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온다치-잉글리쉬 페이션트
잉글리쉬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여러분 대부분이 길프 케버에서 있었던 제프리 클리프튼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후, 1939년 제르주라 수색을 위한 사막탐험 도중 일어난 그의 부인 캐더린 클리프튼의 실종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그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논문의 내용은..."
194( ), 11월 런던
지리학회 모임에서
차례
옮긴이의 말
1. 빌라
2. 폐허 속에서
3. 때로는 불
4. 남부 카이로 1930--1938
5. 캐더린
6. 묻어둔 비행기
7. 현장에서
8. 성스러운 숲
9.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10. 8월
작가의 말
I. 빌라
그녀는 정원에서 일을 하다가 몸을 일으켜 먼 곳을 바라본다. 날씨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줄기 돌풍이 불자 쇳소리가 허공에 울리며 키 삼나무 잎이 흔들린다. 그녀는 돌아서서 언덕 위에 있는 집을 향해 걷는다. 야트막한 담을 넘는데, 드러난 팔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녀는 로지아(한쪽 벽이 없는 복도 모양의 방 옮긴이)를 지나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간다.
부엌도 그냥 통과하여 곧장 어두운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는 긴 벽을 따라 지나간다. 복도 끝에 있는 열린 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그녀는 벽과 천장 가득 나무와 정자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옮겨다 놓고 있는 그 방으로 들어선다. 한 사내가 침대에 누워있고, 바람은 그의 몸을 스쳐간다. 사내는 방으로 들어서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나흘마다 그녀는 그의 검은 몸을 씻어준다. 망가진 다리부터 시작한다. 수건을 적셔 발목 위에 얹고 물이 나오게 살짝 누르면서 바라보면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미소짓는다. 정강이 위의 화상이 제일 심하다. 자줏빛을 넘어서 뼈까지 드러나 있다.
그녀는 몇 개월 동안 그를 간호했기 때문에 그의 몸을 잘 안다. 해마처럼 잠자는 성기, 마르고 단단한 엉덩이, 예수의 좌골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는 그녀의 절망적인 성자다. 베개도 없이 반듯이 누운 채, 천장에 그려진 나뭇잎 장식과 나뭇가지에 드리운 그늘,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줄을 긋듯 캘러마인(소염제의 일종. 옮긴이)을 뿌린다. 화상이 비교적 가벼운 가슴은 그녀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다. 그녀는 갈비뼈 아래 푹 꺼진 부분, 그 살결 속의 벼랑을 좋아한다. 어깨로 옮겨가면서 목에 대고 시원한 바람을 불어 주면 그는 웅얼거린다.
네? 그녀가 열중하던 일에서 깨어나며 묻는다.
그는 검은 얼굴을 돌려 잿빛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손을 주머니에 꽂는다. 이빨로 껍질을 벗겨 씨를 빼낸 자두를 그의 입에 넣어준다.
그가 다시 소곤거리고, 젊은 간호사의 안타까운 가슴은 그의 마음이 머물던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가 죽기 전 그 몇 개월 동안 줄곧 빠져들곤 했던 기억의 샘으로
사내가 방 안에 대고 조용히 읊조리는 이야기는 매처럼 유연하게 빠져 달아난다. 그는 그림 속의 정자, 툭 건드리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꽃들과 커다란 나무의 품속에서 깨어난다. 피크닉과 이제는 자주빛 화상자국만 남은 그의 몸에 키스해 주던 여자를 기억한다.
나는 몇 주 동안 사막에서 지냈지. 달을 쳐다보는 것도 잊은 채로, 하고 그는 말한다. 마치 결혼한 남자가 며칠씩 부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지내는 것 같았소. 그건 무심해서가 아니라 뭔가에 몰두했기 때문이었지.
그의 두 눈이 젊은 여자의 얼굴에 꽂힌다. 그녀가 고개를 움직이면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벽으로 옮겨간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어떻게 화상을 입으셨어요?
때는 늦은 오후, 그는 양 손으로 시트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손가락의 등으로 시트를 애무한다.
불이 붙은 채 사막으로 떨어져 내렸지.
사람들이 나를 발견해서 나무판자 엮은 들것에 싣고 사막을 건넜어. 우리는 모래바다에 있었고 때로는 마른 강바닥을 가로질렀지. 유목민들, 그래, 베두인들이었어. 추락할 때 사막에 불이 붙었지. 난 알몸으로 불 속에서 일어났어. 머리에 쓴 가죽 헬멧이 불덩어리였지. 그들은 나를 들것에 묶은 뒤 쿵쿵거리며 뛰었어. 내가 사막의 황량함을 깨뜨린 거요.
베두인들은 불을 알아. 1939년부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행기도 알게 됐지. 그들은 추락한 비행기나 부서진 탱크의 쇳조각으로 연장과 부엌 용구들을 만들었어. 그때는 하늘이 전쟁터였거든. 그들은 상처입은 비행기의 엔진소리를 식별할 줄 알았고, 그 부서진 기계 안을 뒤지는 법을 알았어. 계기판에서 나온 작은 나사가 장신구로 변했지. 나는 불길에 싸인 기계 속에서 살아나온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 같아. 머리가 불에 탄 남자. 그들은 내 이름을 몰랐지. 난 그들을 몰랐고.
당신은 누구세요?
모르겠소. 당신은 자꾸 그걸 묻는군.
당신은 영국인이라고 했어요.
그는 밤에도 피곤을 못 느끼므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녀는 1층 도서실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와 그에게 읽어준다. 촛불이 책장위로, 얘기를 하는 젊은 간호사의 얼굴 위로 펄럭인다. 나무와 먼 풍경이 어른거리며 벽에 무늬를 그린다. 그는 귀기울이고, 물을 마시듯 그녀의 말을 들이켠다.
추운 날이면 그녀는 조심스레 침대로 들어와 그의 곁에 눕는다. 그의 몸 위에 체중을 실을 때마다 그는 고통을 느낀다. 그녀의 가는 손목만으로도.
때때로 그는 밤 2시까지도 잠들지 않고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냄새로 먼저 오아시스를 알 수 있었다. 공기 속에 느껴지는 물기. 그 사각거림. 손바닥과 고삐. 물이 가득 고인 걸 소리로 알려주는 깡통의 울림.
그것들은 부드러운 헝겊에 부어진 기름처럼 그의 몸을 덮었다. 그는 기름 부어진 자가 되었다.
그는 조용한 사내 하나가 늘 자기 곁에 머물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무렵이면 꼭 한 번씩 헝겊을 풀고 자신에게 몸을 구부리고 살갗을 살피는 사내의 숨결에서는 독특한 향취가 났다.
천을 풀면 그는 또다시 불타는 비행기 옆에 누운 벌거숭이 남자가 되었다. 그들은 부드러운 회색 천으로 그의 몸을 겹겹이 감쌌다. 그는 어떤 대단한 민족이 그를 발견한 것인지 궁금했다. 어떤 나라에서 그렇게 감미로운 대추야자를 그의 곁에 붙어 있는 사내에게 씹게하고 그 입에서 자신의 입으로 옮겨주는 것인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사내는 어쩌면 자신과 공중에서 싸우던 적인지도 몰랐다.
훗날, 피사의 병원에서, 매일 밤 대추야자를 씹어 부드럽게 만든 뒤 그의 입에 넣어 주던 얼굴을 보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무렵의 밤에는 빛깔이 없었다. 말도 노래도 없었다. 베두인들은 그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소리를 죽였다. 그는 자신이 그물침대의 제단 위에 놓인 채 수백 명의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고 상상했다. 그를 발견한 것은 두 명뿐인지도 몰랐다. 그 두 사람이 뛰어들어 불길이 뿔처럼 솟구쳐 오른 모자를 벗겨 주었던 건 아닐지. 그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대추야자 속에 섞인 침의 맛과 뛰어 다니는 발소리뿐이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불빛 아래 앉아 책을 읽는다. 이따금씩 야전병원으로 변한 빌라의 복도 끝을 바라본다. 그녀와 함께 살던 간호사들은 하나씩 다른 병원으로 떠났다. 전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북쪽으로 전선일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삶에서 책은 감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책은 그녀의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다. 탁자 앞에 앉아 몸을 구부리고 그녀는 한 인도 소년에 관한 책을 읽었다. 소년은 스승에게서 갖가지 보석과 쟁반 위의 물건들을 외우는 밤을 배웠다. 한 스승에게서 또 다른 스승에게로 옮겨가면서, 한 스승은 소년에게 말을 가르치고, 또 한 스승은 암기법을 가르치고, 또 한 스승은 최면술을 피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책은 그녀의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유난히 구멍이 많은 책장과 17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누군가 접어놓은 귀퉁이의 자국을 멍하니 5분 동안이나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깨닫고 두 손을 마주 비볐다. 마음속의 부산함이 천장 위를 돌아다니는 쥐나 밤 유리창에 달라붙은 나방 같다. 이제 산지롤라모 빌라에는 영국인 환자와 그녀밖에 없는데도 그녀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폭격으로 파괴된 빌라 위쪽의 과수원에 그들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야채를 심었고 마을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남자에게 비누나 시트, 혹은 이 야전병원에 남아 있는 다른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주고 필수품을 얻었다. 얼마간의 콩이나 고기, 그런 것들이었다. 마을 남자가 주고 간 와인 두 병이 있어, 그녀는 매일 밤 영국인과 함께 누웠다가 그가 잠이 들면 마치 의식을 치르듯 작은 비커에 와인을 홀짝이며 읽고 있던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영국인은 그가 주의 깊게 듣건 말건, 폭우에 잘려 나간 도로처럼 줄거리가 뚝뚝 끊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메뚜기들이 갉아먹는 비단처럼, 폭격을 금이 갔다. 한밤중에 떨어져 나가버린 벽화 조각처럼 사건들이 증발되었다.
그녀와 영국인이 살고 있는 빌라도 그런 식이었다. 깨진 벽돌 조각 때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방이 있었다. 1층 도서실만 해도 뻥 뚫린 폭탄 구멍이 달빛과 빗줄기를 방 안으로 들였고, 한쪽 구석에는 영원히 내려앉은 안락의자가 있었다.
줄거리를 건너띈 부분에 관한 한 그녀는 영국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용을 요약해서 그에게 들려주는 일도 없었다. 다만 책을 들고 '96페이지', 또는 '111페이지'라고 말했다. 그것이 유일한 설명이었다. 그녀는 그의 두 손을 당겨 냄새를 맡았다. - 화상 냄새가 아직 배어 있는 손.
당신 손이 점점 거칠어지는군, 그가 말했다.
잡초와 엉겅퀴를 뽑고, 땅을 파느라고요.
조심해요. 위험하다고 말해 준 것 같은데.
알아요.
그리고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손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개의 발바닥에 대해서. 아버지는 집 안에 개와 단둘이 있을 때면 몸을 기울이고 개발바닥에서 나는 살갗 냄새를 맡았다. 브랜디 한 모금을 빼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라고 아버지는 번번이 말했다. 꽃다발이야! 멋진 여행 이야기라구! 그녀는 비위가 상하는 척했지만, 개 발바닥은 신기하게도 전혀 흙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이건 대성당이야! 누구누구의 정원이고, 잔디밭이고, 시클라멘 꽃이 핀 산책로야 - 아버지는 그날 개가 돌아다닌 모든 길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천장에 쥐가 돌아 다니는 듯한 부산함, 그녀는 다시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그의 얼굴에서 약초 마스크를 벗겼다. 일식이 있는 날. 그들은 그날을 기다렸다. 그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날씨와 빛을 예견할 수 있는 그들은 어떤 문명인인가? 북서부 사막의 부족이라면 엘 아마르나 엘 아비야드 족일 것이다. 하늘에서 사람을 끌어낼 수 있고 오아시스 갈대로 마스크를 엮어 그의얼굴에 씌운 종족, 그는 차츰 풀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정원은 큐에 있는 잔디 정원이었다. 언덕 위에 있는 잿더미 층처럼 섬세하고 오묘한 빛깔.
그는 일식이 든 경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동안 그들은 그에게 팔을 드는 법과, 사막이 비행기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주로부터 자신에게 힘을 끌어당기는 법 같은 걸 가르쳐 주었다. 그는 나뭇가지와 펠트천으로 만든 들것에 실려 왔다. 가려진 태양의 어두운 빛 아래서 그는 홍학의 핏줄들이 불뚝이는 것을 보았다.
그의 피부에는 항상 연고가 발라져 있거나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허공 높이 바람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한참만에 소리가 멎자 그는 안타깝게 그 소리를 갈망하여 잠들었다. 홍학이나 그 비슷한 어떤 새의 목에서 나는 듯한 더딘 울음 소리. 혹은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버누즈(두건 달린 외투. 옮긴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사막의 울음 같기도 한.
다음날 다시 천에 싸여 누워 있는데, 유리들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들려온 소음. 땅거미가 질 무렵 천이 풀리자 그는 한 남자의 머리가 탁자 위에 얹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곧 그것이 탁자가 아니라 그 남자가 입고 있는 거대한 요크(웃도리, 블라우스 따위의 어깨. 옮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크에는 길이가 제각각인 철사들이 죽죽 늘어졌고 그 끝에 수백 개의 조그만 유리병들이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유리 커튼 같은 그 요크로 온 몸을 둘러싸고 다가왔다.
그 모습은 그가 소년시절 애써 베껴 그리려던 대천사의 모습과 비슷했다. 어떻게 한 몸에 그렇게 큰 날개가 달릴 공간이 있을 수 있는지 그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남자는 길고 느린 걸음걸이로 매끄럽게 움직였다. 유리병들은 거의 기울어지지 않았다. 유리의 물결, 대천사, 햇볕을 받아 따뜻해진 병 속의 연고들, 피부에 닿을 때면 상처에 바르기 위해 일부러 데운 것처럼 느껴지던. 그 남자의 등 뒤로 신비한 빛이 비쳤다 - 안개와 모래 속에 전율하는 푸른 빛과 또 다른 빛들. 희미한 유리병 소리와 가지가지 빛깔과 당당한 걸음걸이와 가늘고 검은 권총 같은 그의 얼굴.
가까이에서 보면 유리는 거칠고 모래에 여기저기 긁혀 있었다. 자신의 문명을 잃어버린 유리. 병마다 코르크 마개가 꽂혀 있어 남자는 이빨로 마개를 뽑아 물고 한 병의 내용물을 다른 병의 것과 섞었다. 두 번째 병의 마개도 그의 이빨 사이에 있었다. 그는 자기 앞에 누워 있는 불탄 육체 위에 날개를 펴고 막대기 두 개를 모래에 깊숙이 박았다. 그리고는 2미터 길이의 요크에서 벗어났다. 요크는 두 개의 막대기 위에 얹혔다. 그는 무릎걸음으로 화상입은 비행기 조종사에게 다가갔다. 그의 찬 손이 조종사의 목에 놓여 꼼짝하지 않았다.
수단 북쪽에서 기자까지 뻗은 낙타길인 '40일의 길' 에서는 그 남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캐러밴들을 만나 향료와 음료수를 거래하며 오아시스와 물 캠프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는 유리병 외투를 입고 모래폭풍 속을 걸었으며, 두 귀에 조그만 코르크 마개들을 꽂아 그 자신이 그릇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약장사였고, 기름과 향료와 만병통치약의 왕이었고, 침례교도였다. 그는 천막 안으로 들어서서 다짜고짜 환자 앞에 유리병 커튼을 세우곤 했다.
그는 화상 입은 사내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발바닥을 오므려 컵처럼 만든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리병을 뽑기 위해 몸을 젖혔다. 작은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가 뽑힐 때마다 향료가 흘러나왔다. 바다냄새가 났다. 녹 냄새. 인디고(남색. 옮긴이). 잉크. 강바닥의 진흙, 화살 나무, 포름알데히드, 파라핀, 에테르. 어지러운 공기의 흐름. 멀리서 향기를 맡은 낙타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녹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반죽을 흉곽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메디나 서쪽이나 남쪽에서 바꿔 온 공작새 뼈 - 가장 효험 있는 피부약이었다.
부엌과 파괴된 성당 사이에 타원형 도서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방 안은 안전해 보였다. 두 달 전 박격포의 공격으로 맨 안쪽 벽에 초상화 높이의 큰 구멍이 난 것 말고는. 방은 스스로 그 상처에 적응해. 날씨의 습성, 저녁 별들, 새소리를 받아들였다. 소파 하나, 잿빛 시트가 덮인 피아노, 박제한 곰 대가리, 그리고 벽을 높이 가린 책들의 무게가 두 배로 불어 있었다. 번개도 여러 차례 방안으로 들어와 피아노와 카펫 위로 내리쳤다.
구석에는 널빤지로 봉해 버린 프랑스식 문들이 있다. 그 문이 열려 있다면 그녀는 도서실에서 로지아까지 걸어가, 고행의 36계단과 성당을 거쳐, 오래 전에 초원이었고 지금은 폭탄과 폭발의 흉터들만 무성한 곳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많은 집을 파괴했고, 이 방처럼 쓸모없는 곳은 안전을 위해서라며 아예 문에 못질을 했다.
그녀는 그 방으로, 오후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그런 위험을 느꼈다. 나무바닥 위에서 불현듯 자신의 몸무게를 느끼며 그녀는 멈추어섰다. 자신의 움직임이 그곳에 존재하는 어떤 메커니즘을 유인하거나 자극할 것 같았다. 먼지에 싸인 그녀의 발. 하늘로 뚫린 박격포 구멍 사이로 유일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덩어리에서 조각을 떼어내는 듯한 지지직 소리를 내며, 그녀는 "최후의 모히칸" 을 빼들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서 새파란 하늘과 호수, 그리고 그 앞쪽에 인디언이 그려진 책 표지를 보자 기운이 솟았다. 그녀는 방 안에 방해해서는 안될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발자국을 그대로 되밟아 뒷걸음을 친다. 이것은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또 발자국의 주인이 방 안으로 들어간 뒤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혼자만의 게임이기도 했다. 그녀는 방문을 닫고 봉인 경고판을 제자리에 단다.
그녀는 한쪽으로는 그림이 그려진 벽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계곡이 보이는 영국인 환자 방의 오목한 창가에 앉았다. 책장은 습기 때문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그녀는 물에 빠졌다가 해변으로 밀려 올라와 저절로 마른 책 한 권을 발견한 로빈슨 크루소가 된 기분이었다. '1757년의 이야기. N.C. 와이어스 그림.' 모든 고급 서적이 그렇듯이 이 책에도 삽화들의 제목과 그 설명이 딸린 페이지가 있었다.
그녀는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줄거리 속에서 타인의 삶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줄 뻔히 알면서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억나지 않는 꿈으로 기분이 답답해져 잠에서 깨어 날 때처럼 온몸 가득 문장과 상황들을 담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북서노선 보초지역에 있는 여기 이탈리아의 언덕 마을은 한 달이 넘도록 포위 공격을 받았다. 사과와 자두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수도원과 두 채의 빌라에 일제 사격이 퍼부어졌다. 장군들이 사는 곳은 메디치 빌라였다. 그 바로 위에 예전에 수녀원이던 산지롤라모 빌라가 있는데, 이곳은 구조가 성처럼 되어 있어서 독일군이 최후의 순간까지 지켰던 주둔지였다. 백 명의 부대원이 이곳에 머물렀다. 언덕 마을이 포화 속에 바다의 전함처럼 부서지기 시작하자 과수원의 텐트 막사에 있던 군인들이 오래된 수녀원 침실로 이동해 왔다. 성당 여기저기가 폭격에 날아갔다. 빌라 꼭대기 층도 폭발과 함께 군데군데 무너졌다. 마침내 연합군이 건물을 점령하여 병원으로 만들었을 때 지붕과 굴뚝은 무사했지만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폐쇄되었다.
다른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안전한 남쪽 지역으로 옮겨갈 때 그녀와 영국인은 그곳에 남겠다고 했다. 그 즈음은 전기도 끊겨 몹시 추웠다. 어떤 방들은 벽이 모두 날아가 계곡을 향해 뻥 뚫려 있었다. 방문을 열면 한구석에 물에 흠뻑 젖은 채 나뭇잎이 수북히 쌓인 침대가 보였다. 방문은 막바로 바깥 풍경과 이어졌다. 커다란 새집으로 바뀌어버린 방도 있었다.
계단 아래쪽은 군대가 철수하면서 불을 질러 망가져버렸다. 그녀는 도서실에서 책 스무 권을 옮겨와 계단 바닥에 못을 박고 그 위에 책을 쌓아올려 맨아래 계단 두 층을 만들었다. 의자들은 대부분 땔감으로 소모되었다. 도서실에 있는 안락의자는 박격포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온 폭우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45년 4월, 무엇이든 젖은 물건은 장작 신세를 모면했다.
침대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단세포 생물처럼 기온과 바람과 빛에 따라 때로는 영국인 환자 방에서 자기도 하고 때로는 복도에 쓰러져 잠들기도 했다. 아침이면 매트리스를 말아서 바퀴에 끈으로 묶어 두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그녀는 어둠을 몰아내고 햇빛에 습기를 말리느라 곧잘 방문을 열어두었다. 이따금은 방문을 열어젖히고 벽이 떨어져나간 방에서 잤다. 방의 구석자리에 침상을 펴고 별들이 떠내려가는 풍경과 흐르는 구름을 마주한 채 천둥 번개에 깨어나기도 했다. 그녀는 스무 살이었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으며 안전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도서실의 위험이나 어둠을 뚫고 울려퍼지는 천둥 소리 같은 것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추운 계절 동안 어둠과 닫힌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했다. 군인들이 더럽힌 방과 불 탄 가구들이 들어찬 방으로 들어갔다. 나뭇잎과 똥과 오줌과 그을린 탁자를 치웠다. 영국인 환자가 자기 침대에서 왕처럼 휴식하는 동안 그녀는 방랑자처럼 생활했다.
바깥에서 보면 그곳은 비참하리만치 황폐했다. 바깥 계단은 중간이 잘려 나갔고 난간은 흔들흔들 매달려 있었다. 그들의 삶은 식량을 뒤적거려 연명하는 위태로움의 연장이고 순간적인 안전이었다. 밤에는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산적들 때문에 꼭 필요할 때만 촛불을 켰다. 그들이 무사한 것은 빌라가 완전히 황폐해 보인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안전하다고 느꼈다. 반은 어른 같고 반은 아이 같은 상태에서. 전쟁 동안 그 많은 일들을 치러 내면서 그녀는 스스로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다시는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대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저 화상 환자만을 돌볼 것이다. 책을 읽어주고, 몸을 닦아주고, 시간마다 모르핀을 주사해주는 것. - 그녀는 오진 그 사람하고만 의사소통을 나누었다.
그녀는 정원 가장자리 과수원에서 일했다. 폭격에 부서진 성당에서 길이가 2미터쯤 되는 십자가를 끌고 나와 채소밭에 허수아비로 세워두고 빈 깡통을 매달아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도록 했다. 빌라 내에서 그녀는 깨진 벽돌데미를 지나쳐 골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곳에는 그녀가 단정히 꾸려 놓은 여행가방이 있다. 편지 묶음, 옷 몇 가지, 약품이 든 쇠상자 이외에는 별로 든 것도 없다. 그녀는 빌라의 일부분만을 정리했다. 그나마 그녀가 원하면 얼마든지 불태워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복도에서 성냥을 그어 초 심지로 가져간다. 불꽃이 그녀의 어깨춤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있다. 두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고 유황 냄새를 맡는다. 불 속에서 숨쉬는 상상을 한다.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 하얀 백묵으로 나무바닥에 직사각형을 그린다. 그리고는 계속 뒤로 가면서 직사각형을 하나씩 더 그린다. 하나, 둘, 하나, 직사각형이 피라미드를 이룬다.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고개는 떨군 채 그녀는 진지하다. 불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진다. 발뒤꿈치를 세우고 뒤로 기대어 웅크리고 앉을 때까지.
백묵을 치마 주머니 속에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늘어진 치마 끝을 잡아올려 허리춤에 졸라맨다. 다른 쪽 주머니에서 작은 쇠붙이를 꺼내 가볍게 앞으로 던진다. 제일 멀리 있는 사각형 너머로 쇠붙이가 내려앉는다.
그녀는 앞으로 껑충 뛰었다가 두 다리를 힘차게 바닥에 내린다. 그림자가 복도 깊은 곳까지 꼬여 들어간다. 그녀는 날쌔다. 사각형마다 그녀가 그려 넣은 숫자 위로 테니스화가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한 발이 내려서고, 다시 두 발, 그리고는 한 발, 마지막 사각형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는 몸을 수그려 쇠붙이 조각을 집어들고 잠시 동작을 멈춘다. 움직임 없이, 치마 끝이 여전히 허벅지 위로 접혀 올려진 채 두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있고 숨이 가쁘다. 그녀는 공기를 크게 들이마셔 촛불에 대고 훅 분다.
이제 그녀는 어둠 속에 있다. 연기 냄새만.
그녀는 갑자기 뛰어올라 허공에서 회전한다. 바닥으로 떨어질 때 몸일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더 크게 다리를 벌리고 앞으로 뛰어나간다. 테니스화가 쿵쾅거리며 어두운 사각형을 밟고 지나간다. 소리가 메아리쳐 황량한 이탈리아식 빌라의 먼 구석자리까지, 그 너머 달과 건물을 절반쯤 둘러싼 협곡의 낭떠러지까지 울려퍼진다.
한밤중에 때때로 화상 입은 사내는 건물의 희미한 전율 소리를 듣는다. 그는 보청기를 높이고서 정체도 방향도 알 수 없는 쿵쿵 소리에 집중한다.
그녀는 그의 침대 곁 작은 탁자 위에 놓인 공책을 집어든다. 그가 불 속에서 들고 나온 책이다. - 헤로도투스의 "역사" 에 다른 책에서 오려 붙인 부분과 그가 스스로 관찰한 내용이 페이지마다 첨부되어 있다. - 헤로도투스의 내용에 덧살을 붙인 셈이다.
그녀는 작고 비뚤거리는 그의 글씨를 읽기 시작한다.
모로코 남부지방에는 펠라힌(이집트, 시리아 등의 농부나 인부. 옮긴이) 족이 칼을 휘두르며 막는 회오리 바람 '아예이' 가 있다. 때로 로마시까지 진입하는 '아프리코' 가 있고, 유고슬라비아에서 오는 가을 바람인 '아름' , 그리고 아레프나 리피라고도 불리는 '아리피' 가 있다. 이들은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영원한 바람이다.
이들만큼 자주 불지는 않지만 말과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을 넘어뜨리고 스스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도 있다. '비스트 로즈' 는 백칠십 일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덮쳐 마을 전체를 묻어버리기도 한다. 튀니스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 '가불리' 는 쉬지 않고 구르면서 사람들을 불안에 빠뜨린다. 수단의 모래태풍 '하부브' 는 수 천 미터 높이의 샛노란 벽 같은 모양으로 비를 몰고 온다. '하르마탄' 은 대서양을 향해 불다가 물 속으로 사라진다. 북부 아프리카의 바닷바람 '임바트' , 하늘로 꺼져 버리는 바람. 강추위를 몰고 오는 밤의 모래태풍. 3월부터 5월까지 50일 동안 이집트를 먼지로 뒤덮어 이집트의 아홉 번째 재앙으로 알려진, 아랍어 '오십' 에서 이름 붙여진 '캄신' . 향기를 실어나르는 지브랄타의 '다투' .
그리고 또다른 바람 - 사막의 은밀한 바람, 그 바람 속에서 아들을 잃은 왕이 이름을 지워버렸다는. 또 아라비아에서 터져나오는 '나파트' . 베르베르족 사이에서 '닭털을 잡아 뽑는 바람' 으로 전해져 오는 차갑고 거센 남서풍 '메자르 - 이파울루슨' . 코카서스에서 검은 빛을 띄고 북동쪽을 향해 건조하게 부는 '검은바람' '베샤바르' . 터키의 '독약과 바람' , 전쟁 때 쓰이기도 하는 '사미엘' . 북아프리카의 '독바람' '시뭄' 과 모래먼지가 희귀한 꽃잎을 흩뿌려 현기증을 일으키는 '솔라노' .
그밖의 사사로운 바람들. 홍수처럼 땅위를 여행하는. 페인트 칠을 벗겨내고 전신주를 무너뜨리며 돌덩이와 조각의 두상을 운반하는 바람. '하르마탄' 은 시뻘건 흙먼지를 가득 싣고 사하라를 건넌다. 불 같은 먼지. 가루 같은 먼지가 소총 사이로 끼여들어 굳어 버린다. 뱃사람들은 이 붉은 바람을 가리켜 '어둠의 바다' 라고 불렀다. 사하라를 거쳐 나가는 붉은 모래는 북쪽 멀리 콘월과 디본까지 가서 쌓였다. 그때 일어난 진흙 소나기가 너무도 대단했으며 하늘에서 피가 쏟아진다고 오해받는 일까지 있었다. "1901년 피비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대대적으로 목격되었다. "
지구에 수백만 입방체의 공기가 있고, 땅 위에 존재하거나 방목되는 생물보다 더 많은 생명체(지렁이, 딱정벌레, 지하 생물들) 가 흙속에 살고 있듯이 공기 속에는 항상 수백만 톤의 먼지가 있다. 헤로도투스는 시뭄이 삼켜버린 뒤 종적을 감춘 온갖 군대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이 사악한 바람에 대해 너무도 분격한 나머지,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 전투태세로 돌진하다가 순식간에 완전히 매장당했다. "
먼지는 세 가지 형태로 몰아친다. 회전. 열. 면. 첫번째 경우에는 수평선이 사라진다. 두번째에는 '춤추는 덫' 에 둘러싸인다. 세번째인 면은 "구리로 한겹 씌운 듯하다. 자연이 온통 불붙은 것처럼 보인다. "
그녀는 책에서 눈을 떼고 그녀에게 꽂혀 있는 그의 눈을 본다. 그는 어둠을 가로질러 말하기 시작한다.
베두인은 이유가 있어서 나를 살려뒀지. 내가 쓸모 있었던 거요. 내 비행기가 사막에서 추락했을 때 그곳에 있던 누군가가 나한테 기술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나는 지명이 씌어 있지 않은 마을을 지도의 골격만 보고도 알아보는 사람이오. 나는 언제나 바다와 같은 정보를 내 안에 가지고 있지. 나는 누군가의 집에 혼자 남겨지면 책장으로 걸어가 서적을 꺼내 들고 지식을 빨아마시는 성격이야. 그렇게 역사는 우리에게 들어오지. 나는 바다 바닥의 지도, 땅의 방어물의 약점을 묘사한 지도, 피부에 그려진 십자군의 노선들을 포함한 해도를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그들 속으로 추락하기 전에 그 지역을 알았지. 알렉산드로스가 젊었을 때 어떤 목적이나 욕심 때문에 그곳을 횡단한 것이 언제였는지를 알았지. 유목민들의 풍습이 비단이나 샘 때문에 정신을 못 가눈다는 것을 알았지. 어떤 부족은 계곡 바닥 전체를 검게 물들였어. 대류를 높여서 비가 내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야. 그리고 구름의 뱃속을 꿰뚫어보려고 높은 구조물을 설치했어. 어떤 부족은 바람이 시작되는 곳에서 손바닥을 펴들기도 했지. 적절한 때에 그렇게 하면 폭풍을 사막에서 인접한 지역으로 움직여 사랑을 적게 받는 다른 부족에게 향하도록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래에 숨이막혀 갑자기 익사하는 부족들이 계속하여 생겨났지.
사막에서는 경계의 관념을 잃기가 쉽소. 내가 대기에서 나와 사막으로 그 노란 계곡으로 추락할 때 줄곧 생각한 것은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 ,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어.
여기서 비록 나는 건조한 모래 속에 있지만 물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지.
타실리에서 나는 사하라인들이 갈대배를 타고 해마를 사냥하던 때의 그림이 새겨진 바위를 보았어. 와리 수라에서는 수영하는 사람들의 그림으로 덮인 동굴 벽도 보았지. 그들을 6천년 전의 호숫가로 이끌고 갈 수 있었지.
뱃사람에게 가장 오래된 선박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누비아의 바위 그림에 있는 갈대배의 돛대에 매달린 사다리꼴을 가리킬 거야. 왕조시대 이전 것이지. 아직도 사막에서 작살이 발견되오. 그들은 물사람이었지. 오늘날에도 캐러밴들이 강처럼 보이지 않소. 오늘날까지도 그곳의 이방인은 물이지. 물은 추방이야. 깡통이나 휴대 용기에 담겨 되돌아가는 손과 입 사이의 유령이지.
그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내개 필요한 것은 작은 능선의 이름, 지역의 풍습, 동물의 세포 하나뿐이었지. 그러면 그곳의 지도가 뚜렷해지거든.
우리들이 아프리카의 그런 지역들에 대해 뭘 알았겠나? 나일의 군대는 사막 깊숙이 8백 마일씩 되는 전투장을 향해 전진하고 후퇴했지. 경전차, 블렌하임 중거리 폭격기. 글라디에이터 복엽 전투기. 8천 명의 군대. 허나, 누가 적이었나? 누가 이곳, 키레나이카의 기름진 땅과 엘 아게일라의 소금 늪지의 연합군이었나? 유럽 전체는 북 아프리카, 시디 레제프, 바구오에서 그들 자신의 전투를 벌였던 거야.
그는 베두인이 끌고 가는 들것 위에 누워 온몸이 두건으로 덮인 채 5일간 어둠을 뚫고 여행했다. 기름 젖은 천이 계속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들은 붉고 높은 계곡의 벽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다다랐다. 모래와 바위 위를 미끄러지고 흘러넘치는, 물의 부족들을 연결해 주는 협곡이었다. 그들의 푸픈 도포는 우유의 물보라나 날개와 같이 흔들렸다. 그들은 그의 몸에 늘어붙은 부드러운 천을 걷었다. 그는 계곡의 커다란 자궁 속에 있었다. 높이 나는 말똥가리들이 그들이 야영하는 바위의 틈으로 수천 년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아침에 그들은 시크 꼭대기로 그를 데려갔다. 그들은 이제 그의 주위에서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사투리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그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땅에 묻혀 있는 총 때문이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향해 옮겨졌다. 눈을 가리운 얼굴이 정면을 향하고 손이 앞으로 1미터 가량 내밀어졌다. 그렇게 1미터를 움직이기 위해 며칠간 여행한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갖고 무엇인가 만지기 위해, 몸을 기울이기 위해. 팔은 여전히 부축받은 상태에서 손바닥을 펼쳐 아래로 향했다. 손이 경기관총 총신에 닿자 그를 붙잡는 손길이 떨어졌다. 말소리가 멈췄다. 그는 무기를 식별하기 위해 그곳에 오게 된 것이다.
" 12밀리미터 브레다 기관총. 이탈리아제. "
그는 노리쇠를 잡아당기고 손가락을 넣어 총알이 없음을 감지했다. 그리곤 노리쇠를 제자리로 밀어 돌린 후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 유명한 총이군. "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몸이 다시 앞으로 움직여졌다.
" 프랑스제 7.5밀리미터 샤텔러랄트. 경기관총. 1924년. "
" 독일제 7.9밀리미터 MG - 15, 공군용. "
그는 각기 다른 총기 앞에 이끌려 갔다. 무기는 각기 다른 시대에 만들어지고 여러나라에서 가져온 것 같았다. 사막의 박물관처럼, 그는 탄창과 개머리판의 윤곽을 쓰다듬고 가늠쇠를 더듬었다. 총의 이름을 소리내어 말하고 나면 다음 총으로 옮겨졌다. 여덟 개의 총기가 차례로 그의 손에 들려졌다. 그는 프랑스어로 이름을 크게 말하고, 다시 그들 부족의 언어로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었을까? 어쩌면 그들은 총 이름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손목을 잡혔다. 탄약통 상자 속으로 손이 이끌려 들어갔다. 오른쪽에 있는 다른 상자 안에 실탄이 더 있었다. 이번에는 7밀리미터 실탄. 그리고 다른 것들.
어린 시절 그는 숙모 밑에서 자랐다. 숙모는 잔디밭에 카드 한 벌을 엎어놓고 펠머니즘 게임을 가르쳐 주었다. 게임을 하는 두 사람이 각각 두 장의 카드를 뒤집어 보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것들로 한 쌍을 맞추는 게임이다. 이것은 또다른 풍경이었다. 정지된 단편으로 인지할 수 있는 송어 강과 새 소리가 들리는. 완전한 이름을 가진세계. 이제 섬유질로 된 복면으로 눈을 가리운 그는 실탄을 집어들고 이끌리는 대로 움직여 가서, 그들을 총 쪽으로 인도하고. 장전하고, 노리쇠를 당기고, 허공에 대고 쏘았다. 소리가 계곡의 벽을 타고 요란하게 울렸다. " 메아리는 텅 빈 공간에서 스스로를 흥분시키는 목소리의 영혼이다. " 영국 병원에 그런 문장을 적어놓은 음침하고 실성한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이 사막에 있으며 정상적으로 온전한 정성으로 카드를 뒤집고, 간단히 짝을 맞추고 숙모에게 웃음을 보내고 성공적으로 조합된 그것들을 허공을 향해 쏜다. 그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사내들은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차츰 박수로 응답해 온다. 그의 고개가 한 방향을 쳐다보도록 돌려진다. 그기곤 낯선 사람의 들것 위로 옮겨진다. 탄창과 개머리판에 평행부호를 새긴 남자가 칼을 들고 그의 뒤를 따른다. 그런 몸의 움직임, 그리고 그를 고독에서 건져주는 박수 소리가 그를 살아나가게 했다. 그것이 바로, 그를 구해준 사람들의 의도이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여행하던 마을 가운데는 여자가 없는 곳들이 있다. 그의 지식은 유용한 상품처럼 부족에서 부족으로 전해진다. 8천명이 모인 부족. 그는 독특한 풍습과 독특한 음악을 대한다. 대개 눈이 가리운 상태에서 므지나 부족의 물 끌어올리는 노래, 다히야 춤, 비상시 소식을 전할 때 쓰는 파이프 플롯, 마크루나 이중 파이프 - 파이프 하나는 줄곧 웅웅거리는 단조로운 저음을 낸다 - 등을 듣는다. 그리고는 5현금의 땅으로 들어선다. 서곡과 간주곡의 마을, 또는 오아시스 손뼉치는 소리. 주고받는 춤.
땅거미가 진 후에야 그에게 시각의 세계가 주어진다. 그는 비로소 자신을 붙잡은 자와 구원해 준 자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제 그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몇몇 부락민들에게 그들의 땅보다 드넓은 지도를 그려 주고 다른 부족들에게도 총기 사용법을 설명한다. 음악가들은 불을 사이에 두고 그의 건터편에 앉았다. '심시미야' 수금 음이 세찬 바람을 타고 퉁겨나간다. 혹은 선율이 불길 너머 그를 향해 방향을 돌린다. 소년이 춤을 추고 있다. 불빛 아래 소년은 그가 이제까지 본 사물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모습이다. 가냘픈 어깨는 파피루스처럼 희고, 모닥불 빛이 배어 맺힌 땀방울에 반사되면서, 목부터 발목까지 유혹적인 미끼처럼 덮인 푸른 린네르천의 틈새로 소년의 알몸이 마치 갈색 번개 줄기처럼 드러났다.
무질서한 태풍과 캐러밴이 가로지르는 밤의 사막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비밀과 위험이 있다. 눈이 가려졌을 때 손을 움직이다가 모래에 묻힌 면도칼에 손을 벤 적도 있었다. 때때로 그는 이 모든 것이 꿈인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고통도 주지 않을만큼 깨끗한 상처. 그는 머리(얼굴은 아직도 건드릴 수 없다) 의 피를 닦아올려 그를 잡은 자들에게 상처를 알려야 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 혹은 달을 보지 못한 한 달 동안 운반되어 도착한 여자가 없는 마을. 이 모든 것이 꾸며 낸 이야기인가? 기름과 펠트 천과 어둠에 싸여 있으면서 꿈을 꾼 것일까.
그들은 물이 말라 버린 우물을 지났다. 어떤 곳에는 숨겨진 마을이 있었다. 그들이 모래를 파내고 그 속에 묻힌 방들과 물의 은닉장소를 찾아낼 동안 그는 기다렸다. 그리고, 가장 깨끗한 소리, 가장 맑은 강물, 가장 투명하게 깊은 바다와 같은 것으로 그가 기억하는, 소년 성가대원의 목소리 같은, 춤추는 소년의 순수한 아름다움. 여기 사막에서, 오래 전 그 어떤 것도 영원하거나 매여 있지 않은 바다였던 곳에서 모든 것이 출렁거렸다. 마치 바다, 또는 자신의 푸른 태반에서 풀려나거나 감싸안기듯 소년을 휘감은 린네르천처럼. 모닥불빛에 드러나는 성기. 스스로 발기된 소년.
이윽고 모닥불이 모래에 덮이고, 연기가 사그라든다. 맥박, 또는 빗줄기처럼 뚝 끊어지는 악기 소리. 소년은 잃어버린 불 사이로 파이프 플롯을 잠재우기 위해 팔짱을 낀다. 그가 떠나면 소년도, 발 소리도 없다. 빌려온 누더기뿐. 누군가 앞으로 기어가 모래에 떨어진 정액을 모은다. 그리고 그것을 총 전문가인 백인에게로 가져와 그의 손에 쥐어준다. 사막에서는 물만이 축복받을 수 있다.
그녀는 싱크대 위에 서서, 두 손으로 싱크대를 꽉 쥐고 장식용 흙으로 꾸민 벽을 쳐다본다. 거울은 모두 떼어 빈 방에 쌓아두었다. 그녀는 싱크대를 잡고 고개를 양쪽으로 돌려 그림자의 움직임을 만든다. 두 손을 적셔 머리카락이 완전히 젖을 때까지 물로 머리를 빗어 내린다. 상쾌하다. 그 상태로 밖에 나가면 미풍이 몸을 스치면서 천둥을 잠재우는 것이 그녀는 좋다.
II. 폐허 속에서
폐허 속에서
양손에 붕대를 감은 그 남자는 로마의 육군병원에 넉 달도 넘게 입원해 있다가 우연히 화상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전해 들었다. 그는 그녀가 있는 곳을 알기 위해 출입구에서 돌아서서 방금 지나 온 의사들 틈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그곳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고, 알 수 없는 남자라는 평을 들어왔다. 그가 말을 걸고 이름을 묻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고 이런저런 몸짓과 얼굴표정, 이따금씩 웃음만으로 의사소통을 해왔다. 그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그는 다만 군번만을 썼다. 그래서 그가 연합군 소속임이 알려졌다.
그의 신원은 재조사를 거쳐야 했고, 런던에서 메시지가 도착한 뒤에야 확인되었다. 그는 이름난 훈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의사들은 그의 붕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유명인이었군. 침묵을 원하는 전쟁 영웅.
그들이 친절하게 대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칼을 들이댄다 해도 아무것도 밝히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편안한 방법이었다. 넉 달이 넘도록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그는 하나의 커다란 동물이었다. 처음 실려 와서 손의 고통 때문에 정기적으로 모르핀을 맞던 때에는 거의 파멸 직전이었다. 그는 그저 어두운 구석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자 병동과 비품실을 오가는 간호사와 환자들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지금. 복도에 모여 선 의사들 옆을 지나가다가 여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발길을 늦추고 다시 돌아가 그녀가 어느 병원에 근무하는지 조심스래 물었다. 독일군이 점령했던 옛 수녀원 건물을 연합군 측에서 다시 병원으로 바꾼 곳에 있다고 했다. 피렌체 북쪽 언덕 지방. 대부분 폭격으로 무너졌으며 위험한 곳. 임시 야전병원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간호사와 화자만이 떠나기를 거부했다고 했다.
왜 그들은 강제로 끌어 내지 않았소?
간호사 말이, 환자의 상태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심각했대요. 물론 우린 그를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지만, 요즘 같은 때는 그런 논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여자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죠.
다쳤나요?
아뇨. 폭격으로 다소 충격을 받은 것 같더군요. 집으로 돌려보냈어야 했어요. 문제는 여기 전쟁이 끝난 데 있죠. 더 이상 누구한테도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없어요. 환자들이 병원에서 걸어나갑니다. 군인들도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무단 탈영하는 실정입니다.
어느 마을이오? 그가 물었다.
정원에 귀신이 있다는 마을입니다. 산지롤라모 그 여자는 자기 귀신을 가지고 있어요. 화상 환자 말입니다. 얼굴은 있지만 알아볼 수가 없어요. 신경이 모두 상했죠. 얼굴에 대고 성냥을 그어도 아무런 동요가 없어요. 얼굴이 잠든 상태랍니다.
누구요? 그가 물었다.
이름은 모릅니다.
말을 안 하나요?
의사 패거리는 웃었다. 아뇨. 말은 합니다. 항상 말은 하고 있죠. 다만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겁니다.
어디서 왔소?
베두인족이 시와 오아시스로 데려왔죠. 그랬다가 피사에 한동안 있었고, 그 다음에...... 아랍인 누군가가 그의 이름표를 달고 있을 겁니다. 언젠가 그놈이 팔면 우리 손에 들어오겠죠. 어쩌면 팔지 않을 수도 있고요. 멋진 장식품이거든요. 사막에 떨어지는 비행사들은 아무도 신원을 밝혀 줄 표시를 달고 오지 않아요. 이제 그는 티스컨 빌라에 갇혔고, 여자는 떠나지 않겠다는 거죠. 무조건 거부하는 거예요. 연합군은 그곳에서 환자를 백 명 이상 치료했습니다. 그 전에는 독일군이 작은 부대를 주둔시키고서 끝까지 싸웠죠. 어떤 방은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각 방마다 계절이 다르죠. 집 바깥은 계곡이에요. 피렌체에서 32킬로쯤 떨어진 언덕입니다. 물론 통행증이 필요하죠. 누군가 차로 모셔다 드릴 수는 있을 겁니다. 그쪽은 아직도 살벌해요. 죽은 소떼. 총으로 쏘아 절반쯤 먹다 버린 말. 다리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 전쟁이 저지른 최후의 만행이죠. 아주 위험합니다. 아직 공병들이 치우려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독일군은 가는 길마다 지뢰를 묻으면서 후퇴했어요. 병원 위치로는 상당히 나쁜 곳이죠. 시체 냄새가 제일 괴로워요. 이 땅을 씻어내 줄 폭설이 필요합니다. 갈가마귀가 필요해요.
고맙소.
그는 병원에서 걸어나와 햇볕 아래로 나섰다. 몇 개월 만에 자신의 마음속에 유리처럼 자리잡은 푸른 불빛이 비치는 병실에서 빠져나와 처음으로 트인 공간에 나선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것, 모든 사람들의 부산함을 들이마셨다. 우선 바닥에 고무가 달린 신발이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젤라토가 필요하다.
그는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잠들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피운다. 관자놀이가 창틀에 부딪친다. 다들 어두운 옷을 입고,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로 기차 안은 온통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기차가 묘지를 지날 때마다 주위에 있는 여행객들은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그 여자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편도선에는 젤라토라는 걸 그는 기억했다. 편도선 수술을 받으러 가는 소녀. 소녀의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소녀는 병동 안에 아이들이 가득 찬 것을 보고는 무조건 싫다고 했다. 더없이 착하고 말 잘 듣는 어린 아이가 갑자기 돌덩어리처럼 꼼짝 않는 고집쟁이가 된 것이다. 아무도 그녀의 목에서 무엇 하나 뜯어 내지 못했다. 세월의 지혜도 그녀를 비껴갔다.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몰라도 그녀는 '그것'을 달고 살게 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보이든 상관 없이. 그는 아직도 편도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한번도 내 머리를 건드리지 않았어, 그는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야.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무엇을 잘라낼지 상상하던 때였다. 그때마다 그는 머리를 생각했다.
천장에 쥐가 있는 듯한 소란스러움.
그는 여행용 배낭을 들고 복도 끝에 섰다. 가방을 내려놓고 어둠과 촛불의 행렬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놀라게 했다. 그가 발소리를 내지 않고 그녀와 영국인 환자의 사생활 속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어딘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긴 복도의 등불 앞을 지날 때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앞으로 길게 내던졌다. 그녀는 기름 등불의 심지를 높여 불빛을 돋았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아저씨처럼 곁에 웅크리고 앉는 동안 그녀는 책을 무릎 위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편도선이 무엇인지 말해주겠니?"
그녀의 눈이 그를 응시했다.
"네가 병원을 뛰쳐나갔던 일이 자꾸 떠오르는구나. 어른 둘이 뒤에서 따라가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환자가 저기 있나? 들어가도 괜찮을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다시 말을 할 때까지 줄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내일 보자. 내가 있을 곳을 말해주렴. 시트는 필요 없다. 부엌이 있나? 널 찾느라고 아주 이상을 여행을 했지."
그가 복도를 따라 멀어지자 그녀는 다시 탁자로 돌아와 몸을 떨며 자리에 앉았다. 스스로를 추스르기 위해서는 그 탁자와 반쯤 읽다 만 책이 필요했다. 그녀가 알던 남자가 단순히 그녀를 보기 위해 그 먼길을 기차를 타고 와 마을에서 6킬로나 되는 언덕 길을 걸어 복도를 따라 그 탁자까지 왔다. 몇 분 후 그녀는 영국인의 방으로 들어가 그를 내려다보고 섰다. 벽의 나뭇잎들에 흐르는 달빛. 나뭇잎들을 사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유일한 빛. 그녀는 그 꽃을 꺾어 드레스에 꽂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라바조라는 남자는 밤의 소음을 듣기 위해 방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젖힌다. 옷을 벗고 손바닥으로 목을 부드럽게 문지른 뒤 정돈되지 않은 침대 위에 잠시 눕는다. 밖에서는 나무의 소음. 부서지는 달빛이 은빛 물고기가 되어 쑥부쟁이 이파리에 퉁기는 소리.
달은 피부처럼, 한웅큼의 물처럼 그의 위에 있다. 한시간 후 그는 빌라의 지붕 위에 있다. 꼭대기에 선 그는 지붕의 경사를 따라 폭탄이 떨어진 부분이 있고 건물 옆으로 파괴된 2천5백 평의 정원과 과수원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그들이 이탈리아 어디쯤에 있는지 둘러본다
아침에 분수 곁에서 그들은 모호한 대화를 나눈다.
"이제 이탈리아에 있으니, 베르디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겠군."
"네?"
그녀는 분수 안에서 침대보를 빨다가 고개를 든다.
그가 그녀의 기억을 상기시켜준다.
"언젠가 그를 사랑한다고 했지."
해나는 당황하여 고개를 숙인다.
카라바조는 주위를 걸으며 처음으로 건물을 쳐다본다. 로지아에서부터 정원까지 유심히.
"그래, 넌 그를 좋아했지. 항상 베르디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모아 와서 우리 모두를 괴롭히곤 했어. 정말 멋진 사람이야! 모든 면에서 최고야"라고 너는 말했지. 우리는 모두 너에게 동의해야 했어. 거만한 열여섯 살!"
"그 소녀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군요."
그녀는 빨래한 침대보를 분수대 난간에 펼쳐 넌다.
"넌 위험한 의지를 가진 아이였어."
그녀는 군데군데가 깨져 그 사이로 풀이 자라난 포장 도로로 걸어간다. 그는 얇은 갈색 드레스와 검은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발을 쳐다본다. 그녀는 난간에 기댄다.
"마음 한구석에 있는 어떤 것이, 베르디 때문에,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 같아요. 그 점은 인정해요. 그리고 물론 당신이 떠났다는 것, 아버지도 전쟁에 나가시고...... 매 좀 보세요. 아침마다 와요. 다른 것들은 전부 파괴되고 산산조각났어요. 빌라 전체에서 흐르는 물이라곤 겨우 이 분수뿐이죠. 연합군들이 떠날 때 수도관을 분해했어요. 그렇게 하면 내가 떠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랬어야 해. 이 지역을 말끔히 치워야 하거든. 터지지 않은 폭탄이 사방에 널려 있어."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그의 입술에 손가락을 얹는다.
"반가워요, 카라바조. 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요. 날 설득해서 떠나게 오신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
"난 윌리치가 있는 작은 술집을 찾아가 빌어먹을 폭탄의 위협을 받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어. 프랭크 시내트라 노래를 듣고. 음악이 필요해." 그가 말한다. "네 환자한테 좋을거야."
"그는 아직도 아프리카에 있어요."
그는 그녀를 지켜보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영국인 환자에 대해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다. 그가 나직이 말한다.
"영국인들 중에는 아프리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 그네들 머리 한구석에는 사막이 그대로 남아 있거든. 그래서 그들은 전혀 사막을 낯설게 여기지 않아."
그는 그녀의 고개가 살며시 끄덕이는 것을 본다. 비밀스러운 긴 머리칼의 가면이 없는, 짧게 자른 머리와 마른 얼굴. 무언가 굳이 찾는다면, 그녀가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서 안정되어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뒷전에서 분수가 콸콸 흐르는, 매와 빌라의 파괴된 정원.
어쩌면 그런 것이 전쟁에서 벗어나는 길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돌봐줘야 하는 화상 입은 사내, 분수대에서 빨아야 하는 침대보, 정원처럼 페인트칠된 방. 마치 남아 있는 모든 것은 과거의 추억이 담긴 캡슐인 듯, 베르디보다도 오래 전에, 메디치 가에서 난간이나 창문 따위를 고치기 위해 초대한 건축가- 15세기 최고의 건축가-에게 환영의 촛불을 밝히고 조경을 더 훌륭히 꾸며줄 것을 요구하기라도 하듯.
"머무르시게 되면 식량이 더 필요해요. 채소를 심었어요. 그리고 콩 한 자루가 있죠. 하지만 닭이 몇 마리 있어야 되는데." 그녀는 예전에 그가 보여 주었던 재주를 생각하며 카라바조를 쳐다본다. 그러나 겉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용기를 잃었어." 그가 말한다.
"그러면 제가 함께 가죠." 해나가 제안한다. "같이 해요.저한테 도둑질하는 법을 가르쳐줘요.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세요."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군. 베짱이 없어졌단 말야."
"왜요?"
"붙잡혔어. 망할 놈의 손이 잘릴 뻔했거든."
밤에 때때로 영국인 환자가 잠들었을 때, 또는 그의 방 앞에서 한동안 혼자 책을 읽고 난 뒤 그녀는 카라바조를 찾아 나선다. 그는 정원의 분수대 돌난간 위에 누워 별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아래층 테라스에서 그녀와 만난다. 그는 대개 지붕위의 깨진 굴뚝 옆에 있다가 그녀가 자기를 찾는 모습이 테라스에 보이면 조용히 내려온다. 그녀는 머리가 없는 백작의 동상 주변에서 그를 찾아낸다. 동사의 잘린 목은 동네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즐겨 앉았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얌전하게 침을 흘리는 자리다. 언제나 그녀가 그를 찾아 낸 것처럼 느끼게 되어 있다. 어둠을 알고, 술이 취하면 자신이 올빼미 가족의 손에 길러졌다고 우기던 남자.
두 사람은 피렌체와 그곳의 불빛이 멀리 보이는 곶에 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이따금 미친 사람 같다. 아니면 지나치게 평온하다. 그녀는 낮이 되어야 그의 움직임을 더 잘 알아차린다. 붕대가 감긴 손 위로 뻗은 뻣뻣한 팔과, 그녀가 언덕 위 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키면 목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돌려 바라보는 것 등. 그러나 그녀는 그런 일에 대해서 그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 환자는 공작 뼈 가루가 대단한 치료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래."
"그때 아저씨는 스파이였어요?"
"꼭 그렇지는 않아."
환자의 방에서 등불이 어른어른 내리 비치는 어두운 정원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숨길 수 있어 편안하다.
"우리는 가끔씩 도둑질을 하러 파견됐어. 나야, 이탈리아인에 다 도둑아닌가. 그들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운이었지. 서로 나를 이용하려고 아우성이었어. 나 같은 놈들이 네다섯 있었거든. 난 한동안 아주 잘했지. 그러다가 우연히 사진이 찍혔어. 상상할 수 있나?
난 연미복을 입고 있었지. 원숭이 옷 말야. 어떤 파티를 하는 모임에서 서류를 훔치기 위해서였어. 정말로 난 그저 도둑이었지. 무슨 엄청난 애국자가 아냐. 영웅이 아니라고. 그들이 내 재주를 공식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을 뿐이지. 헌데 어떤 여자가 카메라를 가져 와서 독일군 장교들의 사진을 찍다가 잘못해서 내가 잡힌 거야. 무도회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중간쯤에서 셔터 소리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어. 그래서 갑자기 모든 일이 위험해졌지. 어떤 장군의 정부였어.
전쟁 중에 찍은 사진은 모조리 정부 사진실에서 공식적으로 인화하게 돼 있었지. 그래서 게슈타포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고 그러니 필름이 밀라노의 사진관으로 가면, 어떤 명단에도 없는 나는 체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어. 나는 어떻게든 그 필름을 훔쳐야 했지.
그녀는 영국인 환자를 들여다본다. 아마도 잠든 몸이 멀리 사막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는 발바닥을 모아서 만든 사발에 손가락을 자꾸 담그는 사내에게 치료받고, 그 사내는 몸을 앞으로 수르려 어두운 빛깔의 반죽을 화상 입은 얼굴에 대고 누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얹히는 손의 무게를 상상해본다.
그녀는 복도를 걸어가 자신의 그물침대 안으로 기어오른다. 바닥에서 두 발을 모두 올리는 순간 그물침대가 휘청거린다.
잠들기 직전이 그녀에게는 제일 생생하다. 어린 아이가 교과서와 연필을 챙겨들 듯이 하루의 순간순간을 침대로 가지고 들어가 그 하루의 조각들 사이를 뛰어 다닌다. 그때가 되기까지 하루는 뒤죽박죽인 것만 같다. 그것은 그녀에게 원부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몸은 사건들로 가득 찬다. 카라바조가 그녀에게 뭔가를 제공한 것이다. 그의 동기, 드라마, 그리고 도둑맞은 이미지.
그는 파티장에서 차를 타고 나온다. 차는 우두둑 소리를 내며 흙길에 이어진 자갈길의 완만한 커브를 돈다. 자동차의 그르릉 소리. 여름밤은 잉크 빛처럼 고요하다. 코시마 빌라의 파티에서 남은 저녁 시간 동안. 그는 사진기가 자기 방향으로 돌려진 때마다 몸을 돌려 피하느라 사진기를 든 여자만 쳐다보았다. 카메라의 존재를 안 이상은 피할 수 있다. 그는 그녀 곁에 얼쩡거리며 그녀의 말을 주워듣는다. 여자의 이름은 아나. 어떤 장군의 정부로 빌라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토스카나를 지나 북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여자가 죽는다거나 돌연 증발해 버린다면 의심을 사게 된다. 조금이라도 상식에서 벗어난 일은 수사 대상이 되는 때였다.
네 시간 후, 그는 양말 바람으로 잔디밭을 달린다. 달빛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가 발 아래 깔린다. 그는 자갈길 앞에 멈춰섰다가 천천히 자갈을 밟고 걸어간다. 코시마 빌라와 또다른 달처럼 둥실 떠 있는 네모진 유리창을 올려다본다. 전쟁 여인들의 궁전.
자동차 불빛이, 호스로 뿜어내는 그 무엇처럼, 그의 방을 비춘다. 그는 발을 옮기다 말고 다시 멈춰선다. 그 여자의 눈이 그를 향하고 있다. 여자 머리 위에 한 남자가 그녀의 금발을 쓰다듬으며 움직인다. 그리고 여자는 그를 보았다. 복잡한 파티에서 그녀가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사내가 지금은 알몸인 채로 어둠 속에서 불빛이 드러나자 여자는 깜짝 놀라 아까와 똑같은 몸짓으로 멈춰섰다. 자동차 불빛은 구석으로 흩어졌다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칠흙 같은 어둠. 그는 움직여야 하는지, 또는 그 여자가 지금 성교하고 있는 남자에게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귓속말을 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발거벗은 도둑. 나체의 암살자. 침대 위의 커플을 향해-목을 부러뜨리기 위해 두 손을 내밀고-움직일까?
남자가 행위를 계속하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의 침묵 소리가 들린다.-귓속말은 없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두 눈을 겨누고 있는 그녀의 생각이 들린다. 정확한 표현은 새-앵-각 이어야 한다. 카라바조의 마음은 그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반쯤 완성된 자전거를 놓고 쩔쩔매듯, 생각을 정리하게 해줄 수 있는 또하나의 음절. 말은 교활하다. 어떤 친구가 표현한 대로 바이올린보다 한층 교묘하고 어렵다. 그의 마음은 여자의 금발과 머리에 꽂힌 검은 리본을 떠올린다.
자동차 소리를 듣고 또 한차례의 불빛이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얼굴은 여전히 그에게 꽂혀 있다. 빛은 그녀의 얼굴에서 장군의 몸으로 떨어진다. 카펫 위로, 그리고 다시금 카라바조의 몸을 스치고 미끄러진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고 손짓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한다. 그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카메라가 그의 손에 들려 있다. 그리고는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다시 잠긴다. 이번에는 연인을 향해 쾌감의 신음소리가 그녀에게서 나온다. 그것이 수락의 표시임을 그는 안다. 말없이, 아이러니의 암시 없이, 단지 그와의 계약, 이해의 신호. 그는 이제 안전하게 베란다로 나가 밤 속으로 떨어져 달아나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방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는 빌라에 진입해서 반쯤 불이 켜진 복도의 17세기 벽화 옆을 소리없이 지나쳤다. 황금 정장에 달린 주머니처럼 건물 어딘가에 침실이 있다. 보초들을 무사히 지나치려면 무고한 듯 보여야 했다. 그는 옷을 모조리 벗어 꽃밭에 숨겨 두고 왔다.
알몸으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 보초들이 있는 2층으로 간다. 몸을 가리려는 듯 깊이 구부려 고개가 거의 엉덩이에 닿을 정도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날 저녁 초대에 관해서 적당히 보초를 쿡 지르면서, '알프레스코' 였던가? 아니면 매혹적인 '아카펠라'?
3층에는 긴 복도 하나. 계단 옆에 보초가 한 명 있고, 저쪽 끝에 약 20미터 거리에 또 한 명. 너무 멀리 있다. 카라바조는 극적인 걸음걸이를 연기해 보여야 한다. 버팀목처럼 양쪽에 선 보초들의 경계와 비난의 시선 속에서. 섹스를 흉내낸 걸음걸이다. 그는 마치 숲 속의 당나귀 그림을 보려는 듯 벽화 앞에 멈춘다. 머리를 벽에 기댄다. 잠이 들 것처럼. 그러다가 다시 걷는다. 비틀거리다가 이내 군대식 걸음걸이로 몸을 추스린다. 축 처진 왼손이 그와 같은 알몸의 아기천사가 그려진 천장을 향해 인사하듯 흔들린다. 도둑으로부터의 인사. 벽화의 장면이 되는 대로 그를 스치는 동안 짧은 왈츠 성곽. 흑백의 듀오모(이탈리아 대성당. 옮긴이), 전쟁 중의 이 화요일에 승천하는 성인들. 그의 신분을 숨겨 주고 생명을 구해 주기 위해. 카라바조는 타일 위로 빠져나와 자신의 사진을 찾는다.
신분증을 찾는 듯 알몸의 가슴을 두드려보고 자신의 성기를 잡아 보초가 서 있는 방의 문 열쇠로 사용하기라도 할 양 흔든다. 웃음.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비참한 실패를 안타까워하다가 흥얼거리면서 옆방으로 들어간다.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선다. 어둡고 아름다운 밤. 그는 베란다를 타고 한 층 아래 베란다로 내려선다. 비로소 아나와 그녀의 장군이 있는 방에 들어갈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향수처럼 은밀하게. 발자국도. 그림자도 없다. 몇 년 전 누군가의 아이에게 들려준. 그림자를 찾는 사람 이야기-지금 그가 기억의 단편 속에서 그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과 같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대번에 섹스를 알아챈다. 두 손이 의자 등받이에 널린 여자의 옷을 더듬고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에 누워 카메라처럼 단단한 물건을 찾아 방의 피부를 느끼면서 카펫 위를 구른다. 그는 선풍기 모양으로 소리 없이 굴러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빛 부스러기조차 없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팔을 내밀어 대리석의 가슴을 만진다. 그의 손이 동상의 손으로 옮겨간다. - 이제 그는 여자가 생각하는 방법을 이해한다. - 동상 손 끝에 카메라 끈이 걸려 있다. 순간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회전하고 돌연한 불빛의 파편 속에서 여자의 눈에 뛴다.
카라바조는 해나를 쳐다본다. 그녀는 그를 마주하고 앉아 눈을 들여다보며 책을 읽어주려 하고, 그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의 흐름을 포착하려 한다. 그는 자신을 살피면서 흔적을 찾아 헤매는 그녀를 지켜본다. 생각을 접고 그녀를 마주본다. 그는 자신의 눈이 결함이 전혀 없고 강물처럼 맑으며 풍경처럼 흠잡을 데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안다. 사람들이 그 속에서 넔을 잃는다는 것도 알고, 그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야릇하게 그를 바라본다. 사람의 음성이 아닌 소리나 소음을 들은 개처럼 고개를 갸우뚱한 채. 그녀는 맞은편에. 그가 싫어하는 빛깔인 검붉은 핏빛 벽 앞에 앉아 있다. 검은 머리칼과 그 눈빛. 날씬하고, 시골의 모든 햇빛에 그을린 올리브색 피부. 그녀는 그에게 아내를 연상케 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아내의 모든 몸짓을 기억해 내고 밤에 그의 심장 위에 놓이는 그녀의 손목 무게까지도 설명할 수 있지만, 요즈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탁자 아래로 손을 내리고 앉아 여자가 식사하는 모습을 본다. 아직도 그는 혼자 먹기를 좋아하지만 해나의 식사 시간에는 늘 함께 앉는다. 허영, 그는 생각한다, 인간적인 허영, 그녀는 창가에서 그가 성당 옆의 36계단에 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는 광경을 보았다. 마치 동양의 어떤 인종의 식사법을 배우는 사람처럼 포크나 나이프도 보이지 않았다. 짧게 깎은 잿빛 턱수염에서. 검은 재킷에서, 그녀는 결국 그가 이탈리아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 점이 점점 또렷해진다.
그는 갈색과 붉은색 벽 앞에서 그녀의 어두움, 피부와 단발의 검은 머리칼을 관찰한다. 전쟁 전에 토론토에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알았다. 그때 그는 도둑이었고 유부남이었으며, 스스로 선택한 세계에 게으른 자신간을 갖고 뛰어들었다. 부자를 상대로 한 사기에 능숙했으며 아내 자네타가 친구의 어린 딸들에게 몹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 주변에 그런 세계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싫어도 자기 자신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피렌체 근방 언덕 마을에서 지낸 이 기간 동안 비가 오는 날이면 실내에 갇혀 부엌에 있는 부드러운 의자나 침대 속에서 또는 지붕 위에서 온갖 공상을 다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오로지 해나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층의 죽어 가는 사내에게 스스로를 묶어둔 듯하다.
식사시간 동안 그는 그녀를 마주보고 앉아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반년 전, 해나는 피사의 산타치아라 병원에 있는 기다란 복도 끝의 유리창에서 흰 사자를 볼 수 있었다. 흉장 꼭대기에 홀로 선 사자는 그 빛깔은 듀오모나 공동묘지의 백색 대리석과 똑같지만 투박하고 소박한 형태로 미루어 어떤 다른 시대의 일부처럼 보였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거로부터의 선물처럼. 그녀는 병원을 둘러싼 여러 사물 가운데에서 유독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정이면 그녀는 창 밖을 내다보며 통금 등화관제 속에 흰 사자가 서 있다는 것과 새벽 근무에 그녀가 나서는 것처럼 사자도 그때 모습을 나타내 주리라는 것을 알았다. 5시. 혹은 5시 30분에. 그리고 6시에 한 번 더 그녀는 흰 사자의 실루엣과 점점 확실해지는 형태를 내다보곤 했다. 그것은 밤마다 그녀가 환자들 사이를 돌아 다니는 동안 그녀의 보초였다. 포격 속에서도 군대는 흰 사자를 그곳에 내버려두었다. 웅장한 그 건물에 - 포격의 충격 속에서 탑이 사람처럼 비스듬히 서 있다는 얼빠진 논리로 인해 -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건물은 낡은 수도원 대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수도자들이 정성들여 다듬은 나무들은 더 이상 동물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끔 변했고, 낮이면 그 잃어버린 항상 사이로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밀고 다녔다. 오직 백색 들만이 영구히 남아 있는 듯했다.
간호사들 역시 주위의 죽음에서 충격을 받았다. 혹은 편지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그들은 잘려진 팔을 들고 복도를 걸어가거나, 상처가 샘이기라도 한 양 멈추지 않는 피를 연신 솜으로 찍어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떤 것도,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지뢰를 제거하던 사람이 서 있던 자리가 폭파하는 순간 무너지듯 그들은 부서졌다. 산타치아라 병원에서 한 관리가 수백 개의 침대 사이를 지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전해주었을 때, 해나가 부서진 것처럼.
하얀 사자.
영국인 환자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불에 탄 지승처럼 긴장되고 어두워 보이는 그는 그녀에게 깊은 늪이었다. 그리고 이제 몇 개월이 지나 그는 산지롤라모 빌라에서 그녀의 마지막 환자가 되고, 전쟁이 끝났어도 그들 둘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안전한 피사의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항구인 소렌토와 마리나 디 피사 등에는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북미주와 영국 군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녀는 유니폼을 빨아서 접은 다음 돌아가는 간호사들 편에 보냈다. 모든 지역에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쟁은 끝났다. 이 전쟁은 끝났다. 이곳의 전쟁. 그들은 그녀가 탈영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탈영이 아니다. 나는이곳에 남겠다. 그들은 치우지 않는 지뢰가 있고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녀는 이층의 화상 입은 사내, 영국인 환자에게 올라가 자기도 머물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 대신 손가락이 그녀의 하얀 손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수그리자 그는 검은 손가락을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넣고 손가락 사이의 골짜기로 상쾌한 머리카락을 느꼈다.
몇 살이오?
스무 살예요.
어떤 공작이 있었지.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은 죽을 때 피사의 탑 허리까지 올라가 밖을 내다보고 싶어했어.
우리 아버지 친구는 상하이 댄스를 추다가 도중에 죽고 싶어했어요. 그게 뭔지는 저도 몰라요. 아버지의 친구분도 처음 들은 것이었어요.
부친께선 무얼하시지?
아버지...... 아버지는 전쟁에 참가하셨어요.
당신도 전쟁에 참가했어.
그녀는 그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한 달이 넘도록 그를 돌보아주고 모르핀 주사를 놓아주면서도 처음에는 서로가 수줍어했다. 둘만이 남았다는 사실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런 느낌을 극복했다. 환자들과 의사들과 간호사들과 장비와 시트와 수건 - 모두가 언덕을 내려가 피렌체와 피사로 돌아갔다. 그녀는 알약 진통제와 모르핀을 빼돌렸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트럭의 행렬, 그럼, 안녕. 그의 창가에서 손을 흔들며 그녀는 덧문을 닫았다.
빌라 뒤쪽에 돌 벽이 집 위로 높이 솟아 있다 건물 서쪽으로는 길게 에워싼 정원, 그리고 32킬로쯤 떨어져서 카펫처럼 깔린 피렌체시, 그 도시는 가끔 계곡의 안개 밑으로 사라졌다. 이웃의 낡은 메디치 빌라에 거주하는 장군 중 하나가 나이팅게일을 먹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귀에게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산지롤라모 빌라는 포위된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조각품의 팔다리는 포격 첫날 거의 날아가 버렸다. 집과 풍경 사이의 경계도 없어지고 파손된 건물과 땅에 남은 포탄 찌꺼기 사이에도 구분이 없어졌다. 해나에게 정원은 멀리 있는 방과 같았 . 지뢰의 위험을 알면서도 그녀는 정원 가장자리에서 일했다. 집 가까이 흙이 많은 부분에서는 정성을 다해 정원을 다듬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열이었다. 비록 불에 탄 흙이라 해도, 물이 부족하다 해도 언젠가는 라임나무의 정자와 푸른 빛의 방이 생길 것이다.
카라바조는 부엌으로 들어서서탁자위에 엎드려 있는 해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팔은 얼굴과 몸에 가려져 볼 수 없고, 다만 벗은 등과 드러난 어깨가 보였다.
잠들었다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율할 때마다 탁자 위에서 머리가 흔들렸다.
카라바조는 말없이 서 있었다. 울 때는 다른 어떤 행동을 할 때 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직 여명이 오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탁자 목재의 어둠에 기대어져 있다.
"해나." 그가 부르자 그녀는 소리 없는 정적으로 자신을 가릴 수 있다는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해나."
그녀는 신음했다. 소리가 그들 사이에 장애물이 되어 주도록, 그녀에게 닿을 수 없는 강이 되어 주도록.
그는 문득 그녀의 벗은 몸을 만져도 괜찮은지 주춤했다. "해나."라고 부르고 붕대가 감긴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 그녀는 들먹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깊은 슬픔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으로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수그린 채 몸을 일으켜 탁자에서 떨어져 나오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날 범할 생각이라면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치마 위로 드러난 피부가 창백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의 일부만 걸치고 나온 듯이 부엌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걸치고 있는 옷은 치마였다. 시원한 공기가 부엌 문을 타고 들어와 그녀를 덮는다.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고 젖어 있다.
"해나."
"알겠어요?"
"왜 그를 그렇게 숭배하지?"
"사랑해요."
"사랑하지 않아. 숭배하고 있어."
"가세요, 카라바조. 제발."
"넌 무슨 까닭에선지 송장에다 자신을 묶어두고 있어."
"그는 성자예요.내 생각에는. 절망한 성자. 그런 게 있을까요? 우리의 꿈은 그를 보호하는 거예요."
"그는 상관하지는 않아!"
"그를 사랑할 수 있어요."
"망령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던지는 스무 살짜리!"
카라바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슬픔에서 네 자신을 지켜야해. 슬픔은 증오에 가까워. 이 한마디만 하지. 내가 배운 건 이거야. 고통을 나눔으로써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타인의 독약을 마시면 오히려 그것이 네 안에 쌓이는 법이지. 사막인들은 너보다 현명했어. 그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구했어. 그리고 더 이상 쓸모 없게 되니까 버리고 떠난 거야."
"날 혼자 내버려둬요."
혼자일 때 그녀는 자리에 앉는다. 과수원의 긴 풀 때문에 축축해진 발목 신경을 느낀다. 과수원에서 주워서 짙은 색 면드레스 주머니에 담아온 자두 껍질을 벗긴다. 혼자 있을 때면 열여덟 그루의 삼나무가 만드는 초록색 천장 아래 오래된 길로 누가 올 것인지 상상해본다.
영국인이 깨어나면 그 위로 몸을 기울이고 세 번째 자두를 입에 넣어준다. 그의 열린 입은 자두를 물처럼 담그지만 턱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그 쾌감으로 울어버릴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자두가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손을 들어 혀가 닿지 않는 입가에 묻은 자두 방울을 문지른 뒤, 손가락을 입에 대고 빤다. 자두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그가 말한다.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처음 며칠 밤이 지난 후, 대부분의 침대를 땔감으로 태워버리고 난 뒤 그녀는 죽은 남자의 그물침대를 가져다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무데고 자기가 깨어나고 싶은 방에 들어가서 3층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쥐와 바닥에 고인 물과 오물과 무연 화약 같은 것들 위에 내키는 대로 아무 벽에나 못을 박고 그물침대를 걸었다. 매일 밤 그녀는 죽은 군인에게서 가져온 그물침대의 카키색 유령선 위로 기어올랐다. 그녀가 치료하던 환자였다.
테니스화 한벌과 그물침대. 이 전쟁동안 그녀가 타인에게서 취한 물건이다. 그녀는 늘 잠자리에서 입는 낡은 셔츠로 몸을 감싼 채 천장으로 미끄러지는 달빛 아래서 깨어난다. 드레스는 문에 박힌 못에 걸려 있다. 이제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졌다. 이 정도면 잘 수 있다. 전에 날씨가 추울때는 무엇인가 태워야만 잘 수 있었다.
자신의 그물침대와 자신의 신발과 자신의 드레스 그녀는 스스로 만든 작은 세계 안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두 남자는 먼 행성처럼 각자 자신의 기억과 고독의 영역 안에 있었다. 카라바조는 캐나다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같이 지낸 친구다. 당시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도 자기가 군림하는 여자들의 대열 속에서 대단한 물의를 빚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어둠 속에 누워 있다. 그는 남자들과 일하기를 거부하는 도둑이었다. 남자를 믿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자들과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하고, 여자와 이야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머지않아 그들을 관계의 덫에 옭아매곤 했다. 그녀가 아침 일찍 집으로 몰래 들어가면 아버지의 안락의자에서 자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직업적인 또는 개인적인 도둑질로 지쳐 떨어진 모습.
그녀는 카라바조에 대해 생각했다 - 어떤 방법으로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는 사람들이 있다 - 함께 있을 때 미치지 않을려면 어떻게든 감싸안고 부둥켜안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머리칼을 움켜쥐고 매달려 상대가 끌어올려 주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흔들 정도까지왔다가, 벽을 뛰어넘어 가서 몇 개월씩 사라져 버렸다. 아저씨로서 그는 늘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카라바조는 상대를 자기 품이나 날개 아래 거두어주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인격으로 사람을 포옹해준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녀처럼 거대한 주택 한구석에 어둠 속에 누워 있다. 그렇게, 카라바조가 있다. 그리고 사막에서 온 영국인이 있다.
전쟁 동안, 최악의 환자들과 같이 있으면서 그녀는 간호사라는 역할 속에 자신을 숨김으로써 냉정하게 버텼다. 견뎌 낼 수 있다. 이 정도로 부서질 수는 없다. 그녀가 전쟁을 겪는 동안 내내 묻어둔 말들이었다. 우르비노, 앙기아리, 몬테르치를 지나 피렌체에 들어오고 다시 더 멀리까지 가서 마지막으로 피사 근처의 다른 해안에 다다르는 동안.
그녀는 영국인 환자를 피사 병원에서 처음 보았다. 얼굴이 없는 남자. 검은 수령. 모든 신분 증명이 불에 타 없어진. 화상 입은 얼굴과 몸 일부에 타닌 산이 뿌려지고, 그것이 굳어 피부 위에 보호막처럼 덮였다. 눈 언저리에는 용담의 보라빛이 두꺼운 겹으로 씌워졌다. 그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끔 그녀는 담요를 여러 장 겹쳐 덮고 온기보다는 그 무게를 즐긴다. 그리고 달빛이 천장 위로 미끄러져 들어와 그녀를 깨우면 그물침대, 위에 누운 그녀의 마음은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러진다. 잠자는 상태에 비해 깨어 있을 때야말로 진정 쾌감을 느낀다. 그녀가 작가였다면 연필과 공책과 좋아하는 고양이를 모아 침대에서 글을 쓸 것같다. 사랑하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잠가둔 문을 넘지 못할 것이다.
휴식하는 것은 심판 없이 세계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다에서 목욕하는 일, 이름도 모른는 군인과 동침하는 일, 미지와 익명을 향한 애정. 그것은 곧 자신에 대한 애정이다.
군용 담요의 무게 아래 그녀의 다리가 움직인다. 영국인 환자가 천으로 된 태반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모직 담요 속에서 헤엄친다.
이곳에서 그녀가 그리워하는 것은 느릿하게 떨어지는 석양과 친근한 나무의 소리이다. 토론토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내내, 그녀는 여름 밤을 읽는 법을 터득했다. 그곳은 그녀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절반쯤 깬 상태로 고양이를 팔에 안고 비상구에 다리를 올려 놓으면서.
유년기 때 그녀의 교실을 카라바조였다. 그는 그녀에게 재주넘기를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항상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고 어깨짓만 한다. 전쟁이 그들 어느 나라에서 살게 할지 누가 알았던가. 그녀 자신도 우먼스 칼리지 병원에서 교육받은 후, 시칠리아 섬을 침공할 때 해외로 파견되었다. 1943년의 일이다. 1차 캐나다 보병사단이 이탈리아에 진격하면서 부상자들은 어둠 속에서 터널을 뚫는 노무자들이 던지는 흙처럼 야전병원으로 보내졌다. 아레초 전투 이후, 퇴각하는 병사들의 첫 공세가 밀려올 때 그녀는 밤낮으로 그들의 상처에 둘러싸였다. 휴식 없이 사흘을 일하고 나서 그녀는 마침내 죽어 나간 병사의 매트리스 옆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눈을 감고서 12시간 동안 잤다.
깨어나서 그녀는 도자기 병에서 가위를 집어들고 몸을 수르려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길이나 모양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잘라나갔다. 몸을 앞으로 숙였을 때 머리카락이 상처의 피를 건드린 기억과 함께 지난 며칠 동안 머리카락이 귀찮았던 느낌만이 생생했다. 죽음과 연결될 만한, 죽음에 갇히게 될 만한 어떤 것도 갖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흘러내리는 가닥이 없음을 확인한 뒤 부상자들로 가득 찬 방을 향해 돌아섰다.
그 이후로 다시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패전의 기운이 감돌면서 그녀는 전에 알던 사람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어느 날 환자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면서 아버지나 댄포스 가에서 알던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자신과 환자들에게 가혹해졌다. 오직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구하는 것이라는 생각뿐,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피의 온도계가 북상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토론토는 더 이상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것이 처절한 오페라였다. 사람들은 주위 - 군인, 의사, 간호사, 평민 - 에 냉담해졌다. 해나는 치료하는 상처에 몸을 바싹 굽히고 병사들에게 소근거렸다.
그녀는 누구나 '친구' 라고 부르면서도. " 프랭클린 D를 만날 때마다 그는 항상 내게 '안녕. 친구'라고 했지"란 노래 가사를 비웃었다.
그녀는 줄곧 피가 흐르는 팔을 솜으로 닦았다. 너무도 많은 파편을 제거한 나머지, 그녀는 군대가 북상하는 동안 자신이 치료하는 거대한 사람의 몸에서 금속 1톤을 운반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밤 환자 한 명이 죽자 그녀는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그의 집에서 데니스와 한벌을 꺼내 신었다. 조금 컸지만 편안했다.
그녀의 얼굴은 날로 여위고 각이 져 훗날 카라바조가 만난 그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말랐다. 무엇보다도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허기진 상태에서, 먹지 못하거나 먹고 싶어하지 않는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이란 빵 조각이 동나고 수프가 식는 것을 보면서 재빨리 먹어 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과 같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피로를 주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빵과 고기. 마을에는 병원의 빵 만드는 부서가 있었다. 그녀는 자유 시간이면 빵 굽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먼지와 음식 냄새를 들이마셨다. 나중에 그들이 로마의 동쪽으로 옮겨갈 때 누군가 그녀에게 예루살렘 아티초크 채소를 선물로 주었다.
바실리카나 수도원, 또는 부상자들이 묵고 있는 곳이면 아무데나 들어가 잠드는 일은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 북상했다. 그녀는 누군가 죽으면 노무원들이 멀리서 보고도 알 수 있도록 그의 침대 발 끝에 붙어 있던 작은 골판지 국기를 떼어버렸다. 그리고는 두꺼운 돌로 지은 건물을 벗어나 바깥의 봄, 겨울, 또는 여름 속으로 걸어나갔다. 전쟁중에도 계절은 나이든 신사와 같이 고풍스러웠다. 그녀는 어떤 날씨에도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사람 냄새가 묻어 있지 않은 공기를 원했고 폭우를 가져온다 해도 달빛을 원했다.
안녕하세요 친구, 잘 있어요 친구. 치료는 짧았다. 죽을 때까지만 유효한 계약이었다. 그녀의 영혼이나 과거의 어떤 것도 간호사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를 자른 일은 계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피렌체 북쪽 산지롤라모 빌라에서 야영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곳에는 간호사 4명과 의사2명, 그리고 환자 백 명이 있었다. 이탈리아 전투는 더 북상했고 그들은 뒤에 남겨졌다.
그리고는 이 언덕 마을에서 있었던 소박한 지역 승리 축하연에서 그녀는 피렌체나 로마나 다른 어떤 병원으로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전쟁은 끝났다. 그녀는 '영국인 환자' 라고 불리는 화상 입은 사내와 함께 남을 것이다. 허약한 수족 때문에 그를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 이제 분명해졌다. 그녀는 그의 눈에 벨라도나를 바르고 극심한 화상과 킬로이드화된 피부를 위해 염수 목욕을 시켜줄 것이다. 병원이 위험하다고 들었다. 몇 개월간 독일의 방어선이던 곳, 연합군의 포탄과 조명탄이 쏟아졌던 수녀원. 그녀에게 남겨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적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도 전혀 없다. 그녀는 여전히 떠나기를 거부했다. 간호사복을 벗고 몇 개월간 지니고 있던 갈색 무늬 드레스를 꺼내 입고 테니스화를 신었다. 그녀는 전쟁에 서 비켜섰다. 그녀는 이제껏 그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였다. 수녀들이 되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영국인과 함께 빌라에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녀가 알고 싶고, 익숙해지고, 숨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면이 있었다. 어른이 되는 일에서 비켜설 수 있을 것 같은. 그가 그녀에게 말하는 법이나 생각하는 방법에는 작은 왈츠가 있었다. 그녀는 그를 구하고 싶었다. 북쪽 침공 동안 그녀가 담당한 2백 명의 환자 가운데 하나인 이름 없는, 얼굴도 거의 없는 이 남자를.
무늬 있는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축하 연회장에서 걸어나와, 다른 간호사들과 함께 쓰던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앉을 때 눈 앞에 뭔가 번쩍였다. 그녀는 작고 동그란 거울을 발견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1년이 넘도록 자신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벽에 비치는 그림자 말고는. 거울은 그녀의 뺨 이상을 비추지 않았다. 그녀는 팔길이만큼 뒤로 물러나 손을 움직여야 했다. 걸쇠 달린 브로치 안을 들여다보듯 그녀는 자신의 작은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창을 타고, 환자들이 스탭들과 함께 웃고 기뻐하며 의자에 실려 햇빛 아래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중환자들만이 아직까지 실내에 있었다. 그녀는 그 소리에 미소지었다. 안녕, 친구. 그녀는 자기 모습을 응시하며 자신을 알아보려고 애썼다.
정원을 산책하는 해나와 카라바조 사이의 어둠. 이제 그는 특유의 느린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댄포스 가에서 밤 느지막이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지. 나이트 크롤러 식당. 기억하겠니? 모두들 일어나서 노래를 한 곡씩 불러야 했지. 너희 아버지, 나, 자네타, 친구들,그리고 너도 하고 싶다고 했어, 처음으로 그때 넌 아직 학교에 다녔지. 불어 시간에 배운 노래였어.
넌 정식으로 의자 위에 서더니 한걸음 더 올라서서 접시와 초가 타고 있는 나무 탁자 위에 섰어.
'알론송 퐁!'
넌 왼손을 가슴에 얹고 노래했지. 알론송 퐁! 거기 있던 사람들 중 절반쯤은 네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도 몰랐어. 어쩌면 너도 가사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을 거야. 허나 그 노래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알았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네 치마를 날려 거의 촛불에 닿을 듯 했고 네 발목은 바 안의 흰 불꽃 같아 보였지. 너를 올려다보는 너희 아버지 눈은 새로운 언어로 불가사의한 빛을 띠었어. 네 노래가 너무 뚜렸하고 주저함이나 흠잡을 데 없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그리고 네 치마를 건드릴 듯 건드리지 않고 비껴가던 촛불. 우리는 탁자 끝에 서 있었고, 넌 탁자에서 내려와 네 아버지 품에 안겼어."
"손의 붕대를 풀어 드릴 수 있어요. 전 간호사 잖아요."
"편안해. 장갑처럼."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어떤 여자네 창문에서 뛰어내리다가 잡혔어. 아까 말했던, 사진을 찍었다던 여자. 그 여자 잘못은 아냐."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아 근육을 주무른다. "풀어 드릴게요." 그의 호주머니에서 붕대 감긴 손을 꺼낸다. 낮에 보았을 때 회색이라고만 생각했던 손이 지금 희미한 불빛 속에서는 거의 반짝거리고 있다.
그녀가 붕대를 풀기 시작하자 그는 뒤로 물러서고, 마치 마술사처럼 그의 팔에서 하얀 붕대가 줄줄이 빠져나와 완전히 풀린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아저씨에게 다가간다. 그의 눈이 자신의 눈을 사로 잡아 그 손을 보지 못하게끔 하려는 것을 깨닫고, 그의 눈만을 들여다 본다.
그의 손은 그릇처럼 마주 붙어 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면서 고개를 그의 뺨까지 들었다가 다시 목깨에서 멈춘다. 그녀의 손에 느껴지는 부위는 단단하게 다 아문 듯했다.
"이나마 놈들이 나한테 남겨준 것도 흥정을 해서 얻어 낸 거야."
"어떡해요?"
"전에 가졌던 재주들."
"아, 기억나요. 아니, 움직이지 마세요. 떨어져 앉지 말아요."
"이상한 때야. 전쟁의 끝이란."
"네. 적응의 시기죠."
"그래."
그는 초생달을 받으려는 것처럼 두 손을 든다.
"엄지손가락을 다 잘랐어, 해나. 봐."
두 손을 그녀 앞에 내민다. 그녀가 언뜻 본 것을 똑바로 보여준다.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 손을 뒤집는다. 군살처럼 보이는 부분이 엄지손가락이 잘린 자리다. 그는 그녀의 블라우스를 향해 손을 움직인다.
그녀는 어깨 아랫부분의 옷이 들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가 두 손가락으로 천을 잡아 앞으로 부드럽게 당기고 있다.
"솜을 이렇게 만지지."
"어릴 때 난 아저씨를 항상 스칼렛 핌퍼넬처럼 생각했어요. 꿈 속에서 밤에 지붕으로 아저씨와 함께 올라가곤 했죠. 아저씨는 호주머니에 찬 음식을 담아 집으로 가져왔어요. 연필통, 포레스트 힐 피아노에서 가져온 악보 같은 걸 나한테 주셨죠."
그녀는 그의 얼굴에 깔린 어둠에 대고 말한다. 나뭇잎 그림자가 부유한 여자의 레이스 손수건처럼 그의 입을 씻어 내린다. "여자를 좋아하시죠? 좋아하셨어요."
"좋아해. 왜 과거형으로 말하지?"
"이제는 중요해 보이지 않아요. 전쟁중에 그런 일들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뭇잎 무늬가 얼굴에서 굴러 떨어진다.
"아저씨는 불이 하나만 켜 있는 거리에서 밤에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 같았어요. 낡은 커피 깡통을 발목에 달고 불 달린 헬멧을 쓴 지렁이잡이처럼요. 시 공원 전체에. 그런 곳, 지렁이 파는 카페에 절 데리고 가셨죠. 주식시장 같다고 하셨어요. 지렁이 가격이 5센트, 10센트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해서 사람들은 망하거나 횡재를 했죠. 기억하세요?"
"응."
"돌아가요. 추워져요."
"위대한 소매치기는 둘째와 셋째 손가락이 거의 같은 길이로 태어나지. 주머니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없어. 2센티면 족해."
그들은 나무 아래를 지나 집으로 향한다.
"누가 그랬어요?"
"놈들은 여자를 하나 찾아서 시켰어. 그 편이 더 통렬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자기네 간호사 중 하나를 데려오더군.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워 책상다리에 몪고서,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나니까 힘을 쓰지 않고도 손이 빠져나오더군. 꿈 속에서 소원을 비는 것처럼. 아무튼 여자를 불러온 자, 그가담당이었지. 그자였어. 라누씨오 토마소니. 그 여자는 죄가 없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 이름도, 국적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영국인 환자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해나는 카라바조를 잡았던 손을 풀고, 계단을 뛰어올라 갔다. 카라바조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난간을 잡고 획 돌아 올라가는 그녀의 테니스화가 반짝거렸다.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카라바조는 부엌으로 들어가 빵 한주먹을 뜯어 해나를 따라 계단으로 올라갔다. 방에 가까워질수록 고함소리는 점점 광란적으로 울렸다. 침실로 들어서자 영국인이 개 한 마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 폼이 비명소리에 놀란 듯했다. 해나는 카라바조를 보고 씩 웃었다.
"난 오랫동안 개를 보지 못했어요. 전쟁 내내 한 마리도 못 봤어요."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 동물을 껴안았다. 털 냄새에 섞여 언덕의 풀 냄새도 났다. 그녀는 빵 조각을 내밀고 있는 카라바조에게 개를 보냈다. 영국인은 카라바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게는 개 - 이제 해나의 등에 가려진-가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카라바조는 개를 부등켜안고 방을 나갔다.
이것이 폴리치아노의 방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영국인 환자가 말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그의 빌라였겠지. 저 벽에서 나오는 물 말이오. 저 고대 분수. 이건 우명한 방이야. 그들 모두 여기서 만났지.
여긴 병원이었어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전에, 오래 전에 수녀원이었어요. 그러다가 군대가 점령했어요.
내 생각에 이건 브루스콜리 빌라라구. 폴리치아노-로렌초의 충복. 1483년을 이야기하는 거요. 피렌체, 산타트리니타 교회에서 메디치가 붉은 망토를 두르고 포리치아노와 함께 있는 그림을 볼 수 있지. 제기발랄한 위인이지. 출세한 천재랄까.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그는 또다시 또렷하게 깨어 있다.
좋아요, 말씀하세요, 날 어디로든 데려가세요,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카라바조의 손에 가 있다. 아마도 지금쯤 브루스콜리 빌라 부엌에서 집 없는 개에게 음식을 주고 있을 카라바조 만일 이 집의 이름이 그것이라면.
살벌한 삶이 있어. 칼과 정치와 삼층 모자와 식민지식으로 덧댄 스타킹과 날개가 있는. 명주 날개였지. 물론 사보나놀라(순교한 이탈리아 종교개혁가, 1452-1498. 옮긴이)는 그 다음에 나왔어요.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의 <헛된 모닥불>이 나왔지. 폴리치아노는 <호머>를 번역했어. 그는 시모네타 베스푸치에 대해 훌륭한 시를 썼지. 그녀를 아나?
아뇨, 해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피렌체에 그녀의 그림이 잔뜩 있지. 그녀는 23세에 폐병으로 죽었어. 그는 <레 스탄체 페르 라 조스트라>로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지. 그리곤 보티첼 리가 그 중 몇 장면을 그렸고, 레오나르도도 거기 나오는 장면을 그렸어. 폴리치아노는 아침마다 두 시간씩 라틴어로, 오후에 두 시간씩 희랍어로 강의했지. 그에게 피코 델라 미란돌라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방탕한 사교계의 명사였다가 갑자기 개종하여 사보나놀라를 추종했어.
피코는 어릴 때 내 별명이었지.
그래. 여기서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아. 벽에 있는 이 분수. 피코와 로렌초와 폴리치아노, 그리고 젊은 미켈란젤로 그들은 한 손에 새로운 세계를, 다른 손에 낡은 세계를 들었지. 그들은 키케로(B.C.106-43 제정 로마의 정치가. 웅변가, 철학자. 옮긴이)의 마지막 4권을 입수했어. 기린, 코뿔소, 날지 못하는 새인 도도를 수입했지. 토스카넬리는 상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기초로 세계 지도를 그렸어. 그들은 이 방에서 플라톤의 흉상을 가지고 앉아 밤새도록 토론했지.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사보나놀라의 외침이 들려왔어. "회개하라! 대 홍수가 온다.!" 그리고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갔지 - 자유 의지, 고상하고자 하는 욕망, 명예욕, 숭배할 권리 같은 것들이. 그때 모닥불이 피어올랐어. 그 불은 가발, 책, 짐승 가죽, 지도들을 태웠지. 4백 년이 넘어서 사람들은 무덤을 열었어. 피코의 뼈는 보존돼 있었고, 폴리치아노의 것은 먼지가 되어 있었지.
영국인 환자가 비망록의 페이지를 넘기며 다른 책에서 붙여둔 자료를 읽을 동안 해나는 귀를 기울였다. 불길 속에 사라진 훌륭한 지도와 플라톤의 흉상이 타 녹아내리던 일, 폴리치아노가 잔디 언덕에 서서 미래를 냄새 맡을 때 대리석이 열 속에서 벗겨지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정확한 포성 같던 지혜의 번뜩임에 관하여. 그리고 그 아래 어디에선가 회색 철창 안에서 구원의 셋째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피코에 대해서도.
그는 개를 주려고 그릇에 물을 따랐다. 전쟁보다도 오래된 늙은 잡종.
그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해나에게 준 와인을 유리병에 담아 들고 앉았다. 그곳은 해나의 집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새로 배치하거나 옮기지 않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작은 들꽃 속에 있는 그녀의 문화,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선물을 그는 알아차렸다. 무성한 정원 가운데 풀밭이 간호용 가위로 40Cm 정도 잘려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젊은 남자였다면 그런 행동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어떻게 보는가? 그의 상처와 불균형, 목덜미의 잿빛 곱슬머리. 그는 결코 자신을 나이와 지혜의 관념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나이를 먹기 마련이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이 나이게 맞는 지혜를 갖추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는 개가 물을 마시는 것을 보려고 웅크렸다가 균형을 잃는 바람에 탁자를 붙잡고 와인병을 쓰러뜨렸다.
이름이 데이비드 카라바조 맞지?
그들은 수갑으로 참나무 책상의 두꺼운 다리와 그를 한데 묶었다. 그는 한번 탁자를 안고 일어나 문을 향해 뛰어가려다 왼손에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여자는 더 이상 손자르기를 거부하며 칼을 떨어뜨렸다. 책상 서랍이 열리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모든 내용물이 그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는 그 속에 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라누치오 토마소니가 칼을 집어들고 다가왔다. 카라바조 맞지? 그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책상 밑에 누워 있는 동안 손에서 흐르는 피가 얼굴로 떨어졌다.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그는 책상다리에서 수갑을 빼고 고통을 참으며 의자를 날려버린 뒤, 다른 쪽 수갑에서 빠져나오려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의 두 손은 이미 쓸모가 없어졌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그는 어느샌가 사람들의 엄지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사건이 그를 질투의 덩어리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탁자에 묶여서 보낸 하룻밤 동안 그들이 느려지게 만드는 약물을 부어 대기라도 한 듯, 그 사건은 그에게 나이를 느끼게 했다.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개와 붉은 와인이 흥건한 식탁 위로 일어섰다. 보초 두 명, 여자, 토마소니, 전화벨의 울림, 울림이 토마소니를 중단시켰다. 토마소니는 칼을 내리며 빈정대듯 실례라고 소근거리고서 피묻은 손으로 전화를 집어들었다. 그는 그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그를 풀어주었다. 그렇다면 그가 잘못 짚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서 그는 비아 디 산토스피리토를 따라 걸으며 뇌리에 숨겨둔 장소로 향했다. 브루넬레시 교회를 지나 그를 돌보아준 사람이 있는 독일학교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그를 풀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유롭게 걷도록 내버려두면 바로 접선 상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옆길로 돌아 들어갔다. 뒤로 보지 않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그는 길에 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손의 피를 멈추기 위해서, 타르 솥에서 나오는 연기 위에 손을 대고 시커먼 연기에 감싸이게 하고 싶었다. 산타트리니타 다리 위였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오가는 차도 없었다. 그것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다리의 매끄러운 난간 위에 앉았다가 다시 아예 누워버렸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예전에 그가 젖은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걷던 때는 탱크와 지프들이 광란적으로 오갔다.
그때 다리에 설치돼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그는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세상 종말의 일부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눈을 떠보니 옆에 커다란 머리가 있었다. 숨을 들이쉬자 가슴이 물로 흠뻑 들이찼다. 그는 물 속에 있었다. 아르노의 얕은 물 속에 있는 그의 곁에 수염이 북실북실한 머리가 있었다. 그는 아직도 곳곳에 불이 붙어 있는 수면으로 헤엄쳐 나왔다.
그날 저녁 느지막이 그가 해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자 그녀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연합군이 오기 때문에 고문을 중지했을 거예요. 독일군은 도시를 떠나고 있었거든요. 가면서 다리들을 파괴했죠"
"모르지.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모든 걸 말했을지도 그게 누구의 머리였을까? 그 방에는 줄곧 전화가 왔어. 침묵이 흐르고 놈이 나한테서 물러나면 다들 일제히 그를 쳐다보면서 들을 수도 없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지. 누구 목소리였을까? 누구 머리였지?"
"그들은 떠나고 있었어요. 데이비드."
그녀는 <최후의 모하칸>을 펴서 뒷장에 붙은 여백에 쓰기 시작한다.
카라바조는 사람이 있다. 아버니의 친구. 나는 언제나 그를 사랑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는 마흔다섯 살쯤 되었나 보다. 그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암흑의 시간 속에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아버지의 친구인 이 사람에게 보살핌을 받는다.
그녀는 책을 덮고 도서실로 들어가 높은 책장 위에 숨긴다.
영국인은 언제나처럼 입으로 숨을 쉬며 잠들었다. 깨었을 때나 잠잘 때나 항상 그렇게 숨쉰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손에 잡힌 촛불을 부드럽게 잡아 뺏다.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창문으로 걸어가 촛불을 껐다. 그녀는 그가 촛불을 들고 누워 손목 위로 떨어지는 촛농을 느끼지도 못하며 죽은 시늉하고 있는 것이 싫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준비시키듯, 죽음의 분위기와 빛을 흉내냄으로써 자신의 죽음으로 살며시 미끄러져 들어가려는 듯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거세게 잡아당겼다. 어둠 속에서, 땅거미가 진 다음에는 어떤 불빛에서도 혈관을 끊으면 피는 검다.
그녀는 방에서 움직여야 했다. 갑자기 폐쇄공포증이 몰려오며 피로가 가셨다. 그녀는 천천히 복도를 지나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 빌라의 테라스를 나선 다음, 자신이 비껴선 소녀의 모습을 식별하려고 애쓰듯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건물 안으로 되돌아왔다. 딱딱하게 부어 있는 문을 밀고 도서실로 들어가 멀리 방 끝에 있는 프렌치 도어를 막은 널빤지를 떼어 내고 문을 열어 밤 공기가 들어오게 했다. 카라바조가 어디 있는지 그녀는 몰랐다. 이제 그는 저녁 나절동안 거의 나가 있다가 새벽이 되기 몇 시간쯤 전에 돌아왔다. 어쨌던 그의 자취는 없었다.
그녀는 피아노 위에 덮인 회색 시트를 잡고 방 귀퉁이로 끌고갔다. 펄럭이는 천, 물고기의 그물.
불은 없다. 멀리서 우르릉거리는 천둥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피아노 앞에 섰다. 아래를 쳐다보지 않고 손을 내려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멜로디의 골조만 남게 하는 코드 소리만. 물에서 손을 꺼내 무엇을 건졌는지 볼 때처럼 그녀는 한 소절마다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나가면서 노래의 중심 뼈대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더욱 천천히 움직였다. 두 남자가 프렌치 도어를 넘어 들어와 피아노 끝에 총을 내려놓고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녀는 건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라진 방의 공기 속에 화음의 여운이 감돌았다.
두 팔을 옆으로 내리고 벗은 한쪽 발은 베이스 페달 위에 얹은 채 그녀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를 계속 쳤다. 평평한 곳이 눈에 띄기만 하면 손을 얹고 연습했던 곡이다. 식탁 위에서, 계단을 올라갈 때, 벽에 대고서, 잠들기 전 침대에 손을 얹고서, 그들에게는 피아노가 없었다. 그녀는 토요일 아침이면 시민문화회관으로 가서 피아노를 쳤다. 그러나 주중에는 어머니가 식탁 위에 백묵으로 그렸다가 지우는 악보를 어디에서고 연습했다. 여기에 오던 첫날부터 프렌치 도어 너머로 보았고 벌써 석 달이 지났지만 빌라의 피아노를 치기는 처음이었다. 캐나다에서는 피아노에 물이 필요했다. 뒤뚜껑을 열고 물 한 컵을 넣어두었다가 한 달 후에 보면 컵이 비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술집 대신 피아노 속에서만 음료수를 마시는 난쟁이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쥐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번갯불이 계곡을 가르면서 밤새 폭풍우가 치고 있었다. 그녀는 두 남자 중 하나가 시크족임을 알아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손을 멈추고 미소지었다. 다소 놀라긴 했지만 아무튼 안심하면서. 등 뒤로 지나간 번개빛의 원형 파노라마가 너무 짧아 순간적으로 그의 터번과 물에 젖어 번뜩이는 총만을 힐끗 보았을 뿐이다. 피아노 뚜껑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병원 탁자로 쓰였기 때문에 그들의 총은 건반 끝에 놓였다. 영국인 환자는 그 총기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그녀 주위에는 외국인들만 있다. 아무도 순수한 이탈리아인이 아니었다. 로맨스 빌라. 폴리치아노는 이 1945년의 극적인 장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피아노를 사이에 둔 두 남자와 한 여자, 전쟁은 끝나가고, 번개가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모든 것을 색채와 그림자로 채울 때마다 번쩍이는 총, 3초에 한 번씩 청둥이 계곡 전체에 올리고, 돌림노래, 화음의 누름, 나의 애인과 찻집에 갈 때......
가사를 아실지.
그들에게서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녀는 단순한 화음 누르기에서 풀려 나와 손가락을 복잡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았던 재즈의 음률 속으로 전율하며 빠져들었다. 손을 넓게 벌리고 멜로디의 곡조를 자세히 두드리며.
나의 애인과 찻집에 갈 때
모든 사내들이 부러워하네.
녀석들이 가는 곳에는 그녀를 데려가지 않네.
나의 애인과 찻집에 갈 때.
번개가 방 안에 있는 그들 사이로 들어올 때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옷이 젖었다. 그녀의 손이 천둥 번개에 맞춰 그 사이에서 받아치듯 섬광 사이로 흐르는 어둠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표정은 신문지를 찢어 부엌 수도에 적신 뒤 탁자의 악보, 건반의 게임 자국을 지우는 어머니의 손길을 기억해 내는 데 온통 쏠려 있었다. 나중에 그녀는 시민문화회관에 매주 레슨을 다녔다. 의자에 앉으면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 일어서서 여름 샌들을 왼쪽 페달 위에 얹고 메토로놈이 똑딱거리는 동안 연습했다.
그녀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노래의 가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가는 장소, 다른 사내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엽란으로 가득 찬 그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이제 그만하겠다는 뜻으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바조는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돌아와서 그는 해나와 공병 두 사람이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III. 때로는 불
때로는 불
중세기 최후의 전쟁은 1943년과 1944년에 이탈리아에서 있었다. 8세기부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훌륭한 곳에 위치한 요새 마을들에 이제는 새로운 왕들의 군대가 떼로 투입되었다. 바위 주위에는 화포들이 몰려 있고, 학살당한 포도밭의 탱크 바퀴자국을 깊이 파보면 피묻은 도끼와 창이 나왔다. 몬테르치, 코르토나, 앙기아리, 그리고 해변.
고양이들은 남족을 바라보는 포탑에서 잤다. 영국인, 미국인, 인도인, 오스트리아인, 캐나다인들은 북상했고 포탄이 공중에서 폭발하고 분해되었다. 산세폴크로에 군대가 집결했을 때, 병사들은 그곳의 상징인 석궁을 구해 점령되지 않은 도시의 성곽 너머로 밤마다 소리없이 쏘아댔다. 후퇴하는 독일군 원수 케셀링은 뜨거운 기름을 부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중세기 학자들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움브리아로 날아왔다. 평균 연령이 60세였다. 그들은 군인 막사에서 잤으며, 작전 참모들과의 회의 때는 비행기가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줄곧 잊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전공과 관련된 도시에 관해서만 말했다. 몬테르치의 마을 묘지 옆에 자리 잡은 성당에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파르토의 마돈나"가 있었다. 13세기의 성이 봄비 속에서 마침내 점령당하자, 군대는 성당의 높다란 돔 아래 숙소를 정하고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살해하고 있는 돌 설교단 옆에서 잤다. 물은 모두 오염되었다. 많은 이들이 장티푸스나 다른 열병에 걸려 죽었다. 아레초의 고딕 성당을 망원경으로 볼 때 군인들은 피에로 델라 프린체스카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의 인물과 동시대의 얼굴들을 만났다. 솔로몬 왕과 이야기하는 시바의 여왕. 그 옆으로 선악의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죽은 아단의 입에 물려 있는 모습. 몇 년 후 그 여왕은 실로암의 다리가 그 신성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항상 비가 오고 추웠으며, 심판과 신앙과 희생을 보여주는 예술의 위대한 지도 외에는 아무런 질서도 없었다. 제8군은 가는 곳마다 다리가 부서진 강을 만났다. 공병들은 적군의 포화 속에서 로프로 만든 사다리를 놓고 강둑을 기어내려가 헤엄을 치거나 물 속을 걸어서 강을 건넜다. 음식과 천막이 떠내려갔다. 장비에 메달린 사람들이 사라졌다. 강을 건넌 뒤에는 물을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손과 손목을 계곡 표면의 진흙벽에 집어넣고 매달렸다. 그들은 진흙이 굳어져서 자신들을 지탱해주기를 바랬다.
젊은 시크족 공병은 진흙에 뺨을 대고 시바 여왕의 얼굴과 피부의 감촉을 생각했다. 그 강에는 그녀를 향항 욕망 외에 아무런 위안도 없었다. 그 욕망이 왠지 그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에서 베일을 벗기고 싶었다. 오른손을 그녀의 목과 올리브빛 상의 사이에 얹고 싶었다. 2주 전 아레초에서 본 현명한 왕과 죄를 지은 여왕처럼, 그도 또한 피곤하고 슬펐다.
그는 두손을 진흙 둑에 집어넣고 물에 매달렸다. 개성, 그 미묘한 예술은 그러한 낮과 밤 동안 그들 사이에서 사라졌고 책이나 그림이 그려진 벽에만 존재했다. 그 둥근 천장의 벽화에서 누가 더 슬펐는가? 그는 그녀의 연약한 목 살결 위에서 쉬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래를 향한 그녀의 눈과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다리의 신성함을 알게 될 그여자.
밤에 캠프 침대에서 그의 팔은 두 군대와 같이 쭈욱 펼쳐졌다. 틀림없이 그를 잊어버릴 그림 속의 프레스코 왕족과 그 자신 사이의 임시 계약 외에 그곳에는 어떤 해결이나 승리의 약속도 없었다. 비 속에서 절반쯤 올라선 사다리나 뒤에 오는 군대를 위해 임시가교를 놓는 시크족을 의식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존재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벽에 그려진 이야기를 기억했다. 그리고 한달 후 부대가 바다에 다다른 뒤 해안도시 카톨리카에서 알몸의 사람들이 바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엔지니어들이 20미터 구역 내 해변의 지뢰를 치운 후, 그는 그에게 친구가 되어준 한 중세기 학자-언젠가 단순히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스팸을 나눠 먹은 사람-를 찾아가, 그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뭔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공병은 심홍색 비상 라이트를 팔에 감고 `트라이엄프` 오토바이를 출발의 기록으로 남기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우르비노나 앙기아리같이 이제는 조용해진 마을을 지나서, 옷을 두둑이 껴입고 그를 부둥켜안은 노인을 태운 채 이탈리아의 등뼈인 산등성이의 험한 꼭대기를 타고 에초를 향해 서쪽 비탈길을 내려갔다. 밤에는 광장에 군인들이 없었다. 공병은 성당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중세기 학자를 부축해서 내려주고 장비를 모아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더 추운 어둠. 더큰 공허와 공간을 채우는 그의 군화 소리. 다시 한번 그는 오래된 돌과 나무 냄새를 맡았다. 불을 밝혔다. 본당 중심부 위의 기둥을 향해 도르래 장치를 던지고 로프에 이미 꿰어져 있는 대갈못을 높은 나무 대들보에 쏘아올렸다. 대학교수는 멍하니 그를 지켜보며 이따금씩 높은 어둠을 응시했다. 젊은 공병은 노인의 주위를 돌며 허리와 어깨에 줄을 돌려 매어주고 가슴에 작은 조명탄을 테이프로 붙여준다.
그는 교수를 여성체 난간에 남겨두고 로프의 다른 끝이 있는 2층으로 소란스럽게 뛰어 올라갔다. 줄에 매달려 발코니에서 발을 떼고 어둠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몸이 위로 들렸다. 공병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반대편의 교수는 빠른 속도로 끌여올려졌다. 이제 노교수는 프레스코 벽화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허공에 매달리게 되었다. 조명탄이 그의 주위를 밝혔다. 공병은 로프를 잡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노인의 몸이 오른쪽으로 움직여 "맥신티어스 황제의 비상"앞에 흔들거리며 멈췄다.
5분 후에 그는 노인을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해 조명탄을 붙이고 인조 하늘의 깊은 푸르름 속에 있는 둥근 천장을 향해 몸을 끌어올렸다. 황금빛 별들을 망원경으로 바라보았던 시대를 떠올렸다. 피로에 지쳐 고개를 떨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중세기 학자가 보였다. 그는 이제 이 성당의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유동적인 감각. 우물의 공허감과 어두움. 그의 손에서 불빛이 지팡이처럼 앞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슬픔의 여왕. 그녀의 얼굴을 향해 그는 도르래를 당겼다. 그리고 그의 갈색 손이 거대한 목을 향해 살짝 뻗었다.
시크족은 해나가 한때 하벤더꽃이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는 정원의 제일 가장자리에 텐트를 친다. 그녀는 마른 잎을 그곳에서 찾아내 손가락 사이에 끼여 돌려보고서 꽃이 있었음을 알아낸다. 비가 온뒤면 그녀는 가끔 그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 절대로 집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뢰 분해 작업이나 다른 일 때문에 지나칠 뿐이다. 그는 항상 예의바르다. 가벼운 목례를 한다. 해나는 그가 빗물을 모은 물동이를 단정하게 해시계 위에 올려놓고 씻는 모습을 본다. 예전에 모판을 위해 사용된 정원 수도는 이제 말라버렸다. 셔츠를 벗은 갈색 몸에 새가 날개를 퍼덕이듯이 물을 끼얹는 그를 본다. 낮에는 주로 반팔 군용 셔츠를 입은 팔뚝과, 전투가 끝났는데도 늘 소지하고 다니는 총만 눈에 띈다.
그는 총을 들고 다양한 몸짓을 취한다. 반만 들어올린 모습, 팔 뒤꿈치를 반쯤 구부리고 총을 어깨에 얹는 모습. 그는 갑자기 그녀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돌아선다. 그는 공포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다. 수상한 것은 무엇이든 주위를 둥글게 돌면서 살핀다. 마치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듯 회전그림 속에서 그녀의 시선을 받아들인다.
그의 자급자족 능력은 그녀를 비롯해서 집 안에 있는 모두에게 안심이 되는 일이다. 카라바조는 그가 지난3년간 전쟁에서 익힌 서부 노래를 줄곧 흥얼거리는 점을 못마땅해하지만, 폭풍우 속에서 그와 함께 도착한 다른 공병 하디는 마을 근교의 다른 곳에서 야영한다. 지뢰를 치우기 위한 기계장치를 들고 정원으로 들어서서 시크족과 함께 일하기도 했지만 숙소는 다른 곳이었다.
개는 카라바조에게 들러붙었다. 젊은 군인은 개와 함께 길을 따라 달리며 놀아주기는 하지만 먹을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개는 스스로 생존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생기면 그는 자기가 먹어버린다. 그의 친절은 거기까지다. 이따금 그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에서 잔다. 텐트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은 비가 올 때뿐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카라바조의 밤의 방황을 목격한다. 두 차례에 걸쳐 공병은 카라바조의 뒤를 밟는다. 그러나 이틀만에 카라바조가 그를 멈춰세우고, 다시는 날 따라오지 마시오. 라고 말한다. 그는 극구 부인하지만 더 나이든 사내가 거짓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손을 대고 입을 다물게 한다. 그래서 군인은 이틀 전 카라바조가 자신의 미행을 눈치챘음을 안다. 어쨌든 추적은 단순히 그가 전쟁 동안 익힌 습관의 잔재이다. 아직까지도 어떤 표적에 총을 겨누어 명중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꾸만 조각품의 코나 계곡의 하늘에 떠 있는 갈색 매를 겨냥한다.
그는 아직 상당히 젊다. 음식을 급히 먹어치우고 재빨리 접시를 닦기 위해 뛰어 일어나며 스스로 점심식가에 30분을 할애한다.
그녀는 과수원이나 집 옆에 무성하게 자란 정원에서 고양이처럼 신중한 태도로 시간을 잊은 듯이 일하는 그를 관찰한다. 손목의 진한 갈색 피부를 주목한다. 가끔 그녀 앞에서 차를 마실 때 소리나는 팔지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목.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따르는 위험에 관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간혹 폭발이 그녀와 카라바조를 집 밖으로 달려나가게 하고, 소리 죽인 폭발음이 그녀의 가슴을 얼어붙게 한다. 그녀는 뛰어나가거나 유리창으로 달려가 자기처럼 하고 있는 카라바조에게 나가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풀잎 테라스에서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게으르게 집을 향해 손을 흔드는 공병을 본다.
한번은 카라바조가 도서실로 들어가다가 천장의 실사화 앞에 올라선 공병을 보았다. 오직 카라바조만이 방에 들어서며 혼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천장을 올려다본다. 젊은 군인은 눈길을 떼지 않은 채 한손을 뻗어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로 카라바조를 멈춰세웠다. 장식 커튼 위의 구석에서 찾아낸 퓨즈를 풀어 잘라낼 동안 안전을 위해 방에서 나가라는 뜻이었다.
그는 늘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을 누가 부는 거지?" 어느 날 밤, 새로온 이들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영국인 환자가 묻는다. 그는 난간 위에 누워 구름의 움직임을 올려다보며 항상 혼자 노래한다.
텅 비어 보이는 빌라에 들어서면 그는 소란스럽다. 그들 가운데 오직 그만이 아직까지 제복을 입고 있다. 말쑥하게 버클을 빛내며 공병은 텐트 밖으로 나온다. 터번은 균형 있게 올려지고깨끗한 군화가 실내 나무 계단이나 돌 계단 위를 소리내며 지난다. 그는 어떤 일에 깊이 빠져 있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웃음을 터뜨린다. 자신의 몸이나 체력을 무의식 중에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빵 한조각을 집기 위해 몸을 속이거나, 관절이 풀에 스칠 때, 마을에 있는 다른 공병을 만나기 위해 삼나무 길을 지나며 거대한 철퇴처럼 소총을 생각 없이 돌릴 때.
그는 어떤 태양계 끝에 떨어져 있는 별과 같은 빌라의 작은 무리에 대해 특별한 관심 없이 만족하는 듯하다. 진흙과 강과 다리와의 전쟁 이후 빌라는 그에게 휴과와 같다. 그는 초대받았을 때만 집 안으로 들어온다. 첫날 밤 해나의 더듬거리는 피아노 소리를 따라 삼나무 길을 지나 도서실로 들어왔을 때와 같은 방문객.
폭풍이 불던 날 밤, 그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연주자의 위험 때문에 빌라에 다가왔다. 후퇴한 군대는 종종 악기 속에 연필 폭탄을 남겨두곤 했다. 돌아온 주인은 피아노를 여는 순간 손을 잃었다. 괘종시계의 추를 다시 흔들다가 유리 폭탄이 터져 벽과 함께 날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피아노 소리를 따라 하디와 함께 언덕을 뛰어올라 돌벽을 기어 넘어 빌라에 들어섰다.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연주자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메트로놈을 틀기 위해 얇은 쇠띠를 잡아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연필 폭탄은 대게 그렇게-가장 용접하기 쉽게 얇은 겹의 철사를 위로 세워 장치되었다. 수도꼭지에, 책의 뒷면에, 폭탄이 장착되었다.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폭탄을 넣어두기도 했다. 사과가 익어서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폭탄이 터지거나 사람의 손이 가지에 닿기만 해도 폭파되게 해두는 것이다. 그는 방이나 들판을 볼 때, 반드시 그곳에 무기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며 쳐다 보았다.
그는 프렌치 도어 앞에서 멈추어 문틀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 다음, 방 안으로 들어서서 번개가 치는 순간만 빼고는 어둠 속에 서있었다. 마치 그를 기다린 듯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건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그녀를 보기 전에 레이더 처럼 방 안을 훑었다. 메트로놈은 이미 틀어져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위로 흔들리면서. 위험은 없었다. 작은 철사는 없었다. 젊은 여자는 한동안 그가 들어온 것을 알지 못했고, 그는 젖은 제복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천막 옆에는 나무 사이로 광석 수신기 안테나가 솟아 있다. 그녀는 밤에 카라바조의 야전 망원경으로 그 라디오 다이얼릐 야광 초록빛을 볼 수 있다. 공병이 그녀의 시야 쪽으로 움직이면 초록색이 갑자기 그의 몸 뒤로 숨는다. 그는 낮에 휴대용 기계를 지니고 다닌다. 이너폰을 한쪽만 꽂고 다른 쪽은 턱 아래로 떨어뜨려 주위에서 나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다.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입수하면 그는 소식을 알리려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밴드 리더 글렌 밀러(미국 빅밴드 작곡, 지휘, 연주자, 옮긴이)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어딘가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린다.
그는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녀는 황폐해진 정원 멀리에서 일하는 그를, 누군가 그에게 남긴 지독한 편지 같은 회로나 퓨즈와 씨름하고 있는 그를 본다.
그는 항상 손을 씻는다. 카라바조는 처음에 그가 수선스럽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어떻게 견뎠나?"
카라바조는 웃는다.
"아저씨, 저는 인도에서 자랐습니다. 식사하기 전에 항상 손을 씻죠. 습관입니다. 저는 펀잡에서 태어났습니다."
"전 북미 대륙에서 왔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는 반은 천막 안에서, 반은 천막 밖에서 잔다. 그녀는 그의 손이 이어폰을 뽑아 무릎 위로 떨어뜨리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녀는 망원경을 내려놓고 돌아선다.
그들은 거대한 둥근 천장 아래 있었다. 하사관이 조명탄을 붙이고 공병은 바닥에 누워 소총의 조준 망원경을 위쪽으로 쳐들어 마치 군중 속에서 형제를 찾아 헤매듯 황토색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망원경의 초점 십자선이 성서의 인물들을 따라 흔들렸다. 색칠된 예복의 빛은 벗겨지고 살결은 몇백 년에 걸친 기름과 촛불 연기로 꺼멓게 변해 있다. 그리고 이제 노란 가스 연기. 이런 지성소 안에서 조명탄을 켜는 일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다. 그리고 그런 행동 때문에 쫓겨날 수도 있고, 대성당을 보여준 게 잘못이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사실 그들은 상륙 거점을 건너 1천 개의 작은 전투와 몬테카지노의 폭격, 라파엘스탄체 등을 거쳐 마침내 그곳에 당도했다. 시칠리아에 착륙하여 그나라 발목 부분에서 전투를 하고 여기까지 올라온 17인의 군인. 그런 그들에게 제공되 것이라곤 대성당 뿐이었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는 듯.
그 중 한명이 말했다.
"제기랄, 샨드 하사관님, 조명탄을 더 켜볼까요?"
그러자 하사관은 새 조명탄의 안전핀을 잡아빼고 팔을 앞으로 뻗어 높이 치켜들었다. 손목에서 불의 폭포가 넘쳐났다. 조명탄이 다 탈때까지 그는 그상태로 있었다. 부하들은 그 불빛에 들어나는 천장의 복잡한 얼굴과 모습을 서서히 올려다보았다. 젊은 공병만이 이미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소총을 겨누었다. 그의 눈이 노아와 아브라함의 수염, 그리고 여러 귀신들에게 거의 닿을 갓 같았다. 그 많은 얼굴 가운데서 훌륭한 얼굴 하나, 창과 같고 현명하며 용서하지 않는 얼굴을 보고 꼼짝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입구에서는 보초들이 고함을 지르며 뛰어 다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조명탄의 남은 수명은 겨우 30초.
그는 몸을 굴려 신부에게 총을 건넸다.
"저기, 저게 누구입니까? 북쪽 3시 방향에, 누굽니까? 빨리, 불이 꺼져갑니다."
신부가 총을 받아 구석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불이 죽어 있었다.
그는 총을 젊은 시크족에게 돌려주었다.
"시스틴 성당 안에서 이렇게 무기로 불을 밝혔으니 이제 큰일 날겁니다. 저는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요. 허나, 샨드 하사관님께 고맙게 생각합니다. 영웅적인 행동이었어요. 설마 조명탄이 큰 해를 입힌 건 아니겠죠."
"보셨습니까, 그 얼굴? 누굽니까?"
"아, 네. 훌륭한 얼굴이죠."
"보셨군요."
"네,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제8군이 동해안의 가비쎄에 도착했을 때 공병은 야간정찰대의 대장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그는 단파방송을 통해 물 속에 적군의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정찰대는 물에다. 폭탄을 발사했다. 물이 용솟음쳤다. 엉성한 경고탄이었다. 아무도 명중시키지 못했으나 폭발이 가져온 하얀 물보라 속에서 어두운 선의 움직임이 또렷했다. 그는 근처에 다른 움직임이 있는지 확인 하려고 사격을 보류한 채 소총을 들고 1분 동안 자기 앞에서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지켜보았다. 적군은 아직도 도시의 경계선인 북쪽 리미니에 주둔하고 있다. 그가 아직 그림자를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성모 아리아의 두상 주위로 후광이 번뜩였다. 바다에서 마리아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배에 서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노를 저었다.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붙잡아 세운 채 해변으로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손뼉을 치며 창문을 열었다.
공병은 크림색 얼굴과 작은 건전지 불이 달린 후광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마을과 바다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탄약상자 위에 누워 네명의 사내가 1.5미터 높이의 석고상을 안아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지뢰가 묻혀 있을지 의심하거나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해변을 걸어 올라왔다. 어쩌면 그들은 독일군이 그곳에 주둔해 있는 동안 폭탄을 묻는 광경을 보고 도표를 그려두었을지도 모른다. 1944년 5월 29일 가비쎄 마레였다. 성모 마리아의 해변축제.
어른들과 아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악단 복장을 한 사내들도 나타났다. 통행금지 규칙을 넘어가면서까지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말끔히닦인 악기들은 분명 축제의 일부였다.
그는 박격포 통해 등에 둘러메고 소총을 손에 든 채 어둠 속에서 빠져나왔다. 터번을 스고 총을 든 그를 보고 사람들은 총격을 받았다. 인적이 없는 해변에서 그런사람이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총을 들고 조준기 안에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나이도 없고 성별도 없는, 그녀의 후광 안에 사들의 검은 손이 잡혔다. 20개 작은 전구의 인자한 끄덕임 . 상은 연한 푸른색망토를 걸치고 있는데 주름을 나타내기 위해 왼족 무릎이 살짝 들려 있다.
그들은 로멘틱한 사람들이 아니였다. 파시스트, 영국군, 갈리아(이탈리아 북부에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독일을 포함한 옛 로마의 속령. 옮긴이), 고트족(3∼5세기 경 로마제국을 침략한 민족. 옮긴이), 그리고 독일군을 거쳐 생존해온 사람들이었다. 너무 자주 종속되기 때문에 더 이상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푸른색과 크림색의 석고상은 바다에서 나와 악대가 침묵 속에서 행진할 동안 꽃으로 가득 찬 포도 트럭에 실렸다. 그가 그 마을에 제공해야 할 어떤 보호도 의이가 없었다. 그는 흰 옷을 입은 아이들 틈에서 그런 무기를 들고 걸을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길 하나쯤 떨어져 석고상이 속도와 맞추어 걸었다. 그들은 길이 만나는 곳에 동시에 도착했다. 그는 다시 한번 조준기에 그녀의 얼굴을 잡기 위해 총을 들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그들은 그녀를 그곳에 둔 채 집으로 돌아갔다. 주변에서 줄곧 서성인 그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불밝혀져 있었다. 그녀를 배에 싣고 온 네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싼 사각형 위에 보초처럼 앉았다. 목에 붙은 건전지가 꺼져가기 시작하더니 새벽 4시 30분 경에 완전히 죽었다. 순간 그는 시계를 힐끗 보았다. 소총 조준 망원경에 남자들을 잡았다. 조준기를 그녀의 얼굴로 옮겨 관찰하기 시작했다. 꺼져가는 불 속에서 다르게 보이는 모습. 어둠 속에서 그 얼굴은 오히려 그가 더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이. 언젠가는 딸. 만일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면, 공병은 의사 표시로 무언가를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카라바조는 도서실에 들어선다. 오후 시간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다. 늘 그렇듯이 책은 그에게 신비로운 물건이다. 그는 한 권을 빼들고 표지를 젖힌다. 방에 있은 지 5분 만에 희미한 신음소리를 듣는다.
돌아서서 소파에 잠들어 있는 해나를 본다. 책을 닫고 책장 아래 허벅지 높이의 선반에 기댄다. 그녀는 먼지가 앉은 브로케이드(무늬를 넣어 짠 비단. 옮긴이)에 왼쪽 뺨을 기대고 오른팔을 얼굴께에 올린채 턱에 주먹을 대고 웅크린 모습이다. 눈썹이 실룩이고 얼굴은 깊이 잠들어 있다.
그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긴장된 모습이었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육체만 남아 있었다. 그녀의 몸은 전쟁을 겪었다. 사랑할 때와 같이 모든 부분이 소모되었다.
그는 큰소리로 재채기를 했다. 그가 앞으로 수그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눈을 뜨고 바라본다.
"몇 시인지 알아맟혀 봐."
"4시 5분. 아니, 4시 7분." 그녀가 말했다.
그것은 남자와 어린아이 사이의 오랜 게임이었다. 그는 시계를 보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그 움직임과 확실함을 보고, 그녀는 그가 얼마 전에 모르핀을 맞아 신선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안다. 몸에 밴 그의 자신감. 그녀의 정확성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지으며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일어나 앉아 미소짓는다.
"난 머리 속에 해시계를 갖고 테어났어요. 맞죠?"
"그럼, 밤에는?"
"달시계도 있을까요? 그런 걸 발명한 사람이 있어요? 빌라를 짓는 건축가들이 도둑을 위해 달시계를 하나씩 숨겨둔다면 어땠을까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십일조처럼."
"부자들에게는 대단한 걱정거리겠군."
"달시계에서 만나요. 데이비드. 약자가 강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
"영국인 환자와 너처럼?"
"1년 전에 아기를 가질 뻔했어요."
약 기운 덕에 그의 정신이 맑고 또렷한 지금, 그녀는 비로소 흐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그가 곁에서 함께 생각해줄 것이다. 그녀는 지금 깨어서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음을 연다. 마치 아직도 꿈 속에서 이야기하듯, 마치 그의 재채기가 꿈 속에서 들었던 재채기인 듯.
카라바조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 그는 종종 달시계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새벽에 실수로 침실 선반을 쓰러뜨려 그들울 깨운다. 그런 충격이 그들을 공포나 폭력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도둑질을 하러 간 집에서 주인들에게 들키면, 그는 손바닥을 치면서 미친 듯이 소란스럽게 떠벌리며 비싼 시계를 공중으로 내던졌다가 손으로 받으면서 그들에게 재빨리 질문을 던져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아니, 아이를 잃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 아빠는 이미 죽었어요. 전쟁중이었어요.
"이탈리아에 있을 때였나?"
"그 일이 있을 당시엔 시칠리아에 있었어요. 군대를 다라 아드리아 해를 올라오면서 줄곧 아이를 생각했어요. 계속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병원에서는 아주 열심히 일하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피했죠. 아이만 빼고요. 아이하고는 모든걸 나누었어요. 머리 속에서, 목욕하면서, 환자를 돌보면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난 정신이 조금 나갔더랬어요."
"그리고 너희 아버지가 죽었지."
"네. 그때 패트릭이 죽였어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난 피사에 있었어요."
그녀는 이제 깨어 있었다.
"알았군, 음?"
"집에서 편지가 왔어요."
"그 때문에 이리로 왔나 알았기 때문에?"
"아뇨."
"다행이군. 그 친구가 철야제 같은 걸 믿었던 것 같지 않아. 패트릭은 죽을 때 여자 둘이 연주하는 걸 듣고 싶다고 했지.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그게 다야. 그 친구는 빌어먹을 만큼 감상적이었어."
"네. 아저씨는 아빠가 어떤 일이든지 하게 만들 수 있었죠. 고통에 빠진 여자만 하나 찾아주면 아빠는 정신없이 빠져들었어요."
바람이 계곡에서 일어나 그들의 언덕으로 불어오자 성당 밖 36계단에 늘어선 삼나무들이 바람과 씨름했다. 계단의 옆의 난간에 앉은 두 사람 위로 이른 빗방울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자정이 넘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콘크리트 선반 위에 누웠고, 그는 왔다갔다하거나 몸을 앞으로 내밀고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쫒겨가는 빗소리만.
"언제 아기에게 말하는 걸 그만뒀지?"
"갑자기 모든 것이 바빠졌어요. 군인들은 모로 다리에서 전투에 들어간 뒤, 다시 우르비노로 갔어요. 아마 우르비노에서 그만뒀나봐요. 거기서는 언제든 총에 맞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군인만이 아니라 신부나 간호사도, 토기굴이었어요. 좁고 경사진 길. 몸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군인들이 몰려왔어요. 1시간 동안 나와 사랑에 빠졌다가 죽었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일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죽을 때마다 난 아기를 보았어요. 쓸려 내려가는 것을. 어던 이들은 일어나 앉아서 옷을 발기발기 찢었어요. 숨을 좀더 잘 쉬기 위해서죠. 어던 이들은 죽어가면서도 팔에 난 작은 상처를 걱정했어요. 그러다가 입에 거품을 물고. 그 작은 펑-소리. 죽은 병사의 눈을 감기려고 몸을 수그린 순간, 그가 눈을 부릅뜨고 내뱉었어요. “내가 죽을 때가지 기다리지 못하겠단 말이지? 나쁜 년!"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 약품 트레이를 바닥에 뒤집어 엎었어요. 불같이 화가 나서. 누군들 그렇게 죽고 싶겠어요.? 그런 분노를 안고서. 나쁜 년! 그 뒤로 난 반드시 그들의 입에서 거품이 생길 때가지 기다렸죠. 난 이제 죽음을 알아요. 데이비드. 모든 냄새를 알죠. 어떻게 하면 그들의 고통을 잊게 할 수 있는지 알아요. 언제 주요 혈관에 모르핀을 짧게 넣어줘야 하는지. 염수 용액. 죽기 전에 창자를 비우게 하는 것. 빌어먹을 장군들이 내가 하는 일을 직접 해봐야 돼요. 모든 빌어먹을 장군들. 몽땅 다. 강을 건너는 임무를 맡기 전에 반드시 해야되는 일이에요. 대체 우리가 뭐기에 이런 임무를 떠맡는 거죠? 늙은 신부처럼 현명하게 굴기를 바라고, 사람들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 쪽으오 유도 한 뒤 거기서 어떻게든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예식들을 믿을 수 없어요. 그들의 저속한 수사. 감히 어떻게 그래요! 죽어가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빛이 없었다. 전등은 모두 꺼졌고 하늘은 구름 속에 숨었다. 존재하는 집들의 문명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안전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집안을 걸어 다니는 데 익숙했다.
"군대에서 왜, 네가 영국인 환자와 함께 이곳에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지 알아? 응?"
"창피한 결혼? 내가 가진 아빠 콤플랙스?"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때?"
"아직도 그 개를 불안해 하고 있어요."
"내가 데려왔다고 그러지."
"그는 아저씨가 이곳에 머무른다는 것도 잘 몰라요. 아저씨가 도자기를 들고 나갈 것쯤으로 생각해요."
"그 친구가 와인을 좋아할까? 오늘, 한병 슬쩍했는데."
"어디서요?"
"좋아할까, 아닐까?"
"지금 그냥 마셔요. 그 사람 걱정하지 말아요."
"아, 돌파구!"
"돌파구가 아니예요. 진짜 술이 필요해요."
"스무 살짜리.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네, 네, 알았어요. 언제고 축음기나 하나 슬쩍하지 그래요. 아무튼 이건 약탈이예요."
"내 조국이 이 모든 걸 가르쳐주었지. 전쟁 동안 그들을 위해서 한 일이야."
그는 폭격당한 성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해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앉았다. 현기증이 일고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놈들이 아저씨한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봐요."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전쟁 동안 그녀는 동료들과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가족의 일원인 삼촌이 필요했다. 아이의 아버시가 필요했다. 이 언덕 마을에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술에 취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화상 입은 사내가 위층에서 4시간의 수면에 빠져 있는 동안, 그리고 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이제 그녀의 약장을 뒤져 병꼭지를 깨고 부츠끈을 팔목에 감은 다음 몸을 돌리는 순간만큼 잛은 시간에 재빨리 스스로 모르핀 주사를 놓는 동안.
그들을 둘러싼 산은 밤 10시 경이 되어도 땅에만 어둠이 깔렸다. 맑은 잿빛 하늘과 짙은 풀빛 언덕들.
"난 굶주림에 지쳤어요. 단순히 욕망의 대상이 되는 데. 그래서 데이트와 지프 드라이브, 구혼 따위에서 물러났어요. 그들이 죽기 전 마지막 댄스, 난 건방지다고 찍혔어요. 난 남보다 열심히 일했죠. 겹치기 근무, 불 속에서. 그들을 위해 뭐든지 했어요. 모든 환자들의 변기를 부셨어요. 그저 데이트나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난 건방진 여자로 찍힌 거예요. 집에 가고 싶었는데 거기엔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고 유럽이 지겨웠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황금 취급을 받는 것이 지겨웠어요. 어던 남자한테 구혼했는데, 죽었죠. 아이도 죽였어요. 아니, 아이가 그냥 죽은게 아니고 내가 죽인 거예요. 그 뒤로 난 너무 멀리 물러나버려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됐죠. 건방지다고 수근거리는 걸로는 되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의 죽음으로도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그를 만났죠. 검게 탄 남자. 가까이에서 보니 영국인 이었어요. 아주 오래됐어요. 데이비드. 내가 남자와 관련된 일을 생각해본 건."
시크족 공병이 빌라에 온 지 1주일이 지나면서 그들의 그의 식사 습관에 길들여졌다. 언덕이든 마을이든 어디에 있든지, 그는 12시 30분 경에 돌아와 해나와 카라바조에게 합류했다. 그리고 숄더백에서 푸른 손수건으로 싼 작은 묶음을 꺼내 식탁 위의 음식 옆에 펼쳐놓는다. 양파와 약초 카라바조는 프란치스카의 정원에서 지뢰를 제거하다가 가져왔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공병은 퓨즈 회로의 고무를 벗길 때 사용하는 칼로 양파를 깎았다. 그는 다음은 과일이다. 카라바조는, 분명히 그가 한번도 더러운 휴대용 식기를 사용하지 않고 전쟁을 치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실 그는 새벽 동이 틀 때면 항상 공손하게 줄을 서서 자신이 사랑하는 영국 차를 위해 컵을 내밀고, 거기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농축 우유를 타서 천천히 마시곤 했다. 햇빛 아래 서서, 만약 그날의 상비군이면 9시쯤 벌써 커네스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을 사병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이제 산지롤라모 빌라의 반쯤 폭격 맞은 정원에서 상처 입은 나무 아래로 새벽이 오면 그는 휴대용 식기에 물을 받아 입 안 가득 넣는다. 가루 치략을 칫솔에 뿔리고는 아작 안개에 싸여 있는 계곡으로 눈길을 돌린 채 어슬렁거리면서 10분 동안 열의 없이 이를 닦는다. 자신이 머무르게 된 것의 풍경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이빨을 닦는 일은 그가 어릴 때부터 항상 문 밖에서 해온 활동이다.
주위의 조경은 다만 일시적인 것일 뿐, 영구한 면이 전혀 없다. 그는 단순히 비가 올 가능성이나 관목에서 나는 냄새 등을 감지한다. 마음이 애써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의 두 눈은 마치 레이더처럼 400미터 이내에 있는 생명 없는 물체들의 움직임을 찾아낸다. 작은 무기로 살상할 수 있는 반경이다. 그는 후퇴하는 군대가 정원에도 폭탄을 심어두었다는 생각을 하며 땅에서 꺼낸 양파 두 뿌리를 관찰한다.
점심 때면 푸른 손수건 위의 물건들을 바락보는 카라바조의 삼촌 같은 눈빛이 있다. 카라바노는 이 젊은 군인이 오른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과 같은 것을 어떤 희귀한 짐승이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양파 껍질을 벗기거나 과일을 자를 때만 칼을 사용한다.
두 남자는 달구지를 타로 밀가루 한 부대를 가지러 계곡을 내려간다. 병사는 산도미니코의 본부에 현재 폭탄을 제고한 지역의 지도를 전달해야 한다. 피차 상대방에 관해 질문하기가 곤란하다고 느끼고는 해나 이야기를 한다. 많은 질문들이 오고 간 후에 카라바조는 전쟁 전부터 그년르 알고 있어다는 것을 밝힌다.
"캐나다에서요?"
"그래. 거기서 해나를 알았지."
길을 양쪽의 무수한 모닥불을 지나며 카라바조는 젊은 군인의 신경을 그쪽으로 돌리려고 한다. 공병의 별명은 킵이다. "킵을 잡아." "킵이 온다." 그 이름이 붙여진 경로는 기묘하다. 영국에서 그가 제출한 첫번째 폭탄처럼 보고서에 버터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것을 본 장교가 "이게 뭐야? 키퍼(훈제연어. 옮긴이)기름인가?" 하고 말을 던졋다. 그리고는 떠들썩한 움음의 그를 에워쌌다. 그는 키퍼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구군가 젊은 시크족에게 짭짤한 영국 물고기라고 통역해주었다. 1주일도 못 가서 사람들은 커퍼 싱그라는 그의 본명을 잊었다. 그러나 그는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서폴크 경과 폭약반 전체가 그를 별명으로 불렀지만, 오히려 성씨를 부르는 영국 관습보다 그 편이 좋아했다.
그해 여름 영국인 환자는 집 안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 보청기를 사용했다. 호박색 껍질이 귀 안에 매달려 소리를 전달해 주었다. 복도의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방 밖에서 개가 문을 긁는 소기와 볼륨을 높이면 개의 숨소리까지. 또는 테라스에서 공병이 고함치는 소리 영국인 환자는 고병이 도착한 지 며칠 만에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비록 채나가 그들이 서로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둘을 떼어놓기는 했지만.
그러나 어느 날 해나가 영국인의 방에 들어가자 공병이 그것에 있었다. 그는 침대 발치에 서서 어깨에 걸친 총을 팔을 얹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총을 그렇게 가볍게 다루는 점을 싫어했다. 방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향해 더디게 돌아서는 게으른 동작, 마치 몸이 바퀴의 축인 듯, 마치 무기가 어깨와 팔을 따라 작은 갈색 손목에 꿰어박힌 듯.
영국인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우리는 아주 멋지게 친해지고 있어!"
그녀는 공병이 그들의 영역으로 태연히 걸어들어 온 점에 당황했다. 그가 그녀를 둘러쌀 수 있고, 어디에든 있을 수 있는 것이 뜻밖이었다. 카라보조가 이 환자가 총을 잘 안다고 얘기해 주가 킵은 폭탄 수색 문제를 놓고 영국인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방으로 올라와서 그가 연합군와 적군의 무기에 관한 정보의 저수지임을 안 것이다. 영국인은 괴상한 이탈리아 퓨즈뿐 아니라, 이곳 토스카자 지역의 지형도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에게 폭탄의 윤곽을 그려 보이며 각 회로의 이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퓨즈는 수직으로 삽입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반드시 꼬리에 놓은 건 아니죠."
"글쎄, 경우에 따라 자르지 나폴리에서 만든 것들은 그런데, 로마의 공장에선 독일식을 따르지 물론 나폴리는 15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환자가 특유의 완곡한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줘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젊은 군인은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갑갑해하며 영국인이 간간이 말을 끊거나 침묵을 지킬 때마다 끼여들어 줄기차게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병사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밧줄로 들어올리는 기계를 만들어야겠어요." 공병을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해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 양반들 싣고 다닐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카라바조가 복도를 지나칠 때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들은 복도에 서서 방 안의 대화를 들었다.
"버질풍의 사람(버질은 고대 로마시인 BC 70~19.옮긴이)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했나.킵? 설명하자면."
"보청기가 켜져 있습니까?"
"뭐?"
"켜세요."
"그가 친구를 찾은 것 같아요." 그녀는 카라바조에게 말했다.
그녀는 햇빛과 안뜰고 걸어나간다. 정오에 빌라의 분수대로 물이 운반되어 온다. 20분 동안 물이 쏟아져나온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분수의 마른 바닥 안으로 들어가 기다린다.
이 시간에는 사방에서 건초 냄새가 난다. 금파리가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치듯 사람한테 달려들었다가 무심결에 멀어진다. 그녀는 분수의 윗단 아래에 물거미가 보금자리를 친 곳을 알아차린다. 얼굴이 그 그림자 안에 있다. 그녀는 돌 요람에 앉기를 좋아한다. 가까이 있는 빈 수도꼭지에서 시원한 냄새와 어둠에 갖혀 있던 공기가 터져나온다. 늦봄에 처음 연 지하실 공기가 바깥의 열기와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그녀는 팔과 발가락에게 먼지를 털어내고 신발의 주름을 문지른 뒤 기지개를 켠다.
집 안에 있는 너무나 많은 남자들 그녀는 벗은 팔에 입술을 댄다. 자신의 살결, 그 익숙한 냄새를 맡는다. 특유의 맛과 향 그것을 처음 느꼈던 때를 기억한다. 십대 어디쯤에서 - 그때가 시간이라기보다는 장소초럼 느껴진다 - 키스 연습을 사느라 팔에 입을 맞추던 일, 손목 냄새를 맡거나 허벅지까지 몸을 구부렸던 일,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후-우 숨을 내쉬곤 그 냄새가 다시 코로 들어가게 하던 일, 그녀는 이제 하얀 맨발을 분수의 얼룩 빛깔에 대고 비빈다. 공병은 그녀에게 전투 때 본 석고상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인 슬픈 천사 곁에서 잤다고 했다. 아름답게 보였다고 그는 그 몸을 보며 누웠다. 그리고 전쟁 중 처음으로 평화롭게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돌에 코를 대고 숨을 들어쉰다. 시원한 나방 냄새.
아버지를 자신의 죽음과 투쟁했을까, 아니면 편안해 죽어갔을까? 그도 영국인 환자가 침대에 당당히 누워 있는 것처럼 누워 있었을까? 모르는 사람의 간호를 받았을까?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남자가 더 느닷없이 감정 속에 나타날 수 있다. 타인의 품 안으로 떨어지듯 선택의 거울을 발견하게 된다. 동병과 달리 그녀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결코 태연하지 못했다. 그이 대화는 수줍음 때문에 음절이 새었다. 어머니가 불평한 대로 패트릭의 문장에는 중요한 단어가 두세 개씩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해나는 아버지의 그런 면을 좋아했다. 그에게는 봉건적인 의식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변을 가졌다. 그리고 그런 면이 그에게 묘한 매력을 부여했다. 그는 대부분의 남자들과 달랐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는 것, 심지어 거칠게 행동하는 것까지 놓아하는 굶주린 유령이었다.
그가 죽음에 대해서도 우연히 그곳에 있다는 듯, 태연히 다가갔을까? 그는 그녀가 알던 사람 가운데 가장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논쟁을 싫어한 그는 누군가 루즈벨트나 팀벅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하거나 토론토 시장 누구누구를 칭찬하면 소리 없이 방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삶에 있는 어느 누구도 바꾸려 들지 않았다. 다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하거나 축하해 주었다. 그뿐이었다. 소설은 길을 걸어 내려가는 거울이다. 영국인 환자가 추천한 책에서 읽은 문장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했다. -언제라도 그에 관한 순간들을 모을 때면- 토론토에서 자정에 포테리로우드 북쪽에 있는 다리 아래 차를 세우고 그곳이 바로 찌르레기와 비둘기가 서로 불평하면서도 뗏목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데라고 말해주던 아버지, 그래서 그들은 어느 여름밤 그곳에서 멈추어 법석스런 소음과 졸리운 짹짹 소리를 향해 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패트릭이 비둘기장에서 죽었다고 들었지 카라바조가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고안하여 길과 벽과 경계선을 친구들과 함께 페인트칠한 도시를 사랑했다. 그는 그 세계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현실 세계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녀 스스로 배웠던, 카라바조에게서 배웠던, 혹은 새엄마 클라라는 성격이 분명해서 모두가 전쟁으로 떠나자 자신의 분노를 명확히 표시했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한 해 동안 그녀는 줄곧 클라라의 편지를 지니고 다녔다. 조지안 베이의 한 섬에 있는 분홍빛 바위 위에서 씌어진 편지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바닷물 위로 바람이 불어와 마침내 클라라가 페이지를 찢어 해나를 위해 봉투에 넣을 때까지 공책이 날리는 가운데 씌어졌다는 것 그녀는 분홍빛 바위 조각과 바람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여행가방에 놓고 다녔다. 그러나 한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쓰라릴 만큼 클라라가 그리웠지만 그 많은 일들을 겪고 난 지금, 답장을 쓸 수 없었다. 그녀는 도저히 패트릭의 죽음을 인정하거나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이 대륙에서 전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한동안 병원으로 바뀌었던 수녀원과 성당들이 황폐해진 이때,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의 언덕에 고립되고 나서는 더욱, 그들은 전쟁 사회의 잔해, 거대한 빙하에서 남은 작은 퇴석을 안고 있다. 이제 그들을 둘러 싼 사방은 신성한 숲이다.
그녀는 얇은 옷 아래 발을 숨기고 허벅지 옆에 팔을 내려놓는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귀에 익은 공허한 물거품 소리를 듣는다. 분수 한가운데 줄기에 묻힌 파이프의 들뜬 소리, 그리고는 침묵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있는 것으로 쏟아지듯 몰려온 물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해나가 영국인 환자에게 읽어주는 이야기들, 킴의 늙은 방랑자나 파르마의 차트하우스의 패브리치오와 함께 하는 여행은 그들을 군대와 말과 마차등의 소용돌이 - 전쟁에서 도망가거나 혹은 전쟁을 향해 뛰어드는 - 에 도취시켰다. 그의 침실 한구석에 쌓인 책들은 그들이 이미 지나간 세계, 그녀가 벌써 일어준 책들이다.
많은 책은 순서에 대한 저자의 확신으로 시작된다. 독자는 침묵의 노를 들고 그 물에 들어간다.
이 책은 세르비어스 갤바가 총독이었을 때 시작된다. 티베리어스, 발라굴라, 클로디어트 그리고 네로의 역사는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테러로 왜곡되었고, 그들이 죽은 후에는 새로운 증으로 쓰여졌다.
타키투스는 연대기를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나 소설은 주저나 혼란 속에서 시작된다. 독자는 결코 완전한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자물쇠나 둑이 열리고 그들이 쏟아져 들어 온다. 한손에 뱃전을 잡고 다른 손에는 모자.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그녀는 조금 높은 문을 지나 큰 안뜰로 들어선다. 파르마와 파리와 인도가 그들의 양탄자를 펼친다.
그는 시조례를 상관하지 않고 원주민들이 어재이브-거르 원더 하우스라고 부르는 라호르 박물관 건너편 벽돌 단상 위에 있는 잼 - 재마 포에 걸터앉았다. 누가 잼 - 재마, 그 '불 뽐는 용'을 지키는가 편잡을 지키는가 거대한 초록빛 브론즈 조각은 언제나 정복자의 첫 전기품이건만.
"천천히 읽어줘, 아가씨 커플링(영국의 시인, 소설가, 1865~1936, 옮긴이)은 천천히 읽는 게 좋아 쉼표가 어디 있는지 주의하고 그래야 자연스럽게 구정을 끊어 읽을 수 있어요. 그는 펜과 잉크를 썼던 작가지 종이에서 눈을 자주 떼고 창 밖을 내다보며 새 소리를 들었을 거야. 혼자 있는 자각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어떤 이들을 새들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는 알았지. 당신 눈을 너무 빠르고 북미식이야. 작가의 펜속도를 생각해요. 다르게 읽으면 이 첫단락은 지나치게 섬뜩하고 끈끈하게 들러붙어."
그것이 낭독에 대한 영국인 환자의 천 레슨이었다. 그 다음에는 가로막는 일이 없었다. 그가 잠들어도 그녀는 계속한다. 자신이 고단해지기 전에는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는다. 만약 그가 30분 동안 내용을 놓쳤다 해도 그것은 필경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지도를 알고 있었다. 동쪽으로 베나레스가 있고 펀잡의 북쪽에 칠리안와라.(이 모든 일은 공병이 그들의 삶에 들어오기 전에 일어났다. 마치 그 소설에서 나온 듯 마치 밤에 키플링의 페이지가 요술램프처럼 문질러진 듯.)
그녀는 (킴)의 끝부분에서 - 그 섬세하고 성스러운 문장에서 - 돌아나와 담백한 문구 - 환자의 공책, 그가 가까스로 불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집어든다. 책이 펴진다. 원래 두께의 두 배 정도이다.
성경의 얇은 페이지를 잘라 원문에 풀로 붙여놓았다.
다윗왕은 늙고 몇 년째 병들었다. 그들은 천으로 그를 덮어주었지만 그는 열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신하가 말하기를, 왕을 위해 젊은 처녀를 구하도록 하라. 처녀로 하여 그 가슴에 왕을 품어 왕께서 열을 받으시도록 하라.
그들은 훌륭한 처녀를 찾아 이스라엘의 해안을 샅샅이 쥐졌다. 그리하여 아비생 셔남마이트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왕을 소중히 품고 섬겼다. 그러나 왕은 그녀를 몰랐다.
그 - 불에 탄 비행사를 구한 부족은 1944년 시와의 영국군기지로 그를 데려왔다. 그는 서부 사막에서 튀니스로, 다시 자정 응급열차에 실려 배로 이탈리아까지 운반되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무지했다기보다는 순진하고 무고했다. 자신의 국적을 확실히 모르는 이들은 해변병원이 있는 티레니아 지구로 보내졌다. 화상 입은 비행사는 또하나의 수수께끼 인물이었다. 신분증도 없고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근처 범죄자 수용소에서는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감금해두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기 위해 배반자의 정원에서 체포될 때 몸을 숙여 뜯어낸 유칼리나무 잎을 몸과 호주머니에 매일 옮겨가면서 숨겼다. "유칼리나무 추억을 위한 꽃."
"내게 속임수를 써보지 그래." 불에 찬 비행사는 심문자에게 말했다. "독일어로 말을 걸어보시오. 난 독일어를 할 줄 알지. 돈 브라드만에 대해 물어보시오. 마르미트에 관해, 위대한 게르트루드 예킬에 관해 물어보시오." 그는 조토의 모든 그림이 유럽의 어디에 있는지 알았고, 실사화가 무더기로 발견되는 대부분의 장소를 알고 있었다.
해변 병원은 20세기 초에 여행객들에게 임대하던 해수욕 오두막을 개조한 것이었다. 날씨가 더울 때에는 낡은 선풍기를 한번 더 탁자 소켓에 꼽고, 붕대를 감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혼수 상태에 처한 환자들이 그 아래 앉아 바다 공기를 쐬어 천천히 이야기하거나 한곳을 응시하거나 줄기차게 떠들어대곤 했다. 불탄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있는 젊은 간호사를 발견했다. 그는 그런 무감각한 시선에 익숙했다. 그녀가 간호사라기보다 오히려 환자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무엇이 필요할 때면 오직 그녀에게만 이야기했다.
그는 다시 심문받았다. 그의 모든 행동거지는 대단히 영국식이었다. 다만 피부가 타르같이 검다는 사실만 빼면, 심문관들 사이에서는 역사로부터 갓 끄집어 낸 인물처럼 보였다.
그들이 이탈리아에 있는 연합군의 위치를 묻자, 그는 연합군이 피렌체를 함락했으나 북쪽 언덕 마을에서 막힌 것 같다고 말했다. 고딕 라인(고딕 시대부터의 요새. 옮긴이). "당신들의 군단은 피렌테에 걸려서 프라토와 피에솔 같은 요새를 넘지 못하오. 이유는 독일군이 빌라와 수녀원 등에 막사를 치고 훌륭하게 방어하기 때문이지. 옛날이야기지요. 십자군도 사라센을 대적할 때 똑같은 실수를 범했지. 그리고 그들처럼 당신들도 이제 사 속에 마을을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오. 허나 그곳은 콜레라가 돌았을 때말고는 단 한번도 주민이 떠난 적이 없소."
그는 그들을 미치게 만들며 장황하게 떠들어다. 반역자인지 협력자인지 그들은 그가 어느 쪽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몇 개월이 지나 산지롤라모 빌라에서, 피렌체 북쪽 언덕마을에서, 그의 침실인 정자 방에서 그는 라벤나의 죽은 기사의 조각품처럼 휴식한다. 오아시스 마을, 고 데디치, 키플리의 산문 스타일, 그리고 그의 살점을 깨문 여자 등에 대해 단편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비망록에 1890년판 헤로도투스의(역사)에 덧댄 다른 단편들, 지도, 일기 목록, 여러 언어로 쓴 글들, 다른 책에서 잘라낸 문장들. 빠진 것은 오직 그의 이름뿐이다. 아직도 그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없다. 이름이 없는, 계급이나 소속 소대나 편대도 없는. 그의 책에 있는 참고 사항은 모두 전쟁 이전의 것이다. 1930년 이집트와 리비아의 사막, 군데군데 삽입된 동굴 미술,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 혹은 그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놓은 일지 등의 참고 "갈색 머리가 없어." 그에게로 몸을 수그리는 해나를 향해 영국인 환자가 말했다. "피렌체의 마돈나 상에는."
책은 그의 손에 있다. 그녀는 잠든 그의 몸에서 책을 들어 침대탁자 위에 놓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는다. 책장을 넘기지 않으리라 스스로 다짐하다.
1936년 5월
시를 읽어주겠다고 클리프튼의 부인이 말했다. 의례적인 목소리로 그녀와 아주 가깝게 지내기 전에는 늘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모두 남쪽 캠프장에서 모닥불 빛이 비치는 거리에 있었다.
사막을 걸었다.
그리고 외쳤다.
"아, 신이여, 나를 이곳에서 데려가소서!"
목소리가 말하기를, "여기는 사막이 아니다."
나는 소리쳤다. "하지만-
모래, 열기, 텅 빈 지평선."
목소리가 말했다. "여기는 사막이 아니다."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티븐 크레인의 작품입니다. 그는 한번도 사막에 간 적이 없습니다. 하고 했다.
사막에 왔소. 라고 매독스가 말했다.
1936년 7월
전시의 배반은 평화로운 시절에 인간들이 저지르는 배반에 비해 유아적이다. 새 연인은 상대방의 습관을 익힌다. 사물이 부서져 새로운 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긴장되거나 부 드러운 분장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진다. 비록 가슴은 불처럼 타오르지만.
문장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진다. 비록 가슴이 불처럼 타오르지만.
러브 스토리는 가슴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났을 때. 육체는 아무도 속이지 못하고 수면의 지혜나 사회적 품위의 습관, 그 어떤 것도 속이지 못하는 사람, 그 음울한 거주자를 찾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것은 자신과 과거의 소비이다.
초록색 망 안이 어둠침침하다. 고개를 돌리니, 시선을 고정시켰던 탓에 목이 뻣뻣했다. 지도와 본문으로 가득 찬 영혼의 바다 같은 두꺼운 책 속에 그가 깨알같이 써놓은 글씨를 계속 들여다보며 그 안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작은 양치까지 풀로 붙어 있다. (역사). 그녀는 책을 덮지 않았다. 탁자위에 내려놓은 뒤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는 책에서 물러나 멀어진다.
킵은 빌라 북쪽 벌판에서 큰 지뢰를 발견했다. 과수원을 지나며 푸른 전선을 밟을 뻔하다가 재빨리 몸을 뒤틀어 피하면서 몸의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전선이 팽팽해질 때까지 들어올린 다음, 나무 사이로 지그재그를 그리면 따라갔다.
그는 지뢰가 묻힌 곳을 찾아 천가방을 무릎에 놓고 앉았다. 그는 지뢰에 충격을 받았다. 지뢰는 콘크리트로 덮여 있었다. 폭탄 위에 젖은 콘크리트를 발라 그 구조와 강도를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4미터 떨어진 곳에 벌거벗은 나무가 있었다. 10미터 떨어져서 또 한그루. 2개월 짜리 잔디가 콘크리트 바닥을 덮고 자라나 있다.
그는 가방을 열고 가위로 잔디를 잘랐다. 작은 줄 그물로 폭탄을 TK고 나뭇가지에 줄을 달아 도르래를 만든 다음 콘크리트를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두 전선이 콘크리트에서 땅으로 끌려 왔다. 그는 주저앉아 나무에 기대고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속도는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광석 수신기를 가방에 꺼내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곧바로 AIF 방송에서 미국 음악이 흘러나왔다. 노래나 댄스 음악 한 곡에 평균 2분30초씩. 그는 'A String of Pearls'와 `C-Jam Blues'두 곡을 연달아 들으면서 일할 수 있다. 그리고 노래들을 무의식적으로 들으면서 그가 얼마나 그곳에 오래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소음은 상관없었다. 이런 종류의 폭탄은 위험을 알리는 희미한 똑딱 소리나 짤깍 소리도 없는 법이다. 음악의 산만함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생각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음 속에서 어떤 구조인지 짚어갈 수 있도록. 금속 줄의 도시를 깔고 그 위에 젖은 콘크리트를 쏟아부은 인물은 관연 어떠했는지.
두 번째 밧줄이 고정되었는데 콘크리트 공이 공중에서 조여지는 것은 그가 아무리 세게 당겨도 두 전선이 끌리지 않는 다는 뜻이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숨겨진 폭탄을 부드럽게 끌로 파내기 시작했다. 가루를 입으로 불며, 깃털 막대기로 콘크리트를 더 깎아냈다. 음악이 주파에서 벗어나서 채널을 다시 맞출 때 외에는 계속 작업에 집중했다. 아주 천천히 여이어 잇는 전선을 파냈다. 여섯 개의 전선이 엉겨 붙어 모두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는 전선이 놓여 있는 지도판의 먼지를 털어냈다.
여섯 개의 검은 전선 어릴 때 아버지는 손가락을 한데 모아 끝만 남긴 채 모두 가리고서 그에게 가장 긴 손가락을 맞춰보라고 했다. 그의 작은 손가락이 하나를 건드리면, 아버지는 손을 펼쳐 보이며 소년의 실수를 폭로했다. 물론 붉은 선이 음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콘크리트를 씌워놓았을 뿐 아니라 모든 선을 검게 칠해두었다. 킵은 심리적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칼로 페인트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이 나타났다. 상대가 빛깔까지 바꿔놓았을까? 그는 가지고 있는 검은 전선으로 U자형 강처럼 우회로를 만들어 고리의 양음극을 시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헤이딩 전력(전파의 강도가 시간적으로 변하는 현상. 옮긴이)을 조사해 위험한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
해나는 긴 거울을 앞에 들고 복도를 걸어갔다. 거울이 무거워 멈춰섰다가 다시 앞으로 움직인다. 거울이 낡은 진분홍빛 길을 비춘다.
영국인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방에 들어서기 전에 그녀는 거울을 조심스레 돌려 세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그의 얼굴에 직접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검은 피부 속에 누워 있다. 밝은 빛이라고는 귀에 꽂은 보청기와 베개에 반사되는 광선뿐. 그는 손으로 시트를 밀었다. 여기 이것 좀, 그가 혼자서 밀 수 있는 만큼 시트를 밀어내자, 해나는 시트를 침대 발치까지 홱 젖혔다.
그녀는 침대 끝의 의자에 올라서서 그에게 천천히 거울을 기울였다. 그렇게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데 희미한 외침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처음에는 소리를 무시했다. 가끔 계곡에서 나는 소리가 집까지 들려오곤 했다. 영국인 환자와 둘이서만 살 때 제거 부대에서 나오는 확성기 소리는 그녀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이봐, 거울 움직이지 말아요."
"누군가 고함을 치는 것 같아요. 들리세요?"
그의 왼손이 보청기를 높였다.
"젊은 친구야. 가보지 그래."
그녀는 거울을 벽에 기대놓고 서둘러 복도를 뛰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멈춰서서 고함 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기다렸다.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정원을 지나 집 위쪽의 벌판으로 내달렸다.
그는 거대한 거미줄을 들고 있는 듯 두 손을 머리 위에 치켜들고 서 있다. 이어폰을 빼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다가가자 그는 왼쪽으로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지뢰 전선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그녀는 멈추었다. 위험하다는 느낌 없이 여러 번 산책했던 길이다. 그녀는 치마를 들고 키 큰 잡초 속으로 들어서서 발을 조심스레 내려다보며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곁으로 다가왔을 때 그의 손은 여전히 들려져 있었다. 그는 속았다. 늘어진 줄의 안전판 없이는 내려놓을 수 없는 두 개의 살아 있는 전선을 잡게 되었다. 그 중 하나를 음화시켜줄 세번째 손이 필요하고, 다시금 퓨즈 머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전선을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넘겨주고 팔을 내려 피가 통하게 했다.
"금방 내가 다시 잡을게요"
"괜찮아요"
"꼼짝도 하지 말아요"
그는 작은 가방을 열어 가이거 계수관(방사능 측정기,옮긴이)과 다이얼을 움직였다. 단서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는 어떤 속임수가 있는지 고심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걸 나무에 붙일 테니, 그러고 나면 가세요"
"아뇨, 제가 들고 있을게요 나무까지 닿지 않을 거예요"
"아니예요"
"킵, 제가 잡고 있을 수 있어요"
"난국입니다. 우스운 일이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속임수가 얼마나 완벽한지 모르겠어요"
그는 그녀를 남겨두고 전선을 처음 발견한 지점으로 뛰어갔다.
이번에는 가이거 계수관을 전선과 나란히 들고 그대로 따라 걸었다. 그리고는 그녀로부터10미터쯤 떨어진 공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따금 고개를 들고, 시선을 그녀를 완전히 지나쳐 오로지 그녀의 손에 들린 전선의 두 지류만을 보았다. 모르겠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느린 목소리로 모르겠습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선을 자라야 할 것 같습니다. 가야 합니다. 그는 라디오 이어폰을 머리 위로 당겨 귀에 꽂았다. 다시 소리가 완벽하게 그에게 돌아오고 머리 속이 맑아졌다. 그는 전선의 다른 선을 따라가면서 매듭진 회선과 급격한 모퉁이, 양극으로 음극으로 바꾸는 땅 속의 스위치를 향해 비껴 들어갔다. 부싯깃 통 그는 커피잔 받침만큼 큰 눈을 가진 개를 떠올렸다. 전선을 따라 뛰어오면서 그는 전선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는 게 좋겠어요"
"자르려면 손이 하나 더 필요하잖아요"
"나무에 붙이면 됩니다"
"제가 들로 있겠어요."
그는 가느다란 살무사처럼 그녀의 왼손에서 전선을 받아 쥐었다. 그리고 다른 쪽 그녀는 가지 않았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데까지 명확하게 생각해야 했다. 혼자 있는 것처럼 그녀가 다가와 전선 하나를 다시 가져갔다. 그는 다시 폭탄 퓨즈의 길을 따라갔다. 그것을 고안해 낸 마음의, 길을 따르듯 모든 주요 지점을 건드리고 그것의 엑스레이를 보며,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밴드 음악으로 채우면서 나아갔다.
머리 속의 원리가 지워지기 전에 그는 그녀에게로 가서 왼쪽주먹 아래 부분의 끊었다. 이빨로 깨무는 듯한 소리, 그는 그녀의 어깨와 목을 따라 드레스의 진한 무늬를 보았다. 폭탄은 죽었다. 그는 커터를 떨어뜨리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엇인가 인간 적인 것을 만지고 싶은 절실함에서 그녀는 그가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다가 앞으로 팔을 뻗어 이어콘을 잡아 뺐다. 침묵이 엄습했다. 산들바람과 바스락 소리 그는 전선을 자르는 짤깍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다만 작은 토끼뼈가 부러지듯 뚝 부러지는 느낌만 그는 그녀를 놓지 않고 손을 팔 위로 내려 여전히 힘껏 뒤고 있는 18센티의 전선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묘하게 비웃음을 띤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주저앉았다. 그는 주위에 있는 여러 물건들을 모아 작은 가방에 넣었다. 나무를 올려다보던 그녀는 우연히 고개를 내리다가 가냘프게 손을 떨고 잇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간질병 환자처럼 팽팽하고 거세게 그의 숨결은 깊고 빨랐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한 말 들었어요?"
"아뇨, 뭐라고 했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죽고 싶었어요. 그리고 죽게 되면 당신과 함께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과 같은 사람, 나처럼 젊은 그난해에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무섭지는 않았어요. 조금 전에도 내가 용감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린 이 빌라와 잔디를 가졌잖아요. 그 위에 우리가 함께 누워봤어야 해요. 죽기 전에 당신이 내 품에 안겨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난 당신 목에 있는 그 뼈, 쇄골을 만져보고 싶어요. 피부 밑에 작고 단단한 날개가 있는 것 같아요. 내 손가락을 구 위에 얹어보고 싶어요. 난 언제나 강과 바위의 표피 빛깔을 좋아했어요. 또는 수잔의 갈색 눈 저 꽃이 뭔지 아세요? 본 족 있어요? 난 너무 피곤해요, 킵, 자고 싶어요. 다른 사람 생각을 하지 않고 두 눈을 감은 채, 이 나무 아래서 당신 쇄골에 눈을 기대고 자고 싶어요. 나무의 굽어진 곳을 찾아 기어 들어가 자고 싶어요. 얼마나 조심스러운 마음이에요! 어떤 선을 찾아 끊어야 하는 지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죠? 자꾸 모르겠다. 모르겠다 했지만 알고 있었어요. 그렇죠? 떨지 말아요. 당신은 나를 위해 고요한 침대가 돼주어야 해요. 내가 껴안을 수 있는 멋진 할아버지처럼, 내가 몸을 감을 수 있게 해줘요. 난 '감는다' 는 말을 좋아요. 아주 느린 말이죠. 빠르게 내뱉을 수 없는 말."
그녀의 입이 그의 셔츠에 기대어 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움직이지 않으며 그녀와 함께 땅 위에 누웠다. 그는 맑은 눈으로 나뭇가지를 올려다본다. 그녀의 깊은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안았을 때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으면서도 그의 팔을 잡아 자기 몸 쪽으로 붙였다. 그가 힐끗 내려다보니 그녀는 아직도 전선을 가지고 있다. 다시 집어든 모양이다.
가장 살아 있는 것은 그녀의 숨결이었다. 그녀의 몸을 너무도 가벼워서 마치 체중이 그의 반대쪽에 쏠려 있는 듯했다. 그렇게 움직이거나 부스럭대며 돌아설 수 없는 상태로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 있을 수 있을까. 해안을 따라서 모든 요새 마을로 전투를 벌이며 행군했던 지난 수 개월 동안 그가 석고상에 의지했던 것처럼 결국 다른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어디에 가나 똑같이 좁은 거리를, 피의 하수구가 되어버린, 그래서 자칫 균형을 잃으면 그 붉은 액체로 가득 찬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가 벼랑에서 떨어져 계곡으로 날아가버리는 꿈을 꾸었던 순간들 밤마다 그는 점령당한 성단의 냉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의 보초가 되어줄 석고상을 찾았다. 그는 그 돌로 만든 종족만을 신뢰했다. 어둠 속에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면, 여인의 완벽한 다리를 가진 슬픈 천사, 그 선과 그림자가 너무나 부드럽게 보였다. 그는 그런 물체들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잠 속으로 자신을 풀어주곤 했다.
그녀가 갑자기 그에게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 이제 숨소리 더욱 깊어졌다. 첼로의 목소리처럼 그는 그녀의 잠든 얼굴을 지켜보았다. 폭탄을 제고할 때 그녀가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화가 났다. 마치 그럼으로써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빚이라고 지게 된 것처럼, 비록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책임의 멍에를 지게 된 것처럼 마치 그것 이 지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듯.
그러나 그는 이제 무엇인가의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지난해 어디선가 본 그림 안에 들어 있는 기분, 들판 위에 안전하게 있는 한쌍 그 수면의 느긋함과 노동에 대한 생각이나 세상에 대한 위험이 없는 장면을 얼마나 보고 또 보았던가 그의 곁에는 쥐와 같은 움직임이 이는 해나의 숨결이 있었다. 꿈속에서 작은 분노나 논쟁이 있는지 눈썹이 이켜 올라가 있었다. 그는 눈길을 돌려 나무 위로 흰 구름의 떠 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진흙이 모로 강둑에 매달리듯 그녀의 손은 그를 붙잡고 있다. 이미 지나온 급류에 다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젖은 땅에 뛰어들었던 첫 경험.
그가 그림 속에 영웅이라면 정당한 수면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대로 그는 바위의 갈색, 진흙투성이 폭풍우를 먹은 강의 갈색이었다. 그리고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그런 순진하고 소박한 생각에서까지도 물러서게 만들었다. 폭탄의 성공적인 제거가 소설을 끝냈다. 현명한 백인 아버지 같은 사내가 악수를 하고 평가해 주고 절뚝거리며 멀어졌다. 이 특별한 사건 때문에 고독으로부터 억지로 나왔다가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문가였다. 그리고 그는 외국인으로 남았다. 시크족. 폭탄을 만든 다음 자기 뒤에 남겨진 나뭇가지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떠난 적과의, 유일한 인간적으로 개인적인 접촉.
왜 그는 잘 수 없었나? 왜 모든 것이 아직 반쯤 켜진 채 매달려 있는 불이라는 생각을 멈추고 여자 쪽으로 돌아눕지 못하는가? 그가 상상하는 그림 속에서 그 포옹을 둘러싼 들판은 불길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는 망원경을 들고 한 공병을 따라 폭탄이 설치된 집으로 들어갔다. 그 공병은 책상 끝에서 성냥갑을 집어 켜고서 0.5초동안 불에 감싸였다. 그리고는 폭탄이 터지는 소기가 그를 내리쳤다. 1944년에는 번개가 그랬다. 어떻게 그가 여자 팔에 있는 드레스 소매의 고무줄을 믿을 수 있겠는가? 또는 강물 안에 있는 돌만큼 깊은 그녀의 친근한 숨결의 가르랑 소리를.
그녀는 나비가 드레스 칼라에서 뺨으로 옮겨 앉을 때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그가 자기 쪽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살갗을 건드리지 않고 그녀 얼굴에서 나비를 잡아챘다. 그리고 풀밭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그가 이미 장비를 가방에 챙겨놓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뒤로 물러나 나무에 기대앉아 그녀를 본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굴려 들을 펴고 누워 그 순간 최대한 유지할 수 있을 만 큼 오래도록 기지개를 켰다. 해가 저만치 있는 것으로 보아 오후였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를 본다.
"당신은 날 안고 있기로 했어요?"
"안고 있었죠. 단신이 움직여서 빠져나갈 때까지."
"얼마동안 안고 있었어요?"
"당신이 움직일 때까지. 당신이 움직여야 했을 때까지."
"날 덮치진 않았겠죠?" 그리고 그가 얼굴을 붉히자 덧붙여 말했다. "농담이에요."
"집으로 내려갈래요?"
"네. 배고파요."
그녀는 햇빛에 눈이 부시고 다리가 피곤해서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얼나 동안 그곳에 있었는지 여저히 알지 못했다. 수면이 깊이, 무거운 짐의 가벼움을 잊지 못했다.
카라바조가 어디선가 찾아낸 축음기를 내보였을 때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파티가 시작되었다.
"해나, 이걸 너한테 춤을 가르쳐주는 데 쓰겠어. 저기 있는 네 친구가 아는 그런 춤이 아니고 어떤 춤들은 보기만 해도 등을 돌리게 되더군. 그렇지만 이 노래, 'How Long This Been Going On' 은 훌륭한 곡이지. 전주 멜로디가 노래보다 더 순수해. 위대한 재즈 연주자 만이 그 점을 인정하지. 자, 파티를 테라스에서 할 수도 있고, 그러면 개를 초대할 수 있지, 아니면 영국인한테 물려가 2층 침실에서 할 수도 있어. 술을 마시지 않는 네 젊은 친구가 어제 산도미니코에서 와인 몇 병을 찾아왔지. 음악만 있는 게 아냐. 팔을 줘봐. 아니. 먼저 바닥에 분필로 표시를 하고 연습부터 해야 돼. 주요 스텝 셋 - 하나, 둘, 셋 - 이제 팔을 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가 큰 폭탄을 분해했어요. 다루기 까다로운 폭탄. 직접 이야기하라고 하세요."
공병은 어깨를 으쓱했다. 겸손의 표시가 아니라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하다는 투였다. 밤은 빨리 찾아왔다. 계곡을 채우고 이내 산중으로 접어든 망, 그리고 그들은 다시 랜턴 불빛 아래 남았다.
그들은 영국인 환자의 침실을 향해 춤추며 복도를 걸어갔다. 카라바조가 축음기를 날랐다. 한손으로 전축 바늘을 들고서.
"자, 당신이 그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침대 위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 인물에게 말했다. "'My Romance'를 소개 합니다."
"1935년 로렌츠 하트가 쓴 곡이지." 영국인이 중얼거렸다. 킵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공병과 함께 춤추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가르쳐줄 때까지는 안 되겠습니다. 귀여운 지렁이."
그녀는 이상한 눈으로 카라바조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을 부를 때 쓰던 말이다. 그는 그녀를 진회색의 포옹 속으로 끌어당기며, "귀여운 지렁이"라고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그리고는 춤추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깨끗하지만 다림질을 하지 않은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회전할 때마다 그녀는 혼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공병을 보았다. 전기가 있었다면 그들은 라디오를 가질 수 있었고, 그 라디오고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뉴스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킵의 소유인 광석 수신기뿐이지만, 그는 예의바르게 그것을 텐트에 두고 왔다. 영국인 환자는 로렌츠 하트의 불우한 생애를 이야기했다. 'Manhattan'의 뛰어난 사가 가운데 일부가 바뀌었다면서 그는 이제 그 시구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우린 브라이튼에서 수영하리
우리가 들어가면
놀라게 할 물고기들
그대 수영복이 너무 얇아
조개를 웃게 만드네
지느러미세러 지느러미로
"훌륭한 가사죠. 선정적이고 허나 리처드 로저스는 좀더 품위가 있길 바란 것 같아요."
"내 동작의 감을 잡아야 돼, 알겠냐?"
"왜 아저씨가 내 동작을 감잡지 않아요?"
"네가 제대로 춤을 추게 되면 내가 감을 잡지. 현재로서는 내가 유일하게 춤출 줄 아는 사람이야."
"킵은 알 거예요."
"알고 있어도 하지 않잖아."
"와인을 마시고 싶어." 영국인 환자가 말하자 공병이 물이 든 잔을 들어 창밖에 쏟고 영국인을 위해 와인을 따랐다.
"1년 만에 처음 마시는군."
둔착한 소음이 들렸다. 공병은 재빨리 몸을 들려 창 밖의 어둠속을 내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폭탄일 수도 있었다. 그는 파티 한가운데로 돌아서서 말했다. "괜찮아요. 지뢰는 아닙니다. 제거한 지역에서 소리가 났거든요."
"레코드를 뒤집어요, 킵. 이제 'How Long Has This Been Going On'을 소개하겠소. 작사에." 그는 영국인 환자에게 소개하라는 투로 말끝을 흐렸다. 영국인은 곤란한 듯 입에 와인을 물고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알코올이 아마 날 죽일 거요."
"어떤 것도 그대를 둑이진 않을 게요. 당신은 순전히 탄소 아니오."
"카라바조!"
"'조지 거쉰과 아이라 거쉰'을 들어봐요."
그와 해나는 그 색소폰의 슬픔 속으로 미끄러졌다. 그가 옳았다. 악구가 아주 느리고 잡아서 늘인 듯, 그녀는 연주자가 전주의 작은 공간을 떠나 노래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마치 사막에서 한 처녀에게 유혹된 듯 이야기가 미처 시작되지 않은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인은 그런 노래의 전주를 가리켜 '무거운 짐'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뺨은 카라바조의 어깨 근육에 기대어 있다. 상처로 비참해진 그의 손바닥이 그녀의 깨끗한 드레스 등에 느껴지고, 그들은 침대와 벽, 침대와 문, 침대와 킵이 앉은 창문 앞 돌출부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움직였다. 이따금씩 회전할 때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본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기댄 모습 혹은 창밖으로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보스포러스 포옹이란 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영국인이 물었다.
"그런 건 없다구요."
킵은 천장과 그림이 그려진 벽으로 큰 그림자가 미끄러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나 영국인 환자에게 가더니 빈 장을 채워주고 술병으로 유리잔 기장자리를 건배하듯 가볍게 쳤다. 서풍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화가 나소 돌아섰다. 무연 화약의 연한 냄새가, 그 비율이 공기 속에 묻어 왔다. 그는 진저리가 난다는 몸짓을 해 보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해나를 바라바조의 품안에 남겨둔 채.
어두운 복도를 달리는 그는 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방을 집어들고 도로로 이어지는 성당의 36개 계단을 향해 달리면서 육체적 피로에 대한 생각을 무조건 지우려 했다.
공병이었던가, 아니면 민간인이었던가? 도로 벽을 따라 그가 있는 쪽으로 실려 오는 꽃과 약초 냄새 사고 혹은 잘못된 선택 공병들은 대개 내성적이었다. 보석이나 돌을 나르는 사람들처럼 성격이 완고한 사람들로 강하고 분명한 데가 있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들이 내리는 결정을 겁냈다. 컵은 그런 성격을 보석 세공가한테서 알아차렸지만 누가 뭐래도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공병들은 서로 친해지는 일이 없다. 대화할 때는 오로지 정보 전달, 새로운 장치, 적군의 습성 등만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막사로 쓰는 시청에 들어설 때 그는 세 명의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고 네번째 얼굴이 그속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혹은 네 명의 얼굴이 모두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들판 어디엔가 어떤 토인이나 소녀의 시체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군대에 들어가서 명령 도표와 엄청난 매듭이나 악보처럼 점점 복잡해지는 청사진을 배웠다. 그는 자신이 입체 투시의 재주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불랑자의 시선처럼 한 물체나 정보가 적힌 페이지를 보면서 모든 허점을 보고 재정비하는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악의 장치, 방 안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 - 책상 위의 자두, 어린아이가 독약에 다가가 입에 넣는 것, 남자가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침대 속의 아내 곁으로 가기 전에 선반의 파라핀 램프를 조정하는 것 등을 그는 상상할 수 있었다. 어떤 방이든 그른 고안으로 가득 찼다. 불랑자의 시선은 표면 아내 묻힌 것, 보이지 않을 때 매듭이 어떻게 얽히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 악한을 너무 쉽게 찾아내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던져버렸다. 그에게는 그의 스승 서폴크경이나 영국인 환자처럼 독학자의 추상적인 광기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편했다.
그는 아직 책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최근 들어 해나는 영국인 환자 곁에 앉은 그를 지켜보았다. 마치 킴의 정반대 같았다. 젊은 제자는 이제 인도인이고 현명한 늙은 스승이 영국인이었다. 그러나 밤에 그 나이든 사내와 함께 있고 산과 성스런 강으로 그를 인도하는 사람은 해나였다. 그들을 그 책을 읽기까지 했다. 바람이 그녀의 옆에 있던 촛불을 작게 만들 때책장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지고 해나의 목소리가 느려진다.
그는 땡그렁거리는 대기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온갖 생각에 잠겼다. 무릎 위에 손을 포개고 눈동자가 작은 표적에 수축된다. 잠시 후면 - 0.5초만 지나면 그는 자신이 엄청난 수수께끼의 해답에 도달할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녀는 책을 읽거나, 들으면서 보낸 그 긴 밤들이 그들과 합류하게 될 젊은 군인, 어른이 된 소년을 위해 그들 스스로를 준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어린 소년은 해나였다. 그리고 킵은 장교 크레이튼이었다.
책, 매듭의 지도, 기폭장치판, 촛불과 폭풍우 속의 섬광, 때로는 폭발할 때의 빛으로만 밝혀지는 버려진 빌라에 네 명이 있는 방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장님이 된 언덕과 피렌체 촛불은 50미터밖에 비추지 못한다. 더 먼 거리에서 볼 때 거기에는 외부 세계에 속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보낸 그 저녁의 짧은 춤을 통해 각자의 간단한 모첨을 축하했다. 채나는 그녀의 잠을, 카라바조는 축음기의 '발견'을, 그리고 킵은 벌써 거의 잊어버리긴 했지만 어려웠던 제거 작업을 그는 축제나 승리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불과 50미터 떨어진 속에서 그들이 세상에 속해 있음을 표시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나와 카라바조의 그림자가 벽을 가로질러 미끄러지고 킵이 한 구석에 편안히 웅크리고 있는 가운데, 영국인 환자가 와인을 들이켜며 사용하지 않는 그의 몸속으로 술과 영혼이 스며들어 쉽게 취하는 것을 느끼는 동안, 계곡의 눈에는 그들로부터 어떤 소리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영국인 환자의 목소리는 마치 영국의 개똥지빠귀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같은 사막 여우의 울음소리를 냈다. 개똥지빠귀 소리를 라벤더 꽃이나 쓴쑥 부근에 무성하기 때문에 영국 남동부 에섹스 지방에서만 들을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돌로 만들어진 벽의 오목한 자리에 앉은 공병은 불탄 남자의 모든 욕망은 머리 속에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그 소리가 들렸고 그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홱 돌려 그들을 쳐다보면서 생전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 "괜찮아요. 지뢰는 아닙니다. 제거한 지역에서 소리가 났거든요." - 무연 화약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릴 준비를 하면서.
몇 시간 후, 이제 킵은 다시 창문 돌출부에 앉아 있다. 만일 그가 영국인 방을 7미터 가로질러 가서 그녀를 만질수 있다면 그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은 몹시 어두웠다. 그녀가 앉아 있는 탁자 위의 촛불뿐 그녀는 오늘밤 책을 읽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약간 취했다고 생각했다.
지뢰가 폭발한 곳에서 그가 돌아왔을 때 카라바조는 도서실 소파에서 개를 안고 잠들어 있었다. 표시로 몸을 꿈틀 움직였다. 카라바조의 코 고는 소리 위로 나지막한 으르릉 소리가 울렸다.
그는 이층으로 올라가면서 부츠를 벗고 끈으로 묶은 어깨에 걸쳤다. 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텐트에 씌울 방수포가 필요했다. 복도에서 그는 아직까지 영국인 환자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낮은 촛불이 비추는 탁자에 한 팔을 얹고 고개를 뒤로 젖힌 자세로 있었다. 그는 부츠를 바닥에 내려놓고 세 시간 전에 파티가 열렸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공기 속에서 알코올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가 환자를 가리켰다. 그는 킵의 조용한 걸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공병은 창가의 구석진 곳에 다시 앉았다. 만약 방을 가로질러 가서 그녀를 만질 수 있다면 그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위험하고 복잡한 길이 가로막혀 있다. 그것은 아주 넓은 세계였다. 그리고 영국인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잠을 잘 때면 보청기의 볼륨을 최대한 높이기 때문에 어떤 소리에도 깨어난다. 여자의 눈은 주위를 헤매다가 유리창의 직사각형 틀 안에 든 킵을 보고 멈추었다.
그는 사망한 장소를 찾아내서 그곳에 남아 있던 물건들을 부대장 하디와 함께 묻었다. 그리고는 줄곧 그날 오후의 그 여자를 생각했다. 갑자기 그녀가 걱정되고, 그녀 스스로 자진해서 그런 일에 개입한 데 화가 났다. 그녀는 무심결에 자신의 생명을 손상하려 했다. 그녀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마지막 의사소통은 입술에 손을 댄 것이었다. 그는 몸을 수그리고서 어깨의 뺨을 문질렀다.
그는 마을을 지나 걸어왔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손질하지 않은 마을 광장의 뻗 친 나뭇가지 사이로 비가 쏟아졌다. 두 남자가 말 위에서 악수하는 이상한 동상도 지나쳤다. 그리고는 이제 이곳에 있다. 촛불이 너울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바꿔놓아 그로 하여금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게 했다. 현명함 또는 슬픔 또는 호기심.
만일 그녀가 책을 읽고 있거나 영국인에게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면 그는 아마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해나를 혼자 있는 젊은 여인으로 바라본다. 오늘밤 지뢰 폭발의 장면을 보면서 그는 그날 오후 지뢰 분해작업 때 있었던 그녀의 존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퓨즈에 다가갈 때마다 그녀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그녀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일을 할 때면 인간 세계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명료함과 음악이 그를 가득 채워 왔다. 이제는 그녀가 함께, 혹은 그의 어께에 있다. 언젠가 그들이 굴을 침수시키려고 할 때 굴에서 살아 있던 염소가 한 장교의 손에 들려나오는 장면을 보았던 것처럼.
아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해나의 어깨를 원했다. 햇빛 아래서 그녀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의 총 조준기에 잡혀 있는 듯 어색하게 그녀의 곁에 나란히 누웠던 것처럼 그 어깨에 손을 얹고 싶었다. 그가 본 화가의 풍경화 속으로 그의 위로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그녀를 감싸주고 이 방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녀와 있는 한은 더욱 나약함을 보일 수 없었다. 그들 어느 쪽도 그런 가능성을 상대에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 해나는 너무도 고요히 앉아 있다. 그녀가 그를 쳐다볼 때 촛불이 흔들리며 그녀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그녀에게 그는 다만 하나의 실루엣으로, 그의 여윈 몸과 피부가 모두 어둠의 일부라는 것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까 저녁 때 그가 창가를 떠난 것을 본, 그녀는 몹시 화가 났다. 그가 그들을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폭탄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녀는 카라바조에게 더 바싹 달라붙었다. 그것은 모욕이었다. 그리고 오늘밤 그 저녁의 흥분으로 인해 카라바조가 처음으로 그녀의 약장을 뒤지지 않고 침실로 간 뒤에도, 영국인 환자가 앙상산 손가락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몸을 구부린 그녀의 뺨에 키스한 뒤에도 그녀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촛불을 모두 끄고 침대 곁에 있는 탁자에 밤에 쓰는 짧은 초만 남기고 앉았다. 영국인의 몸은 한바탕 술 취한 연설 후 침묵속에서 그녀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때로는 말이 되리 때로는 사냥개 돼지 목 없는 곰 때로는 불"그녀는 옆에 놓인 쇠받침대에 촛농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폭발이 일어난 언덕까지는 꽤 먼 거리다. 공병은 마을을 지나 그곳까지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불필요한 침묵이 아직도 그녀를 화나게 했다.
그녀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영원히 죽어가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카라바조와 춤추다가 벽에 부딪혀 허히의 잘록한 부분에 멍이 든 것을 느끼면서.
이제 그가 다가온다면 그녀는 그를 노려보고 똑같은 침묵으로 대하리라. 그로 하여금 궁금하게 하고 먼저 움직이게 하리라. 그전에도 군인들이 치근덕거림을 받아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는 행동은 이렇다. 방 한가운데로 걸어나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손에 옮겨쥔다. 조용히 걷는다. 돌아서서 침대 옆에 멈춘다. 영국인 환자가 예의 긴 숨을 내쉴 때 그는 커터로 보청기 줄을 끊고 가방에 다시 넣는다. 들아서서 그녀를 향해 씩 웃는다.
"아침에 줄을 다시 연결해 줄게요."
그는 왼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는다.
"데이비드 카라바조. 당신에게는 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군."
"적어도 난 이름이라도 있지 않소."
"하긴."
카라바조는 해나의 자리에 앉아 있다. 오후의 햇살이 방을 채우며 헤엄치는 작은 티끌들을 드러낸다. 영국인의 검고 얇은 얼굴과 각진 코는 천에 싸여 가만히 있는 매의 모습을 닮았다. 매를 넣는 과 카라바조는 생각한다.
영국인의 그에게로 돌아눕는다.
"카라바조란 화가가 만에 그린 그림이 있지. 골리앗의 머리들 든 다윗 그 그림에서 젊은 투사는 팔을 길게 뻗고 그 손 끝에 늙고 파괴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소. 허나 이 그림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슬픔은 그게 아니오. 다윗의 얼굴을 젊은 카라바조의 초상이고 골리앗의 얼굴은 늙은 카라바조, 그 작품을 그릴 때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일세 청춘이 길게 뻗은 팔 끝의 나이를 심판하는 거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심판 난 내 침대 발치에 선 킵을 볼 때마다 그가 나의 다윗이라고 생각하오."
카라바조는 작은 티끌이 떠다니는 정경에 정신을 팔고서 침묵 소에 앉아 있다. 전쟁은 그로 하여금 균형을 잃게 했다. 그는 그 상태로 모르핀이 가져다주는 가짜 수족을 가지고 다른 어떤 세계로도 돌아갈 수 없다. 그는 한번도 가족이란 것에 익숙해 본적이 없는 중년 남자다. 평생동안 그는 영구적인 친밀함을 피해 왔다.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그는 늘 남편보다는 좋은 애인이었다. 애인이 혼란을 피해 떠나듯, 도둑이 궁색해진 집을 떠나듯 항상 슬그머니 사라지는 남자였다.
그는 침대 위의 사내를 본다. 그 사막에서 온 영국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한다. 해나를 위해 밝혀야 한다. 아니면 타닌 산이 불탄 살갗을 변장시켜 주듯 그를 위해 피부를 만들어내야한다.
전쟁 초기 카이로에서 일할 깨 그는 이중간첩이나 사람을 잡아먹는 유령 따위를 만들어 내는 훈련을 받았다. '치즈'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첩보원을 만드는 일을 맡아. 몇 주에 걸쳐 그의 성격 - 탐욕과 술에 대산 약점 따위 - 을 만들어 내고 사실이 아닌 것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적군에게 퍼트렸다. 카이로에 있는 다른 이들처럼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막의 소대 소속이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거짓인 가운데에서 전쟁을 치렀다. 마치 자신이 어두운 방에서 새 소리를 흉내내는 사람인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들은 벗겨지는 피부였다. 그들은 스스로의 실체 이외에 아무것도 흉내낼 수 없었다. 타인에게서 진실을 찾는 것말고는 어떤 방어도 없었다.
그녀는 도서실 선반에서 킵을 꺼내 들고 피아노에 기대어 책 마지막장에 있는 백지에 써 내린다.
그는 그 무기 - 잼 재마 포 - 가 아직도 라호르 박물관 바깥에 있다고 말한다. 도시내에 있는 모든 한두 가정에서 - 지즈야, 혹은 세금으로 - 가져온 쇠컵과 쇠그릇으로 만든 무기가 들 있었다. 그것들을 녹여서 무기로 만든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시크족을 상대로 한전투에서 쓰였다. 다근 무기는 체나브 강 전투 때 분실되었다.
그녀는 책을 덮고 의자 위로 올라가 보이지 않는 높은 선반에 책을 둔다.
그녀는 새 책을 들고 그림이 그려진 방으로 들어서서 제목을 소개한다.
"해나, 이제 책은 그만."
그녀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이럴 때마저도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의 어둠에서 나오는 잿빛시선 모든 것이 그곳에서 일어난다.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깜빡이는 여러 시선의 느낌이 있고, 등대처럼 옆으로 움직인다.
"책은 그만 그냥 헤로도투스로 하지."
그녀는 두껍고 손때가 묻은 책을 그의 손에 올려놓는다.
"표지에 조각된 초상이 있는 역사 판을 본 적이 있어. 프랑스 미술관에서 찾은 어떤 상이지. 허나 난 절대로 헤로도투스를 이런 식으로 상상하지 않아. 난 그를 오히려 사막에 사는 보기 드문 사람 가운데 하나로 보지.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여생하고, 신화를 사고 파는 것을 마치 열매 교관하듯 하며, 모든 것을 의심 없이 소모하고, 신기루를 서로 이어서 만드는 사람들 말야.
헤로도투스가 말했지 '나의 이 역사는 처음부터 중요한 논증을 보완하고자 해왔다.' 그에게서 찾게 되는 것은 역사의 범위 안에 있는 막다른 골목이오. 국가를 위해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배반하는 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몇 살이라고 했소?"
"스무 살."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훨씬 나이가 많았지."
해나는 머뭇거렸다. "누구였어요?"
그러나 그의 눈은 이제 그녀에게서 멀어져 있다.
"새들은 죽은 가지가 있는 나무를 선호하지 앉는 자리에서 사방 경치를 훤히 볼 수 있으니까.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거든." 카라바조가 말했다.
"내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해나가 말했다. "난 새가 아네요. 진짜 새는 위층에 있는 남자예요."
킵은 그녀를 새로 상상해본다.
"이봐, 자신만큼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카라바조는 호전적인 모르핀 기운이 들아 논쟁적임 분위기를 원했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문제야, 내 성생활 역사에서 - 여기 이 특정한 청중에게만 애기지만 내 성생활은 느지막이 시작됐지. 만찬가지로, 난 대화의 성적 쾌감도 결혼 후에야 알게 됐지. 한번도 말하는 게 선정적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어 허나 때때로 난 정말 성관계를 갖는 것보다 말을 하는 편이 혼아 이런 것, 저런 것, 그리고 또 이런 것 말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말로써 스스로를 정말 구석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거지 그에 비해 성행위를 가지고 구석으로 몰아갈 수는 없거든."
"그건 남자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해나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난 그래본 적 없어." 카라바조는 계속했다. "어쩌면 킵, 자네는 그런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지 언덕에서 봄베이로 내려왔을 때난 군사훈련차 영국에 갔을 때 누구든 성행위로 스스로 구석으로 몰아본 적 있을지 궁굼하군. 킵, 몇 살인가?"
"스물여섯입니다."
"나보다 많아요."
"해나보다 많다. 자네는 해나가 자네보다 똑똑하지 못하면 과연 사랑할 수 있겠나? 해나가 자네보다 똑똑하지 못하고 하자. 해나와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 그녀과 자제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겠나? 생각해 보게. 내나는 영국인이 자기보다 많이 알기 때문에 그에게 사로잡힐 수도 있어. 그 친구와 이야기할 때는 거대한 벌판에 있게 된. 그가 진짜 영국인인지도 우리는 모르네. 필시 아닐 테지. 알겠나, 내 생각에는 자네 보다 그 친구와 사랑에 빠지기가 쉬운 것 같아. 왠지 아나? 우린 알고 싶거든, 조각이 어떻게 맞춰지는지. 말하는 사람들은 유혹하네, 말은 우리를 구속으로 이끌어가 우린 무엇보다도 성장하고 변화하기를 원해 멋진 신세계."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해나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 안해. 내 나이 또래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지. 가장 나쁜 일은 그 나이쯤 되면 인격이 성숙했을 거라고 남들이 생각한다는 거야. 중년의 문제는 완전히 틀이 잡혔다고 생각하는 거지. 봐."
카라바조는 두 손으로 들어 해나와 킵을 향해 펼쳤다. 그녀는 일어서서 그의 뒤로 가더니 목에다 팔을 감았다.
"이러지 말아요, 데이비드, 네?"
그녀는 그의 손을 부드럭게 감쌌다.
"미친 말을 지껄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이층에 하나 있어요."
"우리들 봐. 썩어빠질 부자들이 도시가 너무 더울 때 썩어빠질 언덕의 썩어빠질 빌라에 있는 것처럼 앉아 있지. 아침9시야 그 친구는 위층에서 잠을자, 해나는 그에게 사로잡혀 있어. 난 내 '균형'에 사로잡혔고, 킵은 아마 며칠 안에 터져버리고 말겠지. 왜? 누구를 위해서? 이 친구는 26세야. 영국군이 가르치고 미군이 좀더 추가해준 기술 교육을 받은 공병 팀은 훈장을 받은 다음 부자들의 언덕으로 파견되지, 웰시가 말한대로 자넨 이용당하고 있어, 친구, 난 여기 오래 머물 생각이 아냐. 널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이염병랄 속임수의 도시에거 빠져나가는 거야."
"그만해요. 데이비드 이 사람은 살아남을 거예요."
"지난 밤 폭파 때 죽은 공명, 이름이 뭐였지?"
킵에게서는 대답이 없다.
"그 침구 이름이 뭐였나?"
"샘 하디." 킵은 대화를 피해 창문으로 사거 밖을 내다보았다.
"우리 무두의 문제는 우리가 있는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거야.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에서 뭘 하는 것지? 빌어먹을, 킵이 과수원을 폭탄을 제거하는 건 무슨 짓이야? 서부전선에 있는 농부는 나뭇가지를 쳐낼 때마다 톱이 망가뜨리고 말아. 왜? 지난 전쟁 때 박힌 엄청난 포탄 파편 때문이지. 나무마저도 우리가 가져온 병에 깊이 걸렸어 군대는 너한테 사상을 주입시켜서 이곳에 내버려둔 채, 자네는 또다른 곳에 문제를 일으키러 꺼져버렸지. 빌어먹을 놈들 우린 모두 함께 떠나야 돼."
"영국인을 두고 갈 수 없어요."
"해나, 영국인은 몇 달 전에 떠났어. 그는 베두인족과 함께 있거나 영국의 어느 정원에서 플록스 같은 화초 따위와 함께 있어, 아마 자기가 어떤 여자의 주위를 돌면서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걸. 젠장,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몰라
넌 내가 너한테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 네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렇지? 질투하는 아저씨 난 너 때문에 두렵다. 난 영국인을 죽이고 싶어 그것만이 너를 구하는, 널 여기서 데려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야. 그런데 난 그를 좋아하기 시작하지. 네 위치에서 달아나. 킵이 스스로 목숨을 거는 일을 그만두도록 할 만큼 네가 똑똑하니 않다면 어떻게 그가 널 사랑하겠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 사람은 개화된 세계를 믿기 때문이에요. 킵은 개화된 사람이에요."
"첫번째 실수 옳은 행동은 기차에 올라타는 것, 가서 함께 아기를 갖는 거다. 영국인, 그 새한테 가서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까?
왜 좀도 영리하지 못해? 우직 부자만이 똑똑함을 감당하지 못해. 그들은 절충하지 그들은 벌써 오래 전에 특권 속에 갇혀버렸어. 소유물을 보호해야 하지. 어느 누구도 부자만큼 비열하지 못해. 내 말을 믿어. 허나 그들은 나름대로 염병할 개화된 세계의 규칙을 따라야해. 전쟁을 선포하고, 명예를 갖고, 그리고 그들은 떠날 수 없어 허나 너희 둘 우리 셋 우린 자유로워 공병이 얼마나 죽지? 왜 자네는 아직 안 죽었나? 무책임하게 굴어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아."
해나는 컵에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다 따른 다음 병 주둥아리를 킵의 손에다 대고 계속 따랐다. 그의 갈색 피부에 우유를 계속 부으며 손에서 팔로 어깨로 옮겨가다가 멈추었다. 그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집 서쪽으로 두 층의 길고 접은 정원이 있다. 정식 테라스와 그 위쪽으로 틀 계단과 콘크리트 동상이 빗물로 생긴 푸른 곰팡이 속으로 사라져 가는 듯한 어두운 정원 공명은 그곳에 천막을 쳤다. 비가 내리면서 계곡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삼나무와 전나무 가지 아래로 또다른 비가 이 언덕 한 귀퉁이에 절반쯤 치운 우묵한 지역으로 떨어진다.
모닥불을 피워야만 영구히 젖고 그늘진 위쪽 정원을 말릴 수 있다. 예전의 포격에서 나온 판자, 서까래, 부러진 나뭇가지, 오후마다 해나가 뽑아놓은 잡초, 낫으로 베어 낸 잔디와 쐐기풀 등의 쓰레기가 모두 이곳에 모였다가 늦은 오후 땅거미가 드리우는 동안 불태워졌다. 축축한 불이 연기를 일으키며 타오르면, 나무 냄새가 나는 그 연기는 수풀 속으로, 나무들 틈으로 스며들었다가 미친다. 그는 연기 나는 정원에서 떠도는 목소리와 간간이 섞이는 웃음소리를 듣는다. 그는 냄새를 물에 타기 이전 상태로 되돌려서 맡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로즈메리, 밀크위드, 쓴 쑥, 뭔가 다른 것이 또 있다. 향기가 없는 어쩌면 더그 바이올렛(향기가 없는 야생 제비꽃. 옮긴이) 혹은 이 언덕의 약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해바라기.
영국인 환자는 해나에게 무엇을 길러보라고 조언한다. "그 이탈리아 친구에게 씨를 구해달라고 해요. 그 방면에 재주가 있어 보이는데, 짙은 색의 꽃이 피는 식물을 심어 그리고 진분홍과 인디언 핑크색 - 당신의 라틴계 친구를 위해 라틴 이름을 원한다면 실레나 버지니카가 좋겠지. 붉은 사이보리(차조기과 식물. 옮긴이)도 좋다. 피리새가 개암과 벚나물르 쪼아먹는 것을 보려면"
그녀는 모든 덕을 받아적는다. 그리고는 그에게 읽어주는 책을 넣어두는 탁자 서랍에 마년필을 넣는다. 책과 함께 양초 두 자루와 짝막한 베스타 성냥이 들어 있다. 그 방에는 의료품이 전혀 없다. 그녀가 다른 방에다 숨겨두기 때문이다. 그녀는 카라바조가 약품을 찾아 뒤지고 다니느라 영국인 환자에게 방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는 나중에 식물 이름을 적은 종이를 카라바조에게 주려고 치마 주머니를 넣는다. 육체적 매력이 고개를 든 지금, 그녀는 비로소 세 남자들 사이에서 거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일 그것이 육체적 매력이라면 만들 그 모든 일이 킵에 대한 사랑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녀는 그의 팔 위쪽에 얼굴을 대고 눕기를 좋아한다. 그 검은 갈색의 강 그리고 그 속에서 잠수하듯 그의 살 속에 보이지 않는 혈관의 맥박을 옆에 두고 깨어나는 기분 만일 그가 죽어간다면 그녀가 찾아내서 염수용액을 주입해야 할 혈관.
새벽 2시 또는 3시, 영국인을 혼자 두고 그녀는 정원을 지나서 크리스토퍼 상 팔에 걸린 공병의 내풍 램프를 향해 걷는다. 그녀와 불 살이에는 칠흑 같은 어둠, 그러나 그녀는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관목과 수풀, 그리고 분홍빛으로 낮게 꺼져가는 모닥불의 위치를 안다. 때로 그녀는 유리 깔때기 위에 손을 대고서 불을 끈다. 그리고 때로는 타도록 내버려두고 그 아래로 몸을 수그려 천막의 젖혀진 부분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원하는 그의 몸 곁으로, 그 팔을 향해서 기어 들어간다. 소독솜 대신 그녀의 혀, 바늘 대신 그녀의 이빨, 그를 잠제우기 위해, 그의 영원히 짤깍거리는 두뇌를 서서히 졸음으로 몰아놓기 위해 코딘 약물을 떨어뜨린 마스크 대신 그녀의 입 그녀는 모직드레스를 접어 테니스와 위에 올려놓는다. 그에게는 세상이 오직 몇 가지 중요한 규칙만을 가지고 그들 주위에서 타오른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당신이 TNT를 수증기로 바꾸어놓고 당신이 물을 빼고, 당신이 그녀가 누이처럼 정숙하게 그의 옆에 누워 자는 동안 그런 모든 것이 그의 머리 속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천막과 어두운 나무가 그들을 에워싼다.
오르토나나 몬테르치 야전병원에서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편안함에서 그들은 오직 한걸음 비껴나 있다. 마지막 온기를 주는 그녀의 몸, 편안함을 주는 그녀의 속삭임, 수면을 주는 그녀의 바늘 그러나 공병의 몸은 다른 세계에서 오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약을 원하고 필요로하는 카라바조와 달리, 베두인족이 해준 대로 자신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 연구와 꽃가루를 열망하는 영국인과 달리, 그녀가 가져오는 음식을 먹지 않고 그녀가 팔에 꽂아주는 주사바늘의 약물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랑에 빠진 소년 단순히 수면의 편안함을 위해서.
그가 주변에 늘어놓는 장식들이 있다. 그녀가 준 나뭇잎들, 양초 한 자루, 그리고 천막 안에 광석 수신기와 규율에 따르는 물건들로 가득 찬 숄더백 그는 평온과의 싸움에서부터 왔다.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그에게는 질서의 의미한다. 소총 과녁판의 V형 안에서 계곡을 떠다니는 매를 쫓으며 폭탄을 열면서 찾고 있는 물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보온병의 뚜껑을 열고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결코 쇠컵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그는 엄격함을 고수한다.
남은 우리들은 그에게 외부일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의 눈은 오로지 위험한 것만 보고, 그의 뒤는 단파를 통해 오는 헬싱키나 베를린의 사건만 듣는다. 부드러운 여인일 때조차 그녀는 그의 멍한 시선 속에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 그가 그녀의 목에 머리를 떨구고 신음할 때에도 위험에서 떨어져 있는 모든 것은 외부다 그녀는 그의 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에게 소리를 내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그가 싸움에서부터 조금이라도 긴장을 푼다면, 미치 어둠 속에서 마침내 자신이 있는 곳을 인정할 의지가 있는 듯 인간의 소리로 쾌감을 표시하도록.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는 그것이 얼마나 비밀스런 게임인지도 그들이 서로 가까워질수록 낮에 그들 사이에 있는 공간은 점점 넓어진다. 그녀는 그가 그녀와의 사이에 두고 거리, 그가 그들의 권리라고 가정하는 공간을 좋아한다. 그가 마을의 다른 공병들과 합류하러 1킬로의 길을 가기 전에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창 아래로 지날 때, 그것은 그들 각자에게 개인적인 에너지와 그들 사이에 공기의 암호를 준다. 그는 접시나 음식 따위를 그녀의 손에 넘겨준다. 그녀는 그의 갈색 손목에 나뭇잎을 감는다. 혹은 카라바조를 사이에 두고 함께 무너져내린 벽에 회반죽을 바른다. 공병은 평소처럼 서부 노래를 부른다. 카라바조는 그것을 즐기면서도 아닌 척한다.
"펜실베니다 식스-파이브-오-오-오."
젊은 군인이 내뱉는다.
그녀는 그의 몸이 가진 다양한 어두운 색조를 배운다. 팔뚝의 빛깔과 목의 빛깔의 차이, 손바닥의 빛깔, 뺨, 터번 아래 피부, 붉은 전선과 검은 전선을 구분하는 손가락의 어두운 빛깔, 또는 아직도 그가 식사 때 사용하는 청동접시에서 빵을 집어들 때의 손 그리고 그는 일어선다. 그의 자급자족하는 능력이 그들에게는 무례하게 보인다. 그는 극도의 공손함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녀는 그가 목욕할 때 보이는 젖은 목의 빛깔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그녀 위에 있을 때 그녀의 손가락이 붙잡는 땀에 찬 가슴, 그리고 그의 천막이 지닌 어둠 속에서 검고 힘있는 팔, 혹은 언젠가 그녀의 방에 있었을 때 계곡의 도시에서 시작된 빛이 마침내 자유를 찾아 해질 무렵처럼 서서히 그들 사이로 올라오면서 그의 몸 빛깔을 밝혀주던 일.
나중에 그녀는 그가 결코 그녀에게 신세지거나 그녀가 그에게 신세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에 나오는 단어를 들여다보다가 사전에서 찾는다. 신세 의무를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그가 절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음을 그녀는 안다. 20미터의 어두운 정원을 지나 그에게 간 것은 그녀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는 잠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다음날 위험한 목표를 향해 또렷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
그는 그녀를 대단하게 생각한다. 깨어나서 등불 속에 있는 그녀를 본다. 그는 그 얼굴의 영리함을 가장 사랑한다. 또는 저녁 때 카라바조와 어리석은 논쟁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의 몸을 향해 성녀처럼 기어 들어오는 방식을.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줄곤 지니고 있는 텐트의 천 냄새 속에 여리고 단조로운 그의 목소리, 그는 천막이 자기 몸의 일부인 양 팔을 뻗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건드린다, 밤이면 그가 접어 덮는 카키색 군복 그것은 그의 세계다. 그런 방에 그녀는 캐나다에서 추방당한 느낌이다. 그는 그녀에게 왜 잠들지 못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그의 자급자족 능력과 세계로부터 너무 쉽게 돌아서는 능력에 대해 짜증이 상태로 누워 있다. 그녀는 빗소리가 나는 양철 지붕과 창 밖에서 흔들리는 포플러 두 그루를 원한다. 그녀가 의지하며잠들 수 있는 소리 토론토 동쪽 끝에서 그녀와 함께 자랐던, 그리고 패트릭과 클라라와 함께 2년 동안 살았던 스쿠타마다 강가와, 그 후에는 조지안 베이 가에 있던 잠자는 나무와 잠자는 지붕 그녀는 이렇게 잘 가꾸어진 정원 속에서도 잠자는 나무를 찾지 못했다.
"키스해줘요. 내가 가장 순수하게 사랑하는 건 당신 입이에요. 당신의 이빨." 그리고 나중에 그의 머리가 텐트의 열린 부분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향해 한 쪽으로 쓰러졌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만 들리는 큰소리로 속삭인다. "어쩌면 카라바조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언젠가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카라바조는 항상 사랑하는 남자래요. 단순히 사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사랑 안으로 가라앉는 항상 혼란스런 항상 행복한 킵 내 말 들어요? 난 당신과 함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해요. 이렇게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그녀는 그들이 들어가서 수영할 수 있는 강을 원했다. 수영에는 그녀가 무도장과 같이 여기는 격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강에 대한 다른 느낌을 가졌다. 예전에 그는 소리 없이 모로 강에 들어서서, 접히는 임시 가교에 붙은 굵은 밧줄의 안전장치를 당겼다. 다리의 조여진 강철판이 괴물처럼 그의 등 뒤에서 물을 향해 미끄러지는 순간, 폭격으로 하늘에 불이 피어오르고 누군가 곁에서 강 복판으로 가라앉았다. 공병들은 자꾸자꾸 잃어버린 도르래를 찾아 물 속에 뛰어들었고, 그들 사이에 잇는 물 속에서 갈고리를 붙잡았다. 진흙과 수면과 얼굴들이 주변 하늘의 인산 불길로 밝아졌다.
밤새도록 울고 소리치면서 그들은 서로 미쳐가는 것을 막아야했다. 겨울 강이 옷 속에 가득하고 그들 머리 위에서 다리가 서서히 내려와 도로 구실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틀 후 또다른 다리 그들이 가는 강마다 다리가 없었다. 마치 그 이름이 지어진 듯, 마치 하늘에 별이 없듯, 집에 문이 없듯이, 공병대는 로프를 가지고 들어가 어깨위에 굵은 밧줄을 메고 나사를 조이고 쇳소리를 죽이기 위해 기름칠을 했다. 그러면 군대가 그 위로 행진했다. 공병들이 아직 물 속에 있는 동안 그들은 조립식 다리 위로 차를 몰고 지나갔다.
그들은 강 한복판에서 자주 포격을 맞았다. 진흙 둑에 불길이 꽂히고 강철과 철이 산산조각나서 파편으로 변했다. 그럴 때는 어떤 것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갈색 강이 찢고 지나는 금속 앞에서 강물은 실크만큼이나 얇았다.
그는 거기서 돌아섰다. 그는 자신의 강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강으로부터 길을 잃은 여자에 기대어 짧은 수면을 취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다 카라바조라면 어떻게 사랑 안으로 가라앉을 수 있는지 그녀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러운 사랑 안으로 가라앉는 방법까지. "킵, 당신을 스쿠타마타 강으로 데려가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스모크 호수를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가 호수에 살아요. 자동차에 타는 것보다 쉽게 카누에 올라타는 여자 번쩍거리며 전류를 뿜어내는 천둥이 그리워요. 당신이 카누를 탄 클라라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전쟁을 위해 그녀를 버렸어요."
그녀는 헛걸음이나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그의 밤 텐트를 향해 걷는다. 마치 그녀가 댄스 홀의 동그란 불빛 안에 잡힌 듯 나무들이 달빛을 걸어서 비춘다. 그녀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자고 있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가 지뢰에 달린 시계소리를 듣는 것처럼 새벽 2시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잠들어 있다.
IV. 남부 카이로
1930 - 1938
남부 카이로 1930 - 1938
헤도로투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서방세계는 사막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읺았다. 그들은 기원전 425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사막에서 눈을 돌렸다. 침묵. 19세기는 강을 찾는 자들의 시대였다. 그러던 중 1920년대 들어 이 지구의 고립지역에 감미로운 추신의 역사가 있다. 사비 탐험대와 그 뒤를 이어 런던 켄싱턴 고어 지리학회에서 발표한 밀도 있는 강연 등의 역사다. 그 강연들은 콘래드의 소설에 나오는 선원들처럼 햇볕에 그을리고 지칠 대로 지칠 사람들에 의해 전달된다. 그들은 결코 택시 예걸이나 버스 운전사의 재빠르고 말쑥한 태도에 익숙하지 못하다.
학회 모임을 위해 주택가에서 나이츠브리지로 향하는 기차를 탈 때면 그들은 종종 혼란스런 길이나 잘못 산 기차표 탓에 낡은 지도에 의존했고, 늘 몸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니는 배낭 속에 강연 원고 - 천천히 고통스럽게 써내려 간 - 를 반드시 가지고 있다. 각국에서 온 이들은 고독의 빛이 어린 시각인 초져녁 6시쯤 여행을 한다. 도시의 거의 모든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익명의 시간이다. 탐험가들은 켄싱턴 고어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라이언 코너 하우스에서 식사를 마친 뒤 지리학회로 들어선다. 그들은 이층 홀에 있는 거대한 마오리 카누 옆에 앉아 강연 내용을 컴토한다. 8시가 되면 토론이 시작된다.
2주에 한 번씩 강연이 있다. 누군가 강연을 소개하고 또다른 사람이 감사의 인사를 한다. 마지막 토론자는 얼마 되지 않는 사례비를 받고서 강연을 논박하거나 검토한다. 적당히 비판을 하되, 결코 온당한 선을 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발표자가 사실에 근접해 있으며 지나치게 집착하는 가설까지도 절도 있게 소개한다고 생각한다.
지중해의 소쿰에서 수단의 엘오비드까지 걸쳐 있는 리비아 사막을 지나온 나의 여행은 지구 표면에서 아주 드문 행로를 거쳤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지리학적 문제를 담고 있는......
그런 회의실에서는 수년 동안에 걸친 준비과정, 연구조사, 기금 모금에 관해서는 결코 거룬하지 않는다. 지난 주의 발표자는 남극의 얼음 속에서 30명을 잃었다고 보고했다. 심한 더위나 폭풍 속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일들이 아주 짤막한 추모문과 함께 발표된다. 모든 인간적 또는 재정적 문제는 그곳에서 거론하는 일들-지구의 표면 및 '흥미로운 지리학적 문제들'-과 거리가 멀다.
흔히 거론되는 와디라얀을 제외한 이 지역의 다른 저지대가 나일강 삼각주의 관개 및 배수와 관련하여 활용될 수 있는가? 오아시스에 공급되는 분수정의 물은 차츰 감소하고 있는가? 신비의 '제르주라'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다른 '잃어버린' 오아시스가 또 있는가? 프톨레미의 거북이 습지는 어디에 있는가?
이집트 사막 조사단의 단장 존 벨은 1972년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연은 더욱 신중해졌다. "'카르가 오아시스의 선사시대 지리'에 관한 흥미로운 토론 중 몇가지 논점에 대해 간략한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 제르주라의 잃어버린 오아시스는 라디스로스 데 알마시와 그의 동료들에게 발견되었다.
1930년에 접어들면서 1930년대의 리비아 사막 탐험은 막바지에 달했고, 광대하고 고요한 지구의고립 지역은 전쟁의 무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자가 그려진 침실에서 화상 환자는 아주 먼 곳을 바라본다. 마치 라벤나의 죽은 기사와 같은 모습이다. 대리석 몸체가 살아있는 듯 거의 흐물거리는 상태로 돌베개에서 머리를 들고 발치 너머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 고대하던 비보다도 더 멀리. 카이로에서 있었던 그들의 삶 전체를 향해. 그들의 일들. 그들의 나날.
해나는 침대 곁에 앉아 그가 그런 여행을 하는 동안 수행원처럼 같이 여행한다.
1930년 우리는 제르주라라고 불리는 잃어버린 오아시스를 찾으면서 길프케버 고원의 거대한 지역을 지도로 옮기기 시작했지. 아카시아의 도시.
우리는 사막 유럽인들이었어. 존 벨이 1971년 길프를 발견했지. 그리고는 케멀 엘 딘이. 그 다음에는 바그놀드, 그는 남쪽으로 모래 바다까지 갔어. 매독스, 사막 조사단인 월폴, 와스피 베이 대사, 사진사 캐스피리어스, 지질학자 카다르 박사, 그리고 버만. 그리고 길프 케비-리비아 사막에 펼쳐진 그 거대한 고원, 매독스가 즐겨 말한대로 스위스만한 크기의-는 우리의 심장이었소. 동서로 험하고 가파른 단층애와 북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진 고원. 그것은 나일의 서쪽으로 6.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사막에 우뚝 솟아 있었지.
초기 이집트인들은 오아시스 마을의 서쪽에는 물이 없다고 여겼어. 거기에서 세계가 끝나는 거지. 내륙에는 물이 없소. 허나 사막의 텅 빈 공허 속에서는 항상 잃어버린 역사에 둘러싸이게 된다구. 테부와 세누씨 부족들은 그 주위를 방랑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셈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지켰어. 사막 내륙 안에 비옥한 땅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 13세기 아랍 작가들은 제르주라를 이렇게 말했어.
'작은 새들의 오아시스' '아카시아의 도시.' [키타브 알 카누즈] ([숨겨진 보물의 책]의 원저명.옮긴이)에는 제르주라가 하얀 도시, '비둘기처럼 하얀 '도시로 묘사되어 있지.
리비아 사막의 지도를 보면 이름들이 보일 거야. 1925년의 케멀 엘딘, 거의 단신으로 최초의 위대한 근대 원정탐험을 단행한 사람이지. 1930~1932년에 바그놀드. 1931~1937년 알마시, 매독스, 북회귀선 바로 북쪽.
우리는 전쟁에 휘말려 있는 나라의 작은 손아귀에서 지도를 만들고 재탐사했어. 다크라와 쿠프라가 무슨 술집이나 카페인 양 우리는 그런 곳에서 모였지. 오아시스회-바그놀드는 그렇게 불렀어. 우린 서로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약점을 알았소. 우린 바그놀드가 모래언덕에 관해 기록하는 모든 방식을 너그럽게 봐줬지. "홈과 주름진 모래가 개 입천장의 우묵한 곳을 닮았다." 그게 바로 진짜 바그놀드였어. 캐묻기 좋아하는 손을 개의 입 속에 집어넣는 사내.
1930년. 자그버브에서 남으로 즈와야와 마야브라 부족의 거주지 안에 있는 사막으로의 첫 여행. 엘타이까지 7일 간의 여행이었지. 매독스와 버만, 다른 4명. 낙타 몇 마리와 말 한 마리, 그리고 개 한 마리. 그들은 "모래폭풍 속에 여행을 떠나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오래된 농담을 하며 우리를 배웅해줬지.
첫날 밤 우리는 32킬로미터 넘쪽 지점에서 야영을 했어. 다음 날 아침 깨어나 5시에 텐트 밖으로 나왔지. 잠자기에는 너무 추웠거든.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앉아 있었어. 우린 따뜻한 차를 돌려 마셨지. 먹이를 받은 낙타들은 반쯤 졸면서 대추야자 바위 옆에서 열매를 씹었어. 우린 아침을 먹고 나서 차 세 잔을 더 마셨지.
몇 시간 후, 우린 어디서 왔는지 그 맑은 아침을 갑작스레 강타해온 모래폭풍 속에 휩싸였어. 책을 집어주게...... 여기, 하사네인 베이가 그런 폭풍에 대해 멋진 설명을 해놓은 것이 있어.
"그것은 마치 지표 밑에 증기기관이 있어. 수천 개의 구멍에서 증기의 작은 알갱이들이 뿜어나오는 것 같다. 모래가 작은 용솟음과 소용돌이로 튄다. 바람이 드세짐에 따라 소등이 1인치씩 1인치씩 솟아 오른다. 사막 표면 전체가 마치 밑에서부터 밀어올리는 어떤 힘에 굴복하여 일어서는 것 같다. 굵은 모래가 종아리, 무릎, 허벅지를 때린다. 모래 가루가 몸으로 기어올라 얼굴을 때리고 머리 뒤로 날아갈 때까지 솟구친다. 하늘은 닫혔다. 아주 가까이 있는 물체 이외에는 모든 것이 시야에서 뿌옇게 흐려지고 우주를 가득 채운다."
우린 계속 움직여야 어. 고정되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덮는 모래가 우리 몸도 묻어버릴지 몰랐으니까. 그러면 영원히 길을 잃게 되지. 모래폭풍은 다섯 시간이나 지속되거든. 나중에 혹시 트럭을 타게 된다 하더라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차를 계속 몰아야 할 거야. 최악의 공포는 밤에 찾아왔지. 한 번은 쿠프라 북쪽에서 한밤중에 폭풍을 만났어. 새벽 3시, 질풍이 불어와 묶어둔 텐트를 휩쓸어 버렸어. 우리는 텐트와 함께 굴러서 배가 물에 잠기듯 모래 속에 파묻혔어. 낙타를 모는 친구가 와서 꺼내줄 때까지 가라앉으면서 질식할 정도로 숨이 막혔지.
우리는 9월 동안 세 차례의 푹풍을 만났어. 생필품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작은 사막 마을을 놓쳤지. 말이 사라지고, 낙타 세 마리가 죽었어. 마지막 이틀 동안에는 식량도 떨어지고 차밖에 없었어. 다른 세계와의 마지막 끈은 불에 볶은 진한 차 단지와 긴 숟가락, 그리고 아침의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해 다가온 유리잔 소리뿐이었지. 세 번째 밤 이후로 우리는 말하기를 포기했어. 오로지 중요한 것은 아주 적은 양의 갈색 액체뿐이었다구.
사막 마을 엘타이에 들어간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지. 나는 시장이 서는 광장, 시계 종소리가 울리는 길을 따라 소총 탄약 노점, 이탈리아식 토마토 소스외 벵가지에서 온 통조림 행상, 이집트에서 온 칼리코, 타조 꼬리장식, 거리의 치과의사들, 책 장수 등 등을 지나 기압계의 거리로 걸어 들어갔어. 우린 여전히 벙어리였고, 그저 각자의 길을 헤치며 나갔어. 우린 새로운 세계를 서서히 받아들였지. 물에 빠졌다가 깨어날 때와 같이. 엘타이의 중앙광장에 앉아 양고기, 밥, 베더위 케이크를 먹고 아몬드 조각이 들어 있는 우유를 마셨지. 그나마도 호박과 박하향이 든 차를 세 잔이나 마시는 종교의식을 거친 후 였어.
1931년 어느 날, 나는 베두인족 캐러밴에 합류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또하나 끼어 있단 말을 들었어. 알고 보니 페네론-반즈였지. 난 그의 텐트로 찾아갔어. 그는 나무 화석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짧은 탐사를 나가고 없었지. 텐트 안을 둘러보았더니 지도 다발,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가족사진 등이 눈에 띄었지. 텐트를 나오다가 문득 가죽 벽에 높이 붙어 있는 거울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뭔가 개처럼 작은 덩어리가 담요 속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비쳤어. '드옐라바'를 들쳐보니 작은 아랍 소녀 하나가 묶인 채 자고 있었어.
1932년이 됐을 때 바그놀드는 일을 끝냈어. 매독스와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지. 캄비시스의 잃어버린 군대를 찾아서. 제르주라를 찾아서. 1932년과 1933년과 1934년. 몇 개월씩 서로 보지 못하고 그저 베두인족과 우리, '40일의 길'을 교차하면서. 내 평생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막 부족들의 강이 흘렀지. 우린 독일인, 영국인, 헝가리인, 아프리카인이었어-모두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지. 차츰 우리는 국적이 없어졌어. 나는 국가들을 혐오하게 되었지. 우리는 민족-국가에 의해 변형되거든. 매독스는 국가 때문에 죽었지.
사막을 뺏거나 소유할 수는 없어. 그것은 바람에 날리는 한 장의 천이야. 돌로 묶어놓을 수 없는. 캔터베리가 존재하기 오래 전부터, 전쟁과 조약이 유럽과 동양을 꿰매놓기 오래 전부터 100가지의 다른 이름이 주어진 것이지. 사막의 캐러밴, 그들의 낯설고 산만한 축제와 문화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어. 타다 남은 찌꺼기조차. 우리는 곧 멀리 유럽식 가정과 아이들을 가진 사람들한테까지도 우리가 속한 조국이라는 옷을 벗기고 싶었어. 그것은 신앙의 장소였지. 우린 풍경 속으로 사라졌어. 불, 그리고 모래. 우린 오아시스의 항구를 떠났어. 물이 들어와서 건드리던 곳들.....아인, 바르, 와디, 포가라, 코타라, 샤더프.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들 속에 내 이름을 넣고 싶지 않았어. 가문의 이름을 지워라! 국가를 지워라! 난 그런 것들을 사막에서 배웠지.
그러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 건조한 수로에, 자갈 깔린 작은 산에, 수단의 북서쪽, 시레나이카 남쪽에 있는 그 땅덩어리에서의 작은 허영. 페네론 반즈는 나무 화석을 발견하면 제 이름을 달고 싶어했지. 그는 심지어 어떤 부족에게 자기 이름 붙이려고 1년 동안이나 흥정하기도 했다구. 결국 바우찬족이 그를 앞질러서 어떤 모래언덕에 그의 이름을 붙여줬지. 허나 난 내 이름과 내가 떠나온 곳을 지우고 싶었어. 사막에서 10년을 보낸 뒤 전쟁이 터졌을 때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나라에도 속하지 않고 국경을 슬쩍 넘을 수 있었지.
1933년인가 1934년. 연도를 잊어버렸어. 매독스, 캐스퍼리어스, 버만, 나, 수단인 운전사 둘, 그리고 요리사 하나. 그 즈음 우린 A형 포드 차를 타고 여행했어. 박스형 모양에 공기 바퀴라고 알려진 큰 풍선 타이어를 최초로 달았던 차였지. 모래에서는 잘 달리지만, 돌밭이나 쪼개진 바위를 견딜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어.
우리는 3월 22일 카르가를 떠났어. 윌리엄슨이 1838년 기록했듯이 버만과 나는 세 개의 와디가 제르주라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론화시킨 때였지.
길프케버의 남서쪽에 고립된 화강암 단층 지괴가 있어. 평지에서 솟아오른 거지-게벨 아르카누, 게벨 유웨이나트, 그리고 게벨 키쑤. 그 셋은 서로 24킬로씩 떨어져 있어. 게벨 아르카누의 샘물은 쓰고 비상시가 아니면 마시기 어렵지만, 좁은 골짜기 몇 군데에는 좋은 물이 있지. 윌리엄슨은 와디 세 개가 제르주라를 형성한다고 말했어. 허나 그것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전설로 취급됐지. 그렇지만 그 분화구처럼 생긴 언덕에서 비의 오아시스를 하나라도 찾으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거야. 캄비시스와 그의 군대가 어떻게 그런 사막을 건너려 했는가. 대전쟁 동안 세누씨족, 그리고 검은 자이언트 침략자들이 물이나 목초가 전혀 없다고 알려진 사막을 어떻게 건넜는가 따위. 이곳은 몇 세기 동안 수천 개의 작은 길과 도로를 가진 문명화된 세계였어.
우린 아부발라스에서 고대 그리스 항아리 모양의 단지를 찾게되지. 헤로도투스가 언급한 바 있는. 그런 단지들어었어.
버만과 나는 엘요프 요새에서 뱀같이 신비로운 노인과 이야기를 나눴지. 한때 대 세누씨 족장의 서재였던 돌로 된 홀에서. 늙은 테부, 직업은 캐러밴 안내원인데, 아랍어 억양으로 말하는 사람이었어. 나중에 버만은 헤로도투스를 인용해서 '박쥐 울음소리 같다'고 했지. 우린 그 노인과 밤낮으로 꼬박 이야기했지만, 그는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았어. 세누씨의 강령,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직도 외부인에게 사막의 비밀을 밝히지 않는거지.
와디엘메릭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종류의 새를 보았어.
5월 5일에 나는 바위 절벽을 기어올라 새로운 방향으로 유웨이나트 고원에 닿게 되지. 넓은 와디 가득히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어.
한때 지도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여행한 곳의 이름을 붙일 때 제 이름 대신 애인의 이름을 쓴 적이 있어. 사막 캐러밴에서 목욕을 하다가 들켜 모슬린 천을 들고 몸의 앞부분을 가린 여자. 비둘기처럼 흰 어깨를 보고 시인이 오아시스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준. 어떤 노아랍 시인의 여자. 가죽 물통이 그녀의 몸에 물을 뿌리고, 그녀는 천으로 몸을 감싸지. 그리고 나이 든 작가가 그녀로부터 돌아서서 제르주라라고 기록하는거야.
그래서 사막에 있는 사람은 이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지. 발견된 샘 속으로 들어가듯, 그 그늘진 시원함 속에서 그런 고립된 세계를 결코 벗어나고 싶지 않게 되듯. 나의 큰 욕망은 그 아카시아 속에서 머무는 것이었어. 내가 걸어간 곳은 전에 누구도 지나지 않은 곳이 아니라, 몇 세기에 걸쳐 갑작스레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주민이 살았던 곳이었어. 14세기 군대, 테부 캐러밴, 1915년의 세누씨 침략자. 그리고 그 밖의 시간에는 그 곳에 아무것도 없었지. 비가 내리지 않을 대는 아카시아가 시들고, 와디가 마르고...... 50년, 또는 1백 년 후에 갑자기 물이 다시 나타날때까지 그랬어. 역사 속의 풍문과 전설처럼 느닷없는 등장과 퇴장.
사막에서 가장 사랑받는 물은 연인의 이름처럼 손 안에서 푸른색으로 보이다가 목젓을 타고 흐르지. 부재를 삼키게 되는 거요. 카이로에서 한 여자가 하얀 몸뚱어리를 구부리고 침대에서 빠져나와 알몸으로 빗물을 받으려고 폭우를 향해 창문 밖으로 기대서는군.
해나는 그가 떠내려가듯 생각 속에 빠져드는 것을 느끼고 몸을 앞으로 굽혀 말없이 바라본다. 누구예요, 그 여자가?
지구의 끝은 식민주의자들이 영향력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밀고 나가는 지도 속의 점이 결코 아냐. 한쪽에는 하인들과 노예들과 힘의 조수와 지리학회의 서신왕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거대한 강은 건너는 백인 남자의 첫 발자국. 영원히 그곳에 있어 온 산을 보는 첫 장면(백인의 눈으로 보는)이 있지.
젊을 때 우리는 거울을 보지 않지. 늙어서 우리들의 이름, 우리들의 전설, 우리들의 삶이 미래에 미치는 의미를 우려할 때에 거울을 보지. 우리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이름에 스스로 도취되지. 최초의 목격자, 가장 강한 군대, 제일 영악한 장사꾼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 나르시스가 조각된 자신의 상을 원하는 것은 늙었을 때요.
허나 우리는 우리의 삶이 과거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하는 데 관심이 있었어. 우리는 과거로 배를 타고 들어갔어. 우린 젊었지. 권력과 엄청난 재력은 일시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어. 우린 모두 헤로도투스와 함께 잤지. "예전에 거대하던 도시들은 이제 작아졌다. 그리고 우리 세대의 위대한 인물들은 그 전에 작았던 사람뜰이다......인간의 행운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1936년에 제프리 클리프톤이란 젊은 남자가 옥스포드에서 한 친구를 만나 우리가 하는 일을 전해들었지. 그가 나에게 연락을 했어. 그리고 그 다음날 결혼을 하고, 2주 후 부인과 함께 카이로에 왔지.
그 부부가 우리 세계로 들어온 거야 - 우리 넷의 세계, 케멀엘 딘 왕자, 벨, 알마시, 그리고 매독스 그때까지 우리의 화제는 길프 케버였어. 길프 어디엔가 제르주라가 자리하고 있지. 제르주라는 이름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아랍 기록에 나와. 그렇게 먼 시간으로 여행하려면 비행기가 필요한데, 젊은 클리프톤은 돈이 많고 비행기를 조종할 줄 알았으며 비행기를 갖고 있었지.
클리프톤은 유웨이나트 북쪽 엘요프에서 우리와 만났어. 그는 2인승 비행기에 앉아 있었고 우린 기지 캠프에서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조종석에서 일어나 플라스크에서 술을 따랐어. 그의 새 신부는 옆에 앉아 있었고.
"이곳을 비르메싸하 컨트리 클럽으로 명명함."
그가 큰소리로 말했어.
나는 그의 부인 얼굴에 펴져 있는 친근한 불안감과 가죽 헬멧을 벗었을 때 나타난 사자 같은 머리카락을 바라보았어.
그들은 젊었어. 꼭 우리의 자녀처럼 느껴졌지. 그들은 비행기에서 나와 우리와 악수했어.
그것이 1936년, 우리들 이야기의 시작......
그들은 모스의 날개에서 뛰어내렸어. 클리프톤은 플라스크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린 모두 뜨뜻한 술을 마셨지. 그는 의례를 위해 사는 사람이었어. 자기 비행기에 루피트 베어라는 이름을 붙였지. 그가 사막을 사랑했던 것 같지는 않아. 허나 우리의 단호한 명령이 주는 위압감으로부터 생겨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 자신을 맞추고 싶어했지. 유쾌한 학생이 도서관 내의 침묵을 존중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그가 부인을 데려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비교적 깍듯하게 대해주었던 것 같아. 그녀는 모래가 머리의 갈기에 쌓이는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지.
그 젊은 부부에게 우린 무엇이었나? 우리 중 몇몇은 모래언덕의 형성, 오아시스의 사라짐과 재출현, 사막의 잃어버린 문화 등에 관한 책을 썼지. 우린 사거나 팔 수 없고 외부세계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사물에만 관심을 가진 듯이 보였어. 부족들 가운데 저크 오아시스에서 낙타를 방목하던 아브드 엘 멜릭 이브라힘 엘 즈와야가 최초로 사진의 개념을 이해한 사람이니까.
클리프튼 부부는 거의 신혼여행의 막바지에 있었어. 난 그들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남겨두고 쿠프라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나머지 탐험대에게 숨겨왔던 내 이론들을 시험해봤지. 엘 조프의 기지 캠프로 돌아온 것은 사흘 뒤였어.
우리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았어. 클리프튼 부부, 매독스, 벨 그리고 나. 누군가 살짝 뒤로 몸을 젖히면 금세 어둠 속으로 모습이 사라졌지. 캐더린 클리프튼이 무언가 낭독하기 시작했고, 내 머리는 더 이상 캠프의 가느다란 불꽃 안에 있지 않았어.
그녀의 얼굴에는 고전적이 빛이 있었지. 그녀의 부모의 법조계에서 저명한 듯했어. 나는 한 여자가 우리에게 시를 읊어줄 때까지는 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지. 사막에서 그녀는 자신의 대학시절을 우리 속으로 끌어들여 별을 노래했어 - 아담이 정중한 은유법을 여자에게 부드럽게 가르쳐준 것처럼.
밤의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을지라도.
빛은 헛되지도. 상관하지도 않아, 사람이 없을지라도.
하늘 나라는 구경꾼을 원하고, 하느님을 찬미를 원하네.
수백만의 영혼을 존재들이 지상을 걷지.
깨어 있을 때도 잠들어 있을 때도 보이지 않네.
낮과 밤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업적에 대한,
이 모든 영원의 찬미 -
우린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메아리 울리는 가파른 언덕이나 덤불로부터
한밤중의 허공 속으로 퍼지는 천상의 소리를,
홀로 혹은 각기 다른 이들로부터 전해들은
위대하신 창조주를 노래하는......
그날 밤 나는 목소리를 사랑하게 되었지. 한 목소리만. 다른 어떤 것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어. 나는 일어서서 자리를 떴어.
그녀는 버드나무였어. 그녀가 겨울에는 어떨까, 내 나이가 되면? 난 여전히 그녀를 봐. 언제나, 아담의 눈으로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어색한 다리, 우리들 사이에서 불을 쑤시려고 몸을 구부리는 모슴, 팔꿈치를 위로 올려 수통을 들고 마시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지.
몇 개월 후 그녀는 나의 왈츠를 추었어. 카이로에서 다함께 춤출 때. 술이 약간 취했지만 그녀는 범할 수 없는 얼굴이었지. 지금까지도 그녀가 자신을 가장 많이 보여주었던 얼굴은 그때 그 얼굴이었던 것 같아. 우리가 둘 다 반쯤 취했고 연인이 아니었던 그때.
몇 년 동안 나는 그녀가 그런 표정으로 내게 무엇을 주었는지 밝히려고 애썼지. 경멸처럼 보였어. 그때 나한텐 그렇게 느껴졌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를 연구했던 거요. 그녀는 순진했고 나한테 있는 점에 놀랐었어. 나는 술집에서 늘 하던 대로 행동했지. 다만 그날은 같이 있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뿐. 나는 나만의 행동규범을 유지하던 사람이에요. 난 그녀가 나보다 젊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지.
그녀는 나를 연구했던 거요.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지. 나는 그녀의 석고상 같은 시선에서 한가닥 보기 싫은 시선을 집어내려고, 뭔가 그녀를 단념하게 할 만한 것을 찾아내려고 주시했어.
지도를 줘, 내가 도시를 만들어주지. 연필을 줘, 그럼 남부 카이로의 방을 그려주지. 벽에 있던 사막 차트를, 사막은 언제나 우리 속에 있었지. 잠에서 깨어나면 내 눈은 지중해 안의 오랜 정착지들을 보았어 - 가잘라, 토브룩,메르사마트루, 그 남쪽에 손으로 그려놓은 와디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우리가 침범해 들어간 영혼의 안식처,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잃고 싶었던 곳들. "내 임무는 길프케버를 공략한 몇몇 탐험을 간략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버만 박사가 나중에 사막에 관해 수천 년 전 존재했던 대로 말씀해주길......"
켄싱턴 고어에서 매독스가 다른 지리학자들에게 한 말이지. 허나 지리학회의 시간 중에는 별다른 기미를 찾을 수 없을 거야. 모든 작은 언덕과 모든 역사의 사건을 나열한 보고서에 우리의 방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
카이로의 수입 앵무새 거리에 가면 말을 거의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새들 때문에 시달리게 되지 것으로 장식된 길처럼 새들이 줄을 서서 재잘거리고 휘파람 소리를 내거든 나는 어느 부적이 어떤 실크로드나 낙타 길을 통해 새를 싣고 사막을 지나왔는지 알았어. 40일 여행. 새들이 노예의 손에 잡시거나 적도의 정원에서 꽃처럼 뽑혀 대나무 새장에 갇히면 매매를 위해 강으로 보내지지 새들은 중세기 결혼식장의 신부처럼 보이지.
우린 그 속에 서 있었어.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시를 보여주고 있었어.
그녀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지.
"내 생명을 드린다면 당신은 놓아보리겠죠. 그렇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V. 캐더린
캐더린
처음 그의 꿈을 꾸었을 때 그녀는 남편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침대 위에서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시트를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남편이 등에 손을 얹었다.
"악몽이야. 걱정 마."
"네."
"물을 가져다줄까?"
"네."
그녀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 누우려 하지 않았다.
꿈은 그 방에서 일어났다 - 그의 손이 그녀의 목을 (그녀는 이제 목을 만졌다.), 처음 몇 번 그를 만났을 때 느꼈던, 그의 분노가 그녀를 향해 있었다. 아니, 분노가 아니다. 결혼한 여자가 그들 속에 있다는 데 대한 짜증과 무관심. 그들은 동물처럼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그가 그녀의 목을 거세게 잡아젖혔다. 그녀는 절정을 순간에서 숨을 제대로 쉴수 없었다.
남편이 물잔을 접시에 받쳐 가져다주었지만 그녀는 팔을 들수 없었다. 양팔이 축 늘어진 채로 마냥 떨고 있엇다. 그는 물잔을 어색하게 그녀의 입술에 댔다. 소독된 물을 들이켜는 그녀의 턱으로 물이 흘러내려 베에 떨어졌다. 다시 누웠을 때 그녀는 무엇으로 목격했는지 생각할 짬도 없이 곧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이 첫 번째 시작이었다. 다음날 어느 때인가 그녀는 꿈이 기억났지만, 마침 바빳고 별로 담아두고 싶지 않아서 그저 혼란스러웠던 밤중에 생긴 우연한 충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흘려버렸다.
1년 뒤 또다른 더욱 위험하면서도 평화로운 꿈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꿈들을 처음 꾸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목에 닿는 손길을 느끼며 그들 사이의 조용한 분위기가 폭력적으로 흔들리기를 기다렸다.
유혹하는 음식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 누구인가? 당신이 결코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을 향해서 한번의 꿈. 그리고 나중에 또다른 꿈의 연속.
훗날 그는 그것이 가까움이라고 말했다. 사막에서의 가까움. 여기서는 그렇소, 그가 말했다. 그는 그 말을 사랑했다. - 물의 가까움, 6시간 동안 모래 바다를 달리는 차 안에서 둘 또는 세 몸뚱어리의 가까움. 트럭의 기어 상자 옆에 있는 그녀의 땀에 젖은 무릎, 차가 덜컹일 때마다 솟아오르는 무릎과 무릎의 부딪힘. 사막에서는 사방을 봐야 하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안무를 이론화하기 위해서.
그가 그런 식으로 말할 때 그녀는 그를 혐오했다. 눈빛은 여전히 예의를 지키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의 뺨을 때리고 싶어했다. 그녀는 늘 그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감정마저도 성적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는 모든 관계를 틀에 끼운다. 당신은 가까움 또는 거리감에 빠져 있소. 헤로도투스의 역사가 그에게 모든 사회를 명백히 해주는 것과 같이 그는 사진이 수년 전 송두리째 떠나온 세계의 관습에 익숙하다고 생각했고, 그 후로 절반쯤 만들어진 사막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에 안간힘을 썼다.
일행이 카이로 공항에서 장비를 차로 옮긴 후 그녀의 남편은 다음날 아침 세 남자가 떠나기 전에 모스의 연료선을 알아보기 위해 그곳에 남았다. 매독스는 전보를 치려고 어느 대사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술에 취하려고 마을로 갔다. 여느 때처럼 보내는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밤 맨먼저 마담 바딘의 오페라 키지노, 그리고 나중에 파샤 호텔 뒷거리로 사라진다. 그는 땅거미가 지기 전에 짐을 꾸려놓는다. 그래야만 다음날 아침 술이 덜 깬 상태에서도 트럭에 올라탈 수 있다.
그는 그녀를 태우고 마을로 차를 몰았다. 공기가 습하고 교통이 혼잡한 시간이었다.
"너무 덥군요. 맥주를 마셔야겠어요. 한잔 하시겠어요?"
"아뇨,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정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해하십시오."
"괜찮아요.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돌아오면 같이 한잔 합시다."
"3주 후에, 맞죠?"
"대략."
"저도 갔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불라크 다리를 건너자 교통은 더욱 복잡해졌다. 거리를 메우고 있는 수많은 수레와 행인들 그는 나일을 끼고 남쪽으로 들아 바라크들의 바로 위 그녀가 묵고 있는 세미라미스 호텔로 향했다.
"이번에는 제르주라를 찾으시겠죠, 그렇죠?"
이번에는 찾을 겁니다."
그는 평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차를 모는 동안 그는 그녀를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한곳에 5분 이상 멈춰서 있을 때조차.
호텔에서 그는 지나치리만큼 공손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할 때 그녀는 그가 더 못마땅했다. 그들 모두 이 꾸민 태도가 정중하고 공손한 것인 가장해야 했다. 그녀는 옷 입은 개를 연상했다. 상관 말자. 만약 남편이 그와 함께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짐을 뒤에서 꺼내 로비까지 들고 갈 참이었다.
"저어, 제가 가져가겠어요."
차에서 내릴 때 그녀의 셔츠는 등이 젖어 있었다.
수위가 짐을 들어주려 했다. 그때 그가 "아뇨, 이분이 가져가실 겁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억지에 다시 화가 났다. 수위가 물러 갔다. 그녀는 그를 향해 들아섰다. 그가 가방을 넘겨주느라 그녀와 마주보게 되었다. 그녀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어색하게 무거운 가방을 들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행운을 빌어요."
"네 제가 다들 보살피겠습니다. 모두 안전할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늘에 있었고 그는 마치 따가운 햇빛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볕 족에 섰다.
그리고는 그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좀더 가까이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가 포옹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그는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어 그녀의 드러난 목을 살며시 끌어당겼다. 그녀의 살갗이 그의 축축하고 긴 팔뚝 전체에 닿았다.
"안녕"
그는 트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제 그의 땀내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면도칼이 남긴 피같이 그의 팔 움직임이 면도칼을 흉내낸것처럼.
그녀는 쿠션을 집어 방패인 양 자신의 무릎을 막는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 일을 숨기지 않겠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준다면 그 일을 숨기지 않겠어요."
그녀는 쿠션을 심장 위에 얹고 자신에게서 빠져나가 버린 그 부분을 질식기킬 듯 누른다.
"당신은 무엇을 가장 혐오하지?"
그가 묻는다.
"거짓말. 당신은?"
"소유권"
그가 말한다.
"날 떠날 때는 날 잊도록 해."
그녀의 주먹이 그에게로 날아가 눈 바로 아래 광대뼈를 강타한다. 그녀는 옷을 입고 떠난다.
그는 날마다 집에 돌아와 시커먼 멍을 거울에 비춰본다. 그는 멍보다 오히려 얼굴 모습이 궁금하게 여기게 되었다. 전에는 한번도 의식하지 못한 긴 눈썹과 빳빳한 머리카락에 생기기 시작한 흰머리 그는 몇 년 동안 그렇게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눈썹은 정말 길었다.
어떤 것도 그를 그녀에게서 떼어놓지 못한다.
그는 매독스와 함께 사막에 있거나 버만과 함께 아랍 도서관에 있지 않을 때는 그로피 공원에서 그녀를 만난다. 물을 많이 준 자두나무 정원 옆에서 그녀는 이곳에서 더없이 행복하다. 그녀는 수분을 그리워하는 여인이다. 언제나 키 작은 푸른 관목과 양치풀을 좋아하는 여자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푸르름이 카니발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들은 그로피 공원에서 돌아 나와 구 시가지, 남 카이로, 유럽인들이 잘 가지않는 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의 집에는 어느 방에나 지도가 벽을 덮고 있다. 방을 꾸미려고 애는 써봤지만 아무래도 거지 캠프 분위기가 가시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품에 누워 선풍기의 바람과 그림자를 쐰다. 아침 내내 그와 버만은 고고할 박물관에서 아랍 서적과 유럽 역사서를 나란히 놓고, 두 세계의 메아리, 일치, 이름의 변형 들을 맞추는 일에 열중했다. 헤로도투스를 지나, 사막 캐러밴에서 목욕하는 여자의 이름이 붙은 제르주라라는 이름이 생겨난 키타브 알 카누즈까지 그리고 그곳에서도 선풍기 그림자의 느린 깜박임 그리고 이곳에서도 유년기의 역사, 상처, 키스 예절 등의 메아리와 은밀한 교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당신 연인이 되죠? 그는 미칠 거예요."
상처의 나열.
멍자국의 갖가지 빛깔 - 밝은 팥빛에서부터 갈색까지 그녀가 방으로 가지고 들어온 접시, 공중으로 내팽개쳐진 음식물이 그의 머리에 떨어져내려 밀짚 같은 머리칼 사이로 피가 솟구쳐 오르는 그의 어깻죽지에 꽂힌 포크, 의사가 보고 여우 이빨 때문이라고 생각한 자국을 남기는.
그는 그녀를 안기 전에 먼저 주위에 집어던질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둘러본다. 멍자국이나 붕대 감은 손으로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녀를 만나면 택시가 급정거할 때 열린 창문에 부딪쳤다고 설명한다. 또는 부푼 상처를 요오드로 덮은 팔뚝 매독스는 그가 갑자기 사고뭉치가 된 점을 걱정한다. 그녀는 그의 설명이 시시하다고 코웃음친다. 나이 탓이거나, 안경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지, 그녀의 남편이 매독스를 팔꿈치를 쿡 치면서 말한다. "어쩌면 여자 때문이 아닐까요. 그녀가 말한다. 봐요, 여자 손톱이나 이빨자국 아녜요?"
그가 말한다. "전갈이었습니다." 앤드록토너스 오스트랄리스.
엽서 한장 깨끗한 필체가 사각형을 메운다.
반나절 동안 당신을 만지지 않는 건 견딜 수 없어.
그건 문제가 아니겠지,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건 도덕이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참을 수 있느냐 하는 거니까.
날짜도 없고, 이름도 적혀 있지 않다.
때때로 그녀가 그와 함께 밤을 보낼 수 있을 때 그들은 동이트기 전 기도를 시작하는 도시의 세 회교사원 첨탑에서 울리는 소리에 깨어난다. 그는 남부 카이로와 그녀의 집 사이에 있는 인디고 시장을 지나 그녀와 함께 걷는다. 아름다운 신앙의 노래가 화살처럼 공기 속에 걷는 두 사람의 소문을 퍼트리듯 목탄과 삼 냄새가 벌써 대기에 가득 찬다. 거룩한 도시 속의 죄인들
그는 식당 테이블 위의 접시와 유리잔에 팔을 비빈다. 그렇게 하면 그녀가 도시의 어디선가 고개를 들고 그 소음이 어디서 오는가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않을 때 사박 마을 들 사이에 있는 몇 킬로의 경도 속에서도 결코 외로움을 느껴보지 않은 그가 사막에 있는 사람은 손에 부재를 쥐고 그것이 물보다도 더 자신을 먹여주는 것임을 안다. 엘타이 근처에 그가 아는 나무가 한그루 있다. 심장을 잘라내면 그 자리에 풀을 양분을 담은 액체가 고인다. 매일 아침 사라진 심장의 양만큼 액체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1년 동안 무성하게 자라다가 무언가 부족해서 적어버린다.
그가 자기 방에서 창백한 지도에 둘러싸여 누워 있다. 그는 캐더린과 같이 있지 않다. 그의 굶주림은 모든 사회적 규범과 모든 예절을 불태워버리고 싶게 한다.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그녀의 생활이 그에게는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그는 오로지 그녀의 빼어난 아름다움과 표현의 극장을 원한다. 그는 원한다. 두 사람이 사이의 순간과 비밀스런 교류를 깊이의 최소한을 덮인 책의 두 페이지처럼 이질적인 친밀감을
그는 그녀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만일 그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는 그녀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녀가 자기 계급의 울타리 안에 있고 그가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주변에 있을 때 그는 자신한테도 우습지 않은 농담을 한다. 어울리지 않는 광기로 그는 탐험의 역사를 공격한다. 불행을 느낄 때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 습관은 아직 매독스만이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녀는 모두에게 미소짓는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을 향해서 꽃꽂이를 칭찬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비인격적인 사물에 관심보인다. 그녀는 그의 행동을 잘못 해석해서 그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여기고 자신을 보호하는 벽을 두 배의 크기로 쌓는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녀에게 있는 그 벽을 견딜 수 없다. 당신도 당신의 벽을 세웠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래서 나도 내 벽을 가졌어요. 그녀는 그를 참을 수 없게 하는 아름다움 속에서도 화려하게 빛나며 그런 말을 한다. 아름다운 의상, 그녀를 보고 미소짓는 누구에게나 웃음을 주는 창백한 얼굴, 그의 냉랭한 농담에 불확실한 실소를 던지는 그녀 그는 모두들 아는 탐험에서 있었던 이모저모에 관해 섬뜩한 말들을 계속 늘어놓는다.
그로피의 바 로비에서 인사하는 그를 보고 그녀가 돌아서버리는 순간 그는 실성한다. 그가 그녀를 계속 안고 있을 수 있다면, 또는 그녀에게 안겨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가 그녀를 잃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떻게든 그들이 그 상황을 벗어나 서로 감싸안을 수 있다면 벽을 쌓지 않고
카이로에 있는 그의 방에 햇빛이 쏟아진다. 그의 손이 헤로도투스 일지 위에, 몸의 나머지 부분의 모든 긴장 위에 축 늘어졌다. 펜이 뼈 없는 물체처럼 흐느적거리고 글씨가 비뚤어진다. 햇빛이란 단어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가 쓴 것은 사랑이다.
아파트 안에는 오직 강과 그 너머 사막에서 오는 빛뿐이다. 빛이 그녀의 목, 그녀의 발, 그가 사랑하는 오른팔의 우두자국 위에 떨어진다. 그녀는 벗은 몸을 껴안고 침대에 앉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솟는 땀을 따라 손바닥을 펼친다. 이것은 내 어깨다, 그는 생각한다.
이 여자의 남편 것이 아니다, 나의 어깨다. 연인으로서 그들은 몸의 구석구석을 서로 나눴다. 이렇게 강변에 있는 이 방에서.
그들이 함께 보낸 몇 시간 사이에 방은 이 정도로 어두워졌다. 강과 사막 빛만 미가 내리는 드문 충격이 있을 때만 그들은 창문으로 가서 팔을 뻗어 길게 내밀고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그 속에서 씻는다. 짧은 쏟아짐을 향한 외침들로 거리가 가득 찬다.
"우린 다시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만날 수 없어요."
"알고 있소."
그가 말한다.
그녀가 헤어져야 한다고 고집하는 밤
그녀는 자신 속에, 끔찍한 양심의 갑옷 속에 싸여 앉아 있다. 그는 그것을 뚫지 못한다. 다만 그의 몸이 그녀 가까이에 있을 뿐이다.
"절대로 다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
"그가 미칠 것 같아요. 이해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를 끌어당겨 안고 싶은 충동을 버리면서 한 시간 후 그들은 건조한 밤 속으로 걷는다. '모두를 위한 음악' 극장에서 더위 때문에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멀리 축음기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극장 문을 닫기 전에 헤어져야 한다. 그곳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
그들은 '모든 성인의 성당' 근처에 있는 식물원에 있다. 그녀는 그의 눈물 한방울을 보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핥아서 입 안에 담는다. 그가 그녀를 위해 요리하다가 손을 베었을 때 피를 빨았던 것처럼 피 눈물 그는 몸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 느낌이다. 연기를 담고 있는 느낌이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미래의 욕망과 결핍 그녀의 솔직성이 상처와 같고, 아직 젊음이 시들지 않은 이 여자에게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면을 바꿀 수 없다. 타협하지 않는 점, 그녀가 사랑하는 시의 로맨스가 아직도 현실의 세계 속에서 편안히 자리하는면.
그녀가 고집하는 밤 9월 28일 나무의 빗방울은 벌써 더운 달빛에 발라버렸다. 그에게 눈물처럼 떨어져줄 시원한 물방울 하나 없다. 그로피 공원에서의 그 이별 그는 길 건너 높은 사각형 불빛 속에 있는 집에 그녀의 남편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그들 위로 여행자의 종려나무들이, 손목을 길게 뻗으며 높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본다. 그녀가 그의 연인이었을 때 머리와 머리칼이 그의 위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 키스는 없다. 한번의 포옹뿐 그는 그녀에게 떨어져 돌아서 걷다가 뒤돌아본다. 그녀가 아직 거기 있다. 그는 그 앞으로 서너 발자국 되돌아온다. 강조하듯 손가락을 들고서.
"당신이 꼭 알아줬으면 해. 아직도 당신이 그립지 않아."
웃어 보이려는 그의 얼굴이 비참해 보인다. 그녀의 머리가 그에게서 옆으로 넘어지면서 문기둥에 부딪친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아팠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각자 자기 자신에게로 이미 갈라섰다. 그녀의 고집으로 벽이 섰다. 그녀의 부딪침, 그녀의 고통은 사고적, 의도적이다. 그녀의 손이 관자놀이 가까이에 있다.
"그리울 거예요." 그녀가 말한다.
예전에 그녀가 속삭였다. 우리의 삶에서 이 순간부터 우린 영혼을 찾거나 잃어버릴 거예요.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길까? 사랑에 빠지고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것.
난 그녀의 품안에 있었지. 난 그녀의 우두자국을 보려고 셔츠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렸어. 난 이걸 사랑해, 내가 말했어. 그녀 팔의 이 창백한 표상. 주사바늘이 비비적거리며 그녀의 안으로 혈청을 밀어넣고는 피부에서 떨어져 빠져나오는 것이 보여. 오래 전에. 그녀가 아홉 살이었을 때 학교 체육관에서.
VI. 묻어둔 비행기
그는 눈을 번뜩인다. 눈길이 긴 침대를 죽 훑어 내려가면 그 끝에는 해나가 있다. 그녀는 그를 목욕시키고 나서 앰풀 끝을 딴 뒤 모르핀을 들고 그에게로 돌아선다. 초상. 침대. 그는 모르핀의 배를 탄다. 모르핀이 그의 내부로 쏟아져 들어와 시간과 지형을 꿰뚫는다. 지도가 세계를 2차원의 종이쪽지에 축소시켜 놓듯이.
카이로의 긴 저녁. 밤하늘의 바다, 늘어선 매들은 황혼에서 풀려날 때까지 사막의 마지막 빛깔을 향해 부채꼴을 그리지. 던져진 한움큼의 씨앗 같은 작업의 조화.
1936년 그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었어. 휘파람 한 번에 따라오는 개나 새에서부터 복잡한 시장에서 여자를 잃어버리지 않기위해 새끼손가락에 거는 끔찍한 가죽끈까지.
카이로의 북동부에는 종교 연구생들의 광장이 있고 그 너머에는 칸엘 카릴리 시장이 있지. 우리는 좁은 거리 위에서 물결 모양의 양철지붕에 앉은 고양이가 3미터 가량 아래로 길과 노점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내려다보았어요. 그 모든 것 위가 우리 방이었지. 유리창은 첨탑, 펠리커 범선, 고양이, 엄청난 소음 등을 향해 나 있었어. 그녀는 내게 어린 시절의 정원 이야기를 해주었지. 잠 못 이룰 때면 내게 어머니의 정원을 그려주었어. 한마디 한마디씩, 화단 하나하나, 물고기 연못 위의 12월 얼음, 장미 울타리의 삐걱거림. 그녀는 내 손목에서 혈관의 합류점을 쥐고 자기 목의 오목한 데로 가져갔지.
1937년 3월, 유웨이나트. 매독스는 산소 부족으로 신경질이 나있다. 해발 457미터, 그는 이 정도면 최소한의 높이인데도 불편해한다. 그는 결국 사막인이다. 가족이 사는 마을인 마르스톤, 마그나, 소머셋을 떠나, 보통 수준의 건조함뿐 아니라 해면 높이에 근접하려고 모든 풍습과 습관을 바꿨다.
"매독스, 여자 목에서 움푹 파인 부분을 뭐라고 부르지? 앞쪽에. 여기. 뭐야, 공식적인 명칭이 있나? 엄지손가락 자국만한 크기의 구멍 말이야. "
매독스는 정오의 눈부심 속에서 잠시 나를 지켜본다.
"정신 차려. " 그가 중얼거린다.
"이야기 하나 해주지. " 카라바조가 해나에게 말한다. "알마시라는 헝가리인이 있었지. 전쟁 때 독일군 밑에서 일했고 아프리카 코프스에서 비행기도 좀 몰았는데, 아주 아까운 친구였어. 1930년대에는 대사막 탐험대의 일원이었지. 그는 모든 물구멍을 알고 있었지. 모든 방언을 알았고. 어디서 듣던 소리 같지 않나? 전쟁 사이에 그는 줄곧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탐험대에 끼었지. 그 중 하나가 제르주라 - 잃어버린 오아시스 - 를 찾는 거였어. 그러던 차에 전쟁이 터지자 그는 독일군에 합류했지. 1914년, 그는 스파이들의 길잡이로 사막을 거쳐 카이로까지 그들을 안내하는 일을 했어.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저 영국인 환자가 영국인이 아닌 것 같다는 거야. "
"그는 영국인에요. 아니라면 글로스터셔 주의 꽃말 이야기는 다 뭐예여?"
"바로 그거야. 모두 완벽한 배경이지. 이틀 전 우리가 개 이름을 지으려 했을 때, 기억나나?"
"네. "
"그가 어떤 이름들을 말했지?"
"그날 조금 이상했어요. "
"몹시 이상했지. 내가 특별히 많은 분량의 모르핀을 주었으니까. 그가 말한 이름들을 기억하나? 8개 정도를 말했지. 그중 다섯 개쯤은 분명히 농담이었어. 허나 세 가자, 키케로. 제르주라. 데릴라. "
"그래서요?"
" '키케로'는 스파이의 암호 이름이었어. 영국에서 그를 찾아냈지. 이중 간첩에서 나중에는 삼중 간첩. 그는 도망쳤어. '제르주라'는 더 복잡해. "
"제르주라는 나도 알아요. 그가 이야기했어요. 그는 또 정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
"허나 이제는 대부분 사막 이야기지. 영국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 그는 죽어가지. 넌 이층에 스파이를 도와주던 알마시를 데리고 있는 것 같아. "
그들은 세탁실의 낡은 대나무 옷바구니 위에 앉아 마주보고 있다. 카라바조가 어깨를 들썩한다. "가능한 일이야. "
"난 그가 영국인이라고 생각해요. " 그녀는 언제나 자신에 관해 생각하거나 숙고할 때면 뺨을 안으로 빨아들이면서 말한다.
"네가 그를 사랑하는 건 알지만, 그는 영국인이 아냐. 전쟁 초기에 난 카이로에서 일했어 - 트리폴리 엑시스 롬멜의 리베카 스파이 - . "
" '리베카 스파이' 라뇨?"
"1942년, 독일은 엘 알라메인 전투 전에 에플러라는 스파이를 카이로로 보냈지. 군대의 도향에 관한 정보를 롬멜한테 보낼 때, 대프니 두 모리어의 소설 '리베카'를 이용해서 그 책에 메시지를 넣어 보내는 방법을 썼어. 리베카는 영국 정보부에서 누구나 읽는 책이 되었지. 나도 읽었으니까. "
"아저씨가 책을 읽었어요?"
"고맙군. 롬멜의 특명을 받아 트리폴리에서 카이로까지 사막을 건너서 에플러를 카이로까지 안내한 자가 바로 라디스로스 데 알마시 백작이었지. 누구도 건널 수 없다고 알려진 사막을 건넌 거야.
전쟁 사이에 알마시는 영국인 친구들을 만났어. 대탐험대를. 허나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독일 편으로 갔지. 롬멜이 그에게 에플러를 사막을 통해 카이로로 데려 가라고 시킨 이유는 비행기나 낙하산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었어. 그는 그 친구와 함께 사막을 건너서 나일 강 삼각주까지 데려다 주었지. "
"자세하게 아시네요. "
"난 카이로에 주둔해 있었어. 우린 그들을 추적했지. 그는 지알로에서부터 여덟 명으로 구성된 무리를 이끌고 사막으로 들어갔지. 그들은 줄곧 사막 언덕에 빠진 트럭을 파내야 했어. 그는 그들을 유웨이나트로 데려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 화강암 대지에서 그들이 물을 찾고 동굴에서 잘 수 있도록. 거기가 중간 지점이었어. 그는 1930년대에 바위 그림이 그려진 동굴들을 발견했거든. 허나 그 지역에는 연합군이 깔려 있었어. 그는 그곳의 샘을 이용할 수 없었지. 그는 다시 모래 사막으로 내던져졌어. 그들은 연료통을 채우려고 영국 경유 쓰레기더미를 뒤졌지. 그들은 카르가 오아시스에서 영국 군복으로 갈아입고 자동차 번호판을 영국군 소속으로 바꿔 달았어. 공중에서 눈을 띄면 골짜리로 숨어들어 3일 동안이나 꼼짝 않고 있기도 했지. 모래 속에서 타 익어가면서.
카이로까지 3주가 걸렸어. 알마시는 에플러와 악수하고 떠났지. 그를 놓친 곳이 그곳이야. 그는 혼자서 사막으로 돌아갔거든. 사막을 다시 건너서 트리폴리로 돌아간 것 같아. 허나 그때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때야. 영국군은 결국 에플러를 잡아서 리베카 암호를 이용해 엘 알라메인에 관한 가짜 정보를 롬멜에게 보냈지. "
"난 그래도 못 믿겠어요. 데이비드. "
"카이로에서 에플러를 잡는 걸 도와준 자가 삼손이었어. "
"데릴라. "
"바로 그거야. "
"어쩌면 저이가 삼손일지도 모르죠. "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도 알마시와 비슷한 인물이었어. 사막을 사랑하는 사람. 레벤트(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 동부 지중해 연안제국. 옮긴이)에서 유년기를 보내서 베두인족을 알았지. 허나 알마시는 비행기를 몰았지. 우린 비행기와 함께 추락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불타고, 어떻게 하다가 피사의 영국군 손에 들어오게 된 사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알마시는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지. 카이로에서 그는 영국인 스파이로 통했어. "
그녀는 카라바조를 지켜보며 빨래통 위에 앉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를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느 편이었냐는 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카라바조가 말했다. "그 친구와 좀더 이야기하고 싶어. 모르핀을 더 주고서. 허심탄회하게, 우리 둘 다. 이해하나? 일이 어떻게 되는 지 두고 봐. 데릴라. 제르주라. 그에게 양을 늘려서 주사해야 해. "
"아뇨, 데이비드 아저씨는 너무 빠지세요. 그가 누구인가는 상관없어요. 전쟁은 끝났어요. "
"그러면 내가 하지. 브롬튼 칵테일을 만들겠어. 모르핀과 알코올. 런던의 브롬튼 병원에서 암환자를 위해 발명했지. 죽게 만들지는 않으니까 걱정 마. 몸 속으로 빨리 흡수돼. 우리가 가진 걸로 만들 수 있어. 그걸 한잔 주고, 그냥 모르핀을 또 놓아줘. "
그녀는 그가 빨래통에 앉아 맑은 눈으로 미소짓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카라바조는 수많은 모르핀 도둑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는 도착한 지 서너 시간 만에 그녀의 의료품을 모조리 뒤졌다. 작은 모르핀 튜브는 이제 그에게 원천이 되엇다.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치약 튜브 같다고 생각했다. 아주 이상해 보였다. 카라바조는 종일 주머니에 두세 개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혈관에 액체를 밀어넣었다. 언젠가 그녀는 우연히 그가 구토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빌라의 어두운 구석에서 약물 과용으로 벌벌 떨며 웅크린 채 고개를 들고서도 그녀를 거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금속 약품상자를 찾아 알 수 없는 힘으로 열어 뜯었다. 언젠가 공병이 철문에 손바닥이 찢겼을 때, 카라바조는 이빨로 병마개를 뜯어 모르핀을 입으로 빨았다가 킵이 미처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공병의 상처에다 내뱉었다. 킵은 화가 나서 그를 밀쳐버렸다.
"내버려둬요. 그는 내 환자예요. "
"다치게 하지 않을게. 모르핀과 알코올이 고통을 덜어줄 거야. "
(3cc의 브롬튼 칵테일. 오후 3시)
카라바조는 남자의 손에서 살그머니 책을 뺀다.
"사막에서 추락했을 때, 당신은 어디서 오는 길이었소?"
"길프 케버를 떠나는 길이었소. 그곳에 누구를 데리러 갔지. 1942년 8월 말에. "
"전쟁중에? 그때라면 모두 떠나지 않았소?"
"그렇소. 군대만 있었지. "
"길프 케버. "
"맞소. "
"그게 어디 있소?"
"키플링의 책을 주시오. 여기. "
'킴'의 속표지에는 소년과 성자가 간 길을 점선으로 나타낸 지도가 있었다. 인도의 일부분과 진한 그물눈이 쳐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산맥 부분에 카슈미르가 보였다.
그는 검은 손으로 누미 강을 따라 위도 23도 30분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곳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계속 움직여 서쪽으로 18센티미터, 종이 밖으로 나가 자신의 가슴으로 갈비뼈를 건드렸다.
"여기, 길프 케버, 북회귀선 바로 위. 이집트, 리비아 국경선에. "
1942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난 카이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 적진을 지나 옛 지도의 기억을 더듬어 경유와 물이 있는 전쟁 이전의 저장고를 찾아 유웨이나트를 향해 차를 몰았소. 혼자였기 때문에 수월했지. 길프 케버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트럭이 폭발하여 전복되자 나는 자동적으로 모래 속으로 굴렀소. 파편에 맞고 싶지 않았소. 사막에서는 항상 불을 두려워하게 되지.
트럭이 폭발했어. 틀림없이 폭발장치가 되어 있었을 거요. 베두인족 중에 스파이들이 있었어. 베두인족 캐러밴들은 줄곧 하나의 도시처럼 움직이면서 향료와 객실, 정부 고문관 등을 싣고 다녀. 당시에는 베두인족들 속에 언제든지 영국인이나 독일인들이 끼어 있었지.
난 트럭을 버리고 유웨이나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 그곳에 묻어둔 비행기가 있는 걸 알고 있었던 거요.
잠깐. 무슨 뜻이오, 묻어둔 비행기라니?
매독스가 일찍이 낡은 비행기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겨둔 것이었어 - '여분'이라고는 조종석의 바람막이 뿐이었지.사막 비행에서는 중요하다구. 사막에 있는 동안 그 친구가 나한테 비행법을 가르쳐주었지. 우리 둘은 밧줄에 묶인 물체 주위를 돌면서 바람 속에 어떻게 떠 있고 어떻게 방향을 바꾸는지 이론을 펼치곤 했어.
클리프튼의 비행기 - '루퍼트' - 가 우리 가운데로 날아왔을 때 매독스의 비행기는 타르펄린 방수포가 덮이고 유웨이나트의 북동쪽 외진 곳에 고정된 채 남겨졌어. 그 후 몇 년 동안 서서히 모래가 쌓였지요. 우리 중 누구도 그걸 다시 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소. 그것은 사막의 또하나의 희생물이었지. 우리는 서너 달 후에 북동쪽 골짜기를 지났는데 비행기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소. 그때 즈음 그보다 10년은 젊은 클리프튼의 비행기가 우리 이야기 속으로 날아들어온 거야.
그래서 당신은 그걸 향해 걸어갔소?
그렇소. 나흘 밤을 걸었지. 난 카이로에 그 남자를 남겨두고 사막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전쟁은 어디에나 있었지. 갑자기 '팀들'이 생겨났어. 버만 조, 바그놀드 조, 슬라틴 파샤 조. 여러 차례 서로 도와주던 사이였는데. 그때는 각자 캠프를 치고 갈라져 있었소.
난 유웨이나이트로 걸어갔어. 정오쯤 도착해서 고원의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지. 아인 두아라는 이름의 샘 위에.
"카라바조는 당신이 누군지 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해나가 말했다.
침대 속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영국인이 아니래요. 그는 한동안 카이로와 이탈리아에서 정보국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체포될 때까지. 우리 식구는 전쟁전에 카라바조와 알고 지냈어요. 그는 도둑이었어요. 그는 '사물의 움직임'을 믿었죠. 어떤 도둑들은 수집가예요. 당신이 경멸하는 어떤 탐험가들처럼, 여자를 상대로 하는 어떤 남자들, 또는 남자를 상대로 하는 어떤 여자들처럼. 하지만 카라바조는 그렇지 않았어요. 성공한 도둑이 되기엔 호기심이 너무 많고 인심도 후했어요. 훔친 물건의 절반은 집에 들여놓지도 않았어요. 그는 당신이 영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을 주위 깊게 듣지 않는 듯했다. 다만 그 먼 생각, 듀크 엘링턴이 '고독'을 연주할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인 두아라는 얕은 샘에 도착했다. 옷을 모조리 벗어 샘에 담그고 머리를 집어넣은 다음 가냘픈 몸을 푸른 물 속에 넣었다. 나흘 밤을 걷는 동안 사지가 지쳐버렸다. 그는 바위 위에 옷을 널어놓고 사막에서 벗어나 옥석이 있는 위쪽으로 기어올랐다. 1942년 현재 그곳은 광대한 싸움터였다. 그는 알몸으로 동굴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수년 전에 발견한 낯익은 벽화 속이었다. 기린. 소. 깃털 달린 관을 쓰고 팔을 쳐든 남자. 분명히 수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 고대 호수가 존재한다던 버만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그는 냉기 속으로,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그녀를 두고 떠났던 곳. 그녀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스스로 구석으로 가서 낙하산 장비로 몸을 단단히 감고 있는 모습. 그는 이전에 그녀에게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그 자신은 동굴 속에서 죽는 편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 그곳의 프라이버시와 함께, 돌에 걸린 헤엄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버만이 그에게 말하기를 아시아식 정원에서는 돌을 보고 물을 상상할 수 있다고, 잔잔한 물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바위의 견고함을 가졌음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원에서는 돌을 보고 물을 상상할 수 있다고, 잔잔한 물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바위의 견고함을 가졌음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원에서, 물기 속에서, '격자 울타리'나 '고슴도치' 같은 단어와 함께 자란 여성이었다. 사막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다만 사막의 고독 속에서 평온을 찾는 그를 이해하려는 바람에서 사막의 엄숙함을 사랑하게 됐을 뿐이다. 그녀는 항상 빗속에서 더 행복해했다. 습기 찬 욕실에서 졸음에 겨운 축축함 속에서, 그 카이로의 비 내리던 밤 그의 창을 타고 돌아 들어와 빗물을 간직하려고 젖은 몸으로 옷을 입으면서. 가문의 전통과 장중한 전례 그리고 오랫동안 암기해 온 시구를 사랑한 것처럼. 그녀는 이름 없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출신을 지워버린 데 반해 그녀는 조상과 연결되는, 맞닿을 수 있는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익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데 깜짝 놀랐다.
그녀는 중세기의 시체와 같은 자세로 등을 대고 누워 있었지.
나는 우리의 남부 카이로의 방에서 하듯 알몸으로 그녀에게 다가갔어.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어하면서,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하면서.
내가 한 일에 잘못이 뭐지?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모든 것을 용서하지 않소? 우리는 이기심, 욕망, 교활함을 용서하지. 우리가 그것의 동기인 이상. 팔이 부러진 여자나 열이 있는 여자와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어. 그녀는 언젠가 내 손에 난 상처의 피를 빤 적이 있었지. 월경 때 내가 그녀의 피를 맛보고 삼킨 것과 같이. 유럽에서 쓰는 단어 중에 어떤 것들은 결코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것이 있소. Felbomaly. 무덤의 땅거미.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함의 함축과 함께.
나는 그녀를 잠의 선반에서 두 팔로 들어올렸소. 거미집처럼 몸을 감고 있는 그녀. 나는 그 모든 것을 뜯어냈지.
그녀를 햇빛 속으로 안고 나갔어. 나는 옷을 입었어. 바위의 열로 인해 옷이 말라 바삭바삭했지.
나는 두 손을 모아 그녀가 숨 쉴 수 있는 안장을 만들었어. 모래에 닿는 순간 나는 그녀의 몸을 돌려 내 어깨에서 반대쪽을 향하도록 했지. 나는 그녀의 몸이 가벼움을 느꼈어. 나는 그렇게 그녀를 안는 데 익숙했지. 그녀는 내 방에서 인간 선풍기처럼 - 두 팔을 펼치고 불가사리처럼 손가락을 뻗친 채 내 주위를 돌았어요.
우리는 그런 채 비행기가 묻혀 있는 북동쪽 골짜기로 갔지. 지도는 필요 없었지. 전복한 트럭에서 가져온 경유 탱크를 들고 있었고 3년 전에 연료가 없어서 무기력했던 일이 있었거든.
"3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그녀가 부상당했소. 1939년에. 그녀의 남편이 비행기를 추락시켰어. 우리 셋이 모두 포함된 자살 - 살인 계획이었지. 그때 우리는 이미 애인 사이도 아니었어. 허나 우리 관계에 대한 얘기가 그의 귀에 전해졌던 모양이야. "
"그래서 당신이 그녀를 데려가기엔 너무 심하게 다쳤다는 거군. "
"그렇소. 그녀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내가 혼자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뿐이었지. "
몇 개월 동안 떨어져서 보낸 분노의 시간 후에 그들은 동굴 속에서 다시 한번 가까워졌다. 다시 연인 사이가 되어 이야기 나누고 사회적 규범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은 장벽을 치워버렸다.
식물원에서 그녀는 결단과 치미는 분노로 문기둥에 머리를 박았었다. 연인이 되기에는, 비밀이 되기에는 너무나 자존심이 강했던 여자. 그녀의 세계에는 칸막이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로 돌아서서 손가락을 세웠었다. 아직은 당신이 그립지 않아.
그리울 거예요.
관계를 청산한 수 개월 동안 그는 점점 더 쓸쓸해지고 오만해졌다. 그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피했다. 그를 보는 그녀의 침착한 시선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비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남편과 이약기하면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녀에게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고혹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 점은 그가 사랑한 면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믿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다른 애인이 생겼는지 의심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모든 행동을 은밀한 약속으로 해석했다. 언젠가 로비에서 그녀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라운델의 웃옷을 잡고 흔들며 웃은 이후, 그는 그들 사이에 뭔가 다른 일이 있지 않은가 알아내기 위해 그 무고한 정부 보좌관을 이틀 동안 따라다녔다. 그는 더 이상 그녀의 마지막 애정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거나 그의 반대편에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그녀의 시험적인 미소조차 견딜 수 없었다. 그녀가 술을 건네주면 마시지 않았다. 저녁식탁에서 나일 가의 백합이 떠다니는 그릇을 그녀가 가리키면 그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또다른 빌어먹을 꽃. 그녀에게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다. 그와 그녀의 남편을 제외한 무리였다. 아무도 남편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사랑과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엷은 갈색 담배 종이를 싸서 별로 흥미롭지도 않은 전쟁을 기록한 '역사' 책 갈피에 풀로 붙였다. 그에 대한 그녀의 모든 논쟁을 적었다. 그리고 그 책에 달라붙었다 - 스스로에게 준 것은 오로지 보는 사람의, 듣는 사람의, 바로 '그'의 목소리뿐.
전쟁이 터지기 전 마지막 며칠 동안 그는 기지 캠프를 치우기 위해 마지막으로 길프 케버에 갔다. 그녀의 남편이 그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전까지 둘 다 사랑했던 그녀의 남편.
클리프튼은 약속한 날 그를 태우러 유웨이나트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그가 잃어버린 오아시스 위로 너무 낮게 날아왔기 때문에 아카시아 잎이 떨어지고, 모스가 골짜기 틈바구니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 그가 높은 등성이에 서서 푸른 방수포로 신호를 보낼 동안. 그리고는 비행기가 아래로 방향을 꺾어 그를 향해 곧장 다가오다가 50미터 떨어진 표면에 내리꽂혔다. 착륙장치에서 푸른 줄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은 붙지 않았다.
실성한 남편. 그들 모두를 죽이는. 자신과 부인을 죽이는 - 그리고 그로 하여금 이제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죽게 만드는.
그녀만 죽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부서진 비행기의 손아귀, 그녀 남편의 손아귀에서 꺼내 옮겼다.
얼마나 날 증오했어요? 부상의 고통을 뚫고 그녀는 '수영하는 사람들의 동굴' 에서 속삭였다. 부러진 손목. 조각난 갈비뼈. 당신은 내게 가혹했어요. 바로 그때 남편이 당신을 의심했어요. 난 아직도 사막이나 술집으로 사라지는 당신의 그런 면을 증오해요.
그로피 공원에서 당신이 나를 떠났어.
당신이 나를 어떤 식으로든 원치 않았기 때문이에요.
남편이 미쳐가고 있다고 당신이 말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미쳤지.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보다 내가 먼저 미쳤어요. 당신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죽였어요. 키스해 주시겠어요? 자신을 방어하지 말아요. 키스해 줘요.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줘요.
그들의 육체는 향수나 땀 속에서 만났었다. 혀나 이빨로 그 얇은 막 아래로 들어가기 위해 미친 듯이. 마치 거기서 각자가 상대방의 존재를 붙잡을 수 있고 사랑하는 동안 상대의 몸에서 그것을 꺼낼 수 있는 듯이.
이제 그녀의 팔에는 분이 뿌려져 있지 않고 그녀의 다리에는 장미수가 없다.
당신은 자신이 인습타파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다만 가질 수 없는 것에서 떠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버려요. 어떤 것에 실패하면 당신은 다른 것으로 후퇴하죠. 당신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나 많은 여자가 있었죠? 난 내가 당신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떠났어요. 당신은 때때로 꼼짝도 않고 아무 말도 없이 방에 서 있었어요. 마치 자신에 대한 가장 큰 배반이 자기를 한치라도 더 드러내 보이는 것인 양.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에서 우린 이야기했지. 그곳은 안전한 쿠프라에서 불과 위도 2도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어.
그는 잠시 멈추고 손을 내민다. 카라바조가 모르핀 알약을 검은 손바닥 위에 놓는다. 약은 사내의 검은 입으로 사라진다.
난 호수의 마른 바닥을 건너 쿠프라 오아시스로 향했어. 헤로도투스는 그녀와 함께 남겨두고 더위와 밤의 추위를 대비한 도포 하나만 들고 갔지. 그리고 3년후, 1942년에 그녀와 함께 묻어둔 비행기를 향해 걸어간 거야. 갑옷 입은 기사처럼 그녀의 몸을 안고서.
사막에서 생존 수단은 땅밑이야. 혈거인의 동굴, 모래 속에 묻힌 식물 안에서 잠자는 물, 무기들, 비행기. 경도 25도 위도 23도에서, 난 방수포를 찾아 땅을 파 들어갔지. 매독스의 비행기가 차츰 드러났어. 추운 밤중인데도 땀이 났어. 난 나프타 랜턴을 들고 가서 잠시 묵례한 그녀의 실루엣 옆에 앉았지. 두 연인과 사막 - 별이었는지 달빛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외부의 모든 곳에는 전쟁이 있었지.
비행기가 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어. 식량이 없어서 나는 기력이 없었어. 방수포를 파내지 못하고 잘라내야 했지.
아침에 두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나서 그녀를 조종석으로 안아 옮겼어. 모터를 걸었지. 비행기가 삶을 향해 굴러갔어. 우리는 하늘로 움직여 미끄러져 들어갔소, 몇 년 늦게.
목소리가 멈춘다. 화상 입은 남자는 모르핀 맞은 눈의 초점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비행기가 이제 그의 눈 속에 있다. 느린 음성이 땅 위에서 힘들게 그것을 들어올린다. 한박지를 빼먹듯 엔진이 멈추었다가 돌아간다. 그녀를 감싼 덮개가 조종석의 소란스런 바람에 펄럭인다. 침묵 속에 며칠을 걸어온 그에게는 지독한 소음이었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기름이 무릎에 쏟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셔츠에서 나뭇가지가 빠져 달아난다. 아카시아와 뼈. 그는 땅에서 얼마나 높이 떠 있나? 하늘에서 얼마나 낮은가?
착륙장치가 종려나무 꼭대기를 쓸고 지나가 그는 기체를 위로 꺾는다. 기름이 좌석 위로 흘려내리며 그녀의 몸이 그 속으로 쓰러진다. 불꽃이 튀고 그녀의 무릎에 있는 나뭇가지에 불이 붙는다. 그는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긴다. 두 손으로 조종석 유리를 세차게 밀친다. 움직이지 않는다. 유리를 때리기 시작한다. 금이 가고, 마침내 유리를 깨뜨리자 기름과 불이 사방으로 퍼지며 회오리친다. 하늘에서 얼마나 낮게 있나? 그녀가 쓰러진다. 아카시아 가지, 이파리, 팔 모양으로 버티고 있던 나뭇가지가 스르르 그의 주위에 흩어진다. 공기 속에 사지가 빨려 들어간다. 그의 혀에 모르핀 냄새. 그의 눈의 검은 호수 속에 비치는 카라바조. 그는 이제 우물의 두레박처럼 위아래를 오간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다. 그는 썩은 비행기를 몰고 있다. 캔버스로 된 날개판이 속력 속에 찢겨나간다. 그들은 썩은 고기이다. 종려나무가 얼마나 멀리 있었나? 얼마나 오래 전에? 그는 기름 속에서 다리를 들지만 너무 무겁다. 도저히 다시 들 수 없다. 그는 늙었다. 갑자기. 그녀 없이 사는 데 지쳤다. 그 품에 누울 수 없고 그가 잠든 동안 낮과 밤이 새도록 그녀가 지켜줄 것을 믿을 수 없다. 그에게는 아무도 없다. 그는 사막으로가 아니라 외로움으로 지쳤다. 매독스도 없다. 나뭇잎과 잔가지로 없어진 여자, 그의 턱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하늘로 치솟는 부서진 유리 조각들.
그는 기름에 젖은 채 낙하산 장비 속으로 들어가 기체를 거꾸로 돌리고 유리조각에서 벗어난다. 바람이 그의 몸을 뒤로 내던진다. 그리고는 다리가 풀려나고 그는 공중에 떠 있다. 환하다. 그는 자신이 왜 환한지를 모르다가 마침내 몸에 불이 붙었음을 깨닫는다.
해나는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복도에 서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는다.
어때요?
훌륭하군!
이제 내 차례입니다.
아! 좋아. 아주 좋아.
이건 최고의 발명품이죠.
대단한 발견이야. 젊은 친구.
그녀는 방에 들어서서 캔에 든 농축 우유를 주고받는 킵과 영국인 환자를 본다. 영국인은 캔을 빨고서 깡통을 얼굴에서 치운 뒤 끈끈한 액체를 씹는다. 그리고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데 다소 짜증난 듯해 보이는 킵을 향해 밝게 미소짓는다. 공병은 해나를 힐끗 보고 침대 옆을 어슬렁거리며 손가락을 부딪쳐 두어 번 소리를 내고는 마침내 검은 얼굴에서 깡통을 떼어낸다.
"우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발견했어. 이 친구와 나. 나에겐 이집트 여행이지. 이 친구에겐 인도 여행이고. "
"농축 우유 샌드위치를 먹어 보셨습니까?" 공병이 묻는다.
해나는 그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하나 더 가져오죠. " 킵은 캔을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하고서 방을 나간다.
해나는 침대 위의 남자를 본다.
"킵과 나는 둘 다 국제 사생아야. 한곳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사는 걸 선택한, 평생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는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삶이지. 킵은 아직 그 점을 모르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친해지는 거요. "
부엌에서 킵은 총검으로 새 농축우유 캔에 구멍 두 개를 뚫는다. 문득 총검이 점점 그런 용도로만 쓰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킵은 계단을 올라 침실로 돌아간다.
"다른 곳에서 자라신 것 같아요. 영국인은 그런 식으로 빨지않죠. "
공병이 말한다.
"오랫동안 난 사막에서 지냈지. 모든 것을 거기서 배웠어. 나한테 일어난 모든 중요한 일들은 사막에서 일어났어. "
그는 해나를 보고 미소짓는다.
"한 사람은 내게 모르핀을 주고 한 사람은 내게 농축우유를 주는군. 균형 있는 다이어트를 발견한 것 같아!" 그는 다시 킵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공병이 된 지 얼마나 됐나?"
"5년이요. 주로 런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불발탄 부대 소속으로. "
"누가 자네 선생이었지?"
"울위치에 있는 영국인입니다. 괴팍스런 기인으로 알려진 사람이죠. "
"제일 좋은 부류의 선생이군. 서폴크 경이었던 모양이지. 모든 양을 만났나?"
"네. "
그들은 대화 속에 한순간도 해나를 순순히 끼워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선생에 대해, 그리고 그가 선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고 싶다.
"어떤 사람이었어요, 킵?"
"과학 연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실험반 지휘자였죠. 모든 양이라는 비서가 항상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전기사, 프레드 하츠 씨. 모든 양은 그가 폭탄에 관해 고찰하면서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 적고, 하츠 씨는 장비에 관한 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는 비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성 삼위일체라고 불렸죠. 폭파되었어요, 셋 다. 1994년 에리스에서. "
그녀는 한쪽 발을 들어 그림 속의 덤불에 부츠 밑창을 대고 벽에 기대는 공병을 쳐다본다. 슬픈 표정은 없다. 해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떤 남자들은 그녀의 품안에서 삶의 마지막 매듭을 풀었다. 앙기아리 시에서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옮기면서 살에 이미 벌레가 이는 것을 발견했다. 오르토나에서는 팔 없는 소년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었다. 어떤 것도 그녀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개인적인 자아를 몰래 밀치고서 자신의 임무를 계속했다. 너무나 많은 간호사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전쟁의 시녀가 되었다. 상아단추가 달린 노란색과 진한 핏빛 제복 속에서.
그녀는 벽에 머리를 기댄 킵을 보고 그의 얼굴에 나타난 중립적인 표정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그것을 읽을 수 있다.
VII. 현장에서
웨스트베리, 영국 1940년
커펄 싱그는 안장이 놓여 있어야 할 말 등 위에 섰다. 처음에는 그저 서 있기만 하다가, 잠시 멈추고 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폴크 경은 망원경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젊은이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흔들었다.
젊은이는 내려왔다. 웨스트베리 산의, 백색 초크로 만든 거대한 말 속으로, 말의 순백 속으로 내려와, 언덕 속으로 아로새겨졌다. 그는 검은 형상이었으며, 횐색의 배경이 그의 검은 피부와 카키색 제복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망원경 초점이 정확했다면 서폴크 경은 싱그의 어깨에서 공병대 표시인 진홍색 밧줄 선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쪽에서는 그가 마치 동물 모양으로 오려 낸 종이 지도 위를 성큼성큼 걸어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싱그는 비탈을 내려올 때 오직 거친 백색 초크에 부츠가 끌리는 것만을 의식했다.
모든 양도 그의 뒤에서 천천히 언덕을 내려왔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접은 우산에 몸을 의지하면서. 그녀는 말이 있는 곳 서너 발자국 위쪽에 멈추어 우산을 펴고 그 그늘에 앉았다. 그리고는 공책을 펼쳤다.
"내 말이 들립니까?" 그가 물었다.
"물론이죠. " 그녀는 손에 묻은 초크 가루를 치마에 털고 안경을 고쳐 썼다. 먼 곳을 쳐다보면서 싱그가 했던 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싱그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는 그가 영국에 도착한 이래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해본 첫번째 영국 여자였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울위치에 있는 막사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보낸 3개월 동안 그는 다른 인도인과 영국인 장교만 만났다. NAAFI(육해공군학교. 옮긴이)에 서도 여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과 나눈 대화는 고작 두세 문장에 그쳤을 뿐이다.
그는 둘째 아들이었다. 맏아들은 군인, 둘째는 의사, 셋째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 집안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전쟁 때문에 변했다. 그는 시크족 연대에 입대해서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런던에서 처음 몇 개월이 지난 후 그는 엔지니어들을 모아 조직한 불발탄 및 시한폭탄 부대에 자원했다. 1939년 상부에서 내려온 지령은 고지식했다. "불발탄은 내무성에서 관할하며, 다음과 같이 정한다. A.R.P(방공 대책. 옮긴이) 책임자와 경찰이 그 수거를 맡고, 덤프(군사용 임시 집적소. 옮긴이)에 보관하며, 그 폭파는 군인이 맡는다. "
1940년이 되어서야 육군성에서 폭탄 제거를 전담하게 되었고, 그 임무는 영국 공병단에 넘어갔다. 25개의 폭탄 제거대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기술적 장비가 부족한 탓에 고착 망치, 끌, 그리고 도로 보수 장비 정도밖에 없었다. 전문가란 없었다.
폭탄은 다음과 같은 부속의 조합이다.
1. 용기 또는 폭탄 케이스
2. 퓨즈
3. 점화 장약 또는 폭발추진 장약
4. 강한 폭발을 위한 주 장약
5. 상부구조 부속품 - 수직안전판, 상승돌기, 탄고리 등등.
영국 지상에 비행기로 떨어뜨린 폭탄의 8할은 표피가 일반용 폭탄이었다. 무게는 대부분 1백--1천 파운드 정도였다. 2천 파운드짜리 폭탄은 '헤르만' 또는 '에소', 4천 파운드짜리 폭탄은 '사탄'이라 불렀다.
싱그는 훈련으로 긴 하루를 보내고 나서도 손에 도표나 도면을 쥐고 잠들었다. 절반쯤 잠든 상태에서 그는 피그린 산과 폭발추진 장약, 콘덴서를 따라 깊숙한 곳에 위치한 퓨즈에 닿을 때까지 실린더의 미로 속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깨어났다.
폭탄이 목표물을 명중시켰을 때 그 저항으로 진동판이 작동하고 퓨즈 속의 인화총탄이 점화된다. 파열이 폭발추진 장약에 닿는 순간 펜드라이트 왁스가 터지도록 만든다. 그것이 피크린 산을 폭발시키고, 그로 인해 TNT의 주요 내용물인 아마톨과 알루미늄 처리를 한 가루가 폭발한다. 진동판에서 폭발까지의 여행은 1백분의 1초가 걸린다.
가장 위험한 폭탄은 낮은 고도에서 투하하는 것이었다. 그런 종류는 땅에 닿을 때까지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 불발탄들이 도시와 들판에 묻혀 잠자고 있다가 농부의 막대기나 자동차 바퀴의 충격, 덮개에 퉁기는 테니스 공 등 무언가 진공판을 건드리는 순간 터져버렸다.
싱그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짐차에 실려 울위치에 있는 연구소에 도착했다. 불발탄의 수효가 그리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당시는 폭탄제거반의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은 시절이었다. 1940년 프랑스가 함락되고 영국이 계엄상태에 있을 무렵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8월에 접어들어 전격 공격이 시작되자, 갑자가 한달에 2천 5백개의 불발탄을 다루게 되었다. 도로는 막히고 공장들은 버려졌다. 9월이 되면서 살아 있는 폭탄수는 3천 7백 개에 돌입했다. 백 명의 새 폭탄 분대가 구성되었으나 여전히 폭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이해나 설명이 부족했다. 그런 분대원들의 예상 수명은 불과 10주였다.
"때는 폭탄 제거의 영웅 시대였다. 개인적인 용맹의 시절이었다. 절박함과 지식 및 장비의 부족으로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나 그 영웅 시대의 주인공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이 안보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적군이 우리의 무기처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느 보고서를 내는 것은 분명히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
웨스트베리로 가는 차 안에서 싱그는 하츠 씨와 함께 앞자리에 앉고 모든 양은 서폴크 경과 함께 뒷자리에 앉았다. 카키색이 칠해진 험버는 유명했다. 흙받이는 밝은 빨강 신호등 색 - 모든 폭탄제거 이동반이 그렇듯이 - 으로 칠해졌고, 밤에는 왼쪽 측면 등에 푸른 필터가 씌워졌다. 이틀 전 고원의 유명한 초크 말 가까이에서 걷던 남자가 폭발로 숨졌다. 엔지니어들은 사고 지점에 도착하여 또다른 폭탄이 고원 한복판에 - 1788년 초크 언덕을 깎아 만든 웨스트베리의 거대한 백마의 복부 부분에 -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원의 모든 초크 말 - 모두 7개 - 은 위장막으로 덮어씌웠졌다. 말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의 영국 공습에 뚜렷한 표적을 만들어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뒷자석에서 서폴크 경은 유럽 전쟁지역의 요새 이동, 폭탄배치의 역사, 데본 크림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영국의 풍습이 마치 새로 발견된 문화인 것처럼 시크족 청년에게 소개했다. 그는 이름은 서폴크 경이지마 데본에서 살았다.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그의 정열은 "로나 둔"이 얼마나 역사적, 지리적으로 정확한 소설인가를 연구하는 데 바쳐졌다. 겨울이면 브랜든과 폴록의 마을을 빈둥거리고 다니며 관리들에게 엑스무어가 폭탄제거 훈련에 적합한 장소라고 설득했다. 그의 휘하에 공병, 엔지니어 등 각 부서에서 모인 12명의 재능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싱그였다. 주중이면 그들은 거의, 런던 리치몬드 공원에서 담갈색 사슴이 뛰어노는 시간에 불발에 관한 새로운 공식 또는 작업에 대해 간단한 지시를 받으며 보냈다. 그러나 주말에는 엑스무어로 내려가 낮시간 동안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서폴크 경을 따라 로나 둔이 결혼식 도중 총에 맞은 성당에 갔다. "이 창문 또는 저 뒷문에서. 총알이 신부가 입장하는 통로로 날아와 그녀의 어깨에 꽂혔습니다. 훌륭한 사격, 물론 비난할 만한 행위였으나 사실 멋진 사격술이었습니다. 악한은 황무지까지 추적당해 온몸의 근육이 찢겼습니다. " 싱그에게 그 이야기는 인도 소설처럼 익숙하게 들렸다.
그 지역에서 서폴크 경과 가장 가까운 친구는 여성 조종사로, 세상을 싫어하지마 서폴크 경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들은 함께 총을 쏘러 다녔다. 그녀는 브리스톨 해협이 내려다뵈는 카운티스베리의 절벽 위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 살았다. 험버를 타고 지나는 각 마을마다 서폴크 경이 설명하는 이국적인 특색이 있었다. "여기는 산사나무 지팡이를 구입하기에는 제일 좋은 곳이지. " 마치 싱그가 제복과 터번 차림으로 투도르 모퉁이 상점에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과 지팡이 이야기를 나눌 상상이라도 한다는 듯. 서폴크 경은 영국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말했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카운티스베리와 홈 팜이라 불리는 그의 은신처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와인과 쌓아놓은 초라한 빨래감 주벼의 파리들 속에서, 결혼은 했으나 천성적으로 홀아비인 채 매일 절벽을 따라 조종사 친구를 만나러 가는 50세 노신사의 생활. 그는 물건 고치는 일을 즐겼다 - 낡은 빨래통과 수도시설 발전기와 물레방아로 돌아가는 고기 굽는 꼬챙이. 그는 조종사, 스위프트 양이 오소리의 습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따라서 웨스트베리의 초크로 달려가는 드라이브는 일화와 자료로 부산했다. 전시에도 그는 홍차를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를 알았다. 면화약 폭발사고 때 다친 팔을 붕대로 감고서 파밀라 찻집을 휘젓고 들어가 비서와 운전기사와 공병 등 자신의 일당에게 둘러싸였다. 마치 그들이 친자식들인 양. 서폴크 경이 어떻게 그의 폭탄제거 시험부대를 만들도록 UXB 위원회를 설득했는지 아무도 확실히는 몰랐다. 그러나 발명 분야에서 그가 남긴 업적을 볼 때 다른 누구보다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독학으로 이해했고, 어떤 발명에 대해서도 그 발명을 가능하게 한 동기나 영감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단숨에 주머니 셔츠를 고안해서, 작업하는 공병이 퓨즈나 장비를 쉽게 넣을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홍차를 마시고 핫케이크를 기다리며 현장 폭탄제거에 관해 토론했다.
"미스터 싱그, 자네를 믿네. 알고 있겠지?"
"네. " 싱그는 그를 존경했다. 그로서는 서폴크 경이 영국에서 최초로 만난 진정한 신사였다.
"나만큼 잘하리라고 믿는다는 점을 알지? 모든 양이 옆에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할 걸세. 하츠 씨는 더 뒤에 있을 거고 장비나 인력이 더 필요하면 경찰 호루라기를 불게. 그가 도와줄 걸세. 그 친구는 조언은 안 해줘도 완벽하게 알고 있지. 만일 그 친구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네한테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일세. 그럴 땐 그의 뜻을 따르는 게 좋아. 허나 현장에서는 자네가 완전한 직권을 가지고 있네. 이게 내 권총이야. 아마 이제는 퓨즈가 좀더 복잡하리라 생각되는데,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자네가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
서폴크 경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을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 그는 퓨즈 머리에 총을 쏘아 시계 몸체의 움직임을 정지시킴으로써 시한작동 퓨즈를 억제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 방법은 독일이 시계 대신 진동 캡을 맨위에 얹는 새 퓨즈를 도입한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커퍼 싱그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점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전쟁이 발발한 이래 그는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영국에서 한번도 벗어나본 일이 없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결코 카운티스베리 밖으로 나갈 계획이 없는 이 귀족의 영향권 아래서 지냈다. 싱그는 펀잡의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사고무친의 영국에 도착했다. 21세였다. 그는 군인 말고는 누구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험폭탄 부대 지원병 모집 통보를 보았을 때, 다른 공병들이 서폴크 경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결심했다. 전쟁에서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어떤 개인이나 인물 옆에 있으면 생명이나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신청자 가운데 그는 유일한 인도인이었고 서폴크 경은 늦게 왔다. 그들 15명은 도서실로 안내되어 기다리라는 비서의 지시를 받았다. 병사들이 면접과 시험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그녀는 책상에 앉아 이름을 복사했다. 그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벽으로 걸어가 기압계를 들여다보았다. 손으로 만지려 하다가 그만두고 얼굴만 가까이 들이댔다. '매우 건조'에서 '보통'에서 '폭풍우'. 그는 세 개의 영어 단어를 발음법대로 혼자 중얼거렸다.
"매우 건조 매우 건조. "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방 안을 둘러보다가 중년 비서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단호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인도 소년. 그는 살포시 웃고 책장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도 그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한순간 올리버 하지 경의 "레이먼드, 또는 삶과 죽음"에 코를 들이댔다. 그리고 또 한권의 비슷한 제목을 찾아냈다. "피에르, 또는 모호함". 그는 돌아서서 다시 그에게 꽂혀 있는 여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는 마치 책을 호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아마 그녀는 한번도 터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인!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위해 싸워주기를 기대하면서도 당신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싱그. 그리고 모호함.
그들은 점심 때가 되어서야 원기왕성한 서폴크 경을 만났다. 그는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신병들이 던지는 농담에 일일이 크게 웃었다. 오후에 그들은 이상한 시험을 치렀다.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기계를 하나씩 다시 맞추는 작업이었다. 두 시간이 주어졌으나 문제를 푸는 대로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싱그는 빨리 시험을 마치고 남은 시간 동안 여러 부속품으로 만들 수 있는 다른 물건들을 궁리해보았다. 그는 인종만 문제되지 않는다면 쉽게 뽑히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는 수학과 기계학이 타고난 천성과 같은 나라에서 왔다. 그의 고향에서 자동차는 결코 폐차되지 않았다. 그 부속품이 마을 뒤쪽으로 운반되어 재봉틀이나 물 펌프로 변형되었다. 포드는 뒷자석은 덮개를 새로 씌워 소파로 바꾸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연필보다 스패너나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따라서 자동차의 불필요한 부속품은 괘종시계나 관개 도르래나 또는 사무실 의자의 회전장치 부분에 들어갔다. 기계적인 재난의 해독제는 쉽게 찾아졌다. 열을 심하게 받은 자동차 엔진은 새 고무 호스로 식히는 것이 아니라, 쇠똥을 떠다가 콘덴서 주위에 발라서 해결했다. 그가 영국에서 본 것은 인도 전역에서 2백년 이상 쓸 수 있을 만한 부속품의 범람이었다.
그는 서폴크 경이 선발한 세 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던 그 남자가(그리고 단지 그가 농담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을 가로질러 와서 그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엄격했던 비서는 모든 양이라고 했다. 그녀는 백포도주를 담은 큰 잔 두 개를 쟁반에 받쳐들고 익살스레 들어와 서폴크 경에게 한 잔을 주며, "당신은 술을 안 드시는 줄 아는데요. " 라고 하고는 또 한 잔을 집어들어 그를 향해 건배 동작을 했다. "축하합니다. 시험 성적이 우수하시더군요. 시험을 치르시기 전부터 뽑히실 줄 알았지만. "
"모든 양은사람을 볼 줄 알지. 우수함과 인품을 특히 잘 잡아낸다네. "
"인품이요?"
"음, 물론 그런 것이 필수는 아니지. 허나 우린 함께 일할 사람들일세. 여기서는 다들 가족같이 지내. 모든 양은 점심식사 전부터 자네를 선발했어. "
"당신한테 윙크하지 않기가 몹시 어렵더군요, 미스터 싱그. "
서폴크 경은 다시 싱그의 어깨에 팔을 얹고 그를 창문으로 데려갔다.
"훈련은 다음주 주중까지는 시작하지 않을 테고 해서, 부대원 몇을 홈 팜으로 부를 생각인데. 데본에서 다 함께 지식을 모아보고 서로 안면을 익히자는 거지. 자네는 우리하고 같이 험버를 타고 가세. "
그래서 그는 전쟁의 혼란스런 기계장치에서 벗어나는 통로를 따냈다. 외국에서 1년을 보내고 나서 그는 한가족 속에 들어갔다. 마치 방탕한 자식이 집에 돌아와 식탁에 마련된 자리를 찾아 앉은 뒤 대화속에 끼여들게 된 것처럼.
그들이 브리스톨 해협에 내려다보이는 해안에서 소머셋 경계선을 넘어 데본으로 들어간 것은 밤이 다 되어서였다. 하츠 씨는 길 양쪽으로 석양 속에 비치는 진한 핏빛의 하드 꽃과 만병초가 피어 있는 좁은 길로 차를 꺾었다. 드라이브 길은 5킬로 거리였다.
서폴크, 모든, 하츠의 삼위일체 외에 그곳에는 부대를 구성하는 공병 여섯 명이 있었다. 그들은 주말 동안 돌집을 돌아 황야를 걸었다. 모든 양과 서폴크 경, 그리고 그의 부인은 토요일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 여성 조종사들과 만났다. 스위프트 양은 항상 지중해를 거쳐 인도로 가보고 싶었다고 싱그에게 말했다. 막사에서 나온 이래 싱그는 자신의 위치를 전혀 알지 못했다. 천장 높이 달린 롤러에 지도가 있었다. 어느 아침 혼자가 된 그는 롤러를 바닥까지 잡아내렸다. 카운티스베리와 그 일대. 지도 작성, R. 폰스. 미스터 제임스 홀리데이의 희망에 따라 그렸음.
"희망에 따라 그렸음. "
그는 영국인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에리스의 폭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 해나와 함께 밤 텐트 속에 있다. 서폴크 경이 분해하던 도중에 폭발해 버린 250킬로그램짜리 폭탄. 그 폭탄은 또한 하츠 씨와 모든 양과 서폴크 경에게 실습을 받고 있던 공병 4명도 죽였다. 1941년 5월. 싱그가 서폴크의 부대에 들어온 지 1년 되었다. 그날 그는 블랙클러 중위와 함께 런던에서 엘리펀트와 캐슬 지역의 사탄 폭탄 제거 작업을 했다. 그들은 4천 파운드짜리 폭탄을 함께 제거하며 기진맥진해졌다. 절반쯤 작업하다가 잠시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폭탄 제거 장교 두어 명이 그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지 의아해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마 또다른 폭탄을 찾았다는 것이리라. 벌써 밤 10시가 넘었고 그는 위태로울 만큼 피곤했다. 또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다시 작업으로 돌아갔다.
사탄을 끝냈을 때 그는 시간을 절약하기로 마음먹고 장교에게 다가갔다. 장교는 잠시 자리를 뜨려는 듯 몸을 절반쯤 돌렸다.
"네. 어디에 있습니까? "
장교가 그의 오른손을 잡자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블랙클러 중위는 그의 뒤에 있었다. 장교가 사건을 설명했다. 블랙클러 중위가 싱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꽉 잡았다.
그는 에리스로 차를 타고 갔다. 장교가 그에게 물어보려고 머뭇거린 질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죽음을 알리기 위해 그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중이었다. 근처에 두번째 폭탄이 있다는 의미였다. 필경 같은 종류의 폭탄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이야말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는 그 일을 혼자 하고 싶었다. 블랙클러 중위는 런던에 남을 것이다. 두 사람은 부대의 유일한 생존자였고, 두 사람이 함께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였다. 서폴크 경이 실패했다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든 그는 혼자 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는 논릴의 기초가 필요했다. 함께 결정을 나누고 서로 타협해야 했다.
그는 밤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모든 감정을 표면 아래로 억제했다. 마음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아직 그들은 살아 있어야 했다. 모든 양은 백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큰 잔으로 독한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술을 더 천천히 마실 수 있었고, 저녁 내내 숙녀처럼 보일 수 있었다. "술을 안 드시죠, 미스터 싱그. 하지만 술을 드신다면 저처럼 하실 거예요. 위스키 한잔. 그리고는 훌륭한 왕실 대신처럼 얌전하게 홀짝거릴 수 있죠. " 그 말 뒤에 그녀의 느것하고 근엄한 웃음이 따랐다. 그가 평생 만나본 여자 가운데 유일하게 은빛 플라스크 두 개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계속 마셨고 서폴크 경은 핫케이크를 우물거렸다.
또다른 폭탄은 8킬로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또하나의 SC- 250kg. 낯익은 종류처럼 보였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암기한 방법을 써서 그런 종류의 폭탄을 수백 개 제거했다. 그것이 전쟁의 진행법이다. 6개월 정도마다 적군은 무엇인가 변형시켰다. 속임수, 변덕, 그 짧은 서곡을 익혀 부대원들에게 가르치면 그들은 어느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는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다만 한 단계 한 단계를 기억해야 할 뿐이다. 그를 실어다준 병장은 하디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그는 지프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그들이 당장 일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250킬로그램 SC는 너무 흔했다. 변화가 있다면 빨리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는 미리 연락을 취해서 불빛을 준비해 놓으라고 했다. 피곤한 가운데 작업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두 대의 자동차 불빛 정도가 아닌 충분한 불빛만큼은 절실히 원했던 것이다.
그가 에리스에 도착했을 때 폭탄 지점은 이미 환했다. 평화시 대낮에는 벌판이었을 것이다. 울타리, 어쩌면 연못. 이제는 전투장이었다. 추위, 그는 하디의 스웨트를 빌려 위에다 껴입었다. 어쨌든 불이 그를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그가 폭탄으로 다가갈 때 그들은 아직 그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 시험.
환한 불빛 속에 구멍이 많이 난 금속 부분이 정확한 초점으로 튀어 말했다. 17세기, 또는 심지어 13세에 이미 고수를 이기는 훌륭한 체스 선수가 될 수는 있으나 그런 나이에 뛰어난 브리지 선수는 되지 못하네. 브리지는 성격에 달려 있어. 자신의 성격과 상대의 성격. 적의 성격을 고려해야 돼. 폭탄 제거도 마찬가지일세. 두 손으로 하는 브리지 게임이야. 자네에게 한 명의 적이 있지. 파트너는 없어. 가끔 내 시험에서 브리지를 시켜볼 때가 있네. 사람들은 폭탄이 기계적인 물체, 기계적인 적이라고 생각하지. 허나 폭탄도 누군가 만들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돼.
폭탄의 표피는 땅에 떨어지면서 찢어져 싱그가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을 받았으나 그것이 서폴크인지 아니면 그 기묘한 장치의 발명가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인조 불빛의 신선함이 그를 살아나게 했다. 폭탄 주위를 돌며 모든 각도에서 들여다보았다. 퓨즈를 끊으려면 메인 챔버를 열고 폭약을 지나야 했다. 그는 가방의 단추를 풀고 만능 열쇠를 꺼내 폭탄 케이스 뒤에 달린 판을 조심스레 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퓨즈 주머니가 케이스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것이 행운아지, 또는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메커니즘이 벌써 작동하고 있는지 이미 제어됐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폭탄에 기대어 혼자라는 점, 솔직한 선택으로 돌아오게 된 점을 기쁘게 여겼다. 왼쪽으로 돌아야 할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돌아야 할까. 이걸 잘라야 할까. 이걸 잘라야 할까 아니면 저걸 잘라야 할까. 그러나 그는 피곤했고 가슴 속에는 아직도 분노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몰랐다.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는 것은 더 위험했다. 실린더 끝을 부츠로 힘껏 잡은 채 팔을 뻗어 퓨즈 주머니를 뜯고 폭탄에서 들어냈다. 그렇게 하고 난 순간부터 그는 떨기 시작했다. 꺼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폭탄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그는 끝에 전선이 마구 엉켜 있는 퓨즈를 잔디 위에 내려놓았다. 이 불빛 속에서 그것은 깨끗하고 훌륭했다.
그는 폭발 원액을 쏟을 수 있도록 메인 케이스를 트럭 쪽으로 50미터 가량 끌고 갔다. 그가 끌고 가는 동안 4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세번째 폭탄이 터지며 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호광마저 은은하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한 장교가 술이 든 홀릭스 한잔을 그에게 주자, 그는 혼자서 퓨즈 주머니로 돌아갔다. 그는 음료수에서 나는 향기를 들이마셨다.
더 이상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만약 잘못하면 작은 폭발이 그의 손을 날려버릴 것이다. 그러나 충돌하는 순간 그것이 그의 심장에 달라붙지 않는 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단순했다. 퓨즈, 폭탄 속의 새로운 '농담'
전선의 미로를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는 장교한테 돌아가서 보온병에 남아 있는 음료수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퓨즈 앞으로 돌아가 다시 앉았다. 새벽 1시 30분 경이었다. 짐작이었다. 그는 시계를 차고 있지 않았다. 30분 동안 그는 단추구멍에 매달려 있는 일종의 외알 안경 같은 확대 원형유리로 퓨즈를 지켜보기만 했다. 몸을 굽히고서 죔쇠를 걸 구멍에서 또다른 힌트를 찾으려고 놋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훗날 그는 방해물이 필요해졌다. 나중에 그의 마음 속에 사건과 순간에 대한 개인적인 역사가 생겼을 때, 그는 당면한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다른 모든 것을 태우거나 묻을 만한 백색의 소리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라디오나 수신기 그리고 요란한 밴드 음악이 뒤에 오게 된다. 그를 진짜 삶의 빗줄기로부터 가려줄 방수포.
그러나 지금 그는 무엇인가 멀리 있는 것을 의식했다. 구름에 번개가 반사되는 것처럼. 하츠와 모든 그리고 서폴크는 죽었다. 갑자기 이름만 남은 존재들. 그의 눈은 퓨즈 상자에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마음 속에서 퓨즈를 거꾸로 놓고 논리적인 가능성을 숙고했다. 그리고는 다시 옆으로 놓았다. 폭탄추진 장약 나사를 풀고 몸을 구부리고서 귀를 댔다. 놋쇠 칠이 귀에 닿았다. 찰칵거리는 작은 소리는 없다. 퓨즈는 침묵 속에 분해되었다. 그는 조심스레 시계장치 부분을 퓨즈에서 분리해 내려놓았다. 퓨즈 주머니 튜브를 집어 다시금 찬찬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풀밭에 내려 놓으려다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다시 불빛 밑으로 가져갔다. 무게말고는 잘못된 것이 없었다. 그가 그것을 농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무게를 생각해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듣거나 보는 것뿐이다. 그는 조심스레 튜브를 기울였다. 열린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졌다. 두 번째 폭발추진 장약 장치였다. 제거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완전히 다른 또하나의 장치.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꺼내 장치의 나사를 풀었다. 하얀색과 초록색의 불이 있고 장치에서 채찍소리가 났다. 두번째 기폭부가 터졌다. 그는 그것을 꺼내 잔디 위의 다른 부품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프로 갔다.
"두번째 폭발추진 장약장치가 있었어. " 그는 중얼거렸다. "난 운이 좋았어. 저 전선들을 꺼낼 수 있어서. 본부에 전화해서 다른 폭탄이 있는지 알아봐요. "
그는 지프에서 군인들을 비키게 하고 그 자리에 엉성한 벤치를 만든 다음 호광을 그쪽으로 비추어 달라고 부탁했다. 몸을 구부리고 세 부속품을 집어 임시 벤치를 따라 30센티마다 하나씩 내려놓았다. 이제 그는 추웠다. 더 따뜻한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하나씩 내려놓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병들이 아직도 폭발 원액을 비우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새로운 폭탄에 대한 정보를 메모하여 장교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그가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그 정보를 받아들일 터였다.
불빛이 있는 방에 해가 들어오면 불빛은 사그라든다. 그는 서폴크 경과 그의 이상한 지식의 조각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서폴크 경의 부재는 이제 모든 것이 싱그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에서 싱그가 런던 시 전체의 각종 폭탄에 대해 더없이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는 갑자기 서폴크 경이 마음 속에 항상 지녔던 책임감의 지도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자각으로 인해 그는 훗날 푹탄을 놓고 작업할 때면 많은 것을 막아버려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는 권력의 안무에 한치의 흥미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계획과 해결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 편안했다. 자신은 정찰과 해결책을 알아내는 일만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서폴크 경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결론짓고 군대라는 익명의 기구에 재입대했다. 수백 명의 다른 공병을 이탈리아 출정으로 실어나르는 '맥도널드' 군함에 올랐다. 여기서 그들은 폭탄뿐 아니라 다리를 건설하고 파괴물의 파편을 치우고, 장갑차가 다닐 길을 닦는 일에 투입되었다. 그는 전쟁의 남은 기간 동안 그곳에서 숨어 지냈다. 서폴크의 부대에 있던 싱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년 만에 부대 전체가 해산되고 잊혀졌다. 블랙클러 중위만이 재능에 따라 승진했다.
그러나 그날 밤, 루이스햄과 블랙히스를 지나 에리스로 차를 타고 가면서 싱그는 다른 어느 공병보다도 자신이 서폴크 경의 지식을 많이 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서폴트의 후임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호광을 끈다는 호각 신호를 들었을 때 그는 아직 트럭 앞에 서 있었다. 30초 이내에 금속 불빛은 트럭 뒤에 있는 유황불로 교체되었다. 또하나의 폭탄 공습. 그런 작은 불들은 비행기 소리가 들릴 때도 끌 수 있다. 그는 SC-250kg에서 꺼낸 부속품 세 개를 마주하고 빈 석유통에 앉았다. 호광의 정적 뒤에 온 탓에 주위의 불꽃에서 나는 쉬익-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이 짤깍 하기를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은 50미터 바깥으로 떨어져 서서 침묵했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꼭두각시 주인, 무엇이든 명령할 수 있다. 모래 한 양동이, 먹고 싶은 과일파이, 그리고 그들, 근무가 끝나고 손님 없는 술집에서 그를 보아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그들이 그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그 점이 그에게는 이상했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속에서 굴러다닐 만큼 통이 크고 소매가 땅에 끌리는 양복을 받은 것처럼. 그에게는 그 점이 이상했다. 그는 자신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데 익숙했다. 영국에서 그는 여러 막사에서 무시당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오히려 그 점을 다행스러워 했다. 훗날 해나가 본 자급자족 능력과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이탈리아 출정에 낀 공병이라는 점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인종에 속한 익명의 존재라는 이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부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방어적인 성격을 만들어 세웠다. 친구가 되는 사람만을 믿었다. 그러나 에리스에서의 그날 밤, 그는 자신과 같은 재능을 갖지 못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선을 자신의 몸에 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몇 개월 후 그는 이탈리아로 도망쳤다. 엔젠가 보았던 초록색 옷을 입은 소년이 히포드롬에서 크리스마스 중에 첫 휴가를 받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는 스승의 그림자를 배낭에 담고 떠났다. 서폴크 경과 모든 양이 그에게 영국 연극을 보여 주겠다고 했었다. 그가 "피터팬"을 고르자 그들은 말없이 받아들이고 고함 지르는 어린아이들로 가득 찬 연극을 보러 갔다. 그가 이탈리아의 언덕 마을에서 해나와 함께 텐트 안에 누워 있을 때 그런 추억의 그림자가 깔렸다.
그가 자신의 과거나 성격을 밝히는 일은 지나친 제스처였을 것이다. 해나에게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들의 관계가 생기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 것처럼. 그는 그 이상한 세 사람의 영국인에게 느꼈던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그녀를 안았다. 그와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 그의 유쾌함과 웃음을 지켜보던, 언제 초록 소년이 어린 소녀에게 돌아와서 두 팔을 들고 무대 높이 어둠 속으로 날아들어 갔는지 궁금해하는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
조명탄이 켜진 에리스의 어둠 속에서 그는 비행기 소리가 날 때마다 멈추었다. 그리고 유황불은 하나씩 모래더미로 가라앉았다. 그는 나른한 어둠 속에 앉아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찰칵거리는 기계에 귀를 대려고 의자를 옮기면서 여전히 딸깍딸깍하는 소리의 시간을 재며, 머리 위에 날고 있는 독일군 폭격기의 진동 속에서 기계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그러다가 그가 기다리던 일이 벌어졌다. 정확히 1시간 후, 타이머가 걸리고 뇌관이 폭파했다. 주 폭발추진 장약장치를 제거함으로써 숨겨진 두번째 폭발추진 장약장치를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이를 풀어준 것이다. 60분 후 - 일반적으로 공병이 폭탄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 터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 새로운 장치는 연합군 폭탄제거의 방향을 전반적으로 바꾸어놓을 만했다. 이 순간부터 모든 시한폭탄은 두번째 폭발추진 장약장치의 위험을 갖게 되었다. 공병들이 단순히 퓨즈를 제거해서 폭탄의 작동을 멈추는 방법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퓨즈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탄을 중화시켜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인지, 그는 1시간 전 호광 불빛에 둘러싸여 분노를 느끼면서 위장 폭탄에서 두번째 퓨즈를 절단했다. 폭격이 퍼부어지고 있는 유황빛 어둠 속에서 그는 하얀색과 초록색이 엉켜 손바닥만하게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1시간 후. 그가 살아 남은 것은 오직 운에 의해서였다. 그는 장교한테 다시 걸어가 말했다. "확실하게 하려면 또다른 퓨즈가 필요합니다. "
그들은 다시 주변에 조명탄을 피웠다. 다시 한번 그의 어두운 원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날 밤 그는 새 퓨즈들을 2시간이 넘도록 시험했다. 60분 시한은 일관되게 드러났다.
그는 그날 밤 대부분을 에리스에서 보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런던에 돌아가 있었다. 차를 탄 기억이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폭탄의 단면도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폭발추진 장약, 폭발 신관, ZUS-40 전체의 문제, 퓨즈에서 자물쇠 고리까지. 그 다음에는 폭탄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이 가능한 모든 노선을 기초 그림 위에 그려넣었다. 모든 화살표는 정확하고 그가 배운 대로 설명도 명확했다.
전날 밤 그가 발견한 것은 온전한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오직 행운이었다. 현장에서 그런 폭탄을 터트리지 않고 제거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다.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커다란 청사진 종이에 적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맨 끝에 적어 넣었다. 서폴크 경의 희망에 따라 그의 제자 커퍼 싱그 중위가 그림.
1945년 5월 10일.
서폴크의 죽음 이후 그는 전력을 다해 미친 듯이 일했다. 폭탄들은 새 기술과 장치로 빠르게 변했다. 그는 리전트 공원에서 다른 전문가 세 사람과 같이 살면서 새 폭탄이 올 때마다 해결책 및 청사진 만드는 일을 했다.
12일 동안 과학연구 이사회에서 일하면서 그들은 해답을 찾아냈다. 퓨즈를 완전히 무시하라. 그때까지 '폭탄을 제거한다.'로 정해졌던 첫째 원칙을 무시하라. 그것은 획기적이었다. 그들은 장교 회식 도중에 서로 웃고 박수 치고 부둥켜안았다. 다른 방도는 전혀 몰랐으나 어렴풋이 자신들이 옳다는 점을 알았다. 문제를 부둥켜안고 있다고 해서 풀 수는 없었다. 그것이 블랙클러 중위의 말이었다. "방 안에 문제와 함께 있을 때는 그것을 두고 이야기하지 말라 " 즉석에서 한 발언이었다. 그때 싱그가 그에게 다가가면서 그 말을 다른 각도로 풀이했다. "그러면 아예 퓨즈를 건드리지 맙시다. "
그 아이디어가 일단 나오게 되자 누군가 1주일 만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증기 무효법. 폭탄의 메인 케이스에 구멍을 내고서 스팀을 투입시켜 주 폭약이 유화되어 빠져나가게 하는 방법이었다. 한 동안은 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그 즈음에 그는 이미 이탈리아로 가는 배에 올라 있었다.
"폭탄에는 항상 노란 초크 글씨가 씌어 있어요. 본 적이 있습니까? 라호르 안마당에 정렬했을 때 우리 몸에 노란 초크 글씨가 씌어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입대할 때 우리는 줄을 서서 길거리에서 병원 건물로 안마당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지요. 표시되는 거였죠. 의사가 병원 기구로 우리 몸을 합격시키거나 불합격시켰어요. 손으로 우리 목을 만져보고, 집게가 데톨에서 미끄러져나와 살갗을 집어 올렸죠.
합격자들이 안마당을 가득 채웠어요. 암호로 표시한 검사 결과가 노란 초크로 우리 몸에 적혔습니다. 나중에 줄을 섰을 때, 짧은 면접을 하고 나서 인도인 장교 하나가 우리 목에 감긴 석판에 노란 글씨를 더 써 넣더군요. 몸무게, 나이, 출신지역, 학력, 치아 상태, 그리고 우리가 어느 부대에 가장 적합한가.
난 모욕당한 기분은 없었습니다. 우리 형은 아마 그렇게 느꼈겠죠. 불같이 화를 내며 우물로 가서 초크 자국을 닦아버렸을 거예요. 난 형 같지 않았죠. 허나 형을 사랑했어요. 존경했습니다. 난 천성적으로 모든 사물의 원인을 보는 면이 있었죠. 학교에도 열성적이고 아주 진지했습니다. 형은 늘 그 점을 흉내내고 놀렸어요. 당신은 이해하겠죠. 난 형보다 훨씬 진지하지 못했던 겁니다. 다만 대결을 싫어했을 뿐이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또 내 방식대로 일을 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 나는 일찍이 우리처럼 침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남들이 못 보고 지나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난 어떤 다리나 요새의 특정한 문 앞에서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 경찰과 다투지 않았죠. 그냥 가만히 그곳에 서 있었어요. 내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리고는 거기를 지나갔죠. 귀뚜라미처럼. 숨겨둔 한잔의 물처럼. 이해해요? 그것이 바로 형의 공공연한 싸움이 내게 가르쳐준 겁니다.
허나 나에게는 언제나 형이 우리 가족의 영웅이었죠. 형은 횃불과 같은 지위에 있었고 난 거기에 밀리는 공기의 흐름 속에 있었어요. 나는 온갖 시위 끝에 오는 형의 피로를 보았어요. 이런 모욕이나 저런 법에 대항하기 위해 형의 몸이 시동을 거는 것을. 형은 장남인데도 가문의 전통을 끊고 입대를 거부했어요. 영국이 지배하는 모든 일에 동의하기를 거부했죠. 그래서 사람들은 형을 감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라호르 중앙 유치장에. 나중에는 제트데거 교도소에. 형은 밤에 간이침데에 누워 친구들이 그의 탈옥 시도를 막으려고 부러뜨린 팔을 석고로 감은 채 치켜들었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했죠. 나처럼 말입니다. 내가 의사의 꿈을 버리고 자기 대신 입대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형은 모욕을 느끼지 않았어요. 다만 웃었죠. 그리곤 아버지를 통해 조심하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형은 나한테 대항하거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존의 수단과 침묵의 장소에 숨는 능력을 가졌음을 명확하게 알았거든요. "
그는 부엌 카운터에 앉아 해나와 이야기하고 있다. 카라바조가 밖으로 나가는 길에 무거운 밧줄을 어깨에 메고서 그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누군가 물어보면 개인적인 일이라고만 대답하면서. 그는 줄을 질질 끌고 문을 나서며 말한다. "영국인 환자가 자네를 찾아. 친구. "
"알았습니다. 친구. " 공병은 카운터에서 뛰어내린다. 그의 인도 억양이 카라바조가 꾸며낸 웨일즈 어투 위로 미끄러진다.
"우리 아버지는 새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작은 칼새였던 것 같아요. 식사할 때 마시는 물 한잔이나 안경처럼 늘 데리고 다니셨죠. 집에서는 침실에 잠깐 들어갈 때도 데리고 들어가셨어요. 일 나갈 때는 자전거 손잡이에 작은 새장이 매달려 있었죠. "
"아버지가 살아 계세요?"
"그럼요. 그럴 거예요. 한동안 편지를 못 받았어요. 그리고 형은 아마 아직도 유치장에 있을 겁니다. "
그는 한가기 일을 계속 기억한다. 그가 백마 안에 있다. 초크 언덕에서 그는 더위를 느낀다. 하얀 먼지가 그의 주위를 맴돈다. 그는 새로운 장치를 놓고 작업한다. 비교적 직선적인 장치지만 그는 처음으로 혼자서 일한다. 모든 양은 20미터 위에 있다. 비탈 고지에서 그가 하는 일을 기록한다. 그는 언덕 아래 계곡 너머에서 서폴크 경이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안다.
그는 천천히 일한다. 초크 가루는 위로 올라갔다가 모든 것들. 그의 손, 기계 위로 다시 내려온다. 따라서 그는 장치의 세밀한 부분을 보기 위해 퓨즈 뚜껑과 전선에 앉은 먼지를 계속 불어야 한다. 약식 군복은 덥다. 그는 자꾸만 땀에 젖는 손목을 뒤로 돌려 웃옷에 땀을 닦는다. 가슴에 달린 여러 주머니에는 해체시켜 낸 나사들이 가득하다. 그는 사물을 반복적으로 점검하는 데 지쳤다. 모든의 목소리가 들린다. "킵?" "네. " "하던 일을 멈춰요. 제가 내려갈게요. " "오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모든 양. " "내려가요. " 그는 각종 조끼 호주머니의 단추를 잠그고 폭탄 위에 천을 덮는다. 그녀는 어색하게 백마 안으로 내려와 옆에 앉으며 손가방을 연다. 작은 병의 화장수를 꺼내 레이스 손수건에 적셔 그에게 내민다. "얼굴을 닦아요. 서폴크 경이 원기를 회복할 때 쓰는 거예요. " 잠시 주저하다가 손수건을 받아든 그는 잠자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이마와 목과 손목을 문지른다. 그녀는 보온병을 열고 두 사람을 위해 홍차를 따르고는 기름종이를 풀어 핫케이크를 꺼내놓는다.
그녀는 언덕 위, 안전한 곳으로 서둘러 올라갈 기미가 없다.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일 것이다. 그녀는 그저 기승을 부리는 더위와 적어도 그들이 마을에서 욕실이 딸린 방을 구한 것, 그곳에 돌아가기를 고대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서폴크 강을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그들 옆에 있는 폭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그는 반쯤 잠든 상태에서 읽은 문장을 또 읽으며 문장과 문장의 연결을 이해하려고 애 쓸 때처럼 늘어진다. 그녀는 그를 문제의 소용돌이에서 끌어냈다. 가방을 조심스레 꾸리고 그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은 뒤 그녀는 웨스트베리 말 위에 있는 담요 자리로 돌아간다. 그에게 색안경을 주고 가지만, 그는 색안경을 끼고는 자세하게 볼 수 없어서 옆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다시 작업으로 돌아간다. 화장수 냄새. 그는 어릴 때 그 냄새를 맡은 기억이 있다. 그는 열이 났고, 누군가 향수로 그의 몸을 문질러 주었다.
VIII. 성스러운 숲
성스러운 숲
킵은 따을 파고 있던 들판에서 걸어나온다. 왼손을 삔 것처럼 앞으로 치켜들고 있다.
해나의 정원에 있는 허수아비, 멸치 깡통이 매달린 십자가를 지나 빌라를 향해 언덕을 오른다. 앞으로 내민 손에 다른 손을 대고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오므린다. 해나가 테라스에서 그르 맞는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손에 가져다 댄다. 그의 새끼손톱을 기어가던 무당벌레가 그녀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녀는 집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이제 그녀의 손이 앞으로 내밀어져 있다. 그녀는 부엌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환자는 들어서는 그녀를 향해 들어눕는다. 그녀는 무당벌레를 잡은 손으로 그의 발을 건드린다. 벌레는 그녀를 떠나 검은 피부로 옮겨간다. 하얀 시트의 바다를 패해서 벌레는 그의 몸의 나머지 부분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화산의 살점 같아 보이는 피부 위로 밝은 빨강색 점.
도서실안, 푸즈 상자가 공중에 있다. 카라바조가 복도에서 들려오는 해나의 유쾌한 고함소리에 몸을 돌리다가 건드리는 바람에 카운테에서 확 튀어오른 것이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킵이 그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손으로 받아낸다.
카라바조는 모았던 숨을 재빨리 두 뺨으로 토해놓는 젊은 남자의 얼굴을 내러다본다.
그는 갑자기 그에게 자신의 생명을 빚진 기분이 들었다. 킵은 나이든 시내 앞에서 평소의 수줍음을 잃고 전선 상자를 든 채 웃기 시작한다.
카라바조는 미끄러진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 다시는 그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를 잊을 수는 없다. 지금부터 몇 년 후 토론토의 어느 거리에서, 카라바조는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 택시를 타려는 동인도인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순간 킵을 생각할 것이다.
이제 공명은 카라바조의 얼굴을 보고 의미없이 웃다가 그를 지나 천장을 향해웃는다.
"난 사롱에 관해 모든 걸 알고 있지."
카라마조는 킵과 해나에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토론토 동쪽 끝에서 인도인들을 만났어. 집을 하나 털었는데, 그게 인도인의 집이었지. 사람들이 침대에서 일어날 때 보니까 사롱이란 옷을 입고 있더군. 잘 때 입는 거였어. 신기해 보이더군. 우린 서로 할 얘기가 많아서 함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들이 나를 설득했어. 그 옷을 입도록 말야. 그래서 내가 옷을 벗고 사롱을 입으려는 순간 일제히 달려들더군. 한밤중에 반나체로 도망다녔어."
"실제로 있었던 일이예요?"
그녀는 씩 웃었다.
"그렇고 말고!"
그녀늕 그 말이 거의 사실이라고 믿을 만큼 그를 잘 알았다. 카라비조는 도둑질을 하다가도 인간적인 면 때문에 종종 다른 길로 빠지는 경우기 있었다. 크리마스 때 어떤 집에 침입해서 강림절 달력이 제 날짜에 펼쳐져 있지 않으면 화를 냈다. 집에 혼자 남은 애완동물과 대화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럴 듯한 말로 그들과 식사에 관해 토론하고 먹이를 듬뿍 주는 식이었다. 그가 범죄 장소로 다시 돌아가면 동물들에게 무척 환영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서실에서 책장으로 걸어가 두 눈을 감고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뽑는다. 시집의 두 단락 사이에서 빈 장을 찾아 써 내린다.
그는 리호르가 고대도시라고 말한다. 라호르에 비하면 런던은 근대의 도시이다. 내 생각엔, 글세. 나는 그보다 더 최근에 생긴 도시에서 왔다. 그는 그들이 줄곧 화약에 관해 알아왔다고 말한다.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궁중 그림에 폭탄의 질열을 그려놓았다고 한다.
그는 작다. 나보다 별로 크지 않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친밀한 미소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것이라도 유혹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강한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국인은 그를 전사 성인 중의 하나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평소의 매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유머감각이 있다.
"내일 아침 다시 연결해 주겠다."
우라라!
그는 라호르에 열세 개의 문이 있다고 한다. 성인과 황제들의 이름을 따거나 혹은 그들이 다다른 지역의 이름.
방갈로라는 단어는 밴갤리에서 왔다.
오후 네 시에 그들은 킵을 진흙 구덩이로 내려보냈다. 허리춤까지 진흙물에 잠기고 그의 몸이 폭탄의 몸을 감쌌다. 수직안전판에서 끝까지 3미터, 그 끝이 그의 발 옆 진흙 속에 잠겼다. NAFFI댄스장에서 보았던 군이들이 구석에서 여자를 안는 것 처럼, 훍탕물 밑에서 넓적다리로 금속덮개를 조였다. 팔이 아파오자 그는 어깨 높이의 나무받침대에 팔을 걸쳤다. 받침대는 주변의 진흙이 가라앉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공병들은 그가 도착하기 전에 주위에 구멍을 파고 나무기둥을 세웠다. 1941년, 새로운 Y푸즈가 부착된 폭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두 번째로 다루는 것이었다.
이미 작전회의에서 새 퓨즈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제거시키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타조 모양의 거대한 폭탄이었다. 그는 맨발로 내려왔는데 벌써 진흙에 붙들려, 차가운 물 속에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천천히 가라앉았다. 부츠는 신지 않았다. 부츠속에 진흙이 박혀버려서 나중에 잡아뺄 때 그 충격으로 발목이 부러질 염려가 있었다.
그는 왼쪽 뺨을 금속 덮개에 대고 6미터 구멍으로 들어와 목뒤로 떨어지는 작은 해의 손길에 집중하며 온기를 생각하려 애썼다. 그가 안고 있는 부분은 가동부가 흔들리거나 폭발추진 장약이 폭파하기만 하면 어느 순간에든 터질 수 있었다. 어떤 캡슐이 언제 터질지, 어떤 전선이 언제 동요를 멈출지 말해줄 수 있는 X레이나 요술은 없었다. 그런 작은 기계적 신호는 심장의 중얼거림이나 길거리에 순진하게 당신으 앞을 지나가는 사라므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과 같았다.
여기가 어느 마을이더라? 그는 그런 것도 기억할 수 없다.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하녀가 로프 끝의 손가방에 장비를 넣고 있었다. 그리고 로프는 컵이 온갖 집게와 공구를 제복에 달린 주머니에 넣는 동안 그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현장으로 오는 길에 하디가 지프에서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버킹엄 궁 근위대가 교체하네...
크리스토퍼 로빈이 엘리스와 함께 갔네.
그는 퓨즈 머리 부분의 물기를 닦고서 진흙컵으로 그 모양을 떠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병마개를 열어 액체 산소를 컵에 따랐다. 컵을 테이프로 금속에 완전히 붙였다. 이제 그는 다시 기다려야 했다.
폭탄과 자기 사이에 있는 공간이 너무 좁아서 그는 벌써 공기의 변화를 느꼈다. 마른 땅이었다면 물러났다가 10분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은 그 폭탄 옆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있는 두 개의 수상한 물체였다. 그들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있는 두 개의 수상한 물체였다. 칼라일 대위는 기둥 안에서 냉동산소를 가지고 작업했다. 갑자기 구멍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들은 재빨리 그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진흙 구덩이 속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곳이 어디었던가? 리슨 그로브? 올드 켄트 로드?
킵은 탈지면을 진흙물에 담갔다가 퓨즈에서 약 30센티미터 떨어진 덮개에 갖다댔다. 미끄러졌다. 그렇다면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탈지면이 달라붙으면 퓨즈 주위가 충분이 얼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컵에 산소를 다 따랐다.
점점 자라는 원의 반지름이 이제 30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몇 분 뒤, 그는 누군가 폭탄에 오려 붙인 신문기사들을 보았다. 그날 아침 모든 푹탄 재겨 부대에 배부된 최신 장비 통에 들어있던 것으로, 그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읽었던 내용이다.
언제 폭발이 일아나야 무방한가?
인간의 생명을 X로 놓고, 위험을 Y, 그리고 폭발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를 V로 놓을 경우 논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V가 Y분의 X보다 작을 때는 폭탄을 터뜨리고, Y분의 V가 X보다 클 때는 그 자리에서 폭파시키는 것을 피하도록 한다.
누가 그런 것을 썼을까?
그는 이제 1시간이 넘도록 폭탄과 함께 기둥 안에 었었다. 계속 액체산소를 부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 높이에서 산소 때문에 현기증을 일으키지 않도록 정상적인 공기가 호스를 통해 나왔다(그는 술에 덜 깬 군인들이 산소를 가지고 두통을 치료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탈지면을 다시 붙여보니 이번에는 달라붙었다. 약 20분의 시간이 있다. 그 후에는 푹탄의 배터리 온도가 다시 올라간다. 그러나 당장은 퓨즈가 얼어붙어 있어서 제거할 수 있었다.
그는 금속에 갈라진 틈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손바닥을 펴서 푹탄 케이스를 훑었다. 물에 잠신 부분은 안전하다. 그러나 드러난서 폭약에 산소가 닿으면 불이 붙을 염려가 있었다. 칼라인의 실수 Y분의 X. 갈라진 틈이 있다면 액체 질소를 사용해야 한다.
"2천 파운드짜리 폭탄입니다. 장교님."
진흙 구멍 위에서 하디의 목소리.
"유형 표적 50, 원 안에. B퓨즈 주머니 2개인 것 같은데, 두 번째 것은 무장된 것 같지 않아요. 그렇죠?"
그들은 전에 그 모든 것을 논의했다. 그 내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상기시키는 것이다.
"마이크로폰을 틀어놓고 뒤로 물러가."
"그러죠, 장교님."
킵은 미소지었다. 그는 하지보다 열 살은 어렸다. 게다기 영국인도 아니었다. 거러나 하디는 연대 규율의 고치 속에서 가장 행복해했다. 사병들은 킵에게 '장교님'이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하디는 항상 열심히 큰소리로 불러댔다.
이제 모든 배터리가 잠든 동안 그는 퓨즈를 꺼내려고 재빨리 일을 서둘렀다.
"내 말이 들리나? 휘파람...오호케이. 들었어. 마지막 산소로 씌우기 30초 동안 거품이 나도록 두겠어. 그리고 시작. 서리를 빼고, 이제 장애물을 제거... 좋아, 장애물을 치웠어."
하디는 그 말을 다 들으면서 일이 잘못될 경우에 대비하여 녹음하고 있었다. 불꽃 하나면 킵은 불기둥에 휩싸이게 된다. 혹은 폭탄에 뜻밖의 속임수가 있을 수도 있다. 다름 사람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덮개 열쇠를 사용해."
그는 가슴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차갑게 식은 열쇠를 손으로 문질러 자물쇠 고리를 벗기기 시작했다. 쉽게 식은 열쇠를 손으로 물질러 자물쇠 고리를 벗기시 시작했다. 쉽게 떨어졌다. 그는 하디에게 방금 한 작업을 설명했다.
"버킹엄 궁에서 근위대가 교체하네."
킵은 휘파람을 분다. 그는 자물쇠 고리와 위치 고리를 떼어 물 속으로 가라앉게 놓아버린다. 발 옆으로 천천히 굴러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모든 일은 앞으로 4분 더 걸린다.
"앨리스는 근위대와 결혼하네. '군인 생활은 힘들어요' 앨리스가 말하네!"
그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큰소리로 노래했다. 가슴이 고통스러울 만틈 차가웠다. 그는 정면에 있는 얼어붙은 금속에서 충분히 떨어지려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아직도 햇빛이 꽃히는 목 뒤로 가져가 진흙 찌꺼기와 기르모가 서리를 닦아내야 했다. 콜레트로 머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그가 두려워하던 대로 퓨즈가 떨어졌다.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아냐, 하디. 푸즈 머리 전체가 떨어졌어. 대답해. 알겠어? 퓨즈의 주된 부부능ㄴ 저 아래 걸려 있어. 닿지 않아. 붙잡을 만한 것이 없어."
"서리는 어디 있습니까?"
하디는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그는 기둥으로 달려왔다.
"서리는 6분 더."
"올라오십시오. 터뜨리죠."
"아니, 산소를 더 내려보내 주게."
그는 오른손을 들고 차가운 깡통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퓨즈가 드러난 부분에 기름을 붓겠어. 머리가 떨어진 부분에. 그리고 금속을 잘라 들어가겠어. 뭐가 잡힐 때까지. 이제 뒤로 물러가. 내가 계속 말하면서 하지."
그는 일이 그렇게 된 데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이 거름이라 부르는 산소는 불에 닿는 순간, 쉬익 소리를 내며 그의 옷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그는 서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끌로 금속을 자르기 시작했다. 더 쏟어붓고 기다렸다가 더 깊이 잘랐다. 아무것도 떨어져 나오지 않자, 그는 셔츠를 찢어 금속과 끌 사이에 넣고 망치를 끌을 세게 때려 조각을 끊어냇따. 불꽃에서 그를 보호해주는 것은 셔츠 조각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손가락이 시린 점이었다. 손가락은 더 이상 민첩하지 못하고 배터리만큼이나 둔했다. 그는 잃어버린 퓨즈 머리 주변의 금속을 옆으로 계속 잘라냈다. 동결이 그런 식의 수술을 받아주기만 바라면서 겹겹이 밀어냈던 것이다. 곧장 잘라 내려가면 자칫 폭발추진 장약을 발화시킬 뇌관을 건드릴 위험이 항상있었다.
5분이 더 걸렸다. 하디는 구멍 위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동결지점까지 남은 시간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사실 둘 다 확신 같은 건 없었다. 퓨즈 머리가 떨어져나온 때부터 그들은 다른 부분을 동결시켰다. 물의 온도는 그에게는 차갑지만 금속보다는 따뜻했다.
그때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는 감히 구멍을 더 크게 낼 수 없었다. 은빛 얼굴처럼 꿈틀거리는 회로의 접촉. 그가 닿을 수만 있다면, 그는 손을 따뜻하게 하려고 문질렀다.
숨을 내쉬고 몇 초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숨을 다시 들이쉬기 전에 접촉을 절단했다. 회로에서 손을 꺼낼 때 냉동장치에 손을 데어서 숨을 헐떡였다. 폭탄은 죽었따.
"퓨즈 제거. 게인 절단. 나한테 키스하게."
하디는 벌써 위치를 위로 올리고 있었다. 킵은 밧줄에 매달리려고 애썼다. 화상과 추위로 모든 근욱이 얼어붙어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는 도르래 소릴를 듣고서 여전히 몸에 감겨 있는 가죽끈을 힘껏 잡았다. 진흙의 손아귀에서 다리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전해졌다. 마치 늪에서 오래된 시체를 꺼내는 것과 같이. 그의 작은 발이 물 위로 올라왔다. 그가 나타났다. 구멍 위로 들려져 머리부터 햇빛 아리료, 그리고는 가슴.
그는 도르래를 잡아주는 기둥의 티피(삼각뿔 모양을 한 북미 원주민의 천막집. 옮긴이)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는 회전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하디가 가죽끈을 풀면서 그를 얼싸안았다. 순간 드는 약 20미터 거리에서 지켜보는 무리를 보았다. 너무 가까웠다. 안전을 보장받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그들은 자칫하면 전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들을 뒤로 물러서게 할 하디는 그 무리 속에 끼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공구와 깡통과 담요와 기둥 속의 무를 녹음하기 위해 아직도 돌아가는 녹음기. 그 모든 장비와 함께 하디의 어깨에 매달려 혼자 지프까지 걷지도 못하는 인도인.
"못 걷겠어."
"지프까지만, 몇 미터만 더요, 장교님. 다른 것들은 제가 걷어 치우겠습니다."
그들은 몇 번이나 멈추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사람들이 이 옅은 갈색 피부의 사내를 지켜보았다. 맨발에 군복은 젖고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한 찡그린 얼굴의 남자. 다들 한결같이 말이 없었다. 다만 그와 하디가 지나갈 길을 비켜줄 뿐. 지프에 올라 그는 떨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앞 유리창의 부서지는 빛을 견디지 못했다. 하디가 그를 들어, 조심스럽게 뒷좌석으로 옮겨 앉혔다.
하디가 가자 그는 천천히 젖은 바지를 벗고 담요로 몸을 감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좌석 옆에 놓인 따뜻한 홍차 보온병 뚜껑을 열 힘도 없을 만큼 춥고 피곤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저 아래에 있을 때 난 두렵지 않았어. 다만 화가 났지. 내 실수에, 또는 속임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반응하는 동물.'
그는 깨달았다. 오직 하디만이 이제 나를 인간이게 한다.
산지롤라모 빌라에 무더운 날씨가 찾아오면 그들은 모두 머리를 감는다. 우선 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등유로 씻고, 그 다음에 물로 헹군다. 머리키락을 풀어헤치고 해를 향해 두 눈을 감고 눕는 순간, 킵은 문득 상처바기 쉬워 보인다. 그렇게 나약한 자세로 있을 때 그에게서는 수줍음이 느껴진다. 사람이라든가 다른 살아 있는 생명체라기보다는 신화 속의 시체처럼 보인다. 해나는 벌써 진한 갈색 머리를 다 말린 그의 옆에 앉는다. 그런 시간이 바로 그가 자신의 가족과 감옥에 있는 형에 관해 이야기하는 때다.
그는 일어나 앉아서 머리칼을 아프로 쏟뜨리고 수건으로 비빈다. 그년느 이 한 남자의 몸짓에서 아시아 전체를 상상한다. 그의 게으른 움직임, 그의 조용한 문명, 그는 전사 성인들에 고나해 이야기하고, 그녀는 그가 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호하고 망상가적인, 오직 이렇게 햇빛이 드물게 쏟아지는 시간에만 잠시 신을 부정하고, 부채 모양의 밀짚 바구니 안에 든 곡물처럼 아무런 격식 없이 펼친 머리카락을 말리려고 다시금 고개를 탁지 위로 쏟는다. 비록 그가 이 전쟁의 말기에 영국인 조상을 택하고 착실한 아들처럼 그들의 법을 따르는 아시아에서 온 남자라 할지라도.
"하, 허나 우리 형은 내가 영국인을 믿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에 햇살이 비쳤다.
"언젠가 내가 눈을 뜨게 될 거라고 하죠. 아시아는 아직도 자유로운 대룩이 아닙니다. 그래서 형은 우리가 어떻게 영국 전쟁에 스스로 몸을 던질 수 있느냐고 질색하죠. 우리가 한상 나누던 언쟁이예요. 형은 거듭 '언전가 네가 눈을 뜰거다'라고 했죠."
공병은 그 말을 하며 두 눈을 꼭 감고 은유법을 훈내낸다. "일본은 아시아의 일부야. 내가 말하조. 그런데 시크족은 말레이 반도에서 일본군에게 잔인하게 당했지. 형은 그 말을 무시합니다. 그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시크족을 이제 영국이 처형한다고 말하죠."
그녀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팔짱을 낀다. 세계의 불화. 세계의 불화. 그년느 빌라의 대낮의 어둠 속을 걸엇 영국인 곁에 앉으러 간다.
밤에 그녀가 그의 머리를 풀면, 그는 또 한 번 성좌가 된다. 그의 베게의 수천 개에 달하는 적도의 팔이, 그리고 그들의 포옹과 잠의 회전 속에 그들 사이를 넘실대는 파도가 있다. 그녀는 인도의 여신을 품에 안고 밀과 리본을 품 안에 안는다. 그가 그녀의 위로 몸을 수그릴 때 머리칼이 쏘아진다. 그녀는 그것을 팔목에 묶을 수 있다. 그가 움직이면 그녀는 텐트의 어둠 속에서 그의 머리카락에 이는 정전기를 보려고 두 눈을 뜨고 있다.
그는 항상 사물에 대해 움직인다. 벼4 옆으로, 테라스 난간으로,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해나를 쳐다볼 때, 그는 가냘픈 그녀의 뺨의 일부분을 그 뒤에 펼쳐진 풍경과 더불어 본다. 홍방울새가 그리는 원을 바라볼 때 땅 표면에서 모아 올리는 공간 전체를 보는 것과 같이. 그는 일시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보력 애쓰는 눈을 가지고 이탈리아 반도를 걸어 올라왔다.
그가 절대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 자신이다. 사지의 어스푸레한 그림자나 의자 등을 향해 뻗치는 자신의 손이나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나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 유일하게 안전한 것은 자기자신뿐임을 그는 전쟁 동안 배웠다.
그는 영국인과 함께 몇 시간씩 보낸다. 영국에서 보았던 전나무를 연상케 하는 사람, 다른 나무로 만든 버팀목에 몸을 지탱하던, 나이들어 시들기까지 한, 병든 가지하나, 나무는 브리스를 해협을 보초처럼 내려다보던 벼랑 끝에 있는 서플크 경의 정원에 있었다. 그런 병든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속에서 고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병을 초월하여 펼쳐지는 힘을 가진 추억과 함께.
그는 자기 거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자기 정원에서 나무에 낀 이끼를 보며 터빈을 바로잡는다. 그러나 그는 해나의 머리에 가위가 남긴 절단 자국을 본다. 그는 그녀의 몸, 뼈가 피부를 가볍게 하는 그녀의 쇄골에 얼굴을 댈 때 느끼는 그녀이 숨결에 익숙하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의 눈 색깔을 물어보면, 비록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기는 했지만,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는 웃으며 추측하리라. 그러나 검은 눈의 그녀가 두 눈을 감고서 초록색이라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을 것이다. 그는 두껍게 그년의 눈을 들여다보면서도 그 빛깔을 새겨두지 않는다. 이미 목젖이나 위 속에 들어간 음식이 맛이나 특별한 목적을 떠나 단순한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이.
누군가 말할 때 그는 입을 쳐다본다. 눈이나 눈 색깔을 보지 않는다. 그에게 눈 색깔이란 하루 중의 어느 시간, 방 안의 빛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입은 성격의 스팩트럼에 따라 불안, 위장, 또는 그밖의 다른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에게 입은 얼굴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눈이 무엇을 드러내는 지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입은 어떤 식으로 단호하게 굳고 또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지 읽을 수 있다. 눈은 한 줄기의 간단한 햇빛에 대한 반응이므로 그 것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에게 모든 것은 변화의 하모니처럼 보인다. 그는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그녀의 목소리, 성격, 심지어 아름다움까지 바뀌는 것을 본다. 바다의 힘이 구명 보트의 운명을 흔들거나 지배하는 것처럼.
그들은 동이 틀 때 일어나고 마지막 빛이 남아 있는 동안 저녁을 먹는 습관을 들였다. 늦은 저녁시간 동안에는 영국인 환자 옆에 어둠을 향한 춧불 하나만이 켜지고, 간혹 가라마조가 기름을 구해오면 반쯤 기름이 채워진 램프가 밝혀졌다. 그러나 복도와 다른 침실은 묻혀버린 도시처럼 어둠 속에 매달렸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팔을 뻗어 손끝으로 한쪽 벽을 더듬으면서 걷는 데 익숙해졌다.
"더 이상 불은 안돼. 더 이상 빛깔은 안 돼."
해나는 스스로에게 자꾸만 되뇌었다. 한손으로 난간을 잡을 듯하면서 계단을 뛰어내리는 킵의 겁 없는 습관은 이제 만류해야 했다. 그녀는 그의 발이 허공을 날아가 반대쪽에서 오는 카라바조의 배에 내리꽂히는 상상을 했다.
그녀는 영국인 환자의 방에 있는 촛불을 한 시간 일찍 껐다. 테니화를 벗고 여름 더위 때문에 드레스의 목 단추를 푼 뒤, 소매도 단추를 풀어 팔뚝 위로 걷어울렸다. 기분 좋은 무질서.
건물 끝 아래층에 부엌, 도서실, 버려진 성당에거 떨어져 유리문 안에 든 실내 정원이 있었다. 네 벽의 유리창과 유리문 하나 속에 덮인 우물과 한때 물이 들어오는 따뜻한 방에서 무성했을 죽은 식물들이 놓인 선반이 있다. 이 실내 정원은 그녀에게 차츰 책갈피에 끼워 둔 꽃잎을 열어보는 느낌을 주었다. 지나칠 때 쳐다보기만 할 뿐 걸어들어가지 않는.
새벽 2시였다.
그들은 각각 발라의 다른 출입구로 들어왔다. 해나는 36계단 옆의 성당 쪽으로, 그리고 그는 북쪽 정원으로. 집 안에 들어서자 그는 시계를 풀어서 이 빌라 병원의 보호자인 작은 성상이 놓인 가슴 높이의 벽장에 밀어 넣었다. 이 빌라 병원의 보호자. 그녀는 인의 섬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벌써 신발을 벗어두고 바지만 입은 차림이다. 팔에 감긴 램프는 꺼져 있다. 그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잠시 서 있었다. 가냘픈 소년, 검은 터번, 손목에 느슨한 '카라'. 그는 환관 귀퉁이에 창과 같이 기대섰다.
그리고는 미끄러지듯 실내 정원을 지았다. 부엌에 들어선 순간, 그는 어둠 속에 개가 있는 것을 느끼고 얼른 붙잡아서 탁자에 묶었다. 선반에서 농축우유를 집어 실내 정원의 유리방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문의 아래 끝을 더듬으니 작은 막대기가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문을 닫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보았을 경우에 대비하여 막대기를 좀전처럼 문에 받치듯 세워놓았다. 그리고 우물 안으로 기어 내려갔다. 1미터 아래에 견고한 십자형 널빤지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ㅁ너리 위에서 뚜껑을 닫은 뒤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를 찾아 헤매거나 그에게서 숨으려 하는 그녀를 상상하면서, 그리고 농축우유 깡통을 빨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이런 점을 의심했다. 도서실에 들어선 그녀는 팔에 감긴 불을 켜고 밞고께에서 머리 위의 보이지 않는 높이까지 가려주는 책장 앞에 섰다. 문이 닫혀 있기 떄문에 복도에서는 그녀의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외부에 있을 경우에만 프렌치 도어 반대쪽에서 불빛을 볼 수 있다. 그녀는 몇 발자국마다 한 번씩 멈춰서서 이탈리아 서적으로 가득한 책장에서 영국인 환자에게 소개할 영국 책을 찾았다. 그녀는 세네카로 옷을 입은 이 책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속표지, 살짝 건드린 듯한 빛깔의 그림들과 그 위에 덮인 얇은 종이, 냄새, 심지어는 책을 뒤적일 때 나는 소리. 그녀는 다시 멈추었다. '파르마의 차트하우스'
"내가 언젠가 어려움에서 벗어난다면"
그는 클렐리아에게 말했다.
"파르마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방문하겠소. 그러면 그대는 파브리지오 텔 돋고라는 이름을 기억해줄거요."
카라바조는 도서실의 안쪽 구석의 카펫 위에 누워 있다. 어둠 속에서 보니 해나의 왼팔은 생인처럼 빛났다. 책들을 비추고 그녀의 검은 머리에 붉은색을 반사하며 드레스의 윗부분과 팔뚝의 불룩한 소매 옆에서 타는 인.
그는 우물에서 나왔다.
1미터 직경의 둥근 빛이 그녀의 팔에서 퍼져나와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카라바조에게는 마치 그들 사이에 어둠의 골짜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갈색 표지의 책을 오른팔 아래 끼었다. 그녀가 움직임에 따라 새 책들이 나타나고 다른 책들이 사라졌다.
그녀는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더 잘 이해하던 때, 그녀가 부모 슬하에 있을 때보다 더 사랑했다. 지금 그녀는 스스로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었다. 그가 해나를 유럽의 어떤 거리에서 만났다면, 분위기가 익숙한데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빌라에 온날 밤, 그는 충격을 감추었다. 그녀의 금욕주의적 얼굴, 처음에 냉성하게 보였던 그 얼굴에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지난 2개월 동안 그는 지금의 그녀에게 익숙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변화에 대해 자기가 느끼는 기쁨을 믿기 어려웠다. 몇 년 전 그는 그녀를 성녀로 상상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녀의 세계에 기초를 둔 성격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 그가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완성되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이렇게 멋지게 달라진 인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으려고 램프를 안쪽으로 돌리고 어느새 그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이다가 재빨리 불을 껐다.
방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나? 카라바조는 자신의 숨소리를 의식하고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잠깐 불이 켜졌다가 이내 다시 꺼졌다.
그러자 카라바조를 제외한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듯 했다. 그는 자기 몸에 닿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주위의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젊은 친구가 방 안에 있었다. 카라바조는 소파로 걸어가서 해나를 향해 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누군가의 팔이 그의 목을 감고서 아래로 거세게 끌어당겼다. 그의 얼굴에 불빛이 환하게 쏟아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두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불빛을 뿜는 팔이 여전히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는 맨발이 빛을 향해 다가와 카라바조의 얼굴을 지나치더니 그 옆에 있는 젊은 친구의 목을 내리눌렀다. 또다른 불이 켜졌다.
"잡았어요. 잡았어요."
바닥의 두 몸은 불빛 위에 시커멓게 윤곽을 드러낸 해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잡았죠. 잡았죠. 카라바조를 이용했어요. 숨소리가 크니까! 여기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를 미끼로 썼어요."
그녀의 발은 젊은 친구의 목을 더 세게 눌렀다.
"항복해요. 고백해요."
카라바조는 젊은 친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목을 흔들었다. 벌써 땀이 흥건했다. 이제 두 램프 불이 그를 비추었다. 어떻게해서든 이 공포를 벗어나야 했다. 고백해요. 그녀는 웃고 있다. 그는 말하기 저에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모험에 흥분되 상태여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젊은 친구의 느슨해진 팔에서 풀려나면서 아무 말 없이 방을 걸어나왔다.
그들은 다시 어둠 속에 있었다.
"어디 있어요?"
그녀가 묻는다. 그리고 재빨리 움직인다. 그녀가 자기 가슴에 세게 부딪치도록 자세를 취하는 순간, 그의 품에 그녀가 미끄러진다. 그녀는 그의 목에 손을 얹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는다.
"농축우유! 우리가 경쟁하는 동안에? 농축우유?"
그녀는 입술을 그의 목으로 가져가 그 땀, 그녀의 발이 누르던 부분을 맛본다.
"당신을 보고 싶어."
그의 불이 켜지고 그는 여자를 본다. 얼굴에는 먼지로 줄이 가 있고 머리는 땀으로 헝클어진 그녀의 모습, 그리고 그를 향한 웃음.
그는 마른 양 손을 그녀의 느슨한 드레스 소매 안으로 넣고 부드러운 어깨를 손으로 안는다. 이제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그의 손이 그녀를 따라갈 것이다. 그녀가 몸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온몸의 무게를 싣고 뒤로 넘어간다. 그가 그녀와 함께 올 것을 믿고 그의 손이 넘어지는 것을 막아주리라 믿으면서. 그러자 그는 꼰 몸을 쓰러뜨렸다. 발을 허공에 둔 채, 다만 손과 팔과 터번이 그녀 위에 포개져 있다. 몸의 나머지 부분은 작은 망토의 꼬리. 램프는 여전히 그의 왼팔에 맺힌 땀과 근육에 매달려 있다. 그녀의 얼굴이, 키스하고 핥고 맛보기 위해 그 빛 속으로 미끄러진다. 그녀의 젖은 머리에 그의 이마가 타월처럼 감겨 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방 건너편으로 간다. 그가 1주일에 걸쳐 위험한 퓨즈를 모두 치워 이제 깨끗해진 그 방 안에 공병 램프가 사방으로 펄떡이고 있다. 마치 방이 전쟁으로부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듯. 그곳은 더 이상 어떤 지역 또는 영역이 아니라 방이었다. 그는 램프만 가지고 움직이면서 팔을 흔들어 천장을 드러나게 한다. 그가 지나칠 때 소파 등에 서 있는 그녀의 웃는 얼굴. 그녀는 그의 마른 몸이 번떡이는 것을 보고 있다. 다시 그녀의 곁을 지날 때 그는 몸을 수그리고 드레스 치마에 팔을 문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내가 잡았어요. 내가 잡았어요."
그녀는 노래하듯 되뇌인다.
"난 댄포스가의 모히칸이예요."
다음 순간 그녀는 그의 등에 업혀 있다. 그녀의 불이 높은 선반의 책 사이로 비껴간다. 그가 그녀를 업고 빙빙돌자 그녀의 양팔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녀의 무게가 앞쪽 아래로 떨어져 그의 넓적다리를 붙잡는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아래로 떨어져 그에게서 풀려난다. 고대의 비 냄새가 어직 서려 있는 낡은 카펫 위에 눕는다. 젖은 팔에 먼지와 모래 조각. 그는 그녀를 향해 몸을 수그린다. 그녀는 팔을 뻐어 그의 불을 끈다.
"내가 이겼죠?"
그는 방에 들어온 이래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가 그 동작, 그녀가 좋아하는 부분적인 끄덕임, 그리고 부분적인 거부를 뜻하는 도리질을 해 보인다. 그는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동등하도록 그녀의 불을 끈다.
해나와 킵이 서로의 곁에서 나란히 잠든 때는 그들의 삶에서 한달 동안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공식적인 금욕이 있었다. 사라의 해위 안에 완전한 문명, 그들 앞의 나라 전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성 자체만을 위해서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그처럼 젊은 나이에 그나 그녀가 어디에서 그것을 배웠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카라바조가 자신의 나이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무수한 저녁 시간 동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스스로 알게 될 때 애인의 모든 세포를 향해 애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그 순간 그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결국 죽어야 할 운명의 시대였다. 그의 오르가즘이 달의 견인, 밤에 의한 몸의 견인에 더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의 욕망은 해나의 팔에 안겨 깊이 잠들었을 때만 완전해졌다.
저녁 내내 그는 마른 얼굴을 그녀의 갈비뼈에 파묻고 있다. 그녀가 손톱으로 그의 등에 원을 그리며 등이 긁히는 쾌감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수년 전 유모가 가르쳐준 것이다. 유년기의 모든 안락과 평화는 그녀에게서 왔음을 킵은 기억했다. 단 한 번도 그가 사랑하던 어머니나 같이 놀던 아버지, 형에게서 오지 았았다. 무서워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그런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유모였다. 그의 가냘픈 등에 손을 얹고 토닥여 잠재워주던 남부 인도 출신의 친밀한 이방인, 그들과 함께 살면서 집안 일을 돌보고 식사를 차려주던, 그 가정의 껍질 안에서 자기 아이들을 함께 키우며 일찍이 자시느이 형을 돌보아준, 필시 아이들의 성격을 부모보다 더 잘 파악했을 여자.
그것은 서로간의 애정이었다. 킵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어머니보다도 유모를 꼽을 것이다. 그녀의 푸근한 사랑이 그에게는 어떤 혈육의 애정이나 성적인 사랑보다고 컸다. 그는 평생 동안 그런 사랑을 찾기 위해서 갖고인 아닌 외부로 끌려간다는 점을 나중에 깨닫는다. 타인의 플라토닉한 친말함, 또는 때로 타인의 성적인 친밀함, 자신이 그런 면을 그가 깨닫게 되는 것을 스스로에게 누구를 가장 사랑했는지를 묻기 전인, 나이게 제법 든 뒤다.
비록 유모는 이미 그의 사랑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 사랑에 보답할 때는 단 한 번뿐이었다고 느낀다. 유모의 어머니가 죽었을 떄 그는 방으로 기어 들어가 갑자기 늙어버린 유모의 몸을 안았다. 격식에 맞춰 격력하게 통곡하던 작은 하인의 방에서 그는 소리 없이 그녀의 비탄 곁에 누웠다. 그녀가 작은 유리컵을 얼굴에 대고 눈물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례식에 가져갈 눈물. 그녀의 구부정한 어깨 뒤에서 그는 아홉 살의 손을 어깨에 얹고, 마침내 그녀가 간간이 어깨를 들먹이며 진정했을 때 그는 사리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몸을 긁어주다가 옆으로 옷을 밀치고 살갗을 긁어주었다. 이제 해나가 받는 그 부드러운 예술, 피부의 백만 개의 세포 위에 닿는 그의 손톱, 그의 텐트 안에서, 1945년에, 그들이 대륙이 언덕 마을에서 만난 그곳에서.
IX.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 이야기해주기로 했었지.
재프리 클리프튼이란 젊은이는 옥스포드에서 한 친구를 만나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해 들었어. 그는 나한테 연락을 했고, 다음날 결혼하고서 2주 뒤에 아내와 함께 카이로로 날아왔지 .그들은 신혼여행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어. 그것이 우리 이야기의 시작이오.
내가 캐더린을 만났을 때 그녀는 결혼한 여자였지. 유부녀. 클리프튼이 비행기에서 내렸소. 우리는 클리프튼만 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녀가 나타났소. 카키색 반바지, 깡마른 무릎. 당시 그녀는 사막에 대해 지나치게 열중해 있었어. 나는 그 젊은 부인의 열성보다는 그의 젊음을 더 좋아했지. 그는 우리의 조종사, 전령, 사전조사원이었어. 그는 신세대였지. 우리 머리 위로 날면서 신호로 색깔 있는 긴 리본을 떨어뜨려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를 가르쳐주곤 했어. 틈만 나면 그는 아내에 대해 애정 표시를 했소. 네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녀와 남편이 말하는 신혼여행의 즐거움. 그들은 카이로로 갔다가 한 달 후에 돌아왔소. 그때도 마찬가지였어. 그녀는 다소 조용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청춘이었소. 그녀는 석유통 위에 쭈그리고 앉아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고 두 손으로 턱을 고인 채, 끊임없이 펄럭이는 방수포를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지. 클리프튼은 아내 칭찬을 늘어놓았소. 우리는 농담으로 말려보기도 했지만, 그에게 겸손을 요구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일인지라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어.
카이로에서 보낸 한 달 후 그녀는 벙어리가 되었소. 책에서 손을 떼지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 무슨 일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갑자기 깨달은 사람 같았어. 그녀는 모험가와 결혼한 사교계 명사로 머무를 필요가 없었지.그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던 거요. 옆에서 보기가 고통스러웠소. 클리프튼이 그녀의 자기 교육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녀는 사막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읽었소. 유웨이나트와 잃어버린 오아시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는 까다로운 논문까지 구해왔지.
난 그녀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남자였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소설에 등장하는 냉소적인 악당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지. 난 영원하다든지 장기간 지속되는 관계를 믿지 않아. 나는 열다섯 살이 많았소. 허나 그녀는 나보다 영특했지.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변화에 굶주려 있었어.
카이로 외곽의 나일 강 어귀에서 보낸 연기된 신혼여행 동안, 무엇이 그녀를 바꾸어놓았을까? 우리가 그들을 만난 것은 불과 며칠뿐이었어. 그들은 영국 체셔 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지 2주만에 왔지. 신부를 두고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와의 약속을 어길 수도 없다고 생각한 거요. 매독스와 나에게. 우리는 그를 학수고대해 왔거든. 그렇게 해서 그날 그녀의 앙상한 무릎이 비행기에서 내리게 됐지. 그것이 우리 이야기에서 견디기 어려운 부담이오. 우리가 처했던 상황.
클리프튼은 그녀의 팔의 아름다움, 발목의 가느다란 선을 찬양했지. 그녀가 수영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말을 했어. 호텔방의 새 비데에 대해 말했어. 아침식사 때 그녀의 식욕이 얼마나 왕성한지 떠벌었지.
그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가 이야기할 때 이따금 고개를 들면 나의 말없는 분노를 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곤 했지. 그리고는 그녀의 내숭떠는 미소. 그건 분명 아이러니였어. 나는 연상의 남자였단 밀이오. 나는 10년 전 다크라 오아시스에서 길프 케버까지 걸어갔고, 파라프라의 지도를 그렸으며, 시리나이카를 알고, 모래 바다에서 두 번이나 길을 잃어버린 경험을 가진 그런 세계의 속한 사람이었지. 내가 온갖 레테르를 달고 있을 때 그녀가 나를 만났소. 혹은 그녀가 몇 각도를 돌려서 매독스의 레테르를 보았을 수도 있어. 허나 지리학회를 벗어나면 우리는 무명인 이었지. 우리는 그녀가 결혼 때문에 발을 디딘 친분의 얇은 가장자리에 있었소.
그녀의 남편이 쏟아놓은 그녀에 대한 찬사는 아무 의미가 업었지. 그러나 나는 평생 여러 면에서, 심지어는 탐험가로서도 말에 지배받은 사람이라오. 소문과 전설 따위의. 도표화된 사물. 명문 파편. 말 솜씨. 사막에서 무언가 반복한다는 것은 땅에 물을 더 뿌리는 것과 같소. 그곳에서는 뉘앙스가 1킬로미터씩 가지.
우리 탐험대는 유웨이나트에서 약 64킬로미터 거리에 있었고, 매독스와 내가 둘이서만 사전 조사를 떠날 참이었지. 클리프튼과 다른 이들은 뒤에 남아 있기로 했고. 그녀는 읽을 만한 것을 다 읽고서 나한테 책이 있는지 물어 왔소. 나는 지도 이외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 "밤에 보시는 그 책은?" "헤르도투스. 아, 그걸 말씀하신 겁니까?" "아뇨, 그러려고 했던 건 아녜요. 사적인 책이라면." "속에 내가 주를 달아놓았고 다른 곳에서 잘라붙인 것들이 있습니다. 나한테 필요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돌아오면 보여드리죠. 그것을 빼놓고 여행한다는 게 이상해서 말이죠."
이 모든 것을 상당한 예의와 품위를 갖추고 일어났소. 난 그것이 흔해빠진 진부한 책이라고 설명했고 그녀는 차분히 받아들였지. 난 이기적이었다는 느낌 없이 떠날 수 있었어. 난 그녀의 공손한 태도를 인정한 거요. 클리프튼은 그곳에 없었어. 우리 둘뿐이었지. 그녀가 다가왔을 때 나는 짐을 꾸리는 중이었어. 난 사회의 많은 것들에서 등을 돌렸지만 매너의 섬세함은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오.
우리는 1주 후에 돌아왔소. 발견한 사실과 단편들을 맞추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지. 사기가 충천했어. 캠프에서 작은 축하연이 벌어졌지. 클리프튼은 언제나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축하해주는 데 앞장섰어. 일은 벌어진 거요.
그녀는 물 한 컵을 들고 내 앞으로 왔어. "축하해요. 제프리한테서 벌써 들었어요..." "네!" "여기 마시세요." 손을 내밀자 그녀는 내 손에 컵을 건네주었어. 그 동안 용기에 든 물만 마시던 터라 그 물은 몹시 시원했어. "제프리가 파티를 준비했어요. 노래를 지었죠. 그리고 내가 시를 낭송하길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전 다른 걸 하고 싶어요." "여기, 책을 받아요. 한번 보십시오." 나는 배낭에서 책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지.
식사와 잎차를 마친 후 클리프튼은 그 순간을 위해 모두에게 숨겨온 코냑 한 병을 내놓았소. 그날 저녁에 매독스와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클리프튼의 재미난 노래를 듣는 동안, 그 한 병을 다 마시자는 것이었지. 그녀가 "역사" 중에서 칸달루스와 그의 왕비에 대한 이야기 부분을 낭독하기 시작했소. 난 항상 그 부분을 대충 지나가지. 책 앞쪽에 나오고 내가 관심을 가진 장소나 시기와 크게 관련이 없는 내용이거든. 허나 물론 유명한 이야기요.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부분이었소.
칸달룩스는 자기 아내와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아내가 다른 모든 여자보다 훨씬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다스킬루스의 아들 가이어스(모든 창병 중에서 칸달루스를 가장 흡족하게 해주었다)에게 아내의 미로를 설명하면서 최고의 한사를 하곤 했다.
"듣고 있어요, 제프리?"
"물론이오, 여보"
그는 가이어스에게 말하기를, "가이어스, 왕비의 아름다움을 아무리 설명해도 자네가 믿는 것 같지 않군. 인간의 귀는 눈보다 믿음에 약하니까. 그렇다면 그대가 직접 그녀의 알몸을 보아야 겠군."
거기에서 여러 가지 단서을 말할 수 있소. 가이어스가 왕비의 정부이자 칸달루스의 살해자가 된 것처럼 내가 결국 그녀의 연인이 될 것을 아는 것. 나는 지리학적 실마리를 찾을 때 "역사"를 펼쳐보지. 헌데, 캐더린은 자신의 삶을 향한 창으로 그 책을 이용했어. 그걸 읽는 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 마치 이야기를 하면서 유사속으로 가라앉듯 그녀의 눈을 그 이야기가 있는 페이지에 고정되었지.
"왕비께서 모든 여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믿습니다. 제게 법도에 어긋나는 그런 일을 명하지 마소서." 그러나 왕은 거기에 이와 같이 답변했다. "용기를 가지라. 가이어스 두려워 말라. 내가 그대나 왕비에게 화를 미치고자 하는 말이 아니거늘. 그대가 보는 것을 그녀로 하여 알지 못하게 할 것이니, 그녀로부터 그대에게 화가 미치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해서 나는 헤로도투스에서 특별한 부분을 낭독해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 나는 모닥불 건너에서 그녀의 낭독을 들었소. 그녀가 남편에게 농담을 던질 때조차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어쩌면 그녀는 그저 남편에게 읽어주었을 뿐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 구절을 선택한 데는 두 사람의 관계 외에 다른 이면의 목적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단순히 비슷한 상황에서 그녀를 자극한 이야기였어. 허나 갑자기 현실 속에서 길이 나타났소. 비록 그것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임을 그녀는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하오.
"그대를 우리가 잠자는 방의 열린 문 뒤에 있도록 하리라. 내가 들어가고 나면 왕비도 따라 들어와 누울 것이다. 방 입구가 의자가 하나 있는데, 왕비는 옷을 하나씩 벗어서 그 위에 올려놓느니라. 따라서 그대가 아주 쉽게 그녀의 몸을 볼 수 있으리라."
허나 가이어스는 침실을 나가는 순간 왕비의 눈에 뛰게 되지. 순간 그녀는 남편인 왕이 꾸민 일을 알아차리고 수치심을 느껴. 그러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침착함을 유지했지.
이상한 이야기요. 그렇지 않소, 카라바조 남자의 허영이 시기 받고 싶은 선까지 솟구친 게요. 아니면 믿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믿도록 만들고 싶은 게요. 그런 점은 클리프튼과 전혀 가깝지 않지만, 아무튼 그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지. 남편의 행동 속에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인간적인 면이 있어. 뭔가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거든.
다음날 부인은 가이어스를 불러 두 가리 선택을 주오.
"이제 그대에게 두 가지 길이 있소. 그대가 원하는 길을 선택하도록 내가 두 가지를 주겠소. 칸달루스를 살해하고 리디아의 왕권과 나를 취하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가 죽임을 당하여 훗날 칸달루스의 명에 따라 보아서는 아니 되는 것을 보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오.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그가 죽거나, 아니면 나의 나체를 본 그대가 죽어야 하오."
그래서 왕은 살해당하오. 시대가 시작되지. 가이어스에 대해 약강격 3음보로 씌진 시들이 있어. 그는 야만인 중에서 최초로 델피 신전에 제물을 바친 자요. 리디아 왕으로 28년 간 통치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를 단순히 이상한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하찮은 인물로만 기억하지.
그녀는 낭송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소. 유사에서 빠져나왔소. 그녀는 진화화고 있었지. 그래서 힘이 옮겨갔어. 그 동안 나는 일화의 도움을 받아 사랑에 빠졌소.
말, 카라바조. 말은 힘이 있소.
클리프튼 부부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 때면 카이로에 있었지. 클리프튼은 영국인을 위해 다른 일을 했소. 어떤 일인지는 아무도 모르오. 숙부가 정부에서 일을 한다고 했지. 이 모든 일은 전쟁 전이었어. 허나 당시 그 도시에는 그로피의 야외 콘서트에서 만나 밤이 깊도록 춤을 추는 무리가 각국에서 모여들어 헤엄치고 있었어. 그들은 그 무리들 사이에서 존경받고 인기 있는 젊은 한 쌍이었소 나는 카이로 지역 사회의 변두리에 있었지. 그들은 잘 지냈소. 내가 이따금씩 들어가는 격식 차린 삶. 만찬, 원유회.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 때문에 참석하는 행사들. 나는 원하는 것을 볼 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오.
당신들에게 그녀를 어떻게 설명할까? 손으로? 탁상지(卓狀地)나 바위를 그리듯 허공에 손짓하는 것으로? 그녀는 탐험대의 일원으로 약 1년 간 머물렀소. 나는 그녀와 만나고 대화를 나눴지. 우리는 줄곧 서로의 존재 속에 있었어. 나중에 서로에게 끌리는 욕망을 알게 되었을 때, 예전의 순간들이 가슴으로 밀려왔소. 암시적으로, 절벽에서 떨면서 잡은 말의 느낌, 잘못 알아들었거나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친 눈빛들.
난 그때 카이로에 잘 머물지 않았소. 3개월 중 한 달 정도 이집트 대학에서 일하며 내가 쓴 책 "리비아 사막에 대한 최근의 탐험"을 손보고 있었지. 날이 갈수록 사막이 페이지의 어느 곳에 있는 듯 내용이 점점 가까워졌어. 만년필에서 나오는 잉크 냄새를 맡을 정도였지. 그리고 여행한 지도를 완벽하게 갖춘 간결하고 명확한 70페이지짜리 짧은 책을 쓰면서 동시에 가까이 있는 그녀의 존재로 인해 몸부림쳤소. 그녀의 입, 그리고 무릎 뒤쪽의 단단한 선,
배의 새하얀 평평함에 미친 듯 열중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게요. 책장에서 그녀의 육체를 지울 수 없었소. 나는 연구 논문을 그녀에게, 그녀의 음성에, 내 상상 속에서 기다란 노처럼 침대에서 하얗게 일어났던 그녀의 몸에 바치고 싶었어. 그러나 그것은 내가 왕에게 바친 책이었소. 그런 집착이 조롱당하고 그녀의 예의 바르고 수줍은 고개짓에 의해 무색해지리라고 믿으면서.
나는 그녀 앞에서 갑절로 형식적이 되었어. 나는 타고난 성격이지. 전부터 드러난 노출에 대해 민망해 하는 듯한. 그건 유럽식 습관이오. 그녀를 이상하게 해석해서 사막에 관한 나의 논문 속으로 끌어들였으면서도 막상 그녀 앞에선 금속 옷을 입는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웠소.
열광적인 시는
사랑하거나 사랑해여 할 여인을 위한 내용.
한 편의 열광적인 서사시는 다른 하나를 위한 허위.
하사네인 베이 - 1923년의 탐험에 참여한 멋진 노인 - 의 잔디밭에서 그녀는 정부 보좌관 라운델과 함께 다가와서 나와 악수를 하고, 그에게 술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다시 돌아서서 말했소. "날 황홀하게 해줘요." 라운델이 돌아왔어. 마치 그녀가 내게 칼을 쥐어준 것 같았지. 한 달 안에 나는 그녀의 연인이 되었소. 상인들로 붐비는 광장 언덕 위의방, 앵무새 거리의 북쪽 방에서.
나는 모자이크 타일이 깔린 홀에서 무릎을 끓고 그녀의 가운에 얼굴을 묻었지. 이 소금기 밴 손가락을 그녀의 입에 넣었어. 우리가 굶주린 숱이 적어지던 내 머리카락 속의 모래를 긁었어. 카이로와 그녀의 모든 사막이 우리 주위로 다가왔지.
그녀의 젊음, 그녀의 연약하고 탁월한 천진성을 향한 욕망이었을까? 당신한테 이야기해 준 그 정원은 그녀의 정원이었소.
그녀의 목에 우리가 보스포러스 해협이라고 부르는 작고 우묵한 부분이 있었지. 나는 그녀의 어깨에서 보스포러스로 파고들곤 했소. 그곳에 눈을 얹고 쉬었어. 그녀가 나를 떠도는 이방인인 양 신기하게 내려다볼 동안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어. 그녀의 기묘한 시선. 카이로 버스에서 갑자기 내 목에 닿는 그녀의 차가운 손. 케다이브 이스마일 다리에서 티퍼러리 클럽까지 가는 택시 속에서 빠른 손놀림의 사랑. 혹은 미술관의 3층 로비에서 내 얼굴을 덮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
오르 두 사람은 오로지 한사람의 눈길만을 피했소.
허나 제프리 클리프튼은 영국 기관에 깊숙이 틀어박힌 친구였지. 그는 11세기의 카뉴트 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혈통을 가졌지. 기관에서는 결혼한 지 18개월밖에 되지 않는 클리프튼에게 굳이 아내의 배신에 관해 밝힐 필요는 없었어. 하지만 그들은 조직 속에서 일어나는 비행을 에워싸기 시작했지. 그들은 우리가 첫날 세미라시스 호텔 입구에서 어색한 접촉을 한 것부터 그녀와 나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있었어.
그녀가 남편의 친척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나는 무시했어. 제푸리 클리프튼은 우리 위에 있는 대영제국의 기관에 대해 우리만큼 순진했소. 허나 한 무리의 경호원들이 그녀의 남편을 지켜보고 보호해주었지. 귀족 출신에다 과거 군대경력까지 있는 매독스만이 그런 비밀회선을 알았어. 오직 매독스만이 상당한 기지를 갖고 그런 세계에 대해 내게 주의를 주었어.
나는 헤로도두스를 들고 다녔고, 매독스는 - 그는 성자 같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소 - "안나 카레니나"를 가지고 다니며 그 로맨스와 기만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지. 어느 날 우리가 자극한 기관을 피하기에 너무 늦었을 때 그는 클리프튼의 세계를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에 비추어 설명했어. 내 책을 집어줘. 들어봐.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크의 절반은 오브론스키의 친척 또는 친구였다. 그는 이 땅의 위대한 인물이었거나 그런 인물이 된 사람들 틈에서 태어났다. 정계의 제3인자는 그의 부친의 친구였고, 그가 페티코트를 입은 아기일 때부터 알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축복을 나누어주는 인물들이 모두 그의 친구였다. 그들은 자신을...무리할 수 없고... 자신의 타고난 친절과 일치하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으면서도, 반대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말다툼이나 화를 내지 않기만 하면 된다.
주사기를 당시 손 끝으로 살짝 치는 걸 좋아하게 됐소. 카라바조. 처음에 당신과 함께 헤나가 내게 모르핀을 줄 때, 당신은 창가에 있다가 그녀의 손끝을 주사기를 건드리자 고개를 홱 돌리고 우리를 보았어. 난 동지를 알아보지. 애인이 다른 연인들의 변장을 언제든지 알아보는 것과 같아.
여자들은 연인의 모든 것을 원하지. 그리고 나는 지나치게 자주 표면 아래로 가라앉소. 그래서 군대들이 모래 밑으로 사라지는 거요. 그녀는 남편과 자신의 명예에 대한 신뢰, 자급자족하고 싶은 나의 오랜 욕망, 나의 실종, 나에 대한 그녀의 의심, 그녀의 사랑에 대한 나의 불신을 두려워했지. 숨어서 하는 사랑의 편집증과 밀실공포증.
"당신은 비인간적이 된 것같아요." 그녀가 내게 말했소.
"나만 배신자는 아냐."
" 당신은 상환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당신은 소유권, 소유에 대한, 소유당하는 것에 대한 혐오, 이름붙여지는 것에 대한 혐오와 공포 때문에 모든 것을 비껴가요. 당신은 이게 미덕이라고 생각하죠. 난 당신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떠나면 누구한테 가시겠어요? 다른 애인을 찾을 거예요?"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아니라고 하세요. 나쁜사람!"
그녀는 늘 말을 원했소. 말을 사랑하고, 말 속에서 성장한 탓이지. 말은 그녀에게 명확성을 주고 형태와 이유를 가져다주었소. 그에 비해 나는 꿈 속에서 막대기가 굴절되듯 말이 감정을 굴절시킨다고 생각했지.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갔소.
이 순간부터 우리는 영혼을 찾거나 잃어버릴 것이라고 그녀는 속삭였지.
바다는 사라지는데 왜 연인들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에베소의 항구들, 헤라클리투스의 강이 사라진 자리가 침니의 강 어귀로 바뀌지. 칸달루스의 의 아내는 가이어스의 아내가 되었어. 도서관들은 불타버리지.
우리 관계가 무엇이었을까?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신? 아니면 또다른 삶을 향한 욕망?
그녀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나는 징크 바로 돌아갔소.
달을 보면서
실은 그대를 보리라.
오랜 헤로도투스의 고전. 그 노래를 반복하여 흥얼거리는 것. 그 구절을 가지 삶 속으로 넣으려고 더 가늘데 읆조리는 걸. 사람들은 비밀스런 손실을 각기 다르게 메우지. 나는 향료상인과 함께 앉아 있는 그녀의 수행원 한 사람의 눈에 띄었어. 그녀는 언젠가 그에게서 향료가 담긴 백랍 골무를 받은 것이 있지. 1만 가지 물건 중 하나.
만일 바그놀드가 항료상인 옆에 앉은 나를 보고 저녁식사 때 그녀가 전에 앉았던 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내가 어떤 느낌을 받겠소? 그녀가 자기한테 작은 선물을 준 장사꾼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나한테 위안을 줄까? 남편이 없는 동안 그녀가 그 백랍 골무를 얇은줄에 끼어서 이틀이나 목에 걸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기억한다는 사실이? 향료가 아직도 담겨 있어서 그녀의 가슴에 금자국이 남았지.
그녀가 어떻게 망나니처럼 도처에서 수치스러운 행동을 보인 나에 관한 이야기를 간직하겠소? 바그돌드는 웃고, 사람 좋은 그녀의 남편은 나를 걱정하고, 매독스는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가더니 도시의 남쪽을 쳐다보았지. 대화는 아마 다른 광경으로 옮겨갔을 거요. 그들은 결국 지도를 만드는 친구들이었어. 허나 내가 내 힘으로 그녀를 갈망했던 것처럼, 그녀도 우리가 같이 팠던 우물로 기어 내려가 버틸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 서로간에 가장 깊은 약속으로 무장한 삶 속으로 들어갔소.
"뭐하는 거예요?" 그녀는 길거리에서 내게 달려오며 말했소. "당신이 우리 모두를 미치게 하는 걸 모르겠어요?"
매독스에게 난 미망인에게 구애하는 중이라고 말했지. 허나 그녀는 아직 미망인이 아니었소. 매독스가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어. "자네의 카이로 미망인에게 안부 전해주게." 매독스는 중얼거렸소. "한번 만나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 그가 알았던 것 같나? 난 10년 간 함께 일한 진구,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그에게 항상 기만을 느꼈소. 때는 1939년이었소 우리는 모두 전쟁 때문에 이 나를 떠나고 있었지.
그리고 매독스는 그가 태어난 소머셋, 마르스톤 마그나의 마을로 돌아갔소. 한 달 후, 성당 깁회에 앉아 전쟁을 기념하는 설교를 듣다가 사막에서 쓰던 권총을 꺼내 자신을 쏘았지.
나, 할리카르나수스의 헤로도투스는 역사를 밝힌다. 시간은 인간이 무엇을 이룩하여 왔는가. 그리스와 야만인들이 이룩해온 훌륭하고 멋진 행위들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들이 무슨 이유로 서로 싸웠는가를 기록하는 것이다.
사막에서 인간은 항상 시를 낭독하는 자들이지. 지리학회에서 매독스는 우리의 횡단과 경로에 대해 멋진 설명을 했었지, 버만은 타다 남은 제 속에 이론을 불어넣었지. 그리고 나는? 난 그들 속에서 숙달공이었소. 기계공. 다른 이들은 고독을 향한 애정을 글로 옮기고 거기서 찾아낸 것을 명상했지.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그런 행위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지 못했어. "저 달이 좋은가?" 매독스는 조심스럽게 물어왔지. 그들이 보기에 나는 사막의 애인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교활했어. 그보다는 오디세이에 더 가까웠지. 그러나 나는 사막을 사랑했소. 강을 보여주듯, 유년기의 중심지를 보여주듯, 내게 사막을 보여주게.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매독스는 고졸한 방식으로 작별인사를 했소. "신이 자네에게 늘 안전을 동행시켜 주시길 바라네." 그리고 나는 그에게서 떨어져 걸으면서 말했지. "신은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지극히 다른 사람들이었어.
매독스는 오디세이가 말을, 내면의 글을 쓴 적이 없다고 했지. 어쩌면 그는 예술의 거짓 서사시에서 소외감을 느꼈는지도 몰라. 그리고 내 논문이 정확성으로 경직되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오. 글을 쓰면서 그녀의 존재를 설명할까봐 두려워 모든 감정을, 모든 사랑의 수사를 아예 배제한 거요. 그러나 사막만은 그녀를 표현하듯 최대한으로 순수하게 그렸지. 매독스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 우리가 함께 보낸 마지막 날들 동안 달에 관해 나에게 물었어. 우린 헤어졌지.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던 우리의 사막 역사 발굴 작업이 중단되자 그는 영국으로 떠났어. 잘 있게나, 오디세이, 그는 웃으며 말했소. 내가 오디세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일리어드는 더욱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바그놀드를 일리아드로 정했소. 허나 난 오디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거든. 잘 가게, 내가 말했소.
그가 웃으며 돌아서던 걸 기억하오. 그는 굵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젖 옆을 가리키며 말했지. "이거 버스큘라 사이즈드라고 불러." 움푹 들어간 그녀의 목 부위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여주었어. 그는 마르스톤 마그나의 마을에 있는 아내에게 돌아갔소. 가장 좋아하던 톨스토이 책만 가지고, 모든 컴퍼스와 지도 같은 것들을 나한테 남겨 주고 갔지.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던 애정은 말없이 남겨졌소.
그리고 그가 대화중 수없이 재현하던 소머셋의 마르스톤 마그나에 있는 푸른 초원은 공항으로 바뀌었지. 아서 왕 시대의 성 위로 비행기 연기가 솟아올랐어. 무엇이 그의 행동을 자극했는지 나는 모르겠어. 어쩌면 리비아와 이집트의 정적 속에서 이따금 집시나방 소리만 듣다가 비행기 소음에 지쳤는지도 모르겠어. 누군가와 전쟁이 그와 동료의 섬세한 걸개 천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지. 나는 오디세이 난관을 벗으로 삼는 인물이었소. 평생 두세 사람만 알고 지낸 그에게 이제 그들이 적이 되어버린 거요.
그는 소머셋에서 우리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내와 단 둘이 지냈소. 작은 몸짓이 그에게는 충분했지. 총알 한 방이 전쟁을 끝냈어.
1939년 7월이었소. 그들은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이오빌로 갔지. 버스가 느린 탓에 예배시간에 늦었소. 붐비는 교회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떨어져 앉기로 했어. 30분 뒤 설교가 시작되었고 내용은 전쟁을 지지하는 대외강경론이었어. 목사는 전투에 대해 신나게 떠벌리며 정부와 전쟁에 참가하는 이들을 축복했지. 매독스는 점점 열기를 더해 가는 설교에 귀를 기울였어. 그는 사막 권총을 꺼내 몸을 수그리고 심장을 쏘았소. 그리고 이내 숨졌지. 엄청난 침묵. 사막의 침묵. 비행기가 없는 침묵. 그들은 그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어. 다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어. 목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지. 성당에서 촛불을 받치는 유리 깔때기가 깨질 때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과 같은 그런 침묵이었소. 그의 아내가 중앙 복도로 걸어와 그가 앉았던 줄 앞에 서면서 무언가 중얼거리자, 사람들은 그녀가 다가가도록 길을 비켜주었어. 그녀는 무릎을 꿇고 그를 두 팔로 앉았지.
오디세아기 어떻게 죽나? 자살, 아니었나? 그렇게 죽었던 것 같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막이 매독스를 망쳐놓았을지도 모른다 싶어. 우리가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던 그때, 그가 항상 지니고 다니던 러시아 책이 자꾸 생각나. 러시아는 늘 그의 나라보다 내 나라에 가까웠지. 그래. 매독스는 국가 때문에 죽은 친구요.
난 매사에 그의 침착성을 사랑했소. 나는 지도를 놓고 지역의 위치에 대해 소라스런 논쟁을 벌이곤 했는데, 그의 기록을 보면 우리의 '토론' 이 논리적인 문장으로 정돈되어 있었어. 여행 중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그는 우리가 마치 무도회장의 안나와 브론스키인 양 침착하고 즐겁게 그것을 기록했어. 하지마 그는 결코 나와 함께 카이로의 댄스홀에 가지 않았지. 그리고 나는 춤추는 도중에 사랑에 빠진 남자였소.
그는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어. 난 그가 춤추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지. 그는 세상을 기록하고 해석한 사람이오. 아주 작은 감정의 조각을 쥐어주는 것만으로도 지혜가 자라났지. 시선 하나가 이론의 문장으로 발전하기도 했어. 사막 부족들 사이에서 새 무리를 목격하거나 희귀한 대추야자 나무를 찾았을 때도 몇 주 동안이나 흥분하고 매료되었지. 여행중 현재의 명문이건 과거의 명문이건 간에 진흙판에 쓰인 아랍어, 지프의 흙밭이에 초크로 쓰인 영어 문구 등의 구절을 보면 그는 일일이 읽고 거기에 손을 얹었어. 마치 그 깊은 의미를 만지고 그 말들과 최대한 가까워지겠다는 듯이.
그는 팔을 내민다. 멍든 핏줄이 모르핀을 실어나를 배를 위하여 수평으로 솟아오른다. 약이 그의 내부로 스며들 때 그는 카라바조가 콩판 모양의 에나멜 깡통에 주사기를 떨어뜨리는 소리를 듣는다. 반백이 된 머리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또 한명의 모르핀 애용자가 그와 함께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날들은 건조하게 글만 쓰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디엥고 라인하트와 스테파니 그래필 리가 프랑스의 핫 클럽과 함께 연주한 '덩굴 장비 Honeysuckle rose' 1935년, 1936년, 1937년은 위대한 재즈의 시대였소. 샹젤리제의 클래릿지 호텔에서 재즈가 흘러나와 런던, 남부 프랑스, 모로코의 술집으로 흘러간 시대. 그리고는 이집트까지 흘러 들어와 무명의 카이로 댄스 밴드에 의해 그런 리듬이 암암리에 소개되었지. 사막으로 돌아갈 때 나는 바에서 '기념품 Souvenirs' 78에 맞춰 춤추던 밤들을 가슴에 세기고 갔소. '달콤한 내 사랑 My Sweet'이 나오는 동안 여인의 어깨에 대고 중얼거리면 여자가 몸을 기대 오면서 그레이하운드처럼 발을 움직이던 순간들. 소시에테 울트라폰 프랑세즈 레코드 사 덕분이지. 1938년, 1939년. 밀실 안에 사랑의 속삭임이 있었어. 모퉁이를 돌아가면 전쟁통이었지.
우리의 관계가 끝나고 몇 개월 뒤인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나날 동안, 우리는 결국 송별회를 빙자해서 매독스를 징크 바로 끌고갔소. 그녀와 그녀의 남편도 갔지. 마지막 밤. 마지막 댄스. 알마시는 술이 취해서 그가 발명한 보스포러스 포옹이란 춤의 오래된 댄스 스텝을 밟았소. 끈끈한 팔로 캐더린 클리프튼을 들어올리고 바닥을 휘젓고 다니다가 나일산 엽란 위로 그녀와 함께 넘어졌지.
이 친구는 지금 누구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가?
카라바조는 생각한다.
알마시는 술이 취했고, 그의 댄스 스텝은 다른 이들에게 일련의 야만적인 동작으로 보였어. 당시 그와 그녀는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지. 그는 그녀가 마치 이름 없는 인형인 양 이리저리 흔들었고, 매독스를 떠나 보내는 슬픔을 술로 질식시킬 듯 행동했소. 그는 우리가 있는 테이블에서 소란을 피웠지. 알마시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우린 보통 그를 두고 나와버렸지만, 그날만큼은 매독스의 마지막 밤이어서 다들 가만있었어. 형편없는 이집트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스테파니 그레필리를 흉내내어 연주하는 동안 알마시는 마치 걷잡을 수 없는 유성 같았어. "우리들, 유성의 이방인들을 위하여..." 그는 잔을 치켜들었어. 그는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하고 춤추고 싶어했지. 손뼉을 치며 큰소리로 말했어. "이제 보스포러스 포옹. 자네, 번하트? 하더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뒷걸음질쳤지. 그는 클리프튼의 젊은 아내를 향해 돌아섰소. 그녀는 품위 있는 분노의 눈길로 그를 지켜보다가, 그가 손짓하며 다가와 부딪치자 앞으로 나섰지. 그의 목은 벌써 그녀의 드레스 장식 위에 드러난 왼쪽 어깨에 닿아 있었어. 두사람 중 하나다 스텝을 틀릴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광란의 탱고가 시작되었지. 분노한 그녀는 물러나려 하지 않았어. 그 자리에서 물러나 테이블로 돌아감으로써 그가 이기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거지.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힐 때마가 근엄한 표정이 아니라 사나운 눈길로 그를 독하게 노려보았어.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에게 뭐라고 중엉거렸어. 아마 '덩굴장미' 의 가사를 읆조렸을지도 모르지.
탐험과 탐험의 사이사이에 카이로에서 알마시를 자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는 보통 냉담하거나 불안정해 보였지. 낮에는 박물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곧잘 남부 카이로 시장 술집을 드나들었어. 또 하나의 이집트에서 길을 잃은 거지. 그들은 오직 매독스만을 위해 거기게 모였어. 헌데 이제 알마시가 캐더린 클리프튼과 춤을 추었지. 화초들이 그녀의 가녀린 몸에 부딪쳤어. 그는 빙글빙글 돌다가 그녀를 번쩍 들어올리고 그리고는 넘어져 그녀의 몸위로 떨어졌어. 클리프튼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반쯤 그들을 지켜보았지. 알마시는 방의 먼 구석, 넘어진 자리에서 금발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그녀의 몸 위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몸을 일으키려 했어. 그는 한때 섬세한 사람이었지.
자정이 넘었소,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는 단골들은 그런 사막유럽인의 예식에 익숙해 있었지만, 다른 손님들은 그의 행동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았지. 거기는 선물로 받은 커다란 은장식을 귀에 단 여자들, 요란한 장식과 옷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있었어. 작은 금속 방울들이 술집의 열기로 따뜻해져 있었지. 알마시는 원래부터 춤출 때 여자의 깔쭉한 귀걸이가 얼굴에 부딪치는 것을 싫어했어. 다른 날 같으면 그는 그런 여자들과 춤을 추었을 거요. 술이 취하면 그는 그 여자들의 온몸을 자신의 늑골 새장 안에 가둘 듯 부둥켜안기 일쑤였지. 그렇소. 그들은 재미있어 했지. 알마시의 셔츠가 풀어지면서 배가 드러난 것을 보고 웃었지만, 쇼티이시 춤을 추다가 아무 쪽으로 쓰러지면서 THe아지는 그의 체중에 매혹되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지.
그런 밤에는 인간 별자리들이 주위에서 멤돌고 미끄러지는 동안 그 밤의 흐름에 휩싸이는 것이 중요하지. 생각이나 심려는 없어. 그밤의 현장 기록은 나중에 사막에서 다크라와 쿠프라 사이의 지형을 기록하는 내용 속에 끼어 있어. 그때 그는 댄스홀 바닥에서 걔를 찾느라 깽깽 소리를 냈던 일, 컴퍼스 디스크가 기름 위를 떠갔던 일, 그리고 그가 춤을 추다가 어떤 여자의 발을 밟았다는 것 등을 기억하지. 오아시스를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댄스 실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두 팔과 손목시계를 하늘까지 치켜올리지.
사막의 추운 밤들, 그는 밤의 유목인들에게서 실을 뽑아 음식처럼 입에 집어넣었어. 여행을 시작하고서 이틀 동안 일어난 일이지. 그가 도시와 고원 사이의 지옥 같은 변방지대에 있을 때요. 엿새가 지나면 그는 카이로나 음악, 또는 거리, 여자들 따위를 결코 생각하지 않게 되었소. 그때 그는 깊은 물 속에서 하는 호흡방식을 습득하여 고대의 시간 속에서 움직였지. 도시의 세계와 그가 유일하게 연결된 것은 고대와 현재에 관한, 사람들이 거짓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기록한, 그의 안내서인 헤로도투스였어. 거짓말로 보이던 것에서 진실을 찾아낸 그는 풀통을 꺼내 지도나 뉴스 조각을 붙이고 책의 빈 공간에 치마를 입은 남자들을, 그 옆에다 사라져가는 이름 모를 동물들을 스케치해 넣었지. 예전의 오아시스 거주자들은 소를 묘사하지 않았소. 헤로도투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말이오. 그들은 임산부를 숭배하고 바위에 임신한 여자 그림을 그렸지.
2주도 못 가서 그의 마음에는 도시에 대한 생각조차 없어졌소. 그는 마치 지도의 잉크 자국 바로 위로 밀리미터의 안개를 걸어온 것 같았소. 땅과 차트 사이, 시간의 간격과 전설 사이, 자연과 이야기꾼 사이의 그 순수한 지대. 샌드포드는 그것을 지형학(Geomorphology)이라 불렀지. 그들이 오겠다고 선택한 곳. 최상의 자아가 되기 위해서, 조상들과 연결된 무의식의 끈을 끊기 위해서. 태양 나침반과 주행기록계의 수치와 책을 빼면 이곳에서 그는 혼자였고 자기 자신의 발명품이었어. 그 시간 동안 그는 신기루와 망상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았어. 자신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지.
눈을 떠보니 해나가 그의 몸을 씻어주고 있었다. 허리 높이에 옷장이 있다. 그녀는 몸을 수그려 두 손으로 도자기 수반에서 물을 떠 그의 가슴으로 가져온다. 일을 마치고서 젖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서너 번 씻어내린다. 머리칼이 축축하고 검게 변한다. 그녀를 고개를 들어 그가 깨어난 것을 보고 미소짓는다.
그가 다시 눈을 뜨자 매독스가 그 자리에 있다. 누더기 차림에 불안해 보이고 엄지손가락이 없는 두 손으로 모르핀 주사기를 잡고 있다. 저 친구가 어떻게 자기한테 주사를 놓는가? 그는 생각한다. 그 눈, 입술에 침을 바르는 습관, 자신의 말을 남김없이 이해하는 명석한 두뇌를 알아본다. 두 늙은 얼간이.
카라바조는 이야기하는 그의 분홍빛 입술을 쳐다본다. 유웨이나트에서 발견된 벽화에 나오는 것 같은 연한 요드빛 잇몸. 침대 위의 몸뚱아리, 입과 팔뚝의 정맥, 늑대 같은 잿빛 눈밖에 없는 그 몸에서 알아낼 것이 더 있다. 때로 1인칭으로, 때로는 3인칭으로 이야기하고 여전히 자신이 알마시임을 인정하지 않는 그 남자의 확고한 태도에 그는 아직도 놀란다.
"지금까지 누가 이야기했소?"
"죽음은 3인칭이 되는 것을 뜻한다."
하루 종일 그들은 모르핀 앰풀을 나누었다. 그에게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카라바조는 신호들의 암호 속을 여행한다. 화상 입은 사내가 느려지거나 카라바조 자신이 모든 것 - 연애 사건, 매독스의 죽음 -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는 콩팥처럼 생긴 에로 약물을 주입한다. 그는 이제 왼쪽 소매를 다 뜯어버릴 정도로 모든 것을 해나에게 덤덤해졌다. 알마시는 내의만 입고 있기 때문에 검은 팔이 시트 사이로 드러나 있다.
모르핀을 한모금씩 삼킬 때마다 몸 안에 문이 하나씩 더 열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동굴 벽화나 묻어둔 비행기 속으로 뛰어들거나, 혹은 선풍기 아래 그와 나란히 누운여자, 그의 배에 묻힌 그녀의 뺨주위를 배회한다.
카라바조는 헤로도투스를 집어든다. 페이지를 넘기고 모래언덕 위로 올라 길프 케버, 유웨이나트, 게벨 키쑤를 발견한다. 알마시가 이야기할 때 그는 붙어서서 사건의 순서를 바로잡는다. 오직 욕망만이 나침반의 바늘처럼 흔들리며 이야기를 이리저리 헤메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유목민들의 세계, 경이로운 이야기이다. 모래폭풍으로 변장하고 동서로 떠돌아 다니는 정신.
그녀의 남편이 비행기를 추락시킨 후, 그는 그녀가 지닌 낙하산을 찢어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바닥에 풀어놓았소. 그녀는 그 위로 몸을 눕히면서 상처의 고통으로 인상을 찌푸렸지.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면서 또다른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어깨와 발을 더듬었어.
이제 이 동굴 속에서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 팔다리를 잃고 싶지 않았어. 이미 그녀의 본성을 손 안에 굳게 잡았음을 그는 알았지.
그는 화장으로 자기 얼굴을 바꾸어놓는 여자요. 파티에 가거나 침대로 돌아올 때 눈꺼풀에 주홍색을 칠하고 입술에 핏빛 립스틱을 발랐소.
그는 동굴 벽화 하나를 보고 거기서 색깔을 훔쳤지. 황토색은 그녀의 얼굴, 마구 칠해진 파란색은 눈가에. 그는 동굴을 가로질러 가서 붉은색을 묻힌 손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빗겼어. 그리고는 그녀의 전신에. 첫날 비행기에서 내렸던 그녀의 무릎을 샛노랗게 칠했소. 치골. 그녀가 사람들에게 면역되도록 다리에 색깔의 테를 둘렀지. 그가 헤로도푸스에서 찾아낸 이런 풍습은 고대 투사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을 때 그들을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기원하는 의례였소. 오색 찬란한 색체의 흐름, 노래, 바위 그림 등.
동굴 안은 이미 추웠소. 그는 그녀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낙하산으로 감쌌어. 작은 불을 피워 아카시아 자기를 태우면서 동굴 구석구석까지 연기를 가득 채웠어. 그는 그녀에게 직접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동굴 벽에 대고 정식으로 이야기했어. 이제 도움을 청하러 가야 해. 캐더린. 알겠소? 가까운 곳에 묻어둔 비행기가 있지. 허나 연료가 없어. 캐러밴이나 지프를 만나게 되면 빨리 돌아오지. 확실치는 않아. 그는 헤로도투스를 꺼내 그녀의 옆에 내려놓았소. 그때가 1939년 9월, 그는 동굴 밖으로 나와 모닥불 빛을 벗어났어. 그리고 어둠을 지나 달빛이 가득한 사막으로 나섰지.
그는 동굴 지역에서 고원 아래로 내려와 그곳에 섰소.
트럭도 비행기도 나침반도 없었지. 오직 달과 자신의 그림자뿐이었어. 그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돌 표적을 찾았소. 엘타이의 방향을 가리키는 거지. 북북서. 그는 자기 그림자의 각도를 머리 속에 새기고 걷기 시작했소.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시계의 거리가 있는 시장이 있었어. 어깨에 맨 아인에서 물을 채운 가죽 가방이 태반처럼 출렁거렸어.
그가 움직일 수 없던 때가 두 번 있었소. 그림자가 발 아래 있을 때인 정오, 석양과 별이 나오는 시간 사이의 땅거미 질 무렵. 그때 외에는 사막의 원반 위에 놓인 모든 것이 한결같았지. 그가 움직였다면 가고 있는 방향에서 최고 90도까지 벗어날 수 있었지. 그는 별들의 살아 있는 지도를 기다렸다가 매시간 별자리를 읽으면서 전진했어. 과거에 사막 안내원이 있을 때는 별자리를 읽는 안내원이 긴 장대 끝에 랜턴을 매달고 뒷사람들이 그 흔들리는 불빛을 따라 움직였지.
사람은 낙타만큼 빨리 걷지. 시속 4킬로미터. 운이 좋으면 타조 알을 발견하지. 운이 나쁘면 모래폭풍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지. 사흘 간 아무 식량도 없이 걸었소. 그는 그녀에 관한 생각을 거부했어. 엘타이에 가면 '아브라'를 먹을 수 있었어. 고란족이 콜로신드 오이로 만든 음식인데, 쓴맛을 없애려고 씨를 끓인 뒤 대추와 개아카시아를 섞어 짓이긴 거지. 그는 시계와 석고의 거리를 걸을 것이었어. 신이 자네에게 늘 안전을 동행시켜 주시길 바라네, 매독스가 말했었지. 잘 있게나. 손짓. 신은 사막에만 존재하지. 그는 이제 그 점을 감사하고 싶었어. 바깥에는 오직 매매와 권력, 돈과 전쟁만이 존재했어. 재계와 군사의 독재자들이 세계의 골격을 잡았소.
그는 부서진 나라에 있었소. 모래에서 바위로 옮겨갔지. 그는 그녀에 관한 생각을 거부했아. 그리고는 중세기 성처럼 언덕이 나타났어. 그는 자신의 그림자가 산 그림자에 겹쳐질 때까지 걸었지. 미모와 관목. 콜로신드. 그는 바위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외쳤어. 메아리는 텅 빈 공간에서 스스로를 흥분시키는 목소리의 영혼.
그리고 엘타이가 나왔소. 그는 그때까지 걸으면서 거울의 거리를 상상했지. 인가 근처에 도착했을 때 영국군 지프들이 몰려와 그를 끌고갔어. 불과 100킬로미터 떨어진 유웨이나트에 부상당한 여인이 있다는 그의 말은 듣지도 않았지. 아니, 그가 하는 어떤 말도 듣지 않았어.
"영국군이 당신 말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오? 아무도 당신 말을 듣지 않았소?"
"아무도 듣지 않았소."
"왜?"
"내가 틀린 이름을 댔기 때문이지."
"당신 이름?"
"내 이름은 맞게 댔어."
"그러면 왜?"
"그녀. 그녀의 이름. 그녀 남편의 이름."
"뭐라고 했소?"
그는 대답이 없다.
"정신 차려요! 뭐라고 했소?"
"그녀가 내 아내라고 했어. 캐더린 이라고. 그녀의 남편은 죽었지. 난 그녀가 몹시 다쳐서 길프 케버의 동굴 안에 있다고 했소. 아인 두아 샘 북쪽 유웨이나트에. 그녀는 물이 필요했어. 그녀는 음식이 필요했어. 난 그들을 안내해서 갈 생각이었지. 난 필요한 것이 지프뿐이라고 했소. 그놈들의 지프 중 한 대... 어쩌면 내가 여행을 막 마치고 온 사막의 미친 예언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건 아닌 것 같아. 벌써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어. 그들은 사막에서 스파이들을 뽑아내고 있었소. 작은 오아시스 마을로 흘러들어 가는 외국인은 누구나 의심의 대상이었지. 그녀는 겨우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어. 엘타이로 온 왠 영국인 떠돌이. 난 그때 미친 듯이 날뛰었던 것 같소. 그들은 샤워 룸만한 나무 감옥에 나를 가뒀어. 난 그곳에 갇힌 채 트럭으로 운반되었지. 그 속에서 죽자 사자 도리깨질을 치던 나는 나무 통째 길거리에 떨어지고 말았어. 캐더린의 이름을 외쳐 불렀어. 길프 케버를 외치면서. 그러나 전화카드처럼 그들의 손아귀로 들어간 내가 진정 외쳐야 했던 이름은 캐더린 클리프튼 이었어.
"... 그들은 나를 트럭 위로 다시 끌어올렸지. 난 그저 2류 스파이 용의자였소. 또 한명의 국제 사생아에 불과한."
카라바조는 전쟁의 파편더미, 외진 시골, 이 빌라에서 얼마나 걸어나가고 싶다. 그는 단순한 도둑이다. 카라바조가 원하는 것은 공병과 해나, 또는 가지 또래 사람들을 부둥켜안는 것. 낯익은 단골 술집에서 여자와 이야기하고 춤추는 것, 여자 어깨에 고개를 쉬고 여자 눈썹에 이마를 기대는 것 따위이다. 그러나 그는 우선 이 사막으로부터, 모르핀의 건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엘타이로 향하는 도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가 알마시라고 믿는 그 사내는 카라바조와 모르핀을 이용해서 자신의 세계, 자신의 슬픔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쟁중 그가 어느 편이었는지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몸을 수그린다.
"뭔가 알아야겠소."
"뭐요?"
"당신이 캐더린 클리프튼을 살해했소? 클리프튼을 살해하다가 그녀도 죽인 거요?"
"아니,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어."
"내가 그걸 묻는 이유는, 제프리 클리프튼이 영국 정보부 소속이었기 때문이오. 그는 단순한 영국인이 아니었소. 당신의 그 젊은 친구. 그는 이집트 - 리비아 사막에서 당신들의 이상한 그룹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지. 영국은 그 사막이 언젠가 전쟁의 무대로 변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소. 그는 항공 사진사였소. 그의 죽음은 영국 정보부를 혼란스럽게 했고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소. 물론 클리프튼은 모르고 있었지만, 정보부에서는 당신과 그 친구 아내의 관계를 처음부터 알았소. 그들은 그의 죽음이 보호막을 칠 목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닐까 의삼했소. 그들은 카이로에서 당신을 기다렸단 말이오. 물론 당신은 사막으로 돌아갔지. 나는 이후에 이탈리아로 파견되어서 그 후에 당신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소.
"그래서 날 지구 끝까지 쫓아온 거로군."
"난 해나 때문에 왔소. 그애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이 수녀원에서 라디스로스 알마시 백작을 만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소. 솔직히 말해서 전에 일하던 사람들보다 당신이 훨씬 더 좋아졌소."
카라바조의 의자를 비추는 빛의 네모진 윤곽이 그의 가슴과 머리를 액자처럼 담아, 영국인 환자의 눈에는 한폭의 인물화처럼 보였다. 어두운 빛 속에서는 진해 보이던 머리칼이 지금 늦은 오후의 빛을 받아 환하게 불붙어 있고 눈가의 처진 부분도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의자를 돌려 가슴으로 껴안고서 알마시를 마주했다. 카라바조는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생각엔가 잠긴 듯 턱을 문질러 얼굴에 주금을 잡으며 어둠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직 그 순간에만은 자기 자신을 생각에서 떼어놓고 무슨 말인가 불쑥 내뱉을 듯했다. 알마시의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사각형 빛의 테두리 안에 구부정하게 앉은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어둠이었다. 이 이야기 속의 두 중년 사내 중 한 사람.
"당신에게는 이야기할 수 있어, 카라바조. 왜냐하면 우리 둘 다 죽을 운명이라는 느낌 때문이야. 저 친구들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지. 그들이 겪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만났을 때 해나는 상당히 지쳐 있었소."
"그애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죽었소."
"그렇군.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더니. 모든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는 눈치였소. 그녀와 대화를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책을 읽어달라고 했지... 당신은 나나 당신이나 모두 자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소?"
그렇게 묻고는 잠시 어떤 가능성을 생각하는 듯 말을 멈춘다.
"부인은 있소?" 알마시가 물었다.
카라바조는 늦은 오후의 햇빛 속에 앉아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생각을 집중하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마치 이것이 이제 더 이상은 그에게 쉽게 오지 않는 젊음의 또 하나의 선물인 양.
"나한테 이야기해 보오, 카라바조. 아니면 나는 그저 한권의 책인가? 뭔가 읽을 만한 것, 호수에서 끌어 낸 짐승, 몸 속에는 모르핀 주사액과 복도와 거짓말과 무위의 생활이 가득하고 호주머니에는 돌멩이가 가득한."
"이 전쟁에서 우리 같은 도둑은 쓰임새가 아주 컸소. 우리는 법적으로 인정받는 거요. 우리는 도둑질을 했소. 그리고 우리 중의 몇몇은 자문을 해주었지. 우리는 정식 첩보원들보다도 거짓 위장을 더 자연스럽게 읽었소. 우리는 이중 허세를 만들어냈지. 모든 작전이 그런 도둑과 지식인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오. 나는 중동을 누비고 다녔소. 거기서 처음 당신 이야기를 전해 들었소. 당신은 신비스러운 존재, 그 사람들의 차트에서 빈 부분이었소. 당신은 사막에 대한 지식을 독일군에게 넘겨주었소."
"1939년, 엘타이에서 놈들에게 체포되어 스파이로 지목되었을 때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지."
침묵.
"하지만 당신은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과 유웨이나트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이오?"
"에플러를 데리고 사막을 건너겠다고 자진할 때까지 갈 수 없었소."
"당신에게 해줄 말이 있소. 1942년, 당신이 스파이를 인도해서 카이로로 갔을 때 일인데..."
"살람 작전."
"맞소, 당신이 롬멜 밑에서 일할 때요."
"명석한 사람...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소?"
"내가 하려던 말은, 당신이 연합군을 피해 애플러를 데리고 사막을 횡단한 일은 영웅적이었다는 거요. 지알로 오아시스에서 카이로까지. 오직 당신만이 리베카 책을 가진 롬멜의 첩자를 카이로로 데려 갈 수 있었지."
"그건 어떻게 알았소?"
"내가 해주려던 이야기는 그들이 애플러를 카이로에서만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오. 그들은 당신들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있었지. 독일군 암호는 그보다 훨씬 전에 연합군에게 파악되었소. 허나 룸멜에게 그것을 알릴 경우, 우리 측의 정보가 알려질까봐 비밀로 했지. 그 때문에 애플러가 카이로에 도착할 때까지 붙잡지 않고 기다렸소.
우리는 당신들의 움직임을 죄다 감시했소. 사막을 횡단하는 움직임 하나하나를. 그리고 정보부에서는 당신의 이름과 당신이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졌소. 그들은 당신을 원했소. 아마 당신을 죽이기로 되어 있었을 거요...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지알로를 떠난 후 20일이 걸렸다는 생각을 해보시오. 당신은 파묻힌 샘 길로 따라갔지. 연합군들 때문에 유웨이나트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아부발라스는 피해 갔소. 그리고는 에플러가 사막열병에 걸리자 간호해주었고. 비록 당신은 그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비행기 추적대가 당신을 '잃어버린'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당신은 계속 조심스럽게 추적당했소. 당신들이 스파이가 아니고 우리가 스파이였던 것이오. 정보부에서는 당신이 여자 때문에 제프리 클리프튼을 죽였다고 생각했소. 1939년에 그의 무덤이 발견되었지만 부인의 흔적은 없더군. 당신이 독일군 쪽으로 갔을 때 연합군의 적이 된 것이 아니라, 캐더린 클리프튼과 관계를 시작했을 때 이미 그렇게 된거란 말이오."
"그렇군."
"당신이 1942년 카이로를 떠났을 때 우리는 당신을 놓쳤소. 그들은 사막에서 당신을 체포해 죽이도록 계획을 세워놓았지. 그런데 당신을 놓쳐버린 거요 이틀 동안 당신을 찾을 수가 없었소. 당신은 미쳤거나 이성을 잃었던 걸 거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당신을 찾아냈겠지. 우리는 숨겨놓은 지프와 폭탄을 설치했소. 나중에 폭발한 채로 발견됐지만 당신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지. 당신은 사라졌소. 카이로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바로 그 여행이 당신의 위대한 여행이었소. 당신이 거의 미쳐 있었을 때 말이오."
"그러면 당신도 카이로에서 나를 추적하고 있었소?"
"아니오, 난 서류를 보았소. 내가 이탈리아로 진입할 무렵, 그들은 당신이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여기 말이오?"
"그렇소."
사각형 불빛은 벽 쪽으로 옮겨가면서 카라바조를 그림자 속에 남겨두었다. 그의 머리가 다시 어두운 빛깔로 변했다. 그는 어깨를 벽화에 묻으며 몸을 뒤로 기댔다.
"상관없는 일이지." 알마시가 중얼거렸다.
"모르핀을 원하오?"
"괜찮소. 생각을 정리하고 있소. 난 항상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지. 내가 그렇게 많이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군."
"당신은 정보부와 관련된 인물과 정사를 했소. 정보부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당신을 알던 자들이 있었소."
"맞소."
"아주 영국적인 영국인."
그렇소."
카리바조는 머뭇거린다.
"끝으로 한가지 더 이야기할 게 있소."
"알고 있소."
"캐더린 클리프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소? 무엇 때문에 당신들 모두 전쟁 직전에 길프 케버에 모인 거요? 매독스가 영국으로 떠난 후에 말이오."
나는 유웨이나트의 마지막 기지 캠프를 정리하기 위해 길프캐버에 한번 더 가기로 되어 있었지.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끝났소. 우리 사이에는 이제 어떤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했어. 우린 거의 1년동안 애인으로 만나던 사이가 아니었지. 전쟁은 다락방 유리창으로 불쑥 들어오는 손처럼 어디에선가 자신을 준비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녀와 나는 이미 각자 과거에 지녔던 습관의 벽 뒤로 숨어버렸지. 겉으로 보기에는 무관한 관계 속으로 우린 이제 서로를 볼 일이 별로 없었소.
1939년 여름 동안 나는 고프와 함께 육로로 길프 케버까지 가기로 했소. 기지 캠프를 정돈한 뒤 고프는 트럭을 몰고 출발하기로 했소. 그리고 클리프튼이 비행기로 나를 데려가기호 한 거지. 그리고는 각자 우리 사이에 만들어진 삼각형의 틀에서 흩어지기로 했어.
비행기 소리가 났을 때 나는 이미 고원의 바위를 기어 내려오는 중이었어. 클리프튼은 항상 시간 약속을 잘 지켰지.
작은 운송기가 착륙하는 데는 일정한 방법이 있소. 수평선 높이에서부터 미끄러지는 방법이지. 사막의 불빛 속에서 날개가 기울어지고 그때 소리가 멈추지. 그리고는 비행기가 서서히 대지로 내려오는 거야. 나는 비행기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지. 사막에서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항상 두려움을 안고 텐트 밖으로 나오곤 했어. 그들은 항상 빛의 건너편에서 날개극 꺾고는 거대한 정적 속으로 들어갔지.
모스 캠프는 고원 위에 있었소, 난 푸른색 방수포를 흔들었지. 클리프튼은 고도를 내리고 내 머리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어. 너무 낮게 날았기 때문에 아카시아 가지가 흔들리며 잎이 떨어졌지. 비행기는 왼쪽으로 돌아 원을 그리고는 나를 본 순간 다시 기체를 추슬러서 내가 있는 곳으로 똑바로 달려들었어. 그런데 내 앞 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기체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폭발했지. 난 비행기를 향해 달려갔소.
그나 혼자일 거리고 생각했지. 혼지 오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허나 그를 끌어내려고 달려갔을 때 곁에 그녀가 있었소. 그는 이미 죽어 있었지. 그녀는 하체를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정면을 쳐다보더군. 조종석 유리창으로 모래가 들어와 그녀의 무릎을 덮었지. 부상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 그녀의 왼손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의 충격을 막기 위해 앞으로 뻗어 있었어. 난 클리프튼이 루퍼트라고 부르던 비행기에서 그녀를 끌어내어 바위 동굴로 안고 갔지. 벽화가 그려져 있는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 로 위도23도 30, 경도 25, 15. 난 그날 밤 제프리 클리프튼을 묻었소.
내가 그들에게 저주였나? 그녀에게? 매독스에게? 단순한 모래처럼 전쟁에 강간당하고 포화에 묻힌 사막에게? 야만인 대 야만인 양쪽 군대 모두 사막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쳐들어왔어. 리비아의 사막. 정치를 제거한다면 이 말은 내가 아는 가장 사랑스러운 문구요. 리비아. 성적이고 길게 늘인 단어. 설득당한 샘물. b와 y. 매독스는 이 말이 발음할 때 혓바닥이 구석으로 구르는 몇 안되는 단어라 고 말했소. 리비아 사막의 디도(로마신화에서 카르타고의 시조 여왕.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가는 길에 카르다고에 들른 아이네아스를 연모하다가. 그가 고국으로 떠나자 자살하였다고 함. 옮긴이)를 기억하오? 인간은 마른 땅에 있는 강물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저주받은 대지로 들어갔다거나 사악한 처지로 유혹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는 선물이었어. 수영하는 이들의 동굴에서 벽화를 찾아낸 일. 탐험중에 매독스와 함께 '버든스'를 부르던 일. 사막에 있는 우리들에게 나타난 캐더린. 붉게 칠해진 콘크리트 바닥 위를 걸어 그녀에게로 다가가 무릎을 꿇던 나의 모습, 내가 마치 소년인 양 나의 머리를 받아주던 그녀의 배, 나에게 총을 감별하게 했던 그 부족들이 나를 치료해준 일. 우리 네 사람, 해나와 당신과 공병까지도.
나는 내가 사랑하거나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빼앗겼소.
난 그녀와 함께 있었지. 그녀의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어. 나는 줄곧 그녀의 눈빞이 일렁거리기를 기다렸어. 그녀의 부러진 손목이 움직이기를, 그녀의 닫혀진 입이 말하기를 기다렸지.
얼마나 날 증오했어요? 그녀가 소근거렸소. 당신은 내 안의 거의 모든 것을 죽였어요.
캐더린...설마...
안아줘요. 자신을 방어하지 말아요. 어떤 것도 당신을 바꿔놓지 못해요.
그녀의 시선은 영원하였소. 난 그 시선의 과녁에서 벗어날 수 없었소. 내가 그녀의 눈이 보는 마지막 형상이어야 했지. 그녀를 인도하고 보호하며 결코 속이지 않을. 동굴 속의 재칼(여우와 늑대의 중간형 동물. 옮긴이).
동물과 연관된 신이 백 개나 있지. 나는 그녀에게 말했소. 재칼과 관련된 신들은 - 아누비스, 두아무테프, 웨프와웨트, 이들은 사람을 후세로 이끌어주는 존재들이지... 우리가 만나기 전의 그 세월동안, 내 과거의 유령이 당신과 함께 있었듯이. 런던과 옥스포드의 모든 파티들. 당신을 지켜보고, 당신이 커다란 연필을 쥐고 숙제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지. 옥스포드 유니인 도서관에서 당신이 새벽 2시에 제프리 클리프튼을 만났을 때에도 내가 있었어. 사람들의 외투가 바닥에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당신은 왜가리처럼 맨발로 그것들을 헤치고 지나갔지. 다신은 내 존재를 모르고 나를 무시했지만, 그가 당신을 지켜볼 때 나도 당신을 지켜보았소. 당신은 잘생긴 남자만을 쳐다보는 나이였어. 당신은 아직 자신의 나이 반경 바깥의 세계를 알지 못했지. 재칼은 옥스포드에서 에스코트 감으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어. 허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볼 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이지. 당신 등 뒤에 있는 벽은 책으로 덮여 있어. 자신의 왼손은 목에 걸린 긴 진주 목걸이를 잡고 있지. 당신은 맨발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무언가 찾고 있어. 당신은 그때 지금보다 살이 쪘지만, 대학 생활에는 딱 어울리는 정도였지.
옥스포트 유니언 도서관에는 우리 세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제프리 클리프튼만을 찾지. 회오리바람 같은 로맨스가 된 거야. 그는 북부 아프리카나 또는 다른 어떤 곳이 전공지역인 고고학자 밑에서 일한다고 하지. "어떤 이상한 노친네와 함께 일합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그런 당신의 모험을 기쁘게 여기지.
허나 재칼의 영혼, 웨프와웨트 또는 알마시라는 이름의 '길을 여는 존재' 가 당신 두 사람과 함께 그 방에 서 있었어. 나는 팔짱을 끼고 당신들이, 두 사람 다 술에 취해서 열을 올리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지. 하지만 멋진 일은 새벽 2시에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당신들은 서로에게서 무한한 가치와 즐거움을 느꼈다는 점이야.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도학해서 서로 다른 밤을 보냈다 할지라도. 당신들은 기어코 자신의 운명을 찾았을 거야.
새벽 3시에 당신은 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신발 한짝을 찾지 못하지. 당신은 한쪽 신발을 손에 들고 있어. 장밋빛 슬리퍼, 나는 다른 한짝이 옷더미 속에 깔린 것을 보고 집어들지. 그 광채를. 당신의 발가락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신발임이 틀림없었어. 고마워요, 당신은 받아들면서 말하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서면서.
나는 이렇게 믿소.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 영혼에는 학자와 같은 면이 있다는 것. 상대방이 무심하게 지나친 만남을 기억하는 역사가적인 면. 어쩌면 클리프튼이 당신을 만나기 1년 전 어디선가 당신을 위해 자동차 문을 열어주었으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모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오. 허나 육체의 모든 부분은 상태를 위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욕망이 일어나도록 모든 원자가 한 방향으로 고약해야 하지.
나는 사막에서 몇 년을 살면서 그런 것들을 믿게 되었소. 사막은 호주머니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곳이지. 시간과 물의 실사화. 뒤돌아보는 외눈의 재칼, 그리고 당신이 선택할까 생각중인 길을 주목하는 존재. 그 입에는 그가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과거의 조각들이 있고,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이 완전히 밝혀지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그녀의 눈은 모든 것이 지쳐 있는 나를 보고 있소. 극심한 피로 비행기에서 끌어낼 때 그녀의 눈빛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애썼다지. 이제 그 눈은 신중한 경계의 빛을 띠고 뭔가 내부에 있는 것을 보호하려는 듯했어. 나는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어. 몸을 앞으로 수그려 그녀의 오른쪽 푸른 눈에 혀를 가져갔어. 소금 맛. 꽃가루. 나는 그 맛을 그녀의 입으로 가져갔소. 그리고는 다른 쪽 눈. 눈알의 맑은 구멍에 서린 푸른 빛을 닦아내는 나의 혀. 내가 뒤로 물러섰을 때 그녀의 표정에는 흰빛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지. 난 그녀의 입술을 벌렸어. 이번에는 손가락을 깊숙히 넣으며 이빨을 벌렸지. 혀가 '뒤로 물러나' 있었소. 난 그녀의 혀를 앞으로 당겼어. 그녀에게는 죽음의 실오라기. 죽음의 냄새가 났지. 너무 늦었소.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혀로 푸른 꽃가루를 그녀의 혀에 옮겼어 우리는 한번 그렇게 접촉했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나는 뒤로 물러서서 큰 숨을 한번 쉬고 다시 앞으로 몸을 수그렸어. 내 혀가 닿자 혀가 꿈틀하고 움직였지.
그리고는 거세고 은밀하며 엄청난 전율이 그녀에게서 내게로 쏟아졌소. 전류가 흐르는 듯 그녀의 온몸이 흔들렸지. 그녀는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벽화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소. 괴물이 그녀에게로 들어갔다가 뛰쳐나와서 내게 떨어졌소. 동굴 안의 빛은 점점 줄어들었소. 그녀의 고개가 이쪽저쪽으로 꺾이며 흔들렸소.
나는 악마의 수법을 알아. 어릴 때 사랑의 악마에 대해 배웠지. 젊은 총각의 방으로 찾아드는 아름다운 요부에 대해서 들었지. 그때 젊은이가 현명하다면 그녀에게 돌아서 볼 것을 요구하는 거여. 악마나 마녀는 등이 없이 때문이지. 그들은 우리에게 보이고자 하는 부분만 있지.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녀에게 어떤 동물을 넣어준 건가? 아마도 한 시간쯤 그녀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 내가 그녀의 사랑의 악마였던 건가? 내가 매독스의 악마 친구였던 건가? 이 나라 - 내가 이곳을 지도로 옮기면서 전쟁의 소굴로 뒤집어놓은 건가?
성스러운 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그것이 사막의 비밀 가운데 하나였소. 그 때문에 매독스는 소머셋 성당에 들어섰을 때 성스럽지 못한 그곳의 기운을 느끼고 그가 성스러운 행위라고 믿었던 일을 한 거지.
그녀를 돌려놓고 보니 몸 전체가 온통 환한 빛깔로 덮여 있었소. 식물과 돌과 빛, 그리고 그녀의 영생을 위한 아카시아 재. 신성한 빛깔이 새겨진 육체. 오로지 푸른색일 거둬낸 눈만이 익명으로 남은, 아무것도 묘사되지 않는 벌거벗은 지도. 호수의 자취도 없고, 보르쿠-에네디-티베스트 북쪽처럼 산들이 모인 어두운 색채도 없고, 아프리카의 끝부분에 나일 강이 알렉산드라의 펼쳐진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는 부채 모양의 라임그린 색도 없는.
그리고 모든 부족들의 이름, 사막의 단조로움 속을 걸으며 밝음과 믿음과 빛깔을 보는 신앙의 유목인들. 돌이나 길에서 주운 금속상자나, 또는 뼈다귀가 사랑 받고 기도 속에서 영원한 존재로 변하는 방식. 이 나라의 그런 영광 속으로 그녀는 이제 들어가서 그 일부가 되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부족들의 풍요로움을 안고 죽지. 나무처럼 기어오르던 인물들, 동굴처럼 숨어 있던 공포들, 그 모두를 안고 죽지. 나는 내가 죽을 때 이런 모든 것들이 내 몸에 새겨지기 바라오. 나는 그런 지도가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돈 많은 사람들이 건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지도 위에 자기 이름을 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기록하는 거요. 우리는 공공의 역사이고 공공의 책이지. 우리의 취향이나 경험 속에 소유되거나 구속받지 않아. 내가 바란 것은 다만 지도가 없는 그런 땅 위를 걷는 것이었지.
나는 캐더린 클리프튼을 안고, 모두에게 똑같은 달빛의 책이 있는 사막으로 들어갔소. 우리는 샘물의 소문 사이에 있었지. 바람이 있는 곳.
알마시의 얼굴은 왼쪽으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어쩌면 카바리조의 무릎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모르핀이 필요하오?"
"아니오."
"아니면 뭐 다른 것이라도?"
"아무것도 필요 없소."
X. 8월
카라바조는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와 부엌으로 들어섰다. 식탁 위에는 샐러리 몇 조각과 아직도 흙이 묻어 있는 무 몇 뿌리가 있었다. 해나가 지금 막 지핀 불빛이 이 부엌의 유일한 빛이었다. 그녀는 그를 등지고 있어서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빌라에서 보내는 나날들은 그의 몸을 불게 했고 긴장을 풀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커 보였고, 이런저런 몸짓을 할 때면 팔다리가 더 늘어져 보였다.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는 것만 여전할 뿐. 그밖에는 무사안일이 습관이 되어 그의 몸짓에 느긋함이 배어버렸다.
그가 의자를 끌어당기자 해나는 뒤를 돌아보고 그가 들어왔음을 알아차렸다.
"안녕, 데이비드. "
그는 손을 들어 보였다. 사막에 너무 오래 있었다고 느끼면서.
"그 사람은 어때요?"
"자고 있어. 실컷 떠들다가. "
"그 사람, 아저씨가 생각하던 그런 사람인가요?"
"괜찮은 친구야. 그냥 내버려두지. "
"그럴 줄 알았어요. 킵과 나는 그가 영국인이라고 확신해요. 킵이 그러는데 빼어난 사람들은 다들 괴팍하대요. 그런 사람이랑 일을 한 적이 있대요. "
"내 생각엔 킵이 괴팍한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 친구 어디 갔나?"
"테라스에서 무언가 하고 있어요. 나더러 오지 말라고 했어요. 내 생일 선물이라고. "
해나는 벽난로 쇠살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손으로 팔을 문지르며 일어섰다.
"네 생일 선물로 작은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패트릭에 관한 것 말고요, 네?"
"패트릭에 관한 것도 조금 있고, 허나 대부분 네 이야기야. "
"저는 이직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어요, 데이비드. "
"아버지들은 죽는다. 넌 어떤 방법으로든 아버지를 계속 사랑할 수 있어. 마음 속에 아버지를 감춰둘 수는 없잖니. "
"모르핀 기운이 떨어지면 얘기해 주세요. "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고 뺨에다 키스한다. 그가 그녀를 한결 강하게 안자 살결에 닿는 수염이 모래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 그의 그런 면들을 사랑했다. 과거의 그는 항상 소심했다. 머리 가르마가 자정 때의 융 스트리트 같다고 예전에 패트릭이 말했다. 카라바조는 과거에 그녀 앞에서 걸어다니는 신처럼 움직였다. 이제 그는 통통한 얼굴에 배가 나오고 머리칼마저 희끗희끗해져 훨씬 친근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는 공병이 준비했다. 카라바조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가 준비하는 식사로 말할 것 같으면 세 번에 한 번은 식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킵은 구해 온 야채를 설익혀 수프라고 내놓았다. 종일 이층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 카라바조가 바라는 식사가 결코 아닌 또 한차례의 조촐한 식사. 그는 싱크대 아래 찬장을 열었다. 젖은 천에 마른 고기가 조금 싸여 있다. 카라바조는 고기를 잘라 호주머니에 넣는다.
"모르핀을 끊게 해드릴 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전 좋은 간호사예요. "
"넌 미친 사람들 틈에 끼어 있구나. "
킵이 부르는 소리에 그들은 동그랗게 불을 밝혀둔 돌난간 테라스로 나갔다.
아마도 먼지투성이 성당에서 조그만 전기 촛불을 가져와 장식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해나의 생일이라고 해도 성당에서 물건을 내왔다는 점이 카라바조에게는 못내 꺼림칙했다. 해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바람도 없었다. 그녀의 다리는 마치 물속에서 걷는 듯 치마 속에서 일렁거렸다. 돌 위에 내딛는 테니스화는 조용했다.
"땅을 팔 때마다 죽은 껍질이 자꾸 나왔어요. " 공병이 말했다.
그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라바조는 몸을 수그리고 불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기름을 채운 달팽이 껍질이었다. 그는 나란히 놓인 불을 따라가며 쳐다보았다. 40여 개 되어 보였다.
"마흔다섯 개입니다. " 킵이 말했다. "20세기 중에 지나간 햇수만큼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나이뿐 아니라 시대도 같이 축하하거든요. "
해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킵이 좋아하는 걸음걸이로 그들 곁에 다가갔다. 그날 밤을 위해 팔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듯 긴장을 푼 채, 아예 팔이 없는 듯한 단순한 움직임으로.
카라바조는 탁자 위에 놓인 붉은 와인 세 병을 보고 깜짝 놀라 뜨악하던 기분이 싹 가셨다. 다가가서 상표를 보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기까지 했다. 그는 공병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 병 모두 이미 뚜껑이 열려 있다. 킵이 도서실에서 무슨 에티켓 책을 보고 따라한 게 틀림없다. 옥수수와 고기, 그리고 감자도 보였다. 해나는 킵의 팔짱을 끼고 식탁으로 왔다.
그들은 먹고 마셨다. 고기처럼 진하게 혀를 감는 예상치 못한 술. 그들은 곧 장난스러운 기분이 되어서 공병을 '위대한 약탈자'라고 부르며 건배했다. 그리고는 영국인 환자를 위해 건배, 서로에게 건배, 그리고 킵이 비커에 물을 채워 다함께 건배, 이때 그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라바조는 가만히 듣기만 하지 않고 그를 채근하기까지 했다. 때로 일어서서 탁자 주위를 돌아다니며 이 모든 것에 대한 기쁨을 안고 오락가락했다. 그는 그 둘을 결혼시키고 싶었다. 말로 강요해서 그렇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들의 관계에는 그들만의 이상한 규칙이 있는 듯햇다. 이 역할에서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앉았다. 이따금씩 그는 불이 꺼져가는 것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달팽이 껍질에는 기름이 많이 고이지 않았다. 킵이 일어서서 분홍색 파라핀을 다시 채워 부었다. "자정까지는 밝혀야죠. "
그리고서 그들은 아주 멀리 있는 전쟁을 이야기했다.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킵이 말했다. "그럼 자네는 어디로 갈 건가. " 카라바조가 물었다. 공병은 고개를 젖는 듯 끄덕이는 듯 흔들면서 웃었다. 그래서 카라바조는 킵이 들으라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는 조심스레 탁자로 다가와 카라바조의 다리에 고개를 얹었다. 공병은 토론토가 신기한 환상의 나라인 듯 그곳에 관해 더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도시를 덮고, 여름이면 사람들이 콘서트를 구경하던 페리보트와 항구를 얼게 만드는 눈. 그러나 그가 정말 관심을 두는 것은 해나에 관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옛날과 관련된 이야기를 피하여 카라바조의 화제를 번번이 돌려놓았다. 그녀는 킵이 소녀 시절의 자신보다 지금, 예전보다 허점도 더 많고 더 따뜻하며 굳세고 집요한 현재의 자기 모습만을 알기를 바랐다. 그녀의 삶에는 어머니 앨리스, 아버지 패트릭, 새엄마 클라라, 그리고 카라바조가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그들이 자신의 신용증명서나 결혼지참금인 양 킵에게 그 이름들을 고백했다. 그들은 무결했고 논란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계란 삶는 법, 또는 양고기에 마늘을 얹는 법 등을 알려주는 책 속의 권위처럼 그들은 인용했다. 그들은 질문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카라바조가 꽤 술이 취한 상태에서 해나가 '라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 옮긴이)를 독창한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그녀에게도 했던 이야기다. "네, 그 노래 들어본 적 있습니다. " 킵은 대꾸하고 영어로 흥얼거렸다. "아니, 크게 불러야 해요. " 해나가 말했다. "일어서서 불러야 돼요!"
그녀는 일어서서 테니스화를 벗더니 탁자 위로 올라섰다. 그녀의 맨발 옆에 달팽이불 네 개가 깜빡이며 마지막 빛을 발했다.
"당신을 위해서예요. 이렇게 부르는 걸 배워야 해요, 킵. 당신을 위해서예요. "
그녀는 어둠을 향해 노래했다. 달팽이 불 너머,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비치는 사각의 불빛 너머, 삼나무 그림자와 함께 출렁이는 어두운 하늘을 향해. 그녀의 두 손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왔다.
킵은 캠프에서 무슨 즉석 축구 게임이라도 벌어지나 싶은 이상한 시간에 남자들 여럿이 모여 곧잘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카라바조는 지난 몇 년의 전쟁 동안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씁쓸해져 결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오래 전 해나가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이제 그는 해나가 부르기 때문에 기쁘게 들을 수 있었다. 16세의 정열이 아니라,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흐린 원광을 울리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노래에 상처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는 그 노래의 희망을 불러올 수 없는 것처럼 노래했다. 스물한 살이 되는 20세기의 45년째 이 밤까지 이어져 온 지난 5년의 세월이 노래를 바꿔놓은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항하여 혼자가 된 지친 여행객의 목소리. 새로운 서약. 노래에는 이제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그것만이 분명했다. 그 한 목소리는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었다. 달팽이 불빛의 노래. 카라바조는 그녀가 공병의 가슴과 더불어 바로 공병의 가슴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텐트 속에는 대화가 없는 밤과 대화로 가득 찬 밤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의 과거의 조각이 다가올지, 또는 어둠 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애무가 익명의 것이 될지 침묵의 것이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몸, 혹은 그의 귀에 쏟아놓는 그녀의 말의 친근함 - 매일 밤 그가 고집하여 바람을 불어넣어 만드는 공기 베개에 나란히 누워 있을 때. 그는 이 서구의 발명품에 매혹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거쳐오는 동안 늘 하던 대로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바람을 뺀 뒤 세 겹으로 접어놓는다.
텐트 안에서 킵은 그녀의 목에 기댄다. 그는 자신의 몸을 긁어주는 그녀의 손톱 아래서 녹아버린다. 또는 그녀의 입에 입을 대거나 그녀의 손목에 배를 대고 누워 있다.
그녀는 노래부르고 흥얼거린다. 그녀는 어두운 텐트 속에서 그가 절반쯤은 새가 된다고 생각한다. - 차가운 족쇄를 팔목에 감고, 몸안이 깃털의 포근함으로 채워진 그는 낮 동안 빛깔이 빛깔 위로 미끄러지듯 주위에 던져진 모든 것들 사이로 미끄러지지만, 이런 어둠 속에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세상처럼 빠르지 않게 느긋이 움직인다.
밤에 그는 얼음 속의 잠을 껴안는다. 그녀는 그의 눈을 보지 않고는 그의 질서와 규칙을 볼 수 없다. 그를 열 수 있는 열쇠란 없다. 그녀가 닿는 곳마다 점자로 된 문. 마치 심장, 갈비뼈 등의 내장이 피부 아래로 보이듯이 그녀의 손에 묻는 타액이 이제 하나의 빛깔이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의 슬픔을 지도로 그렸다. 그가 자신의 위험한 형에게 품고 있는 이상한 사랑의 길을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방황은 우리 피 속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은 형에게 더욱 가혹한 겁니다. 형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살할 거예요. "
이야기를 나누는 밤, 그들은 다섯 줄기의 강이 흐르는 그의 나라로 여행한다. 수트레이, 예럼, 라비, 체나브, 비즈. 그는 그녀를 거대한 거르드와라로 인도해서 그녀가 신발을 벗고 발을 닦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녀의 머리를 가린다. 그들이 들어서는 곳은 1601년에 건설되었다가 1757년 무너진 직후에 재건된 곳이다. 1830년에 금과 대리석이 덧입혀졌다. "아침이 되기 전에 가면 제일 먼저 물 위를 덮고 있는 안개를 보게 될 거예요. 그 다음에는 안개가 걷히면서 빛 속에 성전이 드러나죠. 항상 라마난다, 나낙, 카비르 등 성인들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노래가 예배의 중심이죠. 노래를 듣고 성전 정원의 과일 냄새를 맡아요. 석류와 오렌지. 성전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삶 속의 안식처죠. 무지의 바다를 건넌 배예요. "
그들은 밤을 지나고 은빛 문을 지나 금란 아래 경전이 놓인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연주자의 반주에 맞춰 라지들이 경전의 문구를 노래한다. 그들은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노래한다. 그란드사히브가 저절로 열리고 인용문이 선택되며 호수에서 안개개 걷혀 황금 성전을 드러내 보이기 전의 세 시간 동안, 끊기지 않는 구절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흘러나간다.
킵은 물을 지나 성전의 첫 승려 바바 구이하이가 묻힌 신성한 나무로 그녀를 이끌어간다. 440년 된 미신의 나무. "우리 어머니는 이 나뭇가지에 줄을 매달아 놓고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그리고 형이 태어나자 다시 와서 또하나를 더 빌었죠. 펀잡에는 신성한 나무와 마법의 물들이 즐비합니다. "
해나는 조용하다. 그는 그녀의 어둠의 깊이, 그녀에게는 아이도 신앙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항상 그녀를 슬픔의 벌판 끝에서 억지로 끌고나온다. 잃어버린 아이, 잃어버린 아버지.
"나도 아버지처럼 따르던 분을 잃었어요. "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옆에 있는 이 남자가 마법에 걸린 사람 가운데 하나이며, 아웃사이더로 성장했기 때문에 충성된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고 상실을 회복할 수도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불평등으로 인해 파괴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만약 그녀가 묻는다면 그는 좋은 삶을 살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형은 감옥에 있고 동료가 폭발 속에 숨졌으며 그 자신은 하루하루 이 전쟁 속에서 목숨을 걸고 있으면서도.
그런 이들의 마음 속에 친절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극도로 불공평한 삶을 살았다. 그는 온종일 진흙 구덩이 속에서 언제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폭탄을 제거하기도 하고, 동료 공병의 장례식에 들렀다가 기진맥진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그에게는 항상 빛과 해결책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에게는 온갖 운명의 지도가 있었고, 모든 신조와 계급이 환영받고 함께 식사하는 암릿사르 성전이 있었다. 그녀도 바닥에 깔린 천 위에 돈이나 꽃을 놓고 그 웅장한 합창에 가담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녀의 내면은 천성적인 슬픔이었다. 그가 자기 성격의 열세 개의 문 안으로 그녀를 들여놓기는 하겠지만, 위험을 마주했을 때는 절대로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그는 주위에 공간을 두고 정신을 집중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기술이었다. 시크족은 기계를 잘 다뤄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친근함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걸 뭐라고 하죠?" "친화력. " "그래요. 기계에 대한 친화력. "
그는 그 속에서 몇 시간씩 열중했다. 머리나 이마에 매달려 흔들리는 광석 수신기의 음악 소리. 그녀는 자기가 그에게 완전히 빠져들어 연인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잃는 것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움직였다. 그것이 그의 천성이었다. 그녀는 그의 그런 면을 심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가. 매일 아침 배낭을 왼쪽 어깨에 메고 산지롤라모 빌라를 걸어나가는 킵. 아침마다 그녀는 그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을 향한 그의 상쾌한 모습을 본다. 몇 분 후, 그는 파편으로 가지가 잘려나간 삼나무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플리니나 스탕달이 그런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파프마 차트하우스"의 여행 역시 지구의 이 지점에서 일어났으니까.
킵은 고개를 든다. 포탄을 맞은 키 큰 나무의 아치가 그의 머리 위에 있고 눈앞에 뻗은 길은 중세적이며, 그는 시대가 만들어 낸 가장 해괴한 직업인 공병, 지뢰를 찾아 분해하는 군사 기술자다. 매일 아침 그는 텐트에서 나와 정원에서 씻고 옷을 입는다. 그리고 빌라와 그 주변을 떠난다.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 어쩌다 그녀를 보면 손을 흔드는 정도 - 마치 언어나 인간이 그를 혼란시키기라도 하듯 원리를 알아내야 할 기계에 피처럼 매달린다. 그녀는 집에서 40미터쯤 떨어진 오솔길을 걷는 그를 본다.
그것은 그가 모두를 뒤에 남기고 가는 순간이었다. 가동교가 기사의 등 뒤에서 닫히는 순간, 그는 자신의 엄격한 재능의 평화로움 속에서 혼자가 된다. 시에나에는 그녀가 본 그 벽화가 있다. 도시의 프레스코 도시 성곽에서 몇 미터 떨어진 속에서는 예술가의 그림도 무너졌다. 성을 떠나는 여행객들을 위해 외딴 곳에 있는 과수원의 예술조차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녀는 킵이 낮에 그곳에 간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그는 그림 속의 풍경에서 어두운 혼돈의 허세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기사. 전사 성인. 그녀는 삼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카키색 제복을 본다. 영국인은 그를 가리켜 '페이토 프로퓨거스' - 운명의 도망자라 부른다. 그녀는 요즈음 그가 나무 위를 올려다보는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하리라고 추측한다.
1943년 10월 초, 그들은 이미 남부 이탈리아에 있는 기술부대에서 최정예 군단을 선발하여 나폴리에 공병을 투입시켰다. 킵은 함정으로 가득 찬 도시로 날아들어 온 30인 중 하나였다. 독일군은 이탈리아 출정에서 역사상 가장 기발하고 가혹한 후퇴를 단행했다. 1개월 내에 완료되었어야 할 연합군의 전진은 무려 1년이나 지체되었다. 가는 곳마다 폭탄이 터졌다. 공병들은 군대가 전진하는 동안 트럭의 흙받이에 올라타고 땅이 새로 다져진 지점을 찾아다녔다. 그것은 지뢰, 유리폭탄, 신발폭탄 등이 묻혀 있다는 표지였기 때문이다. 전진은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더뎠다. 좀더 북쪽에 위치한 산악지대에서는 붉은 손수건으로 표시되는 가리발디 게릴라 유격대가 나름대로 도로에 폭탄을 설치해서 독일군 트럭이 지날 때 폭발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에 묻힌 지뢰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키스마요 - 아프마두 도로 교차점에서만 2백 60개가 발견되었다. 오모 강 다리 주변에 3백 개. 1941년 6월 30일. 남아프리카 공병들이 하루 동안 메르사마트루에 '마크 11' 지뢰 2천백개를 찾아냈다. 4개월후 영국군은 메르사마트루에서 7천8백6개의 지뢰를 찾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지뢰는 온갖 것으로 만들어졌다. 아연도금 처리한 40센티미터짜리 파이프에 화약을 채워 군사도로를 따라 놓기도 하고, 나무상자에 든 폭탄을 가정집에 남겨두기도 했다. 파이프 지뢰에는 젤리그나이트와 금속 조각, 그리고 못이 채워졌다. 남아프리카 공병들은 4갤론의 석유통에 철을 넣어 장갑차량을 터뜨리는 데 사용했다.
도시는 더욱 심했다. 겨우 수련을 마친 폭탄제거 부대들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각지로 보내졌다. 제 18사단은 1941년 10월 3주 동안, 1천 4백 3개의 고성능 폭탄을 분해하여 유명해졌다.
이탈리아는 아프리카보다 더 어려웠다. 시한폭탄 퓨즈가 악몽처럼 괴팍했고, 작동을 시작하게 하는 스프링 구조가 부대원들이 훈련받은 독일제와 달랐다. 공병드이 도시로 진입해 길거리를 걷다보면 나무나 건물 발코니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었다. 독일군은 종종 독일군 한 명이 희생된 데 대해 복수로 이탈리아인 열 명을 죽였다. 매달린 시체들 가운데 일부에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 공중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독일인 1943년 10월 1일 나폴리를 떠났다. 그 해 9월에 있던 연합군 공습 때 수백 명의 시민들이 도시를 버리고 외곽으로 나가 동굴에서 살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그런 동굴 입구에 폭탄을 설치했다. 시민들은 동굴 안에 갇혀버렸으며 발진티푸스 전염병이 돌았고 항구에서는 배의 바닥에 폭탄이 장착되었다.
공병 30명은 폭탄이 숨겨진 도시로 걸어 들어갔다. 공공건물 벽 속에 시한폭탄이 숨겨져 있었다. 거의 모든 차량이 부서졌다. 공병들은 방 안에 아무렇지 않게 놓인 모든 물건에 대해 의심하는 습관이 붙었다. '4시 방향' 으로 돌려진 물건이 아니면 무엇이든 믿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공병 출신들은 탁자 위에 펜을 내려놓을 때면 끝이 4시 정각을 가리키도록 돌려놓았다.
나폴리는 6주 동안 계속 전투지구로 남았고, 킵은 그 동안 줄곧 그곳에 있었다. 2주 만에 그들은 동굴 속에 있는 시민들을 발견했다. 오물과 발진티푸스로 피부가 시커멓게 된 사람들. 도시의 병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들의 행렬은 흡사 유령 같았다.
나흘 후, 중앙우체국이 폭발하여 72명의 사상자가 났다. 중세 유럽에 관한 귀중한 자료는 도시의 공문서와 함께 이미 불타버렸다.
10월 20일, 전기가 복구되기 사흘 전에 독일군 한 명이 자수했다. 그는 항구 쪽에 있는 작동정지 상태의 전기장치에 수천 개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고 자백했다. 전기가 가동되면 도시 전체가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일곱 차례에 걸쳐 다른 방법의 폭력과 수단을 동원하여 그를 심문했다. 그리고 나서도 상부에서는 그의 자백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도시 전체가 철수했다. 아이, 어른, 죽음에 임박한 사람, 임산부, 동굴에서 구출된 사람, 동물, 값비싼 지프, 병원에 입원해 있던 부상병, 정신병자, 사제와 수도자, 수녀원의 수녀 등. 1943년 10월 22일 해질 무렵, 도시에 남은 것은 12인의 공병뿐이었다.
전기는 다음날 오후 3시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텅 빈 도시에 남아본 적이 없었다. 다음날까지의 시간은 그들의 삶에서 가장 이상하고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었다.
저녁 무렵에 폭풍우가 터스캐니로 밀려들어온다. 천둥은 풍경위로 우뚝 솟아 있는 금속이나 첨탑에 닥치는 대로 내리친다. 킵은 언제나 삼나무 사이로 난 노란 오솔길을 따라 저녁 7시쯤 빌라로 올라온다. 천둥이 시작된다면 바로 그 시각에 시작된다. 중세기 때부터의 경험.
그는 그렇듯 시간을 지키는 습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집으로 오는 길에 걸음을 멈추고 비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뒤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그녀와 카라바조는 멀리서 지켜본다. 해나와 카라바조가 집안으로 돌아 들어간다. 킵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왼쪽으로 도는 1킬로미터의 언덕길을 계속 걷는다. 자갈에 끌리는 부츠소리가 난다. 바람이 쏟아지듯 밀려와 삼나무 한쪽을 때려 가지를 기울게 하고는 그의 셔츠 소매로 스며든다.
그때부터 10분 동안 그는 비가 자기를 따라잡을 지 어쩔지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걷는다. 비를 느끼기 전에 마른 잔디와 올리브 잎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언덕의 신선하기 그지없는 바람 속에, 태풍 앞에 있다.
빌라에 도착하기 전에 비가 닥쳐도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속도로 배낭에 비닐 망토를 덮어씌우고 줄기차게 비 속을 걷는다.
텐트 안에서 그는 순수한 천둥 소리를 듣는다. 머리 위에서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 마차가 산으로 사라질 때 나는 바퀴 소리.
텐트 벽 사이로 갑작스런 번개. 그 빛은 언제나 햇빛보다 밝게 느껴진다. 억눌린 인의 불길, 뭔가 기계적인, 이론 교실과 광석 수신기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단어 '핵'과 관련 있는 것. 텐트 속에서 그는 젖은 터번을 풀고 머리를 말린 뒤 새 터번을 감는다.
강풍은 피드몬트에서 흘러나와 남쪽과 동쪽으로 몰려간다. 번개는 십자가의 길이나 로자리오 묵주의 신비를 재현하고 있는 언덕의 작은 성당들의 피뢰침에 떨어진다. 작은 도시 바레세와 바랄로에는 1600년에 조각된 실물보다 더 큰 적갈색 동상들이 성서의 장면을 간간이 보여주듯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 처형당하는 그리스도의 묶인 팔이 뒤로 젖혀진 모습, 떨어지는 채찍, 세 명의 병사들이 붉게 물든 구름을 향해 십자가를 높이 들어올리는 모습.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산지롤라모 빌라 또는 그런 순간순간의 빛을 받는다. 어두운 복도, 영국인 환자가 누워 있는 방, 해나가 불을 지피고 있는 부엌, 폭격당한 성당 - 그림자도 없이 모두 다 갑자기 빛을 받는다. 킵은 그런 폭풍 속에서 정원의 나무 밑을 태연하게 걸을 것이다. 그의 일상생활에 비하면 벼락에 맞아죽을 위험 따위는 우스울 정도이므로 천둥과 번개 사이의 시간을 재는 동안 그가 본 언덕 위의 성당에 있는 천진한 카톨릭 조각들도 이 땅거미 속에 그와 함께 있다. 어쩌면 이 빌라도 그와 비슷한 극적인 장면일 것이다. 네 사람 모두 제각기 움직이는, 순간적으로 빛이 비춰지는, 얄궂게도 이 전쟁에 내동이쳐진.
나폴리에 남은 12명의 공병들은 도시에 분산되었다. 밤새도록 그들은 중앙 발전기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는 퓨즈를 찾아 막힌 터널을 뚫고 들어가거나 하수구로 내려갔다. 전기가 켜지기 한 시간 전인 오후 2시에 철수할 예정이었다.
열두 명의 도시. 각자 시의 다른 지역에 있다. 한 사람은 발전기에, 한 사람은 저수지에, 물에 여전히 뛰어든다. 가장 처참한 파괴는 홍수로 인해 올 것이다. 도시에 어떻게 지뢰가 설치되었나. 흐르는 적막 때문에 불안하다. 그들이 이 인간의 세계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개 짖는 소리와 나무 위 아파트 창가의 새소리뿐이다. 때가 되면 그도 새가 있는 저 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 적막 속에서 무언가 인간적인 것. 그는 봄베이와 헤르큘레암의 유적이 보관되어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지닌다. 고대의 개가 하얀 재로 화석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걸으면서 왼팔에 묶여 있는 진홍색 공병 램프를 켠다. 이 빛은 스트라다 카르보나라의 유일한 빛이다. 그는 야간 탐색에 지쳐있고 이제는 할 일도 거의 없는 듯하다. 각자 무전기를 가지고 있지만 긴급시에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를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은 텅빈 마당과 말라버린 샘물의 지독한 적막이다.
오후 1시에 그는 파괴된 카르보나라 산조반니 성당 쪽으로 다가간다. 그는 거기에 로자리오 묵주의 성당이 있음을 안다. 며칠 전에 번개가 어둠을 갈랐을 때 성당 안을 거닌 적이 있고, 그때 거대한 인간의 형상이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침실에 천사와 여인이 있는 상이었다. 잠시 비쳤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그는 성당 의자에 앉아 기다렸으나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적갈색의 형상들이 하얀 인간의 색으로 칠해진 성당의 구석으로 들어간다. 침실은 여인이 천사와 대화하고 있는 정경이다. 여인의 갈색 곱슬머리가 느슨한 푸른색 망토 밑으로 보이고 왼손 손가락은 갈비뼈에 닿아 있다. 자기의 머리가 여인의 어깨 정도밖에 닿지 않는다. 위로 향한 천사의 팔은 4미터 남짓 올라가 있다. 그래도 킵에게는 그들이 동반자이다. 이 방은 사람이 살던 방이고 그는 인류와 천국에 관한 이들의 대화 속에서 걷고 있다.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로 향한다. 눕고 싶지만 오로지 천사가 있어서 주저한다. 그는 이미 천상의 몸 주변을 걸어다니며 어두운 색의 날개 뒤편에 먼지가 소복한 전구가 붙어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의 욕망이 커도 그러한 존재 속에서 쉽게 잠들 수 없음을 안다. 침대 밑에 정교한 디자인의 무대용 슬리퍼 세 켤레가 빠끔히 나와 있다. 1시 40분이다.
그는 자신의 망토를 바닥에 펼치고 가방을 베개처럼 납작하게 한 후 돌 위에 눕는다. 라호르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그는 대개 자기 방 바닥에 매트를 깔고 그 위에서 잤다. 그리고 사실 그는 서양식 침대에 적응해본 적이 없다. 팔레트와 공기 베개가 텐트 안에 있는 침구의 전부이다. 영국에서 서폴크 경과 함께 지낼 때엔 물컹한 침대 쿠션속에 푹 가라앉아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잠 못 들고 답답해하다가 침대에서 기어나와 카펫 위에서 잠들곤 한다.
그는 침대 옆에서 기지개를 켠다. 신발들도 실물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존 사람들의 발이 그 신발에 맞으리라. 그의 머리위에는 여인의 부드러운 오른팔이, 발끝에는 천사가 있다. 잠시 후 공병 중의 하나가 도시의 전기를 켤 것이고 만약 폭발한다면 그는 그들과 함께 폭발할 것이다.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 그가 할 일은 없다. 그는 다이너마이트와 시한폭탄의 최후 수색을 위해 밤을 꼬박 새웠다. 벽들이 그의 주위로 무너지거나, 아니면 그가 불 켜진 도시 속을 걷거나 할 것이다. 적어도 그는 부모님 같은 이 형상들을 찾지 않았는가. 이 침묵의 대화 속에서 그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천사의 얼굴에서 조금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근엄함을 읽으면서 손을 머리 밑에 괴었다. 천사가 들고 있는 하얀 꽃이 그를 조롱했다. 천사 또한 병사이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 속에 눈이 감기며 그는 한없는 피로 속으로 곯아떨어진다.
그는 드디어 잠들었다는 기쁨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늘어졌다. 잠은 사치스러운 것. 왼손의 손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에 닿아 있다. 그의 터번 색이 마리아 상의 목에 있는 레이스 깃 색깔에 메아리친다.
여인의 발 끝에 있는 여섯 짝의 슬리퍼 옆에 군복을 입은 조금나 인도 공병이 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서로가 시간을 망각하기에 가장 편안한 자세를 택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이렇게 기억하리라. 주변을 신뢰할 때면 이렇게 평온한 미소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두 동상은 지금 발끝에 누운 킵을 두고 그의 운명에 관해 논란을 벌인다. 높이 솟은 적갈색 팔은 처형의 집행유예, 아이처럼 잠들어 있는 이 이방인을 위한 어떤 좋은 미래의 약속, 그들 셋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먼지가 얇게 덮인 천사의 얼굴에는 강렬한 즐거움이 있다. 천사의 등에 붙은 여섯 개의 전구 가운데 두 개는 이미 깨졌다. 그런데도 경이로운 전깃불이 돌연 그의 날개를 아래에서부터 비춘다. 겨자색 바탕 위에 검붉은 색, 푸른색, 금색 빛깔들이 늦은 오후 속에 생명을 되찾아 밝게 빛난다.
해나는 지금, 또는 미래에 어느 곳에 있든 그녀의 삶에서 빠져나와 움직이는 킵의 몸짓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이 그것을 되풀이한다. 그들 사이에서 그가 부딪히며 지나간 길. 그들 가운데에서 그가 바위 같은 침묵으로 변했던 순간. 그녀는 그 8월의 날에 관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하늘이 어떠했는지, 천둥 아래서 그녀 앞에 놓인 탁자 위에 물건이 어두워지던 모습.
그녀는 들판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다.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이어폰을 머리에 바짝 조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보지 않은 그의 몸에서 괴성이 터져나오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그녀에게서 1백미터 떨어진 들판 아래쪽에 있다. 그는 죔쇠에서 풀려나듯 무릎을 꺾고 주저 앉는다. 그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텐트를 향해 대각선으로 걸어간다. 안으로 들어서서 텐트를 닫는다. 우지직하는 천둥의 마른 소리가 나고 그녀는 자신의 팔이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본다.
킵은 총을 들고 텐트에서 나온다. 그는 산지롤라모 빌라로 들어와 그녀를 지나친 뒤 문을 향해 아케이드 게임 속의 금속 공처럼 통통 튀어 세 계단씩 위층으로 올라간다. 메트로놈 같은 숨소리와 군화 끝이 계단의 세로 부분에 부딪히는 소리. 그녀는 부엌 탁자에 그대로 앉아 복도를 따라가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앞에 놓인 책, 연필, 폭풍 전의 불빛 속에서 그런 사물들이 얼어붙고 그림자진다.
그는 침실로 들어선다. 영국인 환자의 침대맡에 선다.
어서 오게, 공병.
총의 개머리판이 그의 가슴에 닿아 끈은 삼각형 팔에 감겨 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킵은 이 세상에서 떨어져나와 저주받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갈색 얼굴에는 눈물이 흐른다. 몸을 돌려 오래된 분수에 총을 쏘자 석회 조각이 터지며 침대 위로 튄다. 그는 총이 영국인을 향하도록 그 자리에서 돈다. 그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며 안간힘을 다해 자신을 제압하려 애쓴다.
총을 내려놓게, 킵.
그는 등을 벽에 부딪히며 진정했다. 석회 먼지가 주위에 자욱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이 침대 끝에 앉아 당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저씨. 내가 어렸을 때 똑같은 일을 했죠. 나는 나이 드신 분들의 가르침을 내 안에 가득 담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 지식을 따르고 조금씩 변화시켜 어떻게든 나 자신을 넘어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당신네 나라의 전통을 따랐죠. 관습과 예절과 책과 완벽함과 논리를 가진 당신들의 가냘픈 하얀 섬나라가 어찌어찌해서 나머지 세계를 개조했습니다. 당신들은 정확한 행동을 원했죠. 만약 틀린 손가락으로 찻잔을 잡는다면 추방당하리란 사실을 나는 알았습니다. 매듭을 제대로 지을 줄 모르면 쫓겨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신들에게 그런 막강한 힘을 준 것이 배였나요? 아니면 우리 형이 말한 것처럼 당신들에게 역사가 있고 인쇄 기술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당신들, 그리고는 미국인들이 선교사의 규율로 우리를 개조했습니다. 인도의 병사들은 '푸카'가 되기 위해 영웅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당신들은 귀뚜라미처럼 전쟁을 했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이 지경으로 바보처럼 끌고 들어왔습니까? 자, 당신네들의 벌여놓은 짓의 소리를 들어보시오.
그는 침대로 총을 던지고 영국인을 향해 다가간다. 광석 수신기가 그의 벨트 옆구리에 매달려 있다. 그가 그것을 풀어 이어폰을 환자의 검은 머리 위에 씌우자 영국인은 머리에 통증을 느끼고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나 공병은 그대로 둔다. 그리고는 뒤로 물러서서 총을 잡는다. 그는 문제가 해나가 있음을 본다.
폭탄하나. 그리고 또하나.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는 방 구석을 향해 총을 빗겨 든다. 골짜기의 매는 의도적으로 V자를 그리며 나는 것처럼 보인다. 눈을 감으면 그는 아시아의 길거리가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 보인다. 불길은 폭발하는 지도처럼 여러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다. 열기의 폭풍은 닿는 순간에 곧장 인간의 몸을 시들게 하고, 인류의 그림자를 느닷없이 허공에 건다. 서구의 지혜가 낳은 이 공포.
그는 이어폰을 쓴 채 시선을 내면으로 집중하여 듣고 있는 영국인 환자를 지켜본다. 총의 조준기는 그의 얇은 코를 따라 내려와 쇄골 위의 목젖 위에 와 선다. 킵은 숨을 멈춘다. 엔필드 총이 정확한 각도에 고정되어 있다. 동요가 없다.
그러자 영국인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공병.
카라바조가 방으로 들어서면서 그를 향해 다가가자 킵은 총구를 갈비뼈에 대고 휘젓는다. 동물 발톱의 덮침. 그리고는 같은 동작의 일부분인 것처럼, 인도와 영국에서 여러 부대를 전전하며 연습했던 것처럼, 사격수의 정확한 각도의 위치로 되돌아간다. 그의 시야로 불에 탄 목이 들어왔다.
킵, 내게 말해보게.
이제 그의 얼굴은 한자루 칼이다. 충격과 공포로 인한 슬픔을 안은 얼굴. 다른 빛 속에서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밤이, 안개가 찾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젊은이의 진한 갈색 눈은 새롭게 나타난 적을 향한다. 우리 형이 말했죠. 절대로 유럽에 등을 대지 마라. 흥정꾼들. 계약꾼들. 지도 그리는 사람들. 형은 절대로 유럽인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악수하지도 말라고 그러나 우리는, 아, 우리는 쉽게 감명받았습니다. 당신들의 연설. 훈장 그리고 기념식에.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악마의 사지를 끊고, 제거하고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라고요?
무슨 일이야? 맙소사. 얘기해 봐.
난 당신이 당신네의 역사 강의를 삼키도록 라디오를 맡겨두겠소. 움빅이지 마시오. 카라바조 왕. 여왕. 대통령들이 하는 그 모든 문명의 연설들. 추상적 질서의 그 목소리들. 냄새맡아보시오. 라디오를 들으며 그 속에서 나오는 찬양의 냄새를 맡아보시오. 우리 나라에서는 아버지가 정의를 어기면 아버지를 죽이지요.
자네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몰라.
총구가 불에 탄 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서서히 눈으로 옮겨간다.
쏴라. 알마시가 말한다.
공병의 눈과 환자의 눈이 이제는 세상 일로 시끄러워진 이 어두운 방안에서 마주친다.
그는 공병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쏴라. 그가 나지막히 말한다.
킵은 카트리지를 뽑아 바닥에 닿기 전에 잽싸게 잡는다. 총을 침대 위에 던진다. 뱀. 독을 품은. 그는 해나가 주위에 있음을 본다.
화상 입은 남자는 머리에서 이어폰을 빼 천천히 자기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보청기를 잡아 뽑더니 마루바닥에 떨어뜨린다.
쏴라, 킵.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그는 눈을 감는다. 방에서부터 멀리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공병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떨군 채 벽에 기대어 있다. 카라바조는 공기가 피스톤처럼 빠르고 세차게 그의 코로 드나드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영국인이 아닐세.
미국인, 프랑스인, 나하고는 상관없소. 세계의 갈색 인종에게 폭격을 가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영국인이오. 한때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 이제는 미국의 그 썩어빠질 해리 트루먼. 당신들 모두 영국인에게서 배운 것이오.
아니야. 이 사람은 아닐세. 실수야. 모든 사람들 가운데 저 친구는 아마도 자네 편일 걸세.
그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거예요. 해나가 말했다.
카라바조는 의자에 앉는다. 그는 항상 자기가 이 의자에 있는다고 생각한다. 방 안에는 광석 수신기에서 나오는 삐걱삐걱 소리가 나지막히 들리고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물에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고개를 돌려 공병을 볼 수도 없고 해나의 침침한 드레스를 쳐다볼 수도 없다. 그는 젊은 사병이 옳다는 것을 안다. 백인들의 나라에는 결코 그런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공병은 카라바조와 해나를 침대 곁에 둔 채 방을 나간다. 그는 이 세 사람을 그들의 세계에 두고 떠났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파수꾼이 아니다. 앞으로 그 환자가 죽게 되거나 혹은 죽었을 때, 카라바조와 그녀가 그를 묻을 것이다.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 그는 그 말의 의미를 결코 확신한 적이 없다. 성서 안에 있는 그런 냉담한 말들.
그들은 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묻을 것이다. 시체, 침대보, 그의 옷, 총. 곧 그는 해나와 단둘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이 모든 것의동기. 단파로부터 떠오르는 무시무시한 사건. 새로운 전쟁. 문명의 사망.
적막한 밤. 그는 쏙독새의 희미한 울음 소리와 회전할 때 퍼덕이는 날개짓 소리를 듣는다. 바람 없는 밤, 삼나무가 그의 텐트 위로 고요히 솟아 있다. 그는 등을 대고 누워 텐트의 어두운 구석을 본다. 눈을 감으면 불이 보인다. 저수지로 불길과 열기를 피해 뛰어드는 사람들. 불은 몇 초만에 모든 것, 그들이 잡고 있는 물건과 살갗과 머리를 태우고 그들이 뛰어든 물까지 집어삼킨다. 기발한 폭탄이 비행기에 실려 바다를 건너고 동양의 달을 지나 푸른 군도를 향한다. 그리고 떨어진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어떤 것도 삼킬 수 없었다. 불이 꺼지기 전에그는 텐트에서 모든 군용 물건과 폭탄제거 장비를 치우고 제복에서 모든 계급장을 떼어버렸다. 바닥에 눕기 전에 터번을 풀고 머리를 빗어내려 상투처럼 틀어 올려묶은 그는, 등을 대고 누워 텐트 껍데기 빛이 서서히 퍼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이 마지막 푸른 빛을 쫓으면서 바람 없는 고요함 속으로 한줄기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날개를 퍼덕이는 매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공기 속의온갖 섬세한 소음들.
그는 세상의 모든 바람이 아시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 동안 자신이 다룬 여러 개의 작은 폭탄으로 떨어져나와 도시만한 크기로 보이는 폭탄을 향해 간다. 너무 거대한 나머지 살아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위에서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을 느끼게 하는. 그 무기에 대해 그는 아는 바가 없다. 금속 물체가 순간적으로 떨어져 폭파했는지, 아니면 끓어오르는 불덩이 같은 공기가 모든 생명체를 덮고 씻어내렸는지. 그가 아는 유일한 것은 이제는 어떤 것도 다가오게 내버려 둘 수 없으며 테라스의 돌 벤치에 앉아 무엇을 먹거나 웅덩이에서 물을 떠 마실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가방에서 성냥을 꺼내 램프를 밝힐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램프를 켜는 순간 모든 것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빛이 사라지기 전 텐트에서 그는 가족사진을 꺼내 보았다. 그의 이름은 커퍼 싱그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그는 8월의 열기 속에서 터번도 없이 기다란 '쿠르타'만을 입은 채 나무 아래 서 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그저 울타리를 따라 걷는다. 잔디 위로, 테라스 돌 위로, 또는 오랜 모닥불 재 위로 그의 맨발이 지나간다. 그의 몸은 잠들지 못하는 불변증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유럽의 거대한 계곡 끝에 섰다.
이른 아침 그녀는 그가 텐트 곁에 서 있는 것은 본다. 저녁나절에 그녀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몇몇 불빛을 지켜보았다. 그날 밤 빌라 안의 사람들은 각자 따로 식사했다. 영국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공병의 팔이 앞으로 뻗는 것을 본다. 그리고 텐트의 벽이 돛처럼 스르르 무너져내린다. 그는 돌아서서 집을 향해 다가온다. 계단을 밟고 테라스에 올라선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성당 안에서 그는 불에 탄 걸상들을 지나 방수포를 씌우고 나뭇가지로 덮어둔 오토바이가 있는 제대로 향한다. 덮개를 거두고 오토바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바퀴돌기와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한다.
천장도 없는 성당에 해나가 들어섰을 때 그는 바퀴에 머리와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킵.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를 지나 다른 곳을 본다.
킵, 나에요. 우리가 그 일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녀 앞에서 그는 바위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몸을 기울여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는다.
뛰는 심장.
그가 움직이려 하지 않자 그녀는 몸을 일으킨다.
영국인이 언젠가 책에서 이런 걸 읽어주었어요 "사랑은 너무 작아서 바늘구멍으로도 찢어질 수 있다."
그는 그녀의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얼굴이 빗물 고인 웅덩이에서 한뺨쯤 떨어진 곳에 멈춘다.
소년과 소녀.
공병이 방수포 아래서 오토바이를 찾아내는 동안 카라바조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턱을 팔로 받친 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집 안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걸어나갔다. 그는 공병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덜컹하고 움직였을 때, 그리고 해나가 그 곁에 서 있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싱그는 그녀의 팔을 잠시 건드리고는 오토바이를 움직였다. 언덕을 내려가자 오토바이가 완전히 성능을 되찾았다.
그가 정문으로 절반쯤 갔을 때, 카라바조가 총을 지닌 채 기다리고 있었다. 싱그가 그를 보고 속도를 줄였다. 카라바조는 총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그는 청년에게 다가가 그를 부둥켜안았다. 위대한 포옹. 공병은 처음으로 덥수룩한 수염을 피부에 느꼈다. 그는 빨려 들어갈 듯한, 근육 속으로 같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널 그리워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카라바조가 말했다. 그리고 나서 싱그는 출발했고 카라바조는 집으로 돌아갔다.
기계는 그의 곁에서 살아났다. '트라이엄프'의 연기와 먼지와 자갈이 나무 사이로 튀었다. 오토바이는 문전의 쇠격자를 뛰어넘어 비탈길에 무질서한 각도로 흙을 날리며 길가에 정원냄새를 뿌리고 마을을 벗어나 달렸다.
그는 습관적으로 가슴이 연료 탱크에 거의 닿을 정도로 몸을 낮추고 팔을 수평으로 유지해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피렌체를 완전히 벗어나 남쪽으로 갔다. 전쟁과 침략이 무시한 작은 마을들. 그레브, 몬테바르치, 그리고 암브라를 지났다. 새 언덕이 나타나자 그는 코로토나를 향해 언덕의 능선을 올랐다.
마치 전쟁의 실패를 되감기 위해 달리는 듯 그는 침략의 방향을 거꾸로 달렸다. 이제는 군대의 긴장이 사라진 노선. 그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길을 따라 낮익은 성곽 마을들을 멀리 보며 달렸다. 시골길을 가르며 불타는 '트라이엄프' 에 바짝 달라붙었다. 모든 무기를 두고 온 그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오토바이는 각 마을을 쏜살같이 지나치면서 읍이라고 멈추거나 전쟁의 기억에 젖어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땅이 주정꾼처럼 비틀거린다. 원두막처럼 흔들린다."
그녀는 그의 배낭을 열었다. 유포에 싸인 총이 있었다. 유포를 펼치자 기름 냄새가 풍겼다. 칫솔, 가루치약, 노트 속의 연필 스케치, 그녀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는-그녀가 테라스에 앉아 있을 때 영국인 방에서 내려다보며 그린 그림. 터번 두 개. 녹말가루 한 병. 비상시 팔에 걸도록 가죽끈이 달린 공병 램프 그녀가 불을 켜자 배낭 가득 진홍빛.
옆 주머니에는 그녀가 만지고 싶지 않은 폭탄제거 장비들이 들어 있다. 또다른 작은 천에 그녀가 준 삽관이 싸여 있었다. 그녀가 고향에서 단풍당을 짜낼 때 쓰던 것이었다.
무너진 텐트 속에서 그녀는 그의 가족 사진인 것 같은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시크족 청년과 그의 가족.
사진 속에서 불과 열한 살인 형. 그 옆으로 킵, 여덟살. "전쟁이 터졌을 때 형은 그들이 영국에 반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그쪽에 섰습니다.
폭탄 지도를 그린 수첩도 있었다. 그리고 음악가와 함께 있는 성자의 그림.
그녀는 한손에 사진을 들고 다른 손으로 물건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가방에 들고 나무 사이를 지나 로지아를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마다 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안경에 침을 뱉은 뒤 소매로 먼지를 닦았다. 그는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아드리아해로 가서 남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군인들은 대부분 북부 국경지대에 있었다.
그는 오토바이의 소란스런 소리가 주위를 맴도는 가운데 코르토나로 들어갔다. '트라이엄프' 에 올라탄 채 계단을 올라 문 앞까지 가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상은 보수공사용 골조 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는 얼굴 가까이 가고 싶었으나 소총이 없었고 공사 파이프를 기어오르기에는 몸이 너무 굳어 있었다. 마치 가정의 단란함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맴도는 사람처럼 그는 밑에서 서성거렸다. 그리고는 오토바이를 성당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파괴된 포도밭을 가로질러 아레초로 달렸다.
산세폴크로에서는 산중의 구불구불한 험한 길을 택해 갔기 때문에 안개 속에서 최저 속도를 유지해야 했다. 보카 트라바리아. 그는 추웠지만 머리 속에서 날씨를 지웠다. 마침내 뿌연 안개 사이로 도로가 드러나고 그 뒤로 흰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독일군이 적군의 말을 모두 태워버린 우르비노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달 동안 매달려 싸웠던 그곳을 이제는 불과 몇 분 만에 지나갔다. 오직 검은 성모 마리아 성소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전쟁은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클라라-마망께.
마망을 불어예요., 클라라. 동그라미 모양의 단어, 꼭 껴안는 느낌의, 은밀하면서도 드러내놓고 소리지를 수 있는 말. 유람선만큼 편하고 영원한 것이에요. 물론 새엄마는 정신적으로 여전히 카누란 걸 알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배를 돌려 후미진 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시죠. 여전히 독립심이 강하고 여전히 은밀하시겠죠. 어떤 유람선도 클라라에 견줄 수 없어요. 몇 년 만에 처음 쓰는 편지예요. 편지 형식 같은 것에 이제 익숙하지 않군요. 지난 몇 개월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았어요. 우리의 대화는 느리고 평범했어요. 전 이제 그런 식으로밖에 대화하지 못해요.
지금은 194-. 몇 년이더라? 잠시 잊었어요. 하지만 달과 날을 알아요. 일본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날이에요. 그래서 세상의 종말 같아요. 이제부터는 개인이 대중과 영원히 전쟁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이점을 설명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겠죠.
패트릭은 프랑스에서 비둘기집 안에서 돌아가셨어요. 프랑스에서는 17, 18세기에 비둘기집을 사람 사는 집보다 크게, 거대하게 지었어요. 이렇게-
위에서 3분의 1부분에 있는 옆으로 된 선은 쥐 선반이라고 부르죠. - 쥐가 벽돌을 넘지 못하게 해서 비둘기를 보호하려는 거예요. 그러면 비둘기 집은 안전하죠. 성스러운 곳. 여러 면에서 성당같이. 편안한 곳. 패트릭은 편안한 곳에서 돌아가셨어요.
새벽 5시에 그는 '트라이엄프'에 다시 시동을 걸어 뒷바퀴로 모래를 차며 출발했다. 아직 어둠 속에 있어서 절벽 너머 풍경 속의 숨은 바다를 분간할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남부까지는 지도가 없지만, 그는 전쟁 도로를 분간할 수 있으므로 해안을 따라가면 되었다. 해가 나오면서부터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강은 여전히 그의 앞에 있었다.
오후 2시 경, 폭풍우가 몰아치는 강 한복판에서 공병들이 거의 익사할 뻔해 가며 임시 가교를 놓았던 오르토나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그는 오토바이를 멈추고 비닐 망토를 뒤집어썼다. 질퍽한 곳에서는 오토바이를 손으로 끌고 갔다. 달리는 동안 그의 귀를 때리는 소음이 차츰 달라졌다. 휘익 소리와 웅 소리가 주룩주룩, 쏴아로 변하면서 앞바퀴에서 튀는 물이 부츠 안으로 쏟아졌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모든 사물이 잿빛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해나의 생각을 지웠다. 오토바이 소음 속에 있는 모든 침묵 속에서 그는 해나의 생각을 지웠다.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면 손잡이를 당겨 스스로 운전에 집중토록 했다.
말이 필요하다면 그녀의 말이 아니라 그가 지금 지나가는 이탈리아 지도 속의 이름들이어야 한다.
그는 지금 영국인을 태우고 가는 느낌이다. 영국인이 연료 탱크 위에 그를 마주보고 앉아 시커먼 육체로 그를 부둥켜안고 어깨 너머로 과거를, 다시는 재건할 수 없을 이탈리아 언덕 위의 이방인들의 궁전을, 그들이 함께 달아나고 있는 시골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하다. "나의 이 말이 이제부터 영원히 너의 입과 너의 자손의 입과 대대로 이어질 자손들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가 로마의 성당 천장에 있는 얼굴에 대해 이야기한 날 오후, 영국인 환자는 그의 귀에 대고 이사야를 읊어주었다. "물론 세상사에는 수백 명의 이사야가 있지. 언젠가 자네도 노인이 된 이사야를 보고 싶을 거야. -남부 프랑스의 수도원에서는 이사야를 수염이 길게 난 노인으로 표현하지. 허나 그의 말에는 여전히 힘이 있어. "영국인은 그림이 그려진 방을 향해 읊었다. "야훼가 너를 내 던지리라. 너를 휘어잡아 내동댕이치리라. 넓은 벌판으로 공처럼 굴러 보내리니. 거기서 너는 죽으리라."
그는 두꺼운 빗줄기 속으로 더 깊숙이 달렸다. 그 천장의 얼굴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말들을 사랑했다. 화상 입은 사내와 그 자신이 아끼던 문명의 초원을 믿었던 것처럼. 아사야와 예레미아와 솔로몬은 불탄 사내의 침대 곁에 있는 책, 그의 성스러운 책 속에 있었다. 그가 사랑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고착시키는 그 사내의 책 속에. 그가 책을 공병에게 넘겨주었을 때 공병은, 우리에게도 경전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안경 테두리의 고무가 갈라졌기 때문에 그 사이로 빗줄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갈 수도 있었다. 주룩주룩 소리는 그의 귓전에서 영원한 바다였고 구부린 그의 몸은 차갑게 굳어 있어서, 그가 이 기계에서 느끼는 온기란 바싹 달라붙어 달리면서 상상으로 느끼는 따뜻함뿐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소망의 별똥별처럼 그가 재빨리 마을을 지나는 동안 오토바이에서는 계속 하얀 물줄기가 뿜어 나왔다. "하늘은 연기처럼 스러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지리라. 주민이 하루살이처럼 꺼지리라. 그들은 좀에 쓸려 떨어지는 옷이요. 빈대좀에 먹혀 삭아지는 양털이다." 유웨이나트에서 히로시마까지 사막의 비밀.
커브를 돌아 오판토 강의 다리 위로 오르면서 그는 안경을 벗기로 했다. 왼손을 들고 안경을 벗는 순간 오토바이가 미끄러졌다. 그는 안경을 내던지고 오토바이의 균형을 잡으려 했으나 다리 가장자리에 있는 쇠돌출부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오토바이는 옆으로 쓰러져 그의 몸 아래 깔렸다. 그는 갑자기 오토바이와 함께 빗물을 덮인 다리 위로 미끄러져 가운데로 나아갔다. 팔과 얼굴 옆에서 파란 금속불꽃이 튀었다.
무거운 양철이 어깨를 치고 날아갔다. 그와 오토바이는 함께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다리에는 난간이 없었다. 그는 기계와 나란히 물을 향해 날았다. 두 팔이 머리 위로 젖혀졌다. 망토는 저절로 몸에서, 기계와 사람에게서 벗겨져 나갔다. 공기의 일부.
오토바이와 군인은 일순 허공에서 멈추었다가 물 속으로 꺾여 들어갔다. 떨어지는 순간 그의 다리 사이에 낀 금속 몸체가 물살을 하얗게 가르고는 사라졌다. 빗줄기가 쏟아졌다. "너를 잡아 내동댕이치리라. 넓은 벌판으로 데굴데굴 공처럼 굴려 보내리니."
클라라, 패트릭이 어떻게 비둘기 집에 들어갔느냐고요? 그의 부대가 부상당 하고 화상을 입은 그를 버렸어요. 셔츠 단추가 가슴에, 그의 소중한 가슴에 달라붙을 정도로 화상이 심했어요. 내가 입맞추고 새엄마가 입맞추었던 그 가슴에. 아버지가 어떻게 화상을 입으셨느냐고요? 마치 마술에 걸린 듯이 달콤하고 알 수 없는 순진함으로 이 현실적인 세상을 새엄마의 카누처럼 혹은 뱀장어처럼 스르르 비켜가던 아버지가. 아버지는 참 말이 없는 남자였어요. 나는 왜 여자들이 아버지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린 말 잘하는 남자를 좋아하잖아요. 우리는 이성적이고 현명한데, 아버지는 종종 혼란스럽 고 불확실하고 말이 없으셨어요.
아버지는 화상을 입었고 전 간호사였죠. 아버지를 간호할 수도 있었어요. 물리적으로 묶여 있는 지리적 슬픔을 이해하시겠어요? 제가 있었으면 아버 지를 구하거나, 적어도 최후까지 함께 있을 수 있었어요. 전 화상에 대해서 많이 알아요. 아버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비둘기와 쥐 속에 계셨느냐고요? 목숨과 피의 마지막 시간까지는 얼마나 걸렸냐고요? 그의 몸을 덮는 비둘기들 날개의 퍼덕거림. 어둠 속에서 잠못 이루는 아버지는 늘 어둠을 싫어하셨죠. 그런데 사랑 없이, 가족 없이, 혼자 계셨어요.
전 유럽이 지겨워요, 클라라. 집에 가고 싶어요. 새엄마의 작은 오두막과 조 지안 베이의 분홍빛 바위로 패리사운드까지 버스를 타고 가겠어요. 그리고 본토에서 단파 라디오로 판케익스에 소식을 보내겠어요. 그리고 새엄마를 기다리겠어요. 우리가 새엄마를 배반하고 들어온 이 전쟁에서 날 구하려고 카누를 타고 오시는 새엄마의 실루엣을 기다리겠어요. 어떻게 그처럼 현명하셨어요? 어떻게 그처럼 의지가 강하셨어요? 어떻게 우리처럼 속아넘어가지 않으셨어요? 새엄마는 너무나 현명해진 쾌락의 악마예요. 우리 중에서 가장 순수한 이, 가장 짙은 콩, 가장 푸른 잎이에요.
해나.
공병의 머리가 물 위로 솟아오르고 그는 강 위에 있는 모든 공기를 들이마신다.
카라바조는 밧줄로 다리를 만들어 옆 빌라에 연결시켰다. 로프는 데메트리우스 동상 허리에 감겨 우물에 고정되었다. 줄은 그의 오솔길에 있는 올리브나무 꼭대기보다 조금 높은 정도다. 균형을 잃으면 올리브나무의 울퉁불퉁한 먼지투성이 가지 위에 떨어지게 된다.
그는 양말을 신은 채로 밧줄에 올라선다. 저 동상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지? 그는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해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데메트리우스의 동상은 죄다 아무 가치도 없다고 영국인 환자가 말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편지를 봉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창문을 닫기 위해 걸어간다. 그 순간 계곡에 번개가 내리친다. 빌라를 따라 깊은 흉터처럼 난 계곡 허리자락에서 허공에 서 있는 카라바조가 눈에 띈다. 그녀는 꿈을 꾸듯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창가의 돌출부에 올라 앉아 밖을 내다본다.
번개가 칠 때마다 갑자기 환해진 밤 속에서 빗줄기가 얼어붙는다.
그녀는 카라바조를 찾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말똥가리매의 모습을 본다.
비 냄새를 맡았을 때 그는 절반쯤 간 거리에 있다. 그리고 이내 비가 쏟아진다. 빗줄기가 그의 몸에 매달리면서 갑자기 옷의 무게가 불어난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창밖으로 내밀었다가 빗물로 머리를 적신다.
빌라는 어둠 속에 떠내려간다. 영국인 환자의 침실 옆 복도에서 마지막 초가 타며 아직 밤 속에서 살아 있다. 잠이 깨어 눈을 뜰 때마다 그는 흔들리는 노란 불을 본다.
이제 그에게 있어 세상에는 소리가 없다. "빛마저도 불필요해 보인다. 아침이 오면 그는 자는 동안 불을 밝혀둘 필요가 없다고 그녀에게 말할 것이다.
새벽 3시 경, 그는 방 안에 누군가 있음을 느낀다. 한순간 그는 침대 발치에서 벽에 기대 있거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형체를 본다. 촛불 빛 너머에 있는 낙엽의 어둠 속에서 확실하게 분간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인가 중얼거린다. 무엇인가 하고 싶던 말. 그러나 침묵과 희미한 갈색 형체, 어쩌면 단순히 밤의 그림자일지도 모르는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있다. 포플러, 대추야자를 든 남자. 수영하는 사람. 그리고 그는 젊은 공병과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행운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밤, 그는 그 형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깨어 있다. 통증을 없애주는 알약을 먹지 않고, 빛이 다 타고 꺼질 때까지, 초 연기 냄새가 그의 방으로 스며들고, 복도 끝에 있는 그녀의 방에 스며들 때까지. 형체가 몸을 돌리면 그의 등에 물감이 묻어 있을 것이다. 나무들의 벽에 슬픔으로 기댄 순간 묻어난 물감. 촛불이 꺼지면 그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의 손이 천천히 뻗어나가 책을 더듬고는 다시 시커먼 가슴위로 돌아온다. 방안에서 다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를 생각하는 지금, 그는 어디에 앉아 있는가? 여러 해가 지나간 뒤에. 역사의 돌이 물위를 뛰어넘는다. 돌을 수면에 닿아 다시 가라앉기 전에 위로 치솟는다. 그 시간 동안 그녀와 그가 나이를 먹을 수 있도록
그의 정원에서 그는 어디에 앉아 있나? 집안으로 들어가 편지를 써야 한다거나 날을 잡아서 전화국에 찾아가 용지를 적고 다른 나라에 있는 그녀를 찾으려 애써 보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할 때. 이 정원과 이 네모진 마른 잔디가 그로 하여금 해나와 카라바조와 영국인 환자와 함께 보낸 피렌체 북부의 산지롤라모 빌라에서의 몇 개월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의사다. 두 아이와 웃기 잘하는 아내가 있다. 이 도시에서 그는 끊임없이 분주하다. 오후 6시, 그는 흰 가운을 벗는다. 그 안에 검정색 바지와 반팔 셔츠를 입고 있다. 병원 문을 닫는다. 병원에는 모든 서류가 각각 다른 종류의 물건으로 눌려 있다. 돌, 잉크병, 자기 아들이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트럭. 선풍기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상점가를 가로질러 집까지 6킬로를 달려간다. 되도록 거리의 그늘진 부분을 골라 자전거를 몬다. 그는 문득 인도의 태양이 자신을 지치게 만든 다고 느끼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운하 옆의 버드나무 아래를 스치고 지나 작은 주택가에서 자전거를 멈춘다. 클립을 벗기고 자전거를 어깨에 맨다. 그리고는 아내가 정성스레 가꾼 작은 정원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이 저녁의 무엇인가가 물에서 돌을 꺼내 허공으로 되돌려 이탈리아의 언덕 마을로 향하게 한다. 어떠면 그가 오늘 치료한 소녀의 팔에 난 화학 약품으로 인한 화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누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돌계단 때문인지도 그는 자전거를 메고 계단을 절반쯤 오르다가 기억해 낸다. 출근길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7시간에 걸친 사무와 환자를 보는 동안 미루어둔 것뿐이었다. 또는 소녀의 팔에 난 화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정원에 앉는다. 그리고 해나를 본다. 그녀의 나라에서 머리가 자란 모습. 그리고 그녀는 무엇을 하나? 그는 항상 그녀를 본다. 그녀의 얼굴과 몸. 그러나 그는 그녀의 직업이나 그녀가 현재 처한 상황을 모른다. 다만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과 태도, 어린아이를 향해 몸을 수그리는 모습, 그녀의 등뒤에 있는 하얀 냉장고 문, 그 두 배경 속에 소리 없는 시가 전차.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물이다. 마치 카메라 필름이 그녀, 오직 그녀를 침묵 속에 보여주듯. 그는 그녀가 함께 있는 사람들을, 또는 그녀의 판단을 식별할 수 없다. 그가 보는 것은 다만 그녀의 성격과 머리가 길게 자라 자꾸만 그녀의 얼굴이 가려진다는 것뿐.
그녀는 언제나 심각한 얼굴을 한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녀는 젊은 처녀에서 여왕의 각진 얼굴로 바뀌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해서 그런 모습을 갖게 된 여자의 얼굴. 그는 여전히 그녀의 그런 면을 좋아한다. 그녀의 명석함. 그런 모습이나 아름다움을 처음부터 타고 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찾아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현재 어떤 성격인지를 나타낸다는 것. 한두 달에 한번씩 그는 그런 식으로 그녀를 본다. 마치 그런 순간이 그녀의 편지의 연속인 양. 그녀는 1년 동안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무런 답장도 받지 못한 채, 그의 침묵으로 인해 그만둘 때까지.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그는 식사 때 그녀와 대화하고 싶은 욕구와 텐트 속에서, 또는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은밀했던 시간들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비록 그때 자신들 사이에 의도적인 공간의 강이 흘렀다 할지라도 회상 속에서 그는 그녀뿐 아니라 그때 자신의 모습에 매혹된다. 소년답고 열정적이던, 유연한 팔고 사랑에 빠진 소녀를 향해 허공을 더듬던 시절. 그의 젖은 부츠가 끈이 묶인 채 이탈리아식 문 옆에 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는다. 그리고 침대 위에 구부정한 형체가 있다.
저녁 식사 동안 그는 딸아이가 칼을 들고 끙끙 매는 모습을 지켜본다. 작은 손이 큰 무기를 들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 이 식탁에서는 모든 손이 갈색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풍습과 관습대로 편안하게 움직인다. 그의 아내는 식구들에게 훌륭한 유머감각을 가르쳤고 아들은 아내의 그런 점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는 아들의 장난을 좋아한다. 아내나 그가 가진 유머감각을 넘어선 아들의 농담이 때로 그를 놀라게 한다. 길거리에서 개에게 하는 행동, 개들의 모습이나 걸음을 흉내 내는 것. 그는 아들이 개의 배설물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개들의 소망을 짚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사랑한다.
그리고 해나는 자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 속에서 움직인다. 그녀는 지금 서른넷이라는 나이가 되어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사랑이 격렬하여 행운을 놓쳐버리는, 항상 모험하는, 명예와 명석함의 여인이다. 요즘 거울을 보면 그녀의 눈썹에는 자기만이 알아보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빛나는 검은머리 속에 있는 이상의,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아직도 영국인이 비망록에서 찾아 소리내어 읽어주던 시구를 기억한다. 그녀는 내 날개 밑에 넣을 만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여인이다. 만일 소설가에게 날개가 있다면, 내 평생 은신할 만한.
그리고 해나는 움직인다. 얼굴을 돌리고 후회 속에서 그녀는 고개를 떨군다. 그녀의 어깨가 선반 끝을 건드리자 유리잔 하나가 굴러 떨어진다. 커퍼의 왼손이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 포크가 바닥에 닿기 직전에 받아 잡는다. 그리고 부드럽게 딸아이의 손에 포크를 쥐어 준다. 안경 너머로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잡혀 있다.
작가의 말
이 책에 나오는 몇몇 인물들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며, 길프 케버와 그 주변 사막 등 여기에 서술된 많은 지역 또한 실제로 있고 1930년대에 탐험된 지역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허구이고 여기에 나오는 사건이나 여정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의 성격이 허구라는 점을 밝혀둔다.
저자는 런던에 있는 지리학회에 감사드린다. 그들은 내게 자신들의 공문서를 보여주었으며 탐험가와 그들의 여정 -회원들에 의해 허다히 아름답게 기록된- 의 세계인 지리학회지에서 몇 구절을 뽑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나는 하사네인 베이가 쓴 논문 '쿠프라를 거쳐 다르푸르까지'(1942)에서 한 구절과 모래폭풍에 관해 인용하였고, 1930년대의 사막을 상기시켜주는 베이와 다른 탐험가들의 문장을 인용하였다. 또한 리차드 A. 버만 박사의 '리비아 사막의 역사적 문제들'(1934), 알마시의 전공 논문과 그의 사막 탐험에 관한 바그놀드 회상에서 유용한 정보를 입수한 점에 감사드린다.
나의 연구에는 많은 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이저 A. B. 하트레이가 쓴 "불발탄"은 폭탄구성을 재조립하는 부분과 2차대전 초기 영국 폭탄분해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특히 유용했다. 나는 그의 책을 그대로 인용했고(7장. '현장에서' 이탤릭체로 쓴 부분),커퍼 싱 그가 폭탄을 분해하는 방법은 하트레이가 쓴 실제 기술에 근거했다. 환자의 주에 나오는 특정 바람들에 대한 정보는 리올 왓슨이 쓴 경이로운 책 "하늘의 숨결" 에서 추출하였고, 인용부호에 넣어 그래도 인용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에서 칸달루스와 가이어스 이야기는 1890년판 G. C.머큐레이 역을 따랐다. 헤로도투스의 다른 인용문은 데이비드 그린 역(시카고 대학 출판부)을 사용했다. 21쪽(메아리는.)의 이탤릭체로 쓴 행은 크리스토퍼 스타트의 말이고, 144쪽 (밤이 깊어.)의 시는 존 밀튼의 "실낙원"에 나오는 구절이다. 288쪽에 해나가 가 인용하는 말은 앤 윌킨슨의 글이다. 토스카나에서의 폴리치아노의 생활에 관해 기술한 "다이아나 빌라"를 쓴 알란 무어헤드에게 감사드린다. 다른 중요한 책들은 메리 메카시의 "피렌체의 석상", 레오나드 모스레이의 "고양이와 쥐", 그리고 "캐나다 출신의 간호수녀들", "2차대전에 관한 마샬 카벤디쉬 백과사전", 예이츠 브라운의 "마르서르 인디아", 그리고 누넬리에 있는 출판연합 이사회에서 1942년 간행한 인동 군인에 대한 다른 책들, "호랑이가 내습하다", "호랑이가 죽다", 그리고 "영광의 굴레"가 있다.
요크대학교 그렌드 대학 영문학과, 세르베로니 빌라, 록펠러 재단, 메트로폴리탄 토론토 도서관에 감사드린다.
그밖에 여러 사람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엘리자베스 데니스는 전쟁 기간 중 이집트에서 온 편지를 읽도록 허락해주었다. 산지롤라모 빌라의 마가레트 수녀, 캐나다 오타와의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는 미카엘 윌리엄슨, 안나 조르단, 로드니 데니, 린다 스파딩, 엘렌 레빈, 그리고 랠리 마라, 더글라스 레이펀, 데이비드 영, 도나 페로프.
끝으로 엘렌 세리그만, 리츠 카더. 메타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