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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Casey,Riley 2023. 2. 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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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고지 지음 / 
이 책은 앞으로 물리학 연구의 기본이 될 물리학적 사고법을 주변 현상에 적용해 검증하고 터득한 내
용을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물리학자인 저자는 물리학은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내 문
제가 일어나는 원리를 물리적으로 고찰하고 문제가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학문이라면서, 물리학에서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물리학적 사고법을 다른 분야에서도 잘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 저자 하시모토 고지
1973년생으로, 오사카에서 자랐다. 교토대학교 대학원 이학연구과를 졸업했으며 이론 물리학과 초끈
이론, 소립자론을 전공했다. 1995년 교토대학교 이학부를 졸업하고, 2000년 교토대학교 대학원 이학연
구과를 수료,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교, 이화학연구소, 오사카대학교를 거쳐 2021년부터
교토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초끈이론을 아빠에게 배워 보았다』, 공저로 『딥
러닝과 물리학』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검게’ 보인다. 빨간 셀로판지를 눈에 대고 보면 세상은 ‘빨
갛게’ 보인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사물,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 동일하게 펼쳐지는 세상
이지만, 어떤 ‘눈’,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세상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렇다면 ‘물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의 사물과 현상, 우주 법칙 등등은 어떻게 보일까?
물리학은 이과 계통에서 궁극의 이론으로 통하는 학문이다. 연구 대상은 광활한 우주부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한 소립자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다. 물리학자는 이렇게 세상과
동떨어진 대상을 매일, 그것도 아침부터 밤까지 생각하느라 일반인과는 다른 사고법에 통달하는데, 이
러한 사고법을 ‘물리학적 사고법’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적 사고법은 매사를 추상화하고 기이한 현상
이 발생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직접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과 관측에 나선다. 그리고 자신의 가설이 검증되면 물리학자는 만족감을 느끼고 새
로운 현상을 예언하는데, 이러한 물리학적 사고법은 물리학자 사이에서 전승되고 있다.
이 책은 앞으로 물리학 연구의 기본이 될 물리학적 사고법을 주변 현상에 적용해 검증하고 터득한 내
용을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물리학자인 저자는 물리학은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내 문
제가 일어나는 원리를 물리적으로 고찰하고 문제가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학문이라면서, 물리학에서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물리학적 사고법을 잘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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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 차례
감수자의 말 ­ 물리학자의 머릿속으로 떠나는 여행
저자 서문 ­ 소립자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까지, 종횡무진 넘나드는 궁극의 ‘물리학적 사고법’
이 책을 읽기 전에
제1장 카오스를 즐기는 물리학자의 인생
에스컬레이터 ‘병목 구간’ 해결에 필요한 학문은? / ‘무한한 가능성’은 존재할까? / 소립자 물리학의 숫
자는 수학의 숫자와 다르다? / 만두피와 만두소 어느 쪽도 애매하게 남지 않고 딱 맞게 만두를 빚는
기발한 방법은? / ‘초전도 건물’에 숨겨진 ‘경로 적분’의 비밀 / 마트에서 충돌 사고를 방지하는 ‘물리학
보행법’ / 시간은 1차원일까, 2차원일까? / 물리학자는 모두 ‘근사병 환자’다? / 한자에 좌우 대칭 글자
가 많은 이유가 ‘중력’ 때문이라고? / 우리 행동을 지배하는 힘, ‘히스테리시스 현상’의 비밀 / 과학 분
야에 멋진 전문 용어가 많은 이유 / 왜 인간은 직선을, 자연은 곡선을 창조할까? / “당신 인생은 카오
스 같네요.”라는 말을 듣고 기뻐 춤추는 까닭 / 현미밥 구멍과 게 구멍이 거의 같을 수밖에 없는 물리
학적 원리는? / 다코야키 반지름과 장수풍뎅이 크기에 상한이 존재하는 이유 / 물리학자는 어떻게 사
고하는가?
제2장 나를 물리학자로 만들어 준 것들
수학자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직업’이다? / 나를 물리학자로 키워 준 ‘블록 놀이’ / 물리학자는 왜
‘미로 그리기’에 매료될까? / ‘근시’가 오히려 편리한 생활 도구라고? / 숫자 해석에 물리학자의 삶이 좌
우된다 / 물리학자의 칠판 100배 활용법 / 연구 논문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다 / 사회에 도움
이 되는 것은 물리학이 아닌 ‘물리학적 사고’ / 물리학자가 고독하지 않은 이유는? / 셜록 홈스를 흉내
내는 과학자 vs. 셜록 홈스 같은 과학자 / 열차와 소립자, 철도와 우주의 관계 /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인다? / 프로그래밍 언어를 싫어하는 과학자 / ‘수식’과 ‘여성’ 중 더 아름다운 쪽은? / 여행 가방 바
퀴 소리와 기하학의 상관관계 / 사용 언어를 전환하면 인격도 전환된다?
제3장 물리학자의 기상천외한 생태 엿보기
상식의 경계를 뛰어넘으면 새 이론이 탄생한다? / 물리학자는 왜 일반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까?
/ 구름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구름에 끌리는 이유 / 물리학자의 ‘사용자 사전’ 훔쳐보기 / 만보계 속이
기 실패가 과학 발전을 뒷받침하다 / 수식과 소립자 의인화하기 / 이론 물리학자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으면 왜 위험할까? / ‘마늘 까기’에서 미분의 원리를 발견하다 / 물리학은 ‘이론’과 ‘실험’ 두 바퀴로
굴러가는 학문이다 / 직소 퍼즐을 끔찍이 싫어하는 이유 / 물리학자는 왜 ‘고대 문자’에 열광할까? / 물
리학자의 독특한 손수건 세탁법 / 귤이 썩지 않도록 보관하는 구조 만들기 / ‘꽃은 왜 아름다울까?’라
는 질문에 대한 물리학자의 답변 / “마지막 강의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이다.”
문진표
사고법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분에게
저자 후기 ­ 이토록 즐거운 물리학자의 세계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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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카오스를 즐기는 물리학자의 인생
에스컬레이터 ‘병목 구간’ 해결에 필요한 학문은?
여러분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디딤판 오른쪽에 서는가, 왼쪽에 서는가? 또 디딤판에 서 있는 편인가,
걸어 올라가는 편인가? 애초에 에스컬레이터 디딤판 한쪽에만 서고 다른 한쪽은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
람을 위해 비워 둔다는 암묵적 규칙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리가 있다. 움직이는 에스컬레
이터에서 걷는 행위가 위험하기도 하고, 지하철역처럼 붐비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에스컬레이터에
타려고 몰려드는데 죄다 한쪽에만 서느라 에스컬레이터 진입로가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못하도록 규칙을 바꾸면 어떨까? 이 문제는 이미 사회에 정착된
습관을 바꾸는 일이라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면 획기적인 ‘디자인’ 변경으로 해결책을 끌어
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과학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은 에스컬레이터를 제작할 때부터 한 줄로 서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디
딤판이 두 줄로 설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한쪽’에 선다는 개념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처음
부터 한 줄로 설 수밖에 없다면 어느 쪽에 설지 망설일 필요가 없다.
또 조금 더 자극적인 해결책은 에스컬레이터 계단의 높이를 두 배로 늘리는 방법이다. 한 계단의 높이
를 늘리면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오르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도
시 교통 분야에는 문외한이면서도 이런 기술 디자인적 해법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즐겁다. 한 계단
높이를 두 배로 늘리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면 어쨌든 한
번 타 보고는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홍콩에 출장을 간 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
에 사람들이 양쪽으로 서 있는 것 아닌가. 바쁜 사람들도 많을 텐데 왜 홍콩에서는 사람들이 에스컬레
이터에서 양쪽으로 설까? 궁금증을 안고 에스컬레이터에 타 보았다. 이유는 단번에 확인되었다. 에스
컬레이터 속도가 우리의 에스컬레이터와 비교해 체감상 두 배 정도 빨랐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속도가 워낙 빨라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섣불리 걸어 다닐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을 양쪽에 세우기 위해 어떤 디자인의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지, 어떻게 개
량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높인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짜릿한 희열을 느낀
나는 홍콩에서 굳이 탈 필요도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이나 탔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 자신
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졌다. 나의 사고방식과 관점이 너무 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전문성은 사고방식을 고정화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참고로 흔히 있는 이과계 유머 중에
폭죽을 쏘아 올렸을 때 반응을 보면 전공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폭죽이 터져 아름답고 큼지
막한 불꽃이 밤하늘 위로 솟아오를 때 일반인이라면 감탄사를 쏟아 낸다. 하지만 이과 전공자들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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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번 불꽃은 마그네슘이 많군.” 이렇게 말하면 화학과. 그리고 “소리가 도달하는
속도로 보아 발화점은 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군.” 이렇게 말하면 물리학과. 또 “지표면에서 올려다본
각도가 30도인 걸 보니 삼각 함수를 사용하기 적당하겠어.” 이렇게 말하면 수학과라는 식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유머도 우스갯소리도 아닌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어쨌든 전공에 푹 빠져 있으면 아름다
운 불꽃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다.
입시를 위한 수학 문제와 달리 세상의 ‘문제’에는 알고 보면 수많은 풀이가 존재한다.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법, 물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법, 감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법 등 각양각색이다. 문제를 풀
기 위한 전제의 범위와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진짜 답’이라
는 게 존재한다면 여러 종류의 해법을 조합한 답이 아닐까. 불꽃이 아름다운 건 다양한 해법을 통합했
기 때문이다. 홍콩의 고속 에스컬레이터는 사회와 물리가 조합된 해법이었다.
문제와 동시에 답이 존재한다고 수학자는 말한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워도 반대로 해법이 먼저
존재하는, 풀 수 있는 문제를 찾는다는 발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무한한 종류의 문제가 있고
해법은 나밖에 모를 테니 말이다. 우연히 내가 풀 수 있고 그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다면 운이
좋다. 오늘도 에스컬레이터에 한 줄 서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당신 인생은 카오스 같네요.”라는 말을 듣고 기뻐 춤추는 까닭
“네가 하는 말은 완전 카오스야.”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울컥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카오스’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잠시 ‘카오스’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당
신 인생은 카오스 같네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어깨춤을 출 테니 말이다. 물론 나는
혼란을 즐기지 않는다. ‘카오스’라는 개념에 대한 인상이 일반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내 전문 분야인 물리학이란 과거의 상태를 알고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식으
로 변할지, 그 변화를 예측하는 게 물리학의 임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미래 일을 훤히 내다보는 척
척박사처럼 들리는데, 물론 미래 예측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다. 물
리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카오스적인 대상과 카오스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나눌 수 있다. 카오스적인 대
상은 두 가지 성질을 겸하고 있다. 첫째, 초기 조건의 민감성, 둘째, 에르고드성(ergodicity)이다. 말로
하니 어려운데 알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다. 인생에 비유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카오스의 첫 번째 성질인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란 최초의 상태를 아주 약간만 바꾸어도 결과가 극적으
로 달라진다는 가설이다. 산꼭대기에 공을 살포시 내려놓았다고 상상해 보자. 공을 살짝 동쪽으로 밀지
서쪽으로 밀지에 따라 굴러가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돌이켜보면 산꼭대기의
공과 같은 순간이 몇 차례나 있었다.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이처럼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할 때가 있다.
아주 약간만 다른 판단을 해도 인생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물론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때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될 뿐, 그 당시에는 알 길이 없다. 즉 이 순간도 카오스의
순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카오스 이론을 알고 나면 카오스가 아닌 인생은 시시하다. 카오스의 초기 조
건 민감성이 있기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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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카오스의 두 번째 성질인 에르고드성은 ‘온갖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위상 공간 중의
한 점이 에너지가 같은 면 위를 구석구석 운동하는 성질을 설명하는 용어인데, 시간이 가면 어떠한 가
능성이라도 시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참고로 유명한 카오스 시스템
의 예로 이중 진자 실험이 있다. 일반적인 진자는 정해진 구간을 왕복 운동할 뿐이라 카오스가 아니다.
영구히 같은 구간을 오가는 따분한 운동이다.
그러나 진자 아래에 진자 하나를 추가하기만 해도 카오스 운동으로 변한다. 위의 진자 주위를 아래 진
자가 빙글빙글 돌기도 하는 등 관찰자가 질리지 않도록 다양한 운동을 보여 준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이중 진자 형태를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를 그리며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현상이 에르고
드성이다. 인간의 인생은 유한하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말도 지겹도록 듣고 있다. 만약 인생이 카오
스적이라면 시간만 허락된다면 자신의 온갖 가능성을 시험해 보며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
가.
흥미롭게도 같은 물리 시스템에서도 카오스를 발생시키려면 에너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져야 한
다. 인생을 카오스적으로 만들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한 셈이다. 만약 인생이 카오스라
면 모험은 아주 약간의 ‘외도’로 충분하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 아주 먼 훗날에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
어 놓을 수도 있다. 물리학자인 내가 이렇게 수필을 쓰는 것도 카오스의 초기 민감성을 약간 바꾸는
‘카오스’ 실험이라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어차피 내 인생이
니 흥미롭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카오스적인 인생을 위하여, 건배!
물리학자는 어떻게 사고하는가?
다음은 물리학회 가는 길에 지인과 내가 주고받은 문자 대화다. “회의장행 버스, 몇 명 타지도 않았는
데 숨 막혀 죽겠군.”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대답했다. “유효 숫자 1자리 60명.” 다시 침묵이 이
어지고 지인이 말했다. “내일은 버스 타러 오늘보다 25분 일찍 오자.” 그런데 이는 물리학자들의 전형
적인 일상 대화다. 일본 물리학회 회의장으로 가는 버스가 늘 콩나물시루처럼 붐비는 것이 전형적이라
는 말이 아니다. 대화 뒤에 도사린 ‘물리학적 사고법’이 전형적이라는 말이다. 일본에 있는 1만 명 이
상의 물리학자는 많든 적든 물리학적 사고법이 습관화되어 있다. 이 사고법은 물리학 연구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다시 말해 과학 발전의 배경에는 과학자 특유의 사고법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업계 사람들은 다 알아도 일반인은 모르는 업계 비밀이나 원천 기술 비슷한 개념이다. 대학 물리학 강
의에서도 사고법은 따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물리 각론을 수업할 뿐이다. 나도 물리학적 사고법을
교수님에게 배운 기억이 없다. 대학원에 들어가 혼자 연구 논문을 쓰게 되면서 비로소 비법을 직접 다
루기 시작했다. 우선 선배나 교수님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나만의 방법을 개발했는데,
여기서 물리학적 사고법의 비결을 아낌없이 공개하겠다.
물리학적 사고는 크게 4단계로 이루어진다. 문제 추출, 정의 명확화, 논리 연역, 예언. 이 4단계를 거
치며 사고함으로써 물리학 연구를 차근차근 진행한다. 앞에서 소개한 만원 버스 안에서의 대화는 이
물리학적 사고법에 입각한 문제 해결이었는데, 이 사고법은 물리학 연구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상황
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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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비결 1 - 문제 추출: 문제는 일반적으로 다중적이고 다양하기에 적절한 문제를 추출해야 한다. 여러 문
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정리하는 방법과 자신의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나
타내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오간 지인과의 대화를 살펴보자. ‘죽겠군’이라는 부분은 의학
부에 맡기고, ‘숨이 막힌다’는 표현은 문학부에 맡긴다. 자연 과학부용으로 추출된 문제는 ‘버스 한 대
에 사람을 태울 때 몇 명까지 탈 수 있을까? 유효 숫자 한 자리로 답하시오.’가 된다.
비결 2 - 정의 명확화: 문제에 존재하는 애매한 표현이 과학에 방해가 되므로 적절한 정의가 필요하다.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정의가 필요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
로 해결하기 쉽게 정의해야 한다. 가령 버스에서 오간 지인과의 대화를 적용해 보자. ‘버스’는 ‘3 x 10 x 2
미터인 직육면체’라고 정의한다. ‘사람’은 ‘질량 70킬로그램인 물로 이루어진 구’라고 정의한다. 그러면
지인의 발언을 자연 과학부 언어로 번역하면 ‘3 x 10 x 2미터의 직육면체에 질량 70킬로그램인 물로 이
루어진 구를 채우면 구는 몇 개 들어갈까? 유효 숫자를 한 자리로 답하시오.’가 된다.
비결 3 - 논리 연역: 문제가 정의되면 문제 풀이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풀이에도 비법이 있다. 오로지
그 문제 풀이에 집념을 불태워야 한다. 자신의 전문성이 크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해 지인이 문제를 낸 지 30초 만에 유효 숫자 한 자리로 60개의 구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 냈다. 여기서 계산 방법을 구구절절 늘어놓아 여러분을 따분하게 만들지는 않으련다.
비결 4 - 예언: 물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에 입각한 예언과 실증이다. 자신의 계산과 이론에 따라
실제 실험과 관측으로 실증해 이론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바람직하다. 마지막 지인의 발언 “내
일은 버스 타러 25분 일찍 오자.”는 물론 예언이다. 지인은 머릿속으로 내 계산 결과인 ‘60명’이라는
숫자와 학회 회의장에 모이는 물리학회 회원 수 그리고 버스가 몇 분 간격으로 출발하는지 등의 숫자
를 조합했을 터이다. 지인의 마지막 발언 후 나는 히죽 웃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32분’이라는 답이 나
왔고, 그 답이 지인이 말한 답과 얼추 일치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적 사고법은 우아함을 경쟁하는 종목
이다. 서로 다른 두뇌로 문제를 풀어 찾아낸 답이 일치한 순간, 그 문제와 답에 찬사가 쏟아진다.
다음 날 아침, 나는 32분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지인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또 싱긋 웃었
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25분 전에 온 지인과 함께
만원 버스에 올라탔다. “어제 근삿값 추정, 어딘가 오류가 있었나?” “그러게, 유효 숫자가 문제였나?”
“아니면, 구를 근사로 잡은 게 문제였나?” 이렇게 물리학적 사고법은 단련된다.

나를 물리학자로 만들어 준 것들
나를 물리학자로 키워 준 ‘블록 놀이’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았던 나는 체육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뛰어놀
지 않고 주로 집에서 노는 아이였다. 그래서 ‘레고’ 같은 블록 장난감이 친구였다. 사실은 지금도 매주
초등학생 딸을 살살 달래 아빠가 같이 놀아 준다는 명목으로 레고를 가지고 논다. 블록 놀이는 초등학
생 시절부터 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은 취미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 붙인 취
미가 무섭다. 블록 놀이는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서 진정한 의미의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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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알다시피 ‘레고’는 작은 블록을 조합해 다양한 사물과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이다. 참고로 레고는
내 용돈을 모아 살 수 있는 저렴한 장난감이 아니었고, 엄한 아버지가 무서워 차마 레고를 사 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다이야 블록(DiaBlock)’을 가지고 오셨다. 회사 동료분이 자
신의 자녀들은 다 커서 가지고 놀 사람이 없다며 주셨던 모양이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혼자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블록 놀이가 나를 물리학자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블록은 매우 단순하며 종류가 적은 구성 요소를 대량으로 활용해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만들어 내는
놀이인데, 인류가 발견한 17종류의 소립자로 이 우주에서 보이는 부분은 얼추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은 블록 놀이와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소립자는 블록이고 소립자 물리학은 결국 블
록 놀이인 셈이다. 한편 블록은 구성 요소의 조합으로 다양한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어디서 본 적 있는 모양을 모방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트릭을 설치할 수 있다. 17종
류의 소립자가 인류의 이 모든 현상을 만들어 내듯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전함과 자동차 모양을 블록으로 만들어 아버지에게 자랑삼아 선보이곤 했
다. 그런데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전함이든 자동차든 디테일을 살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게 되
었다. 그런데 블록의 최소 크기는 이미 정해져 있어 완성작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차
츰 작아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애초에 블록 수는 정해져 있어
거대한 작품은 만들 수 없고 디테일보다는 특징을 잡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정된 부품
으로 어떻게 자동차처럼 보이는 작품을 완성할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매달렸다.
그러다 차츰 블록 구조물에 기능을 부여하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상자 모양의 미로를 만들어 유리
구슬을 꺼내는 게임을 하거나, 공중에서 어떻게 긴 블록을 연결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내진성을 높
인 구조물을 만드는 식으로 궁리를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형에게 칭찬을 받은 블록 완성품
이 내 블록 사랑에 불을 붙였다. 전신 작동이 가능한 로봇이었는데, 타이어와 경첩 블록 등 원래 움직
이도록 생산된 블록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모든 관절이 움직이는 인체 모형이었다. 우러러보던 사촌
형에게 칭찬을 받아 우쭐해졌던 이 사건이 나를 소립자 물리학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2016년 도쿄에서 열린 아트사이언스 행사에 강사로 초청받아 강단에 올랐을 때 “어린 시절을 어
떻게 보내면 선생님처럼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레고”라고 바로 대답했
는데, 건축가와 예술가 등 다른 강연자들도 짠 듯이 “레고”라고 대답해 행사장이 술렁였던 기억이 있다.
한편 지난주에는 초등학생 딸과 레고 블록을 얼마나 높이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을지를 경쟁했다. 딸도
나를 닮은 모양이다. 협력해서 쌓기 시작해 구조가 안정된 형태를 찾으며 조립하다 보니 천장까지 닿았
다. 우리 손으로 쌓은 우리 집 기둥을 바라보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건물처럼 보였다. 그래, 진짜 고층 건물도 이런 식으로 쌓아 올려서 완성하겠지.
그때 서 있는 구조물에 딸이 발길질을 했다.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블록 기둥. “뭐야!” 딸과 마주 보며
웃었다. 물론 놀이가 끝나면 부수는 게 블록 놀이의 규칙이다. 가족에게 보탬이 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 뿐이다. 자신의 손과 머리로만 완성한 블
록의 감촉과 감동을 남기고 모조리 무너뜨린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블록 놀이는 과
학 작업의 일부와 놀랄 정도로 닮았다. 때때로 내 양손이 사실 블록으로 만들어졌다고 상상할 때가 있
다.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생각은 아니다. 우리 손은 소립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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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17종류와 소립자: 이쯤에서 여러분을 소립자 물리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머나먼 옛날, 고대 그리스 사
람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상상해 그 요소들을 ‘아톰’이라 불렀다. 그리고 영어의 ‘아톰
(Atom)’은 한자로 ‘원자(原子)’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 무렵까지 다양한 종류의 원자가 발견
되어 원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요소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 후 과학의 발전으로 원자는 더 잘게
쪼갤 수 있음이 판명되었다. 과학자들은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를 쿼크(Quark)와 전자로 추정하고,
현재 인류의 기술로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를 ‘소립자’라 부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류가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 실험에서 파악한 소립자는 고작 17종류밖에 안 된다. 왜 놀랍다고 표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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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1밀리그램에도 약 10 개의 전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전자들이 ‘모두 같은 전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각 전자가 다르고 각기 다른 물리 법칙을 따른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과학의 발전은 없었으리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면 세계가 매우 단순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상해 보자. 우주에 존재하는
소립자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고, 수는 적지만 중요한 17종류를 인류는 알고 있다. 이렇게 작은 지구라
는 별에 사는 생물이 우주에 관해 이렇게나 잘 알고 있다니. 상상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상상에서 태어
나는 과학.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쩌면 내일이라도 새로운 종류의 소립자가 발견될 수도 있다는
게 과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이자 과학자로 사는 행복이 아닐까.
열차와 소립자, 철도와 우주의 관계
열차가 홈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열차만 보고도 감격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나는 어엿
한 ‘뎃짱’, 철도 마니아다. 물리학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철도 회사에 취업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학원
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무렵에 취업 활동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신칸센 차장을 인터뷰한 적도 있다. 철
도 마니아에도 다양한 분류가 있다. 팬끼리 만나면 우선 어느 철도 잡지를 좋아하는지, 소속과 분류를
서로 확인하는 절차부터 거친다. 일본에서는 『철도 저널』, 『철도 팬』, 『철도 픽토리얼』 중 어느 잡
지를 구독하는지를 묻는 게 불문율이다. 일반적으로 묻는 분류로는 노선 승차 팬, 사진 촬영 팬, 전철
차량 팬, 전차 소리(발차 멜로디나 안내 방송 등) 팬까지 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카테고리에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배선과 노선을 좋아하는 철도 마니아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지역 긴데쓰 전철과 국철 배선도를 공책에 그리며 놀았다. 배선도는 노선도와 다르
다. 노선도를 더 자세하게 만든, 노선 자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 배선도다. 노선이
나뉘는 부분은 포인트라 부르고, 노선이 실제로 둘로 갈라진다. 지금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더블 슬립
포인트(교차시에 어느 방향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발견하면 흥분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보습 학원에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에 매일같이 긴데쓰 전철 제일 앞 차량에 타고 최대한 앞에 서서 차
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노선과 신호기 연계를 기억해 집에서 연습한다. 운전석에 앉은 기관사
와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어도 무척 친근한 존재였다. 왜 나는 철도를 좋아할까?
물리학자라는 직업의 특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물론, 과학 기술을 활용해 열차가 움직이고 과학 기
술의 기초는 물리학이라는 의미에서 관련이 있지만,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의미에서 공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량은 모터에 전기를 흘려보내 움직인다. 모터는 초등학생이 가지고 노는 장난
감과 같다. 모터가 들어간 철도 장난감도 많다.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며 손에 익은 모터가 저 거대한
철도 차량을 움직인다. 그야말로 굉장한 것이다. 여기에 물리학과의 공통성이 있다. 물리학에서는 우
선 우리 주변의 물질이나 물체의 운동과 성질을 조사해 수식으로 만든다. 그 과정을 물리학자는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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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감 모형’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적용 범위를 더 넓게 확장해 생각을 확대해 나간다.
예로 뉴턴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현상을 지구를 도는 달의 운동까지 확대 적용해 만유인력을 발
견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이처럼 일상과 가까운 현상을 관장하는 원리를 확대해 적용하는 일
이야말로 물리학의 본질적 작업의 하나다. 모터를 그대로 크게 만들면 철도 차량이라는 커다란 쇳덩어
리까지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거대한 쇳덩어리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사람, 그 사람이 철도 기관사
다. 우리 일상과 친숙한 대상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 한계까지 사고를 확장해 가는 물리학의 기본과 철
도의 매력은 닮은꼴이 아닐까.
한편 초등학생이던 나는 기관사 아저씨를 꾸준히 관찰하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관사 아저씨는
포인트에 접어들어도 직접 포인트로 진행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누군가 이미 진행 방향을 정해 놓은,
그 정해진 선로 위를 달리거나 멈출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정해 놓았을까? 시각표라는 두툼한 책을
그 무렵 처음 알게 되었다. 서점에서 발견한 그 책에는 빼곡하게 열차 운행표가 게재되어 있었다. 배
선도는 실려 있지 않아 스스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지만, 각각의 열차가 언제 어디를 달리는지 손에 잡
힐 듯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운행표 작성 이면에는 배선도가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소름 끼치는 프
로그램이다.
이걸 만든 어른은 정말로 천재라고 직감했다. 열차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고려하고 승객의 수와 목
적지를 감안해 극한까지 최적화된 세계, 이 표를 작성한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 막연히 그렇게 믿게
되었다. 실제로 급행열차에 추월당하는 일반 열차를 타고 학원에 다니던 나는 통과 대기 시간을 설정
한 사람을 언제나 원망했다. 참고로 소립자 물리학에서도 열차 운행 시간표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
‘파인먼 도형’이라는 이론으로, 소립자 운행표다. 우리 몸과 우주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소립자는 결합
하거나 쪼개지거나, 우주 공간 어딘가를 오가며 운동한다. 어떠한 운동이 가능할지를 분류하려면 파인
먼 도형을 그려, 그 도형을 바탕으로 소립자의 운동을 계산하는 수밖에 없다. 열차와 소립자, 그리고
철도와 우주. 이들의 유사성은 인간 발상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리학자의 기상천외한 생태 엿보기
만보계 속이기 실패가 과학 발전을 뒷받침하다
어이쿠, 오늘은 2,000보도 걷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을 주시하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날씨가 궂
어서 아침 산책을 걸렀고, 점심 먹고 나서는 회의 하느라 바빴다. 저녁 식사 후에는 딸아이가 졸라서
못 이기는 척 같이 비디오 게임을 하며 놀아 주느라 밤 산책을 쉬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
에 앉아 손끝만 까딱까딱 움직이는 운동 중이다. 자업자득이다. 이런저런 문헌에 따르면 성인 남성이
건강 유지를 위해 하루에 필요한 걸음 수는 6,000보에서 1만 보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2,000보라는 숫자는 얼마나 한심한지. 이론 물리학자라면 통상적으로 계산 결과의 자릿수만 맞으면 기
뻐하겠지만, 내 건강에까지 이론 물리학을 적용하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오늘 행동을 돌아본 나는 급기야 스마트폰의 만보계 기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걸음 수가 그
렇게 적을 리가 없다. 집안에서도 종종거리며 돌아다녔는데, 그걸 빼먹은 게 아닐까. 참고로 스마트폰
에 내장한 만보기 기능은 특수한 장치다. 가속도 센서와 지자기 센서를 이용해 걷기에 따라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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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에서 발생하는 운동 변화를 읽어 내 ‘걷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파형일 때만 ‘1보’로 계산한다. 그
대강의 원리는 나도 과학자 나부랭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움직임이 1보로 계산되는지는
내 손으로 해당 파형을 검출하는 프로그래밍을 해 본 적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래서 스마트폰 만보계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다양한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집안일을 할 때처럼 10보가량 움직인 다음 방향을 바꾸고 다시 10보 걷는 식으로 운동을 반복해 보았
다. 또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화면을 보면서 걸을 때 걸음 수가 계산되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또 바지
의 어느 쪽 주머니가 효율적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주머니가 많은 바지로 갈아입었다. 실험 결과 안타
깝게도 스마트폰은 정확하게 걸음 수를 계산한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을 칭송해야 마땅한 상황이려나. 아쉽게도 실패한 내 실험을 위해 건배! 나는 완패했다.
흥미롭게도 손에 든 스마트폰을 살랑살랑 흔들어도 걸음 수는 늘어나지 않는다. 꼼수가 통하는지 실험
하며 문득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만보계를 빌린 적이 있다. 그 시절 만보계는 기계식
이라 기계 안의 추가 진동해 걸음 수를 검출하는 방식이었다. 형제 중 누가 가장 많이 걸었는지 재미
로 내기를 했는데 내가 획기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다리 떨기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 언저리에 기계식
만보계를 얹어 놓고 어른들이 보면 복 달아난다고 당장에 잔소리 폭격이 쏟아질 정도로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고, 손으로 만보계 기울기를 최적의 각도로 설정해 주자 눈에 띄게 쭉쭉 숫자가 올라갔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완전히 똑같은 실험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쩐지 뿌듯해졌다. 만보계는 분명
히 과학적으로 진보했고, 내 실험 실패가 과학의 발전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글픔도 느꼈다. 과학 기술은 확실히 극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가령 온 인류가
SNS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모습은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걸음 수
를 계산’하는 인간의 행위 그 자체, 그리고 걸음 수의 정확한 측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도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노 다다타카는 한 걸음의 보폭을 정확히 69센티미터로 걸어서 일본
전국을 측량했기에 이 행위는 몇 세기가 지나도 변함없는 측량의 잣대로 사용될 수 있었다.
물리학에서도 우주 먼 곳을 알고 싶어서,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알고 싶어서 등의 기본적 욕구는 수 세기가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수천 년 동
안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각각의 탐구가 우주 물리학, 소립자 물리학, 물성 물리학을 낳았다. 과학 기
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생활을 누리는 우리 현대인이
고대 그리스인들과 똑같은 의문을 갖고 그것을 과학으로 탐구하는 건 왜일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려면 산책밖에 없기에 집을 나섰다. 어두운 밤길을 오른발 왼발 교대로 내밀
며 터벅터벅 걷는다. 불쑥 답이 떠올랐다. 인간의 사고는 걷기, 만지기, 보기가 가능한 신체에 제한되
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궁극적 우주에 관한 의문은 우주에 가고 싶다, 눈으로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는 인간 신체에서 우러나오는 욕구다. 인간의 몸은 몇만 년이나 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변의 연구
주제가 인류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스마트폰 만보계 숫자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산책길에
본 밤하늘은 고대 그리스의 밤하늘 그리고 태곳적 인류의 밤하늘까지 확실하게 이어져 있었다.
“마지막 강의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이다.”
‘마지막 강의’라는 수업이 있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는 교수가 마지막에 하는 특별한 강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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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2020년 봄에 퇴직하신 K교수님은 마지막 강의에서 “실험실 연구원은 인생을 마지막 강의에서 이야기
하고, 이론실 연구원은 필생의 공력을 담은 물리 이론을 마지막 강의에서 이야기한다.”고 단언하며, 실
험실 출신인 본인의 인생을 말씀하셨다. 그 후 어느 이론 물리학 교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강의에서 K
교수님의 말씀처럼 인생을 쏟아부은 물리학 수식 보따리를 잔뜩 풀어놓으셨다.
한편 퇴직하신 T교수님은 “마지막 강의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요컨대 이는
사회생활의 종언을 선언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혹은 살아 있는 동안에 신세 진 사람들에게 감사 인
사를 전하는 기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 마지막 강의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날을
상상하자 마음이 몹시 언짢아졌다. 왜냐하면 마지막 강의에서 자주 나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올랐
기 때문이다. “교수님에게 연구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당황하는 교수
도 많고, 미리 답변을 준비해 두는 교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질문이 과거형인 것이 마뜩잖다. 교수
직에서 퇴직한다는 건 연구도 끝난다는 뜻으로 여겨져 이 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못마땅하다.
얼마 전에 인터뷰에서 돌발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에게 연구란?” “취미입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내게 연구는 취미다. 즐겁고 신이 나서 멈출 수가 없는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특
정한 나이가 되면 끝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 강의에 거부감을 느끼
는지도 모른다. 한편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연구자상(像)’이 있다. 그것은 연구란 오
랜 세월을 고생스럽게 견디는 일로 그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연구 성과라는 영광을 손에 넣는다는 ‘연
구자상’이다. 그런데 분명 어느 정도는 연구에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지만, 실제로 연구 그 자체
가 고통스럽지는 않다. 연구가 즐겁기에 힘들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할 수 있다.
일정 정도의 고통 후에 모종의 발견이 있고, ‘어쩌면 이걸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닐까’라
는 ‘은밀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연구가 마약 중독처럼 고질병이 되는 이유다. 그리고 이 사
이클을 몇십 회씩 경험하면 고생을 고생이라 여기지 않게 되고, 아주 긴 안목으로 연구의 고통과 발전
양쪽을 즐기는 자아가 형성되어 간다. 이것이 연구가 취미가 되는 경지다. 어디까지나 내 예상인데, 연
구가 취미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는 나 말고도 많지 않을까. ‘취미’라고 부르면 국비를 사용하는 연구의
정당성이 사라지기에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즐거움이 연구를 ‘드라이브한
다’는 의미에서 ‘취미’가 연구로서의 꼴을 갖추어 나간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이렇게 연구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학창 시절에 ‘고생→발견→고생→발견→……’
이라는 연구에 중독되는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교
수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사이클에 마피아 조직과 유사한 인적 조직도 포함되어야 하는데, 바로 물리
학회다. 나도 예외는 아닌지라 대학원에 진학하자마자 내가 말한 사이클을 체험하는 코스로 곧장 던져
넣어졌다. 은사이신 H교수님께 어느 물리학 문제에 관해 여쭈어보았을 때였다. “하시모토 군, 제법이네.
자네가 직접 풀어 보지 그러나?” 그래서 몇 주에 걸쳐 몇 가지 계산을 마치고 나서 결과는 내가 예상
한 대로였다. 나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보무도 당당하게 H교수님께 보고하러 갔다.
그러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참 잘했네. 그렇다면 자네 이 문제도 한번 계산해 보지 않겠나?” 이렇게
비슷한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마약과 같은 효과가 발생했다. 어느새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직
접 푸는 완전히 자립한 마약 상습자가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연구자라 부른다. 마약
에서 손을 씻기는 정말로 어렵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강의에서 ‘과거형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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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면 연구는 한평생 과거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지막 강의는 퇴직하는 본인이 즐기는 자리가 아니다. 듣는 사람들이 즐기는 시간이다. 마피
아 보스인 교수님, 즉 자신을 이 악마의 사이클에 끌어들인 교수가 어떻게 이 마약의 수렁에서 발을
빼는지,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듣는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지막 강의도 즐겁게 고대할 수 있
다. 악마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예순다섯 살의 아저씨를 실컷 보여 주겠다. 너희
들, 똑똑히 봐 두어라. 이 ‘연구’라는 마약에서 빠져나올 도리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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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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