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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출사표

by Casey,Riley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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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출사표
선제께서는 한의 정통인 촉한과 이와 적이 되는 위의 조조의 부자와는, 
마치 선과 악이 양립할 수없듯, 함께 설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셨고, 
또 천하통일의 왕업을 이룩하는 데는 촉과 같은 벽지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시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적국 위를 토벌하도록 신에게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선제의 밝으신 안목으로 신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가를  헤아리고 계셨기 
때문에 진실로 신이 적을 토벌할 것을 알지마는, 신의 재능은 약하고 적은 
강한지라 적을 토벌한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 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적을 치지 아니하면 천하통일의 왕업이 또한 망하고 말것이니,
그냥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힘을 모아 적을 치는 편 그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릴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제께서 적을 토벌할 것을 신에게 부탁하여 의심치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신은 선제께 적을 토벌하라시는 유칙을 받은 날로부터는 잠을 자도 잠자리가
평안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이 달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생각하느
니 북쪽 위를 정벌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북쪽 위를 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나라 변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남중의 여러 고을을 평정하여야 겠기에
남쪽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5월에 노수를 건너 토목도 나지 않는
불모의 땅에 까지 깊숙이 들어갔다가 군량이 떨어져 2,3일을 합쳐서 겨우
한끼의 밥을 먹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신인들 어찌 제 몸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을 리야 있겠습니까 마는, 그 보다도
한 나라의 천하 통일의 왕업을 이룩하자면 아무래도 벽지에 있은 촉으로서는
어렵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토록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무릅쓰
고 선제께서 끼치신 뜻을 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촉으 여러 신하
들은 모두들 머리를 맞대어 의논을 하고서 신의 위를 토벌하는 일을 두고 의
심스럽게 여기며 취할 계획이 못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 공명이 기산을 공격하였을 때 위의 남안, 천수, 안정의 세 고을이 위에
반기를 들고 촉한에 항복하였으니, 적은 지금 서쪽으로 몹시 지쳐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여기에 또 위의 장군 조후가 오의 장군 육손과 석정예서 싸워
크게 패하였으니, 적은 지금 동쪽으로도 몹시 허덕이고 있습니다.
병법에, '적의 피로한 틈을 타고 공격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야 말로 
우리의 군사가 진격할 가이 없이 좋은 때인 것입니다. 이제 출병하여야 할 
까닭을 삼가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전한의 고조황제께서는 밝기가 해와 달에 견줄 만 하였고, 이 위에 장량과
진평등 연못 속 처럼 깊은 지모의 신하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광무에서의 싸움에 항우의 쇠뇌에 가슴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삶을
얻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또 흉노를 칠 때에는 백등에서 이레 동안을 포위
당하신 일도 있어, 모두 8년 동안 70여 회의 싸움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쓴
뒤에야 겨우 한의 천하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지혜의 밝기가 고조 황제를 따를 수 없으시고, 
저희들 모신 또한 고조 황졔의 장량과 진평의 그 깊은 계략에는 도처히 
미칠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않고 좋은 계책으로써 적을 
이기고 가만히 앉아서 천하를 평정하겠다고 하니, 이것은 신하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한가지입니다.

유유는 양주의 대수로, 왕랑은 회계의 태수로, 각각 곡아와 회계를 지키고
앉아 있습니다. 이 두 고을을 하루 빨리 정벌하여야 할 것을, 여러 신하들은
싸움을 하지 아니하고 저들을 회유할 것을 의논하고, 계략을 말함에 있어서
는 툭하면 옛 성인의 일을 인용하며 싸우지 않고 다스려야 한다고들 합니다.
신하들은 이러한 말에 의심스런 생각이 뱃속에 가득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이 가슴 속에 꽉 막힌 채, 금년에도 나가 싸우지 못하고 
ㅇ년에도 정벌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나라 손책이
병사를 이끌고 유유를 쳐서 곡아를 빼앗고 왕랑을 쳐서 회계를 다스리게
되는 날이면, 우리 촉한은 손책으로 하여금 가만히 앉은 채 커져서 드디어는
양자강 동쪽을 병합하여 대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신이 도저
히 이해가 안가는 그 두가지 입니다.

위나라 조조의 슬기로운 계책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더구나 군사를
부리는 솜씨는 아주 훌륭하여 그것이 주 말의 대 병법가인 손부와 오기에
너무도 흡사합니다. 그런데도 조조는 싸움에 더없이 위급하고 절박한 
경우를 여러번 당하였습니다.
건안 2년 조조는 장수와 더불어 남양의 원에서 싸우다가 빗나가는 살에 
맞아 패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건안 5년에는 또 오소에서 위험을  만나 
겨우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조는 병사도 적고 양식도 
떨어졌는데 당시 기세 등등한 원소와 곤도성에서 맞서게 되었습니다. 
원소는 많은 군량과 거마를 오소라고 하는 곳에 쌓아 두었습니다. 조조는 
겁을 먹고 되돌아 가려다가 허유의 가르침에 따라 몰래 병사를 보내어 
오소에 있는 군량과 거마를 몽땅 불살라 버렸습니다. 이로 인하여 원소는 
도리어 패배하고 조조는 겨우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조조는 흉노의 기련산으로 쳐들어 갔다가 많은 위험 끝에 겨우 흉노를
물리쳤던 일도 있었습니다. 원소가 관도성에서 싸움에 패 한 뒤 피를 
토하여 죽으니 그의 아들 원담이 스스로 장군이 되어 하북의 여양에 
있었습니다.
조조가 이 때 병사를 이끌고 촉의 유표를 공격하고 있은데 원담이 병사를
이끌고 나와 조조의 뒤를 핍박하여 조조는 야양에서 한 때 궁지에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또, 건안 24년에는 조조가 한중을 빼앗으려고 수천만 자루의 쌀을 북산 
밑에 쌓아 놓고 대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이때 선제께서는 험조한 곳에 
의거하여 이를 막고 계셨습니다. 그러네, 촉한의 대장 조운이 나아가 
적진을 돌격하여
싸우다가 거짓으로 후퇴하여 자기의 군영에 까지 들어가매 조의 군사가 
이를 뒤쫓다가 되돌아 갔습니다. 바로 이때 조운은 북을 크게 울려 큰 
쇠노로써 그 뒤를 일시에 쏘아댔습니다. 여기서 조조의 군사는 질서를 잃고 
놀라 달아나다가 한수에 빠져 죽은 군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또, 
조조는 동관에서 죽을뻔 한 일도 있었습니다.
건안 16년, 마초, 한수 등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10만의 무리를 이끌고
동관에 주둔하매 조조가 직접 일를 토벌하러 나섰습니다. 이때  조조의 
무리들은 먼저 황하를 건넜고 조조는 잘 훈련된 병사 백여 명과 함께 남쪽
언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초는 만여 병사를 이끌고 와서 공격하여 화살을 빗발 치듯 쏘아댔습니다.
이 때 허저는 사세가 불리하니 빨리 황하를 거너자며 조조를 급히 배위에
태웠습니다.
적에게 쫓긴 병사들이 다투어 배에 오르므로 배가 무거워 가라앉으려 
하였습니다.
허저는 배에 매달이는 병사들을 베어버리고 왼 손으로 말 안장을 들어 
조조를 가리며 화살을 막았습니다. 얼마 아니하여 배를 젓는 사람들이 살에 
맞아 다 죽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허저는 오른 손으로 배를 저어 간신히 
황하를 건널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략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은 조조도 그처럼 많은 위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한 때나마 천하를 평정한 듯 감히 위제라 참칭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신과 같은 미약한 재능을 가지고, 더구나 위험한 일을 아니하고  
편안하게 앉아서 천하를 평정하겠다고 하니, 이것은 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세가지 입니다.

동해군 창패라는 고을을 중심으로 그 언저리의 여러 고울이 다 함께 위의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선제에게로 돌아왔을 때, 조조는 다섯 번이나 창패를
공격하였지만 결국 항복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 회수와 비수를 
합한 합비라고 하는 땅 동남쪽에 소호라는 땅이 있는데, 오나라 손권이 
합비를 포위하였을 때, 조조가 소호를 건너 합비에 진을  치기를 여러번 
하였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조조는 이복이란 사람을 기용하였으나 이복은 야심을 품고 도리어 
조조를 칠 것을 꾀하였습니다.
또, 건안 20년 조조가 도사 장노를 항복받아 한중을 평정하고 하후연을 
대장으로하여 한중에 있게 하고 조조는 업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선제께서 나와 양평관에 진을 치고 하후연의 부장군인 장합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하후연은 급히 병사를 나누어 장합을 구하려다가 선제의 대장 황충의 
급습을 받아 싸우다가 목 베이어 죽고 말았습니다.
선제께서는 늘 조조를 이컬어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토록 뛰어난 째능을 가진 조조도 싸움에 여러번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신과 같은 노둔한 재능이야 싸운다 해도 꼭 이길지  알수 없겠거든, 하물며
싸움을 말자고 하니, 이것은 신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그 네가지입니다.

신 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온지 겨우 일년 밖에 되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그 일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었습니까!
조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 등과 한조의 조장,
한진영의 대장 등 70여 인애, 맨앞에 달려 적을 돌파하는 용감무쌍한 
장수들, 촉의 남쪽 종족의 우두머리 종수, 서남 종족의 우두머리 청강, 
그리고 산기, 무기라고 하는 기마병 등 1천여 인에 달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다 하루 아침 한 나라에서 얻은 사람들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사방
각 고을 각 나라에서 모은 잘 훈련된 우수하고도 강한 병사들이었습니다.
이제 만일 다시 수년이 지나게 되면 이 밖에 적어도 3분의 2는 더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싸우지 아니하고 무엇으로 적을 토벌을 도모할
것인지? 이것이 또한 신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그 다섯가지 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궁핍에 떨고 있고 병사들은 모두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위를 정벌하는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이일이 결코
그만 둘 수 없는 일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나라를 지킨다 해도 그 노고가
극심할 것이요, 나가 적을 맞아 싸운다 해도 또한 그 노고는 대단할 
것입니다.
곧 앉아서 지키나 나가서 싸우나 그노고와 비용은 똑 같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한 시 바삐 적을 토벌할 것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한 주의 
촉땅에 앉아 적이 지칠 때를 기다려 언제까지고 이대로  움직일 생각을 
아니하니, 이것이  또한 신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그 여섯 가지 입니다.

대개 일 치고 어려운 일은 화평하는 일인 줄로 압니다.
옛날 건안 12년 형주 곧 초나라의 유장이 항복하자, 선제께서는 10여만의
귀복한 무리들을 거느리고 양양에 계셨습니다. 이 때 조조가, "강릉에는
군실, 곧 군량과 병기 등이 있는 곳인데, 선제가 이것을 차지할까 두렵다."
며, 우수한 병사 수천을 거느리고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선제께서는 그만
치자를 버리고 신 공명과 장비 등, 그리고 겨우 수십 기병을 거느리고 패주
하셨습니다. 이 때를 조조는 마치 제 세상이 된 양 손뼉을 치며, "천하는
이미 평정되었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뒤 선제께서는 하구에 이르러 신 공명을 보내시어 오의 손권과
동맹을 맺으시고 건안 19년에는 선제께서 나아가 촉의 성도를 포위하여 
유장을 항복받아 파촉의 땅을 점령하시고, 병사를 일으켜 북으로 위의 
조조를 정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의 대장 하후연이 목베이어 
죽으니, 이는 분명 조조의 큰 실책이요, 우리 한실 회복의 대사업이 
이루어지려는 단계였습니다.

그런데 또 그 뒤, 선제 24년 오의 손권이 우리 촉한과의 동맹을 깨고 
관우를 습격하여 죽이고 형주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귀주인 
촉의 자귀현마저 다시 유장의 손에 빼았겼으니, 손권은 유장을 익주의 
목사로 삼아 자귀에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25년 조조가 죽고 
그이 아들 조비가 왕위에 올라 제라 일컫고 국호를 위라 하였습니다.
무릇 일이라고 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앞 일을 두고 예측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신 공명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라를  위하여
힘껏 싸우다가 죽은 뒤에야 말 그 따름입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선제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성공할것이냐? 실패할  것이냐? 승리냐? 패배냐? 하는 운수의 좋고
나쁜 것에 있어서는 신의 눈으로서는 도저히 헤아려 볼 수 있는 일도
아니려니와, 또한 오늘 이 마당에 승부를 두고 논하고 싶지는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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