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로-20대에 꼭 만나야 할 50인
20대에 꼭 만나야 할 50인
나카타니 아키히로
홍익출판사와의 약속
우리의 삶, 때로는 황량한 겨울들판처럼
외롭고 눈물겨운 때가 있습니다.
마음 부서지도록 괴로운 시간이 우리의 발걸음을
무자비하게 묶어 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 우리 가슴을 따사로이 적셔 주는 건
고난의 언덕 너머 바로 저기에 희망이 있다고
알려 주는 한마디 진실한 사랑의 말입니다.
참삶의 진실과 희망, 사랑의 순결과 영원성.
홍익출판사는 삶의 희망과 진실을 찾아서,
그리고 충분히 살 가치가 있는 삶을 찾아서,
그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자세히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홍익의 책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고통이나 슬픔만이 아니며
절망은 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눈부신 깨달음으로 붙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만날 모든 사람은
20대에 만나는 법이다.
20대의 문을 나서
생의 광활한 들판으로 나가면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만남은 없다.
20대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당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만남은 곧 가치관의 확대이다.
자기 자신을
무한정으로 확대시켜 가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자.
이상한 사람을 만나자.
위험한 사람을 만나자.
20대에 만난 사람들 중에
미래의 당신이 있다.
미래의 자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쉽게 만나서는 안 된다
만남에 의해 인생이 바뀝니다.
만남에 의해 인생이 만들어져 갑니다.
만남이 없으면 인생의 문은 점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생을 멋지게 개척할 수 있는 좋은 만남을 만들 수 있을
까요.
분명히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몸부림칠수록 멋진 만남은 이루어
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남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원칙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기 바랍
니다.
만남의 제1원칙 - 만나고 싶은 사람을 쉽게 만나서는 안 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쉽게 만나게 되면, `뭐야, 이 정도야?`하고 만남을 소중하
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만남이라도 쉽게 만나게 되면 아무런 가치
도 고마움도 모르게 됩니다.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몸부림이 쳐질 정도로 만나고 싶다, 그래도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렇게 고뇌하
고 절망하는 가운데 가까스로 만나는 편이 당신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만나는 순간이 아닙니다.
만나기 이전과 만난 이후인 것입니다.
만남의 제2법칙 - 커다란 만남은 작고, 작은 만남은 크다.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만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만남은 작고 사소한 만남입니다.
사실은 엄청난 만남이지만, 그 당시는 미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작게 보
이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만남들을 쉽게 흘려 보냅니다.
자그마한 만남을 수없이 내버리면서 진정한 의미를 이루지 못했다고 투덜거리
기만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커다란 만남이, 손을 내밀기만 하면 닿을 수 있
도록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커다란 만남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그 만남을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
금은 작지만 장래에 크게 될 만남을 무시해 버리게 됩니다.
유명인이나 정치가에게서 받은 명함을 소중히 간직하며, 남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인생을 개척하는 만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라고 강조한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엇갈림으로 끝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 주는 신이 될 것입니다.
만남의 제3법칙 -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이 뒤섞여서 당신이 만들어지는 것
이다.
나를 인정해 주는 스승
나를 인정해 주는 한마디가 인생의 문을 열게 한다
도리야마 히로무 교수님께서 처음 내게 말을 건 것은, 하필이면 화장실 안이
었습니다.
“자네, 지금부터 시간이 비어 있나?”
중요한 볼일을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나를 들여다보면서 말을 거는 것은
그다지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나는 도리야마 교수님으로부터 TV 드라마사에 대한 강의를 받았
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교수님은 똑같이 강의가 끝나지마자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던
것입니다.
“그럼, 밥이라도 함께 먹을까?”
그때까지 나는 도리야마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번도 없
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교수님으로부터 식사를 같이하자고 권유받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다카다 목사는 어떤가?”
다카다 목사는 싸구려 학생식당이 많은 와세다대학 주변에서 주머니가 두둑한
교수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고급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커틀릿을 얻어먹었습니다.
교수님의 얼마 되지 않는 강사료가 커틀릿 1인분으로 순식간에 날아간 것입니
다.
한 시간의 강사료가 커틀릿 1인분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상당히 많
은 시간이 흐른 후였지요.
그런네 놀라운 일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교수님이 매주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예외없이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는 게 아
니겠습니까?
그 이후, 도리야마 교수님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네, 취직은 어떻게 할건가?”
그때 나는 3학년이었습니다.
“TV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은데요...”
“자네는 언변도 좋고 능력도 뛰어나니까, 내 생각엔 덴하쿠가 좋을 것 같은
데...”
`덴하쿠라구?`
당시의 나는 덴하쿠가 덴츠와 하쿠호도라는 광고회사라는 사실도, 심지어 광
고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학생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리야마 교수님은 왜 한번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나를
일부러 불러내어 영양 보충을 시켜 주고, 취직까지 신경을 써 주는 것일까.
“자네는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지?”
나는 언제나 강의실 맨 앞에 앉아서, 수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막대한 양의 책
을 읽었습니다.
물론 교수님의 강의도 빈틈없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대목은 빠짐없이 필기를 하고, 재미있는 말을 하면 박자에 맞추어 웃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속에서 끊임없이 용트림하는 에너지의 배출구를 찾아 몸부
림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에 몸부림치고 있던 내 눈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욱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내 모습에 교수님은 틀림없이 온몸에 소름이 끼쳤을 겁니다.
“자네는 덴하쿠 중에서도 하쿠호도에 더 어울릴 것 같군.”
“그렇습니까?”
“그리고 아마 상사의 머리를 샌들로 후려 패고, 10년 이내에 회사를 때려치
울 걸세.”
교수님의 말씀대로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하쿠호도에 취직하고, 그리고 샌들로
후려 패지는 않았지만 입사한 지 8년만에 그곳을 때려치우게 되었습니다.
거렁뱅이나 다름없이 생활하던 나는 맛있는 음식에 영양 보충을 했을 뿐만 아
니라 내 인생의 행로를 정확히 점치는 예언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예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 예언은 20대 이후의 내 삶을 지탱하는 격려가 되었고, 에너지가 되었으며,
동시에 내 인생의 존재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특별한 녀석이다, 너는 뭔가 다른 인생을 살 것이다, 교수님의 말씀은 어
떤 의미에서 내게 주는 `특별한 삶`의 임명장이었습니다.
삶에 있어서, 맛있는 음식까지 사 주면서 미래의 삶을 예언해 주는 스승은 쉽
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스승이 있습니까?
20대의 어느 날에 그런 스승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당신의 삶은 급속도로 바
뀌게 될 것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스승, 내 인생의 미래를 전폭적으로 신뢰해 주는 스승을 만
나십시오.
나를 과소평가하는 심사위원
실패의 쓰라림을 아는 자만이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
이제까지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인이 데뷔하는 것은 결코 불가
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책을 한 권도 쓴 적이 없는 당신에게 어느 날 갑자기 출판사 직원이 와서, `당
신의 책을 출판하고 싶은데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그런 전화가 걸려 온다면 우선은 농담이거나 사기라고 생각해도 틀리
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언제나 눈을 번뜩이며 유망신인을 찾
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인의 등용문은 손만 내밀면 언제나 닿을 듯이 아주 가까운 곳에 무
수히 널려 있습니다.
인기가 높은 신인문학상은 당연히 경쟁률도 치열합니다.
“응모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떨어질 게 뻔해.”
이렇게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은 영원히 데뷔할 수 없습니다.
`신인문학상에 응모하는 것 말고 더욱 편하게 데뷔하는 방법은 없습니까?`라
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대답은 단 한가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수많은 문예잡지나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한다고 해도, 단번에 입선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떨어진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응모하지 않은 사람이 입선하는 일은, 해가 서쪽에서 떠올랐다가 남쪽으로 지
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콘테스트의 연속입니다.
또한 콘테스트는 입선하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떨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콘테스트에 응모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영
원히 데뷔할 수 없습니다.
연극과 3학년일 때, 마침 와세다대학 창립 100주념을 기념하는 문예 콩쿨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상당히 많은 양의 작품을 소설, 시, 시나리오 등등 각종의
장르에 걸쳐서 써 놓고 있었기 때문에 응모하려고 결심만하면 모든 부문에 얼마
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응모하는 것은 오히려 불리하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 부
문에 두 작품만 출품했습니다.
당시 시나리오 부문 최종심사에는 네 작품이 선택되었는데, 내가 응모한 두
작품이 모두 최종심사에 남았습니다.
하나는 긴장감이 넘치는 추리물로, 등장인물 4명이 모두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독특한 내용을 담은 `깨어진 화병`이란 제목이었습니다.
또하나는 어느 호텔에서 숙박하게 되는 네 커플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전개
되는 `회전침대`라는 제목의 연애물이었습니다.
이들 작품들은 지금도 복사본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 보아도 상
당히 재미있고 문학성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자부합니다.
나는 내 작품이 최우수작으로 당선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밤을 새워 당선 소감까지 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당시 각 장르별로 최우수작을 뽑게 되어 있었는데 소설과 평론, 시등 각 부문
에 걸쳐서 최우수작을 선택하면서 시나리오 부문에서만은 최우수작에 해당하는
작품이 없다고 결론이 났던 것입니다.
해당 작품이 없다는 이유를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시나리오는 애당초 재료거리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라는 장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애초부터 뽑는
다고 하지나 말았어야지!
그 이후 나는 문예 콩쿨에서 심사위원으로 일할 때면, 응모한 사람의 기분으
로 최선을 다해 심사를 합니다.
또한 나는 콘테스트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만은 절대로 하지 않고, 그러한 경
우가 발생할 만한 여건이라면 처음부터 심사위원을 맡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내 작품을 심사했던 분은 `너무 기교적이어서 학생답지 않다`는 촌평을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콘테스트에 떨어진 것을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때 최우수상을 받았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상을 너무 쉽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낙선의 비통함과 실망감이야말로 창조하고 전진하는 자의 에너지 원천이 됩니
다.
오디션에서, 선뜻 당신을 선택해 주는 심사위원을 만난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
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떨어뜨리는 심사위원을 만나는 것도 또한 미래의 당신에게 있
어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만 만나지 마십시오.
당신의 장점을 예찬하는 사람만 만나지 마십시오.
장점보다는 단점을 지적하고, 부족한 면을 정확히 지적해 주는 사람을 만나십
시오.
아무도 발견해 내지 못한 단점을 예리하게 바라본 그가 바로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사람입니다.
만화 주인공을 꿈꾸는 친구
20대가 되어서도 만화 주인공을 꿈꾸는 자의 순수를 배우자
아톰이라는 만화 주인공의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도쿄대학 경제학부로 진학했는데, 2학년 때 그를 만났더니 가방에서 교
재를 꺼내 보여 주면서 이런 말을 해서 나를 놀래켰습니다.
“다시 시험을 봐서 몽골어과에 가려고 해. 지금 라디오 강좌를 듣고 있거든.
”
“몽골어를 해서 무엇 하려는 거지?”
나는 도대체 그의 속셈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듣고는 나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짜 아톰이 되려고 해. 멋있잖아!”
그가 아톰처럼 하늘로 비상하면서 적을 향해 총을 쏘는 흉내를 내는 동안에,
나는 그의 얼굴을 가득 물들이고 있는 이상하리 만치 밝은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 미소는 환상, 꿈, 순수 등등 그런 모든 것들의 집합체였던 것 같습니다.
20대가 되면, 갑자기 현실과 타협해 버리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생각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워졌습니다.
20대가 되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만화 주인공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
고 있다면 참으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몽골어와 아톰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의 머리 속에
서는 어떤 선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선을 나름대로 확신하면서, 거기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작정하는 그의 순수
한 열정을 나는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신에게 장래의 꿈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취직할 단계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대부분의 20대들은 입사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 말합니다.
“취직하고 나면 어떻게 할거지?”
이렇게 다시 물으면 어디어디에다 집을 사고 싶다든지,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
나면 어느 학교에 넣고 싶다든지 하는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습니
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 `장래의 꿈`에 대해 글을 썼을 것입니다.
그때 무엇이라고 썼는지,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릴 때 고이 간직했던 꿈을,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는데 성장함에 따라 스스
로 잊어버린 것입니다.
점점 더 시시하고, 점점 더 재미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아직 사회에 나가기 직전에 지금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이렇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그의 인생은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아톰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아톰이 되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대학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인가는, 빗자루 하나를 들고 교장실 앞
복도를 아톰처럼 빵! 빵! 빠바방! 하고 총소리를 내며 질주하다가 교장실 쪽으로
슬라이딩을 한 그였습니다.
고교생으로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자기 꿈을 버리지 않
고 있다는 건 너무나 훌륭한 일입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도쿄대학을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누구라도 어릴 때에는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는 소중한 꿈이 있었을 것입니
다.
그것을 황당무계하고 어리석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만큼 유연성이 있는 발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취직시험에서 면접을 볼 때, 어릴 때의 꿈에 대해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
의 없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제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은 분야에서 일함으로써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기의 오랜 꿈을 아주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회사원이 비난받아 마땅한 직업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20대인 지금,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꿈에 얼마나 열심히 접근하고 있
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기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
게 됩니다.
물론 그것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다 포기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체념하지는 않았습니까?
너무 간단히 꿈과 현실 사이에 장막을 쳐버린 것은 아닙니까?
아톰이 되겠다는, 조금은 황당한 꿈일지라도 젊음을 던져 도전해 볼 생각은
없습니까?
20대는 그런 순수한 꿈에 도전해 볼 유일한 시기입니다.
오늘 현재의 자신
지금의 당신은 과거 어느 날의 당신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오늘 현재의 당신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교차점에 있습니다.
지금의 당신 모습이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하십니까?
정말로 슬픈 일은 이런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실망스러운 존재가 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버릇은 결
코 옳지 않습니다.
과거로부터 방금 전까지의 선택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미래 어느 날의 당신 모습을 그리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간과의 만남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의 당신에게 만족하십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의 어느 날에 또다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
까?
그때도 역시 현실에 불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또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우리 삶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만남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지금 현재의 멋진 자신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만나려 애쓰는 당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멋진 자신이 되도록 만드는 당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멋진 자신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대단히 공평합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좋은 만남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대 뒤의 연극배우
진정한 상실을 알아야 진정한 충만도 안다
공연이 끝난 후의 텅 빈 객석을 보며,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연극배우를 본 적
이 있습니까?
관객도 배우도 모두 떠난 극장에 혼자 남아, 분장을 지우는 것조차도 잊은 채
거울 속의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무명배우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비좁은 무대 위에서, 그것도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타인의 일생을 묘사한다
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감정이나 표정이 아니라, 철저히 남의 감정과 표정을 내것으로 하는 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연극을 보러 가거나 영화관에 갈 때는 어김없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텅 빈 객석을 둘러보는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꽉 차 있던 객석, 방금 전까지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 메
워졌던 무대, 그런 것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지금은 바다 속처럼 고요해졌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때만큼 가슴이 시릴 정도로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적이 없을 정
도로, 그 시간 그 자리는 내게 소중한 순간입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수많은 관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배우의 대사와 숨소리
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 혼자뿐입니다.
끝없이 무엇인가를 빼앗긴 것 같고, 그 자리에 무엇인가가 끝도 없이 밀려들
어오는 것 같습니다.
연극이 내게 준 감동과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눈뜸이 교차하면서, 마치 혼이
나가 버린 사람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래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슨 연극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날도 나는 막이 내린 극
장의 어두컴컴한 객석에 홀로 앉아서 텅 비어 있음의 허무와 그만큼의 충만을
되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였습니다.
무대 한쪽 구석에 어떤 사람이 멍하니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
한 것입니다.
그의 모습은 극장 천장 모퉁이 빈 공간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에
의해 아주 가냘프고 희미하고 초췌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갈 때까지도, 그는 관객 하나가 아직도 객석에 남
아 있으며 한동안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깜짝 놀란 듯 움찔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그가 연극배우임을 알아차
렸습니다.
시대극이었기 때문에 옛날 의상을 입은 그로부터, 옷에 붙어 있는 금속이 서
로 부딪쳐 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입니다.
그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
직도 벽을 타고 내려꽂히는 아스라한 빛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왜 울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감히 물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습니다.
왜 아직까지 객석에 남아 있는지, 그런 것은 물어 보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너무도 길고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둠 너머 저편 서로의 얼굴만 응시했던 것입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돌아섰고, 잠시 후에 나는 네온사인이 광란하
듯 넘치는 도심의 빌딩숲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가 왜 어둠 속 텅 빈 객석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짓고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많은 배우들이 공연이 끝난 뒤의 텅 빈 객석을 보노라면 괜스레 가슴이 무너
진다고 털어놓습니다.
진정한 허무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 연극의 세계란 이런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연기했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무대.
한순간의 짧은 박수를 남기고 총총히 자기 삶의 광장으로 사라지는 관객들.
나는 정녕 무엇을 위해 타인의 삶을 대신하는가.
그렇게 하여 내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이고, 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
가.
외로움의 무게처럼 축 늘어진 어둠 속에서 배우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끝도
없이 눈물짓게 됩니다
그건 진정한 프로의 눈물입니다.
연극이 뭔지 아는 자의 눈물이고, 인생이 뭔지 알고 있는 프로의 눈물입니다.
텅 빈 객석 한가운데서 막이 내린 무대의 그 무거운 침묵과 칠흑같은 어둠을
한 번만이라도 바라본 적이 있는 20대라면 진정한 삶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도 이런 삶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20대인 지금, 진정한 허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진정한 충만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요한 세일즈맨
목표를 기어이 쓰러뜨리는, 그의 프로정신을 배우자
이 세상에 얼마나 `권유`가 많은지는 혼자 살아 보면 절실히 깨달을 수 있습
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도 훌륭한 인생 공부입니다.
신문 구독을 권유하는 판매원의 집요한 공세를 거절하지 못해서 읽을 수도 없
을 만큼 여러 종류의 신문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신문 판매원은 청산유수처럼 자기 신문의 장점을 설명하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선 한 달이라도 좋으니까 여기다 도장만 찍어 주십시오.`
신문을 보는 일에까지 도장을 찍는 일만은 절대로 피하십시오.
그런 일에 도장을 찍기 시작하면 차츰 도장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서, 이윽고
는 커다란 비극을 잉태하게 되고 맙니다.
나는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면접 감독관으로 위촉받았을때, 비스듬하게 도장이
찍혀 있는 이력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나는 장사꾼의 후예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도장을 쉽게 찍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 왔습니다.
도장 하나 잘못 찍었다가 패가망신하는 걸 수없이 보아 온 나로서는, 사람이
어디인지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찍는다는 신념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물며 자기 인생이 걸린 취직시험에 응시하면서 아무런 성의 없이
도장을 찍는 사람에게는 전혀 기대할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인 것입니다.
신문 판매원에게 넘어가서 한 달치 신문 구독을 약속하고 돌려보내면 그 다음
은 다른 세일즈맨이 찾아옵니다.
우연히도 그는 도장을 파는 세일즈맨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도장을 좀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없다고 하면 즉시 영업이 시작되고, 도장을 보여 주면 보여 주는 대로 그때부
터 큰일이 벌어집니다.
`도장 한번 좋군요. 어디가 좋은지 아십니까?`
처음에는 도장을 칭찬하여 안심시키다가, 이윽고 중대한 결함을 발견한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 도장은 말이죠, 행운이 달아나는 도장입니다. 요즘 뭔가 안 되는
일이 있죠?`
20대는 여기저기에서 모두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시기입니다.
세일즈맨은 20대가 세상의 벽에 부딪쳐 무척이나 답답해하는 시기라는 것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로 솔깃하게 만든 다음에 이렇게 말을 이어나갑니
다.
`이참에 행운을 불러오는 도장으로 바꿔 보십시오.`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고 생각해서 도장을 사면, 그 다음은 값비싼 건강 보조
식품을 사야하고 별로 쓸모도 없고 급하지도 않은 전기제품과 가정용품이 뒤를
잇게 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세일즈맨이 노리고 있는 것은 고객에게 사
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고객의 마음이 얼마나 약하냐를 확인하고, 그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유능한 세일즈맨은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자신의 발톱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
으려고 합니다.
반면에 보통의 세일즈맨은 성급하게 목표를 입에 놓으려고 하다가 하나도 건
지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지요.
유능한 세일즈맨은 자기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세일즈맨 자신을 파는 것
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접근해서 제2, 제3의 판매를 이어가지만, 보통의
세일즈맨은 상품 하나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설령 한 번은 성공하더라도 그 다음
상품의 판매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유능한 세일즈맨은 애초부터 목표를 손에 넣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요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
니다.
이런 사람을 업계에서는 `프로세일즈맨`이라고 부릅니다.
직업상 나는 프로세일즈맨들과의 만남이 잦은 편입니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첫째가 말을
무척이나 아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시도 현실에서 눈을 떼고 있지 않지만, 대신 입은 철저히 닫고 있습
니다.
그들은 함부로 자신의 능력을 내보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뱀처럼 은밀하고 집요한 준비할 뿐입니다.
서두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방심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방향과 그곳에 놓여 있는 목표물을 응시할 뿐입
니다.
나는 20대 직장인들을 만나면, 한번쯤 세일즈맨이 되어 보라고 권하는데 여기
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직업이 있지만, 세일즈만큼 어려운 직업도 없을 것입
니다.
그것은 남의 마음을 사는 일이며, 동시에 내 마음을 파는 일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손님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면 모를까, 손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내 물건을 파는 일이야말로 어려울 게 뻔합니다.
20대는 자기 마음을 세상에 내다 파는 시기라는 면에서 세일즈와 동일합니다.
아주 멀리 있는 목표물을 향해 열망의 시선을 보내고, 그것을 향해 한시도 쉬
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면에서도 세일즈의 방법과 동일합니다.
20대에는 누구나 한번쯤 세일즈맨이 되어 봅시다.
누구나 팔기 어렵다고 고개를 휘휘 내젓는 물건에 도전해 봅시다.
가능하다면, 선배 프로세일즈맨과 동행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여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당신
은 이미 한 계단 성장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친구
나를 알아주는 친구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내가 쓴 글이 활자가 되어 재탄생하는 것만큼 가슴이 벅차 오르는 일은 없습
니다.
그것은 작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꿈입니다.
그러한 쾌감을 한 번 맛보면, 이제는 그만둘 수 없게 됩니다.
내 데뷔작이 실린 곳은 1983년 5월에 발간된 `와세다문학`이라는 잡지로, `자
명종의 꿈`이라는 200자 원고지 88매짜리 중편소설이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나는, 그 무렵에 시나리오는 이미 수없이 써 놓고 있었습
니다.
그때는 내가 닛카쓰 로망 포르노란 영화사의 기획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로, 따라서 닛카쓰 로망 포르노용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것입니다.
그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 바로 `자명종의 꿈`입니다.
당시는 요즘과는 달리, 시나리오는 고생의 대가치고는 발표할 자리도 없고 변
변히 평가도 받지 못하던 시대입니다.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으면 감독의 공로가 되고 영화가 실패하면 각본 탓
으로 돌리는, 시나리오 작가가 참으로 불쌍한 취급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시나리오의 아쿠타가와상에 해당하는 기도토상은, 아쿠타가와상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받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상을 받아도 관게자 몇 명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
이 현실이었습니다.
`와세다문학 편집부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와세다문학 편집부에서 소설을 게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마치 상을
받은 것만큼이나 흥분되었습니다.
그러나 산처럼 많이 써 놓은 시나리오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곁다리로 쓴
소설이 선택되다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때 와세다문학에 소설이 게재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껏 시나
리오를 쓰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내가 쓰는 소설이나 에세이는 모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시나리오를 쓰는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마치 눈으로 보는 것
처럼 영상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대 초반을 시나리오에 매달리며 보낸 시간이 결코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히라오카 토쿠요시 교수님이 편집장을 담당하던 그 달의 와세다문학은 10년만
에 만들어지는 제8호 잡지였습니다.
10년 전인 1973년의 제7호 와세다문학은 다테마츠 와헤이, 아오노 사토시, 후
쿠시마 야스키 등 현재 일본의 중진작가가 된 분들이 주요 필진이었으니까 대단
히 뿌리 깊은 전통이 있는 것이지요.
당시 내 작품을 담당했던 편집자는 히키다 요시아키씨였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으로, 그와는 나중에 광고회사 하쿠호도에
서 같은 CM기획자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특이하고 재치에 넘치는 CM을 만드는 우수한 기획자로 명성을 날렸습니
다.
`자네 소설의 독특한 재미는 내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지.`
그가 나중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데뷔작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흔히 어떤 작가도 자신의 데뷔작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 많은 깊은 사고와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작품은 일생에 두 번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나는 데뷔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
다.
와세다문학에 실린 `자명종의 꿈`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
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스물셋이었습니다.
나를 알아주고, 높이 평가해주는 친구 하나가 나로 하여금 무엇이든 될 수 있
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화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자네 소설의 독특한 재미가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거야.`
히키다 요시아키의 이런 믿음이 나를 작가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내가 가진 자그마한 능력,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자신하는 그 감춰진 능
력을 친구는 얼마든지 밖으로 표출시키게끔 만들어 준 것입니다.
당신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 한 명을 만나십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언제든 박수를 보내 주고, 당신이 가려는 길을 언
제든 지켜보는 그런 친구를 만나십시오.
20대는 그런 친구 하나만으로 충분히 부자입니다.
새벽의 거리청소부
마음을 닦듯이 거리를 닦는 그들의 손을 사랑하자
고등학교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는 유난히 명랑한 소년이었습니다.
그가 없으면 도무지 학교 다닐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좌중을 휘어잡는 솜씨가 뛰어난 친구였지요.
오락시간이 되면 그의 장난기는 유감없이 발휘되어, 점잖기로 유명한 교장 선
생님마저 그의 끼를 구경하러 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등교시간에서 꼭 30분씩 지각을 하는 악습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
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혼을 내도 그 버릇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징계의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늦잠을 잤다. 등교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갑자기 몸이 아팠다 등등 그의 변명
은 매일같이 변했지만 이젠 그런 변명 따위에 속아넘어갈 선생님들이 아니었습
니다.
선생님들이나 우리는 그가 학교에 오기 전에 분명히 어딘가에 들를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 그 이상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참다 못한 선생님 한 분이 친구들 몇 명을 부른 것은 2학년 새학기가 막 시작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나도 거기에 끼어 있었는데, 선생님의 명령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를 그냥 놔두면 만성지각병으로 징계를 당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뭘 하느라
고 매일같이 늦는지 너희들이 내일 아침부터 일주일간만 추격을 해봐라.`
10대 소년들은 한결같이 악동의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탐정놀음이라니, 우리는 모두 다 신이 났습니다.
학교에 오려면 적어도 7시 전에는 집에서 나와야 하니까, 7시 이전에 그 친구
의 집 앞 골목에서 만나 추격을 개시하자고 결정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그의 집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슬슬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면 적어도 하루이틀 내에 지각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전은 처음부터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학교에 와 보니, 그날도 그는 30분 늦게 유유히 등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7시 이전에 집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추격전 아닌 추격전을 일주일이나 계속한 끝에 정말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7시에서 6시로, 6시에서 다시 5시로 앞당겨진 집합시간에 따라 기어이 우리
눈에 들어온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새벽 4시에 집을 나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거리청소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새벽에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와서는, 거리를 청소하는 아버지
를 돕다가 허둥지둥 학교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저만치 뒤를 쫓아가면서 저마다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잠들어 있었을 새벽에 그가 아버지의 작업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친구들 모두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지 않고 고집스럽게 아버지를 돕고 있는 그의 침묵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
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명랑하고 쾌활
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게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에게 달려가 그가 들고 있는 빗자루를
나눠 들었습니다.
잠시 놀라는 듯했지만, 그는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어둠
이 깔린 거리를 쓸기만 했습니다.
`마음을 닦듯이 거리를 닦고 있어. 내가 닦아 낸 거리를 시민들이 기분 좋게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신바람이 난다구.`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
니다.
모든 사람이 잠에 취해 있는 그 새벽에,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를 쓸고 닦는
직업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그 일을 누군가가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그런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20대인 당신이 미래의 거물이 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지금도, 어딘
가에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
오.
세상은 모든 이들 앞에 나서서 큰소리를 땅땅치는 유명인사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당신이 힘들고 외롭고 고단할 때, 진정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바로 그들이 있는 곳입니다.
세상은 오히려 그들에 의해 더 굳건히 지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유부단한 복덕방 아저씨
선택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
사람은 경험 속에서 새로운 만남이 탄생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한번의 만남으로 인해 다음 만남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대학 시절에 반드시 경험하라고 권해 주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혼자만
의 독립적인 생활입니다
혼자만의 생활은 살아가야 할 곳을 찾는 일부터 출발합니다.
자신이 살 집을 찾을 때, 그 사람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20대라면 누구나 그 이전의 인생에서 뭔가를 직접 선택해 보는 경험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대학만 해도 스스로 선택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네 성적이라면 이 정도의 대학에 갈 수 있다`라고 자기 위치를 어
느 정도 알고 나서, 선택과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당신이 결정하기 전에 이미 컴퓨터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 결정해
버립니다.
컴퓨터와 선생님, 부모님이 결정한 범위 밖으로 벗어나려고 할 때 비로소 스
스로 선택한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시 구조는 모두 이 선택의 흉내내기입니다.
선택과 선택의 흉내내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취직시험은 자신의 일생을 결정하는 중대사건이기 때
문에 선택의 흉내내기를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취직이 어렵다는 것은 결코 취직난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흉내내기에 길들여진 당신이 무엇이든지 직접 선택할 수 없는, 선택불
능증에 걸려 있기 때문에 취직난에 휘말리는 것입니다.
20대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시기입니다.
자기 인생을 남이 선택해 주는 대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뜻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
의 삶 자체를 던진다는 뜻입니다.
20대 초기에 경험하게 되는 선택 중에서 가장 난감한 일 중의 하나가 이제부
터 자신이 기거하게 될 하숙집이나 자취방을 찾는 일입니다.
그때 당신은 필연적으로 복덕방과 만나게 됩니다.
복덕방은 결코 `이것으로 하십시오`라고 결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복덕방 아저씨들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본 집을 자
신의 숙소로 정해 버린다고 합니다.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복덕방 아저
씨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덕방 아저씨가 `이곳이 좋을 겁니다. 나 같으면 이곳으로 정하겠습니다.`라
고 하면, 너무나도 간단히 `그러면 이곳으로 하겠습니다`하고 말해 버립니다.
복덕방 아저씨에게 있어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만큼 상대하기에 손쉽
고 편안한 고객은 없습니다.
당신이 거절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다른 곳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복덕방 아저씨는 얼마든지
보여 줍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는 끈질기게 매달리고 생각해야 한다는 훈련을 받지 않
은 당신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을 받는 것도 엄연히 하나의 공부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절대
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20대인 지금,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배워 나가는 자세입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온몸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훈련을 쌓아 왔습니
다.
누군가가 결정해 주면, 그것만큼 편안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리는지 결정하
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앞으로 만약 당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스스로 선택하
는 어려움과 즐거움, 그것을 각각 하나하나씩 경험해 가십시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집을 고를 때는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복덕방 아저씨
를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질 수밖에 없고, 그때부터 당신의 고민은
시작될 것입니다.
“이 집이 좋은지, 저 집이 좋은지 그건 당신이 알아서 판단해라.”
사실 이렇게 얘기하는 복덕방 아저씨만큼 답답한 사람도 없을 테지만, 선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단련 받기 위해서는 제발 이런 사람을 만나기 바랍니다.
늦은 오후의 우편배달부
우편배달부의 지친 어깨 위에 내려앉은 타인의 희망을 사랑하자
그날은 가을답지 않게 무척이나 쌀쌀한 날씨였고, 을씨년스럽게도 가랑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거의 40도 경사에 가까운 언덕을 지나야 하
는데, 나는 당시에 심한 독감에 걸려 있어서 그 언덕을 거의 기다시피 해서 오
르고 있었습니다.
마침 내게는 우산도 없었습니다.
커다란 책가방을 한쪽에 들고 언덕을 오르려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언덕 위로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로 막 접어들 때였습니
다.
저쪽 반대편에서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일등독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심히 읽는 여화 잡지
<피아>도 그분의 손에 의해 내게 전달되었으며, 내게 오는 각종의 우편물도 그
가 아니면 받아 볼 수 없을 만큼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기부터 했습니다.
그러고는 말없이 들고 있던 우산을 내 머리 위로 옮겼습니다.
“괜찮습니다. 집에 다 왔는데요.”
내가 이렇게 거절해도 그는 막무가내로 우산을 받쳐든 채로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섰습니다.
내가 사는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데, 어디 아픈가?”
그는 대번에 내가 심한 감기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대부분의 우편 배달은 오토바이를 타고 하지만, 오늘만은 빗속의 심한 언덕길
이라 그냥 걸어서 올라온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또 말을 이었습니다.
“자네는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지? 내가 보기에, 자네는 아주 멋진
감독이 될 거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낙관적인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은 나를 조
금은 기쁘게 했습니다.
키가 작은 그였기에, 우산을 높이 치켜든 모습은 마치 작은 체구의 장수가 자
기 키만한 칼을 들고 있는 걸 연상시켰습니다.
우산을 들고 있지 않다면, 아마 나는 그의 어깨가 한쪽으로 축 쳐진 걸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생을 무거운 우편물을 들고 다니느라 어쩔 수 없이 생긴 직업병입니다.
세상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편배달부 같이 타인의 희망을 위해 살아가는 직업은 우리가 아
무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직업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선택되어집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편배달부처럼 자신의 삶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철저히
타인의 꿈과 희망을 위한 직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지친 어깨를 사랑합니다.
지친 어깨 위에 내려앉은 타인의 희망과 절망을 다 사랑합니다.
“푹 쉬게나. 내일은 내가 좋은 소식 전해 줄 테니.”
내 등을 톡톡 두드리고는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 가는 그의 작은 체구가 그날
따라 유난히 커 보였습니다.
젊음이란 묘한 것이어서, 아주 사소한 만남을 통해 곧잘 희망을 발견하고 의
욕을 얻게 됩니다.
내일은 좋은 소식을 전해 주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내게 힘을 주었습니다.
내일 또 내일, 그렇게 나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나쁜 소식이 올 까닭이 없는 나의 삶입니다.
내일 늦은 오후에, 우편배달부가 내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리라 믿기에 나는
오늘 희망의 사과나무 한 그루를 가슴에 심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절대로 희망이 달아나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이 오리라는 걸 믿으면, 내일 반드시 우편배달부가 지친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고 한 통의 편지를 전해 줄 것입니다.
좋은 소식이 담긴 그런 편지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
미지의 세계를 바라볼 줄 알아야 도전할 수 있다.
당신은 탐험가라는 직업이 영화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탐험가는 우리 주변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진정한 탐험가를 만나 보십시오.
진정한 탐험가는 자기 자신의 꿈뿐만 아니라 타인의 꿈을 위해 살기 때문에,
그를 만나면 당신이 찾으려는 꿈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학 시절에, 내게 언제나 새로운 충격을 주던 마틴 교수님은 진정한 의미의
탐험가였습니다.
마틴 교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속의 존스 박사를 연상시킬 만큼
모험 정신이 강한 분으로, 내가 그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것은“인디아나 존스
” 시리즈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의 일입
니다.
탐험가를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정글이나 대학입니다.
탐험가의 강의는 머리칼이 삐쭉삐쭉 서는 스릴러물이나, 온몸에 식은땀이 솟
게 하는 활극보다 더 흥미진진합니다.
마틴 교수님의 할아버지는 동남아시아에서, 이방인의 목을 베어 살인하는 풍
습을 가진 종족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집안은 뿌리부터 모두 탐험가였던 셈입니다.
마틴 교수님은 수업을 전부 영어로 했는데,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이 웃음이 넘쳐흘렀습니다.
마틴 교수님의 할머니는 나가사키 태생의 일본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본어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도, 그는 구태여 영어
를 고집했습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매주 박진감이 넘치는 탐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저탐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중남미에 있는 유카탄 반도에서, 깊은 수혈 안에 있는 지하수로 들어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유카탄 반도는 고대 마야문명이 번성한 지역으로, 대자연이 만들어 낸 깊은
우물이 드넓은 땅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지요.
그런데 묘한 것은 지하수 바닥 어느 곳에 동굴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
다.
그리고 그 동굴 안에 있는 숨겨진 방에는 고대 마야제국 시대의 엄청난 보물
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마틴 교수님은 우선 간단히 탐사를 할 생각으로 수중호흡기도 없이 우물 속에
있는 지하수로 잠수했습니다.
그리고 회중전등을 비추면서 동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틴 교수님은 물 속에 들어가서야 한 가지 난감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 속에는 분명히 동굴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비슷한 모양의 동굴이 수십 개
나 되어서 어느 곳에 보물이 있을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대 마야인들은 그런 식으로 많은 동굴을 파서 보물을 지키는 방패막이로 삼
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사람이라면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합니
다.
그러나 탐험가는 그 반대입니다.
쉽게 발견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막대한 양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서 더욱 저의를 불태우는 게 탐험가입니다.
그것은 탐험가의 본능이며, 진정한 탐험가가 되기 위한 기본자세입니다.
보물이 있음직한 동굴을 끈질기게 찾던 마틴 교수님이 마침내 더 이상은 견디
지 못하고 돌아서려고 할 때, 문득 눈앞에 다가서는 게 있었습니다.
다른 동굴과는 다른 형태의 널찍한 구멍 하나가 큼지막한 돌덩어리 옆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동굴은 가까스로 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다란 통로로 되어 있
었습니다.
마침내 동굴을 찾아낸 마틴 교수님은, 이제 그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
중호흡기를 가지러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물 속에서의 불규칙적인 호흡 때문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틴 교수님은 생각과는 달리 계속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
니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수중호흡기의 도움없이 계속 잠수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호흡할 수 없는 한계점까지 도달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동굴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틴 교수님은 문득 등줄기가 따끔따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
니다.
보물창고로 통하는 동굴의 천장이 빵을 써는 칼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들쭉날
쭉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등에 상처가 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동굴을 찾아낸 뜨거운 흥분이 고통
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그 들쭉날쭉한 천장은 침입자를 막는 함정이고, 함정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보
물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보물이 없는 곳에 함정을 만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탐험가에게 있어서는 함정이나 장애야말로 보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지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윽고 마틴 교수님은 동굴 속의 넓은 수혈로 나아갔습니다.
`수혈 위로 올라가면 숨겨진 방이 있고 공기가 있을 것이다!`
이런 확신이 머리를 때린 순간, 이미 호흡이 멈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마틴 교수님은 황급히 위로 떠올라 갔습니다.
`수면으로 나가면 숨을 쉴 수 있다...`
그순간 마틴 교수님은 자기도 모르게 물을 꿀꺽꿀꺽 들이마시고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컥컥거렸습니다.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천장에 머리를 부딪친 순간, 들고 있던 회중전등을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입니
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찾아왔고, 더 암담한 것은 물 속에서 더 이상
호흡할 수 없었기에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나는 죽었을까요?`
마틴 교수님은 학생들을 빙 둘러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그 다음 순간에, 우 하는 학생들의 불만에 찬 함성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
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힌트를 주자면, 만약에 그때 내가 죽었다면 지금 여기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 애기는 여름방학이 끝난 다음에 하지요. 방학 잘 보
내십시오.`
교수님의 수업도 스필버그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속물이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감동을 안겨 주는 강의는, 가령 그것이 철학이나 수학 강의라 할지라
도 숨을 멈추고 들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마틴 교수님의 그 다음 이야기는 나도 모릅니다.
여름방학이 끝났을 때, 마틴 교수님은 아프리카로의 긴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
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떠올리려고 해도, 마틴 교수님이 그 위기를 어떻게 빠
져나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후에 마틴 교수님을 만나 그후의 이야기를 묻자, 그분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
게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한번 추리해 보게. 답을 알게 되면 찾아오게나...`
그 이후 20여 년 동안, 나는 때때로 어두운 우물 속에서 아직도 숨을 멈춘 채
헐떡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틴 교수님의 결말이 나지 않은 이야기, 그러나 그건 내 젊음의 광장을 가로
지르는 신선함으로 생생한 숨결인 채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말이 뻔한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해답이 있는 문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강의를 할 때도 문제만 내고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답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러 오는 학생이 반드시 있습니다.
20대에게 있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답을 물었을 때, 너무도 쉽게 그것을 알 수 있다면 그런 게임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정답을 알게 되면, 모처럼 주어진 문제도 결국 당신의 피와 살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 바로 옆에 정답이 붙어 있는 것은 초등학생용 문제집뿐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문제는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이 있는 초등학생용 문제집에서 빨리 졸업합시다.
정답은 없지만,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복잡미묘한 수학
문제에 거리낌없이 도전해 봅시다.
숨을 멈추고 자기 힘으로 탈출구를 찾아가는 자만이, 인생의 진정한 탐험가가
될 수 있습니다.
20대인 당신이 할 일은 용감한 탐험가가 되는 것이지만 타인에게 꿈을 주는
마틴 교수님 같은 탐험가를 옆에 두는 일도 중요합니다.
진정한 탐험가는 타인의 꿈을 위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학생, 또는 최저의 학생
상위 5%와 하위5% 안에 대단한 녀석이 있다
당신은 지금 대학생입니까?
그렇다면 고생고생을 해서 대학에 들어간 이상, 대학의 DNA를 모조리 흡수하
십시오.
학문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학의 전통이라는 아주 특별한 DNA를 몽땅 흡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와세다대학에 들어갔으면 와세다대학의 전통과 역사, 그 대학 특유
의 분위기 등 캠퍼스 안에 흘러 다니는 DNA를 모두 받아들이십시오.
와세다의 DNA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와세다의 DNA가 깊이 배어 있는, 가장 와세다다운 학생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즘 새대는 학교에 매료되어 선택했다기보다는 자기 성적에 맞게 대학과 학
과를 선택하기 때문에 대학의 개성이 없어졌다, 그래서 어느 대학이든 그 대학
다운 맛이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시한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사물을 그런 선입관으로 보는 사람은, 실제로 대학생다운 대학생을 만나
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각각의 대학에는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깊이 배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학생들을 만나면, 그것을 피부로 절감할 수 있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은 누구보다 흡수력이 빠르기 때문에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쉽
게 그 대학의 분위기에 빠져들고 그 대학 특유의 전통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와세다대학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 와세다다운 것은 아니라는 게 정확
한 표현일 것입니다.
어느 대학에서도 그 대학의 학생다운 사람은 고작해야 10%에 불과합니다.
그 10%는 행동이 올바른 모범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가운데에 있는 어정쩡
한 학생도 아닙니다.
가장 상위에 있는 5%의 학생과 가장 밑바닥에 있는 5%의 학생이 바로 그들
입니다.
중간의 90%의 학생은 다른 어느 대학의 학생과도 비슷비슷해서 도무지 특성
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최고의 5%에 힘이 넘치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는게 내 생각입니다.
이것은 대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면, 어느 세계든지 그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최고의 5%와 밑
바닥의 5%입니다.
마라톤을 할 때도 한가운데에서 달리는 사람들은 시루 속의 콩나물과도 같습
니다.
그러나 앞에서 달리는 5%는 사이를 두고 드문드문 뛰어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꼴찌에 있는 5%도 마치 혼자서 달리는 것처럼 흩어져 있습
니다.
기어이 우승하려는 사람과 기어이 완주하려는 사람이 그들 속에 섞여 있습니
다.
우승을 목표로 생명을 다해 뛰는 사람과, 완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뛰
는 사람과는 어떤 의미에서 동일합니다.
그 대학의 색깔을 이어받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앞의 5%와 뒤의 5%입니
다.
모든 학과에서 A를 받는 학생은 아무리 이름이 없는 시시한 대학이라 할지라
도 상당히 우수한 사람입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도 노력과 재능이 없으면 좀처럼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꼴찌를 하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아무 재능도 없는 바보 수준이라면 애당초 대학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입니
다.
그에게는 꼴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최고라든지 꼴찌는 반드시 공부 성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
니다.
공부의 최고가 다른 분야에서는 꼴찌가 될 수도 있고, 공부에는 꼴찌인 사람
이 어떤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의 성적은 계단식으로, 더구나 직선으로 늘어놓지만 대학의 성적
은 섬게의 가시처럼 방사선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와 꼴찌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동일어입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최고와 꼴찌를 모두 만납시다.
그런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당신 역시 최고도 되어야 하고, 꼴찌도 되어야
합니다.
최고와 꼴찌를 둘 다 경험한 학생이 가장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십시오.
고층빌딩 옥상에서 오줌을 누는 친구
세상을 경멸하는 그에게서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술버릇이 이상한 선배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술버릇이야 개성에 따라 각양각색이기 마련이지만, 그 선배의 술버릇은 악명
이 높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그가 사라지면, 우리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은
밀한 미소를 짖습니다.
옥상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거기서 저 아래 바닥을 향해서 오줌을 누는 버릇이 그 선배에게 있었던 것입
니다.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묘해서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서 배설할수록 더 큰 카타
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선배가 사리지고 잠시 후에, 우리는 옥상으로 우르르 달려갑니다.
그러면 예외 없이 그가 이미 배설을 끝내고서, 저 아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를 지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경멸과 비난입니다.
왜 그가 그렇게 심하게 세상에 대해 경멸을 던지는지, 그리고 그것의 표출 방
법으로 왜 하필이면 힘들게 옥상에 올라가 바닥을 향해 오줌을 누는지 그런 사
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심
한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대해 이상하리 만치 삐딱하게 바라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세상에 대해 지나치리 만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
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무엇이든지 비스듬하게 보일 것입니
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전부 의혹의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려고 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첫째로 그 사람 자신이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신문도 믿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기 십상이어서, 다른 사람과 잘 타협하지 않습니
다.
그 선배가 그랬습니다.
옥상으로 달려가 오줌을 누는 것으로 자신의 세상에 대한 경멸을 표출할 수밖
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
는지 그것은 늘 의문이었습니다.
20대엔 이런 사람 하나쯤 알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가까이하지는 마십시오.
내 경험으로 보건대, 부정적인 생각은 전염성이 강해서 그와 몇 마디 말만 나
눠도 즉시 나 역시 세상에 대해 비난과 경멸의 시선을 갖게 될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그런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 오히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입
니다.
세상은 그 선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추악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입니다.
세상이 나를 받아 주지 않는 걸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내가 세상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비난하고 경멸하기 전에 20대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세상이란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랑을 내게 퍼부어 주는 참으로 진실한
상대입니다.
끝없이 끝없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혹시 세상을 경멸하거나 비난하게 될지라도, 절대로 빌딩 옥상에 가서
오줌을 누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그런 행동은 객기도 치기도 아닌,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자살을 시도한 친구
죽음까지 염두에 둔 절박함을 생각해 보자
당신은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극단적인 죽음까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 사고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것
은 자실이 아닐까 합니다.
인류가 지상에 터를 닦아 온 이래로, 자살은 가장 확실한 현실 도피 방법으로
애용되어 왔습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속에서도 자실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로 널
리 사용되어져 왔고, 한때 서양에서는 허무주의 열풍이 들불처럼 유행하는 바람
에 자살이 전염병처럼 번진 적도 있습니다.
사람은 왜 자살을 꿈꿀까요?
자기 생의 한가운데서 왜 좀더 정정당당히 버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엄청난
자기모멸의 길을 선택하게 될까요?
나는 여기서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의 말 따위는 인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은 그것밖에는 선택할 수 없는, 지극히도 막다른 골목에 접
어들었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20대 초반에 죽음을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기만 했기 때문에 흐르는
강물에 내던지듯 내 생명을 세상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곤 했
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때의 나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암담하게만
보일 것입니다.
암담하고 또 암담해서, 마침내 생의 종착역을 앞당기는 것이지요.
20대는 특히 좌절이나 실망이 숱하게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칫 생각을
달리 먹게 되면 죽음이라는 최후의 선택으로 손을 뻗기 쉽습니다.
당신 주변에 혹시 자살을 시도한 친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장 가서 만나 보십시오.
무엇이 그를 죽음의 나락으로 몰아세웠는지, 과연 무엇이 그를 희망의 들판
밖으로 끝없이 밀려나도록 만들었는지 그를 위로하면서 조용히 한번 귀를 기울
여 보십시오.
인생은 절박함의 연속입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조급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
우는 것입니다.
현대문명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 중의 하나는 인간을 극단적인 성격으로 만들
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기계문명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늘처럼 섬세하고 예리한 감성이고, 컴
퓨터처럼 완벽한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만족이란 없습니다.
완벽을 바라지 말고 차선을, 그것도 아니면 그 다음의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좀 느긋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앞의 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러면서 느긋하게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설 필요가 우리 모두에겐 있습니다.
가끔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 세상에 더 오래 남아 있어야할 분명한 이
유를 찾아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이 당신을 이 세상에 내보낼 때는, 뭔가 분명한 사명을 주었다는 사실을 잊
지 말아야 합니다.
자살을 시도한 친구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전하는 동안, 당신은 삶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지하철을 탄 낯선 남자
마지막 지하철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있습니까?
내게는 마지막 지하철을 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버릇이 있습니다.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스트레스를 풀다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의아
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나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음이 울적할 때면 으레껏 밤중에 지하철역으
로 달려가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마지막 지하철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하루의 노동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광경을
연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이 많기로는 오히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첫번째 지
하철에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는 낯선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하루를 만족하게 보냈다는 듯이, 쌓인 피곤에도 불구하고 만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가 무척이나 지겨웠다는 듯이 넌더리를 내며 잔뜩 인상을 찌
푸리고 있습니다.
갈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젊은 연인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도 마지막 지하철 특유의 풍경이라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술에 취해 혼자 중얼거리는 중년의
취객입니다.
개중에는 술에 취해서 잠든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취객들은 내려야 할 곳
을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대로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삶이 요동치는 현장에 있으면,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나는 마지막 지하
철에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러시아워의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당연히 삶의 요동을 느낄 수 있지만, 마
지막 지하철만큼 고요 속에서 더욱 격렬히 살아 숨쉬는 삶의 요동을 느끼는 경
우는 드뭅니다.
한번은 30대 초반쯤 된 취객의 갑작스런 도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뭔가 안
풀리는 일이 있는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연신 혼자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내
게 말을 건네 온 것입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소?`
몹시 혀가 꼬부라진 말투였지만, 분명히 내게 흑백을 가려 보라는 투였습니다.
`뭘 말씀입니까?`
이렇게 묻자 그가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상사가 자기만 보면 트집을 잡고 못살게 굴어서, 오늘은 회사를 때려치
울 생각으로 한바탕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아니면 나를 받아 줄 곳이 없나, 이런 식으로 직장 상사에게 대들고는
그 길로 회사를 나와 술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 있는 사람에게 내 의견을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살짝 웃어 주고 말았지만, 마지막 지하철이 아니고서는 받아 볼 수 없는 진솔한
고백입니다.
그것도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에게 말입니다.
마지막 지하철을 타면 당신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당신에게 털어놓지는 않아도, 당신에게 끝없이 하소연하고 싶어하는 누
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거기서 얻어지는 느낌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20대는 충분히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굳이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나누지 않더라도, 20대의 만남은 이렇게 언제 어
느 곳에서라도 소중한 법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낯선 곳을 혼자 자주 찾아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별도 없는 낯선 곳도 혼자 자주 찾아 보기 바랍니다.
20대에는 만남이 많을수록 좋고, 그것을 흡수하는 일은 부지런할수록 좋습니
다.
판매왕에 뽑힌 세일즈맨
능력과 요령보다는 성격과 끈기가 성공을 좌우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의 세일즈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 청년이 내게 편지
를 보내 왔습니다.
처음엔 나름대로 굉장한 포부를 가지고 그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시간이 갈수
록 자신감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나깨나 언제 그만둘까 하는 것만 생
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제발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직업상 20대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일이 잦은 나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갓 입학한 대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남보
다 먼저 자기 영역을 구축해 가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
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한눈에 그가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능력이 있는 점쟁이라도 된 것처럼, 나의 투시능력은 거의 예외가 없
습니다.
현실에 만족하면서 미래에 대비하는 젊은이는 눈빛이 다릅니다.
목소리가 탁하게 가라앉거나 어깨가 축 늘어지지 않고 명쾌하면서도 자신만만
합니다.
당연한 얘기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남의 눈에 보이는
이런 차이는 그의 인생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눈빛이 맑을 리가 없고 명랑한 목소리가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판매왕으로 뽑히는 세일즈맨들을 보면, 다른 사람과 특별히 다른게 없습니다.
무슨 특별한 판매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뛰어난 세일즈 능력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판매왕이 되고, 어떤 사람은 언제 이 짓을 그만둘까 고
민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차이를 눈빛에서 발견합니다.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 미래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 이런 것들이 성공과
실패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눈빛이 맑고 자신만만한 세일즈맨은 상대방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상품을 팔
고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나 눈빛이 흐리고 매사에 자신이 없는 세일즈맨은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이미 판매에 실패하고 돌아서는 자신의 모습부터 그립니다.
나는 편지를 보내 온 그에게 이같은 내용의 답장을 썼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내게 편지를 보냈던 바로 그 사람이 아
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20대는 자기 삶에 대해 의혹이 많은 시기입니다.
지금 하는 일, 지금 가는 길, 지금 잡은 선택 등이 내 인생을 위해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게 20대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의심입니다.
그런 끝없는 의혹이 당신을 도약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
나 바라건데, 의심을 의심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는 마십시오.
그 의혹들 하나 하나를 내면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원동력으로 삼으십시오.
판매왕이 된 세일즈맨들은 바로 이런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에 불과합니
다.
그런 깨달음의 진리를 당신보다 조금 일찍 터득한 사람들이 바로 20대에 꼭
만나야 할 50인 중의 하나입니다.
사건 뒤의 취재기자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을 캐내는 그의 눈빛을 배우자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사람들은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측면에서, 혹은 뒷면에서 바라보려 한
다는게 그 첫째입니다.
그러다 보니 왠지 좀 삐딱한 게 흠이기는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
라 저 안쪽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까지 속속들이 찾아낸다는 면에서는
배울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맨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경찰과 취재기자들입니다.
경찰이 사건 속에 뛰어들어 진실을 규명하고 있을 때, 기자들은 사건 밖에서
그것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안에 있을 때보다는 밖에 있을 때 더 자세히
보이는 법입니다.
기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얼마만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
느냐 하는 겁니다.
자기만의 판단대로 기사를 써 버린다면 틀림없이 오보를 하고 말테니까, 멀찌
감치 떨어져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는 정말로 필요할 것입니다.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중 그 두번째는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을 찾는데
상당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5W 1H`라는, 소위 육하원칙에 따라서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사실, 자기 주변의 모든 일에 `왜?`하고 일일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피
곤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습관처럼 `왜?`하고 의문을 던집니다.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가?
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이런 질문이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열쇠가 됩니다.
나는 20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면 예외없이 세상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권합니다.
왜 나는 이 자리에 앉아서 저 사람의 강연을 들어야 하는가?
왜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나는 대학을 다녀야 하고, 왜 나는 하필이면 이렇게 장래성도 없는 시시한
학문을 전공해야 하는가?
`왜?`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대답을 요구합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왜?`라는 질문 앞에서, 당신은 언제나 적절한 답변을 찾아
내야만 합니다.
많은 젊음이들이 `왜?`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걸 흔히 보게 됩
니다.
심지어는 자기 삶에 대해 `왜?`라는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기자들은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은 후에
야 기사를 씁니다.
기자가 `왜?`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답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문 기사가
아니라 추리소설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스스로의 삶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대답을 찾지
않거나, `왜?`라는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면 당장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사건 뒤의 취재기자를 만나 보십시오.
만나자는 전화를 받은 그들은 당장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왜 나를 만나려고 합니까?`
굉장한 일을 하겠다는 친구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만 인간에 대한 모험이 시작된다.
“재미있는 곳이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소?”
광고회사 하쿠호도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내
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예?”
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선배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그와는 거의 초면이나 마찬
가지였습니다.
나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평사원치고는 좀 늙어 보였지만,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간부사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뜻 말을 걸기 위해서는 특별한 용기의 에너지가 필
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격 탓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딱 질색입니다.
지금 이 나이에도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
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이, 직장이라는 곳에서의 재미
있는 점입니다.
어차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살아야 하고, 업무상으로나 다른 많은 일로 얼
굴을 부딪치게 되니 누가 먼저가 되었든 말을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 늙어 보이는 사람의 말에 감전이라도 된 듯이 뒤를 따라갔습
니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그는 쉴새없이 지껄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술에 취해 정신없이 중얼거리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습니다.
그가 회사 부근의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지도 않고 계속 그를 따라갔습니다.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춘 그가 내게 히죽 웃어 보이더니 그 건물의
계단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나도 어두컴컴한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
습니다.
재즈카페라고 하기엔 좀 촌스럽고, 예사 커피숍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수선한
그런 실내 분위기였습니다.
사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20대를 존재케 하는 중요한 의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둘씩 나이를 먹어 가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
점 사라지게 됩니다.
그만큼 행동반경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행동반경이란 일정한 범위 이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똑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이동하는 사람, 즉 집과 학교라든지 직장과
집만을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아무리 먼 거리를 이동해도 행동반경이 좁을 수 밖
에 없습니다.
당신은 늘 똑같은 코스를 걸어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똑같은 10km의 길을 반복해서 이동하기보다는, 10m라도 좋으니까 처
음 가보는 샛길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샛길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상식의 파괴는 모험이 수반되지만, 20대에 저지르는 상식 파괴엔 그만한 대가
를 얻게 될 것입니다.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을 우연히 만나서 겪게 되는 삶의 또 다른 모습
을 잘 그리고 있는 소설 `청춘의 문`을 읽고 나면, 당신은 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연하 만남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모든 만남이란 우연에서 출발되며, 그런 우연 속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 바
로 사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늙은 직장선배는 나와 첫대면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불알친
구나 되는 것처럼 친숙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같군. 그래서 말을 걸었소.”
그가 어두컴컴한 실내 조명에도 또렷이 알아볼 수 있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내
게 들이대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맙소사! 이해할 수 없는 녀석에게 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듣다니!`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녀석
을 아무런 의심없이 따라온 나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사내는 재즈카페의 주인과도 몹시 친하게 이야기하는 것으
로 보아 아무래도 단골손님 같았습니다.
“난 굉장한 일을 꿈꾸고 있어.”
그가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뱉고는, 급히 한 잔의 물을 입안에 털어 넣
었습니다.
일상의 각질을 거부하고, 평범의 틀도 깨부수고 뭔가 자기 삶의 성벽 위에 `굉
장한 일`의 깃발을 꽂으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굉장한 짓`을 저지르겠노라고 선언하는 사
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난 굉장한 짓을 하려고 해`라고 선언하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구!”
나는 당신이 이런 식으로 냉소를 퍼붓는, 시시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
니다.
이해할 수 없는 직장선배는 내게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자네도 틀림없이 굉장한 짓을 할 사람이야.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거든.”
아마 그는 그런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다가 여기저기서 무수히 차가운 시선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굉장한 짓`에 공감하는 나에게 친숙함을 느낀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주 옵니까?”
“두번째”
맙소사! 지금까지 겨우 한 번밖에 오지 않은 주제에 마치 백 번도 더 온 사람
처럼 단골손님 행세를 한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각자가 저지르려고 하는 `굉장한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
었습니다.
그는 이 나라 제일의 CF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시시한 3류상품이나 찍는 감독은 싫어.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의 안방에서 내
가 만든 CF를 보게 만들 거야`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그의 욕망에
비하면 시시껄렁한 바램인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굉장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자신의 굉장함을 위해 낮이든 밤이든 준비를 합
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
도 그 어려움을 염두에 두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굉장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인생을, 사물을, 세계를 더 멀리 더 크게 봅니
다.
그의 생각이나 행동은 타인의 눈에 이상한 짓이나 하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
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인 그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 세상이란 굉장한 짓을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
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굉장한 일을 하려고 합니까?
당신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어릴 때의 자신
우연에게 감사하면 우연히 만나는 힘이 신장된다.
모든 만남에는 우연성이 작용합니다.
우연히 만날 수 있는 힘도 또한 초능력입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무엇이든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연을 초래하는 법입니다.
입시 공부의 단계까지는 우연히 만나는 힘을 측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편의점에 들렀을 때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코끝이 찡하는
감동을 느끼고는 무엇을 하러 여기 들어왔는지도 까맣게 잊은 채 황망히 돌아
나와 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우연에 따른 음악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은 무슨 노래일까? 누구의 곡일까?`
마음속으로 노래가 깊이 파고들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러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에 그 편의점에 들어간 것은, 당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곳에서 들은 음악에 의해서 당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작사가가 될지도 모르고, 음악가가 될지도 모르고, 지금 껴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초능력은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러뜨리거나, 구름의 형태를 바꾸거나 투시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바둑이나 유도, 그리고 꽃꽂이까지도 몇 단 몇 급이라고 수치로 표시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무엇인가를 하는 힘`은 수치화 할 수 없습니다.
크나큰 감동을 받은 그 노래가 나오는 시간에 편의점에 들어가는 힘은 절대로
수치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겐 그렇게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는 뛰어난 능력이 있습니다.
바둑 4단에 유도 2단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균 3단의 힘을 가지고 있
다고 가르치는 것이 입시 공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가는 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종류가 다른 능력의 평균점 따위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사람이 국어가 4에 수학이 2의 성적을 받았다면 평균 3이라고 하
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납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소를 4마리 가지고 있는 사람과 밭을 2필지 가지고 있는 사람의 평균
치를 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소와 밭의 평균이 3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단위가 서로 다른 것은 절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수치화된 것은 파악할 수 있고, 심지어 이 세상에 수치화되지 않은 것
은 결코 없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측량할 수 없을 뿐입니다.
수치화되어 있는 것은, 다만 다른 사람이 만든 기준에 맞추어 몇점이라고 점
수를 매기는 것뿐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우연히 어릴때 받은 점
수가 나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기호에 맞추지 못했을 뿐이지, 결코 그림에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닙
니다.
초등학교때 미술 점수가 낮으면, 그 사람은 그림을 싫어하게 되고 다시는 그
림을 그리지 않게 됩니다.
이런 판에 그림 실력이 나아질 리가 없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른이 되어 화가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어릴 때 받은 그림 점수가 좋든지,
선생님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어릴 때 그림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선생님을 만난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평가를 내린 선생님도, 그림은 평가할 수 있지만 다른 재능은 평
가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결국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평가에는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뜻입
니다.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치화 할 수 없는 능력이 바로 초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사람들은 모두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은 지금까지 흘러와서 앞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지금 스무 살인 사람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무엇인가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5년 전에 어느 장소에서 우연히 그렇게 했던 것이, 지금의 당신과 이어져 있
을 것입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도 얼
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연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반추해 보십시오.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과거의 자신과 완전히 분리해 놓았습니다.
과거는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것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과거는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당신을 찾아 보십시오.
어릴 때의 당신과 재회해 보십시오.
그러면 미래의 당신이 보일 것입니다.
단벌옷에도 언제나 자신만만한 여자
내면의 아름다움을 아끼는 여자가 더 아름답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자들의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대한 것이어서, 어
떤 철학자는 인류 역사라는 것이 여자의 미에 의해 이룩되고 또 파괴되어 왔다
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20대가 되면, 여자들은 더욱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아져서 그것
을 추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자랑스레 여기는 여
자가 있는가 하면, 외모에 도무지 자신이 없어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여자도
있습니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아름답게 낳아 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면서 스스로 목숨
을 끊은 여자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문제가 이쯤에 이르게 되면 아름다운 외
모와 그렇지 못한 얼굴이 성공적인 삶의 결정 기준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
이 됩니다.
요즘에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해서 완전히 다른 예쁜 얼굴로 성형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기어이 아름다워져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
해집니다.
한 여인이 생각납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불문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언제나 수수한 청바지 차림이었습니다.
간혹 상의가 바뀌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애용하는 것은 검은색 계통의
티셔츠여서 멀리서 청바지에 검은 색 티셔츠를 입고 걸어오는 여자가 보이면 틀
림없이 그녀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녀가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이라는 건 나중에야 안 일
이지만, 그런 것말고 그녀를 나타낼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거의 없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녀와 대화를 나눠 본 남
학생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입니다.
나는 그래도 그녀와 대화를 나눈 몇 안 되는 남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나마도 그녀와 마주앉아 있은 시간은 30여 분 정도, 그러고는 끝이었고 나
는 다시 먼 발치로 그녀를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3학년 초 어느 날의 지하철 안에서였습
니다.
그날, 무슨 일인가로 외출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마침 그녀도 같은 차
를 탔던 것입니다.
내가 막 출발하려는 전동차에 몸을 날리듯 뛰어들어 어느 좌석 앞으로 다가갔
는데, 때마침 그녀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전에 한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눈인사 정도도 나눈 적이 없
는 사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가 나를 못 알아볼 줄 알고, 나는 슬그머니 고
개를 돌렸습니다.
놀랍게도, 먼저 인사한 쪽은 그녀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습게도, 당황한 쪽은 나였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대화는 극히 일상적인 내용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녀로부터
묘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느낌이란 묘한 것이어서, 한순간의 대화에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충실함은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건 억지로 숨긴
다 해서 감춰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언뜻 보이는 미소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고 느껴지고, 꼭 필요한 말을 자연
스럽게 뱉어 내는 말솜씨가 너무도 야무져 보였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그렇게 안정감 있게 자신을 나타낼 수 있고, 지켜
나갈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그녀와 마주한 30분은 일생을 통틀어서 본다면 지극히
짧은 한순간이지만, 웬일인지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모습을 머리 속에 담아 두
고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는 많은 여학생 속에서 일년 내내 청바지에 검은 티셔
츠만 고집하는 그녀는 물론 특이한 여자이기는 하지만, 내눈에는 그녀를 더 특
이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내가 그녀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은 15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이
었습니다.
해외에서, 각 분야에 걸쳐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을 취재 보도하는 연재
기사가 어느 신문에 매주 실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녀의 이름을 보았던 것입니
다.
`프랑스 언론계에서 맹활약 중인 일본 태생의 작은 보석.`
이런 기사 밑에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과 이름이 나와 있었던 것입니
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이 없던 여학생이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니, 나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여전히 예쁜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청바지에 검은 색 티셔츠는 아니지만, 15년 전과 똑같이 여전히 수수한 옷차
림이었습니다.
나는 여성들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열과
성을 다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극 찬성하는 편이지만, 외모보다는 내면
의 아름다움을 더 귀하게 여기는 여성을 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런 여성을 만나면 마음이 끝없이 편안해집니다.
20대인 당신은 당신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외모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에 더 취
하게 되고, 그런 여자를 더 가까이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년 내내 단벌옷을 입고 다니더라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수
십 벌의 보이지 않는 옷을 갈아입을 줄 아는 그런 여자를 더 가까이 하십시오.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가꾸기가 어렵습니다.
미래의 꿈을 하루라도 더 빨리 완성하기 위해 내면에 차곡차곡 아름다움을 쌓
아 가는 여성을, 20대인 지금 만나십시오.
고기잡이에 실패하고 돌아온 늙은 어부
만선의 꿈이 무산되었어도 늙은 어부는 휘파람을 분다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했던 고기잡이배들이 저녁노을을 등에 지고 하나둘 항
구로 돌아오는 풍경을 본 적이 있습니까?
비릿한 바다내음을 맡으며 바람에 떠밀려 항구로 돌아오는 고기잡이배들을 바
라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노래도 있지만, 이런 것도 20대인
당신에게는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체험입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지낸 늙은 어부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따가운 햇살과 거센 바닷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피부는 구릿빛이다 못해 검붉
게 변해 버렸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바다같이 드넓어서 언제 대해도 편한 그런
노인입니다.
헤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그분의 번쩍이는 눈과 우람한
팔뚝을 보노라면, 나는 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이제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고령의 기차를 연상하곤 합니다.
최근에 내가 그분을 만난 것은 작년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매달렸던 책의 집필을 모두 끝내고 머리라도 식힐 겸 어딘가로 가서
한 이틀 쉬었다 와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문득 그 노인이 생각났습니다.
이튿날 오후 늦게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분은 고기잡이를 끝내고 막
귀항하려는 참이었습니다.
아마 그분은 새벽 일찍 만선의 꿈을 실은 배를 띄웠을 것입니다.
멀리서 나를 알아본 그가 힘껏 손을 흔들었고, 나 역시 그에게 손을 흔들었습
니다.
우린 그렇게 언제 만나도 기분이 좋은 사이입니다.
나는 멀리서도 그분이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있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
었습니다.
휘파람을 부는 일이야말로 그분의 주특기이자 취미였으니까요.
잠시 후에, 선착장에 배를 댄 그분이 내게 소리쳤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게나. 오늘 잡은 고기를 꺼내 놔야지.”
얼마 뒤에, 노인이 오늘 하루 동안 잡은 고기를 선착장 한 모퉁이의 창고 바
닥에 꺼내 놓았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노인의 오늘 어획고가 형편없음을 알았습니다.
다른 어부들에 비해 너무나 적은 양이었기 때문에, 나는 위로라도 할 겸해서
노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오늘은 운이 없었나 봅니다. 신통치 않은데요?”
나는 이럴 때마다 노인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부생활 40년이야! 만선일 때보다 이렇게 공치는 날이 훨씬 더 많은 걸. 걱
정할 게 없다네, 내일이 있잖은가!”
나는 이런 날 특히 더 신나고 크게 불어 제키는 그분의 휘파람소리가 좋습니
다.
오늘의 성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지만, 내일이 있고 또다른 내일이 그 뒤에
있기에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는 그분의 밝은 얼굴이 좋습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희망을 낚는 어부입니다.
만선이 있으면, 빈배도 있습니다.
언제나 만선의 꿈을 이루고 돌아오는 어부는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늙은 어부는 그런 진리를 이미 오래 전부터 깨닫고 있기에, 초라한 어획고 앞
에서도 휘파람을 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알고 있습니다.
희망은 절망보다 훨씬 더 가치 있으며, 사람을 훨씬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오늘은 그런 노인을 한번 만나러 떠나 보지 않겠습니까?
지하실 방의 독신주의자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면 인생의 폭이 넓어진다
`인간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
감히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 간은 누구나 결혼의 굴레로부터 도망칠 권리가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독신으로 사는 것도 자기만의 개성이어서, 통계에 의하면
독신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추세라고 합니다.
대학 3학년 때, 나이 40이 가까워지도록 결혼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교수님 한 분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독신철학은 아주 특이했습니다.
“자네 눈에도 독신주의자가 희귀동물처럼 보이나? 내 눈에는 오히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보인다네. 혼자 살기도 어려운데, 왜 귀찮게 여자까
지 내 삶의 영역에 끌어들인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그 교수님의 말씀은 만사가 귀찮다는 겁니다.
결혼은 종족의 보존을 위해 인류가 편의상 만들어 놓은 제도일 뿐, 거기에 반
드시 따라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홀로 자유롭게 살겠다.`
이렇게 외치면서 독신을 고집하는 사람은 분명히, 결혼할 나이가 되면 누구에
게 질세라 서둘러 짝을 찾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대단히 대조적인 가치
관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은 성인들 중 열에 아홉은 결혼을 하는 세상에서 나머지 하나 독신을 고
집하는 사람은 분명히 독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신주의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극히 일반화된 룰을 단호히 배격하고, 혼자만의 길을 고집스럽게 찾
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20대는 가치관의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따라서 당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 때의 그 독신주의자 교수님은 어느 작은 아파트의 지하실 방에서 살았습
니다.
도대체 마흔이 가까운 독신주의 남자는 어떻게 살까 궁금해서, 한번은 교수님
댁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 누가 침입해오는 것이 싫다네. 거긴 나 혼자만의 세상
이거든.”
소문에 의하면, 그는 집안에서 철저한 나체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또다른 소문에 의하면, 그는 몇 년 내로 대학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만두집을
개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교수직보다는 장사가 더 자기에게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이렇게 그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
다.
그는 존경받는 교수직도 자신이 싫으면 당장 때려치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
다.
몸을 가리는 의복 따위는 훌훌 벗어 던지고 진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모습을 남들 눈에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혼자만의 울타
리를 치고 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20대인 당신은 이런 사람도 거부감 없이 만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큰 인물이 됩니
다.
사회라는 거대한 틀 안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 하나 하나가 다 당신의 성격이나 취향에 맞으리라고 기대한다면, 한마디
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지하실 방의 독신주의자 교수님이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다면, 내일쯤 한번
만나고 싶어집니다. 단 집으로는 방문할 수 없을 테니 가까운 찻집이 좋겠군요.
교수님은 술을 전혀 안하시거든요.
이름 없이 늙은 여류시인
아직도 인생을 예찬하는 그녀의 노래가 아름답다
20대 초반에 이미 필명을 날리며 만인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머
리에 서리가 내려앉을 때까지도 여전히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늙
어 가는 시인도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작가로 성공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천재작가라고 부릅니다.
인생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은 그가 삶의 본질에 접근해서 인간의 문제를 하
나하나 풀어헤치고 만인을 공감케 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천재가 아니
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인생의 나이테가 차곡차곡 쌓인 늙은 나이의 작가가 누구의 주목
도 받지 못한 채 세상 구석 어딘가에서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면, 사람
들은 그를 천재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인생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평범한 작
가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분도 그런 작가입니다.
60이 넘도록 누구의 관심도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자기만의 세계 속에
서 고집스럽게 글을 쓰는 여류작가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특이한 성격 탓도 있지만, 그분의 이런 오랜
무명생활은 주위 사람들을 너무나 안타깝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물었습니다.
“신문에 오르내리며 필명을 날리는 후배 시인들을 보면 부럽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런 질문이 얼마나 그분에게 무의미한 일이었
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시들은 하나같이 인생을 예찬하는 작품들이고, 또 하나같이 삶의 순수
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찬미하는 작품을 한 계단 두 계단 쌓아 올
리는 일은 타인의 칭송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굴곡 많은 우리네 인생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 부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
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응원과 동조가 필요한 일도 아닙니다.
내면적 충실성, 자신의 목표를 향해 언제나 일관되게 걸어가려는 인내심 등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생을 바치신 그분의 삶은 아름다운과 따뜻함 그 자체
였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시는 처음부터 순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조용함이 요란한
것을 좋아하는 이시대에 쉽사리 주목을 끌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시 속에서 단 한순간도 세상을 미움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없는 따사로운 애정을 봅니다.
인생을 절망이나 허무로 보지 않고, 언제까지나 희망으로 보는 그분의 밝은
눈동자를 봅니다.
이름 없이 늙어 버린 시인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인생을 예찬하고 그렇게 함
으로써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히 쌓아 나가는 그분만의 고집을 봅니다.
20대인 당신은 이런 여류시인을 알고 있습니까?
서점에 나가면, 이런 시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 같이 다정다감한 손길로 당신의 지친 어깨를 두드려 주는 그런
시인을 말입니다.
자수성가한 부자
맨손으로 달려 온 그의 피나는 일생을 들여다보자
부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떵떵거리고 사는 부자이고, 다른 하나
는 맨주먹으로 일어나 손꼽히는 부자가 된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이상,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애초부터 부자가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
은 어느 정도 부를 쌓았다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신은 누구에게 부의 특권을 주고, 누구에게 그럴 힘을 빼앗아 가는 걸
까요?
정말로 사력을 다해 노력을 하는데도 부자는커녕 남의 신세만 지는 인생을 면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노력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사이에 일확천금의 꿈을 이
룬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목숩을 끊기도 하
고, 어떤 사람은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꼭 부자가 될거라고 믿으
며 더 힘껏 팔을 걷어붙이기도 합니다.
부자 중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인정을 받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수성가해서 돈
을 모은 사람입니다.
피나는 노력, 남모르게 흘린 눈물, 가슴 벅찬 희열, 그리고 보람...
그들에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감히 꿈꾸지 못
할 또다른 재산이 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 물어 본다면 아마 대부분이 자기가 쌓은 부보다는 그
런 정신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적 부는 순식간에 소멸될 수 있지만 정신적 재산은 영원
히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꿈이 부자가 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를 만나 보십시오.
요즘 젊은이들의 슬픈 공통점 중 하나는, 무슨 일에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
의 효과를 얻으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20대들은 굉장히 조급합니다.
길을 떠나기도 전에 벌써 지름길을 찾고, 나무를 심기 전에 벌써 열매가 열리
기를 바랍니다.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당장 이런 공짜 심리를 버리십시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억만금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 치고 최후까지 부자로 남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이 말이 진리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수성가한 부자를 만나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일은 그저 적당히 해서는 되는게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
입니다.
최선을 다한 삶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의 절벽에 도전했던 그들 나름의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육체와 야무진 목표뿐이라면, 당신도 그가 했던 방
법을 배우십시오.
사회에는 도처에 학교가 있으며, 어디든지 교육자가 있습니다.
20대인 당신에게 부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를 만나 보십시
오.
학교에서 결코 접해 보지 못한 아주 멋진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연당한 젊은 여자
사랑에 실패해 봐야 진짜 사랑을 알게 된다
20대에는 한번쯤은 사랑에 퇴짜를 맞아 봐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20대가 아니고서는 사랑에 퇴짜를 맞기에 적당한 시기가 없습니
다.
만약 나이 40이 넘어서 사랑에 퇴짜를 맞는다면, 그것처럼 참혹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20대에는 사랑에 퇴짜를 맞는 일이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는 때때로 실연 당하는 것도 하나의 무용담이 되기도 합니
다.
남자들은 곧잘 사랑에 실패합니다.
사랑에 실패하고 자살한 친구가 기억나는데, 당시 우리 기분은 오죽했으면 그
랬으랴 하고 동정하기보다는 `무슨 그깟 일로 죽기까지 하나?`라는 황당함이었
습니다.
젊을 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양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서서히 세상의 숱한 난제와 부딪치며 살아가
다 보면 내게도 사랑의 실패로 가슴앓이를 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의
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자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에 서툴기 때문에 누군가
를 남몰래 사랑한다고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표현했다가 퇴짜를 맞는 행동 따위
는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여자에게는 실연의 아픔을 더 크게 합니다.
참으로 어렵게 자신의 속내를 밖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좋은 열매를 맺지 않
았다면, 그 참담함은 말로 다 못할 지경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실연의 아픔을 평생 동안 짊어지고 사는 여자 이야기는 영화나 문
학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됩니다.
나는 평소에 그런 영화를 보면 한가지 불만이 있었습니다.
모든 영화가 실연당한 여자를 지나치게 초라하게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한쪽 면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승리는 아름답고, 실패는 비참하다는 단순 논리에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한번 시작한 사랑에 좋은 열매가 맺는다면 더 이상 멋진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실패가 무조건 비극이요 불행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독선
적인 시각입니다.
사랑의 실패를 맛봐야 진짜 사랑의 가치를 아는 법입니다.
실연당한 경험이 있어야 더 풍부한 인간미의 소유자가 됩니다.
실연당한 사람을 만나 보십시오.
단순히 짝사랑을 하다가 거절당한 사람도 좋지만, 세상과 맞바꿀 만큼 사랑을
했는데 무슨 이유인가로 결별하게 된 연인들을 만나 보십시오.
사랑하다 헤어지는 일은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20대 젊은 나이에 누군가를 한번도 사랑해 보지 못한 것이 불행한 일
입니다.
20대인 당신이 누군가를 가슴이 찢어지도록 사랑해 보는 일도 소중한 경험이
되겠지만, 실연을 당한 젊은 여자를 만나 보는 것도 당신에게는 감동의 만남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로부터 사람의 진정한 의미, 만남의 소중한 가치, 그리고 그것을
잃었을 때의 크나큰 상실감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절망을 노래하는 거리의 악사
절망을 노래하면서 희망을 발견하려는 그의 눈빛이 그립다
유난히도 추운 날씨였습니다.
독일의 한 작은 도시 역 광장에서 만난 그는 거리의 악사였습니다.
30대 중반의 조금은 마른 체구였는데, 아코디언을 아주 구성지게 연주하고 있
었습니다.
아마 독일의 전통음악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간혹 동전 한 닢을 던져 주었지만, 발 아래 놓인 작은 모
자에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동전만 간신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건 너무도 이국적인 광경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주면, 그가 보일
듯말듯한 미소로 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내 눈에는 그의 미소 뒤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만 보였
습니다.
나는 작가다운 흥미랄까, 그의 어두운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나는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도시를 둘러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잠시 서서 그를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쓸쓸함이나 아픔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주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상태를 자기 목소리나 노래 속에 그대로 담게 됩니다.
마음이 밝고 가벼운 상태라면, 목소리마저 밝고 가볍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 거리의 악사는 지금 앓고 있는 무엇인가의 아픔을 저런식으로 쓸
쓸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일까?
저렇듯 초라한 옷차림으로는 이 추위를 견디기 어려울 텐데...
순간 나는 그가 가련해 보여 견딜 수가 없었고, 그의 음악이 더욱 슬프게 들
리는 걸 참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은 절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절망을 바라지 않으
리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그의 눈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눈은 꿈을 꾸는 듯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맑은 눈빛이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한 눈빛이었습니다.
내게는 그 눈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
였습니다.
희망은 그렇게 끈질기게 바라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이름의 사슬에 온몸이 묶여 있을지라도 눈만은 희망이 있는 쪽을
바라봐야 합니다.
20대는 온통 실패투성이로, 성취나 희망보다는 좌절이나 절망에 더 가깝습니
다.
그럴 때 대부분의 20대들은 역시 나는 안 돼 하면서 희망을 붙잡고 있는 손을
맥없이 놓아 버립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나는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나 희망이 달아났다고 생각될 때면 늘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났던 거리의 악사를 떠올립니다.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눈만은 하늘의 희망을 바라보고 있던 그
눈동자 말입니다.
나는 그때 보았던 거리의 악사가 지금쯤은 어느 화려한 무대에서 신이 나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끔 유럽에 갈 기회가 있으면, 이번에는 거리에서가 아니라 큰 레스토랑 같
은 데서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눈길을 던지곤 합니다.
전에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가 연주하던 독일 민요를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될 때, 거리로 나가 보십시오.
도심 한복판 어느 거리에선가 홀로 서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를 만나면
그의 눈빛을 한번 지켜보십시오.
연주하고 있는 음악 뒤에 아프게 흐르고 있는 그의 절망도 지켜보십시오.
그러면서 희망이 있기 때문에 눈빛이 밝은, 저 남루한 옷차림의 거리의 악사
에게 동전 한 닢을 아끼지 마십시오.
새벽의 편의점에서 빵을 먹고 있는 중년 사내
정체불명의 사내를 알고 있으면 마음이 풍부해진다
내가 그 중년 사내를 처음 만난 것은 새벽의 편의점에서였습니다.
나는 밤을 새워 글을 쓰는 일이 많기 때문에, 뭔가 생각의 실타래가 잘 풀리
지 않을 때나 갑자기 바람을 쐬고 싶어질 때면 동네 어귀에 있는 편의점에 가곤
합니다.
내가 편의점에 들어갔을때, 그 사내는 마침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평범한 중년 신사였는데, 새벽의 편의점에서 빵으로 요기
를 하고 있다는 건 그다지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건 두 달 후쯤, 바로 그 편의점에서였습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단박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양복 차림에 또 빵을 먹고 있었는데, 별로 맛이 없는 듯 자꾸만 눈
살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이런 때는 강한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뭐하는 사람일까?
두 번이나 새벽의 편의점에서 마주쳤는데, 그렇다면 이 사내는 매일 이렇게
편의점에 오는 것일까?
출근길일까?
아니면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요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일을 하는 사람일까.
그러나 때는 새벽 세 시경으로, 출근을 한다든지 퇴근을 하기에는 뭔가 맞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편의점 밖으로 나와서도 한참 동안 유리창 너머로 그를 지켜보다가 집으
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도 새벽의 편의점에서 한 번 더 그와 마주쳤지만, 말을 건네 볼 엄두
는 내지 못했고 그의 정체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궁금한 존재라 해서, 반드시 그의 정체를 알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한두 사람쯤은 정체불명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
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내 생활 영역 안에서 존재합니다.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나를 알아보고, 한쪽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해 온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한낮의 공원 벤치에서 하염없이 졸고 있는 젊은이도 무엇 하는 사람인지 궁금
합니다.
남들이 다 떠나간 운동경기장에 마지막까지 남아, 응원하던 팀의 패배를 언제
까지나 안타까워하는 삶의 정체도 역시 궁금합니다.
미지의 존재는 우리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갑자기 눈에 띈 정체불명 여인의 존재를 알고 싶어 몇 정거장이고 무작정 따
라가 본 어느 날의 경험이 나중에 얼마나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내 경험으로는 그런 여인일수록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얼굴이 기억
됩니다.
만남에는 반드시 인과가 있게 마련이지만, 정체불명의 존재와의 만남은 그런
형식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사랑합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누군가 나를 정체불명의 사내로 여기며 먼 발치에서 눈여겨보고 있을지도 모
르겠다구요.
말쑥한 차림의 동성연애자
나와 사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된다
대학 1학년 초겨울의 일입니다.
겨울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늦은 오후의 캠퍼스를 벗어나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는 내게 한 사내가 다가왔습니다.
말쑥한 차림의 신사였습니다.
“자네, 와세다에 다니는 학생인가?”
낮은 바리톤 음성이 그날의 날씨를 닮아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나하고 잠시 얘기 좀 하겠나?”
“무슨 일이십니까”
“난 이 학교 졸업생일세. 15년 전의 일이지만... 세일즈맨은 아니니까 안심하
게.”
나는 천성적으로 이런 만남에 흥미를 느끼는 편입니다.
추리소설의 한 대목 같은 만남과 정체를 모르는 사내의 접근은 내게 마음껏
상상의 세계를 펼쳐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학교 앞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마주앉고 보니 대단히 준수하게 생긴 중년 사내였고, 겉으로 풍기는 지적인
인상이 나의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했다네. 와타나베 교수님은 건강하신가?”
나는 고작해야 대학 1학년으로, 내가 전공하는 학과의 교수님들 이름조차 제
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학교에 관한 얘기, 나로선 알지도 못하는 교수님들 얘기로 시
간을 끌어 나를 조바심나게 만들었습니다.
“저... 무슨 일이신지요?”
내가 이렇게 독촉하자, 그가 싱긋 웃으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몇 장의 서류를
내놓았습니다.
그가 꺼내 놓은 서류는 필리핀 여행에 관련된 것으로, 놀랍게도 거기엔 왕복
항공권에 호텔 숙박권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엔 해외여행 붐이 일어 방학이 되면 필리핀이나 싱가폴,
좀 형편이 좋은 친구는 괌이나 하와이 등으로 떠나는 게 대유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해외여행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인데다, 이번 겨울방
학엔 영화와 관련된 빠듯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원한다면 자네와 필리핀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어떤가?”
호기심이 슬슬 의혹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정체불명의 중년사내가 난데없이 나타나, 느닷없이 내미는 필리핀 항공권이
라...
나는 이럴 때일수록 추리소설의 주인공인 된 듯이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상대의 저의를 캐기 위해 역습을 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짜는 아닐 테고, 제가 하는 일은 뭔데요?”
그러자 그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자네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네. 우린 그저 4박 5일 동안 관광을 즐기는 것
뿐이야.”
그 순간 나는 처음부터 그의 입가에서 떠날 줄 모르고 있는 미소가 대단히 은
밀하다는 것 깨달았습니다.
그의 눈가에 머물고 있는 잔잔함이 실은 뭔가를 은밀하게 탐색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그런 은밀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초면에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여행을 함께 떠나자는 게 제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내가 강하게 얘기를 하자, 그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생각지도 않은 항공권과 숙박권 두 장이 생긴 거라네. 좋은 후배와 짝
을 이뤄 푹 쉬었다 오고 싶어서 그런다네.”
친구 다니구치의 말이 떠오른 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며칠 전에 그가 허겁지겁 강의실로 뛰어 들어오면서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습
니다.
“우리 학교 부근에 동성연애자들이 출몰하고 있다는군! 멋진 파트너를 찾는
다는 거야. 예쁘게 생긴 남학생은 특히 조심들 하라구!”
이 중년사내가 문제의 그 동성연애자였습니다.
“사실은 제 고향이 필리핀이거든요. 이번 겨울방학엔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하기 때문에 동행해 드릴 수 없겠는데요. 미안합니다.”
그이 눈가에 섭섭함이 번지는 걸 뒤로 하며, 나는 재빨리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동생연애자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가?
그들은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이성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이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인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동성연애자들을 비난하거나 그 반대로 찬성하려는 것이 아닙니
다.
문제는, 나와 사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존재, 그것도 특별하게 사는 사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가치관을
확대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나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만 인정한다거나, 그런 사람만 존재하
리라고 믿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세상은 동성연애자보다 더 특이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특이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 당신의 삶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너그러운 스승
너그러운 칭찬이 평범을 비범으로 만든다.
`당신은 외국어를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취직시험 면접에서 반드시 묻는 질문입니다.
바야흐로 국제화시대에, 외국어 하나쯤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산이 됩니다.
예전에 나는 취직을 위해 면접을 볼때 잘하는 외국어를 묻는 시험관에게 이렇
게 대답했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고등학교 때 스페인어를 했습니다.
따라서 도합 5개국어입니다.”
5개국어를 한다고 하니 웬지 거침없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자세히 모
면 모국어인 일본어가 들어 있으니 실은 4개국어를 하는 셈입니다.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기 때문에 적어도 인사말 정도는 구
사할 수 있습니다.
애인을 만들려면 파리 태생의 여자가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프
랑스어를 택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생각만큼 실력이 향상되지 않아서 난 언제나 인사말 수준에서 벗어나
지 못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프랑스인을 만나면 되든 안 되든 마구 프랑스어로 대화하는데
도 난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프랑스어에 `A`학점을 받았던 것입니다.
나에게 귀중한 A를 선사해 주신 분은 야마자키 고타로 교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은 프랑스 영화의 번역을 많이 하셨는데, 내가 프랑스 영화광인 걸 아시
고는 남다른 애정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영화의 자막 번역자로 하면 일본 내에서도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는데, 야마자키 교수님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나는 새로 들어온 프랑스 영화의 일본어 번역 대본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희열 때문에 그분의 작업실을 무시로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시 프랑스 영화광인 그분과 신작영화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을 벌이
곤 했습니다.
내가 그분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어줍잖은 내 의견을 언제나 훌륭하다고
칭찬해 줌과 동시에 한 차원 높은 감식안을 가질 수 있게 언제나 예리하게 지적
하고 인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네는 훌륭한 영화적 자질을 가지고 있네. 그러나 그런 면은 또 이렇게 생
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열심히 노력해 보라구!”
이런 식의 어법이 나를 얼마나 고무시켰는지, 이런 식의 가르침이 나를 얼마
나 빠르게 성장시켰는지, 나는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요.
그건 그렇고,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외국어를 좋아해야 합니다.
좋아하기 위해서는 우선 A학점을 따야 합니다.
그러나 내 실력으로 A학점을 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무리 교수님과 친하고, 그분의 작업실을 무시로 드나들며 영화에 대해 토론
을 벌인다 해도 실력 없는 학생에게 선뜻 A를 줄 교수님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내게 A학점을 주셨던 겁니다.
나는 지금도 성적표에 적힌 A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빙그
레 웃으시던 그분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그것은 말없는 격려, 끝없는 사랑, 따뜻한 지원, 그리고 무언의 채찍질 등등의
복합적인 그 무엇이었습니다.
야마자키 교수님의 따뜻한 온정이 깃든 A학점 덕분에 나는 프랑스어를 좋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습니다.
옛날엔 프랑스 영화만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프랑스어도 좋아하게 된 것입니
다.
일생을 통해, 내게 무언의 채찍과 너그러운 사랑을 동시에 보내 주는 한 사람
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평범을 비범으로 칭찬하며 격려해 주는 그분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평범을 거
부하게 만든 시초를 주었던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비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처
럼 피부에 와 닿는 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는 천재가 아니지만, 평범을 거부하는 비범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은 갖
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20대인 지금, 당신 가슴속에 잠들어 있는 비범함을 일깨워 주는 한 사람을 만
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언제나 평범을 거부하면서도 비범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할
때, 등을 두드리며 격려 해 줄 한 사람이 당신 옆에 있습니까?
무한히 넓은 삶의 광야로 나아갈 당신이라면, 지금 그런 사람을 찾으십시오.
사라진 좀도둑
경찰의 예리한 눈에서 배우는 현실 진단 방법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하면 한번쯤은 좀도둑에게 털리는 편이 좋다는 게 내 생
각입니다.
좀도둑에게 털린다는 것은 실로 기묘한 체험입니다.
자신만의 공간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더욱 이상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건 참으로 언짢으면서, 동시에 기이한 체험입니다.
20대 초반 어느 날, 나에게도 좀도둑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그날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내 자취방의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쇠를 돌리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몇 번을 계속 돌리자 그때서야 어렵게 문이 열렸는데, 그 순간 커튼이 펄럭였
습니다.
1층 베란다의 창문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은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창문을 열고 들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
습니다.
`아! 내가 안 닫고 나갔나 보군` 하고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창문의 잠금쇠 부분이 부셔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조심성이 없다니! 도둑이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빨리
문을 고쳐야겠군.`
나는 천하태평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미 도둑이 들어왔다 나갔는데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교묘하게 짜여진 콩트처럼 말입니다.
더구나 한심한 일은 내 방에는 원래 책이 마구 흩어져 있어서, 도둑이 어지럽
게 흩뜨려 놓았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문득 옷장을 쳐다보니, 서랍이 아가리를 벌린 채로 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깨닫지 못한 나는 느릿느릿 그쪽으로 걸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
습니다.
`너무 지저분한데, 오늘은 대청소라도 해볼까?`
그런데 붙박이장 안에서 청소기를 넣어 둔 상자를 꺼내려고 했을때였습니다.
이미 그쪽도 침입자의 거친 손길을 피할 수가 없었는지 마구 파헤쳐져 있었습
니다.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도둑이 들어왔었구나!`
우선 경찰에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
습니다.
강도라든지 소매치기 같으면 현행범이니까 어디로 걸어야 할지 알겠지만, 좀
도둑한테 피해를 입으면 어느 번호로 걸어야 하나?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서 파출소까지 갔습니다.
“저,도둑이 들어온 것 같은데요...”
“무엇을 털어갔나요? 피해액과 피해물품을 여기다 적으세요.”
조사 경찰관이 종이 한장을 내놓았지만, 나는 너무나 허둥대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까다로운 절차와 경찰이 내 방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지고 집
주변의 탐문조사를 위해 동네사람들을 오라가라 귀찮게 만든 상황에 대해서는
한 편의 소설처럼 복잡하지만, 나는 거기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라진 좀도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물론 첫번째로는 `문단속을 잘하라`였
지만, 그보다 더 큰 가르침은 경찰이라는 존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는 그들의 방법이 나는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경찰의 눈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이, 그것을 통해 사라진 범인을
유추해 내고 그들의 행방을 쫓기 시작합니다.
까다롭고 지루한 반복적 검증을 통해 범인의 윤곽을 찾아 나가는 경찰의 문제
해결법을 배운다면 살면서 만나는 어떤 문제라도 쉽게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좀도둑이 내게 피해만 입히고 간 것은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약간의 돈과 고장이 잦아 새것으로 바꾸려고 했던 고물시계, 그리고 그 밖의
싸구려 물건 등으로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교훈.
20대엔 한번쯤 가볍게 좀도둑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빼앗긴 것이 있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내것의 소중함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욱 그렇습니다.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홈런타자
좌절도 때로는 약이 됨을 그에게서 배운다.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홈런타자를 만나 보십시오.
그는 지금 너무도 간절한 시선으로 운동장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라운드로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부상을 당한 몸
으로는 관객의 자리에서 동료들이 뛰는 모습만 바라봅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관중의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운동장
에 있었습니다.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마지막 공격 찬스에서 무리하게 달리다가 그만 상
대편 선수와 부딪치는 바람에 무릎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의사는 석 달 정도는 쉬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팀의 기둥선수에게 석 달의 휴식은 너무 길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의사입니다.
더구나 지금 그가 속한 야구팀은 1, 2위를 다투고 있어서, 그가 빠지게 되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의사를 붙잡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뛰게만 해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선고는 내려졌습니다.
의사는 아무 대꾸도 없이 그를 병실로 옮겨 놓고는 돌아서면서 이런 말을 남
겼습니다.
“한동안 쉬는 것도 자네의 장래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네.”
홈런타자는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에 묻혀서 자랑스럽게 홈인하는 자신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만이 전부였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운동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좁은 병실에, 그것도 불편하
기 짝이 없는 침대에 누워 있자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석달이라구?`
석 달이라면 이대로 올해의 시즌경기가 끝나 버릴 것입니다.
내년 시즌에는 어떤 탁월한 신인선수가 나와서 그의 자리를 빼앗아 갈지 모릅
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절반은 미치광이처럼 지냈습니다.
실제로 목발을 짚은 채로 무턱대로 병원밖으로 나가려 한 적도 있었습니다.
병실의 벽을 있는 힘껏 후려치는 것으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나타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창 젊은 나이의 운동선수가 감옥 아닌 감옥에 갇
혀 있자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세상의 주인공인 양 살아오다가, 갑자기 모든 이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지는 듯
한 생각이 들자 그 실망감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다가 그는 차츰 잔잔해져 갔습니다.
안달을 한다고 해서 부러진 무릎뼈가 삽시간에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미치광
이처럼 병실 창살을 두드린다고 해서 홈런을 쳤을 때 보내 주었던 박수가 갑자
기 터져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이다. 그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필요한 진리를 깨달았던 것입
니다.
이렇게 깨닫기만 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묵묵히 기다리
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제야 그는 마음의 평화와 함게,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
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관중들의 박수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알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게 모든 건 아니라는 것을 뼈져리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에는 홈런보다, 박수보다, 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한동안 쉬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
니다.
10개의 홈런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을 부상이라는 좌절을 겪고 나서야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이 무척이나 푸르러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키가 한 뼘쯤은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담당의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홈런타자는 그에게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진솔한 미소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 홈런타자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어지는데, 시간이 어떠신지요?
선거에 패배한 국회의원 후보
남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한다.
20대에는 선거운동이 되어 닳도록 뛰어 보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선거에 패배
한 국회의원 후보를 만나 보는 것도 당신 인생에 크게 보약이 되리라 믿습니다.
선거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투표자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선거는 세일즈와 닮았습니다.
남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내고, 그럼으로써 그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일이 바로
상품을 많이 파는 비결입니다.
흔히 세일즈 교육에서는 상품을 팔지 말고 세일즈맨의 마음을 팔라고 가르치
는데, 마음으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상품이라도 결코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
로잡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언젠가 한 사회비평가가,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보다는 떨어
진 사람 중에 휠씬 더 애국적이고 유능한 인물이 많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꿈을 가지고 있고, 제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로 중무장했다 하더
라도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이 마음을 닫아걸고 외면한다면 한 장의 휴지만도 못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진 사람은 어쩌면 이런 면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을까요?
선거에 떨어지자 대부분의 운동원들이 잽싸게 등을 돌리는 광경을 목격한 적
이 있습니다.
결과 발표 직전까지도 흥청대던 선거 사무실이 낙선의 소식과 함게 삽시간에
바닷속처럼 고요해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패배의 현장입니다.
이제 그는 아쉬움과 분노, 실패의 쓰라림과 장래에 대한 걱정, 그런 것들을 제
대로 추스를 사이도 없이 이제부터는 빚쟁이들의 아우성을 들어야겠지요.
반드시 실패의 쓴잔을 마셔 본 사람만이 그 후보의 뼈아픈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대인 당신도 그런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 주고
싶은 심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선거에서 진 후보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지 못한 자신의 허술한 선거
운동 방법을 되씹으며 다음을 기약할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그가 다짐하는 것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정말로 그렇게
하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선거에 진 후보자가 당신에게 가르쳐 주는 건 바로 그것입니다.
선거란 세일즈와 동의어입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세일즈입니다.
그러니까 선거는 인생의 모든 사건을 종합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총체적 세일
즈라고 표현해도 되겠군요.
선거에 이기면, 승리감에 도취된 나머지 운동기간 중의 일들을 까맣게 잊기
쉽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후보자에게는 선거운동 기간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하루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을 해도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하는
법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실패라는 어려움을 준 이유는 바로 이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더 큰 승리의 기쁨을 맛보라는 뜻입니다.
이번에 선거에서 떨어진 후보자는 바로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고는 누구보다 먼저 다음 선거에 대비합니다.
20대에는 선거운동원이 되어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동시에, 선거에 진 후보자를 끝까지 지켜보십시오.
돈 한 푼 없이 식당에 들어가는 친구
죄를 짓고도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배짱이 중요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벌써 몇 시간째 신주쿠 한복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벼르던 영화 한 편을 보고 이제 무엇을 할까 궁리하면서 그렇게 도
심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슬슬 배가 고파 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점심식사도 거른 채 영화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상대방에게 밥값 정도는 있겠지 하고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는
데, 두 사람의 호주머니엔 웬걸 돌아갈 차비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
니다.
이렇게 마냥 걷다보면 아는 친구라도 하나 만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걸
고서, 우리는 신주쿠 넓은 거리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러나 빈털터리 20대에게 그런 행운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식당에서 맛좋은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두 젊은이의
위장을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방법은 하나뿐, 걸어서라도 집으로 가는 일뿐입니다.
토요일 저녁의 환락이 신주쿠 거리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요란한 네온사인이 우리의 가난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있었
습니다.
정의의 사도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연극과 1년 후배 하나가 어두운 빌딩숲 저쪽에서 우리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
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형님들이 여기에 웬일이십니까?”
그러고는 그가 우리를 어느 식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토요일 오후인지라 식당 안은 손님들로 몹시 북적대고 있었는데,그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가장 구석자리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걱정 마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이렇게 큰소리를 땅땅 치는 후배를 믿고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게걸
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형님들은 먼저 나가시지요. 저는 밥값을 지불하고 나가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식사를 다 끝내고 이제 슬슬 차비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온 우리는, 오늘 우리가 맛본 행운에 대해 이야기하고 후배녀
석 칭찬까지 하면서 마냥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후배가 식당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제야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대단히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식당 안을 살짝 들여다 보니 놀라
운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후배녀석이 식당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야기 하고, 주인은 너무나 어
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후배 역시 주머니에 돈 한 푼 없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기세 좋게 식당으로 들어가 우리를 포식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평소엔 얌전하게만 보였던 녀석이었는데, 그런 배짱이 있었다니...
`큰일이다!` 이렇게 내심으로는 생각하면서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우리는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한참 후에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식당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후배녀석이 주인의 배웅까지 받아 가며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또 들르게.하지만 이 다음에 올 때는 밥값은 꼭 가지고 와야 되네!”
이렇게 말하는 주인의 말을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후배녀석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습니다.
“야, 어떻게 나왔어? 돈이 없으면 애초붙 없다고 할 것이지 어떻게 된 거
야?...”
속사포처럼 터지는 우리의 질문에도, 그는 계속해서 웃가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식당주인을 설득했는지, 밥값에다 차비까지 얻어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럴 배짱이 당신에게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죄를 짓고서도 오히려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능력 - 보통사람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능력일 것입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릴수록 더 당당해져야 하고,위기에 처할소록 더 자신만만해
져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 후배 앞에서는 감히 잘난 체를 할 수 없었던 우리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늙은 단역배우
영화 속에서는 단역이지만, 그의 삶속에서는 언제나 주역이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끝내는 평생의 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나의 영화인생
중에는 수많은 주역과 단역들이 넘나들고 있습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있어서는 당연히 나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는, 나와 함께 공연하는 주역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또 새로이 나타나고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나와 일생을 같이한다는 면에서 언제나 주연급입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주연으로, 혹은 조연으로 등장했고 사
회에 나와서는 직장의 상사나 동료들이 나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인생`이라는 영화에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정말로 대작이 되느냐 마느냐 판가름나는 것 같습니다.
이름 없이 늙어 버린 단역배우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로는 배우생활이 벌써 40년째로, 그 동안 얼굴을 내민 영화만 해도 수
백 편에 이른다고 합니다.
어던 사람이라도 40년 이상을 오직 한 가지 분야에 몸담기는 대단히 어려운
법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 생의 전부를 영화에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
도로 그렇게 영화만을 위해 살아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배우생활 40년에, 출연한 영화만 수백 편이 넘는다는데도 그를 영화배우로 기
억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가 40년을 한결같이 영화
외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거리에 나가도 누구 하나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철저한 무명배우 생
활 40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영화배우인 걸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있었
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영화가 주는 매력에 흠뻑 취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역배우가 아니면 도무지 다른 일을 해낼 능력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
일까요?
“모두 다 주연을 하면 누가 단역을 하지? 모두 다 주인공이 되겠다고 날뛰면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수 있겠소?”
이 말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의 다음 말이 내 귓전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내 인생에 있어서만은 언제나 멋진 주역이었지. 어떤
감독도 내 연기에 대해 간섭하지 못할 만큼 위대한 배우였단 말이오.”
그의 짧은 한 마디가 내 머리를 강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젊은 시절 한때는 그도 주연배우를 꿈꾼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
다.
그런 화려함의 독에 이끌려 한동안은 방황도 많이 했었을 법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생각을 고쳐먹었을 것입니다.
모두 다 주역을 꿈꾸는 세상에서, 스스로 단역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말처
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모두 다 화려함을 꿈꾸는 세상에서, 그늘 쪽에 서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
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내가 그를 위대한 배우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훌륭히 자기 역할을 소화해내야 정말 멋진 주연배우입니
다.
그는 비록 영화 속에서는 단역배우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기 인생에 관한 한
언제나 주연배우였던 것입니다.
확실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
는 노련한 선장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이제 새로운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20대의 언덕 위에 올라서 있습
니다.
그 영화가 실패로 끝나건 성공으로 마무리되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 하
나는 당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나 영화나 똑같이 시작이 중요합니다.
멋진 시나리오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가 되기 바랍니다.
늙은 단역배우가 내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스물아홉 살까지 실업자면서 걱정이 없는 친구
묵묵히 자기의 시대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배운다
스물아홉 살까지, 그는 실업자였습니다.
그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표현이지만, 스물아홉 살까지 그는 집에서나 사회에
서나 별로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게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
습니다.
희망은 커녕, 도대체 왜 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하는 게 없
는 그였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직장에 취직을 했거나,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했거나, 아무튼 그처럼 맹목적으로 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걱정을 하다가,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한심한 인생이라고 누구
나 그 사람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장본인인 그 사람은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장래에 대해 막연히 기대를 하는 것인지, 될 대로 되라
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천하태평이라는 말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막 서른 살의 고개를 넘어설 무렵에, 그가 돌연 미국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아무도 그가 미국으로 떠난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 건 5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설마 그가 아니겠지!”
누구나 그 소식을 부정했고, 그 친구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세계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뉴욕으로 가서, 일본의 전통차를 미국인들에게 판
매하여 큰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헤어진 지 7년 정도 지나서, 그가 잠시 귀국했을 때였습
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20대는 준비하는 기간이었어. 나는 20대에 반드시 무엇인가를 이루겠
다고 발버둥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 20대는 미래의 폭풍에 대비하는 기
간이야. 철저히 준비를 한 뒤에 전쟁터로 나가는 거지. 꿈꾸고 생각하고 준비하
는 것만으로도 10년은 결코 긴 기간은 아니야.”
이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만 20세 성인이 되면 `아무 데라도 들어가서 어떤 일이
라도 하라`는 주위사람의 독촉을 화살처럼 받으며 20대의 터널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정말 아무 데라도 들어가서 어떤 일이라도 하다가, 결국은 아무런 보
람도 없이 생의 종착역까지 가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이런 식으로 몰고 가는 20대가 되지는 맙시다.
설령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더라도 초조할 것이 없습니다.
20대에 나름대로의 인생을 남모르게 준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설령 실업자가 되어 무위도식하는 한이 있더라도, 희망도 없는 일에 매달려
평생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내 친구녀석은 그렇게 20대의 10년을 보냈습니다.
남들이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좀더 넓은 땅에서 펼칠 기회만 노
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합에 진 챔피언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챔피언이 진정한 승자다
나는 스포츠 중에서 권투를 가장 좋아합니다.
내가 아는 한, 권투가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투선수의 꿈은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챔피언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피나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마침내 세계챔피언이 된다고 해도, 그가 영원히 그 자리의 영광을 누리는 것
은 또 아닙니다.
언제 어떤 도전자가 나타나 자기를 쫓아낼지 모릅니다.
그래서 챔피언은 영광의 환희를 즐기기보다는 더 많은 땀을 흘리며 훈련을 거
듭합니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챔피언이 있었습니다.
챔피언이 될 때까지 시합에 진 일이 없고, 더구나 한 번도 예외없이 완벽한
KO승이었습니다.
누구나 그가 시합에 지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고, 언제나 그는 사람들의 그
런 기대에 정확히 부응해 주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챔피언이 한 무명 선수와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는 보잘것없는 선수로, 그때까지 성적은 대수로울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챔피언이, 그때까지 한 번도 패배를 한 적이 없는 그
신화적인 존재가 보잘것없는 도전자에게 KO패를 당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망했습니다.
어제까지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었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등을 돌리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챔피언은 죽고만 싶었습니다.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예전처럼 완벽하게 준비를 한 채 싸우지 못한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링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챔피언일 때만 박수를 보내고, 패배하고 나니 재빨리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넘어진 채로 이대로 가만히 누워 있으면 몸도 마음도 끝없이 편안할 것입니
다.
그는 이제 피를 흘리며 때리고 맞는 시합에 넌더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권투는 그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을 알기에
그는 다시 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시합에 진 챔피언은 비참하지만, 넘어졌다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선수가 진짜
권투선수입니다.
언제나 승리만 하는 선수는 패배의 쓰디쓴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패배의 쓴잔을 마셔 본 선수는 패배뿐만 아니라 승리의 기쁨까지도 압
니다.
나는 당신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챔피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번 넘어졌다고 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지 마십시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난 권투선수를 만나 보십시오.
영광과 좌절, 환희와 비난, 박수와 외면 - 그런 모든 것을 다 경험한 선수를
만나 보십시오.
사투리를 버리지 못하는 친구
사투리를 버리지 못하는 친구가 거물이 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사투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
다.
표준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대접받는 시대인 것 같이 느껴지는 오늘날에,
사투리의 울타리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핸디캡이 될 수 있을 것입
니다.
내가 표준어로 말할 수 있도록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습니다.
남학생은 사투리를 벗어벌 때까지의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에 비하면 표준어를 사용할 때까지의 여자들의 속도는 기겁을 할 정도로 극
히 짧습니다.
이것은 단지 귀가 좋다든지, 어학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뛰어난 적응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투리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
각합니다.
완벽한 표준어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모두 사투리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사투리를 버리지 못하고 도시적인 생활 패턴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그런
적응력 없는 사람이라도 나중에는 오히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때 지상의 점령자로 악명을 떨쳤던 공룡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
일까요?
공룡에 비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은 존재인 곤충들이 지구가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끈질기게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곤충에게는 다양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그 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반드시 살아남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다양성이지 결코 적응력이 아닙니다.
적응력이 너무 강하면 환경에 완전히 순응해 버리기 때문에, 환경이 또다시
변하면 절멸하고 맙니다.
환경이라는 것은 운석 하나가 지구에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변화하는
것입니다.
적응력이 있는 생물은 작은 변화에는 쉽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응력이 너무 강하면 엄청난 변화에는 견딜 수 없습니다.
인간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나 쉽게 적응하는 사람은 웬만한 일은 그럭저럭 잘 해치울지도 모릅
니다.
그러나 커다란 일을 해치우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평범한 일을 통해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평범한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하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교체가 가능하다는 뜻이니까요.
다른 사람과 교체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고,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평
가받는다면 너무나 시시하지 않습니까.
`영어를 할 수 있습니까?`, `컴퓨터를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다른 사
람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와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따라서 다른 사람과 교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새로운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 하는 훈련만 받아
왔습니다.
어느 문제를 받았을 때 어떤 식으로 대답하면 그 문제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훈련을 받아 받아 온 것이지요.
따라서 적응력에 관해서만은 이미 20년 정도, 지나칠 만큼 호되게 훈련을 받
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적응력이 너무 강합니다.
강한 적응력은 당신이 앞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틀림없이 방해가 될 것입
니다.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적응력이 없는 서투른 면을 남겨 두십시오.
표준어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사투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서글프게 느껴야 합니다.
유난히 지독한 사투리를 고집하는 친구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는 틀립없이 평범을 거부하고, 남보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일 것
입니다.
가난한 발명가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의 자유로움을 배우자
대부분의 발명가들이 생각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만든 발명품들이 만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폭발적으로 팔려 나가도,
그는 어찌된 까닭인지 가난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발명가는 현실의 바탕에서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들에게는 과거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에게 현실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발명품이 미래의 어느 날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발명가만큼 미래가 소중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미래가 없다면 결코 발명에 몰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발명가처럼 꿈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을 알아 보기 위해, 지금 발명가를 한번 만나 보기 바랍니다.
에디슨처럼 인류에게 엄청난 편리를 선물해 준 발명가도 있도 노벨처럼 크나
큰 재앙을 안긴 발명가도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담은 책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거기서 당신은 꿈을 가진 인간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발명가 중에는 도무지 타당성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이상한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발명가는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밥을 먹여 주는 자동스푼을
만들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인간이 한없이 게을러질 것이므로 이런 기계가 꼭 필요할
날이 있을 거라는 게 발명 이유입니다.
설령 이렇게 황당무계한 꿈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들을 만나면 가슴이 불현
듯 환해집니다.
미래에 눈길을 두고 있는 그의 도전의식이 내게 무한한 에너지를 주기 때문입
니다.
발명의 기본 정신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개척입니다.
전인미답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고, 아무도 꿈꾸지 않은 세계를 개척하는 것
입니다.
20대인 당신에게 이런 정신이 얼마나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면 자동스푼을 만들었던 그 이상한 발명
가를 만나러 갑니다.
어떤 발명품이든 단번에 만들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실패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경험해야 합
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서둘지 않습니다.
설령 100번을 실패해도, 101번째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흔쾌히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한두 번의 실패에 울상을 짓는 일은 발명가 사회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발명가를 통해 그런 끈질김을 당신 것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발명가들은 대개 가난하지만, 꿈이 있기에 누구보다 부자입니다.
꿈을 먹고 사는 20대가 꼭 만나야 할 그들입니다
스무 살 차이의 아내와 결혼한 남자
통념의 틀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엣날에, 영국에 디즈렐리라는 정치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35세의 나이에 15년이나 연상인 여인과 결혼하여 30년 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35세의 나이에 50세의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처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중에 영국 수상이 되어 아주 훌륭한 정치를 한 사람으로 역
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흔히 결혼은 나이가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즈렐리처럼 여자 쪽이 나이가 훨씬 많다든지, 아니면 남자 쪽이 훨
씬 나이가 많은 결혼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이상한 결혼`으로 취급됩니다.
한때 의학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나이 차이가 다섯 살 안팎일 때가 가장 이상
적인 결합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혼에 있어서 연령 차이
를 이렇게 획일적으로 정해 놓는 것에 대해 그다지 찬성하는 편이 아닙니다.
아마도 의학자들의 이런 견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부부 중 한쪽이 훨씬
먼저 사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요즘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는 그마저도 낡은 사고방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내와의 나이 차이가 정확히 20세가 되는 남자를 알고 있습니다.
45세에 결혼할 때, 아내가 25세였던 것입니다.
나는 그 커플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이 세상의 어떤 부부보다도 행복하게 살
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통념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깨달았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회 통념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이 지배를 받습니
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디즈렐리나 내가 알고 있는 그 부부나 사회 통념에 도전
한 용기 있는 분들이지요.
통념이란 옛날 언젠가부터 대다수 사람들에 의해 가장 그럴 듯하게 전해 내려
오는 생각일 뿐입니다.
20대가 되면 반드시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때는 대단히 설득력 있
는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에 이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결혼은 자기가 충분히 능력이 있고, 또 하고 싶을때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연령의 남녀가 결혼해야 한다는 게 그 동안의 통념이었다면, 그것을
깨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고 모험입니다.
통념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는 말은 그래서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20대에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확실한 건 20대에는 결혼에 대
해 깊이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는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대에는 사회 통념에 도전해서, 스무 살의 연령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사
람을 한번 만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를 알아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남자보다 더 남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여자에게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광고회사 하쿠호도에서 사회초년병으로 뛰고 있을 때 만난 사람 중에 굉장히
인상 깊은 여자가 하나 있습니다.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사원이었는데, 처음에 그녀를 보았을 때 어
쩌면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남자들보다 더 남자다운 여자였습니다.
일을 추진해 가는 능력이나 동료들과 어울려 지내는 방법, 직장상사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앞장 서서 싸우는 모습 등등 그녀는 아무튼 여러 가지 면에서 보
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남자들처럼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여자보다도 더 여자다운 세심한 옷차림과 화려한 외모는 단연 동료 여직
원들 중에서 돋보이는데, 일에 있어서만은 보통의 남자들을 압도하는 것이었습
니다.
한번은 우리가 팀을 이뤄 어느 기업의 신개발상품 CF를 만든 적이 있었습니
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기의 일종으로, 그 기업이 크게 기대를 거는 신
상품이었습니다.
흔히 광고 CF는 발주한 회사와 면밀한 의논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품을 만
들게 마련인데, 그때만은 회사측이 광고회사에게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결정을
내려서 우리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아주 드문 케
이스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제직 과정에 시시콜콜 간섭을 해서, 광고쟁이들의 기획 의도
를 아예 묵살하고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만은 예외라서 우리는 정말이지 신바람이 나 있었습니다.
하쿠호도에서는 이때 2,30대 정예요원을 특별히 편성해서 제작팀을 만들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격려했고, 사장님까지 매일같이
드나들며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까 말한 그 여자가 단순히 카피라이터에 그치지 않고 작업의 전반적인
진행까지 맡아서 원활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
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인상적인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만든 작품에 대해 모처럼 명작 CF가 나왔다며 사장님까지 극구 칭찬
을 아끼지 않은 판에 작품을 발주한 회사측에서 난색을 표했던 것입니다.
CF의 내용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것이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는 이유였습니다.
2,30대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다 보니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려
했던 작업 의도가 조금 지나쳤던 모양입니다.
하쿠호도에 비상이 걸린 것은 이때부터였습니다.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이런 식으로 거부당하기 시작하면 다른 기업의 우리 회
사에 대한 신뢰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간부들이 그 회사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니며 설득을 해보려고 했지만 막무가
내였습니다.
이번의 제작비를 그대로 지불하고서라도 다른 광고회사에 맡겨야겠다는 게 그
들의 생각이었습니다.
CF를 만든 사원은 물론이고 사장님 이하 간부들마저도 한숨을 푹푹 쉬며 암
담해 하고 있을 때, 정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문제의 그 `남자보다 더 남자다운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에 카피를 만들었는가 하면 제작 전반에 대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기에게 큰 책임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이 이 문제를 해
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땅 치더니 사장님이 말릴 사이도 없이 그 길로 어딘가
로 달려갔습니다.
그녀가 그 회사로 달려가 어떻게 고집불통인 그들을 설득했는지, 그 이야기는
아직도 광고업계에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회사 간부들을 설득해서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기 때문에, 몰래 조사해서 알아낸 그 회사 간부들의 청소년층 아들 딸들을 따로
모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번에 만든 CF를 보여주며, 작품의 특성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이것으로 얻게 될 효과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청소년들은 민감합니다.
그들은 때로 어른들보다 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CF에서 다뤄지고 있는 내용이 자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라면 어
른들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결과는 그녀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아들딸들이 우르르 아빠에게 몰려가, 그들의 무식한 눈과 구제받을 수 없는
고집불통을 힐난하면서 우리가 만든 작품을 극구 칭찬하자 슬그머니 생각이 바
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고, 작품을 텔레비전에 걸었을 때 거둔 성공은 그녀
의 무용담을 한층 더 빛나게 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일화는 이것말고도 많지만, 그때마다 나는 남자보다 더 남자다운
그녀에게서 풍기는 인간적인 매력에 흠뻑 취하곤 했습니다.
여자는 여자다움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하여 남자보다 더 자신감
을 가지고 힘차게 뛰어나가는 여자는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키작은 여자 마라톤 선수
도전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인생의 가치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직접 만난 게 아니라 TV 화면을 통해서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만났다
는 표현은 옳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전자제품 판매소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여자 마라톤 경
기를 중계방송하고 있는 TV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그 화면 속에 있었습니다.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10여 명의 선수들 가운데 하나로, 그녀가 유독 내 눈에
띈 것은 아마도 작은 체구 때문이었을 겁니다.
무척이나 힘겨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선두그룹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고 있는 게 안
쓰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마라톤이라는 경기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인간 한계에 도전
하는 운동입니다.
나는 이처럼 비인간적인 스포츠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녀의 경기
모습에는 무한정으로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명 가운데 가장 키가 왜소했고, 더구나 이상하게 한쪽 어깨를 옆으로 늘어
뜨린 채 뛰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해서 사력을 다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몸도 마음도 끝없이 편안해지기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20대들은 자신의 체력에 한계가 없으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서도 그 위대한 체력을 아무 데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순의 시대입니다.
이런 까닭인지, 람보처럼 힘이 센 사나이가 허무맹랑하게 날고 뛰는 영화를
보며 그를 영웅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첨단과학문명이 인간을 이처럼 무력화시켰다고도 하고, 이대로
나가다가는 우리 인간이 과학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탄식을 합니
다.
이런 판국에, 체구도 작은 여자의 몸으로 자신의 체력 한계는 물론이고 남과
얼마나 빨리 뛸 수 있나 경쟁하고 있다니, 그것은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대형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작은 여자 마라톤 선수에게 응원을 아끼
지 않았습니다.
마라톤 경기는 우승도 멋진 일이지만, 완주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이라고 합니
다.
우승자에게 쏟아지는 박수보다 맨 꼴찌로 운동장에 들어오는 선수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아 보니 그 키작은 여자선수는 그 마라톤경기에서 8위를 하고는 울
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물론 순위는 중요합니다.
운동선수가 직업인 그녀에게 있어 8위라는 성적은 보잘것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성적표에 글씨로 적혀있지 않은 또다른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작은 체구로, 자기보다 월등히 큰 다른 선수와 끝까지 경쟁한 그 투혼이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이 세상이 얼마나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지 뼈저리게 깨
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며, 도전하는 자는 쟁취할 수 있습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친구
사랑에 대한 자기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한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흔히 남자답게 생겼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로 남자다운 남자입니다.
준수한 용모에 톡톡 튀는 유머감각, 거기다 건강한 체구에 무척이나 적극적인
성격, 말하자면 그는 누가 봐도 룰륭하다고 칭찬할 만한 20대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연인도 알고 있습니다.
예쁘지 않은 용모에, 별로 특징이 없는 여자입니다.
`예쁘지 않다`고 표현했습니다만, 이 말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좀 과분한 표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현대적인 미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녀는 평균 이하의 점수밖엔 얻지
못할 만큼 예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흔히 여자를 평가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용모 하나만 가지고 즉각 점수를
매기는 버릇이 있는 우리 20대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단번에 퇴짜를 받을 만합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너무도 대단해서 우리를 놀
라게 만듭니다.
처음에 우리가 그 얘기를 접했을 때는, 그가 굉장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지
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한번은 친구 중 하나가 아주 진지하게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에게는 그녀가 턱없이 부족하지 않는가? 그녀는 못생겼고, 그렇다고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자 그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얼국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능력과 마음을 사랑하지. 그
런 면들을 놓고 본다면,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턱없이 부족하다구.`
20대 젊은이에게 이런 식의 철학에 가까운 말을 하라고 요구하는 어른들은 없
을 것입니다.
어른들조차도 여자는 우선 예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까요.
너나 없이 아름다움이 여자의 최고선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 그
친구의 말은 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과연 그녀의 능력이나 마음 중에서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기에 그를 사로잡
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친구처럼 못생긴 여자의 내면적 아름다
움을 사랑해 보려는 일 따위를 해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늬 만큼의 세월이 지난뒤에, 나는 그의 말과 그가 선택한 여성에 대
해 우리 20대들이 한번쯤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만을 자기 인생의 파트너로 삼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용모가 뛰어나고 거기다 속까지 알찬 상대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마
음속에 있는 인간적 내용이나 그가 가진 능력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처음부터
예쁜 사람만 찾으려 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생을 목표하는 곳까지 이르게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필요 충분조건이 뒤따르는데 거기에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조항이 포
함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자기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아니면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
한다면 언젠가는 내용의 부실함에 치여 크게 상처받게 됩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내 친구는 그 뒤 정계로 진출해서 청년정치인으로 착
착 경력을 쌓아 나갔는데, 그의 곁에서 가장 훌륭한 후원자겸 조언자로 활약하
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즉 못생긴 여자입니다.
자신에게 삶의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남들이 모두 예쁜 여자 뒤만을 따라다닐 때, 못생긴 여자일망정 자기에게 끝
없이 삶의 에너지를 준다고 믿고 그녀를 사랑했던 내 친구를 이제는 이해하게
됩니다.
20대인 당신도 그런 친구 하나쯤 곁에 두고 있다면, 그만큼 삶의 지평이 넓어
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이면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남보다 그만큼 앞서갈 수 있
고 그 영향력을 타인에게도 나눠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견으로 무장된 친구
가치관이 다른 친구를 기쁘게 받아들이자
가끔 이런 편지를 받곤 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너무나 잘못되어 있습니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상, 적어도 20대인 당신보다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
들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세상은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재미있는 법입니다.
나는 당치도 않게 편협하고, 얼굴을 찌푸릴 정도로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왔는데 세상이란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
람들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상대하기에 편하고, 어딘지 만만하고 나하고 의견이 같은 사람만 만나지 마십
시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크게 놀라는 경험을 될 수 있는데로 많
이 가져야 당신의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
실을 알고, 상대의 가치관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의견이나 가치관이 다른것은 얼마든지 상관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당신의 생각은 잘못되어 있다` 라고 막무가
내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강연을 하다 보면 다른사람의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질
문하곤 합니다.
“나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자신의 의견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다음, 마치 도전이라도 하는듯이 내뱉는 것
입니다.
그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기 주장이 지리멸렬하게 되어 버린것도, 주위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며 지긋지긋해 하는 것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선뜻 대답해 줍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맥이 빠지고, 강연장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정말로 슬픈 일은 본인은 사람들이 왜 웃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
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숱하게 많은 다른 면을 각자의 눈으로 볼수 있는 게
바로 인생 공부입니다.
`대단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니!` 하고 놀랐을 때 인간은 비로소 성장하
는 법입니다.
성장하는 인간은 흡수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흡수력이 없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는 별도로 치고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이
해해 주는 사람이 바로 흡수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사람은 머리가 유연하고 독창성이 있습니다.
흡수도 하기 전에 상대의 생각이 맞느냐 틀리느냐 하고 따지기부터 하는 사람
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다른사람에게 `생각을 바꿔라!` 하고 비난할 생각이 있다면, 스스로 먼저 바꿉
시다.
그래야만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 주위에는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밖에는 없었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모두 당신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밖에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았기 대문입니다.
`그렇지않다. 나에게는 독특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반박하는 친구들
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람은 누굽니까? 데리고 와 보십시오. 한번 만나 봅
시다.`
막상 만나 보면 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두 사람이 놀랄 정도로 닮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20대 젊은이들의 특징입니다.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만납시다.
극단적인 논법을 펼치는 사람을 만납시다.
편견으로 완전무장한 사람을 만납시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에는 오히려 편견이나 극단론이 참으로 귀중하
게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편견을 많이 모으십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폭이 당신 머리 속에 있는 지평선의 넓이가 될 것
입니다.
수영도 못하면서 바다에 뛰어드는 친구
무의식 중의 용기가 만인을 움직일 수 있다
대학 2학년 때, 영화과의 30명 학생 전부가 3박4일 일정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난적이 있습니다.
매년 실시되는 야외학습으로, 우리는 거기서 조별로 연극 한 편씩을 발표하고
우리나라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도 토론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학생들은 이런 때일수록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젊음이란 발산할 기회만 주어지면, 눈앞에 있는 모든 게 즉시 배출구가 되는
법인데 하물며 바닷가임에랴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5개조로 나뉘어 발표하는 연극은 기발하면서도 재미있었고, 토론회도 너무나
알차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곳은 바다였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바다에 뛰어들어 마음껏 헤엄치고 노래하고, 해변 모래사장
을 정신없이 달리면서 정말 신나는 3박4일을 보냈습니다.
사건이 터진 것은 마지막날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야외학습 종료식을 하고 있는데 갑
자기 어디선가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 왔던 것입니다.
때마침 파도가 무척 거세졌습니다.
그런데 파도 너머 저쪽에서 한 여자가 해변을 향해 결사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고, 모래밭에서는 몇 사람이 그쪽을 향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사고다!` 하고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사태를 눈앞에 두고, 우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즉각 물로 뛰어들어 그여인이 있는 곳으로
해엄쳐 가야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몸이 말을 듣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상대에게 닫친 엄청난 위험이 내게 크나큰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
니다.
파도에 떠밀려 점점 바다 밖으로 밀려 나가는 여인의 손이 차츰 약하게 흔들
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해변가에 있는 누구도 감히 험한 파도를 헤치며 그녀에게 달려갈 엄
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옷을 벗은 채로 바다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너나없이 절망과도 같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는 3박4일 내내, 자기는 수영을 전혀 못한다면서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그지
않았던 바로 그 친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저마다의 가슴에 뭔가 묘한 감정이 궤뚫고 지나가는 걸 느꼈습니다.
30명 대부분이 바다에 뛰어든 것은 바로 그 직후였습니다.
그 친구의 맹목적인 용기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
던 것입니다.
그 친구의 무의식적인 용기가 우리 모두를 움직인 것입니다.
참다운 용기란 이해득실을 계산하지 말아야 정말로 큰 효력을 발휘합니다.
수영도 못하면서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 직전의 여인을 구출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용기이고, 그런 용기야말로 20대에게는 어떤 물질적인 재산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젊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맹목적으로라도 무엇인가에 도전해보는, 그런
용기야말로 20대에게는 꼭 필요한 정신자세입니다.
손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친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TV 화면을 통해 소개되는 초능력자 중에는 별 희한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두 손가락을 스푼 위에 얹은 채 뭐라고 주문을 외우면, 그 자리에서 즉시 그
스푼을 구부러지게 만드는 초능력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어떤 초능력자는 상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숫자를 알아맞히기도 하
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TV 통해 자신의 초능력을 발산하여 시청자 역시 신기
한 초능력 체험자가 되게 만듭니다.
염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생각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염력과 초능력이 동일하다고 정확히
정의를 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생각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훈련을
하기에 따라서는 누구라도 초능력자가 될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친구 중에는 정말로 손가락으로 스푼을 구부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
니다.
그가 히죽히죽 웃으며 스푼 하나를 종이를 접듯이 반으로 구부러뜨렸을 때,
우리들은 입을 딱 벌리고 오랫동안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히히... 이거 별거 아니라구! 하룻밤만 연습하면 되는 거야!”
그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런 일이 하룻밤 사이에 터득되리라고는 생각되
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염력이든 초능력이든 거기에는 중요한 무엇인가가 반드시 포함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념으로,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 그를 초능력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엄청난 초능력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TV 화면에서 시청자에게 줄곧 하
는 말은 이것입니다.
“따라해 보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시청자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따라하지 않습니다.
방송국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때 초능력자의 말에 가장 효과를 보이는 시청
자층은 어린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순진 무구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초능력자의 말을
따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나와 똑같은 초능력이 있습니다.”
TV 화면 속에서 이런 말이 들려 오면,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코웃음을 치거나
반신반의 합니다.
왜 자신에게 엄청난 힘을 발산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고 하는데도 믿지 않
는 걸까요?
그것은 시도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녀석은 자기도 손으로 스푼을 구부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손으로 스푼을 구부린다거나,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숫자를 알아맞히는 것 따
위만 초능력은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정말 멋진 20대를 보내야겠다, 나에겐 그럴 만한 힘이 충분히 있
다고 믿고서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걸어나간다면 그게 바로 초능력에 다름 아
니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초능력이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마치 손가락으로 스푼을 구부려뜨리겠다고 결심하고 그 마지막 세계에 도전한
내 친구처럼 말입니다.
거듭된 불운에 우는 선배
스스로 불운하다고 생각하면 언제가지나 불운하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2년동안, 무려 60여군데의 회사에
원서를 냈지만 단 한곳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거듭된 실패에 너무나 화가 나서,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이었습니다.
사랑하던 여자는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결별을 선언해 버렸습니
다.
참으로 되는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지친 나머지, 그는 아예 취직 따위는 포기하고는 될 대로되라는 식으
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되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는 외톨이가 되고, 서서히 모든 이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엔 이렇게 불운에 우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내가 20대인 당신에게 그를 만나 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
다.
그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를 만나게 되면, 당신이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불평불만에 싸여 있는 이유는 오로
지 자기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기만이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살맛이 나
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때일수록 눈을 아래로 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불운한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그리고 세상에는 그
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오직 자기만이 신의 선택에서 제외된다
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불운하다고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불운에 울게 됩니다.
그러나 이까짓 불운이야 먼 장래를 생각하면,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생
각하면 아주 사소하게 보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게 인생입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와의 손은 옛날 이야
기 속에서나 존재합니다.
정말로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20대들이 자기 손을 마이더스와의 손이라고 착
각하고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황금으로 변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
다.
당신은 단순히 당신 자신일 뿐입니다.
따라서 당신 손에 잡히는 것이 황금으로 변하지 않을 확률은 100%라는 사실
을 잊지 마십시오.
20대에는 가능한 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보고 그들의 경험담에 귀를 기울여
야 하지만, 때때로 거듭된 불운에 우는 사람을 만나 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이야말로 진짜 교육입니다.
불운에 우는 선배를 만나면, 그것을 알게 됩니다.
나보다 늙어 보이는 친구
늙어 보이는 사람이 거물이 된다
당신은 몇 살 정도로 보입니까.
대학에는 중학생이라고 해도 통할 수 있는 어린애 같은 여학생도 있는가 하면
여자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성숙한 여학생도 있고, 아들의 학교 수업을 참관하
러 온 주부 같은 안정된 여학생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학생들의 겉모습에서는 나이 차이가 대단히 심하게 나는데, 여학생
이상으로 남학생의 모습에서도 많은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친구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회사에 다니다가 다시 대학에 들어 온 것은 아닌가 하고 물어 보면, 자기와
똑같거나 오히려 어린 녀석도 있습니다.
대학 시절은 연령 미상의 시기입니다.
게다가 옷차림에서 아직 촌스러움을 벗지 못해 늙어 보이는 일도 있습니다.
대학 시절의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촌스럽고 겉늙어 보이는데, 한가지 묘한
것은 졸업하면 오히려 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학 시절은 사람의 한평생 가운데 나이보다 가장 늙어 보이는 시기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늙어 보인다는 것은 대학생에게 있어서 커다란 훈장과 같습니다.
나이보다 대여섯 살은 더 늙어 보이는 어떤 사람 집에서 신문판매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상당히 젊어 보이는군요.”
`아저씨`라는 말에 약간 신경이 쓰였지만, 그 동안 늙어 보인다는 말만 들어왔
기 때문에 그 남자는 기대를 갖고 물어 보았습니다.
“얼마나 돼 보입니까?”
고등학생으로 착각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스물 일곱, 여덟이라고 해도 통하겠는데요.”
`통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남자가 아무리 젊게 보아도 서른 살 이상으로 보
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 남자의 나이는 고작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인기가 있거나 나중에 회사를 만들어 사장이 되는 사람은 대개
늙어 보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늙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늙어 보인다는 것은 겉모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사에 진지하고 노련
하게 대처하려는 사고방식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남보다 더 생각하고, 더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처음에는 폼으로만 늙어 보여도 됩니다.
처음에는 폼으로 했더라도 자꾸만 노력하는 것에 의해, 당당하게 자세가 잡히
는 것입니다.
늙은 얼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늙은 얼굴이고 또 하나는 활기에 넘치는 늙은 얼
굴입니다.
활기에 넘치는 늙은 얼굴을 가집시다.
또한 활기에 넘치는 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친구가 됩
시다.
경험이 풍부한 노인처럼, 당신이 겪게 될지도 모를 위기상황에 대해 그 친구
는 언제나 친절한 조언을 줄 것입니다.
무서운 스승
두려운 사람을 만나야만 비로소 성장한다.
당신에게는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당신 곁에 별로 무서운 사람이 없다면, 당신의 인생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우리 주변에 그렇게도 많았던 무서운 사람은 성장함에 따라 조금
씩 조금씩 줄어듭니다.
지금은 무서운 사람이 자꾸만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무서운 선생님도 없어졌고, 두려운 아버지도 없어졌고, 엄격한 어머니도 없어
졌고, 근엄한 할아버지도 없어졌고, 겁을 먹게 만들던 형도 없어졌습니다.
또한 이웃집에 반드시 있던 무시무시한 할아버지도 없어졌고, 만나기만 하면
벌벌 떨게 하던 선배도 없습니다.
나의 대학 시절 교수님 중에서는 좀처럼 무서운 분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 세
익스피어를 강의하시던 렌든 교수만은 유독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강의실뿐만 아니라 와세다대학 앞에 있는 서점가에서 갑자기 마주칠 때조차
두려움을 느꼈으니까요.
렌든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세익스피어 수업은 언제나 세 사람이 앉는 책상이
겨우 9개 밖에 없는 좁은 세미나실에서 행해졌습니다.
더구나 교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앞에 와서 강의를 했기 때문에 마치 맨
투맨 식으로 가정교사에게 강의 받는 것처럼 긴장감이 넘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
다.
게다가 캐나다 태생인 렌든 교수님의 영어는 알아듣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영국에도 이렇게 완벽하게 훌륭한 영어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
로, 정통의 퀸스 잉글리시(Queen's English)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영어에 별로 재주가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금 주제넘지만, 어쨌든
그분의 영어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100% 본토 영어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굵고 아름다운 저음의 목소리로, 대강당에서 마이크 없이 강의하면 천
장까지 울려퍼질 정도로 박력이 넘쳤습니다.
그는 당당한 퀸스 잉글리시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낭랑하게 낭독
하면서 해설을 덧붙이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강의 그 자체가 마치 황제 안토니우스의 연설 같았지요.
원래 세익스피어의 원작 자체는 현대 영어가 아니고 오래된 고문이기 때문에
보통 실력으로는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어디까지가 원문이고 어디까지가 교수님의 해설인지, 우리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대리출석을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대강의실과 달리, 불과 27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자그마한 강의실에서는 대리
출석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요.
이런 때 대개 교수님들은 대리출석자를 보고도 못 본 척 해 줍니다.
대학 공부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수업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은 출석하
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본식 적당주의가 안토니우스 황제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대충 둘러봐도 20명 이하인 강의실에서, 출석을 부르자 터져나온 대답이 30명
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황제는 굵직한 목소리로 열화와 같이 화를 냈습니다.
“다시 한번 출석을 확인하겠다.”
나는 대답한 사람의 숫자를 세어 보았습니다.
대답은 20명, 조금 전에는 28명이 대답했는데 말입니다.
교수님은 다시 출석한 인원수를 세었습니다.
19명! 아직 1명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다시 황제가 사용하는 영어로 야단을 쳤습니다.
“이런 것은 우정이 아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
불같이 분노를 내뿜는 렌든 교수님의 영어는 몹시 빨랐는데도 불구하고, 이상
하게도 나는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끝까지 남았던 대리출석자가 렌든 교수님의 분노 앞에 서게 되었습니
다.
나는 지금까지 부정을 저지른 학생 앞에서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낮으면서도 속사포처럼 빠른 말을 쏟아 내면서, 대리출석자를 엄히 꾸짖던 렌
든 교수님 - 그때부터 모든 학생은 그분의 눈에 비치는 것조차 두려워 슬슬 피
해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렇게 분노를 폭발하는 무서운 스승이야말로
참다운 스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불의를 보고서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정의 앞에서도 몸을 사리게 됩니다.
어릴 때 우리를 겁먹게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의와 잘못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었지, 잘하고 있는데도 줄창 분노하지는 않았습니다.
20대인 지금, 당신을 떨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뒷골목의 불량배 정도에게 겁을 먹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정말로 당신을 두
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사람은 당신의 약점과 단점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어떤 사람 앞에만 가면 가슴이 떨리게
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피하지 마십시오.
20대에 그런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으며 자기 주변에 얼마나 많이 그런
사람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당신의 성장 여부는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대리출석을 했는데도 슬그머니 눈감아 주는 사람은 당신이 실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슬그머니 눈을 감게 됩니다.
잘못을 잘못대로 똑똑히 지적하고, 잘하면 더 잘하라고 채찍질하는 무서운 분
을 찾으십시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는 한 당신은 착실히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만나고 싶은 한 사람
당신이 정말로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정말로 만나고 싶은 50인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정말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만나도 그만, 만나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언제 만나도 반갑고, 언제 만나도 유익한 사람이 지금 당신 곁에 있습니까?
만남을 남발하지 맙시다.
그렇다고 만남을 두려워하지도 맙시다.
20대에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은 20대가 지나기 전에 반드시 만납시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많은 일 중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
다.
20대의 만남을 소중히 합시다.
인생이라는 광활한 들판에서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좋은 만남을 위해 노력
하고 또 그것을 자기 생의 에너지원으로 만듭니다.
어려울 때 힘을 얻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만남.
괴로울 때 힘을 주고, 아플 때 위안을 주는 만남.
그런 소중한 만남의 주인공이 되기 바랍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고, 그 한가운데에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20대의 만남이 인생을 좌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