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이정숙
차례
1. 늦기 전에 고쳐주어야 할 말버릇 10가지
빠르고 숨가쁘게 말한다 17
발음이 정확하지 않가 22
말끝은 흐리며 말한다 26
발표 불안증이 있다 32
거짓말을 잘한다 36
토막말을 쓴다 42
소리 지르며 말한다 49
말할 때 눈을 맞추지 못한다 54
제때 대답을 안 한다 60
베이비 토크를 버리지 못한다 65
2. 자녀를 리더로 만드는 말교육 10가지
"미안하다" "감사하다"를 입에 달고 살도록 하라 73
존댓말은 말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라 80
왕따일수록 남의 말을 경청하게 하라 88
자녀가 할 말은 자녀가 말하게 하라 94
말하기 매너도 가르쳐라 102
발표문은 직접 쓰게 하라 109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도록 하라 115
논리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121
긍정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130
자녀와 주제가 있는 토론을 자주 하라 136
3.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녀의 마래를 바꾼다
독이 되는 말, 한 번만 참자
"내가 못살아" 143
"누가 너더러 그런 일 하라고 했어?" 150
"너 때문이야" 155
"이 바보야, 그것도 못 해!" 161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168
"아니, 그게 뭐야?" 174
약이 되는 말, 많이 할수록 좋다
"너는 할 수 있어" 181
"그럴 수도 있지, 뭐" 186
"네 머리는 꾀주머니야" 190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196
"걱정하지 마라" 201
4. 자녀와의 갈등 말로 풀자
공부하기 싫어할 때 207
예능교육을 시키고 싶을 때 214
옷차림을 간섭해야 할 때 221
나쁜 습관을 고쳐주고 싶을 때 225
거친 말버릇을 쓸 때 229
PC방에 빠졌을 때 233
성가신 질문을 계속할 때 239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사귈 때 244
처음으로 성적인 호기심을 나타낼 때 252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떼쓸 때 260
용돈을 올려 달라고 조를 때 266
1. 늦기 전에 고쳐주어야 할 말버릇 10가지
빠르고 숨가쁘게 말한다
"엄마, 그런데 으응, 애들이 으응, 기석이를 으응, 막 때려줬어."
"뭐가 그렇게 급해, 좀 천천히 말해봐."
"애들 여러 명이 으응, 그러니까 한꺼번에 으응, 달려들어서.........."
"응,맞아."
현진이는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와서 급하게 말할 때마다 이처럼 끙끙대거나 숨
가쁘게 말해 어머니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현진이뿐만 아니라 요즘 어린이들은 말
을 빨리 하려고 끙끙대거나부모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우리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말이 빠르지요?"하며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다.
말을 달 알아듣게 하는데 말의 속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나치게 빠르면
알아듣기가 어렵고 지나치게 느리면 지루래서 듣기 싫어진다.말하면서 끙끙대거나 너
무 빨리 말하는 것은 말하기에 필요한 호흡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숨쉬기는 말하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말하다가 숨을 쉬는 것을 '포즈(pause)'라고 하
는데 '공간의 미' '여백의 미'라고도 한다. 말하기에 필요한 호흠은 동양화에서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채워진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백과 같은 역할을 한다.여백
이 없는 동앵화가 답답해 보여 가치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많은 정보를 접하기 때문
에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생각대로 말은 나
오지 않아 아이들은 숨을 쉬지 않고 금하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어린 아
이들의 폐활량은 적기 때문에 급하게 말하려고 하면 할수록 숨이 가쁘게 된다.
이러한 자녀의 말하기 습관을 발견하고도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 곤란하
다.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성인이 된 다음에도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
르고 숨가쁘게 말하는 습관을 갖기가 쉬운 것이다. 자녀의 숨가쁘고 빠른 말버릇은 발
견 즉시부터 고쳐주어야 한다.
만약 자녀가 현진이처럼 끙끙대며 급하게 말한다면 "여러 녀석이 기석이를 때렸단
말야?"라고 어머니가 답을 말해버리자 말고 "거기서 한 번 쉬고 다시 이야기해봐.기석
이가?뭐라고?"라고 되물어서 자녀가 다시 정확하게 정리해서 말하도록해야 한다.
말을 빨리 하는 자녀에게 "그렇게 빨리빨리 이야기 하니까 듣는 엄마가 숨이 찬다"
라는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자녀가 어머니
지시대로 다시 고쳐서 정확하게 말하면 '늘 그렇게 말하면 듣기가 참 편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저 듣다가 짜증난다고 부모가 나쁜 감정을 드러내면 자녀는 부모의 요구를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최대한 편안하게 느낄수 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저 듣다가 짜증난다고 부모가 나쁜 감정을 드러내면 자녀는 부담을 갖게 되고 자
녀의 말버릇을 고치기도 어렵게 된다. 자녀가 부모의 요구를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최
대한 편안하게 느낄수 있는 반응을 보여 천천히 말버릇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신혜미 씨는 외국인 기업체의 신입사원이다. 취업난 속에서도 외국인 기업에 취직한
그녀가 행복에 젖기도 전에 회사생활이 시작되자 말버릇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
했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그녀의 말이 너무 빨라 회사생활이 시작되자 말버릇 때
문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그녀의 말이 너무 빨라 회사의
선배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라고
하는데 있었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직장 선배들은 "자네는 따발총이야? 천천히 말 좀 해봐."라고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신혀미씨는 학교 다닐 대는 자신의 말이 그처럼 빠르다
는 사실을 잘 몰랐다.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주의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부
모님이 "아이구, 말 좀 천천히 해라. 알아듣게 또박또박 말해봐"라고 하긴 했지만 친
구들과의 관계에서는 큰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에 들엉노 후 그녀는 따발총
쏘는 것처럼 빨리 말하는 습관 때문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 받아야 하는 회사에서는 대충 얼버무리는 말하기가 통하지 않았
던 것이다.어려서부터 빠르고 숨가쁘게 말하는 자녀들의 습관을 고쳐주려면 자녀들에
게 틈나는 대로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준다.
이때 무조건 소리내서 읽도록 하는 것보다 책에다 일일이 쉬는 표시를 해주고 표시
된 곳에서는 반드시 끊어서 읽도록 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숨을 쉴 때도 박자를 맞춰
서 쉬도록 한다. 자녀에게 호흡에 대한 이해를 시킨 후 문장 중간에는 반 박자, 문장
이 끝났을 때는 한 박자씩 쉬도록 하는 것이다.
자녀가 숨쉬기 표시가 된 자리에서 정확하게 잘 끊었을 대는 빠트리지 말고 칭찬을
해주어서 자녀가 소리내서 책읽는 것에 흥미를 갖도록 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소
리를 고래고래 지르게 하는 것보다는 정확한 호흡에 맞춰서 목에서 힘을 빼고 배에
힘을 주어 읽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책읽기는 평소의 말하기에 큰 영향을 주어 말할 때의 호흠이 고르게 되고 또
박또박 편안하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소리내 읽기는 자녀들의 호흡뿐만 아니라
발성 연습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의 발성 연슴은 발음과 발성, 끊어 읽기를
자연스럽게 해줘 평생 동안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된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상사께서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새로 공부를 하라고요."
직장인을 위한 '스피치 테크닉' 강의를 받기 위해 사무실로 나를 찾아온 20대 후반
의 한 직장의 한 말이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말에서 받침이 전혀 들리지 않아 계속해서 "다
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해야만 햇다. 그는 말이 빠른 데다 입을 정확하게
벌려 말하지 않아 받침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말의 전체 내용을 알아듣기가 어려웠
다.
그는 우수한 인재였다. 서울대학
교를 나왔고 영어도 잘해 직장에
서 촉망받는 지구언이었다. 그런
데도 그는 말을 불분명하게해 진
급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를 아
끼는 직장 선배는 말하기 교육을
받아 그 부분을 보충해보라고 권
했다고 한다. 우리말에는 받침이
있기 때문에 입모양이 바르지 않
으면 받침이 제대로 발음되지 않
아 정확한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
다.
"아까 제대로 알아들었어?"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들리지를 않더라고."
"그 사람 말은 정말 외국인보다
더 어려운 거 있지?"
"요즘 젊은 사람 특증이야. 받침
이 발음 안 돼서 그래."
"말할 때마다 '뭐라고요?'라도
되물을 수도 없고 말야."
"세일즈맨이 그렇게 말해서 어
디 성공할 수 있겠나?"
10년이 넘은 자동차를 몰고 다
니다 보니 자동차에서 갈갈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해 친구와 함께
자동차 판매사원은 입을 작게 벌
리고 말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
은 이 안에서만 웅알거려 알아듣
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네? 다
시 한 번 설명해주세요."라고 말
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미안해 아예 포기하고 중간
에 그 곳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도 그런 경험은 많이 할
수 있었다. 한 회사에 가서 사원
교육을 마친 후 교육 담당자들이
예약해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
은 불고기를 잘하기로 널리 알려
진 집이라고 했다. 그날따라 식당
이 붐벼 식당 안은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 복판처럼 소란했다.
그 회사의 교육담당 책임자는 식
당에서 나에게 개인적인 것은
물론 회사 운영에 관한 여러 가
지에 대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
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한 번
에 알아들은 적이 없다. 발음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차례 그에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지요"라고 말해
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 나에게 무엇을 묻는지 정확하
게 알 수가 없어 그냥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업무에 관련
된 이상,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
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행능
력이다. 일에 관련한다는 것은 가
장 기본적인 수행능력이다. 일에
관련되어서라면 상대방은 정확하
고 철저하게 말할 것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차징이 생기면 '죄송
합니다'라는 말만으로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음이 불분명하다면 고쳐야 하
고 어릴수록 교정이 쉽기 때문에
발견 즉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자녀의 발음을 고치려면 부모들
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때
부모는 자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
도록 신중해야 대처해야한다. 발
음이 정확하지 않은 자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훈련을 통해서 교정해줄 수 있다.
부모와 같이 아침마다 책을 읽을
때 입을 최대한으로 크게 벌려서
큰 목소리로 읽도록 한다.
이를테면 'ㄴ'과 'ㅇ'이 잘못 발
음되면 '항강'이 된다. 그러면 '
한강'으로 정확하게 발음라도록
입 모양을 살피면서 지도해야 한
다. 부모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
면 자녀의 발음이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가 먼저 입을 크
게 벌리고 발성훈령을 하거나 자
녀와 함께 발음 교정을 하면서
자녀의 발음도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좋다.
또 조금 자라서 교정하는 방법
도 있지만 이왕이면 부모들이 자
녀가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좋은
말음을 들려주어, 그 발음이 귀에
익도록 사전 작업을 해두는 것이
좋다.
좋은 책을 골라 자녀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며, 이 때 부모가 발
음을 정확하게 낼수록 효과가 좋
다. 사회 생활을 할 때 상대방이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발음이 불
분명하면 호감을 얻기가 어렵다.
자녀를 성고하는 사회인으로 기
르려면 어려서부터 발음ㅇ르 고
쳐 주는 것이 좋다.
포인트
소리내어 책을 읽으며 입을 크
게 벌리고 정확하게 말을 하도록
한다.
부모의 발음은 정확한지 체크해
본다.
영유아 때 부모가 바른 발음으
로 책을 읽어준다.
발음은 어릴 때일수록 고치기가
쉽다.
말 끝을 흐리며 말한다.
"말의 내용은 좋은데 고개를 너
무 많이 움직이는 것.........."
"끝까지 설명해 보세요."
"움직이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
요."
"애들이 TV에서 본 드라마 이
야기를........."
"이야기를 어떻게 했다구요?"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
묜 이처럼 끝까지 말을 하지 않
고 뒤끝을 흐리면서 중간에서 잘
라버려 재질문을 하지 않으면 제
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
다. 심한 경우에는 문장이 아닌
단어로만 말하기도 한다. PC통신
등 컴퓨터와 전자 매체가 발달하
면서 중요한 단어 몇 가지로 의
사를 전달하거나 단어 자체를 심
하게 줄여쓰.
는 탓이다. 이러한 습관은 성인이
된 후까지 없어지지 않아 사회
생활의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어린 자녀가 끝 부분을 흐리며
불분명하게 말해 부모조차 자녀
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불평을 하는 부모들도 자녀의 언
어 습관을 고쳐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어가 얼굴이 크거나 키가 작
은 것처럼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
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노력만 하면 언제든 고쳐서 바르
게 사용할 수 있다. 몸매를 다듬
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훈
련으로 목소리도 고칠 수있다. 말
끝을 흐리거나 정확하게 발음하
지 않은 등 자녀들의 말하기가
예전과 달라지면서 부모와 자녀
의 세대간 커뮤니케이션 단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말하기 자체는 세대에 따
라 변화한다. 그러나 요즘은 그
변화가 너무 급격래 세대간 격차
와 단절을 촉진하고 있다. 세태가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면서
자녀의 잘못된 말버릇을 방치하
면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 사회
생활을 할 때 큰 어려움을 격게
된다. 자녀의 사회 생활을 관리할
상사나 소비 능력을 가진 고객은
자녀들과 같은 세대가 아닌 부모
나 자녀와 부모의 중간 세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어려서부터
말을 끝까지 명확하게 하는 습관
을 길러주어야 한다. '한국 말은
끝가지 들어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다. 서술어를 맨 뒤에 사용하기
때문에 끝까지 듣지 않으면 긍정
인지 부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부정어나 긍정어, 동사, 형용사가
맨 끝에 온느 서술어에 의해 결
정되기 때문이다. 말하기 습관에
있어서 서술어 부분이 거의 들리
지 않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정도
로 말끝을 흐리면 어려서부터 고
쳐주는 것이 좋다. 계속해서 강조
했지만 말하기 습관은 나이가 들
수록 고치기가 어렵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명료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면 능
력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세
상이 되었다. 전에는 사회적으로
말에 대한 중요성이 제대로 알려
지지 않아 말끝을 흐려도 큰 문
제가 없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
다. 말을 중요시하는 사회물결은
벌써부터 우리나라 직업세계에도
들어와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
인이 되는 미래에는 타인을 설득
해야 성공할 수 있는 생종 경쟁
이 지금보다 더 치열해 질 것이
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허탈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
다"
"회사에서 인전받고 계시잖아
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능력
이 있어도 말하기가 서투르면 능
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든요.소외감
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니 왜요?"
"실력이 별로인 사람들도 말만
잘하면 성공하더라구요. 진급도
빠르고 좋은 자리에 가 있지요."
"억울하시겠네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기업체에 나가 커뮤니케이션 교
육을ㄹ 해보면 이와 같은 고민을
말하는 직장인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직장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
은 말을 많이 하거나 번지르르하
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
이디러응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또렷하게 말하는 것을 의마
한다. 세계에서 가장 평등권이 보
장된 것으로 알려진 미국사회도
실상을알고 보면 엄격하게 구분
돼 있다. 계층구분은 단어 사용
법, 말의 억양, 말하는 태도로 측
정된다.
1962년 아카데미상을 9개나 휩
쓴 영화 <마리 페어 레이디>를
보면 영국인들이 계급을 나눌 때
얼마나 언어를 중요시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영국 문
화를 그대로 들여온 미국인들도
언어사용 태도를 보고 계층을 구
분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해준다.
사람들은 겉으론느 누구나 평등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편으
로는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 때문에 남보다 특별해
보이는 옷을 입고 미싼 자동차와
집을 사며 특수 계층을 만드는
것이다. 한때는 비싼 차와 좋은
옷이 특별 대우를 받을수 있는
요소가 되었지만, 경제가 좋아지
고 평등권이 향상되면서 그러한
것들로 특별 계층을 나누는 의미
는 사라졌다. 그 때문에 그 동안
특별 대우를 받아온 사람든은 다
른 방법을 다시 계층을 나누기
시잭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말
하기, 매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전문직 종사자 중 옥스퍼드
영어와 프린스턴 영어를 사용하
는 사람끼리만 사교가 가능한 계
층이 많다고 한다. 하물며 끝까지
명료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
는 사람은 어디서나 제대로 대접
받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사
회지도자들까지도 사투리와 표준
말을 마구 섞어 사용하고 있으며
언어 사용법으로 계층을 나누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그러나
미국처럼 생활 수준과 GNP가 높
아져 좋은 옷 입고 비싼 집이나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많
아지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도 머
지 않아 언어나 매너로 계층을
나누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미 그러한 바람이 불
고 있어 기업체 같은 데에서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매너나 이미
지 그리고 말솜씨가 플러스 요인
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어린 자
녀에게 단어 사용법, 문장 구성
법, 말하는 태도
등을 가르쳐 사회생활에 성공하
도록 해왔다.
이제 말이 그 사람의 능력을 재
는 척도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
다. 말끝을 흐려 마지막 말을 생
략하는 언어습관을 방치하면 커
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기 어렵
기 때문에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
기쉽다. 정확한 문장으로 말할 때
그 사람이 논리적이고 정확한 사
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
를 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으로
부터 적절한 대접도 받을 수 있
다.
자녀가 말을 끝까지 하지 않거나
축약해서 대충 말하면 때때로 그
내용을 녹음해서 들려준 후 그렇
게 말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를 반복해서 알게 해주어
끝까지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끝을 흐리며 정확하지 않게 말하
면 못 들은 척한 다음 자녀가 다
시 끝까지 또박또박 말했을 때
자녀가 좋아하는 과자 등 간단한
상을 주면서 아이를 칭찬해주며
그 습관을 교정할 수 있다.
포인트
아이가 말끝을 흐리며 끝까지 말
을 다 할 때까지 다시 말하도록
한다.
아이의 말을 녹음해서 들려주고
왜 발음을 고쳐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
말끝을 흐리면 대꾸를 하지 말고
말을 제대로 하면 칭찬을 해준다.
발표 불안증이 있다.
"우리 애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인데 남들 앞에서 발표하기를 두
려워합니다."
"그런 것은 훈련으로 고칠 수 있
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자녀가 발표를 못 해 문의 전화
를 하는 부모들이 많다. 어려서부
터 보호를 유난히 많이 받았거나
바깥 세상과 접할 기회가 적은
어린이일수록 낯선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게 된다. 낯선 사람
과 말하기를 꺼리는 어린이는 여
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는 더욱
싫어한다.
어린이의 발표 불안증을 없애려
면 자녀에게 낯선 사람을 자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
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극성을
부려 부모들은 세상이 너무 험해
서 자녀에게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대꾸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
른다. 심지어 자녀 혼자 약국이나
동네 문방구에 가는 것도 위험하
다며 "엄마랑 같이 가자"하면서
따라나서는 어머니들도 많다. 그
러다 보니 어린아이들은 점차 낯
선 사람과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는 더
욱 싫어하게 된다.
부모들이 미리부터 단속하는 것
이 당연할 만큼 세상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의 말
하기 교육에서 이러한 부모의 태
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녀가 여
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잘 하도
록 하려면 자녀에게 닻선 사람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도
록 해야 하는데 낮선 사람의 말
에 대꾸하지 말라는 것은 아이의
압을 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녀를 낮선 사람데게 노출시키
기가 불안하다면 친척이나 가까
운 이웃과 어울리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내가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정부
나 파출부 손에서 자라 외부 사
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
다. 아이를 맡아준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고를쳐 책
임질 일이 생길까봐 아이들을 방
안에 두고 보호하기에만 급급했
다.
우리 아이들이 다섯 살, 여섯 살
때의 알이다. 예고 없이 회사동료
가 자녀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오자 작은아이는 그들 앞에
서 짜증을 내며 "나는 우리 집에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게 싫어" 라
고 말한 것이다. 직장동료 앞에서
부모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남편의 입사동기였기
때문에 남편은 더욱 화를 냈다.
남편은 그 동료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 손에 잡히는
대로 매를 들고 작은애의 엉덩이
를 두들겨 패기 사작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리 매를 맞아도 잘못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남편을 말렸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어 대책을 세웠다. 라면도 상자째
사지 않고 낱게로 샀다. 라면 세
개가 필요하면 형이 한 개, 동생
이 한 개, 둘이 같이가서 한 개,
이런 식으로 사도록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가게 앞까지
갔다가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
어 라면을 사지 못하고 울면서
그냥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다
시 한 번 가볼래?" 가서 그냥 `
라면 하나 주세요` 라고만 말하
면돼" 하고 타일러 돌려보냈다.
세 번씩이나 그냥 돌아왔지만 내
가 굽히지 않자 마침내 아이들은
라면을 사들고 왔다.
아이들은 라면을 산 첫날 너무
나 기뻐 가게에서 집으로 뛰어오
다가 넘어져 무릎이 다 벗겨졌다.
그후부터 나는 시장 볼 때 두부
나 파 같은 물건은 시장에서 사
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아
이들에게 사오도록 한다.
당시 나는 직장일에 시달려 집
으로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작은아이의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의 말하기 교육 때문에 집
의 대문을 활짝 열기로 했다. 그
때부터 회사동료들은 우리집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자
주 전출되는 우리 회사의 새로운
직원과 만날 수 있었으며 낮선
그들과 금세 말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노력 덕분으로 우리 아
이들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쉽게
말을 붙일 수 있으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매일 내주는 발표
숙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훈
련에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자녀
에게 어릴 때부터 낯선 사람과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면 발
표 불안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
다.
포인트
낯선 사람과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준다.
말을 나눌 수 있는 가게에 아이
를 보내 물건을 사도록 한다.
격의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자주 집으로 초대한다.
거짓말을 잘한다
"우리 애는 나만 보면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안 해요. 나한테 화
가 났느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
다는 거에요."
초등학교 5학년인 민옥이는 언
제부턴가 어머니가 묻는 말에 간
단하게 대답한 후 그 자리를 피
해버리곤 했다. 민옥이는 어머니
가 보기에 친구들하고는 잘 떠드
는 것 같은데 자신만 보면 입을
꾹 다물어버려 여간 속이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옥이가 그러는데는 이
유가 있었다. 우선 민옥이 어머니
는 잔소리가 많았다.
"민옥아, 이 스웨터 입어. 그것
말고 이것 말야."
"민옥아, 이걱 좀 먹으라니깐.
왜 안 먹으냔 말야."
"그런 건 몸에 나쁘다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외출
을 한단 말야?"
"그런 애를 왜 집에 데리고 오
니?"
민옥이 어머니가 민옥이에게 자
주 쓰는 말이다. 민옥이 아버지는
종종 그러한 민옥이 어머니의 잔
소리에 화를 내 심한 부부싸움도
일어나곤 했다. 민옥이는 어머니
의 잔소리에 아란곳하지 않고 딴
청을 부리며 못 들은 척했다.
원래 민옥이는 성격이 밝고 뒤
끝이 없어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
고도 돌아서면 어머니에게 애교
를 부리며 엉겨붙었는데 초등학
교 5학년이 된 후부터 갑자기 입
을 봉해버렸다. 사춘기를 맞은 민
옥이에게 어머니의 잔소리는 이
제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
면 사춘기를 맞기 때문에 부모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를 이때부
터 날카롭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가 잔소리를 많이 하
거나 권위적이어서 자녀들이 쉽
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하면 자
녀들은 아예 부모를 피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
하지 않고 살짝살짝 속이거나 거
짓말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습
관이 굳어지면 거짓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내용을 조금
씩 과장시키는 언어습관을 갖게
된다.
"형이 그랬어요. 나는 아빠 컴퓨
터 안 만졌어요."
재현이 아버지는 그동안 만들어
둔 서류가 노트북 컴퓨터에서 사
라져버란 사실을 알고 재현이를
불러놓고 노발대발했다. 재현이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불 같아
화가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아이
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매를 든다.
재현이와 형인 재형이는 그러한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재
현이의 호기심은 그치치 않았고
아버지를 자주 흥분시켜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재현이는 아버지가 아무리 무서
워도 신기한 물건은 반드시 직접
만져보아야만 속이 후련한 성격
이었다. 그 때문에 재현이는 아버
지가 화를 낼 때마다 거짓말을
해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어린이
건 어른이건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보다 힘이 센 사람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잘못을 무섭게 닦
달하면 들통이 날 때 나더라도
끝까지 숨기고 보자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거짓말도 서슴치 않
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 말은 믿지 마. 엉터리
야. 허풍이 삼해서 그 사람 말 듣
다가는 망신이아 당하니깐."
"맞아, 어디서 이상한 소식을 많
이 가져오기는 하는데 맞는게 거
의 없어."
대기업 대리인 김정식 씨를 두
고 직장 동료들이 하는 말이다.
그는 입사초기에는 어디선가 남
들이 잘 알지 못하는 소식들을
수집해와 재미있게 들려주어 주
변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그
는 내용을 각색해서 과장되게 말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기 때문
에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던 동료들도 실상을 알고
나서는 그를 신용하지 않게 되었
다.
"김 이사가 주식을 몽땅 해외로
빼돌렸대."
"정말?"
"김 이사도 해외로 내빼려다 마
지막 순간에 들통이 났다지 뭐
야."
"어떻게 그런 소식을 알게 되었
지?"
"그런 거 알아내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신입사원 때 김정식 대리가 동
료들에게 한 이 말은 한 입 건너
두 입, 두입 건너 네입으로 번지
다가 온 회사 안에 다 퍼지게 되
었다. 결국 그것은 김대리가 어디
선가 잘못 듣고 각색해낸 거짓말
이었음이 들어났고 김대리는 곤
욕을 치러야만 했다. 김대리는 특
별한 목적이 없이도 이처럼 거짓
말을 만들어내 종종 물의를 빚곤
했다.
김대리는 "우리 집 노인네는 절
대 용서해주는 법이 없지" 라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모양
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1990년대 중반에 명문 대학생인
대법관 아들이 대가를 받고 수능
시험을 대신쳐주다 들통나 아버
지 법복을 벗게한 사건을 기억하
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때 경찰
에 잡힌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용돈을 노무 적게 주어
친구들과 정상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돈을 벌기 위해
그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
기도 했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만큼 부모의 잔소
리가 많거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
고 지나치게 엄격하면 자기도 모
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는 습과
을 길러줄 수 있다. 부모의 잔소
리와 윽박지르기를 견디기 힘들
때 어린 자녀는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다.
나쁜 일이 으레 그렇듯 거짓말
도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가 어
렵다. 자녀를 거짓말쟁이로 말들
고 싶지 않으면 어려서부터 브모
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부모의 성격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한 달에 한 번쯤은 일
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그 동안
부모에게 기분나빴던 일, 속상했
던 일을 털어놓게 하면 자녀의
거짓말 습관은 만들어지지 않는
다.
때에 따라서는 도저히 자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며, 자녀가 마음놓고 속
마음을 털어놓도록 아이들의 문
화부터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어하는 가수, 배우, 만화, 게임
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등 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 큰아이가 사춘기를
맞아 갑자기 날 피하여 자기 방
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하자 그 아
이가 좋아하는 팝 음악 가사부토
외우기 시작했다. 그 음악의 가사
내용을 가지고 말을 붙였더니 아
이가 쉽게 말문을 열고 방문도
열었다.
부모가 자녀들과 문화의 눈높이
를 맞추지 않으면 자녀들은 좀처
럼 속마음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
을 것이다. 만약 부모가 절대 자
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 직
접 자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도
록 하기 어려우면 제3자를 통해
서 할 tnr도 있다. 교사 등 자녀
와 거리감을 갖기 쉬운 사람보다
자녀와 친한 이모, 고모, 사촌등
을 통해서 자녀의 속마음을 알아
보게 한 후 간접적으로 듣는것도
좋다.
이때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평가
가 좋지 않다고 해서 "아니? 내
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하며
화를 내는 것보다 냉절하게 부모
자신의 행동을 평가한 다음 자신
의 잘못이 인정되면 "내가 잘못
한 것 같다. 고의는 아니었다. 미
안하다." 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부모도 모르는
사이 자녀가 거짓말을 했고 부모
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화
부터 낼 것이 아니라 자녀가 거
짓말을 시작하게 된 원인을 알아
보고 자녀에게는 거짓말아 왜 나
쁜다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주어
야 한다. 이때 흥분해서 감정적으
로 자녀를 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포인트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는 자녀의
거짓말을 조장한다.
자녀가 좋아하는 음악, 게임, 놀
이부터 이해하자.
한 달에 한 번은 자녀의 속마음
을 부모에게 털어놓도록 하자.
자녀와 대화하기 힘들면 사촌이
나 이모, 고모를 통해 속마음을
들어보자.
자녀가 부모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해도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엄마, 밥."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유치워에서 돌아온 훈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훈
이 어머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방으로 달려간다. 훈니
는 그런 엄마가 좋다. 늘 편안하
게 대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
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는
데도 문장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여기, 숙제" "야, 와" "안 된대
두" 와 같은 토막말 사용은 친구
사귀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남 앞에서 하는 공식적인 말은
될 수 없다. 훈이 어머니는 평소
학교활동에도 열성이어서 학부모
회의 임워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훈이의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
고 말을 잘해 인기가 있는것도
아니어서 다른 엄마들 앞에서 늘
기를 펴지 못한다. 게다가 초등학
교 고학년이 된 훈이는 이제 툭
하면 엄마에게 "신경질 나."라고
토막을 친 한마디만 뱉은 후 문
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려 훈이 어머니는 마음이 답답
하다. 어떤때는 그러한 훈이에게
왜 화를 내는지 자초지정을 묻기
도 하지만 훈이는 "몰라"라는 한
마디로 잘라버려 더욱 안타깝다.
훈이 아버지도 훈이처럼 속마음
을 털어놓지 않고 단 한마디로 "
시끄러워" "괜찮아"라고만 말해
훈이 어머니 속을 뒤집어놓는 경
우가 많다. 훈이 어머니는 커갈수
록 아버지와 같은 말투를 사용하
는 훈이를 보면 "에이구, 제 아비
를 닮아서 원." 하며 한숨만 쉬었
다.
훈이네와 같은 아파트에서 10년
을 함께 산 혜경이네는 훈이네와
좀 다르다. 신문사 기자인 혜경이
어머니는 모처럼 휴일을 맞아 늦
잠을 자고 이제 막 일어나 신문
을 뒤적이고 있었다. 훈이와 함께
밖에서 놀다 돌아온 유치원생 혜
경이도 "엄마 밥" 하며 달려왔다.
혜경이 어머니는 "다시말해봐요.
뭐라고 했지요?"라고 대꾸하며
혜경이를 바라보았다. 혜경이는
소리를 더 높여 "밥 달라니깐"
하며 짜증을 낸다. "엄마가 그렇
게 말하면 밥 줄 수 없다고 말했
을 텐데요." 혜경이 어머니는 인
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혜경이는 몹시 화가 났다. 할머
니 같으면 `내가 밥 달라고 말하
지 않아도 갖다주는데 우리 엄만
왜 그렇게 까다롭지?` 하는 생각
이 들어서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혜경이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않
고 반복해서 "다시 말해봐요"라
고 말했다. 할머니가 고모집에 가
셨기 때문에 혜경이는 할머니에
게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심통을 부리던 혜경이는 기어드
는 목소리로 "엄마, 밥 주세요"라
고 고쳐서 말한 후에야 밥을 먹
을수 있었다.
혜경이 어머니는 휴일도 없이
바쁘기 때문에 혜경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혜경이는 할
머니가 돌보아주었다. 할머니는
혜경이의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에 혜경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척척 알아서 챙겨주었다.
그날 혜경이는 모처럼 집에 있
는 엄마가 미리 알아서 밥을 차
려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함머
니와 달리 "밥 주세요"까지 말하
도록 까다롭게 구는 엄마가 미웠
다. 옆집에 사는 훈이만 해도 "엄
마 밥" 이라고 소리만 지르면 엄
마가 금세 밥을 챙겨주는데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혜경이 어머니가 시간
날 때만이라도 혜경이에게 끝까
지 바른 문장으로 말하게 한 보
람이 있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부터는 또박또박 말을 잘해서 늘
학급대표로 뽑혔다. 자연 훈이와
는 여러 가지 면에서 격차가 벌
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훈이와 혜경이는 타고난
능력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
나 훈이에게도 어릴 때부터 정확
한 문잘으로 말하도록 가르쳤다
면 그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
은 훈이 어머니처럼 자녀들이 토
막말을 해도 귀엽다고 안아주면
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엄마, 밥 줘" "밥" "물"과 같이
말해도 그 의미를 다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넘어가
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버릇이 굳어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하
지 않고 감정부터 앞세워 추상적
으로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될 염
려가 있다. 그러한 습관이 굳어지
면 자녀의 나이가 많아질수룍 보
모조차 자녀의 말을 이해하기 어
려워진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귀찮은 일은
피하게 되어 가능한 한 간단한
말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려고
하며 그것이 잘 통하면 더 이상
의 노력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따라서 토막말 습관이 붙으면 자
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기보
다 감정부터 내세워 짧은 토막말
을 내뱉기 쉽다. 미국의 중산층
어머니들은 절대 자녀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받아주지 않
는다.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 있는 샌
트럴 초등학교 4학년인 엘리아의
어머니 베시는 자녀들에게 아주
어려서부터 `어머니 밥을 주세요
`라고 정확한 문장으로 이야기
하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베시는
자기만 자녀들에게 특별히 정확
한 문장쓰기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어머
니보다 강도가 좀더 높을 뿐이며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자녀들
에게 자기처럼 토막말 사용을 허
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하고 크
레이그 쉐퍼와 브레드 피트가 노
만과 폴이라는 형제로 출연한 미
국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영문학자 노만 맥클린의 자서전
소설을 영화한 것인데 오지마을
의 목사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낚
시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는 서정
적 내용으로 우리나라 영화팬들
의 가슴속에도 오래 남아 있다.
영화 속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작문공부를 혹독하게
시키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같은
제목의 글을 하루에도 여러 번
고쳐 쓰게 하는 것이다. 노만과
폴은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가 견
디기 힘들어서 여러 차례 좌절하
지만 중도포기란 있을수 없다. 이
러한 아버지의 열성적인 지도 덕
에 큰아들 노만은 동부로 나가
영문학 교수 자격을 얻어오고 작
은아들 폴은 지방 심문기자가 된
다.
이 영화에서 목사인 아버지는
아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기
르려면 글쓰기 공부를 시켜야 한
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처럼 쓰기
는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능
력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세도 옛
부터 선비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
하면 천자문과 명심보감, 논어,
맹자 같은 좋은 글을 외우고 시
나 문장을 쓰는 것으로 학문을
닦아 과거를 보기도 했다.
이처럼 쓰기를 중요시한 것은
쓰기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남
에게 전달하는 능력이기 때문이
다. 이제는 모든 것이 빨리 전달
돠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쓰기
보다는 생각을 정리해 더 빨리
전달 할 수 있는 말하기가 중요
해진 것 이다. 쓰기와 말하기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여서 쓰기를
잘해야만 말도 잘할 수 있다.
요즘 우리들에게 가장 큰 부러
움을 사는 세계 최고부자인 빌게
이츠나 아시아 최고 부자대열에
들어가는 재일동포 손정의 같은
사람들도 회사경영에 관한 아이
디어가 떠오르면 글로 그 아이디
어를 정리해 다른 사람들과 교환
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
아들여지면 만나서 토론해 다시
하나로 만든다. 그 때문에 미국에
서는 교육의 최종목표는 말하기
와 쓰기를 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회사
는 사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글로 쓰도록 하며 그 내용이 좋
은 결우 다시 말로 발표하도록
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채택
되면 그 사람은 회사나 조직 안
에서 인정을 받게된다.
우리의 부모들은 바쁜세상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
디에 있느냐며 아이들이 토막말
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공부를 해야 한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던
문제들이 나중에 아이들의 사회
생활에 장애요소가 되는 경우도
많다.
토막말을 사용하는 습관이 굳
어지면 성인이 된 후에도 말하기
와 글쓰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따
라서 쓰기와 말하기 습관은 어려
서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이때 제
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어른이
된 후에도 단어나 어법 사용에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우
리 주변에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
들 중에도 단어를 틀리게 사용하
거나 어법에 맞지않게 써서 옆
사람의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람
들이 많다. 어법에 맞는 말을 사
용하려면 주어나 동사, 목적어가
제자리에 있는지,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글로 한번
써보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스피치 교육 수강생 중에는 단
어를 약간씩 틀리게 사용한다든
가 어색한 조사의 사용, 함부로
단어를 생략하는 습관 때문에 한
번쯤 남 앞에 서서 웃음거리가
된 경험이 있고 그때부터 자신감
을 잃어 남 앞에서 말하기를 두
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법이나 단어사용에 자신이 없
을 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주저하
게 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
런 식으로 말하면 주변사람들은
심지어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의삼까지 하게되는
것이다. 결코 좋은 이미지를 만들
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말버릇을 잘 살
펴서 토막말을 올바른 문장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하고 동사가 바
뀌었다건가 적절하지 않은 단어
를 사용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
아주어야 한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강압적인
지적은 곤란하다. 자녀가 부담을
갖게 되면 차츰 부모 앞에서 말
을 안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효
과를 거둘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고쳐줄 수 없는 것은 물론 자녀
와의 대화마져 단절되수 있다. 자
녀가 토막말을 사용하거나 약간
틀리게 말했을 경우 왜 그것이
문제인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후 바르게 바
꾸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대처해
야 한다.
포인트
토막말을 올바른 문장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지도한다.
글쓰기 공부를 시킨다.
소리지르며 말한다
"몰라. 내가 안 그랬다니깐!"
경인이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큰소리로 어머니에게 대꾸를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악을 쓰는거
야?"
경인이 어머니는 더욱 큰 소리
로 말했다.
"엄마가 자꾸 우기니깐 그렇지."
경인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전화기 옆에놓인 손톱
깍이가 어디로 갔단 말야?"
경인이 어머니는 조금도 누그러
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믐 왜 뭐만 없어지면 나만
야단쳐? 나 손톱깍이 안 썼단 말
야."
"네가 항상 물건을 쓰고 제자리
에 놓지 않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아니란 말야."
아참, 엄마가 엊저녁에 경준이
손톱 깎아주었잖아."
"아니구 참, 내 정신 좀 봐."
그제서야 경인이 어머니는 목소
리의 크기를 줄였다. 경인이 어머
니와 경인이가 대화를 나눌 때
모를는 사람이 듣는다면 싸우는
줄 알 것이다. 경인이 어머니는
성격이 급해 자녀들과 대화를 나
눌 때 자신이 먼저 결론을 내리
고 따지듯 큰 소리를 말하기 때
문에 초등학교 4학년인 경인이는
물론 경인이 동생인 경준이까지
큰 목소리로 말대꾸를 한다.
경인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허스
키인데다 목청이 커서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온 동네가 들썩들썩
할 정도였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경인이 아버지도 목소리가 걸걸
하고 크다. 경인이네 가족들의 목
소리가 하나같이 다 커서 모두
모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
로 시끄러웠다. 목청을 높에 말하
기 때문에 말할 때 목에 힘중이
돋는 것도 서로 닮았다.
경인이와 경준이는 어려서부터
약간 쉰 듯한 목소리에 조용하게
말할 줄도 모른다. 게다가 경인이
남매는 여러 사람이 눈살을 찌푸
리게 하는 일이 많았다. 경인이
어머니까지 합쳐 세 사람이 공공
장소에서도 거리낌없이 큰 소리
로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
다.
경인이 아버지가 특별 보너스를
받게 돼 가족이 함께 고급 레스
토랑에 갔다. 새로 생긴 그 레스
토랑은 매우 넓고 시설도 잘 되
어 있었다. 자녀를 데리고 식당에
온 가족들도 많았다. 경인이 남매
는 그곳에 들어선 후에 큰 소리
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거 내꺼란 말야."
"아냐, 내꺼야. 안 내놓을래? 너
죽을줄 알아."
경준이 누나인 경인이가 아끼는
영화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인형 하나를 훔쳐온 것이 들통이
나 싸우는 것이었다. 그 인형은
지난 달 아버지가 미국출장 가서
사온 것이었다. 경준이도 아버지
에게 선물을 받았지만 어디로 가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
서 누나 물건에 손을 댄 것이다.
그들 남매의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커 모든 사람이 눈살을 짜푸렸다.
화가난 손님 한 사람이 경인이
에게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인줄
아니? 좀 조용히 해라." 하며 야
단을 쳤다. 경인이는 움찔하며 그
사람을 쳐다보았지만 경인이 부
모는 오히려 "왜 우리 아이를 함
부로 야단치는 거지?" 하며 불쾌
한 표정을 지었다.
해외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우리
나라 식당에 들어가면 너무나 시
끄러워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나는 미국에
가서 살기 전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4년 정도 미국에
서 살다 돌아와보니 식당에 가서
외식하는 것이 즐겁기는커녕 곤
욕으로 생각될 정도로 소란스러
움을 참기가 어려웠다. 한 사람이
소리를 높여 말하면 다른 사람도
소리를 높이게 된다. 차례차례 소
리를 높이다 보니 자연히 시끄러
울 수밖에 없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정신수준도 점차 높아진다. 우리
나라에도 날이 갈수록 공공장소
에서 떠드는 사람을 싫어하는 분
위기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자녀
들이 성인이 될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아무곳에
서나 함부로 떠드는 사람들은 환
영받지 못할 것이다.
자녀의 목소리가 너무 커 쉰 소
리가 나거나 공공장소에서 함부
로 떠들며 방치하지 말고 고쳐주
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자극해
자꾸만 소리를 지르게 하면 아이
들의 목소리가 쉰 소리로 변할
수 있다. 쉰 소리가 나면 소리가
억세게 들리고 너무 커 듣기에
거북한 것은 물론 발음이 정확하
지 않아 교양이 없어 보인다. 어
려서 웅변을 많이 한 사람들 중
에는 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많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성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소리를
질러 목청이 상한 것이다.
성대는 매우 약한 기관이어서
무리하면 쉽게 상한다. 한번 상한
목소리는 쉽게 회복하기가 어렵
다. 웅변으로 목청이 트이고 활달
한 목소리를 만든 사람들은 발성
을 제대로 해서 그와 같은 결과
를 가져왔을 것이다. 소리를 지르
더라도 정확한 발성법에 따르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는 소리를 지
르더라도 정확한 발성법에 따르
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는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
소 큰 소리로 말하지 않도록 해
야만 자녀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가끌 수 있다.
어려서부터 기어드는 것처럼 자
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곤란하다. 자녀의 목소리를 쉰 목
소리가 아닌 성량이 풍부한 목소
리로 만들려면 목에 힘줄이 솟을
정도로 함부로 소리를 지르게 할
것이 아니라 배에 힘을 주어 소
리를 크게 내는 발성법으로 목소
리를 달련시키는 것이 좋다. 또한
자녀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방치하면 교양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돼 다른 이들
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녀를 함부로
야단친다고 싫어할 것이 아니라
내 자녀가 남의 눈총을 받지 않
도록 교육해야 한다. 자녀가 공공
장소에서 함부로 떠들지 않게 하
려면 부모부터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포인트
아이를 자극해 소리 지즈지 않게
한다.
아이가 본받는 것은 부모라는 사
실을 잊지 말자.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발
성하도록 교육시킨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알려준다.
말할때 눈을 맞추지 못한다
"시선이 허공을 맴돌면 영혼도
허공을 맴돌죠."
말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말할 때 상대방 눈의 표
정을 살피지 못하면 메시지의
35%가 증발하는 셈이기 때문이
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메르비
안은 사람이 말을 할 때 눈의 메
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
도 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눈은 많은 메시지를 전
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
의 눈만 보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
머니도 자녀의 눈만 보면 어머니
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
바람난 남녀를 보고 `눈이 맞았
다`고 표현하는 것도 눈의 메시
지가 얼마나 간한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시선 처리가 정말 힘들군요."
`스피치 테크닉`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기의 가장
어려운 점이 `눈 맞추기`라고 호
소했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쳐다보면서
말하는 습관을 기르지 않았기 때
문입니다."
나는 항상 시선처리를 어려워
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시선이 허
공을 맴돌면 영혼도 허공을 맴돈
다는 결론으로 내려주었다. 우리
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동안 엉
뚱하게도 창 밖 풍경을 보거나
벽에 걸린 애궂은 달력을 바라보
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가 민망하기도 하
고 말하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
보는 것이 실례되는 것은 아닌지
확신이 없어 일부러 시선을 피하
기도 한다.
동물학자로 인간행동에 관한 영
구까지 해 맨워칭등 많은 책을
낸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즈먼
드 모리스 교수는 인간의 눈이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주
장한다.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상
대방을 더 오랫동안 응시하며 특
별한 댄스를 추듯 시선이 서로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
한다.
어린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거
짓말을 하면서 하나같이 상대방
의 눈을 피한다. 야단치는 어른의
눈을 두려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른들도 강심장
이 아닌 한 거짓말을 할 때 대부
분 상대방의 눈을 피한다.
서양인들은 눈의 메시지를 중요
시해 대화를 나눌 때 눈을 맞추
지 못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서양 영화를 보
면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다그치
며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해
" 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심
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서야인과 협상하
면서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힐
끔거려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우리나라 대표들이 많다고
한다.중요한 협상에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것은 커다란
실책이 아닐 수없다. 사실 우리나
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양인
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것을 싫어해 똑바로 보며 말하는
서양인과 커뮤니케이션의 충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문
화적인 차이이기 때문에 어느 쪽
이 더 좋다고 꼬집어서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
의 많은 양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문화적인 관슴 때문에 상대방의
눈을 독바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면 얼굴이라도 바라보아 상대방
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고 내
마음 속에 있는 메세시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엄마, 여기 좀 봐. 내가 개구리
르 그렸어."
"알았어. 엄마 지금 바쁘니까 나
중에 보자."
"싫어, 지금 봐."
유치원생인 지웅이는 몰을 흔들
며 다림질에 열중인 어머니의 옷
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남편의 와
이셔츠를 다리느라 바쁜 지웅이
어머니는 지웅이 쪽을 쳐다보지
도 않고 "엄마 바쁘니까 나중에
보여줘. 미안해"라고만 말했다.
지웅이 어머니는 다림질이 서툴
러서 남편의 핀잔을 받는 날이
많아 와이셔츠를 다닐 때에는 다
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지웅이
는 실망한 표정으로 "알았어요"
라고 말하며 어깨를 떨고며 그림
을 들고 자기 방으로 건너가버렸
다.
결혼 전 직장에만 다녀 살림을
해본 적이 없는 지웅이 어머니
이계주씨는 집안일 때문에 매일
쩔쩔맸다. 자연히 아이에게 집중
하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건성으
로 아이의 말을 듣는 일이 많아
졌다. 물론 집안일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 바쁜 집안일들이
자녀 잘 기르기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얼마든지
어리띠를 졸라맬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이다. 그러나 자
녀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어야 한
다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하지
못해 자녀교육에 쏟아부은 돈과
에너지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낭
비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와 말을 주고받을 때 자녀
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지 않으면
자녀가 아무리 많은 예능 교귤을
받아도 대접받는 교양인으로 자
라기 어렵다. 예능 교육울 많이
시켜도 기본 예절을 안지키면 교
양인을 평가 받을 수없기 때문이
다.
부모가 자녀와 눈을 맞추지 않
고 딴 곳을 보면서 말하면 자녀
들은 '부모가 나를 중요한 사람
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삿해
부모를 불신하기도 한다. 뿐만 아
니라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건
성으로 들어주는 부모의 태도는
자녀들에게 상대방과 시선을 맞
추거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도록 만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른들
도 상대방의 시선을 피한 채 대
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상대방의 시선을 피한 채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그것이 상대
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
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기
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
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상대방의 눈이나 얼
굴을 보징낳고 상대방의 눈이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누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어
렵다.
실컷 설명을 듣고도 엉둥한 답
변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대문이
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성공하
려면 듣기를 잘해야 한다. 기업체
의 최고 책임자들의 업무 중
70%가 듣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의견들
을 제대로 듣고 의사 결정을 정
확하게 해얌나 업무를 제대로 처
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하기 습관과 마찬가지로
말할 때 눈을 맞추거나 시선을
맞추는 태도는 어려서부터 길러
지지 않으면 습관으로 굳어져 고
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 작은 아
이 승연이도 어려서 어른들과 말
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
고 허공을 보며 말했다.승연이가
내게 유치원의 재롱 잔치에서 바
이올린을 연주하게 됐다는 이야
기를 할 대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
다.
나는 아이의 이러한 태도를 발
견한 후 그것을 고치기 위한 계
획을 세웠다. 저녁 식사 후 나와
대화를 나눌 때만이라도 눈을 보
며 말하라고 부탁했다.
물론 나는 가능한 웃으며 말하
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며
'자.이번에는 엄마랑 눈을 맞추며
말해야지'라는 사인을 해주어 아
이가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했
다. 이때 내가 웃지 않으면 아이
가 부담을 가질 것을 알기 때문
에 웃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나와 말을 시작하면
곧바로 시선을 피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다라 자연스럼게 눈을 맞
추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
음에는 형과 눈을 맞추게 하였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눈을 맞추
며 말하도록 했다. 만약 그 때 승
연이의 눈을 맞추며 말하지 못하
는 습관을 발견해 고쳐주지 못해
다면 그러한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자녀의 이런 태도를 발견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 먼저 시선을
맞추며 말하도록 하고 다음에는
그 다음으로 친한 사람 순으로
눈을 맞추도록ㄱ 해 고쳐주자. 무
엇보다 자녀가 부모에게 말을 할
대 바쁜 일을 미뤄놓고 자녀의
눈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주어
야 자녀의 시선 처리가 자연스러
워진다.
"커피 두 잔하고 오렌제 주스하
나 주세요."
커피숍에서 친구들으 만나기로
해 주문을 하는데 종업원이 주문
을 받은 후 "알았습니다"라든지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고 휙 사라져버렷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
다.
"별일이야. 도대체 차를 가져다
주겠다는 거야. 안가져다주겠다는
거야?"
울화통이 터졌다. 계산을 해오
라고 신용카드를 주면 들고 감감
무소식일 때가 많고 거스름돈이
필요한 큰 돈을 주면 대꾸가 없
어 신경 쓰이게 하기도 한다. 간
단하게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라고만 말하면 상대편은 편안해
질 수 있는데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
답을 뚝 잘라먹으면 불쾌감을 준
다. 즉각 대답을 하지 맛하는 사
람은 사회인으로서 환영받기가
어렵다. 그뿐아니라 남의 오해를
사기도 쉽다.
"신세대의 특징이 뭔 줄 알아?
약속을 안지키고 대답을 제때 안
한다는 것이댜."
학부 학생에게도 강의를 하시는
은사님 한 문은 학생들과 면담하
는 계절이 오면 종종 그런 말씀
을 하셨다. 나도 그에 동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언젠가 논문자료
조사를 위해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
에게 바쁜 일이 생기면 약속한
날까지지 자료를 찾아오겠다는
전화조차 하지 않아 여러 번 스
케줄을 차질을 빚게 했다. 그러고
도 별반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후부터는 그 학생을 신뢰할
수 없어 자료조사를 계속해서 시
킬 수가 없었다. 일시적인 아르바
이트도 이런데 엄격한 직장에서
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직장에서
도 상사가 명령을 내릴 때 답변
을 제때 하지 않으면 미움이나
받기 딱 좋다.
"최 대리, 아까 서류 가져오라고
한 것어떻게 됐어?"
"네, 아까 다 만들었는데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 하
는 거야? 다 했으면 가지고 와야
지. 거기다 보관하고 있으면 어쩌
란 말야."
장필수 팀장은 짜증을 냈다. 최
대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만 두드렸다.
"이 사람이 지금 내 말이 말 같
지 않아?"
최 대리는 "지금 프린트해서 가
져가려고......"하며 머리를 긁적였
다.
"그럼 말을 해야지, 말을! 이 사
람은 대답하다 죽은 귀신이 들렸
나? 대답을 그렇게 뚝뚝 잘라먹
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답답하잖
아."
장필수 팀장은 화를 버럭 내면
서 소리를 질렀다.
세대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대답
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어린애들일수록 그런
태도가 많이 나타난다. 자녀가 성
인이 된 후 다른 사람과 조화롭
게 살도록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질문을 받으면 즉각 대답하는 습
관을 들여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상사나 고객이 질
문을 하면 작은 일일지라도 즉각
대답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
다.
"커피 한 잔 주세요."
"네, 곧 돌아오겠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커피솦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종업원은 주문
을 하건나 계산을 부탁하면 항상
"곧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으
며 손님이 묻는 말에는 반드시
즉각 대답을 했다. 또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제3자가 질
문을 하면 "미안합니다. 이분과
이야기가 끝난 후 설명해 드리겠
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설명을 한
다.
"주혜야. 너 아까 엄마가 사오라
고 말한 약 사왔어?"
"아니, 숙제하고 다녀오려고 했
어."
"엄마는 또 네가 약 사러간 줄
알고 목을 빼고 기다렸지. 엄마한
테 지금 갈 수 없다고 말했으면
엄마가 벌써 갔다왔을 것 아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주혜 어머니는 짜증을 냈다. 이
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
혜 어머니는 주혜가 아주 어려서
부터 대답을 제때 하지 않아 화
를 낼 때가 많았지만 그 버릇을
고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혜는 제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왜 나쁜지조차 파악하지 못
한 채 성년을 맞았다. 그리고
IMF 한파 속에서 학교 추천으로
외국인 기업체의 인턴 사원이 되
었다. 그러나 대답을 제때 하지않
는 어릴 때부터의 습관 때문에
회사 사원들에게 곱게 보이지 못
해 임용되지 못했고 6개월 인턴
을 마친 후 회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는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취직을 하기 위해 영어
다, 컴퓨터다, 여러 학원에 등록
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직은
쉽지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처음 인턴으로
들어갔던 회사에 잘 적응했다면
이처럼 취업에 대해 걱정할 필요
가 없었을 것이다.
자녀가 어른이 하는 말에 제때
대답을 하지 않으면 고쳐주어야
한다. 어른에게 질문을 받으면 적
어도 `네, 아니요` 정도는 즉각
답변을 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질문을 한 후 자녀가 어떤 태도
를 보이는지 정확하게 관찰해 자
녀가 답변을 제때 하지 않을 경
우 그것이 왜 나쁜지에 대해 설
명해주어야 한다.
대답을 제때 할 때는 상을 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벌을 주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고치
도록 한는 것이 좋다. 또 아이들
이 부모에게 말대꾸는 꼬박꼬박
하면서 필요한 대답은 제때 하지
않는다면 부모의 말버릇은 어떤
지도 함께 점검해보아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는 본보
기라는 것을 심히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자녀는 다른 사람아 아는
부모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며
말하기를 배운다는 사실을 명심
해야 한다.
포인트
질문을 하면 반드시 즉각 대답하
도록 한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벌을 주고
대답을 제때하면 상을 준다.
부모 또한 자녀가 묻는말에 건성
으로 대답하지 말고 성의를 다해
즉각 대답하도록 한다.
베이비 토크를 버리지 못한
다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이에요.
그 친구는 집안도 좋고 가정 교
육도 잘 받았거든요나무랄 데가
없는 좋은 남자라고 할까?"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지요?"
"그 친구가 아기처럼 말해요."
"저런......"
"어떤 때는 제가 그 친구 누나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불편해요. 저
는 때때로 남자친구가 저를 감싸
주기를 원하거든요. 그리고 또 남
들 보기에도 창피해요. 제가 마치
어린애 데리고 데이트하는 것 같
아서요."
"그 문제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말해본 적 있어요?"
"네, 몇번은...... 그런데 그 친구
말이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거에요."
"그것을 고쳐주고 싶다는 말이
군요."
"네."
"그 말을 분위기를 바꾸어서 해
보면 어떨까요. 서울 근교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데로 정중하게
초대해보세요. 그리고 거기 가서
는 평소와 다른 엄숙한 얼굴로 `
너의 모든 것이 다 좋지만 말히
는 방법에 대해서는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인다`라고 이야기해 보세
요."
"그런데 남자찬구 어머니는 교
양 있고 자녀교육에도 열성인 분
이어서 제 말이 잘 먹힐지 모르
겠어요. 그리고 또 그 친구에게는
남동생만 하나 있는데 그 동생도
그런식으로 말하지 뭐에요. 그 동
생 말투까지 고쳐주고 싶은데 잘
될는지 모르겠어요."
한 여대생이 나에게 이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
자 대학생이 있다. 심지어 머리를
박박 민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들
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
다.
유치원생은 아직 어리니깐 그렇
다 치더라도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으로 내려올수록 그 정
도가 더욱 심했다. 전에는 여학생
들만 다 자란 다음에도 아기처럼
말하는 `베이비 토크` 를 했었
다. 그런데 요즘에는 성인남자들
데게서도 `베이비 토크`를 어렵
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베이비
토크`는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
에게 aksf이 볼 수 있다.
미국에 있을 때 만난 박사과정
에서 공부를 하는 유학생 중에는
20대 후반인데도 `베이비 토크`
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말투에 대해 걱정조차 하
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 임용될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학위
를 받은 후 교수로 임용될 경우
를 상상해보라. 아기말투로 선인
인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교수
라니......
자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몸
집과 말투가 조화를 이룰 수 있
기 때문에 `베이비 토크` 가 오
히려 귀여울 수 있다. 그러나 성
인이 된 다음네도 여전히 듣기에
어색할 것이다.
목소리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
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베이비 토크`
를 사용한다면 전문직에서 일하
가조차 힘들 것이다. 아기처럼 말
하는 전문가를 믿고 큰일을 맡길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 가정에서는 자녀가
청소년으로 자랄 때까지 `베이비
토크`를 사용하면 전문가를 찾아
고쳐주기도 한다.
자녀의 `베이비 토크`를 바로잡
이 주려면 어린 자녀와 말할 때
부모 자신이 "아이구, 우리 아기
가 유치원 잘 다녀와써"와 같이
아기말투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투를 흉내내
며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부모의
`베이비 토크`를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
자녀들이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영아일 경우에도 부모가 자녀에
게 아기말투로 말할 필요는 없다.
자녀가 어리더라도 분명하고 정
확한 발음으로 말을 해야 자녀가
그 발음을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비행기장이
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어머니기 어린 자녀에게 책을 읽
어주며 기다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지세히 관찰해보면 대부
분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어린 자
녀일지라도 정확한 발음으로 책
을 읽어준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어린이들
도 이때 어머니들로부터 들은 말
투가 기억의 장에 저장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어머니의 태도는
자녀의 언어교육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기가 어머니의
말에 반응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못한다고 해서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기들은 말
을 못할 뿐 다 알아듣는다고 생
각할 필요가 없다. 아기들은 말을
못할 뿐 다 알아들을 수 있기 때
문이다.
갓 태어난 신상아도 문쪽에 누
인 아이와 안쪽에 누인 아이의
지능발달 속도가 다를 정도로 듣
기에 민감하다. 우리의 할머니들
중에도 아직 말귀를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아이구,
도련님 참 잘생기셨네" 하며 정
중하게 말을 거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도 이미 어른의 말투가 어
린이들의 언어교육에 매우 중요
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경험으
로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부모들 중에는 자녀가
귀엽다고 해서 자신의 말투를 아
기처럼 바꾸어 말하는 경우가 많
다. 눈높이를 맞추어야만 어린 아
이들과 대화를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러
나 말투 바꾸기는 대화의 눈높이
맞추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성적이 좋고 나무랄 데 없는 모
범생인 경우 거기에 도취가 되어
서 자녀의 말버릇에는 신경을 쓰
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는 공부는 잘하는데
말은 못한다"라응 호소를 하는
학부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러나 우리보다 이러한 사회 변화
의 경험을 한 발 앞서서 해본
미국의 경우 자녀를 훌륭한 사회
인으로 기르기 위해 어려서부터
걷기, 앉기, 말하기, 식사예절, 개
인적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발음 발성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
울인다.
자녀의 '베이비 토크'는 빨리
고쳐 줄수록 좋다. 나이가 들수록
버릇이 고정되기 때문에 고치기
가 어렵다. 만약 고쳐지지 않으면
발성 연습을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발성 연습을 통해 '베
이브 토크'는 고치는 것은 물론
발음도 좋게 하고 목소리로 좋게
만들 수 있다.
자녀의 말성연슴은 소리내어 책
읽기 같은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
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배에서
큰 소리를 내서 읽도록 하고 입
을 크게 벌려 발음을 정확하게
내도록 지도한다. 이러한 훈련은
단번에 끝내지 말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며, 이는 인내심을 키우는
효과도 가져온다. 또 제대로 훈련
을 하면 자녀의 목소리를 크고
당당하게 말들어 '베이비 토크'
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발음도
분명하게 만들 수 있어 리더로서
의 자질을 갖춰주는 것이다.
포 인 트
정확한 발음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을 읽어줄 때, 절대 아기 말투
로 말하지 않는다.
발성 연습을 통해 발음 및 목소
리를 좋게 한다.
2. 자녀를 리더로 만드는
말교육 10가지
"미안하다" "감사하다"를 입
에 달고 살도록 하라.
1996년 변호사인 남동생네가 일
곱 살 난 아들과 다섯 살 난 딸
을 데리고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튤레인 대학
에 유학을 갔다. 당시 나는 14살
과 13살짜리 두 아들을 데리고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2년째 공부
하고 있을 때였다.
미시간 주의 랜싱에서 루이지애
나의 뉴올리언스까지는 자동차로
2박 3일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
이어서 동생네가 미국에 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당장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3개월이나 벼르다가
그 해 12월, 겨울방학을 맞아서
내가 우리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
우고 2박 3일 걸려서 뉴올리언스
로 가서 동생네 가족을 마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조카들은
미국에서 고모를 만나자 반가웠
는지 겪은 미국살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고 법석을 떨었
다. 그 아이들에게는 낯선 나라에
서의 체험이 모두 신기했을 것이
다. 더구나 뉴올리언스는 아열대
지역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키가 크고 잎이 음산해 보
이는 나무들이 많았으며 영화에
서나 나올 법한 낡고 고풍스러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당시 다섯
살바기였던 조카 미호는 자기가
겪은 미국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고모, 영어로 '익스큐
즈 미(Excuse me)'가 우리말로
무슨 뜻인지 알아?"라는 질문부
터 했다.
눈을 빛내며 그와 같은 던지는
다섯 살바기가 미국인들이 입에
달고 사용하는 '익스큐즈 미'를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궁금
했다.
"글세, 고모는 잘 모르겠는데?
미호는 잘 아니?"하고 되물었다.
미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 "에이, 고모는 그것도 몰라?
그건 말이지 '길 비켜'라는 뜻이
야"라고 대답했다.
어른들은 모두 미호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을 일
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우리
나라 다섯 살바기 어린이인 미호
의 머릿속에는 남의 앞을 가로질
러 갈 때 "미안합니다"라고 말해
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몰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아버지와 석사 학위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우
리나라 중산층 가정 교육을 받았
을 어린이지만 미호는 모든 미국
사람들이 길이 혼잡해서 앞질러
가야만 할 상황에서 "익스큐즈
미"라고 말하는 것을 "비켜줘, 안
비켜 줄래?" 하며 험악하게 말하
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로 해
석하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아이들이 미국의 대학
에 다니기 때문에 요즘에도 자주
미국을 오가는데 미국에만 가면
혼잡한 곳을 지나게 되거난 다른
사람 앞을 가로질러 가게 될 때
자동적으로 "익스큐즈 미"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반면에 우리나
라로 다시 돌아오면 그 말이 밖
으로 새어나올까봐 조심하는 자
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때는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만 '익스큐즈 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하기는 습관이다. 어려서부터
미안할 때 "미안합니다".고마울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못
하면 커서 그런 말이 잘 안나오
게 죈다. 만약 불쑥 그런 말을 하
게 되더라도 남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내
가 미국을 나뎌온 후 '익스큐즈
미'를 말한 후 신경을 쓰는 것과
같은 종류의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실수를 저질
러놓고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
고 권위를 내세워 억지를 부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속으로는 정말
로 고맙고,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을 꼭 말로 해야 하나?'라
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편이나, 아내가 또는 어
린 자녀가 내가 베풀어준 일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잘라머으
면 분하기도 섭섭하기도 해 푸념
을ㄹ 늘어놓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부부 사이에서도 '미안하다
' '고맙다'라는 말을 생략하는 배
우자를 원망하며 싸우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 것이다.
주부대상 프로그램인 <아침 마
당>은 매주 주말에 변신 코너를
방송한다. 편소와 달리 멋진 옷과
화장으로 변신한 아내를 남편과
갑자기 만나도록 하고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이 코너의 핵심인데,
이때 대부분 남편들은 아내가 억
지로 "나 이뻐?" "나 사랑해?"라
고 물어야만 겨우 "그렇다"고 대
답을 한다.
대답도 즉각 하는 것이 아니라
함참 동안 "이 사람이 미쳤나?"
라든가 놀란 얼굴로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라고 말한 후
대답한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문
제의 남편에게 왜 그렇게 늦게
말했느냐고 물으면 "마음 속으로
는 아내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럼
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쑥
스러워서 말이 잘 안나온다"고
대답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기리는 서로
의 눈빛을 보아도 달콤하고 행복
해서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
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될
지도 모른다.
1970년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영화, 에릭시갈의 원작 <러
브스토리>에는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그 말
처럼 정말 사랑이 넘치는 중요한
말들은 굳이 필요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마울 때는
'고맙다',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
'라고 말을 해야만 그 마음이 정
확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모든 사
람들이 한가롭게 살던 그 마음이
정확하세 전달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가롭게 살던 농경시
대에는 눈빛이나 태도로도 그 사
람이 나에게 미안해하는지 고마
워하는지를 살필 시간적 여우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너무나 바쁘고
복잡하며,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상대편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일
일이 그 사람 마음속에 무슨 생
각이 들어있는지를 체크할 겨를
이 없다.가까운 사이일수록 '고맙
습니다' '미안합니다'를 말해야만
비로소 정확하게 그 마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좋다는 말은 안하
고 나쁘다는 말을 쉽게 해버려
상대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
가 많다.
그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남
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조금만 잘못하면 서로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런데 좋은 감정에 대해서는 그것
을 입ㅂ으로 발설하면 큰일이라
도 난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문다.
어려서부터 '고맙습니다'와 '미안
합니다'라는 말의 개념을 제대로
배우지 않앗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시간 주립대 강사인
샌디는 딸하고 단둘이 사는 미혼
모이다.샌디는 자녀교육에 남다른
신경을 썼다.자신이 미혼모라서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인 미국인들은 나와 내 가족이
다른 사람의 방매가 되는 행동을
할 대 가장 자존심상해하기 때문
에 그 정도의 자녀 교육은 누구
나 시킨다고 말했다.
샌디는 여섯 살 난 딸아이에게
좋은 말버릇을 길러주기 위해 여
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샌디는
딸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대 아이가 그냥 "과자를 주세요"
라고 말하면 절대로 주지 않았다
고 한다. "과자를 주세요"한 다음
에 "플리즈(부탁이에요)"라는 말
을 반드시 붙이도록 했다. 미국
어머니들은 이 '플리즈'란 말을 '
매직워드(마술을 부리는 말)'이라
고 부른다. 아이들이 '플리즈'를
붚이면 과자가 나오지만 그렇지
만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기 때
문에 '플리즈'가 마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가 엄마 책을 떨어트리거
나 그릇을 까트리는 사소한 실수
를 하면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벌을 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처음 본 낯선 사람
에게도 함박 웃음을 머금고 내하
는 것을 예의로 생각하는데 그
버릇도 어려서부터 들인다고 한
다. 손님 앞에서 떼를 쓰거나 울
상을 지으면 손님이 돌아간 후
반드시 양해를 구한 다음 끈끈이
가 많이 붙은 테이프 입에서 귀
쪽으로 붙여서 일부러 웃는 얼굴
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 벌을 받았는데도 eh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벌 받는 시간으
점차 늘린다. 한 번 잘못했을 때
에 한 사간 동안 벌을 받았다면
다음 두 시간, 그 다음에는 네 시
간 이런 식이다. 물론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벌칠을 정하지는 않
는다고 한다. 자녀와 충분히 대화
를 나눈 후 '만약에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행
동을 하면 벌을 받겠다'는 동의
부터 받아놓고 규칙을 엄격하게
세워서 규칙대로 벌을 주는 것이
다.
샌디는 보통의 미국 부모는 자
기처럼 자녀교육에 매우 엄격하
며 그렇게 자란 자녀들일수록 사
회에서도 환영받는다고 말한다.우
리나라에서도 엄격한 자녀들일수
록 사회에서도 환영받는다고 말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엄격한 자
녀들의 가풍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리 먼 옛날 이야기도 아
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
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엄격하게
길러야만 좋은 사회인이 도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녀를 '적게 낳아 잘 기르자'가
정착되면서 '적게 낳아 기 살려
주자'로 변했다. 그렇게 기가 산
아이들은 아예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거나 밖에 나
가서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믿는 경우가 많아졌다.
품언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
만 자란 다음에는 이러한 자녀의
태도 때문에 부모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 성장하면 부모
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멋
대로 행동을 해도 바로잡기가 어
렵고 부모에게까지 버릇없는 행
동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때
는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행돟하게
된다는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
지 않더라도 말과 행동에는 밀접
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녀에게 "미
안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습관을 길러줌녀 예의
바르고 매사에 분명하게 하는 사
려 깊은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모에게는 물론
사회적 관계로 만난 사람에게도
기분 좋게 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존댓말은 말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라
"기가 막혀 죽겠어요. 면접 보러
온 놈들이 날더러 `수고하세요`
하면서 생긋 웃잖아요."
한 신용카드 회사 중역이 사적
으로 만난 자리에서 자기네 회사
신입사원 면접을 치른 이야기를
하면서 분개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이지 신문에서는 취업난이
라고 난리들이지만 회사측에서
보면서 구인난이에요, 구인난. 뽑
을 사람이 없다니깐요. 글세 면접
보면서 눈을 치뜨고 면접관을 올
려다보는가 하면 따지듯이 말하
는 놈들이 대부분이더라니까요."
그 중역에게는 요즘 젊은이들의
말하기 태도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 또한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라 고개를 끄덕
여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로부
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나는 우
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온 친구집
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30대 가량의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
고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
는 여자 어린이가 할머니에게 반
말로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할머니가 뭘 안다고
그래? 참견하지 말고 자기 일이
나 잘하라니까" 하며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동승한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
다.
보다못한 내가 "할머니에게 무
슨 말을 그렇게 하지?" 하고 말
참견을 했다. 그 애는 "아줌마는
또 뭐야?" 하며 눈을 위아래로
흘겼다.
나는 순간 한방 얻어맞은 것 같
은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
이 열리고 그 애와 할머니는 내
렸다. 친구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참, 누구네 집 애인지는 몰라도
장래가 걱정된다, 얘"
나는 친구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투덜거렸다.
"얘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오지
랖 넓게 왜 남의 일에 참견이니?
자기네 부모가 책임지겠디. 네가
왜 그렇게 걱정을 해야 하니? 그
리고 요즘 애들 다 그래, 얘" 하
며 은근히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동안 그 여
자아이에 대해는 차츰 잊게 되었
다. 오랜만에 친구와 옛날 이야기
를 하면서 히히덕거리다 보니 기
분도 좋아졌다. 역시 친구가 좋았
다.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잘 얻어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친구네 아파
트는 9층이었다. 엘리베에터가 7
층에 멎자 친구집에 올 때 만났
던 그 여자아이가 놀랍게도 예의
신용카드사 중역과 손을 잡고 안
으로 들어왔다. 그 중역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아니? 여기는 어쩐 일로?"
"어머, 이 아파트에 사세요? 이
제 보니 한 동네 분이시네요."나
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소녀는
중역의 품으로 파고들며 내 얼굴
을 맹랑한 표정으로 올려보았다.
"아, 참 인사드려라. 이 분은 아
빠가 아는 선샌님이야. 이 아이가
제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입니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안녕?" 하
고 인사를 했다. 그 여자아이는
웃을까말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
로 돌아오는 동안 얼마 전 신입
사원 면접시험을 치른 후 분개하
던 중역의 얼굴이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처럼 남의 자녀에 대
해서는 가혹할 만큼 엄격하게 채
점을 하면서도 내 자녀에 대해서
는 관대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존댓말 하나 제대
로 사용하는 어린이들이 드물다.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20대가 넘
은 젊은이들도 방송에 출현해서
"내가 보여주셨는데요"와 같은
실수를 밥먹듯 자주 한다.
어느 신문 칼럼에 대학교수 한
분도, 연구실에 앉아 있으면 학생
들이 찾아와 버젓이 "물어볼 말
이 있어서 왔는데요"라거나 교수
가 말하는 동안 "아, 음 으응?"
같은 영어식 맞장구를 쳐 기가
막힌다는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존댓말 사용봅을 배
우지 않았으니 대학생이 되었다
고 해서 갑자기 존댓말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룬 사회 생
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존댓말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회사다닌때 있었던 일이다.
부산 출신의 한 프로듀서가 강
원도 출신 엔지니어의 호통을 듣
고 서 있었다. 엔지니어가 프로듀
서보다 입사 10년 선배였다. 문제
는 휴일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
음하느라 그 엔지니어에게 녹음
전표를 건네면서 벌어졌다. 프로
듀서는 엔지니어에게 무신코 "선
배, 10시 녹음"이라고 말했다. 그
들은 일 때문에 자주 만난적이
없어서 말을 트고 지낼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엔지니어
는 마치 후배인 그 프로듀서의
지시를 받은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야, 임마, 내가 네 친구야? 엇
다 대고 반말이야? 응?" 하며 냅
다 호통을 쳤다.
프로듀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몰라 오히려 와를 내며
"아니, 왜 화를내?" 하며 다시
반말을 했다.
"아니, 이 자식이 정말."
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결국 녹
음을 제 시간에 하지 못하는 일
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부산 출신인 그 프로듀서는 평
소 존댓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
아 선배들로부터 자주 야단을 맞
았다.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방
송이야말로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하기 힘든 작업의 연속
이다. 그 프로듀서는 존댓말을 잘
몰라 녹음 하나만 하려고 들어도
늘 브레이크에 걸리곤 했다.
그런가 하면 워로교수 한 분을
지금은 동료교수가 된 제자들에
게 여전히 그 제자의 제자들 앞
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반말을해
동료교수가 된 제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성인이 된 후의 존
댓말 사용은 이처럼 여러 가지
의 미를 갖게 된다. 적절하게 사
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오해
를 반는 것은 물룬 인격까지 의
심받도록 만든다.
나는 지금은 대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때
부터 존댓말을 쓰도록 했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댁의 아이들은 그렇게 존댓마릉
ㄹ 꼬박꼬박 사용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사실 당시의
나는 부모들이 왜 그런 지문을
하는지 아해하지 못했다. 내 생각
으로는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가
르치는 것처럼 쉬운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말을배우기 전부터 부모
가 자녀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
자녀는 그대로 따라하기 마련이
다. 존댓말을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말에도 부모가 "
바담 풍" 하면 아이도 `바람풍`을
"바담 풍"이라고 한다지 않은가?
존댓말 가르치기에 실패하는 부
모님들을 보며 부모는 반말을 하
면서 아이에게는 존댓말을 사용
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말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아이가 "미치겠어 정말
" "내가 못살아"와 같이 부모가
평소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
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말하
기 습관이 좋지 않을 때 자녀의
말하기 습관도 나빠지는 것은 당
연하다.
문제는 말하기 습관은 어려서
잘못 들여놓으면 다 자란 다음에
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데 있
다. 아여 말을 배울 때부터 제대
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존댓말
은 더욱 그렇다. 어려서부터 사용
하지 않으면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어 고쳐서 말하기 어렵다. 어려
서부터 존댓말을 사용하는 습관
을 들이면 성인이 된 후 자연스
럽게 존댓말을 사용할 수 있어
환영받는 사회인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이 지녀에게 있는 돈 없
는 돈 들여서 피아노다 미술이다
산수다 국어다 여러 학원에 보내
고 공부도 열시미 시키는 이유는
자녀가 자란 후 훌륭한 사회인으
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
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말버릇을
제대로 들이지 못하면 아무리 성
적이 좋고 재능이 많은 사람도
실력을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이
다.
날이 갈수록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그 사람이 보여주는 매너
와 이미지, 말솜씨 등으로 좁혀지
고 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이 자란 이 다음에 대학을 졸업
하고 사회인이 되고 할 때 각 회
사는 면접만으로 사원을 채용하
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물건을
파는 설득력이 중요시될 거란 뜻
이다. 이미 우리나라 기업은 사원
들에게 가족까지도 고객으로 보
고 고객관리를 하라는 주문을 할
정도로 직업세계가 바뀌어가고
있다. 자녀를 성공하는 사회인으
로 기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자녀가 보는 앞에서 부모들끼리
라도 존댓말을 쓰고 자녀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일수록 부부간에도 사랑방과
안방으로 나누어 사용했고, 배우
자를 방문할 때에는 사전에 허락
을 구했으며 반드시 존댓말을 사
용했다. 자녀가 자녀가 성년이 되
면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집안의 구조
가 아파트 식으로 바뀌고 산업화
와 함께 사회계층이 혼합되면서
농촌과 도시 간 인구이동이 많아
져 이러한 기본 예의가 많이깨졌
다.
우리가 가졌던 좋은 전통은 살
려내야 한다. 서구인들도 지금까
지 부부끼리 존댓말을 사용해서
자녀들에게 그 본을 보이는 것은
물론 자녀가 어느정도 자란 다음
에는 부모도 자녀에게 함부로 반
말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을 유서
깊은 관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어는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누
구나 다 `유`로 부를수 있다고
해서 존댓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
하면 오산이다. 영어야 말로 대상
에 따라 다른 문법을 사용해야
하는 복잡한 언어이다. 부모는 자
녀에게 대상에 맞는 존댓말 사용
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예의 바른
말을 사용하도록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가 다 자라
서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본
후에도 자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
르거나 반말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아랫세대로 그대로
대물림될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고치지 않는 한 대대손손 이어져
자손들의 사호히생활에 장애물로
자라잡게 될 것이다.
왕따일수록 남의 말을 경청
하게 하라
"소연이는 엄마 때문에 왕따가
되었어요."
"엄마가 왜?"
"학교로 선생님을 자주 찾아오
거든요."
"공개적으로 선생님을 만나신단
말이야."
"몰래 만나지요."
"그런데 너희들이 그런 걸 어떻
게 알아."
"왜 그걸 몰라요? 선생님이 다
티를 내니깐 알지."
"어떻게 티를 내는데?"
"예뻐 죽겠다고 티를 내신다니
까요."
"그래서 애들이 소연이를 와따
시킨단 말야?"
"애들이 그런 애를 무지무지 싫
어하거든요."
"그 애는 공부를 잘한다면서?"
"공부 잘하고 선샌님이 특별히
예뻐하니깐 더 그렇지요. 나는 그
런 데 관심이 없지만 다른 애들
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예언이
와 왕따에 대한 나눈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 학교 안에서 아
이들이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
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 사회문
제가 되었다. 중고등학생들에게서
불기 시작한 왕따문제는 초등학
교로 번지다가 유치원까지 내려
왔다. 아이들은 또래집단과 놀면
서 사회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또래끼리 마음을 터놓으면서 위
로받기도 한다. 또래와 대화를 나
눌 수 없을 때 아이들은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들
은 왕따를 당하면 또래집단과 대
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은 물론 집
단 괴롭힘까지 당하기 때문에 너
무나 괴로워서 자살까지 하게 되
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 안 왕따
문제가 크게 번지자 정부는 왕따
시키는 아이들을 고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김대중 대통령은
TV의 <국민과의 대화>프로그램
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왕따시키
는 친구들을 고발하라고 독려하
기까지 했다. 하지만 왕따가 줄었
다는 보도는 없었다. 왕따 문제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문제인 것이다.
왕다시키는 아이들도 왕따당하
는 아이들도 모두 어른들의 이기
심이 만들어낸 사회문제의 피해
자인 것이다. `왜 아무개한테 지
느냐?`라는 부모들의 닸달이 아
이들의 경쟁심을 부추기고 아이
들은 경쟁에서 지는 것을 받아들
이지 못해 남포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왕따시키는 아이들에게
도 문제아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왕따당하는 아이들에게
도 문제는 있다. 어머니가 자기
자녀만 학교에세 특별대우를 받
도록 교사에게 촌지를 주거나 다
른 방법으로 부탁을 할 때 그 자
녀는 또래 아이들의 미움을 받아
왕따를 당한다.
어머니의 이러한 태도는 자녀로
하여금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게 하기 때문
에 자신도 다른 아이들로부터 이
해를 받지 못해 왕따가 되는 것
이다. 남을 이해할줄 모르는 아이
는 다른 아이의 미움을 받기 때
문에 왕따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반에 진하라는 아이가 있
는데 애들이 지저분해서 싫어해
요."
"얼마나 지저분한데?"
"늘 코를 후벼서 코딱지를 옷에
다 쓱싹 닦지요. 그런 애하고 놀
고 싶은 애가 어디 있겠어요."
옆집사는 초등학교 2학년인 세
령이가 말했다. 요즘 애들은 어머
니로부터 철저한 위생 교육을 받
기 때문에 이처럼 지저분한 아이
들도 왕따가 된다. 어린아이들은
친구가 놀리면 화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지저분하다며 놀리는 친
구들에게 화를 내더라도 다른 애
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더
욱 그 애를 따돌리게 된다. 진하
가 왕따를 면하려면 몸부터 청결
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작은아이도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또래 친
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은 물론
매도 무지무지하게 많이 맞았다.
우리 아이가 절대 개입하지 말라
고 부탁해 나는 속이 쓰린 것을
참으며 일체 아이 문제에 개입하
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학생이 된
그 아이는 "어려서 친구들에게
고통을 당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이처럼 강인하게 만들었다"고 말
하곤 한다. 혼자서 어려움을 극복
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왕따당한다고 해서 부모
가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개입하면 자녀가 왕따에
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물론 어
른이 된 후 그때의 쓰라린 경험
이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기회
마져 놓치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우리 아이들을 맡아 길러준
한 아줌마는 매우 성실하고 성격
도 깔끔했다. 그런데 한번은 유치
원의 학부모 회의에서 교사들로
부터 "승연이가 친구들하고 어울
려 놀려고 들지 않아요. 원생들이
모두 그네를 타는 시간인데 옷을
버리면 안 된다며 안 타고 우겨
서 그래도 꼭 타아 된다고 말했
더니 그네 위에 올라가 그냥 쪼
그리고 앉지 뭐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승연이는 옷을 더럽히면 아줌마
가 너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조
심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흙장난
을 하는데도 가까이 가지 않더라
는 것이다. 승연이는 그 아줌마를
무척 따랐다. 그 아줌마는 아이에
게 "옷 버리지 마. 빨래하기 힘들
어" 라고 말해온 것이다.
나는 매우 조심 스럽게 아줌마
에게 그 애기를 전해주었지만 전
혀 고쳐지지 않았다. 이처럼 자녀
에게 너무 깨끗한 옷을 입혀 유
치원에 보내면 또래 친구들과 어
울리기 힘들다. 인형처럼 예쁜옷
을 입혀 모자까지 씌워 유치원이
나 학교로 보내면 보기에는 좋겠
지만 아이들의 활동 범위가 좁아
져서 자연 혼자놀게 되고 친구들
하고 어울리기도 어렵게 된다. 미
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허름한
청바지 같은 질긴 옷을 입혀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낸다.
특별한 옷은 행사가 있는날만
입힌다. 미국 어린이들은 남녀 구
분하지 않고 높은 나무 위에 올
라가 놀든지 아니면 마음놓고 잔
디밭에서 뒹굴며 논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는
옷을 입혀 자녀의 활동량을 높이
고 접촉할 수 있는 친구들의 숫
자도 많게 한다.
교사들도 정장차림으로 일하지
않고 언제든 아이와 뒹굴고 놀
수 있는 작업복을 입는다. 딱딱한
정장 차림과 TV출연자 같은 화
장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해외
에 자녀를 데리고 가 그곳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보내본
부모들은 우리나라 유치원과 초
등학교 교사들의 화장에 대한 불
만을 자주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행동에 제한을 받으면
생각이 제한되고 자연히 말도 제
한을 받게 되며 언어능력 발달도
더뎌진다. 소극적인 아이들보다
활동적인 아이들이 목소리도 크
고 말을 잘하는 것만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녀의 어휘
를 늘리는 데도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타인을 이해
하고 관계를 원활히 할 수 있도
록 하면서 남의 말을 열심히 듣
도록 하는 훈련부터 시켜야 한다.
이제는 1999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의 언어영역에서 우리말의
듣기 테스트를 치르게 되어있다.
그 동안 경시되었던 듣기의 중요
성이 우리 시회에서도 새삼 부각
된 셈이다.
어려서부터 남의 말을 자 들으
면 친구들을 자 사귈수 있게 되
어 왕따될 염려가 앖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
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왕
따당하는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태도와 언어습관 들을 객관적으
로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또
한 내 자녀가 왕따가 되었다고
해서 부모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면 오히려 역 효과를 낸다. 자
녀의 문제는 자녀 스스로 해결해
하도록 해야 경쟁력 있는 성인으
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자녀가 할 말은 자녀가 말하
게 하라
"그럼 엄마가 용돈을 안 올려주
시면 어떻게 하지?"
"말을 안 들었어요."
"그럼 잘 통하니?"
"아니요."
"그럼 포기 하니?"
"아니요."
"그럼?"
"아양을 떨어요."
"어떻게?"
"엄마가 참 예쁘다고 말해요."
"그건 통하는 모양이지?"
"잘 안 통해요."
"그럼 용돈을 못 올려 받겠네."
"엄마가 바쁜 때 말하면 통해요.
손님이 오신다든가 급히 외출하
때요."
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가 용돈
올리기에 대한 전략을 나에게 들
려주었다.
"어머나, 초등학교 4학년인 남자
애가 엄마한데 참 이쁘다고 말할
줄 안단 말이에요?" 하며 후배에
게 조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
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후배에게는 4살 난 딸만
하나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를 실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기 때문
에 자녀들이 일정수준 이상의 생
각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종한
다. 자녀가 너무 어려서 부모에게
의존해야 할 나이이기 때문에 부
모가 상상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서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
이들이 어른 못지 않은 말을 한
마디 하면 신통하다고 은근히 놀
라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어린아이들은 어른
보다 더 날카로운 관찰력과 판단
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음놓고 말을 하도록 북돋아주
면 어른보더 더 기발한 말과 행
동을 할 수도 있다. 나는 비교적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며 길렀느데 초등학교 때가 대
학생이 된 지금보다 더 기발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된
다.
그런데 아이들의 예민한 감각을
무시하고 부모 마음데로 말을 대
신해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반
을 속도가 느려 답답하기 때문에
부모가 먼져 앞질러 말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의 말할 기
회를 빼앗는 것이다.
"엄마하고는 대화가 안 통하
지?"
"네."
"왜?"
"제 생각을 듣고 싶어하지 않으
니까요."
"그럴 리가? 엄마 생각에는 민
석이가 엄마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
데?"
"제가 말하려고 하면 엄마가 다
해서."
아이가 말을 잘못해서 걱정이라
는 한 어머니의 상담을 받고 그
들 모자를 만나보았다. 만나보니
그 댁의 자녀는 어머니의 걱정과
는 달리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정리해서 말할 줄 알았다. 다만
어머니가 없을 때에만 할 말을
했다.
민석이 어머니는 자신의 성격이
몹시 급하다고 말한 다음 실제로
자신이 얼마나 성격이 급한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내가 그둘 모자
를 만난 후 민석이에게 "몇 살이
지?" 하고 묻자 어머니가 얼른
"3학년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이름은?" 나는여전히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어너니는 기
다를 여유를 주지않고 "배민석이
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그 어머니
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다음
민석이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
누었다. 처음에는 낯선 나에게 말
하기를 꺼리던 민석이도 내가 같
은 눈높이에서 질문을 하자 조금
씩 말문이 터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야기에
탈려이 붙으면서 민석이는 자신
의 생각을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
작했다. 그러나 문장을 길게 이어
가지 못하고 토막말을 했다. 말을
배우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어
머니가 민석이 대신 말을 해왔기
때문에 민석이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하는 연습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부모들 중에는 스스로 "내 성격
은 다혈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 많다. 오죽하면 동남아에 여행
을 가면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보
고 "빨리빨리"라고 말하겠는가?
성격이 급한 것이 결코 나쁜 것
만은 아니지만 자녀의 말버릇을
기르는 데에는 부모의 다혈질 성
격은 장애요소가 된다. 어린 아이
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단어
수를 많이 알지 못하고 어른들처
럼 판단력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자녀가 생각을 정리
하는동안 부모가 미리 자녀를 대
신해 답변해 버리면 자녀는 나는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하게
된다.
성격이 급한 부모가 있으면 성
격이 몹시 급한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만약 아이가 자기 생각
을 말하고 싶은데 생각이 잘 떠
오르지 않으면 숨을 헐떡이거나
말을 되풀이하게 된다면 아이의
성격이 급하다는 사실을 파악하
면 더욱 인내심을 갖고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어야 한
다.
성격이 급한 아이들은 원하는
데로 빨리 말이 나오지 않을 때
부모가 독촉을 하게 되면 마음에
상처를 받아 말을 더듬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자녀의 성격이 급하
면 부모의 성격이 급하기 마련이
어서 자녀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대신 말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러나 답답하다고 해서 자녀의 이
야기를 중간에 자르고 들어가면
자녀에게 큰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다.
아이들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
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부모가
중간에 잘라버리면 아이는 자기
가 무슨 말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즉 생각을 정
리학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어린 자녀가 생각
을 끝까지 말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했는
지를 검토하고 빠진 부분이 있으
면 보충질문을 해서 이야기를 완
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조심할 것은 맞장구 치는 차원을
넘어서 부모의 생각대로 따라오
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다. 사람은 어른이건 어린아이
건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끌고 가
는 것을 싫어한다.
뜸을 많이 들인 후 말하거나 추
상적으로 말하는 자녀의 말하기
지도를 하려면 맞장구 치는 방법
이 가장 좋다. 부모는 자녀의 말
을 들으면서 "그래서?" "저런" "
그랬는데" "나 같으면 이렇게 했
을텐데"라고 말해서 자녀의 생각
을 내 생각에 맞추어 정리 하도
록 할 것이 아니라 자녀가 스스
로 정리가 덜 된 부분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생각을 제대로 정
리해서 말하지 않고 되는데로 주
섬주섬 말하는데도 부모가 방치
하면 자녀에게 `그렇게 말해도
된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겉보기에 훌륭해 보이는 성
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제
대로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는 경
우가 우리 주변에는 많다.
학벌이 좋고 실력만 있으면 지
금까지는 별탈없이 잘 살수 있었
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차츰 사회에서 말 잘하고 이미지
좋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환경
은 급격하게 변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물론 우리나라의 우
수한 기업들도 신입사원채용에
면접을 강화하였다. 어떤 회사는
지원자의 이력서를 미리보지 않
고 면접을 보는 블라인드 면접만
으로 사원을 뽑기도 한다. 학력이
나 경력에 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그 사람이 말하는 태도를
보고 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뜻
이다.
요즘에는 또 대학 재학생이나
갓 졸업한 학생들도 홀로 창업하
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럴 때에
도 가장 중요시 되는 능력은 말
하기일 것 이다. 창업자일수록 많
은 고객을 확보해야 하며 고객은
설득없이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
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이제부터
는 자녀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기
르려면 어려서부터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말
하기 실력은 어느 날 갑자기 시
작해서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어
려서부터 꾸준히 노력해야만 길
러지는 것 이다.
자녀를 훌륭하게 기른 부모들이
성공사려를 보면 지금의 사회가
아니라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에
는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자식을 교육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항 2001년도부터
는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이른바
`튀는 학생들`이 대학 가기가 더
쉬워졌다며 대학 특례입학정원이
느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부
모가 미리 어린 자녀의 능력을
제안하지 안ㄹ고 기발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해야 자
녀를 튀는 아이로 기를 수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되어주기를 원하지만
초등학교만 해도 학교 안에서 친
구들 간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
보다는 테크노춤 같은 최신 유행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의 인기가
많다. 그리고 축구 같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잘 하거
나 컴퓨터 게임을 잘 해서 새로
운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친구들
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아이들
이 인기를 독차지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다가올 사회
를 더 잘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회가 필요
로 하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사실
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
이 성인이 될 미래에는 톡톡 튀
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정
확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성
공의 주요 요소가 될 것이다.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자
녀의 기발한 생각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어야 한다.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엉뚱
한 소리야" "어린 게 무슨...."과
같은 반응을 보이면 아이들의 기
발한 아이디어들은 금세 시들어
버리고 자녀는 부모가 가지고 있
는 능력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
게된다.
자녀가 때론 어른 상식에 어긋
나는 말을 할지라도 열심히 들어
주어 생각을 정리해 말할 수 있
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
러면 부모는 자녀가 할 말을 절
대 가로채면 안 된다. 답답해도
자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줘 자녀가 생각을 정리해
서 또박또박 말하게 해주어야 한
다.
말하기 매너도 가르쳐라
“말은 편안하게 하는 편인데
너무 몸을 많이 움직이는군요.”
“팔츨 너무 자주 움직여서 산
만해 보여요.”
“말하다가 자꾸만 머리를 쓸어
올리니까 내용이 귀에 잘 안 들
어와요.”
한 여자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스킬 수업을 하면서 앞에 나와
말표한 학생들은 대학생인데도
똑바로 서서 안정감 있는 자세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기업체에서도 강의를 해보면 사
회인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았
다. 어려서부터 말하기나 말하기
의 태도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이나 초
등학생의 경우에는 아예 바로서
서 말하는 학생조차 드물다. 요
즘의 어린이들은 전에 비해서 말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말
하기 태도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
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말이
끝난 후 혀를 쏙 빼물거나 엉덩
이를 뒤로 빼거나 손가락을 입에
물거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
다. 애들인데 무엇 하러 그런 데
까지 신경을 쓰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습관도 어려서
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날이 갈수
록 고치기가 어려워 성인이 된
후에도 말하는 자세가 바로잡히
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애는 숫기가 없어서 그
래요.”
낯선 사람을 보기만 하면 엄마
뒤로 숨는 지혜를 가리키며 어머
니 염순영 씨가 말했다. 염순영
씨는 35세에 결혼해 36세에 딸을
낳은 프리랜서 방송작가였다. 그
녀는 방송일에 쫓겨살다가 결혼
이 늦어져 36세가 되어셔야 첫딸
을 낳게 되었다. 삼남매의 막내
딸인 염순영 씨는 특별히 독신주
의자는 아니었다. 학교졸업 후원
하던 방송작가가 되었고 PD들하
고 호흡을 잘 맞추어 여기 저기
에서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방송일의 특성이 늘 시간에 쫓기
는 것인지라 염순영 씨도 그처럼
바쁘게 쫓기며 살다보니 나이를
의식할 겨를이 없었고 30세인가
했더니 훌쩍 30대 중반이 되어버
렸다.
동생이 없어서인지 아기를 유난
히 좋아했던 염순영 씨는 어느날
문득 결혼헤서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단다.
염순영 씨에게는 대학 때부터 친
구로 지냈지만 도대체 만나보아
도 가슴이 뛰지 않아 연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박용진이라
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가끔 농
담처펌 남자친구인 박용진 씨가
염순영 씨에게 청혼을 해왔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
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의 간곡
한 부탁과 주변사람들의 설득에
한편으로 망설여졌지만 박용진
씨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난산 끝
에 첫딸 지혜를 낳았다. 염순영
씨는 늦은 나이에 낳은 지혜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친정 어머니가 지혜를 안
아보려고 해도 마치 닳기라도 한
다는 듯 선뜻 넘겨주지를 못했
다. 염순영 씨는 지혜가 태어난
후 방송일을 일체 중단하고 딸
지혜하고 함께 지내고 싶어했다.
자연 지헤는 어리광이 심했고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도 싫어했
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엄마
와 떨어지려 하지 않아 유치원에
조차 보낼 수가 없었다. 염순영
씨는 지혜가 유치원에 가려고 들
지 않자 그제서야 걱정이 되어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기 시작
했다.
지혜가 자란 후 정상적인 사회
인이 되게 하려면 유치원에 보내
또래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염순영
씨는 한 학기가 지날 때까지 딸
아이의 유치원에 따라다녀야만
했다. 유치원 교사들의 도움으로
6개월이 지난 후에는 지혜가 유
치원에 혼자서 갈 정도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을 만나
면 엄마 뒤로 숨거나 자기 생각
을 말하지 않고 일단 때부터 썼
다. 말을 할 때에도 손가락을 입
에 물거나 몸을 비비꼬면서 말했
다. 염순영 씨는 딸 지혜가 이제
겨우 혼자서 유치원에 갈 수 있
게 된 것만이 대견해서 그러한
딸의 태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
지 않았다. 지혜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 정도쯤은 귀엽게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홀로 집에> <리틀 걸> 같
은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
는 영화를 보면 겨우 유치원이나
토등학생 정도인 어린아이들이
어른들과 또같이 악수를 나누고
똑바로 서서 의젓하게 이야기하
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서
양 아이들이 특별히 조숙해서 그
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
다. 어려서부터 남을 대하는 태
도에 대한 가정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인
엘렌 키틀리는 예절바른 모범생
이고 공부도 잘해서 미국의 대학
수학능력시험인 SAT(Scholastic
Aqtitude Test)에서도 모두 만점
을 받았다. 졸업식 스피치도 잘
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엘렌
은 세살 때부터 작시법과 함께
스피치 요령, 걷기, 말하기를 배
웠다고 한다. 아직도 미국 상류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 예절은
까다롭기 짝이 없어 자녀를 상류
사회로 진출시키기 원하는 부모
들은 엘렌의 부모처럼 어려서부
터 그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
킨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백인들이 대부분인 미
국의 상류사회에 다른 인종이 끼
기 어려운 이유는 피부색보다 그
까다로운 매너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
다. 미국 사회에서는 그 집단이
갖추고 있는 매너와 태도가 갖추
어지지 않으면 그 안에서 누구도
환영받지 못해 자연히 소외당하
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눈감아준다. 기부금만
많이 내면 언제든 상류사회계층
에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경우 놀랍
게도 인사를 할 때 목레를 똑바
로 할 줄 안는 사람조차 드물다.
고개를 숙인 후 일어설 때는 방
향이 바뀌거나 비틀어진다. 3개
월 코스의 스피치 교육 프로그램
에 등록해 절하기만 고치고 간
사람이 제법 많다. 그만큼 우리
부모들이 자녀의 기본 태도 교육
을 등한시했다는 증거다.
말하기는 말의 매너, 태도가 말
의 내용과 함께 메시지를 전한
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이러
한 말하기의 기본적인 습관들을
길러주면 자신의 의도를 남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경쟁력 있
는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기본 태
도일수록 어려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성인이 된 후에는 수십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고칠 수
있다. 가족간에는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편의 메시지가 무엇
인지를 알기 때문에 말하기의 중
요한 부분을 부모로부터 훈련받
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자녀들이 조금 더 자라거나 결혼
을 한 후에는 그러한 것들이 오
해의 소지로 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 자란 자녀가 함부로 말
하면 부모는 자존심이 상하게 된
다. 성인이 된 자녀와 좋은 관계
를 유지하는 데도 자녀의 좋은
말버릇 들이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하기와 같은 기본 생활태도는
가정밖에 교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말을 할 때 표정과
몸의 움직임, 목소리 등이 말의
내용과 걸맞지 않으면 내 생각이
담긴 메시지가 원하는 대로 정확
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커뮤니케
이션이라는 것은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생각, 즉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
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말솜씨
를 가졌어도 제데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표정
까지 조화를 이루어야만 메시지
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
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의 습관 고치기라고 한다.
자녀들을 리더로 기르려면 어려
서부터 바른 자세로 말하도록 교
육해야 한다. 시기를 놓친 후 뒤
늦게 나쁜 습관을 고치느라 시간
과 에너지를 낭비하면 그만큼 경
쟁에 뒤처지게 된다.
어릴 때부터 딴짓을 하면서 건
성으로 얘기하거나 몸을 건들거
리거나 혀를 빼물거나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말하는 태도를 방
치하면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다. 자녀에게 그러한 버릇이 생
기지 않도록 하려면 바브더라도
부모들이 자녀들이 말할 때 건성
으로 듣거나 다른 데 정신을 팔
면서 귓가로 흘려듣지 말고 자녀
의 얼굴을 보면서 가끔 눈을 맞
추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며 열심
히 들어주어야 한다.
청소를 하거나 옷을 개거나 설
거지를 하거나 신문을 보는 일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말하기
훈련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녀가 말을
할 때에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
고 열심히 들어주어야 한다.
혹시 자녀가 손짓발짓을 다 동
원해 말한다 해서 부산스럽다고
하지 말자. 나중에 남 앞에서 생
생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
도록 할 수 있다. 온몸으로 열심
히 말하는 자녀에게 “조용히 앉
아서 얘기해 봐”“서두르지
마”하면서 제재를 가한면 말하
는 데 흥미를 잃고 열정이 식어
말하기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
정말 말을 자하는 사람들은 온
몸으로 정열을 다해서 생생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가 말하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열과 성의를 다
해 온몸으로 말하는 기쁨을 알도
록 유도해주자.
발표문은 직접 쓰게 하라
“우리 아이를 원장선생님에게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초등학생은 아직 저희들이 맡
을 수가 없는데요.”
“그래도 이 아이는 지금 꼭 스
피티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영등포에 사는 한 어머니가 매
우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 회사에
전화를 해왔다. 어지나 열심히
설득을 했던지 직원들이 그 모녀
가 회사를 방문할 수 있는 시간
을 약속해버렸다. 나는 다른 약
속을 연기하고 그들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약속날이 되자 그 어머니는 초
등학교 6학년인 딸을 데리고 사
무실로 왔다. 그 어머니의 근심
은 딸아이가 영어를 잘해 앞으로
2주 후에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
가게 됐는데 영어는 잘하지만 표
정이나 태도가 어쩐지 말의 내용
과 맞지 않아 물안해서 우리 회
사를 수소문해 찾아왔다고 했다.
어머니의 요청대로 그 아이에게
즉석에서 연습한 영어를 배워 발
음이 미국인 못지 않게 좋았다.
그러나 말하는 태도가 자연스럽
지 않고 외워서 읽는 것이 역력
했다. 누가 글을 썼는지 물으니
방송작가인 큰언니가 써주었다고
한다. 원고를 다른 사람이 쓴데
다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말하니
까 글의 내용에 감정이 실릴 리
가 없었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만약 딸아
이가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하려
면 글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말
했다. 학교에서 대표로 뽑히거나
숙제로 발표할 일이 생기면 아이
들은 그것을 직접 해결하려고 하
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
가 많다. 부모도 자녀가 학교에
서 특별히 뽑혔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하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해서 자신이 할 수 없으면 주변
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서
라도 열심히 도와준다. 그렇게
되면 원고를 어른들 말투로 쓰게
된다..
어른들은 대부분 남 앞에서 말
할 때는 평소와 달리 어렵게 말
해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
우가 많다. 연세 많으신 교장 선
생님처럼 순 한문투의 말을 하는
것이 유식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발
표할 때 자기 자신도 이해가 잘
안되는 어려운 말투로 말하는 경
우가 많다. 게다가 내용은 대부
분 매우 교훈적이어서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우리나라도 국가경쟁력을 높
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도 잘 들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투다.
토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도 발
표를 시키면 마무리를 이런 식으
로 한다. 학교에서 발표를 시키
는 이유는 아이들의 생각을 생생
하게 듣기 위해서일 것이다. 얼
른들이 글을 써주면 아이들은 자
기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
게 된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낭독하는데 그치고 만다.
따라서 만약 자녀에게 발표의 기
회가 주어지면 발표문은 자신이
직접 쓰도록 해야 한다. 약간 서
툴더라도 직접 원고를 정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말하는 습관을 들
여야만 발표를 잘할 수 있다.
어른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은
좋다. 그러나 반드시 아이의 말
투로 아이가 직접 쓰도록 도와줄
때 발표를 잘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업테나 기관의 장들 중에는
행사가 있을 때 누군가가 대필해
준 원고를 가지고 연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원고
를 들고 말을 하면 그것은 말이
아닌 낭독이 되는 것이다. 말하
는 사람의 생각을 들려주지 않으
니 그때 들은 말을 나중에 기억
할수 있는 청중은 없다.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높은 사
람도 자기가 연설할 글을 남에게
만 맡겨두지는 않는다고 한다.
연설문 쓰기에 장본인이 깊이 개
입해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발표문 쓰기를 두려
워하는 이유는 어른들이 발표를
어려운 말로 하기 때문에 나도
그래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
이다. 발표문 쓰기를 어려서부터
두려워하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어려워하게 된다. 스피치 교육을
받으로 온 성인둘 중에서도 말하
기 못지 않게 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으로는 얼마
든지 재미있고 쉽게 쓰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펜을 잡
으면 잘 되지 않는다고 호소한
다. 그러나 쓰지 않고 말하면 말
의 내용이 정리되지 않아 중언부
언하기 일쑤였다. 발표를 하려면
그 내용을 반드시 글로 쓴 후 말
하는 것이 좋다.
연설문은 어렵고 멋지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호소
다. 그러나 발표는 쉽고 작은 주
제로 시작해야 청중을 쉽게 설득
할 수 있다. 주제가 작아지면 발
표문 쓰기가 한결 쉬워진다.
만약 자녀의 발표문 주제가
‘미래의 꿈’이라고 주어졌다면
곧이곧대로 그 주제를 통재로 요
리하려고 들면 쓰기는 물론 말하
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일단
발표주제가 주어지면 주제를 잘
게 쪼개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체험에서 찾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나의 ‘미래의 꿈’을
모두 다 이야기하려고 들지 말고
그 중 가장 자신 있는 ‘지금 배
우고 있는 플루트를 잘 불고 싶
다’라든가 ‘산수성적을 좀 더
올리고 싶다’정도로 작은 주제
하나를 잡아서 말하는 것이 설득
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때는 여러가지 요소 중에서
자녀가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자녀가 직접 고르도
록 하는 것이 좋다. 부모가 자녀
의 발표문 쓰기를 도와주려면 자
녀와 발표할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주요 아이디어를 정리하
고 그것을 하나로 좁혀가변서 줄
거리를 정리한 다음 나머지 내용
을 자녀가 직접 쓰도록 한다.
이때 쓰기와 말하기에서 사용하
는 문장과 단어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쓰기처럼 말하기를 어렵
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써놓은 내용을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고 말하
기에 어색한 문어체가 있다면 말
하기에 편한 문장으로 고쳐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즘 애들은 정말 말 잘해요.
마이크 대면 그냥 청산유수에
요.”
독립 프로덕션에서 어린이 프로
그램을 제작하는 윤창식PD가 이
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
기가 처음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
작하던 10년 전에 비해 요즘 어
린이들은 정말 말을 잘한다고 감
탄한다.
확실히 요즘 애들은 10년 전 어
린이들에 비해 말을 잘한다. 부
모들의 연령층이 달라지면서 자
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
게 말하도록 하는 경향이 높아졌
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는 우리의 전 세대와 경쟁을 하
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계를 향해 경쟁해야 하
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유치원부터 모든
숙제는 친구들 앞에 나와서 발표
하도록 한다. 이때 친구들은 이
해가 안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고 만약 친구의 질문에
답변하기 어려울 경우 다음 시간
까지 답을 알아와서 대답해주겠
다고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 실
행됨은 물론이다.
나는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학부
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많다. 그때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1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보면 2시간 동안 토론을 벌이기
도 했다. 어려서부터 말하기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
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
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자녀의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처음 말을 배울
때부터 이와 같은 방법으로 커뮤
니케이션 교육을 한다. 요즘 우
리의 자녀들의 말솜씨가 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발포
를 할 때는 아직도 어른 흉내를
내거나 어른이 써준 글을 읽어야
만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
영상세대인 우리의 어린이들이
TV나 비디오 같은 영상물을 많
이 봐서 감각적으로 말하기는 잘
하지만 논리가 필요한 공식적인
말하기는 훈련받을 기회가 적어
아직도 서툰 경우가 많다. 그러
나 공식적인 말하기를 잘해야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를 리더로 기르려면 어려서
부터 발표문을 스스로 쓰고 남앞
에서 자연스런 말투로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발표문을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
는 겻을 알게 되면 발표문 쓰기
를 잘할 수 있다. 듣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쉽고 평
이한 문장을 사용할수록 설득력
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성인사회에서도 지위가 높다고
해서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거나
난해한 문장으로 말하면 사람들
이 거리감을 갖게 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좀더 쉽고 간
단하게 유머와 재치를 섞어 사람
을 즐겁게 하는 화술을 익히면
자녀는 발표에 친숙해지고 어른
이 된 뒤에는 더욱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도록
하라
“우리 엄마는 거울 보면서 울
어요.”
남편 회사동료들을 초대해 식사
를 하려는데 갑자기 다섯 살 난
딸 차연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차연이 엄마 김숙경 씨는 깜짝
놀라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건넌
방으로 갔다. 김숙경 씨는 민망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차연이
를 건넌방 바닥에 내려놓으며 노
기 띤 목소리로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라고 말하며
눈을 흘겼다.
“엄마가 저번에 거울 보면서
울었잖아.”
차연이의 대꾸에 김숙경 씨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데 누가 너한테 그
걸 물어봤어?”
“응.”
“아니? 누가?”
“응, 안경 낀 아저씨가 나한테
엄마 잘 지내시느냐고 물었단 말
이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
는지 차연이는 비죽비죽 울기 시
작하더니 이내 ‘으양’하고 큰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김숙경씨
는 밖으로 차연이의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봐 “알았어. 울지
마”하면서 오히려 차연이를 달
랬다.
김숙경 씨는 지금의 남편과 7년
전 사내 결혼을 했다. 그후부터
지금까지 옛 동료이자 남편의 현
동료이기도 한 직원들을 1년에
한 번씩은 집으로 초대했다. 차
연이가 말한 안경 낀 아저씨는
김숙경 씨가 회사에 다닐 때 그
녀에게 유난히 호의를 보였던 성
진성 씨였다. 그가 차연이를 보
자 “엄마는 잘 계시니?”하고
물었던 것이다. 차연이는 아무도
엄마의 안부를 묻지 않던 차에
자신에게 질문이 오자, 신이 나
서 언젠가 인상깊게 보았던 엄마
의 모습을 남들 앞에서 설명한
것이다.
사실 김숙경 씨가 운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김
숙경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인
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무득 거
울을 들여다보다가 특별한 보람
없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이 가여워 그만 울음을 터트
렸던
것이다. 자연 거울을 보다가 다
시 울고 또 울곤 했는데 딸 차연
이 눈에 어머니의 그 모습이 인
상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차연이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김숙경 씨가 결혼생활을 비관하
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얘기하기 때문에 이처
럼 어른들이 난처해질 만한 얘기
를 아무곳에서나 불쑥 해버릴 수
가 있다. 직장동료끼리 부부동반
으로 모인 자리에 따라간 어린이
가 엄마와 아빠가 싸운 얘기를
적나라하게 털어놓는다든가, 밖
에 알리고 싶지 않은 집안사정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부모가 쑥스러워서 그러한 자녀
를 현장에서 야단치면 아이들은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서 큰 소리
로 울기 마련이다. 부모는 체면
이 구겨질까봐 “알았어. 조용히
해. 알았으니까 나가 놀아”라고
말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쉽
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자녀
에게 상황에 맞는 말하기 태도를
길러주지 못한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라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엄마가 먼젓번에 할머니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잖아.”
할머니를 몹시 다르는 예원이는
“아이고 내 새기 왜 이렇게 오
랜만에 할머니 집에 왔어. 좀 더
자주 오지 않고”라고 말하는 할
머니 앞에서 엄마를 원망스레 돌
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원이 엄마는 얼굴이 상기되어
딸 예원이에게 눈을 흘겼지만 시
어머니의 표정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다. 어린아이들의 이러한 말
은 고부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큰아이가 일곱 살, 작은아이가
여셧 살 때의 일이다. 우리는 강
원도 원주에 살았고 시댁은 인천
이었다.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짐을 잔뜩 챙겨들고 인천으로 행
했다. 당시 나는 방송국 아나운
서였는데, 방송국 속성상 이러한
개인적인 행사를 이유로 휴가를
얻는다 해도 반드시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을 미리 제작해서 녹음
가지 마친 후 떠나야만 한다. 쉬
는 기간 동안의 일을 미리 해두
는 셈이었다. 자연 에너지 소모
가 많아져 정작 휴가를 받았을
때는 지쳐 있기 일쑤였다. 그러
나 당시만해도 며느리는 누구나
시댁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식모가 되어야 했다.
나는 아이들 갈아입을 옷가지가
든 무거운 가방을 시댁 마루에
내려놓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재래식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
다. 나는 평소 직장일이 바빠 아
이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와 함
게할 수 있는 기차여행을 몹시
즐겼다. 그러나 할머니집에 도착
하자마자 엄마가 자기들만 두고
부엌으로 사라지자 그만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작은아이가
할머니에게 쫓아가 “할머니, 우
리 엄마는 집에서도 밥을 안 하
는데 왜 할머니 집에 오면 밥을
해야 해요?”라며 볼멘소리를 했
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몹시
당황하더니 이내 불쾌해하며
“아니,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
는 거야?”하며 목소리를 높였
다. 어린아이의 말인데도 시어머
니는 마치 ‘에미가 아들을 시켜
서 내게 그런 항의를 하는 거 아
니냐?’는 듯한 말투였다.
아이들이 생각나는 대로 불쑥
던진 말 한마디는 이처럼 친인척
간에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유난히 가까
운 아이들 중에는 할아버지 할머
니에게 엄마와 아빠만의 비밀얘
기를 털어놓는다든가 고모나 이
모 또는 학교교사에게 그들이 들
어서는 안 될 집안사정을 소상하
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이 상황이나 대상을 무시
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방치하면 상황이나 대상에 맞게
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게 된
다.
성인이 된 후 눈치 없이 아무곳
에서나 할 말 못할 말 구분 없이
해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아이구, 참 주책이야. 주책,
저기서 저 말을 꼭 해야만 하
나?”
어른이 된 후에도 대상이나 상
황에 맞는 말하기를 하지 못해
이러한 핀잔을 받는 사람들은 의
외로 많다. 자녀가 환영받지 못
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을 바라
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상황이나 대상에 다
라 어떤 내용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알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머니에게는 엄
마에 대해 어디까지 말해야 하며
고모나 이모에게는 또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모가
자녀에게 솔직하게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면 아이들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이때 무조건 “왜 그런 말을
해?”“얘가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하며 핀잔만 주면 자녀는
상황과 대상에 맞는 말하기를 정
확하게 배우기는 켜녕 부모가 자
신을 미워한다고 오해할 수 있
다.
솔직한 것이 좋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아무에게나 모든 것을다
공개적으로 털어놓도록 하다가는
대상이 누구이건 어떤 파급 효과
가 오건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다 털어놓아
분위기를 망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만약 어린 자녀가 남 앞에서 부
모가 민망해할 내용을 공개적으
로 말했다면 그 자리에서 감정적
으로 화를 내 시끄럽게 만들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파한 다음 반
드시 자녀를 다시 불러서 그것이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또 자녀가 부모의 설명을 이해
한 다음에는 다음부터는 그런식
으로 말하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
두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에
도 자녀를 윽박지르기보다 “너
라면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생
각하겠어? 또는 그런 것들이 알
려졌을 때 할머니가 들으시면 기
분이 좋겠어?”라고 물어 자녀가
스스로 상황과 대상에 맞는 말하
기에 대한 개념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아냐, 우리 엄마가 그런 것은
불량식품이니까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어.”
“너네 엄마가 뭔데 그런 말을
해? 너네 엄마가 무슨 박사라도
되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남자아이들이 학교 앞 길거리의
‘뽑기장사’앞에서 옥신각신하
고 있다. 얼굴이 크고 덩치가 큰
남자아이가 유난히 얼굴이 희고
가냘퍼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뽑
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얼굴 흰
아이는 뽑기가 불량식품이어서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덩
치 큰 아이는 그 아이와 반드시
뽑기를 해야 한다는 듯 끈질기게
설득했다.
얼굴 흰 아이는 엄마가 말한 불
량식품을 사 먹을 수 없음을 강
조했고 덩치 큰 아이는 그 아이
의 엄마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덩치 큰 아이도 뽑
기에 쓰이는 설탕물이 비위생적
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덩치 큰 아이가 얼굴 흰 아이의
엄마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뽑
기가 불량식품이라는 사실을 받
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남
을 석득하려면 권위 있는 사람의
말과 명확한 근거를 대야만 받아
들여진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이
다.
내가 1994년 처음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
웠던 점이 바로 그 덩치 큰 아이
가 친구에게 말하듯 명확한 근거
를 대서 말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명확한
근거를 대서 말해야 설득력이 있
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 학생
들과 그것을 실펀하기 어려운 나
의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몹시
힘들었다.
나는 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
았고 인생경험도 많았지만 말을
할 때 그 학생들처럼 유명한 학
자나 명인들이 한 말을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 수가 없었다. 우
리는 말할 때 “내 생각에는 말
이야”라든가 “나는 그렇게 생
각 안 하는데” 등 개인적인 감
정을 내세워 말해왔기 때문에 미
국 학생들처럼 “하버드 대학 심
리학 교실의 제임스 윌리스 교수
가 말하기를 ‘사람은 말하는 대
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
한다’따라서 말하기는 매우 중
요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하
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미국
학생들은 입만 열면 반드시 권위
적인 연구결과 등 근거를 확실히
덧붙여 자기 주장을 폈지만 나는
그것이 잘 안 됐다. 아나운서를
20년이나 한 나였기에 우리나라
에서는 꽤나 말을 잘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스타일
구기는’기분이었다.
그것은 영여의 문제만이 아니었
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으로 말하
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
이다. 우리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통용
되었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말
하는 것보다 감정을 내세워 큰
목소리로 우기면 더 잘 통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바
뀌면서 그것이 차츰 퇴색해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 학교로 옮
겨가 숙제하는 것을 보니 미국
학생들이 근거를 대며 논리적으
로 말하는 것을 잘 할만도 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미
국으로 건너간 우리 아이들이 받
아 돈 숙제는 대부분 하나의 주
제에 대해 관련 도서를 4권 읽고
저자의 생각 12개를 인용해 글을
써오라는 것이었다.
숙제를 할 때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
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글을 써서 내야 하는 것이다. 고
등학생이 되자 읽어야 할 책이 4
권에서 8권으로 늘었고 대학에
들어가자 그 양이 더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지고 문제집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를 풀어
오라는 것이 초등학교 숙제의 대
부분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이용
해 조사하는 숙제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하루종일 문제
집을 붙들고 있거나 책을 베끼는
숙제를 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원래부터
논리에 약한 것은 아니다. 선조
들은 논어나 맹자 등을 인용해
정확한 근거하에 말하곤 했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충분한 말하
기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는 구
태의연한 학교교육 때문에 우리
는 원래부터 연설이나 논리적인
말하기에 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
도 교사가 발표를 시키면 매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딸들을 한 사
람의 당당한 성인으로 기르려면
우리가 본래부터 논리에 약한 것
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지
금부터라도 경쟁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 학교로 옮
겨간 후 많은 미국 친구들을 사
귀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태인 친
구들이 가장 많다. 유태인은 미
국 상권의 80%를 쥐고 있다고
한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
스트리트를 유태인들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
아이들의 유태인 친구들을 보면
할아버지 때부터 어마어마한 재
산을 모은 부자들이 많다. 그런
데 이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노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놀이가
바로 토론이었다.
우리 작은아이는 유태인 못지
않게 토론을 좋아해 그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뱌ㅁ새워 토론
을 벌이기도 하는데 근거와 논리
를 세워 말하는 수준이 놀랄 만
했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논리와
철학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웬
만한 아이들에게는 논리에서 지
지 않지만 유태인 친구들은 만만
치 않다고 고백한다. 유태인들은
자녀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서부터 논리와 철학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개인감정
을 앞세워 말하지 않고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말하
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
것은 독서를 많이 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유태인 자녀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어려운 철학서
적도 읽게 한다고 한다.
미국에는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다 모여 살고 있다. 그 중 유태
인들이 가장 장사를 잘하고 그
다음이 아라비아 사람들, 중국
사람들, 인도 사람들 순으로 장
사를 잘하는 순위를 꼽는다.
우리 아들 친구들 중에는 유태
인과 중국인, 인도인이 다 있는
데 이들의 특징은 어려서부터 철
학서적을 많이 읽었으며 논쟁을
좋아하고 논쟁을 벌일 때에는 반
드시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특징
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유태인 친구를
많이 사귄 이유는 유태인과 한국
인에게는 비슷한 특징이 많기 때
문이라고 한다. 부모들의 자녀교
육 열기와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것들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따라
서 우리의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
에게 논리를 익히게 하면 유태인
못지 않은 비즈니스맨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유태인 친구들과
논쟁을 벌일 때는 마치 싸우는
것처럼 큰 소리를 지르면서 무섭
게 언쟁을 벌인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가 싶
어서 아이들 방을 수시로 들여다
보았다.
이과 취향인 큰아이는 처음에는
톤론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고 옆
에서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
데 수시로 나에게 와서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애들은 저
러면서 노는 거예요”라며 상황
설명을 해주어 나를 안심시키기
까지 했다.
이 아이들의 장점은 토론에서
지면 승자에게 깨끗하게 승복한
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활태도가
결국 사회생활을 잘하게 하는 중
요 요소로 작용하고 유태인들은
그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
고 있다고 한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
년 때 칸트와 데카르트 등이 저
술한 철학책과 삼국지 손자병법
등을 대부분 다 읽었다. 그때문
에 또래의 친구들과 대화수준이
잘 맞지 않아 하교에 가면 친구
들에게 노상 두들겨 맞고 왔다.
말하자면 ‘왕따’였다.
당시 주변사람들은 나에게 어린
아이가 그런 것까지 읽도록 놔두
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렸
다. 물론 내가 강제로 아이에게
그 책을 읽도록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릴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사모았고
그 책들을 발길이 닿는 곳마다
늘어놓았다.
이 아이는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서부터 책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 책읽기가 일상화되었다. 그
덕에 우리 아이는 미국에서도 가
장 논리적이라는 유태인 친구들
과 토론을 해 이기기도 했다.
우리 아이의 꿈은 유태인보다
더 유능한 장사꾼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철
학적 지식과 논리적인 말솜씨 때
문에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논리적인 책을
가까이 하면 탄탄한 논리의 구성
방법을 익힐 수 있고 그 속에서
세상사는 이치를 쉽게 깨닫게 되
어 장사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의 유태인 친구들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장사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소
비자 설득에 탁월하다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기 때문에 어
려서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아이
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말하지
않고 반드시 근거를 가지고 말하
도록 훈련을 시키면 자란 후 쉽
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옆집 아이가 그랬
대”라고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옆집 아이가 미끄러져서 유리
창을 깨뜨렸어요”라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밝혀 말
하도록 한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도 대체로
추상적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
다. ‘국가경쟁력을 높입시다’
와 같은 말이 그런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어떤 방법
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지를 말해서 듣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해석하지 않도
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점에 너그러워서
‘대충 넘어가지 뭐’ ‘좋은 것
이 좋지 않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이 길 하나를 물어도 정확하
게 댜답하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
게 만든다.
‘신호등 몇 개를 지나서 왼쪽
으로 꺾어서 다시 신호등 몇 개
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고’와
같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하
고‘저쪽으로 가세요’라고 막연
하게 알려주어 길을 찾으려면 같
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
는 것이다.
문제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같
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정확하게
대답해주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
문에 늘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건
성으로 보아두어서 신호등을 두
개 건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
어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
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를 갖지 않으면 이
처럼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
부터 소홀해진다. 논리와 철학의
기초가 튼튼하면 길 하나를 보아
도 어떤 골목으로 어느 정도 가
서 구부러지고 신호등은 몇 개
건너야 하는지가 머리에 잘 들어
오게 된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
곡 쌓이게 되면 사회생활의 체계
를 쉽게 파악하며 아무리 복잡한
조직 안에서도 그것을 단순화시
킬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
이다.
아이들이 근거 없이 그냥 추상
적으로 얘기하도록 두면 이처럼
필요한 논리적 사고를 갖추지 못
하게 된다. 자녀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려면 텔레
비전 프로그램을 함께 본 다음
그 줄거리를 말하더라도 반드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갖추어
서 말하도록 하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인용해서 객관적
으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이라든가 “내가”로
시작되는 주관적인 말하기를 논
리적인 설명으로 바꾸어 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
엇보다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
하다.
긍정적으로 말하도록 하라
“싫어.”
진주가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사라져 버린다.
“피아노 연습 좀더 하라니
까.”
진주 어머니는 문 뒤에 대고 소
리를 질렀다.
“이제 피아노 그만 할래.”
진주도 지지 않았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이리 나와봐.”
진주 어머니는 더 이상 화를 참
을 수가 없었다. 진주 어머니는
진주의 방문을 흔들어 대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진
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주
어머니는 “아이구, 내 참, 기가
막여서 원. 내가 뭐 나 위해서
피아노 치라는 줄 알아? 다 너
위해서 그런 거지. 요즘 피아노
못 치는 애가 있는 줄 알아? 하
기 싫으면 관둬. 맘대로 하라
고.”
초등학교 2학년인 진주와 어머
니는 항상 이런 식으로 싸웠다.
진주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
년인데 놀 시간이 없다.
학교 끝나고 오면 피아노다 수
영이다 미술이다 영어다 해서 학
원을 네 군데나 다니기 때문이
다. 진주는 학원에 많이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피아노만은 정말이지 지
긋지긋해서 배우고 싶지 않았다.
웬일인지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피곤해서 견
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 엄마는 진주의 생각과는 달리
진주가 조금만 쉬려고 하면 피아
노 연습을 하라고 성화였다.
진주 어머니는 진주만할 때 피
아노를 몹시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공무원인 아버지 봉급으
로는 레슨비를 낼 수 없어 끝내
배울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밖에 없는
딸 진주가 피아노만큼은 잘 텨주
기를 바랐다. 진주와 어머니의
갈등은 점차 깊어만 갔다.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릴 테
야.”
성격이 급하고 괄괄한 승기는
밖에서 친구들하고 조금만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이런식으로
혼자서 씩씩대며 화를 내곤했다.
“아니, 왜 또 그래?”
승기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그 자식들이 내가 딱지를 많
이 따니까 다 그만둔다고 가버리
잖아, 에이씨.”
승기는 방문을 쾅 닫고 제 방으
로 들어가버렸다. 승기 어머니는
예전에는 승기의 이런 태도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남자아이이
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
기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엄마, 그건 말도 안돼” “누
가 그따위 말을 했어?”하며 엄
마에게 직설적으로 화를 내는 것
을 주저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나라 부모들 중에는
자녀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처럼 거친 행동과 말
투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
다.
그러다 보니 기분 내키는 대로
거칠게 말하는 아이들이 점차 많
아지고 있다. 그러한 습관이 어
른이 된 후까지 없어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환영받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
사회에 막 진출한 젊은이들 중
에는 부모의 기 살리기 덕에 상
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딱 부러지
게 말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졌다. 집안에서는 그런 자녀가
똑똑해 보이고 대견할 수 있지만
직장 상사들에게는 몹시 거슬리
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직장이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며 한 사람의 뛰어난
능력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여 팀
워크를 이루어야만 생산성을 높
일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신참
사원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헤
서 지나치게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것을 선배들이 좋아할 리 없다.
나의 회사동료 중 신입사원 시
절에는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동
료들에게는 속시원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윗사람들은 껄끄럽게
여겨 한직으로 돌며 고생한 사람
이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중견사원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 옳은 일이라고 해서
일일이 따지고 드는 부하들은 부
담스러워. 그런 부하가 저쪽에서
나타나면 나는 이쪽으로 피해서
돌아가게 되더라고. 그 사람 말
이 백번 옳은 줄은 알지만 마치
나한테 너는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비난하는 것 같
아서 무섭기까지 해.”
그는 자기가 당해보고서야 윗삶
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어겨서부터 자녀의 기를 살려준
다고 생각나는 대로 원색적으로
표현하도록 방치하면 자신의 말
이 남에게 왜 환영받지 못하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
기 쉽다.
진주 어머니처럼 자녀를 설득하
지 못하고 감정의 갈등을 일으켜
자녀가 부모에게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말하도록 하는 것도 마찬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진주 어
머니는 진주가 그토록 싫어하는
피아노를 억지로 배우게 함으로
써 모녀 사이를 나쁘게 만든 것
은 물론 진주의 말버릇까지 망치
고 있는 셈이다.
진주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그만두기 위해 자신의 기분이 나
쁘다는 사실을 최대한 과장해서
말하고 점차 더 거칠게 말하게
될 것이다. 진주 어머니 또한 진
주의 그러한 태도에 화가 나 원
색적인 감정표현을 하게 돼 모녀
간의 대화는 더욱 격해지고 이것
은 마침내 대화의 단절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진주 어머니가 진주의 고
집을 꺾지 못하고 끝내 진주의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게 할 경우
진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상대
방에게 원색적으로 화를 내며 함
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어머니가 고집을
꺾지 않고 진주에게 계속해서 피
아노를 가르치려고 들면 모녀 사
이는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빠지
는 것은 물론이고 돈과 시간, 감
정소모도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
다.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
로 할 때 절대 능률을 올릴 수
없다. 진주의 어머니는 진주가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싫어하는데
도 꼭 배우도록 하려면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진주가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
도록 설득해야 한다.
진주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
년이지만 얼마든지 설득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요즘 피아노 안 배우
는 아이가 있는 줄 아니?”라고
단정적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피아노 배우는 애들이
많지 아마?”라고 말하거나 “피
아노를 배우면 이러이러한 점이
좋다”라고 바꾸어서 말해야 한
다.
같은 내용도 “나쁘다”보다는
“좋지 않다”“피아노 안 배우
는 아이들이 없다”보다는 “많
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것이
다”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 설득
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처럼
부모가 긍정적인 말로 자녀를 설
득하면 자녀도 자연스럽게 긍정
적인 표현법을 익히게 될 것이
다.
승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승기가 “다 죽이고 싶다”거나
“나쁜 놈들”이라고 말할 때 그
이유를 묻고 자신의 감정을 긍정
적인 방법으로 말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기가 펄펄 살아
거칠게 말하는 남자는 뒷골목이
나 주먹 세계의 리더는 될 수 있
을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결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세계의 지도자 중 부정적이고
원색적으로 말해 성공한 사람은
없다. 어려서부터 긍정적이고 세
련된 표현법을 익혀야만 진정한
리더가 될 자질을 키우는 것이
다.
자녀와 주제가 있는 토론을
자주 하라
“아니야, 저런 구름이 생기면
비가 내려.”
“그렇지 않아. 구름이 흘러가
는 방향을 봐. 저 정도 속도로
움직이면 구름이 비를 만들 때쯤
에는 다른 동네로 이동해서 이
동네에는 비를 내릴 수 없어.”
“아니야. 지금은 바람이 동쪽
으로 불지만 서쪽 끝에 구름이
흩어지는 것 봐. 곧 바람의 방향
이 바뀔거야.”
연년생인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
부터 둘이서 많은 토론을 벌였
다. 나는 방송국에 다녀서 평소
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
으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
이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일정
한 시간을 정해놓고 “자, 지금
부터 대화를 나누자”라고 할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화는 주
로 저녁식사 후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엄
마와 대화를 나누려면 학교숙제
를 미리 해두어야 했다. 만약 엄
마와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없다
면 미리 숙제하기가 싫었을 것이
다.
나는 아이들이 미리 숙제를 해
놓고 엄마와의 대화시간을 기다
리도록 하기 위해 흥미있는 이야
깃거리를 개발해야만 했다. 아이
들과 서로의 일과에 대한 이야기
만 주고 받으면 대화가 단조롭고
재미가 없어 아이들은 절대 미리
숙제를 마치려고 하지 않았을 것
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거
나 같은 책을 읽은 후 그 내용속
에서 주제를 정해 토론을 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간 후부터 나는 회
사에서도 틈만 나면 동화나 어린
이책을 보느라고 정작 나에게 필
요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정
도였다.
토론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엄마
라고 해서 봐준 적이 없었다. 자
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
고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것이 발전되어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의 수업을 토론식으로 진
행하는 미국 학교로 유학을 가서
도 그곳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내 인생 전
체를 거는 극성 어머니는 아니
다. 미국에 간 것도 아이들의 유
학을 위해서가 아니가 내가 유학
을 가는데 아이들이 따라간 것이
다. 다만 나는 내가 낳은 자녀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성
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최대한의
뒷받침은 해주어야 한다고 믿었
다. 아이들을 위해 재산을 남겨
주거나 비싼 과외를 시켜서 출세
가도를 달리는 야심가로 기를 생
각은 없으며 즐겁게 일하고 그래
서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출세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
문에 넓은 세상을 보는 안목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
고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의
지를 길러주는 일에 차중했다.
그러다 보면 성공이나 실패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능한 한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노력했다. 우리 아이들
이 초등학교 5학년과 4학년때 우
리 가족은 배낭을 메고 2주간 유
럽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막 허용되기 시작해 여행지에서
아주 많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에 유럽 역
사책을 외우다시피 많이 읽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대학생 형들
과 토론을 벌이곤 했다. 평소 엄
마와 토론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어떤 형들과도 토론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여행이 즐거워졌다.
그때 유럽 여행을 하면서 스위스
루체른에 갔을 때 우리는 호숫가
에 있는 캠프장에 묵었다.
나는 아이들만 캠프장에 두고
남편과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필
라투스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캠
프장 근처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에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캠프장에 두고 어른들만 산
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사
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낯선 캠프
장에 남겨두고 부부끼리만 등산
을 떠나는 일을 놀라워하기도 했
다. 그러나 캠프장에 남아 있던
우리 아이들은 둘이서 근처에 있
는 자동차 박물관에 다녀온 후
토론을 벌이며 잘 지냈다고 한
다. 어린이들도 어려서부터 자주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며
어른들 못지 않은 날카로운 관점
으로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가
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녀가
싫어할 성적이라든가 친구에 관
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
에 자녀가 부모와 이야기하기를
싫어하게 만든다. 자녀와 대화를
재미있게 나누려면 개인신상에
관한 화제만을 끄집어내지 말고
시사문제라든가, 국제적인 흐름
에 대해 주제가 있는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다.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면
자연히 아이들의 말하는 태도도
으젓해진다. 그런 문제는 아이들
에게 너무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
른다. 그러나 부모가 함께 관심
을 가져주면 유치원 아이들도 어
떤 부분에 대해서는 어른보다 더
날카로운 논쟁을 할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주제를 찾아 어
린이들에게 프로젝트를 주고 해
결하게 하는 유치원 교육법을 개
발한 이탈리아의 교육학자 모리
스 말라구치는 “어린이는 어른
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
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주제를 던지면 아이들은 의외로
깊숙이 이해하고 스스로 알아낸
다. 이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그들은 일생동안 자신이 관심 있
는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3.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
녀의 미래를 바꾼다
“내가 못 살아”
“나 때문이야”
옛 동료가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조문하러 밤
10시경, 강남 성모병원 영안실에
가게 됐다. 그 병원에는 1층만
해도 영안실이 20개가 넘는지 방
번호가 21번이었다. 방을 찾느라
헤매는데 복도 한쪽에 놓인 벤치
끝에 걸터앉은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고 있
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저
절로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건강
한 남자 한 사람이 그녀를 달래
고 있었다.
“그게 왜 네 탓이야? 엄마는
아파서 돌아가신 거잖아.”
“오빠는 몰라. 엄마가 항상 그
랬어. 나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
래서 정말로 이렇게 일찍 돌아가
신 거야.”
“그야 엄마가 그냥 한 말씀이
지, 정말 저 때문에 못살겠다고
생각하신건 아니잖아.”
“아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
터 엄마는 나만 보면 너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러셨단 말야, 암에
걸린 것도 다 나 때문이야.”
그녀는 ‘엄마’를 부르며 흐느
꼈다. 그녀가 오빠라고 부른 남
자는 담배를 꺼내 물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무슨 사
연이 있길래 청초해 보이는 20대
여인이 어머니의 죽음이 자기 때
문이라고 우기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조문 온 사람이 그 자리
에 서서 남의 이야기를 마냥 엿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동료 모친의
영안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료의 어머니는 80세를 넘기신
노인으로 10여 년을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호
상이었다. 조문객들도 밝은 표정
이었고 상주들도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아 나는 쉽게 그 자리
를 뜰수가 있었다. 대신 조금 전
영안실 복도에서 만난 남매의 이
야기가 궁금했다. 나는 나도 모
르게 발걸음을 재촉해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행히 아직도 그 자리
에 앉아 있었다. 울던 여성은 제
법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다소곳
이 앉아 오빠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
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
다. 그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유
추해보면 남매의 어머니는 유난
히 몸이 약해 젊어서부터 자주
병석에 누웠던 모양이었다.
응석받이 어린 딸은 어머니가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
니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아이구,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엄마 기운
없어 죽겠는데 이렇게 기대면 어
떡하니?”부터 시작해서 매사에
“너 때문에 못살겠다”라는 푸
념을 입에 달고 살았단다. 그녀
의 어머니는 그녀가 자란 후에도
어쩌다가 딸이 외출에서 늦게 돌
아오면 “아이구, 내가 너 때문
에 못살아”라고 말했으며 조금
만 잘못을 저지르면 여지없이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워낙 어려서부터 그 말
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한 면역성이
생길 만도 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면역이 생기지는 않았고 그
녀가 대학에 들어간 후 어머니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자 오히
려 그 말이 덫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못살겠다
고 하더니 정말 나 때문에 일찍
돌아가시는구나’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녀는 무
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아마도 천벌을 받을 거
다. 엄마를 죽게 했으니 죽을 죄
를 지은 거다.’
그녀는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며 오빠의 팔에 얼굴을
붇고 다시 흐느꼈다.
나는 그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는 회사
의 한 선배가 생각났다. 그는
6.25때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였
다. 그때 어머니는 갓 스무 살이
었는데 너무 일찍 청상이 된 탓
인지 어머니는 어디론가 떠나버
렸고 그가 철이 들었을 때는 어
머니가 없었다. 그는 성년이 되
어서야 어머니가 어떤 동네 청년
과 눈이 맞아 야반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불
행 중 다행인 것은 할머니가 대
학 갈 때까지는 살아계셨다는 점
이다. 대학 입학 후 얼마 안 있
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셨고, 그
선배는 혼자서 연탄배달부터 안
해 본 것 없이 고생하면서 대학
을 마치고 운이 좋아 방송국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품이 좋고 실력도 있어
서 상사는 물론 동료들 간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술만 마
시면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 동료
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동
료들은 그처럼 슬피 우는 동료를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누구도
그가 왜 그렇게 슬피 우는지 몰
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다. 나는
휴일 근무를 했고 그도 프로그램
제작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지
회사에 나왔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고 저녁 식사도 같이 하
게 되었다.
그는 평소 내가 존경하는 선배
였으며 가끔은 격의 없이 개인적
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친했다. 그러나 그는 그날처럼
진지하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그날 그는
지금까지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
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
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머니를 찾기위해 사방으
로 수소문한 끝에 어머니가 지금
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이어
서 허리 펼 날 없이 평생을 살아
왔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
었다.
그의 어머니는 개가한 후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는데 제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을
가진 자녀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신세가 그
렇게 된 것이 마치 자기 때문인
것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벌써부터 듣고 계셨는지 “아이
구, 이놈아. 네 에미는 너 때문에
평생을 숨 한번 못 쉬고 사는구
나”라며 그 선배가 자라는 동안
끊임없이 말해왔던 것이다. 할머
니는 그렇게 떠난 선배의 어머니
를 미워하지 않고 불쌍하게 여기
고 있었던 듯 오히려 그 선배를
탓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
는 그날에야 비로소 평소에는 멀
쩡하던 그가 술만 마시면 꺼이꺼
이 우는 까닭을 알게 되었다.
옛 동료 모친상 조문을 하러 영
안실을 다녀온 얼마 후 동네 미
용실에 들렀다. 갓 첫돌을 지난
것으로 보이는 한 아이를 안고
세살 가량 된 남자 아기의 손을
붙든 채 잘 차려입은 한 여성이
미용실에 들어섰다. 그 여성은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기를 안고 집에서 미용실까지
오는 동안 몹시 힘이 들었던 모
양이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며 아기를
옆 의자에 내려놓자 콘아이가 기
다렸다는 듯 어머니 품에 파고들
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겨붙었
다.
그 아이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양보한 일이 몹시 억울했던 듯
힘들다는 어머니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 여성은 자녀들의 교육에 무척
신경을 쓰는 신세대 주부 같았
다. 다른 어머니들처럼 아이에게
원색적으로 화를 내거나 반말로
욕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엄마 죽으면 좋겠어요?”라며
아이에게 계속 자기한테서 떨어
질 것을 요구했다.
나는 영안실 사건이 떠올라 그
여성의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점잖기는 해도 그 어머니는 ‘네
가 엄마에게 그렇게 엄마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다.
그후로도 나는 너무나 많은 어
머니들이 아이들 앞에서 “너 때
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하는 모
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그런 일을 보
았다. 주말에 종로에 있는 서점
에 가기 위해 여의나루역에서 지
하철 5호선을 탔다. 다섯 살, 여
섯 살 가량의 연년생으로 보이는
남자 대 둘을 데리고 한 어머니
가 공덕동역에서 탔다. 마침 빈
자리가 나 그 어머니는 작은아이
만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그 아
이는 자리에 앉지 못한 형과 장
난을 치기 위해 자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형이 동생을
한대 때리고 달아나자 형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지하철은 총정로역에 도착
했고 물 밀듯 밀려온 승객들이
얼른 그 아이의 자리에까지 앉아
버렸다. 화가 난 어머니는 아이
들을 향해 “내가 못살아, 정말.
엄마가 그냥 앉아 있으랬잖아”
라며 화를 냈다.
별반 신기할 것도 없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이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행동이 과연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녀들은 어머니가 푸념을 하면
귀담아 듣지 않는 척한다. 그러
나 그들 가슴속애는 그 말이 못
이 되어 깊이 박히게 된다. 그리
고 부모에게 물행한 일이 생기면
어머니의 ‘내가 못살아’라는
말은 자녀의 죄책감으로 되살아
난다.
아이들은 겉으로 부모의 말을
흘려듣는 것 같지만 부모의 말은
아이의 가슴에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어머니의
말 때문에 쓸데없는 죄책감에 빠
져 겉은 멀쩡하지만 마음은 불행
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이가 잘못하면 그 잘못에 대
해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어머니가 푸념으로
“내가 못살아”라고 말하는 것
은 좋지 않다. 당장 문제를 일으
키지 않더라도 장차 자녀를 망치
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
이다.
“누가 너더러 그런 일 하라
고 했어?”
영지는 모처럼 어머니 칭찬을
받기 위해 설거지를 했다. 그러
나 집안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보
니 서툴러서 그만 그릇 하나를
놓쳐버렸다. 다행히 그릇이 깨지
지는 않았지만 방 정리를 하던
영지 어머니는 밖에서 그릇 떨어
지는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 “아니,누가 너더러
그런 일하라고 했어?”하며 소리
를 질렀다.
영지는 어머니를 위해 설거지를
한 자신에게 칭찬은 커녕 소리나
질러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지는 요리하고 설거지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어머
니는 영지가 주방에 들어가는 것
이 싫었다.
영지 어머니는 방송 기자가 되
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여러 차례 입사시험을 치렀지만
모두 낙방하고 말았다. 포기하고
결혼을 했지만 그때 그 열망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영지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지
를 방송 기자로 만들고 싶었다.
영지 어머니는 학창 시절 몸이
약한 어머니 대신 자신이 집안
일을 도맡아야만 했다. 영지 어
머니는 지금도 자신이 집안일을
하는 대신 공부만 열심히 했다면
방송 기자가 될 수 있었을 것으
로 믿고 있다.
그러나 영지는 어머니 생각과는
달리 요리가 재미있어 어떻게든
주방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어머니를 위해 설
거지를 하면 칭찬을 받을 텐데
반대로 부엌일을 하지 못하게 하
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
다.
기엽이는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였다. 툭하면 시
계를 뜯어놓더니 이번에는 얼마
전 아버지가 새로 사준 컴퓨터를
뜯다가 못 쓰게 만들어버렸다.
중소기업의 말단 사원인 기엽이
아버지로서는 기엽이를 위해 몇
달을 모은 돈으로 사준 컴퓨터인
데, 기엽이가 뜯어버려 못 쓰게
되어서 몹시 화가 났다.
“컴퓨터가 어디 한두 푼짜리
야? 아빠가 그 컴퓨터를 사느라
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
실을 알게 된 기엽이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기엽이에게
심하게 화를 냈다.
“이제 한 번만 더 이런 거 만
지면 집에서 쫓아내버릴 거야!”
기엽이는 고개를 숙인 채 듣고
만 있었다. 그러나 기엽이는 다
음날부터 뜯어놓은 컴퓨터를 고
치기 위해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
을 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컴퓨
터를 다시 쓸수 있게 만들어 놓
았다. 그러나 기엽이 아버지는
그러한 기엽이의 행동에 대해 칭
찬을 해주기는 커녕 “아빠 말을
뭘로 아는 거야? 아빠가 이런 거
다시는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하면서 오히려 화를 냈다.
완고하고 권위주의적인 기엽이
아버지는 기엽이가 자신의 명령
을 어겼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기엽이 어머니도
기엽이가 툭하면 시계다, 녹음기
다 기계만 있으면 뜯어버려 못
쓰게 만들더니 그 비싼 컴퓨터까
지 고장낸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
에 이번 기회에 혼을 내어 다시
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주기를
바라며 남편과 합세해 기엽이를
꾸짖었다.
그날 이후 기엽이는 차츰 집에
서 놀지 않고 밖으로 돌았다. 땀
을 뻘뻘 흘리며 모든 노력을 다
동원해서 컴퓨터를 고쳐 놓았는
데도 부모가 화를 내자 부모에게
몹시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PC
방에 박혀 있는 날이 점차 늘었
다. 자연히 성적이 떨어지고 부
모말도 안 들었다. 차츰 기엽이
부모는 기엽이를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기엽이는 “아빠가 사준
것 부수지 않았는데 왜 그러세
요?”하며 대들기까지 했다.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음식을
못 만드니?”
후배 수진이는 결혼 10년이 넘
었지만 라면 하나도 맛있게 꿇일
줄을 몰랐다. 어쩌다 그애 집에
가면 중국 음식을 시켜다 먹어야
만 한다. 중년이 되어가면서도
그애는 아예 요리방법을 개선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수진이 남편은 아내의 요리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굶는게 낫다
고 말할 정도였다. 수진이의 요
리 솜씨는 부부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수진이가 원래부터 요리
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
다. 수진이 말에 의하면 어렸을
때 어느 날인가 재미있을 것 같
아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만들었
는데 어머니가 “누가 너더러 그
런거 하라고 했어? 이런 것 누가
먹는다구. 내다버려”하며 야단
을 쳤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수진이는 ‘나는 요
리를 못 해’라고 믿게 되었다.
정작 요리를 해야 할 결혼 적령
기가 되어 이번에는 어머니가 요
리를 배우도록 권했지만 수진이
는 끝내 듣지 않아쓰ㅇ며 중년이
되도록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아
남편과 갈등을 빚는 원인으로 까
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 남자아이들
은 어려서부터 기계를 뜯거나 부
셔놓기 일쑤다. 내게도 장난꾸러
기 남자아이가 있어서 그걸 싫도
록 경험했다. 큰아이 창연이가
유치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회사에 돌아와보니 아
이가 겁에 질려 있었다. 파출부
아주머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
었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호기심이 많은 큰 아이는
‘쇠로 된 냄비나 솥은 가스 불
에 올려놓고 요리를 하는데 플라
스틱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몹시 궁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줌마가 빨래를 널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해 가스 불을 켜
고 플라스틱 바구니를 올려 놓았
다. 불꽃이 확 번지면서 독한 냄
새가 났다. 아이는 자기가 저지
른 일에 노라 울면서 주방에서
뛰쳐 나왔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에 놀란 아
주머니는 안으로 뛰어들어와 그
광경을 보았고 너무나 놀란 아이
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한
다. 아이는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더 큰 야단을 맞을까봐 기
가 푹 죽은 채 내가 퇴근했는데
도 전혀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견에 대한 이
야기를 듣고 재미있어서 크게 웃
으며 “우리 창연이가 오늘 큰일
하나 냈군. 불에다 그런 거 올려
놓는 건 위험하니까 그걸 알았다
면 다음부터는 조심해”라고 말
해 주었다. 머럭 소리를 지른 아
주머니와 다른 나의 반응에 어리
둥절한 표정이었던 아이는 곧 크
게 안도했다.
나의 이런 반응 때문에 우리 아
이들은 지금도 “우리 엄마는 만
약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그래 좋은 경험이야. 다음부터
조심해’라고 할 것이다”고 말
하곤 한다.
아이들이 모처럼 새롭게 시도한
일에 대해 “누가 너더러 그런일
하라고 했어?” 하며 화를 내면
아이들의 호기심은 상처를 받는
다. 아이들의 창의적인 의욕이
꺾이는 것은 물론 심하면 반발심
이 생겨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반
항할 수도 있다. 아이의 호기심
을 꺾지 않고 주의할 수 있도록
적절히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 때문이야”
“저도 알아요. 애를 때리는 게
얼마나 나쁜지. 그래도 살기 힘
들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이혼 후
혼자서 가계를 꾸리면서 자녀를
상습적으로 때려 그 죄핵감에 시
달리던 한 여성이 라디오 주부
프로그램에 전화를 해 흐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애만 없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녀는 결혼 5년 만에 바람난
남편의 요구로 이혼하고 하나밖
에 없던 다섯 살 난 아들과 단둘
이 살게 되었다. 혼자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위자료로 받은 돈을
털어서 동제 어귀에 작은 피자집
을 차렸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으로 사업을 시작하는데다 변변
하게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아들
이 칭얼대며 쫓아다녀 여간 방해
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스트레
스가 있는 대로 쌓였다.
그녀는 화가 날 때마다 아이를
때려주었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어린것을 심하게 때렸다는 죄책
감 때문에 아이를 붙들고 울었
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아이
도 어머니에게 정을 잃었다. 유
치원에 막 입학한 아들은 더 이
상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려고 하
지 않는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상담을 요청한 것이
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부부로 맞벌
이를 하는 민청수 씨는 미시족을
자처하는 소위 386세대(30대나
이,80년대 학번,60년대 촐생) 여
성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기
르는 전업주부보다는 그냥 일하
면서 결혼생활을 하는 직장여성
이고 싶었다. 게다가 친정 어머
니도 일찍 돌아가시고 안 계시기
때문에 아기를 마음놓고 맡길 만
한 곳도 없었다.
시어머니는 시누이가 해외 출장
이 잦은 패션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집 아이들을 맡아 길러주고
있어 민청수 씨네까지 마음놓고
아기를 맡길 처지는 아니어서 아
예 아기를 낳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인 최수영 씨의 생각
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아기를 좋아한 그는
아내인 민청수 씨가 생각하는 현
실적인 어려움과 관계없이 아기
를 낳으려 들지 않는 아내에게
불만이 많았다. 또한 그는 외아
들이었으며 부모님께서 손주를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면서 목을
빼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반드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 부부사이에는 아기 문제가
가정 불화의 씨앗이었다. 민청수
씨는 피임에 매우 철저했다. 그
런데 결혼 5년만에 다행인지 불
행인지 실수로 아기가 생기고 말
았다. 마음이 모진 편이 못되는
민청수 씨는 이미 생긴 아이를
없애지는 못했고 결국 아들을 낳
았다.
시부모는 몹시 기뻐했지만 시누
이가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민
청수 씨의 아이를 맡아 기르지
못하고 여전히 시누이네 아이들
을 돌보아야만 했다. 아기가 태
어난 후무터 문제는 커졌다.
아기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민
청수 씨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을 걷는 것 같았다. 민청수 씨는
자기도 모르게 툭하면 “너만 아
니었으면” 하며 아이에게 입버
릇처럼 말하곤 했다. 민청수 씨
는 아들이 빨리 자라 유치원에
맡길 수 있는 날만 기다렸다. 그
러나 아들 석구는 유치원에 다니
면서부터 툭하면 유치원 애들을
두들겨 패 하루도 민청수 씨를
편하게 해주는 날이 없었다.
그들 부부는 아이 문제 때문에
다투는 일이 많아 날로 사이가
나빠지더니 이제는 가정 내 별거
에 들어갔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가 통제하기 힘들 만큼 제멋
대로 행동했다.
내 친구 명옥이는 아버지가 술
만 마시면 매를 들어 어려서부터
엄청나게 맞고 자랐다. 명옥이
아버지는 당시 대학을 나온 인텔
리였는데 사회에 적응을 못 해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로서는 흔
하지 않은 연애 결혼을 했는데
사실은 명옥이 어머니를 사랑해
서가 아니라 어쩌다 실수해서 명
옥이가 생기는 바람에 원하지 않
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술만 마시면 명옥이를 때렸다고
한다.
실제로 명옥이 아버지는 종종
말없이 집을 나갔다가 잊을 만하
면 집에 나타나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표시했다. 명옥이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그런 태도
를 견디기 힘들면 명옥이 앞에서
“너 때문에.......”라며 흐느껴
울곤 했다.
명옥이에게는 동생이 둘 있는
데, 적어도 명옥이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동생들에게는 그런 말
을 한 적이 없었다. 유독 명옥이
에게만 그런 식으로 대했다. 그
때문에 명옥이는 사춘기를 누구
보다 힘들게 보냈다. 그녀의 절
망감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
람이 태어났다’는데 있었다.
명옥이는 결국 불행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아직
도 친구들은 그녀의 죽음을 두고
“자살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
하기도 한다. 명옥이는 타고난
강골인데다 결혼도 하기 전인 30
살을 갓 넘긴 나이로 느닷없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명옥이는 머리가 좋고 영특해
제대로 그 실력을 발휘할 수만
있었다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
을 것이다. 그러나 명옥이는 연
극을 하겠다며 어둡고 칙칙한 창
고에서 먹고 자면서 고생만 하다
가 어느 날 술을 한꺼번에 몽땅
마신 후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명옥이는 술에 취해 사는 날이
많았는데 명옥이와 가끔 만날수
있던 친구들은 명옥이가 늘 “나
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었어”라는 말을 했으며 “내가
없어지면 행복해질 사람이 많
아”라고 입버릇처럼 덧붙였다고
전해주었다.
혜졍이는 안방 앞을 지나다가
어머니가 손님에게 하는 말을 들
었다.
“그 애가 태어난 다음부터 집
이 기울었지요. 점쟁이도 그렇게
말하더라니까요.”
혜경이는 그 애가 바로 자신이
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혜경
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해보이고
는 방 앞을 지나쳐버렸다.
혜경이네는 경기도 지역에서 벽
지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1999년 경기도 지역에 난 큰 홍
수로 공장이 완전히 물에 잠겨버
렸다. 공장 안에는 그 동안 행산
해둔 종이가 많았다. 그 해에는
경제 위기가 차츰 화복되면서 모
처럼 종이 주문이 늘었고, 혜경
이 아버지는 가을 성수기를 겨냥
해 융자까지 받아서 종이 생산을
늘렸다. 그렇게 만들어 둔 종이
들이 몽땅 물에 떠내려가게 된
것이다. 종이를 납품하고 대금을
받으면 융자를 갚으려고 했었는
데 큼 차질이 빚어졌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그렇듯 어
음이 부도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게 돼 담보로 잡힌 살림집
까지 내놓게 되었다. 빚쟁이들이
뻔질나게 집을 드나들었다. 혜경
이 어머니는 빚쟁이들에게 변명
을 늘어놓으면서 점쟁이가 했다
는 혜경이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
다.
혜경이 어머니 말로는 혜경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 한다. 공장도 키우고
수입도 나날이 늘어 남부럽지 않
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
내인 혜경이가 태어난 후에는 웬
일인지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더니
혜경이가 열 살이 되자 마침내
공장이 물에 떠내려가 쫄딱 망하
게 되었다는 것이다.
혜경이 어머니는 유난히 점 보
기를 좋아해 점쟁이 말이라면 무
조건 믿었다. 점쟁이가 혜경이를
두고 초년운이 나쁜 아이여서 그
애가 태어난 후 집안이 기울 거
라고 말하자, 혜경이 어머니는
그 말에 현혹되어 혜경이에게 못
된 계모처럼 굴었다. 아이가 받
을 상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도 함부로 하곤 했다.
혜경이는 그 전까지는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집안
이 망함과 동시에 어머니로부터
구박을 받기 시작하명서 성적은
날로 떨어졌으며 툭하면 말썽을
부려 교사의 꾸지람을 도맡아 들
었다.
체육복을 가지고 오지 않아 운
동장을 스무 바퀴씩 도는 벌을
받는가 하면 엉덩이를 여러 대
맞는 벌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교사가 아무리 심하게 야단을 쳐
도 말을 듣지 않자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기르면서 어떤 경우에도
‘너 때문에’라는 말은 하지 말
아야 한다. 이 세상에 누구 때문
이라는 것은 없다. 아이는 스스
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낳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
다.
“이 바보야, 그것도 못
해”
“나는 바보라서 죽어야 돼.”
초등학교 5학년인 경철이가 한
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방과 후 경철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정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오늘도 화분을 깼거든.”
경철이는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
했다.
“그래도 죽기는 왜 죽니? 그리
고 네가 왜 바보야? 너는 아는것
도 많잖아.”
정미는 갑자기 경철이가 불쌍하
게 보여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가 그랬어. 나는 화분 하
나도 못 옮기는 바보라고.”
경철이는 다시 한 번 한숨을 길
게 내쉬었다. 정미는 어떻게든
경철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너는 바보가 아냐. 화분이 얼
마나 무거운데.”
“아빠는 나보다 화분을 더 좋
아해.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
이 너무 많아. 그런데도 아빠는
회사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베란다로 먼
저 쫓아나가서는 ‘아이구, 내
새끼들 잘 있었니?’라고 하
셔.”
“우리 아빠도 화분은 좋아
해.”
경철이는 기운 없이 피식 웃었
다.
“그렇지만 화분을 깼다고 너한
테 바보라고 말씀하시진 않잖
아.”
“우리 아빠는 나한테 화분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셔.”
정미도 한숨을 내쉬었다.
정미와 경철이는 일산의 별빛마
을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다. 두 아이의 아
버지는 같은 증권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가족들과도 모두 친한 편
이다. 아버지들의 취미도 비슷해
경철이 아버지는 난을 좋아하고
정미 아버지는 분재를 좋아한다.
두 집의 아파트 베란다에는 화초
로 가득 차 있다.
경철이 아버지는 넓은 베란다에
화분을 기를 수 있어 좋다며 여
의도 집을 팔아 일산으로 이사했
다. 정미 아버지는 친구인 경철
이 아버지의 권유로 이사를 하게
됐다. 경철이 아버지는 이사후
화분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한편
틈나는 대로 새로운 화분을 사들
여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경철
이 어머니는 그러한 남편의 태도
를 좋아하지 않아 화분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
다.
그렇게 화분을 좋아하는 경철이
아버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화분
을 잘못 다루면 불호령을 내렸
다. 그러나 며칠 전 무거운 화분
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경철이
아버지는 장남인 경철이에게 화
분 옮기는 일을 돕도록 했다.
경철이 아버지는 아내가 자신의
취미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화분 만
지는 일을 못 하게 하고 대신 경
철이를 시킨 것이다. 경철이는
아버지가 얼마나 화분을 아끼는
지 잘 알고 있어서 화분 옮기기
를 도울 때마다 긴장을 했다.
이사 후 처음 아버지의 화분을
다루게 된 그날, 경철이는 너무
나 긴장을 한 나머지 화분을 들
고 일어서다가 중심을 잃고는 뒷
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화분 세
개를 동시에 깨트리고 말았다.
경철이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이 바보야, 그것 하나도 못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경철이 아버지는 경철이가 잘못
을 저지를 때마다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이 바보야,
그것도 못 해!”라고 말하곤 했
다.
사실 경철이는 덜렁대는 성격의
전형적인 개구쟁이긴 했다. 실내
에 들어와서도 생각 없이 뛰다가
도자기를 깨트리거나 탁자위의
재떨이나 책을 떨어트리기 일쑤
였다. 여의도의 좁은 아파트에서
살 때는 하루도 탈없이 지나는
날이 없었다.
경철이 아버지는 꼼꼼한데다 완
벽주의자여서 이처럼 덜렁대는
경철이를 못마땅해졌다. 경철이
아버지는 회사일이 바빠서 평일
에는 집에 일찍 들어오지 못했
다. 그러나 휴일이면 다른 집 아
버지들처럼 골프나 낚시를 간다
며 외출하는 대신 집에서 화분을
돌보기 때문에 다른 집 아버지보
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경철이는 아버지가 집에
머무는 휴일이면 매우 불편했다.
아버지는 경철이를 나가 놀지도
못하게 하고 화분 손질하는 일을
돕도록 했고 조금만 잘못하면
“이 바보야. 그것도 못해?”라
며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경철이는 잘못해서 물건을 깨트
리거나 어머니가 휴지나 간장,
파 같은 것을 사오라고 하면 그
중 하나를 빠트릴 때가 많았다.
경철이는 그때마다 “맞아, 나는
바보야. 그러니까 또 빠트렸지”
라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그 때
문에 주고 싶다고도 한다. 경철
이는 아직 어린데도 벌써부터 매
사에 자포자기하는 태도를 보이
고 있는 것이다.
초등하교 4학년인 성기는 오늘
도 같은 반 여자 친구 희윤이에
게 매를 맞고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희윤이는 같은 반 아
이들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다.
힘도 더 셌다. 희윤이는 특히 얼
굴이 희고 나약한 남자애들만 골
라 팼다.
그 중에서도 성기는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리 엄마가 알면 혼
나”라고 말해 희윤이의 미움을
제일 많이 받았다. 희윤이는 그
렇게 말하는 남자아이들을 보면
괜히 미워했다.
희윤이는 번쩍번쩍하는 가죽옷
과 넓은 벨트를 착용하고 학교에
나타나기도해 친구들은 그 애를
‘지존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기 어머니는 여자애에게 맞고
얼굴에 멍이 들어 집에 들어오는
아들만 보면 속이 상해 참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성기 아버지
는 그러한 성기를 향해 “이 바
보야. 그래 계집애한톄 맞고 찔
찔 짜고 들어와? 계집애를 한 대
갈겨줄 수도 없단 말야?” 라고
말했다.
성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맞고 들어와 억울해하는 아이에
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편에게
“계집애도 계집애 나름이지”하
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성기는
아버지로부터 ‘바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는 진짜 ‘바
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 말한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그런 건 말하
나마나 안 되는 일이야. 그 많은
예산을 퍽도 주겠다.”라며 찬물
을 끼얹곤 했다. 직원들은 차츰
그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딴
청을 부리거나 입을 다물게 되었
다.
성심껏 말을 해봐야 그 한마디
로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기 일쑤
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야유회날이
었다. 직원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모였다. 계곡의 물은 맑고 시원
했으며 날씨는 화사했다. 직원
자녀 중 한 아이가 신나게 뛰어
다니다가 계곡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모든 직원들은 놀라 그 아이가
물에서 나올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이를 물에서 건져낸 후 아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
자 그 직원은 자녀 때문에 동료
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
했는지 아이를 향해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하며 아들에게 대고
혀를 찼다.
우연히 그 직원 옆에 있게 된
상사는 화를 버럭내며 “어린에
에게 바보라고 말하는게 아니
야”라고 했다. 직원들은 상사의
그러한 반응에 아연 놀랐다. 화
를 내는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꼈
기 때문이다.
그날 야유회에서 술에 취한 그
상사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에
게서 “밥통아” “이 바보야.
너는 그것도 못 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 자신은 자신감
이 없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면서 아이들에게 ‘바보’
라고 말하지 말라는 일장 훈시를
늘어놓았다. 자기는 원래 활달하
고 적극적인 아이였다고 덧붙이
기까지 했다.
그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채도
때문에 큰일을 해내지 못해 한직
으로만 돌다가 정년퇴직을 10년
남겨둔 40대후반에 명퇴당하고
말았다. 그는 머리도 좋고 아이
디어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어 주변의 비난을 받
곤 했다. 무슨 연유로 그의 부모
가 그에게 ‘바보’라는 낙인을
찍어주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그에게 말한 ‘바
보’라는 말이 아들의 능력을 위
축시킨 주범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부모
의 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
녀들에게 부모는 자신이 의지하
고 살아야 하는 신과 같은 존재
이기 때문에 부모가 내리는 평가
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
다. 부모나 교사가 반복적으로
자녀에게 “바보야. 그것도 못
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자기
도 모르게 “나에게는 능력이 없
다‘고 단정지을수 있다. 자녀의
능력을 위축시키는 독이 되는 것
이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
니다.”
“아니, 왜요?”
“저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셔
서........”
“어머니는 다 그렇지요.”
“지금 80세가 다 되셨는데도
아직도 아침마다 전화해서 저한
테 ‘차 조심해라’‘정직하게
살아라’‘밥 잘 챙겨 먹어라’
라고 말씀하시지요.”
“선생님은 참 행복하시겠어
요.”
“지금도 어머니와 통화가 안
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
요.”
환갑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다
국적기업 사장 한 분과 이런 대
화를 나누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눈물겨웠다. 그는
미국의 동부지역에서 성공한 비
즈니스맨으로 꼽히는 사람이었
다. 그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의 잘 나가는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 뽑혔다. 그런데 그는
사장으로 앉은 지 얼마 되지 않
아 곧 회사에서 물러나게 되었
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당시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했
다. 세 번 이혼하고 그때에는 혼
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 없
이 직업까지 잃은 그를 사람들은
동정했다.
나는 그가 어머니에 관한 말을
했을 때 돼 그처럼 직장이나 결
혼 생활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걸림
돌은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그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연세
가 80세라면 누구나 노쇠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노쇠했다는 사실
마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
의 효심은 눈물겨웠지만 나에게
는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
다. 그와 결혼한 여성들은 그 남
자의 아내 자리를 어머니가 차지
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
내들은 마치 자신이 숨겨진 애인
정도의 위치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결혼
한 그의 아내에게 소외감을 느끼
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에게 여러 차례 둘어본 이야
기를 한꺼번에 요약해보면 그의
어머니는 젊어서 혼자가 되셨다.
그에게는 달랑 형 한 사람만이
있었는에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두 형제를 훌륭하게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어머니의
노력에 힘입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학교에 합격했고 대학 때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까
지 갈 수가 있었다.
형은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주지
못해 어머니의 관심영역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형은 평범한 샐
러리맨으로 일가를 이루었고, 동
생이 미국으로 간 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
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미국
으로 건너와서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것 같아 늘 죄스러웠다.
게다가 형네 집에서 함께 살지
않고 혼자 사는 어머니가 늘 안
쓰러워 그의 가슴속에는 어머니
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
다. 그는 매일 국제 전화로 어머
니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너만 믿는다. 너는 내 인
생의 전부야”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그는 모르긴 해도 어머니
가 돌아가실 때까지 재혼은 못
할 것 같았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반대하
자는 말은 아니다. 자녀가 자라
면 어머니는 그저 그림자로 물러
서야 하며, 아들의 날개를 움켜
쥐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
기 위해서는 어머니에게도 어머
니의 인생이 있어야만 한다. 자
녀에게만 의지하고 인생을 비치
면 성년이 된 자녀와 거리를 두
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홀어머니의 외아들과 결혼한 교
민 여성이 울면서 말했다.
“미치겠어요. 망령난 우리 시
어머니께서 아들만 보면 자꾸 옷
을 다 벗어버리세요. 망측하기도
하고 참을 수가 없어요.”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된 시어머니는 오로지 그 아들
하나만 의지하면서 일생을 살아
오셨다고 한다. 딸들은 고등학교
도 졸업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평
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대신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의사가 되
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이 아들
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그러
나 아들이 미국 이민을 한 후 소
식이 없자 어머니는 망령이 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가 안쓰러
워 어머니를 미국으로 오시도록
했는데 며느리는 시어먼의 이상
한 행동 때문에 힘들어했다.
나는 아까운 인재들이 성년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푼안을 떠나
지 못 해 중년 이후 능력을 사장
시키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
았다. 현명하고 강인한 어머니라
고 해도 자녀를 어머니의 틀에
끼워 맞추면 자녀가 크게 자라기
어려운 것이다. 어릴 적의 자녀
는 보호할 수 있지만 다 자란 자
녀에게는 어머니의 보호가 오히
려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자
녀를 일찍 놓아주는 어머니가 자
녀를 정말로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지나치게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며 헌
신적으로 뒷바라지한다. 그 때문
에 ‘만약 자녀가 나를 배신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감에 시
달리게 된다. 어떤 어머니는 수
시로 “넌는 나의 전부야”“나
한테는 너밖에 없다”라고 말한
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강인한 어
머니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을 송두리째 자녀에게만 걸
면 성인이 된 자녀에게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자
신을 몽땅 희생하지 않는 부모의
자녀들은 독립심이 강하고 부모
에 대한 부담없이 잘 지낸다.
“너 이 다음에 엄마랑 한 집에
서 살래?”
“그럼요. 엄마하고 살지 누구
랑 살겠어요?”
“아이구. 지금이야 그렇게 말
하겠지만 이 다음에 색시나 얻어
보라지. 엄마가 따라올까봐 걱정
하겠지?”
“엄마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
세요? 나는 평생 엄마랑 살 거
야.”
우성이는 숨까지 식식애며 대답
했다. 전업 주부인 민혜숙씨는
초등학교에 이제 막 입학한 아들
이 집으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
기만 하면 아들을 붙들고 이와
같은 다짐을 했다.
물론 아들은 한결같이 어머니랑
같이 살겠다고 대답했다. 민혜숙
씨는 아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뻔히 알면서도 아들의 입을 통해
‘엄마하고 같이 살 거다’라는
말을 확인 해야만 마음이 놓였
다. 그것은 아마 지금 자신의 어
머니가 처한 상황 때문일 것이
다.
그녀의 팔순 친정어머니는 지금
이른바 ‘집시 노인’이 되었다.
셋이나 되는 오빠들이 서로 어머
니를 모시지 않으려고 해 돌아가
면서 1년씩 오빠들 집을 전전하
기 때문이다. 민혜숙씨는 맏며느
리여서 친정어머니를 모실 수 없
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 자주
한숨을 내쉰다.
가끔은 남편을 향해 “딸 자식
은 자식이 아닌가, 뭐?”하며 푸
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녀는
맏며느리지만 시부모를 모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부모도 모시지
않는 맏며느리가 친정어머니를
모셔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민혜숙씨가 친정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갑자기 입을 조
개처럼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도
자기 나름대로 장남으로서 부모
를 모시지 않고 따로 사는 일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
는 듯했다. 결국 두 사람이 느끼
는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쏟아진
다.
우성이는 어머니가 “이 다음에
누구하고 살 거지? 나한테는 우
성이 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듣기 싫다고 했다. 어
머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당
연히 어머니를 모시고 살 텐데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어
머니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성이는 어머니의 그
말에 벌써부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부모 자녀 간은 가장 자연
스러운 관계일 때 서로에게 부담
감을 주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
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부모때
문에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다면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
라고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아
이는 자신의 노후를 위해 존재하
는 부속물도, 위안거리도 아니다.
“아니, 그게 뭐야?”
“아니, 그게 뭐야? 그런 걸 창
피해서 어떻게 학교에 가지고 가
려고 그래?”
윤상이 어머니는 윤상이가 내미
는 동물 탈을 보고 이렇게 말했
다.
“그럼 엄마가 그려줘. 난 못
하겠단 말야.”
윤상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
다.
“알았어. 물감이랑 종이 가져
와.”
윤상이 어머니는 윤상이가 그릴
재료들을 가져오자 자신이 직접
온 정성을 다 기울여 토끼 가면
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 그럼 나는 나가 놀다올
게.”
“알았어. 빨리 들어와.”
초등학교 1학년 윤상이는 횡 하
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밖에서
실컷 놀다 돌아오면 어머니가 숙
제를 다 해놓을 것을 알기 때문
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윤상이네 학교에서는 1학년 학
생들에게 이야기책 내용에 맞추
어 아이들이 탈을 만들어 쓰고
연극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탈을 만드는 숙제를 해야
만 했다. 윤상이는 그리기를 좋
아하지는 않았지만 만들기가 재
미있어서 콧등에 땀이 송송 돋도
록 열심히 동물 탈을 만들었다.
그토록 열심히 탈을 완성한 자
신이 스스로 대견해 탈이 완성되
자 곧바로 어머니에게 들고 갔
다. 그러나 윤상이 어머니는 아
무리 보아도 토끼로 보이지 않는
그 탈을 학교에 가져가 아들이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
었고, 결국 자신이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이 되풀
이되자 윤상이는 만들기 숙제는
으레 어머니가 해야 한다고 생각
하기 시작했다.
윤상이와 같은 반인 슬기네 어
머니는 잡지사 기자다. 슬기 어
머니 김숙현씨는 딸 슬기가 직접
만든 동물 탈을 살펴보았다. 아
무리 보아도 슬기가 주장하는 고
양이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슬
기에게 “아이구, 잘 만들었네”
라고 말하며 동물 탈을 건네주었
다.
슬기는 “아니야, 이건 고양이
가 아냐”하며 화를 냈다. 슬기
는 자기가 만등 탈이 마음에 들
지 않았던 것이다. 김숙현씨는
“그러면 어때? 잘만 그렸는데
그냥 가지고 가”라고 말했다.
슬기의 미덥지 않아 하던 표정은
차츰 웃음으로 바뀌었다. 슬기는
어머니에게 흔쾌히 “알았어”라
고 말했다.
그러나 그 탈을 학교에 가져간
슬기는 교사로부터 “네 눈에는
그게 고양이 같니? 내가 보니까
쥐 같구만”이라는 핀잔을 들었
다. 교사는 슬기에게 고양이 탈
을 다시 만들라고 했다. 슬기는
밤늦게 퇴근한 어머니를 보자 눈
물을 뚝뚝 흘리며“그것 봐. 내
가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했
잖아”라고 말했다.
월간 잡지의 원고마감 기간이어
서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힘
들게 일하고 돌아온 김숙현씨는
슬기의 말을 듣자 교사에게 왈칵
화가 났다. “아니, 애들이 그 정
도 그렸으면 됐지. 어쩌라고. 참
나”하며 슬기 앞에서 교사를 비
난했다.
그후부터 슬기는 학교숙제를 혼
자서 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툭하
면 어머니를 흉내내어 담임교사
를 못마땅해하는 말을 하곤 했
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열린교육이
확대되면서 암기 교욱에 치중하
던 옛날과는 달리 만들기, 말하
기, 행동하기 등등 스스로 움직
이고 생각하며 놀이하듯 즐기는
교육을 권장한다. 그런데 취지는
훌륭하지만 가끔 아이들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과제물이 나올 때
가 있고, 부모는 남의 아이에게
기죽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
에 숙제를 대신 떠맡는다. 그러
다 보니 만들기나 그리기 숙제는
어머니들의 차지가 된 경우가 많
다. 일이 많고 귀찮을 수밖에 없
다.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이 만들
면 서툰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규격에 맞추어 만들려고 한
다. 그것은 곧 부모와 함께 만들
라는 요구가 된다. 아이들은 점
차 만들기를 외면하게 되고 스스
로 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
다.
아이들은 스폰지와 같다. 어른
의 사소한 한마디가 아이의 가슴
깊이 스며들어 그 아이의 일생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들어
가기 전까지는 그리기를 좋아했
으며 그림도 잘 그려 우리가 살
던 원주지역에서 활약하던 한화
가에게 다섯 살 때부터 미술지도
를 받았다. 미술을 지도해준 화
가가 “하늘을 그려봐”라고 말
하면 별이나 해, 달, 귀신을 그리
는 다른 애들과 달리 비행기를
그려 자주 칭찬을 받곤 했다. 인
상작용과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때 한
담임교사가 실물처럼 그림을 그
리지 않는 우리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가 낸 그림을 보고는
“애걔, 그것도 그림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아이가 그림에 갖던 흥
미를 일시에 사라지도록 만들었
다. 아이는 이제껏 칭찬받던 것
과는 달리 담임선생이 실망하는
태도를 직선적으로 보이자 자신
감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는 그후부터 절대 그리기를
하려고 들지 않아 미술 숙제를
할 때마다 나와 실랑이를 벌여야
만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
금까지도 작은아이는 “나는 그
림을 못 그려”라고 말한다. 아
이가 그리기에 자신 없어 할 때
마다 나는 그때 말 한마디로 아
이의 흥미를 잃게 한 교사가 원
망스러웠다.
어른들은 체면을 중요시하며 아
이들도 어른처럼 사실적으로 그
리거나 만들어야만 그게 정말 잘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그렇게 할
수 없기도 하고, 또 아이들의 퐁
부한 상상력이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한 사
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진정한
열린교육이 가능해질 텐데, 그걸
모르는 교사나 부모가 많다.
또 무신경한 말 몇 마디로 자녀
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은 말
이라고 생각하지만, “애걔, 그게
뭐야?”라는 말 한마디가 자녀에
게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많다.
“선배, 나는 치마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워. 나는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거든.”
얼굴이 갸름하고 유난히 흰 진
영이가 말했다. 진영이는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코스모스 같은
해맑은 소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왜? 너 날씬하잖아. 난
네가 치마를 싫어해서 바지만 입
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냐. 다리가 무다리여
서 내놓기 창피해.”
“얼마나 심하길래?”
“하여튼 치마는 절대 입을 수
없어.”
진영이는 화사한 봄 주말에 하
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거리를 누
비는 여성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그해
에는 유난히 하늘하늘한 천으로
만든 샤넬 라인의 치마가 유행이
었다. 그러던 진영이가 출퇴근을
고려해 신당동에서 나와 같은 여
의도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
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우리 아
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중 목욕
탕에서 진영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진영이가 ‘무다리여서 절
대 치마를 입을 수 없다’고 말
한게 생각나 나도 모르게 진영이
다리부터 살피게 되었다. 그러나
진영이 다리는 내 다리보다 더
곧고 날씬했다.
오히려 무릎에서부터 약간 휜다
리를 하고도 줄기차게 치마를 입
고 다니는 나를 놀린 것이 아닐
까, 하는 생각에 사뭇 분하기까
지 했다.
“다리가 어때서 그래? 이쁘기
만 한데.”
“어머 아니에요, 내 다리가 무
다리라니까요.”
진영이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
다.
나는 나중에 진영이에게서 자초
지종을 듣고 난 후에야 진영이가
돼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
었다. 진영이 어머니는 알려진
미인에다 멋쟁이였다. 진영이에
게는 언니와 여동생, 이렇게 해
서 세 자매가 나란히 있고 아래
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언니
와 여동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머니를 많이 닮았는데 진영이
만 아버지를 닮아 다른 자매들과
다르게 생겼단다. 진영이 어머니
는 그러한 진영이의 외모에 불만
이 많았다.
그래서 진영이가 어려서부터 꽃
무늬에 레이스가 많이 달린 여성
스러운 옷이라도 입으려고 하면
“아이구, 여자애가 다리가 그게
뭐야. 그 다리를 해 가지고 어떻
게 치마를 입어”라며 핀잔을 주
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멋쟁
이 어머니와 대비가 되니 자기가
봐도 다리가 무다리처럼 느껴질
만했다. 그후부터 진영이는 치마
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신체에 대해 갖
는 편견은 자녀들에게 평생 신체
에 대한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가
게 만든다. 또한 자녀들이 열심
히 한 일에 대해 “아니, 그게
뭐야”라고 말하면 자녀로 하여
금 앞으로 더 이상 그 일을 계속
하지 말라는 뜻이 된다.
아이들이 그리거나 만들기 숙제
를 했을 때 결과가 어른의 마음
에 들지 않을지라도 함부로 “아
니, 그게 뭐야?”라고 말하지 않
아야 한다. 자녀의 숨겨진 재능
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독이 될
수 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열린교육
을 하려면 아이들이 서툴더라도
기다려주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동물 탈을 지접 만들어 가
면놀이를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집접 참여하는 즐거움,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호기심 발동 등
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저 탈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는가
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너는 할 수 있어”
“네? 제가 어떻게 그런 걸 해
요?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담임
교사가 역사시간에 나영이에게
앞에 나와 어제 본 TV 프로그램
내용을 요약해서 친구들에게 들
려주라고 지시하자 나영이는 온
몸을 흔들면서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 배울 단원이 ‘임진왜란’
이었는데 그 전날 TV 프로그램
에서 ‘임진왜란’을 다루엇기
때문에 교사는 햐ㄱ생들에게 미
리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라는 숙
제를 냈다. 물론 나영이도 그 프
로그램을 봤다. 하지만 나영이는
뜻밖에 담임교사가 자기를 지적
하며 발표를 하라고 하자 놀란
얼굴로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말
한 것이다.
원래 나영이는 TV 보기를 좋아
해 청소년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
그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그 내
용을 잘 알고 있었다. 자리에 앉
아 있는 때는 친구들에게 들려주
라고 말하자 이처럼 “나는 못
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고 일
선교사들은 말한다.
요즈음 젊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네가 최고
다”라고 너무 많이 추켜세워 그
런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
기 쉬운데 그건 오해다. 오히려
집에서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조금 어렵다
싶으면 서슴없이 “나는 못 해
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젊은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해주어 아이들 간에 공주병
이나 왕자병이 대유행을 하기도
했다. 겸손을 미덕으로 아는 기
성세대의 눈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물론 어린 자녀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
지만 공주병과 왕자병이 아이들
의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
라 “나는 잘생겼다. 나는 뭐든
지 가질 수 있다”라는 자만심을
심어줄 수 있어 문제가 된다. 자
신감은 자만심과 다르다.
“본인의 왜모 중 가장 자신 있
는 부분은 어디지요?”
선남선녀를 모아놓고 짝짓기하
는 <사랑의 스튜디오> 프로그램
에서는 출연 남녀에게 반드시 이
와 같은 질문을 한다.
이때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저
의 외모는 완벽하지만......”이라
거나 “모두 다 자랑할 만하지만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라며
자기 자랑을 서슴지 않는다.
TV 시청자 중에는 이런 이들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참 많
이 바뀌었다”며 혀를 차는 사람
들이 많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20대 젊
은이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어린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들은 그들
보다 더 대담하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겸손
을 모르는 버릇없는 태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을 높인 점은
크게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자만심은
높아졌는데 능력에 관한 자부심
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린 자녀들에게 집안일을 시킨
적도 없고 새로운 도전을 허용한
적도 없어 아이들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할 경우 자신감을 갖지 못
하고 서슴없이 “나는 못 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인텔 컴퓨터의 앤디 그로브스 사
장 같은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만
만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는 “내가 부자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남들보다
똑똑하다”라고 말하며, 앤디 그
로브스는 미국에서는 그다지 좋
은 학교로 치지 않는 뉴욕 시립
대학을 다녔지만 “나는 학비를
별기 위해 웨이터로 일하는 동안
경영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런 것을 배우려고 비싼 등록금
을 내는 학교에 들어가려는 사람
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공
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이처럼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은 그들처럼 자신감
에 가득 차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은 성공을
원하면 어려서부터 매일 거울을
보며“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
다. 내가 하는 일에 실패는 없
다”라고 외워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배웠기 때문에 겸손을 가르치려
고 애쓴다. 하지만 기를 살려준
다고 방치하기도 하는 그런 이중
적 태도가 자부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혼동을 주어 자부심 대신
자만심만 키워주는 경우가 많다.
“잘은 못 하지만 한번 해보겠
습니다.”
“제 성격이 좋지는 않지만 친
구는 많답니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맛있고
싼 식당을 알고 있으니까 저에게
연락해주시면 안내해드리겠습니
다.”
“배운 것은 없지만 한번 말을
해보겠습니다.”
“주제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
니다.”
어른들의 모임에서 발언하는 사
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서두
를 꺼낸다. 척 보기만 해도 우선
자신이 없다는 점을 앞세우는 말
이다. 이를 두고 겸손한 표현이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표
현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감을 억
제하는 작용을 한다.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의 말투를
배운다.
“나는 못 해요.”
“내가 어떻게 그런 걸 해요?”
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때 미국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에 견학을
갔다. 그곳에서 우리 작은아이는
안내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다음에 이 보잉사를
내 것으로 만들 거예요.”
안내원은 “이 회사는 세계적인
회사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안
내원에게 “우리 아이는 그렇게
할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라
고 말해주었다. 지금 우리 아이
는 대학 1학년 학생인데 회사 차
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아이가 잘 해낼 것을 믿는다. 본
인 자신이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이의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났다. 부모 몰래 못질을 하려고
장도리를 찾다가 연장통 안에 있
는 칼에 손가락을 찔려 버린 것
이다. 아이는 놀라서 소리를 지
르며 어두운 창고에서 밖으로 뛰
쳐나왔다.
강원도에 살 때, 우리는 지하에
큰 창고가 있는 이층집에 살았
다. 큰 아이는 틈만 나면 창고로
내려가 뭔가에 열중하곤 했다.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일
요일에도 근무를 하는 날이 많았
는데 그날은 내가 쉴 수 있는 일
요일이었다.
큰아이는 그날도 여전히 창고에
내려가 나무에 못질을 하려다 그
만 손가락을 다치고 만 것이다.
나는 아이가 놀랄까봐 가능한 한
침착한 얼굴로 “어쩌다 그랬어?
아프겠구나. 이리와”라고 말한
후 손가락을 소독하고 약을 말라
주엇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야단
맞을까봐 두려워하던 아이의 얼
굴에 안도의 빛이 지나가는 것이
역력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부
터 아버지가 쓰다가 창고에 넣어
둔 화공약품을 섞어 불꽃이 일어
나게 하거나 한쪽에 방치도니 조
각나무에 못질을 하거나 낡은 전
깃줄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기계
만들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
학년의 어린아이가 이러한 것들
을 다루면 사고낼 위험이 높기
때문에 늘 불안했지만 그 아이가
워낙 좋아하는 일이기에 말릴 수
는 없었다.
또 큰아이는 한편으로는 나이에
비해 덩치는 컸지만 마음이 너무
약해 방안에서 바퀴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며 달아날 정도였다.
유치원 때 귀가 아파 병원에 입
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의
사와 친하게 지내더니 한동안 이
다음에 커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
했다.
그러나 내가 벌레를 보며 놀라
는 아이를 보며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의사가 되겠니?”
라고 말했더니 당장 장래 희망을
과학자로 바꾸어버렸다.
큰 아이는 이처럼 부모가 한마
디 하면 오래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었다. 나는 아이
의 이러한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
기 때문에 큰 아이가 문제를 일
으키면 말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사고를
일으키면 우선 놀랍고 화가 났지
만 가능한 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
다.
나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수도하는 기분으로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부
터는 그렇게 하지 마”라고 덧붙
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
라’는 뜻으로‘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한다고 받아들여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어쩌면 애들이 부모 말을 그
렇게 잘 듣지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같은
반 준영이 어머니는 나만 보면
부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준영이는 절대 부모 말을 안 듣
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하지 말
라는 일만 골라서 해 부모가 큰
소리를 지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준영이는 툭하면 동네애들
도 자주 때려 동네사람들에게 좋
은 평판을 듣지 못했다.
준영이 어머니는 자존심이 강해
자녀들이 남들에게 욕 먹는 것을
참지 못했다.
아이들이 실수만 하면 “그렇게
하면 어떡해?”하며 야단부터 쳤
다. 말이란 강하게 하면 할수록
힘을 잃는 법이다. 말에도 내성
이 생겨 자꾸만 강하고 험한 말
을 들으면 그 말을 무시할 수 있
게 된다. 그러면 부모는 또 자녀
들이 말을 듣게 하려면 더 강하
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목청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자녀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햐버
리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위력이 없어져서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들어도 귓등으로 흘려
듣게 된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면 자녀가 갖고 있는
호기심의 싹부터 잘라버리는 셈
이 된다.
미국의 경제 잡지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부모에 대한 기사를 종
종 싣는다. 미국의 <포춘>지는
1999년 여름, 미국의 경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 책임
자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
니가 있었다는 보도를 했다.
여기서 소개된 사람들은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재무담당 최고 책
임자 디나 더블론, 보잉의 데비
홉킨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
매회사인 이베이의 최고 책임자
맥 휘트먼, 휴렛팩커드의 회장
칼리 피오리나 등이었는데 이들
의 어머니들은 모두 자녀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자유록게
길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최고의 방송
MC로 방송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포브스>지에서 미국 4백대 부
자에 선정된 오프라 윈프리의 아
버지는 그녀가 청소년 시절 가출
을 하고 미혼모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괜찮아. 너는 이
겨낼 수 있어”라고 말하며 감싸
주었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 한
마디가 그녀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음은 물론이다.
기차 안에서 전기실험을 하다가
불을 내 기관사에게 욕을 먹고
친구에게 공중으로 뜰 수 있는
약이라며 배에 가스가 차는 약을
먹게 해 온통 소동을 일으킨 에
디슨의 어머니도 자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절대 책임 추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
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만 말해도
자녀들은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
드는 대신 잘못을 극복할 수 있
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려 노력
할 것이다.
“네 머리는 꾀주머니야”
“울지 마라. 네 머리에는 꾀주
머니가 들어 있어서 그렇단다.
너를 놀린 놈들은 이 다음에 다
제 부하가 될거야.”
여동생은 머리 뒤통수가 유난히
튀어나와 동네 남자아이들의 놀
림거리가 되곤 했다. 지금은 어
머니들이 여자아이들의 뒤통수가
튀어나오면 예쁘다며 좋아하지만
당시에는 여자애들의 뒤통수가
나오면 놀림거리가 되었다.
친정아버지는 동네애들의 놀림
이 분해서 울며 집으로 돌아온
동생에게 이렇게 위로해주셨다.
친정아버지의 그 말이 맞았던지
동생은 교수가 된 후 많은 남성
들을 대표하해서 국제회의에 참
가할 수 있는 위치로 성장했다.
성훈이는 코가 유난히 커 아이
들이 코끼리라고 놀렸다. 성훈이
는 가뜩이나 작은 키에 코만 커
거울을 볼 때마다
불만이 많았는데 친구들마저 자
신의 큰 코를 가지고 놀리는 것
이 원망스러웠다. 성훈이는 친구
들로부터 놀림을 당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낳았
어?”하며 원망했다.
성훈이 어머니는 그러한 성훈이
를 달래면서“그런 멍청한 놈들
이 있나?아니 우리 성훈이 코 크
는데 제 놈들이 뭐 보태준 것이
라도 있나?놀리긴 왜 놀려?”하
며 아들과 함게 울화통을 터트렸
다.그러나 어머니의 그 말이 성
훈이에게 큰 위로는 되지 못했
다.
어린아이들은 사소한 일로도 친
구를 놀린다. 그 중에서도 신체
적 특이함은 친구들의 놀림거리
가 되기 쉽다. 사람은 누구난 신
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
어서 언제든 놀림을 당할 수 있
다. 하지만 아이 친구들이 내 자
녀를 놀린다고 해서 어린 자녀의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놀리지 말
라고 일일이 일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자녀가 친구들로부터 신체
적 결함을 이유로 놀림을 받았을
때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위로해
줄 것인간,ㄴ 아주 중요하다. 친
구로부터 놀림을 받은 후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에 따
라 자녀가 가진 신체적 결함은
결함이 아닌 장점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님 눈동자가 유난히 초롱초
롱하군요. 이 다음에 꼭 큰 인물
이 되겠어요.”
어렸을 때 친정아버지의 친구
한 분은 병약했던 나를 만나면
우리 어머니에게 꼭 이렇게 말씀
하셨다. 최근에 나를 만난 사람
들은 안 믿겠지만 당시 나는 병
차례가 잦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이였다. 감기몸살은 기본이
고 기관지염, 폐렴처럼 자칫 어
린이의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는
중병에도 자주 걸려 부모님 속을
꽤 썩혀드렸다.
나는 병차례가 잦아 한 학년에
한달씩은 결석을 했다. 모르긴해
도 우리 부모님은내가 큰 인물이
되기는 커녕 제 명대로 살기나
할까를 염려하셨을 것이다. 뼈가
앙상하며 눈만 휑뎅그렁한데다
얼굴이 유난히 흰 나는 누가 보
아도 환자 같았기 때문에 그러한
나를 두고 “크게 될 인물이다”
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 그 아저
씨밖에 없었다.
그 아저씨의 그와 같은 말은 그
냥 인사치레일 수도 있었지만 내
가슴에는 크고 깊게 새겨졌다.
그 아저씨는 한 마디 말로 나에
게 ‘나는 반드시 큰 인물이 되
어야 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세
울수 있게 했다.
그 아저씨가 어떤 기준으로 큰
인물을 정하며, 과연 나를 자신
의 기준에 맞는 큰 이물 수준에
올려놓고 그렇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또한
성인이 된 나는 남들이 말하는
큰 인물로 성장한 것 같지도 않
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걱정하시
듯 일찍 죽지 않았으며 내 신체
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아들
둘 낳고 지금은 건강한 체격으로
잘 살고 있으니 그 아저씨의 덕
담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준 셈
이다.
미국 퍼스트레이디로 화제를 뿌
린 힐러리 클린턴이 1999년 11월
말경 한번도 가서 살아본 적 없
는 뉴욕시 맨해튼에서 사원의원
으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해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
게 됐다.. 힐러리는 똑똑한 퍼스
트레이디로 칭찬과 비난을 동시
에 받았는데 그녀를 싫어하는 살
마들조차도 그녀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 힐러리도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고 못 살 일은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힐러릴의 어머니 도로시 여사는
힐러리를 낳은 후에 대학에 입학
할 만큼 당찬 여성으로 딸에게
말과 행동을 동시에 보여주며 딸
의 교육을 해왔던 것이다.
어머니 도로시의 말은 딸 힐러
리에게 여자라는 사실이 핸디캡
이 아니며, 여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는 원천이
되었다.
“연년생인가요? 애들이 참 똘
똘하게 생겼네요. 그런데 동생이
형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게 생겼
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때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아이들 앞에
서 이렇게 말해 난처한 적이 많
았다. 큰 아이는 덩치가 크고 얼
굴이 둥근 편인 반면 작은아이는
군살이 없이 날씬한대다 얼굴이
갸름했다. 형에 비해 인상이 날
카로운 편이어서인지 처음 본 사
람들은 서슴없이 “동생이 더 똑
똑하지요?”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말할
때마다 큰아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걱정이 되어
“아니에요. 형도 잘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간 마음이
쓰이지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한 여성은 작은아
들 이름에 ‘큰 대(大)’자를 사
용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 여성도 아들만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착하고 여러가지 재주
가 있는 반면 작은아들은 감수성
이 예민하고 공부를 잘했다. 어
느 날 그 여성이 아들 둘을 데리
고 외출을 했는데, ‘아이구, 고
놈들 참 잘생겼네. 이름이 뭐냐?
“하면서 묻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큰아이가 “진수인데요”라고
말하고 작은아이가 “대수인데
요”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저
런, 작은아들 이름이 더 크군. 형
이 동생에게 꿀리는 이름을 가졌
네”라고 말했다. 그후부터 큰아
들이 동생을 미워하고 신경질을
부린다면서 그 여성은 아들의 이
름을 바꿔야겠다는 말까지 했다.
어린아이들만 친구들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어
린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대해 고
려하지 않고 이처럼 불쑥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게집애가
나서긴 왜 나서?”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이러
한 말을 들으면 그말 한마디에
평생 주눅이 들어 사는 아이들이
많다.
내 자녀에게 상처주는 말을 불
쑥 해버리는 이웃어른이나 자녀
의 친구들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녀가 타인에게
마음에 상처를 받을 만한 말을
들었다면 부모가 바르게 위로해
주어야 한다.
“네 머리에는 꾀주머니가 들어
있단다”와 같은 위로의 말은 자
녀가 밖에서 받은 상처를 오히려
성공의 밑거름으로 만드는 약이
된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왜 아들에게 ‘네가 자랑스럽
다’는 말을 전혀 안 하지요? 우
리 부모님 같으면 창연이, 승연
이처럼 잘하는 것이 많으면 매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텐데.”
우리 아이들이 미국 학교를 다
니기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의 미국 친구인 씨시가 나
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일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속에 있는 것들
을 다 안단다. 부모 자식간에 무
엇하러 그런 말을 하니? 창연이
랑 승연이는 내가 일일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두 아들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잘 알
고 있을 텐데”하고 말했다.
“그렇지 않던데요? 창연이와
승연이는 자기네가 그 정도 잘한
다고 해서 아줌마가 만족하지 않
는다고 생각하던데요? 그래서 성
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자신을 들
볶던데, 너무 딱해 보였어요. 오
늘도 승연이가 수학시험에서 두
개 틀렸다고 화를 내 친구들을
놀라게 하던데....... 그 점수가 우
리 반 최고점수였는데도 승연이
는 자기는 한국 사람이니까 수학
에서 틀리면 안 된다며 화를 무
지무지 냈어요.”
그 아이의 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평소에 한국 아이
들은 미국 아이들보다 수학을 어
렵게 배웠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
는 말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 말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줄곧 1등을 못하
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도
재미있어야만 할 가치가 잇다’
고 주장했다. 나는 친정어머니가
40대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다
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며 그 사
실을 매우 중요시한다. 길지 않
은 인생을 하기 싫은 일에 매달
려 사는 것은 낭비라고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성
과가 나지 않으며 성공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찾아
온다’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내가 그랬으니, 아이들도 당연히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다른 애
들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작
은아이는 초등학교 다닐 때 ‘왕
따’를 당하기도 하고 성적이 들
쭉날쭉 진폭이 심해 담임교사들
을 헷갈리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나의 마
음을 깊은 곳까지 이해하지는 못
한 모양이었다. 내가 닦달을 한
것도 아닌데도 아이들은 성적에
신경을 쓰며 내 말 한마디 한마
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닦달은 안했지만
아이에게 자부심을 복돋아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여느 미국 어머니들과 달
리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와
같은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지 않
았다는 생각이 씨시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들었던 것이다.
그후 아이들이 학교 프로젝트를
잘해 교사의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아오면 “나는 네가 자랑스러
워”라고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순간적으로 그 말이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놓치는 때가 많았
다.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화
장실에 갈 때마다 일부러 소리내
어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
고 연습을 한 후에야 아이들이
잘한 일이 있으면 겨우 그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
었다.
내가 그 말을 자주한 후 우리
아이들의 성적은 더 좋아졌고 늘
어머니인 나로부터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주 잘 찾아냈다.
한번은 교민 중 우리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는 할머니 한 분이
내가 한국에 나온 후 아이들이
청소는 제대로 했는지, 밥은 재
대로 챙겨 먹는지 살펴보려고 우
리 집에 찾아오셨다고 한다. 그
러나 아이들은 이미 청소를 다
해놓고 오히려 할머니에게 다과
를 정성스럽게 차려주어 할머니
는 대접만 받고 돌아왔다며 한국
에서 돌아온 나를 붙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나는 아이들이 내 친구가 집에
찾아오면 다과를 내오게 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너희들이 자랑
스러워”라고 말해왔다. 그 말로
아이들은 손님을 어떻게 대접해
야 하는가를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칭찬에 매우 인
색한 민족이다. 특히 배우자나
가족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예로부터 ‘자식 자랑은 팔불
출’‘좋은 일에 입 방정 떨면
마가 낀다.’와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칭찬하는 말을 아예 터부
시해왔다. 우리는 자녀가 자랑스
러운 일을 하면 부모가 그저 빙
그레 웃어주기만 하면 될거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방송국에서 <칭찬합
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그로 인해 정부로부터 잘했다고
격려까지 받았겠는가? 그러나 무
조건적인 칭찬이 꼭 좋은 결과만
가져오라는 보장은 없다. 잘못된
칭찬은 자녀의 자만심만 심어주
어 공주병, 왕자병을 앓게 할 수
도 있다.
칭찬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특히 자녀를 칭찬할 때는 무조건
“잘했다” “최고다”라고 말해
자만심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자녀
가 부모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자
녀의 능력을 배가시킨,ㄴ 작용을
한다.
자녀들은 부모가 나를 자랑스러
워 한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해
하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
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법이
다. 부모가 된 어른들도 다시 생
각해보면 어려서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했던 사
실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
이다.
요즘 세대차는 6개월 간격이라
고 한다. 그렇게 치지 않더라도
부모와 자녀 간에는 세대챠가 많
이 난다. 자칫하면 부모 자식 간
에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부모라 할지라도 속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가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기
가 어렵다.
자녀가 대견한 일을 하거나 열
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속
으로만 대견해하지 말고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해보
자. 자녀는 부모에게 정말 자랑
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해 신바람
을 내며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며 부모와 대화하려고 노
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라는 말은 자녀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아
주 효과 좋은 특효약인 셈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
었어요.”
환경부장관 임용 후 곧바로 물
러나게 돼 세인들 눈앞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손숙씨
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
이다. 손숙씨는 연극배우로서 환
경부장관으로 임용되었지만 <어
머니>란 연극의 러시아 초청공
연을 승낙한 상태에서 공연을 중
단할 수 없다며 취임과 동시에
러시아로 떠났다가 기업체에서
건네준 돈 봉투를 받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귀국후 즉각 장
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
녀는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세간
의 관심을 벗어나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잇는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연극
무대에 서게 된 그녀는 <이영자,
임성훈입니다>라는 토크쇼에 출
연해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는
데 그 애들은 모두 제 편인 거예
요. ‘얘 걱정하지마. 우리가 있
잖아?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그
냥 푹 쉬어’라고 말하는 거예
요. 그럴 땐 자식이고 남편이고
다 소용없어요,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최고지. 정말 친구들이
해준 그 말이 그렇게 후련할 수
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위로 받
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은 소
중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고통
받는 순간 그녀를 위로한 것은
가족이 아닌 친구였다. 물론 손
숙씨네 가족이 그의 고통에 냉정
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과연
우리는 상처받은 자기 가족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라는 점을 생각하
게 하는 대목이었다.
어린 자녀들이 밖에서 타인에게
상처받고 돌아오면 부모는 얼마
나 자녀를 잘 위로해주는가? 알
고 보면 어린아이들도 인생살이
가 고달프기는 어른과 다를 바
없다.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 잘해도 티내지 않
아야 하고 청결해야 하며 공부를
못하면 공부 대신 뭔가 한 가지
에는 특출한 능력이 있어야 한
다. 여기에 덧붙여 다른 아이들
의 대화에 참여하려면 새로운 게
임이나 만화에 대해 부지런히 정
보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생활이 어른보다
단순해 상처받을 일이 그다지 없
을 거라며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조그만
실수도 용서보다는 질책을 앞세
워 자녀를 위로하지근 코녕 더욱
쓸쓸하게 만든 적은 없는지 생각
해보자.
수년 전 소설가 이문열씨가 쓴
단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
웅은 어린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어른들 세계 못지 않게 험난하다
는 사실을 자세히 묘사해내고 있
다. 엄석대라는 힘센 친구의 횡
포와 거기에 대응하는 어린아이
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이둘의 세
꼐도 어른의 세계 못지 않게 험
난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
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예현이
는 “이모,학교 다니는 것은 서
바이벌 게임과 같은 거예요”라
고 말하기도 했다. 11월11일 빼
빼로 데이에는 자기가 빼빼로를
많이 받아 체면 유지는 됐는데
친구들끼리 과자를 주고받는 무
슨 날이 많아져서 그날 얼마나
많은 과자를 받느냐에 따라 아이
들의 인기도가 측정된다는 것이
다. 예현이는 “그런 것까지 신
경을 써야 하니 서바이벌 게임이
지요”라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학교생활을 통해
어린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상처
는 크다. 그런데 학교만이 아니
라 집안에서도 부모들이 실수할
요소가 많다.
“아니? 그 많은 돈을 다 잃어
버렸단 말야? 어떻게 들고 다녔
길래 돈을 다 잃어버려?”
은주 어머니는 펄쩍 뛰며 은주
에게 화를 냈다. 여의도에 사는
은주는 방배동 할머니 댁에 가서
미국에서 돌아온 고모를 만나 용
돈을 받았다. 은주가 원하는 것
이 컴퓨터 게임기라는 것을 알고
고모는 오랜만에 만난 은주에게
거금 10만원을 주며 게임기를 사
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
는 많은 돈이었다.
은주는 돈을 잃어버릴까봐 손지
갑 안쪽에 잘 접어서 넣었다. 그
리고 그 지갑을 배낭에 넣고 버
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투자회
사에 다니는 아버지가 그날따라
회사에 일이 있어 차를 태워줄수
없자, 사촌언니와 버스로 함께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지갑이 통째
로 없어졌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도 잃어버릴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이 약간 복잡
하기는 했지만 만원은 아니었다.
은주 어머니는 고지식하고 꼼꼼
한 성격이어서 은주가 필요로 하
는 컴퓨터 게임기 하나를 사주려
면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그 게
임의 유행이 거의 지나갈 무렵에
야 사주곤 했다. 은주의 소원은
새로 나온 게임을 다른 애들보다
먼저 가져보는 것이었다.
은주 고모는 그러한 은주의 말
을 듣고 조카인 은주가 안돼 보
여 은주에게 큰돈을 준 것이다.
은주는 그 돈이 없어졌다는 사실
을 알고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은주에게 어머니는
돈 잃어버린 부주의한 딸로 몰아
세우며 온갖 신경질을 다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은주 어머니가 화를 내는 대신
“걱정하지 마라, 다음부터는 조
심해”라고 말했다면 은주는 돈
을 잃어버렸을지라도 금세 상처
를 회복하고 다음부터는 조심해
야겠다고 다짐을 했을 것이다.
상처받은 어린 자녀를 치료하는
최고의 약은 부모의 “걱정하지
마라. 다음부터 조심하면 된다”
라는 말이다.
4. 자녀와의 갈등, 말로풀
자
공부하기 싫어할 때
“아이구, 저 잔소리.”
초등학교 5학년인 다희는 귀를
막으며 안방을 나왔다. 이번 기
말고사에서 수학성적이 떨어져 1
시간동안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비싼 수학과외
를 시켜주었는데 성적이 그게 뭐
야?”
어머니는 그 말을 레코드판 돌
리듯 반복하다가 1시간이 지나서
야 지쳤는지 다희에게 나가보라
고 했다.
다희 어머니는 다희의 학교생활
에 대해 소상히 아는 ‘극성엄
마’였다. 다음 시험에는 어떤
종류의 문제가 다루어질 것인지,
참고서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좋고, 과외 선생님은 누가 유명
한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희는 언제나 다른 어머니들보
다 앞서서 모든 것을 챙겨주는
어머니의 명령에 반박할 힘이 없
어 거역하지 못한다. 다희 어머
니는 다희가 5학년이 되자 수학
과외선생님을 바꿨다. 그 선생님
은 다희네 학교에서도 공부 잘하
는 아이들만 모아서 가르쳤다.
다희는 그 그룹의 아이들만큼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열성 때문에 간신히 그
그룹에 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희는 과외를 다니면서
도 그룹 친구들이 편하지가 않았
다. 친구들이 자기가 낀 것을 좋
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가
끔은 친구들의 눈치가 보여 불편
하기까지 했다. 사실은 그 과외
에서 빠져버리면 차라리 편하겠
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
나 만약 다희가 어머니에게 그런
생각을 털어놓으면 “아니, 그
그룹에 끼어넣으려고 내가 얼마
나 힘들었는지 알아?”하면서 화
낼 것이 뻔했다.
다희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질려
“누가 과외 시켜달라고 했나?
흥”하며 안방을 향해 혀를 쏙
내미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저항
할 뿐이었다.
사실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부모
보다 자녀인 당사자가 더 기분이
나쁠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나름
대로 자신의 성적에 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기준에 미달하는 성
적을 받게 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부모들릉 그런 사
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우선 떨
어진 성적 점수만 가지고 자녀를
추궁한다.
그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가 성
적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알고 있어
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정확하게
콕 찍어서 지적하면 반발하게 되
어 있다.
물론 부모로서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성적에
관한 문제는 매우 예민하기 때문
에 조심스럽게 거론해야만 한다.
우리 작은아이도 초등학교 5학
년 때 갑자기 50점 맞은 수학 시
험지를 들고 와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바로 전에
본 시험까지는 거의 다 100점을
받아왔고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니 나의 충격은 한마디로 설
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흥분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를 쓰며 그 아이와 마주앉았
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오.”
나의 질문에 아이는 기어드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이유를 말하기 싫어?”
여전히 대답이 없다.
“너도 이 점수에 실망했지?”
“네.”
“엄마는 굉장히 실망했다. 너
도 마찬가지지?”
“네.”
“네 잘못 때문에 엄마도 실망
했고 너도 실망했으니까 네가 손
바닥을 맞아야겠다. 이번에는 10
점에 단 대씩, 다섯대를 맞겠지
만 다음에는 더 많이 때릴 거야.
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아이는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
였다. 나는 약속대로 아이의 손
바닥을 다섯 대 때려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매맞은 보람(?)
도 없이 다음에 수학성적을 예전
처럼 올리지 못했다. 80점 선에
서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할 뿐이
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중학교 졸업반
이 되어서야 ‘수학은 모두 논리
다. 너는 논리를 좋아하니, 수학
을 논리라고 생각하고 퍼즐놀이
하듯 즐기면서 해봐라’라는 말
로 설득해서 아이의 수학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결국 매가 아닌
설득이 더욱 효과적 이라는 사실
이 증명된 셈이다.
성적 때문에 야단을 맞게 되면
아이들은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데다 야단까지 맞게 되어
더욱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아이
에게 야단을 치면 다음에는 공부
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결국 자발
적인 결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건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
법이다. 설혹 매로 성적이 개선
된다 하더라도 진짜로 실력이 늘
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 때문에 화
를 낼 때는 때부분 자녀의 입장
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기
분대로 심한 말을 하게 된다. 마
음에 상처를 받은 자녀들이 반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작정
꾸짖는 짓은 결코 자녀의 성적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문제를 거론
하려 한다면 우선 부모 자신의
학창시절부터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들의 대부분이 학교
다닐때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았
지만 자기 자녀만은 최고가 되어
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또 학창시절에 성적이 좋았던
부모들이라면 이번에는 “저 녀
석은 왜 나를 닮지 않았지?”라
며 화를 낸다. 자녀를 자신의 기
준에 맞추려고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자녀의 능력이
반드시 부모와 같거나 더 나으라
는 법은 없다.
우리 큰아이가 서울에서 중학교
에 입학했을 때 교장선생님이 학
부모들에게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교장선생님은 신입생
들의 학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여기 모인 학부모 중에서 서울
대 나오신 분은 손들어 보세
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손을 들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그
교장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여서
“아니, 자기들은 서울대 못 나
와놓고 왜 애들보고는 서울대 가
라고 들볶는 거예요.”하면서 야
단부터 치셨다. 거기에 모인 학
부모들이 와르르 웃었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들의 부정할 수 없는
현주소이며 자화상일 것이다.
대개 자녀들의 성적문제를 유난
스럽게 거론하는 부모들은 대리
만족 때문에 자녀들에게 성적의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
다.
‘나는 비록 학교 다닐 때 공부
를 잘하지 못해 오늘날 이 모양
이 꼴로 살지만 너만은 반드시
송부를 잘해서 나보다 더 잘살아
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성적문제로 자녀를 괴롭히게 되
는 것이다.
또한 부모들 중에는 자녀의 성
적이 나빠지면 자기 체면이 손상
된다고 생각해서 그 사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친구의 자녀 아무개는 이
정도의 성적을 받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아니면‘옆집의
아무개는 성적이 좋은데 너는 왜
그 모양이야?’라며 비교하는 것
도 그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의 장래를 걱정한다
는 미명 하에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
모의 이러한 욕심 때문에 인격을
무시당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
게 된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받
아들이기는 커녕 부모를 미워하
게 된다.
자녀의 성적문제를 거론하려면
자녀에게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보다 자녀 스
스로 원인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
다.
그러려면 “너의 성적이 떨어져
서 부모인 내 체면이 뭐가 되느
냐”고 ‘나 메시지’로 말하지
말고 “성적이 떨어져 네가 얼마
나 기분이 나쁠지가 걱정이다”
라고 ‘너 메시지’로 말해야 한
다.
“그렇게 성적이 나빠서야 이
다음에 대학이나 가겠느냐?”라
는 비난이 아닌 “성적이 나빠
대학에 못 가면 속상해할 네가
걱정된다”라고 자녀의 입장에
서서 말해야 부모의 충고가 진지
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평소 우리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네가 떨어진
성적을 붙들고 아무리 걱정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잘못
받은 성적을 회복하고 싶으면 잘
못 본 시험성적을 걱정할 시간에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다”라고 얘기한다.
나도 원래부터 아이들에게 그처
럼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던 것
은 아니다. 50점 받아온 수학시
험 성적 때문에 작은아이의 손바
닥을 때린 후 그것이 성적을 향
상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
터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교훈으로 아이들에
게 “너는 이 정도는 할 수 있
다. 너는 잘할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 있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자신의 기준을 스스로
높여 성적이 나빠지면 자기 자신
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
다.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보다
자녀 자신이 가장 크게 실망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그때 부모는
자녀가 최선을 다하도록 책임 의
식과 여유를 주는 것 이상의 압
력을 주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
해서는 어머니인 내가 오히려
“적당히 쉬면서 공부하지 그러
니?”라고 말하도록 노력해야 하
는 것이다.
예능 교육을 시키고 싶을때
“우리 아이가 거울 보면서 탤
런트 흉내나 내는 걸 볼때 마다
야단을 쳤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아닌 것 같아 최감독, 우리 애를
자네 영화에 엑스트라로 써줄 수
없겠나? 어렸을 때 영화에 출연
한 적이 있으면 대학 특례입학이
가능하다던데.”
모임에서 내 바로 앞에 앉은 은
행 지점장인 문영진씨가 영화감
독인 최 일씨에게 이런 말을 하
자 좌중에서 와르르 웃음이 쏟아
졌다.
그러나 당사자인 문영진씨의 얼
굴은 웃을 일만은 아니라는 표정
이 역력했다. 2001년 대학입시
요강에서 15만명의 학생들이 측
기생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발표를 하자 자녀의 학교성적 때
문에 걱정이 많았던 부모들이 어
떻게든 자녀의 특기를 살려 다른
집 아이들보다 좋은 대학에 보낼
수는 없을까 궁리하게 된 것이
다. 그래서 문영진씨처럼 체면
차리지 않고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한 탐색전을 마다하지 않는 부
모가 부쩍 늘어났다.
2000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청
소년 댄스그룹인 ‘S. E. S'의
유진이 고려대학교에 특례입학을
하게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특례입학을 앞두고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격렬하게
찬반 양론을 펴기도 했으며 네티
즌들도 여기에 가세해 뜨거운 공
방전으로 나라 안을 달구었다.
반대하는 측은 유진은 직업가수
인데, 음악대학이나 연예학부가
없는 고려대학교 서양어문학과에
입학한 것은 특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특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
다. 찬성하는 측은 그녀가 괌에
서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영어를 잘하며 가수로
서 일본 등 해외에서 국위를 선
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도
능력으로 인정하면 대학에서 받
아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
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의 대학
입시 준비는 유치원 때부터 시작
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생각한다.
대학입시 요강이 획기적으로 바
뀌면 유치원 학부모부터 자녀의
학습계획을 바꾸기 위해 분주해
지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자녀의 예능교육
열기가 약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
학입시가 학과위주에서 특기자
쪽으로 문호가 넓어지자 자녀의
특기를 일찍부터 찾아내기 위해
예능학원을 찾는 학부모들이 부
쩍 늘었다고 한다. 사실 뛰어난
예능인 중에는 소질을 조기에 발
견해 개발한 경우가 많다. 그래
서 조기교육 찬성론자들은 아이
들의 특기는 일찍 발견할수록 개
발하기 쉽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자기 개발
을 하는 기회가 많은 편이다. 우
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
를 졸업할 때의 일이다. 미국에
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에는 대부분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로 가기 때문에 성대한 졸
업파티를 열어준다.
파티가 열리면 학생들은 초등학
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받았던 상장과 트로피, 사진, 노
트 같은 자신의 모든 기록을 참
석자들에게 공개하고 피아노를
잘치는 아이는 피아노 연주를,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은 자신의
작품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기량
을 보인다.
우리 아이들의 미국인 친구 조
수아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
웠는데 졸업파티에 참석한 손님
들 앞에서 그 동안 닦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피아노 콘서트를
열었다. 그 아이의 피아노 실력
은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날 정도
로 훌륭했다. 그 아이는 학교 연
극반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
기도 했으며 줄리어드 음대 지원
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장래에 변호사
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시간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우리 아이들의 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조수아처럼 어려서부터
피아노는 물론 수영, 스키, 야구,
댄스, 골프 등을 배우며 그 아이
들의 예능실력은 아무추어 수준
이상이다.
미국의 어머니들도 자녀들이 걸
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예능교육
을 시킨다. 나 또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믿으며 본인만 원하면
무엇이든지 어려서부터 배워야만
제다로 일힐 수 있다고 생각한
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
는 것은 좋지 않다. 적성에 맞지
않는 예능교육을 억지로 시키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
다.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데 억지로 시켜봐야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우리 작은아이는 어렸을 때 몸
이 약하고, 체격이 작은 편이어
서 나는 그 아이에게 태권도를
배우도록 권했다. 동네친구들에
게 힘에 밀려 얻어맞을까 봐서였
다.
그러나 이 아이는 태권도 배우
는 것이 친구들한테 얻어맞는 것
보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체력은
약하면서 호기심만많아, 수업시
간에 엉뚱한 질문을 많이 해 하
루도 빠짐없이 학교친구들에게
얻어맞곤 했다. 만약 미국으로
가지 않고 우리날에서 계속 학교
에 다녔다면 자신은 친구들에게
맞아죽었거나 약올라서 던신병에
걸렸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맞은 자리가 아프고 약올라서 하
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
러면서도 태권도 학원에 등록하
기는 싫어했다.
나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얻어
맞고 오는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등록을 거부한 후 단 한 번도 태
권도를 배우라고 말한 적이 없었
다. 작은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나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
한 후에야 갑자기 태권도를 배우
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친
구들에게 얻어맞아도 참을 수 있
었지만 미국 아이들에게까지 매
를 맞을 수는 없다며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결심하자
작은아이는 책방에 가서 영어로
된 이소룡의 쿵후 책을 사다가
쿵후에 대한 설명과 그림을 보고
마당에 나가 연습을 하기 시작했
다. 나는 아이를 위해 마당에 서
서 밤마다 손전등을 비춰주어야
만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독학
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서 태
권도 사범을 찾아 아이를 맡겼
다. 아이는 두 달 동안 연습을
한 끝에 미시간주 대항 태권도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와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바이올린 레슨도 마찬가지다.
작은아이는 워낙 힘이 없었기 때
문에 바이올린을 들고 켜는 것이
힘들다며 5년 정도 배운 후 그만
두었다. 물론 처음부터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5년
간 별의별 설득을 다 해 배우도
록 했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이 아이를 5년 이상은 설득할 수
가 없었다.
주변사람들은 5년이나 배운 바
이올린을 아까워서 어떻게 그만
두게 할 수가 있느냐면서 말렸지
만 나는 억지로 시키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
고 과감하게 그만 두도록 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바이올린 그만
두는 것을 아까워하는 주변사람
들에게 “이 아이가 앞으로 바이
올린을 전공할 것은 아니거든
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이올린 레슨을 그만둔
사실을 잊을 만할 즈음 미국으로
왔고,작은아이가 고등학생이 되
자 아이는 ‘음악가’라는 별명
을 가진 조수아랑 친해졌다. 음
악을 좋아하는 조수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 아니는 갑자기 자기
도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아이의 요구
를 즉각 받아들이지 않고 “네가
전에 바이올린 배우기를 그토록
싫어했는데 피아노도 악기이기
때문에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
다면 돈만 낭비하는 것이다”라
고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이 아
이는 나에게 며칠 동안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중간게 그만두지 않기로 다짐을
한 후 배우게 했더니 일주일에
한권씩 피아노책을 떼서 담당교
사를 놀라게 했다. 하기 싫을때
에는 그만두게 했다가 진정으로
원할 때 다시 시작하게 하니까
무섭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어릴지라
도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
에는 그처럼 무서운 에너지를 발
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반대로 싫은 것을 억지
로 시키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돈
은 돈대로 낭비하게 된다.
자녀의 예체능 특기를 발견하기
위해서 예능학원에 골고루 등록
해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독단적으로 정하
지 말고 자녀에게 충분히 그 이
유를 설명해 자녀가 납득을 한
후 등록하는 것이 좋다. 등록을
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그것을 배
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과감하
게 그만두게 하고 아이가 흥미를
갖는 것만 골라서 배우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원에 등록을 해도 교사
의 능력과 품성에 따라 자녀와
마음이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
문에 미리 자녀를 담당하게 될
교사를 면담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와 호흡이 맞는지를 검토하
고 아이의 재능을 끌어내줄 사람
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 아이를
보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다
닐 학원을 고를 때면 한 과목에
10여명의 교사를 면담한 수 최적
격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를 골랐
다.
우리 큰 아이의 미국 친구 데이
브 어머니도 데이브를 낳기 전
10여 지역의 공립학교 교장과 면
담을 한 후 우리 동네로 이사해
오키모스 학교로 보내게 되었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듯 부모는 교사의 자질을
미리 파악해보고 우리 아이와 호
흡이 자 맞을 것인지, 우리 아이
의 재능을 충분히 개발해줄 수
있을 것인지 파악하도록 하는 노
력이 필요하다.
옷차림을 간섭해야 할 때
“이거 입어, 이 옷이 예쁘잖
아.”
어머니가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꺼내 흔들자 여섯살바기 혜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나는 이거 입을래.”
혜지는 며칠 전에 고모가 사다
준 힙합바지를 들고 서서 몸을
흔들었다.
“안돼, 결혼식에 갈 때 그런
바지는 입는 게 아니란 말야.”
혜지 어머니는 어머니 말을 듣
지 않는 혜지가 미워죽겠다는 듯
한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결혼식 시간은 점차 가까워오고
혜지는 요지부동이었다. 혜지는
알아주는 고집쟁이여서 어머니가
혜지의 고집을 꺾어본 적이 없었
다. 오늘도 끝내 혜지에게 어머
니가 졌다.
그렇게 해서 혜지는 고모 결혼
식에 힙합바지를 입고 참석하게
되었다. 격식을 중요시하는 혜지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더니 아연
실색을 하며 혜지 어머니에게 눈
을 흘겼다. 혜지 어머니는 민망
해서 몸둘 바를 몰라했다. 어머
니는 혜지 때문에 망신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식이 끝나고 집
으로 돌아온 후 혜지의 엉덩이를
심하게 때려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도 혜지의 고집을 꺾지 못
해 번번이 낭패를 보곤 했다.
“엄마가 사온 운동화 신어봤
니?”
“엄마, 그런 걸 사오면 어떡해
요? 요즘에 그런 거 신는 애들이
어디 있어.”
“얘는, 그게 얼마나 비싼 건
데.”
“그러니까 엄마가 사지 말고
나한테 돈으로 달라고 했잖아.
나 그거 안 신어.”
초등학교 5학년인 우경이도 어
머니가 사다준 운동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
었다. 우경이 어머니는 “신기
싫으면 떨어진 신발 그냥 신고
다니렴”하면서 화를 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 중에는 여
름에 겨울옷을 꺼내 입거나 겨울
에 여름 신발을 신고 나서기도
한다.
“아니, 태민아, 그게 뭐야. 그
건 여름 신발 이잖아. 지금 밖에
는 눈이 오는데 발 시려서 안
돼.”
망사가 붙은 여름 운동화를 신
고 외출준비를 하는 태민이를 보
자 어머니가 기겁을 하면서 쫓아
와 말렸다. 그러나 태민이는 태
연한 얼굴로 “그게 뭐 어때
서?”하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안돼, 당장 이걸로 바꿔신
어.”
태민이 어머니는 급히 신발장에
서 겨울운동화를 꺼내 태민이 발
앞에 내려놓았다.
“아이 참, 괜찮은데......”
태민이는 뒷머리를 긁으며 신발
을 바꿔신었다.
요즘 아이들은 개성이 강해서
어른들이 골라준 옷이나 장신구
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부
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어머니
마음에 드는 옷만 입히려고 한
다. 그러나 그것이 만만치 않을
때가 많다. 대부분 ‘자식 이기
는 부모가 없다’는 자조적인 말
을 하면서 부모가 고집을 꺾는
다. 그만큼 부모들이 자식 설득
에 서툴다는 것인데, 이는 부모
가 자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
기 때문이다.
“저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요. 엄마가 아빠를 미워한다고
해서 저도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해
요.”
이혼한 부모의 자녀로서 갈등을
겪는 20대 여성이 털오놓은 말이
다. 우리나라에도 이혼율이 늘어
나면서 이러한 갈등도 점차 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자녀를 자신의 소
유물로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는
이혼부모 사이에서 자녀들이 겪
는 갈등이 다른 나라의 자녀들에
비해 훨씬 클 것이다. 언젠가 이
스라엘에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
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고민
하고,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가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걱정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녀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
은 부모가 자녀를 나의 소유물이
라고 믿고 자녀의 인격을 무시하
면서 자녀를 설득하지 않고 일방
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
다는 윤리의식이 엄격해 부모의
말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순종했지만 요즘에는
유치원 아이들도 부모가 강압적
으로 명령하면 말을 듣지 않는
다. 아이들은 분방해졌는데 부모
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
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자녀도 인격을 고
려해 설득을 해야만 부모말을 듣
는다. 혜지 어머니는 혜지가 결
혼식에 입고 갈 옷을 일방적으로
골라줄 것이 아니라 미리부터 결
혼식에 입고 갈 만한 옷을 여러
벌 준비하고, 혜지 스스로가 고
르게 했어야 했다.
우경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머니가 사다준 운동화를
우경이가 싫어하면 “미안해서
어떡하니? 그럴 줄 알았으면 엄
마가 그냥 돈 줄걸 그랬지?”하
면서 우경이를 설득해야 우경이
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
유를 가졌을 것이다. 아직 어리
다고만 생각되는 아이들이지만,
인격을 존중하면서 알아듣게 얘
기하면 다 받아들일 줄 안다.
나쁜 습관을 고쳐주고 싶을
때
“아니, 왜 그렇게 눈을 깜빡거
려?”
밥 먹으면서 유난히 눈을 깜빡
거리는 영석이를 보며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왜요?”
영석이는 볼멘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큰일났네. 얘가 왜 이렇
게 눈을 깜빡거리지?”
영석이는 자신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났나 싶어 몹시 불안했다.
자녀들의 나쁜 버릇은 부모의
큰 근심거리가 된다. 그 때문에
영석이 어머니처럼 자녀의 나쁜
버릇을 발견하면 앞위 생각없이
소리부터 지르는 부모들이 많다.
평소에는 교양 있는 태도를 보이
던 어머니들 조차 자녀들의 나쁜
버릇을 발견하면 걱정이 앞서 호
들갑부터 떨게 되는 것이다. 그
러나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생
긴 나쁜 버릇을 그런 식으로 지
적 받으면 그 문제에 대해 지나
치게 신경을 쓰게 되어 더욱 고
치기 힘들어진다.
우리 아이와 유치원을 같이 다
닌 필종이는 다른 애들에 비해
유난히 덩치가 컸다. 3대 독자
외아들이어서 부모가 자식을 끔
찍하게 여겨 애지중지했기 때문
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음이
유난히 약했다.
필종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
임교사에게 밑보여 고생을 많이
했다. 담임교사는 필종이의 유난
히 느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두사람은 사사건건 부딪
칠 수 밖에 없었다.
월말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다
른 애들은 모두 시험지를 냈는데
필종이만 붙들고 있었다. 담임교
사는 “얘, 여태 못 쓴 시험지,
더 붙들고 있는다고 달라지니?”
하며 필종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교사의 말대로 필종이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필종이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생
겼다.
필종이의 머리 흔드는 버릇을
발견한 어머니는 왜 필종이가 갑
자기 머리를 흔들어대는지를 알
아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필종이의 머리 흔드는 습관을 고
치려면 원인부터 알아내야 한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종이가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
문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필종이 어머니는 매우 현
명하게 처신을 했다. 자녀 앞에
서 한 번도 “필종아, 왜 머리를
흔들고 그래?”라고 말하지 않고
원인부터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
다. 필종이는 어머니와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3년 만에 머리
흔드는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미국에 건너가서
흑인 친구들을 사귀면서부터 걸
음걸이가 마치 뒷골목을 오가는
깡패들같이 변했다. 어느 날 그
것을 발견한 나는 아이들의 모습
을 면밀히 검토할 때까지 아이들
에게 걸음걸이에 대해 말하지 않
았다. 아이들의 걸음걸이를 고쳐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확실하게 선 후에야 “너희들 걸
음걸이가 이상하니 고쳐야겠어”
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아이
들은 내가 자신들의 걸음걸이를
왜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이들 스스로 걸음걸이를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거라
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이들의 걷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준 다음 감상
이 어떤지 물었다. 아이들도 자
신들의 걸음걸이가 보기 좋지 않
았던지 그제서야 고치겠다고 말
했다. 나는 아이들 머리 위에 잡
지책 두 권을 얹고 걷는 훈련부
터 시켰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잡지가 자꾸만 떨어졌
다.
“그것 봐. 네 걸음이 정말 이
상하지?”
형제끼리 서로 상대방의 걸음걸
이가 이상하다며 놀리면서도 아
이들은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버릇이 금세 고텨지지는 않았다.
6개월 정도 지난 후에야 걸음을
똑바로 걷게 되었다.
자녀에게 나쁜 습관이 생겨 고
쳐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발견
했을 때 자녀 앞에서 그 문제를
과장되게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버릇에 대해 지나
치게 신경을 쓰게 돼 오히려 고
치기 어려워진다.
그럴 때면 자녀에게 나쁜 습관
이 고쳐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 자
세히 설명해준다. 설명해주어도
자녀가 자신의 버릇이 무엇 때문
에 문제가 되는지를 알지 못할
경우 비디오로 촬영해 보여주는
것도 좋다. 이 방법을 쓰면 자녀
가 자신의 습관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자녀가 자신의
나쁜 습관을 인지하게 되면, 자
녀와 함께 계획을 세워 함께 냉
정하고 객관적으로 실천해야 효
과를 거둘 수 있다.
거친 말버릇을 쓸 때
“씨팔, 저런 것도 부모라고...
..”
해구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 녀석이 지금? 너 지
금 뭐라고 했어, 응?”
해구 아버지는 벽력 같은 소리
를 질렀다.
해구 아버지는 IMF 사태가 오
기 전까지는 증권회사의 관리과
직원이었다. IMF 이후 구조조정
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해
구 아버지는 모아둔 돈도 없고
창업을 할 만한 실력도 없어 택
시 회사 운전사로 취직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해구 아버지는 현실에 대한 불
만 때문에 자연히 신경질이 많아
졌고, 특히 초등학교 4학년인 맏
아들 해구에게 화풀이 하는 횟수
가 늘어났다. 해구는 그러한 아
버지가 점점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해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아
버지가 출근하면서 방에 두고 온
담배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
키는 것이었다. 그날도 해구 아
버지는 전날 밤근무를 하고 낮잠
을 잔 후 다시 밤근무를 나가려
다가 해구에게 방에두고 온 담배
를 갖다달라고 했다. 그때 해구
는 숙제를 하느라 아버지가 부르
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니, 이 녀
석이 아빠 말을 뭘로 알고”하면
서 신경질을 부렸다. 해구는 그
때 막 잘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
가 풀리기 시작해 그것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해구는 아버지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담배를 들고 나와
출근을 할 수 있는데도 숙제 때
문에 바쁜 아들에게 담배를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부모라면 공부를 하
고 있는 자식에게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아버지에게 자기
도 모르게 욕을 하고 만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심한 억압이나 부
당한 대우를 받으면 반발하게 된
다. 대상이 부모라고 해서 달라
지지 않는다.
민선이는 어머니가 시킨 설거지
를 하면서 “저런 부모들은 다
죽어야 해”하며 울화통을 터트
렸다. 민선이 어머니는 밖에 외
출하여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
에 맏딸 민선이에게 집안일을 맡
겨 두고 나가곤 했다. 우편 집배
원 봉급으로 빠듯한 살림을 알뜰
하게 돌보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주부가 밖으로 나돌아 다니니 살
림이 엉망이었다.
민선이가 매일 설거지를 하고
보이는 곳만 청소를 해 집안이
겨우 유지되었다. 민선이는 그러
한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툭하면 친구들 앞에서도
“저런 것도 부모라고”하며 노
골적으로 부모를 비난했다. 그러
다가 어머니 앞에서도 그렇게 중
얼거려 여러차례 매를 맞기도 했
다.
자녀가 부모의 잘못을 비난하면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건방지다며 자녀의 행동만
나무란다. 그 때문에 이제 막 말
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자녀와
싸우는 부모들도 많다. 자녀가
부모에게 대들면 원인을 찾아보
려고 하지 않고 “어디서 그렇게
나쁜 버르장머리가 생겼어?”하
면서 화부터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들의 못된 말버릇은
부모의 억압이 원인인 경우가 많
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 중 누군
가 쓰고 있는 말투를 그대로 사
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녀들의
말버릇이 갑자기 다른 곳에서 올
라가 만무하다.
자녀가 부모에게 불손한 말을
사용한다면 불러다 야단부터 칠
것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속에 무
슨 응어리가 있는지 부터 알아보
아야 한다. 만약 자녀들 마음속
에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응어리가 있다면 그것을 풀어주
어야만 나쁜 말버릇을 고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구와 민선이처럼 부모에 대
한 미움이 있는 경우가 아닐지라
도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할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럴 대 자녀는 부모에게 대든
다.
만약 자녀가 어른과 말하면서
욕을 섞어 쓴다거나 어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으면
서 대든다면 그것은 반드시 고쳐
주어야 할 문제이다.
“집에서 아무리 고운말을 가르
치면 뭐합니까? 밖에 나가면 다
른 애들이 욕을 섞어 말하는데
우리 애들이 배우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부모들
도 많다.
믈론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밖에서
욕을 배워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고운말을 사용하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친구들의 말
투에 심각한 영향은 받지 않는
다.
자녀들이 욕을 섞어쓰거나 부모
에게 대들거나 ‘그’‘저’
‘어’같은 잡음을 많이 사용한
다면 모두 어렸을 때 고쳐주어야
한다.
잘 고쳐지지 않으면 녹음을 해
서 들려줄 필요가 있다. 문제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어린아이들
은 순수해서 어른들보다 문제의
본질을 더 쉽게 고치려고 노력한
다.
어머니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받아들이지 않던 아이들도 녹음
을 해서 직접 들려주면 쉽게 받
아들이게 된다.
“들어보니 어떠니?”라고 물은
후 “이것을 고쳤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대개 부모
말에 따른다.
무엇보다 자녀의 말버릇을 좋게
하려면 부모부터 바른 말을 사용
해야 하며 자녀가 밖에서 나쁜
말을 배워왔을 때에는 그 말이
왜 나쁜가, 차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PC방에 빠졌을 때
어린이들 사이에 <포켓 몬스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전기
를 발산하는 생물인 ‘포켓 몬스
터’는 ‘주머니’를 뜻하는 영
어 ‘포켓(Pocket)’과‘괴물’
을 뜻하는 ‘몬스터(Monster)'가
합해진 말로 만화에 나오는 가상
의 괴물을 뜻한다.
‘포켓몬’이라는 애칭으로 부
르기도 하는데 주인공 애시가 괴
물을 모두 잡아 괴물세계를 점령
한다는 줄거리의 게임으로 전 세
계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
고 있다. <포켓 몬스터>에는
152가지의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
는데 그 몬스터 중에서도 피카추
는 귀여운 뒤 모양의 몬스터로,
미국 월트디즈니의 ‘미키 마우
스’가 왕좌를 내줄 정도로 커다
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포켓 몬스터>는 처음에는 게
임으로출발해서 아이들에게 폭발
적인 인기를 얻자 만화로 나오더
니 극장상영용 애니메이션, 인형,
책, 카드 등이 등장해 모든 상품
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홀딱 빼앗
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판
매가 시작되지 않은 품목은 해외
출장 가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
다주어야 할 선물 1호가 되었다.
그런 것을 가진 어린이는 친구들
에게 ‘짱’으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에서 1998년에 내놓은
<포켓 몬스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어린이들에게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뜻 있는
미국인들을 걱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
에서 <닌자 거북이>를 내놓은
이래 <파워 레인저><스타 크래
프트><포켓 몬스터>등 어린이
들이 즐길 수 있는 컴퓨터 베임
이 성행하면서 1990년 이후에 출
생한 어린이들은 ‘게임세대’라
고 분류해서 부를 정도로 하나의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
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우
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즐길수 있는 PC방이 전자 오락
실을 점령해버렸다. 집에 컴퓨터
가 없어 집에서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아이들은 물론, 집에 컴퓨
터가 있더라도 여러 대의 컴퓨터
와 네트워크를 구성해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해야만 하는 <스타
크래프트>같은 신형 컴퓨터 게
임을 즉기기 위해 아이들은 돈만
생기면 PC방으로 달려가기 시작
했다.
여기에 푹 빠진 아이들은 방과
후 제때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학원을 빼먹기까
지 한다. 게다가 pc방에는 나이
어린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
까지 드나들고 있어 부작용도 만
만치 않다.
1999년 11원에는 여고생이 pc
방에서 만난 어른과 어울리다가
한 남자가 성폭행을 하려고 하자
이를 피하려고 여관 창문에서 떨
어져 숨지기도 햇다. 설상가상으
로 그로부터 며칠 후 숨진 여고
생의 친구까지 그 친구가 죽은
것을 비관하고 동반자살을 해 pc
방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은 더
욱 증폭되었다. 부모들은 당연히
어린 자녀가 pc 방에 드나드는
것을 말리고 싶을 것이다.
"우리 준석이가 학원을 빼먹고
pc 방에 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만 그 버릇을 고칠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 회사에서 자녀를 잘 기르
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
던 주부 수강생 신명희 씨가 초
등학교 5학년인 막내아들에 대한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신명희 씨는 4년 전 남편을 교
통사고로 잃고 남편이 경영하는
선물용 상자를 만드는 중소기업
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는 두 살 터울의 아들이 둘 있었
는데,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큰아들은 별 말썽 없이 어머니의
말을 잘 따라주는 반면 작은아이
가 4학년이 되면서부터 어머니
속을 썩이기 시작한다며 하소연
을 해왔다. 최근에는 아예 학원
도 빼먹고 PC방에서 시간을 보
내다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셨지요?"
"한번은 제가 준석이가 다니는
영어학원 쪽에 있는 거래처에 갔
다가 아이가 끝날 시간이 다 된
것 같아서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
고 입구에서 기다렸지요. 그런데
다른 애들은 다 나오는데 준석이
가 안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설마 하다가 차츰 이녁석이 도대
체 어디를 갔나 싶더라고요."
신명희 씨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작은아들 준석이는 어머니인 신
명희 씨가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자리를 뜨려고 할 때쯤에야 학원
과는 반대쪽 골목에서 나오더라
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보자 묻지도 않
았는데 "지금 긑났어요. 엄마"하
고 콧소리를 내면서 어며니와 팔
장까지 끼는 것이, 평소 어머니
와 손 잡는 것도 꺼려하던 것과
는 너무나 달라서 '정말 뭔가 있
구나' 하고 짐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말을 잘
못꺼냈다가는 오히려 준석이의
반발이 클 것 같아 일단은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는 아무래
도 적정이 되어 준석이의 학원
앞에 숨어서 며칠 동안 지켜보았
는데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이 다 나가고 난 후 학원
과 반대쪽에서 나와 친구들과 함
께 태연하게 집 쪽으로 가더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PC방을 다니는
것 같았다.
신명희 씨는 여러 가지 사회적
경험이 많아 이 문제에 대해 매
우 신중하게 대처를 잘한 것 같
았다. 나는 신명희 씨에게 기회
를 보아서 준석이 입으로 학원
대신 PC방을 다니게 된 사실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도록 분위기
를 조성해보라고 일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갑자기 태도
변화를 일으키면 안 되며 평상시
와 같이 침착해야 한다고 덧붙였
다.
그럴 때 아이는 어머니에게 들
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의 태도에 민감하
게 반응하고 어머니의 태도가 조
금만 변해도 미리부터 방어를 하
개 된다. 그래서 오히려 신경질
을 내거나 자포자기하는 말투로
대드는 등 과잉대응을 보이면서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신명희 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
는 동안 언제나 나와 의논했고
내가 말한 대로 신중하게 대처해
준석이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그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준석이는 지금은 집애서만 컴퓨
터 게임을 할 뿐 PC방에는 가지
않는다.
"이모, 엄마가 언제 제일 미운
줄 아세요?"
"글세?"
'뭐에 열중하고 있는데 딴 거
하라고 말할 때."
"예를 들면?"
"컴퓨터 게일을 하고있는데 갑
가지 쫓아와서 공부하라고 말할
때."
"그건 예현이가 공부를 제때 안
해서 엄마가 걱정되기 때문이 아
닐까?"
"아니라니까요. 나한테도 다 계
획이 있는데 갑자기 열심히 하는
일을 방
해하니까 화가 나는 거죠."
"그럼 공부할 시간을 미리 정해
두었단 말야?"
"그럼요. 그 게임만 끝나면 할
생각이었단 말예요."
"그래도 게임에 푹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잖아. 공부부
터 하고 난 다음에 게임을 하면
엄마가 간섭 안 했을 거 아냐?"
"공부하라는 말뿐만이 아니라니
까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꼭 할 일이 생기면 중간에
나타나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신단 말예요."
대학교수인 여동생은 딸 예현이
와 함께 지낼 시간이 없어서 예
현이는 주로 할머니와 지냈다.
그런데도 후일이나 방학 때 엄마
와 함께 있으면 이래라저래라 하
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투덜거
린다.
아이들에게 요구사항이 있으면
열주하고 있는 일을 방해하지 말
고 그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 특히 집에서 컴
퓨터 게임에 열주하고 있을 때
부모가 자주 방해하면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를 피해서 PC방으로
달아나게 된다.
아이들은 또래들이 즐기는 놀이
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왕따'가
된다. 아이들 말로는 컴퓨터 게
임의 유행은 6개월을 주기로 바
뀐다고 한다. (닌자 거북이)나
(파워 레인저) (포켓 몬스터)처럼
세계를 강타하는 대유행 게임도
3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아이
들로 새로운 경향을 쫓아가려면
바쁘다는 것이다.
사이버 서계가 팽창하고 정보화
시대가오고 있는 이상,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은 새로
운 문화현상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억지로 막기보다는 자녀
와 의논해서 일과 시간표를 조절
하도록 여유를 주면 정해진 일과
와 게임하는 시간을 스스로 안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가신 질문을 계속할 때
"엄마, 건널목은 영어로 워예
요?"
"인터섹션(Intersection)."
"엄마, 다방은 영어로 뭐예요?"
"커피 숍(Coffee shop)."
내가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예측
을 프로그램으로 제작해서 방송
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히 미래
예측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우
리 아이들이 성년이 될 다음 시
대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다소 지식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2000
년대에는 우리나라도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어실력이 사회인
의 필수조건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하긴 우리 아이
들이 태어난 1980년대 초에 이미
영어공부 열풍이 세차게 불었기
때문에 나처럼 미래를 미리 내다
볼 수 있다면 요란을 떨지 않더
라도 부모라면 누구나 그 정도쯤
은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두 아들이 말을 배
우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말과 동
시에 영어도 가르쳤다. 집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에는모두 쩍
지에 영어명칭을 써서 풀로 붙여
놓았다. 그 모습을 누군가 보았
더라면 우리 집을 무당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나는 손님이 오는
날에는 부지런히 쪽지를 뗐다가
손님이 돌아간 후에 다시 붙였
다. 그 덕에 우리 집의 그 흉물
스러운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그때 배운 영어는 생각이 안 나
지만 엄가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여두었던 쪽지들은 아직도 기
억이 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영어를 함
께 가르치는 동안 "엄마 코딱지
가 영어로 뭐예요?" 하고 물어서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가뜩이
나 질문이 많은 아이들인데 영어
로는 뭐냐는 질문까지 해대는 바
람에 나는 종종 영어까지 가르칠
마음을 먹은 자 자신을 원망하기
도 했다. 영어와 우리말을 한꺼
번에 배우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질문이 많
았다.
"엄마, 추락이 뭐예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걸 말하는 거지."
"그럼 폭포가 떨어지는 것도 추
락이에요?"
우리 아이들은 이런 식의 질문
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든 적도
많다. 어린 자녀들이 매사에 꼬
치꼬치 물으면 피곤하고 힘들 때
는 일일이 대꾸해주기 힘들 것이
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라는 말
을 배우는가 싶으면 어느새 보는
것마다 새롭고 궁금해서 "이거은
뭐예요?" "저것은 뭐예요?" 하고
끝없는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친정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이 나
만 보면 이처럼 시시콜콜 질문을
해대자 "아이구, 이놈들아. 너희
들 질문에 엄마가 다 대답을 해
주려면 엄마가 박사학위를 수십
개 받아야겠구나"라고 말씀하셨
을 정도였다.
친정아버지는 아들의 질문공세
에 시달리는 딸을 구해주기 위해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나한테
물어라"라고 말씀하였다. 그때 할
아버지께서 들은 철학과 역사 이
야기들은 우리 아이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는 것마다
꼬치꼬치 물으면 힘들고 피곤해
서 "몰라" "원래 그래" "엄마 지
금 바빠, 나중에 물어볼래?"라고
대꾸하는 경우가 많다. 또 요즘
에는 부모와 자녀 간의 세대차가
많이 나 정말 몰라서 대답해 주
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이 좋아하는 만화 (포켓 몬스터)
라든가, 게임방이 뭔지 잘 모를
경우 자녀가 거기서 생긴 문제를
얘기 할 때 속시원하게 답변해주
기가 힘들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할머니가
자녀를 맡게 되면 할머니는 컴퓨
터 게임에 관한 새로운 기술용어
를 몰라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할머니를
무시하고 부모가 퇴근하기를 기
다렸다가 한꺼번에 질문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직장일에 시달리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퍼부어지는
아이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
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이들이 꼬치꼬치 물을
때에는 부모가 좀 힘들더라도 꼬
박꼬박 대답해주는 것이 좋다.
만약에 내가 알 수 없는 범위의
질문을 한다면 "나도 잘 모르는
데 우리 같이 한 번 알아볼까?"
하면서 함께 책을 찾아보건나 인
터넷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좋
다.
또 문헌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시범을 직접 보
여줄 수도 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자녀들은 묻는 것보다는 직
접 자료를 찾는 것이 더 좋은 답
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어 부모는 자녀의 질문공
세에서 차츰 벗어나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새로 나온 백
과사전은 반드시 사주었고 한글
을 깨우친 후부터는 직접 사전을
찾도록 했다. 사전에 나오지 않
는 것만 엄마가 답변하게 되자
일거리가 한결 줄어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한 습관 때문에 미
국에 갈 때도 한글로 된 31권짜
리 부리테니커 백과사전을 챙겨
갔다. 지금은 CD로 된 백과사전
이 나와 이동이 한결 편해졌다.
자녀가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유난히 질문을 많다
면 어머니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는 가족끼리 답
변당번을 정하면 좋을 것이다.
모든 질문애 어머니 혼자 대답해
주는 것보다 다양한 답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녀에게도 좋
다.
시간을 정해두고 몇 시부터 몇
시는 아버지가, 몇 시부터 몇 시
는 어머니가, 몇 시부터 몇 시는
할머니가, 아니면 기술적인 것은
아버지가, 친구관계는 어머니가,
어른들에게 대한 불만은 할아버
지나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분
담해서 답변해주는 식이다.
미국에서 본 어머니들은 자녀가
아무리 꼬치꼬치 물어도 귀찮아
하거나 나중에 얘기하라고 말하
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주부들
이 그들보다 힘겹고 피곤하게 살
기 때문에 매사를 그들과 비교하
기는 어럽다. 그러나 호기심 어
린 자녀의 질문에 "이따 물어보
면 안 되겠니?" "엄마 지금 바
빠"라고 반응하면 자녀의 호기심
은 그 순간 사라져버리고 그와
동시에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도
사라질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을 그때그
때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을 나중
에 다시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즉석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탐구심과 관찰력이 길러지
는 것이며, 이는 곧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발전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사
귈 때
"정말 속상해 죽겠어. 저렇게 지
저분한 애를 허구한 날 집으로
데리고 오다니."
박숙영 씨는 주방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외동딸인 계영이가
오들도 산동네에 사는 석규를
델;고 왔기 때문이다.
한의사의 부인인 박숙영 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계
영이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집안
좋고 잘 생긴 민수나 재민이 같
은 남자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
고 누구네 집 아들인지도 로를
남루한 차림의 석규를 집으로 데
리고 오는 것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석규가 집에
오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지
만 계영이와 사이만 나빠졌을 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엄마, 석규는 컴퓨터가 없기 때
문에 사회숙제를 하기가 힘들대.
엄마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
고 말했잖아. 친구한테 컴퓨터
좀 빌려주는데 그게 뭐가 나빠.
그리고 석규가 컴퓨터 공짜로 쓰
자는 것도 아니고 사용료를 500
원씩 낸다잖아."
이렇게 말하는 계영이 말이 하
나도 틀리지 않아 반박할 수가
없었지만 박숙영 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석규가 계영이를 따라
집에 드나드는 것만큼은 막고 싶
었다.
그 때문에 석규에게 "아버지는
뭐하시니?" "사는 동네는 어디
니?" "공부는 잘하니?" 하며 석
규의 자존심이 상할 만한 질문도
서슴지 핞고 해댔다. 그러던 어
느 날 계영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펑펑 울면서 어머니를 원망했
다.
"엄마는 정말 잔인해. 석규네 아
빠는 돌아가셨는데 왜 석규한테
아빠에 대해서 물어가지고 석규
를 화나개 하는 거야? 이제 우리
집애 안 온대"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석규는 집이 가난했지만 힘이
세고 아는 것이 많아서 만약 석
규에게 밉보이면 계영이는 학교
에서 '왕따'가 될 수 있었다. 석
규는 자기네 집에서 가까운 계영
이 집에서 컴퓨터를 빌려쓰고 싶
다고 했고 계영이는 석규와 유난
히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한 아
이들의 세계를 모르는 박숙영 씨
는 "계영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석규 아빠가 돌아기신 줄
몰랐잖아. 일부러 그런 거 아니
란 말야" 하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런데 왜 같은 질믄을 계속하
느냐구."
계영이는 울움을 터드렸다. 그
후부터 계영이는 꽤 오랬동안 어
머니와 눈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
다.
"언니, 정말 신경질 나 죽겠어."
"아니, 왜?"
"태영이가 이상한 계집애를 집
에 데리고 왔어."
"이상하다니?"
"몰라, 앉을 때도 치마가 홀랑
뒤집어지게 앉고 냉장고를 제 마
음대로 뒤지는 여자애를 친구라
고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 있지.
오늘이 처음이 아냐."
사촌인 재옥이가 모처럼 전화를
건 나에게 이러한 푸념부터 늘어
놓았다.
"얘는 아직 어린애들인데 뭘 그
래?"
"어리긴 뭐가 어려. 벌써 초등학
교 졸업반인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애가 얼마나 교양 없이
자랐으면 남의 집에 와서도 그렇
게 행동을 하겠어?"
"그래도 태영이는 그 애가 좋은
모양이지, 뭐."
"언니는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거야? 언니도 당해봐. 얼머너 속
상한지 알아? 내가 태영이를 어
떻게 키웠는데 그런 여자애들이
랑 논단 말야? 옛말에도 애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잖아. 친구
를 잘 사귀는 게 얼마나 중요한
데, 언니. 게다가 우리 태영이는
남자애고 그 애는 여자애잖아."
재옥이는 지금까지 참았던 화풀
이를 나에게라도 하려는 태세였
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공부 잘
하고 집안도 좋은 친구와 사귀기
를 원한다. 아니면 적어도 수준
이 비슷한 친구라도 사귀기를 바
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
른들처럼 성적이나 집안을 따지
며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때
문에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아이들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부모로서는 또래의 아이들끼리
는 많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의 기준에 미달되는
친구를 사귀면 여간 신경이 쓰이
는 게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와 친하거나 집에까지 데리
고 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간
섭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잘못하
면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간섭하려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한다.
또 요즘 애들은 예전처럼 친구
와 죽고 못살만큼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드물다. 친구라 해서 무
조건 좋아하거나 붙어다니지도
않는다. 물건을 빌려도 돈 주고
빌려주는값을 계산한다. 석규가
계영이네 집에 가서 컴퓨터를 사
용하면서 이용료를 내는 것처럼
친구에게 물건을 빌리면서 이용
료를 내는 것처럼 친구에게 물건
을 빌리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다.
딱지놀이를 하면 딱지를 많이
단 아이가 즉석에서 친구에게 팔
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서구의 합리주의와 상업주의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친
구도 부모가 생각하듯 심각할 정
도로 친한 사이가 아닐 수도 있
다. 자녀가 친구를 집으로 데려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모 식
으로 지레짐작해 지녀의 친구관
계를 섣부르게 간섭하면 해결은
커녕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상업주의가 팽배했다고
해도 어린아는 순수하기 때문에
배우운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친구가 가난하거나 집안
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부모가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부모
를 속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러한 속물 근성을 부끄러워 한
다.
또 요즘에는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사
춘기가 온다고 한다. 실제로 초
등학교 4학년 때 초경을 경험하
는 여학생들과 몽정을 경험하는
납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다. 가
뜩이나 사춘기가 오면 부모를 멀
리하고 싶어하는데 만약 부모가
속물근성을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면 심하게 반발하게 될 것이
다.
나아가 자녀가 부모의 마음에
들지않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해서 그 아이의 지존심을
상하게 하면 부모가 원하는 것과
는 반대로 두 아이가 더욱 가까
워지게 만들기도 한다.
"승연아. 크리스는 괜찮은 애
니?"
미국에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였다. 아이들이 어느 날 험상굿
게 생긴 흑인 친구 한 명을 집으
로 데리고 왔다. 크리스라는 그
아이는 땅에 질질 끄리는 펑키
바지에 부대자루 같은 웃옷을 입
고 있었다.게다가 목에는 쇠사슬
을 걸고 치렁치렁 늘어지는 귀골
이도 했으면 걷는 것도 춤을 추
는 것처럼 건들거렸다.
나는 설마 우리 애가 그런 친구
를 사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무척 놀랐다. 나는 나
도 모르게 "저 애 총 가지고 다
니는 애는 아니니?" 하고 물었
다.
"아이구, 참 엄마도. 그런 애라
면 제가 같이 놀겠어요? 보기는
저래도 착한 애예요"라고 말했지
만 왠지 마은이 놓이지 않았다.
그후로도 두어번 크리스는 아이
들과 함께 우리집에 왔다. 우리
아이들은 크리스가 학교에서 춤
을 가장 잘 추는데 자기들이 그
아이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는
대신 춤을 배우기로 했다는 것이
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했지
만 크리스가 우리집에만 오면 요
란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우
리집에 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섣불리 말을꺼냈다가는 아이들에
게 핀잔이나 받을 것 같아서 묘
안을 짜야만 했다.
그러던 중 동네에 큰 비가 내리
더니 1층인 우리집 거실 입구까
지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직했
다. 현관바닥의 방수 공사가 오
래되어 물이 새어드는 것이어서
고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는
원한다면 동 호수를 바꾸어 주겠
다고 햇다. 결국 계획에 없던 이
사를 하게 되었다.
미국은 노동력이 워난 비싸기
때문에 집을 고치거나 이사를 할
때 웬말하면 일꾼을 부리지 않고
직접 한다. 아이들도 일꾼없이
우리끼라 이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각자의 운동기구에다 책
상 컴퓨터 등 무거운 짐이 너무
많아 우리끼리 아사할 엄두가 나
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그 중에는 크리
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차림의
아이에게 짐을 나르게 하고 싶지
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우기는 바
람에 승낙하고 말았다.
크리스는 그날 하루종일 춤추듯
걸으며 이삿짐을 거뜬하게 날랐
다. 다른 애들은 힘들다고 중간
에 쉬거나 가버리기도 했지만 크
리스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
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쉬지않고
열심히 짐을 날랐다. 크리스가
돕지 않았다면 이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
는 그 아이의 성품을 자세히 알
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평
가해서 크리스가 집에 오는 것을
못마땅해한 사실이 미안해졌다.
그후 내가 마음을 바꾸어 크리
스가 집에 방문할 때면 갈비나
잡채를 해서 먹고 가라고 붙들기
시작했다. 우수운 것은 내가 친
절해 지자 우리 아이들이 크리스
에게 유난히 친한척 하던 태도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내가 크리스를 싫어한
다고 생각하고 혹은 내가 그 아
이에게 상처를 줄 말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유난히 감
쌌던지 그후로부터는 오히려 크
리스를 덤덤하게 대했다. 내가
호들갑스럽게 크리스를 반기면
"엄마는 크리스가 그렇게더 좋으
세요?" 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후부터 나는 아이들이 내 마
음에 들지않는 친구를 집으로 데
리고 와도 일단 친절하게 대해주
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그 친
구에 대한 장점은 물론 단점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
면 나는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아이들이 친구의 단점을 이야기
힐 때면 "그러니깐 거리를 좀 둘
필요가 있겠지?" 라는 말로 쐐기
를 박아두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
는 친구와 친하거나 집에 자주
데리고 오면 그 아이들 내 자녀
보다 더 잘 대해줄 필요가 있다.
`아니? 우리 엄마가 혹시 나보다
저 애를 좋아하는 거 아냐?` 라
고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은 독점
욕이 강해서 그 친구와 자연히
거리감을 두게 될 것이다. 무턱
대고 반대해봐야 자녀들은 고분
고분 따르지 않는다.
북풍과 해님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로 한 내기에서 이긴족은 차
가운 바람을 불어댄 북풍이 아니
라 햇살을 내리쬐던 따뜻한 햇님
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
다.
처음으로 성적인 호기심을
나타낼 때
"언니, 어떡하면 좋아? 글세 우리
주연이가 거실에 앉아서 고추를
가지고 놀지 뭐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또 그런
짓을 하면 혼내 준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겁을 내더라고.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나 안보이는 데 숨어서
그러는 거야. 누나방에도 가서
그러고 서재에서도 그래. 그래서
주연이가 그러는 것을 보고도 아
는 척도 못 했어."
부잣집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산
다고 소문난 학교후배 영은이가
10년정도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고민이 있다며 전화를 했다. 영
은이의 고민은 이제 겨우 여섯
살 밖에 안 된 막내아들 주연이
가 어느 날 부터인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
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하고 남편
의 각별한 보호 속에서 전업주부
로 15년을 평온하게만 살아온 영
은이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
건 이었다. 영은이는 성격이 꼼
꼼하고 깔끔해서 집안이 반들반
들햇다. 영은이네 집 거실에 들
어가면 순간 내가 마치 여성잡지
의 화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처럼 집안 곳곳에 책과 종이
더미를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살
던 사람에게는 그러한 집 모양새
가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그
토록 정돈이 잘 된 집 모양과는
달리 영은이는 나를 만나자 억장
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한숨부터
길게 내 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주연이가 별
난 건 아냐. 다섯 살, 여섯 살 난
애들 중에도 그런 애들이 제법
많아." 라고 말해 주었지만 막무
가내였다. 하긴 은영이의 말을
들어보느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
는바도 아니었다.
영은이는 결혼 후 중학교 1학년
과 3학년인 딸을 둘 두었다. 영
은이 남편은 부친의 금융사업을
이어받아 직접 운영해 형편은 넉
넉했다. 그 때문인지 영은이 남
편을 나이가 들수록 아들타령이
잦아졌다.
"재산은 누구에게 물려주나?"
하며 한숨까지 쉬는 날이 많았
다. 영은이는 아들은 낳지 못한
것이 마치 자신만의 잘못인 것
같아 기를 피지 못했다.
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친척
들은 아들 타령하는 남편이 바람
을 피워 아들을 밖에서 낳아가지
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하나 더
낳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은이
는 남들 말에 잘 넘어가는 성격
은 아니었자만 너무나 많은 사람
들이 똑같은 말을 하는 바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영은이
부부는 둘 다 임신방지를 위한
수술은 받지 않았기 때문에 피임
만 안 하면 얼마든지 아이를 낳
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아
들을 낳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
문에 영은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
다.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정말 우
연히도 아기가 들어섰고 태어난
것이 주연이었다. 영은이가 마침
내 아들을 낳자 그녀의 남편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즐
거워했다. 자연 주연이라면 끔찍
하게 위해주었다. 영은이는 주연
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엉덩이
를 제대로 닦았는지 검사를 하고
괜찮은데도 다시 닦아주었으며
옷에 먼지가 조금맘 묻어도 옷을
갈아입혔다.
주연이는 항상 진열장에 놓인
마네킹처럼 멋진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녔다. 자연 마음놓고 땅
바닦을 뒹거나 뛰놀 수가 없어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가 없었
다. 어머니 하고만 보내는 시간
이 다른 애들보다 훨씬 만았다.
영은이는 그 깔끔한 성격 때문에
파출부 아주머니에게만 집안일을
맡기지 못하고 집안 청소다 빨래
다 점검을 하느라 주연이와 같이
놀아주지 못해 주연이는 혼자노
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연이는 심심했다. 그러나 영
은이는 그 문제가 뭐 그렇게 중
요하냐고 반문했다. 아이들은 에
너지가 많가 때문에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인다. 어머니들이 아기
돌보기를 힘들어 하는 이유도 아
이들이 움직이는데로 쫓아다니기
가 힘들기 때문인 것 이다. 그런
데 이러한 아이들은 마음놓고 뛰
놀지 못하게 하면 에너지 방출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에너지를 방출
할 출구를 찾게 된다. 아기가 외
롭거나 마음놓고 뛰놀 수 없을
때 나이에 관계없이 자위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천재는 성에너지
왜곡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하기
도 했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머리가 좋다기 보다 성에너지가
성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학문쪽
으로 붑출된 결과라는 것 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1900년대 초기
에 어린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교
육하는 시험학교를 운영했던 서
머힐 학교에서 여섯 살 난 어린
이가 자위행위를 하자 교사가 지
켜보면서 "재미있니? 다 끝났
어?" 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
를 나누어 그 아이가 성적으로
외곡되지 않도록 교육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 내용은 책으로 발
간돼 우리나라에서도 교육 관계
자는 물론 교육학 전공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온실속에서만 실아온 영은이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아니, 이게 뭐야. 발가벗은 여
자 아냐? 무엇 때에 이런 걸 그
린 거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서미영씨는 달 지수의 방청소를
하다가 지수가 숨겨둔 비밀상자
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지수가 여
러 가지 모습의 여자 나체를 그
려놓은 그림을 보게 되었다.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울화통부
터 터트렸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지
수가 어른들이 보기에더 외설스
러운 여자 나체를 그려놓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성을 잃을 정도
로 흥분되었던 것 이다. 지수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무릎을 꿇라
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지
수는 부끄럽고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 어
머니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
자 지수 역시 화가 나 어머니에
게 대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남의 물건을 뒤지는
거야?"
지수는 오히려 화를 내며 울면
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밖에 안된 녀석
이 글세 컴퓨터 음란 사이트에서
그림을 모아다가 저장을 해 놓았
지 뭐에요? 화가나서 그냥 다 지
워버렸지요. 그랬더니 아들 녀석
이 그날 저녁부터 슬슬 나를 피
하는 거에요."
회사 남자 후배 한 사람이 우연
히 점심을 같이하게 된 자리에서
이와 같은 하소연을 했다. 그 후
배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아들
녀석이 괘씸해 죽겟다는 듯 언성
을 높였다.
"야, 임마, 이리와 봐. 아빠랑 말
좀 하자, 하고 꽁무니를 빼는 녀
석을 불렀지요. 그랬더니 오만상
을 찌푸리면서 달아나 버리는 거
에요. 워낙 회사가 바쁘기 때문
에 그 다음에는 녀석이랑 마주
칠 일이 없어서 며칠 못 만났지
요. 그런데 그날 이후 이 녀석은
아빠만 만나면 문을 쾅 닫고 눈
을 위 아래로 흘기는 거예요. 뭐
뀐놈이 성낸다고, 나 원 참."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사춘기를
맞는다는 말을 앞에서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예현이는 “우리 또래
남자애들은 몸이 근질근질한가
봐요. 길을 가다가 괜히
쓰레기통을 발로 차
깨트려버리기도 하고 나무에
몸을 대고 비벼대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게다가 물질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성의 상품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성행위나 성적자극을
느낄수 있을 만한 영화, 비디오,
인터넷 화면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폭력과 돈,
섹스가 주축을 이룬다. 게다가
미국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영화등급은 섹스
장면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의 강도가 기준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도 반드시 섹스 장면이
있으며 아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관람한다. 그러한 헐리우드
영화를 우리의 어린이들도
열심히 본다.
요즘에는 인터넷 음란
사이트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들도 손쉽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린이들의 주변이 포르노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들은 부부끼리
포르노비디오를 보고 방치해
아이들도 여과 없이 보기도
한다. 성교육강사 구성애씨는
이러한 포르노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살펴보면 완전한 포르노 퇴치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접촉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초등학생들 간에도
“아무개는 결혼한다더라”라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번지고
있으며 어떤 여자 어린이들은
‘H.O.T'의 멤버들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한다.
부모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자녀들은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자녀를 데리고 온
한국인 부모와 자녀 간에 이러한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미국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댄스파티를 연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 부모들은
‘댄스파티’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껴 자녀들에게 그곳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한다.
학교 댄스파티는 남녀학생들이
끌어안고 춤을 춘다고 해서
어른들이 생각하듯 음란한
파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 따라서는 댄스 대신
스쿼시나 테니스같은 운동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교를 위한 행사가
‘댄스파티’인 것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실을 옮겨다니며 과목별
교사들한테 수업을 받기 때문에
친구들을 시귀기가 어렵다.
따라서 댄스파티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인 부모들은 무조건 참석을
막으면 안된다고 믿어 참석하고
싶어하는 자녀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춤의 열풍이 불어
테크노댄스니 D.D.R.(컴퓨터
댄스 게임)이니 해서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춤추는 것이
별나게 보이지 않아 그런 갈등은
많이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적인 문제로 겪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아이들은
성과 관련된 문제를 어른들의
기준으로 평가해서 호들갑을
떨면 부모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눈을 속이기
위한 보안을 짜내면서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자녀가 성적인 호기심을
나타내면 부모는 가능한 한
담담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고추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니?”
“네.”
“그럼 가지고 놀아. 그런데
엄마 앞에서만 가지고 놀아.
보기에는 흉하거든.”
“뭐가 흉한데요?”
“생각을 해봐. 엄마가 사람들
보는 데서 너처럼 고추를 가지고
놀면 보기 좋겠어?”
“아니오.”
“그것봐. 엄마는 네가 어떤
놀이를 해도 밉지 않은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
한 아동심리학 교수가 유치원때
자위행위를 하는 딸과 주고
받았다는 대화다. 그 집 딸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던 유치원 때
1년 정도 자위행위를 하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친구가
많아지면서 그 버릇이
없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때쓸때
“요즘 부모는 애들이 사달라는
것은 다 사주잖아요.”
“그래서 없는게 없지요.”
“아이구, 말씀도 마십시오.
애들이 새 게임이나 장난감이
나오면 어찌나 졸라대는지 안
사주고 배길 수가 없지요.
텔레토비가 유행하는가 했더니
이제는 포켓 몬스터가
나왔잖아요. 그런 게 나오면
어디 한두 가지만 나오나요.
게임 나오지, 만화 나오지,
카드다, 과자다 헤아릴 수도
없어요.”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인 아들
둘을 둔 대학교수 한 분이
사석에서 요즘 아이들에 대한
말을 하게 되자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집은
아이들 방이 장난감으로 다극 차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수가 적기
때문에 자녀들이 원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사주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이들 고집을
꺾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서 그냥
들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이 그러한
부모를 고마워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일 수 있다. 사람은 열 번
잘해주다가 한 번 잘못해주면 그
한 번 잘못해준 일만 기억하기
마련이어서 어쩌다 한번 부모가
자기 마음을 거슬리게 하면
두고두고 기억한다.
또 부모가 원하는 것을 척척
사주면 자녀의 경제관념도
흐려진다. 돈은 쉽게 벌수 있고
쉽게 써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원주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의 아동 상담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했다. 부모들이 자녀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못할 때
전화를 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국립원주대학 학장이 되신 당시
원주전문대 유아교육과 최한수
교수와 오랫동안 그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했다. 그 분은
40대중반에 석사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게 된 분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페스탈로치 못지 않았다.
그 분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시장구경을 많이 시켜주라고
일러주었다. 시장은 온갖 새로운
물건이 쌓여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
분의 조언을 많이 들었다.
따라서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큰 아이
창연이가 네 살때였다. 큰아이는
유난히 퍼즐이나 레고 맞추기,
자동차 놀이 등을 좋아했다.
새로운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한번은 시장 안에 있는 양품점
골목을 지나다가 진열장의
마네킹 발 밑에 엄지손가락만한
외제 모형 자동차가 진열돼 있는
것을 발견하자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앞에 서서 자동차를
구경했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엄마, 저 자동차 사주세요.”
“엄마 지금 돈 없어.”
“사주세요.”
“그리고 저건 파는 것도
아니야.”
“사아주우세에요.”
“안 된대도.”
아이는 길거리에서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럼 여기서 울고 서 있을래?
엄마는 갈건데.”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그럼 엄마는 간다.”
나는 그 자리를 피해 몸을
숨겼다. 아이는 아예 자리에
앉아 다리를 뻗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30분만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는 30분
가량 울고 난 후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일어서서
두리번거리며 날 찾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서야 아이 앞에
나타났다.
“어떡할래? 엄마랑 같이 갈래?
여기서 계속 울래?”
내가 다시 묻자 아이는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았다. 그날
이후 우리 아이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말할 때 “엄마
다음에 봉급타면 사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버릇은 계속되어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필요하긴 한데
나중에 사주세요”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도록 해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싶은
의욕을 잃게 돼 성인이 된
후에도 열심히 살려는 의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아이의 유치원 친구였던
상훈이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상훈이 어머니는 수예점을
했는데 솜씨가 좋아 형편이
넉넉했다. 그래서 상훈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주었다.
한번은 유치원 자모들이
제과점에서 만나 아이들
재롱잔치에서 하용할 케이크를
사기로 했다. 어머니를 따라온
상훈이는 어머니에게 커다란
생일 케이크를 사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안 된다고 하자
진열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더니
그 케이크를 손으로 주물러
놓았다. 상훈이 어머니는
당황하며 그 케이크를 샀다.
온갖 응석을 다 부리면서 자란
상훈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빼먹고 놀러다니더니
고등학교 때 가출해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만난 데이몬의 어머니
애실리는 그런 점에서 지독했다.
애실리 부부는 우리 동네에서 잘
알려진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녀에게서 데이몬이 어렸을 때
자전거를 샀던 이야기를 듣고
만은 것을 배웠다. 데이몬이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었다.
네이몬은 아주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무척이나 타고
싶어했다. 자전거를 사려고
용돈을 꼬박꼬박 저축했다.
부모가 도와준 적은 없었다.
이웃집 잔디를 깎거나 이웃집
아저씨 자동차를 세차해주고
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모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신문에서 중고 자전거 광고를
열심히 찾아 간신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
자전거는 형편없는 고물이었지만
데이몬은 매일 자전거를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면서 새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학교 다녀오면
자전거부터 살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몬이
그렇게도 아끼던 자전거가
없어졌다. 도둑을 맞은 것이다.
데이몬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애실리와
그녀의 남편은 데이몬을
위로하기 위해 새 자전거를 사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벌로 벌금을 물도록 했다.
데이몬은 다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금을 물고 새 자전거를
살 돈을 저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자전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데이몬은 두 번
다시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성능 좋은 열쇠도 같이
샀다. 이 과정을 통해 데이몬이
물건을 아끼고 관리할 줄 알게
된 것은 물론이다.
한 교민이 우리 동네에 살다가
시카고로 이사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집을 비워놓더라도
집주인이 잔디를 깎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 집으로 오는
우편물도 챙겨서 각종 세금을
내야 한다. 누군가 잔디를 깎고
집을 돌보아주고 우편물을 새
주소로 보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집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친구인 폴에게 그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미국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 집에서는 이웃집에 사는
폴에게 그 일을 맡아주면
일주일에 20달러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너무 돈을 많이 주면
그러한 아르바이트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 집에서는 1주일에
5달러씩 주기로 하고 집안
돌보는 일을 맡기게 되었다.
폴의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폴에게 1주일에 20달러씩은 너무
많은 돈이며 그 돈이 폴을 망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교민가족들은 그 일을 두고
“정말 미국 어머니들은
대단하더군요”라고 말했다.
돈은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행복을 주는 신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 노력할 힘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얼굴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때 부모가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것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말해야만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를 수 있다. 당장
귀찮고 어렵다고 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더
자란 다음에는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안 된다고
할 때에는 끝까지 버텨야 한다.
중간에 고집을 꺾으면 버릇이
들어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절대
승복하지 않게 된다.
용돈을 올려 달라고 조를때
“용돈을 어디에 쓸려고 올려
달래? 엄마가 다 해주잖아.”
“그래도 쓸 데가 많단 말야.”
“글쎄, 그게 뭐냐니까?”
“나처럼 용돈 적게 받는 애가
있는 줄 알아?”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무슨 돈 쓸 일이
그렇게도 많아?”
“엄마가 준비물도 안
챙겨주면서 뭘 그래?”
경원이와 어머니는 툭하면 용돈
때문에 줄다리기를 벌인다.
경원이 어머니는 공직자의
아내로 그야말로 콩나물 값도
깎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알뜰주부였다. 그에 비해서
경원이 아버지는 호기 있고
씀씀이가 커서 직장동료는 그를
통 큰 사람으로 불렀다. 경원이
어머니가 알뜰하게 굴지 않으면
살림유지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외동딸 경원이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뭔가 사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 늘 용돈이
부족했다. 경원이 어머니는
그러한 경원이의 생활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는 남편이 돈을 잘 써서
속썩이는 것도 견디기가 힘든데
애까지 그렇다며 노골적으로
싫어하기도 했다. 경원이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올려받기
위해 여러 가지 꾀를 생각해내곤
했다.
어머니 대신 설거지를 해놓으며
아양을 떨기도 하고 통하지
않으면 생때를 쓰거나 손님이 올
때를 노려 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평소에는 인색하던 어머니들도
급히 외축을 해야 하거나 손님이
오면 바쁘거나 민망해서 얼른
돈을 주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에
용돈을 올리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용돈을 주는 일에 대해
뚜렸한 주관을 갖고 있지 않고
무조건 올려줄 수 없다고
거절하거나 무조건 원하는 대로
다 주면 자녀들에게 바른
경제관을 심어줄 수 없게 된다.
“지난 휴가 때 우리는
호숫가에 집을 얻어 아이들과
함께 한달간 지내다가
돌아왔지요.”
미국에 있을 때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미셸어머니 뎁은
휴가를 맞아 북부 미시간 트레벌
시에 있는 호숫가 옆에 있는
렌치 하우스를 한 달간 빌려
가족과 수상 스키를 타며
즐기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미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미셸의 동생 릭은 2학년이었다.
미시간 주립대 교직원인 뎁은
휴가에서 있었던 즐거웠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갑자기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뎁은
휴가 동안 아이들에게 완전히
살림을 맡긴 적이 있다고 한다.
4주동안 네 가족이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살림을 책임지기로
했는데 누구나 동일한 생활비로
예산을 세워 식품조달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했다는
것이다. 릭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원하면 누나인 미셸과
공동작전을 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한 주는 GM자동차
공장의 매니저인 아버지가,
한주는 뎁이 그리고 두 주
동안은 아이들 둘이서 공동으로
살림을 맡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와 같은
제안을 재미있어 하며 기꺼이
응했다고 한다. 남매는 휴가
가기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면 돈이 모자라서
안 돼.”
“그럼 아침 식사는 무조건
오트밀로 할까?”
“아빠가 오트밀을
싫어하시는데.”
“그럼 아빠만 콘플레이크로
하도록 작은 것 한 통만 사자.”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이
좋잖아. 바나나가 싸니까 하루에
1킬로그램씩 사고 비싼 야채는
사지 말자.”
아이들은 신문광고에 나온
식료품 가격표를 보면서 식단과
예산표를 짰는데 그것이 어른들
못지 않았다. 아이들이 식사
당번을 하는 두 주일은 가족들
모두가 거의 영양실조를 간신히
면할 정도로 소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뎁은 아이들에게
식사를 책임지는 대신 예산을
적절하게 짜면 남는 돈은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라며 괜히 그런 제안을 했다가
배고파 혼났다며 웃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살림을
맡아서 해본 후부터는 지독한
구두쇠들이 되어 단돈 1페니라도
계획을 세워 사용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서울에
혼자 남아 있던 남편이 의논할
일이 있다며 급히 다녀가라고
하는 바람에 아이들만 두고
서울에 다녀와야 했다. 나는
뎁과 몇 명의 교민친구들에게
응급상황이 오면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아이들에게
은행 신용카드와 수표 등 남은
돈을 모두 맡기고 서울로 왔다.
나는 서울에서 일주일을 머문
후 랜싱으로 돌아간 다음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일주일간의
식단을 짜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식사를 해결했으며 집안청소도
내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말을 들은 내
친구들은 10대 아이들에게
재산을 몽땅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나는 다음해에 두 아이만 미국의
아파트에 두고 서울로 나와
우리나라의 대학원에 다시
입학하고 사업도 시작할수가
있었다.
이국 만리에 10대 아이들만
떼어놓고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아이들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응급상황을 위한 비상연락망만
잘 가동이 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
예측은 맞아 떨어져서 그후 우리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숙식을
해결하며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에 입학한 후 기숙사로 옮겨
완전히 혼자 살아가고 있다.
“고모한테만 살짝 말해봐.
용돈을 주로 어디에 쓰나?”
“과자 사먹는데요.”
“엄마가 만들어주지 않니?”
“그래도 사먹는 것이
맛있어요. 돈이 있으면 가끔
친구들한테 사줄 수도
있잖아요.”
“준비물 살 돈도 필요해요.”
“엄마가 다 챙겨주는데도?”
“다 챙겨주시지는 않아요.
그리고 내가 직접 사는게
좋아요.”
용돈을 올려받기 위해
어머니에게 아양도 떨어본다는
조카 태호는 용돈 사용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직접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친구들에게 인심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어른의
사교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지나치게 인색한 용돈은 자녀의
사교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대전에 사는 조카 예현이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반 해철이는 병원집
아들인데 가끔 친구들한테 돈을
나누어 줘요. 동전을 잔뜩 들고
와서는 땅에다 뿌리면서 가질
사람 가지라고 해요.”
“해철이는 반 애들에게 인기가
좋겠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돈 줄 때만
좋아하지요.”
이처럼 지나친 용돈은 아이들의
사교생활을 망치기도 한다.
용돈을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에게 미리
예산서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예산을 세울 때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용돈을
올려주는 것이 좋다.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이 방법을 사용했는데
대학에 다니는 지금은 예산
세우기가 생활화되어 부모에게
용돈을 올려 받으려면 당연히
예산서를 잘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오히려
어머니가 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며 눈을 흘길 때가 있다.
아이들이 용돈을 올려달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화를
내거나 “어린애가 무슨 쓸 돈이
그렇게 많아?”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물어야 한다. 타당성이
인정되면 받아들여야 하며
집안형편에 비해 저무 많은 돈을
요구하면 솔직하게 집안형편을
설명하고 필요한 돈을 줄여서
쓰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