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 時 空 要 塞
마크로스
THE SUPER DIMENSION FORTRESS-1 MACROSS
애니메이션 소설(TV판)
< 등장 메카닉과 용어 설명 >
젠트러디 군 : 감찰군에 적대하는 우주 군단. 은하 대제국(프로토 컬쳐)의
멸망 후에 은하대전이 젠트러디 군과 감찰군의 대립으로 계속되었다.
감찰군 : 젠트러디 군의 적대 세력. 마크로스는 본래 이들의 전함이었지만,
전투 중에 대파되어 지구에 추락했다.
마크로스 시가지 : 마크로스 함내 뒷부분에 설치된 일반 거주구. 공원 등의
공공 시설외에 다방이나 술집 등도 있다.
암드1,2(통합군) : 마크로스의 팔로 접속하기 위해 건조된 대형 우주 항공
모함.
배틀 포트(젠트러디군) : 보행에 편리하게 개발된 기동 병기. 이로써 보병
부대의 화력과 전략 따위의 기능성도 향상 되었다. 일반용(리카트) 과
장교용(크래쉬)이 따로 있다.
배틀 슈츠(젠트러디군) : 백병전용으로 사용되는 전투 강화복, 남군은
누자델 카, 여군은 쿠아드런 라우를 사용.
정찰 포트(젠트러디 군) : 기수에 4문의 빔포를 장비, 통합군의 식별 코드는
'백 아이', 원 명칭은 '켈 케리어'
정신감응 번역기(젠트러디군) : 언어가 다른 사람 사이에 사용되는 기계.
스페이스 홀드 시스템 : 우주의 초과학에 의해 개발된 일종의 공간 이동
시스템. 먼저 있던 공간과 현재 있는 공간을 교환하여 위치를 바꾼다.
{ '디홀드'는 홀드한 것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편집자주:lynngie)}
핵 대피소 : 마크로스를 재건한 아타리아섬에 있었던 것 이지만, 스페이스
홀드에 휘말려 명왕성 궤도까지 날려가 버린다.
다이더로스(다이달로스, 데드러스, Daeadalus) 공격 : 마크로스의 오른쪽
팔인 다이더로스의 앞쪽 끝을 '핀 포인트 배리어'로 실드하고, 이것을
적함에 찔러 내부를 파괴하는 전법. 원래 다이달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임.
프로메테우스 : 마크로스 왼쪽 팔로 연결된 우주항공 모함. 원래 그리스
신화의 신의 이름임. 마크로스 극장판에서는 다이더로스와 프로메테우스가
마크로스의 팔로 연결되지 않고 원래 예정대로 암드I,II가 연결됨.
핀 포인트 배리어(PIN POINT BARRIER) : 스페이스 홀드 시스템이 날아간
뒤에 생긴, 이상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고안된 소형 배리어
프로토 컬쳐(PROTO-CULTURE) : 태고에 멸망한 인류를 가리키는 말.
그들은 젠트러디 군과 같은 거인족을 만들었으며,
그 프로토 컬쳐가 갖고 있던 문화를 마이크론인 지구인도 갖고 있다.
마이크론 : 젠트러디의 말로 '축소된 인간'의 뜻.
스컬(SKULL,해골) : 로이 포커 발키리의 코드 이름이며 편대명.
버밀리언 : 히카루의 발키리의 코드 이름이며 소대명
고스트 : 마크로스 호위를 목적으로 만든 무인 전투기. 1화에서 잠깐
나온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는 신형 고스트가 나와 주인공들을
괴롭히지만...
콕피트(cockpit): 비행기의 조종석
콘솔(consol): 계기판(판넬)
데스트로이드 : 통합군의 지상병기, 이것의 종류로는 스파르탄, 디펜더,
패랑스, 토마호크, 몬스터가 있다.
발키리(VALKYRIE) : 통합군의 변형전투기인 VF-1을 말함. 각각 변형
형태에 따라 FIGHTER(전투기), 가웍(GERWALK, Ground Effective
Reinforcement of Winged Armament with Locomotive Knee-joint의 약자)
배트로이드(BATTROID, 로봇 형태)가 있다. 기종에는 VF-1A,
VF-1D(복좌, 2인승) VF-1J, VF-1S, 그리고 극장판에만 나오는 VT-1
(훈련기, 2인승). 극장판에는 VF-1J형이 없음.
원래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투의 여신 이름이며,
미국의 실험기인 초음속 폭격기 XB-70에서 따왔다.
<제1편의 주요 등장 인물>
이치죠 히카루 : 16살. 비행기를 가장 좋아하는 소년, 파일럿으로서는
띄어난 능력이 있지만, 그 이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
린 민메이(Lynn Minmay) : 15살. 가수가 되기를 꿈꾸는 소녀,
쾌활하지만 변덕스러움.
하야세 미사 : 19살. 마크로스의 전투 지휘 계통의 통신사,
소극적인 면이 있다.
로이 포커 : 29살. 마크로스 소속 스컬 대대의 대장. 히카루의 아버지와
아는 사이이며, 후배인 히카루를 여러 가지로 돌보고 있다.
{(편집자주: 이름이 로이이고 성은 포커이다. 이 책에는 포커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로이라고 적지 않겠다.)}
클로디아 라셀 : 24살. 마크로스의 조함(操艦)계통의 브릿지 통신사.
포커와는 연인 사이.
브르노 J 그로벌 : 56살, 마크로스 함장.
샤미, 킴, 바넷사 : 브릿지의 세명의 여자 통신사. 재잘거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함. 브릿지 3인조로 통함. 성격은 세 사람이 제각기 여서
샤미는 내성적, 킴은 외향적, 바넷사는 이지적이지만 사이가 더없이 좋다.
브리타이 크리다닉 : 젠트러디 군 브리타이 함대 사령관. 마크로스의
존재에 흥미를 갖고 끈질기게 추적한다. 신장 12.5 m
엑세돌 폴모 : 브리타이함의 기록 참모. 젠트러디 사람으로서는 다소
몸집이 작음. 띄어난 기억력과 정보 분석력을 갖추었다.
민이 : 6살, 민메이와 사이가 좋은 사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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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곡(주제가)
M A C R O S S
노래: 藤原 誠
대우주를 가로질러 / 지구를 때린 천둥은
우리들 어리석은 인류에게 / 눈을 뜨라며 발산된 겁니다.
마크로스. 마크로스.
용감히 일어선 젊은이는 /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면서
여행의 나날들을 싸움으로 점철합니다.
WILL YOU LOVE ME TOMORROW?(당신은 앞으로도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둠을 가르며 날아가는 그의 앞에는 / 멀리 빛나는 푸른 별.
마크로스. 마크로스. 마크로스.
우주의 아이들을 거느리고 / 별 저편의 어둠속
영원히 계속되는 싸움을 / 향해 날아가는 운명의 화살.
마크로스. 마크로스.
희미한 햇살과 자장가. / 갓난아기가 잠드는 엄마의 가슴.
사랑하는 나날들을 싸움으로 지킵니다.
WILL YOU LOVE ME TOMORROW?
어둠을 가르며 뻗어 가는 빛줄기. / 빛이 가득할 날은 언제쯤일까.
마크로스. 마크로스. 마크로스.
제1장
마크로스 발진
제1화 Booby Trap(위장 덫)
외계에서 온 마크로스
하늘을 진동시키는 축포소리에 민메이는 창 밖을 보았다. 찬란한 초여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민메이는 커다란 눈을 부신 듯이 가늘게 떴다.
투명할 정도로 파란 맑디 맑은 하늘이었다. 민메이는 문득 풍덩 뛰어들어가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이봐, 민메이. 여기 냉수 한잔!"
한 손님이 소리를 질었다.
"아, 죄송합니다!"
깜짝 놀란 민메이는 계산대로 서둘러 갔다. 여기는 바로 중국 음식점
"니얀니얀"(1) 의 가게 안이다. 많은 손님들이 후루룩거리며 우동을 먹기도
하고, 만두를 먹기도 한다. 모두 마크로스의 우주 출발 광경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정말 저렇게 태산 같은 물체가 날수 있을까?"
"바보같이! 공연히 걱정하지마. 재수 없게시리."
"만일 추락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이런 섬은 산산조각이 날 꺼야."
"그러나, 한 번 떨어진 것이 다시 떨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어."
마크로스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가 오고가는 사이를 민메이는 바쁘게
부지런히 일을 하며 다녔다. 주문한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식탁을 닦기도
하며... 그때마다 빨간 스커트자락이 미풍 속에서 꽃같이 흔들렸다.
"대단히 감사 합니다.."
민메이는 가게를 나가는 손님에게 이마의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문이 열리자, 상점가 맞은편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전함 마크로스
브릿지가 보였다.
{(1)니얀니얀 : 민메이 숙부가 경영하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중국집?),
뜻은 낭낭(娘娘,아가씨) }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서기 1999년, 지구 근처의 우주 공간에 갑자기 빛을
발하는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물체는 그대로 지구에 접근하며, 대기권으
로 들어와 지구를 약 3/4 바퀴 돈 후, 북태평양 오가사와라 제도 남쪽의
남아타리아섬에 추락했다. 그 충격으로 섬의 반 정도가 날아가고 그때 일
어난 해일은 주위의 여러 섬을 삼켜 버렸다.
그 당시 겨우 다섯 살이던 린 민메이는, 요코하마에 있는 자기 집 뜰에서
모래장난에 열중하고 있었다. 삽으로 모래산 을 만들고 탁탁 손으로 다져갔
다. 민메이는 자기만의 성을 만들 셈이었다. 그러나 완성하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빨간 플라스틱 물통을 모래산 위에 올려놓아 보았다. 이번에
는 상당히 멋지게 보여, 민메이는 엎드린 채 만족스런 표정으로 성을 뚫어
지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민메이의 머리 위에서 번쩍 하고 빛이 흩어
졌다. 깜짝 놀라 얼굴을 들어보니, 빛은 하늘에 두 갈래의 꼬리를 끌면서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민메이의 눈에는 빛이 성의 정상인 플라스틱
물통 안에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당황하여 물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민메이의 가슴은 감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아, 내 성에 별님이 떨어졌어! 틀림없이 근사한 일이 일어날 거야."
라고 민메이는 생각한 것이다.
물체 추락 직후, 현장에 많은 신문사와 방송국의 비행기들이 모여들었다.
운석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던 그들은 멍청히 그 물체를 내려다볼 뿐이었
다. 뜻밖에도 전체 길이가 1,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우주선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보도는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국제 조사단까지 파견되었다.
조사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이 물체는 틀림없이 지구 밖에서
어떤 생명체가 타고 온 우주선이며, 인류에게는 미지의 동력 기관을 이용하고
있는 것 외에도, 인류를 훨씬 능가하는 초기계학적으로 건조되었다는 것이었
다. 더구나 이 우주선은 강력한 무장을 갖춘 전투함으로, 최근까지 실전에
사용되었던 것 같다는 것도 판명되었다.
갑자기 날아온 이 거대한 낙하물은, 대우주의 신비 속에서 인류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계속되고 있는 별들의 전쟁을 말하고 있었다.
우주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주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우주는 대상물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이
다. 그렇지만 누구나 밤 하늘을 쳐다보며 그 무한한 암흑에 한없는 공포감을
느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지구라고 하는 혹성이 작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다른 혹성인과의 싸움에 대비하여 인류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공포에 의해서 지구 인류의 동포 의식은 강해져 갔다.
이렇게 해서 통합 정부가 수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가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격렬한 국지전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다. 그 사이에도 통합정부는
낙하한 전함의 복구를 서둘렀다.
무인도였던 아타리아섬에 몇 개의 숙소가 세워지고, 전함의 선진 기술을
흡수한 지구 과학은 급속도로 진보되어 갔다. 이윽고 길고 힘든 통합 전쟁도
끝나고 지구는 평화를 되찾았다. 아타리아섬에는 전함 견학자와 군인을 겨냥한
상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어느새 인가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였다.
마침내 10년의 세월과 많은 피를 흘린 결과, 다른 혹성의 추락선은 거대한
전함 "마크로스" 로서 되살아난 것이다.
민메이는 아직까지도 모래사장에서의 사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크로스의 우주 출발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숙모네 집인
바로 이 "니얀니얀" 에 놀러온 것 이다.
물론 그녀는 어린 마음에 멋대로 꾸며냈던 그 행운의 조짐을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민메이는 마크로스의 일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이상한 인연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민메이가 빈 그릇을 수북히 겹쳐서 나르자, 주방의 숙부와 숙모가 소리를
질렀다.
"민메이, 이젠 됐다."
"이제 식이 시작될 꺼야."
"와, 고맙습니다."
민메이는 서둘러서 허리의 앞치마를 풀었다.
집 앞 길은 식전 회장으로 가는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모두 축제 기분으로
들뜬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약간의 서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이 마을의 회장이 기운이 없는
초라한 눈으로 마크로스의 위용을 우러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
나란히 걷고 있던 철물점 주인이 말을 걸었다.
"아침 저녁으로 쳐다보던 저 마크로스도 오늘로 마지막이 라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그렇게 되면 허전할 것이라는 말을 삼키고 철물점 주인은 담배에 불을 붙였
다.
"이 주변의 상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회장은 숱이 없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때,
"아저씨!"
방울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민메이였다.
"아저씨, 안색이 좋지 않으신 데, 어디 아프세요?"
"그래, 민메이... 이 나이가 되면 익숙해진 경치가 조금이 라도 변하면
불안해지는 법이야. 정원의 나무 하나가 죽은 것만으로도......"
"네에....."
아직 어린 민메이로서는 회장의 기분을 잘 알 수 없었다. 단지 마크로스가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다
"민메이 누나!"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사내아이가 달려왔다. "니얀니얀"부근에 사는 민이
였다.
"누나. 마크로스 식전에 가는 거야? 함께 가요!"
"그래, 민이와 데이트..."
말끝을 흐린 민메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좋아. 봐 드리지."
"쳇, 무다리인 주제에!"
"요게, 말 다했어!"
민이가 웃으면서 뛰어가자, 민메이는 주먹을 치켜들고 뒤쫓아갔다.
"기다려! 기다리지 못해!"
이러한 뒷모습을 마을 회장과 철물점 주인이 쳐다보며 웃었다.
"민메이 녀석, 언제 봐도 귀여워."
"정말이지...'
진짜 귀엽다라는 말을 삼키며 철물점 주인은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날카롭고 시끄러운 사이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오토바이를 선두로 고급 승용차가 오고 있었다.
"마크로스 추진파의 높은 사람이 진우식(우주 진출식)
전에 가는 거야."
회장은 말하면서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 안에서는 풍채가 좋은 의원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흔들면서 옆자리의 마크로스 함장 그로벌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가, 그로벌 함장. 여태 취해 있는가? 모처럼 시민들이 자네의 진우식
을 축하해 주고 있는데. 좀 응답해 주지 않겠나?"
"아, 네....."
그을린 피부에 하얀 군모가 어울리는 사나이는 어색한 듯 이 입술을 삐죽
이고는 약간 손을 흔들었다. 차는 인파 속을 헤치며 전함 마크로스의 코
끝에 설치된 식전 회장으로 향했다.
마크로스 브릿지 안에서 미사는 그로벌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한
듯 그녀는 몇 번이나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미사 중위님!"
뒤를 돌아다보자 조종사인 샤미가 보고를 했다.
"함장님이 식장으로 오시라는 것 같습니다."
미사는 힐끗 시계를 보고,
"식전 시작까지 앞으로 10분. 겨우 시간에 댈 것 같군...함장님은 지금까지
뭐하고 계셨지?"
라고 말하면서 레이더 스크린의 스위치를 넣었다.
"연회라도 한 것이 아닌지. 지구 방어 회의인가 하는 일로 어젯밤 나간 체."
이렇게 대답한 것은 계기 점검을 하고 있던 클로디아였다.
"부부도 아닌데...."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사가 말했다.
"......!? 무슨 말이지?"
"로이 소령과 외박하고 아침에 들어오는... 상당한 유명인이야."
"외박하고 아침에!?"
클로디아는 갈색 빛의 얼굴을 들고 물었다.
"임무에는 전혀 지장 없어!"
"당신은 괜찮아도, 소령은 마크로스 호위 때문에 비행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 사람은 하룻밤 술 마신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통합 전쟁 때에는
술먹은 다음날에도 비행기를 5대나 떨어뜨렸다고 자랑했을 정도니까."
"그렇다고 해도, 만약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면...."
"틀림없어! 내가 보증한다니까! 혹 그 남자가 마음에 있는 거 아니야?"
키가 큰 클로디아가 미사를 큰 소리로 놀렸다.
"미사 중위님, 남자한테 관심이 있으십니까?"
세 명의 통신사 중에 한 명인 킴이 물었다.
"바보같이! 미사 중위도 여자야, 여자! 여자는 누구나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미사 중위도 물론....."
클로디아가 양손을 펼치고 과장된 태도로 계속했다.
"오, 무척이나 남자를 기다리는 그 눈동자! 아, 사관 학교 수석 미사 중위!"
"이, 이봐......!"
미사가 클로디아를 불렀을 때,
"어머 스크린에 반응이!"
하며 클로디아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미사는 클로디아를 노려보면서 자리에
앉아 비주얼 스크린으로 바꾸었다. 비행 중인 소형 비행기가 비치기 시작했
다. 공격 능력이 없는 비행기지만 상당한 스피드로 햇빛을 가르며 다가왔다.
번쩍 빛나는 기체가 미사의 눈에 들어왔다.
진홍색의 파일럿복을 입은 소년은 눈 아래의 마크로스로 향했다.
"시간에 댈 것 같군."
천천히 비행기의 스피드를 떨어뜨리자, 마크로스부터 무선 통신이 들어
왔다. 미사의 목소리 였다.
"코스 1057을 비행 중인 소형기, 소속을 통보해 주십시오"
"이치죠 히카루! 소대 넘버 1021."
"..확인됐습니다. 로이 소령의 초대이군요. 코스 1069를 따라 착륙해 주십
시오."
"알았다."
히카루는 레버를 기울였다.
마크로스 야외 식전 회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민이의 손을
쥔 민메이의 모습도 보였다.
"지금부터 최신예 전투기인 발키리 다섯 대가 연출하는 곡예 묘기가
시작 됩니다. 해설은 통합 전쟁의 주요 인물 로이 포커 소령..."
안내 방송과 함께 단상에 로이가 올라 왔다. 장신에 금발이며, 예리한 눈매
에 어딘가 차가운 그늘이 진 남자이다.
착륙 태세에 들어간 히카루의 눈에 다섯 대의 발키리가 날아들어 왔다.
발키리는 옆으로 V 자 모양을 그리며 편대를 만들어서 크게 회전했다.
히카루는 싱긋 웃고 비행기를 활주로에 쭉 미끄러져 내리게 했다가 다시
기체를 끌어 올렸다.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늘을 쳐다보며 발키리의 세련
된 디자인과 그 스피드에 감탄의 환성을 질렀다.
"3번 비행기, 4번 비행기에 주목해 주십시오..."
로이가 마이크로 해설했다.
"지상 20미터를 시속 960킬로미터의 스피드로 스쳐지나
가는 것입니다. 기체와 기체의 틈은 불과 5미터...앗!"
갑자기 로이는 소리를 질렀다. 곡예를 하는 지역으로 비행기가 들어온
것이다.
"히, 히카루 ! 너 히카루구나!"
"선배님! 오래간만입니다. 안녕하셨읍니까?"
"뭐! 뭐가 안녕 이야? 이 녀석!"
"초대해 준 것에 비해 쌀쌀 맞군요."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에 관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민메이도 하얀 이를 드러
내고 웃었다.
어느새 발키리가 편대를 풀고 각각의 방향으로 급회전 하며 흩어졌다. 그리
고 3번 비행기와 4번 비행기는 반대 방향에서 저공 비행으로 들어 왔다.
"항상 내 뒤만 날아다니는 주제에!"
로이는 히카루를 향해 계속해서 고함쳤다.
"언제까지 뒤따라 다닐 거라고 단정하지 마세요. 선배님...."
히카루는 조종 레버를 올리고 로이를 향해 급강하했다.
"뭐, 뭐야!"
다가오는 비행기에 당황한 로이는 몸을 움츠렸다. 그 머리 위를 살짝 스쳐
지나가자마자 비행기의 부스터가 불을 뿜었다. 동시에 방향을 바꾸어 급상승
한 히카루의 비행기는 지금 막 스치려 하고 있던 세 번째 네 번째 발키리의
교차점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발키리 조종사의 얼굴에 놀라서 일그러져 버렸
다. 아슬아슬하게 히카루의 비행기가 빠져 지나가고, 다음 순간 두대의 발키리
가 스쳐 지나갔다.
"저, 저 녀석..."
로이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의 힘을 뺐다. 관중은 박수를 치며 매우 즐거워
하고 두 명의 발키리 조종사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
"바보 같은 녀석!"
"멍텅구리 같은 녀석, 떨어져 버려라!"
수평비행으로 되돌아온 히카루는 공손하게 응답했다.
"갑니다!"
히카루가 활주로에 내려서자, 로이는 무서운 표정을 하며 달려 왔다.
"선배님!"
히카루의 마음에는 새삼 반가움이 넘쳤으나, 로이는 히카루의 멱살을 움켜
잡고 말했다.
"너 어느새 솜씨가 그렇게 좋아졌어! 어떻게 된 거야?"
"바로 이 속도를 높이면서 방향을 바꾸어 상승하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선배님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히카루는 윙크를 했다.
로이는 감탄한 나머지 움켜쥔 손을 놓으며 말했다.
"너 아마추어 대회에서 두세 번 우승한 것 가지고 우쭐대지 마."
"앞으로 네 번 정도는 무난할 것 같은데요."
"일곱 번 정도로는 뽐내지 말라구!!"
한번 큰 소리로 꾸짖고 로이는 가슴을 폈다.
"너 따위는 문제 없다. 통합 전쟁에서 180대나 격추시켰어."
"사람을 죽였어요?"
"......."
로이는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 히카루는 침묵을 지키더니,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히카루는 뒤따라가며 물었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어요?"
"......."
활주로 구석의 자동판매기 앞까지 간 로이는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덜컥 하고 음료수 캔이 떨어지자 로이는 그것을 히카루를 향해 던져 주었다.
"잘 먹겠어요."
로이는 깡통 마개를 따며 말했다.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것이 전쟁이니까...."
로이는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너의 아버님에게는 미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일단 전투기에 타게 되면..."
이렇게 말하면서 깡통을 주먹으로 찌그러뜨렸다.
"..... 일단 전투기에 타면, 죽던가 죽이던가 최대의 긴장감속에 휘말리게
되어 버리는 거야. 목숨을 건 세계에 자신의 피가 한데 뭉쳐 버리는 것이
지. 너도 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히카루는 로이를 쳐다 보았다. 그 옆모습은 매우 어둡게 느껴졌다. 히카루는
쥬스를 마셨다. 입 안에 퍼지는 탄산가스가 톡 쏘았다.
히카루의 아버지는 곡예 전문의 파일럿 팀의 리더였다. 로이도 그 일원 이었
다. 히카루의 아버지는 로이의 훌륭한 소질을 칭찬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항상 보다 위험한 곡예를 시도하는 그의 비행에 어딘가 비장한 그림자를
보고 불안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로이의 군대 지원에 맹렬히 반대했던 것이
다. 군대는 너무나도 로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마치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오른쪽 가슴에 작게 해골 모양의 자수가 새겨져 있는 군복이 그에게 지나칠
정도로 어울리듯이... 히카루의 아버지는 비장감이 감도는 로이의 천재적인
테크닉과, 피비린내 나는 군대와의 사이에서 불길한 징조를 본 것이다.
그리고 로이가 통합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있었을 때, 히카루의 아버지는
위험한 곡예 도중에 사고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변하셨어요, 선배님....."
히카루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으음...."
".......?"
히카루는 로이의 모습이 변했다고 생각하며 그 시선을 따랐
다. 앞쪽에 민메이와 민이가 있었다.
"콜라, 코-올-라.."
민이가 자동판매기를 가리키며 조르고 있었다.
"안돼! 조금 전에 쥬스 마셨잖아."
민메이 민이를 억지로 끌며 걸어갔다. 로이는 민메이의 얼굴, 가슴, 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히카루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것 뿐이네요."
힘껏 로이의 발끝을 짓밟았다.
"아야! 왜 이래, 히카루야!"
"선배님 약속을 지키세요."
"무슨 약속?"
"발키리에 태워 주신다고 했잖아요."
전시용 발키리가 있는 지점에 오자 히카루의 눈은 반짝거렸다.
"이것이 아까 그 전투기 에요?"
"그건, 네가 싫어하는 전투기야."
"기계에 잘못은 없어요. 사용하는 인간이 문제죠."
히카루는 발키리의 허리 부분을 사랑스러운 듯이 어루만졌다. 매끄로운
감촉과 차가운 감촉이 팔의 근육을 자극했다. 두 사람은 조종석에 나란히
앉았다.
"굉장하네요."
갖가지 계기에 히카루는 감탄의 환성을 질렀다.
"후후, 이것은 우주도 날 수 있지."
"설마!?"
"이 엔진은 열 핵반응 타입이야. 어디라도 날수 있어. 무엇보다도 마크로스
호위기가 우주를 날수 없어서야 어떻게 한담."
히카루의 뇌리에 우주를 자유롭게 비행하는 발키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야!"
히카루는 감탄하며 무심코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마크로스에 벌어진 이변
우주란 무한한 공간이다. 그리고 우주는 무한한 그대로 거듭 그 무한의
날개를 계속 펼쳐 나간다. 인간은 끝끝내 무한의 관념에 새끼 손가락
끝만큼도 접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주 창조를 주관한 신들의 마음
이기 때문이다. 우주란 우리들에게 있어서 메마른 혼돈밖에 없다. 혼돈이 란
말로 의미를 짓게 되면, 우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의미를 검은 입 속으로
삼켜 버릴 것이다.
인간이 쓸쓸함과 혹은 자신감에 또는 희희낙락하여 밤 하늘을 쳐다볼 때,
비로소 우주의 여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위로하는 모습, 교훈을 주는
얼굴, 축복해주는 마음.... 우주는 우리들의 마음에 의해, 극히 개인적인 모습을
띄는 것이다. 인정미가 없는 사람에게 우주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어두운 침묵의 신령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그 무한한 어둠을 가르듯이 대우주에서 빛의 덩어리가 부풀어 올랐다.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전함이었다. 전함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갑자기 빛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검푸른 선체는 흉측한
굴곡을 보이며, 붉고 푸른 램프들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이면서도 여전히 먹이를 겨냥하는 탐욕스러운 짐승의 깜빡
거리는 눈동자와 같았다.
전함의 스크린에서 지구가 작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저 별줄기인가? 감찰군의 배가 디홀드 한게...."
브리타이 크리다닉은 말했다. 그의 얼굴의 반은 철가면으로 덮여 있다. 전쟁
으로 상처를 입은 얼굴의 기능을 보완하는 철가면이다.
"아, 틀림없이 디홀드 빛을 탐지했습니다."
부하인 엑세돌 폴모가 대답했다.
"다시 디홀드한 흔적은 없는가?"
"네 특히 저 혹성은 거주 가능 지역에 들어 있어서...."
"그래, 그러나 놈들은 이 혹성을 철수 중이었을 것이다. 그
저 낙오한 전함인지도 모르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좋아, 선도함을 보내라!"
모함으로 부터 발사된 고석 정은 꼬리를 끌며 일직선으로 지구를 향해
갔다.
그 때 마크로스 식전 회장에서는 단상에 선 추진파 의원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들은...그렇기 때문에...마크로스가 인류에게 가져
다 주는...을 믿으며...."
의원 뒤에는 마크로스 관계자들이 죽 늘어서 있다. 그 중에는 하품을 참느
라 눈물이 글썽이는 그로벌의 모습도 보였다. 장교 하나가 그로벌에게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함장님, 달 궤도에서 중력 이변과 발광 현상이 탐지되었다고 합니다."
"음...10년전 마크로스가 낙하했을 때와 똑같은...."
"그럼, 여기서 함장님이신......."
"그로벌 씨를 소개 합니다. 하는 말을 하려고 의원이 뒤를
돌아다보았을 때, 그로벌은 브릿지로 막 가려는 참이었다.
"이...이봐, 어디 가는 거야!? 이봐!"
브릿지의 클로디아가 컴퓨터 앞에서 외쳤다.
"왜 그래요?"
미사가 물었다.
"구 사령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7년 전에 폐쇄한 것인데."
"무슨 일이지!?"
그로벌이 들어 왔다.
"이럴 수가!! 구 시스템에서 정보가 역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옛 사령부위 계기가 바삐 꺼졌다 켜졌다 했다.
"중단하라!"
그로벌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안됩니다, 함장님!"
"모든 시스템을 정지하라"
클로디아가 스위치를 뽑으려고 한 순간, 팍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아앗!! 주포 발사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뭐, 뭐라고.......!?"
엉겁결에 그로벌은 눈을 돌렸다. 마크로스함의 주포가 좌우로 열렸다. 주포
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두 개의 포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포신 사이에
오렌지색의 광립자가 흘렀다. 위윙...하고 힘을 집중하는 소리가 높아지더니,
마침내 균열과 같은 빛이 주포 전체를 덮었다. 이어서 노랗게 달구어진 철봉
과 같은 빔이 발사되고, 그 빔은 굉음과 함께 섬을 날아다니다가 해상으로
뻗어나갔다. 몰려드는 높은 파도가 잇달아 둘로 갈라지고 급상승한 빔은 하늘
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달 궤도 내에 다가온 브리타이 함대 고속정이 폭발되었
다. 그러나 우주 공간에서는 폭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파괴일
뿐 파편도 낙하하는 일 없이 그저 계속 떠돌았다.
브리타이 함내 스크린에서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보고 있었다.
"흠, 역시 저 혹성에 숨겨져 있었던..."
"전함에 발령!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기함 주변에는 어느새 많은 중형선과 소형선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를 향해 일제히 스피드를 올렸다.
발키리와 배틀 포트의 대결
주포의 발사음은 발키리 전시 시점에까지 울려 퍼졌다. 로이에게서 발키리
조종법을 배우고 있던 히카루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소리는..... 멋진 축포소리군요......."
"글쎄........."
로이의 눈썹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그는 민감하게 전쟁의 냄새를 맡고 있
었다.
"히카루. 잠시 상황을 알아보고 올께. 그거 만지지 말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조종석에서 뛰어 내렸다.
"함내 관제가 정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클로디아가 말했다. 구사령 시스템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드디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미사의 눈앞에 있는 컴퓨터 스크린에 코드 넘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함장님, 스타 클래스(1)에 대한 암호입니다. 주포 빔이 달 궤도 내 28만 킬
로미터 지점에서 우주선 같은 것을 격파. 거듭.. 후속 우주선 다수 접근...!"
{(1)스타 클래스(star class) : 스타(별) 급에 대한 암호를 말하다.
1급 비밀과 같은 기밀의 암호라고 생각됨.}
보고하는 미사의 얼굴이 조금씩 새파래졌다. 클로디아와 세 명의 여 통신사
의 얼굴도 긴장으로 굳어졌다.
"........."
창 밖을 보는 그로벌의 어깨가 떨렸다.
"후후후......"
작은 웃음이 새어나오자 다섯 명의 여성은 그 뒷모습을 불안스러운 듯이
응시했다.
"하하 하하하!"
마침내 그로벌은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 함장님!"
미사가 부르자, 그로벌은 톡하고 유리창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들은 속았어. 함정이다."
"함정?"
클로디아가 물었다.
"그렇다. 이 배는 별들의 전쟁에서 한 쪽의 군대가 적군에 게 장치해둔 올가
미였던 것이다. 적이 이 고물을 어슬렁어슬렁 조사하러 왔을 때, 자동적으로
주포가 발사되는 프로그램을 짜 넣어 두었을 것이다. 제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자주 사용한 방법이다...."
그로벌의 말에 모두의 불안은 커졌다. 만약 그로벌이 말한 대로라면,
마크로스 추락을 기회로 인류가 해온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통합 정부
의 수립, 그것에 따른 전쟁, 마크로스의 수복, 그리고 오늘의 평화와 마크로스
진우식 등이 모두가 허무함을 느끼게 할 뿐인 것이다. 그로벌이 파이프를
입에 물자,
"함장님, 브릿지에서는 금연 입니다!"
샤미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알고 있어! 물고 있을 뿐이야... 전함 전투 배치!"
그리고 그로벌은 털썩 자리에 앉아 파이프를 입에 문채 중얼거렸다.
"어제의 회의에서는, 오늘 이 마크로스가 우주로 진출하여 다른 혹성인과
접촉하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우리 쪽에서 부터 먼저 공격 하지 말라고
하는 결정이 나왔다고 했는데...기가 막히군....."
마크로스 함체에서 뚜뚜뚜...뚜뚜뚜 하고 사이렌이 흘러 나왔다. 파일럿들은
발키리 격납고로 달려갔다. 몇 명의 작업원이 분주히 발키리를 활주로로 유
도하는 가운데, 포커도 자기가 사랑하는 비행기에 뛰어 올라탔다. 점점 소리가
높아지는 사이렌소리에 식전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불안한 듯이 브릿지를
올려다보았다. "로, 로이 대장님. 이, 이것은...!"
신참 파일로트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로이는 검은색의 조종용 가죽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곧 알수 있다. 마음을 가라앉혀라. 이제 곧 출발 명령
이 내릴 것이다....."
지구 근처의 우주 공간에 두 척의 항공모함이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마크로스의 호위함인 암드 I과 암드 II 였다. 마크로스로부터 지령을 받은
우주 항공모함은 천천히 뱃머리를 달 궤도상의 한 점으로 돌렸다. 이윽고
거대한 로케트 불꽃이 내뿜어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불꽃은 마치 우주에
반짝이는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발진된 암드 I과 II는 즉시 목표를
향해 접근했다. 그러자 브리타이 함대가 일제히 빔을 발사했다. 암드 I과 II의
여기저기가 부서졌지만, 암드 I은 몇 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공격을 퍼부었
다. 공처럼 생긴 은색의 빛이 부풀어올랐다. 폭파된 파편이 모함에 격돌했다.
"뭐야 지금의 무기는!?"
브리타이가 놀라며 물었다.
"글쎄......"
눈살을 찌푸린 엑세돌이 말했다.
"설마........"
"뭐 말이야?"
"아아, 그럴 리는.......!"
그 때 스크린에 암드 I 과 II의 모습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동시에
컴퓨터가 말을 했다.
"목표 두 척, 확인 결과 감찰군 타입에 속하는......"
엑세돌은 새삼스럽게 지시를 받듯이 브리타이를 올려다 보았다.
".... 주포 발사 준비......!"
브리타이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말했다.
암드I 과 II 는 적함을 향해 계속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그 대부분이
빔의 공격을 받아 허무하게 우주에 흩어졌다. 브리타이 모함의 뱃머리에
황금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빛의 덩어리는 어느 사이에 더욱 부풀어올라
포화점에 달했다.
"발사!"
브리타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막아 놓은 봇물이 터지듯 황금빛의 띠가
퍼졌다. 폭탄의 세례를 받은 암드 I은 한순간을 견디어 낸뒤, 격렬하게 사방
으로 흩어졌다.
암드 I의 격침 보고를 받은 마크로스는 아까보다 높은 소리의 사이렌을
울렸다. 활주로에 브릿지로부터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전함 발진! 전함 발진! 본 함은 현재 다른 혹성인과 교전중이다. 이것은
연습이 아니다. 이것은 연습이 아니다...."
"일어난 거야. 또 전쟁인가? 2년 만이군."
이렇게 말하면서 포커는 고글(보호안경)을 썼다. 끼이익.. 하고 로이의
발키리가 활주로를 미끄러져 갔다. 보조엔진이 점화되었다.
"로이 스컬 대대 발진 합니다.!"
폭음과 함께 포커는 하늘로 날았다. 여러 대의 후속기가 편대를 짜면서
뒤따랐다. 포커는 발키리 스컬 대대의 리더이다. 그의 사랑하는 발키리의
꼬리 날개에는 해골 마크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암드 II는 많은 빔의 공격을 받아 싸울 의욕을 잃은 패자의 모습이었다.
"시간 문제다...."
브리타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크린에 작은 집들이 늘어선 아타리아섬의 모습이 나타났다.
"뭐야, 이 문란한 질서는!? 완전히 미개 종족이구나."
브리타이는 코방귀를 뀌었다. 마침내 마크로스의 전경이
비치기 시작했다.
"음...역시 우주 감찰군의 배를 손에 넣은 것인가?"
"네? 제 기억에 저 타입은 없습니다만."
엑세돌이 말했다.
"기억에 없어!? 기록 참모인 자네에게?"
"네. 게다가 이 혹성의 무기와도 아주 비슷한 것 같고..?"
브리타이는 엑세돌을 노려 보았다.
"자네 설마 저 무리들이 저 배를....!"
"고쳤다고 생각 됩니다."
"바보 같은 자식! 저렇게 미개한 종족이 추락한 전함을
고쳐서 쓴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아까의 미사일 공격도 가능했던 것
입니다....환상의....."
"반응 병기인가!!"
"아무튼 저 배를 손에 넣어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배틀 포트를 발진 시켜라!"
브리타이 모함에서 많은 배틀 포트가 쏟아져 나왔다. 두 개의 다리를 가진
기체는 타조의 몸체를 연상하게 했고, 은백색의 가슴에서 두 개의 대포를
장치한 통이 튀어나왔다. 배틀 포트는 유성과 같이 전투 공간을 빠져나가
지상으로 향했다.
발키리 편대는 성층권에서 배틀 포트 무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했다.
격렬한 빔을 주고 받으면서, 적과 아군이 모두 대 전투의 불꽃을 피웠다.
그 중에서도 포커의 움직임은 훌륭했다. 예리한 각도로 상승하고 하강하고
선회하며 소나기같이 내리는 빔 속을 휙휙 피했다. 피하면서도 공격의
기회를 늦추지 않았다. 적의 빔을 수십 센티미터 간격으로 계속 피하며
쓸데 없는 탄환은 한 발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로이는 적기를 파괴할
때마다 그 수를 주문처럼 세었다.
"하나...둘...... 셋......"
그 때, 히카루는 전시 지역의 기내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삐이
하는 통신음이 나며 미사의 소리가 들렸다.
"VT 102 호기"
히카루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어 눈을 껌뻑껌뻑했다. 별들의 사이를 페가서스를 타고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페가서스의 날개는 웬일인지 피에 젖어 있었다.
"전시기 지역의 VT 102호기! 왜 출발하지 않나!?"
미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VT 102...."
중얼거리면서 히카루는 의자로부터 몸을 내밀며 다가앉아 기체 넘버를
조사했다. 흰 바탕에 파랗게 VT 102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꾸물거리지 말고 즉시 이륙하라! 전쟁이다."
"전쟁....이라고......?"
이번에는 모의 전투라도 시작한 것인가 하고 히카루는 생각했다. 그 때
배틀 포트 무리와 발키리 편대가 서로 엉켜 싸우면서 하늘에 나타났다.
격추된 발키리가 히카루의 앞으로 떨어졌다.
"?!"
히카루는 어리둥절하여 눈을 크게 떴다. 바람에 날리는 검은
연기가 히카루의 얼굴을 덮었다.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 재빨리 뚜껑을 내렸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즉시 이륙하십시오!"
"이륙한다고 해도....발판이....."
"당신, 그래도 발키리 조종사라고 할 수 있소? 도로든지
뭐든지 사용하면 되잖아!"
"그래도 나......"
"계속 그러고 있을 생각인가? 계급, 소속은?"
"몰라요. 날면 되잖아요"
히카루는 발키리를 U턴시켜 도로로 향했다.
"이것은 기록에 남겨둘 테다!"
미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울렸다.
"좋으실 대로!"
히카루는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도로를 점점 빠르게 달렸다. 오고가는
자동차가 클랙슨을 울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순간 저쪽 앞 모퉁이에서 대형
트레일러가 튀어나왔다.
"앗!"
히카루는 무리한 몸동작으로 기체를 일으켜 세웠다. 트레일러를 뛰어넘는가
싶었는데, 콘테이너 위에서 튀어 올랐다. 히카루의 눈앞에 아스팔트의 바닥이
다가왔다.
"와앗!"
간발의 차이로 아스팔트 노면을 스치며 기체를 다시 일어킨 발키리는,
날개를 흔들며 올라갔다.
전투 지역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불꽃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
히카루는 아직도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
유리창에 비친 불꽃이 히카루의 얼굴에 겹쳤다. 그 표정은 어딘가 먼 신기루
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배틀 포트의 빔이 히카루의 발키리를 스쳤다.
"으아앗!"
당황한 히카루는 레버를 다시 움켜쥐었다.
"여기는 로이. 스컬 편대의 각 기에 말한다. 흩어져서 428 지역의 적을
공격하라!"
지시를 내리면서 로이는 선회했다. 그 때,
"선배님, 로이 선배님. 어디 계시는 겁니까!?"
뜻밖의 통신이 들어왔다.
"히카루 아니야!"
레이더 스크린에 히카루의 새파래진 얼굴이 비쳤다.
"네가 언제부터 전투기에 타게 됐지?"
"농담하지 말아요! 누가....."
스크린에 빛줄기가 지나가며 화면이 어지러워졌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히카루!"
로이는 재빠르게 히카루의 발키리를 찾아냈다. 아무튼 무사한 것 같아 휴
하고 한숨을 쉬며 하강했다. 로이는 히카루와 나란히 늘어섰다.
"괜찮아!?"
"간신히....."
히카루의 뺨에 기름땀이 배어 있었다.
"히카루, 침착해라! 아까의 허풍은 어디 갔어."
상공에서 팍 하고 폭팔음이 터졌다. 곧이어 두사람의 전
방 쪽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배틀 포트가 떨어졌다.
"히카루. 이렇게 나란히 날아가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 구나....."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상황입니까?!"
먹이를 겨냥하는 매와 같이 바로 위에서 적기가 급하강해 왔다. 로이는
기체를 공중제비로 돌면서 공격했다.
".....열 넷......."
포트의 파편이 두 사람의 발키리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앞으로 나갈 테니 너는 줄곧 내 뒤를 따르며 날고 있어라."
"언제까지나 뒤만 따르라니요!"
"좋아! 그 용기로 따라와라!"
로이는 다시 상승했다. 히카루도 열심히 조종 레버를 잡아당겼다. 다음
순간, 히카루의 발키리는 몇 줄기의 빔에 맞았다.
"히, 히카루!"
U턴하려고 하는 포커를 여러 대의 배틀 포트가 막았다. 순간 나선 계단을
전속력으로 뛰어내려가듯이, 히카루의 발키리가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고 있
었다.
배트로이드로 변신하라
식전 회장에는 누구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에는 종이 테이프,
과자봉지, 담배 꽁초 등이 흩어져 있고, 바람이 그것들을 가지고 놀 듯이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피난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짐을 꾸리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갔다. 본토에서 잠깐 놀러와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핵
방공호로 향했다.
하늘에는 어느새 잿빛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구름사이로 새어나온
햇빛이 스폿 라이터처럼 마크로스 브릿지를 비추고 있었다.
"미확인 비행물체 24기 하강합니다"
바넷사가 레이더 팬널을 읽었다.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지"
그로벌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사용한 반응 미사일 때문에 레이더가 구실을 못해서..."
"... 숙달된 패거리다... 포커에게서 연락은 있었는가?"
"후속기와의 전투에서 손을 떼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사가 대답했다. 바넷사가 계속해서 레이더 팬널을 읽었다.
"목표 24기. 본함 전방 30km의 바다에 내린 모양입니다."
"...좋아. 해양 항공모함 프로메테우스에게 초계 헬리콥터의 출격을 요청해
야겠다"
"앞으로 5분이면 도착할 예정입니다."
미사의 말에 그로벌은 감탄했다.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나?"
"아무래도..."
그때, 미사의 앞에서 경보램프가 빨갛게 회전하였다.
"......?!"
스크린에 비친 발키리가 마크로스를 향해 떨어졌다.
히카루는 어떻게든 기체를 다시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발키리는 완전히
제어 능력을 잃고 있었다. 땅바닥이 회전하면서 다가왔다. '죽고 마는 것인
가!' 문득 이렇게 생각한 순간, 히카루 마음에 과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났다.
- 어릴 때, 툇마루에서 올려다본 불꽃놀이. 밤하늘을 수놓은 커다란 국화
송이. 처마 밑에서 울리는 풍경. 수박서리
- 황금빛의 벼이삭이 물결치는 논. 진흙으로 더러워진 운동화
- 소녀. 빨간 원피스. 길게 늘어뜨린 새까만 머리카락. "안돼! 방금 쥬스를
마셨잖아" 조금전 자동판매기 옆에서 본 소녀의 목소리
히카루는 말한 적도 없는, 힐끗 본 정도의 소녀를 떠올렸던 것이다. 히카루는
매우 또렷하게 그 모습을 마음에 품었다. 죽음을 앞둔 남자는 작은 꽃을
가슴에 담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카루는 아직까지 사랑을
한 적이 없었다. 히카루가 민메이의 모습을 생각한 것도 단지 그녀가 최근
에 본 가장 아름다운 소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카루의 아버지를 보았
다. 프로펠러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형기의
히카루가 필사적으로 그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퍼뜩 히카루는 제정신이 들
었다.
"빌어먹을. 이런 곳에서... 죽을 때는 아버지처럼 위험한 곡예를 하다가 죽겠
다고 작정했었는데!"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VT 102 ! 본함의 충돌 코스에 놓여 있다. 피하라!"
미사의 통신이 들어왔다.
"안, 안 된다! 러더도 스포일러도 듣지 않는다!"
"B 체형으로 바꾸면 되잖아!"
"B... 체형이라니!?"
미사의 놀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모른다고!? 이럴 수가... 왼쪽의 B 표시 패널을 열고 ACS를 넣는 거야."
"아, 알았다"
히카루는 당황하며 들은 대로 했다. 그러자 발키리 바닥 부분에서 두 개의
굵직한 다리가 내려오고 측면에서는 팔이 뻗쳐 나왔다.
"뭐야!?"
발키리는 그대로 천천히 선회하며 작은 빌딩으로 돌입하였다.
'니얀니얀'의 가게가 크게 흔들렸다. 짐꾸리기를 돕고 있던 민메이가 엉덩방
아를 찧었다.
"괜찮니?"
숙모가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무슨 일이야. 도대체..."
숙부가 현관 정문으로 바깥을 내다 보았다. 숙모와 민메이도 무서워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맞은편의 빌딩이 산산이 부서지며 기와조각과 자갈더미가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쾅쾅...! 다시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지고 금속의 팔이
쑥 나왔다. 이윽고 그 안에서 나타난 것은 완벽한 로봇이었다. B체형으로
변형한 발키리 모습인 배트로이드였다. '니얀니얀'의 3층 유리창에 배트로이드
의 상반신이 비쳤다.
제2화 Countdown
날아간 중력 제어 시스템
민메이는 눈을 둥그랗게 뜨고 입은 딱 벌린 채, 배트로이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것이 무엇일까...?"
"우주인의 로봇인지도..."
숙모는 옆에 있는 빗자루를 들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럭저럭 멈춘 것 같구나..."
이렇게 말하는 숙부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었다.
"민메이 누나!"
옆집의 민이가 달여왔다.
"민이야!"
뛰어들어온 민이를 민메이는 꼭 껴안았다. 그러나 민이는
들든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누나. 로봇 보러 가자!"
"보러 가자고? 어디로?"
"3층 누나 방!"
말을 하자마자 민이는 계단으로 뛰어갔다.
"기다려! 나도 갈게."
방의 창문을 열고 두 사람은 배트로이드를 보았다. 에나멜 바탕의 하얀
동체. 오른쪽 팔을 따라 구경이 큰 총포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와아, 크다! 근사한데."
민이는 넋을 잃고 몸을 쑥 내밀었다.
"안 돼, 민이야."
민메이가 민이를 잡아당겼을 때, 배트로이드의 머리가 움직였다. 두사람은
무서워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배트로이드의 머리 부분이 앞으로 꺾였다.
"머리가 꺾였어...."
"아...."
민메이는 무엇이 나올까 두려웠다. 스르륵 스르륵... 배트로이드 안에서
시트가 차츰 밀려 올라왔다. 아무도 타고 있지않았다.{(지금 히카루가 타고
있는 발키리는 복좌(2인승)이다. 따라서 뒷좌석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뒷좌석은 나중에 민메이 자리^^. 개인적으로 2인승 발키리는 민메이를 태우기
위해 만든 발키리가 아닌가 생각함. 한 번도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못 봄.) }
"텅 비었어."
"이상하네..."
시트가 계속 올라가자 시트 아래 앉았던 히카루의 모습이 나타났다. 민메이
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민이는 약간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시시한데..."
"저, 죄송합니다. 이것이 무엇으로 보입니까?"
히카루는 민메이에게 물었다. 낙하할 때 민메이를 떠올렸던 일 따위는 이미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민메이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새삼 배트로이드를
바라보았다.
"무엇이라니... 역시 이것은..."
"그렇습니까...? 역시 굉장하지요. 비행기를 로봇으로 취급하니..."
"비행기를 로봇으로...? 무슨 말이에요?"
"정말로 내가 묻고 싶은 거예요."
"그럼.. 당신은 파일럿이군요."
"파일럿이라고 해서 군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거짓말. 그럼..."
"로봇이였어!!"
민이가 히카루를 가리키며 외쳤다.
"민이!"
민메이가 굳은 표정으로 타일렀다.
"저, 저어."
히카루는 무심코 배트로이드 가슴의 빔 흔적을 보았다.
"...역시... 지독하게 당했군...."
"이거, 비싼 가요?"
"응.... 꽤."
그 때, 클랙슨이 울렸다. 배트로이드의 옆으로 대형 트럭이
온 것이다. 운전사가 창에서 얼굴을 내밀고 외쳤다.
"이봐, 형씨. 잠시 길을 비켜 주지 않겠어?"
"아, 네. 알았습니다. 곧..."
히카루는 서둘러 시트를 내려보냈다.
"조심해요!"
민메이는 손을 흔들었다. 히카루는 일부러 멈추고 대답을 했다. 제자리로
되돌아와 갖가지 계기 앞에 앉은 히카루는 장갑을 바로 끼었다.
"자아! 잘 움직여 주면 좋겠는데..."
배트로이드가 오른쪽 발을 올렸다. 그리고 한 발짝 전진하
려고 했을 때 균형을 잃고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아악!"
히카루는 뒤로 젖히면서 페달을 밟았다. 배트로이드 뒤쪽의
노즐이 불을 뿜었다. 이번엔 힘이 벅차서 앞으로 기우뚱했다.
"아악!"
민메이는 민이의 손을 잡고 창가에서 비켜났다. 동시에 배트로이드의
머리가 창문에 부딪쳤다. 창문은 물론 바깥 쪽의 벽도 무너져내리고 천장
에는 금이 갔다.
"괜찮습니까!?"
히카루는 엉겁결에 벌떡 일어섰다. 스크린에는 민이를 안고
웅크린 민메이의 모습이 보였다.
민메이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네..."
민메이가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사이에 민이는 벌떡 일어나 배트로이드의
얼굴 쪽으로 달려갔다. 희한한 듯이 어루만지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했다.
"휴, 다행이다."
히카루는 안심하며 시트에서 내렸다.
그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전쟁이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출격한 헬리콥터는
적의 공격에 추락되고 말았다. 물 위에 내린 배틀 포트는 총포통만을 내밀고
빔을 퍼부었다. 빔은 정확히 목표에 맞아 떨어졌다. 이미 먹구름이 낀 하늘은
폭발음으로 쉴 틈이 없었다. 헬리콥터의 파편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변에
떨어지고, 몇 줄기의 검은 연기가 하늘을 넘실거리며 낮은 구름을 한층 두
텁게 했다. 그리고 침묵... 파일로트 장화가 서서히 파도에 밀려 떠내려왔다.
모여든 작은 물고기들이 입 끝으로 장화를 쿡쿡 쪼았지만, 이윽고 시시한
듯이 모습은 감추었다.
"초계 헬리콥터.... 격추되었습니다."
미사가 보고했다.
"음....."
그로벌은 창가에 섰다. 잠시 동안 말이 없다가 화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적은 이 섬을 포위할 생각인 것 같다.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
"네, 함장님!"
다섯 명의 여성이 대답했을 때, 포마드와 담배 냄새가 브릿지에 감돌더니,
"여어!"
하며 추진파의 의원이 왔다.
"이 브릿지는 언제나 화려해서 좋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그로벌에게 다가갔다.
"네."
그로벌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대답하며 인사했다.
"브릿지는 금연 입니다.!"
샤미가 말했다.
"이거, 미안하군."
의원은 대수롭지 않게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끝으로 비벼 끄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로벌, 마크로스는 언제 발진하는가?"
"발진이라고요? 이 함은 아직 준비가...."
"우리들이 상당한 예산을 들인 우주 전함이야. 지상에서 조용히 있어서는
곤란한데."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바넷사가 킴에게 얼굴을 바싹 대구 물었다.
"킴, 이대로 우주로 나가 버리는 거야?"
갑자기 의원이 소리를 질렀다.
"될 수 있으면 우주로 띄우시오! 암드II 와 도킹하는 거다!"
"네....."
그로벌의 목소리는 작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킴이 바넷사
에게 대답했다.
"그럭저럭 그렇게 될 것 같군."
샤미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까지는 그렇게 우주로 나가고 싶어한 주제에."
킴의 말을 듣고 샤미가 말문을 막았다.
"그것은....... 그렇지만........."
"그러나, 적군에게는 이 마크로스보다 거대한 전함이 있다
고 하는 보고가......"
의원은 그로벌의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큰 문제는 없을 거요! 요는 의욕이 문제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싸움도 하지 않고 이 마크로스가 패배한 다고 하는
말인가?"
".........."
"지금 나가지 않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나가 주게"
그로벌은 바닥의 담배를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좋아. 그리고 다른 혹성인과의 교섭은 우리들 정치가에게 맡겨두게."
하하하! 하고 웃으며 의원은 발길을 되돌렸다.
"요컨대,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그로벌이 중얼거렸지만 의원은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니얀니얀"의 옥상으로 나온 민메이와 민이는, 걱정스러운 듯이 배트로이드
를 지켜보고 있었다. 급히 달려온 두 대의 트레일러가 어떻게든 배트로이드
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중이었다. 3층의 벽에 얼굴을 파묻은 배트로이드의
어깨 부분에는 트레일러에 이어진 철사 로프가 얽어매져 있었다. 트레일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철사 로프가 당겨졌다. 왱왱거리며 타이어가 헛돌
자 민이는 고무 타이어 타는 냄새에 코를 막았다. 콘크리트의 작은 조각이
배트로이드의 얼굴 주변에서 넘쳐 떨어졌다. 이윽고 배트로이드가 조금씩 일
어났다.
"좋아, 좋아!"
트레일러 운전사는 배트로이드가 똑바로 선 것을 확인하고 차를 세웠다.
순간,
"아앗!"
손으로 막은 민메이의 입에서 절망의 외침이 새어나왔다. 균형을 잃은
배트로이드가 서서히 뒤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쾅! 배트로이드는 뒤에
있는 건물에 쓰러져 마치 등을 기대고 앉은 듯한 자세로 정지했다. 조종석의
히카루는 위를 향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거 안되겠군......."
마크로스 함체에 번쩍번쩍 하고 빨간 램프가 켜지기 시작했다.
"중력 제어 시스템 1번에서 48번까지 이상 없읍니까?"
"GH 24 블럭 발진 준비. AF 74에서 140번 까지 준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샤미와 킴이 각 블럭과 바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4번 이상 없음!"
"78 번 준비 완료!"
브릿지의 계기도 연쇄적으로 반응을 시작했다.
"함장님, 통합군 본부에서 보고 입니다. 우주 항공 모함 암드 II는 전투
지역에서 대피, 비밀 지점에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바넷사가 보고했다.
"음. 클로디아, 반응로의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클로디아의 손은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로벌은 정면 유리창에서 하늘로 시선을 보냈다.
"전함.... 부상 개시!"
샤미와 킴이 마이크로 외쳤다.
"전함 부상 개시! 전함 부상 개시!"
클로디아는 출발 레버를 꽉 움켜 쥔 손에 배어 있는 땀을 느끼면서 외쳤다.
"메인 반응로 출력! 중력 제어 시스템에 유입 개시! 부상 10초전! 9,8,7...."
초 읽기가 진행됨에 따라 파이프를 쥔 그로벌의 주먹에도 힘이 가해졌다.
그리고 클로디아가 "제로"를 세었을 때,
"출발!"
그로벌 함장의 목소리가 브릿지에 울려 퍼졌다.
마침내 마크로스는 10년 동안 계속 자리잡고 있었던 대지 를 떠났다. 전장
1,200미터의 우주 전함은 서서히 우주를 향해 떠올랐다. 반중력에 의한 부상은
의외로 조용했다.
"좋아!"
그로벌의 표정이 밝아진 적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마크로
스는 오른쪽으로 크게 쏠렸다.
"아악!"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대원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로벌도 함장석에서
굴러 떨어졌다.
"무, 무슨 일이냐!"
떨어진 모자를 움켜쥐면서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함장님! 앞.....!!!??"
미사가 손가락질했다.
"뭐..... 뭐야? 저것은!?"
창 밖을 보고 그로벌은 눈을 돌렸다. 갑판을 뚫으며 몇 개의 코일 모양의
기계가 회전 하면서 떠오르고 있었다.
"중력 제어 시스템 같습니다."
미사가 대답했다.
"바보같이...스스로만으로는 함체를 지탱할 수 없었는가!"
마크로스는 진동과 함께 다시 가라앉았다. 선대가 무너지고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주위에 쓰레기와 깡통들도 각각 가까운 기계에 달라붙었다.
"전원 무사한가?"
이렇게 말하면서 통신사들은 함장을 보았다.
"좋아. 킴, 샤미, 즉시 마크로스의 피해 상황을 조사해 주게."
"네, 함장님."
"그렇다고 하더라도 ....굉장한 군함이다."
한숨을 내뿜으며 그로벌은 군모를 다시 썼다. 두뇌가 명석
한 미사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주운 것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민메이의 위기...
"스컬 리더(편대장)에서 건사이트 원으로! 스컬 리더에서 건
사이트 원으로!"
계기 점검을 서두르는 클로디아의 뒤에서 로이의 통신이 들려왔다.
"적의 공격대는 일단 격퇴했다. 이제부터 귀환한다."
클로디아는 어깨에서 긴장감이 풀림을 느꼈다.
"알았습니다, 소령님."
스크린에 응답하는 미사의 옆에서 클로디아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로이, 몇 대나 격추시켰죠?"
"겨우 18대"
"성과가 좋지 않군요."
"실전은 2년 만이니까. 그런데, VT 102 의 행방을 알고 있나?"
"VT 102 라면 좀전에 시가지에 불시착했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미사의 말에 로이는 파란 눈을 내리뜨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사정은 나중에 말할 테니까. 이상 교신 끝."
로이는 스크린을 끄고 뒤따르는 발키리에 연락했다.
"편대장 기에서 각기에 알린다. 너희들은 프로메테우스로
귀환하라! 나는 잠시 들렸다 갈 곳이 있다."
로이의 발키리는 편대를 빠져나가 기체를 옆으로하여 선회 하였다. 꼬리
날개의 해골 마크가 검은 구름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였다.
"그런데... 히카루 녀석은 어디로 갔지?"
저공 비행으로 들어간 로이는 곧 배트로이드를 발견 했다. 배트로이드는
건물에 몸을 맡긴 채 움직이지 않았다.
"VT 102 응답하라! 히카루 들리는가?"
"선배님"
로이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역시 미움받는 사람은 강인하구나."
"좀 도와 주세요."
히카루의 얼빠진 모습에 로이는 씩 웃고 착륙 태세에 들어갔다. B레버를
내리자 두개의 굵직한 다리가 내려오고 기체는 B 체형으로 변했다. 기계적인
움직임과 함께 전투기에서 로봇으로 변한 로이의 발키리는 히카루의 눈앞에
내려셨다. 민메이와 민이는 근사한 요술을 보았을 때처럼 감탄의 환성을 올렸
다.
"로, 로보트가 됐어!"
"야, 굉장하다!"
그러나 히카루는 그 굉장한 변화를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히카루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사랑했고 친하게 지내왔다. 비행기의 날개는 로이에게
있어서 마음의 성에 놓여진 여신상이었다. 그러나 그 여신의 얼굴 뒤에 누군가
살짝 또 다른 얼굴을 새겨놓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로이는 상당한 분노를
느낀 것이다.
"히카루, 처음으로 격추 당한 기분이 어떠냐?"
히카루의 조종석 모니터에 포커의 얼굴이 나타났다.
"좋을리 없겠지요!"
히카루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것 보다도 왜 전투기를 로보트 따위로 바꾸는 것입니까?"
"이유는...지금은 말할 수 없어."
"군의 비밀이란 말입니까?"
"그래! 너 눈치가 빠르구나. 너는 군인이 어울린다."
"천만에요! 그것보다 어떻게든 해 주십시오"
로이의 배트로이드의 왼쪽 손목에서 문어처럼 생긴 여러 가닥의 매직 핸드
가 뻗어 나왔다. 매직핸드는 히카루의 배트로이드에 정확하게 레이저 수리를
했다.
"됐어. 이제 양발의 페달에 서서히 힘을 넣어봐라."
히카루는 페달 위의 발끝에 조용히 힘을 넣었다. 배트로이드의 등이 빌딩에서
떨어졌다. 히카루는 의자에서 일어서는 듯한 모습으로 배트로이드의 상체를
일으켰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바로 그거야."
민메이, 민이 , 숙모 부부가 제각기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피난을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고쳤군요?"
민메이는 하얀 두 손을 입에 대고 물었다.
"네, 덕분에."
히카루는 스크린에 비친 민메이의 모습에 얼굴을 댔다. 발에 힘을 가하자
배트로이드의 상반신이 약간 구부러졌다. 마치 소녀를 껴안으려고 하는
모습과 같았다.
"민메이, 서두르자 우리들이 마지막인 것 같구나."
숙모의 목소리에 생기 있게 대답을 한 민메이는 민이 손을 잡고 종종걸음
으로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뛰어가면서 뒤를 돌아다보고 손을 흔들며 소리
쳤다.
"그럼, 또 만나요. 조심하세요 !"
이러한 민메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히카루는 "또 만나요"라는 말이 머리
에 새겨졌다. 물론 그것은 확실한 재회의 약속은 아니었다. 무의식중에
우연히 민메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인사말에 불과 했다. 그러나 히카루의 마음
에는 약간의 알 수 없는 기쁨이 솟아 올랐다.
".....또 만나요......"
같은 말을 혀 끝으로 되뇌면서 히카루는 민메이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
했다.
"후후.....과연."
로이의 목소리에 히카루는 깜짝 놀랬다. 모니터의 로이가 빙글빙글 웃으며
히카루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히카루, 너 점점 나를 닮아가고 있구나."
"그런 것이 아니에요!"
히카루의 당황한 모습에 로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억지부리지 말고."
"선배님!"
"하하하! 그렇게 정색하고 대들지 마. 흥분하면 조종이 위험하니까."
"흥분하지 않아도 로보트 조종 따윈 할 수 없어요!"
"후후... 그렇구나. 그럼, 가워크로 바꿔봐라. 왼쪽에 G라고 쓰여 있는
레버다."
"가워크... 이거 말입니까?"
히카루가 G레버를 잡아당기자 배트로이드는 팔과 다리만을 남기고 발키리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그래. 그 형태라면 조종 방법은 전투기와 큰 차이가 없어."
"그렇군요...."
전투기 발키리, 로보트 배트로이드 , 그 중간에 있는 체형이 가워크이다.
섬 사람들은 뱀처럼 길게 늘어서서 콘크리트 계단을 올랐다. 계단이 끝나자
50미터 정도의 평탄한 길이 계속 되었다. 길은 산의 일부를 뚫어서 만든 핵
피난처로 이어지고 있다.
"어떡하나!"
겨우 계단을 다 오른 민메이는 잠깐 멈추었다.
"왜 그러냐?"
숙모가 뒤돌아보고 물었다.
"잊은 물건이 있어요. 가지고 올께요."
"안돼, 민메이. 위험하다!"
"괜찮아요. 곧 돌아오겠어요."
민메이는 발길을 돌려 뛰어갔다.
"잠깐.....!"
"기다려라, 민메이!"
숙모 부부의 목소리를 털어 내듯이 민메이의 뒷머리가 흔들렸다.
배틀 포트는 서서히 바닷속을 헤엄치며 여기저기 섬을 포위했다. 섬 주위의
몇 개의 낮은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제트 분사로 해면을 차 오른 배틀 포트
가 일제히 흙을 밟았다. 이어 긴 두다리의 용수철을 움직여서 튀어 오르듯이
전진해 갔다. 수면에 남아 있는 거품은 잔물결에 삼키어 바다는 일순 얼어
붙은 듯 침묵이 흘렀다.
"배틀 포트 부대, 상륙했습니다."
엑세돌이 레이더 스크린을 보며 보고했다. 브리타이 함대는 사정 거리
부근을 떠돌고 있었다. 투명하고 파랗고 흰 줄무늬 모양으로 넘실거리는
지구를 배경으로 많은 전함이 울퉁불퉁한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다.
"음....."
브리타이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전함 포격준비! 상륙 부대를 엄호한다."
모든 전함은 함수 포문을 열고 아타리아섬에 조준을 맞추었다.
'니얀니얀'으로 되돌아온 민메이는 한 통의 봉투를 주머니에 넣자 다시 피난
처로 서둘러 갔다. 민메이의 시선 한쪽 구석에 한 줄기의 빛이 떨어졌다.
민메이는 멈춰 서서 그쪽을 보았다. 특별히 이상한 모습은 없었다. 어두운
잿빛 구름이 길 전체를 막고 있어 적막함만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을 뿐이
었다.
'기분 탓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떼었을 때, 빔의 소나기가 거리에 내리퍼부어졌다.
빔은 성난 파도처럼 거칠어 섬의 건물은 어이없이 무너져내렸다. 민메이의
옆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악!"
콘크리트의 작은 파편이 날아와 민메이의 등에 떨어졌다. 민메이는 아픔을
참고 어떤 물건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채 눈을 감고 땅을 뒤흔드는 파멸의
소리를 견디어 냈다. 시간으로 치면 불과 2,3초였을 것이다.
예리한 칼날 같은 빛은 어느덧 사라지고 거리는 폐허가 된 얼굴을 드러냈
다. 덜덜 떨면서 민메이는 눈을 떴다. 길바닥에는 기와 조각, 자갈 등에
섞이어 갖가지 신발이 흩어져 있었다. 하얀 하이힐, 갈색의 신사화, 파란
운동화, 폭발한 곳은 신발 가게였다. 민메이는 어제 이 가게에서 해변에서
신을 노란색 샌들을 샀던 것이다.
순간 민메이의 팔에서 금속 기둥이 기기기...하고 움직였다.
"악!"
민메이는 다시 한 번 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배틀 포트의 다리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히카루의 가웍은 아직까지도 빌딩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포커의
배트로이드가 그 팔을 잡고 강하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히카루는 목을 내밀며 거리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길 전체에는 불탄 흔적과
검은 연기가 자욱히 남아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적의 공격 같다."
"지독하군요."
"조금 전의 그 소녀가 걱정이다. 가볼까?"
"네!"
포커도 G 레버를 잡아당겨 가웍으로 변신했다. 두 대의 가웍
은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우주로부터의 공격은 목표인 마크로스를 빗나가
마크로스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뭐야, 지금의 공격은?"
그로벌이 물었다.
"위성 궤도에서 발사된 것 같습니다."
킴이 대답했다.
"하늘 위로부터의 저격인가...?"
레이더 패널에 많은 반응이 나타났다.
"함장님! 목표물이 접근합니다. 지상 부대입니다."
미사의 보고였다.
"음...로켓 엔진에 의한 출발 준비를 서둘러라!"
브리타이 함대의 엄호 사격과 동시에 배틀 포트 부대는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목표물은 마크로스였다. 앞길을 방해하는 건물과 나무들은
모두 불에 타거나 파괴되고 짓밟혀졌다. 그 때 마크로스를 방어하듯이 발키리
편대가 도착했다.
발키리는 목표를 발견하자 각각 가웍 형태로 변신하면서 내려갔다. 거리에
는 이미 고요함 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작은 전투가 계속 펼쳐지
고 번쩍이는 빔포와 미사일이 축축한 공기를 진동시켰다. 반쯤 부서진 빌딩을
방패로 배틀 포트가 공격을 퍼부었다. 날아온 가웍의 한쪽 팔이 노면에 꽂
히고 상공에서 달려든 가웍이 배틀 포트의 포신을 빼돌렸다. 부서진 집들의
창문과 길가에 흩어진 유리 파편들이 불꽃에 비춰지며 빨갛게 빛났다.
민메이는 뛰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면서도 열심히 뛰었다.
배틀 포트는 한 발짝 한 발짝 둥그런 발자국을 길에 새기면서 쫓아왔다.
너무나 약한 먹이를 앞에 두었을 때의 잔인함이 그 발걸음에는 있었다.
멈춰선 민메이는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앞에는 배틀
포트 셋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귀가 째지는 소리를 들으며 민메이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등 뒤로 다가온 배틀 포트가 오른쪽 발을
높이 들었다. 금속의 발꿈치는 기어이 민메이를 잡고 말았다.
'그 샌들, 어디에 두었을까...?'
희미한 의식 속에서 민메이는 생각했다. 그 때, 배틀 포트가 등 뒤에 총을
맞았다. 몸통이 폭발하더니 남겨진 하반신도 오른쪽 발을 든 채 옆으로 쓰러
졌다. 뒤에는 가틀링 포를 손에 든 채 포커의 가웍이 서 있었다. 히카루의
가웍은 재빨리 민메이에게 달려들어 감싸안고는 기수를 숙였다. 동시에
포커의 총포통이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중앙의 배틀 포트는 불덩이가
되고, 남은 두 대는 좌우로 흩어져 숨어 버렸다.
"히카루야, 이 소녀를 부탁한다!"
".....?!"
"어떻게...?"
주저하는 히카루에게 포커는 계속 외쳤다.
"잔소리 말고, 내가 적을 유혹할 테니까 빨리 해!"
"아, 알았습니다."
히카루는 캐노피를 열고 민메이를 내려다보았다.
"빨리 붙잡으십시오."
이렇게 말하면서 가웍의 팔을 민메이의 옆으로 내밀었다.
"당신은 조금 전의...!"
민메이는 히카루를 기억해 내고 말을 얼버무렸다.
"괜찮으니까, 빨리!"
히카루는 거대한 왼쪽 금속팔로 민메이를 안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배틀
포트 한 대가 빌딩 뒤에서 쫓아 날아들었지만, 지상의 포커가 엄호해 주었다.
그의 카틀링포는 히카루가 탄 가웍의 바로 아래에서 배틀 포트를 공격했다.
높이 날아오른 히카루의 가웍이 폭풍에 흔들렸다.
"앗!"
아슬아슬하게 기체를 수평으로 되돌린 히카루는 민메이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민메이는 눈을 감은 채 크게 두 번 끄덕였다.
"다친 데는 없나?"
모니터 스크린을 통해 포커가 물었다.
"네, 간신히."
"너 말고 아까 그 소녀."
"무사합니다. 지금은..."
"좋아. 너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그 소녀만은 구해야 돼.
꽃은 죽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히카루는 싱긋 웃었다.
"말 그대로다. 아름다운 자연은 지켜야만 해. 그럼 나중에..."
통신을 끝낸 히카루는 새삼 기체 밖의 민메이를 보았다. 강한 바람으로 긴
머리가 모두 옆으로 쏠려 있고, 심한 바람의 압력으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약간 파란 정맥이 솟은 눈꺼풀엔 바람을 맞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안돼. 이 비행기에 두 사람이 타서는..."
히카루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상에서의 빔이 가
웍의 왼쪽 팔을 스쳤다.
"큰일났다."
팔에서 불티가 흐르고 민메이를 잡은 주먹의 힘이 약해졌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차츰 벌어져갔다. 기류 관계로 민메이의 몸이 한 번 크게 치켜세워
졌다. 그리고 몸이 구부러지며 낙하해 갔다. 히카루의 가웍은 거의 수직으로
급강하하며 민메이를 따랐다. 캐노피를 올리고 조종석에서 힘껏 몸을 내밀어
팔을 뻗었다. 민메이의 스커트가 퍼졌다 오그라들었다 했다. 날개를 잃은
요정이 다시 한 번 하늘을 향해 날개짓을 하듯이 민메이도 팔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몇 번이나 맞닿으면서 히카루의 가웍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급강하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더 이상 하강하면 기체를 다시 세우기 전에
땅에 충돌하고 만다. 그러나 히카루 머리 속엔 무서움이나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히카루의 눈은 오직 민메이에게만 향해 있었다. 히카루의 얼굴은
어느새 세찬 바람으로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가늘게 뜬 눈에 눈물로 젖은 민메이의 모습이 몇 번이고 비치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장소에서 소년과 소녀는 서로만을 찾으며 팔을 뻗었다.
옛날의 신화에 나오는 너무나도 순수한 사랑에 젖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닮아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손이 겹쳐졌다. 그 순간, 신화는 끝나고
히카루는 민메이를 끌어올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착륙 태세에 들어갔다.
가웍의 다리가 역분사를 하자 조종석이 심하게 흔들렸다. 기체는 길바닥
서 크게 튀어 오르며 한 번 구르고는 멈추었다. 오른쪽 날개가 빌딩의 창문에
부딪쳤다. 헉헉거리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은 히카루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뒷좌석의 민메이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를 덜덜 떨고 있었다.
{(이 구출 장면을 전후로 한 장면이 내(lynngie)가 꼽는 마크로스 명장면
중 하나이다.)}
"고마워요..."
겨우 말하는 민메이의 볼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큰일날 뻔했어."
"....."
민메이는 핑크빛 손수건으로 볼을 닦았다. 히카루의 얼굴이 조종석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민메이는 고개를 숙였다.
"어휴, 머리가 엉망이 됐어요."
"목숨과 머리, 어느 쪽이 중요해?"
"....."
민메이는 자기의 머리를 코끝에 가까이 댔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똥말똥 쳐다보며,
"물론, 머리지요!"
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하하하. 역시!"
"호호호...!"
두 사람은 그제서야 겨우 안정이 된 듯 쾌활하게 웃었다.
"선배님!"
히카루의 가웍이었다. 민메이와 함께 다시 달리기 시작한 히카루가 곧 포커
의 위기를 발견하고 돌격해 온 것이다. 가웍은 배틀 포트에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곧이어 배틀 포트가 뒹굴고, 가웍도 균형을 잃어 뒤집어졌다.
"아앗!"
민메이의 비명과 함께 가웍은 주르르 미끄러지더니, 배틀 포트와 거의 동시에
일어섰다. 배틀 포트의 총포통이 가웍의 조종석을 향했다.
"으아악!"
히카루는 카틀링 포를 맞았다. 히카루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탄환이 다
떨어진 것도 모르고 히카루는 발사 스위치를 계속 눌렀다. 배틀 포트의
온몸에 뚫린 구멍에서 가늘게 연기가 나더니, 그 자리에 폭삭 쓰러져 버렸
다. 그러나, 히카루는 더욱 심한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배틀 포트 안에서
거대한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투박한 전투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었다. 거인은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양손을 앞으로
헤치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바싹 마른 히카루의 입술이 덜덜 떨리고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떠는 히카루와는
반대로 포커는 침착했다. 미리 거인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신중하게 가틀링 포를 조준하고는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거인은 열 십자로
섬광을 그리며 지축을 흔드는 소리를 내고 쓰러졌다.
"이럴 수가...!"
히카루는 새파래진 얼굴로 쓰러진 거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알겠지, 히카루? 왜 전투기가 로봇으로 변신되었는지. 배트로이드는
이 거인과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야."
"선배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통합군은 10년 전부터 거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추락한 마크로스를 조사
한 결과, 이것을 탔던 생명체의 키는 인류의 약 5배나 된다고 추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인간과 비슷할 줄이야...."
포커는 고글을 올리고 새삼 거인을 보았다. 히카루는 눈을 감고 외면해
버렸다.
"상승용 로켓 엔진 준비!"
그로벌의 목소리와 함께 마크로스는 다시 출발 태세에 들어갔다.
"샤미, 시민의 피난 상황은!?"
"주민 모두 피난처로 대피했습니다."
"좋아, 메인 로켓 점화! 곧 상승한다.!"
"이번에는 틀림없습니까?"
미사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안심해라. 이 로켓은 지구 제품이다. 가자!"
"네!"
통신사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마크로스 함의 밑바닥에 있는 네 개의 노즐이
점화되었다. 이윽고 분사된 굵직한 불꽃이 땅을 핥듯이 타올랐다. 자욱한
하얀 연기가 서서히 길 전체에 퍼져 파괴된 집들과 금이 간 도로, 명중된
배틀 포트를 부드럽게 감쌌다.
마크로스는 출발했다. 하얀 연기로 숨이 끊긴 거인과 히카루와 포커의
가웍까지도 감쌌다.
"포커 소령, 마크로스 호위를..."
미사로부터의 통신을 받고 포커는 연기 속을 날아올랐다. 히카루의 가웍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따라오라는 포커의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히카루는 눈을 꼭 감은 감은 채였다. 눈동자 안쪽으로 상처 투성이의 거인이
다가왔다.
제 2 장
린 민메이
제3화 Space Fold
마크로스, 드디어 우주로!
마크로스는 순조롭게 고도를 높여갔다. 지상의 건물이 차츰 희미해졌다.
아타리아섬은 곧 바다에 떠오른 녹색과 갈색의 점이 되었다. 그로벌을
비롯해 다섯명의 여성 대원들은 겨우 긴장을 풀고, 콩알만한 아타리아
섬을 내려다 보았다.
전투를 끝낸 발키리 편대가 마크로스를 향하여 날아왔다. 마크로스의
크기에 비하면 발키리는 잠자리보다도 작았다. 브릿지에서 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관제탑, 발키리 편대 수용 준비! 각 기 착함 위치로!"
발키리 편대는 서서히 마크로스 옆을 돌다가 착함 라인에 올랐다. 활주로가
열리자 발키리는 가웍으로 변신하면서 차츰 함내로 휩쓸려갔다.
"미사, 발키리 편대의 착륙은 끝났나?"
함장석의 그로벌이 물었다.
"네. 나머지는 포커 소령과 VT102 뿐입니다."
"음... 바넷사. 암드II 는 어디에 있나?"
"랑데부 지점을 향해 감속 중. 20분 후에 만날 예정입니다."
"좋아. 클로디아, 그 쪽은 순조로운가?"
"예정대로 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미사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 정도의 궤도상에서라면 공격이 가능한데, 적의 전함은 왜 공격해 오지
않을까요?"
"자네도 마음에 걸리나?"
"네..."
그로벌은 둥근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재미있어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네...?"
미사는 클로디아와 눈이 마주쳤다. 세명의 여자 대원들도 의아스럽다는
눈빛이었다. 미사는 글로벌에게 한 발 다가서며 다시 물었다.
"아니! 재미있어 하다니요?"
"뭐, 약간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그로벌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다시 창밖으로 돌린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자, 걱정하지 말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대우주의 정적을 암시하며
모두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포커의 목소리였다.
"여기는 스컬 리더, 섬의 집이 좀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 마크로스 호위는
다른 동료에게 맡겨 달라."
포커로부터의 연락을 신호로 모두들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미사도
스크린 앞에 섰다.
"무슨 짐입니까?"
"VT102 와 두 파일럿. 게다가 꽃 한 송이 정도..."
"VT102!? 그렇다면 그 파일럿 뭔가 이상한데요?"
포커는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이고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뭐... 그 사람은 민간인이니까"
"민간인...이라뇨?"
미사는 놀라서 손을 입을 대었다. 샤미와 바넷사도,
"그럴 리가!"
"거짓말!"
"정말!"
이라고 한 마디씩 외쳤다.
거리를 감쌌던 하얀 연기는 차츰 바람에 씻기어 갔다. 히카루의 가웍도
마침내 연기 속으로부터 전체의 모습을 드러냈다. 히카루는 뒷좌석의 민메이
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커다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에
머리를 기댄 몸에는 전혀 힘을 느낄 수 없었다. 자그만 한 입술이 약간 벌려
져 있지만 물론 죽은 것은 아니다. 오뚝한 코는 규칙적으로 호흡을 계속하고
있었다. 히카루는 바로 전에 그 호흡을 막 확인했다. 장갑을 벗고 더러워진
손을 목에 있는 머플러로 닦은 후 가운데 손가락을 민메이의 코에 가까이
가져가 본 것이다. 잔잔한 숨결이 산들바람처럼 히카루의 손가락에 느껴졌다
조금전 배틀 포트의 공격을 받아 뒤집어졌을 때 실신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앞머리를 올려보았다. 얼굴에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히카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순간 그 말을
입밖에 내보고 싶어서,
"아름답다...음"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민메이에게 혹시 들리지 않았나 해서 당황하였다
히카루에게 있어서 약간 유감인 것은 민메이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커다랗고 맑은 눈은 히카루에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민메이가
눈을 뜨고 있다면, 이렇게 찬찬히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히카루는 조종석의 방향을 바꾸었다. 가웍의 밑에는 좀전에 죽은 거인이
가로놓여 있었다. 히카루는 거인의 모습을 민메이가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
했다. 히카루는 가웍을 이동하려고 했다. 순간 휘청하고 기체가 기울며 옆으
로 쓰러졌다. 거인은 숨이 끊인 채 가웍의 다리를 단단히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음...음"
민메이가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는 큰 눈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창 밖을 보려고 했다.
"보지 마요!"
히카루는 팔을 펴서 민메이의 눈을 가로 막았다.
"왜! 왜 그래요!?"
"보지 말라니까!"
민메이는 히카루의 진지한 표정에 압도되었다.
일단 상승했던 포커의 발키리가 돌아왔다. 배트로이드로 변신하면서 내려
섰다.
"히카루, 언제까지 우물쭈물하고 있을 거냐?"
포커는 가웍의 다리를 잡고 있는 거인의 팔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오, 너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안됐다!"
히카루는 포커를 쳐다보고 쉿! 하며 집게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민메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포커의 배트로이드는 히카루가 타고 있는 비행기의 조종석 부분만을 분해
하여 허리 부근에 조립했다.
민메이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히카루는 민메이를 돌아다보았다,
"이것은..."
"하하하, 편리하지?"
포커는 말하면서 배트로이드를 하늘에 띄웠다. 배트로이드에서 가웍으로,
가웍에서 발키리로 형태를 바꾸어 갔다. 히카루와 포커는 모니터 스크린을
통하여 얼굴을 마주 대고 대화를 나누었다.
"선배님,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어디라니? 마크로스밖에 더 있겠니?"
"농담이 아니에요! 마크로스에는 가지 않겠어요."
히카루는 얼굴을 돌리고 손을 마구 흔들었다. 포커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바보 같은 녀석! 섬에다 그 소녀를 위험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니!?"
"....."
"그래서는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없어!"
민메이는 머뭇머뭇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고 중얼거렸다.
"저... 섬의 피난처에 숙모와 숙부가 계신데..."
"피난처라면 안전해! 핵폭발에도 끄떡 없고!"
포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역시 섬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전쟁이 끝나면 틀림없이 내가 모셔다 주지!"
"그 쪽이 훨씬 위험합니다!"
히카루는 지체없이 포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민메이는 두 사람의 얼굴을 교대로 쳐다보았다.
그 때, 포커의 제2 스크린에 미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마크로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짐은 무사합니까?"
미사의 말에 포커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적을 겁내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누가 말이에요!"
히카루는 스크린을 탁! 하고 두드렸다.
브릿지의 미사는 제2 패널 스위치를 넣었다. 히카루의 얼굴이 비추기 시작
했다.
"...이 사람이 그 민간인입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요?"
"이 아줌마는 누구죠?"
"아줌마...!"
히카루의 말에 미사는 말문이 막혔다. 포커는 위를 보며 웃었다.
"하하하! 마크로스의 항공 관제 통신사야. 그러나 미사 중위도 히카루가
볼 때는 아줌마일지도...후후후...후!"
그로벌도 덩달아 웃었다. 미사는 노려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군모를 내렸다.
"포커 소령, 민간인이 VT 102에 타고 있는 이유를 나중에 꼭 들려
주십시오!"
미사의 거친 어조에 포커는 몸을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오, 무서워라!"
"그리고 히카루씨, 당신도 그냥 둘 수 없어요!"
조종석의 히카루는 민메이를 힐끗 보았다.
"사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상당히 무서워 보이는데요."
민메이는 히카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포커의 조종석에 마크로스
의 거대한 몸체가 펼쳐졌다.
"착륙한다, 히카루! 지시 부탁합니다, 아줌마!"
미사는 두 주먹을 가슴에 모으고 윗몸을 젖히더니, 마이크에 대고 크게
외쳤다.
"네! 그 쪽도 죽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십시오!"
미사는 힐끗 브릿지 안을 돌아다 보았다. 흥미 있게 통신을 지켜보고 있던
통신사들은 허둥지둥 자기의 일로 되돌아갔다. 포커의 발키리가 함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암드 II 의 격침
브리타이는 함장석에 앉아 있었다. 금속 의자는 근육질의 거대한 몸을 지탱
하면서 끼...끼 하고 소리를 냈다. 브리타이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암흑의
우주를 계속 본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암흑을 너무 바라본 탓인지, 그
눈은 뻥 뚫린 구멍처럼 어둠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적함의 움직임은...?"
브리타이가 두터운 입술을 움직였다.
"네, 적의 전함은 대기권 상층부를 천천히 상승 중. 조금전의 우주 함대와
합류할 모양입니다."
엑세돌은 레이더 패널을 보면서 대답했다.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위성 궤도로 나가면 계속 도망가버릴 가능성이.."
"...음, 알았다. 견제 공격을 걸 필요가 있겠군"
브리타이는 천천히 함장석에서 일어났다.
"전함, 포격 준비!"
명령을 내린 브리타이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전쟁에 임하는 엄한 표정은
절대로 없었다.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브리타이는 잔인한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히카루와 민메이는 포커가 운전하는 함내의 차에 타고 있었다. 마크로스는
전함이라기 보다는 요새였다. 차의 엔진 소리는 함내에 울려 퍼지기도 전에
너무나도 넓은 공간으로 삼켜져 버린다. 히카루는 뒷좌석에서 몸을 내밀고
전쟁을, 군대를, 군인을 힐책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전쟁이다."
포커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히카루는 더욱 격분했다.
"전, 전쟁 따위는..."
"최선의 전쟁보다 최악의 평화를 원한다... 고 말한 녀석이 있었는데..."
"그래요. 바로 그것입니다!"
"실없는 소리하지 마. 너도 공격해 놓고선."
포커는 힐끗 히카루를 보았다. 말문이 막힌 히카루는 의자에 깊숙이 앉았
다. 거인의 모습이 히카루의 눈에 되살아났다. 배틀 포트로부터 나타난 거인.
양손을 내밀며 다가온 거인. 가웍의 다리를 잡고 떨어지지 않았던 거인...
"그런 것이 타고 있다니 정말 놀라워"
전쟁에서 벗어난 지금, 거대한 인간인 다른 혹성인의 모습은 한층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런 것이..."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것이라뇨?"
옆자리의 민메이가 상당히 흥미로운 듯이 물었다. 히카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응, 뭘 말하는 거예요?"
"아니..."
히카루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포커는 갑자기 핸들을 꺾었다.
"앗!"
짧은 비명을 지르며 민메이는 히카루에게 안겼다. 차가 약간 경사진 통로로
들어가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히카루는 민메이를 안은 채 의자 밑으로
떨어졌다.
"다 왔다."
포커가 차에서 내렸다. 히카루는 민메이를 부축하면서 얼굴을 들었다.
"선배님, 심하지 않습니까?"
순간, 그 눈에 히카루의 비행기가 보였다. 레이서(히카루의 곡예 비행기)
였다. 레이서는 상처 하나 없이 막다른 곳에 있었다.
"....?"
히카루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레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차에서
튀어내린 히카루는 비행기로 달려가 여기저기를 어루만졌다.
"아, 선배님!"
포커가 뒤돌아보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히카루는 펄쩍 뛰며 이를
드러냈다.
"이런 것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 버려 두면 방해가 되니까..."
히카루는 수줍어하며 얼굴을 숙였다.
"자, 잘 간수해라."
"고맙습니다!"
"이건, 바로 아침의 항공 쇼 때의..."
민메이도 레이서를 보고 말했다.
"그래! 내 보물이야!"
히카루는 자랑스러운 듯이 가슴을 폈다. 미사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세
사람의 귀에 들려왔다.
"암드 II 와 랑데부 끝. 도킹(우주선 결합) 자세로 들어갑니다. 각각 제1
비상 배치..."
포커는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차에 탔다.
"그럼, 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 너희들은 여기서 움직이지 마라.
촐랑대고 다니면 미아가 된다."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포커는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아무튼 이 배는 상당히 크니까!"
히카루와 민메이는 작아져가는 차를 배웅했다. 곧 엔진 소리는 사라지고
두 사람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히카루는 새삼 주의를 둘러보고 한숨을
쉬었다.
"정말...상당히 크네..."
"...음..."
우주 항공모함 암드 II 는 도킹 라인에 올랐다. 서서히 마크로스의 왼쪽 뱃전
으로 접근해 갔다. 본래 암드I 와 II는 마크로스의 호위 항공모함으로 만들어
졌다. 마크로스의 발키리 활주로 입구를 중심으로 도킹이 가능했다. 우주 항공
모함이 마크로스의 일부가 될 경우 발키리편대는 그 활주로를 사용하여 출발
과 착륙을 행한다. 보다 빠르게 출격하고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 것이다.
암드I을 잃은 지금, 암드II는 마크로스에게 있어서 귀중한 한 쪽 팔이다.
암드II는 신중하게 거리를 좁혔다.
"적함이 도킹할 모양입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레이더 스크린에 두 개의 점이 서서히 접근해 왔다.
"음..."
브리타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두 척 사이로 빔을 발사하라. 전함에 명중시키지 못하면 소형함을
격파해도 상관없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각 함은 계속해서 빔을 발사했다. 엄청난 섬광으로
브리타이 모함과 모함을 에워싸는 함대의 모습이 확 떠올랐다. 일순간 빛의
직선은 저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암드II는 배의 꼬리를 마크로스의 접속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척
사이에 남겨진 약간의 공간으로 빔의 뭉치가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야!?"
그로벌이 외쳤다. 그로벌의 눈에 거듭 공격해 오는 빔의 빛이 비쳤다. 암드
II 뒷부분의 노즐이 불을 뿜었다. 마크로스에서 떨어져 어떻게든 공격 자세로
바꾸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의 빔은 가차없이 함체에 구멍을 뚫었다. 순간
암드II는 크게 금이 가고 갈라진 틈으로 백광을 뿜으며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마크로스의 브릿지 안에 빛의 홍수가 몰려들었다. 통신사들의 비명과 함께
항공모함의 파편이 브릿지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공격인가!?"
그로벌이 묻자 바넷사가 뒤돌아 보며 말했다.
"전번과 같이 위성궤도. 거리 1만 2천 킬로미터!"
"암드II 격침"
미사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본함의 손상은!?"
"직격탄은 없습니다."
"각 부분 이상 없음."
샤미와 킴이 계속 보고했다.
"좋다. 본 함의 위치는?"
바넷사가 데이터를 읽었다.
"거의 지구를 일주하고, 고도 120 킬로미터"
"...음..."
그로벌은 함장석에서 일어났다.
"클로디아, 진로를 아타리아섬으로! 착륙을 가장하여 공간 이동에 들어간다"
"홀드 시스템!? 아직 시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당황하고 있으면 당하고 만다."
"그래도 다른 혹성인의 시스템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단념해서는 곤란해! 공간 이동의 홀드 시스템 준비! 홀드
목표는 달의 뒷면. 좌표 체크! 섬 상공에서 홀드한다."
클로디아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육지 가까이에서 홀드하는 겁니까?"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그... 그렇다면, 통합군 본부에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됩니까?"
"지금은 비상시다. 연락은 달에서 취하면 된다."
"그러나..."
계속 물고 늘어지는 클로디아에게.
"이것은 명령이다!"
라고 그로벌은 단호하게 말했다. 클로디아는 미사와 눈이 마주치자, 서서히
계기로 눈을 돌렸다. 패널을 조작하면서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홀드 시스템 준비! 전 함 비상 배치! 동력 시스템 체크, 전부 녹색.
파워 집중!"
기관실에는 홀드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원추형의 금속 주위를
갖가지 파이프가 에워싸고 있었다. 띠 모양의 램프에 연쇄적으로 불이 들어
오고 원추부는 순조롭게 돌기 시작했다. 마크로스는 다시 목표인 지구를
향해 나아갔다.
그로벌 함장의 대실수
섬의 대피소는 사람들의 불안과 탄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 사람, 묵묵히 가지고 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 담요를 덮고 누워 있
는 사람 등등 모두가 불안한 눈을 여기저기에 옮기고 있었다.
대피소는 밋밋한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구석구석까지 깨끗했다. 그
깨끗함이 사람들의 불안을 한층 더 자극시키는 것이다.
"이젠 끝난 것이겠지. 정말로 훌륭한 진우식이었어!"
마을 회장은 딱딱한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식빵을 먹고 있었다.
"우리들의 가게... 괜찮을까?"
라고 말하며 철물점 주인은 빈 담뱃갑을 비틀어 버렸다.
"민메이 누나는 어디에 있을까...?"
민이가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중얼거렸다.
"뭐, 피할 곳은 여기만이 아니야."
민이 아버지는 큰 손으로 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민이 아버지의
바로 옆에 민메이의 숙모 부부가 앉아 있었다. 숙부는 앞치마를 두른 채 양
손을 마주잡고 민메이의 무사함과 섬의 안전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늘게 눈을 뜨고 옆자리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조카의 안전을 걱정한 나머
지, 말을 잃어 버린 것 같았다.
"걔는 괜찮을 꺼야. 워낙 야무지니까... 응!"
그는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정말로 나갈 거야?"
민메이는 히카루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레이서의 조종석에서 히카루는 계기를 점검 중이었다.
"너도 돌아가고 싶지?"
"그렇긴 하지만...."
"별로 무리는 아니야."
"함내 홀드 자세, 홀드 3분 전...."
클로디아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뭐지...?"
민메이는 높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 나갈 거니까 상관없어."
히카루는 비행기 밖의 민메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히카루와 민메이는
친숙해졌다.
"빨리 타."
"... 응."
잠시 머뭇거린 후 민메이는 히카루의 손을 잡았다. 히카루는 민메이를 끌어
올리면서 자리를 내주었다.
"이건 한 사람밖에 못 타잖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민메이는 히카루에게 몸을 바싹 밀착시키며 좁은 조종석에 앉았다.
"이것을 써."
히카루는 자기의 헬멧을 건네주었다.
"고마와."
헬멧은 약간 컸다. 히카루는 기체 밖으로 몸을 쑥 내밀고 벽의 레버를 잡아
당겼다. 정면의 에어 로크가 열리자, 그림 물감을 물에 푼 것 같은 저녁 놀
이 보였다.
마크로스는 이미 대기권 내에 돌입해 있었던 것이다. 레이서의 뚜껑이 내
려오고 쉬익 하는 높은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민메이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몸을 움츠렸다.
"꽉 잡아."
하는 말을 듣고, 민메이는 기우뚱하며 계기에 달라붙었다.
"앗! 안 보여!"
"아, 미안!"
민메이는 당황하여 히카루에게 안기었다. 갑자기 뺨에 차가운 헬멧이 느껴
지는 바람에 히카루는 몸이 굳어서 조종을 잘못했다. 레이서는 함 밖으로 나
온 순간, 빙그르 회전하며 거꾸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앗!"
민메이는 비명을 지르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몸이 완전히 히카루의
무릎 위에 놓여졌다.
"이 정도로 무서워하면 어떡해?"
히카루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어머나!"
어느덧 히카루는 기체를 제자리로 되돌리며 여유를 보였다. 민메이는 벗겨
진 헬멧을 바로 하고 두리번거렸다.
"이젠 괜찮아!"
민메이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클로디아는 홀드 돌입의 초읽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 8, 7, 6 ..."
함장석의 그로벌은 팔걸이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 통신사들도 너무 긴장
한 나머지 자신의 심장 고동소리를 크게 들을 수 있었다.
"... 4, 3, 2 ...!"
홀드 엔진의 회전이 한계점에 달했다.
"... 제로!"
마크로스의 함체가 빨갛게 물들었다. 전함을 중심으로 빨간 빛이 공 모양
으로 퍼져갔다. 그것은 놀이 진 하늘보다도 붉고 아름다웠다. 빛은 레이서
를 감싸며 계속 부풀어올라 아타리아섬으로 향했다. 마침내 대피소가 있는
산을 삼키고, 항구에 정박 중이었던 해양 전함 다이더로스와 프로메테우스
에까지 퍼져갔다.
대피소는 심하게 흔들리고, 사람들은 땅울림을 들으면서 몸을 서로 기대
었다. 마크로스의 브릿지에는 진동은 없었지만 공간이 비뚤어지기 시작했
다. 계기가 비뚤어지고 인간이 비뚤어졌다. 자신의 손과 발이 서서히 물결
치는 것이 보였다. 통신사들은 구역질을 참으며 몸을 구부렸다. 이상하게
초컬릿 같은 냄새가 났다. 빛의 덩어리는 순간적으로 계속해서 눈부시게 빛
나고 둘러싸여진 모든 것과 함께 사라져갔다. 싹도려낸 섬의 일부에는 바닷
물이 소용돌이치며 들이닥쳤다.
육지 가까이의 커다란 발광 현상은 브리타이 함대까지 비추기 시작하였
다.
"...음...."
브리타이는 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 저것은 홀드 광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엑세돌이 당황하며 말했다.
"육지 부근에서 홀드를! 놈들에게 저런 일이 가능한가?"
"모르겠습니다."
"... 제법 흉내를 잘 내는군. 곧 디홀드 지점을 찾아라."
"네!"
우주 공간에 빛의 덩어리가 나타났다. 빛은 서서히 사라졌고 내부의 모습
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빛의 아래에는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프로
메테우스와 다이더로스가 떠 있다. 그 위를 떠다니는 마크로스와 레이서.
그리고 햇빛의 반사를 받아 벌겋게 물든 두터운 구름. 그러나 거대한 빛의
덩어리도 우주에서는 실로 작은 비누방울 같은 존재이다. 비누방울은 그 안
에 지구의 풍경을 보이면서 서서히 떠오르고 그리고 터졌다. 구름은 흩어지
고 바다는 갑자기 얼어서 해양 항공모함에 하얀 어금니를 마구 찔렀다. 레
이서의 뚜껑 유리창에도 서리가 끼어 두 사람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히카루가 말했을 때, 민메이의 몸이 공중에 떴다. 헬멧이 벗겨지고 긴 머리
카락이 흩날렸다. 잇따라 히카루도 떠올라 두 사람은 멍하니 얼굴을 마주 보
았다. 홀드가 끝나고서도 브릿지의 대원들은 잠시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았
다. 모두 두려워하면서 조심스레 자신의 몸이 무사함을 확인했다. 함내의
불빛이 두 세 번 깜빡이더니 뚝 꺼졌다.
"어떻게 된 거야?"
함장석에서 일어난 그로벌이 물었다. 창문 너머 별들의 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고, 클로디아의 앞에서 비상용의 빨간 램프가 깜빡거렸다.
"보조 시스템으로 바꿉니다."
클로디아가 누름단추를 조작하자 빛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바넷사가 뒤돌
아보며 말했다.
"이 배 아래쪽에 물체가 있습니다."
"당연하지. 여기는 달의 뒷면이다."
그로벌은 바넷사의 뒤로 다가갔다.
"그것이... 더 작은 것 같아서. 지금 스크린에...."
정면의 대형 패널에 영상이 나타났다. 얼어붙은 바다의 그 중심에 섬의
일부가 보였다.
"이, 이것은!?"
그로벌은 눈을 부릅뜨고, 바넷사는 벌떡 일어났다. 뒤돌아본 통신사들도
작은 소리로 외쳤다.
"로케트 추진을 서둘러라!"
명령을 받은 클로디아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안 됩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마크로스는 맥빠진 채 하강하여 바다 위로 떨어졌다. 깨어진 얼음 덩어리
가 계속해서 공중에 튀었다. 함체에 부딪쳐 깨진 작은 얼음 부스러기가 연
기처럼 마크로스를 감쌌다.
민메이는 유리창의 서리를 긁어냈다. 조종석의 불빛이 우주 공간을 작게
비추었다. 촛불을 들고 동굴을 걸어가는 것처럼 시야는 좁게 한정되어 있었
다. 우주의 어둠에서 희미한 빛 속으로 몇 개의 얼음 조각이 떠내려왔다.
"와, 이쁘다!"
얼음은 무지개빛으로 빛나며, 갖가지 색의 별들은 어둠 속에 피어나는 꽃
같이 보였다. 민메이는 황홀한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히카루는 아까부터 이
곳저곳 계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공기가 없기 때문에 프로펠러 추진은
사용할 수 없었다.
"와, 굉장하네! 이게 진짜 우주구나!"
민메이는 히카루를 보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 그런데, 왜 그래?"
"글쎄."
히카루가 어깨를 움츠렸을 때 큼직한 얼음덩이가 레이서 옆구리에 부딪쳤
다. 쾅! 하는 진동에 흔들리어 기체는 천천히 물결쳤다. 조종석의 기온이
빠르게 내려가서 민메이는 재채기를 했다. 경보 장치가 계속 울렸다.
"뭐야?"
민메이는 불안해졌다.
"자명종시계. 아하하하...!"
히카루는 웃으면서 금이 간 기체에 살짝 손수건을 끼어넣었다. 공기가 빠지
고 있었다. 민메이는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을 히카루에게 보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
"당황하지 말고... 보조 엔진을 사용하면 되지만...."
헬멧을 바로 쓰고 민메이는 다시 한 번 히카루에게 안기었다.
"빨리 가!"
"그럼 해보겠어. 최후의 수단...."
"최후라니?"
"왜?"
히카루는 시치미를 떼며 조종을 시작했다. 보조 엔진이 엷게 불을 내뿜자
레이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난다."
"됐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마크로스는 어디에...?"
두 사람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저기!"
민메이가 눈 아래를 가리켰다. 얼어붙은 해면이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마크로스는 마치 갈라진 틈에 놓인 다리와 같이 가로놓여 있었다. 히카루는
레이서의 기수를 밑으로 내리고 마크로스를 향해서 내려갔다. 에어 로크와
발키리 출입구는 모두 닫혀져 있었다.
"우선...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겠는데...."
브릿지까지 도달하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했다.
"어떻게 하지?"
민메이의 몸은 추운 나머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 앗!"
히카루는 마크로스의 옆구리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을 발견하였다. 접근
해서 확인해 보니,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됐다!"
그것은 마크로스가 바다 위에 떨어졌을 때 깨지며 흩어진 얼음덩이가 뚫
은 구멍이었다. 히카루는 신중히 레이서를 유도했다. 함내로 들어가 그대로
통로를 따라 비행하자 정면의 에어 로크가 열렸다. 그 밑을 다 빠져나가기
전에 다시 에어 로크가 떨어지며 레이서의 부스터를 망가뜨렸다.
"앗!"
"으악!"
튀어 오른 레이서가 공중에서 정지했다. 천장에서 축 늘어진 여러 개의 전
선에 휘감긴 것이다. 간신히 어느 작업장으로 파고 들어간 것 같았다. 약간
넓은 바닥에는 갖가지 기계가 놓여 있었다. 마침내 조종석의 경보기가 소리
를 멈추었다.
"자명종이 멈췄어."
민메이가 말을 했다. 두 사람은 얼굴이 마주치자 소리를 내며 웃었다.
"... 정말이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섬의 대피소까지 동시에 홀드해 버
릴 줄이야...."
그로벌은 새삼 홀드의 유효 범위의 넓이에 놀라고 있었다.
"함장님, 섬의 피난민들은 무사하게 수용 중입니다. 다행히 사상자는 적
은 것 같습니다."
바넷사가 보고했다.
"... 음. 지구로부터의 연락은?"
미사가 뒤돌아보며 우물 쭈물거렸다.
"몇 번이나 불러 보았는데...."
"응답이 없나? 고장은 아닌가?"
"아닙니다. 기기는 정상입니다."
바넷사는 난처한 듯이 말했다.
"저... 현재 위치가...."
"알아냈는가? 어딘가?"
"그것이... 명왕성 궤도의 약간 안쪽...."
"뭐!?"
그로벌과 함께 통신사들도 일어섰다. 바넷사를 둘러싸고 컴퓨터 데이터를
확인했다.
"명, 명왕성. 저런...."
"때문에 홀드 따위는...!"
미사와 클로디아는 동시에 그로벌을 쏘아보았다. 그로벌은 군모를 든 채
말했다.
"자, 기다려라.... 다시 한 번 홀드하면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
그 때 뚜, 뚜 하고 함장 전용의 전화가 울렸다. 그로벌은 허둥지둥 수화
기를 잡았다.
"...응. 뭐!? 응... 하지만... 알았다...."
그로벌은 다섯 명의 통신사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다시 한 번 모자를 들고 털썩 함장석에 앉았다.
"... 함장님?"
미사의 소리에 그로벌은 측면의 둥근 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홀드 시스템이... 소멸했다는 군...."
"소멸이라니요!?"
이렇게 말하면서 클로디아는 한 걸음 내딛었다.
"시스템만....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하는 거야."
"그럼."
"돌아갈 수 없다."
샤미와 킴은 부둥켜안고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들의 불행을
슬퍼하며 껴안은 채 무릎을 꿇었다.
"... 긴 여행이 될 것 같다."
그로벌은 파이프를 물고 불을 붙였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브릿지에 퍼졌
다.
제4화 Lynn Minmay(린 민메이)
전선에 휘감긴 레이서는 공중에 매달린 채로 있었다. 간신히 기체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어떻게든 전선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러 가닥의 전선
은 레이서의 여기저기를 단단히 휘감고 있었다.
"야앗!...!"
히카루가 힘을 다해 로프를 끌어당겨도 전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장갑이 벗겨지고 히카루는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몇 번이나 굴러서
파일로트복의 여기저기가 더러워졌다. 민메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히카루는 일어나서 다시 해보려고 했다. 민메이가 그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
했다.
"사람을 불러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 그래야겠어."
히카루는 레이서의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창공을 자유
롭게 날아야 하는 비행기가 전선 따위에 얽매여 꼼짝도 못하다니.......
히카루는 천장에서 늘어져 있는 전선을 손으로 펴서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
고 발돋움을 하여 레이서의 조종석에 있는 통신 스위치를 눌렀다.
"쳇!"
히카루는 혀를 찼다.
"왜 그래?"
민메이도 발돋움을 하며 히카루의 뒤에서 상황을 엿보려고 했다. 그러나 키
가 미치지 못했다.
"무전기가 부서졌어."
히카루가 뒤돌아보고 말했다. 민메이는 발뒤꿈치를 내렸다.
"문제 없어. 아직 방법은 있으니까."
히카루는 손목시계의 단추를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숫자판이 사라지고 방
위를 가리키는 패널로 변했다.
"그건 뭐야!?"
"콤파스."
"이런 모양의 컴퍼스라니...."
민메이는 가운데 두 손가락을 합쳐서 제도용 컴퍼스의 모양을 만들었다.
"원을 그리는 컴퍼스가 아니고...."
히카루는 웃으며 조종석에서 회중 전등을 꺼냈다. 히카루는 바닥을 비추면서
걸어갔다. 민메이도 히카루의 뒤에 숨듯이 하며 따라갔다.
"함내는 넓지만, 이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레이서의 위치도
곧 알게 되고."
"음."
두 사람은 그곳에서 나와 어느 통로로 나갔다. 찌는 더위, 습기 찬 공기
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고르지 못한 발소리가 여러 겹으로 울려 퍼졌다. 누
군가가 뒤에서 따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어 민메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
보았다. 칠흑의 어둠 속이었다. 민메이는 무서워서 발소리를 히카루에게 맞추
려고 했지만 금새 어긋나 버렸다. 그 때마다 소녀는 두세 걸음 종종걸음이
되기도 하고 깡총깡총 뛰기도 하며 보조를 맞추었다. 히카루가 멈춰서서 회중
전등의 불빛을 옆의 벽에 비추었다.
"주위가 온통 파이프뿐인데."
왠지 민메이는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새까만 금속관은 동물의 내장처럼
보였다.
"에너지 블록에 접근한 것 같애."
히카루는 상하좌우로 불빛을 옮겨가며 관찰했다. 민메이는 파이프에 손이
닿자,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히카루는 재빨리 회중전등을 민메이에게 향했다. 민메이는 손을 흔들었다.
"조금 뜨거웠을 뿐 괜찮아."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해."
둘이 조심조심 다시 걷기 시작한 순간,
"아앗!"
히카루는 바닥의 이음새에 걸려 넘어질 뻔하였다. 기우뚱하면서 균형을 잡
으려고 종종걸음이 되었다. 민메이는 이대로 히카루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듯한 생각이 들어 당황하며 뒤를 쫓았다. 히카루는 정면의 문에 머리를 부딪
치고 쓰러졌다.
"어휴...!"
민메이는 휴우 하며 가슴을 쓰다듬었다.
"조심해야지. 덜렁거리기는!"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인적이 없는 통로가 계속
되고 있고, 반쯤 파괴된 기계류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두 번째 문, 세
번째 문, 네 번째의 문을 열어도 보이는 것은 금속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히카루는 한숨 섞인 투로 말했다.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민메이는 맨발이었다. 손에는 빨간 구두를 들고 있고, 양쪽 엄지 발가락
은 구두에 닿아서 벗겨져 있었다.
"브릿지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인데...."
히카루는 컴퍼스를 보았다.
"이게 맞아. 역시...."
민메이는 히카루의 손을 잡았다.
"...가 어서!"
"그래...."
히카루는 민메이의 왼손에 불빛을 대었다. 빨간 구두가 떠올랐다.
"그럼 하나씩 들고 가자."
민메이는 구두 한 짝을 건네주고 걷기 시작했다.
"어... 저것은!"
민메이가 앞을 가리켰다.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두 사람은 달려갔다. 눈앞에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 펼쳐졌다. 그 주위의
넓이에 두 사람은 멍하니 멈춰 섰다. 천장도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막다른 곳에는 거대한 에어 로크가 늘어서 있었다.
"거인의... 에어 로크인가?"
히카루는 배틀 포트에서 나타난 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기를 향
해 공격해 오던 그 거대한 손을 떠올렸다.
"앗!"
"왜 그래!?"
민메이는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히카루는 그 시선을 쫓았다.
"!"
거대하고 둥그런 창문을 통해 우주 공간이 보이고 있었다. 자동차, 플라
스틱 양동이, 오토바이, 환기 장치, 고무 호스, 맥주병 등 여러 가지가 창
밖에 떠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마... 나쁜 꿈 같기도 하고...."
"함장님! 프로메테우스도, 다이더로스도 응답이 없습니다. 생존자는..."
미사는 항상 사무적으로 보고를 끝마치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
는 항상 정직했다. 지금은 약간 슬픈 빛을 띄고 있었다.
"역시...."
그로벌은 정면 유리창으로 밖을 보았다. 두 척의 해양 항공모함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브릿지의 빛을 받아 전투함 모양의 얼음 조각은 엷은 빛
을 반사했다.
섬의 부유물이 천천히 정면 유리창을 지나갔다. 자전거와 마네킹 인형과
영화 간판, 자전거는 빨갛게 녹이 슬어 있고 금발의 마네킹은 벌거벗었다.
간판에는 눈을 감은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로벌은 미사를 향해
말했다.
"미사, 작업정에 명령을 내려라. 항공모함을 이쪽으로 끌어당기라고."
"...그렇다면... 암드 I과 암드 II 대신에 도킹시킬 생각입니까?"
"음, 군함에 실은 병기는 아직 사용할 수 있는가?"
"하지만 잘 달라붙어 있을까요?"
"작업원의 노력에 기대하고 있다. 바넷사, 피난민의 수용상황은?"
"순조롭습니다."
"좋아. 대피소에 수용이 끝나는 대로 밖에 떠 있는 것은 모두 거둬들인
다."
로이로부터의 연락이 들어왔다. 클로디아가 그 연락을 받으며 스크린 앞
에 섰다.
"로이 소령, 무슨 일입니까?"
"부탁이 있다. 민간인을 찾았으면 한다. 히카루... 내 후배인데."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마크로스 안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는...."
"아무튼 부탁한다. 가능한 한 서둘러 달라."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을 듣고 그로벌이 옆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소령,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현재 본 함에는 5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피난 중이다. 지금 적의 습격을 받는다면, 어떠한 사태에 빠질지는...."
"그렇습니까? 5만 명이 한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알았읍
니다."
"그럼...."
칙 하고 영상이 끊어졌다.
"저 돌대가리!"
클로디아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히카루와 민메이는 레이서가 있는 작업장으로 되돌아 갔다. 결국, 아무런 실
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민메이는 바닥에 앉아 부어오른 다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히카루는 그런 소녀의 모습이 매우 애처롭게 느껴졌다.
"어때, 다리는?"
"괜찮아. 그런데 목구멍이 칼칼해서...."
민메이가 히카루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물이나...! 먹을 것이라면 레이서에 조금은 있는데."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돌리고 침묵을 지켰다.
"...인간은 물 없이 어느 정도 살 수 있을까...?"
민메이가 눈을 내려뜬 채 중얼거렸다.
"여기서 곧 빠져나갈 수 있어."
"하지만 이렇게 걸었는데...."
"... 통로가 뒤얽혀 있고, 다른 통로도 없고......."
"...음."
민메이의 머리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빛을 냈다.
"!"
긴 머리카락을 따라 한 줄기 물방울이 흘렀다.
"뭐가 붙어 있어?"
히카루는 회중 전등을 머리 위의 벽으로 향했다. 놓여진 파이프가 땀을 흘
리며 서서히 물방울을 만들고 있다. 히카루의 눈이 빛났다.
"물을 마실 수 있을지도 몰라!"
히카루는 옆의 잡동사니 무더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철판과 톱니바퀴 등을
계속 내던졌다. 민메이는 까닭을 알 수 없어 귀를 막고 있을 뿐이었다. 이
윽고 히카루는 한 개의 쇠뭉치를 끌어냈다. 머리 위의 파이프는 연달아 가는
관을 통하여 아래쪽의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었다. 히카루는 그것을 확인하자,
쇠뭉치의 끝을 파이프의 틈에 찔러 넣었다. 지렛대의 원리로 파이프 관을
부수려고 하는 것이다. 힘껏 있는 힘을 다해 쇠뭉치를 당겼다. 민메이도 일
어나서 도와주었다. 금속이 서로 스치며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왓!"
"얏!"
꽝 하고 쇠뭉치가 떨어지고 두 사람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부서진 파
이프에서 물이 샘솟았다. 물은 두 사람의 온몸에 비가 오듯 내리퍼부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은 땀과 기름으로 밴 몸을 빗속에 드러냈다. 시냇
물에서 뛰노는 새끼 은어처럼. 민메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쳐
들고 얼굴을 씻었다.
"기분 좋은데!"
히카루도 흩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일어났다.
"나 샤워를 해야겠어!"
"뭐!?"
히카루는 놀라며 다시 물었다.
"... 지금 여기서?"
"응! 땀을 많이 흘려서."
이렇게 말하면서 민메이는 등의 지퍼를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곧 히카루의
주춤하는 시선을 알아차리고 손을 멈추었다. 히카루는 당황하여 구석을 가리
키며 말했다.
"난 저... 저리로 가 있는 편이 좋겠군."
"마음 써줘서 고마워."
민메이는 짐짓 고마운 말투로 말했다.
"그럼, 가는 김에 그 부근에 칸막이라도 해주면 정말 더욱 고맙겠는데."
"어휴!"
김빠진 대답을 남기며 히카루는 빗속을 떠났다. 잡동사니 더미에서 꺾어진
철판을 주워 민메이의 옆에 세워 주었다. 철판은 커서 소녀의 몸을 완전히
가리었다.
"이 정도면 됐지?"
"고마워!"
민메이의 소리를 듣고 히카루는 그 곳을 벗어났다. 대여섯 걸음 나아가다가
멈춰 섰다.
"......."
서서히 뒤돌아보니, 철판 구석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히카루는 발길을
되돌려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 순간,
"악!"
민메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민메이, 왜 그래!?"
히카루가 달려와서 철판 주위를 둘러보았다. 민메이는 옷을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히카루를 노려보았다. 히카루는 들통이
난 것 같아 횡설수설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악!"
민메이는 다시 한 번 시치미를 떼며 소리를 질렀다. 히카루는 어깨를 움츠
리며 구석으로 물러서서는 무릎을 감싸쥐고 앉았다. 민메이는 머리를 흔들
며 몸을 씻었다.
"너무 화를 내서... 히카루, 미안해!"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왜 그래? 화났어? 히카루, 대답해."
칸막이 위로 갈색의 윗도리가 넘어왔다.
"내 작업복이야. 이것으로 갈아입어."
"응. 고마워!"
히카루는 간단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조종석에서 꺼내온 두 장의 모포
를 나란히 깔았다. 곧 히카루는 한 장의 모포를 질질 끌고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았다.
"아, 상쾌해! 히카루도 샤워하면 좋을 텐데."
작업복 모습으로 민메이가 왔다.
"물론, 해야지."
민메이는 레이서 뚜껑의 유리창에 자신을 비추며,
"와아! 이 옷 꽤 큰데!"
라고 즐거운 듯이 말했다. 소매와 옷자락이 너무 길어서 마치 치마를 입은
듯했다. 히카루는 자신의 모포에 앉았다.
"휴대용 식량을 찾았어. 하나 먹어 봐."
손에 든 통조림을 보았다.
"고마워!"
민메이에게 통조림을 하나 던져 주고 히카루는 급히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니까 맛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느새 다 먹어치우고 두 개째에 손을 댔다.
"민메이도 하나 더 먹어."
민메이는 먹는 히카루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아니, 한꺼번에 다 먹으면 어떡해?"
"괜찮아. 내일은 출구를 찾을 수 있으니까."
히카루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 먹었다.
"만약... 찾아내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1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 배야. 걱정 없어."
"그래도 아까는 결국 못 찾았잖아."
"그래서 내일은 빈틈없이 지도를 만들어서...."
말을 하다 말고 히카루는 숟가락을 놓았다.
"나... 식욕이 없어졌어...."
민메이가 히카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주눅 들었어!"
"누가!"
민메이는 입을 막고 웃었다.
히카루도 샤워를 하고 작업복 바지로 갈아입었다. 위에는 셔츠 하나만 입은
채였다. 두 사람은 벽에 기대어 나란히 모포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온종일...."
레이서를 올려다보며 히카루가 중얼거렸다.
"...선배가 초대해서 마크로스를 보러 왔다가 우주인에게 습격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우주의 마크로스 안이라니...."
"... 숙부와 숙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피소에 있다면 걱정 없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곳은 군인들이 지켜 주니까."
"군인들이...."
히카루는 갑자기 어깨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은 민메이가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히카루는 그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아직도 머리가 젖어 있었
다. 민메이는 그저 물에 적신 것뿐이었지만, 히카루는 분명히 향긋한 샴푸 냄
새를 맡았다.
"잠깐. 이런 곳에서 자면 감기 들기 딱 알맞아."
히카루가 민메이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그 때, 천장에서 떨어진 쥐 한
마리가 소녀의 가슴을 지나갔다.
"어머!"
민메이는 몸을 일으키며 가슴을 감쌌다. 히카루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츠렸
다.
"흥, 그런 사람이었군요."
커다란 눈에 경멸의 빛을 띄우며 민메이가 일어났다.
"그런 줄 몰랐어!"
"기다려. 나는 쥐가...."
홱 등을 돌리고 민메이는 자기 모포로 갔다. 그리고 코방귀를 뀌며 눕자
마자, 모포 아래에서 또 몇 마리의 쥐가 지나갔다.
"악! 쥐!"
민메이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재빨리 히카루에게로 달려왔다.
"쥐는 딱 질색이야. 빨리 쫓아 버려!"
"쫓아 버려도 한이 없어. 우리가 멋대로 침입해 온 것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뭐, 출입구를 찾을 때까지 사이좋게 지내야지."
민메이는 하품을 하며 다시 히카루에게 기대었다. 고르게 숨소리를 내면서
히카루도 눈을 감았다.
멀고 먼 브릿지를 찾아서
"이상한 일이야. 내게는 싸우는 것만이 사는 보람이니 말이야. 히카루 녀석
에게 사람을 죽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 적과
맞서고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
야. 그래서 싸우기 전은 두려워. 굉장히 두렵다. 그러나 싸운 다음은 피곤
하지. 아주 피곤하다...."
포커는 함내의 군인용 기숙사의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뿜어 낸 담
배 연기가 추상화를 그리면서 천장에 떠다녔다. 소파에는 클로디아가 앉아
있었다.
"후배가 걱정이에요... 포커."
그녀는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탁자 위의 사이펀(커피 끓이는 기구)이 알
콜 램프로 데워지고 있었다.
"옛날, 내가 파일로트 팀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나와 히카루는 야간
비행에서 돌아오는 중이었어. 나는 히카루의 비행기에 같이 있었고, 히카루는
순조롭게 비행기를 활주로에 착륙시켰는데, 그 때 앞에서 작은 빛을 발견했
어. 바로 고양이의 눈이었지. 히카루 녀석은 당황해서 기체를 미끄러지게 했
고 덕분에 꽝 부딪치고 말았어. 두 사람 모두 기합을 받고 끝났지만."
"정이 많은가 봐."
"정말로 멍청한 녀석이지."
"그래서, 고양이는 살았어?"
"그런데 처음부터 고양이는 죽어 있었던 거야. 죽은 채로 눈을 뜨고 있었
지...."
뜨거워진 물이 사이펀의 관을 타고 커피와 서로 섞였다. 클로디아가 불을
껐다.
"히카루 녀석, 죽었을지도 몰라."
클로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히카루만은 나보다 먼저 죽게 하고 싶지
는 않어."
한 방울, 또 한 방울, 커피가 유리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사이를 둔 후
클로디아가 말했다.
"마크로스의 어딘가에 있다면 괜찮을 거야. 아직은...."
"아직은...?"
포커는 담배를 비벼 껐다.
"내 말에 운 사람이 한 사람, 나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그래
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내가 죽으면 무덤에 꽃을 꽂아 줄
사람이 한 사람, 모두 합해서 단 한 사람...."
"그게 뭐예요?"
"옛날에 누군가가 읊었던 시야. 싸우고 난 뒤, 항상 이 시를 생각해 내
지. 격에 맞지도 않게...."
"아주 불길한 시군요."
클로디아는 커피를 컵에 부어 침대 옆으로 가져다 주었다. 포커가 그 손
을 잡고 끌어당겼다. 컵이 받침 접시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지면서 파란
카페트에 커피가 스며들었다.
이틀째였다.
히카루는 혼자서 미로의 출구를 찾았지만 결국 허사였다. 몇 번이나 파이프
에 머리를 부딪치며 히카루는 작업장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민메이가 마중을 나왔다. 히카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민메이도 실망하여 눈을 떨구었다. 히카루는 천천히 피곤한 몸을 모포 위에
눕혔다. 지도를 보았다. 내일은 틀림없이 찾고 말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머리
속에서 탐색 계획을 짰다. 바로 그 때 히카루의 귀에 찌익찌익... 작은 소리
가 들려왔다.
"어?"
몸을 일으키고 살펴보니, 민메이가 레이서의 동체에 흠집을 내고 있었다.
못으로 두 줄을 긋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히카루는 깜짝 놀라서 민메이에게 달려갔다. 아무리 여기저기 부서져 있다
고 해도 목숨 다음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는 비행기이다. 그러한 히카루의 기
분도 모르고 민메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오늘로 표류 이틀째라고 하는 표시야. 어때, 좋은 아이디어지?"
"아... 맙소사...!"
히카루는 민메이를 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왜, 안 돼?"
"아, 아니... 좋은 생각이야. 하하...!"
"낙하산 없어?"
"낙하산!? 뭐 하게?"
"텐트 만들려고."
"텐트...?"
히카루는 곧 텐트 만드는 것을 도왔다. 텐트라고 해봤자, 펼쳐진 낙하산을
레이서에 덮어씌울 정도의 물건이었다. 기체의 양쪽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천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겼다. 그것이 민메이가 말하는 텐트였다.
"와! 완성, 완성이다!"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민메이를 히카루는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소
년에게 있어서 "꿈"이었던 비행기를 소녀는 아주 쉽게 "현실"로 바꾸어 버
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텐트 속에서 식사를 했다. 히카루가 없는 동안에 민메이는 냄비
로 사용할 수 있는 듯한 것을 모아 두었고 작은 곤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레이서의 액체 연료로 불을 피워서 민메이는 스프를 끓였다. 맛있는 냄새가
텐트에 가득 찼다.
"음, 맛있는 냄새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어."
민메이는 작은 접시에 스프를 덜어 주면서 말했다. 히카루는 감동 어린 목소
리로 말했다.
"과연, 중국 요리점 아가씨답다!"
"뭐라고! 거기는 숙모님 댁이야. 가끔 놀러가는 것뿐이야."
"그럼 너희 집은?"
"요코하마! 중화 거리에서 레스토랑을 하고 있어."
"그럼 결국 마찬가지가...."
"히카루는 음식 중에서 뭘 제일 좋아해?"
"뭐든지 잘 먹지만... 볶음밥."
"그럼, 한 번 와. 대접할 테니까."
"요코하마로 말이야? 화려한 도시지?"
"약간은."
"멋진 남자들도 많이 있겠지?"
히카루는 스프 접시에 얼굴을 수그리고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어. 변변치 못한 사람들 뿐이야."
"변변치 못해...?"
"그래."
"흠...."
히카루는 얼굴을 숙인 채 물었다.
"그럼, 남자 친구는 없어?"
"남자 친구 정도는 있어."
"아, 그래...."
히카루는 눈을 치뜨고 힐끗 민메이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히카루는 당황
하여 시선을 피했다.
"자세하게 듣고 싶어?"
"별로."
"처음 그 사람하고 데이트한 거야."
민메이는 제멋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음악회도 가고 빵집에도 가고...."
"좋았겠다...."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그리고 빵집에서 그 사람은 콜라, 나는 크림 소다를 주문했어. 크림 소다
에는 체리가 들어 있었어."
"......."
"나는 체리를 먹었어. 체리에는 씨가 있잖아?"
"당연하지."
"좀더 진지하게 들어. 지금부터가 재미있으니까."
"듣고 있어."
"그 사람 앞에서 체리를 먹었는데, 너무 창피해서 씨를 뱉을 수가 없었
어... 그래서 그 씨를 삼키고 말았어."
"......?"
"이해하겠어, 이 소녀의 마음을?"
"꽤나 속이 거북했겠구나."
"약올리지 마. 히카루 따위는 이제 꼴도 보기 싫어!"
히카루는 남은 스프를 소리를 내며 다 먹었다.
"... 사실은 나 거짓말했어. 둘 다 거짓말이야."
"뭐?"
"히카루가 보기 싫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도 거짓말
이야.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야."
"......."
"화났어?"
"스프 더 줘!"
히카루는 빈 접시를 내밀었다.
"히카루는 여자 친구 없어?"
민메이가 접시를 받으면서 물었다.
"있어. 여자 친구 정도는."
"어! 정말? 어떤 사람!? 어떻게 알게 됐어? 어느 정도 교제했어?"
민메이는 얼굴을 들이밀고 수다스럽게 물었다. 히카루는 김 빠진 듯이 한숨
을 쉬었다.
"예쁘게 생겼어?"
"......."
"키는 커?"
"... 보통."
"눈은?"
"... 커."
"코는?"
"... 보통."
"입은?"
"... 자그마해."
"머리는?"
"... 길어."
"피부는 하얗고?"
"... 응."
"어떻게 해서 만났어?"
히카루는 누워서 천장을 향해 외쳤다.
"여자 친구 따위는 없어! 거짓말, 거짓말!"
"뭐야, 엉터리 같으니라고! 나를 보고 그대로 대답했잖아!?"
히카루는 당황했다. 민메이의 질문에 그저 무심코 대답했는데, 모두 민메이
의 모습에 꼭 들어맞은 것이다. 히카루는 얼굴이 빨개졌다.
우주에서 잡은 다랑어(참치)
함내 식당은 군인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자기들의 공
적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통합 전쟁 때에 혼자서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간 이야기. 하룻밤에 19개의 지뢰를 파낸 이야기. 휘발유가 없
어서 위스키로 전차를 움직이게 한 이야기. 팔의 상처를 자랑스럽게 보이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상관을 힘껏 후려갈겼을 때의 상황을 몸짓과 손으로
보여 줬다. 그들은 의미도 없이 위세 좋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쟁 속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의 공포감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모두들 그러
고 있는 것이다. 클로디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싫은 느
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웃으면서 구석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미사를 발견한 클로디아는 손을 흔들었다.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미사는 식탁 사이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피난민의 상황은 어때?"
클로디아가 묻자, 맞은편 의자에 앉은 미사가 대답했다.
"함장님의 말씀으로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피난민 캠프를
만든다고 해요."
"뭐... 난민 캠프?"
"캠프라고 하는 것보다 마을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죠."
"마을...그래서 밖에 남아 있는 것을 전부 거둬들인 것이구나. 아무튼
마크로스 안에 작은 마을이 하나, 둘 만들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
면...."
"... 상당히 시끄럽게 되겠지."
두 사람이 갇힌 지 5일이 지났다. 민메이는 히카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곤로의 불빛을 받아 텐트에 민메이의 그림자
가 흔들렸다. 이윽고 발을 질질 끌며 히카루가 돌아왔다.
"어서 와, 히카루."
히카루의 모습을 보며,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도 허사
였던 것이다.
"이제 손 들었어. 여기는 무인도라고."
"식사도... 이것이 마지막이야."
냄비의 음식을 휘젓는 민메이의 손놀림에도 힘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구조를 요청해 보자."
"밖으로?"
"에어 로크를 통해 밖으로 나가서 다른 에어 로크로 다시 들어가는 거
야."
"하지만... 우주복도 없는데...."
민메이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히카루는 조종석에서 헬멧을 꺼내며 말
했다.
"이것은 전투용이기 때문에 기밀성이 높지. 잘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해."
"... 그래도...."
"이 파일로트복과 함께 사용하면 어느 정도는 지탱할 수 있을 거야."
"... 하지만...."
불안해하는 민메이를 상관하지 않고, 히카루는 로프를 준비하려고 낙하산의
가장자리를 찢기 시작했다.
"그만둬."
민메이는 힘없이 말렸다.
"굶어 죽고 싶어?"
"그렇진 않지만...."
히카루는 낙하산을 타올 모양으로 가늘고 길게 찢었다.
"... 죽고 싶진 않지만, 히카루에게 만약의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외톨
이가 되어 버리잖아."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민메이는 고개를 숙이며 구두 뒤꿈치로 무심코 바닥을 찼다.
"탁...!"
"나를 믿어. 나는 비행으로 단련된 몸이야. 그렇게 간단하게는 죽지 않
아."
"......."
두 사람은 통로를 지나, 첫날에 발견한 밝은 방으로 갔다. 거대한 에어
로크의 앞에 선 히카루는 민메이에게 개폐 스위치를 켜는 법을 가르쳤다.
민메이는 얼굴에 불안함을 띄운 채 몇 번이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지? 내가 밖에서 신호하며 곧 열어 줘."
"... 하지만, 공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산소는 2, 3분이라면 참을 수 있어."
민메이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숨을 안 쉬고 가는 거야!?"
"바다로 잠수하는 것과 비슷해."
"그러나... 우주 쪽이 넓고...."
히카루는 상관하지 않고 옆 쪽의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 가는 거야?"
민메이가 종종 걸음으로 뒤쫓아왔다.
"가장 가까운 에어 로크의 방향을 확인해 두어야지."
히카루가 뒤돌아보고 대답을 한 순간, 민메이는 창문을 가리키며,
"앗!"
하고 외쳤다.
"계속 그렇게 나타나는 것에 일일이 놀라면...."
이렇게 말하면서 창 밖을 본 히카루도 그만 말을 삼켜 버렸다. 2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다랑어가 헤엄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고기는 은빛의 비늘을 반
짝이며 서서히 떠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창문에 얼
굴을 바짝 대었다.
"... 다랑어야."
"다랑어...!?"
"그래, 다랑어!!"
두 사람은 입맛을 다셨다.
"다랑어 회!"
"스프!"
히카루는 서둘러서 헬멧을 쓰고 찢은 낙하산을 목 주위에 빙빙 감았다. 준
비해 둔 두 개의 쇳덩이를 들고 에어 로크 앞에 섰다.
"정신차려!"
민메이도 갑자기 협조적으로 변했다. 스위치를 만져 안 쪽의 에어 로크를
열었다. 문 맞은편에는 짧은 통로가 있고 제 2 에어 로크와 연결되어 있었
다. 히카루는 가볍게 민메이에게 손을 흔들고 통로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에
로프를 동여매고, 로프 끝을 파이프에 묶어 구명끈을 만들었다. 곧이어 등
뒤의 자물쇠가 빠지고 정면의 에어 로크가 열리며 우주가 확대되었다. 히카루
는 군함 밖으로 뛰어나갔다. 두 번, 세 번 서서히 몸이 회전했다. 히카루는
눈만 움직여서 다랑어의 위치를 확인했다. 왼쪽 위였다. 쇳덩이 하나를 던
지자 그 반동으로 히카루의 몸을 앞으로 확 나아갔다. 히카루는 힘껏 다랑어
를 향해 헤엄쳐 갔다. 고통스러운 숨을 참으며 간신히 물고기를 부둥켜 안았
다. 이마에 기름땀이 배었다. 히카루는 구명끈을 풀어서 물고기의 방향을 바
꾸고 남은 쇳덩이를 던졌다. 거대한 다랑어의 옆구리에 꼭 달라붙어서 히카루
는 다시 에어 로크로 향했다.
스위치에 손을 댄 채 손목 시계를 본 민메이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벌써
3분이 지나고 있었다. 째각째각... 하는 초침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히카루의 발은 통로를 밟았다. 그러나 물고기를 밀어 넣으려고 하다가 손이
미끄러졌다. 통로에 넘어진 히카루의 몸은 거대한 다랑어에 눌려 꼼짝 할 수
가 없었다. 고통스러웠다. 얼굴 전체의 혈관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팔꿈치에 있는 힘을 다해 히카루는 물고기 밑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통로를 달렸다. 안 쪽의 에어 로크를 힘껏
두드리자, 민메이는 바깥쪽의 자물쇠를 채우고 안쪽을 열었다. 휘감긴 낙하
산을 쥐어뜯으며 히카루가 창백해진 얼굴로 굴러 들어왔다. 민메이는 히카루를
부축하며 헬멧을 벗겼다. 히카루는 엎어져서 크게 숨을 쉬었다.
"해냈어! 이것으로 음식은 당분간...."
말하면서 얼굴을 들고 민메이를 보았다. 민메이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 통
로 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약간 곤란한 듯한 표정이었다. 히카루도 흠칫
흠칫 뒤돌아보았다. 분명히 다랑어는 있었다. 그런데 오직 머리만 있었다.
몸체는 바깥쪽의 에어 로크에 눌려 잘리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은 우주
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다랑어는 쫙 입을 벌리고 멍청히 두 사람
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실망하지 않아도 되잖아."
작업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철판을 구부려서 큰 냄비를 만들었다. 민메
이는 곤로에 불을 켜고 적당히 양념을 했다. 히카루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눈으로 쫓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서 다랑어 머리가 바짝
졸아 들어갔다.
"우주에서 다랑어를 낚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민메이는 히카루를 위로하려고 했다.
"이런 진수성찬, 오래간만이야."
"... 하지만, 다시는 우주로 나갈 수 없게 됐어...."
히카루는 파일로트복의 옆구리를 어루만졌다. 조금 찢어져 있었다.
"다랑어 밑에 깔렸을 때, 이 놈의 이빨에 걸려서 찢어져 버렸어. 이제 군
함 밖에서 원조를 바라는 작전은 틀렸어."
"천장에 구멍을 내고 나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생각했어. 하지만 그 단단한 철판을 뚫을 기계가 어디에 있어?"
민메이는 텐트에서 얼굴을 내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레이서가 매달려
있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두꺼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폭발은 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면서 민메이는 몸을 제자리로 돌렸다.
"... 레이서의 제트 연료도 거의 다 썼어...."
"아, 그래...."
두 사람은 눈 앞의 빨간 불을 바라보았다. 다랑어는 천천히 입을 다물다
가 다시 크게 벌렸다. 그리고 팍 하고 하얀 김을 내뿜었다.
함내에는 마을의 형태가 잡혀가고 있었다. 마크로스 안으로 끌어들인 부
유물과 군대에서 제공한 재료를 사용해서 한 채 또 한 채 집들이 세워졌다.
처음부터 아타리아섬에 살던 사람들은 맨몸으로 자리를 잡은 상인들이 많
고, 그 저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강
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치 단결하여 조직된 군의
건설반에 협력하였다. 어떤 사람은 크레인으로 자재를 옮기고, 어떤 사람은
버너로 철판을 달구기도 하고, 또 쇠망치와 못을 들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 어린아이, 노인까지도 자질구레하고 잡다한 일에 땀을 흘렸
다.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쓰레기를 태우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하면
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적의 공격에 대한 공포를 잊을 수가
있었다.
꿈꾸는 린 민메이
레이서에 새겨진 상처는 여덟 군데나 되었다. 히카루와 민메이는 잠을 이루
지 못한 채 모포 위에 몸을 서로 기대고 있었다. 다랑어 머리도 이미 반 정
도는 먹어 없어졌다. 히카루는 벽에 기대어 아픈 다리를 쭉 펴고 있었다.
"오늘은 보통 때의 배는 걸었는데...."
그래도 아무 성과도 없이, 출구도 발견하지 못하고 사람의 모습은 커녕
목소리, 아니 무슨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주위에는 여느 때
와 다름없는 조용함이 무겁게 덮쳐 누르고 있었다.
"... 저기...."
민메이는 히카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중얼거렸다.
"얘기 하나 해줄까?"
"...응?"
히카루는 민메이의 검은 머리카락에 코끝을 가까이 댔다.
"나 어렸을 때, 달님과 함께 놀던...."
"... 달? 하늘에 있는 달 말이야?"
"그래. 참 이상했어. 밤에 길을 걸으면 달님도 함께 걷는 거야. 내가 멈춰
서면 달님도 멈추고...."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겠지."
"응, 물론 그래. 그래도 그 때의 나는 상당히 의기양양했어. 달님은 나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서...."
"후후...."
"그것은 나만의 비밀이었어. 누군가에게 말하게 되면 달님은 꼭 나를 미
워하게 되고 이제는 나와 함께 걸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여름이
되면 살짝 집을 빠져나와, 매일 집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산책을 했어. 집 옆에 둑이 있어서 그 곳에 앉아서 달님과 이야기
하곤 했어."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학교 이야기나 집안일 에 대해서. 누구누구는 착해서 좋다라든가, 누구누
구는 심술장이어서 싫다라든가... 오늘은 엄마가 새 옷을 사 주셨고, 오늘
은 아빠가 수영장에 데리고 가 주셨다는 등등."
"마치 일기를 쓰는 것 같구나."
"응, 일기. 나는 달님의 얼굴에 일기를 쓴 거야.... 그래도 어떤 날은 싸
운 적도 있어."
"달님하고?"
"응. 아빠가 나에게 귀여운 강아지를 사 주셨어. 내가 페루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너무나 귀여워서 잘 때도 꼭 안고 자곤 했어. 그러다 보니 달님
에 대한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져 버렸지."
"그래서?"
"어느 날 밤, 눈을 떠 보니 내 옆에 페루가 없잖아. 온 집 안을 찾아보았
지만 페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창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틀림없이
밖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원으로 나가 보았더니, 페루가 죽어 있
었어."
"정원에서?"
"나는 페루를 안고 엉엉 울었어. 하늘에는 달님이 나와 있었고... 나는
틀림없이 달님이 페루에게 질투를 느껴서, 그래서 죽였을 것이라고...."
"그래서 싸웠던 거야?"
"간단하게 절교했어. 나는 친구들에게 달님이 나를 따라온다고 이야기해
버렸어. 그랬더니 친구들은 자기들도 따라온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절교해 버렸어."
'이 소녀는 마치 시인 같구나.'
히카루는 문득 생각했다.
"더 듣고 싶어. 어릴 때의 이야기."
"응... 페라룰루라고 하는 것 알고 있지?"
"페라룰루?"
"내가 옛날에 기르던 나비야."
"그런 것을 내가 알 리가 있나."
"집 안으로 날아 들어온 것을 잡아서 바구니에 넣고 길렀지. 커다란 호랑
나비였어."
"나비를 길렀다고?"
"응. 곧 생기가 돌고 잘 자랐어."
"먹이는 주었니?"
"정원에 피어 있던 꽃을 많이 넣어 주었는데, 소용없는 것 같았어. 그래
도 나는 연약한 나비가 나를 따르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던 거야."
"하하...."
"나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바구니를 들고 페라룰루를 산
보에 데리고 갔어. 가능한 한 알지 못하는 길을 택해서, 샛길이라도 가 본
적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이해할 수 있겠어?"
"응."
"그러다가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전혀 알 수 없는 장
소까지 가게 되었지. 좁은 골목길을 나오자 밭이 있고... 유채꽃이 가득 피
어 있었어. 나는 페라룰루를 바구니에서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도
마치 나비가 된 기분으로 밭에서 재미있게 놀았지...."
"용케도 도망가지 않았네."
"이미 날아갈 원기도 없었나 봐. 그런데 노는 중에 페라룰루는 내 손에서
떨어져서 사라져 버렸어."
"사라졌어?"
"떨어진 순간 바로 찾아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어."
"밟기라도 한 것이 아니니?"
"아니야. 여기저기 다 찾아보았어."
"그럼, 어디로 갔지?"
"몰라. 어쩌면 유채꽃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설마...."
"나는 정신을 차려서 길을 더듬어 집에 돌아왔고, 다음날 다시 페라룰루
를 찾으러 갔어."
"찾았어?"
"으응, 유채꽃밭을 찾을 수가 없었어. 어디를 가도 밭으로 갈 수가 없었
어...."
"정말, 이상한 이야긴데."
"나는 지구로 돌아가면 다시 그 유채꽃밭에 가 보고 싶어. 함께 찾아 주
지 않을래?"
"그래. 같이 찾아 보자."
두 사람을 태운 거대 전함 마크로스는 서서히 우주 공간으로 나아갔다.
지구는 멀었고 아득하기만 했다.
행운의 머리카락 반지
12일 째가 되었다.
두 사람은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쾌활했다. 레이서의 연료도
바닥이 났고, 회중 전등의 건전지도 다 되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즐거워
했다.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어둠 속의 공기를 흔드는 듯했다. 민메이는
히카루의 이야기에 웃고, 히카루는 자신의 이야기에 몸을 비틀면서 웃었다.
포커가 처음 여자를 끈질기게 설득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포커는 어느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여자를 눈여겨보았다. 매
일 같이 그 다방에 들러 창가의 자리에서 블루마운틴을 마셨다. 멍하니 밖
의 경치를 바라보며 마치 슬픔에 젖은 주인공 같은 연기를 했던 것이다. 적
당한 시기를 봐서 포커는 그녀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 영화라도 함께 보러
가면 어떻겠읍니까. - 저는 어두운 곳은 싫어해요. - 그럼 식사라도. - 저
는 모르는 사람이 보고 있으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요. - 유원지는 좋아
하십니까. - 그런 나이도 아니에요. - 그럼 차 정도는. - 이 가게에서 마실
수 있어요. - 그것은 좀 섭섭하고 재미없지 않을까요. - 재미없고 섭섭한
것은 당신의 얼굴이에요.
"선배는 자신의 얼굴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한 마
디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 그래도 그것으로 단념하지 않고 계속
해서 밀고 나간 것이 선배님다웠는데...."
히카루의 근처에는 다랑어의 뼈가 뒹굴고 있었다. 바싹 마른 하얀 뼈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민메이는 웃으면서 물었다.
"포커는 선물 작전으로 나갔어. 꽃다발과 핸드백, 손목시계... 소녀에게
선물할 때마다 포커의 물건은 하나씩 전당포로 사라졌지만, 결국 데이트에
성공했지...."
"성공했어!"
아까부터 민메이는 종이 접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히카루가 그려 놓은 더
럽고 구겨진 통로의 지도로 거북이를 접었다. 이윽고 완성된 거북이는 어두
운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히카루는 계속했다.
"...선배는 그녀를 비행기에 태웠어. 그리고 급강하하면서 "만나주지 않으
면 죽여 버리겠어!"라고 말했다나 봐. 그녀는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이더래."
두 사람은 웃었다.
"그 이후 선배는 그녀를 설득할 때는 급강하만...."
히카루의 이야기는 끝났다.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갔
다. 민메이는 침묵을 깨듯이 노래를 불렀다. 높고 맑은 목소리가 투명한 음
표가 되어 춤추었다.(여기서 린 민메이가 부르는 곡은 '신데렐라'이다.
'신데렐라'노래는 민메이 성우인 이이지마 마리의 곡이다)
"노래 잘하는데."
히카루는 멍하니 노래소리에 빠져 있었다.
"후후... 이래봐도 중학교 때는 노래 레슨을 받았어."
"그래."
"게다가 무용도, 연극도...."
"어휴, 여러 가지 했구나. 나는 계속 비행기만...."
"한 가지에만 집중하다니, 아주 능숙하겠구나."
"글쎄."
"... 저, 히카루, 우리 춤추지 않을래!?"
민메이가 벌떡 일어났다.
"뭐? 그런 거 못해, 나는...."
"걱정하지 마. 포크댄스 정도는 아주 쉬우니까. 가르쳐 줄께, 응!"
민메이는 망설이는 히카루를 잡아끌어 일으켰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서로
마주 섰다. 민메이의 콧노래가 시작되고 소년과 소녀는 어둠 속에서 스텝을
밟았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으로, 뒤로....... 소녀의 몸과 소년의
몸이 돌았다. 부풀어오른 스커트 자락이 소년의 무릎을 스쳤다. 히카루는 몇 번
이나 민메이의 발을 밟았지만 민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콧노래를 계속했다.
"역시 잘하는구나."
댄스가 끝나고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섰다.
"고마워...."
"가수나 무용수... 탤런트 같은 것이 되고 싶겠구나?"
"나? 응. 그래도 정말은 현모양처가...."
"현모양처!? 그래, 너라면 틀림없이 현모양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응... 하지만, 이젠 다 틀렸어...."
민메이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 틀림없이 선배님이 우리를 찾아내 주신다고!"
"...벌써 12일째야. 우리들 따위는 벌써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숙부님과 숙모도...."
쥐들이 소리를 내었다. 다랑어 머리뼈에 몇 마리의 쥐가 모여 있었다.
"빌어먹을!"
히카루는 빈 깡통을 주워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던졌다. 얄팍한 금속의
울림 속에서 쥐들은 찍찍거리며 뿔뿔이 도망갔다.
"... 우리들이 죽는다면, 쥐의 좋은 먹이가...."
민메이의 말에,
"그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야!"
히카루가 강한 말투로 말했다.
"... 하지만...."
민메이는 등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었어."
히카루는 민메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약간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히카루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생각한 끝에,
"결혼식이라도... 할까?"
멋쩍은 듯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민메이는 눈물을 닦으면서 뒤돌아보았
다. 고개를 숙인 채 히카루에게 다가온 민메이는 팔을 뻗어 히카루의 머플러
를 풀었다. 히카루는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하얀 머플러를 눈으로 쫓아갔다.
민메이는 그것을 면사포처럼 머리에 썼다. 히카루의 머리에 순백의 웨딩드레
스로 몸을 감싼 민메이의 모습이 스쳐갔다. 민메이는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히카루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묶었다. 히카루도 민메이를 따라 했다. 이 세
상에서 가장 검소한 반지 교환이 끝났다. 소녀는 똑바로 소년을 보았다. 소
년의 시선이 좌우로 흔들렸다.
"... 정말로 나 같은 녀석이 네 남편으로 괜찮겠니?"
민메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손을 잡았다.
"그럼, 히카루...."
"어...?"
"어차피 죽는다면, 이대로 단숨에 우주로 뛰어나가자!"
"뭐...!?"
히카루는 순간, 민메이가 말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함께 죽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하늘에서 떨어져도, 우주를 표류해도 살아나지
않았어! 몇 번이나 살아났는데!"
히카루는 당황해서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도, 출구 하나 발견할 수 없잖아...."
"......."
히카루는 할 말이 없었다. 민메이는 히카루의 손을 놓고 외쳤다.
"어차피 죽을 몸인데 뭐가 두려워! 겁장이!"
히카루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내가 생각해도 한심해. 어차피 나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능력밖에 없
는 인간이고...."
히카루는 민메이의 작은 발을 보면서 계속했다.
"... 하지만, 하지만, 나는 네가...."
민메이는 히카루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히카루
는 민메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 부분에서 원작은 서로 키스 하려고 한다. 키스 하려고 민메이가 눈을
살며시 감으며 얼굴을 드는 모습은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가장 가슴에 남는
장면이다. 그러나 아쉽게 입술이 거의 겹치는 순간에서 멈춘다. 이유는 밑에}
그 때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진동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뒤엉키어 바닥
에 넘어졌다. 눈부신 섬광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갑작스런 폭발은 히카루의
헬멧을 공중으로 튀어 오르게 하고, 텐트를 태우고, 레이서까지 파괴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히카루는 천장에 뚫린 큰 구멍을 보았다.
"무슨 일이야!?"
"에너지 배급차가 날아간 거야!"
"부상자는!?"
"구급차를 불러!"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한 안도의 숨을 쉬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이 갇힌 작업장의 바로 위는 거리의 도로였다.
거기에 서 있던 에너지 배급차가 폭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어! 누가 있잖아!"
시민 한 사람이 히카루와 민메이를 발견했다.
"살았다!"
민메이는 겨우 입을 열었다.
"여기예요, 여기! 도와주세요!"
소리지르면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구멍으로부터 곤돌라가 내려오
고 두 사람은 서서히 끌어올려졌다. 곤돌라 속에서 민메이는 빛에 넘친 구
멍을 우러러보고 히카루는 고물이 된 레이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
온 두 사람은 많은 시민에게 둘러싸여 눈을 크게 떴다.
"... 어떻게... 이런... 우주선 안에...!"
히카루가 중얼거렸다.
"민메이 아니니?"
"민메이 누나!"
빙 둘러싼 사람들을 헤치고 마을 회장과 민이가 나타났다.
"회장님! 민이! 어떻게 된 거예요!?"
"자, 이유는 나중에 말하고, 그것보다도 무사했구나!"
회장님은 기쁜 나머지 민메이의 손을 꽉 쥐었다.
"니얀니얀도 이곳에 있다고!"
민메이는 민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향했다.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 "니얀니얀"이 보였다.
"와아! 근사하다!"
민메이는 펄쩍 뛰어오르며 손뼉을 쳤다.
"민메이,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지 않느냐!?"
"네, 좋아요!"
민메이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히카루의 머리 속에서 소용돌
이쳤다.
"... 아, 악몽이다...."
중얼거리고 히카루는 앞으로 쓰러졌다.
시민 한 사람이 당황하며 받쳐 주었다.
"정신차려...!"
"말해 봤자 소용 없어. 아무래도 음식을 못 먹었을 테니까!"
확실히 히카루는 배고픈 상태였지만, 함내의 분위기에도 쇼크를 받았다. 그
러나 무엇보다도 히카루에게 있어서 믿을 수 없는 것은 민메이의 돌변한 태도
였다. 히카루는 눈물로 젖은 민메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히카루는 희미한 눈으
로 네 번째 손가락에 아직도 묶여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보았다.
제 3 장
변 신
제5화 Transformation (변형)
우주 도시 "아타리아"
민메이는 "니얀니얀" 가게 안에서 식탁을 닦고 있었다. 붉은색의 둥근 식
탁을 닦으면서 즐거운 듯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민메이와 히카루가 구출
된 다음날 아침이었다. 민메이가 네 번째의 식탁을 닦았을 때, 배급받은 음
식을 손에 들고 숙모 부부가 돌아왔다.
"이제 오세요?"
인사하는 민메이에게 숙모는 놀라며 물었다.
"민메이! 아니 벌써 일어나도 괜찮니!?"
"네, 끄떡없어요, 숙모!"
말하면서 알통을 만드는 흉내를 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그런데 히카루는?"
숙부가 물었다. 히카루는 잠시 동안 "니얀니얀"에서 하숙을 하기로 했던 것
이다.
"아직 자고 있겠지요."
민메이가 천장을 가리키며 대답하자 숙모는 웃으면서 말했다.
"무리도 아니지 2주일 가까이 너를 돌보고 있었으니."
"후후... 그럴지도. 그것보다 숙모, 가게는 안 열어요?"
"가게를!?"
숙모 부부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래요. 이렇게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배급받은 식량은... 이것밖에 ...."
숙부는 손에 든 종이 꾸러미로 눈을 향했다. 민메이도 얼마 안 되는 식량
을 알아차렸다.
"이것뿐이어도... 통합 전쟁 때도 가게를 열었잖아요?"
숙모 부부는 동시에 얼굴을 마주 봤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군대에서 특별 배급이 있었지 않았니?"
"그래요! 지금도 전쟁 중이에요. 가게를 연다고 말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잖아요."
숙부는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할까? 이대로 빈둥빈둥거리고 있어도 하는 수 없지만...."
"그래요. 가게를 여는 편이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몰라요."
"좋아. 한 번 해 볼까?"
민메이의 얼굴이 빛났다.
"그래요! 옷 갈아입고 오겠어요!"
민메이는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올랐다.
"니얀니얀" 앞을 지나가던 마을 회장은 민메이와 숙부의 모습을 보고 발
을 멈추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온 가게의 간판을 깨끗하게 닦고 있었기 때
문이다.
"이제 됐다."
"야아!"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서 자주빛 바탕에 하얗게 "니얀니얀"이라고 씌어진
간판을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소리를 듣고 민메이는 뒤돌아보았다. 민메이는 빨간 중국 의상을 입고 있
었다.
"어머, 회장님. 가게를 열기로 했어요!"
"가게를 시작한다고?"
마을 회장은 얼빠진 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이야? 이런 우주 끝의 전함 안에서...!"
"네, 회장님. 지구를 아무리 멀리 떠나도, 비록 우주선 안이라고 해
도...."
민메이는 생긋 웃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의 거리는 우리들의 거리가 아니에요? 앞으로 지금까지와 똑같은 방
법으로 하는 거예요."
"... 그래. 정말 네 말대로...."
회장은 감탄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병사를 태운 군용 지프가 왔다. 굵은 팔로 핸들을 쥔 병사는 가
게의 간판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설마 이 가게가 영업을 시작하는 건 아니겠지요?"
몸을 앞으로 쑥 빼고 병사가 물었다. 민메이는 양손을 무릎에 대고 인사
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중국 요리점 "니얀니얀"이 오늘부터 개업입니다."
병사들은 환성을 올리며 일제히 지프에서 뛰어내렸다.
"반갑습니다, 병사님들. 우주 중국 요리점의 최초의 손님이에요."
민메이는 식탁으로 물을 나르면서 말했다.
"이거 영광인데."
대꾸를 한 병사는 손가락 끝으로 군모를 돌리고 있었다.
"네가 그 소문난 민메이니?"
"네."
"굉장한 모험을 했더구나."
"네. 큰일 날 뻔했으니까요!"
민메이의 말투는 밝았다. 죽음의 예감으로 떨었을 때의 그 어두운 결의의
표정은 이미 먼 지난날의 일이었다. 턱수염이 난 병사가 소리를 죽이고 말
했다.
"남자 아이와 2주일 가까이나 둘이서만 있었다지? 둘이서 뭐하고 지냈니?"
"뭐하다니요?"
민메이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껌뻑거렸다.
"시치미떼지 말고."
"뻔하지."
병사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던지자, 의미를 알아차린 민메이는,
"어머나, 몰라요!"
라고 말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외면을 했다.
"하하하! 부끄러워하는구나."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니?"
흑인 병사가 다짐하듯이 물었다.
"없어요!!"
민메이는 딱 잘라 말했다. 그 목소리는 계단을 내려온 히카루의 귀에까지
들렸다. 히카루는 멈춰서서 병사와 민메이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남자 아이가 이층에서 산다고 하던데?"
"그렇긴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사이니? 포옹도 해봤어?"
"계속하면 화내겠어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친구예요. 그보
다도 주문하시지요?"
"탕면!"
"탕면!"
"나도!"
"네, 탕면 세 그릇이요!"
하는 민메이의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히카루는 천천히 계단에 앉았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턱을 괸 채 오른쪽 주먹을 벽에 대고 눌렀다. 주먹을
벽에 밀어 넣는 것처럼 힘을 주었다. 근육이 긴장하며 손등에는 혈관이 튀
어올랐다. 히카루는 힘껏 힘을 뺐다.
"... 하룻밤이 지나면 단지 친구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히카루는 힘차게 일어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와 식당으
로 갔다. 식탁을 빠져나가 자동문으로 향했다.
"히카루! 어디 가는 거야?"
주방에서 민메이가 소리쳤다. 히카루는 대답하지 않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
갔다.
"지금 저 아이가 그 남자 아이니?"
흑인 병사가 물었다.
"그래요. 전혀 애인 사이 같지 않죠!?"
민메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틀림없구나. 안심했다."
병사들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가게를 나온 히카루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민메이와 함께 갇혔던 그 장소이
다. 히카루는 다시 레이서를 보고 싶었다. 자기와 잘 지냈던 기체를 만져 보
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히카루는 민메이를 만나러 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
얀 면사포를 쓴 민메이의 모습을 찾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 부근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천장의 구멍은 아직 복구되어 있지 않아서 히카루의 발자국소리를 삼
켜 버렸다. 히카루는 그 작업장 안을 구석구석까지 둘러보았다.
"정말로 내가 어제까지 여기에 있었단 말인가!"
모든 것이 그립게만 생각되었다. 다랑어 뼈, 손으로 만든 냄비, 곤로, 빈
깡통, 헬멧, 히카루의 지도로 민메이가 접었던 거북이, 면사포의 대용품이었
던 머플러. 히카루는 바닥의 머플러를 집으려다가 멈추었다.
그러나 결국 히카루는 그것을 주워서 목에 감았다.
'원래, 이것은 내 것이야. 주인이 떨어뜨린 것을 주운 것이니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이서는 그 방의 가운데에서 반쯤 탄 낙하산을 덮어쓰고 있었다. 히카루는
낙하산을 끌어내렸다. 새까맣게 그을린 레이서가 애처롭게 보였다. 히카루는
레이서의 기체를 위로하듯이 어루만졌다.
"...비참하군...."
그 때 등 뒤에서 구두소리가 났다. 순간 히카루는 민메이인가 해서 얼굴을
돌렸다. 하마터면 민메이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 히카루야...!"
"선배님!"
서 있었던 사람은 포커였다.
"네가 살아 있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포커는 히카루에게 다가와 여느 때의 날카로운 눈을 부드럽게 하며,
"이 바퀴벌레 같은 녀석!"
이라고 말하며 히카루의 머리를 툭 쳤다.
"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 남는구나. 바퀴벌레 같은 녀석."
이번에는 히카루의 가슴에 가볍게 주먹을 들이댔다. 히카루는 그 손을
맞받으며 엄살을 부렸다.
"너무해요, 선배님. 그만 하세요!"
"그래. 하하하!"
유쾌한 듯이 웃던 포커는 문득 진지한 표정이 되어 히카루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 다행이다."
"네...."
히카루도 고개를 끄덕였다. 포커는 어색한 듯 무심히 얼굴을 돌렸다. 돌린
곳에 레이서가 있었다.
"뭐야!? 저 고물은!?"
"고물!? 선배님, 저것은 내가 목숨 다음으로 소중히 해온 레이서입니다.
그것을 고물이라고 하다니!"
히카루는 즉시 항의했다.
"히카루야, 산보라도 하지 않을래?"
히카루는 선배가 말꼬리를 돌리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생기 없는 얼굴을 하고. 너답지 않어. 자, 따라와."
포커는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히카루는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가고 있
었다. 포커의 키가 크다고 히카루는 생각했다.
딱 벌어진 어깨에 역삼각형의 체형은 모두 비행을 위해서 단련된 것이다.
포커의 뒤를 히카루가 날 때, 항상 이 뒷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화내지도 않
고 비웃지도 않는 포커의 넓은 뒷모습을 히카루는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히카루의 목표는 항상 이 뒷모습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뒷모습을 지나 그
맞은편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비록 비행 중이 아니어도, 히카루의 목표는 변
함이 없었다. 히카루는 포커의 등을 향해 계속 걷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은
어떤가...?' 히카루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까짓 여자 아이 하나 때문에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히카루를 그냥 친구로밖
에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잊자, 잊어 버리자! 나는 선배님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으면 돼!"
이윽고 포커가 멈춰 섰다. 지하 통로를 나온 두 사람은 어느새 언덕 위에
와 있었다. 언덕이라고 해도 높은 통로를 개방하고 벽을 걷어치운 정도였지
만, 말끔하게 흙을 쌓고 나무를 심어 놓았다. 그곳에서라면 마을의 전경이
다 보였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을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단 2주 만에...세웠다죠?"
아타리아섬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거리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활동력 덕분이지!"
히카루의 말에 포커가 대답했다.
"인간은 정말 바퀴벌레 같아요."
"그렇지 않어. 언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
어."
히카루는 포커를 올려다보았다.
"이해할 수 있겠니? 그래서 모두 참고 견디고 있는 거야. 이런 것을 만들
어서."
"... 그렇군요."
확실한 의미도 모르는 채 히카루는 말했다. 그리고는 가늘게 눈을 뜨고 집
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젠트러디의 전설
마크로스에 바싹 달라붙도록 도킹하고 있던 프로메테우스가 그 함체를 움
직이기 시작했다. 도킹 포인트를 축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선체를 가로로 90
도 열었다. 마크로스가 수평으로 팔을 펴는 듯한 자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왼쪽 뱃전 갑판 위에 있던 두 대의 발키리는 천천히 선
회하며 활주로로 향했다. 제트 분사구에 파란 빛을 발하며 두 대의 발키리
는 우주 공간에 떠올랐다. 좌우로 급상승하여 발키리가 갈라지자, 히카루
의 눈에 어둠 속에 스미는 V자형의 파란 불빛이 보였다. 히카루와 포커는 전
망대 소파에서 발키리의 발착 훈련을 견학하고 있었다.
"굉장하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작아진 전투기에 히카루는 감탄의 환성을 질렀다.
"선배님, 저 전투기가 정말로 우주를 날 수 있읍니까? 저렇게 자유롭게!"
포커가 히카루의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떠냐, 히카루야? 다시 한 번 저것을 타보고 싶지 않니!?"
갑자기 히카루의 눈동자에는 한 점의 그림자가 비쳤다.
"...군대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 뭐하겠니?"
"......."
"...어떠냐, 히카루야?"
포커는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는 히카루를 재촉했다. 히카루는 창문
으로 얼굴을 향한 채 중얼거렸다.
"선배님...."
"응?"
"저...."
"그래, 뭐야?"
"... 여자란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입니까?"
"뭐야!?"
포커는 뜻밖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어제와 오늘이 180도로 다를 수 있는 거냐고요?"
히카루는 진지한 표정으로 포커를 뒤돌아보았다. 포커는 당황하여 입을
막았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몸을 비틀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웃지 말아요!"
히카루는 포커를 쏘아보았다. 포커는 배를 움켜잡고 어깨로 숨을 쉬며, 흐
느끼듯이 웃었다.
"너, 너 단단히 반했구나!"
"...그런데...."
고개를 숙이는 히카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걱정하지 마, 히카루야. 네가 쓸쓸해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나보고 와달
라고 민메이가 말하더라!"
포커는 히카루의 등을 툭툭 쳤다.
"기운 내고 민메이에게 돌아가! 하하하...!"
"선배님...."
히카루의 입가에 약간의 기쁨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 아이는 변덕장이니까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지 않도
록 조심해!"
막막한 우주에서 브리타이 함대는 아직도 달 궤도 위를 떠돌고 있었다.
항공모함 내의 대형 스크린에는 아타리아 섬에서의 전투 장면이 비치고 있
다. 배트로이드의 가틀링 포에 격파되는 배틀 포트. 길바닥에 한덩이가 되
어 넘어지는 배틀 포트와 가워크. 포트의 빔포가 발키리를 관통하자, 브
리타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스크린에는 몇 줄기의 빔이 선을 긋고,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몇 번이
나 화면을 가렸다. 그러자 연기 속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시민이 달려가고,
그 바로 위로 배틀 포트가 다가갔다. 화면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이것은...!"
함장석의 브리타이가 외눈을 크게 떴다.
"저 다른 혹성인은 마이크론인가!?"
배틀 포트와 지구인이 동시에 비쳐지자, 브리타이는 비로소 인간의 왜소
함을 알았던 것이다.
"저도 이것을 보았을 때는 놀랐습니다."
엑세돌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음...."
스크린을 노려보며 브리타이는 감탄한 나머지 소리를 냈다.
"우리 젠트러디 군의 기록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전설? 어떤 것인데!?"
엑세돌은 힐끗 화면을 보며 말했다.
"네. 마이크론이 사는 혹성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는...."
"손을 대지 말라고...? 그 기록은 정확한가?!"
"틀림없습니다. ... 더 이상 저 혹성에는 손대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만."
"... 음."
"이번에는 적의 전함에만 철저하게 공격하는 편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 아깝다. 이제까지 혹성 공격 작전을 준비했는데...."
"그러나...."
"알겠다. 계속해서 놈들을 뒤쫓자."
"네!"
그로벌은 연구실을 향해 통로를 서둘러 걸어갔다. 스쳐 지나가는 몇 명의
병사들이 발뒤꿈치를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 때, 그로
벌은 군모의 차양을 잡고 약간 고개를 수그려서 파이프 불을 붙였다. 담배
의 향이 통로에 퍼졌다. 전함 마크로스는 주포 발사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
렸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로벌은 파이프를 물면서 연구실로 들어갔다. 기술 담당관이 정면의 대
형 패널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로벌은 다가가서 물었다.
"어떤가? 주포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네!"
경례하면서 일어섰다. 그로벌도 어느새 모자를 내렸다.
"이것을 보십시오."
기술 담당관은 다시 패널에 스위치를 넣었다. 검은 화면에서 여러 개의
하얀 선이 그어지며 계기의 형태를 그렸다.
"이것이 메인 반응로, 이쪽이 주포의 에너지 컨버터입니다."
기술 담당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 사이를 에너지 파이프가 홀드 시스템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
다만...."
"홀드 시스템의 소멸로 떨어져 버린 것이군. 그러나, 이 정도의 에너지
파이프의 예비는 없겠지. 어떻게 할 건가?"
"네. 마크로스의 선체가 블록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이용하겠읍니
다."
"그렇다면?"
패널 영상이 마크로스 전경의 투시도로 바뀌었다.
"이것이 현재의 마크로스입니다만, C 블록과 T 블록을 교체해서...."
기술 담당관이 스위치를 조작하자 투시도는 크게 변형되었다.
"즉, 이와 같이 마크로스 함체의 모양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반
응로와 주포 에너지 컨버터가 연결됩니다."
"과연!"
그로벌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마크로스가 이와 같이 변신하지 않으면 주포는 발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변신이라...."
"네. 군함의 안팎을 변신시키면 상당한 혼란이...."
"음...."
그로벌은 턱을 만지면서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상태에서는...."
"그러나 그것은 무리다. 간신히 정리된 마을을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할 수는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그로벌의 눈이 파이프의 연기를 따라갔다.
"할 수 없어!"
브리타이 함대의 습격
민메이라고 영문(1)으로 쓰여진 토끼 모양의 문패가 문 앞에서 웃고 있었
다. 히카루는 아까부터 민메이의 방 앞에서 노크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
다. 별로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포커의 말에 용기가 생겨 그냥 잠시 얘기
나 해보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러나, 새삼 말을 하려고 하자 무엇을 화제로 하
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히카루는 적당한 얘깃거리를 두세 가지 생각했지만
, 모두 1분 이내로 끝나 버릴 것 같은 이야기뿐이었다. 나중에는 시시한 농담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히카루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면서 그냥
나가려고 했을 때였다.
{(1)영문:여기에는 민메이의 영문 표기가 최초로 MINMEI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후엔 대부분 영문표기가 MINMAY이고 그 외의 설정 자료집이나 미키모토
하루히코의 그림에도 MINMEI가 아닌 MINMAY이므로 공식적인 민메이의
영문 표기는 LYNN MINMAY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오히려 MINMEI를
많이 쓴다. 한 마디로 일본에선 영문 표기가 왔다 갔다 함. 7화의 라이버
영문 표기도 문 안쪽(LIVER)과 문 바깥쪽(RIBER)이 틀리다. }
"어머, 히카루 돌아왔구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 아래에 없어서 방에 있나 하고."
히카루는 왠지 당황해 하며 문에서 떨어졌다.
"잠깐 살 게 있었어. 무슨 일이라도?"
중국 의상을 입은 민메이가 다가왔다.
"응. 중요한 일이야...."
갈피를 못 잡는 히카루의 모습을 보고 민메이는 씩 웃었다.
"좋아, 안으로 들어와."
민메이는 앞장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창문을 열어도 되니?"
"응."
히카루는 바깥 공기를 가득 들여 마시고 살짝 심호흡을 한 후 창가에
앉았다.
"오늘 아침에는 왜 그랬어?"
민메이가 물었다.
"아니... 지금은 괜찮아."
"몸은 좀 어때?"
"건강한 것이 나의 장점 아니니?"
"후후. 나와 똑같네."
"그래."
"방이 어수선하지?"
"깨끗한데."
히카루는 대화가 쉽사리 진행되는 것이 기뻤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 자신
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웠다. 히카루는 어제까지 민메이와 함께 있으면서 떠오
르는 대로 이야기했었다. 히카루는 포커에게 민메이의 태도가 변했다고 얘기
했지만, 사실인즉 정말로 변한 것은 히카루 쪽이었다. 히카루는 일어서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 방, 혹시 요전에 내가 배트로이드를 타고 무너뜨린 그 방 아니니?"
"응.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민메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웃었다.
"어, 저것은?"
히카루는 책장 위의 봉투를 집었다.
"요전에 피난하는 도중에 가지러 되돌아갔던 바로 그것이야. 돌아오는 길
에 히카루에게 도움을 받았던 거야."
"그렇게 소중한 거야?"
"응!"
히카루는 힐끗 민메이를 보고, 놀려 대듯이 물었다.
"혹시 애인한테서 받은 편지 아니야?"
"애인은 없다고 말했잖아. 편지 내용을 봐도 좋아."
봐도 좋다고 했지만, 히카루는 왠지 남의 편지를 읽는 것은 역시 비겁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민메이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알고 싶다는 생
각이 결국 히카루를 유혹에 빠지게 했다.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가수 테스트 예선 합격 통지!?"
"응!"
민메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어쩐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지."
"고마워. 그러나 이젠 아무 소용 없어."
민메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여기는 지구가 아닌걸...."
"그렇지 않아! 돌아가서 다시 한 번 테스트를 받으면 되잖아."
민메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돌아가면...."
그 때 대형 트레일러가 바로 밑의 도로를 지나갔다. 굉음이 두 귀를 자극
하고 실내를 흔들어 댔다. 민메이는 창문을 닫았다.
"히카루!"
"왜!?"
"히카루는 무슨 꿈을 가지고 있어?"
"꿈...?"
"응."
"... 꿈, 전에는 있었지만 다 무너져 버렸어. 고물이 되었다구."
라고 말하면서 히카루는 벽에 기대었다.
"히카루가 가지고 있던 비행기?"
"아... 이제 꿈 따위는 가질 수 없어."
"레이더 탐지실로부터 입전! 후방에 미확인 비행물체! 급속 접근 중!"
바넷사가 보고했다.
"적 함대입니다."
미사가 외쳤다.
"왔나!"
그로벌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미사, 곧 응전 태세로!"
"네, 함장님."
미사는 대답하고 마이크로 갔다.
"적기 내습! 적기 내습! 발키리 편대 모든 전투기 비상 출격!"
미사의 방송이 발키리 격납고에 퍼지자 몇 명의 정비원이 달려왔다. 달
려온 파일로트들이 조종석에 올라탔다. 발키리는 엘리베이터로 프로메테
우스의 갑판으로 몰려 갔다.
히카루는 포커와 함께 왔던 언덕 위로 민메이를 데리고 갔다.
"와아, 근사한 곳인데!"
소녀는 거리를 감싸안듯이 양손을 펼쳤다. 히카루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서 그러한 민메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히카루는 페라룰루의 이야기를 떠올
렸다.
"페라룰루...."
시선을 돌린 채 히카루는 중얼거렸다. 이제 히카루에 있어서 민메이는 언덕
에서 홱 사라져 버려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소녀로 생각됐
다.
"공습 경보 발령! 공습 경보 발령!"
함내 방송과 함께 사이렌이 울렸다. 히카루는 천천히 거리를 덮은 마크로스
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두꺼운 천장이 요란한 사이렌소리를 삼키고 있었
다. 민메이는 거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히카루
에게 달려갔다.
"괜찮을까?"
양손을 가슴에 대고 꽉 맞잡았다.
"괜찮겠지.... 선배들이 어떻게든 해 줄거야."
히카루는 약간 무기력해져 있었다. 아까의 민메이와의 대화에서 히카루는
새삼 레이서를 잃은 것이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꿈을 잃은 지금, 이 우주선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면 좋을까.
브리타이 함대의 선두함은 유효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많은 배틀
포트가 발사되었다. 도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을 공격하는 발키리들과
의 사이에서 심한 전투가 벌어지곤 했다. 어지러이 나는 빔이 뒤얽히면서
순식간에 공간을 빠져나갔다. 소리 없는 폭발은 얼룩 같은 빛을 내며 어둠
속에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우주에서의 싸움은 배틀 포트 군 쪽에 유리했
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피드가 빠를 뿐 아니라, 그들은 우주 전쟁에 익
숙했다. 반면, 발키리 편대는 첫 우주 실전이었다.
"빌어먹을! 지구와 달라서 상당한 기동성이 필요해!"
포커도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포커는 한 대, 또 한 대씩 포트를 명중
시키고 있었다. 폭발하는 포트의 빛이 포커의 뺨을 파랗게 비추었다.
마크로스의 위기, 그리고 변신
브리타이 모함은 전투 지역과 멀리 떨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모함을 둘러
싸고 많은 중형선과 소형선이 살짝 몸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일단 주인의
명령을 받으면 갑자기 어금니를 드러내어 파수를 보는 개와 닮아 있었다.
"... 이상합니다. 주포를 쏘지 않고 있는 게...."
스크린의 마크로스를 보고 엑세돌이 말했다. 브리타이는 팔짱을 끼었다.
"마이크론 녀석들, 도대체 어떻게 할 셈인지......."
"조금 혼을 내주고 반응을 보면 어떨까요?"
브리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것도 괜찮겠군. 선두 함대에 발포 허가를 내라! 모든 군함을 가라
앉지 않을 정도로 혼줄을 내줘라!"
브리타이의 말이 끝나고 정확히 3초 후, 선두 함대는 마크로스를 향해 여
러 개의 빔을 발사했다. 이미 배틀 포트 무리는 서서히 발키리 편대를 밀
어붙이며 마크로스의 코끝에서 우주전을 펼치고 있었다.
선두함의 빔은 여러 대의 발키리를 격추시키고 마크로스로 다가갔다.
빔의 덩어리가 함체를 스쳐나갔다. 마침 마크로스의 바로 위를 비행하고 있
었던 발키리가 그 희생물이 되었다. 산산조각이 난 전투기의 파편이 브릿
지의 옆을 때렸다. 브릿지 안에도 작은 진동이 일어났다.
"이게 뭐지!?"
그로벌이 소리를 질렀다.
"적이 포격을!"
미사가 대답했을 때, 마크로스 군함 위에 내려선 배틀 포트가 공격을 시
작했다. 마크로스의 여기저기가 조금씩 파괴되었다.
"함장님, 보조 컨트롤 시스템의 일부가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위기는 벗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클로디아가 보고했다.
"부탁한다!"
그로벌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선두 함대의 공격은 아직 끝
나지 않았다. 삐죽이 나온 포신이 마크로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포 안에서
광입자가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얀색에서 노란색, 노란색에서
핑크, 핑크에서 오렌지색으로 빛의 색깔이 변했다. 이윽고 무르익은 빨간색
의 굵직한 빔이 어둠을 갈랐다. 심한 진동은, 모두에게 몸을 지탱할 여유조
차 주지 않았다.
"으... 음...."
그로벌은 계기에 옆구리를 부딪쳐 괴로워하고 있었다. 빔은 겨냥한 대로
브릿지의 왼쪽 아래를 스쳤던 것이다. 통신사들은 몸의 아픔을 참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함장님, 제2, 제5 부포탑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즉시 수리는 불가능합니
다!"
"보조 컨트롤 시스템 파괴! 부상자 다수!"
미사와 클로디아가 다급히 말하자,
"제4 기관구 파괴 상태!"
라고 바넷사가 계속 보고했다.
"알았다...."
그로벌은 옆구리를 누른 채 함장석에 앉아서 명령을 내렸다.
"전 기관에 알린다! 주포 발사 준비!"
미사와 클로디아는 동시에 깜짝 놀라며 그로벌을 보았다. 그로벌은 계속
해서 소리쳤다.
"본 군함은 여기에서 변신을 한다!"
킴이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모처럼 만든 마을인데...!"
"그렇습니다!"
샤미도 맞장구를 쳤다.
"빨리 서둘러라! 이번에 공격을 받는다면 끝장이다!"
그 때, 앞 유리창에 배틀 포트가 내려오고 있었다. 포트는 둥근 동체를
보이면서 브릿지를 향해 한 걸음씩 접근했다. 통신사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
렀다. 가슴 부분의 포통이 유리의 표면에 떠밀렸다. 모두들 쇠사슬로 단단
히 묶인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포트는 공격을 시작
하지 않고, 단지 여섯 명의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몸을 가까이 대고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 무엇 때문인지 기체를 약간 좌우로 흔들었다. 웃고
있는 것인지 조롱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툭툭하고 포통이 앞 유리창을 두드렸다.
포커는 브릿지 앞의 배틀 포트를 지켜보았다.
"쳇!"
순간 혀를 차고 선회하면서 가워크로 변신했다. 가워크는 기수를 숙이고
포트로 향했다. 팔을 펴서 포트를 바로 옆에서 잡더니 그대로 올라갔다.
미사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모든 기관에 알립니다. 모든 기관에 알립니다. 주포 발사 태세에 들어갑
니다!"
미사의 연락이 끝나기도 전에 포커는 배틀 포트를 해치우고 있었다. 감싸
쥔 포트를 내동댕이치고 거의 동시에 가틀링 포를 뽑은 것이다.
"변신 시동 3분 전!"
미사가 계속 카운트다운을 했다. 그로벌은 군모를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언덕 위의 히카루와 민메이는 함내 방송을 듣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본 함은 앞으로 60초 후에 변신합니다. 위험
하므로 주위에 있는 물건을 붙잡아 주십시오...."
"변신...?"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그게 뭘까?"
"글쎄...."
히카루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잃은 꿈의 통증
을, 왼손에는 민메이를 향한 애절한 마음을 꽉 쥐고 있었다. 민메이는 뒤로
손을 끼고 두세 걸음 거리 쪽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포커와 군인들은 지금쯤 싸우고 있겠지...."
"그래... 군대에 들어간 사람이면 당연히 싸워야지."
민메이는 히카루를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너의 꿈이었잖아."
히카루는 슬픈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 하지만 나는 군대를 싫어해. 그리고 들어가게 되면, 자주 만나지 못
하게 되잖아."
"바보같이. 같은 배 안이잖아. 휴가 때는 언제라도 만날 수 있어."
"살아 있다면...."
히카루는 중얼거렸다.
"... 그러나, 그런 점은 우리 가게에 오는 병사들도 모두 마찬가지가 아
니니?"
"모두 마찬가지인가......."
히카루는 자기를 비웃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변신 시동 10초 전!"
클로디아가 외쳤다.
"각 부분 이상 없는가!?"
그로벌은 모두에게 재빠르게 시선을 던졌다. 킴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G 블럭과 D 블럭이 늦어지고 있습니다만, 간신히 될 것 같습니다."
"좋다."
클로디아가 초읽기를 시작했다.
"시동 5초 전, ...3, 2, 1, 제로!"
"좋아! 전 군함 변신!"
함장석의 그로벌은 좌우의 팔걸이에 고리를 걸어 고정시켰다.
"단번에 마을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모두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리면 깨끗
할지도 몰라."
히카루는 눈 아래의 집들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뭐라고! 그런 가당치도 않은 말 하지 마! 너 같은 사람 딱 질색이야!"
큰 소리로 외치는 민메이를 히카루가 곁눈질로 보았다.
"누가 할 소리... 나도 너 따위..."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함내가 둔탁한 울림과 함께 흔들렸다. 굉음이 소
용돌이치며 두 사람의 몸을 마구 뒤흔들었다. 천장에서 몇 개의 거대한 금
속 블럭이 내려왔다. 떨림은 심한 진동이 되어 함내의 공기를 갈라 놓았다.
히카루는 가장 번화가인 마을의 길이 작은 산처럼 솟아오른 것을 보았다. 도
로를 파괴하며 역시 금속 블럭이 밀려 올라왔다. 무너지는 빌딩, 부서지는
집들.... 민메이가 무릎을 꿇고 뭐라고 외쳤지만, 목소리는 굉음에 날리어
들리지 않았다. 민메이의 바로 밑에 틈이 생겼다. 틈이 점점 커지면서 민메
이의 몸이 가라앉았다. 히카루는 몸을 내던져 민메이의 손목을 잡았다. 민메
이가 떨어지려는 힘에 히카루의 몸도 수십 센티미터나 질질 끌려갔다. 히카루
는 팔에 있는 힘을 다해 어떻게든 민메이를 끌어당겼다. 팔꿈치가 아팠다.
마침 갈라진 곳의 귀퉁이에 닿아 있는 것이다. 민메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히카루를 애절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히카루는 옛날에 이것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가워크에서
민메이가 떨어졌을 때의 일이다. 하늘에서 두 사람은 열심히 팔을 뻗고 얼
굴을 마주 보았었다.
"그 때도 살아났다! 빌어먹을!"
히카루는 서서히 민메이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변신 완료!"
미사가 말했다.
"적함에서 계속해서 소형기 40 - 50대 발진!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클로디아가 레이더를 보며 말했다.
"상관없다! 주포 발사!!"
그로벌의 명령에 따라 주포 발사 태세를 한 마크로스는 로보트와 같았다.
변신에 의해 마크로스 함체는 몸뚱이와 두 개의 긴 다리 부분으로 나누어
졌다. 도킹한 프로메테우스와 다이더로스가 팔처럼 뻗어 있고, 브릿지가 머
리의 위치에 있고 주포인 두 개의 포신은 양 어깨에서 수평으로 튀어나와
있었다.{(로봇 형태로 변신한 마크로스를 강공형이라고 함)}
이윽고 포신 사이에 흐르는 오렌지색의 광입자가 부풀어 오르고 주포가
발사되었다. 주포 빔은 우주에 빛줄기를 그으면서 일직선으로 적함을 향해
달렸다. 새롭게 발사된 배틀 포트 무리는 빔의 일부분을 받은 것만으로 폭
발했다. 주포는 브리타이의 선두함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지!?"
브리타이는 변신한 마크로스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르겠습니다...."
엑세돌이 대답했다.
"저 전함은 계속 알 수 없는 힘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으란 말인가!"
언덕 위의 히카루와 민메이는 상처 투성이의 마을을 그저 내려다보고만 있
었다.
"시민 여러분의 협력에 의해 주포로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부상당했거나
가옥이 부서진 분은 가까운 출장소나 파출소에 신고해 주십시오."
함내 방송이 뒤죽박죽이 된 도로 위와, 무너진 집들 위를 흘러갔다.
"네가 이 마을이 파괴되라고 말했으니까...."
민메이는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가게... 괜찮을까...?"
민메이는 기도하듯이 가슴에 손을 모아 마주 잡았다. 히카루는 걱정스러운
듯 민메이의 옆 모습에 눈길을 쏟았다. 다시 눈길을 아래로 하고 말했다.
"하겠어, 민메이...."
"뭐!?"
민메이가 뒤돌아보자 히카루는 똑바로 민메이를 보았다.
"나, 군대에 들어가겠어."
"히카루...."
민메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어...."
민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히카루... 히카루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럴까?"
"히카루는 나를 몇 번이나 구해 주었잖아. 아까도...."
천장의 불빛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변신의 후유증으로 전원실이 일시적
으로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불빛은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마을을 벗어난
곳으로 차츰 약해져 갔다. 두 사람은 그것을 계속 바라보면서 멀리 눈길을
던졌다. 뒤쪽에 남은 불빛이 놀처럼 보였다.
'그렇다. 나는 다시 한 번 비행기를 타는 거다. 비행기를 타고 몇 번이라
도 이 소녀를 구하는 것이다.'
히카루는 내심 굳게 다짐했다.
땅거미가 바닷물처럼 두 사람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동자는 빛나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아련한 빛을 머금으면서 언제까지나
빛나고 있었다.
<제 2 편에 계속>
제1편을 마치며
고교 시절, 내 친구 중에 T라고 하는 상당히 순진한 녀석이 있었다. T에게
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흔히 있는 이야기지만, 매일 아침 통학하는
전철에 함께 타는 여자아이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 아이는 T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T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가 따로따로 반 편성이 되어 있고, 게다가 교실 건물까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침 등교길의 전철 안뿐
이었다.
지각 대장이었던 T는, 그 여자 아이를 알게 된 이래 7시 32분 전철에 맞추
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T는 어떻게든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접근하고 싶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좋아! 오늘이야말로...!'하고 마음의 다짐을 하며 역까지의 길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그 결심은 역의 홈에 서는 순간 시들어 버렸다. 홈에
서서 여자 아이를 태운 전철을 기다리고 있으면 차츰 가슴이 고동치며 몸은
긴장되고,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화장실에 가고 싶게 되었다. 그러나 화장실
에 갈 시간 따위는 없다. 전철을 놓쳐 버리면 그 아이가 가버리기 때문이다.
T의 배가 점점 거북해지기 시작한다. T는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나 역시 그 아이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쪽이 강하게 움직인다. 몸을 비트는 괴로움을 참아내고, 그 표정
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전철에 타서 살짝 그녀를
훔쳐본다. 마음 한쪽에는 '아, 귀엽다.'하는 생각이 물결친다. 다른 마음에서는
'어휴...화장실...급하다!'하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T의 고교는 세 번째 역에 있었다. 첫 번째는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생리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T는 매일 아침, 두 번째의 역에서
하차하여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내린 후 곧 바로 홈을 뛰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T는 전철이 떠날 때까지
천천히 걷는 것이었다.
결국 T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못한 채 편지를 띄웠다. 그녀로부터 온
답장은 이러했다.
- 매일 아침, 학교에도 가지 않고 다른 역에서 내리는 불량한 사람은 딱
질색입니다. -
T의 순진함이 오히려 허무하게 돼 버린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는 요즘 세상에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나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시일(SEAL/봉인 대신 붙이는 딱지)
처럼 쉽사리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남녀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보면, 그런 유의 사람은 단지 일부분이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젊은이의 순정에는 지금이나 예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마크로스의 주인공인 히카루는 일반적인 고교생의 모습일 것이다. T가 그녀
에게 말을 걸 수 없었던 것처럼, 히카루도 민메이의 방을 노크할 수 없었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태도의 변화에 당황하고, '그냥 친구예요.'하는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여러분도 틀림없이 똑같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민메이를 지키려
고 입대를 결심한 히카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히카루는 아마도 여러분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 명 : 린 민메이(Lynn Minmay)
생년월일 : 1993년 10월 10일
출 생 지 : 요코하마
나 이 : 15살
신 장 : 158 cm
체 중 : 47 kg
신체 사이즈 : 80 cm - 58 cm - 87 cm
혈 액 형 : O 형
취 미 : 무용
특 기 : 어디에서든지 잘 수 있다. 약간의 중국어
이것이 민메이의 신상 명세서이다.
민메이는 명랑 쾌활한 면과 소녀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고, 약간 악마적인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에게는 누구든지 많든 적든 간에 악마적인 요소가
있다. 뜨거운 시선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남자가 마침내 접근해 오면 살짝 도
망 간다. 남자가 단념하면 멈춰 서서 미소를 머금고, 남자가 다시 접근해 오면
또 도망가고, 불쌍한 남자는 미로 속에서... 흔히 있는 패턴이다.
이러한 여성의 태도는 거의 본능에 가깝다. 어쩌면 무기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연애를 위한 남자의 무기는 여자에 비해 상당히 적은데다가 불확실하다.
여성은 본래, 연애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용의주도하고
만만치 않다. 더구나 남자는 그 때문에 보다 더욱 여자에게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장에서 구출된 후 변한 민메이의 태도가 오히려 히카루의 연모의 정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마크로스에는 히카루와 민메이뿐만 아니라, 많은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한
다. 예를 들면, 히카루의 선배인 로이 포커 소령은, "강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 온순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를 마음 밑바닥에 깔고 있는 사나
이다. 형처럼 히카루에게 접근하고 때로는 익살스러움을 연출하는 포커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배고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대상이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굶주림이다. 목숨을 걸고 적과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만 그의
배고픔은 채워진다. 얼어붙은 세계 속에서 비로소 포커는 반짝반짝 빛난다.
"왜 산에 오르는가?"하는 질문을 받자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 등산가가 있었는데, 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한 한 마디에 포함된
남자의 마음을 포커는 이해한다. 포커는 "거기에 적이 있기 때문에" 배고픔을
무기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의 남자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
로 불행한 최후를 마친다. 포커의 발키리에 그려진 해골 마크는 불길한 상징
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함장인 그로벌도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는 남자이다. 훌륭한 군인임에는 틀림
없지만, 결코 강직하지는 못하다. 샤미가 "금연입니다."라고 하거나, 미사가
노려보거나 하면 위축되어 버린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것으로, 브릿지의 통신사를 모두 여성으로 앉힌 보답이다. 그는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제1편에는 그다지 활약한 적이 없지만,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는 미사의 존재
가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민메이에게 끌리면서도 군에 입대한 히카루
는 미사를 만나는 기회가 많아지자 그의 마음은 두 명의 여자 사이에서 크게
흔들린다. 히카루는 몇 번이나 전쟁의 불 속을 빠져나가며 차츰 당당히 자기
몫을 해내는 군인으로서 성장해 간다. 그리고 민메이는 마크로스 함내에서
자신의 꿈인 가수의 길을 밟기 시작한다. 대우주를 물들인 전쟁의 불은 적
아군을 비롯한 많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면서 당분간은 끝날 것 같지 않다.
*해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란 어떤 이야기인가.
이 작품은 21세기의 지구와 우주 공간이 무대이며, 전체 길이가 1,200미터에
달하는 요새형 전함과, 항공기 형태에 의한 공중전과, 인간 형태에 의한 육상
격투전의 양쪽이 가능한 가변 전투기 <발키리>, 게다가 유각전차(有脚戰車)
라고도 할 만한 <데스트로이드> 등을 비롯한 매력이 넘치는 많은 메카가
등장합니다. 이 제1편을 다 읽은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히카루, 민메이,
미사 등 가까운 세계의 젊은이들의 청춘 드라마인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대는 서기 2009년에서 2012년에 걸친 때 입니다. 지금부터
불과 25년 정도 후, 여러분들이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한창 일하며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짊어지게 될 때이며, 히카루와 민메이는 여러분의 바로
다음 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현재의 우리
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민메이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미사와 통신사들은 휴가 때는 사복을 입고 쇼핑을 하며 지냅
니다. 포커는 후배인 히카루를 돌봐 주고 싶어하고, 히카루는 히카루대로 좋아
하고 있는 민메이의 의외로 냉정한 태도가 마음에 걸려 잘 수 없었던 적이
있기도 합니다.
약간 미래적인 요소라고 하면, 소규모이지만 우주 함대가 존재하거나, 길을
걷고 있으면 옆에서 거대한 로봇이 지나가기도 하고, 자동판매기와 공중전화
가 로봇화되어 온통 그 부근을 방황하고 있기도 한 점이지만, 이것도 다른
문명의 거대한 우주선(마크로스)의 추락에 의해 그것이 가져온 초월 기술을
도입한 결과의 일부분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갈 정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
지요.(물론 종래의 소위, 미래의 SF 만화영화는 그 주변의 설정에서 상당한
무리를 해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등장 인물은 여러분들이며 여러분들의 자식들인 것 입
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민메이라고 하는 가수의 팬이 될 수도 있고 히카루의
연약함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일상 생활의 모습이, 우주에 떠오른 거대 전함의 안이라고
하는 비일상적 공간의 일부에 들어가, 거대 전함을 생활의 무대로 해 버리는
것과 함께 거리도 또 비일상적인 공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여하튼 변신
으로 뒤죽박죽이 되는, 우주인의 메카가 침입하여 파괴되어 버린다...) 그
일상성과 비일상성과의 만남이 <마크로스>의 재미일 것입니다. 그 엇갈린
안에서 이윽고 비일상성까지 일상성 안에 집어 넣은 마을 회장과 민메이의
숙부, 숙모(25년후의 여러분들입니다!)를 비롯한 인간들의 활기, 그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해가는 히카루의 모습을 통해 지구라고 하는 하나의 혹성 위에서
마침내 우주로 진출해 가는 인류의 활기에 찬 싱싱함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마크로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주로 뛰어간 우리들의 '일상'은. 이윽고 더 큰 '비일상성'과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양쪽이 서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주변의 이야기
는 어떤지 제2편, 제3편에 눈길을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2 편
< 제2편 중요 등장 인물>
이치죠 히카루 : 민메이를 지키기 위해 통합군에 지원 입대, 발키리 부대의
조종사(파일럿)가 된다. 화성에서의 활약으로 소위로 진급.
린 민메이(Lynn Minmay) : 미스 마크로스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우승,
가수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야세 미사 : 다이더로스 공격을 제안하여 마크로스를 구출하는 등 남자
못지 않은 활약을 하면서도, 여자다운 나약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로이 포커 : 히카루의 조종 실력을 인정하여 통합군에 입대할 것을 권한다.
히카루의 좋은 선배
맥스밀리언 지너스 : 16살. 통합군에 지원 입대하여 히카루의 부하가 된다.
상냥한 성격의 남자이며 조종사로서의 실력은 히카루보다 월등, 애칭은 맥스
카키자키 하야오 : 17살. 맥스와 함께 히카루의 부하. 큼직한 체격에 성격은
호탕하나 눈치가 없음.
캠진 크라브셰라 : 브리타이가 원군을 위해 불러들인 군기갑 사단장.
다혈질의 성격. '아군 잡이'로 불린다.
골 보드르져(ゴル ボドルザ, 골 보돌저) : 브리타이 함대가 속해 있는 젠트
러디 군 기간 함대 총 사령관. 지구인이 젠트러디 군에게 위험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제 4 장
다이더로스 공격
제6화 Daedalus Attack
군에 입대한 히카루
히카루는 눈에 땀이 흘러 들어가 아팠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양발의 근육은
힘없이 움직였다. 히카루는 마루의 통로에 놓여진 파이프 몇 개를 허들을 넘
듯이 뛰어넘었다. 마루를 울리는 자신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힘껏 달리
자, 기름한 앞머리가 흐트러졌다. 땀으로 착 달라붙은 훈련용 T셔츠가 히카루
의 몸매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파이프를 뛰어넘을 때마다 라이플총을 쥔 손에 힘이 가해졌고, 그 때마다
히카루는 그 손바닥에 땀이 찬 것을 느꼈다. 갑자기 통로가 끊겼다.
히카루는 공중 곡예를 하여 5미터 정도 아래의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착지
와 동시에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서,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마루를 뒹굴면서
라이플 스코프를 눈에 바짝 댔다. 재빨리 조준을 맞추고, 집게손가락을 살
짝 당기자 사람 모양을 한 표적의 미간에 둥근 구멍이 뚫렸다.
발사 직전의 마크로스가 갑자기 홀드 효과에 의해 명왕성 궤도로 공간 이
동을 한 지 어느덧 2개월이 흘렀다. 전장 1,200 미터짜리 전함은 현재 지구
를 향해 넓은 우주 공간을 헤쳐가고 있다.
마크로스는 도중에 젠트러디 군 브리타이 함대의 공격을 받았지만 변신하
여 격퇴해 버렸다. 그러나 함체의 변형에 의해 피난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는 듯 사람들은 함선 내의 길
을 복구해 갔다. 마크로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군에 입대한
히카루는 신입 대원으로서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히카루는 뒹굴면서 세 개의 표적을 쓰러뜨리고, 발키리 수납고로 달려갔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동안은 전신의 근육이 뻐근하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잠을 자면서도 몸을 뒤척일 수 없을 만큼 괴로워서 잠을 이
룰 수 없는 날들이 연속되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히카루에게 있어서 결코 괴롭지만은 않았다. 소년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린 민메이의 웃는 얼굴이 아로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민메
이를 지키기 위해 군에 지원한 히카루에게 있어서, 팔 다리의 아픔은 분명히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히카
루의 몸에 근육이 생김에 따라, 히카루의 사랑도 조금씩 익어갔다.
히카루는 발키리에 뛰어올라탔다. 엘리베이터가 프로메테우스의 왼쪽 뱃
전 방향으로 전투기를 밀어 올렸다. 히카루는 기체를 활주로로 향하게 하고
보조 엔진에 점화했다. 발키리는 푸른 불꽃을 꼬리처럼 길게 내뿜으며 매
끄럽게 활주로를 미끄러졌다.
드디어 전투기는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우주 공간에 떴다. 히카루는 고도를
낮춰 기체를 선회시켰다. 예리한 날개로 프로메테우스를 가로지르듯이 함선
의 주위를 빙빙 돌며 비행했다.
히카루가 G레버를 내리자, 전투기에 금속의 양손 양발이 펴졌다. 발키리
가 가워크형으로 바뀌면서 활주로에 되돌아옴과 동시에 발키리의 상승구
에서 표적기가 튀어올랐다. 되돌아온 가워크는 재빨리 손에 쥔 가틀링 포를
쏘았다. 표적기는 소리도 없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히카루는 자랑스러운 표정
을 지었다. 콕피트(조종실) 스크린에 포커의 모습이 나타났다.
"히카루야, 훌륭하다!"
"아직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텐데요, 선배님?"
하며,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긴장이 풀리며 어깨 힘이 쭉 빠졌다.
"내일은 자네의 첫 휴가로군. 어떤가? 식사라도 함께 하는게."
"곤란합니다. 그게...모처럼 이지만, 좀...."
히카루의 눈이 반짝였다.
"음. 역시 데이트가 있다는 거로군."
"아, 아닙니다! 데이트가 아니구...."
"뭐, 멋쩍어 말게. 그러나 히카루야, 미리 말해 두는데 너무 급하게 서두르
면 안 돼."
"서, 선배님!"
히카루는 소리를 지르며, 포커를 쏘아보았다.
"하하하!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하면 그녀에게 채일지도 몰라. 자, 그럼 좋
은 시간을 보내라구!"
포커는 짓궂게 웃으면서 모니터를 껐다.
첫 휴가
거리에는 평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다시 세워진 집들의 페인트 색깔
은 모두가 화사했고, 가로등 하나하나에는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상점 주
인들은 손님과 서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손뼉을 치며 손님을 부르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길을 가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어머니의 모습 등, 우주선 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거리는, 거리에 필요한 하나의 퇴폐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스낵이나 캬바레, 포르노 극장, 그리고 어깨로 바람을 가르고 다니는 건달
들. 그렇지만 결국 이러한 평화는 사람들의 불안이나 공포를 감추기 위한
얇은 막과 같은 것이었다.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실로 하찮은 것을 도
화선으로 해서 싸움을 했다. 설사 그것이 1대 1의 싸움이라 해도 순식간에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살얼음 같은 평화의
위태함을 느끼기도 했다.
순백색의 군복을 입은 히카루는 큰 종이봉투를 끌어안고 걸었다. 둘둘 만
푸른색의 벽지 두 개가 봉투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내가 들께."
함께 걷고 있던 민메이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이리 줘."
"아니야, 괜찮아."
히카루는 꼭 끼는 칼라의 호크를 풀며 대답했다.
"꼴불견이야, 남자가 그런 걸 들고 있으면."
"원래 꼴불견이잖아."
"그럴 리가! 그 군복 아주 잘 어울려. 아주 멋있어."
"고마워."
히카루는 말을 하면서 종이봉투를 고쳐 안았다. 두 개의 벽지가 서로 부딪
쳐 흔들거렸다.
"너무 많이 산 게 아닐까?"
"방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모자랄지도 몰라."
"그 방 괜찮았는데."
"어휴, 난 질렸어."
"혹시 뭐든지 질리기 잘하는 편 아니야?"
히카루가 민메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응, 의외로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는 것 같아."
"남자에 대해서도 그랬어?"
"물론."
"정말?"
"글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노래는 질리지 않고 너무너무 좋아해."
히카루는 고개를 숙이고 부츠 끝을 보았다. 발부리에 껌이 붙어 있었다. 히
카루는 땅바닥에 발부리를 문질러 껌을 뗐다.
민메이가 또 먼저 말을 걸었다.
"방에 벽지를 바르면, 숲을 그릴 거야."
"...숲? 그림 같은 거 그릴 줄 알어?"
"그려 보고 싶어. 나무와 잎사귀, 그리고 작은 새. 그렇게 하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소리에 잠을 깬 기분이 들지도 모르잖아."
"응."
"히카루는 학의 울음소리 들어 봤어?"
"아니."
"학의 노래는 좀 이상해."
하늘을 쳐다보는 민메이의 오므런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콰앙......룰 루 루 루......."
"지금 그게 학 울음소리야?"
히카루가 놀라며 물었다.
"응, 학이야."
민메이는 양손으로 날개짓을 하며 대답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민메이와
히카루를 의아스런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히카루는 오직 민메이만을 쳐다보며 그녀의 숲과 작은 새, 그리고 학 이야기
에 골똘해 있었다.
"와, 멋있어!"
라고 외치며 민메이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히카루가 살펴보니, 상점의 쇼
우윈도우에 거드름을 피우는 몸짓의 마네킹들이 최신 유행의 멋진 옷을 입
고 서 있었다.
윈도우에 얼굴을 갖다 대고 민메이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히카루도 같이 봐 주지 않을래? 안에 들어가서."
"뭐? 그렇지만 여긴 여성 전문...."
"괜찮아, 괜찮아."
"...어쩔 도리가 없군...."
히카루는 매우 난처했지만 따라 들어갔다. 상점 안에는 색색의 옷들이 화려
하게 걸려 있었다. 민메이는 흰색과 보라색이 섞인 원피스를 골라 들고 탈
의실로 들어가며,
"보지 마!"
라고 말하고는 커튼을 주루룩 닫았다.
"누, 누가......!"
히카루가 얼굴이 빨개지며 되묻자, 등 뒤의 여점원이 소리내어 웃었다. 깜
짝 놀라 뒤돌아보는 순간, 히카루의 손에서 종이봉투가 떨어졌다. 벽지, 락
카, 붓 따위가 마루에 흩어졌다.
"쳇!"
히카루는 혀를 차며 주우려고 몸을 굽혔다. 그 때 자동문이 조용히 열리고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브릿지 통신원인 미사, 샤미, 킴이 들어온
것이다.
"어서 오세요."
여점원이 상냥하게 맞이하자 샤미가,
"어서 왔읍니다."
라고 활발하게 대답했다.
"속옷 종류도 있어요?"
킴이 물었다.
"네, 이쪽에 있어요."
점원은 세 사람을 한쪽의 특별 코너로 안내했다. 히카루는 분홍색 잠옷을
입은 마네킹 뒤에서 굴러간 락카병 등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그 손 옆을
여자의 하얀 다리가 걸어갔다.
"응?"
히카루는 얼굴을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미사와 샤미와 킴은 특별 코
너에 쌓여 있는 속옷을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다.
"와, 이 부라쟈 귀여운데!"
"약간 디자인이 어린애 같지 않니?"
킴이 샤미에게 말했다.
"이것도 좀......."
미사는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정면의 마네킹 옆에 히카루의 얼굴이 눈에
띈 것이다.
"......!"
히카루는 어색한 시선을 미사에게서 돌려 천장의 여기저기를 올려다보았
다. 순간, 종이봉투를 끌어안고 있던 팔의 힘이 느슨해졌다. 좌르르 하고 봉지
가 떨어지고, 속에 있던 것들이 다시 쏟아졌다.
"아이 싫어, 꼭 변태 같애."
샤미도 눈치를 채고 킴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그런 것 같네."
킴은 노골적인 경멸의 시선으로 히카루를 노려보았다.
"나중에 또 오기로 하자."
두 사람을 재촉하며 미사는 재빨리 출입구로 향했다. 어쩐지 비참한 기분
이 든 히카루는, 느릿한 동작으로 흩어진 물건들을 다시 주워 모았다.
"히카루, 이 옷 어때?"
라고 말하며, 민메이가 탈의실 커튼을 열었다. 민메이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히카루를 본 민메이는 신경질적으로 물었
다.
"뭐하고 있어?"
히카루는 얼굴을 들고 히죽 웃었다.
"응, 손이 좀 미끄러워서 봉투를 떨어뜨렸어. 그 옷 아주 잘 어울리는
데!"
그런 히카루의 모습을 보며 민메이는 낮은 한숨을 지었다.
상점을 나온 두 사람은 "니얀니얀"으로 향했다. 군에 입대한 히카루는 기숙
사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 만에 방문하는 것이다. 사거리를 돌아
"니얀니얀"의 간판이 보이자, 히카루의 마음은 그리움으로 들떴다. 마음씨 좋
은 민메이의 숙부와 숙모님의 웃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히카루는 칼라의 후크를 잠그었다. 함선 내에서 유일한 중국 음식점인 이곳
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숙모
부부에게 민메이가 소리쳤다.
"숙부님, 숙모님! 히카루가 돌아왔어요!"
숙모 부부는 일손을 멈추고 깜짝 놀라며 얼굴을 들었다. 입구에 서 있던
히카루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오, 히카루군!"
"오래간만이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히카루는 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었다.
"히카루! 그런 곳에 서 있지 말고 이리와."
민메이는 손짓하며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숙모도 만들고 있던 음식을 남
편에게 맡기고 앞치마 끈을 풀었다. 히카루는 민메이와 숙모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군대 생활은 어떤가?"
숙모의 말투에는 자신의 혈육을 대하는 듯 상냥함이 깃들어 있었다.
"역시 힘듭니다."
"그렇지만, 히카루는 비행기 조종은 아주 능숙하니까 곧 훌륭하게 될 거
야."
민메이의 말에 히카루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런 소리 마."
숙모는 제법 어른스러워진 히카루의 체격을 보며 말했다.
"모습이 많이 늠름해진 것 같구나."
"그렇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히카루는 좌우의 시선을 느끼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때,
"히카루! 역시 여긴가?"
하는 목소리와 함께 포커가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어왔다.
"곧 출격 명령이 떨어질 거야! 기숙사로 돌아가!"
포커는 손님들 사이를 헤치고 히카루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히카루는 갑작
스런 일이라 얼떨떨했다.
"제, 제가......벌써 출격을 해요?"
포커는 히카루의 어깨를 두드리며 차근차근 말했다.
"지금 명령이 떨어졌어! 신입 대원 중에서 다섯 명이 실전 부대 배치다.
자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제...제가......!"
"와! 축하해, 히카루!"
민메이는 기뻐하며 히카루의 손목을 잡았다.
"......."
어두운 그늘 한 점 없는 민메이의 웃음에 히카루의 심경은 복잡해졌다. 민
메이를 지키기 위해 자원하여 군에 입대했지만, 역시 "출격"이라고 하는 두
글자는 어둡고 생소한 것이었다. 그건 죽음과 직결되는, 오히려 불길한 길
의 표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민메이의 눈빛은 어디까지나 명랑했다.
맑고 깨끗한 기쁨만을 띄울 뿐, 동요하는 빛은 전혀 없었다.
"......출격......!"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는 히카루의 목덜미를 포커가 움켜쥐었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어! 빨리 와!"
포커에게 목덜미를 움켜쥐인 채 히카루는 질질 끌려갔다.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민메이가 소리쳤다.
"히카루, 용기를 내!"
그러면서 양손을 흔들었다.
히카루는 포커의 뒤를 터벅터벅 따라갔다. 바로 조금 전에 민메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왔던 길이다.
포커는 보통때와는 달리 엄한 투로 말했다.
"오늘부터 자네도 어엿한 한 사람의 군인이다. 기숙사도 지금까지는 여럿
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독방이 된다."
"네...."
"단, 독방이 되고 나면 더욱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알았나?"
"네......."
히카루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분위기를 바꾼 민메이의 방을 상상하고 있었
다.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초록의 숲. 민메이는 그 속에서 편안히 잠들고,
기분좋게 일어 나겠지.
모퉁이를 돌아선 포커가 우뚝 멈춰서더니, 가슴을 펴고 경례를 했다. 깜
짝 놀라 얼굴을 든 히카루는,
"아! 아휴!"
자기도 모르게 말문이 막혀 우물거렸다. 미사 일행과 맞부딪친 것이다.
세 명의 여성도 늠름한 경례에 인사를 하면서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아! 이 사람, 아까 그......!"
샤미가 히카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킴은 얼굴을 찡그리며 맞장구쳤다.
"아! 미스터 란제리!"
"포커 소령, 우수한 대원이라던 당신의 후배가 바로 이 사람이에요?"
미사가 물었다.
"그렇지만......."
포커가 말 끝을 흐렸다.
"이....이치죠 히카루 입니다!"
히카루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미사는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에서 본 적이 있어......."
이 말에 히카루도 불현듯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 나도 이 여자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애....'
"아!"
둘은 동시에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서로에 대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히카루가 포커에게 끌려 처음으로 마크로스에 올라탔을 때, 둘은 통신 스크린
을 통해 말을 주고 받았었다. 그 때 히카루에게 "아주머니" 소리를 들은 미사
는 몹시 분해했고, 민간인으로서 발키리를 타고 있었던 히카루도 심한 말을
한 마디 들었었다.
"아! 그 때 그 아주머니!"
"그 때의 그 민간인!"
둘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서로 쳐다보았다.
"야, 임마 히카루! 말 조심해!"
히카루는 포커의 주의를 듣고 당황해 하며 얼른 입을 가렸다.
"시... 실례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자네의 상관이야. 무례한 태도는 용서할 수 없어!"
"넷!"
히카루는 다시 경례를 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히카루 씨."
미사는 히카루를 찬찬히 훑어보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남자가 그런 상점에
출입하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에요."
"......!!"
난처해진 히카루는 고개를 숙였다. 샤미는 히카루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
"......변태...."
출격과 기념 사진
브리타이 모함은 천천히 나아갔다. 마크로스보다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
는 이 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절대 중량감에 위축되어 버리게 했다. 검
푸른 함체는 끈적끈적한 영겁의 어두움을 헤치며 갔다.
"으음."
브리타이는 스크린을 보고 중얼거렸다. 스크린에 비춰진 마크로스는 로보
트 모양으로 변신해 있었다.
"......어떤가? 대답은 나왔는가?"
브리타이는 엑세돌에게 물었다.
"아니요. ......모든 분석을 시도해 보았지만 왜 이렇게 변신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단지?"
"이 모양으로 변신한 후부터, 중력 제어가 고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속도
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으음......."
브리타이는 다시 스크린을 보았다. 마크로스의 전방에는 궤도를 이탈한
남빛의 혹성이 떠 있었다. 토성이었다.
"......저 혹성은 뭔가?"
"이 혹성계의 제5 혹성입니다."
"......아니, 저 궤도 속으로 끼어들 셈인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궤도 내에 ECM(레이더 방해전파)
을 걸게 되면 그들의 소재지를 탐지할 수 없게 됩니다."
"흥......썩어빠진 술책이다."
"어떻게 할까요?"
"글쎄. ......좋은 수가 있다."
브리타이는 눈가에 엷은 미소를 띄웠다.
"놈들의 생각대로 내버려 둬. 제5 혹성으로 빠져들어 가면 오히려 독 안에
든 쥐가 될 테니."
"이상한 에너지 반응이라는 게 이건가?"
그로벌 함장이 물었다. 마크로스의 기관실에는 계속하여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눈부신 빛의 덩어리가 흔들리고 있는가 하
면, 밑바닥의 중앙부에서 다이아몬드와 같은 광선이 바닥과 천장을 잇고 있
었다.
"네, 본 적이 없는 현상입니다."
기관장은 웃으면서, 눈이 부신 듯 눈을 찡그렸다.
"여기는 전에 홀드 시스템이 있던 곳인데, 뭔가 관계가 있나?"
"아마 홀드 시스템이 소멸되었을 때의 영향으로 시공 연속체에 이상이 생
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으음....... 그러면 각 기관에도 지장이 있는가?"
"지금은 없습니다."
"좋아, 계속해서 조사를 해 보도록!"
말을 마친 그로벌 함장은 일어서려고 했다.
"저, 함장님."
"뭔가?"
"이 에너지 파워를 이용하면 배리어로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
다만......."
그로벌은 한 쪽 눈을 치켜올려 뜨며 물었다.
"그만큼 위력이 있는 건가?"
"네."
"좋아, 곧 개발을 서두르게."
"네!"
마크로스 함내는 소리없이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집집마다 창가에 불이
꺼지고, 거리를 덮는 천장의 불빛도 자취를 감추었다. 바로 이런 시간에 마
크로스는 토성 궤도에 돌입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얼음 덩어리가 거대한
궤도의 정체이다. 로보트형의 전함은 그 속에 완전히 잠겨 많은 이물질을
밀어내고 있었다.
히카루는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무릎 위에
다 양손을 깍지 끼워 올려 놓은 채였다.
몇 개의 가로등이 황토색 빛을 발하고 있고, 공원 안 중앙에는 분수가 있
었다. 물은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다가, 가끔씩 높은 물줄기를 내뿜곤 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정적 속으로 스며들어 적막을 깨곤 했다. 히카루는
그로벌로부터 정식으로 출격 명령을 받은 후 민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기서 민메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다.
기지 안 광장의 단상 위에 선 그로벌은, 소집된 조종사들에게 이렇게 말
했다.
"내일 우리들은 적이 토성 궤도에 들어감에 따라 기습을 가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 단, 제군들의 조종사 혼을 보여 주기 바란
다. 그뿐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 안으로 만나 이별의 아
쉬움을 나누도록! 이상이다."
히카루는 한 시간 전부터 벤치에 앉아 발만 쳐다보며 꼼짝도 않고 있었다
. 약속 시간은 이미 15분 정도가 지났다. 옆에 있는 가로등이 깜박깜박했다.
희미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와 히카루는 고개를 쳐들었다. 어둠 속에서 민메
이의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민메이는 히카루의 앞에서 멈춰서서 헐떡거리
는 숨을 진정시켰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아니 별로......."
히카루는 일어섰다. 순간, 민메이를 끌어안고 싶은 강한 충동에 가슴이 떨
렸다. 히카루는 민메이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급한 일이라니, 뭐야?"
히카루는 길게 호흡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내일 아침에 출격하게 되었어...."
"군인이 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지?"
민메이는 말하면서 생긋 웃었다.
"그래!"
"히카루는 우수한 조종사잖아. 반드시 훌륭하게 해낼 거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어!"
"......."
히카루는 눈을 감았다. 민메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
다.
"......왜 그래?"
"......아니야......."
분수가 쏴아 하고 길게 내뿜어졌다.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물기둥으로 시
선을 돌렸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물줄기는 진홍색을 발하며 반짝였다.
"왜 그래? 히카루...."
민메이는 히카루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저, 이거...."
하고 스커트 자락을 가지런히 했다. 보라색 원피스는 낮에 상점에서 산 것
이었다.
"아, 좋은데!"
히카루의 무심한 표정에,
"흥! 모처럼 함께 산 옷을 입고 왔는데...."
라고 말하며 민메이의 입이 뾰로통해졌다.
"아, 아니야. 아주 잘 어울리는데."
"정말!?"
"정말이야."
그제서야 민메이는 기뻐했다.
"좋아!!"
히카루는 나무 숲 사이에서 다가오는 카메라 로보트를 발견했다. 로보트라
고는 하지만, 가늘고 긴 몸통에 큼직한 카메라가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주문대로 셔
터를 누른다.
"기념 사진이라도 찍어 두자."
히카루가 말했다. 민메이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
거렸다.
"......난 사진 찍는 게 별로야."
"그런 소리 마, 카메라!!"
히카루는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작은 바퀴를 찌릉찌릉 울리며 카메라
로보트는 적당한 거리에서 초점을 맞추었다.
"자, 나란히 서야지."
"응."
민메이는 살짝 히카루의 팔짱을 꼈다. 히카루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셔
터소리와 함께 푸르스름한 후레쉬가 터졌다. 로보트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렌즈 밑으로 사진을 내밀었다. 히카루가 사진을 뽑아들자, 로보트는 서투른
인사를 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저 그렇군."
민메이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잘 나왔는데."
민메이는 급히 손목시계를 보았다.
"난, 이제 돌아가야 돼. 남자와 단 둘이서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숙모님
과 숙부님이 걱정하시거든."
"......그래?"
"응. 그럼 몸 조심해.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 내일 조심해!"
민메이는 히카루를 바라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안녕!"
손을 흔들며 민메이는 휙 발길을 돌렸다. 보라색 스커트가 나비의 날개처
럼 펼쳐졌다. 민메이는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히카루는 눈도 깜박
하지 않고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보라색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민메이의 윤곽이 희미해져 갔다. 이윽고 아련해진 민메이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히카루는 새삼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자신에 대
한 분노가 뜨겁게 솟아올랐다.
"뭐야, 난 저 아이를 꼭 안아 주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보내다니! 난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채인다고 해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히카루는 사진을 두 조각으로 찢었다. 바싹 달라붙어 있던 두 사람의 몸이
떨어졌다. 히카루는 자신이 찍힌 쪽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민메이의 사진
만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원작에서는 사진을 찢어 버리지 않는다. 이 사진은 이 이후로 히카루 방에
조그마한 액자에 끼워져 있다. 마크로스 엔딩곡에서도 이 사진이 나옴. 즉,
히카루가 가장 아끼는 사진.)}
포커는 군인용 숙소의 자기 방에서 클로디아와 함께 있었다. 포커의 눈동
자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포커는 벌렁 누운 채 손을 뻗쳐 테이블 위의
포도주잔을 집어 입술에 대었다.
"내일 기습이 잘 될지 모르겠어요......."
클로디아가 중얼거렸다.
"글쎄......."
포커는 잔을 형광등에 비추어 보았다. 최고급 적포도주는 붉은 색의 투명
함 속에 한 줄기의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난 전투하기 전에 이길까 질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이길까 질까...... 마치 1대 1의 싸움처럼 말하는군요."
"그래, 통합 전쟁이든 지금 같은 다른 혹성인과의 전쟁이든, 내 앞에 적
이 나타나고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싸우는 거야. 그뿐이지."
"......."
클로디아는 포커의 손에서 잔을 빼앗아 한 모금 마셨다.
"포커,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힘껏 내던져 버릴 테예요."
라고 말하면서 포커의 금빛 머리를 쓸어 올렸다.
히카루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꿈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 눈은 자꾸 내렸다. 그런데, 땅 위에는 피가 묻어 었
기 때문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발키리 대의 기습 작전
"발키리 대에 알린다. 기습 작전 개시! 각 부대를 일곱 개 반으로 구성
하고 얼음덩어리 속에서 기다리도록! 반복해서 말한다. 기습 작전 개시!"
브릿지에서 미사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조종사들을 태운
많은 함내 차가 통로를 달렸다. 포커의 옆자리에 앉은 히카루는 충혈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왜, 잠을 못 잤나?"
포커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던졌다.
"네...... 좀......."
"......나도 처음엔 그랬어. 뭐 하룻밤쯤 자지 않았다고 죽진 않으니까."
포커는 히카루에게 윙크를 했다.
"선배님도......!"
히카루도 찡긋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발키리 격납고로 달려
갔다. 차가 정차하자마자 뛰어내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전용기를 향해 달
려갔다. 포커는 달려가면서 히카루를 뒤돌아보며 한 쪽 손을 올렸다.
"또 만나자, 히카루!"
"네!"
히카루는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려는 듯 힘껏 대답했다.
함장석 앞의 모니터에 기관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함장님! 배리어 시스템 작동이 가능합니다."
그로벌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이제 제대로 되어 가나?"
"그런데, 마크로스 전체를 덮을 만한 용량은 아무리 해도 얻을 수가 없읍
니다."
"으음....... 마크로스는 확실히 너무 커. 한계가 있는가!?"
"고육지책입니다. 보십시오."
모니터의 영상이 마크로스의 전체도로 교체되었다. 클로디아와 킴도 함장
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이렇게 배리어를 붙이는 것입니다."
기관장의 목소리와 동시에 로보트형의 마크로스 함체에 세 개의 광점이
생겼다.
"......그리고 적이 배리어 밖을 뚫고 왔을 때에는......."
화면 끝에서 미사 일행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 때는 배리어를 이동시켜서 막는 겁니다."
광점을 재빨리 움직이며 습격하기 시작하는 미사일을 막아냈다. 미사일의
영상이 갑자기 꺼졌다.
"과연......!"
그로벌이 감격해 하며 말했다.
"이 조작은 배리어 시스템반이 담당합니다. 이제 이것을 핀 포인트 배리어
라고 불러 주십시오."
"음, 수고했다."
그로벌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클로디아는 위를 보며 외쳤다.
"교활한 배리어!"
히카루는 프로메테우스 활주로에서 조종 장갑을 다시 끼었다. 계속해서 솟
고 있는 발키리의 분사염이 후드글래스에 반사되어 빛났다.
히카루는 무심코 콕피트 속을 둘러보았다. 단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히카루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통신용 스크린에 포커의 얼굴이
나타났다.
"발키리 스컬 대대, 출격!"
포커의 어조는 냉엄했다. 히카루는 전방에 있는 포커의 전용기로 시선을 돌
렸다. 꼬리날개에 붉은 해골 마크가 빛나고 있는 발키리는, 그 무엇보다
도 빨리 매끄럽게 발진했다.
"발키리......"
말을 하다 말고 히카루의 목이 막혔다. 기침을 한 후 히카루는 다시 말했다.
"발키리 스컬 대대, 23번 기 이치죠 히카루 발진합니다!"
"알았다, 오버!"
응답하는 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롯틀 레버를 누르자, 히카루의 발키
리는 활주로에서 토성의 궤도 속으로 날아갔다. 지그재그로 상승하며 얼
음 덩어리 속을 빠져 나간 히카루의 발키리는, 수평 비행으로 들어갔다.
포커의 발키리는 얼음 한가운데에 있었다. 차가운 얼음 덩어리를 최대
한으로 피하느라 양날개가 위아래로 힘차게 춤을 추었다. 대대의 후속기도
포커를 따르고 있었다. 히카루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런 위험한 곳을 나르고 있는 걸까?'
그 때, 미사의 통신이 울렸다.
"스컬 23! 지금 어떻게 비행하고 있는 건가?"
"넷!?"
"자네, 지난번 훈련에서 무엇을 들었나? 그 화려한 비행 방법으로는 적에
게 들켜 버리고 말 거야! 빨리 궤도 안으로 돌아와!"
"그렇지만, 모두가 염려스러워서......."
"잠자코 지시에 따르지 못하겠나!"
미사의 목소리는 한층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알겠습니다."
"말투가 그게 뭔가? 주위를 보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자네 뿐이야!"
"아, 알았다. 오버!"
히카루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귀가 따가워 기수를 내리고 궤도 안으로 하
강해 갔다. 그리고는 대대의 제일 끝에 붙어 엄청난 얼음 덩어리 사이를 뚫
고 갔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군."
히카루의 어깨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스컬 리더로부터 각 전투기로!"
스크린을 통해 포커가 연락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R-18 포인트로 이동, 적의 함선을 주포축 선상으로
유도해 낸다!"
히카루가 포커를 보고 있을 때 오른쪽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다가왔
다.
"앗!"
히카루는 당황하며 기체를 옆으로 돌렸다. 얼음 덩어리의 흰 어금니는 조종
실 옆을 말없이 스쳐지나갔다.
"휴우!"
히카루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 때,
"스컬 23번 기!"
미사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미사는 레이더 스크린으로 발키리 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컬 23번 기! 스피드가 떨어지고 있다."
미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다시 들려왔다.
"그, 그런 걸 말씀하셔도......!"
히카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좀전의 그 좋던 기세는 어디로 갔지!?"
"쳇! 자기들만 안전한 곳에 있는 아줌마들한테 지시를 꼭 받아야만 하는
걸까?"
히카루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미사의 안색이 굳어졌다. 클
로디아가 마이크를 뺏어 들고 말했다.
"23번 조종사님! 아직 작전 전인데 상관의 험담은 삼가해 주었으면 해
요."
미사는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괜찮습니다. 개의치 않아요!"
창 밖을 보고 있던 그로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미사 양! 발키리 대가 주어진 위치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
겠나?"
미사가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앞으로 5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적함이 궤도에 침입한 직후에 주포를 쏜다! 발사 태세로 들어가
라!"
"네!"
미사와 클로디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마크로스의 주포가 이동했다. 멀리서 보면 토성 궤도는 뿌연 안개와 같
다. 마크로스의 상반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양어깨에 짊어지
고 있던 두 개의 주포를 앞으로 내려놓았다.
브리타이 모함의 스크린이 명멸하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브리타이 사령관님, 부르셨읍니까?"
"......제릴 함장. 제 5 혹성 내에 들어가 적함을 포획해 오기 바란다."
브리타이의 목소리는 억양이 없다. 낮은 음성은 브릿지의 두꺼운 바닥 아
래로 깔렸다.
"네."
제릴은 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가능한 한 상처없이...."
"알겠습니다!"
영상이 꺼졌다.
모함을 뒤따르고 있던 제릴 함이 속도를 올렸다. 토성을 향해 일직선으로
은백색의 꼬리를 그리며 갔다. 제릴 함은 궤도에 접근하면서 공격을 개시했
다. 함의 앞머리 부분에 설치된 포로 연달아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미사일은 얼음 덩어리에 부딪쳐 폭발했다. 순간적으로 부풀어 오
른 백광이 잘게 부서진 얼음 덩어리를 토해내며 히카루의 바로 위에서 폭발
했다. 조종실이 갑자기 환해지자, 히카루는 눈이 부셨다. 얼음 조각이 히카루
의 비행기 날개에 부딪쳤다.
"크으!"
당황한 히카루는 기체를 똑바로 세웠다.
"왔다!"
포커가 스크린을 통해 말했다.
"공격!"
선두에 선 포커가 궤도 밖으로 날아가 적함을 향해 광선을 계속 발사했
다. 그렇게 몇 번을 선회하다가 다시 얼음 덩어리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후
속기들도 포커를 뒤따랐다. 그렇지만, 발키리의 공격 능력으로는 거대한
적함에 작은 상처 하나도 입힐 수가 없었다.
제릴 함은 여전히 돌진했다.
브리타이는 전투하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다가,
"......대단한 놈이로군."
이라고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엑세돌은 정중하게 경례를 하고 말했다.
"미약한 전력으로 공격을 해 오는 걸로 봐서, 놈들은 전투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우리가 저 전함을 손에 넣으려고 계획한 것을 모르는 것 같군. .....
좋다. 제릴에게 전하라. 이번 기회에 우리의 위력을 철저하게 가르쳐 주라
고!"
브리타이 모함에서의 명령은 제릴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제릴 함은 궤도
에 돌입한 뒤 몇 대의 배틀 포트를 발사했다. 포트는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
며 얼음 속을 날았다. 곧 발키리 대의 광선 발사에 대한 응수가 시작되었
다.
히카루는 곁눈으로 포트를 보았다. 포트는 재빠르게 얼음 덩어리 속으로 숨
으며 포트의 광선으로 얼음 덩어리를 파괴했다. 양자 사이의 틈이 넓어지려
는 순간, 재빨리 히카루의 광선이 포트를 공격했다. 잔광이 스윽 꺼지고, 적
은 조용히 폭발했다.
마크로스의 브릿지에서 샤미는 적함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함, 주포 오른쪽 지역으로 접근 중 ......적함 포착!"
그로벌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좋아! 함을 부상시켜!"
마크로스의 양다리에서 불이 뿜어 나오며, 궤도 속에 있던 함체는 크게
떠올랐다.
"주포 발사!"
"주포 발사합니다!"
클로디아는 그로벌의 명령을 받고 급히 계기를 조작했다. 그러나 마크로
스는 잠잠했다. 두 대의 포신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 주포 발사가 안 됩니다!"
클로디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 뭐라구!?"
"핀 포인트 배리어를 접속했을 때,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그로벌은 이마에 손을 얹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미사일, 가까이 접근했음!"
샤미의 보고였다. 클로디아는 배리어 룸으로 연락을 했다.
"핀 포인트 배리어 전개 개시!"
"네!"
젊은 여자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크로스 함체에 세 개의 광점이
나타났다.
미사일이 점점 더 다가왔다. 궤도에 돌입한 제릴 함이 마크로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유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미사일 도착점에 맞추어 광점이 이동했다. 작은 배리어지만, 미사일의 파
괴력을 되돌리기에는 충분했다. 세 개의 광점은 어지럽게 움직이며 마크로
스를 호위했다. 배리어 룸의 세 여자는 숨돌릴 틈도 없이 바빴다.
"그것!"
"어! 안 맞아."
"옆에서 기습하잖아! 앞에서도!"
세 여자 대원들은 레이더 스크린을 보며 열심히 배리어를 조작했다.
제릴 함대의 참패
숫자적으로 압도적인 배틀 포트는 마크로스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핀 포인
트 배리어도 그 엄청난 광선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마크로스 함체에는 몇
군데의 상처가 생겼다.
"발키리 제2, 제3 부대 ...전멸입니다."
라고 미사가 보고했다.
"으음.... 스컬 대대만 남았는가?"
그로벌은 주머니 속에서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완전히 포위당했읍니다!"
클로디아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로벌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틀
포트가 연이어 어둠 속을 미끄러져오고 있었다. 포트의 흐름은 그로벌의 눈
앞으로 다가오더니 좌우로 나뉘어 함체의 양편을 에워쌌다.
"...!"
그로벌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포트의 맞은편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
한 벽과 같은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검푸른 빛깔의 덩어리는 점점 전함의 윤곽을 드러냈다. 제릴 함은 함선
앞머리의 포대를 마크로스 쪽으로 향한 채, 흉악한 파도처럼 다가왔다. 마
크로스는 계속 여기저기 손상을 입었고, 그 때마다 그로벌은 진동을 느꼈
다.
"......벌써 여기까지 왔는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함장님! 핀 포인트 배리어의 에너지를 다이더로스의 함선 머리 부분에 집
중시킬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하지만 ......."
"허락해 주십시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그로벌은 파이프를 물었다.
"좋아, 해보게."
"킴! 샤미! 데스트로이드를 다이더로스 함선 앞머리 쪽으로 급히 집중시
켜! 그리고 클로디아, 마크로스를 적함으로 돌격시켜요!"
"앗!"
히카루의 발키리는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리치닫았다. 엇갈려 지나가던 포
트의 강한 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래에 제릴 함의 갑판이 보였다.
히카루는 격돌을 피하려고 순간적으로 B레버를 내렸다. 발키리는 즉시 로
보트 형체인 배트로이드로 변신했다. 배트로이드는 유도에서 사용되는 다치
치 않고 넘어지는 요령으로 갑판 위에 내렸는데, 힘이 지나친 나머지 에어
로크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떨어진 순간, 로크의 뚜껑이 "쾅"하며 닫혔다.
"아차차......!"
히카루는 허리를 어루만지며 주위를 스크린에 비춰 보았다. 어슴푸레한 바
닥과 벽을 가로지른 몇 개의 파이프가 어둠과 어둠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그 때, 히카루는 갑작스럽게 빛이 반사되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라며 재빨리
배트로이드를 일으켜 세우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순간 히카루는 아무 말도 나
오지 않았다. 문에는 거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히카루는 아타리아섬에서 처음으로 거인과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배틀 포
트 속에서 나온 상처투성이의 거인. 히카루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오던 거
인. 그런데 지금 히카루의 눈앞에 있는 거인 병사는, 배트로이드를 노려보며
그냥 서 있기만 했다.
히카루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가틀링 포를 쏠 준비를 했다. 거인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히카루의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다. 거인과 배트로이드는 서로
마주한 채,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적함이 쳐들어 옵니다!"
"쏴! 계속해서 쏴라!"
제릴은 외쳐 댔다. 제릴 함은 모든 포문을 열고, 마크로스를 향해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마크로스의 브릿지가 몹시 흔들렸다. 미사는 계기에 매달
려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이더로스 공격!!"
마크로스는 오른쪽 팔을 위로 쳐들었다. 오른쪽 뱃전에 도킹을 한 강습
양륙함 다이더로스를 높이 들어올린 것이다.
다이더로스의 머리 부분은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른쪽 팔이 쑥
내밀렸다. 배리어에 한데 뭉쳐진 거대한 주먹은 제릴 함체를 부수고, 그대
로 서서히 접근해 들어갔다. 다이더로스는 적함의 브릿지 스크린을 멈추게
했다.
"이, 이건!!"
제릴의 얼굴이 놀라움에 일그러졌다. 다이더로스 머리 부분의 해치가 열
렸다. 그곳에는 육상 전투용 탱크 데스트로이드가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
었다.
"으아악!"
제릴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포화 속으로 사라졌다.
히카루의 배트로이드와 거인 병사는 아직도 서로 노려보고만 있었다. 서로
에게 이어지는 긴장의 줄은, 서서히 서로의 목을 조여가는 듯했다. 이 때
옆 통로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화염과 함께 마루바닥에는 소용돌이 바람
이 일었다. 두 사람도 이 거센 바람에 휘말렸다.
"앗!"
거인은 벽에 부딪치며 나동그라지고, 배트로이드도 에어 로크에 곤두박질
했다. 쓰러진 거인의 등에 불꽃이 타올랐다. 거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히카루
는 가틀링 포로 로크를 부수었다. 히카루는 재빨리 가워크로 변신하고는 함선
밖으로 뛰쳐나갔다. 히카루는 뜻밖의 광경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니, 이게 도대체......!!"
생각지도 않았던 다이더로스 공격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크로스는 제릴 함에 공격을 가하던 오른쪽 팔을 제릴 함에서 떼었다.
그리고는 패자를 내려다보면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히카루는 전속력을 다해 마크로스를 뒤따랐다. 제릴 함은 힘없이 불기둥을
내뿜으며 산산이 흩어졌다. 벌겋게 탄 파편이 춤을 추는 듯 우주 공간을 표
류했다.
제 5 장
화성이여, 안녕!
제7화 Bye Bye Mars
아군 잡는 캠진
무인 정찰기는 화성을 향해 다가갔다. 고도를 낮추고 건조한 모래바람 속으
로 잠입했다. 하나의 건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병원을 연상케 하는 이 건물
은, 모래먼지에 견디며 거미처럼 납작하게 몸을 엎드리고 있었다. 정찰기는
복부로 부터 카메라를 내려 그 영상을 브리타이 모함으로 보냈다.
"생명 반응 없음. 에너지 반응 없음."
브리타이는 컴퓨터 분석을 들으며 스크린을 응시한 채 팔짱을 꼈다.
"....무인 기지인가....?"
"저 건축 구조는 놈들의 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아군 함대의 합류입니다."
제어실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엑세돌이 브리타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합류? 각하, 도대체 어떤 함대의...?"
"코르그 기간 함대 소속 제109 분기 함대, 제7 공간 기갑 사단"
엑세돌은 깜짝 놀라며 브리타이를 쳐다보았다.
"호, 혹시...?"
브리타이는 왼쪽 눈가에 웃음을 띄웠다.
"왠지 얼굴색이 좋지 않군."
"설마, 그럴 리가! 캠진 크라브셰라 사단에서는 ?!"
"과연 기록 참모로군"
"아, 안됩니다. 저 놈의 전적을 알고 계시잖습니까?!"
"알고 말고."
"그런데도... 그들은 모나 작전에서 술을 마시고 함내에서 난투극을 벌였는
가 하면 전원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또 이스리스 전역에서는 적 사단
을 전멸시킨 아군 두 개 사단을 파멸 상태로 몰아 넣은.. 저 놈의 별명은.."
"아군 잡는 캠진인가?"
브리타이가 말을 계속하고 있을 때, 창 밖으로 섬광이 스쳐갔다.
"앗!"
모두는 눈이 부셔서 얼굴을 가렸다.
"아군 디홀드! 너무 가깝습니다!"
연락을 받은 엑세돌은 한쪽 계기로 다가갔다. 캠진 함대는 홀드(초공간
도약)에 의해 갑자기 브리타이 모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몇 개의 홀드
광이 어둠을 가르고, 그 힘이 남은 몇 척은 브리타이 함에 충돌하며 튕겨
나갔다.
"우으!"
그 진동에 의해 엑세돌이 마루에 뒹굴었다. 캠진의 기함은 능숙하게 선회
하여 브리타이 모함과 나란히 섰다.
"야! 여기가 아니야! 만사가 이 모양이군! 난 모르겠다"
엑세돌은 일어서며 외쳤다.
모니터 스크린에 캠진의 얼굴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눈초리에 긴 머리, 자주
빛 피부에 붉은 입술이 몹시 무시무시해 보였다.
"..캠진 크라브셰라 이하 제7기갑 사단 지금 도착했습니다."
경례를 하는 그의 옆에, 또 한 사람의 부관 오이글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캠진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다.
"부딪친 것은 네 척이다. 내기에선 내가 이겼어. 술 배당은 내 몫이야!"
캠진은 작고 검은 눈을 굴리며 대들었다.
"닥쳐! 이 바보 녀석! 사령관님이 보고 계시잖아!"
"... 헤헤. 미, 미안!"
오이글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브리타이가 소리를 질렀다.
"캠진! 명심해 둬라. 경솔한 짓은 용서하지 않겠다. 자네도 6주나 기다려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헛되게 놓쳐 버릴 마음은 없겠지!?"
호통을 당한 캠진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겁니까?"
"제4 혹성에 빈 기지가 있다. 이것을 미끼로 해서 적함을 유인한다. 기지 주
변에 중력기뢰를 장치해 두고, 적함의 움직임을 봉쇄하여 생포하는 것이다. 그
러기 위해서는, 우선 적에게 파상 공격을 가하여... 진로를 제4혹성으로
가까이 한다!"
"생포...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군요."
"그렇다면, 다른 놈에게 맡겨도 괜찮아. 자네는 당분간 낮잠을 자고."
"......"
"어떻게 하겠나!? 캠진 크라브셰라!"
캠진은 혀를 찼다.
미사의 추억
피곤해진 히카루는 무거운 발을 이끌며 고개를 숙인 채 거리를 걸었다. 지
나가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멀리서도 크게 들렸다.
이 무렵, 적은 매일 계속해서 공격을 해 왔다. 그 때 마다 히카루는 출격해
적기와 싸웠다. 배틀 포트 군은 절대로 깊이까지 쫓아오진 않았다. 그대신
전리품을 갖고 놀다가 방심한 틈을 타서 갑자기 달려들었다.
히카루는 격추시킨 적의 수를 손가락으로 세어 보았다. 세면서 제릴 함 내
에서 만났던 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왜 그 때 방아쇠를 잡아당길 수 없었
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틀 포트에는 거인이 타고 있었고, 히카루
는 그 포트의 몇 대를 격추시킨 것이다.
'상대가 무기를 갖지 않은 맨몸이면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 지고 말다니...'
히카루는 좁은 포트 속을 상상해 보며, 괴로워 하는 거인의 얼굴을 떠올렸
다. 아울러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손발, 솟아오르는 선혈, 튀어나온 내장 따
위도 떠올랐다. 부서진 시신의 조각들이 히카루의 마음속에 침전하는 듯했다.
"히카루!"
맑은 목소리가 히카루의 귀를 울렸다. 민메이가 감색 세일러 복을 입고 서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히카루의 답답한 가슴 속으로 천진스레 웃는 민메이의 얼굴이 흘러들어왔
다.
"민메이... 학교는 벌써 끝났어?"
"응. 좀전에 있었던 공습 때문에 휴강하게 되었어. 벌써 익숙해졌어."
민메이는 최근에 생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주 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 방송소리는 들었겠지?"
"응, 적의 전투기를 전멸시켰다면서?"
"그건 거짓말이야. 반도 격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아군이 상당히 격추
되었어."
"그렇군..."
민메이는 눈을 내리깔았다.
"요즈음은 적의 공격이 매일 있지? 여기도 대단해, 마크로스의 진로도 상당
히 빗나간 듯하고..."
민메이는 집게손가락으로 히카루의 입을 막았다.
"그만해! 할 수 없어, 전쟁이니까. 쓰러진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라고 외치면서 히카루의 팔을 꼈다.
"차라도 한 잔 할까?"
"뭐? 아! 그래...."
머뭇거리는 히카루의 모습을 보고 민메이는 킥킥 웃었다.
민메이는 새하얀 이로 쇼트 케이크 속의 딸기를 베어 물었다. 히카루는 커피를
저으면서 민메이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히카루의 시선을 눈치챈 민메이는 입
을 가렸다.
"싫어, 그렇게 쳐다보는 건..."
"아니야..."
히카루는 당황하며 눈을 돌렸다. 그 때 히카루의 눈앞에 파란 봉투가 놓여
졌다.
"뭐야?"
히카루가 얼굴을 쳐들자 민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가리켰다.
"...?"
집어 보니, 생일파티 초대장이었다.
"헤... 다음주 생일인가...?"
"응, 꽃도 부끄러워한다는 나이!"
히카루는 즐거운 시간 속에서 피로도 잊었다. 민메이는 벌써 16살이 되는
것이다.
브릿지의 컴퓨터에 자료가 나왔다.
"함장님, 관측 자료에 자동 통신 같은 것이..."
킴이 보고했다.
"발신 지점은 화성의 사라 기지입니다."
바넷사가 말했다. 미사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화, 화성....!"
그로벌도 킴의 뒤로 다가와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사라 기지는 폐쇄된 거야. 대원은 귀환 도중 전원 반통합군의
공격을 받고 전멸했다고 들었는데..."
미사는 그로벌에게 한 발 다가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군가 기지 내에 남아 있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 사라 기지라... 대단히 큰 기지이지. 더구나
보급 물자는 그대로 남아있을테고..."
라고 말하면서 그로벌은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함의 손상은?"
"항행에는 지장 없습니다."
클로디아가 대답했다.
"지구를 향하는 코스에서 어느 정도 빗나갔지?"
"화성 방향으로 16 도입니다."
"화성에 들른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다는 셈인가? 물자 보급상태도 괜찮을
것이고... 좋다! 진로 변경, 화성으로 향한다!"
라고 말하고 나서, 그로벌은 문득 눈썹을 찡그렸다.
"...갑자기 되살아난 관측 기지라..."
미사는 창 밖을 보았다. 무수한 별빛이 미사의 눈동자로 떨어져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사는 둥근 창에 이마를 기댔다.
'...화성...그 사람의 별...'
평소의 엄겸했던 표정은 조금도 없었다. 추억에 잠긴 한 여인이 있을 뿐이
었다. 미사의 마음은 흔들리며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
속을 헤엄쳐 갔다.
천천히 흐르는 맑은 강물, 수면에 비치는 파란 하늘, 봄바람에 흩어지는 구
름 파란 강둑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빨간 고무공이 튕겨서 강
둑에 누워 있던 어떤 남자의 발꿈치에 뒹굴었다. 그 남자는 몸을 일으켜 말없
이 공을 되돌려 주었다. 죄송합니다! 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라이버 소위... 이제 화성행은 결정된 거군요."
미사가 말을 걸었다. 아직 13살인 미사는 라이버 옆에 앉아 무릎을 안고
있었다.
"그래. 오래전에 신청했는데 드디어 인가가 난 거야. 미사 아버지도 무척
애를 쓰셨지."
라이버는 잔등의 풀을 털면서 말했다. 미사는 눈치채이지 않게 살며시 무거
운 한숨을 지었다.
"그렇다면... 잘 된 거군요."
"내게는 관측 기지 업무가 적성에 맞아."
라고 말하면서 라이버는 일어섰다. 미사는 라이버의 반듯한 이목구비와 늘씬
한 몸매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눈동자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미사는 어릴
때부터 라이버를 오빠처럼 따랐지만, 요즘은 완전히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
다. 미사는 수면으로 시선을 향한 채 그 시선속 어딘가에 라이버를 의식하고
있었다.
"이젠 만날 수 없겠군요."
당돌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 화성에는 아무나 올 수 있게 될 거야."
"....."
미사는 건너편 기슭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던져진 돌로 인해 강물에는
몇 겹의 파문이 생겼다. 수면에 비친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서서히 스러져갔다. 갑자기 미사는 뒤돌아 섰다.
"그래! 나도 군인이 되어서 화성에 갈 거예요!"
"하하하! 빨리 오게 되면 좋겠는데."
라이버는 미사의 양어깨에 손을 얻으며 말했다. 미사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돌렸다.
"다녀올게. 출발은 내일 4시지만, 전송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여기서 작별
하기로 하자."
"...."
"나는 지금 숙소로 돌아간다. 너는 이대로 서서 뒤돌아보지 마, 나도 뒤돌아
보지 않을 테니까."
"......"
"괜찮지?"
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이윽고 라이버의 손이
미사에게서 떠나고 풀을 밟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미사는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었다.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고 땅거미가 짙어졌다. 미사는 별빛이 강물에 비칠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미사!!"
그로벌의 목소리에 미사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창가를 떠났다. 계속적으
로 반복되는 브릿지의 기계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미사,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가?"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정찰용 캐츠 아이를 띄워 주게."
"네!"
미사는 다시 계기를 향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캐츠 아이(고양이 눈): 내 생각엔 이름을 미국 함공모함의 조기 경보기인
E-2C 호크 아이(HAWK EYE, 매의 눈) 이름을 바꾸었다 생각함. }
배틀 포트의 기습 작전
모래 속에 배틀 포트는 스크린으로 캐츠 아이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둥근
기체에 렌즈를 부착한 정찰기는 사라기지 주변을 저공 비행하며 기지 남쪽
으로 이어지는 바위산으로 날아갔다.
"캠진 대장, 정찰기가 그 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보고를 들은 캠진의 포트는 바위 기슭에 몸을 숨겼다. 엄청난 수의 배틀
포트가 바위 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중력 기뢰의 설치 상태는?"
캠진이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네, 기지 주변의 땅 깊숙한 곳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좋아. 중력 기뢰가 적함을 포착할 때까지 현상 유지!"
"넷!"
캐츠 아이는 바위산을 정찰했다. 그러나 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고도를
높여 하늘로 사라져 갔다. 캠진의 레이더에 반응이 나타났다. 광점이 번쩍
번쩍 점멸하면서 이동했다.
"왔다!"
영상 스크린으로 바꾸자 마크로스가 나타났다. 전함은 서서히 하강하고,
하강함에 따라 화성 표면에 진동이 일어났다. 마크로스는 모래먼지 속에 착륙
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붉은 모래알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마크로스의
모습을 가렸다.
"적은 착륙했지만, 중력 유효 범위에서는 떨어져 있습니다!"
"당황하지 마라! 잠시 후에 적은 기지에 접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력
기뢰의 작동 범위에 들어가게 되고, 두 번 다시 날을 수 없게 되는 거야."
캠진은 마이크로 대답했다.
마크로스의 앞머리 부분의 해치가 열렸다. 몇 대의 운반 차량이 종렬 대형
을 이루어 사라 기지로 향했다.
"발키리 대는 흩어져서 보급로를 확보! 차량의 호위를 담당하십시오."
브릿지에서 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키리는 연달아 날아가 배트로이드
로 변신했다. 배트로이드는 두 줄로 늘어서서 마크로스와 기지를 이어 주었
다. 그 사이를 운반 차량이 달렸다.
"함장님! 물자 반입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사가 보고했다. 그로벌은 쌍안경을 눈에 대고 창 밖의 모습을 보고 있었
다.
"으음. 별 이상은 없는 듯하군. 마크로스를 조금 더 기지로 접근시키자."
"네!"
클로디아는 곧 계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엔진이 점화되고, 마크로스는 한
번 더 공중에 떴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다시 내려앉았다.
"저, 저도 기지로 가게 해 주십시오..."
미사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로벌은 의아스러운 듯이 되물었다.
"자네도....?"
"...네. 어떻게 자료가 발신되고 있는 건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미사의 시선은 이리저리 움직였다. 언제나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미사였다.
"혹시 생존해 있는 대원이 있을지도 모르고 해서..."
"그렇지만, 자네가 여기에 없으면 일을..."
미사는 얼핏 클로디아를 보았다. 클로디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제가 맡아서 해보겠습니다."
"대장님, 적함은 중력 기뢰 영역으로 들어왔는데, 중력 효과가 발휘되기
위한 에너지 레벨은 20 퍼센트!"
통신을 듣고 캠진은 싱긋 웃었다.
"좋다! 좀더 기다려 보자!"
히카루의 배트로이드는 포커와 나란히 서서 운반차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생일파티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낭만적인 상상이었
다. 양초를 둘러싸고 숙모 부부와 민메이와 함께 앉아 샴페인을 터트리고, 그
맑은 웃음소리... 이윽고 숙부와 숙모는 침실로 들어가시고, 히카루는 민메이
에게 선물을 건네는데...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히카루는 모니터 스크린을 넣고 포커에게 연락를 했다.
"저, 선배님... 다음주는 쉬고 싶은데요..."
"다음주? 우리 대원들은 모두 휴가야."
"!?"
포커는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띄웠다.
"대원들이 민메이 양으로부터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았거든. 실은 나도
그렇고. 핫핫핫!"
"하...하하! 그, 그렇습니까? 잘 됐군요."
히카루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거,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군."
히카루와 포커의 제2스크린에 클로디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 클로디아....!"
포커는 놀라며 고글을 치켜 올렸다.
"옛날 그 아줌마는요?"
히카루가 물었다.
"옛날 그 아줌마는, 마침 당신들의 발밑을 달리고 있습니다."
클로디아의 말을 들은 히카루는 배트로이드의 상체를 굽혔다. 운반차 사이를
지프차가 뚫고 지나갔다. 지프차는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기지 앞에 멈추었다.
어느 문을 열어도 깜깜하고 조용했다. 그 적막함은 미사의 고막에 들러붙어
오히려 "쏴"하고 들리는 듯했다. 미사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생활한 흔적도 없었다. 이윽고 미사는 컴퓨터실로 발을 옮겼다.
콘솔이 작동하고 있고, 계기의 불빛이 아련히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료 프린트물이 마루에 모아져 있었다. 미사는 콘솔로 다가
가서 스위치를 껐다. 미사는 자료 프린터의 분량으로 작동 기간을 계산해
보았다.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이군...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아직까지 중력 효과는 발휘되지 않는 것인가!?"
캠진은 초조하게 마이크로 외쳤다.
"에너지 축적 70퍼센트... 이제 곧 될 겁니다."
"크으! 애태우는구만!"
캠진의 전신에 투쟁을 향한 열망이 솟아올랐다. 양손을 힘껏 쥐었다. 순간,
"대장님, 이제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 밑에서 한 대의 배틀 포트가 날아올랐다.
"자식! 나도 가만히 참고 있는데....!"
캠진의 포트가 불을 뿜었다. 포탄을 맞은 포트는 바위 위에 떨어져 크게
튀어 오르며 폭발했다.
"바보같은 녀석! 어르신네 말을 안 들으며 그렇게 되는 거야!"
캠진은 혀를 찼다.
"산맥 부근에서 이상 진동 발견! 폭발 반응인 것 같습니다!"
바넷사가 보고했다. 그로벌은 함장석에서 벌떡 일어서며,
"폭발이라고!? 클로디아, 빨리 알아봐!"
"옛! 11시 방향 15 킬로미터 지점... 곧 캐츠 아이를 보내겠습니다."
다시 이륙한 캐츠 아이가 바위산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마크로스에 영상
을 보냈다. 바넷사의 손이 바쁘게 콘솔을 조작했다.
"캐츠로부터 자료 분석 완료... 투영합니다."
"으음, 전자 처리로 부탁한다."
"네!"
메인 스크린에 몇 개의 광점이 비쳤다.
"이, 이건!?"
그로벌이 소리를 질렀다.
"배틀 포트의 대부대가 아닌가!"
계기를 작동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제히 새파랗게 질렸다.
"저, 적어도 천 대 이상입니다!"
바넷사의 입술이 떨렸다. 그로벌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클로디아, 전 함대 전투 준비!"
"전 함대 전투 배치! 반복해서 말한다. 전 함대 전투 배치!"
클로디아는 마이크로 외치고 되돌아왔다.
"함장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무리다. 전투기가 너무 다르다. 상승! 이동한다!"
클로디아는 제어 스위치를 눌렀다.
"중력 제어 시스템 준비!"
브릿지의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진동은 점점 커지고, 샤미와 킴은 손을
움켜잡았다. 그런데 마크로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함은 보이지 않는 인공
중력의 그물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안 됩니다. 상승하지 않습니다!"
클로디아가 소리쳤다.
"또 고장인가!?"
클로디아는 재빨리 계기 위를 살폈다.
"아닙니다. 시스템은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땅속 깊숙이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바넷사가 레이더 스크린을 보며 말했다.
"그것이 마크로스의 중력 제어 시스템을 누르고 있는 듯합니다."
"뭐라고!?"
그로벌도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기지 주변에 빙 둘러 설치해 두었군. 함정인가! 로켓 엔진은 고장나고
중력 제어 시스템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그로벌은 정면의 유리창을 통해 산맥을 둘러 보았다. 바위산은 험한 능선을
자랑하면서 서 있을 뿐 평온하기만 했다.
배틀 포트 무리는 꼼짝도 않고 투쟁심을 되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캠진의
콕피트에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대장님, 중력 기뢰 효과 최대입니다. 적함은 부상하지 못합니다."
"자식들, 공격 개시!"
통신이 끝나기도 전에 캠진은 외쳤다. 흉악한 금속 덩어리가 연달아 날아
올랐다. 순간, 엷은 보라색의 불꽃을 받으며, 바위 표면은 불길한 그림자처럼
타고 있었다.
"적의 전투 부대, 고속 접근 중!"
바넷사가 빠르게 말했다.
"함장님! 이대로는..."
클로디아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말했다.
"으음..."
그로벌은 다시 한 번 레이더 스크린을 보며 중얼거렸다.
"...적의 함정은 지하 약 3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공격 방법은 없습니다."
킴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클로디아는 길게 한숨을 지었다.
"나르지 못한다는 건..."
배트로이드 대는 다가오는 적을 반격했다. 배틀 포트 무리는 하늘을 나르고
땅을 달리며 돌진했다. 숫자적으로 압도적이었다. 배트로이드의 반 정도는
발키리로 변신하여 하늘을 장악하고 있었다. 광선은 쉴 새 없이 엇갈리며 날
으고, 이쪽 저쪽에서 적과 아군이 불길로 변해 갔다.
"적함은 이제 날을 수 없어! 이제 슬슬 송사리들을 처치하는 거야!"
캠진은 모래위를 질주하면서 외쳤다. 그의 모습은 어딘가 포커를 닮은 듯
했다. 두 사람 다 광적인 숙명에 이끌려 전쟁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그렇지만
포커의 행동은 야수와 같지 않았다. 오히려 매끄러운 물줄기와 같다. 무도회의
귀공자처럼 적에게 다가가 순간적으로 품 속에서 단검을 빼내어 찌르는
것이다.
포커의 배트로이드와 캠진의 포트가 서로 맞붙었다. 거의 동시에 광선을
쏘았다. 배트로이드는 몸을 움츠려 피하고, 포트는 무릎의 탄력을 이용하여
공중으로 튀었다. 캠진은 적이 일어설 것을 예측하고 공중에서 빔을 발사
했다. 그런데, 배트로이드는 그대로 엎드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캠진은 뜻 밖
의 행동에 눈을 가늘게 떴다. 순간 배트로이드는 위를 향하여 몸을 뒤집더니
공격을 퍼부었다. 적의 착지를 예상한 포커의 기습이었다. 포트는 불꽃을
내뿜으며 상승했다.
"호오!"
포커는 찬탄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격렬한 전장은 1대1의 싸움을 허용
하지 않았다. 캠진과 포커는 새로운 적을 맞아, 모래먼지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가만 있어 봐. 적의 함정을 부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로벌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지면 속을...!?"
클로디아가 물었다.
"문제는 사라 기지의 반응로다. 반응로는 기지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
만약, 그것을 폭파시킨다면..."
"가능성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바넷사는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했다. 다시 뽑아져 나온 회답을 읽으며
소리쳤다.
"잘 될 것 같습니다!"
"좋다! 즉시 작전 개시! 사라 기지의 반응로는 미사에게 조작해 보라고
하지."
화성 기지에 잠입한 미사
기지 내를 탐색하고 있던 미사는 글로벌의 지령을 듣고 중얼거리며 서
있었다.
"폭파... 이 기지를...?"
"땅속에 있는 중력 제어 장치를 폭파하기 위해서..."
헬멧의 통신기에서 그로벌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자네밖에 없어. 마크로스에 있는 6만명을 위해서 해 주게."
"....."
"... 무리라면 포커에게 부탁하지."
"기다려 주십시오."
순간적으로 말을 해 버린 미사는 헬멧의 유리가 한숨으로 흐려졌다.
"...제가 하겠습니다."
브릿지의 그로벌과 클로디아는 서로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화성을 향해
가는 미사를 보고 이상한 느낌을 가졌었다. 항상 냉정하고 침착한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사는 다시 컴퓨터실을 향하여 달려갔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이 손으로... 그 사람의 기지를..."
손으로 더듬으며 몇 개의 문을 빠져나간 미사는 컴퓨터실에 도착했다.
미사는 계기판 앞에 앉아 기폭 유도를 프로그램했다. 연쇄적으로 계기가
작동하며 붉은 램프에 불이 켜졌다.
"반응재 주입 과잉, 위험합니다. 보안 시스템 올렛, 반응로는 폭주를 시작
했습니다."
컴퓨터 소리를 듣고, 미사는 한 걸음 내려갔다.
"폭발 임계까지 앞으로 15분입니다. 전원 대피! 전원 대피!"
미사는 방을 뛰쳐나갔다. 통로에는 빨간 등이 켜져 있고, 비...비...
벨이 우렸다. 미사는 잠시 멈춰 서서 눈을 감았다.
"미안해요, 라이버 소위님..."
미사는 추억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했다. 클로디아에게서 통신이 들려왔
다.
"미사 중위! 즉시 탈출해요!"
"...알았다. 오버..."
그 순간
"알파선(방사선) 유출 때문에 기지 내부 폐쇄!"
하는 소리와 함께 앞 쪽의 방호 셔터가 닫혔다.
"....!"
갑자기 미사의 뒷덜미를 죽음의 공포가 움켜잡았다. 미사는 오른쪽 통로로
빠져 전력을 다해 달렸다. 셔터가 가는 쪽마다 가로막혔다. 미사는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눈이 휘둥그래지며 미사의 시선은
한 쪽 문 위에 멈추었다. 'R I B E R'라고 씌어진 명패. 미사는 다가가 그
글씨를 손가락으로 덧그려 보았다.
"라이버...!"
두툼한 벽으로 둘러싸여진 실내는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한 쌍의 책상과
걸상,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사는 천천히 다가가 쿠션이 좋은 의자에
앉았다.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릴케의 시집이었다. 미사는 페이지를 넘기
며, 제일 뒷장의 시를 읽었다.
- 장미, 아아, 순수한 모순된 기쁨이여
이처럼 엄청난 눈동자 속에서
몇 사람이 잠 못 이룬다고 하는 -
릴케는 라이버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미사는 전신의 힘이 빠지고, 헬멧이 무겁게 느껴졌다. 등의자에 머리를 기대
고 높은 천장을 보았다. 미사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이렌 소리도 들
리지 않았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물결은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몸을 힘차게 감쌌다.
라이버가 운전하는 트럭은 해안을 따라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미사는 창
밖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저녁 해가 반 정도 수평선 너머로 숨었고,
바다는 과즙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미사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바람
에 날리고, 뒤에 실은 악기가 흔들려 은은하게 소리가 났다. 그 당시 통합군
의 군인이었던 라이버는 군악대의 일원이었다. 오래된 악기를 중학교에 기증
하러 가는 길에 라이버는 미사의 집에 들렀다. 그리고 드라이브도 할 겸해서
미사를 함께 태운 것이다.
라이버는 성실한 군인이었다. 보통 때라면 임무 중에 소녀를 동석시키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이버의 생가는 미사와 한 동네였는데,
양친은 전쟁 중 피난길에 돌아가셨다.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큰 슬픔에 잠긴
그에게는 미사의 명랑한 얼굴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사는 수평선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라이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핸들을 쥐고 있는 라이버의
표정은 밝았고, 카세트 테이프에 맞추어 흥얼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미사는
그 눈동자 깊숙한 곳에 진한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다. 미사는 기도하듯
이 앞가슴에 손을 맞대었다. 그러나 기도의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라이버를
위로하고 싶은 자기의 바램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며, 미사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트럭은 도로를 벗어나, 소나무 숲 속의 오솔길을 달렸다. 파도 소리가 가까
와지자 바다 냄새가 꽃향기처럼 풍겼다. 숲을 빠져나가자 흰 모래밭이 펼쳐졌
다. 라이버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싱긋 웃으며 그녀의 눈에 입맞춤을
했다. 저녁놀 빛이 소녀의 뺨에 어린 부끄러움을 비춰 주었다.
라이버는 차에서 내린 뒤 악기를 하나씩 해변에 늘어 놓았다, 작은 북, 심벌
즈, 트럼본, 트럼펫, 피리...
미사는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라이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풍을
받아 트럼본이 낮게 울렸다. 라이버는 트럼펫을 집어들고 물결이 일렁이는
물가에 서서 불기 시작했다.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는 바다 바람에
삼켜져 버렸다. 라이버의 양친은 돌아가시고, 낡은 악기는 해변에 죽 놓여져
있고, 미사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구출 작전
발키리 대는 퇴각 명령을 받고, 마크로스를 향해 갔다. 포커 기에 클로디아
의 보고가 들어왔다.
"포커 소령! 미사 중위의 구출을 부탁합니다!"
"으응!?"
"기지 내에 갇힌 듯한데, 대답이 없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알았다. 오버!"
포커는 뒤를 따르고 있던 히카루에게 연락을 취했다.
"히카루! 건물에 남아 있는 미사 중위를 구한다. 자네가 앞장서라!"
"네? 네가?"
"그렇다. 이번에는 인명 구조가 목적이다. 자네도 그 쪽이 마음 편할 게
야."
스크린 속의 히카루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구출할 사람이, 그....!"
"사치스런 소리는 집어치워!"
히카루는 포커의 핀잔을 듣고 재빨리 고도를 낮추었다.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포커와 위치를 바꾼 히카루는 기지 옆으로 하강해 갔다. 몇 대의 배틀 포트
가 히카루를 발견하고 포구를 겨누며 일제히 빔을 발사했다. 히카루는 능숙
하게 기체를 춤추듯이 하며, 가틀링 포를 쏘았다. 모래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배틀 포트 세대가 폭발했다.
가웍은 모래 바람 속에 착륙하자마자 배트로이드로 변신했다. 모래 길 건너
편에서 적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한 바퀴 두 바퀴, 배트로이드는 옆으로 뒹
구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포트의 파편이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렸다. 배트로이
드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적진을 빠져나갔다. 상공의 포커는 히카루의 싸우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저 녀석 솜씨 하나는 대단해."
지금 히카루에겐 마음의 방황 따위는 없다. 설령 눈앞에 맨몸의 거인이 나
타난다고 해도 주저하지 않고 공격할 수 있었다. 지금 히카루의 싸움에는 한
인간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계의 책임을 모두 지고 있는 군인인
것이다.
격렬한 진동으로 릴케의 시집이 마루에 떨어졌다. 미사는 책상에 매달렸다.
"라이버!"
반응로의 폭발을 생각하며 미사는 눈을 감고 외쳤다. 그런데 실내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붕괴는 없었다. 어렴풋하게 뜬 미사의 눈에 거대한 금 속의
손이 비쳤다. 곧 벽을 부수고 배트로이드가 들어왔다.
"자, 타시오!"
히카루는 로봇의 손을 미사에게 내밀었다. 미사는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신, 라이버의 방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돌아가세요!"
미사는 히카루를 노려보았다.
"까불지 마. 이곳에 목숨을 걸고 온 거야!"
미사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요!"
배트로이드는 미사를 움켜잡았다.
"아! 놓아요, 놔!"
미사는 악을 쓰며 발버둥쳤다.
".....?"
잠시 동안 히카루는 미사의 이상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서둘러 출발했다.
가웍으로 변신하여 상승을 시작하자 클로디아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폭발 임계 30초 전. 전 기 이탈!"
미사는 점점 멀어져 가는 사라 기지를 향하여 양손을 내밀었다.
"라이버!"
미사의 외치는 소리는 강렬한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기지는 폭발했
다. 흰 빛의 광선이 솟아오르고 섬광은 미사의 눈동자에도 어련거렸다. 미사는
그 속으로 라이버의 모습을 뒤쫓았다. 라이버의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 잔광에
이끌려 사라져 갔다. 라이버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미사는 눈을 감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뭐, 뭐라고!?"
캠진은 놀란 나머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기지의
폭발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주위의 배틀 포트를 삼키기 시작했다. 포트는
크게 회전하며 서로 부딪치면서 흩어졌다.
"이, 이런...!"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캠진은 몸서리쳤다.
중력 제어가 원상태로 되돌아간 마크로스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모래의
광란은 격렬함을 더하고 캠진은 완전히 실신한 듯했다.
"바보 같은! 크으! 빌어먹을!"
캠진은 고함을 지르면서 조종석 여기저기를 두들겼다. 가리지 않고 빔을
쏘아 댔다. 그리고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카! 그렇지만, 점점 흥미로워질 거야. 다음에는 내가 꼭 이긴다!"
캠진은 위를 바라보며 요란하게 웃었다.
미사는 우주를 날고 있는 마크로스의 갑판에 서서 핏덩이 처럼 붉은 화성
을 돌아보았다. 히카루는 가웍의 조종석에 앉은 채로 미사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히카루가 "아줌마"라고 부르던 관제 통신사의 모습은 아무 데도
없었다. 우수 어린 미사의 얼굴은 19살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미사의 그림자는 가웍의 그림자와 겹쳐진 채 꼼짝도 않았다.
제 6 장
길고 긴 생일
제8화 Longest Birthday(가장 긴 생일)
소위가 된 히카루
히카루는 작전 사령부를 향하여 서둘러 갔다. 오늘은 민메이의 생일이다.
침대에 누워서 민메이의 생일 선물을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에서 오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이치죠 히카루, 부름 받고 왔습니다!"
문을 열자, 모두가 딱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사관들
이 죽 늘어서 있었다. 히카루는 긴장하여 몸이 굳어졌다. 팔짱을 끼고 있는
포커도 긴 머리카락 사이로 히카루를 응시했다.
"여기에 앉으세요."
여성 사관이 다가가 히카루를 안내했다. 방의 한쪽 구석에는 몇 명의 젊은
이가 정렬해 있었다. 히카루와 같은 군복을 입은 신병들이다. 히카루는 그들
옆에 섰다.
"모두 모인 것 같군."
라고 말하면서, 제일 높은 상사인 대령이 일어섰다. 모두는 일제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히카루는 당황하며 가슴을 펴고 발 뒤꿈치를 모았다.
"여기에 모인 제군들은 화성에서의 전투 이래 눈부신 활약을 한 사람들 입니
다. 따라서 통합군의 티타늄 훈장을 수여한다."
대령의 말에 히카루는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곁눈질로 포커를 보자 포커는 흰 이를 드러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령은 늘어선 신병들 앞에 서서 여성 사관에게서 훈장을 받아들었다. 그리
고는 한 사람 한 사람씩 가슴에 작은 영예를 안겨 주며, 악수를 하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훈장을 받은 사람은 경례를 하고 퇴장했다.
드디어 히카루의 차례가 되었다. 히카루의 하얀 군복에 은빛의 훈장이 장식
되고, 훈장은 빛의 결정처럼 반짝였다. 히카루는 대령의 커다란 손을 힘껏
쥐고 미소를 지으며 경례를 했다. 발길을 되돌려 퇴장한 히카루는 어깨를
치켜세우고 구두소리를 내며 통로를 걸었다. 왠지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맘껏 으시대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포커가
뒤따라온 것이다.
"히카루, 잠깐 내방으로 와!"
"네..."
히카루는 순간 흥이 깨져 버렸다. 포커의 앞에서는 히카루가 군인으로서나
, 남자로서도 아직 풋내기였다.
"선배님, 용건이 뭡니까?"
포커의 방은 클로디아의 덕택에 언제나 깨끗했다. 테이블에는 비너스 모양
을 한 꽃병에 노란색 장미가 꽂혀 있었다.
"앉아."
"네."
히카루는 포커를 마주 보고 앉았다. 푹신한 소파의 둥근 쿠션이 흔들렸다.
"계급장이다."
포커는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네?"
"자네는 오늘부터 소위다."
히카루는 눈을 둥그랗게 뜨고 상자를 열었다. 마름모꼴의 계급장은 훈장과
달리 빛나진 않았다. 검은 바탕에 붉은 선이 한 줄 그어져 있을 뿐이었다.
"훈장과 바꾸어 달게. 뽐내며 걸을 필요는 없어!"
"네...."
그 때, 노크소리가 났다. 포커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들어와!"
"실례합니다!"
라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히카루, 자네의 부하다."
순간, 히카루는 얼빠진 듯한 소리를 냈다.
"부, 부하!?"
두 사람은 아주 대조적인 용모를 갖고 있었다. 한 쪽은 튼튼한 체격에 무뚝
뚝한 표정, 또 한 사람은 상냥한 영화배우 같이 매끈한 생김새였다.
포커는 무뚝뚝한 쪽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카키자키 하야오. 계급은 하사, 비행 시물레이션 370시간, 비행 시간
65시간."
계속해서 포커는 상냥한 남자를 소개했다.
"맥스밀리언 지너스. 일명 맥스, 계급은 하사 비행 시뮬레이션 320시간,
비행 시간 50시간, 그리고 성적 평가는 A."
"아, 아아!"
히카루는 머리를 긁으며 일어섰다. 멋쩍어하는 히카루에게 포커는 빙긋
웃었다.
"자네들의 소대자인 이치죠 히카루 소위다. 티타늄 훈장을 받은 분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랑을 받도록 하라."
"옛!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야오와 맥스는 함께 경례를 했다.
"아, 아니야. 나야말로..."
히카루는 어색하게 답례를 했다.
"그런데..."
히카루는 포커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배님! 전 외출을 좀 해야 되겠는데...."
"응, 그렇지. 알았다. 나도 나중에 가지."
"그럼, 먼저...."
"대장님!"
나가려고 하는 히카루를 하야오가 불러 세웠다.
"저희들이 함께 가도 괜찮으시다면...."
<대장님>이란 말이 히카루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대장!?"
히카루는 뒤돌아보며 말했다.
"네! 대장님은 대장님입니다!"
하야오는 정색을 하고 경례했다.
'... 민메이에게 내가 훌륭하게 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괜찮지.'
라고 생각하며 히카루는 빙긋이 웃었다.
"좋다! 데리고 가 주겠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야오는 눈을 둥그랗게 뜨고 히카루를 뒤따랐다. 세 사람은 번화가를
지나갔다. 원색의 네온사인이 요염하게 빛나고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좋은 곳에 데리고 갈 테니까."
히카루는 완전히 우쭐한 기분에 들떠 있었다.
"그 녀석은 노는 것밖에 모릅니다."
맥스가 말했다.
"와하하! 대장님, 알았습니다! 좋은 곳이란 저곳이죠? 와하하!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죠!"
하야오는 버릇없이 팔꿈치로 히카루를 쿡쿡 찔렀다. 히카루는 무슨 영문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하야오가 띄어가더니, 캬바레 앞에 멈춰 섰다.
"와아! 여기다 여기! 이 캬바레 개점한 지 얼마 안됐어요! 자 들어가시죠.
들어가!"
라고 말하면서 히카루와 맥스에게 손짓을 했다.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히카루는 하야오의 옆을 휙 지나쳤다.
"넷!? 틀립니까!? 기다려 주십시오, 대장님!"
하야오는 허둥지둥 히카루의 뒤를 따랐다.
맥스는 하야오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저런 곳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것 같군."
"헤헤, 군인은 인기가 있거든."
"그런 말은 한 번 정도 출격하고 난 다음에 하는 거야."
히카루의 말을 듣고, 하야오는 옷매무새를 바로 고쳤다.
"넷! 물론입니다! 저도 빨리 출격하고 싶습니다!"
앞쪽에서 대형 트럭이 다가왔다. 세 사람은 길가에 몸을 바싹 댔다. 트럭은
발키리의 잔해를 싣고 있었다. 네온 불빛을 받으며, 엉망이 된 금속 덩어리는
푸르스름한 빛을 띄며 웅크리고 있었다.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맥스가 중얼거렸다.
"내가 있는 한 절대 안전하다! 와하하!"
하야오는 호탕하게 웃었다. 히카루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넋을 놓고 있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나를 따라와!"
"네, 대장님!"
둘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응! 마음가짐이 좋군!"
히카루는 가슴을 폈다.
생일 파티
'니얀니얀'앞에서 거의 다다르자, 히카루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여깁니까!? 좋은 곳이란?"
하야오가 물었다.
"그렇다. 사양하지 말고 들어와."
히카루는 문을 열었다. 파티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몇 사람의 군인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며 담소하고 있었다. 한 쪽 구석에는 무대가 설치되
어 있고, 마을 회장이 한 속에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 히카루! 늦었네."
민메이는 번쩍이는 중국식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스커트는 한 쪽이 야간
벌어져 흰 각선미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미, 민메이.....!"
히카루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때, 하야오가 끼여들었다.
"야아! 이거 근사한데!"
민메이는 엉겁결에 가슴을 감쌌다.
"뭐, 뭐예요? 이 사람...?"
"아, 소개하지. 내 부하인..."
"카키자키 하야오 하사입니다."
히카루의 말을 받아 하야오는 꾸벅 절을 했다. 민메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하라니.... 히카루?"
"응, 내가 승진했거든."
히카루는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했다.
"그래....!?"
민메이는 반은 감격하고, 반은 의심스러운 듯 탄성을 질렀다.
히카루는 맥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소개했다.
"그리고, 다음은 지너스 하사."
"맥스밀리언 지너스입니다."
민메이는 맥스의 말쑥한 생김새에 반한 듯 바라보았다.
"와아, 멋있군요!"
"별말씀을, 저야말로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을 가까이 뵙 수 있는게... 남자
로서 이 이상의 기쁨은 없습니다."
"말 주변도 상당하군요."
민메이는 기쁜 듯이 웃었다.
"자, 여러분, 이쪽에 앉으세요."
민메이는 맥스의 팔을 끌며 안내했다. 히카루와 하야오는 갑자기 초라해진
느낌으로 뒤따라갔다. 자리에 앉은 히카루의 앞에서 민메이가 양손을 내밀었
다. 순간 히카루는 아찔함을 느꼈다. 선물을 잊고 그냥 온 것이다.
"새, 생일 축하해!"
히카루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민메이는 샐쭉해졌다.
"아, 잊으셨군요?"
"아, 아니야. 잊어 버린 게 아니야. 단지 부대에서 곧장 이 쪽으로 왔기
때문에 방에 두고 그냥 왔어. 나, 나중에 줄게."
"....."
민메이는 팔짱을 낀 채 히카루를 노려보았다.
"그럼 히카루, 노래 한 곡 불러요, 선물 대신에"
히카루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사양했다.
"아... 아니야. 나...."
"그럼 대장님을 대신해서 제가..."
맥스가 일어섰다. 민메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와! 멋있어!"
히카루는 일부러 나무 젓가락을 힘껏 잘랐다.
브릿지의 미사는 몇 장의 서류에 몰두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자기 놀라며 외쳤다.
"뭔데?"
클로디아가 물었다.
"이치죠 히카루가 소대장 이라니? 어떻게 된 거지!?"
"용감하게 화성에서 너를 구출해 냈다고 승진한 거 아니니."
"야! 그런 햇병아리가 소대장이라니...말세이군!"
미사는 한숨을 지으며 한탄했다. 순간, 레이더 스크린에 희미한 반응이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
미사는 레이더를 조작해 보았다. 이상은 전혀 없었다.
"....이상하군."
"어떻게 된 일이지?"
클로디아가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왠지 이상해. 레이더가 흔들리고 있는 듯하더니... 혹시...?"
불안한 감이 미지근한 바람처럼 두 사람의 뺨을 어루만졌다. 둘은 서로 얼굴
을 마주 보았다.
"대장님, 멋대로 출격해도 괜찮을까요?"
"이건 비행 훈련이야. 그 도중에 적과 우연히 만나는 거야. 우연히."
포트 속에서 캠진이 부하와 통신으로 교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브리타이 사령관이 화를 내실 텐데."
"내버려 둬! 이번에는 캠진의 방식대로 하는 거야. 내가 먼저 선수룰 치는
거야. 얼빠진 짓 따윈 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훌륭하게 해내겠습니다."
"좋았어! 뼈는 내가 주워 주겠다!"
"역시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은 노래도 잘하는군요."
맥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한껏 자랑하고 나서 자리에 되돌아왔다.
"저, 노래는 뭐 대단치 않습니다. 차라리 피아노라도 있었다면 귀를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었을 테지만."
"어머! 피아노도 칠 수 있어요?"
맥스의 옆에서 민메이가 말을 건넸다.
"저도 피아노를 조금 배웠어요. 쇼팽을 좋아해요."
"전 모짜르트를 좋아합니다."
히카루와 하야오는 식탁 위의 요리를 계속해서 먹어치우고 있었다.
'무얼 좋아한다고? 집어치워!'
히카루는 눈을 치켜 뜨며 맥스와 민메이를 쳐다보았다. 즐거운 듯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닮은 듯한 미남 미녀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
다. 하야오는 노는 일에 통달해 있는 듯하고, 맥스는 여성을 끌어당기는데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재미가 없었다. 히카루는 캬바레는커녕
스낵에도 들어간 적이 없고, 여자 애들한테도 인기를 끌어 본적이 없다.
"쳇!"
히카루는 투덜거리며 상어 스프를 마셨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카루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함내 방송은
계속되었다.
"전 발키리 전투 요원 집합하라! 전 발키리 전투요원 집합하라!"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실내는 긴장감이 맴돌고 군인들은 일제히 자리
에서 일어섰다. 히카루는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야오와 맥스가 그 뒤를
쫓았다.
"히카루!"
민메이가 부르는 소리에 히카루는 잠깐 멈춰 서서 손을 흔들었다.
"미안!"
연달아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는 군인들 속에서, 민메이는 먹다 남은 음식들
을 바라보았다. 향연의 아쉬움이 접시 위에서 따뜻한 김과 같이 떠돌고 있는
듯했다.
민메이는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니얀니얀' 앞에서 히카루는 택시를
잡았다. 차가 출발하자 하야오가 히카루에게 귓속말로.
"대장님! 아까 그 민메이라는 아가씨 미인이던데요. 대장님의 숨겨둔 애인
입니까?"
라고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히카루는 어이가 없었다.
"첫 출격인데, 자네는 신경을 어디에 쓰고 있나? 맥스는, 자넨 괜찮은가?"
"네,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뭐!?"
"네!?"
맥스는 눈을 껌벅였다. 히카루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아! 난 자신이 없어졌어."
순간 차가 급커브를 틀었다. 히카루는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이쿠!"
캠진의 후퇴
발진 태세를 갖춘 히카루의 발키리에 미사의 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건사이트1. 버밀리언 소대는 제4블럭의 요격으로 바꿔 주십시오!"
"알았다, 오버!"
히카루는 모니터 스크린으로 맥스와 하야오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간다! 맥스, 하야오 따라와!"
얼음판을 미끄러지듯이 히카루의 발키리는 활주로를 떠났다. 곡선을 그리며
우주에 뜬 발키리 분사염은, 히카루의 이륙 라인을 따라 어둠 속에 푸른 줄을
그었다. 하야오와 맥스의 눈에 비춰지는 그 모습은 유명한 화가가 그린 한
줄의 선처럼 힘이 있는 듯했다. 히카루의 멋진 비행은 두 사람의 대담한 신경
에 야간의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는 투지로 메울 수밖에 없는 것이
다. 두 사람은 전속력을 다해 히카루를 뒤쫓았다.
"우리들은 어디를 지키는 겁니까?"
하야오가 물었다.
"최종 방위인 제4블럭이다."
히카루가 대답했다.
"네? 맨 끝입니까? 저쪽에선 이미 화려하게 해치우는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원래 나도 저쪽과 같은 조였다!"
히카루는 저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선두소대와 캠진 일당은, 이미 전투를
시작했다. 격파할 때의 불꽃이 마치 오렌지 빛깔과 같았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별세계의 축제를 멋지게 장식하는 화롯불처럼 보였다. 외진 시골에서
여름이 끝날 무렵,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 같이도 보였다. 배틀 포트가 다가왔
다.
"왔다! 왔습니다! 카키자키 하야오, 목표 확인!"
"하야오, 함부로 나가지 마라!"
그렇지만 하야오의 발키리는 히카루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 반격을 가했
다. 한 대의 포트가 하야오의 뒤를 따랐다. 하야오는 등이 서늘해짐을 느꼈
다.
"우아아앗! 대, 대장님! 도와주십시오!"
"바보 자식! 그래서 혼자서는 나가지 말라고 한 거야."
히카루는 U턴해서 돌아오는 하야오와 엇갈려 갔다. 잇달아 공격해오는
포트 속에서, 히카루는 순간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이것을 맞은 포트는 균형
을 잃었다. 이윽고 포트는 폭발을 했는데, 히카루의 발키리는 이미 멀리
날아간 뒤였다.
히카루의 눈에 비치는 파괴의 불빛은 희미하고 고요하게 느껴졌다. 초고속
의 전쟁 속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적에게 상처를 입히고 승자가
사라진 뒤, 드디어 패자는 쓰러지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승자는 자기가
적에게 입힌 상처가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맥스의 발키리는 세 대의 포트에 포위 당한 채 배트로이드로 변신해 있었
다. 배트로이드는 일제히 발사된 빔을 휙휙 잘 피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춤추는 피에로처럼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매, 맥스, 뭐하고 있는 거야!?"
"이쪽이 훨씬 편합니다."
고함치는 히카루에게 맥스가 대답했다. 배트로이드는 가틀링 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뒤를 향해 쏘았다. 두 번 연거푸 쏘자 두 대의 포트가 순간 흩어졌
다. 맥스는 스스로도 의외라는 듯이 좋아했다.
"헤에! 맞았다!"
불타고 있는 포트의 옆에서 남은 적이 접근해 왔다.
"좋다! 다시 한 발."
방향을 바꾸어 공격하자마자 또 명중했다.
"과연....!"
히카루는 아연해 하며 중얼거렸다.
"이치죠 히카루!"
깜짝 놀란 히카루는 스크린을 보았다. 미사가 쏘아보고 있었다
"속도가 떨어지고 있잖아! 이젠 소대장이 되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죠? 소대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잖아요!"
하야오는 다른 방향에서 마크로스로 접근하고 있는 포트 군을 발견했다.
"적, 발견!"
보고를 함과 동시에 하야오는 공격하며 돌진했다. 그러나 전혀 맞지 않았
다.
"하야오! 쓸데없이 탄을 사용해선 안된다!"
히카루가 말하자 대답한 것은 맥스였다.
"쓸데없는 탄이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배트로이드의 카틀링 포를 조작했다.
"맞았습니다. 대장님!"
캠진의 포트를 선두로 적은 계속해서 마크로스의 갑판 위에 내렸다.
"여기까지 왔으면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이지. 맘대로 폭파하라!"
캠진의 붉은 입술이 잔인하게 일그러졌다. 엄청난 숫자의 포트가 마크로스
를 덮쳤다. 히카루와 두 부하는 마크로스를 향해 하강했다. 배트로이드로 변신
을 한 하야오는 매우 긴장되었다.
"전투기라면 문제없다. 자, 누구든지 덤벼라!"
그 순간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하, 하야오!"
히카루가 외쳤다.
"어, 어째든 살아 남을 겁니다!"
하야오는 콕피트에서 이리저리 뒹굴었지만 상처는 없었다. 안심한 히카루의
옆에서 캠진의 포트가 달려들었다. 히카루의 배트로이드는 재빨리 몸을 낮추
었다. 가틀링 포가 불을 뿜었다. 포트가 점프하며 빔을 발사하자, 배트로이드
의 왼쪽 팔이 튕겨나갔다.
"멈추었다!"
포트는 양다리를 모으고 드롭킥의 요령으로 배트로이드를 겨냥했다.
"!"
순간, 히카루는 포트의 왼쪽 팔을 때려 부수고 몸을 피했다. 한쪽 팔만 남은
포트는 능숙하게 착지를 하며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순간, 캠진은
화성에서의 전투를 생각했다. 난전 속에서 맞부딪쳤던 강적 포커를 생각해 낸
것이다.
"다른 놈이군..."
마주 보고 있는 적을 확인한 캠진은 중얼거렸다.
"놈이 아니야, 놈처럼 완숙한 솜씨가 아니야. 여유도 없고..."
배트로이든 포통을 옆으로 향한 채 정지했다. 히카루의 눈은 깜빡이지도
않았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캠진은 거만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번엔 내가 승리한다!"
브리타이는 함내의 스크린으로 예정에 없던 전투 장면을 보고 있었다.
"캠진 녀석, 생각했던 대로다. 귀엽게도 훈련이라고....? 이상하다고 생각
했다!"
"돌아오게 할까요?"
엑세돌이 물었다.
"당연하다!"
"그러나 의외로 잘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젠트러디 규율에 어긋난다! 광역 광선 통신 준비!"
"광역 광선 통신!? 이건 너무 화려한..."
"통신이 들리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다. 즉시 귀환 명령이다! 거부
하면 송환하겠다고 말해줘라!"
브리타이의 모함의 앞머리 부분에 빛이 집중했다. 붉은 불빛은 하얗게 번쩍
거리며 팽창하더니 마크로스를 향해 발사되었다. 캠진의 포트와 히카루의
배트로이드도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
히카루는 전장에 비쳐진 빛의 입자를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이 빛은
광역 광선 통신으로, 즉시 귀환하라는 신호다. 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이거! 쳇! 이제 한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사령관 녀석! 에에,
귀환이다!"
캠진의 포트가 휙 우주에 떴다. 히카루는 숨을 몰아쉬며 몸의 힘을 뺐다.
브릿지의 창으로 퇴각하는 포트 군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요? 저렇게 유리하게 싸움을 전개하다가..."
미사가 말했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생겼나 보지. 어쨌든 다행이다."
그로벌은 털썩 함장석에 주저 앉았다.
"네...."
미사는 끄덕이면서 서서히 작아져 가는 포트 군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수의
포트 불빛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서로 뒤엉키며 멀어져 갔다. 반딧불처럼
보였다. 이윽고 난무하던 불빛은 사라지고,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암흑이 되었다.
생일 선물
거리는 고요했다. 히카루는 발소리를 내며 뛰어갔다. 집집마다 상점마다
문들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귀금속집 앞에 와서 히카루는 쇼윈도우에 얼굴을
대었다. 반지나 목걸이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폐점..."
히카루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전쟁은 일단 끝났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생일이 지나기 전에 선물을 전해
주고 싶었다. 어느덧 '니얀니얀'의 앞에 다다랐다. 3층 민메이의 방만이 불이
켜진 채 밤에서 낮으로 이어주는 작은 출구처럼 보였다. 히카루는 민메이를
부를까 말까 망설였다. 불빛 속에 소녀의 그림자가 일어섰다. 소녀는 이쪽을
본 듯했다. 민메이는 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히카루! 뭐하고 있어?"
어디선가 향긋한 풀냄새가 풍겨왔다. 스쳐 지나가는 천사의 향기를 맡은
듯, 히카루는 그 향기에 취했다.
"...민메이, 오늘은 정말 미안했어..."
"할 수 없잖아. 자기는 군인인걸."
"그래서... 선물이라도..."
히카루는 주머니 속에서 꽉 움켜쥐고 있던 작은 상자를 생각해 내고
꺼냈다. 훈장이 들어 있는 상자이다.
"어머, 잊지 않고 갖고 왔네! 고마워!"
민메이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
히카루는 말없이 투명한 상자 속으로 비치는 은빛 훈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게 선물이야!"
고개를 들고 말하며, 히카루는 상자를 위로 향해 던졌다. 민메이는 그것을
받아 뚜껑을 열고 손바닥에 훈장을 올려 놓았다. 훈장의 반사광은 민메이의
눈 속에 별처럼 빛났다.
"와, 예쁘다! 정말 주는 거야?"
"응!"
"고마워, 히카루!"
민메이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민메이, 누가 왔니!?"
숙부의 외치는 소리를 들은 히카루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
소곤 이야기했다.
"그럼 민메이, 생일 축하해!"
"고마워!"
민메이는 손을 흔들었다. 히카루는 발길을 돌렸다. 민메이는 훈장을 뺨에
대고, 히카루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엷은 미소를 지었다.
'히카루는 내게 선물을 전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다치지도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내가 히카루를 지켜 준 셈이지.'
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거만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히카루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나는 민메이에게 웃는 얼굴을 선사할 수가 있었다!'
히카루는 공원을 지나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공원 안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늘어서 있고, 숨막힐 듯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제 7 장
푸른 일기장
제9화 Miss Macross(미스 마크로스)
히카루의 일기
(실제 원작은 이런 일기 형식이 아니다. 시간 순서도 조금 바뀌었다.)
0월 0일
지금 나는 숙소의 내 방에서 이것을 쓰고 있다. 일기 따위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정말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써두고 싶다.
사건의 시초는 민메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숙소의 방송소리를 듣고
달려가 로비의 전화를 받아 보니 민메이는,
"미안해, 도시락을 가져갈 수 없게 되었어."
라고 했다.
오늘은 내가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프로메테우스의 당직을 보는 날이다.
그래서 민메이가 도시락을 가져와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 약속을 한 것이
3일 전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무슨 일이 있어?"
"응, 이제부터 미스 마크로스에 나가."
나는 깜짝 놀랐다. 미스 마크로스! 그런 쓸데없는 것에 민메이가 출전하
다니! 마크로스 함내에 방송국이 생겨서, 그 기념으로 개최되는 미인 선발
대회가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런 곳에 출전해야 하는 거지?"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마을 회장이 멋대로 응모해 놓았다고 민메이는
말했지만, 사실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원래 그 애는 남의 눈에
띄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니까, 살며시 자기가 신청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
든, 이미 출전은 정해졌다고 민메이는 말했다.
"응모 총수는 400명이었고, 서류 심사에서 28명으로 결정되었는데 그 중
에 나도 포함되었어."
나는 덜커덕 전화를 끊었다.
당직 시간이 되어서 나는 프로메테우스로 갔다. 마침 선발대회가 시작되
는 시간이었다. 대기실에서 혼자 홀짝거리며 차를 마시고 있자니, 은근히
걱정이 되고 민메이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적의 공격도 없을
것 같고, 좀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브리타이 사령관에의 보고서 - A C T 1
·보고자
와레라
로리
콘더
·기함 내에서 적함 내의 통신을 일부 수신.
·그 내용
"영예의 왕관을 차지할 자가 누군가? 미스 마크로스 콘테스트 우리들의
여왕을 뽑는 것은 바로 당신이"
·의미 불명
·기함 소속
·제8 강행 정찰대 099 승무원 3명 (와레라, 로리, 콘더) - 적함으로 향한
다.
·임무
적함 함내 통신의 명확한 수신 및 기록.
·코드 네임
"청풍(BLUE WIND, 파란바람)"
미스 마크로스 대회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선발 대회장으로 향했다. 일을 내팽개쳐서 조
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회장에 도착한 후부터는 싹 잊어 버렸다. 관
객석은 초만원이고, TV 카메라도 몇 대 보였다. 방송국이 생기고 처음 방송
되는 프로가 미스 마크로스인 셈이다. 나는 맨 뒤의 통로에 서서 쌍안경을
꺼내어 보았다. 어두운 무대에는 스포트 라이트가 비추이고 그 속에 여자애
가 한 사람 서 있었다. 민메이는 아니었다. 그 애보다는 민메이가 훨씬 더
예쁘다. 심사위원들이 그 애에게 질문을 했다. 놀라운 일은 심사 위원석에
그로벌 함장이 의젓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태평한 사람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민메이의 순서는 벌써 끝난 것일까, 이제부터일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3일 전에 민메이를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마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민메이를 카페로 불러내서 함께 영화라도 보려고 생각했다.
"웬일이야? 갑자기 이런 곳으로 나오라고 하고."
약속 장소에 나온 민메이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화 보러 가지 않을래?"
"지금?"
"응."
"안 돼, 이제부터 가게가 바빠질 시간인걸."
"아, 그런가? 나는 요즘 시간 감각이 둔해져서...."
"토요일은 내가 안 돼. 당직으로 못박혀 있거든."
"소위가 되니까 바쁘구나. 좋아, 그럼 내가 도시락을 가져다 줄께."
"응!?"
"아, 일반인은 못 들어가나?"
"아, 아니, 그렇진 않아. 내가 어떻게 해보지...?"
"몇 사람분!?"
"2인분이면 돼. 나 혼자니까."
민메이는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나는 갑자기 창피하게 느껴져서 창 밖
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길거리의 표정이 어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앗!"
나는 무심결에 소리를 질렀다.
"하, 하늘...!"
거리의 천장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몰랐어? 군인들이 만들었어. 아침 저녁으로 하늘이 보여."
나도 군인이지만, 그런 말은 처음 듣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좀 지나치다."
내가 말하자, 민메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머, 멋있지 않아? 매일 아름다운 황혼을 볼 수 있다는 게."
민메이는 턱을 괴었다. 파란 하늘이 서서히 오렌지 빛으로 바뀌며 저녁놀
이 되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민메이의 옆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
문이었다. 정말로 민메이는 아름다왔다. 흰 뺨이랑 커다란 눈이랑 긴 머리
가 반짝반짝 금빛으로 빛나고......정말 너무도 아름다왔다.
민메이의 순서가 왔다. 무대에 선 민메이는 생일파티 때와 같이 중국식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정말 멋졌다.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기도 하고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떠들지 마세요! 조용히 하세요!"
하며 사회자가 민메이를 소개했다.
"요코하마에서 놀러왔다가 이 큰 혼란에 휘말리게 된 린 민메이 양! 지난
주 16회 생일을 맞았던 귀여운 아가씨입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끝나자,
"아니, 사진보다 훨씬 귀여운데요. 애인 잇습니까?"
라고 사회자가 민메이에게 마이크를 댔다. 나는 긴장하면서 대답을 기다렸
다.
"아니요......애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어요......친구들이라면 많이
있지만...."
친구! 실망! 바보!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건가?
"외동딸이라 지요? 역시 남자들이 가까이 가기가 어렵겠군요?"
"아니요, 오빠처럼 지내는 사촌이 있어요."
처음으로 알았다. 민메이의 사촌......오빠 같다고 하니, 퍽 친한 사이임
에 틀림없다. 민메이에게는 그런 느낌은 없어도, 상대방은 민메이를 좋아하
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민메이는 어딘가 어안이 벙벙한 느낌을 주며 틈이 있
는 듯해서, 남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점이 있다. 곤란한 녀석이군. 한 대 먹
여줄까? 그렇다.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
고 있을 때, 함내 방송으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치죠 히카루 소위! 빨리 브릿지로 전화해 주십시오!"
'어이쿠! 무슨 일일까?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라고 생각했지만, 불평을 할 입장이 아니었다. 어쨌든 업무에 소홀했기 때
문이다. 그래서 나는 회장을 나와서 급히 전화박스로 들어갔다. 역시 예상
대로 미사 아줌마가 나왔다.
"지금 대기 중이어야 할 군인이 어딜 돌아다니고 있나? 적기가 이곳까지
왔다!"
미사는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밥 먹고 있었어!"
나도 외쳐 댔다.
"알았으니까 빨리 프로메테우스로 돌아가도록! 출격이야!"
"아아, 알았다!"
브리타이 사령관에의 보고서 - A C T 2
·제8 강행 정찰대 099. 적함에 접근.
·적함 내 전파를 일부 수신. 동전파를 영상화한다.
·영상 내용
적함 내에 있어서 한 회장의 무대에 함께 선 혹성인 (성별 - 여)
동 혹성인에게 마이크 같은 것을 대고 있는 혹성인 (성별 - 남)
·적함 내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같은 놀랄 만한 사실은, 우리 젠트러디 군의 생활 양식과 전혀 다른
것이다.
·g42시 K3분, 레이더에 반응.
적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로 확인.
·그 수는 1대.
히카루의 질투
그래서 나는 급히 프로메테우스로 돌아와 발키리에 올라탔다. 어쨌든
발진을 하고 브릿지로 연락을 했다.
"발키리 1, 지금 발진했습니다."
{(여기서 히카루가 타고 나가는 발키리는 마크로스 최초로 나오는 무장과
프로텍터(장갑)가 강화된 VF-1J형의 다른 형식인 아머드 발키리이다)}
그러자 스크린에 미사의 무서운 얼굴이 나타났다.
"이치죠 히카루 소위! 오늘 일은 기록으로 남겨 두겠다!"
"마음대로 해라. 그것보다 적의 위치 정도는 알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
"그게 무리다. 군용 통신이 방해를 받고 있는 듯......."
아줌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인지 불행인지 스크린이 지......하며
흔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선발 대회장의 모습이 비쳤다. 마크로스 내의 TV
전파와 혼선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엉겁결에 얼굴을 내밀어 보았지만, 무
대에는 사회자만 서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제 2 차 심사로 들어가겠습니다. 제 2 차 심사는 수영복
심사가 되겠습니다."
화면은 다시 아줌마의 얼굴로 바뀌었다. 아줌마는 말했다.
"영상을 안정시켜 봐라. 채널 D3로 바꾸어서."
나는 한숨을 쉬며 시키는 데로 했다.
"음파 유도는 무리이니까, 레이저 유도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마음대로!"
아줌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조금도 안정되지 않으니."
당연하지! 이게 안정될 수 있겠는가! 이제 곧 수영복 심사가 시작되는데.
나는 슬며시 채널을 비틀면서 얼간이처럼 중얼거렸다.
"어, 이상하네!? 소음이 들리고 있어, 상태가 나빠요."
"에!?"
깜짝 놀라는 아줌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녕, 미사 중위님!"
나는 다시 화면을 선발 대회장으로 맞추었다. 비키니 차림의 여자 애들이
뽐내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역시 아름다왔다. 그런데 얼굴들은 표정이
없고, 화장이 너무 짙었다. 역시 여자 애들은 청초한 맛이 있어야지, 민메이
처럼. 다음에 나온 여자 애는 아주 글래머였다. 작은 수영복이 꽉 낀 듯해
서, 나는 좀더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만 내 취향보다는 너무 글래머였다.
왠지 모르게 압도되는 느낌이다. 역시 여자 애는 보통 체구에 좀 마른 듯한
정도가 좋다. 민메이처럼.
그런 식으로 나는 스크린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삐삐삐......하는 경
보기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리가 갑자기 커져서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
을 때는, 이미 눈앞에 적기가 다가와 있었다. 나는 당황하며 기체를 돌려
충돌을 피했다. 적은 정찰기 같았지만, 발키리에 비하면 대단히 컸다. 적
은 내 뒤로 돌아가 미사일을 세 발 발사했다. 아깝다. U 턴해서 되받아 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B 레버를 내렸다. 배트로이드로 변신함과
동시에 몸을 휙 돌려 뒤를 향했다. 가틀링 포를 쏘자 미사일이 폭발했다.
두 대째의 미사일이 폭발했을 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작내용: 실제 원작은 아머드 발키리이므로 변형이 안된다. 즉 원래
배트로이드 형태다. 그리고 히카루가 미사일 공격을 받은 시점은 이때가
아니고 바로 밑은 민메이 등장 장면에서 이다.}
"엔트리 넘버 12, 린 민메이 양!"
반사적으로 내 눈은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파란 수영복(원피스였다)을 입
은 민메이를 보면서 나는 파이어 스위치를 눌렀다. 그것이 맞을 리가 없었
다. 미사일이 가까이 오므로 나는 또 한 번 공격했다. 이번에는 명중했지
만, 미사일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배트로이드가 크게 흔
들렸다.
"와앗!"
나의 비명소리와 함께,
"꺄아!"
하는 민메이의 짧은 비명이 겹쳤다. 민메이는 무대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었
다. 관객의 웃음소리, 오히려 귀엽게 봐 주는 듯했다. 적기가 다가왔다. 나
는 배트로이드를 위로 향하여 눕게 한 채로 떠 있게 했다. 좀전의 폭발에
의해 조종이 불가능해진 것처럼 가장하고 있었다. 민메이는 일어서서 낼름
혀를 내밀고 종종걸음으로 뛰어들어갔다.
{추가설명: 민메이가 넘어진 이유는 자신의 하이힐 하나의 뒷굽이 부러졌기
때문. 이 편은 여러모로 원작의 분위기나 상황을 제대로 못 살렸다. 민메이가
본선에 올라간 이유(실수 했기 때문)등등, 그리고 뒷부분의 일들...}
적기는 천천히 다가왔다. 내 예측대로 배트로이드를 포획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적을 유인한 후 재빨리 상체를 일으켜 파이어 스위치를
눌렀다. 명중! 앞 부분에서 굉장한 폭발이 일었다. 나는 뚫린 구멍으로 적
함 내로 침입했다. 그곳은 콕피트와 같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벌써 탈출
한 것일까? 과연 거인 정찰기답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세 개의 좌석
은 배트로이드가 앉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스크린의 크기도 상당히 컸고,
선발회장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자, 드디어 마지막 순간입니다! 심사위원들의 표를 종합하고 있습니다!
영예의 미스 마크로스의 왕관은 누구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인가!"
{추가설명: 예선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하지만, 본선에 오른5명은 그날 관객
들의 투표(자신의 앞에 놓인 스위치를 누름으로 표 집결)로 결정한다.
여기서 민메이가 본선에 오른 이유는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은 '쟈미스
메린'이라는 할리우드 스타가 자신의 인기를 더 확고하게 위해 내 생각엔
미리 주최측과 짜고 예선에서 점수를 낮게 받은 여자 위주로 본선에 오르게
했다고 생각됨. 즉 민메이는 예선에서 실수 했기 때문에 본선 진출.
그리고 본선에서 관객들의 투표에서 민메이가 여왕으로...
잡담: 미사 팬도 있는데... 미사가 나갔으면 본선까지 올라갔을까?
그로벌 함장이 심사위원이고 미모는... 결론적으로 본선에 올라가더라도
정나미 떨어지는 그 미사의 무뚝뚝한 표정과 그 동안 해온 일로(파일럿
한 테는 인기 없죠)보아 미스 마크로스는 되지 못했을 거다. ^_^}
그 때, 뒤에서 기계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금속의 문이 눈에 띄었다.
내가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남과 동시에 적함은 내 발 밑에서 폭발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민메이가 웃고 있었다. 민메이는 번쩍이는 가운을 입고 왕관
을 쓰고 있었다. '나는 죽은 것인가? 저건 민메이가 아니고 민메이를 닮은
천사임에 틀림없어. 천사의 마음에 들려면 꿇어 엎드려야 할까?'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점점 내 의식은 회복되었다. 콕피트 안의 계기 불빛과 부딪
친 어깨의 통증, 그리고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현실로 되돌아오게 했다. 사
회자가 말했다.
"미스 마크로스, 린 민메이 양의 머리에서 빛나고 있는 왕관은 우리들의
여왕의 상징이고......."
미스 마크로스...... 여왕의 상징......결국 민메이가 우승을 하고 만 것
이다! 관객의 박수소리는 그치지 않고 점점 커질 뿐이었다. 스크린에 민메
이가 클로즈 업 되었다. 민메이는 환하게 웃었지만, 그것을 관객들을 충분
히 의식한 웃음이었다.
"왜, 저렇게 웃어야 하는 걸까?"
나는 화를 내며 그 순간 민메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회자는
민메이에게 마이크를 대고 소감을 물었다. 민메이는 기쁜 듯이 떠들어 댔
다. 나는 그것을 거의 듣지 않았다. 갑자기 쓸쓸함을 느꼈다. 배트로이드는
고장이 나서 우주에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구조 신호를 보내고 구조
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가설명: 이 편 마지막 장면에서 해설자의 말- 민메이의 꿈이 이루어 졌
다. 그러나 히카루에게는 그것이 아주 슬픈 일 같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길은
자신이 끼여들 수 없는 다른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브리타이 사령관에의 보고서 - A C T 3
·적기를 향해 미사일 세 발 발사.
·적기 로보트형으로 변신, 미사일을 반격하다가 조종 고장을 일으킨 듯.
적기를 포획하려고 한다.
·적기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아 제1 에너지와 탱크 및 콕피트의 일부 손
상.
·폭발 위험이 크기 때문에 캡슐에서 탈출.
·제8 강행 정찰대 099호 폭발.
·또한 전투 중에 적함 내의 전파를 완전히 수신, 동전파를 영상화한다.
·영상 내용
몸에 달라붙은 작은 의복을 입은 사람들 (성별 - 전원 여)
·추측
신형 전투복의 실험이라고 생각된다. (와레라)
저런 화려한 옷이 전투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수신한 영상을
보고 약물과는 다른 자극을 느꼈다.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이상하다. (로리)
로리와 같다. (콘더)
제 8 장
대탈출
제10화 Blind Game
이상한 오해
"그러니까, 그 천이 모자라서......."
와레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뭉클뭉클 하는,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로리가 말했다.
"심장이......뜨거워지면서......쿡쿡 쑤시는 듯한......."
옆에 있던 콘더도 한 마디 했다. 미스 마크로스 선발대회를 본 세 사람은
그 상황을 브리타이에게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적의 새로운 무기와 관련이 있을지도......."
와레라의 말에 로리가 반론했다.
"아니야, 저건 새로운 무기 정도로 간단한 게 아니야."
"그러면, 뭐야?"
"그건......."
그러나 그것은 로리도 알 수 없었다. 로리는 다시 수신했던 영상을 생각
해 보았다. 조그만 헝겊 조각을 걸친 여자 애였다. 역시 이상한 자극 같은
것을 느꼈다. 세 사람 앞에서 듣고 있던 브리타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군."
"녹음기를 깨뜨린 것이 큰 낭패야."
옆에 묵묵히 서 있던 엑세돌이 말했다.
"으음, 다시 정보 수집기를 띄울 건가?"
엑세돌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기록 참모로서는 견본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포로가?"
"네."
두 사람이 의논하고 있는 동안 와레라와 로리, 그리고 콘더는 옥신각신
말다툼을 했다.
"그건 새로운 무기를 결정하고 있었던 거야."
"아니야, 아니야!"
"거짓말 하지 마!"
"뭐?"
와레라가 로리에게 주먹질을 했다. 두 사람을 말리던 콘더도 한 대 얻어
맞고 맞붙어 싸웠다.
"뭐라고 했지?"
"닥쳐!"
브리타이는 너무 어이가 없는 듯 세 사람을 쏘아보고 소리쳤다.
"그만두지 못해! 바보 같은 녀석들!"
세 사람은 서로 때리던 손을 멈추었다.
"먼저 와레라놈이 시작을 했......."
로리가 말했다.
"그건 필시 적의 새로운 무기입니다!"
와레라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허튼 소리 하지 마!"
"뭐야!"
브리타이는 함장석의 팔걸이를 치며 소리쳤다.
"적당히 해두지 못하겠나! 너희들 임무는 끝났어! 빨리 돌아가!"
"......넷!"
세 사람은 일제히 경례를 하고서, 다시 불만스러운 표정들을 지었다. 에
키세들은 브리타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건에 관해서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함 내의 사기에도 영향
이 미칠 것 같습니다만......."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좀 난폭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난폭하다고?"
브리타이는 눈썹을 치켜 뜨며 말했다.
"하지만 흥미로울 수도 있는......."
젠트러디 군의 작전
공원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두 패로 갈라져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적이 기습을 당하거나, 아군이 기습을 당하거나, 아이들의 얼굴은
그저 티없이 맑기만 했다. 히카루는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연......우주선 안에서 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전쟁이란 멀리 있는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로군.......'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즐겁게 전쟁놀이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지켜주는 것은 군인이다. 히카루는 순간, 자신
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히카루 바로 앞에서 세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얼굴을 들어 보니, 브릿지
의 세 아가씨들인 샤미, 킴, 바넷사였다.
"누굴 기다리고 있지?"
샤미가 물었다.
"누구라니......?"
우물거리는 히카루에게,
"흥, 데이트가 있는 게로군."
킴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저......그게 ...."
"오래 기다렸나 보지?"
바넷사가 물었다.
"아니, 지금 막 왔어."
샤미가 얼굴을 가까이 대며 물었다.
"아! 그 여자 미인?"
"......저어......."
"우리들보다?"
히카루는 세 사람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며 얼버무렸다.
"비, 비슷할거야......."
샤미는 정색을 하고 끄덕였다.
"그럼, 대단한 미인이로군."
킴과 바넷사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우습군!"
"이치죠 히카루 씨! 이치죠 히카루 씨!"
갑자기 방송소리가 들려왔다.
"이치죠 히카루 씨! 이치죠 히카루 씨!"
히카루는 전화 로보트를 찾았다. 한 발뿐인 전화 로보트는 카메라 로보트처
럼 자동으로 움직인다. 용건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호출 서비
스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이, 이쪽이야!"
히카루는 손을 흔들었다. 로보트는 히카루 옆에 와서 멈춰 섰다.
"이치죠 히카루 씨입니까?"
"응."
히카루는 수화기를 들었다. 스크린에 민메이의 얼굴이 비쳤다.
"히카루, 미안!"
민메이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약속은 1시라더니......?"
"노래 연습이 길어지는 바람에 못 갈 것 같아."
"노래? 그런 것도 해야 되는 거야?"
히카루는 입이 뾰루퉁해졌다. 샤미가 킴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애, 어디서 본 적 없어?"
"어머, 저 애 미스 마크로스에서 우승한......."
민메이는 손에 들고 있던 악보를 들어 보였다.
"요전 선발대회 심사위원에 작곡가 켄트후라이어 선생님이 계셨어. 나에
게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어."
"......."
"그러면서 노래 지도를 받으라고......."
"그럼, 지금 연습실에서 전화하는 거야?"
"응, 저 분이 그 선생님......."
라고 말하면서 민메이는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등 뒤에 피아노가 있고, 피
아노 앞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거 잘 됐군."
히카루는 억지로 웃었다.
"응, 고마워."
민메이의 눈동자는 보통때와는 달리 빛나고 있는 듯했다.
"민메이 양, 이제 그만 시작할까?"
그 남자가 말을 걸자 민메이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럼, 히카루! 또 전화할께."
전화가 끊어지고 영상이 사라졌다.
"......."
히카루는 수화기를 든 채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민메이가 자기
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민메이에게는 날개가 있는
게 아닐까? 히카루가 아무리 팔을 뻗쳐도 민메이는 맑은 미소를 띄우며 훨훨
날아갔다. 민메이가 날개를 접는 곳은 도대체 어딜까? 전쟁놀이를 하던 아
이들 중의 한 아이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죽는 시늉을 했다. 샤미와 킴
과 바넷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걸어갔다.
"미안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미안합니다. 수화기를......."
전화 로보트는 히카루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통합 총사령부에서 답신이 들어왔습니다."
클로디아가 보고했다.
"이봐, 미사 양. 스피커를 틀어 봐."
그로벌은 함장석에서 일어섰다. 접근해 있는 젠트러디 함대를 따돌리는
것을 단념한 그로벌은 전파 관제를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적의 전파 방해
도 받지 않고 통합 총사령부에 통신을 보내는 것을 성공시켰다.
적을 끌고서 귀환한다면 지구에 커다란 재해를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과
연 적을 물리칠 만한 힘이 지구에 있을까? 그 경우, 어떤 지점에 착륙하면
좋을까? 그로벌은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었다.
"통합 총사령부 발, 마크로스 수신하라!"
여자 목소리에 이어서 답신이 흘러나왔다.
"그로벌 함장, 유감스럽지만 적이 도청할 것에 대비해서 우리들의 지원
체제를 가르쳐 줄 수가 없네. 단, 서둘러 전력을 정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만 말해 두겠네. 다행스럽게도, 아니 자네들에겐 귀찮겠지만 적은 마크로
스만 따라오고 있어. 이제까지 오랜 시일에 걸쳐서 적을 격퇴시킨 경위로
봐서, 자네가 말하는 만큼의 극단적인 전력 차는 없다고 판단한다. 가능한
한 적의 전력 소모를 꾀하고 싶다. 이상!"
"뭐야, 이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로벌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없다. 요컨대 시간을 벌자는 얘기겠지......."
"함장님, 왜 적이 이번엔 통신 방해를 하지 않았을까요?"
미사가 물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집요하게 방해를 하더니......."
"우리들에 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고 싶은 거겠지."
"우리들에 관한 정보......?"
미사가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레이더 스크린에 반응이 나타났다. 미사
의 몸이 굳어졌다.
"......적, 다수 접근!"
그로벌은 피로에 지친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의 파이프
를 힘껏 움켜쥐었다.
캠진의 계략
배틀 포트 무리는 계속해서 우주 공간을 비행했다. 캠진 대의 각 전함은
브리타이 함대와 함께 마크로스를 멀리 떠나 떠돌고 있었다. 마치 고요함
속에서 먹이를 찾는 사냥꾼과 같았다. 전함에서 나온 포트 무리는 마크로스
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위협 사격인가? 시시한 작전이군!"
사단 기함 내에서 캠진은 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모두가 엑세돌 녀석의 책략이겠군."
부관인 오이글이 말했다.
"해골만 남은 녀석이 뭘 생각한다고!"
캠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뭔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래, 우리 기내에 폐기되기 직전의 고물 차(전함)가 있었지?"
"네, 틀림없이 백로레라가 있을......."
캠진은 빙긋이 웃었다.
"자, 오이글. 그 고물 자동차를 발사하면 조준을 할 수 없게 된다. 잘 됐
어."
"네에......?"
"이 녀석에게 위협 사격을 하려고......."
캠진은 스크린 속의 마크로스를 보며 말했다.
"......실수로 적함에 명중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잘못하면 위협은 커녕......."
"한 발 정도는 이런 걸로 해보는 것도 괜찮지."
공격당한 마크로스
전 함대의 제1급 전투 배치 방송을 듣고, 히카루는 발키리 수납고로 달렸
다. 스컬 대대에 이어, 히카루를 대장으로 하는 버밀리언 소대가 발진했다.
다가오는 배틀 포트 무리의 반짝이는 은백색의 동체는 마치 유성처럼 보였
다. 이윽고 양군은 서로 맞부딪쳐 푸른 광선을 발사했다. 적과 아군기가 폭
발하는 빛은 똑같이 흰 빛을 띄고 있는 오렌지 색이었고, 마치 공모양처럼
부풀어올랐다. 그 아름다운 빛 속에서 거인과 인간은 공포를 느낄 틈도 없
이 싸우는 것이다.
첫 발진에서 자신을 얻은 맥스는 훌륭한 조종 솜씨로 앞의 적을 하나씩
해치웠다.
"발사!"
히카루는 뒤따르는 맥스와 하야오가 합류했다.
"알았다, 오버!"
두 사람의 대답이 동시에 들려왔다.
히카루는 하야오 기와 나란히 날았다. 그런데 양날개가 불안정하게 흔들리
고 있었다. 기체 밑에서 기름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 하야오, 자네 피격 당했나?"
"뭐, 대단치 않습니다."
하야오 자신은 무사한 듯했지만 기체는 전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히카루는 브릿지로 통신을 보냈다.
"건사이트 1, 여기는 버밀리언 리더. 지금 귀환한다."
스크린에 미사가 나타났다.
"여기는 건사이트 1. 발키리 소대, 아직 귀환 시간이 아니다."
"동료가 기체에 손상을 입었다."
"손상? 작전 행동을 할 수 없을 만큼? 가능하다면 교대 시간을 지켜 주기
바란다."
"대장님, 전 괜찮습니다."
하야오가 끼여들자 히카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잠자코 있어! 교대하는 게 자네의 임무야! 되돌아가라!"
미사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머! 지시를 무시하다니?"
"미사 중위! 당신은 사관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나? 여기는 대기권이 아니
야. 하찮은 손상도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다구!"
포커는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교신을 듣고 있었다.
히카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언제나 자기는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있으니까, 바깥의 위험 따위는 잘
모를 테지."
"이번에는 설교인가? 당신도 많이 자랐군."
비꼬아 말하는 미사를 포커가 말렸다.
"그만둬, 미사 중위!"
"이번에는 이치죠 히카루 소위의 판단이 옳다. ......버밀리언 소대, 귀환을
명령한다! 그리고 히카루! 자네도 지나쳐! 상관 모독죄에 해당해!"
"알았다, 오버!"
히카루는 머쓱해 하며 대답했다.
"이제 적당한 때가 왔군."
스크린을 보며 브리타이가 말했다. 배틀 포트와 발키리의 전투 장면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었다. 그 앞에 소혹성의 바위 덩어리가 보였다.
"포트 군에 연락하라. 길을 비켜 주라고."
"...!"
"배틀 포트에 알린다. 배틀 포트에 알린다. 카나리아의 노래는 끝났다.
거듭 알린다. 카나리아의 노래는 끝났다."
통신을 듣고 포트 무리는 좌우로 흩어지며 전투 공간을 이탈했다. 브리타
이의 두툼한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전함 ...... 포격 준비......!"
브리타이 함대와 캠진 대의 모든 전함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초 읽기
가 시작되었다. ......8......7......6......
브리타이는 초침의 째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제로!"
엄청난 숫자의 광선이 발사되었다. 섬광의 반사되는 빛으로 스크린은 순
간 하얗게 빛났다. 한 묶음의 광선이 소혹성에 명중되었다. 거대한 바위 덩
어리 표면이 그물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소혹성 파미르 파괴!"
미사가 보고했다. 레이더에는 혹성의 파편이 점점이 표시되었다.
"적의 작전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바넷사가 이어서 보고했다.
"2시 45도에서 소혹성 파편 조각들이 접근! 같은 방향에서 고에너지 급속
히 접근! 적 함대의 포격입니다!"
"핀 포인트 배리어 오른쪽 날개에 집중! 출력 최대! 긴급 셔터 급속히 폐
쇄!"
그로벌은 창밖을 보았다. 어둠 속에 광점이 하나씩 스며들었다. 폭발 빛
은 순식간에 퍼져 미처 도망치지 못한 발키리를 삼켜 버렸다. 또한 마크
로스의 측면을 스쳐 지나자 창밖의 판자 조각이 말려 올라가고, 마크로스는
크게 흔들렸다. 통신사들은 비명을 지르고 가까운 계기를 꽉 붙들었다.
"계속해서 오고 있습니다!"
미사가 외쳤다. 두 번째의 포격도 마크로스 함체를 거의 닿을 정도로 스
치며 지나갔다. 함내의 거리가 크게 흔들렸다. 노상의 차들이 전복되고 공
원의 나무들은 활처럼 휘어졌다.
연습실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민메이는 의자에서 나동그라졌다. 피
아노 뚜껑이 떨어지고 요란하게 건반이 울렸다.
"함장님! 적은 의도적으로 빗나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미사의 말에, 그로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으음....... 이것은 놈들의 위협이다. 단지 견제구에 지나지 않는 거
야."
"이봐, 여기서 한 발 발사해 보는 거야. 오이글, 아까 말한 그 놈이야!"
캠진의 말투는 어딘지 어린애 같았다. 기대를 잔뜩 하고 있던 어린애처럼
그는 떠들어 대고 있었다.
"고물 자동차 백로레라 차례군요!"
오이글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일부러 조준을 틀리게 맞추고 명중을 시킨다 이거야!"
백로레라가 천천히 나갔다. 주포를 정확하게 마크로스에 맞추었다. 포통
속에서 에너지가 집중되는 소리가 높아져 갔다.
"정면 공격입니다!"
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 뭐라구?"
그로벌이 쳐다보았다.
"며, 명중될 것 같습니다!"
미사가 거의 울부짖듯이 말한 순간, 세찬 진동이 덮쳤다. 킴과 샤미는 비
명을 지를 새도 없이 공중으로 튕겨나가다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나동그라
졌다. 그로벌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미사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배리어, 한계입니다!"
백로레라의 공격은 마크로스 흉부에 집중시킨 핀포인트 배리어로 하여금
광선을 발사할 수 없게 했다. 배리어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빛의 조각
들이 사방팔방으로 춤추며 마크로스를 뒤덮었다. 함내의 도로가 크게 비뚤
어지고 거리의 질서는 장난감 상자를 쓰러뜨린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폭발
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엎드려 있기도 하고, 튕겨나가 부딪치기도 하고, 쓰
러져 있기도 했다. 이윽고 공격은 끝나고 마크로스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얻어맞아서 희미해진 눈은 거의 의식이 없는 권투 선수와 같았다.
"끝났는가......?"
그로벌은 어깨가 축 쳐졌다. 통신사들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미사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레이더 스크린 앞에 앉았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졌다.
"하, 함장님! 소혹성의 파편이......!"
처음의 공격에 의해 파괴된 혹성은 크고 작은 모양의 무기가 되어 마크로
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느릿하고 묵직했다. 파편 덩어리가 전
함을 에워싸며 함체에 부딪쳤다.
프로메테우스의 갑판이 움푹 패였다. 부포통이 찌그러지고 브릿지의 안테
나가 구부러졌다.
"......함장님, 관측반에서의 보고입니다. 파편이 마크로스에 떨어지기까
지는 5시간이 걸린답니다."
미사가 보고했다.
"으음......바넷사 양! 광역 레이더로 바꿔 봐!"
"옛!"
바넷사는 스위치를 조작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함장님! 광역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뭐?"
"좀전의 공격으로 손상을 입은 듯합니다!"
"......미사 양! 레이더 관제실에서의 보고는?"
"통신 불능입니다."
클로디아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함장님, 기술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광역 레이더를 복구하려면 10시간
이 걸린다는......또한 레이더 조정실 요원은 전원 사망......."
침묵이 흘렀다. 그로벌은 함장석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따끈한 커피 한 잔만 주게."
항복 권고
브리타이는 스크린으로 마크로스의 전경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당분간은 버틸 것 같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캠진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엑세돌은 얼굴을 찡그렸다.
"괜찮아. 덕분에 다음 행동이 쉬워졌으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적의 언어 해독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지?"
"네, 곧 완료됩니다. 언제라도 통신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읍니
다."
"으음, 녀석들이 과연......어떻게 나올까?"
마크로스의 브릿지에는 커피 냄새로 가득 찼다. 그로벌은 찻잔을 손에 들
고 창 밖을 보고 있었다. 함선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 속을 마침 바위 덩
어리가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갔다. 클로디아가 미사에게 귓속말을 했다.
"함장님이 지금 어떤 기분이실까? 마크로스를 움직이면 근거리 레이더를
사용할 수 있는데......."
미사도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적이 어디에 잠복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잖아?"
"그렇지만, 적이 또 공격을 해 오면......?"
"여기에서 싸운다면 적도 레이더가 쓸모 없게 되니까 그게 그거 아냐?"
"과연......혹성 파편이 카 바해 줄까? 우리 함장님도 겉으로만 나이를 드
셨나?"
미사는 순간 자신의 시야 한 쪽에서 하얀 물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태연
하게 정면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
발키리의 잔해가 떠 있고, 잔해 속에 조종사의 팔이 늘어져 있었다. 다
섯 손가락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고, 차갑게 얼어 버린 시체는 괴로움을
그대로 안고 있는 듯했다. 미사는 눈을 감았다. "당신은 좋겠군! 언제나 안
전한 곳에서 지시만 하고 있으니"라던 히카루의 말이 생각났다. "여기는 우주
야. 죽을 확률은 어처구니 없게도 높단 말이야" 미사는 가슴이 에이는 듯했
다.
"그 녀석이 말한 대로군."
"미사, 무슨 일이야?"
클로디아가 어깨를 두드리는 바람에 미사는 고개를 들었다.
"기분이 안 좋아?"
"아, 아니야, 괜찮아. 좀 우울할 뿐이야."
"함장님, 이상한 곳에서 통신이 들어왔는데요."
샤미가 말했다.
"응?"
"발신원은 지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로벌은 커피 잔을 받침 접시에 올려 놓았다.
"......스피커를 틀어 봐."
"네."
샤미가 스위치를 조작했다. 억양이 없는 낮은 목소리가 브릿지에 들렸다.
"......우리 함대는 젠트러디의 이름 아래 귀함의 항복을 명한다. 좀전의
공격은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 침몰되고 싶지 않다면 빨리 항복하라.....
.."
"이건, 적의 함장 목소리......?"
클로디아가 미사에게 물었다. 미사는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항복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귀함의 진행 방향을 향해 예광탄을
연속해서 세 발 발사시켜라. 거듭 말한다. 우리 함대는 젠트러디의 이름 아
래......."
"됐어, 꺼!"
그로벌은 크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어떻든 대단한 놈이군. 전파 관제를 느슨하게 하고서 몇 시간도 되지 않
았는데, 지구어를 해독한다는 것은."
"함장님, 뭐라고 대답할 겁니까?"
클로디아가 물었다.
"무시해 버려. 일부러 회답할 필요는 없겠어."
"그렇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합니까?"
"......적이 새로운 작전 행동으로 나올 게 틀림없겠지."
그로벌은 남는 커피를 마셨다.
"위험하겠지만 정찰기를 띄우고 싶다."
"함장님!"
미사가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외쳤다. 미사는 그로벌을 쏘아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브리타이의 포로
"어쨌든, 우리들이 중위의 호위를 맡게 되다니...."
발키리의 콕피트 속에서 히카루는 어깨를 움츠렸다.
"정말, 무슨 인연인지......."
스크린 속에서 미사가 대답했다. 미사는 조종사와 함께 정찰기의 뒷좌석
에서 헬멧을 쓰고 있었다. 일시 귀환했던 버밀리언 소대는, 하야오 기의 수리
가 끝나자 정찰기의 호위를 명령받은 것이었다.
정찰기는 세 대의 발키리의 호위를 받으며 바위 덩어리 사이를 지나갔
다. 미사는 자원해서 정찰기를 타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
었다.
첫째는, 히카루의 말에 자극을 받아 자기도 우주 공간에서의 위험을 피부로
느끼며 군인으로서의 의무감을 다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히카루의 시선 때
문이었다. 부하의 안전을 위해 미사가 책망할 때의 히카루의 시선! 그것은 순
간 적이었지만, 미사의 뇌리에 되살아나 자꾸 그녀를 쏘아보는 것이었다. 미
사는 그 시선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바위 덩어리 뒤에 적기가 숨어 있었다.
"목표, 발견!"
포트는 브리타이 모함에 보고했다.
"걸렸군."
브리타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끌고 와! 좋은 견본이다. 상처를 입히지 말고."
"대장님! 9시 방향에 적의 포트 네 대 확인!"
맥스가 보고했다.
"좋아, 하야오는 남아서 중위를 호위하라! 나와 맥스는 포트를 쫓아가겠
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장님!"
"몇 번 말해야 하나! 이건 명령이다!"
외치는 히카루에게 미사로부터의 보고가 들어왔다.
"난 이제 괜찮으니 포트를 해치우도록!"
"호위도 없이 행동하다니, 지금 제정신입니까?"
"자신은 스스로 지킨다. 꾸물꾸물 대지 마라. 이건 명령이야!"
"......알았다, 오버! 맥스, 하야오, 간다!"
히카루는 토하듯이 말을 내뱉으며 정찰기에서 떨어져 갔다. 즉시 배틀 포트
를 향해 광선을 발사했다. 포트에서도 광선이 발사되자 어둠 속에서 네 개
의 불꽃이 솟아올랐다.
싸움은 어이없이 끝났다. 포트의 파편 속을 세 대의 발키리는 나란히
날았다.
"......대장님, 만일 우리의 행동이 놈들에게 누설된다면......."
맥스가 말했다. 순간 히카루의 머리 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정찰기는 암석 사이를 지나 수평 비행에 들어갔다.
"겨우 빠져 나온 것 같군......."
순간, 눈앞의 스크린에 반응이 나타났다. 거대한 물체가 접근 중이었다.
"미사 중위! 전방 머리 위에 적이......!"
조종석의 조종사가 외쳤다.
"...!"
미사는 고개를 들고 마른침을 삼켰다. 브리타이 모함이 떠 있었다. 거대
한 함선의 밑바닥이 하늘을 덮은 검은 구름처럼 미사의 시야를 가렸다.
"도, 도망쳐요!"
정찰기는 고도를 낮추어 U 턴하며 속도를 올렸다. 미사의 앞에 있는 경보
기가 계속해서 울렸다.
"조심해!"
옆에서 바위 덩어리가 다가와 정찰기의 측면을 쳤다.
"크읏!"
기체는 크게 흔들리고 창에 금이 갔다.
"미사 중위! 여기는 버밀리언 리더. 대답하라! 미사 중위!"
히카루에게서 통신이 들어왔지만, 미사와 조종사는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조종사의 목에는 유리 파편이 깊이 박혀 있었다.
브리타이 모함의 로크가 열리고 회수선이 발사됐다. 곧 가늘고 긴 매직
핸드가 나와서 정찰기를 포획하자, 정찰기는 천천히 모함으로 끌려 들어갔
다.
"......으...응...."
미사는 의식을 되찾았다. 희미하게 조종사의 시체가 보였다. 시체는 깨진
유리창 밖으로 떠서 우주 공간을 표류해 갔다. 미사는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브리타이 함의 에어 로크가 다가왔다. 로크의 내부는 아주 새까맣고, 그
외부는 미끄러질 듯 번질번질했다. 미사에게는 거대한 적함이 생물처럼 느
껴졌다. 그 체내에는 원색의 내장이 휘감겨 있어, 탐욕스럽게 먹이를 찾고
있는 생물임에 틀림없었다. 미사의 바싹 마른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브리타이 함에서 가느다란 나무 가지처럼 뻗힌 포통이 광선을 발사했다.
광선은 미사의 오른쪽 방향으로 꼬리를 그렸다. 미사는 푸르스름한 잔광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 때 광선을 발사하면서 세 대의 발키리가 다가왔
다.
"이치죠 히카루 소위! 이쪽 일은 내버려 둬! 이제 틀렸어!"
미사가 외쳤다.
회수선은 서서히 로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히카루는 더욱 속도를 올렸
다. 에어 로크가 소리없이 닫히기 시작했다.
"맥스, 하야오, 돌격!"
세 대의 발키리는 옆으로 나란히 한 채 서서히 좁혀지는 어두운 틈을
향해 날았다.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세 사람은 함내로 들어갔다. 등 뒤에
서 로크의 문이 닫혔다.
세 사람은 통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정면에 제2 에어 로크가 다가오자,
히카루는 손가락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굉음과 함께 금속의 문이 말려올라
갔다. 열린 구멍 맞은편에 거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거인은 몸을 웅크리고
마루에 놓인 정찰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거인이 뒤를 돌
아보았다. 히카루는 배트로이드로 변신하여 거인에게로 뛰어들어가, 거인의
턱에 주먹을 한 방 날렸다. 거인은 몸을 뒤로 젖히며 쓰러졌다. 맥스와 하야
오도 배트로이드로 변신하여 히카루를 뒤따랐다. 정찰기 내에서 미사가 몸을
일으켰다.
"당, 당신들, 명령 무시도 대단하군!"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히카루가 고함을 질렀다. 몇 사람의 거인 병사가 그 방으로 뛰어와 총을 연
달아 쐈다. 배트로이드는 각각 흩어져 가틀링 포로 응전했다. 방 이쪽 저쪽
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배를 맞은 거인이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연속 포
격으로 가틀링 포의 포통 속은 달아올랐다.
브릿지의 브리타이에게 연락이 왔다.
"적병이 아래쪽 갑판 격납고에 침입! 포로를 구출하러 온 것 같습니다!"
"당황할 건 없어. 견본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그, 그런데 놈들이 아주 상대하기 벅찬 놈들이라서...!"
"쳇!"
브리타이는 몸을 휙 돌려 달려나갔다.
"브, 브리타이 각하!"
엑세돌이 당황하며 뒤따라갔다.
방에는 흰 연기가 가득 차서 히카루의 시야를 좁히고 있었다. 거인의 시체
가 발 밑에 뒹굴고 있었다. 갑자기 적의 광선이 연기 속에서 날아왔다.
"대장님, 탄환이 떨어졌습니다!"
"저도 떨어졌습니다!"
맥스와 하야오가 말했다.
"좋다! 탈출이다!"
히카루는 배트로이드의 몸체를 낮추고 더듬더듬 정찰기를 찾았다. 손가락에
날개가 잡혔다.
"미사 중위! 도망쳐요!"
히카루는 덧문의 깨진 틈으로 미사를 끌어내려고 했다. 그 때, 쾅! 하
는 요란한 소리가 나고 하야오의 배트로이드가 쓰러졌다.
"...!?"
히카루의 옆에서 쓰러진 배트로이드는 머리 부분이 엉망진창으로 파괴되어
버렸다.
제11화 First Contact(첫 번째 접촉)
"하, 하야오!"
배트로이드를 일으키려고 하는 히카루의 귀에,
"으으음!"
하며 낮은 신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깜짝 놀란 히카루는 고개를 들었다.
금속 파이프를 휘두르며 브리타이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앗!"
내리치는 파이프를 히카루는 재빨리 가틀링 포로 막았다. 브리타이는 파이
프를 버리고 배트로이드의 어깨와 다리를 움켜잡았다. 그대로 높이 들어올
려 힘껏 내동댕이쳤다.
"......으으...!"
벽에 부딪친 배트로이드 안에서 히카루는 신음했다. 히카루는 반격을 하려
고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려 올라간 판자가 배트로이드의 양쪽 가슴에
박혔기 때문이다. 다가온 브리타이가 배트로이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으음......!"
히카루는 전력을 다해 앞가슴 부분을 벗겼다.
브리타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벼, 변신을 하는 건가?"
히카루는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앞에 있는 금속판이 구부러지고, 드디어 콕
피트가 나타났다. 브리타이의 거대한 얼굴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왓......!"
히카루의 외치는 소리가 쉰 듯했다. 충혈된 브리타이의 눈이 빙긋 웃고 있
고 미사는 거인병에게 붙들린 채 비명을 질렀다. 거인병은 주머니 속에서
자루를 꺼내 그 속에 미사를 넣었다.
"미, 미사 중위!"
히카루는 순간 탈출 레버를 당겼다. 배트로이드의 머리가 앞으로 쓰러졌
다. 배트로이드에서 히카루를 태운 시트가 튀어나왔다.
"으음!"
브리타이는 재빨리 팔을 뻗어 시트를 잡았다. 동시에 배트로이드가 폭발
하며 굉음과 함께 브리타이가 날아갔다. 벽에 구멍이 뚫리고 별들이 보였
다. 공기가 유출되기 시작하고, 크고 작은 금속 조각이 구멍 속을 빠져나갔
다.
"이때다!"
맥스는 가워크로 변신하여 함 밖으로 도망쳤다. 순간 천장에서 방호 셔터
가 내려와 구멍을 차단했다.
브리타이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괜찮습니까, 각하?"
한 병사가 뛰어와 브리타이를 부축했다.
"뭐......아주 가벼운 상처인데."
"과연 브리타이 각하는 저희 일반 병사들과는 몸의 구조가 다른 것 같군
요."
브리타이는 거대한 손을 천천히 폈다. 히카루는 시트에 앉은 채 정신을 잃
었다.
캡슐 속에서
흰 벽으로 둘러싸인 방 중앙에는 하나의 캡슐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캡
슐 속에는 세 명의 인간, 즉 히카루, 미사, 하야오는 누워 있는 것이다. 세 사
람 모두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브릿지의 브리타이는 스크린으로
캡슐을 지켜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여자일 거야......."
브리타이는 미사를 관찰하며 말했다.
"네, 전자 분석 결과로는 틀림없습니다."
엑세돌이 대답했다.
"더구나 포로의 몸은 골격, 세포,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마이크론
과 거의 같습니다."
"으음......우리들과 같은 종족이면서, 남자와 여자가 같은 전함에 타
고 있다니......."
"무서운 일입니다."
히카루가 머리를 흔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으으......정신이 들었나......?"
"하야오! 하야오!"
히카루가 하야오를 흔들어 깨우자 하야오는 몸을 뒤척였다.
"으음......대장님, 아직 더 먹을 수 있어요...."
"쳇!"
히카루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으으...!"
미사도 의식이 들었는지 두리번거렸다.
"히카루!"
히카루를 발견한 미사는 다소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중위님, 거인들에게 붙잡힌 것 같습니다."
"그래...."
미사는 일어서서 캡슐 창에 손을 댔다.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포로......가 된 셈이군."
히카루는 미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중위님이 터무니없는 정찰을 했습니다."
"그런 소리......!"
미사는 히카루를 쏘아봤다.
"정찰기 조종사는?"
미사는 우물거렸다.
"......죽었어. 지금쯤 우주의 어딘가에......."
"우주 공간을 너무 하찮게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겁니다. 여자는 군인
보다는 요리를 하거나 노래라도 부르는 게 훨씬 사랑스럽죠!"
"뭐라고? 상관한테! 나도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어!"
"호오, 그래요?"
"도대체 왜 남자 여자를 구별해야 하는 거지? 그런 낡아빠진 사고 방
식...."
"낡아빠진?"
"그래요. 젊었으면서도 케케묵은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 인기 없어요!"
"상관없습니다! 인기 따윈!"
"말다툼을 하는 것 같군."
브리타이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무, 무섭습니다."
엑세돌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면, 반드시 재앙이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그
전조인지도 모릅니다."
"재앙? 그럴지도 모르지. 괜찮아, 스위치 꺼!"
영상이 꺼졌다. 브리타이는 함장석에 앉아서 머리를 감쌌다.
"으음, 놈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
"동감입니다. 이건 이미 우리들의 힘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보드르 기간 함대에 연락하는 게 좋을 듯하군."
"보드르져 각하는 신중한 분입니다. 가능한 한 직접 넘겨 주는 게 좋을지
도......."
"으음, 좋겠지. 홀드 항해 준비하라!"
"당신은 제 호위가 임무예요. 그런데, 배트로이드를 타고서도 맨몸인 적
에게 당하다니! 그러고도 소대장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할 수 있어요?"
미사는 꾸짖듯 말했다. 히카루도 강하게 힘을 주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에요! 놈들을 우리 인간들과 동등하게 여기면 곤란해요! 괴
물이에요, 괴물!"
"하아!"
하야오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아니, 대장님도 중위님도 무사하셨군요!"
히카루는 하야오의 농담 투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맥스는?"
"모른다. 녀석은 무사히 도망치지 않았을까?"
하야오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떻게 됐을까?"
미사도 걱정스럽게 말했다.
"맥스가 불쌍하군. 어쩌면 지금쯤......."
하야오는 두 손을 모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 아까운 녀석을 잃었군. 그 녀석은 나 다음으로 실력 있는 놈이었는
데. 그렇죠, 대장님?"
"당치도 않은 소리 하지 마!"
히카루는 둥근 창 밖을 통해 우주 공간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우리들을 죽이겠지......?"
라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뭐라구요? 아직 도망칠 기회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대장님!"
히카루는 주저앉았다. 캡슐 창 너머로 새삼스러운 듯이 실내를 둘러보았다.
견고한 벽에는 둥근 창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인들에게 맞추어
지은 천장은 상당히 높았다.
"어떻게, 까마득한 저 천장을 뚫고 도망칠 수 있을까?"
그 때, 창 밖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들어와 세 사람을 둘러쌌다. 브리타이
모함의 홀드 광선이었다. 세 사람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채 몸을 비틀며
눈을 감았다.
"홀드 반응 탐지! 적함 한 척이 홀드한 모양입니다!"
바넷사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한 척뿐인가? 위치는?"
그로벌이 물었다.
"XP 10208 YP 175, 미사 중위가 정찰 나갔던 부근입니다."
"으음...... 미사 양에게선 전혀 연락 없는가?"
샤미가 힘없이 대답했다.
"네......호위를 맡았던 발키리 소대도 응답이 없습니다......."
불길한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샤미가 외쳤다.
"그래! 미사 중위는 죽었는지도 몰라!"
클로디아는 창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보처럼 사랑도 해보지 못하고......."
"나의 애인은 파일로트"
미스 마크로스의 영예를 누리게 된 민메이는 가수로서 데뷔를 하게 되었
다.
수업이 끝난 민메이는 친구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민메이의 얼굴은 자신
에 가득 차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여성은 아름다움을 인정받았을 때, 더욱
그 아름다움이 빛나는 법이다.
"민메이, 네가 가수가 된다니 대단해. 이젠 싸인을 받아야 되겠구나."
"아이, 싫어."
친구의 말에 정색을 했지만, 민메이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데뷔 곡명은 뭐지?"
""나의 애인은 파일로트"야!"
"햐! 우연이라고 하기엔 ......민메이의 그이야말로 조종사 아냐? 정말
멋진 친구야.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지만......."
"흥!"
"니얀니얀"의 간판이 보였다. 포커가 문 옆에 기대서서 민메이를 기다리
고 있었다.
"어머, 포커 소령님!"
민메이는 손을 흔들었다.
"잘 있었어?"
인사를 하며 포커가 다가왔다.
"히카루는 잘 있고요? 그 뒤론 전혀 연락이 없어서......."
"그게......."
포커는 민메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침착하게 들어......히카루 그 녀석 돌아오지 않았어."
"돌아오지 않다니요?"
"우주로 나간 채 행방불명이 되어......."
"그럴 수가 ......!"
민메이는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 아직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만두세요!"
민메이는 포커의 손을 뿌리쳤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민메이는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민메이!"
친구는 두세 걸음 쫓아가다가 멈췄다.
"지금은 그냥 놔 두는 게......."
포커는 눈을 감았다.
민메이는 공원을 터벅터벅 걸었다. 히카루의 첫 출격이 결정되었던 날, 둘
이서 사진을 찍었던 그곳이다. 인공의 석양으로 공원 안은 황혼빛으로 물들
어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연인들,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노인들,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계
집아이들.... 민메이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히카루......."
한 번 나직이 불러보고, 발길을 돌려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노래 연습
을 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브리타이 함의 홀드
"대장님,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글쎄......거인들의 별에라도 가는 걸까?"
미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렇다면 참 오랜 시간이군. 한 시간 가까이 홀드하고 있다니......마크
로스에선 10일 정도 지났을지도 몰라."
"10일?"
하야오가 물었다.
"으응......홀드 중에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니까."
갑자기 창 밖의 불빛이 꺼졌다. 홀드 항법이 해제된 것이다.
"앗!"
히카루는 창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엄청난 수의 전함이 우주에 떠 있었다.
점점이 떠 있는 전함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 이, 이게 전부 우주선......!"
미사는 어이없는 듯 중얼거렸다.
"저, 저건?!"
히카루는 유리창 구석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곳을 살펴 보았다.
"국지전이 아닐까요?"
"아니야, 저건 상당한 규모일 거야."
"그래, 지구 정도는 삼켜 버릴 만큼의......."
세 사람은 새삼스럽게 적의 힘이 막강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단 한 척으
로 싸워온 마크로스와, 필사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왔던 자
신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브리타이 함과 함께 홀드한 맥스의 배트로이드는 갑판 위를 걸어가고 있
었다. 전방에 구멍이 있었다. 포격의 흔적인 듯했다.
"거인들에게는 변변한 수리 병사도 없나?"
배트로이드를 구멍 속으로 밀어 넣은 후 통로에 내려섰다. 캄캄했다. 맥
스는 탐사 등을 켜고 걸어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통로 여기저기에 파괴된
곳이 많았다. 파이프가 깨져 있고 벽의 판자가 말려 올라가 있기도 했다.
"이상하군......너무 커서 수리에 손을 못 대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며, 맥스는 몇 개의 문을 지나갔다. 네 번째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거인이 나타났다. 맥스는 반사적으로 레버를 내렸
다.
"으악!"
배트로이드가 한 대 치자, 거인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좋다!"
맥스는 거인의 군복을 벗겨 배트로이드에게 입히고 모자를 깊숙이 썼다.
"이나마 입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지."
맥스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불빛이 환한 통로에 다다랐다. 통로
저쪽 모퉁이에서 뚜벅뚜벅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맥스는 가슴이 두근거렸
다. 그러나, 거인 병사는 스쳐 지나가며 얼핏 배트로이드를 쳐다볼 뿐이었
다.
전체 길이 1400 킬로미터의 보드르 기간선은 거대한 만큼 힘도 대단했다.
보드르 함에는 물체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흉측한 모
습에 단지 추상적인 윤곽을 드러내며 우주 공간에 떠 있었다.
브리타이 함은 천천히 다가갔다. 보드르 함은 작은 입을 열고 땅콩 크기
만한 전함을 삼켰다. 함내에는 넓고 거대한 동굴과 몇 척의 우주선이 떠 있
었다. 마크로스를 계속 위협해 왔던 함도, 이제는 이들 속의 한 척에 지나
지 않았다.
브릿지의 브리타이는 스크린을 통해 보드르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는 와레라와 로리와 콘더에게 보고하게 했다.
"적함의 여성 마이크론은 몸의 반 이상을 노출시킨 군복을 착용하고, 기
묘한 포즈를 취하며, 그것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 속이 뜨거워지는 듯했
읍니다."
로리가 말했다.
"그대로입니다."
와레라와 콘더도 맞장구를 쳤다.
"으음."
보드르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머리는 거의 대머리
에 가깝고 보랏빛의 입술은 흉악하게 보였다.
보드르져가 말했다.
"환상의 반응 무기가 존재한다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타고 있는 전
함.... 우리는 좋지 않은 것과 접촉한 것인지도 몰라."
"좋지 않은 것이라뇨?"
브리타이가 물었다.
"그렇다...... 어쨌든 포로와의 회견은 자네 함에서 하도록 하지. 회견실
을 미리 준비하라."
"각하께서 일부러 제 함에?"
"다른 별의 마이크론을 이곳에 상륙시킬 수는 없어."
"알겠습니다."
"정찰 대원 세 사람!"
"넷!"
와레라, 로리, 콘더가 동시에 경례를 했다.
"특별히 자네들은 동석하도록 하라."
"영광입니다."
보드르져는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녀석들, 설마 프로토 컬쳐는 아니겠지?"
히카루와 미사의 키스
히카루, 미사, 하야오는 12개의 눈동자에 둘러싸였다. 세 사람은 원탁 위에
올려 놓아진 것이다. 거인들이 테이블 둘레에 앉았다.
"나는 젠트러디 군 제118 기간 함대 총사령관 보드르져다. 자네들에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마, 말을 알고 있잖아!"
"어, 어떻게 된 거지?"
히카루와 미사는 놀라며 마주 보았다.
"감응 번역 장치는 잘 작동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으음...."
보드르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자네들은 감찰군의 배를 주웠다고 하는데, 언제 놈들과 접촉했는가?"
"감찰군?"
하야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장님, 그런 군대가 있었읍니까?"
"나도 군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히카루의 말에 거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군에 들어오기 전에 무엇을 했나?"
브리타이가 물었다.
"뭐, 민간인이었지......."
"민간인? 민간인이 뭔가?"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구!"
거인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멍청한......!"
엑세돌이 말했다.
"우주는 전쟁으로 가득 차서 전쟁이 있는 곳에 생명도 있는 거다!"
로리가 보드르져를 향해 말했다.
"각하, 어쩌면 저희들이 본 그 이상한 마이크론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
겠읍니다."
"으음......그러면 질문을 바꾸겠다. 왜 자네들의 배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거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게 뭐가 이상하기라도......?"
하야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사가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보드르져는 미사를 쏘아보았다.
"자네가 지휘관인가?......흐음, 자네들은 자기들의 처지를 잘 모르고 있
는 것 같군."
보드르져가 오른손을 들었다. 정면의 스크린에 우주 공간이 비춰졌다.
"우리들은 자네들의 배나 혹성을 한순간에 없앨 수 있는 힘을 갖고 있
다."
보드르져의 노려보는 시선에, 세 사람은 놀라 뒷걸음질쳤다.
"보는 게 좋아, 저 별을!"
스크린 중앙에는 붉은 혹성이 떠 있었다. 보드르 함대는 그 별을 향해 일
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무, 무슨 짓을......!"
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흐흐흐......자네들의 별이 저렇게 되어도 괜찮겠지?"
히카루와 미사와 하야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서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이상해. 이렇게 힘이 있다면 왜 지금까지 마크로스나 지구를
전면 공격하지 않았을까......?"
미사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한 번 더 묻겠다. 어째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가?"
미사는 엑세돌의 말을 되새겨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전쟁 속에야말로 생명이 있다. 그렇다면, 전쟁 속에서밖에 살 수가 없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사상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우리에
게는 그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 된 거야! 대답하지 않으면 자네들의 혹성을 없애버리겠다!"
미사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죠!"
"뭐야!?"
의외의 대답에 보드르져는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히카루가 목소리
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주, 중위님,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 맡겨요."
미사는 보드르져에게 한 발 다가서며 말했다.
"우리들에게는 당신들이 모르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다, 닥쳐!"
보드르져가 힘껏 테이블을 내리쳤다. 세 사람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
어졌다. 미사의 머리에 거대한 손이 다가왔다.
"악!"
보드르져에게 붙들린 미사는 몸을 비틀었다.
"중위님!"
"뭘 하려고 하는 거야!"
다가서는 히카루와 하야오에게 보드르져가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이 여자를 쥐어 비틀어도 괜찮은가?"
둘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흐흐......부드럽군......!"
보드르져는 미사를 눈앞으로 바싹 갖다 댔다.
"이렇게 가냘픈 마이크론이 우리에게 와 있다니.... 왜 일부러 육체를
축소시켜 마이크론이 되었나?"
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죽일 테다!"
보드르져는 손에 힘을 주었다.
"으악!"
미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만둬!"
히카루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럼 자네들은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
엑세돌이 물었다.
"어머니다!"
"어머니?"
콘더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자 부모 말이다! 그것도 모르나?"
하야오가 말하자, 엑세돌이 다시 물었다.
"여자에게서?......자네들은 여자에게서 태어났는가?"
"도대체 어떻게......."
브리타이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 어떻게......?"
하야오가 좀 더듬거렸다.
"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면 어린애가......생긴다."
"서로 사랑해? 어떻게 하는 건대?"
"키스하거나 서로 끌어안거나......."
"그 두 사람, 키스란 걸 해 봐라!"
보드르져의 말을 듣고 히카루는 소리를 질렀다.
"농담하지 마! 남자끼리 어떻게 하나?"
"안 한다면 주먹으로 너희들을 부숴 버리겠다!"
보드르져는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기다려!"
미사가 보드르져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자네가......? 좋지."
보드르져는 미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미사는 비틀거리면서 히카루에게
다가갔다.
"이치죠 히카루 소위! 내게 키스해 봐!"
"엣?"
히카루는 얼빠진 듯한 소리를 했다.
"이건 적의 반응을 보는 찬스야."
"그러면, 하야오가 해 봐!"
"대장님 쪽이 더 낫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
"빨리 해!"
보드르져가 안달을 하듯 재촉했다.
"이건 명령이다. 빨리......!"
미사는 얼굴을 들고 눈을 감았다.
"아, 알겠......."
히카루는 어색하게 미사의 어깨를 안았다.
'민메이, 미안.'
히카루는 얼굴을 갖다 대고 입술을 미사에게 포갰다. 그 순간,
"오오!"
거인들은 한 마디씩 외쳤다. 히카루와 미사는 깜짝 놀라 서로 떨어졌다.
"프, 프로토 컬쳐!"
보드르져의 눈은 분명히 겁에 질려 있었다.
"어서 이 놈들을 빨리 데리고 나가!"
맥스의 배트로이드는 교차로에 이르러 멈춰 섰다. 오른쪽 통로에서 거인
병사가 다가왔다. 병사는 소형 짐차를 밀고 있었다. 맥스는 스쳐지나가면서
짐차 속을 들여다보았다. 히카루를 포함한 세 사람이 있었다. 거인 병사는 막
다른 문으로 사라지고, 맥스는 뒤쫓아갔다.
감옥 안은 어둠침침하고 추웠다. 갇힌 세 사람은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그렇지만......이상하군요. 대장님과 중위님이 키스한 정도로 저 놈들이
저렇게 놀라다니......."
"별도 순식간에 파괴시키는 거인들이......."
히카루는 미사를 보며 물었다.
"프로토 컬쳐라니, 대체 뭘까요?"
"...모르겠어. 단 말할 수 있는 것은 놈들 세계에는 민간인이 없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살고 있어서 아이들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뿐."
하야오는 끌어당긴 무릎에 턱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여자와 함께 살 수 없는 세계에서 죽다니......원통합니다, 대장님!"
"......아아."
히카루는 갑자기 민메이가 보고 싶어졌다.
"아까 그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보드르져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정도의 일로, 왜 이렇게 충격을 받는 것일까?"
브리타이는 가슴을 어루만졌다.
"우리의 잠자고 있던 잠재의식이 반응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보드르져 각하!"
로리가 일어서며 경례했다.
"뭔가!?"
"프로토 컬쳐란 무엇입니까?"
"......."
보드르져는 팔짱을 끼며 테이블을 쏘아보았다. 반짝이는 표면에 실내등의
불빛이 비쳤다.
"......좋아, 말해 주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 말하는 것을 다른 놈들에게 말하는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알겠나?"
"넷!"
일동은 자세를 바르게 했다.
"프로토 컬쳐란, 우리들의 먼 조상들 얘기다."
"조상!?"
엑세돌이 물었다.
"그렇다. 그 시대에는 우리들 몸은 마이크론 크기밖에 없었고, 남자와 여
자가 함께 살며, 문화란 것이 있었다고 한다."
"문화라고 하면?"
"자세히는 모른다. 프로토 컬쳐가 남긴 기록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단, 놈들과 접촉한 함대는 서서히 싸울 힘을 잃고 멸망해 버린다고 한
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이 그걸 안다면 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
"남자와 여자......서로 사랑한다는 행동에 그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로리는 입술을 포갠 히카루와 미사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민메이의 데뷔
민메이는 자기를 향한 박수소리가 이렇게 화려하고 감미로운 것이라곤 상
상도 하지 못했다. 박수소리는 민메이를 칭찬하는 노래였다. 민메이의 커다
란 눈은 도취된 채 촉촉이 젖어 있었다.
민메이는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몇 대의 TV 카메라가 쫓아오
고 계단에는 은빛 주단이 깔려 있었다. 흰 구두를 신은 민메이는 지금 자기
가 서야 할 위치를 향해 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밀로의 비너스가 신전의 한 곳을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칭찬
받아야 할 자에겐 거기에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무대 중앙이 민메
이에게 주어진 자리였다. 소녀의 마음 속에서 전세계는 자기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며 회전하고 있었다.
포커는 우주 전망실 소파에 앉아, 별들의 깜박거림을 보고 있었다. 손가
락 사이에서 짧은 담배가 엷게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히카루......!"
포커는 우주를 향하여 담배를 던졌다. 담뱃불은 유리창에 맞고 튕겨지며
잘게 흩어졌다. 어디에선가 민메이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슈- 슈- 슈- 슈-
나의 애인은 파일럿
번쩍 빛을 발하며 급강하
'고-'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급상승
길게 꼬리를 끄는 비행 구름 사이에서 커다란 두 하트가 살며시 겹쳐진
다.
......
함내의 TV에는 모두 민메이의 얼굴이 비춰지고, 노래소리는 전함 구석구
석까지 퍼지고 있었다.
파란 창공의 러브 싸인
I LOVE YOU
YOU LOVE ME?
......
슈- 슈- 슈- 슈-
나의 애인은 파일로트......
제12화 Big Escape(대탈출)
필사의 탈출
"도망치자! 여기에서 탈출하는 거야!"
히카루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아까처럼 똑같은 일을 하는 거야. 나와 중위님이 키스를 하면, 거인놈들
은 놀라서 한참동안 움직일 수 없게 되거든."
"그래서?"
미사가 물었다.
"그러니까, 적병이 식사를 가지고 오면 그 때를 틈타서......다시 한 번
키스를 하면......."
"농담하고 있는 건가? 나는 싫어! 무얼 말하나 했더니 그런......! 잘 될
리가 없어!"
히카루는 미사에게 대들 듯이 따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달리 좋은 방법이라도 있읍니까?"
"그, 그런......!"
하야오가 둘 사이에 끼여들며 말했다.
"자, 자, 대장님도 중위님도 다 그만두세요. 미사 중위님, 이번엔 대장님
을 대신해서 제가......."
라고 말하면서 입술을 오므렸다. 미사는 힐끔 하야오를 노려보았다.
"바보 같은......."
중얼거리며 일어선 미사는 벽에 기대어 아픈 다리를 문질렀다. 잠시 후,
낮은 한숨과 함께 히카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치죠 히카루 소위......."
"나는 당신들의 상관이에요."
"중위님이니까요."
"상관에게는 부하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넷!"
"당신의 제안, 해보겠어요."
"괜찮습니다. 무리하시지 않아도...."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뿐예요."
"임무, 임무하며 훌륭한......."
하야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야아, 과연 미사 중위님은 군인의 거울입니다!"
그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렸다.
"왔습니다!"
"예정보다 빠르군."
미사는 히카루의 손을 잡고 문 앞에 섰다. 끼이...하며 문이 조금 열렸다.
"자, 준비됐죠!?"
"알았다, ...!"
히카루는 다시 미사에게 입술을 갖다 댔다. 문이 열리고 빛이 환하게 들어
왔다.
우뚝 멈춰선 거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아, 됐다!"
하야오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때다!"
미사를 선두로 세 사람은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대장님!"
거인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낯익은 소리였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며 얼굴
을 들었다.
"대장님, 접니다. 맥스입니다!"
배트로이드는 모자를 벗었다.
"매, 맥스!"
세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맥스! 무사했구나!"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자 빨리!"
배트로이드는 오른팔을 마루에 내렸다. 히카루와 미사는 금속 손바닥에 올
라탔다. 따라서 타려고 하는 하야오에게,
"하야오, 자네는 이쪽이야!"
라고 말하며 배트로이드의 왼손이 그를 움켜쥐었다.
"두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잖아?"
맥스의 말에,
"아, 아니야. 오해야!"
히카루가 다급하게 외쳤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
배트로이드는 오른쪽 앞가슴 주머니에 히카루와 미사를, 왼쪽 주머니에 하
야오을 넣고 문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뜻밖이군요. 대장님의 애인은 틀림없이 그 여자라고 생각했는
데...."
"저... 맥스! 아까는 도망치기 위한 작전이었어."
"그게 정말입니까?"
맥스는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 일은 마크로스에 돌아가서 비밀로 해둘테니까."
주머니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히카루와 미사는 몸을 바짝 맞대고 있
었다. 아무리 거인의 군복이라고는 해도, 주머니 속은 둘이 들어가 있기엔 답
답할 만큼 좁았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 서로 다른 데로 돌렸다. 앞에서 거
인 병사가 다가왔다. 세 사람은 재빨리 주머니 속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구
두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가 다시 멀어져 갔다. 히카루는 휴! 하며 가슴을
쓰다듬었다. 배트로이드의 어깨 부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작은 금
속소리를 듣고 거인 병사가 뒤돌아 보았다.
보드르져와 그 일당은 회견실에 앉아 불안스러운 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보드르져 총사령관님, 이제 작전은 어떻게 세울 작정이십니까?"
브리타이가 물었다.
"......적함 내에 스파이를 보내고 싶다."
"좋으신 말씀입니다만......."
엑세돌이 말했다.
"프로토 컬쳐와의 접촉은 우리를 망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 대신 환상의 반응 무기와 함선의 복구 기술을 손에 넣기만 하면, 우리
는 감찰군보다 상당히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런데, 마이크론들뿐인 저 이상한 마크로스에 잠입하여 임무를 감당할
자가 있을까요?"
"......그게 문제야."
"각하!"
와레라, 로리, 콘더가 동시에 일어섰다. 로리가 경례하며 말했다.
"그 임무를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자네들이......?"
"넷!"
스크린이 바뀌고 병사 한 사람이 보고를 했다.
"브리타이 사령관님, 포로들이 탈주했습니다!"
"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브리타이를 바라보며,
"붙잡아! ......어떻게 해서든."
보드르져가 낮게 말했다.
배트로이드는 가워크로 변신하여 뛰었다. 몇 명의 거인 병사가 총을 들고
따라왔다. 몇 발의 총탄이 가워크의 군복을 스치자, 찌...지...지...하며
군복이 타 들어갔다. 문득 옆을 보니까 엘리베이터의 층 표시등이 내려오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뛰어내린 거인 병사에게 가워크는 태클을 시도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을 닫은 후 스위치를 눌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장님, 안 됩니다! 놈들이 내릴 때 동력을 끈 것 같습니다."
맥스가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강행 돌파밖에 없다. 여기에서 내려라!"
"알았다, 오버!"
가워크의 손이 세 사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맥스도 로보트 밖으로 나왔
다. 뛰어온 병사들이 엘리베이터를 열고 가워크를 향해 일제히 방아쇠를 당
겼다. 벌집이 된 가워크는 연기를 내뿜었다. 히카루 일행은 거인들의 옆을 지
나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를 눈치챈 병사들이 허겁지겁 뒤따라왔다.
"으앗!"
히카루와 미사는 오른쪽으로, 하야오와 맥스는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
워크가 폭발했다. 흰 연기가 통로에 가득 차고 금속 파편이 쏟아지는 속을 네
사람은 양쪽으로 갈라져서 뛰었다.
거인 병사의 변신
얼마나 뛰었을까? 히카루와 미사는 어느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인기척은 없
었다. 두 사람은 앉아서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켰다. 옆구리가 아프고, 구역
질이 날 것 같았다.
"매, 맥스와 하야오 무사할까?"
겨우 미사가 말했다.
"글쎄......."
히카루도 몸을 일으켰다. 위잉 하고 작은 기계소리가 들려올 뿐 조용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무슨 실험실인지 여러 가지 기계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
다.
"앗!"
히카루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에요?"
히카루의 시선을 따라간 미사도 말을 하지 못했다. 몇 개의 거대한 캡슐이
줄지어 있고, 캡슐 속에는 분홍색의 액체가 가득 들어 있었다. 가운데에 있
는 세 개에는 거인들이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액체 속에 잠겨 있었다. 와레
라, 로리, 콘더였다. 그리고 세 사람의 몸은 조금씩 줄어 들어갔다.
"이, 이건......?"
히카루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한 걸음 물러섰다.
"거인이 작아지고 있다니......."
그 때, 시커먼 그림자가 그들을 가렸다. 흰 옷을 입은 거인이 캡슐을 향해
가고 있었다. 히카루는 미사의 손을 잡고, 발소리를 죽이며 통로로 나왔다.
"놈들은 아직 못 잡았나?"
"넷, 면목없습니다! 상대가 너무 작아서......."
브리타이는 보드르져에게 대답했다.
"브리타이......."
"넷!"
"실수야. 이 책임을 져야 하네."
"....."
"잠시 동안 제 1 선에서 물러가 있어!"
"그러면, 스파이 잠입 작전은......."
"잠입 작전은 라플라미즈 대에게라도 맡겨야 하겠다."
브리타이는 놀라며 보드르져를 바라보았다.
"라플라미즈 함대에게...!"
"그렇다. 이 작전에는 그 만큼의 중요성이 있는 거야."
탈출 작전
히카루와 미사는 무기고에 숨어 있었다. 라이플총 뒤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은 무릎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저건 거인들이 말하는 마이크론이에요. 틀림없어."
"음...."
"내 생각에는 거인들도 원래는 우리들과 똑같은 크기였던 게 아닌가 싶어
요."
"뭐라고?"
"그리고 감찰군이라는 적과 싸우기 위해 자기들의 몸을 크고 강하게 개조
했는지도...."
"그런 일이 있을 수가......!"
"그렇기 때문에 배트로이드와 맨몸으로 싸울 수 있고, 인간이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유전자라도 개조해서......."
"아마 그렇겠죠. 거인에게 마이크론으로 변하는 기술이 있다면, 반대로
거인을 만들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건 말뿐이다......."
"프로토 컬쳐라는 말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크기의 인간이었을 때의 문명
을 말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어떻게 거기까지 알았읍니까?"
"그들은 몸을 거대화시켜서 확실히 최고의 군인이 되었지만, 그 대신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잃은 것...?"
"지금 그들에게 민간인이라든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
이 그 증거예요."
"......너무 강한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싸우는 것만 머리에 남아 있는
건가?"
"......우주는 싸움으로 흘러 넘쳐, 싸움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
"대함끼리의 전쟁인 만큼......대단하겠군......."
"몇 개의 별이 없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겠군요."
"아아....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불쌍한 이야기죠.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니......."
"정말 그래요."
미사는 눈을 감았다.
"마치 나처럼......."
"중위님처럼?"
"우리집은 백 년 전부터 군인 가계(家系)예요. 나는 중학교 때부터 쭉 군
대밖에 못 보았어요."
"사관학교 수석이었다지요?"
"어떻게 그런 걸...?"
"조종사들 사이에선 유명해요. 수석 중위님은 도깨비보다 무섭다고."
"도깨비!...... 그렇지만 그럴지도......."
미사는 쓸쓸히 웃었다.
"당신, 마크로스에 좋아하는 사람 있죠?"
"넷......!?"
갑작스런 질문에 히카루는 깜짝 놀랐다.
"미스 마크로스 양이죠?"
"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어요."
"......."
"애인이에요?"
"......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민메이가 미스 마크로스에 뽑히
고, 노래 연습 따위를 시작하고...... 왠지 멀어져가는 듯한....."
"노래 연습...... 가수가 된데요?"
"아마, 어쩌면 벌써 데뷔했는지도 모릅니다."
"노래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쨌든 마크로스에 돌
아가고 싶어지고...... 나는 임무가 애인 대신이지만......."
잠시 말이 끊겼다. 히카루가 다시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네?"
"미사 중위님도 틀림없이 마크로스에 돌아가면......."
"고마워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여자답게 계시면......."
"상사를 놀리면 안 돼요."
히카루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그 때문이라도 마크로스에 돌아가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둘은 일어섰다.
어두운 통로에는 여기저기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은 젖어 있었다. 조심스레 걸어나가던 히카루와 미사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둘은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미사의 부드러운 머
리카락이 흔들렸다.
"바람......?"
히카루도 뺨에 미지근한 공기를 느꼈다.
"이쪽이다!"
히카루는 미사의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달렸다. 두 사람의 발 밑에서 물이
튀었다. 푸른 새를 찾는 소년과 소녀처럼 둘은 숨을 몰아쉬었다. 빛이 보이
며 시계가 넓어졌다. 두 사람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어 로크 앞에 섰다.
보드르 함내의 광대한 동굴 속에 떠 있는 전함들이 보였다.
"굉장하군."
미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아, 이런 상대와 싸움을 했으니 이길 수가 있나?"
"전쟁 따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을까?"
두 사람 뒤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급속히 가까워졌다.
"숨어요!"
히카루는 미사를 밀듯이 하며 파이프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둠 속에서 맥
스와 하야오가 뛰어나왔다.
"휴우!"
"굉장한 전함이다!"
눈앞의 광경을 보고 두 사람도 탄성을 질렀다.
"맥스! 하야오!"
히카루와 미사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대, 대장님!"
둘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사히......!"
맥스가 경례를 했다.
"자네들도 잘......!"
미사는 싱긋 웃었다. 네 사람은 나란히 서서 엄청난 우주선을 바라보았
다.
"저 배는 곧 출항할 것 같군요."
맥스가 바로 눈 밑을 가리켰다. 붉은 색의 중형선이 정지해 있었다. 중형
선은 투명한 튜브로 브리타이 함에 접속되어 있었다. 튜브 속을 몇 개의 콘
테이너가 흘러갔다.
"우리들이 타고 온 배에서 물자를 운반하고 있어. 이번에는 저 배로 마크
로스를 향하게 할 것 같군."
"어쨌든 잠입할 가치는 있군요."
히카루 일행은 창고에 도착했다. 복잡하게 놓여 있는 기계류 뒤에 숨어서
에어 로크를 들여다보았다. 튜브는 그 로크와 연결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거인 병사가 보였다. 병사는 계속 콘테이너에 짐을 싣고 튜브를 지나, 건너
편 중형선으로 운반해 갔다. 틈으로 이를 지켜보던 히카루는 거인의 발뒤꿈치
를 빠져 나가 콘베어 벨트 옆에 몸을 숨겼다. 곧 미사, 하야오, 맥스도 뒤따
랐다. 네 사람은 재빨리 벨트에 기어올라가 콘테이너와 콘테이너 사이에 숨
었다가 중형선에 올라탔다.
이윽고 튜브가 떼어지고 중형선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선
회한 후, 브리타이 함보다 한 둘레 정도가 더 큰 라플라미즈 함에 다가가
멈췄다.
캡슐의 발진
라플라미즈 함의 브릿지에서는 두 여성이 마주 앉아 작전에 대해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다.
"적함에 스파이를 잠입시키는 것은 아주 소극적인 작전입니다."
밀리어 화리너가 말했다. 초록색의 머리카락이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
다. 일명 "에이스 밀리어"라 불리는 배틀 슈츠 대의 대장이다.
"그런 소리하지 마. 밀리어, 이건 보드르져 사령관 각하의 특별 명령이
야."
라플라미즈가 말했다. 여성 사령관의 눈은 차분하게 지적인 빛을 발했다.
"보드르져 각하?"
"그래. 이번의 적은 감찰군보다도 위험한 놈들인지도 몰라."
"위험"이라는 말에 밀리어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라플라미즈는 함장석에
앉으며 말했다.
"......글쎄. 적함에 홀드한 뒤에, 스파이를 잠입시키는 수단이......."
"그 임무를 제게 맡겨 주시면......."
밀리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 혼자서......?"
"상대는 고작 마이크론입니다. 저 혼자 충분합니다."
"과연 밀리어는 믿음직스러워."
스크린에 연락이 들어왔다. 여성 병사가 보고했다.
"각 함, 홀드 항법 시작하겠습니다!"
라플라미즈 함과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각 전함들이 눈부신 빛을 발했
다. 함대는 사라졌다.
"홀드했다!"
미사는 창 밖의 빛을 보며 말했다. 콘테이너에 실려 중형선에 옮겨진 네
사람은 격납고 속에 있었다.
"홀드했으니,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 이 배에서 도망쳐야겠죠?"
하야오가 물었다. 미사는 줄지어 있는 배틀 포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저 전투(배틀) 포트를 빼앗으면 어떨까?"
"어떻게 움직일 작정입니까?"
"걱정 없어요. 우수한 조종사가 세 사람이나 있으니까."
미사는 어깨를 움츠렸다.
"쳇! 말씀은 잘 하시네!"
"마크로스에 돌아가지 않아도 될까?"
미사는 언뜻 히카루를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히카루에게는 그 말이 "민메이
를 만날 수 없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미로 들렸다.
"네, 네."
히카루는 대답을 하면서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맥스는 '역시 대장님과 중
위님이 잘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라플라미즈 함의 밀리어는 구두소리를 울리면서 통로를 걸어가, 배틀 슈
우츠의 수납고로 들어갔다. 죽 늘어선 배틀 슈츠 속에서 자신의 전용기
앞에 섰다. 투구벌레를 연상케 하는 배틀 슈츠 기체에는 포트와는 달리
굵은 두 개의 팔이 돌출해 있었다. 슈츠 속에서 정비원이 얼굴을 내밀고
땅에 내려서더니 경례를 했다.
"발진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수고했다."
"이쪽이 스파이 3인조입니다."
정비원은 배틀 슈츠 발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투명한 소형 캡슐이 놓
여 있었다. 창 너머로 마이크론 화된 와레라, 로리, 콘더의 모습이 보였다.
"저, 저건...... !"
"밀리어다!"
"에이스 밀리어다!"
세 사람은 한 마디씩 했다.
정비원은 캡슐에 얼굴을 대고 말했다.
"그래, 안심하고 맡겨라."
밀리어는 생긋 웃고는 배틀 슈츠에 올라탔다.
눈앞의 스크린이 깜박이더니 라플라미즈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적함은 이쪽에서 담당하겠다. 잘 부탁한다."
"알았다, 오버!"
대답하는 밀리어의 입술이 더욱 붉게 보였다.
다시 마크로스로
라플라미즈 함대는 홀드했다. 빛과 함께 갑자기 몇 척의 전함이 우주 공
간에 나타났다. 라플라미즈 함의 오른쪽 날개에서 발사된 많은 배틀 슈츠
는 분홍빛으로 반짝이며 꽃잎처럼 보였다. 죽음의 꽃잎이 우주 공간으로 퍼
져갔다. 왼쪽 날개의 해치에서 밀리어의 슈츠가 노란 분사염을 뿜으며 마
크로스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뭐하고 있어요? 홀드했어요, 빨리 하세요!"
미사는 고함쳤다. 배틀 포트에 들어간 히카루 일행은 조종방법을 몰라 쩔쩔
매고 있었다. 그것은 거인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계기가 엄청나게
컸다. 세 사람의 조종사는 여기저기 레버나 스위치 따위를 만지작거리며 조
종법을 추리해 내고 있었다.
"당신들이 그래도 발키리의 조종사들이에요?"
미사의 목소리가 콕피트에 울렸다.
"역시 도깨비보다 무섭군."
히카루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아니에요. 잠꼬대입니다!"
히카루는 시트 위에서 몸을 길게 늘이며 레버에 손을 걸고 잡아당겼다.
"갑니다!"
포트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으앗!"
"꺼!"
거센 진동으로 네 사람은 사방으로 뒹굴었다.
"으으......."
히카루가 고개를 들어보니, 쓰러지는 힘에 의해 스크린이 켜져 있었다. 세
거인이 비쳤다. 거인들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맥스!"
히카루가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오버!"
맥스는 파이어 스위치를 눌렀다. 광선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벽을 부수
었다. 벽 건너편은 우주였다. 굉장한 압력의 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순간 포
트의 몸체가 떠오르며 함 밖으로 끌려나갔다. 별들의 반짝임을 보고 일동은
환성을 질렀다.
"됐다!"
"탈출 성공!"
"저건......?"
히카루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오른쪽 전방의 우주 공간에서 공모양의 불덩
어리가 작렬하고 있었다.
"태양 같은데."
"이곳이 태양계인 것처럼!"
하야오는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미사는 맥스를 보며 물었다.
"통신기의 상태는?"
"그게 좀......."
맥스는 열심히 다이얼을 조작했다. 잡음만이 울릴 뿐이었다. 이윽고 잡음
속에서 선명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 나의...... 파일로트......
목소리는 점점 명확해지고, 맑은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번쩍 빛을 발하며 급강하
'고-'하고 분출하며 급상승......
"이, 이건 민메이의...... 민메이의 노래다!"
히카루가 외쳤다.
"민메이 양의......?"
맥스와 하야오의 얼굴이 빛났다.
"마크로스가 있군요!"
미사의 뺨에 기쁨의 빛이 가득했다.
....길게 꼬리를 끄는 비행 구름으로 커다란 하트가 두 개째 겹쳤어요....
노래는 계속되었다. 무한한 우주에서 보이지 않는 나비가 한 마리 한 마
리 날아오듯이 노래소리는 계속되었다. 우주의 어둠 속 여기저기에는 희망
이라는 이름의 요정이 숨어 있었다. 요정들은 노래했다. 그 노래소리는 나
비가 되어 춤을 추었다.
I LOVE YOU
YOU LOVE ME......
전쟁, 배틀 포트 무리, 반격 발키리 대, 서로 발사된 광선, 파괴와 폭
발......
하지만 그이는 나보다
자신의 비행기에 더욱 반했어요.....
마크로스에 접근하는 밀리어의 슈츠, 갑판 위에 내려앉은 밀리어의 슈
츠, 몸체에 구멍을 뚫는 광선, 캡슐을 밀어 넣는 금속 팔.
슈- 슈- 슈- 슈-
나의 애인은 파일로트......
슈- 슈- 슈- 슈-
나의 애인은 파일로트......
"여기는 마크로스 브릿지의 통신사 미사 중위 이하 네 명, 적 전투기 포
트를 탈환하여 표류 중, 구원바랍니다!"
<제3편에서 계속>
*해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는 그 등장 메카닉의 핵이다. 명확하게 '항공기'의
위치를 규정하는 점에서 본다면, 획기적인 SF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 히카루는 직업적인 전투기 조종사이다. 그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면서, 그가 속한 전체 대원에서 본다면 하나의 망아지에 지나지 않는다. 늘
명령을 받는 쪽이고, 친하게 대해 주는 상관이라면 직속 부대장인 포커 소령
정도이다. 마이스트로프 대령 정도의 장교들과는 훈장을 받을 때 정도밖에
만난 적이 없다. (나중에는 승진해서 조금은 군의 고관들에게도 이름이 기억
되었지만.)
그런 그가 타는 것이 '발키리'라는 단좌 전투기이다. 이 비행기는 대량 생산
되어 몇 개의 모양이 존재한다. 그가 타는 J형은, 설정에 의하면 소대장급의
사관용인데, 오히려 종래의 A형과 기종 교환이 행해졌던 개량형 비행기이
다. 입대가 비교적 늦었던 히카루는 처음부터 그것을 타게 되었다.( 히카루보
다 늦게 입대한 맥스와 하야오가 A형을 사용한 것을 보면, 포커 소령이 후배
인 히카루에게 좀 후하게 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히카루는 J형을 타면서
두 번 정도 비행기를 바꿔 탔다. 그 때마다 기체 번호가 바뀌는데, 이것은
설정뿐이고 애니메이션의 계획으로는 살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바꿔
타기'에서도 주인공의 비행기가 소모품인 무기의 본질을 묘사하려고 한 것
이 분명하다.
{추가설명: 로이 포커의 발키리는 VF-1S형이다. 극장판에선 마지막에
히카루가 VF-1S형을 타고 나간다. 아무 이것은 TV판 이야기에서 따왔다
고 생각된다. 물론 TV판처럼 로이 포커의 스컬기는 아님.
발키리 형태 구별법.- 머리 형태가 기종마다 틀리므로 머리 모양보고 구별
A형: 대공 레이저 1개(머리위에 툭 튀어나온 것). 머리모양은 사각형
J형: 대공 레이저 2개, S형: 대공 레이저 4개 }
그런데 이 발키리가 외견상으로 미 해군의 전투기 F14톰캣과 아주 비슷한
제트 전투기 모양을 하고 있다. 30년 전의 주력 군용기로서는 오히려 낡은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극히 보통의 제트 전투기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비행기가, 마치
손발이 생겨나는 것처럼 가웍으로 변신하고, 더욱이 멋진 로봇인 배트로이드
로 변신한다. 이 변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남아타리아섬 위에서의 전쟁
에서 포커가 거인 외계인 전투용 기구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광대한 전장에서 외계인과 서로 때리는 정도까지 접근하여 싸울 필요가 있는
것일까? 또 값비싼 특별 촬영 화와는 달리 상대 외계인은 언제나 맨몸으로
싸운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실로 외계인은 언제나 배틀 포트를 타고 싸우고
, 낙하한 마크로스 안에도 무기의 자료는 있었을 텐데, 어째서 감히 백병전을
예상했던 것일까? 이런 점에서 발키리라는 무기의 역할을 다음 두 가지 점
에서 생각할 수 있겠다.
1. 배트로이드의 운용은 오히려 부가적이다.(로봇이 비행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가 로봇이 된다. 가웍의 운용도 항공기, 예를 들면 호버크래프트
에 가깝다.)
2. 발키리는 현재 사용 중인 전투기에 비해 이례적일 만큼 작다.(F14의
2/3크기(1)). 이것은 배트로이드가 되었을 때, 거인 외계인의 평균 신장에 맞
을 정도만큼 무리하게 크기를 짜 맞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중에 이
작은 크기를 위해 버니어의 연료 감량등 우주공간에서의 운용에 지장을 초래
하는 것을 알고, 슈퍼 발키리 장비가 표준이 된다.)
{(1)발키리 크기: 이 설명과 다른 자료에 의하면 발키리는 12.68m으로 전투기
중 소형이다. 그러나 최신 '마크로스 플러스' 설정 자료집 뒤에 있는 자료에
의하면 크기가 14.23m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면 중형 전투기 보다 조금
작은 크기. 어느 쪽이 맞는지 원... 현재 사용중인 F14, F15가 오히려 큰
대형 전투기이다 }
결국 발키리란, 대기권내에서는 통상의 전투기처럼 싸우고, 우주 공간에서는
열 핵반응 엔진으로 큰 힘을 발휘하여 고속으로 적의 공격을 피한다. 그리고
적함에게 접근하면 날개에 장비된 소형 반응 탄두 미사일에 의해 적함의
복부에 구멍을 뚫는다. 또한 작업용 에어 로크를 발견하면 변신하여 함내에
침입하고, 나중에는 배트로이드 형태로 백병전에 의해 적을 제압하는 등,
필요에 따라 적함을 탈취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락한 마크로스의 거대함, 병력의 강함, 인류보다 훨씬 앞선 과학력에
놀란 군부가 외계인에 대항하기 위해선, 적병의 무기 그 자체를 사용할 것
인지, 그 기술을 훔쳐 개량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우주공간 전용으로 이미 무인 전투기 고스트가
다수 배치(애니메이션의 화면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아쉬움은 있지만)되어
있는 점에서 생각하여도, 발키리란 이런 작전에도 사용할 수 있는 항공기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있다. 그러므로 제2편에서는 브리타이 함내에 침입한
발키리의 활동이, 이 구상에 가장 가깝게 사용된 것 같다. 신장을 외계인과
동등하게 해 두면 적함 내의 통로나 설비를 사용하는데도 불편은 없다.(이에
대하여 다른 혹성에서의 부정지 돌파용 보행전차인 데스트로이드는 아주
작아서 오히려 몬스터 쪽이 크기로는 적당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것은
반대로 접지 압력의 한계나 차량 높이의 한계 따위로, 최소한 외계인보다
작지 않은 정도의 크기라는 점에서, 이 크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전투기 형태인 발키리의 전투 장면의 묘사도, 순식간에 접근했다가 순간적
으로 스쳐 지나가는 초음속의 싸움과 같은 느낌이 들며, 우주 공간에서도 계속
싸움을 하지 않는다. 적의 배틀 포트에 팔이 없는 것도 '전투기'대 '전투기'의
싸움을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듯하다. '마크로스'는 견해에 따라서는
애니메이션계의 첫 본격적인 비행기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제 3 편
< 제3편 중요 등장 인물>
이치죠 히카루 : 스컬 편대장으로 취임. 격렬한 전투 속에서 지휘관으로서의
자기 책임을 인식하고 인간적으로 크게 성장해 간다.
린 민메이(Lynn Minmay) : '꿈꾸는 공주'였던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우주
에서 평화의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진실로 자신을 깨닫게 된다.
하야세 미사 : 군인으로서의 책임과 여성으로서의 평화를 원하는 갈등으로
괴로워 한다. 이런 자신을 이해해 주는 히카루야말로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린 카이푼 : 19살. 민메이의 사촌. 반전 주의자. 민메이를 좋아한다.
맥스 :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 비행사. 공중전에서 밀리어를 격파한 것이
인류 최초의 우주 결혼의 계기가 된다.
밀리어 화리너 : 젠트러디 여자 비행사. 지구인 나이로 15살. 마이크론화
해서 맥스의 아내가 된다.
라플라미즈 : 지구인 나이로는 23살. 젠트러디 군 여성 사령관.
밀리어의 상관.
와레라, 로리, 콘더 : 젠트러디 군 최초의 지구 망명자.
성실하고 의리 있는 3총사
제 9 장
파란 바람
제13화 Blue Wind(파란 바람)
뜻밖의 승진
마크로스는 천천히 비행을 계속하며 로보트에서 전형적인 전함으로 되돌
아오고 있었다.
라플라미즈 함과 캠진 함을 선두로 하는 우주선이 마크로스를 포위하면서
추격했다. 아직 불꽃이 튀지는 않아 우주는 조용했지만, 긴장되는 조용함이
었다. 점점 많아지는 적의 눈초리가 우주의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흉
악한 시선이 마크로스를 감싸고 있었다.
마크로스의 저쪽 전방에 파랗게 번지는 것이 보였다. 그 투명하고 파란
빛을 향해서 마크로스는 전진하는 것이다. 지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계
속 돌고 있었다.
히카루, 미사, 하야오, 맥스는 회의실 테이블을 향해 똑바로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그로벌 함장을 포함한 네 사람의 고관이 앉아 있었다. 보드르 기간
함대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온 히카루 등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적 함대의 엄청난 전력.
·적의 사회에는 군대밖에 없고 민간인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
·따로 생활하는 남녀.
·적은 감찰군과 몇 십만 년 동안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그 때문에 인공
적으로 거대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
·거인을 축소하는 마이크론의 기술-.
"그리고, 적은 우리들 지구인이 프로토 컬쳐가 아닌가 하여 두려워하고 있
는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미사는 입을 다물었다.
고관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믿을 수가 없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세뇌 당한 건 아닐까?"
"아니, 메디칼센터 정신과에서는 모두들 이상이 없었는...."
네 사람의 고관들은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눈은
차갑게 사람을 얕보고 있고....... 거만스런 얼굴들이다. 군인도 훌륭해지
면 정치가의 얼굴 표정이 되는 것이다.
"프로토 컬쳐란 뭔가?"
그로벌이 물었다.
"거인족의 선조라는 의미 같습니다."
미사가 대답했다.
"프로토 컬쳐에는 거인족 조직 전체를 흔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관들은 소리를 내어 일제히 웃었다.
"하하하......! 그럴 듯한 추측이군."
"꽤 특이한 발상이야."
"그만두십시오, 여러분!"
그로벌이 소리쳤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그만한 전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구에 손을
뻗치지 않고, 또한 마크로스에게도 그 정도만 공격한 것 등의 의문을 설명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미사 대위, 그 밖에는 뭐 없나?"
고관 한 사람이 비웃으며 물었다.
"이상입니다."
"이 정보가 틀리더라도 지구로 가지고 돌아간다."
그로벌의 말이 끝나자,
"그럼, 암호 통신을 보내게 할까요?"
라고 말하며, 아래쪽의 한 고관이 테이블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암호를 쓰면 기밀이 해독될 우려가 있으니까."
그로벌은 담배 파이프를 물고, 독수리 문신을 새긴 라이터로 불을 붙였
다.
"우리가 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모두는 담배연기 너머로 그로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로벌이 소리를
질렀다.
"적의 포위망 돌파를 시도한다!"
고관들
깜짝 놀라 모두 일어났다.
"위, 위험합니다!"
그로벌도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지구는 여기서 전속력으로 이틀 정도의 거리에 있다. 어쨌든 지구에 돌
아가야만 하는 거다."
"그, 그러나...!"
"할 수 없어. 우리들이 프로토 컬쳐라면...."
고관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로벌에 대한 불신의 빛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그로벌은 히카루를 향해 말했다.
"자네들은 함대 안에서 대기하라. 이제부터 귀환 환영식이 있을 것이다."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것은 하야오였다.
"야, 최고다! 이래서 나도 배부르게 먹는 거야!"
"수고했다. 가도 좋아!"
히카루 일행은 발뒤꿈치를 맞추어서 경례를 했다. 동시에 몸의 방향을 바꾸
어 일렬로 걸어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미사를 그로벌은 망설이며 불러
세웠다.
"미사 중위!"
"네?"
미사가 돌아다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네를 믿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그로벌 함장님."
"...."
둘은 잠시 동안 서로 마주 보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미사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로벌은 고관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작전 회의에 들어간다."
통로를 걸어가면서 맥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을 믿지 않는 것 같애."
"당연하지. 우리들 자신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걸."
히카루의 말에 미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적어도 비디오라도 있었다면......."
"그래도, 계급을 올려 준다는 것은 조금은 인정한다는 것이겠지. 대장은
중위, 나와 맥스는 소위인걸."
"태평하구나. 넌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하야오는 그래도 즐겁다는 듯 연신 중얼거렸다.
귀환 환영회
소곤소곤 불안한 듯이, 그렇지만 호기심으로 눈빛을 번득이며 세 사람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밀리어가 마크로스 함대에 보낸 스파이 와레라, 로
리, 콘더였다. 세 사람은 시가지와 군사 구획을 연결한 통로를 통해 잠입하
고 있는 중이다. 반쯤 부서진 기계류가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것을 방패삼아
달려나가다가 몸을 감추곤 했다.
적지에 숨어 들어가는 그들 자신도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
가를 몰랐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어 불안과 초조에 잔뜩 움츠리기만 하
는 세 사람은 마치 쥐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의 차림새는 정말 볼품없었다. 길이가 긴 검은 모포 한 장씩을 두
르고 허리에는 노란 끈을 묶었으며 맨발이었다.
갑자기 인기척이 나고 말소리가 들렸다. 순간 세 사람은 기계 뒤쪽에 바
싹 몸을 붙였다.
"끝내 버려. 디스코, 디스코!"
"그래도 이 복장으로는 곤란해."
"저기 탈의실에서 갈아입자."
세 사람의 스파이는 두려운 얼굴로 마주보았다. 바로 눈앞을 킴, 샤미,
바넷사가 지나갔다.
"디스코?"
콘더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몰라. 속성 교육 과정에는 없었어."
라고 로리가 대답했다.
"좋아, 기록해 두자."
와레라는 메모를 했다.
샤미 일행은 바로 옆 다방에서 치즈 케이크를 먹고, 탈의실로 모습을 감추
었다. 곧 나온 세 사람은 감색 군복에서 원색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있었
다. 아무리 살펴봐도 군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세 여자들은 새로 나온 화
장품과 남자 얘기 등 잡다한 수다를 떨면서 시가지 쪽으로 갔다.
"봤어!?"
와레라가 말했다.
"응, 여기서는 행선지에 따라 군복을 갈아입지 않으면 안되나 봐."
콘더가 끄덕거렸다.
"대단하군...."
로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군복을 갈아입는다는 건......."
콘더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군복이 있다는 뜻이야!"
동시에 외치며, 세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탈의실 문을 열자
마자 닥치는 대로 적당한 옷들을 골랐다. 키가 큰 콘더는 노란 스웨터에 청
바지를 입고, 키가 작은 로리는 빨간 T셔츠에 파란 여자용 바지를 입었다.
둘은 탈의실에서 나와 통로에 섰다.
"와레라, 아직도 못 입었나?"
로리가 외쳤다.
"어휴! 이건 입기가 좀 불편해!"
괴로운 듯한 소리가 들리며 눈앞에 나타난 뚱뚱한 와레라는, 하얀 블라우
스에 핑크빛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어때?"
"응, 잘 어울리는군."
스파이들은 겨우 안심이 되는 듯 빙긋이 서로 웃었다. 이 정도라면 수상하
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행동하자."
세 사람은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와레라, 로리, 콘더는 시가지로 나왔으나 어리둥절해서 꼼짝도 할 수 없
었다.
밤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휘황찬란했다. 술집의 네온싸인, 카페의 간판,
양장점과 보석상 등등의 쇼윈도우의 불빛, 깜박이는 신호등. 그저 전쟁밖에
모르는 그들에게는 새로운 것들 뿐이었다. 세 사람의 앞을 많은 사람들이
형광 불빛을 받으며 오고 갔다.
"굉장한 곳이구나!"
"사람이 너무 많아."
"중요한 도시임에 틀림없어. 우리 함대에는 이런 곳은 없어."
와레라의 블라우스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로리가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남자와 여자가 행동을 함께 하고 있다고
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 다방에서 얼굴을 마
주하고 이야기하는 연인들, 벤치에서 조용히 기대어 있는 연인들을 많이 보
았다. 화가 난 와레라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데이트 중인 남녀를 쫓아가다
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앗!"
"괜, 괜찮아?"
콘더가 재빨리 뛰어가 일으켜 주었다.
로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까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우리들이 주목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애."
"우리가 입은 군복이 잘못되었나?"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콘더가 와레라에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 옷은 감촉이 이상해."
이렇게 말하면서 와레라는 스커트의 끝을 들어올렸다. 킥킥거리는 웃음소
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 와레라, 너 때문이었어!"
로리가 외쳤다.
"그것은 여자 군복이야! 남자는 그런 옷이 아니야!"
"윽!"
와레라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일단 뛰자!"
세 사람은 비웃음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로리와 콘더가 공중변소로 뛰어
들어갔다. 와레라도 따라 들어갔다.
"아니, 여자는 저쪽이야!"
한 노인이 외쳤다.
와레라는 숙녀용 화장실로 뛰어갔다. 동시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악!"
"누구냐!"
와레라는 얼굴을 여기저기 할퀴고 넘어진 채 바닥에 굴렀다.
"이, 이것이 문화인가?"
바닥의 타일이 차가웠다.
"그들이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리셉션 회장은 많은 사람들로 몹시 혼잡했다. 박수와
환성이 아낌없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의 말에 따라 무대에서는 히카루 일행에게 조명을 비추었다.
"미사와 히카루 중위야말로 우주의 주인공이며, 하늘을 주름잡는 우리의 날
개입니다. 하야오와 맥스도 잘하셨습니다! 용감히 싸우고 돌아오셨습니다!"
미사는 히카루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이렇게 소란스런 데는 정말 취미가 없어."
"그렇긴 하지만, 이런 일은 드문 일이니까 괜찮지 뭐."
사회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서 미스 마크로스이며 기대하시던 신인 가수 민메이양 으로부
터 꽃다발 증정이 있겠습니다."
관객들의 갈채가 한층 높아졌다.
"민메이가......!"
갑자기 히카루는 멍청해졌다. 민메이는 세련된 걸음걸이로 무대 끝에서부터
걸어나왔다. 은빛 드레스의 가슴에 빨간 장미가 달려 있었다. 무대 중앙으
로 나온 민메이는 하얀 양팔을 흔들어 관객들의 환호에 답례했다. 자신의
인기에 만족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사회자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민메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사는 민메이의 손을 잡았다.
히카루에게 다가온 민메이는 살짝 웃었다.
"와, 서로 유명해져 버렸구나!"
"정말 그래."
민메이는 히카루의 볼에 살짝 키스를 했다. 순간 히카루의 얼굴이 빨개짐과
동시에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소리는 리셉션장 가득히 넘쳐 왕
왕 울리고 있었다.
"와! 폭동이다."
와레라가 외쳤다.
"아니야, 그게 아닌 것 같애."
콘더는 귀를 막았다.
스파이 3인조는 관객들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소용돌이 같은 열기 속에서
세 사람은 모두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다시 탈의실에 숨어 들어온 와레라는
여자 옷을 벗어 버리고 바지와 스웨터를 입었다.
"그런데, 저 녀석들...."
로리가 턱으로 히카루 일행을 가리켰다.
"어떻게 기간선에서 탈출한 걸까?"
"음! 프로토 컬쳐의 힘인가......?"
콘더는 팔짱을 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민메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히카루 일행은 무대 옆의 자리에 앉았다. 네 사람은 무릎에 꽃다발을 놓
고, 하얀 군복 위에 놓인 화려한 꽃다발을 만족스런 듯이 바라보았다.
"그럼, 용사들의 귀환을 축하하는 뜻에서 "나의 애인은 파일로트"란 노래를
바치겠습니다."
민메이는 일어섰다. 오색의 종이 테이프가 그녀를 향해 뿌려졌다. 반주가
시작되자, 민메이는 멜로디에 맞추어 맑은 목소리로 온 정열을 쏟으며 열창
했다. 맑은 목소리는 점점 관객석으로 퍼져갔다. 사람들은 그 노래소리에
환호하며, 손을 흔들고 발을 올리거나 뛰어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왠지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애."
와레라가 말했다.
"나도 그래. 왜 그럴까?"
콘더와 로리도 가슴을 눌렀다. 세 사람은 노래라는 것을 처음 들은 것이
다. 로리가 발로 리듬을 잡기 시작했다. 와레라와 콘더의 몸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히카루는 꼼짝도 않고 민메이를 바라보았다. 민메이의 몸은 부드럽게 움직
였다. 그 몸짓은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라이트의 불빛은
소녀를 비추며 단정하게 빗은 긴 머리와 은빛 드레스 위를 부드럽게 흘러갔
다.
히카루는 눈을 감았다.
"왜 그래?"
미사가 물었다.
"아니.... 라이트가 어지러워서......."
히카루가 대답했다.
재출격
"와! 돌아왔구나."
브릿지로 돌아온 미사를 클로디아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너무 오래간만이로구나!"
"그래...."
미사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마크로스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어때? 옛 보금자리로 돌아온 기분이?"
클로디아의 말투는 언제나 정다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에게 이야기하
는 듯한 말투이다. 꼭 달라붙는 듯한 너무나 여성적인 태도는, 미사와의 성
격과는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항상 미사의 일을 걱정해 주었다.
미사는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작동석 위에 양손을 얹었다. 조금도 변함
없는 금속 계기의 감촉이 새롭게 느껴졌다.
"앉아."
클로디아가 말했다.
"언제나 심각하구나....... 인생은 즐거운 것만은 아니야.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
미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클로디아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싱글벙글하면서,
"아! 여기가 우리의 직장인 거야! 아, 이 감격! 또 감격!"
그리고는 다시 찌푸린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렇게 라도 하니까 좋지?"
둘은 동시에 쳐다보았다.
"선배님!"
뚜벅뚜벅 발걸음소리가 나면서 킴, 샤미, 바넷사가 뛰어들어왔다.
"어서 와!"
세 사람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미사를 껴안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모
두는 커피로 간단한 축배를 들었다. 미사는 한참 동안 컵에 얼굴을 댄 채
있었다.
포커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히카루의 얼굴이 보였다. 히카루는
하야오, 맥스와 함께 함대 안의 지프에 타고 전방을 달리고 있었다.
포커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아직 긴 담배를 던져 버렸다. 그가 즐겨
피우는 담배는 가늘고 길게 만 담배로, 담배잎에 가까운 맛이 났다. 남자의
군복에는 항상 그 냄새가 배어있다.
"어이, 히카루!"
포커의 차가 히카루의 차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앗,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뭘 하고 있었어, 이 무정한 놈! 얼굴도 내밀지 않고......."
포커는 기쁜 듯이 부드러운 금발을 쓸어 올렸다.
"그런데, 자네들은 어딜 가는 중인가?"
"아까 B호 배치 방송을 못 들으셨읍니까?"
하야오가 말했다.
"너희들에게 함대 내 대기 명령을 하다니!"
히카루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미사 대위는 브릿지로 돌아갔습니다."
"바보! 밖과 여기는 달라. 빨리 숙사로 돌아가서 자도록 해."
"그러나...."
"모두 영창으로 가고 싶은가!?"
포커는 주먹을 휘둘렀다.
히카루 일행은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돌아가겠습니다."
캠진은 레이더 스크린 앞에 서서 영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우리는 여기고 마크로스는 저기......."
이때 영상에 비친 마크로스가 점점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길 봐! 놈들은 속도를 내고 있는데 이런 포위망이 무슨 소용이야!"
캠진은 침을 뱉었다.
"도망치게 해버리자! 놈들의 별도 여기서 가까워. 여기서 그대로 두는 것
은 캠진 가문을 부끄럽게 하는 거야."
"음, 그럴지도 몰라."
부관인 오이글이 대답했다.
"조용히 해!"
캠진은 거칠게 스크린을 꺼 버렸다.
"이 이상 참을 수는 없어!"
그로벌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어떻게든 적을 제치고 지
구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속도를 올린 것이다.
"적 함대의 반응은 어떠한가?"
함장석에 앉은 그로벌은 파이프를 꽉 쥐고 있었다. 바넷사가 돌아보며 말
했다.
"우리 함대와 마찬가지로 속력을 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미사, 자네의 추측이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좋겠지마는...."
"지금 달의 궤도를 통과 중입니다."
바넷사의 보고에 이어 미사가 보고했다.
"발키리 모두 B호 배치 완료."
"음...적의 움직임은?"
"변함이......."
말을 하다 말고 바넷사는 눈을 번득였다.
"앗! 적 함대의 일부가 진로를 우리 함대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발키리 대, 전 기 발진!"
"알겠습니다!"
미사는 마이크로 재빨리 말했다.
"발키리 각 함대, 공격 태세로 들어가라!"
그로벌은 파이프 끝으로 군모를 치켜올렸다.
"변신을 전개하라! 돌파구를 열어라!"
지구로 돌아온 마크로스
"어떻게 된 거지?"
로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변신이란 방송이 나오자마자 여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잖아."
스파이 세 사람은 인기척 없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응, 훌륭한 통제야. 민간인이란 것도 군인의 일종인가?"
콘더가 말했다.
계속적으로 사이렌이 울리고 있고, 길가에는 쥬스 빈 통과 아이스크림
종이, 담배 빈 상자 등이 여기저기 흐트러진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해진 세 사람은 서로 몸을 의지한 채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발밑이 흔들리더니 옆의 길바닥이 갈라지며 입을 열었다.
"이, 이런...!"
놀란 콘더는 전등에 매달렸다. 그러자 로리는 콘더에게, 와레라는 로리에
게 매달렸다. 더욱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천장에서 몇 개의 금속 벽돌이
떨어지며 도로의 일부가 밀려 올라왔다.
"앗!"
콘더의 몸이 튕겨오르자, 세 사람은 동시에 데굴데굴 굴러서 길가 레일에
머리를 부딪쳤다.
"왼쪽 날개 변신률 75 퍼센트. 오른쪽 날개 변신률 80 퍼센트. 포대 위치
상승."
킴이 보고했다.
마크로스는 변신을 해 로보트 모양으로 바뀌었다. 금속의 거인이 어둠 속
에 떠올랐다.
"적 함대의 일부가 갑자기 돌격해 옵니다!"
바넷사는 레이더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포대 발사!"
그로벌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클로디아가 작동을 시작하자, 포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마크로스의 양어
깨에 부착된 두 개의 포탄이 발사되고, 날아가는 포탄 사이에는 오렌지빛
입자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평으로 정지한 포대에서 다시 빔이 발사되었다.
포는 캠진 함대의 한 부분을 관통했다. 신기루가 사라지듯이 여러 척의 전
함이 순식간에 소멸해 버렸다.
"기 죽지 말고 쏴라!"
캠진의 명령을 받은 함대는 반격해 왔다. 굉장한 빔이 순간적으로 어둠
속을 달렸다.
정면의 유리가 하얗게 빛을 받으며 마크로스는 탄을 맞았다.
"왼쪽 제2 추진기 격파!"
"E 블럭 공구 파탄!"
"27 구역 소멸!"
통신원들의 보고를 듣고 그로벌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사는 이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 추측이 틀린다면....... 만약 우리들이 프로토 컬쳐가 아니라
면....'
라플라미즈는 스크린을 통해 캠진 함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브리타이
대신에 스파이 잠입 작전을 수행한 여성 사령관이다.
"음, 캠진 녀석 제멋 대로군...."
라플라미즈는 자색 눈동자에 증오를 품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보드르져 각하로부터 마크로스를 침몰시키라는 허가는
없었습니다만...."
여성 병사가 물었다.
"함대를 캠진 전면으로 전개하여 막아라!"
"포위망이 무너져 버립니다만......."
"...방법이 달리 없다."
라플라미즈는 길이가 긴 진홍빛 군복을 뒤로 젖히며 함장석에 앉았다.
"캠진...소문 이상으로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라플라미즈 함대는 일제히 속도를 올렸다. 아울러 마크로스의 포위망이
무너져 갔다. 붉은 빛 전함 대의 무리는 마크로스와 캠진 함대 사이로 미끄
러져 갔다. 캠진 함대의 공격이 갑자기 멈추었다. 라플라미즈의 선두가 마
크로스를 지키는 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할 작정이지!"
놀란 캠진의 눈앞에 스크린이 켜졌다. 그 화면에서 라플라미즈의 얼굴이
나타나 캠진을 노려보았다.
"캠진, 보드르져 각하는 마크로스를 침몰시켜도 좋다는 명령은 내리지 않
았다. 나는 직영 함대 지휘관으로서 새로운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 명령을
수행한다. 이 이상 멋대로 행동하면 전 함대의 목표물이 된단 말이다!"
스크린이 바뀌며 라플라미즈 함대의 위용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함대의
무리는 날카로운 포대를 열고 캠진 군단을 향했다.
"이건 위협이 아닙니다."
오이글이 말했다.
"윽!"
캠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몸 전체가 흔들렸다.
"언제나 저 녀석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매가 파리 한 마리에게 당하다
니!"
라플라미즈 군단 저쪽으로 마크로스가 보였다. 마크로스는 뚫려진 포위망
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라플라미즈 놈, 상관인 척하다니! 내가 이대로 둘 것 같으냐......!"
캠진은 스크린을 후려쳤다.
"이대로 주저앉는다고는 생각지 마라!"
그의 주먹은 정확히 마크로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로보트형의 전함은 푸
른 지구를 배경으로 천천히 멀어져 갔다.
"어떻게 된 거야? 적이 적의 공격에 방패가 되어 주다니."
클로디아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살았다."
그로벌은 그제야 어깨에서 힘을 뺐다.
"좋아, 이대로 대기권으로 진입한다."
"알았습니다!"
"발키리 편대는 도착했는가?"
미사가 돌아보며 대답했다.
"네, 전혀 피해가 없었습니다."
"음! 진로는 알라스카 통합군 사령 본부!"
그로벌은 창 밖을 쳐다보았다. 감청빛 지구가 온화한 모습으로 보였다.
갈색에 녹색이 섞여진 듯한 지구의 하얀 구름은, 녹다 만 눈이 남은 듯한
변덕스러운 모습이었다.
사람은 푸른빛을 볼 때 가장 침착해진다고 한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
이 살고 있는 별의 색깔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 인류의 일생을 품에
안은 조용한 의지. 푸른빛은 부드러운 의지의 상징인 것이다.
마크로스는 대기와의 마찰을 견디지 못해 일부가 폭발하고 말았다.
"전에 공격을 당했던 오른쪽 추진기입니다."
클로디아가 말했다.
"7번 동력 제어 시스템이 파열했습니다."
"고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미사가 계속 보고했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말을 마친 그로벌은 팔걸이를 꽉 쥐었다.
마크로스는 급속도로 고도를 낮추었다. 함대에서 하얀 연기가 일어나며,
마찰열은 마크로스 밑으로 불꽃을 뿌렸다. 불꽃은 함대의 몸체를 따라 탁탁
튕겼다. 급격한 하강은 브릿지의 압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모두는 발밑에서
떠오르는 듯한 이화감을 느꼈다. 귀가 울리고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모든
계기도 덜그럭덜그럭 흔들렸다. 이윽고 첨벙! 소리와 함께 마크로스는 해상
으로 낙하했다.
드디어 유랑자들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거대한 물기둥이 튀어올랐다.
물기둥은 두꺼운 구름을 꿰뚫고 구름은 버섯모양으로 부풀어올랐다. 마크로
스는 상반신을 해면에 내놓고 천천히 떠돌았다.
태양은 빛났다. 함대에서 흘러나온 물방울에는 작은 태양이 하나씩 빛나
고 있었다. 작은 무지개가 몇 겹으로 비치고, 눈부신 태양은 브릿지 가득히
넘쳐 흘렀다.
"파란 하늘...돌아왔구나!"
킴의 첫 마디가 태양을 받으며 터져 나왔다.
"그래, 지구다!"
킴, 샤미, 바넷사는 서로 손을 잡고 환성을 질렀다.
"돌아왔다! 돌아왔다! 돌아왔어!"
마치 노래를 부르듯 외쳐 댔다.
미사와 클로디아는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눈
물이 글썽거렸고, 그로벌은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군모 밑에 감춰
진 그의 눈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히카루와 하야오, 맥스는 프로메테우스 갑판에 서서 바다 냄새를 맡고 있었
다.
"아, 바다다! 야호! 지구다!"
하야오는 하늘을 향해 양손을 벌리고 마구 뛰어올랐다.
"대장......우리는 드디어 돌아왔어요!"
맥스의 앞머리가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아! 햇살이 이렇게 따뜻했었던가...!"
편대를 짠 발키리가 세 사람씩 종대로 줄을 서고 있었다.
제 10 장
파인 사라다
제14화 Global Report(그로벌 보고서)
이 편은 스토리는 없고 1화 부터12까지의 줄거리를 그로벌 함장이 요약
해서 설명하는 형식이다.(한편 그냥 데우네...제작비 절감)
제15화 China Town(차이나 타운)
알라스카의 통합군 기지
그로벌과 미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소파의 부드러운 탄력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소파는 벽을 따라 L자형으로 놓여 있고, 실내는 20명 정도가 파
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다. 벽에 붙어 있는 층수 표시기가 하강하고
있음을 색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사치스럽게도 만들었군."
"음, 깊이도 6 킬로미터나 되고......상당히 길군."
여기는 엘리베이터 안이다.
알라스카의 통합군 기지는 광대한 평야의 방사 선상으로 각종 군사 시설
을 갖추고 있다. 기지의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길게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 구멍 밑에 사령부가 있다. 금속으로 꽉 닫혀진 구멍 안쪽 벽을 그로벌과
미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그랜드 캐논이란 걸 알고 있나?"
그로벌이 물었다.
"그랜드 캐논?"
"그건, 지구의 중력장을 에너지원으로 하고 마크로스의 주포 원리를 응용
하여 7, 8년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네. 그 포대는 좀전에 내려왔던
종렬로 벌리고 있는 커다란 구멍을 이용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모두 대포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로벌은 크게 웃었다.
"자네는 여기에 처음 오는 것인가?"
"아니요. 아버지를 따라서 몇 번 왔었읍니다만,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왔
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랬었군. 사관학교 학생은커녕 사관들조차도 들어온 적이 거의 없는 곳
이다. 그러나...."
"네...?"
"아니, 엄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하야세도 하나뿐인 딸에게는 엄하지 않
았던 것 같군."
"그럴까요...?"
미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났다. 미사에게 군인
정신을 심어 준 아버지였다.
"통합 전쟁 때 나의 상관으로서 전선에 함께 있었을 무렵, 상부와 식량
배급으로 옥신각신했었지. 결국 한 부대를 이끌고 아군의 식량 창고에서 날
치기하는 바보짓도 했었는데......."
"어머! 함장님도 함께요?"
미사는 눈을 깜빡거렸다.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로벌은 미사의
웃는 얼굴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음! 좋아, 미사."
"네?"
미사는 숨을 죽이고 함장을 쳐다보았다.
"적으로부터 탈출한 후 그렇게 웃는 얼굴은 처음이지?"
"......."
그로벌의 말 그대로였다.
보드르 기간선에서 보고 들은 것 모두가 항상 미사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
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하나
그녀를 침울하게 한 것은, 어떻게 하면 모든 사실을 사람들에게 믿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총사령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다면, 조금은 사태도 좋아질 텐데....
수뇌부를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열쇠겠지. 자네로서는 짐이 무거울지
모르겠네 만, 나와 함께 노력해 주게."
그로벌은 미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좋아."
"오래간만이군, 그로벌 군. 통합 전쟁 후에 한 번 만나고 처음이지?"
하야세 제독이 말했다.
"네, 제독님!"
경례하는 그로벌과 미사는 회견실에 서 있었다. 둘의 바로 앞 벽에는 네
대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각의 스크린에는 하야세 제독을 비
롯하여 최고 간부들의 얼굴이 비쳤다.
"너무 서두르는 것 같네 만 보고를 들을까?"
간부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조용한 실내에는 테이블 하나가 피고인석과 같이 놓여져 있을 뿐이다. 미
사는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찢어진 편지
추가설명: 원작에는 이 앞부분에 히카루가 민메이를 비행기(미스 마크로스때
부상으로 받은 팬라이너)에 태우고 오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 이륙전엔
이미 스타가 된 민메이를 볼려는 팬들과 민메이의 매니저가 나온다.
여기서 매니저 모습은 마크로스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미키모토 하루히코
라는 설 지배적이고 나도 미키모토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민메이 매니저라고
확신한다. 혹시 발키리 정비사 중 카와모리 쇼지(발키리 디자인 한사람
이며 연출, 극장판의 감독)는 없나? ^^, 좌우지간 마크로스 TV판은 제작진의
장난이 수 없이 많이 있다. 극장판의 버드와이져 광고보다 더 심하다.)
"거짓말 같애! 그러나 정말이지? 정말로 여기가 진짜 항구가 보이는 언덕
의 공원이지?"
"아! 그런데 민메이, 괜찮을까? 멋대로 나와 다녀도...... 나중에 매니저
에게 혼나는 건 아니야?"
"머리 아픈 말 좀 하지 마!"
"머리가 아플 정도로 바쁜 거야? 역시......."
"대단한 일은 아니야...."
"어느 정도야?"
"응......텔레비전 녹화도 하고, 무대에도 나가고, LP 레코드와 그리고
영화사 일도 있어."
"정말 인기 있구나."
"LP 녹음하면 히카루에게도 한 장 줄께."
{LP: 마크로스는 82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이고 시대 배경은 21세기 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생활 양식을 일부분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지금
말하는 LP다. 이젠 CD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지만, 마크로스 음악은
원래 LP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응."
"영화도 보러 와 줄래?"
"갈께."
"...히카루, 언젠가 둘이서 마크로스 속에 갇혔을 때의 일 기억해?"
"잊을 리가 있어?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 때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말했지만, 설마 정말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었어."
"그렇지만 왔잖아. 결국 지구로 돌아온 거야."
"아, 그렇구나!"
"왜 그래?"
"바다에 인사하는 걸 잊고 있었어."
"뭐라구!?"
"이 바다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여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꺼야."
"그래도......."
"어이, 바다야! 오랜만이구나! 건강하다! 나는 돌아왔다!"
"어! 사람이 보고 있어!"
"응? 히카루, 엄마에게 소개할께 가자."
민메이는 히카루의 손을 잡았다. 공원을 나온 둘은 맥이 빠졌다. 그래서 웬
지 쓸쓸한 듯한 가로수를 따라 걸었다. 민메이는 그리운 냄새를 마음껏 들
이켰다. 바다 냄새와 배기가스와 중국요리의 냄새가 뒤섞인 미묘한 냄새였
다.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니, 중국음식점들이 보였다. 죽 늘어선 요리
점의 화려한 간판이 볼품없는 이국 정취를 장식하고 있었다.
"여긴 우리 나라 같지 않아."
히카루가 감탄하며 말했다.
"응. 저기에 '해남반점'이 있고, 거기를 지나면......."
히카루의 팔을 확 잡아끌며 민메이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어
떤 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여기야!"
민메이는 화려하고 멋진 장식들을 얼빠진 사람처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나의 집. 아직 있었어......!"
"아직 이라니......? 1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10년이나 된 것 같애...."
민메이는 유리문을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어서 오십시오'
라고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점원은 의아스런 듯이 얼굴을 들었다.
"아, 아, 아가씨......!"
그제야 알아차린 그는,
"크, 큰일입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라고 외치며 허둥지둥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곧이어 민메이의 엄마를
밀어붙이듯이 하며 돌아왔다.
"웬 소란이냐?"
점원의 소란스런 행동에 압도된 엄마였지만, 민메이의 모습을 보자 멍하
니 그 자리에 멈추어 버렸다.
"다녀왔습니다."
민메이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엄마는 민메이를 와락 껴안았다. 히카루는 웬
지 쑥스러워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점심을 하기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
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용을 새겨 넣은 칸막이가 구석구석에 놓여져 있었
다.
"아니, 너는...?"
민메이 엄마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합 전쟁 때 죽었다고 한...."
{추가설명: 위의 대사 내용은 나도 뭔지 모르겠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바르게 고치면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남아타리아 섬에서 마크로스가
진우식 때의 외계인과의 전투를 일반인은 모른다. 공식적인 보도는 밑에
나오지만 반통합군의 잔존 세력에 의해 마크로스가 공격 당한 걸로... }
히카루는 갑자기 눈썹을 찌푸렸다. 통합 전쟁이란 세계 통일을 노리는 통합
정부와 반정부와의 전쟁으로 3년 전에 끝났다.
"이 분은......."
민메이 엄마의 시선을 느낀 히카루는 얼른 자세를 바르게 했다.
"히카루 군이에요! 날 도와주었어요. 비행기로 이곳까지 태워다 주었으니까
요."
"가, 감사합니다."
엄마는 히카루의 손을 잡았다.
"아니...그럼 곤란해지는데...."
히카루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로벌 군, 그리고 미사 대위, 나는 자네들을 조금은 다른 인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간부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우선, 적이 그 정도의 전력을 갖고 있다면 왜 마크로스를 돌려보냈겠는
가?"
"그러니까 그 이유는 지금 이 보고 속에......."
미사가 말했다.
"그런 바보스런 이야기를 믿으라는 것인가?"
간부들은 비웃었다.
"이치에 맞는 말을 하게, 미사 대위."
제독의 말에 미사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게 삼켜 버렸다. 그로벌이 다
시 나서서 물었다.
"각하, 제가 제출한 요청은 인가를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작전 계획과 오만 육천 명의 피난민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인가?"
"네."
하야세 제독은 무표정하게 눈을 감았다. 간부 중의 한 사람이 대신 대답
했다.
"병력의 보충 및 자재 보급은 계속 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단, 자네가 말하는 적군과의 접촉, 그리고 정전 교섭 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 그러나, 막강한 적에 계속 대항하는 것은...."
"젠트러디 군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별나라 사람들이야. 예를 들어, 자네
들의 추측대로 그들이 우리와 아주 닮은 생물이라 해도 그 정신 구조의 차
이는 알 수가 없다. 서투른 평화 교섭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르
지 않소."
"그럼, 마크로스에 타고 있는 오만 육천 명의 민간인을 내리는 것만이라
도......."
"그로벌 장군...."
하야세 제독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은 모두 사망했다. 따라서 하선할 수가 없어."
"뭐라고요?"
"무슨 말씀이에요!?"
그로벌과 미사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마크로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발표할 수 있겠는가? 전국에
큰 혼란이 일어난다. 우리들은 마크로스가 우주로 떠난 직후 이런 보도를
했다. 마크로스를 습격한 것은 반통합군 잔재 게릴라이며 남아타리아섬은
전멸했다. 그리고 마크로스는 테스트 항해에서 나왔다고....... 그런데 이
제와서, 일의 진상을 아는 오만 육천이나 되는 망령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미사는 조그맣게 외쳤다. 그로벌은 말투가 강해졌다.
"그러나, 그들을 그곳에 잡아두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간부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로벌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누르는 것이 자네의 임무다!"
제독은 계속했다.
"그러나, 만약 자네의 보고대로 외계인이 민간인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나타낸다면, 민간인을 태운 마크로스는 적의 주의를 끌 것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앞으로도 계속 적의 눈길을 끌어 주게. 그 사이에 우리는 반격 준비를
갖추는 거야. 위험하지만 시간을 벌어야 해."
"아버지!"
미사는 똑바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너무해요! 적어도 민간인만이라도......!"
"대위, 개인 사정을 생각할 수는 없다."
제독의 말투는 어디까지나 사무적이었다.
"자네와 나는 부녀간이지만 여기서는 군인이야."
미사는 움찔했다.
"만약, 민간인을 전쟁에 휩싸이게 하는 사태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로벌이 물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어.... 그 이상의 말싸움은 필요 없다. 심문을 끝내겠
다."
갑자기 스크린의 영상이 사라졌다. 간부들은 무거운 침묵을 남기고 모습
을 감추었다. 그 무거운 침묵을 견딜 수 없는 듯 그로벌과 미사는 천천히
어깨를 떨구었다.
"허락할 수 없어!"
갑자기 민메이의 아버지는 테이블을 쾅 쳤다.
외동딸이 돌아온 것은 실로 기쁜 일이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사가지고
온 열대 금붕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아 버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딸을 포옹하는데 방해가 되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말에
벌컥 화를 내었다.
"가수가 되다니! 게다가 군함 속에서 노래를 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결국 위문부대와 같은 거지!"
"그래요. 애써 살아 돌아왔는데......!"
엄마도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말씀하셔도 나는 마크로스에 돌아가야 해요. 이렇게 몰래 도망치
는 건 곤란해요."
"안 돼! 너는 이제 어디에도 가서는 안 돼!"
"가야 해요! 마크로스이긴 하지만 텔레비전에도 나가야 하고 레코드도 만
들어야 해요. 이번엔 영화에 출연해야 하는걸!"
민메이는 히카루를 향해 도움을 청했다.
"그렇지? 히카루!"
"으응......."
히카루는 대답하기 곤란해서 애매하게 끄덕거렸다.
"그런 거짓말을 누가 믿겠니!"
"정말이에요!"
민메이는 위를 쳐다보며 외쳤다.
"아!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인데......나중에 사위를 얻어서 이 가게
를......."
엄마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파묻었다.
"히카루 군, 이 딸을 보내 주면 안 되겠나?"
아버지 말을 듣고 히카루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건 그......네......."
"안 돼요, 히카루! 곤란하잖아요!"
민메이의 음성이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나와 히카루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게다가 나는 몇 만의 팬을 배반할
수 없어요!"
"...또 그런 말을...!"
엄마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청년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주머니?"
말을 하다 말고 청년은 민메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 민메이!"
청년은 눈이 휘둥그래져 외쳤다.
"카, 카이푼 오빠!"
히카루는 민메이가 양팔을 크게 벌리며 청년의 팔 안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민메이!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서 청년은 민메이의 어깨를 안았다. 미남자였다. 섬세한 얼
굴형에 약간 긴 머리가 잘 어울렸다. 갑자기 생긴 일은 히카루의 감정에 커다
란 구멍을 내었다. 그 구멍 속에 강한 질투가 밀려왔다.
"설마 이런 데서 카이푼 오빠를 만날 줄이야!"
민메이의 소리는 기쁨에 넘쳐 튕기는 듯 나오고 있었다. 카이푼은 대답했
다.
"응! 평화 운동에 가담하고 난 뒤 마크로스 따윈 당치도 않다고 집에다
말하고 뛰쳐나온 건 잘했지만, 부모님을 뵈려고 돌아가려니 선편도 없고...
듣자니, 섬은 완전히 파괴됐다는데......."
"그래, 굉장했었어."
"아, 민메이만이라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참, 아저씨 아주머니도 건강하게 계셔."
카이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정말이야? 어디에!?"
"마크로스 속에."
"마크로스 속!?"
"떠올랐어?"
"아...아무것도...."
이때서야 카이푼은 겨우 히카루를 인식하고 민메이로부터 떨어지며 인사를
했다. 민메이는 히카루와 카이푼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소개할께, 히카루. 사촌 오빠인 카이푼이야."
히카루는 아무 말 없이 쌀쌀맞게 인사를 했다.
"이쪽은 히카루 중위. 마크로스의 전투 비행사며 내 생명의 은인이야. 믿음
직스런 군인."
"군인"이란 말에 카이푼은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그렇습니까? 당신은 군인이십니까? 군인이 민간인을 살려 주는 건 당연
합니다만, 어쨌든 감사드립니다."
히카루는 조금 난처해졌다. 민메이는 히카루를 감싸듯 변명해 주었다.
"어머, 나를 살려 주었을 때는 군인이 아니었어요."
"그럼 나중에 입대를?"
"그렇습니다."
히카루는 나직이 대답했다.
"군대의 어디가 좋아서 입대를 했읍니까?"
히카루는 입을 다물고 카이푼을 노려보았다. 카이푼도 히카루의 시선을
받아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노려보았다.
민메이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재빨리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잠시 중단되었던 가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민메이는 약간 흥분했지만 진지
하게, 그리고 절실함을 전달하려는 듯한 말투였다. 마크로스에 돌아가고 싶
다. 노래를 계속 하고 싶다. 마크로스에는 좋은 기회가 있다. 팬과 노래와
무대가 있다. 그리고 매니저와 화려한 의상이 있다. 내 사인을 장식한 가게
도 있고 레코드도 나와 있다. 잡지의 화제거리도 되었다. 마크로스에는 꿈
이 있다. 보람이 있다. 부모님이 반대해도 절대로 가야 한다.......
"아무래도... 민메이의 결심도 강하고 하니, 가게 하면 어떻습니까?"
카이푼이 말했다. 민메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역시 카이푼 오빠야! 얘기가 통해!"
"그대신 나와 함께 가자."
"와! 카이푼 오빠와 함께 라며 더 좋아!"
민메이는 다시 한 번 카이푼을 끌어안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얼굴을 서로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래...그렇다면...."
"카이푼이 따라가 준다면...."
"맡겨 주세요."
청년은 가슴을 활짝 폈다. 히카루는 외면을 한 채 귀를 기울였다.
- 미사, 나의 처분에 화내기 마라. 그러나 그건 간부로서 당연한 조치였
다.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건 부모로서의 부탁인데, 한시라도 빨리
마크로스에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서로 노력하자. 저렇게 위험한 곳에 딸
을... -
미사는 편지를 찢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미사에게 병사 하나가 전해 준 편지였다.
"뭐야, 답장?"
병사의 손에 미사는 찢어진 편지를 되돌려 주었다.
제16화 Kung-Fu Dandy(쿵후 멋장이)
파인 사라다
포커는 클로디아를 안았던 팔을 풀었다.
"......밖은 아직도 밝군요."
클로디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리없이 웃었다. 포커는 담배를 물었다. 클
로디아가 불을 붙여 주었다.
"숙사에 있으면 지구에 돌아온 기분이 나지 않아."
포커는 멍하니 담배연기를 눈으로 쫓아갔다.
"이제부터 마크로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낙원을 추방당한 사람은 역사의 길로 나갈 것을 강요당하는 거야. 신화
의 용어로 말하자면, 인간은 돌아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다는 거지. 사실
인간은 돌아갈 수 없는 거야."
"언젠가 그런 귀절을 읽은 적이 있어요. 에릭 프롬의 "자아로부터의 혁
명"에서요."
"그래."
"...그래도, 마크로스와 우리들은 지구에서 추방당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에요."
"그러나, 역사의 길로 나가는 것은 확실해. 마크로스는 지구의 역사가 되
고 있으니까...."
클로디아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포커를 바라보며 말했다.
"포커, 지구에 돌아온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요?"
"응?"
"오늘 밤 내 방에 와요. 신선한 과일로 사라다를 만들어 드릴께요. 우주
에 있었으면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거예요."
"사라다?"
"파인 사라다 말이에요."
클로디아는 포커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작은 폭동
미사를 선두로 샤미, 킴, 바넷사가 걸어가고 있었다. 마크로스로 돌아온
미사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로벌 함장은 통합 본부의 처사를 어떻게 시민들
에게 전할 작정일까? 그로벌의 이야기를 듣고 샤미 일행 세 사람도 분개했
다. 이대로라면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마을로 미
사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가게 문 앞에 맥스가 서 있었다. 맥스는 귀를 세우고 안의 사정을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뭘 하고 있어, 맥스 소위?"
미사가 묻자 맥스는 당황해 하며 얼버무렸다.
"아, 아니...몹시 안이 소란스러워서......."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웅성웅성 많은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와아,
축하한다!' '잘 돌아왔구나!'등등 가끔 분명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문을 조금 열고 미사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사람의 시민들이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야, 이 소란은?"
킴도 미사의 머리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정면의 테이블에 히카루의 모습이
보였다. 히카루는 미사를 보자 크게 손짓을 했다.
"......?"
미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과 맥스도 따라 들어갔다.
"맥스, 대단하구나. 미사 대위와 함께라니!"
히카루가 웃으며 말했다.
"히카루 중위, 무슨 모임입니까?"
미사가 물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집을 나가 있던 민메이의 사촌 오빠가, 다시 말
해서 민메이의 숙부님 아드님이 돌아온 겁니다."
히카루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가운데 테이블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이렇게 모두들 몰려온 것입니다."
카이푼과 민메이 숙모 내외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네 사람을 둘러싼 사
람들이 소란스럽게 다시 축하를 보냈다.
세 사람은 카이푼을 보고,
"와, 미남형이다!"
하며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미사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마음에
라이버의 그림자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미사의 눈썹에 입맞춤을 남기고
붉은 화성 속으로 사라져간 남자. 시를 사랑하고 미사에게 사랑을 가르친
남자였다.
"라, 라이버 소위...!"
카이푼은 라이버와 꼭 닮았다.
"히카루 씨의 친구들인가?"
대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 마을 회장이 다가왔다.
"음, 모두 훌륭한 분들이군. 어이! 카이푼, 새로운 손님이 오셨어!"
카이푼이 돌아보았다. 미사는 눈을 감았다. 미사의 귀에 카이푼의 구두소
리가 갑자기 크게 울렸다.
"잘 오셨습니다."
다가온 카이푼이 말했다. 미사가 얼굴을 들어보니 바로 눈앞에 카이푼이
서 있었다. 미사는 입을 다물고 있고, 대신 세 사람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이 말했다.
"카이푼이 싫어하는 군대에도 미인들이 많이 있군."
갑자기 카이푼의 표정이 굳어졌다.
"군인......정말 군인이십니까?"
"군인을 싫어하십니까?"
샤미가 물었다.
"네. 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파괴뿐이니까요."
"우리도 좋아서 군인이 된 건......."
히카루는 중얼거리다가 얼굴을 돌렸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세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모두 뭐하고 있어? 카이푼이 돌아온 축하의 자리잖아."
무거운 분위기를 눈치챈 민메이가 다가왔다.
"참! 지금 내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어. 누가 텔레비전을 켜 줘."
누군가가 텔레비전을 켜자, 민메이가 비쳤다.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민메
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랄-랄-랄 나의 그이는 파일로트...-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고, 민메이의 이름을 불렀다. 갑자기 민메이
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영상이 흔들리며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임시 뉴스를 전하겠습니다."
"도대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나운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로벌 함장의 발표에 따르면, 검역 처리를 위해 마크로스에 있는 민간
인에 대한 상륙 허가는 금한답니다."
"뭐야!"
누군가가 외쳤다.
"이것은 물론 일시적 조치입니다. 시민 모두 경거망동을 삼가고 질서 있는
행동을......."
시민들은 술렁거리며 일어났다.
"애써 지구에 돌아왔는데 상륙도 할 수 없다니...!"
"도대체 우리들이 무얼 했다는 거야?"
"이유를 시원하게 설명해라!"
"그럼 계속해서 노래를 들어 주십시오."
그것이 아나운서의 마지막 말이었다. 다시 노래가 흘렀다.
-그렇지만 그는 나보다 자신의 비행기를 사랑해-
누구 하나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민들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발랄하고 명랑하고 투명한 노래소리만 흘렀다.
"여기 군인이 있으니 시원스럽게 설명을 해주시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 그래!"
라고 외치며 시민들은 히카루를 에워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 사람이 히카루에게 물었다.
"그, 그런 일은 나... 나는 아무것도...."
히카루는 압도되어서 몸을 움츠렸다.
"그만두세요!"
미사가 말했다.
"그것이 질서를 지키는 시민이 할 일입니까?"
"진정해 주십시오!"
"이것이 진정할 수 있는 일이야! 자네들 탓으로 토지를 잃어 버렸다! 애
써 지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일시적 조치라고......."
"너희들은 언제나 그래!"
남자는 의자를 발로 차며 외쳤다.
"이제 지구로 돌아왔으니, 지금 즉시 함대에서 내리자! 이제 참을 수가
없어!"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래, 그게 좋아!"
시민들은 한 마디씩 외쳐 댔다. 외치면서 점점 흥분해 갔다.
"여러분! 이놈들을 포로로 해서 상륙을 허가토록 합시다!"
누군가가 말했다.
"빨리 가요!"
미사는 일행을 이끌고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기다려!"
몹시 인상이 나쁜 남자가 미사의 팔을 잡았다.
"왜 그래요?"
미사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때 맥스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협박하
듯 말했다.
"그만두지 못해! 이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봐!"
"참견하지 마!"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주먹을 날렸다. 맥스는 그 주먹을 받는 순간, 남자
의 턱을 후려쳤다.
"때, 때렸어!"
남자의 몸이 붕 뜨더니 팍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나쁜 놈!"
"해치워 버려!"
"모두 꽉 묶어라!"
시민들은 살기가 등등했지만, 실제로 날뛰는 사람은 몇 사람뿐이었다.
히카루와 맥스는 미사와 세 명의 여자를 지키며 싸웠다. 때리고 맞고 발로
차고 채이고....... 테이블과 식기류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북북 옷이
찢어지는 소리도 났다.
"악!"
미사에게 덮치려 하던 한 사람은 카이푼에게 얻어맞고 저쪽으로 나동그라
졌다. 그는 얼굴을 험상궂게 찌푸리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카이푼, 너도 한패냐?"
카이푼도 이 난투극에 말려들고 말았다. 카이푼은 중국의 무술을 배웠기
때문에 주먹이 강했다. 그의 손발은 흐르는 물과 같이 움직이고, 상대의 주
먹을 받았을 때는 물과 같이 튕겨내는 것이다.
이윽고 작은 폭동은 가라앉았다. 몇 사람의 시민이 바닥에 누워 있고 히카
루와 맥스와 카이푼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싸우는 걸 싫어하는 대신에 굉장히 강하시군요."
맥스가 말했다.
"남을 해치는데는 결코 쓰지 않습니다."
카이푼이 대답했다.
"어머!"
미사는 카이푼의 입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어서...이것으로 카이푼 씨!"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당신이 군인이 아니라면 받겠습니다만......."
미사의 호흡이 한순간 멈추었다. 카이푼의 입술을 닦은 것은 민메이였다.
"그래요, 카이푼. 군인이 나쁜 건 아니에요."
소녀의 하얀 손수건에 작고 빨간 얼룩이 묻었다. 그건 카이푼과의 재회로
민메이가 느낀 기쁨과 같이 신선했다. 미사는 내밀었던 손수건을 움켜쥐었
다.
발키리와 배틀 슈츠의 대결
미사는 많은 생각에 잠긴 채 브릿지로 돌아왔다.
'마크로스는 이제껏 했던 것처럼 적의 눈길을 끌어라. 시간벌이를 해 주
는 거야. 민간인? 그들은 전원 사망했다. 아버지로서의 부탁인데, 한시라도
빨리 마크로스에서 내려....... 전쟁은 파괴인지도 몰라. 카이푼, 군인이
나쁜 건 아니야.......'
많은 말들의 단편이 미사의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렇지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틈이 없었다. 미사의 눈앞에 있는 레이더 스크린에 반응
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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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설명 : 마크로스 소설에는 원작(애니메이션)과 달리 빠져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14화 '그로벌 리포터(이 부분은 단지 1화부터 12화 설명이므로
중요하지 않음)'와 16화 뒷부분, 17화(환상편), 18화(파인 샐러드) 앞부분,
19화(burst point, 폭발점)이 빠져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에 대해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14화는 이야기할 필요 없고, 16화 뒷부분- 바로 위의 내용에
연결되는 내용부터
16화(쿵후 댄디) 뒷부분: 캠진은 라플라미즈 사령관의 명령(마크로스를
아직 손대지 말라)을 무시하고 마크로스를 습격한다. 전투 중 히카루는
미사의 판단 착오에 의해 아군 데스트로이드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
된다. 히카루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17화(fantasm, 환상) : 병원에 입원한 히카루는 혼수 상태에서 꿈을 꾼다.
이 꿈의 장면은 마크로스 1화부터 12화에서 나온 부분 중 일부를 편집하여
사용했고 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민간인 히카루는 민메이의 콘서트를 구경
하는 도중 민메이가 브리타이에게 납치되어 가자 발키리를 훔쳐(1화의
VF-1D) 민메이를 뒤쫓지만 격추된다.(이 부분은 TV판 1화 장면들 사용).
민메이를 구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로이 포커 선배의 권유로 군에 입대해서
군의 발키리 파일럿이 된다. 군에서 파일럿이 되자마자 바로 발키리를 타고
민메이를 구출하기 위해(이 장면은 TV판 6화)혼자 출격하지만 곧 격추.
이번에는 아머드 발키리(TV판 9화장면)를 타고 무단으로 또 출격하지만
또 격추(3번째). 마크로스에서 자전거(이 부분은 9화)를 타고 가면서 히카루는
발키리를 타면 계속 격추 되니까, 이 특제 자전거라면... 하면서 자전거로
우주로 나갈 생각을 한다. 다음날 함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송(이 장면은
7화)이 나왔다.
"오늘 새벽 격추왕으로 유명한 이치죠 히카루 소위가 자전거를 이용해서
인력 비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놀이는 위험하니 부디
모방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망신 당한 히카루에게 미사, 맥스, 하야오가 나타나 자신들이 도와 주겠다
고 하며 TV판 10화(BLIND GAME)처럼 미사의 정찰 호위 장면을 사용해서
적함으로 칩투해서 민메이가 있는 곳까지(이 곳 배경은 2화남아타리아섬)
도달해서 발키리를 타고 민메이에게 간다. 민메이는 브리타이에게 잡혀 있다
구출하러왔다는 말에 민메이는
"안될 것 같아요. 카이푼 오빠가 군인하고 사귀지 못하게 해요."
그러면서 브리타이가 거인 카이푼 모습으로 되면서 민메이를 너에게
줄수 없다고 한다. 히카루는 군인을 그만두겠다면 파일럿복을 찢어버리고
민간인 복장(1-4화때)으로 바꾸자 카이푼은 사라지고 히카루는 민메이를
구출하고 곧 이어지는 장면은 TV판 2화의 민메이 구출 장면이 나오고
다시 장면은 4화(린 민메이)장면으로 바뀌어 그 곳(무인구역, 작업장)에서
같이 12일간을 보낸다. 이 중 마지막 장면(민메이와 히카루의 가상 결혼)
의 대사를 옮겨 적겠다. 위의 린 민메이편의 내용 참고.
"H(히카루): 결혼식 이라도 해버릴까!"
"M(민메이): 그래요, 그것도 괜찮겠어요!"
히카루의 머플러를 면사포 대신 쓴 민메이
"H: 나 같은 게 신랑이 될 수 있나?"
민메이는 히카루의 손을 잡으며 머리를 끄덕이며
"M: 그래요, 히카루! 이 꿈에서 깨어나면 정말로 결혼해요!"
"H: 진심이야 민메이?"
"M: 결혼해요."
"H: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겠지!?
넌 변덕장이잖아?"
"M: 아니 그럴 수 있어요? 결혼하자고 먼저 말한 것은 당신이에요.
어차피 본심이 아니겠지 거짓말쟁이!"
"H: 의심할 생각은 없었는데... 난 너하고 사는 세계가 다르고... 하지만,
하지만 내가 한말은 사과할게!"
"M: 그 런일 같으면... 걱정 없어요 히카루!. , 히카루. 히카루."
하면서 키스 장면으로 들어가죠(이 키스 장면은 아주 멋진 장면인데 불행히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키스 못하죠. 키스 순간에 천장에서 폭발. 위의 린 민메
이 편 내용 참고). 그러면서 장면이 11화(FIRST CONTACT)의 미사와 히카
루의 강제 키스 장면으로 바뀌면서 미사 왈
"결국 당신은 군인이에요." 이 말에 히카루는 꿈에서 깨어남. 마지막에 좋은
꿈(민메이와 결혼) 망쳤다..
18화 파인 샐러드 앞부분: 자신의 명령 때문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는 히카루에게 미사는 병문안 가서 사과 하지만 히카루는
자신의 비행 기술이 좀 더 괜찮았더라면 하며 자기 잘못이라고 한다.
미사가 나간 후 로이 포커, 맥스, 하야오가 오지만
히카루의 신경만 더 건드리고 포커는 실의에 빠진 히카루의 의욕을 찾아주기
위해 영화 '소백룡(샤오파이론)' 촬영 중인 바쁜 민메이를 찾아가 병문안
갈 것을 부탁한다. 밀리어는 캠진의 독단적인 행동을 나무라고 있자
캠진은 으스대지 말라며 마크로스에도 굉장한 녀석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에 밀리어는 굉장한 녀석과 한 번 겨루어 보기 위해 마크로스를
공격한다. 그리고 밑에 나오는 전투 장면(히카루는 병원에 있기 때문에 출격
하지 않음)이 벌어진다. 민메이는 영화 촬영 중 빠져 나와 히카루가 있는
병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잠깐 히카루와 대화를 나누다가 피곤해서 침대에
엎드려서 잔다.(마크로스에는 스타가 민메이밖에 없나봐, 민메이만 바쁘군)
뒷부분에서 히카루는 병원에서 로이 포커 선배의 전사 소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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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Pine Salad(파인애플 샐러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저녁 놀에 빛나고 있고, 한 쌍의 소형선이 반짝
이는 비밀 상자처럼 내려가고 있었다. 갑판의 승강구가 열리며 8대의 배틀
슈츠가 나오고 있었다. 금속 피부에 저녁 놀을 받으며 배틀 슈츠는 우
주로 날아갔다.
"괜찮은가? 내가 겨냥하는 상대가 나오면 너희들은 같이 싸울 필요는 없
어. 너희들은 내가 그놈과 일대 일로 싸울 수 있는 상황만 만들면 돼."
밀리어 화리너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맡겨 두십시오."
다른 슈츠에서 대답이 나왔다.
밀리어는 라플라미즈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수련된 파일로트이다. 여성
의 몸이면서도 그녀의 배틀 슈츠는 많은 적을 침몰시켜 왔다. 밀리어는
캠진과의 대결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스크린을 통해서 캠진을 몹시 비난했
었다. 난폭한 과거의 전쟁 경력과 마크로스에 대한 멋대로인 행동을 꾸짖었
던 것이다.
밀리어는 거만한 캠진에게 대항하기 위해 출격을 한 것이다. 눈앞의 바다
에 마크로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포커는 발키리 수용차에 뛰어들었다.
"엔진이 걸려 있어요!"
정비원이 소리쳤다.
"좋아!"
포커는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비행기에 올라탔다. 포커의 시선에 꺼져가는
석양이 펼쳐졌다. 오렌지빛으로 비치는 바다는 조용했다.
"버밀리언 소대, 발진하라!"
브릿지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히카루와 맥스 하야오가 우주로 떠올랐다.
세 대의 기체가 놀에 반사되자 포커는 눈이 부셨다.
"포커! 발진 준비 완료!"
연락을 취하자, 스크린에 미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소령, 적이 마크로스에 접근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파인 사라다. 기대하겠습니다."
브릿지의 미사는 놀란 듯이 그로벌을 향해 물었다.
"함장님, 파인 사라다란 무슨 암호입니까?"
"파인 사라다?"
그로벌도 고개를 저었다. 클로디아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소령."
포커는 소대의 선두로 나섰다. 배틀 슈츠 대가 다가왔다.
"왔다! 편대를 짜라!"
양쪽에서 쏜 빔이 놀에 불타는 하늘을 물들였다. 굉장한 속도로 발키리
대와 배틀 슈츠 대는 스쳐지나갔다. 배틀 슈츠 한 대가 굉장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포커의 빔이 명중한 것이다.
"저 속에 있는 건 뭐야!? 그 민첩한 놈은?"
밀리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양쪽 군대는 U자형으로 다시 한 번 서로
를 향했다.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석양이 발키리와 배틀 슈츠에게 붉은 빛 입자를
쏟아냈다. 캠진이 말하는 민첩한 놈이란, 물론 포커를 두고 한 말이다. 둘
은 화성 위에서의 싸움으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밀리어의
눈길을 끈 것은 맥스였다. 맥스는 기체를 배트로이드로 변신하여 고도를 낮
추어 맨 아래에서 공격을 했다. 계속해서 두 대의 배틀 슈츠가 공격으로
떨어졌다.
"저놈이...!"
밀리어의 슈츠가 맥스를 향했다.
맥스는 항상 멍하니 있다가 의외로 빨리 튀어오르는 것이 특기이다. 적의
허를 노리고 있다가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밀리어는 일부러 틈을 두어, 맥스가 뒤를 쫓게 했다. 예상대로 맥스는 가
틀링 포를 쏘면서 쫓아왔고, 밀리어는 계속 도망을 갔다. 순간 배틀 슈츠
는 그대로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앗!"
맥스는 목표를 잃고 잠시 우왕좌왕했다. 다음 순간, 바다 표면을 부수고
몇 개의 빔이 날아올라왔다. 맥스는 기체를 곧바로 날려 수직으로 상승했
다. 목표가 되는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빔은 옆구리를 스치고 사라졌
다.
"쳇!"
밀리어는 다시 우주로 돌아와 정면에서 배트로이드를 겨냥했다.
"앗!"
밀리어는 눈을 감았다. 태양 속에 숨어 있던 맥스가 빔을 발사한 것이다.
밀리어의 배틀 슈츠는 가슴을 맞았다. 포커와 히카루, 하야오도 하나 또
하나 적을 떨어뜨려 갔다.
포커의 눈에 밀리어의 슈츠가 비쳤다. 연기를 토해내고 상승하는 슈츠를
맥스가 쫓아갔다. 밀리어는 입술을 깨물고 창백한 얼굴이 되어 중얼거
렸다.
"바보! 내가, 에이스인 밀리어가 지다니!"
포커는 맥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맥스, 적은 전의를 상실하고 있다. 추격하지 마라!"
여기까지 말했을 때, 포커의 발키리는 포탄을 맞았다. 뒤로 기울어지면
서도 포커는 다가오는 적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 발 두 발 세
발......기체에 둥그런 구멍이 뚫렸다.
"선, 선배님!"
히카루는 다급히 외치면서도 적을 격파했다.
"...걱정하지 마라. 대단치 않아."
포커 기의 꼬리 날개에 그려진 해골의 미간에도 뻥하니 둥그런 구멍이 나
있었다.
마지막 축배
달그락달그락...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울렸다.
"고맙지만, 버번은 입에 맞지 않아."
포커가 말했다.
"다음에는 스카치를 준비해 줘."
클로디아의 방에서 포커는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사치스런 말 하지 말아요."
그녀는 포커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칼질을 하고 있었다.
"파인 사라다는 아직도 안 되었나?"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안달하지 마세요."
포커는 책상에 장식된 사진을 보았다. 호수를 배경으로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거울같이 펼쳐진 호수는 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런 사진을 장식해 두었는지는 몰랐었어."
"처음 데이트했을 때의 사진이에요."
돌아보지도 않은 채 클로디아가 말했다.
"오......처음 데이트날...!"
포커는 웃으면서 벽에 있는 기타를 집었다. 클로디아의 귀에 부드러운 멜
로디가 들려왔다.
"아직도 안 됐어?"
포커는 다시 한 번 보챘다.
"아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요."
포커는 기타를 꽤 잘 켰다. 애수가 흐르는 멜로디였다.
"우선 양파와 당근을 반 개씩 넣고......."
기타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자른 것은 그릇에 넣고 사라다와 기름을 섞어 소금을 조금씩 뿌리고..
.."
멜로디가 그치고, 클로디아는 포커의 음성을 들었다.
"역시 버번은 입에 맞질 않아."
"사라다에 곁들이면 잘 어울릴 거예요. 이제 다했어요!"
클로디아는 뒤돌아보며 말했다. 손에 들은 접시에는 파인, 멜론, 딸기 등
이 섞인 파인 사라다가 먹음직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포커는 기타를 껴안은 채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
며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제19화 Burst Point(폭발점)
밑에 설명할 것임.
제 11 장
잃어버린 낙원
제20화 Paradise Lost(실낙원)
새로운 음모
보드르 기간함의 회의실에서 보드르져와 브리타이는 얼굴을 맞대고 작전
을 짜내고 있었다.
"밀리어 화리너라는 자를 알고 있는가?"
보드르져가 말했다.
"라플라미즈의 부하로 에이스입니다."
"음, 보고에 의하면 밀리어는 마이크론 스파이로 지원했다는데?"
"마이크론으로!?"
브리타이는 이마를 찌푸렸다.
"어쩌면 적과 접촉한 것이 원인이 된 것 같은데....... 갑작스런 일로 라
플라미즈도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아."
"...."
"게다가 캠진은 마크로스를 침몰시키려고 라플라미즈의 눈치를 엿보고 있
다."
"...그런데, 저에게 내릴 명령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지구로 가라! 역시 여기는 경험자가 필요해. 네가 도착할 때
까지 행동을 보류해 두겠다."
"각하!"
"음?"
"나의 지휘하에 있는 모든 함대를 사용해도 좋을까요?"
"좋아, 허락하지."
브리타이는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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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 위의 소제목 새로운 음모편 앞에 다른 내용이 더 있으며
밑의 내용중 카페테라스에서 내용은 위의 내용과는 시간 적으로 앞부분(19화
)에 해당된다. 이렇게 순서가 바뀐 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번에는 TV판
18화(파인애플 샐러드) 다음의 19화(BURST POINT,폭발점)편이 소설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19화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19화(BURST POINT): 그로벌은 통합군 본부의 결정 사항인 민간인 5만6천명을
계속 마크로스에 머무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크로스를 인구 번화
가인 도시 상공에서 낮게 비행하면서 시위를 벌이면서 민간인의 상륙허가를
요청을 하지만 통합군 본부는 거절한다. 그러나 이 무전내용을 들은 온타리오
자치구에서 마크로스 민간인을 자신들이 받아 들이겠다는 내용을 보내자
마크로스는 온타리오 자치구로 향한다. 히카루는 포커 선배가 죽자 그의
한 번도 격추된 적인 없는 발키리인 스컬기를 물려받는다.{(이 이전까지는
히카루는 무수히 많이 격추되고 발키리가 파손. 그 비싼 발키리를 몇 대나
못쓰게 만든 히카루를 군대에서 안짜르고 놓아두다니 역시 히카루는 주인공
이야 ^^)} 또 다시 캠진함대가 마크로스를 공격하고 마크로스는 발키리 부대
만 출격 시키고 자신은 인구 밀집지역에서 전투를 하지 않고 새로 만들어진
'전주위 배리어(핀 포인트 배리어와는 달리 마크로스 전체를 방어하는 에너지
방어막)'를 치고 캠진 함대의 주포 공격을 전주위 배리어로 견딘다. 그러나
계속되는 캠진의 공격에 배리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배리어는 과열
하고 샤미가 다급하게 배리어의 폭발을 알린다. 미사는 즉시 전 발키리 부대
에게 빨리 전투지역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을 받은 버밀리언(이젠
스컬로 불러야 하나??)소대는 그 지역을 급히 벗어나지만 하야오만이 뒤쳐져
전주위 배리어의 폭발에 휘말려 전사한다. 배리어의 폭발은 마크로스를 중심
으로 반경 수십 킬로미터의 지상과 캠진 함대를 파멸시킨다. 폭발 중심의
마크로스는 다행히 무사하지만 지상의 도시는 파괴되어 온타리오 자치구로
부터의 민간인 수용을 거부당한다. 실제 원작은 이 이후로 하야오가 나오지
않지만 이 편이 소설에는 없으므로 계속 등장.
그리고 다음화인 20화(PARADISE LOST,실낙원)에서 보드르져 총사령관은
캠진의 무단 행동에 의한 명령 계통의 혼선과 마크로스의 엄청난 배리어
폭발을 보고 받고 다시 브리타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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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나라
나의 말에 운 한 사람
나를 미워하고 있는 한 사람
그래도 나를 잊지 않는 한 사람
내가 죽으면 치자꽃을 걸어 줄 한 사람
모두 합쳐 단 한 사람-
마크로스 안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클로디아는 포커에게서 들은 싯
귀를 생각하고 있었다. 커피 잔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창 밖에는 잔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왔다가는 흩어졌다. 그 파문에 되살아나는 포커의 얼굴. 클로
디아의 눈동자는 조용했다. 태풍의 눈 속에는 젖을 듯한 파란 하늘이 퍼져
있듯이, 슬픔에 싸인 그녀의 눈동자는 부드러웠다. 포커와의 추억이 클로디
아의 마음에 자꾸만 쌓여 갔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과 같이 내려 쌓여만 갔
다.
테라스의 구석에서 클로디아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히카루였다. 울어서 부운 눈을 가늘게 뜨고 히카루는 수평선을 바라보
고 있었다.
"어이! 식사가 준비됐어!"
와레라가 불렀다.
"오늘은 뭐야?"
로리와 콘더가 배틀 포트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비프스튜야."
"야, 그거 맛있겠다!"
세 사람은 냄비를 둘러싸고 앉았다. 곤로불이 빨갛게 타고 있었다.
여기는 마크로스 함내에서 가장 어두운 장소인 금속 쓰레기장이다. 스파
이들은 버려진 기계 숲 속에서 자고 일어났다. 배틀 포트는 적에게 잡혔던
히카루 일행이 탈출하기 위해 훔친 것이었다. 포트는 연구반에 의해 조사되고
나서 버려진 것이다.
"오늘은 고기가 많구나!"
먹으면서 로리가 말했다.
와레라는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 민메이의 노래소리가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야."
세 사람은 만족한 듯 서로 웃었다. 그들의 허리에는 한창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는 민메이의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리셉션 회장에서 그녀를 본
뒤부터 스파이들은 열렬한 팬이 되었다.
"민메이가 이번엔 영화에도 나온데."
와레라가 말했다.
"어머, 정말이야? 영화에도 나온데?"
"그 상대역은 누구야?"
"누구 라더라.... 카이푼이라고 하는데 민메이의 사촌 오빠라나 봐...."
"아, 보고 싶다!"
로리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스파이들은 쓸쓸한 듯 얼굴을 숙였다.
"...그런데...."
와레라가 말했다.
"저 배틀 포트로 어떻게 온 걸까?"
"콕피트를 분리해서 날아온 것 같애."
콘더가 대답했다.
"그래?... 이제 우리는 귀환할 신호를 기다릴 수밖에......."
버려진 기계류의 숲 속에서 비프스튜를 먹는 소리만이 조그맣게 울렸다.
와레라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비프스튜도 스테이크도 초컬릿도 먹을 수가 없게 되는구나."
콘더도 역시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좀더 연습하면 롤러스케이트를 잘 탈 수 있을 텐데...."
세 사람은 민메이뿐 아니라 지구의 "문화"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문화"
는 전쟁으로 시달린 그들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었다. 전쟁 인형이었던 그들
의 가슴에 작은 꽃이 부끄러운 듯 살며시 피어난 것이다.
그로벌의 방에는 보랏빛 연기가 무겁게 떠돌고 있었다. 그로벌은 파이프
에 담배잎을 갈아 넣고, 빨아들인 연기와 함께 크게 한숨을 쉬었다. 찢어진
종이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통합 본부로부터 받은 명령서였다.
그로벌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매우 간결한 문장이었다.
-지구 통합 본부는 귀함대에 대해 함대 내에 있는 민간인과 함께 24시간
이내에 출격할 것을 명령한다-
평범한 두 줄의 문장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것이 바로 군
대인 것이다.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오게."
미사였다.
"미사 대위......."
그로벌이 침통하게 말했다.
"역시 지구를 떠나라는 명령이 왔다."
"......."
미사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적의 눈길을 끌어야 할 마크로스가 지구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거겠지."
미사는 옆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분의 차를 만들어 한 잔을
그로벌에게 건네주었다. 그로벌은 단숨에 다 마셔 버리고 빈 잔을 명령서
위에 놓았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마크로스에 수용된 5만 6천 명의 일
반 시민을 여기에 말려들게 해야 하다니......."
"알고 있습니다."
그로벌은 파이프를 손으로 비볐다.
"...그런데, 클로디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정신이 없나 봐요. 파인 사라다도 못 먹고 죽어서 더더욱 슬퍼하고 있어
요."
"......?"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로벌은 미사에게, 텔레비전 방송국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미사는 빈 컵을 치우고 방을 나왔다. 그로벌은 책상 위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클로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브릿지의 그로벌이다. 물자의 보급은 끝났나?"
"네, 완료했습니다."
"클로디아...."
"네!"
"...출항 준비를 해 주게."
"넷......?!"
"출항 준비!"
"네, 함장님!"
스파이의 귀환
창백한 초생달이 구름 사이에 떠 있고, 파도소리만이 마크로스를 감쌌다.
달빛은 어스름하게 함대의 모습을 나타냈다. 몇 대의 포가 바늘과 같이 보
였다. 철썩철썩 배에 부딪치는 낮은 파도소리가 울렸다. 누군가가 갑판에서
유심히 살폈다면, 달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달은 묘한 빛을 내
고 있었다. 마치 금환식 때처럼 둥글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달의
뒤쪽으로 브리타이 함대의 빛이 달 면적을 넘어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달무리는 순간 반짝이더니 본래의 초생달로 돌아갔다.
"홀드, 마크!"
배틀 포트 속에서 로리가 말했다.
"발진!"
와레라가 계기를 조작하자 배틀 포트는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빔을 발사
하여 정면의 벽에 구멍을 냈다. 물기둥을 만들며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간 후
다리를 떼어냈다. 이어서 둥근 동체에서 분사염을 토해내며 서둘러 달을 향
해 상승하기 시작했다.
"함장님, 달의 뒤쪽에서 중력파가 탐지되었습니다."
바넷사가 보고했다.
"홀드인가!?"
"그렇습니다."
"수를 알아봐 주게."
"알겠습니다."
킴이 뒤돌아보며 다시 보고를 했다.
"본 함대 상공에 비행 물체가 있습니다."
"음. 미사, 마크로스에서 발진한 비행기가 있는가?"
"아니요."
킴이 계속해서 보고했다.
"대기권 밖에서 미확인 비행 물체가 급속도로 하강 중입니다."
"중력파 검출!"
바넷사가 말했다.
"아까보다 규모가 커져서 천 대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로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까지 천 대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쪽은 한 대인데."
클로디아는 태연하게 말했다.
"본부에서도 당연히 탐지하고 있겠지만......."
그로벌은 미사에게 얼굴을 돌렸다.
"연락은?"
"아무것도...."
그로벌은 군모를 내렸다.
"포기한 거야."
"뭐라고요!?"
샤미가 물었다.
"이 마크로스가 침몰하게 된다면, 오히려 교섭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로벌은 함장석에 앉고, 사무원들은 매달리는 듯한 시선으로 서로를 보
았다.
브리타이 함내의 스크린에는 푸른 지구가 크게 비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브리타이는 팔짱을 끼었다.
"...이렇게 보면 꽤 아름다운 별입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라플라미즈 직영 함대 사령관과 스크린 연결이 됐다는 소리가 울리며 영
상이 바뀌었다. 라플라미즈의 얼굴이 비쳤다.
브리타이가 말했다.
"수고했다. 이제부터 임무를 내리겠다."
라플라미즈는 얼굴을 들고 비웃듯 말했다.
"쥐 한 마리를 쫓는데 굉장한 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보드르져 각하가 불안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쥐는 쥐라도 굉장히
무서운 쥐니까."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밀리어는 뭘하고 있나?"
"넷......!?"
"스파이를 지원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런 훌륭한 파일로트를 마이크론으
로 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그쪽의 솜씨를 보자."
"솜씨? 지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엑세돌이 브리타이에게 말했다.
"잠입시킨 스파이가 돌아왔습니다만...."
"알았다."
브리타이는 끄덕거리며 라플라미즈를 향했다.
"이것으로 됐다. 용무가 생겨서......."
"브리타이, 아까부터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브리타이는 빙긋 웃었다.
스파이들의 보고
텔레비전, 카세트, 비디오, 책, 레코드, 초컬릿, 피아노...등등 커다란
테이블에 놓여진 지구의 물건들은 장난감 같았다. 브리타이와 엑세돌은
엄지와 검지로 하나하나 집어들고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자, 보고를 들어보자."
이윽고 브리타이가 침묵을 깨자 와레라, 로리, 콘더는 일어섰다. 그들은
이미 거인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여기에 있는 물건은 그들 문화라는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입
니다."
로리의 흥분된 목소리가 좁은 방에 울렸다.
"브리타이 각하가 손에 들고 계신 것은 텔레비전이라는 것인데, 오락용으
로 사용됩니다. 오락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보고 즐거워할 수
도 있습니다."
로리의 마음에는 민메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콘더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함대 안을 정말 잘 개조하였습니다. 우리들로서는 뭔지 알 수 없
는 물건들까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콘더는 스넥과 캬바레의 간판을 생각해냈다. 이어 와레라도 한 마디 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가 항상 같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
았읍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던 겁니다."
브리타이와 엑세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
자 세 사람은 이야기를 대신해 직접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로리는 디스코
장에서 익힌 디스코를 부자연스럽게 흔들여 보였고, 콘더는 롤러스케이트로
미끌어지는 흉내, 와레라는 스커트 입는 법을 각각 흉내냈다. 이어 로리는
남자와 여자가 버스 속에 섞여 타고 다닌다는 등, 여러 가지를 덧붙여 이야
기했다.
"알았다. 이제 됐다! 이제 그만!"
브리타이는 손을 크게 휘저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잠시 후 그는 엑세돌에게 물었다.
"네. 저도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매우 흥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너를 보내면 곤란하지. ...그러나 보고만 보낼 수 있다면......."
브리타이는 세 사람에게 보고서 작성을 명령했다.
"넷!"
세 사람은 동시에 경례를 하고 방을 나와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 들어선 세 사람은 서로 눈짓을 보내며 주머니에 숨겨 두었던 물
건들을 꺼냈다. 그들은 민메이의 인형을 비롯해 여러 가지의 지구 제품을 감
추고 있었다. 로리가 손수건을 펴자 이번에는 전축과 민메이의 레코드까지
나왔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감출 수 있었어?"
와레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이거 어떻게 켜는 거였지?"
콘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 주고 싶은데......."
"방에서는 괜찮을 꺼야......."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친한 병사들을 몇 명 불렀다.
"먹어 봐."
로리는 병사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병사들은 입에 살짝 넣자마자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와! 맛있다!"
"처, 처음이야. 이런 건!"
"굉장한 맛이야!"
와레라는 민메이의 인형 뒤에 붙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인형은 노래하
기 시작했다. "랄...랄...랄 그 사람은 파일로트......" 병사들은 눈을 동
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가슴 속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이건 노래라는 거야."
와레라가 말했다. 세 사람은 자랑스런 듯이 가슴을 폈다. 세 사람이 갖고
돌아온 물건들은 너무도 신기한 것들이라 순식간에 병사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지구를 떠나는 마크로스
텔레비전 카메라는 그로벌의 앞에서 돌고 있고, 그는 울고 있었다. 그로
발은 통합군 본부로부터의 지령을 방송으로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마크로스 승무원 및 함내의 모든 분들에게 중대한 결정을 알려드리겠읍
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통합군 정부는 이 마크로스에게 지구 밖
으로 나가라는 출진 명령을 내렸습니다. 마크로스를 겨냥하는 적이 공격을
해오면 지구도 말려들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해서 결정한 겁니다. 시민
여러분만이라도 지구에 남도록 노력했습니다만, 나의 힘이 미치지 않았고
본의 아닌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마크로스는 배급도 끝났고 발진 준
비는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여러분의 협력을 부탁드립니
다. 다시 지구가 우리를 받아들여 주는 그날까지......일반 시민 여러분께
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
거기까지 말한 그로벌은 목이 막혔다. 군모를 푹 눌러쓰고 소리를 죽여
울었다. 꽉 쥔 양주먹이 가늘게 흔들렸다. 민간인들의 분노와 슬픔을 생각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민메이는 카이푼과 미사와 함께 스튜디오 구석에 앉아 그로벌의 모습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민메이는 마크로스 함내에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분노와 같은 외침들을 들
었다. 그것은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 비난과 증오, 절망의 소리였다. 소리
는 무겁게 모여 함내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서
서히 입술을 깨물고 서 있는 그로벌을 향해 감정적으로 퍼부어 대기 시작했
다. 위험스러웠다. 사람들의 분노가 한 방향으로 모이면 거기에는 폭동의
냄새가 피어나는 법이다.
민메이는 갑자기 달려나가 그로벌을 감싸려는 듯이 카메라 앞에 섰다.
"여러분, 나는 정치라든가 군대 따윈 모릅니다!"
소녀의 눈동자 속에는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이제까지 우리들이 살아온 곳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친구입니다. 아니 가족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틀
림없이 잘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모두 힘을 합쳐...나는 그
렇게 믿고 있습니다."
미사는 카이푼에게 목례를 하고 힐끗 민메이를 바라보더니 스튜디오를 떠
났다.
"우리들은 지구에서는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민메이는 계속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라도 희망
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구를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를 위해 일시
적으로 우주로 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한 번 돌아올 그날
까지 이 마크로스가 집이고 고향이라고 생각합시다. 우리들 손으로 만들고
우리들이 지켜온 훌륭한 마을이...."
"발진 준비......."
미사의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듣고, 브릿지의 통신원들은 정위치로 향
했다. 그녀들의 손을 사무적으로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중앙 관제 시스템 완료!"
클로디아의 보고에 이어 미사가 소리쳤다.
"발진 경보!"
"중앙 제어 레벨 상승!"
클로디아의 소리도 높아졌다.
"우리들은 지금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민메이는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내가 사랑하는 별, 우리들이 사랑하는 별, 우리들은 그저 잠시 지구를
떠나 지구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겁니다. 그 지구를 위해서 노래를 하겠읍
니다!"
"함대 발진! 레벨 마이너스 0.2!"
바다 위의 마크로스는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 부서 이상 없음!"
"반동 추진 기관 시동!"
통신원들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미사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어
두운 바다가 점점 멀어져 갔다.
별의 모래가 가득한 우주라는 바다
따스한 햇볕을 반사하고 있는
작은 오아시스
우리의 고향
푸른 지구여...
민메이의 노래가 사람들의 분노의 감정을 달래 주었다. 소녀의 순수한 생
각이 깃털과 같이 부드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스쳐지나갔다.
언젠가 틀림없이
돌아올 거야
그러니 그 때까지
변치 말기를
Beautiful place in my heart(내 마음 속의 아름다운 곳)
마크로스는 다시 지구를 떠났다.
밀리어의 결심
밀리어는 라플라미즈 함대 안의 배틀 슈츠 격납고에 있었다. 맥스에게
받쳐서 찌그러진 함대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구멍이 뚫린 슈츠의 가슴
을 애처로운 듯이 쓰다듬어 보았다. 단 한 번의 패배는 밀리어의 명예에 상
처를 주는데 충분했다.
"라플라미즈 사령관이 뭐라고 해도 나는 마이크론이 된다. 그리고 놈을
만나는 거야. 나에게 굴욕을 준 파일로트에게....... 도대체 어떤 놈일
까...!?"
어둡고 썰렁한 격납고 속에 밀리어의 눈동자만이 뜨거웠다.
제 12 장
작은 코스모스
제21화 Micro-Cosmos(작은 우주)
배우가 된 민메이
그 옛날 중국 대륙의 황하 유역에 작은 왕국이 있었다. 국토는 작았지만
녹색으로 둘러싸여 사람들은 평화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땅에
사는 백 여덟 악마들은 평화를 싫어했다. 악마들은 생각했다. 어떻게든 왕
국을 지옥의 바닥으로 떨어뜨리자. 그래서 악마들은 모습을 마적으로 바꾸
어 평화스런 왕국으로 쳐들어왔다. 잔인하게 파괴한 끝에 아름다운 공주를
포로로 잡아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악마들은 국왕에게 말했다. 공주를 돌려 받고 싶으면 독을 황하에 흘려보
내라. 외동딸을 위해서 국왕은 엄청난 결심을 했다. 나라 안의 독을 황하에
뿌렸다. 그래서 황하는 죽은 강이 되었다. 고기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
두 죽었고, 강물을 마신 흙은 말라갔다. 악마들은 다시 한 번 국왕에게 말
했다. 공주를 돌려 받으려면 나라 안의 금은보화를 깊은 계곡으로 떨어뜨려
라. 이번에도 왕은 외동딸을 위해서 온 나라 안의 금은보화를 깊은 계곡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평화스런 왕국은 가난한 왕국이 되었다.
악마들은 세 번째로 국왕에게 말했다. 공주를 돌려 받으려면 온 나라 안의
아이들의 목을 졸라라. 외동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국왕이었지만,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악마를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 줄 사람은 없
을까 고민하던 왕은 온 나라 안에 방을 내걸고 용맹한 사람을 찾았다. 공주
를 구해 주는 사람은 공주의 남편으로 삼고, 왕위를 물려 주는 조건이었다.
이윽고 한 사람의 용감한 젊은이가 뽑혔다. 젊은이는 어릴 때부터 신선에
게 권법과 초능력을 배워 몸에 익힌 사람이었다. 공주를 구출해야 할 젊은
이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상이 영화 "소백룡"의 줄거리였다. 공주역은 민메이, 용기있는 젊은이
역은 카이푼이었다. 카이푼은 민메이의 상대역으로서 정말 잘 어울렸다.
영화는 첫날부터 대성황이었다. 히카루, 하야오, 맥스는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도 겨우 제일 뒷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민메이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구나."
맥스가 말했다.
히카루의 기분은 착잡했다. 민메이에게는 많은 팬이 있다. 자신도 그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야오가 히카루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대장님, 알고 계십니까? 민메이와 카이푼이란 녀석이 결혼한다는 소
문......."
히카루는 박수를 쳤다. 막이 올라간 것이다.
마크로스에 잠입한 밀리어 화리너
"확대 투영 준비 완료!"
스피커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정보에 잡힌 적 함대의 영상을 비추겠습니다."
"음...."
브리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크린에 비친 것은 영화 "소백룡"의 격투 장면이었다. 도복을 입은 카이
푼을 마적이 포위했다. 기회를 노리던 카이푼은 돌아서서 차고 훌쩍 날아올
랐다.
"전투 기록 필름 같습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원시적인 전투야."
브리타이는 비웃었다.
"하지만, 이 따위 기록 필름에 군중들은 왜 열광하는 거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엑세돌은 이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브리타이 함내에서 "소백룡"을 보고 있는 것은 그들 둘만이 아니었다. 와
레라를 비롯한 로리와 콘더로 대기실에서 영상을 훔쳐보고 있었다.
카이푼과 민메이의 모습이 정면 모니터에 가득 비쳤다.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몇 사람의 병사도, 민메이의 눈부시게 화려한 중세의 중국 의상에 완
전히 매료되었다.
"와, 저 사람이 민메이야?"
"아름답구나!"
"움직이고 있어! 뭔가를 말해!"
저마다 외치는 병사들에게 와레라와 로리가 한 마디씩 했다.
"실제 민메이는 훨씬 더 귀여워."
"우리들은 민메이의 친구야."
"뭐야?"
병사들은 감탄해서 소리를 질렀다.
"괜찮습니까?"
카이푼이 민메이를 일으키려 했다.
"앗, 위험해요!"
민메이의 얼굴이 공포에 떨렸다. 카이푼이 뒤돌아보니, 악마는 커다란 거
인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카이푼은 주문을 외우면서 공중으로 날아오르
더니, 손끝에서 불꽃을 튕겨냈다.
"뭐, 뭐야, 저건?"
브리타이는 놀란 나머지 몸에 경련이 일었다. 불꽃을 받은 거인은 땅을
울리며 쓰러졌다.
"서, 설마, 프로토 컬쳐의 전설에 나오는 그런 힘인가!?"
브리타이와 엑세돌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민메이가 카이푼의 팔 안에서 눈을 떴다. 붉은 입술에서 안
도의 한숨이 새어나오고 카이푼은 입술을 갖다 댔다.
"왓!"
병사들은 일제히 눈을 감았다.
"뭐, 뭐하는 거야? 도대체 뭐하는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찡하고 뜨거워지는 것 같아."
"문화란 것은 느낌의 연속이야."
와레라가 말했다.
"그, 그렇게 굉장한 거야?"
"신기한 거지!"
로리가 대답했다.
"자네들도 민메이와 저런 행동을 했나?"
와레라와 콘더와 로리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저, 그게...."
콘더는 얼굴을 숙였다.
"그, 그렇구 말구."
로리가 대답했다.
"한두 번이 아니야."
와레라는 입술까지 핥으며 덧붙였다.
"와!"
병사들은 부러운 듯이 세 사람을 보았다.
히카루는 맥스와 하야오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히카루는 왠지 화가 났다. 영화관을 나오자 햇빛이 눈부셨다. 히카루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영화관 복도에는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히카루는 머리를 흔들면서 인파를 헤쳐나갔다. 입을 맞추는
민메이와 카이푼의 그 영상을 털어 버리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앗!"
누군가의 발에 걸린 히카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며 양손을 허우
적거렸다. 오른손이 어떤 여자의 몸에 닿았다.
"악!"
"미, 미안합니다."
"뭘 하는 거예요?"
뒤를 돌아본 얼굴은 미사였다.
"아니, 히카루 중위!"
"미, 미사 대위!"
히카루는 갑자기 더더욱 당황해졌다.
"미, 미안...그만 발에 걸려 넘어지려고 해서......."
"흥!"
미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히카루를 노려보았다.
"넘어지려는데 거기에 우연히 내가 있었다는 거지?"
"그래......."
미사는 몹시 화를 냈다. 주위의 남자들이 야유를 던졌다.
"같이 놀자! 언니!"
"저런 더러운 놈은 맛을 보여 주겠다!"
미사는 얼굴이 빨개져서 히카루의 손을 잡았다.
"여, 여기를 빠져나가자. 군인의 체면도 있으니."
히카루는 손을 잡힌 채 미사의 뒤를 따랐다. 미사는 영화관을 빠져나와 빌
딩가의 뒤쪽으로 들어왔다.
"아휴, 창피해!"
사람이 없는 골목길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곳에 있었어?"
"잠깐 영화를 보러......."
"그래...."
미사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히카루도 도중에 나왔단 말이지......?"
"응?"
어떻게 된 걸까? 히카루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미사도 영화를 보고 있었
고, 나와 마찬가지로 도중에서 자리를 일어선 것인가? 그 장면에서? 그러나
왜?
갑자기 함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히카루와 미사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갑자기 천장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적의 공격이다!"
둘의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급히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
다."
"이렇게 빨리 변신을?"
미사는 놀라서 말했다.
"대위, 이 근처의 대피소를 알고 있습니까?"
"지금은 분초를 다투는 거야! 이대로 군부까지 달리자!"
그런데 몹시 심한 진동으로 미사는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골목길이
밀려 올라왔다. 양옆의 건물을 두고 골목이 밀려 올라오는 것이다.
"대위!"
히카루는 미사를 안고 웅크리고 앉았다.
마을의 심한 진동이 끝났을 때, 둘은 벼랑 위에 남겨져 있었다. 둘을 얹
어 놓은 채 머리를 쳐들은 길바닥은, 거대한 한장의 벽과 같이 우뚝 솟아
있었다.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다.
히카루는 몸을 일으켜 상황을 살폈다. 사람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
람들은 거듭되는 변신에 익숙해져서 안전한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
고 있었다. 그곳으로 모두 피신했음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미사가 말했다.
"우선 걸읍시다."
미사는 히카루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골목의 한쪽은 금속 벽돌로 되어
있고 바닥과 천장에서 벽돌이 나와 균형있게 엇갈려 있었다. 함대를 변신시
킨 상태지만 그 틈으로 골목길은 계속되고 있었다.
둘은 구두소리를 울리며 걷기 시작했다. 주위는 마치 터널처럼 어둑어둑
했다. 둘은 주위가 눈에 익숙해질 때까지 손을 짚고 앞으로 걸어갔다. 골목
길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꺾여져 있었지만, 모두 넓은 도로였다. 한참만에
둘은 멈추어 섰다. 차가운 금속 벽돌로 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쳇!"
히카루의 목소리가 가늘게 공간에 울렸다.
"어떻게 하지?"
미사가 말했다.
"방법이 없어. 이 길밖에 갈 수가 없으니까!"
"상관에 대해 그런 말투를 쓰다니!"
"이런 상황에서 상관이니 뭐니 하는 말은 그만둬!"
히카루는 얼굴을 돌렸다. 그곳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안았다. 미사도 나
란히 앉았다. 쾅......쾅 울리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바닥이 계속 흔들렸다.
"공격이 시작되었나 봐...."
쾅......쾅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노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내지 말고 뭔가 말 좀 해 봐."
"......."
미사는 다시 명령조로 말했다.
"중위, 뭔가 말을 해!"
그래도 히카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히카루는 민메이와 카이푼이 입맞
추는 장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림같이 아름다왔다.
"제발 뭔가 얘길 해 봐. 내 흉이라도 좋으니까!"
미사는 히카루에게 기댔다.
"말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스스로 불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니!"
"잘못했어!"
미사는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래. 차라리 그러는 편이 대위답지!"
"아까부터 이미 나다웠는데......."
미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실은 나도 조금 쓸쓸했어."
히카루는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변신을 한 걸까?"
"내가 없는 동안에 샤미가 전투 명령을 내린 거야. 아직 서투르니
까......."
"음...."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적의 포로가 되었을 때 생각이 나......."
"그러나, 그 때만큼 조마조마하지는 않아. 어쨌든 여기는 마크로스 안이
니까 말이야. 적의 공격이 끝나면 곧 나가게 될 테고."
"잠시 그쳤다가 또 공격할 거야. 놈들은 몇 번이라도 지치지 않아. 그런
데, 놈들은 왜 우리를 살려 두는 걸까? 저 정도의 힘이 있으면서......."
"글쎄....... 이건 군사 기밀인데, 적은 지금 두 세력으로 분리된 것 같
아. 우리들을 프로토 컬쳐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손을 대서는 안 된
다고 하는 세력과...."
"거꾸로 공격하자는 세력도 있다는 것인가?"
"아마도 그래서 명령 계통이 혼란스럽고, 저런 산발적인 공격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런 일이......."
"적의 혼란이 끝나면 우리들은 어떻게 될 것 같애? 살아 남을까? 모두 죽
을까...?"
침묵이 흘렀다. 히카루는 화제를 바꾸려고 명랑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미사는 왜 영화관에 간 거야?"
"뭐, 그저 갑자기...."
미사의 표정에 당황함이 비쳤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건데...뭔가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야?"
"어, 없어. 그런 이유는. 너와 마찬가지로 그냥 영화를 보러 간 거야."
"그냥 영화를...미사 대위가?"
"그래. 나는 영화 좀 보면 안 되니?"
"...그러나, 여자가 민메이를 보러 갈 이유가 없잖아...."
히카루는 생각났다는 듯 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카이푼을 보러 간 거구나!"
"아, 아니야!"
미사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지만 얼굴이 새빨개졌다. 히카루는 허풍스럽게
떠들며,
"맞아! 그런 거야! 대위는 카이푼을 만나러 간 거야. 그런데, 미사는 카
이푼의 어떤 점에 끌린 거야?"
라고 말하며 마이크를 잡는 흉내를 냈다.
"뭐야, 바보같이! 그쪽이야말로 민메이와 잘 되어 가는 거야!?"
히카루는 몸을 으쓱했다. 그 순간에 흥이 깨져 버렸다. 힘이 빠지며, 히카루
의 뇌리에 그 영화 장면이 다시 한 번 되살아났다.
히카루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며 추억에 잠겼다. 히카루의 머플러를
웨딩 면사포같이 쓴 민메이. 눈물에 젖은 볼이 빨갛고 입술이 예쁜 민메이.
마크로스의 작업장에 갇혀진 둘만의 나날들...... 벌써 십 년이나 지난 일
같이 생각되었다.
"왜 그래?"
미사는 히카루의 어깨를 흔들었다.
"내가 말한 것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미사도 나와 같은 이유로 도중에 영화관을 나온 거야?"
히카루는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히카루는 어깨에 얹혀진 미사의
손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군인을 싫어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옛날 존경하던 어떤 사람과 닮았어."
미사는 조금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이미 죽어 버렸지만, 그 사람은...."
미사의 기억 속에서 라이버는 언제나 눈부시게 빛났다. 이별을 고하던 그
날도 봄볕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히카루는 훌쩍거리며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히카루와 등을 진 채 미사의
뒷머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히카루는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고마워. 히카루는 신경쓰지 마...."
미사는 눈물을 닦았고 히카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괜찮아. 이렇게 괴로운 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없으면 살맛도
안 나지."
"그래...."
"우리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늘을 최대한으로 성실히 사는 거야. 그것밖에 없잖아?"
"그럴까?"
"그럼......."
미사는 히카루를 다시 쳐다보며 손수건을 돌려 주었다. 히카루의 손바닥에
손수건과 함께 미사의 손끝이 눌려졌다. 히카루는 두 개의 가는 손가락을 꽉
쥐었다. 미사는 손수건에 감겨진 손가락에서 뜨거운 힘을 느꼈다. 둘은 서로
를 쳐다보았다. 히카루는 미사에게 끌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사도 히카루
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둘을 이어 주고 있는 것은 단지 똑같이 쓸 쓸
함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변신이 해제되었다. 금속 벽돌이 이동하기 시작하고 햇빛이 비쳤다. 굉장
한 소리와 함께 길바닥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함대 안의 변화는 바람을 일
으켜, 그 희미한 바람이 둘의 볼을 쓰다듬었다.
히카루와 미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둘이 앉
은 길바닥은 요술 주단과 같이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길 전체에 굉장한
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눈을 뜨고 보았을 때, 둘은 큰길 보도 위에 운반되
어져 있었다. 마을은 원상태가 되었다. 간판들이 기울어져 있었지만 커다란
피해는 없었다. 이미 변신에 맞추어 모든 것이 개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
다.
"그럼, 나는 프로메테우스 쪽으로 돌아갈 테니......."
히카루는 일어서며 말했다. 막 발길을 떼어 놓으려는데, 미사가 히카루의 손
을 잡아끌며 말했다.
"프로메테우스에는 나중에 가도 괜찮지 않아?"
"......?"
"좀더 함께 걷지 않을래...?"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용한 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민메이와 닮은
얼굴을 그린 "소백룡"의 선전 간판이 크게 찌그러진 채 떨어져 있었다.
배틀 슈츠 함대가 공격을 멈추고 사라진 뒤, 마크로스에는 밀리어 화리
너가 남았다. 밀리어를 잠입시키기 위한 습격이었던 것이다.(원작에서는
이편에서 잠입한 곳이 아니라 19화(폭발점)에서 잠입했음)
와레라 일행이 생활했던 금속 쓰레기장에 마이크론용 캡슐이 놓여져 있었
다. 그 안에서 미녀 하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 13 장
탈 출
제22화 Love Concert(사랑의 콘서트)
젠트러디의 동요
"브리타이 함대 안에서 무슨 소동이......?"
캠진이 뒤돌아보았다. 파란 머리가 흉악한 시선 위로 흔들렸다.
부관인 오이글이 대답했다.
"마크로스에 잠입했었던 세 사람이 이상한 것을 여러 개 가지고 돌아와서
는, 병사들 사이에 그것을 퍼뜨린 것 같습니다."
"음, 그런 일 따위로 소동이라니......."
캠진은 흥미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중앙 화면에 비친 마크로스를 쳐다보았
다.
"그런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는 마크로스에 투항해서 그쪽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놈들도 있습니다."
"...투항...? 적에게...?"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용서할 수 없다!"
라고 캠진은 외치며 오이글을 노려보았다.
"투항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왜 그렇게 되었지?"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이 일을 위에서도 알고 있나?"
"글쎄요......."
"어떤 놈이든 마크로스에 투항하는 놈은 살려 두지 않겠다!"
캠진은 가슴 앞에서 양손을 마주 잡고, 열 개의 손가락에 조용히 힘을 넣
었다.
"마크로스 따위는 내가 없애 버리겠다!"
캠진은 꽉 힘을 넣어 양손바닥을 쥐었다. 오이글은 무언가 부서지는 것처
럼 느꼈다.
화면에 비친 보드르져가 지령을 내렸다.
"마이크론을 손에 넣으라고 말씀하셨읍니까?"
보드르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네가 보낸 자료는 이미 보았다. 저 사람들이 프로토 컬쳐가 틀림없다면
우리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이다. 마이크론을 잡아 다시 한 번 철저히 조
사해 볼 필요가 있다. 최종 수단을 쓰는 것은 그 때부터이다."
"최종 수단이라고 하셨읍니까?"
엑세돌이 말을 계속했다.
"문화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틀림없이 병사들에게 악영향
을 미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자료를 모으고, 놈들을 말살
시킬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서둘러서...."
브리타이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마크로스에서는 이 사진과 같은 크기의 여자가, 마이크론들에게 노래라
고 하는 것을 들려 주고 있습니다."
로리가 민메이의 포스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배틀 포트 격납고의 한 방에는 비밀리에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노래의 신기함, 민메이의 귀여움, 문화의 이상한 매력을 소문으로 들은 병
사들은 점점 더 세 사람에게로 모여들었고,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무언가를
깨닫고 있었다.
"이봐, 나도 보여 줘!"
병사들 뒤쪽에서 방금 온 병사들이 너도 나도 외쳐 댔다.
"앗! 밀지 마! 밀지 말란 말이야!"
점점 몰려드는 인파에 밀려 와레라와 로리와 콘더는 벽 쪽에 부딪쳤다.
와레라는 민메이와 입을 맞추려는 듯한 모양이 되었다. 그 순간 비난의 함
성이 터져나왔다.
"앗, 저놈이! 저런 행위를 하다니!"
"이 바보들!"
몇 사람의 팔이 와레라를 벽 쪽으로 밀어 버렸다. 혼란을 조용하게 한 것
은 함내 방송이었다.
"이제부터 마크로스에게 공격을 시작한다. 모두들 전투 배치로 돌아가라!
이제부터 마크로스를 공격한다. 모두들 전투 배치로 돌아가...!"
병사들은 조용히 서서 천장의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공격...마크로스를...!"
콘더가 멍청히 중얼거렸다. 병사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어떻게 하지? 마크로스를 공격한다는 건 민메이를 죽이는 것이 되는
데...."
"노래도 들을 수 없게 되고...."
로리가 말했다.
"노래만이 아니야. 저기에는 우리들에게 없는 물건이 가득 있어. 그 모든
것이 재가 되어 버린다니......!"
로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이상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틀림없이 마
크로스를 향한 향수였다.
"투항하자!"
로리가 소리쳤다.
"투항해서 저쪽에서 살자!"
"어떻게?"
"무슨 일이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여튼 출격했을
때 기회를 봐서 마크로스로 도망쳐서 거기서 사는 거야!"
"좋아! 나도 간다!"
"나도 간다!"
와레라와 콘더도 찬동했다.
"들키면 붙잡혀서 죽을 텐데......."
불안스럽게 말하는 병사에게 로리는 가슴을 펴 보였다.
"그건 그 때 일이야!"
캠진의 출격
박수갈채는 언제나 피부에 와 닿았다. 민메이에게 있어서는 좋은 옷감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민메이는 야외 무대에서 콘서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열기는 무엇보다도 풍부한 배경이며 그녀를 이끌어 가는 유혹이었
다. 많은 팬이 노래소리에 취해 술도 고기도 없는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 사람만이 멍하니 조용한 모습이었다.
카이푼은 맨 앞 좌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민메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
순한 사촌지간으로서 보는 그런 눈길이 아니었다.
"다음은 신곡입니다."
민메이가 신곡을 소개했다.
" "사랑은 흐른다"...들어 주십시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것이 카이푼의 눈을 스쳐갔다.
-세월이 흐르네요. 사랑이 흐르네요.
나의 앞을 슬픈 얼굴로
당신은 분명히
전장에 가겠지요....
브릿지의 샤미, 킴, 바넷사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를 들으며 계
기를 만지고 있었다.
"이대로 전쟁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넷사에 이어 샤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나도 멋있는 사랑을 하고 싶어."
"누군가 좋은 사람이 없을까?"
킴도 멍청히 중얼거렸다.
클로디아는 자기의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녀는 포커의 모습을 그리
고 있는 것이다.
- 음악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눈이 내린다. 눈은 두 사람의 머리와 어깨에
소복이 쌓인다. 포커의 머리에 떨어지는 눈은 금빛으로 투명하게, 클로디아
의 검은 피부는 흑진주와 같이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발자국은 둘이 걸어
온 그대로 정답다.
미사는 바쁜 듯이 이쪽저쪽 계기를 점검했다. 그녀에게는 이 "바쁨"이란
것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카이푼의 일도, 라
이버의 일도, 전쟁이란 것도.......
미사는 자신의 이 차가운 이성이 싫었다. 감정 어린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해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
다. 미사는 한순간 히카루를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히카루는 우주 전망대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포커가 자주 오던 장소였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우주는 뭐야? 마크로스는 또 뭐야? 우리
에게 있는 건 오직 전쟁 뿐이야. 선배는 죽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 남고 텅
빈 가슴을 달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걸까? 민메이를 위해서? 그렇
다. 틀림없이 처음에는 그랬었다. 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들어왔
다. 그런데 요즘의 이 공허함은 무엇인가? 민메이가 나를 생각해주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나는 민메이의 눈길을 끌기 위해 군대에 들어온 것이
되는데....... 난 어릿광대였어. 아무튼 선배님, 나는 너무나 피곤해요..
..'
멀리서 들려오는 민메이의 노래소리를 히카루는 듣고 있지 않았다.
"이 함대로 다이더로스 공격을 받으라는 건가?"
브리타이는 엑세돌에게 물었다.
"네. 조금 무리이긴 합니다만, 다이더로스 공격을 역이용하면 배틀 포트
부대를 마크로스 안에 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이크론뿐만이 아니
라 마크로스까지 손에 넣을 수도...."
"고기를 잘라서 뼈를 부러뜨리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단, 어디를 치더라도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겨냥할
수 있는 장소는 선두 부분에 한합니다. 그곳이라면 파괴되어도 4 아데놀과
5 아데놀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작전이군."
"이것도 모두 스파이가 갖고 돌아온 마크로스 전투 패턴을 분석한 결과로
얻어낸 작전입니다."
"좋아."
브리타이는 만족스런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와레라, 로리, 콘더를 비롯해 23명의 병사가 마이크론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인 마크로스에 투항을 결심한 것이다. 격납고 한구석에서 23명이 한 대
의 배틀 포트에 탔다.
"안심하는 것은 아직 일러."
로리가 주의를 했다.
"기회가 있을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있는 거다."
방송이 들려왔다.
"전 배틀 포트 부대에 알린다. 신속하게 함수부로 이동하라! 이동한 뒤
다음 지령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함수로...? 오늘은 좀 다른데...."
콘더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이들 사이에 웅성웅성 불안의 물결이 퍼져
갔다. 발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격납고에 대기하고 있던 포트 부대가 일제
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굉장한 발소리에 일동은 더욱 불안해졌다.
"떨지 마!"
와레라가 호통을 쳤다.
"마크로스에 공격을 시작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기회가 있어!"
와레라는 거대한 시트 위에 발돋움을 해 계기에 손을 댔다.
"하여튼 함수로 향하자! 모두 뭘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나! 빨리빨리 움
직여라!"
23명의 마이크론을 태운 배틀 포트는 한 걸음 한 걸음 소리를 죽이고 걷
기 시작했다.
작전 준비를 갖춘 브리타이는 캠진에게 출격 명령을 내렸다. 캠진 함대의
해치가 열리고 포트가 하나씩 줄지어 발진했다. 캠진은 선두에 서서 돌진했
다.
포트 부대는 스스로에게서 비치는 빛에 반사를 받으며 부채 모양으로 퍼
져나갔다.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은 천천히 흐르는 입자와 같다. 특히 밤에는
조용히 꽃봉오리에서 떨어지는 꽃가루 같이도 보인다.
브리타이와 마크로스의 격전
사이렌소리에 히카루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고 발키리
격납고를 향해 달려갔다. 히카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자신을 비웃는 것
이다. 히카루의 손과 발의 근육은 전투에 대비해서 재빨리 긴장하고 있지만,
의식은 아직 몽롱한 상태이다.
파일로트 구두의 뒤축이 금속 바닥을 두드렸다. 그 소리도 자신의 것이라
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뒤에서 쫓아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히카루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듯이 자신의 발소리에서 도망치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도망치는 장소는 전쟁터밖에 없다.
히카루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사이렌소리 사이를 흘러 희미하게 민메이의
노래가 들렸다. 노래소리에 취했다.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전쟁터로 향하는 자신과 무대에서 노래하는 민메이 사이에 어떻게 할 수 없
는 거리를 느꼈다. 같은 함내에 있으면서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히카루는 둘의 세계를 합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히카루
의 마음만이 둘의 세계를 연결하는 빨간 리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히카루가
피곤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리본은 양끝에 연결된 중력에 끌려 항상 팽팽
하게 당겨져 있기 때문이다.
히카루는 십자로에 당도했다. 좌우 통로에서 파일로트들이 달려와 히카루와
나란히 섰다. 히카루는 어두운 격납고로 빨려 들어갔다.
발키리 대가 흩어졌다. 곧이어 배틀 포트가 폭발하며 금속 조각은 파멸
의 빛을 퍼붓고 순간적으로 번득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인과 인간의
찢어진 육체는 우주 공간에 스치는 순간 얼어 버린다. 날아가는 빔과 폭발
의 빛이 전장에 비쳤다. 이런 폭발의 빛이 곧 전장인 것이다.
히카루의 발키리 꼬리날개에서 붉은 해골 마크만이 붕 떠올랐다. 포커가
죽은 뒤 그가 아끼던 스컬 I은 히카루의 조종을 받게 된 것이다. 히카루는 발
사 스위치를 눌렀다. 그래서 또 한 번 전장은 화려하게 밝아졌다.
브리타이는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격렬한 전투 장면이 화면에
비쳐졌다.
"지금까지도 똑같은 패턴이군...."
브리타이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좋아. 마크로스에 접근한다. 우리 함대는 정면에서 공격하겠다."
"알겠습니다."
스피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파괴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사로잡는다는 걸 다른 함대에도 철저히 명령
해라!"
히카루는 포트 부대 저쪽에서 다가오는 희미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전투 함대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조용히 접근했다. 강대한 검은 파도 같은
절대적인 중량감이 푸른 하늘에 전해져 피부에 느껴졌다. 발키리나 배틀
포트가 폭발할 때마다 요란한 굉음과 빛이 번쩍였다.
적 함대는 마크로스를 향해 무적의 빔을 계속 쏘아 댔다.
"악!"
심한 진동을 받아 샤미와 킴과 바넷사는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함장님!?"
클로디아는 뒤돌아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당길 수 있는 한 당겨서 다이더로스 공격을 준비해라!"
그로벌은 떨어진 모자를 다시 눌러쓰며 말했다.
"마크로스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눌 수밖에 없다!"
미사가 마이크로 말했다.
"다이더로스 공격을 언제든지 작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라!"
그로벌은 어깨에 힘을 빼고 쓴웃음을 지었다.
"쯧쯧......지구에서 쫓겨나 날고 날아서......."
마크로스를 습격한 캠진의 공격은 콘서트장을 흔들었다. 민메이가 비틀거
리자 빨간 드레스의 끝이 크게 흔들거렸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은 채 비명
을 질렀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환성이 공포의 소리로 변했다. 다시
진동이 일어나고 쾅! 하는 소리가 발밑에서 솟아올랐다.
"도망가자!"
누군가가 외쳤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도망가려고 했다. 넘어지는 사람,
밟힌 사람, 미는 사람, 울부짖는 사람....... 혼란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흔들어 놓았다. 카이푼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다.
"민메이, 계속해라! 계속해서 노래를 해라!"
"뭐!?"
카이푼은 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외쳤다.
"여러분, 이대로 계속합시다! 콘서트를 계속하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열의가 가득했다.
"야만스런 전쟁에 져서는 안 돼! 노래가 무기에 져서는 안되는 거야!"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노래해, 민메이! 노래를 하는 거야! 큰 소리로 노래를 하는 거야!"
"그, 그러나...!"
망설이는 민메이에게 카이푼은 마이크를 들이댔다.
"자아, 용기를 내!"
콘서트장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천장이 삐걱거렸다. 민메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카이푼은 민메이의 양어깨를 꽉
잡았다.
"자, 빨리! 노래를 하는 거야!"
민메이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거의 기계적으로 기어들어가는
노래소리가 새어나왔다.
"더 큰 소리로!"
관객들은 한 사람씩 서서히 자리로 돌아왔다.
"좋아! 그 박자로!"
카이푼이 민메이를 부추겼다. 몇 사람인가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쳤다.
손뼉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함장님! 대형 함대가 전방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미사가 보고했다.
"자기 몸을 부딪칠 작정인가!? 피하라!"
"안 됩니다! 주위가 적 함대에게 포위되어 있습니다."
"좋아, 다이더로스 공격을 걸어라! 전방의 대형 함대에 공격을 해서 돌파
구를 열자!"
"알겠습니다! 다이더로스 공격을 준비하라!"
브리타이의 함대가 다가왔다. 두 척의 함대에서 검은 공간이 좁혀지고 있
었다. 마크로스보다 더 거대한 브리타이 함대는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정면
에서 충돌하면 마크로스는 튕겨나가 크게 부서질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취
할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로보트로 변신한 마크로스는 오른팔인 다이더
로스를 흔들었다. 다이더로스의 앞쪽에 배리어를 집중하여 푸른 갑옷이 되
었다.
"다이더로스 공격!"
"알았다!"
미사의 소리와 함께 마크로스는 해치를 열었다. 오른팔이 브리타이 함대
쪽으로 날아갔다. 미사의 눈 속에서 적 함대의 작은 조각이 물보라처럼 흩
어졌다.
집중 포격이 시작되었다. 브리타이 함대 앞의 포트 부대는 충돌된 다이더
로스를 향해 빔을 퍼부었다. 다이더로스의 바깥 벽이 거품을 내며 녹았다.
작은 구멍이 생겼다. 배틀 포트가 침입하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잠입 작전
"뭐, 뭐라고?"
보고를 받은 클로디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된 거야?"
그로벌이 물었다.
"오른쪽 날개에 배틀 포트가 침입했습니다!"
그로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당황한 미사는 마이크를 끌어당겨 발키리 대에 연락을 취했다. 미사의
말에 히카루는 숨을 죽였다.
"치, 침입 당했다고!? 배틀 포트에게!?"
"오륙십 대가 내부 파괴 활동 중! 긴급 귀환시켜라!"
모니터의 미사가 말했다.
"콘서트장은 무사한가!?"
히카루는 힘을 넣어서 물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여튼 서둘러서!"
"알겠다! 맥스, 하야오, 귀환하라!"
이렇게 말하면서 히카루는 기체를 돌렸다. 캠진은 귀환하려는 발키리를
보고 스피드를 올렸다.
"도망간다!"
캠진은 공격을 퍼부으면서 쫓아갔다. 틈을 주지 않고 두 대의 발키리를
폭발시켰다. 폭발된 빛은 아치를 그리고 캠진은 그 밑을 빠져나가 마크로스
를 겨냥했다. 마크로스는 겨우 오른쪽 팔을 빼돌렸다. 복부의 해치가 열리
고 한 대씩 발키리가 미끄러져 갔다. 캠진의 포트는 해치가 떨어지기 직
전에 함대 안으로 사라졌다.
마을은 파괴와 파멸의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파괴를 하며 행진을 계속
하는 배틀 포트의 발소리. 끊임없는 빔의 발사음. 집집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 차의 충돌소리. 무너지는 빌딩의 폭음. 잘라진 전선의 스파크소리.
어딘가에서 수도관이 파열되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아기들의 울음소
리.......
마을은 파괴와 파멸의 색깔에 차 있었다. 푸른 빔의 화살, 하얀 연기, 검
은 연기, 타오르는 붉은 불길, 쏟아져 나온 붉은 빛의 내장과 피. 콘크리트
의 파열, 어딘가 양품점이 부서져 휘날리는 스커트와 블라우스, 스웨터와
넥타이 등이 흩어져 있었다. 어딘가의 문방구가 부서져 길 위에 굴러다니고
있는 연필, 싸인펜, 필통, 셀로판지 등. 그 셀로판지는 열을 받아 쭈글쭈글
하게 말려서 빨갛고 파란 입자들이 되어 있었다.
배틀 포트의 침공은 물론 야외의 콘서트장에도 미쳤다. 관객들은 민메이
의 노래를 미친 듯이 따라 부르면서 그 노래에 빠져들어 공포를 잃으려 했
다. 아니 사실 잊고 있었다. 민메이가 입을 다물어도 관객의 노래소리는 바
람의 여운으로 나아가는 배와 같이 계속되고 있었다.
"민메이, 어떻게 하지?"
카이푼이 작은 소리로 물으며 관객석 한쪽을 가리켰다.
눈을 크게 뜬 민메이는 그쪽을 향해 시선을 더듬었다. 관객석 한쪽에 두
대의 포트가 서 있었다. 그런데 포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민메이를 보며 노
래에 정신을 잃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유탄이 무대 지붕에 맞았다. 파팍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반짝반짝 소녀에게 뿌려졌다.
"악!"
민메이는 카이푼에게 안겼다. 순간 조명기구가 떨어졌다.
"위험해!"
카이푼은 민메이를 감싸며 웅크리고 앉았다. 조명기구는 그의 뒷머리를
치고 땅에 떨어졌다. 민메이는 카이푼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
다.
"괘, 괜찮아?"
"괘, 괜찮아. 나는...."
가늘게 흐르는 피가 카이푼의 관자놀이를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제23화 Drop Out
배트로이드로 변신하여 콘서트장으로 달리는 히카루는 행복했다. 심한 적의
공격을 받고 지금 히카루의 세계와 민메이의 세계는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카루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불꽃 속을 빠져나가 민메이에게
로 달렸다. 이쪽저쪽에서 배트로이드와 배틀 포트가 치열하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앞쪽에 두 대의 포트가 나타났다. 히카루는 재빠르게 가틀링 포를 겨
냥했다. 그런데 포트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히카루를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하지를 않는 것이다. 히카루는 가틀링 포를 든 채 앞으로 나아
갔다.
민메이의 노래를 들은 두 사람의 거인은 도취 상태였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히카루의 배트로이드가 한 방 먹이자, 포트는 털퍽털퍽 엉덩
방아를 찧었다.
"......?"
히카루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급히 그곳을 떠났다. 두 거인 병사는 몽롱
한 목소리로 통신을 나누었다.
"정말 귀엽다, 민메이는...."
"응......."
"노래도 잘하고...."
"...응...."
"예쁜 군복을 입고 있어...."
"바보야, 그건 군복이 아니야. 드레스라는 거라고 와레라가 그랬잖아."
"그런데...."
"그런데...."
하고 두 병사는 동시에 말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까?"
"역시 우리도 투항하는 게 좋겠어...."
"좋아!"
"나도 좋아!"
"하여튼 민메이가 있었던 곳을 모두에게 가르쳐 주자."
"그게 좋겠어. 모두 놀랄 꺼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뒹굴면서 맥스의 배트로이드는 적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부서지고 기울어지고 비뚤어진 마을에서 가틀링 포는 쉴 시간이 없
었다. 반쯤 파괴된 건물을 방패삼아 빌딩 창에 포를 들이대고 저쪽 창으로
보이는 포트를 겨냥했다. 깨어진 지붕의 그늘에서 맥스가 싸우는 모습을 바
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밀리어였다. 그녀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틀림없다! 저놈이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가는 손끝이 하얀 손바닥에 싸였다.
병사들의 방황
폐허가 된 건물의 천장은 전등도 부서지고 어두컴컴했다. 어두움에 떠오
르는 검은 연기 속에 배틀 포트가 우뚝 서 있었다. 콕피트의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고 로프가 내려지더니 와레라와 로리, 콘더를 포함한 마이크론 병
사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임무는 마크로스 침입과는 다른 거야."
콘크리트벽을 미끄러져 내려와 길 위에 선 콘더가 말했다.
"앗!"
병사 하나가 민메이의 인형을 발견했다. 빨간 중국식 드레스를 입은 인형
은 타다 남은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병사는 사랑스런 듯이 인형을 주
웠다.
"...이렇게 되다니...!"
드레스의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다.
"우리들이 인형과 마을을 이렇게 한 거야...."
축 늘어진 인형을 보며 일동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폭
발소리가 사방에서 조그맣게 들려왔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격전지의 캠진은 짐승같이 공격을 퍼부었다. 그가 지나간 뒤에는 틀림없
이 배트로이드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그는 계속 새로운 적을 찾아다녔다.
"응?"
갑자기 이마를 찌푸렸다. 앞쪽에 몇 대의 포트가 모여 소곤소곤 이야기하
고 있었다.
"...뭘 하는 거야?"
포트 무리가 뒤돌아보았다.
"민메이가 있었습니다."
한 병사가 대답했다.
"민메이? 그게 뭐야?"
의아해 하는 캠진을 무시한 채 병사들은 다시 소곤대기 시작했다.
"와레라가 말한 것이 정말이었어."
"나도 민메이를 만나고 싶다."
"나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귀엽다고 그랬어."
"뭘 하나!"
캠진이 날카롭게 소리치자 병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너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번에는 조용히 물었다.
"...그, 그래서......."
한 사람이 쭈뼛쭈뼛 말했다.
"더이상 여기를 파괴하다가는...."
캠진의 포트가 불을 뿜었다. 총알이 그 병사의 포트 허리를 뚫고 지나갔
다. 다른 포트들은 일제히 뛰어 달아났다.
"이놈들, 어딜 도망가는 거냐?"
"용서해 주십시오. 여기엔 신기한 것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닥쳐! 이유가 어쨌든 도망하는 놈은 살려 두지 않겠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좋아! 알았다! 모두 사이좋게 저 세상으로 보내 주겠다!"
포트 무리는 후다닥 방향을 바꾸어 도망쳤다. 캠진은 쫓아가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 댔다. 그 소리는 다 타버린 마을에 울려 퍼졌다.
히카루는 관객석 뒤쪽 기둥의 그늘에서 민메이에게 나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관객은 하나도 없었다. 갈라진 천장의 파편이 부채 모양으로 바닥
에 흐트러져 있고, 무대에는 민메이와 카이푼만 있었다. 민메이는 자기의
무릎에 카이푼을 눕히고 그의 상처에 손수건을 대고 있었다. 히카루는 민메이
의 무릎을 물끄러미 보았다. 말을 걸기가 어색한 분위기였다.
"머리가 아직도 아파?"
"아아...."
"나 때문이야. 미안해."
"민메이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전쟁이 나쁜 거야."
"...."
"이런 곳을 습격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우리 둘 모두 죽이겠다는 거
야?"
"난 괜찮아. 카이푼과 함께라면......."
팽개쳐진 마이크에는 아직 스위치가 꽂혀 있어서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
려왔다. 민메이의 달콤한 목소리가 히카루의 귀를 아프게 했다.
카이푼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민메이의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민메이는
수줍어하며 목을 돌렸지만, 카이푼은 그녀를 끌어당겼다.
히카루의 몸이 굳어졌다.
"...아, 이건 영화가 아니야."
중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히카루는 격분해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그곳을 나와 버렸다. 눈앞의 광경에 얻어맞은 듯 히카루의 마음은 공허했다.
히카루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민메이와 카이푼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
을 뜬 히카루는 콕피트 기계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배트로이드를 움직여 그곳을 떠났다. 히카루의 마음은 좀처
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히카루는 브릿지에 연락을 했다.
"여기는 브릿지."
대답한 것은 미사였다.
히카루는 억양이 없는 말투로 용건을 말했다.
"아아...미사 대위. 구호반을 야외극장으로 보내 주시오."
"야외극장으로......!?"
미사는 생각났다는 듯이 되물었다.
"설마 카이푼이!? 응? 도대체 누가?"
히카루의 통신이 도중에서 끊어졌다.
미사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 급히 구급반에게 지시를 내렸다.
"함장님!"
함내 레이더를 보면서 바넷사가 보고를 했다.
"적의 일부가 후퇴하고 있습니다!"
"뭐야!? 원인은 뭐야!?"
"모르겠습니다. 제4 블럭과 18 블럭의 적도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벌은 쥐고 있던 파이프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희망이 보인다."
"놈들! 배반을 하다니! 언제고 이 놈들을 죽여 버리겠다!"
미친 듯이 캠진이 말했다. 캠진은 도망치는 포트를 쫓으며 빔을 퍼부었
다. 지금까지는 동료였지만 이제는 적인 것이다.
캠진은 민메이 때문에 전의를 잃은 자가 다른 곳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로 많은 포트가 미친 듯이 보이는 캠진을 보고 도망쳤다.
"민메이 목격"의 소문은 병사들 사이에 춤추듯 퍼져갔다. 와레라 등 세
사람에게 "노래의 매력"이라는 문화의 신기함을 배운 거인 병사들에게는
"인간적인 토대"와 같은 것이 생기고 있었다. 그 토대가 "민메이의 목격"이
란 소문을 계기로 더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이것은 지구 인류가 그들의 선조란 점의 하나를 증명하는 것임에 틀림없
었다. 결국 전쟁의 역사밖에 없는 그들의 마음에도 인간적인 잠재의식이 남
아 있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자각한 것이다.
물론 와레라를 비롯한 세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민메이 충격을 받지 않
은 병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혼란에 당황한 그들은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도망하는 포트 무리를 쫓아 캠진은 우주 공간으로 날기
시작했다.
위기를 모면한 마크로스
"적이 도망간다고...믿을 수 없다."
브리타이는 스크린을 보고 중얼거렸다. 비쳐진 마크로스로부터 배틀 포트
가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포트는 좌우로 흔들리고 상하로 움직이며 불안정
하게 날고 있었다. 파일로트들은 자신 내부의 변화에 역시 동요되고 있었던
것이다.
엑세돌이 말했다.
"이것이 적의 무서운 힘이었구나....... 역시...법칙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엑세돌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젠 너무 늦었어!"
함장석의 브리타이는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적에게 투항하는 자는 일시 감금해 둬. 총살시키기에는 너무 수가 많
아."
"그 뒤의 처분은?"
"너희들에게 맡겨 둔다. 좋을 대로 해라. 문화의 힘을 조사하든 무얼하
든...."
"감사합니다."
브리타이는 다시 한 번 마크로스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문화라...! 이것을 어떻게 보드르져 사령관에게 보고할까...."
"뭐야!?...... 도망한 자들을 일시 감금한다고!?"
연락을 받은 캠진은 얼굴을 찡그린 채 외쳤다. 그의 입 안은 피와 같이
붉었다.
"그렇게 가벼운 처분으로...이런 일을 용서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단 말
이냐!?"
그는 계속해서 빔을 난사했다. 그것은 마크로스에게 전쟁이 끝났음을 알
리는 축포였다. 마크로스는 이제 최대의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한 사람의
소녀가 마크로스를 구한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로 남은 것은 폐허가 된
마을, 배틀 포트와 배트로이드의 잔해, 시민들의 시체, 그리고 와레라 일행
을 포함한 23명의 투항자들뿐이었다.
망명 허락
히카루는 지친 발을 이끌고 통로를 급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면 이젠 기쁨이 오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회의실 문을 노크했다.
"이치죠 히카루 중위 들어가겠습니다."
발을 들여놓는 히카루는 눈이 동그래졌다.
중앙 테이블에 와레라, 로리, 콘더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앗!......너희들은...."
그로벌 외에 미사와 두 사람의 고관이 세 사람과 마주 앉아 있었다.
와레라는 어색한 듯 웃으며 살짝 목례를 했다.
"너, 너희들 여기서 무얼 하는 거야!?"
히카루는 날카로운 말투로 물었다.
"그들 이하 23명은 망명을 희망했어."
미사가 대답했다.
"망명을!? 머리가 이상한 놈들 아니야? 우리는 너희들과 전쟁을 해왔단
말이야!"
히카루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놈들이 망명하고 싶다는 겁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어떻게 이런 거
짓말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곤란한 질문이군...."
두 사람의 고관은 팔짱을 끼고 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히카루 중위, 중위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미사의 말을 듣고 히카루는 불만스러운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망명자들을 거부한다면, 그들에게는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어지는 거
야."
"그런 건 우리가 알 바가 아니야. 나는 일개 파일로트일 뿐이니까."
"나는 지금 적을 직접 본 인간으로서의 너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거야."
"...."
히카루는 그로벌을 쳐다보았다.
"...음...."
파이프를 문 채 그로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이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히카루는 미사의 옆에 앉아 세 사람을 관찰했다.
"너희들의 망명 이유는 뭐야?"
"우리들은 여기서 생활하고 싶습니다."
와레라가 대답했다.
"여기서?"
로리와 콘더가 덩달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는 문화가 있는 걸요."
"그리고, 민메이도 있고요...."
"알았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았어?"
"그전에 스파이로 이 함대에 잠입했었지요."
"음...스파이란 것이 꺼림칙하지만...."
"우리들은 돌아가서도 왠지 쓸쓸했어요...."
세 사람은 조용히 어깨를 떨구었다. 미사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전쟁밖에 몰라. 불쌍한 사람들이야."
"그렇긴 하지만, 망명 이유로서는 좀 약하지 않아?"
"게다가......."
콘더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들은 프로토 컬쳐이기 때문입니다."
히카루와 미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고, 고관들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
을 지었다. 그로벌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나서 말했다.
"...미사의 추측이 적중한 것 같다."
"함장, 설마 그녀의 보고 내용을 믿으라고!?"
매부리코인 한 고관이 묻자 다른 고관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믿을 수밖에 없잖아."
그로벌은 부드럽게 연기를 내뿜고 히카루를 바라보았다.
"...그럼, 히카루 자네의 의견은?"
"네."
일어서는 히카루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저로서는 그들을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세 사람은 서로 껴안고 환성을 질렀다.
"뭐라고!?"
"히카루 군, 자네는 아까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지 않았었나?"
턱수염을 기른 고관이 테이블을 꽝 치며 말했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히카루는 태연하게 말했다.
"하, 함장님.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하지 않는 놈에게 의견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음, 조용히 하게."
그로벌은 흥분하는 고관을 손으로 막으며 히카루에게 물었다.
"히카루 중위, 자네의 생각이 바뀐 이유를 말해 보게."
"네. ...전에도 보고했듯이 그들은 전쟁밖에 모르는 다른 별나라 사람입
니다. 그런 그들이 이 마크로스에 잠입한 후 처음으로 지구인의 생활과 문
화에 접촉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된 것입니다."
세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네, 그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민메이의 노래에도 놀랐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고, 그 중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까지...."
"그것에 익숙해지자 점점 이 생활이 좋아져서...."
"...저들이 말했듯이 모두들 마크로스에서의 생활을 원한다면 ...그것이
현명한 처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들과도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흥! 굉장한 낙관주의로군!"
매부리코인 고관은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외형이 닮았다고 해서 그들과 같을 수는 없네."
"그러나, 그들은 이 마크로스에서 처음으로 전쟁 이외의 희망을 얻은 것
입니다. 그것을 이제 와서 모른 척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엔 감정론인가?"
두 고관은 비웃었다.
"함장님!"
미사가 말했다.
"뭔가?"
"히카루 중위의 말대로, 그들 젠트러디 군은 군인뿐이며 전쟁밖에 모르는
종족입니다. 전쟁밖에 모르기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서 전쟁이 끝난다는 것은 상대를 전멸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망명자를 거부하고 단호한 태도로......."
"아닙니다!"
미사는 턱수염을 기른 고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쟁 이외의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3의 생활 방식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전쟁 종결의
길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매부리코 고관은 비웃듯이 박수를 쳤다.
"자네의 설득은 알겠네 만, 그들은 결국 우리와 다른 별나라 사람들이네.
어떻게 시민 생활에 적응하게 할 생각인가?"
미사로서도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말이 막혔다. 그 때 노크와 함께 하
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뭐야, 자네는? 지금은 중요한 회의 중인데."
턱수염의 고관에게 대답한 것은 그로벌이었다.
"내가 들어오라고 했네. 그들의 혈액을 분석해 보라고."
잠시 후, 그로벌은 분석표를 받아 조용히 읽었다. 무표정한 채 분석표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모두의 시선이 테이블로 쏠렸다.
"뭐, 뭐야!"
"혈액형과 유전자 구조도 우리와 다름이 없다고......!?"
두 고관은 눈을 돌리며 외쳤다. 세 사람은 얼굴에 기쁨을 떠올리며 좋아
했다.
히카루는 그로벌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겁니까?"
"...음. 어쨌든 그들을 이방인으로서 취급할 이유는 없어진 거다. 이렇게
되면 보통 망명 희망자라고 생각해야겠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로벌이 말했다.
"좋아, 그들의 망명을 허락한다!"
세 사람은 환성을 지르며 기뻐 날뛰었다.
히카루의 가슴앓이
마을 전체는 파괴되어 전쟁의 상처만 생생하게 남았다. 배트로이드의 팔
과 포트의 다리가 부서진 건물에 삐죽이 나와 있었다. 몇 군데에서 검은 연
기가 천천히 피어올라 천장을 그을리고 있었다. 아직 구조되지 않은 부상자
들의 신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함대 안의 모든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재빨리 움직였다.
"...지독하군."
미사가 말했다. 미사는 히카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갈라진 보도 위를 걸
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째서 우린 이쪽을 향하고 있지?"
"이쪽은 그래도 피해가 가벼운데...."
반쯤 파괴된 건물이 보였다. 문이 열리며 민메이의 숙모 부부가 나타났
다. 히카루는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이 기쁘고 반가웠다.
"아주머니! 아저씨!"
"어머! 히카루 군!"
숙부의 어두웠던 눈동자가 갑자기 밝아졌다.
"무사했었군요. 상당히 격렬했던 전투였는데...."
숙모는 히카루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런데, 지금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어디라니?...카이푼과 민메이가 돌아오질 않아서......."
"민메이는 종합병원에 있어요!"
숙모 부부는 얼굴 색이 달라지며 다그쳐 물었다.
"벼, 병원에?"
"둘 다 다친 거냐?"
"아니요, 다친 건 카이푼인데 대단치는 않아요. 민메이는 아마 같이 있을
거예요."
히카루는 콘서트장에서 본 두 사람을 떠올렸다. 카이푼에게 무릎베개를 해
주었던 민메이었으니, 지금쯤은 카이푼을 정성껏 간호하고 있음에 틀림없으
리라.
숙모가 말했다.
"이렇게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야. 빨리 병원엘 가야지."
"그런데, 가게는 어떻게 하지......?"
"걱정 마십시오. 우리들이 지킬 테니까."
히카루는 뒤쪽의 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게 안은 매우 어수선한 상태였다. 의자는 삐뚤어져 있고 유리창과 꽃병
은 깨어져 있었다. 벽 또한 금이 갔다. 히카루와 미사는 가게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이윽고 히카루는 몸을 일으켰다.
"그래, 커피라도 끓여 줄까?"
미사는 주방으로 향했다. 히카루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벽에는 민메이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사진 속에서 민메이가 웃고 있었다.
"......."
히카루는 비뚤어진 액자를 똑바로 걸었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미소가 몹시
그리웠다. 민메이가 가수가 되기 전에는 이 미소는 단지 히카루 자신을 위해
서 만 있었던 것이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히카루는 마음 속에 사랑을 키웠
었다. 히카루의 머리 속에 민메이와 카이푼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미련이...."
스스로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오래 기다렸지?"
미사가 쟁반을 들고 나와 히카루 앞에 커피를 놓았다.
"고마워...."
미사는 히카루와 마주 앉았다. 히카루는 커피 잔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상한 건...."
미사가 말했다.
"전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아니 오히려 전쟁 앞에서는 무력하게 보였
던 민간인의 생활이 전쟁을 끝내게 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니...그렇게
생각하니 파괴된 길거리에도 무언가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그것보다도...괜찮을까? 병원에 안 가도...."
"......."
미사는 아무 말 없이 커피만 마셨다.
"카이푼의 일이 걱정되지?"
미사는 덜그럭소리를 내며 컵을 받침에 올려놓았다.
"...괜찮아. 망명 소동 때문에 완전히 잊어 버리고 있었어. 그냥 옛날에
사랑하던 사람과 닮은 사람일 뿐이야...."
미사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생각한 것은 카이푼이 아니고 라이버의 그림
자였다.
"...군인이 해야 할 행동에 의문을 느꼈을 때, 다시 말해서 전쟁 반대란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어. 마치 망명자들이 처음 평화스런 생활을 알
았을 때처럼......."
"......."
"망명자들이 온 뒤 전쟁 종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
는 거야......."
"...그럴 리가...!"
"......그렇지만, 카이푼에게는 부모님도 계시고 민메이도 있는걸."
히카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야말로 너의 기분을 고백한 거야?"
"그런...."
히카루는 갑자기 화가 났지만 곧 소리를 낮추었다.
"...아무래도 괜찮잖아...."
히카루는 힐끗 민메이의 사진을 보고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역시 아직도 좋아하는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
"카이푼에게 솔직히 얘기하면 어때? 분명히 하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후회
할지도 몰라."
히카루는 입을 다물었다. 테이블에 놓인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어디
서 다친 상처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손끝으로 상처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진물이 나왔다. 히카루는 자신의 내부에서도 이런 감촉을 느꼈다. 길
거리에선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가 크게 들렸다가는 멀어져가고 있었다.
제 14 장
소녀의 길
제24화 Good Bye Girl(소녀여 안녕)
지구로 향하는 미사
"마을의 보수도 이젠 거의 끝났군."
하야오가 말했다.
"아아, 굉장했어!"
맥스가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군인의 협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두 사
람은 시민들의 저력에 혀를 내둘렀다. 돌아갈 별을 잃는데다가 그 정도의
큰 타격을 받고도 사람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서히 웃음
과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계
곡의 바위 틈에서 흐르는 가는 물줄기같이 활기는 전체적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다. 맥스와 하야오는 스쳐 지나가는 민간인들에게서 나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굉장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트럭이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우리도 마을의 부흥을 즐길까?"
맥스는 앞쪽의 오락 기구를 턱으로 가리켰다.
"좋아, 점심내기 할까?"
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게임의 효과음이 둘을 환영해 주
었다.
한구석의 텔레비전 게임 기구 앞에서는 밀리어가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기숙사에 있던 히카루는 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응, 난 이제 지구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자료를 가지고 통합군 사령 본
부로 전쟁을 끝내자고 설득하러 가는 거야."
"그,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갑작스런 일에 히카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만 돌아간다고 하면 함대 안의 민간인들 사이에 동요가 생길지도 몰
라. 군인이란 특권으로 지구에 돌아간다는 그런 오해가 생길지도 몰라서 극
비로...."
히카루는 미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미사,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미사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지구에 가면 두 번 다시 마크로스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히카루에게 인사만이라도 해두고 싶어서...."
"어디서 전화를 걸고 있는 거야?"
히카루는 거의 고함을 치듯이 되물었다.
"...히카루 중위, 망명해 온 사람들을 부탁해. 아직 그들을 이해해 주지 않
는 사람들도 많아. 설득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 그럼...."
미사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미사, 미사!"
수화기를 내던지고 히카루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미사는 함대 안의 활주로에 있는 스페이스 셔틀에 탄 채 막 끊은 소형 전
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구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구를 떠나고 난 뒤부터의 전
투 상황을 보고하고, 망명자들을 본부에 확인시켜 새롭게 평화 교섭을 해야
만 했다. 그 임무를 미사가 스스로 지원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군인으로서 아버지와 대결할 결심이었다.
정면의 에어 로크가 열렸다.
"발진합니다."
파일로트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미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셔틀은 몇 대의 호위대와 함께 발진했다.
맥스는 비디오 게임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그 게임은 "배트로
이드"란 종류였다. 화면의 배트로이드를 조작해서 서로 공격하는 게임이었
다. 하야오는 맥스의 탄을 받을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맥스는 하야오가 자꾸
지자 재미가 없었다. 맥스의 주위에는 많은 구경꾼이 몰려 있었다. 소년들
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맥스의 실력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한 무리는 밀리
어의 뒤에 몰려 있었다. 그녀도 "배트로이드"에 열중하고 있었다. 유희자가
한 사람인 경우에는 적의 배트로이드는 멋대로 움직인다. 컴퓨터가 상대가
되어 주는 것이다. 밀리어가 계속 이겼다.
하야오가 아홉 번째 소리를 지르자 맥스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들었다. 순
간 사람들 사이에서 밀리어가 보였다. 맥스는 휘파람을 불며 일어서더니 그
쪽으로 다가갔다. 화면에 얼굴을 숙인 밀리어의 앞에서 맥스는 말했다.
"그렇게 예쁜 눈으로 쳐다보면 배트로이드가 빨개지잖아!"
밀리어는 맥스를 쳐다보았다.
콰쾅! 밀리어의 배트로이드가 폭발했다.
"앗! 주의해야 하는데......."
맥스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밀리어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밤 공원에서 만나지 않을래?"
"바보!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널 만나야 하지?"
"그럼, 내기를 해서 내가 이기면 만나 줄 테야?"
"내가 이긴다면...?"
"저녁을 사지."
밀리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별들은 흔들림 없이 차가운 빛만을 뿌릴 뿐 조용하기만 했다. 셔틀 엔진소
리만이 계속해서 들렸다. 셔틀 엔진소리에 싸여서 미사는 무한한 중력을 느
꼈다. 지금 눈에 비치는 별의 빛은 몇 만 광년, 몇 십만 광년을 두고 겨우
다다른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는 이미 옛날에 없어져 버린 별도 있으리라.
그런데 별빛이 남은 뒤에도 우주가 무한하면 할수록 별은 영원한 세계로 떨
어져 가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주는 불멸의 숙명을 별들에게 주
는 것이다. 미사는 호위대의 사이를 빠져나가는 푸른 빛을 보았다. 발키리
의 분사염이었다.
스컬 I은 셔틀과 나란히 섰다.
"히카루 중위에게서 통신이 있습니다."
{추가설명: 원작에는 이편에서 셔틀 발진시 맥스 부대가 호위를 하고 간다.
도중에 캠진 부대의 습격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그로벌 함장은 히카루에게
새로 개발된 슈퍼 발키리를 처음으로 탑승해서 보낸다. 이후 슈퍼 발키리는
TV판에서 27화와 30화에만 사용된다.
슈퍼발키리:Super Armed Pack과 FAST Pack을 장착하여 고성능, 고기동을
발휘하지만, 우주 공간에서만 사용가능}
파일로트의 말에 미사는 통신기를 들었다.
"이쪽은 히카루, 이제부터 안전 지역까지 미사 대위를 보호하기 위해 뒤를
따르겠습니다."
"보호!?"
미사는 놀라며 되물었다.
"그런데 히카루, 오늘 비번이라면서...."
"이제부터 안전권까지 대위의 셔틀을 지키겠다."
미사는 웃었다. 마음 속에서 진심으로 스며 나오는 웃음이었다.
"고마워, 히카루."
"아까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젠트러디 군의 일을 알고 있는 산증인이니까, 본부에서 곧 돌려보내 준
다고 할 수 없겠지."
"아버지가 통합군 제독이라면서?"
"아버지 힘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아."
"...대위!"
"지금 이런 걸 말하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아! 뭐야?"
"대위가 옛날에 사랑하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
"응!?"
"아,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진 않아. 매우 상냥한 사람이었어. 너무 상냥할 정도로 부드러운 사
람...."
"나와 정반대인가...?"
"그렇지는 않아. 히카루도 부드러워. 히카루의 부드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정
말 눈이 이상한 거야. 진짜 부드러움이 뭔지 모르는 거야."
"그렇게 말해 준 건 대위뿐이야."
"히카루, 민메이의 어떤 점에 끌린 거야?"
"명랑하고 순진해서. 그리고 귀여워서...."
"...고마워, 말해 줘서. 그런데 나와 정반대군. 난 고집장이인데...."
"그, 그렇지 않아! 미사만큼 여자다운 사람은 없어. 게다가...."
"게다가?"
"미인이라고 생각했어."
"농담하지 마! 이미 아줌마인걸."
"미사는 미인이야!"
"고마워. 인사말이라도 기분이 좋아. 솔직히 말해 남자에게서 그런 말 듣
기는 처음이야."
"나, 나도 여자에게 이런 말하는 것이 처음이야."
"그래?"
"저, 정말이야!"
맥스는 자신 있다는 듯 밀리어를 쳐다보았다.
"뭐하고 있어? 빨리 시작하지 않고."
맥스는 윙크를 하며 말했다.
"...!?"
밀리어는 윙크의 의미를 몰랐지만 왠지 가슴이 뛰었다. 게임이 시작되었
다. 둘은 버튼을 조작하며 상대의 배트로이드를 겨냥했다. 쓰러져서 치고
치다가는 또 쓰러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맥스를 응원하는 사람. 밀리어를 응원하는 사람.......
"거기야, 미인! 맥스 따윈 눕혀 버려!"
하야오가 당연하다는 듯 밀리어를 응원했다. 밀리어는 배트로이드를 잡아
버튼을 눌렀다. 맥스의 배트로이드는 휙하고 반격을 가해 왔다. 순간 밀리
어의 뇌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배트로이드는 폭
탄을 맞고 폭발해 버렸다.
밀리어는 물끄러미 맥스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맥스는 손가락으로 권총
쏘는 흉내를 내며 밀리어에게 들이댔다.
"자... 다음은 아가씨를 떨어뜨릴 차례죠? 그렇죠? 아가씨...."
밀리어의 눈에 살기가 돋아났다.
'이놈은 내가 찾고 있던 파일로트다!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난 너를
죽일 거야!'
순간 밀리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막 그 자리를 떠나려는 밀리어의
손을 맥스가 꽉 잡았다.
"오늘 밤 8시 공원에서!"
미사와 히카루의 사이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미사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면서 입술을 적셨다.
"히카루."
"미사."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해."
히카루가 먼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나와 미사는 의외로 서로 비슷한 것 같애."
"그래."
"만약...."
"만약?"
"만약 이 싸움이 끝나고 마크로스가 지구에 돌아가서 매일 평화가 계속되
면, 그 땐 군대 따윈 필요 없겠지. 그래서 각자 결혼해 아이도 생기고......
그러다 어떤 날 갑자기 딱 마주쳤을 때 차라도 한 잔 나눌 수 있을까?"
"물론이야. 틀림없이 그런 날이 올거야. 너무 평화로워서 심심해지고, 그
때가 좋았었어 하며 웃으며 만날 날이 있겠지."
파일로트가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이제 대기권으로 돌입합니다."
지구가 가까워지자 푸른 대기층이 보였다.
"호위해 줘서 고마워."
"인사를 할 쪽은 이쪽이야. 미사 덕택에 지금까지 도움을 많이 받았어."
미사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히카루의 발키리가 꼬리날개등에 불을 켜
고 천천히 돌아섰다. 발키리가 보이지 않는데도 미사는 그 남은 불빛 속
에서 히카루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랜드 캐논(GRAND CANNON)
하늘은 두터운 구름에 덮여 있었다. 모래가 섞인 강풍이 알라스카 통합군
기지를 덮쳤다. 하야세 제독은 군모를 깊숙이 눌러쓰고 어깨를 올리고, 양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활주로에 서 있었다. 코트자락이 바람에 펄럭였
다.
"제독님, 관제실로 돌아오셔서 기다리십시오."
뒤의 지프에서 병사가 소리를 질렀다.
"괜찮다. 여기서 기다리겠다."
하야세 제독은 잎담배를 물고 바람을 등으로 막으며 라이터를 켰다. 그의
발 밑에는 아직 긴 여섯 개 정도의 담배꽁초가 밟혀져 있었다. 제독은 연기
를 토해 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강풍에 군모가 날아가려 하자 당황
하며 다시 눌러썼다.
부...... 희미하게 엔진소리가 들리고 셔틀이 구름을 헤치며 날아왔다.
"도착했는가?"
제독은 활주로 옆으로 몸을 비켜 섰다. 이윽고 셔틀이 완전 착륙을 하고
문이 열렸다. 제독은 잎담배를 버리고 트랙 밑으로 뛰어갔다.
강풍에 얼굴을 숙이며 미사는 천천히 땅을 밟았다.
"마크로스 항공 관제 통신원 미사 대위, 보고서를 갖고 왔습니다."
미사는 뒷발을 맞추어 경례를 했다.
"음...."
제독은 딸을 안고 싶다는 생각을 꾹 참았다.
마지막 보고는 지구인과 젠트러디와는 신체적 차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었다. 보고를 마친 미사는 망명자의 유전자 구조를 스크린에 비추었다. 미
사와 제독은 소파에 앉아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사는 기도하는 기분으
로 힐끗힐끗 아버지의 모습을 엿보았다.
"음......."
제독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젠트러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 이 보고서가 사
실이라면 우리들은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사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럼, 평화 교섭을 하는 방향으로 군대를 설득해 주시는 겁니까?"
제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탁, 탁,
탁....
"해보자!"
미사는 겨우 안심을 하고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니까, 2주일 이상이나 같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신문 기자가 극성스럽게 질문을 퍼부었다.
"네...."
민메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리의 상처 때문에 입원해 있던 카이푼이었지만 겨우 퇴원이 결정되었
다. 둘은 병원 로비에서 인터뷰를 받고 있었다. 몇 사람의 기자가 둘을 둘
러싸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메모했다.
"두 분이 결혼하는 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만...."
"그,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민메이는 어이가 없었다.
"민메이 씨, 전에 그분과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분이라뇨?"
"일등 파일로트인 통합군 중위 말입니다."
"히카루 얘기군요. 몇 번 만난 적은 있어요. 그 사람과는 단순한 친구예
요."
"그럼, 카이푼 씨가 진짜 애인이십니까?"
"카이푼 씨! 정말 결혼 약속을 한 적이 없읍니까?"
"네...."
카이푼의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러치 말고 솔직히 가르쳐 주십시오."
"약속은 없었습니다. 단...."
"단?"
기자들은 카이푼에게 주목하여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 개인으로서는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민메이는 웃으면서 카이푼의 팔을 쳤지만, 카이푼의 얼굴은 진지한 표정
이었다. 민메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인터뷰의 광경은 텔레비전에도 방영되고 있었다. 기숙사의 방으로 돌아온
히카루는 침대에 누워 멍청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들먹거
려도,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얘기를 해도 히카루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히카루는 오른손을 긁었다. 어딘가에서 다친 그 상처가 낫기 시작하면서 자꾸
가려웠다. 딱지가 떨어지자 새로운 피부가 하얗게 돋아났다.
제25화 Virgin Road
밤 공원은 조용했다. 나무 그늘이 잔디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함대
안에는 바람이 불지는 않아 그림자는 조금도 움직임이 없었다. 맥스는 분수
옆에서 밀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는군...."
맥스는 몇 번이나 시계를 보았다.
"공원에서 만나는 것을 그녀는 경계하는 걸까? 그냥 다방에서 만날걸..
.."
잔디와 나무의 경계 쪽에 서 있는 가로등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맥스의
모습을 비추었다. 분수가 높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단검을 꽉 움켜쥔 밀리어
가 나무 그늘에서 튀어나왔다.
"죽어라!"
단검의 번뜩임이 어둠 속에서 느껴지며 맥스는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두
사람의 구두가 부드러운 잔디를 짓밟았다. 2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서로 마
주 보았다. 가로등이 꺼졌다가 또 켜졌다.
"너, 너는?"
맥스는 깜짝 놀랐다.
"젠트러디 군 배틀 슈츠 부대 에이스 파일로트인 밀리어 화리너다!"
밀리어는 싸울 태세를 갖춘 채 대답했다.
"젠트러디 군!?"
"죽여 주마! 이 원수!"
"내가 원수라고? 누구의? 너의 아버지의? 형인가? 애인인가?"
"잊었는가? 내 자신의 원수다!"
"뭐야!"
"명예를 소중히 하는 나에게 너는 굴욕을 주었다! 패배라는 오점을 남겼
어! 너 때문이야! 너를 증오한다!"
밀리어는 다시 찌르려고 했다. 당황한 맥스는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웃
옷의 가슴 주머니가 찢어지고 은색 손수건이 떨어졌다. 단검은 날카롭게 맥
스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가로등이 다시 꺼졌다가 켜졌다. 맥스는 단검을 쳐서 떨어뜨렸다. 그래도
밀리어는 물러서지 않고 맨손으로 덤벼들었다. 맥스는 밀리어의 양손목을
잡고 발을 걸어 넘어뜨린 뒤 주운 단검을 들이댔다. 밀리어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어깨를 떨구고 입술을 깨문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져, 졌다.... 자, 죽여라!"
맥스는 단검을 던져 버리고 밀리어의 앞에 구부리고 앉아 그녀의 턱에 손
가락을 갖다 댔다. 밀리어는 맥스가 하는 대로 턱을 올렸다.
"중위님, 의논할 것이 있는데...."
맥스는 히카루의 방을 찾아왔다. 히카루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
고 있었다.
"뭔데?"
맥스는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이었고 몸도 경직되어 있었다.
"실은 결혼 얘기입니다."
히카루는 깜짝 놀라며 훌쩍 커피를 들이마셨다.
"겨, 결혼!?"
"네!"
"누구 결혼!"
"물론 접니다!"
히카루는 눈을 깜박거렸다.
"너, 너에게 그런 여자가 있었어?"
"...... 어저께 생겼습니다. 아니 아까 생겼습니다."
"아, 아까? 농담하는 거야?"
"아닙니다. 단지 그녀의 입장이...."
"그렇게 급한가? 그녀의 아버지는 누군가?"
"젠트러디의 여자입니다."
"뭐?!"
히카루는 커피 잔을 떨어뜨렸다.
"안 돼! 결혼할 수 없어!"
크게 손을 휘저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까?"
"말과 습관과 생각이 달라!"
"우리에겐 그걸 극복할 사랑이 있습니다!"
가슴을 편 맥스를 보고 히카루는 비웃었다.
"하하하! 흥! 사랑이란 덧없는 거야. 허무한 거라고! 그런걸 의지하다니,
바보같이!"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불가능도 가능합니다."
히카루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건 이상이야. 실제로는 사랑 따윈 곧 부서지는 유리와 같은 거야."
"그건 중위님의 경험입니까?"
"뭐라구?"
히카루는 말이 막혔다.
"바보!"
"하여튼 만나 주십시오!"
"만나? 어디서?"
"여기서......."
"데리고 온 거야?"
"네!"
맥스가 밀리어를 부르자 청초한 미녀가 조용히 나타났다. 핑크빛 원피스
가 잘 어울렸다.
"여, 여자답군...."
"잘 부탁합니다."
밀리어가 말했다.
"저야말로, 잘...."
히카루와 밀리어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음...그래. 이건 굉장한 일이 될지도 몰라...."
밀리어의 미모에 취한 듯 히카루가 중얼거렸다.
"하여튼, 이 일은 정식으로 그로벌 함장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
"감사합니다."
"다른 별 사람과의 결혼...멋진 일이지......."
미사는 통합군 본부 지하 회의실 앞 벽에 기대어 있었다. "회의 중"이란
빨간 불만 빛날 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안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이
회의의 결과에 따라 마크로스의, 아니 지구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다. 미
사는 가슴에 손을 대고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댔다. 잠시 뒤, 불이 꺼지고 문
이 열리더니 몇 사람의 최고 간부와 제독이 나왔다. 미사의 가슴은 기대로
두근거렸다.
"제독님, 어떻게 되었읍니까?"
미사는 매달리 듯하며 물었다.
"음, 평화 교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다행이에요...."
미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얹혀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지
는 것 같았다.
"다행이야.... 정말...."
"그런데, 미사!"
제독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너의 근무 시간은 통합군 본부의 스케줄에 따라 결정된다. 오늘 일은 끝
났고... 그러니 이제부터 내 눈앞에 있는 너는 군인이 아니고 내 딸...."
제독은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계속했다.
"내 딸이 되는 거다!"
미사는 방긋 웃었다.
"미사...!"
제독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딸의 어깨를 껴안았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아까부터 제 얼굴만 보고 계시니...."
올라가고 있는 층수 표시 램프를 보고 있던 미사는 제독에게로 눈을 돌렸
다.
"... 죽은 너의 엄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래, 좋아하는 남자는 생겼니?"
"......."
미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히카루의 얼굴이 떠오르며 히카루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나와 미사는 의외로 서로 비슷한지도 몰라-
'그래! 서로 왠지 모르게 닮은 데가 있어. 어딘지 모르게 서로를 이해하
고 있는 거야. ... 좋아한다던가 싫어한다던가 그런 것이 아니야. 아니, 있
을 수도 있어....'
"너도 이젠 결혼할 나이가 됐구나."
"아직 일러요. 이제부터 생각해야죠."
"아니다. 너의 엄마는 너보다 어렸을 때 나와 결혼한걸."
"그럼, 나도 결혼할까요? 그런데 누구와 하면 좋을까요?"
제독은 눈을 찡긋했다.
"뭐, 그렇게 애태울 필요는 없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미사는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통로의 공
기는 차가웠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구나."
통로는 넓은 공간과 맞닿아 있었다. 꽤 넓었다. 이곳은 통합군 기지 땅
속 깊은 곳에 만들어 놓은 그랜드 캐논 속이었다. 금속으로 굳어진 구멍의
내부 벽이 검게 빛나고 있고, 바닥에서 불어오는 듯한 바람이 미사의 목덜
미를 쓰다듬었다.
"미사, 어떠냐? 이 그랜드 캐논을 사용하면 평화 교섭도 잘 진행될 거
다."
하야세 제독은 딸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걸 발사하면 수만의 함대라 해도 순식간에 격멸시킬 수 있어. 이 위력
을 보면 젠트러디 쪽도 어쩔 수 없이 평화 교섭에 응하게 될 거다."
그 말을 들으면서 미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버지, 이런 걸 써도 소용없어요. 젠트러디 군 모함의 크기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감에 지나지 않아요. 이런 무기는 전쟁을 확대할 뿐이에요. 아
무 소용도 없어요.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젠트러디 사람들은 틀림없이 평
화 교섭에 응할 거예요!"
제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군인의 피를 이어받은 네가 이제 와서 이상만으로 평화를 말할 수
가......! 혈액형과 유전자 구조가 같다고 해도 결국은 다른 별나라 사람이
야.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아버지!"
제독은 냉정한 말투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사, 같은 지구인이 단 하나의 통합 정부를 만드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
렸다. ...그랜드 캐논의 발사 예정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어. 평화 교섭은
발사한 뒤의 일이야."
"......."
미사는 가벼운 두통을 느끼며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그랜드 캐논은 어두웠
고 그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맥스와 밀리어의 결혼
신랑 신부의 발걸음에 맞추어 조명이 이동했다. 밀리어의 하얀 웨딩드레
스는 눈부시게 빛났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웨딩마치 속에 맥스와 밀리어는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진홍빛 여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다. 요란한 박수소리와 함께 색종이가 뿌려져 밀리어의 머리를 장식했다.
두 사람이 정면의 테이블 앞에 섬과 동시에 실내는 환해졌다. 사진사, 기
자, 군인, 민간인 등 결혼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신랑 신부를 찍으려고 계속 주위를 맴돌았다. 박수는 계속해서 울
렸다. 밀리어는 오른팔을 맥스의 팔에 끼고, 왼손에는 아름다운 장미꽃 다
발을 안고 있었다.
"저, 저건 밀리어 화리너가 아니야?"
브리타이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결혼식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었다.
"라플라미즈 함대의 에이스 파일로트가 결혼을!?"
엑세돌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결혼?"
브리타이가 물었다.
"엑세돌, 결혼이란 도대체 뭔가?"
"정보에 의하면,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고...."
"음, 그것이 놈들의 풍습인가? 그러나 다른 별 인종인 밀리어, 적인 밀리
어를 왜 놈들은 인정하는 거지? 왜 죽이지 않고 저렇게 축복하고 있는 거
야?"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랑!?"
"놈들의 사회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랑이라...."
밀리어의 행복한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우리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야."
"그 매력에 취해 많은 병사들이 탈출해서 놈들에게로 망명한 것 같습니
다."
"음...."
브리타이는 스크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도망병의 기분까지 알 필요는 없어."
브리타이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사랑이라고...?"
맥스와 밀리어는 웨딩케이크를 잘랐다. 사회자가 그로벌에게 축하말을 하라
고 하자, 그로벌은 큰기침을 한 번하고 나서 일어섰다.
"맥스 군, 밀리어 양, 축하합니다. 두 분의 결혼은 매우 의미 있는 결합입
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밀리어 양은 우리 마크로스에 있어서는 미워
해도 시원치 않은 젠트러디의 파일로트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고향인 지구에조차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쫓기고 있습니다.
젠트러디 군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그런...!"
맥스는 작게 외쳤다.
"함장님!"
히카루도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전쟁을 그만두고 싶다고 호소하며 평화로
운 생활을 동경해서 마크로스에 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우리들은 당황했
읍니다. 그러나 몇 번인가 그들과 접촉을 시도한 결과, 그들의 순수한 평화
에의 동경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지구인끼리의 오랜 전
쟁을 경험했습니다. 언어, 피부색, 사상, 종교 등 그 밖의 모든 곤란을 뛰
어넘어 통합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것을 할 수 있었던 우리들은 젠트러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주에 평화를" 이것이야말로 우
리의 사명이 아닌가 합니다. 그 역사적 첫걸음으로서 두 분의 결혼을 전적
으로 지지하고 축복하는 바입니다."
스크린이 흔들리고 보드르져의 얼굴이 비쳤다. 브리타이는 반사적으로 뒷
꿈치를 합쳐 경례를 했다. 보드르져의 무거운 목소리가 브릿지에 울렸다.
"브리타이... 마이크론 모두는 우리 군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고, 게다가
우리가 우려하던 상황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이상 우리 군이 혼란을 받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마이크론과 함께 악의 근원인 마크로스 함을 전멸시켜
야만 한다. 총력을 다해 공격 태세로 들어가라!"
"초, 총 공격을...!"
"그렇다. 브리타이, 너희들은 마크로스를 공격해서 마크로스 및 전 함대
를 파괴시켜라! 이상이다!"
화면은 다시 결혼식장으로 바뀌었다. 자리에 앉은 그로벌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 같다."
브리타이는 함장석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꼭 해야만 하는가...?"
출격 명령을 받은 거인 병사들은 통로의 이쪽저쪽에 무리를 지어 있었다.
"마크로스를 공격하다니, 나는 할 수 없어."
"그래! 민메이를 죽이다니!"
"민메이만이 아니야. 저쪽에는 신기한 것이 가득 있어."
"바보! 이건 명령이야.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어."
마크로스에 투항하려 했던 병사들은 일시 감금되었다. 그러나 그 처분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민메이의 매력과 문화의 힘을 다른 병사들에게 증명하
는 결과가 된 것이다. 출격 사이렌이 계속 울렸다. 그러나 병사들의 마음에
는 전쟁에 대한 열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불안스런 듯이 서로를 보
며 망설이고 있었다.
이윽고 병사들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배틀 포트의 격납고에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격납고는 불바다가 되었다. 결국, 마크로스를 공격하려는 자와 그
것을 저지하려는 자들 사이에서 숙명적인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날아다니
는 탄환에 몇 사람의 병사는 온몸이 벌집이 되어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병사는 눈알이 빠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병사는 상처에서 하얀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코를 맞은 병사는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고, 탈출하기 위해 재빨리 포트에 올라타는 병사들도
있었다. 포트 대 포트의 전쟁은 빔의 발사로 시체를 불에 태우고 있었다.
콰쾅! 벽과 천장에 몇 개의 구멍이 생기고 격납고는 크게 흔들렸다. 충격
을 받은 포트 무리는 마구 쓰러지기 시작했다. 죽 늘어선 병사들은 손에 총
을 움켜쥐었다.
"뭐, 뭐냐? 무슨 짓들이야!"
"우리는 마크로스 함대와 평화 교섭을 하고 싶다. 평화 교섭 명령을 요구
한다!"
병사들은 지휘관을 노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브리타이 함대의 질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갔다. 싸우는 자에게 싸움만이 성경이라고 한다
면, 그들의 성서는 바람에 흩어진 것과 같았다.
평화 교섭
"평화 교섭이라고!?"
보고를 받은 브리타이는 날카롭게 양눈을 번득였다.
"브리타이 각하! 함내에서 많은 폭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항상 냉정한 엑세돌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공격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에게 총을 겨누는 파일로트도 있는 것 같습니
다."
브리타이는 함장석에 앉은 채 얼어붙은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엑세돌
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
"브리타이 각하!"
엑세돌이 재촉하자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인정한다."
"넷?"
"전쟁을 끝낸다...."
"그, 그렇게 되면 총본부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만...."
"할 수 없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함대는 내부가 무너진다. 브리타이
함대는 마이크론과 평화 교섭을 맺는다고 전원에게 알려라."
제 15 장
사랑은 흐른다
제26화 Messenger
우호 사신 엑세돌
"와~와~와~!"
군용 지프 뒷좌석에서 마이크론이 된 엑세돌은 몇 번이나 감탄의 소리
를 질렀다. 보이는 것 모두가 신기했다. 지프는 마크로스 함대 안의 도로를
달리며 군사 지역으로 향했다.
브리타이 함대로부터의 평화 교섭 제안은 마크로스에 있어서 염원하던 것
이었지만, 너무도 뜻밖이라 그로벌 함장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프로토 컬쳐 충격"은 적에게 상상 이상의 피해를 준 것 같다."
그로벌은 공격 태세를 풀고, 평화 교섭을 하기 위해 마크로스를 찾아오는
적의 사신 엑세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앗! 저건 뭘까요?"
지프의 옆자리에 타고 있던 군인이 손끝으로 영화 간판을 가리키며 물었
다. 여자의 얼굴이 무척 아름다웠다.
"어떤 충격을 받아씁니까?"
마중 나온 군인에게 묻자 군인은 일부러 엄숙하게 대답했다.
"그건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군사 기밀이란 거로군. 과연, 과연...."
엑세돌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럼 저 투명하게 보이는 군복은?"
이번엔 진열장의 원피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저것도 군사 기밀입니다."
군인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심문실에 들어선 엑세돌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더욱 긴장이 되었
다. 그로벌과 두 명의 고관, 히카루, 하야오, 그리고 맥스와 밀리어가 참석해
있었다. 밀리어는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다.
"엑세돌 각하! 환영합니다."
"밀리어! 밀리어 화이너!"
"오래간만입니다."
"음. 결혼 소동에 몹시 놀랐었다."
"네. 그와 같은 결과에 저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이렇게 여기 있는 것
은...."
밀리어는 옆의 맥스를 보며 얼굴이 빨개졌다.
"아, 이 사람과 한 쌍의 조각인가?"
"...네, 그렇습니다."
"한 쌍의 조각?"
맥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로벌은 엑세돌에게 악수를 청했다.
"마크로스 함장 그로벌입니다."
"젠트러디 군 일급 기록 참모 엑세돌 폴모입니다."
엑세돌은 대답하는 것도, 내밀은 손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몰
라 당혹스러웠다. 그저 자신의 손만 바라보며,
"우호의 사신입니다."
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그로벌은 그 손을 꽉 쥐었다. 그 때 와레라 일행 세 사람이 들어왔다. 이
유도 모른 채 불려온 세 사람은 엑세돌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앗!"
"어허! 상당히 건강한 것 같군!"
엑세돌은 비웃듯 말하며 빙긋이 웃었다.
"여기에 "프로토 컬쳐 충격"의 주모자가 다 모였군."
엑세돌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로벌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엑세돌 기록 참모 사신의 뜻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네? 아직 그쪽에는 중요한 두 사람이 참석하지 않았잖습니까?"
"......?"
"우리를 이렇게 만든 요인이 되었던 "소백룡"의 초능력자와 심리 공격을
한 소녀입니다."
"소백룡?"
의아해 하는 그로벌에게 고관이 귓속말을 했다.
"그 영화를 진짜 초능력이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로벌은 영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공중을 날고 손끝에서 불꽃을 튀기
는 장면 등. 카이푼이 열연한 영화였다.
"대단한 오해가 생겼군요.... 그러나 엑세돌, 심리 공격의 핵이란 인물
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럼, 그 소녀가 중요한 인물이 아니란 말입니까?"
엑세돌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역시 프로토 컬쳐......."
와레라 등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아! 그건...."
"맞아!"
"그래...!"
엑세돌은 일어서서 민메이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랄랄 나의 파일로트...."
"역시 민메이었구나."
세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정말 몰랐어. 노래에 그런 효과가 있으리라고는...."
그로벌은 새삼 놀라며 중얼거렸다.
"곧 민메이를 부르겠습니다."
고관은 테이블 위의 수화기를 귀에 댔다.
"저...."
잠시 후, 당황한 모습의 민메이와 카이푼이 들어왔다.
"우리들을 왜 이런 장소에 부르셨읍니까?"
"그러니까 군인들은 멋대로야."
카이푼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민간인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하질 않아! 나는 이 일을...."
"카이푼 군!"
그로벌이 막았다.
"여기는 평화 교섭장이야. 자네의 연설을 듣는 곳이 아니야."
"......."
"그러니까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은 모두 비밀이다! 지킬 수 있겠는가?"
"네."
민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그로벌은 엑세돌을 향해 말했다.
"이젠 원하던 인원이 전원 모였다."
"됐습니다...."
그로벌은 파이프를 물고 불을 붙였다.
"카이푼이라고 했던가?"
엑세돌이 입을 열었다.
"자네의 계급은?"
"나는 민간인이다."
"민간인? 초능력을 가진 전투원인가?"
"나에게는 초능력 따윈 없다."
"뭐라고?"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에게는 귀관이 말하는 그런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로벌은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이 눈으로 똑똑히...."
"그건 영화라고 하는 오락이다. 만들어 놓은 세계다."
"뭐라고요?!"
엑세돌은 몸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설마, 저 노래까지 틀린 건 아니겠죠?"
"각하! 그건 진짜예요!"
와레라가 외쳤다.
"우리는 노래의 힘에 감명을 받은 겁니다."
세 사람은 민메이를 보았다. 민메이는 방긋 웃었다. 엑세돌은 긴 한숨
을 쉬며 눈을 감았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 옛날 프로토 컬쳐와 만난 사람은 문화에 눈을 뜨게 되어 전의를 상실
하고......그래서 멸망한 겁니다."
일동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우리 젠트러디 군에 있어서 전쟁은 생명이며 역사였습니다. 프로토 컬쳐
여러분들과의 전쟁도.... 그런데 이 전쟁에 보드르져 각하 이하 우리 모두
는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상은 적중해서 문화
와 접촉한 병사들은 전투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밀리어와 거기 있는 세
사람처럼...."
"보드르져......?"
그로벌이 물었다.
"기간 함대 총사령관입니다. ... 우리가 이와 같은 길을 선택한 걸 안다
면 지금이라도 총공격을 전개할 겁니다. 지구의 문화를 없애기 위해서...."
합동 작전
브리타이 함대의 스크린에 라플라미즈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브리타이, 어떻게 할 작정인가? 싸움을 끝내다니?"
"함대가 마크로스와 싸울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가?"
"어쨌든 좋다. 하지만, 기간 함대가 도착하면 모든 게 끝나."
"기간 함대가...!?"
브리타이는 깜짝 놀라며 함장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라플라미즈, 만약 각하가...."
"이미 보드르져 각하에게 사실대로 보고했어. 기간 함대는 이제 곧 이동
을 시작한다."
"그래.... 우리도 결국 지구와 함께 제거되는 거야...."
"우리가!?... 바보! 왜?"
"나도 잘 모르겠지만...."
브리타이는 라플라미즈를 등지고 서서 말했다.
"프로토 컬쳐의 문화에 오염되었으니까 그렇지...."
라플라미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랏빛 눈동자에 두려움이 스쳤다.
"그건...? 알겠습니다...."
보고를 받은 엑세돌은 통신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마크로스만이라도 지구를 탈출하시지요?"
"지구를 버리라고?"
"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소! 지구 통합군에 소속되어 있는 함대인 이상..."
"그렇게 되면, 우리 함대의 탈출은 어렵습니다. 우린 같은 적과 맞서게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이요?"
"지금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기간 함대가 이 별을 향해서 ...4,795,122척
의 전투함을 보유한 기간 함대가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엄청난 전투함의 숫자에 일동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 각오를 하지 않으면...."
그로벌은 길게 파이프 연기를 토했다.
"운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카이푼은 쾅! 하고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젠 끝장이야!"
"밀리어, 이젠 죽을지도 몰라!"
맥스는 밀리어에게 속삭였다.
"맥스와 함께, 그것도 전쟁 속에서 죽을 수 있다니... 괜찮아!"
밀리어는 남편의 손을 꼭 쥐었다.
"끝낼 수 없습니다!"
엑세돌이 외쳤다.
"마크로스는 단 한 대로 우리와 싸워 오지 않았읍니까?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싸울 수는 있습니다!"
알라스카 통합군 기지에는 밤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기지 중앙에 서 있는
사령탑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창가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미사와
하야세 제독이었다.
"그, 그럼 마크로스는?"
미사는 소리를 높였다.
"구할 수 없어! 마크로스는 지금 적의 눈길을 끌고 있으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그로벌 함장으로부터의 보고가 어디까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적의 수
는 약 5백만이나 된다. 안됐지만 지구를 위해서야."
"아버지, 허락해 주세요!"
"뭘?"
미사는 결심한 듯 말했다.
"저를 마크로스에 보내 주십시오. 함께 싸워 온 동료들에게 가고 싶습니
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아버지라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가?"
"네...."
"그건 절대로 안 된다!"
제독은 소리쳤다.
"가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귀여운 외동딸을 어떻게 보내느냐!"
"저는 군인입니다!"
"나도 군인이다!"
"그러면 배치를 바꾸겠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부모가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보러 오는
데...."
미사는 그 자리에 쓰러져 흐느껴 울었다.
"각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브리타이는 중얼거리며 스크린을 보았다. 눈앞의 제1, 제2 화면에는 라플
라미즈와 캠진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자네가 말한 것처럼 각하가 우리 함대도 제거할 작정이라면...."
라플라미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너와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겠지...."
"나는 빠지겠다!"
캠진은 얼굴을 돌렸다.
"이기더라도 그건 저 마크로스를 돕는 거야!"
"좋아... 처음부터 자네와는 맞지 않았으니까!"
"아, 그래!"
캠진의 영상이 꺼졌다. 브리타이는 엷게 웃음을 띄우다가 다시 험상궂은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보드르져 각하, 이 브리타이 최후의 전쟁을 잘 보아 주십시오."
엑세돌은 기간 함대의 조직 구조를 설명하고, "전략"에 대해서 물었다.
"우선, 분기 함대에서는 기함이 가라앉았을 경우 자동적으로 조치를 취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베르나르급 즉, 상위 3급까지의 분기
함대 외에 다른 기간선의 위치를 잘 모릅니다."
"과연...."
그로벌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게다가...마크로스는 반응 무기가 있습니다."
반응 무기는 핵과 비슷한 위력을 갖지만 스토론칩90, 우라늄237, 요드131
등의 방사성 물질을 남기지 않는다. 작은 전투에는 매우 효과적인 무기이
다.
엑세돌은 계속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문화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능력도 회
복 기술도 없습니다. 우리의 함대와 무기는 모두 기계 위성이 멋대로 생산
한 것입니다."
"기계 위성?"
"누가 언제 기계 위성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반응 무기를
제조하는 시스템이 감찰군과의 전투에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반응 무기는
젠트러디 군에 있어서는 환상의 무기입니다."
"엑세돌 기록 참모...."
그로벌은 일어서서 좀전까지 적이었던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내가 이런 것까지 말해 버리다니...."
엑세돌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도 프로토 컬쳐의 힘이겠지...."
둘은 다시 악수를 나누었다.
제27화 愛は流れる(사랑은 흐른다)
프로토 컬쳐 작전
보드르 기간 함대는 무시무시한 크기와 빛을 발하며 갑자기 우주 공간에
나타났다. 전체 길이 1,400 킬로미터의 모함에 붙은 480만 함대는 조용히
지구를 감쌌다. 그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깨물어 부수고 짓밟아 버리는 흉악
한 태풍과도 같았다.
"반응 탐지! 반응이 너무 많아 계측 한계 돌파!"
클로디아의 연락이 심문실에 울렸다.
"벌써 왔어?"
그로벌은 입술이 바싹 말랐다. 삼사 초 정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밀리어, 갈까?"
맥스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말했다.
"네, 좋아요, 맥스!"
밀리어는 환하게 웃었다.
둘은 손을 마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죽으면 안 돼!"
히카루가 소리를 질렀다. 히카루는 민메이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손
을 꽉 움켜쥔 채 방을 나왔다. 힘있게 뛰기 시작한 히카루는 무언가 잊은 것
처럼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심문실을 돌아다보았다. 잠시 뒤
민메이는 카이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통로에 나타났다.
"민메이...."
"히카루...."
히카루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니까 말해 버리고 싶어."
여기까지 말한 히카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민메이...나는 널 좋아했어."
"그런...."
민메이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말을 갑자기...지금에 와서야...."
히카루는 뒤꿈치를 맞추어 경례를 했다.
"카이푼 씨, 행복하길!"
히카루는 휙 등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히카루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
자 민메이는 쫓아가려고 했다. 순간 카이푼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어딜 갈 생각이야!?"
"부탁이야! 가게 해 줘!"
민메이는 그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전 함대, 준비 완료!"
보드르 기간선의 브릿지에 보고가 들어왔다.
"좋아.... 우선 적의 본 기지가 있는 별을 친다."
보드르져는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푸른 지구를 보고 있었다.
"전 함대, 공격 준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포대가 지구를 겨냥해 조준을 맞추었다.
히카루는 군인 대기실에서 새로운 파일로트복으로 갈아입었다. 죽을 때만큼
은 깨끗한 모습이고 싶었다. 가슴의 지퍼를 끌어올리고 하얀 장갑을 끼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히카루!"
민메이가 들어왔다.
"...!"
히카루는 너무도 뜻밖이라 가슴이 뛰었다.
"친구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친구라고밖에... 난...."
민메이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히카루. 그러나 난 역시 카이푼과...."
"괜찮아. 민메이... 이젠 괜찮아."
히카루는 민메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나는 군의 전투기 조종사, 너는 인기 스타이니 맞지 않아."
히카루는 벽의 둥근 창을 향해 섰다. 유리창에 민메이의 얼굴이 비쳤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 작은 마크로스에서 우리들이 사는 세계가 이렇게
다르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순간 민메이는 히카루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
달았다.
대 함대가 일제히 빔을 발사해 우주는 대낮처럼 밝았다. 하얀 빛이 지구
사이에 있는 어둠을 깨뜨려 지구의 둥근 윤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오렌지
빛 지구가 점점이 지표에서 떠올랐다. 폭발 때문에 생긴 빛이었다. 빛은 병
원균과 같이 지구 전체를 덮고 튕겨나갔다.
마크로스 브릿지에 있는 모두는 저절로 눈을 감았다. 앞유리창에 갑자기
커다란 빛이 솟아올랐다. 잠시 동안 모두는 시력을 잃었다. 공격은 끝났지
만 폭발의 빛은 지표에 커다란 얼룩을 그리고 있었다.
"설마...전멸...."
그로벌은 멍청히 중얼거렸다. 엑세돌은 보드르져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들은 듯했다.
히카루와 민메이는 창가에 앉아 창백해진 얼굴을 지구 쪽으로 향했다.
"앗, 당했구나!?"
히카루는 아무 말 없이 지구를 감싸안듯 양팔을 벌리고 유리창을 짚었다.
민메이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제 끝났어. 지구의 다음은... 우리도...."
"미사!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구나!"
히카루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왜... 왜 이렇게 되어 버렸지!"
히카루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저...."
"...... ?"
민메이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 너에게...."
"말해 봐...."
"너에게 부탁이 있어... 한 가지만...."
그로벌과 엑세돌은 브리타이에게 연락을 취했다.
"민메이의 노래를 동시 통역해서 군용 주파수로 보내고 싶다."
"그건 가능하지만 도대체 무얼...?"
"기간 함대의 병사들은 프로토 컬쳐의 실체를 모른다. 그녀의 노래를 보내
면 문화 충격을 받아...."
"음...."
브리타이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혼란을 이용해서 보드르져의 함대를 치겠다는 건가?"
"정면에서 싸워 이길 상대가 아니다."
그로벌이 말했다.
"좋아! 노래를 보내면 우리 병사의 사기도 올라가겠지."
민메이는 연락을 받고 브릿지로 왔다.
"그로벌 함장님."
"오, 민메이!"
그로벌은 걸어나오며 그녀를 맞이했다.
"히카루 중위에게 들어 대충은 알고 있어요. 그의 아이디어를 작전에 진행
시키고 있다고......."
"그리고, 또 하나의 부탁이 있습니다."
엑세돌이 말했다.
"...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 영화에 나온 남자와 다시 한 번 입맞춤을 해 주시지 않겠읍니까?"
"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젠트러디 사람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는데는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입
니다."
그로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부탁을 하겠다."
마지막 무대
알라스카 본부의 그랜드 캐논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어둡고 거대한 구멍
에 핑크빛 입자가 생겼다. 빛의 입자는 불안정하고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서서히 큰 덩어리로 부풀어오르면서 그 구멍에서 발사되었다.
"지구 북극 상공에 에너지 반응!"
바넷사가 보고했다.
"적 함대의 일부가 소멸하고 있습니다."
"소멸!?"
그로벌은 바넷사의 뒤쪽으로 다가가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지상에서는
부채 모양의 빔이 발사되고 있었다. 빔을 뒤집어쓴 함대는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이건......!"
그로벌은 소리를 질렀다.
"그랜드 캐논! 알라스카 본부가 살아 있다는 거야!"
모두는 와! 하고 환성을 터트렸다.
민메이는 거울을 보며 정성껏 머리를 빗었다.
"나의 마지막 무대야.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아름답게 해야 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미인이야. 나의 눈도 코도 입술도 모두 아름답다.... 다음에 태어
나도 역시 미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민메이는 갑자기 자신의 노래 "사랑은 흐른다"의 가사가 떠올랐다.
세월이 흐르네요. 사랑이 흐르네요. 나의 앞을 슬픈 얼굴로...
당신은 아마 전장에 나가겠지요. 남자들은 모두 홀린 것 처럼
입술을 곧게 물고 눈동자를 불태우며 , 한결같이...
나는 아마 홀로 남겨지겠죠
전쟁 때문에 명예 때문에...
세월이 흐르네요. 사랑이 흐르네요. 허무하게 죽어 가는 ...
세월이 흐르네요. 사랑이 흐르네요. 당신의 앞을 허무한 얼굴로...
나는 앞으로도 전쟁을 증오하며. 여자들은 다시 일어서서
이를 악물고 허리를 펴며 어린애들을 위해서...
당신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전쟁을 그만두고 살아가기 위해
세월이 흐르네요. 사랑이 흐르네요. 허무하게 죽기 전에는...
'히카루는 나를 사랑했었다고 말했다. 히카루가 마지막으로 내게 부탁을 했
어. "모두를 위해 노래를 불러 줘." 아아! 나는 멋지게 노래를 부를 거야.'
민메이는 또 언젠가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다. 무대는 중세의 유럽이었다.
군인들은 "황금새"를 찾으러 갔다가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갔다. 바닥이 없
는 깊은 연못에 빠지기도 하고, 괴물에 잡혀 먹히기도 하고, 산적에게 습격
을 당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은 드디어 황금새를 잡았다.
그 때 황금새는 이렇게 말했다. "이봐, 자네 목에 화살이 꽂혀 있어"라고.
민메이는 불현듯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꼈다.
발키리 부대는 발진했다. 히카루의 비행기 스컬 I이 떠올랐다. 그로벌
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마크로스 및 브리타이와 라플라미즈의 모든 전투 함대에 알린다. 우리는
이제부터 공격을 시작한다. 제군들의 건투를 기대한다."
발키리 함대의 분사염은 부드럽게 어둠을 미끄러져 갔다. 마크로스, 브
리타이, 라플라미즈 함대는 일제히 지구를 겨냥한 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기간함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돌진해 갔다.
이윽고 히카루의 귀에 민메이의 노래가 들려왔다. 노래소리는 언제나 달콤
하고 언제나 쓸쓸하다. 민메이의 모습은 노래와 함께 전파가 되어 우주 공
간을 날았다. 기간 함대에 노래가 퍼지고 민메이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타났
다. 그것은 아름다운 폭탄이었다. 공격 태세를 취하려던 기간 함대의 움직
임이 멈추었다.
"성공이다!"
엑세돌이 기쁨에 넘쳐 외쳤다.
"전 함대 공격!"
그로벌은 계속해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빔과 반응 미사일이 난사되자 적
함대는 빛을 토하며 자꾸자꾸 폭발했다.
"좋은 노래다!"
캠진이 말했다. 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파란 원
피스를 입은 민메이가 가련하게 보였다.
"우리도 간다!!"
캠진은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면 싸우는 상대가 되는 건 우리편입니다!"
부관인 오이글이 말했다.
"바보!"
캠진은 빙긋이 웃었다.
"나는 우리편을 죽이는 캠진이다!"
우주 전망대에서 노래를 계속하는 민메이에게 카이푼이 걸어갔다. 민메이
는 카이푼을 보고 마이크를 입에서 뗐다. 카이푼은 민메이의 손을 잡았다.
"안녕, 히카루...!"
카이푼과 민메이는 입맞춤을 했다.
두 사람의 입맞춤이 스컬 I의 스크린에 비쳤다. 그러나 히카루의 눈은 단
지 적의 함대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쏴라! 공격을 도와라!"
브리타이가 외쳤다. 브리타이 함대가 빔을 쏘자, 라플라미즈도 필사적으
로 지원 공격을 했다.
"브리타이보다 늦어서는 안 돼!"
여성 사령관의 목소리가 브릿지에 울렸다.
불사조 히카루
민메이의 노래를 들은 적은 확실히 혼란 되었다. 마크로스쪽의 함대와
발키리는 그 틈을 타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적이 워낙 많았다. 적은 사백
만이 넘었고 마크로스는 약 천 명 정도이다. 싸움은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적군도 몇 척인가의 함대가 폭발했다. 광대한 우주의 싸움터는 죽음의 빛과
폭발의 빛으로 피어올랐다 흩어지곤 했다. 히카루는 기계적으로 스위치를 눌
렀다. 너무나 격렬한 전쟁에 휘말린 히카루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순간 히카루의 발키리인 스컬 I에 빔이 스치며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
충격에 히카루는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앗!"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히카루는 미사를 생각했다. 스컬 I은 힘을 잃은
채 천천히 우주 공간을 떠돌았다.
"A 4 지역 응답하라!"
미사는 마이크를 향해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녀는 혼자 알라스카 기지의
지하 사령부에 남아 있었다.
"A 4 지역, A 4 지역, 응답하라!"
통신 스크린이 켜지고 제독의 얼굴이 나타났다.
"...미사, 아직도 거기 있었니?"
"제독님, 무사하셨군요!"
"아니...."
제독은 눈을 감았다.
"여기는 이제 끝장이다...."
"네?"
"미사, 너만이라도 탈출해라!"
"그럴 수 없어요!"
"결국 네가 옳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콰쾅! 폭발음과 함께 제독은 불에 휩싸였다.
"아버지! 아버지!"
미사는 애처롭게 부르짖으며 계기에 엎드려 울었다.
히카루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발키리는 대기권에 돌
입하고 있었다.
"대기권인가...? 이제 영영 돌아갈 수 없구나...."
히카루는 그대로 진로를 알라스카로 향했다. 하강함에 따라 지표에 피어오
르는 하얀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하얀 연기는 밤 공기 전체에 서리와 같이
흐르고 있었다. 히카루는 낮게 비행하며 주위를 살폈지만 지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폐허조차 없고 단지 검게 탄 지면만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통합군
기지로 다가갔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어마어마했던 규모의 기지가 흔적도 없다니...."
히카루는 지면에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지상 최대의 위력을 자
랑하는 대포가 조용히 뒤집혀져(1) 있었다. 지지... 지지... 거리며 히카루의 눈
앞에서 통신기가 소리를 냈다. 곧이어 다급한 여자 통신원의 음성이 들렸
다.
{(1)추가설명: 대포가 뒤집혀져 있다는 표현은 실제 그랜드 캐논을 생각하면
이 표현은 부적절하다. 그랜드 캐논은 일반적인 대포처럼 생긴 것이 아니다.
그 모습은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지표에다 직경 수백 미터에 깊이 6 km로
지하로 수직으로 땅을 파고 그 구멍 주변에다 기지와 장비를 설치해 그랜드
캐논을 만들었음. 따라서 위의 표현은 부적절함. 그리고 위의 구멍은 원래
그랜드 캐논의 구멍이다.}
"응답 바란다! 여기는 총사령부! 생존자가 있으면 응답하라...!"
"앗, 미사!"
"그 목소리는 ... 설마...!"
"그래! 히카루야!"
"히카루!"
"무사했었구나!"
"아!"
둘은 숨을 들이쉬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미사가 살아 있다니! 히카루가
살아 있다니!
"...그런데...."
미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살아 남은 건 나 혼자뿐인 것 같아."
"혼자...? 그럼 이제부터 구조에 나서자."
"그만둬. 너까지 위험해!"
"그런 명령은...지금까지 없었어!"
"히카루!"
미사의 목소리는 기쁨에 넘쳤다.
"넌...넌...!"
히카루는 G레버(가웍형으로 변신한다는 뜻)를 내리고 지하 사령부의
그랜드 캐논 안으로 내려갔다.
사랑의 메아리
미사는 양팔을 벌린 채 통로를 달려왔고 앞쪽에서는 히카루가 달려왔다. 두
사람의 발소리는 텅 빈 통로 안에 울려 퍼졌다. 히카루는 품안에 뛰어드는 미
사를 꽉 껴안았다. 미사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지만 아직도 눈물이 남았
는지 감은 눈 사이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히카루는 미사를 부축해
스컬 I에 태우고 천천히 날아올라 그랜드 캐논을 빠져 나왔다. 불에 타다
남은 흔적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맴돌다 스컬 I은 지상에 내렸다.
히카루는 엔진을 껐다. 한없는 고요함만이 두 사람을 감쌌다. 문을 열자 밤
공기가 피부에 차갑게 와 닿았다.
히카루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땅 표면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속
에서 빛의 덩어리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건 전쟁의 빛이었다. 빛의 입자는
부풀어올랐다 사라지더니 또 부풀어올랐다. 미사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전쟁은 계속될 거야. 무한한 우주 속에서 전쟁이 없어진다는 건 영원히
없을 거야."
우주에서 번쩍이는 빛을 받아 미사의 볼은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히카루는
전쟁의 빛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별세계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히카루
는 미사의 볼을 쓰다듬었다. 서로 마주 바라보는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들의 얼굴을 보았다. 두 사람은 눈을 감았다.
28화 MY ALBUM(나의 앨범)
보드르져 전투이후 거의 2년후 지구는 전멸하고 마크로스에 타고 있었던
사람과 소수의 지상에 있던 사람과 젠트러디군중 일부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젠트러디군중 일부는 지구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지구인과 떨어져 혼자 쓸쓸히 죽거나 새로 결성된 지구에 반대하는 캠진
일당이 되었다. 지구는 아직 완전히 복구(자연이나 문명)되지 않았고
조금씩 복구되고 있는 중 이었다.
마크로스가 내린 분화구 모양의 지형은 호수(마크로스 플러스나 그 이후
시리즈 보신 분은 아시죠..)가 되고 그 주변에 새로 마을을 만들어 이 도시가
새로운 마크로스시가 되었다. 마크로스시에서 미사는 히카루집을 찾아가
청소하거나 설거지 등을 해주곤 한다. (벌써 사이가 이 정도로 가까워 졌나)
히카루방을 청소 하던 중 미사는 앨범을 들여다 본다. 그 앨범에는 민메이
사진으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고 기분 상한 미사는 방에 있는 민메이
포스터를 거꾸로 해놓고 나간다.
추가 설명: 현재 미사와 히카루 등은 모두 한 계급씩 진급했어 소령, 대위로
그로벌 함장은 총사령관이 된다. 맥스와 밀리어는 중위로 버밀리언 편대를
따로 맡고 있다. 마크로스는 이젠 저번의 전투로 많은 부분의 손상을 입어
전함으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옛날의 브릿지는 사용하지 않고 그 밑부분에
새로운 지휘소를 설치해서 사령부로 사용한다. 또 미사의 헤어스타일은
이제부터 극장판 처럼 되고 민메이의 헤어스타일은 긴 스트레이트에서
웨이브가 크게 진 헤어스타일로 바뀐다. 젠트러디인은 일부는 마이크론화
되어 지구인과 똑같은 크기로 있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그대로 거인인채로
살아가고 있다.(거인이면 힘이 좋잖아, 막 노동 하기엔 딱 안성맞춤 ^^)
히카루는 정찰도중 삭막한 지구의 표면에서 녹색을 발견하고 그곳에
내린다. 그곳은 인공적으로 자연재생하는 지역이 아니지만 야생 민들레가
피어있었다. 여기서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 어릴 때 비행기를 따라다니던
일. 그리고 자신일 왜 군에 있는가 한 번 생각한다. 이때 죽은 로이 포커
선배가 마치 살아있어 훈계하듯이 히카루에게 말한다.
"이치죠 히카루,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넌 좋아하는 사람
을 지키기 위해 군에 들어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니가!? 와핫핫!"
"좋은 사람!" 히카루는 머리속에 되새기이며 다시 발키리 조종간을 잡고
날아올랐다. 정찰 도중(젠트러디의 폭동이 가끔씩 발생하기 때문임) 통신기
에서 새로 생긴 자치구에서 민메이의 콘서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부대원에게
계속 정찰 할 것을 명하고 자신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민메이를 만나러
간다. 민메이는 폐허가 된 지구의 여러 도시(새로 재건)를 카이푼과 함께
순회공연을 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거리의 카페에서 미사는 히카루가 아직도 민메이를 잊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고 그 곳을 지나던 맥스와 밀리어 부부와 아기(마리아)를 보고
그 들의 보습에서 히카루와 같이 있는 모습(이 부분은 플래쉬백에도
나옴)을 상상하지만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민메이 노래에 꿈은 깨지고...
한편 공연을 마친 민메이와 카이푼. 그들이 공연으로 받은 것은 돈이 아니
고 일상 생활용품들을 조금 받았다. 이것에 불만인 카이푼은 술만 마시며
투덜거린다. 민메이는 왜 그렇게 화를 내야면서 카이푼과 다툰다. 카이푼은
여전히 군과 군인을 싫어하며, 민메이는 마크로스시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카이푼은 절대로 그 곳엔 가지 않으려 한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어서 지켜보던 히카루는 무전기에서 젠트러디인의 폭동을
듣고 곧 떠난다. 또 비번인 미사도 호출된다. 잔뜩 불만에 찬 미사는 히카루
를 불러서 대장이 원래 있어야할 위치에도 없다는 둥 잔소리한다.
배틀 포트를 탈취해서 소동을 벌이는 젠트러디인을 진압하고 히카루는
사령부로 돌아온다. 발키리 격납고에 미사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사는 민메이를 만났는지를 물어본다. 히카루는 멀리서 보기만 했다고
한다. 미사는 가면서 봉투를 건네준다. 그 봉투에는 미사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민메이는 점점 히카루를 그리워한다.
29화 LONELY SONG(혼자의 노래)
지구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때까지 그들에게는 전투
만이 유일한 생활방법)을 몰라서 불만을 품기 시작한 젠트러디인은 날로 증가
하고있었다.
민메이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은 카이푼과 점점 사이가 벌어진다. 카이푼
은 돈만 밝히고, 민메이는 점점 자신이 왜 노래 부르는지 이유와 목적을 잃
어 버린다. 민메이는 혼자 마크로스시에 있는 '니얀니얀'에 숙부를 만날겸
간다.
새로운 통합 사령부에서는 엑세돌과 젠트러디 간부들이 마크로스 중요
인물(그로벌, 히카루, 미사 등)과 지구인과 그들 젠트러디와 프로토 컬쳐에 관
해 회의 한다. 그들과 지구인은 프로토 컬쳐의 자손이라는 자료 분석 결과를
보고한다.
'니얀니얀'으로 돌아온 민메이는 옛날 자신의 방에서 히카루와의 일들을 회
상한다. 다음날 콘서트가 있어 일찍 집을 나선 민메이는 히카루와 미사를 거리
에서 우연히 보게된다. 그 둘이 가까워진 것을 본 민메이는 급히 그 자리를
피한다. 한 쪽에서는 거인 젠트러디의 난동이 일어나고 히카루는 그 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전쟁을 원하는 그들을 설득 시키지 못한다. 두명의
젠트러디는 떠나고, 어느 정도 지구 생활 방식에 적응한 한 젠트러디인은
그 들에게 '우리는 문화와 민메이의 노래 때문에 왔는데 참고 노력하지
못하고 떠나야'라고 말한다. 민메이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 콘서트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탈한 젠트러디인의 숫자가 만명을 넘자, 캠진은 그들을 모아서 새로운
음모(전쟁)를 구상한다.
콘서트장에 온 민메이는 카이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노래하고 싶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노래를..."
통합본부에서는 젠트러디 자동우주선 제조공장(자동으로 무기를 만드는
공장)위성을 발견하고 전력 증강을 위해 이 자동 위성을 탈취할 계획을
세운다.
30화 VIVA MARIA(만세 마리아)
자동우주선 제조공장 위성을 탈취하기 위해 통합군은 브리타이와 협동하기
위해 일부 부대가 브리타이함으로 간다. 여기에서 맥스와 밀리어는 그들의
어린 아기인 마리아를 데리고 간다.
브리타이함에서 맥스 부부는 미사, 히카루, 클로디아를 불러 홈파티를 한다.
미사는 귀엽게 노는 밀리어의 아기를 안아 보려 하자 밀리어는
"아기를 안아볼려면 당신도 만들면 되잖아, 이 아기는 내가 만든 아기야"
라고 말한다. 아기를 안고 좋아하고 있는 미사를 보고 맥스는 히카루에게
슬며시 미사와 결혼해서 아기를 가져 보라고 말을 둘러서 이야기 한다.
미사는 방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히카루에게 어떤 이야기(결혼이나,
사랑 고백이라고 생각됨)를 하려고 하지만 함교에서 호출로 이야기를
못하고 간다. 함교에선 최근에 대파된 감찰군의 잔해가 보였다. 미사는
그 함을 조사하려고 하나 거절 당한다.
목적지인 공장위성에 다다른 일행은 브리타이가 공장위성 수비대에게
프로토 컬쳐충격을 주기 위해 노래와 미사에게 히카루와 키스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인공위성 수비대장을 부른 브리타이는 자신들은 프로토컬쳐와 접촉
해서 문화를 얻었다며 항복을 권유한다. 이때 호출된 히카루에게 미사는
키스를 반대하는 히카루에게 상관(미사가 계급이 높잖아^^)의 명령이라면
방심한 히카루에게 키스...(이런 또 키스 당한 히카루, 이 애니메이션에서
서로 좋아서 미사와 히카루가 키스하는 적은 한 번도 못 봤다)노래를 틀어주고
이때 맥스와 밀리어는 젠트러디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들어와 맥스를 프로토
컬쳐라고 소개하고 자신들의 아기를 보여준다. 아기를 보여주면 이것이
프로토 컬쳐(위에서 설명했지만 젠트러디인은 프로토 컬쳐에 대한 경외심으로
프로토 컬쳐를 무서워 한다)의 증거라고 하자 젠트러디인은 처음 보는 아기를
보고 놀라 모두 도망간다. 이 혼란한 틈을 노려 쉽게 자동공장위성을
탈취하게 된다.
31화 SATAN DOLL(악마의 인형)
탈취한 자동 공장위성은 지구에 가까운 궤도상에서 자리잡고 무기를 생산
하나 많은 부분이 고장으로 그렇게 큰 전력 증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드레시에서 마이크론 장치(거인 젠트러디를 지구인 크기나 거꾸로 거인으로
변환시키는 장치)가 캠진 일행에 의해 탈취가 시도되나 실패한다. 여기에 온
히카루는 마이크론 장치를 안전한 신통합 정부에 보관하려고 한다. 이 도시
에는 젠트러디인이 과반수 이상이다. 이때 시장과 함께 온 카이푼과
민메이... 카이푼은 주민들을 선동해서 마이크론 장치를 군에서 보관
하려는 것을 저지한다. 히카루와 민메이는 또 다시 서로 먼발치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만 있다. 민메이는 히카루 편을 들지 못하고...
안타깝고 그리운 감정이 솟아 오른다.
캠진은 자신이 직접 마이크론 탈취하러 나간다. 자체 경비 병력이 얼마
없는 드레시는 곧 캠진 부대에게 마이크론 장치를 탈취 당한다.
신통합 정부 회의실에서 다시 엑세돌을 포함한 젠트러디인과 신통합
정부측 인물(그로벌이하 주연들)이 프로토 컬쳐에 관해 이야기 한다.
50만년전 뛰어난 문명을 자랑하는 프로토 컬처 인류가 있었다. 그들은 어느
때인가 두 개의 세력으로 나누어 지고 발달한 유전 공학으로 전투용으로
거인족인 젠트러디와 감찰군을 만들었다. 그 들은 너무 컸고 전투 목적
으로만 만들었고 문화를 가지면 프로토 컬쳐를 위협할거라는 생각에 그들
에게 처음부터 문화를 부여하지 않았다. 두 거인족 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을 계속했다. 어느 때인가 나약한 프로토 컬쳐는 자신이 만든 거인족과의
전쟁에서 멸망한다. 그 이후 50만년 동안 두 거인족은 서로 전쟁을 해왔다.
{추가설명: 여기에선 지구인이 왜 젠트러디와 같은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것은 마크로스 극장판(극장판은 공식
적인 마크로스 스토리 라인에서는 2031년에 린 민메이의 러브 스토리와
대 보돌져전을 소재로 만든 극장용 영화라고 취급한다. 즉 극장판 이야기는
이후의 마크로스7 이나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하나의 픽션이다.)에는 프로토
컬쳐중 일부가 지구에 와서 지구 원시 생물체에 유전자 조작을 가해 지구인
을 만들었다고 한다. }
회의 마지막에 엑세돌은 자신들 젠트러디를 '악마의 인형'이라고 자칭한다.
회의가 끝난 후 미사는 히카루에게 젠트러디가 오직 싸움만 하는 것이
마침 자신둘과 비슷하다는 말을 한다. 이때 클로디아가 나타나 드레시에서
마이크론 장치가 탈취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히카루는 곧 출격하지만,
이미 도시는 캠진의 습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카이푼은
곧 그곳을 떠나기 위해 고장난 차의 시동을 걸고 있고 민메이는 부셔진
건물들을 바라보며 왜 그때 히카루가 말한 것이 옳다고 말 못했는지 생각
한다. 이런 민메이를 발키리에서 찾아낸 히카루는 가웍으로 변신해 내리
지만, 이미 둘은 떠난다. 또 다시 민메이와 한마디 말도 못하고 이별...
배경음악으로 '상냥한 이별'곡이...
제32화 Broken Heart(상처 입은 마음)
캠진 일당은 콘서트 중인 민메이를 습격해서 민메이와 카이푼을 인질로
하여 신통합 정부에게 인질 교환조건으로 전함 한 척을 요구한다. 히카루
대위의 작전 안으로 캠진 본 부대를 따돌리고 몇 없는 경비병만 있는 콘서트
장을 습격하기로 했다.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발키리에 탑승하려는 히카루
에게 미사는 이 계획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다.
"정말로 캠진이 이런 작전에 걸려든다고 생각하나요?"
"그 애기 벌써 여러 번 말했잖습니까? 캠진은 반드시 걸려들 겁니다!"
"만약 걸려 들지 않으면...?하고 다시 묻자 히카루는 미사에게 다가가
"그럼, 시가지를 포위해서 공격을 퍼붓고, 그 틈에 인질을 구출하잖 말
입니까?"
"예...!"
"인질의 목숨 같은 걸 대단치 않게 여기는 그런 작전 같으면 난 안가
겠소! 당신이 지휘를 하는 거니, 현장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잖소"
"말 버릇하고는... 난 당신의 지휘관이야!"
"당신이 뭐라고 말해도 인질의 목숨이 최우선이오!"
"민메이에 관한 일은 무척 힘을 내는군!"
"으응...!"
"내가 인질이 되었으면, 이렇게는...!"
"바보!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데 농담할 기분이 납니까!?"히카루는
미사의 어깨를 잡고 말하고 곧 발키리에 올라탄다.
캠진에게 잡혀있는 민메이 일행. 카이푼은 그들을 말로서 설득해볼려고
한다. 전쟁의 허무함과 당신들은 한 번 문화에 접해 보았는데, 왜 문화를
버렸는가? 한 번더 문화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을 역설한다. 캠진은 이런
말에 화를 내며
"문화니 뭐니, 헛소리 말아. 우리도 문화의 방법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라플라미즈를 불러서 이것이 문화라며 보여준다. 그것은 키스였다.
두 사람의 키스 중, 부관 오이글이 캠진에게
"두목, 문화에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동료들의 구조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신통합정부가 캠진의 본진을 따돌리려는 계략이었고 캠진은 대부분
의 부대를 이끌고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나간다.
인질이 잡혀있는 콘서트장에는 소수의 경비병만 있고, 히카루는 간단히
인질을 구출한다.
히카루는 반년만에 민메이와 다시 만난다. 히카루와 민메이가 껴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던 미사는 마침 부하로 부터 캠진 일당이 도주 중이라는 것을
듣는다. 미사의 질투심이 발동....
미사는 민메이와 같이 있는 히카루를 떼어 놓기 위해 히카루에게
"히카루 대위! 달아난 캠진 일당을 추격하시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오랜만에 민메이와 만났어 아직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는데...
히카루는 화가 나서 헬멧을 집어 던지며 다른 녀석에게 부탁하라고 한다.
하지만 미사는 땅에 떨어진 헬멧을 주워 히카루에게 주면서 "당신은 편대장이
아닌가?"(왜 미사가 상관이고 히카루가 부하인가. 아무리 히카루 나이가 미사
보다 3살이나 적고 군에도 늦게 들어왔다고 하지만, 미사의 월권 행동이
너무하다.) 마지못해 명령에 따라 히카루는 또 다시 민메이와 이별...
다시 발키리를 타고 출격하는 히카루에게 민메이는 경례를 해 보이며
"조심하세요!"
히카루도 거수 경례로 답한다. 민메이는 27화때 히카루가 자신에게 하는
사랑의 고백 장면을 회상하면서
"히카루, 부디 조심하세요. 난 분명히 알 수 있어 당신의 그 마음"
그러면서 가웍으로 달리다가 전투기로 변해서 날아가는 히카루를
쫓아가려고 뛰어가지만... 이윽고 아침 햇살이 비치고, 미사는 무엇이 좋은지
생긋 웃어 보인다.
{마지막 장면들을 서툰 내 글 솜씨로 어떻게 표현하나. 이게 한계...
좀더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모든 대사와 장면을 다 적을 수
도 없고... 그리고 이 편도 정말 작화(그림)수준이 엉망이다. 멋진 대사와
장면을 그림이 완전히 망쳐 감동을 반감 시키네...그래도 마지막 장면 배경곡
'런너'는 괜찮았다. 마지막 2화는 자세히 적을게요...}
제33화 Rainy Night(비오는 밤)
미사는 저번의 민메이 구출작전 때, 자신의 행동을 히카루에게 사과를
어떻게 해야 고민 중 클로디아로부터 홍차를 받고 히카루와 함께 홍차
를 마실 생각으로 순찰 중인 히카루에게 사령부로 오라고 한다. 히카루는
미사가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일상적인 순찰 보고서 가져오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령부로 가서 미사 앞에 보고서를 내던지고 저번의 미사 행동에
대해 나무라며 당신은 일밖에 모른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바넷사
에게 데이트 신청하면서 미사의 화를 돋구고, 미사는 사령부를 나가 버린다.
바넷사는 히카루에게 미사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너무 한 행동이라고
말하자, 히카루는 미사는 일밖에 모르고 그것이 사는 보람이라고 말한다.
브릿지 3인조는 왜 미사 소령과 히카루 대위 사이가 왜 저렇게 된 걸까, 재잘
거린다. 결론은 미사가 자신의 감정을 히카루에게 솔직히 고백을 안했기 때문
이라며 좀더 적극적이야 된다고, 또한 히카루도 너무 무신경하고 자신의
표현을 잘 못한다고 재잘거린다.
비오는 밤, 미사는 히카루 집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못한다. 이때 클로디아
가 와서 자신의 집에 가서 이야기 하자고 한다. 그곳에서 클로디아는 죽은
로이 포커와의 지난 일을 미사에게 들려준다.
포커와 통합전쟁 때 처음 어색하게 만나서 통합 전쟁후 포커로부터 진실한
고백을 받는다. 포커는 이때 새로 개발 중인 변형 전투기 VF-X1의 테스터
파일럿이었다. 포커는 클로디아에게 자신의 주위에는 많은 여자가 있지만
자신의 이런 마음(전투기 테스터 중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따른 두려움)
을 오직 클로디아에게 만 말할 수 있었다며...
{(벌써 이때부터 카와모리 쇼지는 '마크로스 플러스'를 생각하고 있었나??
테스터 파일럿으로 포커가 나오고... 하지만 여기에서 포커는 테스터 파일럿의
고뇌를 안다. 즉 새로 개발 중인 비행기나 전투기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운영
되는데 파일럿들은 이전까지 이런 시스템에 적응 안되었고 또한 이런 시스
템은 아직 불안정한 것이다. 따라서 테스터 파일럿은 조그마한 실수나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체 결함으로 죽을 수 있다, 비록 테스터 파일럿은
최고의 파일럿 중에서 선발되었지만. 그 예로서 F-16 개발 과정 중 일어난
일이다. F-16은 처음으로 FLY BY WIRE를 사용했다. 그 이전까지는 비행
기의 조종면 (CONTROL SURFACE, 러더, 엘리베이터, 에이론 따위)을 사람의
손의 힘에 의해 유압실린더가 작동하여 움직였으나 FLY BY WIRE 는 비행
기 조종면 작동을 전기 신호로 대체하여 움직인다. 그러나 파일럿들은 이
조종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고 개발중인 FLY BY WIRE는 피드백이 안되기
때문에 많은 테스터 파일럿이 이것 때문에 부상당하거나 죽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FLY BY WIRE에 피드백을 장치를 추가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즉 전기 신호로 조종간을 움직일 경우 파일럿은 그 동안 자신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얼마만큼의 움직였는지 몰랐다. 이것은 조종면에서 오는 힘의 피드백
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해버렸군요. 그런데
마크로스 플러스에 나오는 녀석들은 두려움도 없이 완전히 즐기고 있더군.)}
히카루는 자신의 방에서 생각하던 중 미사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닸
고 미사를 찾아가 사과하고 서로 가까워진다.
제34화 Private Time(비밀의 시간)
히카루는 휴일에 미사와 피크닉 약속을 한다. 그날 피크닉 준비중인 히카루
에게 민메이로부터 전화가 온다. 민메이는 지난번에 구해준 보답 겸해서
히카루와 만나고 싶다고 한다. 히카루는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름을 안
밝히죠^^)과 약속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민메이는 그 사람 마크로스에 살고
있을 거고 어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약속을 취소하고 만나자고 한다.
히카루는 일단 민메이와 약속 하고 미사에게 전화를 걸지만 미사는
약속 장소인 거리의 카페로 이미 나가버린 뒤였다.
공항에서 히카루는 민메이를 만나 고급 술집에서 둘만의 2년만의 재회를
한다. 미사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기다리고 있다. 민메이는 히카루에게 긴
목도리를 선물로 준다. 두사람의 재회 축하의 건배하며 오랜만에 이야기
를 나눈다. 민메이는 그 동안 오래 시간이 흘러간 것 같은 생각에
"아아..! 이렇게 둘이 만나는 게 몇 년만 일까요?"
"그 작전 이후니까. 작년, 재작년. 2년만이군!" 히카루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추억을 더듬듯이 헤아려 보았다.
"2년! 짧고도 긴 것 같네요!"
"짧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해!"
"하지만 그때, 그 기분 이미 변했죠!?"
"으응..!"히카루는 민메이의 뜻하지 않은 질문에 그때 한 고백을 떠올리며
"그런걸 갑자기 물으니 곤란한데! 정말 곤란해!"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카이푼이 이곳까지 찾아와 급한 일이 생겼다며 가자고 하다. 그러나
민메이는 거절하고, 카이푼은 '넌 프로야'면서 민메이의 손을 잡아 끌어 데려
갈려 한다.
"아파! 이 손 놓아"하며 민메이는 손을 뿌리치고
"떼를 쓰는 것도 적당히해...!"
민메이는 앞에 있던 와인을 한숨에 들이키고는
"자 이제 취했으니, 이제 일 못하겠어요. 네에...!"
이 말에 카이푼은 민메이 얼굴에 컵에 있는 냉수를 퍼부으며
"이젠 취기도 가셨겠지. 이젠 못된 장난은 그만해!"
눈을 부르켜뜨며 노려보다가 카이푼에게 끌려가면서 눈물을 흘린다.
모처럼의 재회가 또 다시 이런 식으로 되어버리고, 히카루는 남아서 술이나
마시다가 되돌아간다. 미사는 여러 군데 히카루의 소재를 알아보지만 알수가
없다.
히카루는 되돌아 오는 도중 자신의 비행기(원래 민메이 것. 하지만 민메이
는 조종 못하잖아. 팬 라이너기, 미스 마크로스에게 주어진 부상)가 있는
공항이 젠트러디의 난동으로 미사에게 돌아가는 것이 어렵게 되자 자신이
직접 데스트로이드 '스파르탄'을 몰고 진압한다. 벌써 약속된 시간은 지나
가고 어두워질 무렵의 저녁때 히카루는 약속된 장소에 나타난다. 이직도
기다리고 있던 미사에게 급한 일을 핑계로 사과한다. (내 생각엔 6시간이상
지난 것 같은데 앉았어 기다린 미사...)
피크닉은 시간이 늦어 못 가고 그래도 별로 화를 내지 않는 미사. 둘이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계절이 12월초나 12중순쯤) 히카루는
무심결에 민메이 한데 받은 긴 목도리를 미사에게 걸쳐준다. 그 목도리를 보고
있던 미사는 그 목도리 끝부분에 ' L.M ♥ H.I '(1)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미사는 히카루에게 "걸쳐줄 사람을 잘못 골랐어요!" 라면 획 돌아 가버린다.
히카루는 무슨 말인지...?? 목도리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놀란 히카루...
망했다...!!
{(1)'L.M ♥ H.I ' : L.M 은 Lynn Minmay(린 민메이)의 첫글자를 따온 것이
고 H.I는 Hikaru Ichijyo(이치죠 히카루)의 첫글자 이다. 그래서 미사는 히카
루가 민메이와 만난다고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서 영문
표기에 대해 추가설명을 하자면 동양과 서양은 이름을 적을 때 동양은 먼저
성(姓)을 적고 그 다음이 이름이고 서양은 반대이다. 그런데 마크로스에서
특이한 것은 오직 린 민메이의 영문 표기는 서양식대로 적지 않고 동양식대
로 성(姓)인 린(Lynn)을 먼저 적고 이름인 민메이(Minmay)를 다음에 적는다
그외 다른 동양인인 히카루나 미사는 이 표기대로 하지 않고 서양식대로 이름
을 먼저 적고 그 다음에 성(姓)을 적는다. 따라서 미국인 중에는 민메이 이름이
린(lynn)인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선 미키모토 하루히코의
이름을 영문 표기보고 하루히코가 성이고 미키모토가 이름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일본 사람은 보통 이름을 영문으로 적을 때 서양식대로
적는다. 그러나 린 민메이만 예외로 그대로 Lynn Minmay이다.}
콘서트장에 끌려온 민메이 하지만 민메이는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하지 않는다. 콘서트장은 닫혀 버리고...(이런 여기서 무대의상이 2년전때
하고 똑같다. 27화 이후로 무대의상은 딱 한 번 바뀌고, 아무리 지금
상황이 어렵다지만... 아니면 제작진들이 게을러서 인가? 의상도 극장판처럼
멋진 걸로 하고 , 노래도 극장판의 천사의 그림물감 같은 것 없나?? )
콘서트를 못하고 민메이와 카이푼은 밤에 호수(이런 호수도 보드르져 전 때
생긴 폭격으로 생긴 분화구)옆에서 서로 이야기한다.
"M(민메이):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나타나서 히카루와 사이가 멀어져
버렸어..."
"K(카이푼): 변하지 않았구나, 옛날과...! 넌 자기 주장만 해왔지. 오늘밤
관객들이 어떤 기분으로 돌아갔는지 생각해 보았어!? 너의 노래는 너 혼자만
의 것이 아니야!"
"M: 그런 말을 한다고..."
"K: 너의 노래에 남을 생각하는 다정함이 있으면 넌 훌륭한 가수가 될 거다
너의 진정한 노래를 듣고 싶어서 난 나름대로 2년 동안 노력을 해왔어.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야. 난 또 길을 떠날 거다. 당분간 못 만날 거야!"
카이푼은 뒤돌아 서서 떠나면서
"K: 언젠가 다정한 노래를 들려다오, 민메이 몸조심해!"
민메이는 아무런 말없이 울고만 있다.
{(야호, 마크로스 팬들이 꼴 보기 싫어하는 놈(카이푼) 떠났다. 만세!! ^^)}
제35화 Romanesque(Passion Love, 정열적인 사랑)
캠진의 비밀 기지가 있는 숲. 여기서 캠진은 지구 문화에 적응 못하고 이탈
한 젠트러디인을 모았다. 그리고 지구인들과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그들도
어느 정도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 물론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못하지만, 그 예로
키스하는 것이 문화라고(그들에게 그것이 너무 큰 충격이었나?)... 하지만
그 외에 그전에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사고방식과 수리기술을 터득했고, 고장
난 전함을 대부분 고쳤다. 캠진은 자신들에게 문화를 전해준 것을 후회 할 것
이라면서 마크로스와 일전을 생각하고 있다. 다만 엔진부품이 없어서 더 이상
수리를 못하고 있다. 캠진 부대는 엔진 부품인 파워 콘덴서를 탈취하기 위해
공장지대로 간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시즌, 어느 정도 지구인의 생활 방식에 익숙한 젠트러디
3인조(와레라, 로리 콘더)는 열심히, 그러나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민메이는 밤에 눈 내리는 빈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홀로 생각을 하고
있다.(배경음악이 너무 잘 어울린다. 전에도 이 배경음악이 나왔지만, 여기
분위기하고 딱 들어맞는다.) 젠트러디 3인조에게 들키자 민메이는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치듯이 떠난다.
히카루는 뉴스에서 민메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이때 초인종 소리가 나서 누가 왔는가 싶어 밖으로 나간다. 밖에는 민메이가
눈을 맞으며 서 있다. 놀란 히카루는 민메이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말없이 히카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만 있는 민메이...
집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M(민메이): 난 모든 것이 싫어졌어요. 남들이 나만을 위해줘서 멋모르고
지내다... 지금 돌이켜 보니, 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고..."
"H(히카루): 누구나 다 비슷해. 모두가 매일 많은 것을 잃으면서 살아
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민메이에겐 노래가 있잖아..."
"M: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안돼요. 노래를 부르고 싶지가 않아요. 노래를
안 부르겠어요!"
"H: 어째서?"
"M: 노래가 싫어요"
"H: 카이푼과 무슨 일이 있었어?"
"M: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그 사람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어요"
"H: 하지만..."
"M: 서로를 잘 아니까, 얼굴만 맞대어도 짜증이 나고...연예계에도 옛
친구도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때 미사가 히카루 집으로 다가온다. 미사는 들어갈려다가 안에 민메이가
있는 것을 알고 들어가지 못한다. 미사는 조금 열린 현관문 사이로 들려오는
두사람의 대화 내용을 뜻하지 않게 듣게된다.
"M: 내 일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날 생각해주는 건 당신뿐이에요. 여기
있어도 되나요?" 민메이는 애절하게 부탁한다.
"H: .....!?"
"M: 눌러 앉으면 폐가 되는 건 알지만, 오늘밤만... 갈곳이 없어요.
부탁이어요. 히카루. 부탁이어요"
"H: 아...난 상관없지만... 그래도 괜찮겠어!?"
이 말을 듣던 미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급히 그 곳을 떠난다.
술집에서 클로디아는 옆에서 술에 취해 나직이 노래(sunset beach)를
부르고 있는 미사를 보고 놀란다.
밤이 깊어 민메이는 히카루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 문득 깨어난 민메이는
거실로 나간다. 그곳에 히카루가 소파에서 자고 있다. 민메이는 허트려진
담요를 가지런하게 해서 히카루를 덮어주며 그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고마워요, 히카루"
{(이때 배경음악이 TV판 엔딩곡인 런너(RUNNER, 달리는 사람, ランナ-)가
하모니카 반주로 나온다. 이 곡도 너무 멋지다. 배경음악 중 제일이야. 쓸쓸한
곡조가 하모니카 음색하고 잘 어울린다)}
다음날(크리스마스 이브), 함교(사령부)에서 브릿지 3인조는 미사에게 오늘
파티가 있는데 오늘 비번인 히카루 대위와 같이 오라고 한다. 미사는 히카루가
감기가 심해 누워있어 안되겠다고 말한다. 이때 캠진 일당이 그랜드시 공장
지대를 습격한다는 보고가 함교로 연락이 오고, 미사는 각 발키리 부대에게
출격 명령을 내린다. 캠진 일당과 신통합정부군과의 일대 격전이 시작된다.
임시 뉴스에서 이 소식을 들은 히카루는
"그랜드시라면 내 담당구역이 아니야!? 왜 내게 출동 연락이 안 왔지?"
하면서 출격하기 위해 군복으로 갈아 입는다. 집안일을 하고 있는 민메이
에게 히카루는 가끔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나간다. 민메이는 근심 어린
얼굴로 히카루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
반응엔진을 찾은 캠진은 급히 그 지역을 벗어난다.
민메이는 시장 보러 나갔다가 라디오 뉴스에 나오는 치열한 전투소식을 듣고
히카루의 안부가 걱정되어 급히 집으로 되돌아온다.
출격한 히카루(스컬 편대장)는 버밀리언 부대들과 함께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뉴스에선 그랜드시의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상자들이 났다는 보도를 하고
민메이는 근심으로 기도를 하며 히카루가 무사하기를 빈다.
히카루는 미사에게 찾아가 왜 자신이 긴급 출동되지 않았는가를 바넷사
에게 들었다며, 왜 자신이 병이 났다는 거짓말을 했는지 따진다.
미사는 "이치죠 히카루 대위! 현관문은 언제나 꼭 잠그도록 하세요. 열어
놓지 말고!"라며 얼굴을 숙이고 대답한다.
집으로 돌아온 히카루를 보고 민메이는 눈물을 닦으면서 잠시 얼굴을 씻고
오겠다고 하면서 세면대로 갔다. 민메이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저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민메이는 히카루를 뒤에서 껴안으면서
"기뻐요! 히카루가 살아있었어... 히카루, 제발 군인을 그만둘 수 없어요?
이렇게 기다린다는 것은...난...."
크리스마스 디너에서 촛불을 켜놓고 서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며
키스....♥
제36화 やさしさ SAYONARA(상냥한 이별)
히카루는 집에서 하늘에서 비행하고 있는 발키리를 보고 있으면서 민메이
가 말한 군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히카루에게 민메이는
"아직도, 결심이 안선 모양이죠?"
"으응...? 응...!"
"왜죠? 당신이 군인을 그만두면 나도 가수를 그만두겠어요!"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에 당신이 낄 필요는 없어요!"
"나라고 좋아서 하는 짓은 아니야!"
민메이는 히카루에게 다가가 앞에 앉는다. 그리고 옛날 일을 회상하며
"난 아직도 기억해요.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 일. 당신은 군인이 아니었고
나도 가수가 되기 전의 보통 여자였죠. 마크로스 안에 갇혀서 '이제 틀렸구나'
생각했을 때, 당신이 말했어요!" 민메이는 둘이 무인구역에 갇혔을 때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결혼이라도 해버리자구요! 다시 돌아가요. 그 시절로요!"
"미, 민메이...!"
히카루는 그 말에 놀랐다. 그 말에는 프로포즈의 의미가 있었을까?
캠진은 완전히 전함을 수리하고 마크로스를 부숴 버리고 우주로 돌아갈
작정으로 마크로스 시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사는 히카루가 민메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민메이를 자신과 비교를
해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히카루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군을 그
만두고 먼 도시로 떠날 생각을 한다. 이때 클로디아가 와서 글로벌 총사령관
이 기다린다고 전해준다. 옛날 브릿지에서 그로벌 총사령관은 미사에게 새로
운 임무를 맡긴다. 그것은 새로 건조되는 함정의 함장을 미사에게 맡기는 것
이었다. 그로벌은 미사에게 우리 인류가 이 지구에서 영원히 머물 수 없다고
말하며, 현재 이 은하계에 젠트러디와 감찰군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고
만약 그들과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다시 우리 인류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들 대군단과 싸우기 위해 전력을
증강하면 지구는 전쟁을 위한 혹성이 되고 한편으로 거인 족을 만든 프로토
컬쳐처럼 자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로벌은 이 지구의 문화가 끊어
지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그리고 많은 별(혹성)로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캠진의 전함은 점점 마크로스 시로 발각되지 않고, 지면에서 낮게 조용히
날면서 다가오고 있다.
히카루는 민메이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여기서 히카루는 신형 VF-4
모형 발키리를 가지고 놀며(?) 비행기에 대한 생각(군)과 민메이를 동시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겐 비행기와 민메이 둘다 포기하기 어려운가?)}
그러나 그렇게 싶게 결정할 수 없었다. 이때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민메이와
히카루는 현관문을 열었다. 미사가 와있었다.
"M.H(하야세 미사): 안녕하세요, 이치죠 히카루 대위. 오늘 당신과 작별의
인사를 하려고 왔어요."
"H.I(이치죠 히카루): 예에...!?"
"M.H: 난 오늘 군을 그만두고 어디 먼 도시로 떠날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우주 이민 계획의 1번 함의 함장에 임명돼, 결심이 달라졌어요."
"H.I: 우주이민...!?
"M.H: 예, 우리들 인류가 이대로 지구에 계속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젠간
다른 우주인에 의해서 멸망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또 몇 만년 후의 미래 후손들에게 문화를 전하기 위해서도
전 먼 우주로 떠날 생각이에요. 안녕히 계세요"
"H.I: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M.H: 예... 민메이양 난 당신 노래 좋아해요"
"L.M(린 민메이): 예에.. !?"
"M.H: 난 당신처럼 문화를 창조할 수 는 없지만... 그걸 지켜 나갈 수 있을
지는 모르죠..."
"L.M: 하야세 미사씨!"
"M.H: 지금, 지금 같으면 말할 수 있어요! 히카루, 당신을 사랑했어요!"
"H.I: ...!" 히카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갑작스런 미사의 고백이
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L.M: 아니...!?"
"M.H: 민메이양 당신도 노래 소중히 하세요."
"M.H: 그럼..."
하면서 미사는 둘에게 경례를 하고 뒤돌아서 뛰어갔다. 미사는 흐르는 눈물
을 감추려는 듯이...
"H.I: 소, 소령님...!"
하고 히카루가 뛰어 나가자
"L.M: 히카루...가지 말아요!"
하면서 민메이는 황급히 히카루 앞으로 뛰어가서 가로막는다.
"L.M: 제발..."
라고 말하는 민메이의 눈은 히카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간절한
그녀의 마음이 담겨있다.
"H.I: 민메이..."
이때, 미사일이 날아와서 도시를 공격한다.
"엎드려...!"
히카루는 민메이를 엎드리게 하고 감쌌다. 폭발의 폭풍은 주의의 물건들과
파편을 사방으로 무섭게 날려보냈다.
히카루는 곧 일어서서 미가가 걱정이 되어서 미사가 간 쪽으로 달려간다.
"소령님...!"
민메이도 히카루 뒤를 '히카루' 이름을 부르며 쫓아간다. 이미 도시는 미사일
공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계속해서 미사일은 날아오고 폐허가 된 도시
에서 히카루는 쓰러져 있는 미사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운다.
"M.H: 히카루...!"
"H.I: 괜찮아요?"
"M.H: 네! 도대체 이건...!?" 미사는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면서 말했다.
"H.I: 기습이어요! 그것도 대규모의..."
"M.H: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을까!?"
"H.I: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건 큰일 같아요!?
"M.H: 으으..."
미사는 폭발의 폭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M.H: 난 마크로스로 돌아 가겠어요!"
하면서 미사는 움직였지만 조금전의 충격으로 몸이 기울었다. 히카루는
미사의 허리를 잡으며 부축하면서
"H.I: 하야세 소령님. 나도 출격합니다! 조심하세요"
미사는 놀란 듯 히카루의 눈을 서로 바라보면서
"M.H: 당신이야말로..."
이때 뒤 따라온 민메이는
"L.M: 히카루...!"
"L.M: 어째서...!"
"H.I: 민메이...!"
계속해서 파괴되는 도시의 붉은 불길과 폭발에 의한 폭풍 속에서 민메이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소리 친다.
"L.M: 어째서 이렇게까지 싸워야되요!?"
"M.H: 민메이양,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나요?"
"L,M: ...."
"M.H: 자신을 위해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노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가요? 우리가 싸워로 가는 것도 당신이 노래하는 것과 같은
이유예요!"
"L,M: 그런 말이..."
"자, 당신은 빨리 대피소로 피해."
"싫어요, 당신도 함께 대피해요."
민메이는 히카루의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히카루는 뒤돌아 보며
"바보 같은 소리마! 난 군인이다. 널, 이 도시를 지켜야되!"
"싫어, 싫어. 그렇다면 나도 함께 데려가요. 난 외톨이가 싫어요!"
라면서 민메이는 머리를 저으면서 울부짖는다.
"민메이 미안해. 하지만 넌 결코 외톨이가 아니야. 너에겐 노래가
있어 노래가..."
하고 히카루는 민메이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간다. 민메이는 애절하게
"히카루... 히카루... 히카루...히 카 루...!"
라고 부르지만 히카루는 민메이의 말을 뒤로 한체 전쟁을 향해 달려간다.
브릿지로 돌아온 미사. 그러나 적함은 너무 가까이 까지 접근해 왔다.
캠진은 주포사정 거리에 마크로스가 들어오자 곧 바로 주포를 발사한다.
곧이어 마크로스 브릿지에 다급한 통신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적함 FR 라인 돌파, 계속 접근 중!"
"고 에너지 반응 증대!"
"곧장 접근중...!"
캠진 함에서 발사된 주포는 마크로스 앞에 있는 도시의 건물들을 순십간에
파괴하고 바로 마크로스에 명중했다. 곧이어 마크로스는 붉은 연기를 내 뿜어
며 뒤로 넘어가고 마크로스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스컬기를 몰고 전투에
나간 히카루는 이 광경을 보고 미사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곧 바로 적
전함에서 나온 전투 포트와 치열한 접전이 시작된다.
마크로스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버렸다. 미사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브릿지 3인조에게 모두 옛날 브릿지로 가자고 한다. 무슨 영문인체 모르고
뒤 따라간 브릿지 3인조. 옛날 브릿지에 도착한 4명. 그곳엔 이미 그로벌
총사령관과 클로디아가 와있었다. 클로디아는 그들에게
"모두 늦었군!"
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로벌은
"각자 자기 부서로 가라!"
"함장님!"
옛날처럼 되돌아간 브릿지.
"지금부터 마크로스는 발진한다!"
"그럼, 마크로스가 날 수 있다는 겁니까?"라고 미사가 그로벌에게
물었다.
"으음, 잠깐은 해 볼 수 있지... 전원 발진 태세! 상승 후 즉시 주포를 발사
한다. 단 일격에 적을 섬멸한다!"
다시 바빠진 브릿지. 각 통신사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다시 발진하는
마크로스. 곧 바로 주포 발사 태세에 들어가고 캠진함에 주포를 발사한다.
주포발사와 동시에 마크로스 주포는 부셔지고 마크로스는 다시 균형을
잃고 내려앉는다. 주포는 적함을 명중을 시켰으나 조금 빗나가 완전히 적함을
파괴 시키지 못했다. 캠진은 부셔진 전함을 그대로 마크로스에 돌진시킨다.
충돌을 피할려는 마크로스 그러나 다시 통제불능이 되어버린 마크로스는
캠진함과 충돌하고 캠진함은 완전 파괴되고 마크로스는 반파되어버린다.
치열한 전투(이 전투를 마크로스 연대기엔 제1차 마크로스시 공방전이라고
부른다)가 끝났다. 부서진 마크로스 옆에 히카루는 발키리를 가웍으로 변신
시켜 내려앉는다. 그곳에서 미사와 만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민메이가
눈물을 닦고 다가온다.(배경음악이 '런너' 하모니카 반주다.^^)
"무사했구나 민메이!?"
"당신이야말로 수고했어요"
"고마워 민메이."
민메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곧 히카루에게 말을 한다.
"난 먼 도시로 떠나겠어요!"
그 말에 히카루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서 다시 노래를 해보겠어요. 앞으론 노래를 안하겠다는 말
않겠어요!"라면 민메이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히카루에게 이야기한다.
"잘 생각했어 민메이...!"
"네에...!"그리고 민메이는 미사를 보며
"하야세 미사씨."
"으응...!?"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민메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진실한 내 노래를 부르게 될 때. 그때..."
"그때는...!?" 미사는 지금 민메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랐다.
"나도 태워 주시겠어요!? 당신의 배(우주이민선 SDF-2 메가로드)에요!"
"기꺼이! 그리고 당신의 노래를 저 우주에 울려 퍼지도록 해요!"
민메이는 기쁜 마음에 미사에게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밀면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메이는 작별을 말하듯 손을 살짝 들었다.
{(우리나라 더빙판엔 배경곡으로 '사랑은 흐른다'가 나온다. 이 편 제목이
상냥한 이별인데, 일본 원판에서는 상냥한 이별곡이 처음엔 피아노 반주로
만 나오다가 점차 민메이의 노래가 들린다.
'상냥한 이별'의 가사
가슴이 아파요. 마음의 찬바람. / 때때로 싸우기도 했지만
당신의 다정함은 아직도 변치않았어요. / 그것이 나에게는 견딜 수 없었지요.
당신이 없는 방. 묵묵히 뛰쳐나와
마땅히 갈곳도 없으면서 역전까지 왔어요.
그래요. 알아버렸어요. / 당신의 다정함은 마음 약함을 감추고있을 뿐이라는 걸.
나는 이제 변해버렸어요. / 그래서 이별이에요.
어느새 인가 스쳐 지나가는 나날들. /당신과 나의 마음.
매일매일이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어요.
그것이 예전이었다면 기분 좋은 일이었겠지요.
내가 없어지면 당신은 혼자. / 새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어요.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 당신의 다정함 더이상 필요 없으니까.
마음의 틈새는 메울 수 없어요. / 그러니 붙잡지 말아요. }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히카루"
히카루는 고개를 끄덕이고
"너야 말로 민메이..."
그리고 민메이는 히카루에게 다가가 그의 뺨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럼, 갈께요!"
민메이는 뒤를 돌아 가볍게 뛰다가 다시 뒤돌아보며 남은 두 사람에게 손을
들어 흔들면서 명랑하나 약간은 아쉬운 듯한 말투로 말한다.
"또 만나요!"
미사와 히카루는 답례를 하듯이 손을 들어 보였다. 하늘에선 어느새 눈이
조용히 내리고 민메이는 흔들던 손을 내린다. 슬픈 표정과 이별의 아쉬움을
어렴풋이 보이면서, 그러나 곧 결심한 듯이 고개를 돌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빌딩 사이로, 폐허를 감추려듯이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남은 둘은 떠나는 민메이를 지켜보고 있다.
"가버렸어요. 붙들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고 미사는 히카루에게 살며시 묻는다.
"네에. 민메이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붙잡을 수 없어요!"라고 히카루는
예상한 듯이 말을 한다. 그리고 미사에게
"그보다.. 들리죠? 민메이의 노래!?"
"예-에!?, 노래가 들려요! "라며 천천히 미사는 말을 했다.
미사는 히카루의 팔짱을 끼고, 히카루는 한 번 미사의 얼굴을 보고 미사의
손과 어깨를 잡으며 둘이서 이미 사라진 민메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은 점차 원경으로 바뀌면서 가웍 발키리 옆의 조그맣게 보이는
두 사람과 뒤쪽에 부셔진 마크로스가 보이며 그 앞으로 눈이 내린다.
그러면서 화면은 점점 작아지면서 어떤 책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되고 밑에는 Macross 라고 적혀있다. 누군가(미사) 그 책의 마지막장을 덮
는다. 책의 마지막 뒤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나타난다. 위의 왼쪽에는
AD.2012 , 밑의 오른편에는 So Long(안녕)이라고 적히면서 마크로스는
끝난다.
- 끝 -
엔딩곡 "런너(RUNNER, 달리는 사람, ランナ-)"
나는 더 이상 쫓아 가지 않을래 / 달리는 너의 그림자 뒤를...
누구나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 목표는 아직 보이지 않네..
오늘 다음엔 무엇이 있고 / 내일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나.
아득한 저 먼 빛을 향하여 / 오늘도 나는 달려간다.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겁니다. / 나 자신의 길을 나아갈 뿐.
사람은 누구나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 결승점은 멀지만
오늘을 보내는 나날 속에서 / 내일이라는 날이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멀고먼 저편의 빛을 향해서 /나는 지금도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멈추지 않겠습니다. / 언젠가 만날 때도 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결승점은 보이지 않지만
내일이라는 이름의 희망의 날. / 미래라는 이름의 찬란함이...
멀고먼 저편의 빛을 향해서 / 나는 지금도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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