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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전율

Casey,Riley 2022. 6. 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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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지음 / 전율
『전율』은 김홍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을 소외시키고 생명을 경시
하는 현대 문명에 강한 부정성을 느끼며,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의 논리가 내면화된 일상을 벗어
나 다시 자연에 가 닿고자 한다.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자연을 새롭게 감각하는 일은 자본주의
적 삶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참된 일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임을 시인은 여러 시편을 통하여 강
조하고 있다.

전율
김홍기 지음

▣ Short Summary
김홍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자연을 소외시키고 생명을 경시하는 현대 문명에 강한 부정
성을 느끼며,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의 논리가 내면화된 일상을 벗어나 다시 자연에 가 닿고자 한다.
자연의 흔적을 다시금 재발견하고 그 속에서 ‘전율’이라는 감각을 되살려 내고자 한다. 그것은 생명의
리듬을 되찾는 일이며 타자에게로 나아가는 길이다. 전율을 잃어버린 삶은 곧 자연을 잃어버린 삶이다.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자연을 새롭게 감각하는 일은 자본주의적 삶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참
된 일상을 다시 회복하는 일임을 시인은 여러 시편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매화
소한
해평습지
노점 내공
목련 피다
벚꽃 지다
상사화
꾀꼬리 소리
사막을 걷다
철 이른 코스모스
산수유 한 알
간극
노을
전율
추암
제2부
오리 한 마리
봄날 오후
땅의 마음

-2-

전율

숲 속 이야기

고목
오보
간섭을 거부하다
쑥부쟁이의 전설
동정을 살피다
도시의 달
외팔이가 돌아왔다
그 해의 비밀
받아쓰기
유능한 사냥꾼
제3부
나는 손님이다
우물가 팽나무 잎은 빨래 치대는 소리를 낸다
임진강
길 고양이
緣 혹은 鳶
갈대
이태백 길을 잃다
동맹
단풍 들다
바뀐 그림 찾기
목련을 보다
눈빛 마주치다
야영장에서
친구 만나기
제4부
저만치 피어있는 코스모스
빈 집 소나타
전깃줄
천둥소리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은
도도한 것은 이유가 있다
단풍들 즈음
꽃샘추위
폐비닐
나도 따라가고 싶다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전율

나는 출장 중
조카의 일기
호랑나비 날개 달고 훨훨
해설
전율을 위한/에 의한 기억의 각인들_김남영

-4-

전율

전율
김홍기 지음

1부
매화
처음 매화꽃 피었을 땐
간간 흩날리는 눈발이라 했다
겨우내 머물다 간
참새들의 언 발자국이라 했다
시앗 다툼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터뜨리는 비눗방울이라고도 했다
아니, 지난겨울
아내에게 남발했던 약속같이 화사한
봄볕 친전親前의
봉함엽서라 했다
소한
때로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얼음 속 물고기 향해
쩌렁 울리도록 떡매를 내려치기도 했다
해질 녘
언덕 위 팽나무를 그려놓기도 했다
챙챙, 대장간 낫을 벼리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가느다란 회초리로
귀때기를 맞기도 했다
혼절한 물고기처럼
초승달 하얗게 배 뒤집고 떠오를 즈음
꽝꽝 언 강가에선
해평습지
누군가를 사랑하려거든 비 오는 해평습지
백사장을 맨발로 걸어보라
지구 반대편
내 발자국의 깊이만큼 전해오는 까실한
알몸의 언어 들어보라
사랑은 항상 뜨겁지만은 않는 것
비 젖은 백사장 모래처럼 식어질 때 있는 것
모래 위 발자국같이 상처 또한 남는 것

-5-

전율

사랑을 하려거든,
빗방울 스며드는 백사장 모래처럼
가슴을 열어라
그리하여 비 그치면 또 다시 뜨거워질
사랑을 하려거든
해평습지 백사장을 맨발로 걸어보라
목련 피다
지난해 심었던 목련이, 벌써
꽃을 피웠다
아직은 너무 어려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정도는 기억해 주길 바라는
아내에게
불쑥 내민 손이 쑥스러워
하늘 보고 허옇게 웃고 있는, 꼭
경상도 사내 같은 꽃
한 송이 피웠다
벚꽃 지다
잠시 낮잠에 취해
토막 꿈을 꾸었나?
짧은 순간,
누가 왔다 간 것 같은데
왁자지껄 무리지어 왔다 간 것 같은데
소문만 분분할 뿐
읽을 수가 없다
시끌벅적 수화로만 떠들다 간
화려했던
저 봄의 수식어를

2부
오리 한 마리
오리 한 마리
연신 물속을 들락거리며
수리공처럼 부산을 떨다
쟁기를 끌고 가는 황소의 멍에 같은
물둘레 메고
강물을 끌고 간다
보洑에 가로 막혀 흐르지 못하는 강줄기

-6-

전율

데리고 간다
굽이굽이 끌고 간다
숲 속 이야기
염치나 양보? 그런 건 일찌감치
개한테 던져 준 뼈다귀에서나 찾아보라지
어쩌다 약한 놈 있으면 사정없이 짓밟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면
방법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수단을 가려서도 안 되지
그러다 무슨 사달 나더라도 괜찮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뻔한 이야기 같지만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살지
한없이 평화롭고 인자한 것 같지만, 사실은
무법천지인 숲 속
우거진 덩쿨이나 나무들 이야기만은
아니야

며칠째,
흔적만 남긴 채 종적을 알 수 없던 배추벌레를
드디어 찾았다
하도 괘씸해 얼른 잡으려는데
느낌표를 닮아있는 갉아먹은 모양이
배고파 죽겠다고 허겁지겁 먹고 나서
심심하다고 먹고
맛있다고 더 먹고
배불러 죽겠다면서 또 먹고 나서
소화제나 후식까지 챙겨 먹는 너희만큼
먹겠냐는 듯
뱃살 푸짐한 중년의 내 아래위를 훑어보며 내뱉는다
“쳇!”
고목
자신의 어깨 새들에게 내어주고
그늘 만들어 알을 품게 하고
열매로 그 자식 거두어 키우다 아예
자신의 가슴
뭇 생명들에게 활짝 열어주고서야
비울 수 있었던 것을

-7-

전율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비울 게 있다는 건 채운 게 많다는 것
속 다 비운 저 고목인들
어찌 생살을 찢는 아픔 없었을까
쑤셔 넣듯 꾸역꾸역 채워 놓고
속 다 비웠다는 말
백의종군 하겠다는 말
그 따위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간섭을 거부하다
넓고 곧은 길이 새로 뚫리면서 지금은 발길 뜸한
좁고 오르막 진 옛길
어디서 왔는지 어깨에 띠를 두른 한 무리의 사람들
차에서 쏟아져 내려 익숙한 듯
단체나 서넛이 짝을 지어 사진을 찍고 부산을 떨다
이내, 사라진 뒤
길바닥이 어깨띠 둘러멨다
가장자리부터 가운데로 비스듬히
아스팔트 갈라진 균열의 틈 사이
일체의 간섭을 거부하는 잡초들 빼곡하다
사람들 향한 구호 무성하다
결기 새파랗다

3부
나는 손님이다
저녁 6시. 나를 데려다줄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 나는 익숙한 여행자처럼 집으로 예약을 한다. 현관
문 들어설 때 조금은 덜 외롭게 적당한 조도의 전등을 밝히게 하고 커튼을 치며 밥은 1인분으로 질지
않게 시간을 맞추며, 더 채워야 할 반찬은 없는지 냉장고를 점검하고 내 기억 어딘가에 버리지 않은
쓰레기처럼 남아 있을 아날로그적 감성을 침대 밑 로봇 청소기에 부탁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TV프로와 빈 가슴 온기 채워 줄 거실 보일러를 예약하고 나면, 나는 오늘도 내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
이 된다. 매일 예약을 하고 오는 단골이 된다.
임진강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임진강,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높은 바위 절벽 위
그래도 미덥지 않은지
낚싯줄에 발가락 하나 잘려 나간 물수리 부부
기어이 둥지 안에
아직 터지지 않은 불발탄 하나 들이고서야

-8-

전율

알을 품는다
가장 참혹한 언어 전쟁이라는 말을
인간들은
물수리 부부에게 가르쳐주었다
길 고양이
늦은 밤까지 정체에 시달리다
새벽이 되어서야 녹초가 되어
길게 누운
외곽으로 빠지는 4차선 도로
못 본 척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을
고양이 한 마리
저도 추웠을 텐데
몹시 추웠을 텐데
새벽 찬바람에 떨고 있는 길 어깨 위
한 벌뿐인 자신의 외투 벗어
덮어 주고 있다
갈대
역사의 증거 온전하게 드러날 때까지
흙을 쓸어내고
털어내는
조심스런 노학자의 붓끝처럼
떨어져 나간 조각달의 반쪽 찾아
초저녁 하늘 쓸어내고 있다
동맹
어, 어? 하는 사이
콩팥을 빼가고 쓸개가 없어지고
이게 아닌데 생각하는 짧은 동안
간을 빼주고 말았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손가락 걸고 맹세한 둘도 없는 친구라는
은근한 말투에 꼬실려
간 쓸개 다 빼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배알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4부
저만치 피어있는 코스모스

-9-

전율

아주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상의 경험처럼
꽃밭은 물론
마을 공터나 시골길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그 흔한 꽃들이 언제부턴가
길 가장자리로부터 내몰려 저만치
비탈진 언덕배기 수풀 속이나
강가 모래톱 드문드문 피어있는 저 꽃들 보면, 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온 뒤 청소하고 빨래하고
흙투성이 동생들 뒤치다꺼리까지
늘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를 대신하던
그 때 겨우 초등학교 3학년 어린아이였던
내 누이를 보는 듯 마음 짠하고
콧등 시큰해 온단다
빈 집 소나타
한여름 소나기 훑고 지나간 뒤
거미가 줄을 고른다
줄감개를 늘였다 줄였다 튜닝하는 사이
적막하게 맺혀있던 안단테 느린 음표가
후두둑, 붉게 녹슨 함석지붕
사운드 홀에 떨어진다
처마 밑 브릿지 핀에 걸려 있던 팽팽한 햇빛이
드문드문 잡초 웃자란 마당 빈자리 채우자
매미들의 합창
일제히 울려 퍼진다
전깃줄
하도 푸르러
올려다 본 하늘
저기도 벌써
부동산 개발업자 다녀갔나?
사람과 사람
네 것과 내 것을 구분 짓는
경계선 선명하다
땅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시인에겐
돌아갈 하늘도 한 평 없다

- 10 -

전율

단풍들 즈음
산과 들과 숲 속의 나무들이 사람들처럼
말을 한다면
중년들의 초등학교 동창회 같겠다
근원 없는 왁자한 웃음과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와
능시렁 능시렁 중성화 된 입담이
탁배기처럼 걸죽하겠다
모르는 결,
반백의 나이 불그레하겠다
꽃샘추위
저 건너 강 언덕
조산한 양지꽃
꽃잎 열어주려고
강물은 출렁이며 부산했던 것이다
가장자리부터 얼음 얼려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산파를 건너게 했던 것이다
조산한 양지꽃 꽃잎 열어주려고
지난밤,
그렇게 추웠던 것이다

- 11 -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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