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영화,리뷰,

김용 녹정기04

Casey,Riley 2023. 2. 19. 13:20
반응형



1. 친구의 마누라

 유일주는 이 소년이 자기의 손아귀에서 도망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손을 놓고 물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소?"
위소보는 그에게 잡혔던 팔이 아프고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비
수를 신발목에 꽂고  손목을 보니 벌겋게 부어올랐으며  손가락 자국이 
완연하게 나 있었다. 위소보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목왕부의 사람들은 그저 남의 손목  잡는 것만 좋아하는군. 그대도 마
찬가지이고 백한충 역시 마찬가지였지. 목가권  가운데 이 일초 구조수
(龜조手)는 역시 대단한걸?"
그는 구조수라고 이야기할 때 구 자를 애매모호하게 발음했다.
유일주는 미처 알아듣지를 못해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방사매는 내가 그녀에게 준 은비녀를 잃어 버린 후, 어떻게 됐다는 거
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발톱에 낚아채인  나머지 숨돌릴 겨를도 없구려.  좀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할 수 없겠소? 어쨌든 간에 그대가 방소저를 아내로 맞아들
이으냐 못하느냐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외다."
이번에 유일주는 발톱이라고 부르짖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
나 그가 화를  낸 진정한 원인은 위소보가 방이를  속여 방이로 하여금 
위소보에게 시집가겠다고  응낙케 한 사실에 있었다.  따라서 주둥이를 
놀리는 것에 대해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위소보가 방소저를 마누라로 맞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크게 
관계가 있다고 하자 무척 관심이 쏠려 물었다.
"그 후 어쨌다는 거요?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말해 보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어찌 되었든 앉아서 잠시 쉬어야 이야기 할 기운이 생기지 않겠소?"
유일주는 할 수 없이 그를 따라 숲가의 한 그루 커다란 나무 아래에 이
르렀다. 그리고 위소보가 나무 뿌리에 걸터앉자 그 즉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의 곁에 앉았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쉰 다음 물었다.
"애석하군, 애석해!"
유일주는 즉시 걱정되어 물었다.
"뭐가 애석하다는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사매가 이곳에  없는 것이 애석하다는 말이외다.  그렇지 않고 
만약 그녀가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이곳에 앉아서 그대와 더불어 
깨가 쏟아지는 말을 주고받는다면  그녀가 얼마나 기뻐하겠느냔 말이외
다."
유일주는 그만 흐뭇해져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직이 웃음소리를 흘
리며 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그와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친히 말하는 것을 들었소이다.  그 날 은비녀를 잃어버리게 되었
을 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들이 지키는 세 곳
의 관문을 뚫고 지나갔었소. 몸에 중상을  입은 몸이었지만 세 명의 시
위들을 죽이고서 그 은비녀를 되찾아 오더구려. 그래서 내가 말했소. '
방소저, 그대는 너무도 우둔하구려. 은비녀 하나가 도대체 몇푼이나 되
기에 생명을 건단 말이오? 내가 그대에게 일천 냥의 은자를 줄 것 같으
면 그와 같은 은비녀를 단숨에 삼사천 개라도 살 수 있을 것이외다. 그
대는 매일 머리에다가 열개를 꽂을 수도 있으며 나날이 다른 것을 꽂을 
수 있을 것이외다.'그러자 방소저는 말했소. '그대와 같은 어린애가 무
엇을 안다고 그래요?  이것은 나의 다정한 유사형이  나에게 준 것이란 
말이에요. 그대가 설마하니  나에게 천개 만개 황금으로  만든 금차(金
차)나 진주로 만든 진주차(珍珠차)를 준다 한들 어찌 나의 다정한 유사
형이 내게 준 은차나 동차(銅차), 혹은  철차(鐵차)에 견줄 수 있단 말
이에요.'"
유일주는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입이 헤 벌어져서는 다물지를 못하다가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녀가 심야에 소군주에게  한 이야기는 또 달랐
을까?"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깊은 밤중에 그녀들의 방밖에서 몰래 엿들은 것이죠?"
유일주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엿들은 것이 아니오. 그 날 밤중에 일어나서 소변을 보러 가다가 듣게 
되었소."
위소보는 말했다.
"유형, 이것이야말로 그대의 잘못이외다. 하필 소변 볼 곳이 없어서 방
소저의 창 아래에 오줌을 누었단 말이오? 찌린내가 충천할 텐데 그야말
로 두 분의 수화폐월의 소저들로  하여금 찌린내에 젖어들게 만들고 말
았겠군!"
유일주는 말했다.
"그렇소. 그렇구려. 그런데 그 이후 방사매는 무슨 이야기를 했소?"
"나는 배가 고파서 말할 기운이 없구려.  빨리 가서 먹을 거나 좀 사다 
주시오. 배불리 먹은 이후에야 방사매의 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
끼치게 하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소."
그는 유일주와 함께 고을 쪽으로  걸어가서 사람들 많은 곳에 도착하며 
살짝 빠져나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유일주는 말했다.
"들어서 소름끼치는 말이라니 무슨 말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녀가 매우 총명해서 한번도  소름끼치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 봅시다. 그녀는 말했소. '나의 그 다정한 유사형은'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보시오.  '나의 그 알뜰하고 멋진  유사형은' 제기랄! 
그대가 들을때는 소름끼치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내가 들을  때는 정말 
꼴사나왔소. 흥! 그와 같은 말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유일주는 그만 흐뭇해져서는 말했다.
"그럴 리 없겠지.방사매가 어찌 그 같은 말을 한단 말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좋소. 내가 말을 잘못한 것으로  합시다. 유형, 나는 음식을 좀 
찾아 먹어야 겠소. 실례하겠소."
유일주는 한창 신이 나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판인데 어찌 그로 하여금 
가게 내버려 두겠는가. 재빨리 그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면서 말했다.
"위형제, 서두를 것  없소. 내 이곳에 몇  가지의 박병(박餠)이 있으니 
먼저 자시도록 하시오. 그리고 말아  끝난 이후 고을로 들어갑시다. 내 
그대에게 술과 국수를 사겠소. 그리고 나의 무례했던 점을 사과 드리겠
소이다."
그리고는 그는 등에 진 보따리를 풀고서 몇 개의 박병을 꺼냈다.
위소보는 박병을 들고 한쪽을 찢어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몇번 씹다가 
말했다.
"이 박병은 짜다 할 수도 없고 시큼하다고 할 수도 없는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군. 어디 그대가 먹어 보시구려."
그러면서 그는 뜯어낸 박병을 그에게 주었다.
유일주는 말했다.
"이 박병은 딱딱해져서 물론 맛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허기를 채우는 
데는 그런대로 괜찮다오."
그러면서 그는 박병을 찢어서 먹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다른 박병들은 어떤지 모르겠군."
그러면서 그는 몇 개의 박병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이며 골랐다. 몇번 
고르다가 그는 말했다.
"제기랄, 오줌이 마렵군! 오줌을 누고 나서 다시 먹기로 하지."
그리고 그는 한 커다란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몸을 돌리고서는 바짓가
랑이를 내리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유일주는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도망을 
칠까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위소보는 소변을 본 다음 돌아와 유일주의  곁에 앉아 다시 그 몇 개의 
박병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다가 끝내는 하나를 집어들고 찢어서 먹
기 시작했다.
유일주는 거진 반나절을  뒤쫓아오느라고 이미 배가 고팠던  참이라 또 
하나의 박병을 들고 먹었다. 그러면서 입을 열고 말했다.
"그렇다면 방사매가 소군주에게 일부러 그렇게  말해 나의 부아를 돋군 
것이란 말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방소저 뱃속에 든 회충도  아닌데 어떻게 그녀의 심사를 알겠소? 
그대는 그녀의 다정한  사형인데 왜 모른다는 말이오?  그리고 왜 되려 
나에게 묻는거요?"
유일주는 말했다.
"좋아. 조금 전에는 내가 경솔해서 그대에게 잘못을 했다고 합시다. 그
러니 이야기 좀 해주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내 솔직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에게 털어놓도록 하
지요. 그대의 방사매는  매우 아름답소. 만약에 내가  태감이 아니라면 
그녀를 마누라로 맞고 싶은 생각이 났을  것이오. 하지만 설사 내가 그
녀를 맞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그대에게 차례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구려."
유일주는 다급히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무엇 때문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성급하게 굴 것은 없소. 다시 박병을 하나 먹은 이후에 천천히 그대에
게 이야기해 주기로 하지."
유일주는 말했다.
"제기랄, 그대는 말하는 것이 언제나 우물쭈물하여 남의 애간장만 잔뜩 
태워 놓는군......"
그러더니 갑자기 그는 몸을 휘청했다. 위소보는 물었다.
"아니, 어디 편찮으시오?"
유일주는 몸을 일으키더니 휘청하니 한번  몸을 도는 듯했다. 그러다가 
풀썩 땅바닥에 쓰러졌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그의 엉덩이를 발길로 힘껏 걷어찼다.
"어? 그대의 박병 안에 어찌하여 몽혼약이 들었지? 그거 정말 이상하기 
그지 없군.!"
유일주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위소보는 다시 두 번 발길질을 했다. 그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는 그의 허리에 찬 허리띠를 풀어 두  발을 꽁꽁 묶었다. 나무 옆에 커
다란 바위가 하나 눈에 띄었다.
그는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돌을  하나 주워서는 넉 자 깊이 정도
의 구덩이를 팠다.
"내 오늘 너를 산채로 매장을 시켜 주마."
그는 유일주를 그 구덩이 안으로 끌어들여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흙이 곧장 그의 어깨까지  차오르도록 만들고 단지 그의 머리와 
어깻죽지만 나오도록 만들었다.
위소보는 매우 의기양양해서는 개울가로 가서 장포를 벗어서 물에 적셨
다. 그리고 유일주 앞으로 가 장포를 쥐어 짜 개울물을 그의 머리 위에 
떨어뜨렸다.
유일주는 차가운 자극을 받게 되자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일시에 어찌 
된 노릇인지를 모르고  몸을 바둥거렸다. 그러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위소보가 무릎을 얼싸 안고  한편에 앉아서 싱글벙글 하면서 자
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 후에야  그는 자기가 위소보의 
술수에 넘어 갔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꼼짝할 수가 없어 말했다.
"형제, 장난은 그만 합시다."
위소보는 욕을 했다.
"이 도적 같은 자식아! 나는 한가롭게  너 같은 냄새 나는 도적과 장난
할 여가가 없다! 뭐, 장난은 그만 치자구?"
그리고는 그는 힘주어  유일주를 발로 걷어 찼다.  그 바람에 유일주는 
오른쪽 뺨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다시 욕을 했다.
"방소저는 내 마누라다! 그런데 네까짓  것이 그녀와 배필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 못난 도적아. 너느 마구 나의 팔을 비틀어 아프
게 만들었고 또 따귀를 때린 데다가  채찍질로 나를 후려쳤지? 나는 네 
귀를 짤라 내고  다시 코를 베어 내고 한칼 한칼  살을 도려 내어 구어 
먹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는 비수를 뽑아들고 몸을 구부려 날이 서지 않은 칼등을 그의 
얼굴에 대고 두 번 문질렀다. 유일주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부르짖었다.
"형제...... 위...... 위형제...... 위향주, 목왕부와의 정분을 생각해
서라도 제발...... 그만해 두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왕궁에서 너를 구출해 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겠다고, 나를 죽
이려 했겠다? 흐흥!  너의 이까짓 재간으로 호랑이의  수염을 뽑으려고 
해? 너는 나보고 목왕부의 정분을 생각하라고  했지만 조금 전 나를 잡
았을 때 어째서 너는 천지회와의 정분은 생각하지 않았지?"
유일주는 말했다.
"확실히 나의 잘못이오. 내가 잘못했소. 아무쪼록...... 아무쪼록 용서
해 주시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너의 머리를 칼로 삼백 육십  번을 찔러야만이 내 마음속에 맺힌 
원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의 땋은 머리를 잡고서  칼로 베었다. 그 비수는 예리하
기 이를 데 없어 삭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땋은 머리를 절단했다. 그
의 머리 위에서 움직이던 비수는 삽시간에 머리카락을 우수수 떨어뜨렸
고, 그리하여 그의 머리는 그만  민숭민숭한 대머리가 되고 말았다. 위
소보는 욕을 했다.
"이 대머리야! 나는 네 화상만 보고도 화가 나서 반드시 널 죽이겠다."
유일주는 웃음을 지었다.
"위향주, 불초는 화상이 아니외다."
위소보는 욕을 했다.
"네가 빌어먹을 놈의 화상이 아니라면 어째서 온 머리카락을 빡빡 잘라 
냈지? 이 나리를 속이자는 것이냐?"
유일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내 머리카락을 모조리 잘라 놓고서 어째서 나를 탓하는 것이냐?)
그러나 자신의 생명이 상대방의 수중에 들어 있는 이상 감히 그와 다툴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웃음을 지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모든 잘못은  소인에게 있소. 위향주는 대인이니 대
인의 아량으로 마음에 두지 마시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 그대에게 묻겠는데  방이, 방소저는 누구의 아내이
지?"
유일주는 더듬거렸다.
"그건...... 그건......"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뭐가 그것이냐? 빨리 말해!"
그리고 그는 비수를 들고 그의 얼굴 앞에 갖다대고는 흔들거렸다. 유일
주는 속으로 호한은 눈앞의 손해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꼬
마는 태감이니 그에게 아부를 해 좀 득을 보게 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
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가 정말로 일검을 휘두르게 된다면 
자기는 코가 잘려지거나 귀가 잘라지게  될 것이니 그야말로 야단이 아
닌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재빨리 말했다.
"그녀는...... 그녀는...... 물론  위향주...... 위향주 그대의 부인이
시지."
위소보는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녀? 그녀는 누구이지? 좀더  분명히 말해야지? 나는 화상들
의 애매모호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단 말이야."
유일주는 말했다.
"방이, 방사매는 그대 위향주의 부인이란 말이외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분명히 내놓자구. 그대는 나의 친구인가, 아닌가?"
유일주는 그의 말이 좀 누그러진 듯하자 속으로 크게 기쁨을 느끼고 말
했다.
"소인은 본래 대인과 친구로 논할  자격이 없는 몸이외다. 위향주가 만
약 불초를 친구로 여긴다면 그야말로 바라던 바이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대를 친구로 삼는다고 하지. 그러면 강호에서는 친구지간에 의
리를 가장 중시하겠지?"
유일주는 재빨리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친구지간에는 응당 의리를 존중해야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친구의 처는 희롱할 수 없다. 이후 그대가 만약에 재차 나의 아내에게 
어떤 궁리를 하고 못된 생각을 가진다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대는 맹세
를 하라구."
유일주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이 위소보의 술수
에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는  이미 그대가 결코 호의를 품고 
있지 않으며 나의 마누라를 슬금슬금  희롱할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
을 알고 있거든."
유일주는 그가 다시  비수를 흔들거리며 눈앞에 갖다댔다  말았다 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위향주의 부인에 대해서 불초가 결코 나쁜 뜻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외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후 그대가 만약 방소저를 한번이라도  더 쳐다보거나 말 한마디라도 
건다면 어떻게 되는거지?"
유일주는 말했다.
"그거야...... 그거야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바로 후레자식이 되는 것이지?"
유일주는 울상을 지었다.
"맞소, 맞아."
위소보는 말했다.
"뭐가 맞아? 무슨 개방귀 같은 소리가 맞는다는 게지?"
그러면서 그는 비수의 끝을 그의  오른쪽 눈꺼풀에 갖다댔다. 유일주는 
재빨리 말했다.
"이후 내가 만약에 방사매를 한번이라도  더 쳐다보거나 한마디의 말이
라도 건다면 나는...... 나는 바로 후레자식이 되오."
위소보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렇다면 그대를 용서하지. 먼저  그대의 머리 위에다 오줌이
나 한번 갈긴 후 그대를 놓아 주도록 하지."
그러면서 그는 비수를 신발 목에 끼우고는 두 손으로 바지 허리띠를 풀
려고 했다.
이때 별안간 숲속에서 한 여인의 소리가 호통을 쳤다.
"그대는...... 너무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요."

위소보는 그 소리가 바로 방이의  음성인 것을 알아듣고 놀라움과 기쁨
에 얽혀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숲속에서 세 사람이 걸어나왔
다. 앞장을 선 사람은 바로 방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목검병과 서천
천이 따랐다. 잠시 후 다시 두 사람이 걸어 나오는데 바로 오립신과 오
표였다.
그들 다섯 사람은 이미 숲속에 숨어  있은 지 오래 되었고 이미 위소보
와 유일주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위소보가 유일주의 머리 위에다  오줌을 누려고 하는 것을 보
고 그렇게 된다면 영원히 풀 수  없는 깊은 원한을 맺게 되는지라 방이
는 참을 수 없어 호통을 치며 그 짓을 못하게 한 것이었다.
위소보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당신은 이미 이곳에 있었구려.  오나리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 오
줌 갈기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지요."
서천천은 급히 다가가서는 두 손으로  유일주 몸가에 쌓은 흙과 돌들을 
집어 내고 그를  안아서는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 주었다. 유일주는 수치를  감당할 수 없어 고개를 숙
인 채 감히 뭇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못했다.
오립신은 얼굴이 시퍼래져서는 말했다.
"유현질, 우리들 세 명은 위향주가 구해  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
서 자네는 은혜를 원수로 갚고 또  어른이 되어 어린 사람을 업신 여기
듯 그에게 욕을 하고 매질을 했으며 또 그의 팔을 비튼단 말인가. 자네
의 사부가 알게 된다면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매우 못마땅하고 불쾌한 어
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강호에서 굴러 먹자면 가장 따지는  것은 바로 의리라는 두 글
자인데 어찌하여 질투심을 일으켜서는 절친한 친구에게 폭력을 쓴단 말
인가? 은혜를  저버리고 의리를 저버리다니 그것이야말로  개 돼지만도 
못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그는 탁 하며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더욱더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어젯밤 자네가 야밤에 그냥 성질이 나서는 달려나오게 되었을 때 모두
들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 그래서 뒤를 쫓아온것이야. 그런
데 자네는 위향주를 때려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만들었고 거기다가 
다시 그의 팔을  비틀고 검끝으로 그의 목을  겨누다니, 만약 실수하여 
그의 목숨이라도 해치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하지?"
유일주는 분연히 말했다.
"한 목숨으로 한 목숨을 보상한다고 내가  그의 한 목숨을 배상하면 될 
것이 아니겠소?"
오립신은 노해 부르짖었다.
"허, 자네는 정말 가볍게  이야기하는구만. 자네가 무슨 영웅호걸이야? 
자네의 한 목숨으로 천지회의 십대 향주 가운데 한 사람인 위향주의 목
숨을 보상할 수  있을 것 같나? 더군다나 자네의 그  목숨은 누가 구해 
준 것인가? 역시 위향주가 구한  것이 아닌가. 자네가 은혜를 갚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에서는 이미 자네를  업신여기게 되었는데, 
자네는 감히 위향주에게 손을 써?"
유일주는 위소보에게 협박을 받아서는 맹세까지  한 몸이었다. 당시 목
숨이 상대방의 손에 달려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자유로
운 몸이 되었고  또 그와 같은 말을 방이가  모조리 들었다고 생각하니 
실로 수치와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감당할 길 없었다. 거기다가 오립
신이 사숙이었지만 마구 잔소리를 늘어놓고 버릇을 가르쳐 주겠다는 데
에 그만 수치가 분노로 변해서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매섭게 쏘아붙였
다.
"오사숙, 일은 이미 저질러졌소. 그러나  상대방인 위가는 털끝하나 다
친 곳이 없소이다. 어르신이 봐서  어떻게 해야겠다면 마음대로 하시도
록 하구려."
오립신은 펄쩍 뛸듯이 화를 내며 그의 얼굴을 손가락질 했다.
"유일주, 너는 사숙에게까지 이런 태도를  취하며 위 아래도 없이 주둥
이를 나불거리느냐? 너는 나와 손을 쓰자는 것이겠지?"
유일주는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소. 또 오사숙의 적수도 될 수 없소이다."
오립신은 더욱 화가 나 날카롭게 외쳤다.
"만약 너의 무공이 나를 이길 수 있다면 손을 쓰겠다는 것이겠지? 너는 
청나라 오랑캐의 궁중에서 삶을 탐하고  또한 죽기가 두려워서, 머리를 
자른다는 말을 듣고는 황망히 용서를 빌었으며 조금이라도 늦을세라 자
기의 이름을 댔다. 나는 유사형의 체면을  봐서 그 일을 들먹이지 않으
려고 했다. 네가 나의 제자가 되지 않았던 것은 네가 운이 좋았다고 해 
두기로 하자."
그 뜻은 만약 네가 나의 제자라면  벌써 한 칼에 죽였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유일주는 자기가 청궁에서 비겁하게시리 용서를 빈 추태를 들먹이고 나
오자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안색이  창백해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위소보는 자기가 완전히 우세를 차지하게 된 마당이라 웃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됐어요. 오나리, 유형은 나와  그저 장난삼아 한 짓이니 심
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소이다. 제가 부탁 드리겠소이다. 유형에게 과거
의 일은 들먹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오립신이 말했다.
"위향주가 그와 같이 분부를 하신다면 물론 받들어야죠."
그리고는 그는 고개를 돌려 유일주에게 말했다.
"저것 봐라. 위향주께서는 역시 큰일을  하는 분이라 아량이 얼마나 넓
으신가 말이다."
위소보는 방이와 목검병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소?"
방이는 말했다.
"이리 좀 와요. 내 그대에게 할말이 있어요."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갔다. 유일주는  방이가 여러 사람들 앞
에서 위소보에게 친절하게 구는지라 손을 칼자루에 가져갔으며 그저 칼
을 뽑아서는 앞으로 달려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
히게 되었다.
그런데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몇 걸음 물러서며 자기의 뺨을 손으로 비비며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 왜 남의 뺨을 때리지?"
방이는 버들 같은 눈썹을 곤두세우고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노해 부르짖
었다.
"당신은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시는거예요? 당신은 유사형에게 무슨 말
을 했지요? 사람을 등뒤에서 그토록  업신여기고 경박하고 천한 계집애
로 만들어도 된단 말이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별로...... 좋지 못한 말을 한 적이 없소."
방이는 말했다.
"그래도 없다고 하시기에요?  나는 한마디 한마디 모두  똑똑히 들었어
요. 당신들 두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만 화가 나고 다급한 나머지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서천천은 젊은 남녀끼리 잘못되어 소란이  빗게 된 것은 큰일이 아니라
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천지회와 목왕부의 교분에 먹칠을 하
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즉시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위향주와 유사형께서는 모두 조금  손해를 본 셈이니 서로 비
긴 것으로 하지요. 이 서가는 매우 배가 고프답니다. 우리 빨리 반점을 
찾아서 실컷 먹기나 합시다."
별안간 한 차례 동북풍이 휙 불고 지나가더니 허공에서 콩알 같은 빗방
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천천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시월의 날씨에 이와  같은 소나기가 내리다니 그거  정말 희한한 날씨
군."
그러고 보니 한 무더기의 검은 구름이 동북쪽에서 몰려 오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이 비가 쉬 끝날 것 같지 않구려. 우리 빨리 비를 피할 곳을 
찾도록 합시다."
일곱 사람은 큰길을  따라 서쪽을 향해 갔다.  방이와 목검병은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몸이라 빨리 걸음을 옮겨  놓지 못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하는데 하필 길가에는 한 채의 농가도 없었고 정
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얼마 후  일곱 사람은 모조리 비에 흠쩍 젖게 
되었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천천히 걷도록  합시다. 빨리 걸어 봐야 역시  물에 빠진 생쥐 
꼴이고 늦게 걷는다 해도 꼴은  마찬가지이니 오히려 천천히 걷는 것이 
낫겠소이다."
그러나 일곱 사람은  한동안 재차 달렸다. 그러다  보니 물소리가 들려 
왔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냇물가에 이르게 되었다.
냇물을 거슬러 약  반 마장 가량 되는 곳에 한  채의 조그만 집이 보였
다. 일곱 사람은 크게 기뻐서 발걸음을 빨리 하여 가까이 다가갔다. 그 
조그만 집은 이곳저곳 무너져 내려앉은  황량한 조그만 절간이었다. 그
러나 어쨌든 비를 피할 곳을 만난 셈이라 다 허물어졌어도 없는 것보다
는 나은 셈이었다. 그리고 절간의 문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없는 상태
였다. 절간 안으로 들어가자 코에 와닿는 것은 곰팡이 냄새였다.
방이는 한동안 걷자 가슴팍의 상처가  매우 아파와 그만 눈살을 찌푸리
며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서천천은 다 깨진  탁자와 의자를 모아서는 
불을 피워 여러 사람의 옷자락을 말리도록 했다.
그런데 하늘의 검은 구름은 점점  더 몰려들었고 빗방울은 더욱더 거세
졌다. 서천천은 보따리 안에서 건량을  꺼내어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유일주는 자기의 잘려 나간 머리를 모자 속에 끼워넣어 억지로 땋은 머
리를 내려뜨려 놓고 있었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의 그런 꼴
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목검병은 웃으면서 위소보에게 물었다.
"조금 전 그대는 유사형의 박병에 어떤 수작을 부렸지요?"
위소보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 짓도 안 했어. 내가 무슨 수작을 부려?"
목검병은 말했다.
"흥, 그래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어째서 유사형이 몽혼약
에 중독되었을까?"
위소보는 되물었다.
"그가 몽혼약에 중독되었던가? 언제?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볼 때 그
렇지는 않은걸. 그는 지금 멀쩡히 앉아서 불을 쬐이고 있지 않소?"
목검병은 짐짓 뾰로통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저 시치미를  떼는데 능하시군.  그대와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겠어
요."
방이는 옆에 앉아 역시 가슴 가득히 치솟아오르는 의혹을 금할 수 없었
다. 처음 유일주가 위소보를 잡을 때의 상황을 그들은 멀리서 보았으나 
확실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 후  유일주와 위소보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무 밑에 앉아서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미 발걸
음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가 숲속에 몸을 숨긴 상태로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또 엿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하나 하나의 박병은 모두 유일
주가 보따리에서 꺼낸  것이었다. 그리고 유일주는 줄곧  눈 한번 떼지 
않고 위소보를 바라보며 그가 도망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눈깜짝할 사이에 유일주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
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유사형에게는 간질병이 있어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는 인사
불성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유일주는 크게 노해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그를  손가락질하며 호통을 
내질렀다.
"너...... 네 녀석은......"
방이는 위소보를 한번 노려보더니 말했다.
"이리 와요."
위소보는 말했다.
"또 사람을 때리려구? 나는 이제 가지 않겠어."
방이는 말했다.
"당신은 유사형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어린애가 되가
지고서는 좀 입을 싹 닫도록 해요."
위소보는 혀를 낼름 내밀어 보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유일주는 방이가 두 번이나 자기를 도와 주는 것을 보고 속으로 흐뭇하
게 생각했다.
(이 꼬마는 음흉하고 고약하다. 그러나  방사매는 역시 나에게 잘 대해 
주는구나.)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일곱 사람들은 한  무더기의 불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황량한  절간 안에는 곳곳에 빗물이  새어 깨끗한 땅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별안간  위소보의 머리위에 빗방울이 떨어
졌다. 빗방울은 한 방울 두 방울 그의 어깻죽지로 떨어졌다.
이때 방이가 말했다.
"이리 와요. 이곳에는 빗물이 새지 않아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어요. 내 그대를 때리지 않을께요."
위소보는 웃으면서 그녀의 곁에 가 앉았다.
방이는 목검병의 귀에 대고 나직이 뭐라고  몇 마디 했다. 목검병은 킥 
하고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입을 위소보의 귓가에 대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방사저는 그대가  한집안 사람과 다름없기 때문에  때리고 간섭하려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그대보고  유사형의 비위를 거스리지 말라고 
한 거라구요. 따라서 그대에게 자기의 뜻을 알겠는가 물어 보네요."
위소보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한집안 사람이라니? 나는 그 뜻을 모르겠는데."
목검병은 그 말을 전했다.
방이는 한번 흘겨보더니 목검병에게 말했다.
"내가 맹세를 하고 저주 한 말은 영원히 지킬테니 안심하라고 전해요."
목검병은 다시 그 말을 전했다.
위소보는 목검병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방소저와 내가 한집안 사람이라면 그대와 어떻게 되는 거지?"
목검병은 얼굴이 붉어져서는  쳇 하고 손을 뻗쳐  그를 때리려고 했다. 
위소보는 웃으면서  몸을 옆으로 기울여서 피했다.  그리고는 방이에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는 웃는 듯 마는  듯 화가 난 듯 나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모닥불에 비친 그 모습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위소보는 두 소녀의 몸에서  풍기는 담담한 향기를 맡게 되자 
속으로 크게 즐거웠다.
유일주가 앉아 있는 자리는 그들 세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와는 퍽이나 
먼 편이었다. 고개를 아무리 쑥 내밀고 들어도 그저 어렴풋이 유사형이
니 한집안 사람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그 밖의 많은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 세 사람이  희희덕거리고 매우 친밀한 
태도를 보이자 틀림없이  자기를 남처럼 여기는 꼴인지라  다시 질투와 
미운 정이 얽혀서 솟아나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방이는 다시 목검병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그에게 물어 봐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유사형의 정신을 잃게 했는
지."
위소보는 방이가 얼굴 가득히 호기심 어린 빛을 띠우고 있는 것을 보고 
끝내 살그머니 목검병에게 말했다.
"내가 소변을 보려고 등을 돌렸을 때  왼손에 한 웅큼의 몽혼약을 쥐고 
있다가 돌아가서는 박병을 살피는 척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자 박병에 
자연 약가루가 묻게  되었지. 그리고 내가 먹은  박병은 오른손으로 쥔 
것이고 왼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오. 이제는 알겠소?"
목검병은 말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군요."
말을 전해 들은 방이는 다시 물었다.
"그것은 어디서 난 몽혼약이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궁안 시위가 준 것이요. 유사형을 구할 때 사용한 것이 그 약가루들이
지."
이때 큰비가 억세게 쏟아지고 있었고  빗줄기가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
께 지붕을 때리는 바람에 지붕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
렇기 때문에 위소보가 입술을  목검병의 귀밑뿌리에 갖다대야만이 말하
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유일주는 마음속으로 여간  초조하지 않아 벌떡 몸을  일으켜서는 등을 
무겁게 기둥에다 기대었다. 별안간 와지끈 뚝  하는 소리가 몇 번 나면
서 머리 위로부터 몇 장의 깨어진 기왓장이 떨어졌다.
이때 황량해진 절간 안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거기다가 큰비
를 맞게 되고 북풍이 휘몰아치게 되자 그만 지탱할 수 없게 된 듯했다. 
곧이어 한 대 한 대의 석가래  조각들과 기왓장, 그리고 벽돌들이 다투
어 떨어졌다.
서천천은 부르짖었다.
"야단 났소. 절간이 무너지려 하니 우리 빨리 나갑시다."
일곱 사람은 재빨리 절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몇 걸음 달려나가지 않
았을 때 와르르 꽝 하는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바로 절간의 지붕이 우
르르 내려앉는 소리였다. 곧이어 반쯤  허물어진 담장이 앞으로 쓰러졌
다.
바로 이때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십여필의 말이 동남
방에서 질풍처럼 달려왔다. 삽시간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다. 그림자가 
우중충한 것이 모두가 말을 탄 사람들이었다.
한 늙수그레한 음성이 말했다.
"아이구, 이곳에 본래 조그만 절간이 있어서 비를 피할까 했는데 또 쓰
러지고 말았군."
다른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물었다.
"이것 보시오. 당신네들은 이곳에서 무엇하고 있소?"
서천천은 말했다.
"우리는 절간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만 절간이 무너져 내려앉는 
바람에 하마터면 깔려 죽을 뻔 했소이다."
마상의 한 사람이 욕을 했다.
"제기랄, 이렇게 큰 비가 내리다니, 하느님이 미쳐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지 모르겠군."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조노삼(趙老三), 이 조그만 절간 외에 이 부근에는 다른 집은 없는가? 
그리고 동굴 같은 것도 없는가?"
그는 멍청히 말했다.
"있긴...... 있지요. 하지만 없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랍니다."
그러자 또 한명의 사내가 욕을 했다.
"빌어먹을, 도대체 있는거야, 없는거야?"
그 늙은이는 말했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가면 산골짜기에 한  채의 도깨비집이 있는데 고
약한 도깨비가 나타나서 장난을 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가지 못한
다오. 그러니 없는 것이나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겠소?"
마상의 여러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소리쳤다.
"나는 도깨비집을 두려워 하지 않소. 악귀(惡鬼)가 있다면 더잘되었지. 
끌어내서 요기를 해야겠군."
또 한 사람이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앞장을 서시오. 목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큰 비를 맞고 있다
니 맛이 좋은 줄 아시오?"
조노삼은 말했다.
"여러 나리들, 이 늙은이는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몸이라 
감히 갈 수가  없소이다. 내 권고하건데 여러분들도  가지 않도록 하시
오. 이곳에서 북쪽으로 다시 삼십 리 길을 나가면 고을이 있소이다."
마상의 뭇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요귀나 도깨비들을 두려워 할 것이 뭐가 있소?"
"이같이 큰비가 쏟아지는데  어찌 또 삼십 리 길을  간단 말이오? 빨리 
여러 소리 하지 말고 가기나 합시다.  우리가 이토록 많은 수인데 무슨 
도깨비 따위를 두려워한단 말이오?"
조노삼도 말했다.
"좋소이다. 모두들 서북쪽으로 나가다가 모퉁이를 돌도록 하시오. 그러
면 산길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는데 길은 하나뿐이니 잘못 걸어
들어갈 리 없을 것이오."
뭇사람들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말을  다그쳐서는 서북쪽으로 
달려갔다. 조노삼이 타고 온 것은  말이 아니라 노새였다. 잠시 망설이
더니 그는 노새의 머리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서는 동남쪽을 향해 달
려갔다.
서천천은 물었다.
"오 둘째형, 위향주, 우리들은 어떻게 하죠?"
우립신은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러다가 그는 곧 위소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곧 말을 바꾸었다.
"위향주께서는 분부하시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위소보는 도깨비가 두려웠으나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오나리께서 말씀을 하십시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립신은 말했다.
"도깨비니 하는 것은 모두  시골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지어낸 말이외다. 
설사 도깨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  일랑은 도깨비와 한바탕 싸워 보
도록 합시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떤 도깨비들은 볼 수도 없답니다. 나중에 보게 되었을 때는 때가 늦
은 감이 있죠."
그 말은 역시 도깨비가 두렵다는 뜻이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2. 도깨비집

 위소보는 목검병이 끊임없이 벌벌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탱하기가 
확실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위소보은 방이의 앞에서 자신
의 겁먹은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유일주에게 지고 싶지도 않았기
에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모두들 가보기로 합시다. 만약  고약한 도깨비를 만나게 되었
을 때는 모두 조심을 하기로 합시다."
일곱 명의 사람들은 조노삼이 말한  대로 서쪽으로 갔다가 골짜기로 꺽
어 돌았다. 어둠속이라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숲속에 희뿌옇게 보이는 것이  하나의 조그만 폭포가 내려 쏟아지
고 있는 듯한 감을 받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가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바로  도깨비의 장난 때문이 아니고 무
엇이겠소. 이것은 고약한 도깨비가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하는 것
이외다."
서천천은 말했다.
"이 물이 흘러내려오는 길은 바로  산길입니다. 산속의 물은 계곡을 따
라 내려오기 마련이죠."
오립신은 말했다.
"바로 보셨소이다."
그리고 그는 폭포물을 건너서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라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왼쪽 숲속에서 말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
로 그 쪽에 십여 필의 말을 탄 사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천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한 떼의 사람들은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자기와 오립신이  손을 맞잡게 된다면 웬만한  무사 수십명쯤은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물을 첨벙첨벙 
밟으며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더욱더 주위가 어두워졌다. 그런데  앞쪽에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다를까 집이있었다. 위소보는 놀
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갑자기 그  누가 손을 뻗쳐와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손을 
부드러웠다. 곧이어 귓가에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바로 방이의 음성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시종 문을 여는 사람
은 없었다. 일곱 사람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보니 시커멓고 커다
란 집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말을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었다. 
"문을 여시오. 문좀 열어 보시오. 비를 피하여 왔소."
한참을 불러도 집안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모양이외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조노삼이 도깨비집이라고 했으니 그 누가 감히 들어와 살겠소? 담장으
로 뛰어넘어 들어갑시다."
곧이어 허연 광채가 번쩍였다. 사람이  무기를 뽑아들고 담장으로 뛰어 
넘어갔다. 그리고는 대문을 열었다.  뭇사람들은 우르르 떼지어 들어갔
다.
서천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구나. 그러나 보
기에 무공은 별로 대단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일곱 사람은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대문 안쪽은 바로 꽤 넓다란 뜨락이었다. 그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대청이 나왔다. 어떤 사람이 몸에서 기름 먹인 보따리를 꺼내더니 화도
와 화석을 꺼내서 불을 당겼다. 그리고  대청의 탁자 위에 초가 있는것
을 보고 초에다  불을 당겼다. 사람들은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모두 기뻐했다.
대청에 자단목으로 된 탁자와 의자  그리고 차탁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대가집의 기세였다.
서천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탁자와 의자에는 전혀 먼지가 앉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도 매우 깨끗
하게 청소되어 있다. 그런데 왜 집안에 사람이 없을까?)
이때 한 명의 사내가 말했다.
"이 대청은  깨끗한 것으로 보아 집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소이
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 보시오!  이것 보시오! 집안에  사람이 없소? 집안에  사람이 없
소?"
대청은 높다랗고 또한 넓어서 그가  소리치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돌아
왔다.
메아리치는 소리가 멎자 사방에서 그저 소나기 퍼붓는 소리만이 들려오
고 다른 기척은 들을 수가 없었다. 뭇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한 명의 백발노인이 서천천에게 물었다.
"당신네들은 강호의 친구들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불초의 성은 허(許)라고 하는데, 이 몇몇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친척이
옵고 산서성으로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
에서 큰비를 만나게 됐읍죠. 나리의 존성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 일곱 명 가운데 노인도 있고 또 
어린애도 있고 여자도 있는 것을 보고 별로 의심하지 않는 듯 했다. 그
러나 서천천이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이 집은 좀 이상야릇한 점이 있군."
그러자 다른 한 명의 사내가 부르짖었다.
"집안에 사람이 없소? 모두 죽었단 말이오?"
잠시 여유를 두고 기다렸으나 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백발의 노인은 의자 위에 앉더니 여섯 명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너희들 여섯 명이 뒤로 가서 살펴보도록 하라."
여섯 명의 사내들은 무기를 손에 뽑아들고 뒤채로 걸어갔다. 여섯 사람
은 살짝 허리를 구부리고 매우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는데 그 표정은 무
척 경계하는 것 같았다.
곧이어 문에다 발길질을 하는 소리, 호통치는 소리 등이 끊임없이 드려
왔으나 별 이상한 점은 없었고 그  소리도 점차 멀어져갔다. 아마도 집
이 꽤 넒은 모양이라 일시에 집 끝까지 가 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노인은 다른 네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무를 찾아와서 횃불을 더 만들어 뒤따라가 보도록 하라."
그 네 사람은 명을 받들고 나갔다. 
위소보 등 일곱 명은 대청의 길다락  창문 문틀에 앉아 있었으며 그 누
구도 입을 열고 말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그 한떼의 사람들 가운데 열
명이 뒤채로 걸어 들어갔는데도 대청에 아직 여덟 명이나 남아 있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명 베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양으로 보아 무슨 방이나 
회의 제자들인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표국의 사람들 같기도 
했으나 호송하는 표화물이 없어 당장 그들의 내력을 알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누님, 이 집안에 도깨비가 있는 것이오, 없는 것이오"
방이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유일주는 서둘러 말했다.
"물론 도깨비가 있지.  어느 곳이고 죽은 사람이  없겠소? 죽은 사람이 
있는 곳에는 도깨비가 있기 마련이오."
위소보는 부르르 몸을 떨고는 몸을 움츠렸다.
유일주는 말했다.
"천하의 고약한 도깨비들은 착한 사람들을  업신 여기고 고약한 자들은 
두려워하는 법이다. 전문적으로 어린애들을  홀리는 경우가 있지. 어른
들은 양기가 성하기 때문에 목매  죽은 귀신이나 머리 잘린 도깨비들은 
감히 어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법이지."
방이는 옷자락 안에서 손을 빼 위소보의 외손을 잡고서는 말했다.
"사람들이 도깨비를  두려워 하지만 도깨비는 더욱더  사람을 두려워해
요. 불빛을 보기만 하면 도깨비는 달아나고 만답니다."
이때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먼저  뒷채를 살피러 갔던 여섯 명의 
사내가 대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얼굴은 매우 이상야릇한 표정을 
띠고 있었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곳곳에는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침대 위에는 이부자락이 펼쳐져 있고 침대 아래에는 신발이 있는데 모
두 다 계집애의 것이었습니다."
유일주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여자 도깨비다. 이 집안은 여자 도깨비로 가득차 있어요."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 누구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런데 별안간 뒷쪽에서 네 사람이 커다란 괴성을 지르는게 아닌가. 노
인은 벌떡 몸을 일으켜서 뒷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 네 사람
은 이미 대청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손에 들려 있던 횃불은 이미 꺼져 있었는데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들뿐입니다.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얼굴에는 놀랍고 당황한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노인은 얼굴을 굳히며 부르짖었다.
"무슨 호들갑들이냐? 나는  또 무슨 적을 만났다구.  죽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두렵단 말이냐?"
한 명의 사내가 말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저......저 이상야릇합니다."
그 노인은 물었다.
"뭐가 이상야릇하다는 말이냐?"
다른 한 명의 사내가 말했다.
"동쪽의 한 칸 되는 집안에는 모두......  모두 다 죽은 사람들의 영당
(靈堂)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셔져 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 노인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죽은 사람이나 관은 보지 못했느냐?"
두 명의 사내는 서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똑똑히...... 똑똑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인은 말했다.
"모두들 횃불을 몇 자루 더 준비하도록  해라. 모두 함께 가 보도록 하
자. 어쩌면 이곳은 한같 사당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 아니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으나 그 어조에는 매우 망설이는 빛이 서
려 있었다.
그는 이곳이 결코 사당에 불과한 곳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
았다.
그의 수하 사내들은  대청에서 탁자와 의자를 쪼개서는  횃불로 만들어 
불을 붙이고는 뒷채로 몰려갔다.
서천천은 말했다.
"내가 가서 보고 오리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는 뭇사람들을 따라 뒤로 갔다.
오표는 물었다.
"사부님 이 사람들을 어떤 내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오립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 볼 수가 없는걸. 말투로  미루어 볼 때 산동이나 관동(關東)일대
의 사람들인 것  같은데 관아의 포졸들 같지는  않아. 혹시 밀수꾼들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물건 따위를 가진 것을 볼 수가 없구먼."
유일주는 말했다.
"이 한떼의 사람들이야 별로 대단할 것이 있겠소? 그러나 이 집안의 여
자 도깨비들은 무섭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면서 그는 위소보에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위소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방이의 손을  꼭 쥐었다. 자기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검병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유......유사형. 자꾸만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아요."
유일주는 말했다.
"소군주, 그대는 걱정할 것 없소. 그대는 금지옥엽이니 어떤 고약한 도
깨비들이라도 그대를 만나게  된다면 멀리 피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고약한 도깨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태감들이지."
방이는 버들 같은 눈썹을 꿈틀하며 얼굴에 노기의 빛을 띠우고 무슨 말
을 하려다가 참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사람들이 대청으로 돌아왔다. 
위소보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천천은 나직이 말했다.
"일곱 내지 여덟 칸의 방안에 모두  삼십여 채의 영당이 모셔져 있는데 
매 영당마다 오륙  명이나 칠팔 명의 영패가  모셔져 있소이다. 보기에 
한집안에서 죽은 사람들인 것 같소이다."
유일주는 말했다.
"흐흠, 그렇다면 이 집안에는 모두  몇 백이나 되는 고약한 도깨비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요."
서천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견문이  넓었지만 이와 같이 괴이한 
일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가장 이상한  것은 영당 앞에는 모두  다 촛불이 켜져  있다는 것입니
다."
위소보와 방이, 그리고  목검병 세 사람은 놀라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
다.
어떤 사내가 말했다.
"우리가 처음 들어갔을  때 촛불에는 분명히 불이  켜져 있지 않았소이
다."
그 늙은이는 물었다.
"너희들 기억이 틀림없으렸다?"
네 명의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은 말했다.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들은 고인을 만난 셈이야. 삽시간에 삼십여 채나 
되는 영당의 촛불에 불을 밝히다니 그 솜씨야말로 민첩하기 이를 데 없
군. 나리, 그렇지 않소이까?"
이 최후의 한 마디는 서천천에게 묻는 말이었다.
서천천은 짐짓 멍청하게 말했다.
"우리들은  아무래도  이 집  주인의  비위를  거슬렸나 봅니다.  그러
니...... 그러니 영당  앞으로 나가...... 절을 몇 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빗소리 가운데 갑자기 동쪽 집에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매우 처량했다. 큰비가 퍼붓고 있는데도 그 몇차례 울부짖는 소
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위소보는 놀라서 그만 입이 딱 벌어지게 되었고 안색이 크게 변하고 말
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며 모두 다 모골이 송연해져서는 어
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 다시  서쪽 집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유일주, 오표, 그리고 두 명의 사내가 일제히 부르짖었다.
"귀곡성이다! 귀곡성이다!"
노인은 싸늘히 코웃음치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길을 지나다가 귀댁에 들려 비를 피하게 되었는데 함부로 들
어오게 된 점 사과드리오. 그런데 주인께서는  얼굴을 보여 주실 수 없
겠소이까?"
그 말에는 진기가 충만하여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
려도 뒷채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노인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이곳 주인이 속된 손님을 접근하기  싫어한다면 우리들은 함부로 법석
을 떨거나 소란을 피울 수가 없소. 이 대청에서 비를 잠시 피하고 내일 
날이 밝아 비가 멎으면 모두들 한시 바삐 떠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는 연신 손짓을 사용해서는 뭇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시늉
을 하고는 귀를 기울였다. 한참 동안  귀를 기울였으나 다시 곡성은 들
리지 않았다.
한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장(章)세째 나리, 사람이고 도깨비고 내일  날이 밝으면 대뜸 불을 질
러 이 도깨비집을 태워 버리고 말지요?"
그러자 그 노인은 손을 저었다.
"우리는 아직 요긴한 일을 처리하지  못했으니 달리 사고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 앉아서 쉬기나 해라."
뭇사람들은 옷이 모조리 젖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청에 
불을 피웠다. 어떤 사람은 술 호로를  꺼내서는 병마개를 뽑고 그 노인
에게 마시라고 건네 주었다.
노인은 몇 모금 술을 마시더니 곁눈질로 서천천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러더니 입을 열고 물었다.
"허! 나리, 댁네들 몇 사람은 한집안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말투가 
다 틀리시오? 나리는 경성 사람인 것 같고  이 몇 분은 운남 사람인 것 
같소이다."
서천천은 웃으며 말했다.
"나리는 꽤 귀가 맑소이다. 정말 노련한 강호인이외다. 우리 큰 누이는 
운남성으로 시집을 갔죠. 이 분이 바로 나의 매부이외다."
그러면서 그는 오립신을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나의 매부와 생질들은 모두 운남 사람이오. 나의 둘째 누이는 또 산서
성으로 시집을 갔답니다. 그래서 서로 남북으로 뚝 떨어져서는 십여 년
이 지나도 한번 만나보기 힘들다오. 우리는 이번에 산서성으로 저의 두
째 누이를 찾아가는 길이외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서 물었다.
"그럼 여러분들은 북경에서 오시는 길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그렇소이다."
노인은 물었다.
"길에서 혹시 열 서너 살 되는 소태감을 만나지 않으셨소이까?"
그 말이 떨어지자 서천천 일행은 속으로 흠칫했다. 다행히 노인은 서천
천만을 주시했을 뿐이고 서천천은 얼굴에 어떠한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
다. 그러나 오표와 목검병 등은 얼굴빛이  변했는데 그 노인은 다른 사
람에 대해서는 별로 유의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말했다.
"나리는 태감을 말하는  것이오? 북경성 안에는 늙고 젊은  것들 할 것 
없이 태감들이 많지요. 문을 나서면 몇 사람은 만나게 되지요."
그 노인은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길에서 만나지 않았는가 물은 것이지 북경성 안의 태감
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외다."
서천천은 웃으며 말했다.
"나리, 그 말은 그야말로 잘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외다. 대청나라의 규
칙에 의하면 태감이 경성에서 나서기만  하면 그야말로 죽을 죄를 짓는 
것이외다. 오늘날 태감은  명나라 때처럼 위풍당당한 면이  없죠. 지금 
어느 태감이 있어 감히 경성에서 한걸음 발을 내놓을 수 있겠소이까."
노인은 아! 하더니 말했다.
"어쩌면 옷차림을 바꾸었는지도 모르겠구려."
서천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용기가 없을 것이외다. 암!"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나리, 나리가 찾는 것은 어떤  소태감이외까? 우리들이 산서성으로 갔
다가 친척을 만나 본 이후 경성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나리를 돕고저 
알아보도록 하지요."
노인은 말했다.
"흠, 고맙구려. 허지만 그때까지 명이 붙어 있을지 의심스럽구려."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더 말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열 너댓 살 먹은 소태감에 대해서  묻는다면 바로 위향주를 두고 묻는 
것이 아닐까? 이 사람들은 천지회의  사람들도 아니고 목왕부의 사람들
도 아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호의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좀 똑똑히 알아보아야겠다. 그가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다 하더
라도 우리가 그를 한번 건드려 봐야겠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나리, 북경성 안의  소태감으로 말하면 오로지 한분만이  크게 유명하
죠. 그의 대명은 천하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역시 들어보았으리라 생
각됩니다. 그 소태감은 바로 간신 오배를  죽이고 대공을 세운 그 분이
랍니다."
노인은 눈을 뜨더니 말했다.
"음, 그대가 말하는 것은 소계자 계공공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그가 아니고 또 누가 있겠소이까? 그 사람으로 말하면 담이 크고 용기
가 있으며 무예가 출중하니 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소이다."
노인은 말했다.
"그 사람의 무술이 어떠한지 그대는 본 적이 있소?"
서천천은 말했다.
"계공공은 매일같이 북경성 안을 이리저리 산책하지요. 북경에 살고 있
는 사람은 그를 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답니다. 계공공은 얼굴이 시
커멓고 또 뚱뚱한 편이라 적어도 십 팔구 세는 되어 보이며 결코 열 다
섯 살로는 볼 수 없답니다."
방이는 잡고 있던 위소보의 손에 힘을  한번 주면서 그 손을 꼭쥐었다. 
목검병은 팔굽으로 그의 등을 살짝  쳤는데 모두 다 우스꽝스럽게 생각
하는 눈치였다.
위소보는 줄곧 도깨비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그 노인이  자기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자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느라 도깨비를 두려
워하는 마음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노인은 입을 열었다.
"그렇소? 내가 남에게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계공공은 그저 열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로서 교활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하더구
려. 아마도 그대의 저 생질과 삼촌쯤 닮았을게요. 하하하."
그리고 그는 위소보를 쳐다보았다.
유일주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문에 들으니까 소계자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몽
혼약을 잘 쓴다고 합니다. 그가 오배를 죽인 것도 먼저 약을 써서 정신
을 잃게 해서 가능했다고 들었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좀도적은 간이 
적고 또 도깨비를 두려워하는데 어찌 오배를 죽일 수 있었겠소이까?"
그리고 위소보를 향해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외사촌 아우, 그렇지 않아?"
오립신은 크게 노해서 뒤로 일장을 날려서는 냅다 그의 얼굴을 향해 후
려쳤다. 유일주는 고개를 숙여 피하면서 왼발을 퉁기듯 하며 몸을 일으
켰다.
오립신의 냅다  후려친 일장은 바로  벽계전시(碧鷄展翅)라는 일초였고 
유일주가 재빨리 피하며 몸을 퉁기듯  일으켜 세운 일초는 바로 금마사
풍(金馬사風)으로서 모두가 목가권의  초식이었다. 한사람은 급히 후려
치게 되고 한 사람은 급히  피하려고 부지불식간에 목가권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 장가라는 노인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의 변장술이 꽤 대단하시군."
그리고 그가 몸을 일으키자 수하들 십여 명도 덩달아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모조리 잡아라. 한 사람도 놓쳐서는 안 된다."
오립신은 품속에서 단도(短刀)를 뽑아들고  커다란 머리를 왼쪽으로 한
번 젖혔다. 그 순간 그는  한명의 사내를 내려찍어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다시  한번 젖혔을 때 다시 한명의  사내 목을 찔러 
쓰러뜨렸다.
노인은 두 손을 허리께로 가져가더니 한 쌍의 판관필을 뽑아들었다. 그
리고는 두 자루의 판관필을 한번 비볐다.
그러자 그 한 쌍의 판관필에서는 찍찍 하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그 노
인은 판관필을 쳐들고 왼쪽의 판관필을 쳐들고 왼쪽의 판관필로 오립신
의 목을, 오른손의 판관필로는 서천천의 가슴팍을 찌르고 했다.
일대 이로 공세를 취하는데 솜씨가 꽤 민첩한 편이었다. 서천천은 오른
쪽으로 달려들어 왼손으로 대한 한명의 눈을 할키려 들었다. 그 대한은 
뒤로 몸을 급히  젖혀 피하려고 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들렸던 칼은 
이미 서천천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다음  순간 허리 부분에 격렬한 통증
을 느꼈다. 그는 자기의 칼이 이미  자기의 배로 파고들어간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저쪽의 오표 역시 다른 사람과 손을 쓰게 되었다.
유일주는 잠시 망설이더니 연편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가 싸웠다. 상대
방의 사람 수는 많았으나 그저  그 노인만이 오립신과 막상막하의 싸움
을 벌일 수 있었을 뿐 나머지 노인의 수하들은 무공이 평범했다.
위소보는 이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 늙은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나로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
구나.)
그리고 그는 비수를 손에 뽑아들고 달려  들려 했다. 방이는 대뜸 그를 
잡으며 말했다.
"우리 쪽에서 틀림없이 이길 터이니 그대가 나설 필요는 없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말했다.
(우리 쪽이 틀림없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만약 틀림없이 지게 된다면  빨리 도망을 쳐야  할 것이
지.)
갑자기 찍찍 하는  소리가 잇달아 일었다. 그  노인은 어느덧 한편으로 
물러서서는 두 자루의 판관필을 서로 비벼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수
하 사람들은 일제히  그의 등뒤로 모여 들었고 신속하기  이를 데 없이 
하나의 네모난 진을 펼쳤다.
그들은 그저 몇 걸음 후다닥 옮겨서  각자 자기의 위치를 찾아섰다. 십
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밀거나 밀치지 않았고 또한 부딪히는 일도 없었
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평소 많은 훈련을 쌓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이 일에 대해서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서천천과 오립신은 깜짝 놀라서는 몇  걸음 물러섰다. 오표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네모난 진  안에서 네 자루의 칼이 일제
히 휘둘러졌다.
두 자루의 칼은 그의 어깻죽지를 내려치려 들었고 다른 두 자루의 칼은 
그의 발을 베려고 들었는데 매우 교묘한 배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중간에는 두 자루의 창날이 툭 불거져서는 그가 후려친 칼
을 옆으로 밀어냈다.  오표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에 칼을 맞고 
말았다.
오립신은 급히 부르짖었다.
"오표야! 뒤로 물러서라."
오표는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싸움의  승부가 갑자기 역전되고 말았
다.
서천천은 위소보와 두 소녀 앞을 가로막고 지켰다. 그리고 상대방의 진
법이 어떻게 운용되는가를 살폈다. 이때  노인은 오른손에 판관필을 높
이 쳐들고 소리 높여 외쳤다.
"홍교주는 만년이  지나도 늙지 않으시며 영원히  선복(仙福)을 누리게 
될지어다.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지어다."
그 세 명의 사내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홍교주의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지어다.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지어다."
그 소리는 집안의 대들보가 들썩하니  흔들릴 지경이었고 그 모습은 미
친 사람들의 그것 같았다.
서천천은 그만 아연해져서 도대체 그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위소보는 홍교주라는 말을  듣고 도홍영이 지극히 두려워하
던 표정과 말을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리고는 부르짖었다.
"신룡교다. 그들은 신룡교다!"
노인은 안색이 변해서는 말했다.
"너도 신룡교의 이름을 아는구나."
그리고 오른손을 높이 쳐들더니 다시 부르짖었다.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여라. 우리 교에서는 싸움에 이기지 못한 적
이 없으며 공격하여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 없고,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
도 떨어지며 또한 격파되지 않는 것이 없나니. 적들은 그야말로 추풍낙
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며 도망치기에 급급하도다!"
서천천 등은 그들이 한번 주문을 외울 때마다 속으로 흠칫 했다. 그 사
람들의 행동이 이상야릇하여 일찌기 한번도  보지 못하던 터였다. 더군
다나 적과 상대할 때 크게 주문을 외우리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
가.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이 사람들은 주문을 외울 줄  압니다. 그들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모두들 앞으로 나가 싸웁시다."
이때 그 노인과 뭇사람들은 더욱더 빨리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이젠
는 뭇사람들이 그 노인을 따라 한  마디씩 외우는 것이 아니고 십여 명
이 일제히 외는 것이었다.
"홍교주께서는 신통력으로 우리를  보살피고 지키시니 뭇제자들은 용기
가 백배하여 한 사람이 백 명을 당하고 백 명이 만 사람을 당해내도다. 
홍교주의 신목(神目)은  번개와 같이 사방을 비추도다.  우리 제자들은 
적을 죽여 교를  지키니 홍교주는 친히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성직(聖
職)의 직위를 높이는도다. 우리 교의  제자들이 교를 지키다가 죽게 되
면 모두 다 천당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그들은 질풍같이 달려들었다.
오립신과 서천천 등도 무기를 뻗쳐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삽시간에 무
공이 크게 정진된 듯했다. 강철칼을 마구  내리찍고 짧은 창을 마구 찔
러대는데 조금 전보다  공력이 수배나 불어난 것 같았고  마치 미친 듯 
무기를 마구잡이로 내리찍고 찔러냈다.
몇 수를 싸우기 전에 오표, 유일주는 이미 칼을 맞고 쓰러졌다. 곧이어 
위소보와 방이, 목검병은 팔에 상처를 입었다. 위소보는 등을 찔렸으나 
다행히 보의가 있어서 몸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그 창날이 몸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기세가 너무나 무섭고 힘차 위소보는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
고 그만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 후 오립신과 서천천마저
도 차례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  노인은 잇달아 손가락을 뻗쳐 내어
서 여러 사람의 몸에 있는 요혈을 짚어 버렸다.
뭇사내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도다. 수명은 하늘처
럼 높도다."
그와 같이 고함을 지르기를 그치자  갑자기 일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각자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고 헉헉거리고 숨을 몰아쉬는
데 매우 지친 것 같았다.
이 싸움은 차 한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아 그만 승패가 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마치 몇 시간을 두고 싸운 사람들 같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원래 요술을 알고  있었구나. 도 고모님이 신룡교를 들먹
이자마자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벌벌 떨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통력이 
광대하구나.)
그 노인은 의자  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운을  되찾느 듯하더니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대청에서 서성
거렸다.
잠시 후 그의 수하 사람들도 다투어 말했다.
"너희들도 함께 내가 읽는 대로 따라 읊도록 하라. 잘 들으라. 내가 한
마디 읊으면 너희들도 따라 읊어야  한다는 말이다. 홍교주는 신통력이 
광대하고 수명은 하늘처럼 높더라. "
서천천은 욕을 했다.
"사마의 도가 귀신처럼 행세를 하는구나. 이 늙은이야, 따라서 하라구? 
잠꼬대 같은 소린 아예 하지도 말아라."
노인은 판관필을 들어서는 그의 이마를  한번 내리쳤다. 퉁하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서천천은 욕을 했다.
"이 괴도적! 요물 단지!"
노인은 오립신에게 물었다.
"읊을 테냐, 읊지 않을 테냐?"
오립신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머리부터  가로저었다. 그 늙은이는 판
관필을 들어서는 그의 이마를 내리쳤다. 그리고는 오표에게 물었다.
오표는 욕을 했다.
"네 할미의 수명이 개와 같다고나 해라."
그 노인은 대노해서는 판관필을 아래로  내려치는데 더욱 힘을 주었다. 
오표는 즉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오립신은 호통을 내질렀다.
"표아는 사내답다. 너희들은 그저 요술을  할 줄 아는 녀석들에 불과하
다. 빌어먹을, 사내라면 우리들을 모조리 죽여 봐라."
노인은 판관필을 들더니 유일주에게도 말했다.
"너는 따라 읊을 테냐, 안 읊을 테냐?"
유일주는 말했다.
"나는...... 나는...... 나는......"
노이은 말했다.
"빨리 말해라.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도다."
유일주는 말했다.
"홍교주...... 홍교주......"
그 노인은 판관필의 끝으로 그의  이마빡을 살짝 찌르고는 호통을 내질
렀다.
"빨리 읽어랏!"
유일주는 말했다.
"네, 네, 홍교주...... 홍교주의 수명은 하늘과 같이 높습니다."
그 노인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역시 때를 아는 자만이 득을  보게 마련이지. 네 녀석은 교육
의 고통을 덜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위소보 앞으로 가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꼬마야, 나를 따라 읊어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먼저 읽어 줄 필요가 없소이다."
그 노인은 노해 부르짖었다.
"뭐라구?"
그리고는 판관필을 들었다.
"위교주의 신통력이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고 영원히 선복을 누
릴지어다. 위교주는 싸워서 이기지 않는 때가 없고 승리는 싸우지 않고
도 얻더라. 위교주는 공격하여 무너뜨리지  않는 자가 없고 무너뜨리는 
데는 공격하지 않아도 되더라. 위교주는  당신네들을 모두 다 이끌어서 
함께 천상으로 오르더라......"
그는 위교주라는 위 자를 애매모호하게 발음했으며 그저 콧소리로 흥얼
거릴 정도로 읊었기 때문에 노인은  그가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고 있었
다. 그저 그가 홍교주라고 말하고 또  잇달아 그와 같이 읊어대자 그저 
기뻐서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칭찬했다.
"하하하, 너 꼬마 녀석은 퍽 얌전하구나."
그리고 그는 방이 앞으로 다가가서는 그녀의 아랫턱을 어루만져 보더니 
말했다.
"오, 계집애의 얼굴 모습이 그럴 듯하구나. 순순히 내가 읊는대로 따라 
읊도록 해라."
방이는 고개를 비틀며 말했다.
"읊지 않겠어요."
그 노인은 판관필을 들어 내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촛불 아래 보니 그
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판관필의 끝으로 그녀의 뺨
을 겨누고는 말했다.
"읊겠느냐? 읊지 않겠느냐?  다시 한번 더 읊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는 
너의 얼굴에다 세 번 줄을 그어 버리겠다."
방이는 고집스레 읊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읊지 않겠다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내놓을 수는 없었다. 
노인은 물었다.
"도대체 읊겠느냐, 못 읊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녀 대신 읊어 드리리다. 틀림없이 그녀보다 더 멋지게 읊어 보
이겠소."
노인은 호통을 내질렀다.
"누가 너보고 대신하라고 했느냐?"
그리고 판관필을 들더니 방이의 어깻죽지를  한번 내리쳤다. 방이는 아
파서 아!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갑자기 한 사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 세째 나리, 그 계집애가 만약 읊지 않는다면 우리들로 하여금 그녀
의 옷자락을 벗기도록 해주십시오."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그것 참 멋진 생각이오. 그 생각이 그럴싸하구려."
유일주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당신네들은 어째서 그 소저를 못살게  구는 것이오? 그대들이 찾는 소
태감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고 있소."
그 노인은 재빨리 물었다.
"네가 안다구? 어디 있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유일주는 말했다.
"저 소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그러면 나는 그대에게 말하
리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나는 말하지 않겠소
이다."
방이는 날카로운 어조로 외쳤다.
"사형, 나를 상관할 것 없어요."
노인은 웃었다.
"좋다. 저 소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유일주는 말했다.
"그대가 한 말에 신의를 지켜야 하오."
노인은 말했다.
"이 장가는 한번 한 말에 대해서  물론 책임을 진다. 그 소태감으로 말
하면 바로 오배를 잡아 죽인,  황제께서 매우 총애하는 소계자이다. 너
는 정말 그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유일주는 말했다.
"멀리는 하늘 끝에 있고 가까이는 눈앞에 있소이다."
노인은 펄쩍 뛸듯 하면서 위소보를 손가락질 했다.
"바로...... 바로...... 이 애로구나."
그리고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에 얽힌 빛을 띠었다.
방이는 말했다.
"그 어린애 같은  모양으로 어찌 오배를 죽일 수  있겠어요? 그가 하는 
터무니 없는 소리에 현혹되지 마세요."
유일주는 말했다.
"그렇소이다. 만약 몽혼약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만주 제일용사 
오배를 죽일 수 있겠소이까?"
노인은 반신반의하며 위소보에게 물었다.
"오배는 바로 네가 죽인 것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죽인 것이면 어떻고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또 어떻단 말이오?"
노인은 욕을 했다.
"고얀, 내가 보기엔  이 꼬마 녀석은 아무래도 조금  요사한 데가 있구
나. 너의 몸을 뒤져 봐야겠다."
그리고 그는 즉시 두 명의  사내를 불러와서는 그들로 하여금 위소보의 
등에 메고 있는 보따리를 풀어헤치게 하여 그 속의 물건들을 일일이 탁
자 위에 놓도록 하였다.
노인은 구슬이고 금붙이고 꺼내 놓은 물물들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니, 이것들은 모두 황궁 안의 물건이 아니냐. 어..... 이게 뭐지?"
그러면서 그는 한 묶음의 은표를 쳐들었다. 모두가 오백 냥짜리가 아니
면 일천 냥짜리 은표인데 그 금액은 수십만 냥에 달해 그만 어리둥절해
졌다.
"과연 틀림없구나. 과연 틀림없어. 네가 바로 소계자로구나. 그를 저쪽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자세히 캐묻도록 해라."
방이는 다급해져서 부르짖었다.
"당신네들, 제발 이 분을 괴롭히지 말아요."
목검병은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한 명의 사내가 위소보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탁
자 위의 여러  가지 물건을 안아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촛대를 들고서 
앞장을 섰다. 
그리고는 후원 동쪽 상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은 모두 나가거라."
네 명의 사내들은 모두 방을 나가고는 방문을 닫았다.

노인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띠우고  연신 손을 비벼대며 방안에서 서성거
렸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야말로 쇠신발이 닳도록 찾아 헤맸는데, 이제는 찾는데 전혀 수고를 
들이지 않게 되었구나. 소계자 공공,  오늘 그대와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은 그야말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불초가 나리와 이곳에서 만난 것은 그야말로 전생에 쌓은 덕 때문이고 
이승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는 물건마저 모조리 수색당한 꼴이라 잡아떼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임기응변으로 이 고비를  넘기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
다.
노인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저승에서 쌓은  덕이고 이승의 영광이란 말이지?  계공공 그대는 
오대산 청량사로 가는 길이시겠지?"
위소보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후레자식이 모두 다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쉽게 다룰 수 없겠는
데?)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3. 남을 속이는 비법

 그러나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귀하의 무공이 고강한데다 주문을 외우는 재간까지 모산(茅山)의 도사
들보다 뛰어나구려.  당신네들 신룡교는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과연 어느 정도 재간이 있었구려. 불초는  이미 이름을 들은 지 오래이
외다. 그런데 오늘 친히 목격하게 되니 실로 탄복했소이다."
그는 짐짓 화제를 돌려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은 말했다.
"신룡교의 이름을 그대는 어디서 들었는가?"
위소보는 나오는 대로 씨부렁거렸다.
"나는 평서왕 오삼계의 아들 오응웅에게서 들었소이다. 그는 부친의 명
을 받고 북경으로 조공을 바치러 왔는데 그의 수하에 뛰어난 호걸이 한 
분 있소이다. 이름은 양익지라고 하오. 그리고 또 그 사람 외에도 많은 
요동 금정문의 고수들이 있었소이다. 그들이 어떻게 신룡교를 멸망시킬 
것인가 하고 상의하는 소리를 들었소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룡교에 홍
교주가 있는데 신통력이 광대하고 그  아래에 능한 사람들이 지극히 많
다고도 했소이다. 또 그의 교 아래에는  상남기 기주 쪽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으며, 그래서 한  권의 사십이장경을 손에 넣었다고 
들었소이다. 그거야말로 매우 대단한 일이 아니겠소?"
그는 거짓말을 하는 요령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는 말마다 거짓말을 해
서는 들통이 나지만 아홉 마디의  참말 가운데 한마디의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쉽게 남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들으면 들을수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오응웅과 양익지라
는 두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교
에서 한 중요한 인물이 상남기 기주의 수하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다
는 사실은 신룡교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큰일이었고 자기 자신마저도 일 
개월 전에야 겨우 우연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사십이장
경이라는 한 권의 경서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 
내력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재빨리 물었
다.
"평서왕부는 우리 신룡교와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어째서 시비를 거는 
것이지? 그리고 멸망이란 말을 쓰다니 그야말로 죽고 사는 것을 모르는
가 보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오응웅 그들은 평서왕부와 신룡교와는 물론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했
소이다. 그리고 홍교주의 재간에  대해서 모두들 탄복하고 있었소이다. 
하지만 신룡교에서 사십이장경이라는 경서를  손에 넣은 것은 그야말로 
그 사십이장경이 지극한 보물이고  기이한 경서이니만큼 반드시 빼앗아 
와야 한다고 했소. 귀교에서는 뚱뚱한 여자로 유연이라고 하는 유 누님
이 계시고 바로 그 누님이 황궁에서 일을 보게 되지 않았소?"
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 그대는 그런 것을 또 어떻게 알고 있지?"
위소보는 입으로 그저 주어 섬기고  있었다. 신룡교와 관계가 조금이라
도 있는 것이면 그저 모조리 털어놓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재빨리 궁리를 
하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유 누님으로 말하면 나와 교분이 괜찮은 편이죠. 한번은 그녀가 태
후에게 죄를 지었는데 태후는 그녀를  죽이려고 했소이다. 그런데 다행
히 내가 나서서 그녀를 침대 밑에 숨겨 목숨을 구해 주었죠. 태후는 궁
안에서 이곳저곳 찾았지만 그녀를 찾지 못했지요. 그 뚱뚱한 누님은 내
가 목숨을 구해 준 은혜가  고맙다고 하면서 나에게 신룡교에 가입하라
고 했소이다. 그리고 홍교주는 나와 같은 어린애를 좋아하니 장래에 반
드시 큰 득을 보게 될것이라고도 했소."
노인은 음! 하더니 더욱더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질문했다.
"태후께서는 어째서 유연을 죽이려고  했지? 그녀들은.... 서로 사이가 
좋았지 않은가?"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소. 그녀들 두 사람은 본래 사저와 사매였죠. 태후께서 어째서 유 
누님을 죽이려고 했는지 유 누님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매우 커다란 비
밀이 있다고 했소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말해주는 대신 나는 그녀
에게 결코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이 일은 그대에게 말할 수
가 없소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태후의  자녕궁에는 여장을 한 가짜 궁
녀가 왔었소. 이 사람의 머리는 민숭민숭한데......"
노인은 불쑥 부르짖었다.
"등병춘(鄧炳春)! 등 형이 궁안으로 들어간  일도 너는 알고 있단 말이
냐?"
위소보는 원래 그 가짜 궁녀의 이름이 등병춘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
나 그는 얼굴에  모르는 것이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장 세째 나리, 이 일은, 매우 비밀스러운 일이니 당신은 결코 남 앞에
서 누설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을 때는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외다. 
당신이 나에게 말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만약 제 삼자가 이곳에 있다
면 설사 당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라고 하더라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
는 거이오. 만약에  그와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  홍교주는 진노하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당신 역시 크게 책임을 져야 될 것이외다."
그는 황궁에서 오랫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기밀을 누설하는 것이 바로 
조정이나 궁중에서는 커다란 금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심하
면 온 가산을 몰수당하고 참수형을  당하게 되며 가볍게는 영원히 출세
할 기회를 잃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슬금슬금 깊
이를 헤아릴 수 없는 듯한 태도를  보여 주어야 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자기 자신도 아무것도 모르니 상대에게 무슨 말을 주고받기가 거북하다
는 태도를 띠어야 했다. 이것이 일반  궁안이나 조정에서 하는 관습 내
지는 버릇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소보는 그와 같은 재주를 그 
장가라는 노인에게 썼는데 즉시 효과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강호
에서의 방회나 교파에서 윗 사람이  부하들을 통솔하고 제어하는 데 있
어 사용하는 방법은 조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저 한 쪽은 좀더 세밀하고  은근한데 반해 다른 
한쪽은 거칠고 노골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몇 마디의  말에 노인은 속으로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째서 이토록 경솔했을까? 그와  같은 일을 이 어린애에게 말하
다니. 이 어린애는 남겨 둘 수가 없다. 큰일을 처리한 이후에는 반드시 
죽여 입을 봉해야겠다.)
그만 겸역쩍어진 그는 억지로 웃음을 띠고 물었다.
"그대는 우리 등사형과 무슨 말을 주고받았지?"
위소보는 말했다.
"제가 등사형에게 한  말과 또 그가 저보고  홍교주께 전하라는 말씀은 
이후 교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내 자연히 상세하게 품하겠소이다."
노인은 말했다.
"그래, 그래, 그래."
노인은 위소보가 시치미를 뚝 떼고 위협을  주는 말에, 이 애의 내력이 
과연 어떠한지 실로 불가사의한 심정에 빠져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소형제, 그대가 오대산으로 가는 것은 물론 서부총관과 만나기 위해서
겠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내가 오대산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서동의 일도 알고 있다
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소식은 반드시  늙은 갈보 쪽에서 전해진 것이 
틀림없다. 그 늙은 갈보는 머리가  민숭민숭한 가짜 궁녀를 사형이라고 
불렀는데 그 머리가 민숭한 자는 신룡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고 보
면 늙은 갈보는 바로 신룡교와 결탁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내가 그
들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구사일생이고 열 여덟 번 죽은 
가운데 반 정도는 겨우 살아 있는 꼴이 되었구나.)
그리하여 그는 짐짓 놀랍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띠고 말했다.
"하! 장 세째  나리, 소문에 대해서 꽤 소식이  잘 통하는가 보오이다. 
서부총관의 일도 알고 있었습니까?"
노인은 미소지었다.
"서부총관보다 내력이  만 배 이상 큰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알고 있
지."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큰일났다. 큰일났어. 늙은 갈보가 모조리 다 털어놓았구나. 순치 황제
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가 서동의 내력보다 만 배나 더 크겠는가?)
노인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소형제, 그대는 나를 무슨 일이든 속일 생각일랑 하지 말게나. 그대가 
오대산으로 가는 것은 명을 받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가는 것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궁안에서 태감 노릇을 하고 있는데  명을 받들고 심부름 가는 일
이 아니라면 어찌 혼자서 함부로 북경을  떠날 수 있겠소. 설마하니 내
가 나의 목숨이 질기다고 생각했겠소?"
그 노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황상께서 그대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인가?"
위소보는 얼굴에 크게 놀람과 의아한 빛을 띠었다.
"황상께서요? 장 세째 나리는 황상께서 심부름을 보냈다고 생각하시오? 
하하하! 이번에야말로 소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소이다. 황상께서 
어찌 오대산의 일을 아신답니까?"
노인은 말했다.
"황상께서가 아니라면 누가 자네를 파견한 것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어디 한번 알아맞추어 보심이 어떨지......"
노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태후께서?"
위소보는 말했다.
"세째 나리께서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뜸 알아맞추시니요. 궁중에서 
오대산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과 한 귀신이랍니다."
그 노인은 되물었다.
"두 사람과 한 귀신이라구?"
위소보는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태후이고 한 사람은 불초
이지요. 그리고 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해대부 해로공을 말하는 것
입니다. 그는 태후의 화골면장에 맞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노인의 얼굴 근육이 푸르르 몇 번 떨렸다.
"화골면장, 화골면장이라고? 그리고  태후께선 그대를 심부름차 보내신 
것 같은데 무슨 일 때문인가?"
위소보는 빙그레 웃었다.
"태후께선 장 세째 나리와는 한집안 사람이니  장 세째 나리가 직접 그 
어르신께 물어 보시도록 하시지요?"
이 한마디를 이 방안에 들어선 직후에 했었다면, 노인은 십중팔구 그의 
따귀를 후려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소보의 말을 한동안 듣고 난 
지금이라 속으로 놀라움과 의아함을 느끼게 되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음, 태후께서 그대를 오대산으로 보내신 것이 사실인 게로구만."
위소보는 말했다.
"태후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 이미 홍교주님께 말씀드렸는데 홍교주께서
는 매우 찬성하더라도 하더이다. 태후께서는 내게 일을 잘 처리할 것을 
분부하셨소이다. 그리고 일이 끝난 이후에  태후께서 큰상을 내리실 것
은 물론이고 홍교주께서도 저에게 매우 커다란 덕을 베풀겠다고 하시더
라는 말씀을 들었소이다."
그는 끊임없이  홍교주라는 이름을 들먹였다. 그것은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노인은  홍교주에 대해서 무척 두려움
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홍교주가 자신을 매우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된다면 자신을 해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위소보가 이와 같은 허장성세로 나오게 되자 노인은 반신반의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일을 믿었으면 믿었지 감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없
는 노릇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노인은 물었다.
"밖의 여섯 명의 사람들은 모두 그대의 부하이거나 시종이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 모두 궁안 사람들이외다. 두 소저는 태후 곁의 궁녀이고 네 명의 
남자는 어전시위이외다. 태후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수행하여 일을 처리
하라고 했소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룡교의 이름을 모르고 있소이다. 그
와 같은 기밀에 속하는 대사를  태후께서 그들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노인의 얼굴이 냉소를 띠고 있음을 보고 속으
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위소보는 노인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믿을 수 없다는 겁니까?"
노인은 냉소했다.
"운남 목씨 집안의 사람들은 전 명나라의  충성을 다 바치고 있는데 어
찌 궁으로 가서 어전시위가 되겠는가?  그대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정도
껏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노인은 아연해졌다.
"어찌 웃는 것이지?"
그는 위소보가 거짓말을 할 시에 상대방에게 발목을 잡히게 되어 그 거
짓말을 그럴싸하게 꾸며 댈 수 없을  때는, 종종 소리 내어 웃음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반드시 자기가 말한  것이 크게 잘못되었고 매우 유
치하고 가소롭다고 느끼게끔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먼저 그 자신이 켕기게 되고 그렇기 되었을 때 계속 거짓말을 
해댄다 하더라도 상대방에서는 너무  지나치게 다그칠수 없다는 사실을 
위소보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다시 몇 번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목왕부의 사람들이 가장 증오하고 있는  것은 태후와 황상이 아니올씨
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마도 장 세째 나리가 잘 모르시는가 봅니다."
노인은 말했다.
"내 어찌 모르겠는가.  목왕부의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물론 
오삼계이겠지."
위소보는 짐짓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장 세째 나리, 정말 해박하십니다. 내 사실대로 말하지
만 목왕부 사람들이 태후의 어전시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삼
계가 멸족의 화를 당해서는 평서왕부에 닭 한마리 개 한마리 남아 나지 
않을까 하여 하는 연극인 것입니다. 황궁에 목왕부의 사람이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평서왕부에도 어찌 목왕부 사람이 없겠소이까? 다만 이는 
매우 기밀에 속하는 일이지요. 저와 장 세째 나리는 한집안 사람이니까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장 세째 나리는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누설해서
는 안 될 것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군."
그러나 그는 속으로  역시 위소보의 말을 삼 푼  정도밖에 믿지 못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바깥의 몇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야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내
용이 맞는가 안 맞는가 두고 봐야겠다. 그 나이 어린 소저에게 묻는 것
이 가장 좋을 것이다. 어린애는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어른보다는 쉬우
니까.)
그리고 그는 즉시 몸을 돌려서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불렀다.
"이것 보시오, 이것  보시오? 장 세째 나리,  어디로 가십니까? 이곳은 
도깨비집이외다. 장 세째 나리는...... 어째서 나 혼자 이곳에 남겨 두
려고 하십니까?"
노인은 말했다.
"내 즉시 돌아오겠네."
그리고 그는 문을 닫고는 재빠른 걸음으로 대청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두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촛불이 일렁거릴 때마다 하얀 벽에 
그림자가 모두 도깨비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방이 조용해서 더욱 무시무시했다. 별안간 바깥 쪽에서 한 사
람이 크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어디로 갔느냐?"
바로 노인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그의 부르짖음이 놀라움과 당혹감으
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던 터
라 그만 기절할 정도로 놀라 부르짖었다.
"그들...... 그들 모두....... 보이지 않습니까?"
노인은 다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너희들 모두 어디 있느냐? 어디로 갔느냐?"
두 번을 부르짖었으나 조용하기만 할  뿐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
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앞쪽에서  뒷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
더니 문마다 걷어차여 열리는 기척이 들렸다. 그러더니 그 사람은 다시 
달려와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위소보는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노인이었다.
노인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셔 가지고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채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들...... 그들 모두...... 모두 보이지 않는다네."
위소보는 말했다.
"도...... 도...... 도깨비들에게 잡혀간 모양입니다. 우리...... 우리 
빨리 달아납시다."
노인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그리고 그는 왼손을 부축하듯 탁자 위에 얹었다. 그러자 탁자가 덜덜덜 
떨렸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 역시 내심으로는 놀라고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서 문  입구 쪽으로 달려가더니 큰소리로 부르짖었
다.
"전부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느냐?"
큰 소리를 친 후 귀를 기울였다. 조용한 방에 몇 차례 여자들의 울부짖
는 소리가 들렸다. 일시 그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 문 입구
에 서 있더니 몇 걸음 물러나서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빗장을 문에
다 걸었다. 위소보는 그저 조그만 눈을 둥그렇게 들어서는 그를 쳐다보
았는데 그 눈에는 공포의 빛이 어려 있었다.
위소보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노인은 이를 
콱 깨물고 있었는데 얼굴은 한동안 새파래졌다. 창백해졌다 하곤 했다.
큰비는 본래 멎어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하 차례 지붕 위에 소나기 뿌
려지는 소리가 후두둑후두둑 하며 들려왔다.
노인은 아! 하고 벌떡 뛰어일어날 듯 하더니 잠시 후에야 겨우 입을 열
었다.
"비...... 비 오는...... 소리였구나."
별안간 대청에서 여자의 가느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장 세째, 너 나오너라."
이 소리는 늙수그레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간드러지고 부드러운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코 방이와 목검병의 음성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음성에는 어느정도 처절한 감이 배어 있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여자 도깨비다!"
그러자 그 노인은 큰소리로 외쳐 물었다.
"누가 나를 부르는가?"
그러나 바깥 쪽에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후두둑거리
며 비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올 뿐 아무런 기척도 들을 수 없었다. 노인
과 위소보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온몸에 소름이 쪽쪽 
끼쳤다.
한참 후 다시 그 여인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 세째, 너 나오너라."
노인이 용기를 내어 왼발로 쿵 하고 걷어차는 바람에 방문은 바깥 쪽으
로 열어 젖혀졌다. 그러나 빗장은 여전히 문설주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 우직끈 뚝 하고 문빗장을 가운데로부터 분지르더
니 잇따라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급히 부르짖었다.
"나가지 마시오."
그러나 노인은 이미 대청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노인이 달려나간 후 그대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호통소리나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발걸음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일진의 차가운 
바람이 문밖에서 휘익 몰아쳐 들어왔다. 그 바람에는 적지 않은 소나기
가 실려 있어서 빗방울이 위소보의 몸에 떨어질 정도였다. 
위소보는 몸을 부르르 떨고 난 후 소리를 내지르려고 했으나 감히 소리
를 낼 수가  없었다. 별안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바람에 날려 
닫혀졌으나 곧이어 튕겨지듯 다시 열렸다.
이 도깨비 집에는 이제 위소보 한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적지 않은  고약한 도깨비들이 있어서 언제라도  달려들어와 그의 
목을 졸라 죽일 수 있으리라.
다행히 한참 동안 기다려도 고약한  귀신은 시종 들어오는 기척이 없었
다. 위소보는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맞았다. 고약한 귀신은 어른을 해칠 뿐 어린애는 해치지 않는다. 어쩌
면 그들은 많은  사람을 먹어서 배가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날이 
밝기만 하면 큰 탈은 없을 것이다."
별안간 다시 차가운 바람이 휙 하니  몰아쳤다. 촛불은 파란 불꽃만 남
아서 부르르 떨더니 꺼지고 말았다.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순간 방안에는 이미 하나의 귀신이 나타났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 귀신이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느꼈다. 어둠속이라 제대로 살
필 수는 없었지만 똑똑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것 봐요. 이것 보시오. 그대는  나를 해치지 마시오. 나 역시...... 
나 역시 도깨비외다. 우리는 한집안 사람이외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귀
신이외다. 모두 한집안 귀신이외다.  그러니...... 그대가 나를 해친다 
해도 소용이 없소이다."
귀신은 냉랭히 말했다.
"너는 두려워할 것 없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겠다."
바로 여자 도깨비의 음성이 아닌가.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
쩍 들었다.
"그대는 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말했으니  나를 해쳐서는 안 될 것이오. 
대장부라면 한마디를 산과 같이 무겁게 여겨야 할 것이니 만일 나를 해
친다면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귀신은 다시 냉냉히 말했다.
"나는 귀신이 아니다. 그리고 대장부도  아니다. 내 그대에게 묻겠는데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던 그 오배를 정말 네가 죽였느냐?"
위소보는 되물었다.
"그대가 정말 귀신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는 오배의 원수요, 아니면 친
구요?"
그가 그같이 물었으나 상대방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잠
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상대방이 만약 오배의 원수이거나 원
한이 있는 귀신이라면 그와 같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척 좋
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만약 오배의 친척이거나 친구되는 도깨비인데 자
기가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야단이 아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
다. 위소보는 별안간 도박꾼의 습성이 발동하게 되었다.
(큰 숫자인가 적은 숫자인가 하는 것은 어쨌든 한번 걸어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제대로 건다면  그녀는 나를 큰 나리로  생각할 것이고 제대로 
걸지 못하게 된다면 목숨마저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제기랄, 오배는 내가  죽인 것이오. 그대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나는 한칼을 들어 그의 등을 찔러  버렸소. 그러자 그는 그야말로 염라
대왕 앞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외다.  그대가 원수를 갚겠다면 얼마든지 
손을 쓰시오. 내가 눈살 한번 찌푸린다면  영웅호걸이라 할 수 없을 것
이외다."
그 여자는 냉랭히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오배를 죽였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만약에 오배의 친구라면 내가  일을 황제에게 미룬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고 결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번에 제대로 걸기만 한다면 나는 깨끗하게  이길 수 있고 또 충분히 상
대방의 돈을 따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오배는 천하 선량한 백성들을 무수히  죽였소. 내 비록 나이는 어리지
만 화가 크게 치밀었던 것이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는 황제의 위엄을 
거슬렸소. 나는 그 기회에 죽인  것이오. 사내대장부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오. 내 그대에게 말하지만 설사 오배라는 
개도적이 황제의 위엄을 거슬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기회를 봐 몰래 손
을 써서는 천하의 고난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의 원한을 갚아 주었을 것
이오."
뒤의 한마디는 천지회 청목당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었다. 기실 그가 
오배를 죽인 것은 그저 강희의 명령을 받든 것이었지 천하 백성들의 원
한을 갚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와 같은 말을 한 이후  눈앞의 여인은 잠자코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걸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 이후 미미한  바람이 이는 기척이 들렸다.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귀신인지 모를 그녀는 초연히 방을 나서고 있었다.
위소보는 몸을 몇 번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혈도가 짚혀져 있는지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기랄, 주사위를 흔들어서 놓긴 놓았는데 주사위를 받치고 있던 종발
을 들어 내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사람의 궁금증을  몹시 자극하는구
나.)
조금 전 그는 일시적인 충동으로 한번 크게 도박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
고 잃고 지는 것에 대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 조용해지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조금 전 자기에게 말했던 
것은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여자 귀신
이라면 오배는 남자 귀신이었다. 그들 두 사람이야말로 같은 편 귀신이
고 위소보에게는 그야말로 원수가 되는  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었으며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이 바람에 펑! 쿵! 하는 소리가 자꾸만 일었다. 몸의 옷이 미처 마르
기도 전에 싸늘한 바람이 한 차례  불어옴에 따라 그는 그만 몸을 부르
르 떨어야 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4. 미녀귀신

 별안간 멀리서 한무더기의 밝은 빛이 나타나더니 천천히 옮겨졌다. 위
소보는 속으로 깜짝 놀라 생각했다.
(도깨비불이다! 도깨비불이다!)
그 한 무더기의 밝은 불은 점점 가까와졌는데 알고 보니 하나의 등불이
었다. 등불을 들고 있는 것은 백의의 여자 귀신이었다.
위소보는 재빨리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발걸음  소리도 갸냘프게 그 
백의의 여자 귀신은 자기 앞에 이르러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그는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
고 있었다. 한데  한 소녀의 음성이 웃음을 띤 어조로  묻는 것이 아닌
가.
"그대는 어째서 눈을 감고 있나요?"
그 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나를 놀라게 하지 마시오.  나야...... 나야 감히 그대를 쳐다
볼 수가 없소이다."
그 여자 귀신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내가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가 두려
운 모양이죠? 하지만 그대는 눈을 떠서 한번 바라보기나 하세요."
위소보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그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소. 그대는 봉두난발에 일곱 구멍
에서 피를 흘릴 것이 아니겠소? 뭐가...... 보기 좋겠소."
그 여자 귀신은 깔깔거리고 웃더니 그의  얼굴에 대고 훅 하니 한번 불
었다.
그 한번 분 숨결이 그의 얼굴에 와닿자 약간 따뜻한 감이 있었고 또 엷
으나 그윽한 향기가 실려 있었다. 위소보는  왼쪽 눈을 뜨고 살짝 바라
보았다. 어렴풋이 하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썹은 초생달처럼 가늘
었고 입술은 작았으며 웃는 얼굴은 그야말로 꽃과 같았다.
그 즉시 위소보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매우 청순한 소녀의 얼굴이 아닌가.  나이는 열 네댓살 정도 되었
으며 쌍갈래로 머리카락을 땋고 있었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자기를 바라
보고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마음이 놓여서는 물었다.
"그대는 정말 귀신이 아니오?"
그 소녀는 미소했다.
"나는 물론 귀신이에요.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에요."
위소보는 가슴이 쿵쿵 하며 크게 뛰는 것을 느끼고 놀람과 의아함을 금
치 못했다. 그 소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악인을 죽였을 때는 그토록  대담하더니 어찌하여 목매달아 죽
은 귀신을 대하게 되었을 때는 이토록 담이 적어지게 되었나요?"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사람은 두렵지 않소만은 도깨비는 두렵소."
소녀는 다시 깔깔거리고 웃더니 물었다.
"그대는 어떤 혈도를 짚혔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알았으면 좋겠소이다."
그 소녀는 그의 어깨 뒷죽지를 몇 번 주물렀다. 그리고 그의 등을 가볍
게 세 번 후려쳤다. 그러자 위소보는  두 손을 대뜸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팔을 들고 두 번 휘저은 후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혈도를 풀줄 아는구려. 그거 정말 잘되었소."
그 소녀는 말했다.
"나는 배운 지 얼마 안 돼요. 오늘에사 처음으로 그대의 몸에다 시험해 
본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위소보의 겨드랑이 아랫쪽과 허리 쪽을 몇 번 주물러 주
었다. 위소보는 훌쩍 뛰어 일어나며 웃었다.
"안 되오. 안 되오. 나는 간지러운 것이 두렵소."
이렇게 되어 그의 두 다리에  봉해졌던 혈도마저도 이미 풀어지게 되었
다. 그는 두 손을 내밀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간지럽혔으니 나도 그대를 간지럽혀 주어야겠소!"
그러면서 그는 한걸음 다가섰다. 그 소녀는 혀를 내밀고 용용죽겠지 하
는 얼굴을 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무척 귀여웠으며 조금도 사람들에게 
두려운 감을 안겨 주지 않았다. 위소보는  손을 뻗쳐 그녀의 혀를 잡으
려고 들었다.
그 소녀는 재빨리 머리를 틀어서는 피하더니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대는 이제 목매달아 죽은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에게는 그림자가 있고 또 뜨거운 숨을 내쉬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지 귀신이 아니잖소?"
그 소녀는 눈을 부릅뜨고 정색해서 말했다.
"나는 강시(강屍)이지 귀신이 아니에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등불 아래에서 보니 그녀의 얼굴은 불그레하
면서도 희고 고았다. 그리하여 웃으면서 말했다.
"강시는 다리를 구부릴 줄 모른다오. 그리고 말도 할 줄 몰라요."
그 소녀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여우의 요정일거에요."
위소보는 웃었다.
"나는 여우의 요정을 두려워하지 않소."
그리고 속으로 약간 의심을 금할 수 없었다.
(혹시 그녀는 정말 여우의 요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등뒤로 돌아가 보았다. 그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천년 묵은 여우의 요정이에요.  도술이 깊기 때문에 꼬리가 없어
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와 같이 아름다운 여우의 요정이라면  그대에게 홀려서 죽는다 하
더라도 괜찮을 것 같소."
그 소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손을 뻗쳐서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얼
굴에 갖다대고 부끄럽지도 않느냐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부끄럽지도 않아요? 조금 전에는 귀신을  겁내서 어쩔 줄 모르더니 이
번에는 그야말로 남의 득을 보려는 말만 하네요."
위소보는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강시였고 두 번째로  두려워하는 것이 
귀신이었다. 그리고 여우의 요정에  대해서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소녀가 부드럽고 친절한 것이 방이와 목검병보다 사람에게 더 
친근감을 안겨 주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강남의 말씨를 쓰고  있어서 방이나 목검병 두 소녀의 
운남 말씨보다 듣기가 더 좋았다. 그리하여 그는 웃으며 말했다.
"소저, 그대의 이름은 뭐라고 하지요?"
소녀는 말했다.
"나는 쌍아(雙兒)라고 해요. 한 쌍 할때의 쌍 자예요."
위소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잘되었구려. 그런데 한 쌍의 비단신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쌍
의 버선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구려."
쌍아는 웃으며 말했다.
"냄새나는 버선도 좋고 비단 신발이라고  해도 좋아요. 마음대로 해 두
세요. 그런데 계공공, 그대는 온몸이 젖어  있군요. 매우 불편할 것 같
으니 저쪽으로 가서  마른 옷으로 갈아입도록 하세요.  그런데 한 가지 
난처한 일이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양해해 주세요."
위소보는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난처하다는 것이요?"
쌍아는 말했다.
"이곳에는 남자의 의복이 없어요."
위소보는 그만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대뜸 안색이 변해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집안에는 모두 다 여자 도깨비들 뿐이로구나.)
쌍아는 등롱을 들고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위소보는 주저하며  망설였다. 쌍아는 문쪽으로 가더니  고개를 돌리고 
그를 기다리며 미소했다.
"여자의 옷을 입는데 대해서  운수불길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럼 
이렇게 해요. 그대는  침대 위에 누워 계세요. 그러면  내가 빨리 옷을 
다려서 말려 드리겠어요."
위소보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부드럽고  또 알뜰한 태도를 보고는 감히 
거절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를 따라 방문을 나서며 물었
다.
"나의 동료들은 어디로 갔소이까?"
쌍아는 두 걸음 늦추어서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이  분부했어요. 무슨 말이라도 그대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에요. 나중에  그대가 약간의 음식을 들게  된 이후에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직접 그대에게 이야기를 하실거예요."
위소보는 그렇잖아도 무척 배가 고팠던  참이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대뜸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을 느꼈다.
쌍아는 위소보를 데리고 어두침침한 낭하를  걸어서 어느 방 앞에 이르
렀다. 그 방안에는  탁자 위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 방에는 탁자와 
침대가 있었는데 매우 간결하게 꾸며져  있어 깨끗한 편이었고 침대 위
에는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쌍아는 이부자락 한 쪽을 들치고는 모기장을 내려놓은 후 말했다.
"계상공, 그대는 침대 위로 올라가 옷을 벗어서는 나에게 던져주세요."
위소보는 그 말대로 침대 위로  뛰어올라서는 옷과 바지를 벗고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옷과 바지를 밖으로 내던졌다.
쌍아는 받아들더니 문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내가 요기할 것을 가져 오겠어요. 그대는 달콤한 종자(綜子)를 좋아하
세요. 아니면 짭짤한 종자를 좋아하세요?"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배가 고파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니 흙모래로 빚은 종자라도 
나는 세 개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소."
쌍아는 웃으면서 나갔다.
위소보는 그녀가 나가고 방안이 조용해지며  촛불이 춤을 추는 것을 보
자 또다시 두려운 마음이 치솟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아이구, 야단났다. 여자 귀신들이 사람에게  국수나 작은 물만두를 먹
이게 되었을 적이 기실 먹이는 것은 지렁이나 송충이를 먹인다고 했다. 
나는 속임수에 넘어갈 수 없지.)
잠시 후 위소보는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쌍아는 두손으로 나
무쟁반을 들고서 팔을 들어 모기장을 젖혔다. 위소보는 접시에 네 개의 
껍질을 벗겨놓은 종자가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는 
너무나 배가 고파서 설사 지렁이나  송충이로 빚은 것이라 하더라도 먹
은 후에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는데 입안으로  들어가자 그 
감미로움은 뭐라고 견주어서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두 개 반을 먹고 입을 열었다.
"쌍아, 이 종자는 호주(湖州)의 종자처럼 맛이 정말 좋구려."
절강성 호주에서 나는 종자는 쌀이  부드럽고 또 들어가는 것이 많아서 
천하무쌍이라 일컬어지고 있었다. 양주에서도 호주의 종자를 파는 가게
가 있었다.
여춘원에 놀러온 손님들은 때때로 위소보에게 그와 같은 호주의 종자를 
사러 보내기도 했다. 종자는 전체를  종려나무 잎이나 대나무잎으로 싸
아 놓았기 때문에 위소보가 훔쳐 먹기는 원래 무척 어려운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종자의 한모퉁이를  짜듯이 해서는 조금 떼어 맛보
고는 했다. 그러나 북쪽으로 간 이후 호주의 종자를 먹을 수가 없었다.
쌍아는 약간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 말했다.
"그대는 정말 음식을 먹을 줄 아는가 보죠? 호주의 종자를 다 알아보다
니요."
위소보는 입으로 씹으면서 애매모호하게 말했다.
"이것이 정말 호주의 종자요? 이곳 어디에서 이런 호주의 종자를 살 수 
있소?"
쌍아는 웃었다.
"산 것이 아니라 여우 요정이......  히히히...... 여우 요정이 술법을 
써서 변하게 만든거예요."
위소보는 칭찬의 말을 했다.
"여우요정의 신통력이 광대하구려."
그러다가 갑자기 장 세째 나리  등 한패거리의 사람들이 생각나 한마디
를 덧붙였다.
"수명은 하늘처럼 높더라."
쌍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천천히 자시도록 해요. 나는  가서 그대의 옷을 다려다 드리겠
어요."
그리고 한걸음 옮기더니 물었다.
"두렵지 않으세요?"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역
시 조금은 무서운지라 말했다.
"빨리 돌아오구려."
쌍아는 대답했다.
"네."
얼마 후 위소보는 뿌지직뿌지직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쌍
아가 시뻘겋게 달군 숯을 다리미에 받쳐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녀
는 그의 바지와 옷을 탁자  위에 놓고는 한편으로는 다리면서 한편으로
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위소보가 혼자 있으면 두려울까 걱정하
는 눈치였다.
네 개의 종자  가운데 두 개는 짭짤했고 두 개는  달았다. 위소보는 세 
개의 종자를 먹고 나자 더 먹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이 종자는 정말 맛있군. 그대가 싼 것이오?"
쌍아는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 만드신 건데 제가 쌀 때 조금 거들었죠."
위소보는 그녀의 말투가 강남 사람들의  말투인 것을 보고 속으로 움직
이는 바가 있어 물었다.
"그대들은 호주 사람인가요?"
쌍아는 주저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옷은 다 데려가요. 계상공께서 세째  작은 마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스스로 그녀에게 묻도록 하시는 게 어때요?"
그 말은 부드러웠으며 상의하는 투여서 공손하다면 무척 공손한 말투라
고 할 수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렇게 해서 나쁠 게 뭐 있겠소."
그리고 그는 모기장을  들추고 그녀가 옷 다리는  것을 보았다. 쌍아는 
고개를 쳐들고 그에게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그대는 옷을 입지 않았는데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위소보는 갑자기 짖궂은 생각이 들어서 몸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나는 뛰어나가 보겠소.  옷을 입지 않아도 감기는  걸리지 않을터이니 
말이오."
쌍아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위소보는  대뜸 이불자락 안으로 파고들어
서는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가.  쌍아는 그만 킥킥 
웃으며 재미있어 했다.
밥을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쌍아는 옷을 다 다려서 마른 옷
을 모기장 안으로 디밀었다. 위소보는 옷을 입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쌍아는 그를 도와 단추를 잠그고 다시 조그만 나무 빗을 꺼내서는 그의 
머리카락을 빗어 주고 머리카락을 땋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그녀의 몸
에서 엷게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맡고는 속으로 크게 기뻐서 말했다.
"원래 여우의 요정은 이토록 좋은 사람이었구려."
쌍아는 입술을 깨물고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여우의 요정이고 여우의 요정이  아니고에요. 듣기 싫어 죽겠네. 
나는 여우의 요정이 아니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 이제 알았소. 신선이라고 말해야지 여우의 요정이라고 하면 안 되
겠지?"
쌍아는 웃었다.
"나는 신선도 아니에요. 그저 나이어린 하녀에 불과해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나이 어린  태감이고 그대는 나이 어린  하녀이니 우리 두사람은 
그야말로 남의 시중드는 사람이라 짝이 퍽 어울리는 것 같구려."
쌍아는 말했다.
"그대는 황제를 시중드는 사람인데 제가 어찌 그대에게 견줄 수 있겠어
요? 그야말로 천지차이에요."
그러는 동안에 머리를 다 땋게 되었다.
쌍아는 말했다.
"저는 나리들의 머리를 땋아 보지 않았어요. 제대로 땋았는지 모르겠네
요."
위소보는 땋은 머리를 가슴 앞으로 옮겨서는 살펴본 후 말했다.
"참 잘 땋았소. 나는 머리 땋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대가 매일 같이 내 
머리 땋는 것을 도와 주면 얼마나 좋겠소?"
쌍아는 말했다.
"나는 그와 같은 복을 타고 나지 못했어요. 그대는 대영웅이세요. 내가 
오늘 그대에게 한번 머리를 땋아주는  것은 그야말로 전생에서 쌓은 복
이라 할 수 있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어어, 너무 겸손해 하지 마시오. 그대와  같이 어여쁜 사람이 나의 머
리를 땋아 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전생에서 열 일곱 개 이상의 대목탁을 
두들겨서 부순 덕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쌍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나직이 말했다.
"저는 진정으로 말씀드리는데 그대는 사람을 조롱하는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나 역시 진심으로 드리는 말이오."
쌍아는 빙그레 웃고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계상공께서 원하신다면 수고스럽지만 뒤에 있
는 대청으로 가셔서 잠깐 앉았다가 나오시라고 하는군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런데 그대의 세째 작은 나리께서는 집에 안 계시오?"
쌍아는 음 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돌아가셨어요."
위소보는 이 집안에 많은 영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만 가슴
속이 서늘해져서는 더  묻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뒤에 있는 
조그만 화청으로 가서 앉았다. 쌍아는 즉시 한잔의 뜨거운 차를 날아왔
다. 위소보는 불안스럽게 생각되어 다시는  그녀에게 농담을 하지 못했
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가볍게  들리더니 판자벽 뒤에서 전신에 소복을 
한 젊은 부인이 나왔다.
"계상공, 이곳까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깊게 읍을 했다.  매우 깍듯한 예의였다. 위소보는 급
히 반례하고서 말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젊은 부인은 말했다.
"계상공께서는 자리에 앉으세요."
위소보는 그 젊은 부인이 약 이십  육칠 세 되는 나이로 얼굴에 지분을 
바르지 않아 안색이 창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눈가가 
붉그레한 것을 보면  조금 전까지 울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녀의 발아래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비록  음산한 생각이 들었지만 십
중팔구 상대방이 귀신이나 도깨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위소보는 고분고분 대
답했다.
"네, 네."
그리고 그는 몸을 비스듬히 하여 의자에 앉아서는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 호주의 종자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
더군요."
그 젊은 부인은 말했다.
"돌아가신 부군의 성은 장(莊)씨에요.  세째 작은 마나님이라는 칭호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계상공께서는 궁안에서 몇 년을 보내셨죠?"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전 어둠속에서 어느 여인이 나타나  오배를 죽인 일에 대해서 물
었을 때 나는  내가 죽인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 후  그녀들은 곧 나이 
어린 하녀인 쌍아에게 종자를 보내 내가 먹도록 해주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번에 건 것을 제대로 걸었구나.)
그와 같이 생각하면서 그는 대답했다.
"불과 일년 남짓합니다."
장부인은 말했다.
"계상공께서 간악한 재상 오배를 친히 죽인 경과를 저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위소보는 그녀가 오배를 간악한 재상이라고 부른데 대해서 더욱더 마음
을 놓았다. 이는 그야말로 손에 가장 높은 끗발의 패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상대방에서 어떠한 패를  내놓던지 간에 자기 
쪽에서는 절대 질 리가 없고 기껏해야  비기는 패를 쥐고 있을 때의 심
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강희가 어떻게 하
여 오배를 잡도록 명령했고 오배가  어떻게 반항했으며 나이 어린 태감
들이 와르르 달려들었으나  어떻게 오배에게 몇 사람  죽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하여 향로의 재를  뿌려 그의 눈을 
멀게 한 이후 사로잡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다만 강희가 칼을 꽂아 오배에게  상처를 입힌데 대해서는 자기가 오배
의 의표를 찌르고 등에다가 매섭게 칼질을 했다는 말로 바꾸었다.
장부인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위소보가 
향로의 재를 뿌려 오배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칼로 등을 찌른 후 구
리향로를 들어 오배의 머리를 쳐서는 오배를 사로잡게 되었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위소보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
는데 익숙한지라 어디서 멈추어야 하고  어디서 소리를 높여야 하는 등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일은 그가 친히 겪은 일이라 여러 가지 자세하고도 상세한 
내용을 무척 그럴 듯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거기다가 거짓말을 살짝
살짝 보태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소보가 그 
당시 오배를 잡을 때보다 아슬아슬 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장부인은 말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군요. 바깥의 소문은 그런 것 같지 않던데요. 계상공
의 무공이 뛰어나서 오배와 삼백  여초나 싸운 이후 계상공께서 절초를 
써서는 그를 제압했다고 하더군요. 오배가  만주 제일 용사라고 일컫는 
점을 생각할 때 계상공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하더라도 역시 나이
가 좀 어리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싸우게 된다면 백 명의 소계자라  하더라도 그 간악한 도적의 적
수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장부인은 물었다.
"그 후 오배는 또 어떻게 해서 죽었지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째 작은 마나님은 십중팔구  여자 귀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드
시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
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생고생해서 따온 돈
을 대번에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솔직이 어떻게 하여  강희가 그를 보내 오배를 살펴보도
록 했으며 또 어떻게 하여  천지회 사람들이 강친왕부로 공격해 들어오
게 되었고, 자기는  그 사람들을 오배의 부하인 줄 잘못  알게 되어 또 
몸을 돌보지 않고  뇌옥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오배를 죽이게  된 사정을 
일일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최후의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알고 보니 오배의 원수인 천지회 청목당의 영웅호
걸들이었어요. 그들은 내가 오배를 죽인 것을 보고는 저에게 매우 겸손
하게 대했으며 그들을 대신해서 큰 원수를 없애 주었다고 하더군요."
장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상공은 그래서 진총타주의 총애를 받아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고 또 
천지회의 청목당 향주가 된 것이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두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 보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저야 뭐 멍청해져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그리고 천지회
의 청목당 향주가 된 것도 이름뿐이지 실제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는 장부인이 천지회와의 우군이 되는지  적군이 되는지 잘 모르기 때
문에 먼저 애매모호한 한마디를 해 둔 것이었다.
장부인은 깊이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계상공께서 당시 그  뇌옥에서 오배를 죽일 때  어떤 초식을 사용했나
요? 저에게 펼쳐 보일 수 있나요?"
위소보는 그녀의 눈초리가 형형히 빛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정말 요사한 데가  있다. 내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큰소리를 쳤다가는 십중팔구 들통이 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역시 솔직
하게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에게 무슨 초식이 있겠어요?"
그리고 그는 두 손을 들어 시늉을 하며 설명했다.
"당시 저는 혼비백산해서 마구잡이로 이렇게 몇 번 찔러댔죠."
장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상공, 마음 편하게 앉으세요."
그리고 그녀는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쌍아, 왜  계화당(桂花糖)을 가져다가 계상공에게  맛보도록 대접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그녀는 위소보에게 절을 한 이후 내당으로 들어갔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나에게 계화당을 대접하려는 것을 보면 악의를 품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 세째 작은 마나님은 보기에 여자 귀신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
면 그녀의 도술이 깊어서 귀기(鬼氣)를 드러내지 않는지도 모른다.)
쌍아는 내당으로 들어가더니  푸른 꽃무늬에 높다란 발이  있는 자기로 
된 쟁반을 들고 나왔다. 그  쟁반에는 많은 계화당과 송자당(松子糖)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쌍아는 미소하며 말했다.
"계상공, 많이 드세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기로 된 쟁반을 탁자 위에 놓고 내당으로 들어갔
다.
위소보는 화청에 낮아서 적잖은 계화당과 송자당을 먹었다. 그리고그저 
빨리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갑자기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문 뒤, 
창가, 병풍 옆에서 많은 시선들이 몰래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모두 다 여인들의 눈동자  였다. 어둠속이라 사람인지 도깨비인
지 문간하기가 어려워 그는 그만 소름이 쫙 끼쳤다.
갑자기 늙수그레한 여자의 음성이 기다란 창문 바깥 쪽에서 들려왔다.
"계상공, 그대가 간악한 도적 오배를 죽여 우리 여러 집안의 피맺힌 원
한을 갚아 주셨구려.  이와 같이 커다란 은덕을  어떻게 보답해야 될지 
모르겠소이다."
곧이어 기다란 창문이 열어 젖혀졌는데  창밖에는 수십 명의 하얀 옷을 
입은 여인들이 땅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  급히 답례를 했다. 그런데  그 뭇여인들은 고개를 
땅바닥에 대고 쿵쿵  소리가 나도록 큰절을 했다.  위소보 역시 큰절을 
했다. 갑자기 기다란 창문이 닫혔다.
그리고 노파의 음성이 들렸다.
"은공께서는 너무 예의를 차리지 마십시오. 우리 미망인들은 그저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기다란 창문 밖의 뭇여인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위소보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끼고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제서
야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여자들은 모두다 흩어진 것
이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고 아니면  환상 속에 빠져 있는 것 같
기도 했다.
(도대체 사람인가, 도깨비인가?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러고 있는데 장부인이 내당에서 걸어나오며 입을 열었다.
"계상공, 너무 놀라거나 의심하지 마세요.  이곳에 모여서 살고있는 사
람은 모두 다 오배가 해친  충신의사들의 유족이랍니다. 모두들 계상공
께서 오배를 친히 죽여 우리의 원수를 갚아 준 것을 알고 그 은덕을 고
마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렇다면 장 세째 나리께서도 역시...... 오배에게 해침을 당했나요?"
장부인은 고개를 숙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
며 밤낮으로 기회를 보아 원한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간악한 악적이 그토록 빨리 죄값을  받아 계상공의 손 아래 죽을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제가 무슨 공을 세웠겠습니까.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요."
쌍아는 그의 옷보따리를 들고 나와서 탁자 위에 놓았다. 장부인은 말했
다.
"계상공, 그대의 커다란 은덕은 실로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원래는 이
곳에서 잘 대접을 해야 사리에  맞겠지만 홀로 사는 사람들이라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상의한  끝에 약소하나마 예물을 드리고
자 합니다. 성의나 표시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계상공께서는 노자가 
풍부하고 몸데 또 거액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 시골 사람들은 계상공이 
마음에 드실 만한 물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진총타주의 막내 
제자이니 우리의 얕은 무공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거 
정말 난처하네요."
위소보는 그녀가 매우 점잖은 말만 골라 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겸손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실례
를 무릅쓰고 여쭈어 보겠습니다. 나의 동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요?"
장부인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그렇게 물어 보시니 감히 대답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나 은공께서 
알게 된다면 손해만 볼뿐 득이 없는  일입니다. 그 몇분의 은공의 친구
들은 우리들이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들의 몸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
지요. 그들은 이후 은공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더 물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쳐들어 창문
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째서 날이 밝지 않을까?)
장부인은 그의 뜻을 아는 듯 물었다.
"은공께서는 내일 어디로 가실 작정인가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장노삼이라는 늙은이와 주고받은 말을  그녀는 이미 모두 들었을 
것이니 더 속일 필요는 없다.)
"나는 산서성 오대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장부인은 말했다.
"여기서 오대산으로 가려면 길이 가깝지 않습니다. 중도에 어떤 풍파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은공에게 한  가지의 선물을 하고자 하는데 
아무쪼록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남이 호의로 주는 물건을 저는 한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장부인은 말했다.
"그럼 잘되었군요."
그리고 그녀는 쌍아를 가리켰다.
"이 아이 쌍아는 저를 따른 지 몇  년이나 되었으며 일을 매우 잘 하는 
편입니다. 우리들이 은공에게 드리겠으니 은공께서 대려가셔서 이후 은
공을 시중들게 하십시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을 함께 느꼈다.  그녀가 자기에게 주겠다는 선물
이 사람이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조금 전 쌍아는 자기를 시중들
지 않았는가.
옷을 다리고 머리를  땋아 주어 자기로서는 적지 않은  기운을 아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아름답고 눈치 빠른 나이 어린 하녀가 곁에 있어 준
다면 정말 무척 즐거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오대산으
로 가는 도중에 반드시 태평무사 하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하는데  나이 어린 소녀를 데리고 있
으면 매우 불편할 것 같아 말했다.
"장부인께서 그와 같이 귀중한 예물을 저에게 주신다는 것은 정말 고맙
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는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첫째로 남이  준 선물을 어찌 거절할수 있
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둘째로는 그와 같이  훌륭한 하녀를 정말 
놓치기가 아까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쌍아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자기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는데 얼굴이 
불그레해져 있었다.
장부인은 물었다.
"은공께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오대산으로 가서 할 일은 대개 무척...... 무척 까다로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소저를  데리고 간다면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습니다."
장부인은 말했다.
"그 점은 문제 없습니다. 쌍아의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솜씨는 퍽이나 
민첩하답니다. 결코 은공의  무거운 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니 그 점에 
있어서 안심을 하십시오."
위소보는 다시 쌍아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녀의 칠한 듯 검은 눈동자에
서는 열렬히 바라는 빛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쌍아, 그대는 나를 따라가고 싶소?"
쌍아는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 상공을 시중들라 했으니 자연...... 자연...... 
세째 마나님의 분부를 들어야겠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원하오, 원하지 않소? 아마도 위험한 일을 당하기 십
상일 것이오."
쌍아는 말했다.
"저는 위험이 두렵지 않아요."
위소보는 미소했다.
"그대는 나의 두 번째 묻는 말에 대답을 했지만 첫번째 묻는 말에는 대
답을 하지 않았구려. 그대가 위험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부인이 나에게 
내주었기 때문이고 그대 마음속으로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
겠소?"
쌍아는 말했다.
"부인이 저에게 깊은 은혜를 베푸셨고 또한 상공께서는 우리 장씨 집안
에 커다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부인께서  저에게 상공을 시중들라 한
다면 저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상공이 저를 잘 대해 주
지 못한다면 저의...... 저의 운명이 고달픈 것이라 하겠지요."
위소보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대의 운명은 매우 좋을 것이오. 결코 고달프지는 않을 것이오."
쌍아는 입가에 방긋 하니 엷은 미소를 띠었다.
장부인은 말했다.
"너는, 은공에게 인사드려라. 이후부터는 너는 계상공의 사람이니라."
쌍아는 고개를  쳐들었다. 갑자기 눈가를 붉히며 먼저 장부인에게 꿇어 
엎드려서는 큰절을 올리고 입을 열었다.
"세째 작은 마나님, 저는...... 저는......"
그녀는 두 번이나 '저는' 했을 뿐  나직이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부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계상공은 젊은 영웅이시다. 그리고 너를 잘 대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
다. 젊어서 명성을 떨친 분이니 너는 잘 모시도록 해라."
"네,"
그리고 몸을 돌려서는 위소보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겸손해 할 것 없소."
그리고 쌍아를 부축해 일으켰다. 보따리를  풀어서는 한 꾸러미의 명주
를 꺼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을 나와 첫번째로 상봉하는 예물로 합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한 꾸러미의 명주는 적어도  삼사천 냥의 은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하녀를 사려면 수십 명의 하녀들을 한 군데에 모와 봐도 쌍아처럼 귀엽
지는 못할 것이다.)
쌍아는 두 손으로 받고서 말했다.
"상공,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목에 걸었다. 구슬에서 빛나는 보광이 번쩍 거림에 따
라 그녀의 청초한 얼굴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장부인은 말했다.
"은공께서는 오대산으로 몰래 알아 보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공공
연히 알아 보려고 하십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물론 몰래 알아 보는 것이죠."
장부인은 말했다.
"오대산에는 각 절간의 분파라고 할 수 있으며, 청황(靑黃)으로 나누어 
진답니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엎드려 있고 용이 웅크린  곳이라 할 수 
있으니 은공께서는 반드시 조심을 하시도록 하세요."
위소보는 말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를 은공이라 부르시면 감당할 수 없읍
니다. 이후로는 저를 소보라 불러 주십시오."
장부인은 말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읍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길을 가는 동안 조심하도록 하시오.  이제 미망인은 멀리 전송하지 않
겠읍니다."
그리고 쌍아에게 말했다.
"쌍아, 네가 문을  나서게 된 이후에는 이 장씨  집안의 사람이 아니니
라. 이후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옛 주인과는 관계가 없
는 일이다. 그리고 네가 바깥에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 때 
우리 장씨 집안에서는 너를 두둔하지 못하니 그리 알아아."
이 한마디의 말을 하는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쌍아는 대답했다. 장부
인은 다시 위소보에게 절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창호지에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날이 점점 밝아 오고 있
는 것이다. 쌍아는 내려가더니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위소보의 
보따리마저 함께 등에 메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떠납시다."
쌍아는 말했다.
"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안색이 천연해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후당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장부인과 헤어지는 것이 퍽이나 섭섭한 것 같았다. 
그녀의 두 눈이 불그레진 것으로 보아  조금 전 틀림없이 운 것이 분명
했다.

위소보는 대문을 나섰다. 쌍아는 뒤를  따랐다. 이때 큰비는 멎어 있었
다. 그러나 산개울 물은 매우 거셌으며 도처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위소보는 수십 걸음  나아가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 큰집 쪽을 
바라보니 뽀얀 물안개가 담장가 집 모퉁이를 뒤덮고 있었다. 다시 수십 
걸음 나아가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때 희뿌연 것이 앞을 가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젯밤의 일은 정말 꿈만 같군. 쌍아,  부인이 최후로 그대에게 한 몇 
마디의 말은 무슨 뜻이지?"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이후 상공에게만 시종들뿐 무슨 말을 하든 무
슨 일을 하든간에 그녀들의 장씨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읍
니다."
"그렇다면 나의 그 동료들이 어디로 갔는지 너는 이제 나에게 이야기하
도록 해라."
쌍아는 어리둥절해져서는 말했다.
"네. 상공의 그 동료들은 본래  모두 우리들이 구해냈읍니다. 장노삼과 
그 수하인들은 모두  우리에게 잡혀 있었지요. 그  후 신룡교의 무서운 
인물이 나타나서는 한꺼번에 모조리 잡아가  버렸읍니다. 세째 작은 마
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여자이니 그와  같이 거치른 남자들과 손을 쓰
기가 거북하다고 말했읍니다. 거기다가 그들을  반드시 이긴다고 할 수 
없으니 잠시동안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달리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상공
의 몇 분 친구들을 구해내도록  하겠다는 말씀이 계셨읍니다. 신룡교의 
사람들은 우리가 양보를 하자 떠나고 말았죠.  떠날 때는 몇 마디의 인
사말을 하기도 했읍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와 목검병의  처지에 대해서 그는 걱정
이 되었다. 쌍아는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은 신룡교의 수령에게 그대의  그 몇 분 동료의 생명
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했읍니다. 그러자 그 수령은 응낙을 했지요."
위소보는 한 숨을 내쉬었다.
"신룡교의 그 녀석들은 아마 말을  개방귀처럼 할거야. 그러나 다른 도
리가 없지 뭐."
그리고 다시 물었다.
"세째 작은 마나님은 무공을 할 줄 아시오?"
쌍아는 말했다.
"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매우 뛰어나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람만 불어도 자빠질 것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무공이 뛰어나다
는 것이지? 그녀가 정말 무공이 뛰어나다면 세째 작은 나리께서 어찌하
여 오배에게 죽음을 당했을까?"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5. 위소보와 쌍아

쌍아는 말했다.
"노대감마님과 세째 나리가 해를 입게 되었을  때 수십 명이나 되는 집
안 사람들은 무공을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때 남자들은 오배에게 잡혀 
북경으로 가서 죽음을  당했지요. 여자들은 영고탑(寧古塔)으로 허드렛
일을 해주기 위해서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로 보내졌답니다. 뭐 그 
장수들의 종이 된다나요. 그런데 마침 길에서 구원해 주는 사람을 만났
고 그 사람이 압송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서 우리 집안의 수십 명의 
여자들을 구해 주어서 이곳에다가 안치를 한 것이죠. 그리고 세째 작은 
마나님 등에게 무공을 가르쳤답니다."
위소보는 점차 어떻게 된 노릇인가를 알 수 있었다.
이때 날은 이미 훤히 밝았다.  동녘 하늘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밤사이 큰비에 산속의 나뭇잎과 풀들은 더욱더 싱그러워졌다. 위소보는 
이때서야 어젯밤에 본 여자들이 귀신이 아니라는데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그대의 집안에 그토록  많은 영당을 꾸며 놓은  것은 오배에게 해침을 
당해 죽은 뭇대감들과 나리들을 모신 것이오?"
쌍아는 말했다.
"그래요. 우리들은 깊은 산속에 은거해  살며 외부 사람과는 내왕을 하
지 않는답니다. 부근의 시골 사람들은 호기심에 기웃거리는데 우리들은 
언제나 귀신처럼 꾸미고서는 그들을 놀래켜  떠나게 하지요. 그래서 모
두들 저 집이 도깨비집이라고 한답니다. 근  일년 동안 그 누구도 가까
이 다가오지 못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상공께서 어젯밤 들이닥친 것
입니다.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큰 원한을 갚지 못했으니 모
든 행동에 있어서 은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당의 위패에는 난을 당
한 대감과 나리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만약 외부의 사람이 보게 된다
면 매우 불편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상공께서 어젯밤 물었을 
때도 저는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이후 제가 상공만을 시중들게 되고  장씨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고 했으니 이제 무슨 일이라도 더 상공을 속일 수는 없지요."
위소보는 기뻐했다.
"그래, 내 그대에게 말하지만 나의 진짜 이름은 위소보라고 해. 계공공
이라고 하는 것은 가짜야. 그대는 우리  위씨 집안 사람이지 계씨 집안 
사람이 아니야."
쌍아는 무척 기뻐했다.
"상공께서는 진짜 이름까지 저에게 말씀해  주시니 저는 결코 그비밀을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진짜 이름은 뭐 대단한 게 아냐. 천지회의 형제들은 모두들 알고 
있으니까."
"신룡교의 그 사람들이 그대들과 소늘 쓰게  되었을 때 세째 작은 마나
님은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들이  주문을 외울 줄 
알고 입으로 뭔가 이상야릇한 말을 하는 것도 들었어요......"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다.' 이와 같은 주문
은 나도 외울 줄 알지."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그들이 입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남몰래 어떤 
다른 법술을 쓴다고 했어요. 그렇지  않을때 갑자기 주문을 외움으로써 
공력이 몇 배나 불어 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후 장노삼이 그
대와 이야기를 할  때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창밖에서 듣고 있었죠. 
그리고 다른 사람은 그때 대청의 등불을 모조리 꺼 버리고는 그물로 한 
패거리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버렸어요."
위소보는 무릎을 탁 치며 부르짖었다.
"정말 잘했군.! 그물로 사람을 잡는단 말이지? 그것 참 잘된 일이오."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장노삼의 무공은  별것이 아니나 요술이 무섭
기 때문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그를 끌어 내  등불을 끄고는 그물을 
이렇게 쳐서는......"
위소보는 다음 말을 이었다.
"한마리의 늙은 자라를 잡은 셈이로군."
쌍아는 히히 웃고 말했다.
"산 뒷쪽에는 호수가 있어요. 우리들은 밤에 종종 고기를 잡으러 가죠. 
우리가 호주에 있을 때 장씨 집안의 본가는 바로 태호 가까이에 있었어
요. 그 호수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컸죠. 그때 우리 장씨 집안에서는 어
선이 무척 많아 어부들에게 고기를 잡도록  빌려 주곤 했어요. 세째 작
은 마나님들은 어부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방법을 보았어요."
"그대들은 정말 호주의 사람들이었군. 어쩐지 종자가 그토록 맛이 있더
라. 그런데 세째 나리는 어쩌다가 오배에게 해침을 당했지?"
쌍아는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그것을 문자옥(文字獄)이라고 하더군요."
위소보는 의아하여 물었다.
"문자육(蚊字肉;모기의 고기)? 모기에게도 고기가 있단 말이오?"
쌍아는 웃었다.
"고기가 아니라 글자라는 말이에요. 우리 큰 나리께서는 공부하는 사람
이거든요. 학문이 깊었어요. 그 분은 눈이 먼 이후에도 한권의 책을 만
들었는데 책에서 만주 사람의 욕을 했대나 봐요......"
위소보는 혀를 끌끌 찼다.
"쯧쯧쯧, 대단하군. 눈이 멀었는데도 글을  지을 수 있다니. 나는 눈이 
멀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몰라보니 나야말로 눈뜬 장님이 
아니겠소?"
"노마나님께서는 세상이 잘못되어 가니 역시  글을 모르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몇  집안의 사람들 가운데 난을 당하신 
대감님이나 나리들은 모두  다 학문이 깊으신 분들이었으며  천하에 그 
문장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문장을 쓰다 
보니 그와 같은 화를 일으킨 거래요.  하지만 세째 작은 마나님은 만주
의 오랑캐들이 우리 한나라 사람에게  글을 읽거나 글을 짓지 못하도록 
하지만 우리는 글을 읽고 글을  지어야만이 오랑캐들이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어요."
위소보는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도 문장을 지을 줄 아시오?"
쌍아는 헤 하고 웃었다.
"상공께서는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쇤네가 어떻게 문장을 지을 수 있겠
어요?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 저에게 공부를 가르치긴  했어요. 그러나 
겨우 칠팔 권을 떼었을 뿐이에요."
위소보는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그대가 칠팔 권의 책을 떼었다고? 그렇다면 나보다 나은데? 나는 겨우 
일곱 여덟 글자를 알 뿐이야."
"상공께서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노마님께서는 반드시 좋
아하시겠어요. 노마님은  청나라가 한민족을 지배한 이후  집안을 망해 
먹을 자제들만이 책을 읽는다고 했어요."
"맞소. 내가 보기에  오배 그 녀석도 글짜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더구
려. 아마도 아첨꾼들이 그에게 그와 같이 들려준 것 같아."
"그래요. 우리 큰나리의 그 책은 명사(明史)라고 하는 것이 었어요. 책 
안에서 청나라 사람들의 욕을 했지요. 그런데 나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름은 오지영(吳之榮)이라고 했어요. 그 사람이  그 책을 가지고 오배에
게 고발을 했대요. 사태가 심각해지자 수백명의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
고 책을 파는 서점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책을 사 본 사람들까
지도 모두 잡아와서는 목을 베었대요.  상공, 그대는 북경성 안에서 오
지영이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직 본 적이 없소. 천천히 찾으면  찾아낼 수 있을 것이오. 쌍아, 나
는 그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야겠소."
쌍아는 깜짝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보내려는 것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겠다는 것이오."
쌍아는 누가를 붉히며 다급해진 나머지 울려고 하면서 말했다.
"뭐라구요? 어떤 사람과 바꾼다고요?"
"그대의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는 그대를 나에게 내리시지 않았소? 이와 
같은 선물을 받은 이상 정말 보답하기는 어려운 노릇이 아니겠소? 나는 
방법을 강구해서 오지영 녀석을 잡아서는 세째 작은 마나님에게 드려야
겠다는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예물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 아니겠소?"
쌍아는 눈물진 얼굴에  웃음을 활짝 띠우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가슴을 
쓰다듬었다.
"상공께서는 저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저는 상공이  저를 내버리시는 
줄 알았어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내가 그대를 내버리게 될까봐  그렇게 당황해하다니, 그대는 안심하시
오. 남들이 금이나 은, 진주 보석을 나의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다 
하더라도 그대와는 바꿔가지 못할 것이오."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산 밑에  도달했다. 하늘은 파랗고 맑았으며 저 
멀리 티끌 하나 볼 수 없었다.  위소보는 어젯밤 큰비가 쏟아지던 광경
을 떠올렸다. 그 당시 도깨비집으로 다가가던 그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서 얼마나 낭패한 꼴을 했던가. 지금과는 전혀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었
다.
다만 서천천, 방이, 목검병 그들이  사로잡혀서는 나중에 헤어날 수 있
을지 의문이라는 생각에 안 됐다는 생각과 더불어 근심이 되었다. 그러
나 자기의 재간으로는 어떻게 하더라도 그들을 구할 수 없는지라 더 생
각해 봐야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수 마장을 나아가자 하나의 고을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국수집으로 들
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위소보는 자리에 앉고  쌍아는 한편에 서서 
시중을 들려고 했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때에는 겸손해하지 마시오. 함께 앉아서 먹도록 합시다."
"안 돼요. 제가 어찌 상공과 함께 한 탁자에 낮아서 밥을 먹을 수 있겠
어요? 그것은 너무 버릇없는 짓이에요."
"버릇이고 버릇이 아니고 따질 것 없소.  내가 된다면 되는 것이오. 내
가 다 먹은 이후에 그대가 다시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겠소?"
"상공께서 다 먹고  나신 후 우리가 떠나면 될  것이에요. 저는 만두를 
사서 길을 걸으면서 먹으면 돼요. 지체하지 않을 거예요."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소. 혼자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고 만단 
말이오. 만약 함께 먹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중에 배가 아프게 된다
면 그야말로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단 말이오."
쌍아는 방긋 웃고는 기다란 걸상을  가져와 비스듬히 탁자가에 걸터 앉
았다.
위소보가 가져다 준 국수를 몇 젓가락  먹을까 말까 했을 때 세명의 서
장 라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거리  쪽으로 앉더니 잇달아 
부르짖었다.
"국수를 가져와! 국수를 가져와."
한명의 라마가 흘낏 쌍아의 목에  걸린 그 한꾸러미의 명주를 발견하더
니 왼쪽 발굽으로 동료를 슬쩍 건드리며 입으로 쌍아의 목에 걸린 명주
를 보라는 시늉을 했다.
다른 두 라마는 보더니 얼굴에 대뜸  기쁜 빛을 띠우고 눈 한번 깜빡이
지 않고 그 한 꾸러미의 명주 구슬만 쳐다보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단났다. 저 세 녀석이 날강도 짓을 할 모양이다."
그는 재빨리 은자를 꺼내서는 국수  가게의 사환으로 하여금 한대의 수
레를 빌리도록 했다. 그리고는 총총히  국수를 먹자 수레에 올랐다. 그
리고는 차부에게 서쪽으로 빨리 달리도록 재촉했다.
수 마장을 나아가게 되었을까. 등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위소보는 뒤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세명의 라마가 말
을 타고 쫓아왔다.
그는 쌍아에게 말했다.
"저 세 악인은 그대의 구슬을 빼앗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들에게 내주
도록 합시다. 내 나중에 다시 한 꾸러미를 사줄 터이니 말이오."
쌍아는 말했다.
"네. 하지만 더 사실 필요는 없어요."
이때 세 명의 라마가 불렀다.
"수레를 멈추시오! 수레를 멈추시오!"
차부는 노새를 세웠다.
세 명의 라마는 말을 짓쳐서 수레 앞을 막았다.
한 사람이 말했다.
"두 꼬마들, 수레에서 내리시지."
쌍아는 목에서 그 한 꾸러미의 명주를 풀어서는 수레 밖으로 내밀며 입
을 열었다.
"그대들이 이 구슬에 눈독을 들였다면  상공께서는 그대들에게 그냥 내
주라고 했어요. 그러니 그냥 가져가요."
한명의 뚱보 라마가 커다란 손을  뻗치더니 구슬을 받아들지 않고 손을 
더욱 뻗쳐서는 쌍아의 손목을 잡아 바깥 쪽으로 끌어당겼다.
위소보는 급히 말했다.
"구슬을 요구한다면 더 있으니 함부로 손찌검을 하지 마시오."
바로 그 순간 누런 그림자가 번쩍이는  가운데 그 라마는 붕 떠서는 허
공으로 날랐다.
위소보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좋은 무공이군.)
그런데 그의 몸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보니 목을 아래로 하고 다리를 위
로 한 것이 아닌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살찐 머리통은 진흙바닥에 떨
어지게 되었고 가슴팍까지  푹 파묻힌 채 두  발을 마구 허우적거렸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얽혔다. 그야말로 그 라마가  보여 준 한수의 
무공은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두 라마는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서둘러 다가가더니 그 라마의 
몸을 뽑았다. 그 라마는 온 얼굴에 진흙을 뒤집어쓰고는 낭패한 모습을 
했다.
다행히 어젯밤 큰비로 길가의 흙이  진흙으로 되어 있었기에 그 라마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차부에게 말했다.
"빨리 갑시다."
쌍아는 손에 구슬을 들고 물었다.
"상공, 이 구슬을 그들에게 주나요, 안 주나요?"
위소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세 명의 라마는 각기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더니 매서운 기세를 달려들었다.
쌍아는 차부의 손에서 채찍을 받아들어서는 바깥 쪽으로 후려치듯 하더
니 한명의 라마의  손에 들린 칼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채찍을 움츠렸
다. 그 순간 라마의 손에 들린 칼은 채찍 끝에 매달려서 이쪽으로 날아
왔다. 쌍아는 왼손으로  칼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다시 채찍을 
휘감았고 두번째 라마의 손에 들린 칼도  빼앗아 들었다. 그러자 세 번
째 라마는 한소리 부르짖었다.
"어이쿠!"
그리고는 흠칫 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쌍아는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다시 떨쳐 냈다. 이번에는 그 자의  목을 감았다. 그 힘을 이요해 힘껏 
수레를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녀는 이어서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들었다.
그 라마는 목이 채찍에 의해 졸려지게 되자 두 눈을 희번득거리며 땅바
닥에 뒹굴었다. 대뜸 온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나머
지 두 명의 라마는 좌우 양쪽에서 쌍아에게 공격해 왔다.
동료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쌍아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는 왼발을 
수레바퀴 위에다 세우고는 오른발을 잇달아  내질러 두 명의 라마의 목
에 있는 혈도를 짚어 땅바닥에  기절하여 쓰러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그 채찍을 풀어 주었다.  그러나 그 라마는 이미 질식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이미 기절해 있었다.
위소보는 너무나 기뻐서 훌쩍 뛰어 일어나며 부르짖었다.
"쌍아, 정말 잘했어. 원래 그대의 무공이 이토록 뛰어났었군."
쌍아는 빙그레 웃었다.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솔직이 이 세 악인이 쓸모가 없어 그래요."
"진작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반나절 동안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인데 말
이야."
그리고 그는 수레에서 내려 한명의 라마를 발길로 차며 말했다.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그 라마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다.
쌍아는 그의 허리께를 한번 내찼다.  그 라마는 신음소리를 내지르더니 
정신을 차렸다.
쌍아는 말했다.
"상공께서는 너희들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
그 라마는 말했다.
"소저...... 소저는 혹시...... 신선의 수법을 터득한 것이 아니오?"
쌍아는 미소했다.
"빨리 말해라.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이지?"
그 라마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는 오대산 보살정...... 대문수사의 라마들이외다."
쌍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라마가 뭐고 라마가 아니면 뭐냐. 그 터무니없는 소리, 그토록 이상야
릇한 말을 하다니."
위소보는 말했다.
"라마는 서장의 화상이란 뜻이야."
쌍아는 말했다.
"알고 보니 그대들은 화상이었군."
그리고 그의 몸을 가볍게 차고는 말했다.
"화상인데 어째서 머리를 박박 깍지 않았지?"
그 라마는 말했다.
"우리들은 라마이지 화상이 아니외다."
"뭐라구? 그래도 입은 살아있군. 상공께서  그대를 화상이라고 하면 바
로 그대는 화상이야."
그리고 그의 허리께에 있는 천할혈(天할穴)을  다시 한번 내질렀다. 이
렇게 되자 그  라마는 그만 뼛속까지 아파오는 고통을  느끼고 참을 수 
없어 큰 소시로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런데 그 아픔은 더욱더 더
했고 울부짖는 소리도 더욱더 우렁차 갔다.  이때 다른 두 명의 라마가 
천천히 깨어났다. 그러다가 그가 수퇘지처럼  울부짖는 것을 보고는 깜
짝 놀라서 일제히 서장말로 물었다. 그 라마는 말했다. 그러더니 곧 한
나라 말로 부르짖었다.
"나는 화상이오. 나는 화상이오. 소저가...... 소저가 나를 무엇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무엇이오. 제발 부탁이니...... 빨리 빨리...... 
나의 혈도를 풀어 주시오."
쌍아는 웃었다.
"이 아가씨가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어. 상공께서  말하는 것이어야만 
돼. 상공, 상공께서는 그를 뭐라고 하시죠?"
위소보는 웃었다.
"나는 그가 여승이라고 할까?"
그 라마는 실로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재빨리 말했다.
"나는 여승이오. 나는 여승이오."
위소보와 쌍아는 일제히 소리내어 웃었다.
쌍아는 왼발을 들어 그의 목  아래에 있는 기호혈(氣戶穴)을 힘차게 걷
어찼다.
그 라마는 즉시 극렬한 아픔이 멎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끊임
없이 부르짖었다.
"나는 여승이오. 나는 여승이오."
위소보는 웃음을 띠고 물었다.
"당신들은 출가인들인데 어째서 우리의 재물을 빼앗으려고 한 것이오?"
그 라마는 말했다.
"소인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음에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다음 번이 또 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오?"
그 라마는 말했다.
"제가 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백년이란 세월이 흘러
도 감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들은 절에서 불경이나  읽지 않고 무엇 때문에  산 아래로 내려왔
소?"
그 라마는 말했다.
"네...... 사부님께서 우리들을 산 아래로 내벼보냈습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 사부가 그대들을 산 아래로  내려보내 금은주보를 강탈하도록 시
켰소?"
그 라마는 말했다.
"아니오...... 아닙니다. 우리들은 북경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했을때 한 뚱보 라마가 기침을 했다.
위소보는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라마는 연신 눈짓을 하지 않
는가. 아마도 동료에게 실토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이 라마들이 재물을 보고 빼앗을  생각이 나게 되어서는 강탈을 하려고 
한 것에 대해서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본래 만주 사람들은 
라마를 믿고 또 황궁에 불러들여 법사를 시키기도 했다.
황실이 그러하니 일반 왕후장상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 때
문에 불문의 계율을 지키지 않는  라마들이 북경에서 제법 날뛰며 법을 
어기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는 본래 그들을  희롱하여 즐거움을 삼은 
뒤 풀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뚱보 라마의 그와 같은 표정을 보고 달리 
어떤 내막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입을 열었다.
"이 세 녀석은 수작을 부리고 있군. 쌍아, 그들 세 사람이 몸에다가 발
길질을 한번씩 가해 그들 세  사람이 고통에 하늘이 깨어져라 울부짖도
록 내버려 두고 우리들은 떠나도록 하자."
쌍아는 대답했다.
"네."
그녀 역시 뚱보 라마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먼저 그의 천
할혈을 발로 걷어찼다.  그 라마는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쌍아는 다시 
그 먼저번의 라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발을 쳐들어서 차려
는 시늉을 했다.
그 라마는 쓴맛을 본 적이 있는지라 재빨리 말했다.
"차지 마시오. 내 말하리라. 사부님은  우리들에게 북경으로 한통의 편
지를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편지는?"
그 라마는 말했다.
"이건...... 이 편지는 그대들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이오. 남에게 보
여주게 된다면 사...... 사부님이 반드시 우리를 죽이려고 할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꺼내지 않으면 내가 발길질을 하겠다."
그리고 그는 한걸음 다가섰다.
"그 라마는 그의 무공에 한도가 있어서 발길질을 해봐야 아프지도 근지
럽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지라 그가 발을 쳐들자 재빨리 말했다.
"아니오...... 나에게 없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럼 네가 가져 오너라."
그 라마는 어쩔 수 없어 뚱보 라마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뭐라고 쏠라쏠
라 몇 마디의  서장말을 했다. 그 뚱보 라마는  서장어로 대답을 했다. 
그는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는데  다시 띄엄띄엄 
서장말을 늘어놓자 더욱더 듣기가 거북했다.
위소보는 그의 어조로  표정으로 미루어 그가 편지를  꺼내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다가가서는 그의 정수리를  매섭게 발길질했다. 
그러자 그 뚱보 라마는 대뜸 기절을 해버렸다.
다른 한명의 라마가 그의 품속에서 기름 먹인 베로 만들어진 조그만 보
따리를 꺼내더니 전전긍긍하며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위소보는 받아 들고 바라보았다. 쌍아는  품속에서 역시 조그만 보따리
를 꺼내더니 펼쳤다. 그리고 한자루의  조그만 가위를 꺼내더니 라마가 
꺼낸 보따리에 한 모퉁이를 잘랐다. 그러자 안에는 정말 한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겉봉에는 두 줄의 서장의 글이 적혀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이 편지는 누구에게 갖다 주는 것이지?"
그 라마는 말했다.
"우리 사백부님에게 갖다 드리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두  라마는 야단났다고 비명같은 소리
를 질러댔다. 그러고 보니 누런 종이에  몇 줄의 꾸불꾸불한 서장 문자
가 씌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랫쪽에는 부적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이상야릇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이 편
지에 한문으로 적혀 있다 하더라도 위소보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급히 쌍아에게 물었다.
"안에 뭐라 씌어 있지?"
쌍아 역시 알아볼 수가 없어 라마에게 다그쳤다.
"상공께서는 너에게 이 편지에 뭐가  씌어 있는지 물으신다. 빨리 말해
라. 반마디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너의 혈도를  차 영원히 혈도를 
풀어 주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사흘낮 사흘밤을 내버려 두었다가 풀어 
줄 것이다."
그 라마는 편지를 보고 한번 읽어 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건...... 이건......"
위소보는 말했다.
"뭐가 이거 이거 이거야? 빨리 빨리 말해."
그 라마는 말했다.
"네. 편지에는 사형께서 묻는 그 사람이......"
막 여기까지 말하게 되었을 때 다른  한 라마다 갑자기 뭐라고 말을 했
다. 쌍아는 나는 듯 달려가 그의  천할혈을 발길로 찼다. 그러자 그 라
마의 말소리는 즉시 신음과 울부짖는 소리로 화했다.
첫번째 그 라마는 안색이 변해서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편지에는...... 찾는 그 사람이 우리들이 아무리 찾아 봤지만 찾을 
수 없어서 반드시...... 반드시 오대산에 없으리라는 내용입니다."
위소보는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고 말하는 것도 띄엄띄엄 하는지
라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의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너희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틀림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하지만 네 녀석은 너
무나 우둔해서 거짓말도 그럴싸하지 못하구나.)
그는 쌍아에게 말했다.
"이 라마는 또 거짓말을 해서 나를 속이려 하는군."
쌍아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용서할 수 없죠."
그리고 그녀는 다시 발을 뻗처 천할혈을 걷어찼다. 그 라마는 부르짖었
다.
"그대는...... 나를  죽이시오. 우리 사형은 말했소이다.  만약 편지의 
내용을 우리가 털어 놓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세 사람이 모두 다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했소이다. 그러니...... 그대는.....  빨리 나를 
죽이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럼 내버려 두고 우리는 가자."
그리고 쌍아와 함께 수레 위로 올랐다.
그 차부는 두 사람이 나이가 어린데도 세 라마를 죽을 둥 살둥 만든 것
을 보고 그만 탄복하듯 칭찬의 말을 늘어놓았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앞쪽 고을에 이르거든 아무래도 변장을 해야겠어. 그리고 그한 꾸러미
의 명주 구슬도 거두어들여야겠다."
쌍아는 말했다.
"네, 그러죠. 헌데 어떤 옷차림으로 바꾸어야 할까요?"
위소보는 말했다.
"남장을 하도록 하시오."

수레가 삼십여 리를 나아가게 되었을 때  한 큰 고을에 이르게 되었다. 
위소보는 차부를 돌려 보내고 객점을 찾아 투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은자를  꺼내서는  쌍아에게 옷차림을 바꿀 수 있는  옷들을 사도록 했
다.
쌍아는 나가서 옷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입었다. 그렇게 되자 준
수하고 깜찍한 나이 어린 서동이 되었다.
이렇게 옷차림을 바꾸게 되자 길에서 다시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게 되
었다. 쌍아의 무공은 뛰어났으나 세상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
었다.
길을 가면서 위소보가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도 별로 고명한 편이 못되었다. 종종  삼푼 정도는 올바르다 할 수 
있었으나 칠푼 정도는 엉터리 같은 짓을 곧잘 저지르기도 했다.
며칠 후 그들은 하북성과 하남성이 맞닿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하남성 
부평현(富平縣)에서 서쪽으로 나아가  장성령(長城嶺)을 지나게 된다면 
바로 용가관(龍家關)이었다.  이 용가관은  오대산의 동문(東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돌길은 매우  기구했으며 험난한 편이었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들어서 
첫번째의 절이 바로 용천사(龍泉寺)였다.
위소보는 청량사의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오대산의 범위는 지극히 넓
었다. 청량사는 바로 남태정(南台頂)과 중태정(中台頂) 사이에 있었다. 
용천사에서 찾아가려면 길은 꽤나 먼 편이었다.
이날 밤 위소보와 쌍아는 용천사 옆에 있는 노가장(蘆家莊)에서 투숙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양고기로 빚은 만두를 먹고 다시  사탕과 과자 등
을 먹었다. 그리고 낮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낮에 용천사로 가는 길을 묻게 되었을 때 청량사 절안의 화상은 자기가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매우 무뚝뚝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청
량사로 가는 길을 묻는데 대해 오히려 되묻지 않던가.
"그 길을 가자면  멀고도 험난한데 당신은 청량사로  무엇 때문에 가는 
것이오."
그리고는 매우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표정을 짓지 않던가. 그 모양은 어
느 정도 양주 선지사(禪智寺)의 시세의  흐름에 밝은 땡초들과 같았다. 
따라서 위소보는 청량사로 가 순치황제를  만나 보는 것은 수월한 노릇
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아무래도 방법을 강구해야 겠다고 생각했
다.
그는 사탕을 먹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돈이 있으면 도깨비도 맷돌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화상으
로 하여금 맷돌을 돌리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야기꾼의 수호지에 보
면 노지심이 오대산으로 출가하게 되었을  때 무슨 원의라고 하는 사람
이 절에다가 많은 은자를 시주했다.  그리하여 노지심이 절간에서 마구 
소란을 피우고 술과 개고기를 먹어도 노화상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렇
다. 내가 법사를 하는 척하고 절간에 가서 절간에 가서 크게 은자를 뿌
려댄 이후 구실을 만들어 떼를 쓰듯 하지 않고 천천히 노황제를 찾는다
면 노화상은 나를 내쫓아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산위로 오르게  된 이후 절간 밖에는  큰 고을이라고는 없었다. 
한장의 오백 냥  은자에 해당하는 은표를 바꿀  소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용천관으로  내려와 부평현으로 나아가 은자와  바꾸어야 했
다. 그리고는 쌍아와 옷차림을 새것으로 갈아입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법사(法事)를 벌이려고 하더라도 뭐가 아는 것이 있어야지. 대뜸 
마각을 드러내고 말 것이니 먼저 시험을 해봐야지.)
그리하여 그는 즉시 부평현 성내의 한채의 절간인 길상사(吉祥寺)로 들
어가 부처님에게 몇번 큰절을 올렸다. 지객화상이 파란 종이로 엮은 공
책과 붓, 그리고 벼루를 내놓았다. 위소보는 손을 내저었다.
"시주를 하면 하는 것이지 글을 써서 뭐하오?"
그리고 그는 한 덩이에 오십 냥 나가는 원보를 꺼내 내밀었다. 그 화상
은 깜짝 놀라  속으로 이 젊은 시주의 손씀씀이가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크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잇달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그를 승방으로 모시고는 채소로 만든  반찬과 고기를 넣지 않은 국수를 
올렸다.
위소보가 국수를 먹고 있을 때 방장 화상은 한옆에 모시고 앉아서는 젊
은 시주가 마음이 매우 인자하고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이 많으니 반드
시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고 이후 금방에 이름이 오르게  될 뿐 아니라 
높이 장원을 하여서는 많은 자손들을 거느리고 무궁한 복을 누릴거라고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우스웠다.
(나에게 어떠한 아첨의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좋지만 나는 글자를 모르
는데 장원에 급제한다니 그야말로 이는 욕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는 말했다.
"노화상, 나는 오대산으로 가서 커다란 법사를 벌이려고 하는데 아무것
도 모른답니다. 노화상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 방장은 대법사를 벌인다는 말을 듣고 대뜸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
었다.
"시주, 천하의 절간들이 모두 다  모시는 것은 똑같은 부처님이고 보살
들이외다. 그대가 법사를 벌이겠다면 우리 절에서 해도 괜찮소이다. 모
든 점에 만족하도록 조처를 하리다.  고생스럽게 오대산으로 올라갈 필
요는 없소이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내 법사는 나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소. 반드시 오대산으로 
가서 해야 하오."
그리고 그는 다시 오십 냥의 은자를 꺼내고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그대가 나에게 한  사람을 고용토록 해주어 나와 더불
어 오대산 위로 올라가 조수가 되어  일을 처리해 주도록 하구려. 그리
고 이 오십 냥의 은자는 그에게 주는 것으로 합시다."
노화상은 크게 기뻐했다.
"그건 쉬운 노릇이오. 그건 쉬운 노릇이오."
그의 외사촌 동생이 절간에서 절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
건을 사들이고 하는  것도 모두 그가 하고  있었으나 화상이 아니었다. 
노화상은 즉시 그를 불러와 위소보와 인사를 나누도록 했다.
그 사람의 성은  우씨였고 그 형제들 가운데서  여덟 번째였다. 그러나 
그의 언변은 매우 좋은데 그에게 한가지  별호가 있었다. 그 별호는 소
일획(少一劃)이었다.
원래 우(于)자에다가 다시 한획을 보태게  된다면 왕자가 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팔이 바로 왕팔이 되는 것이었다.
두세 마디가 오고  가는 끝에 위소보와 그는  매우 친해졌다. 위소보는 
이와 같은 시정잡배와 어릴 적부터  상대를 해왔기 때문에 대뜸 친숙해
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갑자기 부평현에서 시정잡배  한 사람을 만나게 
되자 그야말로 고향 친구를 만난 듯한 감이 없지 않았다.
위소보는 다시 방장에게 법사를 하는 모든 절차를 물었다. 방장은 별로 
속이지 않고 아는 대로 모든것을 이야기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화상들의 절차는 퍽이나 복잡하군.)
그리고 그는 다시 이십 냥의 은자를 시주했다.
위소보는 우팔을 데리고  객점으로 돌아가 은자를 꺼내서는  그에게 살 
물건을 사도록 했다. 우팔은 은자를 손에  쥐게 되자 매우 민첩하게 움
직였다.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물품을  갖추게 되었고 자기 자신도 모르
게 한벌의 새옷으로 멋지게 갈아 입고서는 말했다.
"위상공, 그대는 큰 부자인데 내가 시종이니 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되
지 않겠소. 그래서 새 의복에다가  모자를 샀습니다. 하지만 은자는 세 
냥 오 전 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위소보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옷가게에 가
서는 자기와 쌍아가 입을 화려한 옷들을 몇벌 사서 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신이 나서는 용천관을  지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여
덟 명의 인부가 따르고 있었는데 그들이 지고 있는 여덟개의 짐은 불공
을 드릴 때 사용하는 물건들이었다. 그들은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
다.
오대산으로 들어서자  수마장마다 한 채의 절간들이  있었다. 용천사를 
지나게 되고 태록사(台鹿寺), 석불묘(石佛廟), 보제사(普濟寺), 고불사
(古佛寺), 금강묘(金剛廟), 백운사(白雲寺), 금등사(金燈寺) 등을 거쳐
야만이 영경사(靈境寺)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날 밤 영경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길을  죽어서 북쪽으로 향했다. 
금각사에 도달한 이후 서쪽으로 수마장을 나나게 된다면 바로 청량사였
다.
청량사는 바로 청량산 바로 윗쪽에 있었다. 그런데 중도에서 본 절간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웅장하지도 않았다.  산문은 칠한 지 오래되어 변
질이 된 것으로 보아 오랫 동안 손을 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위소보
는 약간 실망했다.
(황제가 출가를 했다면 반드시 규모가 가장 큰 절간을 선택하였을 것이
다. 어떻게 보면 해대부 폐병장이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였는지도 모
른다. 노황제는 이곳에서 화상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우팔은 산문 안으로 들어가 지객승에게  북경성의 위 나리가 크게 법사
를 하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지객승은 이 일행의 옷차림이 화려하고 
또 여덟 지게나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즉시 상방으로 모셔서는 
차를 대접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방장에게 품했다.
방장 징광(澄光)노화상은 상방으로 나와 위소보와 인사를 하고 물었다.
"시주께서는 어떤 법사를 하려고 하시는지요?"
위소보는 그 징광화상의 체구가 무척 컸으나 비쩍 말라 있었고 두 눈을 
살짝 감고 있는데 전혀 정신이 없는 모양을 보고는 더욱더 실망해서 말
했다.
"제자는 대화상에게 일곱 낮 일곱 밤의 법사를 돌아가신 부친의 영혼을 
구제하여 주시고 몇 분 돌아가신  친구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셨으면 합
니다."
징광은 말했다.
"북경성 안에도 큰  절간들이 무척 많소이다. 오대산에도  절간이 많이 
있는데 시주께서는 어째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특별히 오대산으로 찾
아와 저희 절간에서 법사를 하려고 하시는지요."
위소보는 벌써 그와 같은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우팔과 
상의를 한 적이 있었던지라 입을 열었다.
"저희 어머님께서는 지난 달 보름날  꿈을 꾸셨습니다. 꿈에 저의 돌아
가신 아버님이 어머니에게 말씀했죠. 살아 생전에 큰 죄를 지었으니 반
드시 오대산 청량사로 가서 방장대사에게 이레 낮 이레 밤을 두고 불공
을 드려야만이 혈광지재(血光之災)를 해소시킬  수 있고 저희 아버님이 
지옥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는 자기 부친이 누구인지 몰랐고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었
다. 따라서 그와 같은 말을 내뱉을 때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며 생각했다.
(제기랄, 당신은 나를 낳게 하고는  상관하지 않았소. 그러니 지옥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마땅한 노릇이지. 내가  당신을 위해 공교롭게도 이
레 낮 이레  밤의 법사를 치루게 되었으니 당신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구려.)
징광 방장은 말했다.
"원래 그랬었구려. 소시주, 낮에 생각한  일은 밤에 꿈으로 나타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꿈속의 일이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된 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대화상, 속담에도  '있다고 차라리 믿었으면 믿었지  없으리라고 믿을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소? 설사  우리 아버지가 꿈속에서 한말이 진짜
가 아니라 하더라도 법사를 한번  별어서 그의 영혼을 구제한다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외다. 그리고 만약에 저의 아버님
이 정말 그와 같은 말을 했는데도 우리가 그분의 말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저승에서 우두마면(牛頭馬面)의 무상소귀(無常小鬼)에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렇게  된다면...... 나로서는 죄송한 일이 
되지 않겠소. 더군다나 이 몸은 어머님의 명을 받고 온 몸이외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오대산 청량사의 노방장과 인연이 있다고 했소이다. 그래
서 이 법사를 반드시 귀찰에서 하려는 것이외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어머니와 연분이 있었다면 그거야말로 희한한 일이지. 당
신은 양주의 여춘원으로 가서 밤손님이 돼 본 적이 있소?)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6. 파안법사(巴顔法師)

징광 방장은 흐 하더니 말했다.
"시주는 잘 모르는 것이 있소이다.  폐사는 바로 선종(禪宗)이외다. 이
와 같이 불공을 드리고 법사의  일을 하는 것은 정토종(淨土宗)이 하는 
일이고 우리들은 하지 않소이다. 이 오대산의 금각사, 보제사, 대불사, 
영경사 등등은 정토종이외다. 시주는 역시 그 절간으로 가서 법사가 되
도록 하시구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부평현에 있을 적에 그 방장은  자기네들이 법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
곳에 오게 되니 이 노화상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마다하며 손에 들어온 
은자도 두 손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보면 이 가운데는 반드시 이상한 점
이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그는 두 번 세 번 부탁을 했으나 징광대사는 응
낙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더니 지객승에게 말했다.
"그대가 시주에게 금각사로 가는 길을  잘 가르쳐 주도록 하게. 노납은 
이만 실례하겠소."
위소보는 다급해져서 재빨리 말했다.
"방장께서 반드시 못하시겠다면 제가 귀찰에다가 시주를 하려했던 승의
와 승모, 그리고  은자만은 귀사에게 여러 대화상을  위해 받아 주시기 
바라오."
징광은 합장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소이다."
그는 위소보가 예물을 여덟 지게나  가지고 왔는데도 전혀 기운을 내지 
않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의 어머님은 저에게 예물을 친히  귀사의 대화상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설사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 채소밭을 가꾸는 사람이
라도 모두 몫이 있습니다. 모두 삼백  분의 예물을 가져왔는데 만약 모
자란다면 다시 나가서 사드리도록 하지요."
징광은 말했다.
"충분하외다. 너무 많소이다. 본사에는 오십여  명밖에 되지 않으니 시
주께서는 오십 육 명의 몫을 남기시면 됩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무쪼록 방장께서 귀사의 뭇승려들을 불러 모아 내 친히 시주를 하도
록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저의 어머님의  염원이니 어렵더라도 
그렇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징광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는데 갑자기 그 눈의  눈동자가 번갯불처럼 
번뜩였다.
그는 그러한 눈으로 위소보의 얼굴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좋소. 우리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근본으로 삼고 있으니 시주의 소원을 
풀어 드리리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대나무쪽과 같은  뒷모습이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위소보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겸연쩍게 찻잔의 차를 
들었다.
우팔은 그의 등뒤에 있다가 나직이 말했다.
"저와 같이 시세의 흐름과 맞서는 노화상은  이 우가는 한평생 정말 보
지 못했소이다. 그러니 이토록 커다란  청량사의 보살의 금칠마저도 바
래도 깨어져 나갔는데도 그냥 두고 있지 않습니까."
이때 절간에서 종을 치기 시작했다.
지객승이 말했다.
"시주께서는 서목 대전 앞으로 나가시어 시주를 하시도록 하시죠."
그리하여 위소보는 서쪽 대전으로 갔다.  뭇승려들은 줄을 지어 들어왔
다. 그는 예물을 한 사람 한  사람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눈길을 가다
듬고 매 화상의 얼굴을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순치황제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소황제의 아버지이니 모습이 비
슷할 것이다.  그저 특히  소황제와 비슷한 화상이라면  틀림없을 것이
다.)
그러나 오십여 분의 예물을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소황제와 그럴싸
하게 닮은 사람은 만나볼 수 없었다.
위소보는 매우 실망했다. 그러나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옷이나 
모자들을 받으려고 여기까지 들어오겠는가. 나의  이 계책은 너무나 우
둔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객승에게 물었다.
"귀사의 승려들은 모두 온 것이오?"
지객승은 말했다.
"모두 다 예물을 받았습니다. 시주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 다 왔다 갔단 말이오? 아마  그렇지 않을걸? 아마도 나서지 않으
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외다."
지객승은 말했다.
"시주께서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오.  그대가 만약 나를 속인다면 죽
어서 지옥에 들어가 혀를 뽑힐 것이외다."
지객승은 그 말을 듣자 그만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직도 물건을 가져가지 않은 승려가  있다면 대화상께서 그를 모시고 
나와 받아가도록 하시오."
지객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장 대사만이 받지 않았소이다. 내가 볼 때 그 어르신께서 직접 나오
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때 한명의 승려가 총망히 달려오더니 입을 열었다.
"사형, 밖에 십여 명의 라마들이 방장님을 뵙겠다고 합니다."
곧이어 나직이 말했다.
"그들은 모두 다 몸에 무기를 지니고 있으며 주먹을 불끈 쥔 것으로 보
아 찾아온 뜻이 곱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객승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대산은 청묘(靑廟)와 황묘(黃廟)로  나누어지고 자고로 아무런 관계
가 없는데 그들이  왜 왔지. 그대는 가서 방장에게  품하시오. 내 나가 
보리다."
그리고 그는 위소보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그리고는 재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 못난 라마들은 아마도 우리에게 따지러 왔을걸?"
그는 쌍아의 무공이 고강하니 십여  명의 라마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
다. 그런데 갑자기 산만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고 한ㄸ의 사람들
이 대웅보전으로 뛰어들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구경하러 갑시다."
그리고는 쌍아의 손을 잡고는 함께 나갔다.
대웅보전에 이르게 되었을 때 십여  명의 황의 라마들이 지객승을 에워
싸고는 중구난방으로 떠들고 있었다.
"반드시 수색해야겠소. 어떤 사람이 그가  청량사로 오는 걸 보았단 말
이오."
"이것은 당신네들의 잘못이오. 어째서 사람을 숨겨 놓는 것이오?"
"순순히 사람을 내놓도록 하시오. 그렇게 않을 때는, 흥흥!"
위소보는 대전 근처에 가서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서는 속으로 생각
했다.
(내가 이곳에 있으니 너희들은 얼마든지 덤벼들어 봐라.)
그런데 그 라마들은 그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한번 쳐다보지도 않
았다.
떠들썩한 소리 가운데 징광 방장이 걸어나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오?"
지객승은 말했다.
"방장 스님에게 알립니다. 그들은......"
그런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라마들은 우르르 징광의 곁으로 
몰려들며 부르짖었다.
"그대가 방장이시오? 참 잘 되었소."
"빨리 그 사람을 내놓으시오. 내놓지 않으면 그대의 이 절간에 불을 질
러 깨끗이 태워 없애겠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정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설마하니 화상이 되어 도리를 따지지 않는단 말인가?"
징광은 말했다.
"여러 사형들에게 묻겠는데 어느 곳에서 온 분들이시오? 그리고 폐사에
까지 오시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오?"
황의에다가 홍색 가사를 걸친 라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서장에서 활불(活佛)의 명을 받고  중원으로 공무차 달려온 것
이오. 그런데 따라오던 소라마가 어떤  거지 같은 화상에게 유괴되었고 
그 사람은 이  청량사에 숨어 있단 말이외다. 방장  화상, 그대는 빨리 
우리 소라마를 내놓으시오. 그렇지 않을 땐  결코 좋게 끝나지 않을 것
이오."
징광은 대답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려. 우리  이곳은 선종의 청묘로서 서장 밀종과
는 평소  아무런 관계가 없소이다. 여러분들이  소라마를 잃어버렸다면 
어째서 각처의 황묘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물어 보시지 않소이까?"
그 라마는 노해 말했다.
"그 소라마가 청량사에 있는 것을 친히 본 사람이 있소이다. 그래서 달
려와 묻는 것이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배불리  밥을 먹고 할일이 
없ㅇ어서 소란을 피우는  줄 아시오? 분수를 안다면  빨리 소라마를 내 
놓으시오. 우리는 설사 황상의 얼굴은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얼굴을 봐서 탓하지는 않겠소."
징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정말 소라마가 청량사로 왔다면  여러분이 묻지 않았다 하더라도 
노납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외다."
몇 명의 라마들이 일제히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우리들로 하여금 수색토록 해주시오."
징광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은 불문의 조용한 곳인데 어찌 남들이 함부로 수색하는 것을 용납
할 수 있겠소?"
그러자 앞장을 선 라마가 말했다.
"만약 도둑놈이 제발 저리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찾지를 못하게 하시오? 이로 미루어 볼 때 소라마는 틀림없이 청량사에 
있는 것이 분명하오."
징광이 막 고개를 가로저었을 때였다. 두  명의 라마가 동시에 손을 뻗
쳐서는 그의 옷자락을 잡고는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수색하도록 하겠소, 못하겠소?"
다른 한명은 말했다.
"대화상은 절간에 양가의 부녀들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남이 알
기가 두렵지 않다면 어째서 수색하는 것을 그토록 뭐라고 하시오?"
이때 청량사 쪽에서도 십여 명의  화상이 걸어나오게 되었는데 뭇 라마
들에게 에워싸여 방장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쌍아는 나직이 물었다.
"상공, 그들을 쫓아 보낼까요?"
위소보는 말했다.
"잠깐!"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라마들은 그야말로 억지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절
간에 어찌 소라마를 숨겨 두었겠는가? 혹시 그들의 의도는 나처럼 순치
황제를 보자는 것이 아닐까?)
이때 허연 광채가 번쩍 하더니 두  명의 라마가 어느덧 첨도를 손에 뽑
아들고서는 나누어 징광의 가슴과 등에 갖다대며 날카롭게 외쳤다.
"수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먼저 당신을 죽이겠소"
징광은 얼굴에 조금도 두려운 빛이 없이 말했다.
"아미타불, 모두 똑같은 불문 제자인데 어째서 손을 쓰고자 하오?"
두 명의 라마가 첨도를 앞으로 살짝 내밀며 호통을 내질렀다.
"대화상, 그렇다면 우리는 실례를 무릅쓰겠소."
그 순간 징광은  몸을 살짝 기울였고 그대로  슬쩍 빠져나갔다. 이렇게 
되자 두 명  라마의 첨도가 모두 상대방의 가슴팍을  찌르는 꼴이 되었
다. 두 사람은 급히 왼손을 뻗쳐 내어 맞부딪치도록 했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라마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머지의 
라마들은 부르짖었다.
"청량사 방장께서 사람을 때려 죽이려 한다. 사람을 때려 죽였다."
그와 같이 부르짖는 소리 속에서 대문 쪽에서 다시 삼사십 명이 들어왔
다. 화상도 있었고  라마도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은  몸에 장포를 걸친 
속인들도 있었다. 황초에 허연 수염을  기른 노라마가 큰소리로 부르짖
었다.
"청량사 방장께서 사람을 해친다구요?"
징광은 합장을 했다.
"출가인은 자비를 근본으로 삼는데 어찌 함부로 살계를 범하겠소? 여러 
사형과 시주들은 어디서 오는 길이오?"
그리고 그는 오십여 세 되는 화상에게 말했다.
"원래 불광사의  심계(心溪)방장께서 왕림하셨구려. 멀리  나가지 못한 
점 용서하십시오."
불광사는 오대산에서 가장 오래된 큰  절간이었다. 원래는 위나라 효문
제(孝文帝)때에 지어진 것으로써 매우 역사가 유구한 편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먼저 불광사가 있고 나중에 오대산이 있었다고 했다. 원래 오
대산의 원명은 청량산이었다. 후에 다섯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오대산이라 일컫게 된 것인데  이때 불광사가 이미 세워진 후
였다.
오대현이라는 명칭도 수나라 초에 이르러  고치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 
불광사의 지위는 청량사보다 훨씬 높은 편이었다.
방장 심계로 말하면 오대산 모든 청묘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었다.
이 화상은 살이 쪘으며 온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싱글
벙글 하면서 입을 열었다.
"징광 사형, 내 두 분의 친구를 소개하리다."
그리고 그는 노라마를 가리켰다.
"이 분은 서장 납살에서 온 대라마 파안(巴顔) 법사이외다. 활불이래에 
가장 총애를 받고 있으며 또한 세력이 가장 큰 대라마이지요."
징광은 합장을 했다.
"대라마를 볼 수 있는 인연이 있어서 기쁩니다."
파안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표정은 매우 오만했다.
심계는 몸에 청색 장삼을 걸친 삼십여 세 가량의 선비를 가리키며 말했
다.
"이 분은 사천성 서쪽의 대명사로서 황보각(皇甫閣)선생입니다."
황보각은 두 손을 맞잡아 보였다.
"오래 전부터 징광 대화상의 무학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었
소이다.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징광은 합장했다.
"노승은 나이가 많아져서 어릴 적 배운  보잘것 없는 무공을 이미 깡그
리 잊었소이다. 황보거사께서는 문무를 겸비하고 계시니 그야말로 축하
드려야 할 일이고 기뻐해야 할 일인가 하옵니다."
위소보는 그들이 점잖은 말로 인사말을 하자 싸움은 아무래도 일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된다면 구경할 것이 없게  되고 이 혼란의 
틈을 따 노황제를 찾겠다는 기회마저  없어지게 되는 셈이라 속으로 무
척 실망했다.
이때 파안이 입을 열었다.
"대화상, 나는 서장에서 나이 어린  제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대들의 절
간에서 억류되어  있다고 들었소이다. 그대는 황보의  금쪽같은 얼굴을 
봐서라도 풀어 주시오. 그러면 모두들 고맙게 생각할 것이외다."
징광은 빙그레 웃었다.
"몇 분의 사형이 폐사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한 점에 대해서 노납은 똑
같이 취급을 하지 않았소이다. 그러나  대사는 사리를 알만한 사람인데 
어찌 남의 말을 믿는단 말씀입니까? 청량사는 세워진 이래 오늘 처음으
로 라마들이 왕림하신 것이외다. 우리들을  보고 귀라마의 제자를 가두
고 있다니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외까?"
파안은 두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렇다면 억울한 누명을 씌웠단  말이오? 그대는...... 벌주를 마시지 
않고 경의로 드리는 술을 받아 마시게 될 것이오."
그는 한나라 말을  제대로 몰랐다. 그래서 경의로  바치는 술을 마시지 
않고 벌주를 마시게 되리라는 말을 거꾸로 했다.
심계는 웃었다.
"두 분은 화내지 마시오. 노납의 의견으로 소라마가 청량사에 억류되어 
있다 없다 하는 말은 단지 말로 해서는 소용없는 일이며 눈으로 확인해
야 된다고 보오. 그러니 황보거사와 빈승이 증인이 되어서 모두들 청량
사 이곳저곳을 살피며 부처님을 뵈옵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부처님을 
뵙는대로 부처님에게 절을 하고 승려를 만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느 한곳 빠짐없이 살펴보고 모든 화상을 만나 본 이후에도 여전히 그 
소라마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겠소?"
그 말은 결국 청량사를 수색하겠다는 말이었다.
징광은 얼굴에 한가닥 불쾌한 빛을 띠우고 말했다.
"이 몇 분의 라마들은 막 서장에서  왔으니 우리들 한나라의 규칙을 모
른다고 하더라도 탓 할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심계대사로 말하면 덕망
이 높으신 분인데 어떻게 그와 같은  말을 하시오? 소라마가 정말 오대
산에 있게 되어 한채의 사원을  모조리 수색한다면 먼저 불광사서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외다."
심계는 헤벌죽 웃고 말했다.
"청량사를 살펴본 우 여전히 사람을 찾지  못하여 이 몇 분의 대라마가 
다시 불광사를  살펴보는 것은 그야말로 환영하는  바이외다. 환영하는 
바이외다."
파안은 말했다.
"그 조그만 녀석이  청량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친히 보았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렇게 와서  알아보는 것이외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감히...... 감히...... 이와 같은 당돌한 일을 하겠소이까?"
징광은 말했다.
"어느 분이 봤다는 말이오?"
파안은 황보각을 손가락질했다.
"바로 이 황보 선생이 보았소이다.  그는 유명한 사람이라 결코 거짓말
을 하지 않소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다 한 패거리인데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단 말인
가?)
그리하여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소라마는 나이가 몇 살 쯤 되나요?"
파안과 심계, 황보각 등의 사람들은 줄곧 옆에 서 있는 두 어린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가 갑자기 그가 묻는 말을 듣고 일제히 그를 쳐
다보았다.
그의 옷차림은 화려했다. 모자에는 옥을 박아 놓기도 했으며 앞가슴 쪽
에는 명주 구슬을 박아 놓기도 한  것으로 보고 부잣잡 공자인 것을 알
아볼 수가 있었다.
그의 곁에서 모시고 서 있는 나이  어린 서동 역시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계는 웃으며 말했다.
"그 소라마로 말하면 공자와 아마 비슷한 나이일 것이오."
위소보는 고개를 돌렸다.
"그렇구려. 조금 전 우리는 그 소라마를  보았지. 그는 한 커다란 절간 
안으로 들어가더군. 그 절간 앞에는  불광사라는 커다란 세글자가 씌어 
있더구려. 그 소라마는 바로 불광사 안으로 들어 갔소이다."
그가 이와 같이 말하자 파안 등의  안색이 변했다. 징광은 속으로 기뻐
했다. 파안은 큰소리로 말했다.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위소보는 말했다.
"믿을 수 없다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해둡시다."
파안은 노기를 걷잡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뻗쳐 위소보의 가슴팍을 잡으
려고 했다. 징광은 오른손을 슬쩍  쳐들고 커다란 소맷자락으로 바람을 
일으켜 파안의 팔굽  아랫쪽을 치려고 했다. 파안은  왼손을 뻗쳐 내었
다. 다섯 손가락을 마치 닭 발톱처럼 세우고는 징광의 옷자락을 낚아채
려 들었다. 징광은 팔을 움츠리고 소맷자락을 똘똘 말아 버렸다.
이렇게 되자 파안은 헛손질을 하게 되었다.
파안은 부르짖었다.
"그대는 활불 좌하의 소라마를 숨기고서도  손을 써서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오? 이 일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외다."
황보각은 낭랑히 말했다.
"모두 좋은 말로 합시다. 손을 쓰지 않도록 합시다."
그 말이 막 끝나자마자 절간  밖에서 한떼의 사람들이 일제히 부르짖었
다.
"황보 선생께서 말씀하신다. 모두들 좋은 말로 하지 손을 써서는 안 된
다고 하신다."
그 소리로 미루어 보아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청량사를 겹겹히 에워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
고 그 한떼의 사람들이 황보각의  그와 같이 낭랑히 부르짖는 소리들을 
듣고 일제히 호응하는 것을 보면 겁을 주자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징광 방장의 수양이 길다고  했으나 느닷없이 들려오는 고함 소
리를 듣게 되자 그만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보각은 싱글벙글하면서 입을 열었다.
"징광대사, 그대는  무림의 선배 고인이시외다. 이곳에서  수양을 하고 
계신데 대해서 모두들 경앙해 마지 않읍니다. 이분 파안 대라마는 귀사
를 그저 한번 돌아 보자는 것이니 그대는 그에게 한번 보도록 해주시지
요. 대화상께서 행동이 올바르시기만 하고  청량사에 또 남에게 알리지 
못할 일이 없다면 서로 화목에 금이 갈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
읍니까?
징광은 속으로 초조해졌다. 그 자신의  무공은 고강한 편이었으나 청량
산의 오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 가운데 무공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조금 전 파안과 한수 맞바꾸어  본 결과 파안이 왼손으로 뻗쳐
낸 계조공(鷄爪功)은 사실 대단한 솜씨였다. 거기다가 황보각이 조금전 
낭랑히 한마디 하는 소리로 미루어 볼 때 내력이 심후해서 역시 범상하
게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절간 밖의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은 고사하
고 눈앞의 이  두명의 고수만 하더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
다.
황보각은 그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는 말했다.
"설사 청량사에 정말  몇 분의 아름다운 낭자가  있어서 모두들 구경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크게 눈요기를 하는 것이 되지 않겠소?"
이 두마디의 말은 지극히 경박했으며  징광에 대해서 전혀 안면을 두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심계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장 사형, 그렇다면 대라마로 하여금 여러 곳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자는 시늉을 했다.
파안은 앞장을 서서 성큼성큼 후정으로 걸어갔다.
징광은 산대방에서 모든 준비를 하고 온 이상 자기가 나서서 파안과 황
보각을 저지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데리고 온 한떼거리의 사람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혼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청량사는 크게 당할 판이 아닌가. 삽시
간에 마음이 찹작해져서는 길게 한숨만 내쉴  뿐 손을 쓰지 못했다. 그
저 눈을 멀거니  뜬 채 파안 등 수십 명이  후전으로 가는 것을 보다가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
파안과 심계, 그리고 황보각은 나직이  상의를 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들 수하 수십 명은 한칸 한칸의  대전과 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승방까
지도 수색을 했다.
청량산의 뭇승려들은 방장께서 아무런 명령이 없자 하나같이 눈을 부릅
뜨고 살기 띤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저지하지는 않았다. 위소
보와 쌍아는 징광 방장의 뒤를  따랐는대 그의 승포자락이 끊임없이 떨
리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무척 속으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이때 갑자기 서쪽 승방에서 그 누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자이오?"
황보각은 달려갔다. 두 명의 사내가 한 중년 승인을 끌어내었다. 그 화
상은 나이가 사십여  세 정도 되어 보였으며 얼굴  모습이 매우 청수한 
편이었다.
그 중년 화상은 물었다.
"나를 붙잡아 어쩌자는 것이오?"
황보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 두 명의  사내가 웃으며 말했
다.
"실례했소."
그리고 그 승려를 놔 주었다. 위소보는  이렇게 되자 이 시람들이 순치
황제를 찾아온 것은 더 물어볼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징광은 냉소했다.
"본사의 이 화상이 활불라마 좌하의 소화상이란 말이오?"
황보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부하가 한  중년 화상을 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세히 그 승려의  모습을 보더니 여전히 고개를 가
로저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원래 너는 순치황제를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렇게 수색을 해나간다면 반드시 순치황제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
는 소황제의 부친이니 내가 방법을 강구해서 그를 구해야지.)
그러나 상대방의 사람 수가 많았다.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수십 명의 사람들은 동북방에 있는 한 채의 소승원(小僧院)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승원의 문은 꼭 닫혀져 있어서 부르짖었다.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징광은 말했다.
"이곳은 본사의 한분 고승께서 폐관을 하고 있는 곳이외다. 이미 칠 년
이 지났으니 여러분들은 그의 청수(淸修)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시오."
심계는 웃었다.
"폐관을 하고 있던 화상이 견디다 못해  스스로 문을 여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무슨 상관이 있겠소."
그리고는 다리를 들어서는 문을 차려고 했다.
징광은 몸을 흔들하더니  어느덧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 라마는 미처 
내지른 발을 거두지 못해 오른발로 그만 징광의 아랫배를 차게 되었다. 
그런데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라마의 다리뼈가 분질러져서는 뒤
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파안은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왼손을 위로 뻗치고 오른손을 갈구리처
럼 해서 닭 발톱 같은 자세로  징광을 움켜쥐려 들었다. 징광은 문앞에 
서서는 휙휙 하니 이장을 뻗쳐서는 파안을 물러서게 했다.
황보각은 부르짖었다.
"훌륭한 반야장(般야掌)이군."
그리고 왼손의 식지를 찍어내었다. 그러자  세찬 바람이 징광의 안면을 
찔러 들어왔다. 징광은 왼쪽으로 피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은  나무 문에 부딪혔다. 징광은 반야장
을 펼쳐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응전했다.
파안과 황보각은 좌우로 나누어서 공격을  해왔다. 징광의 초식은 매우 
느릿느릿 했으며 일장 후려치는데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람소리가 은연중 들려왔고 그 힘은 적으나 날카로워 보였다.
파안과 황보각의 수하 수십 명은 고함을 지르며 기세를 돋구었다. 파안
은 서둘러 수차에 걸쳐 공격을 해왔으나 징광의 장력에 밀려나야 했다.
파안은 초조해져서 속공을  펼쳤다.별안간 나직한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왼손을 쳐들었는데 수십 가락의 허연 수염이 날아갔다.
바로 징광의 수염을 한움큼 뽑게 된  것이다. 그란 그의 오른쪽 어깨에
도 일장을 얻어맞게 되었다. 처음 얻어맞은 어깨는 별로 대단치 않았으
나 점차 오른손을 높이 쳐들래야 쳐들 수가 없었다.
징광은 나는 듯 발을 움직여서는 두 사람을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리고 
왼손의 일장을 뻗쳐 세 번째 라마의 가슴팍을 찍었다. 
그 라마는 아!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더니 위로 훌쩍 뛰어 올랐다. 바로 
이때 네 번째 라마의 강철칼이 떨어졌다. 징광은 소맷자락을 떨쳐 그의 
손목을 잡으려 들었다. 이때 파안이 두 손을 들었다. 한손을 위로 한손
은 아래로 하고서는 달려들었다. 징광은 오른쪽으로 피했다.
그는 갑자기 세찬 바람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단났다.)
그 바람을 이용해 그는 일장을 후려쳤다.  그러나 그 순간 오른쪽 팔이 
기이하도록 아파왔다. 어느덧 황보각에게  일지를 찔리고 만 것이었다. 
그의 일장은 황보각의 오른팔을  적중시켰으나 그의 팔뼈를 분지르지는 
못했다.
쌍아는 징광의 온몸이 선혈로 물들은 것을 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를 도와 줄까요?"
위소보는 말했다.
"잠깐 기다려."
그의 목적은 순치황제를 만나보는 데 있었다.만약 쌍아가 손을 써서 뭇
사람들을 쫓아 버린다면  노황제는 여전히 볼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사람이 많고 칼과 창을 지니고 있었다.
쌍아는 일개 소녀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토록 많은 대한들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청량사의 뭇승려들은 방장이 곤경을 당하는 것을 보고 다투어 곤봉이나 
화차 같은 것을 들고 도와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 화상들은 무공을 몰
라 다들 덤벼들자마자 얻어맞아서는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말았다. 
징광은 부르짖었다.
"모두들 손을 쓰지 마시오."
파안은 소갈을 터뜨렸다.
"모두들 마음 놓고 사람들 죽이도록 해라."
뭇라마들은 손에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았다. 삽시간에 네 명의 청량사 
화상의 몸뚱아리가 두 동강이 났다.  나머지의 뭇승려들은 적이 사람마
저 마구 죽이는 것을 보고 멀찌감치 서서는 감히 가까이 다가들지 못했
다.
징광은 약간 정신을 흐트리는 사이  다시 황보각의 일지에 찔리게 되었
다. 이 일지는 그의 오른쪽 가슴이 적중되었다.
황보각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림사의 반야장도 별것 아니군. 대화상, 그래도 투항하지 못하겠소?"
징광은 말했다.
"아미타불, 시주의 죄가 적지 않소이다."
별안간 두 명의 라마가 칼을 휘두르며  땅을 구르듯 하여 그의 두 발을 
자르려 들었다. 징광은 발에 힘을 돋구고 걷어 차려고 했다. 그런데 가
슴팍이 격렬하게 아파오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렇게 되자 그의 발길질은 중도에서  멈추어 더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
다. 흐릿한 순간 자기도 모르게  왼손을 아래로 문질렀다. 그의 왼손은 
두 명의 라마승의 머리를 한번 문지르게 되었다.
두 명의 라마는 대뜸 기절하게 말았다.
파안은 노해 불르짖었다.
"죽일 놈의 땡초 같으니!"
두 손을 뻗쳐 내더니 열개의 손가락으로 징광의 왼쪽 다리를 붙잡았다. 
징광은 그만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었다.
황보각은 잇달아 손가락을 몇 번 움직여 징광의 혈도를 짚었다.
파안은 하하 소리내어 웃으며 오른발로 나무 문을 걷어찼다. 와직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나무 문은 날아가 버렸다. 파안은 웃었다. 
"모두들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보겠으니 빨리 나오실까!"
그러나 어두침침한 승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파안은 말했다.
"빨리 사람을 끌어내도록 해라."
두 명의 라마가 일제히 대답하고는 서둘러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7. 황금저(黃金杵)

별안간 문 입구 쪽에서 금빛이  번쩍했다. 승방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방망이가 뻗어 나오더니 팍팍 하는  두 번의 소리와 함께 두 명
의 라마의  머리를 내리쳤다. 황금저(黃金杵)는 곧이어  움츠러 들었고 
두 명의 라마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골이 끼져서 문 입구에 쓰러져 죽
었다.
이 느닷없는 변고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뜻밖이었다. 파안은 다시 큰
소리로 호통쳐 꾸짖었다. 그러자 세  명의 라마가 문안으로 달려들어갔
다. 이번에 세 사람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강철칼을 휘둘러 머
리 위를 보호했다.
첫번째 라마가 막 문안으로 한걸음 내딛자 예의 그 황금저가 내리쳤다. 
황금저와 강철칼이 동시에 그 라마의  정수리에 떨어지게 되어 그 라마
는 즉사했다. 두 번째 라마는 전력을 다해 칼에다 힘을 주고 머리 위에
서 황금저를 막았다.
그러나 황금저가 내리치는 위세는 마치  천근의 무게가 나가는 것 같아
서 강철 칼로는 도저히 막을래야 ㅏ을 수가 없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
께 다시 두개골이 박살나고 말았다. 세번  째 라마는 그만 안색이 흙빛
이 되어 강철 칼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파안
은 노발대발하며 욕을  했으나 감히 앞으로 나가  문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황보각은 외쳤다.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왓장을 뜯어 내어 아래로 내려 칩시다."
즉각 네 명의 사내가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왓장을 뜯었다. 그리고는 구
멍으로 그 기왓장을 던졌다. 
황보각은 다시 부르짖었다.
"모래와 돌을 집안으로 던져라."
그의 부하들은 그 말에 따라 땅바닥에서 모래와 돌을 주어서는 승방 안
으로 던졌다.
문안으로 던져진 모래와 돌들은 대부븐  집안에 있는 그 사람이 황금저
로 되날려 보냈다. 그란 지붕 위에서  던지는 기왓장들은 하나 하나 승
방 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자 집안에  있는 사람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고 하더라도 
틀어박혀 있을 수가 없었다.
홀연 황소의 울부짖음과 같은 노호소리가 들리더니 한 뚱보화상이 왼손
으로는 한 명의 승려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황금저를 휘두르며 성큼 
걸어나왔다.
이 망화상(莽和尙)은 보통 사람들보다 적어도 머리가 한 개 반은 더 붙
은 듯 컷으며 위풍이 늠름한 것이 천신(天神)과 같았다.
황금저를 휘두를 때마다 황금빛이 번쩍번쩍 했다.
그는 큰소리로 호통쳤다.
"모두 살기가 싫어졌느냐?"
그리고 보니 그는 짙은 자색의 얼굴빛을 하고 있었고 잡초와 같은 짧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승포자락은 다  떨어지고 헤어졌으며 그 틈새로 
울퉁불퉁한 근육이 드러났다. 어깨는 널직하고 허리는 굵었으며 손발이 
무척 커 보였다.
황보각가 파안 등은  그의 기세에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
다.
파안은 부르짖었다.
"이 땡초는 혼자인데 뭐가 두려워. 모두들 함께 덤벼들어라."
황보각은 부르짖었다.
"모두들 조심하게.옆에 있는 화상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돼."
뭇사람들은 그 승려를 바라보았다. 보기에 삼십여 세 정도 되었고 삐쩍 
마른 몸이었으나 키가 컸다. 그러나 풍채가 매우 준수하고 원한 편이었
다. 두 눈을 내려 감고 있었는데 주위의 형세에 대해서는 한눈 한번 팔
지 않았다.
위소보는 가슴이 쿵 하니 뛰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소황제의 아버지일 것이다. 그런데  얼굴 모습이 
별로 닮지 않았구나. 그는 소황제보다  훨씬 잘 생겼는걸. 그는 아직도 
이토록 젊구나.)
바로 이때 십여 명의 라마들이 일제히   망화상을 공격했다. 그 망화상
은 황금저를 휘둘렀다.  팍팍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한번 
소리가 날 때마다 한 명의  라마가 황금저에 맞아서는 땅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황보각은 왼손을 뻗쳐 허리께를 틀더니 한 자루의 연편을 쥐었다. 그리
고 파안은 라마의 손에서 무기를  받아들었는데 바로 자루가 짧은 철추
였다. 두 사람은 나누어 좌우에서 협공했다.
황보각은 연편을 휘둘렀다. 채찍의 끝이  옆으로 날아가더니 싹하니 그 
망화상의 목을 한대 쳤다. 그 망화상은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황금저
를 휘둘러서는 파안을  내리쳤다. 파안은 철추를 들어  억지로 막았다. 
쩡 하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파안은 손발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고 
그만 철추를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그 망화상은 다시 연편에 어깨죽
지를 얻어맞았다. 뭇사람들은 이 화상의 팔  힘이 엄청나게 셀 뿐 무공
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 명의 라마가  가까이 다가가더니 중년 승려의  왼팔을 붙잡았다. 그 
중년 승려는 흥! 했을 뿐 저항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저 화상을 보호해라."
쌍아는 대답했다.
"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리더니 손을 뻗쳐 그 라마의 허리깨를 찔러 쓰러지
게 했다. 그녀는 몸을 돌리더니 손을  뻗쳐 황보각의 얼굴을 찌르는 시
늉을 했다.
황보각은 오른쪽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손을 뻗쳐 황보각의 얼굴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황보각은 오른쪽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녀는 일지를 들어 
파안의 가슴팍을 찔렀다.
파안은 욕을 했다.
"제기......"
욕이 끝나기도 전에 뒤로 벌렁 쓰러지고 말았다.
쌍아가 동쪽으로 한 번 돌고 서쪽으로 나아가 한 번 선회하면서 섬섬옥
수가 쳐들리는 곳에 파안과 황보각이 데리고 온 십여 명 라마들은 다투
어 쓰러지고 말았다.
심계는 부르짖었다.
"이것 봐요. 이것 봐요. 소...... 소시주......"
쌍아는 웃었다.
"이봐요. 이봐요. 노화상!"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을 뻗쳐 그의 허리께를 찔러 버렸다.
황보각은 연편을 휘두르며 전후좌우를 지켰다. 채찍은 휙휙 바람소리를 
냈다. 일장이나 되는  범위의 주위는 물을 끼얹어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쌍아는 채찍의 테두리 밖에서 맴돌며  움직이고 있었다. 황보각의 연편
은 더욱더 갈수록  빠르게 움직였다. 몇 번이나  쌍아의 몸에 맞으려고 
했으나 쌍아는 신속하게 피해 버리고 말았다.
황보각은 부르짖었다.
"이런 녀석을 다 봤나?"
그는 곧 채찍에다가 공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연편은 마치 기다란 창처
럼 뻣뻣해졌다. 황보각은 그 창날과 같은 연편을 쌍아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갔다.
쌍아의 발걸음은 미끌어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가면서 손가락을 뻗
쳐서는 황보각의 아랫배를 찌르려고 했다.  황보각은 왼손을 세우고 그
녀가 찔려오는 일지를 막으려고 했다. 곧이어 연편의 끝을 갑자기 뒤로 
돌려 쌍아의 등심을 찌르려고 했다.  쌍아는 땅바닥에 몸을 뒹굴었으며 
그 정상은 매우 낭패해 보였다.
위소보는 쌍아가 패하려는 것을 보자 그만 초조해졌다. 손을 뻗쳐서 땅
바닥의 흙모래를 움켜쥐어서는 황보각의 눈에다 부리려고 했다. 그런데 
땅바닥은 너무나 깨끗하게 쓸어져 있었서  흙모래를 잡을 수가 없었다. 
쌍아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황보각의  연편은 어느덧 그녀의 몸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었다.
"안 돼."
그 망화상 역시 황금저를 휘둘러서는 앞으로 나와 구하려 들었다. 별안
간 쌍아는 오른손을  연편의 끝을 붙잡았다. 황보각이  힘을 주어 위로 
떨쳐 그녀의 전신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위소보는 손을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잡아 꺼내서 
황보각의 얼굴에 뿌렸다. 그러자 종이가 마구 휘날리는 가운데 수십 장
의 종이 조각들이 황보각의 눈앞을 가리게 되었다.
황보각은 재빨리 손을 뻗쳐서 종이들을  걷어내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오른손에 주입했던  공력이 해소되고 말았다. 이때  망화상의 황금저가 
어느덧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황보각은 그만 깜짝 놀라 재
빨리 땅에 주저앉아 피하려고 했다. 쌍아의 몸이 허공에서 땅에 떨어지
기도 전에 오른발을 어이쿠 하며 뒤로 쓰러졌다. 그 순간 팍 하는 소리
와 함께 불똥이 사방으로 튀면서 황금저는 땅바닥을 후려치고 말았다.
그의 머릿통과는 불과 반 자도 되지 않는 간격이었다. 쌍아는 오른발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연편을 빼앗아 들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훌륭한 재간이군."
그리고 비수를 뽑아들고는 서둘러 달려나가 황보각의 왼쪽 눈을 겨누고
는 호통을 내질렀다. 
"당신은 부하들에게 모두 나가서 그 누구도 못 들어오도록 명하시오."
황보각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 비수의 사늘한 한기
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속으로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자네들은 모두  나가게. 모두 나가서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도록 하
게."
그의 부하 수십 명은 잠시 망설였다. 위소보는 비수를 찌르려는 시늉을 
했다. 그와 같은 광경에 그의 부하들은 즉시 절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망화상은 고리눈을 부릅뜨더니 쌍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
더니 흐흐 하고는 칭찬했다.
"훌륭하군."
그리고 왼손으로 황금저를 들고 오른손으로 그 중년 승려를 부축해서는 
승방으로 되돌아갔다. 위소보는 서둘러 두 걸음 나아가서 그 중년 승려
에게 몇 마디의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고 말았다.
쌍아는 징광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 나쁜 사람들은 어거지로 사람을 잡아가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
화상의 위엄을 거슬렸군요."
징광은 몸을 일으킨 후 합장을 했다.
"소시주가 몸에 절기를  지니고 있어 우리 절이  커다란 액난을 당하는 
것을 구해 주셨구려.  노납은 늙어서 눈이 밝지  못해 고인을 알아보지 
못했소이다."
쌍아는 말했다.
"별 말씀을 다하시네요. 그대는 줄곧  우리 공자에 대해서 깍듯이 대해 
주셨잖아요."
위소보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제서야 자기가 황보각의 얼굴에 뿌려서 
그의 두 눈을 가리도록 한 것이  바로 한 웅큼의 은표라는 것을 발견하
고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은표를 보고 투항하지 않는 사람은 천하에서 몇 되지 않는 구만. 내가 
몇 만냥이나 되는 은표를 들어  때리게 된다면 당신은 반드시 큰소리로 
투항했다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을걸."
쌍아느 헤벌쭉 웃으며 사방에 흩어진 은표를 집어서는 위소보에게 건네 
주었다.

"위공자, 이곳의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소이까?"
위소보는 웃었다.
"세 분 친구, 그대들은 그대들의 부하들이 흩어지도록 분부하시오."
황보각은 즉시 진기를 돋우고 부르짖었다.
"자네들은 모두 산 아래로 내려가서 나를 기다리게."
그러자 밖의 수백 명이 일제히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삽시간에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징광은 약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고 심계의 혈도를 풀어 주려
고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방장, 잠깐만. 방장에게 제가 상의할 일이 있소이다."
징광은 말했다.
"네. 이 몇 분 사형은 혈도를  짚혀 오래되면 손발이 저리게 될 것입니
다. 나는 먼저 그들의 혈도를 풀어 주고자 합니다."
"뭐 그렇다고 지금 서두를 것은 없소이다. 우리 저쪽 대청으로 가서 앉
아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징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심계를 향해 말했다.
"사형,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곧 사형의 혈도를 풀어 드리리
다."
그리고 위소보를 데리고 서쪽의 대전으로 들어갔다.
위소보는 입을 열고 물었다.
"방장, 저 사람은 정말 소라마를 찾아온 것일까요?"
징광은 그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위소보는 그의 귓가
에 입을 갖다대고는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들이 그 황제화상을 위해 온 것임을 알고 있소이다."
징광은 흠칫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소시주는 이미 알고 계셨구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내가 귀찰에 와서 법사를 한다는  것은 거짓이고, 사실은 명령을 받들
고서 황제화상을 보호하고자 온 것이외다."
징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그랬었구려. 노납은 그렇지 않아도  의심을 하고 있었소이다. 소
시주가 먼 길을 달려와 청량사에서 법사를 한다고 했을 때 시주답지 않
다고 생각했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황보각과 파안  그들은 잡았지만 호랑이를 잡기는  쉬워도 놓아주기는 
어렵소이다. 만약 그들을 놓아 준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귀찮게 군
다면 매우 번거로운 일이 되지 않겠소?"
징광은 말했다.
"사람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이 절에서는 이미 몇 사람이 목숨을 잃었
군요. 아, 아미타불, 아미타불."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을 죽인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요. 대사께서는 
그 사람들을 묶은  뒤에 우리들이 다시 자세히 물어  보도록 하는 것이 
어떻소이까? 그들이 황제화상을 찾는 목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아야겠소이다."
징광은 약간 난처한 빛을 띠었다.
"이 불문의 성지에서 출가인이 스스로 사람을 묶어서 심문을 한다는 것
은 도리에 합당하지 않는 것 같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도리에 합당하고 안 하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이 절안의 화상들
을 모조리 죽이려 드는 것은 도리에 합당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자세히 
심문해서 알아보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 다시 와서 사
람을 죽이고  그 방장대사의  청량사를 불지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징광은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옳은 말이외다. 시주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는 손뼉을 쳐서는 한 명의 화상을 불러들이더니 분부했다.
"우리가 물어볼 말이 있으니 그 황보선생을 오시라고 해라."
"황보각은 무척 교활하니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역시 그 대라마에게 먼저 묻는 것이 좋겠소이다."
"맞습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두 명의 화상이 양쪽으로 파안을 붙잡고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파안이 절의 승려를 죽인데 대해서 분풀이라도 하는 듯 그를 심하게 땅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 어째서 대라마에게 조금도 예의를 지키지 않는가?"
두 명의 승려는 허리를 약간 굽혔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물러가 버렸다.
위소보는 왼손으로 의자를  들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고  의자 다리를 
끊임없이 베어 내었다. 그 비수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의자의 다
리는 한조각 한조각 베어지게 되어 네  다리가 일이 푼 정도의 두께 밖
에 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과일을 잘라 내는 것 같았다.
징광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의자를 내려놓고 파안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
의 머릿통을 만지며 오른손의 비수로  조금 전 의자다리를 베어내듯 하
는 시늉을 했다.
파안은 크게 부르짖었다.
"안 돼요."
징광 역시 부르짖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위소보는 노한 어조로 말했다.
"되고 안 되고가 어디 있소?  나는 서장의 대라마들은 하나같이 철두공
(鐵頭功)이라는 것을 익혀  칼과 창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나는 북경에 있을 적에 친히  이 단검으로 대라마의 머릿통을 베
어 내려고 반나절 동안 베었지만 베어 낼 수가 없었소이다. 대라마, 그
대는 진짜요, 아니면 가짜요? 시험해 보지 않으면 어찌 알 수 있겠소?"
파안은 재빨리 말했다.
"나는 철두공을 익힌 적이 없소이다.  그대가 자르게 된다면 나는 죽게 
되오."
위소보는 말했다.
"반드시 죽지는 않을  것이오. 두세 치 정도 베어  낸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오. 나는 그저 그대의 두개골 한  겹을 베어 내어서 그대의 골수
를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오.  사람이 정말로 말할때 골수는 움직이
지 않소. 그러나 만약에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골수는 마치 물끓듯 부
글부글 끓어오른단 말이외다. 내가 그대에게 물어 볼 말이 있는데 그대
의 두개골을 베어 내지 않는다면  그대가 정말로 말하는지 아니면 거짓
으로 대답하는지 알게 뭐란 말이오?"
파안은 말했다.
"잘라 내지 마시오. 잘라 내지 마시오. 내 정말로 말씀드리리다."
위소보는 그의 머리 가죽을 어루만져 보고는 말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파안은 말했다.
"내가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그때 다시  나의 머리 가죽을 잘라내도 늦
지 않을 것이오."
위소보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묻겠소.  누가 그대보고 청량사로 가라
고 한 것이오?"
파안은 말했다.
"바로 보살정 진용원(眞容院)의  대라마 승라타(勝羅陀)가 나를 파견한 
것이외다."
징광은 말했다.
"아미타불, 오대산의 청묘와 황묘간에는 아무런 원한이 없었소. 보살정
의 대라마가 어찌하여 그대를 보내 소란을 피우게 했다는 말이오?"
파안은 말했다.
"나는 소란을 피우려 온 것이  아니외다. 승라파 사형은 나에게 삼십여 
세 되는 화상을  찾아내라고 했소. 그리고 그  화상은 우리 납찰활불의 
불경을 훔쳐서는 청량사에 숨어 있다고 했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잡
아내야 한다고 했소."
징광은 말했다.
"아미타불, 그런 일이 언제 있었소?"
위소보는 비수를 쳐들고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구려. 내  그대의 머리 가죽을 벗겨서 살펴봐
야 겠소."
파안은 부르짖었다.
"아니오. 아니오. 거짓말을 하지 않았소.  믿을 수 없다면 승라타 사형
에게 물어 보도록 하시오. 그는 우리에게 한 명의 소라마를 잃은 척 하
고서는 그 중년화상을 찾아내라고 했소. 그리고 그 황보선생이 그 화상
을 알아보니 그를 모시고 가서 함께  찾도록 하라고 했소. 승라타 사형
도 이 화상은 우리 밀종의 비밀인 서장의 불경인 대비로차나불신변가지
경(大毘盧遮那佛神變加持經)을 훔치는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이오. 그리
고 만약에 내가 그 화상을 잡게  된다면 큰 공을 세우는 것이며 납살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활불은 반드시 큰 상을 내리리라고 하였소이다."
위소보는 그의 얼굴빛이 간곡한 것을 보고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
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역시 남의  우롱을 받고 한 짓이며 상대방
에서는 그로 하여금  순치황제에 대한 진상을 알려  주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즉시 위소보는 품속에서 한 통의 서장 문자로 된 편
지를 꺼냈다. 바로 길을 오다가 쌍아가  세명의 라마를 잡고 빼앗은 그 
편지였다.
그는 그 편지를 펼치고 말했다.
"이 편지에 무슨 내용이 써 있는지 나에게 들려주시오."
그리고 그는 비수의 날을 수평으로 해서는 그의 정수리 위에 얹었다.
파안은 말했다.
"네 네."
그리고 무엇이라 읽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그대는 매우 잘 읽었군.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있었소이다. 이 
방장대사께서는 서장문을 모르니 그대가 한나라 말로 편지의 내용을 말
하도록 하시오."
"그 편지에서는 이 대...... 대인물이 정말 오대산 청량사에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최근에 소문을 들으니까  신...... 신룡교에서 그를 모시고 
가고자 하니 우리가 먼저...... 선수를  쓰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내용
이외다."
위소보는 그가 신룡교라고  말을 하자 거짓이 아니라는  짐작을 하고는 
물었다.
"편지에는 또 어떤 말이 씌어 있소?"
"편지에는 청량사로 와서 이 대인물을 모셔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신
룡교에서 소식을 듣게 된다면 역시  빼앗으려고 할 것이니 승라타 사형
이 북경의 달화이(達和爾)사형에게 급히  많은 고수들을 파견해 협조해 
주도록 당부한다고 했소.  만약에...... 만약에 상결(桑結)대라마가 이
미 북경에 도착했다면 그 어르신은  당금 세상에서 무적이니 친히 달려
와 이 일을 처리하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틀림이 절대 없다는 
내용이지요."
위소보는 웃으며 욕을 했다.
"제기랄, 절대 틀림이 없다란 말이겠지  뭐가 틀림이 절대 없다는 말이
오?"
위소보는 파안에게 자기가 다 알고 있으니 거짓말하면 본 때를 보일 거
이라고 경고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것에 무척  자랑스럽다는 투였
다.
파안은 고개를 숙였다.
"네, 네. 절대로 틀림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소? 그리고 다음에 또 어떤 내
용이 있소?"
파안은 말했다.
"아래에는 없소이다."
위소보는 욕을 했다.
"제기랄, 뭐가 아래가 없다는 것이오?  나의 아래가 없다는 것이오. 아
니면 그대의 아래가 없다는 것이오?"
파안은 말했다.
"모두...... 모두 아래가 없소이다."
"뭐가 모두 아래가 없다는 것이오?"
"아래의 글자가 없다는 말이외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물었다.
"그 황보각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오?"
"그는 승라타 사형이 청해 온 협조자입니다. 어젯밤 도착했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징광에게 말했다.
"방장, 나는 그 불광사의 뚱보화상을 심문해야겠소이다. 방장께서 얹짢
게 생각한다면 창문 밖에서 듣도록 하십시오."
징광은 재빨리 말했다.
"그게 가장 좋겠소. 그것이 가장 좋아요."
그리고 그는 사람을 시켜 파안을 데려 가게 하고 심계를 데려오도록 했
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기의 선방으로 되돌아가  창밖에서 듣는 것도 
마다했다.
심계는 대전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우고 말했다.
"두 분 시주는 젊은 나이에 무공이 그토록 뛰어나구려. 노납은 정말 보
지도 듣지도 못했소이다. 영웅은 젊어서  난다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시
오. 정말 훌륭하시오."
위소보는 욕을 했다.
"제기랄, 누가 당신보고 아첨을 떨라고 했소?"
그리고 그의 볼기짝을 걷어찼다. 심계는  아팠으나 얼굴에 여전히 웃음
빛을 그대로 띠우고 말했다.
"네네, 무릇 참된 영웅호걸은 아첨 떠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요. 하지만 
이 노화상이 하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 아첨이라 할 수가 없
소이다."
위소보는 물었다.
"내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가 청량사로 와서 소란을 피운 것은 누구의 
뜻에 따른 것이오?"
심계는 말했다.
"시주께서 물으시니 노승은 조금도  숨기지 않겠소이다. 보살정 진용원 
대라마 승라타가 사람을 시켜 이백 냥의 은자를 보내 주면서 그의 사제 
파안과 함께 청량사로 와서는 한  사람을...... 한 사람을 찾으라고 했
소이다. 노승은 그야말로 공을 세우지 않으면  녹을 받을 수 없다는 격
으로 그저 그와 한번 왔다 가기로 했소이다."
위소보는 다시 발길로 걷어차며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래도 나를 속일  작정이오? 빨리 솔직히 털어놓으
시오."
심계는 말했다.
"네네, 시주에게 솔직히 말씀드려서 대라마는 나에게 삼백 냥의 은자를 
주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분명히 이천 냥이지 않소?"
심계는 말했다.
"사실은 오백 냥입니다. 한 냥이라도  더 받았다면 이 노화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 황보각은 또 어떤 자요?"
심계는 말했다.
"그 비열한 자는 좋은 사람이 못 되지요. 파안이라는 라마가 데려온 사
람입니다. 시주가 나를  놓아 준다면 노승은 ㅈ  그를 오대현으로 보내 
지현대인으로 하여금 그의 죄를 다스리도록 하겠소이다. 청량사는 불문
의 성지인데 어찌 그가 못된 짓을  마구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소이
까? 소시주, 그 몇 명 죽은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몇 명 죽은 라마들
도 우리 모두 그의 책임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위소보는 얼굴빛을 가다듬었다.
"분명히 그대가 죽인 것인데 어째서 남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시오?"
심계는 빌었다.
"나리, 제발 나를 용서해 주시구려."
위소보는 사람을 불러 그를 데려가도록  했다. 그리고는 황보각을 데리
고와 심문을 했다.  그런데 황보각은 매우 뻣뻣했다.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가 비수로  위협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쌍아가  그의 천할혈을 
짚자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신음소리를 내뱉었지만 위소
보의 묻는 말에는 시종 대답하지 않고 그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사내라면 이  나리를 한칼로 죽이지 남을  괴롭히는 것은 결코 
호걸이라 할 수 없다."
위소보는 그가 꿋꿋한 사내라는 점을 오히려 높이 사서는 말했다.
"좋소. 우리들은 그대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지."
그리고 쌍아에게 그의 천할혈 혈도를 풀도록 했다.
그는 사람을 시켜 황보각을 데리고  나간 이후 다시 징광대사를 모시고 
들어오도록 했다. 징광대사가 들어오자 그는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우리는  그 대인물과 상의해 보는 것이 
좋겠소이다."
징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결코 외부의 사람을 만나지 않을 것이외다."
위소보는 불쾌히 말했다.
"뭐가 외부의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오? 조금 전에 이미 만나 보
지 않았소. 우리가 만약에 상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전히 남에게 잡
혀가고 말았을 것이  아니겠소. 며칠 지나지 않아  북경의 대라마가 또 
사람을 파견해 온다고 했소. 그리고 천하무적이라는 대고수도 있소. 거
기다가 신룡교니 무슨 교니 하는 사람들도 나서지 않았소? 설사 우리가 
협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외다."
"그 말씀도 옳소이다."
"그대가 가서 그 분에게 말씀을  하시오. 사태가 긴급하니 반드시 상의
해서 방법을 강구해야겠소라고 말입니다."
징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안의 모든 승려는  말할 것도 없고 노납까지도  그와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나는 그대 절안의 화상이 아니니 내가 가서 그에게 말을 하도록 
하겠소이다."
징광은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소시주가 승방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의 사제 
망화상 행전(行顚)이 황금저로 단 한번에 그대를 때려죽일 것이외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나를 때려 죽이지 못할 것이외다."
징광은 쌍아를 한번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대가 설사 서동을 시켜 행전 화상의  혈도를 짚어 쓰러 뜨린다 하더
라도 행치(行치) 는 여전히 그대와 말을 하지 않을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행치? 그의 법명은 행치라고 합니까?"
징광은 말했다.
"네, 원래 시주는 모르고 있었구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소이다. 그대에게 절대로 틀림없는 
좋은 방법이 없다면  애석하지만 청량사의 오래된 절간은  그대 방장의 
손에서 사라지게 되었소이다."
징광은 울상을 지으며 연신 손을 비벼 대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옥림(玉林)사형에게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가서 물어 보
리다.
위소보는 물었다.
"옥림대사는 또 누구시죠?"
"행치에게 불법을 전수해 준 사부이외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잘 되었소이다. 나도 그 노화상을 뵙도록 해주시오."

그 즉시 징관은  위소보와 쌍아를 데리고 청량사  후문으로 나갔다. 한 
마장쯤 나아가자 한 채의 조그만 오래된  절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절
간에는 아무런 편액도  씌어 있지 않았다. 징광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
다. 뒷쪽 승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허연 수염에 허연 눈썹의 노승이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
였다. 정히 눈을 감고 입정(入定)한 상태인데 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하였다.
징광은 손짓을 하더니 가만히 옆에 놓여 있는 방석 위에 앉아서는 눈을 
내려 감고서 두 손을 합장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우스운 것을 느꼈으나 
잇달아 앉았다. 쌍아는 그의 등 뒤에 섰다.
사방은 조용했으며 이 조그만 절간 안에는 다만 이 한명의 노승밖에 없
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도 그 노승은 시종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사람 같
았다. 징광도 꼼짝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손발이 저려왔고 여간 초조하
지 않아 일어섰다가  다시 앉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속으로 노승의 십팔대 조상까지 수십 번이나 욕을 해댔다.
한참 지난 후 노승은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징광은 입을 열었다.
"사형, 행치의 속세 인연이 아직 끊어지지  않아 그 누가 절로 찾아 왔
습니다. 사형께서 불법으로 해소시켜 주십시오."
그 노승 옥림은 말했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해소시키는  것도 자기자신에 
달려 있네."
징광은 말했다.
"외부의 소요가 지극히 심하여 청량사에 어려움이 있소이다."
그리고 그는 심계와  파안, 황보각 등이 행치를  잡아가려고 한 행위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다행이 위소보와 쌍아가  나서서 구하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고 또 쌍방 간에 몇  사람 죽었으니 아무래도 서로 화해하기는 
틀렸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옥림은 묵묵히 다 듣고 나더니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두눈을 감고 다
시 입정에 들어갔다.
위소보는 대노해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냅다 욕을 했다.
"제에미......"
그런데 그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징광은 잇달아  손짓을 했다. 제발 
화를 내지 말고 앉아서 기다리도록 하자는 시늉이었다.
이번에 옥림을 입정을 한 지 다시 반 시간 가량이 능히 지나갔다. 위소
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천하의 강도나 도적, 그리고 독부나 후레자식들이라 하더라도 이 노화
상처럼 밉지는 않을 것이다.)
간신히 옥림이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위시주는 북경에서 오셨소?"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옥림은 다시 물었다.
"위시주는 황상 곁에서 일을 보고 계시오?"
위소보는 깜작 놀라 펄쩍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대...... 그대...... 그대가 어떻게 아시오?"
옥림은 말했다.
"노납은 그저 짐작했을 뿐이외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화상은 요상한데가  있다. 아마도 정말 어느  정도 법력(法力)을 
갖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속으로 다시는 그에게 욕을 하지 못하고 공손하게 앉았다.
옥림은 말했다.
"황상이 위시주를 보내 행치를 만나도록 한 것은 무슨 할 말이 있기 때
문이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화상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니 속여 봤자  아무 소용이 없
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노황야(老皇爺)께서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 계시다는 말을 
듣고 기쁨과 함께 슬퍼했죠. 그리고 저를 몰래 보내 노황야에게 큰절을 
올리고 문안을  여쭙도록 했습니다...... 만약......  만약 노황야께서 
궁으로 돌아가실 것을 허락하신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기도 하답니다."
강희는 본래 진상을 알아본 이후 자기 스스로 오대산으로 와 부황을 보
겠다고 말했는데 위소보는 그와 같은 사실을 속이고 말하지 않았다. 옥
림은 물었다.
"황상은 시주에게 어떤 신표라도 가져가시도록 했소?"
위소보는 안쪽 품속에서 강희의 친필로 쓴 어찰을 꺼내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대사께선 보십시오."
어찰 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칙령 어전시위 부총관이며 황제에게 황마괘를  하사 받아 입게된 위소
보는 오대산 일대에 공무로 가니 각 성의 문무관원들은 그의 명령과 지
휘를 받도록 하라.>

옥림은 어찰을 보더니 위소보에게 되돌려주었다.
"알고 보니  어전시위 부총관  위대인이시구려. 정말  실례가 많았소이
다."
위소보는 속으로 의기양양해졌다.
(이번에야 나를 얕보지는 않겠지.)
그러나 옥림의 안색을 보니 공경하는 빛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마음
속으로 우쭐했던 기분도 엷어지고 말았다.
옥림은 말했다.
"위시주, 그대의 뜻에 의하면 어떻게 조처했으면 좋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노황야를 뵈옵고 노황야의 분부를 따르고자 합니다."
옥림은 말했다.
"그는 옛날 온 세상을 쥐고 흔들만한  부를 지니고 있었으나 출가한 이
후 속세의 인연은 이미 끊어졌으니 노황야라는 석 자는 다시 입에 담지 
않도록 하시오. 남들이 듣는다면 깜작 놀라서 그의 수양에 방해될 것이
오."
위소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옥림은 다시 말했다.
"돌아가서 황상에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시오. 행치는 그대를 보고자 원
하지 않고 또한 외부의 사람을  보고자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리시
오."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그분의 아들이시니 외부 사람이 아닙니다."
옥림은 말했다.
"출가라는 게 무슨 뜻이오? 집은 이미 집이 아니니 처자와 딸들은 모두 
외부의 사람이 되는 것이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 보기에  저 노화상이 수작을 부려  가운데서 방해를 놓고 
있는 것 같군. 노황야께서 설사  궁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들까지도 안 만나 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야.)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와 보호토록 하고, 지키도록 
하면서 한가하거나 쓸데없는 사람들이 절안으로 들어와 방해를 하지 않
도록 하겠소이다."
옥림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된다면 청량사 자체가 황궁의 내원이나 관가로 변하게 될 것이 
아니겠소? 위대인이라는 어전시위  부총관께서도 청량사에서 일을 보게 
될 것이외다. 그렇게 된다면 행치가 차라리 북경 황궁으로 돌아가는 것
만 못하게 될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원래 대사께서는 따로히 노...... 그  어르신을 보호할 묘책이 있었군
요. 불초는 귀를 씻고 삼가 듣도록 하겠소이다."
옥림은 미소했다.
"위시주는 젊은 나이인데도 정말 무서운 인물이구려. 십여 세의 젊은이
로서 그와 같은 큰 벼슬을 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구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계속 말했다.
"묘책은 없소. 출가외인은 세상과 다투지 않고 어떤 고견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오. 위시주의 뜻은 고맙소. 청량사가 만약 정말 재앙을 
당한다면 그것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액겁이 아니겠소?"
그리고 나서 합장하고 절을 하더니 눈을 감고는 입정으로 들어갔다.
징광은 몸을 일으키더니 손짓을 하고는  물러갔다. 문가에 이르러 옥림
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위소보는  옥림에게 용용 죽겠지 하는 얼
굴을 해보였다. 그리고 혓바닥을 날름 내밀어 보이고는 오른손 엄지 손
가락으로 자기의 코를 누르고 네  손가락을 옥림 쪽으로 손짓하는 시늉
을 해보였다. 이것은 바로 구린내가 무척 심하구나 하는 뜻이었다.
옥림은 눈을 감고 있어서 그와 같은 시늉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절 밖에 이르게 되었다. 징광은 말했다.
"옥림대사는 득도한 고승이신데 이미 분명히 지시를 내렸소. 노납은 가
서 심계방장 등을 풀어 주겠소. 위시주, 오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
라 할 수 있소. 이만 작별을 하겠소이다."
그리고 두 손을 합장하더니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다시 청량사로 들
어갈 필요가 없이 그냥 가 보라는 소리가 아닌가.
위소보는 울화가 치밀어서 말했다.
"매우 좋소이다. 그대들에게 절대로 틀림없는  묘책이 있는 것을, 내가 
쓸데없는 일에 관여를 했구려."
그리고 쌍아를 시켜 우팔 등 몇  명의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곧장 
산을 내려와 다시 영경사에 가서 머물게 되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8.관음보살과 저팔계.

그는 어제밤 영경사에 칠십냥이라는 은자를 시주했다. 주지대사는 대시
주가 다시 왕림한 것을 보고 은근히 대접을 했다.
객실에서 위소보는 한손으로 턱을 고인 채 생각했다.
(노황야를 만나 보기는 보았다. 원래  그는 조금도 늙지 않았지만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구나. 서장의 라마들이  그를 잡으려 하고 또 신
룡교에서도 그를 잡으려 하고 있다. 그  옥림이라는 늙은 땡초는 꽤 잘
난 척 하고 있지만 아무런 재간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징광 방장 한사
람이 또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며칠 후에 노황야는 
다른 사람에게 잡혀갈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소현자에게 무슨 변명의 
말을 하지?)
그러다가 고개를 돌리니 쌍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무
척 불쾌한 듯했다. 위소보는 물었다.
"쌍아, 무슨 일로 그렇게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지?"
쌍아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반드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빨리 말하시오."
쌍아는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위소보는 생각을 굴려 보고는 말했다.
"아, 알았소. 그대는 내가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대에게 
줄곧 말하지 않는 사실이 섭섭했구만."
쌍아는 눈가르 붉히며 입을 열었다.
"오랑캐의 황제는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상공께서...... 어쩌다가 그
들의 벼슬아치가 되었죠? 더군다나 큰 벼슬을 하게 되었죠?"
그러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보같이, 그렇다고 울기는 왜 울지?"
쌍아는 흐느끼며 말했다.
"세째 작은 마나님은 저를 상공에게  내어 주시면서 상공을 지중들라고 
분부하며 또 상공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그대는 조
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어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분의  오라버니도  나쁜 벼슬아치들에게  죽었단  말이에요.  그대
는...... 그대는......"
그리고 대성통곡을 했다.
위소보는 일시 어떻게 할 바를 몰라 재빨리 말했다.
"되었소. 되었소. 그만 우시오. 이제  그대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기로 
하지. 솔직히 그대에게 말하는데 내가 벼슬을 하는 것은 거짓으로 하는 
것이오. 나는 천지회 청목당의 향주외다. 천부지모(天父地母) 반청복명
(反淸復明)이라면 알겠소? 나의  사부님으로 말하면 천지회의 총타주인 
것을 이미 그대의 세째 작은 마나님에게 말씀을 드렸소. 우리 천지회는 
조정과 맞서고 있소. 우리 사부가 나를 황궁에 보내 벼슬을 하게 한 것
은 오랑캐들의 소식을 알아 내자는 것이외다.  이 일은 사실 비밀에 속
하는 바이오. 만약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나는 목숨을 건질 수가 없
소."
쌍아는 손을 뻗쳐 위소보의 입술을 막고 나직이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그만 하세요. 제가 그대에게 말하도록 다그쳤으니 모두 
저의 잘못이에요."
그리고 눈물진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상공게서는 좋은  사람이나 물론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 저는...... 정말 우둔한 계집애예요."
위소보는 웃으면서 응수했다.
"그대는 착한 계집애지."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방에 걸터앉은 자기의 곁에 걸터앉도
록 했다. 그리고는 나직이 순치와 강희 간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리
고는 다시 말했다.
"소황제는 겨우 십세에 불과하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출가하여 화상
이 되었으며 그를 버렸단 말이오.  그대도 생각해 보시오. 황제가 불쌍
하지 않소? 오늘 노황제를 잡으러 온  그 녀석들은 매우 나쁜 사람들이
외다. 그런데 그대가 노황야를 구했으니 천만다행이외다."
쌍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어쨌든 좋은 일을 한가지 했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하지만 부처님을 보내려면 서방 극락세계까지  보내 주어야 한다는 말
이 있소. 그 사람들은 다시 방장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을 것이오. 그리
고 그들은 반드시 그대로 있지를  않고 되돌아서서 다시 노황야를 잡아
서는 노황야의 살을 한조각 발라  내어서 구워 먹는다면 야단나지 않겠
소?"
그는 쌍아의 마음이 곱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녀가 용감하게 사
람을 구하도록 충동질을  하려고 일부러 순치의 처지를  매우 비참하게 
묘사한 것이었다.
쌍아는 몸을 흠칫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들이 그 분의 고기를 먹으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당나라의 화상이 서천으로 불경을 가지러 갔던 고사를 그대는 들은 적
이 있소?"
쌍아는 말했다.
"들은 적이 있어요. 그 화상에게는 손오공과 저팔계가 있었죠?"
위소보는 말했다.
"길을 가게 되었을 때 많은 요괴들이 모두 그 당나라 화상의 고기를 먹
으려고 했소. 그 요괴들은 그 화상이 성승(聖僧)이기 때문에 그의 고기
를 먹는다면 부처님이나 신선이 된다고들 하지 않았소?"
쌍아는 말했다.
"아, 저도 알겠어요. 그 나쁜 사람들은 역시 노황제 화상을 성승이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 그대는 정말 총명하군. 노황제 화상은 당나라 화상에게 견줄 수 
있고 그 나쁜 사람들은 요괴에 비교할  수 있지. 나는 그야말로 손행자
(孫行者)에 비유할 수 있으며 그대는 바로......"
그리고 그는 두 손을 자기의 귀에 갖다대고 흔들거리며 부채 모양을 해
보였다. 쌍아는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내가 저팔계라는 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모습은 관음보살과 닮았지 하지만  행하는 것은 저팔계의 일이
야."
쌍아는 빨리 손을 흔들었다.
"보살에 대해 불경스러운 말씀을 하지  말아요. 상공, 그대는 관음보살 
곁의  그  선재동자(善才童子)   홍해아(紅孩兒)가  되세요.  저는  바
로......"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위소
보는 말했다.
"맞았소. 내가 선재동자라면 그대는 바로  용녀(龍女)이지. 우리 두 사
람은 언제나 함께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지."
쌍아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졌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그대가 나를 마다하고 몰래 떠나 버린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는다면 영
원히 그대의 시중을 들겠어요."
위소보는 손을 뻗쳐 자기의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대가 나를 마다하고  몰래 떠나 버린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을 때는 
나의 목을 자른다 하더라도 그대를 내쫓지 않겠소."
쌍아 역시 손을 뻗쳐서는 자기의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저의 목을 자른다 해도 저는 가지 않겠어요."
두 사람은 동시에 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쌍아는 위소보를 따르게 된 이후 주인과 하녀의 관계의 관계를 매우 엄
격히 지켰으며 좀처럼 위소보에게 농담을  하지 않았다. 이때는 위소보
가 진상을 토로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흐뭇해져서는 농담까지 한 것이
었다. 두 사람은 이와 같이 웃고 떠들게 되자 감정은 더욱더 어느 정도 
친밀해졌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우리는 이제 모든 사정을 털어놓게 되었소. 그런데 무슨 방법으
로 당나라 화상을 구하지?"
쌍아는 웃으며 말했다.
"당나라 화상을 구하는 방법은 제천대성(齊天大聖)이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팔계는 그저 따를 분이에요."
위소보는 웃었다.
"저팔계가 정말  그대처럼 예뻤더라면 당나라 화상도  출가하여 화상이 
되지 않았을걸."
쌍아는 물었다.
"그건 무엇 때문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당나라 화상은 물론 저팔계를 마누라로 삼게 되는 것이지."
쌍아는 훗 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팔계는 돼지  요정이 아니에요?  누가 그를  마누라로 맞아들이겠어
요?"
위소보는 그녀가 돼지 요정을 누가  마누라로 삼느냐는 말을 하자 갑자
기 그 인삼복령저가 되었던 목검병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녀와 방이는 지금쯤 어디에 가 있는지, 그리고 편안히 있는지 궁금해
졌다. 쌍아는 위소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감히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못했다.
잠시 후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무슨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나쁜 사람들이 노황야를 잡아가지 못하도록 
해야지. 쌍아, 예를 들면 한가지  보물을 두고 많은 도적들이 훔치려고 
하는데 우리는 무슨 방법을 써서  그 도적들로 하여금 훔치지 못하도록 
하지?"
쌍아는 말했다.
"도적들이 보물을 훔치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모두 다 잡
아 버리면 되죠?"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적들이 너무 많아 다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으니 우리도 도적이 되
어야겠어."
쌍아는 물었다.
"우리들이 도적이 된다구요?"
위소보는 말했다.
"맞았소. 우리가 선수를 써서 그 보물을 훔쳐 손에 넣는다면 다른 도적
들은 훔칠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어?"
쌍아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알겠어요. 우리가 가서 노황제 화상을 잡아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이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즉시 떠나기로 합시다."

두 사람은두 사람은 청량사 밖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날이 아직 어둡지 않으니 물건을 훔치거나 화상을 훔치는 데는 저녁까
지 기다려야겠어."
그리하여 두 사람은 숲속에 숨었다. 오랫 동안 기다려서야 날이 어두워
졌으면 온산이 차츰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사위가 조용해졌다. 위
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절안에는 방장 한  사람만이 무공을 알고 있소. 그러나  그는 조금 전 
싸울 때 상처를 입었으니 지금쯤 반드시  누워 쉬고 있을 것이오. 그대
가 가서 그 뚱뚱하고 큰 화상인 행정의 혈도를 짚어 쓰러뜨리면 우리들
은 노황야 화상을 훔쳐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 행전의 힘이 엄청
나게 크고 그 황금저로 사람을 때릴 때 대단히 무서우니 반드시 조심해
야 할 것이오."
쌍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사방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담장을 뛰어넘어서는 곧장 순치가  좌선하고 있는 승방 밖에 이
르렀다. 그런데 판자대기의 문은 이미 닫혀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문짝은 낮에 사람의 발길질에 망가졌고 일시 고칠 수가 없었
던 모양으로 그저 그렇게 세워져 바람을  막고 있었다. 쌍아는 벽을 따
라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문짝을 왼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누
런 금빛이 번쩍  하면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황금저가 빈틈으로 뻗쳐 
나왔다.
쌍아는 황금저가 뒤로 울려지는 틈을  타서는 재빨리 안으로 뛰어 들어 
손가락을 뻗쳐서는 행전의 가슴팍 요혈을 두 번이나 찔렀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두 손을 들어서는 행전의 손에 들린 황금저를 안았다.
행전은 혈도를 제압을  당하게 되자 몸뚱아리가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
다. 이 황금저는  무게가 백여 근이나 되었는데  쌍아가 만약 얼싸안지 
않고 떨어지는 것을  그냥두게 된다면 행전의 발가락을  다칠 판이었던 
것이다.
이때 위소보가 따라  들어가서는 문짝을 바로 했다.  승방은 무척 좁았
다. 어둠속이었지만 어렴풋이 그 누가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소보는 바로 분명히 행치가 순치황제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는 
즉시 꿇어 엎드려서는 큰절을 올렸다.
"소신 위소보는 바로 낮에 어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노황야께서는 놀라
거나 당황해하지 마십시오."
행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노황야께서 이곳에 수양을 하고 계신 것은 본래 무척 좋은 일이었읍니
다만은 밖의 많은 사람들이 노황야를  잡아 가서는 불순한 행동을 하려
고 하고 있습니다. 소신은 노황야를 보호하여 다른 안전하고 은밀한 곳
으로 모셔갈까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나쁜 자들은  잡을래야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행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노황야께서는 소신을 따라 함께 나가도록 하지요."
잠시 기다렸으나 시종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때 위소보는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리하여 행치가 앉아 있
는 자세가 바로 낮에 보았던 옥림과  똑같은 모양인 것을 알아볼 수 있
었다. 또한 행치가 정말로 입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를 아랑곳하고 
싶지 않아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말했다.
"노황야의 신분은 이미 누설되었습니다.  청량사에서는 보호할 만한 사
람이 없습니다. 한떼의 적은 떠나갔읍니다만  또다시 들이닥치게 될 것
입니다. 노황야께서는 끝내 그들에게  잡혀가게 되겠지요. 그러니 역시 
다른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수양을 하도록 하십시요."
행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행전이 갑자기 말했다.
"그대 두 나이 어린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낮에 그대들이 우리들을 구
해 줘서 다행이야. 우리 사형께서 좌선하게 된다면 남과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대는 우리 사형에게 어디로 가자는 것이지?"
그의 음성은 본래 우렁찼는데 죽어라 하고 음성을 낮춤에 따라 그 음성
은 매우 목쉬게 들렸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가든 좋소이다. 그대 사형이  가소 싶은 곳으로 우리들은 호송
해 가도록 하지요.  그저 그 나쁜 자들이 찾지 못하고  그대들 두 분이 
편안하고 조용하게 수양을 하며 염불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행전은 말했다.
"우리는 염불을 하지 않는다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이다.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염불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 쌍
아, 그대는 빨리 이 대사의 혈도를 풀어 드리도록 하시오."
쌍아는 손을 뻗쳐서  행전의 등과 옆구리를 몇 번  주물러 주어 혈도를 
풀고는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이때 행전은 행치에게 공손히 입을 열었다.
"사형, 이  두 어린 사람이  우리들에게 잠시 나가  피하도록 하라는군
요."
행치는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보고 청량사에서 떠나라는 말씀은 계시지 않았네."
그 말하는 음성은  무척 맑고 낭랑했다. 위소보는  이때서야 그가 직접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행전은 말했다.
"적이 재차 대거 공격해 온다면 이 두 어린애는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
다."
행치는 말했다.
"모든 것음 마음에서 생기는 것일세.  위험하다면 천하의 어디도 다 위
험한 곳일세. 마음속이  편안하다면 세상일이 모두 다  편안한 것일세. 
낮에 그대는 많은 사람들을 살상해서 큰 죄를 지었네. 이후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쓸데없이 화를 내지 않도록 하게."
행전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말했다.
"사형의 지적이 옳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리고 위소보에게 말했다.
"사형은 떠나려고 하지 않는구만. 그대들도 들으셨겠지?"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적이 와서  그대의 사형을 잡아가 한칼로  그의 살을 발라낸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행전은 말했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몇 년 더 살아도 그렇고 몇 
년 덜 살아도 그렇고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 차이가 없다는 것이오?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의 차별이 없
고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다면  화상과 자라와 돼지가 차별이 없다는 
것이오?"
행전은 말했다.
"중생은 평등하다네. 원래는 다 그런 것일세."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름이 한  사람은 행치이고 한 사람은  행전이로구나. 정말 
약간 돈 것  같다. 그들에게 가자고 권고해 봐야 성공할  수 없는 일이
군. 그렇다고 노황야의 혈도를 짚어서 억지로 끌고 나간다는 것은 너무
나 불경스러운 일이고 또한 남에게 발각될 우려가 있으니!)
일시 그는 속수무책이어서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다. 참을 수 없어진 그
는 입을 열었다.
"뭐가 차별이 없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황후와 단경황후도 차별이 없는
데 무엇 때문에 출가를 했단 말이오?"
행치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무슨 말을 하는가?"
위소보는 이미 뱉어  내고 난 이후에야 후회가 되어  즉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했다.
"소신이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였습니다.  노황야께서는 화를 내지 마십
시오."
행치는 말했다.
"옛날 일은 나는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일세. 그대는 또 어째서 그와 같
은 칭호를 하는가? 빨리 일어나게. 내 그대에게 물어 볼 말이 있네."
위소보는 말했다.
"네."
그리고 몸을 일으킨 후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나에게 자극을 받고 입을 열었군. 이렇게 된다면 어느 정도 단서
는 잡히게 된 셈이지.)
행치는 물었다.
"두 분 황후의 이름을 그대는 어디서 들었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해대부가 황태후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행치는 물었다.
"그대는 해대부를 알고 있는가?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황태후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행치는 놀라 물었다.
"그가 죽었다구?"
"황태후는 화골면장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행치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황태후가 어떻게...... 무공을 안단  말인가? 그대가...... 어떻게 알
았지?"
위소보는 말했다.
"해대부는 황태후는  자녕궁 화원에서 싸웠는데 제가  친히 목격했습니
다."
행치는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소신은 어전시위 부총관 위소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마디를 보탰다. 
"당금 황상께서 친히 봉하신 것으로써, 어찰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강희의 어찰을 꺼내 올렸다.
행치는 잠시 멍해지더니  손을 뻗쳐 그 어찰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행전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등불을 켜지 않는다."
행치는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소황제의 몸은 괜찮은가? 그는...... 그는  황제 노릇을 하는 것이 즐
겁다고 하던가?"
위소보는 말했다.
"소황제께서는 노황야께서는 건재하시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저 오대산
으로 날개가 달렸으면 달려와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궁안에서 크
게 소리내어 울부짖는 등 한편으로 슬퍼하고 한편으로 기뻐했으며 어떻
게 하든 오대산으로 오려고 했습니다.  후에...... 후에 조정의 대사를 
그릇치게 될까봐 소신을 먼저 보내 노황야에게 문안을 드리도록 했습니
다. 소신이 돌아가 품하게 된다면 소황제는 친히 이곳으로 달려올 것입
니다."
행치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그는 올 필요가 없다.  그는...... 훌륭한 황제로군. 먼저 
조정의 대사를 생각하니 나와 같지는 않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음성은 이미 목이 메어 있었다. 어둠속이었지만 그
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앞섭자락에 떨어지는 소리를 드을 수 있었
다.
쌍아는 그가 부자지간의 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그만 가슴이 쓰라린
듯 덩달아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위소보는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
했다. 노황야가 이때 마음이 격동되었으니 설득하기가 쉬우리라고 판단
하고 입을 열었다.
"해대부는 모든 사실을 똑똑히  알아내었습니다. 황태후께서는 먼저 영
친왕을 해쳐 죽이고 또 단경황후를  해쳐 죽인 이후 단경황후의 누이인 
정비마저 해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소황제의 어머니를 해쳐 
죽였습니다. 해대부는 모든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황태후는 비밀이 누
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친히 해대부를 죽였으며 또  많은 사람들을 
보내 오대산 위로 올라와 노황야를 해치려 하고 있습니다."
영친왕, 단경황후, 정비 세 사람이  무공의 고수의 해침을 당해 죽었다
는 사실은 이미 해대부가 조사해 내서 행치에게 알린 것은 사실이었다. 
또 그로 인해서 해대부는 궁으로  돌아가 원흉을 조사하기에 이른 것이
었다. 그러나 행치는 아무리 말해도 황태후가 스스로 손을 썼다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후는 무공을 모른다네."
위소보는 말했다.
"그날 밤 황태후가 해대부에게 한  말을 노황야께서 들으신다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을 옮겼다. 그의 말솜씨가 
좋아 재빨리 지껄여댔지만 그 사연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행치는 원래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다만  동악비에 대한 정이 깊었던 
관계로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 황제도 하고 싶지 않아 기꺼이 만승지
위(萬乘之位)를 버리고 조그만 방안에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이었
다. 물론 수년 동안 참선을 했지만  동악비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 깊
이 심어져 있었다. 위소보가 들먹이게 되자 불법이고 어떤 도리고 삽시
간에 뇌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대부와 황태후가 주고받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듣게 되자 그
만 슬픔과 분노에  얽히게 되었고 가슴은 그만 치미는  울화에 꽉 막혀 
터질 것만 같았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황태후는...... 내친  김에 노황야를 해치고 또한  소황제를 해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단경황후의 무덤을 파려고 할 뿐만 아니고 천하에 알려 
단경황후록을 태워 없애려  합니다. 그리고 어록에 실린  말은 모두 다 
개방귀 같은 말이라고 했으며 그  어느 집안이고 한권이라도 숨기고 있
다면 가산을 몰수하고 목을 자르겠다고 했습니다."
이 몇 마디의 말은 그가 날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행치의 마음
속에 남은 상처를 건드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발끈해져서는 손을 
뻗쳐 무릎을 탁 치더니 호통을 쳤다.
"그 계집이, 나는...... 나는 이미  그녀를 피하려고 했는데 일시 사정
을 주었더니 결국 큰 화를 저지르는구나."
순치는 과거 한마음 한뜻으로 황후를 폐하고 동악비를 황후로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황태후가 극력 저지했기 때문에 이를 미루었던 
것이다. 동악비가 만약 죽지 않았다라면  황후의 자리는 조만간 동악비
가 차지할 판이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노황야께서는 세상일을  간파하시고 죽고 사는 문제에  별차별을 두시 
않읍니다만 소화아제는 죽을  수 없으며 단경황후의 무덤은  파헤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경황후의 어록도 불살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행치는 말했다.
"맞았네. 그대의 말이 무척 옳아."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반드시 나가  잠시 동안 피해야 합니다. 그래
야만 황태후의 독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황태후의 수단은 처음으
로 노황제를 죽이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소황제를 해치는 것이고 세 번
째로는 무덤을 파헤치고 어록을 태우는  일입니다. 그녀가 첫번재의 일
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두 번째 세  번째의 일을 감히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순치는 일곱 살에 등극했으며 스물 네  살 때 출가했다. 이때는 기꺼해
야 삼십여 세밖에 되지 않았다. 본래 그는 성질이 급한 편이었고 또 불
같은 노여움도 대단했다. 그러나 머리의 좋은 점에 있어서는 강희는 나
이가 어렸지만 부친보다 십배나 나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목왕부
의 사람들이 소삼계에게  화를 전가시키고자 하는 간계를  즉시 강희는 
간파했던 것이다. 그런데 위소보가 반은 진짜요 반은 가짜인 말들을 많
이 날조했지만 행치는 그 말을 그대로 곧이 들었다.
그러나 황태후가 행하고자 하는 삼단계의 일은 위소보가 날조한 것이지
만 시정의 무뢰배라고 할 수 있는 위소보의 생각은, 음흉하고 독랄함에
에 있어서 으뜸가는 황태후에 비해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행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자네가 있어서 간파했군.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일을 그릇칠 뻔 
했네. 사제, 우리는 빨리 나가도록 하세."
행전은 말했다.
"네."
그리고 그는 오른손으로  황금저를 들고 왼손으로 판자대기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런데 판자대기 문이 열리자 바로 문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엇다. 어둠
속에서 행전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어 호통쳐 물었다.
"게 누구요?"
그리고는 황금저를 들었다.
그 사람은 물었다.
"그대들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행전은 깜짝 놀라 황금저를 한옆에 놓고는 두 손으로 합장하며 불렀다.
"사부님!"
행치 역시 불렀다.
"사부님!"
원래 그 사람은 바로 옥림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하는 소리를 나는 모두 들었다네."
위소보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제기랄, 일이 또 꼬이게 되었구나.)
옥림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세상의 원한은 해소시켜야지. 줄곧 피하기만 하면 끝내 끝나지를 않는 
것이네. 원인이 있으면 바로 결과가 있는 법이다. 업은 몸에 따르게 된
다면 종신업보로 남게 되는 것이리라."
행치는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제자는 깨달았습니다."
옥림은 말했다.
"아마 그토록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니라. 그대의 옛날의  처가 그대를 
찾고자 한다면  그녀가 찾아오도록 하게나. 우리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구제사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그대를 미워하고 증
오하고 또 그대를 죽여야만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데 대해서 그대는 
오히려 스스로 반성해 볼 여지가 있네. 어쨌든 그녀로 하여금 미워하고 
증오하며 또 그대를 죽이고자 결심을 하게  된 원인이 있을 것일세. 그
대가 그녀를 피한다면 업보는 여전히 남게  될 것일세. 만약 사람을 보
내 그녀를 죽인다면 업보는 더욱더 길어지고 무거워질 뿐일세."
행치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이 땡초  같으니. 내가 당신을 욕하고  때리고 죽인데도 가만 
있겠다는 말이오? 그리고  내가 목을 자른다 해도  가만히 있겠단 말이
오?)
이때 옥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서장 라마가 그대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죄악을 짓고 있는 것
이지. 그들의 의도는 그대를 인질로  사로잡아 당금의 황제를 위협하여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백성을 학대하자는 것일세. 그러니 우리들로서는 
그들 마음대로 못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지. 이곳에서는 머
물 수 없을  터이니 그대들은 나를 따라 뒤의  조그만 절간으로 가도록 
하세."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황제는 황마괘를 내리긴  했지만 나는 아직 한번도  입어 본적이 없
다.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북경으로 되돌아갔을 때 소황
제는 그만 성이 나서 황마괘를 거두어  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따
라가 봐야지.)
그는 쌍아와 함께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옥림이 좌선하고 있던 조그만 
절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옥림은 그들 두  사람에 대해서 여전히 
못본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방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는 눈을 
감았다. 행치는 그 옆에 있는 방석 위에 앉았다. 행전은 사방을 두리번
거리더니 역시 행치의  아랫쪽에 앉았다. 옥림과 행치는  합장을 한 채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행전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더니 끝내 눈을 감
았다. 두 손은 무릎 위에 두고 있었는데  잠시 후 손을 뻗쳐 방석 옆에 
놓은 황금저를 만져 보았다.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것 같았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용용  죽겠지 하는 얼굴을 해보이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옆에 앉았다. 쌍아는 그의  옆에 앉았다. 위소보는 손오공이 아니
었지만 활발한 성격은 그야말로 원숭이와 같았다.
그로 하여금 방석 위에 앉아서 일시라도 꼼작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그
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노황야가 곁에 있는 
이상 그대로 그 절간에서 나설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리 
비비꼬고 저리 비비꼬고  하다가 쌍아의 손을 잡고는  그녀의 손바닥을 
간지렀다. 쌍아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왼손으로 
옥림과 행치를 가르켜 보였다.
이와 같이 반시진을 보내게 되었을  때 위소보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노황야께서는 화상의 흉내를 낸다만은 대변이나  소변을 참고 견딜 수
는 없을 것이다. 그가 뒷간에 가게 되었을 때 내가 교묘한 언변으로 속
여서 도망치도록 해야겠다.)
이와 같은 계책이 서자 그는 좀더 안정이 될 수 있었다.
사방이 쥐죽은 듯한데 갑자기 멀리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
렸다. 처음에는 똑똑히 들리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발걸음 소리가 더욱
더 가깝게 들려왔다. 한떼의 사람들이 청량사로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행전의 얼굴 근육이 몇번 부르르 떨렸다.  곧이어 그는 손을 뻗쳐 황금
저를 잡고는 눈을 떴다. 옥림과 행치가  여전히 앉은 채 꼼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주저하더니 황금저를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때 그 한떼의 사람들은 청량사  안으로 달려 들어간듯 시끄럽게 떠들
어 대는데 한참동안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그들은 절안에서 노황야를  찾지 못한다면 이곳으로 올  것이 아닌가. 
저 늙은 땡초가 어떻게 막을 것인지 두고 봐야겠구나.)
아니나다를까 약 반시진이 지나게 되자 한떼의 사람들은 뒷산으로 우르
르 몰려들었고 곧 절간 밖에 도달하는 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그 누가 부르짖었다.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해라."
행전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황금저를 들고서 선방의  문앞을 막아섰
다.
위소보는 창가로 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달빛 아래  시커먼 것이 모두 
사람의 머리였다. 고개를 돌려 다시  옥림과 행치를 바라보았다. 두 사
람은 여전히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쌍아는 살그머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죠?"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나중에 저 사람들이 달려 들어오면  우리들은 노황야를 구출해서 뒷문
으로 빠져나가자."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중도에 헤어지게 된다면 영경사에서 만나도록 하지."
쌍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는 노...... 노황야를 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끌고서 도망쳐야지 뭐."
별안간 밖에서 뭇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가 안으로 함부로 뛰어드느냐?"
"잡아라."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라."
"빌어먹을, 잡아라!"
사람의 그림자가 흔들하더니 문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행전
의 곁을 스칠  듯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더니 옥림에게  합장하고 허리를 
굽혀 보이더니 땅바닥에 단정히 앉았다.  놀랍게도 몸에 잿빛옷을 걸친 
화상이었다. 선방의 방문은 본래 좁았다. 행전의 체구가 우람하게 커서 
문을 막고 서자 그의 양옆으로는 별로  빈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두 명의 화상은 날렵하고도 교묘하게 뛰어든 것이다. 뛰어들 때에 행전
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실로 그들이 어떻게  방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밖에서 다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가 왔다."
"막아라!"
"잡아라!"
곧이어 퍽, 쿵 하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그 누가 날아가 땅바닥에 쓰
러지는 소리였다. 곧이어 선방 안으로 두  명의 화상이 들어 오더니 아
무 소리도 하지 않고 먼저 들어왔던 두 명의 화상 아랫쪽에 앉았다.
이와 같이 승려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위소보는 크게 흥미를 느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화상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몇 사람 
더 들어오면 선방에는 앉을 틈도 없게  된다고 느꼈다. 그러나 아홉 쌍
이 들어온 이후에는 다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홉 번째 한쌍 가운데 한 사람은  바로 청량사의 방장 징광이었다. 위
소보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기뻤다.
(이 십칠 명의  화상들의 무공이 만약 징광과  비슷하다면 적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밖에서 적들은 떠들고  있었지만 감히 문안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없었
다.
한참 후 한 늙수그레한 음성이 낭랑히 말했다.
"소림사에게 청량사를 대신해 나서서는 일을  가로막고 나서 겠다는 것
이오?"
선방의 뭇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바깥의 그 늙은이는 말을 
하였다.
"좋소. 오늘 소림사 십팔나한(十八羅漢)의  체면을 봐서 우리가 단념하
도록 하지. 우리 가세."
바깥에서 서로 부르고  또는 휘파람으로 전하는 소리가  이쪽 저쪽에서 
들려왔다. 뭇사람들은 모두 다 물러갔다.
위소보는 십 팔  명의 승려들을 살펴보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미 
육칠십 세나 되었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불과 삼십 세 정도였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도 있었고 준수하거나 추하게 생긴 사람도 있었다. 그
러나 승포 자락  안이 불룩하게 불거져 있는 것을  보면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이다. 그렇다면 징광 방장 역시 십팔나
한 가운데의 한 사람이로구나. 옥림 이 늙은 땡초가 믿고 있는 데가 있
는 듯한 태도였는데  원래 무서운 협조자들을 구해  어가를 보호하도록 
하고 있었구나. 이 화상들이 이곳에 앉아  입정을 하게 된다면 언제 끝
날지 모른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냥 이렇게 
앉아서 세월을 보내다가는 이 위소보가 그만 위노보(韋老寶)가 될 것이
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는 행치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화상, 소림사의 십팔나한께서 보호하고 계시니 대화상깨서는 태산처
럼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 돌아가겠습니다. 대어르신께서는 분
부하실 일이 없는지요?"
행치는 눈을 뜨더니 빙그레 웃었다.
"수고했네. 돌아가서 그대 주군에게 말씀을 드리게. 오대산으로 올라와 
나의 수양을 방해하지 말도록 하라고 말일세. 설사 온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만나보지 않겠다고 하게나. 그리고  그에게 천하를 태평하게 하
려면 세금을 더 이상 부가하지 말라고  전하게. 반드시 이 한마디를 기
억하도록 하게. 그가 이 한마디를 행하게  된다면 바로 나에게 잘 대하
는 것이고 나는 속으로 기뻐할 것이라네."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행치는 품속에서 조그만 보따리를 하나 꺼내더니 입을 열었다.
"이 한부의 경서는 그대가 그대의  주군에게 갖다 드리도록 하게. 그리
고 그에게 천하의 일은 순순히  받아들여야지 억지로 강요할 것 없다고 
말씀드리게. 주원의 창생들을 위해 복을 만들어 준다면 그것이야 더 말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네. 만약에 천하의  백성들이 떠나라면 우리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일세."
그리고 그는 그 조그만 보따리를 가볍게 한번 쳤다.
위소보는 도홍영의 말이 떠올라 생각했다.
(혹시 사십이장경이 아닐까?)
이때 행치가 그 조그만 보따리를 내밀었다. 위소보는 두 손을 뻗쳐서는 
받았다.
행치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가 보게."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그리고 엎드려서 절을 했다.
행치는 말했다.
"감당할 수 없네! 시주는 어서 일어나시게."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서는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어릴때의 짓
궂은 생각이 떠올라 옥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노화상, 그토록 오래 앉아 있으면 소변이 마렵지 않으시오?"
옥림은 마치 못들은 듯했다.
위소보는 씩 웃고는 문밖으로 한걸은 내딛었다.
행치는 말했다.
"자네는 주군에게 어머니가 아무리 잘못한  게 있더라도 어머니는 어머
니이니 예의를 저버리지 말 것이며  또한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전하게."
위소보는 몸을 돌리고는 대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한마디의 말은 내가 전해 주지 않겠다.)
행치는 생각해 보더니 다시 한마디를 했다.
"그대 주군에게 모든 점에 있어서 조심을 하라고 이르게."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위소보는 영경사로 돌아온 뒤 방문을  닫고서 보따리를 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권의 사십이장경이었다. 그런데 책  겉장이 누런 비단으로 만
들어져 있었다.
그는 행치가 하던 말과 도홍영이 하던 말을 생각해 볼 때 딱 맞아 들었
다고 생각했다. 행치는 만약 천하의 백성들이 자기네들을 가라고 할 때 
자기네들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만주인은 바로 관외에서 중원으로  들어왔으니 돌아간다면 당연히 관외
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치가 작은 보따리를 한
번 풀어 헤쳤던 것은 만주 사람들이  관외로 되돌아 가게 되었을 때 그 
작은 보따리에 의지하여 생활을 한다는 말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위소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노황야께서는 나에게 이 경서를 소현자에게  갖다 주라고 했는데 내가 
갖다 줘야 할까? 나에게는 이미 다섯  권의 경서가 있다. 여덟 권 가운
데 두 권이 모자라는 것이다. 만약  소현자에게 주면 소현자는 겨우 세 
권의 경서를 가지게 되니 역시 쓸모없는  일이 아닌가. 다행히 그는 소
현자가 오대산으로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 책
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는 증거는 없다.  손안에 들어온 좋은 물건을 내 
수중에 넣지 않는다는 것은 위씨의 조상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리라.)
그러나 황제가 자기를 매우 신임하고  있는데 그의 물건을 중간에서 갈
취한다는 것은 친구에게  부끄러운 노릇이고 또 친구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니 영웅호걸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경서는 자기가  봐도 알아볼 수 없으니 역시 절친
한 친구에게 건네 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 날 아침 위소보는 쌍아와 우팔  등 일행을 데리고는 산을 내려왔다. 
이번 오대산으로 와서 노황야를 만나  보았으니 강희가 분부한 일을 완
수한 셈이었다.  거기다가 도중에 쌍아같이 아리땁고  온순하며 무공이 
고강한 하녀를 얻게 되어 속으로 무척 기뻐하였다.
약 십여 리를 내려가게 되었을 때  산길 위로 맞은 편에서 한명의 두타
(頭타)가 올라왔다. 이 두타는 키가  무척 컸다. 화상인 행전과 비슷했
다.
그런데 기이할 정도로  비쩍 말라 있었다. 징광  방장만 하더라도 매우 
야윈 편이었는데 이 두타는 징광보다도 배나 야윈 편이었다. 얼굴은 그
야마롤 피골이 상접한 꼴이었고 두 눈은 움푹 꺼져 그야말로 해골과 같
다고 할 수 있었다.
이 두타를 네  사라 정도 보태야만 행전과 비슷한 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드리우고 있었고 머
리 위에는 구리테를 둘러서 기다란 머리카락이 앞으로 내여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몸에는 무명 장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헐렁해서 마치 옷자락을 옷
걸이에 걸어놓은 것 같았다.
위소보는 그의 그와 같은 몸을 보고  속으로 두려움을 느껴 감히 몇 번
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길을 비켜  그가 먼저 지나가도록 
했다.
그 두타는 그의 앞에 이르더니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대는 청량사에서 내려오는 길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아니외다. 우리들은 영경사에서 내려오는 길이외다."
두타는 왼손을 뻗쳐 그의 어깨를 잡고  그의 몸을 반쯤 돌려 그와 마주 
쳐다보도록 한 후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황궁 안의 태감 소계자지?"
그리고 기다란 손으로 어깨를 눌렀다. 위소보는 대뜸 전신의 맥이 빠지
면서 꼼짝할 수 업께 된것을 느끼고 재빨리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대가 볼 때 내가  태감 같소? 나는 양주의 위공자
이외다."
쌍아는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손을 놔요. 어째서 감히 우리 공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세요?"
"그대의 음성을 들으니 역시 소태감이군."
쌍아는 오른쪽 어깨를 슬쩍 내려 뜨려 그 손길을 피하면서 식지를 질러 
내어서는 질풍과 같이 그의 천할혈을 짚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
확히 적중되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닿는 곳에  마치 철판이 있는 것 같
이 손가락이 기이하도록 아팠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손가락이 분질러
질 뻔 했다. 그만 아, 하는  소리를 내지르게 되었는데 그때 어깨가 아
파왔다. 어느덧 두타의 솥뚜껑 같은 큰 손에 잡히게 된 것이었다.
그 두타는 헤헤헤 하고 세 번 웃으며 말했다.
"그대 소태감의 무공이 매우 뛰어나시군. 놀랍군. 정말 놀라워."
쌍아는 왼발을 들어 퍽 하니 그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치 커다란 바위를 걷어 찬 것 같았다.
그녀는 오히려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어이쿠!"
그리고 눈물을 마구 흘렸다.
두타는 말했다.
"소태감의 무공이 뛰어나군. 정말 대단해."
쌍아는 부르짖었다. 
"나는 소태감이 아니에요. 당신이야말로 소태감이에요. 아이구."
그 두타는 웃었다.
"그대가 보기에 내가 태감과 닮았는가?"
쌍아는 부르짖었다.
"빨리 손을 놔요. 손을 놓지 않는다면 욕을 하겠어요."
두타는 말했다.
"그대가 나의 혈도를 짚고 나의 허벅지를 차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데 
욕을 한다고 두려워할까? 그대의 무공이 이토록 뛰어난 것을 보면 아마 
황궁에서 내보내신 것이겠지? 몸을 수색해 봐야겠다."
위소보는 그 말에 끼어들었다.
"그대의 무공이 더욱 고강하니 그렇다면  그대 역시 황궁에서 내보내신 
사람이군."
그 두타는 못마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 이 소태감은 말이 많다."
그리고 왼손으로 위소보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쌍아를 든 채 산위로 나
는 듯 달려갔다. 두 사람은 고함을  질러 댔으나 그 두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마치 지푸라기를 든  것처럼 발걸음을 신속하기 이를데 없이 
옮겨 놓았다. 우팔 등은 그와 같은  광경에 그만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
이 딱 벌어져서는 감히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두타는 산길을 따라 수장 정도  올라가더니 갑자기 산비탈의 길도 없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야말로  산을 오르는 것이 마치  평지를 걷는 것과 
같았다.
위소보는 그저 자기의 귓가에 휙휙 하는 바람소리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두타가 이토록 무서운 힘을 내고  있으니 혹시 산신이나 요괴가 아
닐까?)
한참 동안 달려가더니 그 두타는  두 사람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윗쪽을 
손가락질했다.
"만약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들을 저 산봉우리 위로 들고 
가서는 아래로 내던지겠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지극히 높은  산봉우리였고 봉우리 끝은 구름에 가
려져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내 솔직히 털어놓겠소."
그 두타는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분수를 아는 셈이지. 너는 도대레 무슨 사람인가? 그리
고 이 녀석은 어떤 사람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대사부,  그녀는  녀석이......   아니외다.  그녀는  나의......  나
의......"
"그대와 어떻게 되는 사람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의...... 마누라외다."
이 마누라라는 말이 떨어지자 두타와 쌍아는 깜짝 놀랐다. 쌍아는 얼굴
이 빨개지고 말았다. 두타는 의아하다는듯 물었다.
"뭐라구? 무슨 마누라란 말이야?"
위소보는 말했다.
"솔직히 대사부에게 말씀드리지만  나는 북경성의 부잣집 공자이외다.. 
그런데 옆집의 이  소저에게 정을 두게 되었소.  이윽고..... 우리들은 
화원에서 사사로이  한평생을 약속하게 되었소. 그러나  그녀의 부친은 
응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데리고 도망쳐  나온 것이외다. 
자, 보시오. 그녀는 소저이오. 어찌하여 소태감이란 말이오? 정말 억울
하외다. 그대가 믿을 수 없다면 그녀의 모자를 벗겨 보도록 하시오."
그 두타는 쌍아의 모자를 벗겼다.  그러자 아름다운 구름같은 머리카락
이 드러났다. 이때 천하에는 승려,  도사, 두타, 여승등 출가인을 제외
하고는 남자라면 모두 다 앞머리를 반쪽 깍아야했다.
쌍아는 기다란 머리카락이 떨어지게 되고 곧장 어깨까지 뒤덮히는 것을 
보면 여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위소보는 입을 열어 청했다.
"대사부, 부탁이외다. 그대가 만약 우리들을  관부에 건네어 주게 된다
면 우리들은 목숨이 없어질 판이외다. 내 그대에게 일천냥을 드릴 터이
니 우리를 놓아 주십시오."
그 두타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말 태감이 아니로군. 태감이 남의 처녀를 유괴해서 
도망칠 턱이 없지. 흥, 어린 나이에 꽤 당돌하구나."
그러면서 그는 그를 놓아 주고는 다시 물었다.
"그대들은 오대산으로 무엇하러 왔지?"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들은 오대산으로  불공을 드리러 왔읍니다.  보살님에게 보살피어 
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공자가  장원급제라도  하게 되면  장래  그
녀...... 나의  이 마누라는 그렇게  되었을 때 일품부인이  되지 않겠
소?"
화원에서 사사로이 한평생을 약속하느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공
자가 장원급제 하느니 하는 말은  모두 다 그가 양주에서 이야기꾼으로
부터 들은 말들이었다.
그 두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그대들은 가 보시게."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대사, 고맙소이다. 우리는 이후 부처님에게 절을 할 때 대사까지도 보
호해 달라고 빌겠읍니다...... 그리고  대사께서도 보살이 되어서는 문
수보살과 관음보살과 함께 자리를 하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겠소이
다."
그리고 그는 쌍아의 손을 잡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몇 걸음 내려가기도 전에 두타는 말했다.
"아니야. 잘못됐어. 돌아와 소저의  무공이 뛰어나더군. 나에게 일지를 
찍었고 또 나에게 발길질을 가했지."
그리고 그는 허리께의 천할혈을 더듬어 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그대의 무공은 누가 가르친 것이지?  수법의 내력은 어떻게 되는 것이
지?"
쌍아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그저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녀의 무공은 가전무공이외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르친 것이외다."
그 두타는 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건, 히히, 말하기가 약간 거북합니다."
두타는 말했다.
"뭐가 거북하다는 것이야? 빨리 말해!"
쌍아는 말했다.
"저의 성은 장(莊)씨에요."
그 두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이 장씨라구? 틀렸다. 거짓말을 하는군.  천하 장씨 성을 가진 사람 
가운데 이토록 뛰어난 무공을 지닌  고수가 있어서 딸에게 무공을 가르
칠 만한 사람은 없다구."
위소보는 말했다.
"천하에서 무공이 뛰어난  사람은 지극히 많은데 그대가  어찌 모두 다 
알겠소?"
두타는 노해 말했다.ㄹ
"나는 이 소저에게 묻고 있으니 그대는 방해하지 마시지."
그러면서 그는 가볍게 그의 어깨를 밀었다.
그는 매우 가볍게 밀었다. 혹시 어린애가 자기의 힘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손이 위소보의 어깻죽지에 닿게 되
었을 때 위소보는  그 힘으로 어깨를 슬쩍 떨구면서  뒤로 떨치는 것이 
아닌가. 그와 같은 몸놀림에 공력이  실려있지믄 않았지만 사용하는 초
식은 바로 풍행초언(風行草言)이라는  일초였다. 그리고 어깨를 움직이
면서 몸을 돌렸으며 왼손을 쳐들어 안면을 보호했고 오른손으로는 찌르
는 자세를 취하는데 놀랍게도 어느 정도 무공을 아는 솜씨가 아닌가.
그 두타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가슴팍을 움켜잡
았다. 위소보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역시 영사출동(靈蛇出洞)이라는 일
초로서 역시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위소보의 
오른손은 두타의 목 아래로 내려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마
치 철판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어이쿠 하는 큰소리를 내지르
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쌍아는  두 손을 춤추듯 휘두르며  두타에게 공격을 했다. 
두타는 손바닥으로 내쏟아 위소보의 가슴팍의 혈도를 봉쇄하고 몸을 돌
려서는 쌍아를 맞았다. 쌍아는 몸으  높이 날렸다가는 웅크리곤 하면서 
날렵한 신법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두타는 칠팔 초 이후 두손으로 어느덧 그녀의 두 팔을 움켜잡을 
수가 있었다. 그는 왼쪽 팔굽으로 그녀의 혈도를 봉쇄하고 몸을 돌려서 
위소보에게 물었다.
"그대는 부잣집 공자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여 요동 신룡도의 금라수법
을 알고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부잣집 공자라고 해서 어찌하여 요동 신룡도의 무공을 펼치지 못
한단는 말이오? 설마하니 가난한 집안의 녀석만 쓸 수 있다는 말이오?"
그는 입으로 얼렁뚱땅하면서 시간을 끌려고  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번개같이 생각을 굴렸다.
(요동 신룡도의 무공이라면 어떤 재간일까?  그렇군. 해 폐병쟁이는 늙
은 갈보가 무당파의  사람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기실에  있었서는 요동 
사도(蛇島)의 무공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그 신룡도라는 것은 십중팔
구 사도일 것이다. 그렇다. 늙은  갈보는 신룡교의 사람과 결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뱀인 뜻의 사자가 듣기 거북하니까 스스로 신룡이
라 일컫고 있는 것이다. 소현자의 무공은  바로 늙은 갈보가 가르친 것
인데 내가 소현자와 수시로 대결을 함으로써 부지불식 간에 이 몇 수의 
금라수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 두타는 물었다.
"터무니 없는 소리. 그대의 사부는 누구이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이 무공을 늙은 갈보가 가르쳤다고 한다면 내가 궁안의 소태감이
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말했다.
"우리 아저씨와 사이가 좋은, 한 뚱보  소저라고 할 수 있는 유연 아주
머님이 가르친 것이외다."
그 두타는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유연? 유소저가 너의 아저씨와 좋아하는  사이라구? 너희 아저씨는 누
구냐?"
"우리 숙부님은 위대보(韋大寶)라고 하지요.  북경성 안에서 유명한 풍
류공자입니다. 은자를 한번 썼다 하면  일천 냥이죠. 그리고 얼굴 모습
은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 뺨치게  잘났답나다. 그 뚱보 소저는 그
만 우리 숙부님에게 반해 버리고 말았지요.  뚱보 소저는 종종 삼경 야
밤에 우리 집으로 온답니다. 그것도  화원의 담장을 뛰어남어 들어왔다
가 뛰어넘어 돌아가곤 하지요. 나는  그녀에게 매달려서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그녀는 저에게 몇 수 가르쳐 주더군요."
그 두타는 반신반의 하며 물었다.
"그대의 숙부님은 무공을 모르시는가?"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그가 무슨 무공을 알겠소. 그는  종종 유연 소저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는 이리저리 옮겨지곤 하지요. 꼼짝을 못한답니다. 나의 숙부님은 다급
해져서 욕을 하지요. '아들이 애비를 드는군.' 그러면 유연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말했죠. '아들이 애비를 들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든다고 해도 
상관이 없어요.'"
사실 이 몇 마디의 말은 빙 둘러서 두타를 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두타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유연의  생긴 모습을 다그쳐 물었다. 
위소보는 틀림없이 이야기를 하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뚱보 아줌마는 붉은 바탕에  수를 놓은 신발을 신기를 좋아하지요. 
대사부, 저의 짐작이지만 아마 대사부께서는 그녀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요? 언제 그대가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그녀와 함게 잠을 자도록 해보
세요. 잠을 자게 된다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거예요."
그 두타는 유연이 이미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만큼 이 말
은 비꼬는 말같이 들리지만 기실에 있어서는 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말
로 저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사저을 모르는 두타는 노해 부르짖었
다.
"어린 사람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러나 그가 하는 말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믿게 된 모양이었다. 손을 뻗
쳐서는 그의 아랫배를 가볍게 후려쳐서는  혈도를 풀려고 했다. 그런데 
후ㅠ려친다는 것이 그의 품속에 있는 그 사십이장경을 후려쳤다. 탁 하
는 소리가 나면서 혈도는 풀어지지 않았다.
두타는 물었다.
"그게 무슨 물건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 훔쳐 나온 은표이외다."
그 두타는 말했다.
"무슨 흰소리야? 은표가 어찌 그토록 많을 수가 있어?"
그는 손을 위소보의 품속으로 넣고 더듬었다. 그리고는 그 보따리를 꺼
내었다. 풀어 보자 놀랍게도 한권의 경서가 아닌가. 그는 어리둥절해졌
으나 대뜸 온 얼굴 가득히 기쁜 빛을 띠우고 부르짖었다.
"사십이장격이다. 사십이장경이다."
그는 급히 싸서는 자기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위소보의 가슴팍
을 움켜잡고는 높이 쳐들며 날카롭게 호통쳤다.
"어디서 생긴거지?"
이 한마디의 묻는 말에 좀처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웃었다.
"헤헤헤, 그것 말인가요? 말을 하자면 일시지간에 다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답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늦추어 빈틈없는 거짓말을 꾸며대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래야만 두타가 믿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서가 어디서 나왔다고 하는 것은  아무렇게나 꾸며댈 수 있었느며 그
것은 또한 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경서가 이미 그의 손에 들
어갔는데 어떻게 속여서 되찾는가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그 두타는 큰소리로 물었다.
"누가 그대에게 준 것이지?"
위소보의 몸은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린 꼴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의 망막에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산비탈  위에 칠팔 명의 잿빛옷을 입
은 승려들이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건데 바로 청량사  뒷절간에서 보았던 소림 십팔나한 가운
데 할 사람인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시 몇 명을 볼 수가 있었
다. 서쪽 산비탈 위로 올라오는 몇 명과 합치게 된다면 모두가 십 칠팔 
명이나 되었다.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뻐서 생각하였다.
(이 도적 같은 두타야. 너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하더라도 소림 십
팔나한은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 두타는 다시 다그쳤다.
"빨리 말해. 빨리 말해!"
그러다가 위소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그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던졌다.
산비탈길 동쪽, 북쪽, 서쪽 삼면에서  천천히 십여 며의 화상들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듯 물었다.
"저 화상들은 무엇하러 오는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은 대사부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말을  듣고 매우 탄복해서 그대를 
사부로 모시고자 찾아오는 것일게요."
그 두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큰소리로 호통을 내질렀다.
"이것 보시오. 그대들은 빨리 돌아들 가시오. 내 앞에 나타나서 쓸데없
는 잔소리를 하지 말란 말이오."
이 호통소리에 사방의 산들이 메아리쳤다. 그 위세는 실로 놀라울 지경
이었다.
십 팔 명의 승려들은 그 말을 못들은 척 일제히 산비탈 위로 올라왔다. 
기다란 수염을 한 노승이 합장하며 입을 열었다.
"대사는 요동의 반존자(반尊者)이시오?"
허공에 매달려 있던 위소보는 그와 같은 말을 듣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9.사로잡힌 위소보

이 두타는 비쩍 말라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 모습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였다. 그런데 그  노화상은 그 비쩍 마른  사람에게 뚱보라는 뜻의 
반존자라고묻는 것이다. 십중팔구 그를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헌데 그 두타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바로 반두타이외다. 당신네들은 나를 사부로 모시고자 하는 것이
오? 나는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소.  그대들은 그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
소?"
노승은 말했다.
"노납은 소림사의 징심(澄心)으로서 달마원을 관장하고 있지요. 이곳의 
열 일곱 사제들은 모두 소림사의  달마원의 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랍
니다."
반두타는 아! 하더니 천천히 위소보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나를 사부로 모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구려. 나 혼자로서는 그야말로 
그대들과 싸워 이길 수가 없죠."
징심은 합장했다.
"서로 아무런 원한이  없고 모두 다 부처님의  제자인데 어찌 싸운다는 
말씀을 하시오? 나한은 불문 중의 성인을 가리키는 것이외다. 우리들은 
범속한 사람에 불과한데 어찌 그와 같은 칭호를 감당할 수 있겠소이까? 
무림의 친구들은 아무렇게나 그와  같은 존칭으로 우리들을 불러왔지만 
우리들은 평소부터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 왔소이다.  요동의 반수(반
瘦) 이존자(二尊者)는 무적의 신공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들
은 평소부터 앙모해 왔던 터이외다. 오늘은 이렇게 인사를 나눌 인연이 
있게 된 것은 실로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로소이다."
거기까지 말하게 되었을 때 나머지  십칠 명의 승려들도 일제히 합장하
고 절을했다.
반두타는 허리룰 굽혀 반례하고 몸을 똑바로 세우기도 전에 물었다.
"그대들이 오대산으로 온 것은 무슨 일이죠?"
징심은 위소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분 소시주는 우리  소림사와 퍽 관계가 깊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대사께서는 용서하시고 그를 산 아래로 내려가도록 놓아주십시오."
반두타는 잠시 망설였다. 상대방의 수가 많고 또한 소림 십팔나한은 하
나같이 무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일대 일로 싸울 때는 조금도 개의치  않겠지만 십 팔 명이 덤비게 된다
면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좋소이다. 대사의 얼굴을 봐서 그를 놔 드리지요."
그리고 그는 몸을 굽혀서는 위소보의  배를 몇번 어루만져 혈도를 풀어 
주었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경서는 십팔나한의 친구가 나에게  맡겨서 소...... 소림사의 주지 
방장에게 갖다 드리도록 한 것이니 그대는 되돌려 주도록 하시오.
반두타는 노해 부르짖었다.
"뭐라구? 그 경서와 소림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나의 경서를 빼앗아 갔소.  그것은 노화상이 나에게 전해 달라
는 것으로서 전하지 않으면 큰일나오. 그러니 빨리 되돌려 주시오."
반두타는 노해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리고 몸을 돌려서는 북쪽 산비탈 아랫쪽으로 달려갔다. 세 명의 소림
승려가 몸을 날려서는  손을 뻗쳐 그의 팔을  잡으려 들었다. 반두타는 
감히 뭇승려들과 싸울 생각을 못했다. 몸을  기울여 세 승려의 손을 피
해 버렸다.
그의 키는 매우 컸지만 행동은 날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림사의 세 
승려가 그와 같이 잡는 수법은 소림  무공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의 옷자락도 손에  닿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러나  반두타가 그와 같이 
순간적으로 달려가는 기세를 늦추게 되자  어느덧 네 명의 소림 승려가 
그의 등뒤로 막아서게 되었고 여덟  개의 손이 교차되면서 그의 앞길을 
가로막게 되었다.
반두타는 진기를 끌어올리고 일성을 대갈하였다.  그리고 두 손으로 오
정개산(五丁開山)이라는 일초를 펼쳐 밀어내었다.
그리고 그 위명하기 짝이 없는 기세를 빌어서는 몸을 돌려 남쪽으로 질
풍과 같이 내달았다.  네 명의 소림승려는 동시에  손을 뻗쳐 내어서는 
그의 좌우 양쪽을 나누어 공격했다. 반두타는 쌍장의 장력으로 네 승려
가 뻗쳐오는 장력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그런데 왼쪽에서 부딪쳐 오는 
장력은 매우 굳건한 편인데 오른쪽  두 승려의 장력에는 은연중 면면히 
부드러운 기운이 뻗쳐 있었다.
그는 크게 놀라서 두 손에  힘을 돋ㄴ구고 상대방의 장력을 해소시키게 
되었다. 바로 이때 등뒤에서 다시 세 개의 손이 그를 움켜 잡으려 들었
다.
이때 반두타가 흘낏 보니 왼쪽에도 다시 두 승려가 주먹을 휘두르며 공
격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그 즉시 그는  두 발로 땅을 박차며 위로 몸
을 솟구쳤다.
등뒤의 세 승려가 뻗쳐온 손은 제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러니까 용조(龍爪),  호조(虎爪),응조(鷹爪) 세 가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그만 겁이 더럭 나는 것을 느끼고 커다란 소맷자락을 급히 휘둘렀
다. 그리고는 한가닥 선풍을 몰아 일으키면서 왼발이 땅에 떨어져 닿는 
순간 오른손으로 위소보를 잡아 위로 들어올리며 부릊짖었다.
"이 녀석을 죽일 작정이오, 아니면 살릴 작정이오?"
십팡 소림승은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섬에 있어서 두 개의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겹으로 나누어서 그를 에워싸고 있는 형편
이었다. 이때 그의 말을 듣고 징심이 입을 열었다.
"소시주의 그 경서는 관계가 크외다. 대사께서는 착한 인연을 맺는다는 
생각으로 되돌려 주신다면 우리들은 고맙게 생각하겠소이다."
반두타는 오른손으로 위소보를 높이  쳐들고 왼손은 위소보의 정수리에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남쪽으로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이 의도는 분명했다. 만약 소림승이 손을 써서 저지한다면 그는 왼손에
다 힘을 줄 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위소보는 즉시 두개골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남쪽을 막고 섰던 몇 명의 소림  승려들은 이와 같은 광경에 잠시 망설
이다가 함께 아미타불  하고 부르짖으며 한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
다.
반두타는 위소보를 들고 남쪽을 향해 질풍과 같이 내달았다. 가면 갈수
록 빨리 달렸다. 소림사의 십팔나한들은  경신법을 전개해서는 뒤를 바
짝 쫓아갔다.
이때 쌍아는 짚혔던 혈도가 이미  소림승에 의해서 풀어져 있는 상태였
다. 위소보가 사로잡혀  가자 그만 당황하고 놀라게  된 그녀는 진기를 
돋구고 급히 뒤쫓았다. 그녀의 권각법은  고인의 전수를 받았기 때문에 
퍽이나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이가 어린 탓으로 내공 수위는 
십팔 소림승과 비교할때 훨씬 떨어지는  편이었다. 거기다가 키가 작기 
때문에 걸음폭이 좁아 일이마장을 달려가게  되었을 때 그만 훨씬 뒤로 
쳐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만  다급해지자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으로는 
울면서 급히 뛰었다. 그런데 반두타는  손에 사람을 들었는데도 조금도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소림사 승려들이 그를 뒤쫓아 잡지를 못하는 것
이다.
잠시 달려가게 되었을 때 반두타는 위소보를 든 채 정남쪽에 있는 높은 
봉우리를 향해 질풍과 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십팔 소림승들은 한줄
로 늘어서서는 뒤에서 바짝 쫓았다. 쌍아는 산봉우리 밑에 이르게 되었
을 때 이미 가뿐 숨을 몰아쉬게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산봉우
리가 무척 높은 것을 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고약한 두타가 상공을 잡아서 산봉우리 위로 올라갔다가 만약 실족
하여 떨어지게 된다면 고약한 두타는 죽지 않을 수 있겠지만 상공이 어
찌 목숨을 건질 수 있겠는가?)
정히 당황하고 초조해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우르릉거
리는 소리가 있었다. 한조각 커다란 바위가 산길로 굴러내려왔다. 십팔 
소림 승려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피했다.  반두타는 산봉우리 위로 
오르면서 끊임없이 발로 길옆에 있는  바위를 차서는 굴려 적을 저지하
려고 했던 것이다.
십팔 소림 승려들이 어찌 그와  같은 바위에 얻어 맞을까만은 반두타와 
간격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징광 방장은 황보각과 싸우게 되었을 때 
가슴팍에 상처를 입은 몸이었고 내력에 손상을 입었으므로 뒤로 처지게 
되었다.
쌍아는 진기를 돋구고 산봉우리 위로 올라가면서 부르짖었다.
"방장대사, 방장대사!"
징광은 고개를 돌려보더니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달
려오기는 했으나 그저 가뿐 숨만  몰아쉬고 얼굴에 놀람과 당황한 빛을 
띠우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위로하였다.
"두려워 하지 마시오. 그는 그대의 공자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오."
그리고 그녀가 급히 달리느라고 상처를  입을까봐 그녀의 손을 잡고 천
천히 산위로 올라갔다.
쌍아는 약간 마음이 놓여서 물었다.
"방장, 저...... 저 사람은 상공을 해치지 않을까요?"
징광은 말했다.
"해치지 않을 것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반두타의 그토록 흉악한 행위를 볼  때 단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산봉우리는 남태봉이었다. 산길을 구불구불해서  몇 번 구비를 돌게 
되었다. 반두타가 발길로 차던 돌멩이와 바위들은 이미 사람을 해칠 수 
없게 되었다. 쌍아가 징광대사를 따라 남태봉 위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십 칠 명의 소림 승려들은 한채의  절간을 겹겹히 에워싸고 있었다. 이
로 미루어 볼 때 반두타와 위소보는 절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대산엔 모두 다섯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봉우리마다에
는 각기 한개의 절간이 있었다.  오대산은 불교에서 문수보살이 설법하
던 장소라 일컬어지고 있었다. 봉우리 위에는 각기 한채의 절간이 지어
져 있었는데 모시고 있는 것은 문수보살이었다. 그러나 그 칭호는 각기 
달랐다. 문수보살의 신통력이 광대하여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모
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태망해봉(東台望海峯)에는  망해사(望海寺)가 세워져  있고 총명문수
(聰明文殊)를 모시고 있었다. 북태업두봉(北台業斗峯)에는 영응사(靈應
寺)가 세워져 있었고 무구문수(無久文殊)를 모시고 있었다.
중태취암봉(中台翠巖峯)에는 연교사(演敎寺)가 세워져 있었는데 유동문
수(儒童文殊)를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서태괘월봉(西台掛月峯)에는 법
뢰사(法雷寺)가 세워져 있었는데  사자문수(獅子文殊)가 모셔지고 있었
다. 그리고 남태금수봉(南台錦秀峯)에는 보제사(普濟寺)가 세워져 있었
고 지혜문수(智慧文殊)가 모셔지고  있었다. 뭇사람들이 오른 산봉이었
고 그 절간은 바로 보제사였다.
쌍아는 몇 번 불렀다.
그러나 대답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쌍아는 곧장 대전이 있는 쪽에서  달려갔다. 그리고보니 반두타는 대웅
보전의 처마 밑에  서 있었다. 오른 손으론  여전히 위소보를 움켜잡고 
있었다. 쌍아는 달려들며 부르짖었다.
"상공, 고약한 화상이 해치지는 않았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오. 그는 감히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오."
반두타는 노해 부르짖었다.
"내가 어째서 너를 해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만약 나의 덜끝 하나라도 다치게 된다면 소림 십팔나한은 그대
를 사로잡아서는 원상태로 되돌려 다시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으로 만
들어 놓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야단이 아니겠소."
반두타는 안색이 대변해서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원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구? 그대...... 그대......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지?"
기실 위소보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그의 키가 크고 비쩍 
말랐는데 이름은 반두타인지라 아무렇게나  말한 것이 그만 맞아떨어지
게 되고 그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위소보는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어조에는  놀람과 두려운 빛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즉시 냉소했다.
"흐흐흐, 물론 나는 알고 있지."
반두타는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림사의 승려들은 그와 같은 재간이 없을걸."
별안간 반두타는 오른발을 내밀어 퍽  하는 커다란 음향과 함께 봉당에 
세워놓은 돌북을 걷어 찼다. 돌북이 벽에 가서 부딪히면서 돌가루가 마
구 날렸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쌍아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왔소? 살기가 귀찮아졌어?"
쌍아는 말했다.
"나는 상공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했어요. 그대가 만약에 그를 조금이
라도 다치게 한다면 나는 그대와 사생결단을 내겠어요."
반두타는 노해 말했다.
"제기랄, 이 녀석이 뭐가 좋다고 그래?  그대는 이 녀석에게 정과 의리
를 함께 느끼는 모양이군."
쌍아는 얼굴을 붉히며 그 말에 직접 대답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했다.
"상공은 좋은 사람이고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이때 바깥의 십팔 명 소림 승려들은 일제히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반존자, 아무쪼록 그 소시주를 풀어 주고 경서를 
되돌려 주시오. 그렇게 하면 무림에 명성이 혁혁한 영웅호걸이 될 것이
오. 어린 사람을 괴롭혔다가는 천하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반두타는 노해 외쳤다.
"그대들이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면 나는 사정없이 손을 쓰겠소. 막
무가내로 내가 이 사람을 죽이고  경서를 없애 버린다면 그대들은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말이외다."
징심은 물었다.
"반존자, 그대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풀어 주고 경서를 되돌려 주겠
소이까?"
반두타는 말했다.
"사람을 놓아 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경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되돌려 줄 
수가 없소."
절밖의 뭇승려들은 그만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반두타는 대전 안의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궁리
를 했다 별안간 잿빛 그림자가 번쩍이는  가운데 십 팔 명의 소림사 승
려들이 왼쪽 벽을 타고 그의 등뒤로 돌아갔다. 다른 다섯 명의 소림 승
려들은 오른편의 벽을 타고는 역시 그의 등뒤로 돌아갔다. 삽시간에 다
시 포위의 형세를 하게 되었다. 
반두타는 노해 말했다.
"사내라면 일대 일로 싸웁시다. 하나  하나 나서서 나의 수단을 시험해 
봐도 좋고 그대들이  차륜전법으로 싸워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겠소이
다."
징광은 합장했다.
"노납 등이 무례한 것을  용서하시오. 우리들은 일제히 덤벼들어야겠소
이다."
반두타는 왼발을 들더니 가볍게 위소보의  머리 위에 얹고는 냉소를 흘
렸다.
위소보는 그의 신발 밑의 퀘퀘한 냄새를 맡자 놀람과 동시에 분노를 느
꼈다. 그와 같이 냄새 나는 발을 자기의 머리 위에 올려놓자 머리도 제
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는 
자주 눈알을 희번득거렸다.
대전에서 주의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다면 그 물건을 상대로 터무니없
는 말을 지껄여서 반두타의 시선을  끌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반두타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팔게 된다면 소림승은 자기를 구할 기회가 있으리라
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가  발 아래에 놓이게 되자 바깥  쪽의 한쪽만 ㅂ이게 
되었다. 그런데 마당에는 커다란 돌로 깍은 거북이가 있었고 그 등에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반존자, 그대의 아버지가 언제나  땅에서 기어다니는가 하면 등으로는 
수만 근이나 되는 커다란 바위를  짊어지고 있으니 그건 너무나 고생스
럽지 않겠소. 그대가  그를 구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불효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외다."
반두타는 노해 부르짖었다.
"우리 아버지가 따위를 기어다니다니 무슨 소리냐? 터무니 없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군."
위소보는 말했다.
"그 사십이장경은 모두 여덟권이나 있소.  그대는 한권을 가졌을 뿐 나
머지 일곱 권을 얻지 못하고 있소.  단지 한권의 경서를 얻어서 어디에 
쓰겠느냔 말이오?"
반두타는 급히 물었다.
"다른 일곱권은 어디에 있지? 그대는 알고 있는가?"
"나는 물론 알고 있소."
"어디에 있지? 빨리 말해.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발로 너의 대가리
를 박살내겠다."
"나는 본래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사 알게 되었소."
반두타는 의아하여 말했다.
"방금 알게 되었다구? 그게 무슨 뜻이냐?"
위소보는 목을 길게 빼고 거북의 잔등 위에 세워져 있는 비석을 바라보
았다. 그 비석에는 꾸불꾸불한 전자체의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위소보
는 물론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비석위 글을 잘 아는 척 하고 천
천히 읽어 내려갔다. 
"사십이장경은 모두 여덟 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첫번째 책은 하남성 
어떤 산 어떤 절에 있도다. 그런데 저 몇 자는 내가 잘 모르겠소."
반두타는 물었다.
"무슨 글자?"
그리고 그는 시선을 옮겨 마당에  세워져 있는 비석을 바라보며 의아하
다는듯 물었다.
"저 비석에 새겨져 있단 말인가?"
위소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비석의 글을 읽는 척 했다. 
"제이권은 산서성 무슨 산 무슨 여승암자  안에 있군. 반노형, 저 몇자
의 글은 내가 알아볼 수 없소이다.  거기다가 글자가 새겨진 것이 모호
하구려. 그대는 문무를 겸비한 분이  아니시오? 스스로 가 보도록 하시
구려."
반두타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몸을 굽혀서는 위소보를 잡아들
더니 대전 입구 쪽으로 걸어가서는 자세히 비석에 새겨진 글을 보았다. 
비석 위에 새겨진 전자체의 글은 글씨라고 하지만 그 자신으로선 한 자
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글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글자가 아닌데 어떻게 비석에 
새겨져 있겠는가 말이다. 이때 위소보는 계속해서 읽었다.
"제삼권은 사천 무슨 산에 있군. 그 다음 글자도 나는 잘 모르겠군."
반두타는 이미 남에게  사십이장경에는 모두 여덟 권이  있으며 반드시 
여덟 권을 갖추어야만이 크게 소용이 닿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때 위소보가 
하는 말을 듣고 이제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위소보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제 사권은 어디에 숨겨져 있지?"
위소보는 실눈을  하고는 비석을 바라보았다. 먼저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하였다.
"나는 똑똑히 보이지 않소."
반두타는 그의 몸을 들고서 비석 쪽으로  세 걸음 다가섰다. 이렇게 되
자 간격은 좀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온 얼굴에 웃는 빛을 띠웠
다. 위소보는 말했다.
"내 머리가 근질근질해 죽겠소."
반두타는 물었다.
"뭐라구?"
위소보는 말했다.
"이 절간에는 벼룩이 있는 모양이오.  내 머리카락 안에서 마구 물어뜯
는군. 반노형, 그대가 나를 위해 좀 잡아 주시오. 머리가 근질근질해서 
제대로 사물을 볼 수가 없구려."
반두타는 그의 모자를 벗기고 솥뚜껑  같은 손을 뻗쳐서는 다섯개의 방
망이 같은 커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 안을 긁적긁적 몇번 긁어 
주고는 물었다.
"좀 나아졌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어이구, 벼룩이 내 목있는 쪽으로 뛰었군. 그대는 보이시오?"
반두타는 그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의 손목
을 놓고 그저 왼손을 가볍게 그의  어때 위에 얹어 그가 도망치는 것을 
방비한 후 말했다.
"그대 스스로 긁도록 하게."
위소보는 말했다.
"어이구, 제기랄, 이 벼룩은 정말 대단하군. 아마도 삼년 동안 사람 피
를 빨아 마시지 못한 모양이야.  본래 난장이에다가 뚱보였는데 이제는 
배가 고파서 비쩍 마라 대나무쪽처럼  형편없는 몰골로 죽어라 하고 나
를 괴롭히는군."
그리고 그는 왼손을 옷자락 안으로 집어 넣고는 힘주어 긁어댔다. 반두
타는 그가 말을  빙 둘러 자기를 벼룩에 배유해서  욕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모른 체 하고 물었다.
"제사권의 경서는 어디에 숨겨져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음, 제사권의 경서는 무슨 산  소...... 소림사의....... 달...... 달 
무슨 원인가?"
반두타는 깜짝 놀라 물었다.
"소림사의 달마원에 숨겨져 있다는 말인가?"
위소보는 그가 소림 십팔 승려에 대해서  매우 꺼리는 것으 보고 또 그 
소림 승려들이 달마원의 사람이란 말을 들었던지라 일부러 어려운 문제
를 내놓아 그를 희롱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짐작에 의하면 반존자
가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하더라도 소림사 달마원으로 들어가서는 경서를 
훔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것은 마 자인가요? 나로서는 알 수가 없군. 반노형, 그대는 저 어려
운 글자도 알아볼 수 있으면서 왜  나를 보고 읽으라고 하시오? 아, 그
렇군. 그대는 나를 시험해 보겠다는 것이지. 정말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한줄 가운데 몇 자는 내가 알 수가 없구려."
반두타는 곁눈질로 소림의 뭇승려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한 그의 얼
굴은 약간 불안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물었다.
"제오권의 경서는 어디에 숨겨져 있지?"
소림사가 무림에서 커다란  문파란 것을 위소보는 해대부에게  들은 바 
있었다. 그리고 또 해대부에게서 황태가 무당파의 사람으로 행세한다는 
말을 들었고 황태후로부터는 해대부가  공동파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을 들은 적이 있었다.
따라서 무당과 공동 역시 생각해 볼 때  두 개의 큰 문파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제오권관 제육권을 무당과 공동이라는 산속에 숨겨져 있
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자 반두타의 안색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위소보는 제칠권의 
경서는 운남 목왕부의 사람이 가져갔다고  했다. 그리고 제팔권은 운남
의 무슨 서왕의  왕부에 있다고 하였다. 백한풍이  그에게 쓴맛을 보여 
주었던지라 이렇게 말함으로써 목왕부에게 뒤찮은 일을 안겨 주자는 것
이었다. 그리고 오삼계 평서왕부에는 고수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지라 
사부도 무척 꺼려 하는 판이 아닌가,  아니 시비를 일으키려 한다면 크
게 곤욕을 치루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반두타는 안색이 별안간 변해서 물었다.
"너는 제팔권의 경서가 평서왕부 아네 있다고 했지?"
위소보는 말했다.
"저 글자를 난 모르오. 그러니 평서와인지 아닌지는 난 모르겠소."
반두타는 대노해서 맹렬히 호통을 내질렀다.
"터무니없는 소리, 저  비석은 천년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백년은 
되었다. 오삼계가 도대체 몇 살이란 말인가? 수백 년 전의 비석에 어찌 
오삼계라는 평서왕의 이름을 써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비석은 검은 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 거북과 돌비석 뒤에도 이
끼가 돋아 있었으며 새겨진 글자는 얼룩덜룩 했으며 완전치 못했다. 첫
눈에 고물이 된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이치를 
모르고 나오는 대로 씨부렁거리다 보니 그만 오삼계를 들먹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단났다. 야단났어.)
그러나 입으로는 여전히 억지 변명을 했다.
"나는 저 글자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그대가 평서왕이라고 했소. 어
쩌면 옛날 운남의 개서와인지 아니면 자라 서왕이 있었는지 그 누가 알
겠소? 반노형, 내 그대에게 말하지만  저 꾸불꾸불한 글자들은 알아 보
기가 힘들고 그대가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하고 모른다면 모른다
고 하시오. 아는 척 해서는 평서와  오삼계로 읽어 버린다면 여기 계신 
대화상들은 하나같이 학문이 높으신데  그대가 함부로 읽음으로써 그드
은 입이 비틀어지도록 웃지 않겠소?"
그 말은 그럴싸했다. 반두타는 그 말을  듣고 비쩍 마른 얼굴이 씨뻘겋
게 붉어졌다. 그는 결코 성을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저 올챙이 같은 글을 나는 한  자도 모른다네. 알고 보니 평서왕이 아
니었군. 그럼 아래에는 또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는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위험했다. 한바탕 핀잔을 주무로써  얼버무렸군. 그러나 몇 마디 
좋은 말을 해서 그를 기쁘게 해야겠지.  그가 사도를 신룡도라 하고 함
퇘지 같은 유연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십중팔구 신룡교의 인물임에 틀
림이 없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 한참 동안 있다가 말했다.
"아래에는 수여천(壽與天)...... 천......  천...... 천 뭐라고 하는지 
잘모르겠군."
반두타는 안색이 대뜸 긴장 되어서는 말했다.
"자세히 보시게. 수여천 무엇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제(齊)......"
반두타는 크게 기뻐하며 두손을 바구 비벼댔다.
"과연 그 한마디가 있었군. 또 어떤 글이 있는가?"
위소보는 비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의 글자는 이상야릇해서 정말 알아보기가 힘드오. 그렇군. 저것은 
홍(洪) 자,  음, 홍교주(洪敎主) 석자이구려. 또  신룡(神龍)이라는 두 
글자가 있소. 저것 보시오.  저기에는 신통광대(神通廣大)라는 넉 자가 
있구만."
반두타는 화 하는 큰소리를 내고 펄쩍 뛸듯 하면서 말했다.
"진정 홍교주가 그와 같은 복을 타고 나 수명이 하는과 같이 길단 말인
가? 이 천년 묵은 비석에 이미 씌어져 있단 말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구려.  이것은...... 당태종(唐太
宗) 이세민(李世民)이 세운 비석으로서 진숙보(陣叔寶) 정요금(程요金)
을 파견하여 세운 것이라고 명명백백히  새겨져 있소. 그리고 당나라에
는 위로 천년을 알고 아래로 천년을 아는 군사가 있었는데 이름은 서무
공(徐무功)이라고 했으며 그는 천녕 이후이 일을 헤아려 본 것이오. 따
라서 대청나라 때에 신룡교 홍교주가 있고 홍교주의 신통력이 광대하고 
수명이 하는과 같이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본 것이오."
"양주의 찻집에서 그는 이야기꾼으로부터 수나라와 당나라 이야기를 들
은 적이 많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소보는 정요금이니 서무공이니 
하는 이름을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기실 서무공은 당나라를 세울때 
크게 공을 세운 대장수 서적(徐積)이라고 하며 이정(李靖)과 명성을 함
게 날린 영국공(英國公) 서적(徐積)이이기도  한데 결코 손가락을 헤아
려 미래의 천년을  내다볼 수 없는 군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위소보는 
그와 같은 사실까지  알 턱이 없었다. 그는  그저 얼렁뚱땅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꾸며서 반두타로 하여금 어리벙벙 하도록 속여 넘길 작정이었
다. 그렇게 된다면 십팔 명의 소림 승려들이 그 기회를 틈타 자기를 구
출해 내 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홍교주의 신통력이 
광대하고 수명이 하늘과 같이 높다는  등등의 말은 바로 장씨의 집에서 
장노삼 등 신룡교의 무리가 말하는 것을 듣고 외워 둔 것이었다.
과연 반두타는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라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위소보는 넌지시 말했다.
"이 커다란 비석 뒷쪽에는 또 무슨 글이 씌어져 있는지 모르겠군."
반두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면서 그가 먼저 비석 뒷쪽으로 살피러 걸음을 옮겼다. 위소보는 훌
쩍 몸을 날려 뒤쪽으로 뺑소니를 쳤다.  반두타는 깜짝 놀라 손을 뻗쳐 
그를 잡으려고 했다.
양쪽 네명의 소림 승려가 도잇에 손을  휘둘러 일장을 후려쳐 왔다. 반
두타는 부득이 주먹을 휘둘러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위소보는 이 순간 소림 승려의 등뒤로 돌아가게 되었다. 삽시간에 다시 
네 며으이 소림 승려가 달려들었다.
여덟 명의 소림 승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반두타를 한가운데 두고서 
맴돌듯 돌아갔다. 그리고 손을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 그 일
초가 상대방의 몸에 적중되었는지 안  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즉시 걸
음을 옮겨 놓았다. 이 사람이 나가면 저 사람이 나서게 되고 이 사람이 
나서게 되면 저 사람이 물러가곤 했다.
열 여섯 개의 손과 팔이 여덟  개의 방향에서 공격을 하고 있는데 평소 
익히고 연습했던 전법인 것 같았다.
반두타의 수세는 매우 엄밀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여덟 명을 상대했
기 때문에 즉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척척 하는 
소리와 함게 한명의 소림 승려와  반두타가 각기 일장씩 얻어맞게 되었
다. 그 소림  승려는 테두리 밖으로 물러나고 다른 한  명의 승려가 그 
자리를 보충했다.
다시 한참 싸우게  되었을 때 반두타는 발길질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두 팔을 쭉 뻐도는 맴을 한번 빙글  돌았다. 이렇게 되자 여덟 명의 소
림 승려들은 각기 두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이때 그는 부르짖었다.
"잠깐!"
여덟 명의 승려는 다시 두 걸음 물러섰다. 반두타는 말했다.
"오늘은 중과부적이니 경서는 그대들에게 돌려 주도록 하겠소."
그리고 그는 품속에서 경서를 꺼내 들었다.
징심은 왼손을 휘둘렀다. 여덟 명의 소림  승려들은 다시 두 걸음 다가
섰다. 이렇게 되자 반두타와는 불과 석 자의 간격밖에 되지 않았다. 각
기 손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반두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쳐서는 경서를 내밀었다.
징심은 단전에서 내식을  끌어올려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온몸에 가득 
공력을 돋구고는 왼손의 세 손가락으로  자세를 취한 후 공격과 수비의 
형태를 갖춘 후 그러니까 공격과  수비의 형태를 갖춘 직후에야 오른손
을 내밀어 천천히 경서를 받았다.
그런데 반두타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경서를 내밀었다. 그리
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징심대사, 그대들 소림사 십팔나한은 천하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열 
여덟 명이 나 한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은 결코 영광스러운 일은 못되지 
않겠소?"
징심은 경서를 품속에 갈무리한 후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소림 승려가 일대 일로 싸워서는 반존자의 적수
가 되지 못하오."
그리고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뭇승려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그
러나 혹시나 그가 다시 위소보를 잡을까 해서 오륙 명의 승려들이 위소
보의 앞을 막아섰다.
반두타는 말했다.
"위시주, 한가지 간곡하게  말씀드릴 일이 있는데 응낙해  주시기 바라
오."
위소보는 물었다.
"무슨 일이오?"
반두타는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신룡도로 가서 며칠 동안만  손님이 되어 주십사 하고 청
을 드리고 싶소이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뭐라구? 나보고 신룡도로 가라는 것이오? 그와 같은 곳에......"
반두타는 말했다.
"소시주의 경서는 이미 징심대사가 거두어  갔으니 틀림없이 소림 방장
에게 전달될 것이오. 소시주가 우리 신룡도에 오시게 된다면 우리 교의 
아래 위의 사람 할 것 없이 귀빈의 예우로 깍듯이 모시겠소. 그리고 홍
교주를 만나본 이후에는 반드시  소시주를 편안무사하게 섬에서 떠나도
록 해주겠소."
그런데 위소보는 입을 삐죽했다. 바로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행동이
기도 했다. 그와 같은 모양을 본  반두타는 징심대사 쪽으로 시선을 옮
겼다.
"징심대사, 아무쪼록 그대가 증인이 되어  주시오. 반두타가 한말에 책
임을 지지 않는 적이 있었소?"
징심대사는 이 두타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사악한 점이 없잖아 있다
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별로 크게 저지른 악행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반, 수, 두 두타가 자기네들이 한 말에 반두
시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이미 일찌기 들은 바가 있어서 말했다.
"반존자께서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뭇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외다. 하지만 위시주에게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마도 신룡도까지 
갈 여가가 없을 것이외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소이다. 나는 바빠 죽을 지경입니다.  장래 여가가 있다면 반드시 
신룡도로 가서 반존자와 홍교주를 만나도록 하지요."
반두타는 재빨리 그 말을 가로챘다.
"응당 홍교주와 그 어르신의 부하인 반두타라고 말씀해야 하오. 첫째로 
천하에서 그 어르신 위에 올려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소. 남의 이름을 
먼저 말하고 다시  홍교주를 들먹인다는 것은 크게  불경스러운 짓이외
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황제는 어떻게 되나요?"
반두타는 말했다.
"그야말로 홍교주님을 앞에 내세워야 하고 황제는 뒤에 세워야 하지요. 
그리고 둘째 교주 어르신의 앞에서는  존자이니 무슨 진인이니 하는 칭
호를 들먹여서는 안 되오. 이 천하에서 오로지 홍교주만이 존칭을 받을 
수 있소이다."
위소보는 혀를 쏙 내밀었다.
"홍교주가 그렇게 무섭다면  나는 더욱더 감히 그를  만나러 갈 엄두가 
나지 않는구려."
반두타는 말했다.
"홍교주께서는 인자하고 무리들을 사랑하시오. 골고루 천하 사람들에게 
은덕을 입히고자 한다오. 소시주와 같이  총명하고 영리한 소년 영웅을 
그 어르신께서 만나보신다면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외다. 소시주가 신룡
도로 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많은 선물들을  한 배에 가득 싣고 돌아 올 
수 있을 것이외다. 교주 어르신께서 크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한 선물을 
내리실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어쩌면 그  어르신께서는 기쁘셔서 
그대에게 일초  반식을 전수할지도 모른다오. 그렇게  된다면 소시주는 
천하를 종횡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한평생 다 써먹을래야 다 써먹을 수 
없는 은덕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이와 같이 말을 하는 태도는  지극히 성의에 차 있었고 또한 간곡
했으며 열렬한 것을 표정으로 미루어 알  수가 있었다. 본래 그는 위소
보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었다. 한때는  발로 그의 머리를 밟기까지 하
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때는 그를 소시주는 총명하고  영명한 소년 영웅이니 불렀다. 
더군다나 위소보가 알아 듣지 못할까봐  대나무 쪽과 같은 몸을 구부려
서는 위소보가 좀더 말을 듣기에 편리하도록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위소보는 도홍영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또 장씨 집에서는 장노삼 등 
몇 명 신룡교 무리들의 행동거지를  보았다. 거기다가 황태후와 유연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장으로 가짜 궁녀로 변장했던 그 남자 모습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신룡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그들
과 비교해 볼 때 그가 알고  있는 신룡교의 인물 가운데 이 반두타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  영웅기개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힘만 
믿고 경서를 빼앗아 간 점과 자기를 들고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한 일
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가 싹 바뀌어서는 자기에게 신룡도로 가서 손님이 
되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는게 틀림없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반존자가  겸손하게 나오는 것은 소림사의 
승려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일 뿐이며, 소림사의 승려들이 떠나기만 한
다면 자기에게 또 반드시 완력을  써서 강요할 것이며 우격다짐으로 달
려들 것이니 그때는 그 누가 있어  그를 제압할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가지 않겠소."
반두타는 비쩍 마른 얼굴에 실망의 빛을 잔뜩 띠우고는 천천히 몸을 똑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주위의 십팔 명의 소림승을 한번 바라보더니 천
천히 말했다.
"소시주, 나의 무공을 이 열 여덟 분 대화상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생각
하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각기 장점이 있었소이다."
반두타가 노해 말했다.
"뭐가 각기 장점이 있다는 것이오? 만약 일대 일로 싸우게 된다면 설마 
그들이 나를 이길 수 있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일대 일이라면 어쩌면  그대가 이길지 모르지. 그러나  일대 팔이라면 
그것은 그대가 지겠지. 그러니까 각기  장점이 있는 것이오. 만약 일대 
일에서도 그대가 진다면 그대에게 무슨  장점이 있다고 하겠소? 그대는 
기껏해야 키가 크다는 것뿐이지."
반두타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이 무공이 고강한 사람을 그대는 본 적이 있소?"
위소보는 말했다.
"물론 본 적이 있소. 그대의 무공은  별것 아니오. 그대보다 십배나 더 
고강한 사람도 나는 적잖게 보아 왔소."
반두타는 대노해서 한걸음  다가서서는 손을 뻗쳐 그를  잡으려고 들었
다. 네 명의 소림승이 동시에 손을 뻗쳐서는 막았다. 반두타는 말했다.
"누가 나보다 강하더냐?"
위소보는 일시에 말이 막혔다. 그는 반두타 보다 무공이 고강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론 그의 사부의 무공은 지극히 
고강한 셈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를 이긴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
가.
반두타는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자 보라구. 말 못하잖아?"
위소보는 말했다.
"뭐가 말을 못해요? 나는 말을 하지  않을 뿐인데. 그저 그대를 놀라게 
할까봐 걱정이 된 것이오. 무공이 그대보다 고강한 사람이 무척 많은데 
첫번째는 천지회 총타주인 진근남이지요. 나는  그가 북경성 안에서 다
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보았소. 그때 그는 두손으로 네 명의 두타를 잡
았소. 그 두타들은 하나같이 이백여 근이나 되는 무게가 나가는 사람들
이었는데 그리고도 그는 두 발로  땅을 차고는 나는듯 성벽을 넘어갔단 
말이오. 그대를 그 분과 비교한다면 훨씬 뒤떨어지지요."
반두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도 평소  진근남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가 네 사람이 손에 들고 성벽을 뛰어 넘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과장된 말이군."
위소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두 번째로 무공이 고강한 사람은 강남의  예쁘장한 작은 발의 젊은 부
인이오."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는 쌍아를 바라보았다. 쌍아는 손을 흔들며 그에
게 말을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위소보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젊은 부인은 삼십 육 명의 무당파의 고수들과 싸웠는데 삼십 육 명
의 도사들은 그녀를 에워싸고 그 뭐라고 하더라...... 무슨 진법이라고 
하던 것을 펼쳤는데......"
반두타는 물었다.
"무당파의 진법은 맨손이던가, 검을 사용하던가?"
위소보는 말했다.
"검을 사용했죠."
반두타는 말했다.
"그렇다면 진무검진(眞武劍陣)이로군."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소. 그대 뚱보대사께서는 정말 견문이 넓어서 진무검진을 아는군. 
그런데 그때 서른 여섯 자루의 보검으로 그 젊은 부인을 에워싸고 검의 
광채를 번뜩이는데 그야말로 물을 끼얹어도 그 물이 그 검의 광채를 뚫
고 들어갈 수  없을 지경이었소이다. 그런데 그  젊은 부인은 왼손으로 
아기를 안고서 오른손은 맨손으로......"
반두타는 크게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어린애를 안은 채  무당파와 무공을 겨루었다는 것이
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게 뭐가 이상할 게 있나요? 그녀가 안고 있는 것은 한쌍의 쌍동이로
서 모두 남자이며 통통했소."
그는 일부러 장씨 집안의 작은  마나님의 무공을 과장하려고 애의 숫자
를 한배 더 늘여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 그녀는 입으로 아기를 달랬어요.  '두 착한 아가야, 울지 말아
라. 너희 엄마가 요술을 해보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서른 여섯 명
의 도사의 손에 들린 보검을 모두  다 빼앗고 그 도사들의 혈도를 짚어 
그곳에 서서 꼼짝  못하도록 만들었죠. 그런데 그  젊은 부인은 아기를 
안은 채 아기들로 하여금 늙은  도사들의 수염을 잡아당기도록 했지요. 
늙은 도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는데 두 어린애는  매우 기쁜 듯 
환히 웃었지요."
무당파는 소림파와 함께 명성을 날리고 있었으며 무공에 있어서도 각기 
막상막하였다. 그는 반두타가 십팔 명의  소림 승려들을 상대로 이기지 
못하자 그 젊은 부인이 서른 명의 무당 도사를 대패시켰다고 말한 것이
었다.
이렇게 된다면 무공에 있어서 어느 누가 강하고 어느 누가 약한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반두타는 그와 같은 말에 마치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이 되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에 그토록 신기한 무공이 있었다니."
위소보는 그가 자기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고 크게 의기양양해
져서는 말했다.
"솔직이 말해서 그 젊은 부인은 나의 의어머니라오."
쌍아는 처음 강남의 ㅈ은 부인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하는 사람이 
바로 장씨 집안의 세째 마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데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젊은 부인에게는 한쌍의  아들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그의 의어머니라고 하는 말에 따로 그런 사람이 있는
가 보다고 여기게 되었다.
반두타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그대의 의어머니라구? 그녀의 성씨가 무엇이오? 무림에 그와같이 무서
운 인물이 있는데 내가 어째서 들어 본 적이 없을까?"
위소보는 웃었다.
"무림에서 무서운 인물은 많이 있다오.  나의 마누라도 그중의 한 사람
이지."
그러면서 그는 쌍아를 손가락질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것 보시오. 그녀는  아담하고 예쁜 모양을 하고  있지 않소. 그러니 
그 누가 있어서 그녀의 일신에 갖춰진 무공을 짐작이나 하겠소?"
쌍아는 온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말을 하였다.
"상공,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 말아요."
반두타는 쌍아와 손을 쓴 적이 있는지라 나이 어린 소녀인 쌍아가 정말 
솜씨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자기가 친히 
보지 못했다면 믿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고
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오. 소시주가 신룡교로 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여러분들은 가 보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대사께서 먼저 가시죠.!"
그는 겸손하게 예의를 차린 듯 했으나 기실은 반두타로 하여금 먼저 가
도록 만들어 반두타가 동쪽으로 갈  때 자기는 서쪽으로 가자는 속셈이
었다.
반두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주가 먼저 가시오. 나는 이 비석의 글을 탁본해야겠소."
위소보는 속으로 웃었다.
"내가 아무렇게나 주어 섬긴 말을 진짜로 믿고 있는 모양이구나."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9.더욱 예뻐진 누나

십팔 명의 소림  승려와 위소보, 그리고 쌍아  등은 금수봉에서 내려왔
다. 징심은 경서를 위소보에게 되돌려 주며 물었다.
[시주는 즉시 북경으로 돌아갈 참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네.]
징심은 말햇다.
[우리들은 옥림대사로부터  시주를 편안히 북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호송하라는 부탁을 받았소이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잘되었군요. 그렇잖아도 그  대나무같이 비쩍 마른 두타가 단
념하지 못하고 다시 귀찮게 둘까봐  걱정하던 참이었지요. 그러나 여러
분들이 저와 동행하게  된다면 행치대사를 보호할 사람이  따로 있읍니
까?]
징심은 말했다.
[시주는 안심하시오. 옥림대사에게는 따로이 안배가 되어 있소이다.]
위소보는 이때 옥림 노화상에 대해서 매우 탄복하고 있었다. 사실 옥림
대사는 눈을 감고 가부좌하고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아랑곳 하지 않
을 것 같았다. 그롸 같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적절하게 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림사의 십팔나한이 호송을  하게 되자 길에서는 아무런  위험한 일도 
없었다. 그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반두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다른 무림의인물도 한 사람 만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북경성 밖에 이르게 되었다. 십팔 소림승과 위소보는 절을 하고 
작별을 했다. 징심은 말했다.
[시주는 이미 경성에 도달했으니 노승등은 이만 작별하고 절로돌아갈까 
합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여러 대사들께서 수고스럽게도 저를 이곳까지 전송해 주셨으니 저로서
는...... 저는 정말 너무 고마워 인사말을  드릴 수가 없군요. 저의 절
이나 받도록 하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땅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징심은 재빨리 손을 뻗쳐 그
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시주는 길을 오면서 우리들을 잘 대접해 주었소이다. 우리들은 그야말
로 산서에서 북경까지 산천구경을 나선 셈이라 할 수 있었으니 무슨 고
생을 했다고 할 수 있겟소이까.]
위소보는 오대산에서 내려오자 열 아홉 대의 수레를 빌렸다. 자기와 쌍
아는 한 대의 수레에 타고 십팔명의 소림 승려들은 각기 한대의 수레에 
타도록 했다. 그리고는  우팔이 머저 말을 몰아  앞서 나가도록 하면서 
하루 일찍 객점을 정하고 유명한 차와 요기할 음식들과 잿밥 등을 준비
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극진히 대접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르는 곳마다 위
소보는 크게 상을 내리듯 돈을 뿌려 주인과 사환들은 십팔명의 소림 승
려들을 마치 하늘의 신선이나 보살처럼 극진히 떠받들었다.
소림의 승려들은 본래 조용히 도를 닦던 사람들이었다. 원래 그와 같은 
음식에 대해서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위소보가 그토록 공
경하는 마음이 매우 간곡한 것을  보고는 그들 또한 사람들인지라 흐뭇
해지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솔직하지 못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친구를 좋아했다. 친구와 사귐에 있어서는 
조금도 거짓이 없었다. 길을 오는 동안 그는 뭇승려들과 이런저런 이야
기를 했으며 매우 정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헤어지게 되자 마
음이 아파 그만 눈물마저 흘러내렸다.
징심은 말했다.
[선재로다. 선재로다. 소시주는 어째서 괴로워 하시오. 훗날 인연이 있
다면 우리 소림사로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합시다.]
위소보는 목멘 어조로 말했다.
[반드시 찾아가 뵙도록 하겠읍니다.]
징심은 뭇승려들을 데리고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북경성 안에 들어오게 되었을 대 날은 이미 저물었다. 궁안으로 들어가
기가 거북했다. 위소보는 서문 쪽의 커다란 객점인 여귀객잔(如歸客棧)
에서 방을 한칸 얻었다. 하룻밤을 묶은 이후 내일 아침 강희를 만나 모
든 것을 품할 작정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비쩍 마른 반두타가 목숨을 내놓고  나의 이 경서를 빼아승려고 했
던 것을 보면 몰래 나를 뒤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 여덟 분의 소림
사 승려가 떠나간 마당이니 그가 다시 손을 써서 빼앗으려고 한다면 나
와 상아는 감당할 수가 없다. 역시  수고스럽지만 먼저 경서를 잘 숨겼
다가 내일 궁으로  들어가 한떼의 시위들을 데리고  나와서 소황제에게 
가져가 바치는 것이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이윽고 그는 우팔에게 물건을 사러 보냈다. 그리고는 쌍아를 밖으로 나
가라고 한 이후 문을 잠궜다. 창문을  닫기 전에 그는 창밖에 반두타까 
엿보고 있지 않나 확인을 했다. 그제서야  그는 기름을 먹인 베를 꺼내 
그 사십이장경을 싸서는 탁자를 옮기고  비수를 뽑아서 탁자 아랫 부분
의 벽에다가 구멍을  내었다. 그 비수는 무쇠를  무우 자르듯 하는지라 
벽돌로 쌓인 벽에  박힌 벽돌들을 파내는 것은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그는 경서를 벽의 구멍안에 넣고는 다시 벽돌을 틀어 막았다.
그리고는 물에다 석회를 이겨서 틈바구니를  막았다. 석회가 마른 이후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결코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튿날 이른 아친 그는 우팔에게 수레를 준비하도록 했다. 먼저 쌍아를 
데리고 풍성한 아침밥을 먹을 작정이었다.  한번 근사하게 식사를 시켜 
줌으로써 나이 어린 쌍아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돈을 써 보자는 것
이었다. 그리고 난  이후 태감의 옷과 모자를  사서는 궁안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시장에서 태감의 옷과 모자를  살 수 없다면 아예 시
위들이 입는 복장을 그대로 입고  다시 황마괘ㅔ를 재빨리 맞추어서 걸
칠 작정이었다.
그때는 위풍이  늘름하게 어스렁거리며 궁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뭇시위들과 뭇태감들은 그만  눈이 휘둥그래질 것이니 재미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어전시위  부총관은 황상께서 
친히 내리신 벼슬이고 가짜가 아니니  자기가 한번 거드름을 피울만 하
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또 태감이 된단 
말이냐? 황마괘를 입고 궁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곧이어 수레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위소보는 쌍아와 함께  노새가 끄는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는 혀를 잔뜩 구부려서는 순전히 북경 말씨로 입
을 열었다. 
[먼저 서단(西單)의 오래된 괴성관(魁星館)으로 갑시다. 그곳의 양꼬리 
튀김과 양고기 만두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
차부는 공손히 대답했다.
[네.]
우팔은 허리를 꼿꼿이 하고 가슴을 편 채 차부의 옆자리에 않아서는 말
했다.
[경성의 노새도 여느 곳과는 다르구나.  이렇게 크고 눈이 새까만 것도 
노새라 부르다니, 우리 산서성에는 통털어서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을
껄.]
위소보는 이번에 공을 세우고 북경에 돌아온데 대해서 마음속으로 매우 
득의에 차 있었다.
노새는 한동안 달려가더니 갑자기 서직문(西直門)을 나섰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 보시오. 서단으로 가야지 어째서 성을 나서는거요?]
차부는 말했다.
[네. 미안합니다. 나리, 소인의 이  노새는 고집스러운 데가 있읍니다. 
성문쪽으로 오면 반드시 성문을 나서서 한번 빙글 돌아야만 젝;ㄹ로 찾
아든답니다.]
위소보와 쌍아는 그만 그 말에 웃고 말았다. 우팔은 말했다.
[허, 경성 안의 노새마저도 거드름을 피우느군.]
그런데 수레는 성을  나선 이후 곧장 북쪽으로  나아갔다. 한마장 남짓 
나아가도 방향을 돌릴 줄 몰랐다.  위소보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느끼고 
호통을 내질렀다.
[이것 보시오, 차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오? 빨리 돌아갑시
다.]
차부는 잇달아 대답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고개를 돌려라, 득아, 득아! 워워, 득아, 고개를 돌려.]
그리고 채찍을 마구 갈겼다. 노새는  그저 자꾸만 북쪽으로 나가갔으며 
갈수록 빨리 달렸다. 차부는 크게 욕을 했다.
[빌어먹을 노새 같으니, 돌아서라고 하지 않았어! 득아, 멈춰라. 멈춰! 
이 빌어먹을 노새야!]
그는 더욱더 다급해져서 쇨쳤으나 그 노새는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말발굽  소리와 더불어 두 필의 말이  옆으로 달려들어 바짝 
수레 옆에 갖다대는 것이 아닌가. 말위에 타고 있는 사람은 두 며의 체
구가 우람한 사네였다. 위소보는 나직이 부르짖었다.
[손을 쓰시요.]
쌍아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손가락을  뻗쳐서는 찔렀다. 정확히 차부의 
뒷허리를 찌르는데 성곡했다. 그러자 차부의 몸뚱아리가 흔들하더니 차
부석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차부는 크게 한소리  부르짖었는데 떨어진 
그 순간 수레 옆에 바짝 북티고 섰던 한 필의 말발굽에 그만 밟히고 말
았다.
글처자 말을 타고  있던 사내가 몸을 날려서는  차부의 자리에 앉았다. 
쌍아는 다시 손가락을 뻗쳐서는 찔렀다. 이  사람은 냅다 뒤로 손을 들
어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쌍아는 손을 홱 뒤집어서는 그의 
안면을 후려치려고 했다. 그 사내는  왼손으로 그녀의 어깻죽지를 잡으
려 들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팔구 초를 교환했다.
노새는 여전히 미친  듯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왼쪽의 말위에 탄 
사람이 부르짖었다.
[어떻게 된거야!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어?]
그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차부자리에 있던 사내의 가숨팍이 쌍아의
오른손에 적중되어 바깥 쪽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다른 한 며으이 
사내가 채찍을 들고 후려쳐 왔다. 쌍아는 손을 뻗쳐 채찍을 잡고 그 기
세로 그 채찍을 수레에다 감았다. 노새가  끄는 수레는 한창 앞으로 달
려가고 있는 참이라 급히 당하자 그 사내는 즉시 말에서 떨어지게 되었
고 급히 채찍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화가 난 듯 버
럭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쌍아는 노새의 고삐를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수레를 몰 줄 몰라 우팔
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그대가 수레를 몰아요.]
우팔은 말했다.
[난 여기...... 이런 것을 모른답니다......]
위소보는 차부석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고삐를 잡았다. 그 역시 수
레를 몰 줄 몰랐다. 그저 차부가 하듯 득아, 득아, 하고 몇 번 불렀다. 
그리고 왼손의 고비를 풀면서 오른손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바로 말고
삐를 잡아당기듯 하는 식이었다. 아니나 다른까 그 노새는 머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데 전혀 고집을 부리거나 하지 않았다.
이때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다시 십여 필의 말이 달려왔다. 위소
보는 깜짝 놀라 노새를 비스듬히  길쪽으로 달려가도록 만들었다. 뒤쫓
아 오던 말들은 말머리를 돌려서는 급히 뒤쫓아왔다.
말은 빠르고 수레는 느렸다. 얼마 후 십여 필의 말은 노새가 끄는 수레
를 에워싸듯 했다.
위소보는 말에 탄 사내들이 각기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부르짖
었다.
[청천백일에 천자  발밑에서 당신네들은 길을 막고  노략질햐려는 것이
오?]
한 명의 사내가 읏으며 말했다.
[우리는 손님을 청하러 온 사자들이지 날강도들이 아니랍니다. 위공자, 
우리 주인께서 술을 한턱 내시겟다고 모셔 오랍니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대들의 주인은 누구시오?]
그 사내는 말했다.
[공자께서 가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인이 공자의 친구가 
아니라면 어찌 술을 내겟다고 하겠소이까?]
위소보는 이 사람들이 이상한만치 좋은  뜻을 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고 생각하고 부르짖었다.
[이렇게 손님을  청하는 법이 어디  있소? 수고스럽지만 길을  터 주시
오.]
다른 한 명의 대한이 읏으며 입을 열었다.
[길을 비키라면 비키지.]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들어  노새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노새
의 시체가 기우뚱하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 바람에 수레도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위소보와 쌍아는 급히 땅바닥으로 내려섰다.  쌍아는 질풍과 같이 손을 
써서 공격했다. 그러나 적은 말위에 타고  있고 쌍아는 키가 작아 제대
로 적에게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일지 일지 잇달아 찔러
내게 되었는게 그 결과는 말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하든가 적의 다리
에 있는 혈도를 찌르는 게 고작이었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와 말이 울부짖는 소리로 소란해지고 말
았다. 몇 명의 사내들이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들
었다. 쌍아는 솜씨도 민첩하게 동쪽을  가리키는가 하면 서쪽을 공격했
다. 대뜸 칠팔명의 사내들을 쓰러뜨렸다.  나머지 너댓 사람은 서로 얼
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큰길 쪽에서 한대의 조그만 수레가 질풍같이 달려왔다. 수레 안의 
한 여인이 부르짖었다.
[다 한편의 사람이니 손을 쓰지 말아요.]
위소보는 그 소리를 듣고 흐뭇해져서 부르짖었다.
[아하, 우리 마누라가 오셨군.]
쌍아와 뭇사내들은 즉시 손을 멈추었다.  쌍아는 크게 놀람과 의아함을 
느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로서는 상공이 이미 부인을 두었으
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일찍 장가드는 것이 관습이었다. 남자는 열 대여섯 살만 
되면 장가드는 것응ㄹ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위소보는 한번도 그
녀에게 처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 않았던가.
조그만 수레는 그들 앞에 이르러 멈추었고 수레 안에서 한 사람이 달려 
나왔는데 바로 방이였다.  위소보는 온 얼굴 가득히  기쁜 빛을 띠우고 
마중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아이쿠, 누나. 정말  그리워서 즉을 뻔 했소. 도대체  어디에 가 있었
소?]
방이는 미소했다.
[천천히 다시 이야기하기로 해요. 헌데 어쩌다가 그대들은 싸우게 되었
죠?]
그리고 그녀는 땅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노새의 피가 온 땅
에 뿌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퍽이나 놀람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 명의 사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말했다.
[방소저, 우리들이 위공자에게 술을  대접하겠으니 가시자고 했는데 아
마도 여러 사람들이라 예의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갓 같읍니다. 그리
하여 공자의 비위를 거슬리게 된 모양입니다. 방소저가 친히 와서 청하
게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잘되었소이다.]
방이는 기이하다는 듯 말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그대가 스러뜨린  것인가요? 그대의 무공이 크게 증
진되었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증진된다 하더라고 이렇게 빨리 증진될  수 있겠소? 쌍아 소저가 나를 
보호하게 위해서 약간 솜씨를 보인 것 뿐이라오.]
방이는 눈을 들어 쌍아를 바라보았다. 열  너댓 살에 수줍음이 많은 소
녀가 아닌가. 저말 그녀의 무공이 이토록 고강하다고는 믿을 수가 없는 
노릇인지라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누이의 성은 뭐죠?]
 그녀는 장씨 집에 들리게 되었을 때  쌍아와 대면을 하지 않았기 때문
에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처지였다.  쌍아는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쇤네 쌍아가 마님에게 인사드립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방이는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게 져서
는 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대는......  그대는.....  나를   뭐라고  불렀죠?  나는......  나
는...... 아니에요.]
쌍아는 몸을 일으켰다.
[상공께서는 그대를 자기의 부인이라고  했어요. 쇤네는 상공을 시중드
는 몸이니 자연 그대를 마님이라 불러야 하겠지요.]
방이는 위소보를 매섭게 한번 흘겨보더니 말했다.
[저 사람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잘 지껄이니 그의 말을 믿지 말아요. 그
대는 그를 시중든지  얼마나 되었죠? 설마하니 그의  성질을 모르나요? 
나는 방소저에요.]
쌍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지금은 잠시 부르지 않기로 하고  이후 다시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요.]
방이는 말했다.
[이후 다시 부르다니..... 무엇을.......]
그러다가 얼굴을 붉히며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쌍아는 위소보를 바라보았다. 위소보의 의기양양해 있는 표정을 대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녀 역시 온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는 오대산 
위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한 것이다.  그때 위소보는 반두타에게 자기를 
위소보의 마누라라고 하지 않던가.
원래 위소보는 나이 어린 소저들을  마누라라고 즐겨 부르는 버릇이 있
는 줄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위소보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묻게 되었을 때에도 쌍아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나의 작은 마누라는?]
방이는 다시 그를 흘겨보았다.
[이토록 오랫 동안 헤어져 있었는데 만나자마자 농담을 하다니 정말 어
쩔 수 없는 사람이군.]
즉시 그녀는 뭇사내들에게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출발하도록 일렀다. 
혈도를 짚힌 사내들은 꼼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쌍아가 일일이 풀어 주
어야 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나에게 술대접을  하는 줄 알았더라면 나는  등에 날개가 달린 
듯 달려갔을 것이외다.]
방이는 그를 다시 한번 흘겨 주고 말했다.
[그대는 벌써 나를 잊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청하는 것을 생각지 못했
겠죠.]
위소보는 속으로 흐뭇해져서는 말했다.
[내 어찌 일각이라도  그대를 잊을 수 있겠소. 그대가  나를 부르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술은 고사하고 말오줌  아니라 독약을 먹여 준다고 하
더라도 잠시 지체함이 없이 달려갔을 것이외다.]
방이는 아리따운 눈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그렇게 입바른 소리는 하지 마시라구요.  만약 내가 그대에게 하늘 끝 
닿은데로 가서 독약을 마시자고 하면 어쩔텡요?]
위소보는 그녀가 웃는 듯 마는 듯하면서 말을 하는 모습이 아침 햇살보
다 더욱더 그럴 수 없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저 온몸이 나른
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하늘 끝 닿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칼산 아니라 기름 가마 솥 안이라 
하더라도 나는 따라가겠소.]
방이는 말했다.
[좋아요. 사내 대장부의 일언은 중천금이에요.]
위소보는 자기 가슴을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사내 대장부의 일언은 중천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소.]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방이는 다른 한 사내가 끌고 온  말을 위소보에게 타도록 내주었다. 그
리고는 쌍아로 하여금  그녀가 타고 온 조그만  수레에 오르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말을 타고  위소보와 말머리를 나란히 해서 천천히 
동쪽으로 몰았다.
뭇사내들은 뒤를 따랐다. 방이는 물었다.
[그대는 재간이 대단하군요. 어떤 수단을  써서 저와 같이 무공이 뛰어
난 나이 어린 하녀를 곁에 두게 되었나요?]
위소보는 웃었다.
[내가 무슨 수단을 썼겠소? 그녀가 기꺼이 나를 따른 것이라오.]
위소보는 곧이어 목검병과 서천천등의 행적을 물었다.
[그 도깨비집에서 그대들은 신룡교라는 한떼의 사람들에게 잡히게 되었
는데 그 후 어떻게 빠져나왔소? 장시  집안의 세째 작은 마나님께서 사
람을 시켜 그대들을 구해 낸 것이오?]
방이는 물었다.
[누가 장씨 집 세째 작은 마나님이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바로 그 장원의 주인 말이외다.]
방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원의 주인이라고요? 우리들은 줄곧 본  적이 없어요. 신룡교에서 찾
고 있던 것은  바로 그대에요. 그들은 그대에  대해서도 악의가 없었어
요. 장노삼은 그대를  찾지 못하자 우리를 석방시켜  준거에요. 소군주 
등은 앞쪽에 있어요. 얼마 후면 마나게 될 것이에요.]
그리고 고개를 돌리더니 약간 뾰로통해진 얼굴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저 소군주뿐이군요. 나와 만난 잠
깐 사이에 잇달아 일곱 여덟 번을 물었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내가 언제 일곱 여덟 번이나 물었단  말이오? 정말 억울하오. 만약 내
가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그대를 볼 수 없었다면 지금쯤은 아마 칠팔십 
번은 물었을거요.]
방이는 미소했다.
[그대가 입이 열 개나 달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잠시 동안에 칠팔
십 번은 물을 여가가 없을걸요. 하지만 그대의 혀는 열 장의 혀보다 더 
무서워요.]
두 사람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갔다. 얼마  후 십여 리를 
나아가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북경성을 빙 돌아서 줄곧 동쪽으로만 나
아가고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거의 다 왔소?]
방이는 약간 화가 난다는 듯 말했다.
[아직도 멀었어요. 그대는 그저 소군주만  기억하고 있군요. 그렇다 하
더라도 이렇게 성급하게 굴 건 없잖아요.  진작 그대가 이럴 줄 알았더
라면 그녀로 하여금 그대를 맞도록 하는 걸 잘못했는가 봐요.]
위소보는 혀를 날름 하고는 말했다.
[이후 나는 한마디도 묻지 않도록 하겠소.]
방이는 말했다.
[그대가 입으로 묻지 않고 속으로 초조히  애를 태우는 것은 더욱더 남
의 화를 돋구는거예요.]
그녀는 매우 질투하는 빛을 보였다.  위소보는 들으면 들을수록 흐뭇해
져서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만약에 내가 마음속으로 조금이라도 초조해  했다면 나는 그대의 지아
비가 아니고 그대의 아들이라고 하겠소.]
방이는 훗! 하고 웃었따.
[아이 착한......]
그러다가 그만 얼굴을 붉히며 아들이란 말을 입밖으로 내놓지 못했다.
정오 무렵이 되었을 때 그들은 어느  고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 이
후 일행은 다시 동쪽으로 나아갔다. 위소보는 감히 더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못했다.
북경성에서 차츰 멀어지는 것을 보고 오늘은 궁으로 되돌아가서 강희를 
만나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소현자는 나에게 언제까지 돌아와  보고를 하라고는 하지 않았
다. 내가 오대산에서 좀더 지체하거나 혹은 반두타에게 잡혀서 며칠 안
으로 돌아가는 일이 늦었다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길을 가면서 방이는  그와 전혀 쓸데없는 농담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 
날 황궁 안에서 두 사람은 같은 방에 처하게 되었으나 목검병이 있었기 
때문에 방이는 퍽이나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제 나란히 말을 몰
게 되자 우스갯 소리를 은근히 했다. 나머지의 사람들은 분수를 아는지
라 멀찌기 따라왔다.
위소보는 이제야 정을 알 만한  몸이었다. 황궁에서 그녀를 마누라라고 
할 때는 장난기가 더 많았고 약간 경박하게스리 득을 보자는 생각이 어
느 정도 있었으며 그저 조금만 어렴풋이 남녀의 관계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이후 방이가 때로는 뾰루퉁 하
니 화를 냈다가 때로는 부드럽게 이를  데 없는 말로 미소를 띠우는 것
을 보자 그만 정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가 그녀가 반나절 동안 말을  모느라고 두 뺨이 붉그레하니 상기
되고 땀방울이 맺혀 있는 얼굴은 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
껴졌다. 그리하여 그는 그만 멍하니 그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이는 미소하며 물었다.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누나, 그대......그대는 정말 예뻐요. 나는......나는......]
방이는 말했다.
[그대가 어쨌다는거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대는 화를 내지 마시오.]
방이는 말했다.
[올바른 말이라면 화를 내지 않겠어요. 그러나 올바르지 못한 말이라면 
물론 화를 내겠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그대가 만약 정말 나의 마누라가  된다면 내가 얼마나 기쁠까 하
고 생각했소.]
방이는 그를 흘겨 보더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고개를 돌렸다. 위
소보는 다급해져서는 물었다.
[누나, 화났소?]
방이는 말했다.
[물론 화났어요. 일백 이십 번이나 화가 났더랬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 말은 정말로 올바른 말이외다. 나는......진심에서 한 말이외다.]
방이는 말했다.
[궁안에 있을 때  나는 한평생 그대를 따르며  시중을 들겠다고 맹세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슨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어요. 그대가 그와 
같이 말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 변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위소보는 크게 기뻤다. 만약 두 사람이  말위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면 덥썩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뺨에 입을 
맞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즉시 그는 오른손을 뻗쳐서는 그녀의 왼손
을 잡았다.
[내 어찌 마음이 변하겠소? 천년 아니 만년 후라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외다.]
방이는 말했다.
[그대의 그와 같은  말은 가짜예요. 한 사람이 어찌  천년 만년을 산단 
말이에요? 혹시 그대가 거......]
거 자만 말했지  거북이란 말은 하지 못하고 쳇  하고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여전히 위소보에게 잡힌 상태였다.
위소보는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잡고는 흐뭇해졌다.
[그대가 나를 이토록 잘 대해 주니 나는 영원히 거북이가 되지 않을 것 
같구려.]
마누라가 서방질을 하게 된다면 남편은  바로 거북이가 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방이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을 굳히며 말
했다.
[세 마디의 말 가운데 꼭 한 마디는 좋지 못한 말이 끼는군요. 개 입에
서 상아가 날 리 없지]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닭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 닭을  쫓아야 하고 개에게 시집을 가
게 되면 개를  따라야 하지 않소? 한평생  그대의 지아비입에서 상아가 
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소이다.]
방이는 말안장에 몸을 엎드리고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왼손으로 꼭 위
소보의 손을 쥐었다.
두 사람은 이와 같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길을 갔다. 해질 부렵쯤 되어 
그들은 커다란 고을의 객점에 투숙했다.
이튿날 아침 위소보는 우팔에게 한 대의 수레를 빌리도록 했다. 그리고
는 방이오 함께 수레 안에 탔다. 두 사람의 감정이 무르익게 되었을 때 
위소보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뺨에 입맞춤을 했다. 방이는 조
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좀더 한걸은 나아가 법도에 어긋나는 행
동을 하려면 방이는 한사코 허락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남녀의 일에 대
해서 알듯말듯했다.
그만해도 그는 크게  흐뭇했다. 그리고 그는 그저  이 수레가 끊엄없이 
나아가기만을 바랬다. 그렇다면 그는 미녀를 꼭 끼고 앉아서 시간을 보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따라서 이와같이 하늘 끝 닿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서서  다시 이쪽 하늘 끝 닿는  곳까지 갔으면 했
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의 길을 영원히 오락가락 하게 되었다.
아니 설사 다 간다 하더라도 되풀이해서  몇 번 더 오락가락 한다고 해
서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나날이 나아가다가 
숙박을 하고는 다시 나아가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는 방이가 갑자기 도착했다는 말을 할까봐 두려울 지경이었다.
이와 같이 여인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자 그는 황제의 칙령이고 사십
이장경이고 오대산의 노황야고 간에 모든  것을 떨쳐 버릴 수 있었으며 
그저 흐릿한 생각속에 세월이 흘러가고 또 얼마나 먼 길을 갔는지도 모
를 지경이었다. 
이날 저녁 무렵 수레와 말들은 커다란 바닷가에 도착하게 되었다. 방이
는 그의 손을 잡고 해변으로 가서는 나직이 말했다.
[동생, 나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신선처럼 두루 돌아다니며 세
월을 보내는 것이 어때요?]
그 말을 할 때 그녀는 위소보의  손을 잡고 있었으며 머리를 그의 어깨
에 기대로 있었다. 몸은 축 늘어진 것이  전혀 기운을 쓸수 없는 것 같
았다. 위소보는 왼손을 뻗쳐 그녀의 가는 허리를 잡고서는 그녀가 쓰러
지지 않도록 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자기의  뺨을 살살 건드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는 가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녀는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너무나 돌연스러운 일이라 생
각되었고 은연중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없잖아 들었다. 그러나 이
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위소보가 싫다는 말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해변에는 한 척의  배가 떠 있었다. 배위에  사공들은 방이의 부하들을 
보자 푸른 수건을 손에 들고 흔들어댔다.  그러더니 한 척의 조그만 배
를 해변 쪽으로 보냈다.
사공들은 위소보와 방이를 큰 배에 타도록 했고 그런 이후 나머지의 사
람들을 잇달아 큰 배로 옮겨 타도록  했다. 우팔은 배에 오르면 멀미를 
한다고 하며 한사코 바다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그에게 배에 탈 것을 걍요하지 않고 일백 냥의 은자를 수고비
로 주었다. 우팔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산서성으로 되돌아갔다.
위소보는 선실로 들어갔다. 선실 안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발밑에는 두꺼운 융단이 깔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다과가 잔뜩 쌓여 있
었다. 마치 왕공대신의 집에 있는 화청과 같다고 생각했다.
(누나가 이렇게 나를 대접하는 것을 보면  결코 나를 해치려는 것은 아
니겠지.)
이때 배위의 두 명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나
는 수건을 들고 왔다. 위소보는 두  사람이 가져온 수건을 받아 얼굴을 
훔쳤다. 곧이어 두 그릇의 국수가 날져왔다. 국숨ㅅ이 매우 좋았다. 그
렇지만 그 맛은 흔히 보는 계사면과는 맛이 또 달랐다.
이때 배가 흔들거렸다. 어느덧 돛을 올리고 바다로 나간 모양이었다.
선상의 생활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방이는 매일같이 그를 상대로 술
을 마시거나 우스갯 소리를 했다. 그리고  밤이 깊은 이후에야 그가 침
대에 오르도록 시중을 든 이후 옆 선실로 가서 자곤했다.
그런가 하면 이튿날 아침 일찍 그녀는 다시 달려와 위소보가 옷을 입고 
머리카락에 빗질하는 것을 도와 주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내가 태감이 아닌 줄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우
리 부부는 역시 가짜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언제쯤 그녀에게 모
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까?)
배를 탄 지 며칠이 지났다. 이 날 두 사람은 창가에 나란히 기대어서는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함께  구경하게 되었다. 바다 위에는 금
사가 줄기 줄기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아 아름답기가  형용할 수 없었
다. 방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우리가 오랑캐 황제를 찔러 죽이러  갈 때 나는 반드시 궁안에서 
목숨을 잃게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정 하느님이 돌보시어 그
대를 만나게 되었고 또 이와 같은 복을 누리게 되는구려. 아우, 그대의 
내력에 대해서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어떻게 해서 궁안으로 들
어가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해서 무공을 익히게 되었나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렇잖아도 그대에게 말하려던 참이었소.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
대는 아마 깜짝 놀라는 한편 또한 기뻐서 기절을 할지도 모르겠군.]
방이는 그에게 몸을 좀더 갖다 붙이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들어서 즐겁다면 그거야말로 더 바랄 나위 없이 좋은 일이죠. 설
사 내가 듣기에 좋지 않은 말이라 하더라도 그대가 진실을 말해 준다면 
나는......나는......상관하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누나, 내가 그대에게 진실을 말하지요.나는 양주에서 낳았으며 어머니
는 기녀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방이는 깜짝 놀라 몸을 돌리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의 어머니는 기녀원에서 일을 한다구요? 남에게 빨래를 해주고 밥
을 지어 주었나요? 아니면...... 아니면 땅을 쓸고 차를 따랐나요?]
위소보는 그녀의 안색이 크게 변하고  두 눈에 공포스러운 빛이 떠오른 
것을 보고 그만 가슴속이 싸늘해지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그녀가 기녀
원에 대해서 매우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자기의 어머니가 기녀라는 사실을 실토하게 된다면 한평생 그녀에
게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는 즉시  껄껄 소리 내어 웃었
다.
[우리 어머니가 기녀원에 있을 적에는 육칠 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
게 빨래를 하고 밥을 지어 주겠소?]
방이는 안색이 약간 풀어졌다.
[겨우 육칠 세밖에 되지 않았어요?]
위소보는 그 말을 따라 입을 열었다.
[오랑캐가 중원으로 들어온 이후 양주에 적잖은 사람을 죽인 사실을 그
대는 알고 있소?]
그는 일부러 시간을 늦추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어머님을 좀더 그럴
싸하게 추켜올릴 생각이었다. 방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명나라의 벼슬아치였으며 양주에서 벼슬을 하고 있
었소. 오랑캐가 양주를 점령하게 되자  우리 외할아버지는 적에게 대항
하다가 돌아가시고 말았소. 우리어머니는 그때 어린애에 불과했는데 그
만 거리로 나서게 되었소. 양주 기녀원에는 매우 대단한 부자가 있었는
데 그녀가 가련한 것을 보고 그녀를  거두어 하녀로 삼았소. 그리고 그
와 같은 사실을 알아낸 이후에는  우리 외할아버지를 매우 존경하게 되
어 우리 어머니를 의녀로 삼게 되었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정말 친딸처
럼 귀여워해주었소. 그  후 우리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그 
역시 양주의 유명한 부잣집 공자였소.]
방이는 반신반의했다.
[원래 그랬었군요. 조금 전에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대의 어머니가 기
녀원의 하녀가 되어서는  수치도 모르고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쁜 
여인들을 시중드는 줄 알았어요.]
위소보는 어릴적부터 기녀원에서  자랐다. 그리고 한번도 자기어머니가 
수치를 모르는 나쁜 여인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방이의 그와 같은 말
을 듣고 그만 울화가 치밀어 속으로 생각했다.
(목왕부의 여인들은 뭐가 대단한가? 제기랄, 내가 볼 때 똑같이 수치도 
모르고 양심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원래 자기의 신세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이
렇게 되자 이제 그와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어 아예 터무니없는 말을 늘
어놓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주의 자기집이 얼마나 부자였는가를 과장해서 없는 말
을 있는 듯이 주워 섬겼다. 그러나 대청이 어떻고 하는 것은 역시 여춘
원의 광경을 되살려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이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듣다가 물었다.
[그대는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한다면 내가 듣고서 기뻐 기절을 하리라고 
했는데 바로 이러한 것인가요?]
위소보는 그녀에 의해서 냉수를 뒤집어쓴 느낌이 들었다.
자기가 어쩌구저쩌구 있는 말 없는  말로 과장을 하고 있는데 그와같은 
말에 대해서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만 거짓말하는 것도 
흥미를 잃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자기가  태감이 아니란 말을 하기도  싫어져서 아무렇게나 
말했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이오. 그대는 듣고보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려.]
방이는 담담하게 말했따.
[나는 좋아해요.]
그런데 그 말은 결코 솔직한 것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동북쪽에서 갑자기 육지가 나타났
다. 그들이 탄 배는 곧장 그 쪽으로 나아갔다.
방이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 저기는 어떤 곳일까?]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배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언덕
에는 수목이 울창했고  기다란 해변은 끝 닿는 곳을  볼 수가 없었으며 
희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다.
방이는 말했다.
[며칠 배를 탔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군요.  우리 위로 올라가 보는 것
이 좋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기뻐했다.
[좋소, 아마도 커다란 성인 것 같군. 이 섬에 무슨 재미나는 물건이 있
을지도 모르겠구려.]
방이는 사공의 우두머리를 배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이 섬이 무슨 이
름이냐고 물었으며 어떤 특산품이 나는가도 물었다.
그 사공은 말했다
[소저께 말씀드리지요. 이곳은 동해에서 유명한 신선도입니다. 이 섬에
는 선과가 나는데 사람이 먹으면  장생불로하게 된다는군요. 하지만 복
이 있는 사람만이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소저와 위상공께서는 위로 
올라가시어 한번 운수에 맡겨 보십시오.]
방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공의  우두머리가 선실을 나서자 나
직이 말했다.
[장생불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와 같은  나날은 신선보다 
더욱더 즐거워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내가 그대와 이 섬에서 한평생 살 수만 있다면 선과이니 뭐니 하는 것
은 상관없으니까 그저 그대가 영원히  나와 함께 있어만준다면 내가 바
로 신선이 되는 것일게요.]
방이는 몸을 위소보에게 기대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에요.]
두 사람은 조그만 배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발로 해변가의 가느
다란 모래를 딛자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정말 
선경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이는 말했다.
[섬이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위소보는 웃었다.
[사람은 살고 있지 않소. 그러나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선녀가 하인을 
데리고 섬으로 올라온 것은 사실이오.]
방이는 방긋 웃었다.
[아우, 그대는 나의 하인이고 나는 그대의 하녀에요.]
위소보는 하녀란 말을 듣자 쌍아가 생각나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뒤
따라오지 않았다. 이 며칠 동안 쌍아를  냉대한 것 같아 약간 마음속으
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1.비석에 새겨진 문자

그는 쌍아가 뒤따라오고 있으면 자기가  방이와 너무 다정하게 굴 수가 
없으니 따라오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숲속을 걸어갔고, 꽃향기는 더욱더 짙어졌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꽃의 향기는 대단한 걸. 설마하니 선화(仙花)란 말인가?"
그리고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풀밭 속에서 삭삭거리
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눈앞에 누런 그림자가 번뜩이는 가운데 일곱 
여덟 마리의 노란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독사들이 튀어나왔다.
"어이쿠!"
소리를 지르며 그는 방이를 잡고 몸을  돌려 되돌아 나오려고 했다. 그
런데 한 걸음 내딛게 되었을 때 눈앞에 다시 칠팔 마리의 뱀이 길을 막
는데 그 뱀들은 전신이 핏빛처럼  붉었고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쉭쉭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뱀들은 모두 세모꼴 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서운 독을 품
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방이는 위소보의 앞을 막고 칼을 휘두르며 부르짖었다.
"그대는 빨리 도망쳐요. 내가 독사를 맡겠어요."
위소보는 그렇게 의리를 돌보지 않고 혼자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비수를 뽑아들고는 말했다.
"이쪽으로 갑시다."
그리고 그는 방이를  끌고 비스듬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두 걸음을 
옮겼을까 말까 했을 때 목이 서늘해졌다. 한 마리 독사가 나무 위에 둥
지를 틀고 있다가  아래로 지나가는 그를 보고 내려와  덥석 그의 목을 
감아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는 혼비백산해서는 큰소리로 부르짖
었다. 방이는 재빨리 손으로 그 뱀을 떼어 내려고 했다. 위소보는 부르
짖었다.
"안 되오."
그런데 그 뱀은 고개를 돌리더니 대뜸 방이의 손가락을 물고서 놓아 주
지 않았다. 위소보는 급히 비수를 휘둘러 뱀을 두 토막냈다. 바로 이때
였다. 두 사람의 발과 다리에 독사들이 칭칭 감아들었다.
위소보는 비수를 휘둘러  독사들을 베려고 했다. 그  순간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어느덧 독사에게 물린 것이었다.
방이는 칼을 던지고 그를 얼싸안고는 울부짖었다.
"우리 부부가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되었군요."
위소보는 비수의 예리함을 믿었다. 그리하여  비수를 휘둘러 한 마리의 
독사를 다시 두  토막냈다. 그러나 숲속의 독사들은  점점더 많이 모여 
들었다.
두 사람이 허둥지둥 숲속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을 때 몸에는 이미 독사
들에게 일곱 여덟 군데를 물린 이후였다. 위소보는 그저 머리가 어지러
웠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저 멀리 한 척의 조그만 배가 큰배 쪽
으로 저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간격이 너무 멀었다. 방이가 
몇 번 불렀으나 배에 타고 있는 사공들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방이는위소보의 바짓 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몸을 구부려서는 그의 다리
에서 뱀에게 물린 곳의 독을 빨라내려고 했다. 위소보는 놀라 부르짖었
다.
"안...... 안 돼오."
돌연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누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뭐하러 이곳에 왔지?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세 명의  중년 사내가 그곳에 서 있
었다. 그는 황망히 부르짖었다.
"아저씨, 목숨을 살려주시오. 우리들은 뱀에게 물렸소이다."
한 명의 사내가 품속에서 약을 꺼내더니 입안에 넣고 질경질경 씹었다. 
그리고는 그 씹은 약을 위소보의 뱀에  물린 상처에 발라 주었다. 위소
보는 말했다.
"그대는..... 먼저 그녀를 치료해 주시오."
이때 위소보의 두 다리는 새까맣게 변해 있었으며 전혀 감각을 느낄 수
가 없었다. 방이는 약을 받아들더니 스스로 상처에다 약을 발랐다.
위소보는 말했다.
"누나......"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는 털썩 하니 뒤로 벌렁 쓰러지
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 그는 입안이  바짝 마른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팍에도 격렬한 아픔을 느꼈다. 참을 수 없어 그는 신음소리를 내었
다. 그러자 그 누가 입을 열었다.
"이제 됐다. 정신을 차렸구나."
위소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이 약그릇을 들고 그
의 입가로 가져왔다. 그 약은 매우 비릿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주저
하지 않고 마셨다.
입안에 들어간 그 약은 매우 썼다. 약을  다 마신 이후 그는 입을 열었
다.
"아저씨, 목숨을 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저의 누나는 아
무 일 없겠죠?"
그 사람은 말했다.
"다행히 일찍 구원을 해서 별일은  없소. 우리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
했더라면 두 사람은 목숨이 없어졌을  것이오. 그대들도 정말 대단하구
려. 어쩌다가 이 신선도까지 오게 되었소?"
위소보는 방이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
리고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말만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서야 자신이 침
대 위의 이부자리 속에 눕혀져 있으며 전신의 옷이 벗겨진 상태임을 깨
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다리는 아직도 마비된 감이 있었다.
그 사내의 얼굴은 매우 추악했다. 그리고  온 얼굴 가득히 흉터가 있었
다. 그러나 위소보고 볼 때 그 사내는 그야말로 목숨을 구해 준 보살처
럼 느껴졌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배의 사공이 이 섬에는 선과가 있어서 먹게 된다면 장생불로한다고 말
했소이다."
그 사내는 하하 하고 웃었다.
"만약 정말 선과가 있다면 그들 자신은 왜 따라오지 않았을까?"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어이쿠, 그 사공들이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구려. 배 뒤에는 또 
한 명의 동료가 있었는데 혹시...... 혹시 나쁜 자의 술수에 말려든 것
이 아니오? 아저씨, 방법을 강구해서 그녀를 구해 주시구려."
그 추악한 사내는 말했다.
"그 배는 사흘 전에 이미 떠났는데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이오?"
위소보는 이해할 수 없어 망연하게 말했다.
"사흘 전이라구요?"
그 추악한 사내는 말했다.
"그대는 이미 정신을  잃은지 사흘 낮 사흘 밤이  되었소. 아마 그대는 
모르고 계시겠지."
위소보는 쌍아를 생각했다. 그녀는 무공이  지극히 고강한 편이나 넓고 
넓은 바다에서 더군다나 홀몸으로 뭇악당들의 독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만 크게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 추악한 사내는 위로의 말을 하였다.
"지금은 조급하게 서둘러도 소용이 없소. 그대는 조섭이나 잘하도록 하
시오. 이 섬의 독사들은 대단하오. 적어도 이레 동안 약을 먹어야 독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외다."
그는 위소보의 성명을 물었으며 자기의 성을 반(潘)이라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서는 벽을 짚고 천천히 걸음을 옮
길 수 있게 되었다. 그 반가라는 추악한 사내는 그를 데리고 방이를 보
러 갔다. 원래 그녀는 따로  부녀자들이 돌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해져 있었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만나게 되자 기뻐하는 
한편 괴로워 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후 두  사람은 낮에는 한방에서 지냈다.  독사의 무서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을 때 하나같이 머리카락과 솜털까지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엿새째 되는 날 그 반가가 말했다.
"우리 섬의 의원인 육(陸)선생께서 바다로 나가셨다가 돌아오셨소이다. 
나는 이미 위형제를 돌봐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소이다."
위소보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얼마후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 표정
은 매우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위소보가 독사에게  물린 경과를 물어 
본 후 말했다.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몸에 웅황사약(雄黃蛇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사를 몸에 놔 두어도 그 독사는 즉시 도망을 칠 뿐 감히 사람
을 못한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원래 그랬었군요. 그렇기 때문에 반형 등은 두려워하지 않았군요."
육선생은 그의 상처를 살펴보더니 여섯 알의 알약을 꺼내서 말했다.
"세 알은 먹고  세 알은 그대의 동료에게 주도록  하시오. 매일 하나씩 
복용해야 하오."
위소보는 매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 백 냥의 은표를 꺼냈다.
"약소하나마 수고비입니다. 선생께서는 웃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육선생은 깜짝 놀라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토록 많이 주실  것 없소이다. 공자가 나에게 두  냥의 은자만 주면 
매우 고맙게 여길 것이외다."
그러나 위소보는 한사코 받으라고 하였다. 육선생은 부득이 그 돈을 받
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는 굳이 내리시는 것을 마다한다면  공손한 태도가 되지 못하
겠지요. 공자께서는  이곳에서 지내느라고 답답했을  것이외다. 오늘밤 
공자는 그 여자 분과 함께 우리집으로 가서 술을 한잔하시는 것이 어떻
겠소이까?"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해질 무렵 육선생은 뒤채의 대나무로  엮어 만든 교자를 위소보와 방이
에게 보내왔다. 이 대나무 교자라고 하는  것은 기실 대나무 의자 밑에
다가 두개의 기다란 대나무를 댄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앞뒤에서 사람
이 떠메는 것이었다.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구는 매우 간단해서 진짜 교자는 찾아볼 수
가 없었다.
두 채의 대나무 교자는 산 개울을  따라 나아갔다. 계곡의 물소리가 졸
졸거렸고 초목은 싱그러워 사람의 마음을 넓게 하고 또 정신을 말게 했
다. 그러나 위소보와  방이는 커다란 나무가 기다란  풀을 보기만 해도 
전율을 느꼈다.
혹시나 독사가 기어 나오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교자가 칠팔 마장 
가게 되었다. 그리고 세 칸의 대나무집 앞에서 멈추었다. 그 집의 벽이
나 천장 등은  하나같이 사발 만한 굵기의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것이었
다. 보기에 매우 견고했다.
강남이나 북경 땅에서 이와 같은 모양을  한 대나무 집은 일찌기 본 적
이 없었다.
육선생은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안으로  모셨다. 대청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삼십여 세 되는 부인이 나와 손님을 맞았다. 바로 육
선생의 처였다.
그 부인은 방이의 손을 잡고 매우 다정하게 굴었다. 육선생은 위소보를 
서재로 데려가 앉도록 했다. 서재의 대나무로 엮은 서가에는 적잖은 책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면의 벽에는 서화폭이 잔뜩 걸려 있었
다. 아마도 육의원은 매우 의젓한 선비인 것 같았다.
육선생은 입을 열었다.
"불초는 이 외딴 섬에서 살고있는  만큼 견문이 매우 좁습니다. 위공자
는 중원 땅에서 오셨고 또한 귀한  집 자제이니 눈이 높아 작품을 감상
함에 있어서 매우 탁월한 식견을  지녔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대가 보
기에 이 몇 폭의 서화는 전문가의 눈에 들만합니까?"
이 몇 마디  점잖은 말씨는 위소보로서 겨우 알 듯  말 듯한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벽의 서화폭을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보니 한 폭의 그림은 산수화였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의 그림에
는 백학과 한 마리의 거북이가 그러져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입을 열
었다.
"이 늙은 거북이는 꽤 재미있구려."
육선생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한폭의 두루말이를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위공자, 그대가 보기에 이 비문에서 탁본한 글은 어떻소이까?"
위소보는 그 글씨가 꾸불꾸불한 것이 마치 부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매우 좋습니다."
육선생은 또 다른 한 폭의 글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한폭은 진랑야태각석(秦瑯야台刻石)인데 위공자는 어떻다고 생각하
십니까?"
위소보는 그저 좋다고만 하면 약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
로저었다.
"이 한폭은 별로 좋지가 않군요."
육선생은 매우 엄숙해져서는 말했다.
"위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이 한폭의 글자의 약점이나 잘못된 
필획이 어디에 있는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잘못된 필획은 많지만 잘된 필획은 무척 적소이다."
그는 잘못된 필획이 있으면 자연 잘된 필 획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
와 같이 대답했다.
육선생은 갑자기 잘된 필획이라는 말을 듣자 약간 어리둥절하더니 고개
를 끄덕였다.
"정말 고명하십니다. 고명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서쪽에 있는 한 폭의 초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한 폭의 초서를 위공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잠시 바라본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몇 자의 글씨는 먹이 말랐는데도 먹을 짓지 않았구려. 음, 저 가느
다란 획을 질질 끄는 것은 깨끗이 보이지 않습니다."
육선생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초서는 먹을 한번 찍어 쭉
쭉 내리쓰며 획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먹물이 잔뜩 묻은 데와 제
대로 먹물이 묻지 않은 데가 있어 상호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그리고 먹물이 짙은 데와 옅은 데가 있는 것도 하나의 음양조화를 꾀한
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이  서법에는 여러 가지의 따지는 법칙이 
많았는데 그러한 법칙을 위소보는 알 턱이 없었다. 따라서 위소보가 몇 
마디의 말을 하게 되자 그만 밑천을 드러내고 만 셈이 되었다.
육선생은 다시 한 폭의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한 폭은 모두 다  갑골고문(甲骨古文)이외다. 이 형제는 학문이 얕
아서 한자도 모르니 공자께서 지도해 주시죠?"
위소보는 종이의  글자들이 하나같이 올챙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오대산 금수봉 보제사에서 본  비석에 새겨진 글자와 같다는 생각
이 들었다. 따라서  그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마가  있어서 입을 열었
다.
"이 몇 자는 내가 알고 있소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글귀이지요 '신룡
교의 홍교주는  만년이 가더라고 늙지 않으며  선복(仙福)을 누리리라. 
신통력이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같이 높게 되리라.'"
육선생은 얼굴 가득히 기쁜 빛을 띠우고 입을 열었다.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 그대는 과연 이 글자를 알고 있었구려."
그가 무척 기뻐서 말하는 소리까지 떨리는 것을 보고 위소보는 대뜸 의
심이 들었다.
(내가 이 몇 자를 알고 있는데  그는 어째서 이토록 기뻐할까? 혹시 그 
역시  신룡교의 사람이  아닐까? 아,  야단났다.  뱀..... 뱀  영사(靈
蛇)..... 그렇다면 이곳은 신룡도(神龍島)가 아닐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불쑥 물었다.
"반두타는 어디에 있소?"
육선생은 깜짝 놀라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는..... 그대는..... 이미 알고 있었소?"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육선생은 점잖
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모두 알고 있었다며 오히려 더 잘되었소."
그리고 그는 책상가로 가서 먹을 갈고 종이를 펴더니 말했다.
"아무쪼록 그대는 이 올챙이 같은 고문을 한 자 한 자 옮겨 써 주시오. 
어느 글자가 홍 자이고 어느 글자가 교 자인지 말이외다."
그리고 붓을 들고 먹을 듬뿍 찍더니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위소보가 
붓을 들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목숨을 빼앗는 일만큼 난처한 노릇이
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육선생의 안색이 일그러
져 있는 것을 보고 감히 그  뜻을 어길 수 없어 체면불구하고 책상가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쳐 붓을 쥐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손이 주먹을 쥐는 
꼴이 되었다. 그가  붓을 들게 되었을 때 마치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듯 듯했는데 그래도 그 모습은 어느  정도 글쓰는 사람이 붓을 잡는 법
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주먹을 쥐게 되자 마치 돼지를 잡을 때 
칼을 잡는 법이나 망치를 들고 못을 박을 때의 꼴이 다를 바가 없었다. 
천하에 이와 같이 붓을 잡는 꼴은 없는 것이다.
육선생은 더욱더 노기를 얼굴에 떠올렸다. 그러나 억지로 화를 참는 듯
한 어조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먼저 자기의 이름부터 써 보시오."
위소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붓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먹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무 글자도 모르오. 개방귀 같은  글자도 쓸 줄 모른단 말이오. 
뭐가 홍교주의 수명이 하늘처럼 높더란 말이오. 나는 그저 나오는 대로 
씨부려서 그 고약한 두타를 속였던 것이오. 그대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한다면 내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오. 이제 
그대는 나를 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내가 눈살 한번 찌푸린다
면 호걸이 아니외다."
육선생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아무 글자도 모르오?"
위소보는 말했다.
"모르오. 그대의 거북이의 거 자도 모르고 그대는 후레자식이라는 후자
도 모르오."
그는 들통이 나게 되자 그만 수치가  분노로 변하게 되었다. 어쨌든 간
에 뱀의 섬에 끌려온 이 마당에 죽어 살아 남지 못하리라는 생각과, 이
렇게 된 마당에 빌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먼저 입으로 득을 보
려고 하였다.
육선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붓을  들고 종이에다가 올챙이 문자를 쓰
고 물었다.
"이게 무슨 글자요?"
위소보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모른다고 했으면 모르는  것이오. 설마 거짓말일 턱
이 있겠소?"
육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원래 반두타가 그대의 속임수에 놀아났군. 그러나 이 일은 이미 
교주에게 알려졌단 말이야. 네 이 좀도적 같은 녀석!"
그러더니 벌떡 몸을 일으켜서 위소보의 목을 두 손으로 잡더니 점점 조
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를 갈면서 말했다.
"너는 우리로 하여금 교주님을 속이는 죄를 짓게 했다. 이제 모든 사람
들은 너 때문에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단 말이다. 모두 함께 죽는 것
이 그 무궁무진한 혹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한 것이다."
위소보는 그가 목을 조르게 됨에 따라 숨을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온 
얼굴은 시뻘겋다 못해 새파래졌으며 혀를 내밀었다.
육선생은 자기가 다시 손에 조금 더  힘을 쓰게 된다면 이 어린애가 죽
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일이 매우 중대하다
는 사실을 상기한 그는 속으로 놀라  손을 떼어 내고는 두 손으로 밀어 
버렸다. 그 바람에 위소보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육선생은 그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더니 화가 난 태도로 방을 나가고 말
았다.
한참 후에야 위소보는 놀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몸을 일으킬 수 있
었다. 후레자식이니 좀도적이니  하는 욕을 수백 번이나  했다. 그러나 
이 독사도에서는 도망갈 데도 없었다. 만약 수풀이나 숲속으로 몸을 숨
겼다가는 더욱더 빨리 죽음을 당하게 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한 그는 문가로 가서 문을 밀어 보았다. 그 대나
무 문은 바깥 쪽에서 걸어잠근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바
라보았다. 창 아래쪽은 깊은 골짜기라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 없는 형편
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서화폭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까짓 것들이 뭐가 좋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는 땅에  떨어진 붓을 집어들고 먹을 듬뿍  묻혀서는 한 폭의 
서화폭에다가 큰 거북이니 작은 거북이니 수없이 그려댔다.
수십 마리의 거북이를 그려대자 그것도  피곤해졌다. 그는 붓을 땅바닥
에 내던지고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잠시 후에는 그만 잠이 들고 말
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캄캄해져 있었는데 그 누구도 달
려오는 기척이 없었다. 그리고 뱃속에서는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육가라는 늙은 자라가 나를 굶어 죽게 할 모양이군.)
잠시 후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틈으로  등불 빛이 새어 
들어왔다. 곧이어 대나무 문이 열리면서  육선생이 촛불을 들고 방안으
로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위소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그
의 얼굴에 희노애락의  표정이 없는 것을 보고 속으로  더럭 겁이 나는 
것을 느꼈다.
육선생은 촛대를 탁자 위에 놓더니 흘낏 하니 벽에 걸려 있는 서화폭들
에 모조리 다 꼴같지 않게 먹칠을  해 놓은 사실을 발견하고 그만 미친 
듯한 노기가 끓어올라 부르짖었다.
"너는...... 너는......"
그리고 손을 쳐들고 내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손은 허공에서 주춤했
으며 차마 내려치지를 못하는 모양이었다.
끝내 그는 노기를 참고 말했다.
"너는...... 너는......"
그 소리는 목에 걸려서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위소보는 웃었다.
"어떠시오? 내가 그린 것이 그럴싸하오?"
육선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맥없이 주저앉더니 말했다.
"좋아, 잘 그렸어."

그가 때리려다가 그만두고 오히려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 말에 위소
보는 천만뜻밖이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 표정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마음속을 지극히 아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와 같은 표정을 대하자 그는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육선생..... 미.....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의  그림을 마구 못쓰게 망
가뜨렸군요."
육선생은 고개를 가로저음 입을 열었다.
"괜..... 괜찮소."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안더니  탁자 위에 엎드려서는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대가 배가 고플 것이니 밥을 먹은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합시
다."
어느덧 객당의 탁자위에는 네 가지의 찬과 국그릇이 놓여 있었다. 닭고
기도 있었고 물고기도 있는 것이 매우 풍성한 편이었다. 곧이어 방이가 
육부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 네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위
소보는 속으로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혹시 내가 수십  마리의 자라를 그렸던 것이  좋았기 때문에 육선생은 
기뻐서 나에게 한턱 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정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입을 열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육선생
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밝아졌다 하는 것을 보고  혹시 그이 비위를 
거슬릴까봐 두려웠고 더군다나 밥을  배불리 먹지도 못했는데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물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즉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밥만 배불리 먹어 치웠다.
식사가 끝나자 육선생은 그를 데리고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육선생은 땅바닥에서 붓을 들더니 종이에다가 위소보라는 세 글자를 써
서는 말했다.
"이것이 그대의 이름이오. 그대는 쓸 줄 아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나를 알아 보지만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없소이다. 그런데 어떻게 
쓴단 말이오?"
육 선생은 음  하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물끄러미 생각에 
잠겨 있더니 외손에 촛대를 들고 그  올챙이 글씨가 있는 곳 앞으로 다
가섰다.
그리고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글자 하나를 가리키면
서 입으로 중얼중얼 무슨 소리를 뇌까렸다.
그러더니 책상 곁으로 다가와 한 장의 백지를 꺼내서 펼치고는 글을 쓰
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올챙이  모양의 갑골문자의 자수를 헤
아리더니 다시 자기가 종이에 쓴 글자수를 헤아렸다.
그리고 다시 종이 위에 글자를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쳤다. 그런 연
후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그 올챙이 모양의 글자를 보며 연신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저 세글자가 같으니 이 두글자도  마찬가지어야만이 전혀 빈틈이 없게 
되고 사리에 맞는 일이아니겠는가."
한참동안 생각하고 그는 다시 종이  위에 글씨를 이리저리 고치더니 한
참 후에야 기쁜 듯 말했다.
"됐다."
위소보는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배불
리 밥을 먹었다 싶어서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때 육선생은 다시 한장의 
백지를 펴놓고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는 글씨를 느리게 썼다. 다  쓴 후에 고개를 흔들거리며 나직
이 읽었다. 위소보는 신룡교니 홍교주니  수명이 하늘처럼 높다느니 등
등의 어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후에는 제일권이 어느 곳 어느 
산에 있고 제이권이 어느 곳 어느 산에 있다는 글을 읽었다.
이제서야 그는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말은 자신이 보제
사에서 반두타에게 나오는 대로 지껄였던  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반
두타는 그 말을 정말로 믿고 돌아와 크게 소문을 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날 반두타는 나에게 한사코 신룡교로 와서는 홍교주를 만나자고 했
는데 나는 막무가내로 싫다고 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공교롭게도 우리
가 탄 배가 다시 이곳으로 들이닥치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들통이 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홍교주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야. 그렇게 된다
면 그는 크게 화를 낼 것이고  어쩌면 방이 누나와 나를 뱀구덩이에 던
져 수천 수만  마리의 독사들이 뼈도 남지 않도록  먹어 치울지도 모른
다.)
억수로 많은 독사들이 몸을 칭칭 감는 생각을 하자 소름이 쪽쪽 끼치는 
것 같았다.
육선생은 몸을 돌리더니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위공자, 그대가 비석의 갑골문자를 안다는 것은 실로 기쁘고도 축하할 
일이외다. 또한 본교 홍교주의 하늘에  닿을 만큼 큰 복이로소이다. 그
렇기 때문에 하늘은 그대와 같은 신동을 내려 갑골문을 이해할 수 있게 
했소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롱하지 마시오. 내가 무슨 올챙이 글을 알고 개구리 글을 안단 말이
오. 나는 올챙이 글은 커녕  두꺼비의 글자도 모르오. 내가 막무가내로 
거짓말을 한 것은 그 비쩍 마른 못된 두타를 속이자는 것이었소.)
육선생은 웃었다.
"위공자, 너무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이것은  공자가 암송한 비석에 
새겨져 있던 글이외다. 내가 한번 베껴  쓴 것이니 혹시 잘못되지 않았
는지 공자께서 가르침을 주시오."
그리고 그는 읽기 시작했다.

"대당나라 정관이년  시월 갑자일(十月甲子日)  특별히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 우영군대장군(右領軍大將軍)  숙국공(宿國公) 정지절(程知
節), 광록대부(光祿大夫) 병부상서(兵部尙書)  조국공(曹國公) 이훈(李
勛), 서주도독(徐州都督) 호국공(胡國公)  진숙보(秦叔寶)로 하여금 오
대산 금수봉에서 회합을  가지게 한 바 이때 동녘  하늘에 눈부신 붉은 
빛이 빛나더니 말대만한  금빛 글자가 구름 가에  드러나더라. 그 글은 
다음과 같더라. '천  년 이잔 뒤 대청나라가  세워지리라. 동쪽에 섬이 
있어 이름은 신룡이라 하더라. 교주  홍모는 천은을 받은 몸이더라. 위
엄과 영기를 함께 받으니 위세와 능력이 놀랍더라. 요마를 항복 받으니 
그의 존재는 떠오르는 해와 같더라. 아래 사람들이 보좌하여 옛것을 물
리치고 새것을 채용하더라. 줄기 줄기 뻗은 상서로운 기운은 온 누리에 
뻗치더라. 신복을 영원히 누릴 것이며 온 세상이 통틀어 존경할 것이니
라. 수명은 하늘처럼 높다랗고 문무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자하고 거
룩하더라.' 곧 이어 하늘가에는 푸른 글자가  다시 나타났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더라. '하늘은 홍모에게 사십이장경  여덟 권을 내리노라. 제
일권은 하남성 복우산(伏牛山) 탕마사(蕩魔寺)에 있으며 제이권은 산서
성 필가산(筆架山)  천심암(天心庵)에 잇으며 제삼권은  사천성 청성산
(靑城山) 능소관(凌소觀)에 있으며 제사권은  하남성 숭산 소림사에 있
으며 제오권은 호북성 무당산  진무관(眞武觀)에 있으며 제육권은 사천 
주변의 공동산(공동山) 가엽사(迦葉寺)에 있으며 제칠권은 운남 곤명의 
평서왕부에 있더라.' 이정 등은 삼가  하늘이 내린 글을 베껴서 비석에 
조각하여 후세 사람에게 전하노라."

육선생은 높고 낮게 억양을 길게 빼어 가며 다 일고 나더니 물었다.
"잘못 읽지 않았소?"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은 당나라의 비석인데 어떻게 후세에  평서와 오삼계가 있다는 것
을 안단 말이오?"
육선생은 말했다.
"상제("上帝)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와  모르는 것이 없소이다. 후세에 
홍교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자연 오삼계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속으로 우스운 것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소."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당신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군.)
육선생은 말했다.
"이 비석의 글자를 한 자라도 잘못 읽어서는 안 되오. 위공자가 천부적
인 총명함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볼 때에 그것은 성령(聖靈)이 감동하
여 이 올챙이  글자를 알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하오.  이후 창졸 지간에 
잘못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위공자가 이 한편의 비
석에 새겨진 글을  외워 두는 것이 제일  좋겠소. 그리하여 홍교주께서 
부르실 적에 물 흐르듯 외운다면 홍교주는 기뻐서 자연 크게 상을 내릴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두 눈을 번뜩거리는 그 순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
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그랬었구려. 원래 그랬었구려."
반두타와 육선생은 홍교주에게 어떤 어린애가 비석의 문자를 알아 보았
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분명했다. 이에 홍교주는 반드시 불러서 물어 보
겠노라고 한 모양이었다. 헌데 알고 보니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닌가. 육
선생은 혹시 교주가 탓할까봐 거짓으로 비석의 글을 만들어서는 교주를 
속이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육선생이 말했다.
"내가 한마디를 읽을  터이니 위공자는 따라서 읽도록  하시오. 어쨌든 
간에 한자도 틀리지  않도록 해야 하오이다. '대당나라  정관이년 시월 
갑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위소보가  읽지 않으려 해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함께 공모를 해서 홍교주를 우롱하는 일을 퍽이나 재
미있을 것 같아 따라 읽었다. 그는 본래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
갔다. 수백 자가 되는 말들을 한번 들은 이후 다시 옮겨 외는데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려면 그야말로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같았다. 이짧
은 글은 수백  자에 불과했으나 모든 귀절들이  위소보에게는 난잡하기 
그지 없었고 그  뜻을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육선생이 한번 또 
한번 읽어 내려가는 것에 따라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육선생은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가르쳐 주었다.  결국 삼십여 번을 읽은 후
에야 한 자도 틀림없이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날 밤 그는 육선생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이튿날 그는 다시 외웠다. 
육선생은 그가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그러더
니 종이와 붓을  꺼내서는 한 자 한 자 올챙이  글자를 썼다. 그리고는 
그에게 알아보도록 가르쳤다.
어느 것이 당 자이고 어느 것이  정관할 때의 정 자인지를 가르치는 것
이었다. 이렇게  되자 위소보로서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이 올챙이 글은  비뚤비뚤한 것이 그 모양이 비슷해서 
하나 하나 분별하고 또한 써 낸다는  것은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힘 들
었으며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더군다나 그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성미인데 어찌 마음을 안정시키고  올챙이 글을 배울 수 있겠는
가.
위소보가 울상을 지었기 때문에 육선생  역시 불안스럽게 여겼다. 육선
생은 이때 그 비석의 문장이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
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반두타가 탁본해  온 자수를 헤아려 보고는 달
리 한편의 문장을 ㅁ나들어 억지로 끼어 맞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저 자수가 같도록  만들어 이  글이 홍교주의 환심을 샀으면 하고 바랬
을 뿐이지 원래의 비석에 새겨져 있는 그의 내용이 무엇인지 따질 겨를
이 없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억지ㅗ 맞추고 보니 틀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
다. 대당나라 정관 이년 할 때 이  자는 바로 여섯 번째에 놓여 있었으
나 비석의 원래 새겨져 있는 여섯 번째 글자의 획은 열 여덟 획이나 되
었다. 아무리 따져  본다고 하더라도 열 여덟획이나  되는 글을 이자로 
읽는 다는 것은 우격다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의 글자 정관(貞觀)할 때 관자에 해당하는 글은 삼 획
밖에 되지 않아 그야말로 억지로 꿰어맞춘 것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
러나 동쪽을 살피면  서쪽이 무너지고 서쪽을 살피면  동쪽이 무너지는 
꼴이었다. 육선생이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하더라도 창졸간에 전혀 빈
틈없는 문장은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홍교주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에 이 가짜 문장으로는 심중팔구 
홍교주의 눈을 속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큰 화가 미치게 되었으
니 부득불 억지로  끼어 맞추어 잠시라도 얼렁뚱땅  넘기자는 생각이었
다. 따라서 이후 일어날 화근은 두고 보는 수밖에 없는 형평이었다.
이 날 육선생은 위소보에게 글자를 가르쳤는데 그 진전은 매우 느렸다. 
정오 무렵이 되어을 때 겨우 네 개의  올챙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올채이 글은 본래 이상야릇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위소보가 그
리 듯 쓴글은 보기 흉칙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편
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정자로 쓴다면 한번도 글을  써 보지 못한 어린애가 쓴 것
이라 그 누가 보더라도 진짜와 가짜가 즉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오후에  석자를 배우고 저녁무렵에는 두자를  익혔다. 그러니까 
모두 아홉자를 익힌 것이다.
위소보는 끊임없이 떠들면서  몇 번이나 붓을 던지며  배우지 않겠다고 
했다. 육선생은 위협을  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 최후로는 
방이로 하여금 옆에 앉아 지켜보도록  하자 위소보는 그제서야 겨우 참
을성있게 배워 갔다.
육선생은 한편으로는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
다. 홍교주가 수시로 사람을 보내 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다. 만약 한편의 문장을 완전하게 배우기 전에 교주에게 불려가다면 위
소보의 머리가 달아나는 것은 뻔할  뿐만 아니라 자기와 자기의 전가족
도 함께 죽음을 당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조금도 초조하게 서두를 수가 없었다. 위소보가 좀더 
빨리 배웠으면 하고 바라는 만큼 위소보는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더디
었다.
뇌리에 그저 집어넣다시피한 그 많은  올챙이 글이 정말 그 뇌리속에서 
마구 몸부림이라도 치고 있는 양 정말 제대로 구분을 하지 못했다.
며칠을 배운 결과 위소보가 독사에게 물린 상처는 모두 다 낫게 되었으
나 겨우 알수 있게 된 올챙이 글은 이삼십 자에 불과했다. 그것도 확실
하지 못해 열 자 가운데 종종 일곱 여덟 글자를 틀리는 것이었다.
육선생이 정히 번뇌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홀연  문밖에서 반두타의 
소리가 들려왔다.
"육선생, 교주께서 위공자를 부르십니다."
육선생은 그만 안색이  흙빛이 되어서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바람에 
먹물을 잔뜩 묻혔던 붓이 그의 앞섭자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곧이어 키가 무척 크고 지극히 마른 사람이 서재로 걸어들어왔다. 바로 
반두타였다. 위소보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존자, 어째서 오늘에야 나를 보러 오는 것이오? 나느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소."
반두타는 육선생의 안색을 보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위소보가 
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나는 마땅히 저 녀석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려야 하는데 그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  큰 공을 세워 자기 자신을 지
키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더욱더 빨리 죽게 되었구려."
육선생은 냉소했다.
"그대는 기껏해야 혼자  몸이지만 이 육가는 여덟  명의 식구가 모조리 
그대를 따라 죽게 되었소."
반두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엇다.
"모두의 운명이 그러할지니 이것이야말로 액운이라  할 수밖에 더 있겠
소? 설사 이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교주는 우리들로 하여금 며칠 더 살
도록 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오."
육선생은 위소보를 한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들과 같은 자들이 우리가 늙어서 마땅히  죽을 때가 왔다고 하니 또 
별수가 있겠소?"
그 어조에는 불평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반두타는 한숨을 내쉬며 말
했다.
"나 또한 그의 나이가 어린 것만 믿고 교주의 환심을 사고자 ㅎ뒤 돌볼 
겨를도 없이 보고를 했구려. 아!"
육선생은 위소보를 한번 노려보더니 말했다.
"나이가 어려도 너무나 어리단 말이오."
반두타는 말했다.
"육형,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그대와 나는  함께 죽거나 살도록 
합시다. 사내 대장부가 죽으면 죽었지 뭐가 또 두려울 게 있겠소?"
위소보는 손뼉을 쳤다.
"반존자의 그 말이 옳소이다. 정말  영웅호걸다운 말이오. 사실 두려울 
게 뭐요. 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대들은 더욱더 두려워할 필요가 없
소이다."
"무지한 녀석 같으니, 정말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 
모르는군. 그대가 두려움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때가 늦을껄."
그리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 있더니 말했다.
"반존자는 잠깐만 기다리시오.  나는 안사람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오리다."
잠시 후 육선생은 다시 서재로 되돌아왔다. 얼굴에는 눈물을 흘린 자욱
이 있었다.
반두타는 말했다.
"육형, 그대의 승천환(升天丸) 알약을 나에게도 한알 주시구려."
육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자기로  된 병을 꺼냈다. 그리고 
병마개를 뽑더니 한알의 붉은 알약을 꺼내 그에게 주며 말했다.
"이 알약을 입에  넘기기만 하면 숨이 끊어지게 되오.  그러니  최후의 
고비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반두타는 받아서 쓰디쓰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반두타는 자기 목숨을 가볍게 보지는 않소. 이토록 빨리 승천
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이다."
위소보는 오대산 위에서 반두타가 소림사 십팔나한을 상대로 싸우던 것
을 본적이있었다. 그대는 위풍이 늠름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그가 아때 
독약을 얻는 것을   보고는 홍교주가 죄를 물으려고  할 때 자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때 서야 위소보는 사태가 심각하다
는 것을 느끼고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2. 또 하나의 미녀

육선생은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는데 여전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위소
보는 그가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반 걸음도 ㄴ춤이 없이 반두타와 어
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가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이 문약한 서생이 원래
는 몸에 상승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입을 열었다.
"반존자, 육선생, 그대들의 무공이 ㅇ록 고강한데 왜 ㄱ록 홍교주를 두
려워하시오? 그대들....."
반두타는 오른손을 내밀어 그의 입을 막고 노해 부르짖었다.
"이 신룡도에서 감히 그토록 대역무도한  말을 하다니 살기가 귀찮아진 
것이오?"
위소보는 그가 그와 같이 입을 틀어막자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고 속으
로 생각했따.
(제기랄, 홍교주를 이토록 무서워하면서도  자칭 영웅이라니 사람 웃기
는군.)
세 사람은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나
무 위와 풀밭 위 그리고 길에는 여기 ㄹ한 마리 저기 한 마리 독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들 세 살마에게  전혀 달려드는 기색이 
없었다.
두개의 산비탈을 넘고 고개를 쳐들자 산봉우리 위에 몇 채의 커다란 집
을 볼 수가 있었다. 반두타는 위소보를  안고서 곧장 봉우리 위로 올라
갔다.
이때 산길은 매우 협소하여 육선생은  반두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
아갈 수가 없어  일장 남짓 떨어져서 올라오고  있었다. 반두타는 입을 
위소보의 귀에 대고 갖다대더니 나직이 물었다.
"너의 그 사십이장경은 어찌 되었는냐?"
위소보는 말했다.
"나의 몸에 있지도 않소. 나의 몸에는 없소."
반두타는 말했다.
"그건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그대의 몸을  여러번 뒤졌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했지?"
위소보는 말했다.
"소림사의 십팔나항니  경서를 가져갔으니 자연 그들의  방장에게 건네 
주지 않았겠소."
그는 이 비쩍  마른 두타가 소림사 십팔나한을 이길  수 없으니 경서가 
소림방장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게  되면 자연히 가서 달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사 감히 간다고 하더라도  소림사의 승려들에게 
쫓겨나고 말 것이리라.
그 날 반두타는 경서를 친히 징심화상의 손에 건네 주었기 때문에 위소
보의 그 한마디 말에 조금도 의혹을 갖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나중에 교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절대로 그 일을 들먹여서는 안 되오. 
그렇지 않으면 교주가 그대에게 경서를 내놓으라고 강요하게 될 것이고 
그대가 내놓지 못하면  교주 어르신께서는 그대를 독사굴에  던지고 말 
것이오."
위소보는 그의 어조에  두려운 빛이 서려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
다. 더군다나 육선생에게도  그와 같은 사실을 들려  주는 것을 겁내고 
있음을 짐작하고 말했다.
"그대는 분명히 경서를 손에 넣었는데도  소림사 화상에게 되돌려 주었
소. 그와 같은 사실을 교주가 알게  된다면 그대를 독사굴에 반드시 던
져 보리고 말걸. 흥! 설사 잠시동안 그대를 벌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대를 소림사로 보내 경서를 빼앗아 오라고 한다면 그대는 꼴좋게 될 것
이오."
반두타는 몸을 흠칫하더니 잠자코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형제들끼리 거래를 합시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대는 나를 돌봐 
주시오. 나 역시 그대를 돌봐 주겠소.  그렇지 않을 때 모두 제 갈길을 
가는 것이고 함께 죽는 것이외다."
육선생이 갑자기 등뒤에서 그 말을 받아 물었다.
"뭐가 제 갈길을 가는 것익 함께 죽는다는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이 복이 있으면 같이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이겨 
내자는 것죠."
그리고 그는 지금의 처지가 정말 어렵게 되었으나 두 고수를 자기 쪽에 
끌어 넣는다면 어느 정도 의지가 된다고 생각했다.
반두타와 육선생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일제
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봉우리 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몸에 청
의를 걸친 네 명의 젊은이가서로 팔을 끼고 다가왔다. 젊은이들의 등에
는 한 자루의 장검이 메여 있었다.
왼쪽에 선 사람이 물었다.
"반두타, 이 어린애를 어쩌자는 것이오."
반두타는 위소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교주께서 그를 데려오라는 분부를 내리셨소."
이때 서쪽에 있던 세 명의 홍의 소녀가 희희덕거리며 다가왔다. 그녀들 
역시 장검을 메고 있었는데 세 사람을 발견하더니 가까이 왔다.
한 소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두타, 이 어린애는 그대의 사생아인가요?"
그리고 위소보의 뺨을 한번 어루만졌다.
반두타는 말했다.
"소저는 우스갯소리도 잘하시는군. 이  아이는 교주 어르신께서 특별히 
분부를 내려서 불러들인 아이외다."
다른 한 둥근 얼굴의 소녀가 위소보의 오른쪽 뺨을 꼬집더니 웃으며 말
했다.
"이 꼬마의 얼굴을 보니 반두타의 사생아가 틀림없구만. 그대는 변명을 
해도 소용없어요."
위소보는 대노해서 외쳤다.
"나는 그대의 사생아요.  그대가 반두타와 사사로이 정을  통해서 나를 
낳은 것이지."
이렇게 되자 소년소녀들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껄껄 소리내
어 웃었다. 그 둥근 얼굴의 소녀는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뾰로통한 음성
으로 말했다.
"이 꼬마야, 죽고 싶어?"
그리곤 손을 뻗쳐서는 때리려고 했다.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피해 버렸
다. 이때 다시 십여 명의 젊은 남녀가 기척을 듣고 달려오더니 그 둥근 
얼굴의 소녀를 조롱했다. 그 소녀는  부끄럽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어서 
외발을 들더니 그냥 위소보의 엉덩이를 걷어 찼다.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엄마, 왜 아들을 때리는 거에요?"
뭇소년들은 더욱더 요란하게 웃었다.
별안간 종소리가 쾅쾅쾅하고  울려퍼졌다. 뭇사람들은 즉시 조용해져서
는 귀를 기울였다. 이십여 명의 젊은  남녀들은 몸을 돌려 대나무집 쪽
으로 달려갔다.
반두타는 말했다.
"교주께서 여러 사람들을 모아서 훈시를 하려고 하는군."
그리고 위소보를 향해서 말했다.
"나중에 교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터무니 없는 소리르 지껄이지 않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그의 안색이 우울한 것과 또한 그들 젊은 남녀들이 그에게 퍽
이나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았던 터라 속으로 반두타의 무공이 무척 고
강한데 어째서 열 몇 살밖에 되지 않는 꼬마들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하
고 생각했다. 따라서 약간 그를 가엾게  여기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
덕여 보였다.
이때 사면팔방에서 사람들이  대나무집으로 걸어들어갔다. 반두타와 육
선생은 위소보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기나긴 복도록 기나자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대청이 나타났다. 이 대청
은 너무나 넓어서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도 들어 설  수 있을 것 같았
다. 위소보는 북경의 황궁의 황궁에서 오랫  동안 살았기 때문에 제 아
무리 큰 대청이나  객당을 보더라도 눈에 차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대청은 너무나 엄청나게 커서  자기 자신도 포르게 움츠러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이때 한때의 소년과 소녀들이 다섯 가지의 색이 다른 옷을 나누어 입고 
다섯 곳에 나누어서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청, 백, 흑, 황, 네 가
지의 옷을 입은 사람은 모두 소년이었다.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사람
은 모두가 소녀들이었다. 각기 등에는 장검을 메고 있었는데 수백 명이 
되었다.
대청 끝에는 나란히 두 개의 대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비
단 방석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양쪽으로는 수십 명이 늘어서 있었는데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나이가 젊은  사람은 삼십여 세 정도 되
었고 늙은 사람은 이미 육칠십 세 되었으며 몸에는 무기가 없었다.
대청에는 오륙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기림소리마저 들을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굉장히 거드름을 피우는군. 황제가 조정에 남기시라도 했나?)
잠시 후 종소리가 아홉 번이  울려퍼지고 안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귀신 같은 교주가 나올 모양이군.)
그런데 나선 사람은 열 명의 사내들이었다. 모두 다 삼십 세 정도 나이
인데 그들의 옷빛깔도 오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들은 두 의자의 옆
에 섰다. 한쪽에  다섯 사람씩이었다. 다시 잠시 후  종소리가 쾅 하며 
크게 울려펴졌다.
곧이어 수백 개나 되는 은방울이 일제히  소리르 내는 것 같았다. 그러
자 대청에 모여 있던 뭇사람들은 일제히 엎드리며 부르짖었다.
"교주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릴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으십니다."
위소보는 부득이 꿇어 엎드릴 수밖에 없었따. 그리고 몰래 바라보았다. 
그러자 일남 일녀가 안쪽에서 걸어나와  의자에 앉았다. 방울소리가 다
시 울려 퍼지자 뭇사람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 앉은 남자는 나이가 무척 많았다. 허연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워
져 있었고 얼굴에는 상처와 주름투성이로서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위
소보는 이남자가 바로 교주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젊은 부인이었다.  그 모양을 보건대 이십 삼사 
세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빙그레 웃음을 띠우자 교태가 뚝뚝 
떨어지는데 화사하고  아름답기 이를데 없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몰래 
칭찬을 했다.
(햐! 정말 멋지구나. 이 여자는 방이 누나 보다도 더욱더 아름답다. 황
궁이나 여춘원에서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은 보지 못했다.)
왼쪽의 청의 사내가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손에 푸른 종이를 들고 
소리 높이 읊었다.
"삼가 인자한 은혜를 세상에 두루 비추고 위세를 사방에 떨친 홍교주의 
보배 같은 가르침을 듣도록 합시다. '뭇 뜻이 한마음을 이루면 성을 이
룰 수 있고 견줄 수 없이 위세를 천하에 떨치리라.'"
대청의 뭇사람들은 일제히 읊었다.
"뭇 뜻이 한마음을 이루면 성을 이룰 수  있고 견줄 수 없이 위세를 천
하에 떨치리라."
위소보는 눈알을 굴리면서 그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데 뭇사람들이 그토록 소리내어 읊자 그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게 되
었다.
그 청의 사내는 계속해서 읊었다.
"교주의 선복은 하늘처럼 높으며 교도들의  충성은 머리 위에서 빛나더
라. 교주께서는 만 년동안이나 배를 부리니 바람을 안고서 파도를 깨치
며 영웅임을 나타내더라. 신룡이 하늘을  나니 일제히 우러러보고 교주
의 명성과 위세느 팔방을 뒤덮더라.  하나같이 교주를 위해 태어났으며 
모든 사람이 교주를 위해 죽을 것이로다. 교주의 명령을 모조리 받들지
니 교주는 해와 달의 빛과 같더라."
그 사내가 한마디를 읊을 때마다  뭇사람들은 따라서 한마디씩 읊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홍교주의 보배 같은 가르침이야?  큰소리만 치는군. 우리 천지회
의 암호로 만들어진 시만 하더라도 이것보다는 훨씬 듣기가 좋다.)
뭇사람들은 모두 읊고 나자 일제히 부르짖었다.
"교주의 보배 같은 가르침을 시시각각 마음속에 새기고 있으니 적을 제
압하여 공을 세우는 등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
그 소년소녀들도 힘주어 소리를 외치고있었다. 홍교주의 추악한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그옆의 아름다운 여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따라 읊었다.
뭇사람들이 모두 읊고 나자 대청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리며  사람들을 훑어 
보았다. 그러더니 얼굴에 여전히 웃음을 띠우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룡문(黑龍門) 장문사(掌門使), 오늘 기한이  다 되었으니 그대는 경
서를 바치도록 하시오."
그녀의 음성은 맑고 간드러져 듣기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동시에 그녀
는 왼손을 내밀고 손바닥을 펼쳤다.
위소보가 멀리서 보니 그녀의 손바닥은  정말 백옥으로 깍은 것처럼 보
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즉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 여인이 내 마누라가 된다면 그럴싸하겠다. 그녀가 만약에 여춘원으
로 가서 장사를 하게 된다면 양주의 모든 탕이들이 모조리 몰려들어 여
춘원의 대문마저도 깨어지고 말 것이다.)
이때 왼쪽에 섰던 한명의 흑의 노인이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더니 허리
를 굽혔다.
"부인에게 앙ㄹ립니다. 북경에서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네 권의 경서
의 행방을 알아내 지금 한창 힘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교주의 보배 같
은 가르침에 의거하여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넣어서는 교
주와 부인에게 바치겠다고 했읍니다."
그 음성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무척 두려운 듯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애석하구나, 애석해. 저 아름다운 여인이 알고 보니 바로 홍교주의 마
누라였구나. 한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쇠똥 위에다 꽂은 감이 없잖아 있
다. 그야말로 달빛이 헛간에 비추는 꼴이구나.)
그 여인은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교주께서는 이미 너그럽게 날짜를 세 번이나연기해 주셨소. 그런데 흑
룡사 그대는 언제나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면서 힘을 쓰지 않았으니 이
는 교주에 대하여 너무나 불충한 것이 아니겠소?"
흑룡사는 굽혔던 허리를 더욱더 낮추며 말했다.
"속하는 교주와 부인의 은덕을 입어 이  몸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실로 이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속하가 
궁안으로 보낸 여섯 사람 가운데 이미 등병춘, 유연 두 사람은 교를 위
해 죽었읍니다.  아무쪼록 교주와 부인께서는 좀더  연기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포동포동한 암퇘지와 가짜 궁녀는  그대의 부하였군. 아마 늙은 갈
보의 지위도 그대만큼 높지는 않겠지.)
그 여자는 손을 쳐들더니 위소보에게 손짓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소형제, 이리 와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서는 나직이 되물었다.
"저 말인가요?"
그 여인은 웃으며 말했다.
"맞았어. 그대를 부른 것이야."
위소보는 옆의 육선생과 반두타 두 사람을 한번씩 바라보았다.
육선생이 말했다.
"부인께서 부르시니 앞으로 나아가 공손하게 절을 드리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공경한 태도록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어쩔텐가?)
그러나 그는 앞으로  나가 역시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말했
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리실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
을 것입니다."
홍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착한 아이군. 교주  아래에 부인이라는 말을 누가 넣으라
고 했지?"
위소보는 신룡교의 교도들이 언제나 교주께서 영원히 선복을 누리며 수
명이 하늘처럼 높다는 말만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신룡교의 교도들은 이 교에 들어온 이후 그와 같은 말들을 줄줄이 외울 
수 있도록 읊었으며  그 누구도 글자 하나라도 더  보태거나 반 마디도 
적게 하거나 하지 못했다. 위소보는 이 부인의 용모가 지극히 아름답고 
또한 권세도 있어 보인지라 어쨌든 아첨을 하는 것은 밑천이 들지 않는
다 생각하고 제멋대로 부인이라는 한마디를 넣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가 묻는 말에 입을 열었다.
"교주께서는 옆의 부인이 계셔야만 수명이  하늘처럼 높아도 재미가 있
을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렇지 않고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부인이 돌
아가시게 된다면 교주께서는 외로우실 것이 아니겠읍니까?"
홍부인은 그 말을 듣고 몸을 흔들며 웃었고 홍교주 역시 빙그레 웃으며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그덕여 보였다.
신룡교의 모든 사람들은  교주만 보면 간담이 서늘해져서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처음 위소보가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모두다 손
에 땀을 쥐었다.  그러다가 교주와 부인의 안색이  무척 부드러운 것을 
보고는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었다.
홍부인은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 한마디는 그대 스스로 보탠 것이로군."
위소보는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한마디는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그 비석의 꾸불
꾸불한 글자에도 부인을 들먹이고 있으니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 육선생의 몸뚱아리는  얼음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 같
았다. 사실 육선생은 무수한 심혈을 기울여 한평의 비석에 새겨진 글을 
위소보가 외울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소보가 독특
하게 부인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 있다고 하니 이렇게 되면 억지로 짜맞
춘 글자수도 틀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그는 이 장난끄러기 소
년이 아무렇게나 말을  해 비석에 새겨진 글을 함부로  말을 할 것이니 
자기가 지은 문자는 그렇지 않아도  빈틈이 많은데 이렇게 된다면 당장 
들통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홍부인 역시 그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대는 비석에 나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고 말했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죠."
그는 아무렇게나 그렇죠 하고 말한 후에야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단났다. 그녀가 나에게 그 비석의  문장을 외우라고 한다면 그 비석
문에는 부인을 들먹이지 않았으니 야단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홍부인은 자세히 묻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대의 성은 위씨이고 북경에서 왔다지?"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홍부인은 말했다.
"반두타에게 한 말을 들으니 그대는  북경에서 유연이라는 뚱보 소저를 
만났으며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침받았다고 했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반두타에게 한  말 가운데 그 경서에 관한 말  이외에 그는 모두 
교주와 부인에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유연은 이미 죽었으니 대질할 사람도 없을 것이 아니겠는
가.)
그리하여 그는 입을 열고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유아줌마는 우리 숙부와는 절친한 친구였읍니다.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우리집으로 놀러왔죠."
홍부인은 싱글벙글하면서 물었다.
"그녀는 무엇하러 왔지?"
위소보는 말했다.
"저의 숙부와 농담을 하려고요. 때로 그들은 얼싸안고서 입맞춤을 하기
도 했읍니다. 그들은 내가 못 보리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몰래 훔쳐보았
죠."
그는 그럴싸하게 이야기하고 자세한  곳까지도 이야기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이 더욱더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었었다.
홍부인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정말 장난꾸러기로군. 남이 입맞추는 것을 몰래 훔쳐보다니."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흑룡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들었소? 어린애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그녀의 눈길을 따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흑룡사의 안색
이 크게 변했다. 공포에 벌벌 떨면서  두 무릎을 꿇고서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속하..... 속하.....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아
무쪼록 교주와 부인께서...... 한번만  용서하시고 속하로 하여금 공을 
세워 죄를 사하도록 해주십시오."
위소보는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 암퇘지 같은 소저와 우리 숙부가 입맞춤을 한다고 한 것이 이 
늙은 이와 무슨 상관이 있단는 것일까?  어째서 이 늙은이는 이토록 놀
라서 쩔쩔매는 것일까?)
홍부인은 미소했다.
"공으로써 죄를 사하게 해 달라구? 그대에게 무슨 공로가 있었던가? 나
는 그대가 파견한  사람들이 정말 교주를 위해 충성을  다해 일을 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북경에서 그와 같은 짓을 하다니."
흑룡사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쿵쿵 소리가  나도록 떡 방아를 
찧는 바람에 이마가 터져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안됐다
는 생각에 몇 마디 그에게 유리한  말을 하고자 했으나 선뜻 생각이 나
지 않았다.
흑룡사는 무릎으로 몇 걸음 다가오며 부르짖었다.
"교주, 제가 어르신을 따라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읍니까. 공
로는 없다고 하더라도 고생은 했읍니다."
홍부인은 냉소했다.
"그대는 옛날의 일을 들먹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대는 나이가 이토
록 많은데 또  얼마나 많은 일을 교주를 위해서 할  수 있겠단 말인가? 
흑룡사의 직위를 일찌감치 그만두는 것이 좋지않겠소?"
흑룡사는 고개를 쳐들고 홍교주를 바라보며 애걸하듯 말했다.
"교주, 옛날의 부하와  오래된 형제에게 정말 조금도  옛정을 느끼시지 
못한단 말씀입니까?"
홍교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우리 교 안에는 늙어서 망령이 난 사람이 너무나 많아. 그러니 한바탕 
정돈을 해야 옳을 것이야."
그 음성은 매우 나직하고 또 모호했다.  위소보는 그를 본 이래 처음으
로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별안간 수백 명이나 되는 소년소녀들이 일제히 부르짖었다.
"교주의 보배와 같은 가르침을 시시로 마음속에 새기고 있으니 적을 제
압하고 공을 세우는 등 만사가 순조로우리라."
흑룡사는 한숨을 내쉬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옛것을 뱉어 내고 새로운 것들을  채용하시겠다니 우리 같은 노인들은 
원래 죽어 마땅하지."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가져 오실까?"
대청 입구 네 명의 흑의 소년이  재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섰다. 그
들의 손에는 각기  하나의 나무쟁반이 들려 있었다.  쟁반 위에는 누런 
구리로 만든 둥근 밥사발 같은 것이 거구로 놓여 있었다.
그들은 흑룡사 앞으로 가더니 나무쟁반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신속히 몸
을 돌려 물러갔다. 대청의 뭇사람들도 약속이나 한 듯 뒤로 몇 걸음 물
러섰다.
흑룡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교주의 보배와 같은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겨 두고 있으니 적을 제압하
고 공을 세우니 만사가 순조로우리라..... 흐흐흐! 한가지 알을 성사시
키지 못하면 바로 부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한 것이지."
그리고 손을 뻗쳐 구리로 만든 사발같은 것의 위쪽을 잡고서는 위로 들
어올렸다.
그러자 쟁반에서 무엇이 벼락같이 툭툭 뛰어올랐다. 그런가 하면 그 순
간 하얀 광채가 번쩍였다. 비스듬히 한  자루의 비수가 날아들어 그 뛰
어오른 것을 두 토막냈다. 두 토막 난 것은 쟁반으로 다시 떨어져 꿈틀
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오색 얼룩무늬의 조그만 뱀이었다.
위소보는 놀라 부르짖었고 대청의  뭇사람들도 역시 소리내어 부르짖었
다.
"누구냐?"
"누가 반란을 꾀하느냐?"
"잡아라!"
"어느 반역도가 감히 교주의 분부를 거역하는가?"
홍부인이 갑자가 몸을 일으키더니, 두손으로  팔짱을 끼고는 잇달아 세 
번 흔들었다. 그러자 삭삭삭 하니 장검을 뽑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수
백 명이나 되는 소년소녀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은 오륙십 명이나 되는 나이 많은 교도들을 겹겹히 에워쌌다. 수백
명이나 되는 소년들 가우데 청의를  입은 사람은 청의를 입은 사람끼리 
백의를 입은 사람은 백의를 입은  사람들끼리 조금도 혼란됨이 없이 각
기 자기의 위치를   찾아섰다. 혹은 예닐곱 명이 혹은  여덟 아홉 명이 
나누어 한 사람의 급소를 겨누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나이 많은 교도
들은 삽시간에 제압을 당하고 만  것이다. 반두타와 육선생의 주위에도 
일곱 여덟 명이 장검을 겨누고 서 있었다.
이때 오십여 세  되는 검은 수염을 기른 도사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부인, 이 진법을 연마하느라고  수개월간 착실히 공을 들였겠지
오. 늙은 형제들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기실 이렇게 힘들일 것까지 없었
소이다."
그의 주위에 서 있는 사람은 여덟 명의 홍의 소녀들이었다. 두 명의 소
녀의 장검은 앞쪽에서 뻗어나와 검끝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입을 여는 것을 보고 소녀들은 호통을 내질렀다.
"교주와 부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마라."
그 도사는 웃었다.
"부인, 그 한마리의 오채신룡(五彩神龍)은 이 무근도인(無根道人)이 죽
인 것이오. 그대가 처벌하려면 얼마든지  손을 쓰시오. 남에게 누를 끼
칠 필요는 없지 않겠소?"
홍부인은 의자에 도로 앉으며 미소했다.
"그대 스스로 인정을 하니 퍽 다행이에요. 도장, 교주가 그대를 박하게 
대하지 않았지요? 그대를  적룡문(赤龍門) 장문사(掌門使)에 임명한 것
은 교주 한 사람의 아래이며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높은 자리에요. 그
런데 어째서 반란을 꾀하는 것이죠?"
무근도인은 말했다.
"속하는 반란을  꾀하지 않았소이다. 흑룡사  장담월(張談月)은 본교에 
큰 공을 세웠소이다. 다만 그 부하 가운데 일을 제대로 처리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부인께서 그의  목숨을 배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속
하는 당돌하나마 교주와 부인에게 사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홍부인은 웃었다.
"만약 내가 응낙하지 않는다면은?"
무근도인은 말했다.
"신룡교는 교주께서 창립하신 것이  틀림없읍니다. 그러나 수만의 형제
들이 끓는 물속, 타는 불길 속을  뛰어 들어 나왔다고 할 수 있읍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로를 세운 셈이죠. 과거 거사를 한 이후 모두 천 이십 
삼명이라는 옛형제들 가운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어떤 사람은 적의 손
에 목숨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교주에게 주살을 당해 이제는 백명도 남
지 않게 되었읍니다.  속하가 교주에게 은혜를 베푸십사  하고 빕니다. 
즉 우리 수십 명이나 되는  옛형제들의 목숨을 용서하시되 우리들을 모
조리 교에서 좇아내셔도 좋다는 것입니다.  교주와 부인께서 우리 늙은
이들이 미워서 새로운  사람을 쓰고자 한다면 우리  늙은이들을 일제히 
내쫓으시라는 것입니다."
홍부인은 냉소했다.
"신룡교가 창립된 이래 한번도 살아서 교를 나선 사람이 없다고 들었어
요. 무근도장의 그와 같은 말은 정말 희한한 생각이에요."
무근도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응낙하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홍부인은 말했다.
"미안해요. 본교에는 그와 같은 규칙이 없어요."
무근도인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교주와 부인께서는 우리들 모두를 주살하려고 하시는구려."
홍부인은 미소했다.
"그렇지 않아요. 노인들이 교주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교주는 여전히 그
대들을 자기의 형제라고 생각할 것이며  결코 이단시하지 않아요. 우ㄹ
르은 나이가 젊고 많은 것을 따지지  않아요. 다만 누가 교주에게 충성
을 다하느냐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거에요. 어느 누구든 교주에게 충성
을 다하겠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 봐요."
수백 명의 젊은 남녀는 일제히 손을  쳐들었다. 에워싸여 있는 나이 많
은 교도들도  손을 쳐들었다. 무근도인마저도 왼손을  높이 쳐들었으며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교주께 충성을 다하며 결코 두 가지 마음을 같지 않습니다."
위소보는 모두 손을 들자 자기도 손을 쳐들었다.
홍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좋아요. 모든 사람들이 교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군요. 이 새로 
온 소형제는 본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도 아니데 교주에게 충성을 다
하는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후레자식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다.)
홍부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모두들 충성을 다한다니 그렇다면 우리 중에는 반역도가 한 사람도 없
다는 것이군. 그렇다면 약간  이상하지 않은가요? 반역도를 잡아야겠으
니 여러 형제들은 잠시 억울하겠지만 참고 견뎌 줘요. 모두들 노형제들
을 묶도록 해라."
수백 명의 젊은 남녀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네."
한 명의 체구가 우람한 대한이 부르짖었다.
"잠깐!"
홍부인은 물었다.
"백룡사(白龍使)! 그대에게 무슨 고견이 있나요?"
그 대한은 말했다.
"고견은 없지만 속하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홍부인은 말했다.
"쯧쯧쯧! 그대는 나의 처리가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이군요."
그 대한은 말했다.
"속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속하는 교주를 따른지 이십년이 되었으며 
매사에 있어서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읍니다. 제가 본 교를 위해 정성
을 다했을 때 이 젊은 애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읍니다. 어째
서 그들은 교주에게 충성을 다한다  하고 우리 노형제들은 충성을 다한
다고 하지 않읍니까?"
홍부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백룡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는 것이군요. 그렇다
면 그대는 만약 그대 백룡사 종지령(鍾志靈)이 없었더라면 신룡교가 오
늘날 이와 같은 성세를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 체구가 우람한 대한 종지령은 말했다.
"신룡교가 세워진 것은 교주 한  사람의 공로이외다. 모두들 그 어르신
을 따라 천하를 도모했을 뿐 무슨  공로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소이까. 
하지만....."
홍부인은 말했다.
"하지만 어쨌다는 거예요?"
종지령은 말했다.
"우리들에게 공로가 없다면 이십여 세 되는 꼬마들은 더욱더 공로가 없
을 것이외다."
홍부인은 말했다.
"나는 기껏해야 이십여 세 밖에 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나도 공로가 없
겠군요."
종지령은 주저하더니 말했다.
"맞았소이다. 부인 역시 공로가 없소이다.  교를 창립하고 기틀을 세운 
것은 교주 어르신 한 사람의 공이외다."
부인은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서로 모두들 공로가 없는 것이니 그대를 죽인다 하더라도 억
울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어요?"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근의 눈동자에는  살기가 번뜩였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화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종지령은 부르짖었다.
"이 종가 한 사람만 죽이는 것은 상관이 없소. 그러나 충신들을 살해하
고 공신들을 주살한다면 신룡교는 부인  한 사람의 손에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겠소?"
홍부인은 말했다.
"매우 좋아요. 매우 좋아요. 나는 무척 피곤하군요."
홍부인은 몸이 녹작지근한 듯이 말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사람을 죽
이라는 암호일 줄 누가 알았으랴.
종지령 주위에 서 있던 일곱 명의  백의 소년들이 그 소리를 듣더니 장
검을 동시에 뻗쳐내 일제히 종지령을 찌르는 것이 아닌가. 일곱 자루의 
검이 뽑혀지자 종지령의 몸에서는 일곱 줄기의 핏물이 쏟아지게 되었고 
일곱 명의 백의 소년들의 옷자락도 그만 선혈로 물들여지게 되었다.
종지령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교주,  그대.....  그대는  정말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좋읍니
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쓰러져서 죽어 버리고 말았다. 일곱 명의 소년은 낭
하로 물러 갔다. 행동은 매우 정확했다.
교에 몸을 담고 있는 노형제들은  백룡사 종지령의 무공이 무척 고강하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곱 자루의 검이 일제히 찔러 들어
오자 전혀 항거할 힘이 없었다. 이로 미루어 볼때 일곱 명의 소년이 오
늘 이 대청 안에서 일검을 찌르기  위해 미리 교주의 가르침을 받고 얼
마나 많은 연습을 했느냐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제 지극히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경지에 도달한 것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벌벌 떨었다.
홍부인은 하품을 했다. 그리고 왼손을 가볍게 들어서는 앵두 같은 조금
만 입을 막았다. 그 모습은 매우 나른해 보였다. 홍교주는 여전히 무표
정한 얼굴이었다. 종지령이 피살당한 사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홍부인은 나직이 말했다.
"청룡사(靑龍使), 황룡사(黃龍使), 당신네들  두 분은 백룡사가 모반을 
꾀했으므로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눈이 가늘고 얼굴이 뾰족한 늙은이가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다.
"종지령이 교주와 부인을 배반한 것은 오래 전부터 계획해 왔던 일이라 
속하는 매우  통한하게 여기고 부인에게 몇번이나  알렸읍니다. 그러나 
부인은 언제나 노형제의 얼굴을 봐서  그에게 회계할 기회를 줘야 한다
고 말씀하셨읍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넓으신 아량으로 그가 뉘우치기
를 바랬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악독하기 이를 데 없을  줄 그 누가 
알았겠읍니까? 실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토록 가볍게 
그를 처치한 것은 그에게 매우 큰  덕을 보연 준 것입니다 우리들은 교
주와 부인의 은덕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3. 남편만 죽여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아첨 대왕이군.)
홍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황룡사는 그래도 대국적인 형세를 살필  줄 아는구려. 청룡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한 오십여 세 되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사내가 옆에 둘러선 여덟 명의 
청의 소년을 노려보며 꾸짖었다.
"비켜라. 교주께서 나를 죽이시려고 한다고 내 스스로 손을 쓸 수 없다
고 생각하느냐?"
여덟 명의 소년은 장검을 앞으로 살짝  밀었다. 검의 끝은 어느덧 그의 
옷에 닿게 되었다. 그 사내는 싸늘히 몇 번 냉소를 흘리더니 눈을 천천
히 들어서는 자기의 가슴팍 앞의 옷자락을 잡고서는 입을 열었다.
"교주, 부인, 과거  속하와 적, 백, 흑, 황  등 사문(四門)의 장문사와 
형제의 의리를 맺고  신룡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고  결심을 했는데 
오늘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인께서 이 허(許)
모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황룡사 은(殷) 형님이 삶을 탐내고 죽음이 두려워 그와 같이 비열
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해서 같은 형제를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짝 하는 소리가 급하게 울려 퍼졌다. 그 사내는 
두손을 밖으로 질풍같이 나누었다. 어느덧 몸에 걸치고 있던 장포를 두 
쪽으로 찢어서는 손과 팔을 한번 펼치는 사이 두 조각의 장포를 옆으로 
쓸어내었다. 그 순간 어느덧 여덟 명의  청의 소년들이 쥔 장검을 밀어
내면서 두 자루  한자 반이나 되는 푸른 광채가  번뜩이는 단검이 그의 
손바닥에는 어느덧 들려져 있었다. 삭삭 하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지
는 가운데 여덟 명의 청의 소년들은 가슴팍에 검을 맞고는 모조리 땅바
닥에 쓰러지고 말았으며 상처에서는 선혈이 곧장 뿜어져 나왔다.
여덟 명의 시체는 바로 그의 옆에 원을 그리듯 쓰러졌는데 매우 정제하
게 줄지어져 있었다. 이 몇 수의 수법은 정말 재빨라 급격히 울려 퍼지
는 천둥소리에 미처 귀를 막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홍부인은 깜짝 놀라서는 손바닥을 잇달아 쳤다. 그러자 이십여 명의 청
의 소년들이 검을 들고는 청룡사의  앞을 가로막았으며 또 겹겹이 그를 
에워쌌다.
청룡사는 껄껄 웃으며 낭랑히 입을 열었다.
"하하하, 부인, 부인이 가르친 이  꼬마들은 정말 밥통 같구려. 교주께
서 이 나이 어린 녀석들에 의지하여 공을 세우고 적을 제압한다는 것은 
너무나 거북살스럽지 않겠소이까."
일곱 명의 소년이 종지령을 찔러  죽인데 대해서 홍교주는 여전히 못본 
척했다. 청룡사가 여덟 명의 소년을 찌르고 죽였는데도 그는 전혀 무표
정했으며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는 시종 아랑곳하지 않았다.
홍부인은 남편을 한번 쳐다보았다. 약간  미안한 듯 방긋 웃었다. 그리
고 똑바로 의자에 앉더니 웃었다.
"청룡사, 그대의 검법은 고명하기 짝이 없군요. 오늘..."
갑자기 챙그랑챙그랑 하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대청 안의 수백 명이나 
되는 소년 소녀들의 손에 들린 장검이 다투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뭇사
람들은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뭇소년들은  하나같이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여러 사람들도 자기의 눈이 어
질어질해지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력이 조금 뒤떨어지는 사람들은 먼저 쓰러졌으며 곧이어 나머지의 사
람들도 휘청휘청 하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삽시간에 대청에는 어지럽게 사람들이 잔뜩 쓰러지게 되었다.
홍부인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 어째서 이런 일이......"
그러나 그녀의 몸  역시 맥이 풀린 듯 대나무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렸
다.
청룡사는 우뚝 버티고 선 채 흉칙한 웃음을 띄우고 입을 열었다.
"교주, 그대는 잔인하게 형제들을  죽였는데 오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지 못했겠죠?"
그리고 두 자루의 단검을 서로 마주치게 했다. 챙 하는 소리가 나는 가
운데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몸을 딛고는 교주에게 다가
갔다.
홍교주는 싸늘히 코웃음을 쳤다.
"흥,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걸?"
그리고 손을 뻗쳐 대나무 의자의 팔걸이를 잡았다. 우지끈 뚝하는 소리
와 함께 그는 그 팔걸이를 분질렀다.
청룡사는 그만 안색이 변해서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입을 열었다.
"교주, 이렇게 커다란 신룡교를 지리멸렬하도록 만든 것은 도대체 누가 
심은 화근입니까? 어르신께서는 이제 알아차렸겠지요?"
홍교주는 음 하고 신음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의자에서 미끄러져 땅바닥
에 주저앉았다. 청룡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별안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물건이 맹렬하기 이를 데 없는 세찬 바람을 일
으키며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청룡사는 오른손의 단검을 들어 힘주어 베어 내었다. 그러자 날아 들던 
그 물건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것은  홍교주가 대나무 의자에서 
비틀어서 잘라 낸 팔걸이였다. 그런데  그가 던지 힘은 엄청났다. 한토
막의 대나무가 절단되었는데 앞쪽 부분은 여전히 그 기운이 쇠퇴해지지 
않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청룡사의 가슴팍으로 날아와 꽂히는 것이 아
닌가. 이 바람에  대여섯 개의 늑골이 분질러졌고  팔걸이 앞쪽 부분은 
폐까지 찔려 들어가게 되었다.
청룡사는 크게 한 소리 부르짖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숨이 제대로 이
어지지 않았다. 대뜸 말문이 막히고 몸을 두번 흔들흔들하였다.
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도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것은 
두 명의 소년의 몸에 꽂히게 되었다.  이 두명의 소년은 사지가 마비되
고 맥이 풀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정신은 아직도 말짱했고 입으
로 말도 할 수 있었다.
단검이 위에서 갑자기 떨어지면서 그들  몸을 찌르게 되자 아파서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수백 명이나 되는  소년소녀들은 교주가 크게 위세를  떨쳐서 청룡사를 
쳐서 쓰러뜨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홍교주는 오른손을 땅바닥을  딛고는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고 했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세우기도 전에 두 무릎이 맥없
이 꿇었고 그 바람에 그는 몇 번 바닥에서 몸을 뒹굴면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낭패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모든 사람들은 
교주도 자기네와 같이 중독되어 근육에 맥이 풀리고 마비되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교주는 평소  지극히 장엄했다.  교의 무리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말도  
더하지 않았고 한번 더 웃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때에 그토록 창피스럽
게 나가떨어진 것으로 보아 전신의  기운을 깡그리 상실할 것이 틀림없
지 않겠는가.
대청의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조리 쓰러지고 한 사람만이 똑바
로 서 있다. 이 사람은 본래 키가 무척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수백 명
이나 되는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하자 군계학립(群鷄
鶴立)과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이 사람은 바로  위소보였다. 그는 코로 담담히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는데  그 냄새를 맡자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았고 정신이 
나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어째서 
이와 같은 변고가 생겼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멍청하니 서 
있다가 손을 뻗쳐서는 반두타를 잡아끌며 물었다.
"반존자, 모두 무엇하는 것이오?"
반두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대는..... 그대는 중독되지 않았소?"
위소보는 의아하게 말했다.
"중독? 나는...... 나는 모르겠는데요."
그는 힘주어 반두타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반두타는 다리
에 전혀 기운을 쓸 수 없어 다시 기우뚱하니 쓰러지고 말았다.
육선생이 갑자기 물었다.
"허형, 그대..... 그대는 무슨 독을 썼소?"
청룡사는 몸을 휘청거렸다. 마치 술에  흠뻑 취한 사람 같았다. 그러다
가 한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며 말했다.
"애석하군..... 애석하게도 성공하려는 찰나에  그만 좌절을 당하여 공
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이제  나는..... 나는 쓸모가 없게 되었
다."
육선생은 여전히 질문을 던졌다.
"칠충연근산(七蟲軟筋散)이오? 아니면 천리소혼향(千里소魂香)이오? 아
니면...... 화..... 화혈(化血)... 부골분(腐骨粉)이오?"
그는 잇달아 세 가지 극독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런데 화혈부골분이라
는 이름을 들먹이면서  음성이 떨리는 것으로 미루어  매우 두려워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육선생은 말했다.
"위공자, 그대는 어째서 중독되지 않았소? 아, 그렇군!"
갑자기 그는 깨달은 듯 아, 그렇군!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그리고 곧이어 말했다.
"그대는 단검에다가 백화복사고(白花腹蛇膏)를 발라 놓았군. 정말 묘책
이오. 위공자, 그대는  청룡사의 그 단검에서 냄새를  맡아 보시오. 그 
단검에서 향기 같은 냄새가 풍기지 않는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검에 독이 묻혀 있다고? 그럼 나는 맡을 수가 없지.)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곳에 서 있어도 매우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소이다."
육선생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그렇군. 백화복사고는 선혈을 보면 더욱더  짙은 향기를 내뿜지. 본래 
향료를 만드는 한 가지 비약인데  보통 사람이 맡으면 정신이 쾌적해지
죠. 그러나..... 그러나 우리들은 이 영사도에 살고 있는 만치 모두 다 
독사를 피하기 위해 웅황약주(雄黃藥酒)를 마시는 습관에 젖고 말았소. 
이 향기는 웅황약주를  마신 사람으로 하여금 근골이  마비되고 기운이 
빠져 열두시진 안으로 풀리지가 않죠.  허형, 정말 묘책이외다. 백화복
사고는 본래 이 섬에서 금지된 물품이  아니오. 그런데 원래 그대는 이
미 몰래 준비를 하고 있었구려. 그대는 아마도 삼사 개월간 웅황약주를 
마시지 않았겠구려."
청룡사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두  명의 몸위에 걸터앉게 되었
는데 고개를 흔들며 그 말을 받았다.
"사람이 도모하는 것은 하늘이 헤아리는  것보다 못하다고 결국에는 홍
안통(洪安通)의 독수에 걸려들고 말았다네."
몇 명의 소년이 호통을 내질렀다.
"대담하고 당돌한 녀석 같으니, 네가  감히 교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마
구 부르는구나."
청룡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검을 하나 집어들더니 한 걸
음 두 걸음 홍교주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홍안통의 이름을 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냐?  어험, 어험...... 내가 
이 악적을 죽인 이후..... 어험, 어험..... 부를 수 있는지 부를 수 없
는지 두고 볼까?"
수백 명의 소년소녀들이 놀라 부르짖었다.
잠시 후 황룡사의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허형제, 그대가 홍안통을 죽인다면 모두들 그대를 신룡교의 교주로 모
시겠네. 모두들 발리 읊어 보게. 우리들은 허교주의 호령을 받들겠으며 
충성을 다하되 두 마음을 갖지 않겠소이다."
대청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나 곧이어 수십 명의 사람이 똑같
이 읊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허교주의 호령을 받들겠으며 충성을  다하되 두 마음을 갖지 
않겠소이다."
이 소리들 가운데 어떤 소리는  굳건했으며 어떤 소리는 망설이는 빛을 
보여 합창하듯 일제히 울려퍼지는  것이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뒤죽박죽
이 되어 흘러나왔다.
청룡사는 두 걸음 옮기더니 기침을  했다. 그리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
는 매우 심한  상처를 입었으나 애서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먼저 홍교주를 죽여 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다.
홍부인이 갑자기 깔깔거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호호, 청룡사, 그대에게는 기운이  없어졌어요. 그대의 다리에도 전
혀 기운이 없어요. 그대의 가슴팍에 선형이 흘러나오는군요. 곧 모조리 
흘러내리고 말 것 같군요. 그대는  틀렸어요. 앉으세요. 피곤하기 이를 
데 없죠? 앉아요. 맞았어요. 앉아  쉬도록 해요. 그대는 장검을 내려놓
고 내곁으로 다가와요. 내가 그대의  상처를 치료해 드리지. 맞았어요. 
비스듬히 눕도록 하세요. 그리고 장검을 내려놓으세요."
그녀의 음성은 갈수록 부드러워져서 교태가 뚝뚝 떨어졌다.
청룡사는 다시 몇 걸음 나아갔으나  끝내 땅바닥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찡 하니 장검도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황룡사는 청룡사가 다시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부르짖
었다.
"허설정(許雪亭), 너 이  간악한 자가 헛되이 빌어먹을  교주가 되고자 
하는 망상을 품었겠지. 너는 오줌을 싸고 네 얼굴에 비쳐 보도록 해라. 
그 몰골로 되겠는가 말이다."
적룡사 무근도인은 호통을 내질렀다.
"은금(殷錦), 이 비열하고 몰염치한 소인아!  바람부는 대로 따라서 동
쪽으로 흔들하고 서쪽으로 기웃하더니. 이  늙은 도사가 손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첫번째로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황룡사 은금은 말했다.
"웬 발악이냐? 나는..... 나는....."
그는 반박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청룡사 허정이 다시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보자 이번  싸움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
이 들어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일시 대청의 수백 명이나 되는 눈초리가 허설정의 몸에 집중되었다.
"허 오라버니, 그대는 무척 피곤해지셨군요. 역시 앉으세요. 저를 바라
보세요. 제가 작고 고운 노래를 들려 드리겠어요. 그대는 푹 쉬도록 하
세요. 이후 나는 매일같이 노래를  들려 드리겠어요. 그대가 보기에 제
가 예쁘지 않나요?"
허설정은 음음 하더니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정말 예쁘오. 하지만.... 나는..... 나는 감히 더 
쳐다볼 수가 없구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주저앉았다. 이번에 그는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했
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자기가 앉아서 일어나지  못하고 또 교주를 찔러 죽
이지 못하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가운데 교주의 공력이 가장 심후
하니 중독된 독도  그가 반드시 먼저 풀리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렇게 된다면 늙은 형제들은 한 사람도 요행을 바라볼 수 없게 
되고 모조리 교주의 독수에 죽음을  당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
여 그는 말했다.
"육...... 육선생,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네. 그대는 방법을...... 어
험, 어험, 방법을 강구해 주시게."
육선생은 말했다.
"위공자, 저 교주는 매우 악독하오. 나중에  그의 몸에 중독된 독이 풀
어지면 모두를 죽일 것이고 그대마저도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오. 그러
니 빨리 교주와 부인을 죽여 없애시오."
그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소보는 이미 알고 있던 참이었
다. 그는 즉시 검을 뽑아 들고는 천천히 교주 쪽으로 다가갔다.
육선생은 다시 말했다.
"그 홍부인은 백여우와  같은 여인으로 사람을 잘도  속인다오. 그러니 
그대는 그녀의 얼굴은 물론 그녀의 눈동자를 보지 않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는 검을 들고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홍부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형제, 그대는 내가 아릅답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소리에는 사람의 혼을 녹일 것 같은 기운이 잔뜩 서려 있었다. 위소
보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려고 
했다. 이때 반두타가 호통을 내질렀다.
"사람을 해치는 마녀이니 빠져서는 안 돼."
위소보는 흠칫해서는 눈을 꼭 감았다.  홍부인은 나직이 소리내어 웃으
며 말했다.
"호호호, 소형제, 눈을 뜨고 나를 봐요. 나를 향해 눈을 뜨라구요. 자, 
내 눈동자에 그대의 모습이 비치고 있네."
위소보는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홍부인은 방실방실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크게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검을 
가슴팍가지 들어올리고 홍교주 쪽으로 다가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와 같은 미인을 나로서는 정말  아까워 죽일 수가 없구만. 그러나 
그대의 지아비는 반드시 죽여야 해.)
별안간 왼쪽에서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위 오라버니, 죽여서는 안 되요."
그 소리는 매우 귀에 익숙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흠칫해서는 소리가 나
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명의 홍의 소녀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이목이 준수했다. 바로 소군주 목검병이 아닌가. 그는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그녀와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적룡문 소녀들이 입고  있는 홍의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
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다가가 몸을 굽히고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에 있소?"
목검병은 그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절대 교주를 죽여서는 안 돼요."
위소보는 의아하여 물었다.
"그대는 신룡교에 투신했구려. 어찌.....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목검병은 전신의 뼈가 없는 사람처럼 맥이 빠져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그의 어깻죽지에 기대고 조그만 입을 위소보의 귓가에 갖다대고는 나직
이 말했다.
"그대가 만약 교주와 부인을 죽인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저 
늙은이들은 우리들을  죽도록 미워해요. 그리하여 우리  젊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이려 들거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그대를  해치지 말라고 한다면 그들은  응낙을 할 것이
오."
목검병은 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교주는 우리에게  독약을 먹였어요. 다른 사람은 
풀 수 없단 말이에요."
위소보와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터이라 그렇지 않아도 매우 기뻤다. 더
군다나 부드러운 그녀를  품속에 안고서 그녀가 귓가에  속삭이는 말을 
듣고 있으니 그녀의 청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이미 교주의 독약을 먹었는데 다른 사람은 풀 수 없다
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된다면 교주를 죽이게 되었을 때 바로 이 품속
의 작은 미녀를 죽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소보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한가지 일만은 난처했다. 그
리하여 그는 나직이 말했다.
"내가 만약 교주를  죽이지 않는다면 교주의 몸에  독이 풀리게 되었을 
때 나를 죽이려 할 것이오."
그는 목검병을 꼭 껴안다시피 하고 있었고 그 말은 바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한 말이었다.
목검병은 말했다.
"그대가 교주와 부인을 구하게 되는데  그들이 어찌하여 그대를 죽이겠
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그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홍부인은 그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요염해서 어떻게 하더라도  손을 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따라서 지금이 바로 큰 공을  세울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반두타, 육선생, 무근도인 이  사람들은 교주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근도인은 매우 
호걸다운 인물이라 그를 죽인다는 것은 너무나 애석한 노릇이라는 생각
도 들었다. 가장 좋은 것은 교주와 부인을 죽이지 않고 반두타 등의 목
숨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맞았소. 우리 착한 마누라. 설사 교주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대를 구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왼쪽 뺨에다가 입을 맞추었다.
목검병은 크게 부끄러워 그만 온 얼굴이 시뻘개지고 말았다. 그러나 눈
가에 기쁜 빛을 띄우고 나직이 말을 하였다.
"그대가 큰 공을 세운다면 나이 어린  사람이니 만큼 교주가 어찌 그대
를 죽이겠어요?"
위소보는 목검병을 가만히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
었다.
"육선생, 교주는 죽일 수가 없소이다.  부인 역시 죽일 수가 없소이다. 
그 이유는 교주와 부인께서 영원히  선복을 누리게 되며 수명은 하늘처
럼 높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어찌 내가 그들의 목숨을 해칠 수 있겠
소? 그들 두 분 어르신은 그야말로  신통력이 광대하니 설사 해치려 한
다 해도 해칠 수 없을 것이오."
육선생은 크게 초조해셔서는 부르짖었다.
"비석의 글은 가짜인데 어찌 근거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쓸데없는 생
각 하지 말고  두 사람을 빨리 죽이시오. 그렇지 않을  땐 모두들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게 될 것이오."
위소보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육선생, 그대는 그와  같이 윗사람의 위엄을 거슬리고  배반하는 듯한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그대에게 해약이 없소? 우리 빨리 교주와 부
인의 중독된 독을 풀어 드리도록 합시다."
홍부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맞았어. 소형제, 그대의  견식은 정말 뛰어나군. 하늘이  그대와 같은 
젊은 영웅을 이 세상에 내려보내 교주를 보좌토록 한 것이야. 신룡교에
서 그대와 같은 젊은 영웅을  맞아들이게 된다며 정말 타고난 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 몇 마디의  말은 정말 폐부에서 우러나온 듯  놀람과 한탄의 뜻으로 
가득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말을 듣고 그만 기분이 좋아져서는 웃으며 말했다.
"부인, 저는 신룡교의 사람이 아닙니다."
홍부인은 웃었다.
"그거야 더 말할 나위 없이 수월한 일이지. 그대는 즉시 지금 입교하도
록 해요. 내가  그대의 안내자가 되겠어요. 교주,  이 소형제가 본교를 
위해 이토록 큰 공을 세웠는데 우리는 그에게 어떤 직책을 맡겨야 옳겠
어요?"
교주는 말했다.
"백룡문 장문사 종지령이 교를 배반했다가  벌을 받고 죽었으니 우리는 
이 소년에게 백룡사라는 직책을 맡기면 되겠지."
홍부인은 웃었다.
"정말 잘 되었어요. 소형제, 본교에서는 교주가 가장 윗사람이고 그 아
래에 청, 황, 적, 백, 흑의  오룡사(五龍使)가 있어요. 그대와 같이 교
에 들어오자마자 오룡사 가운데 일인이  된 사람은 일찌기 없었던 일이
에요. 이로 미루어 볼 때 교주가  그대에 대해서 얼마나 의지하고 중시
하는가를 알 수가 있어요. 소형제, 그대의  성은 위씨죠? 우리가 다 알
고 있어요. 그런데 이름은 뭐라고 하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위소보라고 합니다. 강호에서 불리는 별호가 있는데 그것은 소백
룡이라고 한답니다."
그는 옛날 모십팔이 그에게 지어 준  별호를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는 
별호가 없으면 위풍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소백룡이란 
별호는 오늘의 일고 공교롭게도 맞아 떨어지는 별호이기도 했다.
홍부인은 기뻐서 말했다.
"저것 봐요. 저것 봐요.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그렇
지 않으며 이토록 공교로울 수가 있나요? 교주께서는 한번 내뱉은 말을 
결코 저버리지 않아요."
육선생은 다급해져서는 말했다.
"위공자,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시오. 설사 그대가 백룡
사라는 지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대가 싫어지면 그대를 죽이
는 것은 손바닥 뒤짚기보다 쉬운 노릇이 아니겠소. 백룡사 종지령이 바
로 그 본보기이외다. 그대는 빨리  교주와 부인을 죽이시오. 모두들 그
대를 신룡교의 교주로 삼도록 하겠소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뭇사람들은 모두 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반두타, 허
설정, 무근도인 등도 그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만약 그를 교주로 모시지 않는다면 교 안에서는 다시 백룡
사보다 더 높은 지위가 없었다. 지금은  형세가 매우 위급한 상태가 아
닌가. 뭇 사람들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그로 하여금  교주와 부인을 죽이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 난관을 넘기게 된다면  나이 어린 소년이 
설사 교주가 된다고 하더라도 뭇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뭇사람들은 일제히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우리들은 모두 위공자를 신룡교의 교주로 모시겠으며 
모두들 그대에게 충성을 다하겠소이다."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곁눈질로 홍부인을 바라보
았다. 이때 홍부인은  반쯤 기댄 자세로 대나무  의자에 등을 의지하고 
앉아 있었다.
전신은 마치 뼈가 없어진 듯한 모양이었으며 가슴이 미미하게 오르락내
리락 했다. 그리고 두 뺨이 불그레 했으며 두 눈에서는 정이 똑똑 떨어
지는 듯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교주가 된다는 것이 뭐가 재미있어서 그래. 그러나 이 교주 부인은 정
말 사람을 죽여 주게 아름답구나. 내가  교주가 된다면 이 교주 부인이 
여전히 교주 부인으로 남아 있을까?)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그의  뇌리에서 번쩍 떠올랐다가 사리지게 되
었고 모든 것을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하다. 몸의 독성이 풀어지면 재가 어떻게  그들을 관리 할 수 있겠
는가. 이것이야말로 다리를 지난 이후  판대기를 뜯어서 다리를 무너뜨
리는 형국이 되지 않겠는가?)
다리를 지난 후 판자대기를 뜯어서  다리를 무너뜨리게 한다는 것을 그
는 천지회의 청목당에서 이미 받았던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천지회
의 형제들은 모두  영웅호걸이기 때문에 다리를 지난  이후에도 서둘러 
판자대기를 뜯어내고 다리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신룡교의 
녀석들은 신이나서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교주 부인이 
아름답기는 했으나 역시 자기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그리하여 그는 혓바닥을 쭉 내밀었다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교주, 교주는 내가 감당할 수 없소이다.  그대들이 그와 같은 말을 한
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의 타고난 복을  꺽는 길이 될 것이며 어느 정도 
대역무도한 일이 될 것 같구려. 이렇게 합시다. 교주, 부인, 모두들 서
로 좋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늘의  일은 쌍방에서 모두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육선생과 청룡사 등이 교주의 위엄
을 거슬렸지만 교주께서는 넓으신 아량으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지 말았
으면 합니다. 그리고 육선생, 육선생은 해약을 꺼내서는 모두에게 먹이
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서로 잘 지낸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홍교주는 육선생이 입을 버리기 전에 즉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하기로 하지. 백룡사가 우리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권고하고 기왕 지나 일을 따지지 말라고 했으니 본좌는 그 충언을 받아
들이기로 하고 오늘  대청에서 위사람의 위엄을 거슬리고  배반을 했던 
행위를 본좌는 일절 너그럽게 용서하여 다시 따지지  않기로 하겠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청룡사, 교주께서는 응낙을 하셨소. 이것이야말로  더욱 잘된 일이 아
니겠소?"
육선생은 위소보가 어떻게 하더라도 교주를  죽일 것 같지 않는지라 길
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다면 교주와 부인, 두 분께서는 아무쪼록 맹세를 해주십시오."
홍부인은 말했다.
"이 소전(蘇전)은 결코  오늘의 일을 따지지 않기로  하겠소이다. 만약 
이 말을 어긴다면 나의 몸뚱아리는 용담(龍潭)에 들어가 만마리의 뱀에 
물려 죽게 될 것이외다."
홍교주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룡교 교주 홍안통은  이후 만약 여러 늙은  형제들에게 오늘의 일을 
따지려고 든다면 이 홍모의 몸뚱아리는  용담에 떨어져 만 마리나 되는 
뱀에게 물어 뜯겨 뼈도 남기지 못할 것이외다."
몸이 용담에 떨어져 만 마리의  뱀에게 물어뜯기는 벌은 신룡교에서 가
장 무서운 형벌이었다.  교주와 부인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와 같은 
맹세를 한 것은 형세에 영향을 받아  불가피하여 한 맹세라고 할 수 있
으나 결코 그 맹세를 저버릴 수는 없으리라.
육선생은 물었다.
"청룡사,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
허설정은 다 죽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어쨌든 살아날 수 없을 것이오."
육선생은 다시 물었다.
"무근도장,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근도인은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홍교주는 원래 우리와는 옛형제간이 아니겠소. 문무에 
쌓은 공은 다른 사람보다 십배나 뛰어나오. 모두들 본래 그를 우두머리
로 삼았으며 두 마음을 품지 않았지  않소. 그런데 그가 부인을 맞아들
인 이후 성격이 크게 변해서는 소년소녀들을 끌어올리기만 좋아했고 우
리 늙은 형제들은 하나하나 잔혹하게 죽여 없앴소. 청룡사가 이번에 이
와 같은 짓을 한 것도 목숨을 건지기  위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 교
주와 부인께서 뭇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하여 오늘의 일을 따지지 않고 
다시는 함부로 늙은  형제들을 살해하지 않겠다면 모두들  어째서 그를 
배반하려 들겠소?  더군다나 신룡교에서는 원래 이  교주님이 없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소이다."
뭇소년소녀들은 일제히 소리 높이 외쳤다.
"교주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 것
입니다."
육선생은 말했다.
"위공자, 그대는 웅황약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백화복사고의 독에 
중독되지 않아 오늘의 공을 세우게  되었소.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있는 것이외다. 이  독을 푸는 것은 쉬운 일이오.  그대는 밖으로 가서 
차가운 물을 떠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먹이면 되는 것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이 독은 원래 그토록 쉽게 풀리는 것이군요."
그리고 그는 대청 밖으로 나갔으나 냉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대
청 뒤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십여 개나 되는 칠석항(七石缸)이 한
줄로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맑은 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원래는 대나무로 만든 대청에 불이  나게 되었을 때 사용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물이었다. 그는 즉시 한통의 맑은 물을 떠서는 대청으로 돌아가 
먼저 한 바가지를 떠서 교주에게 먹였다. 그리고는 다시 홍부인에게 먹
였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무근도인에게 먹이고 말했다.
"도장, 그대는 영웅호걸이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4. 홍부인의 무공

그는 네 번째  다섯 번째는 반두타와 육선생에게  먹였다. 그리고 여섯 
번째에 이르러서야 목검병에게 먹여 주었다.
여러 사람들은 냉수를 마시자 즉시 구토를 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위소보가 몇  사람에게 물을 먹이게 되었을 대 
육선생은 이미 일어나 걸음을 옮길 수가 있게 되었다.
육선생은 청룡사의 곁으로 다가가  청룡사 허설정을 부축하고서는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는 등 치료를 해주었다.
반두타 등은 나누어 냉수를 떠와서는  친근한 형제들에게 먹여 구했다. 
얼마 후 목검병이 몇 명의 홍의  소녀들을 구하게 되었다. 일시 대청은 
토해낸 이물질로 어지럽게 되었고 구린내가 마구 풍겼다.
홍부인은 말했다.
"모두 돌아가 쉬도록 하시고 내일 다시 모이도록 합시다."
홍교주는 말했다.
"본좌가 이미 지나간 일을 따지지  않기로 했으니 뭇형제들 사이에서도 
오늘의 일로 서로 다투거나 원한을 갚으려고 하지 마시오.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벌을  내리겠소. 오룡의 소년들은 장무사에게  불경한 태도를 
행하지 말 것이며 장문사 역시 구실을 빌어 본문의 소년들을 함부로 처
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뭇사람들은 일제히  영을 받들겠다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의심과 
근심을 깡그리 씻어 버린 수는 없었다.
홍부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백룡사, 그대는 나를 따라와요."
위소보는 처음 그녀가 자기를 부르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
가 손짓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기가 이미 신룡교의 백룡사라는 사실
을 깨닫고 뒤를 따랐다.
교주와 부인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청을 나서게 되었다. 이미 행동할 
수 있게 된  교의 무리들은 모두 다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소리 높여 
외쳤다.
"교주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릴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 것입니
다."

교주와 부인은 청석판을 깐 길을 따라 가더니 왼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한 커다란 대나무밭을  지나 한 평대(平台) 위에  이르게 되었다. 평대 
위에는 커다란 대나무 집이 서 있었다.
십여 명의 오색 빛깔을 나누어  입은 소년소녀들이 검을 들고 전후에서 
지키고 있다가 교주를 발견하자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절을 했다.
홍부인은 위소보를 데리고 대나무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명의 백의 소
년에게 말했다.
"이분은 위공자시네. 너희들 백룡문의 신임 장문사이시지. 이분을 동쪽 
상방(床房)에서 휴식토록 할 것이니 너희들이 잘 시중을 들도록 해라."
그리고는 위소보에게 웃어 보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백의 소년들이 허리를 굽히고 위소보에게 말했다.
"속하인 소년들은 좌사(座使)에게 인사드립니다."
위소보는 황궁에서 우두머리 태감 노릇도 했고 또 천지회에서는 향주까
지도 지내던 터이라 다른 사람이  그에게 공손하고 존경하는 태도를 취
하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몇 명의 백의 소년들은 그를  동쪽의 상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차를 
올렸다. 상방이라고는 말했으나 매우 넓었고  꾸민 것도 매우 깨끗하고 
우아했다. 그리고 탁자위에는 금고 옥으로 만든 골동품이 가득 놓여 있
었고 벽에는 서화폭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침대 외의 요와 이불도 화
려했다. 놀랍게도 어느 정도 황궁과 거의 맞먹는 기세를 보였다.
백의 소년들은 홍부인의 언행에서 위소보를 지극히 중시하고 있다는 것
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교주의 이 선복거(仙福居)에는 외부 
사람이 한번도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백룡사가 이와 같은 영광을 누리
는 것을 보면 지위는 다른 네  장문사보다 위인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
다. 이 소년들은 이곳을 지키느라고 조금전 대청에서 일어난 변고를 모
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소보의 지위가 존귀하고 또한 교주 부부의 총애를 받는 듯 싶
자 하나같이 다가와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
이 날 오후 위소보는 몇 명의 백의 소년들에게 오룡문의 갖가지 규칙을 
물어 보게 되었다. 원래 신룡교  아래에는 오문(五門)으로 나뉘어져 있
었다. 그리고 각문마다 수십 명이나 되는 늙은 형제들을 통솔하게 되고 
일백 명의 소년과  수백명이나 되는 일반교의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어 
있었다. 장문사는 본래 모두 교에서  큰공을 세운 고수들이나 명숙이었
다. 그러나 교주는 최근에  이르러  전력을 다해 젊은 사람들을 요직에 
앉혔다. 그리하여 종종 이십 세 남짓한  사람들이 장문사 다음 가는 요
직에 앉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위소보의 나이가  어렸지만 그 누구도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홍교주와 부인은 다시  대청에서 뭇사람들을 소집했다. 여
러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교주가 이미 다시 따
지지 않기로 맹세했지만 심지가 깊은 양반이라 그 누구도 그가 어떤 무
서운 수단을 쓰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주와 부인이 나와서 자리에 앉았다.  위소보는 오룡사의 차례에 따라 
네 번째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반두타와 육선생
보다 윗자리가 되는 것이었다.
홍교주는 물었다.
"청룡사의 상처는 어떠하오?"
육선생은 허리를 굽혔다.
"교주에게 알립니다.  청룡사의 상처는 가볍지 않읍니다.  목숨을 건질 
수 있을는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습니다."
교주는 품속에서 아주 새빨간 조그만 자기병을 꺼내더니 말했다
"이것은 세  알의 천왕보명단(天王保命丹)이오. 그대는  가져가 그에게 
복용시키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는 손을 쳐들지도 않았는데  그 자기병은 육선생의 몸 앞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육선생은 재빨리 손을 뻗쳐 받았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말했다.
"교주의 커다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이 천왕보명단이 얻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약
은 교주가 부하들을 내보내 무수히  많은 진기한 약재들을 채집해서 만
든 것이었다.
그 가운데는 삼백 년 묶은 산삼과 백웅담(白熊膽), 설련(雪蓮) 등의 약
물들이 들어 있었다. 더욱이 어려운 것은  교주가 힘을 써서 만든 것인
데도 전후에 십여 알을 만들어 냈을 분이었다.
그런데 허설정이 단번에 세 알의 영단을 먹게 되었으니 목숨은 이제 지
장이 없게 된 셈이었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의 늙은 형제들도  허리를 구부리고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생각했다.
(청룡사는 어제 그토록 교주에게 달려들어 교주를 죽일 결심을 하지 않
았는가. 그런데 오늘 교주께서는 오히려 진귀한 약을 내리셨다. 그렇다
면 그는 확실히 지나간 일을 따지지 않을 모양이구나.)
모두들 크게 기뻐했다. 대청에는 본래 모든 사람들이 엄히 경계하는 눈
치였으나 이때만큼은 모두 다 얼굴에 웃음 띄우게 되었고 적지 않은 사
람들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부인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룡사, 그대는 오대산에서 비석을  발견했는데 그 비석에는 갑골문자
가 새겨져 있었다고?"
위소보는 허리를 굽혔다.
"네."
반두타가 입을 열고 말했다.
"교주와 부인에게 알립니다. 속하가 그  비석의 글을 탁본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그리고 그는 품속에서 기름종이로 산  봉지를 꺼내더니 펼쳤다. 그러더
니 아주 커다란 탁본을 한장 꺼내어  동쪽 벽에다가 걸었다. 탁본을 한 
글씨라 검은 바탕에 하얀 글자인데 문자가 이상스러워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홍부인은 말했다.
"백룡사, 그대가 이 문자를 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 주도록 하시
오."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는 탁본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육선생이 만들어 준 그 한편의 
문장을 외웠다.
천천히 그는 외워 나갔다. 간혹 생각이 나지 않으면 말했다.
"음, 저것은 무슨 자일까? 알아보기가  힘들구나. 그렇지. 마(魔) 자로
군."
그리하여 그는 선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며 온 천하에서 존경을 할 
것이다. 그리고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  것이고 문무에 있어서 인자하고 
거룩할지어다라는 네 마디의 싯귀에 이르러서는 슬쩍 고쳐서 다음과 같
이 말했다.
"선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며  부인과 함께 하리라. 수명은 하늘처
럼 높을 것이며 문무에 있어서는 인자하고 거룩할지어다."
부인과 함께라는 한마디는 실로 조잡했다.  만약 육선생이 만들어 쓰라
고 한다면 다리 멋진 글자를 써  넣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위소보는 
문장의 이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어떻게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그 한마디를 그럴싸하게 고친 것만 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홍부인은 그 한마디를 듣더니 싱글벙글 하며 말했다.
"교주, 비문 가운데는 정말 저의 이름까지 있군요. 그야 말로 백룡사가 
멋대로 날조한 것은 아닙니다그려."
홍교주는 역시 매우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좋소. 좋아. 우리는 하늘의 돌보심을 받아 이 신룡교를 세우게 되었구
려. 원래 당나라 정관년에 이미 하늘에서는 지시를 내렸구만."
대청의 뭇교도들은 일제히 소리높이 외쳤다.
"교주께서는 선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 것
입니다."
무근도인 등 늙은 형제들도 역시 아연해져서는 하나같이 생각했다.
(교주와 부인은 하늘의  뜻에 응한 것이니 그야말로  위엄을 거스릴 수 
없겠구나.)
위소보는 최후로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이 있는 소재지도  일일이 외웠
다. 홍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현이나 호걸들이 백성들에게 은혜를 입히고  세상을 구하는 것은 이
미 하늘에서 안배한  일이며 오삼계 등과 같은  사람들마저도 하느님의 
헤아림 속데 들어  있군요. 교주, 이 여덟 권의  경전은 마땅히 본교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했으니 조만간 우리 신룡교로 들어오게 될거에요."
교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했다.
"부인의 말씀이 옳소이다."
뭇사람들은 다시 부르짖었다.
"수명은 하늘과 같이 높을 것입니다.  수명은 하늘과 같이 높을 것입니
다."
뭇사람들이 조금 조용해지기를 기다려서 홍교주는 말했다.
"이제는 향당을 열어 위소보를 본교의 백룡문 장문사로 봉할지니라."
신룡교에서 향당을 연다는 것은 천지회의  의식과는 또 다른 데가 있었
다. 위소보는 향안(香案)위에 다섯 개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쟁반이 놓
여지게 되고 쟁반마다 조그만 뱀이 한마리씩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뱀들은 청, 황, 적, 백,  흑 다섯 가지 색깔로 나뉘어져 있
었다.
다섯 마리의 자그마한 뱀들은 고개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렸으나 또아리
를 튼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그 다섯 빛깔의 신룡(神龍)을  향해 절을 하고 교주와 부인에
게 절을 한 이후 무근도인등의 축하를 받았다.
홍부인은 석잔의 웅황주(珠)를 내렸으며 목에  걸도록 했다. 그렇게 한
다면 백독이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백룡문의 집사와 소
년들이 일제히 나서서 장문사에게 인사를 올렸다.
교주는 다시 분부했다.
"청룡 장문사는 병으로 휴양을 하고 있으니 반두타가 비석의 문장을 탁
본해 온 공을 세웠으므로 청룡문의  일은 잠시 반두타가 대리하도록 하
오. 그리고 청룡사의 병이 치유되면 다시 관장토록 합시다."
반두타는 허리를 굽히고 영을 받들었다.
교주는 다시 말했다.
"오룡사와 육고헌(陸高軒) 여섯 사람 모두  후청으로 가서 일을 논합시
다."
즉시 그는 부인과 먼저 자리를 떴다.  대청의 뭇사람들은 소리 높여 삼
가 전송한다는 인사말을 했다. 무근도인과 위소보 반두타, 육선생 등은 
그를 따랐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육선생의 이름이  육고헌이라는 것을 
알았다.

후청은 바로 대청  뒤쪽에 있었다. 별로 높지  않았는데 한복판에는 두 
개의 커다란 대나무 의자가 놓여있었다. 교주와 부인이 그 자리에 앉았
다. 그리고 아랫쪽에는 다섯 개의 나지막한 걸상을 놓았다. 세 명의 장
문사가 나누어 앉게 되고 반두타 역시 한 걸상에 앉으며 말했다.
"백룡사도 앉으시구려."
위소보는 육선생의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약간 망설였다.
육선생은 미소했다.
"백룡사도 앉으시구려. 이 잠룡당(潛龍堂) 안에는 나와 같은 한직에 잇
는 교도의 자리는 없소이다."
위소보는 규칙이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반두타가 만약 청룡사를 대
리하지 않았다면 역시 자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걸상에 앉
았다. 육선생은 흑룡사의 아래쪽에 앉았다.
별안간 은금 등 네 사람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위소보는 어찌 된 영문
인지 모르고 따라 일어섰다. 그러자 은금과  육선생 등 다섯 사람은 일
제히 읊기 시작했다.
"교주의 보배와 같은 가르침을......"
위소보는 즉시 따라 읊었다.
".....언제나 마음에 새겨 두고 있습니다.  승리를 제압하고 적을 제압
함에 있어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뾰족한 소년의 음성은 다른  다섯 사람보다도 더 우렁차게 느껴졌
다. 홍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다섯 사람은 앉았다.
홍교주는 말했다.
"비문에서 가르친 바에 의하면 이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은 사방에 흩어
져 있소. 그런데 흑룡사는 보고하기를 그 가운데 네 권이 황궁 안에 있
다 하니 어떻게 된 노릇이오?"
흑룡사는 말했다.
"아마도 네 권의 경서는 본래 소림사, 목왕부 등등의 곳에 있었으나 그
후에 오랑캐가 빼앗아서 궁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읍니다."
교주는 생각에 잠겨 말하지 않았다. 흑룡사의 얼굴에 점차 두려운 빛이 
드리워졌다.
홍교주는 고개를 돌리고 반두타에게 물었다.
"그대의 사형에게는 소식이 있소 없소?"
반두타는 공손히 말했다.
"교주에게 알립니다.  수두타(瘦頭陀)는 전에 상남기  기주의 저택에서 
약간의 단서를 찾게 되었지만 그후로는 알아낸 것이 없다는 말을 한 적
이 있읍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었다.
(상남기 기주의 저택이라구? 그렇다면 도 고모님의 사부가 갔었던 곳이 
아닌가? 원래 반두타에게는 사형이 있고  그 이름을 수두타라고 하는구
나.)
이때 홍교주는 말했다.
"그대는 그에게 한시바삐 조사하되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전하시오."
반두타는 잇달아 대답하는 소리를 했다.
잠시 후 홍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흑룡사가 사람을 황궁으로 보내 경서를 손에 넣고자 조처를 하지 않았
어요. 그런데 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전력을 다했으나 지금까지 한 권
의 경서도 손에 넣지 못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우리들은 아무래도 달리 
복이 더 많은 사람을 보내 일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요."
황룡사 은금은 재빨리 말했다.
"정말 부인의 고견이 옳습니다. 경서를  손에 넣는 일은 아무래도 타고
난 복이 크고 작음에 따라 관계가 큰 것 같습니다. 흑룡사로 말하면 노
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교주를 위하여 공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마는 시종 어려운 일만  당하는 것을 보면 십중팔구 타고
난 복이 부족하여 경서를 좀처럼 손에 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홍부인은 미소했다.
"그대의 의견으로는 누구의 복이 충분한 것 같나요?"
은금은 말했다.
"본교에서 복이 가장 큰 사람은 물론  교주 어르신이고 그 다음은 부인
이지요. 허지만 어쨌든 간에 두 분이 친히 나서는 수고를 할 수 없쟎읍
니까. 그리고 그다음으로  복이 가장 큰 사람은  먼저 백룡사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비문을 알고서  큰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인당(印
堂)에 은연중 붉은 빛이 감도는 것으로  보아 타고난 큰복은 교주의 속
하들 가운데 버금가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교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했다.
"그러나 그는 어린 몸으로 그와 같은 대임을 감당할 수 있겠소?"
백룡사라는 직위는 신룡교에서 존귀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러
나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가 이 섬에 붙
잡혀 있게 된 이상 그저 때에 따라 적당히 하면서 넘기려고 했다. 그리
고 꽃과 달도 부끄러워할 정도의  홍부인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흐뭇
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이 쳐다보게 되었다가 교주에게 자기의 탐욕스런 표정을 발견 
당하게 된다면 살신지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니 역시 한시바삐 북경으
로 되돌아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주가 그와 같은 말을 하자  정히 이곳에서 떠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교주, 부인. 이끌어 주신 데 대해서  속하는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
읍니다. 저는 본래 재간이라고는 없는 사람입니다만 두 분의 타고난 큰
복에 힘입어 황궁으로 잠입해 들어가 네 권의 경서를 훔쳐내는 데 성공
할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홍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홍부인은 기뻐서 말했다.
"그대가 용감하게 자진하여 나서겠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 교주에 대한 
충성심을 알 수 있겠소. 나는 그대가  총명하고 영리하며 또 큰복을 타
고난 것을 알고 있소. 아무래도 하늘에서 이 큰일을 이루도록 교주에게 
그대와 같은 사람을 내려보내신 것이라고 생각되는구려."
홍교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룡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가 황궁으로 파견한 부하들이 전해 온 소식
으로서 소황제의 아래에 나이 어린  태감이 있는데 뭐 소계자라고 하던
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거 들통이 나면 큰일이다.)
그런데 교주는 계속해서 말했다.
"소황제는...... 소황제는  그를 오대산으로 보내어 우리  교에 불리한 
행동을 하고자 했소.  그러나 장노삼이 그를 찾지  못하고 반두타 역시 
성공하지 못했소. 그런데 뜻밖에도 소계자를  찾지 못했지만 그대를 만
나게 되었구려."
은금은 교주가 잠시 말머리를 늦추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그것은 교주의 홍복이 하늘처럼 높기 때문입니다."
홍교주는 그에게 약간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백룡사, 그대가 궁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소계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
아 보시오. 황제가  그를 오대산으로 보낸 것은  도대체 어떠한 의도가 
있는지 알아내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그만 놀라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말했다.
"네. 그러죠."
그러나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교주의 말투로  미루어 볼 때 정말 자기
를 황궁으로 보내려는  것 같지 않은가. 그는  반두타를 한번 바라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가 나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대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군.)
홍부인은 말했다.
"그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 가운데는 몸을 건강하게 하고 목숨을 보조하
며 수명을 늘이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오. 우리 교주께
서 하늘의 돌보심을 받아 영원히  선복을 누리고 수명이 하늘처럼 높게 
되는 것을 허락  받은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여덟 권의 경서는 조만간 
우리 교주의 손에 들어오리라고 생각되오. 백룡사, 그대가 다시 교주를 
위해 그 여덟 권의 경서를 가져오는 큰공을 세우게 된다면 교주는 따로
이 큰 상을 내리게 될 것이오."
위소보는 몸을 일으키고는 허리를 굽혔다.
"속하는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교주와  부인의 커다란 은혜에 보답하기
가 어렵읍니다. 마땅이 진충보국하여 말가죽에  저의 시체를 싸도록 하
겠읍니다."
이 진충보국하여 말가죽으로 시체를  싼다는 말은 그가 이야기꾼으로부
터 들어 배운 것이었다. 매번 대장이 출전을 할 때 군왕이 대장을 격려
함에 따라 대장은 격양되어 그와 같은 말을 하곤 하는지라 그는 그것을 
흉내내어 이것을 사용하게  된 것인데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홍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교주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잘 된거에
요. 그대가 북경으로 가려면 어떤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마음대
로 뽑도록 하시구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신룡교  사람들이 따라 온다면 아
무래도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사람이 많으면 기밀을 누설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군요 적룡사 좌하의 
소녀들 가운데 속하는 한두 사람 뽑아서 데리고 가 그녀들로 하여금 궁
녀로 변장시키도록 해야겠읍니다. 그러면 궁에서 행동하기가 비교적 편
리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목검병을 생각하고 그녀를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무근도인은 말했다.
"그와 같은 소녀들은 아마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교주와 부인
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그대는 마음대로 뽑아가시도록 하시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도장에게 감사드립니다."
육고헌은 말했다.
"교주와 부인에게 말씀드립니다. 속하는  어제 중죄를 지었는데도 교주
께서 죽이지 않은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홍교주는 손을 흔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의 일은 모두들 마음속에 두지 말도록  할 것이며 그 누구도 들먹
이지 않도록 하시오."
육고헌은 말했다.
"네, 교주에게 감사드립니다. 속하는 백룡사를  따라 함께 가고자 합니
다. 그렇게 된다면  교주와 부인의 홍복에 힘입어  어쩌면 교주를 위해 
조금이라도 공을 세우게 되고 속하의 고마워하는 성의를 조금이라도 표
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홍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육고헌은 지모가 뛰어나고 무공이 고강하며  문장이 아주 뛰어나 멋진 
글을 아주 잘 짓는단 말씀이야.  매우 좋아. 그대는 백룡사를 따라가도
록 하시오."
육고헌은 속으로 생각했다.
(멋진 문장을 잘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을 보아 비문을 날조한 사실에 
대해서 교주는 이미 환히 알고 있구나.)
반두타는 말했다.
"교주와 부인에게 알립니다.  속하 역시 백룡사를 따라  북경으로 가서 
교주를 위해 일을 하고 싶습니다."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황룡사  역시 자진하여 나서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사람이 많으면 행적을  누설하기가 쉽소. 그러니 그대들  두 사람만이 
함께 가도록 하시오. 모든 행동거지에 있어서 는 백룡사의 명령을 받도
록 할 것이며 어기지 않도록 하시오."
육고헌과 반두타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속하 명을 받들겠읍니다."
홍부인은 품속에서 한  조그만 신룡, 즉 뱀 모양을  한 물건을 꺼냈다. 
오색이 알록달록한데 청동(靑銅), 황금(黃金), 적동(赤銅), 백은(白銀) 
그리고 무쇠로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꺼내 놓고 말했다.
"백룡사, 이것은 교주의 오룡령(五龍令)인데  잠시 그대에게 주어 관장
토록 하겠소. 교 아래의 수만이나 되는  교도들은 이 오룡령을 보면 친
히 교주를 본 것처럼 대할 것이오.  그리고 큰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그
대에게 생살대권(生殺大權)을 쥐어 드리겠어요. 공을  세운 이후 이 형
을 다시 바치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는 두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고 속으로 근심을 했다.
(내가 북경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신룡교고 호랑이교고 상관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 그녀의 오룡령을 가지게 된다면 이제부터 귀찮은 일이 
많게 생기겠구나.)
홍부인은 이때 말했다.
"백룡사와 육고헌, 반두타 세 사람은  잠시 남도록 하고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은 물러들 가시오."
무근도인과 흑룡사, 그리고 황룡사 세 사람은 절을 하고 물러갔다.
홍교주는 몸에서 하나의 검은 자기병을  꺼내더니 세 알의 주홍빛 알약
을 꺼내 손바닥에 들고서는 말했다.
"세 사람이 용감하게 나서서 북경으로 가 일을 처리하겠다고 하니 본좌
는 심히 기쁘고 또  장려하는 뜻에서 각자에게 표태역근환(豹胎易筋丸) 
하나씩을 내리도록 하겠소."
반두타와 육고헌은 얼굴에 대뜸 기쁘고도 두려운 표정을 떠올렸다 그리
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는 알약을 받아 삼켰
다. 위소보 역시 똑같은  짓을  행하고 표태역근환을 받아서는 즉시 삼
켰다. 얼마 후 뱃속에서 한가닥 뜨거운  기운이 위로 올라와 천천히 피
를 따라 돌고 돌더니 사지백해 가운데로 흩어지는데 뭐라고 말할 수 없
을 정도로 기분이 쾌적해졌다.
홍부인은 말했다.
"백룡사는 잠시 남도록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러가도록 하시오."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물러갔다.

홍부인은 미소했다.
"백룡사, 그대는 무슨 무기를 쓰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속하는 무예가 형편없읍니다. 그래서 어떤 무기를 가지고 무공을 배운 
적이 없읍니다. 다만 한 자루의 비루로 몸을 보호할 뿐입니다."
홍부인은 말했다.
"나에게 보여줘요."
위소보는 신발 목에서  비수를 뽑아서는 자루를 거꾸로  하여 두손으로 
바쳤다. 홍부인은 바라보더니 칭찬을 했다.
"훌륭한 비수로군."
그리고 그녀는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들고서 천천히 놓았다. 그러자 
그 머리카락은 천천히 비수의 날 쪽으로 떨어지더니 대뜸 두 동강이 났
다. 교주 역시 칭찬의 말을 던졌다.
"훌륭하군."
위소보의 위인됨은 다른 장점이 없었다.  그저 돈이나 재물, 또는 기물
에 대해서 매우  가볍게 보는 것이 그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는 
홍부인이 그 비수를 매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첨을 하려면 충분히 해
야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그 비수는 속하가 부인에게 바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흔히들 볼연지
와 보검은 모두  다.... 모두 다 미녀에게  바치라고 하지 않았읍니까? 
천하의 미녀들 가운데 부인보다 더 어여쁜 미녀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야기꾼으로부터 여러 번 들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보검은 여자
에게 주고 붉은  분가루는 미녀에게 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어렵다 보니 위소보는 똑똑히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홍부인은 깔깔거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착하군. 그대가  우리들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결코 헛말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달리 그대에게 줄  물건이 없는데 내 어찌 어린 사
람의 물건을 가질 수 있겠어요. 그대의  성의에 대해서 나는 고맙게 생
각해요. 자, 나는 그대에게 삼초로  몸을 방비하고 목숨을 건지는 초식
을 전수해 주겠소. 이는 미인삼초(美人三招)라는  것이니 그대는 잘 기
억하세요."
그녀는 자리에서 내려오더니 한 조각 손수건을 꺼내서는 비수를 자기의 
오른쪽 다리 바깥 쪽에 묶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교주, 수고스럽지만 무공을 한번 펼쳐 보이세요."
홍교주는 희희덕거리고 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왼손을 
뻗치더니 부인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그녀의 몸을 허공에 들어올렸다.
이것은 너무나 빨리  일어난 일이라 위소보는 깜짝  놀라서는 아! 하는 
소리를 내지를 지경이었다.
홍부인은 몸을 살짝 구부리며 가느다란 허리를 가볍게 비틀더니 오른쪽 
발을 뒤로 도려서는 교주의 아랫배를 차려고 했다. 교주는 뒤로 움츠리
며 피했다.
홍부인은 그 기세를 빌어 몸을 빙글 돌렸으며 그 순간 왼손으로 교주의 
목을 끌어잡고 오른손에는  어느덧 비수를 들고서 교주의  등을 겨누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것은  제일초로서 귀비회모(貴妃回모)라고  해요. 그대는  기억하구
려."
이 몇 수는  정말 깨끗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무공 
솜씨에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 큰소리로 갈채를 보
냈다.
"정말 묘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날 반두타에게 잡혀 들리게 되었을  때 전혀 방법을 쓰지 못했
다. 만약 이 일초를 진작 배웠더라면 일검으로 그를 죽일 수 있었을 것
이다.)
이때 교주는 홍부인의 몸을 가볍게 옆으로 해서 땅바닥에 내려 놓았다. 
홍부인은 다시 비수를 다리 옆에 감아 놓은 손수건에 꽂더니 몸을 뒤집
어 엎드렸다.
그러자 교주는 오른발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밟는 척 하며 손에는 칼
을 든 시늉을 하면서 그 칼을 그녀의 목에 갖다대는 척 하며 웃었다.
"항복하시겠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지경에 이르게 된 이상 무슨  방법이 있을려고 물론 큰소리로 항복
하겠지.)
별안간 부인의 머리가  그녀 자신의 가슴팍 쪽으로  꺾이면서 움츠려졌
다. 그렇게 되자 적이 그녀의 목에 겨누었던 칼은 자연 허공을 치게 되
었다. 그녀는 그 힘으로 땅바닥에서 재주를 한바탕 넘더니 교주의 사타
구니 아래로 기어나갔다. 그리고 비수를 쥐고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가
볍게 한대의 주먹을 교주의 등에 내질렀다. 그러나 검의 끝은 윗쪽으로 
향하도록 한 상태였다.  만약 정말 대적하게 된다면  이 일검은 자연히 
적의 등을 찌르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훌륭합니다."
교주는 그녀가 비수를  꽂기를 기다려서 그녀의 두  손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오른손에는 무기를 든 양 하면서 
그 무기를 그녀의 희고 고운 목에 겨누는 시늉을 하고서 웃으면서 말했
다.
"이번에야말로 그대는 도망치지 못하겠지."
부인은 웃었다.
"자세히 봐요."
곧이어 그녀는 오른발을 가볍게 찼다. 그러자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
운데 그 비수가 이미 그녀의  다리께에 묶여져 있는 손수건을 자르고서 
빠져나왔다.
그녀가 오른쪽 다리를 그 기세로 꺾어 비틀 듯하면서 그 비수의 자루를 
아래서 위로 눌러 주었다. 그러자 그  비수는 벼락같이 그녀의 목을 향
해 날아갔다.
위소보는 놀라 부르짖었다.
"조심하십시오."
그 순간 그녀는 몸을 아래로 움츠렸다.  그러자 그 비수는 급격히 교주
의 가슴팍으로 쏘아져 갔다. 교주는 그녀의  손을 놓고 뒤로 몸을 젖혀 
철판교(鐵板橋)라는 수법을 서서 피했다. 그러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비수는 그의 가슴팍을 스칠 듯 날아가서는 그의 등뒤에 있는 대나무 벽
에 자루가 있는 곳까지 푹 꽂히는 것이 아닌가.
홍부인이 발로 긁듯이 비수를 아래에서  위로 하는 순간 위소보는 그만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비수가 그녀의 목으로 날아가게 되었는
데 그녀가 일발의 차이로 피해  버리자 비수는 재차 교주의 가슴팍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반드시 적중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주마저도 다시 피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몇 수는 지극히 아슬아
슬한 변화를 일으킨 셈이었다.
그와 같은 광경에 그만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졌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되자 목구멍에서 훌륭하다는 한마디마저 내
뱉을 수가 없었다.
홍부인은 웃으면서 물었다.
"어때요?"
위소보는 손을 뻗쳐 의자의 등을 붙잡았다.  마치 스러질 것 같은 몸을 
가누면서 말했다.
"놀라 죽을 뻔 했습니다."
홍교주 홍안통과 부인은 그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보고 정말 무섭게 
놀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그 같은 한마디를 듣고는 수천 
수만 마디의 칭송하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욱더 기뻐했다.
그들 두 사람의 무공은 너무 고강하기 때문에 한 어린 사람에게 칭찬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기뻐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위소보가 그토록 걱정
하는 것을 보면 그들 두 사람에 대한 충성심을 족히 내다볼 수 있기 때
문에 흐뭇하게 여긴 것이었다.
홍부인은 알면서도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그대에게 쏘아진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
"저는..... 혹시 부인과..... 교주를 해칠까봐 두려웠습니다."
홍부인은 웃었다.
"바보같이 그토록 쉽게 교주를 해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일초는 비
연회상(飛燕廻翔)이라고 하는데  지극히 연마하기가  어려워요. 교주의 
신공은 절세적이라 사전에 몰랐다 하더라도  그 일초에 상처를 입을 분
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나 세상에서는  교주이외에 이 의표를 찌르는 
일격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몇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미인삼초의 연마법을 자세하게  그에게 들려 주었다. 삼
초라고 하지만 온 몸뚱아리와 사지 가운데 어느 한곳 관련되지 않은 곳
이 없었다.
어떻게 검을 뽑고 어떻게 고개를 숙이는 등 빠르고 늦게 움직이는 부위
를 정확히 해야 했고 힘의 안배도는  물론 겨냥하는 것도 반드시 꼭 알
맞아야 했다.
그 제이초는 땅바닥에 엎드려서  몸을 돌리는 것은 소련횡진(小憐橫陳)
이라고 했다.
홍부인은 다시 말했다.
"이 미인삼초는 모두 다 옛날 미인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니 남자
가 배우기에는 약간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대는 어린 사
람이니 상관이 없을 거예요."
위소보는 일초 일식을 따라서 배웠다.  홍부인은 세심하게 바로 잡아가
며 한 시진 남짓 가르쳤다. 그제서야  그는 겨우 배울 수 있었다. 그러
나 이 삼초를 참으로 능히 사용하려면 장기간 고된 연마를 쌓아야만 했
다. 더욱 제삼초 비연회상은 조금의 차질만 있어도 자기 자신을 죽이는 
꼴이 되었다. 홍부인은  그에게 말이 둔한 납덩이로  만든 검을 한자루 
주문하되 크기와 무게는 반드시 비수와 똑같이 해서 연습용으로 삼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홍안통은 교도들 앞에서는 매우 위엄이 있었으며 단정하여 웃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때만은 줄곧  부인이 초식을 가르치는 것을 지
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참을성 있게 지켜보더니 부
인이 가르치는 것을 끝내자 말했다.
"부인들의 미인삼초는 물론 매섭기 이를  데 없지. 적중된 사람은 반드
시 죽어  살아남지 못해. 그러니 나는  그대에게 영웅삼초(英雄三招)를 
가르치겠네. 이것은 적에게 항복 받자는 것이고 죽이고 살리는 것을 마
음대로 하는 것일세."
그는 다른 사람이 없자 이러게 저러게 하는 말투로 바꾸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교주에게 감사드립니다."
홍부인은 웃었다.
"저는 한번도 그대에게서 영웅삼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원래 
그대는 훌륭한 제자에게  가르쳐 주려고 나에게도 가르치지  않고 남겨 
두었군요."
홍안통은 웃었다.
"이는 조금 전  그대의 미인삼초를 보고 일시적으로  떠올린 것이외다. 
그러니까 금방 만들어서 금방 파는 것인데 제대로 될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외다. 그대는 옆에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구려."
홍부인은 그를 곱게 한번 흘겨 보더니 간드러진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어마, 우리 대교주께서 사람을 놀리시네요."
홍안통은 말했다.
"자고로 영웅은 미인관(美人關)을 뚫고  지나가기가 힘들다고 했소. 그
러니 영웅삼초는 물론 미인삼초를 당해낼 수 없을 것이오."
홍부인은 다시 요염하게 웃으며 간드러지게 말했다.
"어린 사람 앞에서 그런 저속한 말을 할거에요?"
홍안통은 자기네들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기침을 한번 하더니 얼
굴빛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백룡사는 나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남과  손을 쓰게 되었을 때 남에
게 쉽게 뒷덜미를 잡혀서는 들어올려지기 마련이오. 부인, 그대가 나를 
백룡사라고 생각하고 들어올려 보시오."
홍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허지만 그대는 저를 아프게 해서는 안 돼요."
홍안통은 말했다.
"그거야 물론이지."
홍부인은 왼손을 뻗쳐서는 그의 몸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홍안통은 체
구가 우람해서 보기에 일백 칠팝십 근은  나갈 것 같았다. 홍부인은 간
드러진 몸매를 하고 있었으나 조금도  힘들지 않고 대뜸 그를 들어올렸
다.
홍안통은 말했다.
"자세히 보게."
그리고 왼손을 천천히 뒤로 돌려  부인의 왼쪽 겨드랑이를 한번 간질렀
다. 홍부인은 깔깔거리고  웃더니 그만 몸에 맥이  빠지는 것처럼 보였
다. 홍안통은 왼쪽으로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를 붙잡고 오른손을 천천
히 돌리더니 그녀의  앞섶자락을 잡고는 천천히 그녀의  몸을 들어올렸
다. 그리하여 그녀의 몸이 자기의 머리 위로 들어올려지자 가볍게 바깥 
쪽으로 내던졌다. 홍부인은 몸이 땅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슬쩍 몸을 날
렸다.
그 모습은 마치 물위로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것 같았다.
홍부인은 여전히 웃음소리를 멈추지 않았으며 몸을 멈춘 후에도 비스듬
히 땅바닥에 드러누워서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조금 전 홍안통이 그녀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고 손을 뒤로 돌려잡아서
는 머리 위로 쳐들어 던지는 동작은  지극히 느렸다. 그렇기 때문에 위
소보는 낱낱이 볼 수가 있었는데 그의 자세가 우아하여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멋지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행동은 매우 느릿했으나 여전히 일정
한 간격이 있었고 또 시원시원해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긁는 것이
나 잡는 것이 정확하기 이를 데 없어 홍부인의 재빠른 손씀씀이와 비교
해 볼 때 몇배 더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때 홍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남을  간지럽혔어요. 그래 가지고  무슨 영웅이라 할  수 있어
요?"
그러면서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홍안통은 미소했다.
"이 초식은 진정 영웅호걸의 손에서 펼쳐지게 된다면 물론 상대의 겨드
랑이를 간지럽히는 일은 없을 것이외다.  그러나 백룡사가 만약 적에게 
붙잡혀 들어올려지게 된다면 목덜미  아래의 대추혈을 대뜸 움켜잡히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곳으로 말하면 손과 발에  있는 삼양독맥(三陽督
脈)이 모이는 곳이니 전신의 기운을 쓸 수가 없을 것이오. 따라서 부득
이 적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극천혈(極泉穴)을 가볍게 간지럽히지 않을 
수 없소. 이 혈도로 말하면  수소양신경(手少陽神經)에 속하는 만치 적
은 반드시 손을 놓게 될 것이오. 백룡사에게 기운이 있게 되면 즉시 적
을 머리 위로 들어올릴 수 있게 될 것이고 내던질 때 동시에 적의 팔꿈
치에 있는 소해혈(小海穴)과 겨드랑이의 아래에 있는 극천혈을 짚어 봉
쇄하여서는 그를 땅바닥에다 내동댕이 치게 될 것이니 상대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오."
위소보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 일초는 정말 절묘하군요."
홍안통은 말했다.
"그대가 익숙하게 연마한 후에 손을 쓸 때는  될 수 있는 한 빠르면 빠
를수록 좋다네."
그리고 그는 땅바닥에 부복했다. 홍부인은 팔을 뻗쳐 그의 허리께를 힘
껏 밟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문가에  놓아둔 빗장을 들어서는 그의 
목에 갖고대고는 간드러진 음성으로 웃으며 말했다.
"항복하시겠어요. 못하시겠어요?"
홍안통은 웃었다.
"나는 이미 항복을 했소. 내 그대에게 절을 하리다."
그리고 두 발을 움츠렸다. 마치  큰절이라도 올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의 오른팔이 천천히 옆으로 뻗쳐냈다.  그리고 빗장에 닿게 되었을때 
우직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빗장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그가 팔을 급히 뿌리쳐 냈더라면 그의 무공으로
써 빗장을 두동강 내는 것쯤 별로 놀라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토록 천천히 손을 뻗쳐  빗장과 부딪히는 순간 빗장에 충격을 
주어 분질렀다는 데 대해서 천만뜻밖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안통은 말했다.
"그대가 다리를 움츠리고 적에게 큰절을 하는 듯 가장을 하면서 비수를 
뽑아드는 것이라네. 그대 손에는 나와 같은 내력이 없지만 그대의 비수
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적의  어떠한 무기라도 단번에 잘라 두 동
강을 낼 수 있을 것이네." 
그는 입으로 그와  같은 설명을 하면서 갑자기  재주를 넘었다. 그리고 
홍부인의 사타구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교주라는 존귀한 몸으로서 어찌 여자의 사타
구니 밑을 기어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홍부인은 그의 처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보기에 좋지 않은 것 같
았다. 그런데  홍안통은 정말 저쪽으로 기어나가더니  단번에 왼손으로 
부인의 오른쪽 발목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아랫배를  살짝 찍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그는 설명을 했다.
"이것이 만약 무쇠를  무우 자르듯 하는 비수라면  적에게 하늘과 같은 
큰 담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반항하지 못할 것일세."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홍부인의 머리가 아래가 되고  발이 위로 올려져 거꾸로 매달린 
꼴이 되었다. 홍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손을 놓아요. 무슨 체통 없는 짓이에요?"
홍안통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껴안
더니 몸을 똑바로 하고서 내려놓고는 말했다.
"백룡사, 그대의 몸매가 왜소하니 적을  거꾸로 들어올릴 수는 없을 것
이네. 그렇다면 그의 발목을 잡고 들어올리되  들어올릴 수 없을 때 비
수로 그의 아랫배를 겨눈다면 적은 부득이 투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네. 
그대는 바로 그의 가슴팍에  있는 신장(神藏), 신봉(神封), 보랑(步廊)
등의 요혈에 몇번 발길질을 가해서는  그가 반격할 것에 방비하도록 하
는 것이네."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네네, 그 몇 번의 발길질은 반드시 걷어차야 하겠죠."
홍안통은 두 손을 뒤로 돌려서는 부인이  그의 손목을 잡도록 했다. 부
인은 반토막의 빗장을 들고서는 그의 목에 갖다댔다.
홍안통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적이 나의 두 손을 잡을 때 자연  나의 완맥을 움켜잡게 될 것이 아니
겠는가. 그리하여 나의 손이 힘을 쓰지  못해 반격을 하기 어렵도록 만
들 것이네. 이와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본래 다리를 쓸 수밖에 없
는데...... "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홍부인은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웃으
면서 손을 놓고 물러났다. 그리고 온 얼굴이 시뻘개져는 말했다.
"어린 사람에게 그와 같이 저속한 초식을 가르칠 수 없어요."
홍안통은 웃으며 말했다.
"요음퇴("요陰腿)가 어째서 저속한 초식이란 말이오?"
그리고 정색하고는 말했다.
"사타구니는 사람 몸에  있는 급소이오. 이곳을 적중당하면  즉시 죽고 
마오. 그렇기 때문에 명문대파의 권각법  가운데도 종종 요음퇴라는 일
초가 있소. 하지만  적이 그대의 등뒤에 있고  두손이 제압당했을 뿐만 
아니라 목에 칼이 겨뉘어 있다면 부득이 반요음퇴(反요陰腿)를 쓸 수밖
에 없지......"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는 잠시 이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그러나 적은 반드시  그대의 그 한 수를 미리  방비하고 있을 것일세. 
그리하여 그대의 다리가  움직이면 십중팔구 한칼로 먼저  그대의 작은 
머리통을 베어 내겠지.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사타구니를 뒤로 치는 
일은 쓸모가 없게 되지."
그리고 그는 두  팔을 등뒤로 돌려 홍부인이  손목을 움켜잡도록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열 손가락을 구부려 일으켰다. 각기 두 손을 공 모
양으로 반쯤 일으킨  형태를 취하도록 한 이후 몸을  뒤로 가 부딪히는 
동시에 열 손가락으로 홍부인의 가슴팍을 움켜잡으려 들었다.
홍부인은 뒤로 급히 몸을 움츠리며  그의 손을 놓고는 뾰로통한 음성으
로 말했다.
"그게 또 무슨 영웅의 초식이란 말이에요?"
홍안통은 빙그레 웃었다.
"사람의 몸  가슴팍에 있는 유중(乳中)과 유근(乳根)두  혈도는 남녀를 
막론하고 치명적인 대혈이외다. 백룡사, 그  사람이 그대의 두 손을 뒤
로 돌려 움켜잡는 것을 보면 무공이  자연 낮지 않을 것이네. 더군다나 
십중팔구 그대의 손목에  있는 혈도를 움켜잡았을 테니  설사 그대에게 
잡힌다 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는 노릇이지. 그러나  그대가 그와 같은 
손짓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자연히 뒤로 몸을 움츠리게 될 것일세. 그
리하여 그대의 손에 힘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 
늦은 감이 있지. 부인, 그대는 다시 나의 두 손을 잡아 보시오."
홍부인은 두 걸을  다가갔다. 그리고는 가볍게 그가  뒤로 돌린 손등을 
서로 맞부딪히게 하고서는 왼손으로 그의  두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
고는 윗몸을 뒤로 젖혀 그의 손가락이 자기의 가슴팍에 닿지 않도록 했
다.
홍안통은 말했다.
"자세히 보게."
그리고 그는 등으로  뒤로 부딪쳐 갔다. 동시에  열 손가락으로 부인이 
가슴팍을 움켜잡으려는 시늉을 했다. 홍부인은 그가 움켜잡으려는 것이 
그저 손짓만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역시 몸을 움츠려 피했다.
홍안통은 돌연 뒤로 재주를 넘었다.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두다리를 벌
리면서 어느새 그녀의 어깻죽지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두 손
의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태양혈을  짚고 식지로는 그녀의 눈썹을 눌
렀으며 중지로는 그녀의 눈을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중지에 힘을 주게 된다면 적의 눈동자를 찔러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고 
엄지 손가락에 힘을 쏟게 된다면  적으로 하여금 머리가 어지럽도록 하
는 것일세. 그러나 반드시 상대방의 반격을 조심해야 할 것이네."
그리고 그는 다시 허공에서 재주를 넘더니 저만치 몸을 날려 일장 밖으
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다리를 한번 만지며 비수를 뽑아 드
는 척 했다.
그리고 비수의 끝을 바깥 쪽으로 돌리는 척 하면서 왼손을 비스듬히 쳐
들고는 말했다.
"적의 눈동자가 만약에 그대의 그와 같은 한 수에 찔려 멀게 되면 다시 
덮쳐드는 기세는 무섭기  이를 데 없을 것이네.  그러니 그에게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게."
위소보는 이 초식의 무척 복잡한  것이 곡마단의 어릿광대가 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의 칼날을  피하고 적의 요소를 제압하
는데 있어서는 확실히 탁월한 효과를 나타낼 것 같아 탄식했다.
"그 일초는 정말 훌륭하군요. 그러나  연마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안통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삼초에 지나지 않으나 그 가운데 금라수
법과 타혈수법, 그리고 경신법 세 가지의 무공이 포함되어 있어 한가지
라도 제대로 연마하지 않으면 이 삼초를 사용할 수가 없다네. 금라수법
이나 타혈수법, 그리고 경신법 등은  매가지 수법마다 반드시 팔년이나 
십년의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일세. 그러나 그대는  이 삼초와 상관있는 
것만 배우게 될 것이니 그것은 한결 수월한 일일세."
그리고 그는 혈도  부위와 금라수법, 그리고 몸을  가볍게 하면서 발에 
힘주는 법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는 그를 몇 번이나 상대해서 연마하게 
했으며 잘못되면 일일이 바로잡아 주었다.
하지만 위소보는 감히 그의 머리 위로  올라탈 수는 없었다. 홍안통 역
시 시험해 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이때 홍부인이 말했다.
"교주, 나의 이 미인삼초는 사부님이  가르친 것이고 과거 고치고 고쳐
서 이루어진 것이에요. 그런데 그대의  영웅삼초는 일시적인 흥취에 따
라 마음내키는 대로 창안한 것이니  정말 나의 미인삼초에 비하면 무섭
기 짝이 없어요. 앞이라고 해서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종사의 무학 
깊이는 실로 남으로 하여금 탄복케 하는군요."
홍안통이 포권을 하고 웃었다.
"부인의 과찬은 감당할 수가 없소이다."
어제 위소보는 대청에서 홍안통이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웃지도 않는 
것이 꼭 목석같다고  여겼으며 마음속으로 약간 업수이  여기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의 진짜 실력을  보고 나니 그야말로 진심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입을 열었다.
"사부님이 가르친 무공을 익숙하게 연마한다는  것은 별로 대수로울 것
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주께서 마음속으로 무슨 초식을 만들어내야겠다
고 생각하고 손을 휘두르는 대로  펼쳐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진정 천하
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부인은 물었다.
"어째서 천하무적이라고 하지?"
위소보는 말했다.
"적의 재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교주가 몇  수 새로운 초식을 
펼쳐 낸다면 그는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니 자연  큰소리로 투항이라고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홍안통과 부인은 소리내어 웃었다. 한  사람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
고 한 사람은 말했다.
"옳은 말씀이에요."
홍부인은 다시 말했다.
"교주, 나의 이 미인삼초에는 세 미녀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대
의 영웅삼초가 그토록 무서우니 역시  세 분 대영웅의 이름이 있어야만 
하겠어요."
홍안통은 미소했다.
"좋소. 어디 생각해 봅시다. 제일초는  적을 들어올리는 것인데 그것은 
임동(臨동)에서 오자서(伍子胥)가 커다란 향로는 들어올리는 형상과 비
교할 수 있으니 이를 자서거정(子胥擧鼎)이라고 합시다."
홍부인은 말했다.
"좋아요. 오자서는 대영웅임에 틀림없어요."
홍안통은 다시 말했다.
"제이초는 적을 거꾸로 들어올리는 것인데 이는 노지심(魯智深)이 수양
버드나무를 거꾸로 뽑아올리는 것과 비교될  수 있겠소. 그렇기 때문에 
노달발류(魯達拔柳)라고 해야겠소."
홍부인은 말했다.
"매우 좋아요. 노지심 역시 대영웅이에요. 그런데 그대의 이 삼초는 교
묘하기는 하나 약간 무뢰한의 기운이  뻗친다고 할 수 있어서 대영웅과 
비교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것 같아요......"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녀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홍안통은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여웅답지 못하다는 것이오? 그러면 어떤 초식으로 불러야 좋겠
소? 흠, 내가 두 개의 식지로 그대의 눈썹을 꾹 눌러 주었으니 이를 장
창화미(張敞畵眉)라고 해야겠소."
홍부인은 웃었다.
"장창은 영웅이 아니에요. 거기다가  부인의 눈썹을 그려주는것도 설마
하니 영웅적인 초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홍안통은 웃었다.
"규방의 낙은 눈썹을 그려 주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아니겠소. 그대는 
부인에게 눈썹을 그려 준다고 해서 영웅이 아니란 말이오?"
홍부인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장창이 옛날의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속으로 여
편네에게 눈썹을 그려 주는 것은  비단 영웅이 아닐 뿐아니라 그야말로 
마누라를 두려워하는 졸장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홍안통이 문자
를 써서 자기의 처와 희롱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입을 열었다.
"교주, 교주의 일초는 적의 목에 말 타듯 타는 것이지 않습니까? 말 타
는 대영웅은  많습니다. 관운장은 적토마를  탔구요. 진숙보(秦叔寶)는 
황표마(黃驃馬)를 타지 않았습니까?"
홍안통은 웃었다.
"맞았네. 하지만 관운장의 적토마는 본래  여포의 것이야. 그리고 진경
은 그 황표마를 팔았으니까 모두 적절하지 못해. 됐어. 이 일초는 적청
(狄靑)이 용구보마(龍구寶馬)를 항복받는 것이니까 적청항룡(狄靑降龍)
이라고 해야겠군. 본래 그가 항복받은 그 한필의 보마로 말하면 본래는 
용이 변한 것이라네."
홍부인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정말 좋아요. 적청이 싸움터에 나갈 때 청동으로 만든 귀신과 같은 얼
굴의 탈을 쓰는 바람에 오랑캐의 장수들과 병졸들은 그만 놀라 크게 비
명을 내지르며 도망을 쳤으니 그야말로 대영웅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
만 우리들은 신룡교라고 하는데......"
홍교주는 미소했다.
"상관없소. 설사 용이라고 하더라도 때에 따라 남에게 제압당해 고분고
분할 때가 있는 것이오."
홍부인은 쳇 하고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온 얼굴이 시뻘개졌
으며 두 눈에는 물기가 그윽하게 감도는 것이 매우 요염했다.
그 즉시 위소보는 다시 영웅삼초와 미인삼초를 일일이 펼쳐 보였다. 수
법과 신법이 잘못된  데 대해서는 홍안통과 부인이  다시 지도를 했다. 
이 육초의 무공은 무척 교묘한 것이라 위소보는 일시에 제대로 배울 수
가 없었다. 홍교주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며 그저 연습의 요령을 알기
만 하고 시일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익숙해진다고 했다.
그리하여 가르침이 끝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 되었다.
홍부인은 한사코  비수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위소보에게 
되돌려 주며 말했다.
"그대가 무공을 제대로 연마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에는 교주를 위해 
일을 처리하러 가니 이와 같은 예리한 무기로 몸을 보호해야 해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말했다.
"백룡사, 본교에서 교주에게 친히 무공을  가르침 받은 사람은 나 외에
는 그대 한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이야말로 속하는 언제 갈고 닦아서 얻은 복인지 모르겠습니다."
홍부인은 말했다.
"그대는 충심으로 교주를 위해서 일을  처리하니 교주의 은덕에 보답하
도록 하세요."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홍부인은 말했다.
"이제 그대는 가 보시구려. 내일 이른 아침 반두타와 육고헌 등과 함께 
배를 타고 출발하도록 해요. 다시 와서 작별을 고할 필요는 없어요."
위소보는 명령대로 응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몸
을 돌려 문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가에 이르러 그는 고개를 돌
리고 물었다.
"부인, 만약 제가  팔십 세까지 살게 되었을 때  교주와 부인께서 다시 
저에게 삼초의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홍부인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곧 오래오래 살라고 칭
송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  위소보는 열 네다섯 
살에 불과하지 않는가. 팔십 세까지는 육십여 년이란 세월이 남아 있었
다.
그러나 교주와 자기의 수명은 하늘처럼 높으니 다시 육십여 년을 더 산
다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내 약속하리다. 그대가 팔십 세 생일을  맞게 되는 날 교주와 나는 다
시 그대에 삼초를 전수하지요. 그리하여 그대가 백세 되는 날에 우리가 
다시 각기 삼초를 전수하겠어요.  그때 전수되는 삼초는 노수삼초(老壽
三招)와 노파파삼초(老婆婆三招)가 될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닙니다. 부인은 그때도 여전히 오늘처럼 젊고 아름다우실 것입니다. 
아니 십중팔구  부인과 교주께서는 더욱더 젊어지실  것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전수해 주시는 것은......금동삼초(金童三招), 옥녀삼초(玉女三
招)가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홍안통과 부인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대청 밖 산바위 위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
다. 그래도 시종 위소보가 대청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자 놀람과 의
혹에 쌓여 있었다. 어떤 변고가 생겼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한껏 웃으며 나오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안심을 했다. 그
러나 두 사람은 그 동안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감히 묻지
를 못하였다.
그런데 위소보가 먼저 말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나에게 적지 않은  중요한 무공을 가르쳐 주셨답니
다."
반두타와 육고헌은 일제히 말했다.
"백룡사, 축하합니다. 본교에서는 부인 이외에  그 어느 누구도 교주에
게 일초 반식을 전수받은 적이 없습니다."
위소보는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교주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소이다."
육고헌은 말했다
"백룡사가 교주의 총애를  받은 일은 실로 본교가  창립된 이래 일찌기 
없었던 일이외다."
그리고 그는 반두타를 한번 쳐다보더니 위소보에게 물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언제쯤 우리에게 표태역근환의 해약을 내려 주시겠
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소이까?"
위소보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표태역근환에도 해약이 있는  것인가요? 설마하니......설마하니 이것
이 독약이란 말씀입니까?"
육고헌은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죠.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그는 대청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몇 번 던졌다. 얼굴에는 크게 
경계하고 조심해 하며 두려워하는 빛이 완연했다.
세사람이 육씨 집에  도달할 때까지 위소보는 반두타와  육고헌의 얼굴 
표정이 우울한 것을 보고 더럭 의심이 나서는 다시 물었다.
"표태역근환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도대체 독약이오, 아니면 영
단이오?"
반두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독약이 될 것인지 아니면 영단이 될 것인지 그것은 두고 봐야 할 것이
오. 우리 세 사람의 목숨은 모두 백룡사의 손에 쥐어져 있다 하겠소."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것은 또 어째서인가요?"
반두타는 육고헌을 바라보았다. 육고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두타는 말했다.
"백룡사, 남이 깍듯하게 예의를 차려  부를 때는 나를 반존자라고 부르
고 별로 깍듯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두타라고 불렀소이다. 그
러나 나는 이와 같이 비쩍 말라 전혀 명실상부하지 않으니 그대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요. 나는 이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저  남들이 그대와 
장난을 하느라고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소이다. 그러나 교주께서도 그
대를 반두타라고 불렀소이다. 그 어르신께서는  그대를 조롱할 리 없지 
않겠소이까."
반두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표태역근환을 복용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오. 그것이야말로 정
말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셈이라 할  수 있소. 지금도 종종 악몽을 꾸
곤 한다오. 본래  나는 키가 작고 매우 뚱뚱했소.  반두타라는 석 자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소."
위소보는 그제서야 알아차린 듯 탄성을 내질렀다.
"아, 표태역근환을 복용하고 나서 그대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르게 변했
구려. 그것 참 잘되었소. 그대는 지금 모습이 당당하고 매우 위엄이 있
어 보여요.  옛날에 땅딸보였다면  지금만큼 멋져 보이지  않을 것입니
다."
반두타는 쓰디쓰게 웃었다.
"말은 그렇지만 그대는 생각해 보시오. 한 땅딸보가 삼 개월 안으로 몸
이 갑자기 석 자나 커지게 되고  전신의 살갗이 피로 물들게 되었을 때
의 그 고통이 견딜 만 하겠는지 말이오. 다행히 운수 대통하여 끝내 신
룡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또 교주께서 크게 자비를 베푸시어 해약을 주
시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도 두 자나 더 키가 커졌을 것이오."
위소보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우리 세 사람도 그 알약을 먹었는데 내가  다시 두 자 정도 커지는 것
은 상관이 없지만 그대가 다시  두 자나 더 커진다면 그거야말로......
그거야말로 너무나 키가 커지는 것이 아니겠소?"
반두타는 말했다.
"이 표태역근환의 약은 효과가 무척 영묘하외다. 먹은 지 일년안으로는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오. 그러나 만약 일년을 꼬박 채우고도 해약을 먹
지 않으면 그 맹렬하기 이를 데 없는 독이 퍼지게 된다오. 그리고 반드
시 사람의 키를 커지게 하지는 않는다오.  나의 사형 수두타는 본래 키
가 매우 컸으나 갑자기 키가 적어지고 말았으며 본래 비쩍 말라 있었으
나 뚱뚱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로 변해 그야말로 땅딸보가 되고 말았소
이다."
위소보는 웃었다.
"반존자가 수존자가 되고 수존자는 반존자가  되었으니 두 사람끼리 서
로 이름만 바꾸면 아무 일도 없이 좋게 끝나는 것이 아니겠소?"
반두타는 얼굴에 약간 노기를 띠우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될 수 없다오."
위소보는 재빨리 사과했다.
"미안하오. 반존자, 내가 또 말을 잘못했구려. 양해하시오."
반두타는 말했다.
"그대가 오룡령을 지니고 있으니 나는  바로 부하이오. 설사 나를 때리
고 욕을 한다 하더라도 나는 반항할  수가 없소이다. 더군다나 그 말에
는 결코 사람을  놀리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소.  나와 사형 두 
사람의 성격과 모습, 음성은 전혀 달랐소. 단지 한 사람이 뚱뚱하고 한 
사람이 비쩍 말랐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다고 하여 반존자로 하여금 수
존자가 되게 하고 수존자로 하여금 반존자로 되게 할 수는 없다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그랬구려."
반두타는 계속해서 말했다.
"오년 전에 교주는 나와 사형을 내보내 한가지 일을 처리하도록 했소이
다. 그런데 이 일은 매우 어려웠소. 그리하여 일을 처리하게 되었을 때
는 일년이란 기한 가운데 사흘을 넘기게  되었소. 즉시 배를 타고 섬으
로 돌아왔으나 배안에서 약기운이 퍼져 고통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소. 
사형은 성질이 매우 열화와 같아서  미칠 듯한 성질이 크게 솟구쳐서는 
배의 돛대를 발로 차서 분질러 버렸소.  그리하여 그 배는 바다에서 표
류를 하게 되었고  하루 하루 세월은 흘러가게 되었는데  나는 점점 더 
커지면서 마르게 되었소. 그런데 사형은 점점 더 갈수록 키가 작아졌으
며 뚱뚱해지는 것이었소. 이 표태역근환은  땅딸한 사람을 비쩍 마르고 
키가 크게 늘여  놓을 뿐만 아니라 키가 큰  사람을 땅딸하게 압축시킬 
수 있었으니 홍교주께서야 그야말로 신통력이 지극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그와 같이 이 개월  동안을 표류하게 되었는데 이때 우
리 두 사람은 또다시 더 살수  없으리라 생각했소. 그리고 배에는 양식
이 떨어져 우리들은 사공을 하나하나  죽여서 먹게 되었소. 천만다행하
게도 그러다가 다른 배를 만나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 
배의 사공을  핍박하여서는 신룡도로 방향을 잡도록  만들었소. 교주는 
일을 우리가 적절히  처리한 것을 보고 또 우리가  일부러 지체한 것이 
아님을 알고는 해약을 내렸소. 그리하여 우리  두 목숨을 겨우 건진 셈
이 되었소."
위소보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육고
헌을 바라보았더니  그의 얼굴빛은 진지했다. 반두타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년 안으로 반드시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을 손에 넣
어서는 신룡도로 되돌아와야겠구려."
육고헌은 말했다.
"여덟 권의 경서를 모두 취득하게 된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지만 그게 어디 수월한 일이겠소? 그저 한두  권 때 늦지 않게 손에 넣
어서는 되돌아 오면 교주께서는 해약을 내려 주실 것이외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수중에 이미 여섯 권이 있으니 정말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는 한두 권을 교주에게 나누어 주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
가.)
그리고 그는 즉시 안심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만약 교주께서 해약을 내려 주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가운데 젊
은 사람은 늙게 변할 것이고 늙은  사람은 젊어질지도 모르죠. 내가 칠
팔십 세나 되는 할아버지가 되고 그대들  두 분은 나이 어린 꼬마가 된
다면 그것 정말 재미있겠군요."
육고헌은 몸을 흠칫했다.
"그것도....... 그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외다."
그러는 그의 어조에는 무척 공포스러운 빛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했다.
"내가 깊이 생각해 본 결과  그 표태역근환의 태반이 표태(豹胎), 녹태
(鹿胎), 자하거(紫河車), 해구신(海狗腎) 등등  크게 몸을 보호하는 진
기한 약재를 모아  만든 것이고 약의 성질은 원래  신체의 어떤 특징을 
되돌려 놓는 것이 틀림없소이다. 그리고  짐작이지만 교주께서 당초 이 
약을 만드실  때는 반로환동(返老還童)하기 위해서인데  남에게 시험을 
해본 결과 약효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외다. 그래서... ... 그래
서......"
위소보는 그 말을 받았다.
"그래서 교주는 자기가 먹지 않고 시험삼아 부하들 몸에 썼구려."
육고헌은 재빨리 말했다.
이것은 나의 짐작이니 절대 틀림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소이다. 백룡
사는 금후에 절대 들먹이지 않도록 하시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두 분은 안심하시오. 내 책임을 지리다. 교주께서는 반드시 해약을 주
실 것이외다. 두  분은 잠깐 앉아 계시지요. 나는  방소저에게 몇 마디 
말을 해야겠소이다."
그는 어제 목검병을 만났다는 사실을 급히 방이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이
었다.
육고헌은 말했다.
"홍부인은 이미 방소저를 불러갔읍니다. 그러면서 백룡사께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그저 그대가 진심으로 교주를  위해 일을 처리한다면 방소저
는 섬에서 좋은 일만 하게 되리라고 했소이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물었다.
"방...... 방소저는 우리와 같이 가는 것이 아니오?"
육고헌은 말했다.
"홍부인은 하인을 시켜 그녀를 불러갔는데  우리 안사람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다는 구려. 그리고 그 적룡문의 목소저 역시 마찬가지이외다."
위소보는 속으로 정말 난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얼마전 무근
도인에게 적룡문에서 몇 사람을 뽑아 데려가겠다고 했지 않은가. 그 뜻
은 물론 목검병에  있었다. 그런데 홍부인은 이미  짐작한 모양이 아닌
가. 그리하여 위소보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부인..... 부인은 아직도 나에 대해서 마음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죠?"
육고헌은 말했다.
"그것은 본교의 규칙이외다.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가 교주를 위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가족을 데려가지 못하게 되어 있소이다."
위소보는 쓰디쓰게 웃었다.
"그 두 소저는 나의 가족이 아니외다."
육고헌은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슷하지 않소."
위소보는 본래 내일쯤 방이와 목검병 두 소녀를 데리고 섬에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마음속으로 여간 흐뭇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삽시간에 그만 맥이 빠져 속으로 생각했다.
(교주와 부인은 정말 무섭구나.  표태역근환으로 손오공처럼 나의 머리
에 테를 두르게 한 것도 부족하여서는 나의 크고 작은 마누라를 인질로 
삼았구나.)
이튿날 아침 위소보가 막 몸을 일으킬  때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적
지 않은 사람들이 문밖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백룡문 좌하의 제자들이 삼가 장문사께서  출정하시어 교주를 위해 충
성심으로 일을 처리하러 가시는 것을 공손하게 전송하는 바입니다."
곧이어 풍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소보는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문밖에는 삼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하나
같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늙은이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었다. 뭇사
람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장문사께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기를  바라며 도달하는 즉시 성공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수십 명의 청의를  입은 교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
마도 대리 장문사인 반두타를 전송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위소보는 그만 의기양양해지면서 아울러 정신이 맑아졌다. 드디어 반두
타와 육고헌 두 사람을 데리고 배위로  올랐다. 그리고 전송차 나온 무
근도인과 장담월(張淡月), 은금 등과 작별을 고할 때 갑자기 말발굽 소
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두 필의 말이 달려왔다.
마상의 두 사람은 모두 다 백의를  걸쳤는데 바로 방이와 목검병 두 소
녀가 아닌가. 위소보는 크게 기뻐 가슴을 두근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부인께서 마음을 돌리시어 그녀들을 나와 함께 보내려는 것이 아
닐까?)
방이와 목검병 두 소녀는 훌쩍 말에서 내리더니 앞으로 다가왔다.
방이는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교주와 부인의 명을 받고 백룡사의 출정을 전송하러 나왔습니다."
위소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저 전송 나온 것에 불과하구나.)
방이는 다시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속하 방이와  목검병은 부인의 명으로 적룡문에서  백룡문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이후 백룡사의 명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으나 곧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 너는..... 너는 이미 신룡교  적룡문의 속하였구나. 길을 오면서 
시치미를 떼고 수작을 부린 것은 교주의 명을 받고 나를 꼬여 신룡도로 
오도록 하기 위해서였구나. 반존자가 억지로  청해서 되지 않으니까 네
가 나서서 나를 꼬신 게로구나.)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그야말로 마음속이 여간 거북해지지 않았다. 본
래 그는 그녀들  두 사람과 다정한 말을 나누려고  했으나 그만 흥미를 
잃고 말았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그는 육고헌에게 말했다.
"육선생, 나의 시중을 들던 그 쌍아를 사람을 시켜 석방하도록 하시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가야겠소이다."
육고헌은 망설였다.
"그건....."
위소보는 대노해 호통을 내질렀다.
"뭐가 이것저것이오? 빨리 석방하시오!"
그가 날카로운 호통을 내지르자 육고헌은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대답하
였다.
"네네."
그리고 그는 배위의 시종에게 몇 마디  분부를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언덕 위로 오르더니 나는 듯 달려 나갔다.
얼마 후 두 필의 말이 신속하게 달려왔다.  앞장을 선 한 필의 말을 탄 
사람은 몸매가 작았는데 바로 쌍아였다.
그녀는 말이 서기를 기다리지 않고 부르짖었다.
"공자!"
그리고 안장에서 몸을 날리더니 날렵하게 뱃머리에 내려섰다. 무근도인 
등 대고수들의 눈에 그 한수의 경신법은 대단한 것이 못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가 어린 데다가 자색  또한 아름다운지라 모두 갈채를 보냈
다.
처음 위소보는 자기가  타고 온 배가 떠나게 되었을  때 쌍아가 간악한 
자의 손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다. 그녀의 무공이 고강
하기는 하지만 역시 나이 어리고  인품이 부드러운 데다가 세상일을 잘 
모르는지라 바다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반드시 고생을 하리라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방이가 신룡교의 제자인 것을 보고는 갑자기 자기가 타고 
온 그 배가 신룡교의 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는 쌍아를 
보자 매우 기뻐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안색은 초췌했으며 두 
눈은 붉게 부어 있었다. 아마도 적잖게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재빨리 물었다.
"누가 그대를 괴롭혔소?"
쌍아는 말했다.
"아.....아니오. 아니에요.  저는 그저  상공을 염려했더랬어요.  그들
은..... 그들은 또 저를 가두어 두었고요."
위소보는 말했다.
"이제 되었소. 우리는 돌아갑시다."
쌍아는 말했다.
"이곳에는..... 독사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러더니 와앙 하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위소보는 방이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기를 숲속으로 인도
하여 독사들에게 물리게  한 모든 일들과 배에서 한  여러 가지 달콤한 
말들이 전부 거짓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크게 울화가 치밀
었다.
그는 그녀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고는 말했다.
"배를 띄우시오."
배위의 사공들은 닻을 올렸다. 뭍에서는 축하의 폭죽 소리가 크게 일었
다. 전송 나온 뭇사람들은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백룡사의 이번 길이 순조로우며 도착하는 즉시 성공하기를 빕니다. 그
리고 교주를 위해 큰공을 세우기를 바래요."
배는 천천히 돛을 올리고는 섬에서  떠나갔다. 뭍에서 뭇사람들은 큰소
리로 부르짖었다.
"교주의 보배와 같은 가르침을 시시각각 마음속에 새겨 두고서......"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만약 방소저가 이미 신룡교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시
시각각 그녀를 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니 오히려 걱정거리
가 없어지게 되었구나.)
그러나 올 때 방이의 그 알뜰하던  정을 생각하게 되자 그만 마음이 허
전해졌다. 그는 다시 생각을 굴렸다.
(그녀들 두 사람은 어떻하다 신룡교에 가입하게 되었을까? 정말 이상한 
노릇이로구나. 그렇다 그녀들은  장노삼이라는 한 패거리의 사람들에게 
잡혀갔다. 장씨집  작은 마나님은 사람에게 부탁을  하여 구원하겠다고 
했으나 구원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핍박을 바다 신룡
교에 가입한  모양이로구나. 소군주가 교주의 독약을  먹었다면 방소저 
역시 먹었을 것이다. 음, 방소저가 명령을 듣지 않고 나를 신룡도로 꼬
여들이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독약이 퍼져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일로서 그녀를 탓할  수가 없구나. 그러나 
계집애가 그런 척  하면서 이 지아비를 밑천도 들이지  않고 속인 점을 
생각하면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빌어먹을 신룡교가 도
대체 뭐하는  것인지, 나는 백룡사가 되었지만서도  전혀 아리송하기만 
하구나.)
그런데 그와 같은 일들이 모두  다 장노삼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속으로 생각했다.
(그 늙은이가 어느 문에 속하는가  모르겠다. 내가 장래에 신룡도로 돌
아오게 된다면 그를 백룡문으로 옮겨서는 그 늙은이에게 매일같이 삼백 
대의 곤장을 안겨 줘야지.)
그리고 그는 다시 생각했다.
(장노삼은 섬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는 십중팔구 교주에게 내가 바로 
소계자라는 사실을 보고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 교주
가 그로부터 나와 같은 대인물을 잡았다가 금시 놓쳤다는 말을 듣게 된
다면 반드시 그의 목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늙은이이고 또 나이 
젊고 준수한 얼굴을  한 소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주와 부인은 
본래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실수를 하였다면 어떻게 배
겨날 수 있겠는가. 맞았다. 반두타 역시 감히 그와 같은 사실을 들추어 
내지 못했고 장노삼 역시 들추어 내지  못했다. 그런데 한가지 모를 일
은 부인이 나이 젊고 멀끔한  소년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상한 노릇이 
아니지만 교주는 어째서 좋아할까?)
위소보는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