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오노 후유미] 4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02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에필로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에필로그
「왕이 옥좌에 나아가면, 고두례를. 그런 절차입니다.」
춘관장에게 주의를 듣고, 타이키는 끄덕였다.
「네.」
즉위식이 다가왔다.
홍기산의 기슭, 수도 홍기. 그곳에 있는 국부(國府)의 정전(正殿)이 그 무대였다.
이미 정전 앞의 거대한 광장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백성들이 들어차 있었다. 즉위식이라는 것은, 타국의 빈객과 국민들에게 신왕을 선보이기 위한 의식인 것이다.
대기실에 있어도, 바깥의 환성이 들려온다. 누구나 신왕 즉위를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기뻤다.
어제, 타이키는 처음으로 백규궁을 내려와 홍기의 거리를 보았다. 교소우와 헤어져서 육로로 봉산에서 귀국한 시종들과 만나고, 동행해서 돌아온 케이토를 만났다. 즉위식에 찾아온 승주후(承州候)를 만났고, 홍기를 찾아온 리사이와 히엔과도 만났다.
그 리사이와 교소우와, 서주(瑞州)를 한바퀴 돈 것이다.
홍기산이 비상식적으로 높다는 사실에 놀라고, 거리를 몰래 구경하며 옥천이라는 신기한 샘도 구경했다. 어느 것이나 모두 신기한 것 뿐이라, 타이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젯밤에는 잘 잤나?」
의복을 여관에게 정돈시키며, 교소우는 물었다.
「네. 피곤해서 침상에 들어가자 마자 잠들어 버렸어요.」
「그거 잘됐군.」
「그 덕에, 외우고 있던 말들을 완전히 잊어버렸는데.......」
타이키가 고백하자, 교소우는 소리내어 웃었다.
「어차피, 나한테밖에 들리지 않아.」
「교소우사마에게 들릴까 어떨까도 모르겠어요.」
타이키는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교소우도 또한 그에 따르며, 웃음을 띄웠다.
「그렇군.」
왠지 침착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대기실 안에서 우왕좌왕 걸으면서 춘관장이 가르쳐준 식순을 입속으로 외우고 있자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요우, 꼬마.」
타이키는 당황해서 등뒤를 돌아보았다.
「연 타이호.」
엔키는, 당황해서 절을 하는 여관에게 가볍게 손을 저어 물러나게 했다.
「이웃 사이고 해서, 구경하러 왔지.」
교소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례했다.
「일부러 와주시다니, 황송하오.」
「감사합니다, 연 타이호. --연왕은?」
「귀빈석에 완전히 들떠있어. --흥분되지 않아?」
「.........조금.」
타이키가 솔직하게 고백하자, 엔키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너, 정말로 기가 약하구나. 몸집도 작지만.」
교소우가 더욱 쓴웃음을 지었다.
「코우리는 아직 열살이니까요.」
「전에도 생각했지만, 멋진 이름인데.」
타이키는 조금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정말로 코우리에요. 초(艸)자는 안 붙지만.」
「헤에.」
「그러고보니, 연 타이호도 봉래에서 태어나셨지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로쿠타(六太). 성은 없어. 그렇게 대단하신 신분이 아니었거든.」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옛날에는 누구나 성이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그럼 연의 기린은 그렇게나 옛날에 태어난 것일까.
「언제 태어나셨어요?」
엔키는 천장을 잠시 바라봤다.
「네가 태어나기 오백년 쯤 전.」
「에에?」
수도에 깃발이 펄럭인다. 간소하게 준비한 즉위식은, 선제의 사치에 질렸던 백성들의 눈에 한층 좋게 비쳤다.
옥좌의 곁에는 작은 어린아이가 서있다. 보기 드문 머리색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기린임에 틀림없는 것이리라.
세상사에 밝은 노인이, 저것이 흑기린인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흑기린이 어떤 성질인가는 알지 못하지만, 흔치 않은 것이라고 듣자 그것만으로도 왠지 자랑스러워져 가슴을 펴게 되는 것이다.
타이키는 단상에서 환성을 올리는 백성을 내려다보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죄의식 없이 그 시선들에 응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대재(大宰)가 앞서고, 뒤이어 교소우가 단에 올랐다. 광장을 뒤흔드는 함성이 솟아올랐다.
천천히 옥좌에 나아간 교소우의 앞에 나아가, 타이키는 무릎을 꿇었다.
아무런 고통 없이 머리를 숙여 이마를 교소우의 발에 대었다.
연왕에게는 할 수 없었던 것이, 이렇게나 쉽다. 아무런 가책도 없이 스스로의 책무를 다할 수 있었다는 것이, 왠지 행복한 기분을 들게 했다.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있던 백성들은, 환희의 소리를 지르고 있다.
--태왕 즉위.
대극국(戴極國)에 새로운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화원(和元) 22년, 봄, 재보 실도, 사망하다. 주상, 1월 금중(禁中)에 붕어하여 그 호를 교왕(驕王)이라 한다. 태왕 재위 124년, 탁비산(托飛山)에 장하다.
같은 1월, 봉산에 태과(泰果)가 열리다. 얼마 뒤 봉산에 식이 있어, 태과, 가지를 떠나 사라지다. 백신천선(百神千仙)으로 하여금 그를 찾도록 하다.
32년, 1월, 봉산에 흑기(黑騏) 돌아와, 천하에 황기(黃旗)를 걸다. 여름, 사크 교소우(乍驍宗), 영곤문으로 황해에 들어, 봉산을 올라 타이키와 맹약, 신적에 들어 태왕을 칭하다.
교소우, 본 성은 보크(朴), 이름은 소우(綜), 가료우(口+牙嶺) 출신이라. 금군의 장군으로 서주(瑞州) 사현(乍縣)에 봉해졌으매. 천명을 받아 옥좌에 나아가, 원(元)을 홍시(弘始)라 고치고 사왕조(乍王朝)를 열다.
『대사사서(戴史乍書)』
4권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끝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7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7 장
- 1 -
「타이키, 오늘은 이궁(離宮)에 나와주십시오.」
마침내 테이에이가 말한 것은 하지를 얼마 넘기지 않은 때였다.
드디어 그 날이 온 거라고 생각하며, 타이키는 식탁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네.」
아침, 평소보다 빨리 깨워져, 산시가 준비한 옷도 한층 호화로운 것이었으므로 왠지 각오는 하고 있었다.
요우카가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그렇게 긴장하실 일은 아닙니다.」
「요우카도 같이 가?」
요우카는 미소지었다.
「그렇습니다. 계속 곁에 있을 테니까요.」
「산시도?」
부정할 것을 예상하며 묻자, 상상 밖으로 테이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단, 산시는 은복해서 따라갑니다.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도, 반드시 곁에 있을 테니까요.」
타이키는 낙담하며 한숨을 쉬었다. 은복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모습을 감추고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손을 쥐고 있을 수도, 등을 쓰다듬어줄 수도 없다.
「.........네.」
향을 올리는 여선과 테이에이, 요우카를 선두로 하는 십 여명의 여선에게 둘러싸여 샛길을 걸어, 봉로궁의 끝에 있는 문 앞에서 테이에이는 발을 멈췄다.
눈앞에서 여선이 빗장을 벗겼다.
문이 열리기까지, 타이키는 밖으로 향하는 황량한 미로를 떠올리고 있었지만 실제로 문이 열리고 그곳을 빠져나오자, 바깥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있었다.
우뚝 솟은 기암과 거기에 이어져있는 녹색의 파도, 기암 사이에 펼쳐져 잇는 초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색이 넘치고 있었다. 천막이 펼쳐지고, 무수한 깃발이 서있었다. 말뚝과 단, 거기에 매인 말들과 진귀한 짐승들과, 거기에 덮인 마구(馬具)와 덮개. 그리고 다양한 외모에 잘 차려입은 사람들.
그곳에는 홀연히 마을이 생겨 있었다.
무심결에 움츠려드는 타이키의 손을 테이에이가 쥔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준비하시고 침착하게 다녀오십시다.」
타이키는 눈으로 끄덕이고, 등을 펴고서 깊은숨을 쉬었다.
테이에이에게 손을 끌리어 발을 내딛을 때, 가까운 곳에서 천막 옆에 서있던 남자가 일행을 눈치채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타이키는 테이에이의 손을 꽉 쥐고서 앞을 향하는 여선의 머리장식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무수한 시선이 꽂혀와 아플 정도였다.
「.......괜찮으십니까?」
조용히 요우카가 뒤에서 물어왔다.
「네. .....말해도 괜찮아요?」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기를.」
「응.」
생각하던 만큼 딱딱한 의식은 아닌 듯 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타이키는 조금 숨을 토했다.
「이 사람들 전부?」
그 질문에는 테이에이가 답했다.
「아닙니다. 동반해온 자들이 반 이상이니까요.」
「........잘됐다.」
둘러보자,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상당히 젊은 모습도 있고, 동시에 노인의 모습도 보인다. 대부분이 남자였지만, 여자의 모습도 적지 않다.
「여자들이 꽤 많네.」
테이에이는 웃었다. 언제나와 같은 웃음이 아니라 왠지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웃음이었기에, 테이에이도 그녀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물론이고말고요. ........타이키는 왕과 여왕, 어느 쪽을 모시고 싶으십니까?」
「모르겠어.」
문에서 보도궁까지의 길은 돌로 포장되어 있다. 그 양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
「.....왜 모두들 무릎꿇고 앉아있어?」
「그것이 예의니까요.」
테이에이는 곧, 신분이라는 단어를 타이키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난 인사 안 해도 괜찮은 걸까.」
「지금은 괜찮습니다. 얘기를 할 때에 신경이 쓰이신다면, 일어나시오, 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얘기를 해도 돼?」
「향을 올린 뒤라면. 분명 신기한 얘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큰 짐승들이 많이 있네.」
「요수(妖獸)입니다. 모두 저것을 타고 온 것입니다.」
「헤에.....」
호랑이 같은 짐승이 있고, 사자 같은 짐승이 있고, 말이나 소와 닮은 짐승도 있다.
「요수도 절복하는 거야?」
「요수는 사로잡습니다. 조교해서 길들이는 것이지요. --자, 발치를 조심하세요. 안으로 들어가면 제단에 절을 하십시오.」
주위를 둘러보던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자, 보도궁이 눈앞에 있었다.
봉로궁의 대부분의 건물과는 다르게, 확실하게 사방에 벽이 있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자, 뒤쫓던 시선들이 차단되어 타이키는 굉장히 안심했다.
안은 천장이 높은 큰방 하나뿐, 정면에 제단이 있다. 사원의 본당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테이에이가 시키는 대로 절을 하고, 제단의 앞까지 나아가 향을 올리고서, 제단의 오른쪽 벽에 면해서 세워진 한 단 높은 장소로 올라갔다. 일본식 방으로 말하자면 다다미 8장 정도의 단상 위는 안쪽은 벽, 삼면에는 발이 드리워져 있다. 지금은 정면의 발이 올려져 있고, 단상 안쪽의 의자에 앉자 보도궁의 입구에서 제단까지가 잘 보였다.
거기에서 얌전히 여선들이 향을 올리는 것을 보고있자, 또다시 시선이 감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라보자, 궁의 입구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진향(進香)이 끝나고 대부분의 여선들이 단상에 올라오자, 발이 내려져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편하게 있으셔도 괜찮습니다.」
테이에이는 웃으며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 불편해.」
「곧 익숙해지실 것입니다.」
「산시를 부르면, 안 돼?」
「발이 내려져 있는 동안이라면.」
테이에이에게 말을 듣고, 산시, 라고 불렀다. 곧 발치에서 스르륵 몸을 일으키듯이 산시가 나타나, 그 표범의 몸체에 팔을 두르고서야 겨우 침착해졌다. 수고를 위로하듯이 머리를 안아주는 팔이 따뜻했다.
「꽤나 긴장하셨군요.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테이에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제부터 뭘 하는 거야?」
「승산한 자들이 향을 올리러 들어옵니다. 돌아갈 때까지 여기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계셔도 좋습니다만, 지루하시다면 바깥으로 나가서 승산한 자들과 얘기를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테이에이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도, 궁으로 향을 올리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최초의 한사람이 묘하게 딱딱한 태도로 제단 앞에 나아가 향을 올린다.
「타이키, 왕기는?」
테이에이가 귓속말을 하자, 타이키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라는 뜻이었지만 테이에이는 제대로 이해해준 듯 했다.
「이제부터 타이키는 한동안 여기에 이렇게 계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해서, 임금님이 있나 없나 조사하는 거네?」
「그렇습니다. 혹시 왕이 계신다면, 저희들에게 귓속말을 해주시어요.」
「.........네.」
진향을 마친 남자가 단상의 정면으로 돌아왔다. 절을 하고 단 아래에 무릎을 꿇은 남자는, 아버지 정도 연령의 남자였다. 스모 선수처럼 몸집이 뚱뚱하고 크다. 단 아래의 여선과 얘기를 나누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타이키는 열심히 의식을 집중했다. 천계가--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있는지 어떤지.
테이에이가 눈으로 물어왔기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천계라고 생각될만한 이상한 일은 무엇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 2 -
타이키는 얌전히 진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틀로 질려버렸다.
나흘째가 되어서 겨우 밖으로 나갈 결심이 섰다.
진향은 오전의 짧은 시간동안에 행해진다. 타이키는 단상에 앉아, 그것을 바라본다. 처음 얼마동안은 여선이 아닌 인간들이 신기했고, 다양한 모습이나 몸차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곧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이 힘들어 졌다.
정오 전에는 궁으로 돌아가도 좋았지만, 그냥 앉아만 있는 시간 자체가 길었던 것이다.
「......밖에 나가도 돼?」
타이키가 묻자, 단상의 여선은 전원 기쁜 듯 했다. 그녀들도 역시 지루했던 것이리라.
「물론이고말고요.」
요우카도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혹시, 내가 그렇게 말하는 걸 기다렸어?」
「그렇지도 않지만요.」
요우카는 웃었다.
「조금 질린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오늘 아침도 벌써 여섯 번이나 호박대부의 얼굴을 보았으니까요.」
여선들은 일제히 숨죽여 웃었다.
향을 올리는 자들 중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찾아오는 자도 있었다. 첫날, 제일 먼저 들어왔던 남자가 그 대표격으로 매일 타이키가 돌아갈 때까지 열 번은 향을 올리러 온다. 어딘가의 대부(大夫)인 듯 하지만, 새빨갛고 둥근 얼굴이 호박과 비슷한 것이 이유로 여선들에 의해 호박대부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었다.
「밖에 나가도 괜찮을까?」
테이에이도 웃음을 가득 띄웠다.
「괜찮습니다. 저희들이 함께 할 것이고, 사람도 많습니다. 언젠가처럼 어리석은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인간들이 앞을 다투어 도와줄 것입니다. 어쨌거나 누구든지 타이키에게 장점을 보여주려고 안달이니까요.」
「..........응.」
「둘러싸여서 인사 공세에 힘드시기는 하겠지만, 여기에 앉아있는 것만큼의 고행은 아닙니다. 단, 재빨리 말씀을 하시지 않으면 필요 없이 긴 얘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말을 하면 되는 거야?」
「그렇군요, 혹시라도 왕이 계시다면 전해지는 대로의 예를.」
「항상 곁을 떠나지 않고 소명에 거스르지 않으며, 충성을 바칠 것을 서약합니다--?」
테이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혹시 왕이 아니면?」
「지금은 하지. 지일(至日)이니까. 중일(中日)까지 무사히,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관례입니다. 중일이라면, 지일까지 무사히, 라고.」
「다음 안합일까지 무사히, 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어느 쪽인지 모르겠으면 어떻게 하면 되지?」
테이에이는 더욱 웃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산시도 같이 가도 돼?」
「은복하고 라면. 단, 광장에서는 절대로 부르지 마십시오. 말이나 기수(騎獸)를 놀라게 하니까요.」
단상의 여선은 타이키를 둘러싸는 모습으로, 단 아래의 여선들의 부러운 듯한 시선을 받으며 밖으로 나섰다. 단 아래에 서있는 여선들은, 오늘은 하루종일 거기에서 진향하는 자들을 지켜보며, 승산한 인간들을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승산의 계절은 옥좌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큰 축제였지만, 여선들에게 있어서도 또 하나의 축제였다.
여선인 것을 후회하는 일은 적지만, 수명이 긴 만큼 인생에도 질려있다. 하지를 넘기면, 어느 여선이나 몸단장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예의를 생각해서만은 아니다. 승산한 남자들을 정색한 얼굴로 놀리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지만, 이러저러하는 사이에 진심이 되어서 하산하는 남자와 함께 내려가는 여선도 가끔은 있는 것이다.
모처럼 밖으로 나왔는데,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변함 없이 호박대부였다. 궁 가까이에 대기하고 있었던 듯, 타이키들이 궁에서 나오자마자 무서운 형상으로 달려온다.
땅울림 소리를 내며 멈춰 서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기세가 지나쳐 이마를 땅에 부딪쳐 버렸기에 숨죽인 실소가 여선들은 물론 나서는 것이 늦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흘러나왔다.
「보...봉산공은 평안하시온지.」
목소리가 날카로와져 있는 것이 이상했다.
「저는 대국(戴國) 수주(垂州) 사마(司馬), 로하쿠(呂迫)라 하오며, 저, ...........마주(馬州) 남옹향(南擁鄕)은--」
엎드린 채 빠른 말투로, 그것도 끊임없이 계속, 더듬거리면서 말했기 때문에, 타이키는 계속 이어지는 말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직접 배알하게 되어 지극히 영광이옵니다. 공의 만수무강을 전령으로 기원합니다!」
타이키가 곤란해하며 요우카를 올려다보자, 요우카는 눈썹을 올리며 타이키를 보았다. 눈빛을 읽고, 머리를 대고 엎드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중일까지, 무사하시길.」
남자는 팟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 큰 몸집의 어깨를 눈에 보이도록 떨어뜨렸다.
「............그........그런가. ...........그렇습니까.」
중얼거리며 기운을 잃고 있다. 요우카가 웃음을 참으며 타이키의 등을 떠밀었다.
「자, 이 주변을 돌아다녀 보십시다.」
떠미는 대로 남자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걸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선 중 한사람이 타이키에게 속삭였다.
「언제까지나 말을 듣고 계시길래, 혹시나 생각했습니다, 타이키.」
「......말을 막을 틈이 없었어.」
「아아, 잘되었어요. 타이키의 주인이 저래서는 시중을 든 보람이 없는 걸요.」
마음속 깊이 안도한 듯한 여선의 모습에,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람은 안되는 거야?」
「천계가 있다면 안되고 어쩌고 할 것도 없습니다만. 단지, 적어도 왕이 저런 호박이어서는, 대국의 위엄도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미남일 필요는 없지만, 역시 외양이 어느 정도는 되지 않으면. 적어도 좀 더 준수한 분이 좋겠지요.」
「그런..........거구나.」
요우카는 웃었다.
「진지하게 듣지 말아 주시어요. 중요한 것은 천계의 유무이니까요.」
타이키에게 그렇게 말한 요우카에게, 여선들이 가볍게 놀려왔다.
「어머나, 요우카. 그렇게는 말해도 고금동서, 추하게 생긴 왕이 선 예가 있었던가?」
「그래그래. 얼굴에 품격이 나온다는 거지. 왕이 될 분은, 외양도 왕에 걸맞는 품격이 있는 거니까.」
「이목이 있습니다.」
요우카가 낮게 속삭이자, 갑자기 여선들이 조용해졌다.
그것을 웃으면서 둘러본 요우카는, 타이키를 향해 몸을 굽혔다.
「가벼운 농담들이니 신경쓰지 마시어요. 타이키는 그저 천계를 기다리시면 되는 겁니다.」
「.......응.」
- 3 -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각양각색의 말을 들었지만, 타이키 자신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승상한 자들은 주종을 합쳐 약 삼백 여명, 옥좌에 오를 자격을 시험받기 위해 방문한 것은 주인이지만, 그 종자에게도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타이키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오는 자도 있었지만, 뭔가를 말하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말을 걸어오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거기에 왕이 있다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여선들에게 들었지만, 천계를 나타내는 것은 찾아오지 않는다.
말을 걸어오건, 걸어오지 않건 간에 기대에 가득찬 시선을 배신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괴로웠다.
사람이 끊긴 사이에 깊게 한숨을 쉬자, 요우카가 그것을 듣고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피곤하십니까?」
「아니. 그냥,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봐서.」
「정오가 지났으니, 보도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쉬고 싶으시겠지요. 아니면, 이제 봉로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응.」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멈추며 요우카의 손을 끌었다.
「--요우카. 날개가 달린 개가 있어.」
근처의 천막 바깥에, 말들 사이에 거대한 개가 묶여있었다. 몇 명의 남녀가 그 기승들을 돌보고 있었다.
「천마(天馬)입니다. 곁에 가보시겠습니까?」
「상관없을까?」
「물론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요우카는 타이키의 손을 끌어 그 개가 묶여있는 천막으로 다가갔다.
개는 컸고, 하얀 몸에 머리는 새까만 색에, 짧은 날개를 등에 펼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것은, 봉산공. 건강하신 듯 하여 무엇보다 다행이옵니다.」
기승을 돌보고 있던 남녀들 중, 다가오는 타이키들을 인식하고 제일 먼저 무릎을 꿇은 것은 체구가 큰 여성이었다.
「이 천마는 그대의 기승입니까?」
「그렇사옵니다.」
「공에게 보여주시겠습니까?」
「기꺼이.」
여자는 웃으며 천마의 곁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요우카에게 등을 살짝 밀려 주저주저하며 다가가 보자, 천마는 첫인상보다도 훨씬 큰 생물이었다.
「..........크네요.」
타이키가 중얼거리자, 다시금 천마 곁에 무릎을 꿇은 여자가 답했다. 기승을 돌보고 있던 몇 사람 중, 그녀가 주인인 듯 했다.
「이것도 천마 중에서는 체구가 작은 편이옵니다.」
「아, 일어나세요. --만져봐도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쓰다듬어 주십시오. 굉장히 얌전하니까요.」
여자가 말하는 대로, 타이키는 조금 주저하면서 손을 뻗어보았다. 반들거리는 털결은 만져보자 보기보다 딱딱했다. 목 언저리를 쓰다듬어주자, 천마는 기분좋은 듯이 눈을 감았다.
「정말로 얌전하네요. .......이름은 뭐라고 하나요?」
「이것은 히엔(飛燕)이라 하옵니다.」
히엔, 하고 불러보자 눈을 감은 채 손에 귀밑을 문질러 왔다.
「물지 않나요?」
「괜찮습니다. 원래 천마는 요수치고는 굉장히 성질이 얌전한 짐승이니까요. 히엔은 특히 온화한 성격이라, 물어서는 안될 상대는 확실하게 알아본답니다.」
「대단하네요.」
타이키는 한동안 여자와 천마의 얘기를 했다. 어떻게 손에 넣었는가, 어떻게 기르는가. 탔을 때의 느낌은 어떠한가.
여자의 대답은 명료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럼에도 또박또박한 대답은 어딘가 강한 것을 느끼게 했다.
사실, 타이키는 아직 어른의 연령을 보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몇 살 정도의 여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우카나 테이에이의 외견보다는 훨씬 연상으로 보였다.
애초에,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가진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선들이 가지는 분위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서, 연령까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선들은 일반적으로, 우아하고 화사한 모습이다. 게다가 지금은 선명한 빛의 의복을 입고 아름다운 장식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반대로 여자는 옅은 색의 남자 옷에 적갈색의 머리카락은 땋지도 않고 늘어뜨린 것 뿐으로, 장식품은 일체 착용하지 않았다. 키도 큰 편이어서, 동작에도 연약한 구석은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은 교크요나 여선들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타이키는 미련을 남기며 히엔의 목에서 손을 떼었다.
「아니요. 히엔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오셨나요?」
「저는 승주(承州)에서 왔습니다. 승주사(承州師) 장군 리사이(李齋), 성명을 류시(劉紫)라 하옵니다.」
타이키는 조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나라에는 아홉 주가 있고, 주후가 그것을 통치한다. 주후에게는 각각 장악하고 있는 군대가 있지만, 그것을 주후사(州候師), 줄여서 주사(州師)라고도 한다. 군대의 크기는 주의 크기에 따라 다르며, 2군에서 4군, 그에 따라 장군도 2명에서 4명까지밖에 없다.
「장군이신가요?」
그렇다면, 여선들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를만도 한 것이다.
「예. 황공하옵니다만.」
기분좋은 성격이었기에, 낙담시키는 것은 조금 괴롭다. 그럼에도 어떻게 생각해도 천계에 해당할 것 같은 일은 타이키를 찾아오지 않았다.
「......중일까지 무사하시길.」
리사이는 조금 자조하는 듯한 웃음을 띄웠지만, 그것뿐이었다. 곧 원래의 웃는 얼굴로 돌아가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공도 건강하시기를.」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을 선별하는 것은 괴롭다. 천계는 타이키의 좋고 싫은 감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듯 하여, 그것이 한층 괴로웠다.
「저........또 히엔을 만나러 와도 좋을까요?」
리사이는 주저없이 웃었다.
「물론이고말고요.」
- 4 -
싸움이 시작된 것은, 천마와 헤어지고 주변을 한바퀴 돌고서, 돌아오던 참이었다.
앞쪽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여선들이 서로 속삭이고 있을 때, 싸움이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타이키는 요우카의 소매에 매달렸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건 간에, 폭력은 어떤 것이건 타이키에게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피를 두려워하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공포였다. 얻어맞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때린다는 행위 자체가 두렵고, 동시에 그것을 행하는 인간이 몸이 움츠러들도록 무서운 것이다.
「무슨 소동입니까.」
여선이 질책하듯이 묻자, 이쪽을 눈치챈 자가 무릎을 꿇었다.
「아.......저---」
봉산의 주인은 피를 싫어하며 폭력을 싫어하는 생물이므로, 이곳에서의 유혈사태는 절대적인 금기이다. 이유여하에 따라서는 봉산 밖으로 추방하는 일도 있었다.
「에에이, 이래서 대국의 것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정말 혈기뿐이라니깐.」
말을 내뱉으며 여선은 사람들을 향했다.
나라에 따라, 국민성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만한 것이 있다. 대국의 백성은 성격이 격한 것으로 유명했다. 본래대로라면 그 기질은 기린에도 흐를 터이나, 어떤 일에도 예외라는 것은 있다.
「그만두시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시오!」
여선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사람들의 중심에 있던 것은 두 명의 남자였다.
한 쪽은 장검을 빼어든 큰 바위덩어리 같은 거한, 한 쪽은 그보다 체구가 작은, 그럼에도 당당한 체격의 주먹을 쥐고 있는 남자였다. 허리에 검은 차고 있지만, 뽑지 않고 있다. 그래도 한눈에 그 쪽의 우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끄는 것은 체격이 작은 쪽이었다.
검은 갑옷과 하얀 머리의 대비. 피부는 햇볕에 잘 그슬린 듯한 갈색, 키가 크고 체격도 동작도 무섭도록 유연하면서도 사나운 맹수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어간 여선이 말릴 틈도 없이, 싸움은 종말을 고했다. 검을 쳐 흘려낸 주먹이 거한을 친 것이다.
거한은 흙을 움켜쥐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남자는 쓰러진 거한을 흘깃 바라보았다.
「봉산공이 계신 곳이니 검은 뽑지 않는다. 공께 감사드리도록 해.」
조금도 주저없는 동작, 주저없는 목소리였다.
냉담하게 말을 뱉고서 뒤로 돌아선 남자와 타이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진홍색의 눈동자. 마치 피와 같은.
무심결에 요우카의 소매를 잡고 물러섰다. 타이키는 그가 두려웠던 것이다.
요우카를 끌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 하기도 전에, 남자 쪽에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계시는 줄 알지 못했습니다.」
눈이 부드러워지며, 조금 온화한 인상이 되었다. 그래서 타이키는 간신히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요우카의 옷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무례하게 굴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디 용서를.」
타이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요우카가 남자와 대치했다.
「봉산에서 싸움은 삼가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타이키의 몸에 둘려진 요우카의 손이, 달래는 듯이 움직였다.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살짝 앞으로 밀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싸움은 끝났고, 누구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타이르듯이 말하자,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을 앞에 두고서, 이 남자 자체가 무섭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무릎을 꿇은 남자는 리사이보다도 훨씬 연상으로 보였다. 아무렇게나 묶인 머리는 푸른 기미가 섞여있는 은백색, 그 때문에 나이 들어 보이는 지도 모른다. 단정한 풍모의 눈매는 영리한 인상으로, 똑바로 향해오는 시선은 쏘아오듯이 강했다.
남자는 옅게 쓴웃음을 지었다.
「완전히 겁먹게 해버린 것 같군요. 사과드립니다.」
「아니요......」
간신히 말이 나왔다.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어디에서 오셨지요?」
「홍기(鴻基)에서 왔습니다. 저는 대국(戴國) 금군(禁軍), 사크(乍) 장군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가벼운 웅성거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 유명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금군은 왕 직속의 군대이다. 언제나 3군으로, 수도의 주후--이는 반드시 기린이 맡는다--휘하의 3군과 합쳐서 6사(六師)라 한다. 기린은 그 성질상, 군대의 지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왕이 기린을 대신해서 그를 장악한다. 그래서, 6사를 왕사(王師)라고도 부른다.
「이름은 소우(綜). 자를 교소우(驍宗)라 합니다.」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이 무섭다. 뭔가를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기묘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이나 입에 올렸다.
「......장군이시군요.」
같은 장군이라도 온화한 인상이었던 아까의 리사이와는 달리, 이 남자는 굉장히 엄격한 인상이었다.
그것이 교소우와 리사이의 개성 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금군장군과 주후장군이라는 입장의 차이에 의한 것인지 타이키로서는 알 수 없었다.
「예. 검 이외의 장점이 없습니다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몸이 움츠러들 정도의 패기.
일각이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어져버렸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아무론 이변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타이키는 조용히 요우카의 옷을 끌었다.
「중일까지 무사하시길.」
간신히 그것만을 말하고, 시선을 피하며 인사를 했다. 그래서 그가 그 순간 어떤 표정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가벼운 웅성거림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사크가 아니었던가.」
누군가의 말로, 그가 태왕으로써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5 -
「--교소우? 아아, 왕사의 사크 장군이군요.」
물어본 것은 그 다음날, 물어본 상대는 전날 만났던 리사이라는 여장군이었다.
그녀는 낙담 따위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은 채, 다시 히엔을 만나러 간 타이키를 환대해주었다. 여선이 종자와 얘기하고 있는 사이, 타이키는 리사이와 히엔의 곁에 앉아있었다.
「리사이도노도 장군이지요? 아는 사이인가요?」
리사이는 아닙니다, 라고 부정한다.
「저는 장군이라고는 해도 주후군의 장군. 교소우도노는 왕 직속군의 장군이니 신분이 완전히 다릅니다.」
주후군의 장군과 금군의 장군으로는, 그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해도 좋았다. 금군의 장군이라면 왕궁에 올라 왕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가능하며, 조의(朝議)에 참석하여 국정의 일단을 담당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후군의 장군이 단순한 군인인 것에 비해, 금군의 장군쯤 되면, 왕의 중신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럼, 유명한 분인가요?」
「예. 검의 실력이 대단하시니까. 군사들의 신망도 두텁습니다. 성격이 곧고 격렬하지만 예를 알고 도를 아는 분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사이는 타이키를 돌아보았다.
「--교소우도노에게 흥미가 있으십니까?」
「....어제, 싸움을 마주쳐서......」
아아, 하고 리사이는 중얼거렸다.
「어딘가의 목숨 아까운지 모르는 자가 교소우도노를 화나게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일이군요. 그 일이라면 상대방이 나빴습니다. 심하게 교소우도노를 모욕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쉽게 싸움 따위를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가요......」
리사이는 똑바로 타이키를 바라보았다.
「교소우도노가 왕이십니까?」
타이키는 당황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가 아니에요. 단지, 굉장히 무서운 느낌이 들어서........」
리사이는 의외로 조금 낙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교소우도노가 아닌건가.......」
「어제도 그런 말을 들었어요.」
리사이는 웃었다.
「부드러운 분은 아니십니다만, 무서운 분도 아닙니다. 훌륭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1군 만2천5백명의 병졸 모두에게 존경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적도 적지 않은 분이지만, 아군에게는 한없이 존경받고 계십니다. --그거, 유감이군요.」
「리사이도노는 교소우도노의 편이시군요.」
리사이는 조금 히엔의 털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군요--만나본 적은 없지만,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도 군대를 맡고 있는 몸이니까. 교소우도노가 왕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강한 분인가요?」
리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으로 말하자면, 첫째는 연왕, 둘째는 교소우라고 말해지니까요.」
「헤에.........」
「교소우도노에 비견할만한 자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인망이 두텁습니다. 군사의 능력과 덕, 양쪽을 갖추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타이키는 끄덕였다.
(......하지만, 그사람한테는 천계가 없었어........)
「유감입니다.」
이것은 리사이의 진심이었다.
금군의 사크 장군이 얼마만큼의 인재인지, 군에 관계된 인간으로서 모르는 자는 없다. 그가 금군의 장군을 맡게된 것은 금군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젊은 나이였었고, 반란의 토벌을 나섰던 교소우를 토벌당한 민중 스스로가 칭송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단순히 강하기만 한 장수, 단순히 덕이 있기만 한 장수라면 다른 나라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둘 모두를 갖춘 데에다 그것이 타국에까지 쟁쟁하게 퍼질 정도의 인물은 극히 드물다.
실제로 영곤문으로 달려가 이번의 승산자들 사이에 교소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자신이 옥좌에 오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온정 있는 장수, 훌륭한 인물이라고 주위에서 천거되어 떠밀리듯이 승산했지만, 리사이로서도 스스로에게 믿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간의 평가를 믿는 한 자신은 교소우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가 그에게는 있었다.
「정말로, 유감이다.......」
리사이의 중얼거림에, 타이키는 주저하면서 물어보았다.
「저는, 리사이도노가 임금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리사이는 활짝 웃었다.
「그거 명예로운 일이로군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만, 그렇게 간단히 마음을 허락하지 마시도록 하십시오. 공을 속여서 출세영달을 노리려는 자일지도 모릅니다.」
장난스럽게 바라보는 눈에 타이키는 놀라버렸다.
「설마.」
「아니, 아닙니다. 그런 자들도 많은 걸요. 승산의 자들 중에는, 처음부터 옥좌는 포기하고, 이것을 기회로 왕이나 공과 연고를 맺어두려 생각하는 자도 있으니까요.」
「그런 건가요?」
「유감입니다만. 그리 말씀드리는 저도, 공께서 대국에 내려오신 뒤에 왕사에 불려지기를 바라는 속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사이도노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라고 생각해요.」
리사이는 더욱 활짝 웃었다.
「공은 정말로 리사이가 들떠 춤출만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런가요.」
「그렇고말고요.」
웃으며 리사이는 일어섰다. 가볍게 의복에 묻은 짚을 털어 내었다.
「함께 오신 여선께서 이야기가 끝나신 듯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리사이와 함께 이 근처를 걸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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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8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8 장
- 1 -
「요우카, 밖에 나가도 돼?」
보도궁에 도착하자마자 안절부절하며 물어오는 말에, 요우카는 살짝 웃었다.
「그럼요. 또, 리사이도노께 가십니까?」
「안돼.....?」
「아니요. 리사이도노는 인품이 훌륭하시니까요. 적어도 장군이시니, 솜씨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허락을 받고, 교대로 동반하는 여선들에 둘러싸여 타이키는 궁을 나섰다.
날이 지날수록, 여선들도 승산의 자들과 알아간다. 한 사람 두 사람 멈춰 서서 얘기를 하는 등, 점점 따라오는 여선의 수가 줄어간다. 요우카마저도 리사이의 천막이 보이는 근처에서 발을 멈추고 어딘가의 종자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해버려, 타이키는 남은 거리를 서둘러 뛰어갔다.
인사해오는 자들에게 잡히는 경우는 줄어들었으나, 뭔가를 얘기해오려는 자들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자들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어쨌거나 서둘러서 가는 것이라고 배우게 되었다.
「리사이도노.」
말을 하기도 전에, 리사이가 천막에서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오는 줄 알았어?」
「공이 오시면, 히엔이 기쁜 듯이 우니까요.」
「정말로?」
「예. 어쩌면 히엔은, 공이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설마.」
「글쎄, 어떨까요. 요수는 말하지 못하니, 직접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만.」
웃으면서 리사이는 히엔의 목을 두드린다.
「어때? 히엔?」
천마는 갑자기 다른 쪽을 보며, 타이키의 가슴에 머리를 부벼왔다. 리사이가 쓴웃음을 짓는다.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대로이지요?」
히엔의 털을 쓰다듬어 주고서, 타이키는 리사이와 정오까지 산책을 했다.
리사이는 타이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며, 신기한 것을 하나하나 가리켜도 귀찮아하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아는 사람과도 소개받았다. 리사이가 승산하고서 친해진 지인인 듯 했지만, 누구나 모두 기분좋은 성격으로, 리사이와 주위를 걷는 것은 정말로 즐거웠다.
「누구나 대국 사람들이군요. 대국 이외의 사람들은 없나요?」
기암의 아래에서 솟아 나오는 샘을 둘러싸듯 펼쳐진 광장을 걸으면서, 타이키가 생각없이 물어보자 리사이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입니다. 대국의 왕은, 대국의 인간으로 정해져 있으니까요.」
「에, 그런 건가요?」
「모르셨습니까?」
리사이는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저는 아주 최근까지 봉래에서 자라서,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아아, 하고 리사이가 끄덕였다.
「그랬었지요. 실례했습니다. --왕은 그 나라 출신의 인간,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대국에서 왔나요?」
「그렇다고 만은 할 수 없습니다만. 출생이 대국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헤에.....」
리사이와 손을 잡고 걷다가, 타이키는 갑자기 발을 멈췄다.
「리사이도노, 굉장히 예쁜 짐승이 있어요.」
타이키가 바라보는 방향을 돌아보고서, 리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추우(騶虞)로군요. --멋집니다.」
그것은 호랑이와 많이 닮은 생물이었다. 늠름하고 긴 꼬리 끝까지, 이상한 오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천마가 어딘가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생물인 것에 비해, 그것은 굉장히 용맹하고 강인한 인상이다.
「추우는 최고의 기승입니다. 한 나라를 하루에 달리지요.」
「굉장해.」
여선들에게, 한 나라는 말로 한 달 정도 걸리는 넓이라고 들었었다.
「예. 게다가 주인을 잘 따르고 굉장히 영리합니다. 용맹하고, 전장에 데리고 가기에 그 이상의 짐승은 없지요.」
리사이는 추우에게 다가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저도 추우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추우가 좋아요? 히엔이 있는데도?」
「예, 갖고 싶습니다. 히엔은 저를 잘 따라 귀엽지만, 성격이 부드러운 만큼 전쟁에 데려가는 것은 불쌍합니다. 저는 무장이니까, 무엇보다도 그것이 우선이 됩니다.」
「......그렇군요.」
「봉산에서 돌아가는 길에 다행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만날 수 있으면 잡아서 데리고 돌아가나요?」
리사이는 웃어보였다.
「그럴 생각입니다. 공과 만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그것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헤에.....」
「돈을 있는 대로 모아보면 사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돈으로 산 요수는 주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역시 기수 정도는 스스로의 기량으로 잡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군요.」
리사이는 웃으며 한 번 끄덕이고서, 추우가 묶여있는 천막 쪽으로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바깥의 추우의 주인은 계십니까?」
「--케이토(計都)라면 저의 기승입니다만.」
갑자기 들린 목소리는 등뒤에서 울렸다. 리사이는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어딘가 경계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교소우도노.」
그 남자였다. 오늘은 갑옷을 입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허리에 칼을 차는 것은 잊지 않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얼음 같은 백발과 붉은 구슬 같은 눈동자.
리사이는 타이키와 교소우를 한번씩 번갈아 보다가 등을 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승주사(承州師)의 리사이도노이시지요.」
교소우는 가볍게 웃었다. 리사이는 가볍게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장군은 스스로가 유명하시다는 것을 모르시는 듯 하오.」
「역시.」
무심결에 타이키가 말을 끊자, 리사이도 교소우도 돌아보았다.
「아........., 죄송해요.」
교소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타이키의 말을 재촉했다.
「역시?」
「아뇨.... 리사이도노라면, 분명히 훌륭한 장군일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리사이는 조금 얼굴을 붉히며 교소우를 보았다.
「공은 저를 과대평가 하고 계십니다.」
「무슨.」
교소우는 웃었다.
「공은 눈이 높으시오. 그대로입니다. 리사이도노는 승주사에 그 사람이 있다, 라고 전해지는 분.」
「믿지 말아 주십시오, 공.」
리사이가 평소와 다르게 부끄러워 하는 것이 이상했다.
교소우도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실제로 곁에서 웃는 얼굴을 보자, 그렇게까지 무서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 2 -
「그래서, 케이토에게 용무가 있는 것은 리사이도노입니까, 공이십니까?」
교소우는 타이키와 리사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공께서 보고 싶으시다고.」
「공이라면 케이토로서도 이의가 있을 리가 없지요.」
교소우는 추우를 가리켰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전체적인 모습보다도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 눈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색이었다.
「.......저, .......이 추우는 교소우도노가 잡으신 건가요?」
「예. 기수를 사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요.」
「왜요? 요수를 잡는 건 위험하지 않은가요?」
갑자기 교소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타이키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왠지 건방진 웃음에는, 타이키를 이유 없이 겁먹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야생의 것에 굴레를 씌워서 기수로 만드는 것이니,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희생을 지불하지 않으면 불공평하겠지요.」
「........에에.......네.」
교소우는 케이토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이미 그 무서운 웃음은 사라져 있다.
「이것은 제가 잡아서 길들인 것입니다. 검과 이것이, 저의 보물입니다.」
리사이는 놀란 듯 했다.
「스스로 조교하셨습니까?」
「간신히. 조교사가 나빠서인지, 저 외에는 따르지 않습니다.」
웃으며 말하고, 교소우는 타이키를 보았다.
「부주의하게 손을 대지 마십시오. 그럭저럭 말은 듣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습니다.」
「........네.」
「그러고보니.」
리사이는 교소우를 바라보았다.
「교소우도노의 검은 이전 태왕께 받으신 것이라고.」
「예.」
「대단한 명검이라고 들었습니다.」
「글쎄, 잘 드는 것만은 확실합니다만.」
검인 이상, 장식품이 아니다. --타이키는 그 사실을 떠올리고 몸을 움츠렸다.
교소우는 군인이니까, 뭔가를 베고 그것을 받아들어, 뭔가를 베기 위해 그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역시, 공훈으로.....?」
타이키의 물음에, 교소우는 고개를 저었다.
「군공(軍功)이 아닙니다. 이전, 선왕의 앞에서 연제(延帝)에게 검 상대를 청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기셨나요?」
「졌습니다.」
교소우는 구김없이 웃었다.
「세 합 중 한 합밖에 얻어낼 수 없었지요. 선왕은 그럼에도 한 합을 딴 것을 기뻐하시며, 검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얻은 검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보물인 것이지요.」
「역시 연왕은 강하시군요.」
「무례함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또다시 그, 어딘가 타이키를 겁먹게 하는 웃음을 띄웠다.
「저에게 오백년의 수명이 있다면, 연왕에게 뒤지지 않을 겁니다.」
말을 뱉는, 격렬할 정도의 자신감.
농담을 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까지 무섭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도, 때때로 보이는 표정이 몸이 움츠러들도록 무섭다.
「저도 추우가 탐나지만......」
리사이는 케이토를 잠깐 바라본다. 교소우는 깨끗하게 대답했다.
「좋은 사냥터를 알고 있소. 함께 가시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도 여기에서의 용무는 끝났습니다. 이제 안합일까지 추우를 찾아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
「케이토가 있으신데도?」
「또 한 마리의 추우가 있으면, 케이토를 반은 쉬게 할 수 있습니다. 세 마리까지는 필요 없지만, 두 마리는 있었으면 합니다.」
「기분은 알겠습니다만, 사냥터를 비밀로 해두지 않으셔도 되는 겁니까?」
「그런 짓을 해도 소용없지요. 원하는 사람이 가서 잡으면 되는 겁니다.」
「다 잡혀버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교소우는 엷게 웃었다.
「뭐, 어차피 주인이 될만한 기량이 없으면 잡을 수 없습니다.」
교소우와 헤어져, 타이키는 깊게 숨을 토했다. 자신이 실은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리사이는 타이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은 역시 교소우도노가 두려우십니까?」
「리사이도노는 괜찮으시네요.」
「적이 된다면 두려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긴장하게 만드는 분이기는 하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역시?」
「무서울 정도의 패기가 있는 분입니다. 개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대했다가는, 어떤 기회에 실은 늑대였다고 깨닫고 놀라게 되는, 그런 느낌이 있군요.」
그것은 타이키의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느낌은 잘 알겠습니다.」
리사이는 중얼거렸다.
「소문대로의 분인 듯 합니다. 저 패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왕이 아닌 것이 아쉽군요.」
「그런가요.」
타이키에게, 교소우는 왠지 너무 무섭게 느껴지지만.
리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라는 것은, 인품이 좋다고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부드러운 왕은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남의 기분만을 살피는 왕은 나라를 혼란시키지요. .......정말로 교소우도노였으면 좋았을 것을.」
「리사이도노는 그걸로 좋은가요?」
올려다보는 타이키에 응하여, 리사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교소우도노와 만나고, 어슬렁거리며 승산해온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분은 저따위 하고는 그릇이 다릅니다.」
- 3 -
「어쨌거나 이번의 승산자들 중에, 왕은 계시지 않았던 듯 하군요.」
요우카가 말한 것은, 하지를 한달 반쯤 넘긴 때였다.
밤, 달은 높고 조용하게 벌레 소리가 들린다.
「그럼 이제, 내일은 보도궁에 안가도 돼?」
요우카는 침상 안을 정리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산시는 말없이 타이키의 옷을 갈아 입혔다.
「예. 이궁의 문은 닫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모두들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뭘 하면 돼?」
「마음대로 하십시오. 밖으로 놀러 가고 싶으시다면, 그러셔도 괜찮습니다.」
「괜찮아?」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어차피 교소우도노와 리사이도노이시지요? 그 두 분이 함께 하시는 것이니 걱정 없습니다. 산시도 함께 있을테고.」
왜인지 그 뒤부터, 교소우와도 꼭 만나고 있다.
리사이를 찾아가 히엔과 논 뒤에 교소우를 방문한다. 그것이 언제인가부터 습관처럼 되었다.
변함없이 때때로 움찔하게 되는 경우는 있지만, 그 감각에도 상당히 익숙해졌다. 익숙해지고 나자 봉산에는 남자가 없기 때문에, 만나지 않으면 뭔가 아쉬운 듯한 기분마저 든다.
「에에, 또.........」
타이키는 조심스럽게 요우카를 올려다보았다.
「내일, 리사이도노와 교소우도노는 황해에 추우를 찾으러 가신대.」
요우카는 눈썹을 올렸다.
「--그래서요?」
「.........나도 가면......안돼겠지, 역시.」
리사이가 권유해주어, 분명 여선이 허락해주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면서도 말을 꺼내본 것이지만.
요우카는 방 한쪽에 서있던 테이에이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타이키가 조르시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 단 만에 하나라도 상처를 입으셔서 저희들의 간을 서늘하게 만드는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
타이키는 활짝 웃었다.
「네.」
심야에 가까울 정도의 이른 아침, 타이키는 보도궁에서 리사이의 천막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주변은 아직 어둡고 사람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곳곳에 있는 횃불 때문에 광장은 밝았다.
「리사이도노!」
「--공.」
이미 거기에는 갑옷을 걸치고 케이토를 끌고 있는 교소우의 모습도 있었다.
히엔에게 안장을 걸치고 뒤돌아선 리사이도 처음 보는 갑옷차림으로, 그녀는 타이키의 뒤에 서있는 여선의 모습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다녀와도 괜찮대요.」
리사이는 웃었다.
「그거 다행입니다.」
「히엔에 타도 되나요?」
「물론이고말고요.」
쫓아온 테이에이가 단정하게 절했다.
「둘도 없는 몸,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리사이도노, 교소우도노.」
리사이도 교소우도 정중하게 절했다.
「두 분을 믿고 나가시는 것이니, 만에 하나라도 공에게 위험이 없으시도록.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반드시 정오까지는 돌아와 주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테이에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장의 준비를 하고 있는 천마와 추우를 보고 있다.
「종자들은 데리고 가지 않으십니까?」
「종자의 말로는 정오까지 다녀올 수 없습니다.」
리사이가 곤란한 듯이 말하자, 테이에이도 눈썹을 찌푸렸다.
황해는 정말로 위험한 장소인 것이다. 오산은 수호를 받고 있지만, 황해에는 무수히 많은 요마가 살고 있다. 요수도 붙잡아서 길을 들이면 주인의 명령을 잘 듣고 얌전해지지만, 야생의 요수는 본래 사람을 습격하는 위험한 생물인 것이다.
게다가 황해에는 요마 이외에도 무수한 위험이 있다. 유사(流砂)가 있고, 독기 가득한 증기를 뿜는 늪이 있으며, 낙석이 심한 산이 있다.
「공에게는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와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리사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으나, 여선은 현군의 허가 없이 오산을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위험한 장소는 곤란합니다. 사냥을 하시는 것도, 공의 안전을 제일로 생각해 주십시오. 피의 부정도 곤란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예.」
리사이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테이에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계속했다.
「만약에라도 요마를 베게 되는 일이 있다면, 어느 한 분이 공을 데리고 도망가 주십시오. ...........설령 그것이 한 쪽을 버리는 결과가 되더라도.」
「.......테이에이.」
너무나 심한 말에, 타이키가 가볍게 테이에이의 소매를 잡아당기려는 참이었다.
「우리들은 유람을 하러온 것이 아닙니다.」
교소우였다. 얼굴에 그 격렬한 것이 떠올라 있었다.
「요수를 잡으려면, 황해의 가장자리만 돌아다닐 수는 없습니다. 다소의 위험이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으나, 지켜드릴 자신이 있기에 함께 가자고 권한 것이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은, 설령 봉산의 여선이라 하여도 무례가 지나치십니다.」
테이에이는 교소우를 쏘아보았다.
「.........대단한 자신이오만, 그것이 교만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에 마주보는 교소우의 눈이 한층 격렬해졌다.
「여선께서 걱정하실 것도 없소이다. 공은 우리 대국의 기린. 공의 몸의 안전을 바라는 데에, 대국의 인간보다 더한 자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것이야말로 여선 쪽의 교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잠시간 서로 노려보다가, 테이에이 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확실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확실히 명 받들겠습니다.」
발을 돌리는 테이에이를 보며, 교소우는 추우의 고삐를 쥐었다.
「--해가 떠버리는군. 가십시다, 리사이도노.」
- 4 -
천마는 놀랍도록 빨랐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위를 차며 평지를 달리고, 쓰러진 나무를 뛰어넘어도 거의 타고 있는 사람에게 충격을 느끼게 하지 않는 매끄러운 주행은, 도저히 짐승의 등에 타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타이키는 굉장히 놀랐다.
밤눈도 좋은 듯, 바위나 수목이 달빛을 가리는 장소에서도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달려간다.
「........어떠십니까?」
리사이가 물어와, 등뒤에서 타이키를 안듯이 하며 고삐를 쥐고 있는 리사이를 돌아보았다.
「꼭 기린 같아요.」
리사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린에 타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네. .....이상한가요?」
리사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송한 경험을 하셨군요. --히엔도 기린에 비하자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런 건가요?」
「그렇고말고요. 공은 자신이 기린이니까 기린을 가볍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겠지요. 저 따위는, 기린에 타다니 생각만 해도 몸이 굳어버립니다.」
「헤에.......」
그런 것인가, 라고 타이키는 생각했다. 확실히 케이키라는 인물의 등에 탔었다고 생각하면 당혹스러운 기분도 들지만, 황송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같은 안장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것을요.」
웃음짓는 리사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런 것인가, 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의견을 구하며 바로 옆에 달리고 있는 케이토 쪽을 보자, 리사이와 타이키의 대화는 듣지도 않고 있던 듯 숙연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교소우의 옆얼굴이 보였다.
아직, 그 무서운 것이 교소우의 주변을 감돌고 있다. 테이에이의 말에 굉장히 화가 났던 것이리라.
천마에 타고서 신나하고 있던 기분이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히엔과 케이토는 황해 깊숙히 들어가, 바위산을 가볍게 뛰어 오산의 북쪽, 항산(恒山)의 기슭에 이르렀다.
살벌한 바위의 융기가 이어져있는 언덕에, 앞에서 달려가던 케이토를 멈추고 안장에서 내려왔다. 아직 하늘에는 달이 남아있다.
「--교소우도노, 여기입니까?」
히엔을 멈춘 리사이의 질문에, 교소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키는 리사이에게 안겨 내려오면서, 여전히 패기가 가시지 않는 교소우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저........교소우도노.」
「무슨 일이십니까?」
교소우의 목소리에는 찌르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안장에 묶어놓은 짐을 풀면서. 타이키를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등을 향해 타이키는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여선이 실례를 했습니다.」
교소우는 손을 멈추고,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그를 둘러싸고 있던 패기가 옅어졌다.
「.........공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니요, 저........교소우도노에게도, 리사이도노에게도 정말로 죄송합니다.」
리사이는 바위그늘이 진 장소에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하면서 웃었다.
「신경쓰실 일이 아닙니다. 여선이 걱정하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아니요.」
말하고서 타이키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는 병든 기린이에요.」
두 사람의 시선이 모여, 타이키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이를테면......예 같은 거지만......」
타이키는 힘을 짜내어 꺼낼 말을 찾았다.
「테이에이는, 리사이도노나 교소우도노를 가볍게 보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너무나 믿음직하지 못해서,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리사이는 부드럽게 웃었다.
「공은 둘도 없는 분이니까요. 그렇게 자신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선이 걱정하는 것은, 저에게는 기린다운 점이 무엇 하나 없어서 그래요. 아마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령이 없어요.」
교소우도 리사이도 눈을 크게 떴다. 일순,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기린은 피를 꺼리기 때문에, 스스로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없다. 그것은 상대가 요마이건 짐승이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기린 본인을 대신해 수호하는 것이 사령으로, 기린은 무수히 많은 사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사령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몸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뿐이 아니라, 저는 전변도 할 수 없어요,」
이 말은 교소우와 리사이를 더욱 놀라게 했다.
「원래대로라면 사령을 잔뜩 가지고, 사령들이 지켜줘야 할 테지만 전 그게 안돼요. 도망갈 때에도 기린이 되면 도망갈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안되니까.」
한심한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타이키는 무의식중에 몸을 움츠렸다.
「그래서 여선들은, 굉장히 굉장히 걱정해줘요. 어떻게든 낫게 해주려고, 경국의 타이호를 일부러 불러줄 정도였거든요.」
이렇게 한심한 자신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깊은 애정을 쏟아부어 주고 있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아프다.
「타이호도 정말로 열심히 가르쳐주셨지만, 전혀 안돼요. 그래서--」
교소우가 커다란 손으로 가볍게 타이키의 머리를 두드렸다.
올려다보자,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때때로 굉장히 무섭게 느껴지는 교소우는, 때로는 망연해질 정도로 자상한 표정을 짓는다.
「공의 사령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저.......여괴라면 있는데요.」
교소우는 웃었다.
「그거 든든하군요.」
커다란, 케이키의 그것보다도 큰 느낌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 5-
「미끼는 뭘 쓰죠?」
타이키는 함정을 만들고 있는 리사이에게 물었다.
「옥입니다. 추우는 특히 마노(瑪瑙)를 좋아합니다.」
리사이는 달걀 정도 크기의 마노를 꺼내보였다.
「이, 이런 것까지 먹나요?」
리사이는 웃었다.
「고양이의 개다래나무와 같은 겁니다.」
「헤에에......」
리사이는 마노를 타이키의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교소우를 돌아보았다.
「조금 미끼를 뿌리고 오지요.」
리사이는 천마에 올라탔다.
「뿌려요?」
「마노의 부스러기입니다. --교소우도노, 공을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소.」
히엔은 크게 도약하며, 날아갈 듯한 기세로 뛰어갔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흰 빛을 띄기 시작했다.
사냥은 밤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해가 높게 뜨면 요수는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는 듯 하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라고는 해도 절대로 조건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이런 시간에 두 사람이 사냥을 하는 것은 오직 타이키의 안전을 생각해서였다.
교소우는 바위 사이에 박아놓은 말뚝에 밧줄을 걸고, 가볍게 손을 털면서 일어나 모닥불 곁의 바위 위에서 잠들어있는 케이토의 곁으로 걸어갔다.
「공, 조금 쉬시지 않겠습니까.」
「네.」
교소우는 케이토에게 기대어 자신의 옆을 가리킨다. 얌전히 그 곁에 앉았다.
「잡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운에 달린 일이겠지요.」
「케이토도 여기에서 잡았나요?」
교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합일 때마다 와서, 여섯 번 째였던가요.」
「힘들었나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함정에 걸리고 나서부터가 문제입니다.」
복잡한 모양으로 얽혀있는 쇠사슬과 밧줄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타이키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공은 제가 두려우십니까?」
갑자기 물어와, 타이키는 놀라 교소우를 올려다보았다.
「.............아뇨.......저기.」
「때때로, 저어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혹시 제게 사취(死臭)라도 물들어 있습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면, 저에게는 기린이 꺼려하게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보군요.」
교소우는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기린은 자비의 생물이라고 하지요. 왠지 저에게는 자비로 하여금 꺼려지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게.....」
「무인(武人)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자비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니까요. ............혹시라도 공께서 제게 결여된 것을 아신다면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의 무엇이 모자란 것인지, 알아두고 싶습니다.」
교소우의 목소리는 조용할 뿐이었다. 담담하게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간다. 타이키는 곤혹했다.
「..........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소우는 묻는 듯이 시선을 향해왔다.
「어쩌면, 눈 색이........피를 연상시켜서 두려운 건지도......」
「마음써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그런 것이 저에게 있어 친절인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그럼에도 힘있게 말해오는 교소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 잘 말히기 힘들어요.」
「어떤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질이 약해요. ........분명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패기가 부족하다던가, 더 자신을 가지라던가, 여선에게 항상 듣고 있지만 어떻게 해봐도 그런걸요.」
교소우는 말없이 타이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소우도노는 굉장히 자신 넘치는 분이세요. 패기, 라는 것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걸 패기라고 부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기척 같은 것이 때때로 강하게 밖으로 나타나요. --제가 말하는 거, 아시겠어요?」
교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굉장히 무서워져요. 부럽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타이키는 케이토의 곁에 피워진 모닥불을 바라본다.
「.......불은, 따뜻하고 밝은 것이지만 너무나 강력해서 무섭잖아요? 그런 것처럼 몸이 굳어버려요. ...........아마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도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제가 한심해서 그렇다기 보다도, 난폭하다던가 무섭다던가, 그런 느낌하고도 틀려요. 피를 봤을 때 무서운 것하고도 좀 다른---」
말을 찾아보아도, 떠오른 단어는 어느 것도 적당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초조하고 초조해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싫은 느낌은 아니에요. 큰 불꽃은 무섭지만, 예쁘다던가 굉장하다던가,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것하고 똑같아요. 굉장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하고 동시에 왠지 움츠러들어 버려서, 그래서.」
부드럽게 손이 머리 위에 얹어졌다.
「울지 마십시오.」
「죄송해요...........」
「저야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을 여쭤버렸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소.」
「아니요....」
교소우는 부드럽게 웃고서, 타이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공은 착한 아이시오.」
「아니요.......그런......」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오. 대국은 좋은 나라가 되겠지요.」
「그럴까요?」
교소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쓰다듬던 팔을 타이키의 어깨에 두르고 그대로 모닥불로 눈을 향했다.
그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케이토에게 기대는 대신 교소우에게 기대어, 타이키도 말없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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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9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9 장
- 1 -
「교소우도노!」
불꽃을 흩날리며 횃불이 바위터를 달려온다. 리사이를 태운 히엔이 돌아왔다. 동쪽 하늘이 간신히 밝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교소우도노, 묘한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호오?」
교소우는 일어섰다.
「조금 떨어진 늪지대 근처입니다. 출입한 흔적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추우가 아닐까 싶어서.」
「둥지일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가보지.」
리사이는 타이키를 안아 올려 히엔에 태웠다. 교소우도 케이토에 기승했다.
그 동굴은 바위산의 끊어진 틈, 어두운 색의 물도 진흙도 부를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있는 늪지의 근처에 있었다.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 빈약한 풀들이 간신히 나있는 지면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땅에 내려서자 횃불의 조명으로, 구명을 향해 몇 개인가의 발자국이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교소우는 케이토를 세웠다. 막 케이토가 남긴 발자국과 비교해보자, 추우보다도 큰 생물 같았다.
「추우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뭘까?」
리사이는 히엔에서 내려서, 동굴의 입구를 들여다보았다.
큰 바위가 겹쳐서 생긴 동굴의 입구는, 리사이의 키 정도의 크기였다. 동굴이라기보다는 바위와 바위가 맞물리면서 그 틈에 생겨난 터널이라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안으로 향하는 길은 조금 지난 곳에서 휘어져 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아까 조금 들어가 봤지만, 상당히 깊습니다. --들어가 볼까요?」
「용이 나올지도 모르네.」
「그러고 보니, 황해 바닥에도 용궁이 있다고 하던가요.」
교소우도 동굴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글쎄.」
「황해 바닥으로 가기에는 좀 작은 것 같군요.」
「.........글쎄, 어떻게 할까.」
리사이는 조금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 보지 않으실 겁니까?」
교소우는 대답 대신 타이키를 보았다.
「어찌 하시겠소?」
「저......모르겠어요.」
「그럼, 조금 안을 볼까.」
리사이는 이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교소우도노, 공을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타이키는 가벼운 불안에 사로잡혔다. 교소우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두려우시오?」
고개를 저으려다가 그만두었다. 타이키는 솔직하게 말했다.
「......조금.」
「--왜 그러십니까?」
리사이는 이미 골목을 돌아서려 하고 있었다.
「지금 가네. --공,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네......」
그것은 바위산의 아래를 꿰뚫는 것 같았다. 조금씩 내려가면서 복잡하게 꺾어지기를 되풀이한다. 바람은 없지만, 횃불의 불꽃이 흔들린다. 공기가 통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갈림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길도 없었다.
「........깊군.」
교소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앞에서 걸어가던 리사이가 발을 멈췄다.
「막다른 곳입니다.」
가리키는 쪽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걸어오던 길과는 타이키의 키만큼 높이가 낮았다.
리사이는 바닥으로 뛰어내려, 바위의 기복이 겹쳐진 광장을 둘러보았다.
「........이상하군, 아무것도 없어.」
「없을 리가 없어. 희미하게 뭔가의 냄새가 난다.」
타이키는 눈썹을 찌푸렸다. 교소우가 말하는 대로, 뭔가의 냄새가 났다.
그것은 굉장히 기분나쁜 냄새였다. 뭔가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냄새.
리사이는 광장의 바닥을 이루는 바위를 오르내리며, 비스듬하게 튀어나온 평평한 바위의 곁에 몸을 굽혔다. 뒷모습이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것에, 타이키는 매우 불안해졌다.
「아아, 더 내려가는 구멍이 있습니다.」
「그건가.」
교소우가 타이키를 안아 올려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바위를 하나 오르자, 리사이가 들여다보던 구명이 보였다.
--저, 어두운 구멍.
「뭔가가.........있어.」
타이키가 중얼거렸다.
「--에?」
교소우도 리사이도 타이키를 돌아보았다. 타이키는 발치에서 떨림이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고동이 빨라진다. 심하게 가슴이 뛰었다.
「..........돌아가요. ..........여기는, 좋지 않아.」
「왜 그러십니까?」
타이키는 교소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리사이를 향해 한쪽 손을 뻗었다.
「거기는 안돼요.」
리사이는 교소우와 눈을 마주치고서, 웃으며 구멍 언저리에 손을 얹었다.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아니요. --아니요, 안돼요.」
타이키는 리사이를 멈추려 달려가려 했지만, 발을 내딛는 찰나 바위 사이에서 뭔가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가서는 안됩니다.」
「산시!」
교소우는 갑자기 나타난 인요의 모습에 재빨리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지만, 당사자인 타이키가 그 인요에게 안겼기에 힘을 풀었다. 타이키가 말한 여괴인 것인가, 라고 납득했다.
리사이도 마찬가지로 놀라, 갑자기 출현한 하얀 여괴에게 눈을 두고 있었다. 바위에 손을 얹은 채 반신을 타이키를 향해 향하고 있는, 그 리사이의 팔에 갑자기 뭔가가 감긴 것은 그 때였다.
리사이는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비명을 지른 것은 교소우의 곁에 있던 어린아이 쪽이었다.
「--------리사이!!!」
놀란 표정 그대로, 리사이의 몸은 머리부터 구멍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발버둥치는 다리가 한순간 잔상으로 남은 채,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리사이의 모습은 없었다.
「----리사이---!!!!」
타이키의 소리에 응하듯이, 구멍 속에서 비명이 울렸다.
- 2 -
교소우가 바위터를 뛰어갔다. 리사이가 빨려들어간 구멍까지 다가갔다.
그 어두운 구명은 아래로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꽤나 깊은 듯 했다.
「교소우도노!」
「산시라 했나, 공을 데리고 도망쳐라. 케이토에 타고 봉산으로 돌아가.」
산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타이키는 이미 교소우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타이키, 안됩니다!」
달리는 아이를, 산시는 도약해서 끌어안았다.
「하지만, 리사이도노가!」
구멍을 가리키는 타이키를 교소우가 시선으로 제지했다.
「리사이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공은 밖으로.」
「안돼요!」
교소우는 타이키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다. 타이키는 산시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타이키!」
타이키는 넘어질 듯한 기세로 그 구멍으로 달려갔다. 산시가 뻗은 손을 뿌리치고, 상관없이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절대로, 교소우만 가게 할 수는 없었다.
꽤나 깊었지만, 먼저 달려온 산시가 타이키를 받아들었다.
「--타이키.」
「안돼!! 도망가지 않아!!」
산시는 무심결에 타이키의 몸을 붙잡으려 하던 손을 움츠렸다. 왜인지 그 말에 거역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산시는 일순, 상황도 잊어버리고 자신의 손을 보았다.
타이키는 산시의 주인이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타이키 자신의 안전이 우선한다. 타이키를 데리고 이 위험한--위험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장소에서 도망쳐야 한다. 다소 타이키의 명령을 무시하는 한이 있어도, 다소 난폭한 수단을 쓰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타이키를 멈춰 세우려 했던 팔은 가볍게 풀려버렸다. 지금도, 무심결에 손을 움츠려 버렸다.
--왜.
타이키로서는, 그런 산시에게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구멍의 바닥은 마치 종유동굴같은 넓은 공동을 이루고 있었다. 조명은 교소우가 들고 있는 횃불 뿐, 바닥을 비추는 그 빛으로는 구명의 안쪽을 가늠할 수 없다.
조금 앞에 검을 빼어든 교소우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발치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있는 리사이.
그리고, 리사이를 덮치려 하고 있는 거대한 어둠.
그것은 암흑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목을 치켜들고 있는 것처럼 올리고 있는 어둠의 일부가, 똑바로 리사이를 노리고 있었다.
「--도철(號+食 殄+食)!!!!」
그것은 산시의 비명이었다.
--이 무슨 일이.
산시는 눈을 의심하며 요마를 응시했다. 그것을 단순한 요마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비상식적일 정도의 힘과,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미 전설의 일부라고만 믿어지고 있는 요마.
산시로서는 지켜낼 수 없다. --이 세상의 누구건, 도철과 대치해서 뭔가를 지켜내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리사이가 고개만을 들었다.
「공, 도망치십시오!!!」
「안돼요!」
외치는 타이키를 교소우가 제지했다.
「공은 대국에 필요하신 분. 여기서 죽어서는 안됩니다!」
「저만 도망가다니, 그럴 수 없어요!」
비명이 울렸다.
치켜올려진 부분을 휘둘러 쳐 리사이를 쓰러뜨리고, 바로 교소우를 덮친다.
그대로 날아가 쓰러진 교소우의 머리 위를 헤집고서, 다시금 크게 어둠이 치켜올려졌다.
--멈추지 않으면. 저 무서운 흉기를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먼저 몸이 움직였다.
--검인발도(劍印拔刀).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陳烈前行)----!!!」
(멈출 수만 있다면.)
그림자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그리고서........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고치(叩齒). --이것은 몸이 떨려서 잘 되지 않는다.
어둠의 일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낮은 위치에 횃불의 빛을 반사하는 두 개의 눈이 있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마주쳐 버렸다.
「..........도망가주세요.」
그 두 눈을 노려본 채로. 대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산시, 리사이도노를.」
「---타이키.」
「리사이를 데리고 가!」
--또다. 산시는 이를 악물었다.
타이키의 말에 거스를 수가 없었다.
산시는 쓰러진 리사이에게 다가갔다.
피로 젖은 몸을 안아들고 돌아와, 타이키에게 한번 절하고 구멍 밖으로 뛰어나갔다.
「.......교소우도노도, 이틈에 도망쳐주세요.」
쓰러진 교소우는 시야 안에 잡히지 않는다. 상처는 없는지, 확인할 여유마저 없었다.
응축된 핏덩어리 같은, 두 개의 눈을 노려본다.
「부탁이에요.....」
낮은 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불가능하오.」
다시 한 번 애원할 여유가 타이키에게는 없었다.
시선이 압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밀려오는 힘과, 그에 맞받는 힘.
두 개의 힘이 충만하고, 공동 내부의 시간이 얼어붙었다.
- 3 -
(땀이........)
두 개의 눈을 노려본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조금씩 흘러 내려가는, 그 감촉.
그저 얕은 호흡만을 계속하면서.
(.........이마.)
미간이 언제부터인가 쑤셔온다. 뜨겁고 딱딱한 것이 거기에 묻혀있다.
통증을 호소하는 장소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로 땀인 것일까.
(이미, 눈이.)
시력은 이미 벌써 잃어버렸다.
밀려오는 힘을 의지해서 상대의 눈이 있었을 장소를 향하고 있을 뿐.
그 힘의 방향을 찾을 수단마저 이미 잃어가고 있다.
(시간은.........)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타이키는 아까부터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얼마나.)
왜 그것이 신경쓰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문득 저항을 느꼈다.
똑바로 앞을 향하고 있던 힘이, 뭔가에 가로막히는 듯한 느낌. 또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느낌.
(시간.....)
왜 시간이 신경쓰이는 걸까.
더욱 저항이 증가하여,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
왜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마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들이쉰 숨이 목안을 뜨겁게 태운다.
도철의 시선이 느슨해졌다. 끈적거림이 증가한다. 힘이 제대로 상대의 힘을 받아칠 수 없다. 물러나는 순간, 덮쳐온다.
--생기가 사기로 변한 것이다.
「교소우도노........」
교소우는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걸까.
「도망쳐주세요........」
분명히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한다.
조용한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죄송합니다만, 할 수 없습니다. 발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작은 기린은 눈을 크게 떴다.
기가 흔들렸다.
--완전히 사기로 바뀌는 순간.
「상처를 입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꺼져버리는 듯이 보였던 패기가 순식간에 다시 타올랐다.
이전보다도 훨씬 위험한 균형으로, 그 힘이 고착되었다.
(.............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
(그 외에는..........방법이 없어.)
교소우의 기척을 느낀다. 미동도 없이, 그럼에도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시선.
(붙잡을 수밖에 없어.)
교소우는 움직일 수 없다. 타이키 또한, 움직일 수 없다.
(복종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령으로 복종해........)
갑자기 어둠이 움직였다. --그 기척이 느껴졌다.
밀려오던 힘이 느슨해졌다.
생겨나는, 조금의 여유.
(사령으로, 복종해.)
더욱 상대의 힘이 약해졌다.
눈을 깜박일 여유. 동시에 땀으로 흐려진 시야가 맑아졌다.
흉기를 들어올린 채 경직해버린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강한 힘을 내뿜는 두 눈은 그대로, 어둠은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떨고, 줄어들면서 거대한 공동을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도깨비로 변했다.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 여유가 생겼다. 돌처럼 굳어버린 자신의 사지를 간신히 의식했다.
「복종해.......」
어둠은 더욱 응축되며, 너무나도 거대한 소의 모습으로.
그리고 호랑이로.
그리고 큰 독수리로.
그리고 큰 뱀으로.
천변만화(千變萬化). --그 심상치 않은 힘의 증거.
이윽고 눈앞에 쪼그려 앉은 작은 개가 모습을 나타냈다.
「........사령으로 복종해........」
하늘을 가리키는 손으로 하늘을 받아들인다.
갑자기, 시야를 가로막는 힘이 사라졌다. 저항을 잃고 무언가가 똑바로 다가온다. 하늘을 받아들이는 손바닥에서 거대한 힘이 쏟아져 들어와 속박을 끊고 빠져나간다.
「요마는 복종하며, 음양은 화합하라.」
손바닥에서 음(音)의 홍수가 뇌리를 압박해 온다.
고우.향(鄕), 강(剛), 치(齒), 호(號), 업(業), 호(豪), 강(强).
음이 소용돌이치며 뇌리에 형태를 그린다.
사람. 놀다. 나오다. 바람에. 깃발, 나부끼다. 채찍, 치다, 때리다, 물. --흘러 넘쳐.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단 하나의 직감.
「복종해! --고우란(傲濫)!!!」
개가 일어섰다.
반쯤 몽롱한 상태에서 시바견(芝犬)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어둠은 다가오면서 점점 줄어들어, 갈색의 털이 나타났다.
강아지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발만 하얀 강아지.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로 그렇게 변했다.
타이키의 발치에 그것이 다가와 다시금 앉았을 때, 그것은 고국에서 보았던 시바견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고우란.」
몸을 구부리자, 강아지는 타이키를 올려다보며 꼬리를 흔든다. 손을 내밀어보자 따뜻한 혓바닥으로 손끝을 핥았다.
안아 올려 꼭 끌어안았다.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빠져, 타이키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4 -
「....믿어.....지지 않아.」
사람이 아닌 자신의 실감.
타이키는 인간이 아닌, 짐승도 아닌, 거대한---너무나도 거대한 힘의 일부였다. 그 느낌.
(난 사람이 아냐.)
기린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
(정말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기린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를 직감했다.
하늘의 일부라는 것. 그러기에 하늘의 뜻을 이해하며,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망설임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자신이 자신 이외의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겨우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틀을 한참 뛰어넘는 생물이라는 것을. 그것은 하늘과 직결되어, 미력한 자신의 껍질 안에, 거대한 힘을 쏟아 부어준다.
「저야말로 믿을 수 없소......」
갑자기 어딘가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 간신히 타이키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거기에 있던 것이 자신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당황해서 뒤돌아보자, 교소우는 바위틈에 주저앉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철을 붙잡는 기린이 있으리라고는........」
타이키는 힘이 빠진 발로 일어섰다.
지금에서야 발이 떨려와, 똑바로 걸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괜찮아요? 상처는?」
「아니........」
팔에 고우란을 안은 채, 교소우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횃불의 빛은 이미 꺼졌기 때문에, 몸을 굽혔다. 어딘가 바위틈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듯 구멍 안은 어둡긴 해도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다.
상처의 정도를 확인하려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았지만 교소우의 몸 어디에도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아파요? 어딘가 부러진 건가요?」
교소우를 올려다 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도. --어디도 상처 따위 입지 않았습니다.」
피 빛의, 의미깊은 눈빛.
「.......실례되게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타이키는 깜짝 놀라, 다음 순간 교소우의 뜻을 이해했다.
「교소우도노........」
도망가라고 강하게 말해온 순간, 교소우는 이해했다.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신이 움직이면, 반드시 타이키의 기가 흐트러진다. 흐트러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리겠지. 전신전령으로 도철을 막고 있는 기린에게, 안도할 틈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몸을 움직여서는 안된다.
절대로 기린의 기를 흐트러뜨리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계속 앉아, 기척을 죽이고 그저 타이키를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어린이가 어떤 방법으로인지, 이름을 불러 요마를 복종시키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타이키가 패기라고 부르던 것을 이해했다. 동굴 안에 가득 차있던 것을, 그 이외의 어떠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마, 타이키 역시 같은 기분을 실감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교소우는 눈앞의 어린 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타이키는 고개를 저었다.
교소우를 등으로 감싸고 있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분명히 고우란의 패기에 눌려버렸으리라.
하지만, 타이키가 꺾여버리면 교소우의 목숨도 없는 것이었다. 도망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그 담력에 감탄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교소우도노는 대단해요.......」
「그 말은 자신에게 하도록 하십시오.」
교소우는 웃으며, 타이키의 땀에 젖어 무거워진 머리카락을 쓸었다.
「훌륭했습니다. .....대국은 훌륭한 기린을 얻었소.」
타이키는 눈앞에서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올려보았다.
(난, 틀림없는 기린이었어.........)
쓰다듬어주는 손이 정말로 따뜻해서, 더욱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교소우도노는 확실하게 왕이 아냐.)
- 5 -
「에에잇, 뭐가 일어난거냐!」
테이에이는 손톱을 깨물었다. 곁에 서있던 요우카는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아직 리사이도노는 정신이 들지 않았는가!」
리사이의 종자는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었다.
새벽녘, 인요가 안고 돌아온 리사이는 의식이 없이, 그저 무참한 상처만이 있었다. 당사자인 인요는 리사이는 내려놓고서는, 상세한 설명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것만으로도 간이 떨어질 지경인 것을, 게다가 여선의 질책. 지시를 내려야할 주인은 저녁때가 되도록 전혀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리사이도노를 믿고 보냈건만, 그 리사이도노는 돌아오고 타이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 말해와도, 그저 엎드릴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만의 하나의 일이 생기면, 그 때는 그 여자도 너희들도 절대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줄 알라.」
주변의 여선들이 가시돋힌 말을 뱉었을 때, 갑자기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무슨.」
돌아보는 테이에이에게, 여선 한 명이 먼 곳을 가리켰다.
「테이에이! --추우가, 저기에!」
「.......교소우도노.」
햇빛을 받아 하얗게, 추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뒤에는 천마를 데리고 있다. 리사이의 종자가 소리를 내었다.
「히엔!」
채찍처럼 긴 꼬리를 끌며 달려오는 짐승과 히엔은, 한달음에 근처의 천막을 뛰어넘어, 소리도 내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근처에 착지했다. 기승한 교소우와, 교소우에게 안겨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여 갑자기 환성이 올랐다.
「--교소우!」
테이에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추우의 곁으로 달려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어떻게 된--」
소리지르려는 테이에이에게, 교소우가 조용하라는 듯이 가리켰다.
「타이키는........」
「주무십니다. 부디 깨우지 않도록.」
조용한 말에, 테이에이는 곁으로 조심해서 다가갔다. 걱정하고 있던 만큼의 상처도 없고 아무런 재난의 흔적도 없이, 아이는 교소우의 팔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테이에이는 간신히 긴장을 풀었다.
「.........무사하셨던가..........」
교소우는 타이키를 안고서 기승에서 내렸다.
「괜찮으시다면, 이대로 궁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전에, 뭐가 있었는지 말씀해보시오. 경우에 따라서는 용서하지 않겠소.」
교소우는 웃었다.
「공은 지치신 것뿐입니다. 케이토에 타자마자 잠들어 버리셨소.」
「.....이런 시간까지. 정오에는 돌아오시도록 부탁드렸을 터. 유감입니다.」
「죄송합니다. --궁으로 모셔도 좋겠습니까? 차마 깨울 수 없습니다. 사정은 천천히.」
「.........아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테이에이는 여선을 재촉하여 먼저 문으로 보냈다. 교소우도 봉로궁 안으로 청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입니까.」
미로를 들어서며 물었다.
「절복에 시간이.」
테이에이는 눈을 크게 떴다. 요우카를 시작으로, 등뒤의 여선들이 웅성거렸다.
「절복.........? 타이키가?」
「공 자신께, 사령을 갖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그렇습니다. 그 일은........」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국이 업신여겨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게다가 이미 공은 사령을 가지고 계시오.」
「그러면.....?」
「훌륭하게 사령으로 거두셨소. 새벽녘부터 서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만.」
테이에이는 깊게 숨을 토했다. 몇 중의 의미로 안도했다.
「그랬.........습니까. 그것도 알지 못하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융서해 주십시오.」
웃으며 남자의 팔 안에 시선을 주었다.
굉장히 피곤했는지, 정신없이 잠든 안색이 나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천천히 푹 쉬면 곧 회복하겠지.
절복을 하게 되었다면, 전변도 가능함에 틀림없다.
이것으로 이미 봉산공에게 흠은 없다. 타이키가 고민할 일도 없거니와, 그것을 달래기 위해 위로의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잘됐습니다.....」
「--과연 흑기린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도철입니다.」
테이에이는 순간 교소우를 돌아보았다.
「지금, 뭐라고?」
「도철을 사령으로 거두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여선들 사이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철은 사령이 되지 않는다. 기린이 절복할 수 있을만한 만만한 생물이 아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교소우는 안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떨어뜨린다. 깊이 잠들었는지, 속눈썹 끝까지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연히 팔괘가 딱 맞게 갖춰졌다고 해도, 평범한 기린으로서는 불가능하겠지요. .......장래를 알 수 없군요.」
「그런 실례되는.」
「기분을 거슬렸다면 사과드리겠소.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단지, 그만큼의 힘이 있으면서도 자각이 없다는 것이 불안한 느낌이 듭니다.」
테이에이 역시 눈썹을 찌푸렸다.
「이것을 기회로, 자신을 가지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해내신 것 같습니다만, 지킬 것이 없을 때에는 필사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위험하게 생각됩니다.」
「예에.......」
「그만큼의 힘을 가진 것치고는 패기가 옅습니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이건 간에,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면서도 불안합니다.」
「걱정은 없습니다.」
「그러시다면 좋겠지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대국의 백성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한 오랫동안 봉산에 계시는 것이 공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테이에이는 뚫어져라 교소우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도리를 알고 있다. 천계가 없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교소우는 안고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훌륭한 기린이로다. ........분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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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10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0 장
- 1 -
「리사이도노, 몸은 어떠세요?」
타이키가 천막 안쪽을 들여다보자, 누워있던 리사이가 몸을 일으켰다.
「--공.」
종자는 최소로, 긴 여행이므로 이동할 것을 고려해서 천막은 절대로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부의 시설도 극히 간소해서, 간신히 필요한 것만을 갖추고 있는 정도였다. 단, 봉산은 기후가 좋다. 어쨌거나 안의 상태가 보이지만 않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얇고 가벼운 천으로 세워진 천막은 그런 만큼 꽤나 넓었다.
그 천막 안쪽, 마찬가지로 간소한 침상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리사이는 상의를 어깨에 걸쳤다. 타이키는 그것을 말렸다.
「그냥 쉬세요.」
그렇게 말하며 타이키는 천막 안에 있던 시종에게 물병을 건네었다.
「오늘은 여선의 심부름으로 왔어요. --이것을.」
리사이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의복을 정돈하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시종이 권하는 대로 리사이의 곁에 앉아, 타이키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처는 좀 어떠세요?」
「보내주신 선수(仙水) 덕분에 완전히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잘됐다.」
숨을 내쉬면서 말하고서,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흉터가 안 남으면 좋겠네요.」
리사이는 웃었다.
「그렇게 신경쓰지 마십시오. 선수도 마신데다가, 원래부터 저는 선인(仙人) 부스러기이니 대단한 상처로 보여도 별 일은 없을 것입니다.」
타이키는 리사이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깜박였다.
「.......선인, 이세요? 리사이도노도?」
「주후사(州候師)라도, 장군이 되려면 선적에 들어 선인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후의 곁에서 모실 수 없으니까요.」
「왜요?」
이번에는 리사이가 놀랄 차례였다.
「모르셨습니까? 주후도 인간이 아닌 신선이니까요. 주후의 성에는 선인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고, 원래 주후는 굉장히 장수하기 때문에 곁에서 모시는 자들도 평범한 사람이어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리사이는 말이 막혔다. 이 기린이 바로 얼마 전까지 봉래에서 자랐다고는 들었지만, 봉래에는 선인이 없었던 것일까.
「신선에게는 본래 수명이 없습니다.」
「그런 건가요?」
리사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공도 신선의 한 명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도, 에요?」
「그렇습니다. 애초에 왕은 신적(神籍)에 드는 분, 일단 왕이 되면 나이를 먹지도 않거니와, 왠만한 일이 없는 이상 죽는 일도 없습니다. --적어도, 병으로 죽게 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랬나요?」
「기린도 신적에 드는 생물입니다. 왕가 마찬가지로 나이도 들지 않고, 병도 없습니다. 상처도 잘 입지 않고, 왠만한 일로는 죽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린만이 걸리는 병이라는 것은 있습니다만.」
타이키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서, 한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럼, 난, 이대로 나이를 안 먹는 건가요?」
「어른이 되고 나면,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건.......좀 이상해요........」
「여선들도 늙거나 병들지 않기 때문에, 가르쳐 드리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그런 것입니다.」
「하아.」
「선인은 왕이 임명합니다. 보통, 왕의 곁에서 모시는 자들이나 주후, 주후의 측근은 전부 선인입니다.」
「임금님만 오래 살아도 안된다는 거네요.」
리사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이유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선에게는 늙음도 질병도 없습니다. 하오나, 그것은 선인으로 있는 동안 뿐입니다. 신적과는 달리, 선적은 출입이 가능합니다. 선인이 되거나, 선인을 그만두는 것이 가능합니다.」
「선인을 그만두면, 보통 사람처럼 나이를 먹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스스로 그만두는 자는 그다지 없지만서도. 예를 들자면 저처럼 장군직을 맡아 선적에 들어간 자는, 장군을 그만두거나 사직당하게 되면 선적을 반납하게 됩니다. 그렇게, 왕에게서 선적을 받고, 왕 밑에서 일하는 선인을 지선(地仙)이라 합니다만.」
「헤에.......」
「그 외에--스스로 선인이 된 자들이나 왕에게 임명받았어도 특별히 왕을 위해 일하지 않는 자, 그런 선인을 비선(飛仙)이라고 합니다. 봉산의 여선은 비선입니다.」
「그랬던 건가......」
그렇게 말하며 타이키는 숨을 토했다.
「전에, 테이에이에게 나이를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테이에이는 기억 못한다고 했어요. 어쩌면, 정말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산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리사이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니까, 저의 몸도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튼튼하니까요.」
「잘됐다.」
「저따위보다, 공은 어떠십니까? 이제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완전히. 전 피곤했던 거랑 조금 피를 보고 놀랐던 것뿐이니까요. 정말은 훨씬 빨리 문병오고 싶었지만, 여선이 내보내주질 않아서요.」
「..........면목이 없습니다.」
부끄러워하며 몸을 수그리는 리사이의 얼굴을, 타이키가 바라보았다.
「리사이도노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기린이라서 그래요.」
「.........아닙니다.」
리사이는 고개를 저으며,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황해를 얕보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요마들 중에는 도저히 리사이 정도의 솜씨로는 대적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중간한 솜씨만을 믿고, 왠만한 요마라도 벨 수 있다는 자신만 가지고서, 방심을 해버렸다.
--그리고 같은 장군직을 하사받은 자로서, 교소우에 대한 고집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장소라고 어딘가에서 알고 있으면서도, 주저하며 근성없는 자라고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정말로 리사이도노 때문이 아니에요. 그런 곳에 도철이 있다니, 아무도 알 수 없었던데다가 리사이도노는 자신을 방패로 저를 도망시키려고 하셨잖아요. 게다가 그 덕분에 사령을 거둘 수 있었어요.」
리사이는 열심히 말해오는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공은 다정하십니다.」
「정말이에요.」
진지한 얼굴로 말해오는 타이키에게, 리사이는 미소지었다.
「그보다도 선수를 가져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어떻게든 중일에는 하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이키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
「.........하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리사이는 여선들처럼 봉산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안합일은 추분, 황해의 남동쪽에 있는 영곤문(令坤門)이 열린다.
역산해보자, 리사이가 봉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반달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리사이의 천막을 나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걸어가던 발을 멈췄다.
(그리고----)
- 2 -
「왜 그러십니까.」
어깨에 손이 얹혀져, 제정신으로 돌아와보니 교소우였다. 무의식중에 언제나 다니던 길을 걸어온 듯 하다.
「아아......교소우도노.」
--그리고, 교소우도 역시, 그정도밖에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굉장히 타이키를 동요하게 했다. 리사이도--교소우도 산을 내려가 버린다.
얼을 빼놓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워져, 타이키는 무리하게 웃다가 문득 눈썹을 찌푸렸다. 교소우가 검은 갑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봉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추우를 사냥하러 나갔을 때, 그밖에는 몸에 걸친 적이 없는 것이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왜 그러십니까. 복잡한 표정을 하고 계시는군요.」
타이키는 일순, 우물거리다가 숨을 토했다.
「추분까지 한 달밖에 안 남았구나, 싶어서.....」
아아, 교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솜씨에 자신이 없는 자들은 모여서 내려가려고, 하산일을 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그런가요.」
타이키는 다시금 교소우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갑옷까지 걸치고.」
「아아, 이것은--」
말을 꺼내며, 교소우는 타이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침 만날 수 있어서 잘됐습니다. 저는 지금 하산하겠습니다.」
「-----에..........?」
타이키는 망연한 표정으로 교소우를 바라보았다. 피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 말은 충격적이었다.
「리사이도노에게 인사를 드리려 생각하고 있던 차입니다.」
「...........지금...........?」
교소우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중에 추우를 찾을 생각이므로. 동행하고 싶다고 말해오는 자들도 몇 명 있습니다. ....어쩌면 이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만나뵐 수 있어서 잘되었소.」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교소우의 천막은 없었고, 기승을 묶었던 말뚝도 뽑혀져 땅은 평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런 시간에.....말인가요?」
「이번에는 말이 함께니까,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밤까지 황해에 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밤의 황해는 위험한 것은.」
교소우는 일어서며 웃었다.
「밤이 아니면, 추우도 잠들어 버립니다. 사냥을 할 생각이라면 밤에 여행을 하지 않으면.」
그런 위험한, 이라고 생각하며 곧 교소우가 추우를 잡는데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몇 번이고 그렇게 황해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케이토를 잡을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시네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럼, 또 안합일때에 오시나요........?」
「돌아갈 때에 잡을 수 없다면.」
타이키는 그것을 말하려다 망설이며, 결국 입에 올려버렸다.
「--그럼, 봉산에 들러주실 수 있을까요?」
교소우는 잠시 타이키를 바라봤다.
「그것은 안되겠군요. 봉산에의 승산은 한 번 밖에 허락되지 않습니다.」
말을 꺼내고서는, 조금 웃었다.
「우선, 봉산에 들러서는 안합일 동안에 왕복할 수 없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한 대답이었다. 질풍과도 같은 케이토의 발로도 황해의 심부까지 왕복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리라. 정오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 들어와, 하룻밤 내내 사냥을 하다가 달려 돌아가 아슬아슬하게 폐문 직전에 도착하는 것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교소우도노는 왕사의 장군이니까, 또 만날 수 있겠네요.」
타이키는 교소우를 올려다보고 간신히 웃었지만, 교소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감입니다만.」
「--에?」
「왕사에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선적을 반납하고, 대를 떠날 테니까요.」
타이키는 무의식중에 양손을 꽉 쥐었다.
「.......왜........요?」
「저는 수치를 입는 것에 익숙치 않습니다.」
타이키는 눈을 크게 뜨고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특별히 공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오. 왕의 그릇이 아니었다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신경쓰지 마십시오. 저같은 자라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는 기특한 나라도 있습니다. 어차피 무인이니, 이제와서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타이키는 교소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제 만날 수 없는 거네요.」
「아마도.」
교소우는 웃음을 띄운 채였다.
--그는 조금도 타이키와 헤어지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는 거라고, 느꼈다. 타이키가 지금까지 자고 있었다면, 인사도 없이 하산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선택받지 못했으니, 어슬렁거리며 봉산에 머무르다가 미련이 많은 인간이라고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큰 손으로 가볍게 타이키의 머리를 두드렸다.
「왜 그런 얼굴을 하십니까. --공이 신경쓰실 일이 아니오. 뭐, 저처럼 우쭐해있던 자에게는 좋은 약입니다. 이걸로 조금은 겸허해 지겠지요.」
교소우가 웃었기에, 마주 웃으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교소우도노, 라고 말을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교소우는 그에 손을 들어 답하며, 타이키를 향해 절을 했다.
「리사이도노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네....」
리사이의 천막을 방문한 교소우가, 곧 돌아왔다. 타이키는 그사이, 돌을 삼킨 것처럼 그 자리에서 한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을 소중히 하십시오. 치세가 영원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교소우는 케이토의 곁에 서서 말했다.
--이별의 말이다. 타이키가 고개를 끄덕이면, 교소우는 그대로 고삐를 쥐고 기승하여 이곳을 떠나간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하지만 멈춰세울 방법이, 타이키에게는 없다.
「그럼.」
교소우는 절을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타이키는 그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돌아봐주지는 않을까.
바랬지만, 교소우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리사이라면 매달리는 아이를 떨쳐내지 못하고, 분명 하루 더, 하루 더 머물다가 안합일이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봉산에 머물러 주겠지.
하지만 교소우는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주변의 기승과 맞춰, 케이토는 천천히 발을 움직이며 떠나갔다.
교소우는 전송하고 있는 이를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 3 -
달이 떴다.
옅은 장막을 통해, 침상 안까지 달빛이 들어온다.
야영은 위험하지 않을까. 아니면, 하룻밤 내내 추우를 쫓아서, 새벽이 되어서야 야영을 하는 것일까.
「..........잠이 안 오십니까?」
산시가 물어와, 타이키는 무의식중에 산시의 털을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리사이도노는, 조금 더 계실 겁니다.」
「........응.」
그것은 조금도 타이키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침상에서 구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산보하고 오면, 안될까?」
「밤에는 안됩니다. 밤의 황해는.」
간파당하고서, 타이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여행도 위험하겠지.」
「아마도.」
또 도철같은 요마가 나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황해 안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들었다. 게다가 교소우들은 수가 적다.
「고우란.」
왜 그러십니까, 라는 목소리는 침상 아래에서 울렸다.
고우란의 목소리는 굵고 낮다. 처음에는 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있던 고우란이었지만, 최근에는 특별히 타이키가 바라지 않는 이상 크고 붉은 개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교소우도노를 영곤문까지 데려다주지 않겠어? 무사히 닿을 수 있도록.」
「안됩니다.」
대답은 깨끗하게 잘라 돌아왔다.
「타이키의 곁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내 부탁이어도.........?」
「지금은 무엇보다도 타이키의 무사가 우선합니다. 교소우가 왕이라면 모르겠지만.」
........또야, 라고 타이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교소우를 붙잡을 방법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를 돌아보게 만들 방법도, 무사히 사문까지 여행하게 해줄 방법도, 모든 것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교소우가 왕이 되면 되는 것이다. --왕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왜 천계가 없었던 것일까.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건.)
울고 싶은 기분이 된 순간, 그것은 조용히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건, 기린밖에......알 수 없어.)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가, 당황해서 굳게 눈을 감았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졌다.
(왜 이러는 거야.)
그런 짓을 생각해버릴 정도로, 교소우와 헤어지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이 놀라왔다.
리사이가 좋았다. 그녀가 왕이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리사이 역시 하산한다는 사실은 타이키를 이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다.
조용히 일어섰다. 굉장히 심하게 무언가에 쫓겨, 가만히 누워있는 일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타이키.」
「잠깐 나갈 뿐이야.」
잠옷 차림으로, 멍하니 궁의 계단에 앉았다.
봉산의 기슭까지, 길은 하나밖에 없지만 황해에 나가면 길은 무수하게 많다고 했다. 어쩌면 기승을 사냥하면서 여행하는 것이니, 교소우들은 일부러 길에서 떨어져 있을 테지. 일행이 황해에 들어가 버리면, 발견하는 것마저 곤란할지도 모른다.
그는 위험한 황해를 건너, 사문에 닿는다. 안합일을 기다렸다가 금강산의 바깥으로 나간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두 번 다시 쫓아갈 길은 없다.
대국에 돌아간 그는 왕사를 사직하고 대를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 소식을 찾을 방법이 타이키에게 있을 것인가.
..........설령 만난다고 하더라도.
타이키는 교소우를 선택하지 않았다. 교소우는 대국을 떠난다. 그렇게 되면 교소우에게 있어서 타이키는 가치없는 열 살의 꼬마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의 운명을 맺고 끊는 데에 두려울 것이 없는 그는, 가치없는 것은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을테지.
그것은 사별에 가깝다.
한발 봉산을 떠날 때마다 교소우는 타이키를 잊어간다. 교소우와 자신을 연결하는 것은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며, 사문이 열렸다 닫히는 순간 끊어져 버린다.
타이키는 일어섰다.
- 4 -
「타이키.」
멍하니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타이키가 갑자기 일어나자, 산시는 당황해서 팔을 뻗었다. 달려나가는 몸을 끌어안았다.
「안됩니다, 밤은--」
낮이나 이른 아침과는 비할 바가 안된다. 시간은 심야를 지나 생기로 막 전환했을 뿐, 지금부터 요마는 더욱 활발해진다.
「안됩니다, 타이키.........!」
타이키는 산사의 손을 빠져나간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교소우와 결별하는 것만큼은, 견딜 수가 없다.
「---왜 그래, 산시?」
로천궁에서 요우카가 얼굴을 내밀었다. 몇 명의 여선이 그 등뒤에서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선과 산시와 고우란. 아무리 달려도 반드시 붙잡힌다. 알고 있으면서도, 타이키는 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시는 도약하여, 도망가는 아이의 앞에 내려섰다. 어떻게 해도, 밤의 황해에 나가게 할 수는 없다.
리사이의 상처와, 고우란의 몸에 스민 피 때문에 오랫동안 앓아 누워, 막 간신히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기력도 쇠퇴한다. 지금 요마와 만나도, 절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동시에, 주인의 힘이 약해지면 사령의 힘도 약해진다. 산시도 고우란도, 이미 그럴 만큼 타이키과 연결이 깊다. 산시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작은 요마라면 어쨌거나, 고우란 정도의 요마와 만나면, 이 기린을 도망시키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필사적인 마음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몸을 끌어안고 붙잡으려 했다.
「타이키.」
--피했다.
산시는 허공을 끌어안은 자신의 양손을 보았다. 확실하게 붙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낭패하며, 바로 뒤돌아서 팔을 뻗었다. 타이키의 손을 붙잡으려고 하던 손은 또 다시 허공을 붙잡았다. 아이는 그저 앞뒤없이 도망가는 것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도, 붙잡는 것이 불가능했다.
--똑같다, 라고 산시는 기억해냈다.
고우란을 붙잡았던, 그 때와 똑같다. 뭔가의 함정에 걸린 것처럼, 어떻게 해도 타이키를 붙잡을 수가 없다.
--왜.
간신히 자신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했을 뿐인, 어리고 무력한 기린에 지나지 않는데.
「고우란!」
산시의 목소리에, 바위그늘에서 뛰어나온 짐승이 타이키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좁은 길을 완전히 가로막은 짐승을, 어떤 마술이라도 부렸는지 타이키는 피해냈다.
다시 한 번 도약한 산시는 아이의 정면을 막아섰다. 안아 세우려 하는 팔을 피해나가, 간신히 팔을 붙잡았으나 그것마저 빠져 나가버려, 간신히 잠옷을 붙잡았다.
「타이키, 부탁입니다, 밤은--------」
산시가 말을 잊었다. 쫓아오던 여선도 마찬가지로 입을 벌리고 발을 멈추었다.
산시가 붙잡은 잠옷은 스르륵 저항을 잃고 손 안에 남겨졌다.
「아........」
무심결에 소리를 내며,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드는 여선의 시선을 쫓는다.
달밤, 기암은 어둡고 그림자의 색 또한 검다. 테두리만이 희미하게 은색인, 그 기암의 틈. 인광을 발하며 밤하늘을 달려가는 짐승이 보였다.
「타이키.......」
아직 짧은 갈기는 강철 빛.
검은 색 바탕에 은과 운모가 흐트러진 듯한 등, 칠흑의 다리, 칠흑의 머리.
이마에는 짧은 진주빛의 뿔.
--쫓아가지 않으면.
산시는 손안에 남겨진 잠옷을 꽉 쥐었다.
하지만, 전력으로 질주하는 기린을 뒤쫓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 5 -
타이키는 그저, 달리는 것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고우란을 피하고 산시의 손을 빠져나와, 그저 달리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그에 힘입어 몇 걸음을 달리다가, 마침내 자신이 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변한 자신을 깨닫기까지 세 걸음, 돌아보자 이미 로천궁은 저 먼 뒤쪽에 있었다.
위화감도 고통도 없었다. 앞으로, 라고 바라자 사지가 그에 응하여 질주했다.
보도궁까지는 그로부터 세 걸음, 승산한 자들이 밝혀놓은 횃불의 불빛은 물기를 머금은 듯이 꼬리를 끌며 멀어져 갔다.
최초로 그것을 깨달은 것은 추우였다.
교소우는 기승을 바라보았다. 달이 떠있는 동안 사냥을 하려고, 안장의 준비를 하고 있던 손을 멈추었다.
「왜 그러지?」
추우는 하늘의 한 쪽을 올려다보며, 낮게 목을 울리고 있었다.
처음엔 요마의 습격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추우의 상태에 긴장은 보이지 않는다.
눈썹을 찌푸리며 추우의 시선을 쫓아, 교소우도 그것을 발견했다. 달을 등지고 달려오는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짐승.
--흑기린.
감탄과 동시에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미련을 두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하산했던 것이다.
일어나 나온 자가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기린은 반딧불처럼 빛의 꼬리를 끌며 야영지를 내려다보는 바위 위에 내려섰다.
그곳은 관목과 바위로 뒤덮인 막다른 곳이었다. 횃불이 다섯 개 밝혀진 안쪽으로 천막과 기승과, 망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것은..........훌륭한 기린이로다.」
처음으로 말을 한 것은 교소우였다. 웃으며 말하고서, 안장을 땅에 내려놓는다.
「어쩐 일이십니까, 공. 일부러 전송해주시는 것입니까?」
타이키는 주저하며, 바위를 내려와 막다른 곳에 섰다. 자신이 죄를 지으려 한다고 자각하고 있었다.
「무사히 전변하셨군요.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둘도 없는 귀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공답지 않으시오.」
대답 따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령이 있다 하더라도, 부주의가 지나치십니다. 빨리 궁으로 돌아가십시오.」
타이키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서, 교소우는 짐 속에서 포를 꺼냈다.
「--아니면, 무언가 용무가 있으십니까?」
포를 펼쳐주었기에, 타이키는 짐승의 모습을 풀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 돌아가는지는 이미 막연하나마 알고 있었고, 실제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 것뿐이다.
포를 두르고서 교소우를 올려다보았다. 마주 바라보는 눈은 왠지 맹렬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무서운 것은 자신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 하는 것인가.
「.......교소우도노.」
(.........천계가 없는데도.)
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타이키는 무릎을 꿇었다. 교소우가 눈을 크게 떴다.
「--공.」
머리를 숙인다. 깊게. --깊게. 마치 용서를 청하듯이.
「..........곁을 떠나지 않으며.......사명에 등돌리지 않고...충성을 다할 것을..」
이것은 배신이다. 섭리에 대한, 여선에 대한, 왕에 대한, 아니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서약합니다.........」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건데도.........!)
교소우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시선이 아프도록 쏟아져오는 것을 타이키는 느꼈다.
지금이라면, 아직 되돌릴 수 있다--그렇게 생각한 순간에, 깊고 조용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왔다.
「--허락한다.」
이미 돌이킬 길도 없이, 타이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쓰러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이 무슨 배신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자애를 쏟아부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나라와 왕과 국민과, 교소우 자신에 대한 변명할 길 없는 거짓말.
그 발등에 이마를 대었다. 죄의식에, 눈앞이 새까매졌다.
--돌이키고 싶어.
이런 것은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외쳐버릴 것만 같다.
거의 목구멍까지 치달려 올라온 외침을 가로막은 것은, 부유감이었다.
교소우의 손이 타이키를 안아 올렸다. 놀라서 그를 바라보자, 자랑스러운 듯한 교소우의 웃음이 있었다.
「감사하오, --타이키!」
대답할 틈도 없이, 주위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교소우는 타이키를 안아 올린 채 주위를 돌아보았다. 더 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게 주위를 돌아보고서, 타이키를 향해 활짝 웃었다.
「자네는 어리지만 사람 보는 눈이 있군.」
곧바른 시선을 받아내지 못하고 눈을 돌린 곳에, 달려온 산시의 모습이 보였다.
←
↑
→
그는 위험한 곳으로 떠난다. 대치하는 조직 한가운데로, 아무런 안전의 보장도 없이 가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두 번 다시 쫓아갈 길은 없다.
무사히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다시는 타이키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소식을 찾을 방법이 타이키에게 있을 것인가.
..........설령 만난다고 하더라도.
쿄우는 스스로 타이키에게서 떠나갔다. 타이키에 대해 그가 품고있던 감정을 떨쳐버린 지금, 그에게 있어서 타이키는 가치없는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의 운명을 맺고 끊는 데에 두려울 것이 없는 그는, 가치없는 것은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을 테지.
이것은 사별이나 다름없다.
한걸음 멀어질 때마다 쿄우는 타이키를 잊어간다. 쿄우와 자신을 연결하는 것은 점점 희미해져 가다가, 어느 순간 끊어져 버릴 것이다.
타이키는 일어섰다.
(중략)
「무슨 일이야, 타이키? 일부러 전송해주는 거야?」
타이키는 주저하며, 지하주차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자각하고 있었다.
「뛸 수 있을 만큼 회복했구나. 다행이야. 하지만...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 건 고맙지만 너답지 않은걸.」
대답 따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회복했다고 해도 아직 환자잖아. 빨리 입원실로 돌아가.」
타이키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서, 쿄우는 입고 있던 양복의 상의를 벗었다.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이라도?」
양복을 펼쳐주었기에, 타이키는 환자복 위에 그것을 걸쳤다. 그리고서 쿄우를 올려다보았다. 마주 바라보는 눈은 왠지 맹렬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무서운 것은 자신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 하는 것인가.
「.......쿄우.」
(.........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타이키는 쿄우에게 매달렸다. 쿄우가 눈을 크게 떴다.
「--타이키.」
그 품에 얼굴을 묻는다. 깊이. --깊이.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어린아이처럼.
「..........가지마. 제발.......나, 뭐든지 할 테니까.」
이것은 그에게 배신을 강요하는 것이다. 조직에 등돌리는 인간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인지, 민간인인 타이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널 좋아해........」
(이래서는 안 돼.........!)
쿄우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시선이 아프도록 쏟아져오는 것을 타이키는 느꼈다.
받아줄 리가 없다. 분명, 떨쳐내 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다. 농담이라고 말하는거야---그렇게 생각한 순간에, 깊고 조용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왔다.
「--고마워.」
죄송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야오이 버젼 십이국기입니다.(;) 죄송해요...하지만 이 대주종, 어지간히도 절 자극하는군요.; 흐트러진 환자복을 치우고 저대로 주차장 내 카 **씬이라던가.....하는 소리는 관두겠습니다.(;;)
요즘 환자가 늘었습니다.; 좋은 일이긴 한데, 그만큼 푹 마음놓고 번역할 시간이 줄어드는군요. =_= 드라마시디를 듣다가도 좋은 장면(;)에서 환자 난입! 이라던가(이어폰으로 듣고 있다) 야오이버젼 십이국기를 쓰다가도 표정이 흐트러지는 것을 애써 감춘다던가........환자는 모릅니다. 자신을 진료하고 있는 의사가 바로 5초 전까지 어떤 물건을 듣고 있었는지.(묵념)
하야미상이 출연하시는 일본어 타이핑 프로그램을, 말 그대로 열나게 쳐대고 있습니다. 프리셀보다도, 지뢰찾기보다도 저에게 있어서는 중독성이 강합니다. 하야미상의" 서두르지 마!""굉장한걸?!""그래, 그거야."등등등등의 추임새를 들어가며 또 치고 또 치고 또 치고 있습니다. 실은 통신 초기에 키보딩에 나쁜 버릇이 들어서요. 키보드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면서 치는 버릇입니다. 이것이 붙어있는 한은 아무리 노력해도 타이핑 속도에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프로그램 자체도 참 잘만들기는 잘 만들었더군요. 과연 3년 연속 우수 소프트웨어 수상작. 현재 일본어 가나를 로마자입력방식으로, 키보드 안보고 두다다다다다다 치면서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상큼발랄한 목소리라니! ㅠ_ㅠ
왠지 자랑하는 듯한 얘기가 되어 버리지만, '국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왠지 묘한 고양감 및 외로움을 안겨줍니다. 이 하야미상의 타이핑 프로그램이 그렇고, 하야미상이 출연하시는 해양생물 가이드 시디가 그렇고, 토모마사도노의 등신대 포스터가 그렇습니다.(이건 보관용 하나와 사용용 하나를 사왔으므로, 합해서 국내에 2개 있을 것으로 추정됨) 구와바라상의 직필 사인이 있는 미라쥬 20권도 그런 셈인가요. 한없이 기쁘고 자랑스럽고 기분좋으면서도, 이것에 대해 얘기할 상대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외롭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에도 다섯 번 이상, 저 토모마사님 포스터에 달라붙어서 부비부비 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는 뿌듯한 기분은 그것을 가지고 들어올 때의 고생을 모두 날려주고도 남을 만한 기쁨입니다. ......부정할 길 없는 오타쿠죠.(苦笑)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11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1 장
- 1 -
--왕이었던가.
산시는 교소우의 발에 이마를 대는 타이키를 보고, 그렇게 납득했다.
그녀는 타이키가 교소우에 대해, 뭔가 두려움 같은 것을 품고있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확실히 교소우에게는 잘 따르고는 있었지만, 원래부터 남을 잘 따르는 성격의 아이였기에 그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따른다고 하자면, 리사이에게는 교소우 이상으로 잘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그럼에도 타이키가 교소우에게 얽매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이키의 기척--그것은 지금도 금색의 빛으로 산시의 눈에는 비친다--을 쫓아 황해까지 달려오면서, 산시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왜, 도망가는 타이키를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일까.
왜, 갑자기 저 기린은 전변했던 것일까.
막연하게 도달한 해답은, 「의지」였다. 완고하게 자신의 행동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뭐가 어떻게 되던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힘.
--그것이 타이키를 붙잡으려고 하는 산시의 손을 무의식적으로 물러나게 하고, 오늘까지 불가능했던 전변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문제는, 왜 교소우가 연관되어 있을 때에만 타이키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의지의 힘을 보이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심지어 심약해 보일 정도로 패기가 약한 기린이다. 그것이 뭐가 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타이키에게는 심하게 자신을 가볍게 보는 성벽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도를 넘어서, 혐오라기보다도 비굴에 가깝게 생각될 정도였다.
그 기린이, 왜 하필이면 교소우가 연관되어있을 때에만, 저렇게나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일까. 산시에게 있어서 타이키의 안전 이상으로 중요한 것 따위는 있을 리가 없는데, 그 산시의 손을 멈추게 할 정도의, 도철을 사령으로 복종시킬 정도의, 최초의 전변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의지의 힘을 발하는 것인가.
그것이, 타이키가 실제로 숨기고 있던 힘 때문이진,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 산시로서는 분간할 수 없었다.
은복해 있었으면 타이키의 그림자에 숨어서 어디까지건 함께 따라갈 수 있을 것을, 공연히 타이키를 말리려고 모습을 나타내었다가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를 악물며 고우란과 함께 바위산을 달려, 봉산의 기슭에서 마침내 주인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서, 이해했다.
--타이키는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힘을 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타이키는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교소우가 왕이었기 때문에.
산시가 막다른 길을 향해 바위터를 내려가자, 타이키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겁먹은 듯한, 궁지에 몰린 듯한 표정으로 보였다.
그에 미소지으며, 산시는 자신의 모습을 녹여 타이키의 그림자 속으로 섞여들어 갔다.
교소우가 왕이었다면 왜 타이키가 교소우에 대해 그렇게나 겁먹었던 것인지, 왜 지금껏 교소우가 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는지 석연치 않은 점이 남지만, 타이키를 따라잡을 수 있었으므로 이미 어떻게 되건 상관없는 일로 생각되었다.
결국, 산시에게는 타이키 이상으로 중대한 일은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교소우 일행이 봉산으로 돌아오자, 보도궁 앞에 안색이 새하얘진 여선들이 모여있었다.
「타이키.....! 걱정했습니다.」
케이토에서 교소우에게 안겨 내린 타이키를 보고, 제일 먼저 요우카가 달려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교소우도노도.」
교소우는 그에 대해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 대신에 교소우의 시종이 소리높여 외쳤다.
「공은 주군을 쫓아오셨소!」
보도궁 주위에 모여있던 사람들에게서 웅성거림이 일다가, 그것은 마침내 환성으로 바뀌었다.
요우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교소우와 그 교소우에게 이끌려 어딘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타이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주군......... 그러면.」
요우카는 무릎을 꿇었다.
「천계가 있으셨습니까.」
타이키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기쁨의 소리가 주위의 시종들에게서 오르며, 어딘가에서 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약을 마치셨습니다.」
산시의 목소리였다.
요우카는 놀란 듯이 입을 벌렸다. 크게 뜬 눈을 테이에이에게 향하자, 테이에이는 위엄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을 꿇고, 양손을 짚으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주위의 여선이 테이에이를 따랐다.
「경하드립니다, 교소우사마.」
타이키의 어깨에 손을 두른 인물은, 웃음을 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에이는 평복한 채로 말했다.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치세가 영원하기를 기원합니다. ...........태왕(泰王)과 태 타이호(泰台輔).」
--타이키의 죄는 확정되었다.
- 2 -
갑자기 교소우 주종의 거처는 봉로궁 안으로 옮겨졌다.
교소우가 체류하는 것은, 바깥에 가장 가까운 단계궁(丹桂宮)이었다.
봉로궁 안에서 가장 큰 이 궁에서, 천칙을 받기 위해 길일을 기다리는 것이 예로부터의 관례였다.
이후, 교소우에 대한 여선의 대우는 일변했다. 그는 이미 여선의 주인인 타이키의 주군이다. 절대로 소홀하게 대할 수 없었다.
많은 여선이 교소우 일행을 모시기 위해 단계궁으로 옮겨왔다., 기상에서 취침에 이르기까지, 교소우 주종의 시중은 모든 것을 여선이 맡는다.
그것은 극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변화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교소우에게 경의를 요구하던 상대가, 지금은 교소우에게 예를 표한다.
이미 교소우는 여선 중 누구에 대해서도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었고, 봉산공에 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한 발 봉로궁 밖으로 나가면, 어제까지의 동료가 머리를 조아리며 절한다.
--교소우는 지고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리사이가 간신히 축하인사를 하러온 것은, 길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벌써 일어나도 괜찮은가?」
「주상께서 걱정해주실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리사이는 평복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타이키를 향했다.
「타이호에게도 경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리사이는 그 생기를 잃은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례입니다만, 타이호는 어딘가 안 좋으신 것입니까?」
그 질문에, 아이는 불안한 듯한 웃음을 옅게 띄웠다.
「아뇨.........타이호라고 불리는 것이 묘한 기분이에요.」
리사이는 웃었다.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네.......」
불안해하는 타이키에게 웃어주고, 리사이는 교소우를 우러러보았다.
「실은, 축하와 동시에 작별을 고하러 왔습니다.」
교소우는 조금 눈썹을 찌푸렸다.
「벌써 하산해도 괜찮은 것인가?」
「예, 덕분에. 조금 불안한 점도 있기 때문에, 내일 하산하는 무리와 함께 내려갑니다.」
교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잘되었군. 모쪼록 무사히. --대에서 다시 만나세.」
「예, 감사합니다.」
짧은 회견 뒤, 단계궁을 물러나려는 리사이를 보면서, 타이키는 교소우를 올려다 보았다.
「리사이도노를 배웅해도 괜찮을까요?」
교소우는 웃었다.
「다녀오게.」
그렇게 말하고서, 교소우는 손을 들었다.
「--아아, 리사이.」
「예?」
「금군에서 장군이 한 명 빠지게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교소우의 질문에, 리사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빠진 채로 놔둬서는 안되겠지요. 제장(諸將)의 공적과 덕을 비교하여, 사사로움없이 발탁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교소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가시게, 라고 리사이를 눈으로 재촉했다.
리사이는 절을 하고 궁을 떠나갔다. 타이키가 그 뒤를 쫓아갔다.
- 3 -
「리사이도노는 금군의 장군이 되고 싶지 않으세요?」
타이키는 리사이와 둘이서, 기암 사이의 길을 걸었다.
「되고싶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저 이상으로 걸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에게 시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리사이도노는 훌륭하시네요.」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왠지 침울하게 고개를 숙인 타이키의 얼굴을 리사이가 바라보았다.
「정말로, 왜 그러십니까? 기운이 없으시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저히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고민이라도?」
다시금 묻자, 타이키는 리사이를 올려다보았다.
「리사이도노는, 교소우사마가 왕이 되셔서 기쁘세요.......?」
리사이는 눈을 깜박거리고서,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기쁘고말고요. 교소우도노라면 훌륭한 왕이 되시겠지요. .......전에도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말씀하셨어요.」
「혹시라도 교소우도노가 아닌, 제가 선택되었다면 석연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국의 왕이, 불평없이 존경할 수 있을만한 분이라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훌륭히 선택해 주셨다고, 공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타이키는 웃으려고 했지만, 웃을 수 없었다.
「공이 신경쓰실 일이 아닙니다. 왕은 하늘이 선택하는 것이니까.」
리사이의 위로는, 상처를 더욱 아프게 할 뿐이었다.
「--타이호는, 그다지 기쁘지 않은 듯 하군.」
리사이를 전송하고 돌아온 타이키에게, 교소우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리사이도 이상해하는 듯 했지. ...........타이호를 보고 있으면 내가 기린을 유괴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어.」
「설마......」
곁에 서있던 요우카가 웃었다.
「타이호는 봉산을 떠나는 것이 슬프신 것입니다. 봉래를 떠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게다가 이렇게 어리시니까요. 간신히 익숙해진 곳을, 다시 떠나게 되셨으니까요.」
과연, 하고 교소우는 말했지만 요우카의 말은 타이키의 가슴을 찔렀다.
봉산을 떠나는 일도, 여선과 헤어지는 일도 생각지 않고 있던 자신을 깨달았다.
교소우는 타이키를 손짓해 불렀다.
「--봉래 출생이라면 이름이 있겠군. 뭐라고 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곁으로 다가가자, 교소우는 웃었다.
「타이호라고 모두가 부르는 것은, 큰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 같아서 숨이 막히겠지. --이름은?」
「.......다카사토, 카나메(高里 要)에요.」
손바닥 위에 문자를 쓰자, 교소우는 웃었다.
「이름이 좋군. 문자 그대로 대국의 핵심이 될 것이니.」
타이키는 시선을 내렸다.
「성은 재미있군. 코우리(高里)라는 산이 봉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아니요.」
「죽은 사람의 혼백이 돌아간다고 하지. 풀 초(艸)자를 붙이면, 죽은 자가 사는 산의 이름이군. 오히려 불길해서 징조가 좋을 것이야.」
「죽은 사람이......」
중얼거리는 타이키에게, 교소우는 끄덕였다.
「사기는 곧 생기로 바뀐다. 죽은 자도 곧 산 자로 다시 태어나지. --코우리(蒿里), 네가 대국에 있어서도 그렇게, 재생을 약속하는 존재가 되도록.」
타이키는 고개를 수그렸다.
죄는 그것을 범한 자를 무한히 괴롭힌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 4 -
마침내 길일.
목욕을 하고, 예복을 걸친 타이키를, 칠흑의 의장을 몸에 걸친 요우카가 맞아주었다.
경사에는 검은색을 사용하고, 흉사에는 흰색을 사용한다. 봉래와는 거꾸로라고, 타이키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선들의 검은 옷은 굉장히 암시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불길한.
요우카는 마루에 엎드려 정식으로 예를 올렸다.
「태 타이호, 시간입니다.」
「네......」
마치 지금부터 장례식이라도 시작되는 것 같다, 고 타이키는 생각한다.
요우카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얼굴을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젯밤은 주무시지 못했습니까?」
타이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드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이제부터 타이키는 교소우와 함께 봉산의 정상에 오른다. 거기에서 천칙을 받아, 교소우는 하늘에게 인정받은 왕이 된다.
........거짓은 반드시 발각되리라.
그곳에서 어떤 의식이 행해지는 지는 알지 못하지만, 하늘이 이 죄를 넘어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교소우는 왕이 아니라고 탄핵되고, 타이키는 왕이 아닌 자와 서약을 맺은 죄를 추궁 당하리라.
어떠한 벌이 내려질지 상상도 가지 않지만, 그것은 타이키의 죄이지 교소우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 그것을 말해서, 문책이 교소우에게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결의로 머리 속이 가득해서, 잠들 수도,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요우카는 한동안 타이키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뻗었다. 타이키는 가만히 요우카의 가까이로 걸어갔다.
요우카는 타이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직 짧으시군요.」
「그래.......?」
「예. 여선의 눈이 없다고 해서, 잘라서는 안됩니다. 모처럼의 예쁜 모습이니까, 갈기가 짧아서는 아까운 것을요.......」
전변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고 깨닫고,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봤어?」
전변한 밤에는 여선들에게 보여주는 것 따위,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여선들도 타이키 자신도, 그렇게나 그것을 바랬는데도.
「예. 한없이 기쁩니다.」
정성스럽게, 정성스럽게, 요우카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교소우사마는 왕에 부족함이 없는 분. 정말로 기쁜 일 뿐입니다.」
「......기뻐?」
요우카는 눈을 깜빡였다.
「예. 조금..........쓸쓸하기는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다정한 여선. 얼마나 애정을 쏟아 부어 주었던가.
「......요우카.」
무릎을 꿇은 요우카에게 안겼다.
--이별인 것이다.
「타이키, 부디 평안하시기를.」
미안해요, 라고 이것으로 몇 번째 중얼거린다.
봉산에 오고서, 여선에게는 사과할 일 뿐이었다. 전변도 하지 못하고, 사령도 거두지 못하고, 그리고 더욱 심한 배신을 저지르고.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려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소우를 말없이 전송해 주었더라면.
그렇게 했다면 이만큼의 죄의식도, 봉산과의 헤어짐도 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요우카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잠에서 깨고, 여선들과 웃으면서 식사를 하고, 산시와 미로에서 놀면서--이제부터도, 그렇게 지낼 수 있었는데.
요우카는 한동안 등을 쓰다듬어 주고서, 몸을 떼었다.
「--자아, 가십시다.」
- 5 -
이끌려 간 곳은 봉로궁의 북쪽 기슭에 있는 운제궁(雲悌宮)이었다.
궁의 안쪽에는 붉게 칠해진 문이 잇다. 심심해서 각 궁을 돌아다니던 타이키가, 그것을 열어보았던 때에는 녹색의 암벽이 보일 뿐이었다. 그곳에 지금, 홀연히 위로 위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나 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투명한 계단 아래에 빛을 반사해 주변은 훤하다. 그 이상한 계단 뒤에 한 마리의 까마귀처럼 생긴 하얀 새가 기다리고 있다.
여선들은 마루에 엎드렸다. 문 앞에 나아간 교소우와 타이키에게, 교크요가 깊게 절했다.
「왕도 타이호도, 치세가 영원하시기를.」
교소우도 타이키도 절했다.
새에 이끌려 교소우가 한 발을 내딛었다. 갑자기 교소우의 등이 경직했다.
일순 타이키의 안색이 새하얘진 것은 반드시 벌을 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숨을 멈춘 채 지켜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교소우가 다시 한 단을 올라갔기에 그 뒤를 따라 한 발을 딛고서, 타이키는 교소우가 경직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뭔가, 전류같은 것.
발끝에서 머리끝까지를 한번에 꿰뚫는 그것은, 타이키의 뇌리에 하나의 사념을 새겼다.
--가라사대, 시초에 구주(九州) 사이(四夷)가 있다.
백성의 도리를 모르고, 천자의 도리를 알면서도 이를 가벼이 보며 공경하지 않으니. 천지의 이치를 무시하며, 인도(仁道)를 벗어나 법도를 심히 가벼이 여기어. 바람에 폐허의 연기가 일어나며 전화는 세상을 먼지로 만들며. 인마의 목숨이 지고 그 피는 강을 이루어.
천제, 이를 슬퍼하여 도를 세우고 섭리를 바로잡으려 하매, 인간은 음행을 탐하고 향락을 바라더라.
제, 비탄하며 뜻을 세우다. 내 이제 구주사이를 정리하고 모든 것을 새로이 하여, 섭리로써 천지를 창세하며 법도로 이를 열리라, 라고.
끌려가듯이 다음 계단을 올랐다.
--제, 열 세 나라를 열고, 그 중 한 나라를 황해와 봉산에 봉해, 왕모로 하여금 수호케 하다.
남은 십이국에 왕을 두고, 각각에 가지를 건네어 나라의 기반을 두다.
한 마리 벌레가 있어, 하늘을 받쳐올려 그를 지탱하다.
세 열매가 있어, 하나는 떨어져 왕좌가 되고, 하나는 떨어져 국토가 되며, 하나는 떨어져 백성이 되다.
가지는 변해서 옥쇄가 되며, 그로써 개벽을 열다.
뇌리에 쓰여지는 정보를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태강(太綱)에 이르기를, 천하는 인도로써 다스릴 것이니.
백성을 학대해서는 아니되고, 전란을 좋아해서는 아니되며, 세금을 위중히 매기고 령을 남발하여서는 아니되느니. 백성을 도구로 해서는 아니되고, 백성을 팔고 사서는 아니되며, 공공의 땅을 사사로이 비축해서는 아니되고 그를 허락해서도 아니된다. 도를 따르고 덕을 중시하라. 만민의 평안으로써 국가의 행복을 삼으라.
긴 계단을 한단 오를 때마다, 정보가 새겨져 간다.
천자의 책무. 재상의 책무. 천지의 이치와 국가의 이치, 제도의 이치. 인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예라는 것은 무엇인가. 해서는 안되는 일, 해야할 일. 세워야 할 것, 세우지 않아야 할 것.
홀린 듯이 계단을 오르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타이키는 햇빛 속에 서있었다. 문득 돌아본 등뒤에서 붉게 칠해진 문이 닫힌다. 계단의 가장 위에 멈춰선 채로 전송하는 새의 눈이 햇빛을 받아 빛났다.
문이 닫히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타이키의 귀에 소리가 되살아났다.
귀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파도 소리,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본 눈에 처음으로 비친 것은 시야 가득히 펼쳐진 푸른 바다였다.
「...........운해.」
그런 것이라고, 이미 타이키는 알고 있었다.
하늘에는 운해가 있어, 이것이 천상과 천하를 나눈다.
타이키가 서있는 것은 작은 섬 위, 등뒤에는 작은 사당이 있었고 그 붉게 칠해진 문은 꽉 닫혀져 있었다.
정면에는 돌계단, 돌계단의 위에는 장려한 사당, 섬의 주위에는 멀리 몇 개인가의 섬이 보이고, 파도에 씻겨지는 틈에 연꽃같은 꽃이 피어있다.
이제부터 뭘 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사당에 들어가 서왕모와 천제의 상에 향을 올리고, 교소우가 도를 지키며 덕을 베풀겠다고 맹세한다. 그렇게 하면 현무가 나타나, 대국의 수도인 홍기(鴻基)에 있는 백규궁(白圭宮)까지 운해를 건네어 주는 것이다.
타이키는 망연자실했다.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끝나버렸다.
뭔가의 선정이 여기에서도 행해져, 분명 타이키의 거짓말은 들통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반드시 죄를 추궁당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런 것은--없었다.
그 계단을 오르며 천자의 업과 의의를 아는 것, 그것이 천칙을 받는 행위의 전부였던 것이다.
갑자기 증가하는 죄의 무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타이키는 왕의 의미를 알아버렸다.
너무나도 무거운, 그 책무. 왕은 나라를 통치하는 것만이 아니라, 왕의 존재 그 자체가 나라를 지키는 핵심이 된다. 왕은 일국의 음양을 조정하고, 팔괘를 다스린다. 왕이라는 핵심요소가 나라의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타이키는, 말없이 무감동한 표정으로 운해를 둘러보는 주인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왕은 그 존재 자체가 국가를 수호하고 백성을 안녕하게 한다. 심하게 현기증이 들었다.
--그러면, 이 가짜 왕이 통치하는 대국의 운명은.
- 6 -
후회와 절망으로 가슴을 꽉 채우고서, 타이키는 교소우가 서약의 말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 그 때.
천하의 북동에 위치한 대국, 그 수도 홍기산(鴻基山)의 정상에 있는 백규궁의, 깊숙한 곳에 있는 이성궁(二聲宮)에서 소리가 올랐다.
이성궁은, 주인과 그 신변을 돌보는 하관 10여명 정도의 작은 궁이다. 그 이성궁에서, 돌연 날카로운 소리가 나 하관들은 깜짝 놀랐다.
날카로운 소리를 낸 것은, 궁의 주인. 주인은 한 마리의 백치(白雉)이다.
「백치--명호(鳴號)!」
하관 중 한 명이 희색을 만면에 띄우고, 큰 소리를 지르며 궁을 뛰어나왔다.
「일성(一聲) 명호!」
소리가 들리는 곳에 소란이 일었다. 그것이 왕궁 전체를 뒤덮는 환성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백치는 일생에 두 번 밖에 울지 않는다. 그 울음소리도 짧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백치를 두고 이성(二聲)이라고도 부른다.
최초로 우는 소리가 「일성(一聲)」, 두 번째 우는 소리가 「이성(二聲)」이다. 이성을 발한 백치는 곧 죽어버린다. 그래서 이성을 「말성(末聲)」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일성은 「즉위」, 이성은 「붕어」. --백치는 그 생애에 단 두 번만 사람의 말로 우는 것이다.
백규궁의 백치는 10년 전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울었던 적이 없었다.
--즉, 일성인 것이다.
「백치 명호! 일성 명호!」
소리는 왕의 거처인 내전에서, 정무를 보는 외전까지 울리며, 주변은 환희의 소리로 가득찼다.
「--태왕, 즉위!!」
동시에 그 때. 동방의 경국, 수도 효천. 그 왕궁인 금파궁에서도 소리가 울렸다.
「오동궁(梧桐宮), 개문!」
관리의 말에 케이키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깊이 숙이고, 케이키가 읽고 있는 육관의 상서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던 경왕 또한 무슨 일인가 하며 고개를 들었다.
여관이 당황해서 창문을 열었다.
바로 그 때 한 마리의 새가 창으로 날아 들어와, 방에 설치된 금의 횃대에 앉았다.
「백치 명호.」
오동궁의 주인인, 봉(鳳)이었다.
오동궁에는 봉(鳳)과 황(凰) 한 쌍이 살고 있다. 암컷인 황은 타국의 황과 마음을 통할 수 있으며, 그 짝으로 수컷인 봉은 타국의 대사가 있을 때에 소리를 내어 운다.
봉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대국에 일성--태왕 즉위.」
케이키는 봉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조금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경왕 죠카크는 자국의 기린의 그 보기드문 웃음에 일순 멍해졌다.
그리고 또한, 조금 뒤.
요우카는 봉로궁의 샛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란 하늘, 봉산의 정상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한줄기의 서운(瑞雲)이 뻗어 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현무가 운해에 남기는, 이른바 흔적 같은 것이지만 요우카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멍하니 구름을 지켜보는 요우카의 곁에, 몇 명의 여선이 마찬가지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타이키........」
사랑스러운 아이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떠나갔다.
축제는 아쉬울 정도로 짧았고, 봉산에 쓸쓸한 계절이 돌아왔다.
--다음 기린이 열릴 때까지, 또 몇 년이 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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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12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2 장
- 1 -
대는 북동의 나라, 그 수도는 홍기, 하늘을 찌르는 홍기산의 정상에 현무는 도착했다. 단 하루밤 뒤의 일이었다.
현무는 작은 섬 정도의 거대한 거북으로, 봉산 정상의 사당을 나선 교소우와 타이키를 운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바위같은 머리를 기슭에 대어 주종을 자신의 등껍질 위로 안내했다. 등껍질은 바위같은 질감의 무수히 많은 돌기가 마치 봉산같았다.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목에도 등껍질에도 습기 하나 없다. 그 중앙에는 작은 궁이 하나, 전혀 사람이 없었지만 하룻밤 묵기에 필요한 준비는 완전히 갖추어져 있었다.
그 거북--이라기보다 배--로 여행하는 동안, 대국의 왕궁인 백규궁에서도 왕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거북의 끝에 서있던 타이키가 최초로 발견한 것은 험준한 모양의 섬, 가까이 다가가보자 말발굽 모양을 한 섬의 큰 만을 면해서 무수히 많은 건물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벽에는 기둥이 늘어서 있고, 난간까지는 백색, 지붕은 봉로궁의 그것보다 짙은 감색. 그것이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에 만의 수면에 비친 풍경은, 마치 상상 속의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저것이 백규궁이다. 아름답지?」
멍하니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타이키는 교소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근처가 정무를 보는 곳인 외전, 저 근처가 내전이다.」
교소우는 손을 들러 가리켰다.
「코우리가 살게될 인중전(仁重殿)은 저 근처에 있지.」
「저도 여기에서 사는 건가요? 신하인데도?」
「물론, 그렇다. 코우리는 신하라고는 해도 보통 신하와는 달라. 나라가 배라면 왕은 돛, 기린은 닻이다. 어느 쪽도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것.」
「네......」
현무가 마침내 만에 들어서자 왕궁의 여기저기에서 무수히 많은 깃발이 나부끼며, 정면의 큰 건물 앞에 많은 사람들이 정렬해 평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현무가 다시 기슭에 고개를 내밀었다.
평복한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정면의 궁전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사이에, 타이키는 완전히 낭패해버렸다.
남들이 엎드려 절하는 것에도, 남이 자신을 모시는 것에도 익숙해진 셈이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도 익숙해진 셈이었지만, 왕궁에 준비된 그것은 봉로궁의 그것과는 완전히 규모가 달랐다.
산시를 불러서 손이라도 잡고있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요우카에게 주의를 들었었다. 왕을 선택하여 생국에 내려간 이상, 어른이 된 것으로 인정받는다. 산시는 이미 유모가 아닌 사령이며, 사령을 쉽게 남들 앞에서 불러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걸리는 의례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침상의 커튼을 내리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산시.」
옆방에는 언제나 타이키의 명을 받을 수 있도록, 8명이나 되는 시종이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작은 소리로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언제나라면 바로 모습을 보였던 산시가, 목소리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산시.」
「이미 어른이 되셨으니까, 어리광을 부리시면 안됩니다.」
「........안돼?」
타이키는 넓은--로천궁의 그것보다도 넓은--이불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다시 한 번 누웠지만, 조금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웃는 기척이 나고, 이불 안의 손끝에 손가락이 닿아왔다. 산시의 손이 틀림없었다.
산시의 손의 감촉이, 확실하게 타이키의 손을 감싼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응.」
간신히 안도하며 눈을 감았지만, 깊이 잠들 수 있을 리가 없고 꿈은 악몽을 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타이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 2 -
기린은 생국에 있어서, 재보(宰輔)로서 왕의 정무를 돕는다. 연령이 몇 살 이건, 기린인 이상 그 책무에서 피할 수는 없다.
타이키도 재보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예의를 갖추어 의복을 입고, 정각에 외전으로 나아가 조의(朝議)에 참가한다. 이후는 정오까지 왕의 곁에서 정무를 보좌한다. 어쨌거나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은 타이키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될 책무였다.
정오를 넘겨 오후의 집무를 마치면, 왕은 거처로 물러간다. 재보 또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도 좋았지만, 타이키는 교소우가 잠들 때까지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교소우가 어쨌거나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은, 스스로의 즉위식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새로운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선왕이 남긴 것 중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 신하의 임면과 법의 정비가 그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과제였다.
「대사(大師)의 상서는 어떻게 하실 거에요?」
교소우는 자신의 방의 긴 의자에 누워 서류를 바라보고 있다. 타이키는 곁의 마루에 앉아 있었다.
「기각한다.」
선제(先帝)는 사치가 심해 도에서 벗어났다. 그것을 알고 있던 교소우가, 옥좌에 앉고서 최초로 행한 것은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시종, 여관들 각각을 파면하는 일이었다. 당장 사용하지 않는 궁은 폐쇄하기로 했다.
대사는 음악관의 장, 그 대사에게서 면직당한 악사의 수가 너무 많다는 상소가 있었다.
「나는 무인 출신이라서, 음악을 모르는 거라고 말하는군.」
「......하지만, 면직되면 역시 모두들 곤란해질 테니까.....」
「선왕이 남긴 악사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알고 있나?」
타이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도 몰라. 엄청난 수라는 것만은 확실하지. 어쨌거나 내전에 가면, 각각의 건물마다 다른 음악소리가 나고, 게다가 하루종일 음악이 끊기는 일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왕이 내전에 있건 없건 상관없이, 조의의 자리에까지 들려왔었다.」
「헤에.......」
「왕궁에서 악사를 하고 있었다면, 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아. 중요한 손님이 있을 때,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만 있으면 되는 거다.」
「대사는, 즉위식에서 연주할 악사도 너무 적다고 말하던데요.」
「그걸로 됐어. 어쨌거나 대는 가난하니까.」
「춘관장(春官長)도 즉위식이 저래서는, 너무 빈한한 게 아니냐고 걱정하던데.」
춘관장은 육관(六官)의 한 명, 의례와 제사를 담당한다.
「초라하다고 비웃고 싶은 자는 비웃게 놔둬. 겉치레에 신경쓴다고 뭔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선제의 사치로, 국고는 완전히 기울어 있다. 창고에 있는 것은 빚문서 뿐이니까.」
「네...」
타이키는 어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물론 어른들의 사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대국의 사정에 밝을 리가 없다.
반대로 교소우는, 내전에도 출입할 수 있는 중신이었으므로 애초부터 타이키의 조언 따위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춘관장도 인선을 생각해 두는 편이 좋겠군.」
서면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는 교소우를, 타이키는 바라보았다.
「선왕은 화려한 식전을 좋아했던 데다, 그 자도 호화로운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교소우는 타이키를 보며 웃었다.
「바로 그렇다. 춘관장은 한동안 상태를 두고 볼 것이야.」
타이키는 몸을 움츠렸다. 교소우의 웃음에, 그가 타이키에게 맞추어 준 것이라고 이해했다.
「......죄송해요, 쓸데없는 소리만 해서.....」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다. 타이키가 하나하나 들어주는 것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어.」
그것이 배려하는 말이라는 것을, 타이키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수그린 타이키를 바라보며, 교소우는 몸을 일으켰다.
「--코우리. 왜 그렇게 우울해하는지, 말할 생각은 없는가?」
교소우가 질문하자, 타이키는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교소우는 바라보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고, 타이키를 번쩍 안아올렸다.
「아니면 봉산이 그렇게나 그리운가.」
「그런 게.......」
「여선이 그리우면 그렇다고 말해도 괜찮아. 그대는 너무 사양이 지나치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면, 우울한 이유가 뭐지? 그런 게 아니다, 라고는 하지 말아줘. 그대는 아직 어리니까, 무리할 필요는 없어.」
타이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즉위식이 끝나면, 제일 먼저 경국에 사자로 다녀오게. 조금 경 타이호에게 어리광부리고 오도록 해.」
「....그럴 수는 없어요.」
「내가 그렇게 무능해 보이는 건가? 나에게 맡겨두는 것이 그렇게 불안한가?」
타이키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것은 조금도 참말이 아니었다.
지켜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한시라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교소우의 사람됨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도 도를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소우에게는 천계가 없었으니까.
교소우는 안아 올린 아이의 딱딱한 표정에 내심 눈썹을 찌푸렸다.
대체 무엇이 타이키를 고민하게 하는 것일까. 단순히 여선이 그리운 것이라고 만은 생각할 수 없다.
큰 임무에 위축된 것일까. 아니면.
봉산에서 만났을 때부터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우울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인 것일까.
교소우는 아이를 마루에 내려놓았다.
「어쨌거나, 쉬게. 그다지 밤중까지 내 옆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괜찮아요.」
「괜찮지가 않을텐데. 자네 안색이 어떤지 알고 있는가?」
「아뇨....」
말을 꺼내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명령이네. 지금 즉시 궁으로 돌아가시게. 한동안 정오 이후에 궁에서 나와서는 절대로 안되네.」
「주상--」
「무엇이건 그대의 상의 없이 무단으로 결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그러니까 한동안 쉬도록. --대답은?」
타이키는 눈을 깔았다.
「.........네.」
- 3 -
재보의 책무는 왕의 보조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수도가 위치한 서주(瑞州)의 주후로서의 집무가 그것이다.
타이키가 기거하는 인중전에는 서주의 집무소가 있고, 오후부터의 짧은 시간이 그 정무에 할애되어 있다.
라고는 해도, 기린은 왕의 일부, 실제로 서주를 통치하는 것은 왕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 타이키는 천칙에 의해서 알게된 최저한의 지식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좋았다. 그래서 정무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관리가 올리는 일의 형편을 가만히 듣고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는 형식의. 거의 공부시간이나 다를 것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
교소우는 그 사이 인중전을 찾아와, 때때로 말을 해가며 타이키를 지켜본다. 그것이 끝나면 자신의 집무로 돌아가기 위해 내전으로 돌아가지만, 절대로 타이키가 뒤를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후 시간의 태반을 자신의 궁에서 멍하니 지내고 있다.
측근은 당초에는 8명이나 있었지만, 대폭 줄여서 2명이 되었다. 여관만을 남겨준 것은, 여선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타이키에 대한 교소우의 배려이겠지. 저녁식사에도 반드시 불러준다. 그것 또한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에, 오히려 타이키는 더욱 쉴 수가 없다.
교소우가 마음을 써주면 써줄수록,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드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숨만 쉬고 있던 오후, 내전에 돌아간 교소우에게서 갑자기 부름이 있었다.
타이키는 당황해서 내전으로 달려갔다. --즉위식이 행해질 길일까지, 바로 며칠을 남겨둔 때의 일이었다.
「타이호, 빈객(賓客)이 오셨소.」
타국의 빈객을 대접하기 위한 접객실이었다. 열려있는 문 저편에, 교소우는 서있었다.
보기 드물게 타이호라 부르며 돌아보는 교소우는 어딘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손님인가요?」
손님이 있을 리가 없는데.
그리 생각하며,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에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뭔가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금 주변을 돌아보자, 굉장히 옅은 금색의 빛의 기포 같은 것이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뭔가가 끌면서 움직여간 듯이, 희미한 띠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라고 생각하며 심장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방으로 뛰어들어, 거기에 있는 인영을 보고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
「........경 타이호.」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이번에 무사히 생국에 내려오신 것을 마음속 깊이 축하드립니다.」
달려가려다가 발이 멈췄다. 케이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는 아이를, 케이키는 이상한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이 변한 분위기는 무엇일까.
일부러 교소우가 사자를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즉위까지는 근신하며 방문을 삼가는 것이 예의, 그렇지 않아도 왕이나 기린은 타국의 주종과 그다지 깊이 관계하지 않는다. 사실, 케이키로서도 사귀었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교제가 있던 것은 왕을 찾는 과정에서 신세를 졌던 이웃나라의 연왕, 엔키 정도뿐인 것이다.
교소우는 선왕의 중신,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일부러 관습을 깨고 케이키를 지명하여 사자로 오게 했던 것은 이때문이라고 납득했다.
「약속드렸던 대로, 가장 먼저 찾아왔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움츠러드는 표정이 딱딱하다. 올려다보는 똑바른 눈동자에도, 조금의 웃음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어찌되신 겁니까?」
「별로--」
눈썹을 찌푸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던 교소우가 끼어들었다.
「두 분간에도 쌓인 얘기가 많으시겠지요. 저는 여기에서 실례하겠소.」
케이키가 인사를 하고, 타이키도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랐다.
교소우는 이제부터 번잡한 업무로 돌아가겠지만, 따라가겠다고 말해도 통하지 않을 것을--언제나 그랬던 데다 오늘은 손님까지 있으므로--알고 있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채 교소우가 퇴실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케이키는 타이키를 돌아보았다.
「정원을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네..... 안내할 수 있을 만큼은 저도 잘 모르지만요.」
「정원을 산책하실 정도의 여유도 없었던 것입니까?」
타이키는 정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던 손을 멈췄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 4 -
「과연 대국은 바람이 차군요.」
내전의 정원에 있는, 광대한 연못가에 서서 케이키가 혼잣말을 했다.
「조금, 앉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등뒤에서 몸을 움츠리는 듯이 서있는 타이키를 돌아보았다.
바로 가까이에, 질릴 정도로 화려한 정자가 서있었다.
그것은 먼저번 태왕이 세운 것으로, 바닥도 기둥도 모두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의 주위에는 그 외에도, 연수정, 황수정, 홍수정, 자수정으로 똑같은 모양의 정자가 세워질 예정이었지만 네 정자는 건설도중에 선왕의 붕어와 함께 공사가 중단되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대국은 옥의 산지이지만.....이래서는 내란이 끊기지 않았을만 하군요,」
케이키는 거대한 수정을 쌓아올린 기둥을 쓰다듬었다.
대국은 기후가 나쁘다. 농작물의 결실은 거의 없었지만, 그 대신에 옥천(玉泉)이 무수하게 있어 본래대로라면 풍요로왔을 터였다. 옥천이라는 것은 그 이름대로 보옥이 나오는 샘으로, 그곳에 씨앗이 되는 옥을 가라앉혀 두면 씨앗이 자라나 거대한 결정이 된다. 금천(金泉), 은천(銀泉)도 마찬가지로 많다.
「이 크기라면, 30년 가까이 걸렸겠군요.」
나라 안의 창고란 창고는 모두 비어버렸다고 말해지는 이유이다.
그런 왕의 치세가 그럼에도 백 년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가 놀이와 정치를 혼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함께 여흥을 즐긴 상대를 시종, 여관으로 불러들였지만, 절대로 관직을 부여해서 정치에 참가하도록 하는 일은 없었다.
「뭔가 안좋으십니까?」
케이키는 말없이 서있는 아이에게 눈을 돌렸다.
「....괜찮아요.」
「태 타이호에게는, 무슨 고민이라도?」
「......아무것도.」
중얼거리듯이 대답하는 표정이 한없이 딱딱하다. 이래서는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령을 거두셨다고 태왕께 들었습니다.」
「네.」
「전변하셨다는 것도.」
「.......네.」
「유감이군요.」
타이키는 화들짝 놀라 케이키를 돌아보았다. 케이키는 비웃음도 자조도 아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는 약속대로 타이키를 찾아왔습니다. 분명히 기뻐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타이키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유감입니다.」
조용한 목소리가 타이키의 가슴을 찔렀다.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과 만났는데도, 조금도 기쁘지 않은 자신의 추악함을 새삼 느낀다.
누구에 대해서도--심지어 여선에 대해서마저--미안하고, 할 말이 없고, 똑바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가장 최근에 편안하게 잠들어본 것이 언제였을까. 양심의 가책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나본 것은 언제였을까.
--이것은 벌이다. 죄가 밝혀질 때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울 권리 따위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타이키.......」
앞으로 내미는 케이키의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기에, 그대로 케이키의 무릎에 울굴을 기대었다.
「왜 그러십니까?」
케이키의 목소리는 억양이 없는 만큼, 얼어붙은 듯이 조용했다.
「......타이호는......기린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신 적이 없으세요?」
「없습니다.」
「......왕을 고른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경 타이호는 그다지 왕과 잘 지내지 못하신다고 들었어요.」
「누가 그런 소리를.」
「여선들이, 그렇게--」
케이키는 숨을 내쉬었다.
경왕(景王)은 완전히 정무를 포기하고 있다. 주춧돌을 잃고, 국정은 큰 혼란을 보이고 있었다. 제후는 왕을 업신여기며, 관리는 전횡한다.
「저는 항상 곁을 떨어지지 않고 소명에 등돌리지 않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설령 왕이 어디로 향하건, 따라오지 말라고 명하지 않는 이상 함께 하는 존재입니다.」
--단지, 그것이 얼마만큼의 괴로움을 수반하는가, 그것만이 문제인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타이키는 깊은 빛의 눈동자로 가만히 케이키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잘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타이키는 후회하고 계십니까?」
담담하게 물어오자, 타이키는 조금 망설였다.
「.....네.」
케이키는 고개를 갸웃한 것 뿐,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타이키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전,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러 버렸어요.」
케이키는 말없이 계속 말을 기다린다.
「이런 배신은 없어요.」
작은 기린은 눈을 들었다. 필사적인 눈빛이었다.
「.......왕에게는.......천계가 없었어요.」
아연했다.
그것은 케이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백이었다.
「천계가..........없다고?」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계시도 없었어요. 왕기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한 번, 무사하시길-이라고 말했었어요.」
「........왜.」
「전 그저........교소우사마가 돌아가시는 것이 싫었어요.」
내리깐 시선을 들어, 아이는 케이키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해야 좋을까요.」
케이키의 무릎을 붙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잘못을 바로잡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죄를 갚아야 하죠?」
「.......타이키.」
「모두 다 거짓말이에요. 어떻게 되는거죠? 대는 멸망하나요? 왕은 벌을 받게 되나요? 혹시 이것이 알려지면, 하늘은, 백성은 어떻게 할까요?」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케이키는 입을 벌리려다, 결국 닫았다. 무릎을 붙잡은 작은 손을 가볍게 두드리고서, 일으켜 세웠다.
정자의 바닥에 앉아서 올려다보는 타이키에게 절을 했다.
「저는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그만하도록 하지요.」
정자의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서, 타이키는 금색의 머리카락이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케이키는 분명히 경멸했겠지. 두 번 다시 만나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얘기할 것인가. 타이키의 기만을 폭로할 것인가.
--교소우는 타이키의 배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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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프리셀의 마수에서 벗어나(自爆) 다시금 번역...과 타이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웃음) 어제, 깜박 요일을 착각해서 12장을 올리려고 파닥거리며(게으름 피다가 드디어 쫓기게 되었다!는 경악으로) 번역을 하다가 보니......목요일이더군요.(쿵) 그러나 이미 12장 번역은 모두 마치고 지금 후기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조금 뒤부터는 동의 해신편을 시작하게 되겠지요.
타이키는......총수입니다.(펑) 저 성격에 어느 누구와 세워놓은들 공이 가능하겠습니까. 실상 타이키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혼자서 땅파는 가녀린 꽃수. ...하지만......아이니까요. 가녀리고 작지만 마음 착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는 자상한 성격. 안아올려서 꼬옥 안아주고픈 아이입니다, 타이키는. '마성의 아이', 몇 분이나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그런 타이키가 봉래로 돌아가 어떤 길을 밟게되는지를 말하자면, 섬찟하고 섬찟할 뿐입니다.
마성의 아이에서, 타이키--다카사토의 유일한 편이 되어 주었던 교생선생님. 심지어 그 사람마저, 순수한 100%의 호의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와서 다시 뒤돌아보면 '역시 십이국기.....'스러운 부분입니다. 가장 최후의 최후의 최후에, 십이국에서 맞으러 온 연왕을 향해 달려가는 다카사토를 못 가게 막는 모습이 추악하고도 슬펐습니다............
자, 자. 분위기 바꾸고. 어느덧 십이국기 11권 중 라이센스 한 권은 뛰어넘고, 네 권, 즉 5/11을 마쳤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감개무량하군요. 한달에 약 2권 꼴. 이대로라면 남은 6권을 하는 데에는 3달 정도가 걸릴 듯 합니다. 그게 끝나고 나면 XAZSA라도 번역해볼까 싶어요. ...다른 걸출한 물건이 눈앞에 나타나주지 않는다면.
아...그리고보니 아니메점장도 번역해야 하는데........(중얼)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13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3 장
- 1 -
그 케이키가 다시 한 번 타이키를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케이키는, 적어도 교소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듯 했다. 저녁식사 때에도 아무런 변화없는 교소우의 얼굴을 보고, 안심한 반면 낙담했다.
변함없이 우울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을 때에, 내전에서 심부름꾼이 달려와 예복을 입고 접객의 방으로 오라고 알렸다. 당황해서 내전으로 서둘러 달려가자, 교소우와 케이키, 그리고 두 명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면에 앉아있는 것은 교소우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자였다. 아마도 이 남자가 주빈인 것이리라. 곁에는 타이키보다 조금 연상인 듯한 소년이 서있었다.
소년은 케이키같은 금발로, 마치 그 금발이 빛의 잔상을 남기는 듯이 옅은 금색의 빛이 주변에 보였다. --보이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케이키의 주변에도 그것이 있다. 이것이 기린의 기척이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 소년이 어딘가의 기린이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다.
--기린의 기척은 볼 수 있게 되었는데도.
입구에서 절을 하고, 타이키는 교소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교소우의 주위에, 왕기라고 부를만한 것은 어느것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입실하여, 그대로 하석에 선 타이키에게 케이키는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했다.
「연왕(延王)과 연 타이호(延 臺輔)를 모시고 왔습니다.」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
(연왕.........)
그로써 교소우가 한 단 낮은 곳에 앉아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이키는 무릎을 꿇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왕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를 표하는 것이 예전(禮典)에 의해 정해져있다. 무릎을 꿇고 손을 짚고서, 이마를 땅에 부딪히는 고두(叩頭)가 그것이지만, 기린만은 가볍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처음 뵙겠습니다.」
예의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런 경우의 인사말까지는 외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런 타이키에게, 교소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코우리. 고두례(叩頭禮)를.」
「........에?」
타이키는 당황해서, 교소우를 보았다.
「연왕은 종왕(宗王) 다음으로 치세가 기신 분. 다른 왕과 동렬로 생각해도 좋을만한 분이 아니시다.」
「......하지만.」
낭패하여 두 사람의 기린을 바라보았지만, 케이키도 엔키도 교소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네. 죄송합니다.」
타이키는 당황해서 양손을 짚고, 다시 머리를 숙였다.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대려 하다가, 도중에서 동작이 멈췄다.
「-----왜 그러나.」
물은 것은 정면의 연왕이었다.
「아니요.」
대답하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이려고 하다가, 마찬가지로 도중에서 멈춰버렸다.
--할 수 없었다.
「왜 그러나? 대국의 기린은, 안(雁)에 대해 뭔가 불만이라도 품고 있는가?」
「아니요.」
도움을 청하며 바라본 교소우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
「타이키. 무엇을 하고 있나.」
엄하게 말을 듣고서, 다시금 머리를 숙이려고 했다.
역시 도중에서 몸이 멈춰버린다. 있는 힘껏 숙인 이마에서 바닥까지의 거리는 무릎 정도의 높이. 그 짧은 거리에 뭔가 단단한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이상 머리를 숙이는 것도, 팔을 굽히는 것도 불가능했다.
「호오--. 정말로 뭔가 품고 있는 듯 하군.」
연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당황해서 연을 올려다보았다.
「아니에요.....!」
찌르는 듯이 말을 내뱉은 것은, 연의 곁에 서있던 엔키였다.
「아니면 예의를 알지 못하는 것인가. 본래대로라면 연왕 본인이 오실 필요도 없는 것을, 경 타이호의 부탁으로 일부러 걸음을 해주신 것인데 절 한 번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연은 비웃음을 지었다.
「신참의 기린에게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로다. 타이키는 꽤나 안이 싫은 것으로 보이는군. --아니면, 태왕에게 명령을 받은 것인가? 안에게 아첨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그런.....!」
타이키는 주변의 험악한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어디에서도 구원의 손은 뻗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를 묻겠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예도 표하지 않겠다면, 대는 안에 적의가 있다고 판단해도 좋겠는가.」
「--타이키.」
교소우의 질타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서 고두를 하려 했지만, 머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왠지 마루까지의 거리를 좁히려고 해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초조함의 땀이 아니라, 고통의 땀이 흘러 마루로 떨어졌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매우 심하게 들었다.
연이 일어나, 걸어 내려오는 것이 시야 끝에 보였다.
「......왜 그러나, 절을 하는 흉내라도 낼 수 없는 건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리자마자, 머리카락을 붙잡혔다. 그대로 무서울 정도의 힘으로 머리를 눌러온다.
「그대로 머리를 숙이는 것뿐이지 않은가.」
어떻게 그 힘에 저항할 수 있었는지, 타이키 자신도 알 수 없다. 도저히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는 힘으로 눌리면서, 그럼에도 전신전령으로 그것에 저항했다.
「...이런 고집센.」
그렇게 말하며 더욱 센 힘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힘이 사라졌다.
「그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퍽, 하고 엄청난 소리가 나고서,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던 손의 감촉이 사라졌다. 눈을 들어보자, 엔키가 연의 손을 떼어내는 참이었다.
「이런 꼬맹이한테 그렇게까지 하냐!!! --이봐, 괜찮아?」
타이키는 어깨로 숨을 들이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엔키를 놀라 올려다보았다.
「아아, 얼굴이 새파래. .........설 수 있겠어? 그냥 누울래?」
주저없이 소매로 땀을 닦아준다. 간신히 일어선 몸을 케이키가 지탱해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어쨌거나 의자에....」
연은, 반쯤 얼이 빠진 듯한, 반쯤 흥미깊은 듯한 표정으로 타이키들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동족애로군.」
「바보. 니가 지나쳤잖아--! 이 바보자식, 완전히 악역에 빠져버려서.」
타이키는 멍하니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모하신 분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무모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너희들이 말을 꺼낸 거잖......」
「이런 짓까지 해달라고 부탁드린 게 아닙니다!」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다고!」
케이키와 엔키 양쪽에서 비난을 듣고서, 연은 목을 움츠렸다.
「...........저?」
물으려 하는 타이키에게 연은 웃었다.
「알겠지?」
무엇을, 이라고 물을 것까지도 없었다.
「--기린은 거짓 서약 따위, 할 수 없다.」
눈가를 부드럽게 푼 연의 머리를, 엔키가 아무렇게나 때렸다.
「왕 주제에 다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마.」
- 2 -
바람을 쐬기 위해 전망대로 데려나가져, 의자에 앉혀진 타이키의 앞에 케이키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제 설명이 부족해서,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가볍게 타이키의 손을 쥐었다.
「천계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을 때에, 조금 더 제대로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쓸데없이 괴롭혀 드렸군요, 용서해 주십시오.」
「타이호, ..........저는.」
「천계는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케이키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이것이 천계라고,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타이키.」
타이키는 케이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케이키 또한 타이키의 눈을 바라보면서 끄덕였다.
「예. --왕에게는 왕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왕기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아니에요?」
케이키에게 전에, 기린의 기척은 금색의 빛 같은 형태로 보인다고 들은 이래, 타이키는 계속 왕기도 그런 식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빛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둠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또는, 패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고, 반대로 안온한 공기와 같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정해진 게 아닌가요?」
「이것이 왕기다, 라고 확실히 부를 수 있는 형태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 타이호는 왕기를 의지해서 왕을 찾으셨다고.」
「찾았습니다. 왕이 있는 곳이 그렇게 멀지 않으면, 막연하나마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뭔가가 이쪽에 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뭔가가......그 방향에.....」
타이키는 과거를 돌아보았다. 아직 승산한 자들이 보도궁에 모이기 전, 그런 기분을 몇 번이고 느꼈지 않았던가. 그것은 뭔가 타이키를 옭아매는 듯한--굳이 말하자면 두려운 듯한, 위압당하는 듯한,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왕을 만나면, 이 사람이 그 기척의 원천이었구나 라고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막연하게 느끼던 것과 같은 종류의 기척이니까.」
「.....그게, 왕기인가요?」
「예. 왕기는, 눈에 띄는 기척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명백하게 다르다는 느낌. 눈에 보이는 것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볍게 주먹을 쥔 타이키의 손을, 케이키는 달래는 듯이 가볍게 두드렸다.
「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일도 변화도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직감입니다. 이 사람이다, 라는 직감인 것입니다, 타이키.」
「직감.......」
케이키는 끄덕였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저는 경왕과 만났을 때, 이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 사람은 절대로 왕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 명군으로서 군림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부단한 노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가요?」
「이 사람은 안된다--그렇게 생각했지만,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천계는 저항할 수 없는 강한 직감입니다. 아마도, 설령 그 사람을 증오하고 있다 하더라도 기린은 그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깨에 손이 올려졌다. 올려다보자 교소우가 웃고 있다.
교소우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키의 고백을 들었었다--.
「기린이 선택했다는, 그것 자체가 천계인 것입니다, 타이키.」
- 3 -
「저는........」
타이키는 간신히, 조금씩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교소우사마를 처음 보았을 때,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예.」
「교소우사마가 승산하기 전에, 계속 영곤문 쪽에서 무서운 것이 오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것이 공포가 아닌, 훨씬 다른--이를테면, 빛이나 희망이나, 그런 밝은 것이었다면 타이키는 망설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짓을 하실 분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무서웠어요. 훌륭한 분이고, 다정한 분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역시 무서웠어요.」
「그랬습니까.」
「때때로 굉장히 무서워지는데도, 만나면 기쁘고, 만나지 못하면 쓸쓸했어요. 봉산에서 돌아가신다고 들은 순간, 굉장히 굉장히 괴로워서.」
케이키는 끄덕였다.
「그걸로 잘 된 겁니다. 왕의 곁에 있는 것이 기쁘지 않은 기린은 없는 데다, 왕과 헤어지는 것이 괴롭지 않은 기린도 없습니다. 왕과 기린은 떨어져서는 안 되는 존재이니까.」
「네......」
「기린은 천의(天意)의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기린에게 의사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하늘의 의사가, 기린을 통해 나타날 뿐.」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키는 타이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이 따뜻했다. 따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기뻤다.
「타이키는 지금, 교소우사마가 무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떤?」
「몸이 긴장하고 계시지요. 그것은 공포가 아닌 경외입니다.」
「그럴지도 몰라요.」
「타이키는 스스로의 운명과 만나서, 긴장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이었을까, 생각하며 타이키는 교소우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을 보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타이키는 거짓 따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애초에 기린은 자신의 왕 이외에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불가능한 생물이니까요. 당신은 틀림없이 왕을 선택한 것입니다.」
「..........네.」
케이키는 작은 기린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가능한 설명을 잘 해드렸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후회가 됩니다. 적어도 조금만 더 봉산에 체재했더라면. 그랬더라면 타이키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정말로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뇨, 제가 지레짐작하지 말고, 제대로 물어봤으면 됐을 거에요.」
너무나 타이키다운 말에 웃음이 나왔다.
「--마음속으로부터, 경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간신히 웃는 얼굴을 보였다.
케이키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교소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기린의 고백을 전하자, 낭패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하물며 책망하는 말 한마디 입에 올리지 않은 채, 격렬한 눈빛으로 케이키를 바라보며 단 한마디, 그래도 나는 왕인 것인가, 라고만 물었던 남자.
「--태왕께도 경하를.」
「감사하오.」
시원스러운 웃음을 띄운 교소우에게, 연 또한 경하의 말을 건네었다.
「안에서도 경하드리오.」
「감사합니다.」
「--언젠가 대무를 했었던가.」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한 합을 빼앗겼던 것은 오랜만이었다. --보통 인간이 아니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옥좌에 앉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교소우는 웃었다.
「또 상대해 주시겠습니까?」
「동업자 사이니까. 언제든지.」
「태왕.」
말을 걸어온 것은, 전망대의 난간에 앉아서 주위를 구경하고 있던 엔키였다.
「--그런데, 저 취미나쁜 건 뭐야?」
엔키는 전망대 저편에 보이는 정자를 가리켰다.
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예의를 모르는 녀석이라, 미안하오.」
아니요, 라고 웃으며 교소우는 소년을 보았다.
「저것은 선제가 남긴 쓰레기입니다. 부숴서 곡물을 사는데 보탤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안에는 여분의 곡물이 있을까요?」
「태왕은 운이 좋군.」
엔키가 웃었다.
「우리는 요즘 풍작이 계속 되어서, 곡식 값이 떨어져서 곤란해하던 참이야.」
웃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던 타이키의 손을, 케이키가 쓰다듬었다.
「정원을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며칠 전에 제대로 보지 못한 채이니.」
「네. --정말로 잘 모르지만.」
난간 위에 앉아잇던 소년이 뛰어내렸다.
「그럼, 탐험이다.」
타이키는 교소우를 올려다 보았다.
「다녀와도 될까요?」
「다녀오게.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오도록. 작은 연회를 열 터이니.」
「네.」
케이키가 손을 내밀어 주었기에, 타이키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쥐었다.
「한쿄와 쟉코도 부를까요?」
「괜찮아요?」
올려다보자, 케이키는 웃었다.
「기린뿐이니까 상관없겠지요. 타이키의 사령도 보여주십시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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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바람의 바다편이 끝났습니다. 생각외로 쑥쑥 잘 나아가주어서 기분이 좋군요. 적어도 아직까지는 불펌에 대한 소문도 안들리고 있고요. 만에 하나, 언젠가 불펌이 문제가 될 상황에 대해서는 언제나 각오하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대한민국의 인터넷은 국민 전체가 동조하는 와레즈 같은 것이고 저작권법 상의 멕시코이며, 이런 말 하는 저 역시도 오노상이나 고단샤에 허가를 얻고 번역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허락해줄 리가 없지;)
혹시라도 저의 번역을 기쁘게 읽어주시고, 저의 수고를 인정해 주신다면......만에 하나 그런 사태를 발견했을 경우 꼭 저에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제 홈페이지는 이것저것 번잡한 링크금지, 카피금지 스크립트도 걸지 않았고 특별히 걸 생각도 없지만, 그것이 '아무나 퍼가서 번역자 이름 지우고 자기가 한 척 올려도 좋다'라던가 '아무나 가져가서 자기 홈페이지를 장식하는데 써도 좋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니까요. 언젠가 그렇게 되려니, 라는 생각 자체가 가장 번역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주범...일지도 모릅니다.(타이핑 프로그램이 아니었어....?;)
가지고 있는 십이국기 동인지 하나를......스캔해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들고 있습니다.(;) 대주종에 관한 얘기인데요. 선제의 사치 때문에 극히 빈곤한 대주종의 이야기입니다. 절전을 위해 저녁7시에는 소등, 궁 안에 비가 새서 타이키를 꼭 껴안고 오들오들 떨면서 우산을 쓰고 있는 교소우사마, 가게에 가져가면 20엔을 받을 수 있으므로 열심히 빈 병을 모으고 있는 타이키쨩♡. 궁 안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교소우가 담담하게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나는 왕인 것인가....."(爆)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下) 후기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후기
이러저러 하는 사이에 삼국지 붐인가.....는 것은 상권에서 써버렸었죠. 이미 글쓰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날을 보내고 있는, 후기 쓰는데 약한 오노입니다.
전작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가 나오고서, 「시리즈로는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은 시리즈화 할 생각으로, 소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거기까지 쓸 수 있을지 어떨지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 여하......라는 것이 요즈음의 출판사정이라는 겁니다. 세상은 힘들어요.....
어쨌거나, 쓸 수 있는 때까지는 노력할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시리즈를 계획하게 되면, 새삼스럽게 자신의 느린 글솜씨가 원망스러워 집니다. 한 달에 한 작품이라던가 두 달에 한 작품 정도 쓸 수 있다면 앗하는 사이에 시리즈도 끝나고 또 다음 얘기를 쓸 수 있을텐데...........따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섯 권이다 열 권이다 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만, 그것을 모으는데 몇 년이나 걸릴까 생각해보면, 「어흐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기다려주시는 분은 훨씬 허탈하실 지도.....정진하겠습니다, 넵.
이 느린 속도로, 거기다 워드까지 없었다면, 따위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이 세상에 워드님이 와주시지 않았더라면, 오노라는 작가는 없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연로한 몸을 채찍질해가며 힘내고 있는 우리 집의 98군(조라크군이라고 함)에게 응원 보내주세요.
그렇습니다, 우리집의 조라크는 이미 노병인 겁니다. 조금 더 빠른 기계로 새로 사고싶다는 기분은 산더미같지만, 비대해진 사용자사전이라는 큰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쉽게 기계나 소프트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원래부터 「쿠지(くじ)」라고 치면 「구자(九字)」나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鬪者皆陳烈在前)」,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陳烈前行)」 등이 튀어나오는 요상한 사용자사전입니다만, 이 시리즈 덕분에 더욱 박차를 가해서, 요괴대사전으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내년 이맘때에는 몇 메가바이트의 사전으로 성장해있을까....... 으-음.
전작을 쓴 이래, 흔히 「제2수준의 한자로는 부족해요」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의외로 구 JIS의 제2수준으로 충분한 것이니까요. 잘도 만들어졌구나 라고 생각했더만, 이번 처음으로 제2수준에 없는 한자가 나와버렸습니다. 이전 비대화해진 사전에 덧붙여서, 비대해진 사용자한자사전 따위의 것까지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으니 어떻게 할까요. 생각하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들어 버립니다.
.... 따위의 얘기를 늘어놓고 있으면. 마치 컴퓨터 오타쿠라도 되는 것 같지만, 저는 절대로 그런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타쿠가 되고 싶다는 야심은 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합니다. 이미 조라크는 평범한 워드기기(통신기능 있음)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미안, 미안해.
그렇군요, 통신이라고 말하자면 NIF의 SF포럼의 여러분. 작년에는 많은 성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작년의 베스트 투표에서 지나친 평가를 받아버려, 소심한 저로서는 몸둘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저 개인의 멋대로인 방침에, 회의실에의 답변은 삼가고 있습니다만 감사히 보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미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어라, 전혀 작품의 내용과 상관없는 후기가 되어버렸군요.
실은 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건 변명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목을 씻고 여러분의 감상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오노 후유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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