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낙타
도시를 걷는 낙타 1.
허성도
1. 늙은 말의 지혜
붕어의 소원
장자가 너무나 가난해서 그날 먹을 쌀이 없었다.
하루는 쌀을 꾸기 위하여 위나라 문후를 찾아갔다.
그의 부탁을 들은 문후가 말했다.
“좋소.그면 가을에 세금이 걷히면
황금 삼백 근을 꾸어 주리다.”
장자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제가 여기로 오는 도중에
어디선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수레바퀴 때문에 움푹 파인 진흙창에서
한 마리 붕어가 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붕어야, 나를 왜 불렀느냐?’
붕어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오나라 국왕을 만나서
양자강 물을 범람시켜 너를 구해주마.’
그러자 붕어는 버럭 성을 내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몇 되의 물이 없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형편이오.
몇 되의 물만 있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데
당신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구려.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건어물점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이오.’”
<장자>
세상에는 가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남을 돕는 일이 이와 같다.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언제나 남에게 가벼운 도움은 줄 수 있다.
길을 모르는 이에게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은
당신에게는 가벼운 일이지만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그 사람은 온 몸이 지쳐 있을 수도 있으므로.
당신의 팔다리가 성하다면
길가는 노인의 짐을 들어줄 수 있다.
이것이 당신에게는 가벼운 일이지만,
그 노인의 자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의 힘을 덜어주었으므로.
이리하여
이름도 성도 모른다 하나
당신을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이 한,둘,셋 늘어간다면
당신의 생애가 어찌 풍성하지 않겠는가.
마음의 주인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리고는 이웃집 아들을 의심하였다.
걸음걸이를 보아도 도끼를 훔친 것 같았고
안색을 보아도 도끼를 훔친 것 같았고
말투를 들어도 도끼를 훔친 것 같았다.
모든 동작과 태도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았다.
얼마 후에 골짜기를 지나다가 그는 잃었던 도끼를 찾았다.
다음날 다시 이웃집 아들을 보니
동작과 태도가 전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지 않았다.
<열자>
때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때마다
마음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주인은 항상 변한다.
어느 날은 정의가
어느 날은 탐욕이
어느 날은 진실이
어느 날은 거짓이
마음의 주인으로 자리잡는다.
탐욕이나 거짓이 마음의 주인으로 자리잡으면
그때는 도적이 된다.
왕양명은 말했다.
“산 속의 도적을 무찌르기는 쉬우나
마음속의 도적을 무찌르기는 어렵다.”
늙은 말의 지혜
관중과 습붕은
제나라 환공의 신하였다.
그들이 환공을 도와 고죽국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아갈 방향을 잃고 말았다.
어느 장군이나 군사도 우왕좌왕할 뿐
그들의 진로를 찾지 못했다.
그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경우에는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보자.”
관중은 동작이 느리고 볼품이 없어서 평소에는 미움을 받던
한 마리의 늙은 말을 수레에서 풀어놓았다.
말은 잠시 이곳 저곳을 살피다가
이윽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 늘은 말을 뒤쫓아 군사들은 마침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후 그들은 산중에서 행군을 계속하다가
가지고 있던 물을 모두 마셔버렸다.
군사들은 조그만 물줄기라도 찾아보려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그때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산의 양지에 집을 짓고,
여름에는 산의 음지에 집을 짓는다.
개미집 아래에는 물이 있는 법이다.
개미집을 찾아라.”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개미집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시원하게 솟아나는 물줄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한비자>
관중과 습붕같이 지혜로운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러
미물한테서도 배우지 못하고
선생님한테서도 배우지 못하고
심지어
성인한테서도 배우지 못한다
노자의 죽음
노자가 죽었다.
진일이라는 사람이 조문을 갔다.
그는 형식적으로 세 변 곡을 하고는 곧바로 나와버렸다.
“돌아가신 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니었던가요?”
“그렇다.”
“그렇다면 조문을 이렇게 형식적으로 하셔도 되는 것인가요?”
“괜찮다.”
처음에는 나도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진정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달라졌어.
조금 전에 내가 들어가 조문하면서 보니
노인들은 마치 자기 아들이나 잃은 듯이 곡을 하고 있었고
청년들은 마치 자기 어머니가 돌아간 듯이 울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노자가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더라도
평소에 조문객으로 하여금
슬픔을 말로 표시하거나 울어야 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비친 바가 있었기 때문이지.
이는 하늘의 뜻과 인간의 진실에 위배되는 일이며
하늘에서 받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야.
그래서 진정으로 조문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 것이라네.”
<장 자>
누가 나에게 술을 마시자 하면
내가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것이고,
누가 나에게 과일을 가져오면
내가 평소에 과일을 좋아하는 것이고,
누가 나에게 뇌물을 가져오면
내가 평소에 그런것을 좋아하는 것이고,
누가 나에게 아첨을 하면
내가 평소에 그것을 좋아하거나
최소한 그것을 좋아한다는 기미를 보인 것이고,
누가 나에게 불의를 행하자 하면
내가 평소에 불의를 저지를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사랑을 달라 하고
누가 나에게 격려를 해달라 하고
누가 나에게 정의를 함께 행하자고하게 하려면
나의 행동은 평소에 어떠해야 하는가?
대나무 들고 성문 지나가기
긴 대나무를 들고 성문을 지나가려는
노나라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대나무를 곧게 세우고 성문을 지나가려 하였으나
성문이 너무 낮아서 그대로는 성문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대나무를 가로로 들고 성문을 지나가려 하였으나
성문이 좁아서 그렇게 지나갈 수도 없었다.
대나무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가면 되련만
그는 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아는 척 잘하는 노인이 그에게 말했다.
“나는 성인은 아니지만 수많은 일을 경험했다오.
그대는 왜 나무를 잘라 가지고 지나갈 생각을 못 하오?“
그는 노인의 말을 듣고
대나무를 토막토막 자른 다음에야 성문을 지났다.
<소림>
한 가지 생각에만 묻히면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총명한 사람도 가끔은 바보가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양하게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항상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나무를 잘라 들고 성문을 지나가라고 남에게 충고하거나
실제로 대나무를 잘라 들고 성문을 지나가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한다.
거대한 나무는 쓸모가 없다
장석이라는 목수가 제 나라에 갔다.
그는 마침 길가의 사당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보게 되었다.
그 크기는 소떼를 뒤덮을 정도였으며
줄기의 둘레가 백 아름은 되었고, 높이는 산을 굽어보았다.
그곳은 이 나무를 보려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서
시장처럼 북적거렸다.
그러나 장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는데,
동행하던 제자는 실컷 구경을 하고 나서
장석을 뒤쫓아가 말했다.
“제가 도끼를 손에 잡고 선생님을 따른 이후
이와 같이 큰 목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쳐다보지도 않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라.
저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나무이니라.
저 나무로 배를 만들어보았자 가라앉을 것이고
관을 만들어보았자 곧 썩을 것이다.
가구를 만들어도 금방 깨질 것이며
문을 만들어도 진이 흐를 것이고
기둥을 만들어도 벌레 먹을 것이니
아무 취할 것이 없는 나무다.
이를 어떻게 아는가?
저 나무는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까닭에
저렇게 오래 산 것이다.”
<장자>
장석의 제자는
왜 나무를 보고 감탄했는가?
그 나무의 크기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장석은 왜 그나무를 가치없다고 했는가?
그 나무가 오래 살게 된 원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물을 판단하는가?
아름다움의 뒤에는 추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위대함의 뒤에는 비겁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풍요의 뒤에는 가난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의 역이 성립할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 한 마리가
동해에서 온 자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물 난간에서 뛰어 놀기도 하고
우물 안에 들어가 벽에 기대어 쉬기도 합니다.
물에 들어가서는 두 손을 맞잡고
그 위에 턱을 받치고 물 위를 떠다닙니다.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를 보아도
나만큼 재미있게 사는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우물을 독점하고 우물 속에서 큰소리치고 사는 재미란
최상의 것이지요.
당신도 때로는 놀러와 내가 사는 것을 구경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자라는 시험 삼아 우물에 들어가보려 했으나
개구리가 사는 우물이 너무 좁아서
왼발이 다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오른쪽 무릎이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어정어정 뒷걸음질을 하면서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사는 바다는
천리라는 숫자로도 크기나 깊이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옛날 우왕때에는 십년 동안 아홉 번이나 장마가 졌지만
바닷물이 더 늘지 않았고
탕왕 때애는 팔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가뭄이 들었지만
바닷물은 조금도 줄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엄청난 양의 물이 있으므로
시간에 따라 늘거나 줄지 않고
비가 많이 오나 적게 오나 항상 물이 철철 넘치는
동해에 사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입니다.”
개구리는 이 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 넋을 잃었다.
<장자>
사과 한 알을 두고도
어린아이는 그것이 맛있겠다고 하고
화가는 그 빛깔이 예쁘다고 하고
시인은 그것이 멋지다고 한다.
영화를 보아도
옷을 만드는 사람은 배우의 멋진 옷을 놓치지 않고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배우의 멋진 구두를 놓치지 않고
모자를 파는 사람은 배우의 멋진 모자를 놓치지 않고
말을 배우는 사람은 대화 중의 멋진 표현을 놓치지 않는다.
개구리처럼 사람도
자신이 살아온 만큼 사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내가 개구리처럼 살았고
남들은 자라처럼 산 것이 아닌가 겸손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악기를 만드는 법
자경이라는 사람이 나무를 깎아 악기를 만들었다.
그 악기는 너무나 훌륭하여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나라 왕도 이를 보고 감탄한 나머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기술로 이것을 만들었느냐?”
자경이 대답하였다.
“신은 악기를 만들 때 반드시 목욕을 하여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목욕하고 사흘이 되면
악기를 잘 만들어 상이나 벼슬 같은 것을 얻겠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닷새가 지나면
비난이나 칭찬받는 것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잘되고 못 되는 따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어집니다.
이레가 지나면
자기에게 손발이나 신체가 있다는 것도 완전히 잊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악기 만드는 생각에만 파묻히게 되므로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일상의 일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이렇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산으로 들어가
나무의 성질과 생김새를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알맞은 나무가 찾아지면
그것이 악기로 완성된 모습을 머리 속에서 그려봅니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악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는 저의 뜻을 하늘의 뜻과 같게 하려는 것입니다.”
<장자>
신문에 났던 금붕어 기르는 사람 이야기 -
금붕어를 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금붕어 알이 부화되면
금붕어 새끼 수만 마리가 깨알처럼 어항속을 헤엄쳐 다닌다.
주인은 항상 어항을 쳐다보며 금붕어들이 잘 자라는지를 살핀다.
주인은 그 수많은 고기 속에서도 병든 고기를 찾아낸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병든 굼붕어가
주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병든 고기가 발견되면 주인은 그것을 따로 떠내어 약을 먹인다.
그 약값은 새끼 금붕어 값보다 엄청나게 비싸다.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차라리 새끼 금붕어 한 마리를 포기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지 않습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새끼 한 마리를 살리려는 정성이 없으면
다른 금붕어도 살리지 못합니다.”
모든 일은 정성이다.
자기의 일에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이는 것,
보기에 아름답다.
행여 사람이 몰라줄지라도 하늘은 안다.
나는 나의 일에 얼마나 정성을 쏟고 있는가?
미인과 추녀
양자가 송나라로 가는 도중에
어느 여관에서 묵게 되었다.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두 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예쁘고 한 사람은 못생겼었다.
그런데 박색인 첩은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었고
미인인 첩은 천대를 받고 있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심부름하는 사람이 대답했다.
“미인인 쪽은 스스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는
항상 오만합니다.
그러기에 제 눈에도 예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생긴 쪽은 자기가 부족한 줄을 알고
항상 겸손합니다.
그러기에 제 눈에도 예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생긴 쪽은 자기가 부족한 줄을 알고
항상 겸손합니다.
그러기에 제게도 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양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잘 기억해 두어라.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디에서나 사랑받지 않겠는가?”
<장자>
겸손은 좋은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겸손하게 나를 대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겸손이란 쉬운 것이 아닌가보다.
나를 겸손히 대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남에게 겸손히 대해야 한다는 것은
곧잘 잊는다.
아니,
정신차리지 않으면 항상 잊는다.
장자의 장례
장자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제자들은 그를 성대히 장례 지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를 관이라 생각하고
해야 달과 별을 구슬로 보고
세상 만물은 나를 위한 장식이라고 생각해 왔네.
나를 장사 지내는 장식물이야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 이상 아무 것도 필요치 않으니
나의 시체를 산에다 버리려무나.”
제자들이 말했다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먹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 버려두면 까마귀나 솔개가 먹을 것이요
땅 밑에 묻으면 개미가 먹을 것인즉
모처럼 까막귀나 솔개가 먹게 되어 있는 것을 빼앗아
개미에게 주는 것도
또한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냐.”
<장자>
크다!
장자의 생각은.
세상의 모든 오염된 인식을 초월해 있다.
우리가 그 경지에 갈 수는 없는 것일까?
갈 수 없다면 흉내라도 내보자.
억지 흉내라도 자꾸 내다보면
본질에 가까이 갈 수도 있다.
대장부인 척 하다보면
대장부에 가까운 행동이 나오고
겁이 날지라도 용감한 척 하다보면
용감한 사람이 된다.
우리가 아는 대장부와 용감한 사람은
원래 이런 과정을 통하여 훈련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요동땅의 흰 돼지
옛날 요동땅에 돼지를 기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가 기르는 돼지는 모두 검은 색이었으며,
그 동네의 돼지도 모두 검은 색이었다.
하루는 그 검은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그 새끼돼지의 머리가 흰색이었다.
그는 대단히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기며
이 흰색의 돼지를 천자에게 바치면
큰 벼슬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는 새끼돼지를 소중히 안고 길을 떠났다.
어느 곳에 이르러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게 되었다.
배에서도 그는 새끼돼지를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에게 사정을 물었다.
그는 이 귀한 돼지를
천자에게 바치고자 하는 뜻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큰소리로 웃었다.
그는 사람들이 웃는 영문을 몰랐다.
강을 건너자 배를 내렸다. 강동땅이었다.
그는 동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동네의 돼지들은 모두가 흰색이었다.
그는 비로소 배에 탔던 사람들이 웃었던 이유를 알고는
부끄러워하며 돼지를 끌어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한서>
이렇듯 남이 보면 당연하거나 보편적인 일을
멋모르고 자랑하거나 기이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자랑거리가 있어도 꾹 참아보는 것은
좋은 일이며,
화가 나는 일을 참아보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자랑거리나 화낼 거리를 꾹 참고 있으면
언제든지 풀어놓을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있으나
일단 풀어놓으면
변명하거나 해명하거나
심지어는 사과해야 할 의무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2. 당신에게 없는 것
명궁은 활을 자주 쏘면 안 된다
초나라에 양유기라는 명궁이 있었다.
그는 활을 얼마나 잘 쏘았던지 백 보 떨어진 거리에서
버들잎을 쏘아도 백발백중이었다.
그가 어느 날 동네에서 활을 쏘는데
좌우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와!”하고 놀라워하며
감탄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제법 잘 쏘는군. 가르칠 만하구나.”
이 말을 듣고 양유기가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활을 잘 쏜다고 하는데
그대는 오히려 가르칠 만하다고 하니
그렇다면 나에게 활쏘기를 한번 가르쳐 주시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왼팔을 펴라든가 오른팔을 굽히라든가 하는
동작 따위는 가르칠 수가 없네.
그러나 보게.
버들잎까지 쏘아 맞추는 당신 같은 사람은
필시 그 솜씨를 자랑하기 위하여 자주 활을 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 후에는 기력이 쇠약해져서
활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화살을 당기지도 못하게 될 것일세.
그때는 지금까지 들어온 명궁이라는 칭찬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쯤은 가르쳐 줄 수 있지.”
양유기는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명궁은 활쏘기를 아낄 줄 알아야 한다네.
그리하면 힘이 축적되어
평생 명궁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이야.”
<전국책>
가을에 맺힌 씨앗이
곧바로 싹트는 일은 없다.
한겨울 추위를 지내고
어두운 흙 속에 갈무리 된 다음에야
그 작은 것이 대지를 뚫고
맑고 밝은 얼굴을 내민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갈무리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아껴야 하고
재주가 있는 사람은 재주를 아껴야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혜를 아껴야 한다.
조용하고 은은하게
힘과 재주와 지혜를 곰삭여야 한다.
그런 후에야 농익은 힘과 재주와 지혜가 나온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
주왕은 천하의 폭군이었다.
그가 폭군이 되기 전에
하루는 상아 젓가락을 만들게 하였다.
기자가 이를 보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흙으로 빚은 질그릇을 사용하지 않고
무소의 뿔이나 옥으로 만든 잔과 그릇을 쓰려 할 것이다.
그토록 귀한 그릇과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면
검소한 음식이나 채소는 먹지 않고
들소 고기나 표범의 태반 같은 진귀한 고기만 찾을 것이다.
그같이 진귀한 고기만 먹으면
백성들이 지내는 움막 같은 가옥은 멀리하고
첩첩궁궐 고대광실 같은 좋은 집에서만 살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천하의 어떤 진귀한 것들도
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성인은 미세한 기미를 보고도
그것이 앞으로 드러낼 모습을 미리 알며
일의 시작을 보고 미래의 결과를 예측한다.
그런 까닭에 기자는
상아 젓가락을 보고도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던 것이다.
<한비자>
양복을 새로 사면
와이셔츠도 새로 사고 싶고
넥타이도 새로 사고 싶고
구두도 새로 사고 싶고
이발도 새로 하고 싶다.
집을 사면
장농도 새것이 좋고
의자도 새것이 좋고
주방기기도 새것이 좋다.
검소하던 사람도 자칫
도를 넘는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검소라는 말은 기억에만 남는다.
그리고 검소라는 말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자기는 검소하다고 생각한다.
잘사는 사람들도 많은 경우에
자신이 검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미를 알고 미리 대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장군과 농사
맹상군이 자기의 문객 중의 한 사람을 매우 싫어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를 내쫓으려 했다.
그때 노연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원숭이가 나무를 버리고 물에 간다면
물고기가 자라만큼도 뛰어 놀 수가 없고,
천하의 명마도 엄청나게 위험한 일을 겪고 나면 겁이 생겨서
평범한 당나귀만도 못하게 됩니다.
옛날 조말이라는 장군은 용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나
그러한 장군에게 괭이나 삽을 주어 밭고랑에 서게 한다면
평범한 농부만큼도 일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에 있어
장점을 버리고 단점만을 생각한다면
요임금 같은 성인이라도 쓸 데가 없을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하여 무능하다 하고
가르처주었는데도 못 한다 하여 어리석다 하고
무능하다 하여 파면하고
어리석다 하여 버리게 되면
이렇게 버림 받은 자들은 외국으로 도망갔다가
반드시 보복을 꾀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찌 후세의 경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맹상군은 결국 그를 내쫓지 않았다.
<전국책>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경우를 보자.
가문이 좋으면 재산이 없고
재산이 많으면 인물이 없고
인물이 좋으면 지혜가 없고
지혜가 있으면 재산이 없고
얼굴이 예쁘면 키가 작고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면 나이가 많다.
어찌 결혼의 경우만 이러하겠는가?
사람을 평가할 때
단점만을 보면 취할 사람이 없다.
결정적인 장점이 있으면 단점에 눈감아야 한다.
기술이 필요한 곳에서는 기술을 보고
지식이 필요한 곳에서는 지식을 보아야 한다.
아무런 단점도 발견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장점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에 영웅이 적은 이유는
영웅적 행위를 한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단점을 들어 장점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단점만 찾아 나서면 영웅은 없다.
나쁜 말도 들으시오
초나라에 강을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해휼이라는 신하가
좋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다.
그러나 다른 신하의 나쁜 점을 말할 때
왕이 이를 좋게 받아들일지 나쁘게 받아들일지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왕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다.
“아랫사람이 작당을 하면 윗사람이 위험하고
아랫사람이 서로 다투면 윗사람이 편안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랫사람끼리의 다툼이 왕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려놓고 이어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은 군자지. 내가 가까이 해야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은 소인배야. 당연히 멀리해야지.”
“그렇다면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입금을 죽이는 자가 있어도
왕께서는 끝까지 모르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는 다른 사람의 장점만 듣고
다른 사람의 단점은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나도 이제부터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들으리라.”
강을은 비로소 소해휼의 나쁜 점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책>
좋은 말만 들으려 하면
좋은 말만 들리고,
나쁜 말만 들으려 하면
나쁜 말만 들린다.
좋은 말을 들으면
영혼이 기쁘고,
나쁜 말을 들으면
귀를 버린다.
그러나 당신이 높은 지위에 있다면
나쁜 말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을 즐겨서는 안된다.
포졸과 중
멍청한 포졸 한 사람이 죄 지은 중을 관청으로
압송하고 있었다.
그는 잊을 것을 미리 걱정하여
떠나기 전에 자기가 압송하는 물건과 사람을
하나하나 점검하였다.
“보따리, 우산, 칼, 문서, 중 그리고 나.”
그리고도 압송 도중에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이것을 중얼중얼 외웠다.
“보따리, 우산, 칼, 문서, 중 그리고 나.”
중은 그가 멍청하다는 것을 알고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후에
포졸의 머리를 깎고, 그의 목에 칼을 씌운 다음
슬며시 도망쳐 달아났다.
술에서 깨어나자 포졸이 또다시 중얼거렸다.
“보따리, 우산, 칼, 문서, 중 그리고 나.”
그러면서 점검을 해보니 보따리와 우산과 문서는 있었다.
자신의 목을 만져보니 칼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놀라 외쳤다.
“아이구, 중이 안 보이는 구나.”
그는 잠시 후에 자기의 머리를 만져보더니 말했다.
“다행히 중은 있구나. 그런데 나는 어디 갔지?”
<소부>
가끔 자기를 남과 혼동하는 일이 없는가?
아니면
환상의 자기를 만들어놓고
그것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일은 없는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할 때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나’는 아니었는지?
약초가 귀하다지만 약초밭에는 많다
제나라의 재담가에 순우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일곱 명의 선비를
한꺼번에 선왕에게 추천하였다.
그러자 왕이 순우곤에게 물었다.
“그대 이리 오게.
과인이 듣건대 천리에서 한 명의 선비만 얻어도 많은 것이요
백세에 한 사람의 성인만 나와도 많다고 했는데
그대는 하루아침에 일곱 명의 선비를 추천했으니
이거 세상에 선비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순우곤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새는 같은 털을 가진 것처럼 모여 살며
짐승도 같은 발급을 가진 것처럼 모여 살지 않습니까?
산에서 나는 귀한 약초는
물가에서 백날 찾아도 하나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약초가 자라는 깊은 산에 가면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무릇 사물은 자기가 노는 물이 있는 법이니
바로 저 같은 사람이 현자들이 노는 물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왕이 저한테서 선비를 구하는 것은
냇가에서 물을 길은 것과 같고
부싯돌에서 불을 얻는 것과 같이 쉬운 일입니다.
아직도 추천할 사람들이 더 있는데
어찌 일곱 명을 많다고 하십니까?”
<전국책>
유유상종,
같은 무리는 같이 모인다.
쑥이 한 포기 있으면
부근에 반드시 쑥밭이 있다.
토끼는 토끼와 놀고
사슴은 사슴끼리 모인다.
그러므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신랑감을 고르는 방법.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게 하라.
그와 친구가 서로 비슷하면
그는 보통 사람이다.
친구들이 그보다 못하면
당신이 그를 잘못 보고 있거나
그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
그보다 친구들이 더 훌륭하게 보이면
그를 믿어도 된다.
친구가 훌륭하면 그가 설령 못났어도
한평생을 살기에 큰 부족함은 없다.
그러나 이 방법이
신부감을 고르는 방법은 절대 아니다.
어머니의 통곡
오기 장군이 중산국을 공격할 때
한 병사가 심하게 부상을 당하여 상처에서 고름이 나왔다.
장군은 자기의 입으로 직접 그 병사의 고름을 빨아냈다.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자 통곡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물었다.
“장군이 당신의 아들을 그처럼 아끼니 이는 영광입니다.
그런데도 통곡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대답했다.
“오기 장군이 예전에도
그 아이 아버지의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장군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장군이 또 자식의 고름을 빨아주었으니
자식도 또한 장군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어찌 울지 않겠습니까?”
<한비자>
패러독스.
하나의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의 상반된 판단이 모두 옳을 수 있다.
장군이 병사를 아끼는 자세도 옳고
아들이 이러한 장군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도 옳고
어머니가 그것을 가슴 아파 하는 것도 너무나 옳다.
매를 살리려면
병아리를 죽여야 하고,
이 사람을 돕자면
저 사람을 버려야 한다.
싸우는 두 나라의 말을 들어도
둘 다 옳다.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는 이래서 어렵고
사물의 진실을 알기도 이래서 어렵다.
한쪽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되고
더더구나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데 있다.
까치와 수레바퀴
공수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무를 깍아 물건을 만드는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하루는 대나무로 까치를 만들었다.
이 대나무 까치를 하늘로 날려 보냈는데
까치는 하늘로 훨훨 날아가
사흘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멋진 재능에 스스로 만족하였다.
이때 묵자가 공수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그러한 재능은
기술자가 수레바퀴 만드는 솜씨만도 못하다네.
그들은 잠깐 사이에 나무를 깍아서
무거운 짐을 운반하게 한다네.
그런데 나무로 만든 까치가 하늘로 날아간들
그것이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준단 말인가?”
<묵자>
사람마다 재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변설의 재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글 쓰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재능이든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재능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사용된다면
이는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화근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화근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펴가는 경우에
이 재능이 나만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 것인지
자주 뒤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주자주 뒤돌아보지 않으면 대개는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는다.
이런 대답 저런 대답
자로가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다.
“옳은 것을 들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자네의 부친과 형님이 살아 계시는데
어떻게 그들의 뜻을 존중하지 않고
듣는 대로 바로 행동에 옮길 수가 있겠는가?”
염유가 공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옳은 것을 들으면 바로 행도에 옮겨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들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제자 공서화가
공자에게 물었다.
“자로가 이 문제를 선생님께 여쭈었을 때는
부친과 형님의 뜻을 들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염유가 여쭈었을 때는 바로 행동에 옮기라고 하시니
제가 선생님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염유는 성격이 나약하므로 그렇게 말하였고
자로는 너무나 덤비는 성격이기에 그렇게 대답하였느니라.”
<논어>
똑같은 질문에도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현상에서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사항에 대하여
하나의 해답만을 요구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습성이 옳은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상황으로 보이는 것도
내면의 사실은 다를 수 있으며,
동일한 결론이 나오는 일도
내면의 원인은 다를 수 있다.
하나의 상황에도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풍성한 여유를 준다.
당신에게 없는 것
제나라에 풍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워낙 가난하였으므로
맹상군의 식객이 되고자 했다.
그는 맹상군에게 밥만 먹여달라고 요구했다.
맹상군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의 취미는?”
“별로 없습니다.”
“그럼 특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맹상군은 웃으면서 그를 받아들였다.
좌우 식객들은 그를 없신여겼으며
그에게 대접하는 음식도 좋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자 풍훤은 벽에 기대에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자. 여기서는 식사 때 생선 한 토막 먹을 수가 없구나!”
식객들이 이 소식을 맹상군에게 전하자 맹상군이 말했다.
“이후로는 생선 먹는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시간이 얼마 지나자 그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자. 여기서는 타고 다닐 수레도 없구나.”
그러자 식객들은 그를 비웃으며
이 사실을 맹상군에게 또 알렸다.
맹상군이 말했다.
“수레를 주어라. 수레 타는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그러자 풍훤은 수레를 타고
맹상군이 자신에게 상객 대우를 해준다고 자랑하며 다녔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자. 여기서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구나.”
식객들은 그가 탐욕스럽고 경우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맹상군이 물었다.
“풍훤에게 가족이 있느냐?”
“노모가 계시다고 합니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노모에게 옷과 음식을 보내주었다.
어느 날 맹상군이 식객들에게 물었다.
“누가 회계를 배웠는가? 나를 위해 설 지방에 가서
도조 빚을 받아올 자는 없는가?”
이때 풍훤이 자기가 가겠다고 대답했다.
맹상군이 놀라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냐?”
좌우가 대답했다.
“전에 노래를 부르던 그 사람이올시다.”
“그래? 그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는가?
내가 너무 그를 무시해서 만나지 않은 게 잘못이로군.”
맹상군은 그에게 일을 맡겼다.
풍훤이 채권 계약서를 가지고 떠나면서 맹상군에게 물었다.
“빚을 다 받으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을 사 오게.”
풍훤은 설 지방에 도착하자 그 지방 사람들을 불러놓고
그들의 토지와 문서의 내용이 맞는가를 확인하였다.
이 일이 끝나자 풍훤은 그 문서를 소작인들에게 주고
모두 태워버리게 하였다.
이는 맹상군의 토지를
그들에게 영원히 주어버린다는 뜻이었다.
풍훤은 이것이 맹상군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맹상군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였다.
풍훤은 곧장 제나라로 말을 몰아 맹상군을 만났다.
맹상군은 그가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에 놀라면서 물었다.
“그래, 빚은 다 받았는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소?”
“예, 다 받아 왔습니다.”
“무얼 사 왔는가?”
“군께서는 집에 부족한 것을 사 오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군의 집에는 온갖 보화가 가득찼고
집 밖으로는 살찐 가축들이 마구간과 우리에 가득찼으며
뒤뜰엔 미녀들이 우글거리니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조금 모자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믿음’을 사 왔습니다.”
“아니! 믿음을 사 오다니?”
“현재 군께서는 작은 영지인 설 지방을 가지고 있는데
그 백성을 자녀처럼 사랑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들에게서 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끝에 군의 명령이라 하고
채무 문서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맹상군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군을 위해 사 온 ‘믿음’입니다.”
맹상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차마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일년 후
제나라 왕은 맹상군에게 사직을 권고했다.
맹상군은 할 수 없이 영지인 설 지방으로 가기로 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설 지방으로 가자
그곳 백성들은 맹상군을 영접하기 위하여
백 리 밖까지 나와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때서야 맹상군은 풍훤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생이 나를 위해 ‘믿음’을 사 온 것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는구려.”
그후로도 풍훤은 맹상군을 도와
그가 다시 제나라의 재상이 되도록 하였다.
<전국책>
시냇물 흐르는 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바닷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각형에서는 네 개의 각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수천만각형의 원에서는 오히려 각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그들은
작은 이익을 포기하고
큰 이익을 얻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작은 이익이 보이고
큰 이익을 얻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작은 이익이 보이고
큰 이익은 보이지 않지만,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큰 이익이 보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눈앞의 작은 일보다는
미래의 큰일에 대비한다.
그들에게 미래는 결코 요원한 것이 아니다.
미래는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 원수를 은인으로 만든 사람
화살에 맞지 않고도 떨어지는 새
명궁 한 사람이 위나라 왕과 유람을 하고 있었다.
명궁이 위왕에게 말했다.
“제가 활을 쏘아
새를 맞추지 않고도 떨어뜨리는 것을 보여 드릴까요?”
“활쏘는 기술에 그런 것까지 있느냐?”
“있지요.”
조금후에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명궁은 활을 헛쏘아서 화살이 기러기 옆을 스쳐 가게 하였다.
그런데도 과연 기러기는 땅에 떨어졌다.
위왕이 놀라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
명궁이 대답했다.
“이 기러기는 병이 들어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이 기러기는 나는 것이 매우 느리고 우는 소리는 슬펐습니다.
느리게 나는 것은 상처가 아프기 때문이고
처량하게 우는 것은 무리를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화살 소리를 듣게 되면 놀란 나머지
더욱 높이 날고자 갑자기 힘을 쓰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상처가 파열되어 떨어지는 법입니다.
<전국책>
마음이 불안한 기러기는
화살을 맞지 않고도 떨어진다.
사람도 이와 같다.
어떻게 마음 먹는가에 따라
사람은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자신감을 갖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가?
자신감은 단련에서 나온다.
이는 절벽에서 수양을 쌓는 거창한 단련이 아니다.
소소한 단련에서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로 결심하고
삼사일만 이 결심을 지키게 되면
약간의 자신감은 생길 것이다.
이 결심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어찌하는가?
다시 시도해 보아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또다시 시도한다.
이런 사람을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안 되어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
한번에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강한 사람은 없다.
원수를 은인으로 만든 사람
제나라 맹상군의 문객 중에
맹상군의 부인을 사모하는 자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를 알고 맹상군에게 말했다.
“당신의 문객으로서 당신의 부인을 몰래 흠모하고 있다니
너무나 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그를 처단하십시오.”
맹상군은 태연하게 말했다.
“서로 좋아하여 사모의 정을 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일년쯤 지난 후에 맹상군이
자기의 부인을 흠모하던 자를 불렀다.
“그대는 나와 교유한 지가 오래이다.
그런데 높은 자리가 나지 않아
그대에게 주지 못했으니 미안한 일이다.
내가 위군과는 친한 사이여서
그대를 이미 부탁해 놓았으니
이제부터 위군과 교유해 봄이 어떻겠나?”
그가 위나라로 가자 과연 크게 환영을 받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가 악화되었다.
위군은 다른 나라와 맹약을 맺고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그 문객이 나서서 위군에게 말했다.
“제가 듣건대 제나라와 위나라는
선왕 때 이미 말을 잡고 양을 잡아
‘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침략하지 않으리라’라고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소한 감정으로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시니
이는 선조의 맹약을 배반하는 것이요
또한 맹상군을 속이는 일입니다.
원컨대 제나라에 대한 감정을 푸십시오.
만약 제 말을 안 들어주신다면
제가 불초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당장 제 목의 피를 내어 그대의 옷깃에 뿌리겠습니다.”
그러자 위군은 마음을 풀었다.
제나라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맹상군은 과연 훌륭하다.
화를 바꾸어 공으로 만들었구나.”
<전국책>
살다보면 좋은 일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화나는 일
손해보는 일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그러한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정을 잠시 누르고
현재의 불행한 일을
앞날의 즐거움거리로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얼마나 멋지고 현명한 일인가?
빗속을 천천히 걷다
빗속을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왜 그렇게 천천히 걷느냐고 묻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앞에도 비가 오지 않소.”
<소소록>
앞에도 비가 오는 것은 틀림없지만
빨리 가서 집 안에 들어가면
비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앞에 집이 없다면
이 사나이의 걸음은 얼마나 유연하게 보일 것인가?
버드나무도 뽑으면 죽는다
진진이라는 사람이 위왕에게 중용되자
혜자가 진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좌우 측근들의 비위를 거스리지 마시오.
버드나무를 보시오.
그 나무는 옆으로 심어도 죽지 않고
거꾸로 심어도 죽지 않으며
꺾어서 꽂아놓아도 잘 자라는 나무라오.
그러나 열 사람이 다니며 버드나무를 심어도
한 사람이 따라다니며 뽑는다면
한 그루도 살 수가 없다오.
열 사람이 모여서 그토록 생명력이 강한 나무를 심을지라도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를 죽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소?
나무를 심는 것은 어렵지만
뽑는 일은 쉽기 때문이라오.
그대가 아무리 일을 잘할지라도
그대를 뽑아내려는 자들이 많아진다면
그대는 반드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것이오.”
<한비자>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과 원수를 맺지 말라는 말이다.
양보해도 될 것은 양보하고
져도 되는 것을 질 줄 알면
원수 사이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있다.
양보하면 당장 큰일이 날 것 같고
지면 안 될 것 같은데도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명심보감에서도 말한다.
“은혜를 널리 베풀어라.
살다보면 어디선들 만나지 않으리.
원수를 맺지 말라.
좁은 길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
위험한 군왕
노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산국의 임금을 세 차례나 만나
등용되기를 원했지만 결국 등용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황금 오십 근을 풀어
왕의 측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왕을 다시 만나니
왕은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하여 그를 훌륭하게 대접했다.
노단은 왕을 만나고 나오며 숙소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중산국을 떠났다.
도중에 그의 수레를 모는 하인이 물었다.
“여러 번이나 왕을 만났다가
이제야 겨우 왕이 우리를 알아주기 시작하였는데
무슨 까닭에 이렇게 떠나십니까?”
노단이 대답하였다.
“남의 말을 듣고 나를 잘 대우하였다면
반드시 남의 모함을 듣고 나에게 벌을 줄 것이다.”
그들이 국경을 빠져 나가기도 전에 중산국의 한 공자가
그를 모함하여 말했다.
“노단은 조나라를 위하여 우리 중산국을
정탐하러 왔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중산국의 왕은 과연 그 말을 믿고
노단을 잡으려 하였다.
<한비자>
남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맹자는 말했다.
“왕이 사람을 등용할 때는
모든 신하가 현명하다고 할지라도 믿지 말고
모든 대부가 현명하다고 할지라도 믿지 말고
온 나라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한 이후에 등용하며,
왕이 사람을 처벌할 때는
모든 신하가 처벌해야 한다고 말할지라도 믿지 말고
모든 대부가 처벌해야 한다고 말할지라도 믿지 말고
온 나라 사람들이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 이후에 처벌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의 말을 듣지 않거나
남의 말을 곧잘 믿는 사람은 항상 위험하다.
공자의 후회
공자가 제자들과 채나라로 갈 때의 이야기이다.
도중에 양식이 다하여 채소만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
그들은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공자도 힘이 없어 잠시 잠이 들었다.
공자가 아끼는 제자 중에 안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어디선가 쌀을 조금 얻어왔다.
그는 빨리 밥을 지어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다.
밥이 익어갔다.
그때 공자도 잠을 깼는데 마침 밥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공자는 웬일인가 하여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안회는 솥뚜껑을 열고 있다가
밥을 한 움큼 꺼내어 자기 입에 넣는 중이었다.
공자는 생각했다.
‘안회는 평시에
내가 밥을 다 먹은 후에야 자기도 먹었고
내가 먹지 않은 음식이며 수저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평시의 모습이 거짓이었을까?
다시 가르쳐야 되겠구나.’
그때 안회가 밥상을 차려 공자에게 가지고 왔다.
공자가 어떻게 안회를 가르칠까 생각하다가
기지를 발휘하여 이렇게 말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시더구나.”
공자는, 제사 음식이야말로 깨끗해야 하며
누구도 미리 손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회도 알기 때문에
그가 먼저 먹은 것을 뉘우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안회의 대답은 달랐다.
“선생님, 이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공자가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런가?”
“이 밥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제가 조금 전 뚜껑을 열었을 때
천장의 먼지가 내려앉았습니다.
선생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그렇다고 밥을 버리자니 너무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덜어내어 먹었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안회를 의심한 것이 부끄러웠다.
공자는 곧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두거라.
한 사람들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여씨춘추>
사람의 눈과 머리는
너무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이에 따라 함부로
다른 사람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판단하는 일에 관한 한
성인 공자도 자기의 눈과 머리를 믿지 않았다.
독선과 오해는
자신의 눈과 머리를 너무 믿는 데서 생긴다.
앞을 보고 뒤를 안다.
말에 관한 지식이 천하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백락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뒷발질 잘하는 말을 감별하는 법을
두 사람에게 가르치고자 하였다.
그는 두 사람을 데리고 마구간에 가서
뒷발질 잘하는 말을 골라보게 하였다.
한 사람은 말의 앞다리를 살펴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말의 뒷다리를 살펴보았다.
뒷다리를 살펴보고 말을 고른 사람이
자기가 고른 말의 엉덩이를 세 번이나 툭툭 쳤는데도
뒷발질을 하지 않자 그는 말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다.
앞다리를 보고 말을 고른 사람이 말했다.
“그 말을 어깨뼈가 휘어져 있고 앞다리에 종기가 있습니다.
말이 뒷발질을 하기 위해서는
앞다리에 의지하는 법인데
종기가 나 있는 앞다리로는 몸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뒷다리를 차올리지 못한 것입니다.”
<한비자>
성동격서
동쪽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서쪽을 친다.
바둑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을 보라.
까마귀가 날면 그 아래에는 적군이 있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말이다.
개미집을 보라.
그 밑에는 물길이 있다.
한비자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집 인심을 보려면
그 집 하인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를 보라.
우리의 민담에 나오는 말이다.
앞으로 간다고 앞만 보는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앞으로 가는지 옆으로 가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세상일은 이처럼 이치로 묶여 있다.
뒤를 알기 위해 앞을 보고
앞을 알기 위해 뒤를 보는 사람은 지혜롭다.
코를 새기려면 크게 새겨라
나무에 조각을 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코는 될수록 크게 하고
눈은 될수록 작게 새긴다.
코를 크게 새겨놓으면 나중에라도 작게 고칠 수 있지만
일단 작게 새겨놓으면 나중에 크게 고칠 수 없으며
눈을 일단 작게 새겨놓으면 나중에라도 크게 고칠 수 있지만
일단 크게 새겨놓으면 나중에 작게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 또한 이와 같아서
어떤 일이든지 나중에라도 고칠 수 있게 해 놓아야 한다.
<한비자>
앞날의 여유를 준비하는 삶은
마음이 편하고 풍요롭다.
내가 먼저 화를 내면
훗날 상대에게 사과를 해야 하고
내가 지금 참으면
훗날 상대가 나에게 사과한다.
여유있게 약속하면
행동에도 여유가 생기지만
“예, 아니오”라고 함부로 말해 놓으면
행동에도 여유가 없다.
내가 상대방과 공평하게 나누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상대방에게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은 그제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다음 일에 대비하자.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돼지 몸 속에 살고 있는 기생충 세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기생충 한 마리가 이를 보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나요?”
세 마리의 기생충이 대답했다.
“살찐 곳을 먼저 차지하려고 싸우지요.”
지나가던 기생충이 말했다.
“얼마 후 섣달 그믐이 되면
이 돼지는 제사용으로 불에 그을려 죽어버려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이 말을 듣고 기생충들은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그들은 힘을 합쳐 돼지의 피를 빨아댔다.
그러자 돼지는 점점 살이 빠졌다.
섣달 그믐날이 되었으나
사람들은 다른 살찐 돼지를 잡았고 이 돼지는 살려두었다.
<한비자>
살다보면 사람은 다툴 때도 있다.
그렇게 마냥 다투기만 하다가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를 잊고 다툼을 계속한다.
결국 다투는 사람들 모두가 피해를 본다.
잠시의 이익을 위하여 다투다가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힘을 합친 기생충들은
그래도 현명한 편이다.
없는 호랑이도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위나라 왕에게 물었다.
“지금 한 사람이 거리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믿지 않겠다.”
“두 사람이 거리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겠다.”
“세 사람이 거리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과인은 믿겠다.”
그 사람이 말했다.
“거리에 호랑이가 없음이 분명한데도
세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없는 호랑이가 있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한비자>
세상 사람 모두 지구는 평평하다고 했어도
지구는 둥글고,
세상 사람 모두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어도
지구는 돈다.
한 사람이 옳다 하고 백 사람이 그르다 해도
옳은 일이 있고,
한 사람이 그르다 하고 백 사람이 옳다 해도
그른 일이 있다.
세 사람이 주장하면
없는 호랑이도 생긴다.
여러 사람의 말이 무서운 경우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소문도 만든다.
소문을 믿지 말고 항상 실체를 살펴야 한다.
당신도 소문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믿을 것과 못 믿을 것
정나라 사람 중에 신발을 사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신발을 사러 가기 전날 밤에
자기 발을 종이 위에 올려놓고 모양과 크기를 그려두었다.
다음날 그는 시장에서 신발장수를 만났다.
그제서야 그는 어젯밤에 그려둔 그림을
안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신발장수에게 말했다.
“내 발의 크기를 그린 그림을 두고 왔으니
돌아가서 가지고 와야겠소.”
그가 그림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시장이 이미 파해
신발을 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 발로 직접 신어보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그 사람은 대답했다.
“나는 그림은 믿을지언정 내 발을 믿지는 않소.”
<한비자>
종교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종교끼리 싸움도 한다.
원수도 사랑하자는 사람끼리
원수처럼 싸우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학문 때문에 서로 싸우기도 한다.
예술을 하는 것도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들도
싸움을 한다.
돈을 버는 것은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돈을 벌려다가
오히려 불행해지기도 한다.
모두가 본래의 목표를 잃은 것이다.
신발을 사려 하면서
발을 그려놓은 그림을 믿고
정작 자기의 발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4. 거미는 왜 그물을 좁게 치는가
약속과 신의
진나라 문공이 열흘 치의 군량을 가지고
원성을 공격했다.
그는 대부들에게 열흘간만 공격해 보고 돌아올 것이라고
기한을 약속했다. 그러나 원성을 공격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는 병사를 거두어 퇴각하려고 했다.
그러자 원성 출신의 선비가 말했다.
“원성은 앞으로 삼일이면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문공의 측근도 말했다.
“원성은 이제 식량도 떨어지고 힘도 다했습니다.
군주께서 며칠만 더 공격하시면 성이 함락될 것입니다.”
문공이 대답했다.
“내가 대부들에게 열흘만 공격하고 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나는 믿음을 잃게 된다.
성을 하나 포기할지언정 믿음을 잃을 수는 없다.”
문공은 마침내 군사를 철수하였다.
원성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그렇게 신의를 지키는 군주에게 어찌 귀의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모두 문공에게 항복했다.
그러자 또한 위나라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그렇게 신의를 지키는 군주를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그들도 문공에게 투항했다.
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원성을 공격해서 위나라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신의 때문이었다.”
<한비자>
성 하나와 신의를 바꾸지 않으려는 문공은
오히려 위나라까지 얻었다.
손에 무엇인가를 잡고 있으면
더 이상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지만
손을 비우면 다른 다른 더 큰 것을 잡을 수 있다.
신의를 얻고자 하면 무엇인가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나의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신의는 얻을 수 있다.
버리고도 내가 버렸다는 사실을 잊을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증자의 돼지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이가 울면서 따라오자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 있어라. 내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주마.”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보니
증자가 아이의 말을 듣고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 이를 말리면서 말했다.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을 뿐인데
정말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해요?”
증자가 말했다.
“어린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오.
어린아이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따른다오.
지금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소.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머니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니
이는 교육의 방법이 아니오.”
말을 마치자 증자는 돼지를 잡아서 삶아 먹었다.
<한비자>
자식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이것이 아니면 틀림없이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그 핏줄이 어디로 가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습성을 바꾸려 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하는 대로 한다.
부모가 항상 누워 있으면
자식도 누우려 하고,
부모가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면
자식도 으레 책을 찾는다.
유능한 자여, 내 화살을 받아라
춘추 시대 진나라의 대부 가운데
해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 하나를
재상으로 추천하였다.
재상으로 추천된 사람은
해호가 자신에 대한 원한을 이제는 풀었다고 여기고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해호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해호는 자기를 찾아오는 그에게 활을 겨누며 말했다.
“너를 추천한 것은 공적인 행동일 뿐이다.
너라면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원수처럼 생각하지만 이는 사적인 감정이므로,
왕에게 너를 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원한이 공적이 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너에 대한 원한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두어라.”
<한비자>
공과 사의 구분.
주장하기는 쉽지만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보면 해호는 멋진 정치인이다.
조선 시대 이야기-
숙종 때의 명신 허미수와 송시열은
언제나 서로 대립하는 사이였다.
허미수는 송시열에 의하여 한때 좌천되기도 했으며,
입장이 바뀌자 허미수는 송시열을 사형에 처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시열이 병에 들었다.
여러 가지 약을 써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송시열은 이 병이야말로 허씨 집안에서 전해 오는 비방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송시열은 허미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약처방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송시열의 집안에서는 모두 이를 반대했다.
이를 기회로 허미수는 송시열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시열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허미수는 우리의 정적이지만
병든 사람을 해칠 사람이 아니다.”
송시열 집안 사람들이 마지못해 허미수의 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자,
허미수는 병환의 내용을 상세히 묻고 처방을 지어주며 물었다.
“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드릴 수 있겠는가?”
송씨 집안 사람들이 대답을 않고 돌아와 처방전을 펴보니
과연 그 처방에는 비상을 넣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놀라 이 사실을 송시열에게 말해 주었다.
송시열이 말했다.
“그대로 지어라. 허미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집안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약을 지었으나
비상만은 처방전보다 조금 적게 넣었다.
송시열은 이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
집안 사람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허미수를 다시 찾았다.
허미수가 물었다.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드렸느냐?”
“비상만은 조금 적게 넣었습니다.”
“허허, 그래? 그러나 그 정도라도 넣었으면
앞으로 살아가시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일세.”
두 사람의 풍모가 돋보이는 일화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정치인이 있었다.
다만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거미는 왜 그물을 좁게 치는가
탕임금이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사방에 그물을 치면서 말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과 땅에서 나오는 것
그리고 사방에서 오는 것이 모두 내 그물에 걸려들어라.”
탕임금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아,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잡으려 하는구나!
폭군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탕임금은 세 방면의 그물을 걷어내고 한쪽에만 그물을 쳤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미가 그물을 나뭇가지 사이에 좁게 치고
가재가 함정을 조그맣게 파듯이
언제나 여유를 두는 방법을 나는 배우고자 합니다.
왼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들은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들은 오른쪽으로 가게 하고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것들은 높은 곳으로 가게 하고
아래로 가고자 하는 것들은 아래로 가게 하고자 합니다.
나는 그물을 건드리는 것만을 잡겠습니다.”
남쪽 나라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탕임금의 덕은 동물에게도 미치는구나.”
그리하여 마흔 나라가 그에게 귀순하였다.
<여씨춘추>
쥐를 잡을 때도
도망갈 구멍은 남겨두듯이
무슨일이든 여유를 두어야 한다.
여유를 두지 않으면
상대가 오히려 극한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나를 해칠 수도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행동에 여유가 없는데
일에 여유가 있겠는가?
마음과 행동에 여유를 갖는 훈련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가질 생각을 하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불교의 체념이 이것이다.
탕임금은 사냥을 할 때도 여유를 두어
마흔 나라를 얻었다.
욕심 없는 사나이
하늘에 한 신선이 살고 있었다.
그 신선은 욕심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신선으로 만들어 함께 살고 싶어서였다.
신선은 세상 인심을 시험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큰 바위를 금덩이로 변하게 해주어도
작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신선은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이 돌을 금덩어리로 바꾸어 줄 터이니 가져가거라.”
그러나 그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
신선은 돌이 너무 작아서 그런가 싶어
큰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이 바위를 금덩어리로 바꾸어줄 터이니 가져가거라.”
그래도 그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
신선은 드디어 욕심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그를 신선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신선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는 크고 작은 금덩어리를 모두 싫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자 그 사람은 손가락을 내보이며 말했다.
“저는 다른 것은 필요없습니다.
조금전에 돌이나 바위를 금덩어리로 바꾸신
신선님의 손가락을 저에게 주실 수는 없는지요?”
<소득호>
욕망은 끝이 없다.
따라서 욕망을 채워야만 행복하다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욕망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선을 좋아하다가 망한 나라
제나라 환공이 유람하는 도중에
곽나라의 옛 성터를 지났다.
곽나라는 이미 망하여 그 성터는 폐허로 변한 지 오래였다.
환공은 지나가는 촌부에게 물었다.
“곽나라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촌부가 대답했다.
“곽나라 사람들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했습니다.”
환공이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 것은 훌륭한 일인데
왜 망했단 말인가?”
촌부가 대답했다.
“그들은 선을 좋아했으나 선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고,
악을 싫어했으나 악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폐허가 된 것입니다.”
<신서>
“허망한 사색에 젖지 말고 생활과 실천으로 뛰어들라.”
괴테가 한 말이다.
곽나라가 망한 것은 실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천은 이처럼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생각이나 계획이라도
실천에 옮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대개의 사람들은 뜻을 세우고도
실천을 두려워한다.
심지어는 실천이 두려워 뜻을 세우는 것조차도 겁낸다.
왜 실천은 어려운 것일까?
성질이 급하기 때문이다.
한 번이나 두세 번 해보고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의지가 약하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누구도 한두 번의 시도만으로
자기의 듯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없다.
역사상 의지가 강하기로 유명한 사람들도
모두가 수없는 실패 끝에 성공한 것이다.
다만 수많은 위인전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위인전은
유명한 사람들의 의지가
당신보다 훨씬 강하다고 주장하며
당신을 주눅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는 명백한 위인전의 해독이다.
그들의 의지가 당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위인전의 주장에 현혹되지 말라.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한없이 반복하여 시도한다는 것이지
한 번에 이룬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등겨와 곡식
추나라의 목공은 오리와 기러기를 좋아하여
왕궁에서도 이들을 길렀다.
목공이 명령을 내렸다.
“오리와 기러기에게는 곡식을 주지 말고 등겨를 먹여라.”
시간이 흐르자 왕궁 창고에 등겨가 떨어졌다.
관리들이 등겨를 구하려 하니
곡실 두 섬에 등겨 한 섬을 받을 수 있었다.
관리들은 이를 손해라고 생각하여
오리와 기러기에게 차라리 곡식을 먹이자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목공이 말했다.
“너희들은 내 뜻을 모른다.
곡식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어찌 그것으로 새를 기른다는 말인가?”
목공이 이어서 말했다.
“그대들은 작은 계산은 할 줄 알지만
큰 계산은 할 줄 모르는구나.
임금은 백성의 부모와 같은 법이다.
창고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준다고 하여
그것이 어찌 내 곡식이 아니란 말인가?
오리나 기러기에게 등겨를 먹이기 위해
창고의 곡식을 등겨와 바꾸더라도
그 곡식은 결국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신서>
작게 보면 손해처럼 보이는 것도
크게 보면 손해가 아닌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명신 이원익 이야기-
이원익이 어느 연못을 지나는데
어린아이가 동전을 연못에 떨어뜨리고는 울고 있었다.
이원익은 사람들을 시켜 연못물을 퍼내고
그 동전 한 닢을 찾아 어린아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연못물을 퍼냈던 사람들에게 수고비로 열 닢을 주었다.
하인이 이원익에게 물었다.
“한 닢의 동전을 찾기 위해서 열 닢을 쓰셨으니 손해가 아닌가요?”
이원익이 대답하였다.
“한 닢이 연못에 빠져 있으면 나랏돈 가운데 한 닢이 줄어든다.
그러나 열 닢을 들여서라도 한 닢을 건져내면
우리 나라 돈이 한 닢 느는 것이고,
열 닢이야 나에게서는 나가지만
누가 쓰든 우리 나라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냐?”
이와 같이 눈을 들어 크게 보면
설령 나에게는 손해지만 크게는 손해가 아닌 일이 있다.
새 옷을 입지 않으면 헌 옷이 생기지 않는다
옛날 중국의 옷은 거칠었다.
그래서 피부가 나쁜 사람은 새 옷을 입기 싫어했다.
동진에 환충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 사람도 새 옷 입기를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어느 날 그가 목욕을 마쳤을 때
그의 아내가 일부러 새 옷을 들여보냈다.
그는 화를 내며 새 옷을 돌려보냈다.
아내가 새옷을 다시 가지고 와서 말했다.
“새 옷을 입지 않으면 어떻게 헌 옷이 생길 수 있습니까?”
환충은 크게 웃으며 마침내 새 옷을 입었다.
<세설신어>
세상 모든 것이 인연과 조화이다.
있는 것도 있어야 할 이유가 있고
없어지는 것도 없어져야 할 이유가 있다.
어느 것 한 가지만 좋아하고 고집하는 것은
인연과 조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숲이 좋다고 숲에서만 살 수 있는가?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하고
들이 좋다고 들에서만 살 수 있는가?
강에서 나는 고기가 필요하고
강이 좋다고 강에서만 살 수 있는가?
숲에 가서 나무를 구해야 배를 만든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만 좋아하고
이를 고집하는 것은
인연과 조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흰밥과 붉은 밥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한 선비가 조문을 갔다.
마침 친구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 밥이 팥밥이어서 빛깔이 몹시 붉었다.
고지식한 선비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말했다.
“상중에는 붉은 팥밥은 먹어서는 안 되네.”
친구가 물었다.
“왜 그런가?”
선비가 대답했다.
“붉은 색은 기쁨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네.”
그러자 친구가 물었다.
“그렇다면 흰밥을 먹는 사람은
모두 상중에 있다는 말인가?”
<아학>
형식주의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항상 내가 형식주의에 빠져 있지 않나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가 거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땔감 구하기
노나라 사람들이
땔감 구하는 법을 자식에게 가르치는 방법은 이렇다.
부모가 자식에게 묻는다.
“백 리 떨어진 남산에도 땔감이 있고
백 보 떨어진 수목원에도 땔감이 있다.
너는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가겠느냐 수목원으로 가겠느냐?”
자식이 대답한다.
“수목원이 가까우니 그곳에서 땔감을 구할까 합니다.”
부모가 말한다.
“거리가 가깝다고 하여 쉽게 구하지 말고
또한 거리가 멀다고 하여 쉽게 포기하지 말라.
가까운 곳의 땔감은 언제나 우리 집의 땔감이요.
먼 곳의 땔감은 천하의 땔감이다.
우리 집의 땔감은 다른 사람이 감히 가져가지 못할 것이니
천하의 땔감이 다 없어져도 이 땔감은 남을 것이다.
너는 어찌해서 천하의 땔감부터 모으려 하지 않느냐?
우리 집의 땔감이 다 없어진다면
천하의 땔감이 어찌 남아 있겠느냐?”
<속맹자>
미래에 대비하자,
지금은 힘들지라도.
돌아가는 것이 좋으면 돌아가고
먼 데를 가는 것이 좋으면
먼 데로 가자.
눈을 크게 뜨고 앞날을 보자.
가까운 곳의 땔감을 다 없애버리면
그 다음에는 어찌할 것인가?
바둑을 두듯 살아보자.
고수의 바둑은
한 점을 두되 다음 수를 보고
항상 반상 최대의 곳을 찾아 그곳에 둔다.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것이
내 인생이라는 반상 최대의 점일까?
명궁과 기름장수
강숙이라는 사람은 활을 잘 쏘았다.
당대에 활쏘기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 자신도 이를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루는 그가 농장에서 활을 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기름장수 노인이 짐을 놓고 비껴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강숙이 쏘는 화살이 하나하나 적중하는 것을 보고도
단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강숙이 물었다.
“그대도 활에 대해 아시오? 내 활솜씨가 어떻소?”
노인은 대답했다.
“별것 아니군요. 그저 활에 익숙한 정도일 뿐이오.”
강숙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대는 어찌 내 활솜씨를 얕보시오?”
노인이 답했다.
“나의 기름 따르는 기술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소.”
그는 바로 호리병을 가져다 땅에 놓고
병의 입구를 엽전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반듯이 서서 국자로 기름을 부었다.
기름이 엽전 구멍을 통하여 호리병으로 들어가는데
엽전에는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이 기술도 별것 아닙니다.
한평생 기름장사를 하다 보니 손에 익숙한 것일 뿐이지요.
당신의 활솜씨도 이와 같습니다.
평생 활을 쏘니 그 정도는 될 것입니다.”
강숙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반성하였다.
<귀전록>
무엇이든 한평생 열심히 하다보면
상당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가보다.
농부는 하늘을 보고 내일 날씨를 알고
어부는 바다를 보고 그 밑에 고기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도자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그 빛깔만 보고도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를 알고,
고고학자는 돌덩이 하나로
몇 만년 전 사람의 생활을 알고,
목수는 썩은 기둥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를 안다.
이렇듯 한평생을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어떤 경지에 이른다.
그러므로 굳이 나의 기술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5. 공자도 모르는것
오만한 물고기
강에 돈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살았다.
이 물고기가 하루는 다리 아래에서 헤엄을 치다가
교각을 들이받았다.
그러자 돈이라는 고기는 그 교각이
자기를 들이받았다고 화를 냈다.
이 고기는 아가미를 펴고 지느러미를 세우고 배를 두드리며
물 위로 떠올라 교각을 원망하며
오래도록 거기서 떠나지 않았다.
독수리가 날아가다가 그 물고기를 보았다.
독수리는 그 물고기를 잡아먹어버렸다.
헤엄치다가 다른 것을 들이받고도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멋대로 화를 내더니
끝내 독수리에게 죽고 만 것이다.
슬픈 일이로다!
<유하동집>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는다고
과녁을 탓할 것인가.
산이 멋지게 그려지지 않는다고
산을 탓할 것인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를 탓할 것인가.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나의 자세가 바른가를 보고,
산이 그려지지 않으면
나의 마음을 살피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있는가를 살펴봄이 옳지 않겠는가.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지 못하면
발전을 없다.
공자도 모르는 것
공자가 여행을 하는 도중에
두 아이가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저는, 아침에는 해가 우리에게 가까이 있고
낮에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가 말했다.
“저는, 아침에는 해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낮에는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말한 아이가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아침에는 해가 대단히 커 보이지만
낮에는 아주 작아 보입니다.
이는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말한 아이도 이유를 설명하였다.
“아침에는 날씨가 서늘하지만
낮에는 아주 덥습니다.
이는 가까이 있는 것은 뜨겁고
멀리 있는 것은 서늘하기 때문이지요.”
공자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두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께서 아는 것이 많다고 말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군요.”
<열자>
오늘날의 과학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의 공자는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는 것이 많다는 공자도 이러하듯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살다보면
남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수업 중에 질문을 못 하는 것도
대개 남들은 다 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때는 곧잘 주눅이 든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내가 아는 것을 저들이 모르는 것이 또한 있으니까.
가장 좋은 것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선생님께
친구에게
길 가는 사람에게
아니면 누구에게라도 좋다.
물어서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 문제에 관한 한
나와 그는 평등해진다.
몰라서 불평등한 것에 비하면
물어서 평등해지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공자는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원숭이의 혁명
초지방에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침이면
늙은 원숭이에게 나머지 원숭이를 이끌고
산에 가서 과일을 따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그 십분의 일을 자기 몫으로 차지하였다.
만일 이를 바치지 않거나 속이는 일이 있으면
회초리로 원숭이를 마구 때렸다.
모든 원숭이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어느 날이었다.
어린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들에게 물었다.
“산의 과일 나무는 우리 주인이 심은 것인가요?”
늙은 원숭이가 말했다.
“아니야. 그냥 저절로 생긴 것이란다.”
어린 원숭이가 다시 물었다.
“산의 과일은 우리 주인이 아니면 못 따는 것인가요?”
늙은 원숭이가 다시 대답했다.
“아니야. 누구라도 딸 수 있단다.”
그러자 어린 원숭이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인에게 의지하고
그를 위해 일을 해야 하나요?”
어린 원숭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모든 원숭이들은 깨달았다.
그날 밤
원숭이들은 주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울타리를 부수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욱리자>
자기 것이 아니면서도
자기 것처럼 세상에 인식시키고
마치 자기 것처럼 행세한다는 이야기.
사물의 근본을 따져보자는 이야기.
근본은
이미 순치된 늙은 원숭이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원숭이에게서 찾아졌다는 이야기.
구두쇠 이야기
한 사람이 구두쇠가 되기 위하여
그 방도를 익혔으나 아직도 부족하다고 여겨져
구두쇠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고기 모양으로 자른 종이 한 장과
술처럼 보이는 물 한 병을 가지고 상견례를 치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침 선생님은 외출을 하고 부인만 집에 있었다.
그녀는 그가 온 목적을 알아차리고 예물을 보더니
얼른 빈 잔을 내놓고 말했다.
“차를 드시지요.”
그러나 물론 차는 없었다.
그녀는 또한 두 손으로 원을 그리더니 말했다.
“빵을 좀 드시지요.”
그뿐이었다.
그가 물러간 후에 구두쇠 선생이 돌아왔다.
부인이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자
구두쇠 선생은 화를 내며 말했다.
“쓸데없이 왜 그리 많이 대접했소?”
그리고는 손으로 반원을 그리며 말했다.
“이만한 반쪽이면 대접이 충분했을텐데.”
<설도해사>
이 이야기의 구두쇠 선생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어서 손해보지 않을 것도 아끼고 있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인사할 때 허리를 조금 더 숙이면
보다 정중해 보인다.
그러나 그걸 아낀다.
말 한 마디라도 조금 더 정중하게 하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 텐데
그걸 아낀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하면 서로 좋을 텐데
그걸 아낀다.
실례를 했으면 “죄송합니다”하면 참 좋을 텐데
그걸 아낀다.
아내에게 한 번 더“사랑합니다”하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낀다.
칭찬의 말도 아끼고
격려의 말은 더 아낀다.
주어서 손해볼 것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을 아주 아낀다.
누가 더 구두쇠인가?
건망증 환자
제나라에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걸으면 멈추는 것을 잊고, 누우면 일어나는 것을 잊었다.
그의 아내가 걱정하여 말했다.
“애자라는 사람이 불치병을 잘 치료한다는데
왜 그곳에 가보시지 않습니까?”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자
말을 타고 활과 화살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삼십 리를 못 가서 변기를 느끼자
그는 말에서 내려 대변을 보게 되었다.
화살은 땅에 박아두고 말은 나무에 매어두었다.
변을 마치자 왼쪽의 화살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위험하도다!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가?
하마터면 맞을 뻔했도다.”
그러다가 오른쪽의 말을 보며 말했다.
“쓸데없이 놀라기는 했지만 말이 한 필 생겼도다”
그는 말고삐를 잡고 돌아서다가 그만 자신의 변을 밟았다.
“이런 쯧쯧, 개똥을 밟아 신을 더럽혔도다. 아깝게 되었도다.”
그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간다는 것이
그만 자기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문 밖에서 잠시 배회하다가 물었다.
“여보시오, 여기는 뉘 댁이오? 애자 선생님 댁이지요?”
그러자 아내가 그의 건망증 때문인 것을 알고는 욕을 해댔다.
그가 슬퍼하며 말했다.
“부인은 평소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어찌 그리 남을 욕하시오.”
<애자후어>
어찌 이런 사람만이 건망증 환자이겠는가?
어제의 약속을 오늘 잊고
오늘의 결심을 내일 잊는다.
정치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어제 정한 법정신을 오늘 잊는다.
성직자는 자기가 한 말을 잊고
교인은 기도의 내용을 잊고
선생은 교실에서 한 말을 잊고
학생은 배우고도 그 내용을 잊어버린다.
말씀이 없고, 책이 없고
법이 없고, 학교가 없어서
세상이 혼탁한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건망증 환자여서
세상이 혼탁한 것일까.
아버지와 초상화
흡 지방에는 상인이 많았다.
한 선비가 그곳에 살았는데,
그의 부친은 젊었을 때 진 지방과 농 지방 일대로
장사를 떠난 지 이미 삼십년이 되었다.
그리하여 방 안에는 부친의 초상화 한 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왔으나
그 아들이 믿지 못하여 살그머니 그림과 비교해 보니
서로 닮은 데가 조금도 없었다.
그는 말했다.
“제 아버지는 살결이 희고 살이 쪘는데
당신의 살결은 검고 몸은 말랐습니다.
그림에는 수염이 검고 적은데
지금 당신은 수염이 희고 많습니다.
모자나 의복과 신발까지 어찌 이리 다를 수가 있습니까?“
그 선비의 어머니도 초상화를 보며 말했다.
“아! 과연 차이가 매우 크구나!”
잠시 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예전에 있었던 일들,
초상화를 그린 화가의 이름,
그리고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를 상세히 말해 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뻐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과연 제 남편이시군요.”
아들은 그제서야 예를 갖추고 그를 아버지로 받들었다.
남편이나 아버지는 천하에 다시 없이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나 일단 그림에 구애되니
아내와 자식조차도 의심하게 되었다.
선비들도 이와 같아서
경서나 사서가 제왕과 성현의 그림인 것을 모르고
그것에 구애되어 정작 성현의 마음은 알지 못하니,
이는 그림에 구애되어
아버지를 못 알아보는 것과 같지 않은가!
<경유록>
부자간에 친하게 지내라고
예법을 만들었으나
예법을 너무 따지다보니
친함이 없어지고,
조상을 친하게 생각하라고
제사를 모시게 하였으나
제사의 예법이 너무나 엄중하여
제삿날이 싫고,
아비를 알아보라고
초상화를 그려두었으나
오히려 그림 때문에 아비를 못 알아보고,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키니
달은 보지 않고 손끝만 바라본다.
이 모두가 내용을 버리고 형식을 취했기 때문 아닌가.
글자가 커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ㅡ’자를 가르쳤다.
다음날 아버지가 책상을 닦다가
젖은 걸레로 ‘ㅡ’자를 쓰고는
아들에게 그것이 무슨 글자인가를 물었다.
아들은 그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어제 가르쳐준 ‘ㅡ’자 아니냐?”
그러자 아들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어찌 그리 커졌습니까?”
<소부>
아들이 ‘ㅡ’자를 몰라본 것은
전날 배웠던 것이 ‘ㅡ’자의 모양이 아니라
‘ㅡ’자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에게 사과를 가르칠 때
크기만을 기준으로 가르친다면
어린아이는 사과와 배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고,
어린아이에게 감을 가르칠 때
색깔만을 기준으로 가르친다면
어린아이는 감과 귤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를 가르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용기를 잘못 가르치면
쓸데없이 힘자랑을 하고도 그것이 용기인 줄 안다.
예절을 가르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예절을 잘못 가르치면
아첨을 하고도 그것이 예절인 줄 안다.
명예를 가르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명예를 잘못 가르치면
악명이 높은 것도 명예로 안다.
유비와 장비
한나라 때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유명한 관상가 한 사람이 유비를 찾아왔다.
유비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관상을 보도록 했다.
그는 유비의 관상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관상이 장히 좋소.
얼굴빛이 희니 마음도 깨끗할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관운장의 관상도 보도록 했다.
관상가는 관운장의 관상을 보고 말했다.
“당신의 관상도 역시 좋소.
얼굴빛이 붉으니 마음도 붉을 것이오.”
이를 보고 있던 장비가 자신의 관상도 보아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비는 깜짝 놀라 장비를 말리며 말했다.
“장비 동생,제발 그만두게.
자네의 얼굴이 검으니 마음도 검다고 할 게 아닌가?”
<소림>
장자의 병
장자가 초라한 모습으로 위나라 왕의 앞을 지나갔다.
왕이 그를 보고 말을 걸었다.
“선생은 병이라도 드신 듯하군요.”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저는 가난해서 이런 것일 뿐 병에 걸린 것은 아닙니다.
선비는 도와 덕을 지니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합니다.
옷이 낡고 신이 뚫어진 것은 가난일망정 병은 아닙니다.
제 처지는 때를 못 만난 것에 해당할 것입니다.
원숭이가 가시 없는 나무 위에서는
왕자처럼 유유히 떠돌아다닙니다.
이런 때는 천하의 명궁이라도 원숭이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 많은 나무 위에 있을 때는
아주 조심하여 움직이고 사방을 둘러보며
겁을 먹고 후들후들 떨게 됩니다.
이것은 원숭이의 근육이나 뼈가 굳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있는 곳이 불편한 까닭에
재주를 마음껏 부릴 수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처럼 어두운 임금이 통치하는 세상에 살면서
병들지 않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장자>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가시나무 위의 원숭이가
겁을 내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도
저 사람이 나를 피해 가는 이유도
저 사람이 나를 못 믿는 이유도
저 사람이 망설이는 이유도
저 사람이 비겁해 보이는 이유도
저 사람이 약해 보이는 이유도
저 사람이 숨어 사는 이유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겸손과 현명
관중이 병에 걸렸다.
환공이 문병을 가서 물었다.
“그대의 병이 심하구려.
만일 그대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정사를 맡기면 좋겠소?“
관중이 반문했다.
“왕께서는 누구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포숙아를 생각하고 있소.”
포숙아는 관중과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러나 관중의 대답은 달랐다.
“안 됩니다.
그는 사람됨이 청렴하고 착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자기만 못한 사람과는 친하려 들지 않고
남의 과실을 들으면 잊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위로는 자기를 고집하여 군주에게 대들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여 백성의 반감을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좋은가?”
“습붕이 좋을 것입니다.
그는 진리를 알려 하고
낮은 사람에게서도 겸허하게 배우려 합니다.
자기 덕이 성인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기만 못한 사람을 가엾게 여겨 인정을 베풉니다.
자고로 현명함을 자랑하며 백성의 신망을 얻은 예가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자기의 현명을 감추고
백성에게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
백성의 신망을 얻지 못한 예가 또한 없습니다.
습붕은 이런 사람입니다.”
<장자>
자기만 못한 사람과 친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못난 사람도 그를 낳은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현명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현명할수록 오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잘못을 듣고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겸허한 사람이다.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것이 많다 한들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약 만드는 비방
송나라에 손이 안 트는 약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솜을 빨아주는 일로 생계를 삼았다.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이 이야기를 듣고
약 만드는 비방을 백 냥에 사고자 하였다.
주인은 집안 사람을 모아놓고 상의했다.
“나는 대대로 빨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왔으나
기껏 벌어보았자 몇 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 번에 백 냥을 받고 이 기술을 팔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리하여 주인은 약 만드는 비방을 팔아버렸다.
나그네는 이 비방을 손에 넣자
오왕을 찾아가 그 약이
수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오나라는 얼마 후에 월나라와 싸울 계획이었으므로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으며
그는 한겨울에 월나라 군대와 수전을 하여 크게 이겼다.
이 공으로 그는 큰 토지를 분봉으로 받았다.
어느 쪽이나 손을 안 트게 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지만
한 사람은 빨래질을 면치 못하였고
한 사람은 그것으로 뜻을 이루었으니
이는 기술을 쓰는 방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자>
모든 사물은 사용하기 나름이다.
통신에 관한 이야기 하나 -
유선통신이 발명되자 이 기술은 즉시 전투에 이용되었다.
부대와 부대 사이를 달리는 전령 없이도
통신으로 연락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일단 전선이 끊어지면 통신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래서 무선통신이 출현하였다.
무선통신이 생기자 전선이 끊어질 걱정은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바로 문제가 생겼다.
아군의 통신을 아무나 들을 수 있으므로
당연히 적군도 아군의 통신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선통신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이때 한 민간인이 무선통신의 사용권을 샀다.
아무나 들을 수 있는 통신기술이라면 그것을 이용하여
신문 대신 방송으로 뉴스를 전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이 방송국이 생긴 시초이다.
그러나 그가 방송국을 세우려 했을 때
수많은 신문사가 연합하여 방송국의 설립을 격렬히 반대하였다.
뉴스를 들은 사람은
신문을 사 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은 귀로 들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방송으로 뉴스가 보도되면서 당연히 신문도 더욱 많이 팔렸다.
이와 같이 사물은 이용하기 나름이다.
사람을 쓰는 것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6. 목숨을 구해 준 찬밥 한 덩이
조정에서 끝난 전쟁
추기라는 제나라의 재상이 있었다.
그 당시 제나라에는
서공이라는 사람이 미남자로 소문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옷을 입던 추기가 아내에게 물었다.
“서공과 나를 비교하면 누가 더 미남이오?”
아내는 서공이 추기를 따를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믿을 수 없던 추기는 다시 둘째부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도 본부인과 같았다.
다음날 어떤 손님이 추기를 찾아왔다.
추기는 그와 대담을 나누다가
서공과 자기 중에 누가 더 미남인가를 물었다.
손님은 대답했다.
“서공은 당신만 못합니다.”
그후 서공이 추기를 찾아왔다.
추기는 그를 상세히 뜯어보았다.
그러나 자기는 역시 서공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내가 나를 미남이라고 한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첩이 나를 미남이라고 한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나를 미남이라고 한 것은
나에게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는 궁궐에 들어가
위왕을 만나 말했다.
“제가 진실로 서공만큼 미남이 아닌데도
저의 아내는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의 첩은 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리고 손님은 제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모두 저를 서공보다 미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제나라는 영토가 광대하고 위세는 당당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궁중의 여인들과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왕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고
조정의 신하들이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고
백성들 중에 왕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왕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을
하나도 못 가진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자신의 잘못을 직접 면전에서 말해 주는 자에게 최고의 상을,
글로써 잘못을 알려주는 자에게는 중급의 상을,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비방하고 소문을 내어
왕의 귀에 들리게 하는 자에게는 하급의 상을 주겠다는
영을 내렸다.
이 영이 떨어지자 처음에는
왕의 잘못을 말하려는 군신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자
간하는 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일년 후에는
비록 말하고 싶어도 왕의 결점이 찾아지지 않았다.
위왕은 잘못을 지적받으면 바로 이를 고쳤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웃 나라들이 모두 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전쟁의 승리는 조정에서 이미 이루어진다”는 말은
이런 것을 일컫는다.
<전국책>
자기의 잘못을 지적받는 것,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 없이는
발전도 없다.
자기의 잘못을 지적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이라도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면
다시는 당신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은 채
뒤에서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잘못을 지적해 주면
그가 누구일지라도
정성스럽게 들어야 한다.
들을 때는 얼굴 붉게 무안하지만
돌아서면 가슴이 풍성해진다.
목숨을 구해 준 찬밥 한 덩이
중산군이라는 사람이 사대부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다.
이때 사마자기라는 사람도 초청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음식이 오간 후에 양고기국을 먹을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마침 국물이 부족하여
사마자기에게는 몫이 돌아가지 않았다.
사마자기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그는 마침내 중산군을 버리고 이웃 초나라로 갔다.
그후 그는 초왕으로 하여금 중산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중산군은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전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장정 두 사람이
창을 들고 뒤따르며 중산군을 지켜주었다.
중산군이 이상히 여겨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왜 나를 보호해 주는가?”
그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저희 부친이 살아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친이 배가 고파 쓰러져 있을 때
왕께서 친히 찬밥 한 덩이를 주셨습니다.
저희 부친은 그 찬밥 한 덩이를 들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부친이 돌아갈 때 저희들에게
만약 왕께 무슨 일이 생기면
죽음으로 보답하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중산군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타인에게 베푼다는 것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중요하며,
타인에게 원한을 사는 이유는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데에 있구나!
내가 한 그릇의 양고기 국물로 나라를 잃었고
한 덩이의 찬밥으로 목숨을 구하였구나!”
<전국책>
아무리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남에게 베풀 것은 있다.
따스한 손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고
애정 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볼 수는 있지 않은가.
이것이 그의 생애를 바꾸어놓을지
누가 아는가.
이와 반대로
사소한 말 한 마디가
무심코 던진 차가운 눈빛이
상대를 평생 서운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에게 주는 것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장님이 최고야
두 장님이 길을 걸으며 말했다.
“세상에서 우리 같은 장님이 가장 행복하지.
눈이 있는 삶들은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거든.
농부들은 더욱 심하지.
그들이 어찌 평생 한가롭게 지내는 우리만 하겠는가?”
마침 농부들이 그들의 말을 들었다.
농부들은 포졸인 척 하면서 길을 비키지 않았다는 구실로
장님들을 한바탕 때린 후에 쫓아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엿들으니
장님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역시 장님이 좋아.
만약 눈이 있었다면 얻어맞고 나서도 또 벌을 받았을 거야.”
<소찬>
자기 분수를 알고
항상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고귀하다.
그러나
얻어맞고도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패배주의적 자족은 안 된다.
술이 안 팔리는 이유
송 나라에 술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집은 손님 접대도 잘했으며,
술맛도 아주 좋았고,
간판도 크게 달았다.
그러나 술은 팔리지 않았다.
주인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이웃의 노인에게 상의하였다.
노인이 물었다.
“혹시 당신네 개가 무서운 게 아니오?”
주인이 대답했다.
“개가 무서운 것은 사실입니다만,
개가 무서운 것이 술 안 팔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사람들은 개를 무서워하지요.
만약 아이에게 돈을 주고 술을 사 오라고 했을 때
당신네 집 앞에 무서운 개가 있다면
누가 당신네 집으로 들어가 술을 사겠소?
이것이 당신네 술이 안 팔리는 이유입니다.”
<한비자>
한비자는 이 이야기의 끝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라에도 무서운 개가 있다.
훌륭하고 재능 있는 선비가
임금을 도와 좋은 정치를 하고자 할지라도
이를 싫어하는 신하들이 무서운 개가 되어 그를 막으면
그는 끝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간교한 지식
강물이 불었다.
정나라의 부자 한 사람이 강물에 빠져 죽었다.
어떤 사람이 그 시체를 건졌다.
그 부자의 가족들이 그에게 돈을 주겠으니
시체를 넘겨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체를 건진 사람은 큰돈을 요구하며
시체를 넘겨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총명하기로 이름난 등석이란 사람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등석이 말했다.
“안심하시오.”
그는 결국 당신네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 시체는 당신들밖에는 가지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가족들은 안심하고 며칠을 버티며
돈을 더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체를 건진 사람이 안달이 났다.
그 사람도 등석을 찾아가 어찌하면 좋으냐고 의견을 구했다.
등석이 말했다.
“안심하고 기다리시오.”
당신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그 가족들은 시체를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으니까요.”
등석이라는 사람은 각각의 약점을 간파하여
교묘한 화술을 펴고 있다.
이러한 화술은 각각의 입장을 살려주므로
쌍방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쌍방 모두에게
근거 없는 자신을 심어주어
자기 주장만을 하게 만든다.
쌍방에 대한 등석의 말은 옳다.
그의 말에는 모순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자세는 옳은 것인가?
문제는 그의 관점에 있다.
그의 견해에는
시체를 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없다.
머리가 좋으면 이렇듯
엉뚱한 논리로
세상을 혼란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간지라고 한다.
머리 좋다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죄악이다.
천리마를 구하는 법
옛날에 천금을 주고라도 천리마를 구하고자 하는 왕이 있었다.
그러나 삼년이 지나도록 천리마를 구할 수 없었다.
신하 한 사람이 왕에게 말했다.
“소인이 천리마를 구해 보겠나이다.”
왕은 천금을 주어 그로 하여금 천리마를 구하도록 하였다.
그는 삼개월 만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는 그곳으로 갔다. 그러나 말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는 죽은 말의 머리를 오백 금을 주고 사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살아 있는 말이지 죽은 말이 아니오.
죽은 말을 어디에 쓰겠소?“
신하가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왕께서는 좋은 말이라면 죽은 말도 사는데
살아 있는 말이야 어떻겠는가.
바라옵건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천하에서 왕에게 말을 팔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왕은 일년이 되지 않아서 과연 천리마 세 필을 구할 수 있었다.
<전국책>
필요한 것만 구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하게 보이는 것도 구할 줄 알아야 한다.
큰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큰돈이 오는 것은 아니다.
신용이 있는 사람에게만
큰돈이 오지 않던가?
좋은 사람이 필요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만 모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도 오지 않던가?
그러므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도
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길을 걸을 때는
발바닥만큼의 땅만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발바닥만큼의 땅만 있고
나머지가 모두 천 길 낭떠러지일 때
우리는 그런 길을 걸을 수 없다.
멕시코의 숲과
중국의 대나무밭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가?
그들이 공급하는 산소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나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은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경외감,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감정이다.
불을 비춰주면 불을 켜지요
공문거라는 사람이 밤중에 급병이 났다.
그는 잠자는 제자를 깨워 급히 불을 켜라고 하였다.
그러나 밤이 칠흑같이 어두워서
불 켜는 도구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승의 독촉이 심하자 제자가 말했다.
“이렇게 어두운데 급히 불을 밝히라니
선생님의 요구가 지나치십니다.
제게 불을 좀 비춰주십시오.
그러면 부싯돌을 찾아 촛대에 불을 켜지요.“
공문거가 제자의 뜻을 알아듣고 말했다.
“옳도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는 도리에 맞아야 하는구나.“
<은운소설>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도
사리에 맞는 일을 시켜야 한다.
남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도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무리한 일을 시키거나 요구를 하면
얻는 것 없이 원망만 듣는다.
시씨 집안 이야기
노나라에 시씨가 살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학문을 좋아했고 다른 아들은 병법을 좋아했다.
학문을 좋아하는 아들은
제나라 공자의 스승이 되었다.
병법을 좋아하는 아들은 초나라의 군정이 되었다.
그들의 봉록은 집안을 부유하게 하였고
그들의 벼슬은 부모를 영화롭게 하였다.
시씨네 이웃에 맹씨가 살았는데 역시 두 아들이 있었다.
그들 두 아들이 종사하던 일도 시씨네와 같았으나
항상 가난하게 지내면서 시씨네를 부러워했다.
그래서 하루는 시씨를 찾아가 벼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시씨네 두 아들은 자기들이 했던 대로 맹씨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맹씨네 아들 중에 학문을 닦은 아들이
진나라로 가서 학술로서 진나라 왕을 설득하려 했다.
진나라 왕이 말했다.
“지금 천하는 제후들이 힘으로 다투고 있는 형국이니
힘써야 할 일은 군대와 식량뿐이다.
만약 어짐과 외로움으로 나의 나라를 다스린다면
그것은 멸망의 길이 될 것이다.”
진나라 왕은 그에게 벌을 주고 추방하였다.
병법에 밝은 다른 아들은 위나라로 가서
병법으로 위나라 왕을 설득하려 하였다.
위나라 왕이 말했다.
“우리는 약한 나라로서 큰 나라 사이에 끼여 있다.
우리는 큰 나라를 섬기며 작은 나라를 달래고 있으니
이것이 나라의 안녕을 추구하는 길이다.
만약 군사력에 의지한다면 멸망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온전하게 그대를 돌려보내면
그대는 다른 나라로 가서 그들을 도울 것이니
이는 곧 나의 환난이 될것이다.”
위나라 왕은 마침내 그의 다리를 자르고 노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들 형제가 돌아온 뒤에
맹씨네 부자는 가슴을 두드리며 시씨를 원망했다.
시씨가 말했다.
“무릇 때를 얻은 사람은 창성하고
때를 잃은 사람은 망하는 법입니다.
당신들의 도는 우리와 같은데도 결과가 우리와 다른 것은
때를 잃었기 때문이지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천하의 이치 가운데 영원히 옳은 것은 없으며
천하의 행함 가운데 영원히 그른 일은 없습니다.
예전에 썼다가도 지금은 버리는 일이 있으며
지금은 버렸다가도 후일에 쓰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쓰이고 쓰이지 않고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를 보고 때를 만나서
일에 원만히 대응하는 것은 지혜에 속하는 일입니다.
지혜가 진실로 부족하다면
당신이 공자처럼 박학할지라도
어느 곳에 간들 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맹씨 부자가 말했다.
“그 뜻을 알겠습니다.”
<열자>
아는 것이 많을지라도
그것이 항상 쓰이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항상 쓰이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크게 불만스러워 할 것도 없다.
불만은 대개 허영에 차 있거나
권세와 부를 가치의 기준으로 삼을 때 나온다.
아는 것이 많고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한 복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세상의 이치가 설령 이렇다 하더라도
항상 준비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준비가 없으면
때가 와도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화위복
송나라에 어질고 의로운 행동을 좋아하는 집안이 있었다.
그 집안은 삼대를 두고 이러한 행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집안의 검은 소가 까닭도 없이 흰 송아지를 낳자
이를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이는 좋은 조짐이니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시오.”
그들은 공자의 말대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일년 후에
그 집의 아버지가 까닭도 없이 눈이 안 보이고
그 집 소가 다시 흰 송아지를 낳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시켜 다시 공자에게 물어보도록 하였다.
아들이 말했다.
“이전에 그분에게 물어보고 눈이 멀었는데
무엇 때문에 또 물으려 하십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성인의 말씀이란 한 번은 어긋나다가도 뒤에는 맞는 법이다.
다시 그분께 여쭈어보거라.”
아들이 다시 공자에게 물어보니 공자가 말했다.
“길한 조짐이로다.”
그리고 다시 흰 송아지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아들이 돌아와 공자의 말을 전하니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하거라.”
그들은 또다시 흰 송아지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일년 후에
그 집 아들도 또한 까닭 없이 눈이 멀었다.
얼마 후에 초나라가 송나를 공격하여
그들이 사는 성을 포위하였다.
백성들은 모두 곤궁하게 되었고
장정들은 성 위에서 싸우다가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부자가 모두 장님이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포위가 풀리자 그들의 눈병도 회복되었다.
<열자>
우리가 하늘의 존재를 믿건 안 믿건
하늘이 우리의 삶을 통괄하는 것은 아닌가.
삶의 가치가 권세와 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의 원리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정으로 성실하게 노력함에도
권세와 부가 따르지 않는 것은
하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인간에게
권세와 부로 보상하지 않는다.
권세와 부는 경우에 따라
하늘이 내리는 형벌일 수도 있다.
우직한 성실
노나라의 맹손이라는 사람이
하루는 사냥 중에 사슴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그는 진서파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슴을 가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런데 잡힌 사슴의 어미가 뒤따라오며 계속 울부짖었다.
진서파는 이를 차마 볼 수 없어서
잡은 사슴을 풀어주고 말았다.
맹손이 돌아와서 사슴을 찾았다.
진서파가 대답하였다.
“어미 사슴이 뒤따라오며 슬피 울기에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잡은 사슴을 어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손은 몹시 화를 내어 진서파를 쫓아냈다.
이로부터 석달이 지났다.
맹손은 진서파를 다시 불러 자식의 스승으로 삼았다.
맹손의 신하가 물었다.
“지난번엔 그를 내쫓으시더니
이제는 불러들여 아드님의 스승을 삼으셨습니다.
이는 어찌된 일입니까?”
맹손이 대답하였다.
“사슴의 괴로움을 차마 보지 못하고 놓아주었으니
내 아들이 혹시 괴로움을 겪을 때
이를 그냥 지켜볼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말하기를
교묘한 술책이 우직한 성실만 못하다고 한다.
<한비자>
우직한 성실에는 기교가 없어도 된다.
우직한 성실에는 총명이 없어도 된다.
우직한 성실에는 변명도 오해도 없다.
우직한 성실은 때로 목표도 없는 듯이 보인다.
우직한 성실은 다만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인내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직한 성실이 가장
쉽고, 편하고, 빠르고 또한 확실한 길이다.
7. 도둑을 기다리며
의사와 신하
진나라 무왕에게 병이 들었다.
그는 천하의 명의인 편작을 불러 병을 보도록 하였다.
무왕이 편작에게 자기의 병을 설명하자
편작은 완치가 가능하니 치료를 시작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무왕의 신하들이 이를 말렸다.
무왕이 신하들에게 말리는 이유를 물었다.
“대왕의 병은 귀의 앞, 눈의 아래쪽에 있습니다.
치료를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귀가 멀거나 눈이 멀지도 모릅니다.”
무왕이 걱정되어 이를 편작에게 말했다.
편작은 이 말을 듣고 격노하여 침을 내던지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지혜로운 자와 먼저 의논을 해놓고도
나중에는 지혜롭지 못한 자의 말을 듣고
일을 그르치려 합니다.
치료를 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이 나라의 정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하루아침에 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전국책>
‘귀가 얇은 사람’
누구의 말이든 잘 듣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과는 큰일을 도모하면 안 된다.
이런 사람은 곧잘
중요한 말은 흘리고
허황된 말에 귀를 기울인다.
물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그 방면에 현명한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병을 치료하는데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신하의 말을 들을 수야 없지 않은가?
도둑을 기다리며
우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우공이 사는 방을 살피다가
우공에게 들켰다.
도둑은 갑자기 겁이 나서
다른 집에서 훔쳤던 양가죽 옷을 던져버리고 도망쳤다.
우공은 그 옷을 얻고 매우 즐거워했다.
그는 양가죽 옷을 한 벌 더 얻고 싶었다.
그는 그때부터 매일 밤 도둑을 기다렸다.
만약 밖에서 돌아와 집안이 조용하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째서 도둑이 들지 않을까?”
<우선별기>
사람들은
가끔 독재자를 기다린다.
독재자도
무엇인가 한 가지는 잘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우공이 도둑을 기다리는 것처럼.
반란과 지팡이
어떤 대신이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어느 날 조정회의가 끝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 반란을 도모하려는 생각에 묻혀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거꾸로 짚고
지팡이 끝이 턱을 찔러 피가 흐르는데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정나라 사람이 이 얘기를 듣고 말했다.
“자기 턱을 잊어버릴 적에야 무엇인들 잊지 않겠는가?
집착하는 바가 있으면
눈앞에 구덩이가 있어도
눈앞에 나무기둥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하는 법이다.”
<열자>
손을 벽에만 대고 있으면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없고,
바위에만 시선을 두고 있으면
흘러가는 구름도 보이지 않고,
발을 한 곳에만 두고 있으면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가 없고,
하나만 옳다고 단정하면
다른 것은 모두 그르다 한다.
한 가지만 잡으라고 손이 있던가.
하나만 보라고 눈이 있던가.
마음도 이와 같아서
하나만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옳지만
저것도 옳을 수 있는 것.
지금은 이것이 옳으나
세월이 지나면
이것이 그를 수도 있지 않은가.
집착은 무서운 것.
그것은 우리를 눈멀게 한다.
남편의 바지
시골에 한사나이가 살았다.
그는 어느 날 아내에게 바지를 한 벌 만들도록 했다.
아내가 옷감을 들고 바느질을 시작하려다가
그에게 물었다.
“바지를 어떻게 만들까요?”
그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지금 입은 바지하고 같으면 되지 않겠소?”
아내는 바지를 만든 후에 이리저리 구멍을 내고 기워서
지금 입고 있는 바지와 똑같은 헌 바지를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다.
<한비자>
우리는 습관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다니던 길로만 다니려 하고
사용하던 것만 사용하려 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려고 하고
자기가 생각하던 방식으로만 생각하려 한다.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공자의 장점
자하가 공자에게 물었다.
“안회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회의 어진 행동은 나보다도 훌륭하지.”
“자공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자공의 언변은 나보다도 훌륭하지.”
“자로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자로의 용기는 나보다도 훌륭하지.”
“자장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자장의 의젓함은 나보다도 훌륭하지.”
자하는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네 사람은 왜 선생님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앉거라. 내가 너에게 얘기해 주마.
안회는 항상 어진 행동을 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자공은 언변이 좋으나 말을 아끼지 않고
자로는 의젓하기는 하지만 남들과 조화를 이룰 줄 모른다.
그러므로 네 사람의 장점을 합쳐서 나의 장점과 바꾸자고 해도
나는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섬기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열자>
인자하면서도
화내야 할 때는 화낼 줄 알고,
말을 잘하지만
상황에 따라 말을 아낄 줄 알고,
용감하지만
때에 따라 물러설 줄 알고,
자세가 항상 바르지만
경우에 따라 흐트러질 줄도 아는 것.
이것이 제자들이 못 가진 공자의 장점이다.
사족
제사를 지내고 난 주인이 하인들에게 술을 주었다.
하인들이 술을 보니 너무 적었다.
여러 사람이 마시기에는 부족하고
혼자 마시면 충분한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 뱀을 그리되 가장 먼저 그린 사람이
그 술을 다 마시기로 결정했다.
그중 한 사람이 뱀을 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뱀의 다리까지 그릴 여유가 있다네.”
하지만 그가 미처 뱀의 다리를 다 그리기 전에
“우리는 애초에 뱀을 그리기로 했지 않은가?
뱀은 본래 다리가 없는 동물이야.
그런데 그대는 다리까지 그렸으니 이는 뱀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는 술을 모두 마셔버렸다.
사족을 그린 사람은 결국 술을 잃고 만 것이다.
<전국책>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다가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어떤 일을 할 때
혹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일이 꼭해야 할 일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안 해도 될 일을 하게 되면
생활이 부산하고
마음 또한 부산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잊고 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세월이 흐른다.
두 스님 이야기
사천의 변방에 두 스님이 살았다.
한 스님은 가난했고 한 스님을 부유했다.
어느 날 가난한 스님이 부유한 스님에게 말했다.
“내가 남해를 여행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부유한 스님이 말했다.
“나도 배를 한 척 사서 남해를 여행하려고
수년동안이나 계획을 했는데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네.
그대는 무얼 믿고 가려는가?”
가난한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물병 하나와 밥그릇 하나면 족하네.”
이듬해가 되어 가난한 스님이 남해 여행에서 돌아오니
이를 본 부유한 스님은 크게 부끄러워 했다.
<백학당시문집>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후에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그냥 시작하면 된다.
죽은 아내 옆에서 부르는 노래
장자의 아내가 세상을 뜨자 혜자가 조문을 갔다.
혜자가 장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장구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당신의 아내는 평생을 같이 살았고
함께 자식을 길렀으며
당신을 위해 살다가 늙지 않았는가.
그런 부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은 또 모르겠거니와
장구를 치면서 노래까지 한다는 것은 심한 일이 아닌가? ”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네.
아내가 죽었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내 아내는
천지라는 거대한 방 안에서
편안히 잠자려는 것이니
내가 시끄럽게 곡을 하기보다는
즐겁게 축원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
〈장자〉
죽음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을 때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죽으면 먼저 간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죽음이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울음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적과 선비
한 선비가 있었다.
그가 호보라는 곳을 여행하다가
굶주림에 지쳐서 길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구라는 그 지방의 유명한 도적이
호리병에 죽을 담아와 먹여주었다.
선비는 세 모금을 삼킨 뒤에 눈을 뜨고 그에게 물었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나는 구라는 사람입니다.”
선비가 말했다.
“어허! 당신은 도적이 아니오?
어째서 나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거요?
나는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니 당신의 음식은 먹지 않겠소.”
그리고는 손을 땅에 짚고서 먹은 것을 토해내고
마침내 엎어져 죽어버렸다.
구라는 사람은 도적이지만 그의 음식은 도적이 아니다.
사람이 도적이라 하여 그의 음식도 도적이라 생각하고
먹지 않는 것은
이름과 사실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열자〉
내가 산을 좋아한다고 할 때
‘산’은 사실이고
‘좋아한다는 것’은 이름이다.
산이 좋아서 산에 가는 사람이
산을 더럽히고 돌아오면
그는 산에서 노는 자기의 기분을 좋아하는 것이지
산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름을 좋아하는 것이지
사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때
‘자식’은 사실이고 ‘사랑’은 이름이다.
내가 자식을 너무 사랑하여 자식에게 매를 들지 못한다면
이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차마 매를 들지 못하는 자기의 감정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이름을 사랑하는 것이지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제시된 주장이 있을 때
나라와 사회는 사실이고 주장은 이름이다.
나라와 사회를 위한다는 다수의 주장이 나와서 서로 다투다가
마침내 나라와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때
그들은 이름을 사랑하는 것이지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성실했으나 불행하게 산 사나이
손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스승을 찾아와 호소하였다.
“저는 향리에 있을 때도 행실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었고,
어려운 일을 당해서도
용기가 없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도 풍년을 만난 적이 없고
임금을 섬겨도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향리에는 저를 친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으며
나라에서는 추방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늘은 왜 저에게 이런 벌을 내리는 것일까요?
이것도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어찌하여 나만이
이런 운명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까? ”
스승이 말했다.
“지금 너는 지식을 자랑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자기 몸을 닦아 다른 사람의 더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밝고 밝은 일월을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타고난 몸을 온전히 보존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귀머거리 소경 절름발이가 되는 일이 없었으니
이것만 해도 행복한 일이 아닌가?
어찌 운명을 탓할 여가가 있다는 말이냐.
어서 돌아가거라.”
〈장자〉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하여 죄를 짓는 일이 없는가?
총명한 사람은 우둔한 사람을 주눅들게 하고
우둔한 사람은 총명한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유능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무능한 사람은 유능한 사람을 오만하게 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슬프게 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에게 허영을 가르치고
목발 짚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건강한 사람은
목발 짚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존재 자체가 죄일지도 모른다.
싸움닭
기성자라는 사람이
주나라 선왕을 위하여 싸움닭을 길렀다.
열흘이 지나자 선왕은 닭이 싸움을 할 만한가를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아직 안 됩니다.
지금은 교만하기만 하여 자기의 함만 믿고 있습니다.”
다지 열흘이 지나서 선왕이 또 묻자 그가 말하였다.
“아직 안 됩니다.
다른 닭을 보면 싸움만 하려 합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 선왕이 묻자 그가 말하였다.
“아직도 안 됩니다.
지금도 상대방을 노려보며 자기의 힘찬 기운을 내보입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 선왕이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거의 됐습니다.
이제는 교만하지도 않고
힘자랑을 하지도 않고
함부로 싸우려 하지도 않아서
마치 나무로 깍아놓은 듯합니다.”
이 닭이 싸움판에 나서서 꽂꽂이 서 있자
다른 닭들은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도망쳐버렸다.
〈열자〉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힘을 쓰지 않고도 이기는 것.
싸움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
힘이 골수에 들어차면
그 힘은 밖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술도 그렇고
용기도 그렇고
지혜도 그렇다.
남에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술과 용기와 지혜를 연마하라는 열자의 충고이다.
8. 주인을 보고도 짖어대는 개
붕새와 참새
궁발의 북쪽에 명해라는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가 바로 천지이다.
거기에 고기가 한 마리 사는데
그 고기는 엄청나게 커서 길이가 몇 천리나 되었다.
그 고기의 이름이 곤이다.
또한 이곳에 사는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크기가 엄청나서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구름처럼 보인다.
한 번 날기 시작하면 구만 리
구름도 이르지 못하는 높은 하늘을 날아
남극의 바다로 향한다.
이것을 본 참새가 비웃었다.
“저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나는 몇 길 날아 오르다가 땅으로 내려와서
쑥대밭 사이로 돌아다녀도 잘만 사는데
저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작은 것은 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낮은 것은 높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얕은 것은 깊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의 경우도 그렇다.
뜻이 작은 사람은 큰 뜻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자기를 기준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수많은 오해와 혼란이 생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비상이 필요하다.
현실을 떠나 비상하려는 노력은
그 노력 자체만으로도 이미 멋지다.
노력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의 생활을 바꾸어버릴 것이다.
공자의 선생
공자가 숲은 지나다가 매미 잡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곱추였는데, 남들은 잡기 어려워하는 매미를
마치 개미를 줍듯이 쉽게 잡고 있었다.
공자가 물었다.
“그대의 매미 잡는 솜씨는 정말 교묘하오.
이에도 도가 있습니까?“
곱추가 대답하였다.
“저는 도를 터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막대기 끝에 공을 두 개 쌓아놓고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는 연습을 합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매미를 잡을 때
실수하는 경우가 아주 적습니다.
그 다음에는 막대기 끝에 공을 세 개 쌓지요.
이것이 성공하면 매미를 잡을 때
실수하는 경우가 열 번에 한 번 정도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막대기 끝에 공을 다섯 개 쌓지요.
이것이 성공하면 매미를 줍듯이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매미를 잡을 때면
저의 몸은 나무기둥을 세워놓은 것 같이 미동도 하지 않으며
저의 팔은 마른 나뭇가지와 같이 단단하고
마음은 오직 매미만을 생각합니다.
몸을 젖히지도 않고 기울이지도 않으며
세상 만물을 잊고 매미만을 생각하는데
어찌 만물을 잊고 매미만을 생각하는데
어찌 매미를 쉽게 잡지 못하겠습니까?“
공자가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뜻을 한 곳에 집중하면 귀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더니
바로 이분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가끔 우리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을 본다.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러한 능력을 갖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그러한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집중이 결과는 무섭다.
집중은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도 변화시킨다.
집중은 시간을 늘이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집중을 통하여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던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집중의 효과를 부정한다.
이는 짧은 시간의 집중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생을 계획하고 자신의 할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오년이나 십년 단위의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대단히 먼 일처럼 생각되지만
이십대의 청년이 십년 동안 집중해 온 일은 삼십대에는 이루어지며
삼십대에 집중해 온 일은 사십대가 되면 이루어진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해 보자
십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다.
주인을 보고도 짖어대는 개
양자의 아우 중에 포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흰옷을 입고 외출을 했다.
그런데 도중에 큰비를 만났다.
그는 도중에 큰비를 만났다.
그는 흰옷을 벗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집 개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맹렬히 짖어댔다.
그는 성이 나서 개를 때려주려 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양자가 말했다.
“때리지 말아라.
너도 역시 그와 같을 게다.
우리 개는 흰색이 아니냐.
그런데 이 개가 조금 전에 어디를 나갔다가
검은 개가 되어 돌아왔다면
네가 어지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개가 주인을 보고 짖은 것은
주인의 겉모습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변화에 민감하다.
멋을 부리고 나타난 사나이 앞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어 나타난 친구 앞에서
화장을 바꾸고 나타난 여인 앞에서
우리는 그들의 변화를 본다.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변화를 보고
우리는 곧잘 놀란다.
그러나 겉모습의 변화에 만감하지 말자.
본질을 잊는 수가 있다.
상과 벌
감무라는 장군이 의양 땅을 공격할 때
세 번이나 북을 쳐서 공격 신호를 보냈으나
병사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장교가 말했다.
“병사들에게 상벌을 밝혀서 사기를 높여주지 않으면
공격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자 감무가 병사들에게 말했다.
“나는 의양땅을 반드시 함락시켜야 한다.
내일 싸움에서도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저 의양의 성곽을 내 무덤으로 삼고 말겠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산으로
공을 세운 자에게 상금을 주기로 했다.
이튿날 다시 북을 쳐 공격하자
의양은 바로 함락되었다.
사람은
상과 벌에 약하다.
당신이 조직체의 책임자인데
그 조직이 잘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과 벌을 주었음에도 조직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상과 벌을 정확하게 주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과 벌이 정확하지 않다면
조직은 생명을 잃는다.
나라의 정치도 이와 같고
국민학교의 교실도 이에서 예외가 아니다.
옥돌과 쥐고기
정나라 사람들은
갈지 않은 옥돌을 ‘박’이라고 한다.
주나라 사람들은 말리지 않은 쥐고기를
역시 ‘박’이라고 부른다.
물건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다.
주라나 사람이 ‘박’을 가지고
정나라 상인에게 ‘박’을 사겠느냐고 물었다.
정나라 상인은 그것이 ‘박’인줄 알고 사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상자를 열자마자 정나라 상인은
그것이 쥐고기인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거절했다.
조나라 평원군은 스스로 천하 제일이라고 하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 무령왕을 행궁에서
굶어 죽에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각국의 왕들은
그를 천하 제일의 왕으로 존중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각국의 왕이란 사람들은
정나라의 상인보다도 총명치 못한 셈이다.
그들은 천하 제일이라는 이름에만 집착하여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름이 모두 ‘박’이라 할지라도
하나는 옥돌이요 하나는 쥐고기이다.
정나라 상인은 ‘박’이라는 이름만 듣고」
그것이 옥돌인 줄 알고 사려 했다가
그것이 쥐고기인 것을 알고 사지 않았다.
이름에 혼란되어 본질을 잘못 알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한다.
나라를 배반하고도 애국이라고 이름 붙이면 그것을 믿고
반란을 일으키고도 애국이라고 이름 붙이면 그것을 믿고
역사를 혼란시키고도 내 고향을 위한다고 이름 붙이면
그를 지지한다.
박과 박이 이름은 같으나 쥐고기와 옥돌의 차이가 있듯이
같은 이름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명분에 눈이 어두워 사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명분에 속아서 사실을 모르거나
분명한 사실도 곧잘 잊기 때문이다.
선비와 어린아이의 죽음
부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하고 의학 지식도 상당하였다.
그러나 행동이 느리고 생각이 다소 우둔한 데가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답답한 선비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가 하루는 점잖은 걸음으로 시장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위씨가 어디 있소?”
그는 위씨를 만나서 몇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위씨가 그에게 자기를 찾는 까닭을 물었다.
그제서야 부현은 말했다.
“내가 마침 어느 우물 옆을 지나고 있었다오.
그 우물물에는 독이 있어서 사람이 먹으면 죽게 되오.
그런데 그대의 부인이 우물 옆의 나무 아래서
바느질을 하다가 피곤해서 그런지 졸고 있었고
그대의 어린아이가 우물 옆 서너 자밖에 안 되는 곳에서
놀고 있었소.
혹여 어린아이가 우물물을 먹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소만
남녀가 유별한지라 부인을 깨울 수 없어
이렇게 그대를 찾아온 것이라오.”
위씨가 깜짝 놀라 뛰어가보니
부인은 이미 우물가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열미초당필기>
예의를 지키다가 사람을 죽게 해도 되는 것인가?
이 선비는 당시의 예의를 알았으나
예의가 무엇을 위해 있는지는 몰랐던 것이 아닌가?
금을 훔친 사나이
옛날 제나라 사람 가운데
금을 몹시 갖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이른 아침에 의관을 걸치고 시장에 가서
금을 파는 상점을 찾았다.
그는 무심히 그곳의 금덩이를 들고 나갔다.
관리가 그를 붙잡고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는데도
그대가 남의 금덩이를 훔친 것은 웬일인가?”
그가 대답했다.
“금덩이를 가지고 갈 때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열자>
앞만 보면
뒤는 보이지 않고
땅만 보면
하늘은 보이지 않듯이
금만 보면 금만 보이고
잠시 후에 당할 수모는 보이지 않고,
권세만 보면 권세만 보이고
세상의 질타는 보이지 않는다.
욕망에 눈이 어두운자.
잠시후의 패망을 모르는 자.
이들은 모두
인간과 역사를 어리석게 여기며
하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침 시장과 저녁시장
맹상군이 제나라에서 파직되었다가
다시 재상으로 임명되어 돌아오는 길이었다.
제나라의 신하인 담습자가
국경까지 마중 나가서 그에게 말했다.
“예전에 그대를 쫓아낸 사대부들에게
지금도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까?”
“있지.”
“그렇다면 그들을 처단하실 작정입니까?”
“그렇네.”
담습자가 말했다.
“모든 일에는 결과가 있는데
그런 결과가 생기는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시장에 비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장이란 아침에는 사람이 들끓지만 저녁에는 텅 비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침 시장을 사랑하거나
저녁 시장을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고, 없으면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군을 싫어할 이유가 있으면 군을 내쫓고
군을 가까이할 이유가 있으면 군을 가까이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군께서도 원망을 덮어두시지요.”
이말을 듣자 맹상군은 자기가 보복하려 했던 사람
오백 명의 명단을 찢어 버리고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국책>
누가 나를 싫어한다면 반드시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내가 옳다 하고 그를 미워하면
그는 나를 떠나거나
오히려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다.
이는 그에 대한 미움을 잊고
그로 하여금 나에게 오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
제왕과 흉년
제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조나라 위후에게 문안편지를 올렸다.
그러자 위후는 편지는 뜯어보지도 않은 채 먼저
다음과 같이 물었다.
“금년에 흉년은 들지 않았는가?
백성들은 모두 별일 없는가?
왕도 역시 안녕하신가?”
사신이 불쾌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우리왕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으시고
곡식과 백성의 안부를 먼저 물으시니,
이는 천한 것을 앞세우고
존귀한 것을 뒤로 하는것이 아닙니까?”
위후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만약 흉년이 들었다면 백성이 어디 있겠으며,
백성이 없다면 어떻게 왕이 존재하겠느냐?”
위후는 계속하여 물었다.
“네 나라에는
종리자라는 처사가 한분 계시다고 하던데
그분도 안녕하시냐?
그분은 자기 식량이 남아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모자라도 남에게 나누어주며
의복도 내 것 네 것 없이
헐벗은 자에게 나누어준다 하니
이는 왕을 도와 백성을 보살피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도록 어찌하여 정사를 맡기지 않는가?
자중이란 자는 아직도 살아 있는가?
그는 왕에게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자기의 가정도 건사하지 못하고
다른 제후들과도 불화만 맺었으니,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잘산다는것을 보여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처단하지 않았는가?”
<전국책>
근본이란 무엇이고
말단이란 무엇인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사람을 멀리 해야할 것인가.
어떤 일을 먼저 하고
어떤 일을 나중에 할 것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근본과 말단을 구분한다.
그러나 지혜의 길로 나아가기는 참으로 힘든 일.
끊임없는 노력과 욕망의 억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죽은 후에 쉬어라
자공이 배움에 싫증이 나자
스승인 공자에게 말했다.
“휴식을 취할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휴식할 곳이 없는 법이야.”
자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에게는 휴식할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있기는 있지.
저 무덤을 보아라.
울룩불룩 솟아 있는 저 무덤이야말로
네가 쉴 곳임을 알아야 한다.”
자공이 말했다.
“위대하도다, 죽음이여!
군자에게는 휴식을 뜻하고
소인에게는 굴복을 뜻하는구나.”
공자가 말했다.
“자공아, 네가 그것을 알았구나!
사람들은 모두 삶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삶 가운데에 고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르며,
늙어서 힘들게 되는 것은 알지만
늙으면 편안함이 온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무서움만 알지
죽음이 휴식을 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열자>
고난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흔히 와서는 안 될 것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삶에는 원래 고난이 없어야 당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고난은 즐거움과 함께 삶의 중요한 요소이므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다만 고난이 찾아오는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만이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늙어가는 것과 죽음도 이와같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
예외는 없다.
그러므로 늙어감과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말자.
늙으면 찾아오는 인생에 대한 관조가 있고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공자의 생각이다.
========================================= 02
도시를 걷는 낙타 2
허성도 편저
출판사: 사람과 책
책머리에
나는 가끔 낙타를 생각한다.
낙타는 대개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선량해 보인다. 언뜻보면 유약해 보이면서도 낙타는 언제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낙타는 황량한 사막을 걷고 또 걷는다. 그것은 인고의 행렬처럼 보이기도 한다. 낙타에게서는 좀처럼 뛰어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다. 그러나 낙타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 묵묵함과 침착함, 온순함과 강인함, 그리고 척박한 사막을 한 걸음씩 걸어가는 질박함의 등 뒤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석양의 정경은 마치 사막의 황혼이 낙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낙타가 나에게 주는 인상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가끔 중국의 옛이야기를 읽는다.
전에는 공부를 위하여 읽었지만 근래에는 그냥 나를 위하여 읽는다.
어떤 이야기는 일이천년 전의 것이고 어떤 이야기는 일이백년 전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 가운데는 허허 웃고 지나갈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것도 있고, 나의 삶의 지표가 될 만한 가슴 덥히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만날 때면 나는 마치 잊었던 친구가 찾아온 것 같은 반가움과 뜨거움을 느낀다. 그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럴 때마다 나는 홀로 책상 앞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저자나 주인공, 어린 시절 선생님,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친구나 혹은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잠시잠시 돌아와 등장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생선장수 아주머니나 식당주인, 무심히 길을 지나는 사람, 혹은 사업가나 정치인도 찾아온다. 그러나 언제나 틀림없이 이 이야기판에 와 있는 손님은 나보다 나이 적은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의 내용에 동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의문을 표시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못 들은 척하기도 한다. 더러는 이 환상의 이야기판을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이야기판을 벌일 때면 그들은 언제나 가장 반가운 손님이 되어 이야기판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판의 대화 내용을 정리하여 모은 것이다.
경우에 따라 이 책에 실린 이야기와 이에 대한 나의 견해가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곳에 따라서는 이 글을 읽은 귀하에게 전혀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제 겨우 반평생을 살아온 한 사람의 견해에 불과한 것이므로, 귀하의 마음대로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줄 것을 기대한다. 틀린 점이 보이면 그때마다 이를 지적해 달라는 어려운 부탁도 함께 드린다.
끝으로 밝혀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중국의 옛 책에서 가려 뽑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글이 원전의 번역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생각에 따라 원래의 이야기를 재편집한 것도 있으며 말을 바꾼 부분도 있다. 이는 중국의 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으면 오히려 원해의 뜻을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중국인과 우리의 언어 감각이 서로 다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결실이 귀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필자에게 실로 고귀한 보람이 될 것이다. 이 시간 이후에 마련되는 환상의 이야기판에서 필자는 아마도 귀하의 모습을 찾게 될 것 같다. 낯 모르는 사람끼리, 먼 곳에 있는지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르는 인연 없는 사람끼리 모이는 대화의 장에서 귀하와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1994년 12월
허성도 삼가 드림
1. 물은 왜 불보다 무서운가
명마를 찾는 사람
백락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명마를 잘 알아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진나라 목공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도 이제는 늙었소.
당신 자손 중에 말을 잘 고를 만한 사람이 있소?”
백락이 대답했다.
“그저 좋은 말이란 근육과 뼈를 보기만 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명마는 그 재질이 골수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구방고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말에 대한 안목은 저보다 훌륭합니다.
그를 만나보도록 하십시오.”
목공은 구방고를 만나 그로 하여금 명마를 구하도록 하였다.
구방고는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석 달 만에 돌아와 보고하였다.
“찾아냈습니다. 사구라는 곳에 있습니다.”
목공이 물었다.
“어떤 말이오?”
구방고가 대답했다.
“암놈이며 색깔은 누렇습니다.”
목공은 심부름꾼을 시켜 그 말을 데려오게 하였다.
심부름꾼은 그 말이 숫놈인데다가 검은색이라고 보고하였다.
목공은 불쾌하여 백락을 불렀다.
“틀렸소!
당신이 추천했던 구방고라는 자는
말의 색깔이나 암수조차도 구별 못 하니
어찌 말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가 있겠소?”
백락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구방고가 본 것은 말의 내면에 있는 명마의 소질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므로 밖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말의 정수만을 파악하고 대강은 잊어버린 것이며
말의 재질을 살피고 외모는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살펴야 할 것만을 살피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빠뜨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그가 찾아온 말은 과연 천하의 명마였다.
<열자>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일의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고
그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주변에 마음을 더 쓰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찾을 때에도
외모에 먼저 집착한다.
그러나 사람을 정말 볼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려 한다.
그러다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변적인 요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주변적인 것에 마음을 주다보면
자칫 본질을 잊게 된다.
평생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까?
평생의 직장을 구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까?
평생의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까?
선비와 죽음
제나라의 신하인 관연이라는 사람이
죄를 지어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좌우의 식객들에게 물었다.
“그대들 가운데 누가 나와 더불어
다른 제후에게 투항할 것인가?”
그러나 같이 가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관연은 그들이 이렇게 무정한가 싶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슬프도다.
선비를 얻기는 쉬웠는데 쓰기는 어찌 이토록 어려운고?”
그러자 전수라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의 오리는 먹이가 남아돌아도
당신의 선비들은 하루 세 끼를 먹지 못했고,
당신의 후궁들은 비단치마를 끌며 다녀도
당신의 선비들은 의복이 부족했습니다.
이는 선비에게는 재물을 소중히 여기고
오리나 후궁들에게는 재물을 가벼이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선비는 오로지 죽음을 소중히 여깁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가벼이 여기는 것조차도 선비에게 주지 않으면서
선비가 중히 여기는 죽음으로 당신을 섬기라고 하니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선비를 얻기는 쉬우나 쓰기는 어려운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전국책>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주지 않고 얻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망이다.
그러나 남에게 주기가 어디 쉬운가?
남에게 주는 것도 자꾸 연습을 해야 한다.
남에게 주는 연습을 게을리 하면
나에게 남아도는 것조차도 남에게 줄 수가 없다.
따뜻한 눈길 한번
따뜻한 손길 한번
따뜻한 말씨 한 번 줄 수가 없다.
가끔 내 집의 쓰레기통을 열어보자,
남에게 필요한 것을 버린 일은 없는지.
그리고 마음의 창고도 열어보자,
주어도 남을 것을
아끼고 쌓아놓은 일은 없는지.
세 가지 즐거움
맹상군이 각국을 순방하다가 초나라에 이르렀다.
초나라에서는 그에게 상아로 장식한 상을 선물하고자 하여
등도라는 사람에게 운반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등도는 이 일을 맡기가 싫었다.
등도는 맹상군의 문객인 공손수에게 말했다.
“나는 맹상군에게 상아 상을 실어다줄 책임을 맡았는데
그 상아 상의 값은 천금이나 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여 흠이라도 내게 되면
제 처자를 팔아도 그 값을 물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만약 이 책임을 면하게 해준다면
저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 오는 보검을 드리겠습니다.”
공손수가 그 말을 듣고 맹상군에게 가서 물었다.
“군께서는 초나라의 상아 상을 받을 생각이 없겠지요?”
“아무렴!”
“저도 군께서 그 상을 받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작은 나라가 그동안 군을 훌륭하게 대접한 것은
군께서 빈궁한 사람을 도와주고
정의롭게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은 나라의 영걸들이 자기 나라 일을
군과 상의한 것은
군의 의기를 좋아하고 군의 청렴함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의 상아 상을 받으신다면
다음에 갈 작은 나라들이 무엇으로 군을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군께서 그 상을 받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이 옳도다!”
이 말을 들은 공손수가 기뻐하며 막 달려 나가려는데
맹상군이 그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그대는 나를 보고 상아 상을 받지 말라고 했지?
참 좋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왜 그렇게 펄펄 뛰며 좋아하는가?”
“예. 그것은 즐거운 일이 세 가지나 생긴데다가
보검까지 얻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군의 식객이 백여 명이나 되지만 누구 하나 감히
군 앞에 나아가 바른 말을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냈으니 이것이 첫째 즐거운 일이고,
제가 바른 말을 했더니 군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둘째 즐거운 일입니다.
결국 저의 말이 군의 과실을 고쳐준 셈이니
이것이 셋째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상아 상의 운반을 책임졌던 등도라는 사람이
그 책임을 면하게 해주면
자기 집안의 보검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음, 아주 좋다. 그런데 그 보검을 받을 생각인가?”
공손수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찌 감히 받겠습니까?”
맹상군이 말했다.
“아니다. 빨리 가서 받아라.”
이렇게 말하고 맹상군은 문 밖에 다음과 같이 써 붙였다.
“누구든지 나의 명성을 높여주고
나의 잘못을 막아주고
그러고도 사사로이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서슴지 말고 빨리 들어와 말하라!”
<전국책>
맹상군은 멋지다.
멋진 임금은 멋진 신하를 얻는다.
멋진 장군은 멋진 부하를 얻는다.
멋진 사람은 멋진 친구를 얻는다.
멋진 남자는 멋진 부인을 얻고
멋진 여인은 멋진 남편을 만난다.
자기의 부인이 멋진 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자기의 남편이 멋진 남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멋진 친구가 없는가?
멋진 부하가 없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멋진 사람인가 되돌아볼 일이다.
그러나
멋진 부모가 반드시 멋진 자식을 두는 것은 아니며
멋진 자식이 반드시 멋진 부모를 모시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므로
멋지지 않다고 하여 버리거나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은 왜 불보다 무서운가
정나라의 재상 자산이 병에 걸렸다.
그는 유길이라는 사람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그대가 필히
정나라의 국정을 담당해야 할 것이오.
정치를 할 때는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야만 하오.
불과 물을 보시오.
불은 뜨겁고 맹렬한데도
타 죽는 사람은 적고,
물은 약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빠져 죽는 사람이 많소.
그러니 그대는 엄격한 법도로 정치를 해야지
유약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오.”
그러나 자산이 죽은 후에 유길은 엄격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나라의 청년들은 떼를 지어 도적이 되고
숲 속이나 호수에 숨어 반란을 도모하였다.
유길은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하루 밤낮을 싸워서야 겨우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유길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일찍 자산의 가르침대로 했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후회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비자>
불길은 무섭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불길을 겁내어 함부로 뛰어드는 일이 없다.
물은 부드럽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함부로 물 속에 뛰어든다.
이것이 불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물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다.
연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면
주의하지 않는다.
가정교육도 이와 같다.
연약하게 교육받은 어린이는
집 안에서는 사랑받을지 모르지만
집 밖에서는 사랑받지 못한다.
엄격하게 교육받은 어린이는
예의를 알고 염치를 알아
집 안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사랑받는다.
어느 것이 현명한 가정교육인가?
염주를 목에 건 고양이
고양이가 어느 날 목에 염주를 걸었다.
나이 많은 쥐가 이를 보고 몹시 기뻐하여
다른 쥐에게 말했다.
“고양이가 부처님을 믿기 시작했구나.
이제 그는 살생을 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어린 쥐들을 데리고 고양이를 찾아가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순식간에 몇 마리의 쥐를 잡아먹어버렸다.
나이 많은 쥐는 간신히 위험을 벗어나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고양이가 부처님을 믿더니 더 독해졌구나.”
<소림>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다.
그가 염주를 목에 걸었다고
초식동물로 변할 수는 없다.
술을 끊은 왕
양나라 왕이 누각에 올라 제후들에게 술자리를 베풀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왕은 노군에게 술을 한 잔 권했다.
노군은 황송한 듯 자리를 옮겨 아뢰었다.
“옛날 우임금의 딸이
의적이란 사람에게 술을 빚게 했는데
그 술맛이 아주 훌륭해서 아버지인 우임금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를 맛본 우임금의 의적을 멀리하며
다시는 그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훗날 이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제환공 때 역아란 사람이
음식을 만들어 임금에게 드렸습니다.
이 음식은 맛이 훌륭했고 임금은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말했습니다.
‘훗날 이 맛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진문공이 남위라고 하는
절세의 미녀를 얻었습니다.
그는 이 미녀에게 미혹되어
삼일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 미인을 물리쳐버리고 말했습니다.
‘훗날 여색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마시는 술은 의적의 미주요
상 위의 음식은 역아의 맛이 나며
양쪽에 있는 여인들은 남위의 미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대왕께선 세 가지나 한꺼번에 즐기고 계시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자 몸둘 바를 모르며
거듭 고맙다고 말했다.
<전국책>
나를 망치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버려야 한다.
그것도 미리.
사단이 나고 버리는 것은 늦어도 한참 늦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나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면
이제 버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권세가 나를 영욕에 눈멀게 하면 권세 버리기
허세가 나를 욕되게 하면 허세 버리기
화려한 의복이 나를 사치하게 하면 의복 버리기
언변이 나를 의심받게 하면 말 버리기
돈이 자식을 버리면 돈 버리기
담배가 건강을 버리면 담배 버리기.
버리기란 쉽지 않지만
나를 망치는 것이라면 안 버릴 수 없지 않은가.
잡았던 범인을 풀어준 이유
오자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초나라에서 그를 잡아들이려 하였다.
그는 수배를 피하여 국경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그는 변경의 수비병에게 체포되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수비병에게 말했다.
“초나라 왕이 나를 잡으려는 이유를 그대는 아는가?
그것은 내가 진귀한 보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보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만약 그대가 나를 체포하여 왕에게 넘긴다면
나는 왕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나를 체포한 저 수비병이 내 보석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왕은 그대의 배를 가르고 말 것이다.”
그러자 병사는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오자서를 풀어주고 말았다.
<한비자>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비병이 그를 풀어준 이유는 무엇인가.
왕이 오자서의 말을 믿은 채
자기의 배를 가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비병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왕이 진실된 소리를 듣지 않고
곧잘 거짓소리에 귀 기울이며
탐욕에 약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수비병에게
왕은 진실을 사랑하며
매사에 신중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왜 오자서를 풀어주었겠는가?
윗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곰곰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사 가는 뱀
연못물이 마르자 그곳에 살던 뱀들이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러 식구들이 한꺼번에 이동을 하면
자연히 사람의 눈에 뜨일 것이고
그러면 사람이 자기들을 모두 죽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때 작은 뱀 한 마리가 큰 뱀에게 말했다.
“네가 앞에 가고 내가 뒤를 따라가면,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뱀이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돌로 쳐서 우리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몸집 큰 네가 몸집 작은 나를 등에 업고
내가 너의 머리를 물고 간다면,
사람들은 우리의 모양을 보고 틀림없이 놀랄 것이고
우리를 하늘이 내린 기이한 뱀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 되면 감히 우리를 죽이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작은 뱀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큰 뱀이 작은 뱀을 업고
작은 뱀은 큰 뱀의 머리를 물고 길을 떠났다.
과연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을 지날 때도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하늘이 보낸 뱀이라고 생각하며 얼른 길을 비켜주었다.
<한비자>
작은 뱀의 생각은 기발하다.
기발함의 내용은 무엇인가?
앞뒤로 가야 할 것을
위아래로 바꾸고,
머리를 들고 가는 모습을
머리를 물고 가는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이 생각이 그들의 생명을 구했다.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
높은 것을 낮다고 생각해 보고
낮은 것을 높다고 생각해 보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생각해 보고
그른 것을 옳다고 생각해 보고
아름다운 것을 추하다고 생각해 보고
추한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해 보고
귀한 것을 천하다고 생각해 보고
천한 것을 귀하다고 생각해 보고
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해 보고
불편한 것을 편하다고 생각해 보고
강한 것을 약하다고 생각해 보거나
약한 것을 강하다고 생각해 보는 것.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
일반적 인식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
상대적 인식의 세계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창조적 사고의 출발점이며
초월의 기반이다.
장자와 해골의 대화
장자가 초나라로 가는 길에 앙상한 해골을 보았다.
그는 채찍으로 해골을 두드리며 물었다.
“너는 살기만을 탐하고 도리를 잃었기에 이 꼴이 되었느냐.
아니면 나라를 망치는 죄를 지어 이 꼴이 되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쁜 짓을 하다가
부모와 처자에게 치욕이 돌아갈까 겁을 먹고 자살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
혹은 추위에 얼고 굶주린 끝에 이런 꼴이 되었느냐.
그렇지도 않다면 네 수명이 그뿐이더냐.”
그러다가 장자는 그 해골을 베고 잠이 들어버렸다.
해골이 꿈속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이야기는 마치 저 변론가들의 말과 똑같구나.
당신이 말하는 것은 모두 인생의 괴로움뿐이지만
죽으면 그런 것도 없어지는 법이다.
당신이 죽음의 즐거움에 대해 들어보고 싶지 않은가?”
정자가 대답했다.
“좋소.”
해골이 말을 이었다.
“죽음의 세계에는 군왕도 신하도 없고
계절마다 해야 할 일도 없다.
다만 천지와 더불어 유연하게 세월을 보낼 뿐이다.
왕도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지.”
장자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다시 물었다.
“내가 목숨을 주관하는 신령에게 부탁하여
그대의 육신은 부활케 하고
그대의 뼈와 살과 피부를 예전처럼 만들어
그대의 부모처자와 고향의 친지들에게 보내주겠다면
당신은 어찌하겠소?”
해골은 눈썹을 찡그리고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어찌 군왕 같은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의 고뇌를 반복하겠는가.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
<장자>
죽음은 의외로 우리와 친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이에게는 다만 그 자태를 드러내 보이지 않을 뿐.
시인 천상병은 그의 시 <귀천>에서 죽음을 이렇게 보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맨발로 사는 동네의 산발장수
노나라에 한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신발을 잘 만들었고 부인은 모자를 잘 만들었다.
그 부부는 월나라로 이사를 가려고 했다.
어떤 사람이 그 부부에게 말했다.
“월나라에 가면 당신들은 반드시 가난하게 될 것이오.”
부부가 물었다.
“왜 그렇소?”
그 사람이 대답했다.
“신발이란 발에 신고 다니는 것인데
월나라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며,
모자는 머리에 쓰는 것인데
그 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풀고 다니지 모자를 쓰지 않는다오.
당신네 기술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런 물건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 가서
뜻대로 잘살 수가 있겠습니까?”
<한비자>
어느 전자회사의 이야기-
사우디아라비아에 전기밥솥을 수출하였다.
그런데 제품이 좋지 않다고 불만이 많았다.
회사에서는 그 제품의 품질을 조사해 보았다.
전기 부분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밥이 눌지도 않았다.
회사에서는 전기밥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같은 제품을 그곳에 수출한 일본의 어느 전자회사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
이 회사에서는 즉시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
사정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밥만큼이나 누릉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밥이 눌지 않는 밥솥은 좋은 제품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회사에서는 곧바로
밥이 적당히 눌도록 전기밥솥을 만들어 다시 수출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기술은 같은데 왜 우리 나라 회사는 일본회사에 뒤졌을까?
상대의 요구를 알고 있는가?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하여
상대도 그것을 요구한다고 착각하지 말자.
2. 아무리 어려워도 방법은 있다.
동쪽으로 가는 두 사람
전백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사를 거느리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이들의 힘을 빌어
자기가 모시던 군주를 훌륭하게 보필할 수 있었다.
백공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도 역시 모사를 많이 거느렸다.
그러나 그는 전백정과 달리
모사들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전백정과 백공승은 다 같은 선비를 좋아했으나
그들을 쓰려는 목적은 이와 같이 서로 달랐다.
혜자가 말했다.
“한 미치광이가 동쪽으로 갔다.
그를 찾으려는 사람도 역시 동쪽으로 갔다.
그들이 동쪽으로 간 것은 같으나
동쪽으로 가는 목적은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 목적을 상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한비자>
똑같은 행동이라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아이가 버릇이 나빠서 울기도 하지만
몸이 아파서 울 수도 있다.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꽃병을 깨뜨릴 수도 있지만
엄마를 돕기 위해 청소를 하다가 깨뜨릴 수도 있다.
학생이 게을러서 지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짐진 노인들 돕다가 지각할 수도 있다.
학생이 선생님을 놀리기 위해 장난을 칠 수도 있지만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직장의 상사가 나를 나무라는 것은
내가 미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를 아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부하 직원이 윗사람에게 대들었다면
윗사람이 미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호탕함을 믿기에 그럴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을 하나로 보고 탓하기만 하면
상대방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행동의 원인을 알아보는 것은 오해를 없애는 지름길이다.
자식을 피하는 어머니
천하의 명궁인 예가 활시위를 당기면
누구라도 과녁을 손에 들고 서 있겠지만,
어린아이가 활을 당기면
그 아이의 어머니라도 방 안으로 숨어 문을 잠근다.
이와 같이
활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누구나 과녁 아래 서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활솜씨가 의심스러울 때는
어머니조차도 자기 자식을 피하기 마련이다.
<한비자>
믿음이 없으면 부모도 자식을 피한다.
이와 같이 믿음은 중요하다.
믿음은 어려운 일도 곧잘 해결해 주고
서로의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기도 한다.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믿도록 얼마나 노력해 보았는가?
“믿어주세요”라고 말할지라도
다른 사람은 함부로 당신을 믿지 않는다.
당신이 함부로 다른 사람을 믿지 않듯이.
다른 사람이 당신을 믿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당신에게 믿음을 주는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금방 안다.
소 대신 내가 가지
농사를 짓는 한 선비가
소를 하루만 빌려달라는 편지를 쓴 다음
아들을 시켜 이웃에 사는 부자에게 전하도록 했다.
아들이 편지를 들고 찾아갔을 때
마침 그 부자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편지를 받아본 부자는 당황했다.
실인즉 그는 글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손님이 알까 두려워서
심부름 온 이웃집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편지 내용은 잘 알겠네.
잠시 후에 내가 직접 가겠네.”
<소림>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하는 사람이나
글을 모르고 소가 된 사람이나
모두 허세를 부린다.
남들이 못 알아듣는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이나
못 알아듣고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방법은 있다
감지자는 송나라의 거상이었다.
그가 하루는 시장에 갔다.
그곳에는 마침 커다란 원석 옥덩이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값이 백 냥이나 되는 비싼 것이었다.
그러나 이 원석 옥덩이가 워낙 크고 질이 좋은 것이어서
많은 상인들이 서로 사려고 야단이었다.
감지자도 이 옥덩이를 사고 싶었으나 쉽지가 않았다.
감지자는 이 옥덩이를 보는 척 하고 만지다가
일부러 땅에 떨어뜨렸다.
옥덩이는 깨져버렸다.
다른 상인들은 옥덩이가 깨지자
쳐다보지도 않고 모두 돌아갔다.
감지자는 원래의 값인 백 냥을 배상하고
그 옥덩이를 가져왔다.
감지자는 조각난 옥덩이를 가지고 돌아와
깨어진 부분을 갈고 닦아서
마침내 하나하나 옥으로 가공하였다.
그 값어치는 천 냥이나 되었다.
<한비자>
감지자는
정상적으로는 자기가 옥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옥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새로운 사고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경우라도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을 보아 안 되면 뒤를 보고
뒤를 보아 안 되면 옆을 보고
옆을 보아 안 되면 위를 보고
위를 보아 안 되면 밑을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땅 밑까지 파보자.
하늘은 방법을 마련해 놓는다.
다만 사람들이 찾으려 하지 않을 뿐이다.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
진나라의 중행문자라는 사람이
모함을 받아 도망을 가게 되었다.
워낙 일이 급하여 그는 시종 한 사람과 먼저 떠나고
그를 태울 수레는 준비가 되는 대로 뒤따라오도록 하였다.
길을 가던 도중에 그는 어떤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와 함께 도망을 치던 시종이 말했다.
“이 마을의 현감은 주인님의 옛 동료가 아닙니까?
여기서 쉬다가 곧 뒤따라오는 수레를 타고 가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중행문자가 말했다.
“내가 예전에 음악을 즐겼을 때
그는 나에게 비파를 보내주었고,
내가 패옥을 좋아할 때
그는 옥반지를 보내주었다.
그는 나의 잘못을 충고하려 하지 않고
항상 나의 감정에만 영합하려 했다.
이제는 그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나를 해칠까 두렵구나.”
중행문자는 이렇게 말하고 급히 그 마을을 떠났다.
과연 현감은 그를 잡으려 했고
뒤따라오던 두 대의 수레를 잡아 진의 군주에게 바쳤다.
<한비자>
내가 어려울 때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는 좋은 친구이다.
내가 어려울 때
나를 격려해 주는 친구도 좋은 친구이다.
그러나 항상 나의 기분을 살피고
나의 비위를 맞추려는 친구는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친구는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진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친구는 평생의 보배이다.
가장 좋은 친구는
내가 잘못했을 때
나의 잘못을 엄중히 지적해 주는 친구이다.
당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친구는 몇이나 되며
당신이 잘못을 지적해 주는 친구는 몇이나 되는가.
도깨비를 그리기가 쉬운 이유
제왕이 화가에게 물었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
화가가 대답했다.
“말이나 개를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제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쉬운가?”
화가가 대답했다.
“도깨비를 그리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제왕이 이상하게 여겨 또다시 물었다.
“말이나 개는 항상 보는 것인데
그리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이며,
도깨비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그리기 쉬운 이유가 무엇인가?”
화가가 대답했다.
“말이나 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사람들의 눈에 띄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모양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잘못 그려도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기 때문에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깨비는 형체를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 그릴지라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깨비를 그리기 쉬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비자>
무슨 일이나
나보다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멈칫거려지게 마련이다.
개를 그리기 어려워하는 화가처럼.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앞에서는
붓이 잘 돌아가지 않고,
외국어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이가 당신 앞에서
산수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자기보다 이 문제를 더 잘 푼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에게서 배우려고 해보라.
아이는 신이 나서 당신을 가르치려 할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이 아닌가?
늙은 명마의 재기
기마라고 불리는 천하의 명마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 말도 나이가 들었고,
주인은 말의 힘이 떨어진 것을 알고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소금 수레를 끌게 하였다.
어느 날 이 말이 소금 수레를 끌고 산을 넘게 되었다.
말굽은 늘어지고 무릎은 자주 꺾였다.
꼬리에는 힘이 빠졌으며 온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했다.
그러다가 험한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수레의 앞바퀴조차 부서져버렸다.
말은 땅에 힘없이 쓰러졌다.
이때 마침 백락이라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를 보았다.
그는 말에 대한 안목이 깊은 사람이었으므로
한눈에 이 말이 천하의 명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때의 명마가 이럴 수 있는가 하고
자기가 탄 수레에서 내려와
그 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입었던 비단옷을 벗어 말을 덮어주었다.
그 말은 땅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 쉬다가
마침내 다시 고개를 들어 크게 울었다.
울음소리는 하늘을 울리며 퍼져 나갔다.
그 소리는 마치 바위나 쇠를 두드리는 것처럼 우렁찼다.
그 말은 다시 천리를 달렸다.
어찌하여 그럴 수가 있었을까?
<전국책>
짐승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힘을 낸다.
인간과 짐승의 굴레를 떠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식물도 이와 같다.
두 개의 양파를 물잔에 담아 놓고
한 개만 매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다듬어주면,
그 양파는
다른 양파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란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떻겠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알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항상 격려하고 있는가?
이번 달에는 몇 번이나 했는가?
만약 당신을 위하여 노력하는 용장이 없다면
이는 당신의 책임이다.
환어도 미끼를 문다
환어라는 물고기는 크기도 하거니와
잘 잡히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자사가 위나라에 있을 때 일이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환어를 잡았다.
그 고기는 한 마리의 크기가 수레만하였다.
자사가 그에게 물었다.
“환어는 잡기 어려운 고기라고 들었소.
그대는 그 고기를 어떻게 잡았소?“
그가 대답했다.
“제가 처음 환어를 잡고자 했을 때
방어 한 마리를 미끼로 썼습니다.
환어는 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습니다.
다음에는 돼지 반 마리를 미끼로 썼습니다.
그랬더니 환어가 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자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환어는 잡히지 않기로 유명한 고기지만
욕심 때문에 미끼에 걸리고,
선비는 비록 도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봉록에 눈이 어두워 몸을 버리는 구나!”
<공총자>
사회 생활도 이와 같다.
약간의 금전 때문에
동료를 등지고,
내 사람 하나를 쓰고자
조직의 질서를 파괴한다.
훌륭한 뜻을 품었던 사람도
몸을 버리는 경우가 있다.
자기의 의지를 꺾고 권세에 힘을 빌려주어
나라와 역사를 속인다.
이것이 모두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허망한 것은
그의 후손조차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백년이 길지 않아
후손의 비판이 잠깐이면
눈앞에 와 닿는 것을!
은신초
은신초라는 풀을 들고 있으면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이 전설을 믿고 은신초를 구하려는 사나이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장난 삼아 그에게 풀을 주면서
그것이 은신초라고 속였다.
그러면서 사나이에게 말했다.
“이 풀을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네.
바로 옆에서 바라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거든.“
은신초를 얻은 사람은 그 풀을 들고 시장으로 가서
남의 돈을 한 움큼 집어 들고 나가려 했다.
그러자 주인이 주먹으로 그를 때렸다.
그는 주인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마음대로 때려봐라. 그래도 나는 보이지 않을 걸.”
<소찬>
마음대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자기의 행동이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현대에도 은신초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유행을 만드는 임금
제나라 환공은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러자 이 옷이 유행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고,
마침내 다섯 필의 흰색 옷감으로도 한 필의 보라색 옷감을
바꿀 수 없게 되었다.
환공이 이를 걱정하여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이 보라색 옷을 좋아하여
나라 안에 보라색 옷이 매우 귀하게 되었소.
보라색 옷이 이미 귀하게 되었는데도
온 백성들이 여전히 보라색 옷을 좋아하니
과인은 어찌해야 하겠소?”
관중이 말했다.
“군주께서 이러한 풍조를 없애려 하신다면
어찌 자신이 먼저 보라색 옷을 벗어 던지지 않으십니까?”
환공은 즉시 주위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과인은 이제 보라색 옷이 싫어졌소.”
이 말을 한 뒤로 환공은
주위에 보라색 옷을 입은 신하가 가까이 오면
“나는 보라색 옷이 싫다. 뒤로 물러서라.”
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날 당장 궁궐 안에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이 사라졌고
이틀 만에 서울에 보라 색 옷을 입은 사람이 사라졌고
삼일이 지나자 온 나라에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이 없어졌다.
<한비자>
자기가 바꾸면 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바꾸라고 할 때가 있다.
미국의 천주교도들은 결혼 예물로
구리반지를 주고받는다.
값비싼 보석을 예물로 하면
생활이 궁핍할 때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징표를 팔아서야 되겠는가?
우리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대통령의 아들이
구리반지를 예물로 삼고
장관의 아들이
구리반지를 예물로 삼고
잘사는 사람들이
구리반지를 예물로 삼으면
모든 사람들이
구리반지를 예물로 삼을 것이다.
모든 일이 이와 같이 않겠는가?
스스로 알아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지적은
얼핏 옳아 보이지만
시류를 어기기 힘든 것이 또한
사람 아닌가.
신하와 군주
진나라 문공이
초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황봉릉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신발끈이 풀어졌다.
당시의 군주는 직접 신발끈을 매지 않고
하인이나 신하를 시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공은 자신이 직접 신발끈을 매었다.
좌우의 신하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신하들에게 시키지 않습니까?”
문공이 대답했다.
“상급의 군주는
자기가 존경하는 인물과 상대하고
중급의 군주는
자기와 우정을 나누는 인물과 상대하며
하급의 군주는
자기가 다루기 쉽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인물과
상대한다고 들었소.
내가 비록 재주와 덕은 없으나
내가 존경하는 신하들이 모두 여기 있는데
어찌 그들에게 내 신발끈을 매게 할 수 있겠소?”
<한비자>
아무리 왕이라도
신하 없이 정치를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세상에 혼자 일을 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항상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
일의 성패가 결정된다.
주위에 어떤 사람이 모이는가?
이는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주위 사람이 어리석다고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어리석은 것이다.
문공의 말대로라면 나는
상급의 군주처럼 행동하는가?
중급의 군주처럼 행동하는가?
하급의 군주처럼 행동하는가?
3. 모기를 위하여 사람이 산다?
사슴이 잡히는 이유
사슴이 달리는 속도는 아주 빠르다.
만약 사슴이 앞만 보고 달린다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그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슴은 결국 잡힌다.
왜 그럴까?
사슴은 달리다가 곧잘 뒤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사자>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잡히고 마는 사슴처럼
능력을 다하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고 일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왕을 위한 정치와 간신을 위한 정치
위 나라의 서문표라는 사람이
업현의 현령을 지냈다.
그는 청렴하고 성실하게 생활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득을 도모하는 일이 없었고
왕의 측근들에게 어떠한 상납행위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좌우의 근신들이 그를 모함하였다.
이렇게 일년이 지난 후
그는 왕에게 일년 간의 업적을 보고하게 되었다.
보고를 들은 왕은 그의 능력을 의심하여 면직시키려 하였다.
서문표는 간절하게 청원했다.
“제가 예정에는 업현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나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만 다스려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만일 이번에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사형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왕은 마지못해 또 한 번 그를 임명하였다.
업현으로 돌아간 서문표는
이번에는 백성들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위로는 조정의 근신들을 잘 받들고 상납도 자주 하였다.
그렇게 일년이 지난 후 서문표가 왕을 만나러 갔다.
왕은 직접 그를 영접하며 친절하게 맞아들였다.
서문표가 말했다.
“지난해에는 제가 주군을 위하여 업현을 다스렸더니
주군께서는 저를 면직시키려 하셨습니다.
금년에는 주군의 좌우에 있는 측근들을 위하여 다스렸더니
주군께서는 오히려 저를 따뜻하게 대하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업현을 다스리지 않겠습니다.”
서문표는 물러나 나가려고 하였다.
왕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과인이 이전에는 그대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깨달은 바가 있소.
그대는 광인을 위하여 업현을 잘 다스려주기 바라오.”
그러나 서문표는 끝내 황을 떠나고 말았다.
<한비자>
권한을 가진 사람은
밝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 관찰력이 부족하면
필요한 것은 없어지고
필요없는 것이 늘어가며
먼 데 있는 인재가 찾아오기는커녕
가까이 있던 인재도
떠나버린다.
날아가버린 기러기
옛날에 어떤 사람이
큰 기러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활을 당기려다가 말했다.
“잡으면 삶아 먹어야지.”
옆에 있던 아우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고니는 삶아 먹는 것이 마땅하나
기러기는 구워 먹는 것이 마땅해요.”
형제는 다툼을 그치지 않다가
고을 수령을 찾아가서 판정을 요구했다
고을 수령을 기러기를 반으로 갈라
절반은 굽고 절반은 삶으라고 말했다.
잠시 후 형과 아우가 기러기를 다시 잡으려 했으나
기러기는 하늘 멀리 날아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현혁편>
목적을 잃은 채
자기 주장만 하면 고집이 생기고
고집에서 편견이 생기고
편견에서 독단이 생기고
독단을 합리성을 잃고
합리성을 잃으면
혼란이 온다.
본래의 목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의미도 가치도 없는 그런 혼란이.
한번의 실수는 잘못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땅에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나다가 다시 넘어졌다.
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또 넘어질 줄 알았으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소림>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큰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실수를 바로잡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모기를 위하여 사람이 산다?
제나라에 전씨가 살았다.
그가 하루는 자기 집 정원에서 잔치를 열었는데
손님이 천 명이나 참석하는 큰 연회였다.
그 가운데 물고기와 기러기를 바친 사람이 있었다.
전씨가 그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하늘의 은혜는 크기도 하구나!
오곡과 물고기와 새를 만들어 인간에게 주는구나.”
손님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포씨 집안의 열두 살 난 아들이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천지 만물은 사람과 동시에 생겼습니다.
다만 서로간에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이 종류 사이에는 귀하고 천한 구별이 없습니다.
힘과 지혜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잡아먹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어느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고기와 새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어찌 하늘이 사람을 위해 그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모기가 삶의 피를 빨아먹고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여
하늘이 모기나 호랑이를 위해
사람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열자>
하늘에 사는 새를 잡아와 새장에 기르면서
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
산에 사는 토끼를 잡아와 토끼장에 기르면서
토끼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
냇물에 사는 고기를 잡아와 어항에 기르면서
고기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
숲에 사는 난을 캐어 더운 방 안에 놓고
난은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생각.
땅 속에 있는 돌을 캐어다 정원에 놓고
돌은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생각.
이 모두가 목적론적 사고이다.
목적론적 사고는
하나의 하나에 대한 파괴를 합리화하고
각각의 존재를 부정한다.
목적론적 사고가 유행하면 마침내
저 사람은 나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믿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인간파괴가 시작된다.
저 사람과 내가
직위가 다르고 능력이 다를지라도
그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듯이.
그러므로 사람은 각각 존재의 이유가 있다.
자연이 또한 이와 같아서
그들은 그들대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은 사람을 파괴한다.
잃은 자와 얻는 자
형나라에 활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활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인데
무엇 하러 찾겠는가?”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형나라라는 말만 빼면 좋겠도다.”
노자가 공자의 말을 듣고 말했다.
“사람이라는 말을 빼버린다면 더욱 좋겠도다.”
<여씨춘추>
형나라 사람의 말대로라면
내가 잃은 것은 내 나라 사람이 줍는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내가 잃은 것은
누군가는 줍는다.
노자의 말대로라면
내가 잃은 것은
우주 자연 어디로인가 돌아간다.
오로지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잃었을 때
이와 같은 멋진 생각을 해보자.
갑자기 가슴이 시원해지고
그것을 다시 얻은 것보다 더욱
마음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남으로 가려는 사람이 북을 향하다
위나라 왕이
조나라의 수도 한단지방을 공격하려 했다.
계량이 이를 듣고 왕에게 말했다.
“제가 큰길에서 초나라로 가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수레를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초나라에 가려면 남쪽으로 가야지
어찌해서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갑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제 수레를 끄는 말이 명마라서 그렇습니다.’
‘명마를 탔을지라도 그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저는 돈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돈이 많아도 그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제 마부가 좋아서입니다.’
제가 보건대 그 사람은
몇 가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좋으면 좋을수록
오히려 초나라와는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천하의 신망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런데도 나라가 크다는 것과 병사가 뛰어나다는 것만을 믿고
한단 지방을 공격하여 땅을 넓히고 명성을 높이려 합니다.
그러나 전쟁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본래의 뜻과는 달리 천하의 신망을 잃게 됩니다.
이는 마치
초나라로 가려는 사람이 북쪽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전국책>
목표와 행동이 반대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하나님을 믿으러 교회에 가서
미신을 믿고,
불도를 구하러 절에 가서
권세를 기원한다.
기분 좋으려고 술을 마시다가
싸움을 하고,
결론을 얻기 위해 토론하다가
의가 상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행동의 목표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남쪽으로 가려는 사람이 북쪽으로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에 혼란이 오거나 의욕을 잃었을 때
처음 목표가 무엇이었던가를 확인하면
움직일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시작이 중요하다
제나라 환공이 마굿간을 둘러보다가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마굿간의 일 가운데 무슨 일이 가장 어려운가?”
관리가 대답을 못하자 관중이 대답했다.
“제가 일찍이 마부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말우리를 만드는 나무를 구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처음에 굽은 나무로 엮어가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다음에도 다시 굽은 나무를 구해야 합니다.
일단 굽은 나무로 말우리를 엮게 되면
그 다음에는 곧은 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곧은 나무로 엮으면
그로 인해 다음에도 곧은 나무를 구해야 합니다.
곧은 나무로 엮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굽은 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
<관자>
말우리 하나 짓는 데에도
처음이 중요하다.
인간사도 이렇지 않겠는가?
간신배가 일단 들어서면
그 다음에 인재가 들어올 수 없고
일단 인재가 등용되면
그 다음에 간신배가 들어오기는 어렵다.
처음에 사람을 잘 쓰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돼지고기를 먹이는 형벌
중국 사람들은 대개 돼지고기를 좋아하며
특히 비계를 잘 먹는다.
이재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나라 왕실의 후예로서
감찰추관이라는 벼슬을 지내고 있었는데,
세상 물정에 어둡고 매사에 고집이 아주 강했다.
그는 음식 중에서도 돼지고기를 싫어하였는데
비계를 특히 싫어하였다.
그가 하루는 상관의 부름을 받고 문 밖을 나서려는데
부하들이 서로 때리며 싸우고 있었다.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부엌에서 돼지고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싸운 부하들을 마주 앉게 하여
그것을 먹도록 하였다.
부하들이 돼지고기를 먹고나자
이재인은 준엄하게 경고했다.
“다음에 또다시 싸운다면 그때는
돼지고기에다가 비계를 섞어 먹일 테다.”
<고금담개>
부하들은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비계는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벌을 준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오직 자기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책임과 권한
중산국에 악지라는 재상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전차 백 대를 이끌고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행렬이 워낙 크기 때문에
문제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그는 식객 중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 인솔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중도에 행렬이 어지러워졌다.
악지가 그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재능이 있는 줄 알고 행렬을 인솔하게 했는데
중도에 행렬이 어지러워지니 어찌된 일인가?”
그가 말했다.
“공은 다스림에 대하여 모르고 계십니다.
다스림이라 하는 것은
위엄으로 족히 복종시킬 수 있고
상벌을 앞세우며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저는 공의 연소한 식객에 불과합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바로잡고
직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다스리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제어할 힘도 없으면서 다스린다는 것
이것이 혼란의 원인입니다.
만약 저에게
좋은 사람을 높은 자리에 천거하거나
나쁜 사람을 벌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어찌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겠습니까?”
<한비자>
책임을 묻자면
권한도 주어야 한다.
권한이 없는 책임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가정의 작은 일부터
나라의 큰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에서 예외가 아니다.
책임을 맡길 때는
그만큼은 권한도
넘겨주어보자.
나는 불안하지만
권한을 넘겨받은 사람은
신명나게 움직인다.
용을 보고 도망간 용을 좋아하는 사나이
엽공이라는 사람이 용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용을 좋아하는 정도가 심하여
가구나 술잔에도 모두 용을 그려 넣었으며
집 안팎에도 곳곳에 용을 그리고 새겨놓았다.
그러자 하늘에 살던 용이 이 소식을 듣고 내려와
머리를 창문에 대고 엽공의 집안을 살펴보았다.
이때 용의 꼬리가 자연히 방 안으로 늘어졌는데,
엽공이 이를 보고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물건을 내팽개치고 혼비백산하여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다면 엽공은 정말 용을 좋아하였는가?
아니다.
엽공은 용을 좋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좋아한 것은 용인 듯하지만 진정한 용은 아니었다.
<신서>
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선을 좋아하는가?
그에게 정말 선을 실행하자 하면
못 들은 척 도망치는 경우는 없는가?
용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진짜 용을 보면 도망가듯이.
정의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정말 정의를 좋아하는가?
그에게 정의를 실천하자 하면
못 들은 척 도망치는 경우는 없는가?
용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진짜 용을 보면 도망가듯이.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본질인가
아니면
이름뿐인가?
4. 원숭이의 죽음
가죽이 닳고 나면 털이 갈 곳은
위문후가 유람을 갔다가 나무꾼을 만났다.
그는 털옷을 뒤집어 입은 채 지게를 지고 있었다.
위문후가 물었다.
“그대는 왜 털옷을 입고 있는가?”
나무꾼이 대답했다.
“털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위문후가 말했다.
“가죽이 다 닳고 나면 털도 모두 날아가버리지 않겠는가?”
<신서>
패기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패기만 많아서는
그 패기를 살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경험만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경험만 가진 사람은
그 경험을 이용할 방도를 모른다.
주장만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주장만 많은 사람에게는
그 주장을 들어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근본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패기가 말단이라면
그 패기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근본이고,
경험이 말단이라면
그것을 정리할 수 있는 지식이 근본이고,
주장이 말단이라면
그것을 실행할 조건을 마련하는 지혜가 근본이다.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키운들
털을 아끼기 위해 가죽을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올빼미와 산비둘기의 대화
올빼미가 날아가다가 산비둘기를 만났다.
산비둘기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 하오?”
올빼미가 대답했다.
“나는 동쪽 지방으로 가려 하오.”
산비둘기가 물었다.
“왜요?”
올빼미가 대답했다.
“이곳 사람들이 모두 내 울음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산비둘기가 말했다.
“동쪽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그곳 사람들 역시 그대의 울음소리를 싫어할 것입니다.
그대가 스스로 울음소리를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설원>
살다보면
내가 사는 곳을 옮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곳의 단점이
저곳에는 없어 좋을 것 같지만,
저곳에는 반대로
이곳의 장점이 없다.
주변 사람을 바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단점이
저 사람에게는 없으나,
저 사람에게는 또한
이 사람의 장점이 없다.
세상에 진선진미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나를 바꾸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나를 바꾸는 것은
다른 것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만
가장 완전에 가깝다.
솔개가 변하여 봉황이 되다
공수라는 사람이 봉황을 조각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조각을 시작할 때는
벼슬과 발톱도 완성되지 않았고
빛나는 날개도 세우지 않았다.
이때 사람들이 몸체를 보고는 솔개 같다고 했고
머리를 보고는 사다새 같다고 했다.
이렇게 그들은 추하다고 헐뜯고 조잡하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봉황이 완성되자
푸른 벼슬은 구름같이 솟고
붉은 발톱은 번뜩이며 움직이고
금빛 몸체는 안개가 흩어진 것처럼 뿌옇게 빛나고
화려한 날개는 불꽃처럼 피어났다.
이 봉황이 훨훨 날기 시작하자
삼일이 지나도 내려와 앉지 않았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공수의 솜씨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유자>
봉황의 조각만 그렇겠는가?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생은 왜적의 장군과 춤을 덩실 추었으나
나라를 위해서 그랬고,
어떤 여인은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도
권세를 따라 누추해진 몸으로
생애를 마쳤다.
그러므로
비겁해 보이는 행동도
뜻이 있어서 그럴 수 있고,
용감해 보이는 행동도
음흉한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봉황의 조각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평가도 서둘러서는 안 된다.
“개관이정”
관뚜껑을 덮고서야 그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층은 필요없고 삼층을 지어라
옛날에 어떤 부자가 살았다.
그는 너무나 어리석어서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어느 날 다른 부잣집에 놀러 가보니
넓고 화려한 삼층 누각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그러자 부러운 마음이 들어 곰곰 생각했다.
“나는 재산이 저 사람보다 적지 않은데 왜 이런 집을 짓지 않으리!”
그는 곧바로 목수를 불러 물었다.
“저 집처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목수가 대답했다.
“저 집도 제가 지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부잣집과 똑같은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리하여 목수는 터를 닦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어리석은 사람이 목수에게 물었다.
“무엇을 지으려고 하는가?”
“삼층 누각을 짓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다시 말했다.
“나는 아래 두 층은 필요없으니 삼층을 먼저 지어주게.”
목수가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일층을 짓지 않고 어찌 이층을 지을 수 있으며
이층을 짓지 않고 어찌 삼층을 먼저 지을 수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고집스레 말했다.
“나는 지금 아래 두 층은 필요없으니 가장 위층을 지어주게.”
당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비웃었다.
<백유경>
공부를 잘하고 싶은 학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을 무척이나 못했다.
어느 날 수학을 잘하는 친구가 몹시 어려운 수학책을 풀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이 책은 정말 어렵다. 이것만 풀면 어느 대학도 문제없겠다.”
필자도 그 책을 샀다.
그러나 열 쪽도 풀지 못했고
마침내 수학을 포기했다.
입시 때가 되었다.
수학 시험지를 받아보니
한두 문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문제였다.
필자는 그런 문제들을 하나도 풀지 못했고,
결국 입시에서 만인이 싫어하는 낙방을 하고 말았다.
재수를 시작했다.
그때 필자가 존경하는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의 말씀을 상기했다.
“교과서를 풀어라.
쉬운 것을 풀어라.
백점을 목표로 하지 말아라.”
수학 시험에는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풀 수 있는 쉬운 문제가 더 많다.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입시 문제집을 열어보라.
필자는 결심했다.
쉬운 것만 다 풀어도 적지 않은 점수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필자같이 수학을 못하는 바보는
백 점을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쉬운 것이나 모두 풀어보자고.
재수를 시작하면서 필자는 위대한(?) 결심을 했다.
교과서 이외에는 한 권도 보지 말자고.
생각해 보라!
공부를 많이 하자는 결심이 아니라
얇고도 쉬운 책을 한 권만 보기로 결심했으니
얼마나 지키기 쉬운 결심인가!
재수를 하는 동안 이 위대한(?) 결심을 손쉽게 지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만은 완벽하게 풀 수 있게 되었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입시 때가 되었다.
수학 시험을 보던 날, 필자의 기분은 무척 상쾌했다.
백 점을 받을 수 없다는 확신(?) 과 함께
쉬운 것은 다 풀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으니까.
필자는 결국 수학 문제를 멋드러지게 풀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필자에게 가장 값진 경험이다.
필자는 이 경험을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생들과 나누어 갖고 싶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여주고 싶다.
“백 점을 포기하세요.
마음이 편할 뿐 아니라
이것이 과학적인 사고랍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는 백 점이 나오도록 문제를 내지 않는답니다.
쉬운 것을 푸세요.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쉬운 책을 선택하여 한 권만 푼다면
시간은 지금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꼭 자기 손으로.
해답을 보지 말고 끝까지.
안 풀리면 질문하세요.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선생님께서 질문하는 학생을 만날 때 가장 즐거워 하신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웃지 말자.
자칫하면 당신도 이에 속한다.
쉬운 것도 못 풀며 어려운 것을 풀려는 욕망,
어리석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원숭이의 죽음
옛날 가시라는 나라에
파라내라는 성이 있었다.
그 성의 빈터에 원숭이 오백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숲 속에서 놀다가
니구율나무 아래에 이르렀다.
나무 아래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고
우물 속에는 달이 비치고 있었다.
그때 우두머리 원숭이가 달 그림자를 보고
다른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달이 죽어서 우물 속에 빠졌구나.
다 같이 달을 꺼내어
세상의 긴 밤을 어둡지 않게 해야 마땅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우물에서 달을 꺼내는 방법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꺼낼까?”
그러자 우두머리 원숭이가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먼저 내가 나뭇가지를 잡으면
너희 중에 하나가 내 꼬리를 잡고
그 다음에 또 꼬리를 잡고 그렇게 줄줄이 연이어
우물물에 닿으면 달을 꺼낼 수 있으리라.”
그러자 뭇 원숭이들이 우두머리의 말을 따라
줄줄이 서로의 꼬리를 이어 잡았다.
그러다가 우두머리 원숭이가 잡았던
나뭇가지가 부러져버렸고
원숭이들은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원숭이들이 고개 숙여
우물 속의 달만을 내려보았다.
그들은 왜 고개 들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했을까?
이렇듯 우리도
고집스레 한편만을 보는 경우는 없는가?
여기에서 편견이 생긴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한다.
필부가 지혜롭지 못하면
그와 상대하는 사람이 괴롭고,
집안의 어른이 지혜롭지 못하면
가족이 괴롭고,
선생이 지혜롭지 못하면
제자가 괴롭고,
장군이 지혜롭지 못하면
병사가 괴롭고,
임금이 지혜롭지 못하면
백성이 괴롭고,
우두머리 원숭이가 지혜롭지 못하면
나머지 원숭이가 괴롭다.
불가에서 말했다.
지혜롭지 못한 것도 죄라고.
누가 미친 사람인가
번씨가문에 미남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서른 살이 되어서도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다니는가 하면
때로는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말이 없었다.
입을 열면 양을 말이라 하고 산을 강이라고 하는 등
물건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원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집안 사람과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하면서 족보에 올리지도 않았다.
무능자라는 사람도 그가 미쳤다고 여겼다.
어느 날 나무 그늘에서 그를 만난 무능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젊은 남자가 몸도 건장한데 아깝게도 그런 병에 걸리다니!”
그러자 이 사람은 천천히 말했다.
“나는 병이 없습니다.”
이 말은 들은 무능자가 놀라 물었다.
“의관도 갖추지 않고 주거도 일정치 않고
만물의 이름도 모르며 마을의 예법도 모르니
그게 바로 미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병이 없다고 하는가?”
이 사람이 말했다.
“의관을 갖추고 절도 있게 기거하며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마을 사람을 공경하면서
어찌 자연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옛날 어떤 망령된 자가
글을 쓰고 예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익히라고 한 것을
사람들이 익히고 익혀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소위 지혜 있다는 자들이 무지하고 미쳤다고 욕을 합니다.
만물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위의 푸르른 것을 하늘이라 하고
아래의 누런 것을 땅이라 하며,
낮을 밝히는 것을 해라 하고
밤을 밝히는 것을 달이라 합니다.
바람과 구름과 비와 이슬
안개와 서리와 눈
문명인과 야만인
제왕과 공후백작
사농공상이나 노예와 포로
옳고 그름
명예와 욕됨
이 모든 것이 망령된 사람들이 억지로 붙인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오랜 동안 이에 익숙해져서
처음에 억지로 붙인 이름인 줄도 모르고
감히 바꿀 생각도 못한 채 그저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옛날 그 망령된 사람이 말하되
위의 푸르른 것을 땅이라고 하고
아래의 누런 것을 하늘이라고 하고,
낮을 밝히는 것을 달이라고 하고
밤을 밝히는 것을 해라고 했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은 그대로 사용할 것입니다.
억지로 이름을 붙인 자도 사람이요
저도 사람입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억지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저는 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의관이나 거처는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온갖 형태의 사물도 제 마음대로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미쳤는지 미치지 않았는지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에 따라 사람이 행동하므로
고관대작이 되는 것을 ‘명예’라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가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승리’라고 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만 한다.
돈을 버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하면
남의 돈도 가져가려 하고,
점수 높은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하면
남의 답안지도 훔쳐본다.
제삿상 음식이 많아야 ‘효자’라고 하면
집안 사정 관계없이 돈을 쓰고,
장례를 잘 지내야 ‘예의’에 맞다고 하면
그 예의 때문에 사화가 난다.
이 모두가 이름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잘 모르겠으면
항상 본질로 돌아가자.
자식을 사랑하다가 돌아가신 부모가
일년에 한 번 오는 제삿상 앞에서
귀여운 손자 재롱을 젖혀두고
제삿상 음식 배열 순서를 따지겠는가?
짐새와 뱀
짐새가 뱀을 만나자 부리를 세우고 뱀을 쪼으려 했다.
그러자 뱀이 짐새에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대를 독이 있는 새라고 하네.
그대가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나를 잡아먹기 때문이라네.
그러니 그대가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면
독이 있다는 소리도 안 들을 것이 아닌가?”
그러자 짐새가 웃으며 말했다.
“너도 사람을 물어 독을 퍼뜨리지 않는가?
나보고 독이 있다고 하는 것은 속임수일 뿐이야.
너는 일부러 사람을 물어 독을 퍼뜨리지.
나는 네가 사람을 해치는 것을 미워하여
너를 잡아먹음으로써 독을 퍼뜨리는 것을 징벌하는 것이야.”
뱀은 대답하지 못했고, 짐새는 뱀을 잡아먹었다.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면
뱀과 같은 엉뚱한 논리가 나온다.
그러므로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연습을 하고 또 해서
이를 습관으로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습관적으로 자기의 입장에만 선 채
남을 비판하게 된다.
당신이 이러한 사람을 싫어하듯
이러한 당신을 다른 사람도 싫어한다.
대들보 바꾸기
초나라 왕이 재상을 파직시키려 하자
신하 의신이 말했다.
“대들보가 못 쓰게 되면 분명히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대들보감을 먼저 골라놓고
바꾸어야 합니다.
만약 큰 나무가 없다 하여
작은 나무를 여러 개 묶어 대들보로 삼는다면,
나무는 부러지고 집은 내려앉을 것입니다.”
훗날, 명나라 태조가
승상 이선장을 파직시키려 하자
다른 신하가 똑같이 말했다.
“기둥을 바꾸려면
반드시 큰 재목을 먼저 구해야만 합니다.
큰 나무가 없다고 하여
작은 나무를 묶어 쓰면 집이 무너집니다.”
<욱리자>
사람을 바꿀 때는
다음 사람을 대비해 놓고 바꾸어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면
앞사람보다 못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집을 바꿀 때도
다음 집을 대비해 놓고 바꾸어야 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박물관을 짓지 않고 철거부터 시작하면
유물은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는가.
건물을 철거하기는 쉽지만
박물관을 새로 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고
더구나 유물이 손상되면 다시 얻을 수 없다.
준비 없이 바꾸거나
바꾸기를 서두르면
바꾸지 않는 것만 못할 때가 있다.
눈썹을 어디에 둘까
눈썹과 눈과 코와 입이 모두 신통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는 입이 코에게 말했다.
“너는 무슨 재주가 있다고 내 위에 있느냐?”
코가 말했다.
“나는 냄새를 분별할 줄 안다.
냄새를 맡은 다음에야 네가 먹을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나는 네 위에 있다.”
그리고 코는 눈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능력이 있다고 내 위에 있느냐?”
눈이 말했다.
“나는 곱고 추한 것을 볼 줄 알며
동서를 바라볼 줄 아니 공이 크다.
네 위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코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눈썹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내 위에 있느냐?”
눈썹이 말했다.
“나는 그대들과 어떻게 다투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만약 눈과 코의 아래에 있어야 한다면
얼굴 모양이 어떻게 되겠는가?”
<취옹담록>
나만 잘났다는 생각을 빨리 버리자.
세상에서 나만 잘난 집단은 아무 곳에도 없다.
부부간에도 어떤 일에는 내가 옳지만
다른 일에서는 상대가 옳다.
가족간에도 그렇다.
어떤 때는 자식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으므로
어른만 잘날 수는 없다.
친구 사이에서도 나만 잘날 수는 없다.
모임에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그렇고
나라일에서도 그렇다.
나만 잘났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방법은
나의 실수를 잊지 말고
나의 못난 점을 항시 생각하는 일이다.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보다 훌륭한 친구가 없는 사람이다.
붉은 칼과 호랑이
안기생이라는 사람이 지부산에서 도를 깨쳤다.
그는 붉은 칼을 빼어 들고
호랑이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다.
호랑이는 그가 시키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잘 따랐다.
동해에 사는 황공이 이를 보고 부러워하였다.
그는 붉은 칼이 신령스러워서 그런 줄 알고
그것을 훔쳐다가 허리에 찼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를 만났다.
그는 칼을 빼어 들고 호랑이를 부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를 잡아먹고 말았다.
채나라 사람 하나가 강에서 고기를 잡다가
하늘의 뜻이 새겨진 옥을 건졌다.
그는 자기에게 천명이 온 줄 알고
도시로 나아가 사람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그 일족이 모두 죽었다.
<욱리자>
도를 통하는 것과 붉은 칼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늘의 뜻을 아는 것과 옥돌도 또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도를 통하는 것과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이고
붉은 칼과 옥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쳐놓고
상징에 현혹되지 말자.
본질을 갖추지 못한 상징은 허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빛나는 보석이
마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지 못하며,
커다란 집채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질이므로 언제나
당신을 떠날 수 있다.
그들이 떠난 후의 당신은 무엇인가?
5. 화가와 자화상
굶어 죽은 두 농부
망이라는 사람과 물이라는 사람이
땅을 나누어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워낙 잡초가 많아서
그들은 잡초를 모두 뽑아낼 수가 없었다.
망이라는 사람은 이를 참다 못해
벼와 잡초를 한꺼번에 베어내고
그 자리에 불을 놓아 태워버렸다.
그러자 벼는 죽고 잡초는 모두 되살아났다.
물이라는 사람도 참다 못해
잡초 뽑기를 포기하고
벼와 잡초를 모두 그대로 방치하였다.
그러자 벼는 쭉정이로 변하고 잡초는 무성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욱리자>
잡초가 많다 하여
벼와 잡초를 함께 태워버린 사람이나
잡초 뽑기를 아예 포기한 두 사람이 굶어 죽게 된 것은
모두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에 극단적이지 않은 의견은
마치 미봉적이거나
용기가 없거나
심지어 진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모순을 낳는다.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참아야 한다.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막에도
‘포아’라는 풀이 산다.
이 풀은 5센티미터의 길이로 산다.
그러나 이 짧은 길이를 유지하기 위해
땅 밑으로 600킬로미터 길이의 뿌리를 뻗는다.
풀 같은 삶,
멋지지 않은가.
물고기 사랑
정나라에 물고기 기르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아 왔다.
그리고는 정원에 그릇 세 개를 늘어놓고 물을 채운 다음
거기에다 고기를 길렀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고기는 강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한 바가지밖에 안 되는 물 속에 고기를 넣고
날마다 장난이나 치면서
물고기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죽지 않는 고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자 물고기는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은 그제서야 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백성은 물고기와 같고
오늘날의 정치인은 모두 이 사람 같다.
<연서>
좋아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술을 주는 일은 없는가.
물고기는 술이 아닌 강물을 좋아한다.
토끼를 좋아한다고
산에 가서 풀을 베어 오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주는 일은 없는가.
토끼는 고기가 아닌 풀을 좋아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지 않고
자기가 편한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
고통을 주면서도 오히려
상대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거짓이거나
아니면 무지이다.
화가와 자화상
초상화를 그려 파는 화가가 있었는데
도무지 손님이 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권했다.
“당신네 부부의 초상화를 그려 간판 삼아 문 앞에 걸어놓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그림 그리는 집인 줄을 바로 알게 될 것 아니오.”
화가가 그 말을 듣고
자기와 부인이 나란히 앉아 있는 초상화를 그려
문 앞에 걸어놓았다.
하루는 화가의 장인이 와서 그 그림을 보고 물었다.
“이 여자가 누구인고? ”
화가가 대답했다.
“장인 어른의 따님 아닙니까? ”
그러자 장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물었다.
“내 딸이 왜 낯 모르는 남자와 같이 앉아 있는고? ”
<신전소림광기>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과장하지 말고 겸허하게
자신을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함부로 남을 탓하는 일이 없다.
기러기의 변고
어떤 연못에 흰 기러기들이 모여 살았는데
밤에는 반드시 잠잘 자리를 골랐다.
그리고 사냥꾼에게 잡힐까 두려워하여
보초 기러기를 세워 살피게 하고
사람이 오면 울음을 울어 알리도록 하였다.
기러기떼는 그런 방법으로 한동안 평안히 지냈다.
연못지기는 기러기들의 그 방법을 알아차리고
어느 날 횃불을 들어 보초 기러기를 환히 비추었다.
그러자 보초 기러기는 어지럽게 울어댔다.
연못지기는 급히 불을 껐다.
기러기떼는 모두 놀라 일어났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서너 차례 반복하니
기러기떼는 보초 기러기가 자신들을 속였다고 여기고는
모두가 함께 그를 쪼아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못지기가 불을 들고 가까이 갔으나,
보초 기러기는 감히 울지 못했으며
뭇 기러기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한 마리도 남김없이 잡혀버렸다.
<연서>
기러기떼는
보초 기러기의 진실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잡혀 죽었다.
이처럼 진실이란 알기 어렵다.
이것이 더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일 때
진실은 정말 알기 어렵다.
오늘 진실로 믿었던 것이
내일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오늘 거짓으로 믿었던 일이
내일은 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러므로
소문을 듣고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몇 가지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언제나 틀릴 수 있다.
꼬리를 아끼는 공작
어떤 숫공작의 깃털과 꼬리에 금색과 비취색이 감돌았다.
이는 화가도 흉내낼 수 없는 훌륭한 빛깔이었다.
그런데 이 공작의 본성은 몹시 질투심이 많아서
아무리 훈련을 시켜놓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 반드시
물어뜯곤 하였다.
또한 이 공작이 산에 있을 때는
먼저 꼬리를 감출 장소를 물색한 후에야 몸을 쉬었다.
비가 오던 어는 날이었다.
이 공작은 꼬리가 비에 젖지 않게
간신히 자리를 잡아 쉬고 있었다.
그때 막 사냥꾼이 들이닥쳤다.
그런데도 이 공작은 꼬리가 비에 젖는 것을 싫어하여
날아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끝내 사냥꾼에게 잡히고 말았다.
<권자>
버려도 되는 것과 버려서는 안 되는 것.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공작은 잡혔다.
버려도 되는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하고
버려서 안 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버려서는 안 된다.
내가 버려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버려서 안 될 것은 무엇인가?
빛나는 명상거리.
호랑이 목에 달린 방울은 누가 풀까
법등선사가 수도할 때
본성이 호탕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지 않게 보았으나
유독 법안선사만은 그를 아꼈다.
법안선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물었다.
“호랑이의 목에 방울이 달렸는데
누가 그것을 풀 수 있겠느냐?”
아무도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법등선사가 다가오자
법안선사는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법등선사는 선선히 대답하였다.
“그 방울을 매단 사람이 풀 수도 있겠지요.”
<수월재지월록>
결자해지,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랑이 목에 달린 방울은
그 방울을 매단 사람만이 풀 수 있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결과를 풀어야 하므로.
이 말은 반대로
원인을 제공할 때는
풀어갈 일도 생각해야 하므로,
풀어갈 수 없는 일은
함부로 만들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가진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도 함부로 원한을 맺어서는 안 된다.
명심보감에서도 말했다.
“권하노니
원한을 맺지 말라.
원한이 심하면 풀기 어렵다.
하루 맺은 원한이
삼년 동안 풀어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느니.”
비범과 평범
백락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명마를 감별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말을 감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왜냐하면
뛰어난 말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어서
어쩌다 겨우 한두 마리가 있을 뿐이므로
말을 감별하여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지만,
평범한 말은 그 수가 많아 매일 매매가 이루어지므로
말을 감별하는 것으로도 생계가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한비자>
비범한 것이 언제나 귀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평범한 것이 오히려 유용하다.
밤에 전기가 고장 났을 때는
두꺼비집을 손볼 줄 아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도 중요하고,
아이가 급체했을 때는
손끝을 딸 줄 아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유용하다.
두꺼비집을 고치는 것이나
손끝 따는 것을 배우는 데는
한 시간도 안 걸린다.
나는 그대를 쓸 수가 없네
관중이 몸이 묶인 채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압송되고 있었다.
먼 길을 걷다보니 시장도 하고 갈증도 났다.
어떤 지방을 지날 때였다.
관중은 그곳을 지키는 관리에게 먹고 마실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그곳의 관리는 무릎을 꿇고 극진히 대접하며 말했다.
“당신이 제나라로 가서 사형을 면하신다면
반대로 큰 자리에 오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때 저를 등용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그대가 말한 대로 내가 제나라의 정치를 맡게 된다면
나는 덕이 있고 능력이 뛰어나고 공이 있는 자를 써야 하오.
내 어찌 사사로운 은혜로 인해서 그대를 등용하겠소?”
<한비자>
감정이란 소중한 것.
모두가 감정을 버린다면
어찌 사람 사는 세상이겠는가?
그러나 때로는 이 감정이
공과 사를 혼란케 하고
사회를 혼란케 한다.
그러므로 감정을 버리고
사적인 관계도 잊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명심보감에서도 말한다.
“사적인 일을 처리하듯
공적인 일을 처리하면
분별하지 못할 일이 없으며,
감정에 충실하듯
도에 충실하면
언제라도 성불한다.”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고양이
어떤 사람이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주인은 이 고양이가 기이하게 생겼다고 하여
‘호랑이고양이’라고 불렀다.
한 손님이 주인에게 말했다.
“호랑이는 정말 사납습니다.
그러나 신령스럽기는 용만 못합니다.
그러니‘용고양이’란 이름으로 바꾸십시요.”
또 다른 손님이 말했다
“용은 정말 호랑이보다는 신령스럽습니다.
그러나 용은 승천하면 구름을 타야하니
구름이 용보다 더 높습니다.
그러니‘구름고양이’라고 부르는 것만 못합니다.”
또 다른 손님이 말했다.
“구름은 하늘을 가리지만 바람이 불면 흩어집니다.
그러니 구름은 바람만 못합니다.
‘바람고양이’라고 이름을 바꾸십시요.”
또 한 손님이 말했다.
“센 바람이 몰아쳐도 벽으로 둘러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람이 어찌 벽만 하겠습니까?
‘벽고양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 좋습니다.”
또 다른 손님이 말했다.
“벽은 진정 단단하지만 쥐가 구명을 뚫으면 허물어집니다.
그러니 벽이 어찌 쥐만 하겠습니까?
‘쥐고양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 좋습니다.”
동쪽 마을의 어른이 이를 비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쥐를 잡는 것이 고양이다.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일 뿐이다.
무엇 때문에 그 본색을 잃도록 하는가?”
<응해록>
우리의 착각.
이름을 바꾸면 본질도 바뀌는 줄 안다.
어떠한 이름의 고양이도 고양이이듯
위해한 사람과 보통 사람도
사람에 다름 아니다.
위대한 인물도 사람이고 걸인도 사람이다.
이름으로 사람을 규정지어놓고
그 이름에 현혹되어 사는 삶은 고달프다.
남을 탓하기
어떤 사람이 술 빚는 방법을 술집 주인에게 물었다.
술집 주인이 말해 주었다.
“쌀 한 말과 누룩 한 냥에다 물 두 말을 붓고 섞어서
이레 동안 숙성시키면 술이 됩니다.”
그 사람은 건망증이 심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누룩 한 냥과 물 두 말을 섞어두었다.
그리고는 이레 후에 맛을 보니 여전히 물이었다.
그는 술집에 가서 진짜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따졌다.
술집 주인이 말했다.
“가르쳐준 방법대로 하지 않았지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가르쳐준 방법대로 누룩 한 냥에 물 두말을 넣었네.”
술집 주인이 물었다.
“쌀은 넣었겠지요?”
그때서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해 보더니 대답하였다.
“내가 그만 쌀 넣는 것을 잊었네.”
아! 술의 근본을 잊고 술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고는
오히려 가르쳐준 사람이 잘못했다고 원망하는구나!
근본은 모르고 말단만 좇다가
학문을 이루지 못하는 세상의 학도들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설도해사>
쌀을 빼고 물 두말
누룩 한 냥 이레 동안
아무리 정성 들여도 술맛이 안 나듯이
근본을 잊고 말단만 따르면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학문이 그렇고
기술이 그렇고
교육이 그렇고
정치 경제가 모두 그렇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두가 아는 것을 왜 안하는가?
근본이란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행각했다가도 곧 잊혀지기 쉽고
행하기에는 인내와 시간이 걸리는 것이어서
이런 것을 주장하면 마치
멍청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님과 참새
솔개가 참새를 쫓자 참새가 스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스님은 손으로 참새를 쥐고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내 오늘 고기 한 덩어리를 먹게 되었구나.”
참새는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스님이 참새가 죽은 줄 알고 손을 펴자
참새는 즉시 하늘로 날아갔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내 오늘 너를 방생했노라.”
<소찬>
잘한 일은 물론이고
아무리 잘못한 일도
사람이 설명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간지가 있다.
허위 의식의 일종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있는 것.
없애면 가장 좋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그러므로 더러는
상대의 허위 허식을 인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속아주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일 때
속아주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때
속아주는 것이 남에게 해가 되지 않을 때
속아주는 것이 나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일 때
이런 때는 좀
속아주면서 사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원숭이의 소망
원숭이가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났다.
원숭이는 염라대왕에게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사람이 되려면 네 몸에 있는 털을 다 뽑아내야 한다.”
염라대왕은 야차라는 귀신을 불러
원숭이의 털을 뽑게 하였다.
야차가 손을 내밀어 털 한 오라기를 뽑아내자,
원숭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웃으며 말했다.
“털 한 오라기 뽑는 아픔도 참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냐?”
<소림>
소망을 가질 때는
그것이 달성되는 과정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주 손쉬워 보이는 일도
과정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더욱
나의 소망을 남에게 부탁하여 이루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생각해야 한다.
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남을 쓸데없이 오해하거나
남을 쓸데없이 괴롭히거나
남을 쓸데없이 괴롭히고도 괴롭힌 줄을 모른다.
6. 낮에는 하인 밤에는 제왕
신선주 이야기
옛날 절동 동려현이라는 곳에
술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어떤 가난한 도인이 주막에 와서 술을 마시고 떠나려 할 때
그 주인이 술값을 받지 않았다.
도인은 이를 고마워하며
짐 속에서 두알의 약을 꺼내어 우물에 던져 넣고
그 술집을 떠났다.
다음날 우물물이 갑자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주인이 이상히 여겨 떠 마셔보니
우물은 온통 달콤한 술로 변해 있었다.
그리하여 세간에서는
그 샘에서 나는 술은‘신선주’라고 불렀다.
술집 주인은 그 술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훗날 그 동인이 다시 이 술집을 찾았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술이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술찌끼가 없어 돼지를 먹일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도인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손으로 우물 속을 더듬어
예전의 알약을 찾아냈다.
도인은 그것을 다시 짐 속에 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우물은 다시 예전의 우물로 변하여
술은 없어지고 물로 가득찼다.
<고금담개>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
적절한 선에서 만족하고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것을
멈춘다고 한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
욕망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만족할 줄을 알고
그것으로 항상 만족하라.
그리하면 종신토록 욕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멈추어야 할 줄을 알고
거기에서 항상 멈추어라.
그리하면 종신토록 수로를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명심보감에 있는 말이다.
아궁이 앞에서 자리 다투기
양자가 노자를 만났다.
노자가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대를 가르칠 수가 없구려.”
양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객사로 돌아가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빗고
모자를 고쳐 쓴 다음 신발을 문 밖에 벗어놓고
무릎으로 기어가서 노자를 만나 말했다.
“조금 전에 선생님께서는 하늘을 울러 탄식하시면서
처음에는 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이제 보니 가르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노자가 대답했다.
“그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오만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으니
누가 그대와 더불어 함께 지내려 하겠는가?
완벽하게 흰색은 오히려 얼룩져 보이듯이,
완전한 덕을 갖춘 사람은 오히려
덕이 부족한 듯이 보이는 법이야.”
양자는 송구스러운 얼굴빛으로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양자가 노자를 만나기 위하여 객사를 떠날 때만 해도
객사에 든 사람들이 그를 공손히 전송했으며,
객사의 주인이 그의 자리 시중을 들었고
그의 처는 망건을 씌워주고 빗질을 도와주었으며,
그가 들어오면
부엌에서 불을 쬐던 사람들이 아궁이 앞에서 물러섰었다.
그러나 그가 노자를 만나고 돌아오자
객사 사람들은 그와 아궁이 앞자리를 다투게 되었다.
양자는 이미 그들과 친구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열자>
수레를 끌면 땅콩장수처럼 보이고
교단에 서면 선생처럼 보이고
바보들 사이에서는 바보처럼 보이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학생처럼 보이고
병영에 들어가면 군인처럼 보이고
공장에 들어가면 노동자처럼 보이고
마을에 살면 농사 짓는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그런 사람이 정말
멋진 사람이 아닐까?
권위에 물들지 않고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
공자의 운명론
공자가 광이라는 곳에 갔을 때
송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몰려와
공자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태연하게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의 제자인 자로가 옆에 있다가 공자에게 물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나도 불우한 생활을 싫어하지만
결국 이 생활을 면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운명임을 알았다.
나는 나의 뜻이 세상에 펴지기를 희망하였으나
이것도 이류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때를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았다.
불우한 지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운명으로 알며
자기의 뜻이 펴지거나 안 펴지는 것은
시대가 결정하는 것임을 알아서
커다란 위난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성인의 용기이다.
너는 이제 알겠느냐?
나의 운명은 이미 하늘에서 정한 것이니
내가 군사들에게 잡혀 갈 운명이면 잡혀 가는 것이고,
잡히지 않을 운명이면 결국은 잡혀 가지 않을 것 아니냐?
그러니 태평하게 노래를 하는 것이지.”
이러한 대화가 오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른 군인들이 나타나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님을 폭도의 무리로 잘못 알고
무려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제 사실이 밝혀졌으니 사과드리고 물러갑니다.”
<장자>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무엇이 실망스러우랴.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실망하지 않고
나의 일을 해 나간다.
이것이 공자의 운명론이다.
그러므로 운명론을
나태와 비관의 근거로 삼는 것은
용렬하다.
“운명은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다.”
철인 세네카의 말이다.
도망간 편작
편작이 채나라의 환공을 알현했다.
그는 잠시 환공의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공의 피부에 병이 났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은 병이 없도다.”
편작이 물러 나오자 환공은 말했다.
“의사라는 것들은 병도 없는 사람을 치료해주고
공을 세우려 하는구나.”
열흘 후에 편작이 다시 환공을 보고 말했다.
“공의 병은 이미 피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환공은 응하지 않고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했다.
열흘 후에 편작은 다시 환공을 만났다.
그는 말했다.
“공의 병은 이미 위장과 내장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환공은 역시 이에 응하지 않았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환공을 멀리서 보고
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도망쳤다.
그는 이미 환공의 병이 치료될 수 없음을 알았고,
그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닷새 후에 환공은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서둘러 편작을 찾았으나 이미 도망친 후였다.
환공은 죽고 말았다.
<한비자>
알묘조장
송나라에 볏모가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논에 나가서
볏모를 모두 뽑아 올려주었다.
그리고는 황망히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병이 날 정도로 일을 많이 했다.
볏모가 빨리 자라도록 도와주고 왔거든.”
그의 아들이 논으로 뛰어가보니
볏모는 이미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맹자>
부모가 자식 돕기.
진정한 도움은 무엇인가?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기의 자식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모는 어떤가?
자녀에게 이기심을 길러주고
자녀에게 무질서가 유리하다고 가르쳐주고
자녀에게 적절한 예의도 가르치지 않고
자녀에게 정직이 강하다는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 부모는 이기심이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가.
그 부모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가.
그 부모는 예의도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는가.
그 부모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가.
자기가 그렇지 않다면
남들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부모는 자녀로 하여금
집 밖에 나가서 사랑받지 못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집 안에서만 사랑받는 자식을 기르는 것.
볏모를 뽑아 올려놓고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도움과 해침
남해의 제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홀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을 혼돈이라 한다.
언젠가 숙과 홀이 함께 혼돈을 찾아갔다.
혼돈은 이들을 잘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 받은 은덕이 고마워서
이를 갚을 방법을 상의하였다.
“사람의 몸에는
귀와 눈과 코, 그리고 입의 일곱 구멍이 있어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
그런데 혼돈은 그것이 없으니 얼굴에 구멍을 뚫어주자.”
그리하여 숙과 홀은 매일 하나씩
혼돈의 몸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러자 칠일째 되는 날
혼돈은 죽어버렸다.
<장자>
무엇이 진정한 도움인가?
친구를 돕는 경우에는 방법이 있다.
친구가 술을 마시자고 할 때 일일이 응해 주는 것이
반드시 그를 돕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당신은 그 자리를 거절하고 공부를 하라.
그것이 친구에게 격려가 될지도 모른다.
친구가 과제물을 빌려달라고 해도
과감히 거절하라.
친구를 돕는 일이 절대 아니다.
친구의 기분에 영합하지 말라.
가끔은 잔인하게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이
그를 돕는 길이다.
이러다가 친구가 당신을 버릴까 걱정하지 말라.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을 찾는다.
혹시 당신을 찾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당신의 친구가 아닌 것을.
소문의 진상
송나라에 정씨가 살았다.
그의 집에는 우물이 없어서 매일 물을 길러와야 했다.
이 일이 너무나 힘들어서 그는
사람을 고용하여 물을 길어오게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집 안에 우물을 팠다.
그리고 당연히 물을 길어오던 사람도 돌려보냈다.
정씨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물을 팠더니 한 사람 품을 벌었네.”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정씨가 우물을 파고 한 사람을 얻었다네.”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정씨가 우물을 파니 사람이 나왔다네.”
이리하여 온 나라에
정씨네 우물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왕은 정씨에게 사람을 보내
이것이 진실인가를 물어보게 하였다.
정씨가 대답했다.
“우물을 파니 물을 길어올 필요가 없어서
한 사람 품을 얻었다는 말이지,
우물 속에서 사람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씨춘추>
소문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누가 보았다더라”라는 꼬리를 달고 있는 소문도
대개 ‘본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낮에는 하인 밤에는 제왕
주나라에 성이 윤씨인 재산가가 살았다.
그의 하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수가 없었다.
하인 가운데 노인이 하나 있었다.
그 노인은 나이가 들었으나 주인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잠이 들었다.
그는 밤마다 나라의 임금이 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그는 온 나라의 일을 총괄하였고
궁전에서 놀고 연회를 하고 바라는 일을 모두 할 수 있었다.
이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고된 일을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여겨 위로하자
그가 말했다.
“인생 백년은 낮과 밤으로 나누어집니다.
나는 낮이면 하인이 되어 일을 하지만,
밤이면 나라의 임금이 되니 그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습니다.
내 생활에는 원망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한편 주인 윤씨는 세상일을 걱정하고
하인들을 힘껏 부려 집안일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그 역시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밤이 되면
정신이 혼미한 채로 잠이 들었고,
노인과 마찬가지로 매일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그는 매일 다른 사람의 하인이 되어
꿈에서 깰 때까지 이리저리 뛰어야 했으며
욕을 먹고 매질을 당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다가 헛소리나 신음소리를 내면서
새벽이 되어서야 꿈에서 깼다.
윤씨는 이러한 생활이 너무 괴로워서
친구를 찾아가 상의하였다.
친구가 말했다.
“그대의 지위는 한 몸을 영화롭게 하기에 충분하고,
재산은 여유가 있으니 모든 조건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좋소.
그러므로 밤에는 다른 사람의 하인이 되어 괴로움을 당하고
낮에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반복되는 것은
정상적인 법칙이오.
그대가 낮에도 편안하고
꿈을 꿀 때도 편안함을 느끼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윤씨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곧바로 하인들의 일을 줄여주고
걱정하던 일도 줄였더니,
그후로 꿈속에서의 고생도 훨씬 줄었다.
<열자>
많은 경우에 삶은 공평하다.
다만 삶을 공평하다고 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소한 즐거움도 큰일만큼이나 그렇게
행복으로 알고, 느끼고, 즐겁게 생각할 줄 아는 조건이 그것이다.
우울할 때는 가끔
나에게 주어진 행복의 조건을 정리해 보자.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두 눈으로 눈앞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오늘 잠잘 곳이 있고
내일도 세 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부모가 계시다면 부모가 계시다는 사실
형제가 있다면 형제가 있다는 사실
내 나라가 있다는 사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과 그 가족은
내일도 살아갈 것이 분명한 지금의 당신을
한없이 부러워한다.
지금 당신이 어떠한 어려움에 있을지라도
언젠가 미래에 당신 스스로
차라리 지금의 당신이 한없이 그리울
그러한 때가 올 수도 있다.
망각이 없다면
송나라에 화자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중년에 건망증이 생겨서 아침에 얻은 것을 저녁에 잊고,
저녁에 준 것을 아침이면 잊었다.
길에서는 가는 곳을 잊었고
방에서는 앉는 곳을 잊었으며
조금 후에는 조금 전의 일을 잊어버렸다.
온 집안이 이를 걱정하여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쳐보아도
점괘가 나오지 않았으며,
무당을 찾아가 빌어보았으나 효험이 없었고,
의사를 찾아가 고쳐보려 해도 치료되지 않았다.
이때 노나라의 한 선비가 자청하여
이 병을 고쳐보겠다고 나섰다.
선비가 말했다.
“병은 나을 수 있습니다.
환자와 내가 독방에서 일주일만 살게 해주십시오.”
일주일 후에 과연 환자는 병이 모두 나았다.
화자는 모든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기억을 되살린 화자는 크게 노하여 아내를 내쫓고
자식들에게 벌을 주었으며 창을 들고 선비를 내몰았다.
송나라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다음과 같았다.
“전에 내가 모든 것을 잊고 있을 때는
하늘과 땅이 있는지 없는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갑자기 모든 것을 알게 되니
수십년 동안 쌓여온 것과 사라진 것,
얻은 것과 잃은 것,
슬픈 일과 즐거운 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모두 실타래처럼 줄줄이 생각납니다.
앞으로도 존재와 사라짐의 문제 때문에
얻음과 잃음, 슬픔과 즐거움, 좋아함과 싫어함의 문제 때문에
나의 마음이 이처럼 어지럽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잠깐 사이의 망각이라도 다시 얻을 수는 없을까요?”
<열자>
기억에서
모든 행복과 즐거움이 나오지만,
증오와 원한도 또한
기억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기억해야 할 일을 잊고
잊어야 할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항상 괴롭고,
기억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잊어야 할 일을 잊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다.
망각은 선녀처럼 부드럽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심지어 증오조차도 사랑으로 바꾸어놓는다.
누가 미워질 때는 가끔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도 가끔
망각의 여행을 떠나보자.
아버지와 갈매기
바닷가에 사는 사람 중에 갈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와 더불어 놀았다.
그에게 날아와 노는 갈매기는 백 마리도 넘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부탁했다.
“내가 듣건대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친하다고 하니
내일은 갈매기 좀 잡아오렴.
나도 갈매기를 데리고 놀고 싶구나.”
그 사람이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보니
갈매기는 하늘에서 맴돌 뿐 내려오지 않았다.
<열자>
갈매기가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알듯이
개도 주인의 마음을 알고
자식도 부모의 마음을 미리 안다.
그러니
하늘이 어찌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속임은 부질없는 것.
사람이 몰라도 하늘은 안다.
“사람끼리 소곤거리는 말도
하늘의 귀에는 우레처럼 크게 들리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자기 마음을 속인다 해도
하늘의 눈에는 번개처럼 밝게 보인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고향을 찾는 노인
연나라에서 태어났으나
초나라에 가서 한평생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나이 들어 늙게 되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진나라를 지나면서 그와 동행하던 사람이
일부러 그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동행하던 사람은 진나라의 성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이 당신의 고향인 연나라의 성이오.”
노인은 슬픈 표정으로 성을 바라보았다.
동행하던 사람이 사당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이 당신 마을의 사당이오.”
노인은 감회에 젖어 길게 탄식하였다.
동행하던 사람이 쓰러져가는 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이 당신 아버님이 사시던 움막이오.”
노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동행하던 사람이
풀잎으로 덮인 무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이 당신 아버님의 무덤이라오.”
이 말을 듣자 노인은 마침내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동행하던 사람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을 속였소. 이곳은 연나라가 아니고 진나라라오.”
이런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노인은 연나라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연나라의 성과 사당과 선친의 움막과 무덤을 보았지만,
이전처럼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열자>
감정이란 항상 변한다.
어느 날 슬픔을 주었던 풍경도
훗날에는 기쁨을 줄 수 있고,
기쁨을 주었던 풍경도
때가 바뀌면 눈물을 머금게 한다.
사랑하던 사람을 증오할 수도 있고
증오하던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듯이.
그러나 감정이 변한다는 것은 소중하다.
사람의 감정이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가정해 보라.
영원한 사랑도 존재하지만
영원한 증오도 존재한다.
7. 작은 욕심과 큰 욕심
죽음이 없다면
제나라 경공이 우산에 놀러 갔다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름답구나, 내 나라여!
초목은 울창하고 신선한테
어찌하여 나는 이 나라를 버리고 죽어야 하는가?
만약 예로부터 죽음이 없었다면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될 터인데!”
경공의 신하인 사공과 양구거도
따라 울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임금님이 내려주시는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고
아둔한 말과 작은 수레를 얻어 타고 살면서도
죽기를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임금님께서야 어떠하시겠습니까?
세 사람이 이러한 대화를 나누며 슬퍼하고 있는데,
옆에서 안자가 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경공은 눈물을 닦고 안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의 유람은 너무 슬퍼서
사공과 양구거도 모두 울고 있는데
그대는 홀로 웃고 있으니 왜 그런가?”
안자가 대답하였다.
“만약 예로부터 죽음이 없이
현명한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 나라를 지키게 하였더라면
태공이나 환공이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켰을 것입니다.
만약 용기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나라를 영원히 지키게 하였더라면
장공이나 영공이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켰을 것입니다.
이런 몇몇 임금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면
왕께서는 지금 도롱이 입고 삿갓 쓰고
밭이랑 가운데 서서 농사일이나 하고 계셨을 것이니
어느 틈에 죽음을 생각하셨겠습니까?
그렇다면 왕께서 이러한 지위에 오르신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것은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번갈아 왕의 자리에 오르고
번갈아 그 자리를 떠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왕께도 왕이 될 차례가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죽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입니다.
현명하지 못한 임금을 보고
또한 아첨하는 신하들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 것입니다.”
경공은 부끄러워하면서 술잔을 들어 스스로 벌주를 마시고,
두 신하들에게는 다시 두 잔씩의 벌주를 마시게 했다.
<열자>
죽음이 없으면
경공은 왕이 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기를 희망하였다.
이와같이
자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엄청난 모순도 보이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싫지만
정말 죽음이 없었다면
그리고 없을 것이라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내일이 있다는 것은
삶의 긴장을 더해 준다.
그러나 영원히 죽음이 없다면
새로운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없다면 더욱 더 무서운 것은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은 무섭다.
그러므로 죽음 없는 세상은 혼란이다.
현명한 삶은 무엇인가.
반갑고 고맙게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사는 것.
양치기는 못 해도 재상 노릇은 한다.
양자가 양나라 왕을 만나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쉽다고 말했다.
양나라 임금이 말했다.
“선생은 부인과 첩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고
채마밭의 김매기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할 수 있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양자가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양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척 동자에게 채찍 하나만 주어보십시오.
백 마리의 양을
동쪽으로 몰고 싶으면 동쪽으로,
서쪽으로 몰고 싶으면 서쪽으로 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임금에게 한 마리의 양을 끌게 하고
순임금에게 채찍을 주어 그 뒤를 따르게 하더라도
그 양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듣건대
배 한 척을 삼킬 만한 큰 고기는
적은 물에서는 헤엄치지 못하고,
큰 기러기는 높이 날되
연못에는 내려앉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큰 것을 다스리는 사람은
작은 것을 다스리지 못하는 법이며,
큰 공을 이룰 사람은
작은 공을 이루지 못하는 법입니다.”
<열자>
이태백이 말했다.
하늘이 사람을 태어나게 할 때는
반드시 그가 할 일이 있는 법이라고.
각자에게는 가가자의 할 일이 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작은 일을 못 하고,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은
큰일을 못 한다.
그러나 큰일과 작은 일에 가치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요임금이 양치기를 못 한다 하나
양치기가 없으면 나라일이 안 되고,
양자가 농사일을 못 한다 하나
농사일이 없으면 나라가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그 가치를 가지며
일을 하는 모든 사람 또한 존재의 가치를 갖는다.
말은 타고 가는 것보다 끌고 가는 것이 빠르다.
공문을 빨리 전달해야 할 일이 생기자
상관은 심부름꾼의 걸음이 너무 느린 것을 걱정하여
그에게 말을 한 필 내주었다.
그는 서둘러 말을 끌면서 길을 걸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갈 길이 급한 모양인데 왜 말을 타지 않고 끌고 가는가?”
심부름꾼이 그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발로 가는 것이 어찌 여섯 발로 가는 것보다 빠를 수가 있겠소.”
<광소부>
여섯 발로 가는 것이
네발로 가는 것보다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은 왜 틀리는가?
이것은 숫자만 보고 실제를 보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을 바꾸면
형식만 보고 실제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우공이산
북산에 사는 우공은 나이가 구십이었다.
우공의 집 앞에는 두개의 산이 있었다.
이 산 때문에 우공은 많은 불편을 느껴야 했다.
우공은 마침내 집안 사람들을 모아놓고 상의를 하였다.
“나와 너희들이 힘을 다하여 산을 없애보자꾸나”
모두가 우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처가 물었다.
“흙과 돌은 발해의 끝에다 버리지요.”
마침내 우공은 자손들과 함께 돌을 깨고 흙을 판 후에
이를 삼태기에 담아 발해의 끝으로 나르기 시작하였다.
발해는 동쪽의 끝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여름에 떠나서 겨울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한 노인이 그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처럼 늙은 나이로는 언덕 하나도 깎아 내릴 수 없을 텐데
도대체 어찌하겠다는 것입니까?”
우공이 탄식하며 대답했다.
“비록 나는 죽더라도 자식은 남아 있습니다.
내 자식은 손자를 낳을 것이고
손자는 또 자식을 낳을 것이며
그 자식은 또 자식을 낳을 것이니
자자손손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산은 더 높아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은 언젠가는 없어질 것입니다.
왜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노인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침 산신이 이 대화를 듣고 하느님께 상의하였다.
하느님은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그 집 앞에 있는 두 산을 각각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
<열자>
무한한 인내의 결실은
참으로 아름답다.
일생에 한번쯤은
아무도 상상 못할 인내의 한계에 도전해 보자.
가능하다면 젊은 시기에.
그러나 나이가 들었어도 늦지는 않다.
우공은 구십에 시작했으니까.
사람은 계산하기를 좋아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를 생각해 보라.
아무리 계산해 본들
선녀처럼 어여쁜 이 여인이
장래에는 호랑이로 변할지 안 변할지를 누가 아는가?
그런데 항차
앞일을 어찌 계산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도움이 있다는 것을
우공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어떤 계산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사람이 포기한 계산은 하늘이 대신한다.
하늘의 계산은 정확하다.
성실과 인내에 정비례한다.
지금의 고통도 하늘이 내려 준 단련의 기회라고 인정한다면.
수석
강녕 지방에 서역에서 온 상인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어떤 사람의 집에서 기묘하게 생긴 돌을 보았다.
이 돌의 모양이 너무나 신기하여 상인은 이를 사고자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가격을 매우 비싸게 부르고 팔지 않았다.
상인은 몇 차례나 그를 방문했으나 그때마다 가격만 올라갔다.
하루는 주인이 그 돌의 가격을 더 올릴 방도를 궁리하다가
마침내 돌을 예쁘게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인은 정성스럽게 돌을 갈았다.
다음날 상인이 다시 찾아왔다.
주인이 그에게 갈아놓은 돌을 내놓으니
상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갔다.
<향조필기>
돌을 갈아야 할 때도 있고
원래의 모습대로 두어야 할 때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또한 그렇다.
닭을 잡아먹는 고양이
조나라 사람 하나가 쥐가 많은 것을 걱정하여
중산국에 고양이를 청하였다.
중산국 사람이 그에게 고양이 한 마리를 주었다.
그 고양이는 쥐를 잘 잡았는데 또한 닭도 잘 잡아먹었다.
한 달 남짓 지나자 쥐는 모두 없어졌고 닭도 없어졌다.
아들이 걱정하여 아버지에게 말했다.
“왜 고양이를 없애지 않으십니까?”
아버지는 답했다.
“내가 걱정한 것은 쥐이지 닭이 아니다.
쥐가 있으면 내 음식을 훔쳐먹고 옷을 망치며
담장을 뚫고 기물들을 부수니
장차 생활이 빈궁해질 것이다.
그러나 닭이 없으면 닭고기를 먹지 않으면 그뿐 아니냐?”
<욱리자>
어떠한 사물이건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사물을 취할 때는
취하려는 본래의 목표가 기준이 된다.
그 사물이 본래의 목표에 충실하다면
다른 단점은 과감히 덮어두어야 한다.
농사철에 여물이 아깝다고
소를 버릴 수 없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을 취하는 본래의 목적에 맞으면
설령 다른 단점이 있을 지라도
그 사람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 사람의 단점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이 사람의 장점이 없을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무서운 것.
본질을 떠난 말단이 지배하는 사고.
본질을 떠난 말단이 지배하는 사회.
본질에서 눈을 떼는 순간
항상 말단이 지배한다.
사고에도
사회에도
공백은 있을 수 없으니까.
고통받기 전에 치료해 주면 고마운 줄 모른다.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중국의 명의이다.
그런데 실은 그의 두 형들도 모두 의사였다.
다만 그의 두 형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느 날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삼형제 가운데 누가 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가?”
“큰형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을 보고 장차 병이 있을 것임을 압니다.
그가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미리 제거해주었지요.
그러므로 환자는 아파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저의 형이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큰형은 명의로 소문나지 않았습니다.
둘째형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그의 병을 알고 치료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환자도 둘째형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환자의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으로 인하여 신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알아봅니다.
그의 병이 심하므로 맥을 짚어야 했으며
진기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행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믿습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는 이것입니다.”
<갈관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는
그런 일의 가치를 알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면
유명한 것이 반드시 휼륭한 것은 아니고
휼륭한 것이 반드시 유명한 것도 아니다.
가치 있는 행위라고 하여
반드시 타인에게 알려져야 할 이유도 없으며,
타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반드시 것이 반드시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 가치 있는 행위라고 믿으면
타인에게 그 가치의 인정을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그 가치를 추구해 가는 삶이
또한 아름다워 보인다.
작은 욕심과 큰 욕심
정나라에 한 재상이 살고 있었다.
그는 생선을 무척 즐겨 먹었다.
그러나 워낙 청빈하게 살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생선을 자주 먹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 하나가
일을 부탁하기 위하여
그가 좋아하는 생선을 뇌물로 바쳤다.
그러나 이재상은 그것을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생선을 그토록 좋아하면서 왜 받지 않았습니까?”
재상이 대답했다.
“내가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일세.
생각해 보게나. 내가 그 생선을 받으면
이는 부정한 행동을 한 것이니, 이것이 알려지면
결국은 내 직위를 잃게 될 것이 아닌가?
그리 되면 내가 봉록을 받지 못할 것이니
그나마 가끔 먹을 수 있던 생선마저 못 먹게 될 것이고,
내가 그것을 물리치면 계속 봉록을 받을 것이니
평생 생선을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신서>
사람은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욕심이야말로 진취적 행동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욕심은 현 상황의 불만에서 시작하여
그 상황을 보다 낫게 개선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욕심의 성격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욕심에도 작은 욕심과 큰 욕심이 있다.
작은 욕심과 큰 욕심은 일반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은 간단해진다.
작은 욕심을 버리고 큰 욕심을 부려서
보다 큰 것을 얻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더러는
작은 것에 얽매어 큰 것을 잃지 않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세가지 진리
세상에는 만고불변의 세 가지 진리가 있다.
첫째는 지혜만으로 공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이며,
둘째는 힘으로만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셋째는 강하다고 하여 항상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요임금 같은 지혜가 있을지라도
여러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큰 공을 세울 수 없고,
오획과 같은 천하장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으며,
맹분이나 하육과 같이 의지가 강한 사람도
방법을 알지 못하면 항상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오획 같은 천하장사가 천근의 무게는 가벼이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몸을 무겁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몸이 천근의 무게보다 무겁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주변상황이 순조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처럼 눈 밝은 사람이
백 보 밖의 물체는 볼 수 있어도 자기의 눈썹은 볼 수 없으니,
이는 백 보가 가깝고 눈썹이 먼 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치상 눈썹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현명한 군주는
오획이 자신의 몸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하여 문책하지 않으며
이주가 자신의 눈썹을 보지 못한다 하여 탓하지 않는다.
때에는 성쇠가 있고
사람에게는 생사의 문제가 있으니,
군주된 사람이 이러한 일로
기쁨과 슬픔의 내색을 하게 되면
바위같이 지조가 같은 사람도 마음이 멀어진다.
현명한 군주가 신하에게 하기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비자>
현명한 군주는
함부로 신하를 판단하지 않는다.
능력이 있어도
못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러므로
일이 안 되는 경우라도
신하는 그러한 군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러한 군주를 버리지 않는다.
혹시 당신을 떠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원인이 당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초나라 사람이 제나라 말 배우기
맹자가 대불승에게 물었다.
“초나라 대부가 그 아들에게 재나라 말을 가르친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제나라 사람을 스승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초나라 사람을 스승으로 모실까요?”
대불승이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제나라 사람을 스승으로 모신다 할지라도
주위에서 초나라 말만 듣게 되면
매일같이 매을 때리며 가르칠지라도
제나라 말을 못 배울 것이고,
자식을 제나라에 데리고 가서
제나라 동네에 몇 년만 살게 하면
매일같이 매를 때리며 초나라 말을 가르칠지라도
초나라 말을 못 하게 될 것이오.”
<맹자>
환경은 중요하다.
때로는 이에 따라 노력의 효과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사람은 환경의 산물이다.
총명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생시몽의 말이다.
“부패한 환경에서 영웅은 나오지 않는다.”
고리끼의 말이다.
이는 모두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나의 환경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자.
환경도 결국은 내가 만든다.
그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은
내 책임이 아니다.
책임질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8. 장자의 후회
명궁과 제자
비위는 천하의 명궁이었다.
기창이라는 사람이
그에게서 활쏘기를 배우고자 하였다.
비위가 그에게 말했다.
“먼저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수련을 하게.
그런 뒤에야 활쏘기를 얘기할 수 있다네.”
기창은 돌아가 아내의 베틀 아래 누워서
눈을 베틀채 끝에 대고 있었다.
그러기를 이년 동안 계속하였다.
그는 마침내 송곳이 눈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눈을 깜빡이지 않게 되었다.
이를 비위에게 이야기하자 비위가 말했다.
“아직 멀었네.
다음에는 처다보는 수련을 해야 한다네.
작은 것이라도 크게 볼 수 있어야 하고,
희미한 것이라도 뚜렷하게 볼 수 있어야 하네.”
기창은 머리털 끝에 이 한 마리를 잡아매어
창문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남쪽을 향해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열흘이 지나자 그것은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삼년이 지난 뒤에는 수레바퀴처럼 크게 보였다.
그런 뒤에 다른 물건을 보았더니
모두가 산이나 언덕처럼 크게 보였다.
기창이 이를 비위에게 이야기하니
비위는 기뻐서 가슴을 치며 말했다.
“너는 활쏘는 법을 터득하였구나.”
비위는 마침내 그에게 활쏘기를 가르쳤다.
기창이 비위의 기술을 다 배운 후에
자기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또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스승인 비위 이외에는
아무도 자기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기창은 천하 제일이 되기 위하여
마침내 스승인 비위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광야에서 마주 섰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활을 쏘았다.
그러나 중도에서 화살은 더 이상 날지 않았다.
두 사람이 쏜 화살은 서로 부딪쳐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화살이 떨어진 땅에서는 먼지 하나도 일지 않았다.
스승인 비위의 화살이 먼저 없어지고
기창에게는 한 대의 화살만이 남게 되었다.
기창은 마지막 화살을 날려보냈다.
그러자 비위는 나뭇가지 끝으로 그것을 막았는데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두 사람은 활을 내던지고 울면서 서로 맞절을 하였다.
그들은 부자 관계를 맺기로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와 같은 배움의 길을 가지 못했다.
<열자>
배움의 처절함
진실한 배움의 인내와 성실이 주는 상호간의 신뢰
최상의 경쟁
상화간의 인정과 존경.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배움의 길을
왜 다른 사람들은 걸을 수 없었을까?
아무도
그토록 처절한 배움의 길을 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절한 인내와 처절한 노력만이
처절한 기쁨을 준다.
수영을 잘하면 배도 잘 젓는다.
안자가 하루는 배를 타게 되었다.
그 배의 사공은 귀신처럼 멋지게 노를 저어갔다.
안자가 물었다.
“배 젓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을 연습만 하면 곧 배울 수 있고
잠수에 능한 사람은 배를 본 적이 없더라도
바로 저을 수 있습니다.”
안자가 그 이유를 물었으나 사공은 말해 주지 않았다.
안자는 이를 공자에게 말하고 답을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배를 잘 저을 수 있는 이유는
물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배 젓는 일에만 전념하게 된다.
잠수에 능한 사람은
배가 뒤집히더라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내기를 하는 경우에도 이와 같아서
기왓장 하나를 걸고 내기를 하면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그보다 조금 더 값진 물건을 걸고 내기를 하면 기가 죽고
황금을 걸고 내기를 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 사람의 기술을 언제나 같지만
마음을 물건에 빼앗기면 행동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장자>
마음에 두려움이 있거나
미혹됨이 있으면
자기의 능력을 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을 앞두었을 때는
마음에 두려움을 없애는 것,
미혹됨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조삼모사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몹시 좋아하다가
마침내 집 안에서 원숭이를 길렀는데
점점 구 수가 늘어나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는 원숭이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원숭이들 또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식구들의 식량을 줄여가며 원숭이를 길렀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것마저 어렵게 되었다.
그는 원숭이의 먹이를 줄이자고 하였으나
여러 원숭이들이 자기의 뜻을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는 원숭이들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주는 밤을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로 하면
만족하겠느냐?”
이말을 듣자 여러 원숭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화를 내었다.
저공은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아침에는 네개, 저녁에 세 개로 하면
만족하겠느냐?”
이말을 들은 여러 원숭이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 없는 사람들을 농락함이 이와 같다.
저공이 지혜로 원숭이를 농락하듯
성인들은 지혜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농락한다.
그들은 명분과 사실에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도 하며, 노하게 하기도 한다.
<열자>
지식으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능력으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일부러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속이는 줄도 모르고 속인다.
명심보감에서 말했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라.
속이면 화가 온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용서하면 복이온다.
하늘이 이를 모를 것 같지만
하늘은 이 회답을 빨리 보낸다.”
진실과 오해
악양이라는 사람이
위나라의 장수가 되어 중산국을 공격했다.
때마침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왕은 그 아들을 죽이고 국을 끓여서
약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그 국을 소리 없이 마시고
여전히 위나라를 위해 전투에 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위나라 임금이 신하에게 말했다.
“악양은 나 때문에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었구나.”
신하가 대답했다.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은 사람이 누구를 먹지 않겠습니까?”
이 신하는 악양의 심기가 강건한 것으로 보아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악양이 전쟁에서 돌아오자
위나라 왕은 그에게 큰 상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모반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한시도 풀지 않았다.
<한비자>
자신의 진실한 행동을
오해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것도
여러 명을 만났을 때,
그런 사람이 더구나
항상 주위에 있을 때
세상은 정말 살기 힘들어진다.
진실도 오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삶의 의욕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악양의 경우도 그렇다.
그러나 진실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람 사회에는 사람 이외에
역사와 하늘도 존재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존재하니까.
외부가 그렇다고 하여
나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나친 겸손
제나라에 황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에게는 천하의 미인인 두 딸이 있었는데,
그는 워낙 겸손한 탓에
자기의 딸을 추악하게 생겼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의 딸이 과년하도록 신랑감이 나서지 않았다.
위나라에 노총각이 살았다.
그도 때를 놓쳐 장가를 못 갔는데
마침 황공의 딸이 과년하고 추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그래도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매파로 하여금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그가 한 번 보니 그 딸은 미인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황공이 겸손해서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지
지금 보니 그의 딸은 천하의 미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동생도 분명히 미인일 것이다.”
이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동생에게 청혼을 했다.
그 동생도 과연 미인이었다.
<윤문자>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
그리고 상대를 위하여
겸손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과하면 안 되듯이
겸손도 과하면 안 된다.
더구나
겸손이 과하여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
겸손과 거짓은 다르다.
황공은 겸손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여
자기의 딸을 노처녀로 만들었다.
장자의 후회
어느날 장자가 밤나무 밭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까치 한 마리가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 날아가 밤나무 숲에 앉았다.
장자는 그 까치를 잡기 위하여
돌멩이를 집어들고 까치가 앉은 곳으로 다가갔다.
까치가 날아가 앉은 밤나무에는 매미가 앉아 있었다.
그 매미 옆에는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장자가 살펴보니 상황은 이러하였다.
까치는 사마귀를 잡아먹으려다
장자가 자기를 잡으려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사마귀는 매미를 잡아먹으려다
까치가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장자는 슬픈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생물은 이익을 좇다가
결국은 몸을 버리게 되는구나.”
장자는 까치 잡기를 포기하고 밤나무 숲을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자가 밤을 훔쳐 가는 줄 알고
밤나무 밭 주인이 장자에게 욕을 퍼부었다.
장자는 불쾌한 안색으로 사흘을 지냈다.
제자가 물었다.
“요즈음 안색이 안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나는 까치 잡기에 정신이 팔려서
진정한 나 자신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는 애당초 까치를 잡으려 하지 말아야 했고,
따라서 밤나무 밭에도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진실을 잠시 잊은 탓으로
밤나무 밭 주인한테 모욕을 당했다.
나는 이것이 부끄럽구나.”
<장자>
‘정신일도하사불성’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렇다.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면
진실을 잃을 수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객관성도 잃는다.
잠시라도 이익에 빠져
남의 오해를 받았던 장자의 아픈 기억이
이를 말해 준다.
이익을 눈앞에 두고도
천연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이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있다.
큰일을 못 해도 최소한
스스로 행복하다.
불우한 인생
주나라에 평생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이미 백발이 되었다.
그는 지나온 인생을 슬퍼하다가
하루는 길가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길 가던 사람이 그를 보고 물었다.
“왜 그렇게 우십니까?”
그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관직을 구했으나 평생 한 번도 기회가 오지 않았다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앞으로는 영원히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으니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오.”
길가던 사람이 다시 물었다.
“어찌해서 관직에 오를 기회를
평생 한 번도 얻지 못했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공부를 했소.
공부를 끝내고 관직을 구하려는데
당시의 왕은 나이 든 사람을 좋아했다오.
이것이 그때 관직을 얻지 못한 이유라오.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하던 왕이 죽고 새 왕이 등극하였소.
그런데 그 왕은 무예를 좋아했다오.
나는 공부를 버리고 무예를 익혔소.
무예를 다 익히고 관직을 구하려 했을 때
그 왕이 세상을 떠났다오.
그리고 지금의 새 왕이 등극하였소.
그런데 이 왕은 젊은이를 좋아하오.
이리하여 나는 평생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오.”
<논형>
세상일에는 때가 있다.
이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꿋꿋이 자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이 노인은 과연 불우하다.
왜 불우하게 되었을까?
그는 오로지 시류의 변화를 따랐다.
세상이 변하는 대로
자기를 바꾸어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의 변화를 모두 따를 수는 없다.
가장 확실한 것은
묵묵히 끈질기게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잘못 쓴 제문
장모가 돌아가시자 사위가 제사를 지내러 가게 되었다.
그는 도중에 스승에게 들러
제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스승은 제문이야말로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여
옛 책을 펴놓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옮겨 썼다.
그러나 잘못하여 장인의 제문을 써주었다.
사위가 이 제문을 가지고 가자
글을 아는 사람이 이를 알고 몹시 노하였고,
상주도 스승을 심하게 탓하였다.
사위가 이를 스승에게 알리자 스승이 대답했다.
“내가 본 책은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들여 쓴 책이므로
틀릴 리가 없네.
아마도 그 집 사람이 잘못 죽었겠지.”
<광담조>
오직 책을 믿는 것.
책을 잘못 보고도 오직 자기만을 믿는 것.
오직 한 가지만을 믿는 것.
이것은 이처럼 위험하다.
여우에게 가죽을 달라고 하면
주나라 사람 중에
가죽옷과 진귀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금의 가치가 있는 가죽옷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여우를 찾아가 상의하였다.
“여우야, 네 가죽 좀 줄 수 없겠니?
나는 값비싼 가죽옷을 만들고 싶단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우는 깊은 산 속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는 또한 제사에 쓸 진귀한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양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양이여! 나는 진귀한 음식을 만들고 싶구나.
네 살을 좀 떼어줄 수 없을까?”
그러나 양도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숲 속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는 수없이 이러한 시도를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여
십년 동안 한 벌의 가죽옷도 만들지 못했고,
오년 동안 한번도 진귀한 음식을 만들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계획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부자>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정확히 선택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대상이
당신을 도와줄 리 없다.
은혜와 과오
한단 지방의 한 백성이 정월 초하루 아침에
간자에게 비둘기를 한 마리 바쳤다.
간자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손님이 까닭을 물으니 간자가 대답했다.
“정월 초하루 아침에 비둘기를 풀어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내가 은혜로운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손님이 말했다.
“안 됩니다.
임금님께서 살아 있는 비둘기를 구하여 놓아주시는 것을
백성들이 알면,
그들은 앞다투어 비둘기를 잡아다 바치려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필경 비둘기가 많이 죽게 될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만약 비둘기를 살려주시려 한다면
백성들에게 아예 잡지 못하도록 금령을 내리는 것이
차라리 좋을 것입니다.
일단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것은
아무리 은혜로워 보일지라도
결국은 과오에 불과할 것입니다.”
간자가 말했다.
“그렇겠습니다.”
<열자>
나의 무심한 행동이
남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사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행동도
경우에 따라서는 해악이 된다.
잡은 것을 놓아주어
은혜로움을 보이고자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비둘기를 더 많이 죽이는 것처럼,
적선하는 것이
그를 나태하게 할 수도 있고,
격려하는 것이
그를 소심하게 할 수도 있고,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오히려 나라를 혼란케 할 수도 있다.
나의 행동이
남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사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참으로 알기 어렵다.
허영과 이익을 떠나는 것이
그래도 이를 알기에 가장 가까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