가와 
연맹회원으로부터 그날의 삿포로  회합을 들었으나 모임시간을 잘못  안 것이다. 
더구나  전체  도의 모임이  아닌  몇  사람의 모임이었다.  그래도  신  회원의 
요시코와  류타를  환영하고   20~  30분은  글짓기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지만, 각자의 시간도  있고 해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헤어지게 된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기다모리 씨라고 하셨죠?"
하며 류타의 이름을 물었다.
  "일단 출석자로소 여기에 이름을 써도 됩니까?"
  "좋습니다."
  류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요시코를 류타의  동반자라고  생각했는지 
여성회원이  없어서 요시코의  이름은  적지 않았다.  20  ~ 30분  동안이었지만 
류타는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교사도 학생의  일로 머리가 꽉  차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현대에  있어서  글짓기 교육이  얼마나  학생의  인간성을  기르는데 중요한 
교육인가를 류타는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의욕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하기  싫어도 무언가  학생에게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해야  한다. 여기저기서 의욕을 상실한 교사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마작이나 바둑에 정신을  파는 교사들 이야기도 들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있는 교사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중에 글짓기  연맹 
사람들의  빛나는 눈은  류타에게는  귀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류타의  변명에 
교장은 안심한 듯 다시 말했다.
  "아직 연맹에 입회한  것은 아니다. 여성과 같이  여관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교육에  대한 열심히  그 회합에  흥미를  갖게 한  것이군요. 개인여행  원서도 
허위는  아니고 아사히가와에  가는데 삿포로에  잠시 들른  것이 되지요,  교감 
선생님?"
  이 사건은 그것으로 끝났다. 아니, 끝난  것같이 보였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서 
류타는  교감에게서 음악  연구수업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류타는  이것이 
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32학급의  포로시나이 소학교에  오르간은 단  두 
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악기도  없다. 피아노는 "수일 안에 올 것이라."고 
했으나 믿을  수 없다. 음악실도  없다. 두 개의  오르간으로는 교사들이 오르간 
연습을 할  수도 없다.  두 개의  오르간 연습을  하는 것은  오르간을 잘  치는 
교사들만이 할 수 있었고, 몇 시간이나 연습해야  하는 교사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소학교 교사는  전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음악  전임교사도 없다. 시간표에는 
음악시간이라고 되어  있어도 음악  수업은 하지 않고  산수나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여러 명 있었다. 또 음악시간에 오르간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르간을  2층에서 아래로  운반하거나 아래서  2층으로 운반하는  일과 시간은 
더욱 음악시간을 기피하게  했다. 교사의 반 이상은 자기가 아는  노래를 입으로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그 시간을 메꾸었다.
  그런 상황에  음악 연구수업을 하라는  것은 무슨 일인가?  수업이 잘되든 안 
되든 교사들의 호감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류타에게 준 
것은 류타를 글짓기에서 손을 떼게 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벌이다, 벌이야.'
  류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 식사 때에,
  "뭐예요? 음악 연구수업!"
  오키시마 선생은 류타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힌 듯이 말했다.
  "큰일났어요. 오키시마 선생!"
  류타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건 그래요. 음악 교실도 없고, 덜덜거리는 오르간 두 대밖에 없고, 오르간에 
손을 대보지 못한 교사도 있는데, 그런 현상을 교장은 알고 있나요?"
  오키시마 선생은 단무지를 아작아작 씹으면서 손뼉을 탁 치며 
  "그렇죠,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없는 학교에서 음악수업이 되나 안 되나  보여 
주면 되지요."
하고 웃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저는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수 없죠. 생각해 보겠어요."
  류타는 오키시마 선생의 위로를 받으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류타는 음악을 
좋아했다. 사범학교에 진학하기로  한 후에 아버지가 오르간을  사주어서 중학교 
때부터  조금은 연습을  했었다. 소학생  때  학예회에서 독창을  한 일도  있고 
노래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다. 이것을  기회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음악교육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겠다.'
  류타는  은근히  결심했다. 그  결의를  하게  되 배후에는  요시코의  글짓기 
연구수업도 힘이 되었다. 우연히 같은 해에 두  사람이 연구수업을 하게 된 것도 
뭔가 좋은 조짐같다. 5개월이 지났다.
  2
  드디어  류타의 연구수업  날이 왔다.  그  사이에 한  달 동안의  여름방학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훈련한 것은 4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류타는  긴장이 되었다.  연구수업은  오후에 시작되었다.  교사들  30여 명이 
모였다. 시작 종이 울리자마자  교사들이 줄줄이 류타반의 교실로 들어왔다. 2 ~ 
3분 사이에 교사들은  학생들을 ㄷ 자 형으로 둘러서게 되었다.  모두 모였을 때 
류타의 오르간에 앉아 '경례'의 음을 눌렀다. 학생들이 일어서서 절을 하고 앉자. 
류타는  교단에  서서 미리  등사판에  박아  준비한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고향"의  기사와 악보가 써 있었다.  교사들이 의심쩍은 얼굴을  했다. 
류타는  고등과  2학년  담임이다.  "고향"은  6학년  때  배운  노래인  것이다. 
소란해진 교사들은 아랑곳없이 류타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모두 이  '고향'을 읽어보자.  '고향'이라고 쓰고  '후루사도'라고 읽는다.  먼저 
1절을 읽어보자."
  토끼를 쫓던 저 동산이여
  작은 붕어낚던 저 냇물이여
  꿈은 지금도 끝이 없이
  잊을 수 없는 고향.
  학생들은 소리를  맞추어 읽었다.  한자에는 모두 토를  달아 주어서 못  읽는 
아이가 없다.
  "좋아! 모두 이 노래 알지요?"
  "네에."
  반 수 이상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모르는 사람은 손을 들어요!"
  17, 8명의 손이 올라갔다. 다시 교사들이 소란해졌다.
  "그래?  이 노래는  6학년  때  배웠을텐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를 줄은 
몰랐어요."
  류타가 말하고
  "그러니 노래는 못해도 뜻을 알겠죠? 토끼를 쫓던 저 산은 알지요?"
  "네에."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고, 류타는 제일 앞에 앉은 아이를 지명했다.
  "네!  토끼가 맛있는  저 동산이라는  뜻입니다.(일어로 '우시기'의  뜻은 토기, 
'오이시'의 뜻은 '맛있다'는 뜻과 '쫓는다'는 두 가지의 뜻이 있음)
  교사들과  학생들이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웃지  않는 사람이  10명  정도 
있었다.
  "이것은  잘  틀리는데,  나도 틀린  적이  있어요.  토끼를  쫓던  저 그리운 
동산이라는 것을 토끼가 맛있는 저 동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류타는 틀린 적이 없지만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같이 틀렸던 사람 손들어 봐요!"
하니 10명이  넘는 학생이 손을 들었다.  가사를 잘 읽지 않고  입으로만 노래한 
학생들이다.
  "노래라는 것은  곡조도 중요하고 박자도 중요하지만  가사의 뜻을 아는 것이 
기본이에요.  토끼를 쫓던  그리운 동산을  생각하는 것과  맛있다 맛있다  하고 
먹은 토끼 고기의 맛을 생각하는 것과는 뜻과 전혀 다르지요!"
  류타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보로 쓰키요'의 1절,
  채소 밭에 지는 해 엷어지고...
을 노래했다. 그리고 '나는 바다의 아이'의 1절을 노래했다.
  "봄의  저녁노을에  대한  노래와  넓은  바닷가에  대한  노래는  그 느낌이 
다르지요? 이 노래의  느낌을 맛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숙제를 
냈었죠.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시를 써 오라고 했는데 모두 써왔나요?"
  그렇게 말하는데 그것을 막는 듯 사토오가 말했다.
  "선생님, 이  '고향'의 가사 말인데요. 이  포로시나이에는 토끼를 쫓을  동산도 
없고 붕어를 낚을 냇물도 없습니다. 시커먼 팔죽같은 개울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다.
  "맞아요.  좋은 점을  지적했어요. 사람은  모두 고향이  다르지요. 이즈의  큰 
섬처럼 넓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 고향인  사람도 있고, 번화한 도쿄의 거리가 
고향인 사람도 있어요. 눈이  오는 홋카이도가 고향인 사람도 있는가 하면, 눈을 
모르는  남국이  고향인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어디에 살고  있든지  자신이 
살았던 고향은  잊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각각의 고향노래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자! 모두 가져온  시를 책상 위에 올려놔 봐요. 그것을  선생님이 잘하지 
못하지만  곡조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니까  붙여  보겠어요.  곡조를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시를 읽어봐요."
  누구도 손을 안 든다. 머리를 긁으면서 옆사람의 얼굴을 쳐다볼뿐이다.
  "왜 누구도 손을 안 들죠?"
  류타는 실망한 듯이 말했다. 첫줄 세 번째 학생이 손을 들었다.
  "야! 가츠히로구나. 어떤 시를 썼나요?"
  "네, 자장가입니다."
  자거라 자거라 자거라 자라
  네가 안 자면 형은 숙제를 못한다.
  부탁하니 자거라 예야! 자거라.
  학생들은 교사들도 웃었다. 그러나 류타는 웃을 수가 없었다.
  히노 가츠히로의 어머니는 금년 봄 감기가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4학년인  남동생, 세 살 짜리  남동생, 그리고 가츠히로 이렇게 
남자만 네 식구다. 세 살 짜리 동생은 낮에는 나가야의 숙모집에 맡긴다. 그러나 
가츠히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을 봐야 한다.
  "음! 좋은 시예요. 선생님은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모두 들어봐요! 가츠히로의 
어머니는 금년  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가츠히로는 어머니 대신  밥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자장가도 불러 주지요. 그런 중에서 숙제를 꼭 해온 거예요."
  모두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가슴이 벅차서 곡조를 잘 붙일지 모르겠지만 한 번 노래해 볼까요? 
그 시를 가져와 봐요."
  가츠히로의  시는 이번  음악시간에 모두  연습하기로 해요.  자! 또  한 사람 
발표할까요?"
  학생들은 고개를 숙였다가  옆을 보다가 하면서 아무도 손을 안든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아까 발언한 사토요  마나부다. 류타가 지명하니 일어서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출정하시고
  벌서 일 년이 지났네
  밤낮 총알 속을 지나며
  싸우실 아버지 생각하면
  아버지 얼굴이 눈에 선하네.
  전진 전진 어디까지나
  씩씩하게 나가요 우리 아버지
  동양 평화의 전쟁을
  싸워 이기고 씩씩하게
  살아서 돌아오세요.
  "그래!  마나부도  잘했어요. 마나부는  선생님  말대로  부르기  좋게 가사를 
정리했네요.  이것은   아버지를  적진에  보낸  마나부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에요. 마나부의 기분을 알아야 됩니다."
  류타는 마나부의 시를 가지고 오르간에 앉아  즉흥적으로 곡을 붙여 노래했다. 
다시  교실 안에  박수가 터졌다.  류타의  좋은 목소리와  작곡도 수준  이상인 
것이다. 딱딱한 교감까지도 류타의 노랫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선생님은  음악이란 슬픈  마음, 기쁜  마음,  힘든 마음,  쓸쓸한 마음  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명한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도 좋고  유명한 
작곡가의 노래를 하는  것도 좋아요. 그러나 자기 노래를 자기가  만들어 해보는 
것도 좋지요.  아까 말한  것 같이 가사의  마음을 음미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다음으로는 역시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악보를 읽는 연습은  고등과 
1학년때부터 해왔지요? 그럼 모두 오르가니스트가 된  것처럼 제일 쉬운 '사쿠라 
사쿠라'를 쳐보지요."
  학생들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책상  속에서 도화지를  꺼냈다. 도화지에는  두 
옥타브의 오르간 건반이 그려져 있었다.
  "모두 노래하면서 '사쿠라 사쿠라'를 쳐다보지요.  이것은 쉬우니까 칠 수 있을 
거예요."
  류타가  오르간을 치고  학생들은 각자  도화지의 건반을  치는 시늉을  했다. 
교사들도 놀랐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틀리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것이 
끝나고 류타가 말했다.
  "누가 이 오르간을 쳐볼 사람?"
  일제히  손을  든다. 류타는  보통  때  별로  눈에 안  띄는  학생  나카무라 
가즈오의 이름을  불렀다. 가즈오는  탄광 갱부의  아들이다. 집에는  악기 같은 
것이 없다.  하모니카도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사쿠라"를 틀리지  않고 쳤다. 
류타는 종이 오르간을 가르칠 때 모든 학생들에게  오르간 치는 법, 발로 공기를 
보내는 법 등을 실습시킨 것이다.
  나카무라 치고 나서 학생들은 또 손을 들어 치고 싶어한다. 세 사람이 "사쿠라 
사쿠라"를 쳤다. 류타는 다장조인  "봄의 개울"을 학생 한 사람에게 치게  한 후, 
다시 하모니카를 가져온 사람을 교단에 세웠다. 7, 8명이 섰다.
  "자! 시작한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박자를 치기로 하자. 4박자다."
  학생들은 아까  받은 "봄의 개울"의  악보를 보면서 노래했다.  오르간을 치는 
학생도 하모니카를 부는 학생도 모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연구수업은 이렇게 해서 끝났다.
  교사들은  뭐라고  떠들면서  교실을  나갔다.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기노시다  선생이  잠자코  류타의  옆에  오더니,  손을  내밀어  굳게  악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교실을 나갔다. 
  계속해서 즉석 평가회가 직원실에서 열렸다. 제일 먼저 교감이 말했다.
  "정말 놀랐습니다. 고등과  2학년 교재도 아닌 심상과  교재로 고등과 2학년의 
연구수업을 훌륭히 해치웠어요. 이것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면서 류타의 노래를 듣고 있던  교감의 얼굴을 생각했다. 교감은 
확실히 평소의 교감과는 달랐다. 훈육주임이 일어서서 말했다.
  "기다모리 선생님반 학생들은 자세가 좋았습니다."
  두세 사람이 웃었다.
  "아니! 자세가 좋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교사들 중에  훈육주임이 오르간 치는 본  것을 본 사람이 없다.  그는 음악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키시마 선생이 일어섰다.
  "기다모리 선생에게 저는 두손을 들었습니다. 고등과 2학년 학생이지만 전원이 
악보를  알고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은  훌륭합니다. 실은  저는 피아노도  없고 
탬버림도, 메트로놈조차  없는, 오르간 두 대밖에  없는 학교에서 아무리 애써도 
별로  보잘 것  없는 수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신 
선생님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처음부터 음악을 포기한  선생님이 
적어도  열 분  이상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기다모리 선생은  하려고 하면 
이렇게 즐거운  수업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에도 해당됩니다. 기다모리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키시마 선생에 이어서 비슷한 감상이 다음으로  다음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 
어떤 교사는
  "기다모리 선생님은  대단히 목소리가 아름답습니다. 선생님  노랫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음악교육이 되겠습니다."
라고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평가회는 화기애애하게  끝나 갔다. 지금까지  가만히 모두의 말을  듣고 있던 
교장이 입을 열었다.
  "나도  기다모리  선생은  굉장한 노력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점은  알지만 
주어진  교재, 즉  고등과 2학년에게는  고등과 2학년  교과서를 가르쳐  주어야 
되지요.  교과서에 없는  '사쿠라  사쿠라'나 4학년  책에  있는 '봄의  개울'같은 
것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좀  곤란합니다. 즉, 학생들에게 시를 쓰게 하면 글짓기 
시간과  음악 시간이  뒤섞여서  확실하지 못하게  됩니다.  음악시간에는 음악, 
글짓기 시간에는 글짓기, 명확하게 해주십시오."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교사들이 작은  소리로  뭐라 
이야기한다. 그때 기노시다 선생이 조용히 일어섰다.
  "교장  선생님!   저는  지금까지의   교사생활  가운데  오늘같이   감동적인 
음악수업을  본  적이  없습니다.  건들거리는  고물  오르간  두  대밖에  없는 
학교에서 무엇이 될까,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기다모리 선생은 
음악교육의 근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  부드러운, 슬픔,  힘든 것을 
아는 마음이라는 확신 아래서 수업을 하셨습니다.  토끼가 맛있는 동산과 토끼를 
쫓던  동산이라는 것은  대단히 다른  거죠. 그  가사의 중요성을  인식시켜려고 
기다모리 선생은  시를 쓰게 했고,  그 시에다 곡조를  붙였죠. 선생님이 저학년 
노래를  고등과  2학년에게  철저하게  가르치려는  것은 산수시간에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현대  음악교육은 기다모리  선생과 
같이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님, 오늘의 수업은 
교육의 근본에 관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모르신다면 이상합니다."
  교장이 무엇인가 말하려는데 기노시다 선생이 말을 계속했다.
  "즉, 국어, 산수, 역사처럼 교과가 나누어져 있는 것은  편의상이고, 음악시간에 
역사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마쿠라'가  있죠.  원래 교육은 
전인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노시다 선생은 날카롭게  말했다. 그리고 6개월 후 갑자기  기노시다 선생은 
벽지로 좌천되었다.
  발소리(1)
  1
  류타의 음악 연구수업이 끝난 다음날이었다.
  직원 조회 때 교장은 어제와 아주 다른 어조로 교사들 앞에 섰다.
  "야, 기다모리 선생님!  어제의 수업은 굉장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까 실로 
국책에 적합한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순간 교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류타도 고개를 기울였다.
  "정부는 쇼와  13년에 들어서 국가총동원법을  반대를 무릅쓰고 제정했죠. 즉, 
이 법안을  제정함으로 물적,  인적 자원의 운용은  의회의 협찬을 얻지  않아도 
됩니다. 즉, 칙령 하나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일본 국민은 내핍생활을 해야 
됩니다.  교육 면에서도  마찬가지죠.  내핍생활을 누구나  스스로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하는데 기다모리 선생의  수업은 겨우 오르간 두 대로, 즐겁게, 우리들을 
놀라게 한  연구수업을 발표해  주셨는지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국책에  맞는 
모범적 수업이라고 나는 칭찬 해마지 않습니다."
  교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감히  발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된 탓도 있고 그것보다 어제와 전혀 달라진 교장의 태도에 
적지 않은 의문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사들은 기노시다 선생  쪽을 봤지만 
기노시다 선생도  가만히 있었다. 교장은  그런 직원들의 공기를  느꼈는지 한층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어제의 기노시다  선생님의 의견도  여러  가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기다모리 선생님! 수고 하셨습니다."
  류타 앞에  앉은 고야마  미츠코 선생이  작고 빨간  혀를 뱀과  같이 조금씩 
보이면서 웃고 있었다. 그러나 교장이 왜 기분이 좋은지 아무리 몰랐다.
  하여간   류타의  연구수업은   교사들에게  경고의   돌을  던진   것이었다. 
무기력하고 무감동하게 복도를  머리숙이고 걸어다니던 중년의 교사들도 어딘지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국가의  석탄  증산  정책으로  탄광촌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학생들이 매일같이  전학해 오고 그  수가 늘어가는데, 
그저 막연히 손놓고 있던 교사들이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이다.
  그후  2, 3일이  지나서 류타는  저녁식사  떼 오키시마  선생의 권유를  받게 
되었다.
  "저, 기다모리 선생님,  몇몇 선생들이 기노시다 선생님 집에서 이번  일요일에 
한 번 모이기로 했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무슨  목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  생각하기  전에  기노시다 선생의 
집이라는 것이 류타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저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류타는 쾌활하게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가면 모두  기뻐할  거예요.  그럼, 다음  일요일  점심  후 
2시경에 모이기로 합시다."
  그 이야기하는  투가 아마 오키시마 선생이  중심이 된 것 같다.  다음 일요일 
류타는 오키시마  선생과 같이 하숙집을  나왔다. 학교 정문  앞을 지나가려는데 
마침 교감선생이 뒤짐을 지고 오키시마 선생과 류타를 보고 있었다.
  "어! 어디 가십니까?"
  "네! 좀 저쪽까지 갑니다."
  오키시마 선생은 좀 벙벙한 말투로 대답했다.  조금 가다가 뒤돌아보니 교감은 
그 때까지 보고 있다.
  "아직도 보고 있어요. 오키시마 선생님!"
  "보면 어때요? 도둑질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오키시마 선생은 농담을 했다.
  "그런데요.   일본말은  참   편리하군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을  때 
저쪽까지라고 말하면 되니까요. 이럴 때 영어로는 어떻게 말하나요?"
  "저, 영어는 아주 모르니까..."
  류타가 신경이  쓰여서 뒤돌아보니  교감은 보이지  않는다. 기노시다  선생의 
하숙집은 학교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게다 가게다. 기노시다 선생은 다다미 8장, 
6장이 깔린 방 두 칸을 혼자서 쓰고 있다. 20대 교사 3명과 30대, 40대의 교사가 
2명씩  모였다. 남자만  있는  곳에 고야마  선생이  주름이  있는 흰  앞치마를 
두르고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  많이 모이셨군요.  사십칠사(옛날  주인의 ㄸ을  받들어  원수를  물리친 
47명의 지사)인가?"
  누군가가 말해서 모두 웃었다.
  "사십칠사는 주인의 원수를 갚았지요. 우리들은 그런 불온한 분자가 아니야."
  오키시마 선생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기노시다 선생이 
  "아니,  왜요. 불온분자지요.  이렇게 모인  것을 교장이나  교감이 알면  간이 
오그라들겠네."
하니까 누군가가 말했다.
  "맞아요. 사람이  서너 명 모여도  불온이라고 보는 세상,  즉 사람을 못  믿는 
세상이 된 거죠."
  그날 이런 저런 불평과 요망이 이야기되고, 모두 교육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누구  한  사람  5월의  '서주  점령'이나  정부가  국제연맹  사무국의  초청을 
거절했다는 뉴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전쟁은 저 멀리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날은  그것으로 끝났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기노시다  선생을   중심으로 
'교수법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결정되었다.  학교 안의  교실을 
빌려서  해도 되지만  일일이 교감이나  교장의  허가를 받아야  되고 자유롭게 
모임을 가질 수 없다. 교장이나 교감이 그  모임에 참석하여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도 귀찮다.
  첫  번째  모임은 쇼와  14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바로  눈  오는  날이었다. 
오키시마 선생도  류타도 마음이 부풀어서  하숙집을 나왔다. 중년의  교사 대신 
30대의 교사가 왔다. 기노시다 선생이 강사로서 모임을 시작했다. 그날도 고야마 
선생이 차를 내놓고  과자를 대접했다. 기노시다 선생의 책상 위에  두꺼운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성서였다.
  '아! 선생님은 그리스도교 신자였구나.'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어딘지  모르게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기노시다 선생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는 공부를  잘 안합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작년에  기다모리 선생이 재미있는  음악수업을 해주셨고, 그때 
나는 비평회의에서 교육은 전인격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극히 평범한 말을 
건방지게   교장에게  말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기다모리  선생과   같은 
생각입니다.   초등학교  교육은   국어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론입니다. 읽기, 쓰기, 이해하기, 말하기, 문장 만들기, 즉 글짓기지요. 이것들을 
흥미롭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5학년을 맡고  있습니다만, 이 
학생들에게 1학년  국어 교과서를 공책에 쓰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배운 
국어책에서,
  꽃 비둘기 콩 말
  도롱이 우비 우산
을 쓴다고  합시다. 이것을   5학년 학생에게 한자로 다시  쓰게 합시다. 대개의 
5학년 아이들이  미노를 모르죠,  그러나 흥미있는  것은 이렇게 되면  미노라는 
글자를 꼭  가르치고 싶어집니다. 아이들도  '가르쳐 주세요.'하고 적극성을 띄게 
되죠. 1학년 교재지만  재미있게 느끼죠. 즉, 5학년이 1학년  공부를 한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사루가니 갓셍(원숭이와 게가  싸웠다는 이야기로 
소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온다)의  사루가니의  글씨는  어렵고  학생들이  잘 
모릅니다. 그러면 5학년 체면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1학년과 5학년 사이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꽃,  비둘기, 콩,  말 등의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비둘기 한  마리도 좋고, 꽃 한  송이도 좋습니다. 그것이 즐겁고, 1학년 
때  배운  것이  그리워지며  생각나는  것이죠.  그것이  수업  중에  목소리로 
발표됩니다.  '나는 1학년  때의 탄광이  생각났다.'든가, 1학년  때 담임은  여자 
선생님이고 녹색  양산을 쓰셨다는 그림을  그리게 되지요. 때로는  이런 수업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오키시마 선생이 말했다.
  "인간에게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기다모리 선생님의 수업 
중에도 그립다는 것이 나왔지만  학생들 마음속에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는  역사책을 철저하게 읽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잘 
읽지 않으면 '후지하라 가마다리'가 '후지히라 가마아시'가 되어 버립니다."
  모두가 웃었다. 기노시다 선생이 계속했다.
  "그렇습니다. '주'라는  글자가 나오는데(죽인다는  뜻), 이것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면 엉뚱한  뜻이 되지요. 찌른 것인지  때린 것인지, 웃었다는지 울었다는지 
모르지요. 그래서 저는 역사책에는  한자에 꼭 토를 달게 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그냥 읽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시지만 나는 국어책 산수책 어디에나 토를 달게 
합니다."
  류타도 정말 그렇다 하며 듣고 있었다. 책을  폈을 때 모르는 글씨가 여기저기 
있는  것보다는  다 읽을  수  있는  편이 났다.  교과서가  친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공부할 때도  일일이 아버지나  어머니께 묻지  않아도 된다. 
부모가 과거에  공부한 사람이면 몰라도,  여유가 없어서 못한  사람은 아이들이 
글자를 물을 때 정말 곤란하다고 가정 방문 때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국사를 가르칠 때는 이야기  책을 재미있게 읽어 가듯이 합니다. 
고다이고  천황이 어떻게  될까,  구스누가  마사시게가 어찌  될까,  모두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지요.  벨이  울리면  '벌써 끝나!'하고  아쉬워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그 다음에  어떻게  되나요?'하고 묻고,  재미있으니까  교과서를 읽게 
되지요. 한 번은  학생이 '이것을 연극으로 하면  재미있겠다.'고 해 반줄씩 조를 
짜서 연극을  시켰지요. 학생들은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역사,  특히 현대적으로 
편집된 역사는 이런  교수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언제 
변할지 모르지만  교사들이 확실하게 소화하여,  각각 자기가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자기가 어렸을  때  무엇을 
배웠는가를 기억할 수 있게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교사 한 사람이 열심히 듣고 있다가
  "그 역사 이야기는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모두 생각난  듯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류타도 기노시다 선생이 
뭐라고 대답할까 궁금했다. 기노시다 선생은 웃으면서
  "무엇이 위험한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는 위험하다고 말하겠지요."
하며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무상이란 말에는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사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그것은  그렇고,  산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나는  산수 문제를  푸는  제일 큰  열쇠는  문제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얼마나  빨리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봅니다. 산수에도 독해력이 절대 
필요합니다. 특히  5학년이 되면  쓰루가메산(학, 거북이 계산이다.  학의 다리는 
둘,  거북이는   넷으로  다리   수로  몇  마리인가를   계산하는  계산법)이나 
우에기산(나무 심은  수효를 계산)이 나오지요.  문제의 뜻을  모르면 풀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1학년을  담임해도 수식을  말로  고치는 훈련을  했지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것을 아이들 세계에서는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을 말로 
고칩니다.  어머니가  사탕을  하나 주셨습니다.  누나가  또  하나  주었습니다. 
합해서 몇 개  받았습니까? 이렇게 하면 아이들 세계가 되지요.  말로 고쳤을 때 
'1+1'이 시작되지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말했다.
  "1학년이 그렇게 말을 만들 수 있을까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학년에게 문제를 만들게  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고요. 그러나  재미있어요. 조금만  훈련하면 아이들다운 글로 
문제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한테 두  대 
맞았습니다. 형한테는 세 대 맞았습니다. 합해서 모두 몇 대 맞았을까요?"
  모두 웃었다. 오키시마 선생이 제일 큰소리로 웃었다. 기노시다 선생의 수업이 
훌륭하다는 것은  정평이 나  있다. 아이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러 온  어머니가 
너무  재미있어서 두  시간을 꼼짝  않고  보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류타도 
기노시다 선생의 수업을 견학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노시다 선생이 말했다.
  "오늘의 말씀은  이상으로 마치려고 합니다만,  나의 수업은 평범합니다. 그저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생이 어떻게 하면  힘을 얻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수업에  나타나있는가 아닌가는  중요한 일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귀엽게 생각하느냐, 학생이  선생님께 마음을  열고 있는가, 결국 교육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학생은  모두 그  어머니가  배아파서 낳은  아이고,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어디 있나 하고 기르는 아이들입니다. 그  부모의 마음이 
되어서  기를 수는  없어도,  그  마음을 아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가난하니 어렵구나.'하고  말하고 있기를 원합니다. 아!  단순한 것으로 
여러분이  하고 계실  줄 압니다만,  산수시간 시작  전에 2학년이나  5학년이나 
고등과라고  꼭  구구단을  암송하게  해주세요.  구구단도  모르고  졸업한다면 
비참합니다. 구구단을  우습게 보지  말고 가끔  시험을 보세요.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구구단을  틀리는 아이가 생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역사교육의 
일환으로서 점심시간에  이 성서에 있는 '노아의  방주'라든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관심이  다른 
나라에도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류타는  기노시다  선생이  지금까지  생각한  것보다  더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해가 질때까지 계속되었다.
  2
  류타가 포로시나이에 와서 두 번째 융설기(눈이 녹는 시기)를 맞았다.
  일주일 전 숙직하던 날 밤에 아사히가와의 요시코에게 전화가 왔다.
  "류타 씨! 저예요. 이번에 1학년을 담임해요."
  흥분한 목소리다. 요시코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한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어휘력이 부족해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모르니까 금방 
올거나 성을 내거나 하지만 교사는 그것을 잘 파악해서 이해해야 되겠지요."
  요시코는 자신있게 말했다.
  '요시코고 대단하다. 기노시다 선생같이 이해한다는 말을 했다.'
  류타는 감탄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교사는 교실  안에서 독재자가 되기 쉽다. 
학생들의 싸움을 보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간단히 말해 버린다.  그러나 진실한 
동찰력이 필요하다.  특히 1학년  같은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어야 한다.  류타는 새삼스럽게  교사와 동찰력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
  요시코의  기쁜  듯한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하지만,  류타는  꼭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포로시나아에 부임한 후  담임했던 사토오의 반이  며칠 후 
졸업을 한다.  졸업식 연습으로  수일 전부터 매일  아침 졸업식 노래를  류타가 
전교생에게 지도하고 있다. 고야마 선생이 피아노를 친다. 류타의 음악 연구수업 
후에  피아노구입의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피아노가  포로시나이  소학교에 
도착한 것은 며칠  전 히나마쓰리(3월 3일, 여자아이들이  집에서 인형을 예쁘게 
장식하며 축하하는 절기)의 전날인 3월 2일이었다.
  높이자 존경하는 우리 스승의 은혜
  류타는  학생들에게 가사의  뜻을  설명하면서  노래말 지도를  했다.  노래를 
시키면서  류타는 가끔  울먹이게 된다.  지금까지 이다지도  가슴 아픈  이별의 
감정을 느낀  일이 없었다.  담임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등과 2학년을  마치고 
직장으로 간다. 두 번  다시 학교라는 곳에서 공부하지 못한다. 사토오 마나부는 
사범학교에 진학하려다가  전쟁터에 아버지 편지가 끊어졌다고  해서 그 희망을 
버렸다.
  '마나부, 너의 꾸밈없는 말을 받아주는 선배가 있으면 좋겠다.'
  '다마다, 너의 웃는 얼굴을 이제 이 교실에서 못 보겠구나.'
  류타는 요사이 자리에  들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학생들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눈물이 쏟아진다.
  '모두 남의 자식인데 왜 울어?'
  류타는 일부러  그렇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남의  아이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다.  15,  16세의  나이에 어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야단맞아 가면서 지낼지도 모르는 신세가 몇 년이 될까 생각하니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아픈 마음이었다.
  '3월은 교사에게 이렇게 힘든 달인가?'
  류타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1학년을 맡았다고 기뻐하는  요시코도 지금까지 담임했던 학생과 헤어져야 할 
때 힘들 것이다.
  '그러나 4월이 있다. 나는 금년에 몇 학년을 맡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니 의욕이 생긴다. 이곳 교정은  교사들의 희망을 일체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몇 학년이나 모두 천황 폐하의 중요한 학생들입니다."
  교장은 그렇게 말한다고  들었다. 오늘도 류타는 학생들을  생각하고 요시코를 
생각하면서  교무실에 들어갔다.  겨울 동안은  새벽  5시부터 하는  청소봉사는 
없고, 6시 반에 출근해서 직원 조례가 7시부터 7시 반까지 되어 있다.
  문을 여는 순간 류타는 흠칫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상하게 선생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누구냐가  흥분하고  있는데 그러나  기쁜  표정이 아니다. 
류타는 평상시와 같이 교장에게 인사하고 출근부에 날인했다. 교감이 말했다.
  "이동이 있었으므로 사령부에도 날인해 주세요."
  "이동? 누구십니까?"
  "사령부를 보면 아십니다."
  만다 교감은 거친 소리로 말했다. 펼쳐진  사령부에는 기노시다 선생의 이름이 
있었다. 류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었다. 그 류타를  바라보는 교장의 시선과 
류타의 시선이  마주쳤다. 류타는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기노시다 선생은 아직 
출근  전이다.  전주  토요일,  몇 사람과  기노시다  선생  집에  갔었다.  그때 
기노시다 선생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 드르륵  하며 문이 열리고  기노시다 
선생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평소와  같이 명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잠잠하다.  기노시다 선생은 
침착한  발걸음으로  교장  앞에  섰다.  모두  숨을  죽이고  기노시다  선생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류타는 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교장이 일어서서,
  "기노시다 선생의 사령장이 나왔습니다."
  "사령? 사령입니까?"
  즉시 이해가 안 되서 반문하는 기노시다 선생에게 만다 교감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기노시다 선생님, 섭섭합니다."
  교사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기노시다 선생은 몰랐던 것이다.'
  류타의 가슴이 울분이 치솟았다.
  "교장 선생님,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노시다 선생은 침착하게 물었다.
  "글쎄요. 나도 놀라고 있습니다."
  교장의 건성인 목소리가 들렸다.
  "전교 학생 30명인 그 학교군요. 영전입니다."
  날카로운 핀잔이다. 기노시다 선생은  32학급의 포로시나이 소학교에서 교사가 
단 한 사람인 소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좌천이다.
  젊은 교사들 두세 사람이 교장 앞에 와서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내시도 상의도 없이 발령된 것입니까?"
  교장은 절대적 권력자다. 교사들의 조합도  없다. 단체교섭은 생각지도 못한다. 
이렇게 교장에게  묻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젊은 교사들의  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교장은 세사람을 흘깃 보고 있다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사는 원래 이렇게 엄한 것이지요."
  "그런... 내시는 있어야..."
  젊은 교사들이 중얼중얼하며 돌아섰다. 류타는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확실히  그것은 보복인사라고 생각되었다.  기노시다 선생은 류타의 
연구수업의 비평회  때 류타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것이  오늘의 인사로서 
돌아온 것이다. 뭐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아무 말도 못했다. 왜 기노시다 선생이 
8킬로미터나  산길을 걸어서  가는 학교에  가야  하는지, 전교생이  30명이라도 
있을 것인가? 류타는 어두운 굴 속에 끌려 들어가는 듯한 공포마저 느꼈다.
  3
  1941년 정월 초하루.
  류타는 시호하이(정월  초하루에 행하는  식. 신궁과  천지 사방에  절을 하고 
1년을 무사히  지내게 해달라고 기원함)의  의식을 끝내고 학교에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니까 아키코의 명랑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기원은 이천 육백 년
  아아! 일 억의 가슴이 뛴다.
  작년에 유행한 "기원 이천 육백 년의 노래"다
  "돌아왔습니다."
  류타의 목소리를 듣고 아키코는 거실문을 열고서
  "저, 우리 그이는?"
하고 물었다. 아키코는 작년 정월에 오키시마 선생과 결혼을 했다.
  "직원 친목회에서 모임이 있어서 2시간 정도 늦겠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결혼하고 처음 맞는 정월 초하루인데!"
  화난 것같이 말하지만 아키코는 웃는 얼굴이다.
  "기다모리 선생님! 1시 기차지요? 점심에 무얼 드시겠어요? 또 떡국이면..."
  "저는 떡이 좋으니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류타에게 우편물을 주면서 아키코는 
  "네에, 알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도 금년에 요시코 씨와 결혼하시겠지요. 좋은 해입니다. 금년은!"
하고 즐거운 얼굴을  한다. 류타는 연하장 뭉치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쇼와 
16년에 결혼하자는  약속을 류타도  요시코도 소중하게  알고 있다.  16년이라는 
글씨가 반짝반짝하고 공중에서 반짝이는  듯했다. 연말에 아사히가와에 돌아갔을 

  "류타 씨! 내년이 쇼와 몇 년인지 알고 있어요?"
하고 눈길을 걸으면서  요시코는 류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  얼굴이 행복해 
보여서  가슴이  벅찼다. 나  같은  남자의  결혼을 이렇게  행복하게  기다리는 
여성이 있다.  그것이 기뻤다.  정말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류타는 남자와 여자가 한 지붕 밑에서 사는 나날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같은 방에서 매일 요시코와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방에  들어가  외투를  입은  채로  난롯불을  쓰셨다.  저탄식  난로가  재를 
털었더니 윙 소리를 내면서  타기 시작했다. 류타는 연하장을 읽기 시작했다. 40 
~ 50장의 연하장 제일 위에 기노시다 선생의 연하장이 있었다.
  "새해를  축하합니다."하고  단순하게    말하는  시대가  없어졌군요.  이쪽은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미츠코와, 아니 우리들은 금년 6월경 부모가 됩니다.
  류타는 미소지었다. 2년 전 3월의 일이 생각났다. 좌천이라는 기노시다 선생의 
송별회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교사들은 다음다음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교사의 한구석 재봉실에  여교사들의 요리가 베풀어졌다. 남자  교사들은 평소의 
환영회나 송별회와  다르게 술이  도를 넘치도록  마셨다. 학부형들이  기노시다 
선생과의 석별의  정으로 술을  많이 가져온 것이다.  젊은 교사들 대여섯  명이 
가운데 다다미 위를 넙죽넙죽 물개와 같이 가기 시작했다.
  "기노시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노시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2년 전 유행하던 "군인 아저씨, 고맙습니다."라는 노래가사를 바꾸어 노래했다. 
오직 교사들의 입에서 "기노시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만  되풀이하여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맞추어 물개처럼 기던  교사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갑자기 고야마 마츠코 선생이 일어서서 외쳤다.
  "임시 뉴스를 말씀드립니다."
  맑은 목소리에 모두 조용해졌다.
  "오늘 지금 고야마 미츠코는 사직원을 교장 선생님께 제출하려고 합니다."
  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고야마 선생은 계속했다.
  "독신인  기노시다   선생이  산   속의  단급학교에   부임하시지만  거기의 
여학생에게 재봉을 가르칠 사람이  있겠습니까? 남자로서 할 수 없는 작은 일을 
지도하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기노시다  선생이지만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노시다 선생의 아내로서 같이  산 속에 따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교사의 아내는 아무 보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기노시다 선생을 
도와서 일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임시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교장도 만다 교감도  낭패였다. 지금 신학년을  눈앞에 두고 
돌연  사직은 곤란하다고  설득했으나 고야마  선생은 포로시나이  역에서 떠나 
버렸다.  결혼식은  출발   직전에  다키기와  교회에서  간소하게  거행되었고, 
혼인계의 수속도 잘 마쳤다.
  지금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류타는  다시  기노시다 선생의  연하장에 눈을 
옮겼다. 기노시다  선생의 단급 경영이  벌써 여기저기에서 화제가  된다는 것을 
류타도 들었다.
  류타는  나머지  연하장을  아사히가와에  가서  읽으려고  가방에  넣었다가 
학생들의  연하장이 왔을  것 같아서  다시 꺼냈다.  사토오 마나부의  연하장은 
작년에는  오지 않았다.  금년에는 혹시  오지  않았을까 하고  보니 눈에  익은 
마나부의 글씨가 보였다.
  선생님! 별고 없으십니까? 저는  어머니와 유바리의 탄광에 와 있습니다. 저는 
굴진부의  한  사람으로  매일  갱 안에  들어갑니다.  1년  반  전에  아버지의 
전사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연하장을  못  보냈습니다.  그래도 
금년에는 갱 안에서 선생님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류타는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았다.  이때 아직  류타는 자신의  배후에 
무서운 발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발소리(2)
  1
  '조용한 정월이다.'
  류타는 그렇게 생각하고
  '아니, 조용하기보다 쓸쓸한 정월이다.'
하며 거실에서  문밖을 보았다. 기다모리  전당포는 상점가의 바로  옆에 있어서 
류타의  소년 시절부터  번화가의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의  떠드는 소리가 
류타의 집에도 하루 종일 들려 왔다.
  쇼와 16년 정월 3일.
  전당포ㅌ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이제  거의  요시코가  올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류타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가 되려고한다. 오늘은 류타의 집 
안채에 도쿄에서 돌아온 마노  구스오와 그 여동생 가세코, 류타의 누나 미치요, 
동생 야스시, 그리고 류타, 요시코가 모일 예정이다. 좀 늦게, 5시 지나서 사카베 
선생님도 오시기로 되어 있다. 그 자리에서  류타는 금년에 요시코와 결혼한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사카베  선생 부부가 중매  역할을 
해주실 것을  작년부터 부탁해  두었다. 그래서 요시코가  오는 것이 너무  늦은 
것같이 느껴진다.  약속은 3시  반인데 늦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류타는 
웃었다.
  그때  언제 왔는지  구스오가  류타  옆에 섰다.  류타는  그  구스오를 봤다. 
구스오는 류타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왔다."
하며  문쪽을  가리켰다.  류타는  숨을  죽였다.  시마다머리의 요시코가  검은 
가쿠마키를 맵시있게  입고 마침  문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류타는  요시코의 
일본머리 모습은  처음 본다.  그 윤택한 검은  머리와 매혹적인 검은  눈동자와 
검은  가쿠마키와의  조화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보통  젊은  처녀들은 
벽돌색이나 분홍색 가쿠마키를 입는데, 검은색을 잘  소화시킬 수 있는 처녀들은 
검은 가쿠마키를  멋있게 입는다고 한다.  지금 보는 요시코의  검은 가쿠마키의 
모습은  그렇게  잘 어울릴수가  없었다.  류타는  강한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충격을 받았다. 구스오가
  "류타야! 요시코, 굉장한 여인이 되었구나."
하며 감탄했다.
  요시코가 아버지 세이다로오와  어머니 가쿠에에게 신년 인사를  하고, 안채로 
들어오니까 모두가 환성을 올렸다.
  "와! 예쁘다!"
  가세코가 소리지르니,
  "요시코야! 이렇게 일본머리가 어울릴 줄 몰랐다."
하며 미치요도 찬탄했다. 그러나 류타도 야스시도 잠자코 아무말도 안했다.
  "놀랐는데, 요시코 씨! 그렇지? 류타야."
  구스오가 말하면서 류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류타는  어떤 얼굴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언제나  요시코는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느 학교  교사나  입는 
회색이나 곤색이나  엷은 밤색의  수수한 복장이었다.  그런데 요시코가  갑자기 
일본머리 모습으로 기모노를 입고 나타났다. 그것이 얄미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 
류타는 압도감마저  느꼈다. 금년에  이 요시코가 신부가  되어 자기 옆에  앉을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결혼이 눈앞에 닥쳐온 것 같은 절박한 기분이 되었다.
  가세코가 부엌에서 귤을 쟁반에 담아서 가져왔다. 구스오가 먼저 하나 집었다. 
그것을  구스오는  마주앉은   미치요에게  주었다.  그리고  하나   더  집어서 
요시코에게  주었다.  류타는  좀  싫은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류타에게 
아랑곳없이 구스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  50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금년으로  50년으로  반인 25세야.  미치요 
누나!"
  "어머,  그렇구나!  너는  류타와  같은  나이니까...  그리고  야스시는  24세, 
가세코가 23세가 되었네. 모두 결혼 적령기구나!"
  "나는 아직 알려요."
  야스시가 싱글벙글 웃었다. 구스오가 귤껍질을 벗기면서
  "그래도 25세는 남자의 재난의 해야."
하고 류타의  얼굴을 봤다. 류타는 구스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감이  안 잡혀서 
어중간하게 맞장구를 쳤다. 구스오는 멀쩡한 얼굴로
  "미치요 누나, 내가 오늘 이 집에 오면서 곰곰이 뭘 생각하면서 왔는지 알아?"
하고 물었다.
  "글세, 금년에 장가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너희  회사 요즈음 경기가 
좋다니까..."
  "그야 색시도 얻고 싶지,  요시코 씨 같은 사람을, 그러나 내가 생각하면서 온 
것은 나와 가세코에게 기다모리 집은 정말 고마운 존재라는 것이죠."
  미치요는 의심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고마운데?"
하고 구스오를 봤다.
  "우리  집과  이  집은  사촌간이지, 나이도  비슷하고  집도  가깝고  언제나 
왔다갔다했지. 놀기도 하고,  싸움도 하고, 공부도 하고, 서로  자고 가기도 했고, 
마치 친형제  같았어. 만일 기다모리 댁이  없었으면 나와 가세코 단  두 사람이 
쓸쓸했을 거야."
  말을  들어 보니  류타도, 구스오와  가세코가 언제나  집에 왔다갔다한  것이 
즐거운 일로 남아 있었다.
  "나  말이야! 정말  본심을 이야기할까?  어렸을 때부터  나의 동경의  대상은 
미치요 누나였어."
  구스오는 똑바로  미치요를 봤다. 미치요는 크게  웃었다. 그러나 류타는 웃지 
않았다.
  "구스오야! 너 설마 낮부터 술마시고 온 것 아니니?"
  미치요가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구스오가 대답했다.
  "지금 말한 것 들으니까 정말 누나같이 보이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누나 같은 
존재로 느껴지게 하는 것, 이 점을 류타는 이해 못할 거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류타는  누나 같은  존재와 누나의  존재의 차이를  생각했다. 누나같은  존재 
쪽에 달콤한  청춘이 숨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구스오는 두 개째  귤을 집고서 
말했다.
  "미치요  누나는  학교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였지.  고운  목소리로  구령을 
붙이고, 학예회 때는 춤을  추었고 인기가 대단했지, 나는 저 사람의 친척이라고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했지. 그래서 시집갔을 때 쓸쓸했어. 
  하나뿐인 누나가 시집가는 밤 
  개울가 언덕에서 쓸쓸해서
  울었던 눈물의 그리움이여!
하는 심정이었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지?"
  그때 아무 말없던 요시코가 말했다.
  "좋은 말이네요.  그런데 구스오 씨답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 실례가 되나? 
좀 심각한 이야기니까요. 25세 재난의 해를 조심하세요."
  구스오에게 향했던 시선이  류타를 향했다. 이상하게 반짝이는 눈이다. 류타는 
말할수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한참 이야기한 후에  모두 가루다(카드놀이 같은 
것)를  하며 놀았다.  류타와 구스오는  소학교  때부터 좋은  적수다.  야스시도 
재빠르고 요시코는 더욱 예리했다. 먼저  미치요가 부르고, 류타, 구스오, 야스시, 
가세코, 요시코의 다섯  사람이 가끔 세이다로오나 기쿠에도  끼면서 떠들썩하게 
놀았다.  그 사이  구스오는 여러  번 요시코의  손에  자기 손을  겹쳤다.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럽다.
  가루다를 치우고 있는데  사카베 선생님이 커다란 마스크를  하고 들어오셨다. 
마스크르 떼면서
  "12월 중순부터 감기가 들어서 조심하느라고 이렇게 큰 마스크를 했지요."
하고 웃으셨다. 류타는 선생님이  좀 수척하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사카베 
선생님은  난로 옆에  있는  미치요부터 차례차례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살려보고서
  "모두 건강해 보인다. 축하한다."
하며 난로  가까이 앉으셨다.  류타는 자기가 학생일  때 사카베 선생님이  매일 
아침 학생들의 얼굴을 잘 살피신 후에 "안녕!"하고 인사하시던 것을 떠올렸다.
  사카베  선생님에게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고  하루가  끝나는  일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류타는 그 때가 그리웠다.
  "역시 사카베 선생님은 좋구나. 그렇지, 류타야?"
  구스오가 쾌활하게 말했다.
  "그래, 사카베 선생님은 좋아."
  류타가 멋없이 대답했다. 요시코가 웃었다.
  "류타 씨!  언제나 사카베 선생님은 일본에서  제일 훌륭한 분이  라고 하더니 
왜 그렇게 말 안해요?"
  류타는 머리를 긁었다. 미치요가 사카베 선생님께 차를 내놓으면서
  "요시코 씨! 류타의 그런 점을 좋아했던 것 아냐?"
하고 살짝 말했다. 구스오는 놀라
  "어! 그렇게 서먹서먹한 사이인가?"
해서 모두 웃었다. 사카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올해는 좋은 해가 될 것 같다. 그렇지? 류타, 요시코."
  정이 넘치는  눈길이다. 류타와  요시코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고  요시코가 
류타에게 눈짓했다.
  "실은  구스오!  사카베  선생님을 중매인으로  부탁해서  금년  안으로  식을 
올리려고 생각해."
  류타는 구스오에게 말하고 또 머리를 긁었다.
  "뭐야!  실망했네. 오늘  요시코  씨가 예뻐서  나는 한  번  떨어졌지만 다시 
시작하려 했는데, 류타에게 당했네!"
  구스오가  정말  낙심한 듯한  얼굴을  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구스오는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웃었다.
  "역시 25세는  남자의 재난의  해예요. 선생님!  그래, 괜찮아.  류타도 재난의 
해야. 류타의 모든 재난을 내가 대신 모두 합해서 져줄게. 좋은 남편이 되라."
  진실한 목소리다. 류타는 약간 가슴이 뭉클했다.
  "고마워.  이것도 모두  사카베 선생님과  미치요 누나,  구스오의 덕택이에요. 
요시코 씨의 부모도 나의 부모도 이해해 주셨고..."
  "그럼 오늘은 신나게 노래나 하고 축하할까? 아쉽고 섭섭하지만..."
  구스오가 웃기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일 처음 사카베 선생님이 일어섰다.
  "감기가  들어서  목소리가  어떨지  모르지만  미키로후의  '고향'을  부를까? 
류타보다는 못하지만."
  모두 크게 박수를 쳤다. 미치요가 말했다.
  "술도 안 들어왔는데?"
  "술이 들어와도  마시는 사람은 나와  야스시뿐이지요. 큰아버지도 안 드시고, 
사카베 선생님은 아멘이고... 그럼 선생님, 부탁합니다."
  고향 들판의 나무 아래
  피리소리 구슬픈 달밤에.
  사카베 선생님의  목소리는   보통 때보다 작았지만  절절하게 구슬픈 느낌이 
담겨 있었다. 과거의 연인을 생각하는 듯 듣는 이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십년 지나도 같은 맘으로
  당신은 우는가 어머니되어도.
  사카베 선생님이 노래를 그치니까 미치요가 흰 손수건을 꺼내서 눈에 댄다.
  "눈물이 나와요, 언제 들어도."
  "정말! 나도 그래요."
  요시코도 상냥하게 말했다. 사카베 선생님은 목을 쓰다듬으면서 
  "미안한데, 축하한다고 노래했는데 울게 했군."
하며 류타와 요시코의 얼굴을 쳐다보신다. 생각하며  마음을 살펴주는 그 눈길이 
류타는 기뻤다. 가세코가 말했다.
  "선생님, 새색시의 노래는 왜 슬픈 것이 많은가요?"
하며 어렸을 때와 같이 귀여운 입을 열어,
  "'긴란 돈슨(비단에 금실을  넣어 짠 광택이 있는 직물)의 오비(일본  여자들이 
기모노 허리에 매는것)를 매면서 새색시는 왜 우는가',  '비오는 달밤', 또 '혼자서 
우산 쓰고 가네'등 즐거운 것이 아니네요."
하며 노래를 섞어 가며 말했다.
  "그것은 가세코야, 이런 거야."
하며 구스오가 노래를 시작했다.
  긴란 돈스의 오비를 매면서
  새색시는 왜 우는가
  너무 좋아서 웃는 것이올시다.
  미치요도 요시코도 가세코도 웃음이 터졌다.
  '구스오는 좋은 사나이다.'
하고 류타는 생각했다. 류타도 일어섰다.
  "작년 노래입니다만 '기원 이천 육백 년 노래'를 부르겠어요."
  작년  쇼와  15년은  일본의  기원  이천  육백  년을  축하하는  해였다.  그 
기념노래를 전국 소학교, 중학교는 물론 국민 모두가 노래했다.
  금지(신문 천황이 적을 정복했을 때 와서 앉은 솔개) 빛나는 일본의
  영광의 받아서
  지금 모두 축하해 이 아침을
  기원은 이천 육백년
  아! 일 억의 가슴이 뛴다.
  모두 소리 맞추어 노래한다.
  황량한 세계에 단지 하나
  흔들리지 않는 세상에 태어나서
  감사는 깨끗한 불이 되어 타고
  기원은 이천 육백 년
  아! 보국의 피가 끊는다.
  활기가 방안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 노래를 사카베 선생님은 하지 않았다. 
사카베  선생님의  감기가  충분히  났지  않았다고  류타는  생각했다.  노래는 
계속해서   나왔다.  "호빈의   집",   "소슈야곡",   "상해의  꽃피는   아가씨", 
"애마진군가"등이 나왔다.
  옆방의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접시에 수북하게 담긴  지라시스시(초밥에 생선, 
고기, 달걀 부침, 야채 등을  얹어 놓은 음식)가 준비되어 있었다. 쌀이 배급제가 
된 후, 기름 냄새가 나는 알랑미가 배급되었다. 오늘 저녁과 같이 쌀밥을 넉넉히 
넣은  지라시스시는 실로  호화롭다. 점원의  집이 농가여서  가끔 집에서  먹는 
쌀을 가져다 주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모두 푸짐한 자라시스시를 보고 놀라니까 어머니 기쿠에가 그렇게 말했다.
  "맛있다."
  야스시가 한  입 먹고  큰 소리로  말했다. "맛있다.  맛있어." 누구나  말했다. 
구스오가
  "아니에요. 큰어머니! 복잡한 맛이에요."
하며  모두를 웃겼다.  사양하지 않고  모두 거실로  가고 여자들은  설거지하러 
부엌에 갔다. 구스오가 말했다.
  "선생님, 전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글세, 잘 모르지만 작년 8월에는 그리스도교의 각 파를 하나로 통일하여 순정 
일본  그리스도교회로  하라는  정부의  권고가  있었지.  사상을  한  방향으로 
만든다는  것은   역시  전쟁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것이겠지.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조심해야 된다! 구스오, 야스시."
  "물론 허튼 말을 했다가는 언론 통제에 걸리니까 우리도 조심하지요."
  "그것은 믿는다."
  사카베 선생님은 웃으시며,
  "작년에  정당이 모두  해산했지?  그리고  10월에는 대정익찬회가  발족했다. 
정당정치의 나라가 정당을 없애는 것은 국력의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지. 국민의 
생활도  점점  어렵게  되겠지.  작년  4월에   석탄  통제가  시작되었고  쌀도 
배급제이고..."
  "아! 그랬었구나!"
  야스시는 편안하게 말했다.  류타는 하숙생활이어서 그 점에 민감하지 못했다. 
특히  포로시나이에서는 탄광회사의  자녀를 맡은  교사들에게는 쌀  배급도 좀 
넉넉했고, 석탄도  한 톤에 1엔  등 대부분  거저 주는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설탕이  배급제가 된  것은  단  것을  좋아하는  류타에게는 지장으로 
다가왔다. 과자점에  항상 과자가  진열되지 못했다.  소다를 넣은  호박이 섞인 
빵을  살  수 있으면  운이  좋은  편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물건이 
가게에서  사라지게  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일본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랐다. 오히려 도쿄에 사는  구스오가 생활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애국반이 조직되고 애국반장에게 강한 권한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큰  소리로 말 못하지만  물자배급을 한다는 것은  즉 일본에 물자가 
부족하다는 증거지."
  류타는 사카베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기가  막혔다. 신문도 
잘  안  읽고,  자신이   식량을  구하지도  않고,  세상이  변하는데도  얼마나 
태평스럽게 지냈는가?
  "버스의 연료도 가솔린을 줄이고 목탄으로 달리게 하고 있지."
  탄불을 긴 통에 넣고 가스를 발생시켜서 버스를 달리게 한 것이다.
  "목탄 버스라."
  류타는  새삼스럽게 중얼거렸다.  버스를  달리게 하는  가솔린이  부족하다는 
것은  전투기에도  가솔린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도  목탄 
버스라는  새로운  것이 발명된  것같이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것을  류타가 
말하니까 사카베 선생님은 수긍하며 말씀하셨다.
  "그래, 모두 그런  정도로 알고 있지. 류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 사람 중 
얼마나 일본의 참 모습을 알고 마음 아파할까?  전쟁이다. 전쟁이다 하지만 아직 
적기가 한  번도 일본  상공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작년 
9월에 일본, 독이, 이탈리아가 3국 동맹의  조인을 했는데, 그후 미국과의 사이가 
잘 안 되고 있어,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가가 걱정이야."
  사카베 선생님의 표정은 심각했다.
  2
  정월 9일 오후, 류타는  포로시나이의 하숙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이 당직이기 
때문이었다.
  "당직은 내가 대신할께요. 일부러 아사히가와에서 오지 않아도 돼요."
  오키시마  선생은  그렇게  말했지만,  류타의  제자  중  한  아이가  감기가 
원인으로 몸이 나빠져서 탄광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병문할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사는  마을을 한달 가까이  떨어져 있는 것도  류타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린아이를 남에게 맡겨 놓고 여행간  어머니의 마음과 같았다. 학교는 
겨울방학이었지만  바로 뛰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자기가  있고 싶었다.  9일이 
당직인 것이 류타가 포로시나이에 돌아갈 정당한 구실이 되었다.
  저녁식사를 일찍 끝내고 류타는 난로 옆에 놓아서 따뜻해진 단젠을 당초 무늬 
보자기에 싸서 들고 하숙집을 나왔다.
  하숙집을   나오다  류타는   아키코의  부모와   같이  현관에서   인사했다. 
청년학교의  교사를 하고  있는 아키코의  모친은 항상  근무시간이 저녁이므로 
여유있게 만날 기회가 없었다. 아키코와 같이 명랑한 아키코 어머니는 
  "내년 정월은 부인과 같이 계시겠죠!"
하고  류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오키시마 
선생이
  "맞다, 맞아. 그 미인이 내년 지금쯤은 집밖에까지 나가서 손을 흔들거야."
하며 천천히 말했다. 류타는 모두에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보자기를 다시 들었다.
  오늘 포로시나이에 돌아와서 역에서 곧바로 류타는 제자인 와다나베 아이코의 
문병을 갔다. 아이코의 용태는 생각보다 많이 나아서 식구들이 옆에 없었다.
  "이번에 오실 때 종이접기 좀 갖다 주세요. 선생님!"
하고 아이코는 어리광을 부렸다.
  "그래, 종이접기? 선생님 하숙집에 좋은 색종이가 있으니 내일 갖다 줄게."
  내일이라고 하니까 아이코는 눈을 빛내며,
  "내일! 와- 좋다. 정말 내일이죠?"
  "그래, 아사히가와에 가기 전에 꼭 갖다 주겠다. 기운내서 건강해라."
  아이코는 1학년 때부터 데리고 올라간 붙임성이 있는 아이다.
  "선생님! 손가락 걸어요. 거짓말 하면 절교예요."
  "절교? 무서운데!"
  류타는  서둘러서 걸었다.  일직 교사와  교대시간이  5시 반이다.  하루 종일 
인기척없는  넓은  학교를 지킨다는  것도  큰일이다.  학교에 도착  즉시  일직 
당번과 함께 전교를 순시한다. 그것이 끝나면  요시코로부터 전화가 오기로 되어 
있다. 자연히 발이  빨라진다. 한기가 강해지고, 눈을 밟으니  뽀드득뽀드득 마치 
전분을 밟는 것 같다.
  류타는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멈추어  섰다. 뒤돌아보니 
항상 낯익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을 뿐이다. 모자를  쓴 남자아이가 류타  옆에 
뛰어서 가로등 밑을 지나갔다. 저학년을 맡고부터는  공연히 같은 또래 아이들이 
눈에 뛴다.
  류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류타는  이 눈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겨우 
포로시나이 소학교  정문에 당도했다.  뒷산을 배경으로  교사가 검은  모습으로 
어둠 속에 서 있다. 한  군데 전등불을 킨 교무실의 창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겨울방학 중이라고  해도 봉안전 둘레만은  깨끗이 눈이 치워져  있었다. 류타는 
자세를 바로 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친 대로 90도 경례를 했다. 그때였다.
  "야! 안녕하십니까, 기다모리 선생."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다. 뒤를 돌아본 류타는
  "아, 소장님! 안녕하세요?"
하고 산뜻하게 대답했다. 하숙집 근처에 있는 파출소장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그 
파출소 앞을 지나서 류타는 학교에 다녔다.
  "춥습니다. 일이 생겼습니까? 소장님."
  류타는 평상시와 같은 어조로 물었다.
  "네! 일입니다."
  파출소장은 좀 건성으로 대답하고 눈이 쌓여 밝은 속에서 류타를 쳐다봤다.
  "수고하십니다. 저도 지금부터 당직입니다. 그래서 단젠과 베개 커버를  가지고 
왔습니다."
  류타는 가볍게 웃었다. 파출소장의 눈이 빛났다.
  "바쁘신데 미안합니다.  실은 좀 파출소까지  가 주셔야 되겠습니다. 선생님께 
물을 것이 있다고 본서에서 서원이 와 있습니다."
  "네? 본서에서? 그러나 저는 오늘밤 숙직인데... 일직선생도 기다리고 있고..."
  류타는 내심 무례하다고 느꼈다.
  "아니, 잠깐만 시간내시면 됩니다. 시간은 안 걸립니다."
  파출소장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  이 단젠을  당직실에 놓고  오겠습니다.  일직 교사에게도  부탁해야 
되니까요..."
  가려고 하는 류타의 손을 파출소장이 의외로 강하게 눌렀다.
  "지금 저와 같이 가주시면 됩니다. 그방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잠깐의 일이라면 단젠을 당직실에  두고 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사히가와에서 전화가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압니다, 압니다. 그러나 오늘은 저와 같이 서둘러 주십시오."
  갑자기  위압적인 목소리다.  그때  처음  류타는 자기가  경찰에게  재미없는 
인물로 보인 것이 아닌가 하고 깨달았다.
  "반드시 바로 끝나는 것이지요?"
  류타는 다짐을 받지 않고는 안 된다고 느꼈다.
  "끝날 것입니다."
  평소에 낯익은 파출소장의 목소리가 아니다.
  할 수  없이 류타는  파출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파출소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파출소까지의  1킬로미터의  가까운  거리가 몹시도  멀게  느껴졌다.  무엇을 
조사받을지도 걱정이었으나  일직 교사가 시계를 보며  자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초조하다. 왜  1, 2분이면  된다면서 일직  교사에게 연락하는 
것조차  이  파출소장은  허락하지  않았을까?  만약  허락해 주면  요시코에게 
말이라도 전했을텐데...
  일직 담당자를 몇 분 기다리게 할 것인지 자연 입을 다물고 걸었다.
  겨우  파출소에 도착해서  류타는 안에  작은 다다미  방에 들어갔다.  본서의 
서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젊은 사복차림 남자  두 사람이 그 
방에 있었다.
  "기다모리 류타를 데려왔습니다."
  파출소장이 말했다.
  "수고했소."
  상관이 듯한 형사가 빛나는 눈으로 류타를 훑어본다. 류타는 싫었다. 지금까지 
이런 눈으로 사람을 보는 인간을 만난 적이 없었다.
  "저..."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무엇을 물어보신다고 했는데..."
  그 형사는 턱을 두세 번 문지르더니
  "이야기는 본서에 가서 듣겠소."
하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본서?"
  포로시나이에는 파출소밖에 없다.  본서라면 다키기와나 스나가와나 후카가와, 
또는 이와미자와인가! 류타는 바쁘게 머리 속에서 생각하며,
  "그러나 저는 오늘밤 당직인데요..."
  "그런 것은 말 안해도 알고 있소!"
  형사는 소리를 낮춘다. 그 소리가 기분이 나빴다.
  "기다모리  씨!  나는  형사예요.  오늘  당신이  당직인가  아닌가쯤은  알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당신에게 여교사 약혼자가 있는  것도 잘알고 있소. 나쁘게 
안합니다. 얌전하게 동행해 주십시오. 거기서 묻는 것에 정직하게 대답해 주시면 
곧 돌아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본서라는 곳에 가야만 됩니까?"
  "마지막  기차로 우리들과  친구같이  타고 가면  됩니다.  내가 경찰에  있는 
사람인  것도,  당신이 경찰에  연행되는  도중인  것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좋아요."
  35, 6세로 보였던 얼굴이 갑자기 47, 8세로 보였다.
  "형사 양반! 본서에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학생과 약속을 
했습니다. 내일 꼭 종이접기를 갖다 주기로..."
  "종이접기?"
  형사의 입이 일그러졌다.
  "네, 손가락을  걸었어요. 꼭 가져간다고.  거짓말을 하면 절교라고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탄광병원은 바로 옆입니다. 지금 주고 오면 안 될까요?"
  "안 돼요."
  "그러나 그  아이는 종이접기를 내가 가져올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와의 약속은 깰 수 없습니다."
  와다나베 아이코의 팥알  같은 작은 눈을 떠올리며 류타는 울고  싶었다. 그날 
밤 류타는 누구에게도  헤어지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포로시나이 역에서 사복 
형사와 같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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