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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Casey,Riley 2023. 4. 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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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차례
    가르침을 배워라
    원광 법사의 세속오계-황금 두 덩이- 배가 터져 죽은 모기- 근본을 지켜라-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삼강 오륜에 대하여-충신과 열녀-재물을 대할 때는 
  청렴하라-장사숙 선생의 좌우명-범익겸의 좌우명-가난해지는 여러 가지 이유

    나라를 다스리는 일
    운명을 판단하는 거울-거느리는 병사는 많을수록 좋다-항상 근면하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황희-항상 겸허하라-백성에 대한 도리- 충신은 바른말을 할 줄 알아야

    집안을 다스려라
    집안에서 질서를 지켜라-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말라-현명한 아내-하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손가락을 끊어 약으로 쓰다-도둑을 잡는 방법-때를 기다린 숙손통-재물에 대하여

    의리를 편안히 여겨라
    인씨 가훈에 대하여-중종을 살린 영산군-진정한 친구

    예의를 지켜라
    진중에는 농이 없다-도둑에게 도가 있는가-덕을 쌓고 높여라-모든 일은 순서를 지켜야
    -아버지와 아들-허물에 대하여

    말에 관하여
    이치에 맞는 말-필요 없는 말은 삼가라-수다쟁이 왕-혀가 재산-자기 마을을 평화롭게 한 
  언어-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말

    친구는 가려서 사귀자
    솔개의 밥이 되다-굶어 죽은 새-관중과 포숙의 우정-학문의 의미-연주의 대가-한 접시의 떡

    여자의 마음가짐
    어진 어머니와 아내의 덕-마음이 맑고 절개가 곧아야 한다

    효자들의 실화
    손순의 효행-넓적다리를 벤 상덕-홍시가 먹고 싶은 어미

    염치와 의리
    솔개가 채어 간 솜- 잃어버린 돈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진종황제 권학문-백낙천 권학문-주문공 권학문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당신을 위해 의를 사 가지고 왔소-어떤 선물을 받을 것인가-고난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사람을 고르는 방법-사람에 따라 말의 효과는 달라진다-마음의 자세-아는 것을 
  실천하라-스스로의 욕심을 조절하라-이기는 데에 마음이 급하지 마라-말과 행동은 같아야 
  한다-장님의 눈-밭 주인이 소를 빼앗다-낚시꾼의 먹이-환경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마음속에 촛불을 밝히고
    재주를 감추어라-여유 있는 마음-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덕을 진전시키고 도를

    신념으로 켜는 진리의 음악 소리
    노력과 진보는 부자 지간-물건을 탐내지 않은 자세-목이 마를 때의 한 방울의 물처럼-하늘이 
  내린 복-위선을 멀리하라-세상을 보는 눈-선비의 몸가짐-아름다움과 추함을 멀리하라-지나치면 
  손해를 본다-공로와 즐거움은 양보하라-원인을 제거하라-이인이 되되 괴짜는 되지 
  말라-망중한이란 무엇인가-아집의 병-성질이 급한 자는 실패하기 쉽다

    대나무 그림자가 처마 밑을 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법-분수에 맞지 않는 이득을 취하지 말라-세속에 물들지 말라-술은 
  거나하게 취했을 때가 좋다-자연은 인심을 지배한다-낙엽이 새싹을 틔운다-냉수 한 병을 
  가져오시오-상황을 재빨리 판단하라-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말라-신념으로 일관하라-부모 
  형제간에는 침착하라-상대방의 장점을 드러내라-조그만 만족에서 벗어나라-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공명은 한 때지만 기절은 천년을 간다

    진수를 알아야 본질에 이른다
    바르지 못한 학문을 내세우지 말라-사흘이 지나면 다시 봐야 한다-앞 두레의 뒤집힌 
  자국-닭의 주둥이와 소의 꼬리-행동에는 반드시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부나비나 올빼미가 되지 
  말라-진면목을 찾아라-속세로 돌아오면 속기에 물든다-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데 일어난 
  불을 끄지 못한다-집착에서 벗어나라-냉정하게 판단하라-따뜻한 곳에 앉아서는 추운 곳을 알 
  수 없다-

    풀꽃으로 피어나 향기로 남고
    매미를 잡는 방법-앞뒤를 가리지 않는 사나이-계함이 호구자에게 혼이 나다-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방법-현명한 바보는 누구인가-참다운 놀이는 무엇인가-병증을 알아내는 방법-참다운 
  용사는 최선을 다한다-사람은 자연에 겸손하여야 한다-공자가 두 어린이에게 놀림을 
  당하다-낚시를 하는 방법-심장을 바꾸어 놓은 편작의 의술-천지를 움직인 거문고 소리-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잘 운다-인조 인간이 노래부르다-이의 심장을 꿰뚫은 궁술-죽은 사람도 사는 
  방법을 말할 수 있다-단목숙의 처세술-신비스러운 보검-항상 덕을 기르는 자리에 서라-자연의 
  이치에 따른다



    근본을 얘기할 때 흔히 사람들은
    타고난 것만을 말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살아간다.
    인생은 마치 집짓기 상자와 같아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하나씩 쌓아 가기 마련이다.

    가르침을 배워라

    원광 법사의 세속 오계

    원광 법사는 우리들에게 '세속오계'로 널리 알려진 신라 시대의 고승이다. 그가 당나라의 
  유학 길에서 돌아와 경상도 청도군의 가실사에 몸담고 있을 때 귀산과 추항이라는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들은 원광 법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했다는 소문을 듣고'자신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릴 가르침을 내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뜻이 너무 공손하여 원광은 보살계 
  대신 일반 사람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을 일러주었다.
    첫째가 사군이충이었다. 임금님을 섬기되 충성을 다 하여 섬기라는 뜻이었다. 둘째는 
  사친이효였다. 어버이를 섬기되 효도로써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교우이신으로 친구를 
  사? 때에는 신의로써 사귀라는 뜻이다. 넷째는 임전무퇴 전장에 나가서는 결코 물러서지 
  말것이며,다섯째는 살생유택으로 생명이 있는 것은 무릇 가려서 죽이라는 지적이었다, 원광이 
  가르쳐 준 교훈은 어김없이 신라 화랑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후일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루는 데 초석이 되었다.

    공자가 말했다.
    '입신 출세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하며, 효도가 근본이다. 초상과 제사에는 예법이 있어야 
  하니 슬퍼함이 근본이다. 싸움터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니 용맹이 근본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이치가 있어야 하니 농사가 근본이다. 나라를 보전하는 데는 도리가 있어야 하니 대를 
  잇는 것이 근본이다. 재물을 만드는 데는 때가 있어야 하니 노력이 근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가르침 가운데 입신 출세를 살펴보면 거의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집안에서 정승 . 판서가 많이 배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 중에 효가 
  으뜸'이라는 말처럼 효는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무딘 마음을 날마다 숫돌에 갈아대는 '절차 탁마'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루의 시작이 아침이라면 그 마지막은 깊은 밤이다. 홀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이런 때에 과연 어버이에게 얼마나 자식 된 도리를 했는가를 한 번쯤 되짚어 보아
    야 한다.

    [삼국유사]에 이런 얘기가 있다. 효종랑이 남산의 포석정에서 놀고 있을 때 그의 문객이 
  늦게 달려와 그 까닭을 물었다. 문객 한 사람이 대답했다."분황사 동리에 대략 스무 살 가량의 
  처녀가 눈먼 어머니를 껴안고 소리 내어 울고 있으므로 마을 사람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 딸이 가난하여 걸식으로 봉양을 해 왔는데 흉년이 들어 남에게 의지할 수 없으므로 몸을 
  팔아 곡식 30석을 맡겨 두고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돌아와 밥을 지어먹고 같이 자고 다음날 
  그 부잣집에 가서 일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어머니가 하는 말이, '예전에는 거친 밥을 먹었는데도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는데 지금은 좋은 밥을 먹는데도 목안으로 넘어갈 때는 마음이 편하질 못하니 어찌 된 
  일이냐'는 물음이었다. 그 딸이 자초지종을 말하자 눈먼 어머니가 통곡을 하는 바람에 그것을 
  보고 오다 늦었다는 것이었다.
    효종랑은 이를 측은히 여겨 쌀 백 섬을 보내 주었는데 이 일을 궁에서 알고 곡식 오백 석과 
  정문을 내려 주어 백행의 근본인 '효'를 행한 그 처녀를 칭송하였다. 많은 곡식이 그 집에 
  있음을 알고 도적이 들끓을까 염려하여 나라에선 집을 지키는 병사까지 보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라에선 그 마을 이름을 효양리라 하여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효를 행함에 있어 부모님의 얼굴을 살피어 불편함이 없도록 행동에 조심을 갖는 것을 
  '실어색난'이라 한 것은 부모님 앞에서는 항상 부드러운 얼굴 표정을 해야 함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의 효자들의 행적을 보면 부모가 위독할 때는 손가락을 자르고 살을 베어 병을 
  낫게 하였다. 요즘의 과학 상식에서 보면 어긋난 부분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이렇듯 
  우연한 방법도 주효한 것은 요즘으로 치면 혈액 주사와 같은 치료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황금 두 덩이

    [고려사] <열전 정유조>에 이런 얘기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에 어느 곳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풀숲에서 번쩍이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두 덩이의 황금이었다.
    "형님, 이것은 황금입니다. 하늘이 우리가 가난함을 알고 내려 준 것이 분명합니다."
    동생은 주운 황금을 하나는 형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차지하였다.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살림살이를 생각할 때 이 황금이 얼마나 요긴하게 쓸 수 있는지에 흐뭇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들이 양천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아우는 무슨 생각에선지 품속에서 
  황금을 꺼내 강물 속에 던져 버렸다. 배에 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는 중에 형 
  역시 영문을 몰라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말했다.
    "형님, 내가 평소에 형님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여기며 형님이 잘되기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재물인 모양입니다. 조금 전에 
  금덩이를 주었을 때는 형님에게 한 덩이를 스스럼없이 드렸는데, 그 후에 탐욕스런
    생각이 마음에 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만약 형님이 없었다면 금덩이는 모두 내 차지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평소 형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 변할는지 알 수 없으므로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린 것입니다."
    아우의 말을 들은 형도 품속에서 금덩이를 꺼내 강물 속에 던져 버렸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네 형이 만일 너에게 득죄하거든 저를 책망하고 또 만일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라' 장자도 형제는 수족과 같다고 하였다. 부부는 의복과 같아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을 수 있지만 형제는 수족과 같아 한 번 없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였다. [시경]에도 '형제는 안에서 싸우지만 밖에서 모욕하면 함께 싸운다'고하였다. 어떤 
  친구도 형제만은 못하다는 인도의 속담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위나라의 조조는 용맹을 떨친 효웅이다. 그런 반면 그의 아들 조비와 조식은 문학가로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두 형제는 무척 사이가 나빴다. 조비는 아버지가 죽은 후 왕위에 올라 
  문제가 되었는데 몹시 오만 무례하였다. 어느 날 문제는 조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댔다. 일곱 
  걸음을 걸어가는 동안에 시를 지어 보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시를 짓지 못하면 중죄인으로 
  감옥에 집어넣겠다는 으름장이었다. 그렇게 되어 역사상 이름 높은 '칠보시'가 탄생되었다. 이 
  시엔 '콩깍지 솥 밑의 바닥에서 불타고 같은 뿌리에서 생긴 콩은 솥안에서 운다'고 노래하여 
  형의 처사를 원망하였다. 형이라는 글자는 입구 자 밑에 인을 받친 글자다. 즉 한 부모의 
  자녀로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뜻한다. 본래는 인구 불어난다는 뜻이었으나 점점'어른'이라는 
  뜻으로 변하여 사용됐다.
    형제 자매가 많은 집안을 나타낼 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옛 생활 방식을 볼 때 대가족 제도하에서는 형제 자매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형제간에 
  우의를 지키는 것을 중국인들은 '안행'이라 한다. 기러기가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날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부모 형제 자매 사이가 기러기가 날 듯 의가 좋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기]의 왕제에 나오는 말이다.

    배가 터져 죽은 모기

    제나라 환공이 상침에 누웠다가 중부에게 물었다. '짐은 나라가 편안하고 부유로우니 아무런 
  근심이 없소. 또한 짐은 어떤 미물이라도 제 먹을 것을 찾지 못하면 마음이 편칠 못한데 저 
  밖을 보니 모기들이 몹시 기아에 허덕이는 것 같소.'
    제환공은 곧 휘장을 열어 모기들을 들어오게 하였다. 그런데 어떤 놈은 예가 있어 환공의 
  피를 빨지 않고 그냥 나가고 어떤 놈은 스치기만 하고, 또 어떤 놈은 만족할 줄 모르고 환공의 
  피를 빨다가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

    [경행록]에 이런 말이 있다.
    '정치를 하는 요체는 공정과 청렴이고, 집안을 이루는 도는 검소와 근면이다.'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면 결국에는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자기 몸에 맞지 않은 욕망을 달리는 것은 결국 치수가 안 맞는 남의 옷을 입고 싶어하는 
  자나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에겐 우리의 노래가 있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는 노래를 발견할 
  때, 행복해진다. 자기의 몸과 마음과는 딴판인 다른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불행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근본을 지켜라

    l875년. 인도의 전설적인 왕국인 번국, 이 나라의 바로다 왕위 공석 중이었다. 영국 정부는 
  전왕의 왕비인 '쟘나비'에게 캬브라나의 한 작은 마을에서 새로운 왕을 뽑도록 명령을 내렸다. 
  영국의 경찰은 교육이라곤 받아 본 일도 없는 시골뜨기들을 모아서 시험을 보게 하기 위해 
  바로다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여왕은 이들에게 먹는 것을 위주로 하여 시험해 보기로 작정했다. 많은 음식을 가득 차려 
  놓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먹으라고 명을 내렸다. 시골뜨기들은 배운 바가 없으므로 
  각기 제 방식대로 음식을 먹었다.
    이중에서 유달리 여왕의 눈에 띄었던 소년이 있었다. 여왕은 그 소년을 선택했다. 이름이 
  '고발라오'라는 열두 살 짜리 소년, 이 소년은 다른 아이들처럼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여왕이 
  먹는 대로 음식을 따라 먹었다. 여왕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와 분수를 지킨 
  것이다. 여왕은 이 소년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 후 고발라오는 lO억불이나 되는 
  바로다 왕의 사유 재산을 물려받았다.

    근본을 얘기할 때 흔히 사람들은 타고난 것만을 말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 한대로 살아간다. 인생은 마치 집짓기 상자와 같아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하나씩 쌓아 가기 마련이다.
    공자는 '글을 읽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고 도리를 따르는 것은 집안을 보전하는 
  근본이라 했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이고 온화하고 유순한 것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근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근본을 지키는 것
    은 결국 출세의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외신 보도에 의하면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잭슨이 자신의 근본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성형 수술을 감행하여 얼굴이 종잇장처럼 
  찢어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근본은 삶의 척도다.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주문 공의 권학문에 '내일이 있다고 해서 오늘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날과 
  달은 화살처럼 쉬 지나가는 것이니 한 시라도 시간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문공은 탄식한다. '아아, 나는 이미 늙어 버렸으니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허물인가? 모두가 
  나의 허물이니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탄식했다.

    동진 시대에 차윤이라는 소년은 집안이 몹시 가난했지만 글공부에 열심을 보였다. 당시로선 
  가난뱅이가 출세하는 방법이란 책을 부지런히 읽어서 관리가 되는 게 우선 기아에서 벗어나는 
  최우선 책이었다. 그는 등불을 켜는 데 기름을 살 돈이 없으므로 여름엔 무명 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넣어 공부하여 후일 상서랑이라는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손강이라는 소년은 어찌나 집안이 가난한지 겨울이 되면 창
    문에 비치는 눈으로 공부하여 벼슬이 어사 대부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비이 장목이라고 할 때는 학문의 길이 멀고 깊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궁리 
  정심이라고 할 때는 마음을 올바르게 하여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어른은 어른대로 학생은 학생 나름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요즘은 예전처럼 불빛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세상이 아니다. 무엇이건 열심을 내어 공부를 하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 그만큼 
  공부를 하는 데에도 살아가는 데에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은 준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공자는 
  삼계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생의 계획은 어린 시절에 달려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달려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어린 시절에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일거리가 없다."
    물론 위의 주장은 공자 외에도 많은 선현들이 계획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 말들은 어린 
  시절의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알 듯 모를 듯 지나가 버리는 
  시절, 그 시절은 마치 쏘아 낸 화살과 같이 또는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섬광과 같
    이 일순간에 지나가며 후회만 남기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삼강 오륜에 대하여
    삼강은 유교의 세 가지 기본 강령이며 오륜은 다섯 가지의 실천적 도덕 강목이다. 중국의 
  전한 때에 유학자인 동증서가 공맹의 도리에 입각하여 삼강 오상설을 논하는 데서 유래되어 
  오랫동안 우리 나라의 사회 윤리로 자리잡아 왔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고 오륜은 오상 또는 오전이라고도 하며 출전은 
  맹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여야 하며 자녀는 부모를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 남편과 아내는 분별 있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으며, 어른과 어린아이는 질서가 있으며,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삼강오륜이 조선 시대, 특히 봉건 시대의 대명사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에도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특이할 만한 점이 바로 
  경로 사상이다. 오늘날 노인들을 '살아 있는 돌'로 여기어 홀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사회 규범인 삼강오륜을 재인식하는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먼저 가정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성리서]에 이런 말이 있다.
    '다섯 가지 가르침의 조목은 이렇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삼강이란,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는 것이고,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되는 것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벼리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충신과 열녀

    '국가가 어려우면 충신이 있다' 이것은 노자의 말이다. [사기]<전단전>엔 '충신은 오직 한 
  임금만 섬긴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충신과 열녀'는 하나의 공통되는 끈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추 부사 홍일동은 세조 앞에서 불사를 강론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담고 있었다. 단종을 
  비롯하여 김종서, 황보인 둥의 원로 중신들과 반대파들을 척살한 세조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부처님의 힘을 빌리고자 불사를 일으켰다. 홍일동은 왕 앞에서 불사의 ?지 않음을 
  고했다. 세조는 거짓 호령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허, 저토록 무엄할 수 있나. 당장에 저 자의 목을 베어 부처님 앞에 사죄를 해야겠다!"
    세조는 즉시 좌우에 있는 무관들에게 명하였다. 그러나 홍일동은 도무지 왕의 행동은 안중에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음을 주장했다. 무관들이 홍일동의 목에 칼을 겨누자  세조가 물었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선비가 벼슬길에 나와 옳지 않음을 보고 간언을 하는 것은 도리입니다. 그러니 소신껏 말을 
  하고 죽게 되면 죽는 것이며 살게 되면 사는 것이지 어찌 생사가 두려워 말을 바꾸겠습니까."
    세조는 그제야 노기를 풀고 홍일동의 행동을 치하하며 상을 내렸다.

    "장부가 세상에 나가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을 바칠 것이오. 만일 쓰이지 않으면 물러가 
  밭 가운데 농부가 된다 해도 족하리라'  이것은 이순신 장군의 말이다. [주역]의 
  건건비궁에서도 '충성심으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신의 이해를 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마치 홍일동이 목숨을 내놓고 간언한 것과 한 치의 어긋짐이 없다.

    [중경지]에 이런 얘기가 있다.

    영조 때에 박석주 라는 선비가 평후강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도적한테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아내 황씨는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다짐하여 발상도 아니하고 마침내 아들을 데리고 평강 땅을 
  걸식하며 3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주사라는 곳에 이르러 지아비가 평소 애용한 행죽을 얻게 되었다. 은밀히 경위를 
  조사하던 중 지아비를 죽인 범인이 여섯임을 알고 황씨는 관아에 고하여 .죄인들을 벌주게 
  하였다. 죄인들이 참형에 처해지자 황씨는 하늘을 향해 남편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제사를 
  지냈다.
    그들이 남편을 죽여 모래 속에 묻었다는 것을 알고 모래밭을 상하로 몇 리가 파헤친 끝에 
  시신을 찾아내었다. 남편을 장사지내고 일절 식음을 전폐하여 얼마 후에 죽고 말았다. 
  나라에선 이 마을에 정문을 세워 주었다.

    이외에도 열녀에 대한 얘기는 많다.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진 현실에서 선현들의 열녀담을 
  쓰고 있는 격세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홍양호의 [열부정려기]에
    '부인의 행'은 죽음으로써 열을 나타냄이니 타고난 천성을 지킨다'고 하였다. 즉 마을의 
  필부라도 능히 열을 행하여 손가락을 잘라 피를 쏟을 수 있었고, 도적을 만나서는 대신 죽을 
  수 있었으며 맹수를 잡아 묶고 물린 이를 빼어 낼 수 있었으니 역사의 기록에도 상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이것은 왕촉 선생이 한 말이다. 전국 시대 때에 제나라의 화읍에 살았던 그가 어질다는 말에 
  연나라 장군 악의는 화읍을 30리 밖에서 에워싸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뒤에 
  예를 갖추고 왕촉이 항복하기를 권유했으나 끝내 거절했다. 연나라의 사람들이 위협하자 
  왕촉은 자결함으로써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재물을 대할 때는 청렴하라

    제나라 때에 유회혜라는 군수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다스리는 관내 백성이 햅쌀 한 섬을 
  가져와 선물했다. 그는 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니라 자신이 먹던 보리밥을 보여주며 '내 
  먹을 것은 넉넉하다. 그러니 이것을 가지고 나를 번거롭게 만들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하여 
  그 햅쌀을 돌려주었다.
    공자의 제자 중 안회라는 이는 비록 가난했지만 항상 얼굴에서 즐거운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도 안회의 행동을 어질다고 자탄했다.
    충자께서 말하기를 '관직을 다스릴 때는 공평함 만한 것이 없고, 재물을 대할 때에는 청렴함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장사숙 선생의 좌우명
    좌우명이란, 항상 자리 곁에 붙여 놓고 반성의 자료로 삼는 격언이나 경구를 말한다. 이에 
  대한 유래는 공자와 깊은 관계가 있다. 춘추 오패의 한 사람이었던 제나라 환공이 죽자 
  제나라에서는 묘당을 세우고 온갖 제기를 진열해 놓았는데, 그러한 여러 제기 가운데 술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괴이한 일은 이 술 항아리가 비어 있을 때엔 기울여져 있다가도 
  술이 반쯤 찼을 때엔 바로 서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술을 가득 채워 놓으면 이 항아리는 
  다시 쓰러졌다.
    어느 날 공자가 이 묘당에 들렀는데 여러 제기 가운데 술항아리가 있는 것을 괴이하게만 
  여겼을 뿐 그것이 유명했던 술항아리 인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곳을 지키는 관원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무릎을 친 것이다. 
    "오호라, 저것이 그 유명한 술항아리인 모양이구나."
    공자는 즉시 제자들에게 명했다. 깨끗한 물을 길어 와서 술항아리에 물을 채워 보라고 한 
  것이다. 이제껏 비스듬히 기울어 있던 항아리는 물이 참에 따라 점점 똑바로 섰다. 그러다가 
  물이 가득 채워지자 이번에는 기우뚱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물을 다 쏟아 버리자 술항아리는 다시 반쯤 기운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공자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학문을 하는 것도 바로 저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자신의 학문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면서 마음의 그릇에 다 찼다고(배웠다고)교만해 지거나 자만에 빠진다. 
  그러다가는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공자는 똑같은 술항아리를 만들어 의자의 오른 편에 두고 항상 쓰다듬으며 
  자신을 경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본래의 뜻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장사숙 선생의 이름은 역이다. 송나라 수안 사람인데 어렸을 때엔 시장을 떠돌며 품팔이꾼을 
  하다가 훗일 정이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 성리학의 진수를 터득했다. [송사]<428>에 실려 
  있는 선생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무릇 말할 때에는 반드시 성실하게 하며
    행실은 반드시 후덕하고 공경해야 하며
    음식을 반드시 삼가고 절제하며
    글씨는 반드시 반듯하고 바르게 쓰며
    용모는 단정하고 엄숙하게 하며
    의관은 반드시 단정하고 엄숙하게 하며
    걸음을 걸을 때는 반드시 얌전하고 편안하게 하며
    사는 곳에는 반드시 바르고 고요하게 하며
    일하는 것을 반드시 처음을 헤아려서 하며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실행을 돌아보며
    떳떳한 덕을 반드시 굳게 가지며
    승낙하는 것을 반드시 신중히 응하며
    착한 일을 보거든 내가 한 것처럼 하고
    남의 악한 일을 보면 내 몸의 병처럼 생각하라
    무릇 이 열네 가지는
    내가 아직도 살피지 못한 것들이니
    이것을 써서 내 자리의 오른편에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보며 경계하노라

    범익경의 좌우명

    첫째, 조정의 이해 관계와 변방의 보고와 관직의 임명을 말하지 말 것이며
    둘째, 주현의 관원들의 옳고 그름과 일의 잘하고 못함을 말하지 말 것이며
    셋째, 여러 사람이 저지른 나쁜 일을 말하지 말 것이며
    넷째, 벼슬을 하게 되는 내막과 기회를 노려 권세에 아부하는 일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이며
    다섯째, 재물을 비롯하여 이익의 많고 적음, 또는 가난을 싫어하고 부자가 되는 일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이며
    여섯째, 음란하고 난잡한 행위나 여색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이며
    일곱째, 남의 물건이나 부귀한 것을 보고 헐뜯지 말 것이니라.
    무릇 이 몇 가지 일을 범하는 경우가 있으면 그 마음 씀씀이가 어질지 못함을 볼 수 있으니 
  마음을 보존하고 몸을 닦는 데 크게 해로운 바라. 이로 인하여 이 글을 써서 스스로 
  경계하노라.

    가난해지는 여러 가지 이유

    주나라 무왕이 여상 태공망에게 물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하여 부귀한 사람이 있고 빈천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까닭을 말해 주십시오."
    태공이 말했다.
    "부귀는 성인의 덕과 같아서 모두 하늘의 명에 따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부유한 자는 그 
  씀씀이에 절도가 있고 부유하지 않은 자는 그 집안에 열 가지 도둑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왕이 물었다.
    "무엇을 보고 열 가지 도둑이라고 합니까?"
    태공이 말했다.
    "곡식이 익었는데도 제 때에 거둬들이지 않는 것이 첫째 도둑이며, 거두어 쌓기를 마치지 
  않은 것이 둘째 도둑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등불을 켜 놓고 자는 것이 셋째 도둑이며, 
  게을러서 밭을 갈지 않은 것이 넷째 도둑입니다. 힘과 정성을 들이지 않는 것이 다섯째 
  도둑이며, 교활하고 해로운 일만을 해대는 것이 여섯째 도둑입니다. 첩을 너무 많이 두는 것이 
  일곱째 도둑이며, 낮잠을 자면서 게을리 하는 것이 여덟째 도둑이며, 술을 탐내고 욕망을 
  즐기는 것이 아홉째 도둑이며, 남을 몹시 질투하는 것이 열 번째 도둑입니다.
    무왕이 말했다.
    "집안에 이러한 열 가지 도둑이 없는데도 부유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태공이 말했다.
    "그런 사람의 집에는 반드시 세 가지의 더는 것(소모)이 있을 것입니다."
    무왕이 말했다.
    "세 가지의 더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태공이 말했다
    "창고가 세는데도 막지 않아서 쥐와 새가 마구 먹어대는 것이 첫째 더는 것이오, 씨 뿌리고 
  거둬들이는 때를 놓치는 것이 둘째 더는 것이오 낱알을 땅에 흘려 더럽히고 천하게 다루는 
  것이 셋째 더는 것입니다."

    무왕이 말했다.
    "집안에 이러한 세 가지 더는 것이 없는데도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태공이 말했다
    "그런 사람의 집에는 반드시 열 가지의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는 일을 그르치는 것, 둘째는 
  일을 잘못하는 것, 셋째는 어리석은 것, 넷째는 실수하는 것, 다섯째는 거슬리는 것, 여섯째는 
  상서롭지 못한 것 일곱째는 종놈의 버릇없는 것, 여덟째는 천박한 짓을 하는 것, 아홉째는 
  어리석은 것, 열째는 뻔뻔스러운 것이 있어서 스스로 그 화를 부르는 것 등입니다."
    무왕이 다시 말했다.
    "그 열 가지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태공이 말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아이를 타이르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잘못입니다. 새색시를 처음 맞아들이면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 세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웃기만 하는 것이 네 번째 실수입니다. 어버이를
    봉양하지 않는 것이 다섯 번째 인륜을 거슬리는 행동입니다. 밤중에 벌거벗은 몸으로 
  일어나는 것이 여섯 번째 천박한 짓입니다. 남의 활을 빌려 쏘기를 좋아하는 것이 일곱 번째 
  종놈의 버릇입니다. 남의 말을 빌려 타기 좋아하는 것이 여덟 번째 천박한 짓입니다.
    남의 술을 얻어 마시는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술을 권하는 것은 아홉 번째 어리석은 
  짓입니다. 남의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친구에게까지 주는 것은 열 번째 뻔뻔스러운 짓입니다."
    참으로 훌륭하다고 무왕이 말했다.

    무릇 관직에 있는 자는
    노여움 터뜨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일을 반드시 자상하게 처리하면
    결과는 원하는 대로 들어맞는다.
    그러나 노여움부터 터뜨린다면
    오히려 자신만을 해칠 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운명을 판단하는 거울

    이규보의 '경설'에 의하면, '거울이란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얼굴에 좋지 못한(불길한)것이 
  묻지 않았는가, 또는 얼굴빛이 평화스럽지 못하지나 않았는 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군자는 거울을 대할 때마다 그 거울의 맑은 본성을 취하여 얼굴에 비치는 
  거울처럼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비춘다' 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한비자]에 나오는 
  '감무견자지고'라는 말이 새삼 마음속에 와 닿는다. 즉 '거울은 사람의 얼굴을 비추어 흠을 
  나타내도 사람은 이를 벌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무릇 어떤 일에 '귀감'이 되게 한다는 말은 길흉을 뜻했다.'귀'는 거북을 나타내고 '감'은 
  쇠와 누울 와, 그리고 그릇 명의 합성어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누워서 쇠그릇을 본다'는 
  뜻이다. 오래 전 중국에서는 인간의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거북이 등을 말린 후 그것을 불에 구워 갈라진 금을 보고 판단하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가지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긴다. 
  거북이의 등에 갈라진 틈을 보고 길흉을 판단한 것과 '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자신의 얼굴을 
  비쳐 보는 도구가 '거울'이 아니었다. 사실 거울은 여간한 부잣집이더라도 고작 동경(빛?)이라 
  부르는 구리로 된 거울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쇠로 된 
  대야에 물을 붓고 자신의 얼굴을 비쳐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감으로 삼는다'고 할 
  때는 자신의 얼굴을 비쳐 보고 추함과 아름다움을 바로잡는다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송나라 유하자인 명도 선생[정호의 호]이 말했다.
    "처음으로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이더라도 참으로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도움되는 바가 있다."
    우리는 위의 말처럼 자신이 후대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길거리를 아무 
  의미 없이 굴러다니는 신문지 조각이 아니라, 스스로가 살아가고 있는 당대에 대한 감당해 
  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비쳐 보는 거울을 항상 눈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비쳐 보며 반성해야 할 것이다.

    거느리는 병사는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다. 본시 이 말은 [사기]에 출전이 보인다.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이제껏 자신을 위해 싸워 온 모든 막료 장수들이 모두 적으로 보였다. 사실 
  그 당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 곧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면 다시 그 세력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났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유방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적으로 보일 수가 있었다.
    초패왕 항우를 무너뜨리고 그래서 장량 같은 이는 스스로 신선이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중에 숨어 버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서한 왕조를 세우는 데 가장 공이 많았던 다음 장수가 
  바로 한신이었다. 언젠가 유방은 막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싸워 온 모든 막료 장수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장막 속에서 심산을 헤아려 승리를 천리 밖에서 얻게 하는 데 엔 네가 장량을 따를 수 
  없고, 양식을 천리에 실어 보내 병사를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은 소하를 따를 수 없다. 또한 
  싸우면 이기고 상대를 치면 빼앗는 것으로 말하자면 한신을 따를 수가 없다."
    즉, 이 말들은 정치를 비롯하여 경제와 군사의 전문가가 세 사람이었다는 말과 같다. 한때 
  한신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 적이 있었다. 관상을 잘 보기로 유명한 괴통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유방이 맨 먼저 한신을 초왕으로 봉했던 것은 그만큼 위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유방은 한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나간 일을 들추어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한 것이다. 여러 장수들에게 각기 능력대로 병사를 거느릴 수 있는 수효를 
  묻게 한후 유방은 한신에게 자신이 거느릴 수 있는 병사의 수효를 물었다. 한신은 10만의 
  병사를 유방이 거느릴 수 있다고 단언했다. 유방 자신은 병사의 수효가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숫자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방의 손아귀에 든 것을 한신은 이렇게 
  설명했다.'신은 군사를 쓰는 데 능하고 폐하는 장수를 거느리는 데 능하기 때문입니다.'
    후일 역사가들은 한신이 죽은 것은 직격탄을 잘 쏘는 그의 성격 때문으로 풀이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나라 태종인 이세민이 지은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위에는 지휘하는 사람이 윗사람이 
  있으며, 아래에는 이에 따르는 사람이 있다. 예물로 받은 비단으로는 옷을 지어 입고 창고에 
  쌓아 둔 곡식으로는 밥을 지어먹으니 너희의 봉록은 모두 다 백성들의 기름이다.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학대하기 쉽지만 위에 있는 푸른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
    '푸른 하늘을 속인다'는 기만에 대한 최고의 방어가 사기라고 '제논'은 말한 바 있다. 
  체홉은 [나의 인생]이란 글에서 '메뚜기는 풀을 먹고 녹은 쇠를 쓸고 허위는 영혼을 
  좀먹는다'고 하였다. 새겨들을 경구이다.

    항상 근면하라

    송나라의 시인 육구몽은 밭 수백 구와 삼십 간의 집이 있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물이 
  넘쳐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는데도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땅과 집을 돌봤다. 그가 
  말했다.
    "요순도 등에 곰팡이가 피었고 우 임금도 굶은 적이 많았는데 하물며 내가 어찌 근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몽훈>에 이런 말이 있다.
    "관직에 있는 자가 지켜야 할 법은 오직 세 가지이니 첫째가 청렴, 둘째가 신중. 셋째가 
  근면이다. 이 세가지를 알면 몸 가질 바를 알게 된다."
    임어당은 [북경호일]이라는 글에서, '관리가 탐욕 하면 탐욕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관리가 모두 오탁해 있으면 오탁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 어떤 훌륭한 정치 밑에서도 청렴한 
  관리도 부패한 관리도 있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원목]이란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목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가. 백성이 목자를 위하여 있는가. 백성이라는 것은 
  곡식과 피륙을 제공하여 목자를 섬기고 또 가마와 쌀을 제공하여 목자를 송영(??)하는 것이다. 
  결국 백성은 피와 살과 정신까지 바쳐 목자를 살찌게 하는 것이니 이것으로 본다면 백성이 
  목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목자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 세상에는 백성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목민관이 있겠는가. 
  다만 백성들이 평화스럽게 한데 모여 살았을 뿐이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이웃 사람과 언쟁을 
  하다가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들은 공담을 들어보려고 그 마을 노인에게 달려가 시비를 
  판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로는 온 마을 사람이 모두 그 노인을 추존하여 
  이정(뭉교)이라 불렀다.. ....>

    양이천석이란 말이 있다. 한나라의 지방관 봉록이 2천석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 말은 선량한 
  지방관을 지칭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공무원에 대한 불신 풍조는 아무래도 적당 
  주의와 한탕주의가 어우러진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과 공무, 행위자와 행위는 서로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일은 드물다'고 s. 스미스는 [도덕적 
  철학 개관]에서 꼬집은 바 있다.
    사회가 혼탁할수록 썩어빠진 탐관들이 판을 친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보다는 '재수 없게 자신이 걸려들었다'고 시세를 한탄하고 운수가 불길함을 탄식한다. 
  '개의 보호 밑에서 양들이 살찐다'는 몽고의 속담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황희

    태종이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하려 하자 당시 판서로 있던 황희는 이 일이 옳지 않음을 
  주장했다. 그로 인해 근 6년 동안을 외직으로 떠돌아야 했다. 이 일에는 유정현만이 찬성하여 
  세종이 즉위하자 그는 맨 먼저 정승이 되었다.
    어느 날 태종이 황희를 불렀다. 황희는 통이 높은 갓에 푸른빛 의 거친 베로 만든 단령을 
  입고 남빛 띠를 두른 채 승정원으로 들어왔다. 이 무렵 황희는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길이므로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태종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리 황희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 하여 이 사람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자리에서 곧 예조판서를 제수 했다. 때마침 지방에 흉년이 들었으므로 다시 그를 강원도 
  관찰사로 내려보냈다. 황희는 본시 마음이 너그럽고 성격이 모질지 못했다. 윗사람들이나 
  아랫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예의로 대하고 나라일 을 처리할 때는 항상 예전의 예를 들어 
  마음대로 고치는 법이 없었다.

    무릇 관직에 있는 자는 반드시 노여움을 터뜨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옳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자상하게 처리를 하면 반드시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여움부터 터뜨린다면 
  어찌 되는가. 오히려 자신을 해칠 뿐이다.

    항상 겸허하라

    천재 음악가인 슈벨트가 산책을 하는 중에 어느 요정에서 쉬게 되었다. 그는 선반 위에 놓인 
  셰익스피어 전집을 뒤적이다가 문득 그 속에 떠오른 한 소절의 시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시구를 메모하여 오선을 그린 다음 그곳에 악상을 그려 넣었다. 이것이 유명한 '들어라 
  종달새'이다. 이렇게 천재적인 요소가 다분한 그였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자신이 천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의 곡이 박수 갈채를 받으면 그때마다 '그것은 가수가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이다' 또는 '저 곡의 가사는 괴테의 위대한 시 덕분이다.'라고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내세우지 않은 겸허한 사람이었다.

    겸허하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섬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옛사람의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임금 섬기는 것을 어버이 섬기듯 하고, 높은 
  벼슬아치 섬기는 것을 형님 섬기듯 하라. 동료 대하기를 자기 집의 가족같이 하고
    아전 대하기를 자기 집 종들같이 하라. 백성 사랑하기를 아내와 자식 사랑하듯이 하고 관청 
  일 처리하기를 집안일 하듯이 하라. 그런 뒤에야 나의 마음을 다한 것이다. 만약 털끝만큼도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내 마음에 부족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느 누군가를 섬긴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자신을 격하시키라는 의미가 아니다. 
  원래의 자신은 그 자리에 있고 다만 상대방만 높여 준다는 의미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높이는 지름길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송나라 유학자인 이천 선생에게 물었다.
    "부는 본시 지방 장관을 보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가하려고 하는 일을 영이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천 선생이 말했다.
    "이럴 때에는 부가 마땅히 성의로써 움직여야 한다. 지금 영이 부와 화목하지 않은 것은 
  사적인 생각으로 다툼이 있기 때문이다. 영은 한 고을의 장관이니 아버지와 형을 섬기는 
  도리로 영을 섬기라. 만약 행정이 잘못이 있다면 자기에게로 돌리고 잘한 일이 있다면 그 
  칭찬이 영에게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하라. 그렇게 성의를 쌓아 간다면 어찌 영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겠는가.

    백성에 대한 도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이런 말이 있다.
    < .. .뱃사공이 공동체의 일원인 것처럼 백성 또한 그와 흡사한 존재라 할 것이다. 그러나 
  뱃사공은(그 중의 한 사람은 노를 젖고 다른 한 사람은 키를 잡고 또 한 사람이 방향을 
  살핌으로써 목적 항해를 하니까) 그 구실을 함에 있어서 각양각색으로 나누어져 있으므로 서로 
  서로의 덕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 그것이 제각기 다르다 할지라도 서로서로 사이에는 어떤 
  보편적인 정의의 흐름이 있고 모든 사공은 이를 위해서 해야 할 의무가 공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각자는 그것을 위해서 분투하는 것이다. 국민이라 하더라도 
  경우는 매한가지다, 그들이 하는 일이야 서로 다를지라도 그들이 소임이라고 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안태 번영에 있는 것이며 그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치 조직을 
  뜻하는 것이다.......>

    한나라 고제의 자손인 유안례가 백성을 대하는 도리에 대하여 묻자 명도 선생이 말했다.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뜻을 펴도록 하라."
    다시 아전을 다루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남을 바르게 하라."
    자기 자신을 먼저 다스린 후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수신이며 
  제가이다.

    충신은 바른말을 할 줄 알아야

    박안신은 정종 때에 문과에 급제를 하여 지평 벼슬에 올랐다. 태종의 사위 조대림이 잘못을 
  저지르자 이 일을 임금에게 알리지 않고 대사헌으로 있는 맹사성과 함께 심문을 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두 사람을 극형에 처하라는 명이 떨어져 형장으로 끌려가는 중에 
  박안신은 벌벌 떨고 있는 맹사성을 바라보며 일갈을 터뜨렸다.
    '대사헌께선 나의 상관이시지만 함께 죽게 되었으니 어찌 벼슬의 상하가 있을 수 있겠소. 
  나는 평소 그대를 지조가 있는 사람으로 여겼더니 겁쟁이가 아니오. 지금 형장으로 향해 가는 
  수레바퀴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는 즉시 나졸을 불러 기왓장을 주워 오게 한 다음 거기에 휘갈겨 썼다. 자신은 직책을 
  잘못 수행하였으니 죽음을 달게 받겠지만, 바른말하는 신하를 죽인 오명을 임금이 뒤집어쓸까 
  두렵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쓰기를 마치고 두 눈을 부라렸다.
    "이것을 임금께 전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 놈을 해치겠다."
    너무나 흉맹한 박안신의 서슬에 나졸은 그 글을 왕에게 바쳤다. 이때 정승으로 있던 
  성석린은 와병 중이었는데, 소문을 들은 즉시 궁에 들어와 박안신을 죽여서는 절대 안된다고 
  간언했다. 그 덕분에 박안신은 태종의 노여움에서 풀려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동진 시대의 도사인 포박자가 말했다.
    "도끼에 맞아 죽더라도 바르게 간하고. 가마솥에 넣어져 죽더라도 바른말을 한다면, 이를 
  충신이라 한다."
    이 말이 현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뇌물과 비리 사건을 
  일으킨 관료들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하고 적당 주의를 멀리해야만 그 옛날 충신들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충언했듯이 현재의 우리 사회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아내는 남편을 공경한다.
    얌전하고 현명한 아내야말로
    한 집안의 장식에 해당한다

    집안을 다스려라

    집안에서 질서를 지켜라

    일찍이 사상가인 마들리는 '질서 없는 사상은 우리들의 두뇌를 혼란케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를 매어서는 쓰지 못한다'고 한 것도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D. 휴움은 [도덕적 이론]에서 다음과같이 
  말한 바 있다.
    <......사람 개개인 사이에 널리 정의될 듯한 정의의 규칙은 여러 정치 사회에서는 조금도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이나 조약이 매일 독립 국가간에 체결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떠한 영향과 
  권위를 가진 것이 경험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한 그것은 종이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점에 있어서 여러 왕국과 개인 상호간의 구별이 존재한다. 사람은 그 본성이 
  개개인간의 연결 없이는 생존해 갈 수 없다. 그리고 그 연결을 공정과 정의의 제 법률에 대
    한 배려 없이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질서와 혼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등은 이러한 
  규칙을 파괴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나 여러 국민은 서로 교류가 없어도 생존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의 질서에 대한 정의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대체적으로 어떤 
  힘을 빌려서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다시 말해 압제가 없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점은 가정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압제를 가하지 않는다면
    가정의 평화는 그 순간부터 두 동강이 나기 때문이다.

    사마온공이 말했다.
    '아랫사람은 반드시 큰일이나 작은 일을 가릴 필요가 없이 제멋대로 행하지 말고 반드시 
  모든 일을 집안 어른과 상의하여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이것이 가정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은 바른길이라는 지적이다.
    속담에,
    '생강은 해묵을수록 맵다는 말처럼 일 처리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많은 경험의 계단을 
  오르내린 어른들의 결단이 크게 도움되기 때문이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말라

    손님은 갈수록 좋고 비는 올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만 자기 집을 찾아온 손님은 성의껏 
  접대를 하는 것이 미덕이다. 정수동의 해학에서 즐거움을 찾아본다.
    정수동을 손님으로 청한 어느 집에서 식사를 내어 왔는데 고약하게도 잡곡밥 한 그릇과 
  해묵은 김치 한 종지뿐이었다. 그러자 정수동은 주인을 불러 말했다.
    "이보시오, 대문간에 가면 내가 타고 온 나귀가 있을 것이오. 그러니 어서 가서 그 나귀를 
  잡아오시오."
    주인이 머쓱한 낯으로 대꾸했다.
    "나귀를 잡으시면 돌아갈 때는 뭘 타고 가시려구요?"
    정수동이 혼연스럽게 되받았다.
    "아 그거야 무슨 걱정이오. 이 집에 있는 닭을 타고 가면 되지."
    집주인은 할 수 없이 닭을 잡아 술과 함께 내놓았다.

    살림살이는 검소하게 해야 하지만 손님 접대는 풍성하게 하는 것이 우리네 집안의 인정이고 
  미덕이었다. 우리는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소홀하지 않았는가. 돌아갈 때 불편함을 주지 
  않았는가를 되짚어 볼 일이다. 손님이 돌아가면 집안에서 일어났던 여러 일들
    을 얘기하게 된다. 좋지 않은 얘기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 다니는 것은, 결국 집안을 망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은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현명한 아내

    '현명한 아내를 둔 자는 훌륭한 무기로 무장한 것과 같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현명한 
  아내는 남편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의 시작인 탓이다.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그토록 훌륭한 식견을 가진 철학자
    가 왜 그와 같은 아내를 골랐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많이 해댔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아무렇지 않은 낯빛으로 말했다.
    "훌륭한 기수는 제일 가는 명마를 타는 법이네. 그놈만 잘 다루면 그 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나도 그런 처를 잘 다루기만 하면 괴벽한 사람이라도 다루기가 쉬울 것 같아 
  그런 아내를 골랐네."
    우리 나라 속담엔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보고 절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물과 불과 악처는 삼대 재앙'이라고도 하였다. 즉 아내를 잘못 만나면 일생 동안의 
  불행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알버트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다. 알버트는 몹시 
  흥분하여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평소 그렇지 않아도 열등감에 젖어 있는 남편을 
  측은하게 여긴 여왕이 남편의 침실을 노크했다.
    "누구요?"
    "영국 여왕입니다."
    알버트는 문을 열지 않았다. 여왕이 반말 투로 "어서 문을 열어요!"
    이번에도 알버트는 똑같은 어조로 반문했다.
    "누구요?"
    "열어 주세요 나예요."
    다시 알버트가 물었다.
    "누구요?"
    "당신의 아내예요."
    그제야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태공이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고 하였다. 얌전하고 
  현명한 아내야말로 한 집안의 장식에 해당 될 것이다.
    독일의 작곡가인 바흐는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장례식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재까지 모든 일은 아내가 해 왔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허둥대었다. 
  아내의 장례식 문제를 의논하려고 사람들이 찾아와 묻자 그는 두서없이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내 아내와 상의를 해봐요."
    그만큼 아내의 자리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내야말로 남편의 친구이자 한 가정의 내조자인 
  탓이다.

    하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풀루타크 영웅전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카토는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인을 
  살 때는 나이가 어려 망아지나 강아지처럼 길들일 수 있는 것만 골랐다. 하인들은 그의 내외가 
  시킨 경우가 아니면 남의 집엔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으면 언제나 모른다고 대답하게 하였다.
    그는 하인이란 자기가 맡은 일을 하거나 자기가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며 잘 자는 사람을 
  좋아하였다. 잘 자는 사람은 멀쩡한 하인보다 길들이기가 쉬우며 잘 자고 난 사람은 일을 더 
  잘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애정 문제로 하인들이 늘 좋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하인에게 자기의 여종을 짝지어 주고 다른 여자들은 일절 거들떠보지 못하게 하였다.
    종을 부리려면 먼저 그 종의 입장에서 춥고 배고픈 것을 살피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하인들은 대개가 불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을 다스리는 덕목으로 하인의 다스림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손가락을 끊어 약으로 쓰다

    과산군에 사는 김말건의 딸은 이름이 사월이었다.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시어머니가 미치광이 병에 걸려 여러 해가 지났으나 낫지 않았다. 이것저것 약을 쓰다 보니 
  집안은 기울대로 기울었다. 그녀의 남편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던지 어머니를 갖다 버렸다. 
  소문에 의하면 미치광이 병엔 살아 있는 사람의 뼈가 약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약으로 드리자 병이 나았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마을에 정문이 세워졌다. 때
    마침 명나라의 사신으로 우리 나라에 온 진감이 사부를 지어 칭찬하였다.

    아 효녀의 마음이 곱고도 고우니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나니
    배워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남이로다
    아가의 몸을 어미가 주시더니
    어미가 병마에 걸려 낫지 않누나
    아기 죽고 어미 남으면 아기는 또 낳으려니와
    어미 죽고 아기 남으면 그만 이로다
    황금의 칼을 손에 쥐니 그 날 날카로워
    다만 어미 있으므로 나 있음을 알거니와
    한 번 휘두르매 그 손가락 몽땅 떨어져
    피가 흘러 흘러 치마를 적시 도다
    그릇에 받아 바치니 어미 마음 기쁠까만은
    때를 넘기지 않았으매, 어미가 앓음에서 일어났도다
    아, 천도는 머지 않아 바로 여기
    높은 곳에 있어 여기 저기를 다 비추고
    나랏님이 비석 세워 마을 문 내셨으니
    바람이 그 나무를 맑게 밝게 부누나
    길가를 한 번 바라보자 마음이 흐뭇하여
    이에 바로 붓을 쥐고 이 글을 적노니
    아, 효녀의 귀하고 귀하도다
    사람마다 입을 다물고 감탄하누나

    자식이 즐거우면 어버이는 즐거우며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옛날 
  효자 효녀들의 행장을 보면 부모가 병으로 위독할 때는 손가락을 자르거나 살을 베어 병을 
  낫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요즘 사람들 말처럼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그 마음을 살피면 능히 하늘이 병마를 몰아낸다는 귀한 믿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일에 대해 나라에선 정문을 세우거나 정기를 세운 것은 풍속을 교화하는 ?이 있기 
  때문이다.

    도둑을 잡는 방법
    옛날에 조조가 승상으로 있을 때 집 앞뜰에 열매를  잘 맺는 비파 나무를 심었다. 조조는 이 
  나무를 사랑하여 사랑하여 어느 누구든 비파 열매를 따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부하 하나가 몰래 비파 열매를 따먹었다. 조조가 
  돌아와 보니 비파 열매가 없으므로 누군가가 따먹은 것을 눈치챘다. 의심이 갈 만한 부하가 몇 
  있었으나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닦달하는 것도 뭣해서 무작정 그 비파 나무를 베어 버리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부하 한 사람 왜 베어 버리느냐고 말하자 그제야 비파를 훔친 도둑을 
  잡았다.
    옛 글에 때때로 불이 나는 것을 단속하고 밤마다 도둑이 드는 것을 대비하라고 하였다. 불과 
  도둑은 한결같이 재물을 없애는 도둑과 같다는 말이다. [논어] <안연편>에 이런 얘기가 있다.
    계강자가 도적을 근심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진실로 그대가 욕심 내지 아니하면 비록 상을 주어도 도둑될 자는 없으리라."
    계강자는 첩의 아들로서 정처의 아들을 죽이고 그 집안을 이어 받은 사람이었다. 당시 
  계강자는 국왕보다 더 많은 부를 누렸으므로 사실을 말하자면 그 자신이 도둑이었다.

    때를 기다린 숙손통

    진나라의 학자인 숙손통은 난세를 떠돌며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어 후일 한고조 유방을 도와 
  큰공을 세웠다. 처음에는 유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혀를 찰 정도로 
  아첨을 일삼았다. 유방은 건달 출신으로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앞에서 학문을 논하는 
  유학자를 만나면 머리에 소변을 끼얹을 정도로 학자들을 싫어했다. 그러므로 숙손통은 언제고 
  간에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리라 꾸준히 기다렸다. 이윽고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하자 질서를 
  잡기 시작했으나 여러 해 동안 전쟁을 치른 뒤끝이라 여간해서 질서가 잡힐 리 없었다. 유방이 
  고심하는 것을 눈치챈 숙손통은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하여 유방에게 권하여 조정의 
  의례를 정하도록 건의했다. 이후로 한나라에서 유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어떤 기회가 이를 때까지는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경행록]에도 '아침밥과 
  저녁밥이 이르고 늦음을 보아서 그 집안의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은 당연히 본인이 찾아내야 한다. [열자]에도 때를 얻는 자는
    번창하고 때를 잃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다. 기회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것을 우리는 시의 
  적절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바른 마음과 성의를 다하여.

    재물에 대하여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에 아름다운 구슬이 있다면 궤 속에 감춰 두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팔아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것을 팔아라. 나는 귀한 값으로 사는 사람을 기다리는 자다."

    재물은 참으로 요술쟁이와 같아서 어진 이가 재물이 없으면 대부분 그 뜻을 잃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과오를 더하게 된다. [대학]에 '재물이 모이면 곧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고 한 것은 재물이 얼마나 민심을 규합하는 데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재물이란 그 성질이나 본질로 보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 이를테면 조그마한 원인으로 
  인해 적어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며 없어지기도 한다. 학문을 하는 자세 역시 이와 크게 
  다름이 없다는 지적이다.

    [논어]에서 이르는 것처럼, '아무리 생각이 깊고 깊어도 학문이 없으면 위태로워지는 것'은 
  정한 이치다.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몸에 지닌 무기를 옳고 또는 그르게 
  사용하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학문'과 '재물' 또는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갖게 되는 재물에 대한 효용은 각각 
  쓰임새에 따라 적지 않은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일을 정의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소인인가,
    아니면 순간의 이익을 찾아 떠다니는 소인인가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과감하게 내보일 수 있는 용기는 있는가?

    의리를 편안히 여겨라

    안씨 가훈에 대하여

    [안씨 가훈]은 수나라 때에 안지추란 이가 지은 두 권의 책이다. 이 책에는 입신 출세와 
  집안을 다스리는 법을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내용들이 씌어 있다. 
  [안씨 가훈]에 이런 말이 있다.
    "백성이 있은 뒤에야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는 뒤에야 부자가 있으며 부자가 있은 뒤에 
  형제가 있다. 한집안의 친척은 이 셋뿐이다. 여기에서부터 나아가 구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삼친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인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 돈독하게 지내지 않을 수 없다."

    안씨 가훈에서는 삼친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 삼친으로 인하여 집안의 모든 뼈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요즘 시대는 핵가족 시대다. 그러다 보니 젊은 연인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한다. 부모 . 형제가 함께 어우러져 살기보다는 우
    선 자신들의 편안한 방법만을 찾아 나선다. 이들이야말로 삼친의 중요성이 무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중종을 살린 영산군

    영산군은 성종의 열셋쌔 아들로 이름은 전이다. 중종이 진성대군으로 있을 때, 하루는 
  연산군의 명에 의해 사냥을 따라가게 되었다. 평소 진성대군이 왕이 되리란 소문으로 마음이 
  불편한 연산군은 생각지도 않는 명을 내렸다.
    "이곳에서 나는 동대문으로 들어가고 너는 남대문으로 들어가되 네가 궁궐에 `늦게 도착하면 
  엄한 벌을 내리겠다."
    명을 받은 진성대군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성대군의 말은 워낙 
  여윈 탓에 달리기가 형편없었다. 이때 옆에 있던 영산군이 소곤거렸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 내 말이 아주 날쌥니다. 그러니 내 말을 타고 가십시오. 다만 그 
  말은 내가 몰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으니 내가 마부 옷을 입고 말을 몰겠습니다.'
    영산군은 말을 미친 듯이 몰았다. 그 덕분에 연산군보다 궁에 먼저 들어와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옷과 같다. 웃은 떨어지면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지만 손발이 
  잘리면 잇기가 어렵다."
    부부 사이보다는 형제간의 우의를 더 중히 여기는 대목이다,

    진정한 친구
    '친구는 옛 친구가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과연 친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터키에서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을 때는 
  반드시 그 친구를 찾아가 물어 본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궁금히 여기는 상대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친한 두 사람이 먼 길을 가게 되었다. 험한 산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주자는 말을 나누었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 찬 산길이라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마는 
  친구와 함께 동행하므로 잔걱정은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불쑥 곰 한 마리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한 사람은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은 얼른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은 시늉을 했다. 그는 곰이 결코 죽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너무나 무서워 달아날 수도 없는 터여서 죽은 척하고 있는 사내에게 곰은 코를 대고 
  쿵쿵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저쪽을 살피다가 이윽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나무 위에 
  있던 친구가 내려와 말했다.
    "이보게, 조금 전에 보니 곰이 자네에게 다가가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던가?"
    친구가 말했다
    "곰이 그러더구만. 위기에 처한 친구를 놔두고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나무 위로 올라간 
  친구와는 앞으로 절대 같이 다니지 말라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이 얘기는 이솝의 우화 속에 나오지만 많은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A.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위한 어플리스맨]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친구란 과연 드문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사무엘 존슨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감에 따라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않으면 곧 고립 상태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리라. 우정은 끊임없이 손질을 하면서 지켜야 한다. 우정을 나태와 침묵으로 죽여 
  없애게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은 확실히 권태스런 역경의 가장 큰 위
    안 중의 하나를 의식적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 된다. 나는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않는 날들을 
  모든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한다.'
    소동파 선생이 말했다.
    '부유하다고 친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멀리하지 않아야 이가 바로 인간 세상의 대장부일세. 
  부유하다고 가깝게 지내고 가난하다고 멀리하면 이가 바로 인간 세상의 소인배라네.'

    송나라 때의 왕안석이라면 문장도 유명할 뿐더러 '안석 신법'을 만들어 유명해졌다. 그러한 
  사람이 어찌 된 셈인지 괴벽 이하나 있었다. 그것은 가까이 음식이 있으면 무엇이건 손으로 
  얼른 집어먹는 버릇이었다. 어느 날 왕이 그의 하는 양을 지켜보려고 낚시 미끼를 금접시에 
  담아 왕안석 앞에 내놓았다. 왕안석은 얘기를 나누던 중에 무심히 금접시에 든 과자를 
  집어먹었다. 그것을 보고 왕이 말했다.
    "이보게, 그것은 낚시 미끼네."
    "그렇습니까. 그것참 맛있습니다."
    왕안석은 말을 마치자 그 과자들을 모두 집어먹어 버렸다. 이때로부터 사람들은 왕안석을 
  소인이라 불렀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 가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일을 정의에 
  입각하여 이해하고 판단하는 군자인가, 아니면 순간 순간의 이익을 찾아 친구와의 우정도 또는 
  윗사람에 대한 경애함도 버리는 소인인가? [논어]에서 공자가 지적하였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자신의 허물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 쉬쉬하며 숨기는 쪽'이어서는 언제나 
  소인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문밖을 나설 때는
    큰손님을 만나는 것처럼 하고
    방안에 들어올 때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라.'
    이 말은 항상 자신을 살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본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예의를 지켜라

    진중에는 농이 없다

    [손자 병법]을 읽은 오나라 왕 합려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그는 병략서보다는 실제로 손자를 
  초청하여 나라의 병권을 맡기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손자는 왕의 말을 받아들였다.
    "병사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병사들 대신 궁에 있는 여인이라도 상관없다면 180명의 후궁들로 하여금 훈련을 받도록 
  하겠소."
    손자는 l8o명의 후궁들을 연병장에 모이게 한 다음 9o명씩 둘로 나뉘어 서게 했다. 손자는 
  커다란 쇠도끼를 들고 호령했다. 일단 군영이 형성되면 군진 안에서는 일체 농을 주고받아도 
  안되며 자신의 말에 무조건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자의 명이 떨어졌는데도 
  후궁들이 웃기만 할 뿐 명을 따르지 않자 손자는 여인들 앞에 서 있는 대장의 목을 치려 
  하였다. 두 대장으로 말한다면 합려왕이 너무나 총애하던 여인들이었다. 두 대장의 목을 
  친다는 말을 듣고 합려왕이 달려와 사정했다. 한 번은 실수를 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소신은 지금 왕명을 받들어 병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왕명은 지엄하여 장군이라 하여도 
  어길 수는 없습니다만 때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사온대 지금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손자는 즉시 두 대장의 목을 쳤다. 그 다음부터 손자의 명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여인들이 움직일 뿐 아니라 진중에서 감히 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후 손자는 오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하고 제나라와 진나라를 위협했다. 그는 대공을 세운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집안에 예절이 있으므로 어른과 아이의 분별이 있다. 부녀자의 방에 예절이 있으므로 
  삼족이 화목하다. 또한 조정에 예절이 있으므로 벼슬에 차례가 있으며 사냥에 예절이 있으므로 
  군사 일이 잘된다. 군대에도 예절이 있으므로 무공이 이루어진다."그렇다면 '예절이란 
  무언가?' 쇼펜하우어는 [윤리학]이란 글에서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빈약한 서로의 성질을 
  무시하면서 비난하지 말자고 하는 암묵 속의 협정'이라 하였다.
    공자는 [논어]에서 '예가 아니면 보거나 듣지도 말고 행동하지
    도 말라.' 하였다. 얼마나 예절을 중요시 여겼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배고프고 추위를 멀리하는 근심이 없고 생활이 풍족하여야만 사람은 예의를 지킨다는 의미로 
  '의식 족이 하여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출전은 [관자]인데 <목민편>에 그 
  내용이 보인다. 즉, '쌀이 곡간에 차면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하면 명예와 치욕을 안다'는 
  뜻이다.

    도둑에게 도가 있는가

    맹자의 <진심장구>에 이런 말이 있다.
    '닭이 울 무렵부터 일어나서 꾸준하게 선을 추구하는 자는 순의 무리다. 닭이 울 무렵부터 
  일어나서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다. 순과 도척의 무리를 알고자 한다면 다른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느냐 선을 추구하느냐의 구별에 있는 것이다.'
    도척의 무리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도둑에도 도가 있습니까?'
    '세상에 도가 없는 것이 있겠느냐. 남의 집에 있는 물건을 불의로 넘겨보지 않는 것이 
  성이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이며 맨 뒤에 나오는 것은 의며 가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며
    고루 나누어 가지는 것은 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가져야 능히 대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말은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도둑의 무리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들인 말에 불과하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에게 용맹만 있고 예의가 없으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소인에게 용맹만 있고 예의가 
  없으면 도둑이 될 것이다."
    위의 말들은 자신을 합리화하며 남의 재물을 약탈하는 도척과 같은 무리들에게 합당한 
  말이다.

    덕을 쌓고 높여라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덕에 의한 생활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셰익스피어는 '여자를 교만하게 하는 것은 그 미모이며 찬양 받게 하는 것은 그 
  덕성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덕성과 미모를 겸비하면 신성에 이른다는 것이다.

    자장이 덕을 높이고 모순을 분열시키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진실과 신의를 
  지키고 정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덕을 높이는 길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원하고 미우면 그가 죽기를 원한다. 도대체 남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원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고 탄식하였다. 한 번은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에 
  대해 물었다.
    '무도한 죄인을 사형에 처하여 천하의 만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대 스스로 착하고자 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착해질 것이오. 그런즉 군자의 덕은 바람이오 
  소인의 덕은 풀이라. 바람을 맞으면 반드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오.'

    증자는 이름을 삼이라 하였는데 공자보다는 46살이나 아래였다 아버지 증석과 함께 공자를 
  따라다니며 배웠는데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증자는 아버지에게 끼니마다 고기를 올렸다. 항상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고기가 더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논어]애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그의 이름을 증자로 표기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증자가 말했다.
    '조정에서는 벼슬보다 나은 것이 없고, 마을에서는 나이 많은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나라일 을 돕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덕보다 나은 것이 없다."

    모든 일은 순서를 지켜야

    빵을 굽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밀가루를 반죽하고 그 다음에 불을 
  지피고 솥을 올려놓는 등 하나에서 시작하여 점점 필요한 부분으로 나아가는 순서가 필요하게 
  된다. 이 순서가 틀리거나 또는 속이던가 하면 빵은 잘 구워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치뤄 내야 하는 일들은 일정한 순서를 
  밟음으로써 비로소 참된 생애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삼강 오륜에서 말하는 '장유 유서'는 
  어른과 아이의 순서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다.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 어른과 아이는 하늘이 오래 전에 정해 준 차례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이치를 어기고 도리를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조선 때 황희 정승은 항상 아랫사람을 잘 이끌었다. 나라의 정치는 물론 집안을 잘 이끈 
  덕에 수신(운?)이라는 아들 역시 세종 때엔 영의정이라는 높은 벼슬길에 올랐다.
    영의정이 된 수신은 아버지를 본받아 한평생 어진 덕을 베풀었다. 말은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행동엔 절제가 있었으며 자식 된 도리를 다하였다.

    '문밖을 나설 때는 큰손님을 만나는 것처럼 하고 방안에 들어올 때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라.'
    이 말은 항상 자신을 살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본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허물에 대하여

    진나라의 사법 장관이 공자에게 물었다.
    "노나라 소공은 예를 압니까?"
    "압니다."
    공자가 떠나가자 사법 장관은 무마기를 불러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편당을 하지 않는다는데, 편당을 할 수가 있습니까? 소공이 
  오나라에서 비를 얻었는데 노와 오는 동성이 아닙니까. 그래서 부인은 오맹자라고 한다는데 
  소공이 예를 안다면 어느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 일을 무마기가 공자에게 말하자, 공자는 자신의 허물을 가리켜 준 사람들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상대가 나의 허물을 말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짓는가. 금방이라도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상대와 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허물을 가르쳐 준 이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 세상엔 허물없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 용서하라'고 했다.
    [법구경]에서 이르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는 것보다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행위에 대해 반성을 하는 자세를 길러야 할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수를 놓은 무늬와 같아서
    펼치면 모두 무늬가 나타나지만
    접으면 그 무늬가 감춰져 소용이 없게 된다
    공자는 말에 대해
    '평생 선한 일을 하였다 해도 한마디
    말을 잘못 함으로 이를 모두 깨뜨린다.'고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말에 관하여

    이치에 맞지 않은 말

    어느 심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는 말을 듣는 일이 45%이며, 말을 하는 
  일이 30%, 그리고 읽는 일이 16%이며 쓰는 일을 l8%라고 했다. 우리들의 생활에 30%를 
  차지하는'말을 하는 일'을 하나의 예화를 통해 그 중요성을 살펴보자.

    오르레앙 공의 아들을 양육하는 장리 백작의 부인은 항상 상대방을 비꼬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그녀의 친구 가운데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으나 쓰는 말이 몰상식한 여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백작 부인에게 자랑 같잖은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저 부인 저는 요즘에 걱정이 태산이랍니다 나를 좋아한다고 구애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떼어버릴 수 있나 하고 번거로운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작 부인이 빈정거렸다
    "그거야 간단하지 않소. 당신의 평소 말투를 보건대 한마디 말로 지껄여 대면 상대가 백 리 
  밖으로 도망가 버릴 것인데 무슨 걱정이람."

    동양 명언에도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했다. 
  말의 중요성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말이다. 유회 선생은, '말이 이치에 맞으면 말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필요 없는 말은 삼가라

    초나라 회왕 6년, 초나라에서는 재상인 소양에게 군사를 주어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소양은 위를 무너뜨리고 다시 병사를 이동시켜 제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제나라의 민왕은 몹시 
  걱정하여 때마침 진나라의 사자로 와 있던 진진에게 방도를 물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초나라로 가서 싸움을 그치게 하겠습니다."
    진진은 즉시 초나라 진영으로 가서 소양과 회견했다.
    "초나라의 법에 대해 묻겠습니다. 적진을 무찌르고 적장을 죽인다면 그 공은 어디에 
  해당됩니까?"
    "상주국으로 임명되던가 동시에 상급은 규라고 부르는 구슬을 하사 받게 됩니다."
    "상주국 이상의 벼슬이 있습니까?"
    "그 위는 영윤입니다."
    "지금 귀하께서는 이미 영윤에 이르렀습니다. 초나라의 최고 관직이지요. 제가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지요. '어떤 사람이 하인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큰잔에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었습니다. 그때 하인 하나가 말했지요. 여러 사람이 술을 먹으면 실컷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땅에 뱀을 그리되 제일 먼저 그리는 자가 먹기로 하면 어떨까' 모두들 그의 의견을 
  좇아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은 술잔을 들고일어나며 발도 
  그릴 수 있다고 하며 덧붙여 그린 것입니다. 그러자 나중에 뱀을 그린 자가 그 술잔을 빼앗아 
  먹으며 뱀에게 무슨 발이 있느냐고 따진 것이지요. 지금 귀하는 영윤의 높은 벼슬에 있습니다. 
  위로는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싸움에 실패한다면 관직을 잃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초나라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괜히 뱀의 발을 
  그려 화를 자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소양은 과연 그렇다는 듯 무릎을 쳤다. [사기]에 출전이 보이는 이 얘기는 괜히 뱀의 발을 
  그린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일에 관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 글에 한마디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천 마디 말도 쓸모 없다고 하였다. 우리의 언어 생활을 돌아볼 때
    과연 우리는 쓸모 있는 말만을 골라 했는가? 아무리 즐거움을 실어 나르는 농담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말장난으로 혹여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나 않았는가.
    말은 상대의 기분을 조절하는 온도계와 같은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말을 내뱉어선 안될 것이다.

    수다쟁이 왕

    옛날 어느 나라에 말하기를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너무나 말하기를 좋아하여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 중간에 가로채어 혼자 떠들어대기 일쑤였다. 이러한 왕의 버릇을 어떻게 
  고칠까 생각하던 시종이 왕에게 말했다
    "대왕 마마, 소신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겠습니다."
    왕의 눈은 금방 호기심으로 번들거렸다. 시종이 말했다
    "히말라야의 깊은 산 속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답니다. 그 연못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이 거북이에게 어느 날 친구가 생겼지 뭐겠습니까."
    "친구?"
    왕은 자신이 끼여들 만한 틈을 찾았지만 아직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왕 마마, 거북이의 친구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거야 쉽지. 거북이의 친구라면 토끼가 아닌가."
    "틀렸습니다. 이 거북이의 친구는 토끼가 아닌 백조랍니다."
    "그래? 어서 뒷얘기나 해보아라."
    "예에. 어느 날 백조가 거북이에게 말했답니다."
    "무슨 말을 했는데?"
    왕은 말을 하고 싶어 입안이 근질거렸다. 시종은 왕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체 
  뒷얘기를 이어 나갔다.
    "백조가 말했답니다. 높은 봉우리에 황금으로 된 굴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거북이는 가고 싶다고 했답니다. 거북이가 나무 막대를 물고 있으면 백조가 
  한쪽 끝을 잡고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조건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것은 절대 말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흐음 그래서?"
    "백조는 막대기를 거북이의 입에 물리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때 저 아래에서 동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떠들어댔어요. 거북이는 아이들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하여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쳤답니다.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야. 내 친구가 나를 물
    고 가는데' 그 거북이는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을 쳤답니다."
    이제껏 시종의 얘기를 듣고 있던 왕은 그 다음 부턴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얘기다. 영국 속담에 '눈은 둘 귀도 둘이지만 입은 하나'다. 
  그것은 많이 보고 많이 듣되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나라 때의 이름난 점쟁이인 엄군평은 사람들에게 '충. 효. 신의'를 가르치며 점을 
  보아주었다. 그가 벌 수 있는 금액은 백전이었다. 이 액수가 들어오면 그는 문을 닫아걸고 
  [노자]를 읽었다, 그가 말했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이 들어오는 문이며 몸을 망치는 도끼'라고 하였다.

    혀가 재산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 말을 잘하기로 유명한 장의가 십년을 공부하여 그 방면에 일가를 
  이루었으나 아직은 때를 만나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었다. 하루는 가난을 이기지 못한 그의 
  아내가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장의는 여전히 큰소리였다.
    "아니, 돈을 벌지도 못하는 주제에 지금도 큰소리예요."
    그 말을 들은 장의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아내를 향해 말했다.
    "내 입 속에 혀가 아직도 있는지 한 번 봐요."
    "그럼 혀가 어디로 가나요?"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 아직 혀가 있으니까."
    과연 그는 얼마 후 집을 나가 연형설로 6국을 달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단 한마디 말이 잘 쓰이면 천금의 값어치가 나가지만 한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면 칼로 베는 것처럼 아프다는 것이다.

    연산군 때에 임희재는 도승지인 임사홍의 아들이었으나 김종직의 문하생으로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그는 연산군에게 병풍에 씌어 있는 시구를 주었는데 그로 
  인해 곤장 100대를 맞고 천리 밖으로 귀양을 갔다.

    요순을 본받으면 절로 태평한 것인데
    진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을 괴롭혔는가
    재앙이 집안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공연히 오랑캐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쌓았구나

    임회재는 이로 인해 귀양을 갔으나 다시 한양으로 얼마 후에 돌아왔었다. 그러나 1504년 
  갑자사화 때에 김종직의 문하였다는 미명 아래 죽임을 당하였다. 이 당시 연산군은 신언패를 
  대신들에게 내리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엄금하였다. 즉 아랫사람이 세상일을 비방하는 것을 
  막는 기상천외한 방책이었다.

    입은 화를 불러오는 문이오
    혀는 목을 베는 칼이라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서나 편안하리라

    연산군 재위 당시에 명령을 받은 자는 모두 승명패를 차게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급하고 
  속된 명을 추비전이라 하였는데 이 승명을 범하는 자는 사형이었다. 연산군이 승명을 하는 
  상황에서 내린 이 글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지만, 명심보감에서는 평소 
  말조심하기를 경고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다.

    입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도끼이고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디에 있어도 안전하리라

    오행 절구로 지어진 시의 내용은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에스페란토 어를 만들어 낸 라자르 자멘호프는 폴랜드 동쪽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시 이곳은 
  오래 전부터 프러시아 군 . 프랑스군 . 러시아 군 등등의 군대가 쳐들어 와서 통치를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살고 있는 주민도 유대인을 비롯하여 폴랜드인 독일인, 러시아 인 등의 
  인종이 있어서 사용되는 언어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여러 언어를 쓰다 보니 의사 소통이 안될 
  것은 정한 이치였다. 그러다 보면 자기네 언어를 가지고 있는 동족들은 상대편을 미워하는 
  일까지 생겨나 치안도 위태로웠다. 이때 자맨호프는 안과 일을 보면서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공통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에스페란토 언어를 만들어 
  자기 마을을 평화롭게 하는 반면 세계 평화에까지 이바지하게 되었다.

    문학적으로 본다면 언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처구니없이 감정을 처리해 버린다. 그것은 
  냉혹하고 화날 만큼 오만 불손한 것이라고 하겠다. 아무리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을 해야 
  맛이라고 했지만 우리들은 '일언이위지일언 이위부지'란 말을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즉 
  '단 한마디 말로써 지자도 되고 무식자도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언어는 몹시 신중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옛 글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10분의 3만 말을 하고 한 조각 마음까지는 던지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호랑이에게 세 입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사람의 두 마음을 
  두려워하라고 했다.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말

    지금 쓰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말은 어느 것일까? 그것은 인도에서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이 코끼리를 다룰 때에 쓰는 말이다. 이것은 인도인들이 항상 쓰는 힌두어나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도 아니다. 그 말은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에 인류가 처음으로 코끼리를 
  기를 때에 쓰던 것이다. 이른바 혈거 시대의 말이다. 이 코끼리들은 다른 어떤 언어를 
  사용해도 듣지 않는다. 5만년 전부터 내려온 자신들을 길들이는 말만을 들을 뿐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는 물론 한국어이다. 우리는 언어로서 모든 감정의 기복을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붉은 꼬리표를 단 주의 사항을 인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언어가 활동이라는 점이며, 어떤 낱말의 변하지 않은 물체의 세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말은 
  여성적이며 행동은 남성적이어야 한다'고 그라시안은 말한 바 있다.
    옛 글에 이런 말이 있다. '나를 알아주는 벗을 만나면 천 잔의 술도 적고, 뜻이 맞지 않으면 
  한마디 말도 많다'고 했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중국인들은 그를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아롭게 생각했다. 저 사람은 왜 우리 나라의 내무장관을 
  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내무장관을 하는 걸까.'라고. 그만큼 신익희는 중국어에 유창했다. 
  어느 날 장개석 총통이 해공을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우리 중국인보다 중국어를 더 잘하십니까?"
    그러자 곁에 있던 이승만 박사가 해공을 이렇게 칭찬했다.
    "해공은 중국어를 잘하지만 한국어를 더 잘합니다."

    뉘앙스가 다분한 답변이다. 그 옛날 초나라 사람들은 광인까지도 초나라 말을 한다고 했다. 
  한 나라의 말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세계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외국 언어도 한두 가지는 익혀 두어야 남들의 뒷전에서는 수모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쓰는 언어는 중국어이다. 그 다음이 영어라는 통계이다. 우리 
  나라의 말도 머지않아 세계 공용어가 될 날이 머지않으리라 본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국력이 
  신장됐다는 의미다. 체코슬라바키아 속담에 이런 격언이 있다.
    '말이 살아 있는 한 그 국민은 죽지 않는다.' 이 언어의 장에서 분명하게 권하고 싶은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나무에 가위질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야단을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겨울의 추위가 심할수록 오는 봄의 나뭇잎은 더욱 푸르다. 
  사람도 역경에 처해야 큰 인물이 된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이 젖지 않아도 때때로 물기가 배어든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뒷간에 앉는 것과 갈이,
    옷은 더럽혀지지 않아도 더러운 냄새가 배어든다.

    친구는 가려서 사귀자

    솔개의 밥이 되다
    P.포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세 종류의 친구를 가졌다' 는 것이다. 즉 자신을 사랑한 
  친구, 자신에게 무관심한 친구,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는 친구 등이다. 만약 마흔 살이 되어도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전에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였다. [이솝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이곳 저곳의 논밭으로 돌아다니며 낱알을 주워 먹고 사는 쥐와, 연못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내는 개구리가 있었다. 우연히 둘은 친구가 되었다. 둘은 정답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놀기도 하였는데 어느 날 개구리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자신의 다리와 쥐의 다
    리 가운데 하나를 묶어서 같이 다니는 게 어떻느냐 는 것이었다. 쥐는 찬성했다. 둘은 
  서로의 다리 중 하나씩 묶고 밖으로 나갔다. 쥐는 밭에 가야만 낱알을 주울 수 있었다. 
  개구리는 이 밭 저 밭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진땀이 났다. 마침 연못 하나가 눈에 띄자 재빨리
    물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시원한 나머지 개구리는 쥐 생각은 안중에 없었다. 이윽고 쥐는 
  물에 빠진 채 몹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져 물위로 떠올랐다. 이때 공중을 
  날아다니던 솔개가 연못 위에 쥐가 떠 있는 것을 보고 쏜살같이 내려와 낚아챘다. 서로
    의 발을 묶은 개구리 역시 솔개의 밥이 되고 말았다.

    공자가 말했다.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자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는 느껴지지 않으니 바로 그것에 동화 된 것이다. 착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갈아서, 오래되면 냄새가 느껴지지 않으나 그 또한 동화 
  된 것이다. 그렇기에 군자는 반드시 자기와 함께 있을 자를 삼가야 한다.'
    '친구는 친구를 물들인다'는 지적이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란 책에도 그건 
  에기가 나온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 이가 묻고 
  다른 사람은 얼굴이 깨끗했다. 어떤 사람이 세수를 하겠느냐? 물론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까지도 더럽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같은 질문이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 한 사람의 얼굴은 깨끗하고 다른 
  쪽은 얼굴에 검댕 이가 묻었다. 자 이번에는 어느 누가 세수를 하겠느냐는 질문이다. 정답은 
  바로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굴뚝은 검댕이가 있는 곳이므로 그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검댕이가 묻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굶어 죽은 새
    옛날 어떤 바다새가 노나라에 와서 앉았다. 노나라의 임금은 그 새를 맞아들여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어 술을 먹이고 순임금의 음악이라는 구소를 연주하고 소. 염소. 돼지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도려내어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새는 눈이 부시고 걱정되고 슬퍼져서 
  감히 한 조각도 먹지를 않다가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이것은 노나라 임금이 자신의 방법으로 새의 먹이를 만들어 준 것으로 새를 기르는 방법을 
  몰랐다고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새를 기를 때에는 깊은 숲 속에 새를 깃들게 하고 
  모래밭에서 놀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 띄워 주고 미꾸라지나 물고기들을 먹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친구들과 지지배배 즐겁게 놀아야 하는 시간에 시끄러운 궁중 
  음악을 듣고 기름진 육류를 입에 대게 하였으니 어찌 병이 나지 않겠는가. 새는 마땅히 그 
  소리를 듣고 날아갈 것이 분명하다. 고기는 물에서 살고 사람은 물 속에 잠기면
    죽는 것이다.

    [장자]의 <지악편> 나오는 얘기다. 이 세상엔 서로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를 꼬집은 얘기다.

    관중과 포숙의 우정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였다. 장사도 같이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도 함께 했다. 제환공이 
  즉위할 때 포숙은 환공 편이었다. 제환공에게 관중을 죽이지 말도록 추천한 사람이 
  포숙이었다. 언젠가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무척 가난했어. 함께 장사를 하면서 그보다 많은 이득을 취했어.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벼슬길에 나갔을 때마다 나는 몇 번씩 쫓겨났지만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나를 비웃지 
  않았다. 싸움터에 나갔을 땐 나는 늘 뒷전에 있다가 도망쳐 왔는데 그는 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옛말에 이런 얘기가 있다 술과 음식을 먹을 형제는 천 명이나 되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많다. 공자가 말했다.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훌륭하게 하였다. 한 번 사귀면 오래되어도 그를 공경하였다.'고 
  하였다.

    학문의 의미
    공자는 [논어]에서 '먼저는 알아야 한다.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에 비하여 훨씬 유익한 
  일이다_ 그러나 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참된 지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배워 알기를 사랑해야 
  한다. 억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에 애착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높은 단계는 배우고 깨친 것에 무한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에 있다. 깨치어 가는 진리에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진정 인생에 통달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순자의 말에 이런 얘기가 있다. '소인의 배움은 귀로 들어 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겨우 네 치 뿐 무엇으로써 일곱 자의 몸을 아름다움으로 삼는데 족할까 보냐.'

    간세이 시대에 이마즈라는 마을에 요우에본이라는 돈 많은 쌀장수가 있었다. 그는 유학에도 
  밝아 검약에 힘쓰며 마을에 토목을 일으켜 건설을 하고 빈민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어 
  덕망이 높았다.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여 슬피 울었다. 이때 한 노파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그렇게 학문을 닦으셨는데 선량한 분이셨으니 학문을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선량한 분이었을까!'.

    이 말은 바꾸어 말해 학문이 갖는 폐악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공자도 [논어]에서 말하기를, 
  '학문이란 추구할수록 뜻한 바를 잃을까 두려워지는 것이라 하였다. [공자 가어]에 이런 말이 
  있다'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을 젖지 
  않아도 때때로 물기가 배어든다. 무식한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뒷간에 앉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혀지지 않지만 때때로 그 냄새가 맡아진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죽림 정사에 있을 때, 영축산에 온 소오나 비구가 부처님 곁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소오나 비구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부처님의 제자로서 성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집
    에 돌아가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나으리라.
    '부처님이 소오나의 마음을 알고 비구 한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소오나, 너는 세속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소오나야 네가 거문고를 탈 때에 줄을 늦추면 소리가 어떠하더냐?"
    "소리가 잘 나질 않습니다."
    "그럼 세게 조이면 어떻더냐?"
    "역시 소리가 잘 나질 않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알맞게 조여야만 납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했다.
    "그렇다. 공부 또한 이와 같다. 너무 급하게 하여도 아니되고 너무 게을러서도 안된다."

    성문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달은 것을 말한다. 공자의 말에 
  무사.불권.애경이라는 말이 있다. '무사'라는 것은 모든 일을 거짓 없이 행하는 것을 말하며
    '애징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불권'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게으르지 않게 행동하며 지쳐 쓰러지지 않을 만큼 열심을 
  내어 일한다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알맞게 해야 한다는 것. 천칭 저울에 올려놓아도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은 그런 
  '눈금'을 '알맞음'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그 알맞음의 기준에 맞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연주의 대가

    유명한 음악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음악가에겐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곳 저곳을 
  찾아가 돈을 빌리려 하였으나 특별한 방법이 없자 가까이 살고 있는 부자를 찾아가 돈을 빌려 
  달라고 청을 넣었다.
    "지금 제게 아주 급한 일이 생겼답니다. 그러니 돈을 빌려주신다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갚겠습니다."
    "그 가능한 시일이 언제쯤이오?"
    "2년이면 족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준다면 돈을 빌려주겠소."
    부자는 음악가가 가난하기 때문에 그에게 돈을 빌려 줄 생각이 없었다. 이왕 이곳에 왔으니 
  적당히 고생을 시키다가 돌려보낼 심산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자가 내건 조건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한답니다. 그러니 당신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 달간을 연주해 준다면 
  돈을 빌려주겠소."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잠을 자지 않고 내 연주를 들어주십시오."
    부자도 쾌히 승낙했다. 음악가는 부자의 대답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연주를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곡이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부자의 눈꺼풀이 천 근이나 되는 듯 
  무거웠다. 다시 하루가 지나자 부자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이젠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부자는 소리쳤다.
    "아, 그만두시오!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겠소!"

    잠은 눈꺼풀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는 것을 잊게 한다고 했다. 산다는 것은 일종의 병을 
  ?는 것 같아서 잠을 잘 때만큼은 삶의 고통을 가볍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잠은 일시적인 완화제이며 죽음은 특효약'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잠자는 것을 사랑하게 되면 가난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휴식을 위해서는 잠보다 
  더한 특효약이 없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길은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세월이 오래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안다'

    한 접시의 떡

    옛날 어느 마을에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먹을 것만 생기면 
  서로 그것을 먹겠다고 다툼질이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한 접시의 떡을 가져왔다. 부부는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우겨대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남편이 말했다.
    "이 떡을 두 사람이 먹기에는 부족하니 당신과 내가 이 떡을 놓고 말을 하지 않은 쪽이 
  먹도록 합시다."
    부인이 좋다고 했다. 부부는 떡을 앞에 놓고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이때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에서 기척이 없으므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도둑이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방안에 들어온 도둑은 처음엔 놀랐으나 부부가 움직이지 않자 물건을 
  하나 둘씩 가지고 온 보자기로 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슬며시 떡 그릇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부인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도둑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 버렸다. 
  그제야 남편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떡은 내 것이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것은 성서의 기록이지만 
  [팔만대장경]에도 '욕심은 만족을 모르는 불가사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참으로 새겨들을 
  경구다.

    부인의 덕을 말할 때는,
    염치와 절도가 있어야 하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부덕이다.
    그러므로 부인의 얼굴은 때가 끼고
    땀이 흘러 꽤재재해서는 안된다.

    여자의 마음가짐

    어진 어머니와 아내의 덕

    [익지서]에 이런 말이 있다.
    여자에게는 네 가지 아름다운 덕이 있으니 첫째는 부덕이고 둘째는 용모이며 셋째가 
  말씨이고 넷째가 솜씨다. 부덕이란 반드시 재주가 남달라 특별한 일을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용모 역시 세상에 절세가인처럼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말씨 또한 반드시 입담이 
  걸판지게 구수하여 상대를 즐겁게 하라는 것도 아니다. 또한 솜씨 역시 타고난 손재주가 
  남달리 특별하여 무엇에건 특별한 솜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네 가지의 
  아름다운 덕이란 무언가?

    마음이 맑고 절개가 곧아야 한다.
    도미는 백제 사람으로서 비록 배운 것이 없었으나 의리에 밝았다. 그의 아내는 품행이 
  방정하였고 마음씨가 고와 세상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한 번은 개루왕이 도미를 불러 
  말했다.
    "부인의 덕은 정결함을 으뜸으로 치나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꾀인다면 
  아니 넘어갈 여인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내 아내는 결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도미의 아내를 시험하고자 그를 궁 안에 머물게 한 다음 가까운 신하를 왕 차림으로 
  변복시켜 도미의 집으로 보냈다. 행차가 도착하기에 앞서 도미의 아내에게 왕이 금방 
  도착하리란 알리고 그의 처에게 좋은 말로 구슬렸다.
    "내가 평소 너를 은애하고 있었는데 오늘 너의 남편인 도미와 내기를 하여 너를 얻은 바 
  되었다. 오늘 밤 동침한 후 내일은 너를 궁으로 데려가서 궁인으로 삼으려 하니 이제부터 너의 
  몸은 내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몸을 씻고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그곳을 물러 나와 계집종을 화장시켜 방으로 들여보냈다. 계집종을 궁에 
  데려간 후 왕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도미의 눈알을 뽑아 버렸다. 그를 끌어내어 작은 배에 
  실어 보낸 후 도미의 아내를 끌어내어 강제로 음란한 짓을 하려 했다
    "이미 남편이 저 모양인데 이제 누굴 믿고 살겠습니까. 왕께서 이 몸을 사랑해 주신 다니 더 
  없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몸에 경도가 있어 깨끗치 못하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왕은 그녀의 말을 믿고 허락해 주었다. 도미의 아내는 강가로 도망쳐 왔으나 배가 없어 건널 
  수가 없었다. 하늘에 빌면서 통곡을 하자 어디선가 조각배가 나타났다. 그 배를 타고 천성 
  도에 이르러 남편을 만났는데 고구려로 가서 일생을 마쳤다.

    부인의 덕을 말할 때 또 염치와 절도가 있어야 하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행동에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부덕이다. 부인의 얼굴은 때가 끼고 땀이 흘러 
  꽤재재해서는 안된다. 항상 먼지 없이 청결한 차림새를 해야 하며 옷차림 역시 정결해야
    한다. 목욕은 제때에 하여 언제나 더러움이 없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부용이다.
    말씨는 남이 본받을 말을 가려서 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말을 해선 안된다. 마땅히 말을 할 
  때에 하되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부언이다.
    부인의 솜씨는 길쌈을 부지런히 하고 술 빚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맛을 갖추어 
  손님을 접대하니 이것이 바로 부공이다.
    이러한 네 가지 덕, 바로 이것을 부인이 빠뜨려선 안된다. 행하기는 쉽고 힘쓰는 것은 바른 
  데 있으니 이대로 행한다면 부인의 범절이라고 하였다.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온달은 고구려의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늘 걸식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가 항상 떨어진 신발에 헤진 옷을 입고 저자 거리를 누비고 다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이 무렵 궁 안에는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 하므로 왕은 딸아이가 울 때면 늘 '너는 울기만 하여 내 귀를 시끄럽게 하므로 
  장성하여서는 사대부의 부인은 될 수가 없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낼 것이다.' 하였다. 
  그럴 때면 어린 딸은 울음을 그치었다.
    딸의 나이가 열 여섯이 되었을 때 높은 벼슬에 있는 고씨 집안으로 출가시키려 하는데 
  공주가 왕에게 이르기를 '아버님께서는 전날에 내가 울기만 하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낸다 
  하였습니다. 하찮은 필부도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데 어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그런 말을 
  하십니까. 나는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하여 공주는 왕의 노여움을 사서 
  궁에서 쫓겨났다. 공주는 궁에서 나올 때 가락지 열 개를 팔꿈치에 맨 다음 온달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온달은 저자 거리를 헤매는 바보가 아니었다. 공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좋은 스승을 만나 무예를 익혔다. 고구려에서는 봄의 3월 3일에 낙랑의 언덕에서 무예 
  겨루기를 하는데 이날 출전한 온달이 장원을 차지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평강공주의 
  부덕 때문이었다.

    부인의 예절은 반드시 그 말이 가늘어야 한다고 했다.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을 때 
  버럭버럭 고함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건 조용한 가운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집안은 화락한다. '어진 지어미는 남편을 귀하게 만들지만 악한 지어미는 
  남편을 천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파브로프는 조건 반사 현상을 발견한 소련의 생리학자다. 어느 날 그는 소화샘을 연구하던 
  중 '조건 반사'를 발견하였는데 그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개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의 집에는 여러 마리의 개를 사육하고 있었다. 사육은 아내 몫이었다. 개를 실험 도구로 
  쓰기 위해서는 늘 편안한 상태로 놓아두어야 하고 조그만 것에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도 파브로프의 아내는 조금도 싫은 내색이 없이 살림을 하는 한편으로 정성을 다해 개의 
  돌봄에 힘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이 아무런 불편 없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파브로프는 이 연구로 그의 나이 쉰 다섯 살 때에 노벨상을 받았다.

    선량한 아내, 현명한 아내는 남편을 지배하는 데 있지 않은 것이다 남편에게 항상 지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우긴다면 집안은 어찌 되겠는가. 피레몬의 말처럼 '재앙'이 따로 없는 
  것이다. <부행편>에 어진 지어미는 화목을 만든다고 한 것은 모두가 그러한 뜻
    이 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의 초략본이 나오게 되면서
    우리 나라에선 효자들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르쳤다. 이것은 자라나는
    학동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효자들의 실화

    손순의 효행

    손순은 모량리 사람으로 경주 손씨의 시조다. 그는 워낙 집이 가난하여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를 하여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런데 하나 있는 아들이 늘 어머니에게 드린 음식을 
  빼앗아 먹자 어느 날 손순이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냥 두어선 안되겠소. 연로한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아이가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몸이 날로 수척해지신 것 같소.그러니 저 아이를 깊은 산에 버리도록 합시다.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번 가시면 어디서 구한단 말씀이오.'
    그의 아내는 눈물만 흘릴 뿐 남편의 말에 순종하였다. 다음날 손순은 아이를 업고 취산의 
  북쪽 들판으로 나가 아이를 묻으려고 땅을 팠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판 곳에서 돌로 된 종이 
  나왔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시험 삼아 두드려 보았더니 종소리는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
    "이곳에 아이를 묻으려고 땅을 파다 종이 나왔으니 그것은 이 아이의 복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땅에 묻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손순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와 돌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대들보에 매달고 
  종을 두드렸다. 임금이 그 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까닭은 물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듣고 
  임금이 말했다.
    "그 옛날 곽거라는 이가 자식을 묻을 때에 하늘이 금으로 만든 솥을 내리셨는데, 이제 
  손순이 땅에 묻자 땅에서 돌 종이 나왔으니 앞뒤가 서로 맞는 일이다."
    임금은 손순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쌀 오십 석을 하사하였다.

    넓적다리를 벤 상덕

    이 얘기는 김부식이 쏜 [삼국사기J <권48>에 상덕의 열전에 실려 있다.
    흉년이 든 어느 해에 상덕의 부모가 굶주려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그러자 상덕은 옷도 
  벗지 않고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간호했다. 언제나 마음을 편히 가지시도록 위로해 
  드렸는데, 봉양할 음식이 없자 상덕은 자신의 넓적 다리 살을 베어 잡수시게 하였다. 또 한 
  번은 커다란 종기가 나자 자신의 입으로 썩은 피를 빨아내어 낫게 해 드렸다. 임금은 소문을 
  듣고 상덕을 표창한 후 정문을 세워 그의 효행을 후대에까지 전하게 하였다.

    홍시가 먹고 싶은 어머니
    도씨는 가난했지만 효성이 지극했다. 항상 숯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판 다음 고기를 사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느 날 고기를 사 가지고 오는데 갑자기 바람 소리가 일어나며 하늘에서 
  솔개가 내려와 고기를 채어 달아났다. 도씨가 슬피 울며 집에 돌아와 보니 어느 새 솔개가 
  집안에 고기를 가져다 놓은 채였다.
    하루는 병든 그의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다고 숲 속을 헤매며 날이 저문 줄도 모르고 
  홍시를 구하기 위해 숲 속을 헤메며 날이 저문 줄도 몰랐다.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나 앞길을 
  막으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했다. 도씨가 등에 올라타자 호랑이는 백여 리나 떨어진 살산 
  마을로 달려갔다.
    밤이 되어 주인이 제삿상을 내왔는데 상위엔 홍시가 있었다. 도씨는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내력을 말해 주자 그 집주인 내외는 몹시 놀라워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감을 즐기셨으므로 해마다 가을이 오면 2백개의 감을 가려내어 굴 안에 
  간직해 두었답니다. 그러다가 5월이 되면 이 가운데 상하지 않는 것이 예닐곱 개 남짓인데 
  올해엔 쉰 개나 멀쩡해 있길레 이상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하늘이 그대의 
  효성에 감복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주인은 스무 개의 감을 내주었다. 도씨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자 그때까지 호랑이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를 타고 돌아오자 새벽닭이 울었다. 그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도씨는 피눈물을 홀리며 슬피 울었다.

    '염치'는 체면이나 수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의리'는 지조나 신뢰를 나타낸다.
    [논어]에서 견리사의라고 한 것은
    어떤 이익이 있을지라도
    의리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염치와 의리

    솔개가 채어 간 솜

    인관이라는 이가 시장에서 솜을 팔았다. 이 때 서조라는 이가 곡식을 주고 그 솜을 사 
  가져오는 도중에 솔개가 나타나 그 솜을 채 가지고 날아오르더니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다. 이 
  사실을 안 인관은 그 솜을 서조에게 돌려주었다.
    "이 솜은 당신이 샀으니 내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서조는 당치 않은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내가 당신의 솜을 샀으나, 솔개가 채어 가 당신에게 주었으니 당신의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니 내 솜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찌 받겠습니까."
    인관이 다시 말했다.
    "당신이 솜을 받지 않겠다면 곡식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서조가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솜을 산 것은 벌써 두 장이 지났으니 그 곡식은 이미 당신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양을 하다가 결국 시장 바닥에 버리고 말았다. 시장을 다스리는 벼슬아치가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자 임금은 두사람에게 벼슬을 내렸다.

    어떻게 보면 위의 얘기는 '양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있다. '인생은 상호 양보에 
  의하는 것 이외에는 사회에 존속할 수가 없다'고 존슨은 말한 바 있다. 인관과 서조의 경우는 
  .치를 굽히고 자를 뻗는' 경우에 해당된다. 즉 작은 일을 양보하자 큰 이익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잃어버린 돈

    홍기섭이란 이가 젊었을 때에 말로 다할 수 없이 가난했다. 어느 날 계집종이 몹시 기뻐 
  날뛰며 일곱 냥을 바치며 말했다.
    "이 돈이 솥 안에 있었는데, 이 돈이면 쌀이 몇 가마고 장작 몇 바리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홍기섭은 곧 돈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돈을 찾아가라고 글을 써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유씨 
  성을 쓰는 사람이 대문에 써 붙인 글의 뜻을 물었다. 자초지종을 말하자 유씨가 말했다
    "남의 솥 안에 돈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것인데 왜 갖지 
  않습니까."
    공이 말했다
    "내 물건도 아닌데 어찌 가지겠습니까."
    유씨가 꿇어 엎드린 채 말했다.
    "소인이 며칠 전에 솥을 훔치러 왔다가, 공의 살림이 쓸쓸한 것을 보고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이제 공의 마음이 깨끗하여 욕심이 없음을 보고 마음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언제나 공을 모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이 돈은
    염려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당신이 착한 사람이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이 돈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끝내 돈을 받지 않았다. 공은 나중에 판서가 되었고 그의 아들 재룡은 헌종 
  임금의 장인이 되었다. 이후 유씨의 집안도 크게 번창하였다,
    '군자는 생각하는 것이 자기의 분수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증자는 말한 바 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사주에 맞지 않은 관을 쓰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말이 있듯, 분수란 어찌 보면 염치가 
  있다는 말에 해당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일상 생활에서 염치가 있는 행동을 하는가? 자신의 행동을 한 번 반성해 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드는 것처럼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뒷전에 미뤄 
  두고 세상이 자신의 허물을 비평하는 것을 '운수가 없다'는 말로 불쾌해 하는 사람들이 ?다. 
  모두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염치없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서 생겨난 악습이다. 자중해야 할 
  것이다.

    때를 놓치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라는 말은,
    부모님이 살아 있을 때 섬기라는 의미와
    일맥 상통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부모님이 안 계시기에 후회를 남기는 것처럼
    공부 역시 때가 있는 것이다.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진종황제 권학문

    집을 부귀하게 함에 있어 좋은 밭을 요하지 않으니
    글 가운데 천종속이 있으며
    거처를 편안히 함에 고당을 요하지 않으니
    글 가운데 스스로 황금의 집이 있도다
    문을 나감에 뒤따르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지 말라
    글 가운데 거마의 많음이 떨기와 같도다
    아내를 취함에 좋은 중매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글 가운데 여인 있어 얼굴이 옥과 같도다
    사내가 평생의 뜻을 이루려 하면
    육경을 앞에 놓고 부지런히 읽어라

    이 시는 전반과 같은 형식의 구로 되풀이되고 있다. 매우 계몽적인 이 시는, 책 안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집을 부하게 하는 데는 굳이 토지 
  등의 논밭을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벼슬길에 나가 입신을 하면 나라에서 녹을 줄 
  것이니 그것으로 능히 천종의 곡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굳이 훌륭한 저택을 지을 필요도 없다. 책 속에 황금으로 장식이 된 집이 
  있다. 또한 문밖을 출입할 때에 수행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탄식하는 것 역시 ?지 않다. 
  독서로 입신을 하면 자연이 그 뒤를 따르게 되므로 책 가운데 많은 거마가 있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취하는 일에 중매쟁이가 없다고 탄식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글 가운데 아름다운 
  미인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위의 권학문은 매우 출세적이고 현세적인 것이다.

    백낙천 권학문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곳간이 비고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
    곳간이 비면 세월 지내기가 구차해지고
    자손이 어리석으면 예의에 소홀해 진다
    오직 갈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곧 부형의 허물이다

    위의 글은 두 구씩 댓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백낙천이 위의 글에서 말하는 학문은 
  '도리와 예의의 분별'이라 할 수 있다. 이 예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규범이며 
  학문을 하는 목적이다.
    논밭을 경작하는 데 게을리 하면 창고가 비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것을 학문에 비유하면, 
  육체적으로 세월을 구차하게 보내는 것과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삶과 대비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것 중에서 자손이 어리석으면 결국 세상의 도리와 예의에 소홀하여 어찌 행할지를 몰라 몸을 
  망치게 된다.

    주문공 권학문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 있다고 미루지 말라
    올해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미루지 말라
    날과 달은 잘도 가는 것
    아아 늙었도다 이게 누구의 허물인가

    이 글 역시 앞서 나온 두 편과 마찬가지로 반복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신이 이미 늙었음을 
  돌이켜 보고 청소년들에게 젊었을 때에 부지런히 공부를 하라고 권면한 글이다. 오늘 배우지 
  않고 다음해가 있다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옳지 않다. 세월은 한 번 지나면 다시 오기 어려운 
  것으로 자신의 느긋한 마음처럼 유유자적하며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탄식한다. 청소년기에 좀더 열심을 내어 공부를 했으면 이토록 후회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자기의 의지와 전연 상관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당신을 위해 의를 사가지고 왔소

    풍환은 맹상군의 식객이었다. 그는 얼굴이며 풍채도 그럴 듯하고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독특한 멋이 있어 상객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 후 맹상군은 흉년을 만나 식객 3천명을 
  먹이기가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맹상군은 자신의 영지인 '설'땅에 빚놀이를 하던 돈을 
  거둬들이려고 마땅한 사람을 구했다. 그 때 식객들이 추천한 사람이 바로 풍환 이었다. 
  맹상군에게서 위임을 받은 풍환은 설 땅으로 갔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거두어 크게 잔치를 열고 빚쟁이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들은 빚을 받으러 맹상군의 사자가 
  왔다는 말에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려 했지만, 잔치를 연다는 말에 우선 주린 배나 채워 
  보려고 보려고 아침부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중에는 빚을 갚기 위해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또한 이자만 가지고 온 사람, 빈손으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흉년이 든 마당이고 
  보니 먹는 욕심보다는 장차의 일이 걱정되어 그들은 입맛을 잃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풍환은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나는 맹상군 대신으로 온 풍환 이라는 사람이오. 전날 
  맹상군이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 준 것은 이자만을 받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오. 
  맹상군께서는 여러분들이 생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오, 그런데 
  온 천하가 흉년이 들어 마땅히 생계를 꾸려 가기 막막한 처지다 보니 맹상군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빚을 탕감해 주라는 명을 내리셨소. 또한 여러분 앞에서 모든 차용증서에 불을 지르라 
  하셨으니 나는 지금 그 말을 따르겠소'
    풍환은 모든 차용증서에 불을 질렀다. 모여든 사람들은 너무나 기뻐 함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잔치 마당이었다. 다음날 새벽 풍환은 그곳을 떠나 맹상군을 찾아왔다: 너무나 빨리 
  온 풍환을 보고 맹상군이 물었다.
    "그래, 빚은 다 받아 왔소?"
    "다 받았습니다. 다만, 무엇을 좀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무엇을 사 오셨소?"
    "군께서는 이 집에 부족한 것을 사 가지고 오라지 않았습니까."
    "그랬소."
    맹상군은 길을 떠나는 풍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 집안에 많은 식객들에게 먹일 
  식량이 부족했으므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생필품이나 곡식 같은 것을 사 오라는 뜻으로 그런 
  말을 했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집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의 입니다. 창고에는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고 마필이며 미인들이 넘쳐 납니다. 다만 없는 것은 의뿐이기에 나는 의를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풍환은 자신이 설 땅에 가서 차용증서에 불을 지르고 돌아온 얘기를 했다. 맹상군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이건 필요한 것을 사 오라고 허락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궁은 할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풍환이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 온 천하가 흉년으로 기아에 빠져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 나무 
  뿌리나 풀뿌리를 찾아 헤매던 백성들에게 차용증서를 들이미는 것은 차라리 죽으라고 비수를 
  들이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만약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그들을 닦달한다면 필경은 다른 
  지방으로 도망칠 것이 뻔합니다. 백성이 없는 설 땅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렇게 
  되면 차용증서는 쓸모 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할 뿐이니 백성들을 그곳에 붙들어 놓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맹상군은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다음해 제나라 왕은 진나라의 간첩이 퍼뜨린 
  유언비어에 속아 맹상군을 재상의 자리에서 밀어냈다. 할 수 없이 자신의 영지인 설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백성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어 맹상군 만세를 외치며 그를 영접했다. 이 
  광경을 보고 맹상군은 감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성경]엔 씌어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와 친구들에게 이로울 때뿐만 아니라 정적들이 이로울 때에도 사감을 버리고 '의'를 
  위하여 궐기하였다. 언젠가 그는 법정에 선 일이 있었다. 법관은 상대의 말을 듣고 언도를 
  하려 했다. 그러자 그는 일어서서 자신에게도 발언권을 달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의'는 당장의 이익을 구하기보다는 장차의 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준다 해도 '의'를 따랐다면 비록 적이라 하여도 사감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다. 자신의 몸을 초개처럼 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있다. 무엇이 바르고 그른지를 
  살피는 자세,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로움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생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어떤 선물을 받을 것인가

    맹상군이 초나라에 갔을 때였다. 어느 날 상아로 만든 침대를 받게 되었다. 그때 소식을 
  들은 그의 식객 공손술이 이를 받지 말도록 권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초나라와 
  같은 큰 나라로부터 그렇듯 큰 선물을 받게 되면 작은 나라는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즉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거절하라는 뜻이었다
    맹상군이 허락하자 공손술은 무척 좋아했다. 그러자 맹상군은 다시 그를 불러들여 물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그렇게 좋아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공손술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상아 침대를 제나라에까지 운반 책임을 지고 있는 초나라의 
  등도 라는 이가 자신을 찾아와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상아 침대는 값이 많이 나갈 뿐만 아니라 
  운반하기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만약 도중에 침대에 흠집이 생기는 날이면 자신의 
  노예를 팔아서 변제한다 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일을 성사시켜 준다면 
  등도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보검을 선물하겠다는 언질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맹상군이 물었다.
    "그래. 그 보검은 받았소?"
    "아닙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어서 받으시오."
    맹상군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상아 침대를 받지 않겠다고 말해 주었다.
    비록 상대방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더라도 그 말이 현실적으로 사리에 맞음을 알고 자신의 
  처신을 그렇게 정한 것이다.

    고난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조나라의 혜문왕이 죽은 후 효성왕이 보위에 올랐다. 아직 왕이 어렸으므로 위후가 대신 
  섭정을 하게 되었다. 때마침 진나라에서는 조나라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해 왔다. 즉시 
  제나라에 원병을 청하자, 제나라에서는 구원병을 보내는 조건으로 군왕의 동생인 장안군을 
  볼모로 요구해 왔다.
    위후는 사랑하는 아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려는 생각에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좌사 벼슬에 있는 촉섭이라는 이가 위후의 맹목적인 애정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왕의 
  아들이라고 하여 착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무위도식하며 부귀와 영화로 키울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보내어 견문을 넓히고 고생을 맛보게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힐티는 이렇게 말했다.
    "고난은 대체로 미래의 행복을 의미한다. 또한 행복을 준비해 주는 것이므로 나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고난의 시기에는 희망을 품게 하고 반대로 너무 행복한 시기에는 의심을 품게끔 
  하였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작가가 될 때까지 너무나 파란 많은 반생을 지나왔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육도 변변찮게 받지를 못했고 스물네 살 때엔 레판트의 해전에 
  참가하여 왼쪽 팔에 큰 상처를 입고 불구의 몸이 되었다. 그러다가 나이 스물 여덟 살 때엔 
  말레이의 포로가 되어 다섯 해나 고생을 하였다. 견디다 못해 네 번이나 탈주를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여 곤욕을 치르다가 보석금을 겨우 내고 석방되었다. 그는 서른 여덟에 처녀작을 
  발표하였으나 책은 팔리지 않았고 세금 징수원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가다 영수증을 잘못 
  관리한 죄로 투옥되었다. 1605년 감옥 안에서 [돈키호테]의 전편을 집필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쉰 여덟이었다 인생의 전반을 단 한 순간도 편안히 지낸 적이 없을 만큼 불우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걸작을 써 낸 것이다.

    이른바 온갖 고난을 다 겪는다는 '천고 만난'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은 약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전쟁이나 기근 등의 큰 시련을 겪어 보지 않은 
  채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얼마간이라도 시련이 오면 금방 
  시들해지고 약해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에 있다'고 니체는 말한 바 있다. 앞에는 언덕이 있고 또한 
  시내도 있고 진흙도 있다. 그러다 보니 걷기에 좋은 반반한 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먼바다를 항해하는 배라고도 한다. 때론 풍파를 만나기도 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항상 
  순풍에 돛단 듯 평온하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앞으로 헤쳐 나가는 자의 벗임을 
  다시한 번 자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고난이 닥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을 고르는 방법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연 
  상관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선택한다는 것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것들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었으며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다른 것
    보다 좋아 보였다'고 하였다. 즉 사람은 선택을 할 때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하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장의는 본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언젠가 사신으로 초나라를 다녀오자 그가 없는 틈으로 노려 
  사람들이 진왕에게 좋지 않은 말로 그를 모함했다. 즉 그는 태생이 초나라이므로 은밀히 
  초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진왕의 따가운 눈총이었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음을 눈치챈 장의는 초나라로 돌아가겠다고 진왕에게 말했다. 진왕이 그 까닭은 
  묻자 장의는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제나라에 미인 첩을 둘이나 거느린 영감이 있었다. 근처에 사는 청년이 중매쟁이를 보내 
  그녀들을 자기에게 오도록 은밀히 청을 넣었다. 그러자 두 가지 반응이 왔다. 한 여인은 
  순순히 응했지만 다른 한 여인은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는 중매쟁이를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걸었다. 그러던 얼마 후에 영감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남편이 없는 여자들이므로 
  떳떳이 두 여자에게 청혼할 수 있었다. 중매쟁이가 청년을 찾아가 말했다.
    "이제 영감이 죽었으니 그 여자들은 시집을 갈 수가 있어요. 당신은 어느 여자를 택하겠소?"
    "나에게 욕을 하던 여자입니다."
    "당신에게 아주 심한 욕을 했는데 그 여자가 맘에 들다니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영감이 살아 있을 땐 어느 여자든 내 말을 듣길 원했지만, 그러나 
  내 아내가 될 처지라면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욕해 주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남편을 위해 남을 욕하던 그 여자는 젊은이에게 온 뒤에는 자기를 섬기겠지만,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가려고 하는 여자는 자기에게 온 뒤에도 다른 사람에게 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진왕은 장의가 말한 얘기의 속뜻을 알고 다시 신임하게 되었다.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그것이 불행인 줄 뻔히 알면서 그쪽으로 가려는 데 있다. 우리 ?에는 
  불행과 행복의 갈림길이 언제나 자리한다. 언제나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링컨의 말이다. 우리는 일상의 행동 속에서 항상 선택의 여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 '걸인은 구걸할 때 고르지 않는다'는 말을 음미해 본다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말의 효과는 달라진다

    노나라에서 벼슬하던 공보문백이 병으로 눕게 되자 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가 스무 명이나 되었다. 문백의 어머니는 탄식하며 말했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 그의 자식은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자식은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계집이 스무 명이나 되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소홀히 대했으면서도 
  계집에게는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문백의 어머니를 칭찬했다. 그런데 만약 이 말을 그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 즉 그의 아내가 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무래도 지독한 질투 
  쟁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똑같은 말이라도 말을 하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마음도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중에 '언어 공해'가 있다. 함부로 말을 해댄다는 의미다.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해야 됨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의 자세

    정나라의 수자가 위나라를 공격하였을 때에 위나라에서는 유공 지사로 하여금 적을 막게 
  하였다. 때마침 수자가 병이 들어 위태롭게 되었을 때 그가 말하기를 정나라 군사를 추격하는 
  놈이 누구냐고 물었다. 시종이 유공 지사가 추격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제야 수자는 자신이 
  살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종이 의아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공 지사는 위나라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사람인데 어찌 살았다고 하십니까?"
    "그는 활쏘기를 윤공지타에게 배웠고 윤공지타는 활쏘기를 내게서 배웠다. 윤공지타는 
  마음이 바른 사람이다. 그가 사귄 친구도 바른 사람일 것이다."
    얼마 후 수공지사가 와서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찌 활을 들지 않으십니까?"
    "나는 몸에 병이 나서 활을 들지 못하고 있소."
    그 말을 들은 수공지사는 화살을 뽑아 살 끝 쇠태를 두드려서 살촉을 모두 뽑아 버리고 화살 
  네 대를 쏜 뒤 돌아갔다. 궁도를 익힌 사람으로서 차마 상대의 허약함을 보고 해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활을 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 자세부터 바로잡은 다음 줄을 당겨 화살을 쏘라고 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역시 활을 쏘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정진한다. 과녁을 겨냥한 화살이 빗나가면 그것이 자신의 마음 자세에 있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고 매양 다른 사람 때문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허물은 
  그것이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는 것을 실천하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좋은 생각을 안해 본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러한 생각이 
  계속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제 동여맨 마음의 끈이 오늘은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더욱 
  풀어지기가 쉬운 이치다. 그런 이유로 언제나 다시 끈을 여며야 하듯 하루도 쉬지 않고 
  거듭하여 여며야만 느슨해지지 않는 것이다.
    한 노인이 국경일에 극장 구경을 나갔다. 연극 상영 시간이 늦은 탓에 자리가 없어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다. 모두들 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라고 수군거렸지만 어느 한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그
    때 한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이 소년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문제도 이와 같다. 무엇이건 듣지 않는 것보다는 많이 듣는 것이 
  좋다. 견문을 넓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에 옮겨야만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것일 뿐이다. 실천이 없는 계획은 무도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의 욕심을 조절하라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지나친 욕심을 
  갖기 때문에 상대를 미워하고 경원시하게 된다. 욕심은 마치 고무줄과 같아서 그것을 스스로가 
  조절하지 않으면 너무 느슨해지거나 너무 늘어나서 끊어져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영국 
  속담에 '욕심 없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모인다'고 한 것은, 욕심을 냄으로써 모든 것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눈이 몹시도 내리는 어느 겨울 밤,한 떼의 산양을 몰고 가던 목동이 동굴을 발견하고 눈을 
  피하려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그곳에는 살이 찐 야생 양들이 눈바람을 피해 동굴 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 목동은 살찐 야생 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자기 양떼는 내버려두고 
  야생 양에게만 건초를 먹였다. 날이 밝아 오자 그렇게 퍼붓던 눈도 그쳤다. 건초를 먹고 
  기운이 난 야생 양들은 목동이 놀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그제서야 자기의 양을 돌아보았다. 건초를 먹지 못한 양들은 허기에 지쳐 모두 죽어 있었다.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리 천한 사람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욕심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에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것을 조절할 능력이 없다면 소나 말과 같은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헛된 
  욕심의 늪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완급을 조절하는 일이야말로 성인에 이르는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욕심을 내면 자루가 찢어진다'는 영국 속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욕심은 이미 얻은 것까지도 잃게 되는 불운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기는 데에 마음이 급하지 말라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든 승부를 하게 된다. 기업은 기업간에 나라는 나라간에 무역 
  전쟁이 있고, 학생은 학교에서 시험이라는 작은 전쟁을 치뤄 낸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일상은 모두 승부의 연속이다. 야구를 하거나 축구를 하거나 최선의 다한 승부는
    비록 패한다고 해도 값지게 여긴다.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좋지 못한 승부를 하는 것은 설령 
  이겼다 해도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승부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이라고 순자는 지적했다. 순자는 장수의 다섯 가지 주의해야 할 것 가운데 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을 이기는 데 급급한 것이라 하였다.

    말과 행동은 같아야 한다

    언행일치, 이것은 말과 행동이 같아야 된다는 말이다. 말로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맡은 분야의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뱉어 낸 말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져야 한다. 묵자는 그 예를 이렇게 들었다.

    한 친구가 군대에 가면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으므로 다정한 친구 둘에게 처자를 부탁하려 
  했다. 이때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 지 망설이게 되었다. 한 친구가 겸애설을 주장했으므로 그 
  친구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자신의 의견에는 언제나 반대를 해 온 처지였다.
    이런 경우, 군대에 간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 항상 자신의 의견에 반대해 오던 친구에게 
  처자식을 맡기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말이란 부도가 나기 쉽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미운 친구였지만 부탁해 온 마당에는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장님의 눈
    어떤 모임에서 아인시타인은 그 집 주부로부터 상대성 원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어느 날 장님인 친구와 함께 시골길을 걸어가게 됐습니다. 내가 우유를 마시고 싶다 했더니 
  친구는 마신다는 것을 알지만 그 우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흰 액체라고 하자 
  희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백조의 깃과 같은 색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백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목이 굽은 새라고 대답을 했더니 또 
  목은 알지만 굽은 것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결국 맥이 빠졌습니다. 할 수없이 그 
  친구의 팔굽을 구부리고 이것이 구부러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장님 친구는 이제야 
  우유가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했습니다."
    소경은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다. 귀머거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표면적인 결함뿐이 아니라 천박한 지식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기관에 장애가 일어난 
  것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밭 주인이 소를 빼앗다
    하징서가 진나라의 임금을 죽였다. 소식을 들은 초장왕은 하징서를 토벌하기 위해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역적은 잡는 것 까진 좋았으나 병사를 몰고 간 김에 진나라를 송두리째 초나
    라 영토로 삼고 말았다. 이 무렵 다른 나라로 사신 일행을 데리고 갔던 신숙시라는 이가 
  돌아왔는데 그는 왕에게 복명을 하지 않고 여러 날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이를 이상히 여겨 
  왕이 물었다. 신숙시는 전연 거리낌없이 이렇게 말했다. "소신이 오던 중에 참으로 이상한 걸 
  보았습니다. 소를 몰고 남의 보리밭을 지나다가 얼마간 보리를 밟았습니다. 이를 본 밭 주인이 
  달려오더니 그만 상대방의 소를 빼앗았습니다. 이일을 왕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건 너무한 일이구먼. 그런 일이라면 주의를 주던지 얼마간 손해를 물리면 될 일 아닌가. 
  그런데 소를 빼앗았다면 너무 한 일인데 그래."
    신숙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왕께서는 다른 사람의 일은 그렇게 잘 판단하시면서 
  자신의 일은 판단하지 못하십니까. 무도한 무도한 자가 임금을 죽였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의 것은 아닙니다. 왕께서 하신 일은 
  보리밭을 밟았다고 소를 빼앗는 것과 다를 바 무엇입니까!"
    이 말을 들은 초장왕은 즐겁게 웃고 나서 모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우리는 어떤 일에 '명분'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그것이 웬만큼 큰일이라면 '대의 
  명분'이라는 명찰을 붙인다. 이러한 명분은 대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건축비'를 줄이려고 값싼 자재를 이용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공정을 삭제시켰다면 그것은 명분이 아니라 하나의 
  핑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명분은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낚시꾼의 먹이

    은 왕조 말 폭군인 주왕에게 시달림을 받은 백성들은 천지가 뒤집혀지는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만큼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이 무렵 동해 사람인 여상은 나이가 칠십
    이나 되었는데 언제나 위수라는 강가에서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주나라의 
  문왕이 된 발이 사냥을 나왔다가 얘기를 해보고 태공의 높은 학문에 감복하여 그 사람을 
  오시고 가서 모사로 삼아 주나라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은, 여상의 성이 
  강씨이므로 강태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삼유정금마]에 의하면, 인생과 낚시질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즉 남자는 여자를 낚고 
  여자는 또 남자를 낚으려다 낚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낚시질하는 것은 고기를 낚기 
  위해서지만 훌쩍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것을 보면 고기가 사람을 낚는 것이나 다름없다. 
  옛사람들은 낚시에 대해 어떻게 말한다. '성인은 도덕으로 낚시를 삼고 인의로써 미끼를 삼아 
  천지간에 던진다'는 것이다.
    낚시꾼은 언제나 공손하고 조용히 앉아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바처럼 고기를 짜기 위해 
  서지 고기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노나라의 임금이 묵자라는 현인에게 두 아들 중 어느 누구를 태자로 삼아야 할 지를 
  물어왔을 때 그런 말을 했다. '낚시꾼이 공손한 것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쥐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쥐를 결코 사랑해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곧, 태자가 되기 위해 아버지에게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마음가짐을 살피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다른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얼마 전에 
  사회악처럼 일어났던 어린이 유괴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
    푸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고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친절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급선무다.

    환경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헬만 코헨이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믿음이 두터운 부모의 가르침 속에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안식일에 순례자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여 얘기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고 어머니도 
  순례자들을 손님으로 모실 수 있도록 늘 기도했다. 이러한 부모가 만들어 낸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난 코헨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행한 도덕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부터는 헤브라이 언어. 모레 언어, 헤브라이 법전 등의 교육을 
  아버지에게 받았고 이러한 교육으로 인해 후일 대학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처해진 상태, 즉 환경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다 악조건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아낸다. 자신이 그것들을 찾지 
  못하면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권학]에 의하면 대개 사람들은 환경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쑥대'와 '삼'의 예들 들어보자. 삼은 본시 곧게 크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 삼속에 쑥대가 
  들어 있으면 그것을 세워 주지 않았어도 삼처럼 곧게 큰다. 또한 흰모래는 희고 깨끗하지만 
  그것 진흙 속에 섞여 있으면 진흙과 같은 색깔로 변해 버린다. 사람 또한 이와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환경, 그 환경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변화되어 버린다.
    '흉년이 들면 젊은 사람은 포악해지고 풍년이 들면 사람들이 선량해 진다'는 맹자의 달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재성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을 유인케 할 원인으로 
  인하여 그러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말이나 소의 발자국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환경이 개인이나 자신의 주변 인물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순자]의 <권학편>에도 '쑥이 삼 밭에서 나는 것은 도와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그렇듯 
  악인도 선인 사이에서 지내게 되면 저절로 감화를 받아 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환경은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환경에 지배를 받지 말라. 
  인간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부귀는 누구나 바라지만
    빈천한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빈천한 생활을 하더라도
    부당한 방법으로 부귀를 도둑질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마음속에 촛불을 밝히고

    재주를 감추어라
    중국의 춘추 시대에 노나라의 공자가 주나라의 서울인 낙양에서 수장 실리로 있는 노자를 
  찾아갔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박물관의 관장 격인 노자는 공자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하인들을 시켜 길을 쓸게 했다. 그러자 공자는 당시 주인을 맞는 예법에 따라 기러기 한 
  마리를 서로 만나는 기념으로 선물했다. 두 사람은 낙양 땅을 떠돌며 자신들의 학문을 허심 
  탄회하게 풀어헤치다가 헤어질 무렵이 되었을 때에야 노자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장사에 능한 사람은 좋은 물건은 집안 깊숙이 감춰 놓는 법이오. 어느 누가 가게에 와서 
  본다면 진열되어 있는 물건이 형편없이 보일는지 모르지만 정작은 깊은 곳에 숨겨 두었다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내놓는 법이오. 바로 실속 있는 장사꾼의
    법이오. 학문을 하는 군자는 자신의 재주를 함부로 내어놓아선 안되오. 또한 작은 일에 
  섣불리 나서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오. 무릇 군자의 재능이란 보석함에 든 보석처럼 금과 
  은으로 치장된 갑 안에 든 보검처럼 세상을 위해 크게 쓸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오."
    노자는 군자의 마음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처럼 또는 보석에 비유하여 함부로 재주를 
  나타내는 것을 경계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는 함부로 써선 안된다는 말이다. 또한 
  그러한 재주를 쉽게 남들로 하여금 알게 하여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형주 땅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유비에게 어느 날 서서가 찾아와 친구인 제갈량을 
  소개했다. 평소 병략을 짜는 데 모사가 부족한 점을 들어서서는 자신의 친구를 후덕한 
  유비에게 소개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유비는 공명을 찾아가게 되었다. 세 번을 찾아갔을 
  때에야 겨우 만나 군사로 모시게 되었다. 유비는 자신과 제갈 량과의 사이를 '물과 물고기'의 
  사이라 했다. 그러자 제갈량은, 자신은 본시 비천한 신분인데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세상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껏 재주를 숨기고 있었던 제갈량이나, 그를 군사로 모셔들인 
  유비나 함께 일세를 풍미한 호걸임엔 틀림없다.
    맹자에는 많은 벼슬아치들이 모여들지만은 공자나 맹자와 같은 대인들은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게 생각지 않은 군주가 있다면 대인들은 모여들지 않는다. 그것은 
  올바른 왕도 정치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마음

    사람이 무엇에건 쫓기게 되면 엉뚱한 사단이 벌어진다. 즉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사람은 어느 환경이나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자족하여야만 낭패를 멀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모든 일에 여유를 둔다면 큰 손해가 없고 서둘러 만족하길 바란다면 고약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열자] <천서편>에 이런 얘기가 있다. 기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늘 걱정을 
  한 아름씩 가슴에 품고 다녔다. 비가 오면 옷이 젖을까 걱정이고 해가 뜨면 더위를 탈까 
  걱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무엇에 쫓기는 듯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어느날 그가 꿈을 
  꾸었다. 티없이 맑은 하늘이 우르릉 쾅쾅 울어대더니 갑자기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고 일어나 보니 한 자락의 꿈이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매사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골똘했다. 너무나 그의 처지가 딱하다고 생각한 한 사람이 그를 찾아가 위로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늘은 공기가 쌓여서 된 것이니 결코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오."
    "하늘이 공기로 쌓여 있다면 해나 달, 그리고 별 같은 것들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소?"
    "그것들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설령 떨어진다 해도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럼, 땅이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땅은 흙이 사방에 쌓여 있기 때문에 탈이 일어날 수가 없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흙을 
  밟고 사는 게 아니오"
    그 사내는 이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밥을 먹었다.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의 본보기다.
    다른 말로 한다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여유를 둔다면 조물주도 결코 시기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는 일이 다소 부족하여도 거기서 만족을 찾아야 하고, 그러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우환이 닥쳐오게 된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오늘날과는 달리 옛날에는 몸에 병이 나면 하늘에 기원하여 목숨을 연장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나이가 연로하여 죽는 것이 서러워 만금의 재물을 부처님께 보시하여 기름이 다된 
  호롱불의 불꽃같은 삶을 되살려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명운을 숙명이라 부른다면, 운명은 타고난 자신의 명운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것과 차이가 
  있다. 숙명은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지만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데에 큰 의의
    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슴에 칼을 품고 아내와 사통한 자를 찔러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소강절이라는 유명한 측자 선생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집에 들어가 오늘 할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알아보자.'
    그는 방안으로 들어간 즉시 '중'자를 써 놓고 소강절에게 말했다. 자신은 지금 오늘 한 가지 
  분명히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이 있는데 혹시 결과가 나쁘게 나오지나 않을까 하여 왔으니 잘 
  보아 달라고 하였다.
    말을 하는 중에도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뻗어 나왔다. 두 눈은 붉게 충혈 됐으며 초조한 ?이 
  역력했다. 소강절은 그가 무척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어쨌든 이 일은 막고 싶었다. 그렇게 때문에 글자의 뜻을 풀어헤칠 필요는 
  없었다. 소강절이 말했다.
    "글자가 참으로 고약합니다.'중'자는 파자를 하면 천리가 되므로 오늘 당신이 무슨 일을 
  도모하면 관원의 손에 잡혀 천리 밖으로 끌려가는 일을 당할 것입니다. '중'자에서 천을 떼어 
  내면 마을만 남는 것이니 오늘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절대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그 사내는 소강절의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며 품안에 지닌 칼을 던져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덕을 진전시키고 도를 닦음에는 돌과 나무같이 하라
    덕을 닦는 데는 일절 잡생각을 멀리하고 좋지 않은 생각이 틈타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 
  자세를 돌과 나무처럼 해야 한다. 이와 상반되는 말에 행운유수란 말이 있다. 떠가는 구름과 
  물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일이 거침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흐르는 구름과 물은 도무지 탐욕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고 보면 벼슬살이를 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욕망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세붕은 상주 사람으로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안로가 득세할 
  당시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그의 전횡을 보고, 그 잘못을 탄핵한 죄로 미움을 받아 어려
    움이 많았다. 주세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언젠가 노모가 병이 들어 하늘에 
  기도를 올렸는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하얀 실을 여덟 타레나 주면서 '당신 
  어머니는 병이 난 지80일 만에 돌아가실 것이오.' 하고 말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실 한
    타레가 10일씩 연장을 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삼년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때이므로 주세붕은 아버지의 무덤 가에 시묘를 짓고 
  거처하면서 사흘에 한 번씩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문안을 드리고 다시 산으로 갔다.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는 상주가 되면 고기를 먹지 않았다. 주세붕이 고기를 먹지 않자 
  집안에서 기르던 개 역시 고기를 먹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개 역시 주세붕의 효성에 탄복한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 번은 그가 홍문관에 있을 때였다. 홍문관 직제학으로 있던 
  사람이 바른말은 하지 않고 번번이 당치 않은 주장을 하자 주세붕은 그를 불러 따졌다.
    '당신은 도대체 직제학이요, 아니면 곡제학이오 도대체 바른말 은 하지 않고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둘러대니 이제부터 나는 당신을 곡제학이라 부르겠소!'
    그 사람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덕을 진전시키고 도를 닦을 때에 돌이나 나무처럼 냉담하라는 것은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마음 위 연못에 욕심의 물결이 일어나면 곧 탐욕한 세계로 달리게 
  된다. 그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우리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는 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쓸데없는 일에 마음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방법

    옛날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 유하혜와 도척이 있었다. 유하혜가 형이었고 도척은 
  동생이었다. 유하혜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옥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불편 부당한 일에
    끼여들지 않고 소신껏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세 번씩이나 쫓겨났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다른 곳으로 쫓겨날 때마다 그는 흔쾌히 말했다.
    "어디에 간들 일할 수 없겠습니까. 아무리 낮은 관직이라 해도 관리가 올바른 자세로 소신껏 
  일하다 쫓겨났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유하혜는 당당했다. 올바른 행정을 하다가 쫓겨난 자신에 대해 변명하는 것조차 
  멀리할 정도였다. 그런 탓에 세상 사람들은 그의 정직함을 알아주었다. 그러는 반면 그의 동생
    9천 명이나 거느린 도적의 괴수였다. 남의 가축을 빼앗고 부녀자를 강탈했으며 여러 
  제후들을 심심찮게 괴롭힌 악당이었다. 한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온 나무 줄기와 갈이 한 
  부모의 태 안에서 태어난 두 형제도 성격이 너무나 판이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언동 역시 선을 긋듯 구분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위의 얘기는 선인과 악인의 행동을 구분하고 있다. 선인은 몸가짐이 항상 편안하다. 이것을 
  '길'하다고 말한다. '참된 선비'의 '입'은 상서롭다는 것이므로 '길'하다고 표현한다. 악한 
  사람 은 목소리 역시 사나울 뿐만 아니라 하는 말이나 행동 역시 살기를 띠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언동이 사나운 것만 보아도 쉽게 구분이 가는 일이다.

    몸가짐을 원만히 하라

    옛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로 천원 지방이란 말이 
  생겨났다.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세상을 네모로 하고 그 안에 하늘이 있으니 둥글다는 뜻이다. 
  또한 땅이 네모졌다고 하는 것은 배를 두 개 나란히 엮어 놓은 모양이기 때문에 방이라 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이해하는 데에 이러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땐가 중국의 사신이 우리 나라를 찾아와 평양에 이르러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을 찾아갔다. 그 이유는 조선 땅에 이인이나 도사들이 많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손짓 발짓을 한 것은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그리한 것이다 이것은 요즘 말로 
  말하면 일종의 수화로 볼 수 있었다.
    사신은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노인은 네모를 만들었다. 이번에 중국 
  사신이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그러자 노인은 손가락 다섯 개를 내 보였다. 너무나 놀라 
  중국 사신이 수염을 쓰다듬자 이번엔 노인이 배를 만지는 바람에 중국 사신은 질겁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이 너무나 다른 뜻으로 대답한 것을 서로 몰랐었다. 중국 사신이 처음에 
  동그라미를 만든 것은, '하늘을 아느냐'는 물음에 '땅을 안다'는 답변으로 알았고 그 다음에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인 것은 '삼강을 아느냐'고 물은 것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 탓에 '오륜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 알았으며, 마지막으로 수염을 쓰다듬은 
  것은 염제를 아느냐는 물음이었는데 노인이 배를 만진 것을 복희까지 알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답변은 엉뚱했다. 처음 상대가 손가락을 둥그렇게 하자 네모지게 손 모양을 
  만든 것은 '상대가 돈이 있느냐'는 물음에 '없다'는 것이었고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인 데에 
  다섯 개를 내 보인 것은 떡을 몇 개 먹었느냐는 질문으로 알았었다. 즉 자신은 잔칫집에서 
  다섯 개의 떡을 먹었다는 의사 표시였다. 마지막으로 수염을 상대가 쓰다듬는 것을 노인은,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물음으로 알았고 '배부르도록 먹었다'는 의사 표시였다.

    사람이 태평한 시기에는 몸가짐이 결코 흐트러져서는 안된다. 어지러운 세상에는 마땅히 
  원만해야 하며 평범한 세상에는 방정함과 원만함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즉 방정과 원만을 
  적절히 베풀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 견주어 보라

    [시경]의 <소아편>에는 '학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초야에 묻혀 있는 어진 사람들을 
  불러들여 임금의 덕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이다. '아무리 나쁜 돌이라도 옥을 갈기 위한 
  숫돌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옥은 이로 인해 광채를 나타내고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이므로 
  소인이라 하더라도 군자의 수양을 위해 쓸모가 있으므로 결코 이를 허술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타임스 지의 한 미술 평론가가 영국의 러스킨을 그린 수채화에 대해 평을 하였다.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하여 우리들이 갖는 것은 최초의 유화라는 점이다' 하고 칭찬을 늘어놓자 
  휫스터는 다음과 같이 투서했다. '미술 평론가에게 수채화와 유화의 구별을 해 달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그 차이는 코로 확인하면 될 것이다. 만약 감기라도 걸렸다면 적어도 충분히  
  양심적으로 행동을 하여 신문에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소방 원이나 미술관 수위에게 가서 코로 
  냄새를 맡아 달라고 하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형편을 보면 어떤 사람은 완벽하게 갖춘 것 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것 같으나 자신만은 이러한 것을 아주 부족하게 갖췄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 상태가 어떨 때는 맞은 것 같지만 반드시 정확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점을 참고하여 균형을 잡아간다면 착각에서 벗어나 훌륭한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물의 노예가 되지 말라

    아인시타인은 돈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재단에서 1천5백불 
  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이것을 현금으로 바꾸지도 않고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얼마 후 
  돌아와 보니 수표는 책과 함께 없어져 버렸다. 아인시타인이 말했다.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책과 함께 가져가 버렸으니!'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은 경우에 대한 설명이다. 사물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여러 분야에 
  해당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은 학문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옛 것에만 묶여 있다면 그 결과는 오히려 해악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책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지적한다. 우리들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 오는 
  '수전노'의 얘기는 돈이 라는 사물의 노예에 관한 풍담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약이나 검소한 
  생활과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윈스턴 처칠이 세계를 향해서 방송을 하려고 웨스트엔드에서 택시를 불러 BBc 방송 협회까지 
  가자고 하였다. 그러자 운전수가 말했다.
    '나는 그런 곳까지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보통 때면 상관없습니다만 오늘은 윈스턴 처칠 경의 연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꼭 
  들으려고 합니다."
    처칠은 그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1파운드의 돈을 집어 주었다.
    그러자 운전수는 지폐를 언뜻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타십시오. 처칠인지 개떡인지 돈이나 벌고 봐야 겠소!"

    자기도 모르게 사물의 노예가 되는 과정이다. 우리들은 주변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 온 
  중요한 것들을 한순간에 내팽개치는 것을 자주 본다. 교양 과목이라는 것도 옛날 얘기나 
  들려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보니 삶의 참된 길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섣불리 알게 
  되는 것, 부족한 지식은 스스로를 사물의 노예로 이끌어 가기가 쉽다. 요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요사스러운 음악과 요염한 춤 때문에 참다운 음악이 파묻혀 버리거나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행동반경을 체크하여 사물의 노예가 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어떻게 부귀와 명예를 얻을 것인가

    부귀와 명예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편에 속한 것이 악세사리가 아니다. 공자는 부귀에 대해, 
  '부귀를 내 마음대로 구할 수 있다면 말채찍이라도 잡고 싶지만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하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곱씹으면 부귀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예에 대해 맹자는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은 천승의 나라도 사양할 수 있다. 진정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면 식어 빠진 한 그릇의 밥과 나물국에도 침을 꿀꺽 삼키며 탐욕의 빛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바이말 공화국은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되어 1920년 3월 카프가 지휘하는 합법적인 
  폭동이 일어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폭동의 주요 지지자는 해군 소령인 
  에르하르트였다. 이 당시 독일 은행들은 카프의 명으로는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폭도들은 자금난에 빠져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해군 소령 에르하르트에게 
  은행을 점거하고 지하실을 파괴하여 금고를 열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는 몹시 화를 내었다. 
  자신은 금고 문을 부수기 위해 베를린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고 소리친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부귀는 누구나 바라지만 빈천한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빈천한 생활을 하더라도 부당한 방법으로 부귀를 도둑질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임을 강조했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적으로 얻어질 때는 수풀 속의 꽃과 같이 저절로 
  무성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공로나 업적으로 얻어졌다면 부귀와 명예는 시세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고 나중에는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 부귀와 
  명예를 얻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세 가지의 썩지 않는 것

    춘추 전국 시대에 노나라의 숙손표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썩지 않은 것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가 입덕이며, 둘째가 입공, 셋째가 입언이라는 것이다. '덕은 근본이며 
  죄가 끝'이라는 [대학]의 말이 있듯 이 세상에 영원히 썩지 않은 큰 덕을 남긴 사람들을 
  입덕이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처럼 그들의 덕망이 해와 
  달처럼 우리 인류를 비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입공이란, 나라나 인류에 위대한 공적을 남긴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이순신 
  장군이나 을지문덕 장군 아인시타인이나 루즈벨트 대통령 헬렌켈러 등등의 인물이다. 그들의 
  치적은 역사의 현장 곳곳에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입언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선현들의 명문 이나 명언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영원히 썩지 않는 세 가지인 '삼불후'이다. 마땅히 글을 읽는 선비라면 세상에 나가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반드시 성취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어떤 입장에서 삼불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스게스러운 말 같지만 
  현대인들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풍담이 있다. 첫째가 
  돈이오, 둘째가 배경이며, 셋째가 친구라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의 양면성을 띠고 있는 야누수적인 존재다. 잘 
  쓰면 약이고 잘못 쓰면 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항상 동반하고 있다.

    배경이라는 것은 흔히 '빽줄'이라고 부르는 인생의 보디가드 역할을 말한다. 어느 회사에 
  병아리 사원으로 입사하여 점차 경험을 쌓아 나가 나중엔 부장이 되고 중역이 되는 광장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부장이 되고 고위 간부로 발탁이 되는 이른바 '헬리콥터식의 인사 
  행정'의 당사자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친구라는 것은 넓은 의미로 동류 의식을 말한다. 이른바 혈연이나 지연 관계 
  등이다. 어느 대학 출신이라든가, 또는 어느 지방 출신이라는 등의 문제가 출세의 도움 받기가 
  된다는 말이다. 이 세 가지는 현대인들이 출세라는 관문을 돌파하는 데 필연적으로 지녀야 
  한다고 풍담으로 얘기한다.

    중화를 지켜라

    '중화'는 [중용]에서 나온 말이다. '중이라는 것은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을 
  말하고, 화라는 것은 그것들이 나타나 절도에 맞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중화'라고 
  했을 때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똑바른 것을 뜻한다.

    애자가 배를 타고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섬에서 자게 되었다. 단잠에 빠져드는가 했는데 
  문득 개구리와 메기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제 용왕이 영을 내리시기를 꼬리가 있는 
  수족들은 모두 죽인다고 하였으므로 내가 이렇듯 탄식하고 있는데, 당신은 무슨 이유로 그리 
  탄식하십니까?'하였다. 그러자 개구리가 말했다. '나는 지금 꼬리가 없지만 올챙이 때의 죄를 
  추궁 받을까 걱정되어 그렇답니다.' 하였다. 그 후 애자가 연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연 
  왕이 하소연했다. '우리가 약소국이다 보니 무도한 진나라가 우리 변경을 침입하여 매일 
  백성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여 방어해 보지만 결
    과는 항상 마찬가지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애자가 대답했다.'옛적에 용왕이 
  있었답니다. 용왕은 어느 날 바닷가에서 개구리 한 마리를 만났더랍니다. 거처는 어떠시냐고 
  개구리가 물었답니다. 그래서 용왕이 대답했지요. 자신은 주패로 만든 궁 안에서 호화롭게 
  산다는 것이었어요. 이번에는 용왕이 개구리의 거처를 묻자 개구리는 자신은 녹태와 청초와 
  청천에서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개구리가 물었습니다. 왕의 기뻐함과 노함의 표현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용왕은, 내가 기쁠 때엔 그 혜택이 천하에 미치어 오곡이 풍성하지만 내가 
  노했을 때엔 폭풍과 재앙이 내려 천리나 되는 땅에 풀 한 포기 구경하는 조차 힘들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용왕이 개구리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는, 자신이 기쁠 때엔 
  청풍명월을 즐기며 북을 두드리고 노했을 때엔 노안이 되며 복창이 심하므로 그때엔 쉰다 
  하였습니다. 연왕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였다.
    성질이 조급한 자는 불길과 같아서 만나는 것마다 태워 버린다. 또한 은덕이 적은 자는 
  얼음과 같아서 만나는 것마다 모두 죽여 버린다고 하였다. 꽉 막힌 사람은 죽은 나무나 썩은 
  물처럼 생기가 이미 도망가 버린 것과 같으니 복을 누리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즉 '성질이 
  급한 사람' '너무 냉랭한 사람' '고집 불통'인 사람은 공적을 이루어 복을 누리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러한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현대인들이 아무리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원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만 중화의 논리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사회 생활의 적응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은 끝이 없다

    이런 말이 있다. 우리 몸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은 다음의 기능을 갈구하고 있다. 눈은 
  색욕을 귀는 성욕, 코는 향욕, 혀는 미욕, 몸은 촉욕을 언제까지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색욕이라는 것은 항상 이성의 상대를 그리워하는 욕망이다. 참으로 사람들은 언제나 이성을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겉으로는 무표정한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뜻 언뜻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이것이 색욕이다.
    성욕은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아름다운 음악은 심신까지 편안하게 
  작용하여 그 영혼을 맑게 한다. 그만큼 맑은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심신을 
  편안하게 녹여 내므로 결국은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편안함을 전달케
    하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향욕이란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싶은 욕망이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에서 또는 들꽃의 
  질박하고 수수한 향기를 맡을 때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향기를 맡고 
  싶어하는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욕이라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식욕에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촉욕이란 상대와 몸을 부딪치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목욕을 
  비롯하여 잠을 즐기고 싶다는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욕망,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일단 진리의 
  길로 접어들면 이러한 다섯 가지의 욕망은 봄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하늘의 도리가 
  무한하다면 인간의 욕망은 그저 방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할 수 있다.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새가 하늘 높이 치달아 오르는 것이며 인간의 욕망이 빠지는 것은 새장에 갇힌 
  새와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 스스로 오관의 노예가 될 것인가, 무궁한 진리의 세계에 빠져 
  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신념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념은 문이나 빗장도 모르며
    모든 것의 속을 관통해서 나아간다.
    신념에는 시작도 없으며 영원히 활개를 친다.

    신념으로 켜는 진리의 음악 소리

    노력과 진보는 부자 지간

    노력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렇게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 말의 적법성을 놓고 맞느니 맞지 않느니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지가 바다 저쪽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만 단 몇 미터라도 그 쪽으로 갈 수 있다. 목적은 있으나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마련되었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은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다. 비록 재주는 뛰어나지 않는다 
  해도 쉼 없이 노력을 한다면 결과는 만족할 수가 있다.
    '먹돌도 뚫으면 굶이 난다'는 말은, 아무리 굳은 돌이라도 자주 뚫으면 구멍이 나는 것처럼 
  꾸준히 노력을 함으로써 마침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세균 학자 파스퇴르는 근세 세균학을 개척한 위대한 과학자로서 인류에 공헌한 바 
  크다. 이러한 위대한 과학자가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학창 
  시절에 뛰어난 성적을 유지하던 학생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절대적인 천재라 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일을 
  하는 것이라 했다. 늘 연구와 노력하는 자세가 그를 세계적인 세균학자로 탄생시킨 것이다.

    사나운 말을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가 있고 아무리 단단한 쇠도 녹여서 틀에 부어야 모양을 
  이룬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부단히 노력하면 결국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목적을 이룰 수 있지만 미온적으로 흐물흐물 
  대처한 경우는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 백사 이항복은 '사람이 몸에 병이 있는 것은 
  부끄러워할 것이 못 되나 일생 동안 마음의 걱정이 없는 것이 바로 내 걱정이다.'라고 한 말 
  이 의미 심장하다. 마음의 걱정이 없다면 분발하거나 노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건을 탐내지 않은 자세

    송나라의 삼공 벼슬에 있는 자한이라는 이에게 어떤 사람이 옥을 가져왔다. 자한이 받지 
  않자 옥을 바치는 자가 말했다. '이옥을 이름난 감정사에게 의뢰하여 감정을 시켰더니 진짜로 
  판명 났습니다. 그러니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자한이 말했다. 자신은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보배'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옥을 받게 되면 
  자한은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한 보배를 잃는 것이고, 상대방 역시 귀한 옥을 가져와 자한에게 
  주게 되니 스스로 보배를 잃게 되는 것이라 한 것이다. 서로가 귀한 보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 옥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뿐 이라 한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마음의 자세인가. 대게 사람들은 일생 동안 뇌물을 받거나 
  노략질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한순간 사적인 욕심이 일어나 이제껏 고수해 온 청렴한 
  생각들을 버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열매를 맺는 파초는 말라죽고 북쪽으로 피는 갈대도 마르나니 노새는 새끼를 배어서 죽고 
  사람은 탐욕으로 멸망한다'고 [팔만대장경]은 경고한다. 우리가 지붕을 성기게 공사하였다면 
  비가 새는 것이 당연하듯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정비하지 않으면 탐욕으로 인해 이제껏 지켜 
  온 마음 자세가 흐트러지고 또한 그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일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멸망이며 패가 망신이다.

    목이 마를 때의 한 방울의 물처럼

    재물이 많은 단목사라는 사람이 하루는 친구인 원헌을 찾아갔다.  이때 원헌은 봉고산에서 
  굶주림을 참고 학문에 정진하고 있었다. 이를 본 단목사는 '이것은 자네의 병일세' 하고 
  말했다. 그러자 원헌은 당치 않다는 듯이 상대의 말을 받았다. '자네 는 나의 가난함을 보고 
  병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네. 재물이 없는 것인 빈이라 하고, 도를 배우다가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병인 것이네. 그러니 내가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병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네.'라고 하였다.

    학문의 길은 끝이 없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목이 마를 때 마시는 한 방울의 감로수와 
  같다. 우리가 깊은 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길 때면 고요함 속에 젖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고요함을 깨닫지 못한다. 진정한 고요함을 알기 위해서는 소란스러움
    속에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당장의 고생을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부단한 노력 끝에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지나간 괴로움은 오히려 한 방울의 감로수처럼 
  스스로의 인생에 생명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내린 복

    공자가 천하를 떠돌 때의 일이다. 당시 공자는 나이가 57세로 제자를 데리고 송나라를 
  찾아갔다. 송나라는 자신의 선조의 고국이었으므로 이런 곳에서는 예법 강의가 적격이었다. 
  해서 공자는 큰 나무 그늘에 앉아 열심히 예법 강의에 열을 올렸다. 그때 송나라의 국방장관인 
  환퇴라는 이가 공자를 죽이기 위해 나무를 뽑아 버렸다. 언젠가 환퇴가 돌로 된 관을 만들어 
  자신의 사후에 쓰려고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은 낭비야. 시체는 빨리 썩어야 좋은거지.' 
  하고 말했음을 전해 듣고 앙심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얼굴에서 핏기를 잃고 
  허둥댔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채근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태연했다. 이미 하늘이 
  덕을 내렸으니 환퇴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복이 있다 이른바 분복이라는 말이다. 하늘은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 그렇기에 사람에 따라선 자기가 받은 복의 근수가 얇은 것을 보고 '박복'하다고 
  탄식한다. 이것은 옳지 않은 자세다. 박복하면 할수록 더욱 덕을 쌓아야 한다. 몸이 괴로우면 
  마음을 편히 가져야만 설령 액운을 만나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을 나약하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액운이 닥쳐왔을 때 쉽게 포기를 하기 때문이다. 
  복과 화는 공존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의 화가 밀어닥쳤다 해도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평소 덕을 쌓으면 걱정이 사라진다.

    위선을 멀리하라

    남을 속이기 위해 거짓을 입에 올리는 것을 '사'라고 한다. '사'라는 것은 잠깐 사이에 
  폭로되는 말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거짓된 말이다. 학문을 하는 군자로서 위선을 행하는 
  것은 차라리 소인배가 잘못을 저질렀다가 선인으로 되돌아오는 것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위선은 군자에겐 스스로를 망치는 해악이라는 것이다.

    '논어'의 <학이편>에서 공자 말씀으로 나와 있는 '교언영색'은 괜히 상냥스런 얼굴을 하고 
  부드러운 눈빛과 교묘한 말을 지껄이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공자
    는 이런 인물들을 싫어했다. 공자가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중원 천지를 떠돌았을 때나,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이나 이 말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저 친구 말이야. 말은 번지르르한데 
  실속이 없어. 언젠가 웃는 낯으로 돈을 빌려 달라기에 그렇게 해주었더니 지금껏 
  감감무소식이야. 셈이 흐리다니까.' 이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직장 내에서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위선은 항상 잔인하기 마련이다. 부드러운 얼굴빛을 하고 교묘한 언사를 쓰는 사람 치고 
  어진 사람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개 무지랭이나 다름없는 자가 죄를 졌다면 그것은 
  한두 사람의 피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앉은 자가 위선을 행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겉으로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는 고급 
  관리들이 속속들이 뇌물을 비롯하여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문 . 방송을 듣고 있노라
    면 그 폐해가 얼마나 커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이유로 공자는 '군자가 선을 꾸미는 
  일은 소인배가 악을 저지른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아무래도 군자의 위선은
    소인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군자가 덕을 생각할 때 소인의 
  머리 속은 한 치의 땅을 생각할 것이고. 군자가 의리를 생각할 때엔 소인은 이해 득실을 
  따지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군자는 일이 여의치 않을 때엔 그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지만 소인은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이것이 다르다.

    세상을 보는 눈

    제2의 춘추 전국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위진남북조 시대는 사회 가 극도로 혼란했다. 여름날 
  팥죽 끓듯 세상은 하루 다르게 달라졌다. 전쟁은 빈발하고 사람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인의예지를 논하는 선비들 역시 학문을 논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연명해 나가느냐는 식의 생활을 영위했다. 바로 그런 인물들의 부류가 죽림 
  칠현이었다. 이들은 조정에 출사하여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신, 허름한 옷을 입고 허리엔 
  호로병으로 된 술병을 차고 낙양 거리를 돌아다니며 온종일 술을 퍼 마시며 시를 짓고 놀았다.
    다시 말해 어지러운 세상을 겉도는 무리들이었다. 이러한 죽림칠현 가운데 완적이라는 이가 
  있었다. 이 자는 황제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그때마다 조정에 나가지 
  않겠다고 거절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부귀 공명을 한갓 뜬구름처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모두들 슬퍼하였지만 그만은 태연했다. 혜회라는 
  친구가 조문을 왔다가 실컷 욕만 얻어먹고 돌아갔다. 그러나 죽림 칠현의 한 사람인 그의 동생 
  혜강은 초상집에 거문고를 들고 와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예속의 학자들은 
  그를 몹시 미워하였다.

    내 마음이 편안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원만하고, 내 마음이 관대하면 천하는 저절로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앞에 나왔던 완적처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백안으로 보느냐 청안으로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에 서기 때문이다.

    선비의 몸가짐

    선비는 권문과 요로에 있을 때에는 몸가짐은 엄정하고 명백하여야 한다.  마음은 항상 
  온화하고 평이하게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비린내 나는 무리'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또한 
  너무 격렬하여 독침을 가진 자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우선은 처신에 염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사신이 되어 군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있다. 또한 친척들이 효자라고 칭찬하며 마을 사람이 공손한 자라고 칭찬을 하면 2류 
  선비는 된다. 그리고 말에 신의가 있으며 과단성 있게 행하면 비록 소절에 구애되어 소인이라 
  할지라도 3류 선비는 된다."
    "오늘의 정치를 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선비는 몸가짐이 가벼워선 안된다. 행동이 가벼우면 침착한 맛이 없어진다. 또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생기를 찾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선비의 처신은 경거망동해서는 안되며, 
  욕심은 몸을 더욱 무겁게 하여 망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멀리하라

    허윤이 재가를 들었다. 첫날밤 잠자리에서 부인의 얼굴을 보니  생김이 몹시 못나 보였다. 
  그 뒤로는 한 번도 부인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러고 보니 집안 사람들은 걱정이 한 
  아름이었지만 그러나 부인은 전연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어느 날 허윤이 부인을 만난 
  자리에서 빈정거렸다.
    "여자의 용모는 덕의 하나요. 그런데 당신은 무슨 좋은 점이 있으시오?"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무릇 선비는 백행을 구비해야 하는데 당신은 모든 것을 구비했습니까?"
    "그렇소."
    "남자는 백행 중에 덕이 첫째인데 어찌 호색을 하면서 호덕은 못하십니까."
    아름다움과 추함은 반대다. 대개 얼굴이 못나 보이는 여자일수록 마음은 비단결처럼 고운 
  경우가 많다. 만약 내가 아름답다고 뽐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추하다고 시비를 
  일으키겠는가. 이런 예를 들어 말할 수 있다. 얼굴이 몹시 얽은 곰보에게 당신은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한다면 당장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한 채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신은 눈이 고와요. 얼굴만 그렇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미스 
  코리아 감인데 말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겸연쩍은 듯이 웃고 말 것이다.

    지나치면 손해를 본다
    북위 말엽에 광주 지방에 양일이라는 지방 장관이 부임해 왔다. 그는 침식을 멀리할 정도로 
  백성들 다스리는 일에 힘을 기울였으며 법을 집행하는 데에도 너그러웠다. 어느 해엔가 나라 
  안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들이 늘어났을 때. 창고를 관리하는 벼슬아치는 중앙 관리의 
  명을 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이때 양일은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다. 지금 천하가 흉년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장차를 위해 저장해 놓은 곡식은 이런 시기에 쓰기 위함이 아니더냐. 어서 
  창고를 열어라.' 하고 말하며 식량을 방출했다.
    양일이 부임하고 난 후 인근 주민들은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생겨났다. 양일이 이곳에 
  부임을 하기 전까지는 높은 관리들이 이곳에 내려올 때엔 큰 잔치를 열어 환대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양일이 이곳 지방 장관이 된 후로는 일절 그런 폐단
    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 들고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는가 하면 아무리 몰래 대접하려고 해도 술 한잔 먹으려 들지 않았다
    ?은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관리들이 올 때마다 고을 백성들은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양장관은 천리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답니다. 아무리 
  수단을 부려도 그를 속일 수가 없어요.' 즉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괴롭히는 그들의 비행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양일은 곳곳에 염탐꾼들을 풀어놓아 악질 관리들을 일일이 
  점검했던 것이다.

    벼슬은 그 지위가 너무 성하면 위태롭다고 하였다. 행실에 있어서도 너무 고고하면 비방과 
  방해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너무 지나치면 손해를 본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모든 일이 일방 
  통행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중 자애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공로와 즐거움은 양보하라

    춘추 전국 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는 앙숙이었다. 항상 이웃에 연해 있으면서 치고 받는 
  전쟁이 몇 대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러는 가운데 월나라가 오나라에 망하여 월왕 구천이 
  오왕의 마부가 되고 월왕의 부인은 오왕의 첩이 되는 것으로 목숨만은 건지게 되었다. 이후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하여 복수극을 전개하였다. 구천은 그의 심복인 범여의 계책을 사용했다. 
  즉, 서시라는 미녀를 이용하여 부차로 하여금 방탕한 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언젠가 범여는 
  오왕의 모습을 보고 나름대로 관상법에 준하여 그를 평가했다.
    '월왕은 목이 길고 새의 주둥이 형상이라 고난을 같이 겪을 수는 있으나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는 상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멀리 제나라로 와서 도주공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그는 많은 
  재물을 모았다.

    범여는 알고 있었다. 공로와 즐거움은 독차지하게 되면 적이 생긴다. 사람들은 거의가 남이 
  잘되는 것을 시의 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공을 세운 범여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은 
  뻔하다. 분명 어느 누군가가 나서서 시시콜콜 돼먹지 않은 수작으로 그를 무함할 것이 뻔했다. 
  이런 이유로 범여는 공을 세우고도 즐거움을 누리지 않은 채 제나라로 떠난 것이다

    원인을 제거하라

    옛날에 거울은 흔히 구하거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거울에 얽힌 웃지 
  못할 예화 역시 적지 않음을 볼 수있다.
    어느 두메 산골에 농사를 짓는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서울에 
  다니러 가는 도중에 좋은 화장품을 사 달라고 하였다. 남편은 그 달 보름께에 서울에 
  도착하였는데 그만 화장품이라는 명칭을 잊어버리고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같은 둥
    근 거울을 사 가지고 돌아갔다.
    여러 날 만에 집에 도착한 선비가 사 가지고 온 거울을 내밀자 아내는 '어디서 첩을 
  데려왔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본 남편 역시 '집안에 간부를 
  데려왔다'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노모가 거울을 보더니 '어디서 양모를
    데려온 것이냐'고 난리 굿을 피웠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세 사람은 관가로 찾아갔다 
  거울을 처음 보는 관장은 배후에 후임자가 벌써 도착했다고 재판도 중지하고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이것은 거울에 얽힌 우스개 얘기로 [쟁경설화]라고 한다.

    원인을 제거하라는 문제. 이것은 쉽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가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물은 파도가 일지 않으면 수면은 항상 고요하다. 우리f 
  마음에 즐거움이 자리를 잡는다면 의당 얼굴에 즐거운 기색이 나타난다. 남을 미워한다면 
  얼굴에 원망과 분노의 빛이 나타난다. 우리가 즐거움은 일일이 찾을 길이 없으나 괴롭고 
  힘들고 화를 내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의 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제거한다손 스스로 
  즐겁게 될 것이다.

    이인이 되되 괴짜는 되지 말라
    화담 서경덕은 집안이 가난하여 농사를 지으면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는 머리가 영리하여 
  날로 학문이 일취월장하였다. 부친의 명에 따라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대과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화담이란 못 가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공부에 전념했다.
    그의 공부를 하는 방법은 특이했다. 하늘의 이치에 대해 공부를 하려면 천, 자를 써서 벽에 
  붙이고 며칠간이나 그 글자를 노려보았다. 그런 다음 마음에 확실히 깨달음이 오면 그제야 
  다른 공부로 넘어갔다.
    이렇게 몇 년 동안을 공부하다 보니 사물의 이치를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후에 
  친구들을 만나 자신이 깨달은 학문과 다른 사람의 학문을 비교 담론하였다. 누군가가 왜 
  그렇게 공부하느냐고 묻자, '나는 스승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는
    몇 배나 더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오.' 하였다. 이러한 서화담의 학문적 이론은 대부분 
  송나라 때의 학자인 장재의 학설을 따르고 있었다. 세상의 여론이나 부귀 영화에는 전연 
  개의치 않았다.

    세속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벗어나면 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는 
  서경덕을 위시하여 이지함이나 남사고 등의 이인이 많다. 이들은 결코 더러움에 섞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 속에 들어가 세속의 모든 것을 끊었을 경우엔 이른바 괴짜로
    둔갑하게 된다. '이인'과 '괴짜'의 차이는 이것이다.

    망중한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송나라 진조가 쓴 [강호장옹집] 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진조가 진재.황부 등과 함께 영산에서 놀 때에 진재가 '우리는 바쁜 가운데 틈을 내어 
  괴로움 속에서 즐길 줄 안다'고 위 글귀의 글자를 제목으로 삼아 여덟 수의 시를 지은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되어 오나라를 융성케 한 대신 오자저의 마음엔 같은 하늘에 머리를 
  두르고 살 수 없는 깊은 원한을 드리운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와 형의 원수인 초나라의 
  평왕이었다. 초나라의 높은 벼슬에 있던 오자서의 아버지는 참언에 걸려 평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왕은 그의 형과 오자서를 잡으려고 '만약 너희들이 나타나면 네 아비는 풀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하므로 형은 출두했으나 오자서는 원수를 갚기 위해 도망하였다. 이 
  무렵은 합려가 힘을 얻기 전이었으므로 오자서는 여러 해 동안 마음속에 깊은 원한이 도사리고 
  있는 채였다. 마침내 합려의 대가 되었으나 평왕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이로부터 7년 
  후, 오자서는 대군을 휘몰아 가서 오나라를 함락시켜 버렸다. 또한 평왕의 무덤을 파헤친 후 
  주검을 파내 삼백 번이나 매질했다.
    이를 본 어떤 대신이 너무한 일이 아니냐고 했을 때 그가 말했다. '나는 일모 도원하다.' 즉 
  순리로 일을 처리할 만한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의 오자서처럼 조급하다.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중한'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좀처럼 한가할 때가 없다. 항상 일상의 번거로움 
  속에서 바쁜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소요 속에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면 시끄러움을 잊을 
  수가 있다. '망중한'이란 아무리 바쁘더라도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다.

    아집의 병

    프랑스 베르사이유에 사는 르니엘 부인은 궁정 고문 변호사의 아내였다. 그는 후반생의 3o년 
  동안을 고집으로 입을 다물고 보냈다. 1842년 남편은 집안 일로 옥신각신하다가 부인을 사납게 
  몰아붙였다. 그것도 사나운 말로 험상궂게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그런 말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리석다고 해요.'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르니엘 부인은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3o여 년 동안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남편은 어찌할 
  줄 모르고 수없이 빌고 또 빌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아무리 때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막내딸의 혼인에 대하여 부인에게 허락을 구하게 되었다. 
  부인은 대답 대신 그저 희미하게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부인의 입은 이후 영원히 봉해져 
  버렸다.

    아집이라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병이다. 의사들은 물질적인 문제가 원인이 된 병은 고치기가 
  쉽다고 한다. 물질에 얽히어 있는 장애물은 고치기가 쉽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이 
  원인이 되어 생긴 질병은 고치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장애물 제거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질이 급한 자는 실패하기 쉽다

    어느 날 공자가 안자에게 말했다. '등용이 되면 나아갔다가 버려 지면 다시 들어앉는 것은 
  너와 나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자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이 삼군을 통솔하실 병권을 
  손에 넣었다면 그 일을 누구와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이러했다. 
  '맨손으로 호랑이에게 달려들고 황하를 맨발로 건너려 하며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사람과는 
  일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다.'

    위의 얘기는 만용을 지적하고 있다. 맨주먹으로 범에게 달려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그런데도 당사자는 자신의 무모함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무모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사실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주먹 쥔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때문이다. 성질이 급한 
  자는 매사에 이로움이 없다. 백 가지의 복이 모이는 것은 마음의 기질이 평온한 자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 속에서 만용된 행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일 처리가 조급하지 않아야 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포대를 장만한다'는 말이나 '성급한 놈이 술 값 먼저 낸다'는 말들은 
  한결같이 성격이 조급함을 지적하고 있다. [장자]의 <제물론>에는 성급한 사람의 행동을 
  '견란이구시야'라 하고 있다, 즉 '달걀을 보고 밤중에 시간을 알고자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무슨 일에나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한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흐리멍텅한 생활을 할 게 아니라 매사에
    옳고 그름의 선을 정확히 그어야 한다.

    대나무 그림자가 처마 밑을 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법
    연 나라가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부자가 살해되었기 때문에 연 나라에선 태평군이 보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소왕이다. 소왕은 즉위한 후 국권 회복을 위하여 널리 인재를 모으는 데 
  힘을 기울였다. 어느 날 소왕은 곽외를 불러 방도를 물었다. 곽외가 대답했다.'옛날 어떤 
  군왕이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을 구하려 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궁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 주면 그런 말을 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궁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수소문 해본 결과 그런 말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죽은 말의 뼈라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에 5백금을 주고 그 말의 뼈를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죽은 말의 뼈를 5백금이나 주었다는 말에 소왕은 무척 화를 냈다. 그러나 죽은 말의 뼈가 
  5백금이라면 살아 있는 말은 그 값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니 얼마 동안 
  기다리면 틀림없이 천리마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 안에 천리마가 세 마리가 
  모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소왕이 어진 이를 모르려면 여기 있는 곽외부터 중용 하라는 
  주문이었다. 곽외와 같은 자도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면 자신들은 얼마나 높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생각할 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소왕이 인재를 모으는데 애를 쓴 점과 둘째는 지금 
  당장은 터무니없는 값을 치루지만 훗날에는 그에 상응하는 반대 급부가 있다는 점 셋째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인재를 얻기 위해 계책을 마련한 곽외의 견식과 아량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배를 타고 멀리 여행을 하는 길에 나섰다고 하자. 그때 해안선에 폭풍이 몰아쳐 
  물결이 높이 일어났다면 배 안에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몰라도 배밖에  있는 사람은 두려움에 
  몸을 떨 것이다. 만약 정신 이상자가 떠든다면 그에 대한 걱정은 그를 바라보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들은 일상 생활에서 마음은 언제나 이웃과 사회와 나라에 두어야 
  한다. '낮은 곳에서 보면 크게 보이지만 높은 곳에서 보면 작게 보이는 것'은 바라
    보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일이다.

    분수에 맞지 않은 이득을 취하지 말라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는 진나라 서울 함양을 바라보고 진격을 계속했다. 먼저 성에 
  들어간 유방은 아방궁을 비롯하여 막대한 재산을 손아귀에 넣은 채 항우의 입성을 기다렸다. 
  얼마 후 항우는 대군을 휘몰아 함양에 들어온 후 항복을 한 진왕 자영을 죽이고 아방궁에 불을 
  질렀다. 아방궁은 사흘 동안이나 불길을 쏟아 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이곳 관중은 
  산과 강을 끼고 토지가 몹시 비옥합니다. 이곳에 도읍 하면 천하의 패자가 될 것입니다.'라 
  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부귀를 얻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비단을 두르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상대의 의견을 뿌리쳤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항우는 목후가 관을 쓴 
  것과 같다'고 빈정댔다. 목후란 원숭이다. 욕을 한 사람을 붙잡아 물에 넣어 죽여 버렸다.

    항우가 천하를 얻지 못한 이유는 상대를 포용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사기]의 <귀책 열전>에는 '불행이란 근거가 없이 오는 것이 아니며, 행복이 아무런 까닭 없이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가 불러들였기 때문에 온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분수에 맞지 않은 이득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 보자. 까닭 없이 얻은 
  이익은 조물주가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마련한 낚싯밥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물의 외형만을 보고 평가하고 즐길 것이 아니라 내면에 들어 있는 이치까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세속에 물들지 말라

    장필무는 아호가 백곡이며 자가 무부이고 구례가 본관이었다. 그는 무략과 역학에 밝았으며 
  불의와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무관이었다. 언젠가 양산군수로 있을 때였다. 본시
    양산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와 동래 수군절도사의 관할 하에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병사와 
  수사의 불법적인 요구에 시달림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양쪽에서 아무리 뇌물을 바치라고 닦달해도 부임한 장필무는 전연 꿈쩍하지 않았다. 화가 난 
  병사와 수사가 일시에 들이닥쳤다. 두 사람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불호령을 떨어뜨렸다.
    '네가 감히 무엇을 믿고 무엄하게 구느냐?'
    장필무는 흔연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믿는 것이라고는 세 칸짜리 초가뿐입니다. 하온대 제가 잘못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병사와 수사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멍하니 장필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불법적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대가로 벼슬길에서 물러난다 해도 초가삼간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경우는 여러 가지다.그 옛날 진나라 때의 죽림 칠현들처럼 시주 풍월을 
  즐기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연적으로 양산된 산나물 등을 즐기기 위해 
  깊은 산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세속의 인연을 멀리한 경우다.
    굳이 세속을 멀리하라고 한 것은 탐욕과 이기심 등을 버리라는 말로 대체하여 설명할 수 
  있다. 흔히 말하기를 그런 점들이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술은 거나하게 취했을 때가 좋다

    진나라 때에 필탁이 이부랑이 되었을 때에 그가 소속한 이부청에서는 술을 만드는 양조소가 
  있었다. 어느 때인 가 술이 잘 익어 그 냄새가 진동하였을 때 필탁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곳을 지키는 관원은 누군가가 양조소에 들어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그를 붙들어다 지하 뇌옥 안에 처넣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밝은 
  날에 범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는 관원의 상관 필탁이었다. 이부에서는 벌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그로 하여금 거나하게 취할 수 있도록 마시게 해주었다.

    술이란 술병에 들어 있는 물을 뜻한다. [팔만대장경]에서는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의 어머니'라고 혹평을 했다. 그러나 술은 마시면 즐거움을 얻을 수가 있어서 좋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이라는 글에서, '애주가에 있어서는 정서가 가장 귀중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얼근히 취하는 사람이 최상의 술꾼'이다. 그러나 줄이 없는 거문고를 뜯으며 
  술을 마시던 도연명처럼 술의 정서는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술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인심을 지배한다

    중국의 민담에는 등고절의 행사가 있다. 음력 9월 9일 인 중양의 날이다. 이날에는 빨간 
  주머니에 수유를 넣어 팔에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서 앞으로 닥칠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는 예식을 치루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옛날 한나라 때에 환경이라는 자가 비장방을 따라다니며 도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비장방은,'너희 집에 재앙이 내릴 것이니 빨리 가서 빨간 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수유를 넣어 팔에다 걸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도록 해라.' 하고 
  일러주었다.
    환경이 급히 집으로 달려가 그대로 하였더니 인명은 구할 수 있었으나 가축들은 모두 죽어 
  넘어진 채였다. 그 후 중국인들은 중양절이면 환경이 가족들에게 행하였던 대로 그런 의식을 
  치루며 재앙이 비켜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풍속이 생겨났다.

    중양의 날인 9일은 9가 겹치는 날이다. 9일은 명절도 아니었고 당시 세시 행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동국 세시기]에 의하면 9월 9일은 국화를 관상하는 날로 한 무제 때에 
  가패란이란 궁녀가 무릉에 나갔다가 9일에 이르러 떡을 먹는 것이 원인이 됐다고 적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을 세시 행사로 보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 여실하다. 우리가 산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사해 천지를 
  바라보면 그 얼마나 마음이 툭 트이는가. 또한 망망 대해에 나가 끝없이 펼쳐진 해원 위로 
  갈매기 날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우울한 가슴앓이가 물러가질 않던가. 그런 탓에 인간은 
  항상 자연을 스스로의 수양을 기르는 도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자연의 
  지배를 받는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 속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낙엽이 새싹을 틔운다

    동지가 동짓달 상순에 들면 이를 애동지라 하고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우리 나라에선 
  동지가 상순에 들면 어린아이들에게 좋고, 하순에 들면 노인들에게 좋다는 풍속
    이 있다. 동짓날은 누구나 한 살씩 더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어른에 가까워져 
  가고 있으며, 노인들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된다. 특히 이날은 팥죽을 쑤어 
  먹는데 그것은 액막이의 뜻이 있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대나무 통에 갈대를 태운 재를 넣어 두고 동짓날에 그 재를 
  밖으로 날려보냈다. 그것은 양기가 되돌아와서 절기를 알았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가을 
  바람은 만물을 죽이므로 가을 기운을 숙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날려보낸 재에 실린 양기가 
  되돌아옴과 같이 봄이 오면 생명의 싹이 다시 움터 온다. 한편으론 죽이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생명의 움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띄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들, 모든 것이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만큼 조락함을 느낄 수 있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자연은 새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흩어져 날리는 재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움터 봄기운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냉수 한 병을 가져오시오

    사람의 마음이 물과 같지 못함을 옛 시인은 탄식하였다. 물은 가장 높은 곳에서 점차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온다. 때로는 식수가 되어 사람의 생명수가 되고 때론 자연수가 되어 곡물 
  등을 키운다. 그러다가도 이름 모를 들꽃들의 수액을 차 오르게도 하고, 굳은 땅
    올 촉촉하게도 만들어 준다.
    노자는 이 세상에서 물보다 겸손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흉폭하고 딱딱한 것 위에 
  떨어질 때는 물보다 더 센 것이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니까 물은 강한 것에는 강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당나라 때에 이덕유란 이가 정승으로 있을 때에 때마침 경구로 가는 사자가 있어 그에게 
  부탁했다. 양자강 중에 있는 금산천을 찾아가 냉수 한 병만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사자는 배를 
  타고 그곳을 출발했다. 길을 떠난 도중에 술을 한 잔 걸치다 보니 배를 타고 한참이나 출발한 
  연후에야 정승의 부탁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석두 성에 와 있었다.
    사자는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별수 없이 그곳에서 물을 길어 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을 
  바쳤다. 이덕유는 물맛을 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허, 이젠 강남의 물맛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구나. 이 물은 어째 석두성의 물맛과 그리 같더란 말이냐.' 하는 바람에 사자는 
  사실대로 말을 하였다. 이덕유는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물맛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있나!'

    헤세는 물에서 모든 것을 배우라고 하였다. 생명의 소리 존재하는 소리, 영원한 생명의 
  소리가 물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물은 그것을 흔히 볼 수 있으므로 귀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덕유가 한 병의 냉수를 잊지 못하고 찾았던 것처럼,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을 통해 숭고한 자연의 위대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상황을 재빨리 판단하라

    촉나라의 제갈 공명은 여러 차례에 걸쳐 기산 에서 위나라의 장수인 사마중달과 자웅을 
  겨루려고 하였다. 중달은 촉나라에서 군량등의 물건이 보급되는 것이 늦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랬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촉나라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고, 공명은 진지를 
  오장월으로 옮겨 중달을 유인하는 계책을 사용했다. 중달에게 여인네가 쓰는 물건 등을 보내어 
  싸움을 일으키려 했으나 중달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자신을 찾아온 사자의 
  입을 통해 공명의 일상 생활을 점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며 저녁 늦게 자고 
  곤장 2o대 정도의 가벼운 죄까지도 손수 결정하는데 식사량은 아주 작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사마중달은 공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장기전을 도모한 것이다.
    공명은 사마중달이 자신의 계책에 속지 않은 것을 하늘의 뜻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죽은 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공명은 숨을 거두었다. 이 무렵 천기를 보고 있던 
  사마중달은 하늘의 장군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의 재사 공명이 죽은 것을
    알아차렸다. 즉시 대군을 휘몰아 촉군을 추격하였는데, 공명은 버젓이 마차에 탄 채 퇴군을 
  하고 있었다. 사마중달은 공명이 혹시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추격을 포기하였다. 
  후일 밝혀진 일이지만 당시 공명은 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소상을 깍아 마차에 안치한 
  후 퇴각하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하였다'는 말
    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비록 적장이었지만 사마중달은 공명의 재주를 극구 칭송했다.
    공명이 창안한 [팔진도]를 검토하여 그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공명이 죽은 후 촉나라는 망하고 사마중달이 있는 위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다는 점이다. 앞일을 훤히 알고 있다는 공명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단기전을 서둘렀던 것은 촉나라까지의 보급로가 워낙 장거리였기 때문인 탓으로 풀이된다. 
  현대인들은 나약한 면이 짙으면서도 과격한 일면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참아 내는 훈련이 
  덜된 탓이라고 그 방면의 전문가들은 풀어낸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능력, 이러한 순발력
    이 일생을 좌우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다.

    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말라

    자신의 장점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것은 소인배의 행동이라고 맹자는 
  지적했다. 약간은 과격하다고 볼 수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공자는 '천벌'을 거론했다. 
  '하늘은 한 사람을 현명하게 하여 뭇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데, 세상은 오히려 자기의 
  장점을 뽐내어 남의 부족한 것을 들춰낸다. 하늘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 재물을 주어 여러 
  사람을 구제하게 하려는데 세상은 오히려 자기가 재물이 있는 것을 뽐내어 남의 가난함을 
  업신여긴다'고 하였다. 바로 이 사람들이 천벌을 받아도 족하다는 것이다.

    맹자의 스승인 자사가 구변이라는 장수를 위후에게 천거했다. 그러자 위후는, '그 사람은 
  옛날 하급 관리로 있을 때에 달걀 두개를 훔쳐먹은 잡니다. 그런데 어찌 장군으로 발탁할 수 
  있겠습니까?' 라며 반대했다. 그러자 자사가 말했다. '성인이 사람을 쓸 때에는 목수가 목재를 
  쓰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긴 것은 쓰고 짧은 것은 버리지요. 긴 것이라면 어느 정도 썩은 
  곳이 있어도 잘라 낸 후 쓰면 되므로 그리하는 것이지요. 훌륭한 목수는 결코 긴 목재는 
  버리질 않습니다.'
    이 말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즉, 지금 위후께서 구변이라는 장수를 발탁하지 않는 
  것은 두 알의 달걀 때문에 장차 큰일을 할 수 있는 장수를 버린다는 의미다. 그것이 이웃 
  나라에 알려지면 밝지 못한 나랏일이 알려질까 걱정이 된다는 뜻이다.
    사소한 옛날의 허물, 그 일 때문에 중요한 장수를 잃게 되는 것을 맹자는 경고했다. 우리 
  주변에는 '엘리트 사원'이니 '엘리트'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을 
  기업체에서 채용할 때 옛날의 조그만 허물 때문에 망설인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손실임을 주장한다.
    개인이 큰 재산을 모으고 부귀 영달을 하는 것은 그 자신 운수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진 자 또는 권력을 쥔 자는 
  아랫사람을 하늘의 뜻에 따라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신념으로 일관하라

    한나라 때의 장수인 이광은 활을 들었다 하면 다른 사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흉노족이 침입을 했을 때, 작은 병력을 이끌고 나가 적의 대군을 괴멸시켰다. 
  그의 뛰어난 기마술과 활 솜씨 덕분이었다. 한 번은 군주와 함께 나갔는데 호랑이를 만나 
  물리친 적도 있었다. 어느 땐가는 호랑이가 자신들을 노리는 줄 알고 활을 쏘았는데 그 활은 
  큰 바위의 중간에 깊이 박혀 있었다. 바로 이것이 '돌에 화살이 박힌다'는 뜻으로 사용되
    는 '신념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가끔 직장의 상사나 친구와의 대화 중에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슬쩍 뒤로 물러나 
  버린다. 아무래도 눈치를 보거나 신념이 부족한 탓이다. 의지가 박약함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을 한다거나 자신의 본래의 뜻을 굽히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자신의 뜻을 굽히어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좋지만, 자신이 본래 주장하고 내세워야 할 
  부분까지 내팽개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맹자가 제자인 만장에게 말한 내용에 이런 것이 있다. '자신의 뜻을 굽혀 남의 무조건 
  기쁘게 해주는 것은 자신의 행실을 곧게 하여 남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고, 좋은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저 칭찬을 받는 것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사람에게 비방을 
  받느니만 못하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무슨 일에나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한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흐리멍텅한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매사를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하여 확실히 신념을 가지고 
  정진하라는 말이다.

    부모 형제간에는 침착하라

    중국의 춘추 오패를 말할 때엔 제나라 환공이 가장 뛰어났다고 말한다. 그는 관중과 포숙의 
  힘을 얻어 천하의 패자가 되어 중원 천지를 호령했다. 제환공의 나이 73세, 왕위에 오른 지는 
  43해가 되는 때였다. 그에게는 세 명의 왕비가 있었으나 한결같이 후사가 없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여섯 명의 후궁은 각기 아들을 낳아 왕자가 6명이나 되었다. 제환공이 죽자 후궁 
  태생의 왕자인 소는 송나라로 몸을 피하고 장자인 무휴 등 다섯 명의 왕자가 불꽃 튀기는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그러다 보니 왕의 장례를 치룰 여가가 없었다. 간신히 노신들의 중재로 
  장남이 보위에 올라 2개월만에 제환공의 장례를 치렀는데, 시체에선 온갖 벌레가 들끓을 
  정도로 부패해 있었다.

    이 세상엔 돈이 최고이고 명예나 권세가 으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권세나 권력은 잠깐 일어났다 스러지는 것에 
  불과하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의 경우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무고한 생명을 앗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것은 골육지친에 대해 침착하지 못한 탓이다. 부모 형제가 변을 당할 때는 
  침착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인간은 금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드러내라

    옛날 부여 땅에 김씨 성을 쓰는 대장장이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유명한 
  대장장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 중에서 훌륭한 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해 
  주었다.

    이런 경우,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면 우쭐대기 마련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이 
  유명해지면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어 입방아를 찧기 마련이다. 그러나 참다운 인격자는 
  상대의 단점은 보지 않고 장점만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남의 
  잘못을 탓함에 있어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 또한 상대방의 장점을 계발시키라'. 이것은 
  채근담에 있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원래 참다운 
  문장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을 찾으려 들지를 않는다. 고서나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고 부질없이 
  요사스러운 노래나 요염한 춤에 빠져 세월 보내기를 좋아한다. 선비는 모름지기 그런 유혹을 
  뿌리쳐 진실된 문장과 음악을 찾아야 한다.'
    이보다 앞서 스스로는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후하게 꾸짖고 
  원한을 사는 일이 혹시 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조그만 만족에서 벗어나라

    조그만 만족이란 사욕이다. 이러한 사리사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감찰하는 수양 능력이 필요하다. 조그만 만족에서 벗어나 욕심을 제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국 시대의 유명한 세객인 소진은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연나라를 찾아갔다. 
  연나라의 왕은 그의 말에 감복하여 많은 돈과 거마를 하사해 주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요란하고 화려한 행렬은 어느 고관 대작의 행렬보다 뛰어난 탓에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평소 입만 살아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고 빈정대던 친구와 친척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후 그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을 때, 초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고향인 낙양을 
  낙양을 지나게 되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한자리에 모였는데 한결같이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가 형수에게 물었다.
    '예전엔 제가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며 유세를 하다 실패하고 돌아오면 밥도 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산해진미를 마련해 주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서방님의 지위가 높아지고 부귀해지셨으니 당연하지요.'
    소진은 나직이 마음속으로 한숨을 몰아 쉬었다. 자신의 친척까지도 피붙이가 부귀해지면 
  두려워하고 가난해지면 업신여기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그에게 2경의 논밭만 있었어도 오늘의 자리엔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독백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 하늘의 운수는 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운수를 어떻게 
  잡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가? 그러한 능력은 어떻게 기르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수양이다. 욕심을 억제하는 수양이 있지 않다면 결코 큰일을 이룰 수가 없다. 바로 이것을 
  [유마경]에선 '지혜의 칼'이라 하였다.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조나라의 혜문왕이 '화씨의 구슬'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나라의 소왕은 이것을 열 다섯 
  개의 성과 바꾸자는 제안을 해 왔다. 조나라에선 입장이 곤란해졌다. 만약 상대의 말에 응하지 
  않으면 강대국의 위상을 더럽혔다는 구실로 대군을 휘몰아 공격해 올 것이 뻔했고, 그렇다고 
  상대의 말에 순순히 응한다 해도 약속이 지켜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왕의 식객인 인상여란 자가 이 구슬을 가지고 가서 담판을 짓겠다고 나섰다. 혜문왕의 
  허락을 받아 낸 인상여는 그 구슬을 가지고 가서 진왕을 만났는데, 역시 예견했던 대로 구슬은 
  자신들이 갖고 약속은 지키지 않을 눈치였다. 인상여는 그 구슬을 돌려 달라고 한 후 기둥 
  옆에 서서, '신의 머리는 이 구슬과 같이 깨져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바람에 진왕은 
  감탄하여 돌아가게 하였다. 인상여는 이후로도 공을 세워 벼슬이 상경에까지 올랐다. 그러고 
  보니 조나라의 명장인 염파가 가만있지 않았다. '인상여는 본시 천한 신분이다. 그 자가 
  주둥아리를 나불대어 세운 공으로 나보다 윗자리에 앉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언제고 
  단단히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잔뜩 별러 댔다.
    소식은 인상에게도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정에도 잘 나가지 않고 어쩌다 염파와 
  맞딱뜨러질 일이 생기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해 가곤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가신들은 불만이 
  쌓여 갔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강대국인 진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탓에 군신들이 몹시 당황스러워 했다. 그런데 어찌 염파 쯤을 두려워하겠느냐. 내가 
  생각하기를,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것은 염과 인이 상호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소한 일로 두 호랑이가 서로 다투게 되면 다 함께 죽는 도리밖에 더 
  있겠느냐.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한 것은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원한은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위의 얘기에서 배워야 할 점은 공과 사를 반드시 구분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인상여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진왕과 담판을 짓는 용기와 지혜. 또 사사로운 
  원한보다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 상대의 질책에도 꾸준히 참은 점, 그리고 자신을 핍박한 
  염파에 대한 관용 둥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인상여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자 염파는 
  웃옷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와서 깊이 사과했다. 이후 두 
  호랑이는 친교를 깊이 맺어 '문경의 사귐'을 나누었다. 즉 생사를 같이 하다가 목이 베어져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친교였다.
    관리에겐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무사 안일주의로 
  살아가는 타입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명리를 위해 야망을 갖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이런 경우 스스로를 비호해 줄 수는 있는 친구는 좋은 말만을 해주는 그런 
  친구보다는 대와 의를 위해 '문경'의 각오가 있다. 그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명은 한때지만 기절은 천년을 간다

    세조 때에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다.
    당년에 말고삐를 붙들며 감히 틀린 것을 말했으니
    위대한 의리는 당당히 해와 달처럼 빛나네
    초목도 또한 주나 비와 이슬에 젖거늘
    왕께 부끄럽구나 오히려 수양산의 고사리를 캐어 먹다니

    단종을 축출하고 세조로 즉위한 수양 대군은 야심이 만만한 호걸이었다. 문종이 죽고 단종이 
  보위에 오르자 정인지. 한명회.신숙주 등과 무리를 지어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고명 대신인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척살하고, 그 이듬해엔 단종을 몰아내어 보위를 찬탈하였다. 세조의 
  잔인한 행위를 미워한 여섯 신하는 기회를 노리다가 거사 날을 정했는데 김질의 고변으로 
  거사를 모의했던 선비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박팽년을 비롯하여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혹형을 받고 목숨이 끊어졌다.

    이들 여섯 사람은 거사 날을 정한 지 일 주일만에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다. 그들의 
  학문이나 높은 기개는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숭상을 받는다 '굳은 절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주 늦는 것은 아니다
    지난 일에 대한 잘못된 점은
    과감히 뜯어고치는 용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진수를 알아야 본질에 이른다

    바르지 못한 학문을 내세우지 말라

    전한의 한무제는 초야에 숨어 있는 여러 현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원고생이란 사람을 
  산동성에서 데려오게 하였다. 나이가 9o세인 그가 매우 강직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정에 있는 사람들은 만약 그가 오게 되면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염려하여 한 
  목소리로 그를 흉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제는 이런 저런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원고생을 
  등용한 다음 또다시 산동 출신의 젊은 학자인 공손홍을 불러들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학문을 무시하고 홀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원고생은 그들의 그런 
  행동을 전연 개의치 아니하고 어느 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자에 이르러 학문의 도가 흐트러지고 속설만이 유행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견식이 
  있는 학자들의 전통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행히 그대는 학문을 사랑하는 선비니 바른 
  이론을 배워 널리 세상에 펴도록 하게. 자신이 믿는 학문을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도구로는 사용하지 말게.'

    처음엔 원고생을 만만하게 보았던 공손홍도 절개를 굽히지 않는 그의 훌륭한 인격에 
  감탄하였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도도하게 거들먹거렸던 자세를 버리고 원고생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산동에서는 시를 쓰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원고생의 고매한 인격을 본받았다. 단 한 사람의 인격이 많은 사람의 학문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생각이나 학문, 또는 말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좋지 않은 무리들에게 편협스럽게 이용되어 가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가.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원고생이 얼마나 강직한 사람이었는가는 다음의 예화로 충분히 증명된다.

    원고생이 먼저 섬긴 바 있는 왕은 경제였다. 경제의 모친 두태후는 노자라고 하면 밥을 
  먹다가 내려앉을 만큼 그를 좋아했다. 어느 날 두태후는 바로 이 노자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원고생은 거침없이 힐난했다.
    "노자는 머슴이나 노예와 다름없는 인간으로 그 됨됨이가 형편없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모두 엉터리가 아니면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천하를 경륜하는 사람이라면 속임수에 
  능한 그런 자의 말은 귀담아듣지 말아야 합니다."
    태후는 노발대발이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원고생을 감옥에 집어 넣어 버렸다. 감옥에 
  갇힌 원고생에게 내려진 벌은 매일 돼지를 죽이는 일이었다. 90이 넘은 노인에게 주어진 이 
  벌은 시작에 불과했다. 만약 이 벌을 감당하지 못하면 조금씩 큰 벌을 내리게 되어 있었다. 
  이때 경제는 원고생에게 예리한 칼을 주어 돼지를 잡게 하였다. 아들이 노인을 감싼다는 
  소문을 듣고 두태후는 할 수 없이 원고생을 용서하고 말았다.

    이렇듯 권력에 뜻을 굽히지 않고 마음속의 말을 곧장 직언으로 뱉어 내는 데에 경제는 
  감탄했다. 당연히 그의 벼슬은 높아졌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것을 이유로 벼슬자리를 
  사양하자, 그가 병들어 자리에 누웠을 때에야 왕은 면관시켜 주었다.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바로 펼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의한 
  자가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곳에서 마음대로 날뛰는 것을 보고 남의 일처럼 외면해 버리지 
  않았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얼마 전 충무로 역에서 미군 병사들이 선량한 시민을 집단 
  폭행한 일이 있었다. 그 시민은 술 취한 미군 병사가 젊은 여인을 성 희롱하는 것을 보다못해 
  나무란 데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하철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보고 있었다고 했다. 과연 병든 닭처럼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불의를 
  미워하고 예를 숭상하는 우리 시민들이 해야 될 일인가. 참으로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사흘이 지나면 다시 봐야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손권이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문이란 
  스스로 나아가서 하는 것이다. 내 부하인 아몽이라는 이는 처음에는 학문이 없었으나 나의 
  권고를 받아들여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문이 높은 노숙과 담론을 나누었는데 
  여몽의 해박한 지식에 노숙도 쩔쩔 맨 것이다. 노숙이 여몽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가 
  무예나 전략에 뛰어났음은 알고 있었네. 그런 탓에 자네를 뛰어난 무인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젠 자네를 달리 생각하게 되었네.' 하였다.
    그러자 여몽은 '선비란 사흘이 지나 만날 때엔 눈을 씻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난 일에 대해 연연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허점이나 불완전한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학문을 하는 선비는 사흘이 지나면 다시 
  보라는 것'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라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연구를 하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변화되어 있음을 인지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다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선비는 하루가 다르게 글을 익히고 연구하는 자세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앞 두레의 뒤집힌 자국

    전한의 제3대 황제인 문제의 신하 중에 가의라는 재주꾼이 있었다. 문제는 나이 스물인 그의 
  재주를 보고 박사를 시켰다. 그는 문제에게 여러 가지로 헌책했다. 그 중에는 가장 오래된 
  하나라 에서부터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나름대로의 흥망 성쇠를 돌아보고 주변 제후들의 
  세력을 억제하고 국력을 기르는 문제를 거론했다. 그 가운데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수레가 
  뒤집힌 자국은 뒤에 따라오는 수레에 대한 좋은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은주 시대에 나라가 
  태평한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또한 진나라가 
  일찍 망해 버린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라의 존망이나 흥망 성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였다. 문제는 가의의 말대로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농사를 장려하고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했으며 궁녀들이 치마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을 금하였다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후회는 그렇다고 아주 늦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나간 일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뜯어고치고 
  잘된 것은 더욱 장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옛사람들은 교훈을 반드시 승자에게서만 찾지 
  않았다. 패자에게도 배워야 할 교훈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소한 가르침을 
  깨뜨린다면 결국에는 중대한 가르침까지 깨뜨리게 된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웃 사랑하는 것을 자기 몸 사랑하듯 한다면 그에 따른 여러 가르침도 역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부단한 자기 스스로의 개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닭의 주둥이와 소의 꼬리

    소진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세를 했으나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멀리 연 나라에까지 찾아가서 '합종'이라는 계책을 내어놓았다. 이른바 연 나라를 위시하여 
  여섯 강대국이 힘을 합하여 진나라와 맞서자는 것이었다. 연나라 왕은 이 일에 찬동을 하고 
  소진을 조나라로 파견했다. 소진은 조나라의 재상 숙후를 찾아갔다. '지금 합종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무너지고 말 것이오. 그러나 합종을 한다면 진나라의 병력보다는 1o배에 해당될 
  것이니 능히 무도한 진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오.' 라고 설득했다. 조왕도 이에 
  찬동하여 여섯 나라는 마침내 합종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소진이 말한 중에 '비록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는 일상 생활 중에 그런 경우에 직면할 때가 있다. 어떤 의견을 제시했다가 그것이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결정이 나는 경우다. 이때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좇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아가서는 사회나 국가간 문제에도 서로가 닭의 부리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큰 나무 아래에 있어야 더 큰 그늘을 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경우이든 물질적으로 많아지면 그에 상응하여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어떤 조직이나 어떤 단체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반드시 이쪽 저쪽으로 편협한 행동을 하여서는 안된다 자기 나름의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자신의 계획이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

    행동에는 반드시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전한의 무제 휘하에서 벼슬하던 동방 삭이란 사내가 있었다. 이 사람은 상당히 괴벽스러운 
  행동을 자주 했다. 그는 자신을 추천하는 글을 세 번씩이나 왕에게 올렸다. 왕은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낭이라는 벼슬을 하사했다.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여 왕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 또한 탁월했다. 그러는 반면 행동이 기발하기 짝이 없을 정도여서 우스게스러운 사단이 
  많이 일어났다. 왕이 비단을 하사하면 늘 그 비단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통에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중국에서는 한여름이면 왕이 신하들에게 고기를 하사하는 관습이 있었다. 동방 삭이 그 
  자리에 나가 보니 하사할 고기는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나눠 줄 관리가 자리에 나오질 않았다. 
  동방삭은 칼을 빼 들어 고기를 싹둑 자르더니 말없이 가져가 버렸다. 소식을 들은 왕이 
  동방삭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그의 대답이 엉뚱했다.
    "소신이 고기를 잘라 낸 것은 참으로 무엄한 일입니다만 칼을 빼어 고기를 베었으니 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또한 고기는 조금밖에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그 얼마나 청렴한 
  일입니까. 또한 가져 간 고기를 아내에게 먹였으니 그 얼마나 두터운 정입니까."
    왕은 화를 내기는커녕 웃고 말았다. 이날 왕은 고기 100근과 술 한 섬을 하사했다.
    동방삭은 평소 기괴한 행동을 하였으나 그 속엔 알맹이가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그의 행동 
  일면에는 아내를 사랑하는 정성이 있었다. 또한 그러한 이인의 행동을 눈여겨본 왕의 부드러운 
  행동 역시 말할 수 없는 아량이 있었다.
    우리는 주변 인물 중에서 그런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때론 우리들의 아이가 그럴 때도 
  있고 형제 자매가 그러는 경우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 무작정 야단쳐야 
  하는가. 행동에는 반드시 그 어떤 이유가 내재되어 있다. 먼저 그것을 살핀다면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나비나 올빼미가 되지 말라

    전국 시대에 양나라의 제상에 혜자란 이가 있었다. 어느 날 장자가 그를 만나러 갔는데 
  누군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장자가 그의 관직을 빼앗으로 왔다고 무함한 것이다. 혜자는
    즉시 장자를 잡아오게 했다. 태연히 혜자 앞에 나선 장자는 넌지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주었다.
    "남쪽 지방에 봉황의 일종인 원추라는 새가 있는데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날아가지요. 그 
  새는 반드시 대나무의 열매만 먹고 쉴 때는 오동나무에만 앉으며 샘물만 마신답니다_ 이 새가 
  하늘을 날으는 중에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빼미란 녀석이 썩은 쥐를 얻어 가지고 
  있다가, 그것을 원추에게 뺏길까 봐 꿱 하고 울더랍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내가 그 재상 
  자리를 뺏을까 봐 꿱 하고 우는 것이오?"

    이 얘기는 장자가 올빼미와 원추를 대비시켜 세속적인 명예나 지위에 관심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이다. 하늘은 맑고 달이 밝은데, 어찌 부나비는 날 데가 없어 촛불 
  속으로 뛰어들고 하고많은 짐승이 지천으로 있는데 올빼미는 썩은 쥐를 탐하는가. 그래서 
  장자는 슬퍼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살이 중에서 어찌 올빼미나 부나비가 아닌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하고.
    스스로 자신을 진단해 보자. 과연 나는 원추인가. 꿈을 갖고 사는 깨끗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나가는 데 더러운 구석이 없는가? 혹여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발견된다면 
  그것을 맑은 샘물에 씻어 내듯 마음을 정하게 씻어 내자.

    진면목을 찾아라

    전국 시대에 초나라의 선왕이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북쪽 나라들은 우리 재상 소혜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그러자 강을 이라는 자가 대답했다. '어찌 
  재상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강력한 초나라의 병력이지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폐하를 따르고 있는 막강한 군사들입니다.' 강을은 이것을 
  비유로써 설명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먹으려 했다. 잔꾀에 능한 여우는,'이보시오 호랑이님, 하늘에 
  계신 상제께서는 나를 모든 짐승들의 왕으로 정하셨소 그런데 어떻게 나를 잡아먹는단 말이오. 
  만약 당신이 나를 잡아먹는다면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따라다니며 직접 시험을 해보시오.' 하는 바람에 호랑이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여우는 
  호랑이를 뒤따르게 한 후 의기 양양하게 숲길을 걸어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상하게
    도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하여 도망가 버리는 게 아닌가. 이렇게 되고 보니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믿게 되었다.

    강을은 이 얘기를 놓고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소혜훌은 호랑이의 위세를 빈 여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책략이 숨어 있었다. 본시 강을은 위나라에서 
  벼슬하던 자인데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눌러앉아 버렸다. 그는 줄곧 위나라와 내통을 하고 
  있었다. 재상인 소혜휼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선왕에게 고자질한 것인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강을 이야말로 호랑이의 위세를 빈 여우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 주변
    에도 이런 존재는 심심지 않게 눈에 뛴다, 우리 속담에 '정승이 죽으면 조문을 가지 않지만 
  그 집 개가 죽으면 조문을 간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위의 얘기와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속세로 돌아오면 속기에 물든다
    송나라 때에 임포라는 이는 학문이 뛰어나고 성품 또한 고매했다. 그는 경치 좋은 서호의 
  고산에 집을 짓고 20년 동안이나 사람들이 부글대는 저자 거리에 나간 일이 없었다. 그는 
  나이가 들도록 독신으로 살면서 매화를 심어 자식으로 생각했고, 학을 길러 아내로 여길 
  정도였다. 임포는 일찍이 두 마리의 학을 길렀다. 이 학들은 까마득히 높은 구름 위로 날아 
  올라가 한동안 빙빙 선회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임포가 서호의 경치를 즐기려고 조각배를 타고 
  강 나들이를 갈 때 손님이 찾아오면 학을 기르는 동자는 학을 풀어놓는다. 저 멀리 날아오르는 
  학을 보고 임포는 집에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듯 산속에 은서 생활을 하면 마음속까지 맑은 물과 자연의 푸른빛으로 물들여 진 
  듯싶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령한 동물이라는 학도 자연 속을 헤집고 날아다닐 
  때엔 고고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북적대는 저자 거리에 내려와 시장 귀퉁이에 있는 우리 속에서 
  던져 준 먹이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속세의 속기에 
  물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데 일어난 불을 끄지 못한다
    이 말은 한 비자에 있는 얘기다. 전국 시대에 노나라는 항상 이웃에 있는 제나라의 위협에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노나라의 목공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병력이 대단한 
  진나라와 형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제나라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기 위해 우선 공자를 
  두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려 했다. 이 사실을 안 이서가 극구 말렸다. "듣건대 월나라 사람들은 
  수영을 잘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누군가가 물에 빠졌을 때 수영 잘하는 월나라 사람들을 
  데려온다 해도 이미 때는 늦습니다. 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그 불을 끄기 위해 멀리 
  있는 바닷물이나 강물을 가져온다면 이미 불은 건물을 모두 전소시킨 훗일 것입니다.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데 일어난 불을 끄지 못합니다."
    본시 이웃 '린' 자는 '읍' 변에 '도깨비 불 린'자를 덧붙인 글자다. 도깨비불 린 자는 '쌀 
  미'자 아래에 '어기질 천'자를 받친 것으로, 본래의 뜻은 마을에서 쌀을 주고받으며 서로 
  왔다갔다하는 사이를 뜻한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자신이 가진 한줌의 쌀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사이, 이웃이란 이런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웃에 대한 생각들은 어느 정도일까. 예전과는 달리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기 식구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세태 속에서 과연 이웃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초등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웃에 대한 작문을 쓰게 했을 때 그 아이들은 이웃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어느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 새삼 쓸쓸한 생각이 든다.
    아스트리아스가 쓴 '가난한 자의 보배'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웃을 언제나 같은 
  깊이로 사랑하는 일은 영원을 사랑하는 일이다.' 참으로 현대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집착에서 벗어나라

    옛날 중국에 골동품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이곳을 찾아와 헌 
  바가지 하나를 내놓고 말했다. '이것은 그 옛날 기산에서 요왕이 자신의 보위를 허유에게 
  양위하겠다고 할 때 그가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씻은 바가지요.' 하고 말하자 ?은 돈을 
  주고 그 바가지를 사들였다. 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헐어 빠진 방석 하나를 들고 와서 
  '이것은 공자께서 곡부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론을 하실 때에 깔고 앉았던 방석이오.' 하는 
  바람에 재산의 반을 주고 그것을 샀다. 그러던 며칠 후에 한 사람이 기다란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이것은 후한 때의 도사인 비장방이 스승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축지법을 쓸 때 타고 
  다녔던 지팡이요.' 하자 나머지 재산을 주고 그것을 입수했다. 모든 재산이 없어진 그 부자가 
  쪽박을 차고 방석을 찬 채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자 영락없는 거지의 몰골이었다.
    [호고파산]이라 부르는 웃기는 얘기 속에는 많은 것을 남겨 주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갖는 집착,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때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이 되어 스스로를 해친다는 
  사실이다. 경치는 본래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곳에 편의 시설을 하여 경관을 해친다면 결국은 
  시장 바닥처럼 소란스러운 곳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 반면 자신의 마음속에 평화로움을 
  깃들이게 하면 마음은 늘 평안함을 지속하게 된다. 집착을 멀리하는 일, 이것은 스스로의 짐을 
  내던지는 첩경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라

    '권세와 부귀를 가진 자가 용처럼 날뛰고, 영웅들이 호랑이처럼 날뛰니 이것을 냉정한 눈을 
  관찰하면 마치 개미가 비린내나는 생선을 서로 먹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시비와 이해 득실은 권세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등장한다. 요즘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보도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옛날 중국의 어느 부자가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유명한 독선생을 모셔 왔다. 그런데 
  소문과는 달리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워낙 선생이 귀한 판국이라 할 수 없이 자식 교육을 
  부탁하고 그 대가로 쌀 열 가마니를 주었다. 다만 조건은 자식을 가르칠 때에 무엇이든 잘못 
  가르치면 쌀 한 가마니를 공제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l년이 지났다. 주인은 옆에서 두고 
  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 선생에게 돌아갈 것을 제안하고 계산을 해보니 남은
    것을 고작 쌀 한 가마니뿐이었다.

    냉정한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라는 것은 그것이 이해 득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어떤 눈으로 보는가. 그냥 적당 주의에 물들어 다른 사람의 허물도 대충 짚어 
  주고 넘어 가는가. 아니면 모른 체하는가. 권력 다툼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흙탕물 속에서 뼈다귀를 놓고 싸움을 하는 탐욕스런 개의 모습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청정심에 물들 수 있도록 항상 사물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따뜻한 곳에 앉아서는 추운 곳을 알 수 없다

    몹시 추운 한겨울에 위나라 왕은 후원의 경관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연못을 파라는 공사를 
  인부들에게 시켰다. 그러자 완춘이라는 신하가 아뢰었다.
    '이렇듯 추운 날에 일을 시키면 백성들의 고생이 심할 것입니다. 그러니 공사를 중지해 
  주십시오.'
    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오늘 같은 날이 춥다니 말이 되는가?'
    '지금 왕께서는 호랑이 털로 만든 옷을 입으시고 여우 목도리를 하고 계십니다. 더구나 
  이곳엔 추위를 몰아내는 난로가 피워 있습니다. 밖의 추위를 모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금 밖에는 땅이 꽁꽁 얼어 삽질이나 괭이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왕은 즉시 공사를 중지시켰다. 이때 한 신하가 왕께 아뢰었다. 만약 이번 공사가 완춘으로 
  인해 중지된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당연히 완춘의 덕은 높아질 것이지만 백성들은 왕을 
  원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본시 완춘은 노나라의 평민이었으나 내가 궁에 데려와 요긴하게 쓰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백성들은 완춘의 됨됨이를 몰랐으나 이번 기회에 알았으니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완춘이 선정을 베푸는 것은 짐이 그렇게 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손바닥은 마주쳐야만 소리가 난다. 아무리 군왕이 선정을 베풀려고 해도 그것을 시행해 주는 
  신하가 없으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 사는 사회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상사나 사장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시행해 나가며 
  부족한 곳을 채워 주는 사람이 없다면, 마치 모래 위에 세운 누각처럼 부질없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질 수밖에 없는 이유

    조나라에 왕자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말을 다루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한 번은 
  조나라 왕이 그를 불러 말했다.
    "그대의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하니 내게도 가르쳐 주기 바라오."
    왕자기는 말을 잘 다루는 요령을 왕에게 가르쳐 주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요령을 익힌 
  왕은 왕자기에게 물었다.
    "어떤가, 이만 하면 나도 자네만큼 말을 다룰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와 내가 말달리기 시합을 하세."
    이윽고 왕자기와 왕은 말달리기 시합을 하게 되었다. 세 번 모두 지게 되자 왕은 벌컥 화를 
  내었다.
    "자네는 내게 말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세번 씩이나 질 리가 없잖은가?"
    "기술로 말한다면 왕께서는 결코 제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술을 쓰는 방법이 틀린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몰 때의 마음입니다. 오로지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조금만 뒤떨어지면 
  나를 앞지르려고 조바심을 칩니다. 어떻게든 앞서려고 신경을 쓰시게 되니 말과 한마음이 되어 
  달릴 수가 없어 제게 진 것입니다."
    일이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올바른 사용 방법을 모른다면 금방 망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그 허물을 '기계'나 '전자 제품'을 만든 사람들에게 전가시키려 든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학생이 다른 궁리를 하고 있다면 시험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어떤 일에 착수할 때는 단지 그것에만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과연 슬픈 것인가

    제나라의 경공이 하루는 우산이라는 곳으로 나들이를 갔다. 산 위에 올라 저자 거리를 
  내려다보던 왕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를 두고 내가 죽게 되다니."
    이번에는 옆에 있는 신하들도 따라 울었다. 대신들이 울었으나 안자 만은 이 정경을 보고 
  웃고 있었다 경공은 눈물을 훔치고 안자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곳에 와서 여러 대신들과 슬픔에 빠져 있는데 어찌 그대는 홀로 웃는가?"
    안자가 대답했다.
    "지금 왕께서는 장차 찾아올 죽음을 두려워하십니다만, 만약 죽음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신 여러 선왕들이 옥좌에 계실 것인데 어찌 왕께서 그 
  자리에 오르실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은 어느 누구나 당연히 죽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살다가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닙니다.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뒷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덕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왕의 주변에는 아첨하는 자 만이 
  있어 오히려 쓸데없는 걱정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 신하들을 보고 소신은 웃은 것입니다."

    안자는 죽음을 '휴식'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이승에 있을 때엔 최선을 다해 주위를 
  돌아보고 모든 힘이 소진되었을 때는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생전에 좋은 일을 해야 한다. 후손들이나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것을 
  본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내세우는 감정의
    기복이 자리잡고 있다. 공자는 이것을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으로 표현했다.

    풀꽃으로 피어나 향기로 남고

    매미를 잡는 방법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였다. 숲 속에서 곱사등이 사내가 매미를 잡는데 마치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것처럼 행동했다. 공자는 너무 신기하게 생각하여 그 사내에게 물었다.
    " 당신은 참으로 신기한 재주가 있군요. 매미를 잡는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나요?"
    "그럼요. 있고 말고요. 매미를 잡으려 하기 전에 먼저 흙으로 만든 두 개의 둥근 알을 
  대나무 끝에 포개어 놓고 다섯 달 남짓 연습하여 그것이 떨어지지 않으면 불과 저울눈의 
  10분의 1 차이로 매미를 못 잡게 됩니다. 그 다음 세 개를 포개 놓고 연습을 하여 떨어지지 
  않으면 마치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듯 매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나의 몸가짐은 매미 
  잡는 데에 정신이 팔려 나뭇등걸과 같고 팔은 아무래도 나뭇가지와 같을 겁니다. 하늘과 땅이 
  아무리 넓고 크다 해도 나는 매미의 날갯죽지만 있다고 생각하여 정신을 집중시킵니다. 어떻게 
  되면 무슨 일이든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정신을 흐트리지 않고 한곳에 집중시키면 신과 같이 된다는 말은 곱사등이 사내를 
  두고 한 말일까?"
    얼핏 이 말을 들은 곱사등이가 공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통이 넓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유자의 무리요.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물어 볼 수 
  있겠소. 그렇다면 당신이 주장하는 인의의 학술을 다 닦은 다음에 자연의 도술을 말해 보게!"
    곱사등이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비단 매미를 잡는 방법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건 그 방면에 제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 계발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일을 촉진함에 있어서는 
  정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할 
  자신들의 일보다는 다른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을 곱사등이는 꼬집은 것이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사나이
    조양자가 그의 부하 10만 명을 데리고 중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들 무리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에 앉아 회식을 하면서 짐승을 잡으려고 불을 질렀다. 휘그르르 일어난 불
    길은 부채살처럼 피어올랐다. 그 불길이 100여 리나 뻗쳤는데, 한 사내가 바위 구멍에서 
  불쑥 나오더니 감실대는 연기를 따라 공중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저것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그 사내는 불길이 다 지나간 뒤에 유유히 
  걸어 나왔다.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 듯 걸음걸이 역시 평온했다. 양자는 괴이한 일이라 
  생각했다. 사내를 불러 그 생김새를 살펴보니 얼굴은 물론 두 눈과 코 입과 항문 등이 일곱 
  개나 있었고 숨소리나 말소리 역시 보통 사람과 똑같았다. 양자가 사내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으로 바위 구멍에 들어가고 뜨거운 불길 속으로 갈 수 있습니까?"
    "어떤 것을 바위라 하고 불이라 합니까?"
    "잠시 전에 그대가 나온 곳이 바위라 하며 연기를 타고 오르내리던 것이 바로 불이라는 
  것이오."
    "그래요? 나는 그런 것이 있는지 전연 몰랐소."
    위나라의 임금인 문후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마침 자기에게 와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던 공자의 제자 자하를 불러 물어 보았다.
    "저렇듯 바위에도 들어가고 불구덩이 속에서도 타지 않은 사람은 어떤 인물입니까?"
    "우리 선생님이신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선 '천지 사이의 
  화기란 만물에 있어 똑같은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얻은 사람은 어떤 것으로도 그를 해칠 
  수 없다. 쇠와 돌 속에 들어가서도 놀 수 있고 불을 밟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하의 말을 들은 문후는 크게 기뻐하였다.

    계함이 호구자에게 혼이 나다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계함이라는 무당이 제나라에서 정나라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사람이 
  언제 죽고 언제 화가 닥치고 복을 받을 수 있는지, 또 생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맞혔다. 
  정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될까 봐 그 점을 두려워하여 한결같이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열자만은 계함을 보자 마음이 혹해 버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스승인 호구자에게 
  계함의 소문을 들려주었다.
    "제가 처음에는 선생님의 도를 지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선생님보다 지극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내가 너에게 도를 가르쳐 주었지만 실제에 있어 도술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그러니 너는 
  본래부터 도를 체득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암컷의 새가 많다 하더라도 
  수놈이 없으면 알을 낳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그 무당과 도술을 겨루어 보면 나를 
  믿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이라도 무당을 시켜 나의 관상을 보도록 해라."
    얼마 후 열자는 무당을 데려와 호구자의 관상을 보았다. 무당은 관상을 보고 나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생이란 사람은 앞으로 열흘 안에 죽을 것이오. 선생의 얼굴에 잿빛이 띠어 있는 
  걸 보았소."
    열자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훌쩍거렸다. 흐르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자 
  호구자는,
    "어제 나는 무당이 나의 얼굴을 살필 때 흙덩어리와 같은 기상을 보여주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않고 또 정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보여주었다. 이것은 나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덕의 기상을 막고 있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믿기 어렵겠거든 그 무당에게 다시 내 
  관상을 봐주도록 청해 보아라."
    다음 날 열자는 다시 그 무당을 불러왔다. 무당은 호구자의 관상을 보고 나서 밖으로 열자를 
  불러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오. 당신의 선생은 나를 만난 탓에 병이 낫게 되었소. 당신 선생님은 
  삶에 대한 잠재력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소."
    열자가 이 말을 그대로 옮기자 호구자는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어제는 내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움직이는 나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사물과 사물의 
  명칭이 나에게 들어올 리가 없었지. 나는 숨을 발꿈치로 쉬었으니 그 무당은 내가 삶에 대한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이야. 자, 다시 한 번 그 무당을 데려오너라."
    이번에도 무당은 호구자의 관상을 살피고 나서 열자를 밖으로 불러냈다.
    "당신 선생은 가만히 있질 않으니 상을 볼 수 없소."
    열자가방에 들어가 이런 말을 전하자 호구자가 또 말했다.
    "어제는 내가 그 무당에게 마음의 맑고 깨끗한 기상을 보여주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때는 물이 맴돌이를 치는 것 같지만 또 어떤 때는 고요한 연못과 같이 움직임이 멈출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때는 물이 흘러가는 연못과 같고 또 어떤 때는 물이 넘실대는 
  연못과 같은 것이다. 자, 이번에도 그 무당을 데려 오너라."
    다음날 열자가 그 무당을 데려왔다. 무당은 호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더니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얼마 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가자, 호구자는 열자로 하여금 
  계함의 뒤를 쫓게 하였다. 열자는 한동안 따라가다 상대를 놓쳐 버리고 돌아왔다.
    "그 무당이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나의 도가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모양을 보여주었다. 나는 허무한 상태로 
  돌아가 자연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 
  것이다. 결국 그는 나를 조화 속에 숨어서 흘러간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때문에 
  허겁지겁 도망을 간 것이다."
    열자는 스승의 말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가 3년 동안 문밖 출입을 삼갔다. 집에서는 그의 
  아내를 대신하여 부엌일을 해주었으며 음식은 돼지가 먹는 것을 먹었다. 무슨 일에나 강한 
  애착심을 가지지 않고 지금까지 연마한 모든 것 대신 순박한 생활로 돌아왔다. 이제는 목석과 
  같은 모습으로 지내면서 하나의 도와 더불어 살려고 했다. 결국 지극한 도에 이르는 길은 
  평소의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욕심의 경계를 지나 자신을 묶고 있는 끈을 끊는다면 진정한 
  도에 이를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방법 
    열자가 제나라로 가다가 도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연히 길가에서 만나 백혼무인이 
  그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오?"
    "저는 제나라에 갔다가 너무 놀라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무엇 때문에 놀랐소?"
    "제가 제나라에 가는 도중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열 다섯 집이나 되는 가게에서 내 
  수중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물건을 내주지 않겠습니까. 그렇듯 나를 신용하고 
  물건부터 내주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리 놀라워 할 일이 아닙니다만."
    "저의 마음속에 성실성이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도 석연합니다. 겉으로 본다면 야 훌륭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젊은 나를 늙은이처럼 공대하니 견딜 수가 없어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더욱이 음식 장사들은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밥과 국을 만들어 파는 것 외엔 아무런 
  세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 같은 사람을 존경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놀라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라면 잘 돌아왔소."
    이로부터 얼마 후에 백혼 무인은 열자의 집을 찾아갔다. 문밖에 많은 신발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짚고 다녔던 지팡이를 북쪽을 향해 세운 채 그 위에 한동안 턱을 괴고 서 있다가 나와 
  버렸다. 열자는 신발을 신을 사이도 없이 달려나와 겨우 백혼 무인 집 앞에 이르러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저희 집에 오셨는데 어찌 약석과 같은 좋은 말을 해주지 않으시고 
  돌아가셨습니까?"
    "그만두게. 나는 오늘 자네 집을 찾아가 보니 과연 세상 사람들이 자네를 훌륭하게 
  치켜올리고 있었네. 그렇다고 내가 자네를 훌륭하게 추켜세운 것은 아니지만 자네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돌아온 것이네."

    열자는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자신을 나타내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남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타인을 감동시킨다. 도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높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평생 동안 모은 돈을 고아원이나 장학 기금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놓았다면 그 덕은 일월처럼 빛이 난다. 그러나 이웃돕기 성금이나 타인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게 될 때 스스로의 이름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위상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바보는 누구인가

    양주라는 이는 남쪽의 패 땅으로 가고 노담은 서쪽의 진나라로 가는 중에 우연히 교외에서 
  서로가 만났다. 양나라에 가서 노자를 만났을 때, 그는 양주와 동행하다가 도중에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탄식했다.
    "나는 처음에 그대를 가르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무래도 가르칠 
  만한 사람이 못 되는 것 같소."
    양주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노자의 뒤를 따라가다가 어느 여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굴을 
  깨끗이 씻고 양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릎으로 기어 노자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전에 스승님께서 제가 처음엔 가르칠 만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길만 걸어가셨으므로 미처 물어 볼 틈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틈이 있으시기에 이렇듯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노자가 대답했다.
    "이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는데 조금 전 그대의 몸가짐을 보니 눈을 거만하게 부릅뜨고 자기 
  위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소. 도대체 당신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려는 
  것이오. 세 속의 잡다한 것들을 혀끝에 올려 살아가는 것이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도학에 뜻을 두었다면 어둠을 벗어나는 광명한 대도를 걸어야 하는 것이오."
    "삼가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양주가 처음 여관에 들어갔을 때는 무척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여관집 하인들은 그의 
  위압에 눌려 벌벌 떨면서 받아들였다. 여관 주인은 혹시나 꾸지람을 들을지 몰라 눈치를 
  보았지만 여관에서 나갈 무렵에는 아주 겸손한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에 모두들 양주와 동등한 
  인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양주가 나간 뒤에는 모두 자기네들이 먼저 앉으려고 
  자리다툼을 벌였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내세우는 감정의 기복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자는 이것을 '겉과 속이 다른 것'으로 나타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행동하지만 그 내면에는 야차와 같은 생각을 
  담고 있는 경우다. 즉 '진실'됨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이에 해당된다.

    참다운 지식이란 무엇인가

    공자가 모처럼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제자인 자공이 들어왔다. 그가 인사를 
  하는 중에 스승의 얼굴을 보니 왠지 근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자공은 조심스럽게 그곳을 물러 
  나와 자기보다 학문이 높은 안회를 찾아갔다.
    "지금 선생님께서는 근심하는 빛이 역력하시어 걱정이오."
    그러자 안회는 말없이 거문고를 끌어당겨 줄을 뜯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공자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회를 불러들여 물었다.
    "너는 어째서 혼자 즐거워하느냐?"
    "선생님께선 어찌 혼자서 근심하고 계십니까?"
    "먼저 너의 뜻을 말해 보라."
    "저는 언젠가 선생님께서 '자연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라'고 하신 말을 생각해 내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시무룩한 표정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너는 내가 말한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너는 다만 자연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아는 것으로 근심이 없는 것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더 큰 근심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 진실로 말을 하자면, 자기가 잘 되고 못되는 
  것을 자연에 맡기고 벼슬을 하게 되면 옛날 선왕의 도를 펴게 되고, 벼슬을 물러나면 수양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아는 것'이다."
    안회가 이 말을 듣고 북쪽을 향해 두 손을 맞잡고 읍을 했다. 그곳에서 물러 나와 자공에게 
  이 말을 해주었다. 자공은 어리둥절하여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기 집으로 
  가서 이레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살이 빠져 앙상하게 되어 버렸다. 그는 얼마 후 
  안회의 설득으로 공자 문하에 들어와 노래를 부르고 독서하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참다운 지식이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과 음악을 
  연주한다 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쇠귀에 경을 읽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나 학문에 대해 이해를 하고 참여할 때엔 그곳에 동화되는 것만으로는 옳다고 할 수 
  없다. 마땅히 그 일들이 뜻하는 바를 깨우쳐 내야 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나라의 대부가 개인 자격으로 노나라에 갔다가 숙손씨를 만나 보았다. 그에서 숙손씨가 
  물었다. 
    "우리 나라엔 성인이 한 분계십니다."
    "공자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분이 성인인 줄 아십니까?"
    "그분의 제자인 안회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의 스승인 공자는 무슨 일에나 사심을 
  버리고 그저 타고난 그 형체대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성인이 한 분계십니다. 바로 노담의 제자인 항창자입니다. 그는 노담의 도를 
  익혀 귀로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노나라 임금은 너무 놀라서 높은 관직에 있는 벼슬아치로 하여금 많은 예물을 가지고 가서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초청을 받은 항창자가 임금 앞에 이르러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이것은 누군가가 중간에 그릇된 망언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다만 눈이 있으니 보고 
  귀가 있으니 들을 뿐입니다. 어찌 눈으로 듣고 귀로 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눈과 귀를 
  사용하지 않고도 듣고 볼 수가 있을 뿐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나의 몸이 마음과 합하고, 나의 마음은 다시 기운과 합합니다. 또한 나의 기운은 정신과 
  합하고 나의 정신은 무, 죽 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장육부나 이목구비의 지각 
  작용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알게 됩니다."
    노나라 임금이 이 말을 공자에게 들려주었더니 아무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진리를 안다는 것은 도학 군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너무 심오하여 믿어지지 않은 구석이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말을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이설에 빠져들고 만다. 어린애 손가락 같은 나무 줄기에 올라설 
  재간이 없다면 마땅히 교만하고 거만한 자세는 취하지 않아야 한다.

    무언과 무지의 차이
    열자는 호구자림이란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또 백혼무인과는 친구로 지내면서 남곽이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모두들 열자를 존경하고 따랐지만 그 자신은 항상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여기었다. 스승인 열자와 제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무슨 말이든 주고받았기 때문에 
  듣지 못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열자는 남곽자와는 20년 칸이나 담을 마주하고 지내 왔지만 한 번도 내왕한 적이 
  없었다. 때로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있었지만 도무지 관심 없는 사람들처럼 힐끗 
  돌아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열자의 문하생들은 스승과 그 사람이 원수진 일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소문을 듣고 초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찾아와 열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선 이웃에 사는 남곽자와 원수진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오."
    "그런데 어찌 이곳에 오랫동안 사시면서 내왕이 없으십니까?"
    "남곽자 저 사람은 겉모습은 충실하고 완벽하오, 그러나 마음은 텅 비어 있어서 귀로 무엇을 
  들으려 하지 않고 눈으로 무엇을 보려고도 않소. 또한 입으로 무엇을 말하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으로 무엇을 알려고도 하질 않소. 몸가짐이 무엇 하나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니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찾아가 여러 말을 하겠는가"
    이로부터 얼마 후 열자의 제자 40명이 남곽자를 찾아갔다.남곽자는 열자의 제자 중 가장 
  말석에 앉은 사람에게 얘기했다. 아주 유쾌하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말소리는 여느 
  웅변가보다 조리 있고 힘이 넘쳤다. 제자들이 돌아오자 열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에게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언도 하나의 말인 것이다. 무지 또한 하나의 지식임이 분명하다. 말이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또는 아는 것이 없는 것과 알지 않는 것도 하나의 말인 것이다."

    참다운 놀이는 무엇인가

    열자가 놀러 다니기만을 좋아하자 호구자가 어느 날 물었다.
    "자네는 놀러 다니는 일이 좋은가?"
    "저는 속인들이 즐기는 외관상의 경치가 아니라 사물의 옛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놀러 다니는 것은 사물의 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살피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꽃놀이를 가자, 물놀이를 가자'고 하지만 그 놀이의 참뜻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보게, 자네 역시 속인과 다르지 않네. 속인들이라 하여 항상 같은 경치만을 즐겨 
  보겠는가. 그들 역시 변해 가는 자연 경관을 보며 즐거워하질 않는가.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를 살펴 부족한 것을 찾으려 하지만 놀러 다니는 사람은 바깥에서 무언가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하네. 안에서 찾는 것은 지극한 놀이가 되지만 바깥에서 구하는 것은 
  결코 지극한 놀이가 되질 못하네."
    열자는 이 말을 깊이 새겨 이후로는 놀러 다니는 것을 삼갔다.
    어느 날 호구자가 열자에게 다시 말했다.
    "어떤가, 그 동안 자네의 놀이가 지극해졌는가. 어떤 물건이건 내 정신이 그 안에 들어가 놀 
  수 있다면 지극한 놀이가 되는 것이네. 이를테면 학문에 뜻을 두고 나의 온 정신이 그곳에 
  묻혀 갈 수 있다면 지극한 놀이라 할 수 있네."

    호구자는 스스로가 집중할 수 있는 놀이를 지극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지극한 놀이'를 
  도박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도박이란 자신의 정신을 몰입하여 사악한 
  결과를 유도해 내는 것이지만, 지극한 놀이는 자신의 정신을 그 속에 함축시켜 보다
    나은 자아 실현의 계기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병증을 알아내는 방법
    제나라 사람인 용숙이 문지라는 의원에게 말했다.
    "선생의 의술은 무척 훌륭하다고 들었습니다. 나의 병도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한 번 고쳐 보겠습니다. 먼저 증세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마을 사람들이나를 칭찬해 주어도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지를 않습니다. 또한 나를 
  헐뜯어도 치욕으로 생각하질 않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을 죽은 것처럼 보고 무슨 이익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잃어버려도 슬프질 않습니다. 나의 부귀로운 생활을 빈천한 
  것으로 보고 사람 보기를 돼지 새끼 보듯 합니다. 우리 집에 있는 것을 여관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우리 마을을 오랑캐 마을이라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증세, 그러한 증세들을 떼어버리려 노력해도 잘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또한 이 증세를 다른 쪽으로 바꿔 놓을 수도 없다고 했다. 용숙은 스스로가 임금을 섬긴다거나 
  노예를 부린다거나 처자를 거느린다거나 하는 일을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문지는 우선 그를 
  밝은 곳을 등지고 서게 한 후 자신은 밝은 쪽을 향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 문지가 말했다.
    "나는 지금 당신의 마음을 보았소. 당신의 마음은 텅 비어 있소. 거의 성인에게 가깝다고 할 
  수 있소. 당신의 마음은 일곱 구멍 가운데 여섯 구멍이 트여 있지만 한 구멍은 아직 트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병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 구멍이 트여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쓰이는 데가 없이 생하는 것은 도라 한다. 도를 써서 죽게 되는 것을 영구 불변의 
  상도라 했다.

    옛날 계량이라는 사람이 죽었을 때 양주가 그 집 문안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수오라는 이가 죽었을 때는 시체를 어루만지며 곡을 하였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돌아가는 
  사람 중에 어떤 이는 노래를 하고 어떤 이는 곡을 한다. 이것이 상도의 차이다.
    일반적으로 장차 눈이 멀려고 하는 사람은 눈이 멀기 전에 가을 털 같은 아주 가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장차 귀가 먹으려고 하는 사람은 모기가 우는 듯한 아주 작은 소리나 미물들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소리까지 듣는다. 또한 입맛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런 증세가 오기 전에 
  여러 가지의 물맛을 알아낸다. 또한 장차 코가 막히려고 하는 사람은 코가 막히기 전에 물건이 
  썩어 가는 냄새를 식별해 낸다.

    참다운 용사는 최선을 다한다

    공의백이란 사람은 힘이 세다는 것만으로 제후들에게 알려졌다. 당계공이란 이가 그를 
  주나라 선왕에게 추천했다. 선왕은 그 말을 듣고 예물을 갖춰 초빙했다. 얼마 후 공의백을 본 
  선왕은 실망하고 말았다. 상대방은 형편없이 허약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인물이었다. 의심이 
  부쩍 난 선왕이 상대에게 물었다.
    "그대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저의 힘으로 말한다면 봄철 메뚜기의 작은 다리를 꺽을 수 있고, 가을 매미의 얇은 
  날갯죽지를 찢을 수 있습니다."
    왕은 얼굴을 굳히며 빈정대듯 말했다.
    "나의 힘은 물소의 가죽을 찢을 수 있고, 아홉 마리의 소꼬리를 뒤로 당길 수 있소. 
  그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약하다고 생각할 정도요. 그런데 그대가 봄 메뚜기의 다리를 꺽을 수 
  있고, 가을 매미의 날개를 겨우 찢는다는데 힘이 세다고 소문이 자자한 이유가 무엇이오?"
    공의백은 한숨을 몰아 쉬고 나서 담담하게 말했다.
    "왕께서는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황공합니다만 제가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의 스승님은 상구자란 분이십니다. 힘이 세기로는 천하의 어느 장사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의 힘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의 힘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하면 남이 엿보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자기가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면 남이 엿보지 않는 
  것을 살펴야 하며, 자기가 못한 것을 얻으려 하면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잘 보는 방법을 공부하려고 하면 남들이 너무 커서 잘 보지 않는 
  수레에 가득 실은 섶나무를 보아야 하고, 잘 듣는 방법을 공부하려고 하면 먼저 사람들이 너무 
  소리가 잘 나서 주의해 듣지 않은 종 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제가 힘이 세다는 이름은 
  저의 힘을 자랑함으로써 그러는 것이 아니고 제 힘을 잘 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괜히 힘 
  자랑하는 사람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자연에 겸손하여야 한다

    옛날에 과부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무작정 해 그림자를 
  따라갔다. 해를 따라 우곡이라는 골짜기에까지 갔을 때였다. 목이 말라 황하와 위수까지 
  갔으나 워낙 목이 말라 그것 가지고는 부족했다. 그는 북쪽으로 걸어가서 큰 연못의 물을 
  마시려고 했으나 워낙 목이 말라죽고 말았다. 죽을 때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내던졌는데 그 
  시체의 기름과 살이 기름도 되고 거름도 되어서 지팡이 속으로 스며들더니 거기에서 싹이 
  나오고 가지가 쳐 무성하였다. 나중에는 차차 여러 나무가 생기어 하나의 나무숲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이 나무숲을 등림 이라 하였는데 그 넓이가 수천 리나 되었다.

    공자가 두 어린이에게 놀림을 당하다

    공자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한 번은 동쪽 나라에 놀러 갔을 때였다. 길가에서 두 
  아이가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공자는 타고 가던 수레를 멈추고 물었다.
    "너희들은 무슨 일로 다투느냐?"
    그중 한 아이가 말했다.
    "다른 일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예요. 저는 하늘의 해가 처음 떠오를 때에는 땅에서 거리가 
  멀고 하늘 한가운데 떠 있을 때에는 가깝다고 했어요."
    공자가 다른 아이에게 묻자, 그 아이가 말했다.
    "저는 해가 처음 뜰 때에는 둥근 수레 뚜껑같이 크지만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오면 둥근 소반 
  같이 작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물건은 멀리 있으면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크게 
  보인다는 이치에 따랐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해가 처음 뜰 때에는 서늘하고 하늘 복판에 오면은 끓는 물같이 
  뜨겁습니다. 열이 있는 물건이 가까이 오면 뜨겁고, 멀면 덜 뜨거운 이치가 아니겠어요?"
    공자는 두 어린아이의 말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결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비웃었다.
    "참 이상해요. 이 세상에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을 보고 지혜가 많다고 하던가요?"

    생각이 온전하면 지혜가 생기고 생각이 흩어지며 지혜를 잃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갈래 길을 밝게 알아서 지혜를 따르면 도를 이룬다고 하였다. 공자가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는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 사람은 지혜롭게 살 수가 있고 지혜에 몸을 
  의탁할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 기적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여 주거나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낚시를 하는 방법

    옛날 초나라에 사는 섬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 개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낚싯줄을 만들고 아주 가느다란 바늘로 낚시를 만들고 싸리나무 가지로 낚시대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쌀알을 쪼개 수레에 실을 정도의 거대한 물고기를 백 길이나 깊고 급
    류가 흐르는 연못 가운데서 낚았다. 그러나 낚싯줄은 끊어지지도 않고 낚시 또한 펴지지도 
  않았으며 낚싯대도 휘어지지 않았다. 초나라 왕은 섬하가 이렇게 낚시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그 방법을 물었다. 그가 왕에게 대답했다.
    "제가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 말을 들으니, 포저자란 사람은 줄이 달린 화살로 새를 쏘아 
  잡는데 그럴 때엔 아주 약한 활에 매우 가느다란 줄이 달린 화살을 활촉에 대고 바람을 
  이용하여 퉁기면 푸른 하늘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한 쌍의 왜가리까지도 쏘아 맞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마음을 한데 모으고 손의 힘을 골고루 활에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저자의 활쏘는 방법을 낚시하는 것에 응용하여 다섯 해 만에 
  깨우쳤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낚시질을 하는지 말해 보시오."
    "제가 호수로 나가 낚싯대를 잡고 있을 땐 아무 잡념도 하지 않고 물고기만 생각합니다. 
  낚싯대를 던져 그것들이 물 속에 잠기면 물고기들은 미끼가 물 속에 들어 있는 티끌처럼 
  생각하여 의심하지 않고 삼켜 버립니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되면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재할 
  수 있고, 가벼운 물건으로 무거운 물건을 농락할 수있습니다. 모름지기 대왕께서도 이런 
  방법을 사용하신다면 온 천하를 손아귀에 넣고 운영하실 수 있습니다."

    물고기를 낚을 때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은 인재 등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을 등용시킬 
  때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경영자나 관리자의 힘이 골고루 미쳐야 한다. 이러한 
  이치로써 천하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물건을 다루기 여하에 
  따라서는 강한 것을 쉽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심장을 바꾸어 놓은 편작의 의술

    노나라 사람 공호와 조나라 사람 제영은 어떤 병에 걸렸다. 하루는 두 사람이 함께 발해 
  사람인 편작을 찾아가 병을 고쳐 주기를 청하였다. 편작은 이들을 치료한 후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병의 원인이 외부에서 침입하여 오장육부에 병균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런 것은 약을 쓰면 금방 낫습니다. 그러나 당신들 몸을 진맥해 보니 태어날 때부터 몸에 
  지닌 병이 몸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서둘러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오래 살수가 없으니, 
  어떻습니까. 당신네 두 사람을 위해 내가 근본적인 치료를 하려고 합니다만." 어떤 병에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참 반가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치료를 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공호라는 분은 의지는 강하지만 기질이 약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할 때 처음엔 
  요란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의지가 약한 반면 기질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할 때엔 처음부터 깊이 생각하는 것은 적지만 일단 결정한 일은 과감하게 처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패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편작은 두 사람의 심장을 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공호와 제영은 기분 좋게 
  허락했다. 편작은 두 사람에게 독한 술을 마시게 한 후 수술하여 서로의 심장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는 신약을 먹여 의식이 돌아오게 하였다.
    그런데 고약한 문제가 생겼다. 공호와 제영은 서로의 심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자기 집이 
  아닌 상대의 집을 찾아간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서로의 가족들은 소동을 일으켰다. 

    우리 나라에도 사람의 혼백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소동을 일으키는 '해프닝 사건'은 
  있었다. 그러나 편작은 의술을 통해 두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공호의 부인이 찾아왔을 
  때 편작은'사람의 정신이 중요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신체가 중요합니다.' 하였고, 제영의 
  부인에게는 그 반대로 얘기하여 돌려보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동은 끝났다. 편작으로선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천지를 움직인 거문고 소리

    옛날에 호파란 사람은 한 번 거문고를 타면 새들이 날아와 춤을 추고 물고기들이 기뻐서 
  연못에서 뛰놀았다. 이때 정나라에 사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호파의 명성을 듣고 자기도 
  장차 음악의 명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일단 집에서 나와 당시 유명세를 
  톡톡히 물고 있는 사양이라는 음악가의 문하가 되었다. 거문고 기둥을 손가락으로 받치고 
  갈고리로 거문고 줄을 고른 다음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해가 지나도록 악장 한 
  곡도 떼지 못하자 사양이 말했다.
    "자네는 음악에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네."
    이 말을 들은 사문은 거문고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숨을 몰아 쉰 후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거문고를 타지 못해 악장 한 곡도 끝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마음속에 둔 것은 거문고 줄이나 악기에 있질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거문고 줄을 타지 
  않습니다. 잠시 여유를 주시어 결과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사문이 찾아와 거문고를 치게 되었다. 여기에서 사문은 따뜻한 기운이 천지에 깔려 
  있는 봄인데도 그가 겨울철에 해당하는 상에, 8월에 해당하는 남려 소리를 조화시켜 거문고를 
  탔다. 그랬더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초목들이 성숙하게 열매를 맺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양은 너무 감격하여 말했다.
    "아 거문고 소리가 너무 신비롭구나. 그 옛날 거문고의 명인인 사광도 이 정도는 
  못했으리라.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거문고를 옆에 끼고 자네를 찾아왔을 것이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일에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봄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온 누리에 
  퍼져야 하고 겨울엔 찬기운이 사방에 깔려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자연은 조화를 찾게 
  된다. 이것은 자연을 훼손하고 자신의 마음까지도 병들게 한다. 무슨 일에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스스로의 성숙도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잘 운다

    옛날 진나라의 설담이란 사람이 진청이라는 음악가에게 노래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는 
  스승의 재간을 뛰어넘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스승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직 인사를 올리자 스승은 굳이 잡지를 않았다. 그러나 
  제자의 돌아가는 길을 전송하기 위해 네 갈래 길이 있는 교외로 나갔다. 그곳에서 진청은 
  절이라는 악기를 가지고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는 주위에 있는 나무숲을 흔들어 놓더니 
  나중에는 푸른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도 멈추게 했다. 너무나 놀란 설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되돌아가겠다고 말을 했다. 어느 날 진청은 자기의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옛날 한아라는 아가씨가 있었답니다. 그 아가씨는 동쪽으로 놀러 갔다가 도중에 양식이 
  떨어졌소. 그 아가씨는 할 수 없이 제나라의 성문을 지나가면서 노래를 팔아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었소 그런데 그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고 간 후에는 잔잔한 여음이 대들보를 싸고돌아 
  사홀 동안은 그치질 않았소.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가씨가 아직도 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오."
    그리고 언젠가는 여관에 머물고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너무나 초라하여 여관 주인에게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아는 너무나 슬픈 생각에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가 십 리 
  밖에까지 전송되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 뛰어난 인물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증거다. 나이 어린 
  소녀가 천부적인 소양 탓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얘기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은 하늘로부터 받는 것으로만 이뤄지는가? 그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에 정신을 몰두하면 천재성이 발휘된다. 다만 중도에 포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당사자가 갖고 있는 천재성이 두각을 나타내거나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인조 인간이 노래부르다

    주나라의 목왕이 서쪽으로 민정 시찰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곤륜산을 넘어 해가 떨어지는 
  엄산에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중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중에 어떤 나라에 
  들렀는데 무엇이든 잘 만드는 기술자를 만나게 되었다. 목왕이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잘 만들 수 있는가?"
    "왕께서 무엇이든 만들라고 하는 것은 모두 만들 수가 있습니다. 다만 그러기 전에 제가 
  만든 것을 한 번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기술자는 다음날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왕에게 가지고 왔다. 왕이 물었다.
    "자네가 만든 것을 가져온다더니 그것은 가져오지 않고 어찌 사람만 데려왔는가?"
    "사람을 데려온 게 아니라 제가 만든 인조 인간입니다."
    왕은 깜짝 놀랐다. 영락없이 사람 모습을 하고 서 있는데 앞턱을 쿡! 건드리자 사람처럼 
  춤을 추었다. 이곳 저곳의 기관을 만지는 것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여 움직였다. 왕은 동행한 
  총희들과 내시들을 불러 구경시켜 주었다. 그때 인조 인간이 연기를 하다가 한동안 왕의 
  총비를 향해 눈을 껌벅거렸다. 왕은 크게 노하여 곧 기술자의 목을 치려 했다. 놀란 기술자는 
  급히 인조 인간을 해체하여 왕에게 보여주었다.
    왕은 일일이 내장 기관을 조사해 보았다. 담, 심장 등을 자세하게 조사해 보았다. 모두 
  인공으로 만들었는데, 피부를 비롯하여 여러 부분들은 합해 놓으면 처음의 모습 그대로 
  돌아갔다. 왕이 시험 삼아 인조 인간의 심장을 떼어놓자 입으로 말을 못했으며, 간장을 떼어 
  놓자 입으로 말을 못했으며, 간장을 떼어놓자 눈으로 물건을 보지 못했고, 신장을 떼어놓으니 
  걷지를 못했다.
    그제야 왕은 탄식했다.
    "인간의 재간이란 참으로 무궁무진하도다. 이제는 하느님과 똑같은 위치에 와 있게 됐구나."
    목왕의 탄식이 있었을 무렵, 반수라는 사람은 아주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구름다리를 
  만들었고, 목적이란 사람은 사람이 공중을 날아가는 나무 연을 만들었다. 두 사람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의 발명가라고 뽐내었다. 훗날 이 두 사람에게 제자들이 
  생겨났다. 바로 동문가와 금활리였다. 그들은 인조 인간을 만든 언사라는 이가 재간이 
  출중하다는 말을 듣고 각각 자기의 스승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들의 스승은 크게 놀라면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하여 일생토록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접어 두었다.

    이의 심장을 꿰뚫은 궁술

    감승이라는 이는 화살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활을 겨누기만 해도 짐승들은 두려움에 떨며 
  땅에 엎드려 버리고 날아가는 새는 날아 내릴 정도였다, 비위란 이가 그의 활쏘기를 배워 
  궁술이 스승보다 앞섰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창이라는 자가 비위에게 활쏘기를 배
    우려고 찾아왔다. 비위가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궁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눈을 깜빡이지 않은 것부터 배워 오게. 그래야만 활을 잘 
  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네."
    기창은 곧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가 비단을 짜는 베틀 아래에 누워서 눈으로 북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 있은 지 2년이 되었을 때, 비록 송곳으로 눈을 찔러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기창이 다시 찾아오자 비위가 말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네. 이번에는 보는 연습을 하게.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주 작은 
  물건을 크게 보고 희미한 것을 뚜렷하게 보는 것이오. 그런 뒤에 내게 다시 오시게."
    이 말을 들은 기창은 가느다란 털 오라기로 이 한 마리를 붙잡아 그것을 창문에 매어 놓고 
  남쪽을 향해 앉은 채 매일 바라보았다. 세 해가 지나자 이는 차 바퀴처럼 보였고 다른 
  물건들은 큰 언덕처럼 보일 정도였다. 비위는 연 나라에서 생산된 뿔로 만든 활을
    구하고 오랑캐 나라에서 생산되는 화살촉을 구하여 이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의 심장은 
  꿰뚫었지만 실 끝에 매달린 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편집증'과는 다르다. 사물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념을 불태우는 이런 행위는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집중하든 간에 일단은 선한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죽은 사람도 사는 방법을 말할 수 있다

    죽지 않은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연 나라의 임금이 자기의 신하 한 사람을 보내 이 
  법을 배워 오도록 했으나 신하가 빨리 떠나지 않는 바람에 죽지 않은 법을 아는 사람은 죽고 
  말았다. 임금은 화가 나서 빨리 떠나지 않은 신하를 죽이려 했다. 이때에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던 한 신하가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걱정이 되고 근심하는 일은 죽는 문제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는 일입니다. 지금 죽지 않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생을 잃어버렸으니 그 
  사람이 살았다 한들 어찌 왕께서 돌아가시지 않게 손 쓸 수 있겠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신하를 죽이려는 생각을 되돌렸다. 또 제자라는 사람도 죽지 않은 법을 
  배우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그 사람이 빨리 죽은 
  것을 원망했다. 또 부자라는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 법을 배우려 하다가 그 사람이 죽었다면 원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사람은 본래 사람이 그 법을 배우려는 까닭을 모르는 사람이다."

    단목숙의 처세술

    위나라의 단목숙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의 후손이었다. 그는 선조가 모아 둔 수만금의 재산을 
  믿고 일반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무엇이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다시 말해 인생으로서 즐기고 싶은 것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높은 누각이라든가 정자를 짓고 호화스러운 물건으로 장식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시녀 삼아 집안에 두는 등의 행위는 따지고 보면 군왕의 위세보다 
  호화스러운 것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좋아하는 것이나 어디에서 놀고 싶으면 아무리 산이 
  험하고 길이 막혀도 상관이 없었다. 그는 아무리 먼길이라도 바로 옆에 있는 장소를 가듯 
  그렇게 옮겨 다녔다. 그러나 나이가 60세가 되어서는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꺼내어 하인 
  권속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들이 가고 싶은 대로 보내 주었다. 이러고 보니 그 많은 재산은 
  I년도 못 되어 훌쭉하게 변해 버렸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들의 희락만을 위해 사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사람을 
  깔보고 학문이 놓은 대덕한 사람들을 재물 아래에 꿇리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단목숙은 두 
  갈래의 평가를 받는다. 재물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오히려 도를 통한 것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단목숙이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장례를 치뤄 주었다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이 어찌 살았는가 
  는 그가 죽은 후에 평가받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신비스러운 보검

    흑란은 위나라의 사람이다. 어떤 연유로 구병장이라는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아들 내단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기회를 노렸다. 그의 기질은 매서웠으나 몸은 몹시 약했다. 식사는 
  밥알을 셀 정도로 적게 먹고 보니 바람에 날아갈 정도로 형편없이 몸이 약했다. 아버지를 죽인 
  흑란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나 병장기를 들고 그에게 보복을 할 수는 없었다. 흑란은 힘이 
  세고 거칠었다. 백 명의 장사가 오더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을 만큼 무용이 뛰어났다. 
  그러므로 내단과 같은 사람이 그와 대적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느 날 내단은 
  친구가 찾아오자 눈물을 홀리며 자신이 불효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원수가 누구인지도 알았는데 감히 손을 못쓰고 있네. 이 얼마나 
  불효인가. 자네가 내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방도를 일러줄 수 없겠나?"
    "가만 내가 들으니 그런 말이 있더구먼. 위나라에 공주란 사람은 자기 조상 적부터 은나라의 
  황제가 쓰는 보검을 가지고 있다더구먼. 어린아이라도 이 칼을 가지고 있으면 능히 수십만의 
  병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 자네가 부친의 원수를 갚을 양이면 예물을 마련하여 그 
  사람을 찾아가게."
    내단은 즉시 위나라에 가서 종이 상전을 만나는 듯한 예우로써 공주를 찾아보았다. 그런 
  다음 자기의 처자를 공주에게 맡기고 자신의 처지를 말하려는데, 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게는 세 자루의 보검이 있답니다. 그러나 그 검들은 사람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공주는 세 검의 특성을 말해 주었다. 첫째 검의 이름은 함광이었다. 이검은 광채를 숨기고 
  있어서 이것을 휘둘러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검을 휘두르면 상대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검의 이름은 승영이었다. 이 검은 그림자만 보이고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 북쪽으로 향한 채 검을 살펴보면 분명 무슨 
  물건이 있는 것은 같은 데 그림자만 있을 뿐이라 했다. 셋째 검은 소련이었다. 이 검은 낮엔 
  그림자만 보이고 형체는 발견할 수가 없다. 한 번 물건을 치면 굉장한 소리가 나지만 베인 
  자리는 금방 아물고 칼날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공주는 이런 특성이 있는 검이 자신의 13대 조상 때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내단은 공주의 설명을 들은 후 세 번째 검을 가지고 원수를 갚기 위해 길을 떠났다. 흑란의 
  집에 들어가 주인이 술에 취해 떨어졌을 때 세 번을 내리쳤다. 그 감각은 마치 허공을 베는 
  것처럼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도 흑란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황급히 문을 빠져 
  나오는데 이번에는 그의 아들을 만났다. 이번에도 세 번 휘둘렀다.
    그로부터 얼마 후 흑란은 아내를 불러 꾸짖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나를 발가벗겨 목병이 나고 허리가 아프며 머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만들었는가. 자, 어서 가서 의원을 데려오시오."
    흑란의 집으로 온 의원은 병자의 모든 기맥이 잘려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들어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 내단이란 자가 왔다 갔는데 나를 문에서 만나 세 번씩이나 이름을 불렀답니다. 그런 
  연후에 몸이 아프고 사지가 굳어져서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그 놈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항상 덕을 기르는 자리에 서라

    덕을 기르는 것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권세를 쫓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도덕을 온전하게 지키는 사람은 물체 밖의 진리를 본다. 한때의 적막을 감당할 줄 알아야만 
  만고에 처량함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공자는 노나라의 태산에 유람을 가다가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알아 오게 하였다. 제자는 돌아와 그가 영계기라고 말했다. 그를 가까이 모셔 오게 
  하여 차림새를 보니 그는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새끼줄로 허리끈을 질끈 동여맨 채 
  거문고를 들고 있었다.
    "선생께서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나의 즐거움은 많지요. 하늘이 만물을 낼 때에 사람만이 귀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첫째 가는 즐거움이오. 그 다음이 사람을 남녀로 
  구분하는데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둘째가는 즐거움인 게지요. 또한 사람이 태어나면서 
  해와 달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강보에 싸인 채 죽은 이가 부지기수인데 이렇듯 90세가 되도록 
  살아 있으니 셋째 가는 즐거움인 것이오.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도를 닦는 선비에겐 항용 
  있는 것이니 그 또한 당연한 일이며, 죽음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 맞이하는 종말이니 비록 지금 
  죽는다 해도 근심할 게 어딨습니까."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마음을 편히 갖고 속세의 모든 것에서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무엇에나 많은 짜증을 갖고 있다. 조금만 자신에게 만족을 주지 않으면 상대를 질책하고 
  헐뜯는다. 요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청빈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헐뜯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덕을 지키며 사는 영계기 노인처럼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어느 경우에나 도덕을 지킬 줄 알아야만 만고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잠깐 동안의 
  영욕을 위하여 결코 불의에 타협치 말아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황하 언덕에 이르러 잠시 수레에서 
  내린 채 주위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높은 낭떠러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30길인 데다 
  급류의 흐름이 빠르기 이를 데 없는데 한 사나이가 유유히 헤엄쳐 오는 것이었다. 그곳은 워낙 
  급류인 터라 여느 물고기라도 헤엄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장소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너지 못할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 사나이는 거센 물길은 도무지 안중에 없다는 듯 
  유유자적이었다. 강을 건너온 그 사내에게 공자가 물었다.
    "당신의 수영하는 솜씨는 참으로 교묘합니다. 이렇듯 사나운 물살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헤엄치는 것을 보니 분명 도술이라도 익힌 것입니까?"
    "그거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에 물에 들어갈 때 물의 자연적인 성질에 순응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마음으로 물에 들어가고 그러한 마음으로 물에서 나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물에 맡기고 나는 조금도 사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내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까닭은 바로 
  그것입니다."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일러주었다
    "들었느냐? 사람이 자연의 모든 것이 진실된 마음으로 순응하면 아무리 거친 물결이라도 
  헤칠 수가 있지 않느냐. 이것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진실로 충성되고 신실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하늘의 조화는 무궁무진하여 감히 인간의 몸으로는 헤아리기가 어렵다. 군자는 운수가 
  역으로 와도 순리를 받아들이고 편안한 때도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므로 하늘이 그 사람의 
  운수를 징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무리 역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순리적으로 풀어 가는 신실한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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