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038사건 - 엘러리 퀸
제 목 : 수수께끼의 038사건 (1) - 엘러리 퀸
수수께끼의 038사건
There was an old woman
ELLERY QUEEN
제 1 부 새벽의 결투
추리 테스트
"아버지,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여기는 미국의 정의를 지키는 곳이라고 불리는 뉴욕 최고 재판소의 넓은 복도.
제법 머리가 똑똑해 보이며, 투명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27∼28 살 가량의
청년이 코밑수염을 기르고 몸집이 좋은 50 살 정도 되는 신사에게 이렇게 말했
다. 청년의 이름은 엘러리 퀸. 이제는 이 청년이 누구인지 모두들 알 것이다.
그렇다, '미국 총의 비밀'과 '이집트 십자의 비밀' 등의 수많은 어려운 사건들
을 훌륭한 추리로 해결하고, 또 그것을 뛰어난 문장력으로 발표하여 많은 독자
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명탐정이자 추리 소설 작가인 바로 그 엘러리 퀸이
다. 중년의 신사는 리처드 퀸. 뉴욕 경찰 본부의 노련한 경감이다. 그는 아들인
엘러리가 사건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그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식으로
적당한 충고를 들려주곤 한다. 만약, 엘러리에게 이런 아버지가 없었다면 오는
같은 명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엘러리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존경하
며 한편으로는 고맙게도 생각하고 있다. 엘러리는 바로 앞의 331호 법정이라고
쓰여있는 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관계된 재판만 번번이 뒷전으로 밀려나다니,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그렇게 화내지 말아라, 엘러리. 재판이라는 것은 기다리는 일이야."
아버지는 엘러리의 기분을 달랠 만한 적당한 것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
았다. 미인은 적당한 것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인은 없었지만,
조금 떨어져있는 335호 법정 앞에서 30살정도 된 남자가 몹시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그 남자를 심심풀이의 대상
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엘러리, 관찰력과 추리력 테스트를 한번 해볼까? 3 분내로 저 남자의 직업을
맞춰 보거라."
엘러리는 그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2 분도 채 안 되어서,
"아버지 저 사람의 직업은 변호사입니다."
"맞았어 어떻게 알아냈지?"
"저런 큰 서류 가방을 들고 재판소의 복도를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사람은 변
호사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름은 팩스턴이고요. 가방에 작은 글자로 새겨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엘러리, 눈도 이상이 없군. 그렇다면 저 변호사는 왜 저렇게 초조해 하고 있
을까?"
"아까부터 손목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는 것을 보니, 재판 시간이 다 되었는데
도 소송 의뢰인이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지요.?"
"맞았어, 엘러리. 이제 네 추리력도 무시 못 하겠구나."
"예? 그렇다면 아버지가 잘 아는 사람입니까?"
"그래. 비록 젊지만 실력이 아주 뛰어난 변호사야. 나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지."
퀸 경감은 성큼성큼 변호사에게 다가가서, 그 큰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이, 팩스턴."
팩스턴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퀸 경감을 돌아보더니, 곧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아니, 이거 퀸 경감님 아니십니까?"
팩스턴 변호사는 매우 반갑다는 표정으로 퀸 부자를 바라보았다. 퀸 경감은 엘
러리를 소개했다.
"소개하지. 이쪽은 내 아들 엘러리, 아직 풋내기 탐정이야."
"성함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두 청년은 서로 악수를 했다.
구두 저택에 사는 노부인
"그런데, 팩스턴, 오늘은 어떤 사건인가?"
경감이 물었다.
"글쎄.... 그게 별로 달갑지 않은 사건인데, 참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유명
한 포트 집안의 노부인에 관한 겁니다."
"포트 집안이라면 자네가 고문 변호사로 있는 집이 아닌가? 아, 그 노부인이
또 고소를 한 모양이군."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노부인의 큰아들인 설로우 포트 씨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한 클립 스태더라는 남자가 다가와서는, '포트야,
포트야(영어로 단지라는 뜻), 금이 간 포트야, 아무리 좋은 술을 마셔도 포트,
포트의 술은 새나가는구나.' 하고 놀렸다는 겁니다. 설로우씨는 매우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와서는 노부인에게 일러바쳤습니다. 그러자 노부인은, '포트 집안의
명예를 손상시켰다.' 라고 화를 내며 설로우씨의 이름으로 클립 스태더를 고소
했던 겁니다. 그런데 개정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고소를 당한 클립 스
태더만 나왔을 뿐, 정말 중요한 설로우씨와 노부인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겁
니다."
엘러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아버지, 포트 집안의 노부인이라는 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퀸 경감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이거 놀랐는데, 엘러리. 아니, 아직까지 그 구두 저택에 살고 있는 유명한 포
트 집안의 노부인을 모르다니, 아직도 너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모양이구나. 포
트 집안의 노부인이라는 사람은 말이야........"
퀸 경감이 설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팩스턴 변호사가,
"아, 지금 오는군요."
하고 기쁜 듯이 외치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는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사람들의 맨 앞에 서서 이쪽으로 당당
하게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귤같이 동그란 얼굴에 키가 작은 노부인이었다. 게
다가, 그 부인의 배는 유난히 부풀어올라 있었으며, 다리는 볼품이 없을 정도로
가늘었다.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었으며, 눈이 있는 주위만 움푹 들어가 있었
다.
"저 사람이 바로 코닐리아 포트 부인이야. 고소를 자주 한다고 해서 고소 노
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을 테니 잘 지켜보고 있
어라."
경감이 빠르게 속삭였다. 노부인은 뜻밖에 매우 당당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왔다.
검은 치마에 검은 모자를 썼으며, 그 까만 눈은 난로 속의 석탄과 같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 마치 빅토리아 여왕의 나이 들었을 때 모습 같군요. 아니, 그보다는
전설에 나오는 마녀와 좀더 비슷한 것 같아요."
노부인의 뒤에는 많은 신문기자가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노부인이 가
는 곳을 따라가기만 하면 특종기사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
도 몸집이 작은 어떤 남자가 눈에 띄었다.
"자 남자는 누굽니까? 기자는 아닌 것 같은데, 부인과 많이 닮았군요."
엘러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물었다.
"아, 저 청년 말이지? 포트 부인의 장남인 설로우야."
"설로우? 아, 술집에서 클립 스태더라는 남자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고소한 사
람 말이군요. 그런데, 굉장히 많이 닮았군요. 부인과 옷이라도 바꿔입는다면 누
가 누구인지 전혀 분간을 못 하겠어요."
사람들의 맨 뒤에는 몸집이 마르고 키가 큰 남자가 진찰 가방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아버지, 저 키가 큰 사람은 유명한 심장병 전문가 이니스 박사가 아닙니까?"
"맞아. 부인은 심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이니스 박사를 꼭 데
리고 다니지. 하여튼, 돈의 힘이란 굉장한 거야."
퀸 경감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청년 변호사 팩스턴도 끼어있는 기묘한 그 일
행은 335호 법정으로 몰려갔다. 엘러리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참 이상해요. 팩스턴씨는 꽤 똑똑해 보이는 사람 같은데, 왜 저런 집
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엘러리, 방금도 말했지만 모두 돈의 힘이야."
"돈의 힘? 포트 부인은 유전이나 금광이라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 엘러리, 너는 미국 사람이면서도 아직 포트 부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
지 모른단 말이냐? 포트부인은 그 유명한 포트 구두의 창업자야."
"예? 저 부인이요? 포트 구두라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미국 어디에서나 3
달러 99 센트만 주면 살 수 있는 구두 아니에요?"
"그렇단다. 지금 포트 구두는 미국을 대표할 만한 대중 상품의 하나가 되었지.
미국의 어떤 시골 마을에 가더라도 포트 구두점을 볼 수 가 있을 정도니까. 지
금은 국민 학생에서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도 포
트 구두를 신고 있지. 그런데, 왜 포트 구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해. 값이 싸면서도 튼튼하고, 그리고 모양이 좋
기 때문이지."
퀸 경감은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포트 집안은, 포트 구두덕분에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어. 그런데도, 포트
부인은 종업원들에게 이익을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는 거야. 그리고 자신은 이
뉴욕의 맨해튼 섬 서쪽을 흐르는 허드슨강가의 고속도로 옆에 궁전과 같이 화
려한 집을 짓고 살고 있지. 그러다가 그 동안 말없이 일을 해온 포트제화의 종
업원들도 몇 년 전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면서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단다.
그 때, 종업원들이 시위 행진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는 이렇단
다.
'옛날 옛날 마귀 할멈이
구두 저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자식이 많아서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어떻게 주면 좋을까……'
엘러리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아버지, 그것은 영국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마더 구즈의 동요인 구두 저택
의 가사를 바꾼 노래가 아니에요? 저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에서 그것을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아직도 모두 외고 있어요."
'옛날 옛날 마귀 할멈이 구두 저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자식이 많아서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빵은 주지 않고 수프로 때우고 채찍으로 때려서 잠을
재우지요.'
"맞아. 그 때, 포트 제화 종업원들은 그 노래를 부르면서 그림책에 있는 그림
을 만화 풍으로 그린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었어. 그 뒤로 포트 부인
은 구두 저택에 사는 노파라고 불려지게 되었단다."
"포트 제화의 종업원들은 옛날 동요를 이용해서 여사장을 재미있게 골려주었
군요."
엘러리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엘러리라도 이 옛날 동요
가 그 뒤에 잇달아서 일어난 복잡하고 기괴한 연속살인사건의 기분 나쁜 배경
음악이 되리라는 것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노부인과 아들
그때, 335호 법정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신문기자 한 사람이 종
이를 한 장손에 들고 급하게 뛰어나왔다. 퀸 경감은 그 기자를 불렀다.
"어이, 판결은 어떻게 되었나?"
그 기자는 뉴욕 경찰 본부의 퀸 경감을 잘 알고 있었다.
"아, 퀸 경감님이시군요. 보나마나지요 뭐. 그 마귀 할멈의 포트 집안이 졌습
니다. 이것으로 37연패입니다. 당연한 판결이지요. '단지의 단지는 새는 단지'
라는 정도의 말로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는 없는 거지요. 더구나, 포트 집안의
패소를 선고한 재판장은 그 부인에게, '포트 집안은 억만 장자이기 때문에 재판
에 드는 돈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런 하찮은 문제로 모든 국민이 이용하
는 재판소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게 하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말기 바랍
니다.' 라고 말하면서 몹시 화를 내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그 당당한 포트 집안의 부인이라도 조금 풀이 죽었겠군."
퀸 경감이 이렇게 말했을 때, 335호 법정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포트
부인이 나왔다. 이것이 돈 많은 사람이 재판에 진 모습인가? 74살의 부인은 큰
양산을 빙빙 돌리면서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부인의 바로 뒤
에는 패소 때문에 화가 잔뜩 나 있는 설로우가 뒤뚱거리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키가 큰 이니스박사, 매번 거듭되는 패소에 혹시 변호사를 바꾸지 않을
까 걱정하는 팩스턴, 그리고 신문 기자와 구경꾼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뒤를 따
라가고 있었다.
"엘러리,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거야."
퀸 경감은 엘러리를 데리고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정말로 재판소의 현관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패소하고 돌아가는 부인을 찍기 위해서 현판 앞에서 기다
리고 있던 사진 기자들이 포트부인이 나타나자 일제히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찰칵, 찰칵! 보통 사람의 귀에도 거슬리는 셔터 터지는 소리가 계속 들
렸다. 부인은 '야아앗!' 하고 인디언 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양산을 야구 방방이
처럼 휘두르면서 사진 기자들의 사이를 뚫고 나가려고 했다. 사진 기자들은 부
인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 부인과 맞섰다. 그
가운데에는 카메라의 3각 다리를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 퀸 경감의 부
하인 벨리 경찰 부장이 달려 왔다. 부장은 재빨리 신문 기자들 사이를 뚫고 들
어왔다.
"모두 그만둬요, 그만둬."
"그만둬야 할 쪽은 부인입니다."
어떤 사진기자가 헐떡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조, 어떻게 된 거야, 코피가 나오잖아?"
조라고 하는 사진 기자는 빨갛게 물든 손수건으로 코를 누르면서 말했다.
"부인이 내 코와 사진기를 부쉈습니다. 벨리 부장님, 이건 상해죄와 기물 파손
죄가 아닙니까?"
그러자, 부인은 겁이 났던지 빳빳한 100달러 짜리 지폐 2장을 조에게 던졌다.
"자, 이것으로 새 사진기를 사시오. 코는 어렸을 때부터 깨졌을 테니 괜찮소."
그러더니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동차에 이니스 박사와 함께 올라타고는
재빨리 달려가 버렸다. 코피를 흘리는 조는 한 손에는 부서진 사진기를 들고,
또 한 손에는 200 달러를 들고 웃고 있었다. 사실은, 부인이 부순 사진기는 부
인의 이런 행동을 짐작하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낡은 사진기였던 것이다. 진
짜 사진기는 이런 광경을 찍기 위해서 조수가 멀리에서 들고 있었다. 지금 포
트 부인이 부순 것은 100 달러 짜리이다. 조는 그것의 2배를 받은 셈이다. 포트
부인을 따라가지 않고 혼자 남은 설로우는 무엇을 하려는지 재판소 앞쪽의 돌
계단으로 올라가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큰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뒤를 돌아다보며 재판소의 건물을 가리켰다.
"여러분, 재판소는 내 고소를 쌀쌀맞게 패소 시켰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재판
소 같은 것은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내 스스로 재판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전 세계의 권총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와 포트 집안을 모
욕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녀석을 쏘아 죽일 겁니다."
대담하게 살인 선언을 한 설로우는 와글와글 모여있는 사람들 속을 당당하게
뚫고서 어디론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것을 본 팩스턴 변호사는 한숨을 쉬면
서 옆에 있는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퀸 경감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팩스턴. 너무 걱정하지 말게. 지금 설로우가 한 말은 진정이 아닐 거네. 아마
홧김에 내뱉은 말일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팩스턴 변호사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포트부인은, 발끈하는 성질은 있지만 그래도 비정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
렇지만, 설로우씨는 정말 이상합니다. 어떤 때 보면 마치 미신 사람이 발광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오는 밤에 권총을 들고 클립 스태더를 찾아갈
지도 몰라요."
"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겠군요."
엘러리는 설로우의 눈빛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팩스턴 변호
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포트집안에서 이상한 것은 설로우씨만이 아닙니다. 그 가
족의 반이 미쳤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로 정신 병
원에 가야 할 정도입니다. 만약에 얼굴을 맞대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총에 맞아 죽을 겁니다."
"그러면, 힘 좀 쓰는 사람을 두어서 감시하도록 해보지 그러나."
그러자, 팩스턴 변호사는 엘러리 탐정을 돌아보면서,
"엘러리 씨 같은 분이라면 괜찮겠습니다만...."
그러자, 엘러리는 선뜻 대답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도 지금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퀸 경감은 깜짝 놀란 듯이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엘러리가 나서는 곳에
는 언제나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팩스턴. 내 아파트로 같이 가지 않겠나?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네."
다 큰 어린애들
엘러리 탐정의 아파트로 간 팩스턴 변호사는 포트 부인과 포트 집안의 이야기
를 자세하게 해주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코닐리아 포트 부인도 처음부터 마귀 할멈이나 고소 노부인은 아니었다. 포트
부인도 보통 여자와 마찬가지로 귀엽고 꿈 많은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 그때,
코닐리아의 꿈 많은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코닐리아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매일 예쁜 옷을 입고 언덕 위의 훌륭한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1982 년,
그녀가 20 살이 되었을 때 코닐리아는 배커스 포트라는 구두 수선공과 결혼했
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코닐리아가 왜 구두 수선공과 결혼
을 했을까?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가난한 남편을 부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코닐리아가 시골 수의사의 부인이 되었다면, 그 수의사는 루이
파스퇴르같은 정도로 훌륭한 수의사가 되었을 것이고, 어느 왕국의 가난한 기
사와 결혼했다면 코닐리아는 그 기사에게 야심을 불어넣어 주어 그 왕국을 차
지하게 하고 자신은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코닐리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
편을 격려하고 도와주었다. 그 덕분에 결혼한지 7년만에 그들 부부는 커다란
구두 공장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인 배커스 포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
다. 왜냐하면, 배커스의 꿈은 자신이 좋아하는 구두를 정성껏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장은 도깨비같이 점점 커지고 종업원은 드디어 수천 명을
넘게 되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만든 구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까지
유명하게 되었다. 게다가, 공장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포트 제화 회사라고
했다. 따라서, 배커스는 어디에 가더라도 마음놓고 재채기 한 번 할 수 없을 정
도로 유명한 인물이 된 것이다. 결국 그 배커스 포트는 그 위엄에 견디지 못해
서 어느 날 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코닐리아와 결혼한지 10 년째
되던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코닐리아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는
않았다. 물론, 배커스도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코닐리아는 자신이 사장이
되어서 포트구두의 판매를 더욱 활발하게 하였고, 회사는 점점 더 커졌다. 회사
의 크기에 맞추어서 코닐리아의 몸은 보기 흉하게 살이 뒤룩뒤룩 쪄갔다. 얼마
뒤, 코닐리아는 뉴욕의 허드슨 강가에 궁전과 같이 화려한 집을 짓고 세 자식
들을 데리고 이사했다.
"그 자식들의 성격에 대해서는 뒤에 천천히 이야기하겠습니다만."
팩스턴 변호사는 엘러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사 이야기를 이었다.
배커스 포트가 7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재판소는 코닐리아에게 다른 남
자와 결혼을 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마침 그 때, 허드슨 강가에 있는 코닐
리아 부인의 집에는 이상한 손님이 들어와 있었다. 한 사람은 스테픈 브렌트라
고 하는, 말레이지아 반도에서 돌아온 탐험가인데 얼굴이 매우 잘 생겼다. 다른
한 사람은 스테픈과 함께 말레이지아 최남단의 섬들을 탐험하고 돌아온 고치
소령이었다. 두 사람은 그림자같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스테픈을 좋아하게
된 코닐리아는 스테픈의 세 자녀는 물론이고 고치 소령까지도 영원히 구두 저
택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말하며 청혼했다.
여기까지 말하고 팩스턴 변호사는 엘러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엘러리씨,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코닐리아 부인이 낳은 자식 세 명은 모
두 머리가 조금 이상합니다."
변호사는 한 사람씩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큰아들 설로우(47살)----꼬마 설로우라고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지나 않
을까 하고 항상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이상한 기미
가 보이면 자신이 먼저 싸움을 건다.
큰딸 루엘라(44살)----자신을 여자 에디슨이라고 믿고있는 발명광.
둘째아들 호레이쇼(41살)---- 하루 종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만년 어린이.
이 세 사람 가운데서는 가장 얌전하다.
물론 세 사람 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비해서 스테픈의 자식들은,
로버트(쌍둥이 가운데서 형, 30살).
메클린(쌍둥이 가운데서 동생, 30살). 두 사람 다 머리가 좋고 일도 유능하게
잘해서, 두 사람 모두 포트 제화 회사의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사장인 코닐리아
부인을 도와주고 있다.
쉴라(불타는 듯한 빨간 머리카락과 귀여운 보조개가 특징이며, 성격이 매우
밝은 처녀. 24 살)
이 때, 갑자기 엘러리가 팩스턴 변호사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쉴라양과 당신은 친구이상의 관계이겠군요."
팩스턴은 깜짝 놀라서,
"아니, 엘러리씨,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
"하하, 팩스턴씨가 쉴라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당신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
렸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 정말 놀랐습니다. 사실, 쉴라와 나는 결혼할 예정입니다."
팩스턴 변호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포트집안을 지키고 싶은 겁니다. 그런
데, 아까 설로우 씨가 한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그는 정말 그 말대로
할 것 같습니다. 그는 그 길로 즉시 단골 총포 점으로 갔을 겁니다."
"그 단골 총포 점의 이름을 아신다면 전화를 걸어 보는 게 어떻습니까?"
팩스턴은 전화를 걸어보더니 곧 어두운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엘러리
는 몸을 내밀고,
"벌써 사갔군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14 자루나 사갔다고 합니다."
"예? 14 자루라고요? 무슨 전쟁을 하려고 그러나?"
"점원에게는 권총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말했답니다. 설로우씨는 총기 소지 허
가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에 걸리는 일은 아닙니다."
"수집이라니, 아주 좋은 구실이군요. 미친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없
는 기발한 지혜를 짜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퀸 씨,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 설로우씨는 총을 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
면 좋겠습니까?"
"빨리 나를 포트 저택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만약에 위험이 닥치면 아버님에
게 부탁해서 설로우씨의 허가증을 빼앗도록 해보지요."
"알았습니다. 그러면, 오후 6시에 쉴라와 함께 차로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림자가 있는 보조개
'아주 사랑스런 여자로군.'
엘러리 퀸은 팩스턴 변호사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쉴라를 보고 마음속으로 이
렇게 생각했다. 딸기같이 빨간 머리카락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안녕하세요, 엘러리 씨?"
쉴라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자 왼쪽 뺨에 보조개가 패었다. 그러나, 엘러리는 쉴
라의 고운 얼굴에 희미하게 슬픈 그림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그 고소 노부인이 쉴라 양과 팩스턴 변호사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것
은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그러한 것을 본인들에게 직접 물어 볼 수는 없는 일이
었다. 세 사람을 태운 자동차는 구두 저택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쉴라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퀸 씨, 처음 뵙는 분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실례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어머니는 팩스턴씨와 저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어요."
"예? 왜요? 팩스턴씨같이 좋은 분과 결혼하는 것을 왜 반대하실 까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데요."
"이유가 한가지 있어요. 그것은 루엘라 언니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
요. 나이가 많은 딸부터 순서대로 시집보내겠다는 말씀이지요."
엘러리는 포트 부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기가 낳은 루엘라에게 슬픈 경
험을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부모들은 대개 성격이 나쁜 자식일수록 정이
많이 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엘러리가 말했다.
"당신들은 이미 어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님이 반대를 한다해도 얼마든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포트부인의 승낙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특별한 까닭이 있는 모양이군요."
팩스턴 변호사는 쉴라 양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눈짓을 보냈으나, 쉴라양은 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요. 퀸 씨 말대로 우리는 허락 없이도 결혼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
게 하면 저는 유산을 한 푼도 받을 수 없어요. 저는 돈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
습니다만, 찰리에게 훌륭한 사무실을 하나 차려 주고 싶어요."
팩스턴 변호사는 운전대를 꺾으며,
"퀸 씨, 쉴라의 이야기로는 내가 유산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들리시겠습니다
만, 나도 유산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쉴라는 보기와는 달리
지독한 고집쟁이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았는데, 그 점은 포트 부인과
꼭 닮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쉴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팩스턴 변호사의 말에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찰리, 그건 어머니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사람들은 어머니를 마귀 할멈
이니, 고소 노부인이니 하고 부르고 있지만 어머니는 정말로 상냥한 분이에요.
어머니가 낳으신 설로우, 루엘라 언니, 호레이쇼 오빠 못지 않게 우리들 세 남
매에게 무척 잘해주세요. 작년에 제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어머니는 새벽 3시
까지 주무시지도 않고 저를 돌봐 주셨어요."
'고소 노부인은 집에서는 상냥한 어머니로군. 정말 사람은 겉만 보고서는 판
단할 수 없단 말이야.'
엘러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어머님을 설득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쉴라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퀸 씨, 사실은 말이에요, 어머니는 더 이상 사실 수 없어요."
"예?"
"이니스 박사님이 어머니의 심장병은 이제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는 최악
의 상태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앞으로 열흘이나 그 정도밖에 사실 수 없어
요."
'아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방해하고 있는 계모인데도 어떻게 저렇게까
지 마음을 쓸 수 있을까? 정말 착한 처녀야.'
엘러리는 팩스턴 변호사가 조금은 부러웠다. 그 때, 신호등이 빨간 색으로 바뀌
었다.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팩스턴 변호사가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
다. 그러자, 쉴라는 문을 열고,
'찰리,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신다면, 또 걱정을 하실 거예요. 저
는 여기에서 내리겠어요. 퀸 씨,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죄송합니다."
10분 뒤, 자동차는 허드슨 강가에 세워진 포트 저택에 도착했다. 무어 건축 양
식(8세기경에 스페인과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아서 모로코 등에서 발달한 건축
양식) 으로 세워진 높은 문에서부터 저택의 현관까지의 거리는 70m 도 되었다.
그리고, 건물의 앞쪽은 넒은 잔디밭으로 되어있고, 여기저기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자동차에서 내린 엘러리의 눈에 나무와 나무사이에 걸려져있는 기분
나쁜 물체가 들어왔다. 높이가 4m 폭이 5∼6m정도 되는 어떤 물체가 허드슨
강에서 반사되는 황혼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가까이 가서보니 그것은 돌기둥 위에 얹혀있는, 끈이 달린 여자 구두 동상이었
다. 2∼3 톤은 나갈 것같은, 구리로 만들어진 동상이었다. 구두 위에는 네온사
인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엘러리는 그 글자들을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포트 구두, 전국 균일 가격. 3 달러 99센트."
<PRE>번 호 : 69 / 76 등록일 : 2000년 10월 05일 17:18
등록자 : 귀니사랑 조 회 : 17 건
제 목 : 수수께끼의 038사건 (2) - 엘러리 퀸
</PRE>
"저녁 식사 때까지는 30 분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집을 한 바퀴 돌아봅시다."
팩스턴 변호사의 말대로 엘러리는 구두 저택을 돌아보기로 했다.
"정말 소문대로 뉴욕에서 제일 가는 집이군요."
주위를 둘러보면서 엘러리가 중얼거렸다. 보통 이런 집은 고딕 풍이라든가 비
잔틴 풍으로 짓게 마련인데, 이 저택은 그런 형식에 따라 지은 것이 아니었다.
무어 풍과 페르시아 풍에 따라 지은 것이 아니었다. 무어 풍과 페르시아 풍에
따라 지은 것이 아니었다. 무어 풍과 페르시아 풍에 고딕 풍을 섞어서 지은 좀
특이한 건물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램프의 거인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로
군."
엘러리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1층의 중앙 홀에서 시작되는 나선형 계단을 올
라갔다. 2 층에 올라가자 긴 복도가 이어져있었다. 복도가 끝나는 곳에는 좁은
탑이 있었고, 그곳에 또 나선형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문이 나왔다.
"여기는 누구 방입니까?"
"발명광인 루엘라양의 방입니다."
팩스턴 변호사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두꺼운 유리로 된 작은 창의 저쪽에서
어떤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곧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야, 이건 살아있는 미이라로군!'
엘러리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 여자의 얼굴은 누렇게 바싹 말랐으며 머리카락
은 하얀 데다가 커다란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의사처
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볼품없이 가는 다리가 보였다. 팩스
턴 변호사가 엘러리를 소개하자 루엘라는 큰 소리로,
"당신이 탐정이라고요? 거짓말이에요. 팩스턴 씨, 이 사람은 나의 발명품을 훔
치기 위해서 온 산업 스파이일 거예요. 빨리 쫓아 보내요."
팩스턴 변호사와 엘러리는 허둥지둥 나선 계단을 내려왔다. 휴 하고 한숨을 쉬
면서 엘러리는,
"저 여자는 분명히 천재 같은 데가 있긴 있군요.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연구
하고 있는 겁니까?"
"그게 말입니다.... 한번 사면 평생 신을 수 있는 플라스틱 구두를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런 구두를 만든다면 포트 집안은 이미 지금까지 밀린 세금 때문에 무너질
지도 모릅니다."
팩스턴 변호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러면, 둘째 아들 호레이쇼를 만나 봅시다."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면서,
"이 저택은 U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넓은 정원이 있습니다. 호레이
쇼씨의 동화의 집은 바로 그 정원의 옆에 있습니다."
"동화의 집?"
엘러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팩스턴 변호사가 가리키는 건물을 보자,
"오,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군요."
라고 감탄했다.
몽당 연필과 같은 탑이 몇 개가 솟아 있었으며, 정면의 문은 금으로 만든 하프
와 같은 모양이었다. 창문은 모두 분홍색이었으며, 그밖에는 푸른색의 쇠덧문이
닫혀 있었다. 고풍스러운 굴뚝에서는 초록색의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
다. 약품을 써서 연기에 색깔을 낸 것 같았다. 팩스턴 변호사가 하프 모양의 문
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고 뒤룩뒤룩 살이 찐 키가 작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 얼
굴은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 산타클로스다. 턱수염을 깎은 산타클로스다.'
동화의 나라에 사는 만년 어린이 호레이쇼는 엘러리와 악수를 나누었다. 보기
와는 달리 그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엘러리는 손이 아플 정도였다.
"퀸 씨, 들어오셔서 집안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호레이쇼는 기분이 매우 들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퀸은 또 한 번 놀랐다. 넓
은 방에 가득히 장난감 철도가 놓여 있었고, 그 철도를 따라서 증기 기관차가
재빨리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난감 철도 주위에는 그림책이 잔뜩 쌓여 있
었고, 동물 인형도 몇 개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낙서한 그림책이 여기저기 지저
분하게 널려 있고, 천장에는 모형 비행기가 끈으로 매달려 있었다.
"어떻습니까? 훌륭한 집이지요. 나는 언제까지나 여기에서 살고 싶습니다. 바
깥 세상은 도저히 나와는 맞지 않아요."
엘러리는 이렇게 말하는 41 살의 호레이쇼의 눈동자가 소년과 같이 빛나고 있
는 것을 보았다. 호레이쇼는 엘러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이런 이야기를 늘
어놓았다.
"퀸 씨, 지금 나는 시를 쓰고 있었어요. 한번 들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은 모두 미쳐있다.
모두 안절부절 허둥거리고
왜 저렇게 움직일까?
모두 돈을 탐낸다.
그렇다면, 마술사를 불러와서
나뭇잎을 돈으로 만들어 볼까?
금 베개에 금 침대
모두 사이 좋게 잠잔다."
엘러리는 슬슬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
'호레이쇼씨는 부인이 낳은 다른 자식들과는 성격이 다르군. 그러나, 호레이쇼
씨가 정상이고 내가 미친 건지도 모르지.'
오후 7시, 포트 집안의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퀸도 저녁 식사에 자리를 함
께 했다. 퀸의 바로 앞에는 포트 부인이 여왕처럼 앉아있었고, 그 왼쪽으로는
버마 제비같이 마른 55∼56 살 정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포트 부인의 두먼
째 남편인 스테픈이다. 그 옆에는 곰처럼 몸집이 듬직한 스테픈의 친구인 고치
소령이 앉아 있었다. 설로우는 오른쪽에 앉아서 식탁 위에 책 두 권을 올려 놓
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싱글거리고 있었다. 발명광 루엘라는 천장의 샹들리
에를 물끄러미 쳐보고 있었다. 갑자기 무언가 굉장한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옆에는 쉴라가 앉아 있었으며, 호레이쇼는 동화의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싶다면서 오지 않았다. 스테픈의 쌍둥이 아들인 로버트와 매
클린은 회사의 일이 밀렸기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했다고 한다. 곧 저녁 식사
가 들어왔다. 뜻밖에 포트 부인은 붙임성이 좋고 상냥한 여주인이었다. 포트 부
인은 엘러리가 서먹서먹하지 않게 몇 마디의 이야기를 걸어왔다. 설로우는 책
을 읽으면서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척 재미있는 책인가 보군요. 무슨 책입니까?"
엘러리는 옆에 앉아있는 팩스턴 변호사에게 물었다. 팩스턴 변호사는 곁눈질로
힐끗 보고서는,
"퀸 씨, '결투의 역사와 예절'과 '권총 사용법'입니다."
"예?"
엘러리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정말로 결투를 할 모양인가? 수프가 나왔다.
굉장히 맛있는 닭고기 수프였다. 엘러리는 식탁 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마땅
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엘러리는 팔꿈치로 변호사를 꾹 찔렀다.
"이 식탁에는 왜 빵이 없습니까?"
"그건 말씀이죠...."
팩스턴 변호사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포트 노부인이 이니스 박사님에게 빵은 몸에 해로우니 잡수시지 말라
는 엄중한 주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부인은, 빵이 그렇게 나쁜 것이
라면 가족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니 빵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 버렸어요.
이 집에서는 노부인의 명령이 절대적이니까요."
엘러리는 마더 구즈의 동요가사가 생각났다. 그래서, 팩스턴 변호사의 귀에다
속삭였다.
" '옛날 옛날 마귀 할멈이 구두 저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자식이 많아서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빵은 주지 않고 수프로 때우고....' 지금의 포트 집안이
그대로 아닙니까?"
"퀸 씨, 이 집에서는 절대로 '마더 구즈' 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팩스턴 변호사가 엄숙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루엘라가 큰 소리
로 말했다.
"어머니, 저, 부탁이 있어요."
"무슨 부탁이냐, 갑자기?"
"저, 연구비가 필요해요. 2천 달라만 있으면, 지금 연구하고 있는 플라스틱 구
두를 완전히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어머니, 주시는 거죠?"
그러자, 포트 부인의 얼굴은 정말 마귀 할멈처럼 변했다.
"루엘라, 요전에 1천 달러 주었을 때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잖아. 이제는 더 이
상 1 달러도 줄 수 없다."
그러자, 40 살의 딸은 4 살 난 어린애처럼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너무 인색해요. 구두쇠, 욕심쟁이."
"루엘라,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자, 어서 일어나서 방으로 돌아가거
라."
"싫어, 싫어요."
"루엘라, 에미 말을 거역할 참이냐? 그렇다면 잠을 재워야겠구나."
"너무해요, 어머니. 나는 배가 너무 고파요."
"배가 고파도 할 수 없어."
포트 부인은 루엘라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와앙―! 루엘라는 큰 소리로 울면
서 밖으로 끌려나갔다. 엘러리는 동요의 다음 구절을 생각하고 입속으로 중얼
거렸다.
'회초리로 때려서 잠을 재우지요.... 야, 정말 지독하군.'
엘러리가 더 놀란 것은 부인의 심한 태도보다도, 쉴라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의
태도였다. 다른 가족들은 그런 루엘라를 쳐다보지도 않고 유유히 수프를 마시
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런 일이 매일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쉴라만은
달랐다. 엘러리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주게 된 것이 매우 부끄럽고 슬픈 것 같
았다. 쉴라는 계속 눈시울을 닦더니 식당에서 나가고 말았다. 팩스턴 변호사도
뒤를 따라서 나갔다. 팩스턴 변호사는 10 분 정도 지나서 돌아와서는 엘러리에
게 속삭였다.
"쉴라가 당신에게 잘 말씀드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에게 맹세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정신 병원에서 쉴라를 데리고 나가야 할 텐데............"
고기 요리가 나왔을 때, 로버트와 매클린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엘러리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이 쌍둥이 형제는 얼굴이나 몸집이 너무
도 닮았다. 더구나,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잘 알고있는 팩스턴 변호사도 엘러리에게 소개하는데 엉뚱하게 바꾸어서 소개
를 하고 말았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들긴 했지만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군.'
그러자, 드디어 로버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포트 부인에게 이야기를 꺼
냈다.
"이러한 것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려서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
습니다만, 실은 저희들은 무척 곤란한 지경에 있습니다."
"곤란하다니, 구두값의 변동이 심한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어머니. 실은, 설로우 형님에 관한 일입니다."
"이봐, 로버트, 식사 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야."
매클린이 말렸다. 그러자, 포트 부인은 매클린을 쏘아보면서,
"매클린 잠자코 있어."
"예."
"로버트, 설로우일로 무언가 불만이 있다면, 어서 말해 보거라. 한번 말한 것
을 그만두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말씀드리지요. 어머니, 앞으로는 설로우 형님이 어머니에
게 울면서 애원을 해도 이번과 같은 일로 재판에 소송하는 것은 피해주시기 바
랍니다."
"로버트, 이번 재판에 비용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머니, 비용문제가 아닙니다. 이번과 같은 하찮은 일로 계속 소송을 한다면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질 뿐만 아니라 구두 판매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말 그럴까?"
포트 부인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설로우가 사나운 개와 같이 눈을 크게 뜨고
덤벼들었다.
"뭐가 하찮다는 거야! 그러면, 그렇게 나를 모욕한 녀석을 그냥 놔두란 말이
야."
보통 때는 얌전한 로버트이지만, 오늘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 그건 형님이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형님이 이번 일로 재판을 건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권총을 14 자루나 사시지 않았습
니까? 무슨 폭력 조직이라도 조직할 작정입니까?"
"둘 다, 조용히 해!"
포트 부인이 말렸지만, 설로우와 로버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설로우는 깁자기 식탁 위의 냅킨을 집어들어서 로버트의 얼굴을 휘갈겼다. 그
리고,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큰 소리를 질렀다.
"너는 나에게 굉장한 모욕을 주었어. 우리는 이름만 형제이지, 사실 너와 나는
남이야. 나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복수를 하겠다. 여기에서 꼼짝 말고 있어.
권총 두 자루를 가지고 올 테니까 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설로우는 쿵쿵거리면서 식당을 나갔다.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뿐이다. 팩스턴 변호사는 엘러리 탐정에게,
"저 책이 문제였습니다. 설로우씨는 저 책대로 실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설마 진정으로 저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엘러리가 이렇게 말했을 때, 설로우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권총 두 자루
가 들려 있었다. 엘러리는 무심결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엘러리씨, 진정해 주세요."
설로우가 이렇게 말하자 엘러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설로우는 의자에 앉아 있
는 로버트 코앞에 권총 두 자루를 들이댔다.
"자, 로버트, 마음에 드는 것을 집어. 결투를 신청 받은 쪽이 무기를 쥘 권리
가 있는 거다. 이것은 결투할 때의 기본적인 예절이야."
로버트는 주저하지 않고 권총하나를 집어들었다. 스미스 웨슨제 38/32형 0.38
인치 구경이다. 길이는 겨우 15㎝ 정도 되는 것이었지만, 로버트에게는 기관총
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다. 옆에 서 있던 매클린은 너무 떨려서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설로우는 그의 손에 남겨진 권총을 내려다보았다. 콜트 0.25
구경으로, 로버트가 가진 권총보다 작은 미니 권총이었다. 길이는 11㎝였다. 따
라서 명중률도 낮았다. 그러나, 설로우는 자신이 있다는 웃음을 지으면서 그것
을 주머니에 넣었다.
"엘러리씨, 결투할 때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미안합니다만,
엘러리 씨가 좀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예? 내가요? 그건 좀...."
엘러리가 꺼려하는 눈빛을 보이자, 팩스턴 변호사가 '하여튼 승낙하시오' 라는
눈짓을 보내와서 마지못해 응했다. 설로우는 과장된 몸짓으로 엘러리에게 고맙
다는 인사를 한 다음 로버트에게,
"로버트, 결투시간은 새벽 6시. 장소는 구두 동상 앞이다."
로버트는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설로
우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로버트, 이 총에는 총알이 한 발밖에 들어있지않다. 결투할 때는 총알을 한
발만 준비하는 것이라고 책에 쓰여있어. 특히 주의해 두겠는데, 도망가도 소용
없어. 나는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갈 테니까. 자, 새벽에 구두 동상 앞에서 만나
자. 한 발로 처리해 주겠다."
설로우는 의기양양하게 식당에서 나가 버렸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쉴라가 들어왔다.
"모두, 이상해요. 지금, 설로우 오빠가 총을 들고 방으로...."
쉴라는 여기까지 말을 하다가 로버트의 손에도 총이 쥐어져있는 것을 보고 깜
짝 놀라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팩스턴 변호사는 재빨리 쉴라에게 다가가서,
"쉴라, 걱정할 것 없어. 두 사람은 새벽에 결투 흉내를 내기로 했어. 설로우씨
는 항상 이상한 장난을 잘하잖아."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에요. 설로우 오빠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어요."
쉴라는 포트 부인의 팔에 매달려서,
"어머니, 말려 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그러나, 포트 부인은 고소 노부인답게 결투에 굉장히 관심이 가는 듯했다. 부인
은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쉴라, 여자가 남자들이 하는 일에 이렇더저렇다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
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엘러리를 향하여,
"나는 당신이 누구에게 부탁을 받고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나서 침실로 돌아가 버렸다. 이어서, 스테픈과 고치 소령도 돌아갔
다. 식당에 남은 사람은 로버트와 매클린 쌍둥이 형제와 쉴라, 팩스턴 변호사,
그리고 엘러리 퀸 이렇게 5명이었다. 이 5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 쓸데없는 놀
이를 중지시킬 수 있을까 의논하기로 했다.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먼저 퀸이 말을 꺼냈다.
"첫 번째는 설로우 포트씨를 지금 곧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는 겁니다. 그렇죠,
무조건 입원시키는 겁니다."
"그건 너무 지나친 방법입니다."
팩스턴 변호사가 반대했다.
"그리고, 포트 부인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설로우씨는 그것을 핑계
로 우리들에게도 결투를 신청할겁니다. 그러지말고, 설로우씨에게 결투를 하도
록 내버려둡시다."
"예? 결투를?"
"그렇습니다. 단, 총알이 없는 권총으로요. 설로우씨는 아까, 결투할 때 권총에
한 발밖에 넣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한 발을 공포탄으로 바꿔놓는 겁니
다. 그렇게 하면 내일 새벽, 설로우씨가 방아쇠를 당겨도 소리와 연기만 나고
총알은 나가지 않을 겁니다."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엘러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팩스턴 변호사는 로버트를 보면서,
"자, 이재 됐습니다. 로버트씨."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공포탄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설로우 형님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바꾸어 놓는 것이 문제로군요."
그 때, 팩스턴 변호사가 쉴라를 쳐다보면서,
"쉴라가 그럴듯한 핑계를 대서 설로우씨를 1 층 서재로 불러낼 겁니다. 그 사
이에, 퀸 탐정과 내가 설로우 씨 방에 들어가서 총알을 바꾸어 놓는 겁니다. 그
러나, 지금 여기에는 콜트 0.25 구경의 공포탄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 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내가 아버지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공포탄을
부탁해 보겠습니다."
계획은 잘 세워졌다. 먼저 설로우를 불러낼 쉴라와, 망을 보기로 한 매클린이
나갔다. 10 분 정도 지나자 매클린만 돌아와서,
"팩스턴, 쉴라가 설로우 형님을 도서관으로 불러냈소." 라고 말했다.
엘러리와 팩스턴 변호사가 조심조심 2 층으로 올라가서, 설로우의 방문을 열었
다. 뜻밖에 방안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무척 어려운 책들이 꽂혀 있었다.
"퀸 씨, 빨리 권총을 찾읍시다."
팩스턴 변호사는 침실로 들어가서 침대 옆의 장롱 위에 올려져있는 콜트 권총
을 찾아냈다. 엘러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탄창을 열었다.
"설로우씨는 훌륭한 기사입니다. 약속한 대로 한 발밖에 들어있지 않군요."
엘러리는 콜트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로버트에게서
스미스 웨슨제의 총을 건네 받고는 차를 타고 뉴욕 경찰 본부로 달려갔다. 아
버지 퀸 경감은 엘러리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정
을 지었다.
"나는 그런 위험한 계획에는 찬성할 수 없어. 벨리 부장, 자네 생각은 어떤
가?"
"저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총알은 역시 총알
이니까요."
"그러나, 이 이상의 방법은 없어요. 아버지도 설로우씨의 그 이상한 성격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엘러리는 결국 아버지를 설득시켰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권총에서 실탄을 빼고
공포탄으로 바꿔 엘러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벨리 부장에게,
"벨리 부장, 우리들도 새벽 결투에 나가보세. 무슨 사고가 나지 말아야 할텐
데...."
엘러리는 공포탄을 넣은 권총을 설로우의 침실 옷장 위에 올려놓고, 스미스 웨
슨 권총을 로버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서재로 들
어갔다. 그러자, 설로우가 다가와서는,
"퀸 씨, 밖에 나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할까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좋습니다."
엘러리는 팩스턴, 쉴라와 함께 술집으로 갔다. 될 수 있는 데로 설로우가 술에
잔뜩 취해서 새벽 결투를 포기하도록 하려고, 퀸은 설로우에게 계속 술을 권했
다. 설로우도 사양하지 않고 계속 마셨다. 그런데, 설로우가 새벽이 가까워오자
술잔을 놓았다.
"퀸 씨, 중요한 결투가 있습니다.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지요."
그의 눈은 악마와 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아무리 겁이 없는 엘러리도 그의
눈빛을 보고는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5시 45 분, 결투 시간이 15 분 남았다. 설로우는 몹시 긴장해 있었다. 잔
디밭을 지나서 구두 동상 앞에 섰다. '포트 구두 전국 균일 가격 3 달러 99 센
트' 라는 네온사인이 졸립다는 듯이 깜빡거리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간 더운 날씨인데도 예절을 지키려는 듯이 설로우는 모직으로 된 양
복을 입고 있었다.
"엘러리 씨, 내 침실에서 권총을 가져다주시겠습니까?"
엘러리는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런 때 조수는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는 것을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권총을 가지러 집으로 향했
다. 구두 동상 옆을 지나칠 때 엘러리는 아버지와 벨리 경찰 부장이 이미 와서
숨어있는 것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엘러리는 2 층으로 올라가서 설로우
의 방으로 향했다. 넓은 집 안은 썰렁했다. 아들 둘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일인
데 포트 부인은 쿨쿨 자고만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커튼 사이로 내려다보고
라도 있을까? 엘러리는 설로우의 방문을 열었다. 방안은 어제 저녁과 다른 것
이 하나도 없었다. 콜트 권총은 앨러리가 놓은 대로 침실의 옷장 위에 놓여 있
었다. 엘러리는 권총을 들고 돌아왔다. 6시, 로버트가 매클린과 함께 나왔다.
설로우와 로버트는 싸늘한 눈초리로 서로를 노려보았지만, 예절대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설로우의 조수인 엘러리와 로버트의 조수인 매클린은 두 사
람에게 화해를 권했다. 그러나, 설로우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권총의
총알이 공포탄인 것을 알고 있는 로버트도 항복하지 않았다. 엘러리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로우씨, 당신 총입니다."
엘러리는 굳은 표정으로 권총을 건네주었다. 설로우는 얼른 총을 받아서 옷저
고리의 오른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만약 무승부가 된다해도 상대방을 살려두
지 않겠다는 매서운 각오가 설로우의 몸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엘러리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은 등을 대고 섰다. 로버트는 어젯밤에 엘러리에
게 받은 스미스 웨슨 권총을 꽉 쥐고 있었다. 설로우도 바로 전에 건네 받은
콜트를 웃저고리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등을 똑바로 대주십시오."
두사람은 똑바로 대려고 했지만 두 사람 다 몸을 너무 떨고 있었기 때문에 등
이 좀처럼 맞지 않았다. 엘러리는 말했다.
"지금부터 10을 세겠습니다. 내가 셀 때마다 각자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가
십시오. 10을 다 세고나면, 내가 '겨냥' 하고 외칠 겁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권총으로 상대방을 겨냥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 둘, 셋이라고
외치면 총을 쏘는 겁니다."
두 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쉴라가 조그맣게 웃음을 터
뜨렸다. 두 사람은 10 발자국을 걸어가더니 몸을 돌려서 서로 마주보았다. 설로
우는 입을 꾹 다물고, 권총을 든 팔을 높이 들어서 로버트를 겨누었다. 로버트
도 똑같이 했다.
"하나."
엘러리는 큰 소리로 천천히 세기 시작했다.
"둘."
퀸 경감과 벨리 부장이 구두 동상 뒤에서 튀어나왔다.
"셋!"
'타앙!'
굉장히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그 총소리는 새벽의 허드슨 강에 크게 울려 퍼져
나갔다. 설로우가 가지고 있는 콜트 0.25 구경의 총구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
는 것이 보였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14 개의 시선이 잔디 위로 쏠렸다. 거기에는
쏘지 않은 권총을 꽉 쥐고 있는 로버트가 쓰러져있었다. 쉴라가 비명을 질렀다.
퀸 경감과 벨리 부장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제일 먼저 로버트에게 달려든 것은 매
클린이었다.
"로버트, 어서 일어나. 이제 결투는 끝났어."
팩스턴 변호사가 로버트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엘러리가 몸을 굽혀서 조사해
보고는 무릎에 묻은 풀을 털어 내면서 일어났다.
"죽었습니다. 즉사입니다."
쉴라가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설로우는 총을 손에 든 채로 멍청히 서
있었다.
"공포탄이 아니었군!"
벨리 부장은 신음하듯이 말했다. 쓰러져있는 로버트의 가슴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서 잔디에 번지고 있었다. 설로우는 그것을 보더니 권총을 내던지고
비틀비틀 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엘러리, 설로우에게 분명히 실탄을 뺀 권총을 건네주었지? 확실하지?"
경감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엘러리는 로버트의 권총을 조사해보았다. 어제 저녁의 공포탄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로버트는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설로우의 권총에서
는 튀어나올 리가 없는 실탄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이건, 살인이다."
퀸 영감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살인입니다."
엘러리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더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건 대담한 도전입니다. 어떤 녀석이 설
로우의 권총에 들어있는 공포탄을 실탄으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PRE>번 호 : 70 / 76 등록일 : 2000년 10월 05일 17:18
등록자 : 귀니사랑 조 회 : 17 건
제 목 : 수수께끼의 038사건 (3) - 엘러리 퀸
</PRE>
제2부 저주받은 포트집안
날씨는 무척 맑았지만 엘러리의 머리 속에는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
다. 기괴한 살인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엘러리는 어디에서 숨
어서 비웃고 있을 범인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 퀸 경감의 부하들이
달려왔다. 집밖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다. 의사가 와서 로버트의 시체를 조사했
다. 벨리 부장은 설로우를 심문하기 위해서 집안으로 들어갔지만 곧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돌아왔다.
"저 설로우란 친구는 정말 미친 모양입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꿩 한 마리
죽인 것처럼 태연합니다. '나는 책에 있는 대로 결투의 예절에 따라 했을 뿐입
니다. 권총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왔다면 이상하지만, 총알이 튀어나왔는데 그것
이 무엇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라고 하는 겁니다. 더욱이, 이상한 것은 설로우
씨가 산 나머지 12 자루의 권총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마 누군가가 숨긴 모
양입니다."
"하여튼 차근차근 수사를 시작해 봐야지."
경감은 부장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엘러리에게,
"엘러리, 어젯밤, 경찰 본부를 나오고 난 다음부터 너의 행동을 자세히 말해보
거라."
"저는 곧바로 이곳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설로우씨의 침실로 들어가서 실탄
을 뺀 콜트 권총을 옷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로버트에게도 공포탄을 넣
은 스미스 웨슨 권총을 건네주었지요."
"설로우의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나"
"글세, 아마 없었을 겁니다."
"총알을 바꾸어 넣는 것을 알고있는 사람은 누구누구지?"
"로버트와 매클린, 쉴라양, 팩스턴 변호사, 그리고 저까지 5 명입니다."
"음,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했지?"
"그 다음에는, 설로우, 쉴라양, 팩스턴 변호사와 함께 술집에 가서 밤새도록
마시다가 오전 5시 45분에 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건 아버지도 보셨지요?"
"음, 보았어 그러면 설로우, 쉴러양, 팩스턴 변호사, 이 세사람은 설로우의 침
실에 숨어들어가 콭트 권총에 손을 대지 못했겠군."
"그건 확실합니다. 세 사람 모두 잠시도 제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떻게 했어?"
"설로우의 침실에 가서 권총을 꺼내다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설로우는 총을
받자마자 그대로 옷 저고리의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기 때문에, 실탄으로 바꿔
넣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역시 밤중에 누군가가 실탄으로 바꾸어 넣은 거야. 어젯밤에 집에 있
던 사람은?"
"하인은 빼고 다음과 같습니다. 포트 부인, 스테픈 씨, 스테픈 씨의 친구인 고
치 소령, 발명광 루엘라 양, 만년 어린이 호레이쇼, 그리고 매클린과 로버트가
있었습니다."
"먼저 이 7 사람부터 조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한 사람씩 자세히 조사
해 보기로 하자. 포트 부인부터 시작해 볼까!"
그러자 엘러리는 크게 하품을 했다.
"아버지, 저는 어젯밤부터 계속 설로우씨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한잠도 못
잤어요. 팩스턴 변호사가 특별히 저를 위해서 마련해준 침실에서 한잠 자고 오
겠습니다. '좋은 지혜는 좋은 잠에서' 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엘러리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아버지를 남겨 두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러나, 두 시간도 채 못되어 엘러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집밖이 굉장히 시끄러웠
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창밖을 내다보니 퀸 경감이 신문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몰려서 진땀을 빼고 있
는 것이었다. 엘러리는 서둘러서 내려갔다.
"앗! 명탐정 엘러리 퀸이다. 무언가 중대한 이야기를 해줄 거야."
신문 기자들은 퀸 경감 쪽에서 엘러리에게로 모여들었다.
"퀸 씨, 결투가 벌어졌다는데, 그것도 예법에 따라서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
시오."
"조용히 하십시오. 사람이 죽었습니다."
엘러리가 이렇게 외쳤지만 더욱 소란할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현관 쪽에서 포트 부인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포트 부인은 이
니스 박사와 함께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조용히 있던 신문 기자들은
갑자기 포트 부인을 향해 와 하고 몰려들었다.
"모두 나가시오! 여기는 내 집이오."
부인은 이렇게 외치면서 치마 주름 밑에서 무엇을 빼내 들었다. 그것은 권총이
었다. 그 총은 햇빛을 받아서 푸른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벨리 부장은 엘러
리에게,
"저것은 설로우가 산 12 자루 총 가운데 하나이네. 역시 포트 부인이 총을 숨
겼군."
하고 속삭이고 나서,
"부인, 그런 위험한 물건은 빨리 버리십시오."
하고 부인에게 경고했다. 그 때, 용감한 사진 기자들이 포트 부인에게 사진기를
들이댔다. 그 순간 '탕!'하고 부인의 총이 불을 뿜었다.
"으악!"
사진 기자들은 사진기를 내동댕이치고 도망가 버렸다.
"귀찮은 녀석들, 이제야 가버렸군."
부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옆에 있는 퀸 경감과 엘러리를 쳐다보았다.
"당신들도 빨리 가시오. 가지 않으면 한 발 쏘아 줄 거요."
포트 부인이 쥔 총이 코브라의 머리처럼 기분 나쁘게 흔들거렸다.
"예,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경감은 도망치는 체하면서 벨리 부장에게 눈짓을 했다. 벨리 부장은 총알같이
빠른 속도로 포트부인에게 달려갔다. 그 순간, 부인은 벨리 부장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벨리 부장이 위험하다! 엘러리는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퀸 경감은
주머니에서 커다란 만년필을 꺼내어 부인에게 던졌다. 엘러리가 몸으로 포트
부인을 미는 순간, 경감이 던진 만년필이 부인의 손을 정확하게 맞추었다. '타
앙!' 총이 불을 뿜었다. 엘러리는 부인의 가는 다리를 들어 올렸다. 총알은 아
슬아슬하게 벨리 부장의 모자를 뚫고 지나갔다. 권총은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돌계단에 떨어졌다. 벨리 부장은 권총을 주워들고 부인을 노려보았다. 포트 부
인은 엘러리와 이니스박사에게 붙들리자 암탉과 같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망할 녀석들, 너희들을 고소해 버리겠다!"
그러자, 이니스 박사가 부인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포트
부인이 갑자가 얌전해졌다. 아마 이니스 박사는 '너무 흥분하면 십장에 해롭습
니다.' 라고 속삭인 모양이다. 이니스 박사는 그대로 부인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벨리 부장은 원망스러운 듯이 자신의 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퀸
경감은 벨리 부장에게서 총을 받아들고,
"이것으로써 설로우 씨가 산 14 자루의 총 가운데 3 자루가 손에 들어왔다.
두 자루는 새벽의 결투때 사용된 것이고, 한 자루는 포트 부인이 가지고 있던
이것이다. 남은 것은 11 자루다. 지금부터 나와 함께 총을 찾도록 한다. 찾아낼
때까지는 점심 식사를 할 수 없다."
"경감님! 그건 너무합니다."
벨리 부장이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엘러리 탐정은 팩스턴 변호사, 쉴라와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이번 사
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로버트와 시체는 검시를 받기 위해서
운반되어 간 뒤였다. 엘러리는 팩스턴 변호사에게,
"호레이쇼 씨는 두 사람이 결투를 하다가 한쪽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게 말이지요, 좀...."
팩스턴 변호사는 조금 주저하면서,
"호레이쇼 씨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결투, 남자다운 죽
음, 그것도 형제끼리. 이것은 굉장한 이야기거리겠군. 아, 이것을 어린이들을 위
한 연극으로 꾸미면 좋겠어.' 라고요."
"과연, 호레이쇼 씨다운 말이군요. 그런데...."
엘러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때, 퀸 경감과 벨리 부장이 큰 상자를 들
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엘러리 설로우 씨가 산 권총을 겨우 모두 찾아냈다."
경감이 이렇게 말하자 벨리 부장은 상자 뚜껑을 열고서, 안에 든 권총을 하나
하나 꺼내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엘러리는 눈으로 개수를 세어 보고는,
"12 자루밖에 없잖아요! 2자루가 부족한데요."
"알고 있어. 나머지 2자루는 네가 찾아라."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엘러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권총을 살펴보
기 시작했다. 12 자루의 총 가운데는 아까 설로우가 로버트를 죽인 구경 0.25
인치의 콜트 권총과 로버트가 들고 있었던 스미스 웨슨 구경 0.38 인치, 포트부
인이 벨리 부장에게 쏜 해리온 리처드슨도 섞여 있었다. 팩스턴 변호사는 퀸
경감에게,
"이 권총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설로우 씨 침실에 있는 비밀 서랍에 실탄 상자와 함께 있었네."
"오, 역시 거기였군요."
팩스턴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로우 씨 침실의 비밀 서랍이라면 별로 비밀스러운 장소가 아닙니다. 이 집
이 세워진 이래 설로우 씨는 그 서랍이 비밀 장소라고 생각하고 중요한 물건을
늘 그 서랍에 넣어두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 포트 부인도 거기에서 해링튼 리처드슨 권총을 꺼낸 것이군요."
퀸 경감은 몹시 배가 고팠는지 엘러리가 먹던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그 사
이에 엘러리는 12 자루의 권총을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었다.
1. 콜트. 포켓 모델. 자동. 구경 0.25인치. 설로우가 로버트를 죽인 총.
2. 스미스 언더 웨슨, 38/32형. 리벌버. 구경 0.38 인치. 로버트가 사용했음.
3. 해링튼 언더. 리처드슨 트랩. 구경 0.22 인치. 포트 부인이 사용.
4. 아이버 존슨. 자동. 구경 0.32 인치.
5. 슈마이저. 포켓 모델. 자동. 구경 0.25 인치.
6. 스티븐스. 구경 0.22 인치. 단발형.
7. I·J 챔피언. 구경 0.22 인치.
8. 스토거 루거. 구경 7.65㎜.
9. 신형 모저. 구경 7.63㎜. 10 연발.
10. 하이 스탠다드. 자동. 구경 0.22 인치.
11. 브로닝 1912년형. 구경 9㎜.
12. 오트기스. 구경 6.35㎜.
나머지 권총 2 자루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음. 그러나, 찾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됨. 형사 한 사람이 설로우가 총을 산 총포점에 가서 조사해 보기로 했기
때문임.
퀸 경감은 이 표를 보면서,
"권총의 모양이 전부 밝혀진다고 해서 로버트를 죽인 범인까지 밝혀지는 것은
아니야. 로버트를 죽인 범인은 설로우가 가지고 있던 콜트 권총에 들어있던 공
포탄을 다시 실탄으로 바꾼 녀석이다. 아마 그 녀석은 오래 전부터 로버트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던 녀석일 거야."
"그렇다면, 설로우 씨일 겁니다."
팩스턴 변호사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설로우 씨는 2∼3년 전부터 로버트에 씨에게 계속 잔소리를 들어왔으니까요."
엘러리는 팩스턴 변호사의 말에 반대했다.
"그러나, 설로우 씨는 내가 콜트 권총의 총알을 바꿔 넣는 동안에는 쉴라 양
과 함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 결투할 때까지는 계속 우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콜트 권총도 내가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실탄과 바꿔 넣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퀸 경감이,
"범인은 로버트가 죽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던 녀석일 거야. 로버트가 죽
으면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그것을 알 수 있으면, 어느 정도 범인의 윤
곽을 잡아 볼 수 있으텐데. 팩스턴, 자네는 변호사이니까 만약에 코닐리아 포트
부인이 죽는다면 그 막대한 유산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를 알고 있겠지?"
"물론, 저는 포트 부인과 함께 유언장을 썼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언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위법입니다."
"제기랄, 법은 역시 귀찮은 존재로군."
경감은 혀를 차면서 투덜거렸다.
"좋아, 포트 부인에게 직접 물어 보지. 팩스턴, 엘러리, 나를 따라와. 아, 벨리
부장, 자네는 나머지 총을 찾아보도록 하게."
퀸 경감과 엘러리, 팩스턴 변호사는 이니스 박사의 안내를 받아서 포트 부인
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구두 회사의 여사장은 여자 구두 모양
으로 만들어진 침대에 비스듬하게 앉아 퀸 탐정일행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계속 타이프 치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포트 부인은 타이프를 다 치고 나
자, 타이프라이터에서 종이를 빼내어 한번 읽어보고는 심이 굵은 연필로 서명
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얼굴을 들어서 퀸 경감을 쳐다보았다.
"경감님 몸이 불룩한 것을 보니, 또 내가 총을 휘두를까 두려워서 방탄 조끼
를 입고 오신 모양이군요."
경감은 빙그레 웃으면서,
"아닙니다. 본디 제가 좀 살이 찐 편이지요."
부인은 경감의 이 말에 빙긋이 웃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요?
"예,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서요."
"좋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팩스턴 변호사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요. 자, 이 성
명서를 신문사에 보내서 큼직하게 실어 달라고 하세요."
팩스턴 변호사는 포트 부인에게서 성명서를 받아 들었다. 그 성명서에는 '포트
구두 애용자 여러분에게' 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우리 포트 제화 회사의 부사장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포트가 불행하게도
오늘 아침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여사장인 코닐리아 포트 부인이 매
클린 부사장과 함께 직접 지휘를 할 것이기 때문에, 포트 구두의 품질은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이, 이것은 부사장님의 죽음을 기업 선전에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까?"
팩스턴 변호사는 두려운 듯이 말했다. 그러자, 포트 부인이 팩스턴 변호사를 무
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팩스턴 변호사,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거예요. 천국에 간 로버트
도 자신의 죽음이 포트 집안의 이름을 더럽히지나 않을까 틀림없이 두려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싫다면 여기를 그만두세요."
"아닙니다. 곧 신문사로 보내겠습니다."
팩스턴 변호사는 깜짝 놀라며 성명서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포트 부인은 이
번에는 퀸 경감을 향하여,
"경감님, 이번 사건은 좀 조용히 끝내 주셨으면 합니다."
엘러리는 포트 부인의 이 말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퀸 경감도 화가 났지만
꾹 참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부인, 부인은 대단한 연기자입니다. 일부러 괴짜인 체하고 계시는 것이 그럴
듯합니다만, 경찰을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건 천만
의 말씀입니다."
퀸 경감의 말에 부인은 경감을 노려보았다. 경관도 포트 부인을 노려보았다.
1∼2 분 침묵이 흐른 뒤에 부인이 '아하하'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퀸 경감님, 당신도 산전 수전 다 겪어 보신 분이군요. 알았어요, 무엇을 알고
싶은 것입니까?"
"유언장의 내용입니다. 그것을 말씀해 주신다면 범인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감의 말은 자신이 넘치고 굉장히 진지했다. 포트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아요, 이야기하죠. 그러나, 신문에 발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실 수 있
지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포트 부인은 유언장의 내용을 말해 주었
다.
1. 코닐리아 포트가 죽으면 모든 재산은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2 두 번째 남편인 게으름뱅이 스테픈에게는 1 센트도 주지 않는다.
3. 포트 제화의 새 사장은 자녀들의 투표에 의해서 뽑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회사를 일해왔던 사이먼 언더힐 공장장에게도 투표권을 줄 것.
"자,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나는 잠을 잘 시간입니다."
퀸 경감 일행은 식당으로 돌아왔다. 엘러리는 팩스턴 변호사에게,
"팩스턴 씨, 포트 부인은 서류를 언제나 저런 식으로 타이프로 쳐서 심이 굵
은 연필로 서명을 합니까?"
"예, 그렇게 하는 것이 확실하다면서 늘 저렇게 합니다."
이번에는 경감이 물었다.
"포트 집안의 재산은 대략 어느 정도 되나?"
"글쎄요. 어림잡아 적어도 3000만 달러는 될 겁니다."
엘러리는 깜짝 놀랐다.
"로버트 씨가 살아 있다면 한 사람이 500 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
는 한 사람이 600 만 달러를 받을 수 있겠군요."
그리고 경감이 입을 열었다.
"자식들은 유언장의 내용을 알고있나?"
"포트 부인은 무엇을 숨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알려 주었을 겁니다."
"그러면, 권총에 실탄을 넣을 만한 사람을 차레 차레 조사해 보자. 먼저 루엘
라 양부터 시작해 볼까."
팩스턴 변호사가 말했다.
"루엘라 양은, 재산을 분배받을 사람이 한 명 없어지면 자신의 몫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생각을 할 사람이 못 됩니다."
"그러면, 호레이쇼 씨는 어떨까?"
"그런 일보다는 동화의 나라와 연 날리기에 빠져 있을 겁니다."
"쌍둥이 동생인 매클린 씨는?"
"매클린 씨는 로버트 씨와 굉장히 사이가 좋았습니다. 매클린 씨가 로버트 씨
를 죽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엘러리가 반대했다.
"그러나, 팩스턴 씨, 매클린 씨에게는 누구보다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매클린 씨는 로버트 씨와 함께 포트 회사의 부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포트 부
인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로버트 씨가 없어진다면 자신이
틀림없이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권총의 실탄을 바
꿔 넣는 계획도 알고 있었군요."
"퀸 씨, 매클린 씨만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로버트 씨와 사이는 옆
에서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팩스턴 씨, 그런 생각만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돼요. 탐정이라고 하면 누구라
도 일단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범인을 밝혀내는 가장 좋은 방법
입니다."
"자, 엘러리, 그만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살펴보자. 스테픈 씨는 어떤가, 팩스
턴?"
"좀 게으르지만, 성격은 온순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로버트 씨는 친아들입니
다."
"고치 소령은?"
"로버트 씨가 죽는다 해도 한푼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자, 엘러리가 다시 반대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부탁을 받아서 실탄을 바꿔 넣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오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 지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좋아, 그렇다면, 고치 소령부터 조사해 보자. 말레이지아에 전보로 물어 보면
곧 알 수 있을 거야."
퀸 경감이 이렇게 말했을 때 벨리 부장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13 번째와 14 번째의 권총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포트 부인
의 침대 밑까지 찾아보았지만 없더군요."
"그렇습니까?"
엘러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총포점에 가서 권총 모양은 알아보았나?"
벨리 부장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13 번째는 콜트, 포켓 모델, 자동, 구경 0.25."
"설로우 씨가 결투에 사용한 것과 같은 모양이군요."
엘러리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14 번째는 스미스 웨슨, 38/32 형 구경 0.38 인치."
"아니, 그것은 로버트 씨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잖아."
"그 말대로입니다."
벨리 부장은 이 사건이 모두 자기의 책임인 듯이 기가 죽어서,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한 권총 2 자루가 모두 결투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모
양이라니, 세상에...."
로버트의 이상한 죽음은 포트 집안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 놓았다. 매클린은
점점 야위어 가고, 쉴라의 그렇게 귀엽던 보조개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포트
부인은 이니스 박사의 진찰을 받으면서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고, 매일 빈
둥거리기만 하던 스테픈과 고치 소령도 역시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루엘라와 호레이쇼뿐이었다. 루엘라는 여전히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
고, 호레이쇼는 연 날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로버트의 장례식에
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엘러리 퀸과 팩스턴 변호사는 1층 서재에
서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다. 팩스턴 변호사는 걱정스러운 듯
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창문 너머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있습니까. 팩스턴 씨?"
팩스턴 변호사의 눈길을 따라간 엘러리도 눈살을 찌푸렸다. 호레이쇼가 정원의
가운데에 서 있는 커다란 시커모어(플라타너스의 일종)의 줄기에 긴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긴 사다리는 그의 몸무게를 못
이겨서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이 휘청거렸다. 거기에서 떨어진다면 틀림없이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곧 그의 몸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
다.
"도대체 무엇 하는 거지요?"
엘러리가 물었다.
"하여튼, 우리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해내는 사람이지요."
쓴웃음을 지으면서 팩스턴 변호사가 이렇게 대답했을 때, 나뭇가지 사이에서
호레이쇼가 내려왔다. 그의 오른손에는 연이 쥐어져 있었다. 호레이쇼는 즉시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연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정말 행복한 사람이군요."
팩스턴 변호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2 층에서 우당탕 하고 굉장히 요란한 소리
가 들렸다. 엘러리와 팩스턴 변호사가 재빨리 나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어
서, 스테픈과 고치 소령이 달려왔다. 그 요란한 소리는 매클린의 방에서 들리는
거였다. 매클린과 설로우는 융단 위를 뒹굴면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매클린의
셔츠는 찢어졌고, 코에서는 피가 나오고 있었다. 엘러리는 매클린을 끌어냈고,
팩스턴 변호사는 설로우를 붙들었다. 매클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 녀석이 로버트를 죽였어요. 나는 로버트를 위해서 내 손으로 반드시 복수
를 하고 말 테다."
그 때, 쉴라가 달려들어 왔다.
"설로우 오빠, 그만둬요. 오빠는 로버트 오빠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매클린
오빠까지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설로우는 이상한 웃음을 지으면서 팩스턴 변호사의 팔을 밀어냈다. 그리고, 주
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세게 매클린의 얼굴에 내던졌다. 그리고 나서 피에
굶주린 악마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매클린, 너는 나에게 심한 모욕을 주었다. 이 모욕을 씻어 버리는 것은 피밖
에 없어. 나는 로버트와 똑같은 방법으로 너를 저 세상으로 보내 주마. 시간은
내일 아침 새벽, 장소는 로버트와 결투를 한 바로 그 장소다. 유감스럽게도 내
권총은 모두 경찰에 넘겨졌다. 그러나, 권총 두 자루는 내가 준비하겠다. 엘러
리 씨, 미안합니다만, 다시 한 번 나를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식들이 다시 결투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포트 부인은 충격으로 쓰
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니스 박사의 간호로 오후 10시에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설로우는 11 시가 지나서 집을 나가 버렸다. 엘러리는 2
층의 복도를 서성거리면서 설로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매클린은 조금 전에
간신히 잠이 들었다. 새벽 1 시 10분, 설로우는 무슨 큰 보따리를 끼고 돌아왔
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2층으로 올라가더니,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이어서, 벨리 부장도 돌아왔다.
"설로우 씨는 골동품 가게에서 큰 권총을 두 자루 샀네. 그가 들고 온 보따리
에 들어 있는 것이 그것이네. 아마 피곤해서 곧 잠이 들었을 거야."
"벨리 부장님, 미안합니다만, 설로우 씨가 잠이 들었다면 그 보따리를 꺼내 왔
으면 좋겠는데요."
10분 뒤, 벨리 부장이 설로우의 방에서 큰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굉장히 깊이 잠이 들었더군.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하지?"
"그 보따리는 제가 맡아 두겠습니다. 부장님은 내일을 위해서 푹 쉬십시오."
보따리를 풀어보니, 구경 0.45 인치의 굉장히 큰 권총 두 자루가 나왔다. 이 총
은 옛날 서부 개척 시대에 무법자들이 즐겨 썼던 콜트 6 연발 권총으로서, 서
부의 역사를 바꿔 놓았던 총이었다. 새벽 2시 30분, 이니스 박사가 포트 부인의
방에서 나왔다. 그는 2 층 작은 홀의 긴 의자에 앉아있는 엘러리에게,
"퀸 씨, 포트 부인은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계속 주
무실 겁니다."
이니스 박사는 이 말만 하고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발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
려갔다. 잡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2시 50분, 엘러리는 임시로 얻은 3층의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권총이 들은 보따리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아침 6시! 설로우가 구두 동상 아래에 나타났다. 거기에는 퀸 경감, 벨리 부장,
스테픈, 팩스턴 변호사, 사복 형사 5명, 그리고 엘러리 탐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로우는 엘러리가 권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
"아, 내 권총이로군요. 잃어버려서 어떻게 된 건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엘
러리 씨가 잘 보관하고 계셨군요. 정말로 엘러리 씨는 좋은 조수입니다."
그 때, 퀸 경감이 다가왔다.
"포트 씨, 우리들은 당신이 결투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결
투는 법률에서 금지되어 있는 겁니다. 만약, 반드시 결투를 하겠다면 이 자리에
서 포트 씨를 체포하겠습니다."
설로우는 퀸 경감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퀸 경감은
엘러리에게,
"매클린 씨에게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엘러리, 어서 가서 매클
린 씨를 여기로 데리고 오너라. 내가 두 사람을 설득해 보겠다."
엘러리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2 층에 있는 매클린의 방문을 두드렸다.
"매클린 씨."
큰 소리로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엘러리의 머리를 스치고 지
나갔다. 서둘러서 방문을 열었다. 매클린은 침대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이불을 턱까지 덮고 있었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죽
은 눈이었다. 매클린은 총으로 가슴을 맞고 죽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가늘고
길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채찍으로 맞은 자국 같았다. 채찍은 문 옆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매클린의 베개에는 총알이 지나간 자리가 새까맣게 타 있었다.
매클린을 쏜 것 같은 권총도 채찍 옆에 떨어져 있었다. 매클린은 죽기 직전에
이 기괴한 사건의 범인을 보고 모든 의혹이 풀렸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
고 그대로 천국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 때, 퀸 경감이 들어왔다. 퀸 경감은 작
은 탁자에 수프를 담은 접시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PRE>번 호 : 71 / 76 등록일 : 2000년 10월 05일 17:18
등록자 : 귀니사랑 조 회 : 15 건
제 목 : 수수께끼의 038사건 (4) - 엘러리 퀸
</PRE>
"입을 댄 흔적은 없다. 그런데, 왜 수프를 침실까지 가지고 왔을까?"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온통 미치광이들이다. 그 덕택에 이상한 죽음만
계속되고 있어."
검찰 의사인 프라우티 박사가 매클린의 시체를 검시하기 위해서 왔다. 퀸 경감
은,
"살해된 시간은?"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입니다."
엘러리는 옆에서,
"저는 2시 50분까지 이 방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홀에서 망을 보고 있었습니
다."
엘러리는 자기 나름대로 범행 때의 상황을 그려보았다.
"오전 3시쯤, 범인은 이 방으로 들어와서 푹 자고 있는 매클린 씨의 베개를
빼냈습니다. 그 순간, 매클린은 눈을 떴습니다. 그때 범인은 빼낸 베개에 권총
을 꾹 대고 매클린을 쏘았던 겁니다. 베개가 총성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기 때
문에, 집안 사람은 아무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여튼 굉장히 침착
한 녀석입니다."
거기에 퀸 경감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한 굉장히 잔인한 녀석이야. 죽인 뒤에, 또 채찍으로 얼굴을 내리쳤
어."
프라우티 박사는 파란 채찍 자국을 가리키면서,
"이것은 살아 있을 때, 맞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죽은 다음 1 분 정도 있다
가 맞은 겁니다."
퀸 경감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게다가 손도 대지 않은 이 수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대체 모르겠어."
그리고 벨리 부장에게,
"벨리 부장, 그렇게 멍청하게만 서 있을 건가? 여기에 버려져있던 권총을 2
시간 전에 감식과로 넘겼네. 이제 슬슬 결과가 나올 때가 되었으니, 빨리 가서
알아보고 와주게."
벨리 부장이 나가고 난 다음에 엘러리는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쉴라와
팩스턴이 정원의 한쪽 구석에서 무엇인지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이
복잡한 집에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스테픈과 고치 소령은 체스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호레이쇼와 루엘라는 여전히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한 발
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이 집에는 모두 이상한 사람만 모여서 사는군.' 이라고 엘러리는 생각하며 독
물조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판명난 수프 접시를 들고 경관과 함께 부엌에 내려
갔다. 그리고 요리사에게 물었다.
"매클린 씨가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수프입니까?"
라고 물어 보았다. 요리사는 고개를 흔들며,
"아닙니다. 그것은 저녁 식사를 하고 남은 수프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인
데, 참 이상하군요. 매클린 도련님은 입이 까다로워서 남아 있는 수프 같은 것
은 절대로 드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범인이 준비한 것이겠군. 역시 범인은 정신이 나간 녀석이
야."
경감이 말했다. 엘러리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마더 구즈의 동요를 중얼거렸다.
옛날 옛날 마귀 할멈이
구두 저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자식이 많아서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빵은 주지 않고 수프로 때우고
채찍으로 때려서 잠을 재우지요.
"엘러리, 이런 상황에서 노래가 나와? 혹시 이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서 너까
지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
엘러리는 조금 화가 난 듯이,
"아버지, 아버지는 이 사건이 정말로 미친 사람의 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방금 제가 부른 동요와 이 포트 집안에서 일어난 연속살인사건은 비슷한 점
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처음의 4절은 포트 부인과 똑같습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두 절은,
빵은 주지 않고 수프로 때우고
채찍으로 때려서 잠을 재우지요. 입니다."
"그러고 보니, 범인은 동요대로 범행을 저지른 모양이군.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건은 미친 녀석의 짓이 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쟎아?"
"아버지, 하나하나 반대하여 죄송합니다만, 동요대로 살인 계획을 짜고, 그대
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정말로 미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제 생각으로는 미친 사람인 체하는 어떤 잔인한 녀석의 짓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네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그러면, 그 호레이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군. 그 어린애 짓을 하는 것도 어쩌면 연기일지도 몰라. 아무
튼, 이제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가운데서 두 사람이 죽었다. 남아 있는 사
람은 설로우, 루엘라, 호레이쇼, 쉴라, 4명뿐이다. 3000만 달러를 4 명이서 나누
면 한 사람 앞에 750만 달러가 된다. 결국, 한 사람이 250만 달러씩 더 받게 된
셈이군."
그 때, 경찰 본부의 감식 계에 갔던 벨리 부장이 돌아왔다.
"경감님, 감식 계에서는 그 총이 매클린 씨를 죽인 것이 틀림없다고 하더군
요."
"그걸 누가 모르나? 문제는 총알이야, 총알."
사건이 점점 복잡해지자, 안절부절이고 있던 경감이 화를 냈다. 그러자 엘러리
가,
"부장님, 매클린이 맞은 총은 어떤 모양이었습니까? 오늘 아침에는 당황해서
자세히 보지 못해서요."
"스미드 웨슨, 38/32 형 0.38 인치."
그 순간 엘러리는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엘러리? 기분이 좋지 않아?"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아버지, 설로우 씨가 산 14 자루의 총 가운
데서 아직 두 자루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그 가운데에 13 번
째가 콜트 0.25구경이고 14 번째가 스미드 웨슨 38/32형 0.38구경입니다. 이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총과 똑같은 겁니다. 더구나, 첫 번째, 두 번째, 14 번째
총은 모두 이상한 사건들과 직접적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발견되
지 않은 13 번째 콜트 권총에 의해서 제 3의 살인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퀸 경감도 엘러리의 이야기를 듣자 얼굴 표정이 굳었다.
"엘러리, 네 이야기가 맞다. 빨리 13 번째 콜트 권총을 찾아내야 하겠군. 벨리
부장,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빨리 찾아보게. 허드슨 강의 바닥까지 샅샅이 뒤져
보란 말이야!"
"경감님, 그 콜트 권총은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이 집은 양키 스타디움
과 같이 넓은데, 콜트 권총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정도로 작은 겁니다."
"그래도 찾아야 하네, 벨리 부장. 땅을 기어서라도 찾아보게."
권총 찾기는 매클린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되었지만, 결국 콜트
권총은 나오지 않았다. 거의 포기한 엘러리는 아침 일찍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렇게 된 바에야 다시 한 번 포트 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
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포트 부인은 무슨 숨겨진 비밀을 쥐고 있
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비밀에는 이번 사건의 실마리가 들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포트 부인은 매클린이 죽고 난 다음부터 계속 침대에만 누워 있잖아.
이니스 박사가 허락해 줄까?"
"아버지,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포트 부인이 괴짜라고는 생각하지 않
아요. 제 3의 살인을 막기 위해서라면 포트 부인도 반드시 이야기를 해줄 거예
요."
엘러리는 아버지와 함께 포트 부인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자 곧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아침 진찰을 하기 위해서 들어온 이니스 박사였
다. 박사는 비통한 목소리로,
"내가 들어왔을 때, 포트 부인은 이미 돌아가시고 난 뒤였습니다. 심장 마비입
니다."
코닐리아 포트 부인은 많은 고생을 하면서 혼자 힘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은 여
자 사업가였으며 포트 왕국의 여왕이었다. 그런데, 그 여왕은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서 혼자 외롭게 천국으로 갔던 것이다. 돈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었던 포
트 부인이지만 사랑과는 인연이 멀었던 여자였다. 포트 부인의 첫 번째 남편은
행방 불명이 되었다. 두 번째 남편인 스테픈과는 잠시 사이가 좋았지만 지금은
남편이라기보다는 하숙생에 불과했다. 더구나, 부인이 낳은 설로우, 루엘라, 호
레이쇼는 모두 괴짜를 넘어선 미치광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세 사람
모두 전염병인 페스트로 죽었다고 생각하는지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았다. 도리
어, 의붓자식인 쉴라가 와서 슬프게 울뿐이었다. 포트 부인은 자기의 친자식에
게는 포기를 하고 스테픈의 자식인 로버트와 매클린을 포트 제화의 부사장으로
앉혀서 자신을 돕도록 했었다. 그런데, 그 두사람이 잇달아서 기괴한 죽음을 당
하고 만 것이다. 포트 왕국의 앞날을 생각했을 때, 부인은 틀림없이 암담한 기
분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 걱정이 어쩌면 죽음을 재촉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
금, 포트 부인의 침대 옆에는 포트 제화의 직원도 아닌 남자 두 사람이 서 있
었다. 퀸 경감과 엘러리였다. 엘러리는 거기에 서 있으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
다. 부인의 침대 옆에는 타자기가 놓여있었다. 부인은 타자를 치고 나서 타자기
를 집어넣으려고 했을 때 발작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부인은 돌아가시기 전에 무언가 중요한 서류를 만들었습니다."
엘러리는 부인의 오른손이 침대 시트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경감도 곧 눈
치를 채고 시트를 걷었다. 부인의 오른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꼭 쥐어져 있었다.
경감은 부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고 그 봉투를 빼냈다. 그 봉투에는 타이프
로 '유언장'이라고 찍혀 있었고, 그 밑에는 부인이 언제나 사용하는 심이 굵은
연필로 코닐리아 포트라고 서명이 되어 있었다. 경감은 팩스턴을 불렀다.
"자네는 포트 부인이 벌써 유언장을 써 두었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쪽 탁자 서랍에 있을 겁니다."
엘러리는 팩스턴 변호사가 가리킨 탁자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언장은 봉투에 넣어져 있었나?"
"아닙니다. 봉투에 넣지 않았습니다."
"이 봉투는 새것이고 서명도 새로이 한 겁니다. 그러면, 포트 부인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전에 만들어 놓았던 유언장을 꺼내서 봉투에 넣은
것일까? 하지만, 그건 좀 이상하군요, 팩스턴 씨."
"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팩스턴 변호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유언장을 열어보면 알게 되겠지."
퀸 경감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초조해 하지 않았다. 유언장은 법에 따
라서 팩스턴 고문 변호사가 받아 두기로 했다. 사흘 뒤, 장례식은 무사히 끝났
다. 드디어, 유언장을 열어 볼 때가 온 것이다. 유언장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
을만한 사람은 모두 1층 서재에 모여 있었다. 큰아들 설로우, 너무 울어서 눈이
새 빨개진 쉴라, 그리고 스테픈이 들어왔다. 그러나 루엘라와 호레이쇼는 실험
과 모형철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포트 부인이
가장 신임했던 공장장 언더힐 씨가 들어왔다. 엘러리 부자는 한 시간이나 전에
들어와 있었다. 본디는 참석할 수 없는 거지만 제 3의 살인이 일어날 위험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허락을 받고 들어와 있었다. 경감은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하자,
"그러면, 팩스턴 변호사, 유언장을 읽게."
하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팩스턴은 봉투를 찢었다. 그는 내용을 한번 죽 훑
어보고는,
"전에 저와 함께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겁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그 때, 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봉투 속에서 작은 봉투가 탁자 위에 떨
어졌다. 그 봉투의 겉면에도 타이프가 찍혀 있었다. 팩스턴 변호사는 얼른 작은
봉투를 집어들고 읽었다.
"유언장을 발표하고, 포트 제화의 새 사장을 뽑을 때까지 이것을 절대 뜯어보
지 말 것."
팩스턴 변호사는 퀸 부자를 쳐다보았다. 엘러리는,
"포트 부인의 지시대로 해주십시오."
팩스턴은 유언장을 직접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퀸 부자가 포트 부인에게서 직
접 들은 것과 똑같았다. 재산을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줄 것, 스테픈은
회사의 발전에 아무 한 일이 없으므로, 1 달러도 주지 말 것. 새 사장은 포트
집안의 가족(스테픈을 빼고)과 언더힐 공장장의 투표에 따라서 결정할 것. 그리
고 심이 굵은 연필로 부인의 서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 유언장 뒤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팩스턴은 서재에 모인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PRE>번 호 : 72 / 76 등록일 : 2000년 10월 05일 17:19
등록자 : 귀니사랑 조 회 : 15 건
제 목 : 수수께끼의 038사건 (5) - 엘러리 퀸
</PRE>
"새 사장을 뽑고나서 유언장 안에 들어있는 작은 봉투를 열어볼 것."
"그것은 이미 알고있네. 작은 봉투에도 똑같은 말이 찍혀 있었잖아."
경감은 초조해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아직 더 남아있어요."
팩스턴 변호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마지막 문구는 이렇습니다. 작은 봉투를 열어 보면 로버트와 매클린을 죽인
범인이 밝혀질 것이다."
그 순간의 퀸 경감의 행동은 아직까지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경감은 재
빨리 팩스턴에게 다가가서 진짜 범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작은 봉투를 빼앗았
다. 그러자, 동시에 엘러리는 문 쪽으로 가서 범인이 도망치는 것을 막았다. 아
버지와 아들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훌륭한 행동이었다. 퀸 경감은 가슴이
설레었다. 드디어, 이 기괴한 사건이 풀리게 될 것이다. 진짜 범인의 이름이 지
금 자신이 쥐고 있는 봉투 안에 적혀 있는 것이다. 그 범인은 틀림없이 이 서
재 안에 있을 것이다. 경감은 매서운 눈초리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둘러
보았다. 쉴라 는 스테픈에게,
"어머니는 정말로 범인을 알고 계셨을까요?"라고 물었다.
"글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스테픈은 아내가 죽었는데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설로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팩스턴 변호사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퀸 경감
은 조급한 듯이,
"자, 빨리 새 사장을 뽑게. 팩스턴, 자네가 맡아서 빨리 투표를 진행시키세."
퀸 경감으로서는 범인만 잡을 수 있다면 세계 제일의 구두 회사의 사장은 누가
되어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팩스턴은 손을 흔들면서,
"경감님, 저는 단지 고문 변호사일 뿐입니다. 저에게는 그러한 자격이 없습니
다. 그것은 큰아들인 설로우 씨가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러면, 포트 씨, 당신이 앞에 나가서 투표를 진행시켜 주십시오."
경감은 주저하고 있는 설로우를 끌어다가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그러면, 지금부터 포트 제화 회사 사장 선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
뜻밖에 설로우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도저히 믿어
지지 않는 행동을 했다. 설로우는 종종걸음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나, 설로우 포트가 포트 제화 회사의 사장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의장자리로 가서는 말했다.
"나는 설로우 포트 씨를 사장 후보로 인정합니다. 다른 후계자를 추천해 주실
분은 없습니까?"
쉴라는 얼굴색이 변하여 일어섰다.
"설로우 오빠, 오빠 같은 사람이 사장이 된다면 지금까지 어머니가 열심히 만
들어 놓으신 포트 제화는 열흘도 못 가서 쓰러져 버릴 거예요. 나는 절대 반대
예요."
설로우는 쉴라의 말에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이야기를 제대로 잇지 못했다.
"쉴라, 너는 나를 모욕했다. 나는, 나는 만약, 네가...."
"말 안 해도 알고 있어요. 만약 내가 남자라면 결투로 쏘아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요? 나는 언더힐 씨를 사장으로 추천하겠어요."
언더힐은 고개를 흔들면서,
"돌아가신 사장님도 다음 사장은 포트 집안의 가족 가운데서 나오기를 바라셨
을 겁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은 사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사양했다. 그러나, 쉴라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언더힐
도 설로우가 사장이 되는 경우, 많은 사원들의 반발을 생각해보고는 회사의 앞
날을 위하여 겨우 쉴라의 말을 받아들였다. 설로우는,
"흥, 언더힐 같은 사람에게 사장자리를 빼앗길 수는 없지."
설로우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밖으로 나갔다. 퀸 경감은 재빨리 문을 열고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벨리 부장에게 무엇인가 귓속말을 했다. 벨리 부장은
10 분 정도 지나서 돌아왔다.
"경감님, 설로우 씨는 루엘라 씨와 호레이쇼 씨, 두 사람에게 수천 달러를 주
겠다고 꾀어서 서류에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로우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재로 들어왔다. 그는
옷 저고리 주머니에서 무슨 봉투를 꺼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사장 선거를 계속하겠습니다. 후보자는 설로우 포트와 사이먼 언더힐 두 사
람입니다. 그러면, 언더힐 씨에게 투표하실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올려진 손은 둘, 쉴라와 언더힐.
"언더힐 씨 2 표."
설로우는 탁자 위에 놓여진 봉투를 집어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본 회의에 나오지 못한 루엘라와 호레이쇼는 서면으로 투
표를 해왔습니다. 그러면, 읽겠습니다."
쉴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로우는 첫 번째 종이를 꺼내어,
"루엘라, 설로우 씨에게 투표."
두 번째 종이를 꺼내어,
"호레이쇼, 설로우 씨. 그리고, 설로우는 설로우 씨에게 투표합니다. 이것으로
투표를 마칩니다. 언더힐 씨 2표, 설로우 씨 3 표, 따라서 설로우 포트 씨가 포
트 제화의 새로운 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때, 쉴라가 벌떡 일어났다.
"무효예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꾀어서 표를 받다니, 그건 무효예요. 다시
해야 되요."
팩스턴 변호사는 설로우에게 달려들려는 쉴라를 붙잡고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쉴라는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을 지으면서 물러섰다. 한편, 투표가 끝나
기를 기다리고 있던 퀸 경감은,
"그러면, 지금부터 그 작은 봉투를 열어 보기로 하지요."
벨리 부장은 그 거대한 몸으로 문을 지켰다. 만약 이 서재 안에 범인이 있다면
독 안에 든 쥐인 셈이다. 엘러리는 크게 숨을 내쉬면서 포트 부인이 남긴 수수
께끼의 봉투를 열었다. 서재 안에 모인 사람들의 눈은 봉투에서 나온 종이로
쏠렸다. 고통스러운 시계의 째깍짹깍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더 크게 들렸다.
"그러면...."
엘러리는 읽기 시작했다.
제 3부 역전의 명추리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던 뉴욕 사람들도 포트 부인의 이 글에는 깜짝 놀라
버렸다. 그리고, 어떤 신문은 '구주 저택에 사는 노파'라고 하는 마더 구즈의
동요 가사를 바꾼 노래를 커다랗게 실었다.
옛날 옛날 마귀 할멈이
구두 저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자식이 많아서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생각하다 못 해 한 사람씩
죽여버리기로 했지요.
모두 죽이기 전에는
자신은 죽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화가 난 사람들은 포트 부인이 세운 구두 동상 앞으로 몰려와서
동상을 향해 마구 돌을 던졌다. 자기 아파트로 돌아온 퀸은 다음날부터 새로운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포트 집안의 사건
이 어금니 사이에 낀 것처럼 시원치 않았다. 포트 집안 사건이 일어난 지 3 주
일이 지난 어느 날, 엘러리가 책상 앞에 멍청히 앉아 있는데, 팩스턴 변호사가
찾아왔다.
"아, 팩스턴 씨, 쉴라 양과의 결혼 날짜가 정해 졌습니까? 두 분의 결혼을 반
대하던 포트 부인이...."
이렇게 말하던 엘러리는 팩스턴의 얼굴에 매우 언짢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포트 집안에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팩스턴은 한 숨을 내쉬면서,
"별다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재산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고 있습
니다. 모두 설로우 씨의 욕심 때문이지요. 쉴라 는 재산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
니다. 쉴라는 나를 만날 때마다, '사건이 깨끗이 정리될 때까지는 절대 결혼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겁니다."
엘러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정리라니요? 포트 부인이 남겨놓은 글로 모든 것이 다 확실해지지 않았습니
까?"
팩스턴은 엘러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엘러리 씨, 당신은 포트 부인의 그 글을 모두 믿으셨습니까? 나로서는 도저
히 믿어지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있던데요. 예를 들어 권총 말입니다. 포트 부인
은 자기가 해링튼 리처드슨 권총을 훔쳤다고 했습니다."
"아아, 벨리 부장의 모자에 구멍을 낸 그 총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로우 씨의 총 가운데서 다시 한 자루를 훔쳐서 한밤중
에 매클린 씨의 침실에 몰래 들어가서 쏘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가 잘못되었습니까?"
"포트 부인이 매클린 씨를 쏜 총은 없어졌던 14 번째의 스미드 웨슨 38/32
0.38 구경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엘러리 씨, 그 때 없어진 총은 13 번째와 14 번째 두 자루였습니다. 그러니
까, 13 번째 총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13 번째의 권총
이 쉴라에게 향해질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밤
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
"엘러리 씨, 나는 포트 집안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 3 형제의 성격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루엘라 씨와 호레이쇼 씨고 설로우 씨 이상으로 쉴
라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포트 부인의 그 글은 모두 거
짓입니다. 자기 자식들의 죄를 덮어 주려고 거짓말을 했던 겁니다. 진짜 범인은
아마 포트 저택 어딘가에 숨어서 다음 목표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엘러리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팩스턴 씨, 사실 나도 그 글을 읽으면서 당신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포트
부인이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진짜 범인은 그 죄를 덮어쓰고 죽었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포트 부인이 남겨놓은 글을 좀더 자세히 살
펴봅시다. 첫 번째, 그 글은 포트 부인이 자기가 죄를 뒤집어쓰기 위해서 직접
쓴 것이다. 두 번째, 그 글은 진짜 범인이 포트 부인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서 만든 가짜다. 분명히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일 겁니다. 어떻습니까,
팩스턴 씨, 포트 부인은 우리들이 부인의 방으로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까,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그 방에는 타자기도 놓
여있었으니까, 누군가가 그 글을 꾸밀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겁니다."
"엘러리 씨, 말씀 도중에 끼여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만약 그 글이 누군가가 꾸
민 거라면 서명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엘러리 씨는 그 때 유언장은 서명과 비
교해 보시고 똑같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내가 너무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
펴보았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다시 해보죠."
"좋습니다. 서명은 같은 사람이 쓴 것이라도 조금씩 바뀌니까 될 수 있는 대
로 최근의 것이 좋은데. 아 참, 로버트 씨가 죽은 뒤에 포트 부인이 신문에 낼
성명서를 만들고 연필로 서명을 했지요. 그것이라면 아주 좋겠는데, 남아 있을
까요?"
"아아, 그것이라면 1층 서재에 있는 책상 서랍에 있습니다."
"그것 참 잘 됐군요. 팩스턴 씨, 먼저 경찰 본부로 가서 아버지에게 그 글을
받은 다음, 포트 저택으로 가서 그 글을 비교해 봅시다."
한 시간 뒤, 엘러리와 팩스턴은 포트 저택의 서재에 도착했다. 팩스턴 변호사에
게서 성명서를 받은 엘러리는 밝은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햇빛이 비치
고 있었다. 엘러리는 유리창 위에다 성명서와 포트 부인의 쓴 글을 겹쳐 놓고
서명한 곳을 맞추어 보았다.
"팩스턴 변호사, 이것 좀 보십시오.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점이라든지 올라간
곳이라든지 하나도 틀린 곳이 없습니다."
"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겹쳐놓고 베낀 겁니다."
"그러면, 어느 쪽의 서명이 가짜일까요?"
"나는 포트 부인이 침대 위에서 이 서명서에 서명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 있는 서명이 가짜이지요. 서명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도 엉터
리입니다. 진짜 범인은 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부인의 타자기로 내용을
치고, 지금 내가 한 것같이 하여, 성명서에서 서명을 베껴 냈던 겁니다. 엘러리
는 경찰 본부에 전화를 걸어서 퀸 경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경감은,
"뭐라고, 그러면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잖아?"
"물론입니다. 포트 부인이 남겨 놓은 글에 있는 서명은 성명서에 있는 서명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그리고, 지금 범인은 저택의 어딘가 에서 마다 구즈의 동
요를 부르면서 그대로 다음 목표를 죽일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
도 빨리 와 주세요."
엘러리는 수화기를 놓고 인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쉴라가
서있었다.
"엘러리 씨, 미안합니다만, 저는 지금 엘러리 씨가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어요."
쉴라 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엘러리에게 매달렸다.
"엘러리 씨, 당신은 지금 어머니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는
조금 유별나시긴 했지만, 마음은 상냥하고 따뜻한 분이었어요. 그런 어머니가
오빠들을 죽였다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어요. 저와 아버지는 틀림없이 범인은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엘러리 씨, 제발 범인을 잡아 주세요.
이렇게 부탁합니다."
엘러리와 팩스턴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포트 저택은 다시 죽음의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한
13번의 콜트 0.25 구경이 불을 뿜을 때는 제 3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그 때
문인지 저택의 공기는 14세기의 고성처럼 무겁고 답답했다. 엘러리는 정원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테라스로 나왔다. 엘러리는 조용히 서서 구두 저택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무척 훌륭하게 지은 집이었다. 정원의 연못에는 물이 가
득 차 있었고, 그 주위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정원 옆에는 호레이쇼의 동
화의 집이 햇빛을 받으면서 평화롭게 서 있었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엘러리."
돌아보니 퀸 경감이 벨리 부장과 함께 서 있었다. 경감은,
"성명서와 포트 부인이 쓴 글을 보여다오."
엘러리는 주머니에서 꺼내어 경감에게 건네주었다. 경감은 엘러리와 똑같은 방
법으로 두 장을 겹쳐보았다.
"흠.... 정말 그대로 베낀 것이군. 이것은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겠다."
퀸 경감은 그 서류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때, 동화의 집의 하프 모양의 문
이 열리고 호레이쇼가 나왔다. 그는 집의 뒤로 돌아가서 전의 그 긴 사다리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시커모어 나무에 걸쳐놓고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다.
퀸 경감은,
"저 사람은 도대체 뭐를 하는 거야?"
"높은 가지에 걸린 연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겁니다."
팩스턴이 대답했다. 모두들 와 하고 소리내며 웃었다. 그러나, 엘러리만은 얼
굴 색이 변했다.
"호레이쇼 씨, 그만, 그만둬요. 위험해요."
엘러리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면서 정원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호레이쇼는
그대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왜 그러니, 엘러리?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야?"
뒤에 따라온 퀸 경감이 물었다.
"동요입니다. 마더 구즈의 동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땅딸보 같은 사람이
쿵 하고 떨어져 죽어 버렸습니다.' 만약, 저 사다리에 누가 칼자국이라도 내놓
았다면 동요대로 되는 거잖아요. 이 사건은 모든 것이 동요와 똑같이 되고 있
어요."
"조심해요, 호레이쇼 씨."
엘러리가 나무 밑에서 소리를 지르자, 호레이쇼가 나뭇가지 사이로 둥근 얼굴
을 내밀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사다리가 부서질지도 모르니까 내려올 때는 살금살금
조심해서 내려오십시오."
" 이 사다리는 내가 매일 사용하는 건데요. 절대로 부서지지 않아요."
호레이쇼는 오른손에 연을 쥐고 오른발을 사다리의 제일 윗 단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곧 삐거덕하는 소리가 났다.
"어! 새 둥우리잖아. 재미있겠는데."
호레이쇼가 위에서 몸을 쑥 내밀었기 때문에, 사다리가 흔들거렸다. 엘러리와
벨리 부장이 깜짝 놀라서 사다리를 붙잡았다.
"앗, 둥우리 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어요. 새알치고는 너무 까맣군. 어디 꺼내
볼까."
호레이쇼는 둥우리 속으로 하얀 손을 집어넣었다. 그 때, 벨리 부장이 화를 내
면서,
"엘러리, 나는 이런 미친 녀석을 돌봐주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네."
그러나, 다음 순간 모두 앗 하고 소리를 쳤다. 호레이쇼가 둥우리 속에서 대단
한 물건을 찾아낸 것이다. 작은 권총이었다. 총에는 새똥이 잔뜩 올라가서 호레
이쇼의 손에서 그 권총을 빼앗았다.
"콜트 권총이 이런 곳에 있었다니!"
"무엇하고 있나, 벨리 부장! 빨리 내려오게."
경감이 벨리 부장에게 소리를 질렸다.
"우리들이 찾고있는 13 번 권총이 틀림없습니다."
엘러리가 벨리 부장에게 총을 건네 받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무 밑에는 엘러리와 퀸 경감만이 남았다. 경감은 콜트 권총을 이
리저리 살펴보았다. 탄창을 열어보니 총알이 한 발 들어 있었다.
"둥우리 속에다 이 총을 숨긴 녀석이 진짜 범인이다. 아마 매클린 씨를 죽인
녀석이 진짜 범인이다. 아마 매클린 씨를 죽인 스미드 웨슨 총도 어딘가에 숨
겨 놓았었겠지."
"아버지, 이 권총을 이용해서 진짜 범인을 잡도록 하지요."
"음,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니?"
"연극을 하는 거예요. 먼저 13번 권총이 새둥우리 속에서 발견됨으로써, 이번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었으며 범인을 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집안에다 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해결되었다고, 그게 정말이니?"
"아버지, 사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태도로 연
극을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범인의 윤곽을
잡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녁 7시, 이곳은 1층의 서재. 창문 옆에 있는 탁자 위에는 구경 0.25의 콜트
권총과 새둥우리가 놓여있다. 그리고 엘러리는 탁자 앞의 가죽 의자에 앉아 있
었다. 날씨가 무덥기 때문에 문이란 문은 모두 활짝 열어 놓았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졌다. 서재의 조명은 탁자에 붙어 있는 스탠드뿐이다. 스탠드의 둥근 빛
은 콜트 권총과 새둥우리와 엘러리만을 비추고 있었다. 서재의 어두운 구석에
는 검은 옷을 입음 퀸 경감과 팩스턴, 그리고 쉴라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이 이 연극의 관객인 셈이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프린트 형사."
젊은 형사가 서재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엘러리 씨?"
"설로우 포트 씨를 불러 주시오."
프린트 형사가 나가더니 잠시 뒤에 설로우가 머뭇거리면서 서재로 들어왔다.
설로우와 엘러리는 권총이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엘러리는 스
탠드를 설로우 쪽으로 돌렸다. 설로우는 눈이 부신지 눈을 비볐다. 엘러리는 매
서운 눈초리로 설로우를 노려보았다.
"사람들은 포트 부인이 남겨놓은 글로 이번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
겠지만, 경찰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남겨놓은 글이 가짜이기 때문에 수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엘러리 씨, 당신은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겁니까?"
"잠깐만, 설로우 씨, 이제는 우리들이 당신의 그 무모한 결투를 막기 위해서
콜트 권총에 넣어진 실탄을 공포탄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런
데, 그것을 누군가가 다시 실탄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에 로버트 씨가 죽은 겁
니다. 설로우 씨, 알고 계신 것을 모두 말씀하시지요."
설로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모르겠습니까? 설로우 씨, 이 탁자 위를 똑바로 쳐다보십시오. 이 권
총을 보란 말입니다."
"보, 보고 있습니다."
"이 총을 보면 무엇인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로버트와 결투할 때 내가 사용했던 콜트 0.25 구경 같군요."
"그렇습니다. 이건 콜트 0.25 구경입니다. 그러나, 설로우 씨가 결투할 때 사용
했던 그 총은 아닙니다. 당신이 결투하기 전 날에 산 14 자루의 총 가운데는
똑같은 것이 두 자루씩,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설로우는 더듬거리면서,
"예, 그래요. 콜트 권총과 스미드 웨슨 총이 두 자루 씩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있군요."
엘러리는 탁자에 놓인 콜트 권총을 들어서 탄창을 열어 보았다. 콜트 0.25 구경
이라고 새겨져 있는 총알이 스탠드의 불빛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거기에는 총
알이 하나 들어 있었다. 설로우는 고개를 쑥 내밀고서 총알을 보았다. 엘러리는
콜트 권총을 둥우리에 넣으면서,
"이 권총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정원의 시커모어 나무에서 발견되었다지요?"
"왜 그런 곳에 숨겼습니까?"
그 말에 설로우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총은 내가 사오자마자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설로우에 대한 질문은 끝났다. 다음엔 루엘라가 불려왔다. 엘러리는
루엘라에게도 똑같은 것을 물어보고, 총알이 들어 있는 콜트 권총을 보여 주었
다. 계속해서 호레이쇼, 스테픈, 고치 소령이 불려왔다. 네 사람은 총알이 든 콜
트 권총을 보여 주어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엘러리는 프린트 형사에게
이제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고 의자에게 일어났다. 여전히 밖은 깜깜했다. 그
때, 퀸 경감과 팩스턴 변호사, 쉴라가 다가왔다. 쉴라는 자기 아버지를 조사해
서 그런지 조금 뾰로통해져 있었다. 퀸 경감도 무슨 까닭에서인지 별로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엘러리, 역시 결정적인 증거는 잡히지 않는군. 어째 이런 방법이 적합하지 않
은 것 같은데."
하면서 퀸 경감은 전등을 켜려고 했다. 엘러리는 그 손을 막으면서,
"아직 불을 켜면 안 돼요, 아버지. 지금 전등을 켠다면 제 계획이 모두 물거품
이 되어 버릴 거예요."
엘러리는 탁자 위의 콜트 권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말에 퀸 경감은 곧 엘
러리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아, 알겠다, 엘러리. 그것이 함정이었구나. 범인의 윤곽을 알았다는 소문을 집
안에 퍼뜨려 놓은 다음, 사람들에게 콜트 권총을 보여준다. 증거품인 권총을 본
범인은 매우 초초한 끝에 이 어둠을 이용해서 권총을 빼앗으러 온다. 그것을
기다렸다가 붙잡으려는 것이 네 계획인 모양이구나. 그러나, 그 계획이 조금이
라도 어긋난다면, 도리어 네가 당하게 될 텐데.... 범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잔인한 녀석이야."
쉴라가 옆에서 끼여들었다.
"그래요. 엘러리 씨, 경감님 말씀이 맞아요. 그 총에는 총알이 들어 있잖아요?"
엘러리는 쉴라를 걱정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괜찮습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벨리 부장
님, 테라스 밖의 기둥 뒤에 숨어 있다가 테라스 쪽으로 다가오는 녀석이 있으
면 재빨리 잡아 주세요. 그것보다도 여러분들은 빨리 어두운 곳으로 숨어 주세
요. 이렇게 웅성거리고 있으면 범인은 물론 귀신이라도 무서워서 오지 못할 겁
니다."
<PRE>번 호 : 73 / 76 등록일 : 2000년 10월 05일 17:19
등록자 : 귀니사랑 조 회 : 21 건
제 목 : 수수께끼의 038사건 (6) - 엘러리 퀸
</PRE>
"벨리 부장 혼자서는 위험할 텐데. 몸집은 크지만 행동이 빠르지 못해서, 아무
래도 내가 지켜야하는 건데 말이야."
퀸 경감은 투덜거리면서 서재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새카만 테라스 쪽의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하얀 뱀 머리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사람의 팔이었다. 장
갑을 낀 그 손은 타자 위의 콜트 권총을 잡았다. 그 콜트 권총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엘러리의 가슴을 겨냥했다.
"악!"
쉴라의 비명이 어둠을 뚫고 지나갔다. 엘러리는 총알을 막으려는 건지 한 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퀸 경감은 재빨리 엘러리의 발을 쳐서 넘어뜨렸다. 그러
나, 그거보다도 먼저 장갑 낀 손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엘러리를 쏜 죽음의 손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약 연기가 탁자의 새
둥우리 위를 맴돌다가 점차 없어졌다. 퀸 경감은 쓰러져 있는 아들에게 달려들
었다.
"엘러리, 괜찮아?"
엘러리의 얼굴이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쏘았는데 안 맞
을 리는 없다. 쉴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엘러리 씨는 죽었어요."
이렇게 말했을 때, 엘러리가 괴로운 듯이 입을 열었다.
"누가 내 발을 쳐서 넘어뜨렸습니까? 덕택에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군요."
쉴라의 얼굴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어머, 엘러리 씨, 살았군요. 퀸 경감님이 당신을 넘어뜨렸어요. 아, 아직 안 돼
요. 움직이면 피가 나와요."
옆에서 팩스턴 변호사가,
"엘러리 씨, 나입니다. 팩스턴입니다. 알겠습니까? 어디를 다쳤습니까? 곧 치
료해 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엘러리는 화가 난 듯이 말했다. 퀸 경감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아무래도 의사를 불러와야겠네. 외과와 정신과 양쪽 의사를 모두 불러와야겠
어. 머리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그러자, 엘러리가 큰 소리로,
"머리가 이상한 것은 아버지 쪽이에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버지, 빨리
총을 쏜 녀석을 쫓아가지 않고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그러면서, 엘러리가 벌떡 일어났다. 경감은 깜짝 놀라며,
"엘러리, 일어나면 안 돼. 어서 눕거라."
"아버지, 저는 정말 다친 곳이 없어요."
"아니,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맞고도 다친 곳이 없다는 말이냐?"
"그래요. 저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어요."
쉴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엘러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할 수 없이 전등을 켜야 되겠군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방탄 조끼를 입고
있었어요. 작년에 런던 경시청의 총감이 아버지에게 선물로 주셨던 것 말입니
다. 그것보다도 벨리 부장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설마 주무시고 있는 것은 아
니겠지요? 부장님이 확실히 지키고 있었다면 녀석을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엘러리, 권총을 쏜 것은 누구의 손이지? 조금 전에 연극에 등장했던 사람 중
에 한 사람인가?"
"하여튼, 테라스에 불을 켜주세요."
쉴라가 복도로 뛰어나가서 벽의 스위치를 올렸다. 테라스가 밝아졌다. 콜트 권
총은 창문 아래에 버려져 있었다. 경감은 그 총을 집어들면서,
"엘러리를 쏜 총이군. 그건 그렇고, 벨리 부장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벨리
부장!"
대답이 없다. 그 때, 프린트 형사가 쉴라의 팔을 잡고 들어왔다.
"수상한 여자를 잡았습니다. 이 여자가 복도의 스위치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범인과 한 패인 것 같습니다."
"프린트 형사, 어서 그 손을 놓게! 그 처녀는 아니야. 자네는 빨리 벨리 부장
을 찾아보게."
프린트 형사는 테라스 쪽으로 내려가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 있습니다, 있어요. 여기에 쓰러져 있는데요."
프린트 형사는 테라스의 기둥 뒤에서 벨리 부장을 끌어냈다. 벨리 부장의 그
큰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퀸 경감과 엘러리가 다가가서 그의 몸을 세게 흔들
자, 벨리 부장은 '으음' 하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경감님, 범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벨리 부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벨리 부장은 더듬거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심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 기둥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단단한 것이 제 머리를 세게 내리치는 거였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
는 줄 알았습니다. 큰 나무 몽둥이 같더군요."
"뒤에서 내리쳤다면, 아무리 자네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겠군. 나무 몽둥이로
맞았길 다행이야."
엘러리는 테라스 주위를 조사해 보았지만, 벨리 부장을 내리친 범인은 무엇하
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경감은 서재로 들어가서 열심히 조사해 보더니 고개
를 갸우뚱거렸다.
"무엇이 나왔어요, 아버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군."
"무엇이 말씀입니까?"
벨리 부장이 정신을 차리려고 브랜디를 마시면서 물었다.
"권총은 틀림없이 이 서재 안에서 발사되었는데, 도대체 총알이 보이지 않아."
"제 방탄 조끼에 맞고 정원으로 튀어 날아가서 흙 속에 묻혔겠지요."
엘러리는 옷저고리를 벗고 방탄 조끼를 조사했다. 그런데, 총알에 맞은 흔적은
없었다. 조끼뿐만 아니라 옷저고리와 속옷에도 없었다. 경감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는 분명히 권총이 불을 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아무 자국도 없다니 정
말 이상한 일이군. 혹시 환상의 총알이었나?"
"환상의 총알?"
옷 저고리의 단추를 채우면서 엘러리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하하하!' 하
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 거지, 엘러리?"
경감이 물었다.
"알았어요, 아버지."
"무엇을?"
퀸 경감, 벨리 부장, 팩스턴, 쉴라 이 네 사람이 다가오자 엘러리는 마치 연극
대사를 외듯이 말했다.
"녀석은 로버트 씨와 매클린을 죽이고 이제는 저를 죽이려고 한 겁니다."
"도대체 녀석이 누구입니까?"
먼저 팩스턴 변호사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어서, 벨리 부장과 쉴라가 똑
같이 물었다. 그러나, 퀸 경감은 의심스러운 듯이,
"엘러리, 확실한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도 꺼내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퀸 경감은 아들에게 누구보다도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퀸 경감의 마음을 모르고 벨리 부장은,
"이번 사건만큼 복잡한 사건은 없을 거네. 설로우 씨가 로버트 씨를 쏘긴 했
지만,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 저번에 포트 부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진짜 범인
은 자기라는 글을 써놓아서 그것으로 사건이 끝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서명
이 가짜라고 했네. 엘러리,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
데, 이번에는 무엇을 알아냈다는 건가?"
엘러리는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앞쪽을 바라보면서,
"누가 울새를 죽였을까? '저입니다.'라고 참새가 말했습니다. 무엇으로 울새를
죽였지? '멀리서 쏘는 물건으로,' 참새가 대답했습니다. 이런 구절이 마더 구즈
의 동요에 있습니다. 그 참새가 누구라고 하기 전에 어째서 살인이 일어났는지
그것을 밝혀 보도록 하지요.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제 말을 믿으려
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습니까? 설로우 씨는 결투를 신청하기 전에 권총
을 14 자루 샀습니다. 이것이 그 총들을 종류대로 분류한 표입니다."
엘러리는 주머니에서 전에 자기가 만든 표를 꺼내어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13번과 14번 총은 그 때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총포 점에 물어 보
아서 종류를 알아 냈습니다. 13번은 콜트 구경 0.25인치이고, 14번은 스미드 웨
슨 38/32형 구경 0.38인치입니다. 14번의 스미드 웨슨 0.38 인치는 매클린 씨
의 시체 옆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13번과 14번 총은 표의 1번과 2번 총과
제조 회사, 모양, 크기가 똑같은 겁니다.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콜트 권
총과 스미드 웨슨이 다른 종류의 총에 비해서 무척 작다는 겁니다. 길이와 구
경이 모두 작지요. 이것이 사건의 요점이니까 머리 속에 잘 넣어두십시오. 설로
우 씨는 식당에서 결투를 신청하면서 예절대로 로버트 씨에게 총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설로우 씨는 총을 14 자루나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콜트 권총
과 스미드 웨슨 권총만을 내밀었습니다. '왜, 그 두 자루만 내밀었을까?' 저는
곧 이것을 의심해 보았습니다. 콜트 권총이나, 스미드 웨슨 권총은 모두 결투에
는 적합하지 않은 포켓용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권총이 똑같이 두 자루 씩
있다는 것, 이것은 우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두 자루씩 있어야만 하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설로우 씨
의 악마와 같은 계획을 알아차린 겁니다."
"어떤 계획인가?"
경감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버지, 로버트 씨는 그 두 자루 중에서 한 자루를 고를 겁니다. 예를 들어
로버트 씨가 콜트 권총을 쥔다면, 설로우에게는 스미드 웨슨이 두 자루 남게
됩니다. 만약, 로버트 씨가 스미드 웨슨을 고른다면 콜트가 두 자루 남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요. 로버트 씨가 스미드 웨슨 0.38을 쥔다면 설로우의 손에는 콜트가
두 자루 남게 되는 거지요."
팩스턴 변호사가 엘러리의 말을 따라했다.
"잠깐만, 엘러리."
경감은 이상하다는 듯이,
"설로우가 똑같은 총을 두 자루 가지고 있다고 해서 별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왜 그렇습니까?"
"설로우 씨가 똑같은 권총을 두 자루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번 사건과는 아
무 관계가 없어. 엘러리, 설로우 씨는 로버트를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 했을
거다. 설로우 씨는 결투 순간까지 공포탄이 있는 콜트 권총에 손을 댈 기회가
전혀 없었잖아. 쉴라 양이 설로우 씨를 서재로 불러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팩스
턴과 네가 설로우 씨의 방에서 권총을 훔쳐내었고, 내가 공포탄으로 바꾸어 넣
었다. 너는 공포탄으로 바꿔 넣은 콜트 총을 설로우 씨의 방에 갖다 놓고는 즉
시 설로우 씨와 함께 술집에 가서 밤새도록 마셨어. 새벽에 포트 저택에 돌아
와서 설로우 씨는 정원에 있고, 네가 가서 공포탄이 넣어져 있는 콜트 권총을
가지고 왔다. 지난번에, 네가 나에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설로우 씨의 침실
에 몰래 들어가서 공포탄을 실탄으로 바꾸어 넣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했던 사
람은 팩스턴, 쉴라, 그리고 설로우 씨―이 3 사람이라고."
그러자, 벨리 부장은,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고 맞장구쳤다. 그러자 엘러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아버지 말씀대로 설로우는 공포탄을 실탄으로 바꾸어 넣지는 않았습니다. 그
러나, 설로우가 로버트 씨를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
"뭐, 뭐라고?"
"로버트 씨를 죽인 것은 설로우입니다. 결투에 사용된 것은 공포탄이 넣어진
콜트 권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콜트 권총이었습니다."
경감은 조그맣게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엘러리는 이야기를
이었다.
"실은 설로우는 실탄을 넣은 콜트 권총을 결투 전날부터 옷 저고리의 안주머
니에 숨겨놓고 있었습니다. 결투 시간이 다가오자, 설로우는 술집에서 우리들과
함께 돌아와서 공포탄이 든 권총을 갖다 달라고 하며 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결투 때 권총에서 실탄이 튀어나왔어요. 그 것은 설로우가 마술을 부린 것이
아니라, 다른 콜트 권총을 사용했던 겁니다. 설로우는 주머니 속에서 감쪽같이
바꾸어서 뺐던 겁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저는 공포탄을 실탄으로 바꿔넣은 녀
석이 진짜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던 겁니다. 그런데, 바뀐
것은 총알이 아니라 권총이었던 겁니다. 저는 틀림없이 공포탄이 들어있는 콜
트 권총을 설로우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 때, 설로우는 어떻게 했지요? 팩스턴
씨, 쉴라 양, 생각이 납니까? 설로우는 총을 받아 들자마자 옷 저고리의 안 주
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실탄이 넣어져 있는 콜트 권총을 꺼내어 로버
트 씨를 쏘았던 겁니다. 로버트 씨를 쏜 권총은 그 자리에다 버리고, 우리들이
1번이라고 한 콜트 권총은 잘 가지고 있다가 시커모어 나무에 있는 둥우리 속
에 숨겼던 겁니다. 우리들이 13번이라고 하면서 필사적으로 찾던 콜트 권총은
사실은 1번이었습니다. 오늘 호레이쇼 씨가 찾아낸 것이 바로 그 1 번 총입니
다. 이것을 안 설로우는 초조하고 불안한 끝에 저를 쏘았습니다. 그렇지만, 저
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공포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전에 바꿔놓은거지요. 저는 조금 전에 설로우에게 총알을 보여주었지만, 그 때
는 그것이 실탄인지 공포탄인지 몰랐습니다. 이것은 나무 세공과 같이 정밀하
게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설로우는 우리들이 공포탄으로 바꿔넣자고 하는 이야
기를 엿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공포탄을 실탄으로 바꾸어 넣었기 때문에, 로버트 씨가 죽게 된 것이라고 경찰
에게 생각하게 만든 겁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투 전의 설로우의 행동
이 모두 들어맞습니다. 먼저 무리들에게 술집에 가자고 말한 것도 설로우이고,
결투 직전에 침실로 권총을 가지려 보낸 것도 설로우입니다. 설로우는 이렇게
해서 자신은 절대로 실탄으로 바꾸어 넣지 않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우리에게
알린 겁니다.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진 범죄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몇 번이
나 속아넘어간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그거야 그렇지, 우리는 그 때 똑같은 권총이 두 자루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
랐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설로우는 우리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번 콜트 권총을 감쪽같이 둥우리 속에 숨겼던 겁니다."
"매클린 씨를 죽인 방법과 까닭도 알고 있나?"
"매클린 씨와 결투하기 전 날, 설로우는 14자루와는 별도로 또 두 자루의 총
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자는 체하며 벨리 부장이 그 총들을 훔쳐가게 내버려두
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을 안심시켜 놓은 설로우는 14번 스미드 웨슨
0.38구경으로 매클린 씨를 죽였습니다. 아마 그 권총도 새둥우리 속에 숨겨두었
을 겁니다. 왜 설로우는 로버트 씨와 매클린 씨를 죽였을까요? 그것은 포트 제
화 회사의 사장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씨와 매클린 씨가 살아 있
다면, 그 둘 중에서 한 사람이 사장이 될 거라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사장
투표에는 설로우, 루엘라, 호레이쇼, 로버트, 매클린, 쉴라 양, 언더힐 이렇게 7
사람이 참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로우는 이 중에서 루엘라 씨와 호레이쇼 씨
는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표를 합해서 3표는 확실
한 거지요.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로버트 씨가 후보가 된다면
틀림없이 그에게 표를 던질 겁니다. 그러면, 설로우는 3표, 상대방은 4표, 결국
아깝게 한 표 차이로 떨어지게 되는 거지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설로우로서
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력한 사장 후보인 로버트 씨
와 매클린 씨를 죽이기로 한 거지요. 결국, 설로우는 3대 2로 포트 제화 회사의
사장 자리를 차지했던 겁니다. 제 추리가 어떻습니까, 아버지?"
"아주 훌륭해, 그렇지만 증거가 있어야 해."
그러자, 팩스턴 변호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증거라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인 것인지는 엘러리 씨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실은 설로우 씨는 얼마 전에 단골
양복점에 부탁해서 옷저고리를 고쳤습니다. 설로우 씨가 결투할 때에 입었던
옷저고리의 오른쪽 안 주머니를 이중 주머니로 만들었던 거지요."
"이중 주머니!"
경감이 이렇게 외치자 벨리 부장도,
"이중 주머니에 똑같은 모양의 권총 두 자루, 기발한 생각인데."
"그렇습니다. 경감님. 실탄이 들은 콜트와 공포탄이 든 콜트를 따로따로 이중
주머니에 넣으면 간단하게 꺼낼 수 있습니다. 그 옷 저고리를 압수하죠. 이것만
은 설로우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팩스턴 변호사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테라스에서 검은 그림자가 소리
도 없이 들어왔다. 설로우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테라스에서 엿들었던 것이
다. 설로우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팩스턴 변호사를 노려보았다.
"나쁜 녀석, 이중 주머니 이야기를 하다니, 로버트와 매클린처럼 너도 죽여 버
리겠다."
설로우는 재빨리 팩스턴을 덮치더니 그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퀸 경감과 엘
러리, 벨리 부장이 설로우에게 덤벼들었다. 벨리 부장은 설로우의 다리를 붙잡
으려고 했지만, 설로우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엘러리는 설로우의 두
팔을 꺾어서 힘껏 들어 올렸다. 그러자, 설로우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 버
린 듯 축 늘어졌다. 설로우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의
증오에 찬 그런 눈이 아니었다. 설로우는 자신의 완전 범죄가 엘러리의 추리와
팩스턴의 증언으로 밝혀졌다는 것을 알자 그 충격으로 완전히 미쳐 버렸던 것
이다.
그토록 기괴함에 휩싸였던 포트 집안의 살인 사건은 엘러리의 뛰어난 추리로
막을 내렸다. 설로우가 팩스턴에게 달려들면서, '로버트와 매클린처럼 너도 죽
여 버리겠다.'라는 말은 마더 구즈의 동요에서 '저입니다.'하고 참새가 말했습
니다에 해당되는 말이었다. 신문에서는 한결같이 엘러리의 솜씨를 칭찬했다. 그
러나, 사건이 해결된 지 1주일이 지났는데도 엘러리의 기분은 개운치 않았다.
눈앞에 파리가 한 마리 날아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파리는 쫓아버려
도 멀리 도망가지 않고 계속 그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지금도 엘러리
는 아침을 들면서 계속 생각에 잠겨 있다.
'이번 사건은 마치 기차 시간표와 같이 무척 치밀하게 짜여 있고, 또 그대로
실행되었다. 이런 치밀한 계획이 설로우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아니,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틀림없이 어떤 잔인한 녀석이 설로우를 조종한 것이
다. 아, 다시 한 번 설로우를 만나서 이야기해 본다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
는데....'
엘러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날로 설로
우는 정신 병원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때,누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쉴
라가 화려하고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뒤에는 팩스턴이 있었다.
"갑자기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들은 내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어요. 두 분이 꼭 참석해 주셨으면 해서
요."
"축하합니다. 기꺼이 가지요."
퀸 경감과 엘러리는 쉴라와 팩스턴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퀸 경감은 이들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물었다.
"설로우 다음에는 누가 포트 제화의 사장이 되는 겁니까?"
그러자, 팩스턴이 큰 소리로 답했다.
"다시, 여사장입니다. 쉴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름만 사장이에요. 모든 경영은 영업 부장에게 맡길 예정이에
요."
쉴라는 즐거운 듯이 팩스턴의 얼굴을 보았다.
"오라, 여 사장에 영업 부장. 두 분 다 굉장히 출세하셨군요."
조금 부러운 듯이 경감이 말했다. 그러나, 쉴라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것도 모두 엘러리 씨의 덕택이지요, 엘러리 씨, 미안합니다만, 내일 신랑을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 데요."
"기꺼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엘러리가 대답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들은 지금 여기 하나님 앞에 모여...."
목사의 목소리가 조용한 교회당의 구석구석에까지 퍼져 울렸다. 엘러리는 신랑
인 팩스턴의 뒤에 서 있었지만, 오른손을 휘두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
었다. 1 주일 동안이나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그 파리가 오늘은 100배나 더 큰
모습으로, 게다가 '붕붕' 비행기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
이다. 엘러리는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옷저고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
자, 딱딱한 것이 손가락에 닿았다. 조금 뒤에 신랑 팩스턴의 왼손 넷째 손가락
에 끼어질 반지였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것이 잡혔다. 오늘 아침 이곳으로 오
는 길에 아버지가, '사건은 끝났다. 이제 내가 보관하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팩스턴에게 돌려주거라.'라고 하시면서 건네 준 포트 부인의 가짜 고백서와 성
명서였다. 엘러리는 누군가의 손에 끄려가듯이 노부인의 가짜 고백서를 주머니
에서 꺼냈다. 심이 굵고 부드러운 연필로 코닐리아 포트라고 서명이 되어 있지
만, 그것은 진짜 서명서 에서 베껴 낸 것이다. 엘러리는 그 가짜 고백서를 살짝
뒤집었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런 자국이 없었다.
"그대, 신을 받들고 경솔한 결혼을 하지 않도록."
목사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목소리같이 엘러리의 귀에 은은하게
울렸다. 엘러리는 서명서를 꺼내 보았다. 그 고백서에 있는 포트 부인의 서명은
이 서명서를 밑에 깔고 베껴낸 것이라고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
금은 다르다. 엘러리는 떨리는 손으로 성명서를 뒤집어 보았다. 그러자, 희미하
지만 분명하게 코닐리아 포트라고 하는 연필의 서명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이
게 무슨 일인가? 밑에 놓여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위이고, 위에 놓여져 있었
다고 믿었던 것이 아래였던 것이다. 엘러리는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
다.
"두 사람은 지금 주님 앞에서 부부가 되는 것을 서약합니다."
"그만! 이 결혼식을 중지하시오!"
엘러리는 재빨리 앞으로 뛰어나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목사는
성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엘러리, 너 미쳤니?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라!"
퀸 경감은 엘러리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엘러리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
다.
"아버지, 저는 악마가 활개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나쁜 짓을
한 녀석에게는 반드시 정의의 심판이 내려진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습니
다. 목사님, 미안합니다만, 잠깐 나가 주시겠습니까?"
목사는 신랑인 팩스턴을 보았다. 팩스턴은 나가 달라는 눈짓을 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쉴라의 아버지 스테픈이었다.
"목사님, 목사님은 여기에 계십시오. 이 신성한 장소에서 나가야 할 사람은 목
사님이 아니라 이 미친놈입니다."
스테픈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서 엘러리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쉴라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 부탁이에요. 엘러리 씨의 말씀대로 하세요."
목사는 잠자코 교회당에서 나가고 안에는 몇몇 사람만이 남았다. 엘러리는 문
을 잠그고,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이번 사건에서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습
니다. 다행히 지금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경감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설로우가 범인이 아니란 말이냐? 설로우는 분명히 로버트와 매클린
을 권총으로 쏘아 죽였고, 또 동요의 참새와 같이 자백도 했잖아."
"그렇지만, 설로우는 진짜 범인이 아닙니다. 그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어요. 설
로우는 확실히 방아쇠를 당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모두 뒤에 숨어있는 사
람의 지시였습니다."
이 터무니없는 엘러리의 말에 경감은 입도 열 수 없었다. 엘러리는 퀸 경감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전에 저는 고백서에 있던 포트 부인의 서명이 가짜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성명서 위에 고백서를 얹고, 서명이 정확하게 겹쳐지는 것을 확인한 결과,
고백서의 서명은 성명서의 것을 베껴 낸 가짜라고 판정했습니다."
엘러리는 주머니에서 고백서와 성명서를 꺼내어 두 장을 겹쳐서 오후의 밝은
빛이 비치는 유리창에 댔다.
"한 쪽은 진짜 서명이고, 다른 한 쪽은 가짜 서명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고백서쪽의 서명을 가짜라고 믿었던 것은 포트 부인이 굵은 연필로 서명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함께 계셨지요. 그런데, 그것이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습니다."
엘러리는 두 장의 종이를 손에 쥐면서,
"서명을 베낄 때, 진짜와 가짜 둘 중에 어느 것을 밑에 놓을까요?"
"그거야 진짜를 밑에 놓겠지."
"그러면, 유리창 위에 진짜를 대고 , 서명을 베끼려고 하는 종이를 이렇게 그
위에 둡니다. 만약, 고백서가 가짜라고 한다면 성명서를 유리창에 꼭 붙이고 그
위에다가 고백서를 놓겠지요. 그렇지요, 아버지?"
"당연하지."
"그런데, 포트 부인은 언제나 심이 굵고 부드러운 연필로 서명을 했습니다."
퀸 경감은 엘러리의 이 이야기에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엘러리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이와 같이 심이 굵고 부드러운 연필로 쓰여진 글자는, 그 위에 종이를 대고
베끼게 되면 심의 검은 가루가 윗 종이의 뒷면에 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번
경우에는 고백서의 뒷면에 진짜 서명을 한 연필의 흔적이 거꾸로 찍혀 있어야
하는 거지요."
"그거야 분명한 이야기이지."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가짜라고 믿고 있던 포트 부인의 고백서 뒷면은 이렇
습니다."
엘러리는 고백서의 뒷면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연필 흔적이 전혀 없는 하얀
종이였다.
"아버지, 실은 저도 이것을 몇 분전에야 알아차렸습니다. 물론, 지우개로 지우
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지우개를 사용한 흔적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빨리 성명서의 뒷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흐릿하지만 확실하게 코
닐리아 포트의 서명이 거꾸로 찍혀 있는 거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짜라는
증거지요. 성명서의 서명과 고백서의 서명을 맞춰보십시오. 딱 맞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성명서는 진짜이고, 고백서는 가짜라는 방향에서 수사를 했습니
다. 그런데, 가짜라고 믿었던 고백서가 사실은 진짜였습니다."
"엘러리, 고백서가 진짜라면 포트 부인이 범인이라는 말인가?"
"고백서는 진짜이지만,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포트 부인은 살인이 어
떻게 행해졌는지도 몰랐습니다. 고백서에는 모두 자기가 저질렀다고 쓰여 있습
니다만,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첫 번째 콜트의 실탄은 우
리들이 공포탄으로 바꾸어 넣었습니다만, 그 공포탄을 바꾼 사람은 아무도 없
었습니다. 바꾸어진 것은 총알이 아니라 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고백서에
서 포트 부인은 설로우의 총에서 공포탄을 빼고, 실탄을 집어넣은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포트 부인은 이중 권총의 조작 따위는 전혀 몰랐다
는 것이지요. 이것은 포트 부인이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
니다. 그리고, 포트 부인은 설로우가 숨겼던 권총을 훔쳐서 매클린의 방으로 들
어가 쏘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매클린이 죽단 날 밤, 포트 부인은 이니
스 박사에게서 수면제 주사를 맞고 깊은 잠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어
날 리가 없는 거지요. 머리가 좋은 포트 부인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렇다
면, 무엇이 포트 부인을 여기까지 몰아 넣었을까요? 그것은 포트 부인이 설로
우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트 부인은 설로우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모님이란 정말 고마
운 분들입니다. 하여튼, 포트 부인은 모든 죄는 자기에게 있다는 글을 남기고서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포트 부인의 글로 진짜 범인은 몹시 곤란해졌습니다. 지
나 범인은 설로우를 이용해서 로버트와 매클린을 죽인 다음, 설로우마저 경찰
에 넘기겠다고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포트 부인이 모두 자기가 저
지른 것이라는 글을 남기고 죽었으니, 자기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게 된 겁니다.
물론 녀석은 포트 부인의 글을 몰래 태워 버리고 싶었겠지만, 꼼꼼한 부인은
고백서가 있다는 것을 유언장의 뒤에 적어 두었지요. 유언장이 없어진다면 자
신에게 올 재산까지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범인은 그 고백서가 가짜라
고 우리들이 판정하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범인은 포트 부인이 쓴 성명서를
없애고, 그와 똑같은 내용의 글을 포트 부인의 타이프로 치고, 고백서에 있는
서명을 베껴 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똑같은 서명이 두 개가 되는 거지요.
저는 포트 부인이 성명서에 서명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성명서는 틀림없이
진짜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범인의 계획에 걸려들고 만 거지요. 그리고, 설로
우를 진짜 범인이라고 단정짓고 그를 정신 병원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짜 범인에게 거추장스러운 사람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진짜 범인
은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을 겁니다."
엘러리는 숨을 돌리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로버트, 매클린, 설로우 이렇게 3 사람의 사장 후보가 없어졌습니다. 포트 집
안에 남은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쉴라 양과 루엘라, 호레이쇼 뿐입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사장 자리에 가장 가깝겠습니까? 가장 유리한 사람은 누구겠
습니까?"
"물론, 쉴라이지."
엘러리의 물음에 답한 사람은 경감이 아니라 쉴라의 아버지 스테픈이었다.
"그렇습니다. 쉴라 양입니다."
엘러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팩스턴이 주먹을 쥐고 엘러리에게 다가섰
다.
"엘러리 씨, 그 말에는 무슨 뜻이 있는 것 같군요?"
"팩스턴, 그만 두게."
퀸 경감의 큰 소리에 팩스턴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경감은 멍청히 서 있는 쉴
라를 보면서,
"엘러리,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했던 냉혹하고 잔인한 범인이 이 보조개의 아
가씨란 말이냐? 아마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아버지, 그건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쉴라 양은 이번 살인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습니다. 범인은 아버지의 뒤에 있는 사람
입니다."
"뭐?"
경감이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팩스턴의 창백한 얼굴이 있었다.
"설마! 팩스턴은 우리들의 수사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와준 사람이잖아?"
경감은 정말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팩스턴의 팔을 잡았다. 엘러리는 차
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팩스턴은 머리가 무척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고문 변호사로서 포트 집안
에 들어가자, 그는 막대한 재산을 자기의 손에 넣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쉴라 양에게 접근하여 약혼까지는 성공했습니
다. 그런데, 포트 집안의 큰아들인 설로우가 명예와 재산에 집념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팩스턴은 설로우를 조종해서 로버트와 매클린을
죽이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엘러리가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팩스턴이 뭐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팩스턴, 얌전히 이야기를 들으시오!"
엘러리의 이 말에 퀸 경감은 권총을 꺼내서 안전 장치를 풀었다.
"팩스턴은 설로우를 꾀어서 로버트와 매클린 두 사람을 없애는 데 성공했습니
다. 모든 증거가 설로우에게 불리하게 되었지만, 저는 설로우의 머리로는 도저
히 그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로우가
콜트 권총의 총알을 공포탄으로 바꿔 넣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설로우
의 말대로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엿들었을 거라고 이야기해 준 사람이 있었습
니다. 그 사람은 바로 팩스턴이었습니다. 총알을 공포탄으로 바꿔 넣자고 우리
에게 제안한 것도, 권총을 살 때 그 종류는 같은 모양의 것을 2 개씩 사라고
가르쳐 준 것도, 또 권총을 주머니 속에서 바꿔치기 하도록 시킨 것도 바로 팩
스턴입니다. 그리고, 설로우가 진짜 범인이라고 밝혀지고 나서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설로우가 옷저고리의 안주머니를 이중으로 고쳤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 준 것은 바로 누구였습니까?"
"팩스턴이다!"
경감이 외쳤다.
"설로우가 테라스에서 달려들었을 때 누구를 덮쳤습니까? 곧장 팩스턴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설로우는 팩스턴을 믿고 그의 명령대로 행동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팩스턴이 배반하고 만 겁니다.
아직도 저는 그 때 설로우가 외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쁜 녀석, 이
중 주머니 이야기를 하다니!" 팩스턴의 배반에 충격을 받은 설로우는 완전히
정신이 돌아버렸던 겁니다."
"불쌍한 설로우 오빠."
쉴라가 울먹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증오에 찬 눈으로 팩스턴을 쳐다보았
다. 팩스턴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대들 듯이 고함을 쳤다.
"거짓말이오! 모두 음모야! 엘러리는 쉴라와 결혼하고 싶어서 나를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민 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 겁니다. 엘러리,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렇게 지껄이지 마시오!"
"내가 음모를 꾸민 거라고? 좋아, 그러면 당신이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할 이
야기를 들러 주지요. 팩스턴의 잔인한 가르침 덕분에 설로우는 로버트를 감쪽
같이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매클린을 죽일 때는 팩스턴이 가르쳐 준
것 외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채찍이라든가 수프 접시 따위를 매클
린의 방에 놓아 둔 겁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그것은 신문과 라디오에서
포트 집안의 사건은 마더 구즈의 동요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
문에, 설로우의 머리에는 늘 그 동요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로우는
'빵은 주지 않고 수프로 때우고 회초리로 때려서 잠을 재우지요.'처럼 해본 겁
니다. 어쩌면 수사진의 눈을 동요를 좋아하는 호레이쇼 씨에게 돌려놓으려고
한 짓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저는 설로우가 혼자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포트 부인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하는 글을 남기고 돌
아가셨습니다. 팩스턴은 포트 부인의 그 고백서가 있는 이상, 설로우를 범인으
로 몰아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백서에 있는 서명을 베껴서 성명서를
새로 만든 다음, 우리가 본 진짜 성명서를 버렸습니다. 사실 팩스턴 변호사는
그 고백서의 문구도 다시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로버트와 매클린을 죽인 것
은 내가 낳은 설로우입니다. 나는 설로우가 사형 당하는 것을 차마 이 눈으로
볼 수가 없어서 먼저 갑니다. 코닐리아 포트'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포
트 부인은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설로우의 죄를 뒤집어썼으면 썼지 자식을 어떻게 사형 대에 보내려고
하겠습니까? 누가 그것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성명서를 만들어서 진짜 범인이
따로 있다고 꾸미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고백서에 있는 서명을 가짜 성명서에
옮길 수 있었던 사람은 팩스턴 단 한 사람뿐입니다. 포트 부인은 유언장이 든
커다란 봉투를 손에 꼭 쥐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뜯어보지도 않
고, 그대로 고문 변호사인 팩스턴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3 일 뒤, 장례식이
끝나고 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유언장이 공개되고 고백서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까, 그 사흘 동안에 유언장을 뜯고 고백서를 읽을 수가 있었던 사람은 팩스턴
뿐이라는 이야기이지요. 팩스턴은 그 사이에 고백서가 가짜라고 꾸미기 위해서
가짜 성명서를 만들고 고백서에서 서명을 베껴 냈던 겁니다. 팩스턴은 거추장
스러운 것을 차례차례로 없애고, 쉴라 양과 결혼해서 포트 제화의 재산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했던 겁니다."
엘러리는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팩스턴, 이상이 나의 추리요. 지금 당신에게도 할 말이 있을 겁니다. 자, 모두
가 있는 앞에서 말해 보시지요."
경감은 팩스턴 변호사가 엘러리에게 덤벼들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팩스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
렸다.
"지쳤소. 나는 완전히 지쳤어요. 엘러리 씨가 방금 말한 것은 모두 사실입니
다. 나는 이제 홀가분해요.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머리를 써가면서 복잡하게
살아야 한다면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퀸 경감은 팩스턴의 이 마지막 말은 미국 범죄 사상 오래 남을 만한 유명한 이
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벨리 부장과 프린트 형사가 팩스턴 변호사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자동차에 태웠다. 쉴라는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로 창문 너머로 그 모
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러리는 쉴라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려고 가까이 다가
갔지만 쉴라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쉴라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까지의 노여움
이 사라지고, 대신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엘러리는 쉴라가 중얼거리는 소리
를 분명히 들었다.
"불쌍한 찰리, 나는 당신이 가난한 변호사였더라도 사랑했을 거예요...."
'쉴라는 정말 아름답고 착한 여자야. 이런 쉴라에게 사랑을 받았던 팩스턴이
부러운데....'
엘러리는 중얼거리면서 교회에서 나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