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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설가가 작품의 전면으로 나설 때 [마루야마 겐지]

Casey,Riley 2023. 5. 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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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가 작품의 전면으로 나설 때  


                           -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 

 


   이미 죽어 말이 없는 인물에 대하여.더구나 면식도 없었던 자에 

대하여 의기양양한 얼굴로 이러쿵저러쿵 쓰는 것은 무례하기도 하 

거니와 속물근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품위 없는 짓이기도 하다. 하 

물며 미시마 유키오 씨처럼 특이하게 죽은 사람에 대 해서는 침묵하

는 편이 현명한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평소에 화려하고 엉뚱한 행동으로 세인에게 어필했 

던 수많은 예를 생각하면, 내가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아도 무방할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오히려 무덤에서 자기가 생각한 바대로 되 

었다고 손뼉을 치며 광분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나로서 

는 지극히 편안한 기분으로, 완전히 속물의 한 사람이 되어 무책임 

하기 짝이 없고,문장의 배열이니 이론이니 하는 것들을 싹 무시한 

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나 자신한테 억지로 윽박질을 해서라도

이 사건에 매듭을 짓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위하여 애써 충전해둔 

기력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애타하는 내 쪽의 형편도 있다. 말하자 

면 갈팡질팡,약간의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불안

이 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어 생겨났는지는 지금도 좀처럼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생명보험회사의 우수한 판촉 사원이 위협적인 

태도로 가입을 권유했을 때 느낀 기분과도 비슷하고.중학 시절 걷 

기 대회에서 신음을 내뱉으며 땀범벅이 되어 걷는 친구들을 슬슬 

곁눈질하며 트럭 짐칸에 매달려 사라진 반 친구를 보았을 때의 느 

낌과도 유사하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몇 편의 소설을 쓰려고

하는 나한테는,이제 시간이 조금만 경과되면,혹은 다음 소설에 착 

수하면 죄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사건이고 마음의 동요라 해봐야 

탱크 로리가 폭발 사고를 일으켰을 때 받은 가벼운 충격 정도라고 

결론을 내리는 편이 상책일 것이다.

 

  어느 날,나는 새 소설에 착수하기 전이면 늘 하는 버릇대로, 남 

은 생활비로 얼마 동안이나 살 수 있을까, 근처에 유원지가 없다면

얼마나 조용할까 하는 여러 가지 별볼일 없는 걱정을 하면서 고다 

츠(밑부분에 전기 히터가 달려 있는 상-옮긴이)에 파고들어 텔레비

전을 보고 있었다. 정오가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쇼 프로그램이 갑

자기 중단되더니, 미시마 유키오 씨가 일으킨 사건을 보도하는 뉴 

스가 흘러나왔다. 흥분한 표정으로 해설을 하던 아나운서의 얼굴이

사라지자 발코니에 서서 외치고 있는 그의 모습-한 번도 만난 적 

이 없는데, 백 번쯤 만났던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 중 

의 한 얼굴-이 브라운관에 비쳤다.

   그가 입고 있는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은 벌써 몇 년 전에 유행이 

지나간 밀리터리 풍이었다. 머리에는 가늘고 하얀 끈을 질끈 동여 

매고, 한 손은 허리에 대고, 다른 한쪽 팔을 ㄱ자형으로 구부리고 

열심히 상하로 휘두르고 있었다. 표정은 늘 그렇듯, 여기저기 잡지 

나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 

고 있는 듯 진지한 얼굴이다. 목소리도, 이전 그가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모험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테마로 얘기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말투는 약간 고양되어 있었다. 컬러 

텔레비전이 아니어서 얼굴색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이크를 통해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연설의 내용도 아니고, 말투처럼 화려한 몸짓 손짓도 

아니고, 말을 하는 중에 그가 열심히 입을 쩝쩝거리는 점이었다. 필 

시 긴장한 탓에 입 안이 바싹 말라. 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서 였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몸짓을 간파한 나는 이 쩝쩝거림이야말로 그가 자신 

의 주위에 뿌린 모든 휘황찬란한 언동보다 가장 선명하게 그를 상 

징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직관했다. 글자를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 

기 이전부터,더 거슬러올라가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론이나 사 

상보다는 이런 직관을 믿어왔다. 잘 들어맞든 안 맞든 그것은 별개 

이고, 직관을 믿는 질이 문제이다. 따라서 이유를 말로 정확하게 표 

현할 수는 없으나, 반대로 그가 그때 한 번도 입을 쩝쩝거리지 않 

았다든가, 발코니 아래에 몰려들어 소동을 피우는 제복 모습의 많 

은 남자들을 향하여 침을 한껏 내뱉는 경우를 상상하면,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컨대‥‥‥ 아니,그만두자.

어떤 평론 가가 오해가 섞이지 않은 이해는 없다고 했다던데,

추측이 지나치면 곤란하니까.

   브라운관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동안 나는 스위치를 돌려 

음량을 높이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도 잊은 채 몇 번이고 몇 번 

이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입을 쩝쩝거리는 그의 행동을 간파했 

을 때,다시 천천히 몸을 기울여,고다츠에 파고들었다. 이어서 아나 

운서의 목소리는 그의 자살을 고했다. 짤막한 칼을 사용하여 그가 

자신의 배를 찌르자, 행동에 동참한 젊은이가 긴 칼로 그의 목을 

내리쳤다고 전한다. 나는 다시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이 일로 그 

의 소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겠지, 라이프 웍이라든가 그 뭐라 하 

는 긴 소설도,그전에 쓴 소설도 에세이도 엄청나게 판매량이 늘어 

나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자이 오사무(太

宰治)의 경우처럼, 매년 11월 25일은 미시마 유키오의 날이 되고,

앞으로 한동안은 그의 망령에 사로잡힌 '문학 애호가'들이 출몰하 

겠지. 아무튼 예술가가 자살을 하거나 하면‥‥‥ 

   텔레비전 뉴스가 낯익을 무렵에는, 고다츠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빠지고 없는 어금니 자리로 숨을 들이 마셔보기도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몇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발코니 아래에 있는 수많 

은 군중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려 했다면 어째서 그는 라우 

드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최근에는 휴대용 소형 핸드 스피 

커도 흔한데. 만일 수상히 여길까 봐 지참할 수 없었다면, 인질을 

확보하고 있었으니 누군가에게 가져오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스피커만 있었다면 저렇게 연설을 하느라 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좋 

았을 텐데.

   스피커는 그렇다 치고. 왜 11월 25일이란 날을 택했을까.(나중에 

전해진 뉴스에서, 처음에는 쿠데타를 계획하였는데, 그날은 쿠데타 

를 성공시킬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별도의 행 

동을 취하기로 했다는 것을 알았다. 좀 이상하다. 조건이 갖추어지 

지 않았다면,그렇게 서둘 것 없이 조건이 갖추어지는 날을 기다려 

도 좋았을 텐데.세상의 형편에 맞춘 것이 아니라,어디까지나 자신 

의 형편에 맞추었단 말인가.모르겠다. )

   이런 일은 질질 끌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불과 

삼십 분 남짓 만에 자살을 한 것은 어째서일까.사상을 위하여 타 

인을 살해하기도 하고 살해당하기도 하고, 끈질기게 생을 유지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자살이라니 어찌된 영문인가.그는 

무사도에 심취해 있어,그에 걸맞는 처신을 해온 모양인데 '죽음'

을 앞두고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인내의 세월을 보내왔던 것일까.

   저녁이 되어 사건에 관한 정보가 대충 다 보도되고, 특별 프로그 

램에 작가니 평론가니 하는 작자들이 등장하여 이 소리도 아닙니 

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하고 열변을 토하고 있을 무렵, 나는 4백 

와트로 온도를 높혀 따뜻한 고다츠에 들어가 집세를 올려달라고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 

은 그의 멋진 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호화스런 집에 살 수 있었을까_ 물론 책이 잘 팔리고 원고 

료가 높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참한 전셋 

 집 신세다. 당연히 그 수입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가난함은 조금 

 도 자랑거리가 못 되고, 궁핍한 생활 체험을 문학과 억지 연관을 

 짓고 싶지는 않지만,그는 지금까지 돈 때문에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을까_하루 세끼 식사조차 채 잇지 못한 일이 있을까. 이 점은 그 

 의 소설을 읽을 때면 아주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다른 작 

 가가 쓴 작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문을 느끼곤 했지만,그의 작품 

 에서는 특히 심해서 때로는 까닭 없이 화가 나기도 했다. 가령 마쯔 

 리에서 가마를 메고 보디빌딩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지낸 시간을,

여름 뜨거운 모래밭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목조 아파트 다다미 석 

장짜리 방에서 지냈다면 어땠을까.무의미함이나 바보스러움이 미 

학 같은 것과 상반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니, 그 

런 가정은 전혀 무의미하다. 아니,무의미하지 않다. 하지만 역시 그

만두자. 그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생각해보는 편이 재미는 

있겠으나, 하고 나는 뜨겁고 맛있는 차-공교롭게도 연명 차라는 이 

름의 약초가 들어 있는 차-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밤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이불 속에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 

았다. 문득 생각했다. 그가 만약 금방 자살하지 않고, 인질을 방패 

삼아 밤까지 살아 있었다면, 하고. 아마도 보도진의 수는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고, 각 텔레비전 방송국은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실황 

을 중계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무수한 서치라이트가 그의 모습 

을 또렷하게 비출 것이고, 처자식을 먹여 살릴 미미한 소득을 얻기 

위하여 일에 지친 사나이다운 남자들-일본 전 인구의 몇 할을 차 

지하고 있는 남자들-도 볼 것이다. 또, 마른 입을 적셔줄 물도 마 

실 수 있었을 것이고, 마음껏 연설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릇 소설가란 이름의 인종은, 학교 선생이나 중처럼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를 테마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홀가분함 덕분에, 즉 무절제한 사고에 

브레이크를 걸 실질적인 체험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중요한 테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머지 전혀 실태를 모르는 

구석이 있다. 특히 오랜 세월 작가생활을 하거나 자신은 태어나면 

서부터 예술가라고 믿는 자들 중에 많은 것 같다. 이 점은 내가 회 

사를 그만두고 느닷없이 작가라는 명함을 내밀게 되었을 때 느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그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은 유독 작 

품의 전면으로 나서서, 거짓세계를 잘 꾸며내는 유일한 재능을 인 

정받았을 뿐인데, 때로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 뒤지는 다른 

능력까지 과시하며 세기의 대천재,대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그들에 

게서 소설가라는 간판을 떼어내면 나머지는 어느 것 하나 인정해 

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미미한 재능이지 않을까.개중에 그런 대로 

쓸 만한 자가 있다 해도 그들의 소설은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는 

엉터리가 태반이다. 소설가의 재능은 다른 세계에서는 전혀 통용되 

지 않는다. 이런 정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세상을 위해서라는 등 인간을 위해서라는 등 

떠드는 소설가는‥‥‥‥ 

   밤도 왜 깊었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그 

덕분에 상당히 흥분하였다. 어쩌자고 또 이렇게 흥분하고 말았는지.

불을 끄고, 빛은 지지 않는 건데 그랬다고 문득 후회를 하면서, 나 

는 또 생각한다. 그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흥분했나. 동업자가 

일으킨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인가.아니면 어떤 평론가가 말한 

 미학의 귀결이란 해석에 마음 한구석이 공명한 것인가.아니면 또,

 자살 행위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감상적인 감정의 포로가 된 것인 

 가. 아무튼 나와는 무관한 사건이다.

   내게 정치나 정치적인 것은, 정치가가 문학을 정치 아래 두든가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아래 존재하든가 무시할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내게 신문의 1면은,그야말로 문학란이나 신간 광 

 고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취한 소설가로서의 태도 중에 내가 가장 경의를 표한 부분 

 은 그가 문장에 신경을 썼다는 점이었다. 문체는 좋아하지 않는다.

 보디빌딩으로 단련한 근육질처럼 난잡스러워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그가 한 말 중에 '다자이 오사무의 노이로제는 

 라디오 체조만 했어도 나을 수 있는 것이었다' 란 말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일본의 고전이기를 추구하며 소설을 쓴다면,음색에 비

유하여 비파의 울림이 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거문고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또 직관적으로 그의 자살은 사상을 위한 것도 예술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일 아침 신문은 앞다투어 그의 사건을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논란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살한 동기는 놀랄 만큼 단순하고 끔찍할 만 

큼 미숙한 것이라는 나의 직관적인 판단은 내일이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자야겠다. 푹 자고 컨디션을 조절하여.유조

선을 타고 쓸 다음 작품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런 일로 언제까 

지 우왕좌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다자이는 자신을 너무 부정한 나

머지 죽었고. 미시마는 자기를 지나치게 긍정한 나머지 죽었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양자의 '지나침'이 소년 시절의 가정 환경 

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 좀처럼 잠 

이 오지 않는다. 전자 시계의 날짜가 바뀌는 불미한 소리를 들은 

듯하다.

 
이상이 미시마 사건에 대해, 11월 25일 내가 느낀 지리멸렬한 감
상이다. 아무래도 세상의 속물들과 다름없는, 무책임한 감상으로 일
관한 듯하다. 쓰는 김에 덧붙여 쓰는데,소설가 중에 그럴싸한 얼굴 
을 하고 있는 자나 그렇다고 믿고 있는 자는 많아도. 세상에 있는 
많은 불행을 혼자 짊어질 수 있을 만큼 그릇이 큰 인간은 단 한 명 
도 없다. 딱히 없어도 상관은 없다. 소설은 소설이지 그 이상도 이 
하도 아니니까.또 소설가가 책을 선전하는 이외의 목적으로 자기 
작품 앞으로 나설 때에는 빈틈없는 주의를 기울이거나. 아니면 단 
호하게 소설가이기를 포기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기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어찌되었건 미시마 유키오 씨는 트럭의 짐칸에 매달려 사라지고 
말았다. 벌써 엔진 소리도 멀어지고 흙먼지도 가라앉고 있다. 나로 
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거칠 
게,생활비나 걱정하면서,신음 소리를 쥐어짜내면서 터벅터벅 걸어 
가는 길밖에 없다. *




마루야마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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