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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에 관한 문서자료

by Casey,Riley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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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에 관한 문서자료


<1950년대 / 일본 영화의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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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년, 근대화의 일환으로 다른 서구 문화 문물과 함께 받아들여진 영화는 일본에서  재
현 방 식이나 산업 등 모든 면에서 서구와는 다른  독특한 양식으로 발달했다. 일본은 1912
년네 '니카츠 (日活)'를 건립하여  대형 메이저 영화사를 중심으로  한 스튜디오 시스템 을 
탄생시켰고, 변사라는 특이한 제도와 함께 가부끼와 노 등 전통적인 재현 양식을 통한 일본
만의 독특한 영화 양식을 개 발하였다.
... 일본 메이져 시스템의 역사는 상당히 갈더. 1904년부터 소규모 촬영 소가 도쿄와  교토에 
자리잡 았고, 이 영화사가 1912년에 합병되면서 최초의 메이져 영화사인 니카츠가 탄생한다. 
그 후 메이 져 대형 영화사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도호, 도에이, 신도호, 쇼치쿠, 다이에이 등
의 합세로 1950년 대에 이르면 6대 메이저 시대를  맞는다. 이들은 교토와 도쿄에 시대극과 
현대극 스튜디오를 따로 두고 각기 다양하게 영화를 제작했다. 일지감치 스튜디오 시스템을 
정착시킨 일본은 대작을 제작 하여 외국 영화와의 경쟁에서 늘 우위를 지켰다.
... 스튜디오 시스템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1950년대는 일본 영화계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 에 영화산업은 절정기를 누렸다. 일본 영화 역사상 최고의 해라고 불리는 1958년, 일본 
전국에는 7,500여개의 영화관이 있었고 영화 입장객만도 11억  2,700만명에 달했다. 연간 제
작되는 영화의 수는 평균 500~600편에 이르렀고, 1958년에 상영된  전체 영화 중 일본 영화
가 75퍼센트를 차지하 는 등 자국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대단했다.
...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쇼치쿠 서민극, 다이에이 시대극, 도호 야쿠자 영화 등 스튜디
오 나 름대로의 특징을 개발하면서 일본 감독이 작가로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서민극
의 대가인 오 즈 야스지로나 시대극의 대가인 미조구치 겐지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키워 낸 
일본의 거장이다. 오즈의 다다미 쇼트, 미조구치의 롱 테이크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고유의 
영화 미학이 발전하고 막대한 세트와 제작비가  들어가는 시대극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도 
스튜디오의 힘이다. ... 이와 같은  스튜디오의 힘은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 영화가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그 진가를 발
휘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유명 한 작가인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덤불 속>
을 합쳐 만든 것으로, 무사의 아내가 산적에게 강간당한 사건을 한 나무꾼이 교토의 라쇼몽
이라는 문 앞에서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 다. 이 영화는  살해된 무사의 살인범에 대해 저
마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등장 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
고 있다.
...  이어  미조구치의   겐지의 <서학   일대녀西鶴一代女>(1952),  <우게츠이야기雨月物語
>(1953), 샨쇼 대부(1954)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3회 연속 수상하면서 오스 야스지로 를 포함
한 일본 영화의 3대 거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시기에는 위의 세 거장 외에도 이치
가와 곤, 이마이 다다시, 신토 가네토, 기노시타 게이스케 등 많은 감독의 활동을 통해 일본 
영화의 미학이 성립되었다. 전 통적으로 내러티브보다 형식미를 추구해 온 노와 가부키,  그
리고 여백의 미를 추구한 회화 전통  은 서구에서는 모더니즘 영화 미학으로  발전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다라 다루는 주제는 달라지지만, 일관된 이
미지 중심의 형식을 강조하는 독특한 일본 영 화가 유지도히는 힘이 되었다.
,,, 그러나 이와 같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영화 이외의 다른 오
락물이 늘어나면서 영화산업이 침체를 맞자 서서히 붕괴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 영화는 스
튜디오 시스템 과 독립 영화 시스템의 공존 체제로 들어갔다. 1960,70년대의 스튜디오  운영
을 지탱한 힘은 서민 극의 계보를 이어간 쇼치쿠의  야마다 요지가 만든 <남자가 괴로워>, 
니카츠의 핑크 영화, 도호의 야쿠자 영화들이다. 이들에 의해 일본 영화는 그나마 명맥을 이
어갔다. 아울러 1980,90년대 들어 몇몇 스튜디오가 붕괴되면서 현재 메이저 영화사는 제작보
다는 배급과 상영에 주력하고 있는 실 정이다.


<격변기의 1960년대와 1970년대 / 독립제작의 탄생>

... 한 해 600편 이상을 제작하던 메이저 영화사의 활동이 1960년대로 들어서며  주춤해졌다. 
특히 1958년을 정점으로 영화산업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에 보급되
기 시작한 텔레비젼의 영향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수가 격감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스튜
디오가 불황을 맞았다. 불황 타개책으로 도입한 와이드 스크린이  특별한 효과를 거두지 못
하자 이들은 주요 관 객층인 젊은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젊은 감독을 
기용했다. 그래서 '쇼치쿠 누벨바그' 같은 새로운 영화 세대가 등장했다. 사실 그 동안 젊은 
조감독들은 영화가 진실된 일본 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진부한 시대극만을  양산하고 
있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해 왔다.

..-우리는 기존의 영화에 대한 불만을 느꼈다. 이는 반 쇼치쿠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는 패 턴화된 촬영소 영화에 반대하여 작가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다 무라 모우, 시나리오 작가)

..-나는 사토 다다오가 쓴 '잠자는 사자 쇼치쿠  오오후나' 라 욕했 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들의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울분이었다. 쇼치쿠는 잠자는  사자가 아니라 죽은 사자
였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

,, 그들에게 감독으로서 새로운 양식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오시마 나기사
의 <사랑과 희망의 거리>(1959)를 시작으로 새로운 영화가 터져 나왔다. 이처럼 일본의  새
로운 영화 흐름은 쇼치쿠를 중심으로 한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내에서 그 막을 열었다. 그
러나 이와 같은 체제는 오래  계속되진 못했다. 전체 영화의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뉴 
웨이브 감독들의 작품 으로 침체해 가는 일본 영화계를 활성화시키기란 역부족이었다. ... 이
와 같은 상황에서 뉴 웨이브의 선두 주자인 오시마 나기사가 메이저를 탈퇴해서 '창조사'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스튜디오 시스템이 아닌 독립 프로덕션 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이른
바 인 디펜던트 영화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영화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기존의 
일본 고전과 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전 세대의 영화 문법과 다
른 형식을 사용했을 뿐 만 아니라 휴머니즘 중심의 기성 영화에서 벗어나 단순히 오락의 대
상이 아닌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의 새로운 영화 혁명은 당시
의 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 다. 특히 1960년 5월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미국에 대한 일본
의 종속을 강화시키는 미일 안보 조약 개정 반대 데모와 반항적인 젊은이의 섹스와 폭력으
로 일관된 삶의 모습은 이들의 공통된 관시거리가 되었다. .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1960)는 안보 투쟁을 총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 는 안보 조약 개정 반대 운
동 속에서 신구 좌익계의 대립을 통해 안보 투쟁이 실패할 수 밖에 없 었던 이유룰  보여준
다. 미일 안보 조약 개정 반대 데모 도중 알게 된 신문기자  노자와 여대생 레 이꼬의 결혼
식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전개된다. 장면은 곧 과거 1952년에  있었던 가와야마와 미사 꼬의 
결혼식으로 연결된다. 가와야마는 노자와가 사랑하던 미사꼬와 결혼함으로써 그를 배신함과 
동시에 노자와로 대표되는 신좌익계를 배신한다. 그러나 노자와 역시 언론인이 되면서 가와
야마 처럼 자신의 세대를 배반하고 안정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오시마는 원 
신 원 커트 의 원칙을 고수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뒤섞으면서 양식적으로 새로운 실험
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청춘 영화가 등장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청년 문화는  태
양족 소설과 영화의 등장 이후 하나의 장르로 탄생되고, 이는 1960년대 새로운 감독의 영화 
속에서 많 이 다루어졌다. 영화 속의 청년의 행도은 말 그대로 '이유없는 반항'이었다. 오시
마 나기사의 여 주인공은 중년 신사에게 몸을 팔아 그 돈으로 남자 친구와 욕망만을 추구하
는 삶을 즐긴다. 요시 다 요시시게의 <일본 탈출>(1964)에서는 마약과 도둑질을 일삼는  갱
스터 소년이 그려진다. 시노 다 마사히로의 <사랑의 편도차편>(1960)는 당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던 로큰롤 뮤직광들의 세 계를 허무주의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진
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폭력과  섹스가 만연된 젊은이들의 삶이 아니라  그런 
모습을 통해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데 있었다. 이마무라 쇼헤 이의  <
돼지와 군함>(1960)에는 미군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매춘부와 야쿠자의 폭력과 섹스로 일 관
된 삶이 그려진다. 그러나 감독은 그들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전후 
일본 의 경제적 성공의 이면에 개입되어 있는 미국 문제와 그 부작용을 꼬집고 있다.
... 이 밖에도 한국인 등 소외 계층의 문제를 파헤친 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1968), 곤충
처럼 철저히 본능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한 여인의 삶을  그린 이마무라 쇼헤이의 <일부 곤
충기>(1963), 다이쇼 시대의 무정부 지도자와 두 여성간의  삼각 관계를 중심으로 무정부주
의와 자유 연애의 갈 등을 영화 속의 영화 형식으로 표현한 <에로스+학살>(1969)등 다양한 
주제와 양식의 영화가 자 유롭게 만들어졌다. . 이처럼 메이저를 탈퇴한 감독이 자유롭게 활
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1962년에  설립된 일 본 예술 극장 협회의  힘이 컸다. 예술 
영화 전문 영화관에 작품을 배급하는 회사인 예술 극장 협 회는 이후 저예산 영화 공동  제
작에도 참여했는데 <교사형>, 하니 스스무의  <그녀와 나>(1963) 등을 포함하여  이마무라 
쇼헤이,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요시시게 감독 등의 많은 작품을 제작했 다. 이와 같은 일본 
예술 극장 협회의 공동 제작 참여는 1980년대 주요 작가가 등장하는 데에도 한몫을 했다.
.한편, 젊은 감독의 대거 탈퇴 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메이저는 소수의  관객층을 
겨냥 한 작품 제작에서 벗어나 대중을 끌어모을 수 있는 고전의 리메이크, 야쿠자 영화,  청
소년 영화, 핑크 영화 등 상업적인 영화 장르에 주력하면서 그 나름대로 명맥을 유지했다.

.-로망 포르노가 히트한 배경으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간과할 수 없다. 1971년은 1970년의 
미일 안보 조약 반대 투쟁의 여파가 아직 남아 전공투(全共鬪)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가던 
시기였다. 학생들은 니카츠 로망 포르노를  기성 개념을 타파한 성해방  영화로 취급하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 때문에 시로가와 와코 등의 포르노 여배우는 각 대학의 축제에 
불려 다니며 일약 스 타덤에 올랐다. 시대 조류에 민감한 영화 평론가들도 니카츠 포르노를 
활성화 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니시무라 쇼오고로, 로망 포르노 제1호 감독)

....텔레비젼의 급속한 보급은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제작에 주력
하던 스튜디오는 촬영소를 매각하기 시작했고, 제작사에서  후퇴한 메이저는 독립 프로덕션 
작품의 배 급망으로 변모했다. 제작 편수가 감소한 회사들은 더 이상 전속 배우가 필요없게 
되었고, 독립 프 로덕션의 작품이 늘어나면서  각 회사가 지니고 있던 개성도 엷어져  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니 카츠카 주력한 저예산의 핑크영화인 '로망 포르노'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 도에이의 '야쿠자 영화' 만니 스튜디오 시스템의 명맥을 가까스로 이어갔을 뿐이다.
....1969년 부터 시작된 촬영소의 매각으로 경영의 악화일로를 걷던 니카츠는 끝내 1971년  8
월에 모든 영화 제작을 중지했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같은 해 11 월에 저예산의 포르노 영화로 제작을 재개하는데, 이것을 종래부터 있었던 핑크 
영화와 구별해서 로망 포르노라고 불렀다. 이들은 저예산이라고는 하지만 핑크 영화보다 제
작비를 더 들이고 우수 한 기술자, 제대로 갖추어진 시설, 좋은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것이었
기 때문에 핑크영화보다는 질 높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게다가  시대 조류레 편승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제로 니카츠 로망 포르노 중에는 인간 존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가
작이 다수 있었으며, 특히 다나카 노보루 의 <유부녀 집단 폭행 치사 사건>(1978)은 키네마 
준보의 베스트 10에 뽑히기도 했다. 저예산과 소수의 스태프, 단기간 촬영으로 제작이  가능
한 이 영화들은 1970년대에 제작된 전체 영화의 70 퍼센트를 차지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유명 감독 중에는 로망 포르노로 데뷔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신인의 
적 극적인 등용도 로망 포르노의 열기를 더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가족게임>(1983)의  모
리다 요시 미츠와 <벚꽃정원>(19900의 나카하라 준도 니카츠 로망 포르노가 사실상 데뷔작
이었고, <춤을 출까요?>의 수오 마사유끼도 핑크계 독립  프로덕션을 통해 데뷔했다. .그러
나 니카츠의 명맥을 이어주던 로망 포르노는  1981년 일본 텔레비젼 영상의 발매로  시작된 
성인 비디오가 발달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8년, 마침내 로망 포르노는 <베드 파트너
>,<러 브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를 끝으로 17년 역사의 문을 닫고 만다. .아직 까지도 도에
이의 야쿠자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메이저가 연간 10여편의 영화 만을 제
작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니카츠  로망 포르노를 마지막으로 메이저 시스템의  붕괴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일본 영화 전통의 소멸과 동시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
양한 시대로의 돌입을 의미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메이저를 탈퇴한 작가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특색을 
앞세 워 디양한 영화들을 만들어낸 시기다.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실험영화와 정치적 주제
를 과감히 다룬 정치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는 1950년대 고전 일본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일본적인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의 독립 제작 
활동은 이후 1980년 대에 다양한 일본 영화가 출연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 개인 영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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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외의 오락이 늘어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관객의 대부분을 연극이나 경마,경륜  등의 다른 오락에 빼앗겨 버렸다.  . 
1980년대 일본 영화계 현황을 나타내는 통계는 입장객, 극장 수, 제작 편수 모두 하향  곡선
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특히 1987년을 계기로 침체일로 속에서도 국내 흥행에서
는 구준히 우위를 지켜 온 일본 영화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전체 개봉 영화  637편 
중 일본 영화가 286편, 외국 영화가 351편으로 일본 영화가 45퍼센트, 외국 영화가 55퍼센트
를 차지한 것이다., 외국 영화 가운데 90퍼센트가 할리우드 오락 영화며, 관객의 90퍼센트가 
젊은 층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강세는 1980년대 일본 사회의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 후반 
석유 파동 등으로 주춤하던 일본 경제가 1980년대 들어와 회복되면서 사회적인 생존의 경쟁 
논리가 부각되고 그 속에서 전통적인 가치가 흔들렸다. .모든 것이 서구 중심이 되고 젊은이
들은 서구 문화에 젖어들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일본 영화는 젊은이들의 관심 밖에 있는 
시대극의 제작을 거의 줄이고 그들의 취향에 맞추는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 이런 변화는 제작 현장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 현장 경험을 익힌 뒤에야 영화계
에 데뷔 하던 기존의 감독과는 달리 대학교에서 영화 서클 활동 등을 통해 영화 경험을  익
힌 이른바 슈퍼 8밀리 감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영화광들이 영화계에 대거 입문했다. .  실
제로 1980년대에 메이저 를 통해 제작된 영화는 40퍼센트에  머물렀고, 독립 인디팬던트 작
가의 작품이 60퍼센트를 차지 했다. 이런 현상은 기존의  영화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특정
한 장르의 영화를 대신하여 이제 개 인의 재능에 따라 영화를 다양하게 제작하는 개인 영화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했다. . ATG(일본 예술 극장 협회)의 도움으로 주목받는 신인 감독 
두 사람, 모리다 요시미츠와 이타미 주조가 탄생했다.
...모리다 요시미츠는 1980년대의 풍요로움 속에서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한 중산층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묻는 <가족게임>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 이  영
화는 정면을 향해 나란히 앉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식사하는 가족을 소개하는 첫 장면에서
부터 온 가족이 말 없이 식사하다가 난장판을 벌이는 마지막 장면까지 온통 실험과 유머로 
가득하다. . 가족 서로간에 의사소통이란 전혀 없고 고작 식사 시간에만 함께 모일 수  있는 
이 가족의 최고 목표는 문제아인 시케유키를 명문 세이부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고용된 가정교사는 유부녀 와 관계를 맺고,  포르노 잡지에 탐닉하며, 폭력을 사
용하고, 오로지 돈 때문에 가정 교사를 하는 인물이다. ,아들의 성적에만 관심있는 아버지에
게 가정 교사의도덕적 자질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 는 시게유키의 성적을 한 등 수씩  올려 
줄 때마다 만 엔씩을 더 주겠다고 제안할 정도다. .부모의 소원대로 시게유키는 세이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축하의 자리가 되어야 할 마지막 장면 은 가정 교사의 난동으로 끝
난다.. 그는 이 가족의 한심한 모습을 더 이상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 1980년대 일본 사회
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실험적인 양식 속에 재현한 이 영화는 그 해 키네마 준보  베스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2년 후  그는 나츠메 소오세키의 소설인  <소레까라>를 아름 다운 
영상에 담아 다시 한 번 재능을 과시했다.

. <가족게임>에서 돈과 아들의 일류 고등학교 입학만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역을 
완벽 히 해낸 이타미 주조는 자신의 영화 <장례식<)1984)으로 화려하게 감독으로 데뷔한다. 
엄숙해야 할 전통 장례식과 엄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 대비를 유머와 풍자로 이끌어 낸 
이 영화는 그해 최고의 영화에 올랐다.. 처음 치르는 장례식이기 때문에 절차를 전혀 모르는 
가족은 비디오 테이 프를 구해 보는 등 우왕좌왕이다. .심지어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를 논하거나 장례식을 목 전에 두고 정부와 놀아나는 등 장례의 참의미는 모두 잊혀진다.  .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전통적인 의식이 가치를 잃어가는 일본의 모습
을 꼬집고 있다. 이타미 주조는 그 후 담뽀뽀라는 라면 가게 여주인이 최고의 맛을 내기 위
해 다른 가게와 경쟁하는 과정과 함께 음 식에 관한 열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담은 <담뽀뽀
>(1986), 탈세자와 그를 쫓는 국새청 여직원의 이야기를 담은 <마루사의 여자>(1987), 슈퍼
의 비리를 파헤친 <슈퍼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일부에서는 탈세나 
가격 파괴등이 사회 문제시되어 관심이 집중되면 재빨리 시 류에 편승하여 그것을 영화화함
으로써 흥행 성공을 보장받는 전략적인 영화 감독이라고 그를 비 판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와 같은 사회에 대한 재빠른 반영이 이타미 주조 영화의 장점일지도 모 른다.
...이 밖에도 지금까지 메이저 소속으로 오락 영화를 만들어 오던 중견 감독들이 스튜디오와 
결별 하면서 전과는 다른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이미지로 가득 찬 새로운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색채와 형태의 미학 / 스즈키 세이쥰, 오구리고헤이>

,,,-스즈키 세이쥰의 영화는 요약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요약이 
가능하지 만 스즈키 세이쥰의 경우 영화의 스토리를 이야기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
다. . 그의 영화 에는 스토리 대신 기호, 형태, 색채만이 있을  뿐이다. (야마네 사다오, 영화 
평론가)

...스즈키 세이쥰은 1980년대 일본 영화의 이미지  미학을 탄생시킨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1956년, 니카츠를 통해 <항구의 건배, 승리를  내 손에>로 데뷔한 그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통속적인 상업 영화 속에서도 나름대로 이색적이고 양식화된 색채와 형태를 가미한  독특한 
이미지의 영화를 민 들어 왔다. .그러나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속박은 자유분방한 그의  재
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억 압적이었다. .1967년,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니카츠에서 해고된 그는 그 후 자신의 재능과 그 동안의 CF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환상의 영화 <지 고이네르바이젠>(1980)을 탄생시켰다... 이 영화의 줄거
리는 요약하기 어렵다. . 그저 사라사테 자신 이 연주하는 지고이네르바이젠 레코드 속의 알 
수 없는 속삭임, 현실과 환상을 뛰어넘는 자유분 방한 이미지, 자살한 동생의 빨간 해골  등 
화면을 산란하게 하는 빨간색의 이미지, 커다란 냄비와 요리, 주인공 세 사람의 관계, 세 사
람의 맹인 등 영화 전편을 흐르는 색채와 음악 그리고 형태의 이미지만을 즐길 수 밖에  없
다.. <유메지夢二>(1991)에서도 그는 유메지라는 유명한 수채화가와세  여인간의 관계를 일
반적인 스토리 전개를 파괴한 채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색채와 형태의 스펙터 클로 이끌어 
간다.
...스즈키 세이쥰의 영화를 선두로 스튜디오 시스템이 강요한  장르를 뛰어넘어 감독 개개인
의 개 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독특한 미학을 지닌 새로운 영화가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
와 더불어 1980, 90년대 일본 영화계에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미지의 영화를 만드는 1980년대 선두  주자로 오구리 고헤이가 있다. 한  작품 
한 작 품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감독으로 알려진 그는 <진흙강>(1981)으로 데뷔한 이래 지
금까지 단 네 작품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제1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 <잠자는 남자>(1995)
로 아름다운 영상 을 과시한 바 있는 그는 일본의 시적 리얼리즘 작가로 불린다. 전후 가난
한 시대에 소년기를 보 내야 했던 아이들의 만남과 이별의 아픔을 그린 <진흙강>, 재일 한
국인 청년과 일본인 소녀와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가야코를 위하여>(1984), 정신병을 앓
고 있는 부인과 정상적인 남편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끝없는 대화의 아픔을 그린 <죽음의 
가시나무>(1990)등 그의 영화는 스토리보 다는 기교적으로 표현된 화면 속에 이런저런 아픔
과 슬픔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1980년대 영화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에니메이션의 활약이다. 이미  1960년대부
터 우 리의 안방 극장까지 침투했던 일본 만화의 위력은 1980년대에 지브라라는 개인 프로
덕션을 통해 등장한 미야자끼 하야오 등의 활동으로 절정을  이룬다. 실제로 미야자끼 하야
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는 1989년 극영화를 제치고 관객동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쨌든 1980년대는 물밑듯이 밀려오는 할리우드 영화로  인해 점차 설 땅을 잃어가는  일본 
영화 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시대였다. .침체한 1980년대의 일본 영화를 그나마 지킬 수 있
었던 것은 바로 독립 프로덕션을 통한 재능있는 개인 감독의 활약 때문이었다. 

1990년대 / 침체일로인가,제2의 전성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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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는 예술성과 오락성을 겸비하며 일본 영화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신인감독이 
대거 등 장했다. 이처럼 재능 있는 감독의 데뷔는 1990년 2월, 여섯 명의 프로듀서로 구성된 
기획집단 아 고라(AGORA)의 출현과 관계가 깊다. 여고 연극부를 무대로 심대 여고생의 우
정과 심리를 구석 구석까지 충실히 그려 낸 나카하라 쥰의 <벚꽃 동산>(1990)은 키네마 준
보 최우수 작품상을 비 롯해서 각종 영화제에서 1990년 방화 베스트 1을 독점했다. 이 작품
은 아고라가 없었으면 탄생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일본 영화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한쪽에서는 "볼 만한 일본 영화가 없다", "일
본 영화는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는 비관론을 펴고 있다.  가령 1995년에 성인 영화를 제외
한 영화 제작 수는 167편이다.  이 중 메이저가 제작한 작품은  쇼치쿠가 두 편, 도호가  한 
편, 도에이가 아 홉편 등 열두편이다. 이는 전성기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숫자다. 그 밖
에도 여러 통계는 일본 영화가 죽어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 1990년대 일본 영화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낙 관론도 있다. 이처럼 대조적으로 다르게 평가되는 근거는 무엇
인가? 일본 영화의 현세 속으로 들 어가 보자.



<1990년대 흥행작>

...복잡한 1990년대 일본 영화의 속사정을 알아보기 전에 최근  흥행에 성공한 화제작 몇 편
을 먼저 살펴보자.
...소재의 신선함은 영화의 흥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1996년 11월 현재 15억엔의 수
입을 올리며 장기 상영에 성공한 수오 마사유키의 <춤을 출까요?>나 주조의 <슈퍼의 여자
>는 그 좋 은 예다.
...<으랏샤>(1992)라는 씨름 영화로 주목받았던 수오 마사유키는 이번에는 댄스 영화로 관객
에게 다가섰다. 스기야마는 성실하지만 어떤 취미도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어느 날  그는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댄스 교습소 창문에 기대어 서 있는 오도리를 발견하고 그녀
의 아름다움에 끌려 사교 댄스를  배우지만 배우는 동안 댄스 자체에  열정을 가지게 된다. 
한편, 항상 같은 요일 에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수상히 여긴  아내는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남편의 비밀을 알아낸다. 댄 스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연습하여 댄스 콘테스트에 나간 스
기야마는 아내의 등장으로 대회를 망치고 난 후 다시는 춤을 추지 않는다. 그러나 스기야마
는 영국으로 가게 된 오도리송별파티에 사 그녀와 최고의 댄스를 보여준다. 이처럼 사교 댄
스라는 개성적인 세계를 경쾌한 리듬으로 풀  어 간 <춤을 출까요?>는 지금까지  영화관과 
관계없이 지내던 40대의 중년 남성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 늘 사회적인 이슈룰 소재로 유머 넘치는ㄴ 영화를 만들어 온 이타미 주조가 이번에는 슈
퍼마켓 을 무대로 가정 주부를 영화관으로 불러 냈다.  <슈퍼의 여자>는 가격 파괴로 손님
을 뺏어 가는 대형 상점에  대응해 '정직 상회'라는 이름의  슈퍼마켓이 하나코라는 주부를 
지배인으로 채용해서 주부들이 원하는 1등 슈퍼마켓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영화는 날짜 가 지난 상품이 버젓이 진열되어  있고, 신선하지 못한 속여 파는 
슈퍼마켓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 치고 있다.
...특이한 소재로 흥행에 상공한 또 하나의 화제작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다. 재
일 한 국인 감독인 최양일이 역시  재일 한국인인 양석일의 소설 <광조곡>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재일 한국인을 포함한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진지하뫄 유머로 새롭게 그려 낸 수작이
다. 택시 운전사인 충남을 주인공으로 그와 사랑을 나누는 필리핀 호스테스 코니,  일본인이
지만 정신 이상자인 호소 와 을 길을 잃어버이는 안보 등 경제대국이 된 일본 사회  속에서 
없애고 싶은 부끄러움으로 늘 가려져 왔던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감독은 정면으로 끌어냈다.
이런 작품으로 돋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소재의 신선함, 특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일 본 영화가 부진한 가장 큰 탓은 소재 빈곤이란 점에서 이들 영화는 유난히 돋보인다.



<비관론-영화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

...-일본 영화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TV의 영향이다. 날마다 인기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
마를 공 짜로 볼 수 있는데, 굳이 영화관을 찾을 이유가 없다. (오오모리 기즈키, 감독)

...-TV에서 볼 수 없는, 영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소재가 없다. TV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
으면 그 와 비슷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낸다. 또 소설이 히트하면 소설을  영화화한다. 
영화만의 독특 한 소재의 발굴이 어려운 처지이다. (야마네 사다오, 영화 평론가)

...일본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이 없다는 점이다. 그 첫째 이유는  관
객을 끌 만한 흡인력 있는 작품의 부재이고, 둘째는 메이저의 배급 독점, 비싼 입장료를  포
함한 배급, 상영 등의 구조적인 문제다.
... 일본인이 볼 만한 작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춤을 출가요?>와 <슈퍼의 여자>처럼 
새로 운 소재를 발굴하는 기획력과 뛰어난 연출력이 잘 조화될 경우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
둘 수 있 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이 항상 성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가족게임
>으로 우명해진 모리다 요시미츠의 <하루>(1996)는 비평가들에게 1990년대 일본  영화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영 화라는 칭송을 받으며 큰 기대속에서 개봉 되었으나 의외로 흥행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PC통 신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문자와 
영상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도 애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 영화의 흥행
은 외국 영화, 특히 할리우드의 경쟁에  서 밀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더 이상 알본 영화라는 것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구세대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메이저 시스템 영화의 소멸을  일본 영화 부진의 첫 번
째 이 유로 꼽는다. 단순히 소재의 탓만이 아니라 일본  영화다운 일본 영화가 없어졌기 때
문에 관객이 일본 영화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본 영화가 쇠퇴하고 있다고들 한다. 한때  일본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일체
감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는 감독의 자유를 제한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일체 감을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

...-처음 영화계에 입문했을 때  일본 영화는 전성기였는데 이제  점점 쇠퇴하고 있다. 가장 
큰 문 제는 일본 영화가 미국  영화를 닮아 간다는 점이다. 앞으로 일본  영화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선배로부터 우수한 재능을 전수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
서 스튜디오는 우 리에게 학교와 같다. (야마다 요지, 감독)

... 메이져 영화사가 제작하는 영화가 줄어들고 메이저 영화사에 소속되기 보다는 개인 프로
덕션을 통해 활동하는 감독이 증가하면서 일본 영화기술의 전수가 문제시되고 있다.
...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기존의  스태프를 고용하는 방식이 행해지고 있
다. 일 본 영화의 가술  전수를 위해 의도적으로 스튜디오 시스템  속에서 활동했던 노련한 
스태플를 신세 대 영화  제작에 기용하는 것인데,  <지고이네르바이젠>의 프로듀서 아라토 
겐지로가 니카츠의 베 테랑 카메라맨  니가츠카 카즈에를 기용했던 것이 그  좋은 예다. 한 
편 도산했던 니카츠가 1993년 을 계기로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며 재건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현상황의 타개책으로 스튜디오 시스템이 다시 부활할 조짐은  아닐가 싶다. 그런데 관
객의 발길을 가로막는 것은 영화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일본 영화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뿐 좋은 작품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즉 좋은 영화가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보 여지기까지 구조적인 어려움이 너무 많
다는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가 비싼 입장료다.


...-일본의 극장 입장료는 1,800엔(약 14000원)이다. 이는 미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하
여 비싼 편이다. 전자 오락이나 가라오케보다 비싸다. 결국 영화도 오락이므로 비싸고  재미
없으면 관 객이 찾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1,800엔이면 그만큼의 재미와 오락을 제공해야 한
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오락성이 강한 미국 영화만을 선호하게 된다. (야스마 후카시, 영화
잡지 <삐아>편집장)

...그러나 입장료가 지금보다 싸진다고 해서 관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단순한 관람 가격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일본의 메이저는 세금 감면
의 도구로 서 영화를 제작할 뿐 영화 제작보다는  돈을 버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
다. 따라서 위험 부담이 큰 제작보다는 안전한 배급과 상영에만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실정
이다. 배급회사가 안전 만을 추구하다 보니 관객이 들지 않을  위험이 큰 영화는 작품의 질
과 상관없이 관객에게 상영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 메이저의 배급 독점으로  생긴 일본 영화계의 폐단  가운데 전매권 영화라는 것도  있다. 
1990년 대 거품경제와 함께 생겨난 이 제도는 그 전에는 간간이 그 예를 찾아볼 수는  있었
지만, <하늘과 땅>"(1990)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동원 영화라고도 불리는 전매권 영화는 관
객에게 극장 표를 미 리 팔아 일정 수의 관객을  확보한 상태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기업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 는 방식 중 하나기도 하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기업의 사원에
게 강제로 표를 팔거나 <남극 이야기>(1983)처럼 관련 연구 학회가  표를 미리 팔아 그 돈
을 제작에 투자하는 영화 제작 방식이다. 물론 전매권 영화라도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에 따
라 실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수는  차이가 있 게 마련이다. 표를 샀지만  보러 가고 싶지 
않은 영화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일본 영 화 관람객에 대한 통계 수치 중에는 
영화를보지도 않은 사람까지 계산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
구하고 전매권 영화는 배급과 상영에서 안정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메이저에게 환영받고  있
다. 특히 자사가 배급하는 작품을 항상  독점적으로 개봉할 수 있는 영화  관을 100개 이상 
소유하고 있는 메이저 회사는 한 작품 한 작품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연간 수익의 플러스 마
이너스를 통해 흥행을 계산하는 블록버스터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안정성이 보장
되는 동원 영화 배급을 꺼리지 않는 실정이다.



<다양한 제작 전략-이업종 감독의 등장>

... 이처럼 침체해 가는 산업 현실 속에서  많은 자구책이 시도되고 있다. TV스타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200만 현 인구 달성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군마현이 제
작한 오구리 고헤이의 <잠자는 남자>의 성공은 새로운 형태의 영화 제작 붐을 일으키고 있
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지명도 있는 사람을  감독으로 동원해 흥행을 보장받으려는 
기획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1991년에 데뷔한 신인 감독 49명 중 3분의 1인 열여덞 명이 이
른바 '이업종 감독異業種監督)'이었다.이들은 조감독 출신도  아니고 영화 학교출신도 아닌, 
영화계에 갑자기 입 문한 감독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만화가, 작사가, 가사, 배우, 탤런트 등 
매우 다양하다. 이업종 감 독은 감독의 지명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자본과 일정 수의 관객
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 에 1990년대 들어  일부 기ㄹ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일부에
서는 영화관에 가지 않는 관객을 끌어  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영화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여론도 높 다. 이와  같은 이업종 감독의 출현은 뚜렷한 
직업의식이 없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이업종 감독으로 성공한 예는 이미 잘 알려진 이타미 주조를 비롯해서 새럽게 등장한 코
미디언 출신의 기타노 다케시와 배우 출신의 다케나카 나오토를 들 수 있다. 무능한 만화가
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으로 감싸는 가족의 모습을 전통적인 오즈 양식으로 재현한 
<무능한 사 람>(1991)의 다케나카 나오토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 받
아 1990년대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  갈 주요 감독으로 부상했다. 그는  한 마을의 소방수의 
삶과 사랑을 여전히 오즈 적인 감성으로 표현한 <119>(1994)를 연이어 발표해서 명성을 유
지하고 있다. 그는 최근 <춤을 출까요?>에 독특한 춤을 추는 댄서로 출연해서 배우로도 주
가를 올리고 있다.



<낙관론-1990년대 '슈퍼 웨이브"의 등장>

...산업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영화계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는 분명히 
있다. 우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일본 영화 베스트10에는 1950년대 
원로 감독 에서부터 1990년대 신세대 감독까지의 작품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
존 현사이야말로 일본 영화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전통적인 
기술이 도제 시스템을 통해 전수되지 못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오즈의  전통이 
1990년대 신인의 영화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노장과 신인의 공존의 힘이
다. 
... 그러나 1990년대를 낙관하는 가장 큰 이유는 1990년개 새로운 뉴 웨이브를 일으키며 제2
의 전 성기를 예김케하는 신인 감독들의 활약이다. 이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영화제 등에
서 인정 받 으며 일본 영화가 해외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줌으로써  침체 
위기에 놓여 있는 일본 영화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鐵男>(1989)이 로마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쥔 것을 비롯하여 
다케 나카 나오토의 <무능한 사람>,  이와이 순지의 <러브 레터>(1995)등도 베니스,  낭트, 
몬트리올 영 화제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러브레터>가 홍콩에 수출되어 50만 
달러 이상을 벌어 들인 것을 비롯해서 1990년  이후 일본 영화의 해외 진출이 조금씩 늘고 
있다. 1994년의 통계를 보면 약2,4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중에서 
에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율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일본 극영화가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
는 것은 틀림없다.
...이처럼 1990년대 일본 영화를 부활시키고  있는 이들은 '뉴'뉴웨이브 또는 1990년대  슈퍼 
뉴 웨 이브라고 불리면서 침체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놓고  있다. 주요 영화 잡지가 "일본 
영화 왜 안 되는가?", 일본 영화의 미래는 없는가?" 등을 특집으로 다루면서도 일본 영화계
에 희망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일
본 영화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은  영화
에 대한 희망을 계속 불어넣 어 주는 이들 신세대 감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력 이미지/기타노 다케시, 사카모도 준치>

...스토리 라인을 해체하고 기존 스튜디오 영화의 전형을 깨뜨리며 새로운 폭력 미학을 창조
한 두 명의 감독이 있는데, 기타노 다케시와 사카모토 준치가 바로 그들이다.
... <그 남자, 흉폭하다>(1989)로 데뷔한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전편을 통해  그 어느 폭력 
영화 감 독보다 폭력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폭력의 격렬함보다는 폭력의 돌발성과  집요
함을 강조한다. 동기 부여와 등장 인물의 심리를 철저히  배제하면서 관객의 예싱을 뒤엎는 
영화의 리듬은 폭력 영화라기보다는 영화 자체를 폭력 이미지로  만든다. 그의 영화는 대사
나 스토리 라인 등 일반적 으로 파괴하며, 대화에 의존하지  않고 화면의 리듬과 인물의 액
션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 남자, 흉폭하다>는 한 무리의 소년들이 거지 할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
한다. 이어 소년들을 추궁하러 온 주인공 아가츠마 형사는 그들이 자백할 때 까지 폭행한다. 
이후 형사 가 마약 조직의 똘마니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것으로 영화는 끝
난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폭력이 계속된다. 마치 주인공은 폭력밖에는 자신을  표현
할 수 없는 인물로 제 시된 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집요한  폭력의 리듬 속에 갑자기 침묵을 
끼워 넣음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소나티네>(1993)의 스모 연습 장면과  무표
정하게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격렬한 폭력 장면 없이도 영화를 폭
력적으로 만드는 멋진 화면이다. 폭력 을 죽음으로 다루었던 기타노 다케시는 최근작 <키즈 
리턴>(1996)에서는 반대로 폭력을 삶을 위 한 수단으로서  그린다. 학교에서나 집에서 아무
런 희망없이 살아가는 두 문제아는 약육강식의 사 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것
은 오직 폭력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각각 권투 선 수와 야쿠자의 길을 선택하는 두 소
년의 삶을 냉정하면서도 애정어린 카메라로 담아 낸 이 영화 는 기타노 다케시 매니아의 성
원을 받았다. 
... 전통적으로 일본 영화에서 하나의 장르를 차지하던 사무라이  영화와 야쿠자 영화 등 고
전적 폭 력 영화는 도에이의  야쿠자 영화로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 
감각의 새로운 폭력 장르를 만들어 낸 또 한명의 감독은  바로 사카모토 준치이다. 그의 영
화는 기존의 폭력 영 화와는 달리 합법적인 폭력의 세계와 심리적인 승부의 세계를 화면에 
담아 낸다. 데뷔작인 <때려 줄까?>(1989)에서 그는 일반적인 권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상
대방과의 싸움보다 주로 자신과의 내면 승부의 세계를 화면에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상대
방을 향해 마지막 KO펀치를 날리는 주 인공의  뒷모습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끝을 맺는 
마지막 장면은 환호성으로 가득찬 열광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국수王手>(1991)에서
는 내면의 심리 묘사가 더욱 더 가시화된다. 그는 장기를 두는 선수의 모습, 말을  움직이는 
손가락의 모습, 그 순간의 살기어린 얼굴 표정과 눈매를 통해  철저히 감춘 두뇌 속의 싸움
을 절묘하게 화면에 담아 냈다. 
...199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인 이미지 중심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감독으로 
츠카모토 신야와 이와이 순지가 있다. 두 사람은 모두  TV나 CF등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
해 새로운 영상 감각을 익힌 신세대 감독이지만 그들이 표현해 내는 화면은 매우 다르다.
... 어린 시절에 즐겨 보던 흑백 괴물 영화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츠카모토 신야는 일본 영
화 사상 가장 컬트적인 광기가 엿보이는 화면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9년에 제
작비 1,300만 엔의 저예산으로 만든  데뷔작 <철남>은 16밀리 화면속에  코마 촬영을 통해 
금속성 가득한 새로 운 이미지를 담아 낸 수작이다. 어느  날 감자기 자신의 몸속에 철괴물
을 갖게 된 회사원이 내부 속의 괴물과 싸워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육체와  정신간
의 갈등, 존재에 대한 불안, 공포 를 이미지화하여 보여준다. 이와 같은 주제는 그의 영화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히루코/요 괴  헌터>(1991)와 <철남2>(1992)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신체의 각 부분이 정상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
하면 조절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도쿄주먹>(1996)에서는 육체와 
정신간의 갈 등을 권투라는 폭력을 통해 시각화했다. ...츠카모토 신야와는 반대로 이와이 ㅅ
지는 여성과 같은 섬세한 이미지를 화면에 담아 낸 TV드라 마<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
서 볼까?>(1993)와 <프라이드 드래곤 피쉬Fried Dragon  Fish)가 방영되었을 때 "영화같은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빈대로 첫  장편 영화  <러브레터>(1995)가 공개되었을  때에는 
"TV드라마 같은 영화"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그는 지금까지 TV와 영화가 갖 고 있던 이미
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미지 창조에 성공했다. 같은 이름의 남녀, 같은 모습의 두 여자, 
죽은 남자와 산 여자, 이들 세 사람이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를 편지를 매개로 이끌어 간 새
로운 멜로드라마 <러브레터>, 한 소녀를 사랑하는 두 소년의 하루를 각각의 입장에서 다르
게 추적한, 실제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이질적인 
초일상의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운도UNDO>(1994)등 그
의 작품은 꿈과 현실, 내면 세계와 현실의 대조를 통해  현실이 진정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
다. 가공의 도시 엔타운 을  무대로 치솟는 엔화를 찾아 그곳으로  모여드는 다양한 다국적 
사람들의 무법 천지를 그린 최 신작 <스왈로테일>(1996)은 홍콩 영화, 마약, 위조  지폐, 폭
력이 난무한 현재의 도쿄에 대한 비판 적 다큐멘타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기존의 고전 일본 영화 형식과 틀을 거부한 이미지 중심의 영화는 일본 국
내에 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 일부 매니아들의  열광적인 성원이 있기는 하
지만 대부분 대중적인 인기와 흥행에서 실패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의 평가는 다르다.  실제
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소나티네>는 BBC가 뽑은 
세계 100대 영화로 선정 되기도 했다. 츠카모토 신야와  이와이 순지의 작품도 로마 영화제
나 몬트리올 영화제 등에서 좋 은 평가를 받으면서 일본 영화의 해외진츨에 기여하고 있다.



<오즈 전통의 부활/수오 마사유키>

...일본 영화의 인기가 날로 떨어져 가는 오늘날의 일본 영화계에서 흥행성을 보장받는 인기 
감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감독이 수오 마사유키이다.  그
는 불교 코미 디 영화인 <팬시댄스>(1989). 씨름 영화인 <으랏샤>, 사교 댄스  영화인 <춤
을 출가요?>에 이르 기 까지 독특한 소재로 새로운 관객을  창출하며 현재 일본 영화계 최
고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 다. 
...그의 영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단순히  독특한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1950년대 에 오히려 195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전통적인 오즈적 연출  방식에 
있다. 감독 자신 의 고백처럼 그는 오즈를 기본으로 영화의 모든 쇼트를 구성한다. 수오  마
사유키의 영화 속에서 발견되는 이미 지나간 1950년대 영화전통을 새삼스럽게 주목하는  이
유는 그 속에 그의 영화의 대 중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1950년대 영화 전성기 시
대의 전통이 현대에 계승되어 관객 에게 남아 있는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오즈적 화면 구성과 리듬이 넘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데뷔작인 
<변 태 가족/형의 색시>(1984)에는 오즈의 영화<만추>에 나왔던  대사가 그대로 등장한다. 
오즈의 영 화 속에서 다도의 의식을 그대로 배웠던 것처럼 우리는 <으랏샤>와 <춤을 출까
요?>를 통해 영 화를 보는 동안 씨름과 사교 댄스를 기본부터 차례로 배운다. 일상의  세세
한 부분이 지리할 정도 로 자세히 설명되었던 오즈의 영화처럼 <춤을 출까요?>에는 자전거
를 타고 회사를 오가는 주인 공의 일상이 반복적으로 자세히 묘사된다.
... 현대 영화 속에 나타나는 오즈의 전통이 대중에게 어필함을 증명하는 또 한 사람의 감독
이 다 케나카 나오토다. 그는  강가에서 돌을 파는 무능한 만화가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족 드라 마 <무능한 사람>(1991), 사건 같은 사건이라고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조그
만 마을의  소방서를 중심으로   그들의 일상 생활을   그린 <119>에서 오즈를   계승했다. 
<119>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 인데, 오즈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과 빈 공간의 절묘
한 조화는 영화에 큰 여운을 남긴다. 



<중견 감독의 활약>

...오즈의 전통이 현대에 계승되고 있는 이유를 1950년때  영화에 대한 노스텔지어의 반영이
라고 본 다면 메이져 스튜디오 시스템 붕괴 후 해체된  장르를 계승하고 있는 야마다 요지, 
오바야시 노부 히코 등 중견 감독의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야마다 요지는 대표작인 <남자는 괴로워>외에도 주로 서민의 애환과  가족 이야기
를 다루면서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로 대표되는 쇼치쿠 서민극의 계보를  현재까지 
이어오는 감독이 다. 1991년에 만든 <아들>은 홀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를 통해 자식애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쇼 치쿠 식 서민극 장르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해 키네마 준보 
베스트 2위에 뽑히면서 다양 한 영화의 출현 속에서도 꿋꿋이 명맥을 이어오는 스튜디오 시
스템 영화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 다. 
... 야마다 요지와 마찬가지로 오바야시 노부히코도 특수효과를 가미한 청춘영화로 관객으로
부터 꾸준한 호응을 받는 중견 감독이다. 그는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가 서로 신체가 바뀌면
서 겪는 소 동을 그린 <전교생轉校生>(1982)을 시작으로 죽은  언니와 동생과의 사랑 이야
기인 <두사 람>(1991), 록 음악을  통해 젊은이의 청춘을 그린 로드  무비 <청춘 쿵짝쿵짝
>(1992)에 이르기까 지 청춘 영화 장르를 이어가며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다양한  영
상을 보여주는 신세대 감독의 활약 속에서 옛 스튜디오 시스템의 장점을 고수하며 자 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고 있는 중견 감독의 존재는 1990년대 일본 영화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 
한 흐름이다.



<일본 영화는 있다/신구 전통이 공존하는 일본 영화>

...도쿄의 중심가 중의 하나인 긴자 거리에는 최신식 건물이 즐비하다. 이 현대식 건물  사이
로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연중 내내 가부키를 공연하는 가부키좌다.  전통 
가부키 극이 공 연되는 이 극장 안에는 자신의 유일한 오락 거리를 즐기러 온 노인  외에도 
꽤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 최첨단  기술의 도시 도쿄 중심가에서 이처럼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모 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영화계에는 최첨단 영상 세대인 슈퍼 뉴웨이브 감독과 메이
저 스튜디오 시스템이 배출한 거장이 공존한다. 한 쪽에서  츠카모토 신야가 16밀리로 특수
효과를 실 험하는 신감각의 영화를 만들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구로시
와 아끼라나 신 토 가네토, <우나기>로 1997년 칸  그랑프리를 두 번째로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와 같은 거장이 대작을 선보이며  아직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한쪽에서 스튜디오 
시스템의 장점을 되살리는 중  견 감독이 여전히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1980년대부터 등장한 새로운 감독들이 다양한 이미지 실험을 통해 영화의 질을 한층 더 높
이고 있다. 이와이 순지와 같은 신인이 새로 운 감각의  이미지 창출에 노력하는 동안 수오 
마사유키처럼 전통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보려는 또 다른 신인이 공존한다.
... 메이저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일본 영화의 전통이 없어졌고  그 결과 일본 영화가 없어졌
다고 우 려한다. 정말 옛날의 일본 영화는 없어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는 당대
의 일본 영화 가 분명히 있다. 전통과 현대 감각의 조화야말로, 기존 감독과 새로운  영화세
대의 공존 이야말로 1970년대 이래 계속된 일본 영화 침체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일본 
영화가 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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