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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치 - 더블린 사건-구석의 노인

Casey,Riley 2023. 4. 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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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치 남작부인의 '더블린 사건-구석의 노인' 입니다



 오르치 남작부인(Baroness Orczy, 1865-1947)

 헝가리의 타르나에르슈에서 명문 집안의 딸로 태어났지만, 유럽 각지
를 전전한 끝에 런던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목사의 아들 몬태
규 바스투를 만나 결혼했다.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1901년
에 <로열 메거진>에 발표한 소설이 `구석의 노인'이 등장한 작품이다.
이듬해에 남편과 함께 발표한 <붉은 별꽃>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역사소설이지만, 추리소성 분야에서는 `구석의
노인'을 비롯하여, 런던 경찰청의 레이디 몰리, 변호사인 패트릭 멀리
건 같은 등장인물을 창조했다.
 수록 작품의 원래 제목은 `The Dublin mystery'이다.




 정체불명의 괴신사 - 구석의 노인

런던의 어느 찻집 한구석에 언제나 혼자 조용히 앉아서 우유를 홀짝홀
짝 마시는 이상한 노인이 있다. 이름도 태생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를 지칭하는 말이 `구석의 노인'이다.
 젊은 여기자 폴리 버튼에게서 범죄 소식을 듣기만 하고서 사건의 진
상을 파헤쳐낸다. 현장을 찾아가거나 증거를 조사하거나 용의자를 심
문하지도 않고, 사실상 찻집의 구석 자리에 앉은 채 수수께끼를 해결
한다. 이른바 안락의자형 탐정의 원조이다.
 이양기에 열중하면 호주머니에서 한 가닥 끈을 꺼내어 앙상한 손가락
으로 기묘한 매듭을 만들었다 풀었다 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리
고는 최후에 진상을 푸는 힌트만을 암시하고 사라진다.



 "위조 유언장 사건을 다룬 기사 말이오, 내가 지금껏 읽은 기사 중에
 가장 재미있습디다."
 그날 구석의 노인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노인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
채, 생각에 골몰한 얼굴로 수첩에 끼워진 작은 사진들을 골라내어 유
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폴리 버튼은 이제 곧 노인이 그 사진들 가운데
 몇 장을 내놓으면서 살펴보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
까, 폴리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게 브룩스 영감이오." 구석의 노인이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면서 말
했다. "사람들은 백만장자 브룩스라고 불렀지. 그리고 이건 브룩스의
두 아들인 퍼시벌과 머레이오. 기묘한 사건이었다고 생각지 않소? 나
개인적으로는 경찰이 오리무중에 빠진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오. 명
성 높은 경찰 조직에 그 가짜 유언장을 만든 사람만큼 영리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 나라에는 완전범죄란게 아마 없을 거요."
 "바로 그래서 제가 영감님께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영감님의 지혜를
무능한 경찰에 조금만 빌려주면 미궁에 빠진 사건의 태반은 간단히 해
결될 테니 말예요." 폴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있소." 노인은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마추어에 불
과해요. 내 흥미를 끄는 범죄는 체스 게임과 비슷한 범죄뿐이오. 복잡
한 체스말들이 모두 하나의 해답을 향해 나아가고, 상대한테 외통수로
장군을 부르는 범죄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오. 범죄자의 체스 상대는
곧 이 나라의 경찰력이지. 더블린 사건에서만은 그 영리한 경찰도 완
전히 외통으로 몰렸소."
 "맞아요."
 "대중도 마찬가지요. 한 도시에서 사실상 두 개의 완전범죄가 저질러
졌소. 패트릭 웨더드 변호사 살인사건과 백만장자 브룩스의 위조 유언
장 사건. 아일랜드에는 백만장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브룩스 영감
이 나름대로 유명인사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 사람의 사럽은 베
이컨 가공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소만, 그 사업체의 가치가 2백만 파
운드를 넘었다니까 말이오."

 브룩스 영감의 두 아들 가운데 작은아들 머레이는 고등교육을 받은
세련된 젊은이였고, 게다가 아버지한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
큼 귀여운 자식이었다. 더블린 사교계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미남에
다 춤도 잘 추고 말도 잘 타는 머레이는 아일랜드의 혼인 시장에서 가
장 가치있는 총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귀족 집안에서도 머레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정도였다.
 물론 경감의 재산은 대부분 큰아들인 퍼시벌이 물려받을 테고, 아마
사업체의 주식도 절반 이상이 그의 차지가 될 터였다. 퍼시벌 역시 잘
생긴 남자였다. 실은 동생보다 미남이라는 평판이었다. 재주도 많았다
.
하지만 동생과는 달리, 사교계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그가 메이지 포
테스큐한테 홀딱 빠져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또 그들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기정 사실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처녀들은
그와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한지 오래였다. 화려한 춤으로
런던과 더블린의 뮤직홀을 깜짝 놀라게 한 메이지 포테스큐는 대단한
매력을 갖고 있지만, 과거가 의심스러운 여자였다.
 하지만 퍼시벌 브룩스는 과연 메이지 포테스큐와 결혼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브룩스 영감은
성질이 깐깐한 사람이어서, 만약에ㅔ 퍼시벌이ㅣ `피츠윌리엄 플레이
스'―브룩스 집안의 그 웅장한 저택―에 메이지 같은 댄서를 아내로
데리고 들어왔다가는, 재산을 물려받기는 고사하고 집에서 당장 쫓겨
나고 말 것이었다.
 그런데, 브룩스 영감이 집에서 고작 몇 시간 동안 몸져누워 있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는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그
소식을 들은 더블린 사회는 깊은 슬픔과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에는 브룩스 영감이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
이었다. 어쨌든 브룩스 영감은 죽지 전날에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정정
한 모습으로 회사에 출근했는데, 2월 1일 밤에 갑자기 죽었으니 말이
다. 그 슬픈 소식을 독자에게 전한 건 2월 2일자 조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대한 아침에 훨씬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한 것도 같은 조간이었다.
그 놀라운 소식은 조용하고 평온한 더블린이 오랫동안 경험해본 적이
없는 소동의 전주곡이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갑부인 사람이 죽은 바로
그날 오후 다섯시에, 그 백만장자의 변호사인 패트릭 웨더드 씨가 피
츠윌리엄 저택으로 브룩스 영감을 찾아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닉스 공원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패트릭 웨더드는 누구 못지않은 저명인사였다. 그런 사람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비극적으로 죽었으니, 더블린 전체가 경악에 휩싸인 것
도 무리는 아니었다. 환갑 나이의 변호사는 뒷머리를 지팡이로 얻어맞
고 교살된 것이다. 경찰은 곧 피해자의 집을 방문하여 그가 그날 오후
두시에 집을 나갔으며, 외출할 때 시걔와 수첩, 그리고 돈도 가지고
나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시체에서는 어떤 물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검시 심문이 열렸고, 한 사람 또는 둘 이상의 범인이 저지른 고의적
인 살인이라는 평결이 내렸다.
 하지만 더블린 사회를 들끓게 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만장
자 브룩스가 그 신분에 걸맞게 웅장하고 호화롭게 묻힌 뒤, 영감의 큰
아들이자 유언장 집행자인 퍼시벌 브룩스가 부친의 유언장이 진짜임을
입증했다. 이 유언장에 따라 퍼시벌은 사업체와 동산을 합쳐 250만 파
운드에 달하는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퍼시벌이 화류계 스타들을
쫓아다니는 동안 아버지의 말벗으로 평생을 바친 작은아들 머레이―영
감은 머레이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자식이라고 공언
하곤 했다―는 고작 1년에 300파운드밖에 안 되는 생활비를 받았을 뿐
이고, 더블린에 있는 베이컨 가공공장의 주식은 전혀 물려받지 못했다
.
 피츠윌리엄 저택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게 분명했고, 대중과
더블린 사교계 여자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에 상관없이, 벌써부터 다음
사교 시즌에 젊은 머레이 브룩스를 퇴짜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궁
리하고 있었다. 머레이는 결혼 시장에서 하루 아침에 똥값으로 떨어져
버렸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이 모든 소동은 엄청난 스캔들로 대단
원의 막을 내리고, 이 스캐들은 그후 석 달 동안 더블린의 모든 응접
실에 풍부한 화젯거리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머레이 브룩스가 1891년에 작성된 부친의 유언
장을 제시하고 나서면서, 부친이 돌아가신 날 작성된 유언장은 비록
형이 진본임을 확인했지만 위조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과 관련하여 밝혀진 사실들은 모든 사람을 어리둥절하
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브룩스 영감의 친구들은
그 영감이 작은 아들에게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
 퍼시벌은 항상 영감의 골칫거리였다. 경마, 도박, 극장, 뮤직홀따위
는 브룩스 영감이 보기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아들
이 날마다 그런 죄악을 저질렀으니, 피츠윌리엄 저택에 사는 사람들은
아들의 노름이나 경마 빛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격렬한 말다춤
이 벌어지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브룩스 영감이 뮤직홀 스
타들에게 돈이 낭비되는 꼴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그 돈을 몽땅 자선단
체에 기부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사건에 대한 심리는 초가을에 열렸다. 그 사이에 퍼시벌 브룩스는
 노음이나 경마 친구들과 관계를 끊고, 피츠윌리엄 저택에 정착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경영에 나서서, 그때까지 쓸데없는 일에 쏟
았던 정력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아버지의 사업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
 머레이는 그 저택에서 나오기로 결정했다. 형과의 관계가 너무나 고
통스럽고 불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나온 머레이는 패트릭 웨더드
―살해당한 변호사―의 동업자였던 윌슨 허버트 씨의 가족과 함께 살
게 되었다. 허버트 가족은 조용하고 수수한 사람들로, 킬케니 가의 비
좁은 방으로 옮겨와 소박한 식사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 처지를 괴
로워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1년에 10만 파운드가 넘는 수입을 얻게 된 퍼시벌 브북스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너무 엄격하게 집행하여 동생에게 1년에 300파운드
밖에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된 비난을 받았다. 300파운드는 그야말
로 퍼시벌의 호화로운 저녁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 값에 불과
했다.
 그럴 즈음에 새로운 유언장이 발표되었고, 사람들은 귀추를 주목하며
그 결과를 흥미진진하게 기다렸다. 한편, 경찰은 처음에는 패트릭 웨
더드의 살인사건에 대해 법석을 떠는 것 같더니, 갑자기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대중의 마음에 불안을 불러 일으켰다. 마침
내 <아리리시 타임스>지에는 다음과 같은 놀랍고 수수께끼 같은 글이
발표되었다.

 우리는 패트릭 웨더드 변호사의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놀라운 발전이
예상되고 있다는 소식을 확실한 소식통한테서 입수했다. 사실 경찰은
놀랍고도 중요한 단서를 잡았으며,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유언장 검
인 법정에서 그 유명한 소송사건이 종결되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을 비밀로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더블린 사람들은 유명한 유언장 사건의 논쟁을 들으려고 법정으로 떼
지어 몰려갔다. 소송 당사자인 퍼시벌과 머레이 형제는 각각 담당 변
호사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태연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려고 애썼
다. 퍼시벌은 저명한 아일랜드 칙선 변호사인 헨리 그랜모어와 함께
나타났고, 머레이의 변호를 맡은 사람은 윌슨 허버트의 아들인 신진
변호사 월터 허버트였다.
 머레이가 검인을 요구한 유언장은, 브룩스 영감이 치명적인 중병에
걸렸을 때인 1891년에 작성된 것이었다. 고인의 담당 변호사였던 웨더
드 씨와 허버트 씨가 맡아서 보관해온 이 유언장에 따르면 동상은 두
아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되, 사업체는 2천 파운드의 연금을 퍼시벌에
게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머레이한테 완전히 물려주는 것으로 되어 있
었다.
 월터 허버트는 부친한테서 상당한 가르침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의
모두진술은 감탄할 정도였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1908년 2월 1일
자에 작성된 유언장은 고인이 된 브룩스 씨가 공개적으로 밝힌 의도와
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유언장은 결코 고인이 작성한 것으
로 볼 수 없다. 설령 고인이 문제의 그날 유언장을 새로 만들었다 해
도 그것은 퍼시벌 브룩스가 진본임을 입증한 그 유언장은 아니다. "우
리는 그 유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야 말 것입니다." 젊은 변호사는 이 두가지 점을 입증하기 위해 증인
을 몇 명 더 부르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헨리 그랜모어는 이렇게 주장했다. 브룩스 씨는 문제의 그날
분명히 유언장을 새로 만들었다. 퍼시벌이 진본임을 입증한 그 유언장
은 고인이 죽은 뒤에 베개 밑에서 발견되었으며, 본인은 물론 증인의
서명도 있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적법하기 때문에, 브룩스 씨의 과
거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죽은 그날 그 뜻을 바꾼게 분명하다. 그리
고 그는 이런 사실을 입증해줄 증인을 몇 명 부르겠다고 능숙하고 정
중하게 대꾸했다.
 이어서 공방전이 차분하고 진지하게 전개되었다. 양쪽이 부른 증인은
수없이 많았고, 그들의 증언은 비교적 중요한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하찮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존 오닐에게 집중되었다. 존 오닐
은 피츠윌리엄 저택의 집사로 30년 넘게 살아온 노인이었다.
 존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침식사를 끝낸 그릇들을 치우다가, 가까운 서재에서 주인마
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인마님은 몹시 화가나 계셨지
요! 저는 사기꾼이라느니, 망마니라느니, 거짓말쟁이라느니, 발레 댄
서니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고, 그밖에도 어떤 숙녀분에 대해 몇 마
디 험한 욕설을 하시는 것도 들었지만, 그걸 여기서 되풀이 하고 싶지
는 않습니다. 처음에 저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돌아가
신 가엾은 주인마님께서 큰 도련님과 말다툼하시는 것은 늘상 들어서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릇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
습니다. 하지만 제가 은그릇을 막 씻기 시작했을 때, 서재와 연결된
벨이 마구 울렸습니다. 저는 퍼시벌 도련님이 복도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요. `존! 빨리! 당장 사람을 보내서 멀리건 박사를 모셔오게!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네! 빨리 사람을 보내고, 자네는 올라와서 아버지
를 침대에 눕히는 걸 좀 도와주게."
 존은 아직도 슬픔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주인을 무척 따랐던 모양
이다.
 존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저는 마부 한 사람을 의사한테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인마님을 뵈러
 위층으로 올라갔지요. 주인마님은 서재 바닥에 누워서 퍼시벌 도련님
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계셨습니다. 도련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버님이 기절하셨다네. 멀리건 박사가 오기 전에 아버님을 침실로
옮겨야 겠으니, 나를 좀 도와주게.'
 도련님은 얼굴이 창백했고 몹시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지극히
당연했지요. 가엾은 주인마님을 침대에 눕힌 뒤, 저는 퍼시벌 도련님
한테 여쭈었습니다. 작은 도련님한테도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
고요. 그때 머레이 도련님은 회사에 출근해 있었지요. 하지만 큰 도련
님이 저한테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의사가 왔습니다. 저는 주인마님의
얼굴에서 분명히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제가 한 시간 뒤에 의
사를 배웅했을 때, 의사는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이 가까웠다는 걸 알았지요.
 주인마님은 2분쯤 뒤에 벨을 울려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당
장 사람을 보내서 웨더드 씨를 모셔오라고, 웨더드 씨가 올 수 없으면
허버트 씨라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주인마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요. `내가 살아있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존. 내 심장이 망
가졌어. 의사가 그러더군. 내 심장이 망가졌다고. 사내는 결혼해서 자
식을 낳으면 안 되네, 존. 그랬다가는 나처럼 심장이 망가지고 말 테
니까.' 저는 너무 심란해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웨더
드 씨에게 사람을 보냈고, 웨더드 씨는 그날 오후 세시쯤에 직접 오셨
지요.
 웨더드 씨는 한 시간쯤 주인마님과 함께 계시다가 저를 부르시더니,
주인마님께서 서류에 서명하실 때 저와 우리 하인들 가운데 또 한 사
람이 증인으로 입회해 주기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가장 고참 하
인인 팻 무니를 불렀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주인마님은 그 서류 밑에
이름을 쓰셨습니다. 그러자 뒈더드 씨가 저에게 펜을 주시면서, 증인
으로 내 이름을 쓰고 무니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일이 끝
난 뒤, 웨더드 씨는 우리한테 그만 가봐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늙은 집사는 이튿날 고인의 장례 준비를 하러 온 장의사 사람들이
베개 밑에서 서류를 발견했을 때, 주인의 방에 있었다고 말했다. 존
오닐은 그 서류가 전날 자기가 서명한 것과 동일한 것임을 알아보고,
그것을 퍼시벌한테 가져가서 직접 건네주었다.
 월터 허버트 변호사의 질문에 대해, 존은 장의사의 손에서 그 서류를
받아들어 곧장 퍼시벌의 방으로 가져갔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존은 이렇게 말했다.
 "퍼시벌 도련님은 혼자 계셨습니다. 저는 도련님한테 그 서류를 드렸
습니다. 도련님은 그 서류를 힐끔 보셨을 뿐이지만, 좀 놀라신 것 같
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않으셨고, 저는 곧 그 방을 나왔습니다
."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허버트 변호사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그 서류가 전날 당신이 보는 앞에서 브룩스 씨가 서명 한 것
과 동일한 서류임을 알아보았다고 하셨는데, 그게 동일한 서류라는 것
을 실제로 어떻게 알아보았나요?"
 "저한테는 똑같은 서류처럼 보였습니다." 존은 약간 애매하게 대답했
다.
 "그럼 내용을 보았습니까?"
 "아뇨, 내용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 전날에는 내용을 보았습니까?"
 "아뇨, 주인마님의 서명만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서류의 겉모양만 보고 그게 같은 서류라고 생각
했을 뿐이로군요?"
 "똑같은 서류처럼 보였습니다." 존은 완강하게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허버트 변호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브룩스 씨는 유언장
을 새로 작성하여,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베개 밑에 감추었는데, 그
유언장이 존 오닐을 통해 퍼시벌의 손에 들어갔다. 퍼시벌은 그 유언
장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이었으니
까. 그래서 퍼시벌은 유언장을 바꿔치웠다. 수백만 파운드에 이르는
부친의 재산을 자기한테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허버트 변호사의 주장은, 한때는 비록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이제 와
서는 아일랜드의 상류사회에서 저명하고 중요한 인물이 된 신사에 대
한 대담하고 무서운 고발이었다.
 하지만 존 오닐의 증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허버트 변호사는 세상
을 들끓게 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몰래 준비하고 있었다. 허버트 씨는
퍼시벌이 진본임을 입증하 유언장을 제시하면서, 존 오닐한테 그 서류
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존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분명히 장의사가 돌아가신 주인마님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그
유언장이고, 제가 곧장 퍼시벌 도련님의 방으로 가져간 그 유언장입니
다."
 그러자 허버트 변호사는 그 서류를 펼쳐서 증인 앞에 놓았다.
 "자, 오닐 씨. 그게 당신 서명인지 아닌지 말해 주시겠습니까?"
 존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죄송합니다" 하고는 안경을 꺼내서 신
중하게 낀 다음, 다시 한 번 그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제 서명과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군요." 그리고는 그 문제를 해명
하기 위해 이렇게 덧붙였다. "다시 말해서, 이건 제 서명처럼 보이지
만, 제 생각에 제 서명이 아닌 것 같습니다."

                - 계속 -

 구석의 노인은 끈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 똑똑한 변호사는 거의 일주일 동안 계속 주장하고 열변을 토하고
꼬치꼬치 따져물은 끝에, 처음부터 불가피했던 한 가지 결론, 즉 그
유언장을 가짜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오. 두 증인인 존 오닐과 팻
무늬가 그 서명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기 때문에 그 유언장은
조잡하고 어리석은 가짜 유언장이라는 거였소. 위조범의 필적 가운데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브룩스 영감의 서명뿐이었소.
 브룩스 영감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게 분명한 웨더드
변호사가 늘 품에 지니고 다니는 값비싼 최고급 종이에 정식 서식으로
그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어느 문방구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인쇄된
서식을 유언장 용지로 사용했다는 것은 정말 기묘한 사실이었고, 이것
은 위조범이 재빨리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게 분명했소."

 물론 퍼시벌은 이 심각한 고발을 단호히 부인했다. 그는 부친이 돌아
가신 다음날 아침에 집사가 서류를 가져왔다는 것, 그리고 그 서류를
훑어보았을 때 아버지의 유언장이라는 걸 알고 몹시 놀란 것은 사실이
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내
용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다만 자기가 놀란 이유는 아버지가 유
언장을 작성하는 일마저 웨더드 씨한테 맡겼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퍼시벌은 침착하고 분며안 목소리로 이렇게 결론지었다.
 "나는 서명을 건성으로 보았을 뿐입니다. 그게 가짜 유언장일지도 모
른다는 생각은 내 마음에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고, 거기에 적힌 아버
님의 서명은 진짜 서명과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게 정말로 아버님의 진짜 서명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걸 확인하고 자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두
증인의 서명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그 사람들의 서명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전에 나를 위해 자주 일해준 바크스턴 씨와
모드 씨한테 그 서류를 가져갔고, 그 사람들은 유언장의 서식과 상태
가 완벽하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 유언장을 아버지의 변호사들에게 맡기지 않아느냐고 묻자, 퍼
시벌은 일허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 유언장이 내 손에 들어오기 30분 전
에 나는 전날 밤 페트릭 웨더드 씨가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
문이지요. 그리고 동업자인 허버트 씨와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
니었습니다."
 그후 고인의 서명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증언했다. 그러
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완전히 일치했다. 그래서 더욱 입증된 사실은 1
908년 2월 1일자로 된 유언장은 가짜라는 사실이었다. 법정은 1891년
에 작성된 유언장이 진본임을 확인하고, 거기에 유언장 집행자로 언급
된 머레이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틀 뒤, 경찰은 위조 혐의로 퍼시벌 브룩스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
했다.
 퍼시벌은 기소되자, 다시금 그랜모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백만
장자의 맏아들이며 첫번째 유언장으로도 여전히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
게 된 그는 1908년 10월의 그 기록할 만한 날, 자신의 결백을 확신한
채, 때로는 정의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처럼 침착하게 피고석에서 일어섰다.
 브룩스 영감의 마지막 순간과 위조 유언장에 대한 증언이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되풀이되었다. 그 유언장은 오직 한 사람, 피고에게만 유
리하게 위조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위조할 동기를 가진 사람은 그 가
짜 유언장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을 게 분명
하다는 것이 검찰측의 주장이었다.
 퍼시벌 브룩스는 창백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며, 검창이 그에게 맞
서 쌓아놓은 그 수많은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퍼시벌은 그랜모어 변호사와 잠시 무언가를 의온했고, 그랜모
어 씨는 무척 침착해 보였다. 그랜모어는 찰스 디킹스의 소설에 나올
만한 인물이었다. 뚜렷한 아일랜드 사투리, 말끔히 면도한 얼굴, 큼지
막한 손…… 풍자만화가들을 기쁘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판사의 심문
이 진행되는 동안, 그랜모어 변호사는 의뢰인이게 유리한 평결을 얻어
내기 위해 두 가지 점에 의존하고 있으며, 모든 수완을 발휘하여 그
두 가지 점을 최대한 인상적으로 만드는데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번째 요점은 시간과 관련한 문제였다. 존 오닐은 그랜모어 변호사
의 반대심문에 대해, 오전 11시에 유언장을 퍼시벌한테 가져갔다고 주
저없이 진술했다. 그러자 변호사는 피고가 그 직후에 유언장을 갖가
맡긴 변호사들을 증인석으로 불러냈다. 바크스턴 변호사는 퍼시벌이
오전 11시 45분에 사무실에 왔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그리고 바크스
턴 씨의 사무원 가운데 두 사람도 그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자 그랜모
어 변호사는 주장하기를, 퍼시벌 브룩스 씨가 불과 45분 동안에 문방
구에 가서 유언장 용지를 사다가 웨더드 씨의 글과 아버지의 서명, 그
리고 존 오닐과 팻 무니의 서명을 베껴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그런 일을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고 연습하여, 많은 어려움 끝에 결
국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판사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그랜모어 변호사는 피고에 대한
판사의 의혹으 흔들어놓긴 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요점이 있었고, 극작가의 재능을 가진 그랜모어시는 막이
내리는 순간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 요점을 아껴두었던 것이다.
 변호사는 판사의 얼굴에 나타나는 모든 조짐을 눈여겨보고, 의뢰인이
 아직은 완전히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그
제서야 마침내 마지막 증인 두 명을 내놓았다.
 그 중 한 사람은 피츠윌리엄 저택의 하녀인 메어리 설리번이었다. 메
어리는 2월 1일 오후 4시 15분에 간호원이 부탁한 뜨거운 물을 들고
주인 방으로 올라갔다. 메어리가 막 문을 두드리려 할 때, 마침 웨더
드 씨가 방에서 나왔다. 웨더드는 문간에 선 채 방안을 돌아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애써보세요. 유
언장은 제 주머니에 안전하게 들어 있습니다. 영감님 말고는 어느 누
구도 이걸 바꾸거나 고치지 못할 겁니다."
 하녀의 증언을 채택할 것인지 여부는 법률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문제
였다. 메어리가 들었다고 증언한 웨더드 씨의 말은, 그녀 말고는 달리
입증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말을 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모
두 그 직후에 죽었기 때문이다. 퍼시벌을 기소한 쪽에는 매우 강력한
증거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따라서 메어리 설리번의 증언은 별것 아
닌 것으로 간주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피고의
혐의에 대한 판사의 신념은 이미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랜모어
변호사가 그 점을 겨냥하여 때린 마지막 타격은 판사의 마음에서 좀처
럼 사라지지 않았던 마지막 의혹마저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 마지막 타격은 바로 그랜모어 씨가 증인석으로 불러낸 멀리건 박
사였다. 멀리건 박사는 신망과 권위를 가진 의사로서, 사실 더블린에
서는 으뜸가는 의사였다. 멀리건 박사의 말은 사실상 메어리 설리번의
증언을 확인해 주었다. 박사는 오후 4시 30분에 브룩스 영감을 진찰하
러 나갔고, 그 영감한테서 변호사가 방금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
언했다.
 브룩스 영감은 몸시 쇠약해져 있었지만, 냉정했고 전보다 더 침착했
다. 그는 돌연한 심장 발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멀리건 박사는 영감
이 곧 죽을 거라고 에상했다. 하지만 영감은 아직도 의식이 남아 있어
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내 마음은 훨씬 더 편안하오, 박사…… 나는 유언장을 만들었
소…… 웨더드가 왔었소…… 웨더드가 그 유언장을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갔소…… 거기 있으면 안전하오…… 그 위험에서 안전……"
 그러나 브룩스 씨는 말을 끝맺지 못했고, 그후에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죽기 전에 두 아들을 만났지만, 아들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거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구석의 노인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당신도 알겠지만, 그 기소는 결국 무너질 운명이었소. 그랜모어가
기소의 근거를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렸던 거요. 유언장이 위조된 건
사실이오. 유언장은 오로지 퍼시벌한테만 유리하게 위조되었소. 퍼시
벌을 위해, 퍼시벌의 이익을 위해 위조된 거요. 퍼시벌이 그 위조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또는 공모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고, 또
내가 아는 한 암시조차 된 적이 없었소. 하지만 위조 행위 자체에 관
한 한, 적어도 퍼시벌의 그 모든 증거를 뒤엎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소.
멀리건 박사의 증언은 요지부동이었고, 메어리 설리번의 증언도 그에
못지 않게 강력했소.
 두 명의 증인은 분명하게 증언했소. 브룩스 영감의 유언장은 웨더드
변호사가 4시 15분에 피츠윌리엄 저택을 떠날 때 그의 주머니 속에 들
어 있었다고 말이오. 그런데 변호사는 오후 5시에 피닉스 공원에서 시
체로 발견되었소. 4시 15분부터 저녁8시까지 퍼시벌은 집을 떠난 적이
없었소. 그건 나중에 그랜모어가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입증했소. 브룩스 영감의 베개 밑에서 발견된 유언장은 위조된 가짜
유언장이었소. 그렇다면 영감이 만든 유언장, 웨더드 씨가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간 진짜 유언장은 어디 있겠소?"
 "물론 도둑맞았겠지요." 폴리가 대답했다. "웨더드 씨를 죽이고 물건
을 빼앗은 강도가 훔쳐갔을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그게 아무 가치
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자기들한테 불리한 단서가 되지 않도록 없애버
렸겠지요."
 "그렇다면 그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다고 생각하오?" 구석의 노인이
흥분하여 물었다.
 "뭐라고요?"
 "웨더드가 살해당하고 유언장을 강탈당하는 동안, 그것을 대신할 또
다른 유언장이 위조되고 있었다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였겠소?"
 "그게 우연의 일치였다면, 확실하게 이상하군요." 폴리는 생각에 잠
긴 얼굴로 말했다.
 "이상하기 짝이 없지." 구석의 노인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끈을 앙상한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신랄하고 냉소적으
로 폴리의 말을 되풀이했다.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업는 일이오. 사건
전체를 한번 생각해 보시오. 엄청난 재산을 가진 노인이 있고, 두 아
들이 있소. 하나는 부친에게 헌신적인 아들이고, 또 하나는 부친과 말
다툼밖에 하지 않는 망나니 아들이오. 어느 날 또다시 말다툼이 벌어
졌지만, 이번에는 그 전에 일어났던 어떤 말다툼보다도 더 격렬하고
무시무시했소. 그 결과 비탄에 빠진 아버지는 뇌졸중 발작을 일으키고
,
사실상 절망으로 망가진 심장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있소. 그후 아버
지는 죽기 전에 유언장을 고쳤고, 나중에 큰아들이 진짜라고 입증한
유언장은 사실은 위조된 가짜임이 밝혀졌소. 그러자 모든 사람들―경
찰, 언론, 그리고 대중―은 당장 결론으로 비약했소. 그 가짜 유언장
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퍼시벌 브룩스니까, 퍼시벌이 위조범인 게
분명하다는 거였지."
 "범죄로 이익을 얻는 사람을 찾으라는 게 영감님의 원칙이않아요."
폴리가 말했다.
 "뭐라고 했소?"
 "퍼시벌 브룩스는 가짜 유언장으로 2백만 파운드나 되는 재산을 얻었
잖아요."
 "미안하지만 퍼시벌은 절대로 그런 이익은 얻지 못했소. 퍼시벌이 물
려받은 재산은 동생이 물려받은 몫의 절반도 되자 않아요."
 "그야 그렇죠. 하지만 그건 첫번째 유언장이었고……"
 "그리고 그 가짜 유언장은 너무 조잡하게 위조되었고, 서명도 너무
서툴게 모방되었기 때문에, 그게 가짜라는 사실이 언전가는 들통이 날
운명이었소. 당신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단 말
이오?"
 "네, 하지만……"
 "`하지만'은 없소." 구석의 노인은 폴리의 말을 가로챘다. "나한테는
처음부터 모든 게 불을 보듯 뻔했다오. 영감의 심장을 망가뜨린 그 말
다툼은 영감이 늘상 야단치던 큰아들이 아니라 그가 맹목적으로 귀여
워하고 굳게 믿고 있던 작은아들과 벌인 말다툼이었단 말이오. 존 오
닐이 `거짓말쟁이'니 `사기꾼'이니 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게 기억
나요? 퍼시벌은 한번도 아버지를 속인 적이 없었소. 퍼시벌의 잘못은
모두 표면에 들어나 있었으니까. 그런데 머레이는 조용한 조용한 생활
을 했고,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면서 알랑거렸지. 그러다가 대부분의
위선자들이 그렇듯이, 마침내 꼬리를 잡히고만 거요. 브룩스 영감은
작은 아들의 노름빚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이 그 치명적인 말다툼
을 일으킨 원인이었소. 그것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노름빚인지는 하느
님이나 알 테지만.
 그리고, 아버지 곁에 붙어 있다가 아버지를 침실로 옮긴 사람이 퍼시
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던 그 길고 고통
스러운 날, 영감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한 머레이는 온
종일 어디에 있었지? 머레이는 그날 그곳에 코빼기도 보인 적이 없었
소. 하지만 머레이는 자기가 아버지의 감정을 치명적으로 해쳤고, 아
버지가 자기한테 단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을 작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
지. 아버지가 웨더드 씨를 불렀고, 웨더드 씨가 4시 15분경에 집을 떠
났다는 것도 말이오.
 여기서 그의 꾀가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거요. 머레이는 숨어서 웨더
드를 기다렸다가 지팡이로 뒤통수를 때렸지만, 그 유언장을 완전히 사
라지게 할 수는 없었지. 브룩스 영감이 유언장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
실을 알고 있는 증인이 웨더드 말고 또 있을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
문이오. 웨더드의 동업자나 사무원, 또는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 가운
데 하나가 그걸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소. 따라서 영감이 죽은 뒤에
유언장은 발견되어야 했소.
 그런데 머레이는 전문 위조범이 아니었소. 전문가가 되려면 몇년 동
안의 훈련이 필요하오. 머레이가 만든 위조 유언장은 틀림없이 가짜로
밝혀질 거요. 바로 그렇소. 그 가짜 유언장은 틀림없이 들통나게 되어
있었소. 그게 가짜라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을 거요.
그렇다면 쉽게 알 수 있도록 서투르게 위조하고, 그게 들통이 나서 가
짜로 밝혀진다면, 1891년에 만들어진 원래의 유언장, 그 젊은 악당한
테 유리한 유언장이 법적으로 유효해질 거요. 머레이가 가짜 유언장을
만들면서 그 내용을 퍼시벌한테 그토록 유리하게 만든 건 못된 장난이
었을까, 아니면 더욱 조심하기 위해서였을까? 어느 쪽인지는 나도 모
르겠군.
 어쨌든 그건 그 훌륭하게 꾸며진 범죄에서도 가장 교묘한 솜시였소.
그 못된 짓을 계획한 솜씨느느 훌륭했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건 누워
서 떡먹기였소. 머레이한테는 그걸 실행할 여유가 몇 시간이나 있었으
니까. 가짜 유언장을 만든 다음, 밤중에 죽은 영감의 베개 밑에 그 서
류를 슬쩍 넣어두는 건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였지. 머레이 같은 본성
을 가진 사람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행위에도 결코 눈하
나 감짝하지 않으니까. 이 연극의 나머지는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거
요……"
 "하지만 퍼시벌 브룩스는 어떻게 됐나요?"
 "배심원 들은 `무죄' 평결을 내렸소. 퍼시벌 브룩스한테 불리한 증거
는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돈은요? 그 악당이 아직도 그 재산을 갖고 부귀영화를 누리
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렇소. 그 악당은 잠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석 달 전에 죽었소.
그리고 부주의하게도 유언장을 만들어주는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인 퍼시벌이 결국 사업체를 물려받았지. 더블린에 갈 기회
가 있거든 `브룩스 베이컨'을 먹어보구려. 맛이 그만이라오."
 구석의 노인은 더듬더듬 모자를 집어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폴리
는 그가 카운터로 걸어가서 우유와 빵값으로 2펜스를 지불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의 모습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라졌다.
 폴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듯이, 도인이 두
고 간 긴 끈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에서 끝까지 온통 매듭투성이인 그
끈은 이제까지 구석에 앉아 있던 노인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수수께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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