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전유성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차례
추천의 글: 전유성은 왜 웃지 않는가
추천의 글: 전유성과 다른 방법으로 살기
이 책을 내는 전유성의 입장
제 1 장 약속은 빚이다
뒤에서 씹어라
참으면 터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편견이 없으면 줏대도 없다
원수를 미워하자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솔직한 놈 패가망신한다
스무 개의 명함으로 남은 사내
마음을 비우지 말자
배꼽티를 입어라
약속은 빚이다
* 이거만 읽어도 책값은 뽑는다.
제2장 물찬 돼지, 키큰 짠돌이, 납작코 변강쇠
무단횡단을 하자
건강, 신경쓰지 말자
불규칙한 생활을 하자
물찬 돼지, 키큰 짠돌이, 납작코 변강쇠
사내대장부 콤플렉스
눈높이 아래의 세계를 보자
돌다리는 두들겨보지 말고 건너라
비교하자
오른손은 옳은 손
정신력으로 되는 일 없다
고자질 하자
제3장 여우는 아홉 개의 굴을 판다
뛰는 놈 위에 뛰는 놈
반성해도 용서하지 말자
과거는 흘러갔다
잘한 거짓말 논 닷마지기보다 낫다
수다떠는 여자가 아름답다
전화를 없애자
여우는 아홉 개의 굴을 판다
남편을 버려라
싸가지 없자
빨리 핀 꽃이 빨리 진다
신호를 어겨라
추천의 글: 전유성은 왜 웃지 않는가
이외수(소설가)
한국의 문화는 음미의 문화이다.
그것은 마음의 발효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다.
개그맨 전유성의 해학도 마찬가지다.그는 어눌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항변처럼
대사를 내던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음미해 보아야 한다.
그의 대사 속에는 언제나 발효된 뼈 하나가 은밀히 감추어져 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만이 비로소 발효된 해학을 느낄 수가 있다. 그는 소시민적인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는 개그맨이다.
그는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화법을 구사하여 세상의 오류와 허구들을 깨닫게 만든다.
거기에는 세상에 대한 열등과 공포로부터 소시민적인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의도가 은밀히 내재되어 있다.
그의 개그는 두뇌에서 창출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창출된 것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근면성실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이다.
그는 자신에게도 최선을 다하지만 남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성품의 소유자로 잘 알려
져 있다.
그러나 고정관념이나 상투성을 깨뜨리는 일에도 선구자적인 역활을 게을리 하지 않
는 연예인이다.
코미디언들의 소재의 빈곤으로 세인들에게 웃음을 강요하던 시대에 개그맨이라는 장
르를 처음으로 도입해서 새로운 해학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장본인도 바로 전유성이다.
그러나 그는 인기 따위에는 무관심한 연예인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는 일에 주력하는 개그맨이 아니라 세상의 맹점을 드러내
는 일에 주력하는 개그맨이다.
그는 남을 웃겨놓고도 자신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전유성은 역설의 천재이다.
역설은 강력한 직설이다.
여기 수록되어 있는 글들은 전유성 특유의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화법으로 세상의 맹
점들을 해학화 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명석한 자라 하더라도 거기에 감추어져 있는 뼈들을 발견한다고 하더
라도 그 국물을 음미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에 거기 감추어져 있는 뼈드리 의미하는 바를 누구든 정확하게 간파할수 있다면
개그맨 전유성이 남을 웃겨 놓고도 자신은 좀처럼 웃지 않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리
라.
자신을 적절히 감추고 세상을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도 절로 조금씩 터득하게 되리
라.
추천의 글: 전유성과 다른 방법으로 살기
하재봉(소설가 문화평론가)
전유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
그는 위험인물이다.
아직 수사기관에 의해서 지명수배되거나 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 출국 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지는 않지만, 그는 우리 시대의 기피인물이다.
왜 모를까? 그는 북한 핵폭탄보다 더 위험하고 노태위 비자금 수사보다 더 위험하다
는 것을.
그러나 세계 평화 그리고 체제 유지를 기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
야 한다.
그 불순분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안정된 세계 질서를 교란시키려 하는지, 어떤 방법
으로 선량한 대중들을 선동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한 사고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이 책에
는 빨리 출판금지 조치가 내려져야 하고, 저자와 출판사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법적 제
재를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전유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늘 불만에 가득차 있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며, 엉뚱한 소리나 하기 때문이
다.
그의 말은 늘 어처구니가 없다. 듣고 있는 내가 한심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의 주장에 동감할 수는 없지만 그와 이야기하고 나면, 혹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뭐랄까, 답답하고 뻑뻑한 세상살이의 공간이 조금 여유로워지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
이다.
그것은 전유성의 말 속에 무서운 전염병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전염변균의 정체를 파헤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은 없다.
그것은 즐거운 병균이니까.
그것은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고 어서 내 몸 안에 들어오기를 바랄 만한 가치가 있
으니까.
시작은 반이 아니다 라거나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많다. 신호를 어겨라.
편견을 가지자. 남과 비교하라 등의 그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관습적 도덕률에 도전하는 위험한 사고들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것들이 전혀 틀린 애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너무나 많은 사회적 관습에 길들여져 살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적 관습이라는 것은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억압의 교묘한 변형에 불과하
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거나 지켜져야만 아니다. 단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 체제 내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관습이 지켜지는 것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
지 살아오면서 그것을 당연시하고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상상력을 제한해 왔는가를 깨닫지 못하면서,
익숙하게 그런 고종관념, 사회적 관습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전유성의 도전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된다.
그의 독특한 사유는, 세계와 그와의 사이에 탄력적 공간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
능한 것이다.
그 공간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지는 않는다.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는 것들을 그것과 다른 시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거칠 때 가
능한 것이다. 그것은 즉, 반성하는 삶이다. 왜? 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의
일상적 삶에 만족하지 않고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 의문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현재의 삶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래서 반성은 어렵다.
그러나 반성없이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삶은 가장 가치가 없는 삶이 아니겠는가.
사유의 탄력성이야말로 오늘의 문명의 발달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유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인류의 삶은 바꿔져
왔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잘 짜여진 틀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독창적 개성과 창조력으로, 나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에는, 세게를 바라보는 전유성의 시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의 주장을 따
라가다 보면,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독자들은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잣니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미덕이다.
말도 안되는 그의 주장에 동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다른 전유성류의 아류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유성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르고, 그 다른 만큼 우
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 권리가 있으며, 어떤 권위와 대의명분으로도 그것을
억누르거나 침해하지 말아야 하고, 그럴 때 세계는 조금씩 아름다워지며, 더욱 풍요로
워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내는 전유성의 입장
나는 정말 비겁한 놈이었어
어느날 아침 신문 사회면에 실린 그 기사 내용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대략
이런거다.
전철안에서 고등학생들이 싸웠다. 패싸움일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하여튼 고등
학생들이 싸웠다.
그 전철 안에는 고등학생들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일을 마치고 휴식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 무렵이었다고
한다.
주위에 많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약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그 학생들을 야단쳤단다. 정확한 내
용은 알 수 없지만 전철 안에서 싸우면 되겠느뇨? 싸우지 말아라였겠지.
전철안에서 남들이 있든 말든 싸우던 아해들이 그 어른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겠어!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 삼자는 빠지슈.
뭐 대충 이런 말이 오고갔을 터이고 어른은 말 안듣는 아해들에게 목소리를 높혀서
야단을 쳤겠지.
그랬더니 글쎄 이놈들이 그 어른을 팼다는 거야. 그것도 집단으로. 그리고 다음정
거장에서 내려 도망을 간 거야.
그 어른이 맞을때(어른도 맞으면 아프다)아무도 말리지 않고 모르는 척 했다는 거
야.
기사는 주위 사람들의 무관ㅅ미을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꼬
집는 것으로 끝이 났어.
나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거야.
매 맞은 그 어른들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에도 고등학생들이 싸울때 말릴
까? 맞고 난 다음에 그 자리를 어떻게 피해서 집으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간 가족들
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을까? 혹시 이 정의감에 불타는 남자에게 핀잔은 주지 않았
을까? "당신 나이가 몇인데 아이들 싸움에 끼여들어요!"이렇게 말이다.
내가 전철안에 타고 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나쁜 놈이 있나? 하고 흥분했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 자리
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쫓아다녔다.
같이 합세해서 그 아해들을 팼다면 물론 그 아해들은 어디가 부러져도 부러졌을 것
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화가 아니다.
경찰이 달려오고 팬 사람들이 불려가고 조설르 꾸미고 얼마난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어딘가 부러진 아이들의 부모가 달려오고, 피해보상금은.......?
그러니 모르는 척했던 당신들이 세상을 훨씬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조금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부러진 아해들이야 잘못했으니까 부러졌다 하더라도 매맞은 아저씨의 보상은 누가
해주어야 하는가?
불의를 보면 참지 말라고 가르쳤던 옛선생님이 보상금을 보태줄 것인가?
지하철공사에 쫓아가서 전철 안에서 싸우는 걸 말리다가 맞았으니 보상금을 내놓으
라고 하면 뭐라 할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했다고 꼬집은 기사를 썼던 그 기자가 그 자리에 있었
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아저씨와 합세해서 그 아해들을 혼내줬을까? 아니면 퇴근길에 웬 기사거리냐? 했을
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이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그 아저씨가 맞고 있을 때 "저 아저씨 왜 저래! 애들 싸움에 왜 끼여들어" 하지 않
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창밖을 보며, 조는 척 하며, 독서에 열중인 체하며 현명하게 그 자리를 지킨 사람들
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루하게 집으로 가는 도중에 고등학생들의 싸움은 나에게 피해만 오지 않는다면 가
슴 두근거리며 구경하는 한편의 액션영화였고, 그날이 주말이었다면 주말의 명화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는 전철극의 클라이맥스 였을지도 모른다.
비약일까? 은근히 싸움이 내가 내릴 정거장까지 계속되기를 바랬을지도.......!
군대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군대 안나갈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별의별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던가!
허리를 다친 사람은 안 간다던데, 독자는 안 간다던데, 시력이 나빠도 안 간다는데,
나는 오형제나 되니, 형제 많이 낳은 부모님 원망에, 빽 없는 아버지 원망에, 정신
병자 흉내를 내고 안 나간 사람의 이야기가 영웅처럼 우러러 보였다.
심지어는 폐병은 안 간다더라에 폐병 걸린 사람이 부럽기도 했었드랬다.
훈련소시절에도, 의가사 제대가 있다더라, 의병제대가 있대더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었다.
훈련소에서 이주인가 삼주가 지난 어느날 밤 내옆에 자던 기간병인 분대장과 나는
뭣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토론이 붙었다.
하도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해대길래 나도 모르게 "병신, 그것도 모르냐?" 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70년대 초에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훈련병 시절 기간병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다
알고 계실 것이다.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데 기간병이 옆에 나타나면, 오줌도 잘 안 나왔다. 안 믿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안 나왔다. 정말이다.
그런 기간병에게 병신이란 말을 했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부하 (사회생활에서는 후배)가 알고 있는 것도 열받는 일인데
(크게 된 사람들은 열 받지 않고 후배가 똑똑하면 자랑스럼게 생각한다던데...)병신이
란 소리를 들었으니 요새 말로 뚜껑이 열렸다.
나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나중에 아차! 했는
데 어쩌랴! 한번 튀어 나간 말인데 사과를 할 시간도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3분대 기
상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내복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을 시키는 것이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우리 분대원 전체를 깨워서 기합을 주는 것이었다. 이유는 "너
희 군기가 빠졌어."
영문도 모르는 우리 분대원들은 추위 속에서 갖은 기합을 다 받고 마지막으로 오리
걸음에 울려고 내가 왔던가를 부르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정말이지 마음 속에서는
어젯밤 기합은 나 때문이었어. 미안해를 외쳤지만 나는 끝내 침묵하고 말았다. 모르는
척 창밖을 내다본 것이었다. 나혼자 개인적으로 얻어터지니 않은 것만 다행으로 생각
하면서 말이다.
얼마전까지 나는 문화방송의 교통정보프로그램 전유성 정원관의 특급작전이라는프로
그램을 진행하면서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참 많이도 지껄였다.
양보운전을 해라. 새치기 하지마라. 음주운전 하지 말아라. 너 혼자 피해 당하는 것
은 괜찮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다. 음주운전 하면 차를 뺏어야 한다. 과속하지 말아라
등등.......!
나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잇는가?
"야, 빨리 가 방송시간 다됐어" 하면서 추월도 했고 양보 안 해준 운전사에게 속으
로 욕도 했으며 음주단속에 걸릴까 봐 안된다는 후배에게 "야, 마셔 임마! 오늘 단속
없어, 한두 잔 정도는 괜찮어"하면 술을 권하기도 했다.
접촉사고 때 잘못했다고 시인하면 쪼다 되는 사회에서, 음주운전에 걸리고도 빽써서
나온 걸 자랑하는 사회에서 , 술 마신걸 안 마셨다고 우겼더니 경찰이 그냥 보낸준 것
을 음주운전의 화제가 될 적마다 두고두고 고정 레파토리를 써먹는 사회에서, 원칙을
지켜가면서 살기란 정말 힘들다.
안 걸리면 그만이고 걸리면 재수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한것을......!
내 친구가 사귀는 여자를 남몰래 짝사랑 하면서도 내 친구에게 그런 내색은커녕, "
야, 그년 사귀지마, 그년 뭐 볼게 있니? 얼굴이 이쁘니? 몸매가 괜찮니? 그런 년들은
트럭으로 갖다줘도 나는 싫어, 재수없어" 라고 헤어지라는 말을 태연하게 해댔다.
개그맨 생활 25년째인데 생각나는 것은 아이디어 회의뿐이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해대는 아이디어회의는 정말 공포의 시간이다.
선배 아이디어라고 무조건 채택되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채택이
된다. 그러니 아이디어 회의가 있기 전날은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흔했다.
그래서 교활한 수법을 하나 개발해 냈다. 아이디어회의에 써먹기 위한 아이디어 였
다. 재미가 좀 덜하다고 판단되는 아이디어를 낼 적에는 앞에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
이거 AFKN에서 본건데 말이야...!" 라든가 "일본 티브이에서 본건데......"하고 나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거다.
그러면 백발 구십팔중은 재미있어 한다. "역시 미국 건 하이야"하고 말하는 녀석도
있다.(여기서 하이란 수준이 높다는 뜻임)
그렇게 숱하게 속여왔다. 나는 영어도 못하는 놈인데 AFKN을 어떻게 본다는 것이며,
본들 뜻이나 아나? 일본 티브이에서 본거야 하고 말은 하지만, AFKN은 집에서 나오기
나 하지, 일본 티브이는 내가 어디가서 본단 말인가!!!!!!
비겁하지만 나는 즐겨 그 수법을 안 걸리고 써먹었다.
말로는 나라님들 하는 일에 불평불만을 터트리면서 그런 거 고쳐보겠다고 데모하는
무리들을 바라보고 차 막히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적도 있다.
명동을 지나가다 무슨 데모인지 하여튼 반정부 데모 하는 곳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
었는데 데모하는 학생들이 나에게 와서 가정용 비디오 카메라로 지금의 소감을 묻길래
아니 내가 왜 이런 인터뷰에 걸려들었나 속으로 겁먹으면서 뭐라고 한마디 했는데 혹
시 이게 문제가 되어 불려들어 가게 되지는 않을까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밤잠도 설쳤다면 믿는 사람을 믿을까? 정말이다. 무진장 걱정했다. 다행이다. 지금
까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난게. 흐이휴!!!
선물 받은 그림을 팔아먹고 핑계는 근사하게 댄 적도 있다.
나보다 너의 그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너의 그림의 임자는 그 사람인것 같
아서 라고......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말을 앞장서서 애기한 적은 없지만 오디오는 역시 외제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홀렸던가! 그러는 나는 변변한 오디오도 없으면서 숱한 외제 오
디오 이름들을 외워서 써먹었지...!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으니 내가 오디오 전문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다가 진짜 오디오에 대해서 아는 사람 같으면 꼬랑
지를 팍 내리고, 아! 그래요. 아! 그래요만 연발했지.
왜 나는 지금도 방송출연이 있으면 그 프로그램 나가기 싫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못하는가?
사실은 이야기한 적이 몇번은 있다.
일어나가 싫어서 못 나간다. 사회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못 나간다.
그랬더니 섭외하는 사람이 너무 황당하게 생각하고 어느 섭외담당자는 장난치는 줄
로 알고 믿지를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적당히 거짓말을 한다.
"출연 날짜가 언제지요?" 하고 먼저 묻는다. 그러면 저쪽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날
짜를 알려준다. "잠깐만요"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잠깐만요"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아, 미안해서 어쩌죠. 그 날짜에 국내에 없는데요"한다. 그러면 섭외 담당자는
나의 출연섭외를 포기하고 만다.
1995년 11월 9일까지 매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전유성 정원관의 특급작전이라는게
있는데도 외국에 간다는 말을 믿는다. 외국에 나가 있다는 그 시간에 나는 생방송을
하고 있었단다.
요즘 국제화시대가 되어서 어느 방송국이나 외국에 나가서 찍어가지고 오는 프로그
램들이 많아진 걸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땅 투기해서 돈벌이 한 사람을 속으로 경멸하면서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내가 살려고 망설이던 땅을 결국엔 못사고 돌아섰는데 나중에 값이 올랐다는 이야기
를 듣고 발등을 얼마나 찍고 싶었는지 모른다. 말로는 그랬지. "그렇게 돈 벌어서 뭐
하려고 그래! 자식들"
돈 벌면 왜 쓸데가 없겠어! 안그래!!! 없는 놈이 큰소리는......!
뒤에서 욕을 해놓고 안 했다고 우긴 적은 얼마나 많으며, 선배들에게 불려가 야단맞
고 소리 치고 나왔다고 허풍을 친 적은 무릇 기하인가?!
다시 전철을 타자.
어린아해들이 싸우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 이전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해답은 간단하다. 못본 체할 것이다.
어른이 말린다. 아해들이 어른에게 덤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해답은 이번에도 못본 체하며 몰래 훔쳐볼 것이다.
아해들이 어른엑 덤빈다. "야! 이 새끼들아 그만두지 못해"하고 속으로 말한다.
"싸가지 없는 새끼들, 어휴! 저것들을 그냥 놔둬? 여기 순경없나!"그러나 다행이다.
덤비는 아해들을 어른 여럿이서 혼내준다. 나는 그때 가서야 한숨을 내쉬면서 이런 놈
들은 혼을 내줘야 한다고 큰소리 빵빵 칠 것이다. 아직도 전철 안에 저런 놈들이 있네
하면서......!
이 책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창밖을 내다본, 존는 체한, 책 보는 체한, 나의 공범
들에게 바친다.
적당히 비겁하면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1995. 11
전유성
제 1 장 약속은 빚이다
뒤에서 씹어라
참으면 터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편견이 없으면 줏대도 없다
원수를 미워하자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솔직한 놈 패가망신한다
스무 개의 명함으로 남은 사내
마음을 비우지 말자
배꼽티를 입어라
약속은 빚이다
뒤에서 씹어라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세
상을 거꾸로 보는, 일종의 역설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고정된 관념들은 이면
을 한번쯤 생각해 보자 이겁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나 생각을 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정관념에 빠져서 행동
을 하게 됩니다. 고정관념이란 '당연히 그렇겠지' 라고 받아들여지는 관념입니다. 하
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굳어진 것이고, 또 어떤
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의 보편 타당한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만 따라하면 바람벽에 똥칠할 때까지 한평생 무사고로 살다가 무사히 무덤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정관념을 조금만! 벗어났다가는 도라이라는 치욕스런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니 첨단정보화사회니 하면서 낫 놓고 기역자도 알똥 모를똥 하
는 할머니까지 컴퓨터 배운다고 영감님 이불 속에서 기다리다 지쳐 잠들게 만드는, 참
으로 눈깔 튀게 변하는 세상 아닙니까? 이런 시대에 더 이상 고정관념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21세기 세상을 조선시대의 고리짝 사고로 활보하는 호모 에렉투스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이제부터 눈 딱 감고 한번 도라이가 되어 보는 겁니다. 손가락 질 하려면 하라죠.
까짓것 남들 눈치 다 보고 언제 한번 튀어보겠습니까? 도라이가 되면요, 지금까지는
못 보던 것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니까요.
이 책에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사실 그대로 했다가는
남에게 씹히기 딱 알맞은 것들도 있습니다. 재수 없으면 심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신공격성 발언 내지는 무시, 묵살, 묵사발 당할지도 모릅니다. 뒤에서 씹
어대는 사람도 굉장히 많을 거구요. 말이 나온 김에 '뒤에서 씹어대기' 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뒤에서 남의 말을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할 말이 있으면 본인이 있는 데서 당당
하게 해라.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죽했으면 뒤에서 씹겠습니까? 앞에서 못 씹고.
사람들은 흔히 누가 자신을 씹었다는 얘기를 남을 통해 들으면 "내 얘기를 하려면
내 앞에서 하지. 왜 뒤에서 날 헐뜯고 그래!" 하고 당장 화를 냅니다. 물론 자신이 모
르는 상태에서 남들에 의해 도마 위에 올려져 마구 난도질을 당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노여움의 특곱배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임
마. 할말 있으면 내 앞에서 해. 뒤에서 씹지 말고."
그런데 만약 씹은 사람이 "그래. 뒤에서 씹는 건 비겁해. 앞으로는 앞에서 바로 씹어
줘야겠어" 라고 결심하고 진짜로 그 사람 면전에서 험담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
니 그냥 한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아마 하나, 둘, 셋도 세기 전에 날카로운 눈빛이
상호교류하고 스파크가 팍! 팍! 튀면서 활극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또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연탄재 깨지듯 깨질 것이 뻔합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면전에서 자기를 씹어
대는데 좋아하겠습니까? 당사자 앞에서 하는 험담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설령 그 당시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속에 '어디 두고 보자' 하고 꽁한 감정을 품게 되기
마련입니다.
자, 상황이 이렇게 불을 보듯 뻔한데도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 하라고 하시겠습니
까?
만약 뒤에서 했다면 그것은 벌써 한바퀴 돌아서 오기 때문에 원래의 심한 뜻은 걸러
지기 마련입니다. 또 운이 좋으면 그 사람의 귀에 영영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고, 나
중에 그 얘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너 이 xx야, 나 씹었지?" 하고 따지면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어" 하고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남의 얘기를 할 때는 그 사람이 없는 데서 하세요.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재미, 그거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기막힌 것 아닙니까? 난 남을 씹는 걸 취미로 삼는 사람
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건 방송국에서 진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자 둘이서 좀 떨어져 앉아 있
는 한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뭐라고 수근수근 킥킥거리더라 말이죠. 떨어져
앉은 한 여자는 영 켕겼겠죠. 기분도 나쁘고,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가 발딱 일어나더
니 막 뛰어와서 다짜고짜 따지는 거예요.
너, 지금 나 씹었지?
그런데 씹었던 두 여자 중 한 여자는 아주 당당해요.
그래 씹었다. 어쩔래?
왜 씹었어?
내 취미야. 너도 씹어. 괜찮아.
참으면 터진다
예로부터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습니다. 괴로운 일을 참고, 그것을 드
러내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야, 그 친구 참을성이 많군.
인내심이 있어서 뭘 해도 잘하겠어.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둥,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둥, 참을 인 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등 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고, 배알이 꼴리고,
스트레스 성 원형탈모증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아야 한다고 강요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지만, 참을 인자 세 개면 핵폭발성 스트레스
가 폭발합니다.
또 참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참지 말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참는답시
고 속이나 부글부글 끓이고 있는 것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런 궁리 저런 묘안을
짜내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모든 일들이 뒤죽
박죽 되어서 짜증과 불만이 고조되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남자의 아내가 "이제 오세요. 깨끗하게
샤워하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
지 않고 방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니, 이 남자가?" 아내는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완벽하게 무시, 묵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떡합
니까? 참아야지요. 돈 벌어다 주는 사람을 쪼면 돈이 안 나오는데, 속으로는 뭐라고
한마디하고 싶지만 그냥 꾹 참고 목으로 꼴깍 한고 넘깁니다.
그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갖고 대판 싸우게 됩니다. 고등학
교 때 물리에서 부글부글 끓어서 압력이 올라가면 터진다고 배웠지 않습니까? 수십 번
을 꾹 눌러 참아온 화가 어디 가겠습니까? 터지지.
한번 터지면 성격 안 맞네, 결혼을 잘못했네 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나면 참지 말고 이야기하십시오.
아내-여봇! 왜 아무 말도 없어요. 샤워하기 싫다면 싫다고 하면 되잖아요.
남편-사실은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돌멩이에 눈탱이를 찧었어. 그래서 무지 챙피해
서 말 안한 거야.
아내-어머? 어디어디. 많이 아파요?
확실히 불만을 이야기한 결과가 더 나아 보이지 않습니까? 상대가 어떤 불쾌한 행동
이나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참지 말고 이야기하세요. 또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끝까
지 생각한 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이야기만 꺼내놓고 어물쩍 넘어가면 더 안좋은 결
과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미련하게 참는다고 복이 오는 게 아닙니다. 복은 커녕 스트레스와 속병과 홧병이 동
시다발적으로 터져서 한 많은 세상 하직하게 됩니다. 그러니 제발, 플리즈, 꼭, 기필
코,
참-지-마-세-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백발은 나이의 표시요 결코 지혜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러나 백발들은 말하기를, 핏덩어리들은 입이 있어도 여물 씹는 데만 쓰고, 아랫것
들은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 라고 합니다.
말이 좋아 장유유서지 이건 순 짬밥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거 아닙니까?
아랫사람이 조금 똑똑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이런 말을 합니다.
건방진 녀석, 지까짓 게 뭘 안다고.
뭐 별로 아는 거 없더라도 말 좀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나마 아는 거라도 다
까발려서 모아 보면 좀 낫지 않을까요? 민주주의 좋다는 게 그거잖아요.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꼬불치는 것보다 서로 까놓고 의논하는 게 더 낫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의
짱구보다 무지한 백성들의 짱구의 합이 더 크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
이 좀 많다고, 조금 큰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 사실 별 볼일 없는
경우 많잖아요?
요즘 '파괴'라는 말 많이 쓰대요. 가격파괴, 인사파괴, 조직파괴... 옛날에는 파괴,
그러면 좀 안 좋은 쪽으로 많이 쓰였는데, 요즘은 좋은 쪽으로 사용됩니다. 뭘 좀 두
드려부셔서 확실하게 뜯어고쳐 보자, 그런 발상인가 봅니다.
이건희 회장이 그랬잖아요?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라고 말입니다. 또 광고카피 중에
'남편을 바꿔라,' 이런 것도 있더라구요. 요즘 여자들이 다 바람났나? 아무리 돈 받고
하는 광고지만 신문에서 저런 거 막 실어도 되나? 걱정되더라고요. 근데 알고 보니까
남편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꿔 모라 뭐 그런 뜻이더라고요.
하여간 말입니다. 요즘 대기업들에서 '조직파괴'를 해야 한다고 많이 떠들잖아요.
그거 결국 윗사람이라고 무조건 깔아뭉개는 수직 조직을 깨고 아랫사람들도 거리낌없
이 이빨을 깔 수 있는 수평조직으로 바꾸자는 거 아닙니까?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긴데요, 주병진이 있잖아요. 보디가드라는 속옷 장사해서 떼돈
을 벌고 있는 친구. 이 친구가 MBC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를 보고 있을 때 일
입니다. 방속국 사람들 사이에, 주병진이 이 자식 되게 건방져, 이런 소문이 난 겁니
다. 내가 보기엔 안 그랬거든요. 선배들한테 깍듯하고, 후배들 일 잘 봐주고. 그래서
내가 알아봤어요. 아끼는 후배이기도 하고, 한창 잘 나가는데 그런 소문나면 안 좋잖
아요. 송창의 PD가 그 프로를 맡고 있을 땐데, 송창의 PD한테 물어 봤습니다.
주병진이 건방져요?
아니. 안건방져. 똑똑해.
아! 건방지다, 이 말은 똑똑하다는 말의 조선시대 버전이었던 겁니다. 그게 버전업
된 뇌세포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똑똑하다'로 읽히는데, 고리짝 XT들에게는 '건방지
다'로 읽혔던 겁니다.
본래 방송프로는 PD가 방향 제시를 하고 대부분의 MC는 따라만 가는데, 주병진은 자
기 생각에 그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
야한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겁니다. 송창의 PD는 주
병진의 생각을 존중해 줬다고 합니다. 왜? 주병진의 생각이 맞으니까. 그런데 보세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인기 좋았잖아요?
만일 송창의 PD가 주병진이 쟤는 건방져서 안되겠어 하고 MC를 갈아버렸으면 오늘날
의 주병진이가 있었겠습니까?
똑똑한 놈 키워줘야 됩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왜요?' 하고 되묻는다고 쬐그만 게 대든다고, 말대답한
다고 기 죽이지 마세요. 그렇게 키워서 애들이 뭐가 되겠어요? 무조건 예, 예 하는 예
스맨이 될 거 아닙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똑소리 나게 대들 줄 알아야 되고, 또 그렇게 대들면,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하고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편견이 없으면 줏대도 없다.
최씨 무덤에는 풀도 안 난다.
검둥이는 머리가 나빠서 가난하다.
키가 큰 사람은 시억ㅂ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코가 큰 남자는 거시기도 크다.
진짜 말도 안되는 편견 많습니다. 최씨 무덤에 왜 풀이 안 납니까? 보기 좋게 잔디
만 잘 자라던데요. 또 이씨나 김씨나 박씨들 중에도 똥고집들 얼마나 많은데요. 미국
의 흑인들이 가난한 건 환경이 나빠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 머리가 나
빠서가 아닙니다. 흑인들 중에서도 박사, 의사, 교수들 많이 나옵니다. 키 큰 사람 중
에도 야무진 사람 많고, 마누라 잘 얻어서 팔자가 늘어진 남자들 많아요. 코 큰 고자
는 왜 또 없겠습니까? 우리 그런 경우 숱하게 보잖아요.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편견을
못버리더라구요.
내 친구 중에 광대뼈가 좀 심하게 튀어나온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로 이 친구 광대
뼈가 튀어나왔다는 것 때문에 하마터면 결혼도 못할 뻔했어요. 여자쪽에서는 광대뼈는
무조건 싫다는 겁니다. 자기는 고스톱칠 때 광 자만 나와도 그냥 죽어버리는 사람이니
까 더 이야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자가 저 남자 아니면 시집 안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 가지고 결국 결혼을 하긴 했는데, 나중에 결혼식 때 가서 보니까 신부쪽은
다 주걱턱이더라고요?
하여간에 이 친구 결혼하고 나서도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장인한테 가서 따졌답니
다. 주걱턱인 주제에 광대뼈를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장
인 말이,
나 말이야, 30년 전 군대 있을 때 광대뼈 고참한테 얼마나 당했는 줄 알아?
하더랍니다. 30년 전에 자기가 광대뼈 고참한테 뜨거운 맛을 본 거하고, 사윗감 고
르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처럼 편견은 대부분 말도 안되는 황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의 팔자를 바
꿔놓고 진로소주 매상을 끌어올릴 뻔할 만큼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징그럽
게 질깁니다. 우리 나라를 전라공화국, 경상공화국, 충청공화국, 서울 완충지대로 쪼
가리쪼가리 갈라놓고 있는 지역갈등의 밑바닥에도 결국은 이 같은 편견이 깔려 있는
거 아닙니까?
국민 여러분, 정말 각성제 먹고 각성합시다!
요기까지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긴데요, 근데 요 순악질분파주의적인 편견이라는
것도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 이겁니다.
주관이라는 거 있잖아요. '야, 그건 니 주관적인 생각이고 객관적으로는' 어쩌구저
쩌구 할 때는 좀 안좋은 뜻이고, '저 친구는 주관이 뚜렷해' 어쩌구 할 때는 좋은 듯
으로 쓰이는 주관이라는 말 말입니다. 이 주관이라는 것이 '나만의 생각', 고집 뭐 이
런 거 아닙니까? 결국 '편견'과 멀어도 4촌 가까우면 2촌쯤 되는 게 이 주관이라는 겁
니다.
주관이라는 게 그래요. 어차피 우리는 사람을 볼 때나 사물을 볼 때나 주관적으로
보게 마련입니다. 간혹, 자신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본다고 빡빡 우기는 사람이 있지만
그거야말로 주관적 착각이고 편견입니다. 남들이 다 안 그렇다면 안 그런 거 아닙니까
?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을 볼 뿐이지, 있는 대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삼라만상은 보
는 대로 보이는 거지 있는 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더구나 우리 같은
중생들한테는.
어차피 인간이 주관적이고,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이것들을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보자 이겁니다.
예술한다는 사람들 보세요. 솔직히 얼마나 주관적이고 편견이 심합니까? 똥고집은
얼마나 세고,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겁니다. 주관, 편견 이런 거 빼고 작품이 나
오겠습니까?
아마데우스 보셨어요? 그 영화 보니까 모짜르트 그 사람 완전히 인간말종이더라고
요. 도대체가 안하무인이고 남의 말을 듣지를 않아요. 고호도 그렇고요. 자기 귀까지
자르잖아요. 이상 같은 시인도 마찬가지고요.
에술가들만이 아닙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남들하고 똑같이 생각해
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파스퇴르 우유 만드는 최명재 회장 보세요. 완전히 고집으
로 똘똘 뭉친 사람이잖아요? 세상에 누가 뭐래도 자기가 옳다는 겁니다. 재판관이 당
신이 틀렸다니까, 내가 왜 틀렸냐 법이 틀렸지? 이러는 사람 아닙니까? 근데 이 사람
성공했어요. 중간에 고집을 꺾고 적당히 타협했다면 파스퇴르가 저렇게 클 수 있었겠
어요? 정주영 회장도 그렇고, 포철 박태준 회장도 고집으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YS
도 보세요.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이렇게 딱 써 붙여 놓고 죽으나 사나 대통령이 되
려고 살았던 사람 아닙니까? 남들이 넌 대통령감이 아니야 하고 아무리 말려도 '아니
야 난 대통령감이야' 하고 줏대있게, 주과적으로 '확실하게' 편견을 가지고 밀어부쳐
서 대통령 됐잖아요. 나중에 역사가 뭐라 하건간에 일단 대통령이 된 건 사실이잖아
요.
어쩌면 편견을 가진다는 것은 줏대가 있다는 말입니다. 황희 정승이 그랬다면서요.
쫄따구 하나가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음, 자네 말이 맞군.
옆에 있던 다른 쫄따구가,
아닙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니까,
음, 자네 말도 맞군.
고리짝 시절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처럼 두리뭉실하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밍밍하게 왔다갔다 해 가지고 되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죽어도 내가 옳다
이렇게 확실하게, 딱 부러지게 편견을 가지라 이겁니다. 개성이 콸콸 넘쳐 보이지
않습니까? 물론 좀 피곤한 개성이지만.
이건 여담인데요. 마누라가 남편한테 개 한 마리 키우자고 하니까 남편이,
나는 개는 싫어. 고양이를 키우자.
그랬더랍니다. 그러니까 마누라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어머? 당신은 개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원수를 미워하자
원수를 사랑하자!
설령 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예수님을 진짜진짜 존경합니다. 왜냐구요? 그분은 진짜로 원수를 사랑했고,
그건 나 같은 놈은 절대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못하는, 휴머니즘이 콸콸 차고
넘치는 지고지순한 사람의 결정체 아니겠습니까?
어렸을 적에 교회에 오면 맛있는 떡도 주고 사탕도 준다고 하길래 몇번 교회를 가
봤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원수를 사랑하라' 고. 나도 진짜로 그래 볼
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난 아예 이렇게 생각 하기로 했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원
수를 사랑할 수 없다. 차라리 원수를 미워하자.
홍콩영화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요.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열
심히 무공에 정진해서 천신만고 끝에 강호의 고수가 되고, 마침내 원수에게 복수의 칼
날을 내려치며. '에잇, 정의의 칼날을 받아라' 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게 나는 훨씬
통쾌하고 인간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말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 미운 놈을 아낀다는 것, 그것만큼 위선적인 게
어디 있습니까?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거지. 싫은 놈, 미운 놈, 원수같은 놈을 내 몸같이 아끼
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왜냐구요? 그 사람은 지구에 잠깐 출
장 온 천사니까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데 그런 감정은 전혀 없이 그저 사랑만 한다? 이건 정말 자신
을 속이는 일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부글부
글인데 표정은 보들보들, 방긋방긋이라뇨?
나, 저 원수 싫어 죽겠는데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아량 있고 탁 트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는 저 망할 자식을 사랑해야 돼.
이렇게 하면 그 원수도 착각합니다. 당신이 그 원수가 어떤 짓을 하든간에 무조건
사랑하기만 하니까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왜 원수 같은 놈이 됐
는지도 모르고 도리어 자신이 했던 행동이 정당하고 바른 줄 알고 또 그 행동을 할지
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 상대를 사랑하는 척하려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습니까? 그러다가는 속이 시커멓게 타서 염소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들을
남겨놓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억울한 사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자, 이런 사태를
미연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모두 원수를 미워합시다. 그래서 뜨거운 맛을 보여
줍시다, 그 원수가 자기가 왜 원수가 됐는지 깨닫게.
그게 우리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참고 : 사람 중에서도 진짜로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나 그 사람 정말
존경합니다. 소설가 김홍신 알죠? 『인간시장』 썼던 소설가 말예요. 이 남자 아버지
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진짜 아무 죄 없이 인도에 서 있는데, 차가 와서 받았
대나 어쨌대나, 그 전말은 나도 잘 모르지만, 하여간 그 사고 차 운전수가 과실이 컸
었나봐요. 그런데 김홍신이 경찰서에 가 보니까 이 사람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대
요. 하루밤새 다 죽은 사람처럼 돼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김홍신이 그 사람을 말없이
껴안더래요. 옆에 있던 친지들이 방방 뜨니까 김홍신이 이러더래요.
돌아가신 아버님도 용서하셨을 겁니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현대를 스피드 시대라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초음속, 아니 초광속 스피드시대라
고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세상사가 눈코 감을 새 없이 변해 가기 때문일 겁니
다. 정말이지 오늘 아침 신문만 봐도 세상 정말 헤까닥헤까닥 변하더라고요. 어제만
해도 아니라고, 그런 일 없다고 누가 그랬냐고, 그 xx 고발해 버리겠다고 큰소리 빵빵
치던 사람이 갑자기 팍 엎어져서 대국민사과 초식으로 바꾸더라 말입니다. 무림 고수
들의 수법은 원래 변화무쌍하잖아요. 우리도 그 초식을 조금만 응용해 보자 이겁니다.
이 바쁜 세상에 언제 유치원에서 배웠던 도덕이니 질서니, 용기니, 명예니 이런 것
들 다 지키고 삽니까? 재수 없으면 피 같은 돈 날리고, 수지부모한 몸뚱아리 간수하기
도 어려운 게 요즘 세상 아닙니까?
자동차를 급하게 몰다가 차선을 위반했거나 신호등을 무시하고 그냥 달리다가 교통
경찰에게 들켰습니다. 이때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아이고, 교통님. 내가 차선을 위반했습니다.
하고 이실직고한 다음,
나는 입법부에서 제정한 도로교통법 X조 X항을 어기는 죄를 지었으니 국법에 따라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사회와 실제 살아가는 사회가 어디 같습니까? 정직하게
이야기 한 대가는 '범칙금 왕창' 입니다. 피 같은 돈이 한순간의 알량한 양심 때문에
날아가고 맙니다. 너도나도 정직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데, 떠드는 데야 돈 안 들지만
그 사람들 말 믿고 정직하게 살려면 돈 많이 벌어놔야 할겁니다.
우리 애가 아프다고 해서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그만... 흑흑!
애가 없다면 만삭인 아내 핑계도 좋고 사돈의 팔촌도 팔 수 있으면 팔아야 합니다.
피땀 흘려 번 생돈을 눈 뻔히 뜨고 뜯기는데 어찌 정직할 수 있겠습니까?
말 나온 김에 한가지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이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을 때 즉
방으로 효과가 있는 방법인데, 사실은 내가 잘 아는 후배 하나가 써먹었던 방법입니
다.
미리 차안에 장례식 때 상주들이 머리에 쓰는 삼베 따까리를 하나 준비해 두는 겁니
다. 그러다가 교통님한테 걸리면, 잽싸게 머리에 두건을 얹고는,
지금 우리 아버님을 묻고 오는 길인데, 장지에서 한잔... 흑흑.
하는 겁니다. 그 후배 말이 열에 아홉은 그냥 봐준대요. 한국사람 인정에 약하지 않
습니까?
최소한의 양심도 없느냐구요? 양심, 양심의 가책, 그런 거 가져봤자 어깨만 뻐근할
뿐입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짓는 수많은 불법, 부도덕한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괜히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일 제대로 못하고, 일 제대로
못해서 회사에 손해가 생기고, 회사 손해가 합해져서 나라에 엄청난 손해가 생기고,
결국 국가발전에 해롭지 않겠습니까?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 말입
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비겁해지는 겁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비겁해
지려면
나는 원래 비겁한 놈이야.
하고 미리 딱 주제파악을 해 버리면 됩니다.
전철 안에서 아주 껄렁껄렁하게 생긴 십대 몇 명이 앞에 앉은 처자를 농락하는 둥
고성방가를 하는 둥 난리부루스를 치고 있습니다. 전철 안의 사람들 모두가 눈살을 찌
푸리고 있지만 아무도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그때 '아, 저 놈들. 내가 어른으로서 교육을 시켜야지' 하고 그들에게 훈계를 하려
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요새 애들이 위아래 구분합니까? 장유유서가 어디
있어요? 어른 대접은커녕 어린것들에게 온갖 쌍소리를 다 듣고 심하면 주먹질까지 당
할 수도 있습니다. 면상 금가고, 병원 비 깨지고.
전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것도 입이 없어서가 아
닙니다. 혹시 그런 곤욕을 치를까 봐 가만히 있는 거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어린것들이 그러면 되겠냐고,
어른으로서 한 마디 해야 되는 건데' 하면서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할 수도 있
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맙시다. 그냥 '나는 비겁해. 쟤들 나랑 상관
없어' 하고 가볍게 넘기면 됩니다. 한순간 발끈 하는 양심의 가책만 꼴까닥 삼켜버리
면 그만 이라고요.
솔직히 우리 까놓고 이야기 합시다.
만약에 걔들 말리다가 몰매 맞는다면 그거 누가 보상을 해야 합니까?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정의를 가르쳐준 국민학교 때 선생님? 아니면 괜히 간섭하다가 몰매 맞
는 광경을 보고 옆 칸으로 슬며시 꼬리를 감춘 더럽고 치사한 인간들? 그것도 아니면
모르는 척, 신문 보는 척하는 그 칸에 탄 넥타이들? 지하철공사 사장? 경찰국장? 내무
부장관? 대통령? 아니 지방자치 시대니까 이런 것도 조순 서울 시장 책임인가?
조순 서울 시장은 몰매 맞은 사람의 육체적 손상 및 심리적 충격(핏덩어리에게 몰매
맞았다는 충격), 나아가 졸지에 비겁자가 되어버린 그 칸의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 피
해 보상을 해라!
이렇게 되는 겁니까?
하지만 정말 누가 책임져 줄까요? 아무도,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하지만 몹시, 진짜 억울한 일들. 이런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납니다. 그럴 때
마다 양심발동 시키지 마십시오. 그냥 조용히 엎어져서 사는 겁니다. 지하철에서 누가
고성방가를 하건 스트립쇼를 하건 모른 체하세요. 그게 몸에 좋다는 걸 우리 모두 경
험칙상 다 알고 있잖아요?
'나하고 관계없이, 난 원래 비겁한 놈이니까' 하면서 적당하게 뒷짐지고 물러서는
것, 비겁해지는 것도 당당한 삶의 일부분입니다.
솔직한 놈 패가망신한다
*패가망신 : 패가 말려 망신당한다.
포카페이스라는 말 알죠? 요즘 고스톱 치다가 포카로 버전업시킨 사람들 많다면서요
? 고스톱으로 영 승부가 안 나니까 포카로 바꾼 모양이더라구요. 니가 망하나 내가 망
하나, 내가 망하나, 어차피 이 판에 나선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이런 초식으
로 나가는 모양이더라구요. 이 포카 판에서 에이스 포카드를 들었거나 2 원페어를 들
었거나 도통 표정이 바뀌지 않는 사람, 그래서 상대방이 마구 짖어 대야 될지, 꼬랑지
를 내리고 콜만 해야 될지 모르게 만드는 사람, 이런 사람을 포카페이스라고 하잖아
요.
패가 좋다고 얼굴이 헤벌레해지거나, 패가 나쁘다고 씹다 뱉은 건포도 같은 표정을
지어 가지고는 그야말로 패가만신, 즉 패 말려서 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
이창호 있잖아요, 바둑천재. 표정이 없다고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은 약관의 바둑 황
제. 이 친구 바둑두는 거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진짜 포카페이스더라고요. 밀려도 무표
정, 이겨도 무표정, 스승님한테 한칼 먹이고도 무표정, 포카판에 나서면 아마 테이블
머니는 전부 이 친구 주머니로 될 겁니다. 아니, 내가 이창호한테 라스베가스로 진출
하라고 꼬덕이는 건 아니고요.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죠.
이런 내공이 출중한 사람들한테 하수들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으~ 음흉하기는
저 녀석, 뭔가 속셈이 있을 거야, 조심해야 돼.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사람은 솔직해야 된다고 외칩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방귀 낀 놈이 큰소리친다고, 자기가 뭘 잘못해 놓고는 상대
방이 떫은 표정을 짓잖아요? 그러면 이래요.
왜? 떫어? 떫으면 말해봐, 임마.솔직하게.
이럴 때 진짜 솔직하게 털어놓고 불만을 이야기하면 바보 내지는 멍청이 아니겠습니
까?
아냐, 안 떫어. 시큼해.
바둑 두는 사람들 이런 말 하잖아요.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포카치는 사람들은 이러더라구요.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다.
인생이 바둑인지, 도박인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렴 인생이 도박이
겠습니까? 뿌린 대로 거둔다 이런 말 있잖아요.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거둔다 이런 말인데, 그거 맞는 말인 거 같더라구요. 연예인들
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오래가고, 편법으로 줄 대서 발 들여놓은 사람들은 잠깐
반짝하다가 금방 사라지더라고요. 그런데 도박은 어디 그래요? 지른 대로 먹는 거 아
니잖아요. 그러니까 인생은 도박하고는 다릅니다.
근데요, 비스한 점도 있긴 있어요. 포카판이나 세상살이에서나 솔직한 것은 영양가
가 없더라구요. 일생에 도움이 안되더라니까요. 솔직함, 즉 있는 대로 다 까발리기,
내 패 상대방한테 다 보여주기. 이래 가지고는 사악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눈
감으면 눈 빼 가는 세상, 솔직한 사람이 물먹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꼭 그래서가 아니라도 좀 응큼한 사람, 마음 깊은 곳에 뭔가를 감춰두고 있는 것 같
은 사람, 그래서 저 사람 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나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고,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 솔직해서 좋다는 말 화끈하다는 말, 이런 말에 속지 마십시오. 당신의 속을
다 열어 보이도록 하기 위한 미끼입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요, 음흉하다고 포카판에서 무조건 돈 따는 거 아닙니다. 내
친구 중에 진짜 더럽고, 치사하고, 응큼한 놈이 있는데요, 이 친구 판판이 깨져요. 아
무리 포카판이라고 해도 돌머리가 사람머리를 이길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좀
음흉한 성격이라고 아예 이 길로 나서야겠다 이런 생각은 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돌머리도 쓸 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못을 박는다던가, 호두를 깬다던가, 여름에
수박 먹을 때 얼음을 깬다든가...
스무 개의 명함으로 남은 사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만 해라, 시작하면 다 된다, 시작이 제일 어렵지 일단 시작만 하면 어
떻게든 굴러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시작을 중요시합니다. 일단, 무조건 시작을 하고 보자. 안 되
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아니, 한번 더 시작하면 된다. 시작은 반이니까 두 번만
시작하면 땡 이다.
그러나 정말 시작이 반일까요?
언제 어디서나 무작정 시작만 하면 반이 되는 겁니까?
오늘은 영어회화 시작하고, 내일 포기했다가 모레 다시 시작하면 모레 영어회화 마
스트 하는 겁니까?
비약하지 말라구? 그건 어디까지나 비유지, 정말 그렇게 딱 잘라 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구?
비약이 아니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니까요.
황XX 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 별명이 플래너예요. 계획하는 사람. 똥자루, 개
뼉다구, 복실이, 덜렁이 이런 별명보다 멋있는 별명 아닙니까?
대한민국에서 이 친구만큼 다양한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가 아는 것
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어요.
아이템 좋고, 계획도 다 빵빵했죠. 그런데 세 달을 넘긴 게 없어요. 알고 보니 이
친구, 사업만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고등학교도 2학년 때 뛰쳐나와 검정고시 봤죠. 대학도 전과한다고 설치다가 일년 다
니다 관뒀죠. 연애도 이 여자 저 여자 껄덕거리기만 하다 캐리어만 쌓았죠, 결혼하는
가 싶더니 반년도 안 돼 찢어졌죠, 도대체 끝까지 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 친구, 언제나 계획 하나는 끝내주게 세웁니다. 사업계획서만 보고 쩐 대
겠다고 나선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사업 인생 이십 년에 남은 건 자
기 명함 수십 개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딴 친구들이 이 친구한테 붙여준 별명이 플
래너, 또는 '스무 개의 명함으로 남은 사내' 였던 겁니다.
이 친구야말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에 인생을 네다바이당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야 좀 예외적인 거 아니냐구요?
천만에요, 찾아보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얌마, 신춘문예 소설 쓴다고 쳐박히더니 벌써 기어 나왔어?
응, 오늘은 일단 시작만 한 거야. 시작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뭐. 자, 걱정 말고
마시자구.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올해는 꼭 읽어야지 하던 책을 십년째 첫장만 폈다 덮었다 하
는 놈, 마누라 팬티 고무줄만 잡았다 놓았다 하는 놈, 영어회화 한다고 삼 년째 학원
증만 뗐다 찢었다 하는 놈, 헬스클럽 등록은 수십 번 해 놓고 번번이 관두길 오년만에
비만성 고혈압으로 드러누운 놈.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끊임없이 뭔가를 시작하고, 반은 한 거
니까 하며 팡팡 놀고, 그러다 또다른 뭔가를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크로마뇽인, 아니 베이찡 원인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이런 일이 반복돼 왔다고 생각
해 보세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속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금갔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의 수지부모한 노트북 컴퓨터에서 '시작은 반이다' 는 말을
지워 버리세요. 지우기 싫으면 이렇게 고쳐서 입력하세요.
시작은 반의 반도 아니다.
마음을 비우지 말자
얼마전에 나온 유행가 중에,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
훨 /물같이 바람같이 한 세상 살자하네'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걸 버르장머리없는
십대들이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치마도 훨훨, 빤스도 훨훨' 하고 껄덕거리고 다
니더라고요.
불교에서는 '집착을 버려라' 고 합니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다 부질없는 것이다.
거기에 집착하면 마음의 평정이 깨진다. 하긴 그렇죠. 스님이 고기 생각, 냄비 생각하
면 염불이 되겠습니까?
전에 성철 스님 일대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정말 집착을 버림으로써 인간이 오
를 수 있는 높이가 어디까지인가를 가르쳐 주더라고요. 나 같은 중생은 올려다보다가
목뼈가 부러질 까마득한 높이.
보통 사람들도 그런 말 자주 합니다.
마음을 비워라.
집착하면 될 일도 안되니까 욕심을 버리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네, 김상호 선수,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군요. 너무 큰 것만 노려요. 저래서는
좋은 타격이 나올 수가 없어요.
기왕 야구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이만수 선수 있잖아요. 이 선수 왕년
에 굉장했지 않습니까? 홈런도 엄청 때렸고, 근데 이 이만수 선수가 홈런 100갠가, 20
0갠가 남겨놓고 연신 삼진을 먹는 거예요. 그래, 기자가 물었습니다. 너무 홈런 욕심
을 내니까 홈런이 안 나오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이만수가 하는 말이,
아입니더. 그건 해설자들 잇빨이고예, 홈런 칠라꼬 해도 홈런이 나올 똥 말똥 한데
욕심을 버리고 우째 홈런이 나옵니꺼?
하는 겁니다.
나는 솔직히 이만수 선수 말이 허구연이나, 하일성이나, 김소식 같은 해설자들 말보
다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는 것하고, 욕심을 낸다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스윙 짧게 하고, 방망이 짧게 쥐고 홈런이 나오겠습니까?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집니다. 집착해야 됩니다. 어차피 우린 산중에서 도 닦을 거
아니잖아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시도때도 없이 지분거리고, 그래도 안되면 보
쌈을 하든지, 장인한테 삐대든지 해야 됩니다.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그래 당신은 나와 인연이 없는 거야. 부디부디 행복해.
이래 가지고 그 여자 잡을 수 있겠습니까?
집착은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강력한 희망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
하는 노력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무감각. 무덤덤. 시큰둥 초식으로 일관한다면 진자
될 일도 안됩니다.
하긴 마음을 비우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긴 있어야 됩니다. 가령 두 남자가 한 여자
를 놓고 끝까지 너 죽고 나 죽자 초식으로 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
겠습니까? 둘 중 하나는 시체가 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선린중학교 다닐 땐데, 그때는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안하고, 이발학원에 가서 이발
을 했어요. 왜냐구요? 실습대상이 돼 주는 대가로 이발비가 공짜 내지는 거의 공짜였
거든요. 어차피 빡빡 깎는 거니까 헤어 스타일 신경 쓸 일도 없고, 서울에 그런 학원
이 아마 100개도 더 됐을 텐데, 한 학원에서 일년에 백 명씩만 이발사 자격증 딴다고
해도 일년이면 서울 시내에서만 10,000명, 이년이면 20,000명, 삼년이면..., 십년이면
100,000명. 이 사람들 다 이발소 차렸다면 어디 이발소 해서 먹고 살겠습니까?
그런데요, 전업한 사람들은 지금 뭐 할까요? 개털 아닐까요?
이발사 자격증 딴다고 헛돈 쓰고, 헛고생만 하고.
학창시절에 공부 안 하고 당구 치러 다니는 애들 많잖아요. 대충 치러 다니던 애들
은 대충 건달 됐지만, 완전히 당구에 미쳤던 애들은 지금 번듯하게 당구장 사장님이
됐거나, 하다 못해 당구재료상이라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애들 당구 치러 다닌다고
너무 야단만 치지 마십시오. 치는 둥 마는 둥 하는 것보다는 아예 칠 거면 확실하게
치는 게 낫다니까요. 공부해서 대학 간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구 열심히 친애는 고2 때 우리 반 친군데, 이 친구가 군대를 갔어요. 근데 얼마나
당구가 치고 싶었겠어요?
아버지가 면회를 오니까 첫마디가 이러더래요.
아버지, 한 게임 쳐요.
나는 이걸로 끝장을 보겠다 하는 독한 마음을 먹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그 방면에
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황영조는 열심히 마라톤하고, 이창호는 열심히 바둑 두고, 이주노는 열심히 흔들고.
..
배꼽티를 입어라
'빈깡통이 요란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엎어 치나 메치나 그게 그 소립니다. 자랑하고 떠벌리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더라는 거죠.
확실히 빈깡통은 요란합니다. 속이 꽉 찬 깡통은 떨어져도 툭! 하는데, 속이 빈깡통
은 깨갱갱 소리를 내거든요. 벼도 그렇죠. 쭉정이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데, 잘
여문 벼는 고개를 숙인 채 바람 부는 대로 출렁거립니다.
그러나 그건 깡통이나 벼 이야기고,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의사가, '난 실력 없
는 돌팔이라서 말이야' 하고 어물쩍거리거나, 텔레비전 광고에 자기 회사 제품을 광고
하러 나온 그 회장 사장이, '사실은요, 우리 회사 과자가 맛이 좀 없어요' 이런다고
가정해 보세요. 또 소설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서, '나는 아직 멀었어요. 문장이 후지
거든요' 이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거 자기 회사 말아먹고, 자기 책 내준 출판사 사
장 엿먹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눈 딱 감고
우리 회사 과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먹어보고 맛없으면 도로 갖고 와라. 돈 도
로 내 줄께.
내 작품이 최고다. 외국 출판사들이 번역하자고 난리다. 우리 나라 독자들이 아직
안 읽었는데, 외국에서 먼저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직 계약을 보류하고 있
다.
이렇게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뻥을 쳐야 됩니다. 그래 놓고 과자 많이 팔아
서 돈 벌면 그 돈 땅 사지 말고 과자 공장에 투자해서 진짜로 세상에서 제일 맛이는
과자 만들면 될 거 아닙니까?
우리는 자기가 잘난 척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자
기PR시대인 겁니다.
다리가 날씬한 여자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내놓고 다녀야 됩니다. 혹시 압니
까? 구두 마드는 회사에서 모델 하자고 그럴지? 배꼽이 예쁜 여자는 배꼽을 내 놓고
다니세요. 괜찮아요. 혼자 배꼽 내놓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배꼽 잘 자른다고 광고카
피 써놓은 산부인과에서 광고모델로 스카웃할지 누가 압니까?
중국집에 떼거리로 몰려가서 주문할 때 여기 짜장면! 나도! 나도! 할 때 과감하게
난 삼선짬뽕! 하고 외쳐야 됩니다. 그래야 중국집 아저씨가 한번 더 쳐다볼 것이고,
그렇게 눈 도장을 찍어둬야 다음에 돈 없을 때 가서 외상이라도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요, 이게 다 말이 쉽지 행동에 옮기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미니스커트 한번
입어보려면 괜히 아랫도리가 썰렁하고 뒤꼭지가 따끔거리거든요. 우리 나라 사람들 튀
어서 남들 눈에 띄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에 조용히 엎어져 있는 걸 편해 하고 또 미덕
으로 삼습니다. 옷색깔을 봐도 그렇고, 자동차 색깔을 봐도 그렇습니다. '뭘 나서, 괜
히 쪽팔리게' 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오늘 거리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생각나는 사람 있어요?
그 사람 구두 디자인이 어떤 거였는지 기억납니까?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딴 사람들도 당신을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맘 푹
놓으십시오, 남들은 자기한테 하나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설령 남들이 기억하면 또 어떻습니까? 다시 볼 것도 아닌데.
자신있게 나서 보십시오. 뭐 내세울 게 하나도 없겠어요?
내 발가락보다 잘생긴 발가락 가진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약속은 빚이다
'약속'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약속다방입니다. 지금은 다 XX카페로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짜 약속다방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당시에 전화번호부 보니까 거짓
말 안 하고 서울 시내에만 전화번호가 다른 약속다방이 세 페이지가 넘더라고요. 그
숱하게 많은 약속다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맞았을까요? 그러나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약속다방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약속다방
안에서 혹은 앞에서 약속을 지켰을 겁니다.
야, 너 왜 지난 일요일 날 약속해 놓고 바람맞혀?
내가 언제 너 만나기로 약속했니? 내가 임마, 너보고 약속다방에 두 시까지 나오라
고 했지 내가 나간다고 그랬어? 난 임마, 약속은 칼이야, 칼!
이 자식, 정말 웃기네. 너 임마, 칼이 얼마나 연착이 심한 줄 알기나 해. 제주도도
안 가본 자식이.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칼(KAL) 정말 연착이 심하더라고
요. 전에 제주도 촬영 갔다 오다가 하마터면 방송국 스케줄 펑크낼 뻔했다니까요
하여간 약속했다가 안 지키는 인간들을 보면 대략 두 가지 부류가 있더라고요, 하나
는.
약속? 기억 안 나는데?
이러면서 완전히 미친 척하고 오리발 내미는 노 전 유형이고, 또 하나는,
너 몇 시까지 기다렸니?
2시 20분까지.
야, 이 새끼야. 내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어!
아냐? 넌 안 왔어.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이러면서 힘으로 밀어부치는 전 전 유형입니다.
전 전 유형이나, 노 전 유형이나 약속 안 지켜 가지고 대국민적으로 구겨지기는 마
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요, 한번 우리 생활을 곰곰이 살펴보세요. 혹시 우리가 너무 많은 약속을 하
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닙니까?
누구한테 전화했다가 용건 다 말하고 나면 '그럼 잘 있어' 하고 끊으면 될 걸, 밑도
끝도 없이,
우리 언제 소주 한잔 해야지?
이럽니다. 전화할 때마다 '언제 소주 해야지?' 합니다. 상대방이 이 말을 곧이곧대
로 받아들여서,
그럴까? 이번 토요일 어때?
이러고 나오면 또 이럽니다.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말이야. 바쁜 일 끝나면 내가 전화할께.
야, 너 왜 전화해서 한잔하자고 하더니 연락이 없냐?
내가 그랬어? 미안해. 요즘 바빠서 말이야.
습관성 '언제 소주 한잔해야지?' 가 습관성 '미안해. 요즘 바빠서 말이야'로 결론이
납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양반입니다. 방송국에 가면 아는 후배들 많거든요. 로비에 서 있
으면 지나가면서 이래요.
형, 인사동에 카페 열었대며요. 언제 한번 갈께요.
어딘지 알...어?
하면서 고개를 돌리면 이 친구 벌써 지하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반쯤 내려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중에 물어보고 갈께요.
그럽니다. 아니, 카페 주인인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나중에 누구한테 물어본단 말이
야.
사실 비슷한 일이 많긴 합니다. '형 안녕하세요?' 해놓고는 '응' 하는 대답을 하기
도 전에 눈앞에서 바람처럼 휭하니 사라져버리는 녀석들. 다들 바쁜 탓이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약속을 남발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남녀간에도 그렇습니다. 연애할 때 보세요. 정말 귀 간지러운 약속들 얼마나 많이
합니까?
자기, 약속해. 다른 여자는 얼굴도 쳐다보지 않겠다고.
그럼, 죽을 때까지 너만을 사랑할께.
연애할 때 이런 약속 안 해본 사람 있습니까? 하늘에 맹세코, 저 별에 맹세코, 너만
을 사랑하겠노라고 새끼손가락 걸고, 새끼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굳게굳게 약속을
합니다. 유치하게. 하긴 유치한 게 문젭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낚아야 되는데. 그러
고도 모자라서 틈만 나면 도장을 찍어놓으려고, 혹은 도장을 받아놓으려고 합니다. 그
런데 한 이삼 년만 지나보세요. 여기저기서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배신자 시
리즈가 시작되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진로소주만 돈 버는 거죠.
숱하게 찢어질 뻔한 위기를 넘기고 결혼한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
일 뿐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죠.
아이고, 저 인종. 저 인종을 믿은 내가 바보지. 누구야 누구, 어느 년이냐구? 흑흑.
왜 평생 나만을 사랑한다고 약속해 놓고 다른 놈팽이를 따라갔냐구.
약속은 빚입니다. 진짭니다. 한번 약속을 하면 지켜야 되는 거잖아요? 안지키면 욕
먹으니까. 개새끼, 소새끼, 강도, 배신자 소리 들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약속을 아예 하지 마세요. 정 약속을 해야 될 일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하
세요.
약속다방 있잖아, 걸루 갈께. 몇 시에 올 거냐구? 그건 몰라. 그냥 기다려. 지겨우
면 그냥 가고. 못만나면? 그러면 마는 거지 뭐.
우리 결혼할래? 사는 데까지 살아보지 뭐. 싫으면 관두구.
지금 너 무지 사랑해. 내일도 사랑할 거냐구?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일도
너보다 더 좋은 애 없으면 내일도 사랑할께.
서로 부담 없잖아요? 부담 없는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이거만 읽어도 책값은 뽑는다.
문제는 아이디어다!
진짜 장사 될 만한 아이디어 딱 몇 개만 가르쳐줄게
부자 아버지 둔 놈 부러워하지 말고 열심히 짱구를 굴려봐.
돈 될만한 꺼리들이 지천으로 널렸다구.
그런 사람들이 있어.
뭐든지 사고 나면 꼭 '본전' 타령하는 사람들 말야.
모처럼 맘 먹고 책 하나 샀는데 본전 생각나면 곤란하잖아?
그래서 나도 큰 맘 먹고 진짜 돈 될 만한 비장의 아이디어를 딱 다섯 개만 알려 드
릴려구해.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는 사람도 있을 테구, 거 참 재밌는 아이디얼세 하고 웃어주
는 사 람도 있을 테지.
그리고 더러는 '야, 이거다' 하며 무릎을 치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믿어. 그런 분들
은 꼭 전유성이한테 연락해 주시기 바래. 동업 한번 해보자구...
돈 버는 방법을 궁리하다 특허 생각 한두 번 안 해본 사람 없을 거야.
누구는 담배 끝에다 성냥을 달아서 세계 특허를 내서 떼돈을 벌었대. 또 들은 이야
긴데, 어느 조미료회사에서 회의를 했어. 어떻게 하면 우리 조미료가 더 많이 팔릴 것
인가?
별의별 아이디어 다 나왔는데 신통치가 않더라는 거야.
그런데 하루는 간부들이 회의를 하는데 신입사원이 한마디 했대.
조미료 나오는 구멍을 크게 뚫으면 되잖아요.
그렇지, 구멍을 크게 하면 조미료를 칠 적마다 많이 쏟아지잖아.
가정주부들은 습관적으로 조미료통을 흔드니까 아무래도 매상이 크게 늘겠지?
그래서 그 신입사원이 보너스를 받았대나? 진급을 했대나?
뭐 하여튼 그런 얘기가 있었어.
그래, 문제는 아이디어야.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어 하면서 숱
한 아이디어를 짜냈어.
제일 먼저 생각해낸 것이 성냥이었어.
성냥알 있는 뒷부분을 뾰족하게 깎아서 앞으로는 성냥알, 뒤는 이쑤시개가 되는 성
냥.
그 다음이 나무를 조금이라도 아껴보자는 뜻에서 성냥 황을 양쪽 다 붙여서 한번 쓰
고 나뒀다가 나중에 뒤로 한번 더 쓸 수 있는 성냥. 그 다음에 연구한 것이 손잡이가
수도꼭지 손잡이처럼 생긴 드라이버.
오직 아이디어 아이디어 하고 다니다 보니까 나중에는 여행지 여관방에서 혼자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바로 이거다 하고 밤새도록 돈 세는 연습만 한 적도 있어.
넥타이 말이야, 한쪽밖에 못 사용하잖아.
그러니까 넥타이를 앞뒤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거야.
넥타이 색깔이 조화가 맞으면 괜찮을 거야.
넥타이 한 개 값으로 두 개의효과를!
여행지에서 넥타이를 뒤집어 쓸 수도 있고 좋잖아?
아침에는 평범한 색으로, 퇴근 후에는 약간 야한 것으로.
첫 번째 아이디어
성산 일출봉에서 부적연 팔기
안개낀 날이나 흐린 날 새벽에 성산 일출봉에 일출 보러 갔다가 허탕 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부적연을 파는 거야.
아들 낳는 연, 집 빨리 장만하는 연, 돈 많이 벌게하는 연...
제주도에 놀러가면 꼭 들르는 코스가 있거든.
신혼부부들의 필수 코스지. 그게 어딘가 하면 말이야, 해뜨는 광경이 장관이래나 어
쨌대나 하는 일출봉이야.
신혼부부가 그걸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다리 아프게 잠도 못 자고 희뿌연 새
벽부터 그 경사진 길을 휘이휘이 올라가면, 아이고 어떡하니?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해뜨는 장면을 못 보게 되겠구만요 어쩌구저쩌구. 맥빠져!
그런데 사실은 일출장면이라는 것을 일년에 삼십일 정도밖에 못 본다는 것을 그대들
은 아는가 모르는가?
그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할 일도 많은데 일출을 보겠다고 거기까지 올라가서 쓸쓸히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바로 이거다, 하고 손바닥을 마주쳤지.
호호호 비밀이 새어나가면 안된다. 하고 지금까지 미뤄온 건데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비로소 공개하니깐 기대하시라.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연을 날리게 하는 거다.
무슨 연이냐 하면 연에 의미를 붙이는 거야.
시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연, 아들 낳는 연, 시누이와 사이좋게 지내는 연, 부부싸움
안 하게 되는 연, 술 끊게 하는 연, 집 빨리 장만하는 연, 결혼기념이 안 잊어먹게 하
는 연, 교통사고 안 나게 하는 연, 집에 일찍 귀가하는 연, 돈 많이 벌게 하는 연 등
등...
종류에 따라서 다 다른 부적이 그려져 있는 거야.
그러면 일출 못 보고 내려가려던 신혼부부들이 하나씩 날려보내지 않겠는가 하는 생
각을 해봤어.
높이높이 내 소원을 실어 날리는 거야.
또 한국 사람들 심리가 묘해서 남들이 한다고 하면 잘 따라하잖어.
그러니까 한두 명에게 공짜로 연을 날려 보라고 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런 방법도 있어. 올라오는 입구에, 선착순 3명에게 무료로 연을 나눠드립니다 하
고 안내판을 하나 붙여놓는 거야. 그러면 무조건 그 장사는 끝내준다는 거 아냐.
하나에 만원씩만 받아도 하루에 열명이면 원가 빼고 7,8만원 남지 않겠어.
스무명이면? 오십명이면? 백명이면? 얼마냐 이거야.
바다에 연이 빠지면 바다가 오염이 되니 안 되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서
하는 소린데 방법은 두 가지.
바다에 빠진 것 건져주는 데 얼마씩 받는 장사를 궁리해 보든가, 미역 같은 재료로
연 만드는 법을 연구하면 언젠가 방법이 나오지 않겠어? 안 그래?
일단 나는 공개를 했으니까 동작 빠른 사람이 해보라구.
미역연 연구하다 지치는 시간에 이런 것도 연구해 봐.
여자들 스타킹에 흙탕물 튀면 난감하잖아.
보기 흉한 것은 말할 것도 없구.
그럴 때 일회용으로 흙탕물 지우는 걸레 같은 것도 한번 연구해 봐.
연구 끝난 다음에 연락하면 판로는 내가 개척해 줄게.
두 번째 이야기
고장난 간판 즉석수리업
길 가다보면 간판 글자 떨어진 거 많잖아. 그걸 즉석에서 고쳐주는 거야.
단돈 일이 만원에 해준다는데 싫다는 사람 있겠어?
서울 시내 상가만 뒤져도 떼돈을 만질 수 있을 거야.
길거리 다니다 보면 아크릴로 간판한 집 많이 봤을 거야.
그런데 문제는 글자들이 하나씩 혹은 받침이 떨어져 나가서 보기 흉하게 된 간판이
수태 있다는 거지.
내일 고쳐야지 다음에 고쳐야지 하면서 하루이틀 지나가고 그러다가 어영부영 몇 달
씩 그대로 있는 거 많이 봤거든.
언젠가 간판 하나 만들 일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을지로 아크릴 간판 재료상에서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봤어. 사실 별거 아니더라구.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얼마든지 싼값에 만들 수 있어.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아크릴 간판 떨어진 곳을 찾아가서 만들어주면 어떨까? 방문
해서 즉석에서 만들어주면 안 하겠다는 주인 없겠더라니깐.
사실 큰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야. 그리고 잘 되면 아이들 아르바이트 시킬 수도 있
잖아.
지나가다가 간판 떨어져나간 것 발견해 오면 10% 줄게.
하면 안 할 이유도 없을 것 아니냐구. 안 그래?
신촌역 앞에 가면 김광사 치과가 있는데 광자에 ㅗ자가 떨어져서 김강사로 보이거
던. 꼭 이빨 빠진 거 같애.
영등포역 앞에 구두방이 있는데 두자에 아랫도리가 떨어져 나가서 구두가 굽이 떨어
진 거 같애.
이렇게 제보만 해주면 전화받고 달려가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 좋은 거 당신이 하지 남한테 왜 가르쳐 주느냐구?
물론 모든 게 다 장단점은 있더라고.
아르바이트시켰더니 이 자식들이 밤마다 다니면서 간판을 생총으로 깨뜨리다가 들킨
거 있지.
그러니 돈벌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지 안 그래?
문제는 언제나 과잉충성 하는 자식들 때문에 그르치는 거야.
고장난 간판 수리업 하면서 덤으로 하는 장사
고장난 간판 보러 다니다가 그냥 아무 집이나 사무실이나 가게에 쑥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는 인쇄물 있어요? 하고 묻는 거지.
없다고 하면 마는 것이지만 인쇄할 것이 마침 있으면 그 집 전화를 빌려서 아는 인
쇄소에 전화만 하면 되는 거야.
전화로 견적을 받아서 주문한 집에 알려주고 중간소개료를 받는 건데 그 수입도 아
마 꽤 짭잘할걸.
세 번째 아이디어
누룽밥 전문점
주방장이 따로 필요 없어. 별다른 기술도 필요 없어.
물만 끓일 줄 알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만에 하나 망하더라도 백반집으로 재빨리 전환할 수 있구.
누룽밥은 맛있다. 고소하다. 근데 요즘은 먹기가 힘들다.
가끔씩 재래식 밥솥에 밥을 하면 솥 밑바닥에 보너스처럼 노릿노릿한 누룽밥이 깔린
다.
근데 요즘은 전기밥통이라는 것이 생겨서 누룽밥을 먹기는커녕 보기도 힘들다.
가끔씩 냉수나 엽차 대신 숭늉을 내놓는 식당이 있는데 그럴 때 우리는 "어! 이게
뭐야? 숭늉 아냐" 하면서 굉장히 반가워하는 감탄사를 듣게 되곤 한다.
그런 집엔 늘 나이 드신 우리의 어머니 모습을 닮은 아주머니가 주인인 경우가 많
다.
그 집의 메뉴가 무엇인가를 떠나서, 그 고소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들어 있는 누
룽밥으로 마든 숭늉 때문에 단골이 되는 경우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어렵던 시절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절, 친구 몰래 한쪼가리 떼내어 우물우물 씹
어먹던 시절로 돌아간다.
"웬 누룽밥 타령(랩?)으로 바쁜 사람 시간을 끄냐, 시간 끄는 건 니 마누라한테나
해라!"
하시는 독자가 계셔도 할 수 없다.
이 얘기는 아주 중요한, 알아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당뇨병이 예방되고, 혈압
이 내려가고, 신경통이 낫는 얘기일 수도 있다. 돈벌이에 관한 얘기니까.
그래서 말인데 난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를 궁리한 적이 많거든.
돈을 벌긴 벌어야 되는데 한가지 원칙이 있어.
남이 안 하는 장사를 하는 거야. 독창성이 돋보이는 돈벌이.
그래서 누룽밥만 정식으로 끓여서 파는 집을 하면 어떻겠냐는 거지.
밥 먹기는 웬지 그렇고 안 먹자니 배고플 것 같은 사람이나, 술 마신 후 속풀이에,
부모님과의 외식에 누룽밥을...
누룽밥 체인점 모집
쌀 한되로 누룽밥 85%를 만드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주방장이 필요 없어 인건비 절감에, 별다른 기술 없이도 물만 끓일 줄 알면 모든 것
해결.
아침마다 그날그날 만들어진 누룽밥을 제공해 드립니다.
혹시 망하더라도 백반집으로 재빨리 전환 가능합니다.
네 번째 아이디어
이상한 공식만 가르치는 학원
우리나라 학원들 전부 미어터지는 거 보면 이것도 장사 될 거야.
딱 하나 문제는 공식을 개발하는 건데, 힘들면 나랑 같이 연구해 보자구. 심심할 때
마다...
그래 마지막이다. 한번만 더 연구해 보자 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연구한
게 이건데, 한번 들어보고 돈 되겠다 싶으면 나랑 같이 하자구.
이상한 공식을 딱 하나 만들어내서 그 공식만 가르치는 학원을 내는 거야. 그건 세
상 살아가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공식인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게
어려운 공식인 거야.
물론 써먹는 데는 한군데 있긴 있어.
한 문제 푸는 데 약 두 달 걸리는 암호와 역사 연대표, 아프리카 인디언들의 이상한
풍습 등등 안 나오는 게 없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몰라도 되는, 알면 골치만 아픈 이상
한 공식인 거야.
그 공식은 학원에서 마음대로 바꾸는 거야.
일월에는 이것이 정답이고 이월에는 저것이 정답이고, 장이 나쁜 사람은 정답이 또
틀려. 시력이 나쁜 사람, 충치가 있는 사람, 사람에 따라 날씨에 따라 정답이 달라.
하여튼 그런 공식을 가르치는 학원을 만드는 거야.
어디다 써먹냐구?
그 공식 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사람은 우리 학원 강사가 되는 거야.
그러면 그 강사는 또 그 쓸데없는 공식을 가르치는 거야.
그 학원 출신은 그 공식만 잘 풀면 취직은 1백%되는 거야.
그리고 월급을 많이 주는 거야.
그래야 학원생들이 많이 모일 거 아냐.
학원생들이 많이 모이면 자연히 돈이 많이 생길 것이고.
학원선생님한테는 될 수 있는 대로 월급을 많이 주는 거야.
다른 곳에선 써먹을 수 없지만 자기 학원에서만 써먹는 공식, 그런 공식을 가르치는
학원 어때?
같이 해볼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한번 만나서 얘기 좀 하자구.
그런 공식이 어디 있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모여서 연구해 보자구. 연
구하다 보면 만들어지지 않겠어?
다섯 번째 아이디어
쓰레기 수거 아르바이트
이제는 쓰레기를 함부로 못 버린다.
범칙금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언데.
쓰레기통을 하나 짊어지고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떨까.
얼마 전에 PC통신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남녀가 노상방뇨를 하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범칙금이 나왔는데 여자는 2만원, 남자
는 4만원이라는 거야.
남자가 왜 두 배가 나왔느냐고 따졌더니 경찰이, 당신은 흔들었잖아! 했대나 어쨌대
나!
(고스톱 치는 사람은 금방 알아듣는다.)
어쨌든 간에 요즘 범칙금 이야기가 화제들이 되고 있다.
유머라는 게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니까 말이다.
명동을 나갔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명동에 숫자는 잘 모르지만 아주 많은 인파가 지나다닌다.
그런데 쓰레기를 버리려고 찾아보니 쓰레기통이 몇 개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쓰레기를 함부로 못 버린다.
범칙금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언데, 쓰레기통을 하나 짊어지고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떨까.
아무 데나 버리다가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돈 천원 내고 버리는 게 훨씬 이익이 아
닌가 말이다.
지금은 없어진, 종이 줍는 사람들이 쓰던 망태기를 메고, 자, 쓰레기 한번 버리는
데 천원이요 하고 다니면 분명 이용자가 넘칠 것이고, 망태기도 쓰레기로 넘칠 것이
다. 혹시 일본이나 미국에서 이미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는 아닌지 모르겠네.
여섯 번째 아이디어
파고다 공원을 끝내주는 관광코스
이건 관광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공개하는 아이디언데, 생각해 보고
괜찮다 싶으면 응용해서 장사해도 저작권료 안 받을게.
오래 전부터 생각해본 건데, 우리 국민들에게만 파고다공원은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
다, 그렇게 알리지 말고 말이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드는 거야. 내 아이디어는 이런
거야.
매일 정오가 되면 한 사람이 팔각정에 올라가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거야.
그리고 낭독이 끝나면 파고다공원 안에 있던 사람 모두가 커다란 소리로 만세삼창을
하는 거야.
또 낭독하는 사람을 한 사람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하겠다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서 순서대로 시키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 애국심이 남달라서 너도 나도 독립선언문 낭독하겠다고 난리가 날
거야.
그리고 관광객들은 차를 종묘앞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종묘로 먼저 들어가서 임금님
에게 절을 한번 시킨 뒤에 파고다공원으로 데려가는 거야.
가이드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자연스럽게 이
야기해 주는 거야.
그런 다음 길 건너 세운상가에 가서 가전제품 쇼핑을 시키면 어떨까?
아니면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 태극기를 하나씩 나눠준 다음에 만세 삼창 할 때 같
이 만세를 시키면 어떨까?
어때?
훌륭한 관광코스 개발 아니냐구...
제2장 물찬 돼지, 키큰 짠돌이, 납작코 변강쇠
무단횡단을 하자
건강, 신경쓰지 말자
불규칙한 생활을 하자
물찬 돼지, 키큰 짠돌이, 납작코 변강쇠
사내대장부 콤플렉스
눈높이 아래의 세계를 보자
돌다리는 두들겨보지 말고 건너라
비교하자
오른손은 옳은 손
정신력으로 되는 일 없다
고자질 하자
무단횡단을 하자
옛날에 육교 많았잖아요? 그 육교 다 어디 갔습니까? 이상하게 육교 없애고 다
횡단보도로 바꿨더라구요?
일설에 따르면, 전( )의 잠자리 짝쿵 이( )의 동생되는 이( )가 신호등 만들어서
파는 장사를 했는데, 이 사람 장사 시켜 줄려고 멀쩡한 육교 없애고 횡단보도를 만들
었다고 하더라구요. 설마 그랬겠어요? 그렇지만 없어도 되는 곳에 횡단보도 많이 만들
었던 건 사실이잖아요, 그 시절에. 또 육교는 탱크가 지나다니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
에 군사목적상 제거했다, 이런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해설하는 썰도 있더라구요.
육교. 좋지 않습니까? 도로에서 맨날 구박만 당하는 보행자가 간만에 높은 데서 자
동차들 아래로 굽어 볼 수 있어서 좋고, 자동차는 신호 기다리지 않아서 좋고.
휠체어 타고 아니는 장애인들과, 팔다리 쑤셔서 걷는 것도 힘든 노인들은 어떻게 길
을 건너냐구요?
아! 그렇네요. 그건 미처 생각 못했네요.
근데요, 전에 이화여대 앞에 가보고 돌연 섬광처럼 '아! 횡단보도를 없애자!' 이런
생각이 내 머리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이화여대 들어가는 진입로 입구, 그러니까 지하철 2호선 이대앞 역 구멍 있는 데 횡
단보도가 하나 있고, 이화여대 정문 앞, 그러니까 수위 아저씨가 남자들 못 들어가게
늘상 지키고 서 있는 지점에 또 횡단보도가 하나 있어요.
이대 앞에 옷가게 좀 많습니까? 길을 가다가 건너편 옷가게 진열장에 나한테 꼭 어
울릴 것만 같은 예감이 확드는 옷을 발견했다 말입니다. 그것도 건널목과 건널목의 중
간쯤에서. 그 옷을 어깨에 한번 걸어보기 위해서는 법대로 라면 위쪽이든 아래 쪽이든
한 백미터쯤 가서 건널목을 건너고, 또 한 백미터쯤 도로 걸어와야 돼요. 눈 딱 감고
무단횡단 하면 오미터도 안되는데 말입니다. 또 길 건너편에서 여고 동창생 하나가 '
야, 말자야. 오랜만이다. 떡볶이 먹으러 가자.'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무단 횡
단하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전에 한번 보니까, 교통들이 나와 가지고 무심코 상식에 따라 무단횡단하는
처녀들을 다 잡아서 오천원짜리 딱지를 떼고 있더라 이겁니다. 미끈한 처녀들이 애걸
복걸 하는데도 모지락시럽게 법대로 처리하더라 이겁니다.
선진국 국민들은 누가 보나 안 보나 교통질서를 잘 지켜. 우리나라 사람들? 아직 멀
었어.
이런 말들 많이 합니다. 선진국 안 가본 사람들도 가본 사람처럼 떠듭니다.
그런데 영화 보니까 안 그렇대요? 특히 이면도로에서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건너다니
고 그냥 차들이 사람을 피해다니더라구요. 횡단보도는 아예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보다 차 우선' 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운전자들로 하여금 보행
자들을 무시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까 사고도 많이 나고요.
하와이에서 살다온 양아치가 있는데, 진짜 나쁜 놈입니다.
이 양아치와 차를 타고 어딜 가는데 운전하던 사람이 '저 ( ), 죽을려고 환장했나,
차 지나가는데' 이러니까 이 친구가 듣고는, '아니 이 보슈, 사람이 어떻게 기다려?
차가 기다려야지'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나쁜 시키도 그 정도는 지키더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이면도로에서는 횡단보도를 없애버리자 이겁니다. 횡단보도를 없애버
리면 무단횡단도 저절로 없어질 거 아닙니까? 사람들이 자꾸 무단횡단을 해야 자동차
도 과속운전, 난폭운전 못할 거구요.
긴급제안!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교통사고로 숨지는 경우 많잖아요. 그래서 이야긴데요,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에게 야광으로 칠한 옷 말고 경찰복을 입히면 어떨까요. 모양은 똑같
고 위에서 두 번째 단추 색깔만 다르게 해서. 그러면 멀리서 달려오던 운전자들은 다
경찰인 줄 알고 속력을 줄일 거 아닙니까? 환경미화원 사고도 줄어들고 과속운전도 줄
어들고. 일석이조, 즉 돌멩이 한 개 던져서 참새 두 마리 잡는 거 아닐까요?
건강, 신경쓰지 말자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병이 났을 때 병을
고쳐주는 의학보다도 예방의학이 더 중요시된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결국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해서 건가으이 비결은 예방이다 이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게 또 사람잡는 겁니다. 하도 건강, 건강 하니까 스트레스 받아
서 없던 병도 생길 판입니다. 병원에 가 보면 이런 사람 많습니다. 아무리 검사를 해
봐도 아무 이상 없는데, 자꾸만 와서는 금쪽 같은 돈 팡팡 써 가면서 여기 좀 봐 달
라, 저기 좀 봐 달라, 의사가 돼가지고 그것도 모르느냐, 마구 떼를 쓰는 거예요. 의
사가, 선생님은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해도 막무가내예요. 오히려 의사 보고 실력 없
다고, 돌팔이라고 병원 문 앞에 플래카드 걸어놓고 농성이라도 할 기셉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확실히 이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병원을 좀
가 보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과, 외과 이런 데 말고 진료과목이 완전히 다른 청량
리로 말입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K씨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난데, 이 K씨의 거지같은 행동거지를 보
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K는 음식에 관해 매우 까다로운 편인데, 어느 날 어떤 책에서 콜레스테롤이 몸에 나
쁘다는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콜레스테롤을 마치 원수, 말미잘, 박
쥐, 바퀴벌레처럼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간만에 소주에 삼겹살이라도 구
워먹을라 치면 난데없이 나타나 지가 무슨 건강 전도사나 되는 것처럼, 삼겹살에는 콜
레스테롤이 많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안된다, 너 콜레스테롤이 얼마나 우리 몸에 해로
운지 아느냐, 너 이러다가 동맥경화증 걸려서 죽으면 너네 마누라가 애들 데리고 얼마
나 고생하겠느냐, 하면서 누누이, 시시때때로, 술맛, 삼겹살맛 다 떨어지는 소리를 해
대는 겁니다. 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시금치 안주해서 소주 마시는 사람 봤어요? 또
술이 몸에 나쁜 거 누가 모르냐? 열 받은 사람 열 받으니까 마시고, 상처 받은 사람
상처 받아서 마시고, 공처가 마누라한테 혼날까 봐 집에 못 들어가 시간 때울 데 없으
니까 마시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요?
사실 그는 식사를 할 때에도 밥상 위에 놓여 있는 모든 반찬을 하나하나 영양성분과
그 해익에 따라 분류, 분석한 다음 숟가락을 놀립니다. 이건 칼로리가 많아서 안되고.
저건 지방질이 많아서 안되고 어쩌구 저쩌구... 마누라님이 좀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다가 K는 우연히도 친구에게 '콜레스테롤도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라
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니. 콜레스테롤이 유익하다구?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지.
그때부터 K는 여러 가지 건강서적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읽었던 그 책 내용
과 완전히 틀리니까요. K에게 혼란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제는 콜레스테롤
을 얼마나 섭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혔습니다.
국산 전문가는 믿을 수가 없어. 원서를 뒤져 봐야겠어.
여러 권의 건강 관련 서적과 잡지를 탐독한 K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
다. 그 후 K는 제대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밥상에 앉으면 젓가락만 들
었다 놨다 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이 K씨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옆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들어요.
야, 이 원시인아. 너 아직도 담배 피냐?
술 좀 작작 마셔라. 알코올이 간에 얼마나 나쁜지 알기나 하냐?
심지어는 밤에 원고 쓰고 새벽에 겨우 잠자리에 들었는데, 집 안방까지 쳐들어와서
'야, 빨리 일어나! 조깅하게' 하고 막 흔들어 깨우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이러한 사이비 건강 파수꾼 때문에 멀쩡한 우리 육체가 쫄아들고 머리 속이 마구 헝
클어지고 있습니다. 헝클어진다? 돌아버린다? 노이로제? 노이로제! 건강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보면 신경선 노이로제에 걸릴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면 백약이 무효가 되면
서, 순식간에 몸의 균형이 허물어지면서, 급기야는 생리불순, 식욕감퇴, 성기능 개선
클리닉 방문 순으로 진행됩니다.
건강하고 싶으면 건강을 가볍게 생각하세요! 근데 이거 말 되나, 안되나? 하여간 뭐
든지 지나치면 병이 되는데 건강도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건강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몸과 마음을 좀먹습니다.
콜레스테롤이 좀 많은 음식이면 어떻습니까? 맛있으면 그만이지.
맛있게 먹고 잘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시원하게 싸면 그게 바로 건강입니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자
지금까지 들어본 고정관념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
는 것일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니 말도 못하고 기어다닐 때부터 정말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말 아닙니까?
우유는 하루 세 번, 목욕 하루 한 번, 잠은 꼭 밤에.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가 그랬다면서요. 얼마나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지, 그 사
람이 산책을 하면서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이웃사람들이 시간을 알았다고. 그
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좀 끔찍하지 않습니까? 꽉 짜여서 한치도 빈틈이 없는 생
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아무리 잠이 안 와도 불 끄고 누워서 하나 둘 셋 넷, 별 하나 별 둘... 백까지 세
고,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수면제 먹고 또 하나 둘...)
밥 제 시간에 먹기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는데도 밥 구겨넣고, 한 숟갈에 이빨 서른 번씩 갈기.)
제 시간에 학교 혹은 회사 가기.
(늦잠 좀 잤다고 교문 앞 학생주임한테 걸려서, 일주일동안 새벽 6시에 나와서 새마
을청소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명색이 한여자의 남편이고, 토끼 같은 자식들의 아버지
가 되어 가지고, 부장 앞에서 온갖 면상 금 가는 소리나 듣고. 아이고, 갑갑한 내 인
생.)
공부 시간에 공부하기.
(나의 독특한 바이오리듬은 완전히 무시되고, 정확히 50분 공부, 10분간의 휴식의
중단없는 반복. 무려 12년 동안이나.)
마치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가 하
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흥분합니다. 하루 정도 이빨 닦지 않는다고 이빨이
왕창 썩습니까? 약사가 식사하고 30분 후에 약 먹으라고 한다고 밥 먹고 나서... 쓰
리, 투, 원, 제로, 꼴까닥 이래야 됩니까?
어린 아이들을 아침부터 점심까지 학교, 점심부터 저녁까지는 속셈학원, 태권도 도
장 등으로 꽉 짜인 규칙적인 생활에 짜맞추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하면 애들한테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밸까요? 또 밤늦도록 공부한 다음에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은데 왜 밤늦게 공부하느냐고 아우성을 칩
니다.
그러면 나 같은 올빼미 체질, 즉 해만 지면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다가도 해만 뜨면
찌거덕찌거덕 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아침에 잠이 더 많은 사람이 딴 사
람들이 정해 놓은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당해 할 수 없이 일찍 일어났지만 하루종일 멍
멍한 상태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면 그 규칙적인 생활이 정말 필요할까요?
남들이 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해서 나까지 남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억지로
끼워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잠이 안 오면 안 자도 되고, 끼니 때라도 배가 안 고프면
밥 안 먹어도 되고, 새벽까지 일하다가 아침에 자는 불규칙하지만 자연스러운 생활이
자신의 일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밤에 더욱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
고 아이디어가 펑펑 쏟아져나오는 사람은 밤에 일하고 낮에는 어디 사우나 가서 자야
됩니다.
그리고 너무 규칙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답답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신혼 초에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는 겁니다.
우리 남편은 여덟 시 땡 하면 들어와. 회사에서 여섯시에 퇴근하면 한눈 안 팔고 곧
바로 들어온다아!
몇 년이 지나자 이 여자는 지긋지긋해졌습니다. 여덟 시면 남편이 어김없이 들어오
니까 여덟 시만 되면 무조건 집으로 가야 되는 거라. 동창하고 커피 한잔 하다가도, '
지금 몇 시야? 아이고 가봐야 겠네.' 영식이 엄마 하고 수다를 떨다가도 '아이고 지금
몇시야?'
자연 그대로의 사람, 자연의 일부인 내 몸, 내 마음의 리듬을 따라 사는 삶, 가끔은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거리낌 없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 그런 삶이
훨씬 더 인간적인 삶 아니겠습니까?
이건 내가 어떤 책에서 본 건데요. 사람이 아프면 왜 식욕이 없어지잖아요. 그럴 때
는 그냥 아무것도 안 먹는 게 좋다고 그러더라구요. 우리 몸에는 자연치유력이라는 것
이 있는데, 위장이 비어 있어야 이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된다나 어떻다나. 하여간 입맛
도 없고, 배가 고픈 줄도 모르는데, 억지로 밥을 먹이는 건 안 좋답니다. 배가 고픈
걸 못 느끼는 것도 우리 몸이 공복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렇게 뇌에서 지령을 내
리기 때문이랍니다. 어려운 말이 많아서 잘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책의 내용은 대충 그
런 거였어요.
참고하세요!
물찬 돼지, 키큰 짠돌이, 납작코 변강쇠
사람들은 겉모습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무슨 토크쇼나 스포
츠 신문 같은 데서 미혼인 여자 연예인들 인터뷰하면 끝에 가서 약방에 감초처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 )씨, 이제 결혼하셔야죠?
예, 해야죠.
어떤 타입의 남자를 원하세요?
가진 거나 생긴 거보다는 착한 사람, 절 잘 이해해 주고, 오빠처럼 포근한 남자면
될 거 같애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여자들 돈 많고 잘생긴 사람들하고만 결혼하더라고요. 뿔따
구 나게. 아예 그런 말 하지를 말든지. 그냥 솔직하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닙
니까?
저는요, 이왕이면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이면 좋겠어요. 마음도 넓고, 바람 피워도 용
서해 주는 남자요.
얼마 전에 교통방송에서 배한성 씨가 이러대요. 여자가 남자 평가할 때 상, 중, 하
이렇게 나눈다는 겁니다.
상 : 잘생기고 키도 큰 남자 (앞에서나 뒤에서나 괜찮은 남자)
중 : 못생겼지만 키는 큰 남자 (뒤에서만 괜찮은 남자)
하 : 못생긴데다가 키도 작은 남자 (앞에서나 뒤에서나 영 아닌 남자)
하여간 말로는 겉보기보다 내면이 어쩌구저쩌구 내숭을 떨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올
시다더라 이런 말입니다. 미팅할 때 보세요. 파트너 정해지면 남자든 여자든 벌써 표
정이 쪼개지는 사람과 금가는 사람이 딱 구분이 가잖아요.
내면 같은 거 처음 만났는데 알겠어요? 쭉정인지 알갱인지?
그렇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또 그 판단이 대
충 옳은 경우가 많습니다. 척보면 개털인지 범털인지, 쭉정인지 알갱인지 아는 겁니
다.
옷차림이 깔끔하고 단정하면 깐깐하겠구나, 허리가 38인치쯤 되면 저 사람 느긋한
성격이겠구나, 얼굴이 허여멸건 하면 부잣집 막내아들쯤 되겠구나, 또 터무니없이 잘
난 척하거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 저 사람 싸가지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끔 이런 판단이 빗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물찬 돼지, 키큰 짠돌
이, 납작코 변강쇠들이 널려 있으니까요. 겉보기는 멀쩡한데 행동거지는 거지 같거
나, 행동거지는 점잖은데 깡패두목인 사람,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껄렁거리기에 너
뭐하는 놈이냐 이러니까 나 S대 교수요, 이러는 사람. 한마디로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
들입니다. 그래서 섣부르게 판단했다가 한칼 먹는 경우도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요, 진짜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
이 일 할 때 보면 압니다.
아는 후배 하나가 나보고 그래요. 어떤 그룹에서 재즈 피아노 하는 여잔데 정말 끝
내준다고. 내가 물었습니다.
야, 걔 못생겼지?
어떻게 알아?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잘생긴 냄비가 하루종일 재즈 피아노와 씨름하고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대 뒤에서 그 여자를 보게 됐는데, 정말 못생겼데요. 진짜 첨 봤어요. 그
렇게 못생긴 여자는. 그때, 그 여자는 정말 못생겼다, 이런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 꽉
박혔습니다. 그러고 한참 뒤에 이 여자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걸 봤어요. 정말 미친 듯
이,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더라고요. 근데 말입니다.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는 겁
니다. 내 머리 속에서 그 여자 이미지가 백팔십 도 바뀌었습니다. '저렇게 멋있는 여
자 첨 본다' 로.
홍신자 알죠? 무대에서 춤출 때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말 백조 같습니다. 어
떤 사람이 홍신자씨 춤을 보고 감동 먹어 가지고 무대 뒤로 꽃다발을 가지고 갔는데,
홍신자 씨를 알아보지를 못하더랍니다. 키가 너무 작아서 못 찾았다는 겁니다. 춤을
잘 추면 키는 보이지 않고 춤만 보이거든요.
사내대장부 콤플렉스
남자는 일생에 딱 세 번 운다. 태어났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
을 때.
참, 고추값 더럽게 비쌉니다.
새끼 고추가 뛰어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습니다. 고추는 당연히 아파서 웁니
다.
이~ 잉, 나 피났어.
그러나 곧 이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사내 자식이 그 정도에 눈물을 찔끔거리냐? 계집애처럼? 뚝 그치지 못해! 고추 떨어
진다.
아이는 고추 떨어진다는 말에 놀라서 억지로 눈물을 그칩니다. 자꾸 나오려는 눈물
을 손등으로 마구 비비며 참는 거죠. 그러면 어른들은,
음, 그래야지. 대장부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이러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고추의 소프트웨어에 이렇게 입력됩니다. '고추
는 울면 욕먹고 울음을 참으면 칭찬을 받는다.'
문제!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라는 속담 있잖아요? 이 속담에 나오는 아이는 고추일
까요? 냄비일까요?
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운다, 운운하는 논리에 따르면 남자아이는 울면 안되고, 따라
서 생전 떡 하나 얻어먹지 못할 겁니다. 이상하다. 근데 요즘 고추들은 살이 피둥피둥
찌지?
이렇게 큰 고추들은 커서도 눈물을 잊고 삽니다.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슬퍼도, 아
무리 괴로워도 울지 않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가 약한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울지 말아야 돼.
아파치 전사보다 더 독해집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의 미학을 까맣게 잊
어버립니다. 물론 정 아플때는 화장실이나 남이 보지 않는 곳에 부리나케 뛰어나서 엉
엉 울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뭐든지 너무 어거지로 눌러놓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프디 슬픈 영화를 보면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낄낄
거리거나 코웃음을 칩니다.
에이, 저질. 완전히 60년대 고무신 영화군.
남자들이라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 슬프지 않겠습니까?
슬퍼서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니까 이런 정신분열 초기증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를 보세요. 어머니가 죽었는데 장례식에서 눈
물 하나 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지 태양이 눈부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아
랍인을 38구경 리볼버로 빵! 해버리는 황당무계한 행동이 나오는 겁니다.
로마의 철없는 황제 네로는 자신의 눈물을 눈물 단지에 받아두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모은 눈물이 말라 소금이 되면 그걸 팔아 로마 재정에 보탤려고 그랬는지 어쨌
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어떤 학설에는 많이 울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 라이소자임이라는
분비물이 나오는데 그러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눈에도 참 좋다고 합니다.
남자라고 무게잡을 필요 없습니다. 언제까지 '사내대장부 콤플렉스'에 얽매여 살아
야 합니까? 울고 싶으면 펑펑 울어야 됩니다.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눈에도 좋다니
까요. 또 손수건은 코 푸는 데만 쓰는 게 아닙니다. 슬픈 영화를 보면 훌쩍 훌쩍 울
고, 분하고 원통할 때는 으앙, 으앙 소리내서 울어야 됩니다.
눈물이 난다고 공연히 아닌 척 하늘을 쳐다본다든가, 낄낄거린다든가 하지 마십시
오.
'눈물이 나면 흐르도록 두어라.
그대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 줄 것이다.'
개그맨 후배 중에서 아무개라는 황당한 인간이 하나 있는데요. 이 친구 시도때도 없
이 돈을 빌려 달래요. 많은 돈도 아닙니다.
형, 점심값이 없어서 그러는데 이만원만...
형 나 있잖아. 지금 지방 가야 되는데, 지갑을 깜박 두고 나왔지 뭐야. 한 십만원
만...
이런식입니다. 나 이만원 없어, 이럴 수 없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전유성이 지갑에
이만원이 없다면 믿겠는가. 빌려줍니다. 그런데 이 자식 갚지를 않아요. 나뿐만 아니
고 이 자식한테 푼돈 떼인 개그맨이 한둘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도 빌려 달래면 또 빌
려줍니다. 왜냐구요? 이 자식이 말입니다, 사내대장부가 돼 갖고 시도때도 없이 울어
요.
야, 너 왜 돈 안 갚어?
형, 내가 잘못했어요, 다음에 꼭 갚을게. 엉엉 그런데 삼만원만 있으면...
눈높이 아래의 세계를 보자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야야, 힘 좀 내 임마.
고개 들고 어깨 좀 쭉 펴.
젊은 놈이 원.
고개 숙이고 다니면 웬지 처량, 불쌍, 나약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부러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닙니다.
압구정동이나, 요즘 물 좋다는 홍대 앞에 한번 가 보세요.
진짜 그렇더라고요.
새파랗게 젊은 여자들이 허연 허벅지를 흐드러지게 드러낸 채 옆에 누가 지나가도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도도하게 콧대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더라고요.
아, 고개 들고 다니는 거야 좋지만 거 괜히 사람 기죽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터미네이터나 타임캅 같은 SF영화에 나오는 잘생긴 여자 사이보그 같기
도 하고 말이죠.
어깨에 힘을 주고 고개를 빳빳하게 든다는 것은 어쩌면 도전적이고, 자신감 있고,
또 보기 좋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고개 푹 숙이고 빌빌거리는 게 보기 흉한 것도 사실입니다.
내 말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 푹푹 쉬면서 빌빌거려야 된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고개를 숙이면, 고개를 들고는 절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눈높이 아래의 세계가 눈
에 확 들어온다 이 말입니다.
그곳은 도도한 세계, 사람 기 죽이는 세계, 휘황찬란하고 요란벅적지껄한 세계는 아
니지만 아주 따뜻한 세계, 작지만 섬세한 세계, 가끔 자기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를 띠
우게 만드는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홍대 앞에 가면 카페들이 많잖아요.
영언지, 불언지, 이태리언지 모르는, 주인한테 물어보면 주인도 '잘 모르겠는데요'
하는 그런 간판들을 우리키보다 한 세배쯤 더 높은 곳에 달아놓은 카페들 말입니다.
솔직히 이건 순전히 비즈니스만을 염두에 두고 충고하는 건데요.
그 간판들 좀 낮춰 다십시오.
그렇게 높이 달아가지고 눈에 잘 보이기나 하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홍대 정문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모퉁이에,
한 평이 될까 말까한 그 모퉁이 공간을 잘 활용해서 컴퓨터 전문서점이 있어요.
장사 기가 막히게 잘 된대요.
늘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작은 공간에 말입니
다.
거기뿐만 아니고 이런 찌꺼레기 공간을 활용한 가게는 서울 시내에 굉장히 많습니
다.
담배가게, 도장 파는 집, 라이타 고쳐주는 가게, 토큰 파는 가게, 시계대학병원...
시계 대학병원 하니까 생각나는데요, 명지대 앞에 가면 '구두사우나' 라는 간판이
나직하게 붙어 있는 구두닦이 가게가 있어요.
그냥 구두닦는 곳이에요.
재미있잖아요?
구두가 사우나하는 곳, 즉 구두가 때 빼고 광내는곳.
이런 것도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사람만이 볼 수 있습니다.
그 구두닦이 내가 개그맨으로 데뷔시켜 볼까 하다가 그만 뒀어요.
왜냐구요?
나이가 쉰이 넘었대요, 글쎄.
그렇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입니다.
골목 안만 요지경이 아니고, 한길 가도 요지경입니다.
미아리 텍사스만 요지경이 아니고, 명동, 압구정동, 홍대 앞도 요지경입니다.
요지경 그러니까 사람들은 보통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요지경이라는 게 본래 유리 구명 안을 들여다보면서 손가락으로 단추를 찰카닥 찰카
닥 하고 누르면 그 안에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별 희한한 세상이 나타나는 그런 걸
말하는 거잖아요.
고개를 숙이고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십시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진짜로 세상을 살맛나게 만드는 작은 세계, 작지만 굉장히 풍
요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짱구를 잘 굴려보십시오.
돈 되는 아이디어 하나쯤 건질지 누가 알아요?
돌다리는 두들겨보지 말고 건너라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 말도 있구요.
아무리 튼튼하고 안전빵이고 틀림없이 보이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고 요리조리 재보
고 뭐 빠진 거 없나 다시 한번 살펴보고 꼼꼼하고 쫀쫀하게 일을 추진해라 뭐 그런 말
아니겠습,니까?
사실 앞뒤 안 가리고 무식하게 밀어붙이다가 삼족이 파산하고 떼거지가 양산되는 경
우 많,이 보잖아요.
사업의 사 자도 모르는 작자가 사업을 하겠다고, 자기야말로 다음 세대 전경련 회장
감이,라고 빡빡 우기면서 회사에 턱하니 사표부터 써내고 보는 남자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면 또 그 남자에게 자신의 팔자를 건 아내는 얼마나 간이 철렁하겠습니까?
친정집 사돈의 팔촌까지 '도시락 싸들고 서울로 집합' 시켜 가지고 말리고, 달래고,
어르고, 그래도 안되면, 정히 사업을 하고 싶으면 이혼장에 도장부터 찍으라고 협박하
고...
오늘도 과장님, 부장님한테 쪽 좀 팔았다고 사표를 써, 말어 하시는 분 있어요?
참으세요.
가정의 평화와 일생의 안전운전을 위해서.
사실, 그렇게 시작해 가지고 일 잘되겠어요?
괜히 십년 만에 장만한 아파트만 날립니다.
그러니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가라 이런 속담들이 일리가
있어요.
홧김에 시작하고 술기운으로 밀어붙여 가지고는 진짜 안된다니까요?
그런데요, 어떤 사람들은 이 속담을 그야말로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고요.
맨날 준비만 하는 사람, 맨날 이 궁리, 저 궁리, 궁리만 하는 사람.
사표 쓸까 말까 하나다 십년, 무슨 사업을 할까 요리조리 재보다가 십년, 가게를 얻
어야 되는데 어디가 목이 좋은가 보러 다니다가 십년, 그러다가 바람벽에 똥칠할 때가
되면 아들한테 유서 대신 사업계획서 넘겨줄 작정인 모양이죠?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치밀하고 꼼꼼하게 준비한다면 그 일은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
입니다.
그렇지만 이왕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실패보다는 성공을 생각하고 과감하
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아휴, 이러다 이거 실패하는 날이면, 저 애새끼들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생각부터 하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될 일도 안됩니다.
진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져버리니까요.
머리가 586 팬티엄보다 더 빨리 돌아가도 될똥말똥한데 그렇게 불안, 초조, 긴장해
가지고 사업구상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장가갈 준비 다 됐는데 여자를 못 구했다?
사업 구상 다 됐는데, 돈이 없다?
사표 쓴 지 십년 만에 사업할려니까 돈이 없을 수밖에요.
사실 말이지, 사업하겠다는 사람이 리스크 하나도 없이 완전히 안전빵으로 돈벌겠다
고 생각하면 그거 순 도둑놈심보 아닙니까?
사업만이 아닙니다.
요즘 컴퓨터 배우겠다는 사람 많지 않습니까?
컴퓨터를 배울려면 제일 먼저 뭐가 있어야 됩니까?
당연히 컴퓨터죠.
아, 컴퓨터가 있어요 컴퓨터를 배울 거 아니요.
근데 이 컴퓨터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말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86XT 많이 썼잖아요?
그게 286AT, 386, 486, 586 팬티엄으로 발전해 왔어요.
이렇게 빨리 금방금방 모델이 바뀌니까 낡은 기종은 정말 개값이 된다 이 말입니다.
돈 백만원 주고 산 컴퓨터가 일년도 안 돼서 20만원 30만원짜리로 전락하더라 말입
니다.
그래서 컴맹이 진짜 큰맘 먹고 컴퓨터 좀 배워볼려고 컴퓨터 어리삐리하게 좀 한다
는 친구 녀석한테, 야, 컴퓨터 어떤 게 좋냐?
그러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짜샤, 지금 나와 있는 거 사봤자 금방 개값 돼.
조금만 있으면 새 기종 나올텐데, 그때 사.
생각해 보세요.
이거 좀 황당하지 않습니까?
컴퓨터 배울려고 컴퓨터 사지, 누가 중고로 팔려고 컴퓨터 삽니까?
컴퓨터야 개값이 되거나 말거나 배우고 사용하는 데 지장 없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아파트 생활이 불편해집니까?
다리를 건널 때도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그 다리 건너다닌 사람들, 차들 다 무사히 건너갔으면, 두들겨보지 않고
건너도 되는 게 상식 아닙니까?
정 불안하면 다리 건너지 말고 사공 불러서 나룻배 타고 건너가세요.
근데 한강에 요즘도 나룻배 있나?
사실, 우리나라 다리들 대충 다 부실하잖아요.
부실하니까 더더욱 두드려보지 말고 얼른 건너는 게 상책입니다.
이런 공식 아세요?
(다리에 걸리는 하중 = 다리 위의 물체의 무게 * 그 물체가 다리를 건너는 데 걸리
는 시간)
그러니까 얼른얼른 건너주는 게 그나마 부실한 다리 수명을 연장시킨다 이 말입니
다.
좀 못 미덥긴 하지만 다리에 대한 책임은 시공업체와 관리업체, 그리고 주무관청에
맡기고 우리는 다리를 빨리빨리 건너주자 이겁니다.
하여간 YS가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말 나온 김에 한마디만 합시다.
두들겨 보지 않고 마음 놓고 건너도 되는 튼튼한 다리 좀 만들어라!
비교하자
여봇!
301호 집 남자는 월급이 삼백도 넘는데 당신은 왜 백도 안되는 거예옷!
당신 친구 영순씨는 음식 솜씨가 좋던데 당신은 이게 뭐야!
이게 반찬이냐구!
이봐, 박 대리!
자네 이 서류, 이게 뭔가? 총무과 이 대리한테 좀 배워.
열 받죠.
진짜 이렇게 나오는데 열 안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열받는 줄 뻔히 알면서, 자기도 하루에도 몇 번씩 열받으면서, 아이들한테는
또 똑같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애들이라고 뭐 감정이 없겠습니까?
영식이는 95점 맞았는데, 넌 왜 50점밖에 못 맞니?
아휴, 돌대가리.
영식이 좀 봐라.
얼마나 착하니?
공부도 잘하고 씩씩하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제발 영식이 본 좀 봐라.
아이들도 열 받습니다.
왜 우리 엄마는 나만 미워할까?
영식이가 좋으면 영식이 엄마 하지!
자라는 애들 기죽일 일 있습니까?
그래서 어린이 교육 지침에서 가장 먼저 '이웃집 아이와 비교하지 마라!' 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따져봅시다.
비교 안 하고 어떻게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어차피 현대는 경쟁사회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학교다닐 때는 성적표, 직장 다닐 때는 인사고과표, 사업 할 때는 대차대조표.
공부를 해도 그래요.
비교 경제학, 비교 종교학, 비교 민속학, 비교 윤리학, 비교, 비교, 비교...
무인도에 가서 독야청청하지 않는 이상 이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스트레스 받는다구요?
받아도 할 수 없지요.
아이들 사이에서도 당연하게 비교를 해야 합니다.
비교를 하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경쟁 상대를 잃어버리고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데이콤 광고하는 거 보니까 그러대요.
'현대는 경쟁의 시대.
좋은 경쟁자가 있어야 통신의 국가경쟁력이 올라갑니다.'
그런데요, 어른들이야 스트레스 받더라도 할 수 없지만 애들까지 스트레스 받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비교를 하되 어른답게 좀 요령있게, 교활하게 하자 이겁니다.
애들 기를 살려주는 쪽으로 비교를 하자 이겁니다.
철아, 너는 이웃집 기영이보다 더 끈기가 있구나.
순이야, 너는 네 짝 영미보다 심부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더 잘하는 구나.
돌아, 넌 체육은 영식이보다 잘하는구나.
아시겠죠?
비교를 하려면 안 좋은 것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난 점, 더 착한 점을 비교
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애들 교육에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방의 어느 국민학교에서는 전교생 모두에게 상을 준다고 합니다.
줄넘기를 제일 잘해서 주는 상, 화장실 청소를 제일 깨끗하게 잘해서 주는 상, 인사
성이 제일 밝아서 주는 상, 친구에게 가장 인기가 많아서 주는 상, 마루바닥을 핥아도
될 정도로 반질반질하게 걸레질을 잘해서 주는 상.
하여간 애들이 가지고 있는 장기와 특성을 살려서 상을 주는 것입니다.
거창한 상품 이런 거 안 줘도 괜찮아요.
애들은 칭찬이 어떤 상품보다 더 값진 거니까요.
누구나 상을 받은 분야만큼은 남과 비교해서 최고인 것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비교는 아이들의 성장에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자, 맘 놓고 당신의 아이와 이웃집 아이를 비교하십시오.
말자야, 어쩜 너는 그렇게 옆집 추자보다도 더 밥을 맛있게 많이 먹니?
정말 잘먹는다, 얘.
이렇게요.
잠깐!
상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왜 무슨 사생대회나 글짓기 대회 이런 거 하면 일등한테는 스케치북이다, 물감이다,
장학금이다 해서 상품 많이 주잖아요.
큰 대회 같으면 외국도 보내주고 말이죠.
그런데 대개 이등은 찬밥인 경우가 많아요.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일등은 그냥 상장만 주고 이등한테 그림물감도 주고, 외국도
보내주고 그래야 된다고 봅니다.
왜냐구요?
생각해 보세요.
일등은 진짜 제일 잘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야 니가 제일 잘했다. 니가 제일이다' 그러기만 해도 기분이 째질 거다
말입니다.
이등한테 물감도 주고 외국도 보내서 좋은 그림 많이 보게 하면 이등은 실력이 부쩍
늘게될 거고.
그래서 다음에 일등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둘이서 경쟁하면서 일등하면 상장받고 이등하면 나가서 또 실력 쌓고.
한마디로 그림의 국가경쟁력, 글짓기의 국가경쟁력이 올라가지 않겠느냐 이 말입니
다.
참고:3개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을 잘 관찰해 보면, 영식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
걸 아실겁니다. 영식이는 임하룡이 아들 이름입니다.
자꾸 영식이, 영식이 하다 보니까 애들의 대명사가 돼 버린 거죠.
오른 손은 옳은 손?
짝배기라는 말 아세요?
사투린지 표준언지 모르지만 경상도 가니까 왼손잡이를 짝배기라고 그러더라고요.
어감상 일단 뭔가 좀 삐딱하게 들리지 않아요?
고개를 외로 꼰다.
이런 말도 있어요.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인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니까 왼손이라고 할 때 '외' 의 본래 뜻이 '삐딱한,' '틀린,' 뭐 이런 뜻 아닐
까요?
오른손의 어원은 당연히 옳은 손일 겁니다.
이건 반에서 오십구등하는 아해도 아는 사실일 겁니다.
바른손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도 오른손은 right hand 아닙니까?
무협지 보면 좌도방문이라는 게 나오는데, 이게 뭐냐 하면 정파에 대적하는 나쁜놈
들을 일컫는 겁니다.
왼손잡이들이 얼마나 기분 나쁠까?
아휴, 난 왼손잡이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왼손잡이들, 정말 애로사항 많습니다.
가위 한 개, 책상 서랍 하나도 다 오른쪽으로만 쓰게 돼있어라 이 말입니다.
군대 가면 총검술도 오른쪽, 집에 오면 냉장고 손잡이도 오른쪽, 텔레비전 채널도
오른쪽.
잠깐!
지금 이 순간 생각난건데, 왼손잡이 용품 전문점 같은 거 차리면 떼돈 벌지 않을까
요?
왼손잡이용 기타, 왼손잡이용 가위, 왼손잡이용 문고리, 왼손잡이용 M16소총...
장사 잘 되면 체인점도 만들고 말이죠.
관심있으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아이디어는 내꺼니까 자본은 그쪽에서 대는 걸로 하고.
물론 요즘에는 조금씩 달라지고도 있습니다.
프로야구 같은 데서는 왼손투수, 왼손타자가 대접받잖아요.
하지만 그건 좀 특수한 경우고,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왼손잡이가 구박덩어립니다.
왼손잡이들도 대부분 글쓰고, 밥먹을 때는 오른손을 많이 씁니다.
고등학교 때 왼손잡이가 드러나는 건 멀리던지기 할 때더라구요.
글씨 쓰고, 밥 먹고 할 때는 훈련에 의해서 왼손잡이도 오른손으로 적당히 떼 울 수
있지만 멀리던지기 할 때는 왼손이 힘이 좋으니까 왼손으로 하는 겁니다.
근데요.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을 쓰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피눈물나는 훈련을 받았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왼손쓰는 기미만 보이면 초전박살 피작살이 납니다.
왼손 쓰지 말그라. 걸뱅이 된데이.
멀쩡한 오른손 놔두고 왜 왼손을 쓰냐.
흉칙하게스리.
운운 하며 몰매를 주는 건 물론이고, 어떤 애 엄마는 오른손 쓰는 애로 키울려고 아
예 왼손을 칭칭 묶어버리기까지 하더라구요.
그런 부모한테 도대체 왜 그렇게 목숨 걸고 왼손을 못 쓰게 하냐고 물으면, 대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른 애하고 똑같이 오른손 써야지, 우리 애만 유별나게 굴어서 좋을 거 뭐 있어요.
유별나서 좋을 거 없다는 고정관념, 그것이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으로 비약하고 있
는 겁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거 정말 맞는 겁니까?
열에 일곱은 짜장면을 시키고 세 놈은 우동을 시켰다고 해서, 자장은 옳고 우동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거냐구요.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알고 밟고 지나가는 세상 아닙니까?
유별나게 굴어야 눈도장이라도 한번 더 찍고 떡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는 세상입니
다.
대기업체에서 신입사원 뽑을 때도 개성 있는 놈 못 찾아서 안달입니다.
짜장 먹는 일곱 놈보다 우동 먹는 세 놈이 더 유리한 개성시대라 이겁니다.
유별나야 좋을 게 있습니다.
왼손잡이도 마찬가집니다.
게다가 알고 보면 왼손잡이가 장점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오른쪽 뇌를 많이 쓰게 되어 예술성과 창의력이 뛰어난 게 왼손잡이라지 않습니까?
그런 판에 왼손 쓴다고 두들겨패거나 아예 손을 묶어놓는다면 시대착오도 그런 시대
착오가 없는 거 아닙니까?
오른손을 옳은 손이 아닙니다.
왼손잡이는 왼손잡이대로 다 자기만의 개성이 있고 장점이 있는 겁니다.
왼손 쓰는 애들 나무라기 전에, 오른손 쓰는 애한테 왼손도 한번 써보라고 가르치는
건 어떨까요?
창의력이 있어야 살아 남는 세상이니까요.
정신력으로 되는 일 없다.
운동 경기를 보다 보면 마치 재고정리 바겐세일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있습니
다.
듣기에는 별로 나쁘지 않은 밀인데 정말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말
들, 바로 마음자세니 혼이니 정신력이니 하는 것들입니다.
지금은 프로야구 때문에 인기가 줄었지만 옛날에 고교야구 굉장했잖아요?
고교야구 중계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골메뉴가 바로 정신력이었습니다.
그 어린 선수들이 무더위 속에서 연일 연습을 하느라고 더위 먹은 소처럼 혓바닥을
내밀고 헐떡거리는데, 수비가 알을 까거나 타자가 삼진을 먹거나 투수가 홈런을 맞으
면 해설자는 침을 튀기며 기다렸다는 듯이 씨부렁거렸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고교야구는 정신력입니다.
독도 고교 선수들 정신력이 해이해진 것 같네요.
어느 팀이 정신력이 더 강한가, 누가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느냐, 승패는 거기에 달
려 있죠.
하겠다는 정신력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는데, 안타깝네요.
아니, 힘들고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거기에 정신력이 왜 나옵니까?
말로는 정신력, 정신력 하고 두 마디 지껄이는 게 쉬울지 몰라도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시라구요.
당사자는 죽을 맛 아니겠습니까?
그 어린 아이들이 매일매일 시합을 합니다.
한번 지면 끝장인 토너먼트 시합이니 아프거나 피곤하다고 쉴 수도 없어요.
거기다 감독은 기가 빠졌다고 빳다질이지.
진짜 정신력, 정신력 하지 않아도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티는 애들이 제정신이겠습
니까?
그 결과, 어린 선수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너무 혹사당해서 정말 팔팔 뛰어야 할
프로야구에 가서는 빛 한번 발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 빌어먹을 정신력 때문에, 사람을 혹사시키고 착취한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정신력, 정신력 하다가 완전히 맛이 간 거지요.
대학 때 날리던 투수가 한 명 있었어요.
백오십 킬로에 육박하는 강속구, 절묘한 컨트롤.
진짜 굉장한 선수였는데, 일억 얼만가 받고 모 프로팀과 계약을 했습니다.
그때 이미 어깨가 고장난 상태였어요.
공 던지는 걸 보자니까 이 선수 한사코 빼더래요.
날 못 믿겠다는 거냐?
내 공 던지는 것 못 봤느냐?
이러면서요.
일차지명 선순데 계약 안 했다가 딴 팀에서 데려가서 씽씽 날리면 얼마나 배 아파요
?
그래서 경력만 믿고, 날릴 때 던지던 모습만 보고 계약을 했는데, 계약하고 나서 훈
련장에서 공을 던지는 걸 보니까 영 아니더라 말입니다.
그걸 보고 그 팀 감독이 그랬대요.
사기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그 선수도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나 지금 어깨 개판이야.
지금 나 데려가면 병신이야.
이러면 누가 데려갑니까?
에려간다고 해도 똥값으로 치지 않겠습니까?
그 선수 안됐더라구요.
자기가 어깨 고장 낸 거 아니잖아요.
하도 정신력, 정신력 하니까 정신없이 던지다가 고장난 거지.
마라톤은 또 어떻습니까?
그 길고 긴 42.195킬로미터를 백미터 달리기 하듯이 뛰어야 하는 게 마라톤입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나 같으면 일 킬로도 못 가서 '날 죽여라!' 하면서 발라당 누워버릴 겁니다.
근데 이를 악물고 뛰는 선수들은 보면 진짜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 선수들은 각기 기량이 틀리기 때문에 결과도 당연히 틀릴 것이고 얼마나 훈련을
했느냐에 따라서도 다를 것입니다.
근데 우리나라 선수가 낀 마라톤 대회를 가만히 보자면 또 역시 침을 튀기면서 흥분
하는 해설자의 상투적인 말이 나옵니다.
앞으로 십 킬로미터 남았군요. 네, 이젠 스파트를 해야 할 땝니다.
저 선수 무척 힘들어 하는데요.
힘든 건 누구나 똑같습니다.
문제는 정신력, 정신력이에요.
정신력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그러다가 그 선수가 처지기 시작하면 바로 정신력 부족이니 근성 부족이니 하면서
그 선수를 정신 없는 사람으로 매도해 버립니다.
그 선수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똥 빠지게 뛰었는데 '정신 나간 사람'으로 매도하다니.
문제는 이겁니다.
정신이 만능이 아닙니다.
뭐 그렇다고 물질이 만능이라는 말도 물론 아닙니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일까요?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살고, 운동 경기에서도 무조건 이기고 합니까?
정신만 차리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직시할 수 있고 움켜쥘 수 있나요?
솔직히 호랑이가 물어 가면 그 사람이 아무리 정신을 말똥말똥 차려도 잡아먹히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알고 땅도 알고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기저귀 뗀지 사오십년 된 어른들이 그런 정신나간 소릴 합니다.
이 말로만 떠드는 정신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속아넘어가 헉헉대
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정신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 정신은 어떤 불가능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만병통치가 아니며, 결과는 사
람 개개인의 능력과 비례한다는 겁니다.
고교야구 선수를 눈앞에 성적에 급급해서 정신이란 미명하에 달달 볶아 선수 생명
단축시키지 말고, 마라톤 선수가 등수 안에 못 들었다고 정신력 운운하지 말자 이겁니
다.
정말 좋은 성적을 내고 싶으면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방법으로 꾸준히 노력
하는것이 중요하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정신력으로 이기겠다니요?
공부를 해야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산에 가서 도 닦는다고 성적이 좋아
지지 않습니다.
말로만 떠드는 빌어먹을 정신력이 오히려 정신 못 차리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우
리 끼리만 알고 있자구요.
괜히 정신력 타령하는 사람들이 들어면 '정신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구' 그럴 테니
까.
고자질하자
예로부터 성인군자가 많기로 이름난 동방예의지국 코리아.
그래선지 우리 나라에는 '~해라,' '~하지 마라' 이런 금기사항들이 굉장히 많습니
다.
그 중에서도 군자가 해서는 안될 일의 으뜸으로 쳤던 것이 바로 고자질이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했으면, 고자질은 고자나 하는 짓이다, 라고 했겠습니까?
고자질 하면 나도 정말 이가 갈릴 만큼 수태 당해 온 피해잡니다.
자습시간에 떠든 사람 명단에 나만큼 많이 올라간 사람 있어요?
누군가가 일러바쳐서 교무실에 불려가서 반성문 정말 많이 썼습니다.
솔직히 반성문만 썼겠어요?
우리 나라 선생님 그렇게 인자합니까?
입시공부한다고 누렇게 뜬 애들 잠시잠시 웃겨준 게 그렇게 큰 죕니까?
공부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쉬는 시간에 도시락 까먹은 게 그렇게 큰 죕니까
?
그런데 고자질 하면 이 갈리는 사람이 저 말고도 많았나 봐요.
그래서 보고도 못 본 체하는, 알아도 눈 감아주는 것이 미풍양속으로 대접받나 보지
요?
그래서, 다 내가 한 거야. 그 형님은 죄 없어.
이렇게 입 꽉 다물고 큰집 갔다온 장달수는 의리있는 놈되고, 그거 내가 한 거 아니
야.
사실은 노개소문이가 다 했어. 정말이야. 조사해 보면 알 거 아냐?
이렇게 말한 이방원이는 고자 같은 놈이 된 겁니다.
그런데 한번 다져 봅시다.
고자질은 정말 나쁜가?
아무 때나 도시락 까 먹는 건 죄다, 자습시간에 돈 안 받고 코미디 하는 것도 죄다.
이렇게 학교 법이 딱 정해져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지켜야 될 거 아냐.
그거 지키기 싫으면 자퇴서 쓰고 나가면 되고.
고자질한 녀석은 급우들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선생
님의 명령에 따라 정의감에 불타서 고자질만 한 겁니다.
전유성이 두 시간 끝나고 도시락 까먹었음.
이방원이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방원이가 입 꽉 다물고, 나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오리발 내밀었으면, 단군 이래 최대비리라는 노개소문 게이트도 그냥 먼지
속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안 그래요?
고자질 당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욕 나오지요.
내가 노개소문이래도 뿔다구 났을 겁니다.
그러니까 고자질해야 됩니다.
사기치지 말라구요?
진짜 고자질 없는 세상 한번 만들어 볼까요?
어떻게 될지.
진미령이 가 자동차에 치여서 엄지발톱이 깨지는 중상을 당했다. 그런데 치료비는
유성이가 내야 된다.
왜냐?
아무도 고자질 하지 않는데, 사고쳐 놓고 뺑소니 안 칠 놈 있겠어?
백주 대낮에 아무 집에서 도둑이 든다.
겁날 게 뭐야?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는데.
옆집에 히로뽕 공장이 있어도 모르는 체 해 준다.
이웃사촌이니까.
이런 살기 좋은 세상 만들고 싶은 사람은 고자질 안 해도 됩니다.
우리집 육수에는 걸레 빤 물을 넣지 않습니다
"우리집 육수에는 걸레 빤 물을 넣지 않습니다."
같은 업종이 몰려 있는 어느 음식점 골목이 있다.
(여기서 음식 이름을 밝힐 순 없다. 소위 먹자골목이다.)
집집마다 원조라는 말이 간판에 다 붙어 있다.
어느 한 집이 잘되면 한 집 두 집 생기면서 그 골목은 유명해진다.
그 골목의 정확한 탄생설화는 처음 몇 사람만 기억하고 만다.
겉모양도, 구조도, 파는 음식도 똑같다.
단골이 아니면 어느 집이 어느 집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분명히 언젠가 온 집 같아서 들어가면 주인이
전유성씨 여기는 웬일이세요? 한다.
처음 온 집인 것이다.
주인마다 자기 집이 원조임을 은근히 내세우며 자랑을 하는데, 예를 들면 요렇다.
우리 집은 돼지곱창을 절대로 하이타이로 안 씻습니다.
바로 이 자랑에 묘미가 있다.
그런 음식점을 여러 군데를 가봤는데
집집마다 그 말을 다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절묘한 말이냐...!
남의 집 이야기는 절대로 안 들어간다.
우리 집은 절대로 하이타이로 안 씻는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우리 집은 절대로 훔쳐온 고기는 안 씁니다.
우리 집은 절대로 손님상에 들어갔던 김치는 안 씁니다.
우리 집은 육수를 만들 때 맛있어지라고 걸레빤 물은 절대로 안 넣습니다.
노래방 빵빠레를 이렇게 바꾼다면...
학교 다닐 때 지긋지긋하던 것 중에 하나가 시험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야"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특히 점수를 받을 때의 그 고통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하나 있다.
몇 년 전부터 이 사회에 무지무지하게 많이 생긴 노래방에 가보면 어른들이 노래를
정말 열심히 불러댄다.
노래 부르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소리를 크게 내야지 높은 점수가 나온다는 이상한 유언비어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노래가 끝나면 빵빠레와 함께 점수가 나온다.
그 점수가 높으면 다 큰 어른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노래방이란 것이 한마디로 노래로 시험을 보는 게 아닌가.
모든 걸 점수로만 결정짓는다는 것이 나는 지긋지긋하다.
정말 잘 불렀습니다.
오늘 술값은 지금 노래한 사람이 1/3을 계산하세요.
야! 그것도 노래냐?
옆 사람에게 마이크를 돌리세요.
집에나 일찍 들어가세요.
노래가 끝나면 점수 대신 이런 글들이 나오게 바꿔놓는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재미
있어질 텐데...!
지하철 안내방송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이럴 때 다음 역 안내방송을 심형래가 하면 어떨까?
안넝하서요?
심형래인디요.
다음 정차할 곳은 영등포, 영등포인디요.
라고 하는 거다.
또 서울역 정도는 심형래 특유의 목소리로,
다음 역이요?
저도 잘 모드겠는디요?
라고 하는 게 어떨까.
이창훈의 맹구 목소리도 좋고, 오서방 목소리도 좋고, 학생들 등교시간엔 룰라가 랩
으로 하는 안내방송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재미있어질 텐데...!
고속도로 통행권
고속도로 통행료가 후불제로 되면서 운전자가 통행권을 뽑아가는 기계를 설치해 놨
다.
사각형의 통에서 통행권을 뽑아가라는 여자의 말이 나오고 기다린 통행권이 직사각
형의 약간 아래쪽에서 나온다.
그 직사각형통을 코미디언의 얼굴로 바꾸어 놓는 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일이 아닐까?
먼길을 가는 사람들이 고속도로 입구에서 서영춘, 배삼룡의 얼굴만 봐도 미소가 나
올텐데.
통행권 챙기셨남유?
하고 서영춘, 배삼룡의 목소리가 튀어나온 뒤에 입모양에서 통행권이 혓바닥 나오듯
이 죽 빠져나온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재미있어질 텐데...!
공사중 안내 표지판을 이렇게 바꾼다면...
공사하는 곳을 지나가다 보면,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안전
모를 쓴 그림을 보게 된다.
공사를 하다 보면 인도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좀 돌아가야 되는 경우도 있으
니까.
당연히 붙여야 되는 표지판이다.
내가 보기엔 조금도 죄송해 하는 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무표정인 얼굴에 글 내용만 죄송하다는 것이다.
그걸 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정말 미안해 하고 죄송해 하는 표정으로 바꾸
어 놓는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재미있어질 텐데...!
차 막혀서 짜증날 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얼마 전까지 '전유성 정원관의 특급작전'이라는 교통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교통정보라서 다른 가요 프로그램처럼 생방송인 척하고 녹음으로 때울 수 없는 것이
진행자들의 큰 불만이었다.
서울 시내 안 막히는 곳이 없는데, 아무 데나 막힌다고 하면 교통정보가 거의 틀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녹음이 왜 안 되냐 이 말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저녁 퇴근길에 서울 시내 안 막히는 곳이 어디 있으랴!
운전하면서 정체되는 운전자 여러분들이 짜증나는 만큼 진행자들도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궁리해 본 것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정체가 될 때 그냥 앉아서 짜증만 낼 것이 아니라 차에서 내려서 앞차 운전사 뒤차
운전사 그리고 옆차 운전사와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의외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사람이랑 같이 정체가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짜증도 좀 줄어들
지 않을까?
자기 회사소개서를 돌린다든가, 회사 신제품이 있는 팸플릿을 돌린다면 어떨까?
자동차가 정체될 때 차에서 내려 줄넘기를 하면 어떨까?
운전을 오래 하다보면 하체가 약해진다는데, 시간도 보내고 다리힘도 기르고 말이
다.
혼자 하기 심심하면 줄넘기 하는 줄을 두 개 마련해서 뒤차에 계신 분과 같이 시합
을 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내 말은, 정체를 즐기자는 거다.
노래방 시설을 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혼자서 하기 심심하면 창문 열고 옆차랑 같이 부르고, 앵콜곡도 받아주고, 스피커도
밖으로 달아 다같이 부르는 거다.
그리고 차 안에 오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체조도 개발해서 같이 하고...
또, 뭐 없나?
한강다리에 올라간 사람들을 불러서 토크쇼를 한다면
올해 한강철교 위에 올라가서 자살소동을 일으킨 사람이 14명이란다.
내가 토크쇼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자라면...!
자살소동 일으킨 그 14명을 불러다가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도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
각이 든다.
질문1. 왜 올라갔는가? 올라가서 첫마디를 기억하는가?
질문2. 어떻게 올라갔으며 시간은?
질문3. 올라가는데 요령이 있는가? 올라가는 연습은 했는지?
질문4. 다시 올라간다면? 내려와서 어떤일을 겪었나?
질문5. 올라가려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질문6. 올라간 목적은 달성했는가?
질문7. 모임을 가져볼 생각은 없는가?
또 현장재연도 재미있을텐데...!
"인생은 결국엔 혼자"
언젠가 이대 앞에서 갈비집 많은 골목으로 걸어가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을 하
면서 "인생은 결국엔 혼잡니다"라고 하면서 계속 걸어갔지.
웃는 놈도 있었고 놀라는 연도 있었고, 별의별 반응을 다 보였는데, 맨 마지막에 만
난 할머니가 인상적이었어.
내가 할머니에게 역시 합장을 하고 "할머니 인생은 결국엔 혼잡니다"라고 했더니 할
머니는 너무도 태연하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같이 합장을 하면서 "젊은이 말이 맞으
이. 정말 인생은 혼자라네" 하는거야.
내가 되레 놀랄 뻔했어.
역시 인생은 세월이 말한다는 걸 크게 깨달았지.
그때 내가 왜 그랬냐구?
술취했으니까.
찾는 사람이 다시 찾는 약, 문제 없나?
오늘도 신문에 그 약광고가 났다.
-우리 약은 찾는 사람이 다시 찾습니다.
찾는 사람이 다시 찾는다면, 그 약을 먹어도 안 낫는다는 이야기도 되지 않나?
-우리 약은 한번 먹은 사람은 다시는 안 찾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니지!
그건 독약광고에나 어울리지!
그럼 요렇게 하는 건 어떨까?
-우리 약은 찾았던 사람이 딴 사람에게 권합니다.
그 약광고 만든 회사에 전화해 줘야겠다.
새해에는 이순신 장군 22살 때처럼 되어라
새해 인사 중에 이런 말이 잇더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말 좋은 말이다.
또 하나 있다.
새해 건강하세요,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사회자들이 곧잘 하는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라.
누가 건강하기 싫어서 아파 누워 있는가?
무슨 이야긴가 하면 말뜻은 좋은 말이지만 정말 너무나도 형식적인 게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이제는 좀더 구체적인 말들을 찾아서 하는 게 어떨까?
예를 들면 이렇게.
새해에는 세수 좀 잘합시다.
새해에는 이순신 장군 22살 때처럼 되어라.
새해에는 신사임당 13살 때처럼 피부가 좋아져라.
새해에는 정력에 대해서 신경을 써라.
새해에는 코수술비용을 마련해라.
새해에는 복권 세 장만 맞아라.
제3장 여우는 아홉 개의 굴을 판다
뛰는 놈 위에 뛰는 놈
반성해도 용서하지 말자
과거는 흘러갔다
잘한 거짓말 논 닷마지기보다 낫다
수다떠는 여자가 아름답다
전화를 없애자
여우는 아홉 개의 굴을 판다
남편을 버려라
싸가지 없자
빨리 핀 꽃이 빨리 진다
신호를 어겨라
뛰는 놈 위에 뛰는 놈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을 만날 때면 자신의 첫인상을 좋게 보일려고 무지하게 애
를 씁니다. 가능한 한 미소를 띠면서 말도 차분하게 하고 에티켓이란 에티켓은 다 실
천 해 보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으로부터 '아, 그 사람 첫인상이 참 좋던데'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특히 취직시험의 면접에서 그 첫인상 좋게 하기는 절정을 이룹니다. 일부 여성들은
호박을 수박으로 만들기 위해 아낌없는 돈을 퍼부어서 수술을 받는가 하면 남자까지도
광대뼈를 깎는다. 쌍꺼풀을 한다 하면서 얼굴에 칼을 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참
으로 견적이 안 나오는 황당한 사태입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얼굴을 손 본 다음 면접에서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여
성의 경우는 평소에 왼쪽 다리를 달달 떠는 모습과는 달리 아주 정숙하고 얌전한 여자
로 인식되기 위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다소곳하게 대답을 하면서 얌전하게 무릎을 딱
붙입니다. 정말 정갈한 모습이지요. 남성 역시 평소에 일년 내내 빨지 않고 입고 다니
던 점퍼 대신에 말끔한 정장 차림에 어깨를 쭉 펴고 점잖고 신뢰감이 느껴지도록 답변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을 다 씁니다. 하여튼 취직 시즌만 되면 남성복과 여성복의 정장
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첫인상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금
세 알 수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면접 잘 보는 방법'이라는 책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런데요, 대답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합니다.
이제부턴 면접관이,-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모르겠는데요.
라고 대답하세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무슨 일을 시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습니
까?
그러니까 모를 수밖에요. 뼈가 부스러지도록 일해야 되는 창고에서 등짐지는 일을
시킬지, 아니면 밤새도록 짱구를 굴려야 하는 기획부 일을 시킬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뼈가 부스러지도록 일하겠습니다.
라고 대부분 대답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뽑았는데, 이젠 기준이 많이 바뀌
었습니다.
전에 어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데, 이런 소문이 돌았대요. '면접장에 들어가면
바닥에 일부러 종이 쓰레기를 버려둔다. 그걸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의자에 앉
으면 합격이고, 그냥 앉으면 미역국이다.'
병아리들이 그 소문을 다 들었어요. 면접장 들어가자 마자 어디 쓰레기가 없나 하고
두리번두리번 하는 겁니다. 진짜로 면접관들이 그렇게 했는지 안 했는지 내 알 바 아
니지만 설마 그랬겠어요? 진짜 그랬다면 그 회사 면접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처우
신조라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런 식으로 사원들 뽑아 가지고 그 회사 오래 가겠어요?
삼년 안에 폭삭할 게 뻔합니다.
처녀 총각 맞선 볼 때도 그렇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집니다.
얌전, 다소곳, 방긋방긋....
서로가 첫인상을 잘 보이게 하려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장을 합니다. 탤
런트 저리 가랍니다. 어쩌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잇습니까?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 봅시다. 요즘 같은 개성시대에 과연 그 '첫인상 좋게 하기'
가 제대로 먹혀 들어간다고 생각합니까?
영화사 일할 때였습니다.
영화사 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별의별 인간들이 다 껄렁한 시
나리오 한편 달랑 가지고 와서는 이거 영화 만들면 끝내준다고, 장담하는데 관객은 20
만명은 든다고, 자기는 마당발이라서 자기 친구들만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봐도 십만
은 넘을 거라고 썰을 풉니다. 하여간 웃기는 고동들 더럽게 많더라고요. 이 사람들 이
야기 다 듣고 있으면 아무 일도 못해요. 그럴 때 내가 늘상 써 먹던 말이 있어요.
-이거, 다 좋은데 라스트가 약해. 사실 아마추어들이 제일 자신 없는 게 라스트 처
리 아닙니까? '라스트가 약해'이러면 백에 아흔아홉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문 밖으로
후퇴합니다. 그런 판이니까 영화 만들겠다고 충무로를 배회하는 감독지망생들이 영화
제작자(=돈줄) 잡을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거든요.
이규형이란 친구가 있어요. 어떤 스포츠 신문에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새
콤매콤한 연애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이걸 영화로 만들어 보자 이렇게 됐어요.
이 친구 대뜸 태흥영화사에 전화를 걸어서는,-사장님, 거기 35mm 영사기 있어요?
-있어, 왜?
-가서 그거 잠깐만 빌릴게요.
그렇게 태흥영화사에 쳐들어와서는 사장한테 자기가 만든 데모 필름을 35mm 영사기
로 틀었습니다. 십분도 안돼서 OK가 됐습니다. 시나리오 들고 와서 하루종일 썰을 풀
어도 안 되는 일을 이 친구는 눈 딱 감고 해치우더라고요. 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
다. 이 말을 실감시키더라고요.
누구나 '사람 좋게 생겼어. 첫인상이 좋아' 라는 말을 들으려고 애쓰지만 상대방은
뒤돌아서면 누가 누군지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왜냐구요? 한결같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까요.
제가 아는 어떤 여성분은 맞선을 보는데 첫인상을 좋게 보이려고 무진장 애쓰기보다
는 첫인상을 완전히 구기게 만들 정도로 행동했다 합니다. 소심한 남자가 보기에는 우
거지상이나 지독한 말괄량이 인상으로 남게 말입니다.
음료수도 한모금씩 천천히 마시는 게 아니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기보다는 거침없이 궁금한 것 다 물어보고 재미있으면 입 쩍쩍 벌리고 우
하하하 웃고, 재미없으면 오만상을 다 찡그리는가 하면, 쌈밥집에 가서는 커다랗게 쌈
을 싸서 입을 있는 대로 쫙-벌리고 한 입에 집어 넣어 먹었답니다.
그런데 그 여성분은 저돌적인 프로포즈를 받았습니다. 거침없는 행동이 상대방 남성
의 머리에 뭐가 씌운 것처럼 떠나질 않았다고 하더군요.
자, 어떻습니까?
무조건 첫인상을 좋게 해서 흐지부지, 유야무야, 있는 둥 마는 둥, 물에 물 탄 듯
보이기보다는 확실하게 잇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신있게 표현하십시오. 그래서 상대방
의 뇌세포에 도장을 꽉 찍어 놔야 합니다.
일단 튀고 보자, 뛰는 놈이 상투꼭지라도 잡는다 이 말입니다.
반성해도 용서하지 말자
반성!
섹스를 글렬하게 반대하는, 또는 섹스를 못하게 잘라 버리는 반성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되돌아본다는 반성. 이 반성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자동적으로 무릎이 팍 꺾어
지면서 팔은 하늘을 향해 쭉 뻗어집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이론에 따라서.
반성!
어릴 때 이거 진짜 많이 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했습니다. 가끔가다가 된통 걸
릴 때는요, 공책 한권 분량만큼도 더 반성했어요. 새마을 청소도 무진장 했어요. 새마
을 청소할 때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교문에서 교사까지 티끌이란 티끌은 죄다 쓸었습
니다. 하도 쓸어서 아마 운동장이 해발 1센티는 낮아졌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비가
오면 빗물이 항상 내가 빗자루질 한 곳에 고였다니까요.
반성! 그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전유성, 너 오늘 홍대 앞에 갔다가 앞에서 가던 미니스커튼 보고 마음속으로 껄떡
거렸지. 나쁜 시키. 너 유부남이 그럴 수 있어?
누가 일러바치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하지 않아도 자기 죄를 자기가
알고, 미리 알아서는 기는 게 반성입니다.
-내일은 내 앞에 아무리 물좋은 냄비가 지나가도 절대로 껄떡거리지 않겠다.
이렇게 스스로 다짐하는 것. 참으로 의미있는 말입니다.
근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반성에 진짜 약하대요. 이건 내가 경험적으로 아는 건데,
어지간한 잘못은 반성만 좀 찐하게 하면 대충 넘어가 주더라구요.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그래, 반성 많이 했어?
-네, 선생님. 훌쩍훌쩍.
-일어나. 팔 아프지? 짜아식. 가봐.
참 좋은 나라, 좋은 사람들입니다. 미국 가보세요. 진짜 얄짤 없어요. 대통령도 안
봐주대요? 하긴, 그게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미국에 워터게이트 사건 났을 때 시끄
러웠잖아요.
-미국식 민주주의도 맛이 갔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맛이 가지 않았다. 진짜로 맛이 갔으면 일개 기자가 대통령하고
맞짱뜰 수 있겠는가? 쥐도 새도 모르게 미시시피 강가에서 빵! 해버리지.
하여간 내 말은 이런 좋은 사람들 뒤통수치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겁니다. 무슨 일이
든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사람들.
-나중에 반성하면 되지 뭐. 반성한다는데 죽이기야 하겠어?
이런 사람들은 진짜 반성하게, 잘라버려야 합니다.
반성하지 마십시오. 누굴 호구로 보나?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진 않겠는데요, 연희동에서 검찰청까지 총잡이들 태우고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린 노아무개, 버스 전용차선으로 달리는 거 텔레비전에까지 나오
던데 경찰은 왜 딱지 안 끝는 거요? 돈 떼먹은 건 돈 떼먹은 거고, 버스 전용차선제는
지켜야 될 거 아니요!
과거는 흘러갔다
과거,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군대 생활할 때 이런 말 많이 했잖아요?
-아들 낳으면 변소칸에 빠쳐버린다.
-제대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싸겠다.
근데 어떻습니까? 진짜 그러는 사람 있을까요? 제대하고 3일만 지나면, '내가 군데
있을 때 말이야...'가 시작됩니다. 남자들 술안주로 오입 이야기 다음으로 많이 올라
오는게 군대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 동원 가면 다 졸대요? 기간병들한테 개기고.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잊혀지고 흐릿한 색깔로만 남습니다.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
고 하는 것도 다 잊혀져 가는 과거를 붙들어매 두기 위해서일 겁니다. 이거 거의 발악
에 가깝습니다. 어디 놀러온 사람들 보세요. 사진찍느라고 거의 놀 틈이 없습니다. 놀
러온 건지 사진 찍으러 온 건지 거의 놀 틈이 없습니다.
-사진 다 찍은 분 버스 타세요.
그러면 또 우루루 관광버스에 올라타고 다음 사진 찍을 곳으로 갑니다.
그런데요, 이 과거라는 게 독이 되는 수가 있어요.
옛날에 어떤 냄비와 죽자사자 연애를 했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냄비가 어느날 싸늘
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 이번 일요일에 시집 가. 너도 빨기 가.
찢어지는 가슴에 질로소주 들이부어 봤자 상처만 덧날 뿐입니다.
이런 경우 정말 많습니다.
YS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K라는 친구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죽이 척척 맞았습
니다. 두 사람은 문민정부시대를 맞이하여 함께 동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처
음에는 '죽맛 죽이는' 죽집을 하려다가 '살맛 나는' 쌀막걸리 사업을 했는데 장사가
잘 되는 거라.
장사가 좀 되니까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구요. 자기것 먼저 챙길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두 사람 결국 찢어지고 말았어요.
YS는 K가 너무 괘씸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K를 헐뜯고 욕했습니다. 왜? 분하니까! 마
음 같아서는 신문에 광고까지 내서 욕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하여튼 기억나는 모든 욕
을 다 동원해서 K를 씹어 댔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K는 오히려 YS를 칭찬하고 다닌다는 겁니다.
YS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성실하다.
동업이 깨진 것은 무척 서운하지만 지금이라도 YS가 원한다면 같이 할 수 있다. 참 놓
치기 아까운 사람이다....
YS의 귀에도 그소문이 들어왔습니다.
-지가 무슨 부처님 할애비인가? 나쁜 시키.
그런데 우연하게 어느 회식장에서 K와 부딪치자 K는 큰 소리를 지르며 반갑다고 YS
를 덥썩 끌어안은 것이 아닙니까?
YS는 그 전까지 만나는 사람만다 계속 K를 씹어대고, K는 만나는 사람마다 YS를 칭
찬하고....
주위 사람들은 YS와 K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YS는 K보다 한 수 아래였던 겁니다. 이건 생생한 실화입니다. 그
럼 YS가 쌀막걸리를? 그렇습니다. YS는 바로 나고, 나는 막걸리집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그때 정말 열받았어요.
쩨쩨한 처세술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싫어도 좋은 척, 미워도 반가운 척
하기가 어디 쉬운가요?
그냥 잊어버리는 겁니다.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그게 잘 안 되면 각색을 하는 겁니다.
-야, 이 냄비가 끝까지 달라붙는 거야. 떼느라고 정말 혼났어.
-그 자식, 정말 괜찮은 놈이엇어. 지금이라도 같이 해봤으면 좋겠어.
어차피 사람들 왕년 이야기 과장인 거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좀 뽀록이 나더라도
산통깨질 것도 없어요.
...그렇다고 일제 35년의 악몽을 깨끗이 잊자거나, 교과서 왜곡이 옳다는 거 절대
아닙니다.
잘한 거짓말 논 닷마지기보다 낫다
거짓말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너, 그 말 거짓말이지?
-아냐,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적이 없어. 정말이야.
한번도 거짓말을 한적이 없다?
당신은 이 말을 믿습니까! 믿쉽니다? 오! 노! 만약 거짓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은 국회로 보내야 합니다. 아, 말을 잘못했군요. 거짓말을 밥먹듯
이 하는 곳이 국회인데 말입니다. 그럼 어디로 보내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위기에 몰리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건 누가 가르쳐줘서 하는 것
이 아니라 원초적 본능입니다. 그러나 본능이라고 해서 게나 고동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타고난 자질, 창조적 재능, 그리고 부단한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치밀하
고 완벽하고 뒤탈없는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에라스무스는 '대부분의 경우 말 잘하는 요령은 거짓말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저 유명한 종교개혁가 루터도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
해서는 일곱 개의 거짓말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살다보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생깁니다.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여러 사람 깨지게 생겼을 때 적절한 거짓말은 그 상황을 무사
하게 넘겨줍니다.
-말해, 배후조종자가 누구냐구?
-모른다. 이놈들아! 어서 날 죽여라!
안중근 선생님은 목숨을 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거짓말을 했습니다. 기억합시
다. 안중근 선생께서는 목숨을 걸고, -네, 사실은요, 김구 선생님 이요....
이렇게 쌍나발을 불지 않았다는 사실.
인생 무사고 운전을 위해서도 거짓말은 필수적입니다.
신혼여행을 간 남녀가 육수를 한말씩 흘리면서 궁과 합을 맞춰 보았습니다. 남자가
거칠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합니다.
-사실은 말이야, 영순이 알지. 전에 걔랑 나랑 이러쿵 저러쿵.... 아이, 시원하다.
이제 자기 차례야. 자기도 솔직하게 고백해 봐. 십년묵은 체중이 싹 내려가. 어서 해
봐.
여자도 색색거리면서 말합니다.
-으응. 사실 말하고 싶었는데 자지가 화낼까봐 지금까지 못했거든. 자지가 먼저 그
러니까 용기가 생기네. 사실은.... 왈가왈부, 중구난방.... 이랬거든. 그 사람하고는
진짜 딱 한 번밖에 안 했어.
-오잉?(눈 튀어나오는 소리, 거친 숨소리)
잠시 후 퍽! 퍽! 으악! 죽여 짜샤! 더러운 ,비열한 ....
진실이란 미명 하에 과거를 캐려고 했던 남자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하
는 여자는 괜히 복싱을 한 셈이 된 것입니다. 이럴 때 여자가, -나는 한번도 자기 외
에 다른 남자는 만난 적이 없어. 오직 자기만을 사랑해.
하고 넘어갔다면 복싱 대신 3분 휴식 후 2라운드 레슬링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거짓말은 잘하면 약이고, 논 닷마지기보다 낫다.
열심히 책도 읽고, 열심히 공부해서 거짓말을 확실하게 합시다.
수다떠는 여자가 아름답다
간만에 낮에 문안전화를 했는 데 마누라가 없다.
-이놈의 여편네가 이거....
떫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은 남편, 저녁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면상에 굵은 금
을 찌익 그르면서 씨부렁거립니다.
-당신 말이야, 오늘부터 영순이네 절대 가지 마. 하루종일 여편네들끼리 모여서 수
다나 떨고.
여자들, 진짜 옛날부터 수다 떤다고 구박 많이 받아왔습니다. 립스틱 있잖아요? 그
거 원래 이집트에서 시작된 건데, 여자들 입조심하라고 빨갛게 칠한 거라는 썰도 있어
요.
요즘이야 안 그렇지만 옛날에는 여자들 정말 일방적으로 깨졌잖아요?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여자들의 수다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요, 솔직히 말해서 남자들도 수다 엄청 떨어요.
그런데 유독 여자들 수다만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이건 순전히, -남자들 하는 이야
기는 영양가가 있다. 여자들 이야기는 종지기 깨는 소리밖에 없다.
이런 편견 때문이 아닐까요?
여자들 이야기 들어보세요. 그게 종지기 깨는 소린가? 자녀 교육 이야기, 저녁 반찬
거리 걱정, 남편 회사 이야기....
물론 남편자랑도 합니다.
-얘, 우리 남편은 새벽 3시까지 눌러주고도 정시에 딱 일어나서 출근한다아. 일주일
에 세 번씩.
여자들에게 수다는 필숩니다. 모여서 이빨 까다 보며 스트레스도 풀리고, 서로 정보
도 교환되는 겁니다. 그거서 시누이 혼처자리도 나오고, 시어머니 묏자리도 나오고,
남편 보약 잘 짓는 집도 나옵니다.
여자들은 여성지보다 옆집 아줌마한테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는 통계도 있어요.
-우리 아이 중뿔나게 키우는 생활의 지혜 55가지 -시어머니를 지능적으로 삶는 실천
테크닉 -빨래, 이렇게 하면 일주일에 한번만 하면 된다 -하루 30원은 반드시 절약할
수 있는 시장보기 전략 -남편 정력10배로 키우는 법 등등.
물론 남편 씹기, 시어머니 씹기 같은 비생산적 수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
세요. 양념 안 치고 찌개 맛있게 끓일 수 있습니까? 그런 건 다 양념입니다. 또 그렇
게 씹기라도 해야 스트레스 풀리지 않겠어요? 무엇이든 가슴에 담아두면 병이 된다구
요.
여자들이여, 수다를 떠십시오.
단, 뭔가 좀 건지는 게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전화를 없애자
-그리울 땐, 눌러 주세요.
도장 말인가?
-그리울 땐, 돌려주세요.
호박 말인가?
하여간 사람들 무지하게 눌러대고, 전화 회사는 자동적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어떤
날은 하루종일 누르고, 받고 하다가 볼일 다 봅니다. 그리울 때만 누르는 거 아닙니
다. 현실이 어디 그렇게 따끈따끈합니까? 늘 피튀기는 게 현실 아닙니까?
-야, 너 노는 돈 좀 없냐? 딱 하루만 좀 돌릴자.
-당신 딸 내가 데리고 있어. 현금으로 큰 거 한 장! 경찰에 알리면... 알지?!
-이놈의 시키들! 탱크로 싹 갈아 버리겠어!
한국통신도 발전하고, 데이콤도 발전하고, 전화기 만드는 대우, 금성, 삼성 이런 회
사들도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생필품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덩달아서 통화
도 전락했습니다.
-가스가 떨어졌어요. 지금 밥하는 중이니까 빨리 뛰어오세요.
-거기 슈퍼? 라면 하나 하고 계란 한 개, 배달 부탁해요. 아참, 생리대도 하나.
진짜 편해졌어요.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편리해진 대신 우리는 많은 걸 잃
었습니다.
전화가 많지 않을 때는 편지 많이 썼습니다.
'어머님 전상서. 환절기에 기체만강하오신지요? 저는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깍두기와
황새기젓 덕분에...'
요즘 누가 이런 편지 쓰고 있겠어요? 용건만 간단히, -엄마야? 지금 백원짜리 하나
밖에 없어. 용건만 얘기할게. 백만원만..빨리 부쳐 줘. 에이, 사정은 나중에 말한다니
까... 딸깍.
하고 맙니다.
이건 그래도 낫죠. 애인한테 전화했는데, 애인은 없고 기계가 받을 때, 참 썰렁하지
않아요?
-나 지금 없어. 띠 소리 난 뒤 메모 남겨줄래? 영양가 있는 일이면 전화할게.
그리울 땐 눌러 주세요? 누르면 뭐합니까?
전화 회사니까 전화 많이 걸라고 그런 광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전화가 빼앗아 간 건 이런 인간관계의 정만이 아닙니다. 우리 맘 속에 그나마 좀 남
아 있던 여유까지 싹싹 긁어가버렸습니다.
-따르르릉.
전유성 씨, 원고 어떻게 됐어요?
-아니 아직...
-마감이 언젠데 아직이라뇨?
-내일 모레까지는 끝내 볼게.
-저 사표 쓰는거 보고 싶어요? 세시간 뒤까지 보내줘요. 네? 움직일 시간이 없다구
요? 팩스 있잖아요. 알았죠?
막판 스퍼트 하는 백미터 선수처럼 푸다닥거리는 그 전화벨 소리는 또 어떻습니까?
듣기만 해도 온 신경이 곤두서고, 뭔가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그
소리를 하루에도 골백번씩 듣다 보면, 절로 조급해지기 않는 게 이상할 지경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화는 실로 기막힌 골칫거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따르르릉. 응 유성이니? 나야. 열두 시 넘었는데 안자고 뭐 해? 농사짓는다구? 그
래 그럼 많이 지어. 딸깍.
-저기 짬뽕반점이지? 뭐, 짬뽕은 안 된다구? 그럼 안시켜. 달깍.
-안녕하세요? 저희는 선생님의 건강을 지켜드리려는 일념으로 뭉친 지렁이불고기 전
문회산데요. 네? 구렁이 만드신다구요? 잘 먹고 잘 살아라. 달칵.
-여기 00소방선데요, 귀댁 쪽에서 가스누출 신고가 들어와서. 확인 좀 해 주실래요?
네? 별일 없으시다구요. 그럼 발 닦고 편안히 주무세요. 장난전화니까요. 철컥.
이처럼 시도때도 없는 전화에서 벼락맞을 장난전화까지, 별 쓸데없는 전화들 때문에
전화기피증 걸린 환자가 또 얼맙니까?
심지어는 음란전화 때문에 청량리 간 여자도 생길 정도니.
이런 게 문명이라면 그딴 문명 차라리 없는 게 속시원한거 아니냐구요.
제가 이태원에 살 땐 7년 동안이나 전화 없이 지냈어요. 그러자 보는 사람마다, 전
화 없이 불편하지 않어? 하고 묻더라고요.
아니 솔직히, 내가 불편할 게 뭐 있어요? 상대방이 불편하지? 나야 구멍가게 공중전
화를 써도 되니까 말입니다.
전화로 연락이 안되니까 꼭 볼일이 있는 사람은 찾아 오더라고요. 그렇게 찾아온 사
람들 하고는 일이 대충 잘 풀려요. 근데, 전화로 어쩌구저쩌구 하던 사람들 하고는 잘
안되더라고요. 통계학적으로.
연예인들한테 제일 기쁜 소식이 뭔지 아십니까? CF 한건 소개해 주겠다는 에이전시
회사의 전화입니다.
보통 전화를 걸어서 누가 받으면, 거기 누구씨댁이죠? 이렇게 말하잖아요? 근데 모
델회사 전화는 달라요. 벌써 목에 힘이 딱 들어가 있어요.
-여기 에이전시 회산데. 누구 계십니까?
이러고 나옵니다. 전화를 받으면 한편 당 얼마씩 받느냐고 묻고, 얼마씩 받았다고
대답하면 얼마까지면 하겠냐? 고 묻습니다.
그 다음에 다음 수요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느냐? 등등 꼬치꼬치 캐묻고는 전화 끝.
문제는 이렇게 모델에이전시회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일이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
다.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근데 안 됐는데도 안 됐다는 연락을 도대체 안 해 주
는 겁니다.
아, 한건 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머리 속에서 이번 CF 한번 찍으면 얼마가 나오
니까, 그걸로 어쩌구 저쩌구 예산을 세워 놓지만 안 돼면 그걸로 끝이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수입을 예상해서 예산을 세우면 안 된다는 걸 10년만에 깨달았습니
다.
아무리 전화로 신상에 관한 걸 열심히 상세히 가르쳐 줘도 연락 안 오면 그만입니
다.
전화 없을 때도 CF했습니다. 꼭 필요하면 찾아오더라니까요!
참, 요즘 핸드폰 왜 많이 쓰잖아요? 근데 그거 왜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 정말 짜증 나!
죄송하지만 지금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여자의 정체를 밝혀라!
내가 혹시 미국으로 이민 가면 핸드폰 통화 잘 안 돼서 간 줄 알아라!
여우는 아홉 개의 굴을 판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한가지 일만 열심히 하라. 한가
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붙들고 늘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빛 볼날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강렬한 의문이 떠오릅니다. 끝까지 팠는데도
물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얼마나 허탈하겠어요. 이럴 때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아.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야, 과정.
-그럼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 마음을 높이 사고 싶어요.
네, 사십시오.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끈기도 좋고, 노력도 좋고, 과정도 좋지만 결과가 있어야 할 거 아니겠어요? 논 팔
아 밥 사먹을 일 있어요? 우물을 팠는데 물이 안나오면 꽝입니다. 나라에서 세금 거둬
가지고 위로금 주는 것도 아니고.
우물을 세 개 정도 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남들이 다 한 우물만 파
라고 그런다고 한 우물만 팔겁니까? 남는 시간은 농땡이를 칠 겁니까?
세 개의 우물을 팔 능력이 있으면 세 개를 파야 됩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한가지 업무에만 죽자사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서 그 업무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을 정도로 그 업무밖에 모릅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장님이 '야, 너 그만 둬'이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등처가(마누라
등처먹고 사는 남자)로 전락하거나, 쪽박 찰 게 뻔합니다.
머레이 겔만이라는 독일제 삐리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박사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다.
말 되지 않습니까? 공부도 좀 폭넓게 두루두루 해야 된다. 이 말 아니겠습니까?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일에 전력투구하면
서 틈틈이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구요? 거짓말.
당신 어제 회사 끝나고 숙직실에서 총무과 직원들하고 고스톱 치는 거 내가 봤는데.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대기업체에 다니면서 틈틈이 도자기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 취미생활로 시작했는데 취미생활이 십년이 넘자 어느새 도자기 도
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 운나쁘게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가 됐는데 해고되자마자 바
로 도예방 차려서 지금은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따뜻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샐러리맨 생활 만 십년째부터 일본어를 시작했는데 그 후 몇 년 하
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아예 회사를 때려치우고 일본에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거기서
이년간 열심히 공부한 다음 국내에 돌아와서는 지금 학원과 기업에서 일어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주말 되면 동부인 해서 골프 치러 다니더라구요. 한마디로 팔자가
달라졌다 이 말입니다.
요즘에는 연예인도 우물을 세 개 정도 팝니다. 잘 나가는 연예인들 보세요. '노래,
연기, 모델.'이젠 이것이 아예 기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한 우물만 파지 말고 우물은 한 세 개쯤 파십시오. 세 군데서 다 물이 나
오면 '지화자 좋다!'이고, 한 군대서만 물이 나와도 본전은 하지 않겠습니까?
남편을 버려라
결혼할 때 주례가 묻습니다.
-전 아무개는 진 아무개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것인가?
-예.
-진 아무개도?
-미 투.
사실 이 결혼 서약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습니다.
-사는 데까지 살아보다가 싫어지면 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 있겠습니까? 또 결혼할 때야 쌀 떨어져도 사랑만 있으면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미 투"라고 대답한 수많은 쌍들이 오늘도 찢어지고 있는 건 무엇 때문
일까요?
그래서 아내들은 불안한가 봅니다. 불안하니까 끊임없이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애를 씁니다.
결혼 초에는 남자들은 퇴근 시간이 땡 함과 동시에 바람과 함께 회사에서 사라져서
번개같이 집에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점차 퇴근이 늦어집니다. 퇴근만
늦어지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에 세 번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한 달에 한 번으로, 한
달 걸러 한 번으로 의무방어 전의 횟수도 줄어듭니다.
아내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팔짝팔짝 뜁니다.
현관문을 열면 아내의 바가지가 먼저 마중을 나옵니다.
-여봇!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에옷!
잠자리에 들자 마자 남자는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혹시 오늘은' 하던 기대가 '오
늘도 역시'가 됩니다. 기다림에 지친 아내가 공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남편들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신혼 초에는 애교로 보이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푼수기로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정시퇴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회사 생활 열받으면 소주도 한잔 해야 되고,
또 바이어 접대도 해야 되고, 과 회식도 늘상 빠질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사실 말이지
술자리에서 주워듣는 정보도 회사생활에서 귀중한 거 아니겠습니까? 또 하루종일 일하
고 집에 오면 얼마나 피곤합니까? 잠 옵니다.
이걸 아내들은 이애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니, 이해를 안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루종일 남편 퇴근만 기다렸는데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사람 기다리는게 얼마나 지
겨운데.
-자기 마음이 변한거야.
그치, 그치, 그치?
-날 사랑한다면서 그냥 자? 사랑이 식은 거야, 으앙~.
-자기, 아직도 날 사랑해? 그래? 얼마만큼?
도대체 눈빛만 마주치면 이불을 까는 그런 사랑을 원하는 걸까요? 아니면 매일매일
회사에서 전화를 걸어 '자기, 사랑해. 열심히 집 잘보고 있어'라는 말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건가요?
혹시 시시때때로 확인하지 않으면 남자들이 변심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봅시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끈질기게 확인한다면 어떨까
요?
남편이 8시만 되면 무조건 집에 온다면? 또 회사에서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마구 한
다면? 그래서 만약 동창 만나러 갔다가 전화를 못받으면, -아니 , 여자가 집구석에 안
붙어 잇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야!
하고 따진다면? 애 키우느라 전신이 녹적지근한데 밤마다 남편이 지분거린다면?
아마도 왕짜증일 겁니다.
동네 아줌마들과 떡볶이 먹다가도, '아이구, 우리 남편올 시간인데,'동창이 커피 한
잔 하자고 해도, '안돼, 남편 전화 올 시간이라서.'그 동창이 뭐라고 할까요?
-아휴, 병신, 쪼다.
남편을 버리세요. 오든지 가든지 신경 뚝! 끊어버려라이겁니다.
심심하다구요? 찾아보면 할 일 무지 많습니다.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대학로
가서 연극도 보고, 친구 만나서 분위기 있는 데 가서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노
래방 가서 노래도 부르고, 노래 열심히 배워서 주부가요 열창 이런데도 나가보고....
남편 신경 쓸 시간이 어디있어요.
남편이 매일 늦게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현관 열쇠 하나 복사해서 직접 문 따고 들
어오라고 하세요. 그래 놓고 코를 드르릉, 드르릉 골면서 자 버리는 겁니다. 그 꼴 보
기 싫으면 일찍 올 거 아닙니까? 늦게 오면 더 좋고.
그래도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요즘 남편들 얼마나 약았는데요. 사랑하지도 않는
데 같이 살 거 같애요?
싸가지 없자
싸가지가 없으면 인생이 행복한 첫 번째 이유
-정식아, 나 내일 장가 간다. 너도 같이 갈래?
-나 바뻐. 형 혼자 가.
싸가지 없는 스키. 선배가 장가간다고 같이 가자는데, 혼자 가라구?
원래 장가는 가는 거고, 시집은 오는 겁니다. 장가 간다는 건 남자가 여자를 데리러
장인집에 가는 겁니다. 남자는 장인집에서 그쪽 패들에게 '당신 딸 나한테 주라. 내가
책임지겠다' 이렇게 약속하는 거창한 식을 하고, 그날밤 냄비에 도장을 찍습니다. 장
인의 측근들은 창호지에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진짜로 도장을 찍는지, 도장이 고장나
지는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남자가, 나 도장 안 찍었어, 오리발 내밀
면 냄비만 중고되는거 아니겠어요?
다음날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옵니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시집오는 거
죠.
요즘 결혼식 때는 장가를 가지도, 시집을 오지도 않습니다. 고추나 냄비가 그냥 예
식장으로 갈 뿐입니다. 그러니까 장가간다든지 시집온다든지 하는 말을 바꿔야 합니
다.
-나 이번 토요일날 예식장 간다.
이렇게요. 예식장에서 '모든 걸 다 알아서 일괄 처리해줍니다.
예식장에서 곧장 공항으로 갑니다. 비행기 타고 어딘가로 가서, 저그들끼리 도장을
찍고, 도장을 받습니다. 따라가는 측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식이도 내가 같이 가
자고 했는데, 혼자 가라고 한 겁니다.
하여간 토요일, 일요일만 되면 나는 전혀 행복하지가 못합니다. 하필 빨간 날만 골
라서 예식장 간다고 같이 가자는 스키, 아이 돌이라고 와서 같이 사진 찍자는 스키들
이 얼마나 많은지?
그거 완전히 민폐 끼치는 거 아닙니까? 뭐 먹을 거 있나 싶어서 가 봐도 국수 한 그
릇밖에 안 주면서.
그러나 안 가고 싶다고 진짜로 안 가 보세요. 찍혀 버립니다.
-총무과 이성계, 싸가지 없는 스키. 너 앞으로 사회생활 지장 많을 거야. 두고 봐.
그러니 안 갈 수도 없어요.
이런데 가면 제일 먼저 하는게 출석부 사인하는 거잖아요. 대리출석하고, 대리부조
할 수도 있지만, 대리로 사진 찍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안 가면 결국 뽀록
이 납니다.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다 보면 명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새끼들 데리고 서울 대공원
한번 못 갑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개겨 버립시다.
-좋다, 최영, 나 찍어라. 너한테 찍힌다고 사회 생활 못할 내가 아니다.
싸가지가 없으면 행복한 두 번째 이유
신사임당 여사는 남편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평생 진짜 뺑이를 쳤습니다. 그녀야 말
로 대한민국 청상과부의 모범이었다 이겁니다.
이 신여사 딸이 시집갈 때가 됐습니다. 껍데기도 좋고, 알맹이도 잘 익은 신여사 딸
을 보고 잘 나가는 집, 잘 나가는 아들이 껄떡거렸던 겁니다.
-너 나한테 와라. 행복하게 해 주겠다.
언제나 문제는 쩐이잖아요. 대한 민국 모범 청상과부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고 꿀릴 수도 없고. 또 남자 수준에 맞추는 게 싸가지 있는 처신 아닙니까요?
-내 딸 잘났으니까 데리고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이건 진짜 싸가지 없는 겁니다.
결국 신여사는 그야말로 과부 땡빚을 내서 딸 혼수를 했어요. 그러나 뛰어봤자 벼룩
이지 있는 사람 눈에 차겠어요?
신랑 집안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겁니다.
-우리 집안을 뭘로 보는 거냐? 혼수 다 빠꾸시켜라.
할 만큼 한 신사임당 여사도 뽈따구가 납니다.
-그게 얼마짜린데 그러냐. 일부러 가격표도 안 떼고 보냈다. 싫으면 관둬라.
신랑 신부는 어떻게 됐냐구요? 혼수 땜에 혼수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그리고는 눈물
의 이별을 합니다.
-우리 그만 찢어지자. 우리는 서로 인연이 없는 거야, 흑흑
신사임당 여사, 처음부터 싸가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됐겠습니까?
-내 딸 엄청 잘 났다. 지참금 내고 데려가라.
처음부터 이렇게 대차게, 진짜 싸가지 없이 치고 나가면 기세상 상대방이 한수 꿀리
고 나오지 않았겠느냐 말입니다.
-뭔가 있나 보다. 딴 집에 데려가면 후회해도 늦으리. 지금 데리고 오자. 돈이야 우
리 집에 많으니까 그걸로 신부 혼수까지 다 주면 돼지 뭐.
싸가지가 없으면 인생이 행복한 세 번째 이유
별 필요도 없는 모임에 예의상 어쩌다가 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야, 쟤 봐. 쟤 왜 왔어?
-내가 알어. 예의상 오라고 했는데 진짜 온 거 있지.
-아휴, 병신.
세상에, 지가 오라고 해 놓고는 진짜 왔다고 병신이라니.
여러분, 이런 형식적인 싸가지는 차리지도 말고, 지키지도 맙시다.
차라리 당당하게 이렇게 말해 버립시다.
-결혼한다구? 난 안 가. 왜냐구? 그냥!
-애 돌이라구? 어떡하지? 선물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냥 오라구? 그래도 싫어.
왜? 피곤하니까!
-반가웠습니다. 그다음에 또 뵐 날은 없겠군요. 당신이 마음에 안 드니까.
빨리 핀 꽃이 빨리 진다
삐삐라는 게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세계에서 우
리나라처럼 삐삐에 8282 찍는 거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겁니다.
밥 먹다가 삐삐 와서, 음 이것만 마저 씹고 전화해야지 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허리
춤이 삐리리리 울립니다. 또 어느 놈이야 하고 눌러 보면 똒같은 놈이 똒같은 번호에
다 8282만 붙여서 찎어넣은 겁니다. 성질 나는 거 꾹 참고 먹던 거 뱉고 전화부터 해
보면 정작 엉뚱한 소리만 해대기 일쑵니다.
-응, 난데. 오늘 약속 내일로 미뤄 졌어.
-야, 임마. 그거갖고 8282 찍은거야?
-으응, 화장실이 급해서. 끊을게!
이 정도는 양반입니다. 백수도 삐삐만 쳤다 하면 8282를 찍고, 어떤 놈은 심심하다
고 1818을 쳐넣어요. 도대체 남의 사정은 벼룩의 속눈썹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니까
요.
사실 삐삐받을 때 나만큼 꼬박꼬박 전화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런
내가 응답이 늦으면 아, 지금 차 안에 있나 보다, 좀 기다려 보자 하고 생각하면 어디
덧나? 그냥 찍어대는 겁니다. 한두번 찍어 보다가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전화번호는
찍지 않고 아예 8282만 냅다 찍어댑니다.
그렇게 매사에 안달복달하다 보니까 건물 공사도 8282, 자동차 운전도 8282, 자식
농사도 8282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8282 증후군이 탄생시킨 정말 끔찍한 논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구
요? 바로 조기교육론입니다.
-외국어는 혀가 굳기 전에 가르쳐야 된다구. 어릴 때 가르쳐야 효과가 나는 거야.
역시 나는 훌륭한 부모야.
-세상에 우리 아이 말예요. 가나다라보다 ABCD를 먼저 깨치더라니까요. 천재예요,
천재. 영어뿐만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일찍 재능을 일깨워주겠다고 피아노, 주산,
컴퓨터, 무용, 첼로 등등을 한꺼번에 다 가르치려고 드는 겁니다. 그러다 오히려 애
망친다고 말라다간 천하의 무식쟁이 취급을 받기가 일쑵니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일찍 심는 곡식이 일찍 먹는다고 했어.
하지만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건 바로 그 부모들입니다. 그게 나락인지 보린지 조생
종인지 만생종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뭐든 일찍 심었다간 쭉정이 농사하기 십상입니다.
일찍 심었다고 다 일찍 먹는 거 아니라구요. 뭐든 때가 있는 겁니다.
애들도 마찬가집니다. 걔들이라고 왜 재능이 없겠습니까마는, 그 종류가 다르고 소
질이 다르다 이겁니다. 모차르트처럼 4살 때부터 빛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배
워야 할 시기가 있고 키워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좀 늦게 되는 아이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도가 트는 아이도 있고.
농사야 망치면 내년에 다시 지울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식 농사가 어디 그렇습니까?
천하에 8282해선 안될 게 바로 자식농삽니다. 제발 애들 좀 그만 달달 볶고 마음껏 뛰
어놀게 좀 해주자고요.
빨리 핀 꽃이 빨리 집니다.
신호를 어겨라
최백호 아시죠? 영일만 사나이.
바닷가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사는 어릴적 내 친구- 그 가수 최백호가 어떤 라디오
프로에서 이런말을 하더라구요.
-빨간불은 서라는 신호가 아니고 가지말자는 약속이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대충 이런 말인 것 같았어요. 신호등은 하나의 약속이다. 반드
시 지켜야 되는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편리를 위해 맺은 약속. 따라
서 상황에 따라서는 어길 수도 있는 것. 약속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니냐.
이 사람 미쳤나? 신호를 어기다니.
황당하더라구요. 네거리 신호등 고장나 보세요. 얼마나 아수라장판이 되는지. 사람
들이 다 신호를 어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개판일 겁니다.
차들은 무조건 대가리부터 디밀고, 보행자들은 치어죽을까봐 건널목 건널 생각도 못
할 겁니다. 그런데도 신호를 어길수도 있다구?
아, 근데도 뭐가 말이 되는 것 같더라니깐요.
신호는 약속이다? 약속은 어길 수도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내친구 애가 혼자 건널목을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었습니다.
유치원 건널목을 건널 때는 손을 들고 건너라, 이렇게 가르쳤단 말입니다. 그래서 얘
는 항상 손을 들고 건널목을 건넜어요. 손을 드니까 차들이 다 서더란 말입니다. 그러
니까 그 아이의 머릿속에 이렇게 입력이 된 겁니다.
-내가 손만 들면 자동차는 자동적으로 선다.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면 건너라. 고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깜박했겠죠. 사고난
날 얘는 하필 건널목에 자기 뿐이었던 겁니다. 다른 때는 어른들 따라 건너면 됐는데,
혼자서 무조건 손만 들고 건넜던 거죠.
근데 사고차 운전자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랍니다.
-신호등이 파란 불이어서 나는 그냥 달렸다. 저 애가 무단횡단하다가 내 차를 박은
거다. 내 차도 많이 깨졌다.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피해자다. 차 수리비 내놔라.
신호등은 때가 되면 파란 불로 바뀝니다. 하지만 파란불이라고 무조건 달려도 되는
겁니까? 애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도 에라 받힐려면 받혀라 이겁니까? 가이또가지 같은
스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도로교통법을 바꿔야 합니다.
[건널목에 사람이 있는데도 파란불이라고 무조건 달리다가 사람을 친 운전자는 삼년
동안 하루에 백번씩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 불일 때 건널목을 건너게 한다.]
퇴촌 가다가 팔당댐 지나서 이상한 신호등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떤 애가 건널목
에서 신호등 기둥을 만지니까 신호등이 빨간 불로 딱 바뀌는 겁니다. 운이 좋아서 건
널목에 오자 마자 신호가 바뀌었겠지, 라고 생각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더라
말입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까 신호등 기둥에 수동으로 신호를 바꾸는 버
튼이 달려 있더라구요.
야! 이거다!
사람이 조절하는 신호. 그렇다, 신호등은 사람이 조절하는 거다.
병신, 그것도 몰랐어?
네, 몰랐습니다. 나는 신호등은 하나님이 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안 보이는 데
서 하나님이 조절하고 인간은 무조건 지켜야 되는 것. 안 지키면 날벼락 맞는 것.
그런데 그 신호등을 쬐끄만 애가 바꿔버리는 겁니다.
근데 우리나라에 이런 신호등 설치된 데가 몇 군데나 될까요?
건널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신호등은 시간만 되면 자동적으로 빨간불로 바뀝니다.
그러면 자동차는 무조건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됩니다. 재수 없으면 딱지 떼니까.
또 보행자는 반경 일 킬로미터 안에 차가 한 대도 안 보이는데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
다려야 합니다. 이런 경우 많이 당해 보지 않습니까? 나도 수없이 그런 경우를 당해
봤는데, 내 자신이 진짜 멍청하게 생각되대요.
하나님이 내려다보면서 '어이그, 인간의 한계' 하고 낄낄거릴 것만 같더라고요.
우리나라 자동차 엄청 많지만 아직도 평일날 교외로 나가면 한적한 곳이 굉장히 많
습니다. 우선 이런곳이라도 신호등을 수동으로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금 얼마나
낸다고 그딴 소리 하느냐고요?
돈이 없으면 임시 땜빵으로 도로교통법을 바꾸면 어떨까요?
[멀리서 속도를 줄이고 사주경계를 확실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건널목에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없을 때는 빨간불이 들어와도 그냥 달려라. 이런 장면에서 자동차가
완전히 정지하면 신호가 열두번 바뀔 동안 운행정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