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과학 미스테리
콜린 브루스
1. 귀족 과학자
"왓슨, 통속적인 과학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게나."
나는 삽화로 가득한 교양 과학 잡지를 읽고 있었고, 홈스는 맞은편에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에
한가한 모습으로 앉아서 파이프를 피우고 있었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내
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내 안목을 조금 넓혀보려고 하는 것뿐인데, 어려운 과학 아야기가 나한테는 어울리지 앉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왓슨, 그럴 리가 있나.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게! 그런 책을 통해서 보고서처럼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지성인답게 스스로 생각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한 것뿐이네..."
홈스는 잡지의 표지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읽고 있었나? 별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지구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나는 얼굴이 붉어져서 대답했다.
"이 잡지에 연재되고 있는 공상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 머신(The Time Machine)]을
대강 훑어보고 있었습니다."
홈스는 내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왜 그러세요, 홈스. 나도 뭔가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나를 가르쳐주는 것은 좋지만
어려운 수학은 정말 질색입니다."
홈스는 웃으면서 오른손을 올리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좋아, 왓슨. 골치 아픈 수학 문제로 자네를 괴롭히지는 않도록 하겠네. 날 믿으라구. 사실 수학
적인 내용을 모르더라도 과학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네. 자세한 계산 내용보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내 상각에 과학은 너무 딱딱해요. 사람들이 하는 일이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거대한 우주와
비교해보면 그것들이 아주 사소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딱딱한 과학보다는 더 흥미롭지 않나요?"
"왓슨, 내가 어떤 사건을 맡는가를 보면 알겠지만 그점에서는 나도 완전히 동감하네. 그러나 언
제나..."
바로 그 순간에 낯선 사람이 등장해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어버렸다. 우리가 이야기에 너무 몰
두해서 아래층 소리에 신경을 쓰지 못한 모양이 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젊은 사람이
뛰어들어왔다. 좋은 옷을 입기는 햇지만 눈이 험상궂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셜록 홈스 씨입니까?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아
버지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다.
"아버님께서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버지께서 살해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 경찰이 살해범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홈스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지요?"
"나는 포레이 자작이고, 아버지는 포레이 경입니다. 아마 아버지 성함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
버지는 유명한 고전학자이셨고, 최근에는 자선사업에도 관여하셨습니다. 여기서 2마일도 안 되는
곳에 짓고 있는 천체관이 바로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지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 사람이라면 템스 강 남쪽에 짓고 잇는 웅장한 건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커다란 기차역처럼 보여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대한 초록색 유리 돔은 강 건너편
의 성 바울로 성당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는 공교육을 위한 과학기구
와 모델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내부 구조는 비밀에 붙여지고 있었다.
자작은 계속해서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버지는 모레로 예정된 공식 개관일까지는 건물 내부를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작업 인부들도 모두 비밀을 지키기로 서약을 했습니다. 건물 출입문 열쇠도
두 개만 만들었지요. 하나는 아버지가 가지셨고, 하나는 내가 가졌지요. 다른 출입문은 전부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인부들이 드나들 때는 반드시 아버지는 내가 출입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토요일인 오늘도 천체관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 일찍 도착해보
니 출입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지요. 들어가면서 아
버지를 불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조금 늦으시는 모양이고 생각하고
혼자서 전시품을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지요.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가서 보
니... 무거운 물체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가 어깨를 떨면서 이야기를 멈추자 홈스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의 아버님께서 말입니까?"
"예. 어딘가에 숨어 있던 범인이 힘껏 휘두른 곤봉에 맞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
으셨던 모양입니다. 홈스씨, 내가 아버지와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상속받게 될 재산을 너무 낭비하신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께도 그런 내
생각을 감추지 않았지요.
그래서 이 사건이 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스위스제 열쇠는 복제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누군가 억지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어요.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은 아버지와 나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열쇠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목에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즉시 체포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문을 잠가두고 이
리로 달려왔습니다."
홈스는 두 손을 비비면서 일어나서 소리쳤다.
"살인사건이라! 잠긴 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보았지만, 잠긴 박물관에서 일어난 수수께끼는
처음이군요. 물론 곧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지만 우리가 먼저 가서 현장을 살펴보아도 상관은 없
겠지요. 당신 말처럼 경찰의 추리력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도 당신이 부당하게 구속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포레이 자작은 상화이 급하기는 하지만 먼저 대학교 가서 천체관의 과학 고문을 맡고 있는 서
멀리 교수에게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나 서멀리 교수가 연구실에
없었기 때문에 메모를 남기느라 조금 더 지체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박물관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는 유스턴가에서 오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그러나 지
하철의 신호에 문제가 생겨서 잠시 동안 다른 지하철과 함께 서 있게 되자 포레이 자작은 안절부
절못하는 못습이었다.
"아! 드디어 다시 움직이는군요."
옆에 서 있던 지하철의 창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아무도 내 말이 틀렸다고 부정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 서 있던 지하철의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는 우리가 타고 있는
지하철은 제자리에 그냥 서 잇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움직인 것은 옆에
서 있던 지하철이었다. 내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자 자작이 말했다.
"기차는 물론이고 우주를 관찰할 때도 흔히 하게 되는 실수지요. 사실 모든 별과 행성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거나 서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에 있는 우리는 화성이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움지인다고 생각하지만, 화성에 있는 관측자는
정반대로 자신은 가만히 서 있고 지구가 움직인다고 믿을 겁니다. 당신 말이 맞을 수 도 있지요.
옆에 있던 지하철은 아직도 서 있고, 우리가 타고 있는 지하철과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아버지의 살인사건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자작이 약간 돌아번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유
치한 철학적 의미에서는 그 이야기가 맞을지 몰라도, 수백만 런던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어느 지
하철이 움직이고 있는가는 분명할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서로 다른 관점이나 세계관이 사실은 모두 동등한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또 모
든 과학 문제에 명백하게 옳고 그른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서양 과학의 냉정한 환원주의를 대단
히 싫어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조들의 생각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셨지요. 예를 들어서 그리
스의 철학은 여러 면에서 현대 철학보다 우수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정확한 측정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 철학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만약 그들이 정확
한 측정기구를 사용할 수만 있었다면 현대 물리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더욱이
그리스 철학자들은 실험보다 노리를 더 신봉했지요. 논리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어
떤 가설이 모순인가 아닌가를 알아낼 수 있었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적절한 측정기구가 없었다는 것이 그리스 철학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요."
홈스는 자작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대화라면 무엇이나 좋다
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체의 질량이 두 배가 되면 떨어지는 속도도 두 배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모든 물체는 크기나 밀도에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물론 공기 저항은 무시하고 말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가 실제로 실
험을 해보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이 사실인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해봅시다.
두 개의 벽돌을 접착제로 붙여서 떨어뜨리면 어떤 속도로 떨어지겠지요. 그런데 만약 접착된 부
분을 잘라서 벽돌을 다시 두 개로 만든 다음에 함께 떨어뜨리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벽돌 조각
은 합쳐진 덩어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렇다면 두 개의 벽돌 조각은 함
쳐진 덩어리가 떨어지는 속도의 절반의 속도로 떨어질까요?
이런 이야기를 더 극단적으로 끌고 갈 수도 있죠. 만약 두 개의 벽돌 조각을 머리카락 정도의
가는 실로 연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말도 안 되는 역설이지요! 그리스인들이 철학이나 정치
학에서는 뛰어났지만 과학적인 면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훌륭한 고전학자셨습니다, 홈스 씨, 나는 당신의 의견보다는 아버지의
의견을 더 존중하고 싶군요."
당황한 자작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홈스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
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천체관의 거대한 출입문 앞에 도착했을 때야 다시 정신을 차
리는 것 같았다. 함께 안으로 들어간 자작이 벽에 있는 큼직한 스위치를 켜자 눈앞에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모습이 나타났다.
천장 전체를 불규칙적인 모양으로 장식하고 있는 전등에 불이 들어오자 그 전등의 배열이 하늘
의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다만 별들이 어두운 하늘이 아니라 전체
가 밝에 칠해진 돔 벽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사냥꾼 자리, 가재 자리,게
자리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름 붙인 별자리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별자리 모양이 아
름답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교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천체관의 바닥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작을 따라서 방 가운데로 가
던 중에 갑지가 시야를 가로막으며 지나가는 거대한 물체 때문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방금 지나간 것은 시간을 상징하는 거대한 진동
자입니다."
우리가 가운데로 다가서자 진동자의 못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진종자는 허리 높이 정도를
지나가도록 돔 중앙에 50미터 정도의 줄에 매달려 있었다. 방 가운데에는 진동자의 경로를 따라
서 밝은 색으로 칠해진 버팀목이 놓여 있었다. 관객이 진동자의 경로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모양이었다.
방의 중앙에서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끔찍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한 남자가 머리를 옆
으로 향하고 엎드려 있었는데, 그의 머리 뒤쪽은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시신을 살펴보니 적어도
여섯 시간 전에 사망한 듯했다.
주변에 육중한 기계들이 많기는 했지만 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기계는 없었다.
남북 방향으로 진종하고 있는 진동자는 시신으로부터 10미터 안으로는 접근하지 못할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충격으로 시신이 밀려나갔다고 하더라도 방 가운데로부터 동쪽에 있는 시신의 위치
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홈스는 주변을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여러 가지 전시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지름이 무려 2미
터나 되는 지구의 앞에 멈추어 섰다.
"이 전시물은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로군요.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있고, 히말라야 산맥은 표면
에서 적어도 1밀리미터 정도 솟아 있고, 균형도 잘 잡혀 있어요."
그는 받침대에 걸려 있는 지구의를 살짝 돌려보았다.
"그렇지만 이 장치는 고정된 채로 회전하기만 하니까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될 수는 없겠군요. 그
런데 이건 도대체 뭡니까?"
지구의 바로 옆에는 전체가 푸른색으로 칠해진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표면에 양각으로 대
륙의 모양이 새겨져 있였고, 가운데에는 하얀 마개로 막아놓은 파이프가 튀어나와 있었다.
"홈스 씨, 그것은 옛날 유럽 사람들이 상상하던 납작한 지구의 모형입니다. 그 모형을 작동시키
면 가운데 파이프에서 물이 솟아오르게 되어있는데, 바로 북극의 얼음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상징
합니다."
"그러니까 그 물이 지구의 가장자리로 넘쳐흐르면서 끝없이 이어진 둥근 폭폭가 되겠군요. 정말
멋집니다."
나는 홈스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었다.
"참 황당한 생각이었군요.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자작이 냉랭하게 말했다.
"지구가 납작하다고 믿었던 사람은 대단히 많았습니다. 왓슨 박사, 누가 감히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의 정당성을 분정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오
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세계관도 당신이나 나의 세계관만큼이나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으셨습니
다."
걸음을 옮기면서 홈스는 내 귀에 속삭였다.
"저 삶은 지구가 납작하다고 믿는 항해사가 항로를 잘못 계산해서 어디로 항해하고 있는지 모르
는 상태에서 식량이 떨어졌다고 해도 저렇게 아량이 넓을까? 서로 다른 세계관의 정당성만 생각
하고 있군! 아마도 예술적 감성을 가진 귀족의 자만이겠지. 오, 그런데 이것은 또 뭔가요?"
우리 앞에는 큰 전구가 달린 회전축에 수평 방향으로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막대기가 붙어 있
는 기계가 있었다. 막대기 끝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유리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공들이 붙어 있
었다.
"아, 그것은 태양계의 모형입니다. 가운데 전구는 태양입니다. 가장 짧은 막대기에 달린 붉은 공
은 수성이고, 푸른 공은 지구를 나타냅니다. 여러 색으로 칠해진 큰 공은 목성이지요. 어떤 유리
세공가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토성에 붙어 있는 고리는 멋진 장식품처
럼 보이지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행왕성이 틀림없습니다."
홈스는 그 장치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운데 톱니바퀴는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다른 어떤 모형보다도 훨씬 더 복잡해 보이는군요?"
"그렇습니다, 홈스 씨. 이 장치는 행서으이 궤도가 정확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고, 행성이 움직이
는 속도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사실까지 고려한 정교한 모형입니다.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실제 행성의 움직임을 아주 정확하게 재현했지요."
놀랍게도 홈스는 기계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지구를 나타내는 유리공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들이
밀었다. 공의 아래쪽에 구멍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그겁니다, 홈스 씨. 당신은 지금 지구에서 보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모양으로 배열된 행성
을 보고 계십니다. 원하신다면 화성이나 목성에서의 모습도 직접 볼 수가 있지요. 이 태양계 모형
은 앞으로 또는 뒤로 빠르게 돌릴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수천 년 전 또는 수천 년 후의 하
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치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여행도 보여주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훌륭한 천체관 개관식에는 과학추리 소설가인 웰스 씨를 초대하는 것이 좋겠군요."
내가 자작에게 말했다. 그때 홈스는 다음 전시품을 매우 의아스럽다는 듯이 살펴보고 있었다. 태
양계 모형과 비슷하게 생긴 그 장치의 가운데에는 지구의 대륙이 그려진 큰 의자가 있었고, 그
의자에는 여러 개의 톱니바퀴로 연결되어 있는 팔이 달려 있었으며, 그 끝에는 행성을 나타내는
공이 달려 있었다. 그 장치는 아직도 제작이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주변이 매우 지저분했고, 제대
로 작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작은 난처한 듯이 말했다.
"홈스 씨, 그것은 보통의 천체 모형보다는 훨씬 현대적인 겁니다."
홈스는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오! 그렇군요. 정말 태양계 모형의 지구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 보이는군요. 훌륭합니
다."
그리고 나서 홈스가 내게 말했다.
"왓슨,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앙에 정
지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을 기억하나? 사람들은 일정한 자리에 별들이 붙어 있는 천구가 하루
에 한 번씩 회전하며, 행성과 달과 태양도 지구 주위를 완전한 원형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고 믿
었다네. 완벽한 원형 궤도가 일종의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여겼던 모양이야.
그렇지만 행성이 지구 주위를 완전한 원형 궤도를 따라 돌고 있지 않다는사실은 아주 초보적인
측정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행성의 움직임은 원형 궤도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거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기원전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
의 천문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당시의 천동설에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네.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은 이런 것이라네. 먼저 지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형 궤도를 따라 움
직이고 있는 가상의 점을 생각해보게. 그리고 그런 가상의 점을 중심으로 또다른 원형 궤도를 따
라 움직이는 두 번째 점을 생각해보게. 물론 지구에서 보면 두 번째 점의 움직임은 매우 복잡하
게 보일테지. 원형 궤도의 중심이 다시 어떤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을 주전원이라고 하
네. 두 개의 원형 궤도가 합쳐지면 행성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그 속도도 일
정하지 않고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도 하는 아주 복잡한 결과가 생기네. 그렇지만 그런 궤도도 역
시 '완벽한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원형 궤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더 정밀한 측정을 해보니까 한 개의 주전원만으로는 행성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행성의 궤도를 정확하게 나타내려면 행성이 어떤 점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고, 그 점은 다시 다른 점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고, 다른 점은 또 다른 점을 중시밍
로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여러 개의 주전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지.
결국 주전원 개념으로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주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렇다고 주전원 이론을 완전히 버리기도 어려웠다네. 충분히 많은 주전원 이론을 이용하기만 한다
면 실제로 측정한 행서의 궤도 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전원 개념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지. 그래도 결국은 꼴사나울 정도로 지저분하게 되어버린 주전원 대
신에 훨씬 단순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
그런 상황에서 수도사인 코페르니쿠스의 유명한 지동설이 등장했지. 지구가 한 곳에 가만히 있
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이 축을 중심으로 자전도 한다는 주장이었다네. 그렇게
생각하면 천체의 움직임을 모두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
"너무 복잡한 이야기로군요."
"그런가?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동설을 적극적으로 설득시키고 노력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군. 다만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천체의 움직임을 더 쉽고 정확
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이라는 것야. 즉 그의 지동성은 마치 어려운 계산을 쉽게 만
들어주는 산수의 요령 정도인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지."
"당시로서는 현명한 처세술이었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지동설을 훨씬 더 과격하게 밀어붙였던 갈릴레오가 결국 교황의 지시를 받은
종교 재판관의 고문 위협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취소해버릴 수밖에 없
었던 것을 보면 코페르니쿠스는 오히려 현명했다고 볼 수도 있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교회의 지시나 교훈에 대한 저항이 쉽게 인정되지 않았거든. 천주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코페르
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부당한 탄
압에 대해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네. 그런 사실 때문에 교회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교황이 그럴 수 있는 배짱을 가졌으면 좋겠어."
아버지의 살인사건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에 지쳐버린 자작이 기침을 했다.
"아버지는 앞에 있는 이 장치를 가장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
동설이라는 세계관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복잡한 주전원 궤도 장
치를 고안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과학적인 자문을 해주는 서멀리 교수가 이 기계에 대해서 아주 냉소적이었던 것이 문제
였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이 기계가 상당히 정확지 않아서 주전원의 수를 자꾸만 늘렸지요. 그래
서 이렇게 복잡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자작이 안타까운 듯이 주변을 서성거리는 동안 홈스는 붙박이처럼 서서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도 옆에서 천체 모형을 보고 있다가 문득 어떤 영감이 떠올라서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
다.
"홈스, 여기 천왕성이 매달려 있는 팔을 보세요. 지금음 거의 모든 연결 부위가 접혀 있는 상태
지만 시간이 지나서 무두 퍼지게 되면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집니다!"
나는 천체 모형이 정상적으로 움직였거나 고장이 생겨서 팔이 갑자기 쭉 펴지게 되었다면 무심
히 서 있던 포레이 경에게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네, 왓슨. 우선 팔이 너무 짧아 보이지 않나?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
다면 팔에 매달려 있는 유리공에 무슨 흔적이 남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군. 우리
는 포레이 경과 자작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서도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증거보다는 가능성
이 높이 증거를 찾아내야 하네."
홈스가 좀 냉담하게 말하면서 자작에게 돌아섰다.
"자작님, 벌써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 원하신다면 저도 수사를 계속하겠지만,
이제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자작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바깥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
렸다. 홈스가 문 쪽으로 가려던 자작을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자작님은 이곳에 있으세요. 왓슨, 자작님에게서 열쇠를 받아 문을 열어주게나. 경찰이
벌써 도착한 모양이네."
그러나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바깥에는 경찰 대신에 깡마른 노신사가 서 있었다.
"나는 이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서멀리 교수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에 들어가보아야겠습니
다."
말을 마친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나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와서 사건현장
을 살펴보았다.
"말썽꾸러기 진동자 때문이었군. 맙소사. 포레이 경께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충
고를 따라야 했었는데..."
서멀리 교수가 탄식을 하면서 외쳤다. 그는 자작의 팔을 잡고 있는 홈스에게 말했다.
"자작을 놓아주시오. 범죄가 아니라 단순한 사고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어수룩한 어린아이에게 말하듯이 물었다.
"여러분은 진동지가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처음과 똑같은 방향으
로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내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진동자를 요의선상에서 제외시켯습니
다."
서멀리 교수는 콧웃음을 치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지구는 언제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요?"
그러자 홈스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서멀리 교수는 지구를 나타내는 커다란 공 위로 올라가서 말했다.
"간단한 경우를 살펴봅시다. 북극에서 진동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진동자가 페가수스 자리에서
처녀 자리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는 돔 천장을 슬쩍 올려다보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진동자가 흔들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지구도 회전을 계속하겠지요."
"아하! 그러니까 지구의 자전 때문에 마치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뀐는 것처럼 보이겠군요?"
내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여섯 시간이 지나면 처음 방향과는 직각이 되는 쪽으로 흔들리게 되지요.
돌아가고 있는 레코드 판 위에 앉아 있는 벌레처럼 말입니다."
서멀리 교수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여섯 시간이 지나면 처음 방향과는 직각이 되는 쪽으로 흔들리게 되지요.
돌아가고 있는 레코드 판 위에 앉아 있는 벌레처럼 말입니다."
서멀리 교수가 나를 쳐바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진동자가 북극이 아니라 중간 위도에 위치하고 있므면 그 움직임은 기학학적으로 더 복
잡하게 되겠지만 원리는 똑같습니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뀌는 것처럼 보
인다는 것이지요. 북반구에서는 진동자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남반구에서는 반
시계방향으로 회전합니다. 1891년 프랑스의 레옹 푸코가 처음으로 고안했던 이 진동자 덕분에 지
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내가 알기로는 포레이 경께서는 이 돔에 대해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
는 자주 그분의 황당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완벽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비판을 했지요.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포레이 경이 자신의 생각을 감추려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지요. 포레이
경은 어제 밤에도 진동자 부근에 뭔가 새로운 실험을 준비해두고 오늘 아침에 그 결과를 보려고
돌아왔을 겁니다. 그런데 밤 사이에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뀌어버렸을 것이고, 원래의 진동방향
을 따라서 설치해두었던 안정장치도 넘어져버렸겠지요. 그런 사실을 몰랐던 포레이 경은 자신의
실혐결과를 살펴보고 있던 중에...
어제 밤의 진동방향만 생각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 서 있던 포레이 경은 진동방향이 바뀌
어버린 진동자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즉사한 겁니다!"
서멀리 교수가 몹시 흥분한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후로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진종자의 진종방향은 계속 바뀌었고, 오늘 아침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진동방향이 다시 사고현장에서 상당히 떨어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진동자
를 의심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서멀리 교수는 슬픈 표정으로 머리를 저었다.
"포레이 경께서 스스로 자신의 지혜만을 너무 믿고 선조들의 가르침이 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입니다. 직선운동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지만, 회
전운종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태양은 물론이고 별도 볼 수 없는 깊은 동굴에서만
지내더라도 지구가 어떤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지요. 그런 사실을 알
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고 자전의 속도까지도 짐작할 수 있답니다."
내가 물었다.
"물론이지요.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뀌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고, 짐벌에 회전판이
고정되어 있는 자이로스코프를 사용할 수도 있스빈다. 지이로스코프에 붙어 있는 회전판은 언제
나 일정한 방향을 향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이로스코프가 놓여 있는 지구가
자전을 하게 되면 자이로스코프는 회전축의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자이
로스코프에 작용하는 힘은 측정하기도 어렵고 계산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이
로스코프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지만 회전운동의 특성을 이용한 자이로스
코프는 장거리를 운항하는 비행기의 자동 항법 장치에도 사용된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회전 때문에 전기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전기를 띤 물체를 회전시키
면 자기장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지요.
그런 예는 상당히 많습니다. 요즈음에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지구가 회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신고하기 위해서 우리 네 사람이 복스홀 경찰서로 걸어가는 동안에 나는 그의
거만한 말투에 기분이 상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고 합시다. 그래도 지구가 일정한 위치에서 회전을 하
고 있고, 태양이 다른 행성이 주전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서멀리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면서 설명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밤하늘의 별을 이용해도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더라도 별들의 상대적인 위치는 망원경을 사용해야 알아낼 수 있을 정보밖에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측정을 하지 않더라도 주전원의 개념에는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행성에 대해서 별도의 주전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말이지요. 만약 주전원의 개념이 옳다면 가끔씩 나타나는 혜성의 경우에는 그
궤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겠지요. 어떤 주전원의 필요한가를 알아내지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혜성도 태양의 중력을 받는 궤도를 따라 움직일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정확하게 그 궤도를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정확하게 그 궤도를 예측할 수 있습니
다.
주전원 개념의 근본적인 문제는 주전원을 충분히 많이 도입하면 어떠한 궤도도 설명할 수 있다
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런던의 번화기인 피카딜리가를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는 주정꾼의 움
직임도 주전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설명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과학에서는 '경제성의 원리' 또는 '절약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오컴의 면도날
원리'가 아주 중요하지요. 14세기 오컴의 원리의 윌리엄 공의 이름을 따서 붙이 이 원리는 실험으
로 관찰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설의 수는 최대하능로 적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런 원리가 필요 없다면 참으로 황당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겁니다.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서 너무 많은 수의 가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설명이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일반
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 되지요. 그러니까 인가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부정할 수도 없게 되겠지요. 사실은 우리가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적
인 여우가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한심한 대화를 계속하기 싫다는 듯이 성큼성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햇살이 밝은 저녁 무렵에 베이커가의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홈스가 말했다.
"왓슨! 오늘은 정말 뭔가를 배운 것 같군."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까?"
"아니지.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거라네. 우리가 처음 만난지 얼마안 되었을 때 내가 코페
르니쿠스 이론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는 자네를 놀렸던 적이 있었지, 아마?"
"그랬지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나도 지구가 태양을 돌거나 아니면 태양이 지구를 돌거나 하는 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
관도 없다고 생각했었다네. 그렇지만 오늘 같은 사건의 경우에는 내가 과학에 대해서 전혀 몰랐
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교수대로 보내버렸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왓슨, 지금부터는
좀더 과학적인 자세로 사건을 다루어야겠네."
2. 사라진 에너지
어제 찾아왔던 사람이 계단을 올아오는 소리를 듣고 흠스가 말했다.
"이 사람은 좀 이상하군. 어제 찾아왔을 때 허드슨 부인에게 모리슨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려 들지 않았다네."
나는 사무실로 들어서는 모리슨 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홈스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단
서를 찾아내는 데에 감탄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의사들이 종합진단이라고
부르는 종합적이고 직김적인 인상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리슨 씨를 자세하게 관찰해보았지만 기억할 만한 특징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검은 얼굴과 거친 손을 보면 노동자인 것도 같았지만, 훌륭한 옷과 주머니에 꽂혀 있는 만년필을
보면 전문 직업인인 것도 같았다. 약간 휘청거리는 듯한 걸음걸이와 한쪽 손을 조금씩 떨고 있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홈스는 그에게 난로 옆에 있는 의자를 권하면서 말했다.
"만나서 반갑군요. 즐거운 항해였겠지요? 잠수는 안전하게 즐기셨습니까?"
모리슨 씨를 안심시키려던 홈스의 이런 인사가 오히려 그를 아주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자
리에 앉으려던 모리슨 씨는 창백한 얼굴로 벌떡 일어서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내 여행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까? 내가 속았군요. 누가 당신에게 알려주었는지를 말해주
어야만 합니다."
홈스는 흥미롭다는 듯이 몸을 기울였다.
"진정하세요. 모리슨 씨. 아무도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의 휘청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면 당신이 육지에 상륙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더욱이
손을 떨고 있는 것은 잠수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사실은 여기 왓슨 박사도 인정할 겁니다. 물
속에들어갔다가 너무 빨리 올라온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모리슨 씨는 안심이 된 듯이 태도가 누그러졌다.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입니다. 짐작하신 것처럼 나는 항해사입니다. 다른 사람들
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더라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지금은 내가 아주 비밀스러운 곳을
항해하고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예민했던 겁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게 항
해를 부탁했던 사람이 가차없이 나를 괴롭힐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꼭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이
는 그 사람은 우리가 비밀을 지켜주기만 하면 엄청난 보물을 발견할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했답니
다. 그 사람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요. 만약 우리가 야생 거위를 쫓아다닌다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항해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를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일부 미신을 좋아하는 선원들이 믿는 것처럼 우리가 항해했던
삼각 해역은 정말 저주받은 곳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답니다."
모리슨 씨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지만 벌써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린 후
였다. 나는 벌써 그가 말한 삼각 해역은 많은 선원들이 너무나도 무서워하는 신비의 버뮤다 삼각
수역일 것이고, 항해의 목적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물을 찾으려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적
도의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황금 덩어리가 실려 있는 스페인의 거대한 범선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홈스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금까지 탐정이라는 직업 때문에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해보기는 했지만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때문에 생긴 사건은 한 번도 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언제
나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해줄 것을 의뢰인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왜 당신이
항해 목적지를 확실하게 말씀하지 못하는가를 이해하겠습니다. 이제 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원하는 만큼만 말해주십시오."
"그러죠. 사건이 시작된 경위는 아주 황당합니다. 유명한 과학자 한분이 우리 회사를 찾아와서
바다 밑에 엄청나게 값비싼 광물질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홈스 씨도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론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잠수정을 비롯한 몇 가지
특수 장비를 빌리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 탐사에는 상당한 비용이들 텐데 거기에 필요한 자금은
충분해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굉장한 부자의 후원을 받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분이 찾으려는 광물질과 의뢰인의 괴착한 성격만 제외한다면 우리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요청
이었지요. 아마도 그분처럼 공격적이고 오만하고 편협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확실히 바
보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만나본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전공 이외의 실용적인 기술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그분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정말 정열적인 분
이었지요."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 후에 모리슨 씨는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로스토프트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다른 일이 생겨서 우리와 함께 항
해를 시작하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좁은 배에서 그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었더라면 내가 그 사람의 목을 비틀어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고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의뢰인이 적어준 지시에 따라 항해를 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바다에서 가끔씩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고이거
나 우연한 일이었지만 정말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강어귀를 지나려고 하는 순간에
배가 갑자기 멈추어버린 겁니다. 해류나 바람도 전혀 없었고, 엔진은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는
데 말입니다. 마틸다 브릭스호가..."
"왓슨과 나를 믿으셔도 됩니다."
홈스가 모리슨 씨를 달래듯이 말했다. 모리슨 씨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마침내 결심을 한 듯이
자세를 편하게 고쳐 앉았다.
"당신을 믿을 수밖에 없군요. 우리는 마치 접착제 위를 항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대 10노
트까지 항해할 수 있는 마틸다 브릭스호의 강력한 엔진도 아무 쓸모가 없었지요. 그곳에서 꼼짝
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마치 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배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아주 어렵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수중탐사를 하기 위해서 잠수
정을 점검했습니다. 잠수정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모리슨 씨는 종이 위에 아주 익숙한 솜씨로 잠수정의 모양
을 그렸다.
"이 잠수정은 아주 단순한 겁니다. 쇠사슬에 매다는 이 잠수정의 바닥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지
요. 그리고 배 위에서 강력한 펌프로 잠수정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서 압축 공기를 밀어넣게 됩
니다. 압축 공기의 압력을 충분히 높이면 잠수정 속에 물이 차지 않게 되는 거죠. 마치 큰 컵을
뒤집어서 물 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위에서 밀어넣은 압축 공기는 아래쪽
으로 계속 빠져나갑니다. 잠수정에 있는 잠수부가 질식하지 않고 호흡을 할 수 있으려면 압축 공
기의 압력을 충분히 높여서 잠수정 안에 이산화탄소가 축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잠
수정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아무 기계장치도 없고 연료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에 탈
물질도 없고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전기 배선도 없지요. 잠수정이 매달리게 되는 쇠사슬과 공기
를 밀어넣기 위한 튜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잠수정에 타고 있는 잠수부가 배와 교신할 수 있는 장치도 없습니까?"
홈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것도 없습니다. 만약 교신이 가능했다면 내가 여기에 올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모리슨 씨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먼저 사람을 태우지 않고 잠수정을 시험해보았습니다. 압축펌프를 가동시키고 쇠사슬을
풀어서 잠수정을 바다 밑에 거의 닿을 정도까지 내려보냈다가 아무 문에 없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지요. 잠수정 안은 사막의 모래처럼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증거였지
요.
잠수정의 안정성을 확인한 다음에 우리는 경험이 충분한 잠수부 두 사람을 태우고 잠수정을 다
시 바다 밑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잠
수부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동안에 겪에 되는 심한 압력 변화에 적응하도록 자주 잠수정을
멈추어야만 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잠수부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서 압력 변화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것을 확실합니다. 특별히 깊은 곳으로 내려갔던 것도 아니고, 잠수정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의
잠수부들은 그 정도 깊이까지 내려간 경험이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수정을 끌어올
렸을 때의 광경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긴장 때문인지 손일 심하게 떨기 시작한 모리슨 씨를 위해서 홈스가 위스키를 권했다. 모리슨
씨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이야기를 계속했다.
"잠수정이 바다 밑에 있던 동안 배 위의 공기 암축 펌프는 물론이고 잠수정을 감아올리는 장치
도 아무 문에 없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수정을 끌어올려서 갑판에 설치된 받침대 위
에 올려놓은 다음에 두 사람의 잠수부가 아래쪽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밀실 공포증
을 일이킬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는 누구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가 잠수정 밑으로 기어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
경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두 잠수부의 피부에는 이상한 반점이 있었고, 두 눈을 부릅뜬 모습으로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
다. 잠수부들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그 옷들은 어디
로 갔는지 없어져 버렸고 모두 발가벗은 모습이었습니다. 자리에 깔고 앉았던 코르크 방석도 없
어져버려서 차가운 철판 위에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남은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홈스 씨,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바보라고 하겠지요? 나는 옆에 있던 스칸디나비아 출신 선
원들이 '크라켄'이라고 속삭이는 말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바다 밑에 살고 있다는 거대한 전설적
인 괴물의 이름이지요. 누르웨이의 전설인 미드가르드 악마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바다 밑을 전
부 휘감을 정도로 길고, 꼬리가 자신의 입 속에 물려 있다고 전해지는 괴물입니다. 그들이 속삭이
던 말에 따르면 그런 괴물이 나타나서 운수가 나빴던 잠수부를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육지에서 의사를 데려왔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
은 잠수부들이 모두 열병으로 죽었다는 겁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속에서 열병으로 죽었다니!
그것도 뜨거운 것이라고는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잠수정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닷속에 악마뱀
이 있다는 말이 더욱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깊은 바닷속에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물리법칙이 성립되니 않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겪은 사건은 정말 황당한 것이지요. 혹시 19세기 중반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
었던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내가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젖자 모리슨 씨가 설명을 계속해싿.
"플로지스톤 이론에 따르면 열은 어떤 물질이라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기
체와 같다고 합니다. 물체의 내부에서는 자유로은 형태의 플로지스톤이 새어나옵니다. 두 물체가
접촉하고 있는 경우에는 기체와 마찬가지로 그런 자유 플로지스톤이 한 물체에서 새어나와서 다
른 물체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가운 물체와 뜨거운 물체가 서로 접촉하면 차가운 쪽이
뜨겁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한편 연료와 같이 연소될 수 있는 물체는 갇힌 형태의 플로지스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플로지스폰은 연소 과정에서 불꽃으로 방출된다고 하지요."
"아주 일관성 있는 이론이 모양이군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언뜻 보면 상당히 일관성 있는 일관성 있는 이론처럼 보이기도 할 겁니다. 현대적
인 의미의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사물을 보는 올바른 방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과학자들
은 맷돌을 돌리면 마찰 때문에 새로운 플로지스톤이 무한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반박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망치질을 계속하면 물체가 뜨거워지는 것도 같은 경우가 되지요. 이처럼 플로지스톤
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있다면 플로지스톤이 불변의 물질이라는 생각과는 확실이 모순
이지요.
그런 역설적인 현상 때문에 결국 플로지스톤의 개념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에너
지의 보존법칙으로 일반화되었답니다. 에너지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런 다양한 에너지를 모두 함치면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물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운동 에너지', 높은 곳에 있는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면 줄어드는 '위치 에너지', 뜨거
운 물체가 가지고 있는 '열 에너지' 등이 그런 에너지의 예입니다. 또한 열 에너지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이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에너지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전문 기술자인 나로서는 원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면 원자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번 생각해봅시다. 믿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플로지스톤이 존재한다고 합시다. 우리 배가
바다 위에서 완전히 멈추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지요? 우리가 목표로 했던 잠수 지점에 도착
할 때까지도 배의 스크루는 끊임없이 힘차게 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크루의 에너지는 도대
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요?"
"플로지스톤이 구름이 되어 사라졌다는 겁니까?"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소리치다가 갑자기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스크루에서 방출된 플로지스콘 구름이 물 속에 떠돌아다니다가 잠수정과 접촉하게 되면
서 잠수정을 뜨겁게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잠수정의 온도가 올라가니까 잠수부들
은 옷을 벗어버렸고, 몸을 식히기 위해서 바깥쪽의 차가운 바닷물과 접촉하고 있는 철판에 몸을
밀착시켜보았지만 결국은 높은 열에 의해서 사망한 것이 아닐까요?"
모리슨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홈스는 조금도 동의하는 기색이 없이 말했다.
"솔직히 말씁드면, 내 전공은 물리법칙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법률을 어
긴 사건을 수사하는 겁니다. 내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물리법칙보다는 인
간의 법칙이 깨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답니다. 그런데 모리슨 씨가 생각하는 두 번째 가능성이란
어떤 겁니까?"
"나는 두 번째 가능성으로 악마처럼 교활한 훼방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로 그
런 이유 때문에 최고 수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런던으로 돌아온 겁니다."
모리슨 씨가 말을 계속했다.
"이제 런던에 돌아와서 겪은 일을 모두 말씀드리지요. 나는 먼저 이 항해를 의회했던 임피리얼
대학교의 챌린저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분이 유별나기는 하지만 아주 유능한 분이라고 여
겼습니다. 그런데 챌린저 교수는 마침 해외여행 중이어서 만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아주
훌륭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왕립학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믿을 만한 신분을 가진 사람의 말에는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열심히 설명하는 나를 경멸하
는 표정으로 바라보더군요.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너무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그
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플러지스톤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바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 참 얄궂은 일이었군요. 1847년에 제임스 프레스콧 주링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
정할 수 있는 실험을 소개했던 곳이 바로 그 왕립학회였답니다. 그는 기계적인 일뿐만 아니라 전
기 에너지나 위치 에너지도 결국은 열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했지요."
나는 그의 말을 조금도 믿을 수가 없어서 물었다.
"위치 에너지도 열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렇다네. 줄은 폭포의 위와 아래에서 물의 온도를 정밀하게 측정해 보았더니 물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온도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발견했지. 그는 물의 온도를 1도 올리기 위해서 얼만큼의 일
을 해주어야 하는지도 측정했었네. 그런데 플로지스톤 이론을 신봉하고 있었던 왕립학회는 줄의
천재적인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을 돌려보내고 만 거야. 그후에 줄은 맨처스터의 성 앤 교
회에서 유명한 강연을 시작으로 일반인을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파하기 시작했다. 줄과
같이 천재적인 과학자는 당시 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과학적 진리보다는 자기 자신이 직접 발견
한 논리를 더 믿었던 셈이라네.
줄의 이야기는 우리와 같이 과학 분야의 문외한들도 과학 발전에 기여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
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어. 수학으로 무장한 과학자보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 더 현명한 판단
을 내릴 수도 있다는 거지. 이제 모리슨 씨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계속 들어볼까요?"
"그러지요, 홈스 씨. 그런데 왕립학회에서 내 말을 들어보겠다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서멀리
교수였지요. 그렇지만 그분도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그저 조사해보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분은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그저 조사해보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분은 내가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
라고 여기는 모양인지 내 이야기 중에서 허점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답니다."
홈스가 말했다.
"우리도 서멀리 교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챌린저 교수에 대한 수문도 들었지요. 유머도 없고
자제력도 없는 그 사람이 자신의 황당한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런던 사람들 대신에 외국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과학적인 문제를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두 번째
가능성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사건이 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수수께끼가 아니라면 훼방꾼이 있었다고 보는 것
이 옳겠지요. 그런 훼방꾼은 틀림없이 상상력이 뛰어난 재주꾼일 겁니다. 그런 가능성을 정확하게
수사해줄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추천해주더군요."
홈스는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수사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런던에서의 일이 바쁘기 때문에 지금 장장은
항애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왓슨 박삭가 다녀올 수 있다면 되겼군요.
왓슨 박사, 잠시 바다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어떤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든지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어린 시절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언제나 상당한 시간이 걸
리는 모양이지요? 버뮤다의 삼각 수역 밑에 가라앉은 금 덩어리를 찾으러 가는 겁니까? 두렵다니
요?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겠습니다."
모리슨 씨는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금 덩어리라니요? 그리고 버뮤다의 삼각 수역은 또 무슨 말입니까? 왓슨 박사님, 내가 지금까
지 이야기했던 곳은 노르웨이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몹시 추운 바렌츠 삼각 수역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금 덩어리가 아니라 검은 금이라고도 하는 석유를 찾고 있답니다. 내일 오후에 출항할
예정인 아이시스호로 함께 떠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모리슨 씨가 떠나자 나는 근심에 잠기게 되었다.
"홈스,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하게 돼서 기쁘기는 합니다만... 내가 수사를 해서 실패한 적이 많았
다는 점이 걱정이군요."
"왓슨, 그런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은 장난이 아니네. 모리슨씨가 말하던 훼방꾼 이야기
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해밑에 엄청난 유전이 있을 것이라는 챌린저 교
수의 주장을 괴짜의 단순한 헛소리라고 여길 거야. 그런데 그런 주장을 믿고 살인을 할 이유가
있을까?그런 가능성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거지.아마도 아주 간단한 실수였거나 단순한 자연현
상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을 꺼야."
"만약 그렇다면 더욱 어려운 일이군요! 최고의 과학자의 경험이 많은 기술자도 이해하지 못한
일을 내 능력으로 어떻게 알아낸단 말입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적임자야.자산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문재에 대해서는 당연한 사실
을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몇 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아주 유명한 과학자가 자문
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 누군가 납을 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기계를 가져와서 그에게 사라고
요청을 했던 모양이야.
자네도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겠지.어떤 원소가 다른 종류의 원소로 아무렇게
나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은 화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잖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의 종류는
100가지도 안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금과 같은 원소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거나 사라
지지는 않지.
그런데 그 과학자는 스스로의 재능에 희생되었네. 그는 현대판 연금술사가 주장하는 엉터리 기
계의 작동원리에 유혹되어서, 세 면이 금으로는 그 납 덩어리를 이용한 요사한 마술에 완전히 속
아버렸지.그 기계는 그 납 덩어리의 겉을 진짜 금으로 덮어씌우는 장체 불과했다네.아마추어 마술
사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엉성한 수법에 훌륭한 과학자가 감쪽같이 속아버렸던 거야.
사건을 해결할 때 상상력과 재능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방해가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
이네. 그보다는 신뢰와 진실서잉 더 중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번 사건이 바로 그런 것 같네, 왓
슨."
나는 다음날 아침 로스토프트로 가서 조그마한 증기 화물선인 아이시스호에 올랐고, 이틀 동안
의 항해 끝애 북해에 정박하고 있는 마틸다 브릭스호에 도착했다. 나는 거친 바다에 익숙하지 않
은 탓에 첫날은 꼼짝도 못하고 선실에 갇혀서 지내야만 했다. 다른 승객이 소란을 부리는 소리를
듣고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출항하기 직전에 선원을 위협해서 배에 올랐던 승객이 소란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그가 선원들에게 선장을 만나도록 해달라고 우기는 황소 같은 목소리가 자주
들려왔지만 그 숭객과 마주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당행스럽게도 둘째 날에는 날씨가 좋아져서 나는 갑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갑판에 올라가보
았더니 어제 소란을 부리던 승객이 난간에 기대서서 졸고 있는 듯 더부룩한 머리를 끄덕이고 잇
었다. 그는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나를 냉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율리시스처럼 짙은 포도주색 바다를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내가 용기를 내서 조금은 바보처럼 말하자, 그 사람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한 잔의 포도주 안에 우주가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 곧 당신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큰 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저 앞에 있는 수평선을 봐요. 옛날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지구가 납작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렇지만 수평선을 바라보면 지구의 곡선이 확실하게 보잊 않습니까?"
나는 그가 가리키는 쪽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화물선의 위쪽 갑판에 올라가면 모르겠지만, 바
이킹 선원처럼 파도 바로 위에 서 있던 나는 파도가 거의 없었는데도 그런 곡선을 알아 볼 수는
없어싿. 어쨌든 사람의 눈은 완만한 곡선을 인식하는 데에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래서 그리스 건물의 기둥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직선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가운데를 약간
불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내 이야기
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당신은 남들이 말해주는 것을 무조건 믿지 않고, 스스로 어떤 것이 진실인가를 확인
해볼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말을 마친 그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바이킹들은 지구가 납작하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는 있었을 겁니다. 당신은 지구
의 표면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세상의 끝은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 바닷물이 흘러넘치는 그런 끝 말입니다."
"아무리 바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옛날의 스칸디나비아 사람에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구의 표면이 끝이 있는 것도 아니
고 그렇다고 끝없이 이어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나는 갑자기 소리쳤다.
"설명을 듣고보니 바로 그것이 역설이로군요! 평면에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없이 이어짖도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역설이지요."
"그렇습니다. 수평선의 모양을 관찰하거나 다른 실마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생각이 역설이
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아주 중요한 결론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역설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역설이 나오게 된 가설 중에 뭔가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수평
선의 정확한 모양을 관찰하는 못하더라도 지구가 편편하다는 가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그런데 지구가 둥그렇게 이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무한히 큰 평면이나 또는 유한한
평면의 경계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모두 해결되어버립니다."
그는 갑지가 화제를 바꾸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하는 역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아무렇게나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동안 내 대답을 기다
리던 그가 다시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 말해드리죠. 내가 바로 이 탐험을 주도했던 챌린저 교수입니다. 내게는 마음놓
고 말해도 좋습니다. 나는 어제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조지 에드워드 챌
린저의 일을 조사하는 탐정이 있다니! 이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들어봅시다."
나는 머뭇거니다가 대답했다.
"당분간은 추측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모리슨 씨의 플로지스톤 이론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의 의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콧웃음을 쳤다.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생각이로군요.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
로 실제로 아무 관련도 없는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렇다면 교수님은 과학계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배척하는 데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말을 들은 그는 의기양양해 보였다.
"현명한 살마들이 믿는다고 무조건 믿으면 안 되지요! 지금까지 과학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학식 있다는 바보들이 결정적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이 밝혀졌을 때 진정한 발전이 이룩되었습니
다."
"그렇다면 인습타파주의만을 믿어야겠군요."
나는 그를 진정시켜보려고 했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용감하게 주장했던 새 이론이 완전히 틀렸던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았지요.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이론을 제안한 사람의 명성 때문에 그 이론을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과학에서 성공한 기록을 남긴 과학자가 제안한 이론을 더 쉽게 믿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뉴턴이 믿었던 황당한 이야기가
그런 예가 될 겁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모두 천재였지만 때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스러
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천재들에게는 무척 다행스럽게도 보통 전기 작가들은 그런 점
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론을 처음 접할 때는 그것을 주장한 사람의 정직성을 비롯한 인간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들 중에는 자신들
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자료를 조작했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식물의 번식에 대한 멘
덜의 업적도 그런 예가 됩니다. 동전을 1,000번 더지면 앞면과 뒷면이 정확히 500번씩 나온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멘덜의 데이터의 그런 정도로 정확했다는 군요.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의 이론은 옳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론을 제안한 살마이 아니라 그 이론 자체에 대
해서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이론이 제안될 때마다 그 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방법을 고안해야겠군
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적절하고 완벽하게 생각하는 것
이 더 중요합니다. 행동으로 옮기기에 앞서서 그 이론이 이미 알려진 다른 이론과 모순되지는 않
는지와 그 결과가 무엇일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실험을 하게 되면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챌린저 교수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그래도 대부부느이 경우에는 새로운 이론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
어 회전축을 빠른 속도로 계속 돌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지 않고는 회전운동에서 열이 발생된다
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실험 때문에 플로지스톤 이론을 배척할 수 있었
던 것이 아닙니까?"
챌린저 교수는 화가 난 표정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윈시인들이 어떻게 불을 피웠는지 알고 있어요? 원시인들은 나무 껍질
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뾰족하게 만든 막대기를 나무 껍질에 대고 빠르게 돌려서 생기는 열을 이
용했어요. 원숭이에 가까운 원시인들이 알고 있었던 사실을 왕립학회의 고명한 학자들이 정말 모
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런 뜻은 아니겠지요!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지구의 모양에 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새로
운 실험이나 관찰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뜻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가 역설이라
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은 플로지스톤이 존재할 수는 없으면서도 그 양은 언
제나
보존되는 진짜 원소인 것처럼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축이 회전하거나 망치를 두들기면 플로
지스톤이 무한히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그것이 역설 아닙니까? 실제로 역설
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당연히 플로지스톤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어쨌든 플로지스톤 이론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는 이해하겠습니다.그것은 오히려 과학적
신화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해야겠군요."
대화를 조용히 이어가려고 했던 내 노력이 오히려 챌린저 교수를 흥분 시킨 모양이었다.잔뜩 화
가 난 그가 소리쳤다.
"정말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을 하면
서 즐겁게 살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입니다. 증기기관 덕분에 사람들은 힘든 노역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그후에 증기기관은 더욱 발전해서 증기 기관차, 견인 엔진, 발전소로까지 이어졌습니
다. 백 년 후의 사람들은 그런 장치를 별로 신기하게 여기지도 않을겁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에
너지 보존의 법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서 인류가 고통에서 해방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
하세요. 무지와 배은망덕은 과학자들이 견뎌야 할 누명인 모양입니다. 안녕히 주무시오!"
그렇게 말한 그는 획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내게는 오히려 다행스
러운 일이었다.
다음날 뱃멀미에서 완전히 회복된 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라운지에서 선장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은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표현대로 내가 섭취한 화학
에너지를 운동으로 무산시키기 위해서는 갑판을 몇 바퀴 뛰어다녀아먄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갑판으로 올라가보니 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바람이 그렇게 세지는 않
았지만 아주 차가웠다. 우현쪽으로 멀리 눈 덮인 노르웨이 해안이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서
당여한 일일 것이다. 어제 만났던, 말씨름을 좋아하던 챌린저 교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나를 따뜻하게 반겼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아주 좋군요. 그렇지요? 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
답니다.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에너지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싿. 내가 보기에는 배 주위에 아무런 에너지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열과 같은 에너지는 확실히 없었다. 그렇지만 챌린저 교수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릴 생각해봅시다. 이 배는 초속 5미터에 가까운 시속 10노트로 항해하
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한 양의 줄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나는 왕립학회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이 틀리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는 줄이라는 아마추어
과학자의 이름을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챌린저 교수는 당황하고 있는 나를 비웃듯이 바라
보면서 말했다.
"제임스 프레스콧 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에너지의 단위를 말한 것입니다. 그의 주장을 무시
하는 실수를 범했던 과학계는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이름을 에너지의 단위로 사용하기로 함으로써
사과를 한 셈이지요. 에너지의 소비 속도를 나타내는 동력의 단위에도 증기기관을 발명했던 와트
의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우연이기는 하지만 와트의 이름도 제임스였습니다. 어쨌든 어떤 기계가
1초에 1줄의 에너지를 소비하면 1와트의 동력을 소비하는 것이 됩니다."
"옛날 단위가 더 좋은 것 같군요."
"새 단위로 환산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1마력은 대략 750와트에 해당합니다. 그
러니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3,000와트의 동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고, 그것을 줄여서 3킬
로와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요즈음에는 작용하는 힘의 크기와 그 힘이 작용하는 동안에 물체가 움직인 거리를 곱한 것을
에너지라고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봅시다. 1킬로그램의 추를 1미터의 높이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는 약 10줄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한편, 열의 개념을 이용하면 이렇게 되지요. 물 1킬로그램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려면 대략
4,200줄의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러니까 1킬로그램의 물을 어는 점인 섭씨 0도에서 끓는 점인
100도까지 가열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는 그 물을 42킬로미터의 높이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와 같은 셈이지요.
이제 재미로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가가 움직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운동 에너지를 알아봅시
다. 배의 무게가 100톤, 즉 10만 킬로그램이라고 하고, 초속 5미터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시다."
"에너지는 속도와 질량을 곱해서 50만 줄이 되는 겁니까?"
챌린저 교수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성에 의해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경우에는 모멘텀이라는 물
리량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모멘텀이 질량과 속도에 비례하지요. 그렇지만 에너지는 모멘텀과는
달리 속도가 아니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시속 10노트가 아니라 20노
트로 움직이면..."
"가장 빨리 항해할 수 있는 증기선을 선발하는 대서양 경기에 참가해야겠지요."
챌린저 교수는 내 농담을 무시하고 말을 마쳤다.
"운동 에너지는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됩니다."
"그런 정의는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됩니까? 에너지가 속도에 비례한다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에너지를 다른 형태로 변환시켜보면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움직이는 물체를 기계적인 브레이크로 멈추도록 하면 마찰열이 생기지요. 그런데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가 두 배가 되면 마찰열은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됩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려면 아주 정교한 실험을 해야겠군요?"
나는 아주 회의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도 않답니다. 어제처럼 역설을 알아채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
는 물체를 생각해봅시다. 물체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들어올린 높이에 비례하는 만큼의 일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일의 양은 질량에도 비례히지요?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일의 양은 높이와 질량을 곱해서 얻어집니다. 물체를 어떤 높이까지 끌어올린 후에
다시 떨어뜨려봅시다. 떨어지는 물체가 얻게 되는 운동 에너지는 같은 높이까지 물체를 들어올리
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정확하게 같아야겠지요? 그것이 바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랍니다."
"그렇겠지요."
"떨어지는 물체는 지구의 중력 때문에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어떤 물체나 1초 동안 떨어질
때마다 초속 10미터의 속도가 증가하게 된답니다. 자유 낙하를 시작해서 1초가 지나면 초속 10미
터가 되고, 2초가 지나면 초속 20미터, 3초가 지나면 초속 30미터가 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이군요."
내가 다시 농담을 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다시 내 말을 완전히 무식해 버렸다.
"그렇다면 1초 동안에 물체가 떨어진 높이는 얼마나 될까요?"
"정지해 있던 물체가 1초 후에는 초속 10미터로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평균 속도는 초속 5미터
일 것이고... 그러니까 5미터 정도 떨어지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2초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2초 후에는 속도가 초속 20미터가 됩닏. 평균 속도는 초속 10미터가 되기 때문에 20미터를 떨
어지게 되겠군요. 그러니까 물체가 떨어진 높이는 단순히시간의 제곱만큼씩 늘어나는군오. 그러니
까 물체가 떨어진 높이는 단순히 시간의 제곱만큼씩 늘어나는군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5미터를 떨어졌지만, 그 다음에는 20미터를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떨어지
는 물체가 지구 중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에너지도 네 배만큼 커지게 되지요. 그러나 속도는..."
"두 배만 증가합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에너지는 속도의제곱에 비례하는 셈이로군요."
채린저 교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제야 확실하게 애해했군요. 게으르기는 하지만 똑똑한 당신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진실을 알아낸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갑판을 계속 돌아다녔던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약간은
과장된 것이었다. 챌린저 교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런 식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물체의 운동 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질량을 곱하고, 그것을
절반으로 나눈 값이 된다는 식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도 완벽하게 정확한 측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실험을 하지 않고도 그
런 식이 맞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식을 정확하게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물체를 위쪽으로 들어오렸다가 떨어뜨리면 운동 에너지가 완정하게 회복되는 장치를 만
들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장치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해주지 않아도 영원히 움직이는 영구기간이 되겠군요."
내가 감탄해서 말했다.
"우리 경험을 근거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역설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에너지는 언제나
완벽하게 보존됩니다. 지금까지 어떤 예외도 발견된 적이 없지요. 만약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세상은 지금과 전혀 다를 겁니다."
"우선 석탄의 가격이 엄청나게 내려가겠지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만약 이 황량한 바다 밑에 엄청난 양의 원유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챌
린저 교수의 주장이 옳다면 석탄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챌린저 교
수는 다시 내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조금 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시다. 지금 이 배의 운동 에너지는 대략 백만 줄 정도이겠지만,
그것을 열로 환산하면 겨우 한 주전자의 물을 끓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적은 양의 에너지
때문에 잠수부가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 확실하겠지요! 그렇다면 배 주변에 어떤 에너지가 또 있
을까요?"
나는 육지 쪽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파도와 같은 바다의 움직임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파도의 꼭대기에 해당하
느 ㄴ마루 위에 있는 물은 배보다도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같군요. 그러니까 파도도 분명히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챌린저 교수는 머리를 저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 입자는 사실 파도와 함께 춤직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물 입자들은 원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고, 파도가 움직여가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면서도 마치 움직여가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경우는 흔히 있습니
다. 무대에 줄을 선 합창단원들이 파란색의 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파도를 흉내내는 것을 본
적이 있겠지요? 조명이 비치면 정말 파도가 움직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합창단원이 들
고 있는판의 움직임은 파도보다 훨씬 작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없
지요."
"그렇다면 파도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런 질문은 과학자보다는 철학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군요. 그러나 나는 그렇
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파도가 '실존'이라기보다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파도
는 그 자체로서 존재합니다. 실제로 파도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도의 마루가 평균 수면
보다 위로 올라가면 위치 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물 입자가 회전하기 때문에 운동 에너지도 있지
요."
그렇군요. 그런데 물 입자가 옆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니까 에너지가 옆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니까 에너지가 옆으로 전달되지는 않겠군요.?"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물체가 직접 옆으로 움직여가지 않더라도 움직임을 일으키는 힘이 옆
의 물체에 영향을 주어서 결국은 에너지를 전달하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얼마 전에 나는 스코
들랜드 서쪽 해안에 부표와 도르래를 설치하면 대서양 파도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무한정의 에너
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에 건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 제안이 허무맹랑한 것
이라고 비웃고 무시해버렸지요. 코페르니쿠스, 줄 그리고 칠린저, 이런 과학 선구자들의 길은 순
교의 길이라고 할 정도로 험난하답니다."
나는 칠린저 교수의 기발한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칠린저 교수는 심각한 표정
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우리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기로 합시다. 이번 사고에서 배는 에너지를 모소했고, 잠수정에
서는 에너지가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챌린저 교수의 태도는 매우 거칠었지만, 나를 심각한 대화의 상대로 여기는 것 같아서 우쭐하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나 역설에 직면하게 되면 처음에 생각했던 가정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챌린저 교수는 나의 조심스러운 말을 듣더니 격려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교수님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두 가지 가정에 문제가 있을 것
같군요. 첫째는 자연법칙에 따라서 상당히 많은 양들이 정확하게 보존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인
간은 절대로 정학환 측정을 할 수 없고, 측정에는 언제나 오차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자연이
어떻게 그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 까요?
둘째로 물리법칙이 장소에 상관없이 어느 곳이에서나 같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화성이나 목성
또는 멀리 떨어진 별에서의 물리법칙은 지구에서의 물리법칙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
까?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되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편안한 런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이 점점 가까
워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말했다. 챌린저 교수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대답했다.
"왓슨 박사,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곳에 따라서 자연법칙이 서로 다르고, 한 곳에서도 임의성 때
문에 일정한 자연법칙이 성립되지도 않는 그런 우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과학자들은 얼마나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그런 정도
로 일관성이 없는 곳에서는 지능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자연법칙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이 아주 정밀하게 확인되었답니다.
우선 우리 우주에서는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방법이 완벽하게 대칭적입니다. 즉 자연법칙은 당신
이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더라도 그대로이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방향에도 상
관없이 일정합니다. 멀리 떨어진 별의 상태와 운동에 대한 지식은 망원경과 분광기를 사용해서
얻는데, 만약 자연법칙이 거리에 따라서 딸진다면 그런 정보도 모두 틀린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자연법칙은 불변이기 때문에 태양은 물론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이 수
십억 년에 걸쳐 진화를 했으면서도 아주 안정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광학장
치와 기계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것도 자연법칙이 방향에 상관없이 똑같이 때문입니다. 특히 회
전운동을 이용하는 장치가 그렇지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보존될 수밖에 없는 양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요. 물론 그런 양
은 매우 그런 양느 매우 엄밓하게 정의됩니다. 하찮은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플로지스톤과 마
찬가지로 당신 무릎의 위치도 보존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질량이나, 에너지, 모멘템이나 전
기량과 같은 기본적인 양들은 수십억 분의 수십억 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정밀도의 수준에서 보더
라도 변함없이 보존이 되어야만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런 사실을 즉시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보존되는 양의 수는 우주가 가지고 있는 대칭성의 수와 비슷하다빈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지요."
챌린저 교수는 긴 설명을 마치고 나더니 입을 다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도
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서 말했다.
"과학이 발전하면 보존되는 양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비
교적 최근에 발견된 전기량이 그런 예가 되지 않겠습니까?"
챌린저 교수는 내 말이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던 자신을 방해했다는 듯이 화가 난 표정으로 고
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사실은 그 반댑니다. 플ㅈ로지스톤을 생각해보시오. 과학의 발전 덕분에 개발된 장치를 이용해
서 플로지스톤이 훨씬 일반적인 개념이 에저지의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는 사시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지요. 더욱 정교한 실헙방법이 알려지게 되면 지금까지 서로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양들도 사실은 똑같은 것이 다른 형태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기술 수준이 낮을수록 보존되는 것처럼 보이는 양들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도르래와 지레가 유일한 실험장치라면 지구 중력 때문에 나타나는 위치 에너지도 보존
되는 것처럼 보이겟지요. 1킬로그램의 추를 2미터 높이로 들어올리려면 2킬로그램의 추를 미터
만큼 끌어내려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실험방법이 발전하면서 위치 에너지와 열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포함한 전체 에너지만이 보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왓슨 박사, 이제 우리 문제로 다시 되돌아가보지요. 배는 에너지를 잃어버렸고, 잠수정은 에너지
를 얻었습니다. 몇 가지 실마리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저 구름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
까?"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
었다. 비슷한 모양을 가진 두 조각의 구름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서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아하! 높이에 따라서 바람의 속력과 방향이 다르군요!"
챌린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높은 돛을 달고 있는 배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작은 배 옆으로 항해하는 아야기가 기
억납니다. 수면에는 바람이 전혀 없지만, 큰 배의 높은 돛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였
지요."
챌린저 교수는 격려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교수님, 마틸다 브릭스호는 마스트와 돛이 없는 증기선입니다. "
챌린저 교수는 내 항의에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왓슨 박사, 정말 당신에게 신세를 많이 졌군요. 나는 특별히 바보스럽게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내게 강의를 부탁하는 경우
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 덕분에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지를 알게되었습
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학생들에게 좀더 관용을 베
풀 수 있을 것 같군요!"
그의 말뜻을 생각하는 동안에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높이에 따라 바람의 움직임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바다 속에 흐르는 해류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노르웨이 해안 주변에서의 해류 흐름은 아주 이상하지요. 무시무
시하다는 메일스트럼 소용돌이에 대해서 들어보았겠지요? 해류의 흐름이 깊이에 따라서 전혀 다
를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면은 조용하더라도 배 밑바닥에서 아래로 빨려내려
가는 강한 흐름이 나타나면 배가 뒤로 끌리게 되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해류는
봄철에 스코들랜드와 셰틀랜드 군도를 가로지르는 펜틀랜드 해협에 나타나는 것으로 16노트에 이
른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빠른 해류라면 확실한 효과를 보여줄 겁니다."
그 순간에 챌린저 교수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왓슨 박사, 당신이 내 실험을 좀 도와주어야겠군요. 내 선실로 와주겠습니까?"
그의 선실 탁자 위에는 파라핀 램프가 위험하게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큰 유리 어항이 있었다.
항해 중에 잡은 고기를 넣어두기 위한 어항인 모양으로 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선실 바닥에는 풀무가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챌리저 교수는 내가 선실로 들어가자 선실
문을 잠가버렸다.
"왓슨 박사, 만약 당신이 단열도 되지 않은 쇠로 만든 잠수정을 타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몇 시
간을 지내야 한다면 따뜻한 열을 내는 난로를 가지고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파라핀 난로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모리슨 씨의 말에 따르면 그런 것은 절대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엄한 규정이 있답니
다. 선장이 철저히 확인을 한다고 한던데요?"
"그래요? 선장도 신처럼 염격하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사람의 법과 물리법칙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쉽게 어길 수 있는가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선원들이 원한다면 잠수정에 작은 난로를 가지고
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겠지요. 선원들은 잠수하자마자 가지고 간 난로에 불을 켰을 겁니다. 이제
그 사람들이 겪었던 일을 직접 보여주겠습니다."
그는 파라핀 램프를 켜고 풀무를 밟았다.
"이 램프는 아주 안전합니다. 램프에 산소를 많이 공급해주면 불빛이 밝이집니다. 잠수정에는 강
력한 펌프로 공기를 끊임없이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요."
그가 풀무를 더 빠르게 밟으느까 정말 램프가 더욱 밝아졌다.
"잠수부들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지요."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잠수정이 아래로 내려가면 내부의 공기 압력은 점점 높아집니다. 잠수정의 바닥은 아래쪽으로
열려 있지요. 그래서 바다 속으로 10미터를 내려가면 잠수정 안의 공기 밀도는 대략 두 배가 됩
니다. 그리고 공기 중의 산소 압력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밝이질 겁니다."
챌린저 교수가 풀무질을 더 세게 하자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다. 램프의 불꽃이 점점 커지더니
결국은 램프 밑에 있던 파리핀에까지 불꽃이 옮겨붙어버린 것이다. 불꽃은 엄청나게도 1미터가
넘게 올라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재빠르게 생각해보았다. 램프 옆에 있는 어항에 물이 충분히 담겨
있기는 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쉬게 들어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무하마드와
산에 대한 우화가 생각났다. 나는 재빨리 램프를 들어서 어항 물에 던져넣어버렷다. 그렇지만 나
는 곧 그것이 최악의 선책이었음을 깨달았다. 파라핀은 물과 섞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보다 가
볍다는 사시을 고려했어야만 했다. 파라핀이 모두 물 위에 떠서 계속 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챌린저 교수가 큰 자루로 어항을 덮어 공기를 차단하지 불꽃이 사그러들었다. 깜짝 놀란 내가 흥
분해서 소리쳤다.
"실험을 신중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경고로군요."
"무슨 말입니까? 왓슨 박사. 당신의 바로 그 행동이 이번 사고에 대한 내 추측을 가장 멋지게
증명해주기 않았습니까? 나는 사고가 난 잠구정에서의 상황을 재현해보기 위해서 이 방의 문을
잠갔지요. 방안에 산소가 충분하면 불꽃이 자꾸 커지지요. 그렇지만 불꾳이 너무 커지면 빠져 나
갈 틈도 없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대처할 여유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바로 당신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난로를 잠수정 밑에 있는 바닷물에 던져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방근 본 것처럼 파라핀은 물 위에 퍼지기 때문에 더욱 잘 타게 됩니다. 삽시간에 열이 퍼지고 연
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잠수부들이 죽었을 겁니다. 잠수정을
물 위로 끌어올릴 때까지 계속해서 펌프로 공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연기는 모두 사라져버렸겠
지요. 파라핀도 전부 소모되어버렸고, 램프 자체는 바다 밑으로 가라않아버렸을 겁니다.
뱃사람들이 불을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기름, 파라핀, 지방 등과 같은 물질 1킬로그램을
태우면 400만 줄 정도의 열이 방충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물질을 몇 리터만 태우더라도 거대한
철선의 온도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높일 수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추측이로군요."
그의 설명이 완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챌린저 교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왓슨 박사, 내일 이 시간까지는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ㅎ될 겁니다. 그러면 선원
들이 믿고 있던 미신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라지겠지요."
내일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나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놀라서 잠을 깨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서 구명대를 찾아들고 갑판으로 올라갔더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엔
진이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스크루는 최대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을 텐데도 피오
르드 안쪽의 잔잔한 바다 위에 있던 우리 배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선원들은 두려움 때문에 미쳐버린 것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나 혼자만 그런
이상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잠시 후에 갑판으로 올라온 챌린
저 교수는 양손에 촛불과 목이 좁은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유리병 속에는
납으로 만든 탄환이 들어 있는 것 같아싿. 그는 선원들의 동요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이 갑
판 위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유리병 속에 촛불을 넣고 마개를 단단히 막은 후에 뱃전에 기대어서
유리병을 바다 속으로 조심스럽게 던져 넣었다.
나도 뱃전으로 다가가보았다. 유리병이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지만, 유리병 속의 촛불
은 확실하게 보였다. 참으로 멋진 생각이었다. 챌린저 교수의 주장이 옳다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
고 있던 유리병이 뒤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만나서 배의 뒤쪽을 향해서 빠르게 흘러갈 것이었다.
실제로 한동안은 유리병이 뒤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유리병도 한
곳에 멈추어버린 것 같았고, 그 순간부터 불꽃이 희미하게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앞쪽으로 움직이더니 갑자기 촛불이 밝아지면서 내가 서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유리
병이 배 밑으로 들어가버려서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챌린저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아무 말도 없이 선실
로 내려가버렸다.
그를 따라서 선실로 내려가보았더니, 어제 실험을 하고 나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두었던 모양인지
선실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배가 기울면서 어항 속의 내용물이 쏟아져버린 모양이고, 어항
속에 남아 있는 물 위에는 아직도 파라핀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방을 치우지도 않으셨습니까?"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랬지요. 이 어항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했답니다. 가장 확실한 힌트를 바로 눈앞에 두고 무식
한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나는 정말 멍청이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정말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었다.
"이 어항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보시오."
"분홍색의 파라핀 층이 배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고 있군요."
"다른 층은 어떻습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어항을 옆에서 바라보았더니 파라핀과
물 사이의 경계면이 보였다.
"파라핀 층보다는 그 밑에 있는 물이 더 심하게 출렁이고 있군요. 경계면의 진동도 상당히 심하
고요."
"왜 그런지 짐작이 가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파동이 생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까? 운동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운동 에너지 이외에도 지구 중력에 의한 위치 에너지도 바뀌게 되지요. 파동의 골이 생기려면
바다 표면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마루가 생기려면 올라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제 이해가 됩
니까? 파라핀의 밀도는 물의 90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가벼운 파라핀은 쉽게 골을 채우고 마
루를 피해서 옮겨갈 수 있게 때문에 작은 양의 에너지가 공급되더라도 경계면에서 파동이 생길
수 있지요."
내가 잠에서 막 깨어나서 멍청하게 보였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챌린저 교수의 이야기가
이번 사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아서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내 선실로 되돌아가서 다시 잠
이 들어버렸다.
한참 후에 다시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판으로
올라갔더니 배는 이미 마틸다 브릭스호 옆에 나란히 정박해 있었다. 마틸다 브릭스호에서는 사람
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우리 배는 텅 비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갑자기 무서워진 나는
두 배를 연결한 통로를 건너가서 배를 지키고 있는 선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물어보얐다. 그
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과 함께 온 교수님 때문이지요. 지금 즉시 잠수정을 바다 속으로 내려보내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은 육지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겠답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군요."
나는 배의 뒤쪽으로 가보았다. 성당의 종처러머 생긴 녹슨 잠수정이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챌린저 교수가 잠수정 밑에서 기어나왔다.
"왓슨 박사, 마침 잘 왔군요. 이제 곧 잠수정을 바다 속으로 내려보내려고 합니다. 다시는 지난
번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장을 설득히켰스빈다. 잠수정을 타게 될 두 사람의
자원자가 인화성 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시을 내 스스로 확인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허가받
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잠수정으로 반입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잠수하는 동안에 고약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런 일을 맡을 적임자인 것 같군요. 내가 가지고
온 쌍안경을 빌려줄 테니 책임을 완수해주시오."
나는 잠수정을 지켜보기 좋ㅇ느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쌍안경으로 바다 속을 살펴보았다. 그곳
의 바닷물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3미터 정도의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작은 고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주 투명한 바다로군요."
"왓슨 박사, 이곳의 물이 이렇게 투명한 이유는 알고 있겠지요?"
챌린저 교수는 작은 물통이 매달린 로프를 찾아서 반 통 정도의 바닷물을 길어올렸다.
"맛을 한 번 보시오."
그의 말에 따라 물을 마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물은 민물이군요?"
"지금은 피오르드 부근이 전부 민물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정박하고 있는 곳이 바로 피오르드 해안의 한 가운데로군
요."
챌린저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 "왓슨 박사,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침 육지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
수정을 잘 지켜주기 바랍니다."
챌린저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왓슨 박사,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침 육지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
수정을 잘 지켜주기 바랍니다."
잠시 후에 노가 달린 작은 보트가 물 위로 내려지는 것이 보였다. 보트의 앞쪽에는 챌린저 교수
가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세 사람의 선원이 함께 타고 있었다. 보트에는 압축 공기를 넣은
튜브를 사용하는 현대판 자전거도 실려 있었다.
나는 눈을 돌려 갑판 위의 선원들이 회전축의 손잡이를 돌려서 잠수정을 받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다 쪽으로 내려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잠수정의 위쪽에는 "수마트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기중기를 조작하고 있는선원에게 그 말의 뜻을 물었다.
"저 잠수정을 만들어서 처음 몇 년 동안 사용했던 인도네시아의 도시 이름이죠. 그런데 저 잠수
정이 마치 쥐를 거꾸로 매달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세요? 그래서 우리는 저 잠수정을 '수마
트라의 큰 쥐'라고 부르죠."
잠수정을 내려보내는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수면에 닿을 때까지 그렇게 느린 속도로 내려보
낼 모양이었다. 모든 선원들이 갑판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잠수정에 공기를 불
어넣는 대형 펌프의 무거운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잠수정이 바다 속에 들어가 있
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잠수정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끔찍
한 사고가 일어났을까?
플로지스톤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플로지스톤이 보존될 수 없는 양이라는 사실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플로지스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챌린저 교수도 내
가 지금 보고 있는 파도가 끊임없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는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렇짐나 자유 플로지스톤 구름이 쉽게 만들어져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현상은 벌써부터 확인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사건이 근본적으로 에너지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열 에너지였을까? 그러나 열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뜨
거운 곳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학 에너지? 챌린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잠수정에는 가
연성 물질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시계속에 들이 있는 스프링이 그런 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큰 에
너지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기계적인 에너지? 배에는 강력한 엔진이 있었지만 잠수정에는 아무런 기계장치도 없었다. 더욱
이 사고가 나던 순간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배의 스크루도 멈추어 있었고, 엔진에 증기를 공급
해주던 보일러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 배에 다른 기계장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에너지가 어
떻게 잠수정까지 전달될 수 있었을까? 배와 잠수정은 쇠줄과 속이 비어 있는 고무 튜브만으로 연
결되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챌린저 교수는 이미 해안에 도착해서 자전
거를 내려놓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챌린저 교수가 자전거를 내려놓고 있었
다. 잠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챌린저 교수가 자전거를 세워놓고 작은 펌프로 뒤쪽 타이어
에 바람을 넣고 있는 모습을 쌍안경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바다 밑에 잠겨 있는 잠수정을 잠시 살펴본 후에 다시 해안을 바라보았을 때는 챌린저
교수가 보트를 향해서 손을 크게 흔들면서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선원도
우습다는 듯이 그 못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한 과학자가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인 모양이로군요.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모양이지요?"
보트가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자 챌린저 교수느 보트에 훌쩍 뛰어올라서 보트 키잡이에게 급하게
무슨 말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키잡이가 혼자서 육지로 뛰어내리더니 정신 나간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수신호로군요."
기중기를 조작하던 선원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쌍안경을 주었다. 그는 쌍안경으로 키잡이의 수
신호를 잠시 바라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다른 선원들에게 서둘러 지시를 했다.
"잠수정을 끌어올려라! 또 사망 사고가 생길 수 있단다!"
그리고는 그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도대체 저 사람이 어떻게 그 사시을 알아냈을까?"
10여 분이 지나서 잠수정이 갑판 위로 끌어올려졌을 때 챌린저 교수는 벌써 내 옆에 돌아와 있
었다. 잠수정에 타고 있던 잠수부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아무 상처도 없이 잠수정 밑으로 기어나
왔다. 챌리저 교수가 나를 바라보았다.
"왓슨 박사,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적절한 순간에 힌트를 알려주는 신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답니다. 내가 펌프질을 하고 있던 모습을 보았겠지요. 당신도 자전거를 가지고 있습
니까?"
"타이어에 바람을 넣기 위해서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금속으로 만든 밸브의 연결 부분에서 이사
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상한 일이라니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결 부분이 뜨거워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왜 뜨겁게 될까요? 바로 운동의 힘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 뒤쪽에 있는 큰 펌프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일의 크기는 힘과 거리의 곱으로 주어지지요. 피스톤이 내려가면 피스톤은 공기에게 일을 하게
됩니다. 압축이 가능한 공기를 압축시키려면 스프링을 누를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해주어야 합니
다. 그런데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렇게 주어진 에너지는 어디로 갈까요? 그것이 바
로 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잠수정이 바다 속으로 깊이 내려갈수록 공기르 압축하기 위해서 더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많은 양의 열이 발생하게 되지요. 잠수정에 공급되는 공기는 처음에는 미지근하지만
점점 따뜻하게 되고 마침내는 아주 뜨겁게 됩니다. 손으로 작동하는 펌프로는 잠수정을 뜨겁게
할 정의 열이 생길 수 없지만 몇 마력짜리 증기 펌프라면..."
"훌륭핱 발견이로군요. 그것도 아주 적절한 순간에 알아내서 사고를 방지하게 되었다니 말입니
다!"
나는 정말 감탄해서 말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긴 한숨을 쉬었다.
"진작에 그것을 몰랐다니! 바보였여요. 그래도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이 다행입니다. 왓슨
박사, 앞으로 기술자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을 얻은 것 같군요. 우리 기술자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대장장이에게는 근육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롱운 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기술자들은 물리법칙에 대한 깊은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챌린저 교수는 그 정도의 성공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보트를 타고 다
시 해안으로 갔다. 나는 그가 해안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해
가 질 무럽이 되어서 유리병을 잔뜩 들고 배로 돌아왔다. 그 유리병은 어제 밤에 바다 속으로 던
져넣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기는 했지만 크기가 조금 더 컸다. 챌린저 교수가 말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서멀리 교수가 스키피오호를 타고 올 갑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우리 경험
했더너 이상한 일들이 우리가 무식해서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전부 거짓말인지를 확싷하게 밝혀
줄 겁니다. 그런 훌륭한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왓슨 박사, 나와 함께 서멀리
교수를 맞이하러 갑시다?"
나는 그와 함께 보트의 노를 저였다. 그러나 챌린저 교수의 우스운 모습 때문에 노를 젓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싿. 보트에는 배 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을 퍼내기 위한 물통이 있었고, 가로
받침대 위에는 유리병들과 작은 석탄 난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난로에서 불이 붙은 작은 석탄
덩어리를 집게로 집어서 유리병 속에 넣은 다음에 물통 속에 담갔다. 그리고는 병 속에 납 덩어
리를 넣어서 유리병의 목 부분이 수면에 올라오도록 한 다음, 유리병의 마개를 막고 바다 속으로
던졌다.
훌륭한 학자인 챌린지 교수가 그런 장난 같은 일으 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우스웠다. 그는 유리
병이 바닷물 위에 떠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지만 유리병은 모두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아버
렸다. 아마도 병 뚜껑의 무게를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싶기
도 했지만 그에게도 약간의 모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다가 마지막 병을 준비
하고 있을 때 조용히 문제점을 지적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챌린저 교수는 내 말에 콧웃음칠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내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우선 뒤를 한 번 돌아본 다
음에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보시오."
그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았더니 놀랍게도 바다 속에 오렌지색의 점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
다.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병들이 모두 수면에서 일정한 깊이에 머물러 있군요. 수면에서 10피
트 정도 됩니까?"
"10피트라면 3미터 정도이겠군요. 왜 그렇까요?"
"아하! 물 속으로 내려갈수록 물이 압축되어서 밀도가 커지기 때문이겠군요."
"그렇지는 않지요. 물은 압축성이 아주 작기 때문에 바다의 수면과 바닥에서의 밀도 차이는 수
천 분의 1퍼센트도 안 됩니다. 병이 이처럼 수면에서 일정한 깊이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지요. 바닷물이 민물보다 밀도가 대략 2퍼센트 정도 더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그
렇다면 민물을 바닷물 위에 서로 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으면 어떻게 될까요?"
"파라핀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 생기겠군요. 눈으로 경계면을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바닷물 위
에 민물층이 떠 있게 됩니까?"
"그렇지요. 물론 경계면을 눈으로 직접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밀도가 민물보다는 조금 크
고 바닷물보다는 조금 작은 부표를 사용하면 그 경계면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일
까? 스키피오호가 예정보다 빨리 착하는 모양이군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스키키오호가 빠른 속력으로 피오르드 안으로 미끄러져 들
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키피오호가 멈칫거리기 시작하더니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물 속에서 석탄이 타는 불빛들이 줄을 맞추어서 출렁거리는 것 같아싿. 나는 놀
라서 소리쳤다.
"맙소사. 전설의 괴물인 크라켄의 존재를 믿는 어부가 저 모습을 보면 놀라서 줄행랑을 치겠군
요."
챌리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놀라지 말아요. 배의 스크루를 돌리는 에너지는 어떤 일을 할까요?"
"처음에는 배의 속력을 증가시키는 데 쓰이겠지요."
"배의 속력이 최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물을 양쪽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겠지요. 맞습니까?"
"그렇지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 속에서 파동을 만드는 데 쓰이게 됩니다. 배가 지나간 다음에
수면에 나타나는 흔적도 사실은 스크루의 회전 때문에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파동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파라핀과 물이 담긴 어항에서 본 것처럼 액체의 표면에서보다는 내부에 존재하는 경계면
에서 더 큰 파동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사실은 두 액체의 밀도가 비슷하면 내부의 경계면에서 생
기는 파동의 진폭은 상당히 커지게 됩니다. 만약 두 액체의 밀도의 차이가 2퍼센트에 불과하다
면..."
"경계면에서 만들어지는 파동이 수면에서보다 훨씬 더 크겠군요."
나는 감탄했다. 챌린저 교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요. 바다 속에 만들어진 경계면에서 생기는 파동이 엔진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모두 흡
수해버리기 때문에 스크루가 아무리 세게 돌아가더라도 배의 속도가 더 빠라지기는커녕 그 자에
거의 정지해버리게까지 됩니다. 학식이 높은 서멀리 교수는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
다. 그렇지만 미신에 빠진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서멀리 교수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기 전
에 빨리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내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노 젓는 법은 학교에서 배웠나요?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건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왓슨 박사. 에너지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찮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유능
한 수사관 앞에서 플로지스톤이나 주전원 같은 엉터리 생각은 맥을 출 수가 없지요. 겉으로 보기
에는 에너지가 방출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도록 신비롭게 감추어진 힘이 있을 수도 있다
는 뜻이지요. 언뜻 보기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에너지라는 개념은 분명히
믿고 신뢰할만한 것입니다."
3.원자론도 모르는 의사
"왓슨, 오늘은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군?"
피곤해서 진료 가방을 탁자 위로 던지면서 술병을 흘낏 쳐다보는 나에게 홈스가 물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따뜻한 위로는 언제나 반가운 법이었다. 그렇지만 저녁 다섯 시가 넘도록 잠옷 바
람에 슬리퍼를 신고 어린 아이나 즐길 만한 유치한 화학실험에 빠져 있는 사람의 그런 위로가 그
리 반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지쳐버린 나는 그에게 핀잔을 주는 대신 그의 위로를 받아들이
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고 싶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마지막 환자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까지는 그런 대로 괜찮았지요. 만성 위통으
로 고생하고 있다는 중년 여자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말예요. 그렇다고 아주 기막히는 일은 아니
었습니다. 다만 그 환자가 내 말대로 간단한 수술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의사의 말을 잘 안 듣는 환자를 만난 모양이로군."
"그렇지도 않아요. 그 환자도 의사의 역할은 알고 있었거든요. 다만 아주 고약한 돌팔이 의사의
꾐에 빠져 있어서 문제였지요. 사이비 의술을 퍼트리는 그런 돌팔이 말입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침 그 돌팔이가 두 필의 말이 끄는 멋진 사륜마차를 타고 떠나고 있었어요. 그 돌팔이는 좋은
옷을 입고 있어서 부유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더군요. 저보다 훨씬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사
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잘 속아넘어가는 환자들이 좋은 옷과 멋진 마차를 제공한 셈이겠군! 그런데 그 돌팔이는 어떤
처방을 해주었나?"
"그 환자가 어렸을 때 섭취한 독성물질 때문에 병이 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돌팔이의 처방입니다. 우리 모두가 독극물이라고 알고 있는 납과 비소 그리
고 가지과의 유독 식물인 벨라돈나를 묽게 타서 마시라는 겁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처방이지
만 그 돌팔이는 철썩같이 믿고 있던 그 환자는 이미 그 독약을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한심한 일이군. 왓슨, 그렇다면 그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 틀림없겠군. 내가 수사해보
아야 할 사건인 모양이네. 그 약을 물에 타서 마신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묽게 만든다고 하던
가?"
"상당히 묽게 만들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겼겠지요. 그릇에 가득 담긴
독약의 90퍼센트를 덜어내고 물을 가득 부어넣습니다. 열 배로 묽히는 셈이지요. 그것을 잘 섞은
다음 다시 90퍼센트를 덜어내고 또 물을 채워넣습니다. 그러면 100배로 묽혀지겠지요. 그런 과정
을 서른 번 반복한답니다."
"아주 조심스러운 처방이로군. 열 배로 묽히는 과정을 서른 번이나 반뵥해야 한다니 말이네. 결
국 1 다음에 서른 개의 0이 붙은 엄청난 숫자 만큼 묽힌 셈이로군. 백만 배의 백만 배의 백만 배
의 백만 배의 백만 배! 이렇게 큰 숫자라면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10의 30승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리하겠군. 그런데 그렇게 많이 묽히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1리터의 용액을 그렇게 묽
히기 위해서는 한 변의 길이가 100만 킬로미터가 되는 엄청난 크기의 통에 가득 차도록 물을 가
득 차도록 물을 넣어야 하는군. 맙소사! 왓슨, 그렇다면 처음의 약을 태평양에 부어넣은 후에 잘
저은 것보다도 더 묽은 용액이 되는 셈이로군. 아무리 독성이 강한 독약이라도 그렇게 묽힌다면
더 이상 독성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주 호의적인 해석이네요.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환자에게 정말 효과
적인 치료방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홈스는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더니, 갑자기 머리를 젖히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린 것은 아닌 모양이군 그래. 그렇게 생각하지 않
았다고 변명할 필요는 없네. 오늘 내가 한 일이 모두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야. 도
대체 오늘 내가 무얼 했는가를 짐작이라도 하겠나?"
의자 옆에 놓여 있던 과학책을 집어드는 홈스를 보고 내가 말했다.
"안약을 넣을 때 사용하는 기구와 기름 같은 액체를 사용하신 모양이지요? 평소에 하던 실험보
다는 좀 깨끗하고 냄새도 그리 심하지는 않군요. 혹시 화장품 제조업자와 관련된 사건을 맡으셨
습니까?"
"하하하.. 왓슨, 완전히 틀렸네. 오늘 나는 원자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준다는 실험을 해
보았다네. 최근에 발표된 실험이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 아무리 큰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네. 왓슨,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지. 소
위 원자론을 뒷받침하는 대부분의 증거는 정황적인 것들이야. 결정도 그런 증거라고 생각했다네.
대부분의 물질을 액체에 녹였다가 서서히 응고시키면 규칙적인 모양의 결정이 되는 경향을 가지
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물질을 물에 녹였다가 물을 천천히 증발시키면 결정이 만들어지
는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결정의 모양은 화학물질의 종류의 따라서 아주 독특해. 그런 사실로부터
과학자들은 물질이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기는 하지만 일정한 모양을 가진 미시적인 단
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네. 서로 다른 화학물질들이 반응할 때 일정한 비율로 반응한다는
것도 또 다른 증거라고 여겼지. 예를 들어서 수소와 산소를 무게비로 1:8로 태우면 물이 만들어지
고, 수소와 탄소를 1:3으로 태우면 메탄이 얻어지네. 이산화탄소의 경우에는 탄소와 산소의 무게
비가 3:8이 되어야 하지. 그런 무게비는 아주 정확하게 지켜진다네. 그런 사실이 원소가 일정한
비로 결합되어 화합물이 된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
기초의학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배운 기억이 났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지. 그런 증거들은 단순히 원자가 굉장히 작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질
않아. 이 물을 보세나. 순수한 증류수지."
"돌팔이 의사의 약만큼이나 순수하겠군요."
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지만, 홈스는 상관하지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그리고 여기 약간의 기름이 있네. 기름 방울을 최대한으로 작게 만들어서 그 크기를 재어보도
록 하지. 왓슨, 확대경을 가져와보게. 더 배율이 큰 것이 필요하네. 이 기름 방울의 크기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지름이 0.2밀리미터 정도 되겠군요."
"그 정도일 거야. 이제 이 기름 방울을 물 위로 떨어뜨려보겠네. 그러면..."
"아하, 기름 방울이 없어져버렸군요. 물에 녹아버렸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네, 왓슨. 기름은 물에 녹지 않아. 물과 기름은 서로 섞이지 않으므로 표면장력이 다
른 기름이 물 위에 아주 얇은 필름으로 퍼지게 되네. 비스듬한 각도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하! 필름이 보여요. 아주 희미하기는 하지만 가장자리는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필름의 지름이
10센티미터 정도 되겠는 걸요."
"아주 잘 보았네. 왓슨, 그럼 이제 기름 분자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겠나? 기름 방울의 부피를
기름이 퍼져 있는 면적으로 나누어주면 기름층의 두께가 얻어지겠지."
홈스의 설명에 따르면 공의 부피는 공이 담겨 있는 정육면체 상자 부피의 절반 정도이고, 원의
면적은 그 원의 바깥에 그린 정사각형 면적의 4분의 3 정도가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
서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아 보였다.
"홈스, 기름층의 두께가 100억 분의 5미터 정도가 되는데, 뭔가 잘못되었겠지요? 분명히 눈에 보
이는 기름층의 두께가 그렇게 얇을 수가 있습니까?"
"왓슨, 그 계산이 맞다네. 과학자들은 그렇게 작은 수를 표현하기 위해서 편리한 방법을 이용하
지. 10억은 1다음에 0이 아홉 개가 붙은 수이기 때문에 10의 9승이라고 부르네. 그러니까 10억 분
의 1은 10의 -9승이라고 부르지. 그런 표현방법을 사용하면 기름층의 두께는 대략 0.5 곱하기 10
의 -9승미터 또는 5곱하기 10의 -10승 미터가 되는 것지.
너무 엉성한 방법이라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숫자 하나를 얻었네. 적어도 기름 분자 하나의 크
기가 대강 어느 정도인가는 알게 되엇다는 말이네. 그런 분자를 널어놓아서 손톱 정도의 폭이 되
려면 대략 3,000만 개의 분자가 필요할 정도로 작은 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지."
나는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군요. 홈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당연히 기억하지, 왓슨. 우리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이
제 100밀리리터 정도의 시험관에 몇 개의 분자를 넣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세."
나는 재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10의 8제곱의 3제곱... 맙소사! 10의 24승개의 분자가 필요하네요? 백만 곱하기 백만 곱하기 백
만 곱하기 백만 개로군요. 그런데 그런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돌팔이 의사의 처방에서 희석 배수가 얼마였지?"
"10의 30승이었지요. 맙소사.. 잠깐. 홈스, 희석 배수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독성 분자의 수보다
도 더 크군요."
"바로 그거라네. 그 분자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희석한 다음에 원래의 독성 분
자가 하나라도 남아 있을 확률은 10의 6승 분의 1, 즉 100만 분의 1에 불과하지. 그 환자에게 이
런 사실을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그 돌팔이의 특효약이 사실은 깨끗한 막대기를 씻은 물과 조금
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바로 이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약효가 있는 분자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희석액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그 돌팔이도 해결하지 못할 역설일 테니까 말이네."
홈스가 우울증에 걸린 골치 아픈 환자를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면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베이커가의 사무실로 출
근했다. 사물실에 들어선 나는 코트를 벗으면서 말했다.
"홈스,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내가 그 환자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폰크랑크슈 박사라고 자칭하
는 돌팔이가 와 있었어요. 그 환자는 돌팔이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돌팔
이가 내 이야기를 조금도 믿으려고 하지 않더군요. 홈스, 왜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확실한 이야기
보다는 교묘한 말장난에 더 잘 넘어갈까요?"
"왓슨, 내가 그 대답을 알고 있다면 이 세상의 어려운 사건의 절반은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걸
세. 너무 실망하지 말고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자세히 말해보게."
나는 의자에 앉아서 피곤한 다리를 쭉 폈다.
"내 설명을 듣고 난 그 돌팔이는 원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름 방울 실험을 믿을 수 없다고 했어요. 물 위에 만들어진 기름층은 두 액체 사이의 인력
때문에 생긴 것이라더군요. 만약 원자를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
은 원자의 크기가 기름층의 두께보다 작아야 한다는 사실뿐이라고도 하더군요.
홈스, 내가 반론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포기하
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 환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원자의 존재를 보다 더 직접적이고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요. 원자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
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홈스는 내 말을 열심히 듣고 나서 말했다.
"왓슨, 그 문제라면 내게 생각이 있네. 현미경으로 원자를 직접 보여주면 충분할까?"
그는 거의 망가진 형미경을 가리켰다. 그 현미경의 슬라이드 판을 놓을 자리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작은 튜브가 달려 있었다. 나는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미경 속에
는 상당한 크기의 검은 점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홈스, 이건 마술이에요! 그런데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에 따르면 원자의 크기는 너무나도 작
아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보다도 천 배가 더 작다고 하던데
요?"
"사실이지."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기막힌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홈스가 그런 이야기
를 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현미경옆에 놓여 있는 회색빛 물질이 들어 있는 플라스크
에 붙어 있는 표식을 읽어보았다.
"이것이 뭡니까? 홈스! 꽃가루를 보여주고 원자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병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더 좋은 치료법을 찾는 것은 절대로 장난이 아닙니다!"
"내가 왜 자네를 놀리겠나! 왓슨 박사, 자네가 본 것이 꽃가루인 것은 틀림이 없네. 그렇지만 현
미경을 통해서 무엇이 보이는가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나는 다시 한 번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홈스, 자세한 모양은 잘 알 수가 없군요. 검은 점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보기가 더 힘들어요."
"맞네. 왓슨! 그런데 그 검은 점들이 왜 그렇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나?"
"빛이 있기 때문입니까? 꽃가루에도 박테이라처럼 편모가 있어서 편모를 흔들면서 움직이는 것
은 아니겠지요?"
"그렇지는 않지. 그런 가능성은 간단하게 배제할 수 있어. 꽃가루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데는 근
본적인 이유가 있네. 열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입자들의 움직임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하
겠지? 고체가 진동하거나 기체가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충돌하고, 퉁겨나가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가 바로 열이라는 거네. 기체의 그런 움직임 때문에 압력이 나타나게 되고, 기체 분
자가 한 곳에 모여 있지않고 상자 전체를 채우게 되지.
그런데 만약 통 속에 들어 있는 공기 분자가 상당히 무겁고 수도 많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그
런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겠지요? 만약 공기 분자가 아주 무겹다면 공기 분자가 우리 살갗에 부딪칠
때마다 간지럽게 느껴지겠지요. 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바닥에 있는 분자의 진동 때문에 걸
어다니거나 앉아 있는 사람이 퉁겨나갈 수도 있겠구요! 물론 실제 분자들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
겠지요. 홈스, 1초에 충동하는 분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고, 그런 충돌이 끊임 없이 일어나기 때문
에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통 속에 들어 있는 공기의 압력이 변하지 않고 일정한 것처럼 보이
는 겁니까?"
"왓슨, 아주 훌륭하군. 이제 꽃가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세. 만약 공기 분자가 꽃가루
만큼 무겁다면 어떻게 될까? 공기 분자는 시속 1,000킬로미터 정도의 속력으로 이리저리 퉁기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게나."
"글쎄요. 그런 모습은 아주 희미하게 보이겠군요. 분자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돌아디닌다면
분자 한 개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말예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로 공기 분자가 정말로 작다면 어떻게 될까? 이 꽃가루보다 수백만
백의 수백만 배의 수백만 배나 작다면 말이지."
"그런 경우에는 충돌할 때의 영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래서 꽃가루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것 같군요."
"좋아! 왓슨. 그런데 실제 공기 분자는 꽃가루만큼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작지도 않
다는 말이네. 그래서 그런 공기 분자와 꽃가루가 충돌하는 모습을 잘 관찬하면 공기 분자와 꽃라
루의 무게비를 알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즉 꽃가루 입자들이 얼마나 자주 충돌하는가를 헤아리면
꽃가루 입자 하나의 질량과 공기 분자의 질량을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공기 중에서 일어나는 화학적인 연소 현상을 관찰하면 공기 분자들 중의 80퍼센트가 질
소로 되어 잇다는 사실도 알 수 있네. 또한 질소 분자는 두 개의 원자로..."
"현미경에서 본 것만으로 원자의 무게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요? 홈스, 당신이야말로
천재가 분명합니다."
홈스는 미소를 지었다.
"진정하게. 이 실험은 내가 생각해닌 것이 아니라네. 그 테이블 위에 있는 잡지에 소개된 독일
화학자들의 실험을 흉낸낸 것일 뿐이야. 그들의 결과에 의하면 원자의 지름은 대략 2곱하기 10의
-10승미터라고 하네. 500만 분의 1밀리미터에 해당하는 크기지. 왓슨, 이제 자네는 그 환자에게
원자의 존재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도 있고 그 크기도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겠지?"
다음날 저녁 내가 사무질도 돌아왔을 때 홈스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홈스는 의자에
앉는 내 못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왓슨, 어떻게 되었나?"
"겨우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씩이나 그 환자를 방문했지요. 아침에 찾아갔을 때는 환자와
지칠 정도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최악의 사태까
지 각오를 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이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했어요. 하루 종일 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보
았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낮에 창가에 앉아 있다가 돋보기의 가장자리를 통해서 공기 속에서 춤
추고 있는 먼지를 보았다는 겁니다. 밝은 햇살 덕분이었지요. 그것 때문에 내 말을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분도 내거 지적했던 역설 문제 때문에 고민했다고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
는 약의 효과가 잇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설명처럼 그 약에 약효가 있는 원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약효가 있을 수 없다는 역설 때문에 혼란스러웠답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역설인 셈이지
요.
그런데 그분은 전에도 이번처럼 역설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겼던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나더라는
겁니다. 그때까지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생각과는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경험을 하
게 되면 억설이라고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이라고 믿었던 생각은 실제로 확실하
게 증명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겁니다.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믿었을 뿐이라는 거죠.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셈이고, 자신의 생각을 모두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
게 생각하는 그분이 바보스러운 걸까요?"
"왓슨, 사실은 정반대지. 유명한 학자들도 새로운 사실에 직면할 때마다 그분과 같은 능력을 발
휘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어쨌든 그분은 자신의 약이 기적 같은 약효를 가지고 있다는 크랑크슈 박사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었지요. 사람들은 자칭 전문가들이 떠드는 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분은 그 주장을 증명할 수 잇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크랑크슈 박사의 처방
대신에 내 처방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크랑크슈가 돌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약과 설명서를 모두 저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그것들을 꺼내어 난로 속에 던져보리려고 했지만, 홈스가 손을 저으면서 나를 말
렸다.
"왓슨,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네.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 할 수는 없지만 말엔. 몰
론 가짜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문제가 되겠지.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겠교, 어쨌든 다음에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찾아오거든 이것을 꼭 전해주게."
그는 설명서에 무엇인가를 적어서 편지함에 넣어두었다.
밤이 깊었을 때, 나는 숨을 깊이 들여마시고 용기를 내어 홈스에게 말을 걸었다.
"홈스, 바보 같은 이야기일는지 몰라도 확실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 환자가 말했
던 것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에 직면할 때마다 그때까지 믿어와던 생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동감입니다."
홈스는 고개를 끄덕었다.
"그런데 나는 결정에 대해서 크랑크슈와 이야기하면서 아주 당황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지
도 말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는 원자의 존재가 결정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전혀 증명
되지 않은것이라고 우기더군요. 그는 결정으로 변하지 않는 물질도 많을 뿐만 아니라 같은 물질
이 전혀 다른 모양의 결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이네."
"그런데 그는 결정에는 현대 과학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특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
다. 결정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은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결정과
공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물질을 처음 분리할 때는 결정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같은 실험을 반복하면 결정이 훨씬 더 쉽게 만들어진다고 하더
군요."
"그것은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이네, 왓슨. 용액 속에 이미 그 물질의 결정이 들어 있을
경우에는 결정 형성이 훨씬 쉬워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눈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작
은 것이라도 상관없지. 그러니가 일단 결정을 만들게 되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실험을 하더라도
여기저기에 작은 조각들이 남아 있게 되기 때문에 훨씬 쉽게 결정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되는 거라
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프랑크슈는 전혀 무관한 상태에서 실험을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
던데요? 영국에서 한 실험을 지구 반대쪽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반복하더라도 마찬가지랍니
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비로운 힘이 모든 물질을 관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어
떤 신비로운 힘이 실험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에서
실험을 반복하거나에 상관없이 일단 만들어진 적이 있는 결정은 훨씬 더 잘 만들어진다는 겁니
다. 그가 말하는 그런 공명 현상은 물론 엉터리겠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홈스는 고개를 저었다.
"왓슨,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야. 그렇다고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네. 누군
가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자신있게 실험을 하게 되지 않겠나.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쉽게 그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 즉 심리적인 요인이 영향을 주게 된다는 말이네.
더 흥미로운 설명도 있네. 사람들이 '카이사르의 수수께끼'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느 것
지. 지극히 작은 원자의 존재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카이사르가 '부르투스 너마저...' 라고 신음하고 있는 로마 원로원에 자네가 서 있다고 생각해보
게. 왓슨, 의사인 자네 생각에는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뱉은 숨의 부피는 도대체 얼마나 될 것
같나?"
"적어도 1리터는 되었겠지요. 물론 사람의 호흡량은 여러 요인에 따라서 상당히 많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결정이나 원자와 어떤 상관이 있다는 있다는 거죠?"
"왓슨, 잠깐만 기다려보게. 공기의 밀도는 대략 1세제곱미터당 0.2킬로그램 정도이지. 그러니까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 1리터라면 그 무게는 약 0.2그램 정도 되었겠군. 그렇다면 지구를 둘러싸
고 있는 공기 전체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홈스, 그건 나 같은 문외한이 짐작도 못할 질문이로군요."
"그런가? 왓슨. 나는자네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구의 지름이 얼만가?"
"그건 알고 있죠. 아마도 8,000마일 정도일 겁니다."
"지표면에서의 압력은?"
"1제곱인치당 15파운드."
"바로 그러라네! 지구의 표면적을 제곱인치로 나타낸 후에 15를 곱하기만 하면 되잖나! 몰론 미
터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겠지. 힌트를 하나 주겠네. 지구 표면의 면적은 대략 500만 제고
킬로미터 정도이고, 공기의 압력은 제곱센티미터당 1킬로그램 정도야. 아주 간단한 숫자지."
"홈스, 1미터는 100센티미너이고, 1킬로미터는 1,000미터이니까..."
"과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쓰면 훨씬 쉬워질 걸세."
"그래요? 1미터는 10의 2승 센티미터이고, 1킬로미터는 10의 3승미터이니까, 1킬로미터는 10의 5
승 센티미터입니다. 홈스, 이 수들을 곱하기 위해서는 10의 지수들을 더하기만 하면 되는군요. 실
제로는 적당한 수의 0의 붙이기만 하면 되는 셈이지요."
"왓슨! 훌룽하네. 계속해보게."
"그러니까... 1제곱킬로미터는 10의5승 곱하기 10의 5승, 즉 10의 10승 제곱센티미가 되겠군요.
그것에 5곱하기 10의21승 그램. 마지막으로 백만 단위로 표시하면..."
"훌륭하군. 왓슨. 이제는 되었네. 말을 새로 배우려면 그 말로 계속 생각해보는 것이 좋으니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계산 방법을 사용해보게. 곧 익숙해질 거야.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라네. 공기 분자의 무게는 10의 -26승 킬로그램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는 것을 기억
하겠지? 그렇다면 카이사르가 마지막 뱉어낸 0.2그램의 숨 속에는 몇 개의 분자가 있었을까요?"
나눗셈은 조금 더 어려웠다.
"2곱하기 10의 22승. 즉 20 곱하기 10의 21승 보다 네 배나 되는 군요."
"왓슨,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자네가 숨을 쉴 때마다 평균적으로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뱉었던
공기 붙자 중에서 네 개를 들여마시는 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네."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요. 그런데 아직도 나는 그 이야기가 결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모르
겠습니다."
"잠시만 더 기다려보게. 와슨, 이제 이 시험관에 이상한 물질 10그램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세.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이 시험관을 창문 옆에 놓아두면 그중의 일부가 증발하겠지?"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합니까? 홈스. 말하기 뭐하지만 그 고약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언젠가는 허드슨 부인도 결국..."
"잠깐만, 왓슨.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완전히 섞이도록 며칠을 기다린다면 1리터의 공기
속에 그 물질의 분자가 몇 개나 있을까?"
"계속할 겁니까? 홈스. 그 골치 아픈 물질이 이 세상의 공기를 전부 오염시켜버리겠죠 뭐?"
"애들레이드 지방의 실험실에서 어떤 화학자가 똑같은 물질을 결정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홈스, 정말 믿기 어려운 말을 하는군요. 시험관에 있던 분자가 공기를 통해서 다른 지방에 있는
시험관에 들어가게 되어서 결정을 만드는 씨앗 역할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그것이 사실이야, 왓슨. 더구나 공기 분자는 아무렇게나 혼합되어 움직이만, 만약에 내 실험실
에서 소포를 보내거나 해서 직접적인 접촉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포의 표면은 수백만 개
의 분자로 오염되어 있을 텐데 말이네. 그런데 전 세계의 실험실들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교류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런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겠나?"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홈스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점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느
껴졌다.
"홈스, 이제는 고백할 수밖에 없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나는 원자의 존재에 대한 주
장은 모두 단순한 짐작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원자가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라면, 원자에 대한 논쟁이 화성에 과연 생명이 존재할 것인가 또는 닭과
달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와 같은 쓸데없는 논쟁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논쟁은 결과에 상관없이 결국은 쓸데없는 수수께끼라고만 여겼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당신이 제
기했던 문제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걱정할 그런 문제라고 생각했답니다."
홈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왓슨,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지만 원자의 존재에 대한 연구는 훨씬 더 완벽
하게 이루어져 있다네. 다만 나는 순수과학보다는 범죄 수사에 더 재능이 있었 제대로 자네에게
설명을 해줄 수가 없을 뿐이지. 그러나 자네는 의사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걸세. 자네도 질병의 독소 이론에 대해서 들어보았겠지?"
"물론이지요. 질병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되는 것은 일종의 전염 인자가 존재하
기 때문이라는 이론이지요. 그런 전염 인자는 일종의 '전염장' 또는 '전염기체'라고 부르기도 했고
'독소'라고도 불렀습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의사들 중에서 그런 이론을 믿는 사람도 많습니
다."
"플로지스톤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지 않나?"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질병이 아주 작은 병원체에 의해서 옮겨진다는 주장
도 있습니다. 현대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그런 병원체가 바로 박테리아라고 하더군
요."
"그래서, 질병은 옮겨질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독소에 의해서 옮겨지는 것일까? 또는 미세한
병원체 때문에 생긴느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의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사실이에요, 홈스. 사실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현대 의삭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 나를 꼼짝도 못하게 몰고가고 있군요. 불공평합니다. 나는 이미 원자의
존재도 중요하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홈스는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아직도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네. 과거에는 원자의 존재에 대한 심오한 의문은
과학철학자들에게나 중요한 것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과학철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임이 밝혀졌다네. 저번 그 환자가 원자의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목숨
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 그런 예가 되지 않겠나? 이제 과학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식이 되었다는 뜻이지. 그것도 단순
히 교양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이웃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 필요
한 것이 되었다네. 이제 밤이 깊은 모양이네. 잠잘 시간이군."
4.과학실험의 방해공작
"왓슨, 어서 이리와보게. 저 사람 어떤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홈스의 재촉에 서둘러 창가로 갔다.
"오늘은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저쪽에 서 있는 사람을 살펴보게. 우리를 찾아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아주
귀한 손님인 모양인데."
홈스는 치장이 잘된 택시에서 방금 내린 남자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택시 기사와 언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에 택시가 떠나자 그 사람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큰 키에 몹시 마른
그 사람은 수염이 덥수룩해서 좀 우숩게 보이기도 했다. 짙은 색의 옷이 비싸 보이기는 했지만
엉망으로 구겨져 잇어서 더욱 이상하게 보였다. 그는 금테 안경을 쓰고 나서 주머니에서 꺼낸 종
이 조각을 살펴보다가 던져버리는 동작을 한동안 반복했다.
" 왓슨, 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한 번 보면 어떤 사람인가를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네. 그런데 저 사람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짐작을 못하겠군.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홈스를 따라서 말했다.
"형편은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군요. 옷은 물론이고 구두도 아주 좋은 것인데요. 그런데도 저렇게
엉망인 모습인 것을 보면 뭔가 큰 일을 겪은 모양인데, 그래서 저 사람을 주목하게 되었습니까?"
"훌륭하네, 왓슨. 구두를 주목한 것은 아주 훌륭해.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을 과장하고 싶은
경우에 비싼 옷을 입기는 하지만 구두까지 신경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 그런데 비싼 옷이
저렇게 구겨졌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발도 못한 듯한 모습을 보면 오늘 아침에 사고를 당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네."
"홈스, 저 사람의 모습은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나간 과학자와 똑같지 않습니까? 웰스의 공
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닐까요? 무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내 생각에는 정
신병원을 뛰쳐나온 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마침내 찾고 있던 쪽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건물의 문패를 살펴보
고 있던 그 사람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바람에 지나가던 마차에 치일 뻔했다. 그가 다치지
않고 길을 건넌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럴까? 왓슨. 나는 오히려 ...아니로군. 내가 틀린 모양이네. 저 사람은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야. 괜히 허풍을 떨었나보네."
그 사람이 옆 사물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홈스도 창문에서 물러났다.
"왓슨, 오히려 다행한 일이야. 오늘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있어서 하루 일정을 비워놓았었건
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홈스."
그 사람은 옆 사무실에서 나와서 초조한 모습으로 우리 사무실의 벨을 누르기 시작했다.
"젠장! 왓슨, 허드슨 부인이 저 사람을 쫓아버려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지만 그것은 헛된 희방일 뿐이었다. 아래층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에
그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느 분이 명탐정 홈스 씨인가요?"
"제가 셜록 홈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심각한 위급상황이 아니면 예약된 손님만을 만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군요. 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의 희생자입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나는 일링워스 박사라고 합니다. 에든버러의 일링워스 박사인데 지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는 왕립천무대의 후임 대장으로 내정되어 있다고 소문이 난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홈스도 그의 이름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일링워스 박사는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
"일링워스 박사님,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십시오.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홈스, 일분이 아깝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모두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
니다.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대영박물관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함께 가면서 말씀드리
면 어떨까요?"
홈스는 아직도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최근에 과학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박사님, 홈스 씨도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분명히 도와주실 겁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결국 우리는 함께 대영박물관을 향해서 바쁘게 걸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홈스는 하루 계획이 엉
망이 되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참 후에 그가 마음을 돌린 듯 입을 열었다.
"박사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방해공작이 있었습니다. 과학 발전에 중요한 실험에 대한 방해공작이었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렇군요. 지금 여기서
그런 말을 하는 것으느 적절하지 못하겠군요."
홈스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왓슨, 자네의 처음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여서 일링워스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님, 우주에 대한 문제라면 내 전공은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먼저 쉬운 문제부터 해결해보도
록 하지요. 정확하게 어떤 방해공작이 있었습니까?"
"누군가가 내가 만든 판을 못 쓰게 망가뜨렸습니다, 홈스 씨.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판을 말입니다."
"하녀가 깨뜨린 판 때문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농단이 지나치시군요. 내가 말한 판이란 사진 필름을 말하는 겁니다.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별
의 수를 정확하게 헤아리기 위해서는 성능이 아주 좋은 필름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이곳 대영박
물관의 관장인 내 친구 애덤스 박사가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훌륭한 화학자인 애덤스 박사가 아
주 약한 빛에도 반응하는 민감한 광학 활성 물질을 합성해주었지요. 나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
미터나 되는 큰 유리판을 그 물질로 코팅해서 실험 준비를 마쳤답니다."
우리가 박물관으로 향하는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일링워스 박사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전에 본 적이 없었던 작고 둥근 구조물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박물관의 전망대에서 실험을 하고 계셨습니까?"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세요?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망원경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불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망원경
으로 사진 필름이 엉망이 되어번린 겁니다. 나는 누군가가 방해공작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박물관 계단에 다다랐을 때 홈스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 낮은 목소리로 불쾌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 그렇게 위급하고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서 나를 여기까지 불러왔다는 말씀이세요?"
"바로 그렇습니다! 홈스 씨.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정말 놀라울정도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홈스는 화를 참기 위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박사, 정말 죄송합니다. 아주 위급한 사건이 방금 생각났습니다. 브라이턴에
살고 있는 어떤 여자가 독물 중독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나는 지금 당장 그리고
가야 합니다. 박사님, 좋은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나는 그의 건망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홈스 씨, 어제 밤에 브라이턴 경찰로부터 사건이 모두 해결되었다는 전보를 받지 않았습니까?
내가 전보를 분명히 전해드렸을 텐데요."
나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흘겨보는 홈스를 보고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때 계단 위에서 우리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홈스 씨, 정말 반갑습니다. 당신처럼 유명한 분이 이렇게 사소한 사건을 도와주러 오실 줄은 몰
랐습니다."
박물과 관장인 애덤스 박사였다. 우리도 그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
면서 그를 따라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일링워스 박사가 말하던 사건 필름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 복도로 갔다.
사소한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도 충격적인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
리판에는 사냥군 오리온 성좌의 모습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게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
는 아주 불길하게 느껴지는 그림자가 함께 찍혀 있었다. 흐릿하고 일그러져 있기는 했지만 사람
과 야수의 중간 정도로 보이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저 우주 공간 어딘엔가 마구 돌아다니며 싸움
을 벌이고 있는 이교도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사진처럼 으스스하게 보이기도 했다. 사진을 본 홈
스도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우연히 훼손된 것은 아닌 모양이로군요. 그런데 누가 저렇게 이상한 방해공작을 하고 싶었을까
요? 목적이 무엇일까요? 사진 필름에 점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었습니까?"
일링워스 박사가 바로 대답했다.
"외국인일 겁니다. 탐정님! 전망대로 통하는 문은 안전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사진 필름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서 올려가기 전에 하룻밤을 이곳에 놓아두었지요. 밤에는 박물관의 출입
문을 모두 잠가버립니다. 그렇지만 방문객으로 위장한 범인이 박물관의 문을 닫기 전에 숨어 있
기는 아주 쉬웠을 겁니다."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심한 경쟁 때문이지요! 얼마 전에 해왕성을 발견한 공로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것인가 때문
에 심각한 논란이 있었지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경쟁을 벌였습니다. 마치 누가 천문학
적 발견을 했는가에 나라의 모든 위신이 걸린 것처럼 되어버렸답니다. 어찌되었건 나는 침입자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일링워스 박사는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홈스가 조용하게 말했다.
"방해공작이라기보다는 어떤 학생이 장난을 한 것이겠지요.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관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덤스 박사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우연한 사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군요. 그렇지만 나도 외국인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기보다는 어린 학생의 장닌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비와 쓰레받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장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
나더니 사긴을 덮개로 가리면서 말했다.
"이 사진을 청소원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군요. 지난 주에 박물관에 이상한 유물이 들어온 다
음부터 미신 같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이 사진을 보면 그런 소문이 더 심각하게
퍼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이상한 유물이라니요?"
"정말 이상한 유물입니다. 데인저필드 탐사 팀이 가져온 겁니다. 그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까?"
물론 우리도 그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중앙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데인저필드
탐사 팀은 그곳에서 아주 오래된 도시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상하게 생긴 금속 조각품들을 찾아
내었다. 그 조각품들이 영국 탐사 팀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누군가가 속임수로 만들어놓은 것이
라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탐사 팀이 겪은 불운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
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상을 입었고, 나머지 대원들도 대부분 이런저런 병에 걸렸다. 지금은 많
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정확한 병명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탐사 팀이 피라미드 도굴
꾼들처럼 저주를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지만 홈스는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냈었다. 나는 그
들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열대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관장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조각품 중의 하나가 저 테이블 위에 있습니다. 저 조각품은 납보다 두 배가 더 무거운 금속
으로 만든 겁니다.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아주 흥미로운 유물이지요."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 조각품을 살펴보았다. 반구 모양의 조각품에는 속으로 패인 음각의 무
늬가 새겨져 있었다. 입체적인 무늬는 멀리서 보면 평범하게 보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림
자가 바뀌기 때문에 아주 신기하게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지는 그런 유물이
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 유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유물을 살펴보고 있을 때 일링워스 박사가 옆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를 가지고 돌
아왔다. 상자 가운데에는 구리 막대가 달려있었고, 그 끝에 달린 노란색 금속 날개가 이리저리 흔
들리고 있었다.
"어러분, 이것은 검전기라는 장치입니다. 검전기를 하전시키면 이렇게 됩니다."
그는 가죽 조각을 소매에 열심히 문지른 다음 상자 윗부분에 댔다. 그러자 구리 막대기 끝에 달
린 노란색 날개가 직각으로 벌어졌다.
"전기의 개념은 모두 알고 있겠지요. 물질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가진 입자들로 만들어져 있고,
보통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지요.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양
전하를 가진 입자 쪽으로 움직여가는 것을 전류라고 부릅니다. 어떤 물체에 양전하를 가진 입자
가 음전하를 가진 입자보다 조금 더 많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되면 그 물체는 정전기를 가지게 됩
니다. 이 가죽 조각을 무지르면 음잔하를 가진 입자들 중의 일부가 쫓겨나게 되어서 양의 정전기
를 가지게 됩니다. 양의 정전기를 가진 가죽 조각을 가운데 막대기에 대면, 전기적으로 연결된 이
막대기와 금박 조각은 모두 양전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전하들끼리는 서로 밀치는 설
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전기를 가진 금박 조각들이 서로 밀쳐서 이렇게 펼쳐지게 되는 겁니
다."
"박사님의 설명은 아주 쉽게 이해가 되는 군요. 그런데 그것이 방해공작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
까?"
"우연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장치가 멋진 도난 경보기 역할을 했습니다. 나는 어제 저녁
에 이 검전기에 전기를 하전시킨 상태로 저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평소에는 박물관 내부
의 공기가 아주 건조하기 때문에 누가 건드리지 않는다면 몇 시간을 두어도 하전되 전기가 사라
지지 않지요. 내가 이 검전기를 만지면 내 몸을 통해서 정전기가 흘러가버리게 됩니다."
정말 그가 상자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금박 날개가 아래쪽으로 늘어져버렸다.
"어제 밤에는 이 검전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필름을 이곳에 놓
아두고 전망대에서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있던 사이에 검전기가 스스로 방전되어버렸답니다.
그 시각에는 박물관 안에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검전기가 방전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 침
입자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까요?"
갑자기 홈스가 흥분된 모양이로 양손을 비볐다.
"여러분, 이제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왓슨, 자네는 과학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지?"
"물론이죠, 홈스."
"더욱이 이 박물관의 단골 손님으로서 이 보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면 절대 거절하지 않을 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반은 장난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일링워스 박사님, 이곳에 새로운 사진 필름을 미끼로 놓아두기로 합시다.
훌륭합니다. 왓슨 박사가 권총으로 무장을 하고 이곳을 밤새워 지킬 겁니다. 왓슨 박사가 외국 첩
보원이거나 장난꾸러기 학생이거나 상관없이 확실하게 범인을 체포하겠지요."
사태를 파악한 내가 서둘러 말했다.
"홈스, 그런데 내 환자들은 어떻게 하지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날에는 환자들도 모두 휴가를 가버렸지요. 그래서 왓
슨 박사도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걱정하고 있던 중이랍니다. 오늘 밤 아홉 시 정각에
왓슨 박사가 다시 이곳으로 올 겁니다. 이제 우리는 그만 헤어지기로 하지요."
그날 저녁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박물관 입구 계단을 올라갔다. 거대한 출입문에는 초인종이
없었지만, 누군가가가 안에서 내다보고 있었는지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출입문이 열
렸다. 일링워스 박사는 썩 내키지는 않는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서 깜깜하게 어두워진 박물관 안
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그와 함께 새로운 사진 필름을 전망대로 통하는 계단 반대편으로 옮
겼다.
"라보 그곳입니다. 왓슨 박사. 모든 것이 어제 밤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박물관 직원이 퇴근하기
전에 당신이 앉을 의자를 가져다놓도록 했습니다." 그는 불편하게 보이는 작은 나무 의자를 가리
면서 말을 이었다.
"권총은 가져오셨겠지요? 과학 연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범인에게 사정을 보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단순한 장난꾸러기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무리임을 말해주고, 그렇지만 파
수꾼의 책임은 열심히 수행할 것을 약속했다.
함께 있기가 그렇게 싫은 사람도 없을 것 같아싿. 그러나 일리워스 박사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일러주고 나서 훌쩍 떠나버리자 조금 무섭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다. 담요
를 덮고 앉아서 홈스가 추천해준 윈우드 리드의 [인류 수난사]를 펴보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책
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옛날 지구를 휩쓸던 무시무시한 공룡을 뼈가 사방에 잔뜩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눈 앞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
면 단순히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서성이던 나는 소매를 문질러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검전기를 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시품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다짐을 하기
는 햇지만 나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전율을 느껴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하룻밤을 편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아무도 몰래 접근
할 수는 없도록 의자를 거대한 사진 필름 바로 앞으로 옮겨놓고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앉아 있
던 나는 갑자기 아까 보았던 조각품이 생각나서 ㅂ러떡 일어낫다. 그 유물은 2피트도 안 되는 곳
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악마 같은 모습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유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거나 헝겊으로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귀중한 유물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되어서 그냥 두기로 했다.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별을 쳐다보면서 일링워스 박사의 새로운 이론을 이해하
려고 애쓰느라고 한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 안에서 뭔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
거나 변하고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창문에서 눈을 돌릴 때마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마음을 고쳑먹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가 왜 그런 느낌을 느끼게 되었는가를 깨닫고 나자 머리카락이 곤두서버렸다.
검전기는 내가 앉아 있던 곳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조각상 옆에 놓여 있었다. 그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검전기의 날개가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고, 그 속도
도 점점 빨리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난 후에는 두 날개가 완전히 아래로 처져버렸다.
나는 일링워스 박사도 짐작하지 못했던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물관 안에서 희미하
게 발을 끌면서 걷는 듯한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두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쥐일 것이라고 생각하
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로 그때 뭔가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내 다리에 제법 커다
란 물체가 부딪쳤다.
기절할 듯이 놀라서 벌떡 일어서던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기가 막혔다. 어느새 고양이 한
마리가 발 밑에 다가와 있었다. 그것도 유령처럼 보이는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아주 게을러 보이
는 얼룩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등을 쓰다듬어 주었더니 테이블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서 조각상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잠이 들어버렸다.
커다란 얼룩 고양이가 옆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조각상을 두려워
한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는 사실이 더 부끄
러웠다.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책을 읽을 수도 없었던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벼락 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았다. 그런데 아미 사방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부끄럽게도 내가 아주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얼룩 고양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잠결에 들었던 벼락 소리는 실제
로 그렇게 큰 소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청소하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
고 있을 때 일링워스 박사가 애덤스 박사와 함게 들어오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졸지 않고 잘 지켰겠지요?"
나는 분명한 대답 대신 고양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칩입자가 하나 있었답니다."
"아하! 저 고양이 말이지요. 박물관 작원들이 집 잃은 고야이들에게 먹이를 주었더니, 가끔씩 고
양이가 문 닫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리 내려오너라."
애덤스 관장은 손을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다가가서 고양이를 만져
보았더니 벌써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죽은 것이 분명했다. 깜짝 놀란 내가 말
했다.
"놀라운 일잉군요. 저 조각 유물에 저주가 내렸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 고양이가 원래 건강하
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일링워스 박사가 비웃듯이 말했다.
"죽은 고양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고양이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진 필름을 망가뜨리지는 못했
겠지요. 범인이 다시 침입하지 않았던 것이 유감이군요. 어쨌든 이 필름을 현상해서 확인해보기로
합시다."
일링워스 박사는 사진 필름을 계단 밑에 마련된 작은 암실로 가지고 갔다. 내가 관장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홈스가 큰 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군. 왓슨! 자네 혼자 밤새워 고생하도록 해서 정말 미안하네. 물론 아무 일도 없었
겠지! 나도 자네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서 글록스테인을 지나오면서 먹을 것을 좀 사왔지. 관장
님!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겠습니까?"
홈스가 마련해온 아침을 먹고 있는 중에 갑자기 암실에서 놀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모두가 암실로 달려갔을 때 일링워스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필름을 가리켰다. 필름은 아직도 암
실 바닥에 놓여 있는 커다란 현상 탱크 속에 들어 있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확실했다. 필름 속에는 뼈의 모습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었다! 언뜻 보았을 때
는 거대한 도마뱀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많이 일그러지고 흐릿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사람의
골격이었다. 일링워스 박사는 나를 향해서 손을 떨면서 외쳤다.
"당신 말처럼 어린아이의 장난이었다면.."
갑자기 홈스가 그의 말을 막았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박사님."
홈스는 사긴을 다시 살펴본 후에 나를 똟어져라 쳐다보았다. 일링워스 박사처럼 홈스도 나를 의
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홈스가 다시 말했다.
" 왓슨, 저 의자를 이리 가져와서 앉아보게. 아니 조금 더 앞쪽으로 옮겨보게. 어제 밤에 권총은
어느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었나? 왼쪽 주머니였나? 내 짐작으로는 그랬을 것 같은데."
그는 현상 탱크에 담긴 필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도 뢰트겐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시지요? 그가 엑스선이라고 불렀던 빛을 이용해
서 사람의 몸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진 말입니다. 왓슨, 그 사진 덕분에 수술을 하지
않고도 뼈가 부러진 사실 뿐만 아니라 다른 결함도 알아낼 수 있게 되었지. 그래서 의료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이 박물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엑스선을
내는 광원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어제 밤에 왓슨 박사가 그 광원과 필름 사이에 앉아
있었다고 합시다. 저 필름 속에 의자의 다리가 보이지요? 이쪽의 커다란 얼룩무늬가 바로 금속으
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투명한 권총입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뼈의 모습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왓슨, 자네는 정말 어제 밤에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군."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필름 속에 나타난 모습은 정말 그렇게 보였다. 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엑스선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전기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서 그런 엑
스선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홈스가 즐거운 듯이 대답했다.
"여러분, 광원의 위치는 간단한 삼각 측량법으로 알아낼 수 있으니, 다시 복도로 나가봅시다. 여
기 필름과 의자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아직도 희미간 자국이 남아 있군요. 의자를 다시 그 자리
에 놓아봅시다. 그리고 왓슨 박사는 어제 밤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보게. 이제 필름의 위치에서 몇
가지 간단한 측량을 해봅시다."
그는 복도 바닥에 분필로 두 개의 선을 그어싿. 그런데 두 선이 만나는 점에는 바로 그 조각 유
물이 놓여있었다.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유물에 대한 두려움이 단순히 미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군요."
"그렇지만 이 유물은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뿐이고 속에는 아무런 기계장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몰론 전깃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유물에서 엑스
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일링워스 박사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홈스가 대답했다.
"반드시 엑스선이 아니더라도 투과력이 있는 빛이면 되겠지요. 그것도 역시 어떤 형태의 전기적
인 현상 때문일 겁니다. 그 정체를 확실하게 밝히려면 필름보다 더 우수한 장치가 필요하겠지요.
원자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입자를 검출할 수 있는 민감한 장치 말입니다."
"그런 장치라면 정말 정교하고 색다른 것이겠군요."
내 말에 관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개발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공기와 물만 가지고 그런 장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빛을 알아내는 전문가입니다."
말을 마친 관장은 주사 바늘 대신에 아무 표시가 없는 얇은 유리판이 달린 커다란 주사기를 가
지고 왔다. 우리는 방금 커피를 타 마셨던 주전자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주사기에 넣고 있는 그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관장이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공기는 팽창하면 차가워집니다. 그래서 주사기 안에 있는 수증기가 물방울로 바뀌게 되지요. 그
런데 그런 물방울이 아무 곳에서나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크기가 작더라도 다른 입자가 있거나
전하가 있는 곳에서 먼저 물방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작은 입자를 원자
와 충돌시킬 때, 원자가 부서져서 퉁겨나오는 조각들을 관찰하는데 사용하는 구름 상자가 바로
이런 것이지요."
그는 주사기의 끝을 조각 유물 쪽으로 대고 피스톤을 세게 잡아당겼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 모
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기는 했지만 엷은 안개 같은 것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나는 감탄했다.
"조각 유물이 마치 자동소총처럼 입자살을 쏟아낸고 있는 모야이군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실험은 입자가 지나가는 경로를 따러서 물방울 줄기가 만들어
질 정도로 민감합니다. 입자가 지나가면서 공기 분자를 연속적으로 교란시키기 때문이지요."
"놀라운 일이로군요. 이렇게 간단한 실험으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니 말입니다."
내가 놀라서 소리쳤다. 관장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균형의 법칙을 더 좋은 형태로 응용하는 것이 실험을 다자인하는 핵샘입니다. 쥐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원자 검출기에 적당한 시동 장치를 붙이면 그 효과를 훨씬 크게 증폭시킬 수 있
습니다. 자연현상을 관찰하려면 반드시 비싸고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지요. 머리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
"나도 공기와 물만으로 만든 망원경이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링워스 박사가 빈정거리듯이 말했지만 관장은 말은 계속했다.
"이 작은 자석을 이용하면 문제를 더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관자은 홈스에게 자석을 주사기 가까이 들고 있도록 하고, 주사기 실험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
리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장 속에서 시계방향으로 휘어지는 입자도 있고, 그 반대방향으로 더 많이 휘어지는 입자도
있군요. 이 조각 유물에서는 적어도 두 종류의 입자가 방출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는 음전하
를 가지고 있고, 다른 것은 양전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더 큰 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더 많이 휘어지는 건가요?"
내 물음에 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입자가 가지고 있는 전하의 양이 비슷하다면 양전하를 가진 입자가 훨씬 더 무겁다는 뜻이
기도 하지요. 이제야 알겠군요. 여러분을 괴롭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범죄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 몰랐던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출입문 쪽으로 인도하면서 관장이 사과의 말을 계속했다.
"일링워스 박사의 태로를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도
사소하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의 우연한 발견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처럼
평범한 화학자도 실험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
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러 갔을 때 홈스는 대영박물관의 독특한 문양이 새겨
진 편지를 읽고 있었다.
"좋은 저녁이네, 왓슨. 일링워스 박사는 우리를 아주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박물관 관장은 자신
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자네에게도 좋은 소식이겠지? 우리에게 수사비를 보내
왔다네, 왓슨. 이 돈은 자네가 받아야 할 것 같군.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자네가 밤을 세워
일한 덕분에 사건을 해결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관장은 그 조각 유물의 종요성을 일깨워준 점에 대해서도 특별히 감사하다고 했네. 관장
은 그 유물의 재질을 연구해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는군. 자네도 유물에서 두 종류의 입
자가 방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 양전하를 가진 무거운 입자를 알파선이라고 부르고,
음전하를 가진 가벼운 입자를 베타선이라고 부르기고 했다는군. 뿐만 아니라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또다른 종류의 입자도 발견했는데, 그 이름은.."
"감마선이겠군요."
"그렇네, 왓슨. 그리스의 알파벳을 기억하고 있었군. 어쨌든 관장은 그 입자들의 성질을 모두 알
아냈다는군. 그런 결과로부터 원자가 양전하와 음전하를 가진 입자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
론을 밝혀내기도 했다네. 전류가 흐를 때는 음전하를 가진 가벼운 입자가 움직이고, 양전하를 가
진 무거운 입자는 그 자리에 정지하고 있어서 고정된 받침대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주장도 발표
하게 되었다는군.
관장은 무겅누 알파 입자들이 사실은 원자에서 양전하를 가진 부분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알파 입자는 전자보다 두 배의 전하를 가진 헬륨의 원자핵이라고 하는군.
가벼운 베타 입자는 전자에 해당하고 감마선은 매우 짧은 파장을 가진 빛, 즉 엑스선이지."
"그러니까 조각 유물에서 방출되었던 입자는 실제로 모두 세 종류나 되는 셈이군요?"
"더 많은 종류의 입자가 방출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발견한 세 가지가 가장 많이 방
출되는 것이거나 가장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방출되는 입자들은 상당히 위험하겠는데요?"
"위험한 정도도 모두 다르다는군. 무거운 알파선이 가장 피새가 크다고 하네. 살아 있는 조직을
잠깐 동안 알파선에 노출시킨 다음에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완전히 깨진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
라네."
나는 갑자기 두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런 입자를 방출하는 유물 앞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었던 말입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네, 왓슨. 다생스럽게도 자연에는 신비로운 균형이 존재흐는 모양이야. 그래서
알파선은 파괴적이기는 하지만 물질을 쉽게 뜷고 나가지는 못한다는 군. 알파선은 아주 얇은 카
드는 몰론이고 1피트 정도의 공기층에 의해서도 흡수되어버린다는 거야. 그러니까 조각 유물을
직접 만지지만 않는다면 알파선에 의해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아마도 화상을 입고
죽은 불쌍한 고양이는 알파선에 희생되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베타선은 알파선보다 토과력이 100배 정도 크고, 감마선은 다시 베타선보다 100배 정도
더 투과력이 크다고 하네. 관장의 편지에 따르면 감마선은 1피트 정도의 방탄 철판도 뚫고 지나
갈 수 있을 정도라는거야. 그렇지만 자네가 앉아 있었던 위치나 시간으로 보아서 자네에게는 아
무런 피해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군. 그리고 전하를 가진 입자가 검전기로 흘러가게 되면
검전기를 방전시킬 수도 있더고 하네."
"아주 흥미로운 과학 발견인 모양이군요, 홈스. 더구나 관장이 직접감사의 편지를 보내주었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뿐이 아냐,왓슨.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네. 관장은 정말 극적인 두 가지 발
견 때문에 자신의 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첫째는 물질의 본성에 대
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는 거야. 그는 알파선을 아주 얇은 관에 통과시키면 어떻게 되
는가를 살펴보았다네.아주 얇은 금박을 이용했지. 금을 망치로 두들기면 아주 얇게 펴진 금박이
되네. 그리고 금박은 원자 몇 개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얇아서 검전기에 사용하기 적당하지.
실험을 하기 전에는 금박을 통과한 알파선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 것으로 생가갷ㅆ었다는군. 마치
권총 탄환이 두꺼운 담요를 통과하고 난 후에 속도가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놀랍게도
아주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하네. 대부분의 알파 입자들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을 통과하
는 것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지나가버렸는데, 그중에서 몇 개의 알파 입자들은 아주 심하
게 꺾여서 퉁겨나가더라는 거야. 심지어는 180도 뒤쪽으로 퉁겨진 것들도 있었다는군."
"좀 이상한 이야기로군요."
"좀 이상하다니. 왓슨! 자네가 15인치 대포의 탄환을 휴지를 향해서 발사했는데 그 탄환이 뒤로
퉁겨서 자네 코를 맞추었다는 것을 그냥 이상하다고만 하겠나?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지. 자네도 유명한 허드슨 부인의 젤리 푸딩 이야기를 기억하겠지. 오늘 저
녁 식사 후에 그것을 먹게 되면 정말 좋겠군. 자네, 권총으로 바로 앞에서 푸딩을 한방 쏘면 어떻
게 될 것 같은가?"
"홈스, 내 생각에는 우리 집주인으로 놀라울 정도로 당신에게 관용을 베풀어주던... 잇단 불행 끝
에... 그리고.."
"아직 내 질문이 끝나지 않았네, 왓슨. 탄환이 푸딩을 그냥 뚫고 나가지 않고 권총을 쏜 방향으
로 거꾸로 퉁기는 경우를 상상해보라는 것이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장난꾸러기가 푸딩 모양으로 만들어서 빨갛게 칠한 방탄 철판 모형
을 놓아두었다고 생각하겠지요."
"만약 푸딩의 무게가 보통의 푸딩과 차이가 없었다면? 그리고 권총을 여러 번 쏘아보았더니 대
부분은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지나갔는데 그중의 몇 개만이 퉁겨서 되돌아왔다면 어떻겠나?"
"그렇다면 푸딩 속에 아주 밀도가 큰 입자들 몇 개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스
코틀랜드의 할로윈 축제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인 동전을 숨겨놓은 순무처럼 말예
요."
"훌륭하군, 왓슨. 그런데 그런 푸딩의 무게가 정상적인 것보다 조금도 더 무겁지 않다면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한 환상일 뿐이고 속에 감추어진 동전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 각도에 따라
서 퉁겨나오는 탄환의 수를 알아내면 전체 부피 중에서 동전이 차지하는 부피가 얼마인가도 알
수 있고, 동전의 평균 질량도 알 수 있게 된다는군."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발견이라고 하는지를 모르겠습니
다."
"무슨 말인가? 왓슨. 우선 그런 발견은 원자론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지! 속에 감추어진 딱
딱한 물체의 무게가 원자의 무게와 정확하게 같다니까 말이네. 그렇지만 이 실험에서는 더 중요
한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고 하네. 어떤 의미에세는 모든 물질이 단순한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
지. 금처럼 밀도가 큰 물질의 경우에도 그 속의 99퍼센트 이상이 텅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거야.
관장의 계산에 의하면 고체의 부피 중에서 실제 원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10의 15승 분의 1, 즉
백만 분의 백만 분의 천 분의 일에 지나지 않을 정도라는 거야."
나는 머리를 젖히고 큰 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입니까? 홈스. 이제 웰스가 공상 소설가의 왕관을 넘겨주어야겠군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면 내가 고체로 된 벽을 지나가더라도 벽의 원자와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군요! 그리고 보이
지 않는 사람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어야 할 것이구요!
어디 한 번 해보지요. 내 손이 테이블을 무사히 뚫고 지나갈 수 있는가 말입니다."
나는 소능로 식탁을 내리쳐서 접시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 왓슨, 원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 힘 때문에 그렇게는 할 수
없네. 강력한 자석이 붙어 있는 두 개의 쇠스랑의 살 사이에 집어넣기가 매우 어렵게 되지. 원자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수백만 개의 작은 원자 자석들이 힘을 함쳐서 자네 무먹을 막아
버리는 셈이지. 힘을 더 주어서 애를 쓸수록 오히려 자네 주먹에 멍만 들 뿐이야.
이런 발견을 어떻게 직접 생활에 이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질의 본성에 대한 아
주 훌륭하고 놀랑누 발견인 것은 틀림이 없다네.
그리고 관장은 조각 유물의 재질을 화학적으로 분석해보았다는군. 조각 유물의 주성분은 우라늄
이라는 금속이고 다른 원소도 조금 섞여 있었다네. 그중에서도 강한 알파선과 베타선을 방출하는
원소를 분리해내고, 방출되는 에너지도 정확하게 측정한 모양이야. 놀랍게도 라듐이라고 이름 붙
인 이 활성물질 1 그램에서 물 1그램을 한 시간 정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
다는 설명이네."
"그 물질이 서서히 연소되고 있다는 말입니까? 공기 중의 산소와 함께 말입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는군. 그런 변환느 산소가 없어도 끊임없이 일어날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알
려진 어떤 화학반응보다도 수천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거야. 더구나 그런 변화가 몇
주일 동안 계속 일어난 다음에도 질량은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네. 그런데 첫 번째 실험에서는 알
아내지 못했지만 반복해서 분석해보았더니 시간이 지나면 라듐이 다른 원소에 의해서 서서히 오
염이 되어가더라는 거야."
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나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잔치를 벌이겠군요! 홈스. 소멸되지 않는 에너지원을 벌견했
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른 물질도 변환될 수 있는 꿈 같은 성질을 가진 물질을 발견했다니 말
입니다. 관장이 그런 발견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유명해게 되기커녕 지금까지 쌓아놓은
명성도 모두 망쳐버릴 것 같군요. 있지도 않은 바다뱀을 보았다고 소란을 피운 선원처럼 이런 말
도 안 되는 주장을 발표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욕을 먹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겠지요"
"아니네, 왓슨. 이 실험은 독립적으로 반복해보아도 틀림없이 확인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네. 다른 화학자들에게 이 조각 유물을 이용해서 실험을 할 수 있다록 해도 같은 결과를 얻
게 될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지."
"홈스, 아주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로군요. 나는 최근에 자연과학자들이 언제나 철저하게 보존되
는 양을 이용해서 우주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에너지가 방출될 뿐만 아니라 원소들이 스스로 다른 원소로 바뀌기도 한다는 말씀입니까?"
홈스는 초조한 듯이 두 손을 비볐다.
"왓슨, 알려진 법칙에 대한 예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지 않았던가? 수사관들은 그런 예
외 때문에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바로 그런 예외 때문에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
이 때로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 되기도 하네.
지금까지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완벽한 것 같아서 아무도 의혹을 품지
않았네. 뉴턴은 오래 전에 질량과 힘과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아냈고, 최근에는 맥스웰이 전
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아냈어. 그래서 이제 앞으로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알
려진 물리 상수들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
그렇지만 이제 관장의 새로운 발견 때문에 그런 과학이 엄격한 시험을 받게 된 걸세. 자연법칙
을 약간 수정한다고 해결될 정도가 아닐세. 어쩌면 아주 새로운 과학이 출현할 수도 있겠지. 앞으
로 몇 달 동안 아주 흥미로운 결과들이 계속 밝혀질 거네."
그는 한숨을 쉬고 나서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이제 그런 문제는잠시 덮어두기로 하세. 허드슨 부인이 푸딩을 가져올 시간이 되었군. 근본적으
로는 이 세상은 환상적이고 텅 비어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내가 만족할 만큼 실존적이기도 하
지. 그렇지 않은가? 왓슨."
5.나는 탄환
"왓슨, 이걸 좀 보게 정말 재미있군."
홈스가 작은 갈색 봉투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지난 며칠 동안 홈스는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보였다. 나
는 그러다가 그의 옛날 나쁜 버릇이 되살아날까봐 걱정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떨쳐버려도
될 모양이라고 안심이되었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봉투는 중앙우체국 소인이 찍힌 아주 평범한
것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이 글씨를 못 알아보겠나, 왓슨? 마이크로프트 형에게서 온 편지야. 형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재미있는 사건을 소개해주었다네. 더구나 형은 말을 길게 하지 않
는 편인데, 이 봉투가 상당히 두툼한 것을 보면 아주 심각한 편지가 들어 있는 모양이야. 저기 있
는 편지 개봉기를 좀 집어주겠나?"
편지 개봉기로 봉투 속의 편지를 꺼내든 그는 빠른 속도록 편지를 읽어보더니 아주 실망한 표정
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내용이 아닌 모양이지요?"
"그렇군. 형이 두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불평을 털어놓은 것인데, 그 사람들이 바로
내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자네도 알고 있는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라는군. 그 사람들이 어떤 과학 문제를 놓고 논쟁
을 벌이다가 형에게 도움을 청한 모양이네."
"홈스 당신도 과학자라는 사실은 몰랐군요."
"몰론 그렇지. 그렇지만 형은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에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들을
잘 도와주었던 것으로 유명했었네. 형은 어떤 분야의 문제이거나 상관없이 문제 속에 숨겨진 논
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평범한 상식만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거든. 그
의 대학 친구들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그의 그런 재능을 잊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가
끔씩 있는 모양이야."
"과학 문제도 말입니까? 홈스 박사께서는 역사학과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았던가요?"
"형은 골치 아픈 과학 문제 해결에 상당한 재능을 가졌던 모양이네. 언젠가 그 비결을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는데, 바로 사고실험이라는 것을 활용한다고 하더군."
"홈스 박사께서 실험대에 서서 실험을 하고 계시는 모습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나도 마찬가지라네, 왓슨. 그런 육체 노동은 마이크로프트 형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 그대
신 형은 생각만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가상적인 실험을 고안하
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네."
그렇게 말한 그는 편지를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다. 그 편지는 디오게네스 클럽의 편지지에 쓴
것이었다. 그 클럽은 비사교적인 은둔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햇다.
"형의 편지에 따르면 두 교수는 빛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
양이야. 챌린저 교수는 빛이란 광원에서 연속적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네. 마
치 연못에 생기는 물결처럼 말이지. 그런데 서멀리 교수는 빛이 아주 작은 입자들의 흐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군."
"홈스, 그런 이야기라면 며칠 전의 원자에 대한 논쟁과 아주 비슷하군요. 물질이 연속적인 것이
라는 주장이 원자론에 밀려나버렸지요. 마찬가지로 질병이 독소가 아니라 병원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예를 생각한다면 빛도 불연속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겠군요?"
"왓슨, 그런 단순한 유추에 의한 추리는 아주 위험하다네. 그런 유추를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
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한다면 아주 위험
해."
"그렇지만 빛이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알맹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기는 쉬울 것 같은데요? 작은
알맹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던지면 마치 고무공처럼 거울에서 퉁겨져서 반사되지 않겠습니
까?"
"서멀리 교수가 바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네, 왓슨. 물론 그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
만 빛이 파동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라네. 예를 들어서 빛은 공기
보다 유리 속에서 더 느리게 진행하고, 공기에서 유리로 들어갈 때는 안쪽으로 휘어진다는 사실
을 알고 있지? 커다란 바위 위로 파도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도 있을거네. 바위가 있는 곳에서는
파도의 속도가 느려지고, 그 모양도 아주 자연스럽게 휘어지지 않던가? 빛이 파동이라고 생각하
면 바로 그런 식으로 렌즈나 프리즘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
빛의 색깔이 다양하다는 사실도 파동 이론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네. 즉 파동의 파장이 달라
지면 빛의 색깔이 변한다는 것지. 예를 들어서 붉은빛은 초록빛보다 파장이 길고, 초록빛은 푸른
빛보다 파장이 더 길지. 가시광선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야. 어떤 물체를 적당히 가열하면 적외선이
라는 빛이 방출되는데, 적외선은 붉은색의 가시광선보다 더 긴 파장을 가진 빛이네. 그런 빛이 우
리 몸에 닿으면 따뜻하게 느껴지지. 난로가 바로 그런 적외선을 많이 방출하는 장치라네. 요즈음
은 그런 적외선을 마치 무슨 신비로운 것처럼 주장해서 사람들을 우롱하는 잘못된 상인들도 있는
모양이더군.
그리고 의사들이 사용하는 엑스선은 푸른색의 가시광선보다 훨씬 더 짧은 파장을 가진 빛이네.
그렇지만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은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었지. 맥
스웰은 전기를 이용하면 빛과 같은 성질을 가진 파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마르코니파 또는 라디오파라고 부르게 되었다네. 라디오파는 그 파장이 적외선보다도 훨
씬 더 긴 빛이고.."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참 중요한 이야기로군요.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배에 라디오 장치를 설치하면 수
평선 너머에 있는 배에까지 조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
아주 유용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왓슨, 과학 전문 서적이 아닌 책에서 읽은 내용을 모두 믿으면 안되네. 그런 주장이 모두 실현
된다면 세상이 아주달라지겠지.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하! 그렇군. 맥스웰은 전하를
가진 입자를 진동시키면 빛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어. 내가 직접 보여줄 테니 차 한잔 가져
다주겠나?"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조금 놀랐지만 허드슨 부인의 큰 딸에게 차를 가져다달라고 부탁
하고 돌아왔다. 허드슨 부인은 예정에도 없던 이상한 휴가를 떠나버렸다. 허드슨 부인의 큰 딸이
가져다준 찻잔에 차를 따르고 우유를 넣었더니 액체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홈스는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제 잘 보게, 왓슨. 내가 숟가락을 찾잔 속에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물결이 생기지요."
"그렇지. 만약 숟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물결의 파장이 바뀝니다."
"잘 보았네, 왓슨. 맥스웰은 찻숟가락이 찻물에서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과 똑같이 빛이 방출되거
나 흡수되는 것도 전하를 가진 입자의 진동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네. 전하를 가
진 입자를 빨리 진동하도록 하면 파장이 짧은 빛이 나오는데 적당한 전기 측정장치를 사용해서
실험을 해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수직된 방향으로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군요, 홈스. 설명을 들어보니 과연 빛은 분명히 파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리고는 편안한 자세로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서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홈스,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파동 이론은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의사들 중에도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내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하
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흥분했다.
"홈스, 생각해보세요. 빛은 투명한 물질을 통과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리나 물이나 공기와
같은 물질 말입니다."
"그렇지만 화강암이나 스틸턴 치즈 같은 물질은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정말 훌륭한 생각이
로군."
나는 너무나 흥분해서 홈스가 나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빛이 통과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있지 않습니까? 홈스... 그런데 그것은 .... 아무것도
없는 무입니다. 땅에서부터 수십 마일을 올라가면 공기는 물론이고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끝없이
펼쳐지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반짝이는 별빛을 볼 수 있습니다. 물에서는 물이 있기 때문
에 파동이 생기게 되지 않습니까? 음파도 마찬가지로 공기가 있어야만 하지요."
"왓슨, 반드시 그렇지는 않네. 음파가 벽돌이나 시멘트 겉은 고체를 통과하기도 하잖나? 그래서
이웃집에서 밤늦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자네가 불평을 하는 것 아닌가? "
"그렇죠. 그렇지만 물과 공기와 벽돌도 모두 물질이 아닙니까? 즉 모든 파동은 운동의 한 형태
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움직일 것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빛은 아무것도 없는 진
공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그러니까 빛은 단순한 파동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내가 만일 [네이처]와 같은 학술잡지에 투고할 논문을 쓰게 되면 저와 함께 공동 저자가 되어
주겠습니까?'
홈스는 웃음을 참으면서 손을 들었다.
"잠깐만 기다리게, 왓슨. 자네 말차럼 빛이 진공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야. 우
리 인간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밤하늘의 별빛은 물론이고 세상을
밝게 비추어주는 햇빛도 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네.
그런데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과학자들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다네. 그 문제를 알고 있
던 과학자들은 많았지. 그들은 우주 전체에 에테르라는 것이 군일하게 채워져 있다고 가정함으로
써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다네."
"에테르라고 했습니까? 마취용으로 쓰는 약품을 말하는 겁니까?"
"물론 아니네. 내가 말하는 에테르는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도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말하는 거야."
홈스는 두 팔을 활짝 펴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바로 그 에테르 덕분에 전자기 파동이 전달될 수 있다는 거네.기체와 고체가 비슷한 점이 있는
것처럼 에테르와 기체도 비슷한 점이 있지. 공기는 잠자리채의 망을 자유롭게 통과하잖나? 마찬
가지로 에테르도 아무 어려움 없이 단단한 물첼르 통과할 수 있다네. 물론 지구처럼 크고 무거운
덩어리도 마음대로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아주 특별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에테르의
존재를 전혀 짐작도 못한다는 거야.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을 전달시켜주는 것이 바로 그런 특
별한 경우이지."
"홈스, 빛이 진공 속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
으로 느낄 수도 없는 이상한 테네르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엉성하지 않습니까?"
나는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확실히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감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은 에테르말고도 많지. 지구의 자
기장도 그렇지 않나?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존재한다는 에테르도 바로 그럴 거라는 말이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의도적으로 찻잔 속에 생기는 진동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면 결국 내 능력으로는 에테르를 이해할 수 없겠군요, 홈스. 그런데 홈스 박사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그런 것은 아니네, 왓슨. 그의 편지에 의하면 그 문제를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가지 증거들
때문에 답을 쉽게 알아낼 수가 없다고 하는군. 마이크로프트 형의 표현에 따르면 두 사람이 그렇
게 해달라고 협박을 했다는군."
"정말입니까!"
"놀라운 일이지? 알디시피 형은 사람 만나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이번에도 형
은 좋은 해결책을 찾은 셈이지. 형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언제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동생에게 슬그머니 떠넘겨버리는 고약한 버릇이 있거든. 물론 아주 기술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말
이야."
그는 자리에서 이러나서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정말 내키지 않아. 어떻게 거절하면 좋을까? 형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
도 가끔씩은 인간이나 자연의 문제에 부딪쳐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런데 둘러댈 핑계가 잘 생
각나지 않네. 내가 정신 없이 빠져들어갈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누가 아주 흥미
로운 사건을 의뢰해주면 좋겠군, 와슨."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 초인종이 울리자 홈스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내 소원이 효력이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저게 누굴까? 맙소사!"
그는 갑자기 창문에서 돌아서더니 담배를 집어들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왓슨, 내가 외출 중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해주게."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지금 바로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왓슨!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네. 도대체 오늘은 왜 이 모양일까? 시
험 감독관이 잠깐 자리를 비웠거나, 도서관의 책이 제자리에 꼽혀 있지 않아서 당황스러운 날 같
군. 어쨌든 무슨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큰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그 순간에 문 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홈스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
히 하라는 신호를 한 후에 방문을 안에서 닫아버렸다. 나는 찾아온 사람이 누군인지를 알고 나서
야 홈스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일링워스 박사
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일링워스 박사의 표정에는 승리감과 분노가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좋은 아침이군요, 와슨 박사. 홈스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방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
니다. 중요한 과학실험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비웃었던 홈스 씨에게 좋은
교훈이 될 그런 사건입니다."
나는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전정하시고 우선 이리 앉으십시오. 큰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요. 박사님께서 실험을 계속하기 어
렵게 된 모양이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왓슨 박사,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젊은 사람의 인생이 비극적으로 망가져버렸습니다.
홈스 씨가 내 말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도 지금 그 젊은이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을 겁니다."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났고, 피해망상에 빠져 있는 일링워스 박사는 그것이 자신의
실험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의 소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어느 정도의 추리력은 있다
고 자랑하고 싶었던 나는 동정 어린 투로 말했다.
"사망사고는 언제나 비극적이지요. 실험실에 아무리 완벽한 안전장치를 갖추어놓아도 위험요소
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이란 언제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 말이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정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고라니요? 실험실은 또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화학 실
험실에서 살인사건이 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는 누군가가 쏜 고성능 소총에 맞아서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박사님.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요? 홈스 씨는 지금 외출 중인데 오늘 사
무실로 돌아올지 알 수가 없군요. 그러니까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가 연락이 되는 대로 박사님의 긴급한 용건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홈스가 나타났다.
"무슨 말인가? 왓슨. 내가 여기에 없다니? 지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그래? 내가 벌써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나? 일링워스 박사님, 제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살인사건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요. 왓슨, 박사님의 외투를 좀 받아주겠나? 고맙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말씀해주
십시오."
내 입장이 정말 난처하게 되어버렸지만, 일링워스 박사는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러니미드관에서 전에 말했던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지요. 그 건물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
니까?"
"물론이지요. 80년 전에 돌아가신 러니미드 경이 천체학 발전을 위해서 케임브리지 대학에 기증
한 건물이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내 말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군요. 그렇습니다. 그 건물은 현재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 실험
에 꼭 알맞는 곳이죠. 그런데 내가 너무 바빠서 실제 실험을 맡아줄 조수를 채용하기로 했답니다.
이 실험을 맡게 되면 나같이 유명한 과학자와 개인적으로 사귈 수 있는 혜택이 있는데도 불구하
고 자원봉사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대하지도 않았던 젊은 여학생이 나타났
습니다.
그 학생은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박사과정에 입학 허가를 받았답니다.
물론 순전히 운이 좋았던 탓이었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한 덕분에 꽤 유명한 아마추어 천
문가로 알려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정규 교육을 받기 않은 학생이 제대로 과학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자는 부엌일이나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다른 지원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녀를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내가 그녀에게 실험을 맡기
기로 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에 젊은 남학생 두 명이 더 나타난 겁니다."
"그래요! 그 여학생이 매력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홈스가 말했다.
"이번 사건과는 상관없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렇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실험
을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이 번갈아 밤을 새우기로 했습니다. 세 학생이 공동으로
실험을 맡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메리 라탐 양이 실험을 하는 날이면 꼭 톰 핍스나 마틴 헤닝
스도 함께 일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남학생이 모두 함께 작업을 하는 날도 있었던 모양입
니다. 그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라탐 양이 혼자서 일하다가 실험을 모두 망쳐버릴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핑계였겠지요."
홈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세 학생 모두 케임브리지의 기숙사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남학생은 학칙
에 따라 반드시 기숙사에서 살아야 하지요. 다행히도 러니미드관은 런던과 펜랜드 사이에 있는
셸포드 역에서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야간에 운행되는 특급은 셸포드 역을 그냥 통과하지만 낮
에는 교통이 편리한 편입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헤닝스 군과 라탐 양이 일을 잘 해주었지요. 핍스 군도 두 번
결근을 하기는 했지만 열심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여섯 시 기차를 아깝게 놓쳐버렸기 때문
에 결근했다고 하더군요. 여섯 시 이후에는 특급만 운행되기 때문에 케임브리지와 러니미드 사이
의 교통이 아주 불편하게 됩니다."
홈스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핍스 군에 대해서 더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핍스 군은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더군요. 누군가와 심하게 싸웠는데 다행스럽게
도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 사건 때문에 가족들이 그를 인도의 친
척집으로 보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잘 적응해서 공부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사
냥술이 뛰어나서 호랑이 사냥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사냥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코끼리를 이용하지요. 일류 사냥꾼이 된 그는 호랑이를 많이 잡아서 그 지역의 호랑이 수
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답니다.
인도에서 아무 탈 없이 1년을 지낸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지요.아주 어렸을 때 저질렀던 사
고가 오히려 그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시험관도 그의
합격에 동의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핍스 순이 아주 뛰어난 것은 사실
입니다. 그렇지만 학교의 불도그들과 몇 차례 마찰이 있었답니다. 퇴학시킬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
았지만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나를 위해서 홈스가 설명해주었다.
"불도그는 대학의 규율부와 같은 거네, 왓슨. 볼링 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들은 일단 체포한 범인
을 절대 놓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지. 계속 말씀해주시지요, 일링워
스 박사님."
일링워스 박사는 머리를 저었다.
"사실 핍스 군은 이번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핍스군의 평소 행동을 보면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어제 저녁에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답니다. 어제 저녁
에는 라탐 양이 일을 하고 있었고, 헤닝스 군도 함께 있었습니다. 라탐 양은 필름을 전망대에 설
치한 후에 바깥으로 나왔다고 하더군요. 러니미드관과 인접한 건물의 옥상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
가는 계단은 시골 경치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장소랍니다."
"밤에 그런 경치를 볼 수는 없겠지요."
"글쎄요. 그렇지만 그것이 라탐 야의 설명이었습니다. 란탐 양과 헤닝스 군이 함께 서 있을 때
몇 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라탐 양이 설명을 들은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은 그녀
가 심한 충격 때문에 사고 순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레스트레이드 수사관도 이 사건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 사람은 훌륭한 수사관
인데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지요? 그래서 제게 오셨군요."
"시실입니다. 그 사람은 이 사건을 삼각관계 같은 사랑싸움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과학 분야에
서의 심한 경쟁이나 방해공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내 주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군요."
홈스가 고개를 끄덕었다.
"그렇습니까? 사건을 넓은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요. 왓슨, 함께 갈 수 있겠지?
좋습니다, 일링워스 박사님. 먼저 내려가 계십시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일링워스 박사가 나간 다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홈스를 바라보았다.
"홈스, 정말 이 사건을 맡을 작정입니까?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의 짐작이 맞는 것 같은데요. 아까
운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홈스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왓슨,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를 보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내리면 절
대 안 된다는 것은 기억하겠지? 그것말고도 또다른 이유가 있네. 마이크로프트 형이 나를 찾아올
지도 모르지 않나? 어쩌면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가 함께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고 말야. 좁
은 방에서 하루 종일 고약한 과학자들과 골치 아픈 물리 문제로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자네처럼
좋은 사람과 한적한 시골에서 수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나?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의 의견
에 동의를 하더라도 나와 경찰의 관계가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왓슨, 이제 나와 함께 러니
미드로 가보세."
우리는 셸포드 역에서 기차를 내린 다음 이륜마차를 빌려서 2마일 정도 떨어진 러니미드로 갔
다. 마차가 평평한 펜랜다 지역을 여유롭게 달려가도 있는 동안에 일링워스 박사는 매우 초조한
기색이었지만 홈스는 아무 말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
를 걱정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지평선 너머로 번개가 쳤고, 10초가 지난 후에 큰 천둥소리가 들
려왔다. 나는 두 사람이 과학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겄이라고 생각했다.
"번개와 천둥 사이의 시간 간격을 측정하면 폭풍우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답
니다. 소리는 1초에 330미터를 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저 폭풍으는 3.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
에 있는 모양입니다. 서두르는 것이 좋겠군요."
일링워스 박사는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을 보듯 한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몰론 그런 결과는 번개 빛이 무한히 빨리 전달되는 경우에 맞습니다. 만약 빛의 속도가 소리보
다 10배 정도만 빠르다면 그 거리는 10퍼센트정도 줄어들어야겠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런 이야기가 옳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빛의 속도는 소리보다 100만 배 정도 빨
라서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답니다. 그래서 그런 오차는 아주 작을 겁니다."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하고 대답했다.
"정말입니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군요. 어쨌든 소리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잘 알
지 못하는 사람도 많답니다."
일링워스 박사는 불괘한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차가 러니미드에 도착
할 때까지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한 직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
했다. 우리가 육중한 현관으로 다가가자 관리인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안에는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레드스레이드 수사관이 검고 긴 머리에 강한 인상을 풍기는 여자와 함께 서 있었다.
레드트레이드 수사관은 우리를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홈스 씨. 왓슨 박사. 일링워스 박사께서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했지만 사
건은 벌써 해결된 것 같습니다. 방금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증거를 설펴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는 손을 뻗어 두 개의 총알을 보여주었다. 그 모양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총알과도 달
랐다. 홈스가 총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독일산 마커 소총용 총알이 확실하군요. 두 발의 탄환은 같은 공장에서
함께 생산되었고, 같은 총에서 발사된 것이 분명합니다."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 가볍게 말했다.
"핍스 군이 전문 사격수라면서요?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구고 싶지만 저는 이제 가서 일을 해야
할 것 같군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핍스군의 알리바이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렇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우리와 함께 현관으로 가면서 수사관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라탐 양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으면 좋겠는데,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
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 다음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일링워스 박사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젊은 여자를 불러세우면서 말했다.
"메리 라탐 양, 여기 셜록 홈스 씨와 왓슨 박사에게 인사하고, 어제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
세히 이야기해주게. 나는 비가 더 내리기 전에 망원경을 살펴보아야겠네."
그렇게 말한 일링워스 박사도 바쁘게 사라졌다.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는 그 여학생이 우리를 방
으로 데려가서 의자를 권한 후에 말했다.
"홈스 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와 마틴 그리고 톰과 함께 한
팀이 되어 일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계시지요?"
홈스는 고개를 끄덕이면 말했다.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진 모양이지요? 그렇지만 일링워스 박사와 친해지기는 그렇게 쉽
지 않지요? 나도 전에 그와 함께 빛의 속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사귈 수 있는 교수님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라탐 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잘못된 문제였군요. 얼마 전에 교수님은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달에 대한 자세한 관측을
했답니다. 이미 알려진 궤도가 정말 정확한가를 확인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최근에 발견된 목
성의 달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 목성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시각을 정확히 측정했습니다. 달이 행
성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시각은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궤도
의 정확성을 확인하기에는 아주 좋은 자료가 된답니다.
그런데 우리 측정의 결과는 이미 알려진 궤도로부터 계산한 것과는 10분 이상 틀렸습니다. 그래
서 일링워스 박사는 목성의 궤도를 밝혀냈던 사람들이 형펀없는 능력을 가진 바보들이라고 주장
하는 논문을 학술잡지 [네이처]에 보냈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측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관측했을 때보다 목성이 지구로부터 2억 킬로미터
이상 더 먼 곳에 있었답니다. 일링워스 박사는 그런 사실을 주목하지 못했답니다. 빛이 2억 킬로
미터의 거리를 도달하는 데는 10여 분의 시간이 걸리지요. 우리 측정이 10분 정도 틀렸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알려져 있었던 관측 결과는 정확했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일링워스 박사의 이번 실수는 더욱 부끄러운
것이었지요. 몇 년 전에 밝혀졌던 비슷한 차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유한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군요. 우연히도 왓슨 박사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었군요. 그런에
여기서 일하던 세 학생들은 서로 친했던 모양이지요?"
"사실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가 나와 친구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바란다는 신호를 보낸 적
이 있었습니다."
홈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일에는 지장이 없었습니까?"
"절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두 사람에세 동료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
지를 명백하게 볅혔답니다. 사실은 톰보다는 마틴을 더 좋아했지만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까지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홈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제 어제 밤의 일을 이야기해주겠습니까?"
그녀가 긴장한 태로로 대답했다.
"홈스 씨, 제 말을 자세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은 내 이야기를 믿기 않더
군요. 저는 어제 밤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정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제 기억이
틀렸다면 천문 관측가 훈련을 받은 저에게는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지요.
어제 저녁에는 마틴과 내가 관측에 사용할 사진 필름을 준비했습니다.우리가 준비를 마쳤을 때
는 아직도 초저녁이어서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옥상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서 있던 모습은 바깥에서도 잘 보였을 겁니다. 우리 둘은 아주 가까이 서 있었지요."
"두 사람이 포옹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몸에 심한
총격이 가해진 것을 저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총소리가 들렸지요.
충격을 받은 그는 몸이 반바퀴 정도 빙그르 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이초 후에 다시 총성이
들리고 두 번째 충격이 있었습니다."
"어는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는지는 기억합니까?"
"아니오. 어느 쪽에서 발사된 것인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그렇지만 옥상에 서 있었던 우리 모습
은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을 겁니다."
그녀는 아주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여러분. 제가 이곳의 주인인 셈인데 마실 것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녀가 나간 후에 홈스는 격렬하게 웃었다.
"왓슨, 저 여학생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군요."
홈스는 머리를 저었다.
"사건이 일어난 순서가 아주 이상하군, 왓슨. 총알의 충격이 있은 다음에 총소리가 들렸다고 하
지 않았던가?"
"홈스,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 숨어 있던 병사가 쏘았던 총소리
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총알이 소리보다 더 빨리 날아가는 총이 있답니다. 그런 총을 사용했다면 총알이 목표물에 닿
은 다음에 총소리가 들리게 되지요. 그런 총은 아주 위험한 무깁니다. 몸을 움츠릴 수 있는 몇 분
의 일초의 여유도 없기 때문에 정말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와슨, 나도 그런 총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네. 그런데 두 번째 총알의 경우는 정반대였
잖나? 그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두 번째 총알은 총소리보다도 늦게 도달한 셈이로군요.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정말 이상한 이야기네, 왓슨. 그 여학생의 말이 맞다면 첫 번째 총알은 총소리보다 적어도 10분
의 1초 이상 먼저 빨리 도달했고, 두 번째 총알은 10분의 1초 이상 늦게 도달한 셈이네. 그렇지
않다면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겠잖나?"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어쩌면 총알이 아주 엉터리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는 않지, 와슨. 소음총에는 일반 탄환 대신 특별히 제작된 탄환을 사용하건든. 그런 특제
탄환은 발사 때의 속도가 정확하게 음속이 되도록 정굑하게 제작된, 품질이 아주 우수한 것이지.
그래야 탄환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발사음이 먼저 도달하지 않게 되거든. 뿐만 아니라 탄환
이 날아가는 동안에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게 되도록 그 모양이 유체동역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있
다네. 그러니가 메리 양의 이야기와는 전혀 같을 수가 없지.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 왜 그녀의 말
을 믿지 않는가 알겠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믿고 싶군."
그때 문 앞에 다가온 일링워스 박사가 말했다.
"그 사람은 고집이 너무 세어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홈스 씨
는 이미 파악하셨겠지요?"
내가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탄환의 발사 속도가 서로 다른 총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어쩌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탄환이 더 있을 수도 있고요. 만약 질투심에 정신이 나간 연인이 저지른 사건이라
면 범인이 하나뿐이 었을 텐데, 범인이 두 사람이 이상이라면 다른 이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
는 뜻이겠군요."
일링워스 박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메리 양이 차를 가지고 돌아오자 복도로 사라져버
렸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모종의 방해공작일 것이라는 일링워스 박사의 망상 같은 주장이 옳을 지도 모르겠군
요. 만약 일링워스 박사가 정말 획기적인 발견을 할 것이 확실했다면 경쟁자들이 무슨 일을 저질
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메리 양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렇지요. 저도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톰은 범인이 아니겠지요? 톰은 성격이 괴팍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정신이 나갔군요. 어제
저녁에 톰이 여기 없었던 것을 밝혀줄 확실한 증거가 있답니다."
홈스는 그녀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 확인하겠다는 알리바이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알리바이는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케임브리지 학생들은 특별한 이
유가 없을 때는 해가 진 후에 교내에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겠시겠지요?
그런데 어제 저녁 열 시 경에 누군가가 올드 칼리지 기숙사의 쪽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기숙
사의 경비원이 문을 열었을 때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괴한이 갑자기 그를 밀치고 안으로 뛰어들
어왔답니다. 경비원이 두 사람의 불도그와 함께 괴한을 붙잡아서 머플러를 벗겨보았더니 그 괴한
이 바로 톰 핍스였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 얼굴을 가리고 침입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셈이지요. 시내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늦게 돌아오는 학생들이 사감에게 들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가끔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그런 정도는 아
주 경미한 사건이기 때문에 경비원은 톰의 이름을 적어놓기만 하고 그를 방으로 돌려보냈다고 합
니다.
창피스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톰의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톰의
얼굴을 잘 아는 경비원이 잘못 보았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톰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경비원이 그를 위해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없겠지요. 더욱이 여섯 시 이후에는 런던에
서 오는 기차가 셸포든 역에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톰이 사건을 저질렀다면 그렇게 빨리 케임브
리지로 돌아갈 수도 없었을 겁니다."
홈스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메리 양의 알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군요. 여기 어디에 잠시 동안 파이프를 피우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왓슨, 내게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줄 수 있겠지? 그럼 두 사람 모두 이따가
다시 만납시다."
내가 건물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또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갔
다. 러니미드관은 건축학적인 면에서는 아주 실망스럽게 보였다. 주변에 있는 큰 건물과 어울리지
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석조 건물 옥상에 설치된 금속제 돔도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나는
잠시 후에 밖으로 나온 라탐 양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와 라탐 양이 프랑스식으로 만들어
진 웅장한 현관 앞을 지나고 있을 때 현관 문이 벌컥 열리먼서 홈스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라탐 양, 이곳을 지나는 철길이 있는 곳이 정확하게 어딥니까?"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부근의 지형은 풀밭 위의 오소리가 다니는 길까지도 확실
하게 보일 정도로 편평했고 어디에도 철길의 흔적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라탐 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50걸음 정도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깊고 좁게 파인
계곡이 있었고, 그 계곡에 철길이 있었다.
"홈스 씨, 이곳에 철길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철길이 이런 계
곡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차가 지나가더라도 소리
조차 잘 들리지 않는답니다. 사실은 그나마도 이곳에 철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주의깊
게 보고 있어야만 알아차릴 수 있답니다."
홈스는 자신 있게 말햇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나도 철길이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않았습니까? 철길이 가
까이 있어야만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세
요. 탄환은 정확하게 초속 330미터로 발사됩니다. 공기 중에서 음속도 초속 330미터이지요.
이번 사건에서는 두 발의 탄환이 발사되었습니다. 물론 두 발의 탄환이 발사될 때 총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처음 발사된 탄환은 음속보다 더 빨리 날아갔고, 두 번재
탄환은 그 반대로 음속보다 느리게 날아갔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 총은 어느 곳에 있었을까요?"
라탐 양과 나는 어리둥절해서 홈스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환이 발사될 때 총 자체가 움직이고 있었
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어제 오후에 핍스 군은 런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특제 총을 취급하는 상점에 가서 소음총을
구입했지요. 물론 가명으로 위조된 면허증을 제시했을 겁니다.
그후에 그는 리버플 역으로 가서 케임브리지행 여덟 시 특급 열차의 승차권을 구입했습니다. 특
급 열차의 빈 객실에 승차한 그는 기차가 달리고 있는 동안에 창문을 통해서 기차 지붕으로 올라
갔습니다.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진 젊은이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기차가 이 근처의 계곡을 지나갈 때 지붕에 앉아 있던 그는 이 건물의 옥상을 잘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기차가 지나갈 시간에 라탐 양이 전망대 바깥에 나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가 선택한 시간은 자신이 총을 겨누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밝지만, 옥
상에서 주변을 자세히 알아보기에는 너무 어두워진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기차가 건물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는 적당한 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
을 겁니다. 그 순간에는 목표물의 각도가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라 하더
라도 정확하게 조준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목표물이 정확하게 기차의 앞쪽에 있게 되는 때
는 가장 좋은 순간이었을 겁니다.
저격수는 바로 그 순간에 총을 쏘았겠지요. 탄환이 총구에서 발사되었을 때는 초속 330미터에
기차의 속도를 더한 속도로 날아갔을 겁니다. 기차의 속도는 대락 초속 30미터 정도였겠지요. 그
래서 탄환은 총소리 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발사된 셈입니다."
내가 홈스의 말을 막고 물었다.
"잠깜만요, 홈스. 어쩌면 음파도 마찬가지로 더 빠른 속도로 진행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는 않게. 음파를 비롯한 모든 파동의 진행속도는 파동이 처음 발생되는 곳의 속도에 의
해서가 아니라 파동을 전달해주는 매질의 기준으로 결정된다네. 그래서 만약 바람이 뒤쪽에서 불
어온다면 땅을 기준으로 측정한 음파의 진행속도는 빨라지지. 그렇지만 총이나 트롬본과 같은 음
파 발생 장치가 움직이는 속도는 음파의 진행속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네. 그대신 음
파 발생 장치가 움직이게 되면 파동의 파장이 바뀌게 되지. 바로 우리가 도플러 효과라고 부르는
거야. 우리가 기차길 옆에 서 있을 때 다가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멀어져가는 기차의 기적 소
리보다 높은 음정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효과 때문이라네. 음파의 파장이 짧을수록 음
적이 높게 느껴지지."
"그렇군요. 두 번째 총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탄환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사되었겠지. 다만 이번에는 기차가 건물로부터 멀어지고 있
었을 뿐이네. 그러니까 탄환은 기차의 속도만큼 느리게 날아갔지.
몰론 그 이후의 알리바이도 아주 간단하게 설명된다네. 핍스 군은 기차의 지붕에서 객실로 기어
내려갔고, 기숙사에 돌아간 시각이 기록에 도록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소동을 벌였던 거네. 핍스
군이 러니미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기숙사로 그렇게 빨리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을 테니까."
다음날 아침, 케임브리지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특급 열차에서 홈스가 설명했다.
"왓슨, 이 사건 때문에 마이크로프트 형이 제기했던 문제도 함께 해결되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
었군."
그는 두 손을 비볐다. 홈스가 엄청나게 똑똑하다고 알려진 마이크로프트 홈스 박사와 맞설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기뻐했다.
"우리 함께 생각해보세, 왓슨. 만약 빛이 입자라면 그 입자는 빛을 내는 광원의 속도와 같은 속
도로 진행하겠지. 그렇지만 빛이 에테르 속을 진행하는 파동이라면..."
"그렇다면 빛의 속도는 에테르가 움직이는 속도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바로 그렇지. 그런 상황을 기차를 예로 들어서 설명할 수 있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기관차와 열차의 끝에 달려 있는 감시용 객차 이외에는 모두 높이가 낮은 화물차로 구성되어
있는 기차를 생각해보세. 그리고 감시용 객차에 타고 있는 감시원이 어떤 이유로 기관사를 저격
하려고 하네. 만약 기차가 정지하고 있을 때 총을 쏘면 기관사에게 탄환이 도달하는데 1초가 걸
린다고 하세. 즉 총을 발사하면 기관사는 정확하게 1초 동안 살아있게 되는 셈이지."
"이해가 됩니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싶은 기관사가 기차를 가속한다면 감시원이 쏜 탄환이 기관사에게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네. 기관사는 날아오는 탄환을 피해서 도
망가고 싶어하지만 총과 탄환도 기차와 정확하게 같은 정도로 가속이 되기 때문이지. 즉 기차 위
에서 탄환이 날아가는 속도는 기차가 움직이지 않을 때와 정확하게 같기 때문에 기차가 아무리
빨리 가속되어도 기관사는 정확하게 1초 후에 죽게 되네."
내가 빈정거리듯 물었다.
"기관사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달리고 있는 기차에 타고 있는 감시원의 기분은 어떨까요?"
홈스는 내 말을 무시했다.
"이제는 감시원이 기관사를 위협하려고 공포탄을 쏘는 경우를 생각해보기로 하세. 기차의 길이
가 330미터이고 기차가 정지해 있다면 기관사가 감시원의 총소리를 듣게 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겠나?"
"다연히 1초가 결리겠지요."
"만약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하!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차는 공기 속으로 달리고 있는데 소리를 전달해주는 역할
을 하는 공기는 정지하고 있는 셈이로군요. 그러니까 기관사가 총소리에 놀라게 되는 것은 1초가
약간 지난 다음이 됩니다."
"아주 훌륭하네, 왓슨. 이제야 탄환과 소리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한 모양이군. 이제 감시병이 총
대신에 사진사가 사용하는 플래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가해보세. 플래시에서 번쩍 하는 빛이 기관
사에게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해보면 어떻게 될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측정을 한다고 해보세. 기차가 가만히 서 있는 경우와 아주 빠른 속력
으로 달리고 있는 경우 말이야. 두 경우에 걸리는 시간이 정확하게 같다면 빛이 입자라는 뜻이
될 거야. 총에서 탄환이 발사되는 것처럼 플래서에서 입자들이 발사된 셈이겠지. 만약 기차가 달
릴 때 걸리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다면 빛은 에테르 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이라는 뜻이 되
네."
"참으로 절묘한 실험이로군요, 홈스."
홈스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말로 마이크로프트 형이 놀라게 되었군. 정말 놀랄 거야."
기차가 런던 역에 도착하자 그가 다시 말했다.
"사무실로 가기 전에 형에게 들러보아야겠네. 나중에 만나세."
30분쯤 후에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마이크로프트 홈스 박사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좋은 아침이네, 박사. 베이커 부인이 친절하게도 여기서 동생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네.
그런데 셜록은 함께 오지 않았나?"
"정말 안타깝게 되었군요. 홈스 씨는 자주 가시는 클럽으로 바로 갔답니다."
"그래! 정말 잘되었군. 사실은 디오게네스에 있으면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를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여기로 온 것이라네. 지금은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말이네."
"그렇다면 더 잘되었군요. 홈스가 파동과 입자의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
답니다. 홈스가 직접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면 더욱 잘되었군요."
홈스 박사는 눈썹을 꿈틀했다.
"정말인가? 박사. 그렇다면 정말 잘된 일이군. 도대체 어떤 방법이라던가?"
나는 펜과 종이를 가지고 와서 홈스가 보여준 그림을 그려놓고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런데 홈
스 박사는 조용히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
는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박사. 아주 잘 설명해주었네.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놀
랍고,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재미있군. 그런데 사실은
그런 실험은 오래 전에 끝난 것이라네."
"정말입니까? 진짜 기차를 이용해서 실험을 했나요?"
"기차를 이용해서 그런 실험을 할 수야 없지. 빛의 속도아 비교하면 기차가 너무 느리거든. 기차
의 속도를 빛의 속도와 비교하면 천만 분의 일도 안 되니까. 그래서 시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
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실험도구가 전혀 없다네. 그런데 자연현상을 이용하서 똑같
은 실험을 할 수가 있지. 펜 좀 빌려주겠나?"
그는 새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 중에는 이중성이라는 별들이 상당히 많다네. 이중성이란 두 개의 별이
모여 서로 회전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두 별은 크기가 아주 달라서 지구가 태양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작은 별이 큰 별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경우도 많네. 그런 별들은 지구에서 아주 멀
리 떨어져 있어서 별빛이 지구에 돌달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리지. 그렇지마나 현대의 졍교한 망
원경을 이용하면 그런 이중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네. 그런 관측에 의해서 이중성
의 움직임이 잘 알려진 뉴턴의 법치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
두 별 중에서 작은 별은 초속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었네. 그런데 이제 빛이 입자라고 생각해보세. 작은 별이 회전하는 궤도를 살펴보면
한쪽에서는 별이 우리에게서 멀어지지만, 반대쪽에서는 거꾸로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게 되네. 그
래서 빛의 속도는 아주 작기는 하지만 한쪽에서는 느려지게 되고 다른 쪽에서는 빨라지게 되겠
지.
그 속도의 차이는아주 작지만 별에서 지구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지구에 도착하는 시
간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네. 즉 우리에게 다가오는 쪽에서 방출되는 빛은 빨리 도달하게
될고, 멀어지는 쪽에서 방출되는 빛은 늦게 도달하게 되겠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망원경으로
관찰한 궤도의 모양은 뉴턴의 법칙에 맞을 수가 없게 되는거야."
"아하! 그러니까 빛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셈이로군요!"
홈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했었지. 바로 얼마 전에 이루어진 실험 결과가 알려질 때까지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네. 그런데 알다시피 지구는 태양 주위를 초속 3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회전하고
있네. 그러니까 봄과 가을에 같은 실험을 해서 그 결과를 비교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러면서 그는 두 번째 그림을 그렸다.
"만약 태양도 역시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생각해보세. 그 속도를 미리 알 수는 없겠지
만 만약 그렇다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할 때 봄과 가을에 지구가 별을 향해서 움직이는 속력
의 차이는 초속 60킬로미터보다 훨신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무시할 수 없을 걸세.
다시 말해서 우리가 측정하는 빛의 속도는 에테르 속에서의 상대적인 속도에 따라서 다를 것이
기 때문에 봄과 가을에 한 실험의 결과도 서로 다를 거란 말야. 바로 그 차이를 알아내면 에테르
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가를 밝힐 수 있다는 거지."
아마도 내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역력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실험이 바로 셜록이 고안했다는 기차 실험과 똑같은 것이라네, 박사. 다만 기차의 경우
와는 달리 지구가 움직이는 속력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좀 불편할 따름이지."
"실제로 어떤 결과가 얻어졌습니까?"
"봄과 가을에 했던 실험에서 빛의 속도는 정확하게 똑같다고 밝혀졌다는 군."
나는 골치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에테르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효과라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로군요. 방금 빛은 입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제는 에테르 속에서 전파되는 파동도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빛이란 무엇입니까?"
홈스 박사는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했군, 박사.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이 하나 있기는 하지.
한편으로 생각하면 빛은 에테르 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이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구와 지구를 둘
러싸고 있는 공기처럼 빛이 투과하는 에테르도 움직임에 따라 뒤쳐지는 빗물질적인 특성을 가지
고 있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에테르에 의한 마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지만 에테르가 그런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는 정말 어렵네. 만약 그렇다면 에테
르에 의한 마찰이나 소용돌이가 에테르에 의해서 전파되는 빛이 전파되는 방향에 영향을 줄 거
야. 그런면 균일하지 않은 유리로 만든 창이 달린 기차에서 바깥 경치를 내다보는 것처럼 지구에
서 바라보는 별자리의 모양도 물결치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달라져야만 할 거네."
홈스 박사의 이야기는 너무 기가 막혀서 도저히 심각한 이야기라고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혼란에 빠진 내가 말해싿.
"더 정교한 실험을 하면 확실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네, 박사.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
라는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정확하게 해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거야."
나는 좀더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기는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녹초가 되어 있었고, 그렇다고
다른 화제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더욱이 홈스 박사처럼 훌륭한 학자에게는 내 이야기가 하찮게
들릴 것이 확실했다. 바로 그 순간에 조간신문이 눈에 띄었다. 신문 뒷면에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수수께끼가 있었다. 나는 답ㅇ르 짐작도 못할 그런 문제였지만 홈스 박
사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도 같았다. 만약 홈스 박사도 쉽게 풀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라면
내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될 것도 같았다. 나는 신물을 집어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한 젊은이가 술도가의 마차에 치였습니다. 중상을 입은 젊은
이는 마차로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져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메스를 들고 환자를 내려다본 외과 의사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는 '내가 직접 아들
을 수술할 수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이제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그 의사는 환자의 아버지가 아
니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젖히고 큰 소리고 웃었다. 바로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몇
시간이나 애를 썼던 나는 기분이 몹시 상해버렸다. 나는 이혼이나 입양 또는 이상하게 얽힌 가족
구조도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내가 말했다.
"이 문제에 어떤 속임수가 감추어져 있는 모양이군요?"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저었지만 무척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네. 아무런 속임수도 없다네, 박사. 사실 그런 사고는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술도가의
일꾼들은 배달을 갈 때마다 술을 한 잔씩 대접받는 것이 관행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이 도
시의 모든 시민을 마차로 치어 죽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지.
그렇지만 박사, 아주 그렇듯한 문제이기는 하네. 답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선입견
때문이라네. 일단 답을 알고 보면 너무나도 쉬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지. 박사가 그런 선입
견ㅇ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심도 하
지 않는 것이 문제지.
힌트를 하나 줄까? 미국인처럼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그 답이 너무나도 명백해서 수수께끼라고
할 수도 없을 걸세. 50년 정도 지나면 영국도 마찬가지가 되겠지."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그 의사는 환자의 아버지는 아니지. 그녀는..."
"환자의 어머니였군요."
"그렇지. 지금까지 박사의 경험에 의하면 외과의사는 언제나 남자였을거네. 그러나 여자 외과의
사도 있을 수는 있지 않나?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선입견 때문에 혼란에 빠지게 되
지."
나는 다시 신문을 집어들었다. 방금 풀었던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이제 이 문제를 풀어보시지요. 시계를 읽을 줄 모르는 별난 귀족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시각
을 알고 싶을 때면 언제나 하인에게 물어보아야 했답니다. 그러나 외출 중에는 남들이 자신의 그
런 비밀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그 하인에게 시각을 물어보곤 했답니다.
그런데 언젠가 그가 전화를 걸어서 '판쇼우, 몇 시인가? 여섯 시? 고맙네'라고 말하는 것을 다른
귀족이 우연히 듣게 되었답니다. 그는 '아닙니다. 지금은 일곱 시입니다.'라고 고쳐주었답니다."
나는 극적인 효과를 노려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런데 시각을 말해주었던 하인도 옳았고, 시각을 고쳐준 다른 귀족도 역시 옳았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홈스 박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도 역시 선입견에 대한 거군. 박사, 역시 50년 정도가 지나면 어떤 바보라도 그 답을 알
수 있을 걸세.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야.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서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이곳 영국이 낮이면 오스트레일리
아는 밤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걸세. 사실 해가 뜨는 시각은 그 지방의 경도에 따라서 다르
네. 그리고 그 지역에서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오는 시각을 정오라고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
리하겠지.
그리고 최근에는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의 해협에 설치된 전보용 케이블에 전화용 케이블도 함
께 가설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몰랐나? 사실이라네. 그리고 프랑스로 여행을 가면 승무원이
시계를 한 시간 앞으로 돌리도록 당부하는 것을 기억하겠지?"
"아하! 그러니까 그 귀족은 그 귀족은 프랑스에 있었고, 하인은 영국의 집에 있었던 것이로군
요."
홈스 박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네, 박사. 또다른 수수께끼가 있나? 내가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
지 않다네."
나는 드디어 그의 약점을 알아냈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 있습니다."
"누군가?"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지요. 빛의 속도에 대한 수수께끼 때문에 궁지에 빠지지 않으셨습니
까? 그 문제도 역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선입견 때문에 어려운 것이겠지요?"
"훌륭하군, 박사."
그렇게 말한 홈스 박사는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입을 반쯤 다물고 손가락으로 의자의 손잡
이를 초조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온 몸이 굳어지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나는 점점 넌처한 입장이 되었다. 런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을 너무 혼
란스럽게 만든 것일까? 다생스럽게도 바로 그 때 홈스가 돌아오는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가 방으로 돌아오자 홈스 박사도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셜록! 너의 기차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왓슨, 박사에게서 들었는데, 정말 고맙군."
"그렇습니까? 적어도 그와 비슷한 실험이 이미 오래 전에 고안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요? 사실입니까?"
"사실이야. 정말이지. 그렇지만 기차와 같이 익숙한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이 천재들의 재주지.
기리고 왓슨 박사에게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네. 왓슨 박사는 문제의 핵심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
니지만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모
양이야. 왓슨 박사의 그런 재주 덕분에 지금까지 생각해보았던 과학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을 해결하게 되었어."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까? 길이가 정확하게 똑같은 기차가 나란히 서 있다. 두 기차 모두 제일
뒷칸에는 플래시가 설치되어 있고, 앞쪽에 타고 있는 기관사는 초시계를 가지고 광신호가 기차의
길이만큼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다.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차의 길이는 빛이 1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와 같다고 생각해보고..."
내가 끼여들었다.
"엄청나게 긴 기차겠군요. 30만 킬러미터나 될 테니 말입니다."
홈스 박사가 웃었다.
"그것이 바로 사고 실험의 장점이네, 왓슨 박사. 어떤 장치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
지 않나? 나란히 놓여진 선로 위에 두 기차가 서있네. 한 기차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고, 다른
기차는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전진하면서 상당히 빠른 속력으로 서 있는 기차를 지나가는 걸
세. 그 속력이 빛의 속력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하세."
홈스도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기관사들이 부러워하겠군요."
홈스 박사는 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이 그림에서처럼 달리는 기차의 신호수와 서 있는 기차의 신호수가 나란히 서 있게 되는 순간
이 있을 거야.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플래시가 번쩍..."
나는 그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하! 그런데 그 플래시는 서 있는 기차에서 터진 겁니까? 아니면 달리는 기차에서 터진 겁니
까?"
"어느 경우라도 좋네, 박사. 원한다면 서 있는 기차에는 붉은색 플래시를 설치하고, 달리는 기차
에는 푸른색 플래시를 설치한 다음 두 플래시를 동시에 터뜨려도 좋네. 기차의 움직임과는 상관
없이 붉은빛과 푸른 빛은 같은 속도로 전파되겠지. 관찰자가 어느 기차에 타고 있거나 상관없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찰자가 움직이는 속도와는 무관하게 붉은빛과 푸른빛이 정확하게 같은 시
각에 도달하는 것을 보게 될 거야. 그런 사실은 이미 실험으로 확인되었지.
이제 두 사람의 관찰자에게 두 색깔의 빛이 도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물어보세. 서 있는 기
차의 기관사는 '정확하게 1초'라고 할 것이고, 달리는 기차의 기관사도 역시 '정확하게 1초'라고
말하겠지."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어서 외쳤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마이크로프트 박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 이제야 이 역설의 핵심을 알아채셨군.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실험으로 확인된
사실이라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몇 가지 들어 있지. 나도 조금
전에 왓슨 박사가 읽어주었던 수수께끼 덕분에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네.
적어도 두 가지 가설이 문제가 되지. 하나는 과연 시간이 두 관찬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관찰자에게 거리도 똑같은가 하는 거야.
우리가 흔히 빠지게 되는 편견은 제쳐두더라도, 내가 방금 이야기한 실험의 결과를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만약에 달리는 기차의 길이가 줄어든다면 쉽게 설명이 가능하겠지. 또는 달리는
기차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물론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
로 일어나도 되겠지."
내가 물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우리의 경험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사실 우리의 경험은 극도로 제한된 것이지. 박사는 평생을 지구 위의 한 곳에서만 살아왔네. 박
사의 그런 경험 때문에 시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고, 지구 중력도 일정한 크기와 방향을 가지
고 있으며, 박사가 서 있는 땅이 안정한 상태로 정지하고 있는 편편한 것이오 생각하게 되었네.
만약 먼 곳으로 여행을 가보면 그런 경험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곧 이해하게 되지. 지구는 평
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고, 시각도 지역에 따라 다를뿐만 아니라, 해수면보다 산꼭대기에서의 중력
이 더 작고, 지구는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맴돌고 있네. 그러나 그
런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내려고 노력해야만 하고, 보통보다는 훨씬 더 정교한 감
각으로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하지.
그런데 우리 주변에 대한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아내게 된 것은 수백 년전이었다네. 그렇지만 아
직도 우리가 사용하는 측정장치는 엉성한 면이 있고,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도 제한되어 있지. 우리가 '보편적 상수'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정말 보편적인 것은 몇 개나
되겠나? 우리가 더 멀리, 더 빨리 여행하더라도 그 값이 변하지 않는 그런 상수 말일세.
내가 방금 설명한 공간과 시간의 수축은 인간이 현재 달성할 수 있는 속도에서는 그 정도가 지
극히 작아서 우리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가 없다네. 이제 다시 우리의 사고실험으로 되돌
아가서 구체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거나 갈이가 줄어든다고 생각했지. 어
쩌면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일어날 수도 있을 테고, 그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일까를 생각해보는
걸세.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길이가 줄어들거나 실계가 느리게 가는 현상은 자
신이 타고 있는 기차가 아니라 정지하고 있는 기차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 에
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절대적으로 정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어. 그렇기 때문
에 관찰자가 어느 기차에 타고 있거나 상관없이 서 로 동등한 상대적인 시각을 가질 수가 있는
거지. 아주 중요한 사실이야! 그것을 바로 '상대성의 원리'라고 한다네.
그런데 기차가 아무리 빨리 움직이더라도 기차의 폭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나. 만약
달리는 기차의 길이가 줄어든다면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는 것처럼 서 있는 기차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걸세. 그런데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반대로 서 있는 기차가
자신이 타고 있는 달리는 기차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러니까 관찰자가 어
느 기차에 타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이는 현상이 서로 모순되는 역설이 되는 셈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새로운 종이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달리는 기차의 벽에 거울이 달려 있고, 그 반대쪽은 창문이라고 하세."
"그런 장치를 갖춘 왕실 전용 기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최근에 보았던 사진을 기억하고 말했다. 그 기차를 디자인한 사람은 아주 유명한 실내장식
전문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홈스 박사는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플래시를 들고 기찻길 옆에 서 있네. 우리가 들고 있는 플래시에서 나온 빛이 적당한
각도로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통과해서 벽에 걸린 거울에 반사된 후에 다시 창문을 통과해서 되
돌아나온 빛을 기찻길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찰자가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거네."
나는 감탄해서 소리쳤다.
"어렸을 때 그와 비슷한 장난을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통학 열차에서 내린 후에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고무공을 적당한 각도로 창문으로 던져놓어서 다른 창문으로 퉁겨나오도
록 했었지요. 물론 실수를 해서 고무공을 영원히 잃어버린 경우도 있었지요. 마음씨 좋은 승객이
공을 다시 던져주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마이크로프트 박사는 말을 계속했다.
"이 그림에 몇 개의 숫자를 적어보세."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싫증이 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수학 이야기라면 내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이만 실례해야겠군요. 방금 할 일이 생각났답니
다..."
그런 나를 보고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왓슨, 수학 문제로 자네 골치를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을 약속하지."
홈스 박사는 꼼짝 않고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피타고라스의 직각 삼각형 정리도 너무 어려운가?"
나는 안심하고 대답했다.
"그 정도라면 다행이군요. 학교에서 배운 수학 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겁
니다."
"그런가, 그러면 피타고라스 정리만을 이용해서 설명하도록 하지. 기차의 폭이 4미터라고 하지.
플래시에서 나온 빛이 창문을 통과해서 거울에 닿을 때까지의 거리가 5미터가 되는 각도로 비추
어졌다고 하고. 그럼 그 빛이 다시 창문을 통해서 나올 때까지는 모두 10미터의 거리를 지나가겠
지.
그리고 기차가 빛의 속도의 10분의 6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인다면 기차는 빛이 거울에 닿을
때까지 3미터를 움직이고, 거울에서 반사되어서 창문으로 돌아나올 때까지 다시 3미터를 움직여
서 모두 6미터를 움직이게 되겠지."
그는 그림에 그 숫자들을 적어넣었고, 그 그림을 본 내가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변의 비가 3:4:5가 되는 삼각형이로군요. 3의 제곱 다하기 4의 제곱
은 9 더하기 16, 즉 25가 되고, 그것이 바로 5의 제곱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직
각삼각형이로군요. 그렇게 멋진 숫자가 나오다니 정말 행운이로군요."
홈스도 웃으면서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형, 정말 멋지군요. 이제부터 형은 장난 같은 이런 이야기가 기차를 타고 있는 여
왕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이는가를 설명하겠군요. 왓슨 박사가 젊었을 때 고무공을 던졌던 것과
같은 경우겠지요?"
내가 놀라서 말했다.
"그렇습니까? 난 짐작도 못했는데요!"
홈스 박사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셜록. 기차에 타고 있는 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빛이 창문으로 들어와서 열차 안을 지나
간 다음에 거울에 수직으로 반사되어서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지.
빛은 기차 안에서 최단 경로를 따라서 진행한 다음에 다시 수직으로 반사되었기 때문에 빛이 진
행한 실제 거리는 모두 8미터에 지나지 않게 되네."
홈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보고 있는 우리에게는 빛이 10미터를 진행한 것으로 느껴지지만, 기차 안에
있는 여왕에게는 8미터밖에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단느 이야기로군요. 한편 빛의 속도는 누
구에게나 같기 때문에 기차가 빛의 속도의 10분의 6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인다면 시간은 보통
속도의 5분의 4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군요."
"셜록, 정확하게 이해했구나. 피타고라스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일반적인
식을 이용해서 설명해줄 수도 있지. 저 흑판에 써 있는 낙서는 지우면 안 된느 거냐?"
그렇게 말한 그는 홈스가 나와 허드슨 부인에게 전할 메모를 적어두기 위해서 사용하는 작은 흑
판 앞으로 걸어갔다. 망설이던 홈스가 말했다.
"잠깐 살펴봅시다. 파머스턴 독살사건이라. 그 사건은 벌써 마무리 된것이니까, 좋습니다. 지워버
려도 되겠군요, 마이크로프트 형."
홈스 박사는 흑판을 깨끗하게 지운 다음 복잡한 식을 쓰면서 말했다.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경우에 시간이 흘러간느 속도를 계산하는 식은 이렇게 쓸 수 있지."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계속했다.
"모든 관찰자에게 빛의 속도가 같다면 움직이는 관찰자에게는 거리도 같은 비율로 줄어들어야만
할 거야."
그러면서 그는 두 번째 식을 썼고, 나는 그 식들을 이해해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기차역에서 서 있는 사람이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면 길이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차
를 타고 있는 사람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까?"
마이르코프트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네, 박사. 그런 효과는 보통 기차에서도 일어나네.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작아서 특별한 장치
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감각만으로는 느낄 수가 없을 뿐이지. 사실은 박사도..."
바로 그 순간에 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찾아왔는지 알아맞춰볼까요, 마이크로프트 형? 내가 클럽에 갔을 때 챌린저 교수와 서멀
리 교수가 곧 그곳으로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형이 내 사무실로 갔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두 분을 이리로 오시라고 내 마음대로 부탁했습니다. 형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분들에게 직접 알려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형은 아직도 빛이 파동인가 아니면 입자인가에 대한 논란을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빛이 보
통의 입자나 파동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확살하게 밝혔군요. 두 교수 중에서 어느
분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것인가는 형의 마음이지요. 두 분이 모두 틀렸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형과 내게 그렇게 심한 거부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왓슨과 내가 형을 도와드면 좋을 텐데 우리는 아주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답니다. 왓슨! 아
무 말도 하지 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게! 벌써 늦었군. 아!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들. 허드슨 부
인에게 다과를 준비하도록 부탁하겠습니다.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내가 홈스와 함께 스트랜드의 심슨 씨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형님께서 머리가 약간 이상해지신 것 같지 않아요? 기차가 달리면 공간과 시간이 엄청나게 변
형이 된다거나, 또는 심오한 과학 측정에서의 사소한 오차에 불과한 것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
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홈스는 내 말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나? 왓슨. 자네는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증거를 좋아하지? 그래서 코끼리의 발자
국만 보고 코끼리가 가까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자네는 믿지 않겠지. 긴 코와 펄럭이는 귀를 가진
거대한 회색 동물이 바로 눈앞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거야. 몰론 그 동물이 자기 발로 서 있으
면 더 좋을 테고 말이야. 교활한 사기꾼보다 그런 사람을 속이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
그러나 적당한 시가가 되면 자네도 만족할 만큼 확실한 증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공
상 소설가인 베른과 웰스의 꿈들이 100년 이내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야. 인공적으로 만
든 환상적인 비행체가 하늘을 날아다니게 될 걸세. 그렇게 되면 공간과 시간의 뒤틀림도 아주 단
순하고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게 되겠지.
지금은 그런 증거를 보여줄 수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믿겠나?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자네가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데도 말일세! 자기 북극이나 달의 뒷면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지. 그런 자네에게도 희망은 있
다네. 어쨌거나 자네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전세 마차를 조심하게. 그렇지 않으면 그 마차의 존재
증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할 테니까."
6.상대적 질투
허드슨 부인의 딸 안젤라가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들어와서 아침 식탁 위에 신문 뭉치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홈스는 한 손에는 젬을 바른 토스트를 들고 신문을 펼쳐보았다.
"왓슨, 이 신문 기사들은 정말 한심하군. 이맘 때쯤이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노련한 편집자들
이 새로운 기분으로 일을 시작할 텐데 말이네. 신참 기자들이 지면을 메우는 한심한 여름 휴가철
이 끝날 때도 되었으니 괜찮은 기사가 있을 것라고 생각했는데, '이상 고온 때문에 디본 지역의
추수가 빨라질 것','브라이턴 해변에 죽은 고래가 밀려왔다','앨버트 왕자가 여왕과 함께 밸모럴에
가다'.... 정말 한심한 기사들뿐이로군!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이야기일까?"
그는 [타임스]의 첫 페이지를 페이지를 펴들었다. 보통 편집 상태가 완벽하기 마련인 1면에 어쩐
지 서둘러 편집한 흔적이 보였다. 발행인란 아래쪽에 실리는 개인광고 몇 줄이 삭제된 자리에 줄
간격도 제대로 안 맞고 방향도 비뚤어진 기사가 인쇄되어 있었다.
"왓슨, 신문사에 정말 난리가 났던 모양이네. 편집자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었겠군. 신문 지면을
완전히 짜서 인쇄를 시작한 다음에 아주 중요한 기사가 들어온 모양이야. 그렇게 되면 인쇄기를
멈추고 인쇄기를 멈추고 인쇄실 바닥에서 신문판을 다시 짜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게 되지.
그래! 어떤 비상 사태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 몇 군데 틀린 글자도 있네. 실제 글자의 거울상
에 해당하는 활자에 익숙하지 않은 기자가 직접조판을 하면 이런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 도대체
어떤 기사 때문에 신문사가 이렇게 허둥거렸을까?"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다 읽고 난 그는 신문을 나에게 건네주
면서 말했다.
"내가 너무 가벼운 이야기를 한 모양이군. 다른 기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네. 만약 이 기사가 사
실이라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 아마도 마이크로프트 형
은 외무부에서 흥분한 외교관들을 안심시키고 있을 테고, 우리도 곧 불려갈 것 같군.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엉성하게 쓰인 기사를 고쳐가면서 큰 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중부 유럽의 왕위 계승 위기 발생. 30년 동안 크롤가리아를 다스려왔던 울만 2세가 사냥 중에
승마 사고로 갑자기 서거했다. 그는 사납게 날뛰는 말에서 떨어지만서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그
의 말이 왜 갑자기 날뛰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계획적인 살인사건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흑해 지역의 여름 휴양지에서 왕실 열차 편으로 귀향
중이었고 고위 관리가 그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역에 도착하
기 한 시간 전에 기차안에서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렸고,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에 두 사람은 각각 기차의 가장 앞쪽과 가장 뒤쪽 객차에 떨어져 있었기 때
문에 우연한 사고일 가능서은 아주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서거한 울만 2세의 뒤를 이어 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인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왕위
계승 서열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만 황태자와 황태자비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에 따라서
왕위 계승권자가 달라지게 된다. 만약 황태자가 먼저 사망했다면 황태자비의 동생이 왕위를 이어
받게 되지만, 황태자비가 먼저 사망했다면 황태자의 동생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모든 사실이 명
백하게 밝혀질 때까지는 이 지역에 상당한 긴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내가 홈스에게 신문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외무부에서 소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이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
까?"
"황태자와 황태자비를 죽인 살인범을 빨리 찾아내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겠지. 물론 울만 2세의
죽음이 정말 사고 때문이었는지 밝혀내는 일도 중요할 테고. 그런데 크롤가리아 경찰은 이렇게
복잡한 사건을 해결한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일 거야. 영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요청 자체가 외교적인 수치가 되지.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대사관에 머무르면서 조용
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거야. 그러니까 마이크로프트 형이 우리를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외무부로 가보도록 하세 . 허드슨 부인에게 마차를 불러 달라고
하게나. 외무부에 들어가려면 그곳의 의전 규정에 맞도록 옷을 바꾸어 입어야겠지? 이런 옷을 입
고 그곳에 갈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자네도 모자와 연미복으로 갈아입도록 하게."
마차는 마블 아치를 지나서 벵이커라를 남쪽으로 달려간 다음 새로 단장한 서펜타인 호수가 내
려다보이는 웅장한 파크가로 들어섰다. 홈스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버킹검 궁을 지나서 컨스티튜션 힐에 도착했을 때는 울만 2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인지 조기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웰링턴 병영 근처의 버드케
이지가로 들어섰을 때 홈스는 갑자기 마차를 멈추도록 했다.
"저기 신문 판매대를 보게나, 왓슨. 최신 판이 막 도착한 모양이야. 우리가 방금 프리트가를 지
나왔으니 잉크도 제대로 마르지 않았을 것 같군. 망이크로프트 형도 최근의 소식을 알고 있겠지
만, 우리도 게으리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걸세."
흔들리는 마차에서 신문을 일기는 아주 어려웠지만 1면에 실린 왕실 열차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었다.
홈스가 신문을 보면서 말했다.
"좀더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네. 황태자는 일곱 개의 객실 중에서 제일 앞쪽에 타고 있었고,
황태자비는 가장 뒤쪽에 타고 있던 것이 확인 되었다네. 가운데 객실에는 시종들이 타고 있었군.
시종의 객실에서 양쪽 끝의 객실까지는 신호용 종에 연결된 전깃줄이 설치되어 있느데, 그 줄에
폭탄이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네. 암살범이 종에 연결된 전깃줄을 자르고 그곳에 솜화약 상자와
전기 기폭 장치를 연결해두었던 모양이야.
이렇게 계획적인 살인사건이라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를 알아내기가 쉽진 않을
것 같군, 왓슨. 중앙에 위치한 객실에서 전기 신호가 보내졌다면 불꽃이 전깃줄을 따라 가면서 느
려지는 정도도 같았을 것이고, 솜화약도 순식간에 폭발했겠지. 그렇다면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수
천 분의 일초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
군.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와는 달리 죽음의 순간은 서로 함께 한 셈이군."
"홈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기차에 두 개의 객실을 만들어두고 시종이 객실을 통해서만 연
결되도록 해놓은 점이 정말 이상하군요. 더욱이 두 사람은 부부라면서 말입니다."
홈스는 긴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왓슨,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네. 나도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런 일은 전에도 많이 있었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계속 있을 거야.
황태자는 아주 늦게 결혼을 했다네. 쉽게 짐작이 되겠지만 그에게는 여러 명의 여자 친구가 있
었지만 아무도 황태자비로 승인을 받지 못했지. 대부분의 경우는 단순한 장난 수준이었던 모양이
지만, 그중의 한 여자와는 상당히 깊은 관계였던 모양이야. 그런데 황태자가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자 모든 일에 아주 냉소적으로 변해버렸다고 하더군.
결국 왕실의 원로들이 적당한 신붓감을 찾아내기로 결정을 했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은 참
으로 한심했던 모양이야. 신붓감은 과거에 어떤 남자와도 사귄 경혐이 전혀 없어야 했다는군.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10대의 아주 어린 소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네.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하는 기회가 마련되었고, 황태자는 결국 아주 매력적인 소년에게 청혼을 하
게 되었지.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 부부는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후에 일어난 일은 누구의 말
을 믿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황태자측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균형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군.
남편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했던 황태자비는 결국 질투심 때문에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여인이 되어버렸다나. 그렇지만 황태자비 친군들의 말에 따르면 황태자가 처음부터 그녀에게 아
주 냉정하고 비협조적이었다고 하더군. 그녀를 황태자비로 여기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만 관심을
가졌다더군."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홈스."
"나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절대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지. 아무리 부부를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 때문에 결혼이 깨지 되었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
네.
어찌되었거나 그 두사람이 왜 그렇게 이상하게 여행을 했는가는 이해하겠지? 두 사람은 다른 사
람들 앞에서는 다정한 것처럼 행동해야 했지만, 사실은 서로를 엄청나게 미워했다네. 그래서 열차
에서도 각자의 객실이 팰요했지."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는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당행스럽게도 우리 신문은 공인의 위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관례를
따르고 있지. 나도 그런 이야기가 아무렇게나 소문으로 돌아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
각하네. 성공과 명예에 대해서 사회적인 보상이 아니라 직접적인 벌이 주어지는 사회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 마차가 외무부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장엄하게 차려진 접견실을 지나서
검소하지만 정교하게 장식된 측실을 거쳐 홈스 박사의 사무실로 인도되었다. 사무실에는 편안한
의자와 서류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상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홈스 박사는 우리에
게 조금 퉁명스럽게 자리를 권했고, 음료나 시가를 권하지도 않았다.
" 셜록,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맙소사. 지금은 정말 바쁜 시간이라네.
무슨 일을 도와주면 되겠나? "
홈스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형이 나를 부를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아하! 크롤가리아 일 때문이로군. 이제야 알겠군.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네 도움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 문제는 몇 초만에 간단하게 해결되어버렸거든."
홈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예요, 마이크로프트 형? 형의 능력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발칸 반도의 복잡한 정치적 상
황을 생각하면 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범인은 수십 명이나 될 겁니다. 런던에 앉아서 누가 범인
인가를 알아낸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홈스 박사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누가 범인인지를 알아냈단 말이냐?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누가 범인인지도 모르고, 사실 그 부
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어!
황태자와 황태자비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아냈다는 말이지."
"마이크로프트 형, 형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방금 나온 신문에 보
도된 것처럼 두 사람이 정말 동시에 사망한 것이 아닙니까?"
홈스 박사는 책생에서 우리가 방금 보았던 신문을 집어들었다.
"나도 너와 같은 정보를 근거로 일을 하고 있지. 그런데 그 정보만으로도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
를 명백하게 밝힐 수 있었네."
홈스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홈스 박사는 한숨을 쉬면서 말을 계속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셜록! 너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구나. 우리가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내가 설명
해주었던 물리 문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야.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모든 기준틀은 동등할 뿐만 아니라 절대 정지 상태는 존재하지 않아. 그
래서 두 대상이 동일한 장소에 있다는 것은 동일한 시각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두 형제 사이의 논쟁에서 나는 셜록 홈스의 편을 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 열을 내어 말했다.
"그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나는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사망한 토마스 아 베케트 대주
교를 기리는 비석 앞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300년 전에 일어났지만 나는 그가
살해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귀신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머리카락
이 곤두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홈스 박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왓슨 박사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다른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이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네."
그러면서 그는 서랍에서 꺼낸 왕실 문양이 새겨진 서류 뒷면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두 행성이 우주 공간에서 서로 충돌할 정도로 가까이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세. 만약 한 행
성의 북극 바로 위쪽 1만 킬로미터 지점이 다른 행성이 남극 아래쪽 1만 킬로미터 지점과 일치한
다고 하세. 하나는 지구이고 다른 하나는 화성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물론 실제 행성들이 그 정
도로 가까이 접근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 그렇다고 가정해보기로 하자는 말
이지.
1년이 지난 후에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1년 전에 행성이 있었던 곳을 가리켜보라고 하면
연전히 북극 위쪽 1만 킬로미터 지점을 가리키겠지. 그렇지만 화성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고
수백만 킬로미터 움직여갔을 거야. 물론 화성인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들도 역시 남극 아래쪽 1만
킬로미터 상공을 가리키겠지만 지구는 벌써 수백만 킬로미터를 움직여가서 그곳에 없을 걸세. 이
처럼 '같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위치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곳일 수 있다는 이야기지."
내가 즉시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같은 장소'라는 말이 명백한 의미가
없는 것처럼 '같은 시각'이라는 말도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네.
기차의 중간에 있던 시종이 알고 그랬거나 모르고 그랬거나 상관없이 황태자와 황태자비를 죽게
만든 단추를 눌렀다고 생각해보세.
만약 그 시종이 햇불로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면, 그 신호를 같은 속도로 앞쪽과 뒤쪽으로 전파
되겠지. 그러니까 신호를 보낸 시종은 그 신호가 동시에 황태자와 황태자비에게 도달했다고 생각
했을 거야.
그런데 기찻길 옆에 서 있던 사람의 바로 앞에서 횃불 신호가 켜졌다고 하세. 그의 입장에서 보
면 앞쪽의 객실은 멀어지고 있지만, 뒤졲의 객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일 것이고, 그러
니까 횃불 신호가 앞쪽보다는 뒤쪽의 객실에 먼저 도착한 것으로 보이겠지."
나는 그의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되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홈스는 깊은 생각에 잡겨 있었다. 홈
스 박사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차에 타고 있던 시종에 아니라 기찻길 옆에 서 있던 사람이 횃불 신호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거네. 결국 시종에게는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두 사건
도 기찻길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시각에 일어나서 전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
이지.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앞쪽과 뒤쪽 객실이
동시에 폭파되었다고 했네. 그러니까 기찻길 옆에 서 있었던 셈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뒤쪽 객실
이 먼저 폭파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 않겠나?
물론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서 달리지지. 만약 다른 기차가 더 빠른 속도
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면, 그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앞쪽의 객실이 먼저 폭파된
것으로 보였겠지."
홈스 박사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셜록.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겨을 내려줄 법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 표면에 정지
된 상태로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황태자비가 황태자보다 먼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네. 물론 그 시간 간격은 아주 짧겠지만 말이야."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홈스는 확실하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의 입술이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무엇인가 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차가 아무리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아주 작겠지요. 어디 볼까
요? 실제로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은 10조 분의 1초에 불과할 겁니다. 과학적으로 표한하면 10의
13승 분의 1이지요."
홈스 박사는 가볍게 팔짱을 끼고 말해싿.
"사실 황태자비의 남동생은 아주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던가? 그 사람은 아주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시종을 죽였지만 왕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야. 어쨌든 그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적
당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 그와는 달리 황태자의 동생은 천재라고 할 수는 없어도 왕족의 의무
를 성실히 수행하고,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라 일을 엉망으로 만들 사람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네.
내가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데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었는가는 조금도 중요하
지 않아. 다만 주어진 정보를 근거로 황태자비가 먼저 사망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힐 수만 있
으면 충분하니까 말이야."
그는 확실히 동생을 무시하고 있었다. 홈스가 그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
는 이쯤에서 홈스 박사의 기를 꺾어두어야겠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전혀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사소한 시간 간격뿐이지 않습니까?
순조로운 왕위 계승은 아무 의미 없는 논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의 왕
위 계승 문제가 이곳 런던에서까지 중요한 문제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왕이나 대공이 암살되었
다고 세계 질서가 모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홈스 박사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각난 듯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입
속으로 무슨 기도문 같은 것ㅇ르 중얼거린 후에야 다시 기력을 찾은 듯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손님 대접을 잘못한 모양이네. 마실 것도 권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책상에 있는 벨을 누리다가 놀란 듯이 시계를 보고 나서 멈칫거렸다.
"셜록,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점심 약속이 있다네.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가 이제
야 내 능력을 존경하게 된 모양이야. 서멀리 교수가 만자자는 연락이 왔다네. 과학 문제를 논의하
자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법률 문제에 직면한 그의 학생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문제라면 나보
다 네가 더 적격이 아닌가? 시간은 있겠지? 왓슨 박사는 어떤가? 좋아. 지금 출발하면 천천히 걸
어가도 될 것 같군."
홈스 박사의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아서 천천히 걸었지만 우리가 성 제임스 공원을 지나 퀸스가
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시간이 조금 이른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메뉴를 살펴보
고 있는 동안에 서멀리 교수가 허버지겁 들어서서 웨이터의 안내도 무시한 채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홈스 박사."
그는 홈스와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홈스 박사에게만 인사를 했다.
"시간이 있으셨던 모양이지요. 정말 대행입니다. 다른 교수와는 달리 나는 강의뿐만 아니라 학생
을 돌보는 의무도 아주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당신도 알지요?"
그가 챌린저 교수를 비웃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앨프레드 스미스라는 학생이 어려움에 처해 있답니다. 그 학생은 나한테 물리학을 배우고 있습
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서라고 하는 음악을 공부하는 쌍둥이 형이 있습니
다. 나는 그에게 그런 형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닯기는 했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답니다. 앨프레드는 모험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지요. 그는 흔히 젊은이들이 그런 것처럼 아주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공부는 열
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휴학을 하고 나서 유람선으로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들의 부모는 몇 년 전에 모두 돌아가셨지요. 그의 가족은 욱스브리지 경의 먼 친척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유한 편이 아니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휴학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지 최근에는 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지금도 가끔씩 정신이 나간 듯이 멍한 표정을 짓기는 합니다. 그가 겪었던 고약한 일이 자꾸 생
각나는 모양인지..."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앨프레드가 런던으로 돌아온 다음인 몇 주 전의 일이었습니다. 욱스브리지 경이 저택에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되었습니다."
홈스가 말했다.
"우연이라고 하기는 어렵군요."
서멀리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계속했다.
"경찰도 앨프레드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폭행전과도 있는 모양이니까요.
아주 점잖은 형과는 달리 앨프레드는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의 알리바이
를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앨프레드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순
간에 앨프레드는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서 내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단순한 살인사건 때문에 당신을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욱스브리지 경이 남긴 유서가 아주 이상합니다. 자식이 없었던 그는 집안의
젊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그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재산이 여러 사람에게 분할되어 상속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답니다. 재산이 여러 사람에게
분할되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가 특정한 인
물을 지명하지 않고, 그냥 집안의 젊은이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상속
받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 집안에는 쌍둥이도 많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절대 분할하지 말아야
한다고 유서에 명시했다는 군요. 쌍둥이의 경우에도 출생한 시각을 정확하게 따져서 형이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건 아주 쉽지 않습니까? 나도 싸둥이의 출생을 도와준 적이 어려번 있었습니다. 쌍둥이도 태
어날 때는 한 아이씩 순서대로 태어나지요. 시간 간격이 몇 시간씩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까 두 아이가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태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앨프레드와 아서는 경우가 아주 특별합니다. 아하! 이제야 오는군요. 나란히 걸어오
는 모습을 보니 지금은 무엇인가 아주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서멀리 교수는 빠르게 말을 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본인들에게 직접 들으시죠. 이해하겠지만 두 사람은 상속 문제 때문에 상당히
어색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 문제를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사건이 신문에
흥미거리로 보도되면 훌륭한 가문에 치명적인 모욕이 될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누가 이기거나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재산은 변호사 비용으로 날아가버릴 겁니다.
만약 홈스 박사가 두 사람 중에 누가 옳은가를 가려줄 수 있다면 그런 비극은 막을 수 있을 겁
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아야겠습니다."
그는 메뉴를 가지고 온 웨이터를 밀치고 일어섰다.
"앨프레드, 아서. 마이크로프트 홈스 박사와 셜록 홈스 씨 그리고 왓슨 박사에게 인사드리게. 이
분들이 자네들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주실 것으로 믿는다네."
젊은이들이 자리에 앉고 나서 우리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홈스에
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서는 날씨가 좋지 않은 이곳에 있었지만, 앨프레드는 배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했다고 들었
는데 조금도 타지 않았군요."
아무리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어른이 되면 조금은 다른 경우가 많은데, 두 사람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약간 마른 몸에 검은 머리를 짧게 깍은 모습이었다.
"와슨, 포시라는 속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 인도 여행을 즐기는 돈 많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
행하는 '갈 때는 왼쪽, 올 때는 오른쪽이 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네. 배가 항구에서 출발할 때는
배의 왼쪽에 그늘이 지지만, 항구로 되돌아올 때는 오른쪽에 그늘이 지기 때문에, 열대 지방을 여
행할 때는 그런 쪽에 있는 선실이 인기가 높다고 하더군. 그런 선실을 차지하게 되면 햇빛을 완
전히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
말을 마친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목소리를 높였다.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 상속권이 주어진다는 유언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문제입
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앨프레드의 목청이 조금 더 높았다.
"우리는 아주 드문 샴 쌍둥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피부만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곧 분
리 수술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머니 뱃속에서도 한 몸으로
붙어 있었고,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세상에 나오게 된 셈이지요. 우리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는 한
사람으로 태어났던 겁니다."
내가 샘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정말 형인가는 절대로 알아낼 방법이 없겠군요. 두 사람이 확실하게
합의를 하거나, 아니면 유언을 수정해주도록 법원에 요청해야겠군요."
앨프레드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왓슨 박사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태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이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의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홈스 박사는 고개를 끄덕어면서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는 최근에 세계일주 여행을 했습니다. 항구에서 내렸던 기간을 빼더라도
6개월 이상을 배를 타고 동쪽으로 항해를 했지요. 케이프타운과 마다가스카르를 지나서 인도까지
갔고,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서 파나마까지 갔답니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를 어렵게 지나 대
서양이로 나와서 런던으로 되돌아왔지요."
"그랬었군요."
나는 놀라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마, 홈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왓슨 박사는 과학에 대해 아주 낭만적인 꿈을 가지고 있지요. 최근에 공상소설가 베른에서 웰
스까지의 작품을 모두 읽었으니까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던 [80일간의 세계일주]도 분명히 읽
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는 데 200일 정도 걸리기는 했지만 런던의 집에 머물러
있던 우리보다는 지구를 한 바퀴 더 돌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거지요?
당신이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 지구는 200번을 회전했기 때문에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는 200번의 일출과 200번의 일몰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간대가 다
른 지역을 지나갔기 때문에 당신의 하루는 보통의 하루보다 조금 짧아졌겠지요. 그래서 당신은
같은 시간 동안에 지구를 중심으로 201번을 회전한 셈이지요. 그러니까 당신 스스로의 움직임 때
문에 지구를 한 바퀴 더 돌았으니까 당신의 동생보다 일출과 일몰을 한 번 더 경험했다는 주장이
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분명히 형이고, 그래서 돌아가신 아저씨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
홈스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은 옳지 않아요. 당신이 태어난 이후로 지나간 시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
기 때문이지요. 만약 당신이 탄광 속에 들어가 있다면 일출과 일몰을 보지 못하겠지요. 낮과 밤이
번갈아서 6개월씩 계속되는 북극과 남극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심장 박동수로 나
이를 측정한다면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앨프레드가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홈스는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막았다.
"이제 당신 동생의 주장도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아서는 부드러운 말투를 쓰기는 했지만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대
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멀리 교수님도 홈스 박사님의 설명에 깊은 감명을 받으셨다
고 하더군요.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 두 형제는 물론이고 과학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흥분했지요. 저도 우연한 기회에 그 문제에 대해 상당
히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수학적인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움직이는 물체에서의 시간이 정지해 있는 물체
에서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진행한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한 곳에만 있었던 셈이지요. 적어도 지구 표면에 대해서는 그렇다
는 뜻입니다. 그런데 내 동생은 그동안 10노트, 즉 초속 약 5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배 위
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속도는 빛의 속도와 비교하면 아주 느리지요. 그렇지만 그는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정지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동생은 나보다 조금 더 늙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형인 것이 확실하고, 그러니까 내가 상속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앨프레드는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애처롭다는 듯이 말했다.
"내 동생의 전공은 물리학이 아니라 음악입니다. 물론 모든 움직임은 상대적이지요.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움직이고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내가 서 있는 동안에 내
동생을 포함한 영국 전체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옳지 않습니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덜 늙었다고 하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내 동생이 덜 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논
리에서 보면 아주 대칭적이지요."
홈스 박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군요. 베른 씨가 상상했던 것처럼 당신이 신비로운 기계를 타고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아주 먼 곳에 있는 별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당신은 형보
다 일초의 몇 분의 일이 아니라 몇 년이 더 젋은 상태로 되돌아오게 되겠지요. 당신의 형은 늙어
서 구부정하게 되겠지만 당신은 여전히 젊고 건강할 겁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
지만 상대적 차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상대적 차이가 있으려면 어딘가에 비대칭
성이 감추어져 있어야 하니까요."
말을 마친 그는 웨이터가 그릇을 모두 치우고 난 다음에도 꼼짝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
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웨이터가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신 다음에야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커피는
독성이 있으면서도 뇌에 유용한 자극제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 이제 내 설명을 들어보세요. 두 사람의 시계가 정확하게 일치
하려면 각자가 고유한 관성 기준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주선이 일정한 속
도로 날아가는 경우에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관찰자나 지구에 남아 있는 관찰자의 시계를 똑같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의 시계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비교가 불가능합
니다. 그래서 우주선이 어느 곳에 도착하는 순간이 두 관찰자에게 '동시'에 일어났다고 이야기한
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주선에 있는 관찰자는 시간이 주구에서보다 더 늦게 가고 있다고 느낄 것이고, 지구에 남아
있는 관찰자는 우주선에서보다 시간이 더 늦게 가고 있다고 느낄 뿐이니까요.
두 시계를 직접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주선의 관찰
자가 똑같은 기준틀에 머물러 있다면 우주선은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
구로 돌아올 수가 없지요. 우주선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력을 바꾸어야만 지구로 되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같은 관성 기준틀에 머물러 있다면 우주선은 결국 우주의 끝을 향해
서 똑바로 날아가버릴 겁니다. 물론 우주의 끝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고, 나도 그렇게 믿지
는 않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선이 지구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은 언제가 우주선의 운동방향이 거꾸로 바뀐다
는 뜻입니다. 그런 우주선에 있는 관찬자는 확식하게 다른 두 개의 기준틀에 있었던 셈이고, 그런
경우에만 여행을 했던 사람이 집에 남아 있던 사람보다 덜 늙게 되는 겁니다."
홈스와 쌍둥이 형제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를 한 모양이었고, 홈스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
지만,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고 초조한 듯 홈스 박사가 말했다.
"왓슨, 이렇게 생각해보게. 지구에 있는 쌍둥이가 우주선을 타고 있는 쌍둥이에게 1초에 한 번씩
일정하게 광신호를 보낸다고 하세. 우주선이 별을 향해서 가고 있을 때와 지구로 돌아올 때, 그런
광신호가 어떻게 보일까?
여행을 마친 뒤에 지구에서 보낸 광신호의 수와 우주선에서 관찰한 광신호의 수를 비교해보면
정확하게 일치하겠지. 그렇지만 우주선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광신호들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지
구에서보다 짧은 것으로 느껴질 걸세."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쌍둥이 형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앨프레드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 있
었는가 하는 거라네. 간단히 말해서 지구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보게. 그렇다면 지구가
일정한 관성 기준틀을 가지고 있을까?
지구는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정지하고 있는 지역은 극지방뿐이지. 적도
상의 지점은 초속 약 480미터, 즉 대략 1,000노트의 속도로 움직이네. 그렇다면 10노트에 불과한
유람선의 움직임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지구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 표면의 움
직임은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관성 기준틀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이네."
"그렇지만 회전은 절대적인 것이고 직선 운동은 상대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천체관에서 푸코 진자를 보았던 생각이 나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맞네. 그런데 아서는 이곳 런던에 있었네. 북위 50도 정도인 이곳은 초속 320미터 정도로 움직
이네. 앨프레드가 여행을 하고 있던 6개월, 즉 1,500만 초 동안에도 그런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겠
지. 같은 기간에 앨프레드는 그 속도의 1.5배의 속도로 움직이는 적도 부근에 있었네.
빛의 속도보다 훨씬 느린 경우에 시간이 느려지는 정도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지. 그러니까..."
그는 펜을 꺼내서 헝겊 냅킨에 몇 개의 숫자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웨이터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군. 아서, 내 계산에 의하면 당신이 동생보다 천만 분의 1초만큼 더 늙은 셈이군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초속 30킬로미터 정도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계산이 훨씬 더 복잡하게
되지만 대략적인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거요. 앨프레드가 여행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도 더 많았던 셈이네."
그 말을 들은 앨프레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다.
"말도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누구도 그런 쓸데없는 말을 믿지는 않을 겁니다."
말을 마친 앨프레드는 훵하니 식당을 나가버렸고, 아서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위로해주어야겠군요. 앨프레드는 언제나 저렇게 충동적이랍니다. 결국은 내가 그 재산을 상
속받게 될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내가 앨프레드에게도 충분히 배려를 하겠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골치 아픈 송사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바로 그때 홈스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잠깐! 마이크로프트 형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렸군요."
홈스 박사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야. 내 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물론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홈스는 아서를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음악을 공부한다고 들었는데 물리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군요. 전에 내가 알
고 있던 쌍둥이 형제가 있었지요. 혹시 앨프레드가 가끔씩 자기 대신 강의를 듣고 출석부에 사인
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던가요? 마치 당신이 앨프레드인 것처럼 말입니다."
아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대답했다.
"런던에는 앨프레드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강의 내용을 잘 적어주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홈스는 가차없이 계속했다.
"가끔씩은 개인 교습 시간에도 대신 참석했겠지요? 서멀리 교수가 학생드르이 신체적 특징이나
습관을 그렇게 세심하게 살펴보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앨프레드가 술을 너무 마셔서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날이 바로 욱스브리지 경이 살해된 날이었지요?"
"어떻게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앨프레드에게 가보는 것이 좋겠군요."
아서는 밖으로 나갔고, 홈스 박사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다. 웨이터가 테이블을 치우는 동안 홈
스는 우리 두 사람을 향해서 웃었다.
"와슨, 아직도 모르겠나? 앨프레드는 자신의 아저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지. 그가 결백함을
주장하는 증거는 쌍둥이인 아서가 만들어준 알리바이뿐이고. 명성이 높은 서멀리 교수가 증명하
는 알리바이를 누가 의심하겠나? 조금 더 알아보아야겠지만 어떻게 된 일인가 알 듯도 싶군."
나도 홈스는 따라서 일어섰지만, 홈스 박사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셜록, 나도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역설 문제에 너무 신경을 쓴 모양이야..."
홈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과학은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기는 하지만, 과학만으로 우리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지요."
나는 홈스를 따라서 햇빛이 밝게 비치는 곳으로 나왔다. 홈스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왓슨,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기 마련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나.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범죄를 저질러서 이득을 보게 되면 안 되지. 앨프레드가 교수형을 면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용서는 받을수가 없을 걸세.
사실 마이크로프트 형은 앨프레드의 피부가 검게 타지 않았다는 자네의 예리한 지적에서 실마라
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말했던 것처럼 적도를 항해하더라도 선실을 잘 선택하면 타지 않
을 수도 있겠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선실에만 갇혀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꼼짝도 못하고 그늘에만 앉아 있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니까 말
이야. 앨프레드는 상당히 오랫동안 알리바이를 계획했던 모양이군. 아주 꼼꼼하게 계획한 범죄야.
왓슨! 이제 그 단서를 하나씩 확인해보세. 저기 지나가는 마차를 불러주게나."
7. 더 빠른 사업가
찌는 듯이 더운 8월 어느 날 오후에 나는 메릴본가를 따라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
다. 내 환자들이 많이 사는 노팅힐 지역과 베이커가 사이에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개들이 혀를
길게 내놓고 헐떡거리는 좀 지저분한 지역이 있었다. 그 실을 걸어서 지나기로 한 것이 정말 후
회스러웠다. 사물실에 거의 다와갈 때는 편안한 안락의자와 시원한 음료수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내가 문 앞에서 마주친 광경은 정말 반갑지 않았다. 허드슨 부인이 팔짱을 끼고 서서 큰
키의 중년 남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비싼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몹시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허드슨 부인은 나를 보자 애원하듯이 말했다.
"박사님, 이 분의 명함을 홈스 씨에게 분명히 전해드렸는데 홈스 씨가 지금은 몹시 바빠서 만나
실 시간이 없다고 하세요. 그런데도 이분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홈스 씨를 만나러 들어가야겠다고
떼를 쓰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박사님께서 해결 좀 해주세요."
나는 몹시 더웠지만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홈스 씨는 몹시 바쁘십니다. 저는 홈스 씨와 함께 일하는 왓슨 박사입니다. 용건을 말씀해주시
면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중에 홈스 씨를 만나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주소를 알려주시겠
습니까?"
내 말에 화가 나서 핏기가 사리져버린 그의 얼굴이 붉은 목과 대비되어서 더욱 보기 싫었다. 한
참을 씩씩거리던 그는 강한 뉴욕 브롱크스 억양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음 주라고요! 맙소사! 우리가 대서양 저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동안에 영국이
이렇게 쇠퇴해버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요! 시간이 돈이라는 사실도 모르십니까? 나는 바넘 룰
먼이라고 하는 미국 갑부 중의 한 사람입니다. 홈스 씨에게 지금 당장 나를 만나지 않으면 곧 후
회하게 될 것이라고 전해주시오!"
나는 더욱 냉정하게 말했다.
"의사로서 충고 드리고 싶군요. 그렇게 흥분하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심장에 심한 무리를
주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
기를 원한다면..."
룰먼 씨는 너무 흥분해서 몸을 떨고 있었지만 마음을 고쳐먹은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신을 위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최고의 자문을 받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
는 일이고, 나는 그런 자문을 받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
입니다. 사실 나는 지금 협박을 받고 있는데 경찰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협박범에게
돈을 빼앗기기보다는 유능한 탐정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상당한 액수를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만약 내 요청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홈스 씨가 몹시 후회
할 겁니다."
"홈스 씨가 협박범을 특별히 미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을 만나보도록 설득해보지요. 그러
나 만약 지금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보일 듯 말 듯한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계단을 올라것 안으로 들어갔다.
홈스는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벌렁 누워서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어싿.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빈
정거렸다.
"홈스, 정말 바쁜 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군요. 허드슨 부인이 왜 화가 났는지 알 만해요. 아
무 일도 없이 쉬고 있으면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갑부를 만날 시간은 없다는 말인가요?"
그는 아무 흥미도 없다는 듯이 팔을 저으며 말했다.
"왓슨, 나는 지금까지 대기업가가 흥미로운 사건을 가지고 왔던 경우를 본 적이 없네. 그 사람들
은 주로 자금 유용과 같은 사고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런 사건은 탐정보다는 회계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적절하지.
내가 알기로는 마이크로프트 형이 그런 사건을 좋아한다네. 형은 주로 정부와 관련되 사건을 좋
아하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형은 자신의 재능을 함부로 쓰지는 않는 편이어서, 감당할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장부를 검토해주는 일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
"홈스, 오해를 하고 있군요. 저 사람은 지금 협각을 받고 있는 중이랍니다. 사건 내용을 들어보
지도 않고 미리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원하지 않는
사건은 맡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려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직접 의뢰자에게 그 뜻
을 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홈스는 단호한 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좋네, 왓슨 박사! 사무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내 희생이 필요하다면 할 수 없지. 룰먼 씨더
러 들어오시라고 해주게."
나는 홈스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서둘러 나가서 아래층 북도를 서성이고 있던 롤먼 씨를 손짓으
로 불렀다. 그는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와서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홈스는 우리를
보고도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지 않고 게으른 몸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롤먼 씨,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당신같이 귀한 분이 이렇게 누추한 곳을 방문하시다니
영광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롤먼 씨는 기분이 몹시 상한 모양이었다.
"맞아요. 내가 부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수한 재능을 가진 당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 이
유를 분명히 알겠군요. 홈스 씨, 세상을 살아 가는 데는 재능보다 에너지가 더 중요하답니다. 에
너지와 재빠른 행동이 부와 성공의 열쇠지요. 잘하려는 노력을 더 빨리 하면 분명히 이기게 됩니
다."
홈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빈정거렸다.
"그렇습니까? 나는 정반대로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믿는데요. 예
를 들어서 수레바퀴를 생각해보십시오. 수레바퀴를 발명한 사람은 야심에 찬 그런 사람이 아니라
무거운 사냥감을 어깨에 메고 질질 끌어서 동굴로 날라오는 일을 아주 싫어했던 사람이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일에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쉴 수 있을 것' 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수레바퀴를 발명하게 되었을 겁니다.
발빠른 사냥감을 쫓아다니기에 너무 게을렀던 사람은 '만약 창을 저 짐승보다 더 빨리 날아갈
수 있도록 던질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어 다니는 동안에 나는 편안하게 쉬어도
살이 찔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활과 화살이 등장했겠지요. 그리고..."
인류 역사에 대한 홈스의 이상한 해석은 끊임없이 계속될 모양이었다. 마침 롤먼 씨가 그의 말
을 가로막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홈스 씨, 창과 화살의 예는 아주 적절하군요. 그렇지만 내 왕국은 바로 속도의 향상으로 얻은
이득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돛단배보다 훨씬 빠른 증기 외륜선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상품을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에 재산을 모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후에 과학 기
술자들에게 외륜선보다는 스크루를 장착한 배가 더 빠르다는 것을 배워서 더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차를 이용해서 짐을 옮기는 동안 나는 증기 기관차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내 사업은 미국 전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순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주는 전보를 이용하면 경쟁자를 이길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었죠. 그래서 대규모 소개업자들에게 전기를 이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도
록 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구요. 그런데 바로 그런 성공 때문에 이제
는 협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찾아온 것입니다."
홈스는 이제야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아, 예....?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말씀을 계속하시지요."
"내 사업 중에서 시카고의 슈피리어 익스체인지가 가장 이익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이곳 런
던 겅매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경매
를 중계해주는 일을 하는 회사지요.
이 사업에서는 공정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입찰자들이 정확하
게 같은 시각에 정보를 받도록 해주어야만 합니다. 다른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같은 가력을
제시한 경우에는 입찰가력을 먼저 제시한 사람이 이기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전보만으로는 그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유렵에
있는 모든 입찰자들이 정확하게 같은 시각에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근에
마르코니 씨가 특별히 개발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로부터 입찰이 시작된다는 신호
가 에테르를 통해서 빛의 속도로 보내지면 정확하게 6분의 1초 후에 런던에 도착하게 됩니다. 입
찰에 참여하고 싶은 중개상들은 그 순간에 같은 방법으로 회신을 하게 됩니다. 입찰자들마다 다
른 주파수로 신호를 보내지요.
당연히 런던의 중개상들은 가능하면 빨리 신호를 보내려고 심한 경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몇 달 전부터는 손으로 전보를 치는 대신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입찰에 참여하고 싶은 중
개상들이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즉시 응답 신호가 자동으로 이용해서 수천 분의 일초라도 먼저
도착한 신호를 가려내고, 그 신호를 보낸 중개상이 누구인가를 전기 장치로 알려주게 되어 있습
니다."
홈스는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부자들이 그렇게 훌륭한 장치를 이용해서 훨씬 더 빠르게 시장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군요."
롤먼 씨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설명했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장치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었지요. 시카고에서 언제 신호가
올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중개상이 있다고 힙시다. 만약 어떤 중개상이 시카고 부근에 사는
공범을 시켜서 대서양 밑에 설치된 케이블을 이용해서 런던으로 전보를 보내도록 하면 우리가 사
용하는 무선보다 훨씬 빠르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힙니다.
그런데 유능한 미국 과학자들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전기 신호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서 전달되거나 에테를 통해서 전달되거나에 상관없이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런 사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우리의 설비가 완벽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런던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이 편지가 시카고로 배달되어왔습니다."
홈스는 그 편지를 받아서 큰 소리로 읽었다.
사장님께.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알아냈음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알아낸 방
법이 공개되면 사장님과 같은 중개상들의 명성은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사장님께서 내 발명품에 대해서 적절한 보상을 해주신다면 내 발명품을 공개하지 않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준비
가 되시면 [타임스]의 개인광고란에 '매드레이크를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게재하시기 바랍니
다.
맨드레이크로부터
홈스는 롤먼 씨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협박 편지입니까?"
"그래요."
"이것을 법적으로 협박 편지라고 부르기는 어렵겠군요. 롤먼 씨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발명품을
팔거나 다른 사람이 비슷한 발명품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합법적이랍니다. 왜 맨드레이
크의 발명품을 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롤먼 씨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물론 그런 제안을 했지여. 몇 차례에 걸쳐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
신의 발명품을 팔 생각은 없고, 적당한 조건을 제시하면 자신이 그런 장치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렇지만 그 발명품에 대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해주
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그의 말을 무시해버리시죠."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런던에서 빛의 속도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는 소
문을 들었습니다만..."
홈스가 말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맨드레이크의 주장이 정말 엉터리라고 하더라도, 그런 소문이 나게 되면 내 중개회사는 큰 타
격을 받게 됩니다. 아주 망해버릴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말하신 대로 순전히 장난에 지나지 않는
다면 그런 엉터리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과연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신호를 보낼 수 있는가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싶습니다. 반대로 그런 일은 절
대로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도 좋은 겁니다."
홈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정도의 문제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과학자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롤면 씨는 야성적인 모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과학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나는 내게 의견을 제시해주는 사람에게 그 대
가를 지불하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사업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변호사, 과학자, 회계사
같은 상담역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럴 듯 하
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근거도 없는 사상누각 같은 쓸데없는 충고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게 되었지요. 요듬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는 대신에 내기를 합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수표책과 만년필을 꺼낸 다음에 수표를 한 장 써서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셜록 홈스 씨에게 드리는 2만 파운드짜리 수표입니다."
나는 놀라서 숨이 막혀버렸다.
"그런데 나와 내기를 하겠다고 약속을 해야만 이 수표를 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빛의 속도보다
빨리 보낼 수 있다거나 아니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더 빨리 보낼 수 있다는 쪽을 선택한다면 그 방법을 알아내서 내게 가르쳐주어야겠지요. 만약 당
신에 내기에 지게 되면 이 2만 파운드짜리 수표를 내게 돌려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금액을
추가로 내게 지불해주어야 합니다.
몇 사람의 과학자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메시
지를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나와 내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더군
요."
홈스는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내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롤먼 씨. 그렇지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호텔에 머
무르고 계십니까? 사보이 호텔입니까? 좋습니다. 내일 전화를 드리지요. 왓슨 박사, 롤먼 씨를 전
송해드리게."
나는 롤면 씨를 전송한 후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되돌아와서 홈스에게 불만스럽게 말
했다.
"어떻게 그런 내기를 하려고 합니까? 만약 내기에 지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이죠? 도와주는 대
가를 지불하는 방법치고는 정망 고약한 방법이로군요."
"무슨 말인가? 나는 아주 정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변호사나 회계사들의 자문비를
그런 식으로 지불하게 되면 무능한 변호사나 회계사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지 않겠나? 왓슨 박
사,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네. 나도 그렇게 경솔한 사람은 아니니까 말야. 우리는 런던에서 가
장 재능 있다고 알려진 세 사람과 상의할 수 있지 않나? 옷을 입고 올테니 잠시만 기다려주게."
나는 홈스를 기다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임은 확실했다. 그렇나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메시지를 보내
는 방법을 알아내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옷을 입고 나오는 홈스에게 들뜬 목
소리로 말했다.
"홈스, 모자와 장갑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외출할 필요가 ㅇ벗을 테니 말입니다. 내가 수수
께끼의 답을 알아낸 것 같아요."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나는 홈스 박사처럼 그림을 잘 그리려고 노력했다.
"홈스, 여기 중간에 있는 것은 등대입니다. 항해하고 있는 배에서 보면 등댓불이 일정한 시간 간
격을 두고 번쩍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등대의 불은 항상 켜져 있지요. 램프 주위를 회전하
는 렌즈나 거울 덕분에 램프의 빛이 좁게 비치는 빔으로 모아질 뿐입니다. 이 순간에는 램프의
빛이 서쪽을 비추고있지요. 등대가 1초에 한 번씩 번쩍인다고 해봐요. 램프 주위의 거울이 1초에
한 번씩 회전한다는 뜻이지요.
이제 등대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원형의 담이 있다고 해요. 벽의 길이는 6킬로미터가 조금
넘겠지요. 따라서 그 담에 비치는 빛은 1초에 6킬로미터를 움직이는 셈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총에서 발사되는 탄환보다도 빠른 셈이지요.
그런데 이제 벽까지의 거리를 1,000킬로미터로 늘여보세요. 불빛은 1초에 6,000킬로미터를 움직
이게 됩니다. 거리를 더 늘여서 10만 킬로미터가 되도록 하면 불빛은 60만 킬로미터를 움직이게
움직이게 되지요. 빛의 속도보다 두 배나 빠른 소도입니다."
홈스는 못마땅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그림은 잘못되었네, 왓슨. 우선 빛이 유한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
네, 왓슨. 등대의 불빛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실제로는 나선형으로 보일 거야. 잔디밭에
물을 뿌리는 회전장치와 비슷한 모습처럼 말이네."
그렇게 말한 그는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나는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어찌 되었거나 벽에 비춰지는 불빛은 여전히 빛의 속도보다 두 배나 빨리 움직이지 않습니까?
벽까지의 거리가 충분히 멀다면 얼마든지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그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야 하지 않나? 벽의 한 지점에서 다름 지점으로 어떻게 신호
를 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벽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거울을 이용해서 빛을 다시 등대 쪽으로 반사시킬 수 있지 않
을까..."
말을하던 나는 갑자기 내 대답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 왓슨.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직접 전달되는 빛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더
오래 걸리지 않겠나? 아주 잘되면 같게 될것이고."
그런 지적을 받고 나서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빛을 사용하면 그런 문제가 있군요. 그렇다면 빛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는 다른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가위입니다. 홈스 박사의 사고실험에 등잘할 정도로 거대한 가위입니다.
가윗날이 움직일 때 두 날이 만나는 점은 어떻게 되는 가를 생각해보세요. 가윗날이 만나는 각
도가 작아지면 두 날이 만나는 점은 가윗날보다 훨씬 빨리 움직이게 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가윗날은 빛보다 느리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두 날이 만나는 점은 훨씬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지
요."
홈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런 장치로 어떻게 잠겼다가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선 A의 위치에 작고 단단한 물체를 놓습니다. 진짜 가위에 그런 물체를
넣으면 가윗날이 망가지겠지만, 이 실험에서는 가윗날이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A까지 닫혀지면 이
물체에 부딪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 충격 때문에 여기 B의 위치에서도 가윗날이
멈춰진 사실을 바로 알게 되지요. 그런 방법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생각이군, 왓슨! 그런데 이 경우에도 문제가 있네. 우선 어떤 물체도 무한히 딱딱하지는
않다네. 예를 들어서 단단한 막대기를 생각해보게. 막대기의 한족에 충격을 주면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반대쪽에 그 충격이 전달되지는 않고, 몇 분의 1초라도 시간 간격이 있게 되네. 공기 중에
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가 있는 것처럼 고체 속에서의 진동도 일정한 속도로 전달된다네. 고체
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진동이 전달되는 속도는 기껏해야 공기 중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보다 열 배 정도 빠를 뿐이라네. 그러니까 고체 속에서 진동이 전달되는 속도는 빛
의 속도의 10만 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지. 따라서 A에서 생긴 충격이 B까지 전달되려면 상당
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네."
홈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위로했다.
"아무튼 열심히 노력했네!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나? 이제 나가보세. 우선 서멀리 교수를 찾아가보세."
홈스와 나는 유스턴가를 바쁘게 걸어서 높은 회색 담으로 둘러싸인 유니버시티 대학의 옆문으로
갔다. 그곳이 바로 과학 분야의 학과들이 있는 캠퍼스였다. 문 위의 돌에는 그리스 문자로 무엇인
가 개겨져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돌에 새겨진 비문을 읽었다.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
홈스가 그 글의 내력을 설명해주었다.
"그 말은 2,000년 전에 플라톤의 논리 학교 정문에 새겨져 있던 글이라네. 그 당시의 수학은 아
주 쉬운 기본적인 것이었지. 그러니까 나눗셈을 할 수 있고, 피타고라스의 신비로운 식을 외우고
있는 자네는 분명히 자격이 있을 거야. 이곳의 수위도 자네의 수학 실력에 놀랄 걸."
"그렇게 말하셔도 제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군요. 이교도가 성당에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돌이 갑자기 떨어져서 나 같은 이교도를 덮칲 것만 같아요."
내가 농담처럼 말하는 순간에 옆문이 열리면서 파이를 가득 실은 수레가 자갈길을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깜짝 놀란 홈스가 소리를 치며 나를 끌어당겼다.
"자네가 사고로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네, 왓슨. 이쪽에 있는 서멀리 교수의 연구실로 가보
세."
우리는 작은 방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방 안의 세 벽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수식이 가득
써 있는 칠판이 걸려 있었다. 서멀리 교수는 불안한 자세로 우리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명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지요. 공간과시간의 생대적인 수축을 나타
내는 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는 벽에 걸려 있는 칠판을 가리켰다. 그 칠판에는 홈스 박사가 가르쳐주었던 식이 그대로 옮
겨져 있었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은 이 식에서 베타가 1보다 크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되면 공간과
시간의 수축을 나타내는 식에 음수의 제곱근이 들아가게 됩니다."
내가 그의 말을 막았다.
"-1의 제곱근이란 없지 않습니까? 실제로 0보다 작은 음수의 경우에는 제곱근이 존재하는 않는
다고 알고 있는데요."
서멀리 교수가 설명했다.
"더 정확하게는 실수의 제곱이 0보다 작을 수가 없다는 뜻지이요. 음의 실수와 음의 실수를 곱
하면 양의 실수가 됩니다. 양의 실수의 제곱도 마찬가지지요. 따라서 양수나 음수는 모두 제곱하
면 양의 수가 되기 때문에 어떤 수를 제곱해도 음의 수를 얻을 수는 없지요. 물론 수학에서는 제
곱하면 응ㅁ수가 되는 허수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학적인 소설에 불과한 겁
니다.
어쨌든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이는 경우에 이 식은 실제 세계와는 맞지 않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물체도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 관성틀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되지요."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당신들의 질문에 대한 확고부동한 수학적 대답입니다. 실례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부터는 내기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겠군요."
우리는 하이드 공원을 가로질러서 30분 후에는 사방이 트인 곳에 있는 임피리얼 대학의 챌린저
교수 연구실에 도착했다. 닫혀 있는 연구실 문 앞으로 다가가자 안에서 챌린저 교수의 흥분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나쁜 학생이 야단을 맞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참 후에 문이 열리면서 젊은이가 밖으로
나왔다. 홈스가 그에게 물었다.
"교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챌린저 교수님을 만나고 싶으시다고요?"
젊은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하더니 자신의 입장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하게 가버렸다. 나는 연구실로 들어서면서 전율을 느꼈다. 홈스가 다시 내기의 내
용과 서멀리 교수의 대답을 자세하게 설명햇다. 의자에 깊숙이 않아서 이야기를 듣던 챌린저 교
수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다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정말 수학자다운 대답이로군요. 그 식이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
낼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식만으로는 왜 그렇고, 만약 빛보다 빠릴 움직이려고 하면 어떻
게 되는가를 아라낼 수는 없지요. 수학적인 증명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런 식이랍니다. 그런 증명
이 엄격한 의미에서 옳을 수는 있겠지만, 실제 상황에 대한 의미 있는 대답이 될 수는 없지요.
과학적 상식을 쌓기 위해서 지질학을 배우고 있는 수학 전공 학생에 대한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학생에게 어떤 지점이 섬에 속하는가 또는 육지에 속하는가를 알아내라는 문제가
주어졌습니다. 실제로 그 지점은 섬에 있었지요.
그는 구두끈을 뜷어져라 바라보면서 육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섬과 육지 사이에는 터널이
있었지요. 그 학생은 우연히 그 터널 숙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두끈만 쳐
다보고 걸었기 때문에 자신이 터널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런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그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자신은 육지에서부터 땅 위를 걸어서 그곳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신이 도착한 지점은 당연히 육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생각하면 그 학생이 옳을 수도 있지요 수학자에게 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으면 먼
저 그에게 섬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정의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섬에 터널이나 다리가 놓
이게 되면 엄밀한 의미에서 그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되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수학자의 그
런 대답은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은 그런 문제를 풀더라도 스스로 살아가
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부터 이 문제를 좀더 실질적인 방법으로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어떤 사람이 탄환
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려보내고 싶어한다고 합시다. 성능이 아주 좋은 함포는 포탄은 초속 1
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발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대포를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
이는 자동차에 장치한다면, 탄환이 빛보다 더 빨리 날아가게 될까요?
홈스 씨의 형인 홈스 박사처럼 광속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가상적인 기차에 그
런 대포를 앞쪽을 향해서 장치했다고 합시다. 철길 옆에 서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대포에서 발사된 탄환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까요?"
나는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아하! 그렇군요! 철길 옆에 서서 보면, 기차는 움직이는 방향으로 수축되고, 기차 위에서의 시간
은 아주 느리게 지나갑니다. 내 기억에 의하면 5분의 4가 될 겁니다. 이런 효과를 고려하면 탄환
은 기차보다 초속 540미터 느리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지요."
챌린저 교수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술자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만약 기차의 속도를 빛의 속도보다 초속
300미터만큼만 느리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빛의 속도보다 100만 분의 1만큼 느린 속도지요.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나는 칠판에 적혀 있는 공간과 시간의 수축을 나타내는 상대성 이론의 식을 바라보다가 대답했
다.
"그렇군요. 그렇게 되면 기차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리게 보일 것
이고, 대포와 탄환은 머리카락 정도로 줄어들겠군요."
"그렇지요. 탄환은 달팡이가 기어가는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게 되기 때문에 빛보다 빨리 움직이
지 못하게 되지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거처럼 두 물체의 속도를 더하는 것은 두 물체 중 하나
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훨씬 작을 경웨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일반적인 식도 아주
쉽게 유도할 수 있지요."
그는 칠판에 또 한 줄의 식을 썼다.
"이 식에 의하면 초기의 베타 값이 얼마인가에 상관없이 그 값이 1보다 작기만 하면, 그런 베타
를 합하더라도 역시 1보다 작아지게 됩니다."
그는 뭉툭한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이제 탄환을 발사할 때 사용한 화약의 에너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겠지요?
실제로 그 에너지는 탄환에 전달이 됩니다. 다만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는 세상에서는 에너지가
단순히 속도의 제곱에 비ㅖ하지 않고,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탄환을 비롯한 물체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무한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
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기술자의 노력에 근본적인 한계가 되는 셈입니다."
나는 알마 전에 읽었던 [달에 착륙한 첫 인간] 이라는 웰스의 공상 소설이 생각났다. 별은 달보
다도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어디에선가 읽은 생각이 나서 과연 그런 별로 여행을
하는 것이 가능할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우리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에서 오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5년이 걸릴 정도로 별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니까 아무리 성능이 좋은 우주선을 이용하더라도 5년보
다 짧은 시간에 그런 별에 도달할 수는 없겠군요."
챌린저 교수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 입장에서 보면 그렇겠지요. 만약 당신이 가속되고 있는 우주선에 타고 있으면 반대로 우
주 자체가 우선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수축되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는 빛
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을 인식할 수는 없지만 사실은 더 빨리 도착할 수는 있습니다."
"공간 자체가 휘어지기 때문에 말이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휘어지는 것은 아니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우주 자체가 쭈그러든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거요."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거나 여기 지구에 있는 사람이 볼 때 그런 별을 왕복하는데는 여전히 10년이 걸리겠
군요. 그점이 이번 내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어떤 물리적인 대상도 빛의 속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군요. 그렇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
분이 있습니다, 교수님.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는 새로운 종류의 전자기파나 물체가 발견될 가능
성은 앞으로도 전혀 없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챌린저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겠군요.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능력에 한계
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달성하지 못한 일을 전혀 불가능하다고 여기
지는 않지요. 내일 무엇이 밝혀질 것인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앞으롣
전혀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대학교를 나설 때 홈스가 말했다.
"왓슨, 우리가 마치 야생 기러기를 쫓고 있는 것 같군. 이제 한 잔 마실 시간이 된 것 같네. 마
이크로프트 형이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있는 클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세. 형도 분명히 챌린저
교수와 같은 대답을 하겠지만 한번 만나보기로 하세."
그렇지만 이번에는 홈스가 틀렸다. 홈스 박사는 우리 이야기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빛보다 빨리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네. 박사,
자네는 웰스의 팬이지? [타임 머신]이란느 그의 작품을 읽어보았나?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지. 그
렇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썼다. 디오게네스 클럽에서는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을 무
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환상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지요. 내가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기도 전에 할머리를 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여기
에 있을 수가 없게 되지요. 어떻게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그런 범행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절대 받지 않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게 되겠지요. 과거로 돌아
가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과거와 교신만 할 수가 있어도 그런 역설이 끝없이 생길 겁니다."
홈스 박사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네, 박사. 다시 길이가 빛이 1초 동안에 갈 수 있는 거리와 같은 가상적인 기차를 생각해보
세. 앞쪽의 기관사와 뒤쪽의 경비원 사이에 일종의 신비로운 전보 신호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세. 빛을 이용한 보통의 신호방법으로는 두 사람 사이에 신호가 전달되려면 1초가 걸리지만, 이
신호장치를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세.
이제 철길 옆에 두 사람을 세워두네. 그리고 한 살마이 기관사와 나란히 있게 되면 두 번째 사
람은 경비원과 나란히 있게 된다고 하세. 물론 철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
일세.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도 똑같은 전보 신호장치가 설치되어 있네.
이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생각해보세. 앞쪽에 서 있던 사람이 지나가는 기관사에게 신호
를 보내면, 기관사는 그 신호를 뒤쪽에 있는 경비원에게 전달하는 거야.
이제부터 골치 아픈 부분이네. 지난번에 설명한 것처럼 만약 기관사와 경비원의 입장에서 볼 때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철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경비원에게 일어난 일이 기
관사에게 일어났던 일보다 먼저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되네. 똑같은 이유로 황태자비가 황태자보
다 먼저 사망했다는 결론을 얻지 않았나? 그러니까 철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경
비원은 신호가 보내지기 1초 전에 기관사에게서 신호를 받은 셈이 되지!
이제 경비원이 철길 옆에 서 있는 두 번째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고, 뒤쪽의 사람이 그 신호를
앞쪽으로 다시 전달하네."
그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을 때 그런 게임을 한 적이 있지요. 앞사람에게서 전해들은 메시지를
다음 사람에게 계속 전해준 후에 그 내용이 얼마나 바뀌는가를 알아보는 중국식 신호 전달 게임
이었지요. '적군이 오고 있으니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에밀리 고모가 돌아가셨으니 3펜
스와 4펜스짜리 은화를 보내라'고 바뀌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긴다고 하더군요."
홈스 박사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경우는 더 기막힌 일이 생기네. 아직도 모르겠나? 신호가 앞쪽의 사람에게 보내지기 1초 전
에 앞쪽의 사람에게 되돌아오게 되지 않나! 명백한 역설이지.
신호를 빛보다 조금만 더 빨리 보낼 수 있다면 적당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와 두 사람의 신호수
를 이용해서 과거로 신호를 보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그러니까 그런 일은 영원히 불가능하
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라네."
홈스가 그의 형에게 감사의 말을 한 다음 우리는 곧 사보이 호텔로 갔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지금까지 홈스는 살인사건이 얼마나 흥미로운가에만 관심을 가졌고 수입에
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2만 파운드는 엄청난 수입임이 확실했다.
호텔 종업원이 우리를 롤먼 씨의 객실로 안내해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
답이 없었다. 종업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히 안에 계실 텐데요. 조금 전에 그분과 마주쳤는데, 숨을 몹시 헐떡였던 것으로 보아서 몸
이 안 좋으신 것 같던데...."
그러면서 방문을 열던 그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방 안에는 롤먼 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
었다. 홈스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침입자의 흔적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동안에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홈스, 살인사건은 아닙니다. 아주 심한 뇌졸중이었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도 그런
징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의사가 나뿐이 아니었을 텐데, 내 충고
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홈스는 호텔을 떠나면서 말했다.
"'급할수록 천천히'라는 옛말이 옳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깨닫게 되는군. 자네도 나이가 들면 알
게 될 걸세.
어떻게 생각하면 롤먼 씨가 했던 말이 옳았던 것도 같네. 그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순진한 아마
추어였겠지. 내 재능을 다른 목적에 활용했던라면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단순히 내가 좋아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탐정 일만을 해왔거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네. 거기에다가 발에 아주 잘 맞는 구두처럼 내게 어울리는 적당한 정
도의 흥분과 모험을 양념삼아서 아주 편안하게 살아왔지. 우리도 결국 롤면 씨와 같은 운명을 맞
이하게 될 텐데 적당히 인생을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그렇지 않나? 왓슨."
8. 정력적인 반체제주의자
오늘 배달된 [란세트]를 훑어보던 내가 놀라서 소리쳤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가요! 수학이 의학에도 쓸모가 있다고 하네요. 그것도 내가 이해할 수 있
을 정도로 쉬운 수학이 말예요!
홈스, 일년에 몇 사람 정도로 드물게 나타나던 질병이 하룻밤 사이에 전국적이로 번지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답니다. 마치 산불이 번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서 몇 달
사이에 전 국민이 죽어버린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라는 군요.
용감한 의사들은 전염병이 번지고 있는 나라에 직접 들어가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
는가를 조사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흑사병에 걸려 죽은 의사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한 런던 사
람이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했군요.
그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은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씩 다른 생물에 기생하는 병균에 감염
되기도 한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나라에서 그런 경로로 매년 열 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한다고
해봐요. 그런데 그 질병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확률을 인간 전염 인자로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합시다. 만약 인간 전염 인자가 0.5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환자가 완치되거나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이 그 병에 감염될 확률이 50퍼센트가 되는 셈이랍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 감염된 사
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질병을 전염시킬 확률은 0.5가 되고, 두 번째로 전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
에게 감염시킬 확률은 0.25가 되는 식으로 그 확률이 계속 감소합니다. 그런 확률을 모두 고려하
면 질병의 확대 인자는 놀랍게도 2가 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열 명에서 시작된 환자의 수가 모
두 합해서 스무 명이 되면 더 이상의 환자는 생기기 않게 된다는 거지요.
전염 인자가 0.99가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질병이 결국은 사라져버리게 되요. 처
음에 감염된 열 명의 환자로부터 전염되어 생기는 환자는 모두 합쳐서 100명이 될 뿐이지요. 그
러니까 웬만한 크기의 나라에서는 처음에 감염된 환자의 수가 1,000명이 되더라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의 독성이 조금 더 강해서 전염 인자가 1.01이 되었다고 해봐요. 이
제는 전염되는 사람의 수가 한정되지 않고 사정없이 증가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환자가 두 명에게 전염을 시키고, 이들이 다시 네 명에게 전염시키고, 이렇게 되는 거죠. 흑사병
은 바로 그런 종류의 전염 인자를 가진 질병이기 때문에 한 번 발생하게 되면 곧 온 나라에 번지
게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 나는 홈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홈스, 이런 이야기를 정말 중요한 과학 문제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례가 될지는 모르
겠지만 취미삼아 물리 문제에 흥미를 가진 홈스 박사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겁니다. 100만 분
의 1초 정도의 오차! 인간이 도저히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나타난다는
길이의 수축 현상! 홈스, 새로운 물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우스운 게임에 지나지 않아요. 상대성
이론의 발명이 획기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현상에 적용하면 한 푼어치의 차이도 없잖습니까?"
홈스가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주말에 배달된 잡지를 뒤적이면서 지난주의 피로를 풀고 있었
다. 나는 의학 잡지를 읽고 있었지만 홈스는 돈을 주고 사기도 아까울 정도로 저질인 주간지를
읽고 있었다.
"왓슨, 그것 참 좋은 지적이네. 사람들 사이의 소문도 그와 비슷하게 퍼져나가지?"
홈스는 테이블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는 '반체제주의자들, 파업 기도'라는
큰 제목 밑에 '당신의 친구도 비밀조직원일 수 있다!'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 기사 밑에는 뾰족 모자를 쓴 험악한 표정의 남자가 둥근 폭탄 위에서 성냥불을 켜고 있는 만
화가 실려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반체제주의라는 흑사병을 앓고 있는 것 같지 않나? 물론 사실은 아니겠지만
반체제주의자와 모략에 대한 소문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네. 그런 소문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조
금씩 과정되기도 하는데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그런 소문에 깜빡 속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야. 어
제는 경찰청에서 이런 난국을 해결하도록 도와달라는 간굑한 편지를 받았다네. 도대체 누가 그런
반체제주의자일까? 과연 그런 사람이 정말 있기는 있는 걸까? 어쩌면 소수의 학생들이 익명으로
신문에 편지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겠지. 왓슨,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
바로 그 순간에 전보 배달 소년이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아주 중요
한 전보를 가지고 왔다는 표정이었다.
"경찰청에서 홈스 씨에게 보내는 전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일요일에 무슨 전보람!"
그는 전보를 펼치면서 중얼거렸다.
"왓슨, 정말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모양이네."
전보를 읽고 난 그는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서 말하고, 배달 소년에게 6펜스짜리 은화를 주었다.
"고맙네, 젊은이. 아, 됐네, 인사는 그만두게."
소년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는 전보를 내게 보여주었다.
"[타임스]에 새로운 협박 편지. 화요일에 런던 중심에 솜화약 10만 파운드의 파괴력을 가진 폭탄
이 터질 것이라고 함. 도움을 바람. 안데일로부터."
내가 큰 소리로 전보를 읽었다.
"안데일은 경찰청에서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라면 그런 정도
의 협박에 속지는 않을 거야. 협박 편지를 쓴 사람도 어지간히 순진한 모양이군. 자신의 편지가
월요일에 공개되면 화요일에는 놀란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갈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렇지
만 [타임스]는 그 편지를 월요일에 공개하지 않을 걸세."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해보게, 왓슨. 만약 자네가 엄청난 양의 폭약을 런더능로 가지고 오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
나?"
나는 잠시 생각했다.
"홈스,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우선 기차를 탈취해서 폭약을 싣고 난 다음에 아
침 일찍 도착하는 우유 배달 기차처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기차로 가장해서 런던 역에 들어
오면 되겠지요. 우유통 속에 정말 우유가 들어 있는지 아니면 폭약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할 사람
은 없을 테니까요."
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왓슨, 기막힌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을 것 같군. 신호수의
도움을 받아서 선로를 봉쇄해버리면 그 기차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겠지! 더욱이 성공을 하더라
도 그런 식으로는 기껏해야 수백 톤의 폭약을 옮길 수 있을 뿐이지.
나 같으면 바지선을 이용하겠네. 사람들은 템스 강을 오르내리는 많은 수의 바지선에 익숙하기
때문에 아무도 바지선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바지선에는 1,000톤 정도의 화
약을 쉽게 실을 수가 있지. 더욱이 바지선을 이용하면 런던의 중심가에 훨씬 더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을 걸세. 원한다면 의사당 바로 옆까지 갈 수도 있겠지. 나는 그런 계획을 심각하게 검토
할 것 같네. 그렇지만 10만 톤이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야. 그런 엉터리 협박범을 즐겁게 해주려고
내 일요일을 망치고 싶지는 않군."
나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렇지만 솜화약보다 훨씬 더 강력한 폭약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왓슨, 지금까지 알려지니 폭약 중에서는 솜화약이 가장 강력하다고 알고 있네. 그렇지만 만약을
위해서 화학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래야 자네는 물론이고 내게 탐정 면허를
준 경찰청을 안심시킬 수 있을 테니까. 대영박물관에 있는 애덤스 박사가 좋을 것 같군."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박물관 지하에 있는 애덤스 박사의 서재로 찾아갔다. 그러나 혼자서 방을
지키고 있던 젊은 조수는 우리를 보자 흥분해서 물었다.
"캔비 아일랜드 오신 분들입니까?"
그러더니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자 그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
다.
"방금 아주 훌륭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우라늄 조각품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그가 말한 조각품은 바로 옆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젊은이는 바로 우리가 그 조각품의
신비로운 특성을 발견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에 이상한 나무 상자가 조류를 따라서 캔비 아일랜드의 데블스 포인트라는 곳으로 흘
러왔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상자에 생겨진 기호를 분석해보았더니 브라질에서 흘러온 것 같
은데 그 상자 속에 이 조각과 똑같은 것이 들어 있답니다. 이 조각품처럼 오목하지 않고 볼록하
게 튀어나온 점이 다를 뿐이라는군요.
만약 두 조각품을 함께 붙이면 완벽한 공 모양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두 조각품이 함께 제작되
었거나, 아니면 둘 중의 하나를 주형으로 사용해서 다른 것을 만들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첫 조각
품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번에 발견된 것이 정말 브라질에서 흘러온 것이라면 고고학
적으로도 중요한 의마가 있을 겁니다."
홈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이는 설명을 계속했다.
"애덤스 박사님은 지금 외출 중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발견된 조각품을 이리로 옮겨오도
록 조처를 했답니다."
"애덤스 박사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그럿이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이 조각품이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에
너지를 방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이 박물관에 근무하는 화학자들은 모두 이 조
각품에서 방출되는 무한한 에너지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임피리얼
대학의 챌린저 교수께서 우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자신이 그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애덤스 박사님이 그곳으로 갔습니다. 박사님이 돌아오시면 어떻게 전
해드릴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우리도 챌린저 교수를 잘 알고 있답니다. 우
리가 임피리얼 대학교로 가서 두 사람을 모두 만나겠습니다."
홈스와 나는 곧 그곳을 떠났다.
우리가 챌린저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는 날카로운 목소리의 서멀리 교수가 터져버릴 것
같은 바리톤의 챌린저 교수와 격렬한 노쟁을 벌이고 있었다. 문으로 다가가자 서멀리 교수의 목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챌린저 교수, 단순히 식을 맞추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상적인 것과 물리적인 실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신이 그런 가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야기는 독일의 유명한
수렵가 바론 문히하우젠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챌린저 교수의 분노한 고함이 터져나오자 홈스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방에는 챌린저 교수와 서
멀리 교수 그리고 애덤스 박사가 함께 앉아 있었다. 챌린저 교수가 우리에게 말했다.
"잘 와주었습니다, 홈스, 왓슨 박사. 내가 기다리던 학생들은 아니지만 공짜로 배우기에 아주 좋
은 시각에 도착했군요.
지난번에 내가 설명해준 것을 기억하겠지요.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가 빛
의 속도에 접근하면 에너지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엄밀하게 말하
면 속도가 느린 경우에도 에너지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단순한 뉴턴 이론은 오차가 아주
작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옳은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속도가 대단히 큰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속도에 접근하게 되면 운동량도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서멀리 교
수와 나는 이런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쓸데없는 논쟁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논쟁이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챌린저 교수가 머리를 흔들었다.
"정확한 계산 결과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답니다.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
주 미묘한 의견 대립이 있을 뿐이지요."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끔찍하게 느껴졌던 복잡한 계산과 대수학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과학을 적당히 이해하기는 아주 쉽다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어려운 계
산 때문이 아닙니까?"
챌린저 교수는 가슴을 내밀고 말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성적인 해석이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해석이 과
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수학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지만 아주 골치 아픈 고생을 하지 않더라도 과학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설명하려고 하는 문제는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서멀리 교수를 잠시 쳐다보더니 곧 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어떤 물체의 속도가 비츠이 속도에 근접하게 되면 더 이상 가속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서멀리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이유에선가
물체의 질량 자체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물체의 겉보기 질량, 즉 관찰자가 보는 속도의
함수로 표현되는 '가상 질량'을 고려하면 그렇다는 거지요."
그는 우리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인지 책상을 쾅 두드리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설명하겠습니다. 질량이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수학적인 식으로만 나타
나는 공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질량과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같은 양이어서 움직임 때문에
나타나는 운동 에너지 자체가 질량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엉터리군요!"
서멀리 교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렇지만 챌린저 교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집어들었다. 그때까지는 평범하게 생긴 그 상
자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었다.
"내 주장을 증명할 아주 묘한 장치입니다. 교수님께서 적접 시헙해보시겠습니까?"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 상자를 서멀리 교수에게 주었다.
서멀리 교수는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에 버튼을 눌러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의 뚜껑이 벌
컥 열리더니 갑자기 스프링 끝에 매달린 광대 모양의 인형이 튀어나와서 정확하게 서멀리 교수의
코를 쳤다.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으로 서멀리 교수는 깜짝 놀랐고, 챌린저 교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린 학생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서멀리 교수가 외쳤다.
"챌린저 교수! 이제 무슨 장난입니까?"
"예,예,설명해드리지요. 교수님께서는 그 상자가 스프링에 달린 인형이 들어 있는 평범한 것이라
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이 장치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상자를 집어들고 말을 계속했다.
"보다시피 내가 인형을 다시 상자 속으로 집어넣은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프링이 늘어
난 상태 그대로 넣을 수도 있고, 인형이 다시 튀어나올 수 있도록 스프링을 눌러서 넣을 수도 있
지요. 물론 스프링을 눌러서 넣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는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서멀리 교수님, 이제 상자가 닫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물로 ㄴ이 상자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이 상자를 일정한 속도로 가속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상자 속의 스프링이 눌령 있거나 풀려 있거나에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상자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가 일정할 테니까 상자 전체의 질량도 변화가
없을 겁니다."
"존경하는 서멀리 교수님, 그렇다면 이 상자가 바로 영구기관이라는 훌륭한 장치가 되는 셈입니
다! 인형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도록 방향을 잡은 다음에 스프링이 눌려진 상태로 뚜껑을 닫은 상
자를 빛의 속도에 아주 가깝도록 가속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상자 전체의 움직임에 대한 기준틀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이 장치의 뚜껑을 열더
라도 상자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야만 하겠지요. 그렇지만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상자에 붙어 있는 스프링은 인형을 가속시키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
문에 스프링에 저장해두었던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게 되겠지요. 모멘텀을
생각해도 마찬가지 결론을 얻게 됩니다!"
서멀리 교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입 속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모양이었지만 무슨 말인
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서멀리 교수님, 그런 영구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챌린저 교수는 연구실 한쪽의 책꽂이에 있는, 다음 그림과 같은 장치를 가리키면서 계속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보내준 발명품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평가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씩 신기한 장치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엉터리지요. 이 장치의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오른쪽의 공은 왼쪽의 공보다 회전축으로부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게 됩니다. 물론 이 장치는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
리 모든 힘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장치에서는 회전축의 양편에 작용하는 반작용이 존재하지 않아서 모멘텀 보존의 법칙
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몇 개의 날개가 달려 있는 복잡한 회전장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장치가 작동되면 위쪽으로 양력이 생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장치를 접시 저울 위에
놓아두면 접시가 오르내리기는 하겠지만 평균 무게가 조금 작아질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연구실 가까이에 있는 하이드 공원에 가보면 이런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사
람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답니다. 서멀리 교수님, 그런 사람들의 가두 연설을 듣고 설명해주실 용의
가 있으십니까?"
그는 말을 멈추었고, 서멀리 교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만약 스프링이 눌려진 상태의 상자를 가속하는 것이 더 어렵다면, 그것은 바로 상자 속의 스프
링을 누르면 상자 전체의 질량이 증가한다는 뜻이 됩니다. 원자의 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자만 스
프링에 저장된 에너지가 여분의 잘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스프링이 눌린 상태로 들어 있는 상자
는 그렇지 않은 상자보다 가속하기가 조금 더 어렵게 되지요. 그래서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더
큰 모멘텀이 더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넣어준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영구기관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
서 나는 오컴의 면도날의 원리에 따라서 에너지와 질량은 실제로 같은 것이지만 서로 다른 모양
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답니다."
서멀리 교수는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참 후에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챌린저 교수,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가 옪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그렇게 기막힌 주장을 하
려면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햐만 할 겁니다."
챌린저 교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존경하는 서멀리 교수,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창틀 위에 놓여 있던 엉터리같이 생긴 또다른 장치를 가리켰다. 작은 바람개비를 전구처럼
생긴 유리속에 넣어든 장치였다.
"전자기파가 힘이나 압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맥스웰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물론
그런 사실은 실험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장치의 경우에는 회전축의 양쪽에 같은 정도
의 햇빛이 닿기 때문에 바람개비가 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볼록 렌즈로 만든 돋보기를 사용하
면..."
그는 커다란 돋보기를 창문 옆으로 가지고 가서 햇빛이 바람개비의 한쪽에 모여지도록 했다. 놀
랍게도 바람개비가 서서히 돌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그 속도가 빨라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감탄하면서 소리쳤다.
"맙소사, 정말 신기하군요. 적도 부근의 돌드럼 해역에서 좌초한 배도 햇빛을 반사하는 재질로
직각이 되도록 하기만 하면 심술궂은 바람을 이기고 배가 움직일 수 있게 되겠는데요!"
챌린저 교수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방법으로 생기는 힘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주 작습니다. 이
장치가 작동하는 이유는 유리통의 내무가 진공이기 때문이지요. 병 속에 공기가 들어 있으면 공
기 저항 때문에 회전 운동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창문 반대쪽에 있는 칠판으로 다가가서 도형과 식을 썼다.
"이것은 밀봉된 금속 튜브인데 지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떠 있다고 합
시다. 바람도 없고 중력도 없기 때문에 어떤 힘도 미치지 않는 곳에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움
직이지 않는 상태로 있게 되겠지요. 그렇기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이것을 움직이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 튜브 속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무거
운 물체가 들어 있다고 합시다. 만약 그 물체가 왼쪽으로 움직이면 튜브는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
여야겠지요. 그래야만 물체와 튜브의 무게 중심이 일정한 위치에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이제 튜브의 한쪽 끝에 자전거 전조등과 같은 장치가 붙어 있다고 합시다. 전지와 전구 그리고
반사경으로 만든 전조등 말입니다."
그는 칠판에 그 모양을 그렸다.
"전조 등의 불을 잠깐 동안 켜면 그 빛이 튜브의 반대쪽에 있는 검은 천에 흡수됩니다. 그런데
빛이 비치게 되면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불이 켜지는 순간에 반사경은 왼쪽으로 조금 밀려나게
되겠지요."
서멀리 교수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그렇지만 그 빛이 다시 반대쪽에서 흡스되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힘이 오른쪽을 향해서
생기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 때문에 왼쪽을 향한 힘이 발생한 후에 어느 정도
의 시간이 지나야만 오른쪽으로 향한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 동안에는 튜브가 약간 왼쪽으로 움
직입니다. 튜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가 옮겨가는 현상은 정확하게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이는 것과 같지요. 순수한 에너지가 질량과 같은 효과를 타나내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빛의 형태로 나타나는 에너지만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지 않지요. 어떤 형태의 에너지로도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화학 반응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도 있고, 회전하는 바퀴를 사용할 수도 있으며, 스프링에 저장되어 있는 에너
지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튜브의 오른쪽에서는 빛을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너지는 어떤 형태이거나에 상관없이 그것에 대응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사고실험을 이용하면 질량과 에너지의 비, 즉 1킬로그램의 질량에 대응하는 에너지가 몇
줄이가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빛의 에너지와 모멘텀의 비는 맥스웰의 법칙과 실제 실험으로부터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요. 모멘텀은 에너지를 빛의 속도로 나눈 겁니다."
그는 설명을 하면서 칠판 위에 그 내용을 휘갈겨 썼다.
"빛의 속도를 c라고 하지요. 튜브의 길이가 L이라면 빛이 튜브를 가로질로가는 데 걸리는 시간
은 L을 c로 나눈 값이 됩니다. 그리고 튜브의 질량이 M이라면 튜브가 움직이는 속도는 빛의 모
멘텀을 M으로 나누어서 얻어집니다. 그래서 빛의 에너지가 E라면 튜브가 움직이는 속도는 E를 c
로 나누고 다시 M으로 나눈 값이 되지요.
그래서 튜브는 d만큼의 거리를 움직이게 되는데..."
그는 칠판에 식을 썼다. 나는 머리가 어지럽게 느껴져서 말했다.
"대수학입니까?"
"잠까만, 우리는 물리에서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식을 유도하고 있는 중이라오. 곧
밝혀지겠지만 현대 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지요. 박사, 이번 한 번만 참아봐요. 이제 실제 질
량이 m인 물체를 튜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 튜브가 같은 거리 d를 움직인다고 합시
다. 그 질량 m은 M 곱하기 d 나누기 L로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질량이 에너지를 빛의 속
도의 제곱으로 나눈 것과 같다, 즉 m=E/c^2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의 설명을 들은 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어진 에너지와
대등한 질량은 엄청나게 작겠군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도 결국은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
는 이론적인 결과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이론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로군
요!"
"무슨 말이오? 박사. 이 식에서 c의 제곱을 다른 쪽으로 옮겨서 다시 써보지요."
그는 칠판에 마지막으로 한 줄을 더 썼다.
"주어진 질량에 대응하는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이 되죠. 즉 E=mc^2이
되지요. 이 식에 의하면 물 1킬로그램은 10의17승 줄의 에너지에 해당합니다. 그양은 웨일스 지방
에 있는 탄광에 매장된 석탄에서 얻을 수 있는 전체 에너지보다도 더 많은 것입니다."
서멀리 교수는 코방귀를 뀌었다.
"조금 전에 당신은 내가 영구기관을 믿는다고 모함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물에서 에너지라니
요! 챌린저 교수, 만에 하나라도 당신 이야기가 옳다고 합시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
겠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물질로부터 꺼낼 수 있는 가를 아
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서멀리 교수. 내가 알기로는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 바
로 그런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말을 마친 챌린저 교수는 애덤스 박사를 쳐다보았다. 애덤스 박사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간
신히 말을 했다.
"맞습니다, 챌린저 교수. 나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겪었던 사소한 일이 그
렇게 중요한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향해서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신비로운 조각상의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지요.
첫째 문제는 그 조각상이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거의 무한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것 같
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는 조각상 속의 우라늄 원자가 스스로 원자량이 적은 다른 원소로 변해버린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방출되는 원자보다 더 작은 이상한 입자들의 질량을 고려하더라도 질량이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조슴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제 그 두 가지 문제가 모두 설명이 됩니다. 우리가 원자핵의 질량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사실
은 결합 에너지에 해당합니다. 결합 에너지는 장난감 상자 속의 눌린 스프링처럼 전하를 가진 입
자들을 서로 붙잡아매는 결합에 저장된 에너지입니다.
원자핵이 파괴되면 양전하를 가진 알파 입자들이 마찬가지로 양전하를 가진 원자핵으로부터 퉁
겨나가버리기 때문에 가벼운 원자핵만 남게 되지요. 결합 에너지가 알파 입자의 운동 에너지로
바뀐 셈입니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었다는 표현이 더 쉬운 표현일 수도 있겠지요. 교수님, 교수
님이야말로 정말 천재입니다."
챌린저 교수는 당연한 말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에게서 겸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
다.
"나는 단순히 천재가 아니지요. 나는 우리의 생활을 상상도 하루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의 존재를 밝혀냈습니다. 바로 무한한 에너지원을 발견환 겁니다."
애덤스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그런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
습니다.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조각상의 우라늄이 붕괴하는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질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수천년이 걸릴 정도지요. 그 조각상은 광산에서 얻을 수 있는 우라눔보다 더 빨리
붕괴하는 특별한 종류의 우라늄으로 만든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조각상에서 시료를 조금 채취해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떼어낸 시료를 강한 열이나 강
한 산으로 처리해도 붕괴 속도가 바뀌지 않았고, 전기를 이용해도 붕괴 속도를 변화시킬 수 없었
습니다. 그리니까 쓸모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얻을 정도로 붕괴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멀리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입자들을 붙잡고 있는 힘은
보통의 화학 결합돠 엄청나게 강하겠지요. 열을 가해서 그런 결합을 끊으려고 하는 것은 오줌 줄
기로 거대한 전투함을 침몰시키려는 것과 같을 겁니다."
그렇지만 챌린저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인지 자신있게 말했다.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총이 있지요."
서멀리 교수가 즉시 반박했다.
"말도 안 됩니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가를 계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만..."
"그런 에너지는 엄청나답니다. 사실 그런 정도의 에너지는 엄청난 위력으로 폭발하는 원자핵에
서 얻을 수밖에 없지요."
챌리저 교수는 간단하게 대응했다.
"자전거 선수가 언덕에서 굴러내려오면서 얻은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더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높이의 언덕을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마찰이나 공기 저항을 무시하
고 말입니다. 마찬가리로 원자핵에서 퉁겨나온 알파 입자의 에너지는 알파 입자가 다른 원자핵으
로 충분히 접근해가는 게 필요한 정도의 에너지가 됩니다.
서멀리 교수, 달리 말하면 일종의 전염 효과와 같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라늄 덩어리가 충분
히 커서 방출된 알파 입자의 대부분이 우라늄 덩어리를 벗어나기 전에 다른 우라늄 원자핵과 충
돌하게 되면 열이 방출되는 속도도 증가할 겁니다. 그 열을 이용해서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릴
수 있겠지요. 온 인류가 영원히 저에게 감사할 겁니다..."
그는 아주 오만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홈스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음산하게 들리는 외마다 소리를 지르고는 미친 사람처럼 방에서 뛰어나갔다. 그
는 엑스비션가로 뛰어가더니 지나가는 마차를 급하게 세웠다. 나도 헐레벌떡 따라가서 겨우 마차
에 함께 뛰어오를 수가 있었다.
"10분 내에 과학관까지 우리를 데려다주면 금화 하나, 아니 다섯 잎을 주겠소. 사람의 생명이 달
린 일이오!"
그는 놀란 마부에게 소리쳤다. 다행히 그 마부는 눈치가 빨랐다. 그는 말에게 채찍질을 해서 전
속력으로 서펜타인 연못을 건너갔다. 주변에서 산보를 하던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홈스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정신적인 발작에 대한 대처 방
법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점이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홈스, 무슨 일인가 말해보세요."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홈스는 그런 나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나? 왓슨. 전염 인자! 조각상의 반쪽은 상당한 상호 전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크기
야. 붕괴하는 원자들이 방출하는 알파 입자들은 다른 원자들의 붕괴를 일이킬 수 있다고 하지 않
았는가!
만약 두 개의 조각상을 붙여서 하나로 만들면 전염 인자가 1보다 커질 수도 있겠지. 그러면..."
"전국적인 유행병이 되어버리겠군요!"
내가 감탄하여 소리쳤다.
"그렇지, 왓슨. 전염병이 번지들이 점점 더 많은 원자들이 분열되겠지. 그런데 이 전염병은 잠복
기가 없어서 측정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엄청나게 번져버리네. 1초도 안 되는 시
간에 모든 원자들이 붕괴되어버리겠지. 조각의 질량 중에서 상당한 부분이 에너지의 형태로 바뀌
게 될 것이고, 그 위력은..."
"수십만 파운드의 솜화약의 위력에 해당하겠군요."
내가 놀라서 말했다. 엄청난 공포가 엄습해오는 동안에도 홈스는 마부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홀본 박물관 자라에서 번지기 시작한 엄청난 폭발과 화염
때문에 하이드 공원 건너편의 훌륭한 호텔이 산산이 부서지고 벽돌 조각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
는 것 같았다.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심한 사람들도 죽거나 다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엄
청난 재난을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런 대학살이 시작되면 인류 역사의 어떤 전쟁
에서 희생된 규모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가 특별히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
로 떨고 있었다. 홈스는 마차 삯을 내는 것도 잊어버리고 박물관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마부의
욕설에 상관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는 서둘러 지하실로 내려갔지만, 방에는 조각상도 없었고 조수도 없었다. 흰 가운을 입고 있
는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조각상과 우리가 아침에 만났던 젊은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주 중요한 용건이
있습니다."
홈스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캔비 아일랜드의 데블스 포인트에 갔습니다. 그 친구는 두 개의 조각상이 정확하게 서로 맞는
가를 알아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런데 데블스포인트에서 조각상을 이곳으로 옮겨오
는 일이 지연되었습니다. 초조해진 그 친구가 관장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 조각상을 가지고 펜
처치가의 역으로 갔습니다."
홈스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리를 태우고 왔던 마부는 박물관의 수
위와 언쟁을 하고 있었다. 홈스는 한 움큼의 금화를 꺼내서 그에서 보여주었다.
"12시 10분발 기차를 탈 수 있도록 펜처치가의 역까지 데려다주면 원하는 만큼 드리겠소!"
마부는 돈을 쳐다보더니 마차에 뛰어올랐다. 우리는 유스턴가를 달려서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
리가 울리는 순간에 펜처치가에 도착했다. 역무원이 소리치는 것도 무시하고 서둘러서 간신히 출
발하고 있는 기차에 뛰어오를 수 있어싿.
그 기차는 객차들 사이에 연결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객차를 살펴볼 수는 없어싿. 홈스는
시계를 보더니 입슬을 깨물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젊은이가 이 기차의 어디엔가 타고 있다면 쉽게 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먼
저 출발한 기차를 탔다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하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야기의 증거는 모두 간접적인 것뿐이었다. 그런 주장을 하던 두 사람
이 모두 극심한 과대 망상증에 함께 감염되어서 똑같은 공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챌린저 교수가 우리를 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자 다금
한 느낌이 조금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캔비 아일랜드의 작은 역에서 내린 것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고, 아침에 만났던 젊은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홈스는 역장에게로 달려갔다.
"데블스 포인트가 어느 쪽입니까?"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팔을 들어 보였다. 기차역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바닷가에
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 긴 모래톰이 있었고, 그 끝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먼 곳으로 직접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서두르게, 왓슨. 아직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
바로 그 순간에 태양보다도 더 밝은 무시무시한 섬광이 번쩍하면서 순간적으로 내 눈이 멀어버
렸다. 우리가 손을 더듬어서 서로의 팔을 잡고 몸을 지탱하지 않았다면, 수초 후에 몰아닥친 엄청
난 진동에 휩쓸려 넘어져버렸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서서히 시력이 회복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불그스름하게 보였고, 바
닷가에서는 끓어오르는 구름이 보였다. 그 구름은 서서히 저녁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고, 밑
에서는 길쭉한 뭉게 구름이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구름의 전체 모습은 독성이 아주 강한
독버섯처럼 기괴했다. 조금 전가지 데블스 포인트였던 곳의 바닷물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여싿. 바로 옆의 해변에는 거대하게 부서지는 파도가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파도라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파도가 갑자기 흠터져버렸다.
"마침내 우리가 자네의 코끼리 발을 찾은 셈이군. 왓슨."
나는 어리둥절해서 홈스를 바라보았다. 사고가 난 다음날 우리는 베이커가의 사무실에서 사고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있었다.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정부는 신속한 조처를 취한 모양이
었다. 플리트가의 모든 신문이 탄약을 적재한 배가 데블스 포인트에서 좌초하여 폭발했다는 꾸며
진 이야기를 믿는 모양이었다. 그런 소문을 믿지 않은 편집인들은 아예 아무런 기사도 싣지 않았
다. 그렇지만 아무도 범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왓슨, 자네는 소설이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으라고 했지? 그리고 코끼
리가 자네 발을 밟지 않는다면 집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절대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
지.
결국 자네는 새로운 물리 전부에 대해서 상당한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렇
지만 이제는 새로운 이론을 직접 눈으로 확인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발명이 아주 중요한 결과
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확실한 경험을 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홈스, 그렇지만 아직도 모든 것을 믿기는 어렵습니다. 빛의 속도는 어떤 기준틀에서나 일정하다
는 고전 물리의 작은 문제에서 파생된 결과 치고는 너무나도 엄청나군요."
홈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왓슨, 내가 자주 말하지 않았던가? 레스트레이드 형사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겨버렸을 사소
한 실마리가 단순하게 보이는 사진 전체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로 중요한 경우도 많다네. 이제 아
주 단순하게 보이던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되었다.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문제 하나가 해결
되면서 우리의 생각 전부가 바뀌게 되지 않았나?"
"이번 사건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힙니다. 그런데 무한한 에너지원을 찾으려는 챌린
저 교수의 꿈이 정말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시간이 걸리겠지, 왓슨. 우선은 조각상이 파괴되어버렸으니 그런 독특한 우라늄을 다시 찾아내
거나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릴 거야.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네. 전염 인자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번질 수 있는 것 같네. 전염 인자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번질 수 있다고 그랬
지? 마찬가지로 우리늄에 서 유용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려면 우선 전염도를 1에 아주 가깝도
록 만들어야만 하네. 0.99 정도로 말이지.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어제 보았던 것과 같은 폭발
가능성이 있을 테니까 나라도 그런 시설 근처에 살고 싶지는 않을 걸세. 그래서 그런 시설을 설
계하려면 현재보다는 훨씬 신뢰도가 높은 기술이 필요할 거야."
우리는 편안한 기술이 필요할 거야."
"홈스, 지금까지의 사건을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니 정말 내 정신이 온전한지 모를 지경이에요. 앞
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새 물리 때문에 더 이상 놀라는 일이 없었으면
합시다. 이상한 현상을 이해하려고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으니까요."
9. 불충스러운 하인
"바다에서 발생한 불가사의한 실종사건! 메리 셀레스티호 사건보다도 더 이상한 사건입니다. 이
기사를 읽어보세요!"
베이커가의 모퉁이에서 신문 판매원이 신물을 파고 있는 모습은 정말 모범적이다. 그 사람은 그
날 신문의 톱 뉴스가 재미없으면 신문 어느 구석에서라도 흥미로운 기사를 찾아내어 큰 소리로
알리기 때문에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그 사람의 유혹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기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메리 셀레스티호 사건의 기억 때문에 해상에서 일어
난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
한 나는 동전을 주고 신물을 사서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열심히 살펴보았다.
소형 범선인 알리시아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사는 황당할 정도로 간단했다. 일주일쯤 전
의 어느 맑은 날 아침에 시 이글호는 10여 마일 떨어진 곳에서 알리시아호가 안개 속을 항해하고
있는 모습을 목겨했다. 안개는 그리 넓지 않은 지역에 퍼져 있었는데 알리시아호가 영원히 사라
져버렸다는 것이다. 시 이글호는 아침 해가 떠올라가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부근 해역을 훑어보
았지만 어디에서도 알리시아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알리시아호의 갑판에서 떨어진 것으
로 보이는 잡동사니와 알리시아호의 마크가 새겨진 구명대를 찾았을 뿐이었다. 시 이글호는 항구
로 되돌아와서 이상한 사건을 당국에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전부었다.
"홈스, 아주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말했지만 홈스는 나를 쳐다보기만 하고 내가 내미는 신문은 받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 이글호의 이상한 사건 말이군. 벌써 오늘 아침 [타임스]에서 읽었네."
"[타임스]의 기사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마감 시간에 쫓겨서 속보를 실으려고 너무 서둘렀던 모
양이군요. 여기 석간에는 더 정확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사라진 배를 알리시아호이고, 시 이글
호는 그 사고를 목격했을 뿐이랍니다."
홈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타임스]에도 그렇게 보도되었지. 그런데 둘 중의 어느 것이 사라졌다고 했지요. 사고를 목격
한 배였나? 아니면 다른 배였나? 배가 실종된 것은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
잖나? 이상하게도 보이는 것은 시 이글호가 겪었던 일이겠지."
"그런데 맑은 날씨에 잔잔하고 깊은 바다에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에야 그의 말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홈스, 만에 하나라도 시 이글호의 선장과 선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홈스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게, 왓슨. 존경하는 영국의 해운가를 해적으로 몰거나, 시 이글호의 선원들이 함께 항해
하던 배를 침몰시켰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다만 두 배의 운명이 서로 상관이 없다고 생
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사건도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라네. 사실은 오늘 아침 자네가 나간 후에 챌
린저 교수가 들러서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네. 챌린저 교수 말에 의하면 알리시아호
정도의 배를 한 번에 삼켜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 있다고 하더군. 해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해일은 주로 바다 밑에서 일어나는 지진에 의해서 생기기도 하고, 조류가 해저의 계곡이나 산맥
과 부딪쳐서 생기기도 하지만, 단순히 통계적인 우연에 의해서 생기기도 한다는군."
"그렇지만 근처에 있던 시 이글호는 그런 거대한 파도를 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챌린저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두 파동이 서로 합쳐지는 방법은 보통의 물체가 합쳐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네. 하나의 사과와 또 하나의 사과를 합하면 두 개의 사과가 되지. 그렇지만 바
다에서 생기는 두 파도를 생각해보게. 두 파도는 두 개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서로 겹쳐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파도로 보이기도 하잖나. 더 이상한 경우도 생길 수가
있지. 한 파동의 골이 비슷하게 생간 다른 파동의 마루와 겹쳐지면 수면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
이지 않게 된다네. 두 파동이 서로 상쇄되어버린 셈이지.
챌린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두 개 이상의 파도가 서로 스쳐지나가거나 갈로질러가면, 어느 곳
에서는 파도가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곳에서는 골이나 마루가 서로 겹쳐져서 큰 배를 삼켜
버릴 정도로 큰 파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군."
나는 그의 설명에 코웃음을 쳤다.
"아주 훌륭하게 꾸민 이야기 같군요, 홈스. 언제나 그렇지만 신문 판매원이 나보다 뛰어난 이유
를 알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사건이 메리 셀레스티호 사건만큼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정말 불가사의한 사건이라는 말이지요. 당신도 셀레스티호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
지요?"
"그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불가사의하다고 하는 점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 선장과 그
가족을 포함해서 몇 명이 타고 있던 배가 표류하고 있었는데, 화물은 모두 그대로 있고 구멍 보
트와 항해 장비만이 없어졌어. 이런 사건에 대해서 가능한 설명은 모두 일곱 가지가 넘네.
나는 어렸을 때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탐정 일에 흥미를 느꼇다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아주 어려운 사건이지만 그 배를 직접 볼 수 있었더라면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을
거야. 요즘에는 사건과 관련된 한 점의 옷이나 휴대품에서도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많
아졌지. 하물며 항해하는 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많겠나? 로프와 그릇과 항해 장비
의 위치까지도 모두 중요한 단서가 되었겠지. 그 배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만 있었다면 그 배의
역사를 책을 읽는 것처럼 볅혀낼 수 있었을 걸세."
"그 사건에 대한 책을 쓸 걸 그랬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그 사건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읽은 적
이 없는데 말입니다."
홈스는 파이프에 담배를 담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 배가 공업용 알코올을 운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실마리
가 되겠지. 그러니까.."
바로 그 순간에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홈스는 벌떡 일어나서 재빠른 동작으로 창 쪽으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타고 온 마차를 보면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왕실 문
장을 가린 사륜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일반 승객용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보다 지위도 높고
용무가 급한 경우도 많다네."
내가 문을 열자 문 앞에는 수수한 민간인 복장이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군인 냄새가 물씬 풍기
는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절도 있게 인사를 했다.
"제임스 팔커크 근위대장입니다."
"왕실의 소환장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제 스스로 찾아온 겁니다. 죄송스럽지만 두 분께서는 이 나라의 충성스러운 시민으로
서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사실에 대하여 신중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서약해주시기 바랍니
다."
나는 그의 무례한 요구에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러나 홈스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왕궁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사람이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숨이 막혀버렸다.
"혹시..."
그는 내 엉뚱한 짐작을 알아챘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왕실 가족이나 손님은 아닙니다. 마부가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몹시
불명예스러운 처벌을 받게 되었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젠킨스가 왕궁에서 일한 지는 10여 년 정도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남자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런 고약한 문제 때문에 주방에서 일하던 하녀가 해고되었습니다. 그 하녀는 상대 남자가
누군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젠킴스가 아이의 아버지임이 밝혀지게 되
었습니다.
젠킨스는 때늦게 그녀에 대해서 얄팍한 책임감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생활비를
대주려고 했지요. 그렇지만 그는 무척 가난했습니다. 예날에 경마장을 드나든 경험이 있었던 그는
노름으로 그 돈을 벌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흔히 그런 것처럼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마저
노름판에서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후에 그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플리트가의 형편없는 기자 세 사
람에게 접근해서 왕실의 생활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 왕실에 흥미로운 소문이 있
는 것 같은 암시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다음날 아침에 그런 음모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내게 그런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를 용서해줄 수가 없었지만 그의 반성하는 모
습을 보고 그 여자와 아이를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홈스가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좋은 해결책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군요. 마음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아주
다른 문제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요구가 협박처럼 들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사람을 파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다른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추
천서를 써줄 수 없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사람은 마구간
옆방에서 스스로 머리를 쏘아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홈스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안전하게 모든 일이 끝나버린 셈이겠군요. 그런데 아직도 그 여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까?"
"탐정님, 저는 제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그 여자에게 사실을 알려주고, 지
방으로 보내주려고 합니다. 발모럴이 어떨까하고 생각 중입니다. 실제로 그 여자는 미망인이 되고
말았지만, 모든 일이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부의 자살에 대한 진실이 전부 밝혀지지 않
고 의문이 남게 되면 전례 없이 고약한 스캔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홈스가 이제야 흥미를 느낀 모양인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물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사람은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커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우선 그는 아주 희귀한 특제 총을 사용했습니다. 독일에서 제작된 그 총은 왕자님이 프로이센
의 사촌에게서 선물받은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그 사람이 자살한 곳은 베란다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마침 그가 자살을 했을 때는 여왕 페하께서 정원 파티에 초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왕실 가족들과 함께 베란다에 모여 계셨을 때였습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자살을 비밀로 감추어두기는 어려웠겠군요."
"원했다면 비밀로 감추어둘 수는 있었을 겁니다. 그 총은 무성 공기총에 가까운 것이었거든요.
손님들 중에서 총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베란다에 계셨던 여왕 폐하와 여왕 폐하의 사촌
인 몰스테인 왕 폐하뿐이었습니다."
홈스가 예리하게 물었다.
"들었다고 주장했다니요?"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베란다에는 두 분의 손님이 더 계셨는데, 그 분들은 아무 소
리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만약 그 마부가 돈을 받고 왕실의
이야기를 팔아넘겼더면 정말 창피한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마부가 자살한 것이 아니
라 누구에게 살해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왕 폐하와 폐하의 사촌께서 마부의 사
망 시간을 조작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에 총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진짜 살인범의 알리바이는 쉽게 증명이 될 테니까 밀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왕실 가족이 살인을 했다는 것을 물론이고 폐하께서 범
인을 은폐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장고하려는 듯이 목청을 높였다.
나는 토마스 아 베케트 대주교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런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수백 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팔커크 대장이 말을 계속했다.
"단순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왕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공식적
인 해명서를 발표하기 전에 모든 일을 한 점 의혹도 없이 완벽하게 밝혀내야만 하게 되었습니
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군요. 함께 현장에 가보도록 합시다."
홈스는 말도 안 된다고 머리를 저었다.
"내가 저렇게 엉터리로 위장한 마차로 왕궁에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 마차를 타고
돌아가고, 우리는 허름한 마차를 빌려서 가도록 하지요."
근위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황급히 문 쪽으로 가면서 물었다.
"저 마차를 그렇게 쉽게 알아볼 수 있다면,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눈치챈 사람도 있겠군요."
홈스는 놀란 근위대장의 표정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글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왕실의 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왔던
것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요. 누가 물어보면 당신의 주방에서 일하는 하녀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지요."
우리는 30분 후에 왕궁에 도착한 다음, 작은 문을 통해서 왕궁으로 들어갔고, 하인들이 다니는
긴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갔다. 길쭉한 방에는 한족 벽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창을 통해서 희미
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벽 밑에는 이상하게 생긴 총을 들고 있는 불행한 마부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방바닥에는 붉은색의 두껑누 융단이 초라한 하인 숙소에서 살던 마부가 왕족이 사용하는
훌륭한 방에서 인생을 마무히란 셈이었다.
홈스는 시신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아귀에서 총을 떼어내었다.
"독일의 유명한 맹인 총 제조공인 폰 헤르더의 작품이군요. 아주 훌륭한 총입니다. 한 번 살펴보
겠습니다."
그는 총에 탄환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공기총에 펌프질을 한 다음에 방아쇠를 잡아당
겼다. 짧고 깊게 느껴지는 격발음이 들렸을 뿐인데 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오르간 소리와 흡사한 165사이클 정도의 순수한 음정이로군요. 정말 훌륭한 총입니다. 보
통의 소음총의 소리보다 작기는 하지만 창문이 열려 있었다면 분명히 소리가 들렸을 것 같군요."
그러면서 그는 두꺼운 방범창이 장치된 창문을 살펴보았다. 두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이렇게 열려 있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청소를 하러 왔던 하녀가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녀가 시신을 발견하기 전에
창문을 열었던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그 하녀는 아직도 충격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횡설
수설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바깥에 있는 베란다를 살펴보기로 하지요."
홈스의 요구에 팔커크 대장은 우리를 옆방을 통해서 베란다로 데리고 갔다. 베란다는 난간이 둘
러져 있는 발코니로 꾸며져 있었고, 군데군데 꽃밭이 있는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내려다 보여싿.
근위대장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왕실의 정원 파티가 시작되면 주빈들이 이 베란다로 나와서 수님들을 맞이합니다. 오늘 파티에
는 네 분의 주빈이 있었습니다. 서열 순으로 말씀드리면 여왕님과 그녀의 사촌인 몰스테인 왕, 요
크 대주교 그리고 오스왈드 로턴 경이었습니다.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사와 주교와 왕과 여왕이라. 그런 분들이 졸개에 지나지 않는 사람 때문에 살인사건 용의자
가 되어버렸군요. 나는 체스 수수께끼를 좋아합니다.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분이들이 정확하게 어
느 위치에 서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근위대장은 홈스의 경솔한 표현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지만, 그의 요청에 따라 네 곳의 위치를
가리켰다. 다음 그림에 그 위치를 만화처럼 나타내었다.
"네 분이 모두 난간 바로 뒤에 서 계셨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가운데에 계셨고, 오른쪽에는 오스
왈드 경이, 왼쪽에는 주교님이 서 계셨습니다. 왕 폐하는 주교님의 왼쪽에 계셨습니다. 창문이 열
려 있었으면 네 분이 모두 확실하게 총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홈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물론 창문 하나는 닫혀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니까 만약 오른쪽 창문이 닫혀 있었다면 기
사님이 소리나는 곳에서 가장 멀리 서 있었던 셈이고, 왼쪽 창문이 닫혀 있었다면 왕 폐하가 듣
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실제로는 여왕 폐하와 왕 폐하는 총소리를 들었지만 기사님과
주교님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내더니 두 창문 사이의 간격과,
난관과 벽 사이의 걸리를 측정했다. 두 창문 사이의 거리는 대략 3미터 정도였고, 난간과 벽 사이
의 거리는 4미터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근위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의심 많은 사람이 집을 사려고 살펴보고 있는 것 같군요. 이 집을 팔련느 것이 아님을 알고 나
면 무척 실망하겠는데요."
바로 그 순간에 홈스가 탄성을 지르며 일어서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총소리가 정확하게 165사이클이었지! 왓슨. 소리는 파동이고, 그 파동은 초속 330미터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그렇다면 그 소리의 파장은 얼마겠나?"
홈스가 가끔씩 나를 너무 얕본다고 느꼈던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2미터겠지요."
"그렇네, 왓슨. 그런데 오늘 아침에 물에서 전달되는 두 파동의 마루와 골이 겹쳐지게 되면 파동
이 서로 상쇄되어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렇지만 음파는 물에서
생기는 파동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네. 음파의 경우에는 공기가 압축된 부분과 희박한 부분이 서
로 번갈아 있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압력이 최대가 되는 부분 또는 최소가 되는 부분 사이의
간격이 2미터라는 말이지.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
"한 음파의 압축된 부분이 다른 음파의 희박한 부분과 겹쳐지면 두 음파가 서로 상쇄되어버릴
것 같군요. 그렇지만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겠는데요."
홈스는 내 말에 웃음을 지었다.
"왓슨 박사, 참 단순한 생각이로군요. 여왕 폐하는 두 창문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위치에 서 계셨
네. 그러니까 파동의 마루가 두 창문에서 동시에 출발했다면 정확하게 같은 시각에 여왕 폐하가
서 계셨던 위치에 도달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두 파동은 서로 상쇄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났겠지.
그러나 기사님이 서 있었던 위치는 오른쪽 창움에서는 파장의 2.5배에 해당하는 5미터만큼 떨어
져 있었네. 그러니까 오른 쪽 창문에서 나온 파동의 마루는 왼쪽 창문에서 나온 파동의 골과 겹
쳐지게 되어서 두 음파는 정화하게 상쇄더어버렸을 거렛. 따라서 기사님이 아무 소리도 듣지 못
한 것은 당연하지."
그의 설며에 근위대장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왼쪽 창문에서 4미터, 오른쪽 창문에서 5미터 떨어져 있었던 주교님은 기사님과 같은 이유 때
문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왕 폐하가 서 계셨던 위치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왕 폐하는 왼쪽 창문에서 4미터, 오른쪽 창문에서 6미터 떨어진 곳에 서 계셨지요. 그래서 음파의
압력이 최대가 되는 부분이 함께 도착하기 때문에 두 파동이 서로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서 총
소리를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홈스의 설명이 끝나자 근위대장과 함께 말했다.
"이제는 로턴 경께서도 편히 쉴 수 있게 되었군요."
"그렇지요. 여왕 폐하의 말씀을 의심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여왕 폐하를 보로하기 위해서 당신
이 거짓말을 해서 명예를 더럽힐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기사님과 주교님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여왕 폐하와 왕 폐하는 총소리를 들은 것이 확실하고 그분들의 그런 주장
에 아무런 문제도 없지요."
파크레인 호텔의 건너편에 있는 하이드 공원 안의 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말했
다.
"홈스, 당신의 전공 분야와는 전혀 다른 수수께끼를 완벽하게 해결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왓슨, 이번 사건이 자네 생각처럼 내 전공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라네. 사실은 챌린
저 교수가 아침에 잠깐 사무실에 들렀을 때 아주 비슷한 과학 실험에 대해서 설멍을 해주었다네.
챌린저 교수는 파동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면 빛이 정말 파동인가 아닌가에 대한 서멀리 교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 챌린저 교수는 오늘 저녁 다섯 시에 시작되는 서멀
리 교수와의 공개 토론에 나를 초청하기 위해서 왔었네. 존경할 만한 지성인과 함께 자신의 승리
를 자축하고 싶은 모양이야."
그러면서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곧 공개 토론이 시작되겠군. 사실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네. 그런에 우연이기는 하지만 이
번 사건의 해결을 도와준 빚은 갚아야 할 것 같군. 여기서 가깡누 거리에 있는 벌링턴가의 왕립
학회 강의실에서 공개토론이 개최된다는데 잠깐 들렀다 가면 어떻겠나?"
우리가 강당에 들어서자 서멀리 교수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자리를 찾아려고 했지만 강당의 좌석이 심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챌린저 교
수는 강단의 오른쪽에 허리를 곧게 펴고 오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고 있던 우
리를 발견한 챌린저 교수는 반가운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전자기 파동을 전달해주는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드렸습
니다."
서멀리 교수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싿. 이제는 내 전공이 되어 버린 빛의 속도에 대한 실
험에서 그런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서멀리 교수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이 옳다는 증거는 그런 이론적인 주장뿐만이 아닙니다. 물질이 불연속적인 원
자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빛도 불연속적인 입자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두 가지의 아주 쉬
운 실험을 통해서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자를 '광자'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우선 적당히 준비한 금속 표면에 빛을 쪼여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빛
이 금속 표면을 통해서 흡수되면 그 에너지 때문에 금속 표면에서 전자가 방출됩니다. 그렇게 방
출된 전자의 수와 속도는 아주 쉽게 측정할 수 잇지요. 그런 현상을 이용해서 빛의 세기를 측정
하는 간단한 전기 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빛의 색깔을 일정하게 하고 밝기를 두 배로 증가시키면 아떤 일이 일어날까요? 내 동료
인 챌린저 교수가 주장한느 파동 이론에 따르면 방출되는 전자의 수와 속도가 모두 증가할 겁니
다. 그러나 실제로 측정을 해보면 전자의 속도는 변하지 않고 방출되는 전자의 수만 두 배로 늘
어납니다. 표면에 도달하는 광자의 수가 두 배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빛의 세기를 일정하게 하고 색깔을 바꾸어주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구에 있는 필라멘트의 온도를 두 배로 올리면
전구에서 나오는 빛의 이론에 따르면 빛의 색깔이 바뀌는 것은 빛의 파장이 줄어들기 때문입니
다. 그렇지만 내 이론에 따르면 필라멘트에서 방출되는 광자라는 입자의 에너지가 늘어나기 때문
이랍니다.
그런데 용량이 일정한 전구를 사용해서 금속의 표면에 쪼여지는 빛의 에너지를 일정하게 유지하
면서 붉은색 대신 푸른색 빛을 쪼여주는 실험을 해보면 방출되는 전자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지
만 전자 하나의 에너지는 두 배가 됩니다. 바로 그런 사실에서 내 이론이 옳다는 사실을 확실하
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설명한 실험 결과는 모두 광자 하나가 표면에 충돌할 때마다 전
자가 하나씩 방출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설명이 됩니다. 표면에 충돌하는 광자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지만 그런 광자 하나의 에너지는 두 배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실험 결과는 파
동 이론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더욱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엑스선이라는 빛을
결정에 쪼여주는 실험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반사된 빛의 색깔은 쪼여준 빛의 색깔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지만 사실은 어떨까요?"
이렇게 말한 그는 주머니에서 고무 공을 꺼내어 강강의 뒤쪽을 향해 던지고 나서 뒤쪽 벽에서
되퉁겨나온 공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강당의 뒤쪽에 있던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서멀리 교수
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이 공이 완전한 탄성체라고 합시다. 내가 퉁겨나온 공을 잡을 때의 속력을 처음의 속력과 비교
하면 어떨까요?"
서멀리 교수는 손을 번적 든 학생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고, 그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
했다.
"퉁겨나온 공의 속도가 조금 느릴 겁니다, 교수님. 벽은 무한히 무겁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습
니다. 그러니까 벽이 약간 뒤로 후퇴하면서 공의 에너지를 빼앗기 때문이지요."
서멀리 교수는 격려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강연대 밑에서 럭비 공을 꺼내더니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챌린저 교수에게 주었다.
"교수님께서 직접 이 공을 수직으로 던져올려주시겠습니까?"
그리고는 강단의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챌리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멀리 강단의 반대쪽
으로 걸어갔다. 챌린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멀리 교수의 요청대로 공을 던져올렸다. 서멀
리 교수는 럭비 공이 최고의 높이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무 공을 힘껏 던져서 정확하게
럭비 공을 맞추었다. 서멀리 교수가 50년 전 어린 시절에 훌륭한 투수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
다. 럭비 공은 고무 공의 충격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고무 공이 럭비 공에 맞은 후에
조금 느린 속도로 서멀리 교수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동안에 럭비 공은 다른쪽으로 떨어졌다. 엄
청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고, 챌린저 교수도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멀리 교
수가 흥분해서 말했다.
"방금 여러분께서 직접 보셨습니다. 이제 내가 설명했던 것처럼 엑스선이 결정에 충돌하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엑스선은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물체에 충돌했던 것처럼 에네지가 줄어든 상
태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전자기 파동의 모멘텀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기 파동의 모멘텀은 결정 전체
는 말할 것도 없고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원자들을 뒤로 밀어버리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빛이 표면에 충돌하는 것을 광자가 결정의 표면에 노출된 전자와 충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엑스선이 잃어버린 에너지는 전자가 뒤쪽으로 퉁겨나갈 때의 에너지와 정확하게 같은 겁니다. 광
자가 전자에 충도하게 되면 전자가 럭비 공처럼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광자는 적은 양이기는 하
지만 약간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후에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설명에 또다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와싿. 그러나 이번에는 뒤쪽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앞쪽
에 있던 흰 수염을 기른 남자들까지도 함께 박수를 쳤다. 내가 보기에는 서멀리 교수가 이번 논
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멀리 교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챌린저 교
수는 위압적인 자세로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동안 강단을 서성거린 후에 말을 시
작했다.
"여러분, 서멀리 교수께서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빛과 물질이 상
호 작용을 할 때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덩어리처럼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
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는 빛의 색깔에 따라 달라집
니다. 그런 색깔을 나는 빛의 파장이나 진동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실험을 보면 빛이 불연
속적인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 매우 똑똑한 사람들도 그런 실험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챌린저 교수는 잠깐 말을 멈추고 강당을 둘러보
았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학생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아주
쉬운 비유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선술집에서 주인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고 합시다. 주인이 정확하
게 한 잔씩의 맥주를 따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맥주 한 잔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덩어리로 되
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맥주는 훨씬 더 작은 부피로 분할할 수 있
는 유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요."
"교수님은 우리 동네 술집에 와 보신 적이 없으시지요? 그곳에서는 맥주를 반 잔씩도 준답니
다."
젊은 학생이 야유하듯 말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멀리 교수의 극단적인 주장을 반박하기보다는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이 좋겠
습니다. 그대신 나는 빛이 공간 속에 연속적으로 퍼져 있는 파동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
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강단 한쪽에 놓여 있는 장치를 가리켰다. 나는 목을 길게 빼고 그 장치를 살
펴보았다. 강단 앞쪽에는 두 대의 당구대가 놓여 있었다. 한쪽의 당구대는 나무판으로 칸을 만들
어 놓은 것 이외에는 평범한 것이었고, 다른쪽의 당구대도 거의 같은 것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당구대의 표면에 물감을 탄 액체가 두껍게 덮여 있어서,
학기말 시험이 끝난 저녁의 대학가 술집 분위기 처럼 느껴졌다. 챌린저 교수는 물감이 덮여 있지
않은 당구대로 다가가서 평범한 큐를 집어들었다. 그가 다가간 쪽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공이 놓
여 있었다.
"이 공들을 아무렇게 쳐봅시다. 서멀리 교수님께 부탁드려볼까요? 교수님께서 이 공들을 저쪽으
로 쳐주십시오."
챌린저 교수는 말을 하면서 중간의 칸막이에 뚫린 두 개의 틈을 가리켰다. 공을 반대쪽으로 보
내려면 그 틈을 지나가도록 정확하게 맞추어야만 했다.
서멀리 교수는 거리낌 없이 당구대로 다가가서 챌린저 교수가 던져주는 공을 쳤다. 서멀리 교수
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큐에 문제가 있는지 몰라도 공들은 완전히 무질서
한 방향으로 퉁겨나갔다. 얼마 전에 보았던 길버트와 설리반의 새 오페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속임 당구에 대한 익살맞은 조롱을 담은 다음과 같은 시가 기억났다.
당구채로 기막힌 경기를 한다.
비뚤어진 당구대 위에서,
타원형으로 생긴 당구공으로.
대부분의 공이 중간 칸막이에 맞았고, 챌린저 교수는 그런 공을 집어 내버렸다. 몇 개의 공이 틈
을 통과하기는 햇지만, 그 공들도 틈 근체에 발라놓은 푸른색과 붉은 색의 끈적끈적한 페인트 때
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퉁겨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 보니 아무렇게나 퉁겨나간
공들이 균일하게 늘어서게 되었다. 서멀리 교수가 마지막 공을 치고 나자 챌린저 교수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모르셨겠지만 이 실험은 광원에서 나온 빛이 두 개의 틈을 지나가도록 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실험과 같은 것이랍니다. 서멀리 교수께서는 스스로 주장한 빛의 광자
이론에 따라서 실험을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다시피 이쪽에는 공, 즉 광자들이 대체로
균일하게 늘어서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두 틈 중에서 하나를 막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서 푸른 색 페인트로 표시한
틈을 막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붉은 색 페인트가 묻은 공은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퍼져
잇을 것이고, 푸른색 페인타가 묻은 공은 없어질 뿐이겠지요. 내가 당구대나 공을 아무리 다른게
디자인하거나 한 개의 틈을 막아버리더라도 공이 한쪽에만 모이도록 만들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실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액체가 담겨 있는 당구대로 다가가서 한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켰다. 그러나 추가 오르
내리면서 당구대 위에 물결 무니가 만들어졌다. 물결 무늬는 두 구멍을 지나서 반대쪽으로 번져
가면서 수면의 높이가 이상한 모양으로 오르내렸다. 당구대의 끝에는 기름을 먹인 종이를 세워놓
았기 때문에 액체가 흘러넘치지는 않았지만 수면이 최고로 올라갔던 위치가 기름 종이 위에 검은
색으로 표시되었다. 검은 띠가 2센티미터 정도까지 올라간 곳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었지만,
그 사이 부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홈스, 저것은 왕궁에서 일어났던 자살사건의 상황과 똑같지 않습니까? 당구대 위에서
오르내리는 추는 소리가 발생된 총에 해당되고, 가운데 벽은 두 개의 창문이 있는 벽에 해당되는
군요."
홈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정말 그렇군. 당구대 끝에 나타나는 파동에서 높은 곳과 낮은 곳에 체스 말을 놓아두면 완전히
똑같겠네."
이제 챌린저 교수는 아주 어려운 묘기를 머치려는 마술사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제 아주 잘 보십시오. 내가 두 틈 중의 하나를 막아보겠습니다. 저 쪽 끝에 수면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지점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챌린저 교수가 한 틈을 막아버리자 당구대 끝에 나타났던 물결의 패턴이 전부 사라져버리고, 열
려 있는 틈을 통과한 물결이 그대로 당구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쪽 틈을 막고 나니까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던 지점에서도 액체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
습니다. 당구공으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현상이지요."
챌린저 교수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천으로 가린 사진이 놓여 있는 강당의 뒤쪽으로 걸어갔
다.
"그런데 빛을 이용해서 똑같은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빛이 두 개의 틈을 지나가면 서로 상쇄
되면서 비슷한 패턴이 생기지요. 그런 현상을 전문적인 용어로는 '파동의 간섭'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 친구인 애덤스 박사가 고안한 아주 민감한 필름으로 실험을 해보
았습니다. 서멀리 교수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 번에 기껏해야 한 개의 광자가 나올 정도로
약한 광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광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파동과 같은 패턴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겠지요.
우선 한 개의 틈새만을 열어두고 실험을 했습니다. "
그는 가장 왼쪽에 놓여 있는 사진의 덮개를 제쳤다. 사진은 온통 회색 빛뿐이었다.
"보다시피 빛은 넓은 각도에 걸쳐서 균일하게 퍼져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두 개의 틈을 모두
열어두고 실허을 했지요."
그러면서 두 번째 사진의 덮개를 열자 밝은 띠와 어두운 띠가 확실하게 찍힌 사진이 나타나싿.
"명백한 간섭 패턴이지요. 이런 패턴이 만들어지는 사실을 서멀리 교수의 표현을 빌려서 설명하
자면 각각의 광자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두 틈새가 모두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사진에서 광자가 전혀 닿지 않아서 검게 나타난 부분은 두 틈새로부터의 거리가 정확
하게 빛의 파장의 절반만큼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다시 한 번 박수의 물결이 강당을 메우고 난 후에 챌린저 교수가 손을 들어서 조용히 하도록 신
호를 보냈다.
"보다시피 빛이 물질과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빛은 그 자체가 진정한 파동입
니다. 이 실험은 금세기 초에 이미 확인된 것이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실
험의 결과가 무엇을 뜻하는는 명백할 겁니다."
그는 서멀리 교수를 쳐다보면서 계속했다.
"내가 오늘 여기에 나오기로 한 것은 이처럼 오래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
히려 오늘날의 과학계를 뿌리부터 흔들어버릴 엄청난 발견의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침묵을 지켜보았다. 그가 만일 과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배
우나 연사로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빛 대신에 입자를 이용해서 똑같은 두 틈새 실험을 해보면 있는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적당한 장치를 사용해서 전자나 원자 또는 분자를 일정한 속도로
날아가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덤스 박사의 사진 필름은 서멀리 교수의 광자뿐만 아니
라 그런 입자들의 충돌도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는 이 실험에
서 지금 본 당구대에서와 같은 결과를 기대했었습니다. 전자는 파동이 아닌 입자이기 때문에 두
틈새를 동시에 지나갈 수는 없고 어느 한쪽의 틈새만을 지나가야 하겠지요. 물론 이 실험에서도
여러 전자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파동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한 번에
한 개의 전자만 나오도록 전류의 양을 조절했습니다.
틈새를 하나만 열어두면 전자가 아무렇게나 흩어져서 사진 전체가 안개처럼 뿌옇게 되어버립니
다. 기대했던 그대로지요. 두 개의 틈새를 모두 열어두어도 마찬가지로 뿌연 사진을 얻게 될 것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밝기는 두 배가 되겠지요. 당구공으로 보여드린 실험의 결과가 정확하게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내가 얻은 사진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세 번째 덮게를 열었다. 청중은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놀랍게도 그 사진에도
광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밝고 어두운 패턴이 찍혀 있었다.
"전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아주 작은 입자를 사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확인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전자가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두 틈새를 모두 지나간 것이 확실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자도 파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
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가 마치 어떤 특정한 위치에만 존재하는 입자처럼 보이는 것은 환상
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원자와 분자를 이용해서 같은 실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경우에 파동과 같은 패
턴을 얻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나는 모든 종류의 고체 물질은 사실은 전부 단순한 환상
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우주는 파동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마저도..."
그는 동료 교수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단단한 고체가 아니라 단순히 파동이 복잡하게 뭉쳐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
간이 지나면 넓은 바다에 생각 작은 물결처럼 서서히 사라버릴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서멀리 교수에서 등을 돌리고 왼쪽, 오른쪽 그리고 가운데의 청중을 향해서 차
례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강당 전체가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겼다가 우외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많은 전문 과
학자들은 챌린저 교수의 설명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양인지 깊은 생각
에 잠겨 있었다. 아무도 챌린저 교수의 권위적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
어싿.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사람들이 일어나서 강당을 떠날 때 홈스와 나도 함께 강당을 나왔
다.
10. 황폐한 해변
늦가을의 폭풍이 창문을 뒤흔들고 있을 때, 나는 베이커가의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지난
주에는 홈스가 사건을 핑계로 내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주 외출햇기 때문에 나는 심한 소외감
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아주 반가웠는데 실망스럽게도
전보 배달 소년이었다. 붉은 색의 속달 전보는 홈스에게 온 것이었지만 나는 이미 허락을 받은
대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전보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본머스 해변에서 시체 발견. 사고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고 파도 때문에 증거도 모두 없어져버
렸음. 가능하면 빨리 와주기 바람. 그레고리."
나는 망설였다. 지금 홈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싿.
더욱이 그레고리 수사관은 시골 경찰이기는 하지만 경력이 차면 런던 경찰대에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홈스도 인정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홈스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사건을 수사해서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었
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의사인 내가 법의학적 증거를 수집해서 그에게 성명해주면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기차 시간표를 살펴보고 그레고리 수사관에게 5시 15분
기차에 마중을 나와달라고 답장을 써서 전보 대달 소년에게 주었다. 그리고 홈스에게는 가능한
한 빨리 뒤쫓아와달라고 메모를 남긴 다음에 추위를 대비해서 두껑누 옷을 입고 빅토리아 역으로
출발했다.
역에 도착했을 때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홈스가 출발 직전에 기차를 타게 될 경우
를 생각하게 역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제일 뒤칸의 객실에 자리를 잡았다. 역무원이 기차 출발
을 알리는 두 번째 호루라기를 불었을 때 누군가 급하게 뛰어와서 내 옆의 출입문을 벌컥 열었
다. 그런데 급히 뛰어오른 사람은 홈스가 아니라 놀랍게도 거구의 챌린저 교수였다. 나를 발견한
그도 매우 놀란 모양인지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면서 말했다.
"좋은 오후로군요, 박사. 휴가 가는 중인가요?"
"그런 셈인데 교수님도 그렇습니까?"
경철에서 의뢰받은 사건은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고 홈스가 언제나 말했기 때문에 나는 약간
방어적인 자세로 대답했고, 그도 장난스럽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대답햇다.
"예,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얼마 전부터 북해에서 모험 같은 실험을 하고 있답니
다. 역설적인 거섳럼 보이는 운동이 사실은 숨겨진 파동 때문에 나타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
고 있겠지요?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수면에 있는 물체에는 심각한 영향을 주는 그런 파동
말입니다. 그 사건에서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지요. 아주 중요하나 결과를 알게 되었답니다. 빛은
물론이고 고체라고 여겨지는 물체까지 포함해서 우주의 모든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는 모두 파동
이라는 놀라운 발견을 하지 않았습니까?"
기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최근에 보았던 당구대를 이용한 시험을 기억하면서 대답
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결국 교수님께서 서멀리 교수님의 주장을 이긴것처럼 보였습니다."
챌린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서멀리 교수가 그렇게 쉽게 승복하지는 않았지요. 원자가 입자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말이오. 그가 주장하는 광자의 경우와 달리 원자의 경우에는 주어
진 순간에 잘 정의된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주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나는 전자가 두 틈새를 지나가도록 하는 실험으로 전자가 파동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는 사실을 성공적으로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파동의 파장도 알아낼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
파장은 일정한 것이 아니라 전자의 속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자가 느리게 움직일수록 파장이
길어지는데 다른 입자의 마찬가지였죠. 그렇지만 서멀리 교수는 전자의 크기는 내가 측정한 파장
보다도 훨씬 작아서 측정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밝혀냈습니다. 우리
실험을 개량할수록 내가 주장하는 전자의 파장은 점점 더 길어지고, 서멀리 교수가 주장하는 전
자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더군요. 그러니까 두 사람의 주장은 더 이상 희망이 없을 정도로 상
반된 것이지요.
결국 두 사람이 함께 결정적인 실험을 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한 개의
전자가 지나가는 것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전자 검출 장치를 고안했고, 그 장치를 두
개의 틈새에 모두 장치했지요. 그런 실험을 통해서 과연 전자가 하나의 틈새를 지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두 틈새를 동시에 지나가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 실험 결과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놀라운 것이었답니다. 먼저 서멀리 교수
의 검출 장치를 꺼놓고 실험을 했지요. 그랬더니 보통 얻어지는 것과 같은 띠 모양의 간섭 패턴
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검출 장치를 켜고 실험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서멀리 교수가 항상 중장하던 것
처럼 전자는 두 개 중의 하나의 틈새만을 지나갔고, 그때마다 전자가 지나가는 쪽에 불이 들어왔
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서멀리 교수의 검출 장치를 사용하면 사진에서 띠 모양의 간섭 패턴
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실험을 하는가에 따라서 자연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음모를 꾸미고 있
는 것같이 보였답니다. 전자를 입자라고 생각해서 직접 그 존재를 알아내려고 하지 않으면 전자
는 파동과 같이 행동합니다. 그런데 전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검출하려고 하면 파동의 특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딜레마 때문에 서멀리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나는 이렇게 엉터릴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놀라고 있는가가 내 얼굴
에 그대로 드러났다. 챌린저 교수가 설명을 계속했다.
"이제 나는 전자를 파동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확률의 파동이라는 뜻이지요. 원자나 전자
를 비롯해서 어떤 거이라도 측정하기 전까지의 상태는 확률의 분포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측정이라는 행동이 그런 확률의 분포에서 입자가 어떤 확실한 위치에 존재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챌린저 교수의 그런 주장은 편견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내가 물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처럼 거대한 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자는 상상히 추상적인 존재가 아닙
니까? 그래서 전자가 확률이 모인 집합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요."
내 말에 챌린저 교수는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 효과는 원자나 분자처럼 작은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경우에도 나타
납니다. 서멀리 교수의 주장에 따라서 고양이나 코끼리 심지어 서멀리 교수 자신을 생각해볼 수
도 있다는 말이지요.
서커스 단원이 대포 속에서 퉁겨져 나와서 무대를 가로지른 다음에 맞은편에 있는 그물에 떨어
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겠지요? 물론 그 대포는 일조으이 투석기에 지나지 않지요. 극적인 효과
를 높이기 위해서 약간의 섬광 가루를 사용할 뿐입니다. 이제 서멀리 교수가 그런 대포 속에 들
어갔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서멀리 교수를 두 개의 틈이 있 칸막이를 지나 맞은편의 벽을 향해
날아가도록 발사하는 실험을 반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서멀리 교수는 둘 중의 하나의 틈을 통해
서 맞은편 벽에 도달하겠지요.
이제 실험을 조금 바꾸어봅시다. 이번에는 캄캄한 방에서 똑같은 실험을 반복합니다. 서멀리 교
수가 날아가는 궤적을 볼 수가 없게 되면 파동과 같은 거동이 나타나게 되겠지요. 그래서 서멀리
교수가 도달하는 위치를 계속해서 벽에 표시하면 간섭 패턴이 나타나게 될 겁니다. 멀리뛰기 경
기장에서처럼 서멀리 교수가 떨어지는 위치에 모래판을 만들어놓아도 규칙적으로 움푹 파인 간섭
패턴이 만들어질 것이고요. 물론 서멀리 교수의 확률 파동 이론을도 이런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실험 대상이 될 서멀리 교수께서 동의할 것인가도 문제지만 실제로 아주 어려운 실험이겠군요."
챌린저 교수는 나의 그런 지적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가능한 실험입니다. 이제 모래판에 떨어진 서멀리 교수에게 어
떤 일을 겪었는가 물어본다고 합시다. 박사는 실용적인 사람이지요? 서멀리 교수가 어떤 말을 할
것 같습니까?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요? '내가 투석기를 떠날 때는 내 자신이 유령처럼 확률의
구름같이 퍼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 몸의 일부는 판에 충돌하고, 일부는 두 틈의 하나를 지나
갔습니다. 그 후에 불이 켜지고 내가 어느 곳에 떨어졌는가를 살펴보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자신이 바로 그 지점에 다시 뭉쳐져서 나타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괴상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그런 식으로 표현된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챌린저 교수는
코웃음을 치며 계속 말했다.
"그렇지만 박사, 그것은 모두 엉터리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눈속임이고 철학적인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굉장한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그럴듯하게 보였던 별볼일 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지요."
나는 그의 거만함을 따끔하게 지적해주고 싶어서 냉정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그런 황당한 결과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겠군요."
챌린저 교수는 나의 비아냥거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듯이 나는 북해의 모험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 . 이론가인 서멀리 교수와
는 달리 나는 실험가입니다. 파동의 성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본머스 변두리에 파동 연구소
를 세워서 몇 명의 연구원을 상주시켰답니다. 바다에 생기는 파도는 추상적인 수학적 파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면도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면도 있지요. 서멀리 교수는 회의적인 의견
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주 유용한 결과를 얻기 시작했답니다. 내 생각으로는 정말 중요한 결과를
곧 발펴하게 될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여러 번 노력했지만 결
국은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나는 챌린저 교수가 내 어깨를 세차게 흔드는 바람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기차가 서 있었기 때
문에 잠에서 깬 나는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기차는 황량한 바닷가에 멈
추어 있었다. 늘어선 바위 사이로 엄청난 파도가 덮쳐와서 거친 자갈이 깔린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바닷가의 스산한 풍경이 몹시 낯설었던 나는 휴일마다 사람들이 쥐떼처럼 바닷가로 몰려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스럽게 생각되었다. 영국의 섬이 수 천 마일 남쪽의 따뜻한 곳에 있다
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로 저곳이라오! 박사! 물에서 나타나는 파동이 자연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을 직접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 바위들은 대략 일정한 간격만큼씩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폭
이 30미터도 넘느느 파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저 바위들을 넘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확실히 그렇군요, 교수님. 파도가 바위 사이의 틈에서는 압축되었다가 바위를 지나면
다시 제 모습을 찾는군요."
"만약 파동이 단단한 물체였다면 저런 광경은 절대 볼 수 없을 겁니다. 바로 저런 현상이 아주
훌륭한 과학자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두 가지 비밀을 밝혀주고 있지요."
기차가 덜컹하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몸을 아픙로 기울이면서 챌린저 교수가 말했다. 곧
이어서 본머서 역의 승강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속과 같은 물질이 어떻게 전기를 통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
았습니다. 만약 전자가 뉴턴의 법칙에 따라서 다른 전자나 원자들과 충돌할 때마다 당구공처럼
퉁겨나간다면 전자들은 아주 짧은 거리만 움직여도 수없이 많은 충돌 때문에 에너지를 모두 잃어
버리게 될 겁니다. 정말 그렇다면 모든 물질은 전기를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되어야겠지요.
또다른 문제는 최근에 발견된 헬륨이라는 기체를 담아두기 위해서 필요한 통을 만드는 과정에서
밝혀진 겁니다. 이 기체를 아주 낮은 온도로 냉각시켜서 벽이 얇은 통 속에 넣어두면 벽에 아무
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죄수들은 감옥 바닥에 터널을 뚫고 도망치는 것처럼 단단한 벽을
통확해서 빠져나가버린답니다.
그런데 전자와 원자를 파동이라고 생각하면 두 가지 현상을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
동은 비교적 방해물이나 다른 파동의 영향을 받지 않고 쉽게 빠져나갈 수있기 때문이지요."
마침 그때 기차가 쉭쉭 소리를 내면서 멈추어 섰다. 챌린저 교수는 객실의 문을 열고 내릴 준비
를 했다.
"그렇지만 그런 현상은 서멀리 교수의 확률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않습니까? 어디에서난 확률
만이 중요하다면 장벽의 한쪽에 가까이 위치한 입자는 장벽의 다른쪽에서 입자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죄수가 감옥의 창살문에 자신을 충분히 강하게 밀어붙이면 죄수가 저절로 창살의
반대편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얼마나 세게 밀이붙어야 하는가를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고, 확률도 엄청나게 작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챌린저 교수는 농담 같은 내 이야기가 경멸스럽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나서 냉정하게 손을 흔
들어 보이고는 황급하게 사라져버렸다.
여름철이 지난 휴가지의 기차역은 황량했다. 내가 출구로 다가가자 그레로리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혼자 온 것을 알아채고 나자 그의 얼굴은 우스울 정도로 일그러져버렸다.
"홈스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답니다. 어쩌면 홈스가 다음 기차로 도착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레고리 형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쨌든 조류에 맞추어 도착하기는 틀렸군요. 사실은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랍니다, 박사님. 이
곳의 지방 검시의사도 유능하기는 하지만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어두는 것도 좋겠지요. 더욱이
홈스 씨는 다른 의사보다 당신의 보고에 더 익숙할 테니까 말입니다. 함께 해변으로 가봅시다."
우리는 경찰 마차를 타고 해변의 산책길을 따라서 1마일 정도 떨어진 해변으로 간 후, 진흙이
덮인 계단을 따라서 바닷간의 절벽을 내려간 다음에 자갈 위를 걸어서 밀려오는 파도에 젖은 거
대한 백사장에 도착했다. 그레고리 형사는 바다 쪽으로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시체
를 가리켰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그곳까지 발자국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주변에
는 특별한 흔적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시체를 살펴보았다. 죽은 사람은 키는 크지만 조금 약해 보이는 젊은 남자였고, 사망요인은 확실
해 보였다. 핏덩이가 뭉쳐져 있는 머리 부위를 끝이 뾰족한 흉기로 강하게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레고리 형사가 왜 이 사건의 의문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살인사건이 확실한 것 같군요. 끝이 날카로운 흉기에 강하게 얻어맞은 모양입니다. 곤봉이나 칼
은 아닌 것 같고, 상처의 위치를 보면 보트를 젓는 노에 맞은 것 같은데요. 멍이 든 곳이 없는 것
을 보면 충격이 아주 강해서 즉사한 모양입니다."
그레고리 형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박사님,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제외하면 박사님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시체는 네 시
간 전에 이 산책로를 순찰 중이던 두 명의 경찰관이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다가갔을 때 시신은
물에서 약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주변의 젖은 모래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
았답니다. 살인범이 있었다면 분명히 무슨 흕거이 남아 있었을 테데 말입니다. 그런 흔적이 없었
던 점으로 보아서 이 부근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범인이 피해자의 발자국을 거꾸로 밟아서 조심스럽게 걸어나갈 수는 없었을까요?"
"박사님,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다니까요. 피해자의 발자국마저도 없었습니다. 마치 피해자가 하
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시신이 조류에 밀려왔다면 시신의 주변의 움푹 파인 흔적이 있
어야만 합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가 조류에 밀려오는 경우를 자
주 보게 됩니다. 더욱이 익사한 시신의 경우에는 폐에 물이 들어 있고, 핏덩어리도 바닷물에 녹아
없어져버린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조류에 밀려왔을 가능성도 없
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보트에서 떨어진 다음 헤엄쳐서 해변으로 올라온 후에 보트의 모서리나 노에 모리를 부
딪쳤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마약 그렇게 되었다면 몇 초 이내에 의식불명에 빠지게 되지요. 그리고 파도가 밀려올 때 보트
가 해변에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면 좌초되어버렸어야 할 겁니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파도가 더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서멀리 교수의 확률 파
동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곳에 있는 사람이 아무런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옮겨질 수 있을까? 그러나 상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서멀리 교수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미시 세계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가능성은 무시할 정도로 적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
면 우리도 그런 일을 흔히 경험할 수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
어 보기로 했다.
"이 남자의 신원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것이 없습니까?"
"있지요. 우연히도 이 사람은 우리 대원이었답니다. 앤드루 밀러나는 아주 좋은 사람이지요. 이
사람은 최근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고 어려웠던 모양이더군요. 돌아온 후에는 족므 독특한 일을 했습니다. 런던의 교수 두 사람
이 설립한 파동 연구소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지요. 그 두 교수는 아주 유명하기는 하지만 좀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서멀리 교수와 챌린저 교수라고 알고 있습니
다."
나는 그런 우연의 일치에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엄청난 과학 이야기와 관련이 있
을지도 모르겠지만 오스트레일라아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들렸다. 얼마 전에 나는 오스트레일
리아에서 돌아온 먼 친척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돌이켜보다
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형사님, 오스트레일리아의 부메랑이란 것애 대해서 들어보셨지요? 그런 기구로 살인을 할 수도
있겠지요. 던진 사람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을 사용했다면 지금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
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레고리 형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런데 던지 사람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은 아주 가벼운 것
으로 운동용으로나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짐승을 잡기 위한 사냥용 부메랑은 단단한 나무로 만드
는데 충돌 순간에 땅으로 떨어져버린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반박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여러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네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챌린저 교수와 깡마른 체구의 서멀리 교수는 너무
희극적으로 비교되어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었다.
챌린저 교수는 놀라울 정도로 수척해진 모습이었고 풀이 완전히 죽은 표저정이었다. 조금 전까지
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확신에 차서 거들먹거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였
다. 그레고리 형사가 조용하게 말했다.
"교수님, 시신을 확인해주실 것을 공식적으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맞군요, 이 사람은 내 연구소의 직원인 앤드루 밀러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책임입다.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게 있습니다."
잠시 동안 나는 살인범의 고백을 듣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챌린저 교수는 말을 계속했다.
"젊은 사람은 위험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주변
의 친구나 선배를 감동시키기 위해서 실제로 아주 위험한 일도 가볍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요.
이 사람은 내 성명을 듣고 나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았던 일을 생각했덩 모양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내가 갑자기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부메랑과 관련된 일이겠군요."
채린저 교수는 나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부메랑이라니요? 부메랑이 이 일과 무슨 관련이 있죠? 저 사람을 죽인 것은 파동입니다. 물론
내 자존심과 오만도 그 원이니었겠지요. 나는 옆에 계신 서멀리 교수를 놀라게 해줄 실험을 해보
려고 했지요. 그래서 밀러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중요한 실험의 주역이 될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
었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사람은 그 일을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해보려고
했던 겁니다! 그럴 것이라고 누가 짐작이라도 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더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굵은 빗방울과 함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기 때문
에, 그레고리 형사는 경찰관에게 방수 외투를 가져와서 시신을 덮어주라고 지시했고, 나는 두 교
수와 함께 언더긍로 뛰어갔다. 바닷가의 절벽 밑에는 '스머글러 식당'이라는 작은 술집이 있었다.
우리는 거친 바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술집에 들어가서 창가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챌린저
교수는 성난 바다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돌려보려고 말을 걸었다.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사고는 소견이 짧고 충동적인 젊은 사람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불행한 사고에 대해서 교수님께서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교수님이 계획
했던 실험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챌린저 교수는 맥없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먼저 서멀리 교수에게 그의 확률-파동 이론의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지요."
종업원이 마실 것을 가져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서멀리 교수에게로 눈을 돌렸다.
"수학적인 내용은 아주 복잡하지만 기초적인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원자나 광자
와 같은 미시 세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미시 세계에서 관찰되는 현상이 아주 무질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로 합쳐져서 살인적인 폭발을 해버린 조각상을 구성하고 있던 불안정한 원자들은
어느 순간에 저절로 쪼개져버립니다. 바로 핵분열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지요. 그런 핵분열이 언제,
왜 일어나게 되는가에 대한 명백한 이유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핵분열이 일어나는
평균 속도가 아주 일정하게 보이지만 어느 한 원자가 어떤 특정한 순간에 왜 쪼개져야 하는가에
대한 명백한 이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원자 속에 있는 작은 도깨비가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같지요. 주사위의 6이라는 숫자가 계속해서 여섯 번 나오게 되면 펑하고 신호를 보내
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신호에 따라서 원자가 분열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지요.
더욱 이상한 사실은 이런 작은 입자들의 행동을 확실하게 알아내려고 하는 노력은 모두 실패해
버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원자의 위를 정확하게 알내려면 그 원자를 다른 어떤 것과 상호
작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자의 운동방향과 속도를 나타내는 모멘텀이 불확실하게
됩니다. 위치 측정에서의 확실성을 향상시키면 모멘텀은 더욱 불확실하게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
집니다. 초점이 잘 안 맞아서 흐릿하게 찍힌 슬라이드를 환등기에 넣고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
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지요. 그러니까 시력이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 자연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면 자연의 실체 자체가 초점이 약간 틀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장 정교한 수준에서는 확실성을 보인 존재가 현미경으로 미시 세계를 들여다볼 때는 아주 재빨
리 해야만 확률이 실존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챌린저 교수가 조롱하는 듯이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확률 파동의 개념은 광자는 물론 원자를 이용한 두 틈새 실험에도 적용됩니다. 입자는 마지막
측정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이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의 설명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최근에 내가 보았던 무용 공연과 비슷하군요. 회전하는 셔터를 이용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조명
을 비추는 특별한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조명 등이 번쩍일 때마다 무용수들이 계속해서 다른 곳
으로 옮겨가서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용수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어떻게 이동했
고 어떻게 포즈를 취하게 되었는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는 모르겠지만 역시 완만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고전 무용이 훨씬 나은 것 같더군요."
서멀리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자연은 자연이지요. 자연이 능력이 부족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
도록 고안되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용기를 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입자가 확실하게 구별되는 두 길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
야 할 겨우에만 나타나는 것이로군요."
서멀리 교수가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에 챌린저 교수가 말을 막았다.
"박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완전히 놓쳐버렸습니다. 정말 그렇게 완벽하게 잘못 이해할 수 있
다니 놀랍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있는 당구대를 가리켰다.
"서멀리 교수가 설명하는 법칙은 크기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나 적용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서 저 사람처럼 완전히 술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공을 친다고 생각해봐요. 결국 공들은 당구대 위
의 여러 곳에 모여 있게 될 것이고, 어떤 공은 그 사이를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서 반대쪽 벽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구대가 아주 어두운 곳에 있어서, 빛의 광자는 물론 다른 어떤 입
자도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해봅시다. 다시 말해서 당구공을 두 겹으로 된 커다란 플라스크
속에 넣어버리면, 당구공이 반대쪽 벽의 어느 곳에 충돌하게 될 확률은 파동과 같은 특징을 보일
겁니다. 즉 서로 다른 궤적을 따라갈 확률의 함수로 주어지는 간섭 패턴이 얻어지게 된다는 말이
지요. 그런 패턴은 두 틈새 실험에서 얻어지는 간섭 패턴보다도 훨씬 더 복잡할 겁니다.
만약 큐의 충격이 충분히 세기만 하다면 공을 친 다음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가 테이블 위에 나
타날 수도 있지요. 큐로 친 공이 오른쪽으로 가거나 왼쪽으로 갈 수도 있고, 어떤 공은 구멍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겠지요. 한참이 지나서 모든 공이 멈춘 다음에 공들의 위치르 보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파동의 패턴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바로 그 순간에 술집 안에 있던 낡은 피아노 위에서 몸을 핥고 있던 고양이가 당구대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한 사람이 공을 친 직후였다. 공이 공양이의 꼬리에 맞자 고양이는 큰 소리로 야옹
소리를 내고는 다시 퉁겨나올 공을 피하기 위해서 몸을 한껏 움츠렸지만 헛수고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큰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챌린저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이야기에 고양이와 고양이의 익살을 포함시켜도 되겠군요. 저 고양이의 머리뼈가 너무 약
해서 이리저리 퉁기는 공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겠지요. 서멀리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이런 모든
역사가 서로 합쳐져 있다가 마지막 결과가 만들어지고, 그런 결과는 테이블 플라스크에서 꺼내는
순간에 관찰이 됩니다. 두 틈새 실험에서 광자나 원자가 두 틈새를 모두 지나간 다음에 스스로
파동과 같이 행동하면서 마지막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서멀리 교수의 주
장은 우리가 테이블을 보고 있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셈이고, 우리가 관
찰할 때에만 비로소 통계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동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우리 교수님, 확률이 실존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관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까? 만약 고양이 대신 서멀리 교수가 플라스크 속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
게 될까요? 유능한 관찰자인 그의 존재가 실험이 계속되는 동안에 파동과 같은 거동이 실존으로
붕괴되도록 해서 통계적으로 전혀 다른 결과가 얻어질까요? 그렇다면 고양이보다 우월한 교수님
의 존재가 당구공을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바꾸어 놓은 셈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고양이 대신에
인간의 지능이 개발되기 시작했던 시기의 원시인으로 바꾸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유능한
관찰자로서의 능력에 관한 한 서멀리 교수가 원시인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
입니다."
두 교수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술집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도 두
교수들 사이의 논쟁이 결투에 가까운 주먹싸움으로 변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알아챘기 때문어
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서멀리 교수가 먼저 양보하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합시다."
챌린저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행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자주 밀려오는 해안 지방에서
유행하는 운동이지요. 파도가 너무 심해서 보통 생각하는 수영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젊은이들
은 서프 보드라고 부르는 널빤지를 가지고 바다로 갑니다. 서프 보드는 발사 같은 가벼운 나무로
만들어서 어깨에 메고 옮길 수 있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올라 탈 수 있을 정도의 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도타기 선수는 멀리까지 나가서 적당한 크기의 파도가 몰려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파도가 몰려오면 서프 보드 위로 올라가서 파도가 덮쳐올 때를 맞추어 체중을 앞쪽으로
집중시킵니다."
그는 맥주잔의 받침을 들고 테이블 위에 맥주가 고여 있는 곳에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고 손가
락으로 파도타기 선수의 자세를 흉내내었다. 술집의 위생 상태는 정말 엉망이었다!
"균형을 잘 잡으면 파도의 앞쪽 끝에 올라타서 엄청난 속도로 휩쓸려 가게 됩니다. 선수는 몸을
이리저리 기울여서 진행하는 방향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파도에 의해
서 결정됩니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보기에는 정말 인상적인 운동이지요. 그러나 파도타기 선수는
결국 서프 보드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내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서프 보드를 잘 잃어버리겠군요."
"그렇지요. 밀려나가는 파도에 휩쓸려서 바다로 나가버리기도 하지요. 물론 다음에 밀려오는 큰
파도에 다시 휩쓸려와서 찾게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재만 항상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지요. 파도타기 선수가 두 발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동안에 다른 파도가 서프 보
드를 휩쓸어가버리기도 합니다. 만약 그 순간에 서프 보드가 머리를 쳐버리게 되면...."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그러니까 밀러에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로군요!"
챌린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겨우 해변가로 올라와서 넘어져버린 겁니다. 조류가 밀려가면서 발자국은 모두 지워졌고,
서프 보드는 파도에 휩쓸려가버린 거지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그는 내게 파도타기 실력을 자랑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체구가 작은 그 사람은 자신의 체력을
과신했던 모양입이다. 초보자가 아니라면 그런 사고를 당할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파토타기 실험이 파동과 입자의 물리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나는 사고에 대한 의문이 해결된 것이 기쁘기는 했지만 처음 논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
기가 흘러가버린 것 같아서 어리둥절했다.
"관계가 있지요, 박사. 파도타기 실험이 바로 입자와 파동은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입자가 파동
에 의해서 끌려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서멀리 교수의 얼굴에도 이해하겠다는 표정이 나타났고, 챌린저 교수는 자신에 차서 설명을 계
속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파도타기 선수가
파도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광자나 전자 또는 다른 입자들이 그런 파동에 의해서 끌려다닌다고
하고 두 틈새 실험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전자가 방출되는 순간에 글너 파동이 함께 출발
한다고 합시다. 어떤 순간에나 전자는 한 곳에만 있게 될 것이고, 두 틈새 중의 하나만을 통과하
게 됩니다. 그러나 파동은 투 틈새를 모두 지나가게 되지요. 결국 전자는 어느 한 쪽의 틈새만을
지나가만 전자를 이끌어가는 파동은 투 틈새를 모두 지나가기 때문에 전자도 어쩔 수없이 다른쪽
틈새의 존재에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챌린저 교수의 지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서멀리 교수가
물었다.
"그렇지만 전자가 어느 쪽 틈새로 지나갔는가를 측정하면 간섭 패턴이 사라져버리를 현상은 어
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측정을 하게 되면 전자가 파동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져버린다고 생각합니다. 파도타기 선수를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균형을 잃고 쓰러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서멀리 교수의 표정은 식초를 마시는 듯했다.
"그렇다면 원자 세계에 고유하게 나타나는 무질서함은 어떻습니까? 정확한 측정과 예측을 불가
능하게 만드는 불확실성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챌린저 교수는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자신있게 웃으면서 물었다.
"여러분은 브라운 운동에 대해서 들어보았겠지요?"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주 작은 공기 분자들이 먼지에 아무렇게나 충돌해서 먼지
입자가 무질서하게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현상을 이용해서 원자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환자의
생명을 구했던 일을 생각했다.
"먼지 입자는 공기 속에서 흔들리면서 돌아디닙니다. 그 패턴은 무질서한 걸음걸이와 같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통계적으로 서로 상쇄되어버리지요. 먼지 입자의 위치는 어느 순간에나 명백하게
저의됩니다. 그러나 지구 중력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를 측정하려면 충분한시가 간격을 두
고 두 번의 측정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질서한 요동 때문에 측저으이 결과는 부정확하
게 됩니다. 반면에 오랜 시간 동안 입자를 살펴보고 있으면 그 위치는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게
됩니다. 먼지 입자들이 요동칙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같은 곳에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없기 때
문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원자의 위치와 모멘텀 측정 문제와 아주 비슷하지 않습니까?"
챌린저 교수의 음성이 갑자기 간절하게 바뀌었다.
"서멀리 교수님, 이제 교수님의 몫입니다. 원자 수준에서 나타나는 무질서함은 단순히 현재의 장
치로는 알아낼 수 없는 더 작은 미시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의 결과일 뿐이빈다. 내가 설명한 것
처럼 입자를 태우고 다닌 역을 하는 파동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거의 언제나 변화무쌍하게 변하
고 있는 넓은 바다가 그 원인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겁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챌린저 교수는 승리감에 젖어 있었고, 서멀리
교수는 아무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 어떤 말이 나오는가에 따라서 챌린저 교수가 서멀리
교수를 누르고 승리함으로써 서로 영원한 적이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위대한 발견을 함께 이룩한
동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아주 이상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멀리
교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주가 입자로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챌린저 교수의 주장처럼 파동
과 같은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지요.
이제 나는 두 분이 모두 옳다는 사실을 이해하세 되었습니다. 빛과 물질의 기본적인 요소는 입
자입니다. 광자나 전자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입자들은 모두 어떤 파동에 올라타
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 파동이 입자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지요. 두 교수님 사이에 치열한 경쟁
이 없었더라면 이런 미묘한 진실은 절대 밝혀내지 못했을 겁니다. 두 분은 경쟁심 때문에 각자의
주장을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존경받아야 할 과학적 경
쟁으로 진실이 밝혀진 겁니다. 두 교수님께서는 서로 악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망설이고 있던 두 사람이 서로 악수를 했다. 술집의 다른 손님들도 자세한 내용은 말랐
지만 기분 나쁘게 시작되었던 논쟁이 유쾌하게 해결된 것을 보고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그날 저녁에 우리 세 사람은 런던으로 돌아오는 막차에서 같은 객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중재
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즐거워하고 있을 때 서멀리 교수가 갑자기 말했다.
"아하! 챌린저 교수님, 교수님의 주장에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신음을 토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니 축하합니다. 어서 말씀해보시지요."
"파도타기 선수가 파토를 타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보았다면 벌써 알아챘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광자의 경우에는 당신이 주장하는 파동이 빛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그
런데 예를 들어서 빛의 속도에 아주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전자를 태우고 다니는 파동도
같은 속도로 움직일까요?"
챌린저 교수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광자와 전자가 모두 광속보다 빨리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광자와 전자는 모두 그들을 태우고 다니는 파동 위에서 이리저리 파동을 가로질러
움직일 테니까 말입니다. 파도타기 선수가 파도의 끝에 올라타서 파도의 속도보다 훨씬 발리 움
직일 수 있다면 광자나 전자도 광속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윗날이 만나는 점이 가윗날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군요?"
나는 정보를 더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던 사업가의 사건을 생각하면서 감탄해서 말
했고,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상대성 이론에 따라서 어떤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입자가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움
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분명한 모순이지요?"
챌린저 교수는 이런 서멀리 교수의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물론 나도 그런 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한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서멀리 교수님, 우리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입자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왓슨 박사가 보았던 춤처럼 조명등이 꺼져 있는 동안에는 불가
능할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서멀리 교수가 경멸하듯이 말했다.
"마치 타조가 자신의 머리를 모래 속에 숨기기만 하면 쫓아오던 맹수가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
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와 비슷하군요."
챌린저 교수가 머리를 저었다.
"교수님,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파동에 올라타고 있는 입자들이 실제로는
빛보다 빨리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입자들이 파동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파
동이 입자들을 이끌어가기 때문이지요. 파동을 타고 있는 입자를 살펴보려는 단순한 행동이 있으
면 입자는 미끄러운 파동에서 떨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입자들이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런 입자를 통해서 실적인 영향이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없
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모순도 없는 셈이지요."
그의 설명이 약간 의심스럽게 들렸지만 서멀리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11. 허드슨 부인의 고양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바람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소
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려서 문을 열어보았더니 허드슨 부인의 딸인 안젤라가 무척 놀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박사님, 어머니가 기분이 몹시 안 좋으신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마도 홈스는 런던에서 가장 어려운 세입자일 것이다. 마음씨 좋은 허드
슨 부인의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설 때마다 내가 중재라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오늘 저녁에도 무
슨 일인지는 몰라도 홈스가 외출 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해결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다면 해야겠지요. 무슨 일입니까?"
"고약한 도둑고양이들 때문이예요. 헨리에타가 발정을 해서 런던의 수고양이들이 모두 우리 집
지붕에 모여든 모양인데... 그놈들이 창문을 긁어댈 때마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셨어요."
나는 우선 홈스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서 마음이 놓였다.
"어머님께 신경안정제를 처방해드릴까요?"
"아녜요, 박사님. 어머니는 그런 약을 좋아하지 않으세요. 보다시피 고양이들이 저 창문밖에 있
는 부엌 지붕에 올라오는 것이 문제랍니다. "
그녀는 내 뒤쪽에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나는 그녀와 함께 창문으로 가서 며칠 동안 런던을 온
통 뒤덮고 있는 짙은 안개 속을 태다보았다. 두 말의 수고양이가 허드슨 부인의 거실에 있는 불
켜진 창문 앞 지붕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안젤라가 손뼉을 치면서 고함을 치
가 고양이들은 마술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박사님, 어렵지 않으시면 지금처럼 고양이를 쫓아주셨으면 해서요."
나는 신사처럼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요. 어서 가서 어머님께 걱정 마시라고 전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작은
성을 지켜드리지요."
고양이를 완전히 쫓아버리려면 고양이가 목표로 하는 불켜진 창문 바로 앞까지 오도록 기다렸다
가 갑자가 깜짝 놀라게 만들어서 다시는 되돌올 엄두도 못 내게 해야 될 것 같았다. 나는 서럽에
서 권총을 찾아서 공포탄을 장전했다. 그리고 마치 나쁜 질을 하려는 어린아이 가은 기분으로 창
문을 조금 열고 그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지루해진 나는 권총을 창틀 위
에 올려놓고 책을 집어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바깥을 내다볼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고양이를 쫓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처음에는 수고양이들이 지붕 아래쪽
까지 물러났다가 잔뜩 웅크린 자세로 지붕 꼭대기를 향해서 살금살금 기어올라오는 모습이 보였
다. 그러나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고양이들이 조금씩 움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새로운
읽을 거리를 찾기 위해서 잠깐 방안으로 돌아선 사이에 소란이 일어났다. 고양이들이 순식간에
목표 지점을 점령해버렸던 것이다. 나는 권총을 집어들고 창쪽으로 다가갔다.
"맙소사. 왓슨.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홈스가 내 모습을 복 놀라서 물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돌아섰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홈스. 도둑고양이를 쫓아버리려고 공포탄을 쏘려던 참이었습니다. 고양이
들 때문에 부인이 흠들어하신다는군요."
"그런가! 그런데 도둑고양이 때문에 놀란 사람이 공포탄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되겠나?"
나는 창가에서 돌아서버렸다.
"어쨌거나 내 계획은 실패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홈스, 고양이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모양입니다. 내가 창밖을 내다볼때는 고양이들이 천연스럽게 앉아 있습니다. 그러다
가 내가 잠시라도 창밖을 보지 않으면.... 맙소사! 바로 목적을 달성하고 말아요! 확률 법칙이라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홈스는 내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있나, 왓슨. 고양이는 감각이 매우 발달해서 어둠 속에 감추어진 관찰자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일 걸세. 창문에 자네 모습이 비칠 텐데 정말 자네의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고양이는 사냥꾼에게 자신이 사냥꾼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
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직잠을 가지고 있을 뿐이겠지. 그런 고양이들이 아무렇게나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네가 돌아설 때마다 조심스럽게 전진했을 걸세."
그는 몹시 피곤한 듯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이크로프트 형이 고민하던 문제가 생각나는군. 왓슨, 술 한 잔 가져다주겠나? 갑
운 술 한 잔이 생각나는군. 지금까지 신경질 난 여자처럼 수다떠는 형의 말을 듣고 있었더니 몹
시 피곤하다네."
내가 술을 따르면서 물었다.
"무슨 국제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니네, 왓슨.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형에게 좀더 동정적이었겟
지. 마이크로프트 형처럼 긴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자네나 내게는 아주 먼 훗날의 일도 아주 생
생한 걱정거리가 되는 모야이더군.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의 상상력이 너무 심한 것 같았어. 형은 다음 세기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
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군. 형의 말에 따르면 역사의 냉혹함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네,
왓슨. 그것도 슈퍼 파워들 사이에 역사상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거라더군."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비극이겠군요. 그렇지만 전쟁이라면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지 않습
니까? 앞으로 50년 동안 온 세상이 지금처럼 평화로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
다."
홈스는 머리를 저었다.
"형이 걱정하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과학이 발전하면서 가공할 위력
을 가진 무기가 개발될 거라더군. 자네가 즐겨 읽는 공상 소설의 작가인 웰스 쓰기 걱정하는 것
보다도 훨씬 무서운 무기가 출현할 것이라고 했네. 형은 특히 우리가 함께 보았더너 새로운 물리
가 그런 무기 개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어. 바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이라는
새로운 물리 분야에 대한 이야기였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상대적 운동과 빛의 속도에 대한 역설의 결과로 놀랑누 폭탄이 만들어졌
지요. 그런데 양자론이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나는 런던 전체를 폭파시킬 수 있다는 축구공 정도 크기만한 장치에 대한 기억에 몸을 떨면서
물었다.
"양자론은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가 함께 밝혀낸 빛과 물질의 파동성과 입자성에 대한 새로
운 물리에 붙여진 이름이라네. 양자론에 따르며너 파동과 같이 연속적인 존재나 확률은 관찰하는
순간에 전자나 광자와 같이 불연속적인 특별한 존재로 변해버린다네. 그리고 전자나 광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엄격하게 정의된다고 하는군."
"미시 세계에만 적용된다는 그 이론이 그렇게 위협적이라고 생각되진 않는군요."
"상대성 이론의 바탕이 되었던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는 시도보다 더 어렵고 추상적인 것도 없을
걸세. 마이크로프트 형이 특히 걱정하고 있는 것은 양자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형편없이 부족
하기 때문에 양자론아 가져올 새로운 결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라네."
나는 그의 말에 놀라서 말했다.
"그렇지만 파동 이론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주 정밀하게 확인되지 ㅇ낳았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도있지. 그렇지만 상대성 이론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뉴턴 역학이 완벽하다고 생
각했었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서도 아무 문제 없이 적용된다고 생각되었어.
마이크로프트 형은 지금 우리가 양자론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말하자면
어떤 것이 입자이기도 하면서 파동이기도 하다는 해석이나, 측정하는 순간에 가시화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네."
"그 문제는 챌린저 교수가 파도타기 모형을 이용해서 깨끗하게 해결했지 않습니까?"
"왓슨, 마이크로프트 형은 두 가지 이유에서 챌리저 교수의 설명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
고 있네. 첫째는 파동을 타고 있는 입자가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데 대한 의문이
네. 그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주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거야.
둘째로는 단순히 관찰한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커지고 있는 확률의 바다를 축소시키는, 다시 말
해서 단 하나의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네.
그가 예로 들었던 실험이 자네가 고양이게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문제와 아주 비슷하더군. 기술
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설명하면 이런 실험이었네.
전자를 자기장으로 만들 울타리 속에 가두어놓았다고 생각해보세. 처음에는 전자가 울타리 안에
서 에너지가 가장 낮은 부분에 위치하게 될 걸세. 마치 지붕의 끝 부분에 있던 고양이 처럼 말이
네. 그런데 전자를 관찰하지 않고 놓아두면 서멀리 교수의 확률 이론에 따라서 전자의 위치가 점
점 더 불확시랗게 되네. 그러니까 전자를 충분히 오랫동안 관찰하지 않고 놓아두면 창문가지 접
근하는 고양이처럼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전자도 생길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상한 문제가 생기게 되네. 만약 일정한 간격으로 전자를 관찰하
면, 다시 말해서 어떤 방법으롣 전자를 방해하지는 않고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전자는 에저니가
가장 낮아서 존재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세. 그렇게 되면 전
자가 울타리를 벗어날 정도까지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는 거지."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의식을 가진 관찰자의 존재말으로도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
입니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네. 전자와 같은 미시 입자들은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없지. 전자의 에
너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빛을 짦은 펄스로 만들어서 보내야 하네. 그러니까 실제 관찰자가 있
고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펄스가 존재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가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셈이지."
나는 콧웃음을 쳤다.
"홈스, 그런 실험이 고양이 문제와 정확하게 같다니요? 빛의 펄스가 전자에게 어떤 물리적인 영
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니까 관찰자의 존재에 의한 심령적인 효과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 않습
니까?"
홈스도 미소를 지었다.
"왓슨, 자네 상식이 옳네. 나도 바로 그점을 마이크로프트 형에게 말해주었다네. 그런데 형은 그
런 '관찰자 효과'는 구체적인 측정방법과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나타난다고 주장하더
군. 원칙적으로는 양자계의 상태 변화를 증폭시켜서 나중에라도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주
변의 환경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그 계의 거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네. 단순히 이용 가능한 정보를 취득하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알려진 물리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거야."
바로 그 순간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복도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날카로운 목소리도 들렸다. 문을 열어보았더니 안젤라가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허드슨 부인을 막고 서 있었다.
"어머니, 이렇게 어둠고 안개가 짙은 밤에 어디를 가시려고 하세요? 이런 시간에 외출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심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잖아요?"
그녀는 애원하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헨리에타가 나가버렸어요, 박사님. 홈스 씨가 들어오시면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던 모양이예
요. 그 틈으로 헨리에타가 쏜살같이 달려나가 버렸답니다. 어머니는 지금 나가서 고양이를 찾아와
야 한다고 이렇게 야단이시랍니다."
분명히 홈스와 내 잘못이었다. 홈스는 문단혹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나는 경비원의 역할을 소홀
이 했다. 내가 아래층을 향해서 말했다.
"허드슨 부인, 염려 마세요. 마침 저와 홈스는 산책 나갈 핑계를 찾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찾
으러 나가면 되겠군요."
홈스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런던의 누런 안개는 언제나 음산안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안개가 짙은 밤에는 잘 보이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소리조차 물에 젖
은 것처럼 잘전해지지 않아서 마치 작은 공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끔씩 도둑고양
이들의 야옹 소리가 들리기도 해서 헨리 제임스의 귀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헨리에타는 관찰자가
보고 있지 않는 동안에는 여러 존재로 있게 되어서 어떤 특정한 곳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
다가 사람의 눈에 뜨이게 되면 다시 실존하는 고양이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환상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정말 환상일 뿐일까? 그것이 바로 양자론이 뜻하는 것이라는 괴팍한
교수들의 주장에 불과한 것일까?
"저기 있군, 왓슨."
홈스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순간에 나도 헨리에타를 보았다.
"아닙니다. 여기 있어요. 확실히 헨리에타입니다."
내가 몸을 굽혀서 고양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고양이는 나를 향해서 야옹거리더니 재빠르게 도망
가버렸다. 그 때 옆에서 홈스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홈스는 상처
난 손가락을 살펴보고 있었다.
"누구 말이 맞았던 건가요?"
홈스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아마 둘 다 틀렸겠지.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짙은 안개에 덮인 런던의 밤거리에서 숨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나서다니! 스스로 탐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적당한 일인 것 같군,
왓슨.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이 소문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렇지 않으면.... 오! 좋은 저녁이군
요, 레스트레이드 형사님! 이렇게 고약한 밤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습니까?"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와 부딪칠 뻔했던 우비를 입은 사나이가 바로 경찰국의
레스트레이드였다.
"바로 홈스 씨를 만나러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바깥에 나와 계십니까?"
설명을 해주려던 나를 홈스가 손을 저어 말리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안개가 시각과 청각에 어떤 영항을 미차는가를 알고 싶어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실험이 거의 다 끝났으니 따뜻한 난로 옆으로 돌아갑시다. 그나저나, 레스트레이드 형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돌아오는 길에 보니 헨리에타는 베이커가의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홈스가 고양이를 번쩍 안아
서 허드슨 부인이게 전해주었다. 허드슨 부인이 호들갑스럽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의아해했지만 홈스는 아무 말 없이 이층으로 급히 올라갔다. 잠시 후에 우
리 세 사람은 위스키 잔을 들고 따뜻한 난로 옆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레스트레이드 형사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홈스 씨, 대단한 사건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살인이나 유괴 같은 사건은 더욱 아니지요. 그
렇지만 경철청에서 유능하다고 알려진 사기 당담 형사마더조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입니다.
범죄 수사로 단련된 경찰청의 과학 자문관마저도 이런 사건은 처음 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홈
스 씨의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다."
레스트레이드 형사는 주머니에서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꺼냈다.
"최근 런던 전역의 신문 가판대에서 이런 카드가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카드는 한 장에 1실
링에 판매되고 있는 일종의 즉석 복권입니다. 복권의 규칙은 뒷면에 인쇄되어 있지요."
그는 홈스와 내가 읽을 수 있도록 복권의 뒷면을 보여주었다.
나는 무늬의 수를 손가락으로 세어보고 나서, 내 분석 능력도 홈스만큼은 될 것임을 자랑하듯이
말했다.
"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겠군요. 두 눈에는 각각 검은 점과 흰 점이 붙어 있을 수 있는 곳
이 네 곳이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인접한 점은 모두 16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승률은 16분의 4,
즉 4분의 1입니다. 평균적으로 보아서 4실링을 쓰면 5실링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복권을
파는 회사는 돈을 나누어주고 있는 셈이로군요!"
내 말을 들은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요, 박사님. 런던에 박사님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이 복권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답
니다. 그렇지만 홈스 씨, 이 복권의 실제 승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살은 놀라운 일은 아니겠
지요? 경찰청에서 복권을 많이 구입해서 실험을 해보았더니 실제 승률은 7분의 1에 지나지 않았
답니다. 그러니까 복권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보장되는 셈이지요."
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실험을 한 후에 복권에 남아 있는 점들을 모두 벗겨서 뒷면의 규칙이 사실인가를 확신해보았겠
지요?"
레스트레이드 형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못했답니다. 이 복권은 아주 영리한 화학자가 만든 모양입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직접 살펴보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홈스는 봉투 개봉기로 왼쪽 눈에 있는 두 개의 점을 벗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불꽃이 일면서 복
권이 모두 타버렸다! 한 순간에 복권은 회색재로 변해버렸고, 복권의 그림은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되는지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복권이 이렇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어
떤 방법으로도 한쪽 눈에서 한 점이 검거나 희다는 한 비트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가 없더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실제로 복권에 어떤 무늬가 인쇄되어 있는가를 알 수 가 없고, 그러니까 이 복
권이 교묘한 사기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도대체 어떤 무늬를 인쇄하면 실제 승률이 나오게 되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훌륭하군요, 레스트레이드 형사님. 무엇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눈에 인쇄된 무늬는 경찰청에서
얻은 승률이 나오도록 단순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졌겠지요! 그런 규칙이라면 나도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군요. 일곱 장의 복권 중에서 여섯 장은 두 눈을 전부 까맣게 칠하거나 아니면 전부
하얗게 칠하고, 나머지 한 장에서는 한쪽은 검은 색, 다른 쪽은 흰색으로 칠합니다. 그러면 어떤
위치를 선택하거나에 상관없이 경찰청에서 알아낸 것처럼 일곱 장 중에서 한 장은 당첨이 되겠지
요."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박사님,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런데 복권의 자동 파괴 기능이 작동되지 않도록 하
면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두 눈에서 같은 위치에 있는 점을 벗겨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요. 수 백 장의 복권으로 실험을 해보았더니 모든 복권에서 언제나 같은 색깍이 나
타나더군요. 그러니까 복권의 두 눈이 똑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까 한쪽은 전부 까맣고 다른쪽은 모두 하얀 복권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홈스가 한참을 생각한 후에 말했다.
"양쪽이 같기는 하지만, 눈의 4분의 1씩이 번갈아 가면서 다른 색이 아닌 복권이 있겠지요. 어쩌
면 비치볼과 같은 무늬일 수도 있겠구요. 예를 들어서 평면이 아니라 삼차원 공간의 임의의 방향
에서 비치볼을 쳐다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보는 방향에 따라서 공의 무늬가 다르게 보이지 않겠어
요?"
그는 그림을 그렸다.
"예를 들어서 이 경우에 검은 점과 흰 점이 인접한 곳은 두 곳뿐이지요. 그러니까 이 복권의 경
우에는 여덟 장 중에서 한 장이 당첨되겠군요. 이런 식으로 복권을 만들면 실제로 관찰한 당첨률
이 얻어질 수 있지 않겠어요? 문제를 뒷면의 규칙이 정확하게 사실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형사
처벌을 하기는 어렵겠군요. 복권을 제작한 사람이 교활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사기꾼이라고 하
기는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무슨 말이십니까? 홈스 씨는 이런 신사 같은 범죄에 익숙하신 모양이지만 제 경험으로는 이런
장난을 생각해내는 사람을 솔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어쨌든 우리는 벌써 그런 가능성도 배제
했답니다. 우리는 두 눈에서 서로 90도 떨어진 점들을 벗겨보았지요. 예를 들어서 왼쪽 눈의 가장
왼쪽 점과 오른쪽 눈의 가장 오른쪽 점을 벗겨보았습니다. 만약 홈스 씨가 추측한 무늬가 인쇄되
어 있다면 모든 카드에서 그런 색깔이 보였겠지요. 그렇지 않은 복권이 한 장이라도 있으면 그런
무늬는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 실험에 따르면 모두 다른 색이었습니다."
내가 외쳤다.
"그렇다면 무늬가 정말 4분의 1씩 번갈아 칠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한셈이로군요."
홈스가 조급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지, 와슨. 그런 결과는 단순히 무늬가 일종의 4
중 대칭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지. 그런 경우라면 원의 4분의 1을 임의로 선택해서
90도 회전시킨 다음에 색을 바꾸어서 무늬를 만들 수 있지 흰색은 검은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은
흰색으로. 다시 90도를 돌려서 세 번째 부분을 만들고, 다시 돌려서 마지막 조각을 만들 수가 있
지. 그러면 이런 종류의 무늬가 만들어질 걸세."
그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어쩌면... 그것도 좋은 추측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흰 점 바로 옆에 검은 점이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적어도 여덟 곳이나 되기 때문에 당첨률은 7분의 1이 아니라 2분의 1이 됩
니다! 홈스 씨, 이제 홈스 씨께서 정답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우리가 직접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새 복권 한 뭉치를 주고 돌아가버렸다.
놀랍게도 홈스는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길 정도로 심각한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
다.
"홈스! 실제로 역설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정확한 무늬를 찾는 것이 문제일 뿐
이겠지요"
"왓슨, 역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역설을 알아채지 못하
는 것은 정말 큰 실수지. 한 번에 만나서 하나씩 해결 해보도록 하세. 90도 회전시키면 검은 점은
흰 점이 되고, 흰 점은 검은 점이 된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아냈네. 그리고 흰 점과 검은 점이 인
접해 있는 위치에서 네 번째 떨어진 점도 역시 흰 점과 검은 점이 인접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
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분원으로 옮겨가면 색깔도 바뀐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분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원을 한 바퀴 돌게 되면 색깔이 서로 다른 점이 인접한 곳을 네
번 지나가게 되네. 그러니까 90도 회전할 때마다 레스트레이드 형사의 시험 규칙이 성립한다면
당첨률은 7분의 1이 아니라 4분의 1이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지. 정말 이상한 일이군!"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떳을 때 홈스는 전날 저녁에 입고 있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눈이 벌겋게
충혈된 상태로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홈스 앞에는 복권 더미와 함께 무엇인가를 잔뜩 적어놓은
종이가 있었다.
"잘 됐군, 왓슨. 이제 일어났나? 마침내 해답을 찾은 것 같네. 내가 찾은 해답이 맞는 지 함께
확인해보세.
설명이 불가능할 때는 언제나 그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던 내 말을 기억하겠지? 왓슨. 지금까
지 관찰한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흰 점과 검은 점의 무늬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있다는 거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어느 한 곳을 벗겨내고 그 밑에 숨겨
져 있는 점의 색깔을 관찰하기 전까지는 실제로 아무 무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네. 자네가
두 눈 중에서 오른쪽이나 왼쪽에서 한 점을 선택해서 벗겨내는 행위 자체가 다른 쪽의 무늬를 결
정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눈 밑의 숨겨진 무늬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아무런 의
미가 없게 되지. 실제 관찰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결정적인 정답이 없기 때문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왼쪽과 오른쪽 눈 사이에 어떤 식으로인가 서로 교신이 이루어져야 하네. 나는
소위 '원격 행위'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두 눈을 멀리 뜰어뜨려놓으면 그런 교신이 불가능하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네. 그래서 나는 여러 장의 복권을 반으로 잘라보았지. 자네가 이쪽에 있는
오른쪽 반쪽을 자네 바으로 가지고 가서 아무 점이 나 골라서 벗겨 보게. 복권의 순서가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네. 그러면 나는 이 쪽에 있는 왼쪽 반을 가지고 같은 작업을 하겠네. 그
런 다음에 두 세트를 비교해보면 어떤 결과가 얻어질 것인가를 알 수 있겠지. 이번 실험의 결과
가 레스트레이드 형사의 관찰 결과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확실하네. 내기를 해도 좋아."
그러나 우리의 실험 결과는 레스트레이드 형사의 결과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홈스와 내기를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말했다.
"아마도 어떤 무작위적인 요소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교신할 필요도 없는 모양이지요.
어쩌면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점을 벗겨내는 순간에 그 색갈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고요."
홈스는 머리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네. 만약 그렇다면 이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관찰 자체를 무시하는 셈
이 될 테니까 말이야. 어느 점을 선택하거나 그 점에 대응하는 점은 언제나 같은 색깔이었지 않
나? 복권의 반쪽들 사이에 교신이 없다면 어떤 무작위적이거나 불가피하게 그렇지 않은 예가 있
어야만 할 텐데 말이야.
왓슨, 나는 문제가 복잡해서 고생을 한 경우는 많이 경험했지만 이번 처럼 간단하기 때문에 고
생한 적은 없었네. 이 결과를 우리의 기본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군."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그의 수척한 모습에 동정을 표했다.
"홈스, 이런 과학문제를 전문 분야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 아닌가요? 내 경우에는 잘 모르는 증
상을 가진 환자가 찾아오면 전문가를 초청하는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홈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자네 말이 맞군, 왓슨. 바로 내 자존심이 문제로군. 내가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 단순한 논
리 문제의 해답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것이 무척 싫었던 모양이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에 우리의 과학자 친구중의 한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로 하세."
우리가 공원을 가로질러 일피리얼 대학으로 갔을 때 챌린저 교수는 지하의 실험실에 가고 없었
다. 홈스는 그의 방에서 기달려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지하의 실험실로 그를 찾아갔다. 우리가
실험실의 큰 문을 열었을 때 실험실 안은 온통 깜깜하고, 큰 장비에서 소름끼치는 푸른 색 빛이
희미하게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깝자기 화가 잔뜩 난 고함이 들려왔다.
"그 문을 닫지 못해! 망할 놈들!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두었는데도 말이야."
그러면서도 방 안에 전깃불이 켜졌다.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는 비교적 단순하게 보이는 장
치가 놓여 있는 실험대에 앉아 있었다. 실험 장치의 뚜껑이 열려 있어서 그 가운데서 푸른빛을
내고 있는 전 등을 볼 수 있었다. 양쪽 끝에는 쉽게 회전시킬 수 있도록 된 똑같은 모양의 필터
가 붙어 있었고, 그 바깥 쪽에는 렌즈가 놓여 있었다.
"실험을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왓슨과 내가 도저히 풀지 못할 문제가 있어서 교수
님들의 훌륭한 지혜를 빌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홈스가 사과를 하자 챌린저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홈스와 마찬가지로 두 교수도 역시 어
려운 문제 때문에 고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밤을 세워 고생을 한 모양으
로 이발소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것처럼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정말 죄송하군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곤궁에 처해 있습니다. 서멀리 교수와 나는 얼마 전에
유럽에서 성공한 실험을 반복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그 실험 결과를 믿
지 않고 있지요. 그렇지만 정말 황당한 결과 가 너무나도 쉽게 나타나고 있답니다. 어쩌면 좀 쉬
운 문제를 풀어보면 머리가 맑아질 수도 있겠군요."
서멀리 교수는 그래도 기분이 좀 나은 편인 모양이었다.
"챌린저 교수의 실례를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챌린저 교수는 지금 신경이 매우 날카로운 상태
랍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보이지 않는 파도가 부분적으로 양자 흔들림을 일으킬 것이라는 그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방금 확인했답니다.
챌린저 교수는 우리에거 의자를 권한 수에 복권의 역설에 대한 홈스의 간결한 설명을 관심있게
들었다. 홈스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두 교수는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챌린저 교수
가 옆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홈스 씨, 우리를 놀리고 있습니까?"
그는 한참 동안 홈스와 내 표정을 살펴보더니 머리를 저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그런데 지금 설명하는 내용이 우리가 밤을
세우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한 실험과 너무나도 똑같은 것이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를 실험 장치를 가리키면서 말을 계속했다.
"내가 주장하고있는 양자론의 파도타기 해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사실
은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해석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우선 입자나 파도타
기 선수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자계에 대해서
단순히 정보를 얻으려는 관찰이 가능한 상태들의 겹침 상태를 단하나의 실제 상태로 붕괴시켜버
린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유럽의 과학자가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했다는 군요. 어쩌
면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시험 중에서 가장 훌륭한 실험인 것도 같은데 그 결과는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가 푸른 전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 희미한 빛을 내는 전구는 좀 특별한 것으로 서로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광자를 쌍으로 방
출합니다. 광자 쌍은 편광 상태가지를 포함해서 모든 성질이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방출됩니다."
나는 헛기침을 해서 그의 말을 막고 물어보았다.
"제가 무식하다는 저을 양해해주십시오. 지금 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챌린저 교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설명을 계속했다.
"스핀과 유사한 광자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자가 편편하게
돌면서 날아가는 작은 원판이라고 생각하세요. 물론 그 원판은 어느 각도로도 기울어질 수 있지
요. 이제 그런 원판이 회적격자에 도달했다고 합시다."
나는 이해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원판이 회절격자의 줄과 평행이 되면 격자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겠지요. 반대로 원판이
회절격자의 줄과 수직이 되면 뒤로 퉁겨나갈 겁니다. 작은 유리판에 적당한 방법으로 코팅을 하
게 되면 광자에 대해서 그런 성질을 갖도록 만들 수가 있답니다. 그것을 바로 편광 필터라고 부
르지요. 선글라스로 사용하면 햇빛이 강할 때에도 눈이 부시지 않게 된답니다. 여기 실험 장치의
양쪽 끝에 있는 이 유리판이 바로 그런 필터입니다. 이 필터는 마음대로 돌릴 수가 있어서서로
같은 방향으로 맞추거나 임의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도록 할 수가 있지요.
이제 쌍을 이루고 있는 광자는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원판이 언제나 서로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쌍을 이루고 있는 광자의 각 운동량을 합하면
언제나 0이 됩니다.
즉 하나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으면, 다른 하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두 개의 광자는 언제나 같은 평면에서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각각의 광자가
편고아 유리에 도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갈르 짐작해보세요?"
내가 용감하게 나섰다.
"어디 볼까요? 광자가 회절격자와 평행이면 빠져나갈 것이고, 수직이면 퉁겨나가겠지요. 그런데
그 중간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으면 어떻게 되지요?"
챌린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우에는 확률의 문제가 되겠지요. 광자가 회절격자를 통과하게 될 확률은 회절격자와 편
광면 사이의 각도의 코사인 제곱으로 주어집니다. "
그는 손을 들어서 내가 끼어들려는 것을 막고 설명을 계속했다.
"여기서 삼각함수 이야기를 전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두 광자 사이에는 아무런 교
신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명백하겠지요. 각각의 광자가 퉁겨나갈 것인가 아닌가는 각각의 광자
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말했다.
"그래요. 그것은 저도 확실하게 알겠군요. 어떤 신호도 빛의 속도보다 빨리 전달될 수는 없지요.
그런데 두 광자는 정확하게 같은 시각에 필터에 도착할 테니까 한족 필터에 도달한 광자가 다른
쪽의 광자에게 순간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하겠군요."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두 광자 중의 하낭에 대해서 측정을 하기 전까지는
두 광자 모두 그 상태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양자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멀리 교수의 통계이론
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수학적으로 복잡한 문제는 그만두고 서멀리 교수의 이론이 예측하는 결과를 알아보기로 합시다.
만약 두 필터를 같은 각도로 고정히켜두면 두 광자는 언제나 똑같이 움직일 겁닏. 두 개 모두 통
과하거나, 아니면 두 개 모두 퉁겨나가겠지요. 그러니까 첫 번째 광자가 격자를 통과할 수 있도록
뒤틀어져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회전해서 격자에 수직이 되면, 두 번째 광자도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서 첫 번째 광자와 마찬가지로 회전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 광자는 언제나 똑같은 행
동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내가 항의하듯이 그의 말을 막았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내 생각에는 훨씬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복잡한 삼각
함수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지요. 광자와 회절 격자 사이의 각도가 45도 이하가 되면 빠져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퉁겨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두 광자가 서로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
하지 않더라도 두 광자가 똑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챌린저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런 설명으로 두 번째 실험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회절격자를 서로 수직이
되도록 돌려놓으면 광자는 언제나 서로 반대로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가 통과하고 다른
하나는 퉁겨진다는 말이지요."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 만약 두 필터를 90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2.5도 정도로 돌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요?"
나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같은 결과가 얻어지겠지마나 가끔씩 그렇지 않은 경우도 나타나겠
군요. 내 생각에는 네 번 주에 한 번은 서로 다르게 행동할 것 같습니다."
"아주 비슷하군요.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일곱 번 중에서 한 번만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나는 그가 갑지기 큰 소리로 외쳐서 깜짝 놀랐다. 더욱이 일곱 번 중의 한 번이라는 수가 어제
밤의 골치 아픈 기억을 되설려주어서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결국 식이 훨씬 더 복잡한 모양이로군요."
챌린저 교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광자들이 서로 교신을 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복잡한 식으로도 이런 결과
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복권과 똑같은 역설이 아닙니까? 두 개의
광자는 고양이의 왼쪽과 오른쪽에 해당하고, 두 필터 사이의 각도를 조정시키는 것이 두 눈에서
어떤 점을 벗겨낼 것인가에 해당힙니다. 즉 필터를 같은 각도로 고정시키면 같은 위치에 있는 점
을 벗겨내는 것에 해당되고, 수직으로 고정시키면 서러 직각인 위치에 있는 점을 벗겨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큰 신음 소리를 내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아무리 기막힌 가정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결과입니다. 이렇게 절망
적일 때는 절망적인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멀리 교수와 나는 결국 두 광자 사
이에 벷의 속도보다 빨리 신호가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 나릴까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
의하고 있었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둘 중의 어떤 광자가 먼저 영향을 주게 된느가는 문제로 남게 됩니다. 상대
성 이론에 따르면 사건이 알어나는 순서는 기준틀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라는 말 자
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서 실험실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관찰자에게는 왼쪽으
로 가고 있는 광자가 목표물에 먼저 도착하게 되지만,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가는 광자가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관찰자에게는 왼쪽 광자가
필터에 먼저 도착해서 오른쪽 광자에게 신호를 보내게 되지만, 다른 관찰자가 보면 반대로 오른
쪽 광자가 먼저 결정을 하고 난 다음에 왼쪽 광자가 그 결정을 따르게 되지요. 만약 그것이 사실
이라면 논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상은 광자뿐만 아니라 모든 입자가 어떤 종류의 상호 작용을 하거나에 상관없이 타나난
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가 아주 먼 곳에 있는 별에서 방출되는 전하를 가
진 입자인 우수선을 검출햇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우주선이 생성된 이후에 그 입자와 상호 작용
한 것이 있었던 모든 입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거나에 상관없이 모두 그 상태가 바뀌어 있을까요?
정말 믿기 어려운 결론이지요!"
나는 그의 이야기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보다 실용적인 우리 문제로 다시 돌아가
고 싶었다.
"그렇다면 복권 문제는 어떻게 된 겁니까?"
서멀리 교수가 급하게 손을 저었다.
"그 복권은 아주 교묘사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단순히 이런 양자 효과를 이용한 겁니다. 복권
의 양쪽에는 서로 상관 관계가 있는 스핀을 가진 전자가 숨겨져 있겠지요. 사진 필름을 이용했거
나 아니면 어떤 화학적인 묘수를 사용했겠지만, 벗겨진 점의 색깔이 숨겨진 전자의 스핀에 따라
서 결정되도록 만들었을 겁니다."
챌린저 교수가 큰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무슨 말입니까? 교수님이 알아낸 것은 원리일 뿐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화학자도 그런
원리를 실제로 적용하지는 못할 겁니다. 누군가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가는 사람이 이 새로운 물
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그런데 그 사람은 다른
과학자들과 협력하고 싶어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범죄작이거나 반체제주의자에 가까운 사
람일 수도 있겠지요."
그는 홈스를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홈스 씨는 세계에세 가장 훌륭한 탐정입니다. 홈스 씨께서는 분명히 런던 전체에 퍼
트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복권을 발해하고 있는 회사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홈스는 미소를 지었고, 챌린저 교수는 다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런 이상한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꼭 만나보아야만 합니다. 그 사람
은 마음이 비뚤어졌는지는 몰라도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내기
전에는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 공원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동안에 나는 정말 굉장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롤먼 씨가 우리 곁에 없는 것이 정말 아쉽군요. 상대성 이론을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이울 방에
잔뜩 흩어져 있는 복권을 이용해서 런던에서 뉴욕은 물론 세계 어느 곳을로도 메시지를 빛의 속
도보다 더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니 말입니다. 복권을 반으로 자르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홈스가 복권의 반족을 들고 뉴욕으로 가고, 나는 나머지 반쪽을 가지고
런던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는?"
홈스가 조용하게 물었다. 나는 홈스가 아직도 내 생각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면서
대답했다.
"미리 정해진 시간에 복권을 벗겨보지요. 홈스는 언제나 가장 위쪽의 점을 벗겨냅지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살 것을 바라면 위쪽의 벗겨내고, 팔아버릴 것을 바라면 왼쪽 점을 벗겨냅니다. 당신
의 복권에 타나나는 점이 나와 같은 색깔이면 내가 주식을 매입하기 바란다는 신호가 되겠지요."
"그런데 3,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내가 자네와 색깔은 같은지 같지 않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
나?"
나는 멈칫했다.
"아마도...그렇다면... 이렇게 할 수도 ... 아니로군요. 그렇게 될 수가 없군요. 나를 좀 도와주세요.
분명히 어떤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홈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안 될 거네. 자네가 복권에서 임의의 점이 검은색이나 흰색이 되도록 만들 수
가 없다는 사실이 문제지. 무슨 색깔의 메시지를 보낼 것인가의 상관 관계를 두 조각을 함께 비
교해볼 때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네. 복권을 고안해낸 사람은 누구도 그 복권이 작동하도록
하는 내부의 교신장치에 대해서 알아낼 수 없도록 만든 모양이야."
그는 익살처럼 말을 계속했다.
"시간을 가로질러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절대 허용이 안 되네, 왓슨. 우주가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거든.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주가 괴상한 것도 사실이네. 서멀리 교수가 알아낸 것은
큰 희생이 필요한 승리일 뿐이네. 그의 수학이 성공하기는 했지만, 다른 어떤 것에도 안 맞는 결
과가 얻어졌잖나?"
12. 잃어버린 세계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홈스의 흔적도 볼 수가 없었다. 즉석 복권을 발행한 회사를 찾아내려는
그의 노력이 생각보다 매우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일어나기도 전
에 나갔다가 내가 잠들고 나서야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목요일에 회진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그
는 난로 옆에 기운 없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되었냐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실패한 것 같네, 왓슨. 그 사람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마처럼 교활한 사람들인
것 같네. 그 사람들은 내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잇는 듯해. 드디어 오늘 그 회사의 사물실은 찾아
냈는데 이미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문은 잠겨 있더군. 내가 빈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사무실을 소개해준 중개인이 우연히 찾아왔네. 키가 큰 아시아계 여성으로 아주 미인이었지. 내가
그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서 혼났다네. 그녀는 말솜씨가 아주
좋은 사람들에게 속았다고 하더군. 그 사람들이 임대료도 다 내지 않고 도망간 모양이야. 그래서
그 여자도 나만큼이나 열심히 그 사람들을 찾고 있다네."
나는 홈스에게 보여주려고 남겨두었던 어제 신문을 집어들었다.
"안됐습니다, 홈스. 복권에서 잘 이용한 양자 측정의 역설을 해결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니 말
입니다. 그런데 왕립학회에서 개최했던 그 문제에 대한 열띤 토론에 대한 기사가 이 신문에 났습
니다. 우리 친구인 일링워스 박사께서 그 토론회를 주재했던 모양인데 상당히 시끄러웠던 것 같
아요.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한 다음에 일리워스 박사가 청중들에게 의견을 물었
답니다. 청중들인 대부분이 과학자가 아니라 이상야릇한 철학자와 논리학자들이었던 모양입니다.
한 사람은 그런 실험이 사실은 자유 의지와 우연이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는군요. 복권에서 어느 쪽을 먼저 벗겨내거나 어느 쪽의 편광판을 돌릴 것인가는
언제나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주 전체가 아주 미묘하게 서로 연결되
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답니다. 우주라는 것이 의식을 가진 관찰자의 마음에만 존
재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고, 의식 있는 관찰자의 존재가 신비로운 방법으로 사건을 맞들어내는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관찰의 메커니즘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관찰이 어
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의문 자체도 의미가 없을것이라는 사람도 있었다는 군요. 그리고 그런
효과는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미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답니다. 홈스, 제 생각에는 그런
사람들의 주장은 모두 패배 주의자들의 어리석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어쩌면 제가 그들의 토론
내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제 자신을 철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까 말예요."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왓슨, 자네가 철학자가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철학자들의 그럴듯한 궤변보다는 퉁명
스러운 자네의 상식을 더 믿는다네."
"그런데 미술관에 근무한다는 한 여자의 말이 정막 기막힌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여러 개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가 현실로 나타나는 양자 붕괴를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한 다음에 참석자들에
게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 여자의 주장에 의하면 우주라
는 것이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가능성이 모두 출현할 수 있도록 많이 존재한다는
군요. 관찰자가 그중의 하나의 우주를 인식하게 된느 것은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는 중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만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일종의 일관성 있는 환상일 뿐이랍
니다.
참석자들 중에서는 그 여자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예요. 사람들은
그 여자에게 그런 우주가 과연 몇 개나 존자하는지, 그 수는 무한한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늘어나는지, 사람들이 왜 우주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하는군
요. 그런데 그 여자가 제대로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일링워스 박사가 그녀의 자격을 따지면서, 그곳
에 모인 저명한 토론자들은 알 수 없는 비전문가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인 것이 아니
라고 말해버렸고, 그 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렸답니다. 그 여자의 말이 너무 엉뚱
한 것이어서 나도 처음에는 일링워스 박사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챌진저 교수는 일링워스 박사에게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그 여자의 주장이 가
장 그럴듯하고, 만약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의 이상한 가정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
후에도 열띤 토론이 계속된 모야인데, 결국 챌린저 교수가 벽에 걸려 있던 장식용 칼을 집어들고
일링워스 박사에게 그 칼이 바로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외치고 나서야 토론이 겨우 끝났답니다.
그곳에 있던 기자들에게는 정말 신나는 토론이었다는군요."
홈스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바로 오컴의 윌리엄이 주장했던 논리 절약 또는 경제성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로군. 어떤 사실
을 설명할 때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 말고는 가정으로 도입하지 말라는 것이지. 그 중세의 영국
논리학자는 훌륭한 탐정이 될 수 있었을 거야."
나는 신문 기사 내용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 외모가 빼어났다는 부동산 중개인 말입니다. 혹시 그 여자, 게 모양의 금빛 장식물이 달린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들은 홈스는 벌떡 일어나서 내 손에서 신물을 빼앗아서 열심 살펴보더니 욕을 하면서
신문을 던져버렸다.
"왓슨, 바로 그 여자였네. 내 꾀에 내가 넘어가버렸군. 그 여자에게 묘한 느낌과 총명함이 풍겨
나왔는데 말이야.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서도 나는 단순히 그 여자의 미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
해버렸거든. 결국은 그 여자를 놓쳐버리고 말았군! 정말 딱한 일이네. 나는 교묘한 과학적인 방법
으로 테러 위협을 하는 반체제주의자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런 지식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
데도 말이네."
나는 홈스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홈스가 여자의 미모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흐트러
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더 물어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문 앞에는 큰 체구의 당당한 신사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사람
은 비싼 옷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방금 마라톤을 마친 사럼처럼 창백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
고 있었따. 홈스는 그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내게 부탁했다.
"왓슨, 손님께 브랜디 한 잔 가져다주겠나?"
방문객은 아직도 숨을 거칠게 쉬면서 말을 못했지만 명함을 꺼내서 홈스에게 주었다. 홈스가 그
명함을 보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교육응용연구소의 그레이너 박사님. 죄송합니다만 박사님, 당신의 유명한 연구소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레이너 박사는 홈스의 말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앟았다. 어쩌면 너무 지쳐버린 것도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음하듯이 말했다.
"제 연구소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젊은 사람이 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 두 시간
도 안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몸에 전깃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전기 충격으로 살해된
모양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나는 이 사건 때문에 완저히 망하게 될 겁니다."
홈스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흥미로운 사건이군요. 공명심에 불타는 경찰이 현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우리가 먼
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왓슨, 어서 택시를 불러주게. 사건 내용은 택시를타고 가면서 들어도 되
니까요."
그레이너 박사의 연구소는 펜랜즈에 있었고, 우리는 30분도 안 되어서 펜처치 역을 출발하는 기
차에 오를 수었었다. 우리가 객실에 자리를 잡고 나자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레이너 박사가 사건
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젊고 경솔한 학생이었던 20년 전에 두 가지 중요한 연구 결과를 얻었습니다. 역청이라는
염료를 합성하는 방법과 그 염료에서 값비싼 화합물을 생산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지요.
나는 새로운 반응에 대한 귀중한 아이디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지도교수의 친구중에서
파크스 씨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좀 의심스러운 명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내 일에 학술
적인 관심 이상의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 사람은 정해진 기간 안에 내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돈의 일부를 미리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큰 도시의 살고 있던 젊은이에게는 유혹이 많이 않았겠습니까? 내 의욕은 왕성했지만 주
어지니 시간이 훨씬 지날 때까지도 나는 그 연구를 끝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에 체격이 건장한 남자를 끝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아침에 체격이 건장한
남자 두 사람이 내 하숫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파크스 씨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면
서 그의 요구를 거부하면 안 된다고 강압적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들이 타고 왔던 마차에 올랐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파크스 씨의 궁
궐 같은 시골집 대신이 바깥에서 보면 사람이 살수도 없을 것 같은 아주 작은 돌집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그곳에는 내 연구에 필요한 참고 서적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내 학위 논문의 사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 주에서 체격이 더 건장한 남자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를 협박했
습니다 논문을 완성하기 전에는 그곳을 떠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앟고
빈둥거리기만 하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나는 협박을 받는 위압적인 분위기에서는 창조적인 연구가 불가
능하다고 말해주었지요. 휴식을 해야할 필요도 있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 아침 내내 커피를 마시
면서 친구들과 잡담을 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준비가 있어야만 30분 정도에 걸쳐
서 정말 훌륭한 수준의 일일 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무례한 친구들이 내 목덜미를 잡아서 번쩍 들더니 이빨이 덜렁거릴 때까지 흔들어
버리던군요.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 정말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시실을 깨닫게 되었던 거지
요."
홈스가 별로 흥미없다는 듯이 딱딱한 투로 말했다.
"그런 소문이 나면 전 세계의 모든 대학원생들이 놀라겠군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논문을 완성하고 받은 돈으로 머리는 좋지만 의욕이 부족한 수 천 명
의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요양소를 설립하기도 했지요. 우리 시설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하루 종
일 방에 갇혀서 아무런 유혹도 없는 환경에서 연필과 종이만 가지고 지내게 됩니다. 음식물과 같
은 사치품은 스스로 생산적인 일 한 대가로 벌어야만 합니다. 논물을 한 페이지 쓰면 빵을 한 조
각 얻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교환 원칙입니다.
곧 우리 시설은 유명해졌지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입소 비용을 높게
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연구소를 아무 문제 없이 운영되어왔습니
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홈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위로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ㅈ구은 젊은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죠."
"펨버턴 말입니까? 우리 연구소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은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똑똑한
학생이었지요. 케임브리지 대학의 우등생이었던 그는 수리철학 분야의 어려운 논문을 쓰고 있었
는에, 3년이 지나도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학비를 대는 일에 지쳐 있었지
요. 잡안 형편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부자는 아니었으니까요. 그 젊은이 자신은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이 그 학생을 우리 시설에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잘 적응하
는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내가 바라던 만큼 열심히 노력하지는 않더군요. 사실 지금 생각난 건데, 지난 몇 주 동안은 대
부분의 학생들이 일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더군요. 요즘 젊은이들은..."
그는 요즘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통렬한 비판을 시작했지만 기차가 멈추는 바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긴 여행에 지친 우리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큰 건물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립되어 있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유혹을 차단하기에 좋지요."
그레이너 박사는 계단 으로 마중을 나오고 있는 인상이 좋고 건강하게 생긴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좋은 저녁이예요, 케이트. 우리를 도와주실 탐정님을 모시고 왔어요."
그렇지만 그 여자는 기분이 상한 듯이 콧웃음을 치면서 말햇다.
"전보를 치면 될 일을 런던가지 가서 하루를 낭비했단 말예요? 이제 그럴 필요도 없게 됐어요.
그분들에게 이곳을 소개해드릴 필요도 없다는 말이어요. 모든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어요. 당
신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어요. 이상한 일이 생겨서 당신이 만들어둔 몇 달 치의 회계장부로도
부족하게 됐어요."
그 여자는 냉정한 말투와는 다르게 그레이너 박사에게 다정하게 키스르 했다. 그리고는 홈스와
나를 복도로 안내해서 책상과 딱딱한 의자, 좁은 야전 침대뿐이고, 창문이 높이 달린 감옥 같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잘 생긴 젊은이가 책상 위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의 이마에 커다란 화상이
있는 것을 보아서 어느 부위가 감전되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머리 양쪽에는 봉랍이 발라
져 있었고, 두 줄의 전깃줄이 창틀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전깃줄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보았습니까?"
홈스의 물음에 그레이너 부인이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경찰이 케임브리지에서 수사관이 올 때까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옳은 말이군요, 부인. 기다리는 동안에 바깥을 잠간 둘러보겠습니다. 모든 방에 비슷하게 생긴
창문이 있겠지요?"
바깥으로 나온 우리는 창분을 따라 걸으면서 창틀을 유심히 사펴보았다. 창문마다 잘 절연된 전
깃줄 두 줄식이 연결되어 있었다. 가느다란 전깃줄이 두 창문 사이에 담쟁이 넝쿨처럼 연결되어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도록 벽에 감추어벼 있었고, 전깃물은 건전저기 잔뜩 쌓여 있는 작은 집까
지 연결되어 있었다. 건전지들은 상당한 전압이 나오도록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떻게 감전 사고가 일어났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 이상한 장치를
만들었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갑자기 홈스가 무엇인가를 깨달은 읏이 탄성을 질렀다. 우리
가 집 뒤로 돌아갔을 때, 그레이너 부인이 우리를 찾으러 왔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홈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학생들 중의 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려울까요?"
그레이너 부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면서 말했다.
"학생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불 끌 시간이 되기 전에 잠깐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어느 방 아픙로 데리고 갔다. 문을 열고 우리를 내다보고 있더 볼이 홀쭉한 젊은
이에게 그녀가 냉정하게 말했다.
"딕스비 씨, 이 분들이 불쌍한 펨버턴에게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답니다."
홈스는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안해하는 딕스비에게 돌아서서 조용하게 말했다.
"장난은 이제 끝났습니다. 라디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냈습니다. 오늘밤에 어떤 일을 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펨버턴의 아이디어였지만 단순한 장난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가 흐느끼면서 말하기 시작했고, 홈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 참을 울먹이던 딕스비가 마
침내 한숨을 쉬면서 말햇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지요. 그렇지만 가끔씩은 혼자 있는 것이 견디기 어려
울 정도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일요일에만 인근 마을까지 산책을 할 수 있답니다. 그 마을에 작
은 라디오 가게가 있지요. 펨버턴의 제안으로 우리는 모두 이어폰과 건전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돈을 모아서 라디오 수신기를 한 대 샀지요.
그렇지만 너무 유혹이 크지 않도로고 장치했습니다. 건전지를 한 개씩만 장치하고, 하녀를 매수
해서 건전지가 다 되면 새 것으로 바꾸어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이어폰을 수신기에 직렬로 연결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이어폰을 동시에 연결해야먄 라디오가 작동이 됩니다. 우리는 매일 오후 1시
부터 30분 동안만 라디오 뉴스롤 듣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혼자서는 이 규칙을
어길 수가 없지요. 정확하게 지켜질 수밖에 없는 규칙이었습니다. "
"오늘가지는 분명히 그랬겠지요."
홈스의 말에 딕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펨버턴이 새로운 꾀를 생각해냈다고 하면서 우리들한테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펨버턴이 일찍 방을 몰래 빠져나와서 우리 방마다 창문으로 지시시항을
넣어주었습니다.
내게는 뉴스 직후에 방송되는 뉴마킷의 경마 결과를 잘 들어두라는 지시가 왔습니다. 만약 피들
러의 리치라는 말이 10시 30분 경기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전깃줄을 합선시키라고 하더군요. 그리
고 전깃줄에는 높은 전앞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니까 맨손으로는 만지지 말라는 말도 했습니다.
옆방의 윌로비도 비슷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11시 경기에서 롱보이라는 말을 주의해서 보
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 지시가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데 펨버튼이 무엇을 원했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고, 약간 흥분
해 있는 것 같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그가 자살을 계획하고 있을 것 이라는 흔적은 전혀 없었습
니다. "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감사합니다. 다시는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
우리는 그레이너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투정하고 있는 안채 대신에 펨버턴의 시신
이 놓여 있는 방으로 되돌아갔다. 홈스가 갑자기 시신의 주머니를 몰래 뒤지기 시작했다.
"뭘 찾으세요?"
"왓슨, 지금 두 가지를 찾고 있네. 경마권과 편지를 찾고 있는 중이지. 깊이 숨겨놓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하! 여기 있군."
그는 웃옷의 주머니에서 분홍색 종이를 꺼내어 내게 주었다. 봉투에는 '수신인 귀하'라고만 적혀
있었다. 내게는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종이였다. 나는 도박을 해본 적은 없디만 그 종이가 평범한
경마권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누적 경마권이라는 거네."
궁금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홈스가 설명해주었다.
"이 경마권은 한 번의 경기가 아니라 연속 경기에 사용하는 경마권이지. 하루에 열리는 경기 전
부를 대상으로 하는 누적 경마권도 있다네. 이 경마권은 다섯 경기를 위한 것이로군.
첫 번째 경기에서 지명된 말이 이기게 되면 규정에 따라 상금이 올라가게 되고, 두 번째 경기에
지명한 말로 옮겨가게 되지. 지명한 다섯 마리의 말 중에서 한 마리라도 경기에서 탈락하면 경마
권 전체가 무효가 되버리네. 그대신 다섯 마리라도 경기에서 탈락하면 경마권 전체가 무효가 되
벌리네. 그 대신 다섯 마리의 말이 모두 승리하게 도면 보통 보더 훨신 더 많은 상금을 받게 되
지. 이런 경마권은 승률이 낮기는 하지만 상금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전문 도박꾼들은 이런 누
적 경마권을 좋아한다네. 누적 경마권 한 정이 적중하게 되면 경마 회사가 파산해버릴 수도 있다
고 하더군.
왓슨. 이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겠나? 펨버턴은 오늘 엄청난 거부가 되거나 고통 없이 죽어
버리고 싶었던 거네. 그는 친구들을 동원해서 자신이 도박에서 졌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죽어
버리고 싶었던 거지."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그렇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뭡니까? 홈스. 전혀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렇게 승률이 낮은 상금을 노렸다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얘깁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네. 그런데 이것은 그레이너 부부에게 보내는 편지
일 거네. 그 사람들 앞에서 열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잠시 후에 홈스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거실에 앉아서 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내서 큰 소리
로 읽었다.
보십시오.
어제 나는 아주 특별한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수없이 많
은 유사한 우주에 살고 있고, 그런 우주에서는 무한히 많은 모든 가능한 양지 결과가 동시에 일
어나고 있답니다.
나는 그 이론에 완전히 매혹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배운 것에 의하면 무한의 두
배도 무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한 곱하기 무한도 무한보다는 크지 않다고 알고 있습
니다. 그래서 만약 그 이론이 사실이라면 이길 확률이 수만 분의 일에 지나지 않더라도 내 생명
을 걸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무한히 많은 내 자신의 유사한 복제 중에서 만 분의 일만이 살아남게 되겠지만, 그 수 역시 무
한히 큰 수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내 자신의 복제들은 지금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
청난 부가 되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나는 단순한 허구의 존재, 즉 내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우주로 보낼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편질를 일게 될 사람은 내 부모님께 사과의 말슴을 전해주시고, 내가
절망에 빠져서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논리적인 이유로 이렇게 한 것임을 설명해주시
기 바랍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보려고 했던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서 펨버턴 씀
나는 밤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홈스에게 물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데요?"
"그레이너 씨는 똑똑하기는 하지만 좀 게으론 것 같더군요. 그런 사람이 사업에 성공한 것이 조
금 놀랍습니다. 그를 감독하기 위해서 공요했던 사람들은 그가 논물을 완성한 후에는 모두 떠나
버렸지요. 그 후에는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을까요?"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레이너 박사의 가족을 잘 생각해보면 그 답을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더니 그는 읽고 있던 신물을 내려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왓슨, 이 사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몇 가지 경고를 해야 할 것 같네.
첫째,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그 여러 개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는 거네."
둘째, 만약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우주의 수가 정말 무한히 많은지 아니면 단
순히 상당히 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걸세. 진정한 의미에서 무한대의 만 분의 일은 역시
무한대겠지. 그렇지만 유한한 수의 만 분의 일은 처음 수보다 그만큼 작은 수네.
셋째, 자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부상만 입힐 확률이 만 분의 일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
도 알려주어야 하네. 그것도 가벼운 부상이 아니라 치명적인 부상일 가능성이 높지. 그러니까 부
자가 되는 사람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살아라게 되는 사람이 더 많게 되는 거네.
마지막으로 부자가 되는 복제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가족과 친구들이 슬픔에 빠지게 될
테니까 그런 생각 자체가 아주 이기적이라는 거네. 실제로 접촉할 수 없는 우주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철학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런 생각은 단순히 자기 중심적인 이기
심에 지니지 않지."
나는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막았다.
"홈스, 독자들에게 정당한 일은 아닐 것 같군요. 평소에 당신은 어린이에게 아주 위험한 모험을
다루는 책에 '어린아이는 집에서 흉내내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을 넣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습
니까? 그렇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런 경고가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렇지만 당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면 그렇게 해도 좋을 겁니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홈스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서두르세, 왓슨! 게임이 벌서 시작됐어. 빈체제주의자들이 쳐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의 동움이 필
요하게 되었네."
나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겨우 옷을 입었다. 바깥은 아직도 칠흑같이 어두웠고, 경찰 마차가 우
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굉장한 소동이 일어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차가 출발할 때
그에게 불평을 했다. 홈스는 잠에서 완전히 깬 모습이었다.
"아니네, 왓슨. 아주 미묘한 협박이 있었다네. 경찰이 우리 도움을 필요로하니까 우리는 그 요청
에 응해주는 것이 의무지."
켄싱턴가의 중간에는 경찰 저지선이 설치되어 있었고, 200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는 또다른 저지
선이 있는 모양이었다. 주민들이 잠옷 바람으로 대피하고있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 레스트레이드
형사의 못습이 보였다. 그가 우리를 보고 기분 좋게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홈스 씨께서 왜 이곳엘 오셨는제 모르겠군요. 폭탄을 제거하는 동안
정신을 바짝 차리기만 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몇 파운드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폭
탄입니다. 다만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보낸 쪽지 한 장과 이번 사건의 해결을 방해하
기로 결심한 듯한 정신나간 교수 한 사람이 문제일 뿐이요. 그 교수가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몇
시간 동아닝라도 유치장에 가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황소같이 생긴 모습을 한 그 정신자간 교수가 누군이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홈스가 말했다.
"내가 챌린저 교수를 잘 압니다."
"그렇다면 잘됐군요. 제발 그를 안심시켜서 여기서 먼 곳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레스트레이드가 우리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사물실 건물 안에서는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
다. 현관 맞은편에는 여러 가지 기ㅖ가 있었고, 그 옆에는 사각형의 판이 붙어 있는 파이프가 연
결된 유리 탱크가 놓여있었다. 챌린저 교수가 그 옆에 서서 두 사람의 경찰관과 심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그는 우리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외쳤다.
"맙소사. 어서 오세요, 홈스 씨. 당신은 이 사람들과 말이 통하겠지요? 그렇지요? 내가 이 사람
들에게 이것이 보통의 폭탄이 아니라 일종의 지능시험용 특수 폭탄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려고
애를 쓰고 있답니다. 여기 매달린 설명서에 따르면 이 폭탄에 시한 장치는 없습니다. 대신에 이
폭탄에는 아주 민감한 기폭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 폭탄을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전
혀 없습니다. 한 개의 광자만 충돌하더라도 이 폭탄이 터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행스럽게
도 그 기폭 장치는 밀폐된 통 속에 들어 있는데, 저 파이프의 끝을 잘라야만 닿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서에 의하면 그 기폭 장치는 지금은 잠겨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
실이라면 이 폭판은 안저한 상태인 셈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주 조심
스럽게 취급해야만 합니다."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우리 뒤에 와서 말했다.
"교수님의 단순한 논리에 의하면 이 폭탄이 작동해서 결국은 터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 사람들을 한없이 대피시켜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충분히 먼 곳까지 대피
시켜두고 폭탄을 분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안전하게 분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폭탄을 폭발시
킨 다음에 그 뒷처럼를 할 수밖에 없겠지요."
"만약 폭탄이 작동 중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까? 이 부근에는 아주
중요한 소장픔이 있는 박물관도 여러 곳 있습니다."
챌린저 교수가 흥분해서 말했지만 레스트레이드 형사는 어깨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만약 폭탄이 작동 중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모래주머니를 쌓거나 하는 사전 조처를 취해야
지요. 만약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그렇게 복잡한 준비를 할 필욯가 없습니다. 더구나 기폭
장치가 그렇게 예민한 것이라면 폭탄을 실제로 폭발시켜보기 전에는 그 폭탄이 작동 중인가를 확
인할 길이 없군요."
챌린저 교수가 콧웃음을 쳤다.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이 멍청이들에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겁니다. 충분한
시간을 주면 내가 완벽하게 안전한 시험 장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폭탄을 폭발시킬 가능성이 매
우 낮으면서도 폭탄이 작동 중인가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버을 간단하게 고안해낼 수가 있다는 말
입니다."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폭탄에 광자를 쏘아보내면 됩니다."
"맙소사. 교수님께서 만약 기폭 장치가 작동 중이라면 광자에 의해서 폭탄이 터져버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챌린저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긴 한숨을 쉬었다.
"홈스 씨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홈스 씨는 현대 과학의 기본 적인 상식을 많이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저도 홈스 씨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만약 5분 내에 홈스 씨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이곳을 떠나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교수님이 아무리 유명하신 분이라고 하더라도 체포해서 경
찰서로 이송하겠습니다. "
그렇게 말한 레스트레이드 형사는 불쾌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챌린저 교수는 주머니에서 연필과
종이를 꺼냈다.
"무대 위에 귀신의 환상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지요? 무대와 관중석 사이의 중간에 유리판을
적당한 각도로 설치해서 유리판에 비춰지는 빛의 절반은 투과되고, 나머지 절반은 반사되도록 할
수가 있지요. 그렇게 하면 유리에 반사된 모습이 유리판의 반대쪽에 보이는 모습만큼이나 사실적
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런 홀로그래피 장치를 사용하면 무대 옆에 있는 배우가 무대를 가로 질러
서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무대 장치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가 있지
요. 내가 사용하려고 하는 장치도 비슷한 겁니다."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광자를 비슷듬히 세워진 유리로 보냅니다. 광자가 오른쪽으로 반사될 확률이 절반이고, 기울어
진 거울을 그대로 통과해서 폭탄의 기폭 장치로 가게 될 확률이 절반입니다. 이 장치의 오른족에
애덤스 박사가 만든 미감한 사진 필름을 놓아두면 되지요."
내가 알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렇군요. 이것은 두 틈새 실험을 옆으로 기울인 것이로군요."
"맞습니다, 박사. 만약 기폭 장치가 잠겨 있다면 이 장치에 충분히 많은 광자를 보낼 수 있을 것
이고 사진 필름에는 잘 알고 있는 띠 모양의 간섭 무늬가 생각게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개의 광
자만 쏘아보내면 가운데의 어두운 띠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한 모든 곳에 점이 나타나게되겠지
만, 그 경우에도 희마하긴 하겠지만 간섭 무늬가 나타날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기폭 장치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한 개의 광자를 쏘아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자신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그 놀라운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절반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광자가 우연히도 기울어
진 거울에서 반사된다면 필름에 한 개의 점이 나타나겠지요."
"그 점이 나타나는 위치는 필름에서 어느 곳일까요?"
나는 더 자신있게 말했다.
"아무 곳에나 나타나겠지요. 중앙의 검은 띠를 제외한 어느 곳이나 말입니다."
내 말을 들은 챌린저 교수는 머리를 저으면서 경멸하듯이 말했다.
"당신의 생각하는 방법이 정말 흥미롭군요. 광자가 어떤 틈새를 지나가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특
정을 하기만 하면 띠 모양의 간섭 무늬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요? 그런데 폭탄을
터지도록 만드는 기폭 장치도 광자의 존재를 기록하는 측정 장치가 아닐까요? 폭탄이 폭발한다면
광자가 거울을 지나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사된 것이 되지 않습니까?"
나는 내 잘못을 깨닫고 실수를 만회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기폭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면 간섭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가운데 부분
에도 광자가 도달할 수 있겠군요. 다른 곳은 물론이고 가운데도 닿을 수 있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었다면 광자를 보내봅시다. 폭판이 터져 버릴 수도 있고, 첫 번째
거울에 반사되어서 필름에 닿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운이
좋아서, 광자가 첫 번째 거울에 반사되어서 간섭 현상으로 어두운 띠가 생길 가운데 부분에 닿게
되면 폭탄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포탄이 터지지도 않
을 것이고, 기폭 장치를 안전하게 해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말도 안 된다도 생까했다. 실제로 광자게 기폭 장치에 닿지도 않았는데 기폭
장치가 켜져 있는가 꺼져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다는 주장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논리에는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흠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임피리얼 대학의 챌린저 교수 실험실이 바로 근처에0 있었기 때문에 그가 생까했
던 장치를 설치하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긴 주의 끝에 광자를 한 개씩 방출할 수 있
는 전기 램프의 스위치가 연결되었다. 우리 모두는 안전한 거리까지 물러나서 챌린저 교수가 스
위치를 누를 때를 기다렸다. 그가 스위치를 눌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관 한 사람
이 비웃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챌린저 교수는 개의치 않고 필름을 꺼내서 현상하러 실험
실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 그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서 돌아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사! 이 폭탄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창피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위치를 누르자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기폭 장치는 정말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래 주머
니 덕분에 피해가 최소한으로 줄어든 것을 확인한 후에 챌린저 교수는 우리 어깨를 두드려주고
사라져버렸다.
새벽 무렵에 집으로 걸어오면서 내가 말했다.
"챌린저 교수의 실험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두 개의 평행한 세
상이 있고, 실험의 특성 때문에 그 두 세상이 잠시 서로 교순이르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겁니
다. 그중의 한 세상은 재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한 번의 실험으로 기폭 장치가 폭발하게 되었습니
다. 그렇지만 그런 정보가 이쪽의 실제 세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사실은 기폭 장치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아낼 수 있게 된 겁니다."
내 섬령에 대해서 홈스는 아무런 댇답도 없었다. 그의 몸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눌렀다.
"왓슨, 저쪽을 보게!"
나는 어둠 속에서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좀 떨어진 곳에 키가 크고 아름다운 아시아계 여
성이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겉옷 앞쪽에 금빛 장식물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홈스가 급히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그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 속으로 사
라져버렸다.
그 여자를 찾으러 뛰어가는 홈스의 모습이 우습게 보였지만 그에게는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어떤 클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전하게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홈스는 전
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따라 들어간 방에는 아편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방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후에야 우리는 사람들이 가윽한 강당과 같은 곳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되
었다.
나는 방 안에 가득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
에게 자리에 앉도록 손짓을 했다. 마침 요란한 색깔의 옷을 입은 마술사가 무대에 올라갔다. 바로
우리가 쫓아왔던 그 여자였다.
"여러분, 지금까지는 별 것 아닌 마술을 몇 가지 보셨습니다. 이제부터 정말 놀라운 마술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제가 여러 개의 현실 사이의 장막을 걷어 보여드리겠습니다. 몇 초
동안에 불과하기는 하겠지만 우리 곁을 스쳐 지나서 멀어져 가는 세게와 잠시라도 접촉할 수 있
을 겁니다. "
그러면서 그 여자는 무대의 중앙에 놓여 있는 큰 장치를 가리켰다. 그 장치는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고, 두 개의 스위치와 전구가 위로 튀어나와 잇었다. 그녀가 스위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가 이 스위치를 누르면 한 개의 광자가 방출되어서 유리판에 닿게 되는데, 그 광자가 유리판
을 통과할 확률은 절반입니다. 만약 광자가 유리판을 통과하게 되면 이속에 있는 원자를 들뜨게
만들어서 이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되고, 여기 있는 작은 스위치를 누르면 원자가 다시 에너지를
잃으면서 전구가 꺼지게 됩니다.
몰론 광자가 유리판을 통과하지 못하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두 가지 가능
한 세계에세의 원자 상태는 서로 연결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의 영햐을
미친다는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광자가 지나간 세계의 원자가 방전되도록 하면, 광자가 지나가
지 않은 세계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서 그 세게에 있는 전구에서도 역시 불이 켜지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사실을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자원자가 한 사람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그 여자가 나를 선택했다.
"박사님, 무대로 올라오십시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를 따라 하십시오. 우선 알파벳 중에서 아
무것이나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어떤 글자를 골랐는가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이 단추
를 누르겠습니다. 그리고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그 글자가 무엇인가를 말씁해주십시오."
나는 북쪽을 나타내는 N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여자는 기계에 붙
어 있는 큰 스위치를 눌렀다. 그 여자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목에 걸고 잇던 초시계의 단추를
눌렀다.
"이제 무슨 글자였는가를 말해주세요."
내가 N이라고 대답하자 그 여자는 초시계를 열심히 보고있다가 정확하게 선택한 순간에 작은
단추를 눌러서 전구에 불이 꺼지도록 했다. 그리고는 기계와 초시계를 모두 다시 준비 상태로 둘
려놓고 나서 다시 명령했다.
"두 번째 글자를 생각하세요."
나는 O를 선택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가 큰 단추를 눌렀지만 이번에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여자는 다시 초시계를 열실히 들여다보았ㄷ. 몇 초 후에 전구의 불이 깜박이
자 그 여자는 승리감이 도취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의 글자는 O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아냈을까?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다시 R을 선택했고, 이번에도 불이 켜지지 않아서 나는 조용히 있었다.
"R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지 우리는 'norbury'라는 단어를 완성하게 되었다. 정확한 시간 간격에
따라서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전해지는 신호가 나만이 알고 있던 단어를 온전하게 전해준
모양이었다. 마지막 그라자를 맞히고 나자 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부인, 당신이 사용하고있는 기계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 여자가 고개를 저었지만 홈스는 개의치 않고 무디로 뛰어올라갔다. 그러나 건장한 체격의 극
장 경비원 두 사람이 그를 가로막았고. 그를 도와주려던 나도 역시 잡혀버렸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혀져 있었다.
신음 소리가 들려서 옆을 쳐다보았더니 홈스가 비틀거리면서 깨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의
지하면서 겨우 이러설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홈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스턴가인 것 같네, 베이커가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곳이군. 오늘밤의 모험이 훨씬 더 위
험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다행이네."
우리는 서쪽을 향해서 말없이 걸었다. 잠시 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홈스, 우리가 며칠 동안 겪었던 일들이 정마라 사실이었습니까?"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왓슨. 적어도 오늘밤까지의 사건들은 말이지. 불가능할 것 같던 챌린저 교수의
폭탄 실험도 사실은 여러 번 성공했던 실험이라더군. "
"그렇지만 오늘 밤의 일은 우리를 위해서 아주 신중하게 꾸며진 것 같아요. 그 여자가 의도적으
로 우리를 아편 소굴로 유인했고, 그곳에서 아편 냄새에 취한 우리를 상대로 내가 알기로는 역사
상 처음으로 고안된 실험을 해보였던 것 같아요. 단순한 속임수었다면 정말 그럴 수가 있었을까
요?"
홈스가 내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심령사와 무당들이 잘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을 속이는 묘한 방법이었지. 자네는 'norbury'라는
단어를 자네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했겠지.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해결했던 가자 유명한 사
건이 일어났던 지방의 이름이라네! 자네가 자신에 넘쳐 흥분할 때 내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 같
나?"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니까 평행으로 존재한다는 세계라는 것은 모두 엉터리로군요!"
홈스는 머리를 저었다.
"왓슨, 그런 주장이 아직은 확실하게 증명되지는 않았다네.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아무리 어려울 것 같은 가능성이라도 진실이 될 수 있다는 내 말을 기억하겠지" 다중세계의 존재
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괴상한 양자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 중에서 가능성이 아주 낮은
것이라고만 말해두고 싶군."
유니버시티 대학교가 멀리 보였고,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글귀가
걸려 있는 옆문이 보였다.
"홈스, 이번 모험이 잘 끝나주었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이제는 나 뿐만 아니라 당신가지도 이 문
제를 포기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철학이나 수학과 같이 난해할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겨
두어야 할 것 같아요."
홈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는 않네. 언제나 느슨한 부분이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그리고 모든 문제의 해답이 더
심오한 문제를 제기하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 바로 과학이라네. 지금부터 몇 년 동안은 챌린저 교
수와 서멀리 교수가 밝혀내려고 하는 그런 종류의 발견이 계속될 걸세.
그렇다고 모든 일을 완벽하지도 않은 과학자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되지. 과학자들은 스스로
의 꾀에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자네도 내게 훨씬 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괴상한 방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잖나?
이론가들은 언제나 정직해야만 하네. 똑똑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스스로가 그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 왓슨, 절대
겁낼 필요가 없네. 그런 희귀한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거나에 상관없이 상식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로 실제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유횩적인 궤변을 막아야 하네. 그래서 이런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언제나 자네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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