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부
이 글은 가을 소리에 대한 부로 만물을 말려 죽이는 쓸쓸한 가을 소리에
느끼어 가을의 슬픔을 유감없이 나타낸 문장이다.
작가 구양 수는 송대의 대문장가로 당송장가로 당송 팔대가의 한사람이다.
자는 영수 호는 취옹.
구양자가 밤중에 책을 일고 있는데, 서남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구양자 이 소리에 섬뜩 놀라서 말하였다.
"이상도 하구나! 처음에는 그 소리가 비오는 소리 같이 들리더니 이내 차고
음산한 바람 소리인양 들리고, 그런가 하면, 별안간 세차게 뛰어오르더니
파도가 바위 벼랑에 부딪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 마치 파도가 한밤에
놀라 곤두박질치며 비바람이 냅다 휘몰아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 소리가 대체 무슨 소리이기에 물건에 닿기만 하면 쩡 칼날 소리, 무딘
쇠소리 할 것 없이,
금과 철이 몽땅 울어대는 것 같은 소리를 하는가! 또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이기에, 적군을 향해 가는 병사가 입에 나무 토막을 가로 비틀어 매고
소리없이 달리 제, 장군의 호령 소리조차 없는 가운데 사람과 말 달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것같은, 그런 얼어붙은 소리를 낸단 말인가!"
하도 괴이쩍어 동자더러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밖에 나가 들어 보고
오라고 일렀다. 이윽고 동자가 들어와 알려준다.
"나가 보니, 별고 달은 더없이 희고 맑으며 은하수는 하늘에 둘려 있으니,
그 소리는 분명 비 오는 소리도 파도 소리도 아니요, 또 사방에는 사람
소리라곤 없으니, 사람과 말 달리는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분명 숲속에서 나는 듯하였습니다."
라고, 그제서야 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 슬프고나! 그 소리가 바라 가을 소리였구나. 가을은 모든 초목을 말려
죽이고 온 강산을 적막하게 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았던 가을! 누가 오라
하였기에, 어찌하여 왔단 말인가?"
이제 저 가을의 모습을 연상해 보자. 가을은 만물을 말려 죽이는 것이라,
그 빛깔은 봄빛과는 달리 어없이 슬프고 마음 아프며, 안개 흩어지고 구름
걷히여 온 하늘이 맑게 트인다.
가을의 모양은 그지없이 맑고도 밝아 하늘은 더욱 높고, 햇빛은 속속들이
화안히 트이어 온다.
가을의 기운은 무섭도록 차고 매워 돌침을 찌르는 듯 사람의 살과 뼈 속을
파고 든다.
가을의 마음씨는 하도나 쓸쓸하여 푸른 산천이 온통 적막한 강산으로 한다.
그러기에, 가을의 소리는 몰아치는 비바람처럼 몹시 차고 구슬프며
절박하도록 몸 속에 스며들어
마치 사람이 울부짖듯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세차게 떨치고 일어난다.
그토록 싱싱한 풀들이 검푸르게 문채 이루며 무럭무럭 다투어 자라나고,
훌륭한 나무들이 시퍼렇게 우거져, 사람의 눈을 무한히도 기쁘고 즐겁게
해주던 것들이 가을의 소리! 그 소리가 무엇이기에 그 싱싱한 풀들이 그
소리에 그만 빛깔이 변해 버리고 그 울창한 나무들도 그 소리를 만나자
우수수 덧없이 낙엽집단 말인이가!
그렇게도 싱싱하고 아름다운 초목들이 무참히도 꺽여 시들어 떨어지는
까닭이야, 참말로 그 한기운 가을의 기운이 너무도 매운 탓이어라.
대개 가을을 주나라의 관재에 붙여 보면, 가을은 형벌을 맡은 형관에
속한다. 또 사시절을 음양으로 나눈다면,, 봄 여름은 양이요, 가을 겨울은
음이다. 또 가을은 초목을 살상하는 살기가 있으므로 무기를 닮았으며,
다시 수, 화, 목, 금, 토 호행을 사시절에 배합한다면 가을은 곧 금에
해당한다. 가을을 일러 형관이요, 음이여, 무기의 형상이며, 금이라 함은,
가을은 봄빛처럼, 무기의 형상이며, 금이라 함은 가을은 봄빛처럼 따뜻한
인의 덕과는 달리, 가을 서리처럼 엄격한 의의 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일러 천지의 의기는 추상과도 같은 것이라, 이래서 가을은
언제나 쌀쌀하게 초목을 말려 죽이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만물을 두고, 봄에는 생장하게 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므로, 가을은 음악으로 말하며, 궁, 상, 각, 치, 우 오성 가운데
상성으로, 상성은 바로 금성이요, 금성은 추성이며, 추성은 곧 서쪽에
해당되니, 상성은 서쪽의 음악, 곧 가을의 음악인 것이다.
또 십이율을 열 두 달에 배합한 것으로 보면, 십이율 가운데 이칙이 음력
7월, 곧 맹추에 해당되니, 이것이 바로 가을의 음률이다.
위에 말한 상성은 곧 추성이요, 추성은 싱싱하게 자라나는 초목들을 말려
죽인다. 그러므로 상성의 商의 뜻은 傷이라,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만물이 이미 늙어서 슬퍼하고 상심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칙의 夷의 뜻은 戮, 곧 살륙이라,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만물이 한창인 때를 지나게 되면 반드시 쇠하여 죽게 되기 때문이다.
아 슬프고나! 초목 같이 감정이 없는 것도 가을철을 만나면 가을 바람에
부대끼어 속절없이 떨어진다. 우리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로서 오직
인간이 만물 가운데 영장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근심도 많고 일도 많아,
천만 가지 근심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천만 가지 일이 사람의 몸
을 수고롭힌다. 사람은 마음 가운데 감동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의를 흔들어 놓게 된다.
그런 것을, 사람으러서 자기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굳이 바라며
번민하고, 또 자기의 지혜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두고 근심하는 분수에
어두운 사람들이야 심신의 고달픔이 그 얼마이겠는가! 젊어 한때 혈색도
좋던 그 붉은 얼굴빛이 어느새 늙어 고목처럼 되어버리고, 칠흑 같이
검던 머리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리라.
금석처럼 단단한 바탕을 타고나지도 못한 그 연약한 사람의 몸으로서,
어쩌면 저 초목만도 못한 덧없는 생명을 두고서 감정이 없는 초목들과 길이
번영을 다투고자 하겠는가!
생각하면, 그 누가 인간의 생명을 손상시키관데, 어찌 저 가을 소리를
두고 한하겠는가! 사람이 나고 죽는 것, 또 인생의 한 때 성했다가 쇠하여
스러지는 것, 이 모두가 천지 자연의 도리에 따라 그런한 것을! 가을
소리를 탓하여 무엇 하겠는가!
밤이 깊었는가, 동자는 대답도 없이 머리를 떨구고 졸고 있다. 다만
들리느니 사방에 직직 벌레 우는 소리뿐! 쓸쓸한 가을 밤, 나의 탄식하는
소리를 도와 주려는 듯, 벌레 소리만이 밤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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