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야마오카 소하치] 도쿠가와 이에야스 (7)

by Casey,Riley 2022. 10. 22.
반응형

    히데요시의 경우
  
  아사쿠라, 아사이 양가의 멸망은 노부나가의 패업을 확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아시카가 
바쿠후는 더 이상 쿄토에 없었고, 눈 위의 흑과도 같았던 타케다 신겐의 죽음은 이미 의심
할 여지가 없었다.
  신겐의 아들 카츠요리는 아직 아버지의 유산들을 거느리고 강대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러나 그에 대해서는 이에야스가 강력한 방풍림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노부나가가 해야 했던 것은 혼간 사와 그 세력 아래 있는 잇코 종도들의 그칠 줄 
모르는 반항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이에는 이, 피에는 피로.
  신앙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무기삼아 반항해오는 잇코 종도들에게 노부나가는 그 
증오를 터뜨릴 시기를 잡았다.
  당면한 문제는 이세의 나가시마에 웅거한 종도들을 토벌하여 이시야마 혼간 사(오사카 소
재)의 한쪽 팔을 끊어놓는 일이었다. 이때의 그의 진퇴 역시 여전히 제삼자의 상상을 조롱
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9월 4일 시바타 카츠이에로 하여금 나마즈에 성의 롯카쿠 요시스테를 토벌케 하여 그대로 
카와치로 진입하는 것처럼 했다. 그리고는 6일부터 재빨리 군사를 수습하여 기후로 개선하
고 말았다.
  개선할 때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앞에 나가 오다니 공격의 논공행상에 대한 감사의 말을 
했다. 그 전투에서 히데요시가 발군의 공을 세웠다 하여, 노부나가는 아사이의 옛 영지 18만 
석을 고스란히 히데요시에게 주고 오다니 성주로 삼았다.
  "그대는 곧 영내를 돌아보고 좀더 사나이다운 면모를 보여주게."
  노부나가는 이렇게 말한 뒤, 음성을 낮추었다.
  "어때, 오이치는 괜찮던가?"
  히데요시를 통해 노부카네에게 보낸 오이치가 죽을 열며 없느냐는 의미였으나, 히데요시
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냐니요?"
  "자결을 단념했느냐고 묻는 것일세."
  히데요시는 비로소 깨달았다느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눈이 부신 듯 대답했다.
  "아, 그 말씀이시군요.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그대는 도중에 무어라고 설득했나?"
  "어찌 감히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지 모시고 갔을 뿐입니다."
  노부나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무슨 말을 하면 의표를 찌르는 대답을 하려고 하
는 히데요시, 그런 태도를 노부나가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히데요시. 문득 건방지다
는 생각을 하면서 노부나가는 물었다.
  "그럼, 처음부터 자결할 마음이 없었더라는 말이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고, 없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답답하군. 그런데 지금은 없어졌다는 것인가? 어째서 자결을 단념했느냐고 묻고 있는 게
야."
  히데요시는 고개를 갸웃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여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딱 잘라 말하면 노부나가도 오이치도 가엾다는 생각이었
다.
  "왜 잠자코 있나, 토키치로?"
  "예. 그것만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모시고 가는 도중에 생각이 변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변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마는."
  히데요시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탐색하듯 노부나가를 쳐다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아주 신중하게 대답하는 히데요시를 지그시 바라보던 노부나가는 흘끗 좌
우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잠시 나가 있거라."
  서기 세키안과 시동들에게 턱으로 지시했다.
  "토키치로..."
  "예."
  "그대는 내가 오다니 성과 아사이의 영지를 모두 주겠다고 했을 때 감사하다는 말을 했
지?"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이 십팔만 석에 혹이 달렸다는 것을 모르겠나?"
  "예?"
  순간 히데요시의 표정이 변했다. 그 모습은 평소의 히데요시와는 전혀 다른 날카롭고 채
찍과도 같은 얼굴이었다.
  "그대는 오이치가 싫은가?"
  "..."
  "솔직히 말해보게.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해서 못 견디겠어. 오이치를 살릴 능력이 있는 사
나이, 그 사나이 옆에서 조용히 아이를 키우게 하고 싶은 게야. 어때, 싫은가?"
  "그야... 아...아...아주 좋아하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어느새 히데요시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수치 때문이 아니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고, 그 아름다움의 소유자가 처한 신세에 대한 감상이기도 
했다.
  "아주 좋아한다면, 어떤가, 오이치를 맡아주지 않겠나?"
  히데요시는 고개를 수그렸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무릎에 뚝뚝 떨어졌다.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좋을 오이치의 미모. 그러한 그녀가 죽음을 생각하며 황톳길을 걷는 모습이 눈물 속에 
아른거렸다.
  노부나가는 똑바로 히데요시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송합니다마는..."
  "맡아주겠나? 그대에게는 야에란 아내가 있어. 그러니 정실로 삼아달라는 것은 아닐세."
  "거절하겠습니다."
  히데요시는 똑바로 고개를 들고 얼른 손끝으로 눈물을 털었다.
  "싫은가, 토키치로?"
  "황송합니다마는 오이치 님은 대장님의 혈육, 이 히데요시는 아시가루의 자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건가?"
  "대장님은 모르십니다. 제 마음이 혼란을 일으킵니다."
  "혼란을 일으키다니..."
  "대장님은 이 히데요시에게는 유일한 태양이십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오만 석에서 십팔만 석으로 출세하게 되어... 그것조차도 황송하게 생각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대장님의 혈육까지... 그로 인해 자만심은 생기지 않을 테지만 세상에서는 그
렇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문중을 생각하여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충성에 금이 
갈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이 히데요시에게는 오이치 님이 너무 과분하여... 그 일에 대해
서는 분명히 거절하겠습니다."
  "그런가..."
  이번에는 노부나가가 눈을 감았다.
  "대장님, 그 대신 만일에 따님들을 키우라고 하신다면 이 히데요시는 성심성의껏 돌보겠
습니다. 그러니 이 일만은..."
  히데요시는 다시 손끝으로 눈물을 털었다.
  노부나가는 웃지도 않았으나 꾸짖지도 않았다. 히데요시의 말에서 추호도 거짓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를 세상에 둘도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섬겨왔다. 그 노부나가
의 혈육을 맞이한다면 문중의 시기를 받게 되어 마음먹은 것을 말할 수 없게 된다-이것은 
얄미울 정도로 노부나가의 급소를 찌른 말이었다.
  "그렇구나... 싫지는 않지만 노부나가의 여동생이기 때문에 거절하겠다는 말이구나."
  "대장님!"
  히데요시는 두 눈에 눈물을 적신 채 손을 내저었다. 오이치를 맞아달라... 이 말을 들은 것
은 히데요시로서는 아사이 가문의 18만 석을 고스란히 주겠다고 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 그
토록 신임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나 오이치의 처지와 함께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오이치 님은 분명히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이 히데요시가 그렇게 믿는 이유를 숨김없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도중에 무언가 설득한 모양이군."
  "아닙니다. 설득하는 대신 추한 것을 보여드렸습니다."
  "추한 것이라니?"
  "적병이 죽어서 썩은 시체입니다."
  "음, 그 시체를 보여주었다는 말이지?"
  "그 시체에는 가을 파리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 마치 검게 타죽은 사람같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파리들을 쫓아버리고 보여드렸습니다. 윙 하고 파리들이 날아가자 새카만 시체가 
갑자기 하얗게 되고 그것이 일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체가 꿈틀거리다니?"
  "구더기가 말입니다. 이미 썩은 살을 파먹는 백골 위의 구더기... 오이치 님은 그것을 눈도 
까딱하지 않고 보고 계셨습니다마는 어느 순간 얼굴을 가리고 따님들 쪽으로 달려가셨습니
다. 그때부터 죽음을 멀리하셨다...고 이 히데요시는 생각합니다."
  노부나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웃으려다 말고 그대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이제 더 이상 오이치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세."
  "대장님..."
  "왜 그러나?"
  "오이치 님은 맡을 수 없으나 그 대신 오이치 님을 기억하기 위해 따님 한 분을 이 히데
요시와 제 아내에게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안 돼!"
  노부나가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십팔만 석을 준 것으로도 자네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일세. 그대를 위해 주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나도 지금 깨달았네."
  노부나가는 곧 출발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히데요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거성으로 정해진 오다니 성
을 순찰하러 가는데 왠지 모르게 몹시 쓸쓸한 마음이었다. 이 성에 오이치와 그 딸들이 없
다는 것만 생각해도 성의 가치가 반으로 줄어드는 듯했다.
  '나는 이 성을 함락시키기 전부터 어쩌면 오이치에게 반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히데요시는 타케나카 한베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이치 님, 부디 행복하십시오.'
  히데요시와 타케나카 한베에의 뒤를 이시다 사키치가 따르고 있었다.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사키치는 히데요시의 뒷모습을 보고 때때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카고리 후루하시무라에 있는 산쥬인의 동승으로 있던 사키치는 놀랄 정도로 눈치가 빨
랐다. 이러한 그의 눈에 히데요시가 갑자기 크게 변한 사람으로 보였다. 어쩌면 나가하마의 
5만 석에서 오다니의 18만 석 성주로 발탁된 까닭인지도 몰랐다. 오토기슈에서 시동, 아시가
루에 이르기까지 친구 대하듯 하는 말투로 가끔 사람들을 웃기고 눈을 가늘게 뜨곤 하던 히
데요시가 갑자기 신중해졌다.
  '이런 변화가 과연 성주님을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
  사키치는 하시바 일족의 결속은 무슨 일에도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는 히데요시의 
활달한 성격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히데요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사이 나가마사와 오이치가 살던 본성 앞에 이르러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물끄러미 성곽을 쳐다보았다.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키치는 히데요시의 어깨에서부터 허리에 걸쳐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외로움이 서려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토라고제야마로부터 
나가하마로 이어지는 폭 18자인 한길을 바라보고 있는 타케나카 한베에게 다가가 조심스럽
게 말을 걸었다.
  "타케타카 님, 성주님께선 몸이 불편하신 게 아닐까요?"
  한베에는 사키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약간 그런 것 같다."
  "타케나카 님께 어디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던가요?"
  "그렇지는 않지만 짐작은 할 수 있어."
  "혹시 십팔만 석이 부담돼서..."
  "사키치."
  한베에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말을 하는구나."
  "아주 신중해지셨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게 아니라 원기가 없어지신 것 같아서요..."
  한베에는 여전히 눈길을 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은 때때로 그런 병에 걸리는 거야. 걱정할 것 없다."
  "그러시면 혹시 아사이 비젠노카미 님의 미망인에게..."
  그때 한베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히데요시에게 성큼성큼 걸어갔기 때문에 사키치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군사 양반."
  히데요시는 한베에가 가까이 오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지위가 있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옵니다."
  "그럼, 그 지위에 위압당하는 경우도 있겠지?"
  한베에는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말머리를 돌렸다.
  "오늘 성내가 순시가 끝나면 곧 영내를 돌아보도록 하십시오."
  "음, 그 일도 서둘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아니, 그 일이 더 급할지도 모릅니다. 내일부터 즉시..."
  "알겠네. 그대가 하라는 대로 하기는 하겠네만, 지위에 위압당하면 그 사람의 싹도 더 이
상 자라지 못할 거야."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약한 소리를 하는 히데요시, 한베에의 낯빛이 흐려졌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노부나가에 버금가는 히데요시
였다. 상대가 누구이건 거침없이 말하고 조금도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말 속에는 격한 반골의 의지가 드러나 보이지만, 히데요시의 그것에는 꾸밈없는 솔직함이 
있어 나중에 반감을 갖지 않게 했다.
  태어난 그릇으로 본다면 히데요시가 노부나가보다-이렇게 생각하는 한베에였다. 따라서 
사키치의 말이 아니더라도 히데요시의 변모는 한베에의 눈에 먼저 띄었다.
  '남자란 이상한 것이야...'
  늘 자신감에 넘치는 히데요시가 여자의 아름다움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공연히 자기와 
오이치와의 신분 차이를 생각한다. 여기에 히데요시의 생애를 결정하는 위기와 함정이 숨겨
져 있는 것 같았다.
  타케나카 한베에는 일단 찌푸렸던 이맛살을 다시 펴고 히데요시와 나란히 섰다.
  "성주님, 성주님은 자신의 타고난 천분, 혜택받은 운을 의심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별로 의심하는 것은 아니야. 아시가루의 아들이 십팔만 석 성주가 되었으니까."
  한베에는 히데요시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한베에는 고작 십팔만 석에 만족하는 성주시라면 섬기지 않겠습니다."
  "허어."
  "걸으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성주님은..."
  이번에는 격의 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어디까지 운이 따를 것인지."
  히데요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거 놀랐는걸. 군사 양반이 묘한 소리를 하다니."
  한베에는 그 말에는 직접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한베에는 과연 성주님답다고 새삼스럽게 쳐다보았습니다."
  "뭘 말인가...?"
  "오이치 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신 것 말입니다."
  "군사 양반, 솔직히 말해보게. 실은 미련이 많지만... 인간에게는 삼가는 일도 있어야 한다
고... 아니, 역시 지위에 억압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일세."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고 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한베에는 갑자기 어조에 힘을 주었다.
  "아니, 운도 좋으십니다! 혜택받은 분이십니다."
  히데요시는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묵묵히 걸었다. 한베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이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한베에라도 역시 거절했을 것입니다."
  한베에는 반쯤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더 큰 인물이 되셨을 때 곤란합니다... 오이치 님은 노부나가 님의 여동생이기는 하지만 
아사이 나가마사의 미망인이니까요."
  히데요시는 깜짝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더 큰 인물이 되었을 때 곤란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한베에가 말하려는 뜻을 비로소 깨닫고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성주님..."
  "응..."
  "곧 이 성으로 기후에 계신 마님을 부르시렵니까?"
  "네네 말인가? 글세,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아니면, 시중을 들 여자를 따로 구하시렵니까? 어쨌든 이대로는 좀 적적하실 테니까요."
  한베에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소리내어 웃었다.
  히데요시는 한베에의 웃음소리에 반감을 느꼈다. 그러나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사카
치가 있었다.
  "와하하하..."
  그래서 실없이 웃으며 그 자리를 얼버무렸다. 얼버무려 그 자리를 넘겼지만, 기분은  더욱 
쓸쓸해졌다. 전략이나 세상의 형세를 내다보는 데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한베에를 높이 평가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자기 심정을 곁에 여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몹
시 불쾌한 일이었다.
  "한베에, 그것은 그대가 알 수 없는 일이야. 더 이상 말하지 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본심인데도 애매한 웃음으로 얼버무린 것은 어딘가 한베에에
게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비굴하고 지나치게 마음이 약하다.'
  히데요시는 생각했다.
  좀더 마음이 강했다면 노부나가의 말대로 오이치를 맞아들여 태연히 시바타도, 아케치도, 
사쿠마도, 니와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키노시타란 성을 하시바라고 바꾼 것에도 후회가 없지 않았다. 니와 나가히데의 충성과 
시바타 카츠이에의 용맹을 본받아 니와의 하와 시바타의 시바를 따서 하시바로 성을 바꾸었
다. 그때는, 성명이란 인간의 부호가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문중의 질투를 피할 수 있다
면 이 역시 일종의 처세술... 이렇게 대범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니 여기에
도 다름 아닌 자신의 비굴함이 낙인찍힌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날 밤 히데요시는 이미 수리를 시작한 본성 앞 임시막사에서 잠을 잤다. 밤중에 두 번 
정도 잠이 깨어 눈을 떴다. 그때마다 깜짝 놀란 것은 자신이 오이치의 꿈을 꾸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이런 일은 좀처럼 있을 수 없다...'
  꿈이라면 언제나 전쟁에 대한 것이었고, 또 쌀의 공납 아니면 산이나 하늘을 달리는 것이
었는데...
  한베에는 날이 밝자마자 곧 새로운 영내를 순시할 준비를 하고 히데요시를 찾아왔다.
  영내 순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우선 위풍당당하게 순시하여 난세의 백성들에게 
안도감을 갖게 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친근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방법을 택하든 그것은 히데요시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한베에는 진바오리에 노바카마 차림으로, 수행할 사람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카토, 
후쿠시마, 카타기리, 이시다 등 시동 출신인 측근무사에 한베에와 히데요시를 합친 인원, 매
사냥을 나간다고 해도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성주님의 무용은 아사이 가문을 멸망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온오미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
다."
  한베에는 이 정도의 인원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생략하고, 출발을 재촉하며 웃고 있었다.
  "출발하시지요, 성주님."
  히데요시는 울화가 치밀었다.
  새로운 영지에 위풍을 떨치고... 아니 그보다는 당당한 행차를 통해 오이치에 대한 환상을 
쫓아버리려 했는데. 그러나 히데요시는 이때도 자기 감정을 억제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세를 
올리고 있는 시동들 앞에서 히데요시가 한베에를 꾸짖기라도 한다면 뒷날 결속에 금이 가게 
된다.
  1개군에 이틀씩 모두 6일에 걸쳐 아사이, 이카, 사카타 등 3개군을 순시하는 일정이었다.
  성을 나온 히데요시는 어제보다도 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측근들에게 사람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좀더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말은 탄 사람은 히데요시와 한베에 두 사람. 키노모토에서 시즈가타케를 넘어 시오츠로 
나왔으며, 이어 핫타고리, 다시 나가하라 강변을 끼고 스가우라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의 숙
소로 정해진 부농의 집인 듯한 큰 집 앞에 섰을 때 히데요시는 눈이 휘동그래졌다. 뜻하지 
않은 미인이 주위의 저녁 어스름을 쫓듯이 하며 문 밖으로 마중 나왔다.
  그날의 일정은 빠르면 스가우라에서 츠즈라오자키를 거쳐 다시 시오츠로 돌아오게 짜여 
있었다. 따라서 반드시 스가우라에서 숙박한다고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문 앞에 나와 영접하는 미인과 타케나카 한베에를 날카로운 눈으로 번갈아 바
라보았다.
  '한베에 녀석, 무언가 속셈이 있었구나.'
  이번에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다고 여겼다.
  "토라노스케!"
  걸어서 따라오는 카토 토라노스케를 엄한 목소리로 불렀다.
  "오늘 밤의 숙박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말하기가 무섭게 문 앞에서 한베에를 향해 타고 있던 말의 머리를 돌렸다.
  바로 눈앞에는 저물어가는 저녁놀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한베에!"
  "왜 그러십니까?"
  "여긴 누구 집이냐?"
  한베에는 허리춤에서 일정표를 적은 장부를 천천히 꺼내들었다.
  "쿄고쿠 와카도지마루의 집입니다마는 건물이 약간 낡았습니다."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쿄고쿠 와카도지마루라면 쿄고쿠 가문의 일족인가?"
  한베에는 히데요시가 재촉할수록 더욱 차분해졌다.
  "원 이런,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알고도 묻는 줄 아느냐? 그 일족이냐?"
  "일족 정도가 아니라 쿄고쿠 가문, 즉 명문 오미 겐지인 사사키 노부츠나의 적류입니다."
  "뭣이...?"
  히데요시는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지붕 위로 풀이 자란 문을 쳐다보았다. 과연 건물은 너
무 낡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농가가 아니라, 어딘가에 몰락한 흔적을 남긴 명문
의 집이었다.
  "사사키 노부츠나는 쿄토의 쿄고쿠에 저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후 사사키를 쿄고쿠라
고도 불렀습니다. 아시카가 바쿠후의 집사, 아홉 개 지방의 성주, 고호쿠 여섯 개군의 태수
였으나, 가신이던 아사이에게 영지를 빼앗기고 이처럼 호숫가에 숨어살고 있지요... 마치 영
고성쇠의 꿈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히데요시는 뚫어지게 한베에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역시 가문의 성주가 누구였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쿄고쿠, 아사이... 그리고 지금은 자
기가 차지하게 되었다.
  카토 토라노스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문을 나왔다.
  "아무 대접도 못하지만 준비는 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좋다고 합니다."
  "누가 말하더냐?"
  "예, 집주인은 아직 어리므로 그 누이가 대접하겠다고..."
  "누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로구나, 토라노스케."
  코고쿠 가문의 종손이라면 존댓말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면서, 히데요시는 조금 
전에 흘끗 보았던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히데요시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오이치라고 한다면 이 여성은 두 번째
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나이는 오이치보다 적었다. 따라서 더 젊고 싱싱하다고
도 생각되었다.
  "한베에, 도대체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를 나의 숙소로 정했냐? 그 대답에 따라 이 집
에서 잘지 어떨지를 정하겠다."
  히데요시는 전에 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따지는 어조로 말했다.
  한베에는 천천히 말에서 내려 고삐를 근시의 손에 건네주었다. 일단 감정을 폭발시켰다가
도 그 후 깊이 반성하곤 하는 것이 히데요시의 성격임을 너무도 잘 아는 한베에였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라도 있습니까?"
  태연히 히데요시를 쳐다보았다.
  "저는 지방관에게 숙소를 선택하도록 맡겨두었는데... 아마도 이집 남매가 숙적인 아사이 
가문을 멸망시킨 성주님이기 때문에 반갑게 맞아주리라 믿고 선택한 것 같습니다."
  히데요시는 아직도 탐색하듯 한베에를 살피고 있었다. 이때 이시다 사키치가 성큼성큼 다
가와 재촉했다.
  "성주님, 고삐를 이리 주십시오."
  한베에는 다시 히데요시에게라기보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놀라고 있는 근시들에게 
들려주는 어조로 말했다.
  "시오츠까지 돌아가려면 밤이 된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새로운 영지이니 혹시 괴한이 숨
어 있을지도몰라. 이 집은 말이다..."
  "..."
  "주인은 와카도지마루로 열서너 살, 그 동생인 키치도지마루는 열한두 살, 그리고 누나 한 
사람이 있다. 그 누나 후사히메는 와카사의 성주 타케다 마고하치로 모토아키에게 시집갔다
가 자기 스스로 돌아온 유명한 여장부야."
  "그럼, 아까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그 미인이..."
  옆에서 사키치가 입을 열었다.
  한베에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사히메는 북오미에게 제일가는  미인이어서 와카사의 타케다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시집갈 때,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더군. 그 조건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
는 것이었어. 그 원수란 말할 나위도 없이 아사이 부자. 남편인 마고하치로 모토아키는 아침
저녁으로 졸라대는 성화에 못 이겨 그만 진절머리가 났던 모양이야. 후사히메는 모토아키에
게 그럴 뜻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몇 달 만에 몸도 허락하지 않고 친정으로 돌아왔다더
군. 그러한 가문이기 때문에 성주님의 숙소로서는 안성맞춤...이라고 이 한베에는 보고 있는
데 모두 어떻게 생각하나?"
  이 말에 평소에는 입이 무거운 토라노스케가 성큼성큼 사키치 옆으로 걸어왔다.
  "이제 납득이 가는군요. 성주님, 말에서 내리십시오. 이 집 주인의 누나 되는 사람도 자기 
원수를 갚아준 성주님이 오셨다고 기쁜 마음으로 영접할 것입니다."
  히데요시는 혀를 찼다.
  "토라노스케 녀석, 마치 자기 부하에게 하듯이 말하는군."
  훌쩍 말에서 뛰어내려 크게 기침을 하고 얼른 한베에 앞에 섰다.
  이미 해는 떨어져 호수의 반이 어둠으로 그늘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데 남쪽에 심은 
조릿대가 미풍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베에 녀석, 역시 속셈이 있었던 거야...'
  오이치를 아사이의 미망인이라고 말한 의도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사이 
일족은 쿄고쿠 가문의 중신에 지나지 않았다...
  오와리 나카무라에 살던 농부의 아들, 대대로 오다 가문을 섬기던 아시가루의 아들. 그런 
자기가 지금 아사이 일족의 주인이었던 코고쿠 가문의 후예에게 새로운 권력자로서 환영받
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히데요시의 핏속에 천성적인 장난기가 무럭무럭 되살아났다.
  이러한 히데요시를 후사히메는 눈을 빛내며 조용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히데요시가 눈앞 열두서너 걸음쯤 되는 위치로 다가섰을 때 후사히메는 또렷한 어조로 말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집 주인 와카도지마루는, 누추한 집을 찾아주신 성주님께 무언가 대접해야 한다고 하
인과 함께 고기를 잡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저
는 와카도지마루의 누나로 후사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와카도지마루의 동생 키치도지마루
입니다."
  히데요시는 여기서도 한베에의 계략을 깨달았다. 마중 나온 후사히메는 검은 머리를 곱게 
빗고 은근한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본 탓인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시가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서 연상되는 억센 여자가 아니라 박꽃을 바라보는 듯한 순박한 아름다
움을 지니고 있었다."
  "음, 이 집 주인이 나를 위해 일부러 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말인가?"
  "예. 저의 집안으로서는 더없이 고마우신 분, 소홀히 대접하면 조상의 영혼이 꾸짖을 것 
같아서입니다."
  "고마운 말이로군. 그럼, 신세를 지기로 할까."
  히데요시는 한베에와 함께 반짝반짝 길이 든 현관으로 올라가면서 옆에 있는 키지도지마
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 무렵부터 묘하게도 히데요시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안방으로 안
내받았을 때에는 자기가 먼저 한베에에게 말을 걸게까지 되었다.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경치... 한베에, 저것이 치쿠부시마로군."
  후사히메는 두 사람을 안내하고는 곧 물러갔다.
  "성주님..."
  "왜 그러나, 군사 양반."
  "마음에 드십니까?"
  "무엇이 말인가?"
  "이 집에서 바라보는 경치 말입니다."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지만..."
  "무릇 생명이란 탐욕스러운 것입니다."
  "뭐, 생명... 이 히데요시처러 말인가?"
  "군무가 바쁠 때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내 생명 하나를 어떻게 살아남게 하
느냐가 선결문제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
  "약간 여유가 생기면 자기 생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아들을, 손자를 미래에 살리려
는 맹목적인 의지가 활동하게 됩니다."
  "알겠네. 그것이 색정의 원인이란 말이지?"
  "그래서 색정은 가능한 한 떳떳하게 나타내셔야 합니다."
  "허어, 군사 양반의 말이 묘하게 바뀌는군."
  "시야는 넓게, 그리고 마음은 깊이 가지시고 좋은 상대를 택하지 않으면..."
  "알겠어, 알겠네."
  히데요시는 손을 흔들어 제지하면서, 왜 그런지 이 집 문 앞에 섰을 때처럼 화가 치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베에는 히데요시의 제지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분별을 잃은 색정도 자식은 낳을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 자식을 낳게 한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몸도 마음도 죽은 남편에게서 떠나지 않는 허물
벗은 매미와 같은 여자와, 성주님에게 오직 한결같은 감사를 드리는 여자가 있다면, 성주님
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맹목적인 의지의 활동이니... 역시 끊임없는 분별이..."
  히데요시는 다시 한 번 손을 내저었다.
  "그만 하게, 군사 양반. 그대는 마치 이 집 여자가 나를 흠모하고 있기라도 한 듯이 말하
는군."
  이때 발을 씻은 젊은이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모두가 히데요시를 에워싸듯이 하고 앉았을 때 집 주인인 와카도지마루가 마을 처녀들에
게 촛대를 들리고 나타났다. 아직 앞머리를 올리지 않은 앳된 얼굴로 절을 했다. 과연 명문
의 후예답게 어딘지 모르게 기품을 풍기고 있었으나 복장은 누나와 달리 아주 소박했다.
  "음, 그대가 와카도지마루로구나."
  히데요시는 가볍게 절을 받으면서 이 자리에 다시 후사히메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노부나가에게 추천하여 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해주어도 좋겠어...'
  이 말은 어린 집주인보다 누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후사히메는 모습을 나
타내지 않고, 이윽고 마을 처녀들이 밥상과 술을 날라왔다.
  촛불이 밝아지면서 차츰 창 밖이 어두워졌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토라노스케 등 젊은이들은 술은 사양하고 허기진 듯 밥을 먹기 시작했다.
  히데요시는 어느 틈에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되었다.
  "정성을 다해 요리한 이 잉어가 정말 맛있다. 너희들 모두 먹어보도록 하라."
  이렇게 말하고 저도 모르게 큰 귀에 손을 가져갔다. 열세 줄로 된 거문고 뜯는 소리가 별
실에서 흘러나왔다.
  한베에가 흘끗 히데요시를 바라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 곡은 쿠모이인 것 같군요."
  "음..."
  "후사히메는 거문고 솜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 환대하
는 것 같습니다."
  "음."
  히데요시는 국그릇을 상에 놓고 와카도지마루를 돌아보았다.
  "어떤가, 누나가 여기서 거문고를 탈 수는 없을까?"
  한베에도 그 뒤를 이어 말했다.
  "성주님의 희망이시니 누나에게 전해주지 않겠니?"
  "예, 전하겠습니다."
  와카도지마루가 사라진 뒤 곧 거문고 소리가 멎고 아랫자리에 촛대가 더 준비되었다.
  "잉어도 그렇고 거문고도 그렇고, 이 집에서는 성주님이 오신 것을 이토록 기뻐하고 있습
니다."
  한베에는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후사히메는 마을  처녀들에게 먼저 거문고를 옮기게 
하고 자기는 나중에 들어왔다. 그러한 동작의 하나하나에까지 미리 그 효과를 잘 계산해놓
은 듯했다.
  "오!"
  사키치와 이치마츠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그늘에서 거문고를 탄다고는 하지만 후사히
메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더욱 아름답게 화장하고 있었다.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서툰 솜씨이오나..."
  후사히메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거문고 앞에 앉아 곧 타기 시작했다.
  
  달도 숨는구나 저 산마루로
  서로 헤어져 떠도는 구름을 보면
  내일의 이별도 그와 같은 것
  가슴에서 떠나지 않으리, 저 짙은 보릿빛의
  ...
  
  히데요시는 어느 틈에 몸을 앞으로 내밀고 옆에 한베에가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것이 성주... 이것이 사나이다...'
  한베에는 호수 위에 달이 떠오른 것을 깨달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거문고보다도 히데요
시 마음의 움직임에 흥미를 느꼈다. 무뚝뚝한 젊은이들도 얌전히 무릎에 손을 얹고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거문고 가락에 도취되어 있었다.
  후사히메는 두 곡을 끝내고 물러갔다. 겸손하다기보다는 히데요시의 관심을 끌려는 동작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마을 처녀가 거문고를 들고 나간 뒤 히데요시는 휴우 하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군사 양반."
  "왜 그러십니까?"
  "과연 세상은 넓어."
  "달이 떴으니 창을 열까요?"
  "아니, 후사히메를 불러 술잔을 건네면 안 될까?"
  한베에는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마는..."
  "아니야, 그래서는 미안하지. 불러오게."
  "성주님..."
  한베에는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렸다.
  "갑자기 기운이 나셨군요. 와카도지마루, 성주님이 이렇듯 원하시니 다시 한 번 누나를 이
리 불러오너라."
  와카도지마루는 공손하게 고개를 수그리더니 일어나서 누나를 부르러 갔다.
  "이제 모두들 물러가서 쉬도록 해라. 내일은 다시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히데요시는 마침내 이전의 뻔뻔스러 히데요시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젊은이들을 물러가게 
하고 후사히메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한베에는 웃음을 참고 후사히메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후사히메가 다시 들어왔
다.
  "후사히메! 그대의 솜씨가 내 혼을 빼놓아 그만 잔을 주는  것까지 잊게 만들었어. 자, 이
리 가까이. 좀더 가까이..."
  히데요시는 직접 잔을 들어 후사히메에게 건네었다.
  "군사 양반도 이토록 놀라운 가락, 이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고 칭찬하고 있
어. 아니, 이 히데요시도 처음이야! 자, 이리 더 가까이."
  히데요시는 한베에가 하지 않은 말까지 태연히 입에 올리면서 마을 이끌어나갔다.
  "...그런데 후사히메, 모든 일은 서로간에 상의한 후에 결정해야 하겠지만."
  "예?"
  "그대의 원수 아사이 일족은 이 히데요시가 멸망시켰어.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는 않
겠지. 이제 쿄고쿠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하지 않겠나?"
  "예, 그것은..."
  "어떤가, 이 히데요시가 동생을 기후의 대장님께 천거하면?"
  후사히메는 깜짝 놀라 히데요시를 쳐다보았다.
  "그 말씀이 진정인지요?"
  "내가 왜 허튼소리를 하겠나. 그래서 모든 일은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 아닌가?"
  "상의라니..."
  "원래 그대는 오다니 성에서 살아야 할 사람. 어떨까, 그대가 오다니 성에 오겠다고 하면 
이 히데요시가 와카도지마루를 책임지고 천거할 생각인데?"
  한베에는 참다못해 웃었다.
  "후후후."
  "왜 웃나, 한베에?"
  "아니, 웃은 것이 아닙니다. 과연 성주님다운 용기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재촉했다.
  "어떤가 후사히메, 오다니 성에 들어가 살 생각은?"
  "오다니 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하다 말고 후사히메는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귀까지 빨갛게 되어 고개를 수그렸
다.
  "싫지는 않겠지, 후사히메? 거짓말이 아니야. 반드시 그대 오누이를 위해 도움이 될 거야. 
어떤가, 이 히데요시로는 부족한가...?"
  한베에는 끈질긴 히데요시의 설득에 후사히메가 무어라 대답할지 흥미를 느끼고 저도 모
르게 옆에 있는 와카도지마루를 돌아보았다.
  와카도지마루 역시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이 빨갛게 되어 굳어진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다. 후사히메와 와카도지마루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한베에, 자네도 한마디 하게."
  후사히메가 잠자코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히데요시의 예봉이 한베에에게로  돌려갔
다.
  "그대에게도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아. 그렇다고 내가 십팔만 석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야. 이 부근을 제이의 발판으로 삼아 크게 도약하겠어. 떨어지는 저녁 해를 감상하
기보다는 새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해야 하는 것이었어."
  "성주님 말씀을 저는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한베에는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모른다니 말도 안 돼. 그대의 충고를 나는 마음에 새기고 있네."
  "석양보다는 새벽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 멸망한 가신보다는 남아 있는 주군의 가문을 말일세."
  "갑자기 계산이 밝아지셨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성주님 
생각대로 하십시오."
  한베에가 시답잖게 대답하자 히데요시는 다시 후사히메 쪽을 돌아보았다.
  "성급한 제안이어서 경솔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이야.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내 성격이니까. 어떤 대답을 하건 나는 놀라지 않겠어. 물론 듣고 싶
지 않은 대답을 들으면 싫망하겠지만."
  이미 히데요시는 오이치에 대한 감상에서 해방되어 원래의 타산적인 사람으로 돌아와 있
었다.
  '이것이 히데요시의 진면목이다...'
  그렇기는 해도 인간관계에는 '인연'이라는 무형의 것이 따르게 마련이었다. 한베에는 그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절할 생각일까?'
  한베에는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승낙한다는 말이지?"
  히데요시가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거절하면 은혜를 저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 히데요시나 되는 사나이가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니까."
  "부탁이시라니... 무슨 그런 농담을."
  "그럼, 결정됐어. 이봐, 술병을 이리 주게. 약속의 잔은 내가 직접 따르겠어."
  한베에는 웃는 대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선 축하 드립니다."
  "운일세. 역시 부딪쳐봐야 부서지는 거야. 그렇지, 후사히메?"
  히데요시는 눈앞에 있는 잔을 들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후사히메에게까지 동의를 구했다.
  후사히메는 술잔을 받았다. 조상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타케다 마고하치로에게 일단 출가
했던 후사히메, 드디어 자기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히데요시에게 몸을 맡기기로 결심
했다.
  히데요시는 녹아들 듯한 눈길로 후사히메를 바라보며 잔이 비워지기를 기다렸다.
  하늘은 삶이냐 죽음이냐에 익숙해 있는 사나이에게 사랑의 순수성을 추구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추구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 후의 히데요시는 큰일을 하지 못했을 것
이 분명했다.
  후사히메가 물러간 뒤 히데요시는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술회했다.
  "때때로 나도 바보가 되는 모양일세."
  그 태도가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에 한베에는 바로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뜻입니까? 설마 후사히메의 일로...?"
  "아니, 오이치 님을 말하는 것일세. 대장님께서는 일단 거절하기는 했으나 다시 한 번 나
에게 달라고 부탁하려 했었어."
  그 일이었구나 하고 한베에는 안도했다.
  "그것도 성주님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지요. 바보이기는커녕 훌륭하신 점입니다."
  "아니야."
  히데요시는 손을 내저었다.
  "맞아들였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한을 샀을 거야."
  "과연 그럴까요?"
  "물론이지. 오이치 님은 시바타 님과 어울려. 대장님도 틀림없이 시바타 님에게 주실 거
야.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어."
  사랑의 감상에서 해방된 히데요시의 눈은 이미 주위의 분위기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
다. 한베에가 생각하기에도 히데요시에게 거절당한 오이치는 시바타 카츠이에에게 보내질 
것 같았다.
  "군사 양반."
  "왜 그러십니까?"
  "달빛이 아주 밝군. 호수 가득히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어."
  히데요시는 어린아이 같은 몸짓으로 일어나 창을 열었다.
  "나도 이제는 하찮은 인간이 아니야. 앞으로는 사사키 겐지의 명문 쿄고쿠 가문의 딸을 
소실로 두게 되었네."
  "그렇습니다."
  훌륭한 노리개를 손에 넣었습니다... 라고 말하려다 한베에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후사히
메에게는 그녀 나름의 목적이 있을 것이고, 히데요시 역시 비록 노리개라 해도 마음에 들기
만 한다면 ㅈ러대로 소홀히 다룰 사나이가 아니었다. 청순한 사랑은 아니라 해도, 서롤르 위
하여 불행한 결합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이 변하면 안 되니 오늘 당장 첫날밤을 치르겠네. 그러나 정식으로 오다니 성에 들
여놓을 때는 당당하게 맞이하겠어."
  "후사히메도 기뻐할 것입니다."
  "내 곁에 온 뒤부터는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후사 마님...으로는 안 돼. 역시 여자이니까 
쿄고쿠 마님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어."
  한베에는 다시 미소를 떠올렸다.
  '이것이 한없이 공상의 나래를 펴는 히데요시의 진면목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한베에는 입이 가벼워졌다.
  "성주님, 맞아들이실 때 그 행렬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부러운가, 군사 양반?"
  "아닙니다, 그 말씀은 나중에 잠자리의 정담으로 삼으십시오."
  "하하하하.... 이거, 참으로 좋은 밤이로구나. 군사까지 마음이 들뜨다니. 저것 보게, 호수에
서 물고기가 마구 뛰어오르고 있네."
  히데요시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후사히메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언제 성으로 맞이하면 좋을까?"
  
    대지의 탄식
  
  오다니 성에서 히데요시가 쿄고쿠 마님을 소실로 맞이하여 마음껏 공상의 나래를 펴고 있
을 무렵!
  코후 성에서는 이미 출전준비를 끝낸 카츠요리가 잇따른 패보에 애를 태우며, 자기 거실
에서 눈을 치뜨고 입을 꾹 다문 채 전령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10월이 다 된 산간지방의 가을은 이미 서리를 맞고 있었다. 창 밖의 푸른 나뭇잎은 시시
각각 붉은 빛을 더하여 머지않아 다가올 추운 겨울을 예고하고 있었다.
  나가시노 성을 이에야스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배신자인 오쿠다이라 사다요시 부자를 
추격하던 타케다 군은 5,000 가까운 군사를 잃었으면서도 부자가 지키고 있는 타키야마 성 
하나도 함락시키지 못했다는 보고였다.
  "사부로베에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냐?"
  카츠요리가 엄한 소리로 묻자 타케다 사에몬다이부 노부미츠의 진중에서 온 스물네다섯 
살 가량인 전령은 마치 카츠요리에게 반항하기라도 하듯이 가슴을 떡 폈다.
  "나가시노가 함락당한 뒤부터 계속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누부하루(바바)는?"
  "맨 먼저 나가시노를 버리고 호라이 사의 초입인 후타츠야마로 후퇴한 이후..."
  "사기가 떨어졌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치죠 우에몬 님도 쇼요켄 님도 사람이 변할 것 같다고 저희 주인은 말씀
하십니다."
  카츠요리는 그 말을 듣고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고 거실 한 구석을 노려보
았다.
  "그대는 카타야마라고 했지?"
  "예, 카타야마 칸로쿠로입니다."
  "그대는 모두의 사기가 그토록 떨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황송합니다마는 그것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원래 도쿠가와 쪽 편을 들었던 적이 있는 야마가의 무리들이라 언제 배반할지 모른다고 
그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알겠다. 스가누마 이즈도 신파치로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로군."
  "아닙니다. 지금은 일단 물러선 호라이 사나 그 주변의 노부시, 농민들도 방심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했습니다."
  "알겠다. 그 정도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어."
  카츠요리는 두 번째 원인은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묻는다면 이 젊은이는 큰 소
리로, 그것은 신겐의 죽음이 누설된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카츠요리가 생
각해도 아버지는 확실히 위대했다. 그 위대한 아버지가 이런 모양으로 아들을 괴롭히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코슈 군의 사기가 떨어진 것도, 점령지의 민심이 흐트러진 것도 따지고 보면 카츠요리의 
인물을 평가한 결과로 나타난 불신이었다...
  '아버지가 너무 위대했다.'
  그렇다고 지금 병력을 철수시키면 모든 게 이에야스의 뜻대로 되어 갈 뿐이다...
  "호라이 사 부근의 농민들까지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지?"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농민들은 내가 누르겠다. 좋아, 이만 물러가거라."
  카츠요리의 말에 상대는 크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아버지가 살아 있을 떄와 카츠요리 치세의 비교가 된다... 이렇게 생
각하고 카츠요리는 모른 채하고 얼굴을 돌렸다.
  카츠요리는 자신의 분노와 탄식의 원인이 대지의 탄식과 이어진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
했다. 단지 신겐의 죽음에 의한 것이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분한 마음은 몇 
배 더 커졌다.
  아버지만은 못하대 해도 결코 범용한 카츠요리가 아니었다. 그런 만큼 일족이나 가신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통함이 무섭게 가슴을 태웠다...
  '그렇구나... 모두 나를 그토록 미덥지 못하게 여기고 있구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신뢰를 받을 때까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분별심을 분노의 
구름이 가리고 있었다.
  전령을 내보낸 카츠요리는 잠시 사방침에 주먹을 세우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정원 쪽 장지문을 모두 활짝 열어라."
  시동에게 명하는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시동은 시키는 대로 장지문을 열었따. 싸늘한 바람과 함께 정원의 단풍나무 잎 하나가 방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토베 오이노스케가 오른쪽에서 물었다.
  "바람이 좀 찬 것 같습니다마는."
  카츠요리는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시동 카츠마루에게 명했다.
  "쇼지 스케자에몬한테 가서 오쿠다이라 부자의 인질을 끌어오라고 일러라."
  "시로님, 여기서 인질을 베시렵니까?"
  카츠요리는 이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로 님-하고 일부러 친밀하게 부른 것도 아버지
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서였으나, 카츠요리는 도리어 그렇게 부른 것에 화가 치밀었다.
  3년 동안 죽음을 비밀에 부치라고 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그러나 그 유언마저도 
장수들의 사기에 시대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아버지 신겐의 죽음을 비밀로 해두는 3년 동
안 가신의 거취를 확인하고 천하의 동향을 주시하라는 의미라고, 카츠요리 자신은 그 뜻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일족의 장수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겐의 죽음을 알면 노
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켄신과 동맹하여 침입할 것이므로 섣불리 발표해서는 안 된다...는 식
으로 몹시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옥리 쇼지 스케자에몬이 손을 뒤로 묶은 한 여인을 두 사람의 부하에게 끌게 하고 정원으
로 들어왔다.
  아직 열다섯 살에 지나지 않는 나츠메 고로자에몬의 딸 오후였다. 아니, 여기서는 고로자
에몬의 딸이 아니었다. 오쿠다이라 사다요시의 일족 로쿠베에의 딸이고 사다요시의 적자 사
다마사의 아내였다. 따라서 사다요시 부자가 츠쿠데 성을 나와 코슈 군에게 일격을 가할 때
까지는 그 대우도 제법 융숭했다.
  "꿇어앉아!"
  옥리는 날카로운 소리로 꾸짖고 나서 카츠요리에게 허리를 굽혔다.
  "명하신 자를 여기 대령시켰습니다."
  카츠요리는 성큼성큼 마루로 걸어나가 윽박지르는 소리로 물었다.
  "오후, 너는 무엇 때문에 묶여왔는지 알고 있느냐?"
  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다섯 살인데도 눈썹을 밀고 이를 검게 물들인 오후는 어린 나
이에 검은 머리를 깎아버린 요승 같은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너는 오쿠다이라 사다마사의 아내, 몸짓으로 대답하지 말고 입으로 대답하라."
  카츠요리는 소리쳤다.
  오후는 그러한 카츠요리의 분노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 밧줄에 묵인 채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감정을 죽인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저는 작은 성주의 아내가 아닙니다."
  "뭣이, 사다마사의 아내가 아니라고?"
  "예, 이름도 없는 가신의 딸입니다."
  카츠요리는 당황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럼, 너는 아직 사다마사와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런 뜻이냐?"
  "아닙니다."
  오후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우 기질이 강한 것인지 아니면 옥에 갇힌 불행
에 겁을 먹은 탓인지 그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태도로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속여왔습니다. 제가 처형될 때는 큰 성주님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그
때까지 작은 성주님의 아내로 행세하라는 분부를 받고 왔습니다."
  "뭐...뭣이! 사다마사의 아내로 행세하라고..."
  "예."
  카츠요리는 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분노를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
는데, 오물 속에 얼굴을 처박은 듯한 굴욕감이 더해졌다.
  "그럼, 오쿠다이라 부자 놈은 너를 코후로 보낼 때부터 모반을 꾀하고 있었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오후는 다시 무표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입니다."
  "스케자에몬, 어서 저 년을 베어라!"
  참다못해 소리질렀다.
  "아니, 잠깐!"
  서둘러 앞에 한 말을 취소했다.
  '이 어린 계집까지도 나를 멸시하고 있다.'
  카츠요리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잔인한 수성의 불길로 변했다.
  매서운 산악지대의 바람이 대지를 박차고, 단풍잎이 오후 주변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하나가 오후의 머리에 떨어졌다. 이것은 농부의 머리에 꽂힌 꽃장식을 연상케 했다.
  "하하하..."
  갑자기 카츠요리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과는 딴판인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
  "좋아, 밧줄을 풀어주어라."
  옥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오후의 젖가슴으로 파고든 밧줄을 풀어주었다. 오후는 자유러워
진 손으로 두 어깨를 주무르기도 하고 두 손을 비벼보기도 했다.
  카츠요리는 그런 오후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예."
  "너는 열다섯 살이라지?"
  "예."
  "대관절 너는 누구의 딸이냐?"
  카츠요리는 다시 사방침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턱을 괴었다.
  "네가 사다마사의 아내가 아니라면 죽여도 소용없다. 살려서 네 부모에게 돌려보내겠다. 
도대체 이 계략을 누가 세웠느냐? 사다요시냐, 아니면 사다마사냐?"
  오후는 멍하니 카츠요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다요시도 사다마사도 아니란 말이냐?"
  카츠요리는 오후의 동작이 지나치게 느린 것에 공연히 화가 치밀었다. 사다마사의 아내로
서 인질이 되었을 때에 비해 너무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런 농부의 딸 같은 것
에게 감쪽같이 속았다는 생각을 하니 어수룩했던 자신이 새삼스럽게 후회되었다.
  오후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큰 성주님도 작은 성주님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습니다."
  "왜 반대했느냐?"
  "이 오후가 가엾다고 하시면서."
  "그렇다면 누가 권했다는 말이냐?"
  "친아버지의 이름은?"
  "잊었습니다."
  카츠요리의 아름다운 눈썹이 다시 꿈틀 하고 경련을 일으켰다.
  "잊었다니, 말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로구나. 좋아, 그럼 묻지 않겠다. 그런데 네 아비는 뭐
라고 하면서 권하더냐?"
  "타케다 가문은 신겐 공이 있어 버티어왔다고 했습니다."
  카츠요리는 가신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오후에 대한 질문을 중단 할 수도 없었다.
  '여기에도 복병이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이 복병을 보기 좋게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하하..."
  카츠요리는 웃었다.
  "너는 정직한 여자로구나. 아버님은 이 성에서 요양중이신데, 그건 그렇다 하고. 그 다음
에는?"
  "예."
  오후의 얼굴에 겨우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카츠요리 공은 무용에서는아버지에게 뒤지지 않으나 생각은 한참 미치지 못하므로, 인질
로는 오후를 보내도 충분히 속일 수 있다. 먼저 오후를 코후로 보내고 나서 하마마츠의 이
에야스 님이 우리편이 되도록 확실하게 마음을 결정하시라고..."
  "음, 그 책략도 재미있군. 그래서 네 아비는 네게 뭐라고 하더냐? 코후에 죽으러 가라고 
하더냐?"
  "예."
  "너도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느냐?"
  "예. 그것도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화형을 당하거나 톱으로 잘려 죽든가... 이런 것까지도 
각오해야 한다고."
  오후는 여전히 남의 일인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카츠요리는 갑자기 속이 뒤집혔다.
  "너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느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맡았느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니, 아비의 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느냐?"
  "아닙니다. 자식에게 그런 일을 명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가 가엾어서... 역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너는..."
  말하다 말고 카츠요리는 꿀꺽 울화를 삼켰다.
  "멍청이냐, 아니면 영리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냐?"
  "처형당할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우시후세의 노파가 말했습니다."
  "우시후세의 노파란 누구냐?"
  "츠쿠데 마을의 유명한 무녀입니다."
  카츠요리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카츠요리는 이런 무저항의 느낌으로 이렇듯 심한 저항에 부딪친 것은 처음이었다.
  단순한 처형이 아니라 화형까지 각오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각오는 한 무녀의 말에 의해 
결정된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 여자를 감동시킬 급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후."
  "예."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느냐?"
  "별로 없습니다."
  "혹시 있거든 내가 전해주겠다. 부모에게라도 좋고 사다요시나 사다마사에게라도 좋다."
  오후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아주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러시면 호의에 못 이겨 한마디만."
  "한마디만? 그래, 말해보아라."
  "저는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짐승으로... 그러므로 명복 같은 것은 빌지 마시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자못 슬픈 듯이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나 곧 전과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
왔다.
  "허어, 내세에는 짐승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그건 어째서냐?"
  "인간은 짐승보다 더 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네가 하고 싶은 말이냐?"
  "짐승은 모두 정직하게 살아가는데도 인간은 서로 속이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오후!"
  카츠요리는 비로소 오후의 인생관에서 급소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목소
리가 높아졌다.
  "너는 이 카츠요리가 부모 곁으로 보내주겠다."
  그 말에도 오후의 얼굴에는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떠오르지 않았다. 믿는 것도 아니고 믿
지 않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다시 쏴아 하고 찬바람이 발 밑에서 회오리쳤다. 그 바람은 오후의 흐트러진 머리에 걸렸
던 단풍잎을 이번에는 가느다란 목덜미로 옮겨놓았다. 오후는 그것을 떼어내려고도 하지 않
았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아닙니다."
  "너는 살려주어도 기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별로..."
  "살아 있어도 재미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말이지?"
  "예."
  "그럼 너를 기쁘게 할 방법은 목을 베는 것밖에 없겠느냐?"
  "아닙니다."
  오후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둥에 묶어놓고 창으로 찔러 죽이거나 끓는 물에 던져 죽이거나 또는  화형에 처해주십
시오."
  카츠요리는 너무나 섬뜩한 요구에 할말을 잊었다.
  처음에는 분노에 못 이겨 베어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초를 하는 동안, 그것보다는 호
라이 사의 진지 앞에 끌어내어 적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카츠요리를 배반한 자의 말로가 
어떤지를 보여주기 위해 되도록 잔인하게 처형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오후는 
이런 카츠요리의 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한 듯한 대답을 하고 다시 무표정하게 카츠요리를 쳐
다보고 있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 카츠요리는 기묘한 압박감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카츠요리는 옥리에게 엄하게 명했다.
  "이 여자를 다시 가두어라."
  원래부터 살려줄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 기쁘게 해주고 나서 심한 충격을 가할 예정이었
으나 그게 전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내일 아침 성에서 떠난다. 그때 호라이 사에 데려가 놓아주겠다. 어서 끌어가거라."
  오후는 다시 밧줄에 묶였다.
  "일어서!"
  옥졸이 소리지르고 밧줄을 잡아당기자 오후는 비틀거리며 한 차례 쓰러졌다. 하지만 그 
창백한 얼굴에는 여전히 고통이나 실망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독한 계집이야..."
  카츠요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오후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초겨울에 부
는 찬바람의 요정과도 같았다.
  정원의 문을 나서면서 쇼지 스케자에몬이 물었다.
  "너는 사다마사 님의 아내가 아니었단 말이냐?"
  "예."
  "그건 그렇고, 살려주겠다고 했는데 왜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어?"
  오후는 흘끗 스케자에몬을 바라보았을 뿐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걸음만 옮겨놓았다. 그
녀는 이미 스케자에몬에게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카츠요리에게 분명히 말했듯이, 코슈에 있다고 하는 끓는 솥에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해 
죽고 싶은 것이 지금의 심정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 이유조차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역시 작은 성주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오후는 생각했다.
  오후는 원래 오쿠다이라 사다마사가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다만 츠쿠데 성주의 아들로서 
섬겨왔다.
  지난해 봄이었다.
  낮의 피로로 깊이 잠들어 있을 때 무엇이 가슴을 압박하는  것을 깨닫고 눈을 떴다. 별로 
꿈을 꾸지 않는 편인 오후는 그때 이것이 침소에서 몰래 빠져나온 사다마사라는 것을 알고 
본능적으로 당황했다. 열네 살에 불과한 오후는 아직 그런 일을 예상한 일도 경계한 일도 
없었다.
  "소리지르면 안 돼."
  사다마사가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오후는 하라는 대로 했다. 주군의 아들이므로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좋아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남녀의 교합
에 대해서만은 알고 있었으므로, 아마 그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오후의 몸은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른 것처럼 몹시 뜨거워졌던 것 같
다. 사다마사를 꼭 끌어안았던 일도 기억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끌어안았던 것일까...?'
  고통을 참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좋아서 그랬는지 지금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
은 단 한 차례의 교합에 오후가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갖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
았다.
  오후는 자신의 죽음을 사다마사에게 기억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
는 잔인한 극형일수록 좋았다. 그리고 만일 사다마사가 자기를 위해 한 방울이라도 눈물을 
흘려준다면... 이것이 불행한 오후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오후는 그 이튿날 호라이 사를 향해 떠나는 코슈 군의 뒤를 말을 타고 끌려갔다. 말에는 
안장이 얹혀 있었고, 오후는 묶여 있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옷도 새것으로 갈아입어 보랏
빛 카츠기가 가을의 햇빛에 빛나 보였다.
  다시 사다마사의 아내로 취급당하는 느낌이었다.
  오후는 그것이 슬펐다. 만일 살아 돌아간다면 오후는 여전히 사다마사에게는 말 한마디도 
건넬 수 없는 시녀로 전락해야 했다.
  "수고했다."
  아니, 어쩌면 이 한마디를 끝으로 사다마사에게 버림받게 될지도 몰랐다.
  '신이여, 저는 살아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가을의 갖가지 풀들이 조용히 산기슭을 뒤덮고 있는 시나노에서 미카와에 이르는 길을 가
면서, 오후는 때때로 눈을 감고 남몰래 기도했다. 도중에 혀를 깨물고 죽을 생각은 하지 않
았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자신이 왜 죽었는지 사다마사가 알 수 없을 
것이므로 그런 죽음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카츠요리의 본진 뒤, 보급대 앞에서 시녀들 틈에 섞여 길을 가고 있었는데, 사흘째 되는 
날 일행은 호라이 사에 도착했다.
  호라이 사에 도착한 뒤 오후는 곧 본진과 격리되어 그곳에 억류되어 있는 사다요시의 막
내아들 센마루와 합류했다. 센마루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금강당에 갇혀 있었다. 센마루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일족인 오쿠다이라 스오 카츠츠구의 아들 토라노스케도 있었다.
  센마루는 오후를 보자 둥근 얼굴에 미소를 띠고 반가운 듯 손으로 불렀다.
  "너도 죽지 않고 끌려왔구나."
  "예. 센마루 님도 여기 계셨군요."
  "오후, 아마 나는 아버지나 형을 위할 수 있게 된 모양이야."
  "그러면, 큰 성주님과 작은 성주님은 무사히..."
  "이에야스 님의 원군이 오면 머지않아 나가시노 성을 지키게 될 것이라고 진쿠로가 전해
왔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후, 너도 불행한 제비를 뽑았지만, 용서해줘."
  "예... 알고 있습니다."
  오후는 다시 자기가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나, 죽을 장소를 여기서 새로 찾게 
되었다고 마음먹었다. 만일 카츠요리가 놓아준다면 센마루를 따라 자결할 생각이었다.
  '정말 잘 되었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센마루는 오후를 기쁘게 해주려고 뜻하지 않은 말을 했다.
  "너와 나의 공으로 아버지와 형님이 무사히 적의 손에서 빠져나왔을 뿐 아니라, 이에야스 
님이 은상으로 삼첨 관의 새로운 영지와 카메히메님을 내리셨다는구나."
  "예... 카메히메 님이라니요?"
  "이에야스 님의 따님, 그분을 형님의 부인으로 삼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센마루는 노래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고 싱긋 웃으며 오후를 바라보았다.
  오후는 그날 밤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같은 방에서 센마루를 사이에 두고 토라노스케와 
셋이 누웠으나, 뇌리에는 사다마사의 얼굴과 아직 보지도 못한 카메히메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아 있는 벌레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
은 생명을 울면서 보내는 벌레... 가만히 고개를 들고 보니 가물거리는 등잔불 밑에서 센마
루도 토라노스케도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완전히 각오가 되어 있는 모양이군.'
  오후는 자신이 미련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눈을 꼭 감아 보곤 했다.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조용히 이부자리를 개어 한쪽에 밀어놓고 허리 
높이로 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젖빛 산 안개가 조용히 깔리고 낡은 마루 가장자리에 희고 
검은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동그랗게 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짐승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오후는 저도 모르게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듯 생각이 어지러웠다. 더구나 생각했던 것, 선이
라 믿은 것들 무엇 하나 실현되거나 실현시킬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오후는 문득 카메히메가 미웠다. 아니, 카메히메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기 딸이라고는 
하나 한 인간을 상품처럼 하사하는 이에야스도 미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단 한 차례 자기
를 범하고는 모른 체하는 사다마사만은 미워할 수 없었다.
  갑자기 마루 가장자리에서 참새의 요란한 단말마가 들려왔다. 자는 체하고 있던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온 참새를 입에 물고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음험한 고양이..."
  그러나 그것도 인간에 비하면 죄가 가볍다. 고양이는 참새 한 마리로 만족하여 천천히 계
단을 내려가지만,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탐욕스럽다.
  "오후, 무엇을 보고 있어?"
  그때 뒤에서 센마루가 말을 거는 바람에 오후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편히 주무셨어요?"
  "일찍 일어났구나, 잘 잤어?"
  "예, 아니오."
  "그럴 테지. 여자의 몸으로는."
  센마루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직도 희미하게 타고 있는 등잔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토라노스케는?"
  그리고는 마루에 나와 세숫물을 대야에 붓고 있는 토라노스케에게 말을 걸었다.
  "토라노스케는 남자입니다."
  "오후."
  "예."
  "오쿠다이라 가문 사람들은 미련을 갖고 있었다는 조소를 당하지 않도록 침착하게 죽을 
수 있겠어?"
  오후는 깜짝 놀랐다. 자기만은 죽이지 않고 풀어줄지 모른다. 어제까지 이렇게 생각하며 
불안하게 여겼는데 어느 틈에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카메히메를 한번 보고 싶다...'
  만나면 틀림없이 미워하게 될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희망이 어느새 가슴에 도사
리고 있었다.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우리가 웃음거리가 되면 오쿠다이라 가문 모두가 웃음거리가 되는 
거야. 떳떳하게 죽도록 하자."
  오후는 갑자기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때 언제나 야채만 곁들인 밥상을 날라오던 아
시가루가 카츠요리의 순찰을 알려왔다.
  카츠요리는 늠름한 갑옷차림으로 손에 채찍을 들고 울타리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것이 사다요시의 막내아들이냐?"
  시종에게 턱짓을 하며 물었다.
  "내가 센마루요."
  센마루는 당당하게 걸어나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다. 오늘 너를 처형한다. 무엇 때문에 처형당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산 안개를 등지고 선 카츠요리의 모습은 그림처럼 선명했다.
  "나는 오쿠다이라 사다요시의 아들,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좋아, 그럼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겠다. 아비의 모반에 대해 본보기로 내리는 형벌은 매우 
혹독한 것이다."
  "끓는 가마솥에 던져넣어 죽이든 나무에 묶어 찔러 죽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어린 것이 당돌하구나."
  카츠요리는 이렇게 내뱉고 그대로 왼쪽 언덕길로 올라갔다.
  오후는 센마루의 등뒤로 망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카츠요리는 센마루의 처형만을 알
리고 토라노스케나 자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분명하게 살려준다고 했으니 풀어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과 함께 갑자기 센마루의 얼굴이 눈부시게 환해 보였다.
  이윽고 아침 밥상이 나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사발의 소금 국에 채소 한 가지. 이것을 센마루와 토라노스케는 
천천히 모두 먹어치웠다.
  "이것이 마지막 식사로구나."
  센마루가 말했다.
  "오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겠지?"
  오후와 동갑인 토라노스케는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가슴을 폈다. 그들은 오후도 함
께 처형되는 줄 알고 있었다.
  오후는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수그렸다.
  센마루를 끌어내려고 열일고여덟 명의 무사들이 나타난 것은 해가 완전히 떠올라 안개가 
걷혔을 때였다.
  오후는 깜짝 놀랐다.
  무사들이 세 치 정도 되는 두께의 십자가 세 개를 아시가루들에게 짊어지게 하고 나타났
다. 그들은 그것을 울타리 밖에 세우고 외쳤다.
  "오쿠다이라 센마루, 이리 나오너라."
  센마루는 일어나 오후와 토라노스케에게 창백한 얼굴을 돌리고 웃어 보였다.
  "수고했어."
  한마디를 남기고 센마루는 빛이 드는 밖으로 나갔다. 그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우는 것 
이상으로 애처로웠다.
  아시가루들이 다가와 센마루를 십자가 위에 뉘고 두 손, 목, 허리, 다리를 굵은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그동안 센마루는 가늘게 눈을 뜨고 조용히 창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은 오쿠다이라 토라노스케."
  "여기 있다. 마음대로 해라."
  토라노스케는 무섭게 상대를 노려보면서 가슴을 활짝 펴고 십자가 곁으로 걸어가 자진해
서 그 위에 드러누웠다.
  "다음에는 오쿠다이라 사다마사의 아내, 오후!"
  오후는 이렇게 불리는 순간 털썩 마루에 무릎을 꺾고 앉았다.
  "나는 사다마사 님의 아내가 아니다! 어째서 내가 아내란 말이냐! 사다마사 님의 아내는 
도쿠가와 카메히메 님이다..."
  이것이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불행을 한탄하는 오후의 마지막 절규였다. 아시가루들이 
우르르 오후에게 달려들었다.
  오후는 반쯤 눈을 뒤집고 입술을 꼭 깨문 채 상대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아마도 마음
속에는 불만과 불신이 터질 듯이 가득 차 있을 것이 분명했다. 굵은 밧줄 밑에서 숨을 쉴 
때마다 젖가슴이 크게 들먹거렸다.
  "이년은 발광하며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입안에 무언가를 쑤셔넣어라."
  지휘자인 듯한 스물일고여덟으로 보이는 무사의 말에 오후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도 않겠다. 말할 게 뭐 있겠느냐...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할까요?"
  기둥에 몸을 묶고 있던 아시가루가 손을 멈추고 물었다.
  "좋아, 그대로 두어라."
  지휘자는 이렇게 말한 뒤 내뱉듯이 말했다.
  "배반자 놈들, 가증스럽기 짝이 없어!"
  오후는 축 늘어졌다. 노송나무로 만든 십자가인 듯, 뒷머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향내가 
한껏 코를 자극했다.
  '증오하려 한다. 이 사람은...'
  적이기 때문에 증오하려고...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적과 아군으로 나뉘어 이토록 잔인
하게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어
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오후는 일단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 다시 눈을 떴다. 짐승만도 못한 인
간들이 무엇을 하는지 끝까지 눈여겨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하늘은 여전히 맑게 개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반쯤 단풍이 든 낙엽수 사이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삼나무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때까치가 요란하게 울고 있었다.
  천천히 십자가가 세워졌다. 바로 눈앞에 센마루와 토라노스케가 묶인 기둥이 이미 앞쪽 
골짜기를 향해 세워져 있었다.
  그 골짜기 너머로 세 입 접시꽃 모양의 깃발이 보였다. 아니 세 잎 접시꽃 모양의 깃발만
이 아니라 오쿠보 군의 깃발도, 이이와 혼다의 깃발도 보였다.
  그들 모두 이 제부터 행해질 잔인한 처형을 마른침을 삼키고 지켜보고 있을 게 틀림없었
다. 그리고 아마도 새로운 원한으로 이 광경을 뇌리에 새기고 결국엔 그 복수가 시작될 것
이다.
  오후는 목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기둥이 흔들릴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을 차례로 가슴에 새겨넣었다.
  마침내 기둥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는 것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수런거리는 사람들의 기척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코슈 군이 겁을 주어 배신을 사전에 막으려고 모이게 한 백성들이었
다.
  "당연한 일이야, 배반자의 자식들이니까."
  이런 아부의 말에 섞여 염불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드디어 최후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그래도 오후는 눈을 감지 않았다.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에서 젖가슴 안쪽으로 파고들 시
퍼런 창끝을 똑똑히 보아둘 생각이었다.
  "부탁입니다."
  갑자기 뒤에 있는 군중 속에서 굵직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가까이 오지 마라!"
  "저는 오쿠다이라 문중에서 센마루 님을 따라온 쿠로야 진쿠로 시게요시입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카츠요리 대장님의 허락을 받고 왔습니다. 센마루 님과 마지막 작별을."
  오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쿠로야 진쿠로는 센마루의 시중을 들던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곁에 있었기 때문에 부모
와 같은 친근감이 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 그가 어떻게 여기에 모습을 나타냈을까 하는 의문은 잠시, 오후는 화가 치밀어올라 
견딜 수 없었다. 진쿠로가 나타남으로써 새삼스럽게 부모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오후
만은 아니었다. 센마루도 토라노스케도 마찬가지였다.
  "영감..."
  센마루의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신세를 졌어요. 센마루는 영감이 가르쳐준 대로 웃으며 죽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센마루 님!"
  발 밑으로 달려와 부르짖는 진쿠로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 늙은이는 도련님께 사죄 드립니다. 도련님 혼자 죽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진쿠로도 
동행하겠습니다."
  "영감... 그러면 안 돼요."
  "무슨 말씀입니까, 왜 안 된다는 것입니까?"
  "무의미한 일이에요. 알잖아요... 살아서 활약을 해야지... 죽는건 무의미한 일이에요."
  "센마루 님!"
  진쿠로의 목소리가 전보다 더 무섭게 떨렸다.
  "작은 성주님은 병으로 돌아가시는 것도 아니고 죄가 있어서 죽임을 당하는 것도 아닙니
다."
  "그래서 영감은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죄도 없이 살해당하다니! 웃으시라고 한 것은 이 늙은이의 잘못, 그것에 화를 내지는 
마십시오. 분노하십시오. 분노의 화신이 되십시오. 까닭 없이 죽임을 당하다니... 그래서 이 
진쿠로도 분사의 길벗이 되려고 합니다. 센마루 님의 혼백과 하나 되어 이 모순투성이인 현
세의 모습을 모든 신에게 호소하러 가겠습니다."
  "닥쳐라!"
  누군가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두서너 명이 진쿠로에게 덤벼든 모양이
었다.
  "방해하지 마라!"
  진쿠로의 목소리가 대꾸했다.
  "카츠요리 님의 허락을 받은 나를 너희들이 방해할 수 있느냐?"
  "닥쳐. 우리 대장님이 허락하신 것은 옛 관습대로 예법에 맞도록 순사하는 일이다."
  "그게 무슨 수작이냐! 순사란 우리가 그 죽음을 납득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
  오후는 갑자기 십자가 위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비로소 자기 죽음을 납득하게 된 듯.
  "귀신이 될 것이다, 귀신이..."
  남의 눈에는 미친 것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오후는 커다랗게 말하고 다시 깔깔 웃었다.
  "그럼, 센마루 님, 먼저 가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진쿠로가 칼로 배를 찌른 듯.
  갑자기 군중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찔러라."
  시퍼런 창끝은 보이지 않고 느닷없이 양 옆구리에서 불에 단 쇠로 찔린 듯한 아픔이 오후
를 엄습했다.
  오후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귀신이 되자.'
  이미 눈은 보이지 않았다. 가을의 맑은 햇빛이 일곱 가지 색으로 부서지고 그 뒤로 잿빛 
어둠이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더욱더 웅성거리는 것 같았으나 이미 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쿠로도 센마
루도 토라노스케도 의식에서 사라졌다...
  '그렇다, 귀신이 되자...'
  
    소리 없는 소리
  
  오쿠다이라 센마루 등의 처형이 끝날 때까지 군중들은 숨을 죽인 채 떨고 있었다.
  제일 먼저 숨이 끊어진 것은 토라노스케이고 그 다음이 센마루, 오후의 순이었다. 센마루
의 십자가 바로 밑에서는 쿠로야 진쿠로 시게요시가 눈을 부릅뜨고 목을 찌른 채 죽어 있었
다.
  아시가루들의 손으로 기둥이 눕혀지자 절에서 두 사람의 승리가 나와 주검에 물을 뿌려주
었다. 그러나 코슈 군이 두려워 독경소리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카츠요리가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이미 센마루의 시체가 옮겨지고 쿠로야 진쿠로의 
얼굴에 가을 파리들이 떼지어 날아들고 있을 때였다. 카츠요리는 물끄러미 그 주검들을 바
라보고 있었으나, 끝내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이 정도의 일로...'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인생의 비참함이 마음을 적셔왔다.
  아직 열다섯 살에 지나지 않는 오후의 주검은 피려다 만 꽃처럼 보였다. 자기 아내인 오
다와라로 보이기도 했다. 이미 피가 검게 굳어지기 시작한 진쿠로의 주검은 자신의 말로를 
암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너무 마음이 약해, 너는...'
  카츠요리는 무섭게 자신을 꾸짖으며 오후, 토라노스케, 진쿠로의 순으로 시체가 운반되어
가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고 있었다.
  군중은 소리 없이 공포를 품은 채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져갔다.
  건너편 적진에도 이 처형은 크게 파문을 일으킨 듯했다.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깃발도 인
마도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아토베 오이노스케가 작은 소리로 카츠요리를 재촉했다. 카츠요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
는지 묵묵히 본진으로 돌아왔다.
  "비피린내가 코를 떠나지 않는구나. 향을 피워라."
  날이 저문 뒤 카츠요리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이노스케, 그대만 나를 따라오너라."
  일어서면서 오이노스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시체를 묻은 골짜기로."
  오이노스케는 그 뜻을 잘못 알아들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마는."
  "알고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나는 백성들의 민심을 알아보고 싶다."
  "그러시면..."
  말하다 말고 비로소 오이노스케는 카츠요리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시체를 훔치러 오는 자
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마음... 이런 생각을 하니 불현 듯 카츠요리가 가련하게 여겨
져 말릴 마음이 들었으나 단념했다. 일단 말을 하면 물러서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이미 해는 떨어져 삼나무 위로 별이 빛나고 있었다. 골짜기에서 산봉우리로 불어오는 바
람이 대지의 울음소리인 양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아, 바위가 솟아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음, 알고 있어. 걱정할 것 없다."
  주종은 본진과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둔 오동나무숲 건너편으로 나갔다. 작은 흙무덤이 
네 개, 돌덩이를 파낸 남쪽 구석에 북향한 채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카츠요리는 억새풀 그루터기 사이로 몸을 숨기듯이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밤이 깊어지면 
찾아오기 어려운 장소이므로 훔치러 오는 자가 있다면 지금쯤이라 생각했다.
  "오이노스케, 얼굴을 가려라. 내가 왔다는 것을 알면 재미없어."
  카츠요리가 말했다.
  주종이 흰 헝겊으로 각자 얼굴을 가렸을 때 흙무덤 뒤에서 흘끗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역시 나타났군. 들키지 않도록 하라."
  카츠요리는 작은 소리로 말하고 혀를 찼다.
  누군가 찾아올 것 같아 살피러 나오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했는데, 막상 눈앞에 나타
난 사람을 보았을 때 자기 얼굴에 오물이 끼얹어 진 것처럼 불쾌한 기분을 누를 수 없었다.
  "무사는 아니로군."
  "예. 농부인 것 같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괭이냐 가래냐?"
  "괭이와 꽃입니다. 꽃은 들국화..."
  "으음. 가운데 무덤에 바치는군. 저것은 센마루의 것이냐?"
  "그렇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오후의 무덤입니다."
  농부인 듯한 사나이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하나 감시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무덤마다 꽃
을 나누어 바치고 나서 이번에는 땅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조용히 합장을 했다. 아마도 
괭이를 손잡이와 분리시켜 가져온 듯, 작은 돌을 줍더니 경계하듯 사방을 둘러보고 그것으
로 괭이에 손잡이를 톡톡 박아넣었다.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마흔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오후의 무덤부터 파기 시작했어. 혼자서 어떻게 옮길 생각일까."
  "그대로 두시렵니까?"
  "멍청이 같은 것. 그러면 처형한 의미가 어디 있단 말이냐!"
  농부는 다시 주의깊게 주위를 둘러보고 힘껏 괭이를 내리꽂았다.
  검고 부드러운 흙이 어둠을 더욱 짙게 하고, 그 안에서 하얀 것이 보였다. 농부는 한 손을 
들어 예를 올리고 다시 괭이를 내리쳤다. 이제는 경계하기도 잊은 듯했다. 흙을 치우고 안에
서 상체를 끌어내고는 중얼거렸다.
  "이토록 무참한 짓을..."
  "이놈!"
  카츠요리가 소리지른 것은 이때였다.
  "네 이놈, 무슨 짓을 하느냐?"
  "앗!"
  상대는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너는 죄인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
  상대는 대답 대신 주종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공포와 경계심 때문에 잠시 말도 하지 못했
다. 괭이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오이노스케가 카츠요리를 대신하여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요?"
  상대는 느닷없이 대들 듯이 반문했다.
  "너희들은 나를 죽일 생각일 테지. 죽이려거든 죽여도 좋다. 암, 죽여도 좋아!"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공포와 경계심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진중을 순시하는 코슈 군이다. 너는 도쿠가와 쪽의 부하냐?"
  "아니, 나는 단지 농부일 뿐이다."
  상대는 눈에 무섭게 핏기를 띠고 괭이를 다시 흙에 찔렀다.
  "나는 이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으면 천벌을 받을 것 같
아 찾아왔다. 카츠요리 님은 부처님의 벌도 모르는 천치인 모양이다."
  카츠요리는 무섭게 눈을 빛내며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세상이 이 모양이니 전쟁을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의는 지켜야 해. 아무리 적이 
밉기로서니 죄도 없는 아녀자들에게 이토록 참혹한 보복을 하다니... 아니, 보복하는 것도 좋
지만 그 시체를 장사 지내주려고 온 나까지 죽이려 하다니. 그래, 베려거든 어서 베어라. 한
번 죽지 두 번은 죽지 않을 테니까. 나도 이 자리에서 이름을 밝혀야겠군. 나는 히고로 마을
의 스케에몬이다. 이번 전쟁 덕분에 논밭 다 버리고 코후 군을 위해 동원되었는데 너무도 
비참한 보복을 보다못해 이렇게 찾아왔다... 자, 어디든 데려다가 죽여도 좋다."
  일단 결심한 상대는 상처 입은 멧돼지처럼 숨도 쉬지 않고 무섭게 지껄여댔다.
  "입 닥쳐!"
  아토베 오이노스케는 호통을 치고 나서 카츠요리를 보았다. 카츠요리는 불끈 쥔 주먹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누가 너를 벤다더냐?"
  농부는 입을 다물었다. 카츠요리는 분노를 억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는 카츠요리를 천치라고 했지?"
  "암, 그랬지."
  상대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했다.
  "천치가 아니라면 나를 칭찬하든지 아니면 시체를 옮기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래..."
  카츠요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다시 한 발 다가섰다.
  베어버리고 싶은 분노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그의 가슴속에서 뒤엉켜 소용돌이
쳤다. 그가 백성들을 보존시키기 위해 행한 처형이 어쩌면 도리어 반감을 부추겼는지도 모
른다.
  "그래, 천치가 아니라면 너를 칭찬했을 거란 말이지?"
  "당연하지. 나는 너무도 잔인하기 때문에 이 여자의 시체만이라도 마을로 옮겨다 묻어주
려고 했다. 그러면 코슈 군의 죄업이 조금은 소멸될 뿐 아니라,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체한 카
츠요리 님은 인정이 있는 사람이란 말을 듣게 될 거야. 또 그러면 마을에서 동원되어 일하
는 농부들도 안심하고 일하게 될 거라 생각지 않느냐?"
  "으음..."
  카츠요리의 마 고에서 드디어 소리 없는 소리가 분노를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 농부가 하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을 위해 가업을 팽개치
고 일하는 농부들의 반감을 산다면 원정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 아버지의 말도 생각
났다.
  "네 이름이 스케에몬이라고 했느냐?"
  "그래, 히고로 마을의 스케에몬이다."
  "너는 불심이 깊어 보이는구나."
  "뭐라고?"
  "그 여자의 시체를 옮겨다 잘 묻어주도록 해라."
  "그럼, 나를 죽이지 않겠다는 거냐?"
  "너를 죽이면 카츠요리의 노여움을 살 뿐이다. 이 사실을 고하면, 칭찬해 돌려보내라고 할 
것이다."
  "그...그게 정말인가?"
  "자, 구덩이를 잘 다져놓고 운반해가거라.  꽃을 바친 네 마음을 칭찬하는  의미로 이것을 
주겠다. 도중에 제지하는 자가 있거든 이것을 보이고 통과하도록 해라."
  카츠요리는 허리에서 작은 인로를 끌러 농부의 발 밑에 던져주었다.
  농부가 허리를 구부려 그것을 집어드는 동안 카츠요리는 얼른 발길을 돌렸다.
  "오이노스케, 어서 가자."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카츠요리는 그날 밤 자신의 행위를 소리 높여 조롱하는 오후의 꿈에 시달렸다.
  오후는 카츠요리에게 어떠냐, 내가 이겼지 않느냐-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 정도의 일로 
내원한이 사라질 줄 아느냐 하기도 했다. 아버지 이상의 맹장임을 자처한다면 왜 좀더 강해
지지 못하는가, 어째서 백성들과 적을 정말로 떨게 만들지 못하느냐고 매도하기도 했다. 아
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오후는 카츠요리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열아홉 살의 오다와
라 마님을, 머지않아 자기와 똑같은 운명에 빠뜨리고 말겠다는 말을 남기고 꿈에서 사라졌
다.
  꿈은 오장육부가 피곤해지면 꾼다고 한다...
  카츠요리는 새벽을 맞이하는 진지으 잠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은 채 여러 가지 상념에 몸
을 맡기고 있었다. 온몸에 흠뻑 식은땀이 흐르고, 그것이 말랐을 때는 밖이 완전히 밝아 있
었다.
  '가슴을 앓던 아버지도 자주 잠자리에서 식은땀을 흘린다고 호소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자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의 거리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전혀 공포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불러내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쓰러지지 않으면 병마가 쓰러뜨린다.'
  '백 년을 산 자가 어디에 있는가.'
  날이 밝아옴에 따라 일련의 생각은 점점 더 강렬한 것이 되고,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평소의 카츠요리로 돌아와 있었다.
  '도쿠가와 따위에게 방해를 받아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하지 못한다면 후세에까지 불효자
란 비웃음을 살 것이다...'
  카츠요리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오이노스케가 찾아와 귀엣말을 했다. 백성들을 둥
원한 일꾼들이 오늘 아침에는 일하는 모습이 어제와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역시 처형한 것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래?"
  "또한 어젯밤에 베푸신 그 인정도."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농부가 한 사나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카츠요리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을 물리고 그 자를 데려오너라."
  시동과 오이노스케에게 동시에 명했다.
  이미 햇빛은 마루 끝에 와 있었으나 아직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몇 겹으로 둘러쳐진 울
타리 안은 한 포기의 풀도 자라지 못하도록 엄중한 경계를 펴고 있어서 황토 일색인 지면이 
살풍경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농부 차림의 한 사나이가 오이노스케를 따라 들어왔다. 그 자가 외부로부터의 침
입자임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각반이 코슈군에게 지급한 감청색의 것과는 약간 색깔
이 달랐다.
  "이 자를 어젯밤의 그 농부가 데려왔다는 말이냐?"
  "예. 우리 대장님의 인정에 감복하여 일부러 여기까지 그 인로를 보이며 데려왔다고 합니
다."
  카츠요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모두 물러가 있거라."
  주위에 명했다.
  모두들 물러가고 오이노스케만 남았다.
  "너는 오카자키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라도 가지고 있느냐?"
  상대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오카자키의 중신 오가 야시로의 동료인 오다니 진
자에몬의 검푸른 얼굴이었다.
  진자에몬은 눈꼬리가 치켜올라간 신경질적인 눈으로 품속을 더듬었다. 속옷의 깃을 잡아
당겨 풀더니 안에게 꼬깃꼬깃한 종이쪽지를 꺼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제 이름은 오다니 진자에몬, 여기 오가 야시로 님의 밀서를 가져왔습니다."
  카츠요리는 그동안 눈길을 떼지 않고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가, 오이 노스케가 밀서를 받
아 건네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로 물었다.
  "오가 야시로의 밀사라면 알고 있겠지. 의사 겐케이는 무얼 하고 있느냐?"
  "예... 그것은 제가 묻고 싶은 말씀입니다."
  "뭐야, 네가 묻고 싶은 말이라니?"
  카츠요리는 비로소 종이쪽지를 펼쳐 말없이 눈으로 읽었다.
  "그럼, 겐케이는 코슈를 향해 오카자키를 떠났다는 말이냐?"
  "그러합니다."
  카츠요리는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했다.
  "네 이름이 오다니 진자에몬이라고 했지?"
  "예."
  "너는 이 카츠요리의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거짓이 있을 때는 용서치 않겠다."
  진자에몬의 몸이 꿈틀 하고 크게 움직였다. 자기가 야시로의 사자인지 아닌지 아직 의심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에야스는 어디 있느냐?"
  "하마마츠에 있습니다."
  "노부야스는?"
  "오카자키에 있습니다."
  "진자에몬!"
  "예...예."
  "노부야스의 정실 이름은?"
  "토쿠히메라고 합니다."
  "소실은?"
  쏘아대듯 물으면서 카츠요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예. 아야메라고 합니다."
  "나이는?"
  "열다섯."
  "그 야야메는 겐케이가 떠난 뒤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노부야스의 총애가 나날이 깊어져서 현재 임신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카츠요리는 비로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자임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이 밀서에는 이에야스가 오다에게 원군을 청하여 이 카츠요리를 단숨에 무찌를 계획이라
고 씌어 있으나, 그 대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에 관해 무슨 말이 없더냐?"
  "그 점에 대해서는..."
  진자에몬은 말하다 말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만일에 물으시면 대답을 드리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말해보아라. 원군이 오면 어떻게 하겠다더냐?"
  "오다 쪽에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므로 당장에는 미카와로 병력을 출동시키지  못할 것
이다. 그동안에 계책을 세워 양자 사이를 갈라놓겠다고 했습니다."
  "그 계책이란?"
  "황송합이다마는 노부야스와 토쿠히메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뭣이... 부부 사이를..."
  말하다 말고 카츠요리는 불쾌하다는 듯 양미간을 모았다. 문득  자신의 어린 정실 오다와
라의 아름다운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오가의 계책이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란 말이지?"
  카츠요리의 얼굴이 흐려졌다.
  진자에몬은 당황하여 얼른 말을 계속했다.
  "계책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육친의 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오가 님은 말했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너무 치졸해."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급소입니다."
  진자에몬은 더욱 다급해져 작은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이미 츠키야마는 오가 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계책을 실현하기 위해 토쿠히메
를 계속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토쿠히메의 불만은 곧바로 오다 성주에게 전해지고... 사
랑하는 딸이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제 아무리 오다 성주라도..."
  진자에몬이 입에 거품을 물고 열을 올렸다.
  "닥쳐라!"
  카츠요리가 못마땅한 듯 가로막았다.
  "그런 것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예... 예."
  "츠키야마는 잘 있느냐?"
  "요즘에는 좀 기운이 떨어졌다고 가신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역시 오가 님의 계
략, 대사를 앞두고 그렇게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카츠요리는 다시 혀를 찼다.
  "오가 야시로는 책략에 뛰어난 사나이로군. 어쨌든 좋다. 밀서의 취지는 내가 잘 알았다고 
하더라고 돌아가서 전해라."
  이번에는 옆에 있는 오이노스케를 돌아보았다.
  "이 밀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본인이 원하는 데까지 배웅해주도록 해라."
  "예. 그럼, 나를 따라 오시오."
  두 사람이 사라진 뒤 카츠요리는 팔짱을 끼고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오가 야시로의 밀서에는, 지난번에는 왜 부세츠까지 오지 않았느냐는 불만에 이어, 나가시
노에서 결전이 벌어지면 당연히 노부야스도 출전하게 될 것이므로,  그때는 앞서 약속한 대
로 오카자키를 먼저 공격하라고 씌어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이에야스에게 오카자키는 곡창
이고 그의 으뜸가는 성. 그곳을 점령하여 만일에 올지도 모르는 오다의 원군을 저지해야 한
다고 씌어 있었다.
  그 말은 모두 옳았다.
  오다의 원군에게 미카와 진입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츄고쿠와 시
코쿠의 군사를 쿄토로 올려보내거나 혼간 사의 신도를 선동하는 등 강구해야 할 대책이 몇 
가지 있었다.
  '야시로는 토쿠히메를 학대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이런 생각에 이어 잠깐 카츠요리의 마음을  움직였던 인간 본래의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천성적인 투자가 이를 대신했다.
  "그렇다!"
  카츠요리는 혼자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무용에서는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다고 가신들이 
자주 말하고 있다. 그 무용을 용맹스럽게 발휘하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한 투지.
  오다니 진자에몬을 배웅한 아토베 오이노스케가 이번에는 야마가타 사부로베에와 함께 돌
아왔다.
  "시로 님, 별고 없으셨습니까?"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는 유달리 키가 작은 몸을 굽혀 문안의 말을 하고는 거침없이 카츠요
리 곁에 와서 앉았다.
  카츠요리는 호탕하게 웃고 사부로베에를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장 사기가 떨어진 사람 중의 하나-이런 생각을 하자 카츠요리는 이 
작은 키의 무장을 고무시켜야 한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사부로베에, 나가시노의 작은 성 하나도 공략하지 못하다니 어찌된 일인가?"
  "공략하지 못하다니, 그 말씀은 왜 함락시키지 못하느냐는 질책이십니까?"
  카츠요리의 적극적인 태도에 사부로베에는 이에 응할 태세를 갖추고 웃음을 떠올렸다.
  "적이 강하기 때문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카츠요리는 다시 한 번 소리내어 웃었다.
  "강한 적을 만나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 코슈의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라는  말을 들었는
데."
  "시로 님, 이 사부로베에가 오늘은 강력하게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마는."
  "그게 뭔가?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게. 하지만 사부로베에, 이대로 코슈로 물러가자는 의견
이라면 듣지 않겠네."
  사부로베에는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는지 가볍게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저도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받아들이시지 않을 테니까요."
  "허어, 그렇다면 다른 일이란 말이지. 좋아, 말해보게."
  카츠요리는 벚꽃 차를 가져오라고 시동에게 명했다.
  사부로베에는 차가 나올 때까지 중요한 용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진지의 마당이 살풍
경하다느니 비가 오면 골짜기의 물이 불어나  진지를 침수시킬 수도 있어 곤란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실은 다름이 아니라, 성주님이  병환중이시라며 비밀에 부치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시로 
님의 용맹을 삼가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으음, 철수하자는 말은 하지 않겠으나 그 대신 용맹을 삼가라는 말을 하겠다는 것인가?"
  "예. 츠쿠데의 오쿠다이라 부자가 이에야스 쪽으로 돌아선  후에는 야마가 일당만이 아니
라 노부시와 백성들도..."
  "그만두게! 그런 말은 듣지 않겠어."
  카츠요리는 사부로베에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런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어제 처형을 명했던 것일세. 그래서 조급하게 공격하지 말고 
지구전을 펴자는 것인가?"
  "황솝합니다마는..."
  사부로베에는 먹잇감에 덤벼들기 전의 매와도 같은 눈으로 연하의 주군을 노려보았다.
  "게다가 오다의 원군이 도착하여 우리 병력에 손실을 입게 된다면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원군이 오기 전에..."
  "주군!"
  이번에는 사부로베에가 카츠요리의 말을 가로막았다.
  "오다는 킨키지방의 패자입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에치고에서 그 북쪽으로는 우에스기, 미카와와 토토우미에는 도쿠가와, 그리고 킨키의 오
다 등 삼면에 적을 두고 도대체 주군께서는 어디에 주력부대를 배치하시렵니까?"
  "그럼, 나가시노 따위에 구애받지 말고 다른 곳을 공격하자는 말인가?"
  "주군! 삼면의 적을 상대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유일한  우리편인 오다와라까지 적으로 돌
아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습니까? 적과 아군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는 전략을 세울 수 없
는 것...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아버님께서도 거듭 강조하시던 말씁입니다."
  카츠요리는 사부로베에로부터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불쾌한 듯 얼굴을 돌렸다.
  "시로 님!"
  사부로베에는 다시 말에 힘을 주었다.
  "삼면의 강적을 그대로 두고는 싸울 수 없습니다. 그것을 둘로 줄려야 합니다."
  "뭣이, 셋을 둘로 줄인가고...?"
  "예. 그래야만 균형이 잡히고 우리에게 승산이 많아집니다. 승산이 있으면  그냥 내버려두
어도 병사들의 사기는 올라갑니다."
  "사부로베에!"
  "예."
  "그럼, 나더러 이에야스에게 고개를 숙이란 말인가?"
  "이에야스라고는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또 가령 이에야스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오다 군을 꺼려 동맹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의 방패가 되어 있는 노부나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동맹하라는 말인가, 
그 속이 검은 부처님의 원수와?"
  사부로베에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부나가도 이에야스를 꺼려 당장에는 우리가 요구해도 동맹에 응하지 않을 줄로..."
  "사부로베에, 그대는 이 카츠요리를 조롱할 셈인가?"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신라 사부로 이래 대대로 이어져  온 겐지라는 명가에 행여 흠
이라도 생길까 하여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그대는 이 카츠요리보고 아버지의 원수인 에치고의 켄신에게 무릎을 꿇고 자비를 빌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부로베에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금 천하의 장수들을 살펴볼 때 한 조각 의기나마 가진 것은 켄신 공밖에는  없다고 이 
사부로베에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으음."
  젊은 카츠요리는 맹수와도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사부로베에를 노려보았다.
  "좋아, 이야기만은 듣겠네. 그렇다면 켄신에게 무어라 하며 접근한다는 말인가?"
  사부로베에는 그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은 피하고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살아 계셨을 때... 아니, 건강하셨을 때에도 카이와 시나노 등 바다를 끼지 않은 
고장의 백성들을 위해 일부러 소금을 보내준 것은 켄신 공이었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회유하기 위한 간계였다고는 생각지 않나?"
  "또 아버님이 별세하셨다는 소문이 세상에  떠돌자 병사를 거두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
다. 히에이잔을 불태우고 잇코 종도를 적으로 삼는 등  노부나가가 저지른 불도상의 잘못을 
호소하고 천하를 위해 편을 들어달라고 제의하면, 그것을 들어줄 사람은 켄신 공 한 사람뿐
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츠요리는 다시 무릎에 얹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향배를 알 수 없는 난세라
고는 하나 아버지가 후반생을 통해 적으로 돌리고 전쟁을 벌여온 우에스기 켄신에게 화의를 
청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켄신 공과의 화의가 성립되면, 에치고 군에 엣츄와 카가에서부터 에치젠에 걸쳐 있는 잇
코 종도를 끌어들여 오다 쪽 군사를 그쪽으로 돌리게 한 다음 이에야스를 공격하도록 하십
시오. 그렇지만 나가시노를 공략해서는 안 됩니다. 오다와라와 힘을 합쳐 엔슈에서 이에야스
의 거성 하마마츠를 먼저 공격해야 합니다. 오다 군의 원군이 오기 전에 하마마츠부터 요시
다, 오카자키 등을 순차적으로 함락시키면 나가시노뿐 아니라 야마가 일당도 저절로 고립되
어 우리 타케다 군을 등지지 못할 것입니다."
  카츠요리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있었으나, 그 눈길은  어느 틈에 사부로베에의 얼굴에
서 마당으로 향해 있었다.
  풀 하나 없는 황토에서는 느릿느릿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부로베에는 여전히 한치도 양보하지 않을 기세로 카츠요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그 눈길을 옆얼굴에 강하게 느끼면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려 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현저하게 사기가 떨어졌다. 단순히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으나 지금 
사부로베에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아
버지의 죽음 이상으로 카츠요리의 전략과 인물됨을 위태롭게 여기고 있었다.
  병력을 동원하는 이상 필승의 대비책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고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
했었다. 상대가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군이라면 이쪽은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연합군으
로 맞서야 한다는 사부로베에의 간언은 전략상으로 보아 분명히 아버지의 유지와  일맥상통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적으로 삼아온 켄신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형편없는 불효
자의 소행으로 여겨져 견딜 수 없었다.
  "시로 님!"
  주저하는 카츠요리의 모습에 사부로베에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으며 다그치듯 말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우에스기와 손을 잡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으음."
  "다행히 이제부터 겨울이 시작됩니다. 즉시 에치고에 밀사를 보내십시오. 켄신  공은 반드
시 응할 것입니다."
  "..."
  "토토우미에서 이에야스의 거성인 하마마츠를 계속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십시오. 그
러는 편이 훨씬 더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사부로베에..."
  잠시 후 카츠요리의 눈길이 다시 사부로베에에게로 돌아왔다.
  "나가시노에서 즉시 병력을 철수하라는 말인가?"
  "용병은 천변만화, 불리한 체진은 무의미합니다. 이 산간에서 겨울을 맞이하면 식량수송이 
더욱 어려워질 뿐, 이에 비해 토토우미로 나가면 오다와라라는 우군이 있습니다."
  "알겠네."
  카츠요리는 대답했다.
  "이것이 그대 한 사람만의 의견은 아니겠지?"
  "그렇습니다. 바바, 츠치야, 오야마다 등도 모두 같은 의견입니다."
  카츠요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신들이 입을 모아 하는 간언이로군."
  "모두 유서 깊은 가문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알겠어. 알겠으니 곧 군사회의를 열도록 하세."
  야마가카 사부로베에는 자세를 가다듬고 고개를 숙였다.
  "고마우신 말씀, 이것으로 타케다 가문은 만만세입니다."
  사부로베에가 물러가자 카츠요리는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끝내 울분을  터뜨리
며 오이노스케에게 말했다.
  "우에스기와는 화의를 맺겠어. 그 대신 이번 정월까지는  반드시 이에야스의 목을 베고야 
말겠다. 나가시노에서 우리가 철수하는 줄 알고 방심하는 틈을  타서 대번에 하마마츠를 짓
밝고야 말 것이다."
  오이노스케는 그 맹렬한 기세에 겁을 먹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 주군이시라면 능히..."
  카츠요리는 벌떡 일어나 거칠게 막사 안을 걷기 시작했다.

    한 쌍의 거울
  
  달빛이 호수 위에 닿아 근처에 있는 소나무들이 검게 떠올랐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으나 하마마츠 성에서는 아직도 세공으로 거둔 쌀 섬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야스 자신이 직접 총지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
가루들도 늦게까지 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주님, 그만 들어가시지요."
  앞으로 40여 섬이면 짐수레에 싣고 온 쌀섬을 창고에 들이는 작업을 끝날 듯했다. 그래서 
혼다 사쿠자에몬이 말했으나 이에야스는 못 들은 체하고 계속 모닥불 곁에 서 있었다.
  이에야스의 계산으로는, 일단 나가시노에서 철수한 타케다의 주력부대가 연내에 반드시 
이 하마마츠 성을 공격해온다는 생각이었다. 그에 대한 대비로 카케가와 성에는 이시카와 
카즈마사를 배치하고 타카텐진 성은 오가사와라 나가타다에게 수비를 맡기고 나서 자신은 
식량저장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벌써 여섯 점 반(오후 7시)이 되었습니다."
  "음, 그럼 들어가서 쉴까."
  요즘 이에야스는 좀처럼 가신들과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가신들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느긋한 태도로 두 발을 벌리고 서서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쌀섬을 매고 가는 병졸들을 지
켜보았다.
  "참으로 수고가 많다. 올해에는 서둘러 이곳에 저장해두지 않으면 토토우미 전체사 쌀 부
족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는 가볍게 말을 건네었다.
  "코슈 군이 밀려오면 사람들이 많아지게 돼. 마을에 두었다가 그들이 모두 먹어치우면 기
근이 들어."
  그날도 작업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다가 일을 마치는 것을 보고서야 이이 
만치요, 곧 나오마사와 오쿠보 헤이스케를 데리고 본성으로 돌아왔다. 헤이스케는 타다요의 
막내동생으로 이제야 겨우 명을 받고 관례를 올리게 될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떠냐 헤이스케, 지쳤느냐?"
  "아닙니다, 전혀."
  "쌀은 백성들의 피와 땀이므로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헤이스케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백성들은 지나친 공납으로 불평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만이 많겠지. 그러나 백성들이 가지고 있으면 곧 바닥이 나게 돼. 만일 내년 모내기 때 
전쟁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모두 적에게 빼앗겨 가을에는 굶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래서 성주님이 몰수하시는 것입니까?"
  "헤이스케."
  "예."
  "누가 몰수한다고 했느냐? 이것은 백성들을 위해 맡아서 지켜주는 거야. 그래서 나도 흰
밥은 먹지 않기로 하고 있다. 흰밥을 먹는 자가 있거든 혼내주어라."
  헤이스케는 목을 약간 움츠렸다.
  "성주님께서 돌아오십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현관을 향해 소리쳤다.
  세상의 일반 백성이나 농부들과 다른 성주의 생활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짚신을 벗겨
주는 자, 가죽 버선을 벗겨주는 자, 발을 씻겨주는 자... 그리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면 어
느덧 이에야스는 근접하기 어려운 존귀한 존재로 바뀌었다.
  저녁 식사는 시동의 시중을 받으며 밖에서 하는 경우와 안에서 상을 받을 때가 반반이었
다. 그렇다고 별로 식사의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니고 7할의 보리를 섞은 밥에 국 한 그릇, 채
소 세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그날 이에야스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내전의 복도 입구에는 오아이가 부리나케 마중 
나와 있었다...
  오아이는 내전과 바깥의 경계에서 시동의 손으로부터 이에야스의 칼을 받아들였다. 그리
고 소나무 가지에서 계속 찬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거실에 들어가 칼걸이에 칼
을 걸고 곧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아이는 시녀이기도 하고 내전의 감독이기도 하며 실질적인 소실이기도 했으나 결코 총
애를 받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찻잔을 받아 손바닥으로 감쌌다.
  "오아이, 아무래도 또 전장에 나가야 할 것 같아."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타케다 군의 이동이 시작된 모양이야."
  "그럼, 토토우미로 전쟁터가 옮겨지는 것일까요?"
  "응. 이번 전투는 치열해질 거야."
  이에야스는 남의 일같이 말하고 덧붙였다.
  "그대도 지금 이대로는 너무 가여워. 어엿하게 소실로 맞아들이고 시녀들도 딸리게 해야
겠어."
  오아이는 흘끗 이에야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당장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에야스가 되바라진 여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츠키야마는 특별
한 경우였다. 만일 자기가 이에야스의 마음에 큰 위치를 차지할 생각이라면 더욱 밖으로 나
서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이에야스뿐만 아니라 세상 남자들의 공통점이라 생
각하고 있었다.
  밥상이 시녀의 손으로 운반되어왔다. 오아이는 일일이 점검해보고 이에야스 앞에 갖다놓
았다.
  "한 가지 부탁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에야스가 두 공기째 밥에 수저를 대었을 때였다.
  "저는 지금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부디 오만 님을 성안으로 불러 주십시오."
  "뭐, 오만을 불러들이라고?"
  이에야스는 씁쓸히 웃었다.
  "그대도 꽤나 영리한 여자로군."
  오아이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이에야스를 쳐다보았다.
  "오아이, 오만이 돌아오면 시끄러워진다는 것은 그대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예... 예."
  "오만은 그대보다도 마음이 가벼운 여자야. 그리고  아이를 낳았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하고. 오만을 대우하게 되면 츠키야마의 광란이 더욱 심해질 거야."
  "그렇기는 합니다마는."
  "오만도 오만이 낳은 아이도 불쌍하다는 말이겠지. 차라리 이대로가 좋아. 그러면 츠키야
마도 이에야스라는 남자가 자기에게만 가혹하지 않다는 것을 납득할 테니까."
  이에야스는 설명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어적어적 소리를 내며 야채를 씹었다.
  "오아이."
  "예."
  "나는 말이지. 지금 여자나 아이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 언제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
어. 여자들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고 싶어."
  "그렇기 때문에 저도 소실로 삼으시겠다는 뜻을 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멍청한 것 같으니라구..."
  이에야스는 웃었다.
  "그대는 진작에 소실이 되었어야 해. 만일 내가 전사한다면, 이에야스는 불쌍한 여자를 건
드리기만 하고 그대로 죽었다는 말을 듣게 돼. 그러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그대가 아니라 
바로 이 이에야스야. 어때, 내 말을 알아듣겠나?"
  이에야스는 말하고 나서 오아이가 무어라 대답할 것인지 흥미를 가지고 그녀의 기색을 살
폈다.
  여자들 중에는 나이와 더불어 성장하는 여자와, 나이와 더불어 거칠어지는 여자의 두 가
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이에야스였다.
  젊었을 때는 어떤 여자라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또 나름대로 현명해 보이는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일단 남자에게 꺾이고 나면 완전히 양상이 바뀌었다. 그 하나는 더욱 심신의 
아름다움을 더해가는 데 대해 다른 하나는 추잡한 자아로 늙어간다.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 
하는데 따라 그대로 두 여자의 현명함과 어리석음, 아름다움과 추함이 깊어져가는 듯했다.
  그 하나의 유형을 츠키야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면 또 하나의 유형은... 이렇게 생각할 
때.
  '어쩌면 오아이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요즘의 이에야스는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오아이의 용모는 최근에 이르러 한결 더 깊이를 더했다. 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성의 여주인인 키라 마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고 여기게 된 것은 이에야스 자신의 애정
이 오아이에게로 기울었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나...
  "오아이, 왜 잠자코 있는 거야? 이래도 그대는 지금처럼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황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마는."
  오아이는 무릎에 얹은 자기 손에 눈길을 떨어뜨렸다.
  "저는 지금의 성주님께 그와 같은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군무에만 전념하라는 뜻인가?"
  "예."
  "그렇다면 어째서 오만을 불러들이라고 했나? 오만을 불러들이면 내 마음은 더 번거로워
질 뿐이야."
  오아이는 흘끗 이에야스를 쳐다보았다. 이에야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 미
소를 따르듯 오아이는 자기도 조용히 웃었다.
  "제 마음이 너무 좁아서 그랬습니다. 사죄 드립니다."
  "허어, 마음이 좁다니... 어떻게 좁다는 말인가?"
  "오만 님을 불러들이지 못하게 한 것은 저였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습니다. 성주님 말씀을 듣고 비로소 제가 좁았다는 것을..."
  이에야스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 이제 비로소 알았다는 말이지. 묘하게 피해 달아나는군. 좋아, 나도속이 좁고 그대
도 속이 좁고, 사람들끼리라면 뜻이 잘 맞을 거야. 하하하..."
  오아이는 그러는 이에야스를 부끄러운 듯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식사가 끝났다.
  오아이는 소리나지 않도록 조용히 밥상을 물렸다.
  "분부를 내리셨던 손님이 타키야마에서 와 있습니다."
  "뭐, 타키야마 성에서?"
  "예, 오쿠다이라의 가신 나츠메 고로자에몬 님의 딸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오아이의 표정에 흘끗 질투 비슷한 감정이 떠오른 것 같아 이에야스는 속
으로 웃었다.
  "음, 그 불쌍하게 최후를 맞은 오후의 동생이... 그렇다면 만나보겠어. 곧 이리 데려오도록. 
오후는 용모가 아주 뛰어났었다고 하는데 동생도 아름다울 테지. 어서 부르시오."
  오아이는 이에야스의 농담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조용히 절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요즘에 와서 이에야스는 안채에서 이렇게 오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한때를 무척 즐겁게 
여기고 있었다.
  오아이는 이에야스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에야스의 대망이 그대로 실현될지의 여부는 문제 밖이었다. 그 조심성 많은 타케다 신겐
조차 상경 도중 쓰러질 때까지 자기 운명을 알지 못했다.
  오아이가 오후의 동생을 데리고 다시 조용히 나타났다.
  "허어, 네가 오후의 동생이냐?"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바라보는 이에야스는 웃는 얼굴이었다.
  아직 열세 살인 오후의 동생은 그늘에서 자란 산도라지처럼 가냘프게 보였다. 그러나 눈
만은 맑게 빛나고, 처녀의 향기가 엷게 풍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잘 있느냐?"
  처녀가 자리에 앉아 두 손을 짚고 절하기를 기다렸다가 이에야스는 곧 물었다.
  "아버지라면 양아버지 말씀입니까?"
  "뭐라고, 양아버지-그렇다면 너는 나츠메 고로자에몬에게서 다른 데에 양녀로 갔다는 말
이냐? 고로자에몬과는 나가시노에 있을 때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예, 저는 나츠메 집안에서 오쿠다이라 로쿠베에 댁으로 갔습니다."
  "오오, 로쿠베에한테... 그럼, 언니 대신 이번에는 네가 양녀가 되었다는 말이냐?"
  "예."
  "으음, 이름은?"
  "아키라고 합니다."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흘끗 오아이에게 눈길을 보냈다.
  오아이 역시 두 볼에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눈으로 아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아이는 내가 왜 이 처녀를 일부러 타키야마에서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데...'
  아니, 오아이만이 아니라 당사자인 아키는 물론 오쿠다이라 사다요시 부자도 친아버지도 
알 리가 없었다. 그런 만큼 가신들 중에서는 여자를 좋아하는 성주님이 어디선가 보고는 불
러들였다... 이런 억측을 하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에야스였다.
  "오아이, 오늘 밤엔 특별한 볼일도 없으니 이 처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과
자를 가져오도록."
  "알겠습니다."
  오아이는 직접 나가 차와 과자를 가져오게 했다.
  "자, 그것을 아키에게 나누어줘. 어떠냐 아키, 너는 열세 살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언니
가 죽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키는 잠시 탐색하듯 이에야스를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카츠요리 님은 너무 잔인하셔요. 잔인한 대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으음."
  "목을 친 것이라면 몰라도 나무에 묶어놓고..."
  "아키, 너는 언니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다요시 부자를 원망하고 있겠지?"
  아키는 당황한 듯 표정을 굳히고 가만히 고개를 수그렸다. 열세 살 소녀로서는 자기 주인
을 원망해도 좋을지 알 리 없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물은 이에야스였다.
  "어떠냐, 네가 생각한 그대로를 말해보아라. 이 이에야스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너희들의 
진심을 물을 틈도 없다. 그러나 오늘 밤엔 그 말이 듣고 싶구나."
  아키는 아직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불운한 언니의 최후를 생각하고 어쩌면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아이는 가만히 촛대에 다가가 불똥을 잘랐다. 그녀의 얼굴도 역시 뜻하지 않은 이에야
스의 말을 듣고 굳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하건 여기서만 들은 것으로 하겠다. 자, 숨김없이 네 마음을 털어놓도록 해
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 원망하고 있느냐?"
  아키는 그것을 부인하지도 시인하지도 않으면서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이 세상에는 전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맑은 목소리로 내던지듯이 말하고, 이번에는 진지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에야스에게 물
었다.
  "대장님, 말씀해주십시오. 전쟁이란 어떤 세상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으음."
  이에야스는 신음했다.
  '과연 고로자에몬의 딸로 손색이 없구나.'
  이처럼 정확하게 과녁을 꿰뚫는 질문이 과연 또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밤바람이 몰아치는 전진에서 이에야스의 가슴을 휘저어놓는 의문도 실은 
그것이었다.
  "아키, 너도 전쟁을 무척 싫어하는 모양이로구나."
  "예."
  "이 이에야스도 몹시 싫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전쟁이 없는 태평시대를 이룩했으면 하
는 생각만 하고 있다."
  "대장님도요...?"
  "물론이다."
  이에야스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 누구도 싸움을 걸어오지 못할 만큼 이 이에야스가 강해지지 않
으면 안 돼. 알아듣겠느냐? 내가 약해지면 아무리 싫더라도 사방에서 싸움을 걸어오니까 말
이다."
  아키는 다시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하다가 얼마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야스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알겠으면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다. 너는 어째서 내가 이 성으로 일부러 너를 불러왔
다고 생각하느냐? 솔직하게 대답하여라."
  아키보다 오아이가 더 크게 고개를 갸웃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 물론이다. 오늘 밤의 이야기는 오늘 밤뿐이니까."
  "이번에 대장님의 따님이 저희 작은 성주님께 출가하시므로 저를 불러 오쿠다이라 가문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시기 위해서..."
  "그것은 네 생각이 그렇다는 거냐, 아니면 누가 말해주더냐?"
  "양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이에야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아키. 그보다도 네 생각을 알고 싶구나."
  "저는..."
  말하다 말고 아키는 눈길을 무릎에 떨어뜨렸다.
  "언니가 너무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되어... 그 동생이므로 가까이 두고 섬기게 하시려
고..."
  이에야스는 여기까지 듣고 갑자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키, 어째서 고개를 숙이고 말하느냐?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왜 똑바로 나를 쳐다
보고 말하지 못하느냐?"
  아키는 당황하여 점점 더 고개를 수그렸다.
  오아이는 고개를 깊이 숙인 아키와 이에야스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
다. 이에야스가 무슨 생각으로 아키를 꾸짖는지, 아키가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오아이는 
그 어느 쪽도 알 수 없었다.
  "어서 생각한 대로 말해보아라. 괜찮아, 꾸짖는 것이 아니니까."
  이에야스는 다시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네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이 이에야스에게 털어놓았으면 한다."
  아키는 잠시 촛대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잠자코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사람
이 달라지기라도 한 듯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호라이 사의 금강당 앞에서 처형된 
오후에게도 이와 같은 일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언가를 결심했을 때 이들 자매에게 나타
나는 버릇인 것 같았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키가 말했다.
  "저의 성주님은 언니가 불행을 당했으므로 양아버지에게 저를 맡아  기르라고 분부하셨니
다. 그러면 언니의 원혼이라도 위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겠지요."
  "음, 오쿠다이라 집안으로서는 결코 무리가 이니지."
  "그러한 저를 대장님이 하마마츠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따님을 오쿠다이라 집안에 
보내는 대신 이 아키를 인질로 삼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이에야스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진 오아이를 돌아보고 빙긋이 웃었다.
  "정직하게 잘 말했다. 네 모습을 보니 무언가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아 물었다. 
그러나 아키, 똑바로 나를 쳐다보아라."
  "예."
  "이 이에야스는 너를 인질로 삼을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 이에야스도 어렸을 때 인질
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
  "내가 너를 부른 것도 오쿠다이라 사다요시가 너를 일족인 로쿠베의 양녀로 삼게 한 것과 
똑같은 생각에서... 알겠느냐, 네 언니 오후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야."
  아키는 아직 믿을 수 없다는 듯 똑바로 이에야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
야기를 들은 오아이는 비로소 생각되는 바가 있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오후 대신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그러려면 먼저 너를 만나지 않으면  안 돼. 
나츠메 고로자에몬이 낳은 딸이므로 설마... 하고 생각은 했지만, 이 눈으로 직접 너의  성품
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리 부른 것이다."
  아키는 다시 눈길을 떨어뜨렸다. 그런 모습도 오후와 아주  비슷하여 희로애락을 거의 나
타내지 않았으나, 무서운 눈빛만은 사라지고 조심스러운 표정이 그것을 대신했다.
  "아키."
  "예."
  "너는 말이다, 이 이에야스의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네가 원치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솔직히 말해주었으면 한다.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다. 이 이에야스
에게는 어머니는 같으나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있다. 옛 성은 히사마츠, 지금은  마츠다이라 
사다카츠라 부르고 있어. 그에게 출가시켰으면 하는데, 어떠냐, 네 생각은?"
  이에야스는 이렇게 말하고 또다시 탐색하는 듯한 눈으로 아키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이에야스의 제수가 되어달라는 말을 들은 아키의 얼굴에서 조금씩 경계의 구름이  걷혀나
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이 처녀는 어떠한 경우에도 표정을 갑자기  바꾸지는 않는다-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이에
야스에게는 그것이 도리어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생각이 깊고 참을성이 강하다. 그러나 일
단 마음을 결정하면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어떠냐, 이 이에야스가 사다요시를 통해 혼담을 진행할 생각인데 거절하겠느냐?"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아키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떠올랐다. 물론  아키는 히사마츠 
가문의 쵸후쿠마루, 곧 사다카츠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미 청춘은 전장에서 자란 
처녀의 가슴에 부드러운 꽃봉오리를 싹트게 하고 있었다.
  "아직은 대답할 수가 없는 모양이구나.
  "예..."
  "알겠다. 좋아, 그럼 물러가서 편히 쉬도록 해라."
  "예."
  "오아이, 데리고 나가거라."
  이에야스는 이렇게 말한 뒤 다시 즐거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사라져가는 아키의 뒷모습
을 지켜보았다.
  창 밖에서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이따금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불조심을 알리는 딱따기소리가 성벽 밖에서 들려왔다. 벌써 넉 점(오후 10시)의 순찰을 돌
고 있었다.
  오아이가 돌아온 뒤 이에야스는 말했다.
  "자리를 펴도록."
  그리고는 자못 의기양양하게 말을 걸었다.
  "어때, 이 혼담은?"
  오아이는 미소를 띠고 쳐다보았으나 조심성 많은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려 하지  않았
다. 섣불리 대답하여 이에야스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오아이다운 마음가짐에서였
다.
  "오아이, 나는 겨우 한 가지를 깨달았어."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죽이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 살려주는 자는 삶을 얻는다."
  "어머..."
  "카츠요리는 오후를 죽였어. 나는 그 동생을 살려주겠다... 처음에는 이것을 하나의 책략으
로 생각했어. 아키를 쵸후쿠마루의 아내로 삼게 하면 야마가  일당은 나와 카츠요리의 인간
성을 비교할 것이다. 밀정이나 성채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으로 지킬 수 있다고 말이야."
  "..."
  "그러나 그게 야비한 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첫째도  책략, 둘째도 책략이어서는  안 
돼. 행하는 모든 일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면 언젠가는 바로  그 책략 때문에 쓰러지게 되는 
거야. 나는 처음 생각했던 것을  깨끗이 씻어버렸어. 그리고 아키가 쵸후쿠마루의  아내로서 
적합한 여자라면 그때 허심탄회하게 두 사람을 짝지어주자, 그렇게 하면 쵸후쿠마루의 집안
을 번영케 할 아이도 당연히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지. 어떻게 생각하나, 아키는 똑
똑한 처녀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오아이도 분명하게 대답했다.
  "잘 하신 일입니다. 그 처녀는 틀림없이 훌륭한 아내,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알겠어. 그건 그렇고 그대도 이제는 어머니가 되어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하늘
의 뜻이 움직여주지 않는 모양이군."
  이에야스는 오아이가 편 이부자리에 팔다리를 뻗으며 미소지었다.
  이튿날 아침 이에야스는 카케가와 성에 사자로 갔던 사카키바라 코헤이타 야스마사를  데
리고 새벽에 마장으로 나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어나자마자 무장을  갖춰 활을 쏘고 나서 
말을 타고 성안을 순시했다.
  그날 아침에도 바다 위의 안개는 바람에  걷히고 검푸른 수평선에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흰 파도가 일고 있었다. 그러나 마고메가와 너머의 평지에는  시야를 거의 가리다시피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코헤이타, 할 이야기가 있네."
  이에야스는 달리던 말을 세워 시동에게 맡기고는 혼다 성곽을 향해 걸으면서  야스마사에
게 말했다.
  "코슈 군의 동향은 어떻던가?"
  "예. 성주님이 생각하셨던 것처럼 은밀히 엔슈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랬군. 그런데, 에치고의 우에스기 님으로부터는 연락이 있었나?"
  "예, 무라카미 겐고님을 통해, 켄신 공이 마침내 죠슈에서 신슈로 병력을 출동시킬 것이니 
성주님도 시급히 코슈 군을 공격하시라고."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치고와의 연락을 게을리 하지 말게."
  "명심하고 있습니다."
  "야스마사, 코슈 군은 엔슈로 나와 어디에 근거를 둘 것 같은가?"
  "글쎄요..."
  야스마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나야다이 부근에 성을 쌓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이에야스는 흘끗 야스마사를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그럼, 혹시 카츠요리가 우에스기 쪽에 화친의 사자를 보냈을지도 모르겠군."
  "과연 그랬을까요?"
  "야마가카 사부로베에의 의견을 받아들였을 거야. 좌우간 우에스기와  손을 잡게 되면 우
리로서도 방심할 수 없어. 우에스기와 오다와 우리의 연합에 금이 가게 되니까."
  "우에스기 쪽에서 그 화친에 응할까요?"
  "응할...지도 몰라."
  이에야스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안개가 자욱한 육지를 바라보았다.
  "노부나가 님은 켄신 공의 생각대로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물론 그런 염려는 있겠지요."
  "우리에게 군사를 움직이라고 했을 정도라면 오다 쪽에도 반드시 같은 연락이  갔을 테지
만, 노부나가 님은 킨키의 사정도 있고 하여 지금으로서는 코슈 공격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
을 거야. 만일 우에스기 쪽에서 불만을 갖는다면, 혹시 카츠요리의 청을 받아들일지도  모르
지.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때 강 건너 가도에서 말탄 무사 하나가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야스마사, 저것을 보게."
  "아, 전령인 것 같습니다."
  "이시카와 카즈마사가 보낸 전령일 것일세. 드디어 적이 공격을 개시할 모양이군."
  "성주님! 즉시 반격하실 것입니까?"
  이에야스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이마에 얹어 성문으로 다가오는 말탄  무사를 
유유히 바라보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엔슈 침입의 시기를 좀 놓쳤어."
  "시기를 놓치다니요?"
  "벼 베기는 벌써 끝났어. 벼와 쌀을  이미 창고에 저장해놓았다는 말일세. 아마도  사방에 
불을 지를 테지만 그것을 백성들의 원성을 살 뿐이야."
  "성주님! 전령이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서."
  이에야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본성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에야스가 예상했던 대로 전령은 카케가와에 있던 이시카와 카즈마사가 보냈다.
  "그래, 어느 정도의 병력으로 몰려오고 있느냐?"
  이에야스는 본성의 현관 앞 막사에서 상대의 얼굴을 보자마자 즉시 물었다.
  "예, 일만 오천의 대군입니다."
  "선봉은 어디까지 왔느냐?"
  "벌써 미츠케에 도착하여 텐류가와의 얕은 곳을 찾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 일거에 하마마
츠를 공격할 모양...이라고, 저의 주인 이시카와 호키님은 이렇게 보고 드리라고 했습니다."
  "수고가 많았다."
  이에야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츠요리는 신겐 공이 죽은 후의 첫 출전이니 위력을 과시하려고 기를 쓰고 있을 테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히사노, 카케가와의 동쪽 도처에 불을 질러 백성들을  떨게 만들고 
있습니다."
  "알겠다, 그것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야. 돌아가거든  카즈마사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상처를 입고 날뛰는 멧돼지 한 마리를 교묘히 피해서 총포를 쏘아 잡으라고."
  "교묘히 피해 총포로..."
  "곳곳에 총포를 숨겨두라는 말이다. 맞고 안 맞고는 둘째 문제, 신겐공이 죽을  때도 총포
와 관계가 있었어. 카츠요리로서는 기분 나쁜 총포일 것이다."
  "그 뜻을 분명하게 전하겠습니다."
  "좋아, 서둘러라."
  이에야스는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사방에 총포가 숨겨져 있다. 여기저기서 수상한 자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소문을 백
성들에게 퍼뜨리라고 일러라. 그렇게 하면 마고메가와 기슭까지 왔다고  해도 이 성에는 감
히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 어서 가거라."
  전령이 사라지자 이에야스는 곧 출전준비를 서둘렀다.
  첨병을 11대로 나누어 먼저 텐류가와까지 내보냈다.  1대는 약 60명, 그들이 도강을  끝낸 
적의 배후에서 함성을 지르면 코슈 군은 적어도 4, 5천의 군사가 있는 줄로 생각할  것이다. 
그때 이에야스의 본진이 성문을 열고 일제히 공격해나간다는 전략이었다.
  하타모토의 책임자인 혼다 사쿠자에몬은 히죽 웃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뭐가 우스운가, 사쿠자에몬?"
  "성주님도 이제 전투에 능숙해지셨습니다.  직접 성을 나갈  필요는 없다고 계산하면서도 
어마어마하게 말씀하시니까요."
  이에야스는 일단 사쿠자에몬을 노려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 그랬다.
  '공격해나갈 것까지는 없다...'
  병졸 하나의 손실도 입지 않고 단지 견고하다는 경계심만 품게 하여 카츠요리를 물러가게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나가시노 방면의 수비는 더욱 공고해진다.
  '올핸 더 이상 싸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작전을 가슴에 접어둔 채 점심때가 되어 이에야스는 성문을 열게 했다. 일제히 소라
고동이 울리고 북을 힘껏 치면서 전군이 텐류가와에 밀어닥친 코슈 군과 자웅을 겨룰 각오
라고 성밖으로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코슈 군이 카츠요리를 선봉으로 하여 무서운 기세로 텐류가와 상류의 얕은 곳을 건넌 것
은 이 시각이었다.
  "적이 텐류가와를 건넜습니다."
  "적은 상류 쪽에서 도강을 완료하고 마고메가와 기슭까지 곧바로 전진해오고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이와 같은 보고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 여전히 막사 밖으로 나오지 않
았다.
  모든 것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에야스는 카츠요리의 젊음을 새삼스럽게 절감할 수 있었
다. 더구나 이에야스에게 이러한 눈을 뜨게 한 것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카츠요리의 아버진 
신겐이었다.
  앞서 이에야스가 미카타가하라에서 앞 뒤 생각 없이 신겐과의 결전을 감상했던 데에는 지
금의 카츠요리와 일맥상통하는 입장과 심경이 있었다.
  그때 이에야스는 자기 운명을 시험하려고 했다. 그 전투에서 신불에게 외면당할 정도라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8할의 패인을 내포한 유치
한 생각이었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운명이란 어떤 경우에나 시험해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준비, 끊임없는 정진,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여 철저를 기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미카타가하라 당시의 나에게는 신겐에게 얕보이지 않으려는 허영심이 있었다.'
  현재 카츠요리는 그보다 더 괴로운 입장에 있었다. 그는  출중한 아버지와 비교되어 가신
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초조해하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마고메가와에서 무작정 진격해오겠지...'
  그러나 마고메가와에서는 반드시 철수해야 한다. 현재의  이에야스는 이렇게 전황을 판단
할 수 있었다.
  카츠요리가 마고메가와를 억지로 건너려  하면 당연히 이에야스도  공격해나온다. 이렇게 
전개되는 전투는 사흘이나 닷새 정도로는 승패가 날 수 없었다. 그동안 이시카와  카즈마사, 
이시카와 이에나리, 오가사와라 요하치로 등에게 배후를  공격당하여 보급대의 진출이 저지
되면 스스로 마을에 불을 지른 코슈 군은 곧 군량의 부족을 느낄 것이었다. 불을 보듯 뻔한 
일.
  카츠요리는 카나야다이 정도에서 군사를 멈추고 스루가와 토토우미를 목표로 내부를 공고
해 해야 하는데도, 젊은 혈기로 텐류가와를 건너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아무리 카츠요리라도 마고메가와 기슭에 이르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잘못을 깨달으면 즉시 군사를 돌릴 것이고, 돌아간 자리는 초토가 될터. 이때  이에야스는 
가혹할 정도로 모아들여 창고에 저장한 벼를 풀어 백성들의  구제에 나서야만 한다. 결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승리의 힘을 비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것을 가르쳐준 것이 신겐이었는데...'
  감회에 깊이 젖어 있는 이에야스에게 보고가 들어 온 것은 오시(오전 12시)가 가까워서였
다.
  "적은 마고메가와 기슭까지 와서 갑자기 진군을 중지했습니다."
  이에야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도 점심을 먹도록 하자."
  같은 시각-
  새벽에 미츠케를 출발한 카츠요리는 마고메가와 바로 앞 하시바까지 진출해 있었다. 여전
히 찬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었으나, 강행군으로 그도 그의 하타모토도 갑옷 안은 땀으로 흠
뻑 젖어 있었다.
  "아직 이에야스가 성에서 공격해나올 조짐이 보이지 않느냐?"
  하시바 바로 앞의 소나무 숲에 말을 세우고 카츠요리는 하타모토의 선봉에 선 아토베 오
이노스케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마고메가와를 단숨에 건너 하마마츠 성읍에 불을 질러라."
  카츠요리는 하마마츠 성의 군사를 2,000여 명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고메가와를 건너기만 하면 승리는 자기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아직까지 이에야
스가 공격해나오지 않는 것은 분명 나가시노, 오카자키 등으로  군사를 분산시켜 승산이 없
기 때문일 터. 1만 5,000의 병력 중에서 8,000명을 투입한  코슈 군은 그야말로 승리의 결정
적인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시각도 이미 정오가 가까워졌습니다. 지금 하타모토들에게 식사를 하게 하면..."
  이 말에 카츠요리는 큰 소리로 웃었다.
  "배가 고프면 싸움을 못한다는 말이냐? 좋다, 서둘러 먹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카츠요리 자신도 말에서 내려 장막을 치게 했다. 그때  텐류가와 상류에서 불어오는 찬바
람을 타고 이상한 함성이 들려왔다.
  이에야스가 새벽에 성을 나서게 했던 11대의 복병이 드디어 활동을 개시했다.
  "아니? 함성은 배후에서 들리는 것 같구나."
  카츠요리는 근시가 가져온 도시락을 앞에 놓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그 소리는 아군이 지르는 함성이겠지?"
  오이노스케도 귀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
  "설마 카케가와 성에서 추격해오는 것은 아닐 테고..."
  "잠깐. 또 들리는구나, 한 군데가 아니야..."
  "식사를 중지시킬까요?"
  "그럴 수는 없고... 좋아, 즉시 바바의 진지로 척후를 보내라."
  "예."
  오이노스케가 일어났을 때였다. 니시카와로  이어지는 샛길을 질풍처럼  달려오는 무사의 
한 떼가 있다고 오이노스케의 부하가 와서 보고했다.
  "깃발은?"
  "바바 미노노카미의 것입니다."
  카츠요리는 벌떡 일어나 장막 밖으로 나가서 이마에 손을 얹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우익을 맡은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가 직접 말을 타고 달려오다니...
  노부후사는 무장을 한 채 20여 기에  달하는 근시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식간에  본진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미처 말에서 내릴 겨를도 없이 노부후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주위를 물리쳐주십시오..."
  근시들이 물러갔다.
  "시로 님, 모고메가와는 건널 수 없습니다."
  "어째서?"
  "이에야스는 이미 우리가 이 방면으로 공격할 것을 예측하고 수많은 곡식을  성으로 옮겼
을 뿐 아니라, 농성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텐류가와의 서쪽, 즉 아군의  배후
에 매복시켜놓았습니다."
  "뭣이, 그렇다면 조금 전의 그 함성은...?"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와아!"
  다시 일단의 함성이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함성은 심야의 홍수처럼 
기분 나빴다.
  "어쨌든 저희가 성읍에 잠입시켰던 첩자를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알겠다, 들여보내라!"
  카츠요리는 입술을 깨물고 걸상에 걸터앉았다.
  바바 미노노카미는 자기가 데려온 첩자를 직접 데리러 나갔다.
  첩자는 하마마츠 성읍에서 사카이야라는 간판을 내걸고 필묵 장사를 하는 사나이였다. 이
미 나이는 마흔을 넘어갔다. 그는 카츠요리 앞에 나와  침착한 목소리로 이에야스의 동정을 
보고했다.
  "이에야스는 무척 조심성이 많은 장수입니다. 나가시노에서 철수한  뒤 즉시 공납을 다른 
해보다 이 할 감해준다는 조건으로 벼부테 베게했습니다. 벼 베기가  끝나자 그 이 할을 일
시적으로 맡아두겠다고, 백성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속속 성안으로 벼와 쌀을 들여와, 불화
살이 도달하지 않는 위치에 세운 창고에 쌓았습니다. 이것은  농성을 하겠다는 결심이 아닌
가..."
  "추측은 필요 없어! 그런 추측은 그만둬."
  "예. 그러면 오늘 새벽부터의 동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음."
  "성읍 거리에 감시자를 두고, 철저하게  내부를 단속하여 인원수를 알  수 없도록 하면서 
계속 군사를 성밖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너의 추측으로는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 것 같더냐?"
  "확실하게는 알 수 없으나, 이백에서 삼백 명쯤 되는 부대가 열한 번 씩이나 성을 나갔습
니다."
  바바 미노노카미는 첩자의 말이 카츠요리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지 가만히 그 옆모
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사들이 열한 번 성을 나간 게 틀림없느냐?"
  "예. 그 군사들과 아직 조우하지 않았다면, 분명 배후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닌가..."
  "닥쳐라! 또 네 추측을 말하는구나. 그 밖의 움직임은?"
  "제가 직접 조사한 바로는 이것이 전부입니다마는, 제 집에 출입하고 있는 통장수가 들은 
소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소문이란 말이지. 그 소문이란?"
  "총포를 다루는 아시가루 삼십여 명이 각각 한 자루씩 총포를 메고  사냥꾼으로 가장하여 
백성들 속에 섞여 있다고 합니다."
  "총포를 메고..."
  카츠요리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언짢은 표정이었다.
  "좋아, 그만 물러가거라."
  "예."
  첩자가 사라진 뒤 노부후사는 얼른 카츠요리 쪽으로 돌아섰다.
  "적은 농성을 통해 전쟁을 지연시키고, 배후에서  보급대를 위협하여 우리를 궁지에 몰아
넣으려는 작전을 펴려는 것 같습니다."
  "으음, 건방진 녀석이야. 그러면서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겠다는 것일 테지."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떻게 하다니, 철수하자는 말이냐?"
  "아니면, 단숨에 성을 공격하시겠습니까?"
  "미노노카미! 철수하자는 뻔뻔스런 소리를 하려거든 입 닥치고 있어. 그렇게 하면 이 카츠
요리가 이에야스 따위에게 맥도 추지 못했다고 후세에까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당치도 않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어느 작은 한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격할 때는 
공격하고 물러날 때는 물러나는 것, 전쟁은 언제나 줄다리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후미를 맡고  있던 보급대의 아마리 무리로부터  황급하게 전령이 
도착했다.
  "아마리 무리가 보낸 전령이란 말이지... 어서 이리 들라고 해라."
  카츠요리보다 먼저 바바 미노노카미가 몸을 앞으로 내밀 듯이 하고 말했다.
  "설마 보급대가 습격을 당한 것은 아닐 테지. 진중이니 예의 차릴 것 없이 직접 대장님께 
말씀 드려라."
  "예."
  말을 몰아 달려온 전령은 카츠요리 앞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텐류가와를 건너 잠시 쉬고 있을 때 하류 쪽 분지에서..."
  "공격해오더란 말이냐?"
  "예. 그래서 즉시 사십 기로 응전케 하여 겨우 서너  정 가량 격퇴시켰을 때 이번에는 상
류 쪽에서 다른 일대가..."
  "결국 보급품을 빼앗겼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으나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 지시
를 내려주십시오."
  "알겠다. 잠깐 대기하고 있어라. 누가 이 전령에게 마실 것을 주도록 해라."
  미노노카미는 이렇게 명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는 카츠요리를 쳐다보았다.
  "성을 나갔다는 열한 부대 가운데 두 부대라 생각합니다마는."
  카츠요리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 대신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감았다.
  꿈틀꿈틀 얼굴의 근육이 움직이고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대번에 하마마츠  성을 치려 
했고, 성에서 공격해나오지 않는 이에야스가 병력 부족 때문에 못 나오는 줄로 가볍게 생각
하고 있었던 만큼 전령의 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다.
  "교활한 놈 같으니라고."
  카츠요리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성주님!"
  미노노카미가 결단을 촉구했다. 보급대에 전력을 기대하다니... 이런 무리한 전법을 아버지 
신겐은 쓰지 않았다고 말하려다 당황하여 그 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아마리 무리에게 원병의 지시를."
  카츠요리는 다시 혀를 찼다.
  "그밖에 다른 보고는?"
  전령을 노려보았다.
  "지시가 내릴 때까지 주위의 경계를 엄히 하고 움직이지 않을 각오라고 하셨습니다."
  전령은 한 사발의 물이 도리어 피로를 가중시켰는지 기운 없이 이 말만을 했다.
  카츠요리는 겨우 분노를 억누르고 오이노스케를 불러 짤막하게 지시를 내렸다.
  "알았다, 아나야마 군에서 이백을 내주어라."
  전령은 시동의 안내를 받으며 장막 밖으로 사라졌다.
  다시 카츠요리와 미노노카미만이 남았다. 카츠요리는 미노노카미를 보기가 민망했는지 다
시 엷은 햇살 속에서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 들리던 함성이 그치고, 이제 찬바람 소리가 대지를 채우고 있었다.
  "시로 님... 아니, 지금은 카이 겐지의 소중한 대장이신 성주님."
  말을 끊었다가 미노노카미가 다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지금 하마마츠 성을 공격하는 편이 이에야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질
풍처럼 왔다가 질풍처럼 사라져가는 편이 더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인지..."
  "닥쳐!"
  "예. 생각을 방해하지는 않겠습니다. 모쪼록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미노노카미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 서쪽으로 약간 끊긴 푸른 하늘의 띠를 쳐다보았다.
  망연히 버티고 선 채 카츠요리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삼스럽게 미노노카미의 말을 들을 것까지도 없이, 전쟁이 줄다리기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 등뒤에서 마구 육박해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숙명의 힘을 느꼈
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오후나 센마루의 처형에도 후회가 남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더라도...'
  그토록 잔인하게 다루다니... 후회하는 감정이 마음 한 구석에 있으면서도, 그 사태를 단호
히 막지 못하게 한 요인 또한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사이에 커다란 비극의 나락으로 자진하여 빠져드는 것
은 아닐까...'
  이번 전쟁에서도 지나치게 민가를 불태웠다. 이에야스는 불태울 것을 예상하고 이미 원망
을 받으면서까지 백성들로부터 벼를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가증스럽다. 그렇게 간파당하다니...'
  간파당했으면서도 그대로 공격하는 것은 패배의 원인, 필부의 용기는 절대로 삼가야 한다
고 하버지 신겐은 항상 훈계를 잊지 않았다.
  "마음을 결정하셨습니까?"
  잠시 동안 묵묵히 바람소리를 듣고 있던 미노노카미가 다시 조용히 재촉했다.
  "이대로 철수하면 이에야스는 크게 놀랄 것입니다."
  "미노노카미."
  "예."
  "이에야스가 놀라게 될 길을 택하도록 할까?"
  "그것이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철수할 수  없어. 그대라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철수하겠는가? 그것을 
나에게 말해주게."
  미노노카미는 비로소 미소를 띠고 카츠요리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
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철수를 명하도록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온 미노노카미였다.
  "저 같으면 텐류가와의 얕은 곳을 건너고 야시로야마를 넘어 코슈의 스쿠모타와라에 진을 
치겠습니다. 그리고 카나야다이의 축성을 서두르고 후타마타, 이누이, 코묘, 타타라  등 여러 
성의 법제를 마련하여, 이에야스에게  코슈의 방비가 견고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뒤 코슈로 
철수하여 군사를 쉬게 하겠습니다."
  "음, 일단 야시로야마를 넘어 철수하자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에야스는 성주님이 일부러 하마마츠의 수비를  살피러 온 줄로 단
정하고, 비웃기는커녕 과연 코슈 군은 놀랍다고 혀를 내두를 것이 분명합니다."
  카츠요리는 이미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분하다...'
  생각했으나, 그 이상으로 자기를 앞으로 끌어내어 쓰러뜨리려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의 움직임에 두려움을 느끼며 당황했다.
  "좋아!"
  카츠요리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을 노려보며 말했다.
  "철수하면 피해가 없고, 공격하면 하마마츠를 손에 넣든가 아니면 아군의 태반을 잃게 된
다. 서두르지 않겠다. 때를 기다리기로 하겠다."
  "그것이 상책 중의 상책입니다. 어서 명을 내리십시오."
  "그래, 오이노스케를 불러라."
  미노노카미는 급히 막사 밖으로 나가 큰 소리로 전령을 불렀다.
  다시 찬바람이 엷게 햇빛이 깔린 대지 위를 윙윙거리며 휩쓸고 지나갔다.

    탄로
  그날 이에야스는 유토에 있는 나카무라 겐자에몬의 집에 들러 오만의 배에서 태어난 자기 
아들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물론 정식 대면은 아니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매사냥을  나갔
다가 우연히 겐자에몬의 집에  들르는 형식을 취해, 겐자에몬의  아내가 데려온 오기마루를 
서원의 마루에서 차를 마시며 만났다.
  오기마루는 한 손에는 방울, 다른 손에는 작은 도깨비 탈을 가지고 나타나 이에야스 앞에 
앉더니, 이 사람이 누굴까 하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음, 많이 자랐군." 이에야스
는 이렇게 말했을 뿐 그 후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가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
다. 
  츠키야마가 두려워 성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아들. 안아 올려 빰을 비벼주고 싶은데... 생각
하면서도 그럴 수가  없는 이에야스였다.  '올해야말로 타케다 군과 자웅을 겨루어야  하는 
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자기만이 육친의 정에 젖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
다. 지난 정월 2일에는 가신들의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호화롭게 성안에 무대를 마련하여 
상하가 다 같이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그 뒤.
  "알겠느냐. 앞으로는 이 탈춤을 우리 가문의 관례로 삼겠다." 이렇게  말하여 가신들을 깜
짝 놀라게 한 것도 그런 저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은  언제나 병졸보다 몇 배는 더 고
생해야 하는 법...' 고생을 겪는 것도 인내함도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부하를 통솔할  자
격이 없다고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이에야스였다.
  전쟁이 시작되면 다시 많은 젊은이들이 아내와 헤어져 목숨을 잃게 된다. 처자에 대한 사
랑에 연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안돼는 난세였다. '그러니 용서하여라, 오기마루...' 이에야스는 
마음속으로 자기 아들에게 사죄하였다. "데리고 나가 놀도록.  이 녀석, 낯선 사람이 오니까 
잔뜩 노려보는군." 겐자에몬의 아내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겐자에몬, 오카자키의 사부로 녀석은 나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어. 왜  오기마루를 만나보
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니까. 자기도 형제로서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동생이 없기 때문일까?" 
"고마우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것이 아시가루의 아들이 한 말이라
면 자연스런 인정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으나 대장의 마음가짐은  되지 못해. 왜 내가 만나
려 하지 않았는지 그대는 알지 못할 것일세."
  이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이 일에 관한 노부야스의 말을 잘 했다고 이에야스는  생각했다. 
노부야스가 계속 조르지 않았다면 아직 이에야스는 겐자에몬의 집에 갈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겐자에몬의 집을 나와 멀리 하마마츠의 자기  성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
런 생각이 떠올라 씁쓸히 웃었다. '나도 전사하게 될지 모른다...'
  오기마루를 만날 생각이 든 것은, 혹시 만나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약한 마음
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자기가  카츠요리를 두려워하는 
것이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을 어귀까지 말을 타고 왔을 때, 젖꼭지나무의  그늘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와 이에야스의 말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있었다. 오카자키에서 온 콘도 이
키였다.
  
  이에야스는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때가 때인 만큼 자객이  아닌가 싶어 순간 깜짝 놀
랐다. "성주님! 콘도 이키입니다." 감개에 젖은 상대의 얼굴을 보고 안도했다. "이키로군. 느
닷없이 나타나는 바람에 깜짝 놀랐네." "명을 받고 오카자키에서 하마마츠로 가다가 성주님
께서 사냥을 나오셨다는 이야기를 몰이꾼에게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게 말고삐를 잡
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이에야스 뒤에는 혼다 사쿠자에몬이 말했다. "과연 이키답군. 성주님, 
허락해주십시오." "그래. 그럼 같이 가도록  하자." 이키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른 
다가가 고삐를 잡고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나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일이 일인만큼 야시로
의 모반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키, 오카자키에서  이미 준비는 
되어 있겠지?" "예. 모든 것을 빈틈없이...  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마는..." "아직  미비된 
점이 있다는 말이냐? 오가 야시로가 있어서 보급대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성주님! 실은 그 오가 야시로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 야시로에 대해서..." 이
에야스는 말 위에서 환한 웃음을 띠었다. "야시로는 그대들과는 달리 전쟁터에서 목숨을 아
끼지 않는 사나이는 아닐세. 그러나 적과 맞서는 것도 후방을 공고히 하는 것도 다 같이 고
생스러운 일이야." 그래서 문득 생각을 바꾼 듯이 말했다. " 할 이야기가  있다면 성에 돌아
가서 듣겠네." "예."
  이키는 그 다음 말은  삼키면서 서두르고 있는  자신을 타일렀다. '그래도  괜찮다.' 성주  
역시 야시로에게 속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상대를  납득시키기  어렵
겠지만....' 이키는 이미 야시로의 모반을 의심하지 않았고,  이 일에 대해 침묵할 수도 없었
다. 야마다 하치조에게 모반에 대한 자백을 듣고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심혈을 기
울였다.
  "좋아, 그렇다면 자네 집에  동지들을 모아 이야기해보게."  우선 하치조에게 명해보았다. 
하치조의 집에 야시로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다니 진자에몬과  쿠라치 헤이자에몬 두 사
람이 나타나 하치조와 열심히 카츠요리가 입성할 날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키는 마루 밑에 숨어 그들이 한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해놓았다. 그러나 이것도 이키 자
신이 기록한 것이므로, 만일 이에야스가 믿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었다. "이키, 야시로의 입
장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전쟁에서 창을 휘두르며 적과 맞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이 보이
지 않는 곳에서 주판을 놓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야시로의  일 말고 오카자키에 
다른 일을 없었느냐?" 이에야스는 가문의 감정적인 분열을 우려하여 한 질문이었으나, 이키
는 또다시 입막음을 당한 꼴이 되어 당장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른 일은 없을 테지. 사부로와 토쿠히메  사이는 화목하더냐?" 다시 이에야스의 질문을 
받았다. "예." 이키는 이제는 예사 각오로는 안 된다고 자기 마음에 채찍질을 했다. '콘도 이
키, 전쟁터에서 죽는 것만이 무사는 아니다. 생명을 걸어라, 생명을 던져라...'
  "그 일에 관해, 성에서 이 이키가 말씀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사부로와 
코쿠히메의 일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냐?" "예." "좋아, 야식을 먹기  전에 찾아오너라." 
이키는 무뚝뚝하게 머리를 숙여 절하고 자신을 꾸짖었다. "감사합니다."
  전쟁터에서의 역할과는 달리, 남을 험담하는 것이 그의 성격에는 맞지 않았다. 그  서투른 
말솜씨로 남을 설득한다... 이처럼 언변에 이르러서는 전혀 자신이 없는 이키였다. 그 후  이
키는 어떻게 성까지 걸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좌우간 하마마츠 성에 도착하여 배정된 자기 
방에 들어가 짚신을 벗고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저녁 빛 속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그
럴 듯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다니..." 야시로에 대한 말은 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당했다. 그런 
만큼 무슨 말로 서두를 꺼낼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키가 마침내 잔뜩 눈썹을 치켜올리고 본성에 들어간 것은 여섯 점반(오후 7시)경이었다. 
이에야스는 벌써 식사를 끝낸 뒤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키는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며 휴
게실로 들어가 기다렸다. "아니, 성주님은 이키 님이 피곤해서 안 오시는 것  같다고 하셨습
니다마는." 오아이의 말에 이키는 입을 쑥 내밀고 대꾸했다.
  "가문의 위기를 앞두고 지쳐 있을 내가 아니오." 그 어조가 싸우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
에 오아이는 고개를 갸웃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 이키, 와  있었군." 이윽고 이에야스가 얼
굴을 빛내며 욕실에서 나왔다. "성주님!" 이키는 오른쪽 어깨를 치켜올리고 물어뜯기라도 할 
듯이 이에야스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문가, 사부로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가?"  "작은 성주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녁에 이 이키를  죽여주십시오." "뭣이... 죽여달라고?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다는  말이
냐?" "아닙니다. 성주님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분입니다!" "이키..." "대답은 하지  않겠습니
다. 하고 싶은 말씀만 드리고 죽으려는 결심으로 왔습니다. 야시로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말라고 하시면 가신의 입을 막는 성주님은 큰 바보입니다. 눈뜬장님입니다."
  이에야스는 불쾌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사방침을 끌어당겼다. "이키, 그대는  야시로를 
헐뜯으러 왔군. 좋아, 소원대로 그대의 목을  베어주마." "예, 부탁입니다. 저를 죽이고 야시
로를 체포하십시오." 이키는 기세 좋게 말하면서도 두 눈에는 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야시로에 대해 아무리 말씀 드려도 작은 성주님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성주님도 가납하
시지 않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온 이키입니다. 저를 죽인 뒤 야시로를 체포하시면  저로서
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에야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콘도 이키를 바라보았다.
  "횡설수설하지 마라, 이키!" 그러다가 다시 꾸짖었다.  "꿈이라도 꾸고 왔느냐? 할 이야기
가 있거든 조리 있게 말하여라." "그러니까..." 이키는 팔꿈치를 세우고 말을 시작했다. "야시
로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 자는 방자하기 짝이 없는  놈이어
서, 성주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다, 성주가 다이묘라면 나도 다미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
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그것은 모반이 아니라 험담이야. 중용한 걸 혼동하면 안 돼." "험담만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입에 올리는 놈이라 결국 모반을 꾀하게 된 것입니다.  성주
님이 작은 성주님과 같이 나가시노로 출전하신다. 그러면 먼저  츠키야마 마님을 베고 아스
케 가도에서 카츠요리를 오카자키 성으로 맞아들인다... 그렇게  되면 오다의 원군은 오카자
키에게 막을 수 있고, 성주님은 소중한 영지를 잃어 자멸하게 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성주님이 모르신다니 그래서 바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왜 나쁘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도 나쁘다고는 하지 않았어." 이에야스의 비로소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콘도 이
키는 거짓말을 할 사내가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초조한  나머지 두서없는 말은 하고 있으
나, 미간에는 죽음을 결심한 놀라운 기백이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무례한 행동을 그
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키!" 큰소리로 꾸짖고 나서 채근했다.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하여라. 야시로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호소하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 목을  베십시오." "모반이란 혼자서는 시도하지 못한다. 
일당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조사해왔느냐?" "물론입니다. 일당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야
시로가 우두머리이고 그 밑에는  오다니 진자에몬, 쿠라치 헤이자에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냥 두고 전쟁을 시작하면 그  후가 어찌 외겠습니까?" 이에야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옆에 있는 오아이에게 턱으로 지시했다.
  누구를 부르라는 의미였다. 오아이가 알아듣고 밖으로  나가고 뒤이어 혼다 사쿠자에몬과 
사카키바라 코헤아타가 들어왔다. "그대들은 이 자를 데리고 나가 근신시키도록  하라. 몹시 
정신이 산란해 있다. 어차피 처형할 것이니 할말이 있다면 들어두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코헤이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성주님 앞이다, 이키! 순순히 일어나거라." 이키의 오른손을 잡아끌었다. 사쿠자에몬은 엷
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자, 일어나게. 자네 이야기는 우리가 대신 아뢰도록  하겠네. 그것
이 근시의 역할, 우리 일을 방해하지 말게." 그리고는 앞장서서 얼른 거실  밖으로 걸어나갔
다.
  
  이키는 무어라 소리지르면서 두  사람에게 끌려나갔다. 이에야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야시로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지만, 이키가 까닭 없이 
야시로를 중상한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이에야스를 놀라게 한 것은  이
키가 털어놓은 말의 한 구절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오카자키를 적의 손에 넘기려 한다면, 이
키의 말대로 이에야스의 주력을 나가시노에 끌어다놓고 노부야스가 없는 틈을 타서  카츠요
리를 성으로 맞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노부야스가 출전하게 되면 먼저 츠키야마를 죽일 것이라고 한  말도 마음에 걸렸다. 어느 
정도 음모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보겠다. 아마 오늘  밤 
안으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에야스는 옷을 갈아입고 나서 오아이에게 말하고 긴 복
도를 지나서 거실로 건너갔다.
  "만치요, 오쿠보 타다요에게 밤이 늦었지만 중요한 일이 있으니 어서  들라고 일러라." 시
간을 벌써 다섯 점 밤(오후 9시)이 되려  하고 있었다. 부엌 근처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 뿐 넓은 성내는 쥐 죽은 듯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소나무에 불어오는 바람도 
없고, 날씨는 나날이 봄기운을 더해가고 있었다. 지금은 단지 오다 노부나가에게 사자를  보
낸 요시다 성의 성주 대리 사카기  사에몬노죠 타다츠구의 귀환과 카츠요리가 움직일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나가시노 성에는 카메히메의 남편인 오쿠다이라 쿠하치로가 이미 정예부
대를 이끌고 성에 들어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성안에 오쿠보 시치로에몬 타아요의 기침 소리가 울렸다. "성주님, 부르셨습니까?" 
"오, 타다요로군. 어서 들어오게." "밤중에 무슨 새로운 정보라도 들어왔습니까?" 이에야스는 
타다요가 화롯가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중얼거렸다.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무엇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까?"  "오가 야시로가 적과  내통했다는 군." 그러면서 타다요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타다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니 말씀  드립니다마는, 놈은 충분히 그런 짓
을 할만큼 교활한 자입니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그  녀석 하나 때문에 원로들
도 모두 심사가 뒤틀려서 성주님께  드리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주님이 그 
백여우에게 홀렸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에야스는 그 한마디를 깊이 가슴에 새기면서, 겉으로는 가볍게 들어 넘기는 체했다. "그
런 말들을 한다는 말이지... 그건 그렇고, 그대는 내일 아침 일찍 오카자키에 가서 사실 여부
를 확인하고 오게. 부교인 오오카 스케에몬과 협력하여 일당을 한 놈도 놓치지 말게. 참, 와
타나베 한 조를 데려가는 것이 좋겠군.  내가 알고 있는 일당은 쿠라치 헤이자에몬,  오다니 
진자에몬 정도일세. 정말 멍청한 녀석들이야." 이에야스의 말에 타다요는 그  말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겼다.
  "잘 알겠습니다. 체포한 연후에 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이제는 가문이 깨끗해질  것입니
다." 야시로의 음모가 당연한 일인 양 대답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야시로는 등성하자마자 곧바로 식량창고로 갔다. 많은 일꾼들에게 명하여 쌀을 가마
니에 넣고 하마마츠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수고가 많다. 오늘은 작은 성주님의 순시가 있으
니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해라." 반쯤 흐린 엷은 햇살 밑에서 때때로 미소가 떠오르는 것도 
숨기지 않고, 잔뜩 부풀어오른 벚꽃 봉오리에 일부러 코를 갖다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하마마츠에서 오쿠보 시치로에몬 님이 오셨다. 드디어 출전하게 된 모양이다.  언제 명령
이 내려도 곧 수송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
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다가 문득 등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점잖게 
돌아보았다.
  "아, 오쿠보 님이시로군요." "야시로, 여전히 열심이로군. 오마츠와 아이들도 모두 잘 있겠
지?" 야시로의 아내 오마츠는 전에 오쿠보 집안을 섬기던 하녀였기 때문에 타다요는 아직도 
반말을 쓰고 있었다. 야시로는 타다요의 반말에는 그다지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덕
분에 모두 잘 있습니다. 그런데, 오쿠보 님은 곧 하마마츠로 다시 돌아가십니까?" 여행 차림
인 타다요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세 사람의 부하를  보면서 물었다. 타타요는 그의 침착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나기도 하고 익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 용무가 곧 끝날 테니까, 일단 돌아가서 성주님의 지시를 받고 다시 와야겠지." "그럼, 
드디어 출전할 때가  가까웠군요. 아무쪼록  무공을 세우시길 빌겠습니다."  "야시로." "예." 
"쿠라치 헤이자에몬은 부교인 오오카 스케에몬이 체포하러 갔는데 반항하다가  목이 달아났
네." "예... 쿠라치 헤이자에몬이?" "포쿄 이마무라 히코베에와 오오카  덴조 두 사람이 베어
버렸어. 그리고 오다니 진자에몬 녀석은 와타나베 한 조가 체포하러 갔더니 그만 뒷문을 통
해 달아났다더군. 지금쯤 한 조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을 테지." 이렇게 말하면서  타다요는 
야시로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가만히 살폈다.
  야시로의 얼굴은 흡사 백지장과 같이 되더니, 이어서 대담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이
제 남은 것은 그대 한 사람, 얌전히 칼을 풀어놓으면, 그것으로 이 타다요의 임무는 일단 끝
나게 돼." "쿠라치, 오다니 놈들과 이 야시로가 한통속이란 말입니까?" "아니, 한통속은 아니
야. 그대는 괴수니까. 녀석들은 송사리, 자네는 대어일세. 대어에는 대어로서의 각오가  있을 
테지." 야시로는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거, 보고가 늦어진 것 같군요. 쿠라치 헤이자에몬의 거동이 수상해서 저도 가담하는 것
처럼 보이고 탐색하던 중이었습니다 마는." "야시로." 타아요는 낯을 찌푸렸다. "야마다 하치
조가 하는 소리와 똑같은 말을 하는군. 야시로, 그대는 어젯밤 성주님의 근시가 자네 집  마
루 밑에 숨어 있던 사실을 모르는 것 같군..." 타다요는 재빨리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느닷
없이 야시로가 칼을 뽑아들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반항할 생각이냐, 야시로?"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타다요는 세 사람에게 눈짓을 했
다. 한 사람이 야시로의 앞으로 뛰어나가, 두 번째로 칼을 휘두르는 야시로의 팔꿈치를 수도
로 쳤다. 야시로는 팔이 저렸다. 칼을 쥔 손끝의 감각이  없어져,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렀을 
때는 손에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칼은 그의 몸 뒤로 떨어져 버렸다.
  "순순히 포박을 바다라." "꼴사납다." 계속 언변과 두둑한 뱃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야시로였으나, 칼을 쓰는 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타다요가 일갈했을 때는 이미  양쪽에서 
팔이 비틀리고 땅에 머리가 밀어붙여져 있었다.
  "좋아, 칼을 압수하고 녀석은 사카타니  감옥에 집어넣어라." 야시로는 그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의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으며, 일으켜 세워진  그의 
무릎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걸어가!" 타다요의 부하가 오랏줄 끝으로 야시로의 머리를 
때렸다.
  "거칠게는 다루지 마라. 이미 각오가 되어 있을 테니까." 타다요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
다. 어느 틈에 일꾼들이 일손을 놓고 모여들어 주위에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여봐라, 계
속 일하지 않고 무엇들을 하느냐." 타다요는 일꾼들을  나무라는 말소리가 부하들의 목소리
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나는 전쟁을 빨리 끝내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다가 그만 잡히고 말았지만, 이것은 
너희들과는 상관없는 일. 모두들 쉬지 말고  어서 일하여라." 그것은 야시로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타다요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과연 예사 놈이 아니야...'
  야시로의 그 말은 아마도 자신을 침착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던 듯, 모두를 향해 그렇게 말
하고는 제법 의젓한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다. 해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감옥 입구에 
늘어붙은 이끼가 더욱 파랗게 눈에 들어왔다.  감옥의 문은 어느 틈에 열려, 들어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타다요가 
온 것은 출전을 독려하기 위해서인 줄로만 알고, 이 성의 주인이 될 날을 몽상하고 있던 자
신이 우스웠을까.
  "나는 이 녀석과 할 이야기가 있어. 모두 밖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타다요는 부하들에게 
말하고 야시로의 뒤를 따라 창살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들어온 사람이 없는,  절벽을 
뚫어 만든 감옥이었다. 삼면은 견고한 바위이고  한쪽만 굵은 창살이 있었다. 크기는 약  열 
평 가량. 안쪽에는 판자가 깔려 있었는데, 그곳은 세 평쯤 되었다.
  야시로는 들어가자마자 판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입구 쪽을 향해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면서 말했다. "오쿠보, 포승을 풀어주게. 감옥 안이니까." 타다요는  그 뻔뻔스러움에 버
럭 화가 치밀었으나 잠자코 포승을 풀어주었다. "야시로, 조금은  정신이 드느냐?" 타다요는 
야시로와 가까운 거리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탄로난 이상 괜히 반항하는 것도 좋지 않다. 집에는 오마츠와  아이들도 있으니까." 타다
요의 말에 야시로는 눈초리를 바르르 떨었으나 곧 오만한 자세를 취했다. 입가에 엷은 미소
를 띠고 눈은 창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명령에 따라 이 타다요가 네 아내를 체포하러  갈 것이다. 오마츠에게 남길 말
이 있을 테지?" "..." "왜  잠자코 있느냐? 야시로, 할말이 없느냐?"  "사치로에몬." 야시로는 
난생 처음으로 타다요를 경칭을 붙이지 않고 불렀다.
  "너는 전쟁터에 나가 칼을 휘두르면서도 처자 생각을 하느냐? 이 야시로는 그토록 미련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가 아니야." 타다요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이 녀석, 아직도 정신을 차

지 못했군....' 그러나 꾹 참았다.
  오마츠와 야시로는 보통 부부가 아니었다. 아시가루의 아들과 아시가루의 딸이 서로 고통
을 나누며 중신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부부였다.  야시로는 최근에 
첩을 두었고, 그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오마츠는 그것을 탓하기보다 도리오 그  아이를 
자기 아이와 다름없이 제 손으로 직접 키운다고 했다. 야시로가 오늘날과 같은 지위에 오르
게 된 것은 그 이면에 오마츠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아무 할말도 사죄할 것도 없다는 말이지?" "..." "너의 소실까지 흔쾌히 받아들이고 
일가의 번창을 기원한 오마츠,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구나."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마
라." 야시로는 나직이 소리내어 웃었다.  "시치로에몬, 너는 칼과 창을 잘  다룰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대한 판단은 잘못하고 있어." "뭣이?" "원래 이 세상은 헛된 일이라 생각하지 않
고 열심히 그 헛된 일을 쌓아나가는 도박장이야. 헛된 일로  말한다면 지금 성주가 하고 있
는 것도 크게 헛된 일이지."
  "너를 그토록 신임했던 성주님의 은혜를 완전히 잊었다는 말이냐?" 야시로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어찌 은혜를 잊었겠나. 이 야시로에게 인간의 지혜와 힘의 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성주였는데." "그건 비꼬는  말이냐, 아니면 잡혀서 끌려온  자의 넋두리냐?" "흐흐
흐... 시치로에몬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걸.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오쿠보 가문의 후계자였
어. 그러나 나는 짚으로 머리를 묶고, 일 년의 반은 논밭의 흙탕물 속에서 일한  아시가루의 
자식이야."
  "아시가루의 자식에게는 어차피 의리도 충성도 없다. 있는 것은 출세욕뿐이라는 말이냐?" 
타다요가 몸을 앞으로 내밀고 꾸짖자  야시로는 또다시 싸늘하게 비웃었다.  지금 야시로의 
태도는 허세가 아니라 그의 성격 밑바닥을 꿰뚫는 진실인 것 같았다. "시치로에몬,  너는 내
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멍청한 놈이군. 너는 내 본심을 적의 없이 들어줄 아랑을 가지고 있
느냐?" 야시로는 타다요의 얼굴을 어르듯이 들여다보았다.
  타다요는 무섭게 야시로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이 약간 돈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도 했다. "너는 언젠가는 처형당할 몸이다. 할말이 있거든  해보아라." "그럼, 들어볼 마음이 
있다는 말이로군." 야시로는 여전히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내게 힘과 지혜의 용법을 가르쳐준  것이 성주라는 말은 아까  했다. 그것은 빈정거리는 
말이 아니야. 나는 처음 성주를 섬기게 되었을 때, 황송한 마음과 존경심으로 몸을 펼  수도 
없었다. 아니, 성주만이 아니라 다른 중신들을 만나도 목소리가 떨려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신들은 모두 나보다 재능이 뒤떨어지는 자들, 하잖
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
  "뭐라고, 너보다 못하다고...?" "그래. 그렇게  경직되지 말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 
성주도 마찬가지로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여자가 생각나면 색에 빠지는 거야. 영지도 돈도 
쌀도 명예도 갖고 싶어 죽을 지경이고, 미운 놈을 멀리하려고 하지... 이런 점에서도  성주와 
나는 똑같은 인간... 그런 성주의 가치를 나에게 분명하게 일깨워준 것은 츠키야마 마님이었
어." "야시로." 참다못해 타다요가 꾸짖었다.
  "너는 이성을 잃고 이  자리에서까지 마님을 들먹이느냐!"  "하하하하." 야시로는 웃었다. 
"그래서 들어줄 아량이 있느냐고 물었던 거야. 극형을 각오한 야시로가 서슴없이 하는 말이 
너무 진실되어 듣기 싫은 거냐? 하지만 이런 말은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것이다. 이왕 시
작했으니 잠자코 듣기나 해... 분명 나는 츠키야마를 농락했다. 농락하고 보니 내 마누라보다
도 못한 형편없는 여자였어." "다...닥...닥치지 못하겠느냐, 야시로!" 
  "아니, 그럴 수 없다. 나는 그 츠키야마와 한 이불 속에 누워서, 이런 여자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성주였는가 싶어 성주가 싫어지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어... 그것
만이 아니야. 그런 여자의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생각하니  작은 성주를 대하기가 우스
워 견딜 수가 없었지. 그런 여자가 않은 자식을 과연 충성과 의리를 다해 섬겨야만 하는가... 
그래서 일단 주종관계를 떠나 인간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세상을 다시 보아야겠다는 마
음을 갖게 되었지."
  타다요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태연하게 마님과의 간통 이야기를 할 뿐 아니라,  동침하
고 있는 동안에 모반할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이것은 모반의 
원인이라고 이에야스에게 보고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에서 나온 거짓말이라 할 수도  있었
으나, 타다요에게는 지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여유가 없었다. 다만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
은 분노 속에서 '그럴 수도 있었을 데지' 하는 긍정이 날카롭게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어쨌든 이에야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야시로였다. 그런  만큼 단순하고 우직한 중신
들은 어리석은 존재로 보였을 것이고, 간부의 위치에서 보면  남편이나 자식들이 우습게 보
였을 게 틀림없다. "할말은 그것뿐이냐, 야시로?" 타다요가 칼을 들고 일어서자 야시로는 다
시 짓궂게 웃었다. "더 이상 들을 용기가 이미 너에게는 없을 것이다. 어서 가거라."
  
  야시로는 독설은 타다요의 발걸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체포되어온 자의 넋두리라 생각
하기에 너무 날카로웠고, 자포자기에서 나오는 헛소리라 판단하기에는 그 태도와 이론이 너
무 정연했다. "이 타다요에게 더 이상 들을 용기가 없을  것이라고 한 말은 아직도 내게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뜻이냐?" 타다요는 얼른 돌아보았다.
  "들을 용기가 있다면 말해 줄 수도 있다. 네 평생 두  번 다시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니
까." 야시로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럼, 네 놈이  모반을 결심하게 된 것은 너의 출세욕도 
방자한 배은 망덕의 결과도 아닌 츠키야마 마님의 부정 때문이었다는 말이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돼. 시치로에몬. 나는 단지 성주와 츠키야마에 의해 인간으
로서의 눈을 뜨게 됐다는 말을 한 것뿐이다." "너에게 어찌 그런 눈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
면 이런 비참한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하하... 그것이  시치로에몬의 해석이냐? 
한심한 노릇이군." 야시로는 나직하게 웃었다.
  "이 야시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주도 중신도 마님도 결국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
이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마음이 완전히  변했다는 말이다.... 성주가 미카와와 토토우미릐 
경영을 생각한다면 이 야시로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아? 아니, 도리
어 나는 내 뜻대로 되었을 때는 경우에 따라 성주나 작은 성주를 내 부하로 삼아  구출해줘
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알겠나, 시치로에몬. 성주는 타케다 군에게 이길 줄 알고 
정신없이 싸우고 있어. 전쟁에는 쓸데없는 낭비가 많은 법이야. 그래서 영내의 농민과  상인
들이 모두 도탄에 빠져 있지. 무력으로는 성주가 강할지  모르지만 주판에서는 성주보다 이 
야시로가 훨씬 높은 곳에 있어. 내가 보기에는 타케다  군에게는 승산이 있지만 성주에게는 
없어. 따라서 우선 타케다 군에게 승리를 거두게 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농부와 상인
들을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것이 훗날을 위하는 길이라고 계산했던 거야. 어때, 이 오가 야시
로의 심경이 어느 정도 사치로에몬에게 이해되었나?"
  타다요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칼을 힘껏 움켜쥔 채  할말을 잃고 있었다. 경우에 따
라서는 성주도 작은 성주도 부하로 삼아 구해주려고 했다니,  이 얼마나 뻔뻔스럽고 방자한 
배포힌가. '역시 녀석은 일이 발각되어 정신이 나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자신에
게 불리한 말을 서슴없이 털어놓을 리가 없다'
  "그래, 잘 알겠다." 타다요는 어느새 분노를  쓴웃음으로 바꾸었다. "너는 세상에 없는 의
인이었구나.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타케다에게 붙었다는  말이지?" "그렇다." 야시
로는 끄덕였다. "백성들뿐만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너희들도.  너희들은 아직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어. 성주의 가축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번에는 타다요가 큰 소리로 웃을 차례
였다. 웃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웃으면서도,  타다요는 자기 얼굴이 묘하게 굳어
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너는 내 생각까지 해주었다는 말이지. 와하하하,  정말 우스운 일이로군." 배를 끌
어안고 웃는 타다요로부터 야시로는 얼른 눈길을 돌렸다.  "애당초 시치로에몬은 이 야시로
를 알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같군."
  "아무 그런 모양이다. 내가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너의 넋두리를 잠자코 들은 것은, 네 자
식과 아내가 너무 불쌍해서 무언가 한마디 인간다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어. 하지만 
너에게는 털끝만큼도 인정이 없어. 아무 것도 모르는 아내와  자식들을 자기 야심의 희생물
로 삼고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 비인간이었어."
  야시로는 이제 타다요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너는  오마츠와 이혼하라는 말이라도 하
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그래, 이혼을 하면 오마츠는 살아남을 수 있다. 오마츠가 살아남게 
되면 여러 아이들 중에 한두 명의 목숨은 구해줄  생각으로 일부러 여기에 왔다." 야시로는 
여전히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너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로구나." "뭐...뭣이!" "어쨌든 좋아. 인생의 주판에서는 너보
다도 이 야시로가 훨씬 더 위에 있다는 말이다. 일이 탄로 났다는 것을 알고 이리저리 잔머
리를 굴리는 그런 유치한 사나이가 아니야. 성주한테 가서 멋대로 처단하라고 말해라." 타다
요는 일어나서 묵묵히 칼을 허리에 꽂고는  느닷없이 오른손 주먹을 쥐고 야시로의  머리를 
한 대 갈겼다. "이것은 네 아내와 자식들의 주먹이라 생각하여라."
  "흐흐흐, 말이 딸리니까 주먹질을 하는군." "이미 너에게는 더  할말이 없다!" "그럴 테지. 
성주는 우리 가족을 무슨 방법으로든 처형할 수는 있다. 처형은 할 수 있으나 단 하나 하지 
못할 것이 있다..." "또 지껄이느냐, 이놈!" "싫거든 듣지 마라.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
리 없는 말을 잘 듣는 것이 좋아. 그것이 귀에 들리거든 성주에게 그대로 말해라. 나의 처형
을 성주가 혼자 결정할 것이 아니라, 만일 백성들을 모아놓고 협의한다면 이 야시로의 목을 
베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야시로는 화가 치밀어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 타다요의 등을 향해 점점 더 승리자인 양 기
세를 올렸다. "비록 성주의 처형이 정당한 것이라 해도 이 야시로의 충의는 빛이 바래지 않
는다. 성주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앞으로 더욱 뻗어날 것이다. 그러한 충의에 대한  계산
은 이 야시로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 야시로 일족의 피가 성주를  성장시키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다시 탁하고 야시로의 머리에서 소리가 났다. 나가려던 타다요가 다시 성큼성큼 돌
아와, 힘껏 후려치는 소리였다. "요물 같은 녀석!"
  날카롭게 외치며 침을 탁 뱉고 나는 듯이 밖으로 나왔다. 야시로는 그래도 일그러진 얼굴
에서 미소를 지우려 하지 않았다. 천천히 머리에 묻은 침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오가 야시
로..." 자신에게 말했다. "탄로 났어, 성공하기 일보 직전에, 하하하..."
  
    아내의 입장
  야시로의 아내 오마츠는 그날 아침부터 성읍에서 벌어진 소란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모
르고 있었다. '남을 부리려면 먼저 자기가 모범을 보여야..' 언제나 이렇게 말해왔고 또 조심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우물가에서 아이들의 속옷을  빨고 있었다. 하녀는 모두 
네 명, 그밖에 야시로의 첩 오야스가  있었다. 그런 만큼 여자들은 오마츠가 세탁하는  것을 
늘 말렸지만, 어느새 그녀는 대야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더구나 
오마츠가 빤 것과 다른 여자가 빤 것은 그 깨끗하기가 달랐다.
  "세상의 눈도 있고 하니 세탁은 저희들이." 미카와  오쿠고리의 20여 개 마을의 다이칸을 
지내고 지금은 가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의 부인이라고 고용인들이 말할 때만다 오마츠는 웃
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나는 가난한 아시가루의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것을  잊으면 벌을 
받아요."
  오마츠는 오늘도 날씨를 걱정하면서 예닐곱 벌의 속옷을 다 빨고 나서 헹구려 하고 있었
다. 그 때 하녀 하나가 와서 오쿠보 시치로에몬 타다요의 내방을 알렸다. "아니, 야마나카의 
도련님이..." 어렸을 때 야마나카의 오쿠보 집안을 섬긴  일이 있는 오마츠는 아직까지도 타
다요를 도련님이라 부르면서, 얼른 손을 닦고 현관문 쪽으로 왔다.
  "어머나, 도련님. 저는 이미  성주님을 모시고 나가시노로 출전하긴  줄 알고 있었는데..." 
타다요는 그녀로부터 눈길을 돌리듯이 하고 말했다. "어때, 아이들도  잘 있겠지?" 말하고는 
더욱 당혹해했다. "예, 염려해주신 덕택에 저도 아이들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성주님 덕분입니다."
  "그래... 아이가 몇이었더라?"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곤혹스러움을 느끼면서 타다
요는 안부를 묻는 것과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현관 마루에 두 손을 짚고 절하는 오
마츠의 손을 보았다. 착실하다고 평판이 자자한  여자, 옛날 일을 잊지 않고 아직도  빨래나 
부엌일은 자기 손으로 직접 한다고 소문이 난 오마츠. 그  손이 소문대로 빨갛게 젖어 있는 
것을 보고 타다요는 가슴이 뭉클했다.
  눈매가 곱고 콧날이 오뚝한 미인에는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산에서 자라
는 대나무 같은 탄력과 추위에 강한 홍매를 연상케하는 한창 나이의 건강한 여자의 향기를 
느끼게 했다. "예, 모두 여섯입니다." 오마츠는 천천히 대답했다.
  "마침 남편은 성에 들어가고 없습니다마는, 우선 들어오십시오." "음, 그래. 사실은 그대에
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타다요의 말에 오마츠는 자기가 직접 발 씻을 물을 떠가지고 
왔다. 타다오는 그 물에 발을 담그며, 자기 손이  바르르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구나, 오마츠는...'  차라리 무슨 소문이라도 듣고  알고 있었으면  좋으려만, 
이런 생각을 하고 긴장하면서 객실로 들어갔다.
  
  "아이가 여섯이라고 했지?" 객실에 들어간 타다요는 다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이
번에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목적한 말을 하려 했지만, 밝기만 한  오마츠의 얼굴에 그만 말
을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곤 했다. 그토록 오마츠의 표정에는 그늘이 없었다. 자기가  행복
하다고 믿는 소박한 감정이 동작 하나하나에 넘치고 있었다. "예, 여섯 명입니다."
  "모두 그대가 낳았나?" "그렇다고 생각을 하며 고맙게 여기고 키우고 있습니다." "첩이 낳
은 아이도 키우고 있다는 말이로군." "예, 밑의 두 아이는..." 솔직히 대답했다. "하지만 남이 
낳은 아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모두 제  배를 아프게 한..." "알겠네. 알겠어." 타다요는 
자기가 물었으면서도 듣기가 민망하여 얼른 오마츠의 말을 중단시켰다.
  "야시로도 이제 소실 한두 사람은 거느릴 수 있는 신분이  되었으니까." "예. 감사한 일이
라...고 생각해야겠지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그대로서는." "예." 오마츠는 생글생
글 웃었다.
  "신분이 낮은 저희 부부를 이토록 보살펴주신 성주님의 은혜는 잠시도 잊지 못합니다. 저
는 고마운 마음을 새기기 위해 평생토록 말먹이와 빨래, 부엌일  같은 것은 스스로 할 생각
입니다." "성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란 말이지?" "예. 성주님이 전쟁터에 계신데 저
희들이 힘든 일을 꺼린다면 천벌을 받습니다."
  "오마츠... 나는 그대들을 잘 어울리는 부부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대들도 성주님
과 츠키야마 마님처럼 아주 비극적인 부부인 것  같군."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티
없이 묻는 바람에 타다요는 꿀꺽 숨을 삼켰다.
  "오마츠." "예, 뭐라고 하셨는지요?" "그런 큰 은혜를 입은 성주님께 만일 그대의 남편 야
시로가 모반을 꾀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예?" 오마츠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타다요의 말을 입 속으로 되새겨보는  듯했다. "어찌 그런 일이.  호호호..." 그녀는 곧 웃기 
시작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그 때는 천벌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제가 할복하도록 하겠
습니다."
  "오마츠!" 타다요는 덮어씌우듯 날카롭게 외치며 중단시켰다. "실은  야시로에게 성주님이 
어떤 일로 의혹을 품으셨어." "예...? 하지만 그이는 그럴 리는..." "있어서는 알 될  일이어서 
의혹을 품으신 거야. 그 의혹이 풀릴 때까지 그대와 아이들은  셋째 성에 가서 근신하게 되
었어. 당황하지 말고 곧 준비하도록." 단번에 말하고 타다요는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오마츠는 타다요가 예상했던 것만큼은 놀라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하다가 
침착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남편  야시로에게 성주님이 어떤  의혹을 품으셨다는 말씀입니
까?" "음, 어서 준비하는 것이 좋겠어." 오마츠는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움직였
으나, 금방 생각을 바꾼 듯 두 손을  짚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타다요는 얼굴을 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마츠는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남편을 믿고 있는 듯했다. 지금  이런 저런 말을 해서 의
혹을 더 깊게 하고 싶지 않았던지 그녀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타다요
는 집안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오마츠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도, 이제 무언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이 집은 이미  삼엄한 경계에 들어가 있었고,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오늘의 일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누구든 그녀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의 잘못을 사죄하는  뜻으로 자결이라도 
했으면... 타다요는 은근히 바랐다. '야시로는 가증스러운 놈... 하지만 오마츠는...'  오마츠가 
깨끗이 자결한다면 그 아이들을 구해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러나 그것은 타다요의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오마츠는 타다요가 말한 모반 이야기를 미처 알아듣지 못했거나, 미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난세의 형법이 얼마나 가혹한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반을 하면 어느 지방, 어느 가
문을 막론하고 처자 일족은 모두 효수 등의 극형에 처해지게 마련이었다.
  "도련님, 너무 오래 지체했습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오마츠는 전과 다름없이 밝
은 표정으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객실로 돌아왔다. 열세 살의 장남을 필두로 아장아
장 걷는 막내딸에 이르기까지, 이 여섯 명의 아이들이 나이순으로 나란히 서서 타다요 앞에 
두 손을 짚고 절을 했다.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타다요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온몸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바보 같은 야시로가! 
그 악당이...' 타다요는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은  분노를 억누르고 벌떡 일어났다. "절은 하
지 않아도 좋아. 자, 바깥에 탈것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서두르자." "예." "예." "예." 어린 
목소리가 서로 뒤질세라 힘차게 튀어나왔다.
  "오마츠!" 타다요는 걷기 시작하면서 공연히 오마츠에게도 화가 치밀었다. 여섯  명중에서 
둘은 첩의 자식이라고 했다. 오마츠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아시가루  출신의 질투심 많은 
여자여서 첩의 자식 둘을 키우지 않았다면, 그들만을 그 생모와 함께 어딘가에 잠적해 있어
도 근본이 하층민이기 때문에 아무도 크게 문제삼지 않을 텐데...
  "그대는 잔인한 여장부야. 아니... 그대는..."  "예,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서 가마에 오르도록 해." 타다요는 엄하게 명하고 현관 앞으로 나갔다.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렇게 오마츠가  깨달은 것은 셋째 성의  하녀 방에 감금되고 
나서부터였다. 그곳에는 오쿠보 타다요도 따라오지 않았다. 포교 이마무라 히코베에가  오마
츠와 아이들을 따로 격리시킨 후 그녀 혼자  어두컴컴한 다다미 여섯 장 짜리 방에 가두었
다.
  "한 가지 여쭙겠어요. 남편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습니까?"  조심스러운 오마츠의 물음에 
히코베에는 얼굴에 노기를 띠고 꾸짖었다. "뻔뻔스런 소리를 하는군, 가증할  모반자의 아내
가." "모반자... 아니,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이만은..." "닥쳐라! 쿠라치 헤이자에몬,  오다니 
진자에몬, 그리고 야마다 하치조와 서로  모의하여 작은 성주님이 안 계시는  동안 이 성을 
타케다 쪽에 넘기려고 했던 거야. 하치조의  자백으로 이미 전모가 드러났어." 내뱉듯  불쑥 
말하고 나가려는 히코베에를 오마츠가 필사적으로 불러 세웠다.
  "잠깐만, 이마무라 님.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니까 네가  여기 잡혀 들어온  거지." 
"그것은 무언가... 저어, 남편은... 술을 마시면 때때로 이상한 말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
어요. 그것이 성주 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것은..." 히코베에는 대답하려 하지 않고 울타리
를 친 마당에 퉤 침을 뱉고 사라져버렸다. "여보세요,  거기 계신 분." 오마츠는 점점 더 불
안해져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옥졸을 불렀다.
  아직 어린 그 옥졸의 입을 통해 오마츠는 비로소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하마마츠의 성주보다도 작은 성주 노부야스를 더 열화처럼 분노케 만들었다
고 했다... 물론 모반한 것도 사실이어서 이미 쿠라치 헤이자에몬은 목이 달아났다고 오다니 
진자애몬은 코슈로 도주했으며, 야마다 하치조가 쓴 자술서가 제출되었다고 했다.
  "그럼, 야마다 님은 어떻게 되었나요?" "밀고를 했으니  무사할 테지." 옥졸마저도 내뱉듯
이 말했다. 오마츠는 겁먹은 소리로 가장 알고 싶은 것을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다니?" "예, 저와 아이들 말입니다." "물론 책형이지. 시간과 장도는  아직 결정되
지 않았어. 잠자코 극락왕생이나 기원하는 것이 좋을  거야." "책형... 저 죄없는 아이들까지
도?" 오마츠는 비로소 방 한가운데에 굳어진 자세로  앉아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직도 
남편의 모반을 믿을 수 없었다. 출세한 것을 시기하여 누군가 중상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토록 중상당할 것이  두려워 주위의 이목에 신경을  쓰며 살아왔는데...' 오마츠는 
가만히 자세를 바로 하고 마음  속으로 남편에게 사과했다. '야시로  님, 미안해요...' 책임의 
대부분은 역시 자기에게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오마츠의 성품이었다. 그 오마츠 앞에 
부교인 오오카 스케에몬 스케무네가 찾아온 것은 이미 해가 지고 얼어붙을 듯한 추위가 주
위에 감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오오카 흐케에몬은 이마무라 히코베에에게 촛대를 들게 하고 찾아와 애써 태연을  가장하
고 오마츠 앞에 앉았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모양이군, 히코베에."
  잠시 소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가  오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실
은 오쿠보 타다요 님이 직접  오시려고 했으나 차마 만날  수가 없다고 하셔서..." "예...예." 
"내가 오쿠보 님의 뜻을 받들어 왔네. 오가 야시로는 정말  대담한 음모를 꾸몄어." "오오카 
님,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무슨 말인가?"
  "그이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과음을 하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에게도 
때때로 자기가 한 성의 주인이 되면 그대는 마님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어처구니없는 말
을 하곤 했습니다. 아마 그런 취중의 발언으로 밀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 일에 대
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마리." "제게는 그이가..." 
  "그 말을 듣기가 거북하여 오쿠보 님이 나를 보내신 거야. 알겠나, 야시로는  이미 스스로 
자백했을 뿐만 아니라,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성주님을 매도하고 있어." "그럴 리가... 설
마." 오마츠의 입술까지 창백해져 다시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스케에몬은 제지했다. "오쿠
보 님은 가능하다면 야시로에게 이혼장을 쓰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성주님께 탄원하여 그
대들의 목숨을 건지려고 야시로의 감옥으로 찾아가셨어."
  "어머, 이혼장을..." "야시로는 이혼은커녕 도리어 오만하게 오쿠보  님을 어리석은 놈이라
고 꾸짖었다는 거야." 오마츠는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뜬 채, 당장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
했다. '성주님 다음으로 크게 은혜를 입은  오쿠보 님을...' 이런 생각만 해도  역시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 오마츠였다.
  "단지 오쿠보 님을 꾸짖은 것만이 아니라, 야시로는 자기 일족의 피로 성주님을 교육시켰
다고, 성주님보다 자기가 더 인간으로서는  훌륭하다고 서슴없이 말했다는군." "그...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엄한 짓을 저질렀군요... 용서해주십시오."
  "오쿠보 님도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말씀을  못하셨다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것
도 몰랐던 그대들이 여간 불쌍하지 않다는 생각에, 오쿠보 님도 반드시 성주님을 움직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성주님께  말씀 드릴 생각이니 그대와  아이들의 구명을 청하는 
탄원서를 그대의 손으로 썼으면 하고 말씀하셨어."
  크게 반감을 품은 눈으로 오마츠를 쏘아보고 있는 이마무라 히코베에에게 가볍게 말했다. 
"종이와 벼루를 가져오너라." 히코베에는 거친 동작으로 일어나 어디선가 종이와 벼루를 가
져다 내던지듯 오마츠 앞에 놓았다. 오마츠의 아이들은 한 칸 너머 건너편 방에 있는 듯, 작
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맏아들과 맏딸의 목소리도 들
려왔다.
  "자, 그대는 아무것도 몰랐다, 만일에  알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 손으로  할복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 내용으로 쓰도록, 카나로 써도 좋다." "예...예." 대답은 했으나, 오마츠는 벼루
에 손이 가지 않았다.
  
  오마츠에게 야시로는 다시없는 남편이었다. 부부가 사이 좋게 의리를 지키며 살기로 맹세
하고, 마음을 합쳐 일한 덕분에 한 걸음 한 걸음 끈기있게 오늘의 위치까지 올라오게 된 두 
사람이었다. 그러는 동안 같이 손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고 웃었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은 그대의 덕, 나는 정말 훌륭한 아내를 두었어." 처음 세 고을의 다이칸이 되
었을 때 야시로가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뚜렷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 야시로는 정
말 오마츠의 손을 높이 받쳐들고 감격해했다. '그런 남편이 성주님보다 훌륭한 인간이라고... 
그런 무엄한 말을 했을 리 없다.' 오마츠의 생각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붙잡을 데 없이  애

롭게 헛돌고 있을 뿐이었다.
  "자, 어서 붓을 들어. 문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내가 대산 불러주어도 좋아." "예...예, 하지
만." "왜 그러나? 오쿠보 님이 온정을 베푸시려는 것인데." "예.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마침내 오마츠는 스키에몬 앞에 두 손을 짚고 엎드렸다. "참으로 죄송합니다마는, 이 탄원서
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럼, 지금은 쓸 수 없다는 말인가?" "예. 좀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보고 싶
습니다." "그래?" 스케에몬은 한숨을 쉬었다. "오마츠는 그런  여자라고 오쿠보 님도 말씀하
셨지만... 오쿠보님은 내일 새벽 오카자키를 떠나시게 되어 있어. 성주님께 야시로의  처분을 
지시받기 위해서. 그러니까 내일 아침이면 너무 늦어." "..."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군. 내가 오늘 밤 넉 점 반(오후11시)에  다시 찾아오겠어. 
그때까지 잘 생각해 좋도록.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대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자세히 
적도록 해." "황송합니다. 그럼 넉 점 반까지." 옆에서 이마무라 히코베에가 이를 갈면서 혀
를 찼다. 오오카 스케에몬은 그를 눈짓으로 나무라고 일어섰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오마츠는 스케에몬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계속 다다
미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어느 틈에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고,  바람소리만
이 겁을 주듯 지붕에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야시로 님..." 오마츠는 가만히  고개를 들고 떨
리는 목소리로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남편에게 호소했다.
  "당신은 어째서 이 오마츠에게 이혼장을 쓰지  않았나요..." 오쿠보 타다요가 내일 새벽에 
하마마츠로 남편 야시로의 처형을 상의하러 간다는 두려운 말을  들은 오마츠. 그 오마츠는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처형 자체를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인 채 가슴을 조이고 있었
다.
  모반자와 그 가족. 아무것도 모르는  처자에게도 남편과 같은 형벌이  가해진다는 사실의 
옳고 그름보다도 단지  함께 죽을  것인가 아닌가만이 무섭게  가슴을 짓눌러왔다  "야시로 
님..." 오마츠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깨물면서 울기 시작했다.
  
  약속한 넉 점 반에 오마츠를 찾아온 것은 오오카  스케에몬이 아니라 오쿠보 타다요였다. 
타다요 역시 이마무라 히코베에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다. "오마츠, 늦은  밤이라서 오오카에
게 미안해 다시 내가 왔어. 옛날 일이 생각나서." 그러면서 오마츠 앞에 놓인 채  있는 종이
와 벼루를 흘끗 바라보았다.
  "역시 쓰지 않았군." 크게 한숨을 쉬며 오마츠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오마츠는 금
방이라도 꺼져내릴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타다요를 쳐다보는 눈에는 전보다 더 맑은 빛
이 감돌았다. "이렇게 자주 찾아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마츠는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옷깃을 여몄다.
  "그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어요. 하지만 탄원서에 대한 것은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쓸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는 말인가?" "예. 주제넘은  생각인 줄 알고 있습니다마는, 
저는 남편과 같이 죽으려고 합니다." "으음,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련님, 남편
은 모반자, 그 모반자가 이혼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제게... 아내에게 의지하기 위해서인 
줄 압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도련님! 그이는 전부터 제가 곁에 없으면 쓸쓸해서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무
서운 역모를 꾸미게 한 것은 역시 저의 죄였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타다요
는 마른침을 삼키고 오마츠를 바라보았다. 오마츠의 얼굴에는 따스하게 홍조가 물들어 있었
고, 눈 깊숙이에는 선량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야시로가 그대를 의지하고 있지 때문에  혼자 저 세상에 보낼  수 없다는 말인가?" "예, 
남편이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지금 이 세상에는 저  혼자뿐... 그런 만큼 남편의 모반을 몰
랐다고는 하지 않겠어요. 남편의 최후를 혼란스럽게 만들면 더욱 애처로운 일... 저는 못된데
다 생각이 짧은 사람과 함께 살았다고 단념하고  끝까지 그이를 따라갈 생각입니다." "알겠
네. 이것이 그대의 결론이군. 그럼, 모든 것을 흘러가는 대로 맡길 수밖에는 없겠어."
  "예... 저는 감옥에서 오기를 부리고 있는 야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야시로가 
하는 일에는 한 번도 거역하고 않고  따르기 만한 저였어요. 도련님,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 
싶으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타다요로서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과연 현명한 아내인지, 절개를 지키는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타다요도 파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부부의 애정이 열 겹 스
무 겹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야시로에 대한 정은 다하는 것이 되겠지만  자식들에 대해서는 죄스러운 어
머니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말리려다 말고 타다요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잘 알겠다. 
그대의 말도 야시로의 말도 그대로 성주님께 말씀 드리겠어. 잘 알겠어!" 자기 자신에게 말
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방을 나왔다.
  
    심판자
  이에야스는 타다요가 오카자키에서 돌아오자 곧바로  접견하는 대신 이이 만치요를  통해 
이렇게 명했다. "일단 조사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여 보고하도록." 그리고  자신은 계속 거
실에 머물면서 장수들의 명부를 조사하고 있었다.
  드디어 전기가 나가시노를 중심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코슈에 들여보낸 첩자로부터 어떤 
소식이 오면 곧 행동을 개시해야  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오가  야시로의 모반 음모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야시로만은 굳게 믿고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쓸 수 없는  사나이였으나 
공납이나 전비 염출에는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아시가루에서부터 출세하게 된 
은혜를 못 잊어 이에야스를 신이나 생명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재정을 거의 모두 맡
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혹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설마 그 야시로가...' 누군가가 그의 출세를 시기하여 덫을  놓은 것은 아닐까... 이에야스
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였다. 지금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충실 그  자
체이던 야시로가 실은 가신 중에서 첫째가는  역적이었다.  '나는 가신을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일까?'
  즉시 하마마츠에 있는 쌀창고, 무기고, 금창고 등의 조사는 모두 끝냈다. 그리고 오카자키
에 있는 것은 노부야스와 치카요시에게 조사를 명했는데, 다행히도  장부와 실제 수량은 일
치했다. '이상한 놈이야. 금이나 쌀을 빼돌린 것도  아니고, 타케다 군과 내통하여 노부야스
와 나의 목을 치려고 하다니...'  그 의심도 타다요가 바친  야시로의 진술서를 읽고 나서는   
풀렸다. 충실한 사나이가 너무 빨리 승진하는 바람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해진 것이라
고 이에야스는 반성했다.
  '너무 일찍 중용했어...' 지나치게 출세한 자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보이는 모양이
었다. 그 접에 착안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에야스는 이번 전진의 배치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승리만 계속하는 자와 여러 번 고전한 경험자를 혼동해서는 안 되
었다. 우습게 보다가 패배를 맛보거나 지나치게 신중하여 이길  기회를 잃는 자가 나타날지
도 모른다.
  거실에서 장수들의 명부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배치에  별로 잘못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서류를 정리하고 나서 비로소 이에야스는 만치요에게 명했다. "시치로에몬을 
불러오너라." 아직 야시로의 처형에 대해서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미심쩍은  점과 물어보
고 싶은 점을 타다요로부터 들은 뒤 결정할 작정이었다.
  여덟 점(오후 2시). 서원의 창으로  화창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으나 파도소리가  심하여 
멀리서 대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다요가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이에야스
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선 이번 사건에 사부로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그것부터 
알고 싶군. 시치로에몬." "예." 타다요는 대답하고 이에야스 옆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오카자키에서 가장 놀란 분은 작은 성주님이었습니다." 타다요는 좀 
난폭한 듯한 어조로 먼저 노부야스를 비난했다. 이에야스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이를 억제했다. "그래? 사부로가 가장 놀랐다는 말이지. 놀랐다는 것은 당황했다는 뜻인가?"
  "예. 그 전에도 야시로에게 수상한 점이 있다고 말씀 드린 자가 있었으나 전혀 귀를 기울
이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카자키의 중신들 사이에서는, 어떤 말씀을 드려도 소용
없으니 내버려두자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으음,  사부로가 지나치게 방자하다고 
그대는 나에게 말하고 싶은게로군." "예." 타다요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야시로의 간계 때문입니다. 야시로 놈은 성주님께는 성주님이 듣기 좋도록,  작은 성주님
께는 작은 성주님이 듣기 좋도록 말하여 부자간의 불화를 도모하려고 왜곡된 말을 했기 때
문이라고 히라이와 치카요시가 지적했습니다." "시치로에몬-" "예." "이번 사건에 대한 츠키
야마의 얘기는 듣지 못했나?" "전혀." 타다요는 시치미를 떼고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일에
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타다요였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말하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이
에야스는 타다요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었다.  그 일이 타다요만이 아니라  오카자키의 가신 
모두가 꺼리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말하기 싫다면 그냥 덮어두어도 좋다고 이에야스는 생각
했다.
  "그럼 셋째로, 야시로에 대한 가신들의 감정과 분위기를 알아보았나?" "예, 그것은 증오한
다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 자가 왜 그토록 미움을 샀는지 이상하
군." "아니,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타다요는 다시 약간 난폭한 어조가 되었다.
  "야시로 일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성주님과 작은  성주님 두 분뿐입니다." 
"으음, 우리 부자뿐이란 말이지." "두 분 모두  야시로라는 여우에 홀리셨다고 하급무사들까
지 험담을 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서 사부로에 간언하는 것도 꺼렸군... 알겠네. 그럼 넷째
는 야시로가 했다는 이야기인데, 야시로는 타케다 군이 이긴다고 자신있게 말하던가?
  "정신나간 자의 자신감이기는 합니다마는, 야시로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자
기만 못하다는 말, 그것은 광란상태에서  한 말인가 아니면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성주
님!" 타다요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부터 녀석은 미친놈입니다. 자만심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나 가증
할 정도로 침착했습니다." 이에야스는 문득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미소는 약간 일그러
져 있었다. "그래, 야시로는 네 마음대로 처형하라며 호통을 쳤다는 말이지?"
  "예,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주님 혼자만의 심판이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모든 
백성들과 함께 심판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자기를 죽이라고 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
라고 했습니다." "뭣이, 백성들의 의사를 물으면 죽이라고 할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
라고?" 지금까지 부드러웠던 이에야스의 표정이 그 한마디로 갑자기 험악하게 변했다.
  
  "분명히 그런 소리를 했다는 말이지?" 이에야스의 눈빛이 갑자기 예리하게 바뀌었기 때문
에 타다요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끔했다. 백성들에게 의견을 물으면 죽이라는 자가 한 사
람도 없을 것이다... 이 한마디가 그토록  이에야스에게 심한 충격을 준 것일까...?  타다요는 
그보다도 이에야스를 가리켜 자기 자신보다 못하다고 한 말에 분노하리라 예상했었다.
  "예.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정말 가증스런  놈이군." "성주님! 야시로의 아내 
말씀입니다 마는, 그 여자는 제가 체포하러가서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어린 자식들도 많고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성주님의 자비를 빌고자 하니 탄원
서를 써라, 전해주겠다고 했으나 끝내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 건방진 년인가 보군." "아니, 기특했습니다. 그  미친 놈에게 절개를 지켜 같이 죽
겠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아니... 그게 누구 이야기 인가?" "놈의 아내 말씀입니다." "시치
로에몬!" "예." "야시로의 처형은 결정했어. 결정했단 말일세."  "저는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성주님, 어떻게 할까요?" 이에야스는 비로소 타다요가  하는 말
을 이해한 듯.
  "지금은 이미 전시나 다름없어. 야시로의 처형은 전시에 준해야겠지만, 야시로가  그런 말
을 했다면 놈이 납득할 수 있게 심판해주겠네. 그런데 아내가 어쨌다고?" "야시로에게 절개
를 지켜 같이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네 의견은?" "아내는  도리가 없습니다. 함께 책형
에 처하건 효수를 하건 관계 없습니다마는..." 이에야스는  그 말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빠르
게 말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린 여자아이 둘은 살려주게." "예, 여자아이 둘을?" "알겠나? 살려
주지 않는 것처럼 하여 구해주되 아비의 이름을 모르게 하고  키우라는 말일세. 그 일은 자
네에게 맡기겠네. 아무쪼록 가신들에게는 너무  관대하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
네." 이에야스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신음했다. "으음, 놈이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이지."
  타다요는 자기가 하려던 말을 이에야스가 앞질러 말하자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오
마츠가 낳은 여자아이 하나만은 구해내, 오마츠가 처형될 때 살짝 귀뜸해주었으면... 하는 생
각으로 이에야스에게 그것만 부탁하려 했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순순히 두 아이를 살려주라
고 했다... 타다요는 그 말에 사로잡혀,  어째서 이에야스가 야시로의 말에 그토록  집요하게 
신경쓰고 있는지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치로에몬, 야시로는 내게 정면으로 도전했어." 이에야스의 말에  비로소 타다요는 자신
으로 돌아와 반문했다. "예...?"
  
  "시치로에몬, 야시로 그 자는 자기가 이 이에야스보다 더 옳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어." 이
에야스는 자기의 말을 듣고 의아해하는 타다요를 꾸짖는 듯한 어조로 나무랐다. "자네는 지
금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나? 바보 같은 것." "그것은 정신 나간 놈의..." "그렇지 않아!" 이
에야스는 단호하게 타다요의 말을 가로막았다.
  "놈은 나를 배반하는 편이 백성들에게는 행복한 일이라  믿고 있었던거야. 놈이라면 평화
롭게 할 수 있는 것을 이에야스는 전쟁만 계속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금도 분명
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타다요는 저도 모르게 이에야슬르 쳐다보고 입을 다
물었다. '하기는 그럴지도 모른다...' 야시로의  무엄한 언동 속에서는 음모가  탄로난  것을 

려워하기보다도 어딘가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자의 광적인 신념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성주님! 성주님은 조금 전에 야시로의 처형은 결정되었다고 말씀하셨지요." "물론 결정했
어!" "그러면 야시로를... 어떤 방법으로... 처형하시겠습니까, 책형이나 효수 같은 것입니까?" 
이에야스는 천장 한 모서리를 노려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야.  놈의 희망
대로 백성들의 심판에 맡기겠어." "예? 백성들의 심판에?"  "음." 이에야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나, 이것이 나와 야시로의 싸움이 아니야. 내가 경건하게 신불에게 뜻을 묻는 행사라
고 생각하게." "예...?" "시치로에몬, 나는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모반을 꾀한 야시로를  톱질
형에 처하겠네." "아니... 톱질형을?" 이에야스는 다시 눈길을 허공에 못박은 채 고개를 끄덕
였다.
  "그의 처자는 오자카키 성밖 네지가하라에서  책형에 처해도 좋아. 그  준비를 먼저 하고 
나서 야시로를 감옥에서 끌어내도록." "처자를 먼저  처형하라는 말씀이군요." "먼저 처형하
라는 것이 아니라, 야시로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야. 야시로는 안장 없는 말에 뒤를 향하게 하
고 태워라. 그리고 죄상을 쓴 팻말을 세우고 넨지가하라에서 하마마츠로 끌고 와라."
  "하마마츠에서 톱질형에 처하시렵니까?" 이에야스는 여전히 허공을 노려본 채  고개를 가
로저였다. "놈이 원하는 대로 하마마츠와 오카자키 일대의 백성들에게 놈의 모습을 두루 볼 
수 있게 하마마츠에 도착하거든 다시 오카자키로 옮기도록  하라." 타다요는 고개를 갸웃했
다. 톱질형이란 가혹한 형벌이 옛날이야기에는  나오지만 아직까지 본 적도  없었고 소문도 
듣지 못했다.
  '성주님이 정말 노하셨군...' 이에야스는 이때  비로소 타다요에게 눈길을 옮겼다. "알겠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니 잘 기억해두게. 오카자키 성밖에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 놈을 생매장시
키는 거야. 머리만 밖으로 나오게 하고 팻말에, 이놈을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는 통행인은  톱
으로 한 번씩 목을 자르라고 써  붙이고, 그 옆에 대나무로 만든 톱을  놓아두도록." 이렇게 
말하고야 비로소 이에야스는 빙긋이 웃었다.
  
  타다요는 얼마 동안 이에야스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자는 넨지가하라에서 책형으
로, 그것을 하마마츠로 끌고 가면서 야시로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하마마츠에서 다시 오카자
키로 끌고 가성밖에 생매장하고, 톱으로 베어 죽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잔인하기 짝이 없는 형벌, 그런데  이에야스는 웃고 있었다. "어때, 알
겠나, 시치로에몬?" 재촉을 받고서야 비로소 타다요는 무릎을 탁쳤다.  "생매장한 뒤 대나무
톱을 옆에 놓아두고 통행인에게 처형케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만일 통행인 중에 야
시로의 은혜를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때는 목숨을 건지게 되겠지."  이에야스는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통행인이 구해줄 것인가 아니면 증오하여 죽일 것인가, 야시로냐 이에야스냐... 그러니 감
시를 붙일 필요는 없어."  "예." 타다요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렸다. '과연  성주님이시
다!' 그만 목이 메었다.
  "즉시 오카자키로 돌아가  지시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타다요는 이에야스의 거실을 
나와 그 길로 오카자키로 돌아갔다. 오가 야시로가 감옥에서 끌려나와 안장 없는 말에 태워
진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의 일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죄상을 적은 팻말을 들고 여섯 명의 옥졸이 앞서고, 앞뒤
를 20명 정도의 아시가루가 경호하는 가운데 야시로는 후죠몬을 통해 성밖으로 끌려나왔다. 
양쪽에 가득 늘어선 구경꾼들로부터 돌과 흙덩어리가 야시로를 향해 날아왔다. 야시로는 여
전히 가슴을 딱 펴고 오만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 행렬은 성의 동쪽, 마을 어귀에 있는 넨지가하라에 이르러 속도를 늦추었다. 오른쪽 소
나무 숲 너머로 오마츠와 네 명의 아이를 처형하기 위한 형장의 울타리가 뚜렸하게 빛나 보
였다. 다섯 개의 십자가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고, 겨울의 대지에 따뜻하게 햇빝이  내리쬐고 
있었다. 어디선가 꾀꼬리가 울기 시작했다.
  "야시로, 보았느냐?" 원래부터 야시로를 미워하던 이마무라 히코베에가 일부러 옆에 와서 
말을 걸었다. "네놈의 야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처자의 말로가 저렇게 되었다. 아, 왼쪽 
막사에서 끌려나오기 시작하는군." 야시로는 대담하게 미소를 떠올렸다.  "십자가 수가 다섯 
개뿐이군, 흐흐흐..." 중얼거리고 나서 일부러 작은 다섯 개의 사람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
며 주위에 들리도록 커다랗게 말했다.
  "나도 곧 뒤따라가겠다. 저 세상에서 즐겁게 지내도록 하자." "그것이 처형되는 자의 마지
막 노래냐, 야시로?" "흐흐흐, 너 같은 자는 이  야시로의 심경을 알지 못해." 그런 뒤 고개
를 돌린 채 야시로는 히코베에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았다.  행렬은 도중에 하루를 
묵고 이튿날 하마마츠 성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야시로에 대한 가신들의 증오가 오자자
키에서보다 훨씬 더 심해. 야시로의 얼굴을 향해 여러 가지 오물을 던져졌다.
  
  이에야스는 끌려온 야시로를 보려 하지 않았다.  넨지가하라에서는 오만하게 가슴을 펴고 
있던 야시로도 하마마츠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초췌해져, 말 위에 올라 있는 것이 고작이라
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술로 단련되지 못한 육체가  의지를 거역하여 꼴사나운 피로
를 드러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비꼬기를 잘 하는 혼다 사쿠자에몬이 일부러 야시로의 말 옆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야시
로, 수고가 많았다." 야시로는 대답할 용기조차 없었다.  오쿠보 타다요가 처형에 대한 이에
야스의 말을 전한 것은, 하마마츠에서 끌려 다니던 야시로가  다시 오카자키로 되돌아갈 때
였다. 야시로는 당연히 하마마츠에서 처형되리라 믿고 있었는지, 이때 비로소 비명을 지르며 
이에야스를 매도했다.
  "이렇게 끌고 다니고도 모자라 다시 오카자키까지... 내가 장난감인 줄 아느냐,  이 비정한 
놈아!" 타다요는 그날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속에서 말 위에  있는 야시로의 등에 농부
들이 입는 도롱이를 덮어주었다. "너는 이제부터 오카자키로  되돌아가 성읍에 마련된 구덩
이에 생매장 당하게 된다." "뭣이, 생매장을..." 야시로는 이미 비참한 공포의 덩어리로 화해 
있었다.
  "그렇다. 머리만 땅 위에 내놓고 대나무 톱에 잘려 죽게 된다." "마...마...마음대로 해라. 원
귀가 될 것이다. 원귀가 되어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타다요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
다. "네 놈의 허세도 고작 사흘뿐이었구나." "..."  "알겠느냐, 이것은 모두 네놈의 소원을 들
어주기 위한 조처다."
  "저주할 것이다. 원귀가 되겠다..." "진정하지 못하겠느냐,  꼴사나운 놈." 타다요는 엄하게 
꾸짖었다. "너는 거기서 자유롭게 지껄일 수  있다. 통행인에게 네놈과 성주님 중에서  누가 
옳은지 물어보아라. 네가 옳다는 자가 있다면 구덩이에서 구해달라고 말이다." "뭐, 내가 말
을 할 수 있다고?" 
  "그렇다, 너는 백성들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것이 네놈의 소원 아니었더냐?  지나가는 백
성들이 너를 구해줄 것인지, 아니면 대나무 톱으로 네놈의 목을 자를 것인지. 감시를 붙이지
는 않겠다. 성주님께 고맙게 생각하여라." 타다요는 명령을 내렸다. "행렬, 앞으로 갓!"
  야시로의 눈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맛보듯이  한 가닥 
희망에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그렇구나. 구덩이에  생매장되어 대나무 톱으로  목이 잘린
다...' 자유롭게 입을 열 수 있다면,  대나무 톱을 목에 대려는 자에게  어떠한 설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재주에는 자신이 있다...' 야시로는 감각이  없어진 엉덩이의 아픔만을 생각

던 일에서 벗어나 무섭게 허공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탓도 있고 하여 구경꾼은 
올 때에 비해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야시로가 오카자키의 마을 어귀에 있는 밭도랑 옆에 생매장된 것은 그 이틀 후의 아침이
었다. 땅속에 그의 키만큼 구덩이를 파고 그 주위에 여섯 자짜리 판자로 둥그렇게 흙막이를 
했다. 발 밑의 진흙은 차고 축축했으나 물에 젖지는 않았다. 위는 네모진 판자를 둘로  쪼개
어 그 가운데에 목이 들어갈 만큼  구멍을 뚫었다. 이것을 다시 어깨 위에  맞춘 뒤 좌우에 
예닐곱 관정도의 돌이 놓였다.
  발끝으로 서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자세가 아니라면 제 힘으로 충분히 젖혀버릴 수 있는 
무게였다. 그러나 야시로의 자세와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위를 막은 판자 끝에 쇠
사슬이 연결되고, 그 옆에 대나무를 파서  톱니를 만든 눈앞에 내던져져 있었다. 뒤와  좌우 
세 방향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죄상을 적은 팻말은 목뒤에 세워졌기 때문에 야시로에게 보
이지 않았다.
  이마무라 히코베에가 이 진기한 작업을 끝내고 돌아간 뒤, 시원하고 투명한 아침 햇빛 속
에서 어디선지 모르게 상인과 농부들이 모여들었다. 한때 침착성을 잃고 흉물스럽게 허둥대
던 야시로였으나, 정체모를 힘의 뒷받침을 받고 지금은 침착해져 있었다.
  '내가 한 일은 정말  옳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것이었을까?' 야시로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에야스는 어느 
쪽이 옳은가를 백성에게 물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야시로는 생각했다.
  뒤에는, 이놈은 모반을 꾀한 무엄한 자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고, 몸의 자유가 철저하게 제
한되어 있었다. 그 불공정성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야시로의 혀 하나와 두뇌뿐이었
다. 따라서 그 남아 잇는 무기를 충분히 살려 대항해야 하며, 일의 선악 따위를 반성하고 있
을 마당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까지는 그래도 죄인이라 하여 보리밥이 지급되었으나 앞으로는 그것도 없을 터. 
과연 굶으면서 며칠이나 더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그네인 
듯한 상인 차림의 사나이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왔다.
  "이 극악무도한 놈, 내가 개시로 본때를 보여주겠다." 느닷없이 톱을  집어 야시로의 목에 
대려고 했다. "잠깐!" 야시로가 외쳤다. "극악무도한 놈이라니, 누구를 말하느냐?" 대나무 톱
을 손에 든 서른 살 가량의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구경꾼들을 돌아보았다. "아니, 이놈은 
소중한 성주님의 목을 노리고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도 놈이 벼슬을 살고 있을 때는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담. 바
로 얼마 전에는 자기 처자가 처형되는 것을 웃으면서 보고 지나갔어. 놈은 악귀야! 피도 눈
물도 없는 짐승이야." 군중 속에서 한 농부가 맞장구를 쳤다. 예순 살 가량 된  선량해 보이
는 노인이었다. "옳은 말이오. 그래 내가 개시를 하겠다는 거요." "잠깐! 기다리라고 했잖아. 
우선 내 말을 듣고..." 이때 상인 차림의 사나이는 톱으로 한 차례 야시로의 목을 긋고 얼른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야시로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았다. 운수 사납게 처음부터 엉뚱한 자가 튀어나왔다.  저
런 녀석은 인간의 존재가치도 사는 이치도 도리도 알지 못한다. 약간 피부가 벗겨진 것만으
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 누가 뒤따라 나서지 않겠나? 이 악당을 그대로 두면 미카와의  수치란 말이야." 다시 
누군가 외쳤다. 이번에는 열일고여덟 살쯤 된 젊은이가 성난  고양이 같은 눈으로 느닷없이 
짚신 끝으로 야시로의 얼굴을 걷어찼다. "못된 놈!  무...무례하구나." "흥, 잘난 체하고 지껄
이는군." 젊은이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은혜도 의리도, 가족간의 정도 모르는 자는 짐승이야. 무례하다니 뭐가  무례하다는 말이
냐, 이 악당아!" 이번에는 진흙투성이의 발을 야시로의 머리에  얹고 난폭하게 짓이겼다. 사
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웅성거렸다.
  "잠깐, 우선 이 야시로의 말부터 들어봐. 나는 이 미카와에서 전쟁을 없애겠다, 그러지 않
고는 백성들을 구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한 끝에 눈물을 머금고 일을  꾀했던 거야." "뭐라
고, 성주님을 죽이고 타케다 군에게 항복하면 전쟁이 없어진다고 지껄이고 있는 거냐?" "그
렇다. 도쿠가와 가문이 있기 때문에 타케다 군이 쳐들어온다. 나는 그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
려고 일을 꾸몄다. 이쪽에서 자진하여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면 흔쾌히 받아들일 타케다  군, 
무엇 때문에 밤낮없이 전쟁을 계속한다는 말인가."
  "와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 이렇게 말한  것은 
아까 그 노인이었다. "예로부터 이마가와 군과 친하려면 이마가와 군을 위해, 오다  님과 친
하려면 오다 님을 위해 싸워야만 했어. 전쟁이란 말이다, 우리 성주님이 가장 강해지시기 전
에 끝나지 않아." "암,  옳은 말이오. 성주님 대신  타케다의 무리에게 착취당하기는 죽어도 
싫어. 야마가의 농부들에게 물어봐라. 타케다의 무리들은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룰 뿐만 아니
라, 쌀을 빼앗아가고 여자들을 능욕한다며 이를 갈고 있어."
  "잠깐! 잠깐 기다려! 내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게다." 야시로는 이때다 하
고 소리를 높였으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막음을 당하고  말았다. 묵묵히 서 있던 스물
대여섯쯤 된 기술자처럼 보이는 사나이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와 야시로의 입에 커다란 말똥
을 쑤셔넣어버렸다.
  야시로는 퉤퉤 하고 침을 뱉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계산이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
성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어리석고 다루기 힘든 난폭한 자들일 뿐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더 이상 이성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멍청이! 개새끼! 짐승 같은 놈들!"  야시로의 악담에 대한 진흙과 말똥의  응징이 끝나고 
둘러섰던 백성들 모두가 사라졌을 때 야시로의 목에는 일고여덟 줄의 톱날자국이 남아 있었
다.
  밤이 되었을 대 야시로는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왔다. 반짝이는  하
늘의 별 속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목 언저리의 판자리를 치워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나, 
결국 그것은 몽상으로 끝났다. 그가 그렇게 묻힌 지 사흘째 되는 날, 노부야스가 거느린  오
카자키군 일대가 그의 눈앞을 유유히 요시다 성을 향해 진군해갔다.  그는 그 이틀 후인 닷
새째 되는 날 황혼녘에 자기편이었어야 할 백성에게 마침내 동맥이 끊겨 죽고 말았다.
  
    서전
  코후의 계절은 아직 초봄이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그늘진 곳에는 아직 녹지 않
은 눈이 하얗게 덮고 있고 마당에는 서릿발이 가득 서  있었다. 카츠요리는 그 서릿발을 밟
으며 성 안팎에 집결한 군사들을 시찰했다. 사람도 말도 그의 눈에는 사기가 충천한 믿음직
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카츠요리는 성 안팎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뒤뜰을  지나 거실로 가면서 뒤따라
오는 이타사카 보쿠사이를 돌아보았다. "보쿠사이, 나는 이번 출진이 이토록  전조가 좋으리
하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모두가 크게 뻗어나갈 조짐들입니다." 아버지  호인과 함께 신겐
의 말벗이었던 시의 보쿠사이는 공손하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이에야스가 우리를 배신한 오쿠다이라 쿠하치로를 나가시노 성에 들
여놓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지
금은 당초의 생각과는 그 규모가 크게 바뀌었어." 카츠요리는 즐거운 듯 아침해를 바라보며 
그 단아한 얼굴에 꿈을 쫓는 자로서의 황홀한 표정을 떠올렸다.
  "아와지의 유리에 피신해 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공으로부터 급거 상경하라는  연락이 올 
때까지 나는 단지 이에야스 놈을... 하고 작은 일에만 생각을 국한  시키고 있었어." "그것이 
아주 중요한 상경전으로 바뀌게 되었군요." "그래, 아버님의 평생 소원이셨던 상경전으로 말
일세." "틀림없이 아버님의 혼령도 지하에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암, 그럴 테지. 쇼군 요시아키 공은 이에야스를 비롯하여 이에야스 어머니의 친정인 카리
야의 성주 미즈노 노부모토에게도, 에치고의 우에스기에게도 격문을 보내셨다고 하더군.  어
서 카츠요리와 화친하고 서쪽으로 올라와 노부나가의 전횡을 응징하여 천하의 재흥을  도모
하라고. 물론 나는 그 효과를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아. 그러나 이 밀사를 접견한 자는  반
드시 마음에 적지 않은 동요가 있었을 것일세."
  "주군은 그밖에도 강력한 우군을 가지고 계십니다." 쿄토 태생인 보쿠사이는 쿄토에 대한 
자신의 꿈을 카츠요리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출전을  은근히 찬성하고 있는 사
람 중의 하나였다. "오오, 그것에 대해서도 철저히 손을 써놓았네. 혼간 사와 히에이잔, 오죠 
사 등도 모두 우리가 상격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일세." "쇼군께서는 일부러 치코인 요
리요시 님을 우에스기 가문에 사자로 보내셨다고 하더군요." "사실일세." 카츠요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것은 내가 부탁한 거야. 우에스기와 혼간 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손을 잡으면 오다
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하지만 우에스기에 대한 대비도..." "그 점에 대해서도 만전을 
기했어. 카가 엣츄에서 잇코의 신도들이 우리와 손을 잡지 않는  한 우에스기 군사는 한 명
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서약서를 받아놓았지.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말
을 이어나갔다.
  "오카자키에서도 고육책을 써서 즉시 입성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어 있어.  하하하... 처
음에는 나가시노를 공격할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천하를 다투는 전쟁
으로 바뀌었어." 카츠요리는 즐거운 듯이  웃고는 문득 자기 거실  쪽을 바라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기가 없는 동안 중신과 장수들이 모두 옆방에 모여 있는 것이 정원에서 보였다.
  
  "웬일로 여기 모였나?" 카츠요리는 일부러  소리를 거칠게 하고 정원에서  성큼성큼 방의 
층계를 올라갔다. 물론 그들이 찾아온 뜻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와서 세삼스럽게  출전
을 만류하려 했다. 그것이 혈기 넘치는 카츠요리로서는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이미 군사회의에서 결정난 일, 이제와서 새삼 겁을 먹게 된 것은 아닐  테지." 그는 숙부
인 쇼요켄을 비롯하여 야마가타  사부로베에, 바바 미노노카미,  사나다 겐타자에몬, 나이토 
슈리를 잔뜩 노려보았다. 나가사카 쵸칸, 요야마다 효에까지도 뒷줄에 떡 버티고 앉아  있었
다.
  "사부로베에, 왜 잠자코 있나?  이미 각 선발대에  사자를 보냈어. 본대가 늦어지면  곤란
해." "옳으신 말씀입니다." 겐타자에몬이 먼저 입을 열었다. "토쿠가와가 오카자키 성에 있던 
쿠하치로의 아버지 오쿠다이라 사다요시에게 오구리 다이로쿠를 딸려 원병을 청하기위해 기
후에 보냈다고 합니다."
  "알고 있어. 물론 노부나가는 미카와에 원병을 보내겠지. 보내지 않으면 미노를 공격할 때 
무거운 짐이 되니까. 나중의 짐을 먼저 덜기  위해 그런 다는 것을 모르느냐?" "황송합니다
마는." 몸집이 작은 사부로베에는 무릎을 잔뜩 세우고 앞으로 나섰다. "성주님께서는 총포의 
위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것을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가진 총포가  적에 비해 너
무 적다는 말인가?" "노부나가는 사력을 다해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자의 보고가 있었
습니다." "하하하..." 카츠요리는 웃었다.
  "사부로베에, 총포라는 것은 화승에 불을 붙이고 탄환을 장전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무
기일세. 비가 올 때는 쓸모가 없고, 탄약을 재고 있는 동안에 공격해버리면 그만이야.  아니, 
알겠어, 명심하도록 하지. 적이 총포를  가졌을 때는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기로 
하겠네. 그러면 될 것 아닌가?"
  "아뢰옵니다." 이번에는 나가사카 쵸칸이  말했다. 쵸칸은 원래  주전파였다. 그러한 그가 
심각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와 뒤에  앉아 있는 것이 카츠요리로서는 의아한  일이었
다. "우리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 선대로부터의 관습이므로 저도 솔직히 말씀 드리겠
습니다." "그래, 말해보게." "지난해 타카텐진 성을 함락하고 이 코후 성으로 개선하여  전승 
축하연을 열었을 때..."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코사카 단죠 님이 잔을 들고 저를 돌아보면서  뚝뚝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슨 일로 단
죠가 울었다는 말인가?" "이것이 타케다 가문의  멸망의 술잔, 슬픈 일이라고 중얼거렸습니
다." "뭣이?" 카츠요리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타카텐진 성은 아버님도 몇 번이나 공격했으
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성, 그것을 내 대에 이르러 짓밟게 되었어. 그것이 멸망의  징조라
는 말인가?"
  "황송하오나 그렇습니다. 아버님도 함락시키지  못한 성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 자만심의 
근원이라고... 그 후에도 코사카, 나이토 두 분이 여러 차례 주군께 간언을 올렸다고  하므로 
저는 여기서 더 이상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공기가  감돈다는 것을 아시고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쵸칸은 역시 주전파였다. 그는 이런 말을 함으로써 도리어 카츠
요리를 부채질할 생각임이 분명했다.
  
  카츠요리는 잠시 숨을 죽이고 쵸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도 함락시키지 못한 타카텐
진 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이, 아버지가 죽은 후 카츠요리의 유일한 자랑이었다. 그것이  타케
다 가문이 멸망할 징조라니, 이 얼마나 뿌리깊은 아버지에 대한 흠모인가. 더구나 그 흠모는 
언제나 카츠요리에 대한 경멸과 불신을 동반하고 있었다. 쵸칸은  그 점을 마음에 새겨두라
고 하고 있다. 굳이 그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카츠요리에게는 이보다 더 괘씸한 일이 없었
다. 
  "그래...?" 카츠요리는 잠시 분노를 억누르고  한숨을 쉬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가문을 
위하고 나는 위해 한 말이라 생각하고 꾸짖지는 않겠다."
  "쵸칸은 이렇게 말하는 카츠요리의 심정을 세밀하게 계산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요컨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오다, 도쿠가와와 화의를 맺고 우리는  동쪽으로 날개
를 펼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이 기회에  노부나가
의 아들 고보마루에게 동미노를 할애해주고, 이에야스의 의붓동생인 히사마츠 겐노스케에게 
스루가의 죠토고리를 주어 그 곳에 주군의 여동생을 출가시킨  뒤, 거꾸로 오다와라를 공격
하는 것이 상책이라 믿고 있습니다."
  "쵸칸, 더 이상 말하지 말게, 오다와라는 내 아내의 친정이야."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
쪽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잘 납득시키지 않으면 사기에 큰 영
향을 끼치게 될 중요한 일이라고..." 순간 좌중이 숙연해졌다.
  카츠요리가 손에 든 흰 부채로 사방침을 탁 치고 쵸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알겠어! 
잘 말해주었네." 창백한 얼굴에 피가 거꾸로 흘러 카츠요리의  이마는 갓 목욕하고 난 사람
처럼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보쿠사이!" 카츠요리는 아리가와까지 따라와 가신들 뒤에 앉
아 있던 이타사카 보쿠사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광지기에게 명해 보물창고에서 스와 홋쇼의 갑옷과 대대로 내려오는 깃발을 가져오게 하
라." 보쿠사이가 얼른 대답하고 일어나려 했다. "주군!"  사부로베에게 한 걸음 앞으로 나왔
다. "잠깐." 그리고 보쿠사이를 제지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함부로 손대지 않으셨던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귀중한 갑옷을..." "닥쳐! 보쿠사이, 어서 가져오라고 해라." "예."  보쿠사이
는 다시 일어나고, 좌중은 얼어붙은 듯 엄숙한 침묵에 빠졌다.
  어떤 경우에도 이 가보를 입고 또 앞세우고 나가는 전쟁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목숨
을 버리라는 의미를 갖는 물건들이었다. 그것을 가져오라는 카츠요리의 지시는 누구든지 다
시는 이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강력한 의사표시였다. 처음에는 단호한 태도로 앉아 있던 가
신들이 차차 고개를 낮게 수그리기 시작했다. 다만 나가사카  쵸칸만은 고개를 수그리는 사
람들을 멸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들의 마음은 나도 잘 안다..." 카츠요리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 카츠요
리의 생애에 두 번 다시없을 좋은 기회, 아버지의 유지를 잇게 해주게. 미카와 군 따위... 나
가시노 성 따위... 단숨에 짓밟아버리겠네. 사소한 이견을 버리고 제발 이 미약한 카츠요리를 
좀 도와주게." 좌중 어딘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손등으로 가만히 눈물을 닦고 있는 
것은 신겐과 아주 흡사한 그의 동생 쇼오겐이었다.
  
  타케다 군이 카츠요리의 지위 아래 코후의 츠츠지가사키 성을 출발한 것은 복숭아꽃도 벚
꽃도 아직 피지 않고 꽃망울이 딱딱한 채로 있는 2월 말이었다.
  즉시 동마카와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그 방면에는 이전의 나가시노 성주
였던 스가누마 일족의 군사를 이동시키면서, 카츠요리는 그 서쪽의  부세츠 가도를 향해 나
아갔다. 생애에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 하며 신라 사부로  이래의 가보를 받들고 나온 카츠
요리의 기세에 이 전쟁이 불리하다고 여기던 노신들도 입을 다물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카츠요리를 부세츠 가도를 통해 단숨에 오카자키 성으로 맞아들이려던 오가 야시
로의 음모는 이미 발각되고 말았다. 그러나 카츠요리에게는 아직  그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
다. 야시로 일당 중에서 유일하게 텐류가와를 헤엄쳐 건너 타케다 영지로 들어온 오다니 진
자에몬이 코후에 잠입했을 때 카츠요리는 이미 성을 떠난 후였다.
  스루가, 토토우미로 통하는 길과 달리 키소 산맥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산과 산 사이를 지
나야하는 이 행군은, 수많은 보급품도 함께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렸
다. 카츠요리가 헤비토게야마를 넘어 나미아이에서 네바네에 도착했을 때는 골짜기에서부터 
산봉우리까지 산벚꽃이 피어 있었다.
  "부세츠에 들어가면 기쁜 소식이  있을 거야." 와고가와 계곡에서  말에게 먹이를 주면서 
카츠요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적이 어떤 행동으로 나오건 상관없이, 가신들의 분위기가 카츠
요리를 한 걸음도 물러서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 만큼 이에야스의 허점을 찔러 오카
자키 성으로 단숨에 입성해 들어가는 몽상은 카츠요리를 즐겁게 했다.
  부세츠 부근에 있는 이나하시에 도착한 날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명주실과도 같은 빗줄기여서,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의 감회와 자연의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 같은 날이었다.
  "보고 드립니다." 그 가랑비 속에서 말을 멈추고  척후로부터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하타모토의 대장 오야마다 빗츄노카미 마사유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츠요리 옆으로  왔
다. "왜 그러나, 그런 시무룩한 얼굴로? 부세츠에서 사자가 오기라도 했나?" "그것이..." 빗츄
노카미는 카츠요리의 걸상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에 제 부하가 거동이 수상한 나그네 하나를  붙들어 문초했는데, 아주 이상한 말
을 하더라고 합니다." "이상한 말이라니... 부세츠 성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 
오카자키 이야기입니다. 오카자키 교외에서 오가 야시로라는  자가 생매장되어 톱으로 목이 
잘린 것을 보고 왔다고 합니다."
  "뭐, 오가 야시로가?" "예. 모반죄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틀림없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 자를 데려와! 적의 첩자임이 틀림없어. 허튼 소리를 하고 있어." 카츠요리의 재
촉에 빗츄노카미는 아직도 의아함을 버리지 못한 표정으로 얼른 장막 밖으로 나갔다. "여봐
라! 그자를 이리 끌어오너라."
  약간 떨어진 삼나무 밑에서 한데 모여 비를 피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명했다. "예." 밧줄을 
쥐고 있던 젊은 무사가 앞으로 나왔다.
  
  끌려온 남자는 첩자와는 거리가 먼, 어수룩해 보이고 뚱뚱하게 살이 찐 예순 넘은 노인이
었다. "너는 무슨 일로 오카자키에서 이리 왔느냐?" "예. 저는 이  앞 네바네에서 딸과 손자
를 데리고 사는 늙은이입니다. 목화씨를 팔러 갔다가 모두 팔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무엇 
때문에 여기저기 진지를  기웃거리고 다녔느냐?" "기웃거리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노인은 정말 두려운 기색을 나타냈다.
  "제가 이리 지나가려면 이곳 장수님들이, 저리로  지나가려면 저곳 장수님들이 떡 버티고 
있어서... 그래서 겁이 나 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빗츄노카미는 흘끗  카츠요리를 
쳐다보고 지시를 기다렸다. "저어  대장님, 혹시 네바네가  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은  아닐까
요?"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카츠요리는 똑바로 노인을 바라보고 물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문장을 보니 타케다 쪽 장수님이란 것은 알겠습니다만,  대장님의 성
함까지는..." "그걸 모르면 여길 통과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위는 지난번 전쟁 때  빗나간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두 명의  손자와 
딸과 이 늙은이... 딸은 그  후 계속 병으로 누워  있기 때문에 제가 일하지  않으면 손자들
이..."
  "노인!" 카츠요리는 그제야 상대가 평범한  백성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노인은  오카자키 
교외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톱질형에 처해진 죄인을 보았나?" "예...예.  너무나 비참한 광경
이어서, 그 이후 저는 식사를 할 때마다 구역질이 나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 자의 모습
을 본 대로 말해보라." "예. 얼굴은  완전히 보랏빛으로 부어오르고, 통행인에게 짓밟히거나 
발로 채이곤 하여  얼굴 가죽이 벗겨졌는가  하면 입술이 석류처럼  터져 있습니다." "그래
서..."
  "그가 저에게 큰 소리로 살려줘! 하고 부탁해왔어요. 그 구덩이에서 나오게 해주면 나중에 
무슨 사례라도 하겠다. 나는 마카와 오쿠고리와... 무슨  다이칸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 말
에 거기 있던 사람들이 깔깔 웃었습니다. 그런 잘난 무사가 갓난아이처럼 소리내어 엉엉 우
느냐고 하면서..." "됐다. 그런데 그 자의 이름은?"
  "예, 오가 야시로라는 악당이라고 팻말에 씌어 있었습니다." 카츠요리는 가만히 이마의 땀
을 닦았다. "빗츄노카미, 곧 사람을 보내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라. 이 노인은 보고가 들어올 
때까지 부세츠 성에 잡아두어라." "일어나!"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대장님, 저는  절대로..." 
카츠요리는 노인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걸상을 차고 벌떡 일어나 장막 밖으로 나갔다.
  비는 여전히 나무의 어린 싹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내리고 있었다.  산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다리에서 시냇물이 흐르는 쪽으로  따뜻한 젖과도 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렇구
나, 오가 야시로가 실패했구나..." 카츠요리는 가슴을 떡 펴고 상처입은 매처럼  주위를 노려
보면서 걸었다.
  
  전쟁의 신은 카츠요리에게 가혹했다. 오가 야시로의 처형이라는 하나의 차질은 코슈 군에
게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한 걸음 물러나 냉정하게 작전을 재검토해야 했는데도 사태
는 오히려 속도감을 더하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낭패감을 숨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감정
에 치우셨다.
  "야시로의 죽음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부하장수들에게 말했다.  "오카자키가 먼저
냐, 나가시노가 먼저냐, 짓밟아버릴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곧 부세츠 성으로 들어
가 작전회의를 열었다.
  야시로의 내용이 탄로난 이상 오카자키 성의  전쟁준비는 완벽하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
다. 따라서 오카자키 성을 공격하는 시일을 낭비하면 서쪽에서  오는 오다의 원군과 동쪽의 
하마마츠, 요시다 군에게 협공을 당하게 된다.
  "오카자키는 문제 삼을 것 없다. 방향을 바꾸어 나가시노 성을  공격하라." 그러기 위해서
는 여기까지 나온 것도 무익하지는 않다. 그들은 본대가 오카자키를 칠 줄 알고 나가시노의 
군사를 나누어놓고 있다고 우기는 카츠요리였다. 결국 나가시노 도면이 장수들 앞에 펼쳐졌
다.
  토요카와 상류에 있는 오노가와와 타키자와가와의 합류점에  축조된 험준한 산성에는, 두 
강이 합쳐진 정면의 절벽에 노우시몬이  있고 여기에 좁고 긴 다리가  걸려 있었다. 이것을 
도고라 하는데, 그 서북쪽에 본성이 있고 본성을 향해 왼쪽에  단죠 성, 뒤에 오비 성, 다시 
그 위에 토모에 성과 후쿠베 성이 이어져 있었다. 가신들의 집은 단죠 성 바깥에 있으며 정
문은 서북쪽, 뒷문은 동북쪽에 있었다.
  단숨에 짓밟으려면 남쪽은 정면인 도고로부터 공격하고,  서쪽은 타키자와가와를 끼고 공
격해야 했다. 또 동쪽은 오노가와  너머의 토비노스야마를 중심을 한 나카야마,  키미가후세
도, 우바가후토코로 등으로부터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의 회의가 끝났을 때. "본진은 어디에 두시렵니까?" 오야마다 빗츄노카미가 물었다. "성
의 북쪽 이오지야마에 두겠다." 카츠요리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삼천의 예비부대는 내가 지
휘하려 하는데 이의 없겠지?" 맨 먼저 노우시몬 부근에서 선두에 서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
어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은 그 말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전군은 몇으로 나누시겠습니까?" 이렇게 물은  것은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  "북, 서
북, 서, 남, 동남과 본진, 이 여섯이면 족하겠지. 다른 생각이 있으면 말해보게." "황송합니다
마는." 이번에는 야마가타 사부로베에가 입을 열었다. "그밖에 유격대와 후군을  더 두어 모
두 여덟으로 나누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뭐, 유격대? 그 험준한  산에서 유격대의 진퇴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그런 문제를 떠나 유격대를 두는 것이 전투의 상식이라고..." "알겠어! 그럼, 지휘는 누가 
하면 좋겠나?" "이 야마가타 사부로베에와 코사카 겐고로가 아루미 마을 부근에서 대기할까 
합니다." "뭐, 아루미 마을에서..." 카츠요리의 이마에는 어느 틈에 불끈 힘줄이 솟아 있었다. 
"사부로베에, 그대는 벌써부터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전쟁에 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니."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카츠요리는 그
가 불쾌해한다는 것을 알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농담일세. 농담이기는  하지만, 지금 
나가시노 성에는 병력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오, 륙백쯤 되겠지요." 사부로베에는 무
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오, 륙백을 공격하기 위해 코슈, 신슈, 우에노 등  세곳의 군사 일만 
오천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만일 실해하는 경우에는 후세에까지 조롱을 받게 됩니다."
  "알겠네, 자네와 코사카 겐고로는 유격대를 맡게.  후군에는 아마리 사부로시로, 오야마다 
효에, 아토베 오이노스케 등 세 사람에게 각각 이천씩을 주어 그들 역시 예비부대로 대기토
록 하겠다." "가납하시니  망극합니다. 다음에는 공격부대의  배치를." 카츠요리는 장수들의 
신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 먼저 나가시노 성을 짓밟고 나서 구원하러 오는 도쿠가와 군을 나가시노와 요시
다 사이에서 궤멸시킨다. 그리고 이어 오다 군과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성의 북쪽 다이
츠지야마에는 타케다 사마노스케 노부토요,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 오야마다 빗츄노카미 
마사유키가 이끄는 2,000.
  성의 서북쪽 정문으로는 이치죠 우에몬다유 노부타츠,  츠치야 우에몬노죠 마사츠구가 이
끄는 2,500. 성의 서쪽 아루미 마을로부터의 공격군은  나이토 슈리노스케 마사토요, 오바타 
카즈사노스케 노부사다가 이끄는 2,000. 성의 남쪽 노우시몬의 기습부대는 타케다  노부카네 
뉴도 쇼요켄, 아나야마 겐바노카미 바이세츠, 하라하야토 마시타네, 스가누마 신사부로 사다
나오가 이끄는 2,000.
  성의 동남쪽 토비노스야마 방면은 타케다  효고노스케 노부자네를 총지휘자로 하는  와다 
효부 노부와자, 사에구사 카게유자에몬 모리토모가 이끄는 1,000. 여기에 본전 3,000, 유격대 
1,000, 후군 2,000등으로 물샐틈없는 전열을 구축했다.
  작전회의가 끝난 이틀 뒤 오가 야시로가 처형된 것을 확인하는 보고가 카츠요리에게 들어
왔다. 드디어 타케다 군은 나가시노로 진로를 바꾸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편 나가시노  성
에서는 이 무렵 아직 성채 수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버지 사다요시를 오카자키 성에 보내
고 자기 혼자 이 성에 들어와 있던 오쿠다이라 쿠하치로 사다마사는 지금 부하들을 독려하
며 북방의 다이츠지야마에 면한 성채구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러다가 코슈 군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글세, 듣기로는 이만이
라고도 하고 삼만이라고도 하는 대군인 모양이던데." "이 성에는 고작 무사가 이백 오십 명
뿐이야. 이것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아." 흙을  운반하는 일꾼들이 안타깝다는 듯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쿠하치로는 채찍질하듯 독려했다.
  "이 험준한 지형은 삼천 오백의  군사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쿠하치로는 아직 젊은 나이여서 이번 전투를 아주 단순하게 판단하고 있었
다. "나가시노 성이 함락된다는 것은 도쿠가와 가문의 멸망을 말한다."  이렇게 말한 이에야
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성에는 이에야스의  하나뿐인 딸 카메히메가 시집
와 있었다. 따라서 이에야스가 자기  사위가 폐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사랑하는 자기 딸을 이곳으로 보낸 이상 이에야스의 원군은 반드시 온다... 아니, 만일  그 
원군이 도착하지 못해 타카텐진 성처럼 비운에 처하게 된다 해도 이에야스를 원망하지 않겠
다고 쿠하치로는 단단히 각오하고 있기도 했다.
  카메히메와 자기가 다 함께 성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그때는 
웃으며 죽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최소한 아버지의  이름만은 더럽히지 않겠다고 입버
릇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 이면에는  그에 대한 카메히메의 사랑이 큰  힘이 되어 있었으나 
그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카메히메는 그가 이 성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큰  적이었다. 처음부터 남편인 쿠하치로를 
산중의 원숭이와 같은 부류라고 경멸하고, 첫날에는 하루 종일 입도 열지 않았다.
  "배가 아프니 혼자 있고 싶어요." 첫날밤의  잠자리에서는 신방에서 쿠하치로를 쫓아내고 
말았다. 그가 만일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온몸을 
떨며 격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쿠하치로는 산중의  원숭이가 아니라 간에 털
이 난 한 마리의 맹호라고 해도 좋았다.
  "하하하..." 그는 웃었다.  "내가 징그러운  모양이군." "징그럽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
요?" "아무렇게도 하지 않아. 여자란 다 그런 것이니까. 앞으로 그것을 알게 되겠지." "그것
이라니... 뭐를 말하는 거죠?  징그러워라." "그것이라... 이 쿠하치로가  그대의 아버지 눈에 
들만큼 훌륭한 사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요. 나는 그대와 장인이  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그는 얼른 방에서 나갔다. 카메히메는 하도 기가 막혀 그때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두 사람이 다투게 된 첫 신호탄이 되었고, 카메히메는 내전의 여자
들을 아무나 붙들고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나는 비록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성
주님과 같이 자지는 않겠어." 
  쿠하치로는 마냥 태연하기만 하여, 밤이 되면 근시들을 데리고 그녀의 거실로 왔다.  그리
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전쟁 이야기로 밤을  밝혔다. "아직도 심술이 풀리지 않았나?" 아
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묻고, 화가 난 아내와 눈길이 마주치면  큰 소리로 웃으며 바로 바
깥채로 나갔다. "하하하하."
  이런 일이 거듭되자 카메히메는  이상하게도 쿠하치로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 
사람은 여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시동 중에 마음에  드는 자가 있어, 자기 따위는 무

하고 평생을 보내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무렵이 그녀의 마음에 패색이 감
돌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직 심술이 풀리지 않았어?"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풀렸다고 하면 어떻게 하
겠어요?" 카메히메가 토라진 입으로 대꾸했다. "뭐, 풀렸다고..." 훌쩍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쿠하치로는 성큼성큼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주지."  느닷없이 카메히메를 번쩍 
안아 올리고 난폭하게 뺨을 비볐다. "하니만 오늘밤은 바빠." 그대로 나가버렸다.
  
  카메히메의 생애에서 그 때처럼 낭패스러운 적도 없었다고, 요즘에 와서 그녀는 쿠하치로
에게 고백했다. 갑자기 안아올렸을 대는 온몸이 분노로 뜨겁게 불탔다고 카메히메는 말했다. 
그래서 힘껏 쿠하치로의 뺨을 갈기려고 번쩍 오른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 카메히메는 아
직도 가신들이 물러가기 않고 문 앞에 가엾은 모습으로 내던져져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힘없는 여자를...  거기 서요!" 당황하며 흐트러진  옷자락을 여미고 
소리를 질렀으나, 이런 일로 돌아보거나 걸음을 멈출 쿠하치로가 아니었다."오늘밤은 바쁘다
고 했어." 돌아보지도 않고 얼른 사라지고 말았다.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다. 이런 모욕을 당
하고는..." 
  카메히메는 그날 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 당장 하마마츠의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 이혼
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릴 것  같이 않았다. '그렇다,   

떻게 해서든지 크게 수치를 주고 나서...' 이튿날  밤에도 쿠하치로는 태연한 표정으로 들어

다.
  그리고는 다시 큰 소리로 에치고의 켄신 뉴도가 어떻고 오다의 대장이 어떻다는 등 무용
담을 흥겹게 늘어놓고 있었다. 카메히메는 그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응석을 부리며 
몸을 기대었다. 상대에게 치욕을 쥐  위해서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가 나중에  얼굴도 들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쿠하치로는 이때 점잖게 그녀로부터 
몸을 빼었다.
  "오늘은 할아버님의 기일, 그대도 몸을 단정히 하도록." 이 말에 카메히메는 그만 세 번째 
작전도 실패하고 말았다. 같은 방법으로 다시 거부당하면 상처를  입는 것은 쿠하치로가 아
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쿠하치로는 그와 같은 카메히메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했다. "그대가 
몸과 마음을 바쳐 진정한 아내가 될 때까지 몇 년은 걸릴 줄 알고 은근히 걱정했는데  이건 
뜻밖이로군. 마음속으로는 이 쿠하치로를 좋아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결합이 이루어진 후 쿠하치로는 전과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좋
은 아내가 되도록 해. 그것이 여자의 행복이야." 당연히 따귀 한 대쯤은  날아오리라고 쿠하
치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카메히메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다가 쿠하치로
에게 매달려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울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부터  카메히메는 쿠하치로에게 더할 나
위 없는 아내가 되었다. 약간 잔소리가 많은 편이기는 했으나 세밀한 곳에 이르기까지 정말 
내조를 잘 했다. 그리고 이번에 성곽을 수리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 진행을 자주 아버지 이
에야스에게 편지로 써서 보내는 모양이었다.
  카메히메는 쿠하치로를 통해 비로소 아버지의 입장까지도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만일
의 경우에는 저도 성주와 같이 이 성에서 죽겠어요."  지금은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
다. 그 말의 이면에는, 이에야스가 우리  부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숨겨져  있었
다. 이러한 쿠하치로에게 최초의 원군이 도착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노우시몬에서  내려다보니 원쪽에서 흐르는 오노가
와의 물이 여간 탁해져 있지 않았다. 그 탁류는 오른쪽에서 흘러드는 푸른 물줄기와 어우러
져 분마처럼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쿠하치로는 그 물소리 때문에 처음에는 아군의 인마 소
리인데도 적이 쳐들어오는 줄 알고 급히 노우시몬 옆 망루에 올라가 보았을 정도였다.
  "그대와 협력하여 이 성을 사수하라는 성주님의  분부일세. 성의 수리는 끝났나?" 쿠하치
로가 서둘러 다리 입구까지 마중 나갔을  때 앞에 있던 마츠다이라 사부로지로  치카토시가 
말했다. "만일의 경우에는 농성을 해야 돼. 인원수는 적은 편이 좋다고 모두 이백 오십을 보
내셨어." "이백 오십..." 쿠하치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군사와 합하면 오백. 한 사람이 열 명의 역할을  한다고 치면 오천과 대적할 수 있
겠군. 고마운 일이야. 자, 어쨌든 안마를 성에 들여놓고 휴식하도록 하게." "오쿠디이라 님." 
뒤이어 말을 건 것은 후미에서  말을 달려온 마츠다이라 야쿠로  카게타다였다. 카게타다는 
자기를 따라온 말탄 젊은이를 돌아보았다.
  "이 아이가 내 아들 야사부로 코레마사, 오쿠다이라 님과 우리 부자 및 사부로지로 님, 이
렇게 네 사람이  지휘를 맡으라고 하셨소.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말에서 내렸다. 
"믿음직스럽군!" 쿠하치로는 머리를 꾸벅 숙이고는 무뚝뚝하게 웃었다.
  "이제 이렇게들 모였으니 카이의 시골 원숭이쯤은  실컷 곯려줄 수 있겠군." "오쿠다이라 
님" "왜 그러냐?" "일단 부세츠에 모습을 나타냈던 다케다  군이 나가시노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오?" "아니, 아직 아무 데서도 소식이 없소. 하지만 이젠 언제 어디서 나타
나도 놀라지 않소." "그럼, 그 병력도?" "설령 오천이나 칠천이 된다고 해도 그들을 맞아 혼
을 내는 데는 마찬가지지." "그런데 오천이나 칠천은 아닌 것 같소."
  "그럼, 일만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일만 오천이 넘을 거라는 보고가 하마마츠에 들어왔
어요." "와하하하..." 쿠하치로가 너무 큰 소리로 웃었기 때문에 카게타다의 아들 코레마사는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오백에 일만 오천, 그렇다면 싸우는 보람이 있겠군." "오쿠다이라  님." "왜?" "그것은 싸
우는 보람이 아니라, 죽는 보람이겠지요." "아니,  아니." 쿠하치로는 고개를 흔들어다. 그러
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무감각하게 느껴져, 믿음직스럽다기 보다는  도리어 어이가 없을 정
도로 순진해 보이는 태도였다.
  "나는 도쿠가와 집안의 사위, 절대로 이 부근의 산성에서는 죽지 않아. 한 사람이 서른 명
을 상대하면 돼. 전쟁터가 약간 북적거릴 테지만, 두 사람은 안심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하
고 앞장서서 그들을 성안으로 안내하는 쿠하치로였다.
  
  원군이 성안에 들어온 뒤 즉시 군사회의가 열렸다. 네 사람은 여기저기 새로운 나무를 사
용하여 수리한 낡은 서원에서 쿠하치로가 만든 그림 도면을 펼쳐놓고 전략을 의논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1만 5,000을 500의 병사로 대적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대 여섯 번이나 
함께 망루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며 살펴보기도 했다.
  어디를 보나 주위는 산뿐이었다. "과연 산이 많군. 이것이 모두 적의 진지가 될 테지." 야
쿠로 카게타다가 말했다. "일만 오천이나 된다면 그럴 테지." 사부로지로 치카토시가 맞장구
를 쳤다.
  쿠하치로 사다마사는 주고받는 그런 말에는 전혀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바깥이 
모두 적으로 메워진다고 해도 이 성에는 손이 닿지 못할 것일세. 나는 이 성을 버리고 달아
난 수가누마 생각을 하면 우스워 견디지 못하겠어." "과연 그럴까?" "그 녀석은 몹시 서두르
는 자였던 모양이야. 아직 오륙 일 분이나  식량이 남아 있었는데도 손을 들었으니까." "오, 
륙 일..." 쿠하치로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 것은 카게타다의 아들 야시부로 코레마사였다.
  "그래, 그 정도의 식량이 남았다면 쓰기에 딸라 보름은 족히 견딜 수  있네." 이때만은 쿠
하치로도 엄숙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보기처럼 무감각하지 않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아니. 그 반대로 1만 5,000의 대군이  몰려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겨우 250밖
에 원병을 보내지 않은 이에야스의 생각을 그는 나름대로 세밀하게 분석해보고 있었다.
  '이것은 농성을 하라는 뜻이다.' 전쟁의 대세는 성밖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그것이 결정
될 
때가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성을 버리지 마라, 그대와 내 딸이 있는 성을 나는 절대로 버리
지 않는다-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는 이에야스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쿠하치로는 마츠다이라 치카토시나 카게타다 부자에게도 그 각오만은 분명히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는 카메히메도 참석한 가운데 객실에서 조촐한 주연이 베풀어졌
다. 농성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결이 첫째였다. 한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탄식이 원
인이 되어 전체의 사기가 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새로 가담한 지휘자와 오쿠다
이라 가신들과도 빈틈없는 연대감을 유지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쌍방의 인사가 끝나고 한 차례 술잔이 돌아갔을 대 쿠하치로는 투박한 어조로 이렇게 말
했다. "여러분, 지금 전란에 휘말려 있는 일본에서 가장 강한 것은 코슈 군이라고들 합니다. 
두 번째로 강한 것이 미카와 군이라 하는데, 이번 전쟁은  그 잘못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
라고 생각합니다. 성의 북쪽에는 먹고 힘을  낼 수 있는 황토가 얼마든지 있으니,  미카와의 
용사들은 그 흙을 먹고 일본에서 제일 강하다는 코슈 군을 물리쳤다는, 그래서 미카와 군이 
제일이라는 일화를 남기기 바라오."
  "와아!" 그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카메히메가 익살스런 어조로 그 뒤를 이
어 말했다. "여러분, 저도 이 산간지대로 시집온 덕분에 황토로 밥짓는 방법을  배우게 됐어
요. 밥은 제가 직접 나가서 짓도록 하겠으니 여러분은 마음껏 용맹을 떨쳐주세요."  어느 틈
에 키메히메는 어조까지 쿠하치로를 닮아  있었다. 부부의 애정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었다.
  
  어떤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성병 500으로 1만 5,000의 맹공에 대향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
에야스가 노부나가와 합세하여 결전을 벌이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성을 함락 당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성이 떨어지면 승리에 힘을  얻은 코슈 군은 
단숨에 요시다 성과 하마마츠를  공격하고, 다시 오카자키와 오와리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코슈 군이 만일 오와리의 흙을 밟게 된다면 그 땐느 이미 도쿠가와 가문은 이 지
상에 존재할 수 없다.
  쿠하치로는 이런 뜻을 술자리에서 은근히 피력하고 거듭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심
어주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더욱 뜨거워진  햇볕 아래에서 이 흙 자루,  저 말뚝, 저 성채 
등 지휘자와 일꾼을 모두 한 몸이  되어 열심히 일했다. 이제 이 나가시노  성에 있는 자의 
운명은 대장도 아시가루도 남자도 여자도 하나였다. 코슈 군을  무찔러 도쿠가와 가문의 운
을 뻗어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다 같이 성을 베개로 삼아 백골로 화할 것인
가...
  계절은 5월로 접어들었다.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성의 노우시몬으로부터 류즈야마 녹음 속
으로 날카롭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성곽의 수리가 일단 끝나고 날이 밝은 뒤 성의 여기저기서 맹렬하게 돌격과 야습 훈련을 
하는 소리가 잇따랐다. "얏!" "앗!" 적이 어디서 공격해 들어오든 반드시 격퇴하겠다는 것은, 
적에게 약간만 빈틈이 있으면 즉시 쳐들어가 그 허점을 찌를 공격력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알겠느냐, 가만히 성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면, 멀리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적들은 병력을 
요시다로 돌리게 된다. 그렇게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도록 못을 박
아놓고 기회를 보아 공격해나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임무임을 잊지 마라."
  볏단을 칼로 베는 자, 흙푸대를 창으로 찌르는 자, 활을 쏘는 자 등을 둘러보고 나서 쿠하
치로는 반드시 큰 소리로 웃곤 했다. "와하하하... 이것으로 우리는 이겼어.  승리한 거야, 승
리했어." 처음에는 이 쿠하치로의 웃음에 동의하는 자가 드물었다. 그러나 밤낮 없이  이 훈
련이 마침내 그들을 대담하고 활력이 넘치게 만들어, 지금은  쿠하치로가 웃으면 모두 크게 
입을 벌리고 목구멍을 햇볓에 드러내게 되었다.
  5월 7일 아침이었다. 카메히메가 간밤에  나눈 사람의 밀어를 그대로  꿈속으로 감미롭게 
끌어들이다가 가만히 눈을 떴을 때  이미 그 옆에 쿠하치로의 모습은  없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이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자고 있던 자신이 이 긴박한 상황
에서 몹시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게도 느껴졌다.
  쿠하치로는 아버지를 닮아 아침에는 반드시 웃통을 벗고  칼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300번
씩 했으나 지금은 500번으로 늘어나  있었다. 장소는 침소 바로  뒤에 동산이었다. "성주님, 
벌써 끝나셨나요?" 정원용 나막신을 신고 카메히메가  동산 옆으로 갔다. "음" 동산 위에서 
쿠하치로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왔어, 왔어. 여기 올라와서  저것을 좀 봐, 여기도 깃발, 저
기도 깃발, 정말 굉장하군."
  
  카메히메는 남편의 밝은 목소리에 이끌려 자기도 웃으면서 동산에 올라갔다. 그러나 남편
이 가리키는 성 주위를 바라보는 동안 온몸이 굳어지고  무릎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1만 5,000이라는 수는 사람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엄청난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저기 저것이 이오지야마, 저것이 다이츠지야마, 저것은 또 우바가 후토코로, 저것이 토비
노스야마, 저것이 나카야마, 그리고 저것이 히사마야마..."  그가 가리키는 곳마다 깃발과 인
마로 메워져 있었다.
  적이 나타난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성은 사라져버린 것과 다름없이 작게  느껴졌다. 
만일 이때 그녀가 돌아본 쿠하치로의 옆모습에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조금이라고 있었다면, 
그녀는 그만 땅에 주저 않아버렸을지도 몰랐다.
  "어때, 굉장하지?" "예...예." "나도 무장으로 태어났으니 한 번만이라도 저  정도의 군사를 
지휘해 보았으면." "어서, 무장하셔야지요?" "아니, 서두를 것 없어." 쿠하치로는 웃었다. "적
은 이제 겨우 밥을 짓기 시작하고 있어. 우리는 이미  다 지어놓았고. 자, 그럼 이만 돌아가
서 배를 잔뜩 채워보기로 할까." 카메히메는 가만히 한숨을  쉬면서 남편을 따라 동산을 내
려왔다. 쿠하치로는 표정만이 아니었다. 걸음걸이도 침착성도 시원한 아침 햇살 속에서 평소
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쿠하치로가 편안히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중신들이 와서 어느 방향에 진을 친 것은 
누구라고 잇따라 알려왔다.
  "그래?" 그때마다 쿠하치로는  밥을 씹으면서 대답할  뿐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속히 노우시몬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아츠다이라 사부로지로 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렇게 재촉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서두를 것 없네. 예상하던 자가 예상했던  때에 나타
난 것뿐이니까." 그리고는 다시 볶은 된장이 맛있다고 옆에 있는 카메히메에게 말을 걸기도 
하다가 겨우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노부나가가 무장을 빨리 한다는 것은 여기까지 소문이 나 있었으나, 쿠하치로 사다마사는 
그와 정반대였다. 천천히 이 끈 저 끈을 살피고 여유만만하게 매어나갔다. 일단 준비가 끝나
면 그 이후의 명령은 아주  준엄했다. 다다미란 다다미는 모두 걷게  하고 장지문을 말끔히 
떼게 했다. 만일 적의 불화살이 날아와도 즉시  불을 끌 수 있도록, 건물 안 어디에서나  곧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화약고의 방비와 총포대의 이동은 언제나 가능하도록, 음료수의  사
용을 엄격히 제한하도록... 등등 그 지시는 극히 세세한 곳까지 이르렀다.
  그날 적은 어디서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다.  "행군의 피로를 풀려고 그럴 테지.  우리는 
지루하여 힘이 남아돌고 있는데." 이튿날인 8일. 성 남쪽에 진을 친 타케다 쇼요켄의 군사부
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케다 군은 이 천연의 요새를 어디서부터 공격할 것이나 깊이 생각
한 끝에 결국 남쪽을 택한 모양이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성질이 고약한 벌레가 실고 있다. 이 벌레는 일단 각오를 굳힐 때까지
는 이상할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납득할 수 있
는 
해답을 발견하면 이번에는 지나치게 대담해진다. 생사일여니 하며 달관한 듯한 말을 하면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때조차도 죽음을 택하려고 한다.
  타케다 쇼요켄의 군사가 노우시몬 밖 격류를 건너려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오쿠다이라 군
사가 바로 그러했다. "성주님, 드디어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본성의 현관 앞에 마련된 막사
로 달려와 보고한 것은 오쿠다이라 지자에몬 카츠요시였다. 
  "우리 군사를 즉시 강가로 출동시켜 적에게 본때를 보여줄까요?" 쿠하치로는 꾸짖는 어조
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자에몬, 그대는 지금 제정신인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선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려는 것입니다." "잠자코 있어!" 쿠하치로는  자리에 일
어나 곧장 노우시몬 쪽으로 걸어갔다.
  "정면 벼랑은 높이가 스무 간, 저길 내려갈 때까지 희생이 얼마나 날 것 같은가? "전쟁에
는 희생이 따르게 마련, 열대여섯 명쯤 잃을 각오만 한다면..." 쿠하치로는 계속 걸으면서 무
서운 눈으로 지자에몬을 노려보았다.
  "그대는 오백과 일만 오천의 주판을  놓을 줄 모르는 것 같군.  헛되이 병사 하나를 잃는 
것은 서른 명을 잃는 다는 것과 같아. 스무 명을 잃으면 육백  명을 잃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르겠나? 경거망동하여 출동하는 것은 결코 용서치 않겠다.  장렬한 전사보다도 고통의 밑
바닥에서 끈기있게 버티는 것이 이번 전투의 용사임을  명심하라." 지자에몬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봐, 지자에몬, 그대만이 아니다. 모두에게 잘 주지시키도록 하라. 서른  명과 한 사람과
의 싸움이니 성급한 전사는 개죽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쿠하치로는 지자에몬은 돌
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노우시몬 밖으로 나갔다.
  그날도 20간 밑의 격류에는 엷게 안개가 끼어 있었다. 강폭은 약 40간. 그 상류에서  무언
가 소리지르며 뗏목이 잇따라 떠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타케다 군은 뗏목으로 강에 다리를 
놓고 건너오는 작전을 쓰려는 모양이야." "음, 과연 병력의 수를  믿고 어마어마하게 공격해
오는군." 대관절 뗏목으로 다리를 놓을 때까지 어는 정도의  병력 손실을 예상하고 있는 것
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상류에서 넷씩 묶은 뗏목이 나타났다.
  "아니, 저기에 뭘 싣고 있지?" 눈을 크게  뜨고 안개 사이로 그것을 노려보던 쿠하치로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과연 그럴  듯한 생각이야!' 그것은 굵은 밧줄로 만든 거대한 
그물이었다. 그 그물을 수명에 가득히 펴서 뗏목의 유실을 방지하려는 모양이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아 그 그물은 계속 떠내려오는 뗏목을 주렁주렁 얽어놓고 있었다.
  쿠하치로는 그 작업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로 강을 건너오지 못
할 것으로 믿었던, 그 불가능을  처음부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보이려는  것이 코슈 군의 
작전인 모양이었다. "성주님! 건너오기 시작했습니다." 쿠하치로의 뒤에서 누군가 격한 목소
리로 말했다.
  
  적의 이 엄청난 작업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쿠하치로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 험준
한 천연의 장해를 극복하고 단숨에 노우시몬을 깨뜨리려 하는 코슈 군의 계산이 얼른 보기
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았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만일  적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아군은 서전부터 사기를 잃게  된다. 어느 누구도 이곳은 건널  수 없다고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계속 건너오고 있습니다. 성주님!" 다시 누군가가 말했다. 쿠하치로는  바위처럼 움
직이지 않았다. 그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앞에 있는 적이 노우시몬을 공격하
게 될 무렵이면 동쪽과 서쪽, 북쪽에  있는 적도 움직일 것이 분명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군은 그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공격해 나갈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렇게 되면 전투는 
처음부터 치열해져 고작 2, 3일이면 승부가 날 것이다.
  '서두르지 마라!' 쿠하치로는 자기  자신을 꾸짖었다. 더구나  자신의 그 안타까운 심정은 
절대로 밖에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하하하..." 적의 선봉이 이쪽 기슭에  도착했을 때 쿠하
치로는 비로소 큰 소리로 웃고  나서 말했다. "총포대를 이리 보내라."  "예. 그럼, 궁수는?" 
"필요치 않아. 이것으로 우리는 이겼어, 와하하하."
  기슭으로 올라온 적은 벼랑에 갈고리를 걸치기도 하고 그물을 던지기도 하며 암벽을 기어
오르려고 했다. 코슈 군은 이렇 행동에 능숙했다. 이윽고 두 줄의 구명삭이 벼랑 중턱의  턱
진 데까지 수직으로 기어오를 길을 말들었다.
  "성주님! 적은 벌써..." "기다려, 기다려." 쿠하치로는 가볍게 제지하고 뒤에 외서 대기하고 
있는 80명의 총포대로 돌아보았다. "잘 들어라. 저 줄 하나에 서른 명쯤 매달리거든 두 방을 
쏘도록 하라. 한 방은 곧바로 사람을 쏘고, 다른 한 방은 밧줄을 끊도록 하라. 겁을 먹고 빗
나가게 해서는 안 돼." 
  빗나갔을 경우에 대비하여 한 자루에 셋씩 화승을 점화하도록 했다. 코슈 군은 성안이 의
외로 조용한 것을 보고는 중턱의 움푹한 곳에 밧줄이 걸리자, 쿠하치로가 예상했던 대로 즉
시 그 밧줄에 매달려 잇따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자, 정확히 겨냥하도록 하라." 쿠하치로
는 별로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얼른 한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격류를 사이에 둔 계곡  양쪽에 선명하게 아침해가 비추
기 시작했다. "탕, 탕!" 총소리와 함께  두 개의 밧줄이 보기 좋게 끊어졌다.  더구나 총성은 
메아리에 메아리를 불러 마치 천둥 치는 것 같았다.
  두 개의 밧줄에 매달려 기어오르던 군사들은, 겨우 기슭에  도착한 자기편의 머리위로 곤
두박질을 치며 떨어져내려갔다. "으악!"  비명이 밑에서 터져나왔다.  쿠하치로는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나직한 소리로 말하고 손을 흔들었다.  "소중한 탄환이다. 더 이상 쪼
지 마라."

    아버지 도깨비, 아들 도깨비
  
  오가 야시로가 처형된 이후 오카자키 성에는 일종의 을씨년스러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기승을 부리던 츠키야마도 지금은 조용히 들어앉아 본성의 내전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
다. 노부야스의 출전으로 아야메와 토쿠히메도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그 날은 장마철에 접어든 하늘인데도 때때로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오고, 후텁지근한 
남풍이 불고 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아니라 온몸의  땀을 안에서부터 끈끈하게 밀어내
는 날씨였다.
  토쿠히메는 더위 때문에 입맛을 잃었다. 아침 밥상을 거의 수저도 대지 않은 채 물리고는 
키노를 상대로 여자로 태어난 신세타령을 하고 있었다.
  "야시로의 아내는 자기 목숨을 구할  생각은 않고, 같이 죽지  않으면 야시로가 쓸쓸해할 
것이라고 했다면서?"
  "예, 오가 님은 그렇다 해도,  부인은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고 지금도  애석하게 여기고 
있어요."
  "키노."
  "예."
  "여자란 누구나 다 그처럼 착한 거야. 그런데도 왜  츠키야마 마님만은 그렇게 잔인한 성
격으로 변하셨을까?"
  "글쎄요..."
  키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삼갔다.
  "나는 이제야 겨우 알게 된 것 같아."
  "어떤 것을 알게 되셨는데요?"
  "역시 하마마츠에 계신 아버님이 너무 냉정하게 대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과연 그럴까요?"
  "지금 이 성에서 가장 무서운 분이 어머님...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언젠가는 어
머님과 똑같은 여자가 될 것만 같아 여간 두렵지 않아."
  "어머. 그런 일은... 작은 마님은 착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셨어요."
  "아니, 그렇지 않아, 여자란 자기가 의지하는 남편과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누구나 잔인하
게 되는 거야. 나는 말이지, 어머님 같은 마님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야시로의 아내처럼 되고 
싶어."
  "어머, 농담이라도 어찌 그런 말씀을..."
  "농담이 아니야, 이번에 작은 성주님이  돌아오셨을 때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 나는 
기후로 돌아갈 생각이야. 어머님처럼 무시당하면서 사는 여자가 되기 전에."
  사실 토쿠히메는 심각하게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부야스의 마음이 아야메에게 기울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노부야스 
사이에 이야메를 들여보내 사이를 갈라놓은 츠키야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쿠히메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오가 야시로의 사건은 모두 이에야스에 대한 츠키야미의 
증오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벌을 받은 것은 야시로 뿐이었다. 아니, 야시로가 처형된 것
은 당연한 일이라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처자마저 같은 길을 걸었는데, 정작 장본인인 츠키
야마는 여전히 토쿠히메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쉽게 증오를 잊을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쿠히메는 불만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기후로 돌아가 여승이 되고 싶어. 코지쥬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아."
  이때 옆바에서 인기척이 나는 바람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아뢰옵니다."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주위의 공기를 강하게 뚫듯이 들려왔다.
  
  순간 토쿠히메는 몸이 굳어졌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책감에서가 아니었다. 이 성에 있는  것이 점점 적 가운데 있는 
듯한 무서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키노는 토쿠히메에게 눈짓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쿠다이라 마마사카, 이번에 성주님의 사자로 다시 기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
사를 드리려고."
  바깥의 말소리를 다 듣고 있었으나  토쿠히메는 먼저 들어오라고는 하지  않았다. 키노의 
전갈을 기다렸다가 비로소 말했다.
  "이리 모시도록..."
  하지만 그 얼굴에는 만나는 것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미마사키는 들어와 백발의 네모진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토쿠히메를 날카롭게 바라보면서 
들고 있던 부채로 가슴을 향해 마구 부채질을 했다.
  "드디어 적이 나가시노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성안에는  제 자식놈이 있으니까 전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다만 이 더위에 고생은 되시겠지만."
  "수고가 많으시겠어요."
  "코슈 군은 예상했던 대로  사방에 병력을 분산시켰습니다.  나가시노를 공격하는 동시에 
요시다, 오카자키 경계까지 진출했습니다. 니레키, 우시쿠보에 불을 지르고 가도에까지 출몰
하면서 성주님과 작은 성주님의 군사를 나가시노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작전인  듯합니
다."
  "하지만 쉽게 적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들은 소식에 따르면 작은 성주님
은 야마나카의 호조사로 진출하시어, 오카자키로의 통로를 차단하려 한  적의 토다 사몬 카
즈아키, 오츠 토자에몬 토키타카 등을 창을 휘둘러 무찌르셨다고 합니다."
  "아니, 작은 성주님이?"
  "예, 직접 진두에 서신 모습은 그야말로 아수라왕과 같았다는 것이 전령의 말입니다."
  "어머나... 대장의 몸으로 직접 진두에."
  토쿠히메는 이 이상 노부야스의 일로 마음을 앓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다.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미워하려고  하면서도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
질 쳤다. 
  "작은 마님."
  "예."
  "작은 성주님이 하신 일을 대장의 몸으로 경솔하다고 생각지는 마십시오."
  "어째서요? 나로서는 알 수가 없군요."
  "이 일전에 승리하지 못하면 도쿠가와 가문의 미래는 없다고 확신하고 계신  아수라의 모
습... 작은 성주님만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자식인 쿠하치로에게 그것을 깊이 가슴에 
새기라고 말했습니다. 카메히메 님도 그런 각오로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 전쟁은 예사  전쟁
이 아닙니다."
  토쿠히메는 어느 틈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미마사키는 만면에 웃음을 떠올렸다.
  "저는 지금부터 기후로 성주님을 뵈러 갑니다. 왜  가는지는 새삼스럽게 말씀드리지 않겠
습니다. 만약 제 말씀을 성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뜨지  않고 배를 갈라 
두 번 다시 미카와의 흙을 밝지 않겠습니다."
  토쿠히메는 다시 얼어붙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부모님께 전할 말씀이 있으시면 제게 말해주십시오."
  미마사카는 토쿠히메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다시 힘차게 부채질을 하며 미소짓고 있었다.
  
  토쿠히메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누르고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는 믿지 않겠다...'
  이미 이렇게 결심했지만, 노부야스가 진두에 서서 고함지르는 모습이 왠지 서글프게 눈에 
아른거렸다.
  '죽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이어, 죽어도 괜찮냐고 반문해오는 또 하나의 상념도 있었다.
  기후에 사자로 가게 되었다는 오쿠다이라 미마사카의 임무가 노부나가에게 원군을 청하는 
데 있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작은 마님, 부모님께 전할 말씀을 알고 싶습니다."
  도쿠히메가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한 미마사키는 다시 힘차게 부채질을 했다.
  "이번 전쟁은 도쿠가와 가문의 흥망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미카와에서 봇물
이 터지면 그 노도는 미노, 오와리까지도 위협하게 됩니다."
  토쿠히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마사카의 말을 긍정한 것이 아니라, 한 번만 더 노부야스에게 아내로서 진심을 쏟아 넣
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면, 말로 전하기보다는 기후에 편지를 쓰려고 하니 잠시 기다려주세요."
  "예, 진심을 담아 쓰도록 하십시오."
  토쿠히메는 자리를 옮겨 창가에 있는 탁자 앞에 앉았다.
  미마사카의 눈길을 등뒤에 느끼는 순간 다시 생각이 흐트러졌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붓을 
움직였다.
  자신은 그 후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  노부야스는 용감하게 출전하여 도쿠가와
와 오다 양가를 위해 진두에 서서 분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아버지의 원군을 기
다리고 있다는 말을 쓰는 대신, 기회가 닿아 오카자카에  오시면 이런저런 자세한 이야기를 
드리겠다고 썼다. 노부나가의 원병을 기정사실로 여긴다는 것을 문맥을  통해 깨닫게 할 작
정이었다.
  다 쓰고 나서 미마사카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는 무릎을 치면서 만면에 미소를 떠올렸다.
  "과연 작은 마님! 놀라운 배려이십니다."
  그는 편지를 품에 넣고 곧 거실에서 물러갔다.
  오쿠다이라 미마사키의 모습은 그 날 중으로 오카자키 성에서  사라졌다. 물론 정식 사자
로서 격식을 갖추고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도중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었
다.
  사흘째 되는 날 미마사카는 기후의 센죠다이에서 노부나가와 마주 앉았다.
  이날 노부나가는 의관을 정제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근엄한 모습으로 있었다.  조금 전에 
예수회 신자가 쿄토에서 찾아와  대면한 뒤여서, 그의 양쪽에는  중신들이 아직도 늘어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물리쳐주십시오."
  미마사카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고함지르듯이 말하고 주위를 노려보았다.
  "미마사카가 모두 물러가다라고 하는군."
  노부나가는 불쾌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괜찮아. 물러갈 필요 없다."
  칼을 들고 뒤에 대령하고 있는 모리 란마루를 돌아다보았다.
  모리 란마루는 이것을 만약의 경우에는 나를 경호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듯.
  "알겠습니다."
  늠름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그 역시 맹수를 연상케 하는 시선으로 미마사카를 대했다.
  
  "모두 물러갔네"
  노부나가는 썰렁한 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물러가게 하다니 대관절 무슨 일인가?"
  처음부터 꾸짖는 어조였다.
  "그 얼굴을 보니 마치 도깨비 같아. 그런 얼굴로 이 노부나가를 위협하려는 것인가?"
  미마사카는 빙긋이 웃었다.
  "성주님의 얼굴도 도깨비입니다!"
  "뭣이."
  "다 같은 도깨비라도 이 미마사카가 착하고 작은 도깨비인 데 비해 성주님은 큰 도깨비입
니다."
  "어서 사자로서의 용건이나 말하게!"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하려던 참입니다."
  미마사키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성주님도 전쟁에는 전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것이 용건이라 말인가, 미마사키?"
  "저의 주군은 적이 나가시노를 공격하기 전에 원군을  파견해주시리라 믿고 계십니다. 그
러므로 부자가 함께 요시다 성까지 마중 나가셨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적은 나가시노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부나가는 대답 대신 눈을 부릅뜨고 미마사카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저희는 성주님도 아시다시피 카메히메 대신 오카자키 성에 사로잡혀 있는 인질과도 같은 
몸입니다. 아들녀석에게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점이 있으면 당장 목이 달아날 형편입니다."
  "..."
  "그런 중요한 때 사자로 기후에 온 몸을 성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이 많구나!"
  노부나가가 일갈했다.
  "그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나가시노가 함락되면 적의 격류를 막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미마사카!"
  "예."
  "그대의 아들은 그렇게까지 쓸모가 없다는 말인가?"
  "듣기 거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 아들이 쓸모 없는  녀석이라면 지금 이 성에서 나가
시지 못하는 성주님은 무엇입니까?"
  "멍청이 같은 것, 격류는 단지 카이에서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야. 이세 부근도 위험해. 카
와치, 셋츠도 방심할 수 없어."
  "하하하..."
  미마사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저는 그런 설명이나 들으려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미카와와 오와리의 큰 둑이 터진 것과 
이세, 카와치, 셋츠의 작은 둑이  터진 것은 그 결과가 다릅니다.  미카와는 지금 이 인질인 
늙은이가 아니면 사자로 올 사람도 없을 정도로 큰 홍수, 그것을 모르실 성주님이 아닌데도 
이렇게 화만 내고 계십니까? 큰 도깨비가 작은 도깨비의 고집을 시험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으음, 말이 많은 사나이로군.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즉시 원군을 보내주십시오."
  "즉시는 안 돼. 이것이 내 대답일세."
  "그럼, 언제쯤이면 출발하실 수 있습니까?"
  "모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텐가?"
  "하하하..."
  미마사키는 또다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인질이기는 해도 도주할 우려가 없다고  보고 이 중요한 일에  저를 사자로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모르겠다고 하시면 저는 여기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겠
습니다."
  그 소리가 하도 우렁찼기 때문에 노부나가 뒤에 있던 란마루는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이번에는 노부나가가 비웃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게 다는 것은 그 쭈글쭈글한 배라도 가르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오쿠다이라 미마사카는 숨돌릴 겨를도 없이 말했다.
  "기후의 센죠다이는 이 사다요시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죽음의 장소입니다."
  노부나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득 눈길을 허공으로 보냈다.
  "미마사카."
  음성을 낮추었다.
  "전쟁에는 물론 전기도 있지만 작전도 중요해."
  "그러시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지연시키고 계십니까?"
  "이것 보게, 미마사카."
  "예."
  "이 노부나가가 원군을 보내고도 시일이 오래 걸리면, 적이 아닌 자까지도 적으로 돌아선
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그 점은 미마사카도 알고 있습니다."
  "그럴 테지. 그렇기 때문에 출동하기로 결정하면 단시일에 이길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는 
안 돼. 그 수단을 강구할 때까지도 기다릴 수 없다면 미카와 군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지."
  어느 틈에 노부나가는 격한 어조에서 부드러운 이야기 투로 바뀌고 있었다.
  미마사카는 그러한 노부나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강하게 나올수록 더
더욱 한 발짝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물러서면 노부나가의 분노는 더 격해지고,  물러서지
않는든 것을 알면 저절로 부드러워졌다.
  "이것 보게, 미마사카, 그대는 대관절 이 노부나가 어느 정도의 군사를 데리고  가면 좋겠
다고 생각하나? 우선 그것부터 말해보게."
  "황송합니다마는..."
  미마사카도 어조를 바꾸었다.
  "칠, 팔천 정도면."
  "칠, 팔천이라. 그리고 총포의 수는 어는 정도를 생각하나?"
  "오, 륙백은... 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오, 륙백...하하하..."
  이번에는 노부나가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가, 그대는 오, 륙백이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지."
  "왜 웃으십니까?"
  "나는 말일세, 최소한 삼천오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 야먀토의 츠
츠이, 호소카와 등에 사람을 보내 총포를 모아들이고 있는 중일세."
  "예? 그러면, 그 삼천 오백으로..."
  "그것으로 타케다 군의 기마무사를 저지할 수 있다면 전쟁에 이길 수 있어.  미마사키, 이 
노부나가를 미카와의 사돈의 위기에 처했는데 팔짱만 끼고 있을 사람으로는 보지 말게."
  오쿠다이라 미마사카는 저도 모르게 나직이 신음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본의 아니게 폭언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아, 알고 있네. 과연 이에야스  님은 그대를 사자로 잘  택했어. 이런 도깨비를 보냈으니 
말일세..."
  미마사카는 조아렸던 고개를 들고 이번에는 숙연히 가슴을 젖히고 울기 시작했다. 어째서 
눈물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나가시노 성에서 적의 총공격을 받고  있는 용감한 아들의 
얼굴이 환상처럼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노부나가는 미마사키의 눈물짓는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큰 소리로 꾸짖었다.
  "보기 흉하구나, 미마사카!"
  남이 노하면 웃고, 울면 노하는 것이 노부나가의 성격이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
면서도 미마사카는 왠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 이상으로 이번 전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츠츠이와 호소카와 두 가문에까지 총포대를 빌리려 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증명
하고 남음이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기쁜 눈물입니다."
  "못난 소리를 하는군. 기쁨의 눈물이란 적을 궤멸시켰을 때 흘려야 하는 것일세."
  "예,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이제는 납득됐겠지. 란마루, 모두  이리 모이라고 해라. 그리고  미마사카에게 술잔
을."
  "예."
  다시 중신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환한 얼굴로 자신도  독한 술을 마시고 미
마사카에게도 계속 술을 따라주었다. 그러나 전투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 이튿날은 5월 10일.
  미카와에서 다시 사자가 왔다. 이에야스의 전령인 오구리 다이로쿠 시게츠네였다.  오구리 
다이로쿠는 오쿠다이라 미마사카와는 정반대로 아주 정중한 마로 노부나가에게 원군을 청했
다.
  "처음에는 나가시노의 후방 정도는 우리  주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코슈 군의 병력이 너무 많아 우리 주군만으로는 후방도 안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주님
께 원군을 청해 요시다에서 양군이 합류하여 나가시노의 후방을 지키려 하오니 화급히 원군
을 보내주십시오..."
  노부나가는 그 말을 듣고 있는지 마는지 거의 알 수 없었다.
  이튿날부터 속속 군사들이 기후 성 안팎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울타리를 두를 나무 하나와 밧줄 한 묶음씩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미마사카와 다이로쿠는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전투는 가벼운 차림으로 각자가 소리높이 자기 이름을 대면서 1대 1로 맞붙여 
싸우는 격투가 기본이었다. 요컨대 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승리가  합쳐서 전군의 전세를 
결정짓고, 이것이 승패의 갈림길이 되었다. 이런 상식으로 볼 때 나무를 짊어지고 밧줄을 손
에든 부대의 진군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한 준비일까...?'
  이런 우려를 입밖에 낼 수 없었던 것은 총포대의 위용 때문이었다. 대관절 총포로 무장한 
이렇게 많은 아시가루들의 일본의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80명에서 100명으로 1대를 이룬 병사들이 속속 기후에 모여들어,  그 수는 노부나가가 장
담했던 대로 거의 3,000가까이나 되었다.
  그 후 노부나가의 원군이 수많은 목재와  총포대를 거느리고 기후를 출발한 것은 5월  13
일.
  그때 이미 고립에 빠진 나가시노 성은  문자 그대로 와신상담의 고전속에 빠져들어  있었
다. 아비 도깨비 미마사카가 노부나가의 마음을 알고 겨우 안도하게 된 11일 새벽, 아들  도
깨비 쿠하치로 사다마사는 다시 코슈 군이  노우시몬에 육박했다는 보고를 받고 천천히  성 
남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이마에 손을 얹고 아침 안개가 퍼진 그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던 쿠하치로는 가만히 신음
했다. 
  먼젓번 싸움에 혼비백산하여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또다시 뗏목을 타
고 나타나 벼랑에 도전해왔다. 더구나 이번에는 맨 앞에 대나무 묶음을 세우고 그것을 방패 
삼아 공격해오고 있었다.
  당시 총포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대나무를 다발로 엮어 방패로 삼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딱딱한 표피와 미끄러지기 쉬운 둥근 표면의 방해로 탄환이 빗나가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쏘지 마라."
  최초의 발포로 밧줄을 끊을 수 없다고 판단한 쿠하치로는 총포대를 물러가게 했다.
  "성문을 굳게 닫아라. 그리고 적군이 올라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라."
  "성문까지 접근해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근시가 말했으나 쿠하치로는 못들은 체하고 있었다.
  적은 총포대가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잇따라 밧줄에  매달렸다. 이미 위에 올라온 
일대는 각각 대나무 다발로 침입구를 둘러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공격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안 돼."
  쿠하치로는 서두르는 부하를 제지했다.
  "스물이 마흔 됐다. 마흔이 곧 여든이 될 것이다."
  점점 불어나는 적의 수를 세고 있었다.
  거의 여든이 160으로 되려는 무렵이었다.
  "칼부대 서른 명."
  활짝 성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골짜기 밑으로 무시무시한 함성이  메아리쳐나갔
다.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는 실제보다 네다섯 배나 더 크게 울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까지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상륙을 감행하고 있는 사람들  뒤에서 갑자기 활짝 열리는 바
람에 적들은 크게 당황했다.
  "도망치지 마라, 적을 맞아 싸워라..."
  당황하며 성문으로 돌아서는 코슈 군 속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고 돌진해가는 일대 뒤에서 
쿠하치로가 이번에는 창부대를 내보냈다.
  "다음 서른 명."
  이들 창부대는 좁은 성문 밖으로 북적거리는 코슈 군을 공격하는 대신 재빨리 대나무 묶
음을 빼앗아 불을 질러나갔다.
  반쯤 걷힌 아침 안개 속에서 대나무가 탁탁 튀며 타오르는 소리와 빨간 불길이 공격자의 
심리를 더욱 철저한 대비책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때다, 다음 총포."
  쿠하치로는 대나무 묶음을 빼앗긴 적에게 겨우 네다섯 발의 총포를 쏘게 했을 뿐이다. 총
포는 어디에도 맞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난번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공격자의 마
음을 흐트러지게 했다.
  네 줄로 얽힌 그물에서 한 사람 두 사람 강가로 도망치는 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 그것은 타성화했다. 어느 그물에서나 모두 우르르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족하다. 우리도 이제 철수하도록 하라."
  쿠하치로가 이렇게 말했을 때, 북쪽 수비를 담당했던 마츠다이라 야쿠로로부터 숨을 헐떡
거리며 전령이 달려왔다.
  "다이츠지야마의 적이 군량창고를 향해 밀려오고 있습니다."
  쿠하치로의 굵은 눈썹이 저도 모르게 꿈틀했다.
  
  나가시노 성의 군량창고는 성의 북쪽 후쿠베 성안에 있었는데, 코슈군이 있는 다이츠지야
마의 진지와 마주보고 있었다.
  이 산간의 작은 성에는 식량창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다이츠지야마에 진치고 
있는 타케다 사마노스케 노부토요는 이곳을 노리고 기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방면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강과 절벽 같은 장애가 없었다. 따라서 성안에 있는 500의 
군사 대부분이 다른 곳에 배치되어 있다면 군량 창고의 점령은 손쉬운 일... 이런 결론이 나
왔던 것 같다.
  코슈 군은 물론 이에 대해 거듭 전략회의를 열어 작전을 세운 것이 분명했다. 오쿠다이라 
쿠하치로는 남쪽의 적이 첫 번째 공격에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뗏목을 타고 나타났을 
때, 무언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깨닫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그러나 남과 북이 동시에 행동을 개시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관절 얼마나 되는 병력이 공격해온 것일까?"
  쿠하치로는 노우시몬의 수비를 오쿠다이라 지자에몬에게 맡기고 자신은 즉시 총포대를 데
리고 후쿠베 성으로 달려갔다.
  그 역시 마음의 동요는 컸다. 황토를 먹으며 싸우라고 입으로는 큰 소리를 치며 호탕하게 
웃었으나 군량이 떨어진 농성처럼 참담한 것은 없었다.
  '약간 방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오다 군은 물론 하마마츠의 주력부대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군량을 잃는다
면 단지 성병을 잃는 것뿐 아니라, 오쿠다이라 사다마사는  전투를 몰랐다고 후세에까지 조
롱을 받게 될 것이다.
  후쿠베 성을 지키고 있던 마츠다이라 야쿠로 카게타다와 그 아들 야사부로 코레마사는 적
이 성문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이를 맞아 싸우고자 칼을 빼어들고 있었다.
  "서두르면 안 돼. 적의 수는?"
  쿠하치로는 마음의 동요와는 반대로 웃으면서 우선 야쿠로에게 물었다.
  "이천!"
  대답하는 야쿠로.
  "아니, 많아야 고작 칠백일 것이다."
  쿠하치로는 다시 웃었다.
  "이곳 진지의 대장은 사마노스케 노부토요와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 그리고 오야마다 
빗츄노카미 마사유키 세 장수로 총병력은 이천정도에 지나지 않아. 오늘은 그중에서 대처하
여 간담을 서늘하게 해줘야만해. 우선 나의 총포소리를 듣고 나서 공격해나가도록."
  쿠하치로는 데리고 온 총포대에게 탄환을 장전케 하고 적이 쳐들어 오는 성문의 서쪽 담 
옆으로 갔다. 그리고 성문 앞으로 쇄도하는 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명했다.
  "담을 쓰러뜨려라."
  쉽게 넘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담이 성 안쪽에서 밧줄에 묶여 쓰러졌기 때문에 공격
하던 적은 그만 어리둥절했다. 이때 나가시노의 모든 화기가  성문을 향해 들이닥치는 적군
에게 갑자기 일제사격을 가해 그들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었다.
  "으악!"
  비명이 터져나오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야쿠로 부자의  군사 150여명이 성문에서 공격해
나갔다.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그 이튿날은 양군이 땅 속에서 만나는 전례가 없는 진기한 전투가 벌어졌다.
  
  오쿠다이라 쿠하치로의 과감하고도 치밀한 작전은 전쟁을 시작한지 1주일 만에 드디어 코
슈 군을 심한 분노와 초조 속에 몰아넣었다.
  전혀 빈틈이 없었다. 노우시몬의 전투도 그렇고, 첫 번째 군량창고의 방어도 역시 코슈 군
의 허를 찌를 것이었다.
  이제 갓 스물 살을 넘긴 애송이라 깔보며 병력 수를  믿고 감행한 공격이었다. 그런데 쿠
하치로는 그 공격을 자못 즐겁다는 듯이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가운데 본성 서쪽 땅속에서 묘한 소리가 난다고 알려온 것은 마츠다이라 사부로지
로 치카토시의 부하였다. 카이는 금광이 많아 광업이 발달한 고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보
고를 받은 쿠하치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래, 광산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왔다더냐?"
  성 서쪽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나이토 슈리노스케 마사토요와 오바타 카즈사노스케 노부
사다였다. 그곳에도 2,000정도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천이나 되는 군사가 모두 두더지 흉내는 내지 못할  것이다. 어린아이 눈속임 같은 작
전을 쓰고 있군."
  쿠하치로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소리가 나는 땅속을 겨냥하여 이쪽에서도 구멍을 파게  했
다.
  땅을 파는 단계에 이르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땅을 판 경험이 있으므로 어는 흙 속에 어
떤 돌이 있다는 것까지도 잘 아는 성병과, 원정해온 일꾼들과는 파나가는 속도에 큰 차이가 
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땅속의 코슈 군이 중신들의 집  지하에서부터 단죠 성 밑가지 왔
을 때 성안의 군사와 딱 마주쳤다.
  "앗, 땅속에도 있었구나!"
  광산 일꾼 하나가 깜짝 놀라 이렇게 외쳤을 때, 그 돌파구를 향해 대여섯 발의 총포가 발
사되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적의 의도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에는 서북쪽에 진을 쳤던 이치죠  우에몬다유 노부타치일대가, 이번에는 정문 
근처에 높은 망루를 쌓고 성안으로 빗발같이 화살을 쏘아대려 했다.
  이때 쿠하치로는 웃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렇게 될 경우를 예상하고 총포 50자루 분
량 정도의 화약으로 오늘날의 대포와 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침 하늘에 우뚝 솟은 
적의 큰 망루에서 아직 한 발의 화살도 쏘기 전이었다. 이쪽의 대포가 불을 뿜어 눈 깜짝할 
사이에 망루를 아침 안개 속으로 날려보리고 말았다.
  이 전투는 1만 5,000 대 500의  싸움이었다. 사방에서 시도한 작전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뒤 적은 드디어 총공세로 나왔다.
  서둘러 공격하면 군사를 잃을 뿐이라고 깨달은 코슈 군은 작전을 달리 했다.
  "군량을 바닥나게 하자."
  작전회의 결과 이렇게 결정한 코슈 군은 성밖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두르고, 강물에는 몇 
겹으로 그물을 쳤다. 그것에 방울을 달아놓는 등 엄중하게 경계를 펴고 다시 치열하게 군량 
탈취작전에 돌입했다.
  그 결과 성병이 군량창고가 있는 후쿠베 성을 버리고 본성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5월 14일.
  그날 밤 쿠하치로는 적의 손에 떨어져  불길을 내뿜으며 타오르는 군량창고를 한참  동안 
본성의 망루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타케다 군 역시 이 작은 성 하나를 공격하는 데 이처럼 많은 시간을 빼앗겨 여간  초조하
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군량창고가 있는 후쿠베 성까지 적에게 빼앗긴 나가시노 군의 타격은 엄청나게 컸
다. 본성으로 옮겨놓은 군량은 나흘분도 되지 못했다.
  오쿠다이라 쿠하치로는 군량창고가 타서 무너지는  것을 보고는 망루에서 내려와  본성에 
모여 있는 장병 앞에 걸상을 갖다놓게 했다.
  "불을 밝혀라."
  근시에게 명했다.
  썰렁하기만 한 넓은 방에 겨우 두서너 자루의 촛대만이 세워진 가운데 모두 굳게 입을 다
물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차라리 깨끗하게 전사를 하자고 말할 사람도 나올 것 같았다.
  요즘에는 완전히 쿠하치로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언제나 농담을 걸곤 하던 카메히메도  머
리띠를 두르고 칼을 든 채 남편의 입에서  무슨 물이 나올지 눈을 빛내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등불이 늘어나 모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지자 쿠하치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만 식량창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어조가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에 마츠다이라 치카토시가 웃었다.
  "후훗..."
  "앞으로 사흘 남짓... 흙을 먹을 각오를 하면 닷새쯤일까?"
  "닷새까지도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코레마사가 말해다.
  "아직도 오다 성주님은 원군 보내기를 망설이는 것이 아닌지."
  쿠하치로는 그 말을 못 들은 체했다.
  "그런데, 지자에몬은 어디 있나?"
  오쿠다이라 지자에몬 카츠요시를 눈으로 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아, 거기 있었군. 그대가 성을 빠져나가 성주님께 가야겠어."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원군을 보내달라는 말은 할 것 없어. 앞으로 사, 오 일 정도 남았다는 말만 전하게"
  "거절하겠습니다."
  "뭣이, 그대는 지금 뭐라고 했나? 날개가 없으면 성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
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동북쪽 뒷문으로 나가 강물에 뛰어드는 거야. 수면에는 모두 
그물이 쳐져 있고 방울이 달렸기 때문에 건널 수 없지만 잠수를 하면 돼. 그대는 헤엄에 능
숙하지 않은가?"
  "거절하겠습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거절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허어, 헤엄치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했나? 설마 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 테지."
  지자에몬은 어린아이처럼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적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미 성의 운명은 닷
새로 결정되어 성주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전사했을 때, 이  지자에몬 카츠요시만이 성밖에 
있었다면 세상사람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저것 봐라, 텐쇼 삼년(1575)의  나가시노 전투 
때 함락을 눈앞에 두고 목숨이  아까워 성에서 도망친 비겁한 자가  저기 있다'고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순간 좌중에는 무거운 긴장이 감돌았다.  쿠하치로가 이 지자에몬의 거절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얼른 보기에는 매우 용감한 말 같으나, 한편으로는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소가 
다분히 포함된 말이었다.
  "그래?"
  쿠하치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좌중을 돌러보았다.
  
  "토리이 스네에몬은 없느냐?"
  쿠하치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얼른 다른 이름을 불렀다.
  장지문 옆의 어둠 속에서 굵은 소리가 들리고  작은 키에 살이 찐 사나이가 촛대 옆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마는."
  "스네이몬, 그대가 가게."
  "예,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와아!"
  이번에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나이는 어두운 구석에는  졸고 있었던 것이 분명
했다.
  "어디로...라니, 방금 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느냐?"
  "예, 듣기도 한 것 같고 듣지 못한..."
  "좋아, 이런 마당에서도 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가 안성맞춤이야. 그대는 오늘  밤 안
으로 동북쪽 뒷문으로 나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스네에몬, 강에는 그물이 쳐져 있으니 물 속으로 잠수해서 걸어가야 한다."
  "예, 가겠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멍청이 같은 것, 강바닥으로 걸어가면 건너편 기슭에 도착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땅 위를 
걷는거야."
  그때야 비로소 스네에몬은 고개를 갸웃했다.
  "포위를 뚫고 나가 원병을 청하라는 말씀이시군요."
  "허어!"
  쿠하치로는 짐짓 눈을 크게 떴다.
  "그대도 알고는 있었군. 하지만 원군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좋아. 성주님은 요시다나 하
마마츠, 아니면 오카자키에 틀림없이 계실 것이다. 성주님을 뵙고 앞으로 사, 오 일...알겠지, 
앞으로 사, 오 일이라고 이 쿠하치로가 말하더라고 전하여라."
  "싫습니다."
  "뭣이, 조금 전에는 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 스네에몬, 성의 함락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면서 어찌..."
  "닥쳐!"
  쿠하치로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대는 이 쿠하치로를 조롱하느냐?"
  "당치도 않으신 말씀..."
  "입 다물라고 하지 않았느냐. 식량이 사, 오  일분밖에 없다고는 했지만, 성이 함락된다고
는 하지 않았어. 이 오쿠다이라 쿠하치로는  절대로 성을 내주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성주님이 이제 됐다는 명이 내릴 때까지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스네에몬의 네모진 얼굴이 크게 눈을 부릅뜬 채 쿠하치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네에몬뿐만이 아니다. 함락당한다느니 어쩌니 하며 이 쿠하치로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지자에몬이 얼른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나왔다.
  "알겠습니다. 성주님! 이 지자에몬이 가겠습니다."
  "안 돼!"
  스네에몬이 부르짖었다.
  "이 스네에몬이 가겠습니다."
  쿠하치로는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윽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스네에몬, 즉시 준비하라. 어떤 일이 있어도 도중에 쓰러지면 안 된다. 그 대신 성주님을 
뵙거든 절대로 서둘러 돌아오지 말도록. 승전을 축하하게 될 날까지 그 성에서 쉬도록 하라. 
거듭 말한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죽으면 이 쿠하치로는 저승에 가서도 그대를 상대하
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스네에몬이 조용히 대답했다.
스네에몬은 무사히 경계망을 돌파하면 간보잔에 봉화를 올리기로 하고 그길로 본성을  나섰
다.
  하늘에는 벌써 달이 떠 있었다. 그것도 열나흗날 달이어서  지상을 걸어가는 자신의 그림
자가 어디서든 보일 것같이 밝았다.
  "차라리 캄캄한 밤이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노우시 성을 빠져나간 스네에몬은 나무그늘을 따라 오노가와 기슭에 
섰다. 바로 아래에서 흐르는 급류는 온통 은빛으로 빛나고  건너편 기슭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감시병의 모닥불이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감시병이 있는 위치까지 대략 4, 50간, 모닥불 주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까지 선명
하게 보이고, 그 등뒤에는 왼쪽에서부터 우바가후토코로, 토비노스야마,  나카야마, 히사마야
마 등 적의 진지가 그가 가야 할 길을 무섭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은 낮의 전투에서 후쿠베 성을 함락시켰기 때문에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어느 진지
에나 무수한 깃발이 달빛을 희게 반사하며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인마도 아직 잠들지 않은 
것 같았다.
  "이거 큰일인걸."
  스네에몬은 잠시 동안 벼랑에 서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쿠하치로 사다마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말라고 했다. 스네
에몬은 그 말에 감추어진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자기가 만일에 발견되어 살해당했
을 때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두려워졌다.
  "나무아미타불, 하치만의 신이시여..."
  빌다 말고 낯을 찌푸렸다.
  "하치만 보살에게는 기원하지 않겠습니다. 물귀신이여, 악귀여, 사악한 신이여,  이 스네에
몬이 강을 건너게 해다오. 임무를 완성하거든 너희들이 이 몸을 갈가리 찢어 잡아먹어도 좋
다."
  스네에몬은 허리춤에서 붓통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수건을 펴 와카 한 수를 썼다.
  우리 주군의 목숨이 걸린 구슬 끈이어늘 내 어찌 마다 할 것인가, 장수의 길 - 스네에몬
  달빛 속에서 쓰고 난 다음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쿠하치로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에 죽으면 저승에 가도 상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기 때문에 이쪽에서도 살
아서 돌아올 생각을 하고 떠난 것은 아니라는 빈정거림이 거기 담겨 있었다.
  손을 뻗어 그 수건을 소나무 가지에 묶어놓고 나서  어두운 나무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건너편의 적이 잠들거나 달이 구름 속으로 숨어들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밝음과 경계 속
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물소리가 요란하기 때문에 기회를 보아 강물에 뛰어들어도 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잠시 동안 가만히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토리이 스네에몬은 어느 틈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다. 낮의 피로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의 이 대담성은 오쿠다이라 가신의 기풍이기도  하고 
그의 뱃심 좋은 성격이기도 했다.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졸고 있었을까?
  눈을 뜨고 보니 이미 건너편 기슭에는 모닥불이 꺼지고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었다. 스네
에몬은 벌떡 일어나 급히 두 자루의 칼을 옷으로 싸서 그것을 일단 어깨에 매어 보았다. 그
러나 생각을 바꾸어 칼을 모두 그 자리에 버리고 옷과 단검만을 몸에 지녔다.
  "성주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본성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절을 한 스네에몬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결전전야
  
  토리이 스네에몬이 나가시노 성에서 몰래 빠져나간 바로 그  14일 밤, 이에야스는 오카자
키 성에 들어가 주연을 베풀고  있었다. 물론 그 주연은 기후에서  올 노부나가를 기다리며 
그 진로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주연을 베풀 때 과연 노부나가가 기후를 출발했
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가 반드시 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중신들의 의견은 서로  달랐
다.
  "오기는 하겠지만, 지난번 타카텐진 성 때와 같이 자기 병사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올 리가 없어."
  분명하게 비관론을 펴는 자도 있었다.
  "오다의 군사는 숫자상으로는 타케다 군을  압도하고 있으나 신병이 많기 때문에  실력은 
뒤집니다. 전쟁터가 나가시노라는 산악지대라서 더더욱 오다 군에는 불리합니다. 이것을  모
를 노부나가 공이 아니므로 아마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나왔을 때는 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강력하게 단독으로라도 
나가시노를 구원하자고 주장하던 사람들까지도 침울하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사기와 유행처럼 변덕스러운 것도 없었다. 누가 더  강하거나 어딘가에서 무엇이 유행하거
나 하면 별로 이렇다 할 의미가 없는데도 신이 나서 들뜨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 이 역
시 의미가 없는데도 맥없이 사라져버리고는 했다.
  이에야스가 전투 도중에 주연을 베푸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세가 비관적이
라고 생각되어 오히려 격려하는 말을 꺼냈다.
  "염려할 것 없다. 반드시 온다. 그보다도 오늘밤은 술이나 마시도록 하자."
  "반드시 온다고 성주님은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술자리만으로는 사기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혼다 헤이하치로가 끼여들었다. 이
에야스는 자못 우습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지 않는다면 오다  공은 믿을 사람이 못 돼.  믿을 사람이 못 된다는 
말은 앞으로 두려워할 사람이 못 된다는 의미와 통하는 거야."
  "두려워할 사람이 못 되다니요?"
  "나가시노를 혼자 구하게 해놓고 오와리와  미노를 차지할 수는 없어.  오다 님은 그처럼 
사리를 모르는 분이 아니야.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어서 잔이나 들게."
  자칫 비관론에 빠질지도 모르는 사카이 타다츠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명했다.
  "타다츠구, 그대의 장기인 새우잡이 춤이라도 한번 추지 그래?"
  "성주님!"
  "왜 그러나?"
  "성주님은 만일에 오다 군이 오지 않을 때는 도쿠가와 군만으로 나가시노를  구하실 생각
입니까?"
  "결정된 건 다시 묻는 법이 아니야. 타카텐진 성의 경우는 오가사와라가 틀림없이 적에게 
항복할 것을 알고 움직이지 않았던 것일세. 오쿠다이라 쿠하치로쯤  되는 용사를 내가 어찌 
버릴 수 있겠나?"
  "나가시노에 가서 승리할 확신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이다. 군사의 강약은 대장에 따라 결정되는 것. 신겐의 군사가 강했다고 해서 카츠요
리의 군사까지 강하다고는 생각지 말게. 우선 춤이나 추도록, 타다츠구."
  이에야스가 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타다츠구는 성큼 일어났다.
  "추겠습니다! 이제 납득이 되었으므로 마음껏 추겠습니다."
  
  타다츠구의 새우잡이 춤은 확실히 진기했다. 이마를 질끈 동여매고  성기게 짠 조리를 손
에 들고는 허리를 흔들면서 팔딱팔딱 뛰는 새우를 쫓거나 새우를 잡아 어람에 넣은 시늉은, 
요시다의 성주라는 지위와 오만해 보이는 그의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묘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오늘은 그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져 모두가 배를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와아!"
  "정말 우습군! 저 진지한 얼굴을 좀 보게."
  "이것으로 이겼어. 자, 그것을 잡아, 그것을 잡아."
  "너무 우스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저 허리놀림을 좀 보라니까."
  이에야스는 모두의 웃는 얼굴과 타다츠구의 기묘한 몸짓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자신이  스
스로의 마음을 들여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의 웃음소리 속에도, 타다츠구의 춤 속에도 평소와는 다른 것이 있다..."
  인간의 마음에 응어리가 있을 때는 웃거나  춤을 추어도 그것이 몹시 긴장되게  마련이었
다.
  '이것은 조심해야 된다.'
  그래도 침울해지려던 모두의 기분이 약간은 풀린 것 같았다.
  좌중이 한창 들떠 있을 무렵 이에야스는 슬며시 자리를  떴다. 장지문의 창에 열나흗날의 
달이 후피향나무 가지를 그대로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이 참 아름답군. 잠시 보고 와야겠어."
  무장을 한 채 툇마루로 나가 가죽버선 끝에 나막신을 신었다.
  정원에 내려서자 멀리서 우는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스고가와가 흐르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가만히 정원수 사이를 지나 소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따라오던 이이만치요는 생각에 잠긴 
이에야스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약간 떨어져서 걸어오는 모양이었다.
  이에야스는 걸음을 멈추고 달을 쳐다보았다.
 푸르스레한 달 표면의 희미한 반점 주위에서 나가시노 성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
이었다.
  "쿠하치로..."
  이에야스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노부나가 님은 반드시 오신다. 잠시만 더 기다려다오. 알겠지, 잠시만 더 기다리면 된다."
  공연히 가슴이 뜨거워지고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인생이란 이 얼마나 황망하고 
또 살벌한 시간의 연속인가.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이것이 평화와 자리를 바꾸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자기 생애에는 그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 세대에라도 좋다. 또 그 다음 세대에라도 좋다. 반드시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
한 초석을 차근차근 끈기 있게 놓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계획이 지금 나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
  이에야스는 자문하다가 무심코 내전 쪽을 돌아보았다.
  자기와 같이 이 성에 들어와 있는 노부야스가 아내인 토쿠히메한테 들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는 순간 이에야스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떠올렸다. 토쿠히메와 노부야스의 그
림자가 장지문에 비치고, 그것이 점점 다가가 포옹하는 것이 보였다.
  "성주님! 성주님!"
  새로 근시로 발탁된 오쿠보 헤이스케 타다타카(히코자에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헤이스케, 성주님은 여기 계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치요가 칼을 높이 쳐들고 대답했다.
  
  오쿠보 헤이스케는 만치요의 목소리를 듣고 소나무 그림자를 밝으며 토끼처럼 뛰어왔다.
  "성주님, 오구리 다이로쿠 시게츠네 님이 기후에서 지금 막 돌아오셨습니다."
  "뭐, 다이로쿠가 돌아왔어? 알겠다, 곧 갈 것이니 내 거실에서 기다리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헤이스케는 다시 토끼처럼 뛰어 사라져갔다. 이에야스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다시 자신에게 물었다.
  '원군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좋아!"
  이에야스는 빨리 걷기 시작했던 걸음을 평소의 걸음대로 천천히 되돌리고 거실의 정원 밑
으로 돌아갔다.
  만치요는 여전히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나막신을 가지런히 댓돌 뒤에 벗어놓았다.
  "다이로쿠, 어떻게 되었나? 수고가 많았네."
  이미 방에 들어와 단정히 앉아 있는 사자에게 말을 걸었다.
  "성주님! 내일 오다 님께서 아드님과 함께 이 오카자키에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은 했으나, 순간 이에야스는 가슴이 메었다.
  "그럼, 병력은 어느 정도라더냐?"
  "이만입니다."
  "음, 많은 수고를 끼치게 됐군."
  "예, 이것으로... 이것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다이로쿠도 참을 수 없었는지 무릎을 움켜쥐고 고개를 수그렸다.
  이미 주연이 끝난 듯 넓은 방은 이전의 고요로 돌아와 있었다.
  "다이로쿠, 그대의 기분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
야."
  "예... 예."
  "이제부터가 시작일세. 그런데, 오다 님은 여전히 건강하시더냐?"
  "예...그곳을 떠나시기에 앞서 노부나가 님이 읊으신 렌가가 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허어, 렌가를 읊고 출발하셨다는 말이지. 어디 보세."
  이에야스는 헤이스케가 건네는 종이쪽지를 펴서 소리내어 읽었다.
  
  소나무는 드높고(마츠다이라, 도쿠가와라는 뜻)
  타케다에게는 목이 없는 아침이로다          노부나가
  
  '타케다에게는 목이 없는'이란 글  밑에 괄호를 하고  (타게다의  목이 잘리는)이라고 씌
어 
있었다. 이에야스는 웃으면서 다음을 읽었다.
  
  시로는 보이지 않는 병꽃나무에 가리고       쿠안
  지새는 달도 산너머로 사라졌네              쇼하
  오다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이로다    노부나가
  
  "음, 소나무는 드높고 타게다는 목이 잘리는 아침이라. 시로는 보이지 않는 병꽃나무에 가
려진다."
  "예. 지새는 달도 산너머(코슈)로 사라지고 오다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그 기개
는 이미 적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비로소 크게 입을 벌리고 웃었다.
  "하하하, 과연 오다 님다워. 먼저 크게 허풍을 떨고 나서 그것을 자신의 채찍으로 삼고 있
어. 나는 그렇게는 하지 못해. 놀라운 허풍쟁이야, 하하하하."
  
  이에야스는 웃다 말고 문득 노부나가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
었다.
 결단을 내릴 때까지는 냉정하게 계산을  거듭하지만 일단 행동에 옮기면 철저하게  상대를 
때려부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잔인무도한 일면을 지닌 노부나가였다. 히에이잔을 불태운 것
도 그런 성격의 일면이었으며, 지난해 7월 이세의 나가시마에서 잇코 종도들을 공격했을 때
도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잔인성을 드러냈다.
  "자비와 인내를 내세우면서도 장난질을 하듯 총포를 쏘아대고 칼부림을 일삼다니. 이번에
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철저히 응징하여 한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그의 말대로 나가시마 신전이 불타 도망칠  곳을 잃은 혼간 사의 군사  2만을, 절에 불을 
질러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불태워 죽였다. 그런 노부나가가  공공연하게 '타케다의 목이 

는 아침'이라 노래하며 승리를 장담하고 출전했다.
  이 때문에 전쟁의 성격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이에야스는 확실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까지는 도쿠가와의 타케다의  전쟁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오다와 다케다의  전쟁이  

다..."
  승리를 거둔 후 노부나가가 도쿠가와 가문 내부의 일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신중하게 대비
하여 노부나가를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이로쿠, 거기서 오쿠다이라 사다요시를 만났느냐?"
  잠시 후 이에야스가 불쑥 물었다.
  "예, 만났습니다. 이번 전쟁은 어디까지나 도쿠가와 가문의 흥망이 걸린  전쟁이므로 원군
의 출발을 확인할 때까지 기후를 떠나지 않겠다고 노부나가 공에게 말씀 드렸다고 합니다."
  "그 노인이라면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일세. 음, 어디까지나  도쿠가와 가문의 
흥망이 걸린 전쟁이라고 다짐을 두었다는 말이로군..."
  "예, 오쿠다이라 님도 저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알겠네, 수고가 많았어. 그만 물러가서 쉬도록."
  그 이튿날인 15일, 노부나가 부자는 오카자키 성에 들어와 이에야스 부자와 대면했다.  물
론 쌍방의 중신과 노신들이 동석한  대면이었기 때문에 쌍방은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었다. 
노부나가는 계속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고, 이에야스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끝까
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쌍방의 참모들이 작전회의를 가진 것은 그날 밤이었으나, 그것도  결국 서로 낯을 익히는 
주연으로 끝나고 말았다. 도쿠가와 쪽에서는 즉시 양군이 장수들을 앞세우고 오카자키를 출
발할 줄 알고 있었는데, 노부나가는 그 이튿날에도 오카자키에 머무르겠다고 하면서 움직이
지 않았다. 가신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야스도 굳이 노부나가를 독촉하려 하
지는 않았다.
  "천천히 쉬시고 나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러한 이에야스 앞에 나가시노 성을 탈출한 토리이 스네에몬이 거지 같은 차림으로 나타
난 것은 16일 새벽이었다.
  "성주님, 나가시노에서 밀사가 왔습니다."
  이에야스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절대로 나가시마에서 기쁜 소식이 올 리 없었다.
  '원군을 청하러 왔거나, 아니면 나가시마 군이 전멸했거나...'
  "정원 앞으로 데려와라."
  이에야스는 이렇게 명하고 마루에 걸상을 준비하게 했다.
  
  "으음."
  이에야스는 아침 안개를 뚫고 스네에몬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신음했
다. 짚으로 상투를 묶고 무릎까지밖에 내려오지 않는 농부의 잠방이를 입고 있었다. 굵은 정
강이가 드러나 있고 발에는 노끈으로 동인 짚신을 신고 있었다.
  "그대가 쿠하치로의 가신인가?"
  어느 틈에 이에야스의 뒤에 사카이 타다츠구, 오구리 다이로쿠, 혼다 헤이하치로 등이  배
석해 있었다.
  "예, 토리이 스네에몬이라고 합니다."
  스네에몬은 이렇게 대답하고 핏발 선 눈으로  이에야스를 쳐다보았으나, 이에야스는 일부
러 아무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한다. 이 자리에 오쿠다이라 사다요시를 부르겠다. 만치요, 사다요시
를 깨워 이리 데려오너라."
  오쿠다이라 미마사카(사다요시)는 오다 군과  같이 성으로 돌아가 셋째  성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가서 자는 사람을  깨워 데려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스네에몬은  초조감을 
감추기 못하고 몸을 비틀기도 하고 입술에 침을 바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조용히 
스네에몬에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 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미마사카 헐레벌떡 달려왔다.
  "오, 스네에몬. 수고가 많았다. 성주님! 이 사람은 제 자식의 가신임이 틀림없습니다."
  미마사키를 본 스네에몬의 부릅뜬 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좋아, 내가 직접 듣겠다. 말해보아라."
  "허락이 내리셨네, 스네에몬."
  "예, 말씀 드리겠습니다."
  스네에몬은 거친 숨을 억제하면서 말했다.
  "후쿠베 성이 떨어져 본성의 군량은 앞으로 사흘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말만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전할 말은 그것뿐이냐?"
  "예. 이 말만 전하면 나머지는 성주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쓸데없는 말씀을 드리면 도리어 
판단하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엄한 분부를 받았습니다."
  "으음."
  이에야스는 다시 한 번 신음하고 마루에 대령한 미마사카를 흘끗 돌아보았다. 미마사카는 
울지 않으려고 밝아오기 시작하는 하늘을 잔뜩 노려보며 무릎을 움켜잡고 있었다.
  "무척 마음에 드는 보고로구나. 음, 쿠하치로는 그  말밖에 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그렇다
면 다시 묻겠다. 그대는 어떻게 적의 포위망을 뚫고 왔느냐?"
  "오노가와의 강바닥을 걸어왔습니다."
  "물귀신 같은 녀석이로군. 그럼, 탈출했다는 것을 어떻게 성에 알렸느냐?"
  "간보잔에서 봉화로 알렸습니다."
  "쿠하치로도 야쿠로 부자도, 또 사부로지로도 모두 무사하냐?"
  "예, 흙을 먹고 무릎을 갉아먹는  한이 있어도 성주님의 지시가  계실때까지는 성을 적의 
손에 넘기지 않겠다며 의기가 충천하십니다."
  이에야스는 다시 미마사카를 흘끗 돌아보고 옆의 가신을 보았다.
  "잘 알겠다. 배가 고플 테니 식사부터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좀 쉬도록 해다."
  "황송합니다마는, 그럴 수 없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이냐?"
  "성안에는 아마도 훗날에 대비하기 위해 맹물과 다름없는 이름뿐인 죽을 마시고  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대로 성에 돌아가 고락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그렇구나, 과연..."
  이렇게 말하는 이에야스도 어느 틈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곧바로 나가시노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냐?"
  이에야스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고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나도 곧 달려갈 것이다. 그때 같이 가면 안 되겠느냐?"
  "고마우신 말씀... 성주님의 그 말씀을 들으니 더욱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스네에몬은 은근히 원군의 출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도 곧 
가겠다고 말한 이에야스의 마음이 참을 수 없이 고마웠다.
  "알겠다. 쿠하치로는 정말 훌륭한  가신을 데리고 있구나. 좋아,  그러면 이대로 노부나가 
공을 뵙도록 해주겠다. 발만 씻고 따라오너라. 헤이스케, 스네에몬에게 물을 갖다주어라."
  스네에몬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쿠하치로가 절대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다하도록 한 의미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이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신다...'
  노부나가 앞에 데려가 스네에몬이 직접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과연 훌륭하신...'
  스네에몬은 일단 부엌 입구로 갔다가 헤이스케의 안내로 다시 이에야스의 거실로  돌아왔
다.
  이에야스는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 나를 따라오너라."
  본성의 대서원을 노부나가의 침소로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야스는 그대로 스네에몬
을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그제서야 겨우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고 동쪽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
했다.
  노부나가에게는 이미 오구리 다이로쿠가 먼저  가서 알려놓았기 때문에 그는  갑옷받침을 
걸친 채 사방침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가 아들 도깨비의 가신이란 말이지. 이야기는 들었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와 인사를 나누기 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스네에몬의 절도 기다리
지 않고 물었다.
  "장하다! 강바닥을 걸어서 왔다면서?... 하하하, 이번에는 하늘을 날아 돌아가러라."
  "예."
  "이름이 토리이 스네에몬이라지?"
  "그렇습니다만..."
  "돌아갈 때 다시 그 간보잔인가  하는 산에서 봉화를 울려라.  그러면 성안에서는 용기를 
얻을 것이다. 알겠느냐, 앞으로 하루나 이틀 후에는 성안에서는 용기를 얻을 것이다. 알겠느
냐, 앞으로 하루나 이틀 후에는 도쿠가와와 오다의 연합군  사만 이상이 사방에서 공격해들
어갈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면 곧 적은 궤멸될 것이므로, 그때의 기쁨을 생각하며  기다리라
고 일러라."
  스네에몬은 그만 머리가 몽롱하여 잠시 동안 주위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이에야스와는 달리 다그치는 듯한 말이었으나,  듣고 있으려니 궤멸되어 달아나는 
적의 모습이 환상인 양 보이는 것 같은 불가사의한 매력에 휩싸였다.
  "훌륭해! 도깨비의 아들에게는 역시 도깨비 같은 용감한 가신이 있었군. 성에 돌아갈 때는 
부디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살아 돌아가 곧 원군이  도착할 것이라고 일러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
  4만 이상이란 것은 물론 크게 과장된 말이었으나, 그것을  노부나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들
으니 조금도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오다 군은 2만, 도쿠가와 군은  8천이 
고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분부의 말씀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깊이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
습니다."
  "그래 가거라!"
  노부나가는 스네에몬에게 꾸짖듯이 말하고 나서 이에야스를 돌아보면서 껄껄 웃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겠군요, 하마마츠 님."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사라져가는 스네에몬의 남루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
었다.
  
  이튿날인 17일-
  이오지야마에 있는 타케다 카츠요리의 본진을 나온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바이세츠)는 시
무룩한 표정으로 자기 막사를 향해 말을 몰았다.
  카츠요리는 여전히 이 나가시노 성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 이 작은 성 하나를 함락한다고 
해도 전략상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는 여기에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즉시 오카자
키나 하마마츠를 공격하는 편이 좋다고 권했으나, 오가 야시로와의  밀약이 차질을 빚은 결
과로 카츠요리는 더욱 완고해져 있었다.
  "이 작은 성 하나도 손에 넣지 못하고 어찌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령 여기에 도쿠가와와 오다의 두 주력부대가  나타나 결전을 벌인다고 해도 불리할  것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반대할수록 더 고집스러워진다...'
  "이것으로 타케다 가문도 끝장이군요."
  가신 중에는 가만히 작은 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어쨌든 가보인 깃발까
지 들고 나왔기 때문에 아무도 표면적으로는 강력하게 간언할 수 없었다.
  겐바노카미는 성의 남쪽, 타케다 쇼요켄의 오른쪽에 있는 자기 진지 앞에서 말을 내렸다.
  "조심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간보잔에 수상한 봉화가 올랐다."
  뒤따라온 가신 카와하라 야로쿠로에게 말고삐를 건넸다. 바로 이때였다. 말고삐를  받아든 
야로쿠로가 고개를 갸웃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봐, 너는 어느 편의 농부냐?"
  탄환을 막기 위한 대나무 묶음을 메고 가는 5, 60명의 일꾼 중에서 한 사나이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물었다. 그 소리에 겐바노카미도 막사에 들어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예... 예. 저는 아루미 마을에 사는 농부로 모헤에라고 합니다."
  이때 야로쿠로는 벌써 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수상한 자다, 체포하라!"
  모헤에라고 말한 사나이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당기고 있었다.
  옆에 있던 대여섯 명의 무사가 그 말에 따라 농부에게  달려들었다. 농부는 그중 두 사람
을 보기 좋게 좌우로 뿌리치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 잽싸게 아나야마 겐바노카미에게 대들었
다. 
  겐바노카미는 채찍을 비스듬히 휘두르며 왼쪽으로 피했다.  이때 뒤에서 야로쿠로가 농부
의 발 밑으로 말고삐를 던졌다. 이에 다리가 걸린 농부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려졌다. 그 주위를 겐바노카미를 태운 말이 성난 모습으로 빙빙 돌았다. 무사들이 그 틈을 
타서 쓰러져 있는 농부에게 달려들어 손을 뒤로 묶은 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멍청한 놈,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우리편  일꾼들에게는 모두 똑같은 감청색 각반을 두
르도록 했다. 그것도 모르고 너는 연황색 각반을 두르고 있었어."
  야로쿠로가 어깨를 들먹거리며 말했다. 농부는 그때야 비로소 강하게 혀를 찼다.
  "그걸 미처 몰랐다."
  "너는 무사로구나?"
  "그렇다."
  땅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그 사나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오쿠다이라 쿠하치로의 가신 토리이 스네이몬이다. 나는..."
  
  "뭣이, 오쿠다이라의 가신..."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는 성큼성큼 스네에몬 앞으로 걸어갔다.
  "너는 일꾼들 틈에 끼여 성으로 들어가려고 했지?"
  "들어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었다."
  스네에몬은 이마의 땀을 햇빛에 빛내며 점점 더 눈을 날카롭게 떴다.
  "앞으로 하루 이틀이면 떨어질 성인데 무엇 때문에 돌아가려 했단 말이냐?"
  "앞으로 하루 이틀..."
  스네에몬은 빙긋이 미소를 얼굴에 새겼다.
  "이 성이 떨어질 리 없어. 하루 이틀 안으로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군 사만이 도와주러 
올 테니까."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물었다.
  "그럼, 오늘 아침 간보잔에 봉화를 올린 것이 너였다는 말이냐?"
  "오늘 아침만이 아니다. 십오일 아침에도 올렸다."
  "너는 원군을 청하러 성을 빠져나갔었구나."
  "하하하..."
  스네에몬은 커다랗게 소리내어 웃었다.
  "원군을 청하러 갔던 게 아니야. 원군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것을 확인하러 갔었다. 그리고 
오다의 성주님과 하마마츠의 성주님도 만나고 왔다. 그것을 봉화로 알렸다. 그래 성안의  분
위기가 달라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느냐?"
  "야로쿠로!"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는 스네에몬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카와하라 야로쿠로에게  채찍같이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이놈을 본진에 끌고 가라. 나도 가겠다.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스네에몬은 전혀 방황하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반쯤 웃고 있는 듯한 대담한 얼굴로 겐바
노카미의 뒤에서 손이 묶인 채 햇볕이 무섭게 내리쬐는 가운데 카츠요리의 본진으로 끌려갔
다. 
  '드디어 잡히고 말았어...'
  붙들리면 어떻게 할까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런 
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널따란 창공에 내던져져  높이 떠오르고 있는 기분이었
다.
  카츠요리의 본진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았다.
  그토록 엄중한 포위망을 뚫고 성에서 빠져나갔다는 놀라움에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군이 
드디어 나가시노를 구원하러 온다는 놀라움이 겹쳐, 그 소문은 순식간에 장수에서 졸병에게
로 소용돌이쳐나갔다.
  카츠요리는 임시막사 앞의 뜰에 스네에몬을 꿇어앉히고, 땀이 굳어  소금이 된 네모진 얼
굴을 잠시 동안 노려보고 있었다.
  "네 이름이 토리이 스네에몬이냐?"
  "그렇소..."
  "뱃심이 두둑한 놈이로군."
  "칭찬해주니 고맙소."
  "삼엄한 포위를 뚫고 나가 임무를 완수하고, 더구나 성에  돌아와 생사를 같이하려 한 그 
용기, 적이기는 하지만 우러러 보이는구나."
  "미안하지만 그 칭찬을 지나칩니다. 오쿠다이라의  가신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은 비로 쓸 
정도로 많지요."
  "알겠다. 그 말도 마음에 든다. 아나야마, 이 자를 그대에게 맡기겠다. 잘 돌보도록 하라."
  뜻하지 않은 카츠요리의 말에 비로소 소네에몬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어서!"
  겐바노카미가 날카로운 소리로 말했다.
  
  스네에몬이 알고 있는 카츠요리는 잔인무도한 대장이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감동한 듯하
며, 갈가리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기를 잘 돌보아주라고 한다.
  스네에몬은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를 따라 카츠요리의  본진 옆에 있는 대기실로  끌려가는 
동안 왠지 모르게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대기실에서 의사인 듯한 사람, 서기 같은 사람말고도 머리를  빡빡 깎은 도보슈등이 있었
으나 스네에몬과 안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눈이 일제히 스네에몬에게로 향했다.  이
미 그곳에서도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이리 와서 앉아."
  이나야마 겐바노카미는 자기도 그 오른쪽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으나 아직 결박은  풀어
주지 않았다.
  "스네에몬."
  "뭔가?"
  "대장님의 말씀은, 네가 용기를 가진 자임을  인정하고 살려주려는 생각을 나타내신 것이
다. 그러나 너는 책임지게 된 나로서는 이대로 풀어줄 수 없어."
  "네 마음대로 해도 나는 아무 불만이 없다."
  겐바노카미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야. 여러 장수들이  모두 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대
로 살려주면 그들이 납득하지 않아."
  "당연히 그럴 테지."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데, 네가 한 가지 공을 세워주었으면 싶다."
  스네에몬은 한숨을 쉬었다.
  "원, 이런."
  그리고는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해다.
  "그런 뜻이 너희 대장의 말에 담겨 있었다면, 그 다음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는 순간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 대장님의 말씀에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살려주라고 하셨을 뿐이다... 하지
만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아. 너를 생선회  치듯 갈가리 찢어버리고 말 것
이다. 그래서 나는 이왕이면 네가 무사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승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럴 듯한 말이로군."
  "성안에서는..."
  겐바노카미는 어조를 바꾸었다.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봉화를 보고 네가 성 부근에 까지 왔다는 것은 알
았겠지만, 다른 건 모르잖아? 모두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을 것이야."
  "그럴 테지."
  "내가 너를 성밖으로 데려가겠다. 그때 네가 성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없을까-
원군은 아직 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말이면 돼. 그 말만 하면 아무도 너를 해치려는 
자가 없을 거야."
  스네에몬은 천천히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그  한마디 한마디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그럼, 단지 그 한마디만 하면 나를 풀어주겠다는 말이냐?"
  "그래. 원군은 오지 않는다고만 말하면 성안에서는 도리 없이 손을 들게 된다.  그러면 성
안에 있는 오백의 군사도 무사할 수 있는 일... 그것도 하나의 자비가 아니겠느냐?"
  "알겠다! 과연 그 자비, 이 스네에몬이 베풀도록 하겠다."
  "휴우."
  선선한 스네에몬의 대답에 주위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네에몬은 결코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보통사람보다 느리게 
움직이는지도 몰랐다. 느린 움직임 속에서 '이것이 옳다'는 핵심을 파악하면 그 다음 결단은 
놀라울 만큼 빨랐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카츠요리의 의사도 아나야마 겐바노카미의 입장도, 그리고 자기 자신
이 놓인 처지도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카츠요리는 소문처럼 잔인한 대장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아나야마 겐바노카미
는 현실을 꿰뚫어보고 치밀하게 계산하지만 단 하나 잘못 계산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토
리이 스네에몬이라는 사나이는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군을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
니라는 단 하나의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잘 했다...'
  스네에몬은 묶인 채로 카와하라 야로쿠로에게 끌려 아직도 햇살이 강한 가운데 성의 북쪽
에서 본성의 망루 앞으로 나왔다.
  양군의 진지가 근접해 있어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상대의  인상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일꾼 차림의 한 사나이가 밧줄에 묶여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당
연히 성안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 스네에몬이다!"
  "토리이 님이 붙잡혀 끌려오고 있어."
  성안에는 순식간에 큰 파문이 일었다.
  여기저기의 창에서, 나무그늘에서, 돌담에서, 성안 사람들이 놀라는 얼굴로 내다보았다.
  오늘 아침 간보잔에 오른 봉화.
  "원군이 온다!"
  봉화를 보고 모두들 사기가 올랐다. 그런데 지금 봉화를  올린 스네에몬의 사로잡힌 모습
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아나야마 겐바노카미는 그곳까지는 따라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카츠요리에게 스네에몬
이 뜻밖에도 순순히 자기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을 보고하러 간 모양이었다.
  "자, 여기가 좋겠다."
  스네에몬을 끌고 온 야로쿠로가 말해다.
  스네에몬은 둔감하다기보다도 오히려 고지식하다고 해야 좋을 태도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
였다. 그리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사방이 잘 내다 보이는 높직한 바위 위로 올라갔다.
  서쪽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점점이 떠 있을 뿐이어서, 푸른  하늘이 산도 사람도 성도 성
채도 빨아들일 듯이 또렷하게 보였다.
  "성안에 있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바위 위에 오른 스네에몬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토리이 스네에몬, 성으로 돌아가려다 이렇듯 사로잡혀습니다."
  그 소리에 성안에서는 이상한 긴장감과 웅성거림이 고조되어갔다.
  "그러나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오다, 도쿠가와의 두 대장님은..."
  일단 말을 끊었다.
  "이미 사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오카자키를 출발하셨습니다. 이삼  일안으로 반드시 운이 
트일 것입니다. 성을 굳건히 지켜주십시오."
  "와아!"
  성안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과 타게다 군 아시가루 두 사람이 바위에 뛰어올라 스네에몬
을 끌어내린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스네에몬은 밧줄에 끌려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와 어깨 할 것없이 마구 짓밟히고 발
길로 채이면서도 시원함을 느꼈다.
  
  "이놈이 속였구나!"
  "이 새끼 요절을 내주겠다."
  "감히 이런 짓을."
  이런 욕설과 발길질이 끝날 때까지도 스네에몬은 전혀 저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
들에게 희롱당하는 오뚝이처럼 걷어차면 쓰러지고 짓밟으면 꼼짝 않고 있었다.
  "이제 됐다. 이놈, 스네이몬."
  잠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있던 카와하라 야로쿠로가 겨우 부하들의 폭
행을 제지하고 스네에몬 앞에 섰을 때 그는 머리도 얼굴도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웃고  있
었다.
  "이것이 우리 주군의 호의에 대한 보답이란 말이냐!"
  "미안하게 됐다."
  "괘씸한 놈."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무사의 오기라 생각하기 바란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너도 자
기편에 불리한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나야마 님에게는  미안하게 됐다고 전해주기 바
란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너희 마음대로... 화가 풀릴 때까지도..."
  "닥쳐라!"
  다시 한 번 밧줄로 때렸으나 이 역시 스네에몬의 미소를 지우지는 못했다.
  기마무사가 두 차례가 본진과의 사이를 왕복했다. 세번째에는 스네에몬 앞에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운반되어왔다.
  스네에몬은 일단 결박이 풀렸다가 십자가에 다시  묶였다. 허리와 목과 두 손목과  발이... 
그리고 사정없이 두 손바닥에 큰 못이 박혔을 때 스네에몬은 왠지 모르게 안도감을 느꼈다. 
이것으로 살아온 보람이 있었다... 고 느낀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고통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슬픈 안도감이었다.
  십자가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기 시작했다. 성안에서도 마른  침을 삼키고 이 광경
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스네에몬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단지 푸른 하
늘뿐이었다.
  "이봐, 이런 처형을 너의 대장이 허락했느냐?"
  "허락이고 말고가 없다.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이미 자기와는 인연이 없는 세계의 목소리로 들렸다.
  드디어 십자가가 세워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고 정신을 차리려 했을 때 두 겨드랑이 밑에서 창끝이 교차하여 양
어깨를 뚫고 나갔다.
  "으으으..."
  스네에몬의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귀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런 가운데서 누군가가 열
심히 말했다.
  "토리이 님, 토리이 님이야말로 참다운 무사, 그 충성을 본받기 위해 최후의  모습을 그려 
기치로 삼으려 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타케다군의 가신 오치아이 사헤이지.  스네이몬 
님,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스네에몬은 그 말에 웃음으로 답하려 했으나 더 이상 얼굴  표정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상대방 무사는 붓통을 꺼내 종이에 스네에몬의 최후를 그리고 있었다.
  장소는 아루미가하라에 있는 야마카타 사부로베에의 진지앞,  이미 석양이 시뻘겋게 물든 
대지의 핏빛을 비추어 반사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지략과 전략
  
  이에야스와 노부나가의 연합군이 토리이 스네이몬의 뒤를 쫓기라도 하듯 오카자키를 떠나 
우시쿠보를 거쳐 시타라가하라에 도착한 것은 18일 낮이었다.
  도착한 후 우선 고쿠라쿠지야마에 본진을 둔 노부나가와 챠우스야마에 본진을 둔  이에야
스는 즉시 서로 만나 마지막 군사 회의를 열 필요가 있었다.
  이에야스는 사카키바라 코헤이타 야스마사와 토리이 히코에몬 모토타다를 데리고  임시막
사를 나와, 이미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햇빛을 받으며 고쿠라쿠지야마에 있는 노부나가의 
본진으로 향했다.
  나가시노 성까지는 약 10리.
  도중에 말을 몰아 단죠잔에 이르러 보니 발 밑의 렌고가와를 사이에 두고 몇 겹으로 깊은 
숲 너머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가시노 성의 고동소리가 그대로 자기 가슴에 전해오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이마에 손을 얹고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성주님, 늦어지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노부나가 님이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토리이 모토타다가 재촉했으나 이에야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기가 다만 여기서 마음을 
담아 바라보기만 해도 나가시노 성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전해진다... 그런 마음이 들
어 차마 떠날 수가 없는 이에야스였다.
  "성주님!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한 그 노부나가 님이 여기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네."
  "아신다면 기다리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모토타다... 그대는 오다 님의 엉덩이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알고 있나?"
  이에야스는 아직도 시선을 동쪽 산과 숲에 못박은 채 말했다.
  "오다 님은 이번 전쟁에서 진정으로 내게 도움을 주고 싶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걸일
세."
  모토타다는 그 말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 얼마나 호인다운 말인가...'
  남들이 하는 싸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노부나가. 그 정도
는 도쿠가와 군의 말단 아시가루들까지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오다 님은 말일세, 타케다 군이 우리 군사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면 얼른 나가시노의 포
위를 풀고 전투를 피해 카이로 철수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모토타다는 반발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다행입니다만, 그래서 노부나가  님이 며칠 밤이나 오카자키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야스는 비로소 모토타다를 돌아보았다.
  "자네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서둘러 가셔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결전을  위한 군사회의를 소집하셔야 합니
다."
  "그랬었군, 그대마저도..."
  이에야스는 미소를 띤 채 별로  자세한 설명은 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고쿠라쿠지로 향했다.
  죽은 신겐의 전술 중에는 '술래잡기 전술'이라는 퇴각법이 있었다. 적과 아군의 병력을 냉
정하게 계산하여 아군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적이 헛다리를 짚도록 만들고 철
수해버리는 전술이 그것이었다.
  '노부나가는 그것을 알고 일부러 지연시켜왔다...'
  이에야스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 판단이 옳은지 어떤지...
  "성주님, 오늘은 강력하게 오다 성주님을 대하십시오."
  뒤에서 다시 모토타다가 다짐을 주었다.
  
  모토타다의 말대로 노부나가의 본진에서는 이미 장수들 전원이 집합하여 이에야스의 도착
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다 노부타다, 노부오등 노부나가의 두 아들을 비롯하여 시바타 카츠이에, 사쿠마 노부모
리, 하시바 히데요시, 니와 나가히데, 타키가와  카즈마스, 마에다 토시이에 등이 모여  여러 
가지 전략을 숙의한 뒤인 듯 했다.
  장막을 친 풀 위에 노부나가만이 걸상을 놓고 앉아  있었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를 맞으
며 노부야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듯 물었다.
  "사부로 님은?"
  "현재 마츠오야마에 본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결정된 일은  나중에 알려주면 될 것입니
다."
  "도쿠가와 님."
  노부나가는 자기 옆의 걸상을 가리켰다.
  "코슈 군이 드디어 전쟁을 걸어올 모양이오."
  이에야스는 뒤따라온 토리이 모토타다와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에게 미소를 보내고  걸상에 
앉았다.
  "아군의 승리는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겠군요."
  "그럼요!"
  노부나가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쿠가와 님에게 참고로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어요."
  "참고로...? 예, 말씀하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카츠요리는 도쿠가와 님의 숙적,  그러므로 이번 싸움에서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고 싶겠지만, 이 일전으로 그를  죽이려는 성급한 생각은 접어두기 바라오.  도쿠가와 
님이나 사부로 님이 적중 깊이 쳐들어가 만일에 전사라도 하게 될 때는 전투에는 승리하더
라도 패배와 다름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이 노부나가가 
일부러 기후에서 가세하러 온 보람이 없겠지요."
  이에야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 한마디는 토리이 모토타다를 몹시 놀라게 만든 
모양이었다.
  노부나가도 아마 이번 전투에 임하는 이에야스의 불안은 간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서 '가세하러 왔다...'는 미묘한 말로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 전투에서 도쿠가와 님은 부처님이 된 심정으로 모든 일을  이 노부나가에게 
맡겨주기 바라오. 상대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우리는 승리한 것과 다름없으니 도쿠가와 님은 
유람하는 기분으로 임하시오. 두고 봐요, 이번에야말로 이 노부나가가 타케다의 졸개들을 짓
이겨놓은 종달새처럼 만들어버릴 테니까."
  순간 이에야스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가세한다고 하면서도 역시 노부나가는 
이번 싸움을 자신이 승리한 것으로 천하에 과시하고 싶은 속셈이었다.
  "가세를..."
  이윽고 이에야스는 미소를 되찾았다.
  "가세를 부탁한 우리가 유람하는 기분으로 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므로 우
리가 앞장서서 싸우겠으나, 오다 님의 그 말씀만은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중앙에 펼쳐져 있는 그림지도로 눈길을 옮겼다.
  오카자키에서 검토하고 온 진지의 배치도였는데 여기저기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렌고가와 기슭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울타리를 세우고 그곳으로 적을 유인하여, 장대끈에 
끈끈이를 발라 종달새를 잡듯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리라.
  잠시 그림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이에야스가 조용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군."
  
  오다, 도쿠가와 양군의 수는 2만 8,000.
  그 가운데는 노부나가가 자기 세력권 안에서 최대한으로 모아들인 총포대 3,500명이 포함
되어 있었다. 기후를 출발할 때 노부나가가 병사 각자에게 짊어지게 한 수만 개의 재목으로 
렌고 다리에서 단죠잔까지 삼중으로 울타리를 세울 것이었다. 이 삼중의 울타리는 이를테면 
기마전에 강한 타케다 군을 묶어놓으려는 덫이었다.
  타케다 군은 일거에 이에야스와 노부나가의 본진을 쳐부수려고 이울타리에 돌격을 감행할 
것이 틀림없다. 그때 3,500여 명의 총포대가  그곳에 밀집해 있는 적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한다... 는 것이 노부나가가 짜낸 비책이고 필승의 전법이었다.
  그런 만큼 노부나가는 자신만만하여 이에야스에게 유람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구경하라고 
했는데도 이에야스는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허어,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오?"
  노부나가는 뜻밖의 말에 눈을 빛냈다.
  "어디가 불안한지, 그 말을 듣고 싶소."
  이에야스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가 불쑥 물었다.
  "타게다 군이 과연 이 울타리를 돌파하려고 할까요?"
  "하하하... 그 점에 대해서도 이미 대책을 세워놓았소."
  "적이 이 덫에 걸렸다 해도..."
  이에야스는 말하다가 일단 중단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우리 가신 중에 사카이 사에몬노죠 타다츠구라는 장수가 있습니다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느닷없이 묘한 말을 꺼냈다.
  "아, 그 사람."
  노부나가 역시 조심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이에야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탐색하려는 매
와 같은 눈이었다.
  "타다츠구라면 새삼스럽게 소개하지 않아도 몇 번이나 나에게 사자로 왔던 일이 있으므로 
알고 있소. 그 타다츠구가 어떻다는 말이오?"
  "타다츠구는 아주 노련한 장수, 그를 불러 책략을 물어주었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노부나가가 엄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요. 곧 이 자리에 부릅시다."
  "코헤이타, 타다츠구를 불러오너라."
  이에야스는 이렇게 말하고 지휘용 부채로 울타리의  기점이 되는 렌고 다리 밖을  가리켰
다.
  "저기에는 우리 가신인 오쿠보 형제를 미끼로 삼아  보내주십시오. 저기까지 오다 군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 이에야스로서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노부나가는 빙긋이 웃었다.
  이에야스의 성실성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지만, 노부나가는 그
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대장이 서로 책략을 짜내고 힘을 겨루어 쌍방
의 장점을 살려 전투에 임할 때 비로소 연합군의 힘은 발휘된다.
  "오쿠보 형제라면 시치로에몬 타다요와 지에몬 타다스케를 가리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들 형제를 아군의 선봉에 서도록 해주십시오."
  "알겠소! 오쿠보 형제라면 나도 이의가 없소."
  다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만일 울타리 밖에서 오쿠보 형제가 고전하면 나의 가신 시바타, 니와, 하시바  세 장수로 
하여금 북쪽에서 울타리 밖으로 공격해나가도록 하겠소."
  이렇게 말했을 때 부르러 보냈던 사카이 타다츠구가 달려왔다.
  
  막사 안의 모든 장수들과 가신들의 눈이 사카이 사에몬노죠 타다츠구에게 집중되었다. 노
부나가의 전략에 불만을 품은 것 같은 이에야스가 스스로도 왜 불안하지 알 수 없으므로 불
러서 물어보자고 했던 만큼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오오, 타다츠고."
  이에야스보다 먼저 노부나가가 손짓해 불렀다.
  "이번 전투에 대해 뭔가 생각해놓은 책략이 있으면 말해보게. 망설일 것 없어."
  "예."
  타다츠구는 새우잡이 춤을 출 때와는 전혀 다른 엄숙한 태도로 노부나가 앞으로 나와 한
쪽 무릎을 꿇고 그곳에 펼쳐져 있는 그림지도를 들여다보았다.
  "타케다 군이 우리 양동대를 추격하여  이곳 아루미가하라에 몰려오면 그들의 후방이  텅 
비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야 그럴 테지."
  "그때 은밀히 뒤로 돌아가 토비노스야마 성채를 점령하면 어떨까 합니다."
  "뭐, 적 후방의 토비노스야마를..."
  "예. 만일 그 임무를 제게 맡겨주신다면, 그 전날 밤 안에 적의 배후로 돌아가 새벽녘에는 
토비노스야마를 점령해 보이겠습니다."
  타다요는 자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이에야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용히  앉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노부나가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흘끗 바라보고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것 보게, 타다츠구!"
  "예."
  "이 노부나가는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옛 속담의  뜻을 알았어. 게는 자기 등딱지
에 맞게 구멍을 판다는 속담의  뜻을. 하하하... 멍청한 자 같으니라고!  이번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노부시나 산적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 얄팍한 수법은  미카와난 
토토우미에서 고작 이, 삼백 명의 소수로 싸울 때 쓰는  거야. 그대의 그릇을 알 만하네, 그
만 물러가게!"
  일단 조롱하기 시작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악담을 퍼붓는 노부나가였다. 타다츠구는 얼굴
이 빨개져 고개를 수그리고 다른 장수들도 그만 고개를 숙였다.
  이에야스만이 여전히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타다츠구가 사라지자 다시 전략회의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어디까지나 적이 아
군의 계략에 용케 말려들었을 경우를 상정한 것일 뿐, 적이 오지 않는다면 당연히 재고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어쨌든 하늘이 연한 먹빛으로 물들 무렵 일단 전략회의가 끝나고, 장수들은 각각 자기 진
지로 돌아갔다.
  "도쿠가와 님, 바쁘실 텐데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으시오?"
  뒤에 남은 것이 이에야스 주종뿐이라는 것을 알고 노부나가는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눈치를 채신 것 같군. 그럼, 다시 한 번 타다츠구를 이 자리에 부를까요?"
  이에야스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조용하게 말했다.
  "코헤이타, 타다츠구를 불러오너라."
  그리고 노부나가에게 눈길을 옮겼다.
  "이것으로 이겼군요. 아니, 겨우 이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떡였다.
  
  타다츠구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사방이 어두워지고 모닥불 위의 하늘에 별이 빛나기 시작
했다. 타다츠구는 낯빛이 창백하고, 핼쑥해진  얼굴에 경계와 분노의 감정을 떠올리고  있었
다.
  "타다츠구, 가까이 오게."
  이에야스가 부드러운 말로 그를 손짓하여 불렀다.
  "오다 님이 긴히 그대에게 할 말씀이 계시다는구나."
  "예."
  타다츠구가 두 사람 앞에 와서 한쪽 무릎을  꿇자 노부나가는 손을 흔들어 남아 있던 두 
사람의 근시를 물러가게 했다.
  "타다츠구, 좀더 가까이 오도록."
  "예."
  "과연 도쿠가와 님의 오른팔, 아까 그대가 말한 책략에 이 노부나가는 진심으로 감탄했네. 
사실은 말일세."
  "..."
  "진중이라고는 하지만 좀처럼 방심할 수 없었어. 얼마 전에도 아마리 신고로라는 적의 첩
자가 숨어들어왔었는데, 난 그걸 보기 좋게 역이용했지. 적은 반드시 결전을 벌이려고  아루
미가하라로 공격해올 것이야, 그러나 그들이 우리편의 일격을 받고  이거 안 되겠다고 그대
로 철수한다면 아무런 소득이 없어. 그래서 무슨 묘책이 없을까... 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있
던 중일세. 결전을 벌일 그날 새벽에 토비노스야마의 성채를 빼앗는다, 그거 참으로  묘책일
세. 이 노부나가는 정말 감탄했어. 그러나 야습은 말이지, 적에게 간파당해서는 성공하지 못
해. 그래서 여러 장수들 앞에서 일부러 그대를 조롱했던  것일세. 알겠나, 내일 하루는 울타
리 세우는 일에 힘을 기울일  것이니, 그대는 내일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행동을 개시하여 
적이 아루미가하라로 나왔을 때 토비노스야마를 점령하게.  그리고 그대에게 총포대 오백을 
주겠어."
  "그... 그... 그것이 사실입니까?"
  타다츠구는 뜻밖의 말에 놀란 이에야스와 노부나가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이에야스는 여전히 반쯤 눈을 감은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하하, 모처럼의 묘안이라 밖으로 새어나갈지 몰라 꾸짖었던 거야.  용서하게, 타다츠구. 
사실은 그 야습에 이 노부나가가 직접 나서고 싶을 정도일세. 도쿠가와 님, 이 공을 내가 세
우지 못하고 타다츠구에게 빼앗기다니 여간 아쉽지 않소."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타다츠구에게 말했다.
  "총포대 오백... 최선을 다하도록."
  "예."
  "발각되면 안 돼."
  "알겠습니다."
  "이 사람도 이만 물러가 즉시 장수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이에야스가 정중하게 절하고 일어나자 노부나가는 흉허물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울타리를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군. 하하하... 정말 아름다운 소리요.  그렇지 않소, 
도쿠가와 님?"
  이렇게 해서 오다와 도쿠가와의 군사회의는 끝났다.
  한편 같은 날 밤 이오지야마에 있는 타케다 카츠요리의 본진에서도 중신과 장수들이 이마
를 맞대고 작전회의를 열고 있었다.
  촛불을 환히 밝혀놓은 임시막사 안은 마치 증기탕에라도 들어간 듯이 후텁지근하여, 모여 
있는 장수들의 얼굴이 기름땀으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그럼, 어떤 일이 있어도 여기서 결전을 벌이시렵니까?"
  정면의 카츠요리에게 대담하게 반발한 것은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였다.
  
  카츠요리는 노부후사의 말이 들렸는지 어쨌는지, 주전론자인 아토베 오이노스케 카츠스케
를 불렀다. 그리고는 들어온 정보에 대한 보고를 재촉했다.
  "적진에 잠입한 아마리 신고로부터 연락이 있었다고?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해보라."
  아토베 오이노스케는 일부러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바바,  야마가타, 나이토, 오야마다를 
돌아보았다. 이들 네 사람이 결전을 반대하는 주모자로 지목받고 있는 눈치였다.
  "예, 말씀 드리겠습니다. 실은 아마리를 통해 이 오이노스케한테 오다의 대장 사쿠마 노부
모리가 친서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따르면 사쿠마 님은 이와 타케다 가문을 섬기게 될 바에
는 발군의 공을 세워 그것을 선물을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뭣이, 사쿠마 노부모리가 우리편에 가담하겠다고?"
  맨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이토 슈리노스케 마사토요였다.
  "그렇소."
  아토베 오이노스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다의 결점은 성급한 데 있소. 일단 노하게 되면 다른  사람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상대를 매도한다는 말이오. 그 독설에 사쿠마 노부모리가 핏대를 세우며 물러나왔다
는 것을 이미 아마리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소."
  "그게 확실합니까? 오다는 보통 책략가가 아니오."
  "그렇소!"
  오이노스케는 알고 있다는 말 대신 탁 하고 부채로 가슴을 두드리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상대가 발군의 공을 세워 이를 선물로 가져오겠다고 한  이상, 우리로서는 굳이 이를 거
부하거나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쿠마 님의 친서 내용을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지요."
  오이노스케는 이렇게 말하고 편지 한 통을 꺼내 이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현재의 주인 노부나가는 내심 타케다 군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가 싸
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진지 부근에는 니와 나가히데, 타키가와 카즈마스
라는 두 용장이 있으므로 섣불리 행동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만일 타케다 군이 
먼저 공격해온다면 이 노부모리는 기회를 보아 반드시 노부나가의 본진으로 쳐들어가겠습니
다. 노부나가의 본진이 무너지면 이에야스의  패주도 필연적인 일, 이를 선물로  가져가려고 
하니 그때는 잘 주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좌중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잠시 동안은 어느 누구도 선뜻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음, 사쿠마 노부모리가 배신하기로 각오했다는 말이지, 그 서면을 이리 주게."
  카츠요리는 애써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고 그것을 받아 읽고 나서 옆에 놓았다.
  "어쨌든 사쿠마의 배신 따위에 기대는 걸지 않겠어. 그것은  공을 세우고 왔을 경우를 생
각할 문제야. 그럼, 내일 당장 행동을 개시하기로 하고, 좌익은 야마가타 사부로베에 마사카
게."
  "예."
  "그 예비부대는 오바타 카즈사노스케 노부사다.  야마가타의 오른쪽은 사마노스케 노부토
요, 다시 그 오른쪽에는 쇼요켄과 나이토 슈리."
  나이토 슈리는 슬며시 옆에 있는 바바 노부후사를 바라보고는 가만히 있었다.
  "우익은 바바 노부후사와 사나다 겐타자에몬 형제..."
  말하려다 말고 모두 대답이 없는 데 마음이 쓰이는지 카츠요리는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냈
다.
  "그대들은 불만이란 말인가?"
  그리고는 칼날 같은 목소리와 눈으로 일동을 노려보았다.
  도보한 사람이 열심히 촛대의 불똥을 자르고 있었다.
  
  타케다 군의 군사회의는 결국 19일 밤까지 계속되었다. 결전  회피를 주장하는 자와 주전
론파의 묘한 분위기가 좀처럼 작적을 세우기 어렵게 했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자고 했고, 어떤  사람은 상대가 먼저 공격해왔
을 때 타격을 가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그동안에 오다, 도쿠가와 양군의 동향이 시시각각 보고되어 상대의  진용 역시 차차 전모
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야스가 본진을 단죠잔으로 전진시키고, 그 전면에  삼중으로 높은 울타리를 세웠다는 
보고를 듣고 주전론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역시 사쿠마 노부모리의 내응은  거짓이 아니다. 노부나가는  스스로 공격해나올 용기가 
없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자기는 이에야스가 있던 챠우스야마에 들어가고,  게다가 
삼중으로 울타리까지 친다는 말인가."
  "이렇게 되면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  깨부숴야 한다. 상대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시기도 
우리가 선택할 수밖에 없어."
  대장 카츠요리는 처음부터 결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회의는 결국 반대파 장수
들을 설득하기 위한 군사회의라고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결정을 보게 된 것은 19일 밤 넉 점(오후 10시)이 다 되어서였다. 내일 20일에  행
동을 개시하여 적의 전면에 포진하고, 21일 새벽부터 총공격을 하기로 했다.
  제1대는 갑옷과 장비를 붉은 색으로 통일한 야마가타의 2,000기
  제2대는 타케다 쇼요켄과 나이토 슈리.
  제3대는 역시 붉은 색으로 통일한 오바타 카즈사노스케 노부사다.
  제4대는 검은 색으로 통일한 타케다 사마노스케 노부토요.
  제5대는 바바 노부후사와 사나다 형제.
  선두에 서려는 카츠요리를 그대로 이오지야마에 머무르게 한 것이 결전을 피하려는  사람
들에게는 그런대로 위안이 되었다.
  군사회의를 마치고 본진을 나왔을 때는 이미 늦은 달이  떠올라 있었다.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는 그 달을 쳐다보며 뒤따라나오는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마가타 님,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왔으나 이제는 작별을 해야 할 것 같군요."
  "예, 시대의 흐름이 이러하니 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말해두고 싶은 일이 있는데."
  "바바 님의 진지까지 같이 갈까요?"
  "글쎄, 진지에서는 약간... 어떨까요, 우리 진지로  가는 중간에 다이츠지야마 골짜기가 있
는데, 그 부근에서 맑은 물이라도 마시고 헤어지면?"
  두 사람이 이런 말을 나누면서 시동의 손에서 말고삐를 받아들었을때 나이토 슈리와 오야
마다 효에, 하라 하야토 등 세 사람이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까이 말을 몰아왔다.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이대로 헤어진다면 말이오."
  나이토 슈리의 말을 듣고 사부로베에와 노부후사는 저도 모르게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모두들 이번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구나...'
  노부후사는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가문의 안태를 위해 결전을 피하자고 간곡하게 권했으나 군사회의에서 결정된 이
상 도리가 없습니다. 이 이상 더 말을 하면 너희 대장은 암울했다, 가신들의 통솔이  부족했
다고 후세 사람들이 비웃게 될 것이오."
  노부후사는 이들의 불평을 듣기가 괴로워 이렇게 말했다.
  "암, 불평불만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렵니다. 코슈 무사의 명예를 걸고 말이오. 그러나 이대
로 헤어진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오."
  오야마다 호에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드디어 다섯 사람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바 노후후사도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도,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우리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럼, 다이츠지야마 골짜기에서다 같이 맑은 물을 나누어 마시고 헤어지기로 합시다."
  사부로베에의 말에 노부후사가 그 곁으로 바싹 말을 갖다대었다.
  "야마가타 님, 귀하만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만일의 경우가 생기면 후미를  맡았다가 성주님을 코슈로  모셔가십시오. 후미를 담당할 
사람은 달리 없습니다."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런 일엔 적임자가 못 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성주님은 사태가 불리했을 경우에
도 적진을 향해 공격해나갈 것입니다."
  "바바 님, 귀하가 그 일을 맡으시오. 나는 일단 군사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므로  그 결정에 
따라 맨 먼저 달려가겠소. 그러지  않으면 전군의 사기가 올라가지 않아  이길 싸움도 지게 
될지 모릅니다. 바바 님, 그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예, 거절할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이 사부로베에의 죽음을 보여드릴 날이  가까워진 것 
같소."
  바바 노부후사는 할 수 없이 말을 돌리고 한숨을 쉬면서 반쯤 희미해진 달을 쳐다보았다.
  제1대인 야마가타 사부로베에에게 살아남으라고 한 것은 무리한 요구인지 모른다. 그렇다
면 역시 제5대로 결정된 자기가 퇴로를 틔기 위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만일 
패하여 카이로 퇴각하게 되어도 과연 살아 있을 용기가 자신에게는 있단 말인가. 결국 무장
이 심복하고 섬길 수 있는 대장은  생애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일까.  신겐이 죽었을 때 
자기도 그 뒤를 따라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신
겐을 흠모하는 사람이 많아, 그것이 도리어 카츠요리를 불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무 사이를 지나고 바위를 돌아  다이츠지야마 골짜기에 다다른 것은  4반각(3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달빛을 받아가며 졸졸 흐르는 은빛 여울목 앞에서 다섯 사람은 차례로 말에
서 내렸다.
  "처음에는 일만 오천 대 오백, 그것이 일만 오천 대 사만으로 변했으니 말이오."
  이렇게 말한 것은 하라 하야토였다.
  "한치도 물러서지 말고 싸워야 하오. 자, 물을 나누어 마시고 헤어집시다."
  말 위에서 국자를 꺼내든 것은 나이토 슈리였다.
  "그럼, 야마가타 님부터 드시지요."
  "아, 고맙소. 국자 안에도 달이 있군요."
  사부로베에는 웃으면서 받아 마시고, 바로 옆에 있는 바바 노부후사에게 건넸다.
  노부후사는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하치만의 신령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한 모금 마시고 나이토 슈리에게 건넸다.
  나이토 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국자를 받아든 하라 하야토.
  "오오, 맛이 좋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꿀꺽 삼키고 오야마다 효에에게 건넸다.
  "하하하..."
  그는 웃었다.
  "이렇게 죽어가다니... 왠지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아, 하하하..."
  어디선가 부엉이가 울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이면  처량하게 우는 기생개구리 울음소리가 
물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텐쇼 3년(1575) 5월 21일은 새벽부터 동남풍이 불고, 밝아오는 하늘 한가운데를 구름이 무
섭게 달려가고 있었다.
  타케다 군 제1대를 지휘하여 최좌익인 렌고 다리  부근에까지 병력을 진출시킨 야마가타, 
그의 군사들은 이른 아침에 벌어질 전투를 대비해 이미 무장을 끝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 않아 전면에 세워진 울타리가 분명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 울타리를 허물고 맨 
먼저 공격하라는 것이 야마가타 군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소라고둥을 불 때가 되어오는 것 같군."
  사부로베에가 훌쩍 말에 올라 작달만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앞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이상하다. 적이 울타리 밖으로 나와 있어. 게 누구 없느냐, 정찰하고 오너라."
  사부로베에는 명령을 내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허연 새벽 안개 속에 수묵화처럼 드러나 있는 울타리 바로 앞에 휙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
의 모습이 보였다. 보병이었다.
  이에야스로부터 전투는 반드시 도쿠가와 군이  시작하고 도쿠가와 군의 손으로  끝내라는 
엄명을 받은 오쿠보 타다요, 타다스케 형제의 군사였다. 그들은 타케다 군 중에서도 가장 용
맹을 떨치던 야마가타 군과 맞서기 위해 채 날이 밝기도 전에 행동을 개시했다.
  야마가타 쪽에서 내보낸 척후가 미처 숨을 헐떡이며 돌아오기도  전에, 오쿠보 군의 함성
이 주위를 압도하면서 울려퍼졌다.
  "나가지 마라!"
  사부로베에는 큰 소리로 명하고 자신은 나직한 언덕으로 말을  몰았다. 아직 시야가 어두
워 병력의 수는 알 수 없었다.
  적이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면 잘된 일이라고 사부로베에는 생각했다. 적이 안에서 기다리
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울타리를 넘어 공격해야 할  터인데, 밖으로 나왔으니 깊숙이 적을 
끌여들이고 나서 공격해도 충분할 듯했다.
  "보고 드립니다. 울타리 밖의 적은 오쿠보 군입니다."
  "알겠다. 아직 나가지 말고 계속 유인하라."
  이렇게 명했을 때였다. 이번에는 훨씬 후방에  있는 토비노스야마에서 천둥소리와도 같은 
함성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어서 눈사태와 다름없는 무서운 기세로 총성이 울렸다.
  "탕탕탕-"
  "탕탕탕-"
  "아뿔싸!"
  사부로베에는 말머리를 돌리며 나직이 신음했다.
  그 총성은 50이나 100자루쯤의 총포소리가 아니었다. 그와 같은 대군이 후방으로 와 있다
면 아군에겐 이미 퇴로가 차단되었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것은 노부나가가 준 500명의 총포대를 거느리고 어젯밤에 토비노스야
마에 잠입한 사카이 사에몬노죠 타다츠구의 기습부대였다. 그 요란한 총소리에 놀라 왼쪽에 
배치되어 있던 타케다 사마노스케의 진영에서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바타 카즈사노스
케의 진영에서도 일제히 동요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야마가타 사부로베에는 잠시 동안 소상처럼 묵묵히 말고삐를 쥐고 있다가 드디어  외치면
서 진지를 향해 질풍처럼 말을 달렸다.
  "좋아!"
  전투개시라고 하기보다 보병뿐인 오쿠보 군을 짓밟기  위해 2,000의 기마무사가 불러일으
키는 태풍의 신호였다.
  소라고둥소리가 드높이 울리고 징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서히 사방이 밝아왔다.
          도쿠가와이에야스 제1부 대망 9권
    지은이: 야마오카소하치
  
    채찍소리
  노부야스는 그날도 새벽에 자리를 박차고 마장으로  나갔다. 아버지 이에야스도 할아버지 
히로타다도 매일 아침 말을 달렸던 이  오카자키 성의 마장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서로 겹쳐 있는 푸른 잎이 아침 안개 속에서  산맥처럼 보였다. 한쪽 어깨를 벗어부
친 노부야스는 그 주위를 질풍같이 달리면서 때때로 말의 목에 내비친 땀을 내려다보곤 했
다. 뜻하지 않은 아야메의 죽음  뒤 노부야스는 오로지 무예를 연마하는  데에만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 아니, 그 사이에 한때는 마침 유행하고 있던 춤에 빠진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노부야스로 하여금 자신을 잊게 하지는 못했다. 언제나 어딘가에서 아야메가 쓸쓸히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보 같은 아야메, 그대는 왜  죽었는가.' 마음속에서 부르면 아야메는 묵
묵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노부야스도 요즘에는 자기 나름대로 아야메의 죽음을 해석
하게 되었다. 아야메는 무엇보다도 노부야스와 토쿠히메의 불화를 두려워했다. 자기  때문에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면 오다 가문이나 도쿠가와 가문에 미안한 일이라고 소심하고  선량한 
아야메가 생각하고 있을 때 츠키야마가 키쿠노라는 처녀를 데려왔기 때문에 노부야스의  사
랑이 다른 데로 옮겨가기 전에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 이후 노부
야스는 토쿠히메와의 화합을 생각했다. 마음  어딘가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야메의 명복을 
비는 일이라는 기분이 작용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키쿠노는 토쿠히메 밑에서 어느새 열여섯 
살이 되었다. 
  "사부로 , 아직까지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토쿠히메에게  왜 그리 미련을 갖고 있어?" 어
머니 츠키야마는 이것이 못마땅하여 때때로 찾아와서는 토쿠히메에게 들으라는 듯 말을  던
지고 돌아갔다. 노부야스는 웃음으로 넘겨버렸다. 당사자인 키쿠노가 완전히 토쿠히메의  시
녀가 되어 만족하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화합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노부야스가 
토투히메에게 마음을 기울였을 때 토쿠히메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이 응어리를 풀
어버렸다. 
  "성주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성주님을 증오한 일이 있어요." 잠자리에서 생각난 듯 사죄
하는 토쿠히메가 지난날의 아야메보다 더 순진한 여자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무장의  아

이 아닌가. 절대로 곁눈질은 하지 않겠다. 아직 여러  면에서 아버지보다 뒤져 있다.'  이렇
게 
생각하고 술을 삼가면서 밤에는 무용담에 열중하고, 낮에는 혹독한 훈련에 몰두하는 노부야
스였다. 노부야스는 지쳐 헐떡거리는 말을 내려다보다가 달리기를 멈추고 훌쩍 땅에 뛰어내
렸다. 
  "이런 허약한 녀석, 아직 얼마  달리지도 않았어..." 말의 목을  두드리며 말하고 있을 때, 
역시 말을 탄 히라이와 치카요시가 마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은 맑게 개어 머
리 위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땀으로 흠뻑 젖은 살결을 시원한 바람이 쓰다듬고 지나갔다.
  
  "성주님, 아주 열심히시군요." 치카요시가 말에서 내리며 다가왔다. "오,  이 밤색 말은 아
직 힘이 모자라는 것 같아. 치열한 전쟁터에선 쓸모가 없겠어. 물론 아직 어린 탓이겠지만." 
노부야스는 돌아보지도 않고 땀에 젖은 말의 앞다리를  문질러주면서 말을 이었다. "강으로 
데려가 씻어주어야겠어." "성주님..." "왜 그러나? 나중에 이 녀석의 위턱에 소인을 찍어주게. 
혈통은 좋아. 명마가 될 소질은 있어." "성주님..." 치카요시는 다시 한 번 부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볼일이 있는 모양이군, 치카요시. 스루가에 출전이라도 하게됐나?" 
  노부야스의 눈길이 자기에게 향하자 치카요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말했다.  "아니, 좀 
마음에 걸리는 소문을 들어서." "마음에 걸리는 소문이라니?" "그 일로 제가 지금부터 하마
마츠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성주님... 성주님은 혹시 사카이 타다츠구님에게 원한을 사신  일
이 없습니까?" "사에몬노죠에게 원한을... 그런 일은 없어. 진중에서의 말다툼은 언쟁에 속하
지도 않아.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 다투는 것은 전략회의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
지." 말하다 말고 노부야스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싱긋 웃었다. "아, 그 오후쿠의 일 말
이로군." "오후쿠의 일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그대는 모를  거야. 토쿠히메가 데리고 있
던 오후쿠 말일세. 타다츠구가 그녀를 달라는 것이었어. 토쿠히메는 내 허락도 없이  타다츠
구에게 주겠다고 약속하고 요시다 성으로 데려가게 했던 거야. 토쿠히메는 자기에겐 키쿠노
가 있을 뿐 아니라 오후쿠는 서른 살이나 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두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
던 거지. 나는 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그랬느냐고 타다츠구와 토쿠히메를 꾸짖었어.  내가 
그렇게 한 것은 까닭이 있어서야. 키쿠노는 어머니가 나에게 떠맡기려고 데려온 여자, 그 여
자를 자기가 데리고 있을 생각에서 오후쿠까지 내보냈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토쿠히메를  꾸
짖을 것 같아서 미리 내가 꾸짖고 용서해주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었지. 그것은 타다츠구도 
잘 알고 있을거야. 그런데 도대체 이 소문을 어디서 들었나?" 
  치카요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원한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겠군요." "당연하지. 
타다츠구는 아버지의 중신, 내가 그런 사람과 다투려 할 리가 없지 않아? 그게 대관절 어떻
다는 말인가?" "성주님! 놀라지 마십시오." "무슨 소릴 하는 게야. 나는 그렇게까지 간이 작
지 않아." "아즈치로 옮긴 우다이진(노부나가) 님으로부터 작은 성주님을 자결케  하라고 하
마마츠의 성주님께 지시가 내렸다고 합니다." "뭐...?" 노부야스는 비로소  말에서 손을 떼었
다. "나에게 자결을... 아즈치의 장인이 무엇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치카요시." 
  노부야스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과 타다츠구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그 
늙은이가 그대를 속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반문하는  바람에 치카
요시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숨을 죽였다. 그에게 이번 일을 알려온 것은 혼다 사쿠자에몬이
었다.
  
  "성주님,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바로 쿤 성주님을  찾아뵈려 합니다. 성주님께서도 
유념하고 계십시오." 치카요시의 목소리는 기어드는 것 같았다. 노부야스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쯤 웃고 있었다. "어제 사에몬노죠 타다츠구  님이 변명을 하기 위해 이 
오카자키를 지나 아즈치로 갔을 것입니다. 타다츠구 님이 여기  들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일 들르지 않고 갔다가 올 때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하마마츠로 돌아갔다면 변명
이 통하지 않은 줄 알라...는 것이  혼다사쿠자에몬 님의 말이었습니다." "뭣이, 어제 타다츠
구가 이 아즈치로 갔어?" "예. 들르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노부야스의 얼굴에 비로소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럼, 누가 나에 대한 것을 장인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치카요시?" "제가 곧 하마마츠에 가서 자세한 사정을 큰 성
주님께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전혀 내색하지 마시고  성주님 혼자 가슴에 담아
두십시오."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부디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노부야스는 고개
를 끄덕이고 시동을 불러 말고삐를 건넸다. "내가 장인께 다른 마음이라도 품은 줄 알고 그
러는 것일까?" 치카요시는 그러나 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눈길을 내리깔고 인사한 뒤  그
대로 자기 말을 끌고 사라졌다. 노부야스는 잠시 눈앞에서 흔들리는 푸른 잎을 바라보고 있
었다. 이미 해는 지평선 위로 떠올라 따갑게 햇볕을 내려쬐기 시작했다. 노부야스는  걸음을 
옮겼다. '내가 비위를 건드리기라도 한 것일까...?' 
  승마를 하고 난 뒤에는 활터로  가는 것이 일과였으나 오늘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노부야스는 해마다 더 울창해지는 본성 주위의 솔밭 사이를 지나서 내실과 현관 사이에 만
들게 한 휴게실로 들어갔다. 시동이 가져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곧 찻잔을 내려놓았다.  혹
시 토쿠히메가 사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떠오를 정도로 노부야스는 당
황하고 있었다. 토쿠히메는 아직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시녀가 가져온 밥상이 옆방
에 그대로 놓여 있고, 그녀는 머리 손질을  하고 난 뒤 손씻을 물을 앞에 놓고  있었다. "어
머, 이렇게 어질러져 있는데..." 노부야스의  모습을 본 토쿠히메는 얼른 시녀에게  치우라는 
눈짓을 하고 두 딸에게 부드럽게 명했다. 
  "절해야지." 맏딸은 햇수로 다섯 살, 둘째딸은  세 살이었다. 노부야스는 아이들에게 고개
를 끄덕하고 자리에 앉았으나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토쿠히메에게는 조
금도 어두운 기색이 없었다. 최근의  화목한 부부관계에 만족하여 동작  하나하나가 밝기만 
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마는." 드디어 토쿠히메도 노부
야스의 표정이 다른 때와는 달리 흐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저리 가서 
놀아라. 성주님, 무슨 근심이라도?"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아무것도라니... 무
슨 일인지요?" 토쿠히메는 의아하게 여기고 노부야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노부야스는 얼마 동안 물끄러미 토쿠히메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즈치의 장인이 이 노
부야스에게 몹시 화를 내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어." 자결이라는 말 대신 화를  낸다고 하고, 
한번 길게 숨을 쉬었다. "그대는 생각나는 것이 없나?"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즈치의 아버
지가...?" 토쿠히메는 고개를 갸웃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이 되었다.  "오래 전에는 이런
저런 불만 비슷한 편지를 썻으나  별로 회답다운 회답도 보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년 
가까이 그쪽에다가는 글을 쓰지 않았어요." "그쪽으로부터 아무 말도 못 들었다는 말이지?" 
"예. 몹시 화를 내시다니, 무슨 말씀이 있었나요? 제 힘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곧  사람을 보
내겠어요." "그래...?" 노부야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그러면
서 시녀가 가져온 찻잔에 손을 내밀었다. 
  아직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타다츠구가 변명하기 위해 떠났다고 하고, 또  치키요시는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하마마츠로 달려갔다.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토쿠히메를 놀라게 한
다면 도리어 일이 어려워진다고 스스로를 억제ㅎ다. "마음에 걸립니다. 좀더  자세한 사정을 
알려주세요." "아직 자세한 사정은 몰라. 아니, 염려할 것  없어." 토쿠히메가 아무것도 모른
다는 것이 노부야스에게는 크게 다행스런 일이었다. "지금  치카요시가 자세히 알아보기 위
해 하마마츠로 떠났어. 돌아오면 다시 말해주지.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으니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도록." 차를 마시고 나서 노부야스는 곧 휴게실로 돌아왔다. 오래  마주앉아 있기가 
왠지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나카 시게마사를 이리  불러라." 거실로 돌아온 
노부야스는 밥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시동에게 명했다. '입맛이 있을까...?' 스
스로 자문해보고 노부야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무너뜨리고 웃었다. 
  아직 노부나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식사는 여전히 두 공기를 비워도 세 공기를 먹어도 맛이 있었다. 네  공기를 
비우고는 웃으면서 상을 물렸을 때 노나카  시게마사는 이미 옆방에 와서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셨다고 해서..." "오, 시게마사. 오늘도 역시 무더울 것 같아." "예. 저 
매미소리를 듣기만 해도 저절로 땀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매미 우는 소
리가 들리는군. 침착한 줄  알았는데 역시 나는 아직  미숙한 모양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미숙하시다니요?" "저어, 사실은 치카요시가 오늘 아침 일찍  하마마츠에 갔어." "출전에 관
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 묘한 일이 생겼네.  하마마츠의 사쿠자에몬이 소식
을 전해온 모양이야." "허어, 무슨 소식이?" "나더러  자결하라고 아즈치의 장인이 요구해왔
다는 것일세..." 시게마사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다이진 님이 성주님께?" 시게마사가 깜짝  놀라 반문하고, 노부
야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짚이는 게 없어. 아마 무슨  오해 때
문일 테지. 하마다츠에서 사카이 타다츠구가 변명하기 위해 아즈치에 갔다는군." 시게마사는 
노부야스를 빤히 쳐다본 채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시게마사." "예." "타다츠구가 
돌아오는 길에 이 성에 들르면  모든 것이 밝혀질 테니, 그대가  누군가를 내보냈으면 좋겠
어." "사에몬노죠 님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가?"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표정이로군, 그대는." 
"어째서 큰 성주님이 사에몬노죠 님을 보내셨는지..." "시게마사!" "예." "그대에게는 뭔가 짚
이는 게 있는 모양이군." "예.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이 노부야스에게 어떤 의혹을 살  만
한 일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시게마사는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고개를 떨어
뜨렸다. 
  "허어, 그것이 알고 싶군. 무엇인가?"  "츠키야마 마님이 코수와 내통한 일입니다."  "그런 
말은... 그것은 말할 필요 없어. 이미 지나간 일, 오래 전의 일 아닌가."  "그 오래 전의 일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가시노 전투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카츠요리가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
기 시작했습니다." "으음." "성주님! 그 밀서가 모두 우다이진 님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설
마, 그럴 리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기를 바라시겠지만, 츠키야마 마님이 보관했던 밀서
는 시녀인 코토죠와 내전에 키노 자매가 죽은 코지쥬를 통해 그 내용을 낱낱이 기후에 보냈
다는 단서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노부야스가 침묵했다. 지금까지 자기 혼자만의  일이라 생
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에게도 영향이 미치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어머니의 내통에 이 노
부야스도 가담했다는 혐의란 말인가?" "아니,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노나카 시게
마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으로 내통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뭐, 앞으로 내통할 우려가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님은  아직도 오다가 원수라고 작은 마님  앞에서 공공연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밀서에는 오다와 도쿠가와 양가를 멸망시킨 후에는 카츠요리가 성주
님에게 오카자키 성 외에 오다의 영지 한 곳을 주겠다는  내용이 씌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
니 모두 한통속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노부야스는 다시 침묵했다. 
  사실 어머니는 아직 노부야스 앞에서도 오다 가문에 대한 매도를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 
증오를 잘 알 수 있었고, 아무 힘도 없는 어머니이므로 못 들은 체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것이 꼼짝할 수 없는 불행을 초래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아들이었구나..." 추
녀 바로 밑에서 다시 매미 한 마리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실은 그밖에도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노나카 시게마사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부야스에게 비통한 듯 얼굴을 돌리고 말을 계속했다. "...다름이 아니라, 사카이 사에
몬노죠 님은 마음속으로 치키야마 마님을 무척 경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테지." 
"작은 성주님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에몬노죠  님이 마님을 가리켜, 언젠가는  도쿠가와 
가문에 치명적인 화근을 가져오게 할 사람...이라고 우리에게 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사에몬노죠 님이 변호를 하기 위해 갔다면..."  "그만, 됐어." 노부야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게마사의 말을 중단시켰다. 
  "어쨋든 타다츠구와 치카요시가 돌아올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시게마사, 그
대도 알다시피 이 노부야스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타케다 군에 대응할 생각 따위는 전혀 갖
고 있지 않아. 나는 반드시 이런 내 마음을 직접 아버지와 장인에게 말하겠어. 그러니  괜한 
걱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게."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만  물러가게." 시게마사는 
노부야스의 볼에서도 입술에서도 핏기가 가신 것을 보고 예사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작은 
성주님도 과히 심려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도 웃는  낯을 짖지 않고는 일어설 수  없었다. 
"이 시게마사가 직접 사에논노죠 님이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낱낱이 사정을 알아보겠습니
다." 노부야스는 대답 대신 빤히 허공을 노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카자키 성에는 표면상 조용한 날이  며칠 동안 더 계속되었다. 이미  가신들은 모두 그 
소문을 듣고 어떻게 될 것인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만 츠키야마와 토쿠히메에게만은 아
무도 그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도 마님은  작은 마님을 찾아가 성주님께 소실
을 두게 하라고 강요하셨다는군." 대기실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성을 나온 노나카 
시게마사는 가도를 따라 야하기의 큰 다리 부근까지 갔다. 아침에 비가 그쳤으나 아직 길은 
젖은 채로 있었다. 초소에 다다르자 아시가루가 시게마사의 말을 맡으면서  보고했다. "조금 
전에 오쿠다이라 쿠하치로 노부마사 님이 아즈치에서 하마마츠로 가신다며 큰 소리로  외치
고 지나가셨습니다." "뭐, 오쿠다이라 님이...? 혼자더냐?" "예. 종자  두 명에게 서둘러 말을 
끌게 하시고." "그래...?" 시게마사는 크게 실망하면서 걸상에 주저앉았다. 
  오쿠다이라 노부마사가 혼자서 먼저 돌아온다는 것은  흉보나 다름없었다. 노부마사는 긴
박한 사태를 한시바삐 이에야스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사에몬

죠도 오카자키에 들르지 않을 것이다...' 시게마사의 불안은 적중했다. 노부마사보다 2각(4시
간)정도 늦게 말을 달려온 타다츠구는 다리의 초소에서 시게마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얼굴빛
이 변했다. 시게마사가 노부야스의 명으로 자기를 죽이러 나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모
양이었다. "시끄럽게 굴면 안 돼. 급한 길이어서 그대로 하마마츠로 돌아간다. 하마마츠에서 
추후에 지시가 내릴 것이니 조용히  있도록 하게." 시게마사의 말  따위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가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려갔다.
  
  히라이와 시치노스케 치카요시는 계속 하마마츠 성에 머물면서, 아즈치에 간 사카이 사에
몬노죠 타다츠구와 오쿠다이라 쿠하치로 노부마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코슈 군은 도쿠가와 군을 쉽게 무찌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일단 스루가에서 철수해 있었
다. 이에야스는 그 기회를 재빨리 포착하고 즉시 오다와라의 호죠에게 밀사를 보냈다.  그리
고 이마가와의 옛 영지를 호죠와 두쿠가와 두 가문이 배분하자는 외교 교섭을 시작했다. 이
러한 때 오다 가문과의 사이에 큰 위기가 닥치려 하고 있었다. 이럴 때 혹시 카츠요리가 노
부야스를 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의 고통을 참아가며 대책을 강구하는 이에야스가 
치카요시에게는 한없이 슬프게 여겨졌다. 오늘도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고, 돌아온  첩자의 
보고를 듣는 등 이에야스의 거실에는 아침부터 접견하는 자들이 잇따르고 있었다. 접견객이 
뜸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치카요시는 다시 이에야스 앞으로 나갔다. 
  "성주님, 아직 마음을 결정하시지 못했습니까?"  이미 계절은 음력 7월  보름이 지났으며, 
올해의 더위는 특히 유난스러웠다. 살이 찌기 시작한 이에야스의 목덜미에는 땀띠가 빨갛게 
돋아 있었다. "시치노스케로군." 겨우 바쁜 일이 끝났다는 듯 이에야스는  가슴의 땀을 닦으
면서 시동들을 물러가게 했다. 노부야스의 일에 관한 한  아직 표면적으로는 가신들에게 아
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에야스였다. "사에몬노죠의 귀성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아 일이 
잘 되지 않은 듯 합니다. 성주님, 이렇게 된 이상 부디 이 치카요시의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
랍니다." "잠시 기다리게. 지금 땀을 닦고  있는 중일세." 그러면서 이에야스는 진지하게 말
했다. "그대도 불운을 만나 불쌍하게 됐어." 
  치카요시는 타다츠구와 노부마사가 확실하게 노부야스의 구명을 거절당하고 돌아오기  전
에, 자기 목을 걸고 혼다 사쿠자에몬이나 이시카와 이에나리를 노부나가에게 파견하라고 거
듭 청하고 있었다. "우다이진 님의 의혹이 비록 여러  조항에 달한다 해도 그것은 젊은이에
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과오. 이 모든 것은 사부 역할을 해온 제 죄입니다. 아무리 우다이
진 님이라도 이 치카요시의 목을 보신다면 굳이 작은 성주님의 목숨까지는 원하지 않을 것
입니다. 때를 눚추어서는 안됩니다. 부디 제 청을..." "시치노스케." 이에야스는 땀을 닦고 나
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치카요시에게서 눈길을 떼며 가볍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할복을 
허락하지 않기로 했네." "예? 그것은 어째서입니까?" "나는 무장일세.  나를 위해 목이 잘린 
사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없이 많아. 알겠나, 시치노스케... 그러한 내가 자식의 목숨을 구
하기 위해 여섯 살에 인질이 되었을 때부터 아츠타, 슨푸 등지에서 고락을 같이한 그대에게 
할복하라고 한다면 내일부터는 신불에게 기도도  드릴 수 없어. 용서해주게. 그대의  뜨거운 
마음에 두 손 모아 울고 있는 이  이에야스... 더 이상 무리한 청은 말게." 치카요시는  그만 
온몸을 떨며 흐니끼기 시작했다.
  
  "성주님! 이 치카요시는... 성주님을 원망합니다." 치카요시는 어린아이처럼 계속 흐느꼈다. 
"성주님은 아직 이 치카요시의 마음을 모르십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서 허락하지 않는 
거야." 이에야스는 가만히 눈을 누르고 얼굴을 돌렸다. 
  "아니, 모르십니다! 저는 그것이 원망스럽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곁에서 모셨고, 지금은 
소중한 적자의 양육까지 맡고 있습니다... 이 치카요시의  마음은 구석구석까지 성주님께 통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성주님! 이 치카요시는  단지 충의나 의리 때
문에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부터 성주님을 흠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도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기쁨이었습니다... 성주님은 이 치카요시의 말
을 단순히 충의와 의리 때문이라 생각하시고 도리어 저를  위로하려 하십니다. 위로받고 기
뻐할 치카요시가 아닙니다... 성주님!  성주님은 사부로(노부야스) 님에 대한  이 치카요시의 
마음도 모르십니다. 만일 사부로 님이 자결하게 되신다면 그 후에도 이 치카요시가 과연 뻔
뻔스럽게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시치노스케, 닥치지 못하겠나!"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성주님만은 제 마음을... 이렇게 
믿고 살아온 치카요시의 마음에서 등불이  꺼졌습니다. 침묵할 수 없습니다. 이  치카요시는 
몇 번이라도 말하겠습니다. 성주님을 원망한다고." 이번에는 이에야스가 입술을 깨물고 무섭
게 어깨를 떨었다. 
  "시치노스케, 입을 다물지 않으면 더 이상  용서치 않겠다." "그래도 무섭지 않습니다. 이 
치카요시는 사부로 님에 앞서 떠돌이 무사가  되어 아즈치의 성문 앞에서 할복하고  내장을 
꺼내 문에 뿌리고 죽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분통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닥쳐!" 다시 
이에야스는 일갈했다. "흥분하지 마라,  시치노스케. 그대의 마음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잘 
알고 있어. 그래서 할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야. 그걸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집스런 녀석. 처음부터 고개를 흔들지 말고 내 말을 다시 한 번 잘 곱씹어
보아라. 알겠나, 나는 무장이야. 평화를  바라고 정의를 내세우면서 많은 사람을  죽여왔어... 
그러한 내가 자식 사랑에 못 이겨 모든 사람이 가문의 기둥임을 인정하는 그대를 일부러 죽
게 할 것이라 생각한단 말인가? 그대가 죽고 나서 노부야스도 할복하게 된다면 도대체 나는 
어쩌라는 말인가? 이에야스는 살인죄조차 깨닫지 못하는 무도한 자,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
해 혈안이 되어 소중한 중신을 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까지 잃은 경박하기 짝이 
없는 자...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지 모르나, 그런 경박한 자에게 신불의 가호는 있을 수 없
다고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이에야스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죄업의 덩어리로 전락한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 
  "시치노스케! 그대는 나를 흠모한다고 했다. 사부로에 대한 그대의 마음까지 알면 알수록 
더욱 그대를 할복하게 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 "이보게, 시치노스케. 
신불이 이 이에야스를 버리기 전에는 그대가 먼저 죽어서는 안  돼!" 치카요시는 여전히 찌
를 듯한 눈으로 이에야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이에야스는 치카요시의 부릅뜬 눈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허락하지 않겠어. 그대는  응석을 부리고 있는 거야. 세상이 
얼마나 매정하고 가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이에야스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
어. 시치노스케, 나는 응석을 부릴 상대조차 없어...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게." 시치노스케 
치카요시는 잠자코 이에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깊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정말 성주님께 응석을 부렸던 것일까.'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다른 슬픔이 가슴에 치밀
어올랐다.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성주님! 그럼 성
주님은 사부로 님을 이대로 버릴 결심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이에야스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말일세, 노부나가 님의  지시를 기다리
기 전에 자진해서 사부로를 처단하게 될지도 몰라. 나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겠어..." "자
진하여 처분하시다니요?" "그것은 묻지 말게,  앞으로 알게 될 것일세. 그보다도  자네는 곧 
오카자키에 가서 가신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힘써주지 않겠나?" 치카요시는 그 이상 더 할말
이 없었다.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겠다고 한 이에야스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쿠보 헤이스케가 오쿠다이라 노부마사 혼자 돌아왔다는 보고를 한 것은 그때였
다. 이에야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마사이  안색은?" 헤이스케에게 물었다. 헤이
스케는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이 창백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송합니다마는 이 헤이스
케으 낯빛과 똑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일은 결정된 거야."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 노부마사에게 수고가 많았다고, 다시 부를 때까지  좀 쉬라고 해라. 그리고 시치
노스케는 즉시 오카자키로 돌아가도록. 혼다 사쿠자에몬에게는  내가 지시한 것이 분비되었
거든 이리 오라고 일러라." 헤이스케가 절을 하고  나가자 히라이와 시치노스케 치카요시도 
얼른 물러갔다. 치카요시는 바로 오쿠다이라 쿠하치로를 찾아가 무언가 알아내려는 것이 분
명했다. 알면서도 이에야스가 굳이 제지하지 않은 것은, 이미 치카요시는 무슨 말을  들어도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혼자 남은  이에야스는 사방침을 앞으로 돌
려놓고 그 위에 천천히 턱을 괴었다. 열어젖힌 정원에서  시끄러운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
려왔다. 비가 내릴 징조이기라도 한  것일까. 싸리꽃이 미풍에 날리고,  땅의 이끼가 단풍든 
것처럼 고왔다. "그래, 역시 결말이 난 것이다..." 이에야스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물이 말라 눈동자가 따가운데, 쿠하치로 노부마사의 창백한 얼굴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아마 쿠하치로는 타다츠구의 변호가 마땅치 않아  타다츠구보다 한발 먼저 성에 돌아와  그 
뜻을 이에야스에게 전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에야스는 그 말을 듣기가 괴로웠다.
  
  결과가 좋았다면 두 사람이 따로따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 쿠하치로  노부마사의 보고를 
듣고 그런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이에야스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오쿠보 헤
이스케와 혼다 사쿠자에몬이 반쯤 조는  듯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혼다  님이 오셨습니다." 
헤이스케는 이렇게 말하고 물러났으나 이에야스는 아직 눈을 뜨려하지 않았다.  "성주님, 졸
고 계십니까?" "..." "오쿠다이라 노부마사 님이 돌아왔는데 어째서 곧 접견을 허락하시지 않
습니까?" "사쿠자에몬." 이에야스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나는 내일 오카자키로 떠
날 생각이야." "알겠습니다." 사쿠자에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모시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습니다." "나는 볼초 자식을 가졌어. 한발 먼저 오카자키에  가서 사부로 노부야
스를 우리 가문에서 제적시킬 생각이야." "사부로 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습니까?" 사쿠자
에몬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의 말과는 달리 미간의 주름이 슬프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은 난세가 겨우 새로운 질
서를 찾아내려 하는 중요한 때일세." "그렇습니다." "오다의 우다이진 님, 지금까지 고생하신 
보람이 겨우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는 중요한 때 우다이진 님의 사위가 된 것을 기화로  백
성들을 괴롭히고 아비의 말을 거역하며 중신들과 다툴 뿐만 아니라... 특히 말일세..." 이에야
스는 꿀꺽 침을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듯 나직이 말을 이어나갔다. "정신나간 츠키야
마가 타케다 쪽과 내통하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체한  일은 용서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오카자키에 가서 처단하겠어. 그러나 사부로는 우다이진 님의 사위, 아무런 통보
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추궁이  있을지 몰라. 오구리 다이로쿠를 사자로  보내 아즈치에 이 
사실을 고할 생각인데, 그대도 이의가 없겠지?" "예." 사쿠자에몬은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얼굴을 돌렸다. 
  '이 얼마나 강인한 분인가, 성주님은...' 사쿠자에몬의 판단에는, 비록 변명에는 실패했어도 
사카이 타다츠구나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는 어떤 언질도 남기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다. "지
시대로 하겠습니다." 더구나 할복을 장담하고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따라서  두 사람
을 뒤쫓듯이 노부나가의 문책사가 아즈치를 떠났을 것이 분명했다. 이에야스는 문책사가 도
착하기 전에 노부야스를 처단하겠다는 뜻을 이쪽에서  먼저 노부나가에게 전할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뜻에 따라... 이렇게 
말하려는 것이 이에야스의 뜻임을 깨닫는 순간 사쿠자에몬은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의가 없다면 즉시 다이로쿠를 아즈치에 보내겠어. 그대가 가서 이리 불러오게." 이에야
스는 나직한 소리로 말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만히  눈을 떴다. "예, 곧 불러오겠습니다." 사
쿠자에몬은 얼굴을 돌린 채, 허리를 구부리고 일어나 소리도 내지 않고 나갔다.
  
  그날 안으로 오구리 다이로쿠는 하마마츠를 떠났다. 자기 아들 사부로 노부야스에게 잘못
이 있으므로 처단하려 하니 말리지  말라는 이에야스의 서신을 휴대하고...  그런 후 비로소 
이에야스는 오쿠다이라 쿠하치로와, 그 조금 후에 돌아온 사카이 타다츠구를 대면했다. 타다
츠구는 이에야스 앞에 무릎을 꿇고 창백한 얼굴로 보고했다. "성주님! 이 타다츠구는 나잇값
도 못하고 오다 님에게  면박만 당했습니다." 이에야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곧 오다 님의 사자가 도착할 것입니다. 사자가 가져온  글에 이 타나츠구를 비롯한 중신들
이 작은 성주님에 대해 불신을 호소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때도 이에야스는 가볍
게 대답했다. "그래?" 외교에 익숙지 못하고 우직하기만 한  타다츠구와 타다요가, 노부나가
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사부로 노부야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그런 
뒤에야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실은 나도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이에야스가 말했다. "사부로를 오카자키에서 추방하
기로 했네. 무엇보다도 아비인 나를 업신여기고 있어.  이대로 두면 가문의 장래가 우려돼." 
젊은 오쿠다이라 쿠하치로는 이에야스를 빤히 노려보았다. 사카이 타다츠구는 푹 고개를 떨
구고 있었다. 자기들이 설언한 것을 크게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밑바닥에
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변명이 깔려 있다는 것이 이에야스로서는 견딜 수 없
었다. "알겠네. 알겠으니 쿠하치로는 나가시노로, 타다츠구는  요시다 성으로 돌아가 철저하
게 코슈 군의 침입에 대비하게."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의 문책사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하마
마츠를 출발하여 오카자키로 향한 것은 8월 1일이었다. 가을 향기 짙은 가랑비가 대지를 적
시고, 엔슈나다듸 파도소리가 가까이에서 더욱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에야스는 혼다  사쿠자
에몬과 그의 지휘 아래 있는 2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말에 올라 성을 나왔다. 그리고는 사쿠
자에몬을 돌아보고 약간 조소가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사쿠자에몬, 여기서  군사를 거느
리고 오카자키에 쳐들어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테지." 
  사쿠자에몬은 얼굴을 돌렸다. "쳐들어가다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아니야, 쳐들어가는 
것일세." 이에야스는 고삐를 조종하였다. "일본을 위해 살려둘 수 없다고  한 우다이진의 마
음을 존중하여 내 아들의 성을 공격하러 가는 거야." "그런 말씀은 듣기가 민망스럽습니다." 
"나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 아닌가... 사쿠자에몬, 방심해서는 안 돼. 우리 두 사
람의 첫 출전 때처럼 조심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 절대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세." 사쿠
자에몬은 그 말을 듣고 휙 말머리를 돌려 행렬 뒤쪽으로 물러갔다. 외곬으로만 생각하는 사
부로 노부야스가 어쩌면 노부나가의 부당성을 내세워 아버지와 일전을 벌이려 할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성을 떠날 무렵부터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기 시
작했다.
  
  
    추방
  
  사카이 사에몬노죠 타다츠구가 오카자키에 들르지 않고 그대로 하마마츠로 돌아갔다는 사
실은 노부야스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정이 더 심각한지도 
모른다." 그래도 노부야스는 아직 자기한테 파멸이 왔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비록 일시
적인 오해는 있다고 해도 노부나가는 장인이고 하마마츠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여러 모로 교섭을 벌이다 보면 반드시 자신의 결백이  입증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
러나 어머니인 츠키야마의 경우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켄케
이도 수상했고, 오가 야시로와 어머니도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노나카 
시게마사의 말대로, 혹시 카츠요리가 어머니에게 보낸 서신의 사본이 노부나가의 손에 들어
갔다면, 그때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 
  '이 일에 대해서는 직접  어머니께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노부야스는 그날도 오전에는 
마장에서 보냈다. 그리고는 오후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츠키야마를 찾아갔다. 츠키야마의 시
녀는 그 후 모두 교체되어 마중 나온 것은 오하야라는 소녀였는데, 노부야스를 보고는 안도
한 듯 츠키야마의 거실로 안내했다. 무언가 꾸중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츠키야마는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거실 중앙에 융단을 깔게하고 거
울을 세워놓고 있었다. "오, 사부로 님이  웬일로 여기까지. 오하야, 어서 방을 정리하여라." 
츠키야마는 자기도 얼른 일어나 노부야스가 앉도록 담요를 가져다 놓았다. 
  어느새 여성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축 늘어진 피부가 슬퍼  보였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그
대로 드러나 보였다. "어머님..." "그래,  곧 차를 끓이게 하겠어요.  매일같이 열심히 무예를 
닦는다면서요?" "오늘은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일...?" 
츠키야마는 기대에 찬 듯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마침내 소실을 두어야겠다는 것을 깨
달았어요? 스물이 넘었는데도 후사가 없다면 조상님 뵐 면목이 없는 일이니까." 노부야스는 
눈길을 돌려 잠시 비가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실은 아즈치의  우다이진 님이 뜻하지 
않은 요구를 해오신 것 같습니다." "뭐, 우다이진 님이라고?  사부로 님, 이 어미 앞에서 아
무리 장인이라 해도 우다이진이라고는 부르지 말아요. 노부나가는 이 어미의  원수예요." 노
부야스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그 노부나가 님으로부터 어머님은 목을 베고 이 노부야스는 할복하게 하라는  지시가 있
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했어요?" 츠키야마는 처음에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는 표정으
로 시녀가 가져온 찻잔을 들었다. "노부나가가  이 어미를 어떻게 하라고 했다고요?" "어머
님은 참수하고 이 노부야스에게는 할복을..." 노부야스는 다시  한 번 조용히 말하고 가만히 
어머니로부터 눈길을 돌렸다. 바로 그 무렵 이에야스의 행렬이 이미 본성 현관에 도착해 있
었으나, 노부야스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츠키야마는 한순간 바보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노부야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나를 참수하라고?" "이 노부야스에게는 할복을." "도대체  그것을 누구에게... 누구에게 지시
했단 말이에요?" "하마마츠의 아버님께." 노부야스는  되도록 어머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
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히라이와 치카요시를 하마마츠로 보
냈습니다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뭐, 하마마츠의 아버님께..." 
  츠키야마는 다시 한 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나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 
하마마츠의 아버님이 언제부터 노부나가 따위의 부하가 되었단 말인가요? 자기 아내와 아들
을 참수하고 할복케 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도 잠자코 있단 말이지! 호호..." "어머
님." "왜 그래요, 사부로 님?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대답했겠지요? 사부
로 님에게는 토쿠히메라는 인질도 있으니까." "어머님!" "아버님은 그런 결심을  못 내릴 무
장은 아니에요. 사부로 님도 곧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 일에 대해 어머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미련 없이 일전을 벌이기 위해서?" "그런 결정은 나중에  할 일. 어머님은 카츠
요리에게 내응하겠다는 서약서를 보내시고 카츠요리로부터 약속하는 글을 받으신 기억이 있
습니까?" "뭐!" "아즈치에 그 사본이 있다고 합니다. 어머님의 시녀  코토죠의 손에서 그 동
생인 키노에게 전해지고 키노에게서 다시  코지쥬의 손을 거쳐 전달됐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자가 모반하려는 증거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머님은 뭔가 생각나시는  것이 없으십니
까?" 순간 츠키야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기억나는 게 있거든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씁해주십시오. 그런  뒤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
다 다른 오해라면 몰라도 아버님을 배반하고 적과 내통했다면 이 노부야스는 할말이 없습니
다." "호호호..." 츠키야마는 또다시 터져나갈 듯이 웃었다. "무언가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겟
어요?" "그럼, 어머님은 정말..." "약속하는 서신을 받은 일은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모두 적
을 속이기 위한 책략이에요." "적을  속이기 위한 책략이라니요?" "야시로와 켄케이가  적의 
첩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도 한패가 되는 것처럼 했을 뿐이었어요." 
  노부야스는 어머니를 똑바로 노려본 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적을 속이기 위한 책략...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증거가 드러난  이상 가련한 어머니를 
구할 길은 없단 말인가...?" "아뢰옵니다."  데리고 왔던 시동이 옆방에 와서  머리를 조아렸
다. "방금 하마마츠에서 큰 성주님이 본성에 도착하셨으니  마중 나오시라는 히라이와 치카
요시 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노부야스는 어머니를 잔뜩 노려보며 일어났다.
  
  츠키야마가 켄케이나 오가 야시로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은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가 너무 방심했었구나...' 노부야스는 급히  현관으로 나가면서  새삼스럽게 어머니를  불쌍
히 
여기고 자신의 부주의를 후회했다. 여러 가지 풍문을 듣고는 있었다. 그러나 모반 같은 거창
한 일은 하지 못할 어머니,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 생각하고 위로해왔는데, 
그것이 도리어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타케다 카츠요리는 다시 힘을 되찾고 틈만 있으면 스
루가와 토토우미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서약서니  내응을 약속하는 글이니 하
는 것이 발각되었다면 자기 힘으로는 어머니를 구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츠키야마의 거처
에서 나와 본성으로 향하는 도중, 히라이와 시치노스케 치카요시가 머리와 어깨에 가랑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눈에 띌 만큼 나이가 든 초췌한 모습, 눈 가장자리에는 
크게 기미가 끼어 있었다. 
  "작은 성주님..." 치카요시가 노부야스를 부르면서 곁으로  다가와 나무 사이로 성문을 가
리켰다. "저것을 좀 보십시오." 노부야스는 흠칫했다.  이에야스가 데리고 온 듯싶은 군사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치카요시, 저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작은 성주님, 절대로 성주님께 
거역하시면 안 됩니다." "으음, 그럼 아버님도 우다이진 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는 
말인가?" "예. 그 이상으로 괴로우신 심정...  우선 큰방으로 가셔서 대면부터 하십시오." 노
부야스는 부글부글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피를  나눈 아들도 믿지  못한다
는 
말인가.' 불만이 끓는 물처럼  가슴속으로 퍼져나갔다. "작은  성주님, 칼을 이리 주십시오." 
그곳에 서 있다가 노부야스로부터 허리에 찬 칼을 압수한 것은 사카키바라 코헤이타였다. 
  "이놈..." 꾸짖다가 노부야스는 치카요시를 돌아보았다. 치카요시는 애원하는  듯한 눈길을 
노부야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아버님께 이미  이 성을 반납당한  것이로구
나." "성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다. 어서  안내하여라." 노부야스가 현관에 들어섰
을 때 이에야스는 정면 상좌에서 얼음 같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님,  영접도 나
가지 못하고..." 노부야스 역시 아버지를  노려보듯이 하고 앉았다. 이번에는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치밀어올랐다.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고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
았다. 윗 자리에 앉아 있던 혼다 사쿠자에몬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오늘부터  이 사쿠자
에몬이 오카자키의 성주가 되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에야스가 입을 열었다. "사부로 노부야스, 너를 오늘 날짜로 이  성에서 추
방하고 당분간 오하마에서 근신할 것을  명한다." 모든 감정을 죽인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 말에 노부야스는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노부야스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미 자기 감정을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게 
된 젊은이의 당혹과 울음이 뒤섞인 웃음소리였다. "갑자기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 사
부로가 아버님을 업신여겼다고... 하하하... 그런 농담을... 당분간 전쟁도 없을 것이므로 오하
마에서 잠시 낚시질이나 매사냥이라도 하라는 뜻입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는  아버님의 
무장이 너무 거창하십니다." "말을 삼가라, 노부야스." 이에야스는 허둥대는 자기 아들을 차
마 보지 못했다. "치카요시, 시게마사,  코헤이타, 서둘러 노부야스를 오하마로  보내도록 하
라. 알겠느냐, 노부야스. 거역하면 안 된다. 오하마에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도록 해라." 이렇
게 말하고 얼른 일어서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노부야스는 터질 듯한 소리로 불렀다. 지금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긴장되고 눈썹과 입술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잘못한  기억이 없다는 말이
냐?" "예, 없습니다." 
  노부야스는 때려부수듯이 대답하고 무릎걸음으로 두서너 걸음 다가갔다. "이 사부로는 아
버님의 자식인데도..." "닥쳐라!"  빨갛게 충혈된  이에야스의 눈이  노부야스를 쏘아보았다. 
"너는 망국적인 춤에 빠져들고 농부가 남루한 옷을 입었다고 하여 죽인 기억이 없다는 말이
냐?" "그것은... 그것은 놈이 이 사부로의 목숨을 노렸기 때문에..." "시끄럽다. 매사냥에서 돌
아오다가 아무 죄도 없는 승려를 말안장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죽인 것은 누구였더냐?" "그 
일에 대해서는 이미 사죄가  끝난 일..." "사카키바라 코헤이타에게  활을 겨눈 기억도 없느
냐? 오와리에서 따라온 코지쥬를 죽인 기억은...?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타케다 카츠요리와 
내통하고 츠키야마와 함께 이 이에야스를 죽이려고 꾀한 방자한 놈. 치캬요시, 어서  노부야
스를 데려가라." "아스 아버님! 아버님! 그것은 지나치게... 아버님..." 
  이때 벌써 이에야스의 모습은 그 자리에 없었고, 노나카 시게마사와 히라이와 치카요시가 
노부나가의 두 팔에 매달려 울고 있었다. 좌중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혼다 사쿠자에몬 
한 사람뿐이었다. 그 역시 잔뜩 천장을 노려보고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갑자기 오카
모토 헤이자에몬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에야스를  따라왔던 마츠다이라 이에타다가 쥐
어짜듯 중얼거렸다. "작은 마님은 비정한 분이야!" 모두 이 비극의 원인은  토쿠히메가 친정
에 보고한 탓이라 믿고 있다는 증거였다. 노부야스는 마침내 넋을 잃은 듯  주저앉았다. "작
은 성주님, 지금에 와서 거역하시면 안 됩니다. 우선은 일단 오하마로 가셨다가..." 
  치카요시가 노부야스의 귀에 속삭이자 노부야스는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하마로 가도록 하자." "그래야 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은 팔월 삼일... 아내도 아
이들도 만나지 않고 떠나겠다. 오늘은 운이 나쁜 날이었어." 다시 오카모토 헤이자에몬이 흐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도 노부야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노부야
스는 넋 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모두에게 걱정을 끼쳤다. 그러나... 흥분하지 
말게. 이 이상 더 아버님을 진노케 하면 안 돼." 노부야스의 눈에는 이에야스의 진노한 모습
이 보이는 듯, 일어나 가만히 처마 끝의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근시가 노부야스의 출발을 알려왔는데도 이에야스는 잠시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빗소
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으나 기온은 계속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계절마다 닥치는 태풍이 몰
고 오는 비인지도 몰랐다. 사방에서 바람소리가 더욱 요란해지고 있었다. 어제까지 노부야스
의 거실이었던 서원에 묵묵히 앉아 있으려니, 이에야스는 지난  37년간의 인생이 모두 비참
한 악몽처럼 생각되었다. '이처럼 비참해진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자기와 츠키

마와의 불화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불화의  원인은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
다 노부나가에게 죽은데에 있었다. 물론 노부나가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요시모토가 노부
나가를 죽였을 것이 분명하다. 이 세상의 일은 모든 것이 원인이 되고 또 결과가 되어 영원
히 돌고 도는 비탄의 연속일까? 
  "성주님..." 그 역시 목상처럼 서원 입구에 앉아 있던 혼다 사쿠자에몬이 입을 열었다. "이
미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사쿠자에몬, 악연이란 정말 있는 것 같
아." "악연은 성주님 한 분에게만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가문의  최대 위기는 미카
타가하라 전투 때...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지금은  그 이상의 위기가 닥친 것  같습니
다." "알겠네. 그럼, 츠키야마의 거처에 울타리를 치고 일절 출입을 금지시키도록 하게." "그 
준비는 이미 끝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토쿠히메의 신변을  잘 경계하라는 말이로군." 
"예. 성주님이 그 지시를 내리지 않으시면 작은 성주님의 부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
니다." "그렇겠군. 이시카와 타로자에몬을 이리 부르게. 내가 직접 지시를 내리겠어." 이에야
스는 이렇게 말했다. "비가 가을 홍수를 몰아올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군..." 고개를 갸웃
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사쿠자에몬, 나는 절대로 토쿠히메는 벌하지 않겠다. 그 대신 츠키야마를  처단할 생각이
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양쪽  모둔 난세라는 파도에 조롱당하는  가련한 여인들, 힘을 
갖지 못한 자를 죽이는 것은 무장의 할 일이 아님을 깨달았네." "알겠습니다. 성주님의 심정
을... 그럼, 타로자에몬을 불러오겠습니다." 큰방에는 아직 아무도 자리를 뜬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이에야스가 이토록 엄하게, 이토록, 신속하게 노부야스를 벌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작은 마님, 따님을 두 뿐씩이나 두고 있으면서도 작은 성주님을 친정에 참소
하다니." "아니, 나는 사에몬노죠 님이 저주스럽소. 작은 마님이 아즈치에 가셨을 리는 없으
니 밀고한 것은 그분임이 틀림없어요." "좌우간 모두  피로써 서멍하여 성주님께 탄원을 드
려야 해요. 이대로 있으면 틀림없이 할복을 명하실 거요." "만일  성주님께서 가납하시지 않
으면?" 이런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으나 사쿠자에몬은 무표정을 가장하고 밖으로  나와 이시
카와 타로자에몬에게 이에야스의 말을 전했다. 큰방에는 어둡게 밤이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오카자키 성안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어수선했다. 사부로 노부야스
가 오하마로 떠나고, 즉시 츠키야마의 거처 주위에 출입구가  없는 울타리가 쳐지고 감시병
이 배치되었다. 이어서 토쿠히메 주변에는 20명 남짓한 경호원이 딸렸다. 그동안 마츠다이라 
겐바 이에키요와 우도노 하치로 야스사다가 이에야스를  찾아와 노부야스의 구명을 청했다. 
이에야스는 그들의 호소를 한마다로 눌러버렸다. "자기 자식을  아비가 처단하는 심정이 오
죽하겠는가. 다시는 그런 말 꺼내지 말게." 
  성안 처리가 끝나자 곧 오카자키를 둘러싼 주위의 작은 성들에 대한 방비를 굳히기 시작
했다. 그것은 마치 노부야스가 아버지에게 역습을 가하려 하고 있기라도 한 듯 삼엄했다. 셋
째 성에 있던 이에야스의 생모 오다이까지도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록 
철저한 것이었다. 혼다 사쿠자에몬만은 이러한 이에야스의 마음을 슬플  정도로 잘 알고 있
었다. 이에야스는 어느 것 하나도 노부나가로부터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다. 노
부나가가 장인과 사위라는 사사로운 정을 떠나 일본에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눈믈을 
머금고 노부야스의 자결을 강요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상,  이에야스 역시 이에 못지않
는 단호하고도 차원 높은 처치를 할 필요가 있었다.  노부나가가 천황이 택한 우다이진이라
면 이에야스 역시 천황의 사콘에곤 소장. 결코 노부나가 개인의 신하가 아니라는 입장을 확
실히 하기 위해서는 만약의 경우를 위한 처리에 추호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혹시 
이 이상 더 소란을 초래하는 일이 있다면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된다는 엄한 자기 반성이 밑
바탕에 깔려 있었다. 성안 배치가 끝나자 이에야스는 다시 큰방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는 오하마, 오카자키와 함께 작은 삼각형을 이루는 니시오  성에 마츠다이라 이에타다를 배
치하고, 복쪽 변두리 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마츠다이라  겐바와 우도노 하치로사부로에게 
수비를 명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방심하면 절대로 안  된다, 알겠는가? 이 성은 사쿠자에몬에게 
맡기겠는데, 마츠다이라 코즈케노스케 야스타다와 사카키바라 코헤이타 야스마사 두 사람은 
오늘밤부터 앞 뒤 성문에 대한 불침번을 담당하도록 하라."  비는 밤이 깊어짐에 따라 점점 
더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날부터 5일  동안 계속해서 내린 비로 피해
가 막대했다고 하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배치에 임했고, 나머지  사람
들은 큰방에서 이에야스에게 서약서를 썼다. 어떤 일이 있어도 노부야스와는 서신을 교환하
지 않겠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에야스가  그 서약서를 모아가지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시(오후 12시)가 지나 있었다. 아직 덧문은 닫히지 않았고, 발을 늘어뜨린 듯한 
빗줄기와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소리가 후텁지근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정원에서부터 거실로 
몰아왔다. 이때 그 빗속에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갈대 삿갓에 농부의 도롱이를 걸
치고 온몸이 흠뻑 젖은 맨발의 사나이. 그 사나이는  이에야스의 거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을 보았다. 샘물 옆에서 뒹굴 듯이 마루 앞으로  오더니 절규하듯 외쳤다. "아버님!" 그대로 
정원 흙 위에 두 손을 짚고 울기 시작했다.
  
  이에야스는 깜짝 놀라 정원의 어둠  속으로 눈길을 던졌다. 정원석에  떨어져 튀어오르는 
빗방울 때문에 갈대 삿갓과 농부의 도롱이 차림으로 조아린 상대의 모습을 확인할 때까지는 
잠시 시간이 걸렷으나, 목소리가 노부야스의 것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니... 너는?" 이
에야스는 혹시 노부야스가 젊은 혈기에 못 이겨 반항할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
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빗속을 뚫고  몰래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너는... 너는, 이 아비의 명령을 잊었느냐?" "아버님... 이대로 헤어지면 이 노부야스
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합니다. 그래서 치카요시와 우타노스케 마사이에에게 도움을 청했습
니다. 그 두 사람은 꾸짖지 마시기를..." "사쿠자에몬도 한통속이 되어 통과시켰겠구나?" "아
닙니다. 사카키바라 코헤이타가 만일 꾸중이 내릴 때는 책임을 지겠다고..." 노부야스는 다시 
하얀 손으로 땅을 짚고 어깨를 떨면서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이에야스는 당황하여 비가 쏟아지는 정원으로 눈길을  보내다가 거실을 둘러보았다. 어디
에도 두 사람의 대면을 엿보는 사람은 없었고 시동마저도 옆방으로 물러가 숨을 죽이고 있
었다. 안타까운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져서는  안 된다!' 엄하게  자신을 꾸짖었다.  "아

님..." 다시 노부야스가 말했다. "아버님의 고통...  치카요시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건방진 소리 하지 마라. 그걸 아는 놈이 이런  모습으로 몰래 숨어들어왔다는 
말이냐?" "미련이 있어서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저도 무장의 아들이니 무장의  체면은 잘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어떻다는 말이냐? 원래 무장의 임무는 자기 목숨을 버리고 천황을 섬기는 데  있
다... 그렇게만 말한다면 넌 알아듣지 못할 게다. 천황을 섬긴다는  것은 천황의 보물, 즉 백
성들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야. 백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 하나쯤은 아까
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장이다. 그래서  키요야스 할아버님도 스물다섯에 목숨을  버리셨
고, 아버지 히로타다 역시 스물넷에 세상을 등지셨다. 나 이에야스도 옳고 그름을 가려 물러
설 수 없을 때는 언제든지 전쟁터에서 깨끗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있다. 그런 내 자식인 
네가... 자기 잘못도 알지 못하고 미련을 갖다니 부끄럽지 않느냐?" "아버님!  너무 야속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이처럼 은밀히 찾아뵌 것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이  노부
야스의 죽음이 가문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어느 틈에 노부야스는 새어나오는 불빛 앞으로 저도 모르게  기어나왔다. 삿갓을 벗고 머
리도 눈썹도 얼굴도 입술도 젖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눈만이 푸른빛을 발하며 불타고 있
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사부로가 타케다  쪽과 내통했다는... 그것은 너무 가혹하신 말씀입
니다... 이것만은 믿어주십시오. 불초 자식이기는 하나 이 노부야스는... 아버님의 아들입니다. 
아버님을 거역한 아들이라고 하면 저승에서... 저승에서... 할아버님께도 증조부님께도 면목이 
없습니다." 
  이에야스는 비틀거리면서 거실의 문기둥을 붙들고 겨우 자기 몸을 지탱했다. 크게 통곡하
고 싶은 격정이 돌풍처럼 가슴에 몰아치고 피를 끓게 했다.
  
  인간이 하나의 길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란 이처럼 괴롭고 어려운 것일까.  '노부야스! 이 
아비도 원통하기 짝이 없다...' 이에야스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위해
서라고 정면으로 도전해온 이상 이쪽에서도 물러설 수 없다. 노부나가에게 죽이라는 명령을 
받아야 한다면 이 손으로 먼저 처단하고 가엾은 녀석이라 마음으로 울어주고 싶다...고. 이런 
말을 하면 아비의 면목이 서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모른다는 말인가... 
  "아버님! 아버님만은 이 노부야스에게 두 마음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이 한마디만 해주십
시오! 그 말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 "아버님! 왜 잠자코 계십니까?  아버님도 이 노부야
스가 카츠요리와 내통했다고 정말로 믿고 계십니까?" "..." "그 의혹을 남긴 채 할아버님이나 
증조부님 곁에 가라고 하시다니... 너무  잔인하시지 않습니까?" "멍청한 자식!"  이에야스는 
눈을 감는 대신 무섭게 치뜨고  노부야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은 어느 쪽도 
상대에게 통할 힘이 없이, 헛되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길 뿐이었다. 이에야스는 참다못해  말
했다. "그... 그 단 하나의 부탁, 그게 바로 미련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근신하라고  명했는데 
너는 그것조차 참지 못할 만큼 무력한 녀석이란 말이냐!" 
  노부야스는 한쪽 무릎을 세운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말씀 드렸는
데도..." "시끄럽다. 돌아가라!" 비바람이 다시 노부야스에게 휘몰아쳤다. 귀  앞에 난 머리카
락이 모두 한꺼번에 얼굴에 달라붙고, 절망에 빠진 눈이 원한을 담은 채 불타고 있었다. "무
장이란 일단 명령을 받으면 태산이 무너져도 움직이지 않는 법이야. 알겠느냐. 어서  돌아가
서 경거망동하지 마라. 근신하라는 명을 받았거든 다음 명령이  내릴 때까지 근신하는 것이 
무장이야." 노부야스는,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옆에 
있는 삿갓을 맨발로 마구 짓밟았다. 마챔내 애원이 분노로 변한 모양이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푹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울었다. 이에야스는 의연히 선  채 자기 아들을 바라보고 있
었다. "돌아가겠습니다. 예, 돌아가겠어요..." 노부야스는 작은 소리로  한두 마디 중얼거리고 
어깨를 떨군 채 캄캄한 폭우 속을 비틀거리듯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하다가 정원석에 발
이 걸려 쓰러진 것은 어둠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만은 나의 결백을 알아주실 것이다-이
렇게 믿고 그러기를 기대하며 찾아온 젊은이가 그 꿈과 기댈 곳을 끝내 분쇄당한 절망의 모
습이었다. 노부야스가 흰 발바닥을 보이다가 이윽고 완전히 어둠 속에 파묻혔다. 그  뒤에는 
단지 거센 바람소리와 빗소리만이 남았다.
  
  
    사자의 눈물
  
  이튿날 바람은 좀 약해졌으나 비는 여전히 음산하게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기온도 어제
보다는 상당히 내려가 아침나절에는 싸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날이  밝은 뒤 토쿠히메는 곧 
내전을 지키는 경호책임자 이시카와 타로자에몬을 바깥  복도 입구로 찾아갔다. 타로자에몬 
자신도 불침번을 섰던 모양인지 눈이 벌겋게 되어 복도 옆 방에 창을 세워놓고 대기하고 있
었다. "작은 마님이시군요. 바깥출입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타로자에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누가 성을 공격해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작은 성주님은 무얼 하고 계신
지 궁금하군요." "작은 성주님은 이미 이 성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시카와 타로자에몬 역시 
이번 일의 원인이 토쿠히메의 참소에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대답이 거칠었다. 
  "이 성에 안 계시다니... 그럼, 하마마츠에  급한 일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요?" "글쎄요... 
작은 마님께 그 말을 해도 괜찮을지, 이 타로자에몬은 지시를 받지 못했습니다마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제부터 성안의 움직임이 왠지 부산스럽고  오늘 아침에도 인마 소리가..." 
말하다 말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설마 성주님께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니겠죠?" 이 말
을 듣고 타로자에몬은 반쯤은 반감, 반쯤은 의아해하는 눈길로 토쿠히메를  바라보았다. "그
럼, 작은 마님은 아무것도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그  말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같이 들
려 마음에 걸리는군요. 타로자에몬, 말해보세요." "이거 정말 뜻밖입니다." 
  타로자에몬은 일부러 크게 볼을 부풀렸다. "저는 작은 성주님의 신상에 관한 일은 진직부
터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 "아니, 몰라요. 성주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어요. 답답
하군요, 수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세요." 타로자에몬은 다시 한 번 무뚝뚝하게 고개를 갸웃
했다. 토쿠히메이 눈에 떠오른 놀람과 초조해하는 모습에 거짓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작은  성주님은 어제 이  성에서 추방되어 

폐되셨습니다." "예? 성주님이 이 성에서 추방되시다니..." "그렇습니다. 우선 오하마에서  근
신하시도록 명령받고 나중에 할복하시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어제부터  이 타로자에몬도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소란에 대비하기 위해 마님과  작은 마님을 경호하고 있습니다." "타
로자에몬! 대관절 성주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츠키야마  마님과 함께 타케다 쪽과 내
통한 협의입니다. 누가 그런 일을 아즈치에 낱낱이 고했는지, 아즈치의 우다이진 님이  살려
두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타로자에몬은  그만 울분에 못 이겨  이렇게 말하고 나서 
짓궂게 토쿠히메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토쿠히메의 입술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아즈치의 아버지로부터 그런..." "예. 분부
가 계셨기 때문에 아무리 소중한 작은 성주님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시며... 이것이 성
주님의 심정입니다. 가신 일동은 울분이 골수에 사무쳤으나, 성주님이 친히 하마마츠에서 군
사를 거느리고 오셔서 조용히 하라는 엄명을 내리셨기 때문에 모두 눈물을 삼키며 참고 있
습니다." 이시카와 타로자에몬은 말을 하는 동안  점점 더 토쿠히메가 미워졌다. 좀더  심한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자기의 임무를 생각하고 겨우  참았다. '나는 작은 마님을  보호하라
는 
명령을 받고 있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도 부드러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 작은 성
주님은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도  오하마에서 농부 차림으로 몰래  오셔서..." 그래서 조금 
전에 사카키바라 코헤이타에게 들은 노부야스의 비참한 모습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노부야스가 모반을 꾀했다니 너무  하십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일에 대해서만은 
저를 믿는다고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러나 성주님은 끝내  이를 뿌리치시고 마루에도 오
르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미 토쿠히메는 타로자에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가슴 
가득히 미칠 듯한 감정이 소용돌이쳐 자기가 가신들에게 원한의 대상이 되어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무어라 말하고 있는 타로자에몬에게 홱 등을 돌리고 허공을 밟
는 듯한 걸음걸이로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키쿠노... 키쿠노, 어디 있느냐?"  "예, 작은 마
님. 여기 있습니다." "오,  키쿠노... 불러오너라, 곧  이리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누구겠느냐, 두 아이 말이다." 키쿠노는 둥근 눈을 더욱 둥그렇게 뜨고 나가  공을 치며 놀
던 두 아이이 손을 잡고 돌아왔다. "따님들이 오셨습니다." 
  그 말에 지금까지 허공을 쳐다보고 있던  토쿠히메. "오오." 눈길을 그쪽으로 보냈다. "키
쿠노, 너는 물러가 있거라. 혼자  좀 생각할 일이 있다."  "예. 그럼, 따님들은?" "두고  가거
라."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에 딸들은  긴장하여 자세를 바로 했다. "얘들아."  "예." "예. 
왜 그러세요, 어머니?" "큰일이 생겼어. 뜻하지 않은 큰일이." "큰일이라니요?" "아버님이 갇
히셨어... 이 말을 해도 너희들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아버님에게, 아버님에게 큰일이 생
기셨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너희들과는 상의할 수도 없고." 두 딸은 의아하다
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니, 공치기를 하면 안 될까요?" "안돼." 날카롭게 대답하고 다
시 토쿠히메는 쏘는 듯한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바깥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캄캄하기만 하고, 계속 쏟아지는 비가 주위에 음산한 분위
기를 감돌게 하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딸은 놀라울 정도로 노부야스를 닮았다.  열
한 살 때부터 쌍둥이처럼 같이 지내온 남편의 딸. 부부로서는 때로 화나는 일도 있고,  그래
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감정과도  비슷했다. 
인간이 자기 손발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부로서 당연하게 알고 
조금도 의심히지 않는 중에 여러 가지 불평과 탄식이 있었다. 그런데 노부야스는 지금 토쿠
히메의 곁에서 격리되어 있다. 단지 격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토쿠히메는 자기 손발이 잘려
나간듯한 당혹스러움을 느꼇다. 열한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 10년 동안, 토쿠히메의 생애  전
부라고 해도 좋을 세월 동안 노부야스는 토쿠히메의 일부였다... 
  "얘들아..." 다시 토쿠히메가 말했다.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성주님
은 너희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니까." 딸들은 공치기를 못하게 해서 얼굴이 잔뜩 부어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아즈치에 다녀와야겠다. 너희들을 위해 소중한 아버지를 되찾아와야
겠어." "어머니, 아즈치가 어디예요?" "아즈치는 오미 지방, 너희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성이
야. 너희들에 대해 잘 말씀 드리면 외할아버지도 틀립없이 들어주실 거다. 서둘러서  아즈치
에 가야겠어... 키쿠노, 키쿠노." 당직인 로죠를 부르고, 히라이와 치카요시와  상의하여 즉시 
떠날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이때 토쿠히메 앞에 로죠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작은 
마님, 성주님께서 이리 오십니다." "뭐, 아버님이...? 알겠다, 마침 잘 됐어. 아버님께 이 몸이 
길을 떠나야겠다고 말씀 드려야지. 그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있거라." "예. 아가씨들, 할
미하고 저쪽으로 가요." 
  아이들이 나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무장을 한 이에야스가 이시카와 타로자에몬의  안내를 
받으며 토쿠히메의 거실로 들어왔다. 투구는 오쿠보 헤이스케가 받쳐들고, 칼은 이이 만치요
가 들고 따라 오고 있었다. "아버님,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에야스는 그녀에게
서 시선을 돌리듯이 하고 상좌로 걸어가 타로자에몬이 갖다주는 걸상에 앉았다. "비가 많이 
오는군, 토키히메." "예." "너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실은 사부로에게 잘못된 점이 있어 
이 성에서 추방했다." "저어... 그 일과 관련하여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토쿠히메
는 창백해진 얼굴을 들었다가 황망히 머리를 조아렸다. "저를 지금  아즈치로 보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순간 이에야스는 타로자에몬과 얼굴을 마주보았다. 토쿠히메가  위험을 느끼고 
있는 줄 알았다.
  
  "토쿠히메, 너는 우다이진 님의 딸이다. 절대로 네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염려 
말아라." 이에야스는 애써 불쾌한 표정을 감추고 타이르는 어조로 부드럽게 말했다. "오래지 
않아 우다이진 님으로부터 너의 신상에 대해 얘기가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 성에 머무
르도록 하여라." "아닙니다!" 토쿠히메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문에 따르면 아즈치의 아버지가 작은 성주에게 당치도 않은 의혹을 품고  잇는 듯합니
다. 하지만 작은 성주의 결백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곧  아즈
치로 가서 사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아니, 그럼  사부로를 위해 아즈치에 가겠다는  말이
냐?" "예. 그것이 아내 된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으
음, 사부로를 위해... 그렇다면 내가 잘못했구나. 그만 오해를 하고 있었어." "아버님, 그이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성급하여 화를 내는 일은 있으나  그릇된 일은 절대 하지 않
습니다. 딸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 저에게는 천지와도 바꿀 수 없는 남편입니다." 
  이에야스의 눈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더니 마침내는  눈언저리가 빨갛게 되었다. "토쿠히
메..." "예." "너는 어째서 한두 해 전에 진작 그런 마음을 갖지 못했느냐?"  "예... 솔직히 말
씀 드리겠습니다. 작은 성주가 추방되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저에게  그이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얼른 군선을 펴서 얼굴을 가렸다. 
토쿠히메의 말에 전혀 가식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인생의 얄궂음이 무섭게 감정을 뒤흔들었
다. "부탁입니다. 저를 아즈치로 보내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작은 성주의 결백을 입증하겠습
니다." "토쿠히메..." "예.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아니야.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이번 일은 우다이진 님의 분부가 아니다. 이 이에야스의 뜻에 따른 것이다." "예? 그러면 아
버님의...?" "그래. 따라서 아즈치에는 갈 필요가 없어." 
  토쿠히메는 순간 아연한 표정으로 이에야스를 쳐다보고 이번에는 미친 듯이 고개를  숙였
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저를 보아 작은 성주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버님, 이렇게 빌겠습니다. 
아버님을 배반하다니... 틀림없이 부자간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못된 자들의 음모임이 틀림
없습니다. 요즘 작은 성주는 새벽의  무예연마부터 밤늦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인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잠
시 고개를 돌려 아이들이 거실에 놓고 나간 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설마 작은 성주
를 특별히 미워하는 건 아니시지요? 작은 성주는 아버님 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 효심을 생각하시어... 아니, 아이들과 저를 가엾게 여기셔서 추방령을 거두어주십시오. 이
렇게 비옵니다. 이렇게..."
  
  이에야스는 애타게 탄원하는 토쿠히메를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으로부터 인간의 비애를 느
꼈다.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이곳에 올 때까지는 자기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된 아버

의 고통을, 경솔한 짓을 한 며느리에게  일깨워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경솔한 것은 토쿠히메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부야스도 자기도 츠키야마도 노부나가도,  모두 인간인 이상 끊임없이  실수와 회한 사이를 
맴돌게 마련- "아버님 부탁입니다. 아이들을 보아 제발 작은 성주를..." 
  이에야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그 마음은 잘 알겠다. 토쿠히메, 이 일은 그
대로 넘길 수 없어 아비인 내가 눈믈을 머금고 내린 조치라 생각하기 바란다.  하지만..." 말
하다 말고 이에야스는 자신이 허약함을 꾸짖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운
이란 것이 있다. 이 운은 누구도 거역하지 못해. 사부로가 만일 나보다 더 좋은 운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에야스는 당황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
는 말임을 깨달았다. "어쨌든 외곬으로만 생각하여 소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나는  곧 니
시오 성으로 가야 하지만..." 토쿠히메는 그 말에서 어떤 구원의 실마리라도 찾으려는 듯 똑
바로 이에야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다시 의미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로 나왔다. "타로자에몬..." "예." "나는 
역시 토쿠히메를 만나기를 잘했어! 사부로가 아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
일세." "예. 작은 마님 말씀에 저도 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문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러므 뒤를 잘 부탁하네. 소홀함이 없도록 하게." 
  이에야스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다시 니시오 성으로 향했다. 그 성은 가문의 원로인 사카
이 우타노스케 마사이에의 거성이었는데, 그곳에서 오카자키  성과 오하마를 철저하게 감시
하여 추호도 빈틈이 없도록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따르는 군사는 200명에, 총포  30자
루. 숙연히 니시오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으려니 새삼스럽게 여섯 살 때의 일이 서글프게 
상기되었다. 그때는 가마에 올라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인질의 몸으로 이 길을  지나갔다. 
오늘은 바로 그 길을 자기 자식을 처단할 결심을 가슴에 품고 지나고 있었다. 
  '먼저 니시오 성을 공고하게 하고 이어서 오하마의  사부로에게 할복을 명하러 간다...' 길
을 반쯤 갔을 때  가도 양쪽으로 젖꼭지나무  생울타리가 빗속에 희미하게  이어져 있어싿. 
"아버님..." 바로 근처에서 토쿠히메가 부르는 것 같아 이에야스는 자기도 모르게 고삐를 당
겨 말을 세웠다. 물론 그 근처에 토쿠히메가 있을 리  없다. 공허한 환청, 그러나 그 환청이 
왠지 이에야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며느리인 토쿠히메까지도 그렇게 슬퍼하고 있다.' 만일 오하마의 울타리 한쪽을 열어놓는
다면 가신 누구라도 노부야스를 어디론가 데려가주지 않을까...? 그 생각을 이에야스는 마음
속으로 부끄럽게 여겼다. '미련을  버려야 한다!' 엄하게 자신을  꾸짖고 다시 말을 몰았다. 

러나 한번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집요하게 그의 가슴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니시오 성에서 9일까지 머물렀다. 아니, 정확하게는 머물렀다기보다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해야 했다. 무장도 풀지 않은 채 활과 총을  든 군사들을 거느리고 사방의 경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냈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7일 오후에야 겨우 멎었다. 그날  밤 
이에야스는 가장 가슴 조이고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 노부야스의 구명을 호소하러 
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이에야스의 결의가 확고하다고 모두에게 알려졌기 때문이
다. 그동안 노부나가로부터는 노부야스의 문책장에 이어  노부야스를 처단하겠다는 뜻을 전
한 이쪽 서신에 대한 답장이  왔다. 아버지와 가신에게까지 버림받는 이상  시비를 가릴 것 
없이 이에야스 님 뜻대로 하시오-이런 내용이 씌어 있었다. 이미 예견했던 일, 별로 놀랍지
도 않았다. 
  그날도 이에야스는 당번인 오구리  다이로쿠를 불러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사부로는 
어떻게 지내고 있다더냐?" 오구리 다이로쿠는 오하마와 니시오 사이를 왕복하면서 노부야스
의 동태를 낱낱이 이에야스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거실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근신하고 계십니다." "알겠다." 이에야스는 한숨을 쉬었다. 명령은 엄격
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심해도 좋았으나 그것이 도리어 안타깝게 여겨졌다. 누군
가가 자신의 가슴에 숨겨진 마음을 알아차리고 노부야스를 어딘가로 데려가지 않을까 하는,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이에야스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오하마는 바닷가에  있었다. 
육지의 경비는 삼엄했으나, 누군가가 야음을 틈타 몰래 작은 배를 타고 와서 노부야스를 납
치해간다면 할복하라는 명령은 그대로 허공에 떠버린다. 그 사이에 토쿠히메의 애절한 심정
이 노부나가에게 전해지면 혹시 노부야스가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니, 그
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내일은 할복을 명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 며칠 동안 이에야스를 
애타게 만든 망설임이고 초조감이었다.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맑게 갠 가을하늘이 파랗게 얼굴을 내밀었다. 이에야스는 인간사의 
번뇌에 새삼스럽게 분노를 느꼈다. '그렇다, 오늘 밤에는  결정을 내리겠다.' 그날 밤 이에야
스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한참 동안 성안의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일단 동요하
기 시작한 마음이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했고,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얕은 잠에 빠졌
다가 새벽에 이르러서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결심을 했다. 노부야스를 엔슈의 호리에로 
옮기겠다-는 것이었다. 오하마에서는 이에야스의 명령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한쪽이 하마나 호수에 면한 호리에로 옮기면 혹시 이에야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작
은 배를 타고 나타날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번 일에 처음
부터 관계하고 있는 사카이 타다츠구, 또 한 사람은 타다츠구와 같이 아즈치에 다녀온 오쿠
보 타다요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는 이미 노부야스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었다.  어째서 
성주가 호리에로 옮기는 것일까 생각하고, 당연히 이 괴로운 아비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하는 바가 있어 내일 아침 노부야스를 엔슈의 호리에로  옮기려 한다. 그 준비를 갖
추도록." 마츠다이라 이에타다를 불러 이렇게 명했다. 갑자기 주위가 밝아진듯한  기분이 들
었다.
  
  노부야스가 하마나 호수 복동쪽 기슭에 있는 호리에 성으로  옮겨진 것은 8월 9일이었다. 
그날 노부야스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오하마를 떠난다는 말을 듣고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
다. "아버님은 그토록 나를 엄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오하마는 오카자키와 가깝다. 
만일에 가신들이 소요라도 일으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싶어 아버지의 거성과 가까운 호리에
로 옮기는 것이라고 노부야스는 해석했다.  "치카요시, 아버님께 염려하지 마시라고  전해주
게. 이 사보로는 절대로 아버님을 원망하고 있지 않아." 노부야스는 맑게 갠  가을하늘을 쳐
다보고 가마에 오르면서 크게 기지개를 켜고 치카요시에게 웃어 보였다.  "치카요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네." 
  치카요시는 얼굴을 돌리고 엎드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님을 잘  부탁하겠네. 
그리고 모쪼록 건강하도록." 노부야스를 따라가는 것은 시동 다섯 명뿐. 도중의 경비는 모두 
아버지가 데려온 하마마츠 성의 병사들이 담당했다. 이에야스는 일단  니시오 성을 나와 그 
행렬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오카자키 성으로 돌아왔다. 이에야스에게는 그날 밤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끄덕끄덕 졸고 있으려니 호수를 저어 건너가는 노소리가 들려왔다. 요시
다 성에서 사카이 타다츠구의 부하들이 노부야스를 빼앗아가는  꿈이었다. "나중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 어쨌건 사부로 님을 구해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찌 가신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뱃머리에 서서 이렇게 외치는 타다츠구의 모습을  보고 꿈에서 깨어 났을 때
는 베개가 흠뻑 젖어 있었고, 주위는 이미 밝아 있었다. 
  이에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호리에의  정보를 기다렸다. 도중에 누군가
가 납치해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타다츠구의  부하들이 배로 구출하지는 않았을까? 오늘
은 반드시 무슨 소식이 있을 것이다-하는 생각으로 계속 초조하게 보냈다. 9일 밤에도 10일 
밤에도 여전히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노부야스는  호리에의 성에서 오하마에서와 마찬가지
로 근신하며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는  보고만이 들어왔다. 12일, 이에야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오쿠보 타다치카를 불렀다. 타다치카는 타다요의 맏아들이었다. "즉시 타다요한테 가
서 호리에에 있는 사부로를 후타마타 성에서 인계받으라고 해라. 나도 이제부터 하마마츠로 
돌아가겠다. 만사에 실수가 없도록..." 실수가 없도록-이라는 말에 힘을 주고 나서  이에야스
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신에게 수수께끼를 남겨주어야  하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아비가 되었는가 싶어 스스로 안타까웠다.
  "알겠습니다. 즉시 후타마타 성으로 가서 그 뜻을 아버지께 전하겠습니다." 타다치카는 젊
은 얼굴에 홍조를 띠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이에야스도 전열을 가다듬고 
오카자키를 떠났으나 마음속은 올 때보다도 더 암담했다.  '타다요, 그대만은 내 수수께끼를 
풀어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타다치카를 보낸다...'
  
  하마마츠에 도착한 이에야스는 다시 노부나가이 사자를  맞이했다. 사건은 어떻게 되었는
가? 그 결과를 알고 싶다는  것이 구실이었으나, 실은 노부야스에  대한 처단을 서두르라는 
독촉임이 분명했다. "사부로는 지금 후타마타 성으로 옮겼소. 오카자키에서 사카이 타다츠구
의 처사에 원한을 품고 소동을 벌일 자가 있을 것 같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취한 조치. 
그리고 츠키야마는 하마마츠로 불러 내가 직접 문제를  규명할 것이오." 이에야스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츠키야마를 죽일 수 없다는 듯 일부러 양미간을 찌푸렸다. "츠키야마 마님은 아
직 그대로 오카자키에 계십니까?" "그대로는 아니오. 울타리를 두르고 거실에 가두어놓았소. 
하마마츠에 감옥을 마련할 때까지의 임시조치요." 
  노부나가의 사자는 일단 아즈치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노부야스에 대한  처단을 미룰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노부야스는  여전하더냐?" 이에야스는 그 후에도 종종 
사람을 보내 노부야스의 동정을 보고하게 했다. 후타마타 성은 적군과의 경계에 있었다.  거
기서 한 걸음만 산악지대로 들어서면 도쿠가와의 세력권을  벗어난다. '노부야스 녀석, 어째
서 스스로 목숨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애타게  기적을 기다리는 동안 

느덧 8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하마마츠 서북쪽에 짓게 한 츠키야마의 임시거처가 마련된 것
은 24일. "츠키야마는 실성하여 광란상태에 있소." 
  그곳에 그녀를 유폐하고, 이렇게 말하여 천수만은 다하게 하려는 것이 이에야스의 생각이
었다. 이에야스는 26일에 이르러 오카자키에 사자를 보냈다. "츠키야마를 하마마츠로 호송할 
것. 중요한 죄인이므로 도중에 잘못이 없도록, 특히 오카자키에서 노나카 고로 시게마사, 오
카모토 헤이자에몬 토키나카, 이시카와 타로자에몬 요시후사로 하여금 경호하도록 하라." 그
때도 사자는 오구리 다이로쿠였다. 다이로쿠를 오카자키로 보내고 난 뒤 이에야스는 갑자기 
오한과 현기증을 느꼈가. 가을이 완연하여  아침저녁으로 대기가 쌀쌀한 걸 느꼈다.  자리에 
눕자 온몸으 뼈마디가 여간 쑤시지 않았다. '아마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한 번도 병이

고는 앓은 적이 없는 이에야스도 이번 사건만은 상당히 몸에 무리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사
이고 부인이라 불리는 오아이가 머리맡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고 있었는데, 이에야스는 잠이 
들면 때때로 헛소리를 했다. "사부로! 어서 오너라. 내 뒤를 따라오너라!" 
  이렇게도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곁에 두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어... 할아버님, 할머님, 
용서하십시오." 꿈속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꿈속에서도 눈물은 얼마든지 나오는  모양이었
다. 사이고 부인은 잠자코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낙조의 그림자
  
  해질 무렵의 가을 공기는 지나칠 정도로 건조했다. 불그레하던  서쪽 하늘은 이미 보랏빛
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감탕나무의 열매를 찾아 몰려왔던 새들의 울음소리도 어느덧 멀어지
고, 견고한 울타리로 둘러쳐진 저녁 어스름 속에는 물푸레나무의  꽃향기가 짙게 풍기고 있
었다. 츠키야마는 아까부터 마루에 나와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버릇이 되어 있던 짙
은 화장도, 시녀들이 두려워하던 눈동자의 노기도 오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용하다... 아
니 그보다는 맑고 싸늘한 겨울의 호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마님, 바람이  많이 차졌
습니다." 지난해부터 있게 된 시녀 미노가 곁에서 말했다. 그러나 츠키야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아, 까마귀들이 둥지로 돌아가는구나... 기러기가 찾아올 날도  멀지 않았어." "마님, 감
기를 조심하셔야 합니다."시녀으 두 번째 말에야 츠키야마는 가만히 옷깃을  여몄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오미노." "예."  "그 후에는 사부로 소식을 듣지  못했느
냐?" "예. 후타마타 성으로 옮기신 뒤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다...고 시동들은 말하고 있습니
다마는." "그래? 여기 있는 하인들은 나를 보기만 하면 얼른 모습을  감춘다니까. 내가 크게 
못마땅한 모양이야. 나에  대해 모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듣지  못했느냐?" "예... 아무  말
도..." 시녀는 얼른 눈길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토쿠히메가 노부야스의 구명을 위해 자기를 아즈치로 보내달라고 울면서 이에야스에게 호
소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 뒤 모든 사람들의 원망은 츠키야마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말았
다. "그 훌륭한 작은 성주님을 그르친 것은 바로 마님이야."  "대관절 무슨 마음으로 코슈와 
내통했을까." "점잖지 못한 분이라 켄케이의 꾐에 넘어가 색정에 빠지다 보니 그렇게 된 거
지." "색중에 빠져 자기 자식을 망쳐놓다니 그야말로 악처, 악한 어머니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어." 저마다 이런 소리를 했다. "그 짐승 같은 여자, 아직도 자결하지 않았어?" 시녀 미노
를 보면 거침없이 묻는 아시가루까지 있었다. 
  츠키야마가 자결하여, 카츠요리와의 내통은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서였다는 것을  밝히면, 
노부야스의 구명은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뢰옵니다." 지금
은 두 사람밖에 없는 시녀 중 하나인 아즈사가 츠키야마와 미노의 뒤에서 말했다. "방근 노
나카 시게마사 님이 오카모토 헤이자몬 님, 이시카와 타로자에몬 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
알겠다.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어." 비로소 츠키야마는  저물어가는 하늘에서 눈길을 떼었다. 
"바로 만나겠으니 이리 모셔라." 여전히 싸늘하고 맑은 표정인 채 방에 들어와 상좌에 앉았
다. "미노, 날이 어두워졌으니 등불을 밝혀라." 이때  시게마사를 선두로 하여 세 사람이 들
어왔다. 
  
  "올해는 유난히 일찍 가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노나카  시게마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흘끗 츠키야마를 쳐다보며 덧붙였다. "오늘은 성주님의 사자로  왔으니 당연히 자리를 옮기
셔야 하겠으나, 사사로운 말씀도 있으므로 그대로 계셔도 관계없습니다." 츠키야마는  그 말
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녀 미노가 가져온 촛대에 불이 켜져 실내가 훤하게 밝아지기
를 기다렸다. "수고가 많았어요. 이 세나는 이에야스의 정실이므로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어
요."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마주보았다. '순순히 말을 들을 상대가 아니다...' 단단히 
경계하는 눈빛이고 태도였다. "이에야스 님이 무어라고 했는지 우선 그것부터 묻고 싶군요." 
"예. 말씀 드리지요. 마님을 위해 하마마츠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했으므로  그리고 옮기시라
는 분부십니다." "하마마츠로?"  츠키야마는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는 조용하고 대범하며 
부드러운 태도였다. "성주님도 연세가 들어 옛 아내가  아쉬워지는 모양이군. 그래, 언제 옮
기라고 하시던가요?" "우리 세 사람에게 옮기시는  길의 경호를 명하셨습니다. 이십칠일 새
벽에 출발하여 이십구일 중으로 하마마츠에 도착하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모든 것을 그대
들의 뜻에 맡기겠어요."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예상이 어긋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마님, 후타마타로  옮기신 작은 성주님은..."  이번에는 이시카와 타로자에몬이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이 조용히 근신하고  계십니다." "그래요? 반가운 일이로군요." 
"반가우시다니... 마님께서는 작은 성주님에 대해 무슨 생각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정말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요. 모든 일이 이에야스  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가문, 나 같은  것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나요. 만일에 있다고 해도 통할 리가 없어요." 이 말에 성질이 급한 타로자
에몬은 버럭 화를 내며, 무릎걸음으로 한걸음 앞으로 앞으로 나왔다. 
  "마님, 작은 마님께서는 작은 성주님의 구명을  위해 아즈치에 보내달라고 성주님께 울면
서 탄원하셨습니다." 츠키야마는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래요? 하지만 며느리
는 며느리, 나는 나예요. 나에게는 아무런 생각도 없어요.  이에야스 님 마음대로 하라고 하
세요." "마님!" 참다못해 노나카 시게마사가 다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작은 성주님은 아
직 후타마타 성에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반갑다고 한  거예요."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말
씀이 못 됩니다. 언제 할복하라는 명이 떨어질지 모르는... 그런 마당인데도 마님은 반갑다는 
말씁을 하실 수 있습니까?" "암, 반가운 일이에요." 츠키야마가 말했다. "이 세나는 이에야스 
님의 정실. 자식을 벌하고 기뻐하는 것이 남편의 즐거움이라면 나도 함께 기뻐하는 것이 부
도가 아닐까요, 헤이자에몬?"
  
  헤이자에몬은 자기 이름이 불리자 얼른 눈길을 돌렸다. 세  사람 모두 이에야스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만 온 것은 아닌  듯했다."우리 세 사람에게..." 눈길을 돌린  채 헤이자에몬은 
감정을 누르고 말하기 시작했다. "마님을 하마마츠로 모시라는 분부가 내렸으나,  매우 어려
운 임무여서 일단 사양했습니다." "아니, 나를 하마마츠로 옮기는 일이 그렇게고 어렵나요?" 
츠키야마는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예, 워낙 가신들이 크게 격분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어째서?" "작은 성주님을 사지로 몰아놓은 것은  어머니이신 마님, 그러한 마님을 
살해하여 작은 성주님의 억울함을 풀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헤이자에몬은 대담하게 말하
고 얼른 눈길을 돌렸다. 
  이미 바깥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촛대의 불이 이따금  츠키야마의 그림자를 흔들었다. "허
어." 츠키야마는 입슬을 일그러뜨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사양하면 
될 것 아니오?" "성주님은 허락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모셔오라는 엄한 분부를 내리셨습니
다." 이번에는 노나카 시게마사가 츠키야마를 노려보듯이 하고  말했다. "마님! 부탁이 있습
니다." "이 힘없는 나에게 무슨 부탁이란 말이오?" "마님께서 작은 성주님의 구명을 위한 탄
원서를 쓰시고 자결하셨으면 합니다." "뭐, 자결하라고...?" 츠키야마는 이러한 요구 역시 예
상하고 있었는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에야스 님의 명이요  아니면 그대들 세 
사람의 생각이오?" "우리 세  사람의 생각입니다." 일단  말을 꺼내자 시게마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가신들의 분노가 상상 이상입니다. 아마 저희들이 모신다고 해도  무사히 오카자키
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도중에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여기서 자결하시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호호호..." 츠키야마는 갑자기 옷소매를 입에 대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이에야스 님의 좋은 아내가 되려고 굳게 맹세했어요. 이에야스 님의 명령이라면 어
떤 벌이라도 받겠지만 가신인 그대들의 말에는 따를 수 없어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마님!" 드디어 타로자에몬이 큰소리로 외쳤다. "작은 성주님이 애처롭지도  않습니까? 성주
님이 아직도 작은 성주님께 자결을 명하지 못하시는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타
로자에몬, 그대가 진정 내가 자결하기를 원한다면 이에야스 님에게 가서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아오도록 하시오." "성주님의 명이 내리시면 자결하시겠습니까?" "그래요." 츠키야마는 담
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쿠가와 이에야스는 얼빠진 사람이라 노부나가 따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처자를 
살해한 자라고 후세에까지 웃음거리가  될 것... 그래,  명령이 떨어진다면 깨끗이  자결하겠
어." 노나카 시게마사는 깜짝 놀라 거칠게 무릎을 쳤다. 타로자에몬의 왼손이 허리에  찬 칼
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게마사는 타로자에몬을 제지하고 다다미에 두 손을 짚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저희들의 거친 말에 대해서는 거듭 사죄드립니다마는, 작은 성주님을 위해 재고하시기 바랍
니다... 이렇게 빌겠습니다." "시게마사..." "예."  "두말할 것 없어요. 이 세나의  마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아요.""작은 성주님을 잃는 한이  있어도 성주님에 대한 원한을 버
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나를 악마라고  불러. 마귀라고 불러. 시체를 뜯어먹어
도 좋아! 나는 내 생각대로 행동하다가 죽을 거야... 다시는 입을 놀리지 마라, 시게마사." 
  시게마사는 크게 어개를 흔들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무섭게 노기
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면..."  시게마사는 두 사람에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고 일어섰다. 
"이십칠일 새벽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츠키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등뒤로 날카로운 눈길
을 느끼며 복도로 나와 타로자에몬이 토해내듯 말했다. "역시 실성하셨어." 시게마사도 정체
를 알 수 없는 분노를  가슴 가득히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츠키야마에 대한 분노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카로 시집온 마님. 사랑에 굶주려 자신을 주체하지 못
하고 부부 사이의 벽을 더욱 높이 쌓아올린 가련한 여자.  전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전국의 
모략이 이런 여자의 불만을 놓치지않고 마침내 모반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했다... 
  '도대체 이것은 누구의 죄란  말인가.' "노나카-" 현관을 나와  허리를 구부리고 울타리에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를 빠져나오면서 오카모투 헤이자에몬이 말을 걸었다. "누군가를 시켜 
과감하게 살해하는 것이 상책 아닐까?" 시게마사는 대답 대신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일 모
레는 제발 개었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살해하면 자결한 것으로 통할 수 있어. 감시하는 아
시가루들의 입만 막아놓으면." "정말이지 못 말릴 분이야." 타로자에몬의  어조는 아직도 험
악했다. "아마도 마님은 전대미문의 악처일 것일세. 하필이면 그런 여자가  성주님의 마님이 
되었다니. 어차피 나중에 살해될 것이라면 아까 나를 말리지 말았어야 했어." 
  "너나카-" 다시 헤이자에몬이 말했다. "도중에 젊은 무사들의  습격을 받게 되면 더욱 수
치스러울 뿐 아니라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일세. 어떨가, 우리 세 사람이 처리하면?" "잠시 더 
생각해보세. 나는 마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헤아려보고  있는 중이야." "그럴 
필요 없어. 상대는 실성해 있네! 우리는 실성한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거야, 노나카..."  타로
자에몬도 마음으로는 이미 헤이자에몬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노나카 시게마
사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걸어갔다.
  
  27일은 맑게 개었다. 츠키야마는 현관 앞에 놓인 가마를 흘끗 바라보았다. "다시는 돌아오
지 못할 것이다." 전송 나온 두  시녀에게 싸늘한 말을 던지고 그대로 안에서  창을 닫았다. 
곧 가마에 그물이 씌워지고 여덟 명의 아시가루가 경호하는 가운데 츠키야마는 울타리 밖으
로 나왔다. 오늘은 노나카 시게마사도 나머지  두 사람도 전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때때로 
마주치는 세 사람의 눈에는 무언가 슬프고도 엄숙한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스고가와 어귀
를 벗어날 무렵부터 차차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가마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어디선가 돌멩이가 가마를 향해 날아왔다. 돌멩이가 날아올 때마다 아시가루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혀를 찼다. 돌을 던지는 상대에 대해서가  아니라 츠키야마에 대한 증오에
서였다. 10리를 표시하는 이정표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일행은 특히 주위에 신경을 썼다. 젊
은 무사들이 가마를 탈취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습격해오면 가마는 그대로 두고 도망쳐야겠어." "당연하지. 이렇게 무거운  것을 메고 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시가루 중에는 일부러 츠키야마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자까지 있었다. 그럴 때에도 가마 안의  츠키야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설마  잠이 든 
것은 아닐 테지." 오카모투 헤이자에몬이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날은 아카
사카 부근까지 와서 일박을 했다. 이튿날인 28일은 요시다에서 일박하고, 하마마츠 남서쪽에 
있는 토미츠카에 도착한 것은 29일 정오가 가까웠을 무렵이었다.  걱정했던 비는 내리지 않
고, 그날도 햇살이 쨍쨍해 목덜미가 따가울 정도였다. 아시가루와 노나카 일행은 이따금  멈
추어 땀을 닦고는 했다. 
  "이 부근에서 점심을 먹도록 하세." 후미진 강가에 배를 댔다.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 세 
그루가 일행을 손짓해 부르듯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아시가루들이 배에서 가마를 내려놓
자 노나카 시게마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는  마님께 다시 한 번 말씀 드릴  것이 있다. 
너희들은 저 너머 풀밭에 가서 쉬도록 해라." 그리고는 가마의 그물을 벗기고  문을 열었다. 
"마님, 이제 하마마츠가 눈앞에 있습니다." "하마마츠를 눈앞에 두고 어째서 이런 한적한 곳
에서 쉬려고 하느냐?" 
  노나카 시게마사는 흘끗 이시카와  타로자에몬과 눈길을 교환했다.  "황송하지만 이제 이 
시게마사가 마님의 카이샤큐를 하려고 합니다." "뭐, 카이샤쿠... 여기서 나를 베겠다는 말이
냐?" "할복하십시오.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셋이 합의한 것이로구나. 시게마사 혼자의 의
견은 아닌 것 같아." "아니, 이 시게마사가 혼자 부탁 드리는 것입니다. 황송하오나 작은 성
주님을 위해..." 시게마사는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가마를 향해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가문을 위해 자결하시기를... 이렇게 부탁 드립니다..."
  
  가마 안에서 내다보이는 밖은 지나칠 정도로 밝았다. 땀이  흐르는 시게마사의 이마도 그
의 콧구멍 안에 난 코털도 뚜렷하게  보였다. 츠키야마의 눈에는 이미 분노의 빛이  없었다. 
분노 이상으로 싸늘한 결의가 떠올라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껏  냉소하고 반항하려 했던 츠
키야마의 얼굴도 이제는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에야스의 명령도  아니고 세 사람이 상
의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옳은 일이니 내가 해야  한다...' 시게마사의 우직한 성격이 츠키

마의 성격과 정면으로 맞서 결판을 내지 않을 수 없는 결과로 몰아가고 있었다. "마님, 시게
마사는 새삼스럽게 마님의 잘못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불행하게 태어나신 분이라
고... 진심으로 동정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이 자리에서 자결하시어 이 시게마사가  카이샤쿠
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한마디  한마디가 싸늘하고 무서운 살기를 품고  육박해왔다. 
츠키야마는 저도 모르게 온뭄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깨달았다. 
  "시게마사! 그럴 수는 없다." "부탁  드립니다. 가문을 위해서입니다." "그대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해. 서두를 것 없다. 내가 자결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야." "그러시다면 제발..." 시
게마사는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가마 앞에 놓았다. "시게마사! 내 말을 잘 들어. 나는 이미 
내 운명을 내다보고 있어. 나는 이에야스  님 앞에서 자결하려고 해. 잘난 체하면서도  실은 
처자의 행복 같은 것은 마음에도 없는 냉혹한 남편 앞에서  여봐란 듯이 죽을 생각이야. 그
러니 이 자리에서는 참아주기 바란다."  "안 됩니다." 시게마사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
다. 
  "두 분이 모두 불운하십니다. 마님도 성주님도... 그러니 마님, 어서 이 자리에서 자력하십
시오." "그럴 수 없다! 그대는 여자인  내 마음을 모르고 있어."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성주님 앞으로 모시고 가지 못합니다. 이 이상 더 부부 사이, 부자 사이의 상처
를 크게 하여 가문의 비극을 깊게 하시렵니까? 자, 카이샤쿠를 할 것이오니..." "못하겠어..." 
츠키야마는 다시 한 번 외치고 이상하게도 용기가 치솟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용기가 아니
라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는 최후의 저항인지도 몰랐다... '죽을 수  없다!' 생각하는 것과 동

에 츠키야마의 몸이 어두컴컴한 가마 안에서 오색 의상을 펄럭이며 눈부신 햇빛 속으로 나
왔다. 아마도 도망칠 수 있다고는 츠키야마도 생각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간 시게마사의  왼
팔이 츠키야마를 가마 지붕 쪽으로  밀어붙이고 오른손이 와키자시로 뻗쳤다.  이어 주위에 
피의 무지개가 서는 것과 동시에 가슴을 움켜쥐고 소리치는 츠키야마의 신음소리. 
  "이놈! 감히 이런 짓을..." "카이샤쿠를 하겠습니다."  하얀 햇살 아래 얼어붙을 듯한 시게
마사의 목소리가 뒤얽혔다. 나머지 두 사람은 가마를 등지고 서서 가까이 오는 자가 없는지 
망을 보고 있었다.
  
  "이놈! 무엄하게도 나를... 저주를 해주마."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가슴에 찔린 와키자시
를 움켜쥐고 선 츠키야마의 모습은 처참하다기보다 한없이 슬프고 가련한 인간의  최후처럼 
보였다. "도쿠가와 집안이... 존속하는 한... 저주하고  또 저주하고... 끝까지 저주할 것이다." 
"마님, 진정하십시오." 시게마사는 츠키야마가 움켜잡은 와키자시를 뺄 마음이 나지 않아 풀 
위로 번져가는 피에 눈길을 떨구었다. "시게마사, 서둘러야 해." 타로자에몬이 재촉했다. "이
런 장면을 아시가루들에게 보여서는 안 돼." "나는 죽지 않는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원
혼만은 이 세상에 남아..." 다시 소리지르기 시작한  츠키야마의 저주에 시게마사는 눈을 감
은채 와키자시를 잡아 빼었다. 
  "악!" 괴조의 그것과도 같은 날카로운 비명.  "용서하십시오." 시게마사의 낮은 소리와 함
께 츠키야마의 몸이 그대로 시게마사의 품안으로 쓰러졌다. "잘한 일이야.  여기서 처리하지 
않으면 마님은 틀림없이 성주님을 찌르려 했을 걸세."  타로자에몬이 다시 격려하듯 말했으
나 시게마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팔에 묻은 피를 묵묵히 손수건으로  닦고 합장을 하고 
나서 츠키야마의 몸을 가마 안으로 옮기고 문을 닫았다. 주위의 피를 닦으면서,  시게마사는 
자기가 지금 30년 가까이 섬겨온 주군의 정실을 죽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위가 너무 
밝아 신경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유해는 일단 성주님 앞에 옮겨놓고 지시를 받은 후 처리하는 것이 좋겠네." 오카
모토 헤이자에몬의 말을 듣고야 비로소 시게마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것은 어디까지
나 우리의 뜻에 따라 결행한 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에야스는 물론이거니와 노부야스
도 가련하고 죽은 마님도 가련하다고 냉정하게 계산했던  시게마사였다. "두 사람에게 부탁
하겠네. 이 토미츠카 앞 골짜기에 이르러 마님이 가마를 세우고 자결하신 것으로  발표하세, 
알겠나?" "으음..." "마지못해 카이샤쿠는 노나카 고로 시게마사, 그리고 검시는 오카모토 헤
이자에몬 토키나카와 이시카와 타로자에몬 요시후사가 했다고 하세." "음, 잘 기억하고 있어
야겠군." "아직 더위가 심해 유해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이 노나카 시게마사의 재량으로 
이 마을의 니시라이 선원에 매장하겠네.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제 아시가루들
을 불러주게. 유해를 선원으로 모셔야겠네..." "알겠어." 타로자에몬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시가루들을 부르러 갔다. 
  "마님은 여기서 깨끗이 자결하셨다. 작은 성주님의 구명을 우리에게 부탁하고.  과연 어머
니다운 마음가짐... 모두 염불을  하도록. 유해를 다 같이  이 마을의 선원으로 모시기로  하
자." 타로자에몬의 말을 듣고 있다가 시게마사는 그만 풀 위에 털썩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행렬이 별로 멀지 않은 니시라이 선원에 도착한 것은 아홉 점 반(오후 1시)이 도리까말까 
했을 때였다. 주지와의 교섭은 오카모토 헤이자에몬이 맡고, 노나카 시게마사는 이시카와 타
로자에몬과 같이 아시가루들을 지휘하여 선원의 묘지 북쪽 한편에 동서 방향으로 매장할 땅
을 팠다. 여름으로 되돌아간 듯 강렬한 햇살은 파올린 흙을 뜨겁게 태우고  있었다. "이것으
로 마님의 생애도 막을 내리는구나." 
  무덤을 다 팠을 때 주지가 승려에게 솔도파와 꽃바구니를 들려 가지고 왔다. 계명은 비극
에 말려든 자기 아들 노부야스의 구명을 위해 자결한 이에야스의 정실로 간주하여 사이코인
도노 마사이와 히데사다 다이시라고 정했다. 땅속에 가마째로 유해를 내려놓았을 때 노나카 
시게마사는 다시 한번 오열했다. 시게마사의 도덕관으로 볼  때 이것은  결코 '악'도 '불충'
도 
아니었다. 마님이 계속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마마츠에 도착했다면, 그녀는 결국 모반을  꾀
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부정한 아내, 무정한 어머니로서의 최후를 맞았을 터. 그  오명으로부
터 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고, 유해도 그런 심정
으로 대했다. 아시가루들의 손으로 흙이 덮이고, 독경소리가 근처에서 울어대는 때까치의 울
음소리와 뒤섞였다. 
  "마님... 이제는 편안해지셨을 것입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서방정토로 여행을  떠나십시
오." 시게마사는 입밖에는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무덤 
앞에 꽃을 바치고 향을 피웠다. 일행이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것은 이미 서쪽 하늘이 낙조
의 여운을 남기고 저물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쨌든 내가 성주님을  먼저 뵙겠네." 시게마사
는 성문을 들어서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노골적으로 치키야마에게 반감을 드러
냈던 두 사람도 이때는 몹시 침통해져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고 
말씀 드려야 하네." 이렇게 다짐했을 뿐이었다. 
  이에야스는 그날도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었다. 열은 이미  내렸으나 양쪽 뺨은 해쓱하게 
살이 빠져 있었다. 근시들의 말에 따르면 미카타가하라 전투 이래 가장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게마사가 들어가자 이에야스는 사이고 부인만 남기고 모두 물러가게  했다. "수
고가 많았네. 무사히 임시거처로 옮겼겠지?" 시게마사는 입술을  꼭 깨물고 병상에 누운 채
로 있는 이에야스를 노려보듯이 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님은 북토미츠카 건너편 골
짜기에 오셨을 때 작은 성주님의 구명을 탄원하시며 자결하셨습니다." "뭣이, 자결을?" 이에
야스의 몸이 흠칫 움직이더니 그대로 잠시 동안 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여자의 몸이니 다른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좁은 소견으로... 자결하게 만
들었구나." 자결케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시게마사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가 
죽였다는 것을 민감하게 간파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  온몸이 오그라들어 이에야스의 얼굴
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 후의 달
  
  후타마타 성에 도착한 이후 하마마츠에서 따라온  시동말고는, 노부야스의 면회는 금지되
어 있었다. 오늘도 노부야스는 아침부터 논어만 읽으면서 아무와도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노부야스의 시중을 들고 있는 시동 중에서 둘은 부엌으로 저녁상을 가지로 가고, 둘은 자기
들 방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 노부야스  곁에는 열다섯 살인 키라 오하츠가 있을  뿐이었다. 
이미 9월도 14일이었다. 그곳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와 여기저기 옻나무에  단풍이 들어 곧 
서리가 내릴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오하츠-" 실내가 차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
달은 노부야스는 책을 덮고 옆에서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동에게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는구나." "예. 등을 가져올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오늘은 십사일, 
달이 떴을 것이다. 창을 열어다오." 시키는 대로 오하츠가 창을  열었다. "오, 물푸레나무 향
기가 좋구나. 참, 이상한 일이야." 노부야스는 웃었다. "이런 일이  생긱 때까지는 달이나 꽃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즐거움이란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있는 모양이다." 오하츠의 생
가인 키라 가는 이마가와 가와 마찬가지로 아시카가 가문의  일파였다. 이번 사건은 다정다
감한 이 열다섯 살 소년의 가슴에도 비극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작은 성주님!" 떠리는 목소
리로 주저하듯 말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습니다. 마님께서는 지난 달  이십구일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뭐. 어머니가 지난 달 이십구일에..."  "예. 타다치카 님에게 들은 것은 
지난 십일이었습니다." "그랬었구나... 십일부터 나흘 동안 너는 그 일을 혼자 가슴에 숨겨두
고 있었구나." "예... 작은 성주님의 심정이 어떠실지 생각하니 차마 말씀  드릴 수 없었습니
다." "그럴 것이다... 어디서 처형당하셨다더냐,  오카자키에서였느냐?" "그게 아니라..." 오하
츠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하마마츠로 옮기시는 도중 토미츠카라는 곳에서였다고 합니다. 처형을 당하신 것은 아닙
니다. 작은 성주님의 구명을 성주님게 탄원하시면서 자결하셨다 합니다." 노부야스는  그 말
에 벌덕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눈믈을 보이기가 괴롭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어머니의 자
결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기거하게  되면서부터 노부야스는 비로소 부모
의 비극이 어디에 그 원인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분 모두  성격이 너무  과격했다...' 

버지는 과연 난세의 남자답게 조심성과 끈기가 있어고, 어머니는  여자의 입장에 너무 집착
하여 자아를 굽히지 않았다. 그 어느 쪽이 옳은지는 노부야스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을 그렇게 만든 이면에서는 자라온 세계의 차이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처럼 자랐으면 반드시 아버지같이 될 것이고,  어머니처럼 자랐으면 대개는  어머

같이 될 것이야...' "오하츠, 달이  떴어. 이리 와서 구경하지 않겠느냐?"  노부야스는 얼굴을 
돌려 밖을 내다보면서 가만히 눈물을 닦았다.
  
  오하츠가 노부야스의 발치에 와서 앉았다.  과연 저물기 시작한 보랏빛  하늘에 혼구산의 
모습을 뚜렷이 떠올리면서 14일 밤의 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능선 밑의 경치가 잔
뜩 불만을 간직하고 검게 침묵하고 잇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성주님... 저는 이  세상이 이
토록 불쾌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오하츠는 노부야스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어조로 말끝에 감상을 담았다. "저의 집안은 아시카가 쇼군의 일족입니다. 이미 멸망할 수밖
에 없다고 운명에게까지 버림받은 일족...  그런 마당에 도대체 무엇을  맛보게 하려고 저를 
태어나게 했을까요? 저는 이곳에 온 이후 노상 그 생각만 했습니다." 
  노부야스는 여전히 시동에게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오하츠, 아버님은 말이다... 너무 괴로
우신 나머지 병환이 나셨다는구나." "아니, 누구에게 그런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나에게도 
때때로 찾아노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그 사람은 나더러 도망치라
고 권하고 있어. 아버님이  그러기를 바라신다고... 그래서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아버님은 
분명히 그런 면을 가지신 분이야." 오하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성주님께 
그런 뜻이 계셨다면 어째서 마님의  자결을 만류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외곬으로만 생각하시는 성주님, 마님이 죽음으
로써 간하신 결과 이렇게  되었다고..." "허허... 그럴  듯한 말이로구나." 노부야스는 가볍게 
웃고 시동의 말을 중단시켰다. 
  "아마 재작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님이 이 노부야스와  어머님이 두려워 오만이 낳은 
오기마루를 친자식으로서 대면하시지 않은 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음, 그래.  나는 
일부러 사람을 보내 오기마루를  오카자키로 불렀지... 그리고 아버님이  오카자키에 오셨을 
때 이 사부로의 유일한 동생을 아무 말씀도 말고 만나보시라고 부탁했어." "전혀 모르고 있
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아버님 얼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는 노하신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나서 이윽고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저으셨어. 아
버님은 이 세상에서는 질서가 첫째, 화합이 첫째라고 하시며, 때로는 엄격히 사사로운  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으시다. 나는 강력하게 부탁 드렸어. 이 노부야스와 이미 대면이 끝난 동
생, 아버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형제가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형제를 가엾게 여기
신다면 부디...라고. 아버님은 느닷없이 내 어깨를 붙잡고  우셨어. 그러나 말씀은 여전히 엄
하셨지. 네가 그러기를 바란다면 하고 오기마루를 불러들였으나 무릎에는 앉히지 않고, 너는 
훌륭한 형을 가졌다 이 한마디만을  하셨을 뿐이야... 알겠느냐? 그러한  아버님이기에 이번 
일로 병환이 나셨을 것은 뻔한 일... 이 노부야스는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고 아버님께 고
통을 드린... 불효자였다." 어느덧 달은 능선을 벗어나 이 주종의 그림자를 뚜렷이 마루에 떨
어뜨렸다.
  
  "오하츠, 나도 이 성에서 도망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고 있다. 타다치카는 
그걸..." 말하다 말고 노부야스는 당황했다. 자기한테 도망치도록 권한, 말해서는 안 될 사람
의 이름을 그만 입밖에 내었다. "아니, 내게  도망치기를 권한 자는... 지금 죽으면 개죽음이
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아 훗날에 대비하는 것이 효도라고도 했어... 나는 그렇게 생
각하지 않아. 여기서 도망친다면 갈 곳이라고는 적지, 싫더라도 한번은 카츠요리를 만날  수
밖에 없어. 카츠요리를 만나면 아즈치의 장인이 품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나
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 알겠느냐, 오하츠?" 어느 틈에 오하츠는 두 주먹을 무릎에 얹
고 울고 있었다. 오하츠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서 노부야스가  도망쳤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 이에야스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야 한다는 의
식도 있었다. 
  "그러니 오하츠, 이 노부야스에게 부모에 대한 말은 하지 마라. 나는 지금까지  내가 믿어
온 길을 흔들림 없이 그대로 걸어나갈 생각이다. 도망쳐서 오쿠보 부자에게 누를 끼치고 아
버님을 의심받게 하며 내 결백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았
어." "작은 성주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것을 좀 보아라. 달이 점점 더 
높이 떠오르고 있다. 눈물을 닦고 위대한 자연의 모습을 보도록 해라." "예..." "이  노부야스
는 행복했다... 어머니에게도 사랑을 받고, 아버님께도 병환이 나실 만큼 사랑을 받았어... 아
니, 말이 좀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불효자였다고  말을 고치겠어. 어머니를 자결하
게 만들고 아버님을 병상에 눕게 한... 그래서 그나마 마지막만은 옳고 강해져야겠다고 생각
했지." "그러시면, 역시 자결을...?" "아니, 죽는 게 아니야!" 노부야스는 강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까지 이 노부야스가 살아온 것은  나의 삶이 아니었어. 세파에  휩쓸리며 내 자신을 
잃어버린 허망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지. 이제부터는 내 의사를 관철시키겠다. 올바르게 내 
생각대로 살겠어." 이렇게 말하는 동안 노부야스는 자신의  죽음이 시시각각 험한 골짜기를 
향해 다가감을 느꼈다. '나는 아무래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때  시동  둘이 

대를 들고 나타났다. "지금 진지를 가져오려 하는데 먼저 덧문을 닫았으면..."  한 사람이 말
했다. 노부야스는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래, 달도 보았으니 닫도록 해라." 
  이때 문득 마루 밑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누구냐, 거기 있는  자가 누
구냐?" "예, 타다치카입니다." "타다치카,  듣고 있었구나?" "예.  하마마츠에서 사자가 와서 
그 말씀을 드리러 왔다가 그만..." 타다치카는 달빛  아래 움츠리고 앉아 노부야스를 쳐다보
고 있었다. 노부야스는 그 눈에  서림 격한 감정을 깨달았다. "하마마츠에서  누가 왔느냐?" 
지나치게 가라앉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마마츠에서 핫토리 한조 마사나리 님과 아마가타 야마시로노카미 미치츠나 님이..." 타
다치카는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성주님
의 심중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도 짐작이 되시리라 믿습니다만,  이 타다치카의 눈에 잘못이 
없다고 여기신다면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도망치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다시 
똑바로 쳐다보는 타다치카였다. 노부야스는 그 강한 눈길에 위압당하지 않으려  했다. "하하
하..." 그래서 짐짓 소리내어 웃었다. "음,  하마마츠에서 온 사람이 한조와 야마시로란 말이
지. 그럼, 곧 그들을 만나보겠다. 타다치카, 내 말을 들었다면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이 노부야스는 아주 강한 사람일세." "강한 것만이 무장의 진면목은  아닙니다. 아까 무어라
고 하셨습니까? 성주님은 생각하시는 바를  입밖에 내시지 않는 일면이  있으시다고... 결코 
성주님 혼자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한 바를 생각한 대로  말할 수 있는 세월이 언제 
올지... 작은 성주님! 이렇게 애원합니다..." 
  노부야스는 탁 장지문을 닫았다. "다시는  그런 소리 말고, 어서 하마마츠의  사자를 이리 
안내하라." 곁에 오하츠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노부야스는 비틀거리듯이 앉았다. 지금은 
타다치카의 단호한 의지가 두렵고 부담스러웠다. 만일 타다치카의 말대로 이 후타마타 성에
서 탈출하여 이름도 없는 타케다 쪽 병사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그럴 우려가 있기 때문
에 타다치카가 자주 은밀하게 찾아와 도망치기를 권하고 있지만,  그 아버지 타다요는 찾아
오지 않았다. 아니, 타다요가 찾아와 권할 정도라면 아버지도 분명히 그런 뜻을 전했을 것이
다... 모두가 생각하는데도 말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장래에 대한 위험을 
느끼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작은 성주님!" 아직 타다치카는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작은  성주님! 잠시 마루에 
나오셔서 모습을..." 노부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다치카의 집요한 권유는  도리어 하마마
츠에서 온 사자의 말이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처럼 보였다. 
"작은 성주님!" 어느 틈에 시동의 수가 셋으로 늘어나 여섯 개의 눈이 불안하게 노부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없으니 대답하지 마라." 그 여섯  개의 눈에게... 아니 그보다는 역시 
자기 자신을 향해 중얼거리는 노부야스였다. "여기서 마음이 움직이면, 이  노부야스는 후세
에까지 미련하고 철부지였다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오하
츠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의 시동이 모두 바깥에 귀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  장지문을 중간쯤 하얗게 비치
는 달빛 밑으로 귀뚜라미소리가 들기기도 했다. "오하츠, 너희들은 물러가 있거라." "예... 하
지만 어째서 곁에 있으면..." "하마마츠에서 온  사자를 만나보기 위해서야. 걱정할 것 없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예." 시동 셋이 나간 뒤 노부야스는 가만히 와키자시를 칼집째 허
리에서 뽑아들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달빛이 밝아지면서 귀뚜라미소리가 더욱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노부야스는 조용히 겹옷
의 가슴을 열고, 문득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고 죽은 아야메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야메의 얼굴이 어린 두  딸의 얼굴로 변하고  다시 아내 토쿠히메의  얼굴로 변했다. "아버
님..." 노부야스의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의 사자는 이 노부야스 만나기를 꺼릴 
것이 분명합니다. 노부야스는 마지막으로 친절을 베풀어  그들을 괴홉히지 않고 떠나겠습니
다. 웃고 있습니다. 이 노부야스는..." 이때, 멀리서  복도를 건너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저녁
상이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하마마츠에서 온 사자가 단단히 결심을 하고 찾아오는 것일까? 
'세 사람의 발소리...' 노부야스는 얼른 옷깃을 여몄다. 단단히  결심을 하고 온, 아버지가 보
낸 사자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할말 하고 그 다음에 조용히 할복하는 것이 자기 목숨에 대
한 예의이기도 하다. 
  "아뢰옵니다." 발소리가 옆방에서 그치고 오쿠보 타다요의  음성이 들렸다. "하마마츠에서 
핫토리 한조, 아마가타 야마시로 두  사람이 왔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들어오도록 
하게." 얼른 미닫이가 열렸다. "자,  들어가게." 타다요는 두 사람을  들여보내고 시동들에게 
손짓했다. "너희들은 부엌에 가서 식사하도록 해라." 핫토리 한조와 아마가타 야마시로는 촛
불 너머로 노부야스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핫토리 한조입니다." "아
마가타 야마시로, 주군의 명을 맏들고 왔습니다." "오, 잘 왔네. 아버님이 병환이시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신가?" "예, 지금은 쾌차하시어  그제 아침부터 평소와 다름없이 냉수
욕을 하고 계십니다. 이번에 저희 두 사람이 온 것은..." 핫토리 한조가 용기를  내어 단숨에 
말하려는 것을 노부야스가 제지했다. 
  "서두를 것 없네, 한조. 아직 물어볼 일이 있어."  "예." 아마가타 야마시로는 한조 옆에서 
계속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오쿠보 타다요는 혼자 등을  돌리고 옆방으로 통하는 문지방
에 묵묵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그 타다요의 모습이 노부야스의 마음에 걸렸다. 보기에 
따라서는 접근하려는 자를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앞으로  이 방에서 어떤 일이 벌
어질지를 알고 대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핫토리 한조는 귀신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는 
사나이, 아마가타 야마시로 역시 호탕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혹시 이 두사람은 노부야스
가 할복을 거절할 경우  그 자리에서 베라는  명령을 받고 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면서 노부야스는 스스로도 이상할 만큼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지난 달 이십구일에 자결하셨다는데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알았다. 한
조, 이 노부야스도 자결할 것이니 마침 이 자리에 있는 그대가 카이샤쿠를 해주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