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옥] 나무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나무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조정옥
(저자 약력)
이세상 모든 것들은 나무 밑에서 생겨나서
나무 밑으로 되돌아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나무를 먹고 마시며, 지칠 때면
나무 곁으로 와서 몽롱한 낮잠을 잔다.
나무를 바라보면 내 삶의 모난 곳을 둥글게 다듬어주고
아픈 곳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신비의 언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나무는 우주이고 잎과 꽃들은 우주를 떠도는 별과 같다.
때로 나무의 그 푸른 눈 속으로 깊이 휘말려 들어가면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버린다.
나는 곧 우주다.
그대가 곧 우주다.
그대는 그대일 수 있다.
겹겹이 쌓인 껍질과 가면을 벗고
그대 자신을 선택하라.
곁에 누워도 그리운 나무 곁에서 조정옥
1부 나무 옆에 서 있는 사람
1. 그대를 형성하라.
지평선과 맞닿은 들판 위 에 스무 그루의 측백나무가 서 있었다. 바람 이외
에 아무도 가지 않는 들길에 누가 어떤 이유로 저 나무들을 심었을까^5,5,5^.
한 줄로 가지런히 늘어선 나무들은 허공을 백지 삼아 저마다의 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바람이 싫어서 바람과 싸웠지. 그래서 나는 칼을 휘두르는 투사 모양이
되었어.
나는 바람을 피하려고 나를 이렇게 똘똘 뭉쳤어.
나는 바람이 귀찮았지만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었어.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만히 있었어. 그랬더니 바람은 나를 사정없이 내려치더군. 그래서
나는 이런 산발머리가 됐어^5.5.5^.
같은 장소 에 서 있던 똑같은 나무 스무 그루는 그렇게도 다른 영혼을
가지고 그렇게도 다른 식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선하고 신비스러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대를 형성하라. 그대만이 갖고 있는 그대의 흙으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대만의 영혼을 빚으라. 그대는 그러지 않아도 이미 그대일 수 밖에 없다.
2. 몸보다 영혼을 부지런히 움직여라.
나무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구름이 그렇게 알 수 없는 곳으로 마냥
흘러가고 새들이 그렇게 먼 곳으로 훌쩍 떠나가도 나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나무는 날마다 무성해지는 커다란 머리로 구름보다도 더 높이
새보다도 더 넓게 생각의 날개를 펼쳤다. 나무는 영원한 것에 대해 그리고
흐르지 않고 불변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무의 영혼은 구름과 새가 다가갈 수 없는 그곳으로 뛰어올라가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는 자신의 뿌리로 움켜쥐고 있는 땅을 사랑했다. 섣부른
걸음걸이는 자기 파괴라는 것을 나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의 두 다리보다도 그대의 영혼을 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라. 그대
영혼의 숲이 풍요로운 열매로 가득 차도록. 그런 다음 어지러운 세상
뒷골목으로 들어가라. 그대 영혼의 신선함이 세상으로 흘러 넘치고
세상으로부터 그대 영혼 속으로 아무런 티끌도 들어오지 않도록.
3. 중간자를 사랑하라.
어느 뜨거운 모래밭에 책상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책상과 나무의
중간으로서 왼쪽은 책상이고 오른쪽은 푸른 잎사귀가 하늘거리는 나무였다.
사람들은 나무에서 책상이 열린 것인지, 본래 책상이던 것에서 싹이 난 것인지,
아니면 나무가 차츰 책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세상에 책상이 있고 나무가 있지만 책상나무가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그러나 사실은 책상과 나무의 숫자를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책상나무들이 있다. 그것은 흑과 백보다도 그 중간에 있는 다채로운 색깔들이
훨씬 더 많은 것과도 같다.
책상나무들이 그렇게도 많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나무 같고 어떻게 보면
책상같다고 해서 흔하디 흔하고 어중간한 존재는 아니다. 모든 중간자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대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으며 똑똑하지도 우둔하지도 않다. 그대는
그렇게 큰 키도 그렇게 작은 키도 아니며, 활발한 것도 수줍은 것도 아니다.
그대는 여자인데 여자답지도 않으며, 그대는 남자인데 남자답지도 않다. 그대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대는 중간자다. 그러나 그대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존재다.
그대 자신을 사랑하고 중간자들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대는 거의 온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4. 그대를 탈바꿈하라.
나무는 완벽한 화학자다. 온갖 잡다한 것이 혼합된 흙덩이에서 나무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만을 취사 선택하여 빨아들인다. 나무는 줄기와
잎과 꽃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필요한 것이 흙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무는 흙에서 태어나 흙에 뿌리를 박고 평생 동안 흙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나무는 완벽한 마술사다. 나무는 메마른 흙을 풍성한 잎과 향기로운 꽃으로
바꿔놓는다. 냄새나는 한 더미 흙이 어떻게 꽃으로 바뀔 수 있는가? 누가 한
더미 흙을 화려한 꽃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가?
그대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그대는 그대를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가? 그대의 영혼이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그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인가? 그것을 통해 그대는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 다른 것을 취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그대가 가장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는 마술을
그대는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5. 나무 옆에 서 있는 사람
르네상스기의 거장들이 그린 그림을 보라. 인물 뒤에 늘어선 나무들이
얼마나 오묘한지, 또는 베토벤이 떠올린 악상을 선 채로 옮겨 적곤 했던 길
옆의 웅장한 나무들을 상상해보라.
아주 오래되어 굵고 높아져서 신이 된 나무들이 즐비하고 빽빽한
풍경^5,5,5^. 그 속에 서 있는 인간은 저절로 신이 되어 교향곡을 쓰고
천지창조의 그림을 그리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소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산들바람에도 온몸이 휘어지는 유아기의 나무들이 유아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싹뚝 베어지는 민둥산 옆의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나무 한 그루
없는 아스팔트 바닥에다 동심을 내동댕이치고 세상의 사리사욕을 너무 일찍
배워 두 눈을 무섭게 번뜩이는 약동들을 생각해보라.
나무를 사랑하라. 그러면 그대 영혼 속의 불순한 찌꺼기가 모두 빠져 나가고
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잡아채어 소유하려는 날카로운 손은 미역처럼
부드러워지며 순수히 바라보려는 맑고 투명한 두 눈만이 빛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의 호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6.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를 갖춘 장미나무는 슬펐다. 장미 옆에 서 있는
거만한 목련이 이른 봄 찬란한 꽃을 피우면서 장미를 비웃었기 때문이다.
"너는 여태 무엇하고 있어.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꽃 피우기에는 5월이
너무 늦어. 나처럼 이렇게 한겨울이 지난 뒤에 사람들이 꽃을 애타게 갈망할
때 꽃을 피워야 찬사를 받게 되는 거야!
그리고 네 몸은 쓸모없는 가시투성이야. 네 가시에 찔린 곤충이며 애벌레며
어린이가 얼마나 많니? 지금이라도 당장 떼어내렴. 네 꽃 색깔도 너무
변덕스러워.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그리고 노란색^5,5,5^.
나처럼 이렇게 하나로 깨끗이 통일하는 게 질서정연해 보일 거야."
장미는 아무리 애를 써도 꽃을 일찍 피울 수 없었고 꽃 색깔을 통일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다. 몸의 가시를 떼는 일 역시 아주 고통스러웠다.
장미가 만발한 어느 오월 지나가던 소녀들이 소근거렸다.
"장미 좀 봐. 너무 예쁘지? 목련은 이제 싱거운 잎사귀만 달고 있네.
장미에는 역시 가시가 어울려. 졸졸이 달린 가시가 마치 귀부인의 목걸이
같기도 하고 왕자의 갑옷에 붙은 장식 같기도 하고. 만일 저렇게 예쁜 장미에
가시가 없다면 장미는 살 수 없을 거야. 너도 나도 마음놓고 꺾어갈 테니까."
슬픈 장미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나는 듯했다. 목련은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장미가 말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달라.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돼. 우리 안에는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야. 자신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고. 그런 강요에 흔들리는
것도 잘못이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 누구도 이
세상의 표준이 될 수 없다. 각자가 각자의 기준일 뿐이다. 그대가 그대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그대가 그대를 받아들일 때가 가장 지혜롭다.
7. 동일성보다 차이를 사랑하라.
이 세상의 온갖 더러움이 섞이고 농축된 거름 덩어리에 탯줄을 박고 태어난
어둠의 자식, 파리들은 얼핏 보면 그놈이 그놈인 거 같고 모두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눈동자 색깔도 제각각이고
등허리도 어떤 놈은 까맣고 어떤 놈은 붉으며 어떤 놈은 푸른 비단색이다.
어떤 놈은 시궁창을 좋아하고 어떤 놈은 꽃들이 만발한 온실을 좋아한다. 어떤
놈은 신선한 아침 바람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어떤 놈은 해질녘에 비로소
분주히 돌아다닌다. 어떤 놈은 제발 꺼지라고 쫓아내도 들러붙는가 하면 어떤
놈은 구석에 숨어서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다가 사람이 곤한 잠에 떨어지면
살며시 날아와서 살을 핥는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에도 수많은 복잡한 비밀들이 숨어있다. 우리는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바라보고 지나쳐버린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 위에 단순하고 단조로운 색을 칠해놓고 마음 편히 살아간다. 즉
한 발 더 깊이 그리고 한가지의 차이라도 더 생각함을 기피한다. 이 나무와 저
나무는 다 같은 나무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같은 서울
사람이다^5,5,5^.
두 마리의 파리조차도 기호와 개성이 다른데 하물며 다른 것들은 어떨까? 한
발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것, 동일성보다도 차이를 생각하는 것,
그것은 사랑과도 상통한다.
8. 차 한 잔을 마시며
인간에게 꽃을 바치는 나무도 있고 열매를 바치는 나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잎사귀나 줄기 또는 뿌리를 바치는 나무도 있다. 그러나 차나무처럼 온몸의
즙을 짜서 바치는 것은 없다. 차나무의 잎은 햇볕 또는 그늘 속에서 오랫동안
건조되고 적당히 마르면 가마솥에서 볶아지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 찻잔 속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 세례를 받고 검은 즙을 토해낸다. 그러므로 차는 인내와
고통의 상징이다.
햇빛
바람
천체의 음악
꿈을 들이마시며
마르고 꼬부라진 몸에서
새까만 쓴 물이 새어나온다.
절망으로
분노로
회한으로
패이고 뚫린 우리의 몸속으로
차나무의 체액이 흘러들어가서
발그스레한 새 살이 돋는다.
9. 사랑 때문에 잠식 당하지 말라.
참나무가 은행나무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 참나무는 은행잎으로 온몸을
장식했다. 은행을 실에 꿰어 귀고리와 목걸이를 하고 잎사귀를 엮어서 허리에
둘렀다.
은행나무는 그 때문에 참나무를 더욱더 사랑했다. 시간의 변화는 감정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참나무는 은행나무와 헤어지고 등나무를 사랑하게
되었다. 참나무는 몸에 붙인 은행잎을 떼어내고 등나무잎과 등꽃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붙였던 은행잎을 떼내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너무나도 많은
은행잎들이 속속들이 붙어 있어서 그 모두를 제거하기는 불가능했다.
등나무와의 사랑이 다시 깨어지고 장미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참나무는 등나무잎과 등꽃을 떼어내고 장미 잎사귀와 장미꽃을 가슴에
달았다. 참나무는 미처 떼내지 못한 은행잎, 등나무잎, 등꽃을 아직도 여기저기
달고 있었다^5,5,5^.
들판에는 이제 아주 괴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것은 은행나무 +
등나무 + 장미나무 + 소나무^5,5,5^ + 참나무였다.
그대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자를 사랑하라. 사랑하되 타인에게
잠식당하지도 말고 타인을 잠식하지도 말라.
10. 육체를 버린 나무
푸르던 잎사귀 모두 떼어내고 열매도 씨앗도 다 던져버리고 마지막 남은
코와 두 귀도 잘라버린 뒤에 나무는 무색, 무미, 무취의 백지가 되었다.
육체를 버린 나무는 정신을 담는 텅 빈 그릇이 되었다. 흙으로 빚은 오목한
항아리에 물이 담기듯이 나무로 깎은 얇은 접시에 소설이 담기고,
물리학법칙이 담기고, 가슴을 감동시키는 음악과 시가 담겼다. 시나리오가
담기고, 법원 판결문이 담기고, 우주선 설계도가 담겼다.
그대를 비우라. 그대를 버려라. 그대를 잊으라. 그대가 보다 더 높고 고귀한
것들을 끌어안는 큰 그릇이 될 수 있도록.
11. 그대가 살아 있는 시간
1억년 전에 소나무 주의를 뱅뱅 돌던 파리가 끈적한 송진 속에 갖혀버렸다.
그 옛날 살아서 꿈틀거리던 시간이 정지되어 한 덩어리 화석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샛노란 시간의 화석을 보석이라고 부른다. 파리가 노랗게 잠을
잔다. 1억 년의 흐름 속에서 파리의 잠은 아직도 굳지 않았다.
그대가 살아 있는 시간은 파리가 잠든 시간의 몇 분의 일인가?
12. 한 나무가 베어져서
한 나무가 베어져서 피아노 건반이 되었고 또 한 나무가 베어져서 망치
자루가 되었다. 피아노는 콘서트홀의 무대 위에 있었고, 피아니스트의 길고
힘찬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건반은 금속판을 두들겨서 아름다운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수많은 이의 영혼에 오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망치는 구두수선공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가 구두굽의 못을 박을 때마다
못을 힘껏 때렸다. 구두를 돌려 받은 손님들은 수선공에게 고맙다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그대는 이 세상의 어느 곳을 두드릴 것이며 이 세상이라는 악기를 두들겨서
어떤 음악소리를 낼 것인가?
13. 헤라클레스가 된 떡갈나무
우주 한복판 황량한 들판 위에 서 있는 오래된 떡갈나무는 육중한 두 팔로
집채만한 잎사귀 무리들을 높이 쳐들고 있었다. 나무는 외로운 밤이면 무수한
잎사귀들의 살랑거림을 커다란 품에 따스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무는
나른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고독 또한 한 발자국 물러나 서 있었다.
떡갈나무는 떡갈나무 하나만을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떡갈나무는 헤라클레스 같은 두 팔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고 굵은 동맥 같은
뿌리로는 땅을 움켜쥐고 있었다.
저 떡갈나무가 없었다면 하늘은 단 한 번의 천둥 번개로 무너져버렸을
것이고, 땅은 단 한 번의 지진으로 폭삭 주저앉아 우주공간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잎사귀들은 끝없이 살랑거려 그 원시적인 맑은 음악을 사방으로 실어보냈고
인간들의 혼탁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은
지금보다 수십 배 더한 죄악을 저질렀을 것이다.
14. 암흑으로 만든 엽록소
참나무는 여태까지 광합성을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운명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참나무는 광합성이 원하기만 하면 회피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단지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들 가운데에는 엽록소의 합성에 빛 대신 암흑을 사용하는 것도 있었다.
빛이 아닌 암흑을 가지고 엽록소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는
광합성이 본능이 아니라 자의적인 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참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열심히 햇빛을 긁어모아 잎사귀를 만드는
동안에 조용히 낮잠을 즐길 수도 있었고, 모두가 잠자는 밤에 혼자서 부지런히
암흑을 긁어모아 잎사귀를 만들기도 했다. 어둠으로 만든 잎사귀도 햇빛으로
만든 잎사귀 못지 않게 튼튼하고 아름다웠다.
남녀간의 질투 또는 자신의 아이를 자기 자아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것^5,5,5^.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우리 인간의 타고난 감정이며 본능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문명에서 통용되는 사유재산제에서
비롯된 문화에 불과하며 다른 원시문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라는 굴레는 성장 과정에서 우리에게 한 번 덧씌워지면 다시는 벗길 수
없는 2의 살갗처럼 된다. 문화가 우리 몸에 깊이 착색되면 그것이 문화라는
것조차 의식할 수도 없게 되고 본능으로 착각하게 될 수 있다. 물론 어떤 것이
문화적 영향임을 자각하더라도 이미 굳어진 습관이 되어 수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문화에서의 탈피를 필요로 한다. 문화란 안과 밖을
갈라놓는 것이며 밖의 것을 배척하게 하는 것이다. 문화는 서로 다른 지역과
기후의 인간들을 뭉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갈래갈래 찢는 것이다. 또한 문화란
그 속에 한 번 젖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굴레처럼 작용하며 우리에게
억압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문화에서의 해방은 단지 반항적인 해방이나 해방을 위한 해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수많은 삶의 질곡에서 조금이나마 초연하고
평정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때에 따라서 요구되는 것이다.
15. 잡초의 기도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느님!
저희를 선인장처럼 까다롭지 않은 성격으로 만들어주시고 감나무처럼 외따로
떨어져서 고독하지 않고 항상 이렇게 여럿이 가깝게 모여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합니다.
시금치나 배추처럼 상체가 잘리거나 감자나 고구마처럼 하체가 잘리지
않도록 하시며, 장미처럼 꽃이 잘리거나 딸기처럼 열매가 잘리지 않도록
저희를 이렇게 수수한 모습과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형상으로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바위틈이든 지붕 위든 그 어느 곳에나
뿌리를 내려 세상의 밋밋하고 허전한 구석을 부여잡고 푸른잎을 한들거리면서
그곳을 강조해주며, 또한 굳센 우리자신을 뽐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특히 인간들이 미워하고 걷어차버리는 저희를 다른 식물들과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저희에게 항상 햇빛을 듬뿍 내려 주시며 마실 빗물을 아낌없이
뿌려주시니 너무도 감사하며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16. 운명을 사랑하라.
강가에 서서 높은 하늘만 바라보며 살던 미루나무가 강풍에 휩쓸려 물속으로
쓰러졌다. 나무는 이제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물밑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물밑 바닥에도 하늘이 있었으나 그것은 항상 어둡고 침침한 빛깔이었다. 그
하늘 위로 고기들이 떼지어 몰려다녔다.
길게 누운 나무 위로 숲속의 들쥐, 다람쥐, 개미, 풍뎅이^5,5,5^.가 기어와서
강물을 마시고 돌아갔다. 나무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숲속에서 온
손님들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나무는 두 손으로 그들을 잡아주었다. 나무는
물과 땅과 하늘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그대의 운명을 사랑하라. 어떤 운명이든지간에 항상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 얼굴은 어둡고 우울하며, 다른 한쪽 얼굴은 따뜻하고 밝다. 어두운
얼굴을 가리고 밝은 얼굴을 택하여 그것만을 눈여겨서 바라보라. 그것이 험한
운명의 바다를 노저어가는 항해술이다.
17. 나무들의 사랑
나무는 사랑의 천재다. 나무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어떤 나무를 사랑할
수 있다. 새들의 날개에 묻어온 꽃가루와 향기로 미지의 나무의 영혼을 느낀다.
바람결에 실려온 나무의 콧노래를 듣고 그 나무의 빛깔과 크기를 상상한다.
빗줄기에 떠내려 온 실뿌리 한 가닥을 만지면서 그 나무와의 합일을 꿈꾼다.
나무는 사랑하는 나무를 찾아가지 않는다. 다만 뿌리를 더욱 더 깊게 뻗어
내면을 살찌게 하고 그래서 사랑을 보다 크고 깊은 영혼의 그릇에 담을
뿐이다. 그것은 사랑에 의해 영혼의 그릇에 담을 뿐이다. 그것은 사랑에 의해
영혼이 전복되지 않도록 사랑을 보다 큰 배에 싣는 것이다.
나무는 사랑 때문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존재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무는 이미 충만한 가슴이 된다.
사랑하라. 사랑받는 것으로 무거운 영혼이 되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것으로
가벼운 영혼이 되라. 사랑받고서 허공에 뜬 신이 되기보다는 땅을 딛고 서서
사랑을 주라.
18. 발 없는 나무
만일 나무에게 말이 달려 있다면 나무는 그렇게 찬란한 꽃을 피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황홀한 열매를 만들어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무는
맛도 빛깔도 없는 메마른 씨앗들을 원하는 곳에다 손수 뿌렸을 것이다.
나무는 스스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혹적인 꽃을 피워서 벌 나비를
불렀고 달콤한 열매를 흔들거리면서 새를 불렀다. 곤충과 새는 나무가 세상
곳곳으로 파견하는 우체부들이다. 그들은 나무가 평생 동안 쓴 긴 편지가 담긴
씨앗들을 여기저기에 뿌린다.
나무는 어떻게 벌 나비와 새의 마음을 미리 알고 유혹할 수 있는 것일까?
나무는 어떻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존재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것일까?
19. 자연의 옷
나무는 단 한 벌의 옷을 가지고 있다. 잠자리는 단 한 벌의 날개옷을 가지고
있다. 카멜레온은 단 한 벌의 옷을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여서 입는다.
단 한 개의 몸만을 가졌으면서도 두 벌 이상의 옷을 가진 것은 인간밖에
없다.
20. 부상당한 버드나무
어느 안개낀 밤, 자동차 한 대가 자전거를 피하려다가 버드나무를 들이받고
말았다. 버드나무는 꺾여져 뼈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구급차가 달려와서 다친 사람들을 실어갔다. 버드나무는 실망했다. 구급차는
다친 버드나무를 싣고 가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었다.
21. 체험의 기록 장소
나무는 날씨의 기억 장소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나무는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부는 바람의 방향과 강도, 구름의 농도와 태양의 색깔^5,5,5^ 그
모두를 빠짐없이 몸속에 기록해 놓는다. 나무는 지금도 나이테를 긋고 있다.
때로는 옅은 색으로.
그대는 체험의 기록 장소이다. 달콤하고 짜릿한 체험, 시큼하고 떫은 체험,
선의 밝은 광선과 악의 시커먼 암흑^5,5,5^. 그대가 순간순간 보고 느낀 그
모든 상황과 과정이 그대 몸 속에 기록되고 보존되어 있다. 그대의 의식은
어떤 기억도 없다고 말하지만, 그대의 무의식은 말한다. 그 모든 체험이
나이테처럼 뚜렷이 그대 몸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그대 기억의 보관 창고를 어떤 것들로 채울 것인가, 이따금씩 지하 계단을
뚜벅뚜벅 올라와서 그대 의식의 문을 두드리는 기억이 어떤 것이기를 그대는
바라는가.
22. 귀나무
나무 가운데 귀나무에게는 예외적으로 귀가 달려 있었고 그 대신에 뿌리는
없었다. 그래서 귀나무는 마치 수초가 물위를 떠다니듯이 공기 속으로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귀나무는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귀나무는 버스정류장 지붕 위에서 살았다. 수많은 차들이 굉음을 냈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떠들었다.
길 건너편 옷가게에서 떠나갈 듯한 유행가가 온종일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좁은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택시에서도 라디오 방송이 새어나왔다.
맨 처음에는 그것들이 신기하고 흥미로웠지만, 매일같이 똑같이 반복되는
소음에 귀나무는 점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귀나무는 심지어 귓병까지
앓게 되었다.
귀나무는 이제 소리가 나지 않는 곳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귀나무는
풀잎들만 고요하게 흔들거리는 적막한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귀나무는 스스로
귀를 베어버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뿌리가 돋아났다. 귀나무는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정적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갔다.
23. 거꾸로 선 나무
뿌리를 위로하고 가지를 밑에 두고 있는 거꾸로 된 나무는 힌두교에서
고통의 상징이라고 한다. 잎사귀는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뿌리는 물을
마시지 못하여 배고프고 목마른 나무는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굶주린 영혼, 과식하여 배아픈 영혼, 사랑이 부족한 영혼, 사랑을 감옥처럼
여기며 회피하는 영혼, 지루한, 분노한, 안타까운^5,5,5^영혼. ^5.5.5^삶은
행복보다는 고통의 해변에 보다 더 쉽게, 보다 더 자주 도착한다. 삶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삶의 겉모습은 거꾸로 된 나무와 같다.
이미 이루어냈거나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빨리
무감각해진다. 반면에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집착하며
괴로워한다. 우리의 욕망은 하강보다는 상승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소유한 것을 눈앞에 두고 바라보기보다는 발밑에 깔아두고 그 위에
올라서서 다른 것을 주시하며 욕구한다.
실제로 또는 상상 속에서나마 가진 것을 조금씩 버리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것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곁에 없을 때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있는 것을 버리거나 거기에서 잠시 떠나본다면 그것의
가치를 다시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유에서의 초연함. 그것은 어쩌면 거꾸로 된 나무이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인지도 모른다. 그 나무는 단순히 뿌리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천상세계에 두고 있는 것이다.
24. 하늘을 향해 달리는 나무
나무들이 갈망하는 목적지는 하늘이다. 모든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달린다.
지금까지 어떤 나무도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무들의
끝없는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나무는 다리가 아니라 머리로 달린다. 등뼈 없는 나무는 다른 나무의 등에
타고 달린다. 그림자로 얼룩진 어두컴컴한 속세의 동굴을 떠나서, 모든 사물이
찬란한 태양 아래서 눈부시게 빛나는 이데아의 왕국을 향해.
25. 이웃을 생각하라.
나뭇잎들은 서로를 가로막지 않도록 갖은 안간힘을 쓴다. 새 잎이 돋아나면
다른 잎새들은 조금씩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새 잎을 하늘 위로 조금 높이
올려놓는다.
그래서 나뭇잎들은 나란히 햇빛을 쬐며 나란히 빗방울을 받아 마신다. 한
둥지 안에서 그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다.
나무가 굵어지고 무성해져서 어쩔 수 없이 많은 나뭇잎들이 그늘 속에
갇히게 되면 나무는 바람을 기다린다. 바람이 불어오면 잎들이 속살거린다.
빨리 바깥으로 나와 햇빛을 쏘이라고
그대의 이웃을 생각하라. 그들이 한여름날 창백한 낙엽이 되지 않도록.
그대 영혼의 겹겹이 닫아놓은 창을 한 겹 한 겹 열어놓고 바깥을 내다보라.
그리고 이웃의 고통을 그대의 맨살로 느껴보라.
26. 커피나무
커피농장 주인은 언제나 커피나무 옆에서 손님들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금빛 테두리의 멋진 커피잔 속에서 구수한 향기를 내며 흔들거리는 커피가
커피나무에게 손짓했다.
"나야, 나"
커피나무는 시큰둥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누군데?"
커피는 커피 제조과정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커피나무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시커먼 놈이 시커먼 거짓말을 하나 보다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커피가 '안녕' 작별 인사를 하며 주인의 입안으로
쪼르륵 흘러들어갔다.
커피나무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새들과 지껄이며 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열매는 새가 쪼아먹고 예쁜 깃털이 되거나, 벌레가 뜯어먹고
수정같이 맑은 알이 되지. 아무리 못 된다고 해도 땅바닥에 떨어져서
하루살이가 낮잠 자는 침대까지는 될 수 있어. 하지만 절대로 인간들이 벌컥
들이키는 쇠오줌이 될 수는 없어."
27. 불의 상속인
천상의 세계에서 불을 훔쳐온 것은 프로메테우스였지만 나무가 없었다면 그
불은 지상에서 타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훌륭한 설계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래 없이는 집이 세워질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무는 제 몸을 태워서 환하고 따끈한 불꽃을 만든다. 그래서 나무는 밤을
희석시키고 겨울의 차가운 이마를 포근하게 어루만진다.
나무는 불의 속살이다. 나무는 불의 전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인이다.
28. 자연의 순환
동물과 곤충과 인간은 나무를 먹는다. 그리고나서 거름을 몸 밖으로
뿜어낸다. 나무는 그거름을 먹는다. 그리고나서 동물과 곤충과 인간이 먹을
잎사귀와 뿌리와 열매를 빚는다.
우리는 향기로운 나무를 먹고 더러운 거름을 내보내며, 나무는 악취나는
거름을 먹고 향기로운 열매를 만들어낸다.
나무는 두말없이 똥걸레를 치우며 따근하고 진한 젖을 물리는 우리들의
어머니다.
29. 어떤 나무의 운명
차라리 남의 입속을 청소해주는 이쑤시개나 아니면 벽난로의 화염 속에
던져지는 토막난 장작이 될지언정, 나무는 무술가가 손으로 치거나 발로 차서
부숴뜨리는 묘기용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명예를 위해 구경꾼들 앞에서 몸을 으스러뜨려야 하는 모순된
운명이 싫었고, 다른 존재를 파괴시킴으로써 경탄을 받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들이 맨주먹으로 나무판자를 내려치기 전에 나무는 이미 혐오감으로
스스로를 산산조각냈다. 그들은 언제나 착각을 했다. 피나는 훈련과 수련으로
단단한 나무를 두 동강 냈다고.
30. 나무가 되고 싶은 존재
한 나무가 베어져서 줄기는 책이 되었고 밑둥은 돈이 되었다. 책은 시원한
책상 속에서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지만 돈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녔다. 책을 넘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심각했지만 일단 한 번
책을 손에 넣으면 소중히 간직했다. 반면에 돈을 받는 사람들의 표정은 극도의
환희에 넘쳤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돈을 가지고 나가서 여기저기에 물쓰듯이
써버렸다.
책은 기품있는 귀족처럼 항상 깨끗하고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돈은 삽시간에
때가 묻어 거지 얼굴이 되었다.
책은 그 속에 써 있는 내용에 따라 사랑을 받았지만 돈은 아무 내용도
필요없고 그저 얼마나 큰 숫자인가에 따라 귀염을 받았다.
색연필로 아무 데나 죽죽 긋는 어린이를 책은 제일 미워했다. 그러나 돈과
책을 차별하지 않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낙서도 하며 한참 놀다가 한자리에
가만히 내버려두는 아이들을 돈은 가장 좋아했다.
31. 새똥벌레
새가 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벌레인데, 신은 새가 잡아 먹지 않도록
벌레에게 새똥 무늬옷을 입혔다. 새는 새똥 벌레를 보면 어떤 놈이 나뭇가지
위에 저렇게 똥을 붙여놓았을까 생각에 잠기다가 그냥 날아가버린다.
살아 남기 위해 평생토록 새똥을 뒤집어써야 하는 벌레의 기분은 어떨까?
새를 그렇게도 사랑하는 신이 새에게 새똥벌레를 먹이로 주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새똥벌레는 새가 새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고선 신에게
새똥무늬옷을 입혀달라고 부탁했던 것일까?
먼 훗날 새똥벌레가 새똥이 아니고 벌레인 것을 새가 알게 되는 날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새가 신에게 마구 대든다면, 신은 뭐라고 대꾸할까?
32. 열리는 장미
누군가 너무도 아름다운 천사를 지상으로 내보내기 싫어서 밧줄로
묶어두었다. 밧줄에 결박된 채로 탈출하다 추락한 천사가 흙 묻은 입술을 털며
서서히 눈뜨고 몸을 뒤튼다.
천사의 몸이 겹겹이 열리고 저항의 몸부림은 아름다운 암호가 된다. 빨간
비로드옷이 펼쳐지면 그 속으로 한 귀부인이 걸어들어간다. 그 안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향기의 마술에 억류되어^5,5,5^.
33. 매맞는 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는 나무일수록 매를 많이 맞는다. 잘 익은 과일이 스스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이다.
해마다 가을만 되면 올리브나무는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 시퍼렇게 멍이 든
올리브나무는 고통 때문에 불면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열매를 주는 대가가
겨우 회초리라니, 올리브는 너무도 화가 나서 이제 더 이상 열매를 가지에
매달지 않기로 결심했다. 올리브나무는 땅속 깊이 뻗은 큰 뿌리 아래에 올리브
열매들을 감춰두었다.
멀쩡해 보이는 나무에 몇 해 동안 단 한 알의 올리브도 열리지 않자 주인은
기이하게 여기고 나무를 뽑아버리기로 했다. 나무를 캐내던 주인은 땅 밑에서
엄청난 양의 올리브를 발견하고 몹시 기뻐서 캐던 나무에 도로 흙을 덮어주고
물도 주었다.
그때부터 머리가 뛰어난 올리브나무들이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짜냈다. 어떤
나무는 캥거루처럼 열매를 껍질 속에 담아놓았고, 어떤 나무는 새둥지 안에
열매를 넣었다. 심지어 어떤 나무는 고래가 물을 뿜듯이 열매들을 허공으로
푸우하고 뱉어 냈다.
34. 칙나무 이야기
나무를 집어 삼키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인간으로 말하면 그것은
식인종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다른 나무 등뒤로 슬그머니 타고 올라가서
목을 조르는 칙나무를 파렴치한 천적나무 또는 식인나무라고 불렀다. 칙나무의
번식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삽시간에 산 하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푸른 산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칙나무의 목을 싹뚝 베어버렸다.
그러나 칙나무를 처형한 사람들이 얼마 뒤에 푸른 산을 통째로 잘라다가 동해
바다에 던져버렸다. 바다 위에는 푸른 산이 신던 조그만 신발 한 짝만이 동동
떠 있었다.
푸른 산이 서 있던 자리에는 산을 베는 톱을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섰다.
35. 도시로 간 도토리
하늘 위에 걸린 시계가 가을을 가리키자 잘 익은 도토리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그란 도토리는 깊고 깊은 계곡으로 계속해서 굴러갔고
길쭉한 도토리는 일부러 도시를 향해 몸을 튕겼다.
아주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서 자라난 참나무는 그 많고 많은 짐승들과
어울려서 흡족하게 지냈다. 날이면 날마다 진귀한 새들이 찾아와 신비스런
노래를 불러주었고, 둘레의 큰 나무들은 나무의 탄생 신화를 들려주었다. 발
밑에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꽃들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도시로 간 도토리는 시끌벅적한 맥주집 창가에 뿌리를 뻗었다. 저녁만 되면
왁자지껄한 잡담과 음악소리가 들려왔고 술취한 사람들이 나무 옆에서
토하거나 소변을 보았다. 나무를 찾아오는 새는 어쩌다가 잠깐 들르는
지저분한 비둘기 한 마리뿐이었다.
나무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꼈고 고독과 무료함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매연 때문에 나무의 두 눈은 멀게 되었고 피부는 새까맣게 물들어갔다. 나무는
도토리가 열리면 모두 산으로 굴러가라고 충고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가을을
알리는 종이 몇 차례나 울리도록 도토리는 한 개도 열리지 않았다.
운명에는 선택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운명에 의해
그대가 선택되기도 하지만, 그대의 선택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대의 삶의 주류는 전자보다 후자에 달려 있다.
36. 꺾인 장미꽃
장미나무는 장미꽃을 떼어주고
시간의 뒷길로 달아났다.
마치 쥐에게 물린 도마뱀이
스스로 꼬리를 끊고 도망치듯이.
꽃병이 탐욕스런 입으로
장미꽃을 삼키고 있었다.
꼬리 잘린 장미나무는
시간의 숲속을 스르르 기어다니고.
37. 동물들에 대한 고백
날개 달린 발톱을 이용해서 나뭇가지에 매달릴 수 있는 호아친새, 제 몸의
4배 길이나 되는 긴 부리를 가지고 꿀을 빨아 먹는 창부리벌새, 갈고리형의
부리로 매우 단단한 열매까지도 깰 수 있는 마코앵무새, 핀셋 같은 부리로
곤충의 애벌레를 모으는 되뿌리장다리물떼새, 폐어와 메기를 잡아 먹는
구두부리황새, 발 끝에 달린 갈고리 모양의 발톱으로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지내는 나무늘보, 개만한 크기로 아주 겁이 많은 쥐사슴, 중앙아프리카의
울창한 숲속에서 서식하는 영양의 일종인 오가피, 땅굴 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프레어리독, 냄새를 퍼뜨림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
쥐만한 크기의 안경원숭이, 금빛 털옷을 입은 사자비단원숭이, 지느러미에 독을
품는 용어^5,5,5^.
너희들의 눈을 보면 나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한없이 빨려들어간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38. 정원 설계도
* 그림으로 풀이 되어 있습니다. 묵자책 80쪽 참고.
39. 고독하라.
그대 집 한 채, 나무 한 그루^5,5,5^. 그 어떤 생명의 흔적도 없는 어떤 낯선
별에서 홀로 사흘 밤낮을 헤매다가,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한 남자를
만났다면 아마도 그대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이 그를 필사적으로 부둥켜안을
것이다.
발 시린 늦가을 고독이 마구 밀려오면 그대는 길 위에서 만난 그 누구와도
차 한잔을 나누고 그대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대화를 하고 싶어질 것이다.
문 바깥 층계를 오르내리는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에 그대 영혼은 반가움과
환희로 가득 차 전율하게 되고 문을 열고 뛰쳐나가 그의 뒤를 슬그머니 밟고
싶어질 것이다.
고독은 호두알같이 단단한 그대 영혼을 열리게 하고 무표정 한 그대 얼굴에
웃음을 헤프게 한다. 그대는 잘 발효된 포도주처럼 거친 맛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담게 된다.
고독, 얕은 고독이 아니라 가슴에 사무치는 고독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
고독하라.
고독의 품에 그대를 맘껏 내던져라.
2부 지워지지 않는 흔적
40. 시간이 주고 간 은빛 왕관
어느 날 밤 거울을 보고 있는데 하얗게 센 머리카락 하나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밝은 불빛에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즉시
뽑아버렸을 텐데 나는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며 감상하고 있었다. 시간이 내게
준 한 가닥 은실^5,5,5^.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시간은 내 머리 위에
은빛 왕관을 씌우려고 한다. 살아온 나날들이 얼마나 많은 오류적 인식과
행동으로 그득한가. 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시간이라는 어둡고 험한 동굴의 통과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상받을 일인지도 모른다. 비록 하루하루가 평탄하고 평범했지만
그 평탄과 평범은 위험한 심연위에 놓여진 가느다란 널판지였던 것이다.
아차하면 떨어지고, 아차하면 부딪히고, 아차하면 어떻게 되어버리는, 그런
아슬아슬한 시간의 길목을 나는 하루하루 무사 통과했고 그것이 험한
길이었다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죄많은 나를 무사
통과시켜주고 게다가 왕관까지 씌워준 시간에 대해 감사한다.
41. 도가 튼 구두쟁이
약속시간 때문에 급히 서두르던 그 날 한쪽 구두굽마저 빠져 나갔다.
"빨리 좀 달아 주세요."
나는 헉헉거리며 구두수선공에게 말했다.
"빨리 구두 벗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구두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빨리요, 빨리. 구두 벗는 동안 벌써 다 달았을 거^36^예요."'
한쪽구두는 겨우 벗었으나 다른 쪽이 이상하게 벗겨지지 않았다.
구두 수선공은 조금 짜증이 난 듯 다시 재촉했다.
"빨리 좀 벗으라구요."
그는 순식간에 굽을 달았다 못질하는 소리가 '딱딱딱' 세 번 났을 뿐이었다.
구두를 신은 나는 재촉했던게 몹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어리벙벙한 기분이 되었다.
비록 구두수선공이 허름한 옷과 새까만 손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얕잡아볼
천한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고도로 숙달된 전문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멋쟁이이기도 했다. 이 세상의 어떤 일이든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멋과 품위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장자 속에 나오는 소잡는 백정
이야기가 생각났다. 소잡는 일에 도가 튼 백정의 번개 같은 칼질.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써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적에는 보이는 게 모두 소였습니다. 그러나 3년 뒤에는 완전한 소가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신으로써 소를 대하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춰버리고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연의 조리를 따라서 큰 틈을 쪼개고 큰 구멍을 따라 칼을
찌릅니다. 소의 본래의 구조에 따라 칼을 쓰므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부닥뜨리는 일이 없습니다. ^5,5,5^조심조심 경계를 하면서 눈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후드득
뼈와 살이 떨어져 흙이 땅위에 쌓인 듯 쌓여집니다."
4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뒷골목에 내다 버린 탁상시계 주위에서 개미들이 분주하게 맴돌고 있었다.
개미들은 시계 위로 올라가더니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서 시계 속으로
들어갔다. 몇 마리는 숫자판 위로 기어다녔고 몇 마리는 천천히 돌고 있는
시계바늘 위에 올라타서 시계바늘과 함께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개미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었다.
2시 45분 23초는 어디로 갔는가?
2시 32분 02초는 어디로 갔는가?
11시 17분 59초는 어디로 갔는가?^5,5,5^
개미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시간을 찾고 있었다.
시간을 잃어버린 수많은 개미들이 시계 주위로 꾸역꾸역 몰려들어
와글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개미들은 시계 밑에서 조그만 초콜릿 한 덩어리를 찾아냈다. 아,
여기 있었군.
개미들이 잃어버린 시간은 모두 초콜릿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한나절이 지난 뒤 한 덩어리 시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개미들은 일렬로
늘어섰다.
나는 2시 45분 23초야. 나는 2시 45분 24초야^5,5,5^. 탁상시계는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야. 시간은 밑빠진 독이라구. 너희들이
시간을 찾는 동안 벌써 또다른 수천 초가 상실되었다구. 내가 멀리 실어다가
버렸지. 어디 한번 찾아보렴.
개미들은 일렬로 서서 먼 곳을 향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43. 바람이란 무엇인가?
아이에게 바람이 무엇인지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딸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려면 딸기를 입안에 넣어주면서
"이것은 딸기야. '딸기' 해봐." 그리고 "저것은 꽃이야."
하면서 꽃 한 송이를 손에 쥐어줄 수 있다. 그렇지만 바람이 불 때
"저기 좀 봐. 나무가 흔들거리지? 저게 바람이야."
하면 아이는 나무를 쳐다볼 것이다. 거기에는 나무밖에는 없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거 봐, 바람이 움직이는 거야. 바람은 저렇게 꿈틀거리며 지나가."
입김을 아이의 이마에 불어넣는다.
"바람은 이렇게 불어. 후, 후, 후!"
아이는 바람이 누군가의 입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이라고 생각한다. 나무
뒤에 누가 있기에 나무가 저렇게 휘청거리는 것일까? 나무 뒤에 숨은 사람이
바람인가? ^,5,5,5^아마도 나무의 춤을 바람이라고들 부르나보다. 그리하여
아이는 나무를 스쳐지나가지 않고 높은 하늘로 날아가는 엄청난 양의 바람의
존재를 간과하게된다.
바람이 거대한 구름 덩어리를 주욱 밀고 지나가고 있었다. 구름 그림자, 바람
그림자가 아이의 조그만 몸뚱이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44. 지하철 속의 새
그 작고 귀여운 새들은 나뭇잎이 어떤 모양과 색깔이며 얼마나 상큼한
향기를 뿜어내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더더군다나 갓 나온 여린 잎새를 맛본
적은 있을 리가 없었다. 알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눈을 뜬 것은 비좁은
나무서랍이었고 얼마 후 지하철 안에 설치된 철창 속으로 옮겨졌다.
그 안에는 플라스틱과 헝겊으로 얼기설기 만든 모조품 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다.
새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짹짹거릴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조금도 상상할 수 없었다.
새장은 그들의 우주였고 지나가며 기웃거리거나 새장을 툭툭치는 사람들은
가상 화면에 불과했다. 더구나 바깥 세상은 시멘트로 반죽한 성냥갑들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새들의 몸은 조금씩 굳어져 플라스틱이 되어가고 있었다.
발가락, 다리, 가슴^36^ 그리고 나중에는 눈동자까지^36^. 그들의 지저귐은 기차
바퀴가 레일에 부딪히는 쇳소리로 변해갔다.
45. 이슬의 의미
개미에게 한 방울의 이슬은 다이아몬드처럼 귀중하다. 개미에게
다이아몬드는 이슬만도 못하다. 만일 온 세상에 이슬이 불태워져 그 자리에
다이아몬드가 사리로 남는다면 개미는 극도로 절망하게 될 것이다.
개미는 한 방울의 이슬을 마치 한 동이의 물처럼 오랫동안 들이킨다. 그리고
또 한 방울을 가슴에 품고 가서 지쳐 있는 친구에게 먹인다. 인간만이 남을
돕는 선한 존재라는 말은 거짓이다.
주저앉을 듯 흔들거리는 이슬 표피 위에 이슬같이 스러질 세상것들이
비춰진다. 이슬같이 무상한 세상 위에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이슬들이
조롱조롱 맺혀 있다.
46. 전설이 된 풍경화
안개 뒤의 나무들은 안개 밑으로 가라앉고 안개는 텅 빈 화폭이 되었다.
안개 앞의 나무들은 안개 위로 걸어 올라갔다. 안개와 나무가 서로 엉키어
하늘로 증발되고 있었다. 모두가 마술에 걸린 듯 흐느적거리면서.
그 곳은 첩첩산중이 아니었다. 나는 찻길 옆에 서서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날이면 찻길은 독재자가 되어 숲을 통치한다. 그러나 비오고 안개끼는
날에는 느릿한 뱀이 된다. 안개는 매맞은 나무들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다.
깊은 계곡의 안개를 담은 동양화는 아주 오랜 옛날의 전설이 되어 8차선
도로 옆에 있는 미술관 벽 위에서 노곤히 졸고 있다.
47. 인간의 노래를 부르는 새
새들도 인간처럼 지껄이거나 울거나 노래한다. 동화책을 보면 심지어 웃는
새도 있다.
참새는 참새의 노래를, 뻐꾸기는 뻐꾸기의 노래를, 앵무새는 앵무새의 노래를
부른다. 만일 참새가 뻐꾸기의 노래를 부르거나 앵무새가 참새의 노래를
부른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까? 그러나 새들은 정말로 외국어를 말하는
인간처럼 다른 새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새의 노래는 본능이 아니라 교육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격리시켜서 사람 손으로 키운 피리새는 인간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른다.
인간의 노래밖에 부를 수 없는 피리새 수컷은 암컷을 유혹할 때에도 그 노래를
부른다. 수컷에게서 인간의 노래를 들은 암컷의 기분은 어땠을까?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들은 듯이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열적인 연가에 대해
암컷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을 때 수컷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우리의 삶에서도 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색다른 사고를 하면서 이방인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데 혼자서 아니라거나,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 혼자서 그렇다고 해야 할 때 그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고독할까? 사랑의 표시로 꽃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은 공격이나 모욕의 표시로
오해하고 따귀를 때린다면 그의 기분은 어떨까?
48. 음악의 힘
베토벤의 협주곡을 두어 시간 듣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 서 있던
나무들 속에서 복숭아 냄새가 짙게 몰려왔다. 마치 어둠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과일인 듯했다.
귓속으로 들어간 감동적인 음악이 후각까지 혼동시켰던가, 음악회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무들은 연초록빛 외투 속에서 떨고 있었는데 베토벤이
연주되는 동안에 푸른 잎사귀를 모두 과일로 탈바꿈시켰다. 나는 뼈대만
앙상한 쟈코메티의 조각품이었는데 베토벤을 듣는 동안 살찌고 깃털이
수북하게 돋아나서 맑고 순진한 새가 되어 있었다.
그 새는 나무 위에서 밤새도록 과일을 파먹었다.
49. 인간의 조건
부슬비 오는 지루한 저녁 옥수수밭 사이를 걸어가고 있는데 번뜩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자유롭게 꽃가루를
주고받는 옥수수는 얼마나 속이 편할까. 맘에 드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한판
힘겨루기 싸움으로 깨끗이 승부를 결정내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와는 반대로 인간은 얼마나 복잡한 선택 과정을 거쳐야 하며 얼마나
극심한 고뇌를 거쳐야만 하는가. 사랑은 끈질긴 환상을 만들어 우리 앞에
어른거리게 만들고 밤낮으로 꿈꾸게 한다. 환상과 꿈은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고, 소유욕과 충동은 덧없는 행동들을 저지르게 한다. 그리고 대개의
사랑은 좌절을 겪는다. 괴로움과 번민 그리고 욕망의 나날은 끝없이 지속되고
악순환을 거듭한다. 사랑을 통해서 신중하게 이루어진 선택 또한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움과 복잡함을 견뎌내는 것을 전체조건으로
한다. 그런 인내 과정이 어떤 좋은 결실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것은
인간됨의 조건이기 때문에 불가피할 따름이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높은 탑위를 걷는 것과 같다. 그것은 높고 고귀한 대신에 단순하지
않으며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50. 노란새
파란 숲속에서 노란 주머니가 터지더니
노란새가 튀어나와
먹구름 속으로 날아갔다.
노랗게 물든 구름이 무너져내렸다.
노란비가 내렸다.
51. 돌아오지 않는 새
그해 여름 물총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카시아꽃이 개울 바닥에 흰눈처럼 쌓일 무렵이면 물살을 파랗게 물들이고
그 짜릿한 외침으로 꽃잎을 떨게 하던 물총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논바닥을 파헤치고 새로 만든 낚시터와 그 안에서 버글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물총새는 기겁을 했다. 물총새는 너무도 놀라서 하늘로 날아 도망치지 못하고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지금도 물총새는 땅속 어디에선가 지중해를 향해
굴을 파고 있을 것이다.
52. 기억속으로
나의 허름한 꿈의 껍질을 뚫고 개미떼가 몰려들어왔다. 나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의 거인이었다. 개미들은 내 몸뚱이 위를 기어다니며
나의 여섯번째 감각인 기억 감각을 조각조각 분해하고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또다시 층층의 꿈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높이 올라갈수록
하늘은 창백한 백지였다. 최면 같은 꿈 바깥으로 나온 나는 아직도 버글거리는
개미들을 떼내어 멀리 집어던졌다.
그들이 다시 몰려왔다. 그리고 나의 기억들도 함께 떠밀려왔다. 기억의 절벽
아래로 힘껏 던져버렸던 그런 기억들이^5,5,5^.
꿈을 부숴뜨리고 일어난 나는 청소를 했다. 개미들을 쓸어 담아서 창밖으로
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반수 이상은 공중에 몸을 던져 다시 방바닥 위로
떨어지고 나머지는 창틈으로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개미들의 몸이 방바닥에
부딪칠 때 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나는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3. 현대잠 자는 개구리
어느 도시의 마천루 아래 땅속 깊은 곳에 개구리 한 마리가 현대잠을 자고
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잠이 겨울잠이라면 현대를 참고 통과하기 위한
잠은 현대잠이다. 빌딩이 들어선 것도 개구리가 현대잠을 잔 것도 벌써 육십
년이나 되었다. 개구리는 빌딩과 자동차 그리고 도로가 녹아내려 용암이 되고
그 자리에 축축한 습지가 생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홀로 자는 잠이
때로 외롭고 지루하지만 개구리는 최소한 이백 년은 참기로 했다.
54. 그대를 설계하라.
그대 영혼의 집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모래로 또는 물거품으로 또는 통나무로 지을 것인가?
다락방을 얹을 것인가, 아니면 지하실을 만들 것인가?
그대 집의 재료와 구조에 따라 새들이 몰려오거나 또는 온갖 벌레들이
들어와 거주할 것이다. 그대를 설계하라. 그때 그대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라.
55. 우주의 교향곡
어떤 잎새는 허공을 두들겨서 보랏빛 음향을 내고, 어떤 잎새는 하프소리를
울린다. 어떤 하늘은 우렁찬 테너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어떤 하늘은 구걸하는
고아 소년처럼 힘이 빠져있다.
그대는 우주의 교향곡을 듣고 사는가?
맑은 바람 뒤를 덩달아서 쫓아가는 모래알들의 장난치는 소리, 달맞이꽃
향기를 들이마시는 벌레들의 침묵, 흙 속에 처박힌 양말 한 짝의 안간힘^5,5,5^.
그대 곁에는 항상 교향곡이 울리고 있다. 그대는 언제나 우주의 연주회에
초대받은 손님이다.
때로 그대의 내면을 비우고 그 속을 우주의 음악으로 가득 채우라. 그리고
그대 자신이 스스로 바람이 되어보고, 꽃이 되어보고, 모래가 되어보라.
56. 지루한 것들의 의미
벼, 보리 밀, 조, 수수, 옥수수^5,5,5^. 이것들은 어떤 식물보다도 잡초의
모양과 흡사하다. 그것들은 밋밋하고 개성도 없으며, 조금도 탐나게 하거나
유혹적인 몸짓을 하고 있지 않다. 열매 역시 전혀 달콤하거나 상큼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연의 젖줄이다. 그렇게 소중하고 필수적인 것들이 왜 그런 밋밋한
모양과 싱거운 맛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들이 장미처럼 화려하다면 사람들이 저마다 꺾어다가 화병에 꽂아놓을
것이고, 사과처럼 매혹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면 단 한번 배불리 먹은 뒤에
그렇게 자주 찾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물리지 않고 매일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을 수 있도록 그것들은
극도로 무개성적인 맛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들을 장식용과 같은 다른
용도로 쓰지 않도록 극도로 수수한 모양과 색깔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57. 지워지지 않는 흔적
풀잎이 놓였던 자리에는 풀내음이, 생선이 놓였던 자리에는 비린내가 그리고
백합꽃이 놓였던 자리에는 꽃향기가 남아 있다. 음악이 흐르던 자리에는
신선한 파동이 남아 있고, 누군가 앉아 있던 카페의 빈 자리에는 그 사람의
체취가 남아 있다.
우리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비록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의 발자국 위에는 나를 찾아낼 수 있는 무수한 암호들이 남아
있다. 나를 잘 아는 개미들이 있다면 내가 남긴 발자국 위에 새까맣게 몰려들
것이다. 마치 그것이 빵 접시가 놓였던 달콤한 장소라도 되는 듯이. 사람들은
개미를 검사해 본다. 그리고 그 개미가 나를 좋아하는 개미임을 밝혀낸다.
사람들은 내가 거기에 다녀갔음을 확신하게 된다.
58. 길
저의 본능은 질주입니다. 저는 막히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막혀 있는 곳은
제가 스스로 원해서 막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제 마음속에서 산 밑이든 지붕
밑이든 그 어느 곳에나 벽이 허물어져 있습니다.
그 누구이든간에 자주 오가기만 하면 제가 저절로 생겨나고 자라납니다.
개미들이 지나가던 실같이 가느다란 금이 족제비가 들락거리는 틈바구니로
넓혀지고, 그것이 다시 노루가 달려가는 평행한 길이 됩니다.
사람들은 뚫린 길만 길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이 세상 전체를 길뭉치라고
부른답니다.
59. 폭력 곡예사
맨주먹으로 남의 가슴을 힘껏 구타하는 것과 귀를 물어뜯는 것 사이에는
양적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질적 차이는 없다. 그런데 흔히 전자는 스포츠가
될 수 있지만 후자는 야만 그 자체라고들 말한다.
열이 받쳐서 남을 때리는 것과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또는 이겨서 돈을 벌기 위해서 때리는 것 사이에는 역시 아무런 질적
차이도 없다.
그런데 흔히 전자는 폭력 범죄이고 후자는 스포츠라고들 말한다.
사람을 때려 눕히는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이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었다면 그렇게까지 경악할 필요는 없다. 직업적 폭력가 또는 폭력
곡예사라면 귀가 아니라 목이라도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이다.
옛 로마에서는 노예들의 살이 경기가 있었고, 스페인에는 아직도 잔인한
투우 경기가 있다. 여가를 채워주는 수많은 놀이가 발달된 현대에도 무수한
대중들이 무대 위의 폭력쇼를 의도적으로 즐기고 있다. 평화의 꿈은 요원하다.
인간의 영혼 속에 아직도 야수가 으르렁대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권투선수 타이슨에게 돼지 귀 한 박스가 소포로
전달되었다고 한다.
60. 개발에 대하여
개발은 개발처럼 이곳 저곳 가리지 않고 마구 헤집고 다닌다.
아버지는 개발을 좋아했다. 개고기 가운데 특히 개발을 즐겨들었다.
아버지는 개발을 좋아했다. 개발은 아버지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는
논밭을 흙으로 메워 공장주에게 팔아 넘겼던 것이다.
아버지의 집은 누울 자리 빼고는 모두 금덩이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금을
가지고 생을 즐길 사이도 없이 아버지는 위기에 빠졌다. 집 둘레의 공장에서
내뿜는 유독가스로 숨이 막히고, 지하수가 오염되어 마실 물이 없으며, 곡식을
재배할 깨끗한 흙이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시장에 가서 금을 팔아서 산소와 물과 흙을 사들고 왔다.
그러기를 삼 년, 금이 거의 다 없어지자 아버지는 집을 버리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금으로 땅을 사서 옛날처럼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는 이제 이 개발도 저 개발도 다 싫어한다.
61. 손바닥 주머니
그 도시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쓰레기통이 없었다. 쓰레기통은
은행에만 있었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뚜껑이 열렸다.
그 도시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를 손에 쥐고 다녔다. 쓰레기를 길바닥에
버리면 아파트 값에 상당하는 벌금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은행 쓰레기통을
이용할 권리는 도시 거주 3 년 이후에 비로소 주어졌다.
쓰레기를 놓칠세라 두 주먹을 꼭 쥐고 다니던 사람들의 손바닥에
살갗주머니가 돋아나게 되었다. 그것은 기적적인 진화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손바닥에 생긴 주머니에다가 쓰레기를 집어넣고 다녔다.
주머니쥐가 새끼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듯이.
62. 아버지의 자동차
아버지의 자동차는 고분에서 출토된 녹슨 자동차였다. 이천오백 년 전에도
자동차가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 자동차는 기름도 필요없고 그냥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씩씩거리며 달렸다.
비록 녹이 슬었지만 속은 멀쩡해서 아주 잘 달렸고 심지어 어떤 때에는
하늘을 날기도 했다.
주차도 간편했다. 둘둘 말아서 끈으로 묶어서 가로수에 매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차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누가 다쳐서 피를
흘릴 때와 같은 긴급시에는 꼼짝도 안하고 달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자동차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깊은 밤에 활력이 가장 넘쳤다.
어느 날 새벽 세시에 나는 아무도 타지 않은 자동차가 커다란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혼자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63. 연기로 지은 집
어느 날 아침 구름 덩이를 던지면서 구름 싸움을 하며 노는 꿈을 한참
꾸다가 깨어보니 우리집이 연기로 변해 있었다. 유리창도 벽도 식탁, 장롱,
라디오, TV^5,5,5^ 모두 몽실몽실한 연기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쉴새없이
뿜어대던 담배 연기의 물리 화학적 승리였다.
연기로 된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식사 때면 연기로 된 식탁 위에 밥그릇,
국그릇이 둥둥 떠다녔다. 유리창이나 벽 대신 들어찬 연기는 냉방 온방 구실을
너무도 잘해냈다. 연기는 여름날에는 바깥에서 몰려오는 무더운 공기를
떠밀어냈고, 겨울에는 찬공기와 북풍을 억센 힘으로 물리쳤다.
우리 형제는 모두 세 살 때부터 애연가가 되었다. 우리집 아침식사는
공동으로 담배 피우기였다. 우리는 연기로 된 식탁에 빙 둘러앉아 여러 가지
담배를 섞어 피웠다. 연기로 된 우리집은 담배를 충실히 피워야만 무너지지
않았다.
'담배는 건강을 해친다'고 흔히 말하는데 아버지는 거기에 반대되는 말을
했다.
"너희들, 쇠고기 저장법이 뭔지 아니? 그것은 독한 연기를 쐬는 훈연법이야.
마찬가지로 육질로 된 인간도 오랜 살려면 연기를 충분히 들이켜야돼."
동생이 갓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동생 곁에서 사흘 동안 끊임없이 담배
연기를 뿜었다.
어젯밤에는 대소동이 있었다. 아버지가 먹구름 같은 연기로 변해서 벽 속의
연기와 뒤섞여버린 것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렸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 강렬한 태양이 비추자 검은 연기로 된 벽과 푸른 연기로 된
아버지가 비로소 분리되었다.
64. 만두 빚는 아버지
1999 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구 M이 나를 초대했다. 그녀의 집은 만년설
덮인 높은 산 정상에 놓여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밀가루를 두텁게 깔아놓아서
마치 폭설이 내린 듯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만두로 된 인형들이 걸려
있었다.
산타할아버지, 눈사람, 천사^5,5,5^. 모두 만두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창가^5,5,5^에 앉아 하염없이 만두를 빚고 있었다.
만두를 한참 배불리 먹고 났을 때 친구가 말했다.
"이 식탁과 의자도 우리 아버지가 빚은 만두야. 우리 아버지의 꿈은 우리
별장을 거대한 만두로 빚는 거야. 그것은 아마도 일 년은 족히 걸리겠지.
다음해 크리스마스에 오면 너도 그 별장을 볼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자다
말고도 만두를 빚어. 그리고 만두를 만들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밀가루를
여기저기에 쉭쉭 뿌리면서 긴장을 풀어. 저 바깥에 쌓인 만년설은 진짜 눈이
아니라 아버지가 뿌린 밀가루야."
65. 어느 외계인 이야기
이 우주의 모든 별에는 최소한 한 번씩은 대홍수가 찾아온다. 물 위에 뜬
생명들이 어떤 별에서는 큰 구멍으로 흡수되었지만, 어떤 별에서는 강한 빛은
타고 별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한 외계인이 지구의 대서양 한가운데 떨어져 생존하게 되었다. 특이물질로
된 그는 바다에 가라앉지 않았고 투명인간이었기 때문에 지구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뭇잎을 먹고 살았다. 그의 수명은 지구인에 비하면 거의 무제한에
가까웠다.
그는 경치 좋은 곳으로만 떠돌아다녔다. 그는 지구인과는 대화할 수
없었지만 어떤 동물을 막론하고 자유자재로 대화할 수 있었다.
짐승 소리가 들릴 때 가끔씩 똑같은 그 뒤를 이어서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외계인의 음성이라고 한다.
66. 장님과 다리병신의 우화
봄눈이 녹아서 질퍽거리는 들길을 따라서 한나절을 걸어온 뒤 나는 지친
몸으로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 때 불현듯 서로 업히고 업은 두
사람의 모습이 신화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둘 다 똑같이 회색옷을 입고 키가
몹시 작고 머리를 빡빡 깎은 늙은이였다. 업고 있는 노인은 장님이었고 업힌
노인은 다리병신이었다. 그들은 빗속을 우산도 없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눈이 멀지만 거센 충동과 눈이 밝지만
다리를 못 쓰는 이성과의 결합이다. 아무리 이성의 눈이 밝아도 힘이 강하며
제멋대로 날뛰는 충동을 제어할 수는 없다. 이성이 충동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저쪽은 절벽이나 가지 말라고 해도 충동은 가고 싶은 대로 달려가며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힘이 약하고 다리병신인 이성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삶의 중심을 관통하는 동맥은 희노애락의 감정이며 의지와 욕구의 만족,
불만족이다. 우리는 언제나 기쁨과 쾌락과 만족을 소망하며 추구한다. 무엇을
했으며 그것을 얼마만큼 잘했는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가지며 얼마만큼 만족하는가는 더욱더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며 그것을 얼마만큼 잘했는가에 대한 결정과 판단은 지성의
몫이며, 만족과 불만족, 쾌와 불쾌의 느낌은 감정과 의지의 몫이다. 결국
지성은 감정과 의지의 쾌와 만족을 위한 도구이며 부속기관이다. 물론 만족이
무조건 최고 가치일 수는 없으며, 나쁜 일과 가치가 낮은 것의 성취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좋고 나쁨과 가치의 높고 낮음의 최종
판단과 좋은 것, 가치가 높은 것에로의 인도 또한 지성의 임무이다. 그렇다고
해도 삶의 주체가 감정과 의지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날 나는 너무도 신기한 듯이 두 늙은이를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쇼펜하우어가 자기 주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내게 보낸
심부름꾼들이었다.
67. 암염에 대한 추억
땅속 깊이 들어가보았다. 탄생 이전의 암흑보다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수레를
타고 빙빙 돌아갔고 영혼과 육체가 제각기 튕겨나가 분리될 듯한 아주 높다란
미끄럼틀도 탔다. 지하 호수에 검은 배가 떠 있었다. 죄었던 나사가 풀리자
배가 건너편으로 스르르 굴러가듯이 떠나갔다.
그곳은 오래 전에 폐광된 암염 광산이었다. 광부들은 매일같이 지옥의
사자처럼 광선 속에서 부산을 떨었다. 암염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몸을
비틀어 짜서 추출한 소금이었다. 하루종일 소금을 뜯어내고 캐내고 건져낸 뒤
그들은 소금에 절여진 채로 집에 돌아가 음식은 아주 싱겁게 먹었다. 그들의
몸은 죽은 뒤에도 이집트의 미이라처럼 절대로 썩지 않았다.
기념품으로 산 암염 조각에서는 화끈하게 짠맛이 아니라 광부들의
겨드랑이에서 줄줄 흐르던 땀처럼 찝찔한 맛이 났다.
광산 근처의 호수에서 배를 탔다. 눈시린 태양 아래 떠 있는 호수는 먹물빛
아가리를 벌리고서 으르렁댔다. 그것은 지옥에서 산 채로 탈출한 나를 단번에
집어 삼킬 듯했다.
68. 청소부라는 악몽
그녀는 대야에 가득 담긴 그녀의 속옷을 빨라고 내게 지시했다. 영화에서는
귀부인의 몸을 씻겨주고 머리도 빗겨주는 하녀를 본 적이 있었으나 내가 그런
하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모욕감 때문에 목에 침이 넘어가지 않았다.
진공 청소기로 바닥이나 한 번 밀면 그만 인줄 알았는데 그녀가 시키는 일은
날이 갈수록 당황스러웠다.
화분에 물 주기, 화장품정리, 구두닦기^5,5,5^.
일을 끝마치고 지하철을 탔을 때 광고 속의 한 남자가 몹시 불쾌하게
다가왔다. 실물 크기와 거의 똑같은 크기의 그 남자가 마치 산 채로 벽속에
들어가서 몸을 처박고 목만 쏙 내민 듯했다. 머리가 돌 것만 같아서
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단코 청소부 아르바이트를 끝장냈다. 계속하다가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이며 비천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악취와 고온, 먼지를 참으며 일해야 하는 사람, 남의
머리와 손톱을 그리고 피부를 가꾸는 사람, 남의 가래와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사람, 몸파는 여자^5,5,5^.
다행히도 나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가끔씩 책이나 보며 글이나 쓴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도 남을 위한 봉사다. 그것은 남의 두뇌세포에 작용을
가하여 회로를 바꾸고 행동을 바꾸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남의 속옷을 빠는
일이나 남의 때를 미는 일보다도 훨씬 더 자질구레한 일인지도 모른다. 본래
직업의 귀천은 없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직업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위해서
항상 하고 있는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69. 올챙이의 꿈
개구리가 되기 싫은 올챙이가 한 마리 있었다. 그 올챙이는 따뜻한 물속이
너무나 쾌적했고 물을 떠나 뭍으로 뛰어다닐 생각만 해도 귀찮았다.
올챙이의 꿈은 개구리가 아니라 멋진 지느러미가 달린 잉어가 되는
것이었다. 올챙이는 혹시 다리가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다리가
나올 부분을 주둥이로 꼭꼭 누르기도 하고 돌에 부딪혀 상처를 내기도 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올챙이는 꼬박꼬박 졸다가 긴 꿈속에 빠졌다. 꿈속에서
올챙이는 날쌘 잉어가 되어 이 강 저 강으로 헤엄쳐 다녔다. 그것은
올챙이에게는 사흘밖에 안 걸린 꿈이었으나 깨어나 보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형제들은 모두 늙은 옴두꺼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그 올챙이를 다시
알아보지 못했다.
올챙이에게는 다리도 나오지 않았고 기다리던 지느러미도 나오지 않았다.
뚱뚱하게 살찐 늙은 올챙이는 고독에 지친 채로 언제까지나 논바닥에서 홀로
뒹굴어야 했다.
70. 소설 바꿔쓰기
서점에서 소설책을 고르고 있던 K씨는 손에 들고 있던 소설에서 새어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엿들었다. 그것은 두 여자가 다투는 소리였다.
"당신은 너무 시시해요. 나라면 당신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삶을 살
거^36^예요. 이제 그만 이 소설에서 퇴장해주세요. 내가 당신 역을 맡을
거^36^예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36^예요. 나는 엄연히 작가에게 선택받은 인물이에요.
작가의 허락도 없이 당신이 이 소설에 들어올 수는 없다구요."
"내가 들어가서 소설을 바꾸면 작가도 흥미를 느끼고 기뻐 할 거^36^예요."
"어쨌든 나는 나갈 수 없어요. 나가서 살 길도 막막하구요."
"나가세요. 안 나가면 강제로라도 밖으로 밀어낼 거^36^예요."
K씨가 듣고 있던 소설의 겉표지가 찢어지면서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K씨는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예의가 없어요. 소설이 재미가 없다고 소설 속으로
마구 비집고 들어와서 등장인물을 밖으로 쫓겨내는 거^36^예요. 이제 바깥
세상에는 나처럼 소설에서 쫓겨난 인물들이 너무도 많다는군요. 그리고 거꾸로
바깥 세상에는 소설로 들어가서 실종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구요. 이러다가는
소설과 현실이 뒤바뀔 위험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요."
요즘 세상에는 너무도 기가 막힌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웬만한
소설은 독자들의 흥미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죠.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소설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소설화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스스로
소설을 쓰기에는 역부족이니까 사람들이 소설 속으로 쳐들어가서 등장인물을
밖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빼앗는 거죠."
K씨는 소설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거기에는 여기저기 빨간 줄이 쳐지고
여백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방금 나하고 싸운 그녀가 소설을 바꿔놓은 거^36^예요. 원래 소설의
앞부분에서 나는 결혼을 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겪다가 이혼을 하게 되죠.
그런데 그녀는 그것이 지루하다는 거^36^예요. 그녀는 주인공이 앞부분에서
결혼할 것이 아니라 그녀처럼 동거하기를 원해요. 그리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다가 끝에 가서는 별거를 하고 가끔씩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바뀌기를 그녀는 원해요."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에 작가에게 가야겠다고 하면서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71. 자족한 오리
통통하게 살찐 오리 한 마리가 오늘도 그 집 앞에 조각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 오리는 그 집으로 이주해오던 날부터 한 자리에 서서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그 오리는 집을 지키는 것도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마법의 동그라미 안에 물과 모이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오리가 서 있었다.
오리는 동그라미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고개조차도 다른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배가 잔뜩 부른 오리는 움직일 필요를 조금도 못 느꼈던 것이다.
오리의 일기는 매일같이 똑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나는 오늘 실컷 먹었다.'
오리의 좌우명은 언제나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였다.
오리에게는 배부른 것이 곧 삶의 절정이었다. 혼자 그렇게 한자리에 한 달을
서 있어도 오리에게는 아무런 부족한 것도 없었고 지루함도 고독감도 없었다.
저렇게 쉽게 자족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삶도 평안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식량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만족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인간들도 배만 부르면 곧바로 만족해서 모두들 아무 것도 더 이상
바라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72. 무한 편리주의
K씨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잠자는 일과 먹는
일이었다. 초저녁까지 실컷 자고 난 뒤 배가 출출해지면 K씨는 자동판매기의
버튼을 눌렀다.
자판기에서 나온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도 귀찮아진 K씨는
숟가락질하는 로봇을 샀다. 로봇에게 숟가락질을 시키려면 버튼을 눌러야 했다.
버튼 누르기가 귀찮아진 K씨는 버튼 누르는 로봇을 샀다. 그 로봇에는 자동
감지기가 달려 있어서 누가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으면 얼른 숟가락질 전용
로봇의 옆구리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어느 날 K씨는 잠자는 일마저도 귀찮아졌다. 그는 사람 대신 잠을 자주는
로봇을 샀다. 그 로봇은 잠을 잘 때 K씨의 영혼을 뽑아 가졌다. 로봇이 K씨
대신 잠을 잘 때 K씨는 영혼 없는 로봇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잠자는 로봇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로봇은 잠자는 일이 너무도
좋아서 영원한 잠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로봇이 된 K씨는 잠자는 로봇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로봇 옆에서 로봇을
수호하는 로봇이 되어버렸다.
73. 통나무 자동차
통나무 자동차는 통나무로 만든 자동차다. 몸통도 바퀴도 그리고 두 개의
눈알까지도 모두 통나무로 깎은 것이다.
통나무 자동차는 대기 중의 배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며 뒷 꽁무니로는
신선한 산소를 뿜어낸다. 통나무 자동차의 간식은 길 위에 나뒹구는 쓰레기다.
자동차가 먹은 쓰레기는 소화과정을 거쳐 비료로 합성되어 배설된다.
통나무 자동차의 수명은 반영구적이며 안전도도 매우 높다. 통나무 자동차가
다른 차와 충돌하면 자동적으로 나사가 풀어져 조각조각으로 분해되며 그 안에
탄 사람들은 순식간에 스펀지 케이스에 담겨 안전한 곳에 내던져진다.
통나무 자동차는 자동적으로 소형 사이즈로 접을 수 있어서 아무 곳에나
간단히 주차할 수 있다. 특히 도로가 극심한 체증을 이루면 자동차를 간단히
접어서 허리춤에 끼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통나무 자동차는 돈을 주고는 살 수 없으며, 나무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증명서 한 통만 가져가면 누구든지 무료로 얻을 수 있다.
74. 나무 카페
요즘에는 도시 속을 걷는 것이 자주 두렵습니다. 그 어느 집도 마치 내가 한
마리 벌레가 된 듯이 자연스럽게 놀러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한번 들러서 한 바퀴 빙 돌다가 나와도 무방한 그런
집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주인도 반가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들은 모두 커다란 지갑이고 나는 걸어 다니는 작은 지갑입니다. 나는
하루종일 길 위에 널린 커다란 지갑들 속에 돈을 털어넣으며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지갑들이 우체통이라면 내가 넣은 돈이 어디론가 우송되고 얼마
뒤에 답장이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답장은 내가 넣은 돈 보다 액수가 더
큰 돈이지요. 아니면 내가 넣은 돈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나는 낯선 도시를 배회하다가 풀잎으로 엮은 작은 간판을
보았습니다. '나무 카페. 내 집처럼 들어오세요' 그 집 천장은 하늘이었고 그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은 모두 나뭇잎과 열매였습니다. 손님들은 푸른
과즙을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을 일없이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다닐 수 있었고, 지붕 꼭대기에 걸터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카페를 나올 때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찾아와서 고맙다는
표시로 꽃 한 송이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푸른 과즙을 흠뻑 들이킨 나는
생기와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그 뒤로 나는 마치 자갈밭에서 노는 소녀처럼, 그
많은 신비스런 언어들을 이리저리 옮겨놓으면서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거리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나무 카페는 자취없이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습니다. 거리에는 그
푸른 과즙의 향기가 가득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75. 거미줄로 만든 옷
태양도 검은 숯으로 변하고, 뽕나무도 누에도 모두 다 멸종한 어느 시대에
거미들이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거미종들이 늘어나 다채로워지고 점점 더
강한 종으로 진화해갔다. 거미줄은 분홍 거미줄, 파란 거미줄을 치기도 하고
거미줄을 원통이나 공 모양 또는 심지어 피라미드형으로 칠 수도 있었다.
살아 남은 인간들은 거미들을 길러서 거미줄로 실을 짜고 옷을 해입었다.
거미 사육은 아주 간단했다. 비인 창고에 거미알을 죽 깔아놓으면 일 주일
안에 창고는 빽빽한 거미줄로 가득 차게 된다.
거미줄로 만든 옷은 비단보다도 더 곱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좀도 쓸지 않고,
입고 있으면 파리, 모기같은 해충들이 덤벼들지 않았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남녀들은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 생을 즐기고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아껴주었다.
사람들은 거미를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살아 있는 거미를
브로치처럼 가슴에 붙이고 다녔다.
76. 매미가 시끄러운 까닭
도시 매미가 시끄러운 까닭은 도시인들이 너무도 시끄럽기 때문이다. 주위가
너무도 시끄러워서 매미들은 사랑의 고백을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지르며
해야만 한다. 게다가 도시인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들의 주식은 매미의
천적인 다람쥐, 들쥐이기 때문에 매미 숫자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자동차 소리가 귀아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므로 자동차가 아무리
많이 지나가도 사람들의 귀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매미 소리가 귀아프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므로 매미 울음은
낯설고도 듣기 거북하다.
매미 튀김을 즐겨먹는 한 남자가 저녁 뉴스에 나왔다.
"매미 소리는 비행기 뜨는 소리보다 더 시끄럽습니다. 매미 소리를 들으면
골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매미떼가 몰려 앉은 나무 옆에 서 있던 그의 목소리는 자동차 소음에 가려
겨우 들릴 듯 말 듯했다.
77. 의식의 바다
삶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우리의 의식을 거꾸로 선 원뿔 모형으로 설명했다.
나는 파란 옷을 본다. ^6,36^파란 옷에 대한 지각은 원뿔 끝에서 일어난다.
갑자기 파란 지중해가 생각났다^36,6^ 파란 지중해는 원뿔 어디에선가부터
원뿔 끝으로 내려온 기억이다.
나는 원뿔을 뒤집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다라고 부른다. 뾰족한 끝은 바다에
떠 있는 배다.
바다 밑은 층층의 깊이로 되어 있고, 무수한 기억들이 물고기가 되어
떠다닌다. 바다 밑 어딘가에는 어두운 동굴이 있고 그 속에 사는 물고기는
절대로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는다. 그 암초 같은 동굴을 나는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순간순간 나의 의식은 배를 바라본다. 반대로 내가 바라보는 것은
곧바로 배로 변한다. 나는 배를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배척하거나 끌어당긴다,
그 앞에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도망친다.
절망, 망각, 무관심, 거부감^5,5,5^ 이라는 폭풍이 배를 파선시키면 배는
물고기가 된다. 배가 얼마만큼 처절하게 파선되었는가에 따라 배는 얕은 곳의
또는 깊은 곳의 물고기가 되며 암초에 갇혀 사는 유령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
불현듯 물 밑 물고기가 용솟음쳐 올라오면 그것은 배가 된다.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 같은 허상이다. 한때 그것이 배였기에 물고기가 되었고, 물고기이기에
배로 떠오를 수도 있다. 배와 물고기의 끝없는 순환관계 그것이 곧 의식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1859^36,36^1941)
프랑스 철학자,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내면적 시간(순수 지속)을 구분했고,
생물의 진화가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 생물체 내의 자발적 변화(생애 독자적
비약)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열린 도덕과 닫힌 도덕, 동적 종교와 정적
종교를 구분하였다.
78. 나무집에 사는 새
작은 새는 큰 나무에 뚫린 구멍 속에서 살았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구멍
속은 아늑했고, 그 속에 들어 앉아 있으면 빗소리 바람소리가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울려왔습니다. 들풀 속을 헤치며 놀다가 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반겨주었습니다. 그 새가 잠이 들면 나무는 새의 꿈
속으로 들어가 그 속을 맑은 물과 꽃잎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 새는 날이
갈수록 아주 지혜롭고 선하게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지혜롭고 선한 그 새는 무엇을 알았고, 무슨 말을 했으며, 무슨
행동을 했을까요?
그것은 말해서도 안 되며, 말할 수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군가 그 새를 알아보고 잡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존재이며, 우리네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서
사는 그 새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79. 톰과 제리
만화영화 속의 톰은 덩치 큰 고양이이고 제리는 쥐콩만한 생쥐였다. 그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싸웠다. 승자는 언제나 작고 힘은 약하나 영리한 제리였다.
그들은 상대방을 대포 속에 넣어 공중으로 날려버리기도 하고 깊은 우물
속에 빠뜨리기도 했다. 뜨거운 불로 지지거나 펄펄 끊는 수프속에 집어넣는가
하면,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납작한 오징어로 만들기도 했고, 가시꼬챙이로
배를 꿰뚫어 빙빙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 세계의 물리학 법칙은 우리
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불에 새까맣게 그을려 걸레가 되거나
끊는 물에서 푹 고아진 동물들이 몸을 툴툴 털고 나면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비명 소리로 미루어볼 때, 꼬챙이로 배를 찔리는 것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그 고통은 작은 가시에 찔리는 고통에 불과했고,
망치로 두들겨맞는 것도 스폰지 공에 얻어맞는것에 불과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말로 잔인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심한 짓을
해도 그것은 단지 장난치며 골탕먹이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은 귀엽다. 그리고 선하다.
3부 그대가 내 곁에 없으면
80. 고독
지금까지 나는 고독을 병으로 알고 고독과 싸워왔습니다. 당신의 존재와
사랑이 고독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이제 나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독은 나의 살과 뼈이자 호흡이라는 것을,
고독하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한 고독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당신이 나의 고독을 제거해준다면 당신은 나의 존재 전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81. 나팔꽃 사랑
당신이 태양이라면 나는 나팔꽃입니다. 당신이 지평선 너머에서 걸어나오면
나는 나팔을 불며 환호합니다. 나는 온종일 분홍색 가루를 흩뿌리며 당신을
향해 적막한 나팔소리를 울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암흑을 켜놓고서 사라지면
나는 나팔을 접어두고 찬바닥에 쓰러져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태양이라면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해바라기라고들 하지만
해바라기는 단지 당신을 따라서 고개만을 갸우뚱할 뿐입니다. 그리고
해바라기는 달이 뜨면 달바라기가 된답니다.
만일 당신이 요술거울에게 묻는다면, 당신의 존재와 함께 피고 지는
나팔꽃이 당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82. 당신의 존재는 사랑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랑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리고 당신이 여기에 없어도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창밖에 하얀 목덜미에 붉은 꼬리를 단 작은 새가 앉아 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새가 내 앞에 저렇게도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이 감동스럽습니다. 저
새처럼 당신도 그 자리에 존재한다면^5,5,5^ 생각하다가 문득 저 새가 바로
당신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사랑이 아니라면 나는 작은 새 하나 때문에 그렇게 촉촉한 전율에 잠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십시오.
83. 그대가 내 곁에 없으면
그대가 내 곁에 없으면 나는 컴컴한 물 밑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물살에
해체되어가는 진흙 몸뚱이를 끌어안고 나는 그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습니다. 아가미가 허물어져 숨쉴
수도 없고 부레가 터져서 점점 더 깊은 미궁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그대가 비록 환한 웃음 짓지는 않아도 푸른 나뭇잎 하나 손에 들고 내게로
온다면 나는 비로소 물 바깥으로 나와 자유롭게 숨쉬며 먼 하늘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내 곁에 있으면 나는 등 푸른 도마뱀이 되어 삶의
숲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갈 것입니다.
84. 기적
물 속에서 처음으로 두 눈을 떴을 때 눈을 뜨면 눈알이 빠지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을 힘을 다하여 눈을
떴습니다.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두 눈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나는 붕어처럼
뜬 눈으로 파란 물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커다란 실수를 하고 누를 끼친 뒤에,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면
예리한 가시에 찔릴 것만 같았습니다. 적막한 새벽이면 투명한 가시들이 바짝
다가왔고 나는 찌르르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기대를 버리고서 그리고 내가 나를 모두 버리고서 당신에게 다가갔습니다.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당신은 예전처럼 부드러운 깃털로 나를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85. 사랑은 음악입니다.
수많은 악기들의 움직임이 한데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이루듯이, 그
많은 감각들의 전율이 엮어져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지휘봉 하나가 보든 악기들의 진동을 지배하듯이 사랑의 느낌 하나가 모든
감각들의 촉수를 조율합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치 내가 당신과 무관한 존재인 듯이 홀로 먹고
자고 일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휘봉을 손에 쥐고 있고 나는 무심결에 그것에
맞춰서 그 많은 생의 악기들을 홀로 연주합니다.
86. 나는 당신을 알 수 없습니다.
소저너는 지구로 연락했습니다. 그 멀리 떨어진 화성의 온도가 마이너스 17
도이고 바람은 북서풍에서 불어온다고, 그리고 돌멩이 하나를 쪼개어 분석한
뒤에 약 30억 년 전에 그 별에 대홍수가 있었다고.
그렇게도 가까이에 있는 당신 마음속 사랑의 온도는 몇 도이고 의지의
바람은 어디로 향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말 한 마디를 들어본
뒤에 약 30분 전 당신의 영혼이 대홍수를 겪었다고 내게 알려줄 소저너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87. 독서에의 권유
그대는 나를 마치 다 읽은 책처럼 접어두고 계십니까? 열두 번은 훑어보아
이제는 지루해진 책처럼 나를 책꽂이 한 쪽 구석에 꽂아두고 그대를 매료시킬
새로운 책을 찾고 계십니까?
내 안에는 그대가 그어놓은 밑줄과 빨간 물음표들이 수없이 꿈틀거립니다.
그대는 두터운 내 영혼의 책을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그 속의 물음을 흡족하게
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책 밑을 들춰보십시오. 거기에는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아주 길다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 안에서 밝은 빛을 찾는 숙제를
그대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88. 사랑의 시작과 끝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섬이 있습니다. 하나의 섬은 '아무 것도 아닌 것' 이라
불리우며, 또 하나의 섬은 '특별한 것' 이라고 불리웁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어떤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섬에다 갖다놓거나
또는 특별한 것이라는 섬에다 갖다놓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을 이 섬에서
집어다가 저 섬으로 옮겨 놓기도 합니다. 이 세계는 상대적이므로 두 개의 섬
가운데 어느 하나를 대륙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누구를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섬에서 특별한 것이라는 섬으로 옮겨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나무나 바람 같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일호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특별한 것이라는
섬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섬으로 옮겨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전율케 하고 나에게 갖은 불안과 좌절을 가져다 주며 나를 송두리째 버리게
만들었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먼 들판에 있는 한 줌 흙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을 정말로 조금도 사랑하지 않을 때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떠오르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없어도 무방하며 심지어 있어도 무방한 것으로
됩니다.
89. 사랑이 필요한 까닭
봄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얼어 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무수한 들꽃처럼 내
생명 깊은 곳에서도 억제할 길 없는 갈망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뜨거운 열기에 휩싸인 우주는 이성을 흐릿하게
하고, 얇은 옷 속에서 달궈진 몸뚱이는 방향감각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하늘이 맑고 차가워지면 나도 맑은 영혼이 되어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을 깊이 동경하게 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혹독한 북풍은 나를 바깥에서 안으로 내몰고,
나는 안에 갇혀 홀로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고 고독을 두 배로 느끼기
때문이다. 차가운 영혼들끼리 마주 비벼 봄눈같이 녹고 싶기 때문이다.
90. 안개
안개가 나무의 텅 비인 속을 휘청거리도록 채워놓은 들녘을 내다보며, 나는
갈수록 알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그러나 언제나 부드러운 그대를 안개라고
부른다.
안개 끼지 않은 날에도 짙은 안개에 취하여 앞을 못 보는 나를 나는
나무라고 부른다.
나무가 안개의 가장 농후한, 선명한, 손만 뻗치면 곧바로 다가오는 내면임을
그대는 아는가.
91.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내려다보지도 않습니다. 구태여 메두사의 두 눈과
마주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길은 퇴화되어가는 축축한 외나무 다리.
가다가 길이 두 쪽으로 쪼개질 수도 있고 밀물에 떠밀려갈수도 있습니다.
뒤에서 또는 앞에서 누군가 걸어올 수도 있고, 누군가 난데없이 허공에서
뛰어들어 나를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길이 내게 집어던지는 무거운 불안들을 하나씩하나씩 지워 버리면서 텅 비인
속, 가벼운 영혼으로 오직 앞으로만 걸어나갑니다.
그 길의 끝은 그대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마치면서)
(나무 곁에 서 있는 그대에게)
(나뭇잎 하나) 자연이 깊어야 인간의 영혼도 깊어질 수 있다. 미술사책을
뒤적거리면서 종교화의 뒷배경에 나타난 오묘한 풍경화나 낭만주의 류의
회화들을 보게 되면 그렇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던 인간들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베토벤이나 쇼팽의 음악은 그런 깊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괴테나 실러의 문학 그리고 칸트나 헤겔의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자연은 어떤가. 깊고 깊은 심연처럼 우리를 아찔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전율케 하는 자연 풍경은 좀체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자연은
상처투성이이고 성한 곳 마저도 각종 오물 때문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인간들도 건강하고 풍요로운 영혼을 상실하고 천박하고 사악해지고
있다. 자연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다. 인간은 병들고 퇴화되고
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푸른 자연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자연의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인간성
회복은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상처받은 자연을 치유함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병든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풍성하고 심오한 자연을 목말라했고, 나무에 대한 글을
쓰면 쓸수록 오래된 커다란 나무에 대한 갈증을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나뭇잎 둘) 흔들거림, 휘청거림, 쓰러짐 속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어느 날,
아니 거기에서 도피하고자 마음먹을 정도로 기운을 되찾는 어느 날 창밖의
나무를 보게 되었다.
매일 바라보는 나무지만 그날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허공 속으로
예리한 바늘을 찔러대면서 태양빛을 흡수하는 소나무, 얼마나 자기 보존에
철저한가, 그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우아한 넓은 잎, 그것 역시 분명한
자기실현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보았다.
나의 고민은 나를 위한 행위인가, 아니면 아무 소득도 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하는 행위인가라고. 그리고 나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명상적인
글을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혀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나무 속에 담긴 신비가
무궁무진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나뭇잎 셋) 음악이나 회화같이 만들어진 세계는 우리를 몰입시키고
매혹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바깥의 커다란 현실세계를 잠시 잊고 어딘가에
몰입하는 것. 그것은 일종의 명상이다. 더군다나 만들어진 세계가 현실의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몽환적이고 우화적이라면 명상의 효과는 더욱더
커질것이다.
나무, 곤충 그리고 새 등을 소재로 한 나의 철학적 우화들은 비록 현실
문제에서 잉태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완성된 모습은 꿈과 상상과 이상적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현실과 몽상 사이를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물감처럼 태연스럽게 넘나들며 둘을 혼합하고 있다. 나의 바람은
독자들이 잠시 현실을 떠나 상상적 우화에 명상적으로 몰입하고 그 속에 담긴
삶과 실존적 자아의 깨달음을 체험하며, 신비스럽고 심오한 자연을 느끼는
한편, 구체적 현실의 단면 단면들이 갖는 모순을 함께 깨닫는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깊은 명상은 언어의 세계를 초월해 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순수 사유가 아니라 실천적 행위이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 향하는 것이다. 즉 글을 쓰는 것은 홀로 자기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서 쓰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속세적 대화를 하는
것이고, 속세적 대화를 보다 깊게 하기 위해 잠시 세상과 한발 거리를 두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글을 읽은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명상적 글을 거의 완성한 지금의
나는 또다시 여러 가지 욕심의 밀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며, 고독, 갈망,
사랑, 분노^5,5,5^의 솟는 물줄기를 받고 있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인간인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순수 명상은 있을 수 없다.
(나뭇잎 넷) 우리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또는
내버려진 존재이지만 이 세계에 자신을 스스로 내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나는 억압되지 않는 사랑을 원한다'라는 책에다 나의 감정을 내던졌고,
이 책에는 차가운 지성을 내던졌다. 전자의 거침없는 폭발과 열기를 이번에는
싸늘하게 식히고 꽁꽁 얼게 만들고 싶었다.
'최대한도로 이성적이 되어보자. 너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인간의 오른쪽 뇌는 감정을 담당하며 왼쪽 뇌는 이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나는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지나치게 한쪽 뇌만을
발달시키고 혹사시키지 않았나 생각해보면서, 이제는 자연의 선물인 이성도
최대한 활용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삶의 주요 흐름과 핵심은
감정과 의지이며, 이성은 그것의 관리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나뭇잎 다섯) 나에게 머무름 보다 떠남의 철학을 하게 만들었고, 나무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이끌어준 내 삶 속의 한 에피소드와 그 속의 주인공(항상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주하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싶다.
가을 그림자가 나무 끝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가을은 깊은 고독의 계절이다. 물론 고독은 계절따라 생성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계절마다 고독의 깊이와 율동 그리고
색깔이 변화할 따름이다.
봄의 고독은 희망적으로 나풀거리며
여름 고독은 충동적으로 발악하고
겨울 고독은 처절하게 까물거린다.
그러나 가을 고독은 깊고도 요지부동이다.
이 가을에 내가 고독하지 않다면 고독하지 않기 때문에 좋을 것이고,
고독하다면 깊은 우주적 존재와의 만남 때문에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