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엄지
머리말
미국의 동물학자인 E. B 윌슨은 '발생과 유전에서의 세포'라는 이미
고전이 된 뛰어난 저서의 속표지에서 플리니우스의 책에 나온 모토를
옮겨놓고 있다. 플리니우스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분화를 조
사하기 위해 배로 나폴리 만에 나와 있을 때, 폼페이 시민들을 질식시
켰던 것과 같은 가스에 휩쓸려 뜻하지 않게 죽음을 당한 대박물학자이
다. 그는 이렇게 썼다. "Natura nusquam magis est tota quam in
minimis(가장 작은 피조물에서처럼 자연이 그 완전성을 드러내는 곳은 어
디에도 없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윌슨은 이 위대한 로마인이 전혀 모르고 있던
극미한 구조, 즉 생물체의 극미한 구성 단위를 찬미하기 위해
플리니우스의 말을 멋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플리니우스의
그 말은 생물 개체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었다.
플리니우스의 이 말은 나를 매혹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연사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지속돼온 틀에 박힌 양식(신화가 이
야기하듯이 자주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에서는, 자연사에 관한 에세이
가 동물들의 특이성, 예를 들면 비버beaver가 불가사의한 토목 공사를
벌인다거나, 거미가 부드러운 거미줄을 치는 방법 등을 기술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물론 그런 일에도 분명 즐거움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생물은 모두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줄 수 있다. 모든 생물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요컨대 생물의 형태라든지 그 행동은 우리들이 그것들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일반적인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가르침에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진화론이다. 따라서 이
즐거움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중요한 분야의 하나인
진화론의 세계에 내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
다.
소년 시절, 내가 자연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는 진화론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들은 것도 전혀 없었다. 고작해야 공룡에 대해
외경심을 품는 정도였다. 나는 고생물학자란 뼈를 파내 그것들을 이어
붙일 뿐이며, 어떤 배를 어디에 연결할 것인가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제
외하고는 다른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다. 그 후 나는 진화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화론을 알게 된 이래 자연사의 이중성-특수성의 풍부함,
그리고 그 밑에 내재된 설명의 잠재적인 일관성-이 나를 매료시켰다.
진화론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갖는 세 가
지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진화론은 현재 수준으로도 만족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립되어 있지만, 앞으로도 불가사의한 현상이라는 귀중한
발굴물들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미발달된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아직도 풍부한 미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진화론은 시공을 뛰어넘는 수량적인 일반 법칙을 다루는
여러 과학 분야에서 역사의 특수성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 과학
분야들까지 포괄하는 연속체continuum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세계에는 추상적인 일반성(개체군의 성장이라든가 DNA
구조 등의 여러 가지 법칙)을 탐구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일반적인 것으
로는 환원할 수 없는 잡다한 특수성(예를 들면 티라노사우루스는 그 빈약
한 앞다리를 어떤 용도에 썼을까 등)을 밝혀내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들에게 공통의 광장을 마련해준다.
세 번째로 진화론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관계되는 문제를 다룬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이런 물음 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의 문제이다. 우리가 '계보'에 관한 중대한 문제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 물론 거기에는 박테리아에서 흰긴수염고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중간에는 엄청난 숫자의 딱정벌레들의 세계도 있다.
현재 기록된 것만도 100만종 이상에 달하는 동물이 있으며,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또한 저마다의 귀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은 생명의 기원에서 조르주 퀴비에의 뇌, 그리고 태어나기 전에
죽는 진드기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윈의 사상과 그 영향에 중점을 두면서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을
진화론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여러 글을 모아 놓은 책이 빠질 수 있는 일관성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전에 출간된 에세이집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의 서문에서도
썼듯이 "나는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대학자는 아니다. 내가 행성이나 정
치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생물의 진화와 교차하는 지점에 국
한될 뿐이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을 통일성 있는 전체로 구성하기 위해 총
8부로 정리해보았다. 판다와 거북, 아귀아목 물고기를 다루는 제1부는
진화라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나는 하나의 역설을 제기할 것이다. 그것은 진화론의 증거가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불완전성에 들어 있다는 역설이다.
제1부이후에는 세 겹 샌드위치식 구성이 이어진다. 요컨대 자연사의
진화적연구에서 중요한 주제에 관련되는 세 부(제2부의 다윈의 학설과
적응의의미, 제5부의 변화의 속도와 그 양식, 제 6부의 크기와 시간의 척도)와,
동물들과 그들의 역사의 특이성을 다룬 두 개의 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세 겹 샌드위치의 내용물에 해당하는 두 개의 중간층(제3부와 제4부,
제6부와 제 7부)이 있다(샌드위치 비유를 좀더 사용해보자. 만약 이 샌드위
치를 더 세분하여 일곱 개의 부와 빵과 고기로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
다면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다).
또한 나는 그 샌드위치를 이쑤시개로-모든 부를 관통하는 부차적인
주제로-찔러 지금까지 사람들이 편안하게 안주해왔던 것들에 자극을 줄
것이다. 왜 과학은 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다윈주의는 자연계에서 조화와 진보를 찾아내려는 희망에 부응할
수 없는가 등이 그런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자극은 각기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문화적
편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과학이라는 것을 그 밖의 모든 형태의 창조성에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친밀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간 활동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들의 생명에 관한 의미를 자연계에서 수동적으로 읽어낼 수
있으리라는 덧없는 기대를 버릴 때, 우리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내가 '내추럴 히스토리natural history'지에 '이
생명관This View of Life' 이라는 제목으로 매월 연재한 칼럼을 조금 고
쳐 쓴 것이다. 그 중 몇 개의 글에는 '후기'를 덧붙였다. 테야르 드 샤
르댕이 필트다운 사기 사건에 관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가적인 논거
(10장), 96세가 되어서도 논쟁을 좋아한 J 할렌 브레츠의 편지(19장),
박테리아 자석의 설명에 관한 남반구에서 얻은 확증(30장)을 다룬 세 편
의 글에 후기를 덧붙였다.
나는 이 글들이 내가 생각하는 정도로 단명할 것이 아님을 설득해준
에드 바버 씨에게 감사하고 싶다. 또한 '내추럴 히스토리'지의 편집장
앨런 턴스 씨와 편집자 플로렌스 에델슈타인씨는 문장과 사고 방식을
알기 쉽게 고쳐 쓰기도 하고 적절한 제목을 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학계의 여러 지인들의 친절한 도움이 없었다면, 네 편의 에세이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캐롤린 프류어 로반 씨는 다운 박사를 내게
소개 해주었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의 논문을 내게 보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게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고, 자신의 미발표 원고를 보여주었다(15장).
에른스트 마이어 박사는 일찍부터 민속적 생물분류법의 중요성을
주장해왔고, 다수의 실례를 알고 있다(20장). 짐 케네디 씨는 커크패트릭의
저작을 내게 소개해주었다(22장).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그 저서를
감싸고 있는 침묵의 장막을 투과해서 올바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 프랑켈 박사는 물리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네
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보내 매혹적인 박테리아의 자성의 실체를 명쾌히
설명해주었다(30장).
나는 동료들의 관대함에 많은 격려를 받았고, 또한 그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미 기록된 모든 사실보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훨씬 무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밖에도 다윈 핀치(5장)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신 프랭크 살로웨이, 문헌 찾기, 뛰어난 견식, 그
리고 인내심 강한 설명으로 도와주신 다이안 폴, 마사 덴크라, 팀 화이
트, 앤디 놀, 칼 분쉬 등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다행히도 내가 이 글들을 썼던 때는 진화론의 역사에서 상당한 진전
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데이터는 풍부하지만 착상이 빈곤하던 1910년
경의 고생물학의 상황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이 시기에 연구할 수 있
다는 것이 굉장한 특전을 누리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은 그 영향력과 설명 범위를 모든 방향으로 넓히고 있다. 오늘
날 우리들이 DNA의 기본적 구조, 발생학, 행동 연구 등 전혀 이질적
인 분야에서 종종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점을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분자진화학은 놀랄 만큼 새로운 사고 방법(자연 선택설의
대안으로서의 중립설)을 제공해주고, 자연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진
허다한 수수께끼를 해명한다는 양면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완전히 성숙한 연구 분야로 수립되었다(24장 참조). 그와 더불어
삽입배열inserted sequence이나 도약유전자jumping gene 등의 발견은
진화적인 의미를 배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종류의 유전학적 복
잡성을 표면화시켰다.
세 문자로 이루어진triplet 암호는 기계어에 지나지 않고, 그보다 높은
수준의 제어가 존재할 것이다. 만약 다세포 생물이 배15의 발생 과정의
복잡한 통합적 조정의 타이밍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를 규명할 수 있다면,
발생생물학은 분자유전학과 자연사를 통일적인 생명과학으로 통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혈연 선택 이론은 다윈의 이론을 사회 행동 영역으로
확대시켜 많은 수확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열렬한 주장자들이 과학적 설명에는 계층적 구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 인류 문화의
영역에까지(허용 한계를 넘는 유추를 동원해서) 확장하려 하는 것은 잘못
된 옹호라고 생각한다(7장과 8장을 참조).
그러나 다윈의 이론이 그 영토를 넓히고 있는 한편, 그 사고 방법 속
에서 중지된 많은 전제가 떨어져 나가거나, 또는 최소한 그 보편성을
잃고 있다. 과거 30년 동안 군림해왔던 다윈주의의 현대판인 '현대의
종합설modernsyntheis'은 국부 개체군 속에서의 적응적인 유전자 치
환의 모형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축적과 확대를 통해 생명의 전 역사
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작고, 국지적이고, 적응적인 조절이라는 경험적인 영역에서는 그 모형이
훌륭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학명이 Biston betularia인
나방의 일부 개체군의 몸 색깔이 검게 변한 것은 공장 지대의 매연으로
검게 변한 나무 위에서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선택된 반응으로 단 하나의
유전자 치환에 의해 일어났다.
그러나 새로운 종의 기원이 단지 더 많은 유전자와 더 큰 효과로 이
과정이 확대 연장되는 것에 불과한가? 생물의 주요 계통에서 나타나는
훨씬 더 거대한 진화적 경향이란 단지 연속되는 적응적 변화가 누적되
어가는 것에 불과할까?
근년 들어 많은 진화학자들(나 자신을 포함해서)이 이 '종합설'에 의
심을 품게 되면서, 여러 가지 수준에서의 진화적 변화가 여러 종류의
원인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계층적인 사고 방법을 주장하
게 되었다. 어떤 개체군에서 나타나는 소규모적인 조절은 순차적이고
적응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의 분화란 적응과는 관계가 없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다른
종과 생식 불가능한 관계를 확립시키는 주요 염색체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진화적 경향이란 하나의 큰 개체군이
오랜 시기에 걸쳐 느린 속도로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정지해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본질적으로
정적인 종에 대한 어떤 높은 수준의 선택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의 종합설이 등장하기 전에는 많은 생물학자들이 자신들이 빠져
있는 혼란과 무기력한 상태를 표출했다. 여러 수준에서 제기된 진화의
메커니즘이 통일적 과학의 확립을 방해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모순적
인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종합설이 등장한 이후, 진화란 다윈주의의 기본 개념인 국지적인
개체군 속에서의 점진적이고 적응적인 변화라는 사고 방식(사려 깊지
못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정설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이
확산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들은 지금 유전학자 베이트슨 시대의 무정부 상태와
현대의 종합설에서 비롯된 고정된 사고 방식 사이에서 풍부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추구하고있는 것 같다.
현대의 종합설은 적절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돌연 변이와 선택이라는 다윈주의적인 여러 과정이 실은 진화 수준의
여러 계층적 구조 중에서 고차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 원인이 모두 동일하며, 따라서 다윈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단일한
보편 이론이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최저 수준의 현상을 대상으로 한 적응적인 유전자 치환 모형에 의해
그보다 높은 수준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의
복수성multiplicity도 계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복잡한 소동의 뿌리에는 도저히 단순화시킬 수 없는 자연계의
복잡성이 있다. 생물이란 생명계라는 당구대 위에서 예측할 수 있는 새
로운 위치로, 단순하고 또한 측정 가능한 외부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당구공이 아니다. 또한 충분히 복잡한 계는 그만큼 큰 풍부함을 갖는
다. 생물은 끝없이 미묘한 방법으로 자기들의 미래를 구속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제1부의 여러 장을 참조).
그들의 형태상의 복잡성은 자연선택의 어떠한 압력이 최초의 구성에
관여했든 간에, 그 여러 가지 힘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반하는 것이다(4장 참조). 지금까지 거의 밝혀지지 않은 배 발생의
복잡한 경로가 보증하는 것은 단순한 입력(예를 들면 발생 타이밍의
극히 작은 변화)이 출력(생물의 성체, 18장참조)의 놀라운 변화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그의 명저를 끝맺으면서 이 풍부함을 표현하는 인상적인
비교를 하고 있다. 그는 행성의 운행처럼 훨씬 단순한 계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끝없이 정적인 주기적 운동을 생명계의 복잡성과 장구한 시간
에 걸쳐 일어나는 경탄스러을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비교하고
있다.
생명은 그 여러 가지 힘과 함께 처음에는 소수의 종류 또는 한 종류
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지구가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주기적인
운동을 계속하면서 처음의 극히 단순한 것으로부터 무한히 많은 종
류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게 진화해왔고, 또한 지금도 진화하고 있
다는 이 생명 관에는 장엄한 무엇이 깃들여 있다.
제1부 완전과 불완전
제1장 판다의 엄지
영웅이 생애의 극정점에 올라 자신의 야망을 접는 일은 매우 드물다.
승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승리를 부르고 그러다가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알렉산더 대왕은 더 이상 정복할 새로운 세계가 없
다는 사실을 한탄했고, 지나치게 영토 확장을 꾀했던 나폴레옹도 러시
아의 혹독한 겨울에 갇혀 스스로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년)을 집필한 뒤로도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자신의 자연 선택설을 선전하거나, 자신의 이론을 인류
진화에까지 연장 해석하지 않았다(그는 1871년이 되어서야 '인류의 기원'을
발간했다). '종의 기원' 이후 처음으로 발간된 그의 저서는 '영국과 외국의
난초과 식물이 곤충에 의해 수정되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에 대하여'(1862년)
였는데, 이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윈은 여러 차례 자연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작은 주제들을 다루었
다. 그는 조개삿갓류의 분류법, 덩굴성 식물에 대한 책, 그리고 지렁이
에 의한 부식토형성에 대한 논문을 저술했다. 그래서 그는 별난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일관성도 없이 마구 써대는 구식 박물학자라느
니.
운좋게도 적시에 적절한 통찰력을 가지고 나타난 남자라느니 하는
별반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다윈에 관
한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런 유의 터무니없는 평
가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2장 참조) . 그전에는 어느 고명한 학자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많은 동료들 앞에서 다윈을 "몇 가지 개념
들을 적절히 짝지웠을 뿐... 대사상가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라고 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다윈의 모든 저서들은 그가 평생에 걸쳐 구축한 장대
하고도 일관된 체계-진화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가장 우세한
매커니즘으로서 자연 선택을 옹호하는-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다윈이 난 자체를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다윈의 모든 저서를 독파한
다는 엄청난 일을 해낸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물학자 마이클 기셀린은
'다윈적 방법의 승리'라는 저서에서, 난초과에 대한 연구는 진화를 주
장하는 다윈의 노력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다.
다윈은 난초과에 대한 책을 다음과 같은 진화에 대한 중요한 한 가지
전제로 시작한다.
자가 수분을 계속하는 것은 장기간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형편없는 전략이다. 자가 수분을 하게 되면 자손들은 동일한 부모
유전자밖에 갖을 수 없게 되며, 따라서 그 개체군이 환경 변화에 처
해 진화적인 유연성을 발휘할 만큼 충분한 변이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컷과 수컷의 생식 기관을 모두 갖추고 꽃을 피우는 식물
들은 일반적으로 이화 수분하는 메커니즘을 발달시킨다. 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식물은 곤충들과 계속해서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다.
난초과는 우선 곤충을 유인한 다음 끈적끈적한 꽃가루를 곤충에
달라붙게 하여 다음에 방문하는 난의 자성 기관에 그 달라붙은 꽃
가루를 접촉시키게 한다는 놀랄 만큼 다양한 '장치'를 진화시켰다.
다윈의 책은 이러한 장치의 개요를 설명하는 식물판 동물 우화집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세의 동물 우화집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려준다는 의도로 씌어졌다. 그 메시지는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이다. 난은 보통의 꽃을 이루고 있는 일반적인 구
성 요소, 즉 원래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던 부분들을 가지고 매우 복잡
한 장치들을 만들어냈다.
만약 이 아름다운 기계가 신이 자신의 지혜와 힘을 드러내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면, 신은 원래 다른 목적에 맞도록 만들어진 부품들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과의 꽃은 어떤 이상적인 기술자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그 식물은 이미 있던 구성 요소들을 이용해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난꽃은 보통의 꽃에서 진화한 게
틀림없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성립할 수 있다. 이 책의 제1부를 구성하는 3
부작의 공통 주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들의 생물 교과서는 진화를 설명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최고의 설계design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실례들
(나비가 말라 죽은 나뭇잎으로 위장하는 것. 벌레들이 새들의 공격을
피해 마치 독을 품은 듯이 의태하는 것 등)을 들기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설계는 진화를 논하기 위한 논거로는 그리 적절치 않다.
그러한 이상적인 설계는 전능한 조물주의 행동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묘한 배치라든가 이상한 해결 방법이야말로 진화를 입증할
수 있는 효과적인 소재이다. 현명한 신이라면 결코 택하지 않았을 경로
이지만 역사에 속박되어 어쩔 수 없이 진행되었던 자연의 과정을 추적
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이런 사실을 다윈만큼 잘 이해한 사람도 없
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최소한의 의미밖에 없는 생물체의 여러 부분이나 지리적 분포에 끊
임없이 관심을 집중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내가 자이언트 판다와
그 엄지손가락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자이언트 판다는 식육목에 속하는 동물로서, 특이한 곰의 일종이다.
곰은 보통 식육목 가운데 잡식성을 보이는 동물이지만, 판다는
예외적으로 그 식성을 한쪽으로만 한정했다.
판다는 오직 대나무만 먹기 때문에 사실 식육목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다. 판다는 중국 서부의 산악 지방에 있는 깊은 대나무숲에서
서식한다. 그리고 포식자에게위협당하는 일도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루에 10-12시간 가량 대나무나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보낸다.
나는 어린 시절에 앤디 판다의 열렬한 팬이었다. 한번은 카운티 패어
(군county의 특정 지역에서 매년 한 차례식 열리는 장. 주로 농작물,
가축을 전시함/옮긴이)에서 우유병을 모두 쓰러뜨려 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받은 판다 인형을 소중히 간직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사이에 긴장이 완화되어 탁구 친선 경기가 벌어
지고, 이어서 두 마리의 판다가 워싱턴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나는 당장 동물원으로 달려가 외경스러운 시선으로 판다
들을 바라보았다. 판다들은 하품을 하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거나
느린 걸음으로 몇 발자국씩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을 그들이 좋아하는 대나무를 먹는데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상반신을
세우고 앉아, 앞발을 사용해 능숙한 솜씨로 대나무 줄기를 잡고 잎을 뜯
어낸 뒤 새순만을 먹었다.
나는 판다의 뛰어난 재주에 감탄했다. 그리고 달리는 기능으로 환경에
적응해온 계통의 후손이 어떻게 그처럼 양손을 잘 쓸 수 있는지 의
문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양손으로 대나무 줄기를 쥐고, 유연해 보이는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손가락들 사이로 줄기를 통과시켜 잎을 떼낸다. 그 모습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일찍이 나는 엄지손가락을 다른 손가락과 맞댈 수 있는 능력이 인류를
번영할 수 있게 했던 특질 가운데하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영장류의 선조에게서 나타난 이 중요한 유연성을 한층 향상시키면서
계속 유지시킨 반면, 대부분의 다른 포유류들은 손가락을 특수화시키는
과정에서 그것을 희생시켰다.
식육목에 속하는 동물은 달리고 찌르고 할퀴어댄다. 따라서 내가 키우
는 고양이는 심리적으로 나를 조종할 수는 있어도 혼자서 타자기를 치
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판다의 엄지손가락을 뺀 나머지 손가락의 숫자를 세어보
았다. 그 결과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가락은 네 개
가 아니라 다섯 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판다가 가지고 있는 '엄지손
가락'은 별개로 진화한 여섯 번째 손가락이란 말인가? 다행히도 자이언
트 판다에 대한 한 권의 바이블이 있다.
일찍이 시카고의 야생 자연사 박물관의 척추 동물 해부학 학장을 맡고
있던 D. 드와이트 데이비스가 쓴 특수 연구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현대의 진화적 비교해부학 분야에서 최대의 업적으로 꼽힐
만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반인들이 판다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이상
으로 상세한 내용들이 다루어져 있다. 물론 데이비스는 내가 품은 의문
에 대해서도 답해주고 있었다.
그는 판다의 엄지손가락이 해부학적으로는 실제 손가락이 아니라고
한다. 그 엄지손가락은 일반적으로 손목을 이루고 있는 작은 구성 요소
인 요골종자골(인대 또는 힘줄 속에 있는 작은 뼈/옮긴이)이라는
하나의 뼈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판다의 요골종자골은 매우 커다란 편
이며, 그 길이는 실제 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뼈와 같다.
이 종자골이 판다 앞발에 하나의 육지를 구성하며, 다섯 개의 손가락은
다른 하나의 육지 뼈대로 이루어졌다. 하나의 얕은 고랑이 이 두 개의
육지를 분리시키고 있고, 이 고랑이 대나무 줄기를 쥘 수 있는 통로
구실을 한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그것을 보강하는 하나의 배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근육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그
러나 이들 근육은 요골종자골과 마찬가지로 새로이 생겨난 것이 아니
다. 다윈이 연구한 난의 꽃 각 부분들처럼 이것들 역시 모두가 알고 있
는 일부 구조가 다른 기능을 하도록 바뀐 것이다.
요골종자골의 외전근(요골종자골을 실제 손가락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잡아당기는 근육/옮긴이)에는 abductor pollicis longus('엄지손가락
의 긴 외전근' Pollicis는 pollex의 소유격으로 라틴어로 '엄지손가락'이라는
뜻이다)라는 길다란 명칭이 붙여졌다. 사실상 이 이름은 판다에게 썩 어
울리는 것이 아니다.
다른 식육목의 경우에 이 근육은 첫째 손가락, 그러니까 실제
엄지손가락에 붙어 있다. 반면 판다의 경우에는 더 짧은 근육 두 개가
요골종자골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뻗어 있다. 이 근육들이
'종자골 엄지손가락' 을 실제 손가락 쪽으로 끌어당기는 작용을 한다.
판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렇듯 기묘한 배치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알기 위해 다른 식육목의 구조로부터 어떠한 단서를 얻어낼 수 있을까?
데이비스는 자이언트 판다와 가장 긴밀한 유연 관계를 맺고 있는
곰이나 미국너구리가 다른 식육목에 비해 앞발을 쓰는 능력이 훨씬 뛰
어나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대한 비유가 허용된다면, 판다는 그들의 선조 덕분에 음식물
섭취 능력을 한층 더 진화시키기 위해 앞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보통 곰들도 구조상으로는 이미 요골종자골을 한층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육목 동물에는 판다의 경우에 요골종자골을 움직였던 것
과 동일한 근육이 첫째 손가락, 즉 실제 엄지손가락의 뿌리 부분에 붙
어 있다. 보통 곰들의 경우에 '엄지손가락의 긴 외전근'은 두 개의 힘줄
로 끝난다.
그 중 하나는 대부분의 식육목에서와 마찬가지로 엄지손가락 뿌리에
붙어 있고, 다른 하나는 요골종자골에 붙어 있다. 이것들보다 짧은 두 개의
근육도 보통 곰에서는 부분적으로 요골종자골에 붙어있다. 데이비스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따라서 이 현저한 새로운기구(기능적으로 보면 하나의 새로운 손가락)를
조작하는 근육 체계는 판다와 가장 가까운 곰류에서 이미 보이는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 근육 체계에 생긴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종자골이 지나치게 성장한 결과 자동적으로 일어난 것이라 여겨진다."
판다의 종자골 엄지손가락은 뼈 한 개가 늘고 근육 체계의 배치가 대
폭적으로 전환하여 생성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복잡한 구조이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그 장치 전체가 요골종자골 자체가 성장한 데 따른
기계적 반응으로 일어난 것이라 말한다. 근육은 커져버린 뼈가 그 근육
자체의 위치 부근에서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전위된 셈이 된다.
또한 데이비스는 요골종자골의 확대는 단지 한 차례의 유전적 변화, 어
쩌면 성장의 타이밍과 속도에 영향을 주는 단 한 차례의 돌연 변이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판다의 뒷다리에는 앞발의 요골종자골에 상응해서-물론 앞발만큼은
아니지만-경측종자골이라는 뼈가 커져 있다. 그러나 경측종자골은 새
로운 '발가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경측종자
골은 크기가 커졌다는 사실 외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이 두 개의 뼈가 함께 성장하게 된 것은 한쪽만
성장하는 경우에 대한 자연 선택적 반응으로서, 단순한 유형의 유전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손가락과 같이 여러 개가 똑같은 모습으로
발생하는 신체부분은 각 부분에 각기 다른 유전자가 별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러분 손의 엄지손가락을 '위한' 유전자나 발의 엄지발가락을
위한 유전자, 또는 여러분의 가운뎃손가락을 위한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발생하는 부분은 전부 보조를 맞추어 발
육한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요소에 변화를 가져오는 선택은 그 밖의
다른 요소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형을 가져온다. 엄지손가락을 크게 바
꾸면서 엄지발가락을 변형시키지 않는 것은 양쪽을 함께 성장시키는 것
보다 더욱 복잡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전자의 경우에는 전체
적인 협조가 깨지고 엄지손가락만 강화되어 서로 연관된 구조들이 상호 증
대되는 것을 억누르게 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단지 하나의 유전자가
그에 상응하는 손가락의 발육을 조절하는 영역에서 성장 속도를 증대시키
기만 하면 된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동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다윈이 연구한 난초과
꽃에 해당한다. 공학자가 생각해낸 아무리 뛰어난 해결책이라 해도 역
사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판다의 진짜 엄지손가락은 이미 다른 역할에
할당되어 있어 별도의 기능을 갖기에는 지나치게 특수화된 상태여서 물
건을 붙잡을 수 있도록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손가락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판다는 손에 있는 다른 부분을 활용해야만 했으며, 그래서
확대시킨 손목뼈를 사용했다. 이것은 조금 꼴사납긴 하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작동되는 해결책이었다. 종자골 엄지손가락은 기술자들의 대회에서
상을 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이클 기젤린의 말마따나 그것은 임시
변통의 장치이지 특출나게 새로운 발명품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훌릉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기반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한층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윈의 난초에 관한 책에는 이와 비슷한 예가 무수히 등장한다. 예를
들어 습지에 자라는 에피팍티스Eplpactis라는 난은 입술꽃판(꽃잎이 커
진 것)을 함정으로 사용한다. 이 입술 모양의 꽃판은 두 부분으로 나누
어져 있다.
그 하나는 꽃의 기부 가까운 쪽에 꿀로 채워져 있는-곤충이 꽃을
찾아오는 목적은 이 꿀을 얻기 위해서다-큰 컵 모양의 부분이다.
꽃의 끝 쪽에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일종의 착륙장 형태로 이루
어져 있다. 곤충이 이 활주로에 내리면 그 무게에 눌려 이 부분이 내려
앉게 되고, 안에 들어 있는 꿀의 컵에 이르는 입구가 열리게 된다. 그리
하여 벌레는 컵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곤충이 컵 속으로 들어가면
활주로는 탄력을 받아 다시 위로 올라가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벌레는
꿀의 컵 속에 갇히게 된다.
그 벌레는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출구, 즉 꽃가루덩어리에 닿지
않고서는 지날 수 없는 통로를 거쳐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이는 그야말로 놀라우리만큼 뛰어난 장치이지만, 그 모든 것은 보통의
꽃잎, 다시 말해 난초과 선조 식물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었던 일부분이
발달하여 형성된 것이다.
그 후 다윈은 다른 난초의 입술꽃판이 교잡 수정을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일련의 정교한 장치를 진화시킨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
어 곤충이 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등이를 꽃가루덩어리 주위로 우회
시킬 수밖에 없도록 복잡한 주름을 발달시킨 것도 있으며, 또 벌레를
꿀과 꽃가루 양쪽으로 이끌기 위해 깊은 통로나 이랑을 발달시킨 것도
있다 통로가 터널로 되어 있어서 꽃이 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러한 적응 형태는 모두 난초 선조의 어느 단계에서는 보통 꽃잎으로부터
출발한 한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은 얼마 되지 않는 재료를
가지고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다윈의 말마따나 난초과는 "하나의 꽃을
다른 식물체의 꽃가루로 수정시킨다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의 낭비"를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생물 형태에 관한 다윈의 다음과 같은 비유는 진화라는 것이 이처럼
제한된 원료를 가지고 이만큼 다양하고 적절한 설계design의 세계를 만
들어낼 수 있다는 데 대한 그의 외경심을 반영하고 있다.
어느 한 기관이 무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어떤 목적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그 목적을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어떤 사람이 무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기계를
만들 필요가 있을 때, 낡은 바퀴나 스프링, 활차 등을 그대로
사용해-약간의 변화만을 주고-기계를 만들어야 한다면, 이런 부품들을
조립해서 완성된 기계는 그 목적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 전체에 걸쳐 모든 생물의 거의 모든 부분은
변화하는 조건에 맞추어 조금씩 여러 가지 목적에 이용되면서 아주
오래 전의 그리고 독특한 형태의 생물 기계들 속에서 훌륭하게 기능
해온 것이다.
어쩌면 바퀴나 활차를 조립한다는 비유가 만족스럽지 않을지도 모르
겠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의 몸이 얼마나 훌륭하게 작동하는지를 생각
해보라. 프랑스의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의 말을 빌리자면, 자연은
뛰어난 땜장이기는 하지만 성스러운 숙련공은 아니다. 과연 누가 이 두
가지 모범적인 기술의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
제2장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의미 없는 징후들
말이란 현재의 의미가 그 어원에서 멀어졌을 경우, 그 말의 역사를 드
러내는 단서를 제공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emoluments'(봉급)라는
영어 단어는 각지의 'miller'(제분업자-이 말은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는 의미의 라틴어 'molere'에서 유래한 것이다)에게 지불되는 보수에서 온
것이며, 'disaster'(재앙)이라는 말은 'evilstar'(불길한 별)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진화학자들은 언제나 말의 변화를 의미 심장한 유추를 제공해주는 비
옥한 밭이라 생각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의 맹장이나 수염고래 태아기
때의 이빨과 같이 흔적으로 남은 구조에 대해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흔적 기관은, 어떤 단어의 철자 속에는 잔존하고 있지만 발음상으로는
필요없게 되어버린 문자-그러나 단어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단서가
되는 문자-에 비유할 수 있다. " 다시 말해 생물과 언어는 모두 진화하는
것이다.
이 에세이는 이상한 사실들의 목록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을 탐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의 방법, 과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
만 그 의미가 올바로 인식되지 않은 특수한 방법에 관한 추상적인 이야
기이다.
예로부터 존재해온 전통적인 관념에 따르면 과학자는 언제나
실험과 논리에 의존한다. 횐 가운을 입은 한 중년 남자(대개가 남녀 차
별주의자이며, 내향적이고 과묵하고, 그러나 진리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
거나, 아니면 혈기가 넘쳐흐르는 괴짜)가 플라스크 속에 두 종류의 화학
물질을 넣은 후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가설, 예상, 실험, 그리고 해
답...이런 것들이 과학적 방법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 분야는 실제로 이렇지 않으며 이런 식으로 진
행되지도 않는다.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나는 역사를 복원시
키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역사란 일회적이며 지극히 복잡한 것이다. 그것은 플라스크 안에서
재현시킬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역사, 특히 인류의 연대기나 지질학적
연대기에도 기록돼 있지 않은 먼 옛날의 일,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역사를
뒤쫓는 과학자들은 실험적 방법보다는 추론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역사 과정의 '현재에 나타난 결과'를 조사하여 선조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단어, 생물, 지형 등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왔는지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그 경로를 추적하고 나면 왜 역사가 그 경로를 거칠 수밖에 없었는지
여러 가지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현재의 결과
로부터 과거 지나온 경로를 추론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경로가 존
재한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들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역사적 변화의 산물이지 영구 불변한
우주의 항구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다윈이 직면했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에 반대하는 창조론자들
은 생물 각각의 종튼이 처음 창조된 이래 변화하지 않고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윈은 현생종
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했을까?
우리들은 그가 진화의 가장 인상적인 결과, 즉 환경에 대한 생물의
복잡하고 완벽한 적응 사례-예를 들어 죽은 나뭇잎처럼 보이는 나비,
나뭇가지와 혼동을 일으키는 알락해오라기, 하늘을 나는 갈매기나 바닷속의
참치와 같은 훌륭한 공학적 설계-에 가장 먼저 눈을 돌렸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윈은 정반대의 일을 했다. 그는 기이한 것이
나 불완전한 것을 찾았다. 갈매기는 '설계상의 경이'이라고 간주할
만한 생물이었다. 진화를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그 날개의 공학적 설계
는 자연 선택의 뛰어난 조형력을 반영한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함으로는 진화를 입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것은
역사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생물체가 갖는 설계상의
완전함은, 그 완전 무결한 공학적 설계 속에서 신이라는 조형자의 개입을 찾
아왔던 창조론자들이 예로부터 즐겨 주장했던 논거였다. 공기역학적 경
이인 새의 날개는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신에 의해) 창
조되었다는 것이 창조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다윈은 만약 생물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선조 여러 단계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과거의 흔적-무용한 것, 기묘한 것, 특이한 것, 불균형한 것 등-은
역사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징후인 것이다.
그것들은 세계가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해준다. 만약
역사에 끝이 있고 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면 그런 흔적들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금전상의 보수를 의미하는 단어에 과거 곡물이나 곡식 찧는 일과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왜 그 철자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직업이 반
영되겠는가?
만약 고래의 선조가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를 갖고 있었고
또 그 이들이 해롭지 않은 어느 한 시기에 흔적 기관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새끼 때 어미의 자궁 속에서는 이가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이를 몸 속으로 흡수하여 없애버리고 평생 동안
고래수염이라는 필터로 크릴새우를 걸러 먹어야만 하는 고래의 생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거의 모든 생물이 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큼 다윈을 기쁘
게 한 진화의 증거는 없었다. 그는 이에 대해 "필요없음이라고 각인된.
바로 이 기묘한 상태에 놓인 부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변형을 수반하는 유래에 관한 나의 견해, 다시 말해
흔적 기관의 기원에 대한 나의 견해는 간단하다. " 그것은 그 생물의 선조
생물의 몸에서는 기능을 했지만 지금은 해부학적으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잔존물이다.
여기서 일반적인 사항이 흔적 기관과 생물학을 뛰어넘어 역사적 과학
모든 영역으로까지 확산된다. 이 3부작의 첫번째 에세이는 동일한 주제
를 각기 다른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이 진화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꼴사나운
모양을 하고 손목의 요골종자골이라는 이상한 부분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실제의 엄지손가락은 선조에서와 마찬가지로 식육목 동물이
달리거나 할퀼 때 사용하는 손가락으로서의 역할에 적합했다.
따라서 엄지손가락은 초식성으로 변한 자손에게 다른 손가락과 마주보고
대나무를 잡는 손가락으로 변형될 수 없었다.
지난 주에 나는 생물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에 몰두했다.
'veteran'(베테랑)과 'veterinarian'(수의사)라는 전혀 의미가 다른 두
개의 단어가 모두 'old'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vetus'라는 공통된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이 경우에도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계보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veteran'이라는 말은 별 문제가 없다. 그 어원과 현재의 의미가 일치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말에는 역사에 대한 암시가 없다.
그보다는 'veterinarian' 쪽이 더 흥미롭다. 도시인들은 'vet'(수의사)라는
말을 그들이 애완용으로 기르는 개나 고양이의 하인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
다. 나는 수의사가 원래는 농장이나 목장의 동물을 치료하곤 했다-그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뉴욕 시민풍의 편협함을 용
서하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vet'와 'vetus'라는 단어는 '짐 나르는 동물'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요컨대 "무거운 짐을 지고도 견딜 수 있다"라는 의미의
'old'(노련함)인 것이다. 가축은 라틴어로 'veterinae'이다.
역사적 과학이 갖는 이 같은 일반 원칙은 지구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판구조론(지구 표층부를 구성하는 암판이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여
갖가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고 하는 이론/옮긴이)이 수립되자 과학자들
은 지구 표면의 역사를 다시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2억 2천 5백만 년 훨씬 이전에 몇 개의 대륙이 합쳐져
형성되었던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Pangaea'가 지난 2억 년 동안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지금처럼 여러 대륙으로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기묘함을 통해 오래 전의 역사를 추측해볼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동물들에서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먼 옛날의 대륙
위치에 대한 적응에서 유용성을 가지는지 여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자연사 최대의 수수께끼와 경이로움 가운데 하나가 여러 동물들의 장거리
이동과 회유 경로이다. 이처럼 긴 이동 경로 가운데 일부는 계절에
따라 생존에 적합한 기후대를 찾는 간단한 경로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
다.
예를 들어 매년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몸집이 큰 많은 포유류 동물
들이 금속제 새에 올라타 플로리다 주로 이동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적당한 장소가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섭식지feeding ground에서 특정한 번식장breeding ground으로-
놀랄 만큼 정확하게 수천 마일을 이동하는 동물도 있다. 이처럼 특이한
이동 경로를 먼 옛날의 대륙 배치도에서 본다면 훨씬 거리가 짧게 느껴지고
또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바다거북의 이동에 대한 세계적 전문가이자 플로리다 대학의 교수인
아르키 카는 그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바다거북 켈로니아 미다스
Chelonia mydas의 한 개체군은 대서양 중부에 있는 절해의 고도
어센션 섬에 상륙해 번식하고 있다.
오랜 옛날에는 수프를 만드는 런던의 요리사나 식료품 보급를 위해
잠깐 이 섬에 들렀던 군함의 승무원들이 바다거북을 앞다투어 잡아갔다.
카는 꼬리표를 달아놓은 이 섬의 거북들이 무려 2천 마일이나 떨어진
번식장까지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켈로니아 미다스는 '섭식지로 이용하던 해안에서 수백 마일 이상 떨어진
바늘 끝과 같은 육지' , '대양 한가운데 간신히 머리를 내민 첨탑' 위에서
번식하기 위해 브라질 해안으로부터 무려 2천 마일을 여행한 것이다.
카의 발견이 있기 전에 과연 누가 그런 사실을 꿈에라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바다거북이 섭식과 번식을 별개의 장소에서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안전하고 물이 얕은 '목장'에서 해초를 먹지만,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모래 사장이 넓게 펼쳐진 노출된 해양, 그리고 가능하다
면 포식자가 없는 섬의 해안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적당할 것 같은 다른 번식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대양 한가운데 까지 무려 2천 마일이나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같은
종으로서 코스타리카 카리브 해 연안에서 번식하는 큰 개체군도 있다.)
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바다거북들이 실제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그처럼 분명치만 않다면 거북들이 이 항해에 따르는 온갖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카는 이 기나긴 여행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어떤 것의 연장일지도
모른다고 추론한다. 다시 말해 대서양이 비교적 최근에 분리된 두 대륙
사이에 놓인 하나의 웅덩이에 불과했던 시기에는 대서양 한가운데의 섬
까지 헤엄치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남아메리
카와 아프리카는 켈로니아의 조상들이 이미 그 지역에 서식하고 있던 8
천만 년 전에 두 개로 갈라졌다.
어센션 섬은 새로운 해저가 지구 내부로부터 솟아 올라오는 허리띠 모양의
지대인 대서양 중앙 해령에 위치해 있다. 땅 밑의 끓어오르는 물질은
때때로 하나의 섬을 이를 수 있을 만큼 높게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아이슬란드는 대서양 중앙 해령에 형성된 가장 큰 섬이며, 어센션 섬
도 같은 과정의 축소판이다. 해령의 한쪽에 섬이 생성되면 그 섬들은
밑에서 솟아올라 바깥쪽으로 퍼지는 새로운 물질들로 인해 중앙부로부
터 멀리 밀려나게 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해령에서 멀리 떨어진 섬일
수록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섬은 점차 침식되어 작아지다가 종국에는 수면 밑으로 내려가
해산이 되기도 한다. 섬이 활동중인 해령에서 멀어지면서 새로운 재료
물질의 공급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섬은 산호를 비롯한 그 밖의 생물로 된 외피가 두터워져 계속 보존되고
쌓이지 않는 한 파도에 침식되어 결국 해수면 아래쪽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또한 이러한 섬은 높은 해령에서 대양의 심부로 향하는 내리막 사
면을 이동하면서 차츰 수면 아래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서 카는 '어센션 섬의 바다거북의 선조'가 백악
기 후기에는 브라질 해안에서부터 대서양 중앙 해령 위쪽에 있던 어센
션 섬까지의 짧은 거리를 헤엄쳐 건넜다는 설을 제안했다. 그 후 이 섬
이 점차 이동하여 가라앉게 되고, 또 하나의 새로운 섬이 그 해령 위에
나타나자 바다거북은 그곳까지 좀더 먼 거리를 헤엄치게 되었다는 것이
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어, 매일 조금씩 조깅 거리를 넓히던 사람이
결국 마라토너가 되는 것처럼 거북들도 2천 마일에 달하는 여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 역사적인 가설로는 바다거북들이 어떻게 푸른 바다
위에 흩어져 있는 점과 같은 작은 섬을 찾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매혹적인 문제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갓 부화된 어린 새끼거북들이 적도
해류를 타고 브라질까지 표류해서 올 수는 있다 해도 어떻게 섬까지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일까?
카의 상상력에 따르면, 바다거북들은 어떤 천체에서 항로의 단서를 찾아
어센션 섬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자신들의 그 항적을 찾아냈을 때 물의
특징-맛? 냄새?-을 기억해내고는 마침내 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카의 가설은 특이한 사례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뛰어난 본보기이
다. 나 자신도 이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어
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상식적인 난점 때문이 아니다.
상식적인 난점이 이 가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들은 항상 새로운 섬이 제시간에 나타나 오래된 섬을
교체시킨다는-그 과정에서 하나의 섬만 발생하지 않아도 '설명' 체계 전부가
무너질 수 있는-가설을 믿을 수 있을까?
또 과연 새로운 섬이 거북에게 잘 발견될 수 있도록 '그들의 진로상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어센션 섬 자체의 나이도 7백만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런 문제점보다 이론상의 결함이 더욱 마음에 걸린다. 켈
로니아 미다스라는 종 전체가 어센션 섬으로 이동했거나, 또는 그것과
유연 관계가 가까운 종 한 무리가 이 여행을 한 것이라면 나는 별로 이
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행동이라는 것은 형태와 마찬가
지로 기원이 오래된 것이며 자손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켈로니아 미다스는 전세계 바다 구석구석에 번식하고 있다.
어센션 섬의 바다거북은 수많은 번식 개체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이 번식군의 먼 옛날 선조는 2억 년 전에 웅덩이처럼 작았던 대서양에서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켈로니아속에 대한 기록은 1천 5백만 년 전까지밖에
없다.
아마도 켈로니아 미다스라는 종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다소 불완전하긴 하지만 우리는 화석 자료를 통해 1천만 년 이상
살아 남았던 척추 동물의 종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카는 초기
어센션 섬에 헤엄쳐 닿았던 거북이 켈로니아 미다스의 먼 선조격-적
어도 다른 속에 속하는-이었다고 생각했다.
몇 차례 종분화가 일어난 결과, 이 백악기의 선조는 현재의 바다거북과
유연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카의 가설이 옳다고 가정하고 그러한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 생각해보자. 선조 종은 틀림없이 몇 개의 번식
개체군으로 분리되었을 테고, 그 중 하나만이 원래의 어센션 섬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이 종은 그 후 밝혀지지 않은 여러 진화적 단계를 거쳐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여 결국 켈로니아 미다스와 유연 관계가 멀어졌을 것이
다.
어센션 섬의 개체군은 다른 격리된 개체군들과 보조를 맞춰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화하면서 매 단계마다 각기 독자적인 완전성을 갖
추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진화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다. 새로운 종은 격리된 작은 개체군에서 시작하여 이후 확산돼나가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 걸쳐 흩어져 있고, 격리된 동일 종의 아 개체군
들은 한 종에서 다음 종으로 병행하여 진화하지 않는다. 만약 특정 개
체군들이 서로 격리되어 번식하는 계통이라면, 과연 모든 개체군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새로운 종이라 부를 만큼 완전히 다른 종으
로 변화할 수 있도록 상호 교잡할 가능성이 있겠는가?
다른 종류와 마찬가지로 켈로니아 미다스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지금과는 달리 서로 가까웠던 과거 1천만 년 이내의 한 시기에 작은
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륙 이동설이 유행하기 전인 1965년에 카는 다른 설명을 시도했다
내게는 이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 가설은 어센션 섬의 개
체군이 켈로니아 미다스라는 종이 진화한 후에 나타났다고 설명하기 때
문이다.
그는 이 섬의 개체군 선조가 적도 해류를 타고 표류하다가 서
아프리카에서 우연히 어센션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카는 서
아프리카의 레프도켈리스 올리바케아Lepidochelys olivacea라는 꼬마바다거
북도 이 경로를 따라 남아메리카 해안으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그 후 갓 부화된 새끼바다거북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동일한
해류를 타고 브라질로 이동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다시 어센션 섬으로
되돌아오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북의 이동 메커니즘은 지극히 불가사
의한 것이어서, 새끼거북은 이전 세대로부터 유전 정보를 물려받지 않
는다 해도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기억할 수 있도록 각인imprint되는 것
은 가능하다.
나는 학자들 사이에 대륙 이동설이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이 카의 생각을 바꾸게 한 유일한 요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카는
자신의 가설이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이 선호하는 설명의 기본 양식을 몇
가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나의 전통타파적 사고 방식으로 보면 부정확한 생각이지만) 카의 새로운
가설에 의하면, 특이한 어센션 경로는 알기 쉽고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조금씩
조금씩 발전한 셈이다. 과거에 그는 그러한 변화가 돌연한 사건이었고
우연의 지배를 받는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변덕이라고 보았다.
진화학자들에게는 규칙성을 중히 여기고 점진적인 학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서양적인 사고 전통에서 오는 뿌리 깊은 편견
일 뿐이지 자연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5
장 참조).
그리고 카의 새로운 학설을 전통적인 철학에 근거한 대담한 가설이라고
간주하고자 한다. 나는 그의 가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창의성과
노력, 방법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는 특이한 것을 변화의 신호로
사용한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원칙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거북 이야기는 역사적 과학의 또 다른 측면-이번에는 설명의 원리가 아닌
좌절의 문제-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결과가 원인을 밝혀내기란 좀처럼
힘들다.
우리가 화석이나 인간의 연대기와 같은 직접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을 때,
또 현재 나타난 결과만을 토대로 그 진행과정을 추론하지 않으면 안 될 때
대개 우리는 벽에 부딪쳐 포기하거나, 아니면 심도 깊게 고찰할 수 있었던
것을 막연한 가능성으로 축소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길이 무수한 로마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번 게임은 바다거북의 승리이다.
그래서 안 될 이유가 있는가? 포르투갈 선원들이 아프리카 해안을 끼고 항해하고
있을 때 켈로니아 미다스는 대양 한가운데 어느 한 점을 향해 곧장 헤엄치고
있었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항해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
고 있는 동안 이 바다거북은 넓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3장 이중의 어려움
자연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것 이상으로 영국의 수필가 아이작
월턴을 미숙한 아마추어 낚시꾼으로 지목한다. 테드 월리엄스가 나타나
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낚시꾼이었던 아이작은 1654년 자신을
매혹시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은 모조 다랑어‥‥‥매우 교묘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급류 속에서 아무리 날카로운 눈을 가진 뱀장어라도 속일 수 있다네 ."
나는 이전에 발간한 '다윈 이후'라는 책의 한 장에서 민물조개의
일종인 람프실리스Lampsilis가 몸체 뒷부분에 미끼 '물고기'를 달고 다
닌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감쪽같이 위장된 이 미끼는 유선형 '몸통'을 가지고
있고, 옆쪽으로는 목표물을 더 잘 유인하기 위해 지느러미와 꼬리 모양을
한 플랩(flap 너풀너풀한 돌출물/옮긴이)을 달고 있으며, 눈 무늬까지 흉내내고
있다. 플랩은 마치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듯 율동적인 운동을 한다.
이 '물고기'는 그 조개의 난낭(몸통)과 외피(지느러미와 꼬리)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 미끼에 진짜 물고기가 꼬이면 어미조개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 물고기를 향해 난낭에서 유생을 발사한다.
그러면 람프실리스의 유생들은 물고기의 아가미에 붙어 기생 동물로
자라난다. 따라서 이 미끼는 매우 유용한 장치인 셈이다.
나는 최근 그런 생물이 람프실리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몹시
놀랐다. 어류학자인 테드 피치와 데이비드 그로베커는 필리핀산 앵글
러피시(아귀아목 물고기의 일종/옮긴이)의 표본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야외에서 대담한 모험을 한 결과 얻어낸 것이 아니라 종종 풍부
하고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원천이 되는 유리 수조를 갖춘 한 마을의
소매점에서 산 것이었다(때로는 남자다움보다는 예리한 주의력 쪽이 신기
한 발견을 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되기도 한다).
앵글러피시는 이 미끼를 이용해 자기의 유생을 다른 물고기에게 실어
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먹이를 낚시로 건져 올리기도 한다. 그들의
등지느러미 맨 끝부분에는 등지느러미의 가시가 기묘하게 변형돼 있고,
그 가시 끝에는 매우 독특한 미끼가 달려 있다.
빛이 닿지 않는 암흑 세계에 사는 심해종 가운데는 자체 조명
을 사용해서 낚시를 하는 생물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미끼에 인광
박테리아를 기생시킨다. 얕은 물에 사는 종은 화려한 색깔과 울퉁불퉁
한 몸체를 가지고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해면이나 해초에 덮힌 바위처
럼 보인다. 그들은 물밑에 달라붙어서 입 가까운 곳에 있는 가짜 '미끼'
를 물결치거나 흔들어댄다.
이 '미끼'는 종에 따라 다르지만, 연충류나 갑각류를 비롯해 바다에 사는
여러 종류의 무척추 동물들에게는-때로는 불완전하지만-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피치와 그로베커가 발견한 앵글러피시에는 람프실리스 뒤쪽에
붙어 있는 미끼와 완전히 동일하며 매우 인상적인 물고기 형태의 '미
끼'가 발달해 있었다. 이것은 이런 유의 미끼로는 최고라 할 만하다(이
들 두 사람의 논문에는 '완전한 낚시꾼'이라는 적절한 표제가 붙어 있으며
책머리에는 앞서 언급했던 원턴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이 절묘한 속임수는 매우 정확한 위치에 마치 눈처럼 보이는 무늬까지
찍어놓고 있다. 게다가 몸통 아래쪽에는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나타내는 가느다란 실이 달려 있고, 등이 연장되어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
러미와 흡사한 모습으로 발달했다.
심지어 아무리 보아도 영락없는 꼬리 비슷한 것이 뒤쪽의 돌출부에서
이어져 나와 있다. 피치와 그로베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
"미끼"는 필리핀 해역에는 얼마든지 있다. 농어류의 어떤 과에 분류해
넣어도 좋을 만큼 물고기의 정확한 복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앵글러피시는 때때로 그 미끼를 수중에서 미세하게 물결치게 해서
"마치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의 좌우 방향에 나타나는 물결을 닮게"하기까지
한다.
이매패(두 장의 조가비를 갖는 식용 조개/옮긴이)와 어류 일부 종에 거
의 동일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계략들은 언뜻 보기에는 다윈적인 진화를
뒷받침해주는 실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만약 자연 선택이 이처럼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앞선 두 장에서 다룬 주제를 계속하면서 이 3부작을 끝내
겠지만, 완전성이라는 것은 진화론자나 창조론자에게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다.
성경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노래 부르지 않았는가? "하늘은 신
의 영광을 나타내고, 창공은 그의 뛰어난 손재주를 드러낸다." 앞의 두
장에서는 불완전성이라는 것이 진화를 입증해주는 열쇠 구실을 한다고
했지만, 이 장에서는 완전성에 대해 다윈주의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완전성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유연 관계가 아주 먼 다른 종 동물에게서 동일한 완전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매패의 뒤쪽에 달린 물고기, 앵글러퍼시의 코 앞에 달린 또
다른 물고기-전자는 난낭과 외피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후자는 등지
느러미의 가시에서 진화했다는 사실-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물론 진화론적으로 각 '물고기'의 기원을 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람프실리스에 관해서는 실제로 그럴듯한 중간 단계들을 확인할
수도 있다. 앵글러피시 등지느러미에 달린 가시가 '미끼'로 기능한다는
것은 판다의 엄지손가락이나 난초의 입술꽃판에서 일어난 진화를 강력
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즉 하나의 부품을 임시 방편으로 유용한다는 원리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1장 참조) . 그러나 다윈주의자들은 진화를 입증하는 것 이상의
연구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임의적인 변이와 자연 선택이라는 기본
메커니즘을 진화적 변화의 근본 원인으로서 옹호할 책임이 있다.
반 다윈주의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는 계획되지 않고 특정 목표를 갖
지 않는다고 한 다윈적인 중심 개념에 맞서서 별개의 계통에서 나타나
는 매우 유사한 적응 형태의 '반복적인' 발생을 항상 선호해왔다.
만일 서로 다른 생물체들이 반복적으로 매우 흡사한 방법으로 수렴
(계통이 다른 생물이 점점 서로 닮은 형질을 나타내며 진화하는 일/옮긴이)
한다면, 이것은 특정한 변화의 방향이 미리 설정돼 있는 것이지 임의적인
변이속에 일어나는 자연 선택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또한 반복해서 나타나는 형태 자체를 그것에 이르는 무수한 진화적 사건의
요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아서 커스틀러는 최근에
발간된 여섯 권의 저서에서 다윈주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캠페인을 전개했다. 커스틀러는 진화를 특정 방향으로만 제한하고, 자연
선택의 영향력을 무시하도록 하는 어떤 지시력ordering force을 찾아내고자 했다.
유연 관계가 먼 서로 다른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우수한 설계가 진화한다는 사실
이 바로 그가 의지하는 보루인 셈이다. 그는 여러 차례 늑대와 '태즈메
이니아산 주머니늑대'의 동일하게 생긴 두개골을 예로 들었다(이 유대목
육식 동물은 늑대와 비슷하지만 계통학적으로는 웜뱃(작은 곰과 비슷하게
생긴 오스트레일리아산 유대 동물/옮긴이), 캥거루, 코알라 등과 훨씬 가깝
다).
가장 최근의 저서 '야누스Janus'에서 커스틀러는 이렇게 쓰고 있
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선택이 아니라 임의적인 변이에 의해 일어
난 늑대라는 단일 종의 진화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섬과 대륙에서 각기 독자적으로 두 차례 일
으킨과는 것은 기적을 제곱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다윈적인 반응은 부정과 화해 양쪽을 모두 포함한다.
첫째, 부정적인 반응: 고도로 수렴된 여러 개체군들이 대개 동일한
형태를 띤다는 주장은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1931년에 죽은 벨
기에 출신의 뛰어난 고생물학자 루이 돌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이
해된 '진화 불가역의 법칙' (돌로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이라는 원칙을
수립했다.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돌로가 진화란 오로지
앞을 향해 전진할 뿐이며 절대 뒷걸음질을 용납하지 않는 지향력directing
force이라 주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돌로를, 자연
선택이 자연의 질서를 구성하는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비다윈주의자의
한 사람에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로 돌로는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서로 다른 계
통에 동일한 적응 형태가 일어나는 현상)에 흥미를 보인 다윈주의자였다.
그는 기본적인 확률론으로 보더라도 수렴을 통해 완전히 유사한 상태에
까지 이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물은 결코 자신의
과거 흔적을 지을 수 없다.
물론 계통이 서로 다른 생물이 공통된 생활양식에 적응해가면서 외면적으로
유사성을 띠게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생물체는 수많은 복잡하고 독립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전부가 완전히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두 차례 진화할 가능성은 전혀없다. 진화는 거꾸로 돌릴 수 없다. 선조의
징후는 언제나 보존되며, 수렴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항상 표면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가장 경탄스러운 수렴의 예로 꼽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은
바로 어룡이다. 육생 선조에서 파생한 이 바닷속 파충류는 어류에 흡사하게
수렴해서 매우 효율적인 유체 역학적 설계의 등지느러미와 꼬리를 그야말로
적절한 위치에 발달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그토록 주의를 끄는 것은 그것들이 원래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무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선조인 육생 파충류는 등에 아무런 융기도 없었고,
꼬리에는 지느러미로 발달할 수 있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룡은 전체 설계나 복잡한 세부 구조에서 물고기와는 사뭇 다르다(예를 들어
어룡의 등뼈가 꼬리 아래 안쪽으로 뻗어 있는 데 비해 꼬리 척추를 갖는 어류의
등뼈는 어깨뼈 속으로 뻗어 있다).
어룡은 폐를 가지고 있어서 수면에서 호흡할 수 있으며, 지느러미가 아니라 변
형된 발의 뼈를 골격으로 하는 지느러미 모양의 발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파충류에 속한다.
커스틀러의 육식 동물도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태반 늑대도 유
대목 '늑대'와 마찬가지로 사냥을 하는 데 효율적으로 설계돼 있지만,
전문가라면 그들의 두개골을 착각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외면적
인 형태와 기능이 서로 수렴한다고 해서 유대목 특유의 몇 가지 작은
특징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설명: 다윈주의는 커스틀러가 생각한 것처럼 변덕스러운 변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의적인 돌연 변이가 변화의 원료일지는 모
른다. 그러나 다윈주의는 자연 선택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부분 변이체
들이 배격되는 한편 국지적인 환경에 대해 적응을 강화한 소수 변이체
들이 이전보다 훨씬 우수한 설계를 형성해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한 수렴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생활을 유지하는 일부 방법이 (그
방법들이 기능하는) 모든 생물체에 동일한 형태와 기능이라는 기준을 부
과하기 때문이다. 육식성 포유류는 부지런히 달리고 먹이를 사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먹이를 찢어서 삼키기 때문에 먹이를 잘게 으
깨는 데 사용되는 어금니가 필요하지 않다.
태반 늑대와 유대목 늑대는 모두 지속적으로 질주하는 데 유리한 구조를
가지며, 날카롭고 뽀족한 긴 송곳니와 퇴화한 어금니를 가지고 있다.
육생 척추 동물은 네 다리를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며, 균형을 잡기 위해
꼬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균형을
잡으며 꼬리로 물을 뒤쪽으로 쳐 밀어내 추진력을 얻기도 한다.
물고기처럼 생활하는 어룡류는 (나중에 고래에서 일어난 것처럼) 폭이 넓은
추진형 꼬리를 진화시켰다. 그러나 고래의 수평 꼬리는 상하로 물을 치는 데
비해 어류나 어룡류의 수직 꼬리는 좌우 방향으로 움직인다.
오늘날까지도 판을 거듭해 출판되면서 항상 현대적 의미를 잃지 않고
있는 『성장과 형태에 관해서』라는 저서를 웬트워스 톰프슨이 처음 발간
한 것은 1942년이었다. 지금까지 그만큼 뛰어난 언변으로 정교한 설계
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생물학적 주제를 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대 선전이나 과장을 일체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피터 메더워
경은 이 책을 "영어로 기술된 모든 과학 간행물 가운데 타의 추종을 불
허하는 가장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동물학자이자 수학
자며 고전학자이자 산문 문장가인 톰프슨은 나이를 먹은 후에야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고 방식은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권위주의적인 런던 대학이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고, 나머지 전생애를
스코틀랜드의 한 작은 대학에서 끝내야만 했다.
톰프슨은 공상가를 넘어 탁월한 반동주의자였다. 그는 피타고라스에
깊이 경도되었으며, 그리스 기하학자로서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연
물 속에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이상적 세계의 추상적인 형태를 찾아내는
데 지고의 기쁨을 느꼈다. 벌집이나 일부 거북의 등껍질에서 반복적인
정육각형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솔방울이나 해바라기꽃-그리고 줄기에 잎이 나는 방식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에 나타나는 나선의 수가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ries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통되는 한 점에서 방사하는 나선들의 체계는 왼감기나 오른감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왼감기와 오른감기의 나선 수는 같지 않고, 피보나치
수열에서 연속하는 두 개의 수로 나타난다. 피보나치 수열이란,
이웃하는 두 개의 정수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수열을 뜻한다. 즉 1, 1, 2, 3,
5, 8, 13, 21등이 그 수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솔방울은 13개의 왼감기
나선과 21개의 오른감기 나선을 가질 수 있다.)
수많은 권패류의 껍질, 숫양의 뿔, 빛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의
궤적이 대수 나선logarithmic spiral이라 불리는 곡선을 이루는 까닭은 무엇인가?
톰프슨의 대답은 매번 동일하다.
즉 이러한 추상적인 형태들이 최상의 해결책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들은 적응에 이르는 최선의 길,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이지만
동일하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삼각형, 평행사변형, 육각형은 빈틈없고
완전하게 공간을 채우는 유일한 평면 도형이다.
그 가운데 육각형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그것이 원에 가깝고 지지벽의
역할을 하면서도 내부의 넓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벌집을 예로
들자면, 육각형은 가장 많은 양의 꿀을 저장하기 위한 최소의 구조물이다).
피보나치 패턴은 이용할 수 있는 최고 넓이의 공간 속에 한 차례에 하나씩,
최정점에 새로운 하나를 덧붙임 으로써 형성된 방사형 나선 체계에서는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대수 나선은 크기가 커지더라도 그 형태가
변하지 않는 유일한 곡선이다. 나는 톰프슨이 제기한 이러한 추상적인 형태를
최적 의 적응 형태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좋은' 형태가 종종 이처럼 단순한 수량적 규칙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좀더 큰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해서는 단지 무지와 경이를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반복되는 완전성 이라는 문제에 대한 쟁점의 절반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동안 '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수렴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두 종의 복잡한 생물을 완전히 동일하게 만
드는-그것은 다윈적인 진화 과정을 무리하게 작용시킨 것이다-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매우 흡사하게 일어나는 반복이라는 문제를, 극히 제한적인 해결
방법밖에 없는 공통의 문제에 대한 최적의 적응으로써 설명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람프실리스나 앵글러피시의 미끼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미끼는 어떻게 발생하였을까? 최종적으로 나타난 적응 형태가 아무리
복잡하고 특이한 것이라도 서로 다른 기능을 갖는 평범한 부분으로부터
진화한 경우 그 문제는 특히 난해해진다.
가령 앵글러피시의 물고기 비슷한 미끼가 현재와 같이 정교한 의태를
하는 데에 연속되는 5백 회의 변형이 필요했다면 그 과정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최종 목표를 인식하고 있는 어떤 비다윈적인 힘이 그것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변형이 잇달아 계속된 까닭은 무엇인가?
단지 한 단계의 변형만으로 무슨 이득이 있는가? 5백분의 1의 변형만으로도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까?
이에 대한 톰프슨의 대답은 조금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예언적인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생물체는 그것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물리적 힘에 의해 그 형태가 형성된다고 한다. 요컨대 최적 조건에 있
는 형태는 적절한 여러 가지 물리적 힘에 영향받는 가소성 물질
의 자연적인 상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생물은 여러 가지 물리적 힘의 체제가 변할 때 하나의 최적 상태에서
다른 최적 상태로 갑작스럽게 도약한다. 지금 우리들은 여러 가지 물리적
힘들이 너무 약해서 형태를 직접 형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신 자연 선택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그러나 선택이
느리고 지속적인 방식으로밖에 작용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어떤 복잡한
적응 형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씩 누적적으로밖에 작용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다시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나는 한 가지 해답이, 여러 가지 물리적 힘이 생물체를 직접 형성시킨다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주장 뒤에, 즉 톰프슨의 통찰의 본질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형태는 몇 가지 생성 요인의 훨씬 단순한-종종 대단히
단순한-체계에 의해 완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물을 이루는 여러 부분들은 성장 과정에서 복잡하게 연결되고, 그 속에
어떤 변화가 그 생물체 전체로 퍼져 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그 생물체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시카고에 있는 필드 자연사 박
물관의 데이비드 라우프는 톰프슨의 통찰을 현대의 컴퓨터에 응용시켜
모든 권패들-앵무조개에서 이매패, 달팽이에 이르는 생물들-이 세
가지 단순한 성장 경사gradient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냄으로써 형성되
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라우프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세 가지 경사 가운데 두 개를 수정하면
한 마리의 보통 권패를 보통 달팽이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믿건 안
믿건 간에 현존하는 달팽이과의 어느 한 속은 보통 이매패의 것과 흡사한
두 장의 껍질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매우 흥미로운 클로즈업 영화(근접 촬영으로 상을 확대시킨
영화/옮긴이)에서 달팽이의 머리가 두 장의 껍질 사이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한 경험이 있다.
진화의 징후로서 완전성과 불완전성의 문제를 다룬 나의 3부작은 이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실은 이 모든 장은 판다의 '엄지손가락'과
연관되는 논의를 연장한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이런저런 샛길
로 빠지기도 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술한 세 장의 유일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바로
판다의 엄지다. 하나의 손목뼈로 이루어졌고, 역사의 징후로서는 다소
불완전한 이 엄지손가락은 아쉬운 대로 쓸 만한 몇몇 부분에서 발생되었다.
드와이트 데이비스는, 만일 자연 선택이 무수한 단계를 거쳐 서서히 곰을
판다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무력한 것이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부딪쳤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단순한 생성 요인의 체계로 축소시키는 톰프슨의 해
결 방법을 옹호했다.
아울러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근육이나 신경을 모두 갖춘 엄지손가락이라는
복잡한 장치는 요골종자골이 단순히 확대하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더욱이 그는 머리뼈 형태에서 나타난 복잡한 변화가-잡식성에서
대나무만을 먹는 식성으로 변한 것-한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로 인해 나타났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극소수의(아마 6개 이하) 유전적 메커니즘이
곰속에서 자이언트 판다 속으로 적응적 이행해가는 데 관여했다. 이러한
메커니즘 작용은 대부분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밑에 내재하는 변화의 유전적 연속성-다윈설의
본질적인 가정-에서 그 결과의 잠재적이고 일시적인 변화-즉 그것의
결과로 나타난 복잡하고 성숙한 생물체-로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복잡한 체계 내에서는 입력input이 비록 유연하게 이어진다 해도
그 출력output이 일시적인 변화로 나타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문제, 그리고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려는 탐
구라는 근본적인 역설과 맞닥뜨린다.
이보다 낮은 구조적 복잡성 수준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두뇌가 진화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정도의 복잡성 수준에서, 우리는 우리의
두뇌가 고안해내기 좋아하는 단순한 답으로 그 해답을 찾아낸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제2부 다윈적 세계
제4장 자연 선택과 인간의 뇌-다윈과 월리스의 논쟁
샤르트르 대성당의 남쪽 수랑(십자형 교회당의 양쪽 날개부/옮긴이)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스테인드 글라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창문이 하나 있다.
거기에는 네 사람의 사도들이 구약 성서에 나오는 네 사람의 예언자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로 묘사되어
있다.
1961년 당시 매우 우쭐거리는 대학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그 창문을 쳐다본 순간 곧바로 뉴턴의 유명한 구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뉴턴의 말이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내고는
마치 대발견이라도 한 양 기분이 들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세상 풍파에 찌들어 그전 같은 의기 양양함을 상
실한 나는 컬럼비아 대학의 한 저명한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이
뉴턴 이전에 이러한 비유가 사용된 용례를 무려 책 한 권에 달하는 분
량으로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책에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라는 매우 적절한 제목이 붙어 있었다.
머튼은 이 명문구를 1126년 당시의 샤르트르의 베르나르까지 추적해
올라가서, 저 장대한 남쪽 수랑에 있는 창문-성 베르나르의 사후에
설치되었다-은 그의 비유를 스테인드 글라스 속에 담아내려는 시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의 말을 인용했다.
머튼은 중세로부터 르네상스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제멋대로 희롱하면서 그 책을 능란한 솜씨로 완성했지만, 그 속에는 그
의 진지한 주장이 들어 있었다. 머튼은 자연과학상의 '복수의 발견
multiple discoveries'을 연구하는 데 평생의 대부분을 바쳤다. 그에 따
르면, 중요한 생각은 대체로 한 사람 이상에게 떠오르는 법이며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위대한 과학자들은 각자의 문화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이 묻혀 있다고 한다. 뛰어난 개념들은 대부분 '공중을 떠돌고'
있어서 여러 과학자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각자의 포획을 위한 그물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머튼이 이야기하는 '복수의 발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예는 나 자신
이 연구하고 있는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잘 알려
진 사실이니 여기서는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하겠다. 다윈은 1838년에
독자적으로 자연 선택설을 수립했고, 그 이론을 1842년과 1844년에 두
편의 발간되지 않은 초고에서 처음으로 개진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혁명적인 내용을 그대로
발표하는 데는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그는 무려 15년 동안이나 애태우고,
방황하고, 기다리고, 심사 숙고하고, 자료 수집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친한 친구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종의 기원'의 네 배에 달하는 엄
청난 분량의 대작을 쓰기 위해 자신의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858년에 다윈은 자기보다 훨씬 젊은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월리
스로부터 편지와 함께 동봉된 한 편의 원고를 받았다. 월리스는 말레이군도의
한 섬에서 말란리아에 걸려 누워 있는 동안 자연 선택설을 독자적으로 구축한
인물이었다.
다윈은 월리스의 이론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론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더구나 월리스는 같은 비 생물학적 근거-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쓰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에 몹시 불안해진
다윈은 도량이 큰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자신의 정당한 선취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그리고 지질학자 라이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월리스나 그 밖의 다른 누구에게 비천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비쳐지느니
차라리 나의 책을 모두 불살라버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암시를 덧붙이고 있다. "혹시 명예를 지키면서 내 이론을
발표할 수 있기만 하다면, 나는 월리스가 나의 전반적 결론과 동일한
논문을 보내왔기 때문에... 내가 이 초고를 발표하게 되었다고 쓸 작정
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라이엘과 식물학자인 후커는 덫에 걸려들어 다윈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다윈이 성홍열로 어린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집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그들은 다윈의 1844년 에세
이의 발췌분과 월리스의 원고를 함께 실은 공동 집필 논문을 런던의
'린네학회'에 보냈다.
이듬해 다윈은 그보다 훨씬 긴 저술을 필사적으로 편집하고 고쳐 쓴
요약분, 즉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이로써 월리스는 빛을 잃었다.
역사상 월리스는 항상 다윈의 이름 뒤에 따라 나오는 '그림자'였을
뿐이다. 다윈은 자신보다 훨씬 젊은 동료 학자에게 공적으로도 사적으
로도 항상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했다. 그는 1870년에 월리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우리 두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는 라이벌이면서도, 서
로에 대해 한 번도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켜 생각하면
서 귀하께서도 만족했으면 합니다. 제 생애에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
은 없습니다."
이 편지에 대한 답변에서 월리스도 시종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1864년
그는 다윈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저는 자연 선택설이 오직 선생님 연구의
소산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제가 그 주제에 대해 깨달음을 얻기 훨씬 전부터 선생님은 이미 저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세부에 걸쳐 그 이론을 정립하셨습니다. 제 논문은
어느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었거나, 또는 단지 기발한 공상이라는 관심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반면 선생님의 저서는 박물학 연구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고, 오늘날 최고 지성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순수한 호의와 상호 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 간에 나타난 진
화론의 근본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를 드러나지 않게 했다. 자연 선택
은 진화적 변화의 요인으로서 얼마나 독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생물의 특성은 모두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가?
월리스가 다윈에게 종속된 분신의 역할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통념은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이들 두 사람이 여러 가지 이론적인 문제를 두고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진화론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별
로 없다.
따라서 많은 평자들은 뒤늦게야 그들의 의견 불일치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특수한 영역, 즉 인간 지능의 기원에 대한 문제에서 이것을 논의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 선택의 힘에 관한 더 보편적인 견해 차이라는 폭넓은 배경 속에
이 논쟁을 올바로 자리매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묘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융통성 없는 절대적 용어로 표현
되고 나면 이들 대부분이 시시해지거나 비속해지는 경우가 많다. 마르
크스는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주장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고 왜곡되는 데
맞서 논쟁해야만 했다.
다윈은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극단적인 사고 방식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살던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다윈주의'는
모든 진화적 변화를 자연 선택의 산물로 보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윈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이 잘못 거론된 데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종의 기원'의 최종판(1872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최근 들어 나의
결론이 현저히 잘못 이해되고, 또한 내가 종의 변화를 오로지 자연 선택의 결
과로 돌리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으니, 이 책의 초판 및 이후 판
에서 -즉 서문의 말미에-써놓았던 다음과 같은 분명한 입장을 여기에
서 다시 한 번 강조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자연 선택은 변화의 주요 수단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 표명도 별 효과가 없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오해의 힘, 그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는 소수의 엄격한 선택설 옹호자들-잘못 사용된
이름의 '다윈주의자들'-이 있었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그 리더격
이었다. 이들은 모든 진화적 변화의 원인을 자연 선택으로 돌렸다. 그
들은 모든 형태 특정 기관의 기능, 특정 행동들을 전부 더 나은 '생
물이 되려는 선택(적응)의 산물로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자연계의 '정의'에 대한 신념, 즉 모든 생물이 나름대로
환경에 절묘하게 적응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비로운
신성을 자연 선택이라는 전능한 힘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어떤'의미에서는
자연계의 조화라는 창조론적 관념을 재도입한 셈이다. 이와 반대로 다윈은
시종 일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았던 다원론자였다.
그는 적응이나 조화를 중시했다. 자연 선택이 진화의 여러 가지 힘 가운
데 가장 우월한 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밖의
과정도 함께 진행된다. 생물들은 적응 구조를 지니지 않고 생존에 직접
도움을 주지 않는 특성이라 해도 나타낼 수 있다. 다윈은 비적응적 변
화로 이어지는 두 가지 원리를 강조했다.
1. 생물은 여러 가지 특성을 고루 갖춘 통합체이므로 적응적 변화 일부가
그 밖의 특성들에 비적응적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다윈의
표현대로라면 '성장의 상호관계'). 2. 선택의 영향을 받아 특정 역할을 하도록
생겨난 기관은 그 구조에 부수하는 결과로서 선택받지 않은 그 밖의 다른 기능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월리스는 1867년 초에 발표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경직된 초선택
주의적인 논조로-스스로 표현한 것에 따르면 '순수 다윈주의'로-그
것을 "자연 선택설로부터 오는 필연적인 추론"이라고 일컬었다.
생물체의 선택이라는 명백한 사실도, 특별한 기관도, 특징적인 형태
나 무늬도, 본능이나 습관의 특이성도, 종 또는 종 그룹 사이의 관
계도 그것들을 가진 개체 또는 종족에게 현재 유용하거나 또는 과거
에 유용하지 않았다면 그 어느 것 하나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훗날 그는, 생물체의 어떤 특징이 쓸모없어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들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반영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이 주장에 의해 유용성의 원리가 반증을 허
용치 않는 '선험적'인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에 대해 그 '무용성'을 단언하는 것은... 사실의 언명이 아니며,
또 사실의 언명일 수도 없다. 그것은 그저 그 목적이나 기원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다윈이 월리스와 벌인 공적,사적 논쟁은 모두 자연 선택의 힘에 대한
서로의 다른 평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우선 두 사람은 '성 선택
sexual selection'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성 선택은 보통의 '생존
투쟁(음식 섭취와 방어에서 우선적으로 나타나는)'을 하는 데는 적절치
않거나 심지어 해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적인 짝짓기를 위한 장치-예를 들어 사슴의 정교한
뿔이나 공작의 꼬리 깃털 등-로서 해석될 수 있다. 다윈은 두 가지의 성
선택을 제안한다. 하나는 암컷에 접근하기 위한 수컷끼리의 경쟁, 다른
하나는 암컷 자신에 의한 수컷의 선택이다. 그는 현대 인류의 인종 분화를
각 민족마다 서로 다른 미를 기준에 따라 성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진화에대한 그의 저서 '인류의 기원'(1871년)은 실은 두 개의 저작,
동물계 전체의 성 선택에 관한 긴 논문과 성 선택에 기초한 인간의 기원에
대한 그보다 짧은 논문을 한데 묶은 것이었다).
사실 성 선택이라는 개념은 자연 선택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성 선택이 바로 생식의 성공에 차이가 생긴다는 다윈적인 필연성
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경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리스는 세 가지
이유로 성 선택 이론에 찬성하지 않았다.
첫째, 성 선택은 자연 선택을 단지 교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한 싸움으로 보는 19세기식 사고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둘째,
동물의 '의지' , 특히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는 개념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었다는 단점이 있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성 선택적 관점에
따르면. 설령 실질적으로는 별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 해도 잘 설계된 기계인 생물
체의 작동과 관련이 없는 중요한 특징이 수없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인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월리스는, 동물을 자연 선택의 순수하게 물질적인 힘이 만들어낸
절묘한 작품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견해에 이 성 선택이 위협을 준다고 느낀
것이다(실제로 다윈은 인종 사이에 수많은 차이점이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한 설계에
기반한 생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단지 여러 인종 사이에 미에 대한 기준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적응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주장했다.
월리스는 수컷끼리의 상호 투쟁이라는 성 선택을 생존을 위해 격투를 벌이는
자연 선택에 대한 자신의 개념과 상당히 가까운 은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었으며, 거기서
생기는 특징을 모두 자연 선택의 적응작용이라고 억측 해석을 내려 다윈을
커다란 곤경에 빠뜨렸다).
'인류의 기원'을 준비하던 1870년에 다윈은 월리스에게 보낸 한 편지
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데 대해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그것이 무섭고,
그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닌
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월리스의 이견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자연 선택에 대한 진지한 확신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했다.
그는 또 월리스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신은 제가 지금 자기 방어와 성 선택에 관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꺼이
당신의 견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가 저녁에는 다시 과거의 입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 선택을 둘러싼 이 논쟁은 가장 감정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많았던 문제, 즉 인간의 기원에 관한 훨씬 심각하고 널리 알려진 견해
차이로 이어지는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월리스는 초선택주의자였고,
생물 형태의 모든 미묘한 차이에 내재하는 자연 선택의 작용을 인정하
려 하지 않았던 다윈을 힐난했지만, 인간 뇌의 문제에 이르러 갑자기
이 힐난을 멈추어버린 것이었다.
월리스는 우리들의 지성이나 도덕성은 자연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연 선택이 진화의 유일한 길이니 생물의 개량 중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위대한 것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좀더 강한 어떤 힘
-분명히 말하면 신-이 개입하는 것이 틀림없는 셈이었다.
과거 다윈이 성 선택이라는 면에서 월리스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던
데 대해 괴로워했다면, 이제 그는 월리스가 종착점까지 와서 갑자기 방
향을 전환한 사실에 아연 실색했다. 1869년, 그는 월리스에게 이런 편
지를 보냈다.
"저는 당신이 당신 스스로의 자식이면서 동시에 내 자식이기도 한 것을
너무도 완벽하게 죽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한 달 후 그는 다시 간곡히
충고했다. "만일 당신이 내게 직접 이야기하지만 않았다면, 저는 '인간에
관한 당신의 견해'는 다른 어떤 사람이 덧붙여 쓴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당신도 예상하고 있겠지만, 나는 당신과 큰 견해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무척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매우 민감해진 월리스는 그 후 인간 지능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나의 특별한 이단적인 견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내 일관성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것
은 월리스에게 인간을 자연 선택이라는 체계 속으로 완전히 포괄시키기
위한 마지막 한 걸음-다윈이 '인류의 기원'(1871년)과 '감정의 표현'
(1872년)이라는 두 권의 책에서 훌륭한 불요 불굴의 태도로 전진시켰던
것과 같은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반
적이었다.
따라서 월리스는 인간 지능의 기원에 대한 입장과 관련된 세가지 이유
가운데 한 가지 또는 그 이상 때문에 역사적으로 다윈보다 못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첫째, 단순한 소심함 때문이며, 둘째,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문화적 구속이나 전통적인 통념을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며, 셋째, 성 선택에
대한 논쟁에서 자연 선택을 그처럼 강하게 주장했으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연 선택을 저버렸다는 일관성의 부재 때문이다.
나는 월리스의 정신을 분석하는 식의 일은 결코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 지능과 그 밖의 동물 행동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을 지키려 했
던 그의 마음 깊은 곳의 동기에 대해 논의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논리를 평가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이 부정확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라고 단언할 수 있다. 월리스
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문턱에서 자연 선택이라는 원리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도 시종 일관 자연 선택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그의 자연 선택에 대한 경직된 사고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결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중요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난 원인을
오직 자연 선택에서 찾으려 했다. 다윈과 벌인 두 가지-성 선택과 인간 지능의
기원에 대한-논쟁은 그의 일관된 주장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어느 때는
자연 선택론을 고수했다가 다른 경우에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모순된
태도를 결코 보이지 않았다. 월리스가 인간 지능에 대해 오류를 범한 것은
그의 경직된 선택주의가 부적절했기 때문이지, 그것을 적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서 보이는 결함들은 오늘날 가장 '현대적'이라고 하는
진화론적 추론에서도 종종 드러나는 약점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들의 연구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월리스의 경직된 선택주의가 다윈이 내세운 다원론pluralism보다도
더욱 오늘날 유행하는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는 사고 방식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월리스는 인간 지능의 독특함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을 전개했다. 당
시로서는 그의 주장이 극도로 낯선 것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주장을
되짚어보면 그것은 최고의 칭송을 받을 만한 견해였다고 본다. 월리스
는 19세기의 몇 안 되는 인종차별 반대론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의 모든 인종은 선천적으로 동등한 지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고 확신했다. 월리스는 해부학적이고 문화적인 두 가지 주장을 통해 기
존의 통념을 깨뜨리며 평등주의를 고수했다. 우선 그는 '야만인'의 뇌
가 백인 것보다 결코 작지 않으며 구조도 빈약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가장 하등한 야만인의 뇌나 선사 시대 인류의 뇌는 그 크기와 복잡성
에서 가장 고등한 유형의 것과 비교해...거의 손색이 없다." 게다가
아무리 미개한 야만인이라도 일단 문화적인 조건만 마련되면 가장 우아
한 생활 속에 동화될 수 있는 것을 볼 때 미개함이란 능력 자체가 결여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
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등한 종족들에게도 잠재해 있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유럽인에 의해 조직 훈련된 원주민 군악대가 최고 수준의 현대 음악을
훌륭히 연주할 수 있었던 예는 이것을 잘 증명해준다."
물론 인종차별 반대론자라 불렀다고 해서 월리스가 모든 민족의 문화
적 특성을 그 본질적인 가치 면에서부터 동등하게 보았다는 것은 아니
다. 월리스는 당시 대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식 생활 양식의 우
월성을 의심하지 않은 문화적 애국주의자였다.
그는 '야만인'의 능력에 관해서는 완고하게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다음과 같은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야만인의
생활에 대해 유치한 의견밖에 갖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의 법률,
우리들의 정부, 우리들의 과학은 다양하게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을 통해
예상 결과를 추론해내도록 언제나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체스 같은 게임도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능력을 고도로 발휘하게
한다. 이런 측면을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라곤 하나도 없는 야만인의
언어와 비교해보라. 극히 간단한 필요성 이상의 통찰력은 야만인에게 불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지 않는 일반 문제들에 관해 사유하고 추론하고
그 문제들을 서로 결부 비교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월리스의 딜레마가 있다. 요컨대 우리들의 선조들과 오늘날
생존해 있는 원주민과 같은 모든 '야만인'들은 유럽의 예술,도덕,철학의 가장
섬세한 정묘함까지 발전시키고 그 가치를 완전히 인식할 수 있을 만한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빈곤한 언어와 도덕을 가진 초보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지니고 있는 능력의 극히 작은 일부밖에
사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자연 선택은 당장의 사용immediate use에만 유용한 특징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뇌가 원시 사회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은 적절하지 못한 과대 설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연
선택이 인간의 지능을 형성시킬 수 없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되
는 것이다.
야만인들의 좁게 한정된 정신적 발달을 위해서는... 고릴라 뇌의
1.5배 정도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그들이 실제 가지고 있는 커다란
뇌는 결코 진화의 여러 법칙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의해 단독적으로
발달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 법칙에 따르면 진화의 본질은 각 종에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균형잡힌 조직의 단계를 이끄는 것이지 결코 그것을 능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 선택은 유인원의 뇌보다 조금 고등한 정도의
뇌를 야만인에게 주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철학자의 뇌와 거의 다름없는 뇌를 갖고 있다.
월리스는 이 일반적인 주장을 추상적인 지능에 한정시키지 않고 모든
유럽적인 '우아함'의 측면, 특히 언어와 음악에까지 확장시켰다. "특히
여성의 경우, 후두에 나타나는 음악적 음성이 갖는 힘, 넓은 음역, 유연
함, 감미로움"에 대한 그의 관점을 살펴보면 이러한 그의 생각을 분명
히 알 수 있다.
야만인의 습관을 보면 어떻게 이러한 능력이 자연 선택에 의해 발달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 능력은
그들에게 결코 필요하지도, 사용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야만인의
노래는 대개 단조로운 외침에 지나지 않고, 더구나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야만인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내를 고르는 일은 결코 없고, 거친
건강미나 강한 힘, 신체의 아름다움 등이 선택의 기준이 될 뿐이다. 따라서
문명인들 사이에서나 그 효력을 가지게 될 이 훌륭한 힘을 성 선택이
발달시켰을 리가 없다. 이 기관은 초기 인류에게는 필요없는 최신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인간의 미래 진보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된 것처럼
보인다.
결국 필요 이상의 능력이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거나 필요로 하기 전
에 나타난 것이라면 그것들은 자연 선택의 산물일 수 없다. 만약 그것
들이 미래의 필요성을 미리 예상하고 발생한 것이라면, 그것은 훨씬 고
등한 지능을 가진 존재가 직접 만들어낸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현상들로부터 내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우월한 지성이 인류의
발전을 어떤 특정한 방향, 그리고 특정한 목표를 향해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월리스는 자연 신학의 진영에 다시 가세하게 되었다. 이때
에도 다윈은 간곡히 충고했지만, 월리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고 결국
그 사실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월리스의 잘못은 진화론을 인간에게
확대시키기를 꺼려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의 진화 사상 전체에 널리 퍼져
있는 초선택주의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잘못이 있었다.
만약 초선택주의가 유효하다면, 모든 생물의 각 부분이 오직 당장의
이용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월리스의 의견은 반박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보다 더 큰 뇌를 가졌던 초기 크로마뇽 인은 동굴 벽에 놀랄 만한
그림을 그렸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호를 사용하지도 컴퓨터를 제작하지도
않았다.
원시 시대 이후로 우리들이 이룩한 모든 것은 한결같은 능력의 뇌에 기반을
둔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다. 월리스의 관점에 따르면, 그러한 뇌는 처음부터
원래 목표했던 기능을 훨씬 초과하는 과잉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자연 선택의 산물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선택주의는 근거가 미약하다. 그것은 다윈의 훨씬 더 정
교한 관점을 서투르게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생물이 갖는
형태와 기능의 본질을 무시하고 잘못 이해했다. 자연 선택은 어떤 특정
한 기능 또는 기능군을 '위해' 하나의 기관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해당 기관의 능력을 완전하게 특정 짓는다고 장담할 수
는 없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은 그 구조상의 복잡함으로 인
래 그 밖의 여러 가지 다른 기능도 함께 수행하는 것이다.
어떤 회사의 컴퓨터는 매월 지불하는 수표를 발행하기 위해 설치될 수도
있지만, 같은 기계가 선거 개표 결과를 분석하기도 하고, 또는 오목놀이에서
사람을 이기기도-최소한 대등한 경기를 벌이기도-한다. 우리들의 큰 뇌
는 음식물을 얻고, 사회에 적응하고, 그 밖의 일에 필요한 능숙함을 획
득하기 '위해' 발달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능숙함이 이러한 복잡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아니다.
다행히도 그 한계 중에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쇼핑 목록 쓰기에서부터 극소수
사람만이 가능한 그랜드 오페라 곡 쓰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능력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후두는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분절음을 또박또박
내기 '위해' 생겨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부학적 설계들은 샤워를 하며 부르는 콧노래에서부터,
극히 드물게는 프리마 돈나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훨씬 다양한 기능을 우리에게
준다. 오랫동안 초선택주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들과 함께 해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의 조화라는 신화-이 세계는 모든 있을 수 있는
세계 가운데 최선의 세계이며, 만물은 그 세계 속에서 가능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는(이 경우 모든 생물의 구조는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훌륭
하게 설계되었다는)-가 19세기 후반의 과학관으로 모습을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은 볼테르가 소설 '캉디드Candide' 속에서 생생하게 풍자한
어리석은 팡그로스 박사의 환상-세계는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는-이다. 월리스보다 1세기 앞서 저술된 책이지만,
이 책에서 낙천주의자였던 팡그로스 박사는 월리스의 주장이 갖는 오류의
본질을 정확하게 집어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물들은 지금 있는 대로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없다. 모든 것은 최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의 코는 안경을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리는 안경을 쓴다. 다리는 구두를 신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구두를 신는다."
이런 극단적인 낙천주의는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 행동을
주제로 한 수많은 통속적 문헌들은 인간이 수렵을 '위해' 큰 뇌를 진화시켰다고
주장하며, 현대 모든 악의 근원을 이러한 생활 양식 때문에 형성된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역설적이게도 월리스의 초선택주의는 한때 그가 뒤엎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창조론의 기본 신념-사물에는 '정의'가 있고 각각의 물건은 전체 속에서
일정한 지위를 갖는다는 믿음-으로 되돌아갔다. 부당하게도월리스는 다윈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창조의 아름다움과 조화와 완전성을 마음속에서부터 믿는 사람
이었다. 그는 애정 어리고 인내심 강하고 경의심 넘치는 연구를 생
물의 여러 가지 현상에 바쳤지만, 처음에 그의 가르침은 파렴치하고
무신론적인 견해라고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적응 현상
을 밝혀내면서 가장 하찮은 생물의 전혀 중요치 않은 부분도 나름대
로 쓸모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겠다. 그
러나 생물 구조 역시 숨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구조가 어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외의 다른 기능에 사용될 수 있
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유연성 속에 우리들의 삶의 번잡함messiness과
희망이 함께 놓여 있는 것이다.
제5장 중도를 지켰던 다윈
"우리는 비탄의 해협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이야
기한다. "한편에는 스킬라가 살고 있다. 스킬라는 발이 열둘이나 달려
있고, 엄청나게 긴 머리가 여섯이나 되는 괴물이다. 그 끔찍한 머리들
에는 두껍고 조밀한 이빨이 3열로 나 있는 입이 붙어 있고, 그 속에는
음험하고 검은 죽음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카리브디스(배를 삼킨다고 전해지는
규모가 큰 소용돌이 괴물/옮긴이)가 바닷물을 빨아들인다. 그녀는 트림을
할 때마다 마치 거대한 불 위에 올려놓은 가마솥처럼 가장 깊은 안쪽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오디세우스는 간신히 카리브디스를 비켜 갈 수
있었지만, 스킬라는 가장 뛰어난 뱃사람 여섯 명을 낚아채 그의 눈앞에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는 그 일에 대해 "바닷길을 찾는 항해 도중에 겪어야 했던 고통 가운데 내
눈으로 목격한 가장 비참한 일"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전설이나 은유 속에서
사람을 꾀는 괴물과 위험들은 쌍을 이루며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프라이팬과 불(jump out of fryingpan into fire, 작은 화를 피하려다 큰 낭패를
당한다는 미국의 속담/옮긴이),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등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완고하기까지 한 견실함(기독교 복음 전도자들의 편
협함과 완고함), 또는 그리 유쾌하지 않는 두 대립물 사이의 중립(아리스
토텔레스가 황금이라고 말한 중립)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만 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양 극단 사이를 헤쳐 나간다는 생각은 분별 있는 생활
을 위한 가장 중심적인 규칙이다. 과학적 창조성의 본질은 토론의 영원한
화젯거리이며, 아울러 중용이라는 황금률을 추구하기 위한 최고의 후보이다.
극단적인 두 가지 입장이 신중치 못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직접 경쟁을
벌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한편이 부상하면 다른 쪽이 가라앉는
식으로 서로를 대체시켜왔다.
첫번째 입장, 이른바 귀납주의는 뛰어난 과학자란 우선은 뛰어난 관
찰자이며 인내심 강한 정보 수집자라는 주장을 신봉해왔다. 귀납주의자
들의 주장에 따르면, 새로운 학설은 수많은 사실들을 기반으로 할 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학적 관점에서 개개의 사실은 청
사진 없이 세워진 건조물의 벽돌 하나하나에 해당된다.
따라서 벽돌을 쌓기 전에 이론(즉 완성된 건조물)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성급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일찍이 귀납주의는 과학 분야에서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했고 일종의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귀납주의는 설령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완전한 성실
성, 완벽한 객관성, 그리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최종적 진리를 향한 과학적
전진이라는 성질을 끊임없이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이 지적했듯이, 귀납주의는 과학이란 분야를 일반적
으로 천재성에 뒤따르는 주관적인 속성이나 기발함, 직관이 관여하지
않는 거의 비인간적이다고 말할 수 있는 비정한 분야로 만들어버렸다.
비판자들은 위대한 과학자라면 실험이나 관찰보다는 독특한 예감과 종
합력에서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귀납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분명히 타당한 견해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간 귀납주의가
사물을 좀더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서곡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해
왔었다는 사실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런 비판자들 가운데는 귀납주의에 대해 강도 높은 공격을 퍼붓고는
창조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임을 강조하면서 귀납주의를 대신하여
또 다른 극단적이고 비생산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유레카'식 관점에서 보면 창조성이란 천재적인 인물에게만 허용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성한 무엇이다.
그것은 예상이나 예견, 그리고 분석 등을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 마치 전광
석화처럼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전광 석화의 번개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밖에 없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외경과 감격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야만 한다
('유레카'란 아르키메데스가 시라쿠사에서 목욕을 하다가, 자기 몸 때문에
욕조 밖으로 넘쳐흐른 물을 보고 영감을 받아 비중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낸 뒤에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거리로 뛰쳐나가
'유레카(내가 발견했다)' 라고 외쳤다는 데서 전해지는 말이다).
나 역시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극단적인 입장에 의해 주술에서 깨어
났다. 귀납주의는 천재를 지루하고 틀에 박힌 활동으로 축소시켜버린
다. 반면 유레카주의는 천재를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닌 본질적으로 신비스러운 영역에 있는 도달하기 어려운
지위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가지 관점의 좋은 측면만을 취하고 유레카주의의
엘리트성과 귀납주의의 평범성을 버릴 수는 없을까? 창조성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성격을 용인하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능력-천재를 흉내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거나
증폭시키는 하나의 사고 양식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과학사 속에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높은 지위를 얻었다. 그
것은 자격만 있으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지위이다. 그러한 이유로
진화생물학 분야의 최고 성자인 찰스 다윈은 귀납주의자와 유레카주의
자 양 진영에서 모두 가장 좋은 예로 제시되어왔다.
나는 이 장에서 이러한 해석은 모두 잘못이며, 자연 선택설을 위한
다윈 자신의 기나긴 모험여행에 관해 최근 이루어진 연구 결과가 그의
중간적인 위치를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한다.
다윈의 시대에는 귀납주의의 세력이 워낙 강해 다윈 자신도 그 영향
력 아래 있었다. 노년에 들어서도 자신이 젊은 시절에 열중했던 업적을
귀납주의적 사고 방식에 따라 잘못 서술했다. 출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해 쓴 자서전에서 그는 이후 100년
가까이 역사가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유명한 몇 구절을 남겼다.
자연 선택설에 이르게 된 도정을 기술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참된 베이컨적 원칙들에 따라 연구했고, 아무런 이론도 없이 광범위하
게 구체적 사례를 수집했다. "
다윈에 관한 귀납주의적 해석은 주로 '비글'호(1831년에서 1836년까
지 남아메카 남단을 측량하고 오스트레일리아,남양 제도를 주항했던 영
국 군함의 이름. 다윈은 이 배에 편승하여 그때의 경험에 의거한 '비글 호
항해기'를 썼음/옮긴이)에 탑승했던 5년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가 목사를 꿈꾸던 학생에서 목사들에 대한 복수자로 변신하게 된 것은
새계 전체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 덕분이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설명
에 따르면,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화석 포유류 뼈, 갈라파고스 군도와
거북과 핀치류,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대목 동물군들을 잇달아 발견하면
서 다윈의 눈은 차츰 뜨이게 되었다.
그리고 진화의 진실과 신화의 자연 선택적 메커니즘은 그가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체로 수많은 사실들을 걸러냄으로써 점진적으로 그에게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런 설명의 부적합성은 진부한 첫번째 예, 즉 갈라파고스의 소위 다
윈 핀치Darwin's finch의 허위성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오늘
날 우리는 이 작은 새가 남미 대륙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공통의 선조
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새들은 외딴 갈라파고스 군도에 일군의 종을 형성하며 방산
분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수 육생종만이 남미 대륙과 갈라파고스
사이에 놓인 드넓은 대양이라는 장애물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다 간혹
운좋은 이주성 새들이 혼잡한 본토에서 그들의 생존 기회를 제한했던
경쟁 상대가 없고 거주 생물들이 적은 세계를 찾아내기도 했다.
따라서 핀치류는 다른 새들에게 차지되게 마련인 역할로 진화해서,
유명한 섭식을 위한 일습 적응set of adaptations for feeding-씨앗을
씹어 으깨는 형태, 곤충을 먹는 형태, 심지어는 식물들이 곤충을
격퇴시키기 위해 발달시킨 선인장 가시를 능란하게 처리하는 형태 등-을
발달시켰다.
격리-대륙과 섬의 격리와 많은 섬 사이의 격리-가 분리, 독립적인 적응,
그리고 종분화를 일으키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다윈은 이들 핀치류를 발견해 그들의 역사를 정확하게 추정했다. 다윈은
자신의 노트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기록을 몇 줄 남겼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뒷받침해줄 만한 약간의 근거라도 있다면 군도의
동물학은 계속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종의 안정성을
뿌리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에서부터 십자군 신앙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영웅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통속적인 읽을거리를 자극하는 것은 진실성보다는 희망이다.
분명히 다윈은 핀치류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핀치류가 하나의 공통된
선조에서 분리된 변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많은
핀치류에 대해 그것을 발견한 섬의 이름조차 기록해놓지 않았다. 그가
붙인 꼬리표 중에는 단지 "갈라파고스 군도"라고만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격리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그가
현지에서 인식한 사실은 그 정도에 머물렀다. 그가 진화론을 재정립하게
된 것은 런던에 돌아간 후 대영박물관의 한 조류학자가 그 새들이 모두 핀치
류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한 다음이었다.
다윈의 노트에서 자주 인용되는 부분은,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나, 원
주민들이 몸과 비늘의 크기와 형태에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를 통해 "모
든 거북을 어떤 섬에서 온 것인지 그 자리에서 판별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핀치류에 대한 전통적 이야기와는 다른 훨씬 차원이 낮은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핀치류는 하나하나가 별개의 종이며 진화의 산
증거인데 비해 육지 거북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하나의 종 속에서 나타나는
작은 지리적 변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작은 차이가 증폭되어
새로운 종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은 오늘날 우리들도 잘 알고 있듯이 비약적인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창조론자들은 지리적 변이를 인정하면서도(인종의 경우를 보라),
그 변이가 최초에 창조된 원형archetype이라는 엄격한 한계 너머까지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비글 호 항해가 다윈의 생애에 준 결정적인 영향을 과소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 항해는 다윈이 좋아하던 독립적인 자기 자극 방식으로
그에게 생각할 수 있는 장소와 자유, 그리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
었다.
(대학 생활에서 그가 느끼던 위화감, 일반적인 기준으로 말하자면 중
간 정도에 그친 성적 등은 주입식 교육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1834년에 남아메리카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벽개(광물이나 암석에 난 규칙적인 갈라짐/옮긴이)나 층리, 융기선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명확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내게 많은 사실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책도 갖고 있지 않으며, 책이 내게 가르쳐주는 사실을
내 눈앞에 펼쳐진 사실에 적용할 수도 없다. 따라서 결국 나는 나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수수께끼이다."
다윈은 자신이 본 암석과 식물, 그리고 동물들에 자극되어 모든 창조성의
근원이 되는 의구심이라는 중요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1836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이 대륙의 기후와 지리는 어떤 면에서도 유대목의
발생에 유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윈은 이성적인 신이 왜 그토록
많은 유대목을 이 대륙에 만들어냈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나는 햇볕이 좋은 강가에 엎드려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이 나라의
동물들이 기묘한 특색을 가진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이성으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확실히 두 사람의 창조자가 따로따로 일한 것임에
틀림없다'라고."
그럼에도 다윈은 진화론을 수립하지 못한 채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
는 마음속에서는 이미 생물이 진화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었지만, 그
것을 설명할 메커니즘을 찾지 못했다. 자연 선택설은 비글 호 항해에서
얻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후 2
년에 걸친 사색과 고투-과거 20년 동안 발견되어 출판된 노트들 속에
잘 투영되어 있다-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 노트를 통해 우리는 그가 몇 가지 이론을 검증하고 폐기시키고 때로는
잘못된 단서를 좇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후일 그가 자신은
마음을 비우고 많은 사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그 의미와 통찰을 깊이 음미하면서 철학자와 시인, 그리고 경제학자 등의 저작을
읽었다. 자연 선택설이 비글 호 항해에서 얻은 사실을 기초로 귀납적으
로 얻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훗날 그는 이 노트 가운데 한 권에 '윤리에 대한 형이상학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러나 이 우회적인 경로가 귀납주의라는 스킬라와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마찬가지로 단순화된 신화, 즉 유레카주의라는 카리브디스를
낳은 셈이 된다. 화가 치밀 정도로 사람들을 혼란시킨 자서전에서 실제로
다원은 '유레카'를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연 선택설이 좌절
과 암중 모색으로 점철된 1년 이상의 기간이 지난 후, 전혀 뜻하지 않
게 섬광처럼 우연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1838년 10월, 그러니까 내가 체계적인 조사를 시작한 지 15개월 가
량이 지난 뒤에 나는 우연히 인구 문제를 논한 맬서스의 책을 읽었
다. 나는 동식물의 습성에 대한 관찰을 오랫동안 계속해 왔기 때문에
도처에서 벌어지는 생존 투쟁을 평가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
었다.
어느 순간,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변 환경에 유리한 변이는 보
존되지만 불리한 변이는 소멸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종의 형성일 것이다 거기에
서 나는 드디어 작동 가능한 이론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 노트도 다원이 말년에 한 회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 일
이 일어났을 때, 그의 맬서스적 통찰에 대한 어떤 특별한 환희를 기록
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그 이야기를 감탄부호(!) 하
나도 붙이지 않고-흥분할 때면 그는 곧잘 두 개나 세 개 정도 감탄부호
를 붙였다-지극히 평범한 투로 짧게 언급했을 뿐이었다.
그는 어떠한 암시도 없이 파악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세계를 새로운
통찰로 재해석했을 뿐이다. 다음날 그는 영장류의 성적 호기심에 관해
그보다 훨씬 긴 글을 썼다.
자연 선택설은 마치 기술자가 그러하듯이 자연계의 많은 사실로부터
귀납적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며, 또한 우연히 맬서스를 읽고 계발된 잠
재 의식으로부터 번개처럼 떠올린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여러
곳으로 가지를 쳐 나가긴 했지만 그 자체로서 질서 있는 방식으로 이루
어진 의식적이고 생산적인 탐색의 결과였다.
그 탐색은 다윈 자신의 생물학과는 거리가 먼, 여러 가지 다른 분야에서
얻어낸 놀랄 만큼 폭넓은 범위의 통찰과, 자연사의 수많은 사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다윈은 귀납주의와 유레카주의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걸었다.
그의 능력은 평범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비범한 것도 아니었다.
다윈에 관한 문헌학은 1959년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이 된 이래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다원의 노트 출간과, 비글 호의 귀환과 맬서스적
통찰 사이의 주요 2년간에 대한 집중적 연구로 다윈의 창조성은 '중용'
적인 이론이라는 결말로 끝이 났다. 특히 중요한 두 권의 저작이 각기
대단히 넓은 시야와 대단히 좁은 시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윈의 생애에서 이 시기를 논한 하워드 E. 그루버는 뛰어난 지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씌어진 전기 '다원의 인간론Dawin on Man'에서 다윈의
탐구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잘못된 단서와 전환점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루
버에 따르면, 다윈은 끊임없이 여러 가지 가설을 생각해낸 다음 그것들
을 시험하여 잘못된 가설을 폐기시키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 시켰지,
사실들을 이것저것 긁어모으는 일은 절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종의 수명은 처음부터 결정돼 있다는 공상적인 가설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설들을 거쳐 하나의 종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싸움장인 이 세계에서 경쟁에 의해 멸종한다는 개념을 향해 접근해갔다. 그가
맬서스의 '인구론'를 읽었을 때 느꼈던 희열에 가까운 느낌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때 이미 그 조각그림맞추기 퍼즐이 한두 개의 조각만 더
맞추면 완성되는 단계에까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반 S. 슈베버는 맬서스를 읽기 전 수 주일 동안의 다윈 행동에 대해
기록이 허용하는 한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재현해냈다(다시 찾아가본
'종의 기원'의 기원, '생물학사 저널'(1977년). 슈베버는 조각 퍼즐의 마
지막 한 조각은 자연계의 새로운 사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
라 다윈의 연구 분야와는 거리가 먼 지적 방황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
다고 주장한다.
한때 다윈은 사회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오귀스트 콩트의 유명한 저서
'실증철학 강의'에 관한 긴 서평을 읽은 적이 있었다. 특히 그는 "훌륭한
이론은 예견 가능하다는 성격을 띠며, 최소한 잠재적으로 양에 관계된
것이다"라는 콩트의 주장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다음 그는 더걸드 스튜어트의 '아담 스미스의 생애와 저작에 관해서'를
읽었고, 사회 전체 구조에 관한 이론은 구속되지 않은 행동을 분석하는 것
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스코틀랜드학파 경제학자들의 기본 이념을 흡수
했다(자연 선택설은 무엇보다 번식에서 성공하려는 개개 생물들의 투쟁에
관한 이론인 것이다).
이어서 그는 정량화quantification를 모색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그는
당시 유명한 벨기에 인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저술한 매우 긴 분석을
읽었다. 케틀레의 연구에서 그는 특히 맬서스의 정량적인 주장-인구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식량 공급은 산술 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마음이 끌렸다.
이전에도 다윈은 여러 차례 맬서스적인 주장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주장이 갖는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우
연히 맬서스를 읽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윈이
이야기한 '재미 삼아'라는 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는 케틀레의
간접적인 언급으로 이미 충격을 주었던 유명한 주장을 명확히 기술된 원저작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라고 추정해야 옳을 것이다.
다윈이 자연 선택설을 수립하기 전의 중요한 몇 시기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 슈베버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다윈이 생물학이라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을 해보았다. 직접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회과학자, 경제학자, 그
리고 통계학자들이었다.
만약 천재성이라는 것에 어떠한 공통 분모가 있다면, 나는 폭넓은 관심과
여러 분야 사이에 유용한 유사성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우선으로 꼽겠다.
실제로 자연 선택설은 아담 스미스식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을 생물학
에 연장한 것으로-다윈 자신이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확실히 모르지만-파악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미스가 전개한 주장의 본질은 일종의 역설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주장은,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이익을 줄 수 있는 경제 형태를 원한다면, 각 개인으로
하여금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하고 싸우게 하라는 것이다. 그 과정
에서 옥석이 가려지고 무능력한 자가 제거되고 나면 안정되고 조화로운
사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스미스는 운명적으로 미리 정해진 여러 가지 원리나 더욱 고도한
제어가 아니라 각 개인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뚜렷한 질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다윈이 읽은 더걸드 스튜어트의 책에서는 스미스가 주장한 체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어떤 국민을 발전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계획은... 그들이 정의의
여러 규칙들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모든 사람들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게 만들고, 또한 개별 기업과 자본을 같은 입장에 있는 다른
시민들의 그것들과 완전히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경우보다 큰 몫의 자본을 특정 산업으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정책은 모두... 실제로는 그것이 추진하려 하는 원대한
목표를 파탄으로 몰고 가고 만다.
슈베버는 이렇게 쓰고 있다. "스코틀랜드학파는 사회에 대해, 개인
행동의 종합이 그 사회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로 귀결하
며, 이러한 사회는 안정되고 발전된 사회로서, 계획하거나 지시하는 사
람 없이도 제대로 기능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다윈의 독창성이 진화라는 개념 자체를 지지한 데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 이전에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일을 했었다. 그
의 특별한 공헌은 증거 자료에 의해 그것을 입증했다는 데 있으며, 또
한 진화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해 참신한 이론을 전개했다는 데 있
다.
다윈 이전의 진화론자들은 완성을 향한 내적 경향이나 이미 타고난
방향성 등에 기초를 둔 별 실현성 없는 도식을 제안했다. 다윈은 각 개
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인 상호 작용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고 논증
가능한 이론을 주창했다(그의 반대자들까지도 그 이론을 무자비하고 냉혹
한 기계론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자연 선택설은 합리적인 경제를 추구한 아담 스미스의 기본적인 주장을
생물학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더욱 높은 외적인(신에 의한) 통제력이나,
전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가지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현대식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각 개체가
생식에 성공하는 편차에 따라 유전자를 미래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벌어지는
개체 간의 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듣고 당혹감을 느꼈다. 가장 중요한 결
론 가운데 몇몇 부분이 해당 연구 분야 자체의 자료가 아닌 그 시대 정
치나 문화에서 얻은 유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과학의 순수성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칼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 선택설과 당시 영국 사회의 유사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다윈이 노동, 경쟁, 새로운 시장의 개척, '발명' , 게다가 맬서스적인
'생존 투쟁' 등의 요소로 이루어진 영국 사회를 동식물 사이에서 인
식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홉스가
이야기하는 'bellum omnium conftra omnes'(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
움)입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열렬한 다윈 숭배자였다. 그리고 일견 역설적으
로 보이는 이 사실 속에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 이 장에서 다룬 모든
주제에 포함되는 여러 가지 이유-귀납주의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
창조성에는 다른 분야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 유
추는 통찰을 얻기 위한 깊은 원천이라는 것 -로 나는 위대한 사상가는
그의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어떤 사상의 원천은 그 사상의 올바름 또는 그로 인한 결실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발견의 심리와 발견의 유용성은 그야말로 전혀 별개의 문제
인 것이다. 다윈이 주장한 자연 선택의 개념은 경제학에서 도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은 여전히 옳을 수 있다.
독일의 사회주의자 카우츠키는 1902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어떤 개념이
특정 계급에서 나오거나 그들의 이해 관계에 합치한다는 사실은 그 개
념이 올바르거나 그릇된지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여기서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체계가 그 자신의 영역인 경제학에서 유효
하지 않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아이러니컬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질서와 조화보다는 오히려 소수 독점과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개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통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행운이라는 막연
한 현상으로 돌리기 위해 이렇게 주장한다. 즉 다윈이 부유한 집에 태
어난 것은 행운이며, 비글 호에 탑승하게 된 것도 행운이며, 당대의 여
러 가지 개념들 속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고, 우연히 맬서
스 목사의 저서를 읽게 된 것도 행운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시기 적절하게 적재 적소에 절묘하게 들어맞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물을 이해하려고 애쓴 개인적인 고투, 폭넓은 관심과
연구, 진화 메커니즘에 대한 탐구의 방향성 등 많은 문헌에 나타난 다윈의
모습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파스퇴르가 "준비된 사람에게는 운이 따른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6장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진드기
어린 시절에 자주 묻던, 하늘은 왜 푸른가, 달은 왜 차고 이지러지는가,
풀은 왜 푸른빛을 띠는가 등의 순진 무구한 질문만큼 부모들을 당혹하
게 만들고 무능함을 절감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부모는 그 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신들의 부모 세대에게 그리 신통한 대답
을 못 들었던 연유로 그런 질문에 대해 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만큼 당황감도 큰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그런 질문들에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까닭은 스스로가 그 문제들을-지극히 초보적이거나, 또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견 분명한 것으로 생각되면서도 실제로는 잘못된 답을 주기
십상인 문제 가운데 우리들의 생물학적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인간, 그리고 우리와 친숙한 대부분의 생물 종에
서 왜 남자(수컷)와 여자(암컷)의 숫자가 거의 같은가 하는 문제이다
(사람의 경우, 태어날 때에는 남자 쪽이 여자 쪽보다 많지만 사망률이 다르기
때문에 그 후에는 여자 쪽이 조금 더 많아진다. 하지만 1:1비율은 크게 손
상되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기에 그 답은 라블레(Rabelais, 프랑스의 풍자 작가/옮긴이)가
풍자했듯이 "사람의 얼굴에 있는 코처럼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유성
생식을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숫자가 똑같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교배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것은 다윈이 이야기하는 번식
능력 극대의 행복한 상황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고, 앞에 소개했던 비유를
셰익스피어가 개작한 "사람 얼굴의 코처럼 알 수 없고 불가해하고 보이지
않는"이라는 말로 바꾸게 된다. 만약 어떤 동물에게 번식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상태라면 수컷과 암컷의 숫자가 같을 필요가 있겠는가?
요컨대 우리들과 가까운 종을 예로 든다면, 난자의 크기는 언제나 정자보다
훨씬 크고 수가 적기 때문에 암컷이 낳는 자손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 즉
난자 하나는 자손 한 개체를 만들 수 있지만 정자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하나의 수컷은 여러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다. 그러면 1개체의 수컷이
9개체의 암컷과 교배할 수 있는데도 100개체로 이루어진 개체군에서
10개체의 수컷과 90개체의 암컷 비율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이 비율로 암컷 수컷이 구성된다면 그 번식 능력은 암컷 수컷이
각각 50개체인 개체군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암컷이 많은 개체군은
번식률이 더 빨라져 수컷과 암컷의 숫자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개체군과의
모든 진화적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생각하기에는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도 실제로는
확실한 것이 못 되며 여전히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남기고 있다. 유성 생식을
하는 대부분 종의 암컷 수컷이 거의 같은 수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진화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윈의 자연 선택설이 생식의 성공을 추구하는 개체들 간-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의 투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자연 선택설은 개체군이나 종, 생태계 등의 이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90개체의 암컷과 10개체의 수컷으로 이루어진 개체군 쪽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개체군 전체를 기준으로 볼 때 생겨난 것이다(그것은 대부분의 사람
들이 진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으로서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다. 진화가
개체군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라면, 유성 생식을 하는 종의 수
컷 수는 상대적으로 암컷보다 적어야만 할 것이다).
진화가 군 안에서 일어날 경우, 분명 암컷이 수컷보다 많으면 훨씬
유리할 텐데 실제로는 수컷과 암컷의 수가 똑같다. 이 사실은 자연 선택이
번식을 극대화시키려는 각 개체 간의 투쟁을 통해 작용한다고 본 다윈의
주장을 훌릉하게 입증해주는 것이다. 다윈의 주장은 영국의 뛰어난
수리생물학자인 R. A. 피셔에 의해 처음으로 그 골격이 잡혔다.
피셔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가령 어느 한쪽의 성이 우세해지기 시작했
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수컷이 암컷보다 적게 태어났다고 하자. 그
러면 수컷은 수가 적어지는 만큼 교배할 기회가 늘어난다. 따라서 암컷
이 낳는 자손보다 많은 자손을 남길 기회를 갖게 된다. 즉 평균 한 마리
이상의 암컷을 임신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유전 인자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수컷의 상대적 비율에
영향을 준다면(실제 이러한 인자가 존재한다), 수컷을 낳는 유전적 경향을
가진 부모는 다윈적인 유리함을 획득하는 셈이 된다. 즉 자손에게는 수컷
쪽이 많을 때 높은 번식상의 성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2대 자손으로 오면
평균 숫자 이상이 번식하게 된다.
그 때문에 수컷의 번식을 선호하는 유전자가 확산되어 수컷의 출생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수컷의 유리함은 수컷 출생이 불어나면서 점차
저하되다가 이윽고 수컷과 암컷이 서로 동수가 될 때 완전히 사라진다.
이것은 암컷의 수가 적을 때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성 비율은
다윈적인 과정에 의해서 '1:1'이라는 평형치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피셔의 성 비율 이론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
까? 공교롭게도 이 이론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종들은 최초의 관찰
이상의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일단 기본적인 주장의 골격을 세운 다
음, 자기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종의 자웅 숫자가 서로 동일한지의 여
부를 확인했다고 하자.
그 후 서로 다른 수천 종이 같은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들이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 성 비율이 모두 생물
종에 적합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하나의 새로운 종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가 같은 정도의 확신을 얻는 것은 아니다. 암컷과 수컷의 성 비율이
성립하는 것은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은 아닐까?
피셔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예외를 찾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
해 그가 내세운 이론의 전제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상
황-성 비율이 어떻게 1:1에서 벗어나는가를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
는-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전제의 변화가 결과의 변화
에 대한 명확하고 성공적인 예견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우
리들의 확신을 강력히 뒷받침할 수 있는 독립된 검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예외는 법칙을 시험한다"는 오래된 격언을 구현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격언이 'prove'(입증한다)라는 말의 비일상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그 의의를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prove'는 'probare'(조사한다, 또는 시도한다는 의미)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이 단어가 갖는 일반적 의미는 '최종적이고 설득력
있는 입증'을 나타내지만, 앞에 든 격언은 예외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유효성을 발휘한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에 좀더 가까운 다른 의미로 'prove'('proving
ground'(시험장I이나 인쇄소의 'proof (교정쇄))는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probe'(정밀조사, 탐사)에 더 가깝다. 예외란 변화된 상황 속에서 나타난
결과를 조사하고 검사함으로써 그 법칙을 탐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계의 풍부한 다양성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야생 조
류 관찰자들은 붉은관모토히새(towhee, 멧새과의 일종/옮긴이), 의족을
한 것 같은 토히새, 등에 반점이 있는 토히새, 위아래 부리가 서로 어긋
나 있는 솔잣새, 사팔뜨기 토히새 등을 관찰,기록해나가지만 이러한
새의 이미지는 부당한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박물학자들이 실제로 생물
의 다양성을 다룰 때에 그 본질을 잘못 보게 하는 수가 있다.
우리들이 자연사의 과학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연계의 풍부함 덕택이었다. 그 다양성으로 인해 모든 규칙을 찾아내는
과정에는 적절한 예외들이 발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이함이나 괴이함은
보편성을 다시 한 번 검증해주는 것이지, 단지 경외심이나 한바탕 웃음으
로 넘기거나 기술하고 지나갈 만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자연은 피셔의 주장에 위배되는 사례들을 거의 낭비에 가까
울 만큼 풍부하게 제공해준다. 1967년에 영국의 생물학자 W. D. 해밀
턴(현재 미시건 대학에 재직)은 그와 같은 사례와 논의를 정리하여 '이상
한 성비'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이러
한 위배 사례 가운데 가장 명백하고 중요한 하나를 예로 들어 논하고자
한다.
간혹 자연이 우리 인간의 훈계를 따르는 경우가 있다. 예로부터 형제
자매 간의 성관계는 피해야 할 금기로 알려져왔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열성 유전자가 이중으로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이러한
열성 유전자들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고, 혈연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의 부모
가 그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형제
자매가 같은 유전자를 가질 확률은 보통 50퍼센트이다).
그러나 일부 동물들은 이러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 형제와 자매 사이-아마
유일하게 형제 자매 사이의 교배만 할 것이다-에 교배를 하고 있다.
형제 자매 사이의 교배가 상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1:1의 성 비율
을 문제 삼는 피셔 주장의 대전제를 뿌리째 뒤엎는 것이다. 만약 암컷
들이 항상 자기 형제에 의해 수정된다면, 다음 세대에 교배를 하는 두
배우자는 같은 양친에게서 태어나게 된다.
피셔는 수컷들이 암컷과는 다른 부모를 가진다고 가정하고, 그런 가정하에서
수컷의 공급 부족은 수컷을 우선적으로 낳을 수 있는 부모에게 유전적인
우월성을 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만약 같은 양친이 그 손자의 어미와
아비를 모두 낳는다면, 이들이 낳게 되는 새끼들의 수컷과 암컷의 비율과
관계없이 모든 손자들에게 동일한 유전적 특성을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
컷과 암컷이 같은 수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며, 따라서 암컷이
우세하게 된다는 이전의 주장이 다시 제기된다.
만약 조부모가 손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한정돼 있다면,
그리고 더 많은 손자들을 낳는 조부모들이 다윈적 의미에서 더 유리한 지위를
차지한다면 조부모들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딸을 낳고 아들의 경우에는 모든 딸
에게 확실히 수정을 시킬 수 있을 만큼만 낳을 것이다. 즉 만약 아들에
게 충분한 성적 능력만 있다면, 그 양친은 아들을 한 개체만 낳고 나머
지 에너지를 될 수 있는 한 많은 딸들을 낳는 데 쏟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아낌없이 베푸는 풍부한 자연은 피셔의 법칙을 엄밀히 검증할
수 있도록 무수히 많은 예외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를 도와준다. 실제로
형제 자매 사이에 교배를 하는 종은 가장 적은 숫자의 수컷을 낳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E. A. 올버드리와 M. S. F. 토피크가 1966년에 기술한
아다크티리디움속Adactylidium 진드기 수컷의 기묘한 일생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진드기는 어미 몸에서 나온 뒤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그 짧은 생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체 밖에 있는 동안 그 수컷은 먹이를 먹거나 교미도 하지 않는다. 성체로
짧은 기간을 살아가는 동물들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하루살이는 긴 유생 기간을 끝낸 후 겨우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
그래도 하루살이는 이 귀중한 몇 시간 동안 교미를 해서 자신의 종족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아다크티리디움의 수컷은 전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단지 태어나서 죽는 것처럼 보인다.
불가사의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 주기 전체를 조사하여 모
체의 체내까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다크티리디움의 임신한
암컷은 털날개라는 곤충의 알에 기생한다. 이 하나의 알이 아다크티리
디움 암컷이 모든 새끼들을 키우는 유일한 영양원이 된다. 이 암컷은
죽을 때까지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
려진 바로는 이 진드기는 오직 형제 자매 사이의 교배만을 한다. 그러
므로 최소의 수컷을 낳을 것이다.
게다가 생식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원이 단 하나의 털날개 알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새끼 수도 한정돼 있으며, 새끼들 중에 암컷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실제로 이 진드기는 5마리 내지 8마리의 자매들과, 그녀들의
형제이자 남편인 단 한 마리의 수컷으로 이루어지는 한배 새끼들을 키운다.
그러나 오직 한 마리의 수컷만을 낳는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만약
공교롭게도 그 한 마리의 수컷이 죽기라도 한다면 자매들은 모두 처녀로
늙게 되고, 그 모친의 진화적 생애는끝날테니까 말이다.
만약 이 진드기가 단 한 마리의 수컷만을 낳아서 생식력 있는 암컷들
로 이루어지는 한배 새끼들의 수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면, 두 가지
적응 현상이-수컷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 자매들이 가까이 있도록 만
드는 것-위험성을 줄일 수도 있다. 어미 몸 속에서 유충으로부터 성충
이 될 때까지 양육한 다음 그 모체라는 튼튼한 껍질벽 내에서 서로 교
미시키는 방식으로 새끼들 모두를 완전히 모체 내에서 길러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실제로 어미 진드기가 털날개의 알에 달라붙은지 약 48시간이 지나면
6개 내지 9개의 알이 이 어미 진드기의 체내에서 부화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유충들은 어미의 몸을 먹는다. 문자그대로 모체를 몸 안쪽에서부터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것이다. 이틀후 새끼 진드기는 성체가 되고, 한
마리의 수컷이 나머지 자매들과 교미를 한다.
이 무렵 모체의 체내 조직은 산산조각이 나고, 비어 있는 곳은 진드기의
성충들, 그 배설물, 그들이 탈피한 유충기와 번데기 시기의 껍질로 가득 찬다.
이 새끼들은 이윽고 모체의 벽에 구멍을 뚫고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그 중에서 암컷들은 다시 털날개의 알을 찾아 동일한 과정을 시작해야 하지만
수컷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진화적인 역할을 끝낸 상태다. 수컷은 모체에서
나와 바깥 세계의 아름다움을 접하자마자 곧 죽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한 단계 더 모체 내에서 계속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수컷이 모체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매들과 교미를 끝내면 수컷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말 그대로 시므온의 '찬송의 노래'('Nunc Dimittis, 시므온의
노래. 누가복음 2:29-32/옮긴이)의-"오 주여! 이제 약속하신 대로 이 종을
놓아주셔서 내가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진드기판을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다채 다양한 생명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은 어느 것이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일어날 수 있다. 아다크티리디움과 가까운 친척뻘인 진드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카로페낙스 트리볼리Acarophenax tribolii라는 이름의 이
종은 오직 형제 자매 사이의 교배만을 한다. 단 한 개체의 수컷을 포함
해 15개의 알이 모체 속에서 발육한다. 그 수컷은 어미 진드기의 껍질
속에서 부화한 다음 모든 자매와 교미하고, 그 후 모체 밖으로 태어나
기 전에 죽어간다.
이 진드기의 생애는 그다지 재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카로페낙스 수컷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야 자식을 낳아서 성취한 것과
동일한 일을 자신의 진화적 연속성을 위해 해낸 것이다. 자연계의 기묘함은
훌륭한 소설을 능가한다. 그것은 생명의 역사와 그 의미에 관한 흥미로운
이론들의 한계점들을 탐색하기 위한 좋은 소재인 것이다.
제7장 라마르크의 미묘한 색조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이 개인의 기대에 따라 바뀌는 일이란 좀처럼 없
다. 세상이란 사리에 맞게 움직이는 법이 절대 없다. 구약성서 시편의
저자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편 37편 25절/옮긴이)라고 썼을 때, 그는
세상을 올바르게 꿰뚫어 보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합리적인 횡포가
과학의 진보를 막는 일도 있다. 아인슈타인 이전에 과연 어느 누가, 어떤
물체의 질량과 나이 먹음aging이 빛과 같은 속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믿었겠는가?
생명계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왜 그것이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
법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가? 생물체가 자기 자신의 노
력으로 스스로를 개량하여 그 진보한 성질을 유전자 변화라는 형태로
자손에게 전한다고-전문 용어로는 오래 전부터 '획득형질의 유전'이
라고 불리고 있다-주장해서 안 되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이러한 사고방식이 우리들의 상식에 호소하는 것은 그 단순성 때문만은
아니다. 필경 그 이상으로, 진화는 생물 자체가 열심히 노력해 진행되었고
본질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즐거운 함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들은 모두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
났으며, 이 유한한 우주의 중심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만큼 '획득
형질의 유전'은 자연이 거부하는 또 하나의 인간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
기도 하다.
획득형질의 유전은 흔히 라마르크주의라는 짧은 명칭으로-역사적으
로는 정확하지 않지만-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위대한 생물학자였고
초기 진화론자였던 장 밥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년)는 획득형질의
유전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획득형질 유전이 라마르크가 주장하는 진
화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가 그 이론을 창시하지 않은 것도 확실하다. 라마르크 이전에
있었던 이 사고 방식의 계보를 더듬기 위해 지금까지 수백 권에 달하는
책이 저술되었다. 라마르크는 생명이란 지극히 단순한 형태 속에서 연속적으로,
그리고 자연 발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생명계는
'그 조직 체계를 끊임없이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어떠한 힘'에 의해
복잡성의 사다리를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힘은 '절실한 요구'에 부응하는 생물의 창조적 반응을 통해 작용한다.
그러나 생명계는 단 하나의 사다리로 조직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위로
올라가는 길도 국지적 환경의 여러 가지 요구에 의해 그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린은 긴 목을 획득하고,
섭금류(조류를 생활 형태로 분류한 한 무리. 다리, 목, 부리가 모두 길어서
얕은 물 속을 걸어다니며 물고기 ·곤충 등을 잡아먹음/옮긴이)에 속하는
새는 물갈퀴가 달린 발을 획득한다.
한편 두더지나 동굴에 사는 물고기는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 '획득형질의
유전'은 이러한 도식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다하지만 중심적
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노력이 자손에게 이익을
제공해주는 메커니즘이기는 하지만, 사다리를 오르도록 진화를 추진하
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엽에는 수많은 진화론자들이 다윈의 자연 선택설을 대체할
대안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라마르크를 다시 읽은 다음 라마르크 자신
의 의도와는 달리 그 핵심-발생이 연속한다는 것과, 복잡화를 일으키
는 여러 가지 힘이 있다는 것-은 모두 빼버리고 그 역학의 한 단면-
획득형질의 유전-만을 강조했다.
게다가 이들 자칭 '신라마르크주의자'들은, 진화라는 절실한 요구가
생물 자체가 능동적이고 또한 창조적으로 반응한 결과라고 한 라마르크의
근본 이념을 저버렸다. 그들은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개념을 계속
유지하기는 했지만, 획득이란 개념을 압도적인 자연 환경이 수동적인
생물에게 직접 부과하는 무엇으로 보았다.
나는 오늘날 하나의 용어로 통용되고 있는 라마르크주의를 "생물은
환경 적응에 필요한 여러 가지 형질을 획득함으로써, 또 그것들을 변화
된 유전 정보의 형태로 자손에게 전달함으로써 진화한다는 관점"이라고
정의하기로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이 150년 전에 죽은 대단히 뛰
어난 학자를 칭송하는 데는 극히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임을 일러두고
싶다.
미묘함이나 풍부함은 이 세계에서 너무도 자주 폄하된다. 가령 불쌍한
'마시멜로'를 예로 들어보자. 사실 마시멜로는 식물의 이름이다. 과거에는
이 식물의 뿌리로 맛있는 캔디를 만들었지만, 오늘날 마시멜로는 녹말, 시럽,
설탕, 젤라틴으로 만들어진다. 이제는 처량한 대용품의 이름이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마르크주의는 금세기 들어서도 가장 잘 알려진 진
화 이론이라는 지위를 계속 유지해왔다. 다윈은 사실로 나타난 진화 현
상을 연구하는 데는 혁혁한 공헌을 세웠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을 밝히
는 그의 이론, 즉 자연 선택설은 자연사의 전통과 멘델의 유전학이
1930년대에 하나로 융합될 때까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다윈 자신도 라마르크주의를 진화 메커니즘으로서의 자연 선택을
위해서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인-어쩌면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바로 이
책상에서 그 글을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퍼시 레이먼드는 1930년대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라마르크주의자일 것이다. 엄격한
비판자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라마르크보다 더한 라마르크주의자로
비칠지도 모른다." 또한 최근까지도 많은 사회과학 이론들-거기에 우리들이
흔히 가정하기 쉬운 다윈주의의 틀을 들씌우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마르크주의의 영향이 거기에까지 미
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혁자들이 빈곤, 알코올 중독, 범죄 등의 '타락'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대개 그들은 그런 문제들을 문자 그대로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의 죄는 확실히
유전되어 3대 이상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말이다. 1930년대, 소련
농업이 겪고 있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센코가 라마르크주의적인
구제책을 주창했을 때 그는 19세기 초의 어리석은 짓을 재현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되살려내려 했던 것은 급속히 광채를 잃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존중해야 할 이론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정보 한 토막이 그와 정치적인
주도권을 유지시켜주거나, 그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사용한 방법들을
덜 생경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주장에 들어 있는 불가사의함을
조금쯤 덜어주었을 것이다.
리센코와 소련의 멘델주의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은 처음부터 합당한
과학적 논쟁이었다. 훗날 그는 속임수, 기만, 조작, 살인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지위를 고수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이었다.
다윈의 자연 선택설은 라마르크주의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것은 하나
의 힘이 아닌 두 개의 서로 다른 과정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두 이론은
모두 적응의 개념-생물은 새로운 조건에 가장 적합한 형태나 기능, 행
동을 진화시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대해 반응한다고 하는
관점-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이론 모두 환경에 대한 정보가 생물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마르크주의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보 전달이 더
직접적이다. 생물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응답하여,
그 적절한 반응을 자손에게 직접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다윈주의는 변이와 방향성의 원인이 되는 각각의 다른 힘
을 가지며 2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다윈주의자들은 첫 단계에 일어
나는 유전적 변이를 '임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임의적'이
라는 단어는 "모든 방향이 동일하게 같다"는 수학적 의미로 쓰이는 것
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변이가 특정한 적응적 방향성 없이 일어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데 쓰일 뿐이다. 예를 들어 기온이 낮아질 때, 다른 개체에 비해
털이 많이 난 개체가 그만큼 더 유리할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털이 많이
나는 유전적 변이가 높은 빈도로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2단계 선택은
무방향성unoriented 변이에 작용하여 유리한 변이체에 그만큼 큰 번식상의 성
공을 주면서 하나의 개체군을 변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라마르크주의와 다윈주의 사이의 본질적 차이이다. 기본
적으로 라마르크주의는 방향성이 있는 변이 이론이다. 만약 털이 많은
것이 유리하다면, 동물은 그 필요성을 인식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고 나
아가 그 잠재성을 후손에게 물려준다. 따라서 변이는 적응을 향해 방향
성을 갖게 되고, 자연 선택이라는 제2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라마르크주의에 나타난 방향성 있는 변이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환경이 유전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돌연 변이를 일으키는 화학적이
고 방사성을 띤 물질이 돌연 변이율을 높이고 어떤 개체군이 갖는 유전
적 변이의 풀pool을 확대시키는 식으로-라마르크주의는 옳은 것이 아
닐까? 이 메커니즘은 많은 변이를 일으킬지언정 변이를 유리한 쪽으로
추진하지는 않는다. 라마르크주의는 유전적 변이가 적응적인 방향으로
선택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대표적 의학 잡지인 '랜싯Lancet'지의 1979년 6월 2일호에는
파울 E. M. 파인 박사의 글이 게재되었다. 그곳에서 박사는 획득은 되
더라도 방향성 없는 유전적 변이를 유전시키는 여러 가지 생물학적 경
로를 검토하여 소위 '라마르크주의'를 지지하는 주장을 제기했다.
본질적으로 벌거벗은naked DNA의 작은 덩어리인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의
유전 물질에 자신을 삽입시켜, 그 박테리아 염색체의 일부를 통해 그
자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라
불리는 효소는 세포질의 RNA에서 '역방향으로' 세포핵의 DNA로 정보
읽기를 중재할 수 있다.
핵 DNA에서 시작하여 매개자 RNA를 거쳐 신체를 형성하는 단백질로
이동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유일한 정보 흐름이 있다고 본 과거의 개념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왓슨 자신은 'DNA가 단백질을 만드는 RNA를
만든다'는 사실이 분자생물학상의 '중심적인 도그마'라고 절대시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파인은 박테리아 속으로 들어간 바이러스는 자손에게 전달되는
'획득형질'이기 때문에 일부 경우에는 라마르크주의가 옳을 때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인은 하나의 형질이 적응하기 위해 획득된다는
라마르크주의의 요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라마르크주의는 방향성을 갖
는 변이에 대한 이론이기 때문에).
이러한 생화학적 메커니즘 가운데 일부가 생존에 유리한 유전 정보로
통합되어 들어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가능할 수도, 실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흥미 진진한 새로운 전개이고, 진정한 라마르크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환경 조건이나 획득된 적응이 성 세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믿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멘델적 이론이나
DNA에 대한 생화학 연구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차가워진 날씨
가 정자나 난자의 염색체에 털이 길어지는 돌연 변이를 일으키라고 '명
령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핏 로즈는 그의 배우자에게 어떻게 정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우 간단할
것이다. 그것은 다윈적인 과정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를 전진시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자연계의 방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주의는 적어도 인기 있는 공상 속에서는
계속 살아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특
히 아서 커스틀러는 여러 권의 저서에서 전력을 다해 그 견해를 옹호하
고 있다. 그 중에서 '산파개구리(남유럽에 서식하는 무당개구리과의 총칭
/옮긴이)의 수수께끼'라는 책은 오스트리아의 라마르크주의 생물학자 폴
캐머러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책 한 권을 모두 할애한다.
폴 캐머러는 자신에게 커다란 영광을 안겨다준 개구리 표본이 실은 먹물을 주입
한 속임수였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1926년에 자살하였다(그가 자살한 주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커스틀러는 평소 비정하고 기계론적인 이론
이라고 생각하던 다윈주의의 정통성을 공격하기 위해 적어도 '미니 라
마르크주의mini-Lamarckianism'라는 것을 수립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라마르크주의가 두 가지 중요한 이유로 지속적인 호소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첫째, 몇 가지 진화 현상이 일견 라마르크적 해석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개 라마르크주의가 갖는 호소력은 다윈주
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 실례로서 많은 유전적 적응보다 유전
적 기반이 없는 행동상의 변화가 먼저 일어난다는 주장이 자주, 그리고
올바로 제기되는 것을 들 수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박새과 새의 몇 종은 영국식 우유병 뚜껑을 비틀어
열어 그 속에 들어 있는 크림을 마시는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새의 주둥이가 이 좀도둑질을 좀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형태상 진화한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유를 종이 상자에 넣거나 가정 배달이
중지되는 일 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진화는 필경 맹아 상태에서
시들어버리고 말 것이다).
행동상의 능동적이고 비유전적인 혁신이 진화를 위한 기초를 다진다는
점에서 이것은 라마르크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윈주의는
환경을 정련하는 뜨거운 불이라 보고 생물을 그 불 앞에서 단련되는 수동적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윈주의는 환경 결정론과 같은 기계론적인 주장이 아니다.
다윈주의는 생물을 환경에 의해 타격받는 당구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
지 않는다. 이처럼 행동에 나타나는 혁신의 예는 완전히 다윈적인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창조자로서의 능동적
인 생물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라마르크를 칭송한다.
우유병을 습격하는 방법을 기억한 박새는 그들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킴으
로써 새로운 선택적 압력을 수립한 것이다. 이제 조금 다른 모양을 갖
게 된 부리는 자연 선택 원리에 의해 좀더 유리한 입장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이 박새를 자극하여 유리한 형태를 향한 유전적 변
이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고 이 측면만이 라마르
크주의이다.
'볼드윈 효과Baldwin effect' '유전적 동화'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또 하나의 현상은 그 성격으로 보아 더 라마르크적
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현상은 마찬가지로 다윈적인 관점에도 부
합한다. 그러면 고전적인 예를 들어보자.
예를 들어 타조는 다리에 경결(못과 같은 단단한 피부/옮긴이)이 있어
그 부분을 지면에 대고 무릎을 꿇듯이 앉는다. 그런데 그 경결은 실제로
사용되기 이전에 이미 알 속에서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라마르크의
시나리오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매끈한 다리를 가졌던 선조가 무릎을 꿇어앉기 시작했고,
비유전적 적응으로 경결을 획득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은
사람들이 직업 때문에 손가락에 못이 박히거나(글을 많이 쓰는 작가들의
정우) 발뒤축에 두꺼운 각질이 생기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 후 경결은 사용하기도 전에 미리 발달하는 유전적 적응으로서 자손에게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적 동화'에 대한 다윈적인 설명은 커스틀러가 좋아하는 예인 폴
캐머러의 산파개구리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캐머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다윈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육생
개구리는 앞발의 첫째 발가락에 깔쭉깔쭉한 돌출부- '교미 발판'이라
고도 불린다-를 가지고 물에서 살던 선조의 후손이다.
물에 사는 개구리 수컷은 미끄러운 조건에서 암컷과 교미할 때 암컷을
꽉 붙들기 위해 이 발판을 이용한다. 그러나 단단한 지면 위에서 교미하는
산파개구리는 이 돌출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가끔 흔적의 형태로
이 돌출부가 남아 있는 예외적인 개체가 있는데, 이것을 보면 이 돌출부를
만들어내는 유전적인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캐머러는 육생종 산파개구리들을 물 속에 넣어 길렀다. 그리고 생존
에 부적합한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소수의 알에서 다음 세대
를 번식시켰다. 이 과정을 수 세대에 걸쳐 반복한 결과 그는 교미 발판
을 가진 수컷 개구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나중에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구리에 먹물을 주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캐머러 자신이 저지른 일은 아닌
것 같다).
따라서 캐머러는 자신이 라마르크적인 효과를 실증할 수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즉 그가 산파개구리를 선조의 환경으로 되돌려놓았고, 그
개구리는 선조의 적응을 다시 획득해 그것을 유전적 형태로 자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캐머러가 한 것은 다윈적인 실험이었다. 그가 그 개구리
들을 물 속에서 번식하게 했을 때 극히 소수의 알만이 살아 남았다. 요
컨대 물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유전적 변이에
강한 선택적 압력이 작용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수 세대에 걸쳐 이 압
력을 강화시켰다.
캐머러의 선택은 수중 생활에 유리한 유전자를 한데 모은 것이며, 이것은
제1세대 개구리의 부모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조합이었다. 교미 발판은
일종의 수중 생활에 대한 적응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타난다는 것은 물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게 해주는 유전자 집합과-캐머러의 다윈적 선택에
의해 빈도가 높아진-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타조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비유전적 적응으로 경결이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 무릎을 꿇고 앉는 습성 그 자체가 이러한 경결에 의해
강화되면서, 이러한 특성들을 유전자 속에 암호로 기록하여 임의적인 유전적
변이를 보존하게 하는 새로운 선택적 압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경결 자체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통해 성체에서부터 새끼에게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번째, 내가 라마르크주의가 아직도 매력을 잃지 않은 더욱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관점이 우리 삶에 본질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 우주와 직면할 때 우리에게 얼마간의 안락함(위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라마르크주의는 인간이 갖는 편견 가운데서도 가장 뿌리 깊
은 두 가지-즉 노력은 항상 보답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들의 신념과
이 세계란 본질적으로 목표를 가지며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우리들의 희
망-를 강화시킨다.
그 관점이 커스틀러와 같은 휴머니스트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실제 이유는
유전성에 관한 학문적 논의이기보다 오히려 이러한 위안감 때문이다. 그에
비해 다윈주의는 이러한 위안감을 주지 않는다. 다윈주의는, 생물이란 제각기
번식상의 성공을 목표로 싸우는 과정에서 국지적인 환경에 적응해간다고
주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다윈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라마르크주의와는 다른 무엇에서 의미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미술, 음악, 문학, 윤리학, 개인의 투쟁, 그리고 커스틀러식
휴머니즘 등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 답이-설령 그 답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데도 왜 자연에 대해
요구를 하고, 자연의 운행 방식을 거기에 맞추어 좁게 한정하려 하는 것일까?
따라서 현재 우리의 판단에 기초한다면 라마르크주의는 지금까지 그
것이 위치해온 영역에서는-즉 유전적인 전달에 대한 생물학적 이론으
로서는-잘못된 이론이다. 그러나 순전히 비유적인 의미에서만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또 하나의 '진화'-인류의 문화적
인 진화-를 가져오는 '유전'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적어도 5만 년 이상 전에 나타났으며, 그 후 어떠한
유전적 진전이 있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나는 평균적인 크로마뇽 인이
적절한 훈련을 받기만 하면 우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와 같은 정도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실제로 크로마뇽 인들은 우리 현대
인보다 조금 큰 뇌를 가졌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성취해온 것은 모두 문화적인 진화의 결과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생명 역사에 적용되는 척도로는 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것을 달성해왔다.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장구한 역사라는
맥락에서 수백 년이나 수천 년과 같은 규모의 시간을 다를 수 없다.
그렇지만 이 마이크로초(100만 분의 1초/옮긴이)에 해당하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들은 어떤 일관된 생물학적 발명의-자의식이라 불리는-영향으로 지구의
표면을 바꾸어왔다. 도끼를 든 10만 명의 사람에서 폭탄, 우주선, 도시,
텔레비전, 컴퓨터 등을 가진 40억 이상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본질적인 유전적 변화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문화적인 진화는 다윈적인 과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다윈적인 진화는 호모 사피엔스 속에서도 계속되지만, 그 속
도가 너무 느려서 우리들의 역사에 더 이상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
었다.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한 점이 달성된 것은
마침내 라마르크적인 과정이 그 역사에 작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화적 진화는 그 본질에서 우리들의 생물학적 역사와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라마르크적이다.
우리들이 한 세대 동안에 배운 것은 교육이나 집필에 의해 다음 세대에
관한 한 획득형질이 계승되는 것이다. 라마르크적인 진화는 신속함과
축적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라마르크적인 진화는 우리 과거의 순수한
생물학적 변화 양식과, 현대 우리들이 새롭고 해방적인-또는 그것이 지옥의
나락일지도 모르지만-무엇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해가는 양식사이에 근본
적인 차이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제8장 이타적인 집단과 이기적인 유전자
물질 세계는 상자 속에 또 다른 상자가 들어 있는 구조. 계속 그 수준이
높아지는 여러 층의 계층 구조로 배열될 수 있다. 원자에서 출발하여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로, 분자로 구성된 결정으로, 광물로, 암석으로,
지구로, 태양계로, 무수한 항성들로 이루어진 은하로, 그리고 무수한
은하들로 이루어진 우주로...
이러한 여러 가지 수준에는 또한 여러 가지 힘이 작용한다. 돌은 중력
때문에 낙하하지만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중력은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계산에서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생명 역시 여러 가지 수준에서 작동한다. 또한 진화 과정에서 그 각
각의 수준은 독자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면 이 장에서는 유전자, 생물
개체, 그리고 종이라는 세 가지 주요 수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유전자
는 생물 개체를 생성하는 청사진이고, 개체는 종이라는 건축물을 구
축하는 기본적인 벽돌이다.
진화는 돌연 변이를 필요로 한다. 자연 선택은 무수히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 없이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연
변이의 궁극적인 근원이자 변이를 일으키는 단위는 유전자이다. 그러나
진화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다. 개체는 단지 성장하고 번식하고 죽을 뿐이다.
진화적인 변화는 상호 작용하는 생물 개체의 집단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진화를 일으키는 단위는 종이다. 즉 철학자 데이비드 헐이 썼듯이,
유전자가 변화하여 개체가 선택되고 그로 인해 종이 진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통적인 다윈주의의 관점이다.
개체를 선택의 단위로 보는 것은 다윈 사상의 중심 주제이다. 다윈은
자연계의 정묘한 균형이 '그보다 높은 곳'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강
조했다. 또한 진화는 '생태계의 이익'이나 '종의 이익'조차도 인식하지
않는다.
조화나 안정성이란 무수한 개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현대적인 어법으로 말하면, 좀더 큰 번식상의 성
공을 거두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는 과정에서-나
타나는 간접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의 단위는 바로 개체이고,
'생존을 위한 투쟁'은 개체 간에 일어나는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개체에 초점을 맞추는 다윈의 관점에 대해 진
화학자들 사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도전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위로부터는, 15년 전에 스코틀
랜드의 생물학자인 V. C. 윈 에드워즈가 최소한 사회 행동의 진화에서
는 집단이-개체가 아니라-선택의 단위라고 주장하여 정통파 학자들
에게 싸움을 걸었다.
밑으로부터는, 최근에 영국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선택적 단위는
유전자 자체이고,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보관하는) 일시적인 용기receptacles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나를 격분시켰다.
윈 에드워즈는 '사회 행동과 관련한 동물의 분산'이라는 대작에서 '집단 선택'
을 지지 옹호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딜레마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했다. 만약 개체가 오직 생식상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만 투쟁하는
것이라면, 그토록 많은 숫자의 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맞춰 그 개체
수를 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전통적인 다윈주의적 입장은 먹이, 기후, 포식이라는 외부
압력에서 대답을 구한다. 즉 일정 숫자의 개체가 먹이를 얻게 되면 다른
개체들은 굶주리기(또는 얼어 죽고, 또는 먹히기) 때문에 개체 수가 자연스럽게
조정된다는 것이다. 반면 윈 에드워즈는 동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의
제약을 측정하고 그 제약에 맞춰 스스로 번식을 조절함으로써 자기들의
개체 수에 균형을 잡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고 방식이 다윈이 주장한 '개체 선택'에 위배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다수의 개체가 그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의 생식을 포기하거나 제약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윈 에드워즈는 대부분의 종이 다소간 다수의 별개 집단으로 분리돼
있다고 가정했다. 일부 집단은 자신들의 번식을 조절하는 방법을 전혀
진화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집단에서는 개체 선택이 최고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그 집단은 조건이 바람직한 시기에는 개체 수를 늘려 번
성하지만 불리한 시기에는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어 심각한 피해를 입
거나 심지어는 멸종할 수도 있다.
또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개체가 자신들의 번식을 희생하는 조절
시스템을 발달시키는 집단도 있다. (만약 선택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체를 유리하게 할 뿐이라면 이런 시스템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집단은
좋은 시기에도 나쁜 시기에도 생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주장대로라면
진화는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이지 개체 간의 투쟁이 아니다.
그리고 집단이 각 개체의 이타적 협동에 의해 자신들의 개체 수를
조절한다면, 그 집단은 살아 남을 수 있다. 윈 에드워즈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회 조직이라는 것은 전진적 진화를 하는 능력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체로서 완성되어가는 능력을 가진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는 이러한 관점으로 대부분의 동물 행동을 재해석했다. 즉 환경이
란 생식을 위한 차표를 어느 한정된 매수만 인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들은 상습화된 경쟁이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차표를 얻기 위해
서로 싸운다. 육생종의 경우에는 한 구획의 땅이 한 장의 차표에 상응
하기 때문에 동물들(대개 수컷)은 그 구획에 대해 일정한 태도를 취한
다.
이 싸움에서 진 쪽은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주변부로 물러난다(물론 윈 에드워즈는 승자나 패자 어느 쪽도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패자가 깨끗이 자신의 패배
를 인정하는 행동의 배후에는 어떤 의식되지 않은 호르몬적 메커니즘이 있
을 것이라 추정했다).
우열 관계의 계층 구조를 갖는 종의 경우에 차표는 장소에 따라 적절
한 숫자만큼만 할당되기 때문에, 동물들은 순위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
인다. 그 경쟁은 주로 위협이나 엄포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검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싸워 상대를 죽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차표를 둘러싼 경쟁을 벌
일 뿐이다. 이러한 경쟁은 누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제비뽑기와 같은 것으로서, 적정한 매수의 차표를 나누
어주는 것이 누가 이기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윈 에드워즈는
"경쟁의 상습화와 사회의 확립이란 실제로는 동일하다"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과연 동물들은 어떻게 차표의 매수를 알 수 있을까? 그들이
자신들의 개체 수를 조사할 수 없는 이상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은 분명
하다. 윈 에드워즈는 그의 가장 놀라운 가설에서, 동물들이 무리를 지
어 이동하거나 함께 모여 지저귀는 등의 단체 행동이 개체 수 조사를
위한 유효한 장치이며, 이 장치는 집단 선택을 통해 진화한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새의 울음소리, 여치와 귀뚜라미 그리고 개구리가 내는 진동음,
물고기가 물 속에서 내는 소리, 반디의 명멸 등도 그런 장치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약 10년 동안 다윈주의자들은 윈 에드워즈를
맹렬히 공격했다. 그들은 두 가지 전술을 사용했다.
첫째, 그들은 윈 에드워즈의 관찰 자체는 대부분 인정했지만, 오히려
그 사실들을 개체 선택의 실례로 재해석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누가
이기는가 여부는 그야말로 우열 관계의 계층 구조나 세력권 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수컷과 암컷의 성 비율이 50:50이고, 성적 경쟁에서 성공한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독점한다면 일부 수컷은 자손을 번식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모든 개체는 조금이라도 많은 유전자를 자손에게
전한다는 다윈적인 상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따라서 진 쪽도 자
신의 희생이 공통의 이익을 높인다는 사실에 만족해서 기꺼이 그곳을
떠나는 일은 없다.
그들은 그저 패했을 따름이다. 운이 좋으면 다음 번에는 이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잘 조절된 개체군이 탄생할 수도 있지만, 그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개체 간의 투쟁인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이타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윈 에드워즈가 내놓은 실례들은 거의 모두가 각 개체의
이기성에 대한 이야기로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새의 군집에서 자신들을 노리는 포식자를 발견한 최초의
개체가 경계음을 낸다. 그 결과 무리는 흩어지지만, 집단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의 경계음을 낸 개체는 포식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자기 파괴(아니면 최소한 위험 감수)에 의해-무리의
동료들을 구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이타적인 발성자를 갖는 집단은, 다른 동료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개체에게는 큰 위험이 따를지 모르지만, 이기적인 조용한 집단보다 진
화라는 측면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 그런데 이 논쟁 과정에서 최초의
외침이 그 발성자에게 이칙이 된다고 해석하는, 적어도 10여 가지의 다
른 관점들이 제기되었다.
요컨대 최초 외침이 무리의 움직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그 결과 포식자를
혼란에 빠뜨려 최초의 발성자를 포함해 어떠한 개체도 잡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는 발성자는 안전한 곳으로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혼자
그런 행동을 취했다가 대열을 이탈한 자신이 포식자의 표적이 되는 사태를
우려해 , 무리 전체가 자신과 함께 움직이도록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그는 최초의 발성자이기 때문에 동료들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처할지도
모르지만(또는 제일 먼저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포식자가 임의적으로 무리 중 한 개체
(어쩌면 자신이 먹이가 될 수도 있다)를 잡도록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집단 선택에 반대하는 두 번째 전술은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이타주
의적인 행동도 살아 남은 가까운 혈연을 통해 유전자를 전파한다는 이
기적인 장치로-이른바 혈연 선택kinselection 이론이다-재해석한다.
즉 형제 자매는 보통 평균적으로 유전자의 절반 가량을 공유한다. 만약
당신이 세 명의 형제 자매를 구하기 위해 죽는다면, 당신은 세 명의 형
제 자매의 번식을 통해 당신의 유전자를 150퍼센트 다음 세대에 전달하
는 셈이다 이 경우에도 당신은-설령 당신 자신의 육체적 존속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진화적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다. 혈연 선택은 다윈의 개체 선택의
한 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설명들은 집단 선택을 용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런 설명들은 좀더 전통적인 다윈주의적 개체 선택을 되풀이하는 데 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꺼림칙한 것은 이 지속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해 합의가(필경 잘못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
실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진화학자들은 집단 선택이 특정한 구체적인
상황-멀리 분리되어 있고, 사회적인 응집력이 강하며, 서로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많은 무리들로 구성된 종-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리된 집단은 혈연 집단인-여기서는 집단 내의 이타주의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서 혈연 선택이 선호된다-경우가 흔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상황이 흔히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체 선택론이 위로부터의 집단 선택론과 싸움을 벌인 후에
비교적 큰 상처를 입지 않았던 바로 그때 다른 진화학자들은 아래로부
터의 공격을 시작한다. 그들은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선택의 단위라
고 주장한다. 그들은 '닭이란 또 다른 달걀을 만들기 위해 달걀이 취하
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라는 버틀러의 유명한 말을 다시 들고 나
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한다.
그들은 동물이란 DNA가 더 많은 DNA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 이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그는 "육체란 유전자가
유전자를 변화되지 않은채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쓰고 있다.
도킨스의 입장에 따르면, 진화는 저마다 더 많은 자신의 복제를 획득
하려는 유전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다. 육체는 유전자가 잠시
동안 모여 있는 장소에 불과하다. 육체는 일시적인 보관 용기이며 유
전자에 의해 조작되는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s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유전자가 복제되어 다음 세대의 육체 속에서 더 많은 복제를 전파
하려는 탐욕스런 갈망이 만족되면, 육신이라는 기계는 지질학적 파편으
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생존 기계-유전자라고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도
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전달자이다...
지금 유전자들은 거대한 잡동사니 로봇 속에 안전하게 거대한 군집
을 이루며 존재한다... 그들은 당신 속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들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들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다.
도킨스는 개체를 선택의 단위로 생각하는 다윈주의적 관점을 버리고
있다. "나는 선택의, 따라서 자기 이익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엄
밀히 이야기하자면 개체도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할 작정이다. 그것은
유전의 단위, 바로 유전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혈연 선택이나, 일견 이
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셈이다.
신체는 적절한 단위가 아니다. 유전자는 어디서든 자신의 복제를 식별하려
고 노력할 뿐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복제를 보존시키고 더 많은 복제를
만들기 위해 작용할 뿐이다. 유전자는 어떤 육체가 자신의 일시적인 집
이 될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방금 언급한 여러 가지 주장 가운데 가장 과격하고 가장 충격적
인 요소에-의식적인 행동을 유전자의 탓으로 돌리는-대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비판을 시작하고자 한다. 도킨스는
여러분이나 나와 마찬가지로 유전자 자체가 계획을 하거나 구상을 가지
고 있지는 않으며, 유전자가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보존하는 행위자로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나 자신(감히 그 가운데 한 사람에 속하기를 희망하는)을 포함해
진화에 관한 대중과학서를 집필하는 필자들이면 누구나(필경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은유적 표현을 일반적인 경우보다 화려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주장했을 뿐이다. 그가 "유전자는 더 많은 자신의 복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라고
썼을 때 실제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은, 우연히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복제를 남기는 방식으로 변이를 일으킨 유전자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후자는 길고 장황한 데 비해 전자는 그 의미 자체는 부정확하지만 은유로서는
직접적이고 사람들이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밑으로부터
가해지는 도킨스의 공격에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큰 힘을 유전자에 부여한다 하더라도 유전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은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직접 노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택은 유전자를 직접 볼 수 없고 유전자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직접 고를
수 없다. 선택은 그 매개체로서 생물의 신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전자는 세포 속에 숨겨진 DNA의 지극히 작은 조각이다. 반면 선택이 보는
것은 그것이 들어 있는 신체, 즉 생물의 개체이다.
선택이 어떤 개체를 선호하는 것은 그 개체가 특정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개체가 유달리 힘이 강하거나, 좀더 격리되어 있거나, 성적인
성숙이 빠르거나, 싸움에서 더 사납거나, 다른 개체에 비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 선택이 더 강한 신체를 선호한다고 가정하고, 선택이 강함이라는
특성에 대해 유전자에 직접 작용한다면, 도킨스의 입장은 아마 옳을 것이다.
또한 만약 신체가 그 유전자들의 명백한 지표라면 서로 경쟁하는 DNA
조각들은 각기 제 빛깔을 외부적으로 나타낼 것이고, 선택은 그들에게
직접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신체란 실제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의 왼쪽 무릎이나 당신의 손톱처럼 눈에 보이는 특정 형태에 관
여하는 개별 유전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비롯해 모든 생물의 몸
은 개별 유전자에 의해 구축되는 각각의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다. 수
백에 이르는 많은 유전자들이 서로 협동해서 신체의 거의 대부분을 구
축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전자 작용은 마치 만화경처럼 변화 무방한 일련의 환경적
영향을-그런 환경에는 배 상태의 것도 출생 후의 것 도 있으며, 내적인
것도 있고 외적인 것도 있다-받는다. 몸의 일부분은 유전자가 변형된 것이
아니며, 선택은 각 부분에 직접 작용하지도 않는다. 선택은 생물체를 그
전체로서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여러 부분들이 전체적인 조합으로 그 생물에게 유리함을
주기 때문이다.
개별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 경로를 계획한다는 식의 이미지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발생유전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킨스에게는
또 다른 은유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다수의 유전자들이 의원 총회를 열어 동맹
을 결성하고, 조약에 가맹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법한 상황을 예측한
다는 것이다.
그처럼 많은 유전자들을 하나로 융합시키고, 환경에 의해 중재되는 작용의
계층적인 연쇄로 결합했을 때, 거기에 완성되는 물체를 우리들은 '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게다가 도킨스의 관점은 유전자가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어떤 생물의 성공에 차이를 가져오는 구조, 생리, 행동 등의
일부에 유전자가 변형되어 나타나지 않는 한 선택은 개별 유전자를 볼
수 없다. 따라서 유전자와 몸 사이에 '1:1' 대응이 필요할 뿐 아니라(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비판했다) 1:1의 적응적인 대응까지 필요하게 된
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도킨스의 이론은 '몸의 모든 부분만 제각기
자연 선택이라는 가혹한 시련 속에서 완성된다는 범선택론적인 주장을
부정하는 진화학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시기에 제기되었다. 거의 전
부는 아니라 해도, 많은 유전자가 여러 가지 변이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또는 적어도 충분히)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선택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대부분의 유전자가 선택이라는 열병식에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다면,
그들은 선택의 대상 단위가 될 수 없다. 결국 나는 도킨스의 이론이 주는
매력은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몇 가지 악습-우리가 원자론, 환원주의,
결정론(이런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등으로 부르는
태도-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체란 모두 '기본적'인 단위로 분해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미시적 단위의 고유 성질이 거시적 결과를 낳으며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리고 모든 사건이나 사물은 명백하고 예측가능하고 결정적인
원인을 갖는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몇 개의 작은 요소로
이루어지고 그전의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단순한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유효했다.
지금 나는 가스스토브의 손잡이를 돌리면 불이 붙을 것이라는 데에는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실제로 불이 붙는다), 여러 가지 기체 법칙은 분자에서 시
작하여 그보다 큰 부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생물은
유전자들의 융합 이상의 무엇이다. 생물은 역사라는 중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몸의 여러 가지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
생물의 몸은 협동하여 작용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선택에 노출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변형되는 식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유전자
들로 구성된다. 물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분자들은 유전자
와 몸의 구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형편없는 비유에 불과하다.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통일적
전체성에 대한 나의 직관은 생물학적 진실을 꿰뚫고 있을 것이라고 확
신한다.
제3부 인간의 진화
제9장 미키마우스에게 보내는 생물학적 경의
나이가 들어 정열이 차분함으로 바뀌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볼수 있다. 리턴 스트
레이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 대한 신랄한 전기속에서 그녀의 만년을 다음과 같이 기술
하고 있다.
끈기 있게 기다리던 운명은 나이팅게일 양에게 못된 장난을 쳤다.
그녀가 긴 생애 동안 박애와 공공 정신으로 살아간 것은 오직 운명의 가혹함 때문이었다.
그녀의 미덕은 바로 그 가혹함 속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월은 빈정대며 이 도도한 여인에게 벌을 내렸다. 그녀에게서 가시를 빼버
린 것이다 그녀는 부드러워지지 않으면안 되었다. 이제 그녀는 온화함과 자기 만족으로 위
축되지 않으면안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이름이 매우 평범해진 동물이 어린 시절에는 훨씬더 맹렬했을지도 모른
다는-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비를 모독적으로 느끼고 경악할지도 모르지만-사실을 발견하더
라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미키 마우스는 1978년에 영예로운 만 50세를 맞이했다. 그것을 기념해 그가 처음 출연한
영화 '증기선 월리'(1928년)가 미국 각지의 영화관에서 재상영되었다. 원래 미키는 제멋대로
였고, 심지어는 조금 사디스트적인 경향도 있었다. 어느 장면에서 미키와 미니는 당시로서는
무척 자극적인 새로운 음향 효과를 이용해 배 위의 다른 동물들을 쥐어짜고 비틀어서 발랄
한 '짚 속의 칠면조'의 합창을 시작한다.
그들은 집오리를 꼭 끌어안아 울음소리를 내게 하고, 염소의 꼬리를빙빙 돌리고, 돼지의
젖꼭지를 꼬집고, 실로폰 대용으로 암소의 이를 마구두들겨대고, 암소의 젖통으로 백파이프
를 불어댄다.
크리스토퍼 핀치는 준공식적인 그림의 역사라는 점에서 디즈니 업적을 이렇게 해설한다.
"20년대 후반, 영화관에서 대성공을 거둔 미키 마우스는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에게 익숙해
있는 것처럼 절대 예의바른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좋게 말해도 개구쟁이이고, 심지어
는 잔혹성까지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미키는 곧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았고, 결말이 나지 않는 미니와의관계나 모티와
페르디의 입장 등을 관객의 가십이나 추측에 맡기게 되었다.
핀치는 이렇게 계속한다.
"미키는... 거의 국민적인 상징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했고,앞으로도 모든 시대
에 걸쳐 상징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가끔 그가상례를 벗어나기라도 하면, 국민들의
도덕성을 자신들이 지키고 있다고생각하는 시민이나 단체들로부터 즉각 숱한 항의 편지를
받게 된다... 결국미키에게는 착실한 시민의 역할을 하도록 끊임없이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키의 성격이 부드럽게 순화되어감에 따라 그의 외모도 변해갔다. 디즈니의 팬들
가운데는 시간이 지남에 따른 미키의 변모를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키의
외면적인 변화 이면에 그에숨겨진 주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다(나는
그렇다고생각한다).
사실 나는 디즈니의 만화가들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분명하게자각하지 못할 것이라
고 확신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조금씩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미키는 과거에 비해 부드럽고비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뀌면서 차차 그 외모도 어린아이
의 모습으로 변한것이다.
(미키의 나이는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만화에 나오는 대개의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
로 미키도 시간이라는 참혹한 파괴의 손길에 아무런영향도 받지 않았다-, 고정돼 있는 나이
에 나타나는 이러한 외견상의 변모는바로 진화적인 변형이다. 진화적인 현상으로 유아화되
는 것을 네오테니(neoteny,유형에서 성적인 성숙에 이르는 상태/옮긴이]라고 한다. 이 문제
에 대해서는나중에 다시 설명하겠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형태 변화를 다룬 중요한 생물학적문헌이 있다. 자궁 속
에 있는 인간의 태아는 두부끝이 먼저 분화해발끝보다 빨리 성장하기 때문에(생물학 용어로
는 '전후방향구배anteroposterior gradient'라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상대적으로큰 머
리와 중간 크기의 몸통,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팔다리를 가지게된다.
이 구배는 성장 과정에서 다리와 발이 머리보다 커지면서 역전된다. 머리의 성장도 계속
되지만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해 그 성장 속도가느리기 때문에 머리의 상대적 크기가 작아지
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 성장의 전 과정을 통해 두부 자체에 여러 가지 변화가확산된다. 뇌의 성장은
3세 이후 갑자기 느려진다. 유아의 구 모양의두개골은 점점 갸름해지고 눈썹의 위치가 낮아
져 성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눈은 거의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크기는 급속히줄어든다. 그러나 아래턱과
윗턱은 차츰 커진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큰머리와 큰 눈, 작은 턱, 크게 부풀어오른 두개골,
작고 땅딸막한 다리와발을 가진다.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성인이 될수록 머리는
전체적으로 한층 원숭이의 것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미키는 우리들과 함께해 온 지난 50년 동안, 이 개체 발생의경로를 역행해왔다. '
증기선 월리'에 나오는 초라한 생쥐와 같은 캐릭터가 마법의 나라에 사는 귀엽고 악의 없는
주인공이 됨에 따라 그의용모는 조금씩 어리게 변해갔다.
1940년경이 되자 과거에는 돼지의 젖꼭지를 비틀어 대던 악동이 말을듣지 않는다는 이유
로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이는('판타지아' 속의 '마법사의제자') 신세가 되었다. 1953년경 미
키 최후의 만화에서 낚시를 간 미키는물을 뿜어대는 대합조개의 행패를 저지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디즈니 만화가들은 자연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화를 흉내내 미키를 변형시켜
갔다. 그들은 미키가 아이들처럼 짧고 땅딸막한다리를 갖게 하기 위해 바지의 위치를 내려
그의 호리호리한 다리에 헐렁헐렁한 옷을 입혔다(팔다리도 상당히 굵어져 그 관절은 칠칠치
못해 보인다).
머리는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져 용모는 한층 더 어린아이와 흡사하게되었다. 미키의
코 길이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 굵어졌기 때문에돌출감이 완화된 느낌을 주었다.
또한 그의 눈은 두 단계를 거쳐 발달했다.
첫번째 단계는 선조형 미키의 검은 눈 전체가 자손형 미키의 눈동자로 바뀌어가는, 불연
속적 이지만 현저한 진화적 변화이다. 두 번째 단계는그 이후에 계속된 변화로서 눈 자체가
조금씩 커진 것이다.
미키의 두개골이 점차 부풀어오른 변화도 재미있는 과정을 겪으며 진행되었다. 그의 진화
는 귀와 타원형의 코가 달려 있는 하나의 원으로머리를 표현한다는 일종의 불문률에 구속되
어 있기 때문이다. 그 원 형태는 부풀어오른 두개골을 직접 표현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았다.
대신양쪽 귀가 약간 뒤쪽으로 옮겨져 코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경사진 이마대신 등근 이마
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관찰을 수량적으로 과학화하기 위해 나는 미키의 계통 발생과정에 나타난 세 단계
의 외모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성능이 좋은다이얼 캘리퍼스로 재보았다. 즉 1930년대 초
기의 코가 가늘고 귀가 앞쪽으로 쏠려 있던 얼굴(제1단계), 훨씬 나중인 '미키의 잭과 콩나
무'(1947년)에 나오는 얼굴(제2단계), 그리고 근년의 미키 마우스(제3단계)이렇게 세 단계를
측정해본 것이다.
나는 미키의 점진적인 유아화를 나타내는 세 가지 징후를 측정해보았다.
머리의 길이(코뿌리에서 뒤쪽 귀의 정점까지)에 대한 눈의 크기(높이의최대치)의 백분률, 신
장에 대한 머리 길이의 백분률, 그리고 앞쪽에 있던귀가 뒤편으로 이동한 것을 나타낸 두개
의 크기(즉 코뿌리에서 뒤쪽 귀끝까지의 거리에 대한 코뿌리에서 앞쪽 귀 끝까지 거리의 백
분률).
이 세 가지 퍼센티지는 모두 착실히 증가해갔다. 눈의 크기는 머리길이의 27퍼센트에서
47퍼센트까지, 머리 길이는 신장의 42.7퍼센트에서 48.1퍼센트까지, 그리고 코에서 앞쪽 귀까
지의 거리와 코에서 뒤쪽귀까지와의 비율은 71.7퍼센트에서 놀랍게도 95.6퍼센트로 껑충 뛰
었다.
나는 비교를 위해 미키의 젊은 '조카' 모티 마우스에 대해서도 똑같은 측정을 해보았다.
미키의 머리 길이는 모티만큼 작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밖의 다른 특성에서는 모티와 가깝
게 진화해 갔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명색이 과학자라는 사람이 생쥐를 상대로 도대체 무슨 짓
을 하고 있느냐고 꾸짖을지도 모른다. 지금 하고있는 이야기가 절반은 실없는 소리이고, 절
반은 재미 삼아 하는 것임은물론이다(나는 지금도 '시민 케인'보다는 '피노키오' 쪽을 더 좋
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실제로는 두 가지 -진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우선
디즈니가 왜 자신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일정한방향으로, 그토록 서서히 장기간에 걸쳐
변화시켰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적인 상징이라는 것은 그렇게 변덕스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시장 조사 담당자들(특히 인형 산업)은 어떤 용모가 귀엽고 친숙한 느낌으로대중들에게 호
소력을 가지는지 알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가며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생물학
자들 역시 넓은 범위에 걸친 다양한동물들에 대해 같은 문제를 연구하면서 엄청난 시간을
보낸다.
콘라트 로렌츠는 그의 가장 유명한 논문에서, 인간은 아기와 성인 사이에 나타나는 형태
상의 차이를 행동의 중요한 신호로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아성을 나타내는 여러 가
지 특징들이 어른들에게 아기에대한 애정과 양육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선천적
인 격발 메커니즘'의 방아쇠를 당긴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유아적 용모의 동물을 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따뜻하게 품어주고 싶
은 마음을 갖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아기를 기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반응의 적응가adaptive value는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덧붙여 로렌츠는 자신이 생각한 격발 메커니즘으로 디즈니가 미키에게 점차적으로
부여한 유아적 특징을 그대로 열거한다. 즉 "머리가상대적으로 큰 점, 안면보다 두개골이 더
큰 점, 눈이 크고 얼굴의 아래쪽에 위치하는 점 이마가 부풀어올라 있는 점, 짧고 땅딸막한
사지, 일관되게 신체의 모든 부분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점 그리고 서투른동작."
(유아적 특징에 대해 어른들이 애정 어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선조인 영장류로부터
직접 전달받은 선천적인 것인지-로렌츠가 주장하듯이-. 아니면 단지 아기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학습된 후, 학습된 특정한 신호에 애정의 끈을 결합시키는 진화적 경향이 이
식된 것에 지나지 않은지를 둘러싼 논쟁의 여지가 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는 다
루지 않겠다.
내 주장은 어느 쪽의 경우에도 똑같이 통용된다. 왜냐하면 그 생물학적기반이 직접 프로
그램되었든, 또는 학습을 통해 그 신호와 결부시키는능력이 형성되었든 간에 나는 유아적
특징이 어른들에게 강한 애정을유발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로렌츠 논문의 주된 명제를-인간은 소위 게슈탈트gestalt. 즉경험의 통일적인
전체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격발 기구로 작용하는 일련의구체적인 특징들에 대해 반응하
는 것이라는-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삼고 싶다. 이러한 주장은 로렌츠에게는 매우 중
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과 다른 척추 동물의 행동 양식이 동일하게 진화하였음을주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종류의 새의 경우 '게슈탈트'에 대해서도다는 추상적인 특징에
대해 반응하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에 발표된 로렌츠의 이 논문
에는, '동물 및 인간 사회에서의 전체와 부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디즈니가 미키의 외견을 조금씩 바꾸어간 사실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배경속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는 한 가지 경향을 순차적으로발전시킴으로써 로렌츠가 이야기한 일차적
격발 기구를 작동시킨 것이다).
로렌츠는 우리들이 인간과 동일한 기준으로 다른 동물들을 판단하고있다는 점을-진화적
인 맥락에서 볼 때 그 판단은 전혀 부적절할지도모르지만-지적한 다음, 유아적 특징이 우리
모두에게 가지는 힘과, 그러한 특징이 미치는 영향의 추상적 특성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 성인들은 자신들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 발달한 반응으로 인해 그런 감
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반응을 다른 동물이 갖는 동일한 특징에까지 전이시킨다는 것이
다.
많은 동물들은 인간이 갖는 애정의 감응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몇가지 이유로, 사람의
아기에게는 있지만 성인들은 이미 잃어버린 몇 가지 특징들-특히 상대적으로 큰 눈, 턱이
뒤로 들어가고 이마가 둥글게불거져 나온 얼팔 모습 등- 을 갖추고 있다. 우리 어른들은 이
런 동물에 반해 애완용으로 기르기도 하고. 야외에서는 멈춰 서서 그들을 넋잃고 바라보기
도 한다.
반면에 우리들은 그들보다 더 사이 좋은 친구가 되거나 찬미의 대상이될 수도 있는 동물
들을 단지 눈이 작고 코가 길다는 이유로 배척하기도한다. 로렌츠는 인간의 아기와 흡사한
특징을 갖는 여러 가지 동물들의독일어 명칭이 그러한 특징을 갖지 않는 가까운 친척 종들
보다 큼에도불구하고, '-chen'(-혠)이라는 접미사로 끝난다는
-가령 'Rotkehlchen'(유럽울새), Eichhornchen'(다람쥐), 그리고 'Kaninchen'(토끼) -사실을
지적했다(독일어에서 '-chen' 으로 끝나는 말은 모두 '작다' 는 의미를 가진다/옮긴이).
더욱이 로렌츠는 매우 흥미로운 어떤 부분에서, 다른 동물이나 또는사람과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는 무생물을 보고 생물학적으로 부적절한반응을 나타내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자신
의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경이적인 어떤 대상들은 인간의 특성인 '경험적 결부experientialattachment'에 의해서 놀
랄 만하고 매우 특수한 감정적 가치를 획득할수 있다... 마치 산봉우리처럼 머리 윗부분이
솟아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낭떠러지같이 깎아지른 얼굴, 두터운 적란운이 뭉게뭉게 피어오
른것 같은 모습 등은 꼿꼿이 서서 앞으로 몸을 조금 기울인 성인 남자의모습과 같은 직접적
인 과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위협이다.
우리들은 낙타와 같은 동물을 보면 냉담하고 비우호적인 느낌을 받지않을 수 없다. 그것
은 낙타가 수많은 인류 문화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오만한 거절의 제스처'를-그 자신은 전
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리고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제스처를 할
때 우리는 머리를 높이 들어 코의 위치를 눈보다 높게 한다.
그리고 눈을 반쯤 뜨고 코로 바람을 내뿜는다. 요컨대 영국의 전형적인상류 계급들이나
그들의 잘 훈련된 하인들이 흔히 하는 '흥!'이다.
로렌츠의 다음과 같은 글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모든 것들은경멸하는 상대가
발산하는 모든 감각적인 양상에 대한 거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불쌍한 낙타에게는 입을
아래로 당겨 머리를 낮추면서 코를길다란 눈보다 높이 들어올리는 게 불가능하다. 로렌츠가
우리들에게상기시켜주었듯이, 만약 당신이 낙타가 당신의 손에서 먹이를 먹을지,그렇지 않으
면 침을 뱉으려 하는지를 알려면 양쪽 귀의 모습을 보면 된다.
찰스 다윈은 1872년에 출간된 '인간 및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중요한 저서에서, 원래는
동물의 적응적인 행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이후 인간에게는 상징으로 내면화된 여
러 가지 몸짓의 진화적 기반을 밝혀내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그는 형태뿐 아니라 감정에도
진화적인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인간은 격노할 때에 윗입술을 들어올려 싸움용 송곳니-지금은 사라져버린-를드러내 보이
려 한다. 우리가 나타내는 혐오의 제스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닥쳤을 때 구역질을 일으킨
다는 고도로 적응적인 행동과 결부되는 안면움직임인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많은 동시대
인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일이었지만 다윈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극도의 공포 때문에 머리털이 곤두서거나광포한 분노 때문에
이를 드러내는 등의 몇 가지 표정은 인간이 과거에그보다 훨씬 낮은 동물적인 상태로 존재
했다는 믿음이 없다면 이해하기어려운 것이다."
어쨌든 인간의 유아기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은 다른 동물에서 관찰될 때에도 우리들에게
강한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나는 점차 어린 방향으로 역행하는 미키 마우스의
진화 경로는 디즈니나 그의만화가들이 무의식적으로 이 생물학적 원리를 발견했음을 나타낸
다고주장하고 싶다. 실제로 디즈니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의 감정 상태는 거의 동일
한 특징들에 기초한다.
이런 정도로까지 마법의 왕국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환상-즉인간의 추상에
대한 능력과 인간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신체의 형태가바뀌어가는 데 대한 우리들의 적절한
반응을 다른 동물들에게 (부적절하게)전이시키려 드는 인간의 버릇-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다.
도널드 덕도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어린 용모를 갖게 된다. 그의 가늘고 길던 주둥이는
짧아지고 눈은 커졌다. 미키가 모티의 용모에 닮아갔듯이 도널드도 조금씩 휴이, 루이, 그리
고 듀이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도널드는 미키의 옛날 품행이 나쁘던 시대의 모습을 이어받
아 튀어나온 주둥이와 경사진 이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른다운특징을 갖고
있다.
마우스의 악당이나 사기꾼들은 모두 외견상 미키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실
제 연령으로는 미키와 같은 나이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936년에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의 라이벌'이라는 단편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미키가 미니를 데리고 사이 좋게 교외로 피크닉을가려고 하자 노란색 스포츠 카를 탄 멋쟁
이 모티머가 그들을 방해한다.
악명 높은 모티머는 몸 길이의 29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있다. 그에 비해 미
키의 머리는 몸 길이의 45퍼센트이다. 코의 길이는미키가 얼굴의 49퍼센트인 데 비해 모티
머는 얼굴 길이의 80퍼센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는 언제나 그렇듯이 모티머에게 마
음이 끌리는데,이때 근처의 들판에서 달려온 친절한 숫소가 모티머를 쫓아낸다).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그 밖의 등장 인물들의-뽐내는 싸움 대장 페그레그핏, 사랑스럽지
만 단순한 얼뜨기 구피 등-과장된 어른스러운 외모를 생각해보라.
미키 마우스 외모의 편력과 관련된 두 번째이자 중요한 생물학적 논의가 있다. 나는 그가
영원한 젊음을 획득한 경로는 우리들 인간의 진화사를 요약적으로 반복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왜냐하면인류는 '네오테닉'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원래 우리들의 선조가 어린 시기에 가지고 있던 특징을 어른이될 때까지 유지하는
현상을 오랜 시기에 걸쳐 계속하면서 지금까지진화해왔다. '증기선 윌리'에 나오는 미키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속하는 우리들의 선조는 튀어나온 턱과 납작한 두개를 가
지고 있었다.
인간의 태아기 때 두개의 형태는 침팬지 태아기의 그것과 그다지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
간의 두개는 성장 과정에서도 큰 변화를 나타내지 않는 변형 과정을 거친다. 즉 출생 후에
는 뇌가 몸의 다른 부분보다훨씬 천천히 성장하기 때문에 두개가 상대적으로 작게 되고 위
턱과 아래턱은 상대적으로 커져간다.
그러나 침팬지의 경우, 다 자란 침팬지는 그 형태상 새끼와 크게 다르며,성장 과정에서도
심한 변화를 겪는다. 그에 비해 인간은 성장 과정을완만하게 진행시키기 때문에 어른의 모
습은 아기 시절과 그리 다르지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린 시절의 특징
이 크게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분명 우리도 아기와 어른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나타날 정도로 변하지만, 그 차이는 침팬
지나 그 밖의 다른 고등 영장류에서 나타나는 차이보다 훨씬 작다.
인간의 경우, 이처럼 특별히 느린 발육 속도가 '네오테니'의 원인이되었다. 일반적으로 영
장류는 포유류 가운데 발육이 느린 동물에 속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이 경향이두드러진다. 우리들은 10개월에 가까운 긴 임신 기간, 매우 긴 유
년기그리고 포유류 가운데 가장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아적인특성이 오래 지속
되는 형태상의 이점들이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있다.
첫째, 우리의 뇌가 확장된 것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태아기의급속한 성장 속도가 출생
후까지 어느 정도 지속된 결과이다(모든 포유류의 뇌는 자궁 속에서 급성장하지만 출생 후
에는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 인간은 이 태아기의 양상이 출생 후까지 계속된다).
다른 한편으로 발육 시점의 변화 자체도 그에 뒤지지 않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은 학습
력이 뛰어난 동물이며, 유년기가 길어지자 교육에의한 문화의 전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부
분의 동물들은 유년기에 유연성을 보여주며 놀이를 즐기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차츰 성숙
하면서엄격하게 프로그램된 패턴을 따르게 된다.
로렌츠는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정상적인 인간의인간다운 특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색은-즉 발육 과정의모든 단계에서 항상 나타나는 특색은-확실
히 우리들이 갖는 '네오테닉'한성격에 빚지고 있다."
요컨대 우리들은 미키와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도록 성장하지 않는다.
미키, 앞으로 반세기 동안 네게 행운이 있기를. 너와 같이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하고 싶지
만, 그렇다 해도 너보다는 조금 더 슬기로워지고 싶다.
제10장 인류최고의 사기극 필드다운 인
오래된 미스터리보다 더 흥미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추리 소설 중에서조세핀 테이의 '시
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을 사상 최고의 탐정 소설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은 까닭은,
그 주인공이 현대의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로저 액크로이드와 같은 살인자가 아니라 리처드
3세였기 때문이었다. 과거로부터 전설적인 이야기는 항상 뜨겁지만 비교적 결실이적은 논쟁
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칼잡이 잭(1888년에서 1889년까지 런던의 이스트 엔드 지역에서 많은여성 주로 매춘부를
죽인 범인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 범인이 잡히지않았기 때문에 그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옮긴이)'은 과연 누구였는가? 셰익스피어는 과연 셰익스피어였을까? 약 25년 전에 역사상
모든 수수께끼가운데서도 1급에 속하는 사건이 내가 몸담고 있는 고생물학 분야에서일어났
다. 1953년, 필트다운 인(Piltdown man, 영국 서섹스 주 필트다운에서발견되어 플라이스토
세 최고의 인류로 생각되었으나 후일 조작된 가짜임이밝혀졌다/옮긴이)이 지극히 불확실한
속임수에 의해 저질러진 분명한사기극이었음이 밝혀졌다.
그 후 근년에 이르기까지도 대중들의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티라노사우루스와 알로사
우루스를 구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필트다운 인'이라는 속임수를 만들어낸 사람에 대해서
는 명백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누가 한 짓인가?'를 문제 삼기보다는 지적인 의미에서 더 흥
미로워 보이는 문제를 논해보고 싶다. 우선 첫째로,처음에 모든 사람이 필트다운 인을 용인
한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최근 보도된 뉴스 기사에서 또 한 사람의 수상한 용의자가
-내가보기에는 형편없이 빈약한 증거로-추가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젊은 시기에 추리 소설 애독자이기도 한 연유로, 이적절한 시기에 드디어 나
자신의 편견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1912년 영국 서섹스 주의 변호사이며 아마추어 고고학자이기도 한 찰스 도우슨이 대영박물
관 자연사관의 지질학 부문 관리관이었던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에게 여러 개의 두개골 파편
을 가지고 왔다. 도우슨의 이야기로는 최초에 발견된 파편은 1908년 한 채석장에서 일하고
있던 노무자들이 발굴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준설한 흙더미를 뒤져서 몇개의 파편을 더 찾아냈다. 심하게마모되고 짙은 색
으로 찌든 그 뼛조각은 아주 먼 옛날의 사력 층에서 나온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들은 그
이후 시기에 매장된 인간들의 유골이아니었다. 그런데 그 파편이 이상할 정도로 두꺼웠음에
도 불구하고 두개골전체의 형태는 놀라울 만치 근대적인 것처럼 보였다.
스미스 우드워드는 무척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겉으로 흥분을 나타내지는않았다. 도
우슨에게 안내되어 필트다운으로 간 그는 그곳의 자갈 퇴적장에서테야르 드 샤르댕과 함께
다른 증거를 찾았다(그렇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약 15년 전에 '현상으로서의 인간'이라
는 저서에서 생물 진화와 자연, 그리고신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벌여 숭배받았던 과학자이
자 신학자인 바로 그테야르이다.
그는 1908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필트다운 가까운 헤이스팅스의예수회 신학교에
서 연구하고 있었다. 1909년 5월 31일 그는 마침 한 채석장에서도우슨을 만났다. 이 노련한
변호사와 젊은 프랑스 인 예수회 신도는 곧 친한친구이자 동학자, 그리고 공동 탐사자가 되
었다).
어느 날 그들이 함께 조사하고 있을 때, 지금은 유명해진 문제의 아래턱뼈를 도우슨이 발
견했다. 두개골 파편과 마찬가지로 이 아래턱뼈도짙은 빛깔을 띠고 있었지만, 그 형태는 두
개골이 인간과 흡사한 만큼유인원과 흡사하게 보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람의 아래턱뼈에
는 흔하게 발견되지만 유인원에게서는 나타나는 일이 없는 평평하게 마모된어금니가 두 개
붙어 있었다 불행히도 이 아래턱뼈는 두개골과의 관계를 밝혀줄 만한 귀중한 두 장소에서,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차이점을나타내는 관절과 두개골 부분이 결손돼 있었다.
스미스 우드워드와 도우슨은 1912년 12월 18일, 두개골 파편, 아래턱뼈, 가공된 부싯돌과
그 밖의 뼈들과 함께 발견된 발굴물, 그리고 그연대가 아주 오래 전임을 보여주는 많은 포
유류 화석들로 준비를 하고런던 지질학회를 찾아가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에
대한평가는 찬사와 비난이 뒤섞인 것이었지만,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속임수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사람의두개골과, 유인원의 것
과 비슷한 아래턱뼈의 결합으로 인해 서로 다른 두동물의 뼈가 같은 채석장에서 뒤섞인 것
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받았다.
그 후 3년 동안 도우슨과 스미스 우드워드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그 이상 훌륭한 것이 없을 만큼 뛰어난 발굴물을몇 가지 더 제시해서 반론을 제기했다. 우
선 1913년, 테야르 신부는 매우 중요한 아래턱의 송곳니를 발견했다. 그것 역시 형태상으로
는 유인원의 것과 흡사했지만 인간의 이처럼 현저히 마모되어 있었다. 그 후 1915년에 도
우슨은 최초의 발견 장소로부터 2마일 떨어진 두 번째 장소에서, 두꺼운 인간의 두개 파편
두 개와 사람의 이빨처럼 마모된 유인원형의 이빨 하나로 이루어진 이전과 동일한 조합의
화석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그 동안 도우슨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에게 지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비판자였지만 그 후 지지자로 돌아선, 당시 미국의 저명한고생물학자인 헨리 페
어필드 오스본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선사 시대의 여러 가지 인간 현상을 관장하는 신의 섭리가 존재한다면, 이 경우가
분명 그 섭리가 현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도우슨이 발견한 제2의 필트다운 인의 파편 세 개
는 원래의 유형과 비교함으로써 확증을 얻는 데 우리들이 선택할 만한 바로 그런 유골이었
기 때문이다... 그것에 상응하는 첫번째 필트다운 인의 화석과 나란히 놓아두면 그것들은 정
확히 일치한다 조금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본 자신은 알지 못했던 신의 섭리가 필트다운에서 인간의형태로 나타났다.
그 후 30년 동안 필트다운 인은 다소 미흡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 용인되었고, 인류 전
사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후 1949년에 케니스 P 오클리가 필트다운 인의
유골에 대해 불소 시험을 해보았다. 동물의 뼈는 퇴적물 속에 묻혀 있던 시간과 주위 암석
이나 토양의 불소 함유량에 따라 불소를 흡수하는 성질을 다르게 나타낸다.
시험 결과 필트다운 인의 두개골과 아래턱배 모두에는 간신히 검출할 수 있을 만한 불소
밖에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그 유골들은 사력층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것
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오들리는 그것이 가짜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 필트다운
인의 유골이비교적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오래된 사력층 속에 묻히게 되었으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몇 년이 지나자 오클리는 J. S. 바이너, W. E. 르 그로 클라크와 공동연구 결과 '매장'이
금세기에 의도적으로 위장되었음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는 문제의 머리뼈와 턱뼈가 인위적으로 착색되었고, 부싯돌과 그 밖의다른 뼈는 현대의
칼날을 이용해서 가공되었으며, 함께 발견된 포유류의뼈는 진짜 화석이기는 하지만 다른 장
소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는 사실을폭로한 것이다.
게다가 이빨은 사람의 이빨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줄로 간 것이었다.
인간의 머리뼈에 유인원의 것과 흡사한 아래턱뼈가 붙어 있는 이 옛날의이형은 가능한 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완성된 것이었다. 두개골은 현대인의 것이었고,
아래턱뼈는 오랑우탄의 것이었다.
그러면 이런 종류의 발굴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이유로 지극히 단순한이 이형의 정체
를 간파할 수 없었던 학자들을 상대로 이 정도로 기이한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은 도대체 누
구였을까?
최초 세 사람의 학자들 가운데 테야르는 너무 어려서 그 발굴물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했
을 것이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또한 스미스 우드워드는 필트다운 인의 실재를 확인하는데
반생을 바치면서 80세경부터는 눈까지 보이지않게되었고 은퇴 후 '최초의 영국인'(1948년)
이라는 쇼비니슴적인 제목의 최후저서를통해 저술할 만큼 진실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내 생각에도 그 판단이 옳은 것 같다).
따라서 의심은 도우슨에게 집중되었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된 동기를납득할 수 있
게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에게 그럴 기회가 있었던 것은사실이다. 도우슨은 지금까
지 몇 차례에 걸쳐 중요한 발굴을 한 공적으로 상당한명성을 얻은 아마추어 학자였다. 그가
새로운 발굴에 지나치게 집착했고, 올바른판단력을 결여하고 있었으며, 다른 아마추어 학자
들에 대해 얼마쯤 비양심적인행동을 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사기극에 직접 관계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
J. S. 바이너의 '필트다운의 위조'(1955년)라는 책 속에 잘 요약되어 있듯이정황 증거는 상
당히 유력했다.
그러나 도우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발굴물이 고도로 교묘하게 위조된 점으로봐서 최
소한 누군가 더 전문적인 과학자가 관계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관점을, 그처럼 서투른 위조를 좀더 일찍 간파할 수 없었던 데대한 자
신들의 면구스러움을 달래기 위해 연구자들이 펴는 억지 주장이라고생각해왔다. 분명 착색
은 더없이 완벽한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도구'들은형편없는 수준으로 깎여 있
었고, 이빨의 마모도 조잡한 것이었다. 조작이 폭로된 후과학자들이 다시 조사한 결과 이빨
에 고의적으로 긁어낸 자국이 있다는 사실이금방 밝혀졌다.
르 그로 클라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위적인 마모의 증거가 곧 눈에 띄었다.
실제로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명료했기 때문에 충분히 의문이 제기될수 있었으
리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좀더 빨리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의아할 정도다."
위조의 핵심은 어떤 부분을 제거할 것인지-턱과 턱 관절을 미리부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었다는 점이다.
1978년 11월, 또 한 사람의 학자가 음모에 가세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필트다운 인이
다시 기사화되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지질학과 명예 교수를 지낸 J. A. 더글러스가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자신이 맡았던 강좌의 전임자인 W. J. 솔러스가 범인으로 생각
된다는내용의 이야기를 테이프에 녹음해 놓았던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더글러스는 세 가지 항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것들은 거의 증거로 채택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1. 솔러스와 스미스 우드워드는 서로 원한 맺힌 적이다(그래서 어쨌다는것인가? 학계란
어느 곳이나 살무사들의 소굴과 같은 법이다. 그러나 논쟁과교묘한 속임수는 차원을 달리하
는 문제이다).
2. 1910년에 더글러스는 솔러스에게 마스토돈(코끼리와 흡사한 태곳적동물/옮긴이)의 뼈를
몇 개 건네준 적이 있는데, 이 배들이 바로 이 동물 배의일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뼈나 이빨은 그다지 희귀한 것이아니다).
3. 솔러스는 과거에 중크롬산칼륨을 납품받은 적이 있었지만, 더글러스나솔러스의 사진 기
사는 왜 그런 화학 약품이 그에게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필트다운 인의 뼈를 착색하는 데에는 중크롬산칼륨이 사용되었다(그것은 사진기술에서도 꼭
필요한 화학 물질이었다. 나는 솔러스의 사진 기사가 일으킨혼동을, 그 교수가 부정한 사용
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유력한 증거로 간주할 수없다고 생각한다).
솔러스를 범인으로 생각할 만한 증거는 매우 박약한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왜영국과 미
국의 유력한 학술 잡지가 이러한 모호한 주장에 그처럼 많은 지면을할애했는지 의아하게 생
각한다.
'태고의 사냥꾼들'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솔러스가 교묘한 빈정거림으로 읽힐만큼 열정
적인 어조로 필트다운 인에 대한 스미스 우드워드의 견해를 지지했다는패러독스만 없었어도
나는 그를 범인 후보에서 완전히 제외시켰을 것이다.
내 관점에서는 오직 세 가지 가설만이 큰 의미를 갖는다.
첫째, 도우슨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고 있었고. 일부 아마추어 고고학자들로부터 미
움을 받고-물론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같은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나라 사람들 중에는 그를 사기꾼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일부는그가 전문
가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데 대해 심하게 질시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의 동료 가운데 누군가가 이 복잡하고 특이한 방식의 복수를 생각해냈을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는 것으로서, 명성을 위한것이었든 전문가들
의 세계에서 주목받고 싶었기 때문이든 간에 도우슨이 단독으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제3의 가설은 앞의 두 가지보다 훨씬 흥미롭다. 그 가설에 의하면,필트다운 인은 악의적인
위조가 아니라 어느 한 개인이 저지른 도가 지나친 장난이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그를
잘 알고 있는 많은 뛰어난척추 동물 고생물학자들의 '지론'을 대변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증거들을 면밀히 검토해 그 증거들의 문제점을 밝혀내려고 애썼다.
마침내 나는 이 마지막 가설이 가장 유력한 관점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관되고 가장 설득
력 있는 것임을 알았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하버드대학의 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던 미
국 최고의 척추 동물 고생물학자였던 A. S. 로머는 종종 자신이 품고 있던 의구심을 내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루이스 리키도 같은 생각이었다. 리키의 자서전에는 익명의 '제2의 남자'라고만 나
와 있지만, 그 내용을 읽어보면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정 개인을 지칭하
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 다른 모습으로 변한 후에 자신의 젊었던 시절의모습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년의 테야르 드샤르댕은 대중에게는 매우 근엄한, 마치 신
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우리 시대의 걸출한 예언자로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칭송을받았다. 그러나 그도 과거에는 장난을 좋아하는 학생 시절이 있었다.
그는 이 이야기에 스미스 우드워드가 등장하기 3년 전부터 도우슨을 알고 있었다. 그전에
그는 예수회에서 이집트로 파견되어 있었기 때문에필트다운에 '반입된' 동물 화석의 일부를
이루는 동물의 뼈-아마도 튀니지나 몰타 등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생각된다-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우슨과 테야르가 야외나 선술집 등의 장소에서오랜 시일에
걸쳐 음모를 꾸몄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도우슨의 경우에는 거들먹거리는 전문가들이 잘 속는다는 사실을폭로하기 위해, 그리고
테야르의 경우에는 모국 프랑스가 인류학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화석 인류를 풍부히 가지
고 있으며 그 사실을 무척즐기고 있는 데 비해 영국인들은 실제 인류 화석을 하나도 갖지
못하고있다는 사실을 조롱하면서 다시 한 번 영국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위해서였을 수
있다.
필경 그들은 함께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 과학계의 유력한권위자들이 그 정도
로 필트다운 인에게 희망을 쏟을 줄은 꿈에도 예상치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처음에는
사실을 고백할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후 테야르는 영국을 떠나 1차 세계대전중에 들것을 메는 위생병이되었다. 내가 보기에
는 1915년에 제2의 필트다운 발견으로 음모를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도우슨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장난으로시작된 작은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커다란 악몽
이 된 상태였다. 도우슨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병에 걸려 이듬해인 1916년에 죽었다. 테야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돌아올 수 없었다.
그때까지 영국의 인류학계와 고생물학계에서는 세 사람의 권위자들-아서 스미스 우드워
드, 그래프튼 엘리엇 스미스, 그리고 아서 키스-이필트다운 인의 실재를 증명하기 위해 자
신들의 시간을 모두 투자하고있었다(이들 세 사람의 학자들은 두 사람의 아서 경과 한 사람
의 그래프튼경으로 삶을 마쳤다. 그러나 이 영예로운 지위는 주로 고인류 화석 분포도에영
국을 참여시킨 공적에 대한 대가로 증정된 것이었다).
만약 테야르가 1918년에 그 사실을 고백했다면. 그의 전도 유망한 생애-그 중에는 후일
북경 원인 화석의 발견을 기록하는 중대한 역할도 포함되어있다-는 갑작스럽게 종말을 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시편의 작자의 가르침,그리고 그보다 훨씬 후에 필트다운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곳에 설립된 서섹스 대학의 표어 "침묵을 지키라 그리고 알라... 를 죽을 때까
지 따른 셈이다. 그것은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억측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다음과 같은 더
흥미로운 물음을 떠오르게 한다. 처음에 사람들이 필트다운 인을 믿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
일까? 필트다운 인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창조물이었다. 완전한 현대인의 두개골과 유인
원과 흡사한 아래턱뼈를 가진 선조를 우리의 계통으로 용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필트다운 인에 대해 반대하던 사람이 결코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시적이나마 인정을 받았던 필트다운 인은 갈등 속에서 태어나 그 후에도 숱한 논쟁을 통
해 성장했다. 많은 학자들이 필트다운 인은 우연히같은 퇴적물 속에 섞이게 된 두 종의 동
물이 서로 혼합되어 이루어진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초에 당시 세계 최고의 해부학자였던 프란츠바이덴라이히는(돌이켜
생각하면 그의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이렇게쓰고 있다. "에오안트로푸스
Eoanthropus(필트다운 인을 나타내는 학명으로서'최초의 인간dawn man'이라는 의미)는 화
석 인류의 목록에서 말소되어야한다. 이것은 현대인의 두개와 오랑우탄의 아래턱뼈, 그리고
이빨의 파편을인위적으로 결합시켜 놓은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아서 키스 경은 빈정거리며 이렇게 응수했다. "이것은기존의 관점에 맞지
않는다고 사실을 배제시키려는 하나의 방법이다. 과학자가추구해야 하는 정상적인 방법은
사실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맞는이론을 수립하는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이 문제를 계속 추구해 나갔다면, 거기에는 그 조작을 처음부터 간파할
수 있는 근거도 분명히 출간되어 있었다. 치아해부학자인 C. W. 라인은 테야르가 발견한 송
곳니는 그 필트다운 인이죽기 직전에 돋아난 어린 치아였음을 알아냈고, 따라서 그 심한 마
모의정도는 치아의 연령과 매우 모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밖에 먼 옛날 필트다운 인의 '도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강한 의심을품었던 사람들
도 있었다. 서섹스 주의 아마추어 학자들의 모임에는-그 중에는 도우슨의 동료들도 몇 사람
포함되어 있었다-필트다운 인이 가짜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발표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단지 가십거리를 들춰내는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그치는게 아니라 필트다운
인의 사례를 통해 과학 연구의 본질에 관한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면, 우리는 영국 최고의
고생물학자들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 어색한 조작물을 그토록 쉽게 받아들였다는 역설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모두 과학적인 실천과 관련되는 통념적인 신화-사실은 '냉엄'하고모든 것에 선행
하는 것이고, 과학적인 이해는 가장 작은 정보들까지도 끈기 게 수집하고 철저히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증가한다는 믿음-와 긴밀히연결되어 있는 모순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조작극 사건은 과학이란 개인적인 희망이나 문화적인편견, 영예에 대한
욕구 등에 의해 추진될 수 있으며, 또한 실수나 잘못으로인해 엉뚱한 경로를 거치는 과정에
서 자연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수 있도록 하는 인간 활동의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시사해주었다.
강렬한 희망에 영합해 벌어진 사기 행각: 필트다운 사건이 일어나기전에 영국의 고인류학
자들은 오늘날 지구 밖 생물체를 찾는 연구자들이빠져들고 있는 것과 같은 수렁 속에 빠져
있었다.
직접적인 증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끝없는 추측의 악순환이 거듭되었던것이다. 인간의 세
공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약간의 부싯돌 '문화'라든가,오래된 사력층 속에서 발견되었
지만 극히 최근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몇 개의 뼛조각을 제외하고 영국인들은 과거의
선조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 비해 프랑스 인은 풍부한 숫자의 네안데르탈 인, 크로마뇽 인, 그리고그들과 연관된
미술 작품과 도구 등으로 풍성한 축복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의인류학자들은 이렇듯 비교조
차 안 되는 증거물의 풍부함으로 영국인의 코를납작하게 만들었고, 은근히 그 사실을 즐기
고 있었다. 이런 형국을 역전시키는데 필트다운 인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필트다운 인은 시기적으로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만약 필트타운 인이 눈썹 부위가 돌출한 네안데르탈 인이 출현하기 수십만 년전에 이미 충
분히 근대적인 두개를 가지고 있었다면, 필트다운 인이 우리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선조일
가능성이 높고 프랑스의 네안데르탈 인은 그 곁가지가되는 셈이었다. 스미스 우드워드는 이
렇게 공언했다. "현생 인류는 필트다운의 두개가 처음으로 그 증거를 제공한 원시적인 뿌리
로부터 직접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데 비해 네안데르탈 인은 초기 인류의 퇴화한 곁가지
에 불과하다."
필트다운 인의 주석 자들은 종종 이러한 국제적인 경쟁을 언급한 반면, 이와마찬가지로
중요한 그 밖의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서는 별반 주목하지 않았다.
문화적 편견 때문에 상쇄된 이형성: 유인원의 아래턱뼈에 인간의 두개를 가졌다면 오늘날
에는 누구나 그 심한 불균형을 한번 의심해 보았을것이다. 그러나 1913년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상당수저명한 고생물학자들이 인류 진화에서 보이는 '뇌의 선행성
brainprimacy'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문화적인 요소가 농후한 것이었다. 그 관점은 오늘날에 역점을두는 역사적 우선성
historical Priority에서 기인한 잘못된 추정 결과 생겨난 것이다. 즉 우리들은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므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뇌는 우리들 신체 다른 부분이 변형되기 전에 먼저
커졌으며 다른 신체 변형을야기시킨 원인이 된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현생 인류의 것에 가까운 커진 뇌와 원숭이와 흡사한 몸을 동시에갖춘 선조의 화
석이 발견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공교롭게도자연은 반대의 길을 택했다.
우리들의 가장 오래된 선조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테쿠스는 완전히 직립했지만 뇌는 여전히
작았다). 그러한 이유로 필트다운 인은학자들 사이에 널리 예상되고 기대되었던 선조의 모
습과 정확히 부합되는 것이었다.
그래프튼 엘리엇 스미스는 1924년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필트다운 인의 머리뼈가 그토록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뇌가 인류의 진화를
선도했다는 관점을 실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정신 구조의 풍부함에 힘입어 원숭이
상태에서 출현하였다는것은 더할 나위 없이 자명한 진실이다... 뇌는, 턱뼈나 안면, 그리고
신체가 아직까지 인류의 유인원 선조의 조잡한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시대에 인간의
수준라고 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다.
바꿔 말하면 최초의 인류는... 지나치게 큰 뇌를 가진 유인원에 불과했다. 필트다운 인의
두개가 갖는 중요성은 그것이 이러한추론에 명백한 확증을 준다는 점이다.
또한 필트다운 인은 유럽의 백인들 사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생각되던, 인종과 연
관된 몇 가지 관점을 뒷받침해주었다. 필트다운의사력층과 거의 같은 연대로 추정되는 중국
의 지층에서 북경 원인이 발견되자,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필트다운 인을 근거로
백인이훨씬 오래 전부터 출현했음을 주장하는 백인 우월주의적인 계통수가 문헌 속에 등장
하기 시작했다(필트다운 인의 진실성을 가장 앞장서서 주장했던 스미스 우드워드, 키스 등
의 학자들은 이러한 계통수를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북경 원인(처음에는 시난트로푸스(Sinanthropus라고 불렸지만, 지금은호모 에렉투스Homo
erecfus로 인정되고 있다)은 현대인의 2/3)정도의 뇌를가지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살았는데
비해, 필트다운 인은 완전히 발달한뇌를 가지고 영국에 살고 있었다. 만약 최초의 영국인인
필트다운 인이백인종의 선조이고 그 밖의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의 선조가 호모에렉투스
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백인은 다른 인종보다 훨씬 앞서 완전한인류에 도달하는 문턱을 넘
어선 셈이 된다.
이러한 고상한 상태로 더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백인은 문명의 여러가지 기술에서 필
연적으로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실을 기대되는 일에 끼워 맞춤으로써 상쇄된 이형성: 우리들은 필트다운 인이 사람의
두개골과 유인원의 아래턱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알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과학자들이
난처한 변칙이나 이형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검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는사례이다.
C. E. 스미스를 비롯한 그 밖의 사람들은 인류가 뇌를 향해'진화적인 경주'를 벌인 것으
로 주장하고 있지만, 너무나 완벽해서 아래턱뼈가변화하기 전에 뇌가 완전히 사람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어야만 하는 뇌의 독립성에대해서까지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트다
운 인은 사실이기에는지나치게 훌륭했다.
키스가 바이덴라이히에게 보낸 조롱이 옳다면, 필트다운 인을 지지하는학자들은 인간의
두개골에 유인원의 아래턱뼈가 붙어 있다는 해괴하기 짝없는사실에 맞는 이론을 억지로 만
들어 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그들은 '사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것은, 정보라는 것은 언제나문화나 희망이나 기대라는 강력한 필터를 통과한 다음에야 사람
들의 귀에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증이다.
필트다운 유적에 대한 '순수'한 기록에 나타나는 불변의 주제로서우리는 그 두개가 매우
현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원숭이와 같은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스미스 우드워드는 처음에 뇌 용적을 약 1,070cc(현대인의 뇌 용적은평균 1,400내
지 1,500정도이다)로 추정했으며, 그래프튼 엘리엇 스미스는1913년의 최초의 논문에서 뇌의
주형cast을 기술하면서, 현대인 뇌의고등한 정신 능력을 나타내는 영역이 필트다운 인의 뇌
에서부터 확대되었다고 하는 분명한 징후를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결론맺었다 "우리들은 이것을 지금까지 기록된 것 가운데가장 원시적이고 또
한 가장 원숭이적인 사람의 뇌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 뇌는 그 소유자가 동물계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분명히 말해주는 아
래턱뼈와 그 동일 개체 속에서 쌍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예상과 일치한다." 오클리의 폭로
가 있기 1년 전, 아서 키스 경은 최후의 중요한저작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이마는 오랑우탄의 그것과 닮았고, 눈자위 위가 돌출되지 않았다. 그모형으로 볼 때
전두골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르네오나 수마트라에 서식하는오랑우탄의 전두골과 유사하
다."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도 눈구멍 윗부분의돌기, 즉 눈썹 부분의 돌출이 미약하다는 사실
을 덧붙여둔다.
다른 한편 아래턱뼈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이러한 유인원적인 턱뼈로보기에는 현저히 인
간적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특징을 발견했다(치아의위조된 마모 외에도). 키스 경은 치아의
경우에 원숭이보다도 사람과 비슷한 모양으로 턱뼈에 박혀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하
고 있다.
관행에 의해 방해받은 발견: 그 무렵 대영박물관은 누구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소장
한 표본을 공개 보관하고 있었다. 이것은 최근에야볼 수 있는 반가운 경향으로서, 주요 연구
박물관에서 완고한 태도를(문자 그대로, 그리고 비 유적으로도) 제거시키는 데 선구적인 기
여를 했다.
도서 관리를 빙자하여 이용자들의 도서 이용을 막는 도서관 직원의상투적인 방법과 마찬
가지로 필트다운 인의 관리자들은 실제 유골에 접근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외부 연구자가 그 뼈를 보는것은 대개 허용되었지만 만지는 것은 금지되었다.
석고로 만든 모형만이 접촉할 수 있었다. 그 모형은 비율이나 미세한부분까지 정확히 복
제해낸 데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지만,이 조작극의 전모가 밝혀지기 위해서는
실물에 대한 접근이 반드시 필요했었다.
인공 착색이나 치아의 마모 등은 석고 모형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스 리키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이 책을 1972년에 쓰면서 필트다운 인의 위조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에 대
해 자문할 때, 스미스 우드워드의 후계자인 배서Bather 박사를 처음 만나러 간 1933년의 일
이 기억난다... 나는그에게 초기 인류에 관한 교과서의 원고를 준비하기 위해 필트다운의 화
석을 자세히 조사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지하실로 안내되어 그 표본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금고 속에서 꺼내져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리고 각각의 화석 옆에는 훌륭한 모형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실물에 손 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단지 그것들을 눈으로 보고,모형이 정말 훌륭
한 복제라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갑작스럽게 실물이 치워져 금고에 다
시 넣어졌다. 오전중의 나머지 시간 동안모형만이 조사를 위해 남겨졌다.
그곳을 찾은 외부 연구자들은 모두 이러한 조건하에 필트다운 표본을 조사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은 그 표본이 내 친구나 현재의 케네스 오클리에 의해 관리된 후에야 바뀌게 되었
다. 오클리에는 그 파편들을마치 왕관에 박힌 보석처럼 소중하게 다룰 게 아니라 중요한 화
석정도로간주해야 한다고-조심스럽게 관리는 하지만 거기에서 최대 한도의 과학적증거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생각하고 있었다.
헨리 페어필드 오스본은 별로 너그러운 인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인간, 파르나소스에 오
르다.'(1927년)라는 인류 진보의 역사적 과정을 이야기한저작 속에서 스미스 우드워드에 대
해 거의 비굴할 정도로 경의를 바치고 있다.
그는 1921년에 대영박물관을 방문할 때까지만 해도 회의적이었다. 그해 6월 24일일요일
아침,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예배에 참석한 후" 오스본은 "지금은 그 증
거가 충분히 입증된 대영제국의 "최초의 인간"의 유물화석을 보기 위해 대영박물관으로 향
했다.(그는 뉴욕의 자연사박물관 관장이라는자격으로 그 유뮬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서 오스본은 완전히 입장을 바꾸어 필트다운 인의 유골을 "선사 시대인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자연계가 역설로 가득 차 있으며, 우주의 질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정작 오스본은 두 가지 수준의 질서가운데 인간의 질서
밖에는-즉 속임수에 불과한 희극과, 그보다 더 파악하기는힘들지만 자연에 대한 이론에 불
가피하게 부과되는 미묘한 질서-보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인간의 질서가 우리와 우주와의 상호 관계를 완전히 덮어씌운다는사실로 비
관하지 않는다. 그 베일이 아무리 질긴 직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결국은 반투명이어서 내
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후기
필트다운 사건이 사람들에게 갖는 매력은 앞으로도 약해질 것 같지 않다. 이글이 1979년
3월에 처음 발표된 후, 찬반 양론의 편지가 쏟아졌다. 물론 그 핵심적인쟁점은 테야르에 관
한 것이었다. 사실 나의 원래 의도는 도우슨이 단독으로 이 일을저질렀다고 보는게 가장 사
실에 가깝다고 지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테야르에 대한의혹을 길게 조목조목 지적할 생각
이 아니었다. 도우슨에게 불리한 설명은 이미바이너가 훌륭하게 제기했고, 나로서는 굳이 덭
불일 이야기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바이너의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또한 나는
만일 유일한 합리적인 대안이 있다면(내 견해로는 제2의 필트다운의 발굴현장에서 도우슨이
연루된 게 확실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은 공동 모의-즉다른 한 사람이 도우슨에게
협력했다는-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으로는솔러스나 G. E. 스미스 자신을 포함하
는 다른 후보들에 대한 최근의 관점들은 모두결코 있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인 것 같
다.
따라서 나로서는 처음부터 도우슨과 함께 지낸 것으로 확인된 한 사람의 학자에게만왜 유
독 주의가 집중되지 않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척추 동물 고생물학계에서테야르의 뛰
어난 몇몇 동료 학자들이 그가 연루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자신들의생각을 숨겼기-또는 공
개적으로 이야기는 했어도 마치 암호처럼 애매하게 표현했기-때문이다.
1979년 12월 3일, 애슐리 몬터규는 내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오클
리의 폭로가 있은 직후 자신이 그 소식을 테야르에게 전했는데, 테야르는 이에대해 전혀 사
건의 내막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테야르에대해서는 당신의
견해가 잘못됐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잘압니다. 그 뉴스가 '뉴욕 타
임즈'지에 보도된 다음날, 그 못된 속임수를 그에게 처음알린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그의
반응이 가장이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장본인이 도우슨이라는데 추호의 의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작년 9월 파
리에서 피에르 P. 그라세, 장 피보트를 비롯해 테야르의 동시대인이자 동료 학자였던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모두 테야르가공범자였다고 보는 관점을 터무니없
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후일 예수회의프랑수아 뤼소 신부는 케네스 P. 오클리
가 조작극을 폭로한 후에 테야르가 오클리에게쓴 편지의 사본을 내게 보내주었다. 그는 그
편지 사본이 자기와 같은 수도회 신자에대한 나의 의심을 완화시켜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거꾸로 나의 의심은 더 강해졌다. 그 편지에서 테야르는 치명적인 과실을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정'이라는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나는영국으로 가서
1980년 4월 16일에 케네스 오클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테야르가 자신에게 보낸 그 밖의 편
지들을 보여주었고, 그 밖의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서도나와 견해를 같이했다. 이제 나는 증
거라는 저울이 필트다운의 음모에서 테야르가 도우슨의 공범자였다는 쪽으로 확실히 기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전모를 머지않아 '내추럴 히스토리'지에 밝힐 작정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테
야르가 오클리에게 보낸 최초의 편지로부터 얻은 심증만을 언급하기로 하겠다.
테야르는 만족스러움을 나타내면서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 "필트다운문제를 귀하가해결하
실 수 있었던 데 대해 마음으로부터 축하를 보냅니다. ... 감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그것은
나의 가장 빛나는 청년 시절의 고생물학상의 기억 가운데 하나를 손상시키는것임에도 불구
하고 귀하의 결론에는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리학적인 수수께끼'라든
지 누가 그 일을 한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계속 써 내려갔다.
그 후보에서 스미스 에드워드를 제외한다는 점에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일치했지
만, 다른 한편 도우슨에 관해서는 그의 성격이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연루
시키는 데 반대했다.
"그는 올곧고 정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 게다가 아서 경에 대한 깊은 우정으로볼 때,
그가 자기의 친구를 수년간 계획적으로 속이고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않습니다. 우리
들이 현장에 있을 때, 나는 그의 거동에서 어떤 의심스러운 점도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테야
르는 이 사건 전체가 우발적으로 어떤 아마추어 수집가가유인원의 뼈를 인간의 머리뼈 파편
이 포함되어 있는 자갈더미에 버렸기 때문에발생한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도 인정하
듯이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로편지를 끝냈다.
(그러나 테야르는 이러한 가설을 가지고 2마일 떨어진 필트다운의 두 번째 현장에서유인
원과 인간이라는 같은 조합을 가진 머리뼈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테야르의 실책은 필트다운의 두 번째 발견물
에 관한 기술 속에 있다. 그는 다음과같이 쓰고 있다. "도우슨은 두 번째 발굴 지점 현장으
로 나를 데리고 가서 벌판의표면에 모아놓은 자갈의 퇴적더미 위에서 어금니 하나와 작은
머리뼈 조각 몇 개를발견했다고 내게 설명해주었습니다.(원문대로)"
지금 우리는 도우슨이 테야르를 두 번째 현장으로 데리고 간 것이 1913년의 조사여행이었
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문헌 목록의 바이너 참조). 또한 그는 1914년에 스미스 우드워드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두 차례의 여행에서 발견해낸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914년 1
월 20일, 도우슨은 스미스 우드워드에게 편지를써서 머리뼈의 파편을 두 개 발견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1915년 7월에그는 어금니 하나를 발견한 낭보를 다시 써서 보냈다.
스미스 우드워드는 도우슨이 1915년에 이들 표본을 발굴했다고 추정하고 있다(출판물 속
에서 그렇게 쓰고 있다. 문헌 목록의 바이너 참조). 도우슨은 1915년 말경중병을 얻어 이듬
해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스미스 우드워드는 두 번째 발견물에 관해 그 이상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대목이 있다. 앞서 인용한 편지 속에서 테야
르는 도우슨이두 번째 장소에서 발굴된 치아와 머리뼈 파편에 대해 자신에게 이야기했다고
분명히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클로드 큐에노가 쓴 테야르의 전기에는 테야르가 1914년 12월에 징병소집을 받았
고, 1915년 1월 22일에는 전선에 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우슨이 그 어금니를 1915
년 7월에야 최초로 '공식적으로' 발견한 것이라면,또한 테야르가 '이 조작극에 관여하지 않
았다면' 어떻게 그는 그 발견 사실을알고 있었을까?
나는 도우슨이 1913년에 결백한 테야르에게 그 화석을 보여주었으면서스미스 우드워드에
게는 그로부터 2년 동안 알리지 않았다-특히 1914년에 있었던이틀에 걸친 현지 조사 동안
두 번째 발견 장소에 스미스 우드워드를 데리고 간후에도-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테야르와 스미스우드워드는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의 노트를 비교하
는 일은 언제든지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도우슨에게 이러한 모순이 있었다면,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은완전히 드러났을 것이다.
두 번째로 테야르는 오클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1911년에 처음 도우슨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도우슨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필트다운에서 세 번이나 네
번 가량 그와 아서 경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911년에 헤이스팅스 근처의 채
석장에서우연히 만난 후로)." 그러나 테야르가 1909년 봄이나 여름에 처음으로도우슨을 만
난 것은 확실하다(문헌 목록의 바이너 참조). 도우슨은 테야르를 스미스 우드워드에게 소개
시켰다.
테야르는 1909년 말엽에 초기 포유류의 희귀한 치아 한 개를 포함해서 그가지금까지 발견
한 몇 개의 화석을 스미스 우드워드에게 맡겼다. 스미스 우드워드는이 자료에 대해 1911년
에 런던 지질학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고, 강연 후 있었던 토론에서 도우슨은 1909년
이래 테야르와 다른 한 사람의 목사로부터 받은 '인내심 강하고 숙련된 도움'에 대해 사의
를 표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1911년에 처음 만났다하더라도
공모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도우슨은 필트다운 인머리뼈의 최초의 조각을 1911
년 가을에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노무자가 '몇 년' 전에 그 파편을 자신에게 주었다
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40년이 지나 그 사건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던 사람을 상대로 2년간
의 오차를 꼬투리 잡을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도우슨의 발견 직후에 처음 만났다는 늦은(그리고 잘못된) 날짜는확실히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흥미로운 의문을 밀어두고 이 에세이의
원래 주제-맨 처음에 그 발견을 모두 받아들인이유는 무엇인가-에 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나의 동료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최초의 주장이 제기된 무렵인 1913년 11월 13일자의 '네이
처'(영국의 과학 잡지/옮긴이)에 나와 있는 흥미로운 기사를 보내주었다.
그 기사에서 런던 대학 킹스 칼리지의 데이비드 워터슨는 정확하게(또한 확실하게)그 머
리뼈는 인간의 것이고, 아래턱뼈는 유인원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이 아래턱뼈와 머리뼈를 동일 개체의 것으로 간주하는것은 침팬지의 발을 본질적으
로 인간의 다리나 넙적다리뼈에 이어 붙이는것만큼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 처음부터
올바른 설명이 있어왔지만 기대와열망, 그리고 편견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
운 일이었다.
제11장 인류진화의 가장 큰 한 걸음
얼마 전에 발간된 졸저 '다윈 이후'라는 책 가운데 인류 진화를 다룬 6장의 첫머리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최근 들어 선행 인류의 새로운 주요 화석들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있어 어떠한 강의 노트
도 본질적으로 비 합리적인, 경제 분야에서 쓰이는 '계획적인 진부화'라는 용어가 적용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매년이 주제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나는 낡은 강의철을 열고 그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을 들어내 가까운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그러면 이제 그 주제에 대해 다시
시작하기로 하자.
나는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점이 무척이나 기쁘다. 같은 책 같은 장의 뒷부분에서 폈던
주장을 취소하면서 이 구절을 다시 인용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 글에서 나는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호미니드Hominid(사람과의 동물/옮
긴이) 화석-335만 년에서 375만 년 전의치아와 턱뼈-을 메리 리키가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에서 남쪽으로30마일 떨어진 라에톨리Laetoli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메리
리키는 그 유물들이 우리들과 같은 호모속 동물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내가 알기로
그녀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따라서 나는 그 글에서, 뇌는 작지만 완전한 직립 자세를 취하고 있는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서 시작하여 그보다 더 큰 뇌를 가진 호모에 이르기까지의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진화
경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 진화의 계통수 속에서 하
나의 곁가지에 불과하다는주장 등을 제기했다.
그 후 1979년 초, 시대적으로는 사람과에 속하는 어떤 화석보다도 오래되었고, 외견상으로
는 훨씬 더 원시적인 새로운 종이-돈 요한슨과팀 화이트에 의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
렌시스거Australopithecusafarensis'라고 명명된-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여러 신문에 떠들썩하
게보도되었다.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는 우리들 현생 인류와 같은 호모속동물이었다는 메리
리키의 주장과,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는 그 밖의 사람과의 화석에는 볼 수 없는 유인원과
흡사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으니 새로운 종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본 요한슨과 화이트의
결정, 이두 가지 주장만큼 차이가 큰 것이 또 있을까?
요한슨과 화이트는 자신들이 발견한 뼈가 무언가 새롭고 근본적으로 다른뼈임에 틀림없다
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리키와요한슨, 그리고 화이트는 동일
한 화석 뼈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논쟁
이 아니라 같은 표본의 해석을둘러싼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요한슨은 1972년부터 1977년에 걸쳐 에티오피아의 아파르Afar 지방에서 조사를 계속했다.
그 결과 훌륭한 호미니드의 화석을 여럿 발굴했다. 아파르 표본은 290만 년에서 330만 년
전의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가장 훌륭한 것은 '루시Lucy'라고 이름 붙여진 한 개체 분량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뼈이다.
그 골격은 40퍼센트 가깝게 발굴되었기 때문에 초기 인류 개체로는 지금까지알려진 어떤
표본보다도 완전에 가까운 것이었다(대부분의 호미니드 화석이끝없는 추측과 가설을 낳았지
만, 실은 턱뼈의 파편이나 두개골 조각에 불과했다).
요한슨과 화이트는 아파르 표본과 메리 리키가 발견한 라에톨리 화석이 형태가 같고 같은
종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아파르와라에톨리의 뼈와 치아는 350만 년 이상 전
이상 전의-그 밖의 아프리카 표본들은 그 후의 것이었다-호미니드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는점도 지적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러한 태곳적 치아와 머리뼈 파편은
그보다새로운 화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인원을 연상시키는 몇 가지 특징을공유하고 있
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라에톨리와 아파르의 유물을 함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파렌시스라는
새로운 종으로 분류하려 했던 것이다.
논쟁은 이제 막 뜨거워지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벌써 세 가지 의견이 발표되었다. 즉 일
부 인류학자들은 다른 특징을 지적하면서 아파르와 라에톨리의 표본이 우리와 같은 호모속
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이 오래된 화석이 호모속보다는 남아프리카나 동아프리카의 후기 오스
트랄로퍼테쿠스에 가깝다는 요한슨과 화이트의 결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종임을 증명해 주는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고,아파르와 라에톨리
화석을 1920년대에 남아프리카의 표본에 대해 명명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라는 종에 넣는 쪽을 더선호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아파르와 라에톨리의
화석에 새로 학명을 붙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요한슨과 화이트의 주장을 지지했다.
해부학에 관해서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니 내 견해는 그다지 중요하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그림을 제시하는 편이 이 글의 모든 단어들보다 더 의미가 있다면-아니 최소한 한
번 보는 편이 천 마디 말에값한다는 등식을 인정한다면 그 절반 정도의 의미는 있다고 인정
할 수있을 것이다-, 아파르 호미니드의 구개 화석은 내게는 분명 '유인원'으로보인다고 말
하지 않을 수 없다(또한 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호칭이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편견을 뒷받침해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슨과 화이트는 아파르의 화석과 라에톨리의 화석이 시간적으로 100만 년이라는 거리
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거의 동일한 것임을 강조한다. 나는대부분의 동물 종이
장기간 각각의 계통을 유지하는 동안 그다지 변화하지 않는다고생각한다. 또한 거의 모든
진화적 변화는 새로운 계통이 선조 계통으로부터 빠른속도로 갈라져 나오는 시기에 높은 밀
도로 일어난다고 믿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7장과 18장을 참조하라. 게다가 나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사다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관목과 같이 여러 갈래로 뻗쳐 나온 것으로 마음속에그리고 있기 때문에,
종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슨과화이트는 그 후에 이루어진 인류
진화에 대해 내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점진론인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두개골 치아, 그리고 분류상의 위치 이러한 것들을 둘러싸고 제기된 여러 가지주장에도
불구하고 아파르의 화석에는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은 더욱 흥미로운특징이 있다. 사실 루시
의 골반과 다리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직립 자세로 걷
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사실은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었지만, 그 내용은 크게 잘
못된 것이었다.
모든 신문이 과거의 정통적인 주장, 즉 큰 뇌와 직립 자세는 필경 뇌가 선도하는협력 관
계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발달해왔다는-콩만한 크기의 뇌를 가진네발짐승에서 상체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반쪽짜리 뇌를 가진 동물로, 그리고 마침내는완전히 직립한 큰 뇌를 갖
춘 호모로-기사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싣고 있었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즈'지 1979년 1월호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2족 보행의진화는, 상
체를 앞으로 구부리고 다리를 질질 끌듯이 걷는 '원인', 즉 지능이유인원보다는 높지만 현생
인류 정도는 아닌 우리들의 중간적인 선행자를 중심으로하는 점진적인 과정이었다고 생각되
어왔다" 적어도 과거 15년간의 우리들 지식에비추어보면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1920년대에 발견된 후 이 호미니드는 비교적 작은 뇌와완전한 직립
자세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현대인의 1/3정도의
뇌를 가졌고 완전한 직립 보행자세였다. 몸의 크기가 작았다고생각한 잘못된 견해는 바로잡
혔지만 뇌의 크기가 현대인과 크게 달랐다는 사실은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문헌을 조사해보면 작은 뇌와 직립 자세를 갖춘 이러한 '예외'적인 것은 오랫동안중요한
문제가 되어왔고 주요 문헌들은 모두 예외없이 이 주제를 각별히 다루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종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으로 뇌의확대보다
직립 자세가 역사적으로 선행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그것은, 다른 두
가지 사고 방식과 관련하여 대단히 참신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무언가를, 그리고 기묘하게
도 신문기사에서는 빠져 있거나 직립 자세가 선도한것인지 아닌지와 연관된 잘못된 보도 속
에 묻혀버린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완전한 직립 보행이약 400만년
전에 벌써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루시의 골반구조로 아파르 화석이
2족 직립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주목할 만한 발자
국은 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 후의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250만 년이상으로까지는 거슬
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직립 보행의역사를 약 15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 셈이다.
이러한 시간적인 연장이 갖는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논의를잠깐 중단하고
생물학의 반대쪽 끝으로-동물의 화석에서 분자의 수준으로-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과거
15년 동안 분자 진화 연구자들은 다종 다양한생물이 갖는 동일한 효소와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에 관해 엄청난 자료를축적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기초로 놀라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가령 화석 자료 속에서 공통의 선조로부터 분리된 연대를 확실히 판정할수 있는 한 쌍의
종을 분리시킨 결과, 우리는 이 양자 간의 아미노산 차이가두 종이 서로 갈라진 이후의 시
간과 놀랄 만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양계통의 격리 기간이 길면 길수록 다른 분자의
숫자가 많아진다-사실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이러한 규칙성을 기초로 특정 선조로부터 유래했음을 알려주는 명확한화석 증거가 없는
두 종이 분기한 시기를 예측하는 분자 시계가 고안되었다. 이시계는 고급 시계처럼 정확하
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어떤 저명한 지지자는그것을 '형편없는 시계' 라고 부르기도 한
다-그렇다고 완전히 틀리는 경우도좀처럼 없다.
다윈주의자들은 대체로 그 시계의 정확성에 무척 놀랐다. 왜냐하면자연 선택은 서로 다른
계통에 대해 서로 다른 시기에 여러 가지 속도로,다시 말해 급속히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야 하는 복잡한 생물에게는 무척빠르게 작용하고, 환경에 잘 적응한 안정된 개체군에게는
아주느리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이 개체군 진화에서 가장 우세한 원인이라면, 선택의 속도가웬만큼 일정하지 않
는 한-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사고 방식에 따르면 선택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유전적인
변화와 시간과의 높은 상관 관계를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윈주의자들은 장구한
시간 척도로 볼 때는선택 속도의 불규칙성은 대체로 평준화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변칙
적인예외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선택은 몇 세대 동안만 격렬하게 진행되고 그 후의 특정 시기 동안 전혀나타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기간에 걸친 평균적인 순변화는규칙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윈주의자들은 분자 시계의 규칙성이자연 선택에 의해 중재되지 않는 진화 과정, 즉 중립적
인 돌연 변이의 임의적인고정을 나타낼지도 모른다는 문제에도 직면하게 되었다(이러한 여
러 가지 '뜨거운'주제들은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이 허락되는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겠다).
어쨌든 인간과 현생 아프리카 유인원(고릴라와 침팬지) 사이의 아미노산 차이에 대한 조
사는 대단히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형태적으로는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조사된 사람과 유인원의 유전자는 거의 동일하다. 인간과 아프리카 유인원의 아미노산 배열
의 차이는평균 1퍼센트(정확하게 이야기하면 0.8퍼센트)이다. 이것은 분자 시계상공통의 선
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500만 년간의 기간에 상응한다.
이 사실을 발견한 버클리 대학의 생물학자 앨런 윌슨과 빈센트 사리치는 조사 과정의 오
차를 고려해 600만 년까지 받아들이지만 그 이상은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만약 이
시계가 옳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호미니드 선조의 이론상의 한계에 간신히
포함되는셈이다.
최근까지 인류학자들은 널리 인정된 일반적인 규칙에 호미니드가 유일한 예외를 제공한다
고 우기면서 이 시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분자 시계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1400만 년보다 오래된 턱뼈 파편으로 알려진 라마
피테쿠스Ramapithecus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발견된 화석 동물 때문이다. 많은 인류학
자들은 라마피테쿠스가 유인원과 인간의 경계에서 인간 쪽에 더 가깝다고-다시 말하면 유
인원과 호미니드의 분기는 1400만 년 전에 일어났다고-주장했다.
그러나 치아와 그것의 비율에 관한 전문적인 주장에 근거하는 이 견해는최근 들어 설득력
을 잃어가고 있다. 이전에 라마피테쿠스가 호미니드라고 믿었던가장 강력한 지지자들 가운
데 일부마저 이제 그것을 유인원으로, 또는유인원과 인간의 공통 선조에게 가깝기는 하지만
아직 분기하기 전 단계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자 시계는 너무도 정확해서 턱뼈의 파편에 관련한 가설적인 주장을 펴는정도로는 간단
히 도외시될 수 없다(지금 나는 2, 3년 전에 앨런 윌슨과주고받은 10달러 내기에 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는 너그럽게도 유인원과인간의 가장 오래된 공통 선조의 연대로 최대한 700
만 년까지 인정해주었지만나는 그 이상을 주장했었다. 아직까지는 10달러를 주지 않았지만,
내가 이길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결국 나는 1980년 1월에 그에게 10달러를 지불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90년대를 맞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니까).
이제 우리는 인류에 관한 견해를 바로잡기 위해 세 가지 측면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나이와직립 자세의 문제, 분자 시계로 측정한 유
인원과 인간의 분리 문제, 라마피테쿠스를 호미니드에서 몰아내는 문제라는 세 가지이다.
자연계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보다 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진화에 대
해서 뇌를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관점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기 진화학자들은
뇌의 확대가 인간 골격의 현저한변화보다 먼저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10장의 G.
E 스미스의견해를 참조하라. 스미스가 필트다운 인이 실재한다고 확신한 것은 뇌의선행성을
신봉하는, 거의 열광적인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에른스트 해켈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이르는 수많은 뛰어난진화론자와 철학자
의 예언대로 1920년대에 이르자 작은 뇌를 가진 직립 자세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
누스가 그러한 독단론을 종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의 선행성' (나는 이렇게 부르기를 좋아한다)은 지금도 겉모습만
바꾼 채 계속 주장되고 있다. 진화학자들은 직립 자세에역사적인 선행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이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났으며, 진정한 불연속-우리를 완전히 인간
답게 만든도약-은 훨씬 뒤에, 즉 인류의 뇌가 일찍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진화 속
도로 약 100만 년 동안 무려 3배 가량의 크기에 도달하게 됐을 때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
다.
한 유명한 전문가가 약 10년 전에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살펴보자.
"호모속 대뇌 형성에서의 큰 비약은 2족 보행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손의 완성 등을 향한 약
1000만 년에 걸친 예비적 진화가 계속된 뒤에 과거 200만 년 안에 일어났다." 커스틀러 경
은 최근에 발간된 저서 '야누스'에서 이러한 인간다움humanity을 향한 대뇌의 도약이라는
사고 방식을 터무니없는 억측의 수준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커스틀러는 인간의 뇌가 매우 급속히 커졌기 때문에 고뇌나 이성의자리인 바깥충의 대뇌
피질이 뇌의 심부에 위치하는 정서적이고 동물적인중추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
다. 이 원시적인 야수성이 전쟁이나살인, 그 밖의 여러 가지 해악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들이 인류 진화의 결정적인 요인으로서 직립 자세의 획득과뇌의 확대에 두는 상
대적인 중요성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직립 자세를
쉽게 얻은 점진적인 경향으로생각한 데 비해 뇌의 크기 증대는 놀랄 만큼 급격히 일어난 불
연속적인현상-진화 양식으로 보나 그 영향의 심대함으로 보나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
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싶다. 실제로 직립 자세는 경이로움그 자체이며, 우
리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가 빠른 속도로 근본적으로 재구성된결과 나타난 극히 일어나기 힘
든 사건이었다. 그 뒤에 일어난 뇌의 확대과정은 해부학 용어로는 2차적 부수 현상에 해당
하며, 인류 진화의 전체 패턴속에 이미 깊숙이 묻혀 있던 쉬운 변형이다.
분자 시계가 정확하다면, 최대 600만 년 전에(윌슨이나 사리치는 500만년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들은 고릴라와 침팬지와 함께 최후의공통 선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그 공통의 선조는 대개 네 발로걷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유인원이나
원숭이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두발로 걸어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 후 약 100만년이 지나자 이미 우리들의 선조는 여러분이나 나와 마찬가지로2족 보행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 일어난 뇌의 확대 과정이 아닌 바로 이 2족보행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
서의 가장 큰 단속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2족 보행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신체의 해부학적인구조, 그
중에서도 특히 발과 골반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2족 보행은 인류 진
화의 전체적인 패턴과는 달리 해부학적인 재구성을 나타내고있다. 9장에서 미키 마우스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네오테닉'한 동물이다.
즉 우리들은 선조들이 지녔던 유년기의 특징을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유지하는방향으로 진
화해왔던 것이다.
인간의 큰 뇌, 작은 턱뼈, 몸에 난 털의 분포, 질구가 배 쪽을 향하고 있는 점등 수많은
특징은 유년기의 특징이 영구화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직립자세는 그와 다른 문제다.
직립 자세는 유년기에 나타난 어떤 특징이 그대로유지되는 식의 '용이한' 경로를 통해 완성
될 수 없다. 아기의 다리는 상대적으로작고 연약한 데 비해 2족 자세는 강하고 긴 다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이르러 직립하게 되었을 때게임은 이미 끝난 셈
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에 이미 신체 구조의 주요한개조는 이미 완료되었고, 후속되는 변화
를 일으키기 위한 방아쇠는이미 당겨진 것이다. 이후 인류의 뇌가 커진 과정은 해부학적으
로 그리어렵지 않았다.
우리들은 태아기의 빠른 성장 속도를 이후까지 연장시킴으로써, 그리고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 영장류 두개골의 특징적인 비율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우리의 더 커진 뇌를 우리 자
신의 성장 프로그램에서 제외시킨다. 일반적인패턴의 모든 부분들과 그 밖의 네오테닉한 특
징과의 조화 속에서 우리의 뇌는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추론의 오류-결과적으로 나타난 크기와, 원인의 강도 사이
의 관계를 잘못 나타낸 방정식-를 피하면서 이장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순수하게
몸의 구조가 개조되는 문제인 직립 자세는 광대한 범위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인 문제이고,
뇌가커진 것은 표면적이고 이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뇌가 커짐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그 형성 과정의 상대적인용이함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이적인 것은 복잡계가-그 중에서도인간의 뇌는 가장 두드러진
경우이다-갖는 전체적 성질, 즉 그 구조에서단지 양적인 것에 불과한 변화를 놀랄 만큼 다
양한 특성을 갖은 기능으로 옮겨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다.
지금은 새벽 두 시다. 이제야 간신히 이 장을 마치게 되었다. 냉장고에 가서 맥주를 한잔
해야겠다. 그리고 잠을 자러 갈 것이다. 나는 문화에 속박된 동물이기 때문에, 자리에 누워
한 시간 남짓 보는 꿈은 지금부터 내가 바닥에 대해 수직 자세를 취하고 두 발로 걸어가는
동작보다훨씬 경이적인 것이다.
제12장 생명계의 한가운데
뛰어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긴박한 드라마의 전개를 부드럽게 완화시키기 위해 약
간의 유머를 삽입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햄릿'에 나오는 무덤 파는 인부라든
가, 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조신 핑, 퐁, 팡 등은 이후 벌어지
는 괴로움이나 죽음 등에 대해 독자 관객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갖게 하는 기능을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독자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에피소드가 원래는 그처럼 의도된 것이 아닌
경우도 가끔 있다. 시대의 변천이 처음에 있었던문맥상의 전후 관계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
리고, 변모한 오늘날의세계에서 처음에는 의도되지 않았던 말 그 자체가 유머를 갖게 되는
식이다. 그러한 문장이 지질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본격적인 저서인 찰스 라이엘의 '
지질학 원리'(1830년에서 33년에 걸쳐 3권으로 출판됨)에도 나온다. 이 책에서 라이엘은 먼
옛날에 살던 거대한 동물이 다시나타나 지구를 아름답게 장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후 여러 속의 동물들이-그 기념물이 오늘날 여러 대륙의 태곳적 암석 속에 보존되어
있는-되돌아올 것이다. 거대한 이구아노돈(Iguanodon, 백악기의 거대한 파충류 이구아노돈
속의 초식 동물의 총칭/옮긴이)이 삼림에, 어룡(Ichthyosaur, 쥐라기에 전성했던 어룡목에속
하는 물고기 모양의 파충류/옮긴이)이 바다에 나타나는 한편 익룡은 그늘진 양치류 삼림 속
에서 다시 날게 될 것이다.
라이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이러한 이미지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긴하지만, 그의 주장
은 이 위대한 저서의 본질적인 주제에 해당한다.
라이엘은 균일성uniformity이라는 자신의 독자적인 개념, 요컨대 지구는 처음 생성될 때의
충격에서부터 '안정된' 이후까지 거의 똑같은 상태-전 지구적인 대격변도 없고, 그보다 훨
씬 높은 단계를 향한 착실한 전진도 없는 상태-를 유지해왔다는 생각을 제기하기 위해 '지
질학원리'를 쓴 것이다.
공룡의 멸종은 라이엘의 균일설에 대한 도전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공룡은 그보다 고등한
포유류에 의해 대체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이것은 생명계의 역사가 한쪽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라이엘은 공룡이 포유류에 의해 대체된
것은 장구한회귀성 주기('그레이트 이어(Great year. 천문학에서는 플라톤 년이라고도부르
며, 약 2만 5800년을 주기로 한다/옮긴이)')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성을 향해 사다리의 한
계단을 오르는 데 불과하다고 응수했다.
기후는 순환하며, 생명계 역시 기후의 순환을 따라 변화한다. 그러므로다시 '그레이트 이
어'의 여름이 오면 냉혈의 파충류가 다시 나타나 지구를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엘은 균일설에 대한 자신의 열정적인 신념에도 불구하고지구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발전해간다는 자신의 이미지에 비교적 중요한 한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즉 지질학
적 시간의 최후 순간에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인류의 출
현이라는사건을 지구 역사에서 하나의 불연속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한 걸음, 또는 비약이 동물계에 나타나는 규칙적인 변화의 일부인양 가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비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 이 말을 통해 라이엘은 자신의 체계에 가해지는
타격을 완화시키려 했음이 분명하ek. 그는 이러한 불연속이 도덕적인 세계-순수한 물질 세
계에 일어나는 정상 상태의 지속성 붕괴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의 확장-에서 일어나는사
건에만 국한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인간의 몸은 포유류 가운데 있는 롤스로이스와 같은 것으로 간주될수 없다는 뜻이
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어느 동물들보다 인류가 훨씬 존엄성 높은존재라고 말할 때 염두
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을 뿐동물에게는 없는 지적,도덕적 특성이다. 만약 인
간이 추론 능력을갖지 않고 하등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능만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구성
은인간에게 확고한 우월성을 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엘의 주장은 당시 박물학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을-자신이 속한 종
주위에 말뚝 울타리를 둘러치는 식의-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 울타리에는 "여기까지는 접근 가능, 여기서부터는 접근 불가"라고 쓴팻말이 걸려 있다.
우리들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아득한 태고의 성간 먼지에서침팬지에 이르는 모든 것을 남
김없이 포괄해 설명하는 식의 구상에 접한다.
그러고는 하나의 포괄적 체계의 문턱에서 인습적인 자부심과 편견이 끼여들어특이한 영장류
의 한 종에 예외적인 지위를 확보해주는 것이다. 나는 4장에서이와 같은 종류의 실패 사례
에 대해 설명했다.
인간 지성의 특수한 창조 과정, 즉 전적으로 자연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생물계에 비해 인
간의 지성은 유일하게 신의 힘이 개입해 탄생하였음을 인정한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의 주장
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주장은 그 구체적인양상에서 제각기 다르지만 그 의도는 항상 동
일하다. 외도와도 같은 그 급격한비약이란 바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라이엘이 둘러친 울타리의 팻말은 이렇게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정신적인질서, 여기에
서부터 시작되다... 그리고 월리스의 울타리에는 "여기서부터 자연선택은 작용하지 않는다"
라고 씌어 있다.
다른 한편 다윈은 독자적인 사상 혁명을 동물계 전체에 걸쳐 수미 일관적용했다. 그리고
그는 그 혁명을 인간 삶의 가장 미묘한 영역으로까지확장시켰다. 인간 신체의 진화론은 그
야말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소한 인간의 마음만큼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다윈은자신의 연구를
계속 진척시켰다. 그는 인간 감정의 가장 세련된 표현의 기원이동물에게 있다는 주장을 펴
는 데 한 권 모두를 할애한 저서를 발간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묻는다. 감정이 먼저 진화했다면 사고는 훨씬 나중에발생한 것이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주위에 둘러쳐진 울타리는 여러 개의받침대로 지탱되고 있다. 그 중
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기등은 준비와초월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은 자연의 가장 보편적
인 힘들을 초월하고 있을 뿐아니라, 인간의 탄생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모든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에서 인간의 등장을 미리 예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주장 가운데 준비론 쪽이 우리가 떨쳐내기 위해 노력해야할 훨씬 더 의
심스럽고 의미 심장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초월론은,인류라는 특이한 종의 역사가
일찍이 지구상에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여러가지 과정에 의해 지배되어왔다고 단언하고
있다. 7장에서 이야기했듯이문화적인 진화는 인류가 이룬 여러 가지 혁신 중에서도 가장 중
요한 것이다.
그것은 학습을 통한 기술과 지식, 그리고 행동의 전달-문화적인 획득형질의유전-에 의해 진
행된다.
이러한 비생물학적인 과정은 신속한 '라마르크적' 양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데비해 생물학
적인 변화는 빙하의 작용처럼 완만한 다윈적 단계를 밟아 느리게진행되는 것이다. 나는 이
러한 라마르크적 과정의 전개가, 다른 것을 능가한다는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초월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생물학적 진화는 맞지도 않고그 무엇에 의해 패퇴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먼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지속되고 있으며, 여러 문화의 유형을 제약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너무도 완만하기 때문에 현대 문명의 엄청난 변화 속도에큰 영향을 미
치지는 않는다. 그에 비해 준비론은 더 깊은 인간의 오만을드러낸다. 최소한 초월론은 40억
년에 걸친 인류 탄생 이전의 역사를 인류가갖는 특별한 재능의 전조로 간주하도록 강요하지
는 않는다. 우리 인류는 예측불가능한 행운 덕분에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아직까지
도 무언가 새롭고강한 것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준비론은 인류의 뒤늦은 출현의 전조를 그 이전까지의 장구하고 복잡한역사의 모
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도록 이끌고 있다. 고작 지구 역사의10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약 50억 년 가운데 5만 년-기간 동안 지구상에 생존한일개 종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터무니없는 자만과 과장인 셈이다.
라이엘과 월리스 두 사람도 일종의 준비론을 설교했다. 사실상 울타리를 치는데 동조한
모든 사람들이 거의 똑같은 주장을 펼쳤다. 라이엘은 정상 상태로기다리고 있는 지구, 다시
말해 자신의 숭고하고 균일한 설계를 이해하고 제대로평가할 수 있는 지각 있는 생물체의
출현을 열망하는 지구의 모습을 묘사했다.
또한 만년에 심령학 쪽으로 방향을 바꾼 월리스는, 궁극적으로 인체의 진화란그전에 이미
존재하던 마음과 그것을 사용할 능력을 갖춘 신체를 하나로결합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라는 범속한 주장을 전개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정신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우리들은 이 우주를, 무한한 생명과완전성을 갖춘 정신적
존재가 발전하는 데 모든 부분에 걸쳐 적응하는 일관되고 장대한 전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세계-물리적인 구조가매우 복잡하며, 장대한 지질학적 전개 과정을 겪었고, 식
물계와 동물계에서는완만한 진화를 이루었으며, 그리고 종국에는 인류의 출현을 보게 된 이
세계-의총체적이고 유일한 존재이유는 인간의 신체와 결합된 인간 정신의 발달을 위해서임
에 분명하다.
나는 현대의 진화학자들이 모두 월리스가 주장한 준비론이라는-문자 그대로 인간의 예정
-관점을 부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런 주장의 그럴싸한 변형판이 있지 않
을까? 나는 그런 주장이수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계의 역사를 잘못
보는방법 이라고 확신한다.
그 현대판은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예정된 운명이라는 것을 단념하고있다. 다시 말해 그
것은, 원시 박테리아 속에 호모 사피엔스의 싹이 숨어 있었다든지, 어떠한 영적인 힘이 마음
을 받아들일 자격을 갖춘 최초의 몸에 그 마음을 부어 넣을 수 있기를 갈망하면서 생물 진
화를 지도해왔다는 식의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에 현대판 준비론은, 자연 선택은 앞서 있었던 설계 모형도다 더우월한 설계를 형성
하도록 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연스럽게 밀어나는 진화과정은 어떠한 특정 경로를 거친다는
견해를 취한다. 개량이 일어나는 경로들은구성 재료의 성질과 지구의 환경에 의해 엄격히
제약된다. 뛰어난 비행 동물이나 수중 동물, 그리고 주행 동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로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단 하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원시 박테리아의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이 과정을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다면, 진화는 다시금거의 같은 경로를 거치게 될
것이다. 진화는 폭넓고 평탄한 경사면에 물을흘려내리는 것보다 미늘톱니바퀴를 하나씩 돌
리는 것에 더 흡사하다. 그것은밀집한 행진처럼 진행하는 것으로서, 각 단계가 그 과정을 한
단계 높이고각 단계가 다음 단계에 없어서는 안 될 준비 단계가 된다.
생명은 현미경적 화학 현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의식이 존재하기에까지이르렀으니,
그 미늘톱니바퀴에는 일련의 단계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각 단계들은필경 예정이라는 말이
갖는 오래된 의미에서의 '준비'는 아니지만, 그리 놀랍지않은 다음 순서로 이어지는 예측 가
능하고 필연적인 단계들인 것이다. 중요한의미에서 이러한 단계들은 인류가 진화해온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어떤 이유로-설령 그 이유가 신의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공학적인 메커
니즘에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진화가 밀집 행진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진행해온 것이라면, 화석 기록은연속되고 완만한 조직의 발전 패턴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진화적인 미늘톱니바퀴의 상
정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후 21장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생
명은 지구 자체가 형성된 후에 태어났고, 그런 다음 30억 년-지구 전 역사의 약 5/6에 해당
하는 기간-에걸쳐 거의 동일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이 장구한 기간 동안 생명은 원핵 생물의 수준-유성 생식이나 복잡한 신진대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내부 구조(핵, 미토콘드리아 등)을 갖지 않은 박테리아와남조류 세포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약 30억 년 동안 생명의 최고 형태는조 매트algal mat-침전물을 꽁꽁 얽어
매는 원핵 생물인 해초류가 만든 얇은층-였다.
그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6억 년 전에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동물의주요 설계가
수백만 년에 걸쳐 나타났다. 우리는 '캄브리아기의 폭발Cambrianexplosion'이 왜 그 무렵에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건이그때 일어나야 했다거나, 또는 어떤 식
으로든 일어나야 했다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이유도 없다.
과학자들 중에는 산소의 양이 적었다는 사실이 복잡한 동물이 좀더 일찍진화하는 것을 방
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면,미늘톱니바퀴는 여전히 작
동하고 있는 셈이다. 무대는 모든 준비를 마친 채무려 30억 년 동안이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사는 특정 방향으로돌려져야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했다.
따라서 원핵 생물인 광합성생물이 지구의 원시 대기에는 없었던 이 귀중한 기체를 조금씩
공급하기 시작할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제로 지구의 원시 대기에서는 산소가 매우 희박했거나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캄브리아기의 폭발이 일어나기 10억 년 이상 전에광합성에 의해 다
량의 산소가 발생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캄브리아기의 폭발을 애당초 일
어날 필요가 전혀 없었거나, 또는 그런 식으로일어날 필요가 없는 우연한 사건 이상의 것으
로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것이다.
그것은 한 장의 막(세포막)으로 덮힌 원핵 생물의 공생 집단이 진핵성(핵을가진) 세포로
진화해온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진핵성 세포가효율적인 유성 생식을 발달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성이라는 것이다윈적인 과정에 필요한 유전적 변이성을 유포하고
조절했기 때문에 일어난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즉 만약 캄브리아기의 폭발이 실제 기간보다 10억 년 가량 더 오랫동안일어났다면-캄브
리아기의 폭발 이후 생명이 사용한 시간의 약 두 배의 기간이 걸렸다면-미늘톱니바퀴라는
가설은 생명의 역사를 빗대어 표현하는 상징으로는 적절치 못하게 된다.
굳이 은유를 사용해야 한다면, 나는 폭넓고 완만하고 균질한 경사면을 상상하고 싶다. 그
정상 근처에 물방울이 임의적으로 떨어진다. 대개의물방울은 흘러내리는 도중 말라버린다.
그러나 이따금 그 물은 밑까지흘러내려 미래에 강이 될 계곡을 형성하게 된다. 이 경사면에
는이러한 무수한 계곡이 여기저기에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그 계곡들의 위치는 지극히 우연한 것이다. 이런 실험을 여러 차례반복한다면, 경우
에 따라서는 하나의 계곡도 생겨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전혀다른 계곡 체계가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우리는무수한 계곡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펼쳐져 있는
모습이나, 그 계곡들이 바다에 이어진 모습을 바라보면서 해안선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모습 외의 다른 계곡의 모습은 생길수 없다고 생각
하기는 얼마나 쉬운 일인가.
나는 이러한 경사면의 비유에 그 경쟁 상대인 미늘톱니바퀴 비유의차용물이 하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경사면은 정상에떨어지는 물방울에 일정한 방향을 부여한다
대부분의 물방울들이 흐르기 전에말라버리고, 흘러내리는 경우에도 무수한 경로를 따라 흐
르더라도.
그렇다면 최초의 경사면은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어떤 예측 가능성을내포하고 있는 게 아
닐까? 필경 의식의 영역은 이처럼 긴 해안선을 가지고있을 것이기 때문에 무수한 계곡들 중
에서 어느 계곡은 결국 그 해안선에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들은 또 하나의 압력,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압력과 맞닥뜨리게 된
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여기까지 도달하기에는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거의 모든 물방울
은 말라버릴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어떤 계곡이 지구 표면 최초의 경사면에 형성되기 위해
서는 30억년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우리들이 알고 있는 모든 계곡이 형성되기까지는 60억
년, 120억 년 또는 200억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만약 지구의 역사가 영원했다면 우리는 필연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영원하지 않다
천체물리학자인 월리엄 A. 파울러는 태양이 100억 년 내지 120억 년간 존속한 다음 중심
에 있는 수소 연료를 모두 소진할 것이라고 한다.
그 후 태양은 폭발하여 적색 거성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태양은 목성이 공전하고
있는 궤도 이상으로 팽창하여 지구를 삼켜버리게될 것이다.
지구가 태어나서 소멸하기까지 전 기간의 중간 정도의 시점에서 인류가출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인식-우리들을생각에 잠기게 하고 소름끼치게 만드는
종류의 인식-이다. 앞에서 설명했던경사면의 비유가 그 임의성과 예측 불가능성에도 불구하
고 유효하다면, 나는지구가 그토록 복잡한 생명계를 진화시킬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고 결론
내리지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계가 조류 매트 이상으로 발전하기까지는 30억 년이 걸렸다. 지구가 계속존재하는 한
그 다섯 배의 시간이 걸려도 무방할 것이다. 바꿔 말해 만약 우리가 다시 한 번 그 과정을
실험해볼 수 있다면, 우리 태양계에서역사상 가장 엄청난 사건, 즉 태양계의 어머니인 태양
이 연료를 소진해서폭발하는 사건은 그 최고의 무언의 증인을 조류 매트에게서 찾을지도모
르는 일이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도 지구상의 생명계가 맞는 종국적인 파괴에 대해고찰했다(당시 물
리학자들은 태양이 연료를 다 태우고 나면 지구는 얼어붙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시인할 수 없었다. 그는 "좀더 높은 수준의 삶을위해 싸우고 있는
인류의 완만한 진보, 순교자들의 번민, 희생자들의 신음,모든 시대에 만연한 악과 비참하고
부당한 괴로움, 자유를 위한 싸움, 정의를목표로 쏟아 붓는 노력, 덕에 대한 열망, 그리고 인
류의 복지 등 모든 것이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지
워진 엄청난정신적인 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월리스는 이 문제에 대해 영적 생명의 영원성이라는, 진부하기만 한기독교적인 해결
책을 선택했다. "이렇듯 고귀한 발전을 할 수 있을 만한 잠재능력이 있는 존재는... 더욱 높
고 영원한 존재로 미리 운명지어진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나는 감히 다른 주장을 제기하
고 싶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화석무척추 동물의 평균적인 종은 500만 년에서 1천만 년 가
량 존속한다(그 확실성에대해서는 다소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종은
2억 년 이상계속되었다고 한다). 척추 동물 종들의 수명은 더 작은 것이 보통이다.
만약 인류가 지금부터 50억 년 가량 후까지도 살아 남아서 지구의 파멸을목격한다면, 일
찍이 생명계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기쁨에 들떠 기꺼이 '백조의 노래' (백조는 죽을 때 가장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설이 있다/옮긴이)-이 세상의 영화를 떠난다sictransit gloria mundi-를 불러야 할
것이다.
물론 인류는 우주선 군단을 편성해 우주로 날아올라 조금 후에 일어나게 될다음 번 빅뱅
(우주론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원에 해당하는 대폭발/옮긴이)에서야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과학 소설의 열렬한팬이 아니었다.
제4부 과학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다
제13장 넓은 모자와 그 편협한 마음
1961년 2월부터 6월에 걸쳐 조르주 퀴비에 남작의 망령이 파리 인류학회에 출몰했다. 프
랑스 박물학계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까지 불렸던-대단히 뻔뻔스러운 호칭이었지만, 그는 그
호칭을 굳이 거부하려 하지않았다-위대한 퀴비에는 18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육체의 납골당은 폴 브로카와 루이피에르 그라티올레가
뇌의 크기와 지능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논쟁을벌일 무렵까지 존속했다.
논쟁의 첫 라운드에서 그라티올레는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탁월한인물은 큰 머리로 식
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과감히 주장했다(그렇지만 오해하지 말라. 그라티올레는 군
주제의 화신으로서 결코 평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유럽 백인 남성의 우월성을 뒷받침하
기 위한 다른 근거를 제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인류학회의 창설자이자 당시 최고의 두개 계측학자였던 브로카는만약 뇌 크기
의 차이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면 "각 인종의 뇌를 연구하는일은 흥미와 유용성을 모
두 잃게 될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런 질문을던졌다.
자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즉 여러 인종의 상대적가치와 두개골에
대한 계측 결과가 무관하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인류학자들은 지금까지 머리의 크기를 재
는 데 그처럼 막대한 시간을 할애한것일까.
지금까지 인류학회에서 토론된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 지금 우리앞에 놓인 문제만큼 흥
미롭고 중요한 문제는 없다. 두개골학의 중요성은인류학자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주어, 우
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인류학의 다른 영역을 포기하면서까지 두개골 연구에만 헌신해왔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자료 속에서 여러 인종의 지적 가치와 관계되는 모종의 정보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브로카와 그라티올레는 5개월에 걸쳐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훗날 그들 사이의 논쟁을 출
간한 회보는 약 200쪽에 달했다. 논쟁은 때로 격렬한감정적 싸움으로 치닫기도 했다.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브로카의 상관 중 한 사람이 중요한 일격을 가했다. "뇌의 부피가
지능에 대해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작은머리를 가지고 있
음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브로카측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 조르주 퀴비에의 뇌만큼 브로카에게 중요한정보를 제공하는 원
천은 없었고, 또한 그의 뇌 이상으로 빈번한 논쟁의주제이자 폭넓은 토론 대상이 된 것도
없었다.
당시 최고의 해부학자였으며. 동물을 하등한 것에서부터 고등한 것에이르기까지 인간중심
주의적인anthropocentric 사다리 형태로 분류하는게 아니라, 기능에 따라-동물이 어떻게 생
활하는가-분류함으로써 우리들의 동물계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세워준 사람, 퀴비에.
고생물학의 창시자이고, 멸종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히고, 지구와 생물계의역사를 함께 이
해하는 데 필요한 대격변catastrophes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퀴비에.
탈레랑(Talleyrand, 프랑스 정치가로 외상을 지냄/옮긴이)과 마찬가지로대혁명에서 군주제
에 이르는 모든 프랑스 정부에 일관되게 봉사하여 제 명을누리고 자신의 침상 위에서 세상
을 떠난 정치가, 퀴비에(퀴비에는 편지에서자신이 혁명에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대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혁명의가장 떠들썩하던 시기를 노르망디 지방에서 가정 교사를 하며 지
냈다. 그는1795년에야 파리로 나와 그 후 단 한 번도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
최근에 그의 전기를 쓴 F. 부르디에는 퀴비에 신체의 개체 발생을 말하고있지만, 그의 문
장은 퀴비에의 힘과 영향력에 대한 훌륭한 은유를 제공하고있다. "퀴비에는 몸집이 작고, 대
혁명이 진행되던 무렵에는 대단히 여위어있었다. 그런데 제정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리고왕정 복고가 되자 대단히 비만해졌다."
퀴에의 동시대인들은 그의 '큰 머리'에 경탄했다. 어느 숭배자는 그것이 "그의 풍모 전체
에 부정할 수 없는 위엄을 주어서 그의 얼굴은 깊은 명상에빠져 있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고 단언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퀴비에가세상을 떠났을 때, 동료 학자들은 학문적인 흥미
와 호기심으로 그 거대한두개골을 절개해보기로 했다.
1832년 5월 15일 화요일 오전 일곱 시, 당시 프랑스 최고의 의사와생물학자들이 조르주
퀴비에의 사체를 해부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내장부터시작해서 "특히 주목할 것이 없다"
는 사실을 확인한 후 두개골로 관심을 집중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강력한 지능을 가진 기계를 조사하려 하고 있다"라고당시 담당 의사는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는 충분한 보상을 얻었다.
조르주 퀴비에의 뇌 무게는 약 1,830그램으로 평균보다 400그램, 지금까지측정된 정상적인
뇌 중 최대의 것보다도 무려 200그램이나 더 무거웠다.
확인되지 않은 보고나 정확치 않은 추정에 의하면 올리버 크롬웰, 조나단스위프트, 그리고
바이런 경 등의 뇌가 거의 비슷한 크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퀴비에는 뛰어난 지적 능력과 뇌의 크기가 서로 상응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제공한 셈이
다. 그러데 브로카는 논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상당부분을 퀴비에의 뇌에
맞추어 제기했다. 그런데 주장을 상세하게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퀴
비에의 의사들은 너무 놀라고 열광한 나머지 그의 뇌와 두개골을 보존하는 것을 잊고 말았
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두개골에 관한 측정 결과를 기록하지도 않았다. 따라서뇌 무게가 1,830그램
이라는 수치는 검증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수치가잘못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라티올레는 뇌를 대신할 수 있는 대용품을찾으려고 애썼다. 그때 한 가지 영감이 떠올랐
다. "의사들은 항상 사람의 뇌 무게를측정하지는 않지만, 모자만드는 사람은 반드시 고객의
머리 크기를 잰다. 나는이 새로운 정보원을 통해 당신에게 흥미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
는(아니 내가 감히그렇게 바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라티올레는 그 위대한 인물의 뇌에 비하면 지극히 신빙성 없는 물건을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퀴비에의 모자를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하여 두 차례에 걸친논쟁으로 프랑
스 최고의 지식인들은 낡아빠진 펠트 모자가 갖는 의미를 심사숙고한 것이다.
그라티올레는 퀴비에의 모자 치수가 길이 21.8센티미터 폭 18.0센티미터였다고보고했다.
그런 다음 그는 '파리에서 가장 교양 있고 유명한 모자상의 한 사람'인M. 퓨리오라는 인물
에게 자문을 구했다. 퓨리오는 모자의 최대 표준은 21.5센티미터,폭 18.5센티미터였다고 그에
게 말해주었다. 이 정도로 큰 모자를 쓰는 사람은 좀처럼없지만, 퀴비에가 유일한 인물은 아
니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라티올레는 그 모자가"아주 오랫동안 썼기 때문에 부드러워졌다"
는 사실을 자못 유쾌하다는 듯이 보고했다.
퀴비에가 그 모자를 살 때에는 아마 그정도로 크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퀴비에의머리
칼은 예외적일 만큼 숱이 많아서 항상 더부룩한 모습이었다. 그라티올레는이렇게 단언했다.
"이것은, 설령 퀴비에의 머리가 대단히 컸다 하더라도 그 크기가예외적이거나 비길 데 없을
만큼은 아니었음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라티올레의 논적들은 의
사들의 기록을 믿는 쪽을 선택했고, 모직물로된 모자 하나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
부했다. 그 후 20년 이상의 기간이지난 1883년, G 에르베라는 사람이 다시 퀴비에의 뇌 문
제를 들춰내 그 동안주목받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표면화시켰다. 즉 퀴비에의 머리는 분
명 실제로측정되었으며 단지 그 수치가 해부 기록에서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두개골은 매우 컸다. 해부를 위해 그 유명한 두발은 깎여 있었다.
그에게 필적하는 최대의 머리 둘레 치수를 갖는 사람은 '과학자들과 문학자들'가운데 겨우
6퍼센트에 불과했고(그것도 두발을 포함해서 잰 치수로), 시종을들던 하인으로서는 전무했
다.
또한 에르베는 문제의 모직 모자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일화를 소개
했다. "퀴비에는 그의 손님 대기실 테이블 위에 자신의 모자를놔두는 버릇이 있었다. 그를
방문한 다른 교수나 정치가들이 이따금씩 써보면그 모자는 늘 눈 밑까지 내려왔다."
이렇게 해서 '클수록 좋다'는 원칙이 거의 승리할 단계에 이르면서에르베는 브로카가 가
로챈 승리를 목전에서 다시 빼앗아온 것처럼 보였따.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한 것과 마찬가
지로 화가 될 수 있듯이 에르베에게도 문제가 발생했다. 퀴비에의 뇌가 다른 '천재'들의 뇌
를 훨씬상회할 만큼 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는 퀴비에의 해부 기록과 무척 허약했던 젊은 시절의 건강 기록을 샅샅히조사해서 퀴비
에가 '일과성청년성뇌수종transient juvenile hydrocephaly' 이라는길다란 명칭의 질병을 앓
았던 사실을 추측해냈다. 뇌수종이란 말 그대로 뇌에 물이고이는 병이다. 만약 퀴비에의 두
개골이 성장 초기 액체의 압력에 의해 후천적으로확장된 것이라면, 뇌는 정상 크기였던 것
이 크게 발육한 것이 아니라, 밀도를저하시키면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부풀어올랐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확대된 공간이 뇌가 이상 크기로까지 성장하는 것을 허용했을까?
퀴비에의 뇌는 측정 후에 처분되어버렸기 때문에 에르베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해결할 수 없
었다. 남아 있는 것은 1,830그램이라는 숫자뿐이었다. '퀴비에의 뇌가 손실되면서 과학은 지
금까지 얻은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를 잃었다"라고에르베는 쓰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이야기는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처럼 들린다.
프랑스 최고의 인류학자들이 죽어 세상을 떠난 동료 학자의 모자가갖는 의미를 둘러싸고 격
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역사를 볼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위험한 추측, 즉 과거를 소박
한 얼간이들의 영역으로보고, 역사의 길을 진보하는 것으로 보고, 그리고 현재를 세련되고
개화된 세계로 보는 관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넘기고 만다면, 우리는 결코사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이야기할수 있는 한 인간의 지적 능력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만약옛날의 지적인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문제에엄청난 정력을 기울였다면, 잘못된 것은 그들의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이해이지 그들
의 인식 자체가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무의미한 사태의 표준적인 예로 곧잘 인용되는 사례-바늘대가리에 천사가
몇 명 올라갈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도 실제로는신학자들이 5명인가 18명인가 하는 사
람의 숫자를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라,하나의 바늘이 유한의 수를 수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무한의 수를 수용할 수있는지를 놓고 벌인 '논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 의미를
올바로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신학 체계에서는 천사가 유형인지 무형인지 여부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때문이다. 이
경우 19세기 인류학에서 퀴비에의 뇌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단
서는 앞에서 인용했던 브로카의 말 마지막 줄에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자료 속에서 여
러 인종의 지적 가치에 관계되는 어떤 정보를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브로카와 그의 학파는, 그들이 '인간의 과학'에서 기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던 것-어느 개
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보다 우수한 이유를설명하는-이 뇌의 크기와 지능과의
상관 관계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각각의 가치에 대한 선험적인 확신-남성 대 여성, 백인 대흑인, '천재'
대 범인 등-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고 각각의 뇌 크기가 서로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
다. 저명한 사람(실은 남성)의 뇌는 그들의 주장을뒷받침해주는 증거 자료가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퀴비에는 '알짜 중의알짜'였다. 브로카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일반적으로 뇌는 여성보다 남성 평범한 재능을 갖는 사람들보다 비범한 사람들, 열등한
인종보다는 우월한 인종이 더 크다. 그 밖의조건이 같을 때 지능의 발달과 뇌의 부피 사이
에는 주목할 만한 관계가 있다.
브로카는 1880년에 죽었지만, 그의 제자들은 뛰어난 뇌의 목록 작성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실제로 그들은 브로카 자신의 뇌를 그 목록에 추가했다. 그의 뇌는 1,484그램이라는 평범한
무게였지만 말이다). 고명한 동료학자들을 해부하는 것은 해부학자나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가내 공업과같은 것이 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E.A 스피츠카는 이런 말로 자신의 뛰어난 친구들을끌어들였다. "
내게는 사체 해부를 생각하는 것이 사체가 무덤 속에서분해되어가는 상태를 상상하는 것만
큼 싫지는 않다. " 모두 미국 민족학계의일인자였던 존 웨슬리 파월과 W. J. 맥기는 누가
더 큰 뇌를 가지고 있는지내기를 걸어 스피츠카가 그들의 사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
는 계약을맺기까지 했다(그 결과는 막상막하였다. 파웰과 맥기의 뇌 크기는 거의 같아그 차
이는 몸의 크기 차이에 의해 빚어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스피츠카는 1907년까지 115명에 이르는 뛰어난 남성의 뇌에 대한 자료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목록이 길어짐에 따라 그 결과는 더욱모호해져 갔다. 목록 맨 위쪽에는
1883년에 투르게네프가 드디어 2,000그램이라는 장벽을 돌파해 퀴비에를 제쳤다. 그러나 표
의 맨아랫부분에 이르면 당황과 굴욕감이 만연해진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미국의 시인/옮긴이)은 무게가 약 1,282그램밖에되지 않는 뇌
를 가지고도 미국 찬가의 여러 변형 판들을 듣고 예민하게 식별해낼수 있었다. 또한 골상학
(뇌의 국부적 영역의 크기로 정신적인 특징을 판정하는 독창적 '학문')의 창시자 프란츠 요
제프 갈의 뇌는 겨우 1,198그램밖에 되지 않았다.
그 후 1924년에 아나톨 프랑스는 2,012그램인 투르케네프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1,017그램
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스퍼츠카는 결코 뜻을굽히지 않았다. 그는 선험적
인 선입견에 맞도록 자료를 세심히 선별해 한 사람의뛰어난 백인 남성의 큰 뇌, 아프리카
부시맨 여성의 뇌, 그리고 한 마리의 고릴라뇌를 순서대로 늘어세운 것이다(그는 흑인의 뇌
중 큰 것과 백인의 뇌 중 작은 것을골라서 순서를 뒤바꿀 수도 있었다).
여기서도 스피츠카는 조르주 퀴비에의 망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결론지었
다 "퀴비에나 새커리(Thackeray, 영국의 소설가/옮긴이)와 줄루 족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종
족/옮긴이)이나 부시맨의 차이는 사람과 고릴라나오랑우탄과의 차이만큼 큰 것이다."
이 정도로 극명한 인종 차별은 오늘날의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찾아볼수 없을 것이다. 또
한 인종이나 남녀 등의 서열을 뇌의 평균 크기로 결정하려는 사람도 없으리라고 본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지능을 형성하는물질적 기반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은 (마치 그것이 당연하기
라도 하듯)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들에게는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조잡한 원칙이-대단히미묘하고 파악하기
힘든 질적인 것을 평가하기 위해 쉽게 측정할 수 있는양적 기준을 사용하는 것-여전히 존
재한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동차와가치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을 지금도 여전히
뇌에까지 적용하기도 한다.
이 글은 아인슈타인의 뇌의 행방을 다룬 최근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렇다. 조사를 위해 적출되었던 아인슈타인의 뇌는 그 결과가 사후 25년이지난 지금까지
도 아직 공표되지 않고 있다. 남아 있는 일부는-다른 부분은여러 명의 전문가들에게 맡겨졌
다-캔자스 주 위치타의 한 사무소 '코스타 사이다Costa cider'라고 표시된 마분지 상자로
포장되어 있는 한 유리병속에있다. 지금까지 아무런 내용도 공표되지 않았던 것은 특이한
사실이 아무것도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뇌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남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라고 그
유리병 주인은 이야기한다.
방금 내가 들은 것은 퀴비에나 아나톨 프랑스가 저세상에서 합창을 하듯 박장대소하는 소
리가 아닐까? 그들 두 사람은 고국의 속담 plus ca change, plus c'est la meme chose(세상
은 변화할수록 더 똑같아지는 법)를 몇 번이나 중얼대고있지나 않을까? 뇌의 물질적 구조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지능을 나타낸다는 것은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뇌 전체의 크기나 외
형은 뇌 자체의 가치에 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나는 똑같이 재능 있는 사람
들이 면화밭이나 근무조건이 열악한 공장에서 살다 죽어간 것이 확실한 것 이상으로 아인슈
타인의 뇌무게나 대뇌 표면의 주름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제14장 여성의 뇌
조지 엘리엇은 그의 작품 '미들 마치Middle March'서문에서 재능 있는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생애를 보내고 있는데 대해 한탄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그녀들의 생애가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은, 절대자가 여자의 본성을만드는 데 사용했던 바
로 그 부적절한 모호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사람들도 있다. 만약 여자의 무능함 정도가 숫
자를 3까지밖에 셀 수없을 만큼 명백한 것이라면. 여성이 차지하는 사회적인 몫은 과학적인
확실함을 가지고 논의되어도 좋을 것이다.
엘리엇은 여성의 능력에는 선천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사고 방식을 시종 일관 공격했다.
그러나 1872년에 그녀가 이 글을 썼을 무렵, 유럽의인체측정학anthropometry을 주도한 인물
들은 여성의 열등성을 '과학적인 확실함을 가지고' 측정하기 위해 활발한 시도를 벌이고 있
었다.
인체측정학, 즉 사람의 몸 크기를 재는 학문은 오늘날에는 과학의 최첨단을 달리는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지만, 19세기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인문학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은 지
능 검사가 인종, 계급, 남녀 등사이에 부당한 비교를 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두개골 측
정을 대체할 때까지 널리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개골 측정, 즉 두개골의 여러 부분의 크기를 재는 학문은 가장 큰주목과 경외를 받고
있었다. 이 영역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을 만큼확실한 일인자였던 폴 브로카는 파리 대학 의
학부의 외과학 교수로,그의 주위에는 문하생과 아류들 일파가 모이고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너무도 정밀하고 누가 보더라도 논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여서 큰 영향력을행사했고, 19세기
과학의 가장 소중한 보배로 높이 평가 받았다.
브로카의 연구는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용의 주도하고 면밀한
주의력과 정밀성을 발휘해 측정을 계속했기 때문일까?(실제로 그는 그러했다. 브로카가 수
립한 정밀하기 그지없는 처리 절차에는 나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제시한 숫자는
실로 확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은 추론에 의한 실천이지 무수한 사실들로 이루어진 목
록이 아니다. 따라서 숫자 그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그 숫자를 이용해 무
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브로카는 자신을 객관성의 사도로, 즉 사실 앞에서는 머리를 굽히고 모든미신이나 감상은
철저히 물리치는 인간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사람의 지혜가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진리 앞에 굴복하지 않는 신앙은-아무리
존경스럽다 하더라도-존재하지 않고, 또한 그와 같은 관심사는-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여자는 남자보다 작은 뇌를 갖고 있으며,
이 사실에대해 브로카는. 그것은 남성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보일지
도 모르지만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과학적인 진리라고 주장했다.
브로카의 문하생 가운데 가장 말썽꾼이었던 L. 마누브리에는 여성의열등성을 받아들이기
거부했다. 그는 브로카가 제시한 숫자들이 여성들에게 지운 무거운 짐에 대해 동정을 나타
내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각자의 재능과 자격 면허장을 여실히 증명해왔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
의 재능이 콩도르세나 존 스튜어트 밀 등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숫자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러한 숫자들은 마치 커다란 망치처럼 불쌍한 여성들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숫자에는, 교회의 신부들이 여성을 멸시하며 보내는 최악의저주보다 더 흉악스
런 논평이나 빈정거림이 뒤따랐다. 과거 신학자들은 여성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문제 삼았다. 그로부터수세기가 지나자 여성에게 인간적인 지능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들
이 나타났다.
브로카의 주장은 두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 하나는근대 사회에서 남자
의 뇌가 여자보다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들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가 변천해 가면서
남자의 우월성이 더 높아졌다고추정되는 자료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료는파리에 있는 네 군데의 병원에서 자신이 직접 수행한 사체 해부를 통해얻어낸
것이었다.
그는 292명의 남자 뇌를 측정한 결과 1,325그램이라는 평균 중량을산출했고, 140명의 여자
뇌에 대해서는 평균 1,144그램이라는 결과를얻어냈다. 그러니까 181그램의 차이, 즉 남자 뇌
무게의 14퍼센트가 차이진것이다. 물론 브로카는 이 차이의 일부가 남자의 신체가 여자보다
크다는사실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몸의 크기가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자가 남자만큼 이지적
이지 않다는 것은-사실 이것은 자료를 통해 검증되어야할 전제일 뿐 그 자료에 의거해 이
론화할 내용이 아니다-우리가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몸의 크기는 이러한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는 여성의 뇌가 작은 것이 여성의 신체가 작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가라는 물
음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티데만은 이런식의 설명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이 평
균적으로 남성만큼이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차이는 과장된 것이 아니라바로 진
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의 뇌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사실에 대해 일부
는 체격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며일부는 지능상으로 열등하기 추정해도 좋을 것이다.
엘리엇이 '미들 마치'를 발간한 이듬해인 1873년, 브로카는 롬모르(L'Homme Mort, 죽은
사람이라는 뜻임/옮긴이)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인의 두개골 용량을 측정했다. 그 결과
그는 현대인의 경우 그 차이는개체군에 따라 129.5부터 220.75세제곱센티미터 사이에 달하는
데 비해그 시대 남성과 여성의 뇌 사이에는 약 99.5세제곱센티미터의 차이밖에나지 않는다
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로카의 문하생들 가운데 수제자인 토피나르는, 시대가 경과하면서남녀의 뇌용량에 차이
가 커진 것은 우월한 남성과 열등한 여성에 대해 각기별개의 진화적 압력이 가해진 결과라
고 설명했다.
생존 경쟁에서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싸우는 남자. 내일에
대한 모든 우려와 책임을 짊어지는 남자, 환경이나 경쟁 상대인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항상 능동적인 남자는그가 보호하고 키우는 여자, 아무런 무거운 짐도 지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성과 섹스를 하는 등의 수동적인 역할을 주된 임무로삼으며 항상 앉아서 일하는
데 익숙해진 여자보다 더 큰 뇌를 필요로 한다.
1879년에 브로카 진영에서 여성 멸시의 기수였던 귀스타브 르 봉은이러한 자료를 이용해
근대 과학 문헌 가운데 여성에 대해 가장 악질적인 공격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아리스토텔레스만큼지독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의 관점을 브로카 일파를 대표하는
것으로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의견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류학 잡지에 게재되었다.
르 봉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파리 사람들처럼 가장 지적인 인종에서도 여성들은 가장 발달한 남성의 뇌보다는 고릴라
의 뇌에 더 가까운 뇌 크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열등성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열등성의 정도일 뿐이지열등
성 자체는 아니다.
오늘날 시인이나 작가들뿐 아니라 여성의 지능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까지도모두 여성들
이 인류 진화의 가장 열등한 형태이며 또한 그녀들이 (남성)성인이나(남성) 교양인이라기보
다는 아이들이나 야만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여자들은 변덕스러움, 사고와 논리의 결여, 추론 능력의 부재 등에서만 남성을 능가한다. 보
통의 남성보다 훨씬 뛰어난 걸출한 여성이 일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
이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은, 예를 들면 아주 드물게 머리가 둘 달린 고릴라와같은 괴물이 태어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여성들을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별반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나아가 르 봉은 자신의 견해가 갖는 사회적인 함축을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당
시 미국의 진보적인 개혁자들이 여성들에게도 남자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고등 교육을 시켜
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여성에게 동등한 교육을 베풀어 그 결과로서 그녀들에게도 똑같은목표를 추구하게 하려는
욕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다...
여성들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열등한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가정을 떠나 지금 우리
들이 벌이고 있는 싸움에 가세하는 날, 그날이야말로 사회 혁명이 시작되는 날일 것이다. 그
리고 가족이라는 신성한 연대를 유지하던 모든 것은 전부 사라져버릴 것이다.
여러분들의 귀에 익숙한 말이 아닌가?(내가 이 에세이를 쓸 무렵까지만해도 나는 르 봉이
라는 사람이 화려한 언변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학계에서는주변부에 머문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그가 유력한과학자로서 사회심리학의 시조 가운데 한 사람이
며,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는군집 행동에 관한 획기적인 저작 '군중심리'(1895년)를 썼고,
무의식의 동기에관한 연구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러한 견해 전체의 기반이 된 브로카의 자료를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그가 제시한 숫자는 대체로 정확하지만 그 해석에는 정당한 근거가 빠져 있음을 발
견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그 차이가 커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들은 간단히 폐
기시킬 수 있다.
브로카의 주장은 롬모르 동굴에서 출토된 견본들-모두 7개의 남자 두개골과 6개의 여자
두개골-을 기반으로 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이렇듯 빈약한 자료를 가지고 그만큼 광범위한
결론을 도출해낸 경우는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1888년에 토피나르는 브로카가 파리 시내의 몇 군데 병원에서 수집한더욱 광범위한 자료
를 공표했다. 브로카는 뇌의 크기와 함께 신장과 연령을 기록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현대
의 통계학을 이용해 그것들(신장과 연령)이 미치는 영향을 제거할 수 있다. 뇌의 무게는 노
령화됨에따라 감소한다.
그런데 브로카가 조사한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남성들보다 훨씬 나이가많았다. 또한 뇌의
무게는 키와 함께 증가한다. 그가 조사한 남성의 평균신장은 여성보다 0.5피트 정도 컸다.
나는 뇌의 크기에 대한 신장과 연령의영향을 동시에 평가하는 다중회귀 법multiple
regression이라는 기술을응용해보았다. 여성에 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성의 평균 신장
과 평균연령에 상응하는 여성의 뇌는 1,212그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장과 연령을 고려해 그 차이를 수정한 결과 브로카가 제시한 181그램이라는차이가 113
그램으로 약 1/3 이상 감소했다. 나는 뇌의 크기에 중대한 영향을미친다고 알려진 다른 요
인들을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 차이가 어떻게나온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여기에
는 사인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흔히 퇴행성 질병은 뇌의 크기를 상당히 축소시킨다(그 영향은 노령화에따른 감소와는 다
른 것이다). 역시 브로카의 자료에 대해 연구했던 유진슈라이더는 사고로 죽은 사람의 뇌는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뇌보다 평균60그램 가량 무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미국 내
의 병원에서 얻은 최신 자료에따르면, 퇴행성 동맥 경화증에 의한 사망과, 상해 또는 사고로
인한 사망사이에는 100그램에 달하는 차이가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브로카가 해부한 사체의 대부분은 고령의 여자였으며, 더욱이 남성들에비해 만성
퇴행성 질환이 더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를 조사하는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몸의 크기가 미
치는 강한 영향력을 없앨 만한 적절한 척도에 관해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분적으로는 신장이 타당한 척도가 될 수 있지만, 같은 키의 남자와 여자가같은 체격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체중은 신장의 경우보다 더 적절치 못하다.
체중에 나타나는 변이의 대부분은 천성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인영양 섭취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살이 쪘느냐 여위었느냐 여부는뇌의 크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
문이다. 마누브리에는 1880년대에 이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근육의 양과 세기가 그 척
도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이 파악하기 힘든 특성을 측정하였다. 그결과 같은 신장의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남자에게 유리한 현저한 차이가나타났지만 그가 '성에 따른 부피
sexual mass'라 이름 붙인 것에 의해 보정한결과 실제로는 여자 쪽이 뇌의 크기에서 약간
앞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신장과 연령을 고려해 산출한 113그램이라는 차이는 지나치게큰 것이었다. 아마
실제 차이는 제로에 가까울지도 모르며, 이것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유리할지도 모
른다. 그런데 113그램이라는차이는 브로카의 자료에 나오는 5피트 4인치의 남자 뇌와 6피트
4인치의 남자 뇌 사이의 평균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우리는-특히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
은-높은 지능이 키가 큰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브로카의 자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그의자료가 남자가
여자보다 큰 뇌를 가지고 있다는 단호한 주장을 허용하지 않는것만은 확실하다.
브로카 일파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뇌에 관한 그의 일
련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하나의 집단에 대한 단발적인 편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의 발언은, 실제로는 특정 시대의 사회적 차별에 불과한
것을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인 양 호도하는 보편론이라는 전체 맥락 속에서 판단될
필요가 있다.
여성, 흑인 빈민 등의 여러 집단들이 똑같은 멸시를 받아왔으며 여성이 브로카의 당치 않
은 주장의 희생물이 된 것은 당시 그가 여성의 뇌에 대한자료를 비교적 간단히 얻을 수 있
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여성은 유달리모욕을 받아왔지만, 또한 부당히 권리를 빼앗겨온 다
른 집단들의 대리인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브로카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1881년에 이렇
게쓰고 있다. "흑인 남자는 백인 여자의 뇌보다 그리 무겁지 않은 뇌를 가지고있다."
이러한 나란한 배치는 다른 많은 분야에 걸친 인류학상의 논의로 확장되었다.
특히 해부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여성과 흑인은 백인 아이들과 흡사하다는-발생반복설
recapitulation에 의하면, 백인 아이들은 인류 진화상에서 선조의 (원시적인) 성인 단계를 나
타내고 있다고 하는-여러 가지 주장으로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성들의 투쟁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결코 공허한수사에 그
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자신의 활동 영역을아동에게 교육적 감화를 주
는 데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로마 대학에서수년에 걸쳐 인류학 강의를 계속했고, '교
육 인류학'(영어판은 1913년에 발간됨)이라는주요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몬테소리는 평등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브로카의 연구를 거의 모두 지지했고,같은 나
라 사람인 체사레 롬브로소CesareLombroso가 제창한 선천적 범죄성에대한 학설에도 찬동
했다. 그녀는 자신의 학교에서 아동의 머리 둘레를 측정해가장 유망한 아이는 큰 뇌를 가지
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여성에 관한브로카의 여러 가지 판단은 그녀에게 쓸모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누브리에의 연구를 자세히 검토했고, 그를 통해 자료를 적절히 보정하면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큰 뇌를 가진 셈이 된다는 그의 시험적인 주장을중시했다. 그녀는 지능 면에
서는 여성이 앞서고. 체력 면에서는 지금까지 남자가 우위를 유지해왔다고 결론지었다. 그러
나 과학 기술은 권력수단으로서의 육체의 근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곧 여자의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진정으로 뛰어난 인간이 존재할 것이다. 윤리적,정서적으로강력한 사람
들이 실제로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과정에서 여성의인류학적 우월성에 관한 수수께끼
가 해결될 것이며, 따라서 여성 지배의 시대가곧 다가올 것이다. 역사상 여성은 언제나 인간
의 정서와 도덕과 명예의 관리자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인간 특정 집단의 열등성을 논하는 '과학적' 주장에 대한 해독제구실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구별의 정당성을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료
는 남자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곡해된것이고 실제로는 불리한 입장에 있는 집단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도할 것이다. 근년 들어 엘렌 모건은 '여성의 유래'라는 저서에서 이러
한 논지를펴고 있다. 이 책은 여성의 입장에서 인간의 선사 시대를 사변적으로 재구성한-그
리고 남자에 의해, 남자를 위해 적어진 더 유명한 이야기들만큼이나 형편없는-것이다.
나는 이런 유의 유치한 방식이 아닌 다른 전술을 사용하고 싶다. 몬테소리나모건은 브로
카의 신조를 이어받아 그보다 한층 더 적합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에 비해 나는 인간의 특정 집단에 생물학적인 평가를 가하려는 모든 기도에대해 '터무니
없는 중상 모략'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싶다.
조지 엘리엇은 불리한 처지에 있는 여러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이러한 생물학적딱지 붙이
기가 어떤 비극을 덧씌었는지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사람들, 즉 비범한 재
능을 가진 여성들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자신들의 꿈이 세상에서 업신여겨지는 사람들 뿐 아니라, 자신이 꿈꿀 수있다는 사
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녀의 주장을 더 널리펼치고자 한다.
그러나 내 글재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뛰어난 산문시를따라갈 수 없으니 결론을 대
신해서 '미들 마치'의 서문을 옮겨놓기로 하겠다.
사람들의 다양성의 범위는 부인들의 머리 모양이나, 산문 또는 운문으로 씌어진 사랑 이
야기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폭넓게 펼쳐져 있다.
갈색 연못 여기저기에서 백조 새끼들이 집 오리 새끼들과 섞여 불안스럽게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노 모양의 발을 가진 자신의 동족들과 교제하느라활력 있게 흐르는 강물을
찾는 걸 포기하고 고여 썩어가고 있는 연못에 안주하고만다.
여기저기에서 무로부터 출발한 여성 창시자 성 테레사가 태어난다. 그녀의사랑의 심장 고
동과 성취되지 않은 미덕을 구하는 흐느낌이 울려 퍼지지만,그러나 그 울려 퍼짐은 인내심
깊게 식별할 수 있는 업적을 찾으려는 집중 대신장애물들에 막혀 흩어지고 만다.
제15장 다운증후군
생물체 안에서 생식 세포가 만들어질 때, 쌍을 이룬 상동 염색체가 접합한 후 두 번 분리
되는 현상을 '감수 분열'이라고 한다. 이것은 생명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정교한 공학
engineering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성공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성 생식은 난자와
정자가 각각 보통의 체세포가 갖는 유전 정보의 정확히 절반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성립한
다.
수정에 의해 두 쌍의 반쪽 염색체가 합쳐져서 전체 유전 정보가 복구되며두 개체의 부모
로부터 온 유전자가 자식에게서 혼합되는 현상, 그 자체가다윈적 과정의 필수 조건인 변이
성variability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처럼염색체 수가 절반이 되는 현상은 모든 염색체가 쌍
을 이루어 각 쌍의 한쪽이양측으로 끌려가서 양쪽의 생식 세포로 이동하는 감수 분열이 일
어날 때발생한다.
어떤 양치류 식물의 체세포는 600쌍 이상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경우 이것
들은 감수분열에 의해 각 쌍이 거의 오류 없이 이분된다. 이 사실을알면 감수 분열의 정확
성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생물 기계라고 공장의 기계처럼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종종분열의 오류가 발
생할 때도 있다. 드물게는 이러한 잘못이 생물을 새로운 진화방향으로 이끄는 전조가 되기
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러한 오류는 결함을가진 정자나 난자로부터 생긴 개체에 불
행을 가져오게 된다. 감수 분열의잘못으로 가장 흔히 나타나는 문제점은 상동 염색체가 분
리되는 기회를 놓치는경우로서 이를 흔히 불분리non-disjunction라고 부른다.
한 쌍의 양쪽이 함께 어느 한쪽 생식 세포 속으로 들어가 다른 쪽 체세포는염색체가 한
개 모자라는 결과를 낳는다. 불분리로 인해 하나의 과잉 염색체를갖는 생식 세포와 정상적
인 생식 세포가 결합해서 태어나는 아이는 모든 체세포에염색체를 정상으로 두개씩 갖는 것
이 아니라 같은 염색체를 세 개씩 갖게 된다.
이러한 이상 현상을 트리소미(trisomy, 3염색체성, 2배체의 체세포 염색체 수가2n+1이 되
는 현상/옮긴이)라고 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21번 염색체가 가장 자주불분리를 일으키고, 그
로 인한 영향은 비극에 가까울 만큼 비참하다. 신생아600명 가운데 한 명, 또는 천 명 가운
데 한 명꼴로 여분의 21번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이 상태는 전문어로 '트리소미 21'이라고 부른다. 이 불운한 아이들은경증 또는 중증의 정
신 지체를 겪다가 단명으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많다. 게다가 그 아이들은 손이 짧고 넓고,
입천장이 높고 좁고, 안면이등글고, 이마가 넓고, 코가 작고, 코뿌리가 평평하고, 혀가 두껍
고 도랑이 져있는 등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트리소미 21은 산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자주 나타난다. 트리소미 21이 일어나는원인이 무
엇인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상이 염색체 때문에 일어난다는사실도 1959년에서야
겨우 발견되었을 정도다. 이것이 그렇듯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염색체들
이 비슷한 빈도로 불분리를 일으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른
다.
또한 여분의 21번째 염색체가 왜 트리소미 21과 관련된 매우 독특한 형태상의이상을 일으
키는지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단서도 찾아내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적어도 태아 세포의 염색체 수를 세 봄으로써 '태내에 있는 동안' 그 이상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른 시기에 태아를 중절할지에대해 부모에게 선택하게 할 수는 있다.
어쩌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어딘
가 한 가지 빠진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한 가지 이야
기를 빠뜨렸다. 트리소미 21은 대개 몽고 백치, 몽고증 다운증후군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을 본 적이 있겠지만, 왜그 상태가 몽
고증이라 불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을 보
면 즉각 그것을 앓고 있다는 것을알아챌 수 있지만, (앞에서 열거했듯이) 그들의 외견상 특
징만으로는 아시아 인 특유의 것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물론 일부는 작기는 하지만 분명히 식별할 수 있는 몽고 주름(윗눈까풀가장자리의 안쪽
끝이 잔주름이 되어 내안각을 덮고 있는 것. 몽고 인종에서흔히 볼 수 있다/옮긴이)을 나타
내기도 하고 피부가 약한 노란빛을 띠는 경우도있다. 1866년 존 랭든 하이든 다운 박사는
이 증후군을 처음 기술할 때, 이처럼분명치 않고 일정하게 나타나지 않는 특성만으로 그 환
자들을 아시아 인과비교한 것이다.
그러나 다운이 이러한 이름을 붙이게 된 뒷배경에는 약간 예외적이고 오도되고표면적인
몇 가지 유사점보다 더 많은 내용이 숨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과학적인 인종 차별의 역
사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단적으로 말해주기때문이다.
다운 박사가 사용한 몽고라든가 백치와 같은 말은 어떤 단선적 사다리 위에여러 인간 유
형들을 등위 매기는 당시 만연하던 문화적 편견에 그 뿌리를내리고 있는 전문적인 용어였
다. 그러나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또한 그 용어에는 사다리에사람들을 등급짓는 집단이 항상 자신이 속한 집단을 사다리의 정
상에 위치하도록하려는 편견이 배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과거에 백치라는 말은 정신적인 결함을 3단계로 분류한 것 가운데 가장 심한결함을 나타
내는 것이었다. 백치는 말을 배울 수 없는 정도이고, 그보다 한 단계위인 치우는 말은 할 수
있지만 글은 쓰지 못한다. 세 번째 수준은 가벼운 '정신 박약'인데, 이 단계에 대해서는 용
어상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임상의들은, 바보를 의미하는 희랍어에서 따온'노둔자moron'라는 H
H. 고더드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노둔자라는 말은은유적 측면에서 우둔한 사람을 놀리
던 옛날의 농담과 비슷한 의미의단어였긴 했지만, 옛날부터 사용된 통칭이 아니라 금세기에
들어선 후에야생겨난 전문 용어였다.
처음으로 지능 검사를 가지고 경직된 유전학적 해석을 시작한 세 사람 가운데한 사람이었
던 고더드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단선적인 분류가 정신결함의 수준을 매기는 정도를
넘어 사람의 종족이나 국적에 대한 천성적인 등급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남부나 동부 유럽에서 온 이민을 최하위에 놓고(평균적으로 노둔자의수준으로 분류된
다), 유서깊은 미국의 백인 신교도(WASP)를 최상위에 놓는식이었다
(고더드는 뉴욕 항의 엘리스 섬(뉴욕 만에 있는 작은 섬으로서 그곳에는 당시이민 검역소
가 있었음/옮긴이)에 도착한 이민에 대해 IQ 검사를 실시했다. 그결과 그는 이민자의 80퍼
센트 이상을 정신 박약으로 판정해 그들을 유럽으로되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66년에 다운 박사가 '백치들의 민족적 분류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런던 호스피탈
리포트London Hospital Reports'지에 발표했을 당시 그는엘즈우드 정신 박약아 보호원의 의
료부 부장을 맡고 있었다.
겨우 3쪽에 불과한 그 논문에서 그는 아프리카 인, 말레이 인, 아메리카 인디언 그리고 그
밖의 아시아 여러 민족을 연상시키는 코카서스인종 '백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
상 천외한 비유 속에서'몽고인 유형 주위에 위치하는 백치들'만이 전문적인 호칭으로 문헌
속에남아 있는 것이다.
다운의 논문을 그에 대한 예비 지식을 갖지 않은 채 읽는다면, 그 속에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중대한 목적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편견을 가진 한 남자가 제시하는 단편적이고 지극히표면적이며 거의 변
덕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는 비유임에 분명하다.
그의 시대에 그것은 당시 최고의 생물학적 이론(그리고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기반해서
정신적 결함에 대한 보편적, 인과론적 분류방식을 수립하려는 시도의한 구체적인 예에 불과
하다. 다운 박사는 인과 관계가 없는 기묘한 몇 가지유사점을 식별하는 것 이상으로 큰 모
험을 한 셈이다. 정신적 결함을 분류하기위한 당시까지의 시도에 대해 다운은 이렇게 불만
을 토로하고 있다.
선천적인 정신 장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 사람이라면 아마도관찰의 대상이 된 여러
결함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두고 자주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환자에 대한
기록에 의존한다고해서 어려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분류 체계는 거의 모두가 애매하고 인
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을관념적으로 구별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개개의 환자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주는 데에도 완전히 실패하
고 있다.
다운이 살던 시대에 발생반복설은 생물학자들이 생물계를 고등한 형태에서 하등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편성하는 데에 최고의 지침서 역할을 담당했다(그러나 오늘날 발생반
복설과 그것이 조장한 분류학의'사다리식 접근 방식'은 모두 쇠퇴하였다. 물론 그것들은 당
연히 사라져야할 이론들이었다.여기에 대해서는 졸저 '개체 발생과 계통 발생'(1977년)을 참
조하라).
이 설은 한마디로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고 요약할 수있으며, 고등 동물은
그 배의 발생 과정에서 그보다 하등한 선조 동물의성숙한 형태를 암시해주는 일련의 발육
단계를 순서대로 거친다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배는 맨 처음에는 물고기처럼 아가미 틈gill slit이발달하고, 그 후 파충
류처럼 3개의 심실로 분리된 심장이 발생하며, 그런다음은 포유류의 꼬리가 나타난다. 이 반
복설은 백인 과학자들의 뿌리 깊은인종 차별주의 때문에 빈번히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등한' 인종의 성인이 행하는 정상적인 행동과 비교하기 위해 자신의아이들(백인 아이
들)의 행동에 주목한 사람도 있었다. 반복설주의자들은 루이아가시가 고생물학, 비교해부학,
그리고 발생학의 '3중 병행'이라고 부른 것-화석 기록으로 나타나는 실제의 선조, 원시적인
형태를 대표하는 현존동물, 그리고 고등 동물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배 상태의 초기 여
러단계-을 확인하려고 했다.
인간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인종 차별적인 전통 속에서 이 3중 병행이란,화석으로 나타나
는 선조(아직 발견되지 않은), '야만인' 또는 그보다 하등한인종의 성인, 그리고 백인의 아이
들을 의미했다.
그러나 반복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네 번째 대응물, 즉 우월인종 가운데 비정상
적으로 나타나는 특정 종류의 성인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형태와 행동상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이상을 '귀선 유전' 또는 '발육 정지'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다.
격세 유전이라고도 불리는 귀선 유전은 과거에 사라졌던 선조 때의특징이 이미 진화가 일
어난 어떤 계통에 자연 발생적으로 다시 나타나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남게 되는 것을 말한
다. 예를 들어 '범죄인류학'의창시자인 체사레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대부분은 야수적인 과거
가 되살아나기때문에 생물학적인 힘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는 원숭이적인 형태-뒤로 후퇴한 전두부, 앞으로 튀어나온 턱,긴 팔 등-의 '징후
'를 통해 '선천성 범죄자'를 식별해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발육 정지는 태아기 때에는 정상적인 특성으로 나타나지만 발육과 더불어
변형이 일어나거나, 또는 더 진전되거나 복잡화되어야 할 신체의 여러 가지 특성이 성숙한
뒤에도 그대로 굳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반복설에서는 이러한 태생기의 정상적인 특성이 그
보다원시적인 동물의 성숙기 상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코카서스 인종의 태아에게 발육 정지가 일어나면, 그 사람은정상인에 비해 발
육 과정이 조금 낮은 단계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보다하등한 인종의 특징적인 형태로 되돌
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화석 인류,하등한 인종의 정상적인 성인, 백인의 아이들 그리
고 귀선 유전 또는 발육 정지를일으킨 불운한 백인 성인이라는 4중 병행을 갖게 되었다.
다운 박사와 머릿속에 잘못된 통찰의 섬광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속에서였다.
즉 코카서스 인종의 일부 백치에게 나타나는 정신적 결함은 하등인종의 성인에게는 정상으
로 간주되는 특성이나 능력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것이다.
따라서 약 20년 후에 롬브로소가 범죄자들에게서 원숭이적 형태의 특징을 찾기 위해 그들
의 몸을 측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운 박사는 하등인종의 여러 가지 특징을 상세히 조사했
다. 충분히 계획적인 확신을 가지고 구하라. 그러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
다! 다운은 분명 흥분한 어조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는정신적인
결함의 자연적 인과론적 분류 방법을 확립한 것이다(아니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
렇게 쓰고 있다. "나는 얼마 동안 정신박약자를 여러 인종적인 표준에 따라 배열 분류함으
로써 바꾸어 말하면자연적인 체계를 수립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결함이 심하면 심할수록 발육 정지는 심각하고, 또한 그에 상응하는 인종의등급도 낮다.
그는 "몇 가지 확실한 에티오피아 변종의 실례"를 발견하여, 그들의"돌출한 눈" "두꺼운 입
술" 그리고 "반드시 검은색은 아니지만... 양털처럼 오그라든 머리카락" 등의 특성을 기술했
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인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횐 니그로의 표본"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 다음 "말레이시아 변종 부근에 배열되는" 그 밖의 백치들을 기술하고,"짧은 이마,
돌출한 볼, 움푹 들어간 눈, 그리고 약간 원숭이적인 코를 가진"그 밖의 백치들은 "원래 미
국 대륙에 거주했던" 종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말한다.
결국 그는 여러 인종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 마침내 코카서스 인종의바로 아래 계단, 즉 '
위대한 몽고족'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계속한다. "엄청난 수의 선천적 백치가
전형적인 몽고인이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어서 그 표본을 모두 비교해보면 각각
다른 부모의 아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을 정도다."
그 후 다운은 오늘날 트리소미 21, 또는 다운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질병에걸린 한 소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 기술 자체는 매우 정확한 것이었지만,아시아 인의 특징- '약간 흐리
고 노란 색'를 띤 피부 외에-은 거의 지적하지 않고있다.
다운은 아시아 여러 민족과 '몽고 백치'의 외견상 유사점을 상정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
외에도 그는 이 증상을 나타내는 아이들의 행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익살꾼 연기자
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난 모방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장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하기 위해서는 19세기의 인종 차별에 관한문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시아 문화의 심오한 깊이나정교함은 코카서스 인종의 인종
차별주의자에게는 몹시 곤혹스러운 것이었음이명백하다.
특히 중국 사회는 유럽 문화가 아직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무렵에 이미고도로 제련
된 상태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벤야민 디즈레일리(BenjaminDisraeli, 영국 수상을 지낸
적이 있는 유태계 영국인/옮긴이)는 반유태적 조롱에 대해 응수했다.
"그렇소, 나는 유태계입니다. 그리고 매우 훌륭한 신사인 여러분의 선조가잔인한 야만인이
었을 무렵... 나의 선조는 솔로몬 사원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승려였습니다"). 코카서스 인들
은 이 풀기 힘든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아시아 인의 지적인 힘은 인정하지만 그 능력은 혁
신적인 천재의 능력이기보다는남의 것을 흉내내기 잘하는 능력에 불과하다는 식의 설명을
붙였다.
다운은 발육 정지(그는 그 원인이 양친이 결핵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가 트리소
미 21의 원인이라는 말로 이 장애를 일으킨 아이들에대한 기술을 끝맺었다. "그 소년의 용
모는 유럽인의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은 너무
도 빈번하게나타나서, 이러한 인종적 특색이 퇴화의 결과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 다운의 입장은 인종론 중에서도 '자유주의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의 모든 인종이 같은 선조에서 나온 것이며,각각의 지위에 따른 등급을 매겨 단일한 가
계로 통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등 인종이 전혀 다른 창조 행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백인을 향해'진보'하는 식의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한 다른 학자들의 주장과 맞서싸우기 위해 자신의 인종적 백치
분류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러한 인종의 구획이 명확하고 고정된 것이라면, 질병이 그 벽을허물고 다른 구획에 속
하는 성원의 특징을 흡사한 방식으로 흉내낼수 있도록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내
가 기록한 관찰은 인종 사이의 차이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임을 말해준다고생각
지 않을 수 없다.
인류에게 일어난 퇴화 현상을 나타내는 이러한 실례는, 인간이라는 종의일체성을 뒷받침
해주는 몇 가지 논거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적 결함에 관한 다운의 주장은 어느 정도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이 분야를 지배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몽고 백치(때로는 몽고증이라는 좀더 부드러운 표현으로 불리기도
한다)라는 명칭은 다운이 그 말을만든 이유가 거의 잊혀진 뒤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다운의 친아들은 아시아 인의 지위가 낮다는 것을 긍정하고 정신적 결함을진화적인 귀선
유전과 결부시키는 일반론을 지지하였지만, 부친이 아시아 인과 트리소미 21를 일으킨 아이
들을 비교한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몽고 인종의 특징과 체형을 연상시키는 여러 가지 특성은 실제로는 이 인종
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밖의 여러 가지 특징과언제나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
은 지극히 우연적이고 외면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이것이 귀선 유전의 일례라면, 그것은 일부 민족학자들이 그 밖의모든 인종의 기원
이라고 생각하는 몽고 인종의 계통보다 훨씬 이전의선조에게 되돌아가는 귀선 유전이 되어
야 할 것이다.
의학자들이 트리소미 21을 아시아 인 속에서도, 또한 다운의 분류에따라 아시아 인보다
하등한 인종 속에서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을 때,다운의 트리소미 21에 대한 이론은-다운
의 그다지 효력 없는 인종 차별적 체계 속에서조차-기반을 잃었다.
(어느 의사는 '몽고 인종의 몽고증환자'라고 표현하지만, 이러한 어색한변명은 거의 지지
를 얻지 못했다)
이 증상이 좀더 고등한 인종의 정상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것은 퇴화에 의해서
일어난 것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인간의 21번째 염색체와 서로 같을 것이라
생각되는 여분의 염색체를갖는 침팬지에서도 그와 유사한 특징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운의 이론이 틀렸음이 입증되었다면 그가 사용했던 명칭은 어떻게되는 것인가? 수년 전
에 피터 메더워 경과 아시아 과학자팀이 '몽고 백치'와 '몽고증'이라는 명칭 대신 '다운증후
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영국의 몇몇 출판사를 설득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직도 몽고증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있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펼치는 사람들 중에는, 명칭을 바꾸려는 노력은자신이 속하지 않
은 영역에 사회적인 이해 관계를 끌어들여 지금까지 널리사용되어온 용어 체계를 혼란시키
는 경박한 자유주의자의 잘못된 시도에지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이미 확정된 용어가 변덕스럽게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
하의 마태 수난곡을 합창할 때마다 극도의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격노한 유태인 군중의 한 사람으로서 몇 세기에 걸쳐 반유태주의를 '공식적으로' 정
당화한 다음과 같은 구절을 큰 소리로 외친다.
"Sein Blut komme uber uns und unsre Kinder(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들의 자손에까지
흘러내리는도다)" 그러나 이 일절이 가리키고 있는 그가어느 다른 문맥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바하의 원문을 '일점 일획'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과학상의 명칭은 문학 작품과는 경우가 다르다. '몽고 백치'는 단지 비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잘못된 명칭이다. 더 이상 우리는 정신적 결함을 단선적인
순서로 분류하지 않는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은 약간의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대체로 그다지 아시아
인과 닮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이 명칭은 인종적인 귀선 유전이 정신적 결
함의 원인이라고 하는 이미 잘못된것으로 알려진 다운 이론의 문맥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선량한 의사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면, 트리소미 21을 '다운증후군'이라고불러 그의
이름을 기리기로 하자.
제16장 빅토리아풍에 숨어 있는 결함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장황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장대한 소설들을남겼다. 그러나 동
시에 그들은 지루함과 부정확한 묘사로는 그 무엇에도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문학 장르를
만들어내어 세계를 속여서 팔아먹는 데-얼핏 보기에는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
지만-성공했다.
걸출한 인물의 '생애와 서간집'이라고 불리는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유형의 장르가 바로
그것이다. 대개 슬픔에 젖은 미망인이나 효성이 지극한 아들 딸에 의해 조심스러운 객관적
기술로 씌어진 이 장황한 찬사는 마치 고인이 남긴 말이나 업적을 그대로 기록한 것인 양
치장된다.
이런 종류의 저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걸출한 빅토리아 시대인들이 실제
로 자신들이 받아들인 도덕적 가치관에 따라살았었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은 리턴 스트
레이치의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사람들'이 이미 50년 이상 전에 묻어버렸던 꿈 같은 주
제를다시 11집어내어 믿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엘리자베스 케리 아가시-유명한 보스턴 시민이었고, 래드클리프 칼리지의 창설자이자 초
대 학장이었던, 미국 제일의 박물학자의 헌신적아내-는 이러한 책의 저자에게 요구되는 자
격을(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남김없이 갖추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 '루이 아가시의 생애와 서간'은, 매력적이었고 논쟁을 좋아했지만 결코 성실
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한 남자를 자제심 강하고 정치적 수완과 식견을 고루 갖춘 청렴 결
백한 모범적 인간으로 만들어냈다.
나는 지금 루이 아가시가 1859년에 세운 건물(하버드 대학 비교동물학박물관의 본동)에서
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위대한 퀴비에의 수제자로서 화석 어류의 세계적인 연구자였던 아
가시는 미국에서 지내기 위해1840년대 말에 그가 태어난 스위스를 떠났다.
그는 유명한 유럽인이자 매력적인 인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보스턴에서찰스턴에 이르는
사교계와 지식인 사회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1873년에 죽을 때까지 계속 미국 박물학 연구의 선두에 서 있었다.
나는 루이의 공식적인 발언이 언제나 예의 바름의 본보기였고, 그의사적인 편지는 그 열
광적인 인품에 어울렸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표면적으로는 루이의 편지를 충실히 공개하
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엘리자베스의 책은, 끊임없는 에너지의 원천이며 항상 논쟁의 초점
이 돼온이 인물을 신중하고 고상한 신사로 감쪽같이 바꿔버리고 말았다.
최근 루이 아가시의 인종에 대한 관점을 조사하던 중에 나는 E. 주리의 전기('루이 아가
시, 과학계에서의 생애'라는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에서 몇 가지 착상을 얻어 엘리자베스판
의 편지와 루이가 쓴 원래 편지사이에 재미있는 불일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 나는 엘리자베스가 원문을 부분적으로 삭제했으며, 자신이 내용을삭제했음을 나타내
기 위해 생략 부호(가령 점 세 개를 찍어서 중략되었음을 나타내는 기호)를 표기하지도 않
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다행스럽게도 하버드 대학에는 원본 편지가 보존되어 있었
다. 따라서 약간의 수고를 들여 탐색을 한 결과 흥미로운 자료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10여 년 동안 아가시는 흑인과 인디언의 지위에 관해 강
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북군측의 양자로 입양되었던 그는 노예 제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
러나 다른 한편, 상류 사회를구성하던 코카서스 인종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노예제의 부
정과 인종적 평등 개념을 한데 결부시키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가시는 만물의 근본 원리에 따라 냉정한 추론을 거친 후에 불가피한 귀결로서 인종 문
제에 관한 자신의 태도를 표명했다. 그는 종이란정적인 것이며 창조된 존재라는 입장을 고
수했다(1873년 세상을 떠날 무렵 그는 다윈주의의 거센 물결에 반항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
에 실질적으로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생물 종은 지구상의 단일한 지역에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전 지역에걸쳐 동시에 창조된
다. 유연 관계가 가까운 종들은 지리적으로 서로 분리된 지역에 발생해서 각기 해당 지역의
우세 환경에 적응하는 경우도흔히 있다. 여러 인종은 상호 교섭이나 이주 등을 통해 서로
뒤섞이기 전까지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각각의 인종은 생물학적으로 별개의 종
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의 이 저명한 생물학자는 그가 미국에 오기 1년전부터 이 나라에 불어
닥치고 있던 논쟁에서-아담은 전 인류의 선조였는가, 아니면 오로지 백인만의 선조였는가?
흑인이나 인디언은 백인의 형제인가, 아니면 단순히 백인의 유사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단호하게 반대론을 전개했다.
아가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던 다원발생론자(polygenist, 생물 종이나품종이 둘 이상의 원
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옮긴이)들은 주요만 인종들은 각기 별개의 종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입장을 주장했다.
그에 비해 일원파생론자monogenist들은 단일한 기원을 주장했고, 에덴 동산에서 시작하여
불평등한 퇴화를 거친 결과 각 인종이 각기 다르게 등급지어진다고 보았다. 이 논쟁에 평등
주의자들은 가담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1896년에 플레시 대 퍼거슨의 논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말대로 별개의
계통이라는 것이 반드시 불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1954년에 브라운 대 토페카 교육 위원회 논쟁의 승리자들이 지적했듯이 힘을 쥔 집
단은 항상 자신들과 다른 계통을 분리하는 데 우월성이라는 개념을 결부시키게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의 다원발생론자들은 대부분 백인이 그 밖의 인종과 다르며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아가시는 자신이 다원발생설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정치적 신조나사회적 편견과는 아무
런 관계가 없다고 강변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박물학사 연구에 나오는 흥미로운 여러 가지
사실들을 확실히 수립하려고시도하는 겸손하고 공평 무사한 학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론들이 노예 제도를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
러 가지 반론이 제기되어왔다. ... 과연 그런 유의 비판이 철학적 연구에 대한 공정한 반론이
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들이 관계하는 것은 오로지 인류 기원에 관한 문제뿐이다.
정치가들, 또는 자신이 인간사회를 통제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고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그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 우리는 정치적인 사건을 포
함하는 어떠한 무제에도 일체 그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 박물학자들은 인간의 물질적인
여러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순수한 학문상의 문제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정치나 종교와
관계없이 연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용감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아가시는 인종 문제에 관한 이 중요한 언명을('크리스
찬 이그재미너Christian Examiner'[1850년])에 발표되 었다) 몇 가지 명백한 사화적 권고로
끝맺고 있다. 그는 우선 분리와 불평등의 원칙에 대해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지구 표면의 여러 인간 종족이 정주해 있다. ...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종족들 사이에
상대적인 등급을 설정할 의무가 있다." 그 결과 어떤 계층 구조가 탄생할지는 자명하다. "굴
복하지 않고 용맹 무쌍하고자긍심이 강한 인디언, 그들은 유순하고 비굴하고 모방하기 좋아
하는 니그로에 비해, 또는 교활하고 잔꾀에 능하고 겁쟁이인 몽고 인종에 비해 얼마나 다른
가!
이러한 여러 라지 사실이 여러 인종이 자연계에서 동일한 수준에 위치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자신의 정치적인 메시지를일반화시켜 분명하게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아가시는 마지막으로 구체적인사회 정책을 제안하며 자신의 글을 맺는다.
따라서 이것은 순수한 정신적 생활을 위해 정치를 버릴 것을 선언한 앞의 발언과 명백히
모순된다. 아가시는 타고난 능력에 맞게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인은 육체 노
동에 맞게, 백인은 정신 노동에맞도록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 인종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들 각각에게 제공해야할 최선의 교육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 만약 우리들이 유색 인종과 관계를 맺어야 할 때,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을 대하지 않고,우리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차이를 충분히 의식하
는 방법으로, 또한 각각의 인종에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질을 키우고자 하는 열망에
따라 행동한다면, 유색 인종에 관한 인간사의 허다한 문제들이 종전보다 훨씬 현명하게 처
리되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매우 두드러진' 기질이란 온순함, 비굴함, 모방하기좋아함 등의 성향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가시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품고 있었는지 십분 추측할 수 있다.
아가시가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주된 이유는 아마도 그가 주로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실들, 그리고 그 속에 구현된 추상화된 이론을 통해서만 동기를 얻는 한 사람
의 과학자로서 발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종에 관한 그의 생각이 어디서 근원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정말 그는 박물학에 대한 사랑 외에는 어떠한 동기나성향, 그리고 원동력 등을 전혀 갖지
않았을까? '루이 아가시의 생애와 서한'에서 삭제된 많은 문장이 이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
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 삭제된 구절들을 읽으면 성문제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반응과
두려움에 깊이 뿌리 내린 강한 편견을 가진 한 남자의 모습이떠오른다.
130년이 지난 후에도 그 강렬함의 충격이 변하지 않는 첫 구절은 아가시가 흑인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그는 유럽에 있는 동안 흑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1846년에 처음 미국에 도착한그는 자신의 경험을 상세하게 적은 긴 편지를 모친에게 보냈
다.
엘리자베스 아가시는 필라델피아에 대한 부분에서 루이가 박물관과과학자들의 자택을 방
문한 이야기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흑인에 대해 루이가 받은 첫인상을-호텔 식당의 웨
이터들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생략부호도 없이 말살했다. 1846년 그는 여전히 인류의 일체
성을믿고 있을 만큼 비과학적 기반에 토대한 것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최초로 무삭제 원본을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제가 흑인과 처음으로 장시간 동안 접촉한 것은 필라델피아에서 였습니다. 제가 묵던 호
텔의 하인들은 모두 유색인들이었습니다. 당시제가 받았던 인상을 글로 표현하기란 매우 힘
듭니다. 특히 그들로 인해 일어난 감정이 같은 인간 유형에 대한 동포감이나, 우리 인류의
기원은 단일한 조상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관념에 반하기 때문입니
다.
그렇지만 진리는 그 모든 것에 우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이 타락하고 퇴화한
인종을 보면서 연민의 느낌을 받았었고, 그들도 실제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 운명
에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혈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두꺼운 입술과 이를 드러낸 검은 얼굴, 고수머리, 굽혀진 무릎,긴 손, 크고 휘어진 손톱,
그리고 특히 납빛을 한 손바닥 등 때문에 저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멀리 떨어진 풍경에 눈길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내 접시 쪽으로 소름끼치는 손을 뻗을 때면,
나는 이런 하인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식사를하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빵한
조각을 먹는 편이 나을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입니다.
여러나라에서 백인의 생활과 흑인의 생활을 이렇듯 밀접하게 결부시킨것은 백인의 입장에
서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신이시여, 이러한 접촉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주소서 !
두 번째 문서는 남북 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씌어진 것이었다. '공화국 찬가'의 작사자인
줄리아 워드 하우의 남편이었던 사무엘 하우와링컨 대통령의 조사 위원회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다시 하나로 뭉친국가에서 혹인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아가
시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1863년 8월, 아가시는 네 통의 길고 열렬한 회답을 보냈다. 엘리자베스아가시는 이러한 편
지 내용 일부를 제멋대로 삭제했고, 루이의 주장을 만물의 근본 원리에 근거하고 진리에 대
한 사랑만으로 표명된 진솔한 견해로 바꿔버렸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루이는 백인의 우월성이 희석되지 않도록 모든인종이 따로 격리되어
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약한 계통인 백인 혼혈아는 점차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격리는 자연스럽게 일어나게될 것이다.
그리고 흑인들은 그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북방 기후를 떠나게 될 것이다(그들은 아프리카
에 적합한 종으로 창조되었으니까). 그들은 무리를지어 남쪽으로 이동해서 결국 저지에 위
치한 몇 개 주에 정착하게 될것이다. 한편 백인들은 해안 지방과 고지에서 지배권을 유지하
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려할 만한 상황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이들 여러 주를승인할 필요가 있으
며, 심지어는 연방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이티 공화국과 라이베리아 공화국(둘 다 주민의 대부분이흑인으로 된 공화
국/옮긴이)'를 승인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대폭 삭제한 부분은 루이의 동기가 전혀 다른 것임을여실히 폭로한다. 그
문장들에는 생생한 두려움과 맹목적인 편견이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계획적으로 세 종류의 기술을 제거했다. 우선 그녀는 흑인을심하게 모욕하는 부분
을 삭제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다른 인종들과는 달리 모든 점에서 그들은 오로지 아
이들과 비교하는 것만이허락됩니다. 몸은 어른의 키로 성장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들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그녀는 각 인종 내에서의 지혜와 부유함, 그리고 사회적 지위사이의 상관 관계에 관
한 엘리트주의적 주장을 모두 제거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른 인종간의 잡혼에 대해 루
이가 가지고 있던 심각한두려움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그로 인한 결과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입니다. 우리는 상류 사회에서 자라나는 각 개
인이 우수함이나 세련됨, 문화 등의 획득물을지키기 위해 만인의 평등이라는 영향에 맞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더해 육체적 무능함이라는 훨씬 더 끈질긴
영향이 가해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되겠습니까.
우리들의 교육 제도의 개선이 ... 조만간 교양 없는 사람들의 냉담함이나하층 계급의 조잡
함이 주는 영향을 상쇄시켜 그들을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등한 인종의 피가 우리 자손의 피 속으로 계속 흘러 들어오는 사태가 허용된다면
그들의 오염을어떻게 뿌리뽑을 수 있겠습니까?
셋째, 이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그녀는 교잡에 관한 긴 문장을몇 군데 삭제하고 있
다. 그 문장들을 읽어보면 모든 편지가 그녀가 조작하려 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인종간의 성적 접촉에 대한 루이의 강렬한
본능적 반감을 읽을 수 있다.
이 비이성적인 깊은 공포는 인종이 각기 개별적으로 창조된 것이라는추상적 관념과 같은
정도로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이렇게 쓰고 있다, "혼혈아를 만들어내는 것
은 문명사회에서 근친 상간이인격의 순결에 대한 범죄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대한 범죄
입니다. ...
나는 그것이 자연스런 정서의 완전한 도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천성적인 혐오감
은 너무도 강한 것이어서 노예 폐지론을 주장하던그의 견해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흑인에
대한 동정을 반영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많은 '흑인'들에게 백인의 피가
충분히 섞여 있어서 백인들이 그 부분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재 남북 전쟁을 통해 절정에 달하고 있는 노예 제도
에 대한 혐오감은, 주로 남부 여러 주 신사들의 자손이, 비록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지만 결
국 니그로(원문 그대로)로서 우리들 가운데로 들어올 때, 그들 속에 우리들 자신의 특성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조장되어왔다는 데에는 의심의여지가 없습
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 인종이 천성적으로 서로를 배척한다면, 어떻게 '남부의 신사들'은 자신
들의 소유물이 된 여자들을 즐겨 겁탈할 수 있었을까? 아가시는 가정 노예로 사용되는 흑백
혼혈아(mulatto, 흑인과 백인사이에 태어난 1대 혼혈아/옮긴이)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녀들
의 흰색은남자들을 유혹하고, 검은 색은 도발한다든 것이다. 불쌍하고 순진한 젊은 [백인]
남자들은 그 여자들에게 유혹되어 덫에 빠지는 셈이다.
남부의 젊은 남자들은 성적 충동을 느끼면 언제나 유색[흑백 혼혈]가정 노예를 상대로 간
단히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접촉이] 그 방면에서의 본능을 둔감하게 만들어
점차 좀더 음란하고자극적인 상대를 찾게 만듭니다.
나는 방탕한 젊은이들이 완전한 흑인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서로 다
른 인종의 개인들 사이의 결합은 가능하겠지만,거기에 인격을 향상시키는 요소가 전혀 없다
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그관계에는 애정도 없고, 진보나 향상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없습니
다.
그것은 오로지 육체적인 결합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전 세대의 신사들이 맨 처음 흑백 혼혈아를 낳게 되었을때, 자신의 혐오감을 어
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스가 특정 구절을
삭제한 이유를 상세하게 파고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선입관 때문에 형성된 것을 논
리적인내용으로 바꾸려 한 의식적인 열망이 그녀의 행위를 촉발시켰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다.
아마도 빅토리아 시대의 고상한 척하는 풍습이 성에 관한 구체적인언급을 대중들 앞에 공
공연히 내놓기를 꺼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그녀의 삭제 행위는 루이 아가시의 사상을
왜곡하고 그의 의도를 과학자들의 마음에 드는 허구적인-그 견해들이 가공되지 않은 정보
를 공평무사하게 조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식의-모형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렇듯 삭제된 부분을 복원해 넣음으로써 우리는 흑인과 처음 접촉할 당시에 루이 아기시
가 다원발생론자처럼 서로 다른 인종끼리는 서로다른 종에 속한다고 생각할 만큼 충격적인
역한 느낌을 받았음을 알 수있다. 또한 인종의 혼합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관점은 추상적인
잡종형성의 이론보다는 강렬한 성적 혐오에 의해서 한층 더 견고화되었음도확인하게 되었
다.
인종 차별은 종종 자신을 이끌어온 편견을 은폐시키기 위해 객관성이라는 표면상의 외피
로 치장하려는 과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아가시의 사례는 너무 먼 옛날의 일처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5부 변화의 속도
제17장 진화적 변화의 단속적 본질
찰스 다윈의 혁명적인 저서가 서점 진열대에 오르기 하루 전날인 1859년 11월 23일, 그는
친구인 토마스 헨리 헉슬리로부터 평상시와는 사뭇다른 내용의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것
은 머지않아 논쟁이 일어났을때에도 변치 않고 다윈을 지지하겠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어떠한희생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따뜻한 격려의 내용이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화형에 처해질 각오도 하고 있소. ... 나는 언제라도쓸 수 있도록 갈고
리 발톱과 부리를 갈고 있소." 동시에 그는 이런 경고도 잊지 않았다. "당신은 Natura non
facit saltum라는 말을 너무도철저하게 받아들여 그로 인해 불필요한 어려움을 당해왔습니
다." 흔히 린네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라틴어 구절은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
는 의미이다. 다윈은 이 오래된 표어의 충실한 신봉자였다. 지질학에서의 점진론을 대표하는
찰스 라이엘의 영향을 받아 다윈은 진화라는 것은 그 누구도 살아서 목격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장중하고 정연한 과정이라고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다윈은 선조와 그 자손들이 '가장 미세한 배열을 이룬 단계'를 형성하는 '한없이 많은 이
행적인 사슬의 고리'에 의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오직 장대한 시간만이 이러한 완만한 과정을 거쳐 많은 것을 이루어낼수 있는 것이다.
헉슬리는 다윈이 끝까지 투쟁을 벌일 요량으로 자신의 이론 주위에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연 선택은 속도에 관한 한어떤 가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경우에도 자연 선택은 마찬가지로 작용할 것이다. 그의 이론 앞에 놓인 길
은험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연 선택설에 이렇듯 불필요하고 아마도 그릇된 추정의무거운 굴레를 씌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석 기록은 점진적 변화라는관점을 지지하지 않는다. 반론의 여지가 없
을 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사라져버린 동물상은 얼마든지 있다.
새로운 종들은 거의 언제나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더 오래된 암석속의 선조형과 아무런
중간 고리 없이 갑작스럽게 화석 기록 속에나타난다. 헉슬리는 진화가 완만하고 산발적인
퇴적 작용 과정의 한현장에서 덜미를 잡히는 일이 좀처럼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고
믿었다.
다윈이 과학을 막 수련하던 시절, 급격한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과점진적 변화를 지지하
던 사람들 사이의 대립은 지질학과 연관된 학문분야에서 특히 심했다. 다윈이 왜 라이엘을
비롯한 점진론자들의 입장을 따르기로 선택했는지 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한 가
지만은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느 한 견해에 대한 선호는 경험적인 정보에 대한 우월한 인식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자연은 잡다한 이야기를,그것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들려주
었다(그리고 지금도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결정에서 문화적, 방법론적 선호는
자료가 갖는 강제력에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보편 철학과 같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한, 과학과 사회는 대개 긴밀
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유럽 군주제하의 정적인 체제는 수많은 학자
들에 의해 자연 법칙의 구현으로서 정당화되었다.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영국의
시인/옮긴이)는 이렇게 읊고 있다.
질서는 하늘의 근본 원칙이다, 또한 하늘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또한 반
드시 그러해야 함을 인정하고 있느니.
군주제가 타도되고 18세기가 온통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갈무렵, 과학자들은 비
로소 변화를 정도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주 질서의 정상적인 일부로
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학자들은 인간 사회의 사회적 변혁을 위해 필요한 완만하고질서있는 변화라는 자
유로운 관점을 자연계로 전이시켰다. 많은 과학자들에게 자연의 대격변은 그들의 위대한 동
료였던 라부아지에를 앗아간프랑스의 공포시대(reign of terror,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시대에 조세 청부인이라는 전력 때문에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옮긴이)와 마찬가
지로 위협적인 것으로 비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질학적 기록은 격변적 변화와 마찬가지로 점진적 변화에 대해서도
증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진화의 속도가 거의 일정 불변하다는 점진론을 옹
호하는 과정에서 다윈은 라이엘의 매우 독특한 논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그는 그 밑에 내재하는 '실재reality'를 위해서 상식,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
습을 배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흔히 알려진 신화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다윈과 라이엘은 퀴
비에나 버크랜드 등 격변론자들의 신학적 환상에 대항해 객관성을 옹호한 진정한 과학의 영
웅은아니었다. 격변론자들도 점진론자와 똑같은 정도로 깊이 과학에 관여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하며 점진적인 기록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부분들을 격변적 변화라는 있는 그대로의역사적 사실에 삽입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는
훨씬 더 '객관적'인 견해를받아들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윈은 지질학적 기록은 극도로
불완전한-다 찢어지고 몇 장밖에 남지 않은 책, 두세 줄밖에 남지 않은 페이지,한두 개 단
어밖에 남지 않은 행과 같은-것이라고 쓰고 있다.
우리들이 실제로 화석 기록 속에서 완만한 진화적 변화를 볼 수 없는까닭은 우리가 무수
한 발걸음 가운데 고작 한 걸음만을 연구하고 있기때문이다. 변화가 갑작스레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그 중간 단계가(책장이 찢겨 나가듯)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석 기록 속에 과도적인 형태가 극히 드물게 발견된다는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고생물학
분야에서 풀어야 할 주요 과제이다. 우리들의 교과서를 장식하고 있는 계통수는 그 작은 가
지의 선이나 가지의 갈림길부근에서나 실제 자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외의 부분은 설령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추측에불과하고, 거기에 대한
화석 증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부정하는 데 자
신의 전 학설을 걸 만큼점진론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지질학적 기록은 극도로 불완전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가 왜이미 멸종하거나 현존하
는 모든 생물계를 미세한 등급으로 구분된단계로써 한데 묶어줄 만한 무한한 변이를 찾아낼
수 없는 이유를대체로 설명해줄 것이다. 지질학적 기록의 본질을 이런 관점에서 보려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의 이론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다윈의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고생물학자들에게 곤란한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
는 훌륭한 도피처 구실을 해주고 있다. 즉 진화의 흔적을 직접적인 형태로는 조금밖에 드러
내지 않는 화석 기록을 손 에 넣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하는 고생물학자들은
종종 이런 핑계를 대고 도망치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문화적 방법론의 뿌리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점진론이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유효성을 묵살할 생각은 전혀 없다(일반적 견해라는 것들을 모두 같은 기반을 갖기
때문에). 나는 단지 진화의 흔적이암석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
다.
지금까지 고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점진론적 주장 때문에 실로 엄청난대가를 치러왔다. 우
리는 스스로가 생명 역사에 대한 유일하고 참된 연구자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
선택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상투적인 수법을 계속해나가기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가
변변치 못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자료 부족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우리들이 연구하
고 있다고 공언하는 과정 자체를 결코 볼 수 없을 정도다.
수년 전부터 나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이골치 아픈 모순을 해결
할 방법을 제기해왔다. 우리 두 사람은 헉슬리의 경고가 옳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진화 이론
에서 점진적 변화라는 관점은 필요하지 않다. 사실 우리가 화석 기록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다윈적 과정이 작동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이 거절해야 할 것은 점진론이지 다
윈주의 그 자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화석 생물의 역사는 점진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다음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정지Stasis. 대부분의 생물 종은 지구상에 생존하는 동안 특정한방향성을 갖는 변화를 나
타내지 않는다. 그들은 화석 기록에 나타 날 때나 사라질 때나 똑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대
개 형태상의 변화는 제한되게 마련이며, 방향성은 더욱이 없다.
2. 돌연한 출현Sudden appearance. 어느 지역에서 특정 생물 종들은 그 선조가 조금씩 변형
되는 과정을 거쳐 서서히 등장하는 것이아니라 한꺼번에 '완전히 완성된' 상태로 출현한다.
진화는 두 가지 주된 양식으로 전개된다. 첫째, 계통의 변형으로 어떤 개체군 전체가 하나
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한다. 그러나 모든진화적 변화가 이런 양식으로 일어난다면,
생명계는 오랫동안 지탱될수 없을 것이다. 계통 발생에 의한 진화는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아니라,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형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멸종(다른 종으로 진화하지 않고 사멸하여 사라wu버리는 것/옮긴이)이란 지극히 흔한 일
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메커니즘을 갖지않은 생물상은 이윽고 전멸할 것이다. 두
번째 양식은 종분화speciation라 불리는 것으로서, 이 과정이 지구에 생물을 보급한다. 종분
화란 살아남은 부모의 계통에서 새로운 종이 가지를 쳐 나오는 것을 말한다.
다윈이 종분화 과정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문제를 논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는 진
화적 변화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를 계통에 의한변형이라는 주형에 쏟아 부었다. 이런 맥락
에서 정지와 돌연한 출현이라는 현상의 원인은 기록의 불완전에 돌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령 새로운 종이 선조의 개체군 전체의 변형에 의해 생겨난것이라면, 그리고
그 변형 과정을 우리가 실제로 관찰할 수 없다면(종들은그 존재범위 전체에 걸쳐 본질적으
로 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가진화석 기록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엘드리지와 나는 종분화 자체가 거의 모든 진화적 변화의 원인이라고생각한다. 게다가 종
분화가 일어나는 방식 자체가 화석 기록에 돌연한출현과 정지가 더 자주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
종분화에 관한 주요 이론들은 한결같이 아주 작은 개체군에서 급속한분열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지역성allopatric, 즉 지리적 종분화 이론은거의 모든 경우에 진화학자들로부터
선호되고 있다(이지역성이란 지역에따라 다르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종은 선조 개체군의 소
수가 선조 종의분포 지역 주변부에 격리될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1977년에 썼다. 그 후 진화생물학 분야는 주요 관점에 변화가 일어났
다. 이지역성의 진화를 주창하는 정설이 후퇴하고, 동지역성sympatric의 종분화를 설명하는
몇 가지 메커니즘이 그 실례와타당성 면에서 모두 득세하고 있다(동지역성 종분화론에서는
새로운 종이그 선조 종이 분포한 지역 내에서 형성된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동지역성의 몇 가지 메커니즘은 화석 기록을 설명하는 데 엘드리지와 내게 필요한
두 가지 조건-작은 개체군 속에서 신속하게 일어나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
나로 결합되었다. 일반적으로동지역성 메커니즘들은 종래의 이지역성 종분화론이 상정하는
것에 비해더 작은 집단과 더 급속한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선조 종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집단들은 더 많은개체 수의 선조 종
과 교잡함으로써 유리한 변이가 희석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생식 격리가 일어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지역성 종분화 모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은 화이트의 글을 참조하라.)
다수이고 안정된 중심부의 개체군은 균질화homogenizing라는 강력한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어느 한 개체에 좀더 유리한 돌연 변이가일어나더라도 그것이 확산되기에는 개체군
이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그영향력은 희석되고 만다.
그런 돌연 변이는 빈도 면에서 매우 더디게 일어날 수 있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때문
에 개체군 속에 정착하기 전에 그 선택가(selectivevalue, 자연 선택이 유리하게 작용하여 생
존에 유리한 특성/옮긴이)를 잃게 된다. 따라서 화석 기록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규모
가 큰 개체군에 일어나는 계통 변형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변부에 산재하는 작은 집단들은 그 모 계통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들은 선조들의 분포 지역 한 구석에서 작은 개체군으로 생활한다. 이러한 주변부는 선조 종
집단이 분포한 생태학적 한계에 해당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택적 압력(자연 선
택에 작용하는 환경의 여러 가지 특성. 가령 먹이의 부족이나 포식자의 활동, 짝짓기 상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등이 그것이다/옮긴이)이 강하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결국 주변부에 속한 규모가 작은 격
리 집단은 진화적 변화의 실험장과 같은 셈이다.
진화가 주로 주변부 격리 집단에서 발생하는 종분화라는 형태로 일어난다면, 화석 기록이
포함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우리들이 발견하는 화석은 보통 규모가 큰 중심부 개체
군의 유물이기 때문에 종은거의 전 분포 지역에 걸쳐 정적인 상태에 있을 것이다.
선조 종이 살고 있는 모든 지역에서, 자손 종은 그것이 진화한 주변지역에서 이동해온 결
과 갑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주변 지역에서 우리는 종분화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행운을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진화가 아주 작은 개체군 속에서 급속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화석 기록은
진화 이론이 예언한 것을 충실히 나타내고 있으며, 과거에는 풍부했던 이야기가 형편없이
삭제된 초라한 잔재로 남은 것만은 아니다.
엘드리지와 나는 이러한 체계를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a' 모형이라고 부른다. 각
계통들은 전 역사에 거쳐 거의 변화하지 않지만,이따금 급격하게 일어나는 종분화라는 사건
때문에 그 평온함이 단속된다. 그리고 진화란 이러한 단속의 전개와 생존이 뒤섞여 교차하
면서 진행되는 것이다(주변부 격리 집단의 종분화가 급격히 일어난다고 말할 때,나는 지질
학자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라는 긴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여러분이 한 그루의
나무에 달라붙어 종분화를 하고 있는 꿀벌을 평생 동안 관찰한다 해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천 년이라는세월은 대부분의 화석 무척추 동물 종의 평균존속 기간이
라는 척도-500만 년에서 1천만 년-에서 본다면 지극히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지질학자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경우란 좀처럼 없
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시간을 그저순간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점진론이 자연계의 사실이기보다 서양적 사고 방식의 산물이라면 편견을 없애고 우
리들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설명하는 다른 원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련에서 과학자들은변화에 관한 다른 철학적 원리-헤겔 철학을 엥겔스가 정식화한
이른바 변증법적 여러 법칙들-로 훈련되어 있다.
변증법의 여러 법칙들은 분명 '단속'적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라
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이 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
제로 그 말의 의미는, 어떤 계에 느린 속도로 스트레스가 계속 축적되다 보면 일정한 한계
점에 도달해 갑작스런 비약이 일어나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을 가열하면 결국 끓게
된다.
노동자를 계속 착취하면 이윽고 혁명이 일어난다. 엘드리지와 나는 많은 소련의 고생물학
자들이 우리들의 '단속평형설'과 흡사한 체계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남다른 흥미
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이 단속적 변화라는 철학의 보편적 '진리성'을 단호하게역설할 생각은 없다.
이러한 웅대한 개념만이 유효하다고 하는 배타덕인 주장을 펴는 것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때로는 점진론이 특정한 사실을 훌륭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나는 애팔
래치아 산맥 상공을 비행할 때면 언제나, 주위의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암석이 서서히 침식
된 결과 평행하게 형성된 경이적인 산등성이들에 경외심을 금치 못한다).
나는 단지 지배적인 철학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복수성, 그리고 이러한 철학은-그
것이 아무리 꼭꼭 숨어 있고 표면적으로는 불명료하게 보인다 하더라도-필연적으로 우리들
의 모든 사고를 구속하게 된다는 인식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변증법의 여러 가지 법칙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 서방의 점
진주의에 대한 선호는 같은 이데올로기를 훨씬 더 섬세하고 미묘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단속적인 관점이생물학적 또는 지질학적
변화의 속도를 그 밖의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정확히, 그리고 빈도 높게 설명해낼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정상 상태에 있는 복잡계complex system들
은 대개 변화에 대해 강한 저항성을 갖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영국의 동료 지질학자
디렉 V. 에이저는 지질학적변화에 관한 단속적인 관점을 지지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지구
상의모든 지역의 역사는, 마치 병영에서 생활하는 한 병사와 마찬가지로 길고도 지루한 시
기와 짧은 공포의 시기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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