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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by Casey,Riley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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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개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제 1 부
       개 미


  나의 부모님께, 그리고
  이책을 짓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이들, 벗들, 연구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차 례 ---

  제1장  일깨우는자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제3장  세 편의 오디세이아
  제4장  미로의 끝
       ---------------



  당신이 다음 네 줄의 글을 읽은 몇 초 동안.
  -40명의 사람과 7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 태어나고 있다.
  -30명의 사람과 5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람: 포유 동물로서  크기는 1미터에서 2미터 사이로  다양함. 몸
무게는 30킬로그램에서  100킬로그램 사이. 암컷의 임신  기간은 9개
월.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50억 이상으로 추산됨.
  개미: 곤충으로서  크기는 0.01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로  다양함.
몸무게는 1밀리그램에서 150밀리그램 사이.  산란은 정자의 저장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수십억의 십억 배
이상으로 추산됨.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작가의 말

  인간이 별들을 정복하러 나서는 이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인 지구를 더욱 잘 알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구에는 우
리가 밝혀내야 할 신비가 아직도 무척이나 많기 때문입니다.
  지구 밖의 생명을  찾아서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
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간편한 여행을 해봅시다.  무릎을 구부리고 30
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로 몸을 숙인 다음  땅바닥을 들여다봅시다. 그
러면 우리는  공상 과학 소설에  나오는 어떤 장면에도 손색이  없는
광경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흙먼지, 풀,  자그마한 동물들, 이끼,
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색다른 세계의  정취를 자아내는 장식
들로 가득찬 하나의 모형 정글과도 같습니다.  로케트는 외계인을 찾
으러 가지만,  우리는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도 지중 동물과  만나게
됩니다.
  그 지중 동물  중에서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강력한  것은 틀림없이
개미입니다. 아마존 강  유역의 삼림에서는 개미가 생물  총량의 10%
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
있는 식물들과 동물들을 하나의 남비 속에  넣고 뒤섞는다면 그 남비
에 담긴 내용물의 1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개미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동물입니다.  어디를 가든, 어디를 살
펴보든 우리는 개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많은  개미들이 지구의 표
면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개미들은 적도 사막의 열기에도  북 유
럽 스텝 지역의 혹독한 추위에도 적응할 줄 알았습니다.
  개미는 어디에서나  수가 많고 강력합니다. 개미는  자기들을 잡아
먹는 어떤 동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살충제에도 적응합니다.
개미는 모든 생태 구역에 쳐들어가서 그  곳을 정비하고 그곳을 지배
합니다.
  인간이 지구에 살게 된 지는 3백만  년에 불과하지만, 개미가 지구
에 살 게 된  지는 1억 년이 넘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  9천 7백
만 년 동안 이  곤충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명, 즉 9천  7백만 년의
경험을 축적한 문명을 건설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개미에 비하면 우리는 경험이 없는  아기에 불과합니다. 아
기들처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장난감들을  깨뜨립니다. 하
지만 1억  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개미들이
한 것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개미의 문명이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개미
문명의 초기, 그러니까  1억 년 전에는 개미들에게  경쟁자가 있었습
니다. 흰개미가  그들입니다. 그러나  그 경쟁자는 개미를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했을 뿐입니다. 흰개미들과 싸우면서  개미들은 전쟁과
기술을 배웠습니다. 흰개미들을 앞지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개미들
은 무기와 도구들을 발명해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최근 들어서야  사용하게 된 첨단 기술을  개미들은 그때부
터 향유하게 된 것입니다. 개미는 자기들의  애벌레를 활용해서 얇은
천을 만들  줄 알고, 일개미들을  활용해서 먹이를 공급할 줄  알며,
일개미들을 살아 있는 냉장고로 변형시킬 줄도  압니다. 또한 진딧물
을 사육하여 분비꿀을 짜  낼 줄 알고, 술과 곡물 가루와  버섯을 만
들어낼 줄도 압니다.
  개미의 힘은 그들의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다양성이란, 형태의 다
양성, 기술의  다양성, 지적인 능력의 다양성을  말합니다. 현미경으
로 보아야 보일  만큼 아주 작은 개미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을 만큼 커다란  것도 있습니다. 전쟁만을 하는 개미가  있는가 하
면 채식 활동만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몇 개의 마을, 심지어  몇 개
의 도시가 연합하여 몇 헥타르에 걸친  연방을 이루어 사는 개미들이
있는가 하면, 여덟에서  열 마리가 작은 씨족을 이루어  사는 개미들
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인간은 개미를 관찰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3천여 년 전에  솔로몬 왕은 <개미를 따라 가거라.  개미가 그대에게
지혜의 길을 보여주리라>고 말했습니다. 동부  아프리카에 사는 도공
사람들은 <애를  못 낳는 여자가 개미집  위에 앉으면 애를  낳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친숙한 라퐁텐
은 개미에게 쩨쩨하고 인색한 동물이라는  인상을 부여함으로써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라퐁텐은 매미와  개미의 우화에서 이
렇게 썼습니다. <개미는 빌려줄 줄 모른다네.  그에게 결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라네.>
  하지만 그 곤충을 알기 위해서 그런  신랄한 말들을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개미들을 관
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작은  나뭇가지를 가지고 장난을 쳐
서 개미 마을의  구멍을 넓혀본 적이 있고 그들의 도시를  갈라서 그
들의 군대를 짓밟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들의 병정개미들  중의 한 마리가 우리에게  기어 올라와서
마치 가지 얹는  마무로 가득찬 행성에라도 온 것처럼,  우리의 손이
팔의 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관찰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개 개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몇 시간  동안 정원에 머물며 개미를 바라보던  아이는 마
침내 낙담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개미들을 학살하기에 이릅니다.
  고드디오스의 매듭을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라버렸듯이  사람들
은 매듭을 도통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잘라보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법입니다. 개미를 죽이는 것은  사람들이 개미들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미
를 죽이는 것이  아이에게는 소인국 난쟁이들에 대한  자신의 전능함
을 처음으로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 역시  개미들을 죽였고,  개미들을 밟았으며, 개미들의  통로에
레몬 시럽을 탄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개미집을 유린하는 것으로
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냥>이라는  개미를 연구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떠났습니
다. 거기에서는  마냥 개미가 사람을  죽이기도 했기 때문에  인간과
개미와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었습니다 육식성  개미들의 행렬 앞에서
인간들이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1억 마리에 가까운 성난 병정개미들이 면도말처럼  날이 선 턱으로
무장하고 검은 띠를 이루며 몰려옵니다. 아무것도  그 개미들에게 대
항하지 못합니다.  개미떼는 흡사 분출하는 용암처럼  시커먼 물줄기
가 됩니다. 그 물줄기 앞에서 울부짖거나  도망치려고 바둥거리는 온
갖 작은 동물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멀리서도  분명하게 들립니다. 사람
들이 도망을  치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포기합니다.  마냥
개미떼의 모습은  <<묵시록>>의 광경을 방불케 합니다.  그것은 개미
들의 힘이 가장  사납게 표현된 모습입니다. 나는 여왕  개미의 사진
을 찍으려고 했다가  하마터면 그 곤충들에게 산 채로 먹힐  뻔 했습
니다. 다행히도 그  녀석들에게 나를 알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던 모
양입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주 작은 형제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을 한 편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책이나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숲속의 불개미, 즉  가장 영리하고
가장 잘 조직된 유럽 종의 개미들이  주인공이 되는 서스펜스가 있는
소설을 말입니다.
  내가 생각한 책은 하나의 모험소설이기도  하고 '반지의 주인'처럼
신비스런 지식을  가르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는 숲속의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며, 여러분이  '개미'의 주인공들을
만나시려면 여러분의 찬장을 열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개미와 사람들에 관한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나에게  12년이나 걸
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배경과 줄거리와  괴물과 전사들
을 정확하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4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 여러분  자신이 개미라는 인
상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생식 능력이 있는 젊은 병정개미  327호와 사귀어야 합니
다. 그는 자기 나라 안에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고 난
쟁이개미들에게 매수된 용병들이 잠입했을 거라는  의심을 갖게 됩니
다. 병정개미 103683호가 그를 도와 벨로캉의  캄캄한 통로로 탐색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어머니인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는  자신의
더듬이로 밝혀주는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 '개미'에  있는 모든 것은 실제와 비슷하게 구상 된 것입니
다. 어떤 것도 과장해서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아
주 환상적이어서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이야기하기만  하면 됩니다.
실제로 개미들은  대규모의 전쟁을  수행합니다. 개미들의  세계에는
정말로 전차, 일광욕실, 노예, 나라들의 연방,  수문장, 온도가 조절
되는 영아실, 마약  공급자, 진딧물 사육실, 알콜 주조실  등이 있습
니다.
  소설 '개미'는 여러분이 잠시 인간 관점을  떠나서 소설을 읽는 동
안 개미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기>가 이 책의  중심 사상입니다. '개미'가 출판되고  나서 많
은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다시는 개미들을 죽일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멋진 일입니다. 그것은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그 사람들이  천 배나 더 작은 존재, 즉  그들의 부모들이
<더럽다>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고 좋게 봐  준다고 해야 <흥미
없다.>정도가 고작이었던 존재들과 감정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
을 의미합니다.
  개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영원히  우리와 나란히 걸
어갈 것이고, 우리의 뜨락 안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고 있는 이 동
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장차 외계의 생물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습관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관점을 넓히는 것입니다. 개미만큼 작고  하찮은 것들을 이해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럼으
로써 우리 사람들끼리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1992년 5월 7일




     제 1 부
      개미

      제1장  일깨우는 자


  "아시게 되겠지만 그건 당신이 기대하는 것이 전혀 아닐게요."
  공증인은 그  가옥이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 늙은 현인들이 거기에 살았으며 그  현인들의 이름은 이제 생
각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어둠침침한  복도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더듬거리다가 누름단추  하나를 헛되이 눌러보
고는 투덜거렸다.
  "이런 제기! 이거 고장났구만."
  그들은 요란하게  벽을 더듬으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공증인
은 마침내  문을 찾아내어 열더니,  이번에는 전기 스위치를  제대로
누르고나서, 자기 고객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어디 편찮으시오, 웰즈 씨?"
  "일종의 공포증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벌써 한결 나아졌어요."
  그들은 집을 둘러보았다. 66평쯤 되는  지하층이었다. 밖으로 트인
곳이라고는 천장에 닿을락말락하게 나 있는 몇  안 되는 좁은 채광창
이 고작이었지만, 조나탕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벽들은 모두 똑
같은 회색으로  도배를 해놓았고  어디에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조나탕이 이러쿵저러쿵 까탈을 부릴 형편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것의  5분의 1쯤 될  터였다. 게다가
이제는 그 집의  집세를 낼 방도조차 막막하였다. 그가  일하던 자물
쇠 용역회사에서 최근에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의 이  유산은 정말이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거
나 다름없었다.

  이틀 후,  조나탕은 아내 뤼시와 아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푸들 종의 불깐 개를 데리고  시바리트가 3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 회색 벽돌 말이예요, 이거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치장할 수가 있잖아요. 여기에 있는  거 다 손을 보아야
되겠어요. 감옥을 호텔로 바꾸는 일이나 진배없어요."
  숱이 많은 살구빛  머리채를 들어올리면서 뤼시가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 방은 어디 있어요?"
  니콜라가 물었다.
  "저 안쪽 오른편에 있는 방이란다."
  "왕왕."
  개도 질세라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러고는 뤼시의  장딴지를 잘근
거리기 시작했다. 뤼시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이 예전에  혼수로 장만
해 온 그릇들이라는  사실을 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탓에 개는
느닷없이 화장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개의  주인은 화장실 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개가
문의 손잡이까지 뛰어올라 손잡이를 돌릴 수  있을 만큼 영악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삼촌이 시원스럽게 인심을 쓰셨군요. 그분 잘 알아요?"
  뤼시가 말을 이었다.
  "에드몽 삼촌? 사실은  말이야.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
주 어렸을 때  그 양반이 나를 거꾸로 들고 비행기태우기를  곧잘 하
셨다는 것뿐이야.  한번은 그게 너무나  무서웠던 나머지 위에서  그
양반한테 오줌을 싸버렸지."
  그 말 끝에 그들은 웃음을 나누었다.
  "겁많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안 그래요?"
  조나탕은 짐짓 못 들은 체하고 말을 이었다.
  "그분은 나를 탓하지는 않고 우리 어머니에게  대뜸. '이런, 이 녀
석 싹수를 보아하니 비행사 만들기는  글렀군....' 하시는 거야. 어머
니 말로는, 그 후로도 그분은 줄곧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
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오셨다는데, 정작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분을
뵌 적이 없어."
  "뭐 하는 분이었어요?"
  "학자였지. 생물학자였다든가."
  조나탕은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벨로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높
이 1미터,  지하에 50층, 지상에  50층이 있어, 그 일대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거주자들의 수는 1,800만으로 추산된다.  연간 생산량
은 다음과  같다: 진딧물 분비꿀  50리터, 연지벌레 분비꿀  10리터,
느타리버섯 4킬로그램, 방출되는 돌 조각 1톤,  실용 통로 120킬로미
터, 지표 면적 2평방미터.

  한 줄기  빛이 비쳐들었다. 다리 하나가  막 움직였다. 석  달 전,
겨울 잠에 들어간 이후 가장 먼저 보인  몸짓이다. 다른 다리 하나가
천천히 뻗어 나온다. 다리 끝에 달린 두  개의 발톱이 시나브로 틈새
를 벌린다. 세 번째 다리가 펴진다.  다음에 가슴이 펴지더니 하나의
생명이 몸을 추스른다. 그렇게 열 두 마리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무색 무명한 피가 동맥망 속을  원활히 순환하게 하려고 바
르를 몸을 떨었다. 동맥 속은 반죽 같은  상태에서 리쾨르 같은 상태
가 되더니 다시  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심장이  조금씩조금씩 발
딱거리기 시작한다. 심장의 따뜻한 기운이  되돌아온다. 고도로 복잡
한 관절들이 회전을 한다. 보호판에 싸인 둥근  돌기 모양의 다리 관
절들은 재 깜냥대로 한껏 회전 운동을 해본다.
  개미들이 일어난다. 그들의  몸이 다시 숨을 쉰다.  그들의 동작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낱낱으로 나뉘어 있다.  느릿느릿 추는 춤사
위 같다. 살며시  몸을 흔들고 바르르 몸을 떤다. 마치  기도를 하려
는 것처럼 앞다리를  입 앞으로 모은다. 그러나 기도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발톱을 적셔서 그것으로 더듬이를 닦으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이  서로서로 몸을 비벼  준다.
그러고는 옆의 동료들을 깨워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제 몸
을 추스를 힘만 겨우 남아 있을 뿐,  동료들에게 나누어 줄 에너지는
없다. 그들은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고 깨우기를 포기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조상처럼 몸이 굳어버린  동료들의 한가운데
를 힘겹게  빠져나와 거대한 '바깥  세상'으로 향한다. 아직  싸늘한
피가 도는 그들 몸의 기관은 태양으로부터 열을 흡수해야만 한다.

  기진 맥진한 개미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한걸음한걸음이 힘겹기만
하다. 도로  누워서 수백만의 자기  동료들처럼 평안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그러나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들은 가장 먼저 깨
어난 개미들이다. 이제  온 도시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의
무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을 통과한다. 햇빛이 눈부셔  아무것도 볼 수
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에너지가 몸에 와닿자 그들은  기력을 되찾는다.
  '햇살이 우리의 텅 빈 몸 안으로 들어와  고통에 겨운 우리의 근육
을 움직이고 갈라진 우리의 생각을 맺어주도다.'
  이 노래는 불개미 왕국 오천 년째에  만들어진 오래된 여명악이다.
그 시대에 벌써  불개미들은 따사로운 햇살과 접촉하는  순간에 머릿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개미들은 절도있게 몸단장을 하기  시작한다. 하얀
침을 분비해서  그것을 턱과 다리에  바른다. 그러고는 솔질을  하듯
몸을 닦는다. 이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내려온 의식
이다. 먼저 눈을 닦는다. 하나하나의 낱눈을  이루는 1,300개의 둥근
창들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촉촉하게 적셨다가 습기를  말린다. 더듬
이와 앞다리, 가운뎃다리, 뒷다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깨끗하게 매만
진다. 끝으로 붉은 갈색을 띤 아름다운  등판을 불똥처럼 반짝이도록 윤을 낸다.

  먼저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 중에는 생식 능력을 가진  한 마
리의 수개미도 들어  있다. 그는 벨로캉의 보통 개미들보다  조금 더
작다. 위턱도 다른 개미들보다 좁다. 그리고  앞으로 몇 개월만 있으
면 죽어야 하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그러나  수개미는 역시 다른 개
미들이 알지 못하는 유리한 신체 구조를 타고난다.
  수개미 계급의 첫번째 특권은, 생식 능력을  가진 중요한 개미답게
눈이 다섯 개라는 점이다. 작은 공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커다란
겹눈으로는 180도까지 넓게  볼 수 있다. 또 이마에는 세  개의 홑눈
이 삼각형의 꼭지점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여분의 눈은 적외선 감지
기나 다름없는 것으로서, 어디에선가 열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무엇
이든 간에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라도  먼 거리에서 그것을 탐지해 낼 수가 있
다.
  십만 번째의 천 년을 맞이한 대규모  개미 도시의 거주자들 대부분
이 지하 생활  탓에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수개미의 그러한 특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수개미에게 그러한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개미는(암컷들이
그러하듯) 날개가 있어서  교미를 하는 데 필요한 하루  동안의 비행
을 할 수가 있다. 그의 가슴은,  가운뎃가슴 등판이라고 불리는 방패
모양의 특수한 판으로  감싸여 있다. 또 수개미의 더듬이는  다른 개
미들의 더듬이에 비해 더 길고 더 예민하다.
  생식 개미인 그 젊은 수개미는 햇살을  실컷 즐기면서 도시의 둥근
덮개 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고는 충분히  몸이 덥혀지자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일시적으로 전열개미  계급의 일원이 되
어 태양에너지를 옮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하 3층의  통로를 돌아다닌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아직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얼어붙은 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더
듬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젊은 수컷은  자기 몸의 윤기로  잠을 깨우려고 일개미 한  마리를
향해 다리를 내민다.  다사로운 기운이 일개미의 몸에 닿자  기분 좋
은 방전이 일어난다.

  초인종이 두 번 울리고 새앙쥐 걸음처럼  사뿐한 발소리가 들렸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문에  달린 사슬을 벗기느라고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문을 열었다.
  자식 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뒤로 할머니는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아홉 평  남짓한 이 작은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그런
삶이 행복할 리가  없을텐데도 할머니의 상냥한 성품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는 게 우스광스럽다는  건 안다만 끌신을 신는게  좋겠다. 마룻바닥에 밀랍
을 칠했거든."
  조나탕은 할머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서 걸으며, 그를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실의  많은 가구들에는
덮개를 씌워놓았다.  등받이가 있는 커다랗고 긴  의자의 가장자리에
앉으면서 조나탕은  그 플라스틱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네가 와줘서 정말 기쁘다. 내 말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
지 않아도 근간에 너를 한번 부르려고 했지."
  "아 그러셨어요?"
  "에드몽이 말이다. 너  주라고 하면서 나한테 맡긴 게  있단다. 편
지 한  통인데, 그 애 말이,  자기가 죽거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편지를 조나탕 너한테 꼭 전해 주라는 거였어."
  "편지를요?"
  "그래, 편지를.... 가만  있자, 내가 그 편지를  어디다 두었더라.
생각이 안 나네.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 좀 해보구.... 그  애가 나
한테 편지를  주고, 내가 잘  보관하겠다고 말을 했지. 그런  다음에
내가 그 편지를 어떤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그 상자가 어떤 거였더
라.... 아, 틀림없이 큰 벽장 양철 상자 중의 하나일 게야."
  할머니는 끌신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  발짝을 미끄러져 가서 멈추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구나! 마편초 차 좀 마시련?"
  "좋지요."
  할머니는 부엌 안으로 들어가서 그릇들을 이리저리 옮겼다.
  "조나탕!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좀 해다오."
  할머니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음.... 썩 좋은 편은 아니예요. 직장에서 쫓겨났어요."
  할머니는 하얀  새앙쥐가 머리만  살짝 내밀고 살펴보듯이  문께에
잠시 머리만  내보이더니, 이내 기다랗고  파란 앞치마를 두른  모습
에,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전신을 다시 드러냈다.
  "회사에서 너를 내쫓았단 말이냐?"
  "예."
  "뭣 땜에?"
  "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자물쇠 용역 회사라는  데가 특이한 데잖아
요. '자물쇠 SOS'라는 우리 회사는 파리  시내 어디드지 하루 24시간
아무 때고 부르면 달려가지요. 그런데, 제  동료 하나가 습격을 당한
뒤부터, 밤에 꺼림직한  동네에는 영 가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래
서 안가겠다고 버텼더니 그냥 잘라버리더군요."
  "잘했다. 실업자  안 되자고 몸  상하느니 차라리 실업자 되고  몸
보전하는 게 백번 나은 일이다."
  "게다가 주임하고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런데 그 뭐냐,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던 거는 어떻게
됐니? 내가 젊었을  적에는 그런 것을 누야쥬 공동체라고  부르곤 했었지"
  할머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뉴에이지를 '누아쥬'라
고 발음하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농장  일이 실패하고 나서 다  집어치웠어요. 뤼시
도 이 사람  저 사람 밥 해먹이고 설거지하는 일에  진저리를 내더군
요. 우리들 중에 기생충 같은 자들이  있었어요. 결국 서로 틀어지게
되었지요. 이젠  뤼시와 니콜라하고만 살아요. 그런데,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나? 죽지 못해 사는 거지. 한 순간 한  순간 목숨 이어가는 게 어
느덧 내 일이 됐구나."
  "할머니는 행운을 누리셨어요. 천년이 바뀌는 때를 사셨잖아요."
  "그래? 한데 말이야, 새로운 천년을 맞았는데도  달라진 게 아무것
도 없으니  정말 놀랍지 뭐냐? 옛날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천년이 바뀌고  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하더니만,  네가
알다시피 정작 나아진  게 없지 않니? 늙은이들은 여전히  고독 속에
서 살고, 실업자들이며  매연 내뿜는 자동차들로 여전히  말이야. 사
람들 생각조차 달라진  게 없어. 봐라, 재작년엔 로큰롤,  작년엔 초
현실주의를 재발견했다고  야단들을 떨고, 또 요즈음  신문에선 벌써
부터 올 여름에 복고풍의 짧은 치마가  유행할 거라고 떠들어대고 있
잖니.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면 지난 세기  초의 낡은 사상들도 머지
않아 다시 나오게  될거야. 공산주의라든가 정신 분석,  상대성 원리 따위 말이다."
  조나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몇 가지 달라진 게 있긴  있었어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요, 이혼율,  대기 오염의 수준은 높아지고,  지하철 노선도 연장되었잖아
요."
  "다 쓸데없는 일이지. 난 말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개인용 비행기
를 갖고 발코니에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단다.... 내
가 젊었을  땐 사람들이 핵  전쟁을 두려워했지. 정말이지  엄청나게
무서워했단다. 이제 100살을 눈앞에 두고 보니,  핵탄이 빚어낸 거대
한 버섯구름의 불길 속에서 이 지구와  함께 죽는다면 그래도 그럴싸
할 것  같애. 그렇게 죽는 대신에  나는 이제 썩은  감자처럼 죽어야
할 판이지 뭐냐.  썩은 감자 따위에 누가 신경을 쓰겠냐.  모두들 나
몰라라 하겠지."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 갈수록 더워져. 나 젊을  적에는 이렇
게 덥지 않았어.  겨울은 겨울다웠고 여름은 여름다웠지.  어떻게 된
게 이제는 삼복 더위가 3월부터 시작이야."
  할머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범상치 않은  노련한 솜씨로 진
짜 감칠맛 나는  마편초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방을  빠뜨리지 않
으려고 바삐 움직였다. 성냥 긋는 소리,  옛날식 가스 레인지의 분사
구에서 가스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나서, 할머니는  훨씬 더 느긋해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네가 나를 찾아온  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텐
데. 요즘 세상에 이렇게 늙은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말이지."
  "어째 할머니 말씀이 꼬인 것 같은데요."
  "꼬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다는 거지,  다른 뜻
은 없어. 자, 내숭은 그만 떨고 무슨 일로 왔는지 얘기나 해봐라."
  "'그분'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집을  물려주셨는데
저는 그분을 알고 있지도 못하잖아요."
  "에드몽 말이냐? 에드몽에  대한 기억이 없단 말이지? 너는  잘 생
각이 안 나는 모양이다만,  네가 어렸을 때 그 애는 너를  거꾸로 들
고 비행기를 곧잘 태웠지 한번은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건 저도 생각이 나요. 그런데  그 일
말고는 전혀 아는게 없어요."
  할머니는 의자  덮개가 너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커다란
안락 의자에 앉았다.
  "에드몽은 뭐랄까.  인물이지, 아니  인물이었지. 아주 어렸을  때
벌써 네 삼촌은 많은 골칫거리를 나에게 안겨주곤  했지. 그 애 엄마
노릇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어. 예를 들자면 이런  거지. 장난감이
란 장난감은  분해했다가 재조립한답시고 죄다 박살을  내놓았어. 다
시 조립해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 장난감만  박살을 냈으면 다행이
게! 뭐든지 다 분해를  하는 거야. 시계, 전축, 전기 칫솔 할  것 없
이. 한번은 냉장고까지 분해한 적이 있었지."
  할머니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실에 걸린 고
물 괘종 시계가  을씨년스럽게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저  시계도 어
린 애드몽 때문에 온갖 쓴맛 신맛을 다 보았으리라.
  "게다가 에드몽에겐 이상한  버릇이 또 하나 있었지.  은신처를 만
드는 버릇이었어. 그 애는 다락방에다 이불이며  우산으로 저만의 공
간을 만들기도 했고, 제 방에다 의자와 모피  외투로 만든 적도 있단
다. 그  애는 그렇게 숨을 곳을  만들어 거기에 제가  모은 보물들을
쌓아놓고는 그 안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했지. 그 안을  한번 들여
다보았더니, 방석들이며  그 애가 기계에서 빼낸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있더구나. 어떻게 보면 그곳이 꽤 아늑해 보이기도 했어."
  "어릴 적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삼촌의  경우는 정도가 심했지.  그
애는 더 이상  침대에서 자지를 않았어. 한사코 제가  만든 둥지에서
만 자겠다는 거야. 이따금 며칠 낮을 꼬박  거기에 꼼짝 않고 틀어박
혀 있기도 했어.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말이야. 오죽하면 에
드몽이 전생에 틀림없이 다람쥐였을 거라는 소리를  네 어미가 다 했겠니."
  조나탕은 할머니가 이야기에  신바람을 낼 수 있게  하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루는 에드몽이  거실 탁자 다리  사이에 제 오두막을  지으려고
했지. 그게 꽃병의 물을 넘치게 한  마지막 물방울처럼 되고 말았어.
네 할아버지는 별로  화내는 일이 없는 분인데. 그날은  불같이 화를
내셨단다. 그 양반은 에드몽의 볼기를 때리고  둥지를 모두 부숴버리
더니 에드몽이 침대에서만 자도록 잡도리를 하셨지."
  그 말 끝에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부터 그 애와 우리 사이에 완전히  금이 갔단다. 어미와 자식
을 잇고 있던 탯줄이 끊어진 거나 다름없었어.  우리는 더 이상 에드
몽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지.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
면, 그런 시련을  그 애가 겪었어야 했어. 세상이 언제까지고  제 맘
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야 했던 거지. 그러지  못한 것이
나중에 그 애가  커서도 문제가 되었어. 에드몽은 학교  생활을 견뎌
내지 못했어.  '어릴 적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라고 또  말할는지
모르겠다만, 에드몽의 경우는 정도가 지나쳤지.  선생님한테 심한 꾸
지람을 받은 것 때문에 화장실에서 제  허리띠로 목을 매다는 아이들
이 어디 흔하겠니?  에드몽은 말이다, 일곱 살 때  목을 매달았단다.
청소부가 용케 끌어내렸기에 망정이지."
  "삼촌은 감수성이 너무 예민했던가 봐요...."
  "감수성이 예민했다고? 글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자살 소동이
있고 일 년이 지나서 에드몽은 제 선생님  한 분을 가위로 찌르려 했
지. 심장을 겨누고  찔렀는데, 천만 다행으로 선생님의  궐련갑을 부
수는 것으로 그쳤어."
  할머니는 눈을  들어 천장을 보았다. 흩어졌던  추억들이 눈송이처
럼 할머니의 생각 속에 다시 내려쌓이는 듯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그런 대로  괜찮았어. 용케도 몇몇 선생님들
이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지. 에드몽은 제  마음에 드는
과목에서는 만점을 맞고 나머지 과목에선 모두  영점을 맞았지. 언제
나 영점 아니면 만점이었어."
  "엄마 말로는 에드몽 삼촌이 천재였다던데요."
  "에드몽이 네 어미한테 털어놓기를, 자기는  '절대적인 지식'을 얻
으려 한다고 했지.  그 때문에 에드몽이 네 어미의  마음을 사로잡았
던 거야. 네  어미는 열 살 때부터 전생이라는 것을  믿었는데, 에드
몽을 아인슈타인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환생한 사람으로 생각했지."
  "게다가 다람쥐가 환생한 사람이라고도 했다면서요?"
  "물론이지. 부처님  말씀이 '하나의 넋이 태어나면서  여러 목숨의
넋이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더냐."
  "삼촌은 지능 검사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럼, 그런데 결과가 아주 안 좋았어.  180점 만점에 23점을 맞았
으니까 경우에 해당하는 지능 지수지. 선생들  생각은, 그 애가 바보
라서 전문 교육 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거였지.  그렇지만 나는 그 애
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린 에드몽은 그저 '빗나가
있었던 것'뿐이야.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그 애가  겨우 열한
살이나 되었을까 할  땐데, 나보고 성냥개비 여섯 개만  가지고 정삼
각형 네 개를 만들어보라는 거야. 그게 쉽지  않지. 자 너도 한번 해
보면 알게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슬쩍  눈길을 보내고는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왔다. 조나탕은  잠시 머뭇거렸다. 될 것도  같았
다. 그는  성냥개비 여섯 개를  이리저리 놓아보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해보았지만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답이 뭐예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정작 그 애가 나한테 답을 가르쳐  준 적은 없었던 것 같구
나. 다만 내가 답을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그 애가 해준  말은 기억
이 난다. 그 애가 그랬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돼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어요.'
라고 말이야. 상상해 봐라. 열한 살짜리  어린애 입에서 그런 묘리가
튀어나오다니 말이야.  어이구, 주전자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구나.
물이 뜨거워 졌을거야."
  할머니는 찻잔 두 개에 아주 진한  향기가 나는 노르스름한 액체를
담아 들고왔다.
  "네가 네  삼촌에게 관심을 갖는  걸 보니 정말 기쁘구나.  요즘엔
누가 죽으면 그 사람이 태어난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기 일쑤
인데 말이야."
  조나탕은 성냥개비에서 손을 떼고 마편초 차를  몇 모금 홀홀 마셨다.
  "그 후로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더 이상은 나도  아는 게 없다. 에드몽이 대학에서 자연  과학 공
부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우리도 그 애 소식을  못 들었으니까. 네 어
미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들은 얘기로는, 애드몽이  박사 과정을 훌륭
하게 마치고 어떤 식품 회사에서 일했다는구나.  그러다가 회사 그만
두고 아프리카에  갔다는 게야.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뒤로는 시바리
트 가에 살았다는데 죽을 때까지 아무도  그 동네에서 에드몽에 관한
얘기를 못들었다는구나."
  "삼촌은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저런, 너  모르고 있었니? 얘기  들으면 믿기지 않을 게다.  모든
신문에서 그  얘기를 했지. 글쎄  에드몽이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구나."
  "말벌에요? 어쩌다 그렇게 됐죠?"
  "혼자서 숲속을 거닐다가 부주의로 벌떼를  건드린 모양이야. 말벌
들이 일제히 에드몽에게  달려든 거지. 검시관이란 사람은  '사람 몸
에 이렇게  벌에 쏘인 자국이 많은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주장했
지. 에드몽의 혈액에는 리터당 0.3그램의 독이 들어 있었다는거야."
  "무덤은 있나요?"
  "아니, 에드몽은 숲속에 있는 소나무 밑에 묻히고 싶어했단다."
  "삼촌 사진 가지고 계세요?"
  "저기 봐라, 저기  서랍장 위쪽 벽에 걸린 사진  말이야. 오른쪽이
네 어미, 쥐지다. 저렇게  젊은 네 어미 모습을 본 적이  있니? 왼쪽
이 에드몽이다."
  에드몽은 이마가  벗겨지고 뾰족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귀
는 귓볼이 없고 눈썹 높이 위로 쫑긋  올라온 것이 카프카의 귀를 닮
았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폼이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의 모습이다.
  에드몽은 옆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쉬지의 모습이 화사하다.  그
사진을 찍을 때로부터 몇 년 후에 쥐지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음
에도 쉬지는 결혼  전에 쓰던 웰즈라는 성을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남편의  성을 붙이는 걸 원
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진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자 에드몽 삼촌이 자기  누이의 머
리위로 손가락  두 개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조나탕의 눈에  들어왔다.
  "삼촌은 무척 장난기가 많았던가 봐요, 그렇지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의 화사한  얼굴을 다시 대
하자 애잔한 마음에,  너울을 뒤집어쓴 듯 눈앞이  흐릿해졌다. 쉬지
는 6년 전에  죽었다. 술취한 운전자가 몰고 가던 15톤  화물차가 쉬
지의 자동차를 좁은 골짜기로 밀어버렸던 것이다.  임종의 고통이 이
틀 동안  계속되었다. 쉬지는 에드몽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에드몽은
올 형편이 아니었다.  그때도 그는 무슨 일엔가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다른 사람 알고 계세요?"
  "가만 있자.... 에드몽이  자주 만나던 죽마고우가 하나  있다. 대
학도 같이 다녔지. 이름이 자종 브라젤이라던가.  나한테 그 사람 전
화번호가 아직 있을 게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재빨리 컴퓨터에 입력된  자료를 뒤져보고 나서
자종 브라젤의  주소를 조나탕에게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애정 어린
눈으로 손자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보기에 조나탕은  웰즈 집안의
마지막 생존자이고 착한 어린애였다.
  "어서 차 마셔라. 식겠다. 프티트 마들렌도  있는데 좀 주랴? 메추
리 알을 깨넣고 반죽을 해서 내가 직접 만든 거란다."
  "아뇨, 됐어요. 가봐야 되겠어요. 저희 새  집으로 언제 놀러 오세
요. 세간살이도 다 들여놓았어요."
  "그렇게 하마. 아참, 기다려라. 편지를 가져가야지."
  커다란 벽장에서 쇠로  만든 상자들을 열심히 뒤진  끝에 할머니는
편지 봉투 하나를 찾아냈다. 봉투 겉면에는  힘찬 글씨로 '조나탕 웰
즈에게'라고 씌어 있었다. 봉투 뚜껑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열어보
지 못하도록  접착 테이프를 몇  겹으로 붙여서 단단히 봉해져  있었
다. 조나탕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찢었다. 작은  노트 크기의 접힌 종
이 하나가 나왔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특히 당부하건대, 지하실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가지 말 것!

  따스한 기운을 전해  받은 개미가 더듬이를 가볍게 떤다.  마치 오
랫동안 눈에 덮여  있던 자동차에 다시 시동을 걸 때  자동차가 떠는
모습 같다. 수개미는 같은 몸짓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일개미를 문
지르고 따뜻한 침을 발라준다.
  생명이 되살아난다.  드디어 원동기가 움직이듯 생명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한차례의  겨울이 지나간 것이다.  마치
그런 '가사상태'따위는 겪은 적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수개미는 열  에너지를 전해주려고 일개미를 다시  문지른다. 일개
미는 이제 원기를 회복했다. 수개미가 계속  애쓰고 있을 때, 일개미
는 더듬이를 수개미 쪽으로 뻗는다. 일개미도  더듬이로 수개미를 간
질인다. 일개미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일개미의 더듬이가 수개미의 머리를 벗어나  더듬이의 첫번째 마디
를 어루만지며 그의 나이를 읽는다. 그의 나이는  173일. 앞을 못 보
는 일개미이지만 두  번째 마디에서 그의 계급을 알아낸다.  그의 계
급은 생식  능력이 있는 수컷, 세  번째 마디에서는 그가  속한 종과
도시를 알아낸다. 어미  도시 벨로캉에서 출생한 숲속  불개미. 네번
째 마디에서는  산란 번호를 읽어내는데,  산란 번호가 그의  호칭이
된다. 그는  가을초부터 계산하여 327번째로 산란된  수개미 327호이다.
  일개미는 그쯤에서  후각 정보의 해독을 멈춘다.  다른 마디에서는
후각 정보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마디는 동료들끼리
길 안내를  할 때 방출하는 냄새  분자를 감지하는 데  쓰인다. 여섯
번째 마디는 간단한 대화를 할 때 사용되고,  일곱 번째 마디는 교미
를 할 때와 같은 복잡한 대화에 사용된다.  여덟 번째 마디는 어머니
인 여왕개미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도톰한  끄트머리를 이루는 나
머지 세 마디는 자그마한 곤봉 구실을 한다.
  이상으로 일개미는 수개미  더듬이의 위쪽 반을 이루는  열한 개의
마디를 다 더듬어본  셈이다. 그러나 일개미는 그에게 해줄  말이 아
무것도 없다. 그래서  일개미는 그의 곁을 떠나 이제는  스스로 몸을
덥히려고 도시의 지붕 위로 나간다.
  수개미도 나간다. 열 전달하는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보수 작업을 할 차례다!
  위에 다다르자 327호는  지난 겨울 동안에 생긴 피해  상황을 확인
한다. 벨로캉은 악천후에  따르는 피해를 가장 적게 하기  위하여 원
뿔꼴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겨울엔 여지없이  피해를 당한다. 바람
과 눈과 우박  때문에 잔가지들의 첫번째 켜가 벗겨졌다.  새들이 내
갈긴 똥 때문에  몇 개의 출구가 막혀버렸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327호는 노르께하고  커다란 오물 덩어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
들어서 큰턱으로 그 단단하고 악취나는 것을  치우기 시작한다. 건너
편에서는 벌써 안쪽으로부터  오물을 파내고 있는 다른  개미의 그림
자가 비쳐오고 있다.

  문에 빠끔히 나  있는 렌즈 구멍이 침침해졌다. 그  구멍으로 누군
가가 문 밖을 엿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구뉴라는 사람인데요.... 책 장정하는 일 때문에 왔어요."
  문이 반쯤 열렸다. 구뉴라는 사람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 머
리의 사내아이가  나타나자 눈길을 아래로 떨구다가,  자그마한 개가
나타나자 눈길을  더 낮추었다. 개가  사내아이의 다리 사이에  코를
들이밀고 아르릉대기 시작했다.
  "아빠 안 계셔요!"
  "그러냐? 웰즈 교수께서 우리 가게에 들르시기로 하셨는데...."
  "웰즈 교수는 저희 종조부이신데, 돌아가셨어요."
  니콜라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구뉴라는 사내는 완강하게  발을 들이 밀었다.
  "진심으로 조의를  표해야겠구나. 얘야. 그런데 혹시  그분이 서류
가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서류  묶음 같은 거  남기시지 않으셨니?
내가 책  장정하는 사람이거든. 그분이  나에게 돈을 미리  주시면서
연구 노트들을 가죽  표지로 장정해 달라고 하셨단다. 내  생각에 그
분이 백과사전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우리 가게에
들르시기로 해놓고선 통 소식이 없어서 말이야...."
  "그분은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남자는 무릎으로 문을  밀면서 발을 더 들이 밀었다.  아이를 떼밀
고 당장이라도 들어올 기세였다. 왜소한 개가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동작을 멈추었다.
  "돌아가셨다 해도  약속은 약속이지.  그분이 약속을 안  지키시게
되면 내가  상당히 난처해지는데..., 그렇지 않겠니?  미안한 얘기다
만 확인 좀  해다오. 어딘가에 틀림없이 빨간색으로 된  커다란 서류
철이 있을 게다."
  "백과 사전이라고 그러셨어요?"
  "그래, 그분이  그 서류 묶음  전체에다 손수 이름을  붙이시기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이라고 하셨단다. 그렇지만
표지에 그렇게 적혀 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그레 우리  집에 있다면 우리가  찾아냈어도 벌서 찾아냈을  거예요."
  "자꾸 이래서 미안하다만...."
  왜소한 푸들 종의  개가 다시 짖어댔다. 사내가 조금  뒷걸음을 쳤
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는 남자를 문 밖으로 쫓아냈다.

  이제 온 도시가 잠에서 깨어났다. 열을  전달하는 개미들이 통로를
가득 매운 채  동포들의 몸을 덥히느라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런
데 몇 군데 너른 마당에는 아직도 꼼짝  않고 있는 개미들이 눈에 띈
다. 전열 개미들이 그들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하지만 허
사였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들은 끝내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들은 죽은 것이다.  겨울잠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장 박동을
멈춘채로 3개월을  지내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인데,  그들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대기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동안에 쓰레기터에 버렸다. 죽은  세포를 털어내
듯 아침마다  시체들을 다른 오물과  함께 치워내는 것이 그  도시의
일상적인 일이다.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해 낸 뒤의  혈관처럼, 개미 도시의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다리가 꿈틀거린다.  턱으로 땅을 후비고
더듬이를 흔들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모든 것이  이전의 모습대로 되
돌아 온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겨울이 이전의 모습대로.

  수개미 327호가  자기 몸무게의 60배는  족히 나갈 잔가지  하나를
운반하고 있는데, 500일 이상 된 병정개미  하나가 다가간다. 병정개
미는 그의 주의를 끌려고 더듬이 끄트머리로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
린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든다. 병정개미는  자기 더듬이를 그의 더
듬이와 맞댄다.
  병정개미는 수개미에게  지붕 수리하는  일을 그만두고 한  무리의
개미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자고 권한다.
  수개미가 병정개미의 입과 눈을 더듬으며 묻는다.
  '뭘 사냥하러 나간단 말인가?'
  병정개미는 제  가슴마디의 주름  속에 갈무리해 둔  말라비틀어진
고깃조각의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이 고기는 겨울이  되기 바로 전에 찾아낸 건데, 이게  있던 장소
는 정오의 태양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으로  23도 되는 지역이었던 것
같다.'
  수개미가 고기 맛을  본다. 딱정벌레의 고기가 틀림없다.  더 정확
하게 말하면  딱정벌레목 중에서도 잎벌레의 고기이다.  이상한 일이
다. 정상대로라면  딱정벌레목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을텐데 지금
사냥을 하자니.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불개미는 기온이 12도가 될
때 잠에서 깨어나고,  흰개미는 13도 파리는 14도,  딱정벌레는 15도
가 되어야 깨어나지 않는가.
  늙은 병정개미는 그런 반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개미에게 설명한다.
  '이 고깃덩이는 특별한  지역에서 나온 거다. 지하수  때문에 비정
상적으로 따뜻해진 지역이지.  거기에는 겨울이 없다. 그런  좁은 지
역의 미기후에서는  특이한 동물상과 식물상이 나타나는  법이다. 게
다가 갓 잠에서  깨어난 우리 도시의 동포들이 너무 굶주려  있지 않
은가. 도시가 다시  움직이려면 빨리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한다. 햇
볕의 온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수개미가 병정개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병정개미 계급에 속하는 스물여덟 마리의  개미들로 원정대가 꾸려
졌다. 수개미에게  사냥을 권유했던 개미가 그렇듯이  원정대의 대부
분은 비생식 계급에  속하는 나이 많은 개미들이다.  수개미 327호만
이 유일하게 생식 계급에 속해 있다. 수개미는  체처럼 생긴 그의 겹
눈을 통해, 조금 떨어져 있는 동료들을 살펴본다.
  수천 개의  낱눈이 모여 있는  개미의 겹눈에는 똑같은 상이  수천
개 맺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낱눈이  감지한 상이 조화를 이루
어 모자이크와 같은  상이 맺힌다. 그래서 개미는 사물의  세밀한 생
김새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 대신 아주  작은 움직임도
감지해 낼 수 있다.
  원정에 나선 이  탐험가들은 한결같이 원거리 여행에는  이골이 나
있는 듯하다. 육중한 그들의 배에는 개미산이  가득 들어 있다. 그들
의 머리에는 아주 강력한 무기들이 달려있다.  갑옷과도 같은 그들의
가슴마디 등판에는 여러  전투에서 적들의 위턱에 맞아  긁힌 자국들
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몇 시간  전부터 앞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같은 연방에  속해 있는 여러 도시들을 지나쳤다.  도시들은 공
중으로 높이 솟아 있기도 하고 나무 밑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모두
'니'왕조의 자매 도시들로서,  그 면면을 보자면, 곡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요뒬루베캉, 2년  전에 용맹한 병정개미 군단을  보내 남쪽
흰개미 도시들의 동맹을 정복한 바 있는  지울리에캉, 전투용의 고농
축 개미산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화학 실험실로 유명한  제디베이나
캉, 연지벌레의 분비꿀을  발효시켜 나무진 맛의 인기 좋은  술을 생
산하는 리이우캉 등이다.
  이렇듯 불개미들은 도시를  이루어 살 뿐 아니라, 몇  개의 도시들
이 모여 연방을 이루기도 한다. 단결은 힘을  낳는 법이다. 쥐라 산맥
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대규모의 불개미 연방들이  발견되었다. 그 연
방들은 24만여 평의 표면적에 걸친 1만  5천 개의 개미집들을 포괄하
고 있었고, 전체 연방원 수가 2억이 넘었다.
  벨로캉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벨로캉은 역사가  길지
않은 연방으로서  시초의 왕조가 세워진  지는 5천 년이 되었다.  이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의 어떤  암개미 하나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여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신의  연방을
찾아가지 못한  암개미는 벨로캉을  건설했고, 벨로캉으로부터  수백
세대에 걸쳐 '니'왕조의 여왕들이 태어나고  현재의 연방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길 잃은 개미'라는 뜻을 가진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맨 처음 여왕
의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앙의  둥지를 차지한 여왕들이  모두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그것은 벨로캉  중심 도시의 여왕을 일
컫는 이름이 되었다.
  현재 벨로캉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중앙의 커다란 도시  하나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64개의  분가도시들뿐이다. 그럼에도  벨로캉은
퐁텐블로 숲의 그  구역에서는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가진 연방으로
이미 자지를 굳혀가고 있다.
  탐험에 나선 개미들이  여러 동맹 도시들을 거쳐  벨로캉 연방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라숄라캉을 지나자 작은  둔덕이 나타났다.
  여름 보금자리로 쓰이거나 '전진기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둔덕이
다. 그곳은 아직  텅 비어 있지만, 머지 않아 사냥과  전쟁이 시작되
면 병정개미들로 북적댈 것임을 327호는 알고 있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곧장 나아간다. 터키 옥처럼 푸르른  넓은 풀
밭을 지나고 가장자리에  엉겅퀴가 늘어선 언덕을 내달리고  나니 벨
로캉의 사냥 구역  밖이다.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것이  적들의 도시
시게푸라는 것을 그들은 이내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 시간이면 시게
푸의 거주자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나아간다. 주위의 곤충들은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
다. 일찍 일어난 몇몇 곤충들이 땅굴  밖으로 이따금 머리를 내민다.
그 곤충들은 붉은 갈색의 갑옷 투구를  발견하자 이내 겁을 집어먹고
몸을 숨긴다. 개미들이  신명을 낼 때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개미들도 신명을 내며  무언가를 할 때가 있다.  특히
더듬이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이렇게 행군을 할 때가 그런 때이다.
  먹이 탐색에  나선 개미들이 땅  끝이라고 알려진 곳에  다다랐다.
이제 분가 도시 따위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전진  기지 같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뾰족한 다리로 파놓은 아주  작은 오솔길
조차 없다. 냄새를  뿌려 동료들을 이끌던 옛 길의  어렴풋한 흔적이
겨우 남아서 옛날에 벨로캉의 개미들이  그쪽으로 지나갔음을 말해주
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머뭇거린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뭇잎들의  냄새를 맡아
보지만, 그 냄새는 그들의 후각으로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
이다. 그  나뭇잎들이 지붕처럼 그들을  덮고 있어서 빛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이  그 나뭇잎 위로 점점이 수를  놓듯 올라서자
그 거대한 식물이 개미들을 움켜잡으려 한다.

  지하실에 내려가지  말라고 식구들이  잘 알아듣도록 얘기를  하긴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한다?
  그는 저고리를 벗어 내려놓고 가족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짐은 다 풀었어?"
  "예, 아빠."
  "고생 많았군, 그런데 말이야, 부엌 좀  살펴봤어? 안쪽에 문이 하
나 있던데."
  그 말에 뤼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한테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게 지
하실로 통하는 문 같은데, 열어보려고 했지만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요. 문에 커다란 틈새가 하나 나  있길래 잠깐 들여다보았는데, 속이
깊어 보이던데요.  당신이 자물쇠를  비틀어 따야 되겠어요.  그래도
자물쇠장이 남편을 둔 게 쓸모가 있긴 있군요."
  뤼시는 빙긋  웃으며 다가와 그의  품에 안겼다. 뤼시와  조나탕이
함께 살아온 세월이  이제 13년이 되었다. 그들은 지하철  안에서 우
연히 만나 인연을 맺었다. 어느날 어떤 부랑아가  너무도 할 일이 없
었던 나머지 지하철 차량 안에다 최류탄을  던져넣었다. 그러자 승객
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심하게  기침을 해대며 바닥에  넘어졌다.
뤼시와 조나탕도  서로 포개지듯 넘어졌다. 콜록거림이  멎고 눈물이
잦아들었을 때  조나탕은 뤼시에게 집까지 바래다주겠노라고  제안을
했다. 얼마  뒤에 조나탕은 자신이 꾸려나가던  유토피아적인 공동체
로 뤼시를 초청했다.  그곳은 그가 공동체 운동 초창기에  만든 공동
체 중의 하나로서 파리 시내 북역 근처에  있던 집이었다. 그러고 나
서 3개월 뒤에 둘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자물쇠를 딸 필요가 없어."
  "무슨 얘기예요? 자물쇠를 딸 필요가 없다니요?"
  "그래 자물쇠 채운 데로 그대로 두고  지하실을 쓰지 말자고, 지하
실 얘기는 이제 꺼내지 않기로 해. 거기에  가까이 가지도 말고 문을
열겠다는 생각일랑 아예 접어두자고."
  "지금 농담하는 거예요? 무슨 예긴지 좀 알아듣게 해봐요."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을 막으려면 그럴싸한  핑겟거리가 있어야 하
겠는데, 조나탕은 미처  그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얼떨결에 말을
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자기 의도와 정반대가  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
다. 아내와  아들의 호기심만 잔뜩  부추긴 셈이었다. 이제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삼촌  주변에 뭔가 불가사
의한 것이 있는데, 지하실에 내려가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분이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셨다고 설명할까?
  그건 식구들을  설득할 만한 설명이  못 된다. 기껏해야  쓸데없는
미신이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뤼시와
니콜라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턱이 없다.
  "공증인이 나한테 귀띔을 하더라고"
  조나탕이 밑도끝도없는 소리를 했다.
  "당신한테 누가 뭘 귀띔했다는 거예요?"
  "저 지하실에 쥐가 우글거린다는 거야!"
  "으악! 쥐가요?  그러면 그놈들이 틀림없이  문 틈새로 나올  거예요."
  아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걱정할 것 없어. 틈새를 다 막으면 되니까."
  조나탕은 자기가  지어낸 말이 조금 먹혀들어가자  마음을 놓았다.
용케 쥐를 생각해 낸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좋아.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까 아무도 지하실에  접근하면 안돼,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욕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뤼시가  곧 그
의 뒤를 따라왔다.
  "할머니 뵈러갔었지요?"
  "그래, 맞아."
  "오전 내내 거기서 시간을 보낸 거예요?"
  "그래, 그것도 맞아."
  "계속 이렇게 허성 세월만 할 거예요?  피레네 산맥 농장에서 당신
이 다른 사람들한테  했던 얘기 생각 안 나요? '무위는  모든 악행의
근원이다.'라는 얘기 말이에요.  다른 일을 좀 찾아봐요.  이제 가진
돈도 다 떨어져가요."
  "숲 가장자리 멋진  동네에 66평이나 되는 집을  물려받은 마당에,
일타령만 할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안 되겠어?"
  그는 아내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자 뤼시가  뒤로 물러서며 대꾸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예요.  미래도
생각해야죠. 내가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당신도 실업  상탠데, 1
년 후에는 어떻게 살겠어요?"
  "아직 저금이 남아 있잖아"
  "정신차려요. 몇 달 근근이 살아갈 돈밖에 없어요. 그 다음에는."
  뤼시는 자그마한 주먹을  양허리에 대고 가슴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여보, 당신은 밤에 위험한 지역에 안  가려고 하다가 일자리를 잃
었어요. 그건 좋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데
가서 다른 일을 찾아볼 수는 있는 거 아니예요?"
  "물론이지. 일거리를 알아볼거야. 마음이  내킬 때까지 내버려두면
내가 다 알아서  할거야. 한 달쯤 있다가 구직 광고를  낼께. 약속하겠어."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금발의 아이가 욕실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곧 이어 플러시 천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듯한 네
발 짐승이 나타났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였다.
  "아빠, 조금 전에  웬 사람이 왔다 갔는데요. 책 장정하는  일 때
문이라고 하던데요."
  "책? 무슨 책을 장정한단 말이냐?"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에드몽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큰 백과사전
얘기를 했어요."
  "그래? 그거 참.... 그 사람 집 안에  들어오게 했니? 그리고 니콜
라하고 당신, 그런 책 본 적 있어?"
  "못 들어오게 했어요. 착한 아저씨처럼 보이질  않았어요. 또 들어
와 봤댔자 책도 없는걸요...."
  "그래 기특하다. 잘했구나."
  낯선 사람이 어떤  책을 찾으러 왔었다는 아들의  얘기가 조나탕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넓은 집안을  온통 뒤지고 돌아다녀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러자 그
는 한동안 부엌에 머물면서 지하실 문이며  커다란 자물쇠며 문에 난
틈새를 살펴보았다. 도대체 이 지하실에 어떤  불가사의가 숨어 있는 것일까?

  이 덤불을 빠져나가야 한다.
  먹이 탐색에 나선  개미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드는 개
미 하나가 제안을 한다. '뱀 머리'  대형을 짓자는 것이다. 들어가기
가 꺼림한 지역으로  나아갈 때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다.  즉시 합의
가 이루어졌다. 모두들 같은 순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선두에서 척후 개미 다섯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대열의 눈이  되어준다. 한걸음한걸음을  조금씩 신중하게  떼어놓을
때마다 척후 개미들은 흙을 만져보고 하늘의  냄새를 맡고 이끼를 조
사한다. 모든 게  이상이 없으면 '전방 이상 없음'이라는  뜻이 담긴
후각신호를 동료들에게  보낸다. 그러고 나서 척후  개미들은 대열의
후미로 돌아가고 '후각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다른 개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앞으로 나선다. 이러한 교대 방식을  취함으로써 개미의 대
열은 언제나 극도로 예민한 '코'를 가진  기다란 동물처럼 앞으로 나
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전방 이상 없음'이라는 신호가 스무 번쯤  청아하게 울리더니, 돌
연 청아한 신호가  끊기고 아주 불쾌한 신호가 전해진다.  척후 개미
중의 하나가 칠칠치 못하게 어떤 벌레잡이  식물에 접근했던 것이다.
끈끈이귀개라는 식물이다. 끈끈이귀개가 고혹적인  향기로 척후 개미
를 끌어들여 끈끈물로 개미의 다리를 붙들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끈끈털에 곤충의 몸이 닿으면,
문의 경첩이 접히면서  문이 닫히듯이 생체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경첩으로 이어진  듯한 두 개의 커다란 잎이  가차없이 닫
힌다. 잎 가장자리의  긴 털은 이빨과 같은 구실을 한다.  그 털들이
서로 얽히면서  견고한 울짱으로 바뀐다. 희생물이  완전히 탈진하여
움직이지 않게 되면,  그 야수와도 같은 식물은 소화  능력이 왕성한
효소를 분비한다. 아무리 질긴 등딱지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이다.
  그렇게 개미가  스러져가고 있다. 그의 몸뚱이가  온통 부글거리는
액체로 바뀌어간다.  단말마의 고통이 물방울이 되어  부글거리는 것
이다. 그렇게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서 다른 개미들이  할 수 있는 일
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일은 원거리 파견을  나선 개미들이 흔히 겪
는 불상사의 하나로서  사전에 예측할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천연의
덫 가장자리에  '주의! 위험'이라고 표시를  해두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개미들은 불상사를 잊고 냄새의 자취를 따라  계속 나아간다. 페로
몬의 자취가 저쪽으로 가라고 일러주고 있다.  덤불을 가로질러 그들
은 서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여전히 태양광선을  기준으로 23도 벌어
진 방향이다. 그들은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울  때만 조금 휴식을 취
한다. 한참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돌아가지 않으려면 서둘러야만 한다.
  탐험에 나섰던  개미들이 도시로 돌아오다가, 적의  군대가 도시를
포위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포위망을  뚫고
도시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마침내 탐험 개미들이 동굴 입구를 알리는  페로몬(같은 종 동물의
개체들끼리 신호를 전달할 때 작용하는 체외  분비성 물질)의 자취를
찾아냈다. 땅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다. 개미들은  자갈 땅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은은한 개울물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온
천이다. 샘에서는 김이 모락거리고 유황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개미들이 샘물에 몸을 적신다.
  문득 이상하게 생긴 동물 하나가 눈에 띈다.  흡사 공에 다리가 달
린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니 풍뎅이과에  속하는 쇠똥구리가 쇠똥
과 모래로 만든 공을 밀고 있는 것이다.  공 안에는 쇠똥구리의 알이
들어 있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처럼 그는  자신의 '세계'를 받치
고 있는 것이다.  비탈이 내리막일 때는 공이 저절로  굴러가고 쇠똥
구리가 쫓아간다. 오르막에서는 애면글면  헐떡거리며 공을 밀어올
리다가 공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시 가지러  내려가기가 다반사다.
여기서 풍뎅이과의  곤충을 만난 것은  뜻밖이다. 그것은 더  따뜻한
지대의 곤충이 아닌가....
  벨로캉의 개미들은  쇠똥구리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쇠똥구리의 살은 맛도  별로 없고 등껍데기는 너
무 무거워서 운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왼쪽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달아나더니 우툴두툴한 바
위 속으로 숨어버린다. 집게벌레이다. 그것은  쇠똥구리와는 달리 맛
이 좋다. 제일 나이가 많은 개미가 가장  재빠르게 사냥 동작을 취한
다. 배를  목 아래로 들어올리고  뒷다리로 평형을 유지하면서  사격
자세를 취한다. 그런  다음 본능적으로 겨냥을 하고 개미산  한 방울
을 아주 멀리  쏘아보낸다. 부식제와도 같은 농도 40퍼센트의  그 액
체를 맞은 집게벌레의 몸이 갈라져버린다.
  명중이다.
  집게벌레는 정통으로  개미산 벼락을 맞은 것이다.  농도 40퍼센트
의 개미산은 유장같은  밍밍한 액체가 아니다. 농도가  4퍼센트만 돼
도 벌써 따끔거리게 만드는데, 하물며 40퍼센트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집게벌레가 쓰러지자 개미들이 개미산에 덴  그의 살을 먹으려
고 달려간다.  그곳에 사냥감이 많은  걸 보니, 지난 가을에  탐사를
나갔던 개미들이 페로몬을 제대로 뿌려놓은 셈이다.  멋진 사냥이 될 것 같다.
  개미들은 아르투아 지방의  우물처럼 물이 솟는 곡까지  깊이 파인
우물 안으로 내려간다.  생전 처음 보는 갖가지 종류의  동물들이 개
미들을 보고  겁을 집어먹는다. 박쥐 한  마리가 그들이 더  이상 못
들어오게 하려고 한껏 위세를 부려보지만  개미들이 개미산을 안개처
럼 뿜어 덮어버리자 달아나버렸다.
  그 다음 며칠  동안 개미들은 그 따뜻한 동굴을  계속 탐색하면서,
하얗고 자그마한  곤충의 껍질과 연초록빛 버섯  조각을 긁어모았다.
그들은 항문샘으로부터  페로몬을 방출하여 새로운 자취를  남겨놓았
다. 나중에 동료들이 거기에 와서 사냥을 할  때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들의 사냥 구역이  서쪽 덤불 너머
그곳까지 손길을 뻗친 것이다. 식량을 잔뜩  짊어지고 귀로에 오르면
서 그들은 점령지에 깃발을 꽂듯 벨로캉  연방을 나타내는 화학 물질
을 두고 간다. 깃발이 펄럭이듯 그  향기가 허공에 퍼져나가면서 '벨
로캉!'을 외치고 있다.

  "아니, 누구시라고요?"
  "웰즈입니다. 에드몽 웰즈라는 분의 조카되는 사람입니다."
  문이 열리고 키가 2미터 가까이나 될 듯한 거구가 나타난다.
  "자종 브라젤 선생님이시지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만, 선생님하고 제 삼촌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싶어서 왔는데요. 저
는 그분을 잘 모릅니다만 제 할머니께서  선생님이 그분하고 둘도 없
는 친구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럼 들어오게.... 에드몽에 대해 뭘 알고 싶은 겐가?"
  "뭐든지요. 유감스럽게도 그분에 대해 아는 게 없거든요...."
  "으음, 그런가. 에드몽은  살아 있는 신비라고나 할 만한  그런 부
류의 친구라네. 누구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지."
  "그분을 잘 아시지요?"
  "그 누구든  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에드몽을 잘 안다고 말하지 않겠고, 다만 우리  두 사람이 인생의 많
은 시간을  나란히 걸어왔고 그  친구도 나도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대학에서 생물학을 같이 공부했지. 내 전공은  식물이었고, 그 친
구전공은 박테리아였지."
  "두 세계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지. 그렇지만 식물이 박테리아보다 더  잔인하다는 점에서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
  자종 브라젤은 식당 안으로 기어들어온  녹색 식물들을 가리키면서 토를 달았다.
  "저 식물들을 보게나. 저것들은 빛 한 줄기,  물 한 방울을 차지하
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고 서로 죽일 준비가  되어 있지. 잎새 하나가
응달에 놓이게  되면 식물은 그  잎새를 포기하고 옆에 있는  잎들을
더 키우게 되지. 식물의 세계는 무자비한 세계라네."
  "그럼 에드몽 삼촌이 연구하신 박테리아는요?"
  "에드몽은 자기 연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조상을  찾게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곤 했지. 말하자면 생물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계
통수에서 그 친구는 표준적인 것보다 좀더  위로 거슬러 올라간 셈이지...."
  "왜 하필이면  박테리아였을까요? 원숭이나 물고기를 연구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그 친구는 가장 원시적인 단계에 있는  세포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네. 그는 인간을 세포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세포 전
체의 작용을 연역해  내려면 세포 하나의 '심리'를  철저하게 이해해
야 한다고 생각했지. '크고 복잡한 문제는  실제로는 작고 단순한 문
제들의 결합일 뿐이다.'  그런 경구를 그 친구가 편지에 슨  적이 있지."
  "그분은 박테리아에 대해서만 연구를 하셨나요?"
  "천만에. 그 친구  어떤 점에서는 신비주의자였고 정말  만물 박사
였지. 뭐든지 다  알고 싶어했던 것 같아. 가끔 엉뚱한  생각도 하곤
했지. 예를 들면 자신의 심장 박동을 제어하려고 했다든가...."
  "정말 엉뚱하셨군요?!"
  "인도와 티벳의  요가 수행자들 중에는  그런 놀라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 걸 해서 도움되는 일이 있나요?"
  "낸들 아나.... 그  친구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랐지. 자기
의지대로 심장을 멎게 해서 생을 마감하려는  것이었지. 그렇게 되면
언제 어는 때라도  운명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
는 거라고 생각한 게지."
  "그래서 얻는 게 뭘까요?"
  "그 친구는  아마도 늙는  것에 따르는  고통을 두려워했던 것  같아."
  "저,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그분이 뭘 하셨나요?"
  "대학을 떠나서 회사에  취직했지. 요구르트를 만드는 데  쓰는 살
아있는 박테리아를  생산하는 회산데. 이름이 '스위트밀크'라네.  거
기에서 에드몽은 일을  잘 해냈지. 맛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향까지
촉진시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네. 그 덕분에 그  해에 가장 훌륭한
발명을 해낸 사람에게 주는 발명상을 63년에 탔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됐나요?"
  "그 다음에 중국 여자와 결혼을 했지.  링마라는 여자였어. 부드럽
고 생글생글  잘 웃는 여자였지. 꽤  까다롭던 그 친구  성미가 금방
누그러지더군. 그 여자한테  아주 푹 빠졌지. 결혼하고  나서부터 그
친구 보기가 더 힘들어지더군. 당연한 얘기지."
  "삼촌이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야."
  "무슨 일이 있고 나서 가신 건가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나서지. 링미가 백혈병에  걸렸다네. 혈
액암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병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지.  발병하고 3
개월만에 그 여자가 세상을 떴지 가련한  친구 같으니라고. 세포에만
관심이 있고 사람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사코 주장하더니만, 링미
의 죽음이  준 교훈은 잔인했지. 그래서  그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네. 그 재앙에 겹쳐서  '스위트밀크'회사 동료들하고도 말썽이
생겼지.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낙담한 채  집에 틀어박혔지. 링미 덕
분에 인간에  대한 그의 믿음이  되살아나는가 했더니. 그녀를  잃고
나서 인간에 대한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네."
  "링미라는 분을 잊으려고 아프리카로 떠나신 건가요?"
  "그럴꺼야 다른  목적도 있었겠지만 생물 연구에  전력 투구함으로
써 상처를 아물게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  흥미있는 연구 주제를 새
로이 찾아냈던 것임에 틀림없어.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
르네만 박테리아는 아니었네. 그가 아프리카에 머무른  것도 아마 그
연구 주제를  다루는 데 거기가  편했기 때문일거야 나한테 엽서  한
장이 왔었는데, 국립  과학 연구소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는  것과 로
젠펠트라는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만  했지. 로젠펠트가
누군지는 모르겠어."
  "그 뒤로 에드몽 삼촌을 다시 만나셨어요?"
  "그렇다네 샹젤리제에서 한  번 우연히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눴지.
삶에 대한 의욕을 다시  찾은 건 분명한데, 그 친구 뭔가를  많이 숨
기고 있더군. 내가 좀 전문적인 질문을 할라치면 대답을 회피했어."
  "백과 사전을 집필하고 계셨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거 말인가? 그건 더 오래 전 일이지.  그 친구다운 거창한 착상
이었어. 자신의 모든 지식을 하나의 저작  속에 긁어모으겠다는 것이었지."
  "그 백과 사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보여 준 적이 없을 거야.  에드몽의 사
람됨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을 눈에 안  띄는 깊숙한 곳에다 감추어두
었을거야. 불을 내뿜는 용이 그것을 지키게  하면서 말이지. 그 백과
사전이 그에게는 '위대한 마법사'같은 것이었지"
  조나탕은 자리를 뜨려고 하다가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아참, 여쭤볼 게  하나 더 있는데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
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시나요?"
  "알다마다. 그 친구 그걸로 곧잘 사람들의 지능을 시험하곤 했지"
  "그런데 그 답이 뭔가요?"
  그 물음에 자종이 폭소를 터뜨렸다.
  "저런, 자네에게  확실하게 답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네.  에드몽
말마따나 '저마다 혼자서  제 길을 찾아야지'. 그리고 나면  답을 찾
았을 때의 만족감이 한층 커질거라네."

  등에 고기를  잔뜩 짊어진 탓에,  올 때보다 길이 멀게  느껴진다.
개미 대열은 밤의 심한 추위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아간다.
  개미들은 3월부터  10월까지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기온이 떨어지면 그들은 무기력해  지고 잠을
자게 된다.  하루 낮 이상이 걸리는  원정을 떠나는 일이  드문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들여 불개미 도시는 그  문제를 해결했다. 불개미들은
사냥 구역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다른 풍습을 가진  동물들이 살고 있는 먼 지방을 아는  일이 중요하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50번째 천년기에  '가'왕조(서쪽에 있던  왕조러서 10만 년  전에
사라짐)의 불개미 여왕 비스탱가는 세계의 '끝'을  알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여왕은 주요한 네 지점에 수백  차례나 원정
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돌아온 원정대는 하나도 없었다.
  현재의 여왕 벨로키우키우니는 그리 욕심이  많지 않았다. 여왕은,
남쪽 깊숙한 곳에서  보석 모양의 자그만한 금빛  딱정벌레를 발견한
일에 흡족해  했고, 다른 개미들이  뿌리째 날라온 벌레잡이  식물을
관찰하면서 언젠가는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 것으로 만족했다.
  새로운 구역을 샅샅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연방을 확장하
는 것임을 벨로키우키우니는 알고 있었다. 원거리  파견이 계속 늘어
나고, 분가  도시가 점점 많아졌으며,  전진 기지도 자꾸  늘어난다.
연방은 이런 영토 확장에 쐐기를 박으려는  모든 것들을 상대로 전쟁
을 벌이고 있다.
  세계의 끝을  정복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끈질기
게 조금씩 나아가는 이 정책을 개미들의  일반적인 철학, 즉 '천천히
그러나 항상 앞으로'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
  오늘날 벨로캉 연방은 64개의 분가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똑같은
냄새의 깃발 아래  64개의 도시가 모여 있는  것이다. 125킬로미터에
달하는 자국길과  780킬로미터에 이르는  냄새길이 64개의  도시들을
잇고 있다. 기근이 들었을 때나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 도시들은 굳
게 연대한다.
  도시들의 연방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서자 몇몇 도시들이  특정 산
업을 전문화할 수 있게 되었다. 벨로키우키우니가  꿈꾸고 있는 대로
라면, 어떤 도시는  곡물만 취급하고, 어떤 도시는 고기만을,  또 어
떤 도시는 전쟁만을 책임지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아직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생각  역시 개미들의
일반적인 철학에서 가르치는  또 다른 원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임
이 분명하다. 그 원리란 '미래는 전문가들의 것이다'라는 것이다.
  탐사 개미들은 아직  전진 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걸
음걸이를 더욱 빨리  한다. 동료 하나를 삼켜버린 그  벌레잡이 식물
옆을 다시 지나갈 때 한 병정개미가  그 식물을 뽑아서 벨로키우키우
니에게 가져가자고 제안을 한다.
  고대 그리스 인들이  광장에 모여 회의를 하듯이  개미들이 더듬이
를 모으고 토론을 한다. 휘발성을 띤 미세한  냄새 분자를 주고 받는
다. 페로몬이다. 몸  밖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인 셈이다. 이  분자 하
나하나를 시삭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의 어항에 비유할  수 있으리
라. 그 어항에서 물고기 한 마리는 한 개의 단어가 된다.
  페로몬 덕분에 개미들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개미들의 대화에서
도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무한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  더듬이들의
떨림이 심해지는 것으로  보아 토론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
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어머니는 이런 종류의 식물을 모르고 계신다.'
  '저 식물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우리 목숨을  잃을 염려도 있고, 저
걸 운반하려고 해도 손이 딸릴 것이다.'
  '벌레잡이 식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면 연방 전체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그것들을 일렬로 심어놓기만 해도  우리 방어선은 끄떡없
을 것이다.'
  '우리는 지쳐 있고 곧 밤이 될 것이다.'
  그들은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그 식물을 빙  돌아서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숲 가까이 다가가던 중, 앞에  있던 327
호 수개미가 빨간 데이지 한 송이를 발견한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식물이다. 이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끈끈이귀개는 그냥 두고왔지만 이건 가지고 가자.'
  그는 잠시  거리를 두고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꽃 줄기를  썬다.
툭! 하고 꽃  줄기가 쓰러지자 그는 그것을 긁어쥐고  동료들을 따라
잡으려고 달려간다.
  동료들을 따라잡기는 했으나 그들은 이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
다. 분명히  그의 앞에 새해 첫  원정대가 있긴 있으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격렬한 충격.  긴장. 327호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의
모든 동료들이 죽은 채 누워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광 같은 습격을  받았음에 틀림
없다. 개미들은 전투  대형을 갖출 겨를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죽은
개미들이 아직 '뱀머리 대형'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
준다.
  그는 동료들의 시체를  살펴본다. 개미산은 한 방도 쏘지  않은 채
로 남아 있었다.  개미산은 고사하고 경보 페로몬을 발산할  겨를 조
차 갖지 못한 모양이다.
  수개미 327호는 조사에 착수한다.
  한 동료의  시체에서 더듬이를 검색한다. 더듬이를  맞대어 냄새를
맡아본다. 동료의  더듬이에는 화학적인 정보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동료들은 걸어가고 있다가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꼭 알아내야 한다.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다.  먼저 할 일은 기관을 깨끗이 닦는  일이다. 앞다
리 끝에 붙은 두 개의 굽은 발톱을  이용하여 더듬이에 묻어 있는 산
성거품을 긁어낸다.  아까 긴장감을 느끼던 찰나에  솟아났던 거품이
다. 327호는 발톱을  입 쪽으로 구부린 다음 그것을  핥는다. 그러고
는 발목마디 위쪽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톱니 모양의 솔에다가 발톱
을 문질러 닦는다. 그 자리에 솔을 마련해  놓은 조물주의 조화가 절
묘하다.
  그러고 나서 깨끗해진  더듬이를 눈 높이로 낮추고  1초당 300회의
진동으로 가볍게 흔든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진동수를 초당
500, 1000, 2000, 5000, 8000으로 증가시킨다.  그가 지니고 있는 수
신능력의 3분의 2까지 올린 셈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주위에 떠도는  아주 미세한 발산물들을 감
지 한다.  이슬에서 발산한 수증기가  있고, 꽃가루와 홀씨가  있다.
또 전에 맡아본 적이 있으나 정체가 아리송한 냄새가 있다.
  그는 진동수를 더 높인다. 수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진동수가
초당 1만 2천 회가 되었다. 더듬이가 빠른  속도로 돌면서 작은 흡입
기류를 형성하여 주위의 작은 알갱이들을 모두 빨아들인다.
  됐다. 드디어 그 옅은 냄새의 정체를  알아냈다. 범인들의 냄새다.
그렇다. 그 자들, 작년에 지지리도 속을  썩였던 북쪽의 냉혹한 이웃
들임에 틀림없다.
  바로 시게푸의 난쟁이개미, 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벌써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들이 매복을 하고
있다가 번개처럼 빠른 새로운 무기를 사용한 것임이 분명하다.
  단 한 순간도 지체할 겨를이 없다. 온  연방에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

  -대장님, 그들을 몰살시킨  것은 아주 강력한 진폭을  가진 레이저
광선입니다.
  -레이저 광선이라고?
  -그렇습니다. 원거리에서도 가장 큰 우리  우주선들을 녹여버릴 수
있는 새로운 무기입니다. 대장님.
  -자네 생각에는 그게....
  -그렇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들은 금성인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소행임이 분명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가차없이 보복을 해야지. 오리온  대에 주둔해
있는 전투 로켓이 몇 기나 남아 있지?
  -네 기입니다, 대장님.
  -그거로는 도저히 안 되겠군. 지원을 요청해야지....

  "수프 좀 더 주랴?"
  "아뇨, 됐어요."
  넋을 잃고 텔레비젼 화면을 바라보면서 니콜라가 대꾸했다.
  "얘, 수프가 코로  들어가겠다. 제대로 보면서 먹어라.  안 그러면
텔레비전 꺼버린다."
  "아유, 엄마. 제발...."
  "저거 이제  지겹지도 않니? 초록색  난쟁이들 나오고, 분말  세제
상표하고 똑같은 혹성 이름들 나오는 그 이야기지?"
  조나탕이 물었다.
  "전 재미있어요. 저는  언젠가 우리가 외계인을 만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 입에서 그런 얘기 나온  게 어디 하루 이틀이라야지!"
  "가장 가까운 별에 무인 우주선을 보냈잖아요.  그 무인 우주선 이
름은 마르코폴로구요. 곧  우리 이웃 별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될 거예요."
  "그것도 전에  보냈던 다른 무인  우주선들처럼 아무런 실속  없이
우주만 오염시키고 말거야. 거기는 너무 먼곳이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외계인들이 우리를 만나러 올  수도 있
지 않을까요? 미확인  물체(UFO)를 보았다는 증언들을 모두  다 해명한 건 아니거든
요."
  "그렇지만, 지능을 가진  다른 생물들을 만난다 한들  우리에게 무
슨 소용이 있겠니?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끝장이 날 판인데. 외
계인을 만나는  문제는 고사하고 우리 지구인들끼리의  문제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지 않니?"
  "낯선 세계를 보게  될 거예요. 휴가 여행을 떠날 만난  새로운 장
소가 생길지도 모르죠."
  "그래 봤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기는 거겠지."
  그러면서 조나탕은 니콜라의 턱을 잡고 말을 이었다.
  "얘야, 더 크면  자연히 알게 되고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갖게 될
거다만, 정말 흥미롭고  우리의 지능과 아주 다른 지능을  가진 동물
이 딱하나 있단다. 그게 뭔 줄 아니? 그건.... 여자란다."
  그의 말이 농담인  줄 알면서도 뤼시가 체면치레로 화를  냈고, 부
부가 함께 웃었다. 그러나 니콜라는 상을  찌푸렸다. 저런 게 어른들
의 유머인 모양이군....  아이는 식탁 밑으로 손을  내려 우아르자트
의 보드라운 털을 만지려고 했다.
  탁자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아르자자트 어디 갔지?"
  개는 식당 안에 없었다.
  "우아르지! 우아르지!"
  니콜라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
면 대개는 금방 효과가 나타나서 짖는  소리가 나고 발소리가 들리게
마련이었다. 아이는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
었다. 아이는 집  안의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개를 찾아보았다.
부모들도 아이와  함께 찾아보았다.  개는 온데간데가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제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갔을 리는 없었다.  열쇠를 사
용할 줄 아는 개는 아직 없을 테니까.
  약속이나 한 듯이 그들은 모두 부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
지하실 문 쪽으로 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문에 난 틈새는
아직 메우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런데  틈새는 우아르자자트만한 동
물이라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니콜라가 신
음을 토하듯 말했다.
  "개는 저  안에 있어요. 저 안에  있는 게 분명해요.  개를 찾으러
가야돼요."
  아내의 요구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지하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단
속적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모두 금단의 문으로 다가갔다. 조나탕이 문을 가로막고 나섰다.
  "아빠가 말했지. 지하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여보, 개를 찾으러 가야 되잖아요.  개가 쥐들한테 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몰라요. 쥐가 우글거린다고 당신이 그래놓고선...."
  뤼시의 말에 조나탕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아르자자트에게는 참  안된 이야기지만,  내일 다른 개를  사러
가지 뭐."
  그 말에 아이가 기겁을 하며 토를 달았다.
  "그렇지만 아빠,  내가 원하는 건 '다른'개가  아니예요. 우아르자
자트는 내 친구예요. 친구가 저렇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당신 참  이상하네요. 도대체 왜  그래요? 당신이 겁나면  나라도
가게 내버려둬요."
  뤼시도 아이와 한편이 되어 말을 보탰다.
  "아빠, 겁나서 그래요? 아빠 겁장이예요?"
  조나탕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정 그렇다면  한번 들
여다볼께'라는 투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손전등을  가지러 갔다. 그가
틈새로 전등을 비추었다. 캄캄했다.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릴 것 같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조나탕이 몸서리를 쳤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
러나 아내와 아들이 그 바닥모를 심연  속으로 자기를 떠다밀고 있는
것이다. 꺼림칙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의 어둠 공포증
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니콜라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개가 죽었어! 죽은 게 분명해! 다 아빠 때문이야."
  "다치기만 했을지도 모르잖니? 내려가 봐야 알지."
  뤼시가 아이를 달랬다.
  조나탕은 에드몽 삼촌의 편지에 다시 생각이  미쳤다. 편지 어투는
분명히 내려가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는  어투였다. 그러면 이  일을
어쩐다? 내가 지금  안 내려가면 틀림없이 조만간 식구들  가운데 누
군가가 문을 부수고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조나탕은 이
마의 땀을 훔쳤다.
  그래, 별일 없을  거야. 마침내 오랜 공포증에 의연히  맞서서, 그
것을 뛰어넘고 위험을  이겨낼 기회가 온거야. 어둠이 나를  삼켜 버
리기야 하겠어? 참  잘 된 일이야. 조나탕은 갈 데까지  가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쨌든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심정이었다.
  "내려가겠어!"
  조나탕은 연장을 가지고 와서 자물쇠를 땄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여기에 꼼짝 말고 있어야 돼. 특히  나를 따라
서 내려온다든가 경찰을  부를 생각은 아예 말아. 내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당신 얘기가 참 이상하네요. 겨우 지하실에  들어가는 걸 갖고 웬
야단이에요? 이건 모든 건물에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그저 하나의
지하실일 뿐이에요."
  "나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지는 해가  오렌지색 알처럼 빛나고  있다. 그 빛을 받으며,  봄철
첫사냥 원정대  중에서 혼자 살아남은  327호 수개미가 달려가고  있
다. 고립 무원의 외로운 신세이다.
  오래 전부터 그의 다리가 웅덩이와 진창과  곰팡내 나는 나뭇잎 속
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바람 때문에 입술의 촉촉한 물기가  다 말
라버렸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탓에  누런 외투를 입은 것  같다.
이젠 근육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 발톱 몇 개가 부러졌다.
  그러나 달려오던 냄새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327호는  금방 자신
의 목표물을 찾아낸다. 벨로캉 연방의 도시들이  다들 언덕을 이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중심 도시인 베로캉은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형체가 자국 길 어디에서나 보인다.  그 피라미드가
향기로 그를 매혹하면서 등대처럼 이끌고 있다.
  마침내 327호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도시의 발치에  이르러
고개를 들었다. 도시가  그새 더 커졌다. 둥근 지붕 위에  엄폐물 한
켜를 덧대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잔가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꼭대기가 달을 간질일 만큼 높다.
  젊은 수개미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땅에 닿을락말락하게  빠꼼히
나 있는 입구를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간다.
  때맞춰 온 셈이다. 밖에서 일하던 일개미와  병정개미가 모두 돌아
와 있다. 문지기 개미가 안의 온기가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막 출
구를 막으려던 참이었다. 327호가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문을 막는
개미들이 움직이고 그의 뒤에서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이
다시 막힌다.
  이제 춥고  야만적인 바깥 세계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수개미 327호는 다시 문명 세계 속에  들어온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포근한 동료들 속에서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혼자
가 아니라, 수많은 동료들이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파수를 보는 개미들이 다가온다. 327호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탓에 파수 개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신
분을 알리는  냄새를 발산한다. 그러자  파수 개미들이 마음을  놓는다.
  일개미 하나가 그의 몸에서 피로의 냄새를  감지한다. 일개미는 그
에게 영양 교환을  제안한다. 영양 교환이란 자기 몸에  있는 영양물
을 나누어 주는 의식을 말한다.
  개미들은 모두 배 안에 주머니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위에 딸린
그 주머니에서는  먹이를 소화하지 않는다. 이른바  사회위라 불리는
갈무리 주머니이다.  개미는 갈무리  주머니에 먹이를  언제까지라도
손상시키지 않고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다. 그러다가 그  먹이를 되
올려서 '소화  기능을 가진 정상적인'  위에 보내기도 하고,  먹이를
뱉어서 동료에게 주기도 한다.
  영양을 교환할 때의 몸짓은 언제나 똑같다.  먹이를 주려는 개미는
영양 교환의 대상이 되는 개미에게 다가와  머리를 가볍게 두드린다.
제안을 받은  개미가 먹이를 받을  의사가 있으면 더듬이를  낮춘다.
만일 더듬이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그것은  사양하겠다는 의사 표
시로서, 그 개미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다.
  수개미 327호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에게 남아 있는  기력이 너무
미약해서 곧 전신  경직 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입과 입을
맞댄다. 주머니에 저장해  둔 영양물이 다시 올라온다.  제공자 개미
는 먼저 침을  되올리고 다음에 분비 밀과 미음처럼 삭힌  곡물을 되
올린다. 아주 맛있고 금세 기력을 찾게 해주는 음식이다.
  영양 교환이  끝나자 수개미가 곧  기운을 차린다. 원정을  나가서
그가 겪었던 모든  일들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죽음,  매복.... 한시
라도 지체해서는 안된다. 그는 더듬이를 세우고  주위에 가는 알갱이
를 뿌려 그 사실을 알린다.
  '비상! 전쟁이다. 난쟁이개미들이 우리 첫  파견대를 몰살했다. 그
들은 치명적인 성능을 가진 신무기를 가지고  있다. 전투 준비! 전쟁
이 선포되었다'
  파수 개미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 경보의 냄새가  그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벌써 수컷 327호 주위에 개미들이 모여들고 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난거야?'
  '저 친구 말이 전쟁이 났대.'
  '증거가 있나?'
  여기저기서 개미들이 달려나온다.
  '신병기  얘기도 하고  원정대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얘기도  하는
데.'
  '보통 일이 아니네.'
  '증거가 있나?'
  이제 수개미를 가운데 두고 한 무리의 개미들이 둘러서 있다
  '비상! 비상! 전쟁이 선포되었다. 전투 준비!'
  '증거가 있나?'
  그 말의 냄새를 모든 개미들이 맡았다.
  '아니야. 저 친구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어.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서 증거 가져올 생각을 못 했대.'
  더듬이들이 움직인다.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들을  설레설레 흔든다.
  '그 일이 일어난 곳이 어디인가?'
  '라숄라캉 서쪽, 척후  개미들이 새로 발견한 사냥터와  우리 도시
들 사이다. 난쟁이들이 종종 정찰을 다니는 곳이지.'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첩보원들이 나갔다. 돌아왔다.  그들 얘기
로는 난쟁이개미들은 아직  자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틀릴  리가 없
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더듬이가 그런 페로몬  문장을 내보냈다. 군중
들이 흩어진다. 군중들은 그 익명의 더듬이가  발산한 말을 믿고 327
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의 어조에  진실성이 깃들인 것은 확
실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터무니없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봄철의 전
쟁이 그렇게 일찍 시작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아직 자고 있는 자들
이 있는데도  난쟁이개미들이 공격을  해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것이다. 수개미 327호가  전해준 소식에 개의치 않고  개미들은 저마
다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첫 원정대의  유일한 생존자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  세상
에, 그러면  그 참사를 내가  꾸며냈단 말인가! 결국은 어떤  계급에
결원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그의 더듬이가 맥없이 이마 위로 축 처진다.  자신의 존재가 더 이
상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 든다. 더  이상 다
른 개미들을 위하여  살지 못하고 그저 저 하나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그는 두려움  마음을 가
누지 못한  채 열에 들떠서  앞으로 내달린다. 그러고는  일개미들을
모아 쑤석거리면서  자기 얘기를 뒷받침해 줄  개미들을 찾아다닌다.
그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외쳐대자  이제 다
른 개미들은 발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탐험가인 나는 다리였노라. 현장에서는 눈 노릇을  했고 이제는 돌
아와 겨레를 일깨우노라.
  그의 말에  귀기울이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심드렁하게 자리를 뜬다. 저  친구 그만 휘젓고 다녔으
면 좋겠군!

  조나탕이 내려간 지  이제 네 시간이 지났다. 그의  아내와 아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엄마, 경찰을 부를까요?"
  "아니야. 아직은 일러."
  뤼시가 지하실 문으로 다가갔다.
  "아빠한테 무슨 일이 난거죠, 엄마.  그렇지요? 아빠도 우아르지처
럼 죽은 건가요?"
  "말도 안되는 소리. 이 녀석,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니!"
  뤼시는 불안감으로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몸을 구부
리고 문틈으로 안을 살펴보았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성능 좋은
할로겐 램프로 비추어보니  좀더 안쪽으로 나선 계단이  보이는 듯도
했다.
  뤼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니콜라도  와서 옆에 앉았다.  뤼시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빠는 곧 돌아오실 거야. 참고 기다려야지.  아빠가 우리보고 기
다리라고 하셨으니까 더 기다려보자."
  "그러다가 아빠가 안 돌아오시면 어쩌죠?"

  327호는 지쳐 있다.  자신이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느낌
이 든다. 발버둥은  치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벨로키우키우니에게 직접 보고하리라고  마음을 먹는다. 연방
구성원의 대다수를 이루는 비생식 계급 개미들이  기껏해야 3년을 사
는데 비하여,  어머니인 여왕개미는 열네  번의 겨울을 났기  때문에
비길데 없이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여왕이라면 그를 도와서 모두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도를 찾
아낼 것이다.
  젊은 수개미가 도시의 중심으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선다. 알을 잔
뜩 짊어진  수천의 일개미들이 그  넓은 통로에서 부지런히 걷고  있
다. 그들은 지하  40층에 있던 그 알들을, 지상 35층의  햇빛방에 자
리잡고 있는 영아실까지  나르고 있는 중이다. 하얀  고치들이, 아래
위 좌우로 흔들리는 다리 끝에 실려  대대적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
다. 327호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어쩌다가 유모  개미들과 부딪히자 그네는 이렇게  야만적인 짓
을 할 수 있느냐며 야단을 친다. 다른  개미들이 그를 들이받고 발길
질하고 떠다밀고  할퀴기도 한다. 통로가  완전한 포화 상태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바글거리는 군중  속을 애면글면 헤치며
빠져나온다.
  그런 다음 작은 터널들이 있는 길로  접어들어 빠른 걸음으로 나아
간다. 그쪽 길이 더  멀기는 해도 힘은 덜 들 것이다. 개미  도시 전
체를 하나의 인체에 비유한다면, 그는 심장으로  가기 위해서 동맥에
서 소동맥으로,  소동맥에서 다시 정맥과 소정맥으로  건너가고 있는
셈이다. 다리와  육교도 건너고, 때로는  비어 있는 광장을,  때로는
북적거리는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몇 킬로미터를 달린다.
  칠흑같은 어둠  속이지만 방향을 잃지  않고 용케 잘도  나아간다.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홑눈들을 이마에 달고 있는  덕이다. 통제
구역인 도시의 중심으로  다가감에 따라 어머니의 달콤한  향기가 더
진하게 끼쳐오고 경비 개미들의 수가 늘어난다.
  병정개미 계급에서  분화된 모든 아계급의 개미들이  보인다. 크기
도 각각이고 무기도 가지각색이다. 톱니 모양의  기다란 위턱을 가진
자그마한 체격의  개미가 있는가 하면, 목질처럼  단단한 가슴판으로
무장하고 있는 건장한 개미가 있고, 짤막한  더듬이를 가진 땅딸보가
있는가 하면, 유선형으로 잘 빠진 배에 경련  유발성 독액을 담고 있
는 포수 개미도 있다.
  수개미 327호는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지를 당하지 않고 검문소를 통과한다. 병정개미들이  조용한 걸 보
면, 영토를 지키기 위한 큰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모양이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서  그는 문을 지키는 개미에게  냄새 신분증
을 제시하고 여왕의 방으로 통하는 마지막 통로로 들어선다.
  문지방을 넘어서다가 그는 그 특별한  장소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발걸음을 멈춘다. 둥근 모양을 한 그  커다란 방은 아주 정
확한 건축 법칙과 기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 법칙은 누수
대에 걸쳐 더듬이에서  더듬이로 어머니 여왕이 딸에게  전해준 것이다.
  둥근 천장의 주요 부분은 지름이  36머리에 높이가 12머리이다.(머
리는 벨로캉 연방에서 사용하는 척도러서, 한  머리는 인간 세계에서
사용하는 척도로 3밀리미터에 해당한다.)  희귀하게도 돌가루 반죽을
굳혀서 만든 벽 기둥이 이 곤충의 전당을  받치고 있다. 바닥이 오목
한 이 방은  개미들이 발산한 냄새 분자가 벽에 스며들지  않고 되도
록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고안해 놓았다.  말하자면 훌륭한 후각 원
형 극장인 셈이다.
  가운데에 퉁퉁한 암개미가 엎드려 있다. 암개미는  배를 깔고 엎드
린채 이따금 노란 꽃을 향해 발길질을 해보고  있다. 그 꽃은 그때마
다 다리를 붙들려고  잽싸게 꽃잎을 오무리지만 암개미는  그보다 먼
저 다리를 빼낸다.
  그 암개미가 벨로키우키우니다.
  불개미 중심 도시의 현 여왕 벨로키우키우니.
  도시의 유일한 산란  개미이며 모든 동포들의 육체와  정신을 낳은
개미, 벨로키우키우니.
  벨로키우키우니는 재임중에 이미 꿀벌과의 대전을  치렀고 남쪽 흰
개미 도시를 정복했으며, 거미의 영토를  평정했고, 떡갈나무 말벌들
이 일으킨 지긋지긋한 소모전도 겪었다. 작년부터는  북쪽 경계를 넘
보는 난쟁이개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연방  도시들의 힘을 정비하고
있다.
  최장수 기록을 깨뜨린 바 있는 벨로키우키우니.
  수개미 327호의 어머니이기도 한 벨로키우키우니.
  연방 역사의 산  증인이 예전처럼 그의 곁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
이다. 한때는, 스무 마리쯤 되는 어린  시종 개미들이 여왕을 촉촉하
게 적셔주고  안마를 해줄 때를  제외하고는, 바로 327호 그가  아직
서툰 다리로나마 여왕의  시중을 들었는데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
가 되어 버렸다.
  여왕이 관찰하고 있는  어린 벌레잡이 식물이 턱처럼  생긴 꽃잎을
오므리자, 여왕이 투덜거림 섞인 냄새를  발산한다. 여왕이 어쩌다가
그런 야수 같은 식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327호가 다가간다. 가까이에서 보니 어머니는  그리 아름답지는 않
다. 머리가 길쭉하게  앞으로 나와 있고, 한번에 어디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두 눈이 둥그렇게 불거져 있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홑눈들은 이마  가운데 모여 있는데,  더듬이는 반대로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  더듬이는 아주 길고  날렵하며 이따금 가볍게  떨리는
모습에서는 완벽한 노련미가 엿보인다.
  벨로키우키우니는 며칠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  후로 여왕은 계
속 알을 낳았다. 보통 개미들의 배보다 10배나  큰 여왕의 배에 연속
적으로 경련이 일어나더니, 여왕이 여리디여린 알  8개를 낳는다. 자
개빛을 띤 연회색의  그 알들이 벨로캉의 막내 세대가  되는 셈이다.
벨로캉의 미래를 가꾸어갈, 그 아주 동그랗고  끈적끈적한 알이 모태
를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모 개미들이 떠맡는다.
  젊은 수개미는 그  알들의 냄새로 거기서 태어날  개미들의 신분을
알아낸다. 그 알들은 수개미들과 생식  능력이 없는 병정개미들이다.
날씨가 추워서  '딸들'을 낳는 분비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상
조건이 나아지면 어머니느 도시가 필요로 하는  만큼 모든 계급의 알
을 낳을 것이다.  일개미들이 어머니에게 와서 '곡물을  빻을 개미와
포수 개미가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그  요구대로 알을
낳아줄 것이다. 벨로키우키우니 자신이 거처를 나와  손수 통로를 돌
아다니며 냄새를  맡는 일도 있다.  어머니는 아주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계급에 조금만 결원이  생겨도 그것을 금방 알아
낸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부족한 부분을 곧바로 보충해 준다.
  어머니가 다시 야릿야릿한 알 다섯 개를  낳는다. 그러고는 방문객
을 향애 몸을 돌린다. 어머니가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핥아준다. 여
왕의 침이 몸에 닿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그 침은 두루두루 효
험이 있는 소독제일  뿐 아니라, 머릿속에 난 상처만  아니라면 어떤
상처라도 치료할 수 있는 만병 통치약이다.
  벨로키우키우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식을  가진 탓에 자식 하
나 하나를  찬찬히 다 알아보지는 못  한다. 그럴 때는  그렇게 침을
발라줌으로써 자식의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알아냈음을 보여주는 것
이다. 내 자식이 왔구나.
  비로소 더듬이를 사용하는 대화가 시작된다.
  '겨레의 모태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내 폼을  떠나기
는 했으나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지니.'
  어머니가 자식에게 하는 의례적인 말이다. 그  말을 하고나서 어머
니는 끈끈한 액을  내어 327호의 더듬이 열두 마디에서  페르몬이 나
오게 한 다음 그 냄새를 맡는다. 어머니는  벌써 방문의 이유를 알고
있다.... 서쪽에 파견된 첫 원정대가 전멸을  당했다. 참사가 빚어진
장소 주변에  난쟁이개미들의 냄새가 있었다.  그 자들은 십중  팔구
비밀 무기를 발명해 낸 것이다.
  탐험가인 그는 다리였노라. 현장에서는 눈 노릇을  했고 이제는 돌
아와 겨레를 일깨우노라.

  너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다만,  네가 겨례를 일깨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네  페로몬은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너는  나 벨
로키우키우니만이 진실을 겨레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
고 생각하고 나를 찾아온 것이로구나.
  어머니는 한층 더 세심하게 그의 냄새를  맡는다. 더듬이 마디마디
와 다리에서  나오는 아주 사소한  냄새 알갱이 하나도 놓치지  않는
다. 그래, 죽음과 불가사의의 흔적이 묻어나는구나.  전쟁일 수도 있
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많지.
  어머니는, 그의 말을 사실이든 아니든 어머니  마음대로 무엇을 결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다. 개미  도시에서는 무엇을
결정할 때 확고 부동한 합의를 토대로 한다.  어떤 계획이 나오면 그
일에 함께 매달릴  집단이 형성되어야 한다. 인체에  빗대어 말하면,
일종의 신경 중추를  하나 만드는 셈이다. 그렇게 하나의  집단을 모
아내지 못하면, 327호의 경험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다.
  어머니조차 그를 도울 수 없다.
  수개미 327호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 얘기를  끝까지 들어
줄 듯한  말 상대를 만난 기회를  놓칠세라,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가장 설득력이 간한  냄새 분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
자면, 그 참사는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따
라서 즉시 첩보원들을 보내 그 비밀  무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아
야 한다는 것이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겨레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
적해 있어서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대답한다.  겨울잠에서 께어나는
일도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  아니고 도시의 거죽도 아직  수리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잔가지로 이루어진 맨 윗켜가  놓이지 않
은 상태에서 전쟁을  하러 떠나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겨례는 지
금 단백질과 당분이  부족하다. 그뿐인가. 신생의 축제를  준비할 생
각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자면 각자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한
다. 첩보원을  보내고 싶어도 손이  모자란다. 결국 327호가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전하려는 소식은 다른 개미들의  이해를 구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꽤  흘렀다. 어머니는 다시 벌레잡이  식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등딱지를 핥는 일개미들의 입술  소리만이 정적
을 깨고  있다. 어머니는 배가 가슴  아래에 가서 멎을  때까지 몸을
비틀고 있다. 두  뒷다리가 대롱거린다. 벌레잡이 식물이  턱처럼 새
긴 꽃잎을 오므리자  어머니는 재빨리 다리를 빼낸다.  그러고는 327
호에게 그 벌레잡이  식물이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
깨운다.

  '벌레잡이 식물로  울타리를 세워 북서쪽  경계 전체를 방위할  수
있을 게야.  그러자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이 작은 괴물들이 아직 우리  도시 거주자와 외부 침
입자를 구별할 줄 모른다는 거야....'
  327호는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화제를 다시 들고  나온
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사고'로 숨진  개미가 몇 마리냐고  묻는
다. 수물여덟입니다.  죽은 자들이  모두 병정개미의 아계급인  탐험
개미였느냐는 질문에, 327호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자기가 유일한 수
개미였노라고 덧붙인다. 그러자 어머니는  정신을 집중하면서 스물여
덟 개의 진주를 연달아 낳는다. 죽어간 동료의 수와 같다.
  스물여덟 마리의 개미가 죽은 대신에, 그  역할을 대신할 스물여덟
개의 알이 태어난 것이다.

   때가 되면 숙명적으로
  때가 되면 숙명적으로, 손가락이 이 지면들  위에 놓일 것이고, 눈
이 이 단어들을 핥을 것이며, 뇌가 단어들의 의미를 해석할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빨리 도래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결과가 끔
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꼭 알아야 할 것이
다. 아무리 깊은 곳에 감추어둔 비밀이라도  끝내는 호수의 수면으로
떠오르고 마는 법이다. 시간이야말로 비밀의 가장 나쁜 적이다.
  이글을 읽고  잇는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먼저 당신에게  인사를
해야겠다.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있을 쯤이면,  나는 아마 죽은 지 10
년 아니면 100년쯤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만 여하튼 나는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이  백과 사전에 담으려는  지식에 도달하게 된 것을  이따금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며, 비록 지금은  인류에 대한
나의 연대 의식이 가장 밑바닥에 와 있지만,  그래도 당신들 속에 세
계 인류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내가 인류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겪은 일들을 전해주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좀더 가까이에서 보면 결국  서로 비슷비슷하다.
먼저 '그래서 어찌어찌  되었다'고 발전할 씨앗을 가진  하나의 소재
가 있다. 그  소재가 어떤 위기를 겪는다. 그 위기가  소재에 반전을
불러오고, 소재의  성격에 따라 소재가 소멸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먼저  당신에게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우리의  우주에 관
한 것이다. 우리가  그 세계의 내부에 살고 있고, 삼라  만상은 크건
작건 모두 똑같은  법칙을 따르고 있고 똑같은 상호 의존  관계를 맺
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이 지면을 넘길 때, 당신의 손가락이  어느 지
점에선가 종이의 섬유소와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그 접촉으로 극미
한 마찰열이 생긴다. 지극히 적기는 해도  마찰열은 실재한다. 이 마
찰열 때문에 어떤 전자의 방출이 일어나고  그 전자는 원자를 벗어나
다름 입자와 충돌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알갱이지만, 사실 그  입자도 저 나름으로는
거대한 세계이다. 따라서 전자와의 충돌이 입자에게는  말 그대로 하
나의 대격변이다. 충돌이  있기 전만 해도 입자는 움직임  없이 고요
했고 차가운  상태에 있었다. 당신이 책장을  '넘김으로써'입자가 위
기를 맞은 것이다.  거대한 불꽃이 일면서 입자에 번개  무늬가 생긴
다 책장을 넘기는  동작 하나로 당신은 어떤 일을 일으킨  것이고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세계가 생겨나고
그 위에 사람들과  같은 거주자들이 나타나 야금술이며  프로방스 요
리, 별나라 여행 같은 것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영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당신이 손에 이 책을  쥐지 않았
던들, 그리고 당신이  손가락이 바로 종이의 그 자리에  마찰열을 일
으키지 않았던들,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우주는  책장 한 귀퉁이, 구두의  밑바닥, 맥주병의
거품에도 다른 종류의 어떤 거대한 문명이  깃들 자리를 분명히 마련
해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아마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
주 오랜  옛날, 우리 우주, 아니  우리 우주를 담고 있던  입자는 텅
빈 채, 차갑고 캄캄하고, 고요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아니면 무
엇인가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누군가가  책장을 넘기고, 돌  위를
밟고, 맥주병의 거품을  걷어냇던 것이다. 하여튼 어떤  외부 충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우리 입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지
금 우리는 그 외부의 충격을 거대한  폭발이었다고 알고 있으며, 그래
서 빅뱅이라 이름을 붙였다.
  150억 년 이상 전에 우리 우주가 태어난  것처럼, 어쩌면 매 순간,
무한히 큰  곳에서, 무한히 작은  곳에서, 무한히 먼 곳에서  우주가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다른 우주를  모른다. 그러
나 우리 우주가,  수소라고 하는 가장 '작고' 가장  '간단한' 원자가
폭발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거대한 폭발로 돌연 잠에서 깨어난 그  거대한 침묵의 공간을 상상
해 보라. 저 높은 곳에서 왜 책장을  넘겼을까? 왜 맥주 거품을 걷어
냈을까? 그건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수소가  타고, 폭
발하고, 더워진다는 것이다. 한 줄기 거대한  빛이 순결한 공간에 비
친다. 위기.  꼼짝 않던 것들이  움직인다. 차가웠던 것들이  더워진
다. 잠잠하던 것들이 소리를 낸다.
  최초의 폭발  과정에서 수소는 헬륨으로 바뀐다.  헬륨은 수소보다
겨우 조금 더  복잡한 원자일 뿐이지만, 그런 사소한  변화에서도 우
리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제1법칙을 연역해 낼 수 있다.  그 법칙
은 바로 '끊임없이 더 복잡하게'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에  그 법칙이 관통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우주에도 그 법칙이 적용되는지를 증명할   길은 없다. 다른 우
주에서는 어쩌면 '끊임없이 더 재미있게'라는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에서도  사물이 더 뜨거워진다든가, 더  단단해진다든가,
더 재미있어지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제1법칙이 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부차적인  법칙일 뿐이다. 다른 모든  법칙의 토대가
되는 우리 우주의 근본 법칙은 바로  '끊임없이 더 복잡하게'인 것이
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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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미 327호가 도시 남쪽 통로에서 헤매고  있다. 평정을 잃은 그
가 그 유명한 구절을 되뇌고 있다.
  탐험가인 그는  다리였노라. 현장에서는  눈 노릇을 했고,  이제는
돌아와 겨레를 일깨우노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에 잘못이 있었던  것일까? 그
가 얻은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에 그의 몸뚱이가 부들거리
고 있다. 그가  보기에 분명히 겨레가 상처를 입었음에도  겨레는 그
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처가  주는 고통을
일깨울 자는 327호  자신이다. 말하자면 그가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
자극인 셈이다. 따라서  도시가 그 자극에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일
도 그의 몫이다.
  아, 겨레의 일부가 수난을 당했는데도 그  소식을 받아들이려는 더
듬이들이 없어서 그것을 제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는 그 끔찍한 진실을 다른  개미들과 함께
나누면서 모든 짐을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열을 전달하는 개미 하나가 그의 곁을  지나간다. 327호가 맥이 빠
져 있음을 직감하고, 그 개미는 그가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못 차리
고 있는가 싶어서  태양 에너지를 나누어준다. 그러자  327호가 조금
힘을 얻고 이내 전열 개미를 설득하려고 한다.
  '비상이야, 난쟁이개미들의  매복에 걸려서 우리 원정대가  박살났
어. 비상!'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처음과 같은 진실의 어조가  담기지 않았
다. 전열 개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심드렁하게 자리를 뜬
다. 327호는 단념하지  않고 경보의 메세지를 퍼뜨리면서  통로를 달려간다.
  이따금 병정개미들이  발길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치명적인  신종 무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도통 못 믿겠다는  눈치를 보인다. 군사적인  임무를
떠맡을 수 있는  집단을 이루어내야 하는데, 그러기는 영  그른 것만 같다.
  녹초가 된 채 그가 걷고 있다.
  지하 4층 발길이  끊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데 돌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그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다.
  327호는 몸을 돌렸다. 적외선 홑눈으로 통로를  탐색한다. 빨간 반
점과 검은 반점이 어른거릴 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
명히 발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  다시 뒤에서 발소리가 울린다.  쓰
윽, 츠스스스....  쓰윽.... 츠스스스.... 누군가가 여섯  다리 중에
서 두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혹시 환청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는  교차로가 나올 때마
다 방향을 바꾼 다음 잠시 멈추고 살펴본다.  그가 멈추면 소리도 멈
춘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만 하면  쓰츠.... 츠스스, 쓰츠....츠스스
소리가 다시 난다.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가 몸을 돌리자 누군가가 몸을 숨긴다. 듣도  보도 못 한 이상한
짓거리다. 어째서 겨레의  한 구성원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다른
구성원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각각의 구성원은  모두
겨레와 더불어 살고 있고 아무에게도 숨길 게 없지 않은가?
  뒤를 밟는 자의  '존재'가 여전히 그를 성가시게 한다.  여전히 멀
리 떨어진 채, 여전히 몸을 숨긴  채. 쓰츠....츠스스, 쓰츠....츠스
스. 이럴 땐 어떻게 한다? 그가 애벌레였을  때, 유모 개미들은 그에
게 위험에 마주치면  언제나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가르쳤
다. 그는 멈추어  서서 몸단장하는 시늉을 한다. 그 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 자의 냄새가 가까스로  감지할 수 있다. 씻는 몸
짓을 흉내내면서 327호는 더듬이를 움직인다.  드디어 미행자의 냄새
분자가 감지되었다.  그자는 1년생의 작은 병정개미이다.  그 병정개
미는 특별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 냄새 때문에  현재의 신분
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 냄새는  딱히 뭐라고 규정짓기가  어렵
다. 바위 냄새라고나 할까.
  작은 병정개미는 이제 몸을 숨기지  않는다. 쓰츠....츠스스스, 쓰
츠....츠스스스. 이제  적외선 홑눈에도 병정개미가 보인다.  병정개
미는 실제로  다리 두 개가 모자랐다.  그의 몸에서 바위  냄새가 더
진하게 끼쳐온다.
  327호 페로몬을 풍긴다.
  '거기 누구인가?'
  대답이 없다.
  '왜 내 뒤를 밟고 있는가?'
  대답이 없다.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도 하여 327호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그의 앞에 두 번째 개미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덩치 큰
병정개미이다. 통로가 좁아서 지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돌아갈까? 그러면 절름발이와  부딪힐 것이다. 게다가 그  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327호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병정개미 두  마리가 있고,  그들의 몸에서는  바위 냄새가  난다.
327호는 그 사실을  깨닫는다. 덩치 큰 병정개미가  기다란 작두같이
생긴 위턱을 벌린다.
  함정이다!
  도시의 한  개미가 다른 개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저
들은 내 신분의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를  이방의 개체
로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해괴한 일이다. 이건  마치 위
가 창자를 죽이려는 거나 다름없지 않는가.
  수개미 327호는 더 힘을 주어 페로몬을 발산한다.
  '나도 너희처럼 겨레의  한 일원이다. 우리는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
  이들은 어린 병정개미들이다.  어린 탓에 착각을 한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방출한  페로몬은 그와 대치하고 있는  병정개미들을 누
그러뜨리지 못했다. 커다란 병정개미가 위턱으로  327호의 머리를 조
이는 사이, 작은 절름발이는 327호의 등  위로 뛰어올라 날개를 붙잡
는다. 그렇게 꼼짝 못하게 조르면서 병정개미들은  그를 쓰레기터 쪽
으로 끌고간다.
  수개미 327호는 발버둥친다.  교미를 할 때나 사용하는  더듬이 마
디로 페로몬을 발산하여  비생식 계급 개미들은 알지도  못하는 갖가
지 감정들을 나타낸다.  병정개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  냄새들 때
문에 차츰 두려움을 느낀다.
  그 '추상적인' 관념들 때문에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으려고, 절
름발이는 가운뎃가슴 등판을  줄곧 여민 채, 턱으로  327호의 더듬이
를 닦아낸다. 절름발이는  그런 동작으로 327호의 모든  페로몬을 없
애버렸다. 통행증 구실을 하는 페로몬마저도  없애버린다. 결국 그가
가는 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별로 쓸모가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그 셋 사이에서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발길이 가장 뜸한 통로로 나아간다.  작은 절름발이는 더
듬이 닦는 일을 꼼꼼하게 계속하고 있다.  327호의 머리에 어떤 정보
도 남겨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수개미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는 박동을 늦추면서  조용히 사라져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폭력이 이렇게 성행하고  증오가 이토록 만
연하는 겁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같이  지구와 하느
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공허한 싸움은 그만둡시다. 22세기는 영적인  시대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만과 위선에 뿌리박은  우리의
해묵은 싸움일랑 이제 집어치웁시다.
  개인주의,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적입니다!  가난한 형제 하나
가 있는데 그가 굶주려 죽도록 내버려둔다면,  여러분은 거대한 세계
공동체에 동참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길 잃은 자가  여러분에게
도움과 원조를  요청하는데 그의 앞에서 문을  닫아버린다면, 여러분
은 우리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압니다. 여러분은 비단으로  몸을 두른 채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개인적인  안락만을 생
각하고, 개인적인  영광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안다고 장담합니다. 당신,  당신, 당신 그리고  당
신! 텔리비젼 앞에서 웃고 계시겠지요. 그만  웃으십시오. 저는 심각
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인류의 미래가 더  이상 지속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생활  양식에 분별력이 없습니다. 우
리는 모든  것을 낭비하고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일회용  화장지를
만들려고 숲을 줄이고 있습니다. 뭐든지  일회용입니다. 수저와 필기
구, 의복, 사진기,  자동차, 게다가 여러분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여
러분 자신도 일회용이  될 판입니다. 이런 천박한 생활  양식을 버리
십시오. 내일 그런  생활 양식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하기에  앞서, 오
늘 당장 포기하셔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시오.  우리 신자들의 군대에
합류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는미의 병사들입니다.
  여자 아나운서의 모습이 비친다.
  -이상으로 선교 방송을  마칩니다. 이 방송은 제45일  재림 신교회
의 맥도널드 신부와  '스위트밀크' 냉동 식품 회사의  제공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이  방송은 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방영되었습니다.  곧
이어 공상  과학 연속극 '자랑스런 외계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먼
저 광고가 있겠습니다.
  뤼시도 니콜라도 텔레비젼을 보고 있지만 생각은  딴 곳에 가 있었
다. 조나탕이 아래로  내려간 지 벌써 여덟 시간이  지났건만 여전히
소식이 캄캄했다.
  뤼시는 전화기로 손을 가져갔다. 조나탕이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
지만, 그가  죽었다든가, 무너진  돌더미에 깔리기라도 했다면  어쩔
것인가?
  뤼시는 아직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수화기를 들고,
경찰 구조대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전화하지 말라고 당신한테 말했을텐데."
  부엌 쪽에서 울림이 적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다! 아빠"
  니콜라가 달려갔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주소를 말씀해 주세요"라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송수화기를 뤼시는 딸깍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그래, 그래,  아빠다. 걱정했던 모양이구나. 그럴  필요가 없었는
데 내가 올라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건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니! 그는 아주 뜻밖의 말을 하고 있었다.
  조나탕의 앞에는 이제 핏빛 살덩이에  불과한 우아르자자트의 시체
가 들려 있었다. 개뿐만 아니라 사람도 옛날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겁을 먹거나 지친 기색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미소를 짓기
까지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뭐랄까.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
픈 것 같기도  했다. 눈빛은 열기로 달아 있는데,  낯빛은 파리했다.
그는 떨고 있었고 숨이 가쁜 듯했다.
  니콜라는 죽음을  당한 개의 몸뚱이를  보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가련하게도 그 푸들 종의 개는 면도칼 같은  것에 몇 차례 찢긴 것
처럼 보였다.
  그들은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개를 뉘었다.
  니콜라는 제 동무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우
아르자자트를 보는  것도 이젠 끝이었다. '고양이'라는  말만 나오면
벽위로 뛰어오르던  모습도, 껑충거리면서 문의 손잡이를  돌리던 모
습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덩치 큰 독일산 셰퍼드들이  성 도
착에 빠져 우아르자자트를 괴롭힐 때마다  니콜라가 구해주곤 했었는
데, 앞으로 그런 일도 다시는 없을  거다. 우아르자자트는 이제 존재
하지 않는다.
  조나탕이 아들을 달래려고 선심을 쓴다.
  "내일 이 녀석을  페르-라셰즈 개 공동 묘지로  데려가자. 1,500프
랑짜리 무덤을 사주고 거기다 이 녀석 사진을 놓아두는거야."
  "예, 좋아요! 그렇게 해요. 우아르자자트에게는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해주어야 돼요."
  니콜라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그런 다음에는 동물  애호 협회에 가자. 가서 다른  개를 고르렴.
이번에는 몰티즈  종 복슬강아지로 하면  어떨까? 그것도 꽤  이쁘던데."
  뤼시는 의아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궁금한 게  하도 많아서
어느 것부터  물어봐야 할 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개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
었나요? 뭘 좀  먹을래요? 식구들이 얼마나 불안해  했는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저 아래에 뭐가 있어요?"
  마침내 질문 하나를  던진다는 것이 고작 그거였고  목소리는 마음
과 다르게 심드렁했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거기 갔다온  당신 모습이 어떤  줄 알아요? 그리고 개는  어떻구
요. 꼭 고기  써는 기계 안에 들어갔다 나온 거  같아요. 우아르자자
트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조나탕은 더러워진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공증인의 얘기가  옳았어, 저 아래는 쥐가  우글우글해. 우아르자
자트는 사나운 쥐들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거야."
  "그럼 당신은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 사람아,  쥐들이 보기에 개보다 더 커다란  동물이 아닌
가, 그놈들은 나를 보더니 겁을 먹더군."
  "말도 안 돼요! 여덟  시간 동안 밑에서 도대체 뭘 한  거예요? 이
저주받은 지하실 안에 뭐가 있지요?"
  그녀가 드디어 화를 냈다.
  "안에 뭐가 있는지는 나도 몰라. 끝까지 가 본 게 아니거든."
  "끝까지 안 갔다구요?"
  "그래, 너무너무 깊더라구."
  "여덟 시간 걸려서도 끝까지 못 가봤단  몰이에요? 우리 지하실 대
단하네요."
  "그래. 더  가려다가 개를 발견하고는 그만두었지.  온통 피투성이
더구만. 우아르자자트는  필사적으로 저항을  한 게야. 이렇게  작은
개가 그렇게 오랫동안 버틴 것도 정말 대단한거지."
  "그런데, 당신이 멈췄다는 데가 어디예요? 중간쯤 되는 덴가요?"
  "그걸 어떻게 알아? 하여튼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어. 나
도 무서웠거든.  내가 어둠과 폭력에  약하다는 거 잘 알잖아.  다른
사람이라도 내가  멈춘 자리에서 포기했을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
태에서 무턱대고 나아갈  수는 없잖아. 그리고 당신,  니콜라 생각도
나더라구. 얼마나 캄캄한지 상상이 안 갈거야. 죽음 같았어."
  말을 마치면서 그는 왼쪽 입가를 들어올리며  바르르 떨었다. 뤼시
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를 성가시게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뤼시는 그의  허리를 끌
어안고 그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마음 놓으세요.  이제 끝난 일이예요.  이 문을 꼭꼭  막아버리고
이제 얘기도 꺼내지 말기로 해요."
  조나탕은 아내를 떼어놓으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아니야, 끝난 게  아니야. 벽이 빨갛게 되어 있는  구역이 있었는
데. 거기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어.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
을거야. 난 폭력이라면  지레 겁을 먹었던 사람이야.  동물을 상대로
한 폭력에도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지.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 거의 끝까지 갔던 것인지도 모르잖아...."
  "지하실로 다시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그래, 에드몽 삼촌이 지나간 길이야. 나도 가겠어."
  "에드몽 삼촌이요?"
  "그분이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인가를 했어.  그게 뭔지  알아야겠
어."
  뤼시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여보, 나하고 니콜라를 사랑한다면, 더 이상 내려가지 말아요."
  "다른 도리가 없어."
  그러면서 조나탕은 다시 왼쪽 입 가장자리를 바르르 떨었다.
  "난 언제나 반거들충이처럼  일을 했어. 내 이성이  위험이 닥쳐오
고 있다고 일러주기만  하면 언제나 하던 일을 그만두었지.  지금 내
꼬락서니가 어떤가 보라고.  위험한 일 한번 제대로 겪어본  적도 없
고 인생살이에 성공하지도  못한 한 사내의 모습을 보란  말이야. 내
친 걸음에 갈 데까지 가보는 기백이 있어야  하는데, 난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 자물쇠 회사에 그냥 있을  걸 그랬나봐. 그 동안 익힌
기술이 쓸모없게 됐지. 우범 지역에서 습격도  당해보고 그랬어야 했
어.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폭
력이 뭔지도 알고  폭력을 다스리는 법도 알게 되었겠지.  그렇게 하
기는 커녕, 험한 일  안 하려고 꽁무니 빼다가 결국 요렇게  세상 물
색을 모르는 아이처럼 되어버렸어."
  "당신 이상한 소릴 하네요."
  "아니야. 이상한 소릴  하는 게 아니야. 사람이 영원히  고치 속에
서 살 수는 없는 거야. 이 지하실이 나에게  고치를 뚫고 나갈 수 있
는 좋은 기회를 준거야.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나는 거울  속의 나
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거야. 그저  겁쟁이 하나만을 보게 되겠지.
게다가, 나보고 내려가라고  등을 민 건 당신이야. 생각해  봐, 당신
이 뭐라고 했는지."
  조나탕은 피로 얼룩진 셔츠를 벗으며 못을 박듯 말했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내 결심을 돌이킬 순 없어."
  "좋아요. 그럼 나랑 같이 가요!"
  손전등을 그러쥐면서 뤼시가 당차게 나섰다.
  "안돼, 당신은 여기 있어."
  그는 우악스럽게 아내의 손목을 잡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거예요?"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어. 이  지하실은 나하고
만 상관이 있어.  이건 내 일이고, 내가 갈거야.  아무도 끼여들어선
안돼. 내 말 알아듣겠어?"
  그들 뒤에서는 니콜라가 여전히 우아르자자트의  시체 위에서 울고
있었다. 조나탕은 뤼시의 손목을 놓아주고 아들에게 다가섰다.
  "자, 그만 진정해라. 니콜라."
  "엄마 아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우아르자자트가  죽었는데 말
다툼만 하고, 정말 답답해요."
  조나탕은 분위기를  좀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냥
갑을 가져오더니, 여섯 개를 꺼내서 식탁 위에 늘어놓았다.
  "자, 이거  봐라. 내가 수수께끼  하나 낼께.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수가 있거든,  잘 생각해 보면, 틀림없
이 답을 찾아낼 수 있을거야."
  아이는 호기심을  보이며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달려들어 성냥개비를 이리저리 놓아보기 시작했다.
  "너한테 일러둘 게 하나 있다. 답을  찾으려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
해야 한단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답을
 찾아내지 못할거야."
  니콜라는 정삼각형 세 개를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네
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눈동자가  파란 큰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아빠는 답을 찾았어요?"
  "아니, 아직 못 찾았어. 하지만 곧 답을 알아낼 것 같아."
  조나탕은 잠시나마 아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아내를 진정시키지
는 못했다. 그를 바라보는 뤼시의 노기가  어려 있었다. 그날 저녁에
그들 부부는 꽤  격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러나 조나탕은  끝내 지
하실과 그 비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조나탕은 일찍 일어나서 오전 내내  지하실 입구에 철문을
설치하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철문에는 맹꽁이  자물쇠를 달았다. 그
러고는 하나밖에 없는 열쇠를 끈에 매어 자기 목에다 둘렀다.

  구원은 지진이라는 뜻하지 않는 모습으로 찾아왔다.
  가장 먼저 벽들이 옆으로 심하게  흔들리면서 모래가 천장으로부터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두 번째 진동이  일더니,
세 번째, 네  번째로 이어진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떨림이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빠르게 이어지면서,  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세
마리 개미에게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진동은 어마
어마한 포효처럼 끊일  새 없이 계속되고 그 진동 때문에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 요동 속에서 젊은 수개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심장 박동을
다시 빠르게 하더니, 자신을 죽이려고 끌고가는  두 개미에게 위턱을
날려 그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터널 속으로 달아난다. 그는
아직 배냇날개에 불과한 날개를 흔들어서 장애물  위로 더 높이 띄고
더 빨리 도망가려고 애를 쓴다.
  더 강한 진동이 일어날 때마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서 모래 사태가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통로의 벽 전체가 다른  통로 한가운
데로 무너진다. 다리와 육교와 지하 동굴이  붕괴되면서 수백만 개미
들이 혼비 백산한 채 함께 떨어지고 있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경보 냄새가 분출하여  널리 퍼져나간다. 먼저
자극성을 지닌  페로몬이 상층의 통로들을 안개처럼  덮어버린다. 그
냄새를 맡자마자 개미들은  모두 발발 떨면서 사방  팔방으로 달려가
훨씬 더  자극적인 페로몬을 뿜어댄다. 그러면서  공포는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이것이 1단계 경보가 발동했을 때의 모습이다.
  위험을 일깨우는  먹구름이 번져나간다. 마치 상처난  부위의 독소
가 정맥을 거쳐  대동맥에 합류한 다음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형국이
다. 겨레의  몸 안에 이물질이  침투하여 독소가 생기고, 그  독소가
통증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젊은  수개미가 그토록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독소였다. 체내에 침투한  이물질에 피톨이 저항하듯
이 개미들은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개미들은 재해  지역에
가까이 있는 알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고 있고  병정개미들은 전
투 부대별로 재집결하고 있다.
  수개미 327호가 모래와 개미떼로 반쯤 막힌  어떤 널찍한 네거리에
다다랐을 때 진동이  멎었다. 그러자 불안한 정적이  감돈다. 개미들
은 저마다 다음에 벌어질 일이 무엇일지  가슴을 졸이면서 미동도 하
지 않고 있다.  곧추세운 더듬이들이 가볍게 떨린다.  그들은 무엇인
가를 예감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선명하고  반복적인 소리로 괴
로움을 주던 방금 전의 탁탁거리는 소리  대신에 돌연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무겁게  울려오기 시작한다. 도시의  지붕을
덮고 있는  잔가지 덮개에 구멍이  뚫리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어떤 거대한 것이 둥근 지붕 속으로  들어와 잔가지들을 뚫고 벽을
부수고 있는 것이다.
  연체 동물의 발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가늘고 불그스레한 살덩이
가 네거리 한복판으로 불쑥 밀고들어온다. 그  장미빛 살덩이는 채찍
처럼 허공을  후려치다가 맹렬한 속도로 땅바닥을  훑어댄다. 되도록
이면 많은  개미 시민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병정개미들이 위턱으
로 그  살덩이를 물어뜯으려고 덤벼들자,  그 살덩이 끝에  포도송이
같은 커다란 개미 송이가 생겨났다.
  개미떼가 충분히  달라붙자, 혀라는 이름의 그  불그레한 살덩이가
개미떼를 목구멍에 쏟아  붓느라고 위로 사라졌다가 다시  뚫고 들어온다.
  번개가 치듯 잽싸게 움직이는 혀가 점점  더 깊이 파고들면서 개미
떼를 게걸스럽게 걸터듬는다.
  그러자 2단계  경보가 발동한다.  일개미들이 배 끝으로  땅바닥을
두드린다. 아직 비상  사태가 발생한 줄 모르고 있는  아래층의 병정
개미들을 불러 모으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마을에  탐탐 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온 도시에
북소리가 진동한다. 탁, 탁, 탁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개미 도시 전
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그 소리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침입자가 도시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려고 둥근
지붕을 다시 쑤셔대면서 툭, 툭, 툭 소리를  내고 있다. 개미들은 저
마다 벽에  찰싹 달라붙는다. 불그스레한  뱀처럼 통로를 미친  듯이
훑어대는 그 혀에 붙잡히지 않으려는 것이다.
  혀로 핥을 수  있는 개미의 양이 너무 적었던지 침입자는  혀를 더
길게 늘이며  밀고 들어온다. 부리  전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거대한
머리가 뒤따라 온다.
  청딱따구리다! 봄철의  무법자.... 곤충을  잡아먹는 이  탐욕스런
새는 불개미 도시의  지붕을 뚫고 60센티미터나 들어와  개미들을 잡아먹곤 한다.
  이제 3단계  경보를 발동할 때가  된 것이다. 극도로 흥분한  몇몇
일 개미들은 흥분을 미처 행동으로 발산하지  못해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질린 춤이다.
  춤사위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불규칙하고 단속적
이다. 뛰어 오르고, 위턱을 서로 부딪치고,  침을 뱉어내고.... 어떤
개미들은 완전히 미쳐서 통로를  뛰어다니며,  움직이는 것은 뭐든지
물어뜯는다. 두려움을  잘못 다스릴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도시가
침입자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은 자멸하고 말것이다.
  재난이 일어난 곳은 서쪽 지상 15층이다.  그러나 2단계 경보가 발
효된 지금은 온  도시가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일개미들은 알들
을 피난시키기  위해 지하의 맨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아래로
내려가는 일개미들과 엇갈려 위턱을 세운  병정개미들의 행렬이 서둘
러 위로 올라가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개미 도시  벨로캉은 그
런 불상사에  맞서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북새통 속에서도 병정개미들  계급 중 포수 개미에  속하는 개미들은
특공대를 형성하고 긴급 작전을 떠맡는다.
  그들이 청딱따구리의 몸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목을 둘러싼다.
  그런 다음 몸을 뒤집고 근접 사격 자세를  한다. 그들의 배가 총이
되어 청딱따구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발사! 포수  개미들을 괄
약근에 있는 힘을 다 주어 고농축 개미산을 발사한다.
  청딱따구리는 누군가가  갑자기, 가는 핀으로 만든  목도리로 목을
죄어오는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새는 버둥거리면서  목을 죄어
오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새는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다. 새의  날개가 짧고 둥근  지붕의 잔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청딱따구리가 부들거리면서  호흡이 버거워짐을 느낀다. 발사!  개미
산이 청딱따구니의 신경을 뚫고 그를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는다.
  사격이 멎는다.  여기저기서 커다란 턱을 가진  병정개미들이 달려
나와 개미산에 덴 상처를 물어뜯는다. 한편에서는  한 무리의 병정개
미들이 바깥쪽 둥근  지붕의 남아 있는 부분으로  올라가서 청딱따구
리의 꼬리 위치를 알아낸 다음, 가장 냄새가  많이 나는 부분인 항문
으로 뚫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타고 나길 싸움꾼으로  타고 난 이 병
정개미들은 금방 항문의  입구를 벌리고 새의 창자  속으로 밀고들어 간다.
  앞서 개미산  공격을 벌였던 무리가  목 살갗에 구멍을  뚫어냈다.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병정개미들은  경보 페로몬의 방출을
중단한다. 이제 목 부위의 싸움에서는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목의 살갗이  활짝 벌어지자 병정개미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청딱따
구리가 삼켰던  개미들 중에서 후두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개미들이
있다. 병정개미들이 그들을 구출해 낸다.
  병정개미들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머리  안으로 들어가 뇌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일개미 한 마리가 통로  하나를 찾
아냈다. 목의  굵은 혈관이다. 아직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심장에서
머리로 피를 보내는 목 동맥을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그 반대인 목
정맥은 안된다. 마침내 찾아냈다. 병정개미 네  마리가 그 혈관을 째
고 붉은 혈액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심장 박동이 밀어  올리는 피의
흐름에 실려, 병정개미들은 곧 뇌반구의  한복판까지 올라갔다. 그들
은 거기에서 회색 물질을 파들어갈 채비를 갖춘다.
  청딱따구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이리저리 뒹굴어보지만,  몸 안
에 들어와 살을 저며대는 이 침입자들을 당해낼  도리는 없다. 온 부
대의 개미들이 청딱따구리의 허파 속으로  들어가 개미산을 쏟아붓는
다. 새가 참혹하게 기침을 해댄다.
  위턱으로 무장한 다른  개미들이 식도 안으로 짓쳐들어가  항문 쪽
에서 올라오는  동료들과 소화 기관  안에서 합류하려고 한다.  항문
쪽으로 들어갔던  개미들은 잘록창자를  발빠르게 기어오르고  있다.
도중에 그들은 위턱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지나쳐 가는  모든 기관
들을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여느 때  땅을 파는 것처럼  살아 있는
살코기를 후벼파고  있다. 모래주머니, 간,  염통, 지라, 이자  등을
요새 하나하나를 공격해 가듯이 물어뜯는다.
  이따금 혈액이나 림프액이  뿜어져 나와 개미들이 뜻하지  않게 익
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를 어떻게  쏠아야 하
는지를 제대로 모르는 미숙한 개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개미들은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한 살 속을 요령  있게 헤치며
나아간다. 그들은  새의 살덩이가 경련을 일으켜  자칫하면 자신들의
몸이 으깨어진다는 것을 알고 미리미리 피할  줄도 알고, 쓸개즙이나
소화액이 가득 들어 있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다.
  식도로 들어간 부대와  항문으로 들어간 부대가 마침내  콩팥 어름
에서 서로 만났다.  새는 아직 죽지 않는다. 세의 심장은  위턱의 공
격을 받아 상처  자국이 선연하지만, 구멍난 혈관 속으로  여전히 피
를 보내고 있다.
  일개미들이 사슬처럼  길게 늘어서더니, 그들의 제물이  마지막 숨
을 쉴 때를  기다리지 않고 아직 팔딱거리는  고깃덩어리들을 다리에
서 다리로 옮기고  있다. 이 작은 백정들을 당해낼 장사는  없다. 그
들이 뇌수부위를  토막내기 시작했을  때, 청딱따구리가  마지막으로 경련을 일으켰
다.
  온 도시의 개미들이  달려들어 그 거대한 날짐승의 각을  뜬다. 통
로는 청딱따구리의 깃털과 솜털을 전리품으로  가지려는 개미들로 북적거린다.
  집 짓는 개미들이  벌써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그들은  둥근 지붕
을 다시 세우고 피해 입은 터널들을 복구할 것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는, 새의 공격을  개미떼가 막아낸 것으로
보기보다는 개미떼가  새를 잡아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리라. 개미
들은 새의  고기를 먹고 소화를 시킨다.  그리고 새의 살,  기름, 깃
털, 가죽을 쓸모에 따라 도시 곳곳에 분배한다.

     창세기
  개미 문명은 어떻게 건설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자면, 수억 년전
지구 위에 생명이 처음으로 출현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 최초의 거주자들 중에 곤충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작고
연약한 그들은 모든 포식가들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이였던 것이
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곤충들은 메뚜기처럼  번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알을 아주 많이 낳아서 그것들 중에  꼭 살아남는 자가 생
기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어떤 곤충들은 말벌이나 꿀벌처럼 독을 선택햇다.  여러 세대를 거
치는 동안 그들은 독침을 갖추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무서
운 존재로 만들어갔다.
  어떤 곤충들은  바퀴벌레처럼 포식자들이 먹기에 부적합하게  되어
가는 쪽을 선택했다. 특수한 분비샘에서 나오는  물질이 그들의 살에
서 고약한  맛이 나도록 해주기  때문에 어떤 포식자도 그  고기맛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곤충들은 사마귀나 밤나방처럼  위장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풀이나 나무껍질과 비슷해  보이게 함으로써 그들은 살기  험난한 자
연 속에서 발각되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약육 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초기의 정글에서  많은 곤
충들은 살아남기 위한 '비결'을 찾아내지 못한  채 소멸할 운명을 맞
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불리한 처지에  놓인 곤충들'중에서 가장 먼저 예로 들  수 있
는 것이  흰개미이다. 땅거죽 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억  5천 만년
가까이 된 곤충으로서 나무를 쏠아 먹고사는  이 종은 불운하게도 종
의 영속성을 유지할 만한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포식자는 너무나
많은데,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한 천연적인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흰개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흰개미들이  죽어 갔고, 살아남은  자들은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리다가 하나의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부터는 혼자 싸우지  말고 똘똘 뭉쳐 집단을 만들자.  혼자 도망가려
고 애쓸 게  아니라 스무 마리가 모여 함께 맞서면  우리의 천적들이
우리를 공격하기가 한결 어려워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써 흰개미가  사회 조직이라고 하는  복잡성을 띤 생존 방법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그 방법은 가장 확실한 생존 방법의 하나였다.
  이 곤충은 작은 세포들이 모인 것처럼  살아가기 시작햇다. 처음엔
가족 단위의 사회를  이루었다. 알을 낳는 어머니 흰개미  주위에 모
두가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가족이 촌락이 되고 촌락이  커져 도시
가 되었다.  모래와 흙반죽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도시가 곧  지구의
모든 표면에 솟아오르게 되었다.
  흰개미는 영리한 곤충으로  최초의 사회를 형성한 우리  행성 최초의 주인이었다.
      에드몽 월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두 자객이  더 이상 보이지 않
음을 알았다. 이젠  정말로 그들에게서 풀려난 것이다.  그들은 아마
도 무너져내리는 모래 더미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나마 죽음
을 모면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우두망찰 생각에 젖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들에게서 풀
려났다고 해서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
제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가 전혀 없다. 가장  보잘것없는 병정개
미와 마주치더라도 무사하지 못할 판이다. 동포들은  당연히 그를 외
부에서 온 침입자로  여기고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경
고도 없이  개미산을 쏘아대고 위턱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연방의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를 발산하지 못하는  자는 으레 그런 식으로
처분을 받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어이가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이 모두가 바위
냄새를 풍기던 그 빌어먹을 놈의 두 병정개미  탓이다. 그들은 왜 그
런 짓을 했을까?  미친 자들임이 분명하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유
전자 배열이 잘못되어  그런 종류의 심리적 장애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3단계  경보가 발동할 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미
친 개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은  미친 것 같지는 않았고  정신이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
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세포들이
같은 조직에 속하는 다른 세포들을  의식적으로 파괴하는 상황으로밖
에는 달리 볼 수가 없었다. 유모 개미들은  그런 것을 암이라고 불렀
다. 말하자면.... 그들은 암에 걸린 세포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풍기던 바위 냄새는 질병의  냄새이리라....
겨레에게 알려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수개미
327호가 해결해야 할 불가사의가 두  가지이다.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가 그 첫째요,  벨로캉의 암세포가 그 둘째다.  그러나 현재로서
는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깊이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어떤 감춰진 방책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해결책
이 떠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더듬이를  닦기 시작한다.  먼저 더듬이를 촉촉하게  적신다.
(통행 허가 페로몬의  독특한 냄새를 느끼지 못한 채  더듬이를 핥는
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 다음에는 솔질을  하고
다리 관절에 난 털에 문질러 윤을 내고 물기를 말린다.
  젠장 장차 이 일을 어쩐다지?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신분을 증명하는  냄새로 확인하지 않고도, 적외선으로  그를 알아
볼 수 있는 개미는 어머니인 여왕개미뿐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신 금단의  구역에는 병정개미들이 넘칠  만큼
많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이 오래 전에 말씀
하신 격언에도 있지  않은가?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때로는
가장 안전하다'라고.

  "에드몽 웰즈는 이곳에  좋은 추억을 남겨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떠날 때 아무도 붙잡질 않았지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스위트 밀크'회사 간부  중의 한 사람으로서,
곰살가운 얼굴을 가진 노인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 사람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식품 박테
리아를 개발해 낸 적도 있어요. 요구르트를  향기롭게 만들어주는 박
테리아였지요. 사실, 화학 분야에서 그는  이따금씩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지요.  그러나 노상 그랬던  것은
아니고 들쭉날쭉했어요."
  "그분과의 사이가 껄그러웠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동료들과 잘 어울
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겁니다. 그는  외톨이였습니다. 그
가 개발한 박테리아가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여기
에서는 아무도 그를 제대로 인정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팀에든 우두머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에드몽은 우두
머리가 있다는 걸  싫어했고, 어떤  형태의 위계적  권위도 참아내지
못했어요. 그는 늘 관리자들을 경멸했어요. 그의  말을 따르자면, 관
리자들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지휘하기  위해 지휘를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모두는 상관의 장화라도  핥아야
할 처지였거든요. 그런  걸 마다하지 않았고, 또 제도가 그런  걸 요
구하거든요. 그에 비하면  그 사람은 거만을 떨었던  셈이지요. 그게
우리의 신경을 거슬렀던 것입니다. 정작 그가  거역하는 상관들 자신
보다는 동료인 우리가 그를 아니꼽게 보았던 것이지요."
  "그분이 회사를 떠날 때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우리 간부 중의  한 사람과 어떤 일 때문에 말다툼을  했어요. 그
일에서는 단언컨대.... 그 사람이 전적으로 옳았어요.  그 간부가 그
의 사무실을  뒤진다는 걸 알고  에드몽이 꾀를 내어 간부가  혼쭐이
나게 만들었지요. 에드몽은 모두가 덮어놓고 간부만  두둔하는 걸 보
자.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분이 옳았다고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호감은 가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발휘하기보다는,
싫어도 내가 아는  사람을 위해 비겁자로 처신하는 게 더  나을 때가
가끔은 있는  법이지요. 에드몽은  여기에 친구가 없었어요.  우리와
식사도 하지 않앗고, 술 한잔 같이 나눈  적이 없어요. 그는 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런데 왜 선생님의 '비겁함'을 저에게  털어놓으시는 건가요? 그
런 얘기를 다 저한테 들려주실 필요는 없으실텐데요."
  "그건, 막상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어쨌든 우리가 잘못했다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그 사람  조카라니까, 당신한
테 그런 얘기를 하면 내가 좀 위안을 얻을 것 같기도 하고...."

  어둠침침한 협로의 안쪽에 나무로 만든 요새가  보인다. 금단 구역이다.
  사실 그 건물은 소나무 그루터기 둘레에  둥근 지붕을 세워놓은 것
이다. 그 그루터기가 벨로캉의 심장이자 척추  구실을 하고 있다. 심
장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곳에 여왕의 거처가 있고  귀중한 식량들
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고, 척추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그루터기
덕분에 도시가 폭풍과 비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금단  구역의 벽에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원시 문명인들이 글씨를 새겨놓은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 통로들은
옛날에 그루터기를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흰개미들이  파놓은 것이다.
  시조 벨로키우키우니가 5천 년 전 이  지역에 표착했을 때, 오자마
자 충돌한 것이 흰개미들이었다. 아주 지리한 전쟁이  천 년 넘게 계
속된 끝에  마침내 벨로캉 개미들이  승리를 쟁취했다. 그때  벨로캉
개미들은 '영구적으로' 튼튼하게 건설된 도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
다. 그 도시의  통로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
을 것 같았다.  그 소나무 그루터기가 그들에게 도시  공학과 건축학
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위쪽으로는 평평한 탁자 같은 것이 높이  솟아 있고, 아래쪽으로는
깊은 뿌리가 땅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는 방향을  따라 뿌리보다 더 깊
이 땅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그루터기의 윗부분이 더  넓어
보이게 하려고 그루터기 위에 잔가지를 쌓아올렸다.
  벨로캉의 발상지가 되는  금단 구역은 현재는 거의 비어  있다. 어
머니와 특별히 선발된 파수 개미들만 거기에  살고 나머지는 모두 변
두리에 살고 있다.
  327호가 진중하고  불규칙한 발걸음으로  그루터기로 다가가고  있
다. 불규칙한  발소리는 모래가 사뿐하게 흘러내리는  소리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규칙적인 소리는 걸어오는  자가 있다는 소리로  느끼게
해준다. 327호는  그저 어떤  병정개미와도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가 몸을 낮추어 기기  시작한다. 금단 구역까지는 이
제 200머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루터기에 뚫어놓은  여남은 입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입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입구를 막고 있는 '문지기' 개미들의  머리가 보이
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문지기 개미들은  유전자에 어떤 이상이 있어서  그렇게 만들어
졌는지도 몰라도, 머리가 커다랗고 둥글넓적하다.  그래서 그들이 구
멍을 막고 있으면,  마치 그 구멍과 둘레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문이라고 할 만한 이 개미들은  옛날에 벌써 자신들이 쓸
모있는 존재임을 입증한 바 있다. 780년  전 '딸기나무 전쟁'이 일어
나 노랑개미들이  도시에 쳐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벨로캉의 생존자
들이 모두 금단 구역으로 대피하고, 문지기  개미들이 안으로 후퇴해
들어가 금단 구역의 모든 입구를 밀봉해버렸다.
  노랑개미들이 그 살아  있는 빗장을 푸는 데 이틀이  걸렸다. 문지
기 개미들은 단지 구멍을 막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턱으로
적을 물기도 했다. 마침내 노랑개미들이 키틴질로  된 문지기 개미들
의 머리를 파내고  입구를 통과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문'들의 희
생은 헛되지 않았다.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도시들의  원군을 꾸려
달려올 시간을 그들이 벌어 준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시간 후에 도
시는 해방되었다.
  수개미 327호는 단  한 마리의 문지기 개미도 마주치지  않기를 간
절히 바라면서 어쩌다가 문 하나가 열리는  때를 이용할 요량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낳은  알을 싣고 나오는 유모  개미를
내보내기 위해 문이  열리는 틈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문이  다시 닫
히기 전에 재빨리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듯도 하다.
  방금 머리 하나가 막 움직였다. 그러더니  통로가 열리고, 파수 개
미 하나가 나온다. 이번엔 안 되겟다!  파수 개미가 곧바로 되돌아와
서 그를 죽일 것이다.
  문지기 개미의 머리가 다시 움직인다. 그는  뛰어오를 채비를 하느
라고 다리를 구부린다. 아니다! 잘못 생각한  것이다. 문지기 개미는
그저 자세를 바꾸었을 뿐이다.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문지기 개미라
지만, 나무 테두리에  그렇게 목을 찰싹 붙이고 있노라면  경련이 일
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낭패다.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다. 수개미가 장애물을  향해
돌진한다. 그가 더듬이의  감지 능력이 미치는 거리에  들어오자, 문
지기 개미는  그에게 통행 허가  페로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문지기 개미는  구멍을 더 잘  봉쇄하려고 다시 뒤로 물러서서  경보 냄새를 발산한
다.
  '금단 구역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금단 지역에 침입자가  나타났
다!'
  사이렌을 울리듯  문지기 개미가  되풀이해서 냄새 분자를  뿜어댄다.
  문지기 개미는 달갑지  않은 침입자를 겁주려고 위턱을  빙빙 돌린
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그를 공격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가로
막는 것이 문지기의 공식적인 수칙이다.
  서둘러야 한다.  수개미에게는 문지기 개미에게 없는  유리한 점이
하나 있다. 문지기  개미는 어둠 속에서 장님이 되지만  수개미는 볼
수 있다. 수개미가  달려든다. 겨냥하지 않고 마구  휘들러대는 위턱
의 공격을 피하면서,  위턱의 밑부분을 잡으려고 파고  든다. 수개미
가 문지기 개미의 턱을 하나하나  잘라버린다.맑은 피가 흘러나온다.
턱의 남아 있는  부분이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이젠  솜방망이에 지
나지 않는다.
  문지기 개미를  쓰러뜨리기는 했으나 327호는 여전히  입구를 통과
할 수가 없다.  상대의 시체가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는  탓이다. 문
지기 개미의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반사적으로 구멍 둘레의  나무를
꽉 누르고 있다.  어떻게 한다? 그는 문지기 개미의 이마에  배를 대
고 개미산을  쏜다. 문지기 개미의 몸뚱이가  울찔거리더니 개미산에
쏘인 키틴질이  회색 연기를 내면서  녹기 시작한다. 그러나  머리는
두껍기 때문에 쉽게  녹지 않는다. 그는 문지기 개미의  넓적한 머리
를 뚫고 길을 내느라고 네 번이나 개미산을 쏘아야 했다.
  이제 지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건너편에  쪼그라든 문지기 개미의
가슴과 배가 보인다.  저 개미는 그저 문일 뿐이다. 하나의  문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자들
  그로부터 5천 만  년이 지나 개미들이 처음으로 지구  위에 나타났
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독
립 생활을 하던  원시적인 벌의 하나인 티피과 벌의  먼 후손으로서,
개미들은 턱도  침도 타고나지를 못  했다. 개미들은 작고  보잘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지는 않아서 흰개미들을 흉내내는  것이 도움
이 된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들은 단결하지 않을  수가 없
었던 것이다.
  개미들은 촌락을  만들고 열치기로나마 도시를 건설하였다.  곧 흰
개미들이 그  경쟁자에게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흰개미들은,  지구
위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 곤충은 자기들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의 거의 곳곳에서, 섬이든
나무든 산이든 가리지  않고, 흰개미 도시의 군대가 갓  만들어진 개
미 도시의 군대를 상대로 싸웠다.
  동물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수백만의  위턱들이 나란
히 늘어서서 칼 싸움을 벌이는데, 그 싸움은  먹이를 위한 것이 아니
라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훨씬 경험이 많은 흰개미들이 매번  이겼다. 그러나 개미
들도 싸움에 이골이 나기 시작했다. 개미들은  흰개미와 개미 사이의
전쟁이 줄잡아 5천 만 년에서 3천 만  년 동안 지구를 뜨겁게 달구었
다. 개미들이  개미산을 발사하는 무기를 개발해서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오늘날에도 그  적대적인 두 종  사이에 전투가 계속 벌어지고  있
다. 그러나 흰 개미 군대가 승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선생님께서는 아프리카에서 그분과 알게 되셨지요. 그렇지요?"
  그 질문에 교수가 대답했다.
  "그렇다네. 에드몽은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지. 부인
이 죽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네. 그는 곤충 연구에  모든 신
명을 바쳤다네."
  "왜 하필이면 곤충을 연구하셨을까요?"
  "왜, 곤충을  연구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곤충은  예로부터
인간의 관심을 끌어 왔지. 아주 오랜 옛날  우리 선조들은 파리가 열
병을 옮긴다 해서  무서워 했고, 벼룩은 몸을 가렵게  하니까 싫어했
고, 거미는 늘  사람은 문다고 두려워했으며, 바구미는  갈무리해 둔
식량을 먹어버린다고 싫어했다네. 그런 생각들이 대대로 이어졌지."
  조나탕은 국립 과학 연구소 풍텐블고 곤충하고  센터 326호 실험실
에서 다니엘 로젠벨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수는, 뒤
로 넘긴 머리털을 뒤통수 위쪽에서 묶어  말 꼬리처럼 길게 내려뜨린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웃기도 잘 웃고 입심도 좋았다.
  "곤충이 인간을 성가시게  해 왔지. 곤충은 우리보다  작고 연약한
데도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위협하기까지 한다네.  어디 그뿐인
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야,  우리의 육신이 결국은 곤충의  위
속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 무슨  얘기인고 하니, 구더기 있잖은
가? 파리의  애벌레 말일세.  그놈들이 우리의  시체를 포식하는  거
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곤충은 오랫동안 해로운  것의 대명사로 생각되어 왔지.  예를 들
어 사탄의 앞잡이 중의 하나인 벨엘제불은  파리 머리로 표현되는데,
그렇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지."
  "개미는 그래도 파리보다 좋은 인상을 주고 있잖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있지. 탈
무드에서는 개미가  정직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네.  티벳 불교에서는
개미가 물질적인  행위를 조롱하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되지.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상아 해안의 바울레  부족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개미에게 물리면 개미  머리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고 믿고  있고, 폴
리네시아의 어떤 부족들은 오히려 개미를 작은 신처럼 생각한다네."
  "에드몽 삼촌이 그 전에는 박테리아를  연구했다고 들었는데요. 왜
박테리아 연구를 그만두셨을까요?"
  "그가 박테리아에  열중했던 게  사실이지만, 곤충에 대한  연구에
열중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지. 특히 개미에  관한 연구에
비하면 말이야. 내가 그저 '연구'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연
구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각적인 사회 참여이기도  했지. 거 왜 장난
감으로 만든 개미집  있잖은가, 여왕개미 한 마리에  일개미 600마리
를 플래스틱 상자  안에 넣어가지고 대형 잡화점 같은 데서  파는 거
말이야. 그것들을 팔지  못하게 하자고 청원했던 사람이 바로  그 친
구라네. 그는  개미를 '살충제'로 활용하는 방안을  실용화하기 위해
서도 애를 썼지. 그의 구상은, 숲속에  불개미 집들을 체계적으로 들
여앉혀서 해충들을 말끔히 없애버리자는  것이었다네. 터무니없는 생
각은 아니었지. 과거에도 벌써 송충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개미를 활
용했고 폴란드에서는 전나무의 납작잎벌을 몰아내기  위해 개미를 활
용한 적이 있다네. 둘 다 삼림을 황폐하게 만드는 곤충이지."
  "곤충끼리 서로 맞서 싸우게 하자는 거로군요?"
  "음, 그 친구는  그것을 '곤충들의 외교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라
고 말했지. 지난  세기에 사람들은 화학 살충제로 어리석은  짓을 너
무나 많이 했어.  곤충에게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지. 또  곤충을 과소 평가해도  안 되고, 우리가 포유류를  정복한
것처럼 곤충을 정복하려고  해서도 안 돼. 예를 들어  화학적인 독극
물로 곤충을 박멸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지.  곤충은 모든 독극물
에 대해 방어 수단을 갖고 있거든. 다시  말하면 독극물에 면역이 되
는 거지. 우리가  여전히 메뚜기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도, 그놈들이 모든 살충제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
나. 메뚜기에게  살충제를 잔뜩 뿌려대면, 99퍼센트는  죽어버리지만
1퍼센트가 살아남는다네.  살아남은 그 1퍼센트는 스스로  면역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살충제에 대해 완벽하게 '예방 접종  받은' 새끼들
을 낳게 되는 거지. 그런식으로 우리는  200년 동안 끊임없이 살충제
의 독성을 증가시켜  왔지. 그 결과 살충제는 곤충보다도  사람을 더
많이 죽였고, 우리는 아무리 해로운 독극물을  먹어도 끄떡없을 만큼
저항력이 강한 종자들을 만들어낸거지."
  "우리에게 곤충에  맞서 싸울 이렇다  할 방도가 없단  말씀이신가요?"
  "자네가 직접 확인해 보게. 모기, 메뚜기,  바구미, 체체파리가 여
전히 있고  개미도 있네. 개미들도  모든 것을 견디어 내지.  1945년
핵 폭발이 있었을 때, 개미와 전갈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사람들
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네.  개미는 그것에조차 적응을  했던거지."

  수개미 327호는 겨레의  세포 하나가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자기
가 속한 유기체를 상대로 가장 저열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 사
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자면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닌가? 그
에게는 중요한 정보를 겨레 전체에 알려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가 겨레의 구성원을 죽인 것은 다른  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암과도  같은 인종의 연쇄 반응이었다.  겨레가 그
에게 비정상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도 어쩔  수 없이 마찬가지로 행
동한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는 동료 세포  하나를 죽였다. 어쩌면 다른 세포들을  또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분은 무엇하러 아프리카엘 가신  건가요? 개미는 어디에
나 있는데 말이에요."
  "물론 개미는 어디에나  있지. 그러나 개미라도 다  똑같은 개미는
아니지. 에드몽은 부인과  사별하고 나서 생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
었던 것 같아. 시간이 좀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 친구, 개미가 자기
를 '자살 시키기'만을 기다렸던 게 아닌가 싶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놈들이 하마터면  그를 죽일  뻔했지. 아프리카의 마냥  개미들
말일세.... 자네, '성난 마라분타'라는 영화 본 적 있나?"
  조나탕은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라분타는 도릴린  개미의 일종인 마냥  개미 또는 검은  아노마
개미가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들이  평원을 나아
갈 때는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다네."
  로젠펠트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앞에서 개미떼가 몰려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기에 맞서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먼저 희미하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나가지. 개미떼로 부
터 도망치려는 작은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 짹짹거리는  소리, 날
개치는 소리, 다리 부딪히는 소리 따위가  섞인 소리야. 그 단계에서
는 아직 마냥 떼가 보이지 않지. 그러다가  병정개미 몇 마리가 둔덕
뒤에서 불쑥 나타난다네.  척후 개미들이 줄을 지어  나타나지. 언덕
이 까맣게  변한다네. 닿는 것은  뭐든지 녹여버리는 용암이  분출난
것 같은 모습이지."
  교수는 자기 이야기에  몰두해서 연신 요란한 몸짓을  해가며 왔다 갔다 했다.
  "아프리카에 흐르는 독혈이라 할 만해. 살아  움직이는 독이지. 그
수도 엄청나다네. 마냥  개미의 한 군체는 매일 평균적으로  50만 개
의 알을 낳지. 양동이 몇 개를 가득  채울 만한 양이지.... 그러니까
검은 황산이 개울을  이뤄 비탈길도 오르고 나무에도  올라가는 셈이
지. 아무것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어. 새이건 도마뱀이건  곤충 잡
아먹는 포유류이건 운수사납게 가까이 갔다가는  그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 계시록의 한 장면 아닌가!  마냥 개미는 어떤 짐승도
두려워하지 않아.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개미떼
에 다가갔다가 눈 깜짝  할 사이에 녹아 버리는 것을 본  적이 있지.
그 개미들은 시냇물을 건너가기도 한다네. 제  동료들의 시체를 띄워
서 다리를 만드는  거지.... 우리가 연구 활동을 했던 곳이  상아 해
안에 있는 람토  생태 전이 연구소인데. 그 인근  지역에서는 주민들
이 마냥 개미의  침입에 대해 속수 무책이었지. 그  작은 오랑캐들이
마을을 지나갈거라는 소식이 전해지면 사람들은  가장 값나가는 재산
들만 챙겨  가지고 도망을 친다네.  그들은 식초 양동이에다  식탁과
의자 다리를 담가놓고 자기네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지. 돌아와 보면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모든 게  씻겨갔지 식량은 단 한톨도  남아
있지 않고 목숨  가진 건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네. 좁쌀만한
벌레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어. 결국 마냥 개미들이  그들의 오두막
집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아주 깨끗하게 청소를 해준 셈이지."
  "마냥 개미가 그렇게 사나운데 어떻게 그것들을 연구하셨나요?"
  "정오가 될 때까지 기다렸지. 곤충들은  우리처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잇지 않다네. 바깥  기온이 18도이면
곤충의 몸 속도 18도이지. 날이 뜨거워지면  곤충의 피도 부글거리게
되는 거야. 곤충들은  그것을 참아낼 수가 없지.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마냥 개미들은 야영할 둥지를 파고  그 안에서 날씨가 서늘
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짧은 겨울잠과도  같은 것이지 겨울잠은
추위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더위 때문에 꼼짝을 못하
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말일세."
  "그 다음에는요?"
  조나탕은 어떤  대화가 참다운 대화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대화란
그저 두 그릇의  밑 쪽을 연결하여 액체가 자유로이 흘러  통하게 하
는 연통관 구실을 하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있다. 하나에는  액체가 가득 담겨 있고,  하나는
비어있다. 액체가 가득  담긴 그릇이 아는 사람이라면 비어  있는 그
릇은 모르른 사람에  해당한다. 조나탕 자신은 대개 비어  있는 그릇
쪽이었다. 잘모르는 사람은  귀를 활짝 열고, 상대방이  이야기에 신
명을 낼 수 있도록 이따금 '그  다음에는요?'나 '그거 굉장하군요'같
은 말로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가 아는  대화법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그가  동시대인들을 관찰
해 본  바로는, 사람들은 저마다  대화의 상대방을, 치료비 안  받는
정신과 의사 정도로 생각하고 그를 이용하려고만  든다. 그래서 평행
선처럼 서로 만나지 않는 독백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세간의 사정이 그러하니. 그로서는 자신의 대화법을  선호할 수 밖
에 없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
지만, 그래도 그는  그런 대화법을 통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있었다.
중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묻는  사람은 잠깐 바보가 되지
만 묻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가 된다.'라는.
  "그 다음엔  어떻게 했냐구?  에드몽하고 나는 그놈들에게  다가갔
지.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어. 우리는 그  흉악한 여왕개미를
찾아내려고 했지.  하루에 50만 개의  알을 낳는다는 그  무지막지한
녀석을 말이야. 우리는 그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고 싶었고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지. 우리는 하수도 청소부들이  신는 커다란 장
화를 신었다네.  운수 사납게도 에드몽의  신발 문수가 43인데  남아
있는 장화는 40짜리 한 켤레뿐이었지. 그러니  에드몽은 단화를 신고
거기에 갈 수 밖에 없었지....
  마치 어제 일처럼  그 일이 기억에 생생해. 12시  30분에 개미들이
쉬고 있는 굴의 윤곽을 땅바닥에 표시하고,  빙 둘러가면서 1미터 깊
이의 도랑을 파기 시작했지. 오후 1시  30분에 개미굴의 바깥쪽 방에
도달했어. 흡사 검은  액체 같은 것이 따다닥 소리를  내면서 흐리기
시작하더군. 극도로 흥분한 병정개미 수천 마리가  큰 위턱을 부딪히
며 소리를  내고 있었던 거야.  그놈들의 위턱은 면도날처럼  예리하
지. 우리가 여왕개미가 있는 방쪽으로 계속  삽질과 곡괭이질을 해나
가는 동안에, 그놈들의 턱이 우리 장화에 사정없이 꽂혔지.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찾고 있던 보물을  찾아냈어. 여왕개미 말이야.
  유럽의 여왕개미들보다  덩치가 열 배는  더 큰 개미였어.  우리가
갖가지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는 동안에,  그놈이 제 냄새  언어로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라는 노래를 울부짖듯 부르고  있었던 모
양이야....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더라구. 도처에서  병정개미들이
꾸역구역 모여들더니 우리 발을 새까맣게 뒤덮었지.  몇 놈들이 고무
장화 속에 박혀  있는 제 동료들을 타고 넘어서 기어  오르기 시작했
어. 그러더니  자비 밑을 지나  셔츠 아래로 올라왔지. 우리는  모두
소인국에 간 걸리버가  된 꼴인데, 우리의 소인국  난장이들은, 우리
를 먹을 수  있는 고깃조각으로 알고 갈기갈기 찢을 생각만  하고 있
었던 거라네. 특히 조심해야 했던 게  무엇이냐하면, 그 놈들이 우리
몸에 나  있는 구멍, 그러니까. 코,  입, 귀, 항문  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였지. 만일 그  놈들이 그런 데로 들어왔다가는,  몸
속에서 우리를 후벼팔게 아니겠나!"
  조나탕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교수의 이야기에  푹 빠져든 모양
이었다. 교수는 젊었을 때의 팔팔한 모습으로  그 장면을 흉내내면서
옛날의 상황을 재현해 보려는 듯했다.
  "우리는 몸을 세차게  툭툭 쳐서 개미들을 쫓아냈지.  개미가 우리
에게 달려드는 것은  우리의 호흡과 땀이 그놈들을  유인하기 때문이
었어. 우리는 모두 그 전에 요가 수행을  통해서 호흡을 천천히 하고
공포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두었지. 우리는 우리를  죽이려 하는 개미
떼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잊으려고 노력했어. 그러고는  계속
사진을 찍었어. 필름  두 통을 찍었는 데 일부는  플래시를 사용해서
찍었지. 일을  끝내고 우리는 우리가  파놓은 도랑 밖으로  튀어나갔
지. 에드몽만  빼고 말이야.  개미들이 에드몽의 머리까지  새까맣게
덮고 있었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우리는  재빨리 그의 팔을 잡고
끌어내서, 옷을 벗기고, 커다란 칼로 그의  몸에 박혀 있는 개미들의
털이며 머리를 끌어냈지. 사실 우리는 모두  기겁을 했지. 그러니 장
화를 안 신었던  에드몽은 오죽했겠나. 그 친구는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로 두려움에 질린 기색을 보이더군."
  "운이 나빴군요."
  "아니지. 그런  상황에서 용케 살아났으니  운이 좋았던 거지.  그
사건을 겪고  나서도 에드몽은 개미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네.
그렇기는커녕 훨씬 뎌 열심히 개미를 연구했지."
  "그 다음에는요?"
  "파리로 돌아왔지. 그  다음부터 소식이 끊겼어. 그  친구 말이야.
나한테도 전화 한번 안 했어. 옛  친구인 이 로젠펠트에게도 말이야.
결국 신문을 보고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지. 신이여. 그의 영혼
에 안식을 주소서."
  교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 커튼을 젖히고, 에나멜 칠을  한 금
속판에 박혀 있는 낡은 온도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4월 중순에 30도라니, 믿을 수가 없어.  해마다 점점 더 더
워지고 있어.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10년 후면 프랑스가  열대 지방
이 되고 말거야. "
  "그렇게까지 될까요?"
  "조금씩조금씩 더워지니까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
세. 그러나  우리 곤충학자들은 그것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네. 적도  지방에 서식하는 열대성  곤충이 파리 분지에서  발견되고
있지. 나비들이 점점  더 알록달록해지는 걸 자네는 느껴본  적이 없나?"
  "사실은 저도  어제 그런 나비를  한 마리 보았어요. 자동차  위에
번쩍거리는 검은색에 빨간색 섞인 나비가 앉아 있더군요."
  "아마 다섯점박이  알록나방일 게야. 그 전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나 볼 수 있었던 독나방이지. 계속  그런식으로 나가다간.... 파리에
마냥 개미가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게. 상상이  가나? 난리가 나겠지.
볼만할거야...."

  수개미는 더듬이를  깨끗이 닦고, 문지기 개미의  미지근한 살덩어
리 몇  개를 먹었다. 그는  문지기 개미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문이 부서지듯 '부서진' 것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통행 허가 냄새
를 잃어버린 수개미가 나무 통로를 빠르게  걸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방은 저쪽이다.  어머니 냄새가 난다.  때마침 25도인 시간이다.  그
온도에서는 금단 구역에 별로 개미가 없다.  슬그머니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두 마리 병정개미의  냄새가 느
껴졌다. 하나는 덩치가 크고 하나는 작다.  작은 병정개미는 다리 수가 모자란다....
  수개미와 병정개미 두  마리가 멀리서 서로 상대방의  냄새를 맡았다.
  이럴 수가, 그놈이다!
  이럴 수가, 그놈들이다!
  327호는 병정개미들을 따돌리려는 일념으로 힘껏  도망을 친다. 그
는 3차원으로 된 미로를 돌고 또 돌았다.  금단 지역을 빠져 나왔다.
이번에는 문지기 개미들이 그의 길을 막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오는
개미만 검문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개미는  이제 그루터기 속
을 빠져나와 무른 땅을 밟고 있다. 그는 모퉁이를 돌고 또 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쫓는 병정개미들도 그에 못지 않게  빠르다. 그
들이 멀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오고 있다. 그때,  수개미가 잔가지를
들고 오던 일개미 한마리를 떼밀어서  일개미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수개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바위  냄새를 풍
기는 암살자들의 달음박질에 제동이 걸렸다.
  이 틈을 이용해야 한다. 수개미는 재빨리  통로의 울퉁불퉁한 곳으
로 몸을 숨겼다.  절름발이 개미가 다가오고 있다.  수개미는 은신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그 애는 어디 갔니?"
  "다시 내려갔어요."
  "다시 내려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뤼시는 오귀스타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할머니를 지하실  문 쪽으
로 데려갔다.
  "조나탕은 어젯밤부터 저 안에 있어요."
  "그럼 아직도 안 올라왔단 말이냐?"
  "예,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겟지만,  그
사람이 경찰을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벌써  여러 번
내려갔다가 되돌아오곤 했어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질겁을 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이긴 하다만,  제 삼촌이 내려가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이번에는 연장  꾸러미하고 강철판하고  커다란 콘크리트  판들을
가지고 갔어요. 아래에서 뭘 손질하려고 하는 건지...."
  뤼시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서 있었다. 신경 쇠약이  다시 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그 앨 찾으러 내려갈 수는 없니?"
  "예, 그 사람이, 안에서 잠그는 자물쇠를 설치했거든요."
  할머니는 낭패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런, 이런, 내  불찰이다. 에드몽 얘기를 다시  들추어내면 이런
말썽이 생기리라는 걸 진작에 예상했어야 했는데...."

       전문가
  현대의 개미  대도시에서는, 수 천  년간 되풀이된 분업의  결과로
유전자들의 돌연 변이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어떤 개미가  절단기 구실을 하는 커다란  위턱을 지니고
태어나 병정개미가 되고, 어떤 개미는 곡물을  빻기에 적합한 위턱을
지니고 태어나 곡물  가루를 생산한다. 또 어떤 개미는  고도로 발달
된 침샘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 애벌레를 적셔주고 소독을 해준다.
  마치 우리 인간  사회에서 그런 유전자 돌연 변이가  일어나, 병사
들은 칼처럼 생긴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고,  농부들은 과일을 따러
나무에 올라가기 편하도록 집게 모양의 발을  가지고 태어나고, 유모
들은 10쌍 쯤 되는 유방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전문화를  가져오는' 모든  돌연 변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랑의 전문가를 만들어 낸 돌연 변이다.
  실제로 일개미들은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  할 일이
많은 일개미들이 성적인 충동 때문에 한눈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생식 능력은 모두 생식만을 도맡아  하는 전문가들에게 집
중되어 있다.  수개미와 암개미, 다시  말하면, 개미 문명의  왕자와
공주만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식 능력을 가진  개미들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고 그것
을 위한 특별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미하게에 편리
하게끔 여러  가지 오묘한 기관들을  지니고 태어난다. 날개가  그렇
고, 추상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더듬이가  그러하며, 적외선을 감지하
는 홑눈이 그렇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가 숨어 있는 곳은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 그곳은 작
은 동굴을  통해 있다. 327호는  작은 동굴 안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숨어 있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그를 찾아내지
못한 채 지나쳤다.  그러나 동굴은 비어 있지 않았다. 저  안쪽에 따
뜻하고 향내나는 누군가가 있다. 그쪽에서 냄새가 날아온다.
  '누구세요?'
  그 냄새 언어는  깜끔하고 정확하면서도 딱 부러진 데가  있다. 적
외선 홑눈 덕분에,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커다란 개미
를 볼 수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 몸무게가 모래알  90개의 무게만큼
은 될 듯하다. 그렇지만 병정개미는 아니다.  이제껏 냄새를 맡은 적
도 본 적도 없는 개미였다.
  그렇다면 암개미다.
  아, 암개미로구나! 그는 찬찬히 그 개미를 살펴본다.
  완벽한 곡선미를 지닌 야릿야릿한  다리에, 성호르몬의 달착지근한
끈기를 머금은 잔털이  나 있다. 도톰한 더듬이가 강렬한  냄새를 발
하며 반짝인다.  붉은색을 띤 겹눈은  두 알의 월귤나무 열매  같다.
암개미의 두두룩한  배는 매끈매끈하고 끝이 날렵하게  빠졌다. 커다
란 가슴딱지 위에는  가운뎃가슴 등판이 얹혀 있는데, 그  표면이 오
톨도톨한 것이 여간 멋져 보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긴 날개는 수개
미의 날개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인다.
  암개미가 예쁘장하게  생긴 자그마한 위턱을 벌린다.  그러고는 그
의 목을 자르려는 듯 목으로 달려든다.
  목이 졸려 숨이 막혀온다. 수개미에게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가
없는 탓에, 암개미는  조르고 있는 목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을 것
이다. 외부에서 침입해 온 자는 죽여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개미 327호는 자신의 몸집이 작은  점을 이용하여 몸을
빼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암개미의  어깨 위로 기어올라가 머리를  잡았다. 앞치락뒤치
락하는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막상 막하의  접전이다. 암개미도 만만
치 않은 상대다.
  암개미는 힘이 약해지다, 수개미는 더듬이를  앞으로 내민다. 수개
미는 암개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암개미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
기를 바랄 뿐이다.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수개미는  더듬이를 맞대
고 완전  소통을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방법은 완전 소통밖에  없다.
  수개미가 암개미의 산란 번호를 알아낸다.  암개미 56호다. 암개미
는 더듬이 맞대는  것을 피하려고 제 더듬이를 벌린다.  그리고는 수
개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수개미는  가운뎃가슴 등판 위에 요지부동으로  올라탄 채,
제 위턱에 더 힘을 주어 암개미의 머리를  누르고 있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암개미의 머리가 잡초가 뽑히듯이 뽑혀나갈 것만 같다.
  암개미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수개미도 마찬가지다.
  180도의 시야를 가진 홑눈으로, 암개미는 제  가슴 등판 위에 올라
탄 공격자를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아주 작은 개미다.
  수개미로구나!
  암개미는 유모 개미들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수개미는 불완전한  존재란다. 도시의 다른 세포들과는  달리, 그
들은 우리 종이 가진 염색체의 반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 그들은 수
정되지 않은  알에서 부화된 거야.  그러니까 그들은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생식 세포, 말하자면 커다란 정자인 셈이지.'
  그렇다면 지금 정충 한 마리가 암개미의  등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
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재미있다는  느낌마저 든
다. 어째서 어떤 알은 수정이 되고, 어떤  알은 수정이 되지 않는 걸
까? 아마 온도 탓일 게다. 20도  이하에서는 여왕의 저정낭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왕은 수정이 안 된 알을 낳게 된다.
  그러니까. 수개미들은 추위의 산물인 셈이다.  죽음이 추위의 산물이듯이.
  암개미 56호가 살과 키틴질로 된 실제의  수개미를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여기, 처녀들의 규방에  뭘 찾을 게 있다고  왔을
까? 이곳은 암컷의 성세포들을 위해 마련된  금단의 구역이다. 그 순
결한 성역에  어떤 세포이든 외부의  것이 침투할 수 있다면  이곳이
온갖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327호 수개미는 다시  더듬이를 통한 의사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
나 암개미는 막무가내다. 수개미가 더듬이를  벌리자, 암개미는 곧바로
머리로 되받아 친다.  수개미가 더듬이의 두 번째 마디를  살짝 스치
자, 암개미가 더듬이를  뒤로 뺀다. 암개미는 더듬이를  맞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수개미는 턱에 더 힘을 주어 누른 끝에,  기어이 제 더듬이의 일곱
번째 마디를 암개미 더듬이의 일곱 번째 마디에 접촉시킨다.
  56호 암개미는  그런 식으로 의사 소통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떤
경우든 직접 더듬이를 맞대지 말라고 배웠고,  공중으로 발산물을 쏘
아 보내고 받는  방법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공중에 냄새를
뿌리는 소통  방식으로 의사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 문제에 대해  페로몬을 발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뇌  사이에는 늘 갖가지 오해와 거짓이  생기게 마련이니
라. 그 오해와  거짓은 쓸데없는 냄새가 끼여든다든지,  공기의 흐름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든지, 냄새를 발산하고 수신하는  방법이 좋지
않다든지 해서 생기는 것이니라.'
  그런 불상사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완전 소통,  즉 더듬이와
더듬이를 직접  맞대는 방식이다. 아무런  장애없이 한쪽 뇌의  신경
전달 물질과 다른 쪽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이 교류하는 것이다.
  암개미에게는 그것이 제 영혼의 순결을 잃는  행위로 여겨졌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꺼림칙하고 달갑지  않을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개미가 계속 몸을  조르고
있는 폼이 곧  자기를 죽일 기세다. 암개미는 항복의  표시로 더듬이
를 어깨 위로 내렸다.
  비로소 완전 소통이 시작되었다. 두 쌍의  더듬이가 스스럼없이 서
로에게 다가간다.  미세한 방전이 일어난다. 극도의  흥분 상태이다.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빠르게 두  곤충은, 톱니 모양으로 한  열두
개의 마디를 서로 비빈다.
  생각과 생각이 얽히고 설키면서 거품이  조금씩조금씩 일기 시작한
다. 그 미끈미끈한  물질은 더듬이 사이의 접촉을 부드럽게  해서 마
찰의 율돌을 더 빠르게 해준다. 곤충의 두  머리가 한동안 마구 떨리
더니, 두 더듬이가 춤추던  걸 멈추고 뻗을 수 있는 데까지  길게 뻗
은 채로 서로  붙어버렸다. 이제 그들은, 머리와 몸은  둘이로되, 오
로지 한 쌍의 더듬이를 가진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쪽 몸의 페로몬
이 수천 개의  작은 구멍과 모세관을 통해 다른 쪽으로  전해지고 있
다. 두  생각이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관념을 부호로  만들고
해독할 필요가 없다. 관념들은 이미지, 음악,  감정, 향기와 같은 원
래 그대로의 단순한 상태로 전달되는 것이다.
  327호 수개미는 완벽하고 직접적인 그 언어를  통해서 자기가 겪은
일들을 모두 암개미 56호에게 이야기했다. 즉,  원정대의 참사, 난쟁
이 개미들의 냄새, 어머니와의 만남, 자신을  제거하려는 기도, 통행
냄새의 상실, 문지기  개미와의 싸움, 바위 냄새를  풍기며 끊임없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자객들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완전 소통이  끝나자, 암개미는 수개미에  대해 좋은 기분을  갖게
되었다는 표시로  더듬이를 뒤로 후퇴시켰다. 수개미가  등에서 내려
와 이제 자신을 암개미의 처분에 맡기겠노라는  태도를 취한다. 암개
미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를 죽일 수도  있다. 암개미가 턱을 크게
벌리고 다가온다. 그러더니.... 제 통행 페로몬의  일부를 그에게 나
누어 준다. 그러자  수개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암개미가 그에
게 영양 교환을  제안하자, 그가 받아들인다. 암개미는  그들이 대화
를 나눌 때 생겨난 수증기를 흩뜨리려고 날개를 붕붕거린다.
  마침내 수개미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신이 알
고 있던 정보를  다른 세포에게 전달했고, 그를  이해시켰으며, 그가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머지 않아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함
께 할 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시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은 사람의 경우와  개미의 경우가 아주 다르다.
  사람에게는 시간이  절대적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시간의  길이와
주기가 일정하다.
  그와 반대로 개미에게는 시간이 상대적이다. 날씨가  더울 때는 시
간의 길이가  아주 짧다. 날씨가  추울 때는. 시간이 축축  늘어지고
무한히 길어져, 마침내는 동면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까지 된다.
  시간에 대한 지각이 이렇게 탄력적인 까닭에,  개미는 사물의 속도
를 지각하는 데서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사물의 운동을 규정할 때,
곤충들은 단지 공간과 소요 시간만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제3의 요
소인 온도를 덧붙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이제 그들  둘은 어떻게 하면  '비밀 살상 무기 사건'의  심각성을
최대한 많은 동료들에게  일깨울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다. 너
무 늦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는, 신생의  축제를 앞둔 시점이라 모두들  그
일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이므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일개미들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우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제3의 공모자가 필
요하다. 또  하나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다시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은신처가 필요하다.
  56호가 자기 방을 은신처로 삼자고 제안한다.  자기가 비밀 통로를
파놓은 게  있어서 곤경에 처하게  될 때는 그곳을 이용하여  도망을
치면 된다는 거였다.
  수개미 327호는 그 얘기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비밀 통로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
라 100년 전에 시작된 일이다. 끈끈이침  개미들과 전쟁을 벌이던 때
의 일이었다. 한  동맹 도시에 아예테두니라는 여왕이  있었는데, 그
여왕은 안보 문제에 거의 망상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여왕은 '난
공 불락'의 궁궐을 짓게 했다. 벽에는  커다란 자갈을 쌓고 흰개미들
이 그러듯이 돌가루 반죽으로 자갈들을 접합시켰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었
다. 그래서 끈끈이침  개미들이 궁궐을 포위했을 때,  여왕은 꼼짝없
이 궁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끈끈이침 개미들은  여왕을 손쉽게 붙들어, 금방  말라버리는 그들
의 더러운 침으로  여왕을 질식시켜 버렸다. 그 뒤에  아예테두니 여
왕의 원수를 갚고 도시를 해방시켰지만, 그  끔찍하고 어리석은 결말
이 오래도록 벨로캉 개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개미들은 그  엄청난 사건을 기화로  해서, 자기들의 거주  공간을 변경했다.
  각자 위턱을 사용해서  비밀 통로를 파기 시작한 것이다.  개미 한
마리가 구멍을 팔 때는 괜찮았지만, 천 마리가  파게 되니 전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적인' 통로들이  밑을 파고들어  오는 바람에 '공적인'  통로가
무너지고는 했다.  남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남들'의 비밀 통로  때문에 자기의 통로가 미로나  다름없이 되어버
리는 일도 있었다.  급기야는 모든 구역이 허물어지기 쉬운  취약 지
대로 변해버렸고, 벨로캉의 미래마저도 위태롭게 되었다.
  어머니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사적인  용도로 구멍을 파는  일이
금지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그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
슨 수로 모든 방들을 다 통제할 수 있겠는가?
  56호 암개미가 자갈 하나를 떠밀자 컴컴한  구멍이 드러난다. 여기
다. 327호는 은신처를 살핀다.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3의 공모
자를 찾는 일이  남았다. 그들은 은신처를 나와서 찬찬하게  다시 구
멍을 막는다. 56호가 페로몬을 발한다.
  '제일 먼저 만나는 자를 설득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내게 맡겨라.'
  그들은 곧 어떤 깨미와 마주쳤다. 커다란  비생식 병정개미 하나가
나비 고기 한  덩어리를 끌고 오고 있다. 암개미가  멀리서 호소력이
강한 냄새를 발하여  겨레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 병정개미가 발길을 멈춘다. 감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암개미의 노
련한 솜씨에 수개미가  넋을 잃는다. 병정개미는 즉시 끌고  가던 사
냥물을 버리고 이야기를 나누러 다가온다.
  '겨레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있다고!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
  암개미는 봄철 첫 원정대에게 닥친 재앙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설
명하면서 암개미는  달콤한 향기를 뿜어댄다. 암개미는  벌써 여왕으
로서의 기품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병정개미는  이내 설복되고 만다.
  '우리는  언제 떠나는가?  난쟁이 개미들을 공격하자면  병정개미가
얼마나 필요한가?'
  병정개미가 자기를  소개한다. 여름에 산란된 103683호  비생식 개
미이다. 번쩍거리는 커다란  머리에 긴 위턱, 거의 보이지  않는 눈,
짧은 다리, 믿을 수 있는 동지이다. 천성이  열정적인 듯도 하다. 56
호 암개미가 도리어 그 병정개미의 열성을 눅여야 할 판이다.
  병정개미는 겨례의 한복판에 첩자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난쟁이개
미들에게 매수된 용병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벨로캉 개미
들이 그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게 그 자들이  방해를 하
고 있다는 거였다.
  '그 자들은 특유의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식별할 수가
있을 게야'
  '나를 믿게나.'
  그들은 각자가  활동할 구역을  나누었다. 327호는 햇빛방에  있는
유모 개미들을 설득하러 가기로 했다. 유모  개미들은 대개가 순진하
기 때문에, 이야기가 될 듯 싶었다.
  103683호는 병정개미들을  데리러 갔다.  103683호가 부대  하나를
꾸려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나도 척후 개미들에게 질문을 해서,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한 다른 증언들을 수십해 보겠어.'
  56호는 버섯 재배실과 축사로 가서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
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온이 23도가 되는 시간에 여기로 돌아와서  각자의 활동 결과를
종합해 보기로 하자.'

  텔레비전에선 이제,  '세계의 문화'라는  시리즈의 일환으로  일본
사람들의 관습에 관한 르포를 방영하고 있었다.

  -섬나라 민족인 일본인은 수 세기 전부터  자급 자족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습니
다. 즉, 일본  사람과 그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일본 사
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관습을 지닌 이방인들
로서, 그들 말대로 가이징입니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아주 까다로운  민족 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
다. 예를 들어 어떤  일본 사람이 유럽에 와서 정착을 하면  그는 자
동적으로 그가 속해  있던 집단에서 제외됩니다. 1년쯤  지나서 그가
돌아가면, 그의 부모도  더 이상 그를 자기들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
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가이징 나라에서 살면 '남들'의  정신에 물
들어 가이징이  되어버린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의  죽마 고우들
마저도 낯선 관광객을 대하듯이 그를 대하게 됩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절이며 신사 따위가 차례차례  나타나고 있었다.
나레이터의 해설이 이어졌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것과  다릅니다. 일본에
서는 한 개인의  죽음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
들이 걱정하는 것은, 생산력을 가진 하나의  세포가 사라지는 것입니
다. 죽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무술 연마를  즐깁니다. 국
민학교 때부터 어린이들에게 검도를 가르치고....
  화면 중앙에 옛날의 사무라이처럼 옷을 입은  검도 선수 두 사람이
나타났다. 가슴을 마디가 진 검은 판으로  덮었고, 머리에는 계란 모
양의 투구를 썼다. 투구에는 양쪽 귀 높이에  기다란 깃털 장식이 꽂
혀 있었다. 그들은 살기 등등하게 고함을  지르며 서로에게 달려들어
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한 남자가  두 손에 쥔 칼을 배에 댄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자살 의식인 셋푸쿠는  일본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줍니다.
우리로서는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그....
  "허구한 날  텔레비젼이로구나! 텔레비젼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
는거야. 우리 머리 속에 갖가지 획일적인  심상을 심어넣지. 온갖 방
법으로 별별 얘기를  다 한단 말이지. 이제 신물이 날  때도 됐는데,
아직 안그러냐?"
  몇 시간 전에 돌아와 있던 조나탕이 소리를 쳤다.
  "내버려둬요. 그거라도  보면서 위안을 찾아야죠. 개가  죽은 뒤로
는 니콜라가 영 생기가 없어요...."
  딱딱한 음성으로 뤼시가 말했다.
  조나탕은 아들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괜찮니? 니콜라?"
  "조용히 하세요, 텔레비젼 소리를 듣고 있단 말이예요."
  "여보, 이녀석 우리에게 말하는 투가 왜 이래!"
  "우리에게가 아니라  당신에게 말하는  투가 그런 거예요.  당신을
자주 못 보니까 쌀쌀맞게 대하는 거 아니겠어요?"
  "니콜라,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 만드는 문제  풀었니?"
  "아뇨, 신경질나서  못 하겠어요. 텔레비전  소리 좀 듣게  가만히 계세요."
  "그래, 신경질이 나더란 말이지...."
  조나탕은 깊은 생각에  잠겨 탁자 위에 성냥개비를  늘어놓고 이리
저리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해보면 좋을텐데. 이 문제는 좋은 교훈을 주거든."
  니콜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의  뇌는 텔레비젼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조나탕이 자기 방으로 가려는데, 뤼시가 물었다.
  "뭘 하려고 그래요?"
  "준비해야지. 거기로 돌아가야잖아."
  "뭐라구요? 안돼요!"
  "달리 도리가 없어."
  "도대체 저 아래에서 당신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 게 뭐예요? 애인
이라도 숨겨놨어요? 말해봐요. 당신 아내인 나한테  말 못할 게 뭐냔 말이예요!"
  그는 묵묵 부답이었다.  그의 눈이 아내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볼쌍사나운 버릇이  또 나왔다. 싸우는  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라야
말이지 뤼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쥐들은 죽였나요?"
  "죽일 필요가 없어.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놈들은  멀찌감치 도
망을 가거든.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이걸 꺼내서 겁을 주지."
  조나탕은, 오랫동안  갈아서 날을  세운 커다란 식칼을  휘둘렀다.
그는 다른 손으로 할로겐 전등을 쥐고 지하실  문 쪽으로 향했다. 등
에는 가방을  짊어졌는데, 거기에는 자물쇠  회사에서 일할 때  쓰던
연장들과 푸짐한 식량이 들어 있었다.
  "잘 있거라, 니콜라. 당신도...."
  뤼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조나탕의 팔을 잡았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이건 너무해요. 나에게 말을  해야 돼요."
  "아, 제발 그만해 둬."
  "이런 얘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저  빌어먹을 지하실
에 내려가면서부터 당신  아주 딴 사람이 되었어요. 돈은  다 떨어졌
는데, 개미에 대한  책하고 자재를 이것저것 사들인 게 못  돼도 5만
프랑어치는 될 거예요."
  "자물쇠 설치하는 일하고  개미 연구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래. 그
건 내 권리야."
  "아니예요, 그건 당신 권리가 아니예요. 먹여살려야  할 자식과 아
내가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어요?  실업 수당도 다  개미에 관한
책 값으로 나가고, 끝을 내든지 해야지 원...."
  "이혼하겠다는 거야?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뤼시는 낙담한 표정으로 남편의 팔을 놓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조나탕이 아내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날 믿어줘. 난 끝까지 가야 돼. 난 미친 게 아냐."
  "미친 게 아니라고요?  당신 모습이 어떤지 좀 봐요!  안색이 백지
장 같구 무슨 열병을 앓는 사람 같아요."
  "몸은 늙어가지만, 머리는 젊어지고 있어."
  "여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얘기해 줘요!"
  "흥미 진진한 일이야. 나중에 다시 올라올  수 있으려면 더 아래로
자꾸자꾸 내려가야 돼....  수영장 같은 거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바닥을 디뎌야 하는 거야."
  말을 마치고 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잠시  후 그가 사라진 뒤 지하실 나선  계단에서도 울려 퍼졌다.

  지상 35층. 잔가지로  된 얇은 덮개가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은 효
과를 내고 있다.  그 필터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영롱하게 반짝이다
가, 별들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처럼 땅에 떨어진다. 여기는  햇빛
방. 벨로캉의 시민들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방은 찌는 듯한  열기로 가득 차 있다. 기온은 38도.  당연한 얘기
지만, 햇빛방은 태양의  열기를 되도록 오랫동안 받을 수  있도록 정
남향으로 되어 있다.  어쩌다가, 잔가지들이 온도를 높이는  데 촉매
작용을 해서, 기온이 무려 50도에 이르는 때도 있다.
  수백 개의  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수가
많은 계급은 유모  개미 계급이다. 유모 개미들이 방금  어머니가 낳
은 알들을 쌓고  있다. 스물네 개의 모다기가 모여서  하나의 더미를
이루고, 열두  더미가 모여 하나의  줄이 된다. 그러한 줄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구름이  해를 가려 그늘이 지면, 유
모 개미들이 알모다기를 옮긴다. 가장 어린  생명들은 언제나 따뜻하
게 해주어야 한다.
  '알은 촉촉하고 따뜻하게, 고치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게.'
  이것이 훌륭한 2세를 만들기 위한 개미 세계의 오랜 비방이다.
  왼쪽에 온도  조절을 담당하고 있는 일개미들이  보인다. 일개미들
은 검은 나무  조각과 발효한 부식토 덩어리를 쌓아놓고  있다. 검은
나무 조각은 열기를 모으고, 부식토는 열을  만들어낸다. 그 두 개의
난방 장치가 있는  덕분에, 햇빛방은 바깥 기온이 15도밖에  안 되어
도 언제나 25도에서 40도 사이의 온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포수 개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혹시 청딱따구리 같은  것들이
와서 말썽을 피우지나 않을까 경계하면서....
  오른쪽으로, 세상에 더 먼저 나온 알들이  보인다. 길고 긴 탈바꿈
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유모 개미들이 어린  알들을 핥아주며
보살핀 덕분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작은  알들이 굵어지고 노르스름
해진다. 그 알들은 노란 털이 달린  애벌레로 탈바꿈한다. 그 기간은
1주일부터 7주일까지  다양한데, 그것은 일기 상태가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
  유모 개미들이 알을  돌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항균성을 지닌 침을 아낌없이 주면서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러운  것이 와서 애벌레를 오염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눌  때 발산되는 페로몬조차도 되도록  적게 나오
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것들을 저  구석으로 옮기게 나를  도와 주게.... 조심,  조심,
자네 모다기가 무너지겠어....'
  어떤 유모  개미가 제 몸보다 두  배나 긴 애벌레를  옮기고 있다.
포수 개미가 될 애벌레임이 틀림없다. 유모  개미는 장차 겨레의 '무
기'가 될 그 애벌레를 구석에 놓고 핥아준다.
  그 커다란  부화실 한가운데에는  애벌레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
다. 그것들의 몸 마디 열 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애벌레들
은 유모 개미들이  입으로 전해주는 먹이를 받으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목을 길게  늘이면서 요란한 몸짓을
해대면, 마침내 유모 개미들이 약간의 분비밀을  전해주기도 하고 벌
레 고기를 던져주기도 한다.
  3주가 지나 제대로 성숙한 애벌레는  먹기와 움직이기를 중단한다.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가사 상태를 맞는 것이다. 고치를  짓기 위해
모든 힘을  모으는 것이다. 고치가 애벌레들을  번데기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유모 개미들이 노란색의 그 커다란 애벌레  더미를 옆 방으로 끌고
간다. 옆 방에는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도록 마른  모래가 채워
져  있다. '알은  촉촉하고 따뜻하게,  고치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
게'. 그 비결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그 건조실에서,  푸른 기운이 도는  하얀 고치가 노랗게  되었다가
다시 회색으로, 그  다음에 갈색으로 변한다. 연금술에서  돌이 변하
는 것과 반대로  변하는 셈이다. 고치 상태에서 자연의  기적이 일어
난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이다. 신경 조직, 호흡기,  소화기, 감
각 기관, 딱지....
  건조실에 놓인 번데기는  며칠 만에 커다랗게 덩치가  불어날 것이
다. 새에 비유하자면, 알이 부화를 기다리면서  성숙해 가고 있는 것
과 같다. 위대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치를 깨고 나오기  직전의 번데기는, 같은 상태를 맞고  있는 번
데기들과 함께 간격을 벌여서 놓아둔다.
  유모 개미들이 용의주도하게 고치의 너울을  찢고 더듬이와 다리를
들어내면, 마침내 한  마리 하얀 개미가 몸을 떨면서  고치를 벗어난
다. 키틴질이 아직은 물렁물렁하고 투명하지만,  며칠 후엔 벨로캉의
모든 개미들처럼 붉은 갈색을 띠게 될 것이다.
  327호는 다들  일하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는 그 북새통  속에서,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떤 유모 개
미가 갓 태어난 개미의 걸음마를 도와주고 있다.  그는 그 유모 개미
에게 짤막한 냄새 언어를 쏘아보냈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모 개미는  그의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겨우 감지
할 만한 냄새 문장을 보내왔다.
  '조용히 하게,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네.'
  포수 개미 하나가 더듬이 끝에 난  도톰한 곤봉으로 수개미를 툭툭
건드리면서 그를 떼밀었다.
  '방해하면 안 돼. 돌아가.'
  수개미에게는 기력도 충분하지가 않았고,  냄새를 발산해서 상대방
을 설득시킬 만한 능력도 없었다. 아!  56호만한 대화의 능력을 가지
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수개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유모 개미들에게  다시 냄새를 보냈다.  유모 개미들이 그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자 문득 자신의  사명이 자기가 생각하
는 것만큼 정말  중요한 것일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어쩌면 어
머니 말씀이 옳은지도 모른다. 일에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
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일보다는
생명을 보전하는 일이 우선이다.
  수개미가 그런 뜻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개미산  한 방이
그의 더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모  개미 하나가 위에서  그에게
쏜 것이었다. 그 유모  개미는 곧 이어 자기가 맡고 있던  고치를 떨
어뜨려 수개미를 맞추려고 했다. 다행히 겨냥이 빗나간다.
  수개미가 그 폭력  분자를 잡으려고 덤벼든다. 그러나 그  자는 벌
써 첫번째 영아실 안으로 도망을 쳤다. 도망을  치면서 알 한 모다기
를 뒤집어 엎어서  수개미가 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알  껍질이 깨지
면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저 자가 알을  깨뜨렸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유모 개미들이 잉태  상태에 있는 세대를 보호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이며 사방으로 달려간다.
  수개미 327호는 도망치는 개미를 붙잡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
고 가슴 아래로 배를  올려 사격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가  미처 사
격을 해보기도 전에,  그 도망자가 알 모다기를 뒤엎는  것을 보았던
포수 개미가 시체 위로 더듬이를 기울인다.  틀림없이 희미한 악취가
난다. 바위 냄새다.

     사회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미는 사회성을 타고난다. 새끼  개미는 너무
약해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고치를 혼자서 깨뜨릴 수가  없다. 사람
의 아기도 혼자서 걷거나 영양을 섭취할 수 없다.
  개미와 인간은 둘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종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혼자서 터득할 줄도 모르고 터득할 수도 없다.
  그 의존성이 또 다른 진화를 가져온다.  지식 추구가 그것이다. 어
린 개체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터에, 생존 능력을 지
닌 개체들에게 지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지하 20층  암개미 56호는  아직 농격 개미들하고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 신기로워서  아무 냄새도 발산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암개미 계급은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내내 공주
들의 규방에서 갇혀  지낸다. 그래서 암개미들은 세계가  그저 100여
개의 통로로  되어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지하 10층
이하나 지상 10층 이상을 다녀본 암개미는 얼마 되지 않았다.
  56호는 한때,  유모 개미들이 이야기해  준 커다란 '바깥  세상'을
보고 싶어서, 나가려고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파수 개미들에게
떼밀려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냄새는 얼마간 숨길  수가 있었
지만 기다란 날개는  숨길 도리가 없었다. 그 당시에  경비 개미들은
밖에는 어마어마한 괴물들이 있다고 했다. 그  괴물들이 신생의 축제
이전에 밖으로  나오는 어린 공주 개미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56호는 바깥 세상에  대해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지하 20층에 내려와  보고, 56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거친
'바깥 세상'을 돌아다니기 전에 자기 도시  안에서 발견해야 할 경이
로운 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었다. 56호가 버섯 재배장을  본 것도
그곳에서가 처음이다.
  벨로캉 전설에 따르면,  버섯 재배장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5만
번째 천년기의 일로서, '곡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라고 한다.
  포수 개미들의 한 특공대가 어떤 흰개미  도시를 포위했을 때였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큰  방이 나타났
다. 가운데에 하얗고  둥글넓적하게 생긴 커다란 것이  솟아 있는데,
백여 마리의  흰개미 일꾼들이 계속  그것을 문질러 윤을 내고  있었다.
  특공대원들은  그  맛을 보고나서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
은.... 한 마을을  통째로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먹이였
다. 포로가  된 흰개미들이  그것이 버섯임을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흰개미들은 섬유질만으로 살아가는데, 섬유질을  그대로 소화할 수가
없으니까,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그  버섯을 이용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에 비하면 개미들은  섬유질을 아주 잘 소화하니까  버섯을 그렇
게 교묘한 용도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개미들은 버섯을
도시 내부에서 재배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버섯을 도시  안에서 재배하게 되면, 도시가  포위되어 식량
난에 허덕일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오늘, 벨로캉 지하 20층의 커다란 방들에서는  개미들이 버섯의 균
주를 고르고 있다.  그러나 이제 개미들이 이용하고 있는  버섯은 흰
개미들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벨로캉에서는  느타리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버섯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전반적인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암개미 56호가 그 하얀 정원의 화단들을  둘러보고 있다. 한쪽에서
일개미들이 버섯이 자라게 될 '모판'을 만들고  있다. 일개미들은 나
뭇잎을 자잘하고 각이  지게 자른 다음, 그것들을 밟고  버무려서 반
죽을 만든다. 그러고는  나뭇잎 반죽을 배설물로 만든 퇴비  위에 가
지런히 늘어 놓는다(개미들은 이런 때에 쓰려고  우묵한 곳에 배설물
을 모아둔다). 그 일이 끝나면 침을 뱉어  물기를 주고, 싹이 트기를 기다린다.
  이미 발효가  된 반죽은, 먹을 수  있는 하얀 팡이실로  뒤덮여 있
다. 저기 왼쪽에 그런 것이 보인다.  일개미들이 소독성을 지닌 침으
로 물을 주고,  하얗고 자그마한 원뿔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것들을
모두 잘라버린다. 버섯이 마냥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가는, 방이 터
져버리고 말  것이다. 수확한 팡이실들을 일개미들이  납작한 위턱을
써서 가루를 만드는데,  그 가루는 맛깔스러울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다.
  여기에서도 일개미들은 전혀 한눈을 팔지 않고  일에 몰두해 있다.
자기들이 보살피는  버섯 사이에 잡초  하나, 기생 곰팡이  하나라도
끼여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56호가 한 원예  개미와 더듬이 접촉을 시도한 건 바로  그런 분위
기에서였다. 요컨데 계제가 좋지 않았다. 그  원예 개미는 하얀 원뿔
중의 하나를 잡고 꼼꼼하게 가지치기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 도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에겐  도움이 필요
하다. 우리 일에 합류할 생각은 없는가?'
  '어떤 위험이 있단 말인가?'
  '난쟁이 개미들이  무시무시한 성능을 가진 비밀  무기를 만들어냈
다 되도록 빨리 대응해야 할 것 같다.'
  원예 개미는 차분하게  자기가 가꾸고 있는 아름다운  느타리를 어
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56호는 그 버섯이  훌륭하다며 그에게 칭
찬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자 원예 개미가 버섯 맛을  보라고 권했
다. 암개미가 그 하얀 반죽 같은 것을  한 입에 떼어 물었다. 곧바로
식도가 후끈거렸다.  이거 독이잖아! 느타리에는 미르미카신이  배어
있었다. 보통  희석시켜서 제초제로  사용하는 아주 강렬한  산이다.
56호는 기침을  하면서, 그 독이 든  먹이를 늦기 전에  얼른 뱉어냈
다. 원예 개미는 제 버섯을 팽개치고,  위턱을 내밀면서 56호의 가슴
께로 덤벼들었다.
  원예 개미와 56호가  퇴비 위에서 뒹굴고 있다. 더듬이  끝을 재빨
리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머리를 때린다. 때려도 그
냥 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박살내 버리겠다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때리는 것이다. 농경 개미들이 그들을 떼어놓는다.
  '너희 둘 다 어떻게 된 거 아냐?'
  원예 개미가  도망을 친다. 56호는  날개를 펴고 경이롭게  비약을
하더니 도망가던 원예  개미가 땅바닥에서 꼼짝을 못  하게 만들어버
린다. 그때 56호는  원예 개미에게서 바위 냄새가 옅게  풍기고 있음
을 알았다. 틀림없이  그 암살자들 패거리에 속한 한  개미가 이번에
는 56호의 목숨을 노린 것이다.
  56호는 그 원예 개미의 더듬이를 붙들었다.
  '너는 누구냐? 왜 나를 죽이려 했지? 이 바위 냄새는 뭐냐?'
  아무 대답이 없다. 56호가 원예 개미의  더듬이를 비튼다. 그게 너
무 고통스러웠던지 원예 개미가 발악을 한다.  그러면서도 끝내 대답
을 하지 않는다. 56은 겨레의 세포에게  해를 입히는 개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56호는 더듬이를 더 세게 비튼다.
  원예 개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제  스스로 경직 상태에 빠
져든 것이다.  그 자의 심장은 이제  거의 뛰지 않는다. 곧  죽게 될
것이다. 분한 마음에,  56호는 그 자의 두 더듬이를  잘랐다. 그렇지
만 그것은 시체와 씨름하는 꼴일 뿐이었다.
  농경 개미들이 다시 56호를 둘러쌌다.
  '무슨 일이야! 저 자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은 변명할 때가 아니라고 56호는 생각했다.  도망가는 게 낫겠
다. 56호가 날개짓을  하면서 도망을 친다. 327호가 옳다  뭔가 놀라
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겨레 안에 미쳐버린 세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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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부
       개미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지하 45층. 비생식  개미 103683호가 전투 훈련실로  들어간다. 병
정개미들이 춘계  전쟁에 대비해서 훈련을  하고 있는, 천장이  낮은 방들이다.
  어디에서나 병정개미들이  대련을 벌이고  있다. 대련자들은  먼저
상배방의 체격과 다리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서로서로를 더듬는
다. 다음에는  몸을 돌려 옆구리를  서로 더듬어보고 상대방의  털을
잡아당기면서 냄새를  풍겨 도전장을 내고, 더듬이의  도톰한 끝으로
서로를 가볍게 두드린다.
  대련 준비를  끝낸 병정개미들이  마침내 서로서로를 향해  달려든
다. 딱지 부딪는  소리, 저마다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으려고 안
간힘을 쓴다. 한쪽이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자, 다른  쪽은 상대
의 무릎을 깨물려고 한다. 로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몸짓 하나하나
가 나뉘어 있다.  두 뒷다리로 버티며 몸을  곧추세웠다가, 쓰러지며
구르기도 한다. 맹렬한 연습이다.
  대련자들은 대개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면 동작을  멈추고, 다른
대상에게 달려든다. 이것은  그저 전투 기술을 익히기 위한  연습일 뿐
이다. 그러나 몸  한 부분이라도 깨지거나 피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
해야 한다. 등을  대고 누워버리는 개미가 생기면  전투가 중단된다.
그때 그 개미는 항복의 표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항복을 하면 중단하는  대련이기는 해도, 실제 상황과 다를  게 없
다.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발톱으로 사정없이  눈을 찌르기도 하
고, 위턱이 맞부딪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지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50머리 떨어진 곳에  조약돌을 놓고, 겨냥을
해서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은 대개 과녁에 적중한다.
  고참 병정개미가 신참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은 접전
을 벌이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나 있는  것이다. 위턱으로 공격을 하거
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
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전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기
려고 마음을 먹은 자와 패배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정해지기 마련이
다. 전투란 그렇게 역할을 나누는 문제일  뿐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
을 선택하고 나면, 승리를 결심한 자는 겨냥을  하지 않고 쏘아도 과
녁의 한가운데를 명중시킬  수 있을 것이고, 패배를 생각한  자는 제
위턱을 아무리 휘둘러도  상대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단 하나,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하는 것을  자기 몫으
로 받아들인 자를 그 무엇이 당할 수 있으랴.
  결투를 하고 있던 두 개미가 병정개미 103683호를 떠밀었다.
  103683호는 그들을 힘껏 밀어젖히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103683
호는 전투 연습장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용병들의  구역을 찾아가
고 있다. 그리로 가는 통로가 저기 보인다.
  용병들의 방은  일반 부대의 방보다  훨씬 더 널찍하다.  용병들은
끊임없이 훈련장 위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로지  전쟁에 대
비해서 존재할  뿐이다. 용병 부대에는  벨로캉 인근의 갖가지  미개
부족의 개미들이 어우러져 있다. 동맹을 맺은  부족의 개미들이 있는
가 하면, 정복을 당한 부족의 개미들도  있다. 즉, 노랑개미, 빨강개
미, 까망개미, 끈끈이침  개미, 독침을 가진 원시개미 등이  들어 있
고 심지어는 난쟁이개미도 섞여 있다.
  다른 부족의 개미를 먹여살리는 대가로 적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
이 자기 편에 서서 싸우게 만든다는  생각은 흰개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개미 도시에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즉, 외교적인 문제가
미묘해 지면서 개미들이  다른 개미와 싸우기 위하여  흰개미와 동맹
을 맺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흰개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
미부대를 아예  용병으로 만들어서  흰개미 도시에 영원히  주둔하게
하면 어떨까? 그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개미군대가, 흰개미들을 위해 싸우는 같은 개미  동포들과 맞서 싸워
야 했다. 개미  문명이 아주 빠르게 적응력을 키워감에  따라 이번에
는 개미쪽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개미들은 흰개미들이 했던  대로 흰개미 부대를 용병으로  삼아 제
종족과 싸우게 함으로써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
요한 장애가 생겨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여왕에  대한 흰개미
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충성심이  워낙 빈틈이
없어서 제  겨레에 맞서 싸우질 못했다.  결국 용병 제도는  어쩔 수
없이 용병을  제 겨레와 싸우게  하는 패륜적인 결과를 낳게  마련인
데, 그 모든 폐단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개미들뿐이었다. 개미들은
생리적인 특징만큼이나  다채로운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흰개미들을 용병으로 쓸 수는 없었지만, 다른  부족의 개미들이 있
기에 용병 제도를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개미 대연방
들은 많은 이방 개미 부대를 만들어  자신들의 군대를 강화하는 것으
로 만족했다. 이방  개미들의 부대는 모두 벨로캉 페로몬의  기치 아
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103683호는 난쟁이개미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시게푸의
비밀무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순식간에  불개미 원정대  28마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출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용병
개미들은 그렇게 강력한 무기는 본 적이 없고,  그런 소리는 듣던 중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103683호는 가까운  동료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모두 103683호가 잘  아는 개미들이었다. 그들
은 103683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를  믿어주었다. 그의 얘
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결의에 찬 30마리 이상의 개미들이  모여 '난
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를 탐색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아, 327호
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주의할 점이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를 모두 죽이려  하는
한 무리의 조직된 집단이 있다. 그  자들은 틀림없이 난쟁이개미들을
위해 일하는 불개미  용병들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다.'
  보안을 위해서, 그들은  첫 모임을 도시의 가장 밑바닥인  지하 50
층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방 가운데 하나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아
무도 거기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 거기에서라면  마음놓고 거사 계획
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103683호의 몸이 갑작스럽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알려
온다. 그는 몸으로  기온이 23도임을 느낀 것이다.  103683호는 동료
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327호,  56호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개미의 미학
  개미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구부슴한  테두리 선은 맵시좋
게 다듬어져 있고, 몸매에 구현된 공기 역할의  원리가 더할 나위 없
이 훌륭하다. 몸의  구석구석이 정교하게 고안된 차체와  같아서, 공
기 역학의 원리에 맞게 오목오목 들어간  자리에 다리 하나하나가 완
벽하게 박혀 있다.
  몸 마디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기계  장치이다. 몸 마디를  감싸고
있는 판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어떤  디자이너가 마름질한 것처
럼 사개가 꼭  들어맞는다. 그것들은 삐걱거리는 일이  없고,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세모진 머리는  공기를 헤쳐나아가기에 알맞고,
구부러진 긴 다리가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한 몸을  사뿐하게 받치
고 있다. 마치 이탈리아의 스포츠카를 보는 듯하다.
  발톱은 천장에서도 붙어다닐 수 있게 되어  있고, 눈은 180도의 넓
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더듬이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가
지의 정보를 감지하며, 그 끄트머리는 망치  구실을 한다. 배에는 화
학 물질을 저장할  수 있는 주머니나 자루나 샘들이  가득하다. 위턱
으로 물건을 자르고  구멍을 내며 붙잡을 수도 있다.  몸안에 그물처
럼 퍼져 있는 관들을 통해 후각 정보를 방출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니콜라는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도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었다.  무인 탐사 우주선 '마르코폴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뉴스가 방금 끝났다. 탐사 작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지구
와 가까운 태양계에는 생물이 살고 있는  징후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
다. 무인 우주선이 탐사한 행성들이 보여준  모습이란 바위 투성이의
사막이나 암모니아 액으로 된 표면이 고작이었다.  아주 보잘것 없는
이끼 하나, 아메바 하나, 미생물 하나도 없었다.
  '정말 아빠 말대로  외계의 생물은 없는걸까? 온  우주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의 형태는 우리뿐인가?....' 니콜라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
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가 끝나자  '세계의 문화'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은
인도의 카스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힌두교인들은 태아날  때부터 각자의 카스트를 타고나  죽을 때까
지 거기에 속하게 됩니다. 카스트마다 따라야  할 규율이 있는데, 그
규율이 엄격해서  그것을 범했다가는  출신 카스트는 물론이고  다른
카스트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그런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떠올려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니콜라가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지하실에서 개
가 죽은 뒤로,  아이는 매일 4시간씩 일삼아 텔레비젼을  보았다.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고 딴 사람처럼 되어보려는 제  나름의 방
법이었다. 니콜라  어머니의 음성이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일깨웠다.
  "자, 이제 그만 보거라. 피곤하지 않니?"
  "아빠는 어디 계셔요?"
  "아직 지하실에 계시단다.... 이제 자야지."
  "잠이 안 와요."
  "옛날, 얘기 해줄까?"
  "예, 좋아요!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로요."
  뤼시는 아이의  방으로 함께 가서,  오렌지빛의 긴 머리채를  풀어
해치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뤼시는 히브리의  옛이야기 하나를 골랐다.
  "옛날에 석수장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
뻘 흘리며 산을 파는  일이 그 사람 일이었지. 어느 날  그 석수장이
는 자기 일에  싫증이 났어. 석수장이는 생각했지. '이런  삶은 지긋
지긋해. 허구헌  날 돌맹이나 깎고  있자니 지겨워서 못  하겠어....
저 햇님은 늘  따가운 햇살로 나를 힘들게 해. 아,  내가 햇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높은 곳에서 세상에  햇살을 가득 뿌리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못 할일이 없을 거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서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어. 곧바로 석수장
이가 햇님이 된 거지. 그는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자 행복했어. 그런
데,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 여기저기에 햇살을  보내고 있는데,
구름이 나타나서 햇살을 막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이 소리쳤지. '구
름이 저렇게 쉽게  내 햇살을 막아버리니 햇님이 된 게  무슨 소용이
있담! 구름이 햇님보다 더 힘이 센 거라면  구름이 되고 싶어.' 이렇
게 말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구름이 되었어. 그는 세계  위를
날아다니면서 비를 뿌렸지.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구름을 흩
뜨리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은 또 생각을  했지. '아, 바람이 구름을
흩뜨릴 수  있다면, 가장 힘이 센  건 바람이다. 난 바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그는 바람이 되었나요?"
  "그렇지, 바람이 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 폭풍을 일으키고,
돌풍을 만들기도 하고,  태풍이 되기도 했어. 그런데  느닷없이 벽이
하나 나타나서 그가 가는 길을 막았어.  아주 높고 튼튼한 벽이었지.
산이 나타난거야. '고작 산 하나가 내 길을  막는다면, 바람이 된 게
무슨 소용이람? 가장 힘이 센 건 바로  산이로구나!' 하고 그가 말했어."
  "그래서 그는 산이 되었겠군요."
  "맞아, 그때 그는  산이 된 자기를 뭔가가 두드리고 있는  걸 느꼈
지. 그보다  더 힘이 센 무언가가  안에서 그를 후벼파고  있었던 거
야. 그건.... 자그마한 석수장이였어...."
  "아아!"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니?"
  "그럼요, 엄마."
  "텔레비젼에서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 하는  거 본 적이  없지?"
  "예, 엄마."
  뤼시는 웃으면서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뭔가를 파고 있는 건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간 아빠는, 저  아래로 내려감으로
써 아빠 자신이  해나 구름과 같은 다른 것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빠는 이곳이 편치 않은가 봐요."
  "그렇단다. 니콜라. 아빠는 실업자인 걸  부끄러워하셔. 아빠는 햇
님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거야. 땅 속의 햇님 말이야."
  "아빠는 아빠 자신을 개미들의 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뤼시가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야. 네 아빠에겐  아이 같은 구석이 있
지 않더냐. 어린애치고 개미집에 반하지 않는  애가 없지. 너는 개미
를 갖고 장난해 본 적이 없니?"
  "왜요, 있어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베개를 다독거리고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자야지. 그럼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성냥개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아직  정삼각형 네 개 만드는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뤼시는 거실로 돌아와서 읽던 책을  다시 들었
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집의 내력을 밝혀놓은 건축 책이었다.
  그 책에 따르면, 많은 학자들이 이  집에 살았으며, 특히 중세에는
신교도들이 살았다고 한다.  미셸 세르베라는 사람이 그  한 예인데,
그는 이 집에서 몇 해 동안 산 걸로 나와 있었다.
  책의 어떤 구절이 유독 뤼시의 눈길을  끌었다. 그 구절에 따르면,
종교 전쟁중에  도시 밖으로  신교도들을 도망시키기 위해  지하실을
팠다고  한다. 보통  지하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깊고  긴  지하실을....

  개미 세 마리가 완전 소통을 실행하려고  세모꼴을 이루며 앉아 있
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조사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하여 한 몸뚱이가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더듬이를  결합하자 생각들이 순환하면서 융합하기  시작한
다. 아무 문제없이 일이 잘되어 간다.  각각의 뇌수는 하나의 트랜지
스터가 되어,  자신이 받아들인 전기  신호를 증폭시켜 다른  뇌수에
전하고 있다. 그렇게  결합된 세 개미의 정신은 그들의  능력을 단순
히 합쳐놓은 것보다 뛰어나다.
  그때 갑자기 꿈결 같은 더듬이 대화가  중단되었다. 103683호는 잡
스러운 냄새가  끼여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벽에 웬 더듬이가  붙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56호 암개미의 방 입구에 더듬이 두  개가 비
죽 나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분명하다.

  밤 열두시, 조나탕이 다시 올라오지 않은  지 이제 이틀이 되었다.
뤼시는 가슴을  졸이며, 거실  안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니콜라를
보러 건너가보니  아이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뤼시의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성냥개비였다. 문득 어떤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성냥개비의 수수께끼 속에 지하실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었다. 성냥개비 여
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해.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해
서는 답을 찾아낼 수가 없어.'라고 조나탕이  되뇌이었지. 뤼시는 성
냥개비를 들고  거실로 돌아와서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다.  마침내 그
녀는 불안감에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뤼시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먼저 에드몽 삼촌이 보였다.
아니 꿈에  보인 그 사람이  에드몽 삼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
만, 남편이 전에 얘기했던 에드몽 삼촌의  모습과 일치하는 사람이었
던 건 확실했다.
  그 사람은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가 있던 곳은 사막 한복판  돌투성이 땅이었다. 멕시코 병
사들이 그 줄을  둘러싸고 '모든 게 제대로  되어가는지'를 감시하고
있었다. 멀리에 사람들의  목을 매다는 교수대가 여남은  개 보였다.
사람들이 뻣뻣한 시체가 되면, 그들을 떼어내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
에 세웠다. 그 사람이 들어 있는 줄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에드몽 삼촌  뒤에는 조나탕과 뤼시  자신과 아주 작은 안경을  쓴
뚱뚱한 남자가 바짝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사형수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두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그들  넷이 나란히 교수대에 매
달렸다. 그들은 하릴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다.  에드몽 삼촌이 처음으
로 입을 열었다. 쉰 음성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모르겠어요.... 살아야죠. 이왕 태어났으니,  되도록 오래 살아야
죠. 그런데 이거, 끝이 날 것 같은데요."
  조나탕이 대답했다.
  "이보게 조카,  자네 비관하지 말게.  우리 목이 매달리고  멕시코
병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이건 어쩌다 맞닥뜨
린 인생의  고비일 뿐 끝은  아니야. 그저 하나의 고비일  뿐이라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분명히 있다네. 뒤에  있는 자네
들, 올가미가 느슨한가 보게."
  그들은 포승에 묶인 채 버둥거려보았다.
  "아, 내 올가미는 느슨하군요. 이걸 벗어버릴 수가 있겠어요."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잘했네, 그럼 우리를 풀어주게...."
  "어떻게 해야 되죠?"
  "내 손에 자네 몸이 닿을 때까지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게."
  그 뚱뚱한 남자가  몸을 뒤틀며 애를 쓴 끝에 살아  있는 시계추가
되었다. 그가 에드몽  삼촌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
두 똑같은 방식으로 차례차례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에드몽  삼촌은 '다들 내가  하는 대로 하게!'라고  말하더
니, 목을 조금씩 들썩거리면서 그 줄의 맨  끝에 있는 교수대를 향해
서, 올가미들을 하나씩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갈 수가 없잖아요! 이 들보를  지나면 아무
것도 없어요. 저 자들이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눈치챌거예요."
  "보게, 이 들보에 작음 구멍이 하나 있네, 저기로 가세."
  그러면서 에드몽  삼촌은 들보를 향하여 뛰어올랐다.  그리고 삼촌
은 아주 작아지면서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조나탕과
뚱뚱한 남자가  그대로 했다. 뤼시 자신은  도저히 못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나뭇조각을 향해 달려들어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나선 계단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
다. 그들이 도망친  것을 알아차린 군인들의 고함 소리가  벌써 들려
오고 있었다. 로스 그링고스, 로스 그링고스, 퀴다도!
  장화 소리, 총소리, 군인들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현대적인 호텔 방이 나왔다.  바다가 보이는 방이
었다.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8호실. 문이 꽝  하고
닫히는 바람에 꼿꼿이  서 있던 8자가 옆으로 누우면서  무한대 기호
로 바뀌었다.  방은 호사스러웠다.  거기에 있으니 험악한  군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뤼시가  다짜고짜 남편에게
덤벼들었다. '니콜라를  생각해야죠, 니콜라를 생각해야  한다구요.'
그녀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오래된 화병 하나를  집어들어 남편을 때
렸다. 어린 헤라클레스가  뱀을 목 졸라 죽이는 그림이  그려진 화병
이었다. 조나탕은  양탄자 위에 거꾸러지더니 껍질이  벗겨진 새우로
변했다. 그 새우가 꿈틀거리는 모양이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에드몽 삼촌이 앞으로 나섰다.
  "질부, 자네 후회하고 있지, 안 그런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알게 될꺼야. 나를 따라오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뤼시를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발코니로 데려가더니, 손가락을
구부리며 두두둑 소리를 냈다. 그러자 곧  구름에서 불붙은 성냥개비
여섯 개가 내려와 그의 손 위에 일렬로  늘어섰다. 그가 또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내 얘기를 잘  듣거라.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생각
을 한다. 세계를 언제나 똑같은 진부한  방식으로 파악하지. 그걸 사
진 찍는  것에 비유하자면 언제나  광각 렌즈 하나만 가지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지. 그것도 현실의  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건 하나의 시각일 뿐이야.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생
각해야 한다! 보거라."
  성냥개비들이 잠시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땅바닥에  모였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기어다니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었
다. 그 모양은....
  다음날, 뤼시는 무척 흥분한 상태가 되어,  용접을 하거나 쇠를 녹
일 때 쓰는 불꽃뿜개를 샀다. 그걸 가지고  뤼시는 지하실 문의 자물
쇠를 녹여버렸다. 그녀가 지하실 문턱을  넘어가려는데, 니콜라가 아
직 잠이 덜 깬 채로 부엌에 나타났다.
  "엄마! 어디 가요?"
  "아빠 찾으러  간다. 아빠는  자신이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거
야. 산들을 넘어다닐  수 있는 구름 말이다. 아빠 얘기가  허풍이 아
닌지 좀 알아봐야갰어. 갔다와서 얘기해 줄께...."
  "안돼요. 엄마,  가지 마세요.  가지 말아요....  저 혼자  남잖아요."
  "걱정 마라, 니콜라.  다시 올라올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태니 기다리고 있거라."
  뤼시는 지하실  구멍에 불을  비추었다. 그곳은 캄캄했다.  너무나 캄캄했다.

  '게 누구요?'
  두 더듬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머리와 가슴과 배가  차례로 모습들
을 드러낸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예의  그 작은 절름발이다. 그들이
그 절름발이를 덮치려  하는데, 그 뒤에 위턱으로 단단히  무장한 백
마리쯤의 병정개미들이  나타난다. 병정개미들은  모두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다.
  '비밀 통로로 도망가자!'
  암개미 56호가 페로몬을 뿜었다.
  56호는 지하 통로의 입구를 열었다. 그러고는  날개를 파닥여 천장
에 스칠 정도로 올라가더니, 앞장서서 난입해  오는 자들에게 개미산
사격을 한다. 그 틈에 두 공모자들이  도망을 치고, 병정개미들 속에
서 '저놈들을 죽여라!'하는 야만적인 구호가 튀어나온다.
  이번에는 56호가  구멍 속으로 숨어들어 간다.  병정개미들의 개미
산이 아슬아슬하게  56호를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빨리! 저놈들을
잡아라! 수백 개의  다리가 56호를 쫓아 몰려든다.  첩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들은  도망치는 셋을 잡으려고
비좁은 통로에서 시끌벅적거린다.
  수개미와 암개미와 병정개미가 자세를 한껏  낮추고 더듬이를 뒤로
젖힌 채, 통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 통로는  이제 비밀 통로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암개미 거주 구역을  빠져나와 아래층으로 내
려간다. 얼마 안 가서 좁은 통로가  끝나고 갈림목이 나온다. 거기서
부터 네 거리가 자꾸 나온다. 그렇지만  발씨가 익은 327호가 낭패스
러워 하는 동료들을 이끌고 간다.
  그때 느닷없이,  터널 모퉁이에서 그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마리의 병정개미들과  맞다뜨렸다. 아니  이럴 수가....  절름발이가
벌써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 간교한  곤충은 모든 지름길을 훤히 알고 있지
않은가!
  세 도망자들이 뒤로 물러서며 도망을 친다.  그들이 가까스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103683호가 한 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적
들이 지리를  훤히 아는 구역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 난마처럼  뒤얽힌 통로 속에서도 적들은 너무나  쉽게 돌
아다니고 있었다.
  '적이 나보다 강할 때는 적의 의표를 찌르라.'
  벨로캉의 시조께서 말씀하신  이 오랜 격언이 지금  그들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56호가 꾀를 하나 낸다. 벽 속에 숨자는 것이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내몰리기 전에 숨을  곳을 마
련하려고, 세 개미는 안간힘을 다해 측벽에  구멍을 판다. 위턱을 부
지런히 놀려 흙을  부수고 퍼낸다. 눈과 더듬이가  흙투성이다. 그들
은 일을  더 빨리 끝내려고  이따금 흙을 크게 한입씩  삼켜버리기도
한다. 구멍이 꽤  깊어지자 그들은 그 속에 웅크리고  들어가서 벽을
원래대로 해  놓고 기다린다. 추격자들이 다가왔다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훨씬 더 느린 걸음
이다. 얇은 벽 뒤에서 추격자들이 세 개미를  찾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병정개미들은 세  마리가 벽 속에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
다. 그렇다고 마냥  벽 속에 있을 수는 없다. 병정개미들이  셋의 냄
새 중에서 어떤  냄새인가를 감지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그들
은 다시 땅을 판다. 더 커다란 위턱을  가진 병정개미가 앞에서 곡괭
이질을 하고, 두 생식 개미는 그 흙을 퍼다가 그들의 뒤를 메운다.
  암살자들이 그들의 작전을 눈치챘다. 그 자들은  벽을 조사해 보고
나서 세 개미가 지나간 흔적을 찾아내고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한
다. 세  개미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검은 안개 속을 가고  있는
듯한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길잡이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는 1초마다 세  개의 통로가 생기고 두 개의  통로가 막히는
판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믿을 수 있는 도시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고정되어 있는 기준점은 둥근 지붕과 그루터기 뿐이다.
  세 개미는 과실의  살덩이를 파고들어가듯 천천히 도시  속을 파고
든다. 이따금 기다란 덩굴 식물이 길을  막아선다. 그것은 실은 비가
올때 도시가 무너지지  말라고 농경 개미들이 심어놓은  송악의 뿌리
이다. 어딘가를 가다  보면 땅이 딱딱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그들의
위턱이 돌멩이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빙  돌아서 다른
곳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두 생식 개미는, 추격자들이 발자국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세 개미는 거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
곳은 벨로캉 한가운데, 개미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텅  빈 동굴이다. 비도  스며들지 않고, 공기도 희박한  곳으로
서, 아무도 여기에  이런 동굴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무인도 같은 곳이다. 이 작은  동굴까지 그들을 찾으러 올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곳에서 그들은  마치 어머니 뱃속의  난소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56호가, 마주 대하고 있는 327호의 머리를  제 더듬이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영양  교환을 부탁하는 것이다. 327호는  받아들인다는 표
시로 더듬이를  낮추고 제 입을  암개미의 입에 갖다 댄다.  327호는
진딧물 분비꿀을 조금  되올린다. 그 분비꿀은 전에 경비  개미가 그
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56호가 다시 원기를  찾는다. 이번에는
103683호가 56호의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그들은  서로 입술을 갖다
댄다. 56호는 방금  전에 제 먹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영양물을 되
올려 103683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고 나서 세  개미는 서로를 어루
만져주고 비벼준다.  아! 개미에게 있어서, 동료에게  뭔가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원기를 되찾기는 했지만, 무한정 거기에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었
다. 산소가 다  떨어져간다. 개미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도, 공
기도, 온기도 없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생명의
요소가 없으면  결국 잠이 들게 되고,  그 잠은 죽음을  불러오게 된다.
  세 개미가 더듬이를 맞대고 상의를 한다.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계획에 찬동하는 30마리의 병정개미 부대가  지하 50층의 어
떤 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가자.'
  그들은 다시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방향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지구 자장에 민감한 존스톤  씨 기관 덕분이다. 그들은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이제 자기들이 지하 18층  곡물 창고에서 지하
20층 버섯 재배장 사이에 와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추워지고 있다.  밤이 되면서 냉기
가 땅 속  깊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몸놀림이 느려지더니
마침내 땅을 파던 자세 그대로 멎은 채  잠이 들어버린다. 다시 따뜻
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조나탕, 조나탕, 나예요 뤼시예요!"
  그 암흑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면서,  뤼시는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다가 나선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면서는  다른 심리 상태
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내부로 점점  깊이 침잠해 들어가는  기분이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가,  그
다음에는 뱃구레의  태양 신경절이 고통스럽게 조여드는  듯했고, 이
어서 명치가 콕콕  쑤셔왔다. 그러더니 이제는 배 전체로  통증이 퍼
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릎과 발이  기계가 움직이듯  무의식적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
다. 그것도 얼마 못 가서 탈이 날  것만 같다. 거기에서도 통증이 느
껴지는 듯하다. 곧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다.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독선적이었던 어
머니, 어머니는 그녀를  늘 죄인으로 만들었고, 귀염둥이  아들들 편
에 서서  불공정한 처사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졸장부였던  아버지,
아내 앞에서 벌벌  떨었고, 아주 사소한 말다툼에서도 입  한번 뻥긋
못하고 피하려고만 들었으며, 여왕 같은 어머니  말이라면 무조건 예
예 하던 아버지, 겁쟁이였던 아버지....
  자신이 조나탕을 온당치  못하게 대했던 것도, 어린 시절의  그 고
통스런 기억이 지어내는 감정 때문이었다. 사실  뤼시는 친정 아버지
를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했었다. 그렇게  자나깨나 잔소리를 퍼부어대니까 남편이  기가 죽고
오갈이 들어 친정 아버지를 닮아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악순환이 다
시 시작되었다.  뤼시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것, 즉 친정 부모들 같은 부부 관계를 다시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해선 안 되었는데, 뤼시는  남편에게 퍼부어
댔던 질책이 후회스러웠다.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뤼시는 나선 계단을  돌고 돌아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이 남
편에게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몸을 짓누르던 두려움과
고통이 가시었다. 계속 돌며 내려가다가 뤼시는  하마터면 어떤 문에
부딪힐 뻔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문인데, 한쪽에  무슨 글귀
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
잡이가 하나 달려 있었다. 문은 삐걱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문 너머  저쪽으로도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까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위 복판에 철광석의 앎은  광맥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었다. 땅  속 물줄기에서 스며들어온 물과  섞여서, 철광
석은 붉은색이 섞인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달라진 게 그것밖에 없었는데도, 뤼시는 뭔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
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뤼시의 손전등이, 발치에 있는
피 얼룩을 비추었다. 우아르자자트의 피 얼룩이  남아 있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겁 모르던 작은  푸들 종 개가 여기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여기저기에  피가 튀어 묻은 것 같은  얼룩이 있었
다. 그러나 벽에 있는 얼룩들은 핏자국인지  녹슨 철광석의 얼룩인지
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문득 무슨 소리가 들렸다. 따닥거리는  소리였다. 무엇인가가 뤼시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그것들은 마치 겁을 먹고 감히 다가올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듯했다.
뤼시는 발걸음을  멈추고 손전등 빛으로  어둠 속을 뒤져보았다.  맨
처음 소리가 났던  곳을 비춰보고 나서, 뤼시는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뤼시가 있는 그곳에서는  그녀의 울
부짖음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아침이 찾아온다. 세 개미가  다시 내
려가기  시작한다.  지하 36층.  103683호의  발씨가  익은  곳이다.
103683호는 이제 통로로 나가도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거기까지 그들을 따라올 리는 없었다.
  그들은 개미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나지막한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의 왼쪽 또는  오른쪽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열 번의 겨울나기 이전부터 버려진  곡물 창고들이다. 땅바닥
이 끈적거린다. 물기가 배어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지대는 비위생적인 곳으로 여겨졌던 것이고, 벨로캉  내에서 가장 악
명 높은 구역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악취가 풍긴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그다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뭔가 적의를 가진
자들이 숨어  있음을 느끼고 더듬이로 그것들을  탐색한다. 이곳에는
기생 곤충과 불법 거주자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다.
  그들은 위턱을  활짝 벌리고 음산한  방들과 터널 속을  나아간다.
갑자기 새되게 긁는 소리가 들려 그들을  소스라치게 한다. 씨르, 씨
르, 씨르.... 음조가 단순하다. 그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최면을 거
는 듯한 그  단조로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핀다.  진흙 동
굴 속에서 울리고 있다.
  병정개미의 얘기에 따르면 귀뚜라미가 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 소
리가 그들의 사랑 노래라는 것이다. 두 생식  개미는 조금 안도가 되
기는 했으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어쨌든 귀뚜라미
들이 도시 안에까지 들어와서 연방의 군대를  조롱하고 있다는 게 도
무지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103683호 자신에게는  그 일이 놀라울  게 없다. 선대의  여왕께서
이런 격언을 남기시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보다
는 자신의  강점을 공고히 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이런  일은 바로
그 가르침의 산물일 뿐이다.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아주 빠르게  땅을 파들어오고 있
는 듯하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그들을 찾아낸  것일
까? 아니다. 앞다리  두 개가 그들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발톱에
날이 서 있어서 쇠스랑처럼 보인다. 그  앞다리로 흙을 움켜쥐었다가
뒤로 밀어내면서 시커멓고 커다란 몸뚱이를 추진시키는 것이다.
  땅강아지가 아니면 좋으련만!
  세 개미는 모두 위턱을 벌린 채, 꼼짝 않고 있다.
  땅강아지다. 흙의 소용돌이가  인다. 검은 털과 하얀  발톱이 달린 공 같다.
  그 동물은 흙의 침전층 사이를 헤엄치듯  나아간다. 마치 개구리가
호수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 세  개미는 흙에 두드려맞고  이리저리
내 둘리고, 진흙 덩어리에 들러붙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 상처도 입
지 않고  고비를 넘겼다. 땅  파는 기계 같은 땅강아지가  지나갔다.
땅강아지는 벌레들만  찾고 있었다. 벌레들의 신경절을  깨물어서 마
비시킨 다음에, 그것들을 제 땅굴에 산 채로  저장해 두는 것이 땅강
아지의 커다란 낙이다.
  세 개미는 몸에  달라붙은 흙을 털어내고, 다시 한번  찬찬하게 몸
단장을 한 다음,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들은 이제 아주 좁으면서도 높은 통로에  들어섰다. 길잡이를 맡
은 병정개미가  천장을 가리키면서 주의하라는 냄새를  발산했다. 천
장에는 아닌게아니라, 검은 얼룩이 있는 빨간  빈대들이 덕지덕지 붙
어 있었다. 지긋지긋한 골칫덩이!
  길이가 3머리(9밀리미터)인  이 곤충의  등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곤충은  대개 죽은 곤충의 축축
한 살을 먹고  살지만 때로는 팔팔하게 살아 있는 곤충을  먹기도 한다.
  빈대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세 개미 위로  떨어진다. 그놈이
땅에 닿기 전에 103683호가 가슴 아래로  배를 디밀어 개미산을 쏘았
다. 개미산을  맞은 빈대는 땅에  떨어지자 뜨거운 잼으로  변해버렸
다. 그들은 잼처럼  변해 버린 빈대를 서둘러 먹고는, 또  다른 놈이
공격해 오기전에 얼른 그 방을 떠났다.

       개미의 지능
  나는 이른바  '1월-58'이라는 실험에 착수했다. 첫번째  주제는 지
능이었다. 개미에게 지능이 있는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중간 크기의  비생식 충인 불개미(불개미속
루파 개미) 한마리를 다음과 같은 문제  상황에 놓았다. 구멍이 하나
있고, 그 구멍  바닥에 단단하게 만든 꿀을 한 덩어리  놓았다. 그런
다음 작가지 하나를  구멍 위에 놓아 개미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 작가지는 가볍지만  아주 긴 것이었고, 단단하게  박아놓았다. 보
통의 경우라면  개미는 구멍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 갈수  있겠지만,
이 구멍의 테두리는  딱딱한 플래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뚫을 수가 없다.
  제1일: 개미가 잔가지를 이따금씩  잡아당긴다. 그러다가 잔가지가
조금 들썩이자 그것을 다시 놓았다가 들어올린다.
  제2일: 개미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잘
라보려고도 해보지만 성과는 없다.
  제3일: 위와 같음. 이 곤충은 그릇된 추리  방식 때문에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다른  식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곤충이 구멍
으로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그게 지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닐는지
  제4일: 위와 같음.
  제5일: 위와 같음.
  제6일: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뭇가지가  구멍에서 치워
져 있었다. 밤 사이에 그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그 다음 통로는  반쯤 막혀 있었다. 흘러내리던 차갑고  메마른 흙
이 하얀 뿌리에 매달려 포도송이를 이루었다.  이따금 흙덩이가 굴러
떨어진다. 흔히들 그것을 '안에서 내리는  우박'이라고들 한다. 그렇
게 흘러내리는 흙덩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것이라
고는, 한층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재빨리 흙더미  쪽으로
건너뛴다는 것뿐이다.
  세 개미가 전진하고  있다. 배를 땅에다 붙이고 더듬이를  뒤로 바
짝 젖힌 채  다리를 성큼성큼 벌리고 있다. 103683호는  자기가 이들
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땅이 다시
축축해진다. 메스거운  냄새가 주위를 맴돈다.  산 것의 냄새,  어떤
벌레의 냄새다.
  수개미 327호가 멈춰선다.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327호가
보기에 누군가가 몰래  벽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가  미심쩍은 곳
으로 다가갔다. 벽이 다시 덜덜 떨린다.  거기에서 입처럼 생긴 것이
하나 나타났다.  그가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땅강아지가 아니다.
그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다. 입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하더니
그 한가운데서 혹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수개미에게 덤벼든다.
  수개미가 비명을 지르듯 냄새를 뿜는다.
  지렁이다! 수개미가  위턱으로 쳐서 지렁이를 잘라버린다.  그러나
그들 주위에 있는  벽들이 그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무너져내
리기 시작한다. 곧 지렁이들이 잔뜩 몰려든다.  꼭 회충이 많은 새의
창자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암개미의 가슴을 휘감으려들자,  암개미는 위턱
으로 잽싸게  쳐서 지렁이를 몇  토막으로 잘라버렸다. 그  토막들이
암개미 양쪽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다른 지렁이들이  떼를 지어 그들
의 다리와 머리를  휘감았다. 더듬이에 지렁이가 닿는 게  특히 견디
기 힘들다.  세 개미는 일제히 사격  준비를 하고 공격력이  약한 그
지렁이들에게 개미산을  쏘았다. 마침내  땅바닥에 황토색  살덩이가
질펀하게 깔렸다. 그 살덩이들은 세 개미에게  저항이라도 하듯 팔딱
거렸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자 103683호가 그들이 지나가야  할 통로들
을 가리킨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수록 고약한  냄새가 조금씩 진하
게 나고, 그럴수록  그들은 그 냄새에 익숙해진다.  무엇이든 되풀이
되면 익숙해지는 법 아닌가. 병정개미가 벽  하나를 가리키며 이곳을
파야한다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이곳은 옛날에 퇴비  처리장으로 쓰던 곳이다. 모임  장소는 바로
옆이다. 조용하니까 여기서 모임을 갖는게 좋을 게다.'
  그들은 벽을 파고 넘어간다. 건너편에 커다란  방이 하나 나타나는
데, 배설물  냄새가 진동한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의 대의에  동참한
30마리의 병정개미들이  거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는  했다. 그
러나 그 병정개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초보적인 조각맞추기
놀이라도 해야할  만큼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병정개미들이 모두
토막이나 있었던 것이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두려움에 떨면서, 세 개미가 그 죽음의  방을 조사하고 있다. 도대
체 누가 여기, 벨로캉의 맨 밑바닥에서 이들을 죽였을까?
  '틀림없이 위에서 내려온 어떤 자의 소행일 게다.'
  327호가 페로몬을 발했다.
  '그럴 거라는 생각이 별로 안든다.'
  56호 암개미가 반박하고, 땅바닥을 파보자고 제안한다.
  수개미가 위턱을 바닥에 박는다. 아프다. 밑에는  바위가 있다. 조
금 뜸을 들이다가 103683호가 설명을 한다.
  '거대한 화강암이다. 그게 도시의 맨 밑이고  단단한 바닥이다. 두
껍다. 아주 두껍다. 그리고 널찍하다. 아주  너른 바위다. 아무도 이
바위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바위가  세계의 끝일지도 모른다. 그때,  이상한 냄새
가 풍겨왔다. 무엇인가가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과  금방 친해
질 수  잇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겨레 개미는 아니고,  딱정벌레의
한 종류인 로메슈제이다.
  아주 어린  애벌레 시절에, 56호는  어머니에게서 이 곤충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로메슈제의 감로에 한번  맛들이면, 그것을 마실 때의  기분을 따
라갈 게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  게다. 그건 온갖  육체적 욕망이
빚어낸 음료다. 그 로메슈제의 분비물을 마시게  되면 아무리 강인한
의지라도 맥을 못 추게 되느리라.'
  실제로 그 물질을  마시게 되면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력이
작용을 멈추게 된다.  로메슈제를 도시 안에 들여와 그  독물을 마시
던 개미가,  그것을 공급해 주던  로메슈제가 죽은 뒤에도  어쩌다가
살아남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개미는 새로운 약을  찾아서 어
쩔 수 없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 개미는 더 이상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탈진할 때까지 걷는다.  그러다가 로메슈제를 찾아내
지 못하면, 풀잎에  달라붙어 죽음을 맞는다. 금단의  고통을 이겨내
려고 수없이 물어뜯은 상처를 온몸에 남긴 채로.
  어린 56호가 어느 날 이렇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흰개미와 꿀벌
들은 로메슈제를 가차없이 죽여버리는데, 우리는 왜  그 재앙의 씨앗
이 도시에 반입되는 것을 용인하느냐고,  어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떤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이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이
반드시 더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로메슈제의  분비물은, 복용량
을 알맞게 조절하거나  다른 물질하고 배합하면, 훌륭한 약이  될 수도 있다.
  수개미 327호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로매슈제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에 홀려서,  수개미가 로메슈제의 배에 난  털을 핥는다.
거기에서 환각 작용을 하는 끈끈한 액체가  묻어나온다. 너무도 놀라
운 사실은, 그 독물  공급자의 배에 두 개의 기다란 털이  달려 있어
서,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진 개미 머리와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도 달려든다.  그러나 미처 그 맛을 즐길  겨를이 없었
다. 개미산  한 방이 날아든  것이다. 103683호가 배를 들어  사격을
했다. 화상을 입은 로메슈제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을 비튼다.
  병정개미가 간결하게 자신이 방해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서  이런 곤충을 만나게 되는 것은  범상한 일
이 아니다. 로메슈제는  땅을 팔 줄 모른다. 누군가가 우리  일을 방
해 하려고  일부러 이놈을 데려온  것이다. 여기를 뒤져보면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두 개미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기들 동지의
명철함에 그저 감복할 따름이었다. 세 개미가  오랫동안 수색을 벌인
다. 자갈들을 치우고,  방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아본다.  이렇다. 할
실마리가 별로 없다.  그러나 마침내 이미 알고 있는  냄새를 감지해
냈다. 암살자들의 엷은 바위 냄새다. 느낄 듯  말 듯한 겨우 두세 개
의 냄새 분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냄새는 저쪽에서 오
고 있다.  바로 저 자그마한  바위 밑이다. 그들이 그것을  밀어내자
비밀 통로 하나가 나타난다. 역시 비밀 통로가 있었다.
  다만, 그 통로는 아주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흙이나 나무를
파서 만든  통로가 아니라 놀랍게도  화강암을 뚫어 각이 지게  만든
통로였다. 아무리 강한 위턱을 가졌다 해도  이런 재료에 구멍을 낼 수는 없다.
  통로는 꽤  넓지만,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 그들은  양식이 가득 찬  커다란 방에 내려섰다. 곡물  가루,
꿀, 알곡,  갖가지 고기....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만한 양이면  온
도시가 다섯 차례의 겨울을 날 수 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에서, 바
위 냄새가 난다.  그들을 쫓고 있는 병정개미들이 풍기는  냄새와 똑같은 것이다.
  어떻게 이렇듯 많은 양식을 갈무리해 둔  창고가 이런 곳에 은밀하
게 꾸며질 수 있단 말인가? 어디 그  뿐인가! 이 창고에 접근하는 것
을 막으려고 로메슈제를 이용하다니! 이런 사실을  다른 동료들은 까
맣게 모르고 있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양식으로 실컷 배를 채우고 나서,  현재 자신
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알기  위하여 더듬이를 결합한다.  일이
갈수록 오리 무중이다. 첫 원정대를 몰살한  비밀 무기, 특별한 냄새
를 풍기는 가는  곳마다 그들을 공격하는 병정개미들,  로메슈제, 도
시의 바닥밑에  감추어진 양식 창고, 난쟁이개미들에게  매수된 용병
첩자들이 있을거라는 가정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자
들은 대단히 잘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327호와 동료들은  한가롭게 마냥 생각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었
다. 희미한 진동이 그곳까지 깊숙하게 전해져오고  있다. 둥둥 둥둥,
둥둥 둥둥. 위에서 일개미들이 배 끝으로  땅을 두드리고 있다. 비상
사태다. 2단계 경보가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원  요청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 개미의 다리가  반사적으로 반회
전을 한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들의 몸은 벌써 겨레의
다른 구성원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길에 들어서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뒤쫓고 있던 절름발이  개미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휴! 다행히 저 자들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군....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하실에서 돌아오지 않자, 견디다  못한 니콜
라는 경찰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마 뒤, 많이 운 탓에 눈은 발갛고,  무척 굶주려 보이는 아이 하
나가 경찰서에  들어와 '아빠,  엄마가 지하실로  사라졌어요'하면서
아마도 쥐나 개미에게  죽음을 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깜짝 놀란
경찰관 두명이  아이의 뒤를 따라  시바리트 3번지의 지하층까지  왔다.

      개미의 지능(계속)
  실험에 다시  착수했다. 이번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다.
  피실험자: 먼젓번과 똑같은 개미집에서 꺼내온 동종의 다른 개미.
  제1일: 개미가  나뭇가지를 밀고 당기고 물어뜯는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는 없다.
  제2일: 위와 같음.
  제3일: 됐다! 개미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나뭇가지를 조
금 당기고, 그 틈새로 제 배를 집어넣은  다음 배를 부풀려서 나뭇가
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잡
고있는 다리를 내려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게 조금씩 간헐적
인  동작을 되풀이해서,  천천히  잔가지를 밀어낸다.  그러면  그렇지....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경보는 비상 사태  때문에 발동된 것이었다. 서쪽 맨  끝에 자리잡
고 있는 분가도시  라숄라캉이 난쟁이개미 군대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반격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전쟁은 불가피하다.
  라숄라캉의 생존자들이 시게푸 개미들의 봉쇄를  뚫고 도망쳐 와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태의 자초
지종은 이러했다.
  기온이 17도인  시작에, 기다란 아카시아 가지  하나가 라숄라캉의
주입구로 다가왔다.  기이하게도 움직이는 나무가지였다. 그  가지가
단번에 짓쳐들어와 빙빙 돌면서 입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파수 개미들이  사정없이 후벼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를
공격하려고 나갔지만, 모두  죽음을 당했다. 그 다음에는  모두들 그
나뭇가지의 광란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는 장미 봉오리 하나를 날려버리듯  둥근 지붕을 날려버리
고, 통로를 휘저어댔다. 병정개미들이 닥치는  대로 사격을 해보았지
만, 개미산으로는 그 식물성 파괴자를 조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여 라숄라캉의 개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기진 맥진
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뭇가지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기온이 2도
일 때의 시간  길이만큼 쉴 틈을 주더니, 이번에는  난쟁이개미 군대가 돌격해 왔다.
  이미 지붕이 날아가 구멍이 뚫려버린 분가  도시는 그 첫번째 공격
에 힘겹게 저항했다.  사망자가 수만을 헤아렸다. 견디다  못한 생존
자들이 자기들의 소나무  그루터기 속으로 도망을 쳐서  가까스로 버
티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양식도 없으려니와  난쟁이개미들이 벌서 금단 구역의  나무 속
통로에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라숄라캉은 연방의  일원이므로, 벨로캉과 인근의 모든  분가 도시
들은 마땅히 원군을  보내야 한다. 사태의 전말에 대한  이야기의 초
입 부분을 더듬이들이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전투  준비가 포고되어
있었다. 이  마당에 누가 쉴 생각을  하고 도시 보수  공사를 운운하
랴! 봄철의 첫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수개미 327호와  암개미 56호와 병정개미 103683호가  최대한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어디에서나  그들의 주위에는  개미들이
북적거린다.
  유모 개미들은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를 지하 43층으로  옮기고 있
다. 진딧물 감로를 짜는 개미들은 그 풀빛  가축들을 도시의 맨 밑바
닥에 숨기고 있다. 농경 개미들은 전투 식량으로  쓸 양식을 잘게 다
져서 비축하고 있다. 병정개미 계급의 방들에서는  포수 개미들이 배
에다 개미산을 가득 채우고 있고, 절단  개미들은 위턱을 갈고 있다.
용병 개미들은 밀집  대형으로 모여 있다. 생식 개미들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힌
다.
  당장 공격할 수는 없다. 지금은 춥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리라.

  두 경관 중에서  더 뚱뚱한 사람이 자기 팔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면서 물었다.
  "그런데 얘야,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네 부모님이  저 안에
계시단 말이지?"
  아이는 지친 기색을 보이며 대답을 하지  않고 경관의 팔에서 빠져
나왔다. 갈랭 형사는 계단 아래로  몸을 기울여보더니, 우스꽝스럽기
도하고 우렁차기도 한  소리로 '이리 와봐요!'라고 소리를  쳤다. 그
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정말 아주  깊어 보이는데요. 이대로는 못  내려가겠어요. 도구들
을 좀 가져와야겠어요."
  빌솅 경정은 불안한 낯빛을 보이며 손가락 끝을 입술에 댔다.
  "하긴 그래."
  "소방대원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갈랭 형사가 말했다.
  "그러게, 그동안 나는 이 꼬마에게 뭘 좀 물어봐야겠어."
  경정이 녹아버린 자물쇠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는 네 엄마가 그런거냐?"
  "예."
  "그렇다면 네  엄마 솜씨가 대단하구나,  응? 용접 토치를  가지고
이렇게 철통같은 문을 딸 줄 아는  여자는 드물거야.... 그리고 하수
구를 뚫고 들어갈 줄 아는 여자는 네 엄마밖에 없을거다."
  니콜라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간거예요."
  "그렇구나,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저 아래로 내려가신  지는
얼마나 됐니?"
  "이틀 됐어요."
  빌솅이 코를 긁으며 난처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아빠가 왜 내려가셨는지 너는 아니?"
  "처음엔 개를 찾으러 내려가셨구요, 그 다음엔  잘 모르겠어요. 금
속판을 사들이시더니  그걸 아래로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개미에 관
한 책들도 잔뜩 사셨어요."
  "개미라구? 하기야 그럴 수도 있지."
  빌솅 경정은  상당히 어리둥절해  있으면서도, '하기야'라는  말을
몇 번 더  중얼거리면서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사건의  해결이 쉬
울 것 같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가  '특별한' 사
건들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태껏 늘상  쓰레기 같
은 일들만 맡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의
성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는 다들  미친 소리라고 외면하는, 얼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관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의 천성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는 학교 친구들이
찾아와 잠꼬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아도 그런 것들을  귀기울여 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럴 때면 그는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고개
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하긴 그래'라
는 말만 되뇌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심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끌려고  복잡한 말과 칭찬의 말을  늘어놓느라고 정
신이 없는데, 빌솅은 '하긴 그래'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이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어린 빌솅은 실제로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면서도 그의 학교에서 가
장 말을  잘하는 학생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는 학년말의 학생 대표 연설을  하라는 요청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빌솅은 정신과 의사가 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제복이 주는 매력
에 이끌렸다. 의사의 하얀 근무복도 제복은  제복이겠지만 그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이 들끊는  세상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경찰과
군대가 '절도있게  사는 사람들'의 기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횡설수
설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는 그런 사
람들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빌
솅의 신경을 가장  심하게 거스르는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
로 떠드는 자들이다. 조금 전에 겪은  일들을,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손짓 발짓해가며 떠벌여대는 족속들 말이다.
  빌솅이 경찰에 투신했을 때, 그의 천성은  곧 상관의 눈에 띄었다.
상관들은 온갖  '터무니없는 사건들'을 모두 그에게  떠맡겼다. 전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자
기가 맡은 사건에 몰두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대단한 일이었다.
  "아참, 성냥개비가 있었어요!"
  "성냥개비가 어쨌다는거냐?"
  "이 사건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어야 돼요."
  "답이 뭔데?"
  "'새로운 사고 방식'이에요. 아빠는 그것을  '새로운 논리'라고 하셨어요."
  "하긴 그래."
  그 말에 아이가 불거진 소리를 했다.
  "'하긴 그래'라는  말만 하면 어떡해요!  삼각형 네 개를 만들  수
있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찾아야 돼요. 개미, 에드몽  할아버지 성냥
개비,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있는거예요."
  "에드몽 할아버지? 에드몽 할아버지가 누구냐?"
  니콜라가 생기를 되찾았다.
  "그분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지은  분이에
요.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아마  쥐들 때문일거예요. 우아르자자트를
죽인 것도 쥐들이고요."
  빌솅 경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저 녀
석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지? 잘돼봐야 알콜 중독자겠다.
  드디어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빌솅은 대견스럽
다는 듯 갈랭  형사를 바라보았다. 갈랭은 타고난  형사였다. 짓궂은
구석도 많은  녀석이었다. 정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곧잘 흥미를
느꼈다. 이야기가  기이하면 기이할수록 그는  더 깊이 빠져들곤  했다.
  이해심 많은 빌솅과 정열적인 갈랭은 둘이서  '아무도 맡고 싶어하
지 않는,  넋 나간 자들의  사건' 전담반을 비공식적으로 구성한  바
있다. 이미 그들이 파견되었던 사건은 많이  있었다. '자기 고양이들
에게 물려  죽은 노파' 사건을  위시하여, '혀로 손님들을  질식시켜
버린 매춘부' 사건이  있고, '햄, 소시지 제조업자들의  수를 줄이려
던 사람'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럼, 소장님은  여기에 계십시오. 저희가  들어가서 이 튜브  식
들것으로 그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새 생명을 낳는 순결한 방에서, 어머니가  알 낳는 일을 중단했다.
어머니가 한쪽  더듬이만을 들어올린다.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다.
시종 개미들이  사라진다. 벨로캉의 살아  움직이는 모태라 할  만한
벨로키우키우니의 심사가  편하질 않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불안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겪은  전쟁이 50차
례는 족히 된다.  여왕을 불안케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비밀 무기
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빙빙  돌면서 둥근 지붕을  날려버린다는
그 아카시아  가지 말이다. 수개미  327호의 증언도 마음에  걸린다.
스물여덟 마리의 병정개미가  전투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몰살을 당
했다고 한다. 이 특별한 사건들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래선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벨로키우키우니는 옛날 '이해할  수 없는 비밀 무기'에  맞서야 했
던 때를 회상한다. 남쪽 흰개미들과 전쟁을  벌이던 때의 일이다. 어
느 날 개미들이  와서 보고하기를, 120마리의 병정개미  부대가 죽은
것도 아닌데 '꼼짝 않고 있다'고 했다.
  두렵기 이를 데  없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더 이상  흰개미들을 정
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벨로캉에서 첩보원을  파견했다. 아닌게아니라 흰개미들은  끈끈물
을 쏘아대는 포수  개미 계급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고  있던 참이었
다. 즉 큰코흰개미가 생겨난 것이다.  그럼으로써 흰개미들은 끈끈물
을 200머리(600밀리미터)까지  쏘아보내, 병정개미들의 다리와  털을
마비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벨로캉 연방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대응책을 찾아냈다.  즉, 낙
엽으로 끈끈물을 방어하면서 전진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
것을 바탕으로 저  유명한 '낙엽' 전투를 벌였고, 그  전투는 벨로캉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의  적수는 멍청한 흰개미들이 아니라,  민첩성으로 보
나 지능으로 보나 흰개미들을 몇 배  능가하는 난쟁이개미들이다. 게
다가 그들의 비밀 무기는 대단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벨로키우키우니가 신경질적으로 더듬이를  만지작거린다. 난쟁이 개
미들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도 많다.
  난쟁이개미들은 100년  전에 이  지역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척후
개미 몇 마리뿐이었다.  그들의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다들 대수롭
지 않게 여겼다. 척후 개미들의 뒤를  이어 난쟁이개미들이, 다리 끝
에 알과   식량을 싣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커다란 소나무
뿌리 밑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보니, 그들의 반수가  굶주린 고슴도치에게 떼
죽음을 당해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북쪽으로 멀리  떠나, 까망 개
미들의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터를 잡았다.
  연방에서는 '난쟁이개미들과  까망개미들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이
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허약한 것들이 덩치 큰
까망개미들의 먹이가 되게 방치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개미들조차 있었다.
  그러나 난쟁이개미들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매일  잔가지와 작
은 딱정벌레들을 나르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초의 예상과
는 달리 사라지는 쪽은 놀랍게도.... 덩치 큰 까망개미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벨로
캉 척후 개미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후로 까망개미들의  둥지 전체
를 난쟁이개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벨로캉  개미들은 그 사
건을 그저 팔자  소관으로 치부하고 심지어는 재미있어  하기까지 했
다. '까망개미놈들  건방지게 굴더니  고거 참 고소하다.'라는  뜻의
냄새마저 통로에 퍼져나왔다. 그 보잘것없는 작은  개미가 연방의 골
칫거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까망개미들에 이어서  이번에는 들장미 꿀을 먹고  사는 꿀
벌들의 둥지가  난쟁이개미들에게 점령당했다.  그 다음에는  북쪽의
마지막 남은 흰개미  도시와 독을 지닌 빨강개미들의  둥지가 난쟁이
개미들의 깃발 아래로 들어갔다.
  피난자들이 벨로캉으로 모여들어 용병대의  규모가 커졌다. 그들이
와서 전하는  얘기로는, 난쟁이개미들이 첨단의 병법을  지니고 있다
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난쟁이개미들은 희귀한 꽃에서  추출한 독
을 물에 풀어서 수원을 오염시키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서도 벨로캉 개미들은  여전히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에  니지우니캉이라는 도시가 기온 2도  대의 시간
만큼 버티다가 무너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무시무시한 적
들을 가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을 과소 평가했던 것은  사실이지
만, 난쟁이개미들도  불개미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는 마찬가지였다. 니지우니캉은  아주 작은 도시였지만, 그  뒤에 벨
로캉 연방 전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난
쟁이개미들이 승리를  쟁취한 다음날, 각각 1,200마리의  병정개미들
로 이루어진  240개의 부대가 몰려와서 팡파르를  울리며 난쟁이개미
들의 단잠을 깨웠다.  전투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난쟁
이개미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런 탓에, 연합군이  도시를 탈환
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해방된 도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난쟁이개미들은  니지우니캉 안
에 한 마리의 병정개미가 아닌 200마리의  여왕개미를 들여앉혀 놓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었다.

      공격군대
  개미는 공격용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회성 곤충이다.
  흰개미와 꿀벌들도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적 진화가
덜 되어 왕정주의에  머물고 있는 그 종들은, 그저  도시를 방위하거
나 둥지에서 멀리  나간 일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병력을 사용한
다. 흰개미 도시와  꿀벌 도시에서 영토 정복을 위해  전쟁을 도발하
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포로가 된 난쟁이 여왕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의  역사와 관습에 대
해서 이야기했다. 기상 천외한 이야기였다.
  난쟁이 여왕개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쟁이개미들은 수십억 머
리나 떨어져 있는 다른 고장에서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 고장은 연방이 깃들여 있는 숲과는 아주  달랐다. 때깔 좋고 맛
좋은 살진 과일들이  열리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겨울이
없어서 겨울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그런 꿈 같은 풍요의  땅 위에,
난쟁이 개미들이 '고대' 시게푸를 건설했다.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어떤 왕조에서  갈라져나온 도시였다. 그 도시는  협죽도나무 밑동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협죽도나무가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과 함께
뿌리째 뽑혀 나무 상자 안으로 옮겨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나무 상
자는 다시 아주 단단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구조물 안으로 옮겨졌다.
그 구조물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보니 물이  펼쳐져 있었다. 끝간데를
알 수 없이 너르고 소금기가 있는 물이었다.
  많은 난쟁이개미들이  제 선조들의  땅을 찾아 돌아가려다가  물에
빠졌다. 그러자 대다수의  난쟁이개미들은 체념을 하고, 짠  물로 둘
러싸여 있는 그 단단하고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삶을 도모하기로 결
정했다. 그렇게 갇힌 상태가 몇날 며칠 계속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존스톤씨  기관을 통해 자기들이 먼  곳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는 지구 자기 장벽을 백 개쯤  통과했다. 그 구조물이 우리를
데려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우리는 협죽도나무와  함께 여기에 부려
졌다. 그럼으로써 우리느 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국적인 식물
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보니 실망스럽기 한량없었다.  과일이며 꽃
이며 곤충들이 더  작고 때갈도 보잘것이 없었다. 빨강,  노랑, 파랑
이 주조를 이루던 고장을 떠나와 맞닥뜨린  이 고장은 초록과 검정과
밤색이 지천이었다.  산뜻한 원색의 세계에서 파스텔  색조의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겨울과 추
위가 있었다.  고향 땅에서는 추위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
고, 그들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것은 오로지 더위뿐이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우선 추위에  대항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
련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 두 가지를 얘기하자면,  하나는 당
분을 섭취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달팽이가  분비하는 끈끈물을 몸
에 바르는 것이었다.
  당분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딸기, 오디,  버찌의 과당을 모았다.
또 지방분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일대의 달팽이들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한편, 난쟁이개미들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매사에  실용성을 중시
했다. 그들에게는 날개  달린 생식 개미가 없었고 결혼  비행도 없었
다. 그들의 암개미는 땅 속에 있는 자기들  집에서 교미를 하고 알을
낳았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도시는 알 낳는 개미를 한  마리가 아니
라 수백 마리씩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져다 주는 이점은 대
단한 것이었다. 훨씬 더 커다란 강점이었다.  불개미 도시 하나를 괴
멸시키려면 여왕개미를 죽이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난쟁이개미의 도
시는 단 한마리의  생식 개미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알을  낳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영토를  확장하는 방법에서도 불
개미들과 달랐다. 불개미들은  결혼 비행을 통해 되도록 먼  곳에 착
륙한 다음, 냄새의 자취로 연방 내의 분가  도시와 다시 연결되는 데
반해서, 난쟁이개미들은 중심 도시로부터  조금씩조금씩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들의 작은 체구마저도 장점이 되었다. 아주  적은 칼로리만 있어
도 그들은 정신이 활발해지고 행동이 민첩해질  수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졌을 때 난쟁이개미들이 대응하고 있는 걸  보고, 불개미들은 그
들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불개미들
은 아직  침수된 통로에서 진딧물  떼와 갓 낳은 알들을  빼내느라고
여념이 없는데,  난쟁이개미들은 벌써 몇  시간 전에 커다란  소나무
껍질의 울퉁불퉁한 곳에  둥지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자기들
의 모든 보물들을 옮겨놓은 뒤였다.
  벨로키우키우니는 불길한  생각을 쫓으려는  듯 몸을  움직이더니,
알 두 개를  낳는다. 병정개미들의 알이다. 그 알들을 거두어  갈 유
모 개미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여왕은 그것들을  아귀아귀 먹어
버린다. 그것은 아주 좋은 단백질인 것이다.
  여왕이 벌레잡이 식물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근심은 이미 털어버
렸다.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항하는 길은 단  하나, 성능이
더 우수하고 더 무시무시한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는 것밖에 없을 듯
하다. 불개미들은 이미 개미산과 낙엽 방패와  끈끈이 함정을 잇달아
개발해 낸  바 있다. 다른 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서 그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리라.
  여왕은 자기  방에서 나온다. 병정개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서 여왕은,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항할 비밀  무기 찾아내
기'라는 주레를 다룰 집단을 만들어 연구해  보자고 제안한다. 온 겨
레가 여왕의 자극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르는 곳마다 병정개
미들뿐 아니라 일개미들까지도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작은 집단을 형
성한다. 그런  다음 더듬이들을 삼각형이나 오각형으로  연결하고 완
전 소통을 시행한다. 그러한 완전 소통이  수백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조심, 조심! 밀지 말게. 정지할거야."
  갈랭 형사는,  소방대원 여덟 명에게  등을 떠밀리고 싶지가  않아서, 그렇게 말했
다.
  "안이 너무 깜깜한데! 더 성능 좋은 전등을 주게."
  그가 몸을  돌리자 누군가가 커다란 손전등을  내밀었다. 소방대원
들은 안심찮은  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가죽으로  만든
웃옷도 입었고  헬멧도 쓰고 있었다.  갈랭 형사만이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일에 더 적합한  복장을 착용했어야 했는데, 그
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들은 조심조심 내려갔다. 길잡이 구실을 하는  갈랭 형사는 한걸
음 한걸음을 떼어놓기 전에 구석구석을 열심히  비추어 보았다. 나아
가는 속도는 아주 더뎠지만, 그래도 그게 더 안전했다.
  손전등 불빛이 눈 높이의 나지막한 둥근  천장에 새겨진 글귀를 찾
아내 붓질을 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대 자신을 돌아보라. 끊임없이 그대를  정화하지 않으면, 화학적
인 혼인은 그대에게 해악을 끼치리. 거기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자에
게 재앙 있으라.  너무 자발없는 자, 몸가짐을 삼갈진저.  아르스 마그나
  "저기 봤어요?"
  소방대원 한 사람이 물었다.
  "오래된 새김글이군. 별거 아닐세."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의 마음을 누그려뜨렸다.
  "마법사들의 어떤 비결을 새겨놓은 듯한데요."
  "어쨌든 너무 깊어보이는군."
  "저 글귀의 뜻이 말인가요."
  "아니, 계단 말일세. 저 아래로 수 킬로미터는  이어져 있을 것 같구만."
  그들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표고에서 150미터  정도
아래로 내려와 있는  듯했다. 계단은 여전히 나선 모양으로  돌게 되
어 있었다. 세포 핵  속에 들어 있는 디옥시 리보 핵산의  나선 구조
를 닮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현기증을  느끼다시피 했다. 그들은 깊
이, 점점 더 깊이 내려갔다.
  "이렇게 무한정 계속 내려갈 거예요? 우리가  뭐 동굴 탐사하는 사람들인 줄 아시
오?"
  소방대원 한 사람이 투덜거렸다. 그 말을 받아  튜브 식 들것을 메
고 있던 다른 소방대원이 말했다.
  "난 그저 지하실에서 사람 하나 꺼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거야
원. 집사람이 8시부터 저녁 차려놓고 나를  기다렸을텐데, 벌써 10시
아닌가! 우리 마누라 잔소리깨나 하게 생겼군."
  갈랭 형사가 대원들을 다시 다독거렸다.
  "여보게들, 이제  입구보다 바닥이 더  가까울텐데. 조금 더  힘을
내 보자구. 여기까지 와서 어정쩡하게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그때까지 내려온  길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되는 거리였
다.

  15도쯤 되는  기온에서 몇 시간 동안  완전 소통을 한  끝에, 노랑
용병 개미들의 한  무리가 하나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  방안이 나오
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모든 집단들이  그것이 가장 좋다고 인정한다?a
  그 방안이란  '낫개미'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벨로캉에는
'낫개미'라고 하는  특별한 종류의 용병개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머리통이 크다는  것과, 아주 단단한 씨앗도 깨뜨릴  수 있는
예리하고 기다란  위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는 그들이 쓸모가 없었다. 몸뚱이가 너무  육중한 데 비해서, 다리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곳까지 겨우겨우 기어가느
라고 힘을 다  쓰고 적에게 별로 타격도 주지 못하니  그들을 전쟁터
에 데리고 가봐야  말짱 헛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맡길 일
이라곤, 나뭇가지 자르는 일 같은 허드레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랑개미들이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덩치만 커다랗고 굼
벵이 같은  이 개미들을 싸움터의  용사로 만들 방도가 있다는  것이
다. 몸이 잽싼 작은 일개미 여섯 마리가  낫개미들을 한 마리씩 싸움
터로 데리고 나가면 된다는 것이 그 방안의 요지였다.
  그렇게 되면, 낫개미들이 '살아 움직이는 다리'  구실을 하는 일개
미들을 냄새로 이끌어가면서  적들에게 덤벼들 수 있을  것이고 그들
의 기다란 위턱으로 적들을 토막토막 잘라버릴 수 있을 것이다.
  당분을 잔뜩 섭취한 병정개미들이 햇빛방에서  그 방법이 적절한지
시험해 보고 있다.  일개미 여섯 마리가 낫개미 한  마리를 들어올린
다음 보조를 맞추어 달린다. 제법 효과가  있을 듯하다. 바야흐로 불
개미 도시 벨로캉에서 전차를 발명해 낸 것이다.

  그들은 끝내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퐁텐블로 소방대원  8명과 경찰관 1명,
지하실 안으로 의문의 잠적.

  천지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새벽이 오자, 라숄라캉의  금단 구역
을 포위하고 있던 난쟁이개미들은 안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
루터기 안에 고립된  불개미들은 굶주린 채 탈진해 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그리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전투가 재개되었다. 개미산  포 공방을 한참 벌인  끝에, 난쟁이개
미들이 보조 교차로  두 개를 점령했다. 개미산을 맞고  구멍이 뚫린
나무안에서, 농성하며 버티던 병정개미들의 시체가 쏟아져나왔다.
  아직 살아남아 있는  불개미들의 운명도 백척 간두에 서  있다. 난
쟁이개미들이 금단 구역 안으로 전진해 오고  있다. 천장의 울퉁불퉁
한 곳에 숨어 있던 유격대원들이 겨우겨우  그들의 전진을 늦추고 있다.
  여왕의 방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도 이제  시간 문제다. 그 방
안에서 여왕 라숄라키우니가 심장 박동을 늦추기  시작한다. 이제 만사휴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맨  앞에 있던 난쟁이 부대에  돌연
경보 냄새가 날아든  것이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 난쟁이개미들이 되돌아 나
간다.
  저기, 도시를 굽어보는  '개양귀비' 언덕 위에, 선홍빛  꽃 사이로
수천 개의 까만 점들이 보인다.
  마침내 벨로캉 개미들이  공격에 나선 것이다. 가소로운  것들, 스
스로 무덤을 파러  왔군 하면서 난쟁이개미들은 저희들의  중심 도시
에 이 사실을 알리려고 날파리 용병들을 전령으로 보냈다.
  '날파리들이 모두 똑같은 페로몬을 지니고 날아간다.'
  '놈들이 공격해 온다. 동쪽에 원군을 보내  놈들을 협공하라. 비밀
무기를 준비하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아침 햇살의 따사로움이  불개미들의 공
격 결정을 서두르게  했다. 지금 시각 8시 3분. 벨로캉  군대는 질풍
처럼 비탈길을 내리닫아, 풀들을 우회하고  작은 돌들을 뛰어넘는다.
수백만의 병정개미들이 모두  위턱을 벌린 채 달려가는  모습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것에 겁먹을  난쟁이개미들이 아니다.  불개미들이
그런 전술을 들고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터이다.  간밤에, 난쟁
이 개미들은 주사위의  5점 눈 모양으로 간격을 벌려서  이미 구멍을
파두었다. 그들은 그  구멍에 틀어박혀 위턱만 내놓고  있다. 그럼으
로써 그들의 몸뚱이는 흙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불개미들의 돌격이 이 방어선 때문에 곧  주춤해졌다. 몸뚱이는 땅
속에 감춘 채,  가장 강한 부분만 드러내 놓고 있는  적들을 상대로,
연방군들은 헛되이 위턱을 휘둘러대고  있다. 난쟁이개미들의 다리를
자르거나 배를 뽑아버릴 방도가 없었다.
  그때, 볼레 독버섯의  앞이갓을 덮개 삼아 멀지 않은  곳에 주둔하
고 있던 시게푸 보병의 주력 부대가  반격을 시작하면서, 불개미들이
중간에서 협공을 받게 되었다.
  벨로캉 군대가 수백만이지만, 시게푸 군대는 그것의  수십 배가 된
다. 줄잡아도  불개미 한 마리가  다섯 마리의 난쟁이  병정개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다. 개별 참호  속에 있는 난쟁이개미들을  계산에
넣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들은 구멍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자
기들의 위턱이  미치는 범위로  지나가는 것들은 뭐든지  잘라버리고 있다.
  전투의 형세가 시시 각각으로 수가 적은  쪽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도처에서 튀어나온  난쟁이개미들의 공격을  받고, 연방군의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다.
  9시 36분이 되자 연방군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한다. 난쟁이개
미들은 벌써  승리의 냄새를 내뿜고  있다. 그들의 전략이  완벽하게
적중한 것이다. 비밀  무기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은 퇴각
하는 군대를 추격하면서, 라숄라캉의 점령은 이미  끝난 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쟁이개미들은 다리가 짧아서, 불개미들이 한  번 펄쩍 뛰
면되는 거리를  열 발짝으로 가야 한다.  난쟁이개미들이 헐떡거리면
서, '개양귀비'언덕을 오르고 있다. 벨로캉  연방의 전략가들이 예상
했던 그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번재  공격의 목표가 그것이었
다. 즉, 난쟁이개미들의 군대를 분지에서  끌어내 비탈길에서 맞붙으려는 것이었다.
  불개미들이 능선에  다다랐다. 난쟁이 군대가 대열을  완전히 흐트
린 채  불개미들을 계속 추격해 오고  있다. 능선 위에  돌연 가시의
숲 같은  것이 우뚝 나타난다.  집게 모양을 한, 낫개미들의  거대한
위턱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낫개미들은 위턱을  휘둘러 햇빛에 번
쩍거리게 하면서 난쟁이개미들에게 달려든다.  곡물을 자르는 낫개미
가 난쟁이개미를 자르는 낫개미로 변한 것이다!
  기습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넋이 나간 시게푸 개미들은,  겁에 질
려 더듬이가 뻣뻣해진 채, 잔디가  깍여나가듯이 쓰러진다. 낫개미들
은 비탈길의 기복을  이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적들의  전열을 무너뜨
린다. 각각의 낫개미 밑에서는 일개미 여섯  마리가 즐거움을 만끽하
고 있다. 그 일개미들은 전차의 무한  궤도에 해당하는 셈이다. 전차
의 포탑과 바퀴들 사이에 혼연 일체의  더듬이 소통이 이루어지는 덕
분에, 36개의 다리와 2개의 커다란 위턱을  가진 동물이 적들의 한가
운데를 종횡 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스토돈같이 커다란 동물 수백 마리가  위에서 달려내려오며 난쟁
이개미들을 쳐부수고  어깨버리는 와중에서 난쟁이개미들은 그  동물
을 제대로  쳐다볼 겨를조차 없다. 거대한  위턱들이 난쟁이개미들의
무리 속에 깊숙히  들어가, 풀을 뜯어먹듯 풍지 박산을  내고는 다시
올라온다. 피범벅이 된 다리와 머리들을 그 위턱에  잔뜩 묻힌 채 나
온다. 그 다리와 머리들은 밀짚이 으스러지듯 다시 부서진다.
  난쟁이개미들의 진영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겁에  질린 난쟁
이 개미들은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지지밟고 난리가  났다. 자기들끼
리 싸우다 죽는 자들도 있다.
  벨로캉의 전차들은  난쟁이개미들의 보병  부대를 그렇게  '빗질하
듯' 휩쓸고  지나감으로써 일거에  그들을 제압해 버렸다.  전차들은
일단 멈추었다가, 완벽하게 줄을 맞춘 상태  그대로, 또 한바탕의 밀
어붙이기를 하려고 비탈길을 다시  올라간다. 살아남은 난쟁이개미들
이 선수를  쳐서 달아나려는데, 이번에는  저 위쪽에서 새로운  전차
횡대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2열의  전차 횡대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2열의 전차  횡대가 평행선
을 이루며 사목사목  조여든다. 각각의 전차들 앞에 시체가  산을 이
룬다. 대학살의 현장이다.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라숄라캉 개미들이  자매들을 응원하기 위
해 밖으로  나온다.?a 처음의  놀라움이 신명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환희의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이것은 기술과 지능의  승리다. 연방
의 재능을 이렇게 유감없이 발휘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시게푸가 자기들의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시게푸에는 아직 비밀 무기가 남아 있다. 원래  이 무기는 도시 안에
틀어박혀 완강하게  저항하는 적들을  몰아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
만, 전세가  워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난쟁이개미들
은 그 무기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 비밀  무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갈색 식물로  불개미들의
머리통들을 꿰어놓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난쟁이개미들은 벨로캉 연방에 속한  어떤 탐사 개미의 시
체를 발견한 바 있다. 그 시체는  붙살이하는 팡이의 하나인 '알테르
나리아'의 압력 때문에  터져 있었다. 난쟁이개미 연구자들이  그 현
상을 분석한 뒤에,  그 붙살이 팡이가 휘발성 홀씨를  만들어내고 있
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홀씨들이 불개미의  딱지에 달라붙어 그것을
부식시킨 다음 불개미의  몸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는  딱지를 터뜨려
버릴 정도까지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무기인가!
  게다가 난쟁이개미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  홀씨들은 불개미의 키틴질에는 달라붙지만,  난쟁이개미들
의 키틴질에는  전혀 달라붙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난쟁이개미들은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몸에다 달팽
이 끈끈물을  바르는데, 그 끈끈물이 '알테르나리아'를  막아주는 효
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벨로캉 개미들이  전차를 발명했다면,  시게푸 개미들은 세균전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난쟁이개미의 보병  부대 하나가 행동을  개시한
다. '알테르나리아'로 오염시킨 300개의 불개미  머리를 운반하는 중
이다. 그  불개미 머리는 라숄라캉과의  첫번째 전투에서 확보해  둔 것이다.
  난쟁이개미들이 적들의  한가운데로 그것들을 던진다.  낫개미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개미들이, '알테르나리아'의  홀씨들이 지어내는 치
명적인 먼지 속에 재채기를 해댄다. 그들의  딱지에 홀씨들이 달라붙
자, 그들은 겁에 질린다. 운반 개미들이  메고 있던 낫개미를 팽개치
자, 본래의 무기력 상태로 되돌아간 낫개미들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다른 낫개미들을
사납게 공격한다.  불개미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10시경에, 갑작스레  추위가 밀어닥쳐 교전자들을 갈라놓았다.  차
가운 기류 속에서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난쟁이개미  부대는 그
틈을 이용해서  전차 부대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왔고,  불개미 부대의
전차들은 간신히 비탈길을 되돌아왔다.
  양쪽 진영에서  부상자들을 헤아리고 사망자의 수를  세었다. 잠정
적으로 집계된  피해가 막심하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투의 양상을 바꾸어야 한다.
  벨로캉 개미 진영에서는, 자신들을  괴롭혔던 먼지가 알테르나리아
의 홀씨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 홀씨가  몸에 닿은 병정개미들을
모두 희생시키기로  결정했다. 장차  다가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첩보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보고를 한다.  그 세균 무기로부
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달팽이 끈끈물을 몸에 바르
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행동으로 옮겨졌다.  벨로캉 개미
들은 그 연체 동물을 세 마리 잡아(그것들을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
려워진다), 각자 재해에 대비해 그 끈끈물을 몸에 바른다.
  그런 다음  더듬이를 맞대고 전략을 숙의한다.  불개미의 전략가들
은 전차만  가지고 공격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다.  병력을 새롭게
배치하기로 한다. 전차가 가운데를 맡고, 120개의  일반 보병 군단과
60의 용병 군단이  양 날개로 산개하기로 한다. 병사들의  사기가 되살아 난다.

      아르헨티나 개미
  아르헨티나 개미(학명:  이리도미르멕스 후밀리스)는 1920년에 프
랑스에 상륙했다.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도로를  꾸미기 위하여 협죽
도나무를 들여올 때,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 상자에 함께  실려온 것임이 거의 확실
하다.
  그 개미의  존재가 처음 보고된 것은  186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서이다(아르헨티나 개미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1891년에
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도 그것들이 발견되었다.
  아르헨티나 개미는, 아르헨티나  산 말들을 수출할 때,  그 말들의
잠자리 짚  속에 묻어,  1908년에는 남아프리카에, 1910년에는  칠레
에, 191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1920년에는 프랑스에 오게  되었다.
  이 종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를 띠었다.  하나는 체구가 아주 작다
는 점이었다. 다른 개미들에 비해 유난히  작기 때문에 사람으로치면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  정도가 될 터였다. 또 하나는  대단히 영리하
고 병정개미들이  호전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러한 주요  특징들이 생
태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오게 된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 터를 잡기가 무섭게,  아르헨티나 개미들은 모
든 토박이 종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그것들을  정복해 버렸다.
  1960년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로셀로나까지 진출했다. 1967년
에는 알프스  산맥을 지나 로마까지 쏟아져들어갔다.  그러더니 70년
대부터, 이리도미리멕스는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프랑스 중부를  가로지르는 루아르 강을 건넌  것은 1990
년대 말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법이 빼어나
기로 말하면 시저나  나폴레옹 찜쪄먹을 정도였던 두  종의 개미들과
맞붙게 되었으니, 그것은  불개미(파리 지역 남쪽과 동쪽에  터를 잡
고 있었음)와 왕개미(파리 북쪽과 서쪽에 터잡고 있었음)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개양귀비'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 시게푸는  10시 13분에 원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240개의 예비 군단이  첫번째 공격의 생존자들
과 합류하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전차' 공격에 대한 설
명을 듣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완전 소통을 하기  위하여 더듬이를
모은다. 이 괴이한 기계를 막아낼 방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시 30분경에 일개미 하나가 한 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낫개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일개미 여섯 마리가  그들을 싣
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 '살아  있는 다리들'을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다른 일개미가 불쑥 페로몬을 발한다.
  '그 기계의 약점은  신속하게 뒤로 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약점
을 이용할 수  있다. 밀집된 방진을 치는 것이다. 그  기계가 돌진해
오면 저항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게 길을 틔원준다. 그러다가  그 기
계가 달리던 힘으로  계속 앞으로 가고 있을 때 뒤에서  치고 들어가
는 것이다. 기계가 뒤로 돌 틈을 주지 않고 공격을 하면 된다.'
  또 다른 개미가 의견을 내놓는다.
  '일개미들의 다리가 보조를  정확히 맞추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았다시피, 더듬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낫개미들이  일개미들을 이끌지 못하도록 낫개미들에게  달려들어
더듬이를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모든 의견들을 받아들여, 난쟁이 개미들이 전투  계획을 새로이 짜기 시작한다.

      개미의 고통
  개미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개미들에겐 고통을  느끼게 할 만한  신경 조직이
없다. 신경이  있다 해도 통증을  전달하는 물질이 없다. 개미  몸의
일부를 잘라버렸을 때, 그 토막이 몸뚱이의  나머지 부분과 떨어져서
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 '살아 움직이는' 것을  어쩌다 보게 되는 것
도, 그런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개미에게 고통이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공상 과학의  세계로 우리
를 이끌어간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고,  '자
아'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개미들은  고통을 느
끼지 못한다. 개미  사회의 응집력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랫
동안 곤충학자들은 그런  이론에 기울어 있었다. 그 이론은  모든 것
을 설명하면서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또  다른
이점을 지니고 있다. 즉, 아무런 꺼리낌없이  개미들을 죽일 수 있게해준다는 점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어떤 동물이 있다면, 나는 그  동물을 무척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
은 잘못이다. 목이 잘린 개미는 특별한  냄새를 발한다. 고통의 냄새
인 것이다. 개미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런 냄새가  생길 리 없다.  개미에게 전기적인 신경 감은은  없지만,
화학적인 신경 감응은  있는 것이다. 개미는 자기 몸의  일부가 떨어
져나가면 고통을  느낀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인
데, 그  방식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고통을 느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전투는 11시  47분에 속개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이 밀집  대형으로
길게 늘어서서 '개양귀비'언덕을 치기 위하여 천천히 올라간다.
  꽃 사이에서  전차들이 나타난다. 신호가 떨어지자  전차들이 비탈
을 내리닫는다. 전차  부대의 좌우로 보병 군단과 용병  군단이 산개
하면서, 마스토돈  같은 전차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면 그것을  이어
일을 마무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양쪽 군대가  이제 100머리(300밀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가 사목사목 좁혀진다. 50머리.... 30머리....  10머리! 가장 먼
저 공격에 나선 낫개미가 난쟁이개미들과 막  접전을 벌이려는 찰나,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빽빽하게 늘어서 있던,  시게푸 개미들
의 전열이 갑자기  간격이 넓은 점선 모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이 방진을 치고 있
다.
  전차 앞에 있던  시게푸 개미들이 자취를 감추고, 전차  앞에 보이
는 것은 텅 빈 통로뿐이었다. 난쟁이개미들을  붙잡으려면 재빨리 갈
짓자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느 전차는 하나도 없다.
  위턱들이 허공을  찌르며 소리를 내고,  36개의 다리는 달리던  힘
때문에 티미하게도 계속 내딛기만 한다.
  톡 쏘는 냄새가 훅 끼쳐온다.
  '놈들의 다리를 잘라라!'
  냄새가 날아오기가  무섭게 난쟁이개미들이 전차 밑으로  달려들어
운반 개미들을  죽인다. 그러고는 무너져내리는 낫개미에  깔리지 않
으려고 서둘러 빠져나온다.
  어떤 난쟁이개미들은  과감하게, 세 마리씩  두 줄로 늘어선  운반
개미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한쪽 위턱으로 낫개미의  드러난 배를 후
빈다. 그러자 액체가  흘러 나온다. 물탱크가 터져  물이 쏟아지듯이
낫개미의 체액이 땅 위로 쏟아진다. 또  어떤 난쟁이개미들은 마스토
돈 같은 낫개미의 몸뚱이로 기어올라 더듬이를 자르고 뛰어내린다.
  전차가 하나씩하나씩  무너져내린다. 운반자들을 잃은  낫개미들은
기동을 못하는 환자처럼 엉금엉금 기다가 허무하게 최후를 맞는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참상이다!
  낫개미가 배 터져 죽은 줄도 모르고, 그  시체들을 열심히 메고 가
는 여섯 일개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낫개미의 더듬이가 잘
린 전차들은 '바퀴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뿔뿔
이 흩어지고 만다....
  그렇게 참패함으로써, 전차의 발명이라는  기술적 개가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가 나왔다가도, 적들이  대응책을 너
무 빨리 찾아내는 바람에, 위대한 발명품이  역사의 뒤안으로 그렇게
사라지는 일은 개미 역사에 숱하게 있어 왔다.
  전차 부대를 측면에서 지원하던 보병 부대와  용병 부대는 전차 부
대가 괴멸됨으로써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전차 부대가 거둔
승리의 이삭이나 주으라고 배치되었던 이  부대들이 필사적으로 싸워
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은 낫개미들을 신속하게 해치우고,  벌써 다시 방진을
치고 있다. 벨로캉 개미들이 그 방진의  한쪽 가장자리를 건드리기가
무섭게, 수천  마리의 난쟁이개미들이  탐욕스럽게 위턱을  들이대서
벨로캉 개미들의 기를 꺽어버린다.
  불개미들과 그들의  용병 개미들은 이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언덕 위에  재집결한 불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을 살피고  있다. 난쟁
이개미들은 여전히 밀집된  방진을 짠 채로, 공격을 하러  서서히 올
라오고 있다. 기세가 당당하고 서슬이 시퍼렇다.
  시간을 벌려는 생각으로, 덩치 큰 병정개미들이  돌을 날라와 언덕
위에서 아래로 굴린다. 그러나 그 돌  사태도 난쟁이개미들의 전진을
별로 늦추지  못한다. 약삭빠른  난쟁이개미들은 돌덩이가  지나가는
길에서 비켜섰다가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돌덩이에  맞아 으깨
지는 난쟁이개미는 거의 없다.
  벨로캉 부대는 그 궁지에서 벗어날 묘책을  찾느라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다.  몇몇 병정개미들이 고전적인 싸움  방식으로 되돌아가자
고 제안한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저 개미산  포격을 하자는
것이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개미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접전 중에 개미산을  쏘면 적군뿐 아니라 아군까지도  다치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쟁이개미들이 밀집된 방진을  짜고 있을 때
는 그 효과가 크리라는 얘기였다.
  포수 개미들이 부랴부랴  사격 자세를 취한다. 뒤의 네  다리로 단
단힘 몸을 받치고 배를 앞으로 내민다. 그렇게  해야만 배를 상하 좌
우로 움직여 가장 알맞은 조준 각도를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능선 바로 아래까지  올라온 난쟁이개미들은 수천 개의  배가 능선
위로 끝을 비죽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양진영 사이에 아직은 좀
거리가 있다. 난쟁이개미들이, 비탈길의 마지막  몇 센티미터를 건너
가려고 힘을 한껏 내어 속도를 높인다.
  '돌격! 열과 열 사이를 좁혀라!'
  그러자, 반대쪽 진영에서 단 한마디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사!'
  아래쪽으로 방향을 돌린 배들이 난쟁이개미들  위로 뜨거운 독물을
뿜어댄다. 피웅, 피웅, 피웅, 노르스름한  분출물이 바람처럼 허공을
날아, 공격자들의 제1선을 정면으로 내리친다.
  먼저 더듬이가  녹아서 머리 위로  굴러떨어진다. 그 다음에  독이
딱지로 퍼져나가면, 마치 플라스틱이 불에 녹는  것처럼 딱지가 녹아버린다.
  개미산에 쏘인 몸뚱이가 털썩  내려앉으면서, 거치적리는 장애물이
되어 난쟁이개미들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성난 난쟁이개미들이 비틀
거리는 몸을 추스리고 더욱 격렬하게 능선을 향해 돌진한다.
  위에서는 한 줄의 포수 개미들이 앞서  사격에 나섰던 포수 개미들과 교대를 했다.
  '발사!'
  방진은 흐트러졌지만,  난쟁이개미들은 물컹거리는 시체를  짓밟으
면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또 한 줄의 포수 개미들이  나섰다. 끈끈
이침 개미 용병들도 그들과 합세했다.
  '발사!'
  이번에는 난쟁이개미들의  방진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난쟁이개미
전체가 끈끈이침 개미가 뿜어낸  끈끈이물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린다.
난쟁이개미들도 포수  개미들을 정렬시켜 반격을 시도한다.  그 포수
개미들은 능선을 향해 뒷걸음을 치면서 겨냥도  하지 않고 사격을 한
다. 가파른 비탈이라서 위에 있는 불개미처럼  뒷다리로 버티는 자세
를 취할 수가 없는 탓이다.
  '발사!'
  난쟁이개미 쪽에서도 그런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짤막한  그들의 배는 겨우  작은 개미산 방울을 쏘아댈  뿐
인. 그 분출물은  설사 목표물에 맞는다 하더라도, 딱지를  뚫지 못
하고 가벼운 염증만을 일으킬 뿐이다.
  '발사!'
  양진영에서 쏘아대는 개미산 방울들이 서로  엇갈리며 어지러이 날
린다. 이따금 부딪혀 상쇄되기도 한다. 개미산  포격이 이렇다 할 성
과를 거두지 못하자 시게푸 개미들은 포병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
기로 한다. 그들은  보병들이 밀집된 방진을 치고 돌격하면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열과 열 사이를 좁혀라!'
  '발사!'
  불개미들이 응답한다.  그들의 포병 부대는 여전히  놀라운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개미산과 끈끈물이 또 한차례 분출한다.
  불개미들의 사격이 효과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쟁이개미들
은 '개양귀비'언덕 꼭대기로 기어오르는 데 성공했다.  능선 위에 늘
어선 그들의 윤곽이  검은 띠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복수를 갈망하고 있다.
  격돌. 격노. 격멸.
  이제는 '묘책'이 따로 없다. 불개미 진영 포수 개미들은 더 이상
  배로 사격할 수  없고, 난쟁이개미 진영 방진도 이제는  밀집 대형을 유지할 수 없
다.
  의산 의해. 질풍노도
  모두 한데  뒤섞여서, 어지러이 흩어졌다. 가지런히  정렬하고, 치
달리고, 돌아가고,  달아나고, 덤벼들고, 흩어지고, 모여들고,  쑤석
거려 시비걸고,  밀었다가 당겼다가, 뛰어오르고, 주저앉고,  일어나
서 추스르고, 욕지거리, 맞대거리, 뜨거운 김  내뿜으며 울부짖듯 악
을 쓴다. 도처에  살기가 어려 있다. 서로 맞서서 힘을  겨루고 칼싸
움 하듯 위턱을  휘두른다. 살아 있는 몸뚱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
는 몸뚱이를  가리지 않고 짓밟으며  내달린다. 불개미 한  마리마다
성난 난쟁이개미가 적어도 세 마리씩은 달라붙어  있다. 그러나 불개
미들의 덩치가 세 배는 더 크니까, 거의  대등한 전력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
다.
  드잡이 싸움, 냄새의  아우성, 엷은 안개처럼 뿜어지는  씁쓸한 페
로몬. 수백만 개의 위턱이 맞부딪치는데,  그 생김생김도 가지각색이
다. 끝이 뾰족한  것이 있는가 하면 가장자리가 깔쭉깔쭉한  것이 있
고, 톱니처럼  생긴 것이 있는가 하면  검처럼 생긴 것과  얇은 집게
처럼 생긴 것도 있다.  또 외날인 것이 있는가 하면 양날인  것도 있
고, 독물을 바른  것이 있는가 하면, 끈끈물이나 피를 바른  것도 있
다. 그 위턱들이 서로 뒤엉키며 땅바닥이 진동한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끝에 자그마한 곤봉을  매단 듯한 더듬이들이 상대가  가까이 접근
하지 못하도록  허공을 후려친다. 그러면  갈퀴가 같은 발톱을  가진
상대방의 다리가  더듬이를 때린다.  더듬이가, 성가시게 구는  작은
갈대이기라도 한 것처럼.
  낚아채기, 허 찌르기, 허방치기.
  상대를 붙잡을 때는 위턱이나, 더듬이나, 머리,  가슴, 배, 다리를
잡기도 하고, 뒷다리 관절, 앞다리 관절, 다리  마디에 솔처럼 난 털
을 잡기도 하며, 등딱지에 난 홈이나, 키틴질에  난 구멍, 눈을 잡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몸뚱이가  균형을 잃고 기울어져 축축한  땅에 나동그
라진다. 나는 이 전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서 있는
개양귀비 위로  난쟁이개미들이 기어오른다. 그러더니 그  위에서 발
톱을 있는대로  세우고 불개미에게 뛰어내린다. 마치  마차에 뛰어들
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더니 불개미  등에 구멍을 뚫어  심장까지 파고든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위턱들이 반들반들한 딱지에 줄무늬의 흠집을 낸다.
  어떤 불개미는, 두  개의 투창을 동시에 쏘아대듯이,  더듬이를 노
련하게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더듬이에 묻은 맑은  피를 닦아낼 겨를
도 없이, 적의 머리통을 열 개씩이나 관통시키고 있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죽자 하고 싸운다.
  잘라진 더듬이와 다리가  땅에 지천으로 깔려서 가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라숄라캉의 생존자들이,  자기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듯,  달려
들어서 접전에 합세한다.
  불개미 한  마리가 많은 난쟁이개미들에게 사로잡혔다.  절망에 빠
진 그 불개미는 제  배의 끝을 구부려 제 몸 쪽으로  개미산을 쏜다.
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들을 죽이면서 자기도  죽으려는 것이다. 그들
은 모두 밀랍처럼 녹아버린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는 불개미 쪽의  다른 병정개미 하나가,
적이 자신의  머리를 뽑아버리려 할  찰나에, 잽싸게 상대의  머리를
먼저 뽑아버리고 있다.
  병정개미  103683호는 아까  난쟁이개미들의  선두 병력이  몰려올
때, 다른 병정개미 수십 마리와 함께  삼각진을 쳤었다. 몰려드는 난
쟁이개미 떼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삼각진이
깨진 마당이라서 혼자서  다섯 마리의 시게푸 개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다. 시게푸 개미들은 벌써 사랑하는 전우들의  피로 칠갑을 하고 있다.
  시게푸 개미들이  103683호의 몸뚱이  여기저기를 물어뜯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들에게 대항하는데, 불현듯  전투 연습실에서 늙은
병정개미가 신참들에게 해주던 충고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접전을  벌이기 전에 결정이 나버리는  것이다. 위턱으
로 공격을 하거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이기
지 못할 것이 없다.'
  적이 한 마리라면 그 가르침이 통할 법한데,  다섯 마리일 때는 어
떻게 해야 하나? 103683호가 보기에 그 다섯  마리의 적 중에 적어도
두 마리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결의에 차 있는 듯하다.  그의 가슴
마디를 끈질기게 물어뜯고 있는 자와, 왼쪽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있
는 자가 그렇다. 103683호의 몸에 힘이  충만해 온다. 몸을 버둥거리
면서, 한놈의 목 위에 비수를 꽂듯  더듬이를 박아넣고, 위턱이 평평
한 쪽으로 또 한놈을 쳐서 박살을 냄으로써 적들을 떨쳐버린다.
  그러는 사이  비밀무기를 가지러 갔던 난쟁이개미들이  돌아와, 싸
움터 한복판으로 알테르나리아에 오염된 수십  개의 머리를 던져넣는다.
  그러나 불개미들도  저마다 달팽이의  끈끈물로 방비를 하고  있는
터라 알테르나리아의 홀씨는 공중에서 나풀거리다가  딱지 위에서 미
끄러져 기름진 땅  위로 살포시 떨어진다. 결국 오늘은  새로운 무기
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날이다. 양쪽 진영  모두 장군에 멍군을 불렀던 것이다.
  오후 세시에  전투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개미들의 시체가
내뿜는 올레인 산이라는  특이한 발산물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
다. 4시 30분에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남은 다리가 뚜 개밖에
없어도 아직 서 있을  수 있는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개양귀비 밑
에서 싸움을 벌였다.
  전투는 다섯시가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비가 들이닥칠  것을 예고
하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3월에 뒤늦게 우박  섞인 소나기가
내린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하늘이 땅에서  벌어지는 오랜 폭력
에 신물이 난 듯하다.
  생존자들과 부상자들이 물러간다.
  전투의 총결산:  사망자 500만, 그중 난쟁이개미  400만, 라숄라캉 수복.
  마디가 잘려나간 몸뚱이, 구멍난 딱지,  이따금 단말마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을씨년스런 토막들이 땅 위에 까마득하게  깔려 있다. 래
커처럼 투명한 피와 노르스름한 개미산의 웅덩이가 지천이다.
  끈끈이침개미들이  뱉어냈던 끈끈이물의  진창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몇몇  난쟁이개미들이 자신들의 도시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면
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새들이 날아와 그 개미들
을 쨉싸게 쪼아먹는다.
  먹장 구름을 비추면서 번개가 번쩍거리자, 그  불빛에 아직도 위턱
을 오만하게  세우고 있는 전차의  등딱지가 반짝거린다. 그  위턱의
뾰족한 끝으로 멀리 있는 하늘이라도 구멍을  내고 싶어하는 듯하다.
배우들은 모두 돌아가고, 빗물만이 무대를 씻어내리고 있다.


그 여자는 입에다 잔뜩 문 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빌솅?"
  "여보세요?"
  "(우물거리는 소리....)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요, 빌솅?  신문 봤
어요? 갈랭 형사,  당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죠? 처음  들어왔을 때
부터 나한테 버르장머리없이 굴던 그 애숭이 맞지요?"
  경찰국장인 솔랑쥬 두망이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그 친구 잘라버리라고  했더니 그냥 두어가지고, 이제  죽은 뒤에
용을 만들어 놨더군요. 당신 완전히 돈  거 아니예요? 그렇게 중요한
사건에 어쩌자고 경험도 하나 없는 그런 자를 보냈어요?"
  "갈랭은 경험이 없는  친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뛰어난 요원
이지요. 다만 저희가 그 사건을 너무 얕잡아보았던 겁니다...."
  "훌륭한 요원은 해결책을 찾고 무능한 요원은  핑계거리를 찾는 거예요."
  "사건에 따라서는 우리들 중엥 아무리 훌륭한 요원들이라도...."
  "사건에 따라서는 당신들 중에 아무리 무능한  요원들이라도 꼭 해
결해 내야 하는  사건들이 있는 법이에요. 지하실 안에  들어가서 거
기 갇힌 사람들을  다 꺼내 오세요. 당신이 그렇게  잘났다고 말하는
그 갈랭이라는 친구는,  교회 묘지에나 보내세요. 경찰  묘지는 어림
도 없어요. 이달  말까지는 신문에 우리가 일 잘한다고  칭찬하는 기
사가 실릴 수 있겠지요?"
  "말씀인즉슨, 이 사건이...."
  "말인즉슨, 전적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달렸다는 말
이에요!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벌리지 말았으면 좋
겠어요. 일단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언론에다 떠벌이란  얘기예요.
필요하다면 치안 대원 여섯 명하고 첨단 장비를 보내주겠어요."
  "그런데 만일...."
  "그런데 만일 당신이 계속 그렇게  뭉기적거리고 있으면, 당장이라
도 퇴직시켜 줄테니 알아서 하세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빌솅 경정은 미치광이들을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러
나 그녀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지하실
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 내분비샘에
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호르몬은  인간의 몸 내부에만  영향을
끼친다. 호르몬은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몸 안에서만  순환한다. 지
금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 하거나,
땀이 나려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려  하거나, 소리를 치려  하거나,
울려고 한다고 치자,  그런 것은 그 사람의 일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덤덤하게 바라볼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
기도 할 터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성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안
으로 들어간다. 몸  밖으로 나가는 호르몬이 이른바  페로-호르몬 또
는 페로몬인데, 이것이  있는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려
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 같이 느낀다는  것, 자기 자신이 느낀 것
을 남이 똑같이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임에 틀림없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연방의 모든 도시가 환희에 차 있다.  지친 병사들에게, 달디단 영
양교환이 넘치도록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영웅은
없다. 저마다 제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임무가 끝나면 모든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개미들이 침을 듬뿍  발라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다.  어리숙한 몇
몇 어린  개미들은 전투 중에  뽑혀나간 제 다리들을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찾아내서는  위턱으로 꼭 부여잡고 있다.  다른 개미들이
그것들을 다시 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지하 45층의  전투 연습실에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개미들
을 위하여 '개양귀비' 전투의 실황을 차례차례  재연해 보이고 있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한쪽은 난쟁이개미 역할을 하고, 다른  쪽은 불
개미 역할을 하기로 한다.
  난쟁이개미들이 라숄라캉의 금단지역을 공격한  장면부터 시작해서
불개미의 공격, 난쟁이개미들이 몸을 땅에 묻고  머리만 내놓고 있던
때의 싸움, 짐짓 도망가는 체했던 것,  전차의 투입, 난쟁이개미들의
방진에 밀려  퇴각했던 일, 난쟁이개미들이  능선 위로 돌격해  왔던
일, 포수 개미들의 활약, 마지막 대접전  등을 하나하나 그대로 흉내낸다.
  일개미들이 그것을 보러 많이 왔다. 장면  하나하나가 재현될 때마
다 그들이 토를 단다. 특히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차'라는 새
로운 기술이다. 자기네 계급이 거기에서 한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다. 그 기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개미들의 의견이다. 비
단 전선의 공격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기술을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개미들 중에는 103683호도 들어  있다. 103683
호는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살아남았다.  다리 하나만을
잃었을 뿐이다. 다리  여섯 개를 자유자재로 쓰던 때에  비하면 약간
흠이 되지만, 크게 표시 나지는 않는다.  생식 개미라서 전투에 참가
할 수 없었던  암개미 56호와 수개미 327호가 103683호를  한쪽 구석
으로 이끈다. 더듬이 접촉.
  '여기는 별 문제가 없었는가?'
  '없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도  모두 전투에 참가했었
다. 우리는  난쟁이개미들이 안에까지 쳐들어올 경우에  대비해서 금
단구역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쪽은 어떤가? 비밀 무기를 보았는가?'
  '못 보았다.'
  '어째서 못 보았단 말인가? 움직이는  아카시아 가지가 있었다고들
하던데....'
  103683호가 설명한다.  자신들이 접해본 새로운 비밀  무기는 하나
뿐이었는데, 그것은  잔인무도한 알테르나리아였으며, 그 무기에  대
한 대응책을 찾아냈다는 것을.
  '첫 원정대를 죽인 것은 그게 아닐 것이다.'
  수개미가 단언한다.  알테르나리아는 개미를 죽이는 데  시간이 많
이 걸린다. 게다가  그가 조사해 본 개미들에는 분명히  그 치명적인
홀씨가 전혀 붙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완전 소통을  연장하기로 한
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다. 관념
과 의견들이 교류되면서 더듬이들 사이에 새로이 거품이 인다.
  스물여덟 마리의 탐사  개미들을 순식간에 몰살한 그런  강력한 무
기를 어째서  난쟁이개미들이 전투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걸까? 승리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동원했던 그들이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들
은 아무런  주저없이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럼 난쟁이개미들은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걸까? 비밀  무기의 공격이 있기 전
이나 있은 후에 언제나 난쟁이개미들이 나타난다.  그건 어쩌면 까마
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으로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라숄라캉을 공격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러한 가정에도  일리가 있
다. 첫 원정대가 몰살당한 사건을 생각해  봐도, 누군가가 겨레를 혼
란에 빠뜨리려고  난쟁이개미들의 냄새를 뿌려놓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해서 덕을 볼 자가 누구인가?  이제껏 행
해진 짓가지  나쁜 짓이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혐의를 두어야 할까?  의심이 가는 다른 자들이 있는가?  있다! 악착
같은 제2의 적, 대대로 이어져온 원수, 흰개미들이다!
  그 의심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동쪽의  커다란
흰개미 도시에서 떨어져나온 흰개미 병정개미들이  강을 건너서 연방
의 사냥구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맞다.  틀림없이 흰개
미들의 소행이다.  그 자들이 난쟁이개미들과 불개미들이  서로 싸우
도록 이간질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싸움 한번 안 하
고 양쪽을  몰아내려는 것이다. 난쟁이개미들과 불개미들이  아주 힘
이 빠져 있을 때 힘 안 들이고 개미 도시들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그  자들은 흰개미들
을 위해 일하는 용병 첩자일 게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그렇게 된 것이다.
  세 개미는 한결같은 생각이 세 개의 뇌  속을 순환하면 할수록, 그
의혹투성이의 '비밀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자들은  흰개미들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간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들은 대화를 멈추어야만 했다.  겨레 전체가 함
께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벨로캉 도시는
전쟁의 막간을  이용하여 신생의  축제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생의 축제는 내일 열릴 것이다.
  '모든 계급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라!  암개미와 수개미들은 꿀단
지 개미들의 방으로  가서 당분을 실컷 섭취하라! 포수  개미들은 유
기화학실에 가서 배에다 개미산을 재충전하라!'
  동료들의 곁을  떠나기 전에  병정개미 103683호가 페로몬을  내어
한마디를 일러준다.
  '교미 잘  하게! 이 일은 내가  계속 조사를 할 테니까  걱정들 말
게. 자네들이 공중에  올라가 있을 동안 나는 동쪽의  흰개미 도시로 가 보겠네.'
  그들이 서로 헤어지자 마자 두 암살자, 즉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병정개미와 자그마한  절름발이 개미가 나타났다. 그들은  벽을 긁어
서 아까 세  개미가 나눌때 발산되었던 휘발성  페로몬들을 거두어들였다.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들을 들여보낸 일이  비극적인 실패로 돌아감
에 따라,  니콜라는 한 고아원에  보내졌다. 시바리트 가에서 몇  백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에는 진짜 고아들 말고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부
모의 학대를 피해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제가 난 새
끼들을 버리고 학대하는  동물은 별로 없는데, 인간은 사실  그런 희
귀종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힘겨운 세월을 보내
면서, 엉덩이를  때리는 우악살스러운 발길질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
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그 아이들은 강해져가고,  더 나이가 들면 직
업을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가는 것이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첫날, 니콜라는 실의에 빠진  채 발코니에서 우두
망찰 숲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텔레비젼에서 위
안을 찾았다. 텔레비젼 수상기는 식당 안에  놓여 있었는데, 감독 선
생들은 그 '거지  같은 녀석들'이 줄창 텔레비젼이나  보면서 멍청이
가 되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텔레비젼 덕분에  아이들에게
해방되는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  장과 필립이라
는 다른 두 고아가 공동 침실에서 니콜라에게 물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  봐. 너만한 나이에 이런 데 오는  애는 없
어. 먼저 네 나이나 좀 알자. 몇 살이니?"
  "난 알아. 쟤네 엄마 아빠는 개미들한테 죽었나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던?"
  "누가 그러더라.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면
그게 누군지 가르쳐줄께."
  "너희들 까불면 죽을 줄 알아."
  장과 필립이  니콜라에게 달려들었다. 필립이 니콜라  뒤에서 팔을
비트는 동안, 힘이 더 센 쪽인 장이 니콜라의 어깨를 잡았다.
  니콜라는 불의의  습격에서 몸을 빼내어, 손바닥의  새끼손가락 쪽
을 칼날처럼 세워 장의 목을 후려쳤다(아이는  그런 것을 텔레비젼의
중국 무술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장이  캑캑거리기 시
작했다. 필립이  니콜라의 목을  조르려고 다시 덤벼들었다.  그러자
니콜라가 팔꿈치로 그 아이의 명치를 쑤셨다.  덤벼들던 필립이 무릎
을 꿇고  주저앉아버리자, 니콜라는 다시  장에게 맞서서 그  아이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아이가 달려들어 장딴지를 피가  나도록 물
어뜯었다. 세 아이는 침대 밑을 굴러다니면서  넝마주이들이 서로 싸
우는 것처럼 계속 싸웠다. 마침내 니콜라가 밑에 깔렸다.
  "네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 그러지 않으면 개미
가 너를 물어 죽이게 할꺼야!"
  장은 싸움을 하던 중에 무심코 그 말을  생각해 냈다. 말을 해놓고
보니까 꽤 그럴 듯했다. 정이 새로 들어온  아이를 마루 바닥에 눕혀
놓고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동안에  필립은 어딘가로 달려가서 개미
몇 마리를 가져왔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미였다. 필립
은 니콜라의 얼굴에 개미들을 들이대고 흔들었다.
  "자, 아주 살진 먹이가 여기 있단다!"
  그 말투가 마치 뻣뻣한 딱지로 덮인  개미들이 사람의 살찐 정도를
식별할 수 있다는 투다.
  필립은 니콜라의  입을 벌리게 하려고 코를  움켜쥐었다. 니콜라가
입을 벌리자 그  아이는 거기에다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개미
세마리를 던져넣었다.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개미들을  데려온
것이었다. 그때  니콜라는 생전 처음  느끼는 놀라운 기분을  맛보았
다. 개미가 달착지근했던 것이다. 다른 두  아이는, 니콜라가 더러운
곤충을 다시 뱉어내지  않는 걸 보고 놀라서, 이번에는  자기들도 개
미를 맛보고 싶어했다.

  분비밀을 저장하는 꿀단지 개미들의 방은  벨로캉에서 가장 최근에
성취한 혁신의  하나이다. '꿀단지' 기술은 남쪽의  개미들에게 빌러
온 것이었다. 삼복 더위가 시작되면 남쪽의  개미들은 언제나 북쪽으
로 올라온다. 그 개미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을 때, 밸로캉 연방의
개미들이 그들의  꿀단지 개미의 방을 발견했었다.  곤충의 세계에서
전쟁이란 발명의 원천이자, 발명을 널리 퍼뜨리는  매개자 역활을 한다.
  그때 그 현장에서  벨로캉 병사들은 꿀단지 개미들을  발견하고 경
악을 금치 못했다.  평생 천장에 매달려 살도록 되어  있는 일개미들
이 있었는데, 머리는  아래쪽으로 두고 있고, 배가  어찌나 뚱뚱한지
여왕개미 배보다도 두  배는 커 보였다. 남쪽 개미들의  설명에 따르
면, 그 일개미들은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개미들로서, 어마
어마한 양의 꽃꿀이나  이슬이나 분비꿀을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당분 덩어리라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모든 개미들이 영양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갈무리 주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갈무리 주머니'라는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가서
'꿀단지 개미'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실용화한 것이었다. 개
미들이 와서 그  살아 있는 저장고의 배 끝을 건드리면  꿀단지 개미
는 자기가 저장하고  있는 소중한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주거나
줄줄 쏟아서 나누어주는 것이다.
  남쪽 개미들은, 그런 꿀단지 개미가 있는  덕분에, 열대 지역을 휩
쓰는 지리한 가뭄에도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동을 할
때, 꿀단지 개미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이동 기간  내내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꿀단지 개미는  알 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꿀단지 개미라는  기술을 차용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양의 먹이를 신선하고 위생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
음에 들었던 것이다.
  도시의 모든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당분과 수분을 가득  섭취하기
위해서 꿀단지  개미의 방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살아
있는 꿀 덩어리  앞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날개 달린  개미들이 줄
지어 서 있다. 327호나 56호가 흠뻑  단것을 빨아들이고 나서 물러난다.
  모든 생식  개미들과 포수 개미들이  지나가고 나자, 저장  개미의
몸이 텅 비어진다. 그러자 일단의 일개미들이  꽃꿀과 이슬과 분비꿀을
신속하게 다시  가져와, 훌쭉해진 그들의  배가 작은 공처럼  빛나는
제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채워놓는다.

  니콜라와 필립과 장은 어떤 감독 선생에게  들켜서 함께 벌을 받았
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고아원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세 아이는 대개  식당의 텔레비젼 앞에 붙어 있었다.  그날은 마침
아이들이 '자랑스런 외계인'이라는, 방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된 연
속극을 보고 있었다.
  극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주 비행사들이  어떤 행성에 도
착했는데 그 행성에  거대한 개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장
면을 보면서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쿡
쿡 찌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즈귀 별의 거대한 개미들입니다.
  그 뒷얘기는  늘 보던 것과  비슷했다. 즉, 거대한 개미들은  정신
감응을 일으키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메세
지를 보내어 서로서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지구의 마지
막 생존자가 모든 것을 깨닫고 적의 도시에 불을 지른다. 운운....
  그 결말에 만족한  아이들은 달착지근한 맛을 내던  개미들을 잡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그들이 잡은 개미
들에게서는 지난 번과  같은 달콤한 맛이 나지를 않았다.  이번 것을
더 작고 신맛이 났다. 레몬 즙을 농축시킨 것 같은 맛이었다. 우웩!

  정오 무렵에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아침 공기에 다사로운 기운이 감돌자마자, 포수  개미들이 도시 꼭
대기 주위를 화환처럼 두르고 있는 방호  구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
다. 새들이 곧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서,  포수 개미들이 꽁무니를 하
늘로 치켜들고 대공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포수 개
미들은 사격 때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배를 작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끼워넣고 있다. 그렇게  하면 과녁을 별로 빗겨가지 않고  똑같은 방
향으로 두세  차례의 일제 사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자기의  방 안에 있다. 시녀 개미들이  암개미의 날
개에 침을 발라주고 있다. 소독력을 지닌 침이다.
  '당신들은 위대한 '바깥 세상'에 나가본 적이 있어요?'
  일개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가본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곧 여왕개미가 될  이 암개미는 잠시 후면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터인데, 밖에는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암개미는 더듬이 접촉으
로나마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한시라도 먼저  알고 싶다고 한사코 때를 쓴다.
  일개미들은 그래도  여전히 암개미의  몸단장에만 신경을 쓰고  있
다. 일개미들은  암개미의 다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당겨보기도
하고, 몸을  비틀게 해서 가슴마디와 배마디에서  오도독거리는 소리
가 나게 하기도  한다. 또 암개미와 모이주머니를 눌러서  분비꿀 한
방울이 나오는 걸  보고, 모이주머니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 그 꿀이 암개미로  하여금 몇 시간 계속되는 비행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드디어 56호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다음  암개미를 준비시킬 차례
이다. 한껏 치장을 하고 향기를 듬뿍 머금은  공주 개미가 규방을 떠난다.
  327호 수개미가  그 모습을 보면  56호를 딴 개미로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그 맵시가 정말 곱다.
  56호는 날개를 들어올리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요 며칠 사이
에 날개가 어찌나  빨리 자라든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제는
날개가 너무 길고 무거워서 땅에 질질 끌린다.... 웨딩드레스 같다.
  다른 암개미들이 통로의  출구에 나와 있다. 수백 마리의  그 처녀
개미들과 함께 56호가 벌서 둥근 지붕의 잔가지  속을 돌고 있다. 너
무 흥분한 어떤  암개미들이 잔가지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  네 날
개에 줄무늬의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구멍이  나기도 하며 아예 뽑혀
버리기도 한다. 그 불행한 암개미들은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가 없
다. 설사 올라간다  해도 날아오를 수는 없으리라.  안타까운 일이지
만, 그 암개미들은 5층으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난쟁이개미의
공주들처럼, 그 암개미들은  결혼 비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볼
썽사납게도 밀폐된 방에서  그것도 땅바닥에서 교미를 하게  될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아직 무사하다. 56호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서, 그리고 여린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
면서,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강중거린다.
  다른 암개미 하나가  56호에게 다가와 더듬이 접촉을  하자고 청한
다. 그 암개미는 말로만 듣던 수개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수벌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파리처럼 생겼을까?
  56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문득 327호와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이젠 모든 게 끝났다. 일을 함께할  세포가 없다. 설사 있
다해도 수개미와 자신은 이제 그 일을 나설  수가 없다. 이제부터 모
든 일은 103683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애잔한 아쉬움을 느끼며 56호는 지나간 일들을  되새기고 있다. 도
망치던 수개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었다.... 통행냄새도  없이!
그와 나누었던 최초의 완전 소통.
  103683호와의 만남.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도시의 밑바닥에 갔던 일.
  그들의 '군대'가  될 수도  있었던 병정개미들의 시체로  가득찼던 은신처.
  모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통로....
  56호는 걸어가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돌이켜보고, 자신은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도시를 떠나가기도 전에 그렇게  파란만장한 일
들을 겪은 암개미는 하나도 없을 터였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그렇게 많은  개미가 가담하고 있는 걸 보면,  미친 자들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흰개미들 편에  서서 첩자질하는
용병들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엔 아귀가 안 맞
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첩자의  수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거니와,
그렇게 잘 조직되어 있을 수도 없다.
  설사 그럴 수 있다 해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도시의 밑바닥 밑에  왜 식량을 저장해 둔단 말인가?  첩자들을 먹이
기 위해서?  아니다. 그만한 양이라면  수백만을 배불리 먹일 수  있
다.... 첩자가 수백만이 될 리 만무하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던 그 로메슈제는 또  어떤가. 로메슈제는 지
표에 사는 곤충이다.  것이 제 발로 걸어서 지하  50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곤충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곤충에게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그 발산물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  괴물을 보들보들한 나뭇잎 같은 것으로  폭 싸서
조심스럽게 아래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꽤  강력한 어떤 집단이 있어야 한
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엄청난 수단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놓고 보면,
겨레의 일부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같은 구성원들에
게조차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낯선 암개미들과의  접촉이 56호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한다. 56
호가 걸음을 멈춘다.  동료들이 보기에는 56호가 결혼 비행  전의 흥
분을 이기지 못하고 졸도한 것만 같다.  그런 일이 이따금 일어난다.
그만큼 생식 개미들은 예민하다. 56호는 더듬이를  입 쪽으로 가져간
다. 그간의 일들이  다시 빠르게 스쳐간다. 첫 원정대의  죽음, 비밀
무기, 병정개미 30마리의  죽음,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비축되어 있는 양식....  아뿔싸! 56호는 문득 깨달았다.  56호가 오
던 길을 되돌아 달려간다.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개미의 교육
  개미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 이루어진다.
  -제1일에서 제10일까지.  대부분의 어린 개미들은 알  낳는 여왕개
미의 시중을 든다. 어린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보살피고 핥아주고 애
무해 준다. 그  대신에 여왕개미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독  효과를 지
닌 침을 어린 개미들에게 발라준다.
  -제1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이 고치를 돌볼 수 있게 된다.
  -제2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을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들
을 돌보고 먹이를 준다.
  -제31일에서 제40일까지. 일개미들은 어머니인  여왕개미와 번데기
들을 돌보면서, 도시 안의 일과 길 닦는 일에 종사한다.
  -제40일째 되는  날이 중요하다.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고  인정을
받은 일개미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제41일에서 제50일까지. 일개미들은 경비 보는  일이나 진딧물 분
비꿀 짜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제51일에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일개미들은  개미 도시의 일원으
로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사
냥을 나간다든가 미지의 지방을 탐험하는 일 같은 것이다.
  주: 제11일부터  생식 개미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식 개미들은 대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결혼 비행을  하는 날까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혀 지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도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더듬이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수개미들은 너나없이  암개미들 얘기만 하고  있다.
암개미들을 본 적이  있는 개미는 아주 적다. 그나마도  금단 구역의
통로에서 슬쩍 훔쳐본 게 고작이었다. 많은  수개미들이 나름대로 암
개미들을 상상해 보고  있다. 그들은 고혹적인 향기와 넋을  잃게 할
만한 관능을 지닌 암개미들을 상상하고 있다.
  수개미 하나가  자기는 암개미하고  영양교환을 한 적이  있노라고
떠 벌리고 있다.  그 암개미가 나누어 준 분비꿀은  자작나무의 수액
과 같은 맛이었고,  성호로몬 냄새는 노란 수선화 줄기를  잘랐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고 한다.
  다른  수개미들은 그  수개미를 부러워하며  묵묵히 듣고만  있다.
327호야말로 어떤  암개미(그것도 보통  암개미가 아닌)가  나누어준
분비꿀을 맛본 적이 있기에, 그것이 일개미나  꿀단지 개미가 나누어
주는 분비꿀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대화에 끼여들지 않는다.
  다른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딴 생각을 하고 있는 탓이다.  한 가지
엉큼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암개미 56호에게
미래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자들을 실컷  주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다.  56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56호하고 군중  속에서 다시 만나려면, 서로를 찾아낼  수 있
는 페로몬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다.

  그때 암개미 56호가 수개미들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모든
수개미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암개미가 여기에  오는 것은
겨레의 법도에 어긋난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결혼  비행 전까지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  여기는 난쟁이 개미들의 도시가  아니다. 통로에
서 교미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암개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수개미들은 정작
암개미가 들어오니까  일제히 비우호적인  냄새를 풍겨서 56호가  이
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시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56호는
결혼 비행을 준비하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는 그  북새통의 한가운데
로 계속 나아간다. 56호는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방으로 페
로몬을 발산하고 있다.
  '327호! 327호! 327호! 어디에 있지?'
  수개미들은 56호를 보고 대뜸, 교미할 수컷을  그렇게 대놓고 고르
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힐책한다. 그러고는, 원하는  수개미가 있어
도 참아야 한다고,  상대방을 고르는 게 아니라 우연에  맡기는 거라
고, 몸가짐을 좀  정숙히 하라고 타이른다. 그런  얘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암개미 56호는  끝내 자신의 수컷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수개
미는 죽어 있었다. 위턱에 맞아 머리가 잘린 채로.

      전체주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개미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개미가 완벽한  전체주의의 체제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면서  흥미를
느낀다. 사실 밖에서 보면 개미 둥지에서는  모두 똑같이 일하고, 모
두가 전체의 이익에 따르며, 모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의 전체주의  체제는 현재로
서는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모듬살이 곤충을 흉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나폴
레옹의 휘장이 꿀벌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개미  둥지 전체를 하나
의 생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이 페로몬이라면,  오늘날인 인간 사회
에서는 세계적인 방송망을 가진 텔레비젼이 그런  역활을 한다. 사람
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완벽한  인간 사회가 이루
어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라 만상의 이치는  그런 것
이 아니다. 자연은  다윈 선생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좋은  것이 지
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게다가  좋고 나쁜 것을  어떤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다. 자연  속에는 선한 자,  악한 자,
미치광이, 절망에 빠진 자, 팔팔한 자,  병자, 곱추, 언청이, 쾌활한
자, 슬픔에  빠진 자, 영리한자,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  도량이
넓은 자, 큰 것,  작은 것, 까만 것, 노란 것, 빨간 것,  흰 것 등등
이 다 있어야  한다. 갖가지 종교, 갖가지 철학, 갖가지  광신, 갖가
지 지혜를  가진 자들이 다 있어야  한다. 다양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한 종류가 다른  종류 때문에 소멸당하는 것, 위험이라면  오직 그것 뿐이다.
  어떤 밭에 옥수수가 있는데 그 옥수수들을  가장 좋은 이삭(즉, 물
을 더 적게 필요로 하고, 결빙에 가장  잘 견디며, 알곡이 가장 실한
이삭)의 덩이 수꽃술로만  인공 수분을 시키면, 아주  하찮은 전염병
이 돌아도 다  죽어버린다. 그에 반해서, 옥수수  한그루한그루가 저
마다의 특성과 약점과  비정상성을 지니고 있는 야생의  옥수수 밭에
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옥수수들
스스로 찾아낸다.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은  바로 그 다
양성 속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둥근 지붕을  향해서 56호가  시름에 겨운 발걸음을  조금씩조금씩
옮겨 놓고 있다. 암개미 방 가까이에 있는  한 통로에서 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56호의 적외선 홑눈에 감지된다.  바위 냄새를 풍기
는 암살자들이다.  커다란 병정개미와 다리를  저는 작은 개미가  있다!
  그들이 56호  쪽으로 곧장 다가오자, 56호는  날개를 붕붕거리면서
절름발이 개미의 목덜미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56호를 꼼
짝 못 하게 만들어버렸다. 56호를 당장  처단해 버릴 수 있을텐데도,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더듬이 대화를 하자고 강요한다.
  암개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차피 결혼 비행을 하고  나면 죽게
될 327호 수개미를 왜 죽였느냐고 따진다. 그를 왜 암살했는가?
  두 암살자가 암개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일 중에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한시바삐  해치워야 할 일이 있
다. 겨레가 계속 정상적으로 움직여나가기를  바란다면, 비난받을 만
한 임무가  나쁘게 생각되는 행동일지라도, 그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순진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벨로캉의
단결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희생이 따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렇다면, 이들은 첩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이들은 첩자가 아니라고 한다. 한술  더 떠서 겨레의 안전
과 건강을 지키는 요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주 개미가  분노의 페로몬을  사납게 뿜어낸다. 327호가  겨레의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를 죽였단 말인가! 두  암살자가 그렇
다고 대답한다.?a 지금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라면서
....
  이해할 거라고? 도대체  뭘 이해한단 말인가? 겨레의  한 가운데에
치밀하게 조직된 암살자  집단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고?  '겨레의 생
존이 걸린 위급한  일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수개미를  죽여놓고, 겨
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란 말인가?
  절름발이 개미가  나서서 해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악성 스트레스를 막는 병정개미들'이라는  것
이다. 스트레스에는 유익한 스트레스와 악성  스트레스가 있는데, 유
익한 스트레스는  겨레를 발전시키고 사기를 복돋워주지만,  악성 스
트레스는 겨레를 자멸에 빠뜨린다.... 정보들  중에는 겨레에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은 것도 있다.  어떤 정보들은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고뇌에는 아직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겨레는
고민만 하고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기력이 쇠잔해진다.
  그것은 모두에게 아주 해롭다. 겨레에 독성  물질이 생겨나 모두를
중독시켜버린다. 사실을  아는 건 '잠깐'이지만, 겨레의  생존은 '영
원'하다. 따라서 겨레의  영원한 생존이 더 중요하다. 눈  하나가 어
떤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유기체의 다른 모든 부분에  해가 된다면
뇌가 그 눈을 무시해 버리는 편이 낫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절름발이 개미가  늘어놓
자, 덩치 큰 병정개미가 나서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는 눈을 파낸거라네. 우리는 신경  자극을 잘라버린거라네. 우
리는 고뇌를 끊어버린거라네.
  그들은 더듬이로 페로몬을 계속 발하면서, 모든  유기체는 그와 같
은 안전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기체는
두려움 때문에 죽거나 고뇌스러운 현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자살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56호는 무척 놀라기는 했으나 냉정을 잃지  않는다. 참으로 그럴듯
한 페로몬이다!  그러나 적에게 비밀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들 이미 너무  늦지 않았는가. 그 비밀 무기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해도, 라숄라캉이 이미  그것 때문
에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고 있는 사실이다....
  두 병정개미는 여전히 침착하게 56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채로 설
명을 계속한다. 라숄라캉에 대해서는 다들  벌써 잊어버렸다. 승리가
호기심을 잠재운 것이다. 정 의심스러우면 통로의  냄새를 한번 맡아
보라. 독성 물질의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을 것이다. 온  겨레가 신
생의 축제를 차분하게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왜 머리를  이렇게 짓누르고 있는가?
  아래층에서 쫓고 쫓길  때 개미 하나가 더  있었다. 병정개미였다.
그 자의 신분 번호가 어떻게 되는가?
  그제서야 56호는 왜  암살자들이 자기를 바로 죽이지  않았는지 깨
달았다. 대답하는 척하면서 암개미는 덩치 큰  병정개미의 눈을 더듬
이 끝으로 찌른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고는  해도 더듬이 끝이
그렇게 박히고 보면  몹시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그 서슬에  놀라 절
름발이 개미가 당황하면서 잡고 있던 것을 반쯤 풀었다.
  암개미가 달아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달려가다가 나중엔  더 빨리
가려고 날개짓을 한다. 날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자 추격자들이 길
을 잃고 헤맨다. 빨리 둥근 지붕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56호가 신생의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제 56호 앞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장난감 개미집의 판매 금지 입법을 청원하며
  (국회 조사 위원회에서 에드몽 웰즈가 행한 연설을 발췌한 것임.)
  어제 저는  어떤 가게에 들렀다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새로운  장난감을 보았습니다. 흙이 채워진  플라스틱 상자였는
데, 흙 속에는 개미 300마리가 들어 있었고  그 중에는 알 낳는 여왕
개미 한 마리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장난감을 통해서 개미들이 일하는  것이며, 땅 파는 것,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  장난감은 매력적입니다.
아이는 아마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거
주자들이 아주 작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것은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
습니다. 그 거주자들은  자치 능력을 지닌, 수백 개의 작은  자동 인형과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자신도 그와 비슷한  개미집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개미 연구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저는 생물학자로서  개미 연구를 제
직업의 일환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미집들을 어항에 들여앉
히고 공기가 잘 통하는 판지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미집  앞에 있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곤 합
니다. 마치 자신이  개미들의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한  느낌 말입니
다. 내가 먹이를  빼앗아버리면, 제 개미들은 모두  죽어버릴 것입니
다. 문득 비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들면, 물 한  컵을 물뿌리개에
담아 그들의  도시 위에 뿌려주면  그뿐입니다. 개미집 안의  기온을
높여주고 싶으면, 개미집을 난방 장치 위에다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
다. 또 현미경으로  관찰하려고 그중의 한 마리를  납치하고 싶으면,
핀셋을 어항 안에 집어넣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개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해치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개미들은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말하자면 그 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작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떨까
요.... 아이들 역시  개미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따금 어떤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모래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혹시  이게 우
리의 도시는 아닐까? 혹시 우리는 어떤 어항  안에서 갇혀 있고 다른
거대한 존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무대 장치를 만들어 아담과 이브를 넣어놓고,  실험용 흰쥐를 관찰하
듯 '구경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은, 단지 갇혀  있던
어항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노아의 대홍수라는  것도 기껏해야 신이 조심성이  없거나 호
기심이 많아서 그저 물 한 컵 쏟은 걸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요? 글쎄....  개미집과 우리가 사
는 지구가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유리벽 안에 갇혀  있고 우리는
물리적인 힘, 즉 지구의 인력에 의해 갇혀 있다는 점뿐입니다.
  제 개미들은 갇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어항의 주둥이를  막고 있
는 판자를 베어내고, 벌써 몇 마리는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는 어떻
습니까? 우리도 중력을 벗어나는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어항
안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개미들을 상대로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관대하고 자비
로우며 개미들을  지나치리만큼 소중히 여기는 신입니다.  그래서 백
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개미들에게 행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천 개의 개미집이 팔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만한 수의  아이들이 어린 신이 될  것입니다. 그 아이들  모두가 저
만큼 너그럽고 자비로울 수 있을까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나의 도시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이
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미집의  주인이 됨과 동시에,  개미들에게
먹이를 주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주며, 장난으로  개미들을 죽이
지 않을 의무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일로 불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
히, 아주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문제입니다. 불만의 원인은 학교 성적일 수도  있고 부모의 꾸지람이
나 동무와의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아이들은
'어린 신'의 의무를 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럴  때 아이들의 손아귀
에 있는 '피통치자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장난감  개미집을 규제하는 이 법안을  가결해 주십
사고 부탁드리는 것은, 개미에 대한 연민  때문도 아니고 개미에게도
동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
한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가 동물들을  키우고 돌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들을  희생시켜 우리의 소비에 충당하려는  것이겠지요. 제
가 거대한 존재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있는 포로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구가 어느  날 어떤 무책임한  어린
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넘겨져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지각한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으로 빠지는 통로  속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일개미들이 그들을 밀어주고,  핥아주고, 격려한다.
  암개미 56호는 환희에 찬 개미들의 물결  속에 때맞추어 합류한다.
모든 통행 허가  냄새들이 군중 속에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
도 제 발산물의  냄새들이 군중 속에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
도 제 발산물의  냄새를 분간해 내지 못하리라, 물  흐르듯 나아가는
자매들의 흐름에  실려, 56호는 이제껏  알지 못하던 구역들을  지나
자꾸 위로 올라간다.
  한 통로의 모퉁이에서,  56호는 갑자기 어떤 낯선  것과 마주쳤다.
햇빛이다. 처음엔  그저 벽 위에  빛이 비치는가 싶었는데, 이내  그
햇무리 같은 빛이 눈을 못 뜰 만큼의  강렬한 빛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유모 개미들이 말하던 그 신비로운  힘이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아름다운 빛, 놀라운 신세계에 대한 약속.
  눈알에 빛  알갱이들이 글자 그대로 빨려들어오자,  56호는 취하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마치 32층에서 발효한 분비꿀을 너무  많이 먹
었을 때의 기분 같다.
  56호 공주 개미는 계속 나아간다. 땅바닥에  하얀 알갱이들이 부서
진다. 56호는  따듯한 빛 알갱이  속을 허위허위 해쳐 나간다.  어린
시절을 땅 속에서만 보낸 개미들에게는, 어둠과  빛의 대조가 너무나 강렬하다.
  다시 모퉁이를 돈다. 투명한 빛이 붓질하듯  56호를 간지르다가 눈
부신 원 모양으로  넓어지더니, 은빛 너울이 되어 56호를  휘감아 버
린다. 빛이  너무 강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탓에 56호가  주춤거린
다. 눈 속으로 빛 알갱이가 들어와 시신경을  태워버리고 세 개의 뇌
를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개미의 뇌는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벌레와도  같았던 조상 때부터 내려온  유산이다. 개미
의 조상들은 몸  마디마다 신경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몸의 각
부분에 신경 체계를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56호가 바람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빛 알갱이를  거슬러 나아간다.
멀리 햇빛에 휘감긴 자매들의 윤곽이 어른거린다.  마치 허깨비를 보는 듯하다.
  56호는 계속 나아간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딱지가 따뜻해지고 있
다. 많은 개미들이 수없이 이 빛을  묘사하려고 해보았지만, 빛은 어
떤 언어로도 도저히  형용할 수 없다. 빛은 그냥 즐겨야  한다! 문지
기 개미들이 생겨난다.  가엽게도 그들은 평생 도시 안에  갇혀 있어
서 바깥 세계가 어떠한지, 태양이 어떤 건지를 모르고 산다.
  56호는 장벽처럼  버티고 있는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제  도시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수많은 낱눈들로 이루어진  겹눈이 조금씩조
금씩 빛에 익숙해져간다.  빛에 익숙해졌다. 싶으니 이제는  거친 바
람이 눈을 아리게  한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공기와는  반대로 차
갑고 빠르고 갖가지 냄새가 섞여 있다.
  56호의 더듬이가  빙글빙글 돈다.  뜻대로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더 세찬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56호의  얼굴을 때린다. 56호가 날개를 파닥거린다.
  둥근 지붕 꼭대기,  저 위에서 일개미들이 56호를  기다리고 있다.
일개미들은 56호의 다리를 잡고 들어올려서, 생식  개미들이 모여 있
는 앞쪽으로 밀어준다.  좁은 땅거죽 위에 수백 마리의  수개미와 암
개미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다. 56호는  자신이 결혼 비행을  위한
이륙용 활주로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일기  상태가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바람이 계속  심술을 부리고 있다. 개미들이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열 마리쯤 되는 참새들이 생식  개미들을 발
견했다. 웬 횡재인가  싶어, 참새들이 점점 더 가까이  날아든다. 참
새들이 아주 가까이 접근해 오자 지붕  꼭대기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포수 개미들이 일제히 개미산을 퍼부어댄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과감하게 달려들어  암개미 세 마리를 낚아챘
다. 그 대담한  참새가 다시 날아오르기 전에 포수  개미들이 공격을
가했다. 참새가 풀밭으로 나뒹군다. 가련하게도  부리를 벌리고 날개
에 묻은 독을 닦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다른 놈들은 정신을  차릴거야! 실제로
참새들이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저
들은 곧 다시 돌아와서 대공 방어 태세를 다시 시험하려 들 것이다.

      포식자
  만일 인류가 늑대나  사자, 곰 하이에나 같은 주요한  포식 동물들
을 몰아내지 못했다면 우리 인간의 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끊임없
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는 불안한 문명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고대 로마 인들은  술을 부으며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사람의 시
체를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곤 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만사
가 덧없다는 것과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들
을 멸종시키거나  희귀 동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곤 미생물이나 개미  같은 곤충뿐이다.
  인간의 문명과는 반대로  개미 문명은 주요 포식  동물들을 제거하
지 않고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이 곤충은 끊임없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개미들은 자기들 문명의 갈 길이  아직 험
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들이 수천 년에 걸쳐서  이루어 놓은
결실을,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라도 발길질 한번으로  허물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
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바람이 잠잠해졌다.  공기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기온이  올라간다.
기온이 22도가 되자, 벨로캉은 자녀들을 놓아 보내기로 결정한다.
  암개미들이 네  날개를 붕붕거린다. 암개미들은 만반의  준비가 되
어 있다. 성숙한 수개미들의 갖가지 냄새가  암개미들의 성적인 욕구를 절정으로 끌
어올렸다.
  첫번째 처녀  개미들이 우아하게  이륙한다. 100머리쯤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참새들이 덤벼들어 암개미들을 낚아챈다.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개미들 사이에 동요가 인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이 일
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 암개미 떼가 이륙한다.  암개미 100
마리 중 네  마리만 참새의 부리와 깃털 장벽을  벗어난다. 수개미들
이 그  암개미들의 뒤를 쫓아  밀집 대형으로 날아오른다.  참새들이
수개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너무 작은 수개미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의 암개미  떼가 구름을 향해 솟구친다. 50마리가  넘는 새
들이 암개미들을  가로막는다. 대학살이 벌어진다. 살아난  암개미는
한 마리도 없다.  날짐승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저희들끼리
신호라도 보낸  모양이다. 이제 공중에는 참새뿐만  아니라, 티티새,
울새, 방울새, 비둘기들도 있다. 새들이  신나게 짹짹거린다. 그들에
게도 오늘은 잔칫날이다.
  네 번째의 암개미 떼가 이륙한다. 이번 역시  단 한 마리도 통과하
지 못한다.  새들이 더 맛있는  먹이를 차지하려고 저희들끼리  싸운
다. 포수 개미들이  화가 났다. 개미산 분비샘에 있는 힘을  다 주어
수직 사격을  한다. 그러나 개미를  잡아먹는 그 날짐승들은  너무나
높이 있다.  치명적인 개미산 방울들이  빗물처럼 도시 위로  떨어져
내려와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았다.
  겁에 질려서  결혼 비행을 포기하는 암개미들이  생겨난다. 새떼를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차라리 다시 내려가  방 안에서
교미를 하려는 것이다.  사고를 당해 못 올라온 다른  공주 개미들처럼 말이다.
  다섯 번째의 암개미  떼가 죽을 각오를 하고 일어선다.  있는 힘을
다해서 저 새들의  장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17마리의  암개미가 통
과하자 43마리의 수개미들이 바싹 따라 붙는다.
  여섯 번째 떼: 12마리가 통과했다.
  일곱 번째 떼: 34마리!
  56호가 날개를 움직인다.  아직 날아오를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
늘에서 자매의 머리  하나가 56호의 발치로 떨어지더니  이어서 새의
솜털하나가 살며시  떨어진다. 불길한 조짐이다. 56호는  위대한 '바
깥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안달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다.
  여덟 번째  떼와 함께 날아오를까?  아니야.... 안 그러기를  잘했다.
  여덟 번째 떼가 전멸을 한 것이다.
  56호 공주 개미가  겁을 먹는다. 네 날개를 다시  붕붕거리면서 조
금 올라가본다. 좋다,  날개는 아무 이상이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두려움이 56호를 엄습해  온다. 냉정해야 한다. 성공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
  56호가 날개짓을  멈춘다. 아홉 번째 떼에서는  73마리의 암개미가
통과했다. 일개미들이 격려의  뜻이 담긴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열
번째 떼와 함께 출발할까?
  56호가 망설이고 있는데,  좀 떨어진 곳에 돌연 작은  절름발이 개
미와 눈이 불구가 된 커다란 암살자 개미가  나타났다. 더 이상 머뭇
거릴 겨를이 없다.  56호는 단숨에 날아오른다. 위턱을  벌리고 달려
들던 두  병정개미들이 허탕을 치고  위턱을 다시 오무린다.  간발의
차로 암개미를 놓친 것이다.
  56호는 잠시 동안 도시와 새떼의 중간  높이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열 번째의  암개미 떼가 날아오르면서  56호를 덮어버리자, 그  틈을
이용하여 56호 자신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공중의 그 지점으로 힘
껏 날아오른다. 옆에서  날고 있던 두 암개미가 잡히는  사이에 56호
는 구사 일생으로 박새의 어마어마한 발톱 사이를 빠져 나간다.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열 번째 떼  중에서 무사히 새떼를 빠져 나온 암개미는  열네 마리
이다. 그러나 56호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다. 이제  겨우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더 힘겨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56호는 자신의 미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개  1,500마리의 암개미가 날아  오르면, 그중에서 열  마리
정도만 무사히 땅에 닿는다. 아무리 낙관적인  가정을 한다 하더라도
그 열 마리  중에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하고 여왕이 되는  개미는 네
마리 정도일 것이다.

  이따금, 여름에 산책을 하다보면
  이따금, 여름에 산책을  하다보면 파리 같은 것을 밟을  뻔하는 때
가 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리가  아니라 여
왕개미임을 알게  된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그렇게 쓰러져  있다는
얘기는, 여왕개미들이 그런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
왕개미들이 그렇게  땅바닥에서 몸을 뒤틀며 죽어간다.  사람들의 신
발에 밟히기도 하고  자동차의 앞 유리창에 부딪히기도 한다.  더 이
상 날아오르지  못하고 탈진해 간다.  그럼으로써 개미 도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여름날 여왕개미가 단지 자동차  와이퍼에 부딪히
는 것만으로 길 위에서 사라져간 개미 도시가 얼마나 많았을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암개미 56호가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생긴  네 날개를 움직이고있을
때, 뒤에서는 새떼들이 열한 번 째와 열  두 번째로 날아오를 암개미
떼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불쌍한 자매들! 이제  다섯 차례 더 암개미
들이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면 벨로캉은  미래를 향한 모든  희망을
다 내보내는 셈이 된다.
  56호는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무한한 창공 속에
서 심호흡을 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푸르다! 땅 속의  삶밖에 모르
던 개미에게는 공중을  비상하는 일이 너무나 황홀하다. 또  다른 세
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56호는  좁은 통로들을 떠나  이제
모든 것이 3차원으로 드러나 있는, 현기증  나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56호는 본능적으로 모든 비행 방법을 알아낸다.  오른쪽으로 돌 때
는 오른쪽 날개에  체중을 싣는다. 올라갈 때는 날갯짓의  각도를 조
절한다. 내려가보기도  하고 속도를 내기도 한다....  완벽하게 회전
을 하려면 날개  끝을 중심 축에 박고 지체없이 45도  이상으로 몸을
돌려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56호는 하늘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기류는 '펌프'처럼  56호를 밀
어올린다. 반대로, 진공 상태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추락하게 된다.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이  달리 있는 것은 아니고 앞에 가고  있는 곤
충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56호가 한기를 느낀다. 높이 올라올수록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다.
이따금 회오리바람이 일기도 하고, 훈훈한 기류나  찬 기류의 돌풍이
몰아치기도 하면서 56호를 팽이처럼 뱅그르 돌려버린다.
  한 무리의 수개미들이 56호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 암개미 56호가
속력을 낸다. 가장  빠르고 가장 끈질긴 자들만  따라오라는 뜻이다.
보다 좋은 유전 형질을 골라내려는, 일차적인 선별 방식이다.
  무엇인가가 56호의 몸에 와닿는다. 수개미 한  마리가 56호의 배에
올라타더니 기어오른다. 수개미 몸집은 작은  편이지만, 56호의 날갯
짓을 중단시킨 걸 보면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듯하다.
  56호가 조금 아래로 위에 탄 수개미는  암개미의 날갯짓 때문에 떨
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는 완전히 평형을  잃고, 침처
럼 생긴 제 생식기를 암컷의 생식기에 닿게 하려고 배를 구부린다.
  56호는 어떤 기분이 들는지 호기심을 느끼며  기다리고 있다. 기분
좋게 따끔거리는 느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문득 하나의 생
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56호는 갑자기 앞으로  움직이더니 급강하하
기 시작한다.  숨막힐 듯한 기분이다! 엄청난  황홀감이다! 속도감과
교미의 쾌감이 어울려  이제껏 맛보지 못한 환희의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수개미 327호의 영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눈에 난 털 사이
로 바람이 빠져 나가면서 소리를 낸다. 톡  쏘는 듯한 나뭇진 냄새가
56호의 더듬이를 짜릿하게 만든다. 56호의 내부에  있던 혼들이 사나
운 파도가 되어 요동친다. 56호의 모든  분비샘에서 이제껏 분비되어
본 적이 없는  체액이 흐른다. 그 체액들이 섞이어  끓어오르는 수프
처럼 되더니 56호의 뇌 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풀밭 위에 이르자,
56호는 다시 힘을 모아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화살처럼
다시 올라간다.  암개미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음에 반해,  수개미는
이제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수개미가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의 위턱이  마냥 벌어져 있다가  저절로 오무라든다. 심장이  멎는
다. 그런 다음엔 추락만이 남아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 대개  수컷들은 교미를 하고 나면 죽게  되어 있
다. 수개미들에게는 단  한 번의 사랑을 할 권리만 주어져  있다. 정
자들이 수컷의 몸을 빠져나오면서 주인의 목숨도 앗아가는 것이다.
  개미의 세계에서도 수컷들은 사정을 하고 나면  죽는다. 어떤 곤충
의 암컷은 제  몸에 정자가 가득 차면 정자를 제공한  수컷을 죽여버
리기도 한다. 격한 감정 상태가 암컷의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곤충의 세계는 전체적으로  볼 때 암컷의 세계이
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홀어미들의 세계이다. 수컷들은  부차적인 지
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수컷이  벌서 56호에게 달라붙고 있다. 수컷  하나가 떠나
기가 무섭게 다른 수컷을 받아들인다. 세  번째 수개미가 오고, 다시
여러 수개미들이 거쳐 간다. 암개미 56호는 그  수를 더 이상 헤아릴
수가 없다. 적게 잡아도 열일곱이나 열여덟  마리의 수개미들이 번갈
아가면서 56호의 저정낭을 싱싱한 생식 세포로 가득 채워주었다.
  56호는 제 뱃속에서 살아 있는 액체가  부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장차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서 살게 될  거주자들을 저장하고 있는 것
이다. 수컷들이 넣어준 수백만 개의 성세포들이  있기에 56호는 15년
동안 매일 알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56호 주위의 암개미 자매들도 56호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늘 가득히 암개미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한 마리 또는  몇 마리의
수개미들이 암개미 위에  올라타서 똑같은 암컷을 상대로  교미를 한
다. 한데 뒤엉킨 사랑의 행렬이 구름처럼  공중에 걸려 있다. 암개미
들은 피곤에 지치고  행복에 취해 있다. 암개미들은 이제  공주가 아
니라 여왕이다. 반복되는 사랑의 즐거움이 몸을  녹초로 만들어 암개
미들은 이제 날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힘겹다.
  바로 그  순간을 노리고, 꽃이  만발한 벗나무에서 제비들이  위풍
당당하게 튀어나온다.  제비들은 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층과  층
사이를 미끄러져 내리는  듯하다. 그 태연 자약한 모습에  소름이 돋
는다. 제비들이 부리를 활짝 벌리고 날개  달린 개미들에게 달려들어
차례차례 삼켜버린다. 이번에는 56호가 당할 차례이다.

  103683호는 탐험 개미들의 방에 있다. 동쪽  흰개미 도시에 잠입해
혼자서라도 조사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일단의  탐험
개미들이 '용 사냥'을  하러 가는데, 함께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
의를 받았다. 알고 보니 주비주비캉이라는 도시의  초원 지대에서 도
마뱀 한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주비주비캉은 전  연방에서 가장
중요한 진딧물 목장을  가진 도시로서, 분비꿀을 짜낼 수  있는 진딧
물만도 900만 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목축 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주비주비캉은 연방의 동쪽 경계, 즉  벨로캉과 흰개미 도시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103683호는 그  원정대와 함께 떠나기
로 했다. 그렇게 되면 그가 흰개미 도시로  떠난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103683호의 주위에서  다른 탐험  개미들이 꼼꼼하게 원정  준비를
하고 있다. 탐험  개미들은 각자 갈무리 주머니에 당분이  많은 식량
을 가득  채우고, 개미산도 가득  장전해 둔다. 그러고 나서  추위도
막고 알테르나리아 홀씨에 대한 방비도(이제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
는 것이다) 할 겸 몸에다 달팽이의 끈끈물을 바른다.
  도마뱀 사냥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혹자는  도마뱀이 도룡
뇽이나 개구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탐험  개미
서른 두 마리  가운데 다수가 사냥하기 어렵기로  말하자면 도마뱀이
최고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어떤 나이 많은 개미가 주장하기를, 도마뱀은  꼬리가 잘리면 그것
을 다시 자라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다들 그 개미의  말을 비
웃는다. 또 한 개미는, 도마뱀 한 마리가  기온 10도 때의 시간 동안
을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한
다. 모두들, 개미산의  사용이 그리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벨
로캉 선조들이  위턱 하나만으로  그 괴물들을 상대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
  103683호는 소름이 오싹 끼쳐오는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는 이
제껏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도마뱀을 위턱이나 개미산으로
공격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구석이 있다. 자신이
생전 처음으로 달아나는  짓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
냥에 열심히 참가하는 것보다 '비밀 무기'에  대한 조사를 하는 쪽이
겨레의 생존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탐험 개미들의 준비가 끝났다. 그들은 도시  외곽의 통로를 올라가
7번 출구, 즉 '동쪽 출구'를 통해 빛 속으로 나아간다.
  우선 도시의  변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
다. 벨로캉  주변은 너나할것없이 바쁘게 일하는  일개미와 병정개미
들로 북적거린다.
  몇 군데에  특히 개미들이 많이  몰려 있다. 어떤 개미들이  잎새,
열매, 알곡, 꽃,  버섯 따위를 나르고 있다. 어떤 개미들은  건축 자
재로 쓸 잔가지며  잔돌들을 운반하고 있다. 또 어떤  개미들은 사냥
물을 싣고 온다.... 냄새들의 아우성.
  도마뱀 사냥에 나선 개미들이, 교통이 혼잡한  곳을 비집고 나아간
다. 그곳을 지나니  교통이 한결 원활해 진다. 대로가  점점 좁아져,
폭이 3머리(9밀리미터)가 되더니,  다시 두 머리로, 이어  한 마리로
된다. 그들은 이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집단적으로 의사 소
통을 하느라고 풍기던  냄새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다. 그  무리는 도
시와 연결되는  냄새의 탯줄을 잘라버리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하
나의 단위가 된 것이다. 그들은 '산보'대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
보'대형이란, 개미들이 둘씩 짝지어 행진할 때의 대형을 말한다.
  그 무리는 이내  다른 무리와 마주쳤다. 역시 탐험  개미들의 무리
이다. 그들은 갖은 고생을 다했던 모양이다.  그 대열에는 몸이 성한
개미가 한 마리도  없다. 다들 몸뚱이 여기저기가  잘려나갔다. 어떤
개미들은 다리가 하나밖에  안 남아서 처참한 모습으로  기어가고 있
다. 더듬이나 배가 잘린 개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03683호는
'개양귀비' 전투 이래로  그렇게 심하게 다친 병정개미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들은  어떤 무시무시한 것과 부닥뜨렸던  게 틀림없다....
어쩌면 그 '비밀 무기'가 아니었을까?
  103683호는 기다란 위턱이 부서진 커다란  병정개미와 대화를 나누
어보려고 한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
가? 흰개미들에게 당한 것인가?
  그 병정개미는  걸음을 늦추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얼굴을  돌린
다. 아니 이럴 수가,  눈 구멍이 텅 비어 있다! 게다가  입에서 목관
절까지 머리가 쪼개져 있다.
  103683호는 그 병정개미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을 더 가더니,  그 병정개미가 쓰러진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지 못한다. 그래도 아직 길 수 있는  힘은 남았는지 엉금엉금 기어서
길 밖으로 나간다.  자기의 시체가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제비를 피하려고 잽싸게 급강하를  시도한다. 그러
나 제비가 열 배는 더 빠르다. 커다란  부리가 더듬이 위로 덮쳐오는
가 했더니  벌써 배와 가슴과  머리를 덮어버린다. 부리가  56호보다
훨씬 빨랐다. 입 천장과의 접촉이 견디기  어렵다. 이어 부리가 다시
닫힌다. 모든 게 끝난 것이다.

       희생
  개미를 관찰해 보면, 저 자신의 생존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는 외부의 요구에  따라 행동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몸통에서 머
리가 잘려나가면 그  머리는 적의 다리를 물거나, 곡물  알갱이를 자
름으로써 여전히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쓴다. 가슴이 잘려나
갔을 때도 그 가슴은 적이 쳐들어오는 입구를 막으려고 기어 간다.
  자기 희생인가?  공동체에 대한  광신인가? 집단주의 때문에  생긴 미련함인가?
  그 어느것도 아니다. 개미 역시 외톨이로  살아갈 줄 안다. 겨레를
필요로 하지 않고, 겨레에 반역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
  현재 내 연구가 도달한 수준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겸양에서 비롯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미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그리 대단한 사건이
못 되는  것 같다. 즉, 개체의  죽음이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일을
단념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탐험 개미들은 나무와 흙 둔덕과 가시나무  덤불들을 돌아, 불길한
조짐이 느껴지는 동쪽으로 계속 헤쳐나간다.
  길이 좁아졌지만,  도로 공사하는 일개미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일개미들은 한  도시와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도 소
홀히 하지 않는다.  도로 개미들은 이끼를 뽑고,  걸치적거리는 잔가
지들을 치우고, 뒤푸르  씨 샘에서 페로몬을 발하여 냄새  신호를 남겨놓는다.
  이제 반대 방향으로 통행하는 일개미들은 거의  없다. 땅바닥에 놓
인 길 안내 페로몬이 이따금 눈에  띈다. '29번 교차로에서 아가위나
무들을 돌아가시오!' 적들이 잠복해 있음을  알리느라고 최근에 뿌려
놓은 냄새의 자취인 듯하다.
  103683호는 걸어갈수록  경이로움에 젖어들고  있다. 이  지역에는
한번도 와본 적이  없다. 높이가 80머리나 되는 볼레  독버섯이 있다
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종류의 버섯은 서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버섯인 것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뱀눈나비도 눈에 띈다.  비위에 거슬리는 그
냄새가 파리들을 유인한다. 또 머리가 진주처럼  생긴 말볼버섯과 샹
트렐 버섯도 눈에 띈다. 103683호는 샹트렐  버섯에 기어올라 그것의
부드러운 살을 밟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103683호는 갖가지  낯선 식물들을 발견한다. 꽃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야생  대마, '비너스의 나막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화려하면서
도 꺼림칙한 개불암꽃,  '고양이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줄기가 길
쭉한 적설초....
  103683호가 꽃이 꿀벌레처럼  생긴 봉숭아 한 그루에  다가가 무심
코 톡건드린다. 건드리자마자 봉숭아의 여문  씨앗이 얼굴에 쏟아져,
끈적거리는 노란 알갱이로 103683호를  덮어버린다. 다행히 알테르나
리아의 홀씨처럼 딱지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씨앗은 아니다.
  그런 일로  주눅들지 않고, 103683호는 미나리아재비의  일종인 아
네모네 한  그루에 기어오른다. 하늘을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공중에서는 꿀벌들이 꽃가루 많은 꽃이  있는 장소를 동료들
에게 알려주기 위해 8자를 그려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위 경관이 갈수록 신기롭게 느껴진다.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
새들이 진동을  한다. 이름모를  작은 곤충들이 사방으로  달아난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 작은 곤충들이 있
다는 것을 알게 될 뿐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있는지도 모를 판이다.
  103683호가 대열에 합류한다. 아까 봉숭아 씨  세레를 받은 머리가
아직도 따끔거린다.  어느덧 동맹 도시 주비주비캉의  경계에 이르렀
다. 멀리에 여느 것과 다름없는 덤불이  하나 보인다. 주비주비캉 개
미들이 닦아놓은  이 길과 냄새가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쪽으로 해서 어떤 도시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 할 것이
다. 가까이에서 본 즉, 주비주비캉은 전형적인  불개미 도시이다. 그
루터기가 있고, 잔가지로  만든 둥근 지붕과 쓰레기터가  있다. 그러
나 그 모든 것이 나무 덤불 아래 감추어져 있다.
  주비주비캉의 입구는  둥근 지붕의  꼭대기와 거의 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 도달하자면 고사리  한 무더기와 들장미  한
무더기를 통과해야  한다. 탐험 개미들이 그것들을  통과해서 입구에 이르렀다.
   안에는 작은 곤충들이 우글우글하다. 도시에서  기르고 있는 진딧
물이다. 진딧물은 잎새와 색깔이 똑같아서 언뜻  보면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에 숙달이 된  더듬이와 눈을 가진 개미라면,
어렵지 않게 풀빛의 작은 돌기들을 알아볼 수 있다.
  수백만 마리의 진딧물들이, 젖소가 풀을 뜯듯,  식물의 즙을 '뜯어
먹으면서' 조금씩조금씩  통통해져가고 있다. 개미와 진딧물  사이에
아주 오래 전에 하나의 협약이 맺어졌다.  진딧물들은 개미들에게 먹
이를 제공하고, 대신 개미들은 진딧물들을 보호해  주기로 했던 것이
다. 어떤 개미 도시에서는 아예 '젖소들'의  날개를 잘라버리고, '젖
소들'에게 통행 허가 냄새를 주는 일도  있다. 가축을 관리하는 데는
그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주비주비캉에서도 실제로 진딧물의 날개를 자르는  야비한 짓을 행
하고 있다. 그것에 보상하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순전히 현
대화 작업의 일환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주비주비캉은  2층에 대규
모 축사를 세우고 진딧물의 복지에 필요한  갖가지 편의 시설을 갖추
어 놓았다. 거기에서 유모 개미들이 개미 알을  돌볼 때와 똑같은 정
성으로 진딧물  알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고 나면,  주비주비캉에서
목축업이 특별히  중요한 산업이 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103683호와 동료들이 장미  가지의 진을 열심히 빨고  있는 진딧물
떼에 다가간다. 그들이  두세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진딧물들은 체
도 않고  장미 가시의 살 속에  주둥이를 처박고 있다.  개미의 냄새
언어를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탐험 개미들은 더듬이로  목축 개
미를 찾아보았지만,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 병정개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
당 벌레 세 마리가 진딧물 떼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 무시무
시한 야수들이, 날개가  잘려 도망을 못 가는 진딧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
고 있다.
  다행히 목축 개미들이  튀어나와 그 늑대 같은  무당벌레들을 응징
한다. 두  마리의 주비주비캉 개미가  나무잎 뒤에서 뛰어나온  것이
다. 그들이 거기에  숨어 있었던 까닭을 이제는 알 만하다.  까만 얼
룩을 가진 빨간  무당벌레들에게 효과적인 기습을 가하려고  숨어 있
었던 것이다.  목축 개미들은 무당벌레들을 겨누고  정확하게 개미산
사격을 퍼부었다.
  무당벌레들이 쓰러지자, 목축 개미들은 아직 겁에  질려 있는 진딧
물 떼를 안심시키기  위해 돌아다닌다. 진딧물의 배를  주무르고, 토
닥거리다가, 더듬이를  어루만져준다. 그러자 진딧물들은 커다란  당
분 덩어리를 내놓는다. 맛있는 분비꿀이다. 그  액체로 한껏 배를 채
우고 있던 주비주비캉의  목축 개미들이 벨로캉의 탐험  개미들을 발견했다.
  인사를 나누고 더듬이를 맞댄다.
  '우리는 도마뱀 사냥을 하러 왔다.'
  탐험 개미들 중의 하나가 페로몬을 발한다.
  '그렇다면, 동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 게예이톨로  기지 쪽에서 그
괴물 한 놈을 발견한 적이 있다.'
  먼 길을 다니는  나그네 개미들에게는 영양 교환을  제안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목축 개미들은 그 대신에 직접  진딧물 분비꿀을 짜먹으
라고 권한다.  탐험 개미들은 주저하지  않고 각자 진딧물을  하나씩
골라 맛있는 분비꿀을 짜내려고 배를 살살 주무르기 시작한다.

  인두 안은  컴컴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미끈미끈하다. 암개미
56호는 이제 끈끈한 액체로 온통 뒤범벅이 된  채, 제비의 식도로 미
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제비는 이가 없어서 씹지를 않기  때문에 56
호는 아직 다치지  않았다. 체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다. 자신이 죽으면 도시 하나가 온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56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식도의 매끈매끈한 살에다  위턱을 박아
넣는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해서 56호가 목숨을 건진다.  제비가 구
역질을 느끼고 콜록거리다가  그 성가신 먹이를 멀리  뱉어버린 것이
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으면서도 56호는  날아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날개가 끈끈물에  젖어 있어서 너무 무겁다. 56호가  강의 한
복판으로 떨어진다.
  교미를 끝내고  죽어가는 수컷들이 56호 주위에  떨어진다. 공중에
는 제비  떼를 뚫고 살아남은  수무 마리쯤 되는 암개미들이  고르지
못한 리듬으로  비행하고 있다. 암개미들은  기력이 다 빠져서  점점 아래로 내려온
다.
  그 암개미들 중의 하나가 수련위에 내려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
룡농 두  마리가 달려들어  암개미를 낚아채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다른 암개미들은,  비둘기, 두꺼비, 두더지, 뱀,  박쥐, 고슴도치,
닭, 병아리 등등의  공격을 받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결
국, 벨로캉에서 날려보낸 1,500마리의 암개미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여섯 마리 뿐
이었다.
  56호도 그 살아남은 여섯 마리에 들어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56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
하고 그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리라고  다짐한다. 그러자면 누군
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바로 자신의 뱃속에 있는  생명들이 힘
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생명들을 낳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햇살의 각도를 헤아려보고, 56호는 자신이 추락한  지점이 동쪽 강
물 위라는 것을 깨닫는다.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별로 바람직한 곳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섬에 개미들이  살고 있는 건 사실이지
만, 헤엄 칠 줄 모르는 개미들이 어떻게  그 섬들에 정착하게 되었는
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나뭇잎 하나가  위턱이 닿을 만한  거리로 흘러가고 있다.  56호가
위턱에 있는 힘을  다 주며 그 잎새에 매달린다.  그러고는 뒷다리로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데,  그 추진 방식이 도리어 비참한  결과를 낳
고 만다.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한참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수
면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생김새는  올챙이인 듯도 한데
덩치는 천 배나  더 크다. 몸매는 유선형으로 되어 있고,  살갗은 매
끈매끈하며 얼룩 무늬가  져 있다. 56호로서는 처음  보는 동물이다.
송어였다!
  그 괴물이 나타나자 닷벌레, 물벼룩 같은  작은 견갑충들이 달아난
다. 괴물이 자맥을  하며, 겁에 질린 채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암개
미 쪽으로 다가온다.
  지느러미에 힘을  잔뜩 주면서,  물살을 가르고 송어가  달려든다.
암개미가 커다란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사이,  공중으로 솟구
친 송어는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입을 벌리더니  저쪽에서 파닥거
리고 있던  날파리 한 마리를 삼켜버린다.  그런 다음 꼬리를  한 번
휘둘러 몸을 비틀고는  수정처럼 맑은 제 세계로 다시  들어간다. 그
서슬에 해일과도 같은 물결이 일어 개미를 삼켜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개구리들이 송어에게  암개미와 그 뱃속에 있
는 알들을 빼앗기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암개미를 서로  차지하려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 암개미가 다시  물
위로 솟아  올랐으나 이번에는  소용돌이가 일면서 다시  여왕개미를
견디기 힘든 심연 속으로 빨아들인다.  개구리들이 암개미를 쫓는다.
한기가 엄습해 오면서 암개미는 꼼짝을 하지  못한다. 암개미가 의식을 잃고 있다.

  니콜라가 새로 사귄  두 친구 장, 필립과 함께  식당에서 텔레비젼
을 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 주위에도 발그레한  얼굴을 한 다른 고아
들이 둘러앉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이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시속 500킬로미터
의 속도로  뇌의 기억 장치에  전해지고 있었다. 인간의 뇌는  600억
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 장치가 포화  상태가 되
면, 가장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정보들을 지워버림으로써, 자연스
럽게 조절이 된다.  그렇게 해서 충격적이었던 일에 대한  기억과 즐
거웠던 일에 대한 아쉬움만이 남게 된다.
  연속극이 끝나고 곤충에 대한 토론 프로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아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지껄여대는 과학 프
로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르뒤크 교수님, 선생님께서는 로젠벨트 교수와  더불어 유럽 최고
의 개미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개미를 연구하시게  된 특별
한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어느 날, 부엌의  찬장을 열다가 일렬로 늘어선  개미들과 마주치
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서 있었지요.  그 개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겸손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개미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  온 것이지요. 그게 동기
라면 동기죠(웃음).
  -로젠펠트 교수와 선생님  두 분 다 탁월한  과학자이신데, 로젤펠
트 교수와 선생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  로젠펠트 교수와  말입니까? 그분  아직 은퇴하지  않으셨나
요?(다시 웃음)  안 하셨군요. 웃자고  해본 소리고요, 사실  우리는
학문하는 입장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미라는  곤충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모듬살
이 곤충들(흰개미, 꿀벌, 개미)은 모두  왕정주의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개미  사회에서 여왕은 알을 낳는 것  말고는 아무
런 권한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개미 사회의  정치 형태는
다양합니다. 군주 정치,  과두 정치, 병정개미들의 삼두  정치, 민주
주의, 무정부주의 등등이  다 있습니다. 때로는 개미  시민들의 정부
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고,  도시 안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제 생각도 그렇고,  제가 속해 있는 이른바  '도이치'학파의 생각
도 그렇습니다만, 개미  세계의 조직은 뭐니뭐니 해도 몇  개의 계급
으로 이루어진 위계 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개미보
다 더 많은 능력을 타고난 엘리트  개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
고 일개미 집단을  이끄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서  로젤펠트 교수나,
그가 속해  있는 소위 '이탈리아'학파는, 개미들은  근본적으로 무정
부주의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엘리트,  즉 평균보다 더  많은
능력을 타고난  개체들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
기 위해서  어쩌다 자발적으로  지도자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것을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해가 잘 안 가는군요.
  -말하자면 이탈리아 학파의 생각은, 어떤  개미라도 다른 개미들의
관심을 끌  만한 독창적인 생각이  있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도이치 학파의  생각은, '우두머리의 자
질'을 타고난  개미들이 언제나 다른 개미들에게  임무를 부과한다는 것이구요.
  -그 점에서 두 학파가 다른 건가요?
  -사회자께서 알고 싶어하는 게 이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은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을 때, 그러한 견해  차이가 주먹다짐으로
까지 발전한 적이 있지요.
  -색슨 정신과 라틴  정신 사이의 유서 깊은 경쟁과  맥을 같이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오히려 '선천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후천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맞붙은 싸움과 비슷합
니다. 바보는 태어날 때부터 바보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가 하는 식의  논쟁 말입니다. 그게 우리가 개미  사회를 연구하
면서 해답을 구하려고 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토끼나 생쥐들을 상대로는 왜 그런 실험을 안 하십니까?
  -어떤 사회, 즉 수백만의 개체로 구성된  사회가 움직이는 것을 관
찰할 수 있게  하는 실험 대상으로는 개미만한 게  없지요. 개미들이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개미들을 관찰하는  것은 하나의 세
계를 관찰하는  거나 다름이 없지요.  수백만 마리의 토끼나  생쥐가
어울려 사는 도시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어요.
  누군가가 팔꿈치로 니콜라를 꾹 찔렀다.
  "야, 니콜라, 너는 저거 듣고 있니?"
  그러나 니콜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저 얼굴,  저 노란 눈, 언젠가
본적이 있었다.  그게 어디서였지? 그게 언제였지?  니콜라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마침내 생각이 났다. 책 정장하는  일을 한
다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는 자기가  구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텔
레비젼에서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르뒤크라는 사람이  영락없는 그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니콜라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일
저 교수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건 백과 사전을  가로채려는 생각
에서였을 것이다.  백과 사전의 내용이  개미 연구에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어. 그것은 틀림없이  지하실 저 아래에 있을  것이다. 모두들
백과 사전을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저 르뒤크라는
사람도,  그 빌어먹을 백과 사전이  문제였던거야. 그것을 찾으러 가
야겠어. 그러면 모든 걸 알게 될꺼야.
  니콜라는 일어났다.
  "어디 가니?"
  니콜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 개미에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니콜라는 문까지  가만가만 걸어가다가 문을 나서자마자  달음박질
을 쳐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많은 소지품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
았다. 마스코트처럼 여기는 가죽 자켓과 주머니칼과  고무 창이 달린
커다란 구두만을 챙겼다.
  니콜라가 1층의 커다란 홀을 지나가는데,  감독 선생들은 니콜라에
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니콜라가 고아원을 빠져나갔다.

  멀리서 보니, 게예이톨로 기지 중에서 화산  분화구처럼 동그란 부
분만 눈에 들어온다.  꼭 두더지가 만들어놓은 흙 무더기  같다. '전
진 기지'는 일종의 작은 개미 도시로서 백  마리쯤 되는 개미들이 머
무르고 있는데,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되고  가을과 겨울에는 내내 비어 있다.
  이곳에는  원시적인 개미  사회에서처럼 여왕개미도,  일개미도,
병정개미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곳에선 누구나
스스럼없이, 열병을 앓고 있는 듯한 거대  도시를 비판한다. 교통 체
증이며, 통로의 붕괴,  도시를 벌레 먹은 사과처럼  만들어버리는 비
밀 통로, 전문성을 너무 키운 나머지 이제는  사냥할 줄도 모르는 일
개미, 좁은  입구에서 평생 갇혀 지내는  눈 먼 문지기  개미 등등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103683호가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게예이톨로는 다락방  하나와
널찍한 주실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주실에 천장등과 같은  구실을
하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온  두 줄기의
햇살이 박제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은 열  개쯤 되는 사냥물을 비추고
있다. 그것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가면서 획획 소리를 낸다.
  103683호가 그  알록달록한 박제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기지
에 거주하는 개미 하나가 다가와  103683호의 더듬이를 어루만지면서
그 화려한 동물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개미들이  갖가지 꾀를 써서
잡은 것이다. 그  동물들은 개미산으로 덮여 있다.  개미산은 시체를
보전하는 데도 쓰이는 것이다.
  가지런하게 줄을  맞추어 늘어놓은 사냥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
비란 나비는 다 모아놓았고, 크기와 생김새와  빛깔이 가지각색인 곤
충들을 모아놓았다. 그런데  잘 알려진 동물 가운데 수집  품목에 들
지 않은 것이 있다. 여왕 흰개미이다.
  이웃 흰개미들과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103683호가  묻는다. 기지
의 개미가 더듬이를  세우는 것으로 보아 무척 놀라는  눈치다. 위턱
을 가볍게 움직이고 있던 그 개미가  움직임을 멈추고 무거운 침묵에 빠져든다.
  '흰개미 말인가?'
  기지 개미의 더듬이가 아래로 처진다. 무슨  페로몬을 내서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또한 설명을 하고자 해도  그럴 겨를이
없다. 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썰던  중이었다. 벌써 시간을
꽤 허비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그 개미가 몸을 돌려  꽁무니를
빼려 한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103683호가 아니다.
  기지 개미는 이제  완전히 겁을 먹은 눈치다. 그의  더듬이가 가볍
게 떨린다. 흰개미라는  말만 나와도 어떤 끈찍한 일이  떠오르는 모
양이다. 흰개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 하는
듯하다. 그가 한창 술 잔치를 벌이고 있는  한 무리의 일개미들이 있
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 일개미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긴 사슬 모양으로  둘러서서, 각
자 앞에 있는 개미의 꽁무니를 빨고 있다.  그 일개미들은 이미 각자
의 갈무리  주머니에, 꽃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가득  채워놓았던 것이다.
  그 기지에 배치된  다섯 마리의 사냥 개미가 꽤 요란한  소리를 내
며 들어온다. 사냥 개미들이 애벌레 한 마리를 내민다.
  '이걸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이놈에게서 꿀이 나온다!'
  그 새로운 소식을 전한 사냥 개미가  더듬이 끝으로 애벌레를 톡톡
건드린다 그런  다음 애벌레 앞에  잎새 하나를 놓아둔다.  애벌레가
사냥 개미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헛일이다.  사냥 개미는 애
벌레의 옆구리를 발톱으로 그러쥐고 몸을  돌리더니 애벌레의 꽁무니
를 핥는다. 이윽고 애벌레의 꽁무니에서 끈끈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모두가 그 사냥  개미의 공로를 치하한다. 개미들은 생전  처음 보
는 분비꿀을 위턱에서 위턱으로 돌려가며 맛을  본다. 진딧물의 분비
꿀과는 맛이 다르다.  그보다 더 기름기가 많고 뒷맛이  나뭇진 맛처럼 진하다.
103683호가 그 끈끈한 액체를  맛보고 있는데, 더듬이 하
나가 그의 머리를 스친다.
  '자네, 흰개미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는 듯한데.'
  누가 그런 페로몬을 발했는가 하고 돌아보니,  아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개미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 개미의 딱지에는
위턱에 긁힌 상처들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103683호는 동의의 표
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그 개미의  이름은 병정개미 4000호이다. 머리가  나뭇잎처럼 납작
하고 눈이 작다. 그 개미가 발하는 페로몬은  떨림이 많아서 술 냄새
에 금방 묻혀버린다.  그래서 굳이 밀폐된 곳이나 다름없는  이 작은
구멍 안에서 대화를 나누려 했던 것이다.
  '걱정 말게. 여기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네.  이 구멍이 내 방일세.'
  103683호는 동쪽 흰개미  도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달라고 청한다. 그 개미가 더듬이를 벌린다.
  '왜 그걸 알고  싶어하는가? 자넨 도마뱀 사냥을 하러 온  게 아니던가?'
  103683호는 그 늙은  비생식 개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하
기로 하고, 라숄라캉 병정개미들이 불가사의한 비밀  무기에 공격 당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엔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2의 적인 동쪽 흰개
미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는 것 등등.
  늙은 병정개미가  더듬이를 구부리며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런 사
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개미가  103683호를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질문을 던진다.
  '자네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것도 그 비밀 무기 때문인가?'
  젊은 병정개미는 그건  그런 게 아니라, 라숄라캉을  수복하던 '개
양귀비' 전투에서  잃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4000호가 반색을 한다. 자기도 그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다!
  '몇 군단에 있었는가?'
  '15군단에 있었다. 자네는?'
  '3군단!'
  마지막 공격 때  15군단은 왼쪽 날개에서 싸웠고,  3군단은 오른쪽
날개에서 싸웠다. 두  전우가 몇 가지 일들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
눈다. 전투를 겪고  나면 언제나 소중한 교훈들을 많이  얻게 마련이
다. 4000호가  전투의 초동 단계에서 난쟁이개미들이  날파리 용병을
전령으로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 것도 그런 교훈 중의  하나이다. 원
거리 통신에는 그런  방식이 재래적인 '파발 개미'보다  훨씬 유리하
다는 것을 4000호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103683호는 진심으로 그 개
미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고 서둘러 자기가  처음 꺼냈던 화제로 돌아간다.
  '왜 다들 흰개미 얘기를 꺼리는가?'
  늙은 병정개미가 다가온다. 둘이서 머리를 맞댄다.
  '이곳에서도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늙은 병정개미가  발하는 페로몬은 이곳에 뭔가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아주 이상한 일, 아주 이상한 일....'
  그 말이 벽에 부딪혀 냄새의 메아리로 되울린다.
  4000호의 설명이  이어진다. 얼마 전부터 동쪽  도시의 흰개미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흰개미 첩자들이
사테이 쪽으로 강을 건너 서쪽으로 잠입하곤  했다. 불개미 쪽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첩자들을 그럭저럭 다스릴 수  있었
다. 그러더니 이제는 첩자들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공격해 오는 적이  성가시다가도, 막상 그 적이 사라지면  더 불안
해지는 법이다. 흰개미 첩자들과 사소한 접전을  벌이는 일마저 없어
지자, 이번에는  게예이톨로 기지 쪽에서 첩보원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첫번째 첩보 분대가 그곳으로 떠났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분대가 뒤를  이었으나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혹
자는 아주 탐욕스러운 도마뱀이나 고슴도치에  당했을 것으로 생각하
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동물들의 공격을 받았다
면 적어도 한  마리는 상처를 입은 채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
데 파견된 병정개미들은  마술의 힘에 의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
  103683호가 페로몬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늙은 개미는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지 않게  자기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차례의  파견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게예이톨로의 병정개미
들은 마지막 모험을 한 번 더  하기로, 중무장한 병정개미 500마리로
소규모 군단을 만들어 파견했다. 이번에는 한  마리의 생존자가 있었
다. 그 개미는  수천 머리나 되는 거리를 기어와서는  기지에 다다르
자마자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힌 채 죽었다.
  그 개미의 시체를 조사해 보았지만 상처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더듬이에는 전투를 겪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죽음이 아무  까닭 없
이 그 개미를 덮쳤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왜 다들 동쪽 흰개미 도시 얘기를 꺼리는지 이제 알겠는가?'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103683호는 아주
흡족해 하면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확신한다.  비밀 무기의 수
수께기를 풀려면 어쩔 수 없이 동쪽 흰개미 도시를 거쳐야 한다.

      홀로그래피
  인간의 두뇌와 개미 둥지는 닮은 점이 있다.  둘 다 홀로그래피 방
식으로 만들어낸 입체 상에 비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홀로그래피란 무엇인가?  레이저 광원에서 나온 간섭성  빛을 물체
에 비추면  빛이 난반사되는데 그  빛을 모은 다음 일정한  각도에서
참조광을 비추면, 빛이  겹치면서 물체의 일체 상이  만들어진다. 그
렇게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일체  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홀로그래피라고 한다.
  사실 그 입체  상은 어디나 존재하면서 동시에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간섭성 빛이 모임으로써 다른  것, 즉 입체의 환영이라
는 제3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두뇌에 있는 각각의 신경 단위, 개미  둥지에 있는 각각의 개
체는 저마다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의식, 즉
'입체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으려면,  신경 단위가 모이고  개체가
모여서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암개미 56호, 이제  갓 여왕이 된 그 개미가 의식을  되찾는다. 둘
러보니 강가의 자갈밭에  닿아 있다. 급한 물살에 휩쓸린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싶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개구리 먹이가  되었기가 십상
이다.  날아오르고 싶지만  아직  날개가  젖어 있다.  기다려야  한다....
  56호는 찬찬히 더듬이를 닦고 주위의 냄새를  맡는다. 도대체 여기
가 어디인가?  어느쪽 강기슭에 닿아  있는 것일까? 살기 힘든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56호가 1초당 진동수를 8천으로 해서 더듬이를  작동한다. 종종 맡
아본 적이 있는 냄새들이다. 다행히도 서쪽 강기슭  위에 와 있는 것
이다. 그러나 연방 개미들의 자취를 알리는  페로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56호가 세우려는 미래의 도시가 연방과  결합될 수 있으려면
중심 도시쪽으로 좀 더 다가가야 한다.
  마침내 56호가 날아오른다. 비행 방향은  서쪽이다. 당장은 그다지
멀리 날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날개 근육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6호는 초정공 비행을 하고 있다.

  두 병정개미가  게예이톨로 기지의  주실로 돌아온다.  103683호가
동쪽 흰개미  도시에 대해 캐물으려고 하면서부터,  기지의 개미들은
'알테르나리아'에 오염된  개미를 피하듯  그를 피했다.  103683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서 벨로캉 개미들이 게예이톨로  개미들과 영양 교환을
하고 있다. 벨로캉 개미들은 햇느타리를 맛보게  해주는 대신 야생의
애벌레에서 짜낸 분비꿀을 맛본다.
  그런 다음, 그들은 이러저러한 화제로  페로몬을 주고받는다. 바햐
흐로 도마뱀 사냥이  화제로 오른다. 최근에 도마뱀 세  마리가 나타
나 주비주비캉의 진딧물  떼와 그것들을 돌보던 목축  개미들이 그놈
들에게 모두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공포에 떨었고, 목축 개미들은  가축들을 나무가지
속에 파놓은  안전한 통로에서만 놀게  했다. 그러다가 개미산  포격
덕분에 그놈들을 쫓아버릴  수 있었다. 두 마리는  멀리 달아났는데,
상처를 입은  다른 한 마리가 여기에서  5만 머리 떨어진  어떤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비주비캉 군대가  이미 그 도마뱀의  꼬리를
잘라놓았다. 따라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놈이 다시  힘을 회복
하기 전에 요절을 내야 하는 것이다.
  '도마뱀 꼬리는 잘리고 나면 다시 나온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어떤 탐험  개미가 묻는다. 기지의  어떤 개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똑같은 꼬리가  다시 나오는 건 아니다.  어머니 말씀대
로 잃어 버린 것을  그대로 되찾는 법은 없다. 새로 난  꼬리엔 등골
뼈가 없어서 훨씬 더 말랑말랑하다.'
  게예이톨로의 어떤 개미가 다른 정보들을 전해  준다. 도마뱀은 기
상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개미보다 훨씬 민감하다.  태양 에너지를
많이 축적하고 있을 때는 움직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반
대로 몸이 차가워지면 모든 몸짓이 느려진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서
내일의 공격을  계획하자. 가장 좋은  것은 날이 밝자마자  도마뱀을
공격하는 것이다.  도마뱀은 밤새 몸이  차가워져 혼수 상태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차가워져 있기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벨로캉 개미 하나가 불쑥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러자 기지의 사냥
개미 하나가 반박한다.
  '난쟁이개미들이 추위를 막을 때 사용하는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꿀과 술을 잔뜩 먹고,  열이 몸에서 너무 빨리
빠져나가지 않도록 끈끈물을 딱지에 바르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103683호의 더듬이가 그  얘기를 받아들인
다. 103683호는  흰개미 도시의 수수께끼와 늙은  병정개미가 들려준
의문투성이의 실종 사건을 생각하고 있다.
  기지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났던 게예이톨로  개미가 다시 그에게 다
가온다. 사냥  노획물을 그에게 보여주었고 흰개미들에  대한 언급을
마다했던 그 개미이다.
  '4000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103683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것을 못  들은 셈쳐라. 시체와 대화한  거나
다름없다. 그는 며칠 전에 맵시벌에 쏘였다....'
  맵시벌! 103683호가 전율을 느낀다. 맵시벌은  기다란 산란관을 가
진 벌로서 밤에  개미 둥지를 뚫고 들어와 개미의 따뜻한  몸에 내려
앉아 개미 몸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알을 깐다.
  맵시벌은 또 개미 애벌레를 가장 못살게  구는 골칫거리 가운데 하
나이다. 주사기같은 산란관이 천장을 뚫고  들어와서는, 개미 애벌레
의 보드라운 살을 더듬더듬 찾아서 거기에 알을 깐다.
  처음에는 맵시벌의 알들이 개미 몸 속에서  자라는 게 느껴지지 않
는다. 그러다 알들이 탐욕스런 애벌레로 변하면서  살아 있는 개미를
몸안에서 갉아먹는다.
  아니나다를까. 그날 밤 꿈 속에서 103683호는  자기에게 알을 까려
고 덤벼드는 맵시벌의 끔찍한 산란관에 쫓겨다녔다.

  현관문의 비밀 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니콜라는  자기 열쇠를 지니
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붙여놓은 봉쇄 표지를 뜯는  것만으로 쉽
사리 집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소방대원들이 사라진  뒤로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지하실 문도 활짝 열린 채 그대로였다.
  손전등이 없었지만 니콜라는 낙심하지 않고, 대신  횃불 만드는 일
에 열중했다. 탁자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그  끝을 구긴 종이로 빽빽
하게 둘러싼  다음 불을 붙였다. 그러자  별 까탈 없이  나무에 불이
붙었다. 불꽃은 작았지만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바람이 불
어도 좀체 꺼지지 않았다.
  니콜라가 횃불을 다  만들자 이내 나선 계단으로 내려섰다.  한 손
에는 횃불을 또  한 손에는 주머니칼을 들고 있었다.  니콜라는 마음
을 단단히 먹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니콜라는 스스로  영웅의 자
질이 있다고 믿었다.
  니콜라가 다시 힘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울퉁불퉁한 둥근 천
장 아래에서 니콜라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불러보
기도 하고 힘을  얻기 위해 떨리는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니콜라
의 걸음이 아주  당당해졌다. 니콜라는 의식에 제동을 걸  사이도 없
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날아가듯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니콜라 앞에 돌연  문이 하나 나타났다. 니콜라가 문을  밀고 들어
갔다. 두 무리의 쥐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가, 불빛에 둘러싸인 니콜
라가 고함을 지르며 나타나자 줄행랑을 놓았다.
  늙은 쥐들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얼마 전부터 '커다란  것들'이
자꾸 그곳을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새끼 밴
암컷들의 둥지에 불을 지르러 온 건 아닐까?  제발 그런 게 아니어야 할텐데....
  니콜라는 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내려갔
다. 여전히 계단이  이어졌고 천장에 새김글도 나타났다.  그러나 니
콜라는 그 새김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갑자기  파닥파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박쥐 한  마리가 니콜
라의 머리로 덤벼들었다. 소름이 끼쳐왔다.  니콜라가 박쥐를 떨쳐내
려고 횃불을 들이댔다.  그러나 자기 머리털만 몇 가닥  태웠을 뿐이
었다. 니콜라는 고함을  지르며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박쥐는 모
자처럼 머리 위에  달라 붙어 있다가, 니콜라 머리에서  약간의 피를
뽑아낸 다음에야 떨어졌다.
  공포에 짓눌린 니콜라는 이제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숨결이 거
칠고 심장과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했다. 니콜라는  갑자기 벽에 부딪
혀 넘어졌따. 니콜라는 이내 다시 일어났다.  횃불은 꺼지지 않고 그
대로 있었다. 니콜라가 불꽃을 앞으로 내밀었다.
  확실히 벽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끌어들인 콘크리트  판과 강철
판으로 만들어진 벽임에 틀림없었다. 시멘트로 된  이음매가 아직 완
전히 마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눈에 띄었다.
  "아빠! 엄마! 거기 계시면 대답하세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이 메아리만 어지럽게  되울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목표에  가까이 왔음에 틀림없다. 니콜라가  생각하기에 그
벽은 빙그르 도는  벽일 것 같았다. 문이 없는 데다가,  그런 장면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벽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걸까? 마침내 니콜라는  다음과 같은
새김글을 찾아냈다.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그 새김글  바로 위에는 전화기  번호판 같은 작은 글자판이  붙어
있었다. 숫자가 아닌  문자가 들어 있는 글자판이었다.  스물네 개의
문자가 들어 있었다.  문제를 풀어서 답이 나오면,  글자판의 누름단
추를 하나하나  눌러 그 답의  단어나 문장을 조합하도록 되어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니콜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니콜라는 자기가 소리를  쳐놓고도 깜
짝 놀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니콜라는 글자판을 누를  엄두를 못 내고 한참 동안 답을  열심히 찾
았다. 그러는 사이  니콜라는 기이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갖가지 생
각을 다  떨쳐버리게 하는 깊은  침묵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침묵의 힘에 이끌려 니콜라는 여덟 개의  문자를 잇달아 눌렀다.
  기계 장치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벽이 돌아갔
다! 그것을  보고 흥분한 니콜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
다. 그러자 벽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 서술에 바람이 일면서
몽당이 남아 있던 횃불이 꺼져버렸다.
  빛 한  줄기 없는 완벽한 어둠  속에 갇히자 미칠  지경이 되었다.
니콜라는 다시 나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벽의 이쪽에는 암호
글자판이 없었다. 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니콜라는
콘크리트판과 강철판에 기대어 손톱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니콜라의
아버지가 철저하게  작업을 해놓은 것이었다. 니콜라의  아버지는 유
능한 자물쇠장이였던 것이다.

      곤충의 청결함
  파리보다 더 청결한  게 무엇이 있을까? 파리는 끊임없이  제 몸을
씻는다. 그것은 다른  개체에 대한 의무 때문이 아니라  제 스스로에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더듬이와 낱눈들이 티 하나  없이 청결
하지 않으면, 파리는 멀리 있는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
를 죽이려고 덮쳐오는  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 곤충의  세계에서 청
결은 생존에 꼭 필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그 다음날, 대중 신문들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퐁텐블로, 저주받은  지하실에 또 하나의  실종 사건! 웰즈  가의
외아들 증발.... 경찰 속수 무책.'

  거미가 고사리  꼭대기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아주 높은  곳이다.
거미는 거미줄 액을 한 방울 분비해서  잎새에 바르고는 가지 끝으로
나아가서 허공으로 뛰어내린다. 거미가 떨어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거미는 땅에 닿기 직전까지 줄에  매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어쩌다가 줄이 끊어져 몸통이 물렁 열매처럼  터져버릴 뻔한 적도 있
었다. 많은 동료들이  이미 사고를 당해 등딱지가  부서졌다. 갑자기
추위가 몰아닥치면서 줄이  튼튼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거미는 줄에 매달린 채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여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다리를 쭉 뻗어 다른 잎새  위에 내려앉는다. 그곳이 그
거미가 만들려는 그물의  두 번째 버팀대가 되어 줄  지점이다. 거미
는 그 잎새에  거미줄의 끝을 붙인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처지게 해서 붙인다. 왼쪽에 줄기가  하나 보인
다. 거미가 달려가서 그 줄기로 기어오른다.  다시 몇 차례 펄쩍펄쩍
뛰면서 몇 개의  가지와 거미줄을 연결한다. 드디어 테두리  줄이 만
들어졌다. 바람과 먹이의  무게를 지탱해 줄 버팀줄이다.  전체 모습
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거미줄은 피브로인이라는 섬유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피부로인
이 질기고 방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개미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었을  때 지름 2미크론의 실을
7백 미터나 뽑아낼  수 있다. 그 실은 같은 굵기의  나일론과 맞먹을
정도로 질기며 탄력성은 나일론의 세 배이다.
  거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일곱  개의 분비샘에서 각각 다른  실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즉 그물의 테두리 줄을  만들기 위한 실, 퇴각
줄을 만들기  위한 실, 그물  가운뎃줄을 만들기 위한 실,  신속하게
먹이를 잡는데 쓰이는  끈끈물이 묻어 있는 실, 알을  보호하기 위한
실,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한 실, 먹이를 감싸기 위한 실 등이 있다.
  거미가 뽑아내는 실은, 알고 보면 개미의  페로몬과 마찬가지로 호
르몬의 연장선  위에 있다. 즉,  거미의 실은 호르몬이 실  모양으로
발전한 것이고, 개미의 페로몬은 호르몬이 기화하기  쉬운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거미가 퇴각 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올라선다.  어떤 위험이 나타
나면 거미는 그  줄에 매달려 뛰어내릴 것이다. 헛된  노력을 들이지
않고 위험을  모면하는 방법이다. 그  거미는 숱하게 목숨을  지켜왔다.
  그 일이  끝나자 거미는 팔각형 그물  안에 네 개의  실을 엇건다.
수억년 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몸짓이다.... 그물이  제법 모양
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오늘은 마른 실로  그물을 짤 생각이다. 끈끈
물 묻은 실은  먹이를 잡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지만 너무  쉽게 끊어
지는 게 흠이다. 갖가지 낙엽 부스러기들이  날아와 달라붙기 때문이
다. 마른 실은 먹이를 붙잡는 힘은 약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밤이 될
때까지는 버틸 것이다.
  대들보 실을 놓고 나자, 거미는 방사사 열  개를 덧붙이고 그물 가
운데 나선사를 두름으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나선사를  두를 때가 가
장 기분이 좋다. 거미는 마른 실이 걸려  있는 가지에서 나와 방사사
사이를 건너뛰면서 되도록 천천히 그물  가운데로 나선사를 돌러나간
다. 언제나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간다.
  거미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물을 만든다. 이 세상에  똑같이 생
긴 거미 그물은  없다. 사람들의 지문이 똑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거미에겐 이제  그물코를 촘촘하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물의
한 가운데에 다다르자 거미는 실을 엮은  자기 작품이 튼튼하게 만들
어졌는지 흔들어본다.  그 다음엔 방사사마다 성큼성큼  올라가서 여
덟 개의 다리로 흔들어본다. 그렇게 흔들어도 끄떡없다.
  이 지역에 있는  거미의 대부분은 75:12 방식으로  그물을 만든다.
다시 말하면, 방사사  12개에 나선사를 75바퀴 둘러 안을  채우는 것
이다. 그러나 그  거미는 섬세한 레이스와도 같은, 95:10  방식의 그
물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눈에 더 잘 띈다는 약점은 있지만  더 튼
튼하다는 강점도 있다. 마른 실로 그물을 짤  때는 실을 아끼지 말아
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이 왔다가듯 곤충들이  걸리지 않
고 빠져나가 버릴 것이다.
  거미는 시간이 꽤 걸리는 그 일을 하느라고  기력이 다 빠졌다. 거
미는 당장 뭔가를  잡아먹어야 한다. 그건 하나의  악순환이다. 그물
을 짓느라고  힘을 다 빼고는, 그  그물로 먹이를 잡아  허기를 메운다.
  대들보 실 위에 스물네 개의 발톱을  올려놓고 잎새 아래에 거미가
숨어서 기다린다.  그물이 마이크 진동판처럼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덕분에, 거미는 눈이  여덟 개나 되면서도 눈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공간을 지각하며,  다시 사이에 극히  미세한 공기의 파문이  일어도
그것을 감지한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8내지 10머리 떨어진 곳에서  꿀벌이 맴
돌고 있다. 꽃밭의 위치를 제 둥지의 꿀벌에게  가리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물이 가볍게  떨고 있다.  잠자리가 다가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잠자리는 맛이 좋다. 그러나 그 잠자리가 날고  있는 방향이 그물 쪽
이 아니라서 거미의 먹이가 되어주지는 않을 듯하다.
  뭔가가 묵직하게 와닿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가  그물 위에 뛰어내
린 것이다. 남이 해놓은 일을 가로채려는  도둑 거미다! 그물 주인은
먹이가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그 도둑 거미를 쫓아낸다.
  바로 그때, 왼쪽 앞다리에 그물의  떨림이 느껴진다. 동쪽으로부터
파리 같은  것이 다가오고 있다. 그다지  빨리 날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곤충이 비행 방향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그물에 걸려 들 것 같다.
  찰딱! 그 곤충이 달라붙었다.
  날개 달린 개미다....
  거미에게는 이름이 없다. 독립 생활을 하는  탓에 종족들끼리 서로
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미가  가만히 기다리
고 있다. 그 거미가  더 젊었을 때는 너무 자발 없이  굴다가 먹이를
놓친 적이 많았다. 자기 그물에 걸린 곤충들이  모두 죽는 줄만 알았
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물에  걸린 곤충 중에서  50퍼센트만
죽는다. 모든 것은 시간이 결정한다.
  참고 기다리면 사냥물이 미쳐 날뛰면서 스스로  제 몸을 옭아맨다.
거미 세계의 철학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은 이런 것이다.
  '최상의 병법은 적이 제풀에 쓰러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 거미는 자기 먹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다가간다. 여왕개미다. 벨로캉이라는 서쪽 불개미  제국의 한 여왕개미다.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제국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다. 수백만
이 함께 모여 살면서 '서로 의존하기'때문에  이제 그들은 혼자서 살
아갈 수 없게 된 듯하다. 거미가 생각하기에  그런 생존 방식은 별로
이로울게 없다. 진보도 없을 것 같다.
  이 개미는 벨로캉 제국의 여왕개미 가운데  하나이다. 그물에 걸린
개미를 살려두면, 그  제국의 일부가 될 도시를 또 만들  것이다. 그
다루기 힘든 침입자들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이다.  거미는 개미를 좋
아하지 않는다.  자기 어머미가 벨로캉  빨강 천막개미 떼에  쫓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거미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먹이를 바라본다. 먹이는  아직 버둥거
리고 있다.  어리석은 곤충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해롭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날개 달린 개미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그물에  옭매인다. 그 와중에 그
물이 망가져 거미를 언짢게 한다.
  성이 나서 버둥거리던 56호는 절망에 빠진다.  이제는 거의 움직일
수가 없다.  이미 몸에는 가는 실이  칭칭 감겨 있고  움직일 때마다
감긴 것이 점점  두터워진다. 산전 수전을 다 겪은  56호이건만 여기
에서는 이렇게 티미하게 당하고 있다.
  하얀 고치  안에서 태어나 이제  거미줄이 만든 하얀 고치  안에서
죽게 될 판이다.
  거미는 다시 다가와  지나는 길에 그물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살펴
본다. 56호는 오렌지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동물을 이제 가까이
에서 볼 수 있다. 그 동물의 머리 위쪽에  빙 둘러가며 여덟 개의 눈
이 달려 있다.  저런 동물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이제는 자기
가 먹이가 될 차례이다.... 그 자가 위에서 실을 뱉어내려고 한다!
  거미는 먹이를  지나치게 칭칭 감는 법이  없다. 독이 든  실을 두
번 뱉어서 죽이지 않고 그냥 겁만 준다.  사실 거미류는 그물에 걸린
먹이를 바로 죽이지  않는다. 거미류는 살아 있는 고기를  먹기 때문
에, 사냥물을  죽이기보다는 마취 효과가  있는 독으로 혼절시킨  다
음, 조금씩 갉아먹고 싶을 때만 깨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
미류는 아주 신선한  고기를 실로 싸서 감춰놓고 먹고 싶을  때 마음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 동안 신선한 먹이를
유지할 수 있다.
  56호도 그런 습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당하는 것은 지금 죽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몸이 한 부분씩 차례차례
잘려나갈 것이다. 한 번 깨어날 때마다 거미가  몸의 한 부분을 잘라
먹고 다시 마취를  시킬 것이다. 매번 조금씩 줄어들다가  마침매 몸
의 중요한 기관이 뽑히고 나서야 영원한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차라리 자살을 하는  게 낫다! 거미의 발톱이 바로  눈앞에 보이자
56호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장 박동을 늦출 채비를 한다.
  바로 그때 하루살이 한 마리가 그물에  부딪힌다. 그러자 기다렸다
는 듯이 거미줄이 하루살이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린다. 그 하루살이
는 겨우 몇 분 전에 태어났을 것이고,  거미 그물에 걸리지 않았더라
도 몇 시간 후면  수명이 다 되어 죽을 터였다. 하루뿐인  삶이 하루
살이의 삶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허비하지 않고 바쁘게  살아야 하
는 삶이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
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우게 될까?
  애벌레로 2년을  살고 나면 하루살이는  바로 자기 재생산을  하기
위해 암컷을 찾아  떠난다. 자식을 통해 불멸을 누리려는  덧없는 노
력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삶을  하루살이는 교미의 상대를
찾는데 바친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먹거나 쉴 생각을 안  하고 상대
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의 천적은  '시간'이다. 1초,  1초가 하루살이의  적이다.
거미가 무섭다 해도  '시간' 그 자체에 비하면, 단지  시간을 잠복시
키는 요인일 뿐 온전한 의미에서의 적은 아니다.
  거미 그물에 걸린 하루살이는 제 몸  속에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
을 느낀다. 몇  시간 후면 하루살이는 늙어버릴 것이다. 이제  그 하
루살이에게는 희망이  없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참담하게 실패한 삶이다.
  하루살이가?a 발버둥친다.  곤충들이 거미 그물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이유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그물에 옭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 잡아드쇼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미가 하루살이에게 다가가서  보조 실을 몇 바퀴 더  두른다. 이
제 좋은 먹이가 두 개다. 그 먹이들이 내일  두 번째 그물을 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제공해  줄 것이다. 거미가 다시 자기  희생물을 잠
재우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다시 그물의 떨림이  느껴진다. 영리한
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떨림이다.  팁 팁 팁팁팁  팁 팁팁, 암거미다!
  암거미가 실 하나를 타고 다가오면서 실을 두드려 신호를 보낸다.
  '나는 네 거야. 난 네 먹이를 훔치러 온 게 아니야.'
  그렇게 요염하게  구는 것을 수거미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팁 팁팁팁. 아,  수거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암컷을 향
해 달려간다. 암컷은  네 차례 허물을 벗은 어린 거미다.  그에 비해
수거미는 벌써 열두  차례나 허물을 벗었다. 그럼에도 암컷이  세 배
는 더 크다. 하지만 수거미는 커다란  암컷을 좋아한다. 수거미는 그
들에게 곧 새로운 힘을 주게 될 먹이들을 암컷에게 보여준다.
  두 거미가 교미를  시작한다. 거미의 교미는 꽤  복잡하다. 수컷은
음경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쌍열박이 총처럼  생긴 생식기를 가지고  있
다. 수거미가 서둘러 과녁이 될 만한 작은  그물을 만들고 거기에 제
생식 세포를 뿌린다. 거기에 다리 하나를 담가  적신 다음 암컷의 생
식기에 집어넣는다.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수거미는 극도
의 흥분상태를 맞는다.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진 아름다운  암컷이 갑
자기 수컷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그렇게까지 된  마당에 수컷을  통째로 먹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게다. 그렇게 수컷을  해치우고도 여전히 암컷은
허기를 느낀다.  암거미가 하루살이에게  달려들어 하루살이의  삶을
더 짧게 만들어  버린다. 암거미가 이제는 여왕개미 쪽으로  몸을 돌
린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물릴 차례가 되었음을 알고 겁에  질려 다
리를 달달 떤다.
  56호는 정말 운이  좋다. 지평선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새
로운 동물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에  북쪽으로 올라온 남쪽  출신의
한 곤충이다. 개미와 마찬가지로 곤충이기는 하지만  아주 커다란 곤
충이다. 뿔풍뎅이라고도 하고 뿔쇠똥구리라고도 한다.  그가 거미 그
물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와 실을 끈끈이처럼 길게  늘여서 끊어버린
다. 95:10 방식의  그물은 정말 질기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비단 레
이스는 올올이 뜯겨 넝마쪽이 되어버린다.
  암거미는 벌써  제 퇴각 줄에  매달려 뛰어내린다. 하얀  굴레에서
벗어난 여왕개미가  땅바닥에서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다.  다시 날아
오를 힘이 없다.
  그런데 그 암거미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암거미는 어떤
가지로 기어올라가더니 실을  뽑아 알 낳을 집을 만든다.  수십 개의
알을 깨고 나올  거미 애벌레들은 나오자마자 저희들의  어미를 잡아
먹을 것이다. 그렇듯 거미 세계에서는 은혜라는 것을 모른다.

  "빌솅!"
  그는 수화기가 사람을 쏘는 벌레라도 되는  양 재빨리 멀리 떼어놓
았다. 전화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상관인.... 솔랑쥬 두망이었다.
  "여보세요?"
  "내가 명령을 내렸는데  당신 아무 일도 안 했어요. 도대체  뭐 하
고 있는 거예요?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자하실로 사라질 때를 기다리
는 거예요? 빌솅, 당신 보아하니 그저 쉴  생각만 하고 있군요! 하지
만 난 게으름뱅이는  딱 질색이예요! 48시간 내에 이  사건을 해결하
세요. 안 그러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거예요."
  "하지만 국장님...."
  "그놈의 '하지만 국장님' 소리는 듣기도  싫어요! 당신 부하들한테
는 내가 지시를  해놓았으니까 내일 아침에 그들하고  내려가기만 하
면 돼요, 필요한  장비는 다 현장에 있을 거예요. 이제  그놈의 엉덩
이는 그만 뭉개고 일어나세요!"
  빌솅은 울화통이  터졌다. 손이 떨렸다. 그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그리고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위에
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자유를 누릴  수 있
는 길은  부랑자가 되는 것밖에 없는데,  그는 아직 그런  것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의 한쪽에는 사회의  질서에
대한 갈망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는
데, 또  한쪽에는 남의 의지에 따라  살고 싶지 않은  욕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마음이 싸우는 와중에 궤양이  생겨났다. 위궤양이
었다. 질서에 대한 갈망이 자유를 향한  욕망을 눌렀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한 무리의 사냥개미들이 바위 뒤에 숨어서  도마뱀을 살피고 있다.
도마뱀의 길이는 60머리(18센티미터)는 족히  된다. 푸르스름한 기운
이 도는 노란 바탕에 검은 반점이  박힌 울퉁불퉁한 등딱지는 무시무
히하고 징그럽다.  103683호에게는 그 검은 반점이  도마뱀에게 희생
된 온갖 동물들의 피가 튀어 얼룩진 것처럼 느껴진다.
  예상했던 대로 그  동물은 추위 때문에 둔해져 있다.  걸음이 느릿
느릿하다. 마치 발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것 같다.
  해가 막 떠오르려 할 즈음, 페로몬 하나가 발산된다.
  '저놈을 쳐라!'
  도마뱀은 한 떼의  새카맣고 작은 것들이 자기에게  호전적으로 덤
벼드는 것을 보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불그스름한 주둥이를 벌린다.
그 주둥이 안에서  날랜 혀가 춤을 추며 나오더니 가까이  다가온 개
미들을 후려치고 끈끈물로 붙잡아  목구멍으로 삼켜버린다. 그러고는
가볍게 트림을 한 번 하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서른 마리쯤의  동료를 잃은 사냥  개미들이 숨을 죽인 채  멍하니
있다. 추위 때문에  동작이 둔할 거라더니 도마뱀은 힘이  철철 넘치지 않은가!
  저런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개미
들 사이에서 나온다. 겁이라고는 모르는 103683호도  그런 얘기를 먼
저 꺼낸 개미  가운데 하나였다. 도마뱀은 난공 불락의  요새처럼 보
인다. 도마뱀의 가죽은 위턱이나 개미산으로는 공격할  수 없는 갑옷
이다. 덩치도 너무  큰 데다가 기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빠
른 걸  보면 개미들은 따라잡기  어려운 우월함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개미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작은 이리들이  몰려가듯이 그
들은 그 괴물의  족적을 쫓아 달려간다. 고사리 덤불  아래를 달려가
면서 그들은 살기  어린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 서슬에  겁먹는 것은
민달팽이들뿐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개미들 스스로에게는 힘을  주고
자신감을 준다. 수천  머리 떨어진 서쪽에, 가문비나무  껍데기에 붙
어 있는 도마뱀이  보인다. 아마도 방금 식사로 먹은  개미들을 소화
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공격해야 한다!  늑장을 부리면 부릴수록 저놈이 힘을  더 얻
을 것이다! 추울  때도 날쌘는데, 태양 에너지를 흠뻑 받으면  더 힘
이 세어질 것이다.  더듬이를 맞대고 토론을 한다.  즉석에서 전술을
짜야 한다. 하나의 전술이 실행에 옮겨진다.
  병정개미들이 나뭇가지에서  그 동물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개미
들은 눈꺼풀을 물어뜯어서  도마뱀이 눈을 못 뜨게  하고는 콧구멍으
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첫 특공대는 실패하고 만다.
화가 난 도마뱀이  발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떨어지는  개미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두 번째 돌격대가  달려간다. 도마뱀의 혀가 미
치는 지점까지 거의  다가가서 개미들은 돌연 방향을  바꾸어 몽당이
로 남아 있는  꼬리 위로 사납게 덤벼든다. 어머니  말씀마따나, '어
떤 적이든 약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오로지
그 약한 부분만을 공격하라.'
  개미들은 꼬리가 잘려나간 부분의 상처를  찾아 거기를 개미산으로
지지고 도마뱀의 몸 속으로 들어가 창자를  공격한다. 도마뱀은 벌렁
나자빠지기도 하고, 뒷발로  달리기도 하고, 앞발로 제  배를 두드리
기도 한다. 개미들이 몸 속 곳곳을 갉아먹고 있다.
  그 틈을  타서 또 한  무리의 개미들이 마침내 콧구멍에  들어가서
뜨거운 개미산으로 구멍을 넓히면서 파고들어간다.
  그 바로  위에서는 개미들인 눈을 공격한다.  개미들이 물렁물렁한
눈알을 터뜨린다. 그러나  눈구멍으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시신경 구멍이 너무  좁아서 그 구멍을 통해서 뇌에 도달할  수가 없
는 것이다. 그래서  눈구멍에 있던 개미들은 이미 콧구멍  안으로 깊
이 들어간 동료들을 뒤쫓아간다.
  도마뱀은 몸을  비비꼬면서 목을  찌르고 있는 개미들을  죽이려고
주둥이 안에 발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허파의 한  쪽 구석에서 4000호는  젊은 동료 103683호를  만났다.
안이 캄캄한데다가 비생식  개미들은 적외선 홑눈을 가지고  있지 않
으므로 그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더듬이  끝을 연결한다.
  '자, 동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틈을  이용해서 동쪽 흰개미 도
시쪽으로 떠나세. 동료들은 우리가 전투중에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들은 처음에  들어왔던 도마뱀의  몽당이 꼬리 쪽으로  빠져나온
다. 꼬리에서는 이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내일이면 그 도마뱀은 개미들이 먹을 수  있는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뉠 것이다. 그 고깃조각 가운데 일부는  흙에 싸여서 주비주비캉으
로 옮겨질  것이고 일부는 벨로캉에도  갈 것이다. 그러면  개미들은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이 사냥을 묘사하리라.  개미 문명은 힘을  더
키워야 한다. 도마뱀을  정복한 일은 개미 문명에 자신감을  준 특별한 사건이다.

      이종 교배
  개미 둥지에  다른 종이 섞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다. 개미는 저마다 자기 도시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 그렇게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다.
  예를 들어  흙을 채운  어항에 불개미  100마리와 검은 목축  개미
100마리를 함께 넣으면 어떻게 될까? 두 종  모두에 알 낳는 여왕 개
미 한 마리씩을 포함시켜서 말이다. 그러면 우선  몇 차례의 작은 충
돌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망자가 생길 정도의  충돌은 아니다. 그 후
에는 더듬이들을  맞대고 긴 토론을  벌이고 나서 함께 개미  둥지를
건설해 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통로는  불개미의 체구에 알맞게  되어 있고 어떤 것은  검은
목축 개미에 알맞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종과 교배를  해서 서로 섞인다. 이상의 관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개미 세계에서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어떤 종이 도시 안에 게토와 같은 특별  보호 구역을 만들어 다른 종
을 격리시키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동쪽 영토로 가는  길은 아직 말끔히 닦여 있지  않다. 흰개미들과
의 전쟁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평상적인 일들을 해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4000호와 103683호는  수많은 접전이  벌어졌던 자취가 남아  있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려한  빛깔의 독나방들이 그들
의 더듬이로 바로  위에서 빙빙 돈다. 그때마다 그들은  불안을 느낀다.
  한참을 더 가다가 103683호는 자기 오른쪽  발 밑에서 뭔가가 꿈틀
거리는 것을 느낀다. 진드기 떼다. 침과  더듬이와 털과 갈고리를 갖
춘 미물들이다. 그 미물들은 먼지가 많은 둥지를  찾아 떼를 지어 이
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103683호의  기분이 좋
아진다. 세상에는 진드기처럼 작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개미처럼 커
다란 존재도 있는 것이다.
  4000호가 어떤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
해진다. 오늘 너무 많은 고생을 한 그의  몸 안에서 맵시벌 애벌레들
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애벌레들이 그  가련한 개미
의 내부기관들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이대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103683호는 그를 구하려고  갈무리 주머니 안쪽에 숨겨  두었던 로
메슈제 분비꿀 몇 덩어리를 꺼낸다. 벨로캉  지하에서 벌이던 싸움의
막바지에 103683호는 진통제로 쓰려고 로메슈제  분비꿀을 조금 모아
두었었다. 그는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에 그 달콤한
독에 중독되지 않았다.
  그 끈끈한 액체를 삼키고 나자 4000호의  통증이 가라앉는다. 하지
만 4000호는 그것을 더 달라고 한다.  103683호가 4000호를 설득하려
고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다. 그는  싸움을 해서라도 동료의  갈무리
주머니에서 그  귀중한 약을 빼앗아낼 기세이다.  뛰어오르며 103683
호를 때리려던  4000호가 분화구처럼  생긴 흙구덩이로  미끄러진다.
개미귀신이 파놓은 구멍이다.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은 머
리가 삽처럼  생겨서 그걸 가지고 절구통  같은 구멍을 팔  수 있다.
일단 구멍을 파놓고 나면 그 안에  숨어서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
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4000호는 뒤늦게서야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는다.
개미는 원래  가볍기 때문에 그런  곤경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
다. 그렇지만 개미가  미처 구멍에서 올라오기 전에,  구멍 아래쪽에
서 끝이 뾰족한  두 개의 기다란 위턱이 올라오고 개미에게  흙을 뿌
리는 경우도 어쩌다가 있는 것이다.
  '개미 살려'
  4000호는 이제 몸  속의 맵시벌이 주는 고통도  로메슈제 분비꿀을
맛본 뒤에 찾아온 금단의 고통도 다 잊고  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
다.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개미귀신의  함정은 거
미의 그물과 마찬가지로  희생물이 겁을 먹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4000호가  구멍을 기어오르려
고 버둥거릴수록  비탈이 허물어지면서 점점 바닥  쪽으로 끌려간다.
바닥에서는 개미귀신이 계속 흙을 뿌리고 있다.
  103683호는 동료를 구조하겠다고 몸을 기울여  발을 내밀다가는 자
신도 빠질 염려가 있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하고,  구조하는 데 쓸 만
한 길고 튼튼한 풀줄기를 찾으러 간다.
  안달이 난 늙은 개미가 강렬한 냄새를  뿜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흘
러내리는 거나 다름없는  흙 속에서 더욱 세게 발버둥을  친다. 그럴
수록 내려가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개미귀신의  가위 같은 위턱들이
불과 5머리 아래에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것은  정말 무시무시하
게 생겼다. 구부러진 두 개의 기다란  창을 벌려놓은 듯한데, 위턱마
다 수백 개의 작은 톱니들이 뾰족뾰족하게 나  있다. 게다가 그 끝은
송곳처럼 생겨서 개미의 어떤 딱지라도 쉽게 뚫을 수 있을 듯하다.
  103683호가 다시 구멍 가장자리에 나타나  동료에게 데이지 줄기를
내민다. 빨리!  4000호가 그 줄기를  잡으려고 발을 뻗는다.  그러나
순순히 먹이를  포기할 개미귀신이 아니다. 개미귀신은  두 개미에게
미친 듯이 흙을 끼얹는다. 개미들은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개미귀신이 이번에는 돌을 던진다.  그 돌이 음산한 소리
를 내며 개미의 딱지에 부딪친다. 4000호가 반쯤  흙에 묻혀서 죽 미끄러진다.
  103683호는 위턱 사이에  데이지 줄기를 꽉 물고 버틴다.  그는 동
료가 그 줄기를  붙잡아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거의  절망적인 순
간에 발 하나가 흙구덩이에서 삐져나왔다.  살았다. 4000호가 마침내
죽음의 구덩이 밖으로 뛰어 나온다.
  아래에서는 먹이를 놓친 개미귀신이 분노와  실망을 이기지 못하고
집게 같은  위턱을 맞부딪치고 있다. 개미귀신이  명주잠자리로 탈바
꿈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다. 다른 먹이가  미끄러질 때까지
저 개미귀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까?
  4000호와 103683호는 서로를  닦아주고 여러 차례 영양  교환을 하
면서 갈무리의  주머니에 있는 양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로메슈제 분비꿀을 메뉴에 넣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빌솅 경정!"
  여자가 그에게 보드라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여기  온 걸 보고  놀라는 눈친데. 하지만 사건이  오래가고
심각해지는 데다, 지사께서 임기 말년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하
시고, 또  곧 장관이 될 분이기도  하셔서 내가 이렇게  직접 나섰어
요. 밥줄 끊어질까봐 불안한 모양이지요. 자,  얼굴 좀 펴요. 농담이
에요. 당신 유머 감각도 이젠 다 죽었구만?"
  늙은 형사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 앞에
서 주눅들며 지내온 세월이 15년이었다. 그  여자에게는 '하긴 그래'
가 통한 적이  없었다. 그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려  했지만 눈길은
긴 머리채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살구빛으로 물들인  머리채였다.
요즘에는 그게 유행이었다. 동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여자
는 머리털이 본래  살구빛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었
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풍기는 진한 염색 약  냄새는 이제 완전히 그
녀의 냄새가 되어버렸다.
  솔랑쥬 두망.  그 여자는 폐경기를 맞으면서부터  아주 까다로워지
기 시작했다. 정히 늙는 게 싫으면 여성  호르몬 제를 복용하면 되었
을텐데, 그 여자는  뚱뚱해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호르몬 제
가 살찌게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여자
는 자기를  늙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들을 이를 악물고  부하들에게 떠넘겼던 것이
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지하실에 내려가시려구요?"
  빌솅이 물었다.
  "농담마세요, 빌솅! 내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내려가는 거
예요. 난 여기 있겠어요.  미리 모든 걸 다 준비해 왔지요.  차가 들
어 있는 보온병하고 내 워키토키 말이예요."
  "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벌써부터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걸 보니 겁나는  모양이지요?
말했다시피 우리는 무선으로 연결이 돼요. 어떤  위험이 느껴지면 바
로 나한테 신호를 보내세요. 그럼 내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테니까.
게다가 까다로운 임무에  필요한 최신 장비들도 가져왔으니  그걸 가
지고 내려가세요.  우리도 당신 생각  끔찍히 하고 있는 거예요.  자
봐요. 등산용 밧줄에다 총, 게다가 건장한  남자가 여섯 명이나 있잖아요."
  솔랑쥬가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치안  대원들을 가리켰다. 빌솅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갈랭은 소방대원 여덟  명하고 같이 갔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되었는 걸요."
  "그들은 무기도  없었고 워키토키도 없었잖아요! 자,  우거지상 좀
펴세요, 빌솅."
  빌솅은 더 이상 왈가 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상관이랍시고 재면서
을러대는 꼴에 배알이 뒤집혔다. 솔랑쥬하고 싸우다  보면 자신이 솔
량쥬가 되고 말았다.  그 여자는 꽃밭의 잡초 같았다. 그  잡초에 물
들지 않고 자라는 게 상책이었다.
  빌솅은 마음을 가다듬고 동굴 탐사 복장을  갖추었다. 허리에 등산
용 밧줄을 두르고 워키토키를 어깨에 걸었다.
  "제가 만일  다시 못 올라오거든,  제 재산을 모두 경찰  고아원에 주십시요."
  "바보 같은 소리 그만 하세요, 빌솅. 당신은  다시 올라올 꺼고 우
리 모두 레스토랑에서 그것을 축하하게 될꺼예요."
  "제가 다시 못 올라올 경우를 생각해서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솔랑쥬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 애들 장난 같은 짓은 그마두세요, 빌솅!"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행한  나쁜 짓
에 대해서 언젠가는 모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젠 숫제 신비주의자가 되셨군! 빌솅,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
어요. 우리는 나쁜 짓을 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아요. 당신 생각대로
'착한 신'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우리에겐  털끝만큼도 관심
이 없어요! 그러니  살아서 이 존재를 활용하지 않으면  나중에 죽어
서는 활용할 길이 없어요."
  솔랑쥬는 빈정거림을 얼른  멈추고 자기 부하에게 다가가  그를 닥
거렸다. 고약한 냄새, 빌솅은 숨 들이쉬기를  멈추었다. 저런 냄새를
지하실 안에서도 지겹도록 맡게 되겠지.
  "걱정 마세요. 당신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당신은  이 사건
을 해결해 낼거예요. 당신의 죽음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돼요."
  갑자기 달라진  솔랑쥬의 태도가  빌솅을 어린애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이제 흉기를  들고 반항하다가 그걸 빼앗기자 풀이 죽은  채 허
세로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사내아이나 다름없었다.
  "물론이죠. 내가  죽으면 '친히'  조사에 나선 국장님이  실패하게
되는 거지요.  국장님이 '직접 나선'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게  되실 겁니다."
  "빌솅, 나를  좋아하지 않나 보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난 상관 없어요.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사랑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알아야 돼요. 당신이  저 아래에서 죽는다 해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꺼예요. 또  다른 대원들을 보내면 돼요.
당신이 나에게 정말 폐를 끼치고 싶으면  일을 끝내고 살아서 돌아오
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솔랑쥬의 머리채를  흘끗거렸다. 유
행에 따라 손질한  머리채 밑 부분이 희끗희끗하다. 그것을  보니 빌
솅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치안 대원 가운데 한 명이 총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모두가 밧줄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좋아. 내려가자고."
  그들은 밖에서 그들과 연락을 계속 취하기로  되어 있는 세 경찰관
에게 신호를 보내고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솔랑쥬 두망은 워키토키를 들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행운을 빌어요. 빨리 돌아오세요!"
      ---------------
      제 1 부
       개미

     제3장  세 편의 오디세이아


  마침내 56호는  자기 도시를 건설하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냈다.
그것은 하나의 둥그스름한 둔덕이었다. 56호가  그 둔덕을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비
주비캉과 글로비듀캉이다. 그렇다면 연방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56호가 그 장소를  조사하고 있다. 땅은 단단한 편이고  잿빛을 띠
고 있다. 새  여왕개미는 토질이 더 부드러운 곳을  찾아보지만 어디
나 만만치 않다. 56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기의 첫번재 방을
만들려고 위턱을 쑤셔넣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땅이 흔들린다. 지
진인 듯도 한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국지적이다. 56호가 다시 땅
에 위턱을 박는다. 땅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까보다 더 심하
다. 둔덕이 솟아오르더니 왼쪽으로 미끄러진다....
  일찍이 이상한 일들을 숱하게 보아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언
덕이 살아 움직이다니!  언덕은 이제 빠르게 나아가면서 키  큰 풀들
을 헤치며 덤불을 뭉갠다.
  56호가 놀란 마음을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또 하나의 둔덕이 다가
온다. 이게 무슨 행렬일까? 둔덕에서 미처  내려오지 못한 채 56호는
날뛰는 둔덕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두 언덕이 사랑
이라도 나누려는  모양이다. 언덕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서
로를 더듬고 있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56호가 올라앉은 둔덕이
암컷이다. 수컷이 천천히  암컷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돌같이 생긴
머리가 조금씩조금씩 빠져나온다. 무시무시한  이무깃돌처럼 생긴 머
리가 입을 벌린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젊은 여왕개미는 그곳에 자기  도시를 세우겠
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둔덕 아래로 굴러내려와서야  56호는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서 빠져나왔는지를  깨닫는다. 언덕은 머리뿐만
아니라 발톱이 달린 네 개의 발과 세모꼴의 꼬리도 가지고 있다.
  56호는 거북을 생전 처음으로 본 것이다.

      음모가들의 시대
  인간 사회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조직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복잡
한 위계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관리자들', 즉 권력을  가진 사람들
이 가장 제한된  권리를 지닌 '창조자들' 집단을  지도하거나 관리하
고,  '중개자들'이 분배를  구실로 창조자들의  노동 산물을  가로챈
다.... 개미 세계에 일개미, 병정개미, 생식  개미의 세 계급이 있듯
이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는 관리자, 창조자,  중개자 라는 계층이 있
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두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권
력 투쟁은, 한 사회가 창조자들이 우대받는  체계에서 관리자들이 특
권을 누리는 체제로  이행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수학
자이자 '붉은 군대'의 창설자인 트로츠키가  음모가인 스탈린에게 밀
려남으로써 창조자의  시대에서 관리자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사
회 계층 구조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개념
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
혹할 줄 알고 살인자들을 모을 줄 알며  정보를 왜곡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4000호와 103683호는  동쪽 흰개미  도시로 통하는 냄새길로  다시
접어들었다. 그 길에서  여러 곤충들과 마주친다. 동그란  부식토 덩
이를 미느라고 여념이  없는 풍뎅이들도 있고,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종류의 탐험 개미들도 있으며, 자기들을  겨우 알아
볼 만큼 아주 커다란 종류의 것들도 있다....
  그만큼 세상에는 개미의  종류가 많은 것이다. 1만 2천  종 이상의
개미가 저마다 고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가장  작은 것은 겨우 수
백 미크론에 불과하며 가장 큰 것은  7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불
개미는 중간에 속한다.
  4000호가 마침내 방향을  찾은 듯하다. 저 푸른 이끼  웅덩이를 지
나 아카시아 덤불을  올라간 다음 노란 수선화들 밑을  지나야 한다.
그러면 고목 밑둥이 나오는데, 그 뒤로 가면 된다.
  고목 그루터기를 지나자  과연 수송나물과 낙상홍 건너  저쪽에 동
쪽 강과 사테이 나루가 보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빌솅 내 말 들려요?"
  "잘 들립니다."
  "별일 없어요?"
  "네, 별문제 없습니다."
  "풀려나간 밧줄 길이를 보니 당신은  지금까지 480미터를 답파했군요."
  "그렇군요."
  "뭐가 보여요?"
  "별거 없습니다. 돌에 새김글이 몇 줄 있을 뿐입니다."
  "무슨 새김글인데요?"
  "밀교의 주문 같은데요, 하나 읽어볼까요?"
  "됐어요 빌솅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여왕개미 56호의 배가 한참 끓어오르고 있다.  뱃속에서 뭔가가 밀
고 당기고 꿈틀거린다.  장차 56호의 도시에 살게 될  생명들이 자발
없이 안달하고 있다.
  이제 까다롭게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다.  56호는 검은빛이 도
는 황토 구덩이를 골라 거기에 알을 낳기로 한다.
  골라놓고 보니  괜찮은 자리다. 주위에 난쟁이개미,  흰개미, 말벌
의 냄새도 없다.  게다가 벨로캉 개미들이 지나간 적이  있음을 알리
는 페로몬의 자취가 남아 있다.
  56호가 땅의 냄새를 맡는다. 땅에는 희유  원소가 많다. 습기는 충
분하되 지나치지 않다. 윗부분이 불거져나온 작은 덤불도 있다.
  56호는 지름 100머리의 원 안에 땅  거죽을 말끔히 치운다. 그것이
56호가 세우려는 도시의 가장 알맞은 형태이다.
  힘이 다 빠지자 56호는 갈무리 주머니에  있는 먹이를 되올리려 한
다. 그러나  그것이 텅 빈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이제 비축된
에너지가 없다. 그러자  56호는 대뜸 자기 날개를 뽑아서  근육이 많
은 밑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렇게 영양을  섭취했으니 아직
며칠 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이 끝나고  나자 56호는 더듬이가 다 묻힐 정도까지  구멍 안
으로 들어간다. 56호가 공격력  없는 먹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그 기
간 동안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해야 한다.
  56호가 기다린다.  몸 안에 들어  있는 도시가 시나브로  깨어나고
있다. 그 도시의 이름을 무어라 지을까?
  우선 여왕의 이름을 지어야 한다. 개미  세계에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자율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미,  병정개
미, 생식 개미는  출생의 순서에 따라 붙여지는 숫자로  이름을 대신
한다. 그러나 알을 낳은 여왕개미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래! 56호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의  추격을 받다가 떠
나왔다. 그러니 '추격  당한 여왕'이라고 이름을 지으면  된다. 아니
야. 그보다는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려다가  추격을 당했으니까
그것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불가사의에서  태어난 여왕의 도시'라
명명하기로 한다. 그것을 개미의 냄새 언어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냄새가 난다.
  클리-푸-캉

  두 시간 후, 다시 무선 호출.
  "별일 없어요, 빌솅?"
  "저희는 어떤 문  앞에 있습니다. 그냥 보통 문입니다.  문 위쪽에
뭔가 길게 새겨 놓은 글이 있는데요. 옛날 문자로 말입니다."
  "뭐라고 씌어 있는데요?"
  "읽어볼까요?"
  "그래요."
  빌솅 경정이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읽기 시작한다.  원문을 조금씩
조금씩 해독하며 읽느라고 목소리가 느리고 엄숙하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위대한 '신비'를 깨우친  사람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느낀다.
  맨 먼저 힘겨운 애움길을 무작정 달린다.  어둠 속을 나아가는, 불
안하고 끝없는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다음에는 종말을  앞두고 공포가 절정에 달한다.  전율, 부들거
림, 식은 땀, 격심한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단계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갑작스럽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빛을 향해 올라간다.
  눈에 경이로운 빛이  비치고 영혼은 노랫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울
려퍼지는 순결의 땅과 풀밭을 지난다.
  성스러운 말들이  신심을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은  완벽한 인간은
자유로와지고, '신비'를 찬양한다.

  치안 대원 한 사람이 전율을 느낀다.
  "그 문 뒤에 뭐가 있어요?"
  워키토키의 음성이 물었다.
  "글쎄요. 열어보겠습니다..... 여보게들 날 따라오게."
  긴 침묵.
  "여보세요,  빌솅! 여보세요,  빌솅! 대답해요,  젠장, 뭐가  보여요?"
  총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다시 긴 침묵.
  "여보세요, 빌솅, 이봐요, 대답해요!"
  "빌솅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쥐입니다. 쥐가  수천 마리입니다. 그놈들이 위에서  우리를 덮쳤
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놈들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총을 쓴 거예요?"
  "네. 이젠 그놈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뭐가 보이는지 얘기해 봐요."
  "여기는 온통  빨갛습니다. 벽에는 철광석의 광맥이  보이구요, 땅
에는 피가 있습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무선 연락을 계속 취하세요! 왜 자꾸 끊는거예요?"
  "허락해 주신다면, 멀리서 보내는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제 방식대
로 일했으면 하는데요."
  "하지만, 빌솅...."
  딸깍. 빌솅이 통신을 끊어버렸다.

  사테이는 엄밀히 말해서  나루가 아니며, 전진 기지도  아니다. 그
러나 벨로캉 개미들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천혜의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옛날 '니'왕조의 선조  개미들이 이 강의 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
은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개미에게
포기란 없다. 어떤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개미는 필요하다면 1만 5
천 가지  방식으로 1만 5천  번이라도 장애물을 머리로  들이박는다.
제가 죽거나 장애물이 없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런 행동 양식은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확실히 그런
식으로 개미 문명을  이룩하느라고 희생도 많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
다. 그러나 보람은 있었다. 결국 그  무모한 노력의 대가로 개미들은
언제나 어려움들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옛날 사테이 나루에서  탐험 개미들은 걸어서 건너는  것부터 시도
했다. 물이라는 장애물의 겉은 그들의 무게를  견딜 만큼 단단했지만
발톱을 걸 만한 데가 없었다. 개미들은  강의 가장자리에 스케이트장
위를 미끄러지듯 빙빙  돌아다녔다. 앞으로 두 발짝 간  다음 옆으로
세발짝, 그러다 첨벙 빠져 개구리들에게 잡아먹히곤 했다.
  백여 차례의 시도가  보람없이 끝나고 수천 마리의  탐험 개미들을
희생시킨 후에, 개미들은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일개미들이 다리와
더듬이를 연결해서  건너편 강기슭에  이르는 사슬을 만드는  것이었
다. 그 실험은  강폭이 그렇게 넓지 않고 소용돌이  때문에 흔들리지
만 않았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24만 마리의  개미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개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의 여왕  뷰파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다리를 건설해 보려고 했다.  처음엔 나뭇
잎으로, 다음엔 잔가지로,  그 다음엔 풍뎅이 시체로, 그  다음엔 자
갈로 다리를 놓으려 했다. 그 네 차례의  실험을 하느라고 67만 마리
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그럼으로써 뷰파니는 재임중에  벌인 모든 전
쟁에서 잃은  것보다 더 많은  백성을 이상적인 다리를 건설하는  데 바친 것이다.
  그럼에도 여왕은  단념하지 않았다. 동쪽 영토의  한계를 뛰어넘어
야 했다. 다리 건설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여왕은 북쪽 발원지로 거
슬러 올라가  강을 우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차례  탐험대를
보냈으나 어느 탐험대도  돌아오지 않았다. 8천 마리 사망.  그 다음
에 여왕은 개미들이  헤엄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1만  5천 마리
사망. 그 다음엔  개구리들을 길들이기로 했다. 6만 8천  마리 사망.
커다란 나무  위에서 나뭇잎을 타고  뛰어내리면 어떨까? 52마리  사
망. 굳은 꿀을  다리에 달고 물 밑으로 걸어가면 어떨까?  27마리 사
망. 전설에 따르면,  개미들이 여왕에게 이제 도시에는  온전한 일개
미가 열  마리밖에 안 남았으니  그 계획을 잠정적으로 포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진언을 하자, 여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감스럽도다, 구상해 놓은 게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러나 연방의 개미들은 기어코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30만 년 뒤, 리푸르뤼니  여왕이 백성들에게 강 밑
으로 터널을  파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너무나  간단해서인지는 몰라
도 전에는 아무도 그 생각을 못 해냈다.
  그리하여 개미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테이로부터 강  밑으로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103683호와 4000호가  조금 전부터 그  유명한 터널 안을 걷고  있
다. 그곳은 습기가 많기는 하나 물이  새지는 않는다. 흰개미 도시는
건너편 강기슭에 있다. 흰개미들도 이 똑같은  지하도를 이용해서 연
방의 영토를 침범한다.  지하도 안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흰개
미든 불개미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그런 합의가  이제까지 암
묵적으로 지켜져왔다.  그러나 둘 중의  어느 한쪽이 자기의  우위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다른 쪽에서는 입구를 막거나  통로에 물을 가득
채워버리려 할 것이다.
  두 병정개미가 긴  통로 안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터널 위의 물이 차가워지면  지하는 훨씬 더 차가
워진다. 추위가 그들의 동작을 굼뜨게 만들고  있다. 걷기가 점점 힘
들어진다. 거기에서 잠들면  영원히 겨울잠을 자게 된다.  그들은 그
점을 알고 있다.  출구에 도달하려고 그들이 허위허위  기어간다. 갈
무리 주머니에  남겨둔 단백질과 당분도 바닥나간다.  근육이 뻣뻣해
진다. 드디어 출구다.  밖으로 나온 103683호와 4000호는  몸이 너무
차가워져 있는 탓에 길 한복판에서 꾸벅거리며 존다.

  창자 속처럼 캄캄한  동굴 속을 그렇게 한줄로  늘어서서 나아가다
보니, 빌솅은  내심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이 일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어딘가  끝이 있
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  말이 없
었다. 여섯 치안 대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빌솅은 자기가 정
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땅히 총경으로  승진을 해서 봉급다운 봉급을  받았어야 했
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남들보다 빨리 출근했으며 이미  10여 건의
사건을 해결한 바 있었다. 단지 두망이라는  여자가 승진을 가로막아 왔을 뿐이다.
  그는 자기 처지에 갑자기 화가 났다.
  "빌어먹을!"
  뒤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정지했다.
  "괜찮아요? 소장님?"
  "그래, 그래, 괜찮아. 계속 가세."
  혼자말을 지껄이다니! 창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마음을 잡도
리하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수심에 빠져들었
다.
  그가 두망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두망이  여자라서가 아니
라 무능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할망구는 겨우  읽고 쓸 줄만 알
았지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이제껏 수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으면서
180명 경찰관들의 꼭대기에  올라앉았다는 게 말이나 돼?  게다가 봉
급은 나의 네  배나 되고 말이야. 이러고도 경찰에  들어오라고 사람
들을 꼬실 수  있는 거야? 그 여자는 그뿐인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쓸데없이 끼여들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해대는  꼴이 영낙없
는 잔소리꾼 시어머니라니까. 그 여자는 부하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
고,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저기 과시하느라
고 자기 임무를 태만히 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던 중에 문득 예전에 보았던 기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두꺼비에 관한 것이었다.  두꺼비들은 발정기가 되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덤벼든다.
암컷이건 수컷이건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돌멩이에도  덤벼든다. 두꺼
비들은 상대의 배를 눌러서 자기들이 수정하려는  알이 나오게 한다.
암컷을 누르는  두꺼비들에게는 노력한 보람이 나타난다.  수컷의 배
를 누르는 두꺼비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상대를  바꾼다. 돌멩
이를 누르는 두꺼비들은 앞다리가 아파서 누르기를 포기한다.
  그런데 특수한  경우가 하나 있다. 흙덩어리를  누르는 두꺼비들의
경우이다. 흙덩어리는  암컷의 배만큼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두꺼비
들은 쉬지  않고 눌러댄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그런 행위를  몇 날
며칠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그  두꺼비들은 자기들이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빌솅 경정은 그것을 떠올리면서 빙긋 웃었다.  솔랑쥬가 착한 사람
이라면,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는 행동
말고 보다 효과적인  다른 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
으로 족하리라. 그러나 솔랑쥬에게 그런 설명이  통할 거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경찰 일에 부적합한  사람은 오히려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침울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말
없이 내려가면서 그들은  모두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
부분은 이 모험이  끝나고 나면 특별 수당을  요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아내와 자녀들, 고물 자동차나  맥주 한 잔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보다 더 기분좋은 일이  있을까? 쓸모가 있건
없건, 중요하건 덜 중요하건, 마음에 넘쳐나는  이 생각의 흐름을 중
단시키는 것. 다시  살아 있는 상태로 돌아올 수 있기는  하되,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 텅  빈 상태가 되는 것. 근
본으로 돌아가는  것.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는 것. 무가 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갈망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아침 햇살이 비쳐들자, 진흙투성이의 강둑 길  위에서 밤새도록 꼼
짝 않고 있던 두 병정개미의 몸에 다시 생기가 돈다.
  103683호의 낱눈들이 하나하나 다시 움직이면서  그가 맞닥뜨린 새
로운 환경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103683호의  위쪽에서 거대
한 눈 하나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공포에 질린 젊은  병정개미가 더듬이를 태울 듯한  강렬한 냄새를
발한다. 그 눈도 겁을 먹고 재빨리 뒤로  물러선다. 그와 함께 그 눈
이 달려 있는 기다란 뿔도 뒤로 물러선다.  두 병정개미가 동그란 조
약돌 아래로 숨는다. 달팽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달팽이들이 더 있다. 모두  다섯 마리의 달팽이들
이 껍데기 속에 숨어 있다. 두 개미가  그중 하나에게 다가가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개미들은 달팽이를 물어뜯어보려고  하지만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 탓에 마땅히 물어뜯을 데가  없다. 그 움직이는 둥
지는 난공 불락의 요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103683호의 마음에 떠오른다.  '안전한 것이 나
의 가장 나쁜 적이다. 안전은 나의 경각심과 진취성을 잠재운다.'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저 얼간이는  움직이지 않는 풀이나 뜯어먹
으면서 언제나  안일하게 살아왔다고  103683호는 생각한다.  저들은
싸우거나 유혹하거나  추격하거나 도망쳐본 적이 없고,  목숨을 걸고
위험에 맞서본 적도 없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진보가 없었다.
  103683호가 문득  한 가지 충동에 사로잡힌다.  달팽이들을 껍데기
속에서 나오게 해서 그들이 안전한 게  아니라는 걸 일깨우고 싶어진
다. 바로  그때, 다섯 달팽이  가운데 두 마리가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신경의 긴장을 풀 생각으로 껍데기 밖으로 몸을 내민다.
  달팽이들이 서로  붙어서 배와 배를 맞댄다.  끈끈물이 맞붙으면서
두 몸이 하나가  된다. 온몸으로 하는 끈적거리는  키스다. 달팽이들
이 생식기를 서로 비빈다.
  두 달팽이 사이에 아주 천천히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다.
  오른쪽에 있는 달팽이가 딱딱한 침처럼 생긴  음경을 알이 가득 들
어 있는 왼쪽  달팽이의 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왼쪽 달팽이는
아직 황홀경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그 달팽이는 이번엔  제 음경
을 세워서 상대의 질 속에 집어넣는다.
  두 달팽이는 삽입하는 즐거움과 삽입당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
고 있다. 달팽이들은  질과 음경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두 생식기의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른쪽의 달팽이가 처음으로 수컷으로서의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
달팽이는 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기이하게 몸을  비틀면서 팽팽해
진다. 암수  한몸의 그 동물들이  네 개의 더듬이를 서로  결합한다.
끈끈물이 거품으로 되었다가 방울이 된다. 찰싹  달라붙은 채 느릿느
릿한 동작으로 흥분을 고조시켜가는 관능의 춤이다.
  왼쪽의 달팽이가  제 더듬이를 세운다. 그도  수컷으로서의 오르가
즘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몸뚱이에 새
로운 관능의 물결이 밀어닥친다. 이번에는  질이 오르가즘을 느낀다.
오른쪽 달팽이도 암컷으로서의 쾌감을 맛본다.
  그러고 나자 두 달팽이의 더듬이가 아래로  처지고, 사랑의 화살이
뒤로 물러나고 질이 다시 닫힌다. 그 행위를  다 끝내고 나자 사랑을
나눈 두  달팽이는 같은 극성을  가진 자석으로 변해 서로를  밀어낸
다. 사랑을 끝낸 뒤의 그 모습은 이  세상 만큼이나 오래된 동물계의
현상이다. 쾌락을  주고받는 기계 노릇을  마친 두 달팽이가  천천히
멀어져간다. 상대방의 정자로 자기 알을 수정시킨 채로.
  103683호가 그  아름다운 장면에 충격을  받아 넋을 잃고 있는  사
이, 4000호가 한  달팽이에게 덤벼든다. 4000호는 사랑  뒤끝의 피곤
함을 틈타 두  달팽이 중에서 커다란 쪽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달팽이들이 다시 껍데기 속으로 몸을 숨긴 것이다.
  늙은 탐험 개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제까짓  것들이 다시 기어나오
지 않고 배기랴  싶은 것이다. 4000호가 오랫동안 물러서지  않고 기
다린다. 마침내 겁먹은  눈 하나가 그 다음엔 더듬이  하나가 껍데기
밖으로 비집고 나온다. 그 복족류 동물이 제  작은 목숨 주위의 세계
가 어떠한지를 알아보려고 나온다.
  두 번째 더듬이가  나오자 4000호가 달려들어 위턱으로  힘껏 눈을
물어뜯는다. 눈을 잘라내기라도  할 기세다. 그러나 그  연체 동물이
몸을 오그리면서 소용돌이  진 껍데기 안으로 탐험  개미를 빨아들인다.
  후룩!
  4000호를 어떻게 구하지?
  103683호가 숙고한다.  세 개의 뇌  가운데 하나에서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103683호는  위턱으로 조약돌을 하나 들어서  껍데기를 힘
컷 두드리기  시작한다. 망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이
껍데기는 무른 묵재 같은 것이 아니다.  톡톡거리는 소리는 달팽이에
게 음악 소리를 만들어줄 뿐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103683호가 이번에는  지렛대를 찾아낸
것이다. 103683호는  달팽이를 뒤집어엎을  생각으로 단단한  잔가지
하나를 들고 작은 돌을 축으로 삼아 지렛대에  온 무게를 싣는다. 여
러 번  되풀이하자 껍데기가 앞뒤로 흔들리더니  뒤집어진다.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위를 향해 있다. 마침내 해낸 것이다!
  103683호가 나선을 따라 기어올라가 우물 속처럼  텅 빈 껍데기 아
래로 몸을  기울이다가 그 연체  동물을 찾아 뛰어들어간다.  한참을
미끌어져들어가자 끈적거리는 갈색 물질이  와닿는다. 미끈거리는 끈
끈물속을 헤쳐나가노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103683호가 물렁물렁
한 살덩이를 찢기 시작한다. 개미산을 사용할  수 없다. 자칫하면 자
기가 그 산에 녹아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끈끈물에 이내 새로운 액체가 섞여든다. 달팽이의  투명한 피가 흐
르는 것이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달팽이가 몸을 축  늘어뜨리면서
두 개미를 껍데기 밖으로 밀어낸다.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난 두 개미가 한참 동안  서로 더듬이를 어루만져
준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된 달팽이가 도망을  가려 하지만 살덩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두 개미가 달팽이를  다시 붙잡아 가뿐하게  죽여버린
다. 눈을 겸하고  있는 더듬이를 내놓고 일이 돌아가는  판세를 지켜
보던 다른 네  달팽이는 겁에 질려서 껍데기 맨 밑바닥에  바짝 움크
리고 있다. 그들은  하룬 낮이 다가도록 그렇게 꼼짝않고  있을 것이다.
  103683호와 4000호는  그날 아침 터지도록 달팽이  고기를 먹었다.
끈끈물에 목욕을 하면서  달팽이를 잘게 썰어 따뜻한  스테이크를 먹
듯이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주머니처럼 생긴 달팽이의 질  안에 알
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달팽이 캐비어다! 그것은 불개미들
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로서, 지방, 당분,  단백질 등등의 귀중한 원천
이다.
  갈무리 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태양에너지를 흠뻑 받은  두 개미가
발걸음도 경쾌하게 남동쪽으로 가는 길을 다시 접어들었다.

      페로몬 분석
  (34번째 실험)
  나는 질량 분광계와  착색판을 이용해서 개미들이 의사  소통할 때
발산하는 냄새 분자  가운데 몇 가지 성분을 알아낸다.  그것을 토대
로 나는 어떤  수개미와 일개미가 나누는 대화를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화는 밤 10시에 엿들은 것인데,  수개미가 빵
부스러기 하나를 발견하면서 나눈 것이다. 그들이  발산한 대화는 이
런 것이었다.
  -메틸-6
  -메틸-4 헥산-3(두 차례 발산)
  -세탄
  -옥탄-3
  그런 다음에 다시,
  -세탄
  -옥탄-3(두 차례 발산)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길을 가던 중, 두 개미는 다른  달팽이들을 만난다. 달팽이들은 모
두 껍데기  속으로 숨는다. 마치  그들 사이에 '저 개미들은  위험한
놈들이다'라는 이야기가 오고가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몸을 감추
지 않는 달팽이가 하나 있다. 그 달팽이는  여보란 듯이 몸을 드러내고 있다.
  의아하게 여긴 두 개미가 다가간다. 그  달팽이는 무거운 덩어리에
얻어맞아 완전히 으깨어져 있었다. 껍데기는 산산  조각이 나고 몸이
터져서 넓게 퍼질러져 있었다.
  103683호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흰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혐의를
둔다. 적의 도시가  가까이 있음에 틀림없다. 103683호가  바싹 다가
들어 시체를 살핀다.  달팽이는 넓적하고 빠르고 아주 힘이  센 어떤
것에 맞았다. 그 정도의 비밀 무기라면  라숄라캉의 기지를 쑥대밭으
로 만들고도 남을 것 같다.
  103683호가 마음을 굳게 먹는다. 꼭 흰개미  도시에 잠입해서 비밀
무기의 정체를  알아내든지, 탈취하든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연방이 쑥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  줄기 강한 바람이 일어난다. 발톱으로  땅을 그러
쥘 겨를도 없이 바람이 두 개미를 하늘로  날려버린다. 두 개미는 날
개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날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 후, 지하실 밖에 있는 대원들이  졸음을 느낄 정도가 되었
을 때, 워키토키가 다시 직직거렸다.
  "여보세요? 국장님? 드디어 바닥에 닿았습니다."
  "그래요? 뭔가 보여요?"
  "막다른 길입니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벽이  있습니다. 아주 최
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가 끝인 것  같습니다. 새김글이 또 하
나 있는데요."
  "읽어봐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그게 다예요?"
  "아니요, 글자판이  하나 있습니다. 글자판을 눌러서  질문에 답하
라는 것 같습니다."
  "옆에 다른 통로는 없어요?"
  "예."
  "다른 사람들의 시체도 안 보여요?"
  "예, 전혀 없어요.  음, 그런데 발자국은 있습니다. 바로  벽 앞에
발자국들이 많이 있군요."
  "이제 어쩌죠, 다시 올라가나요?"
  치안 대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빌솅은 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저 수수께끼와  글자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콘크리트와 강철판들은  무엇인가? 어떤 기계장치
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이 벽을 통해 사라지
지 안았다면 달리 사라질 데가 없지 않은가?
  뒤에 있는 치안 대원들이 계단 위에 걸터앉아  있는 사이, 그는 글
자판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수께끼의 답이  되는 문자들을
정확한 순서에 따라 눌러야 할 것 같았다.  조나탕 웰즈는 자물쇠 회
사에 근무했었다. 그가  건물 현관의 보안 장치를 본따  여기에 기계
장치를 설치한 게 틀림없었다. 암호 단어를  찾아내야 한다고 빌솅은 생각했다.
  빌솅이 치안 대원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네들, 성냥 있나?"
  워키토키의 음성이 조바심을 내며 다그쳤다.
  "여보세요, 빌솅, 당신 뭘 하는 거예요?"
  "정말 저희를 돕고 싶으시면 성냥개비 여섯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어보십시요. 답을 찾으신 다음에 저를 다시 불러주십시요."
  "날 놀리는거예요? 빌솅?"

  마침내 폭풍이 잠잠해졌다. 바람이 이내  잦아들고, 나뭇잎과 먼지
와 곤충들이 다시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각각 무게에  따라 속도대로 떨어진
다.
  103683호와 4000호는 서로  수십 머리의 간격을 두고  땅바닥에 떨
어졌다. 두 개미는 상처를 입지 않고 다시  만나 자기들이 떨어진 장
소를 조사한다.  자기들이 떠나온 고장과는  사뭇 다르게 돌이  많은
지역이다.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풀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바
람을 따라 풀씨들이 날아들었던 모양이다. 두  개미는 자기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모른다.
  두 개미가 그럭저럭  기운을 되찾고 그 을씨년스러운  장소를 떠나
려는데, 또다시 하늘이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구름장이 두터워지
고 시커매진다. 번개가 번쩍이면서 하늘을 가르고  대기 중에 충전되
어 있던 전기를 방출한다.
  동물들은 모두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개구
리들은 물로 뛰어들고  파리들은 조약돌 아래에 몸을  숨기며 새들은
낮게 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두 개미도  급히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빗방울 하나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들은 멀리에 두드러지게
튀어나와 있는 관목  같기도 하고 바위 같기도 한 어떤  형체를 향해
서둘러 나아간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방울과 뿌옇게  피어오르는
비안개 속을 뚫고나아감에 따라 그 형체가  점점 또렷하게 모습을 드
러낸다. 그것은 바위도  아니고 관목도 아니다. 흙으로  지어진 하나
의 거대한 건물이다. 탑이 하나 있는데, 그  끝이 구름을 찌를 듯 아
스라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흰개미 도시다! 동쪽 흰개미 도시다!
  103683호와 4000호는 무시무시한 장대비와 적의  도시 사이에서 오
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두  개미가 흰개미 도시를 찾으
려 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곤란했다. 수백 년간 지
속되어온 두 종  간의 증오와 알력을 생각하자 그들은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어쨌거나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흰개미 도시를 염탐하러 온 것이 아닌던가  하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
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떨리는 몸을 가누며 건물의  발치에 있
는 어둠침침한  입구로 나아간다.  더듬이를 세우고 위턱을  벌리고,
다리를 살짝 구부린 채로,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당당하게 싸우리라
는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흰개미 도시
의 입구에는 병정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기이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두 개미가  거대한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호기심이  이미
가장 기본적인  신중함마저도 잊게 하고  있다. 그곳은 개미  도시와
모든 점에서  다르다. 벽은 흙보다 훨씬  더 단단한 물질로  되어 있
다. 진흙을 굳혀서  나무처럼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통로에는 습
기가 가득차  있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공기  중에는 탄산
가스가 이상하리만치 풍부하다.
  벌써 기온 3도  때의 시간 길이만큼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아직 문
지기 개미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는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두 개미가 걸음을 멈추고 더듬이를  맞대며 상의한다. 이내 계속
가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렇게 나아
가면서 그들은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이  도시의 통로는
두 개미가 태어난 도시의 것보다 훨씬  구불구불한 미로이다. 뒤푸르
씨 샘에서 나오는  그들의 냄새 표지도 벽에 달라붙지  않는다. 그들
은 이제 지상층에 있는지 지하층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두 개미는 가던 길을 되돌아가보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
는다. 끊임없이 낯선 형태의 새 통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완
전히 길을 잃은 것이다.
  그때 103683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띄었다. 빛이다!  두 병정개미
의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려진 흰개미  도시 한복판에 그런
빛이 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두  개미는 빛이
나오는 곳으로 향애 나아간다.
  주황색의 발광체가 하나 있는데 이따금  녹색이나 청색으로 바뀌기
도 한다.  좀더 강력한 빛을 한  번 번쩍거리더니 그  발광체가 꺼진
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다시 작동하면서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그
빛이 개미들의  딱지에서 반짝거린다.  103683호와 4000호는  최면에
걸린 듯 그 지하 등대를 향해 달려간다.

  빌솅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껑충거렸다. 드디어  답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치안 대원들에게 성냥개비들을 어떻게  놓으면 정삼각
형 네개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치안 대원들은  처음엔 얼떨
떨해 하다가 이내 환호성을 질렀다.
  솔랑쥬 두망이 속을  끓이며 수수깨끼를 풀고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찾았어요? 찾았어요? 답이 뭐예요?"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기
계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 다음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빌솅, 무슨 일이에요? 말해 봐요!"
  워키토키가 시끄럽게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지지직 소리),  길을 뚫었습니다.  뒤에 통로가(지지직  소리)
하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지지직 소리) 통하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
다!"
  "잠깐! 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든 거예요?"
  그러나 빌솅과 그의 부하들은 지하실 밖에서  내리는 지시를 더 이
상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워키토키의  스피커가 작
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선이 끊어진 듯했다. 수신은 할  수 없었지
만 그래도 송신은 할 수 있었다.
  "와! 대단한데요.  안으로 들어올수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둥근
천장이 있고 멀리에 빛이 있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잠깐! 당신 지금 빛이라고 했어요! 그 아래 빛이 있다고요?"
  솔랑쥬 두망이 헛되이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그들이 저기 있습니다!"
  "누가 있단 말이예요? 시체가 있어요? 대답  좀 해봐요! 왜 이래요 정말!"
  "조심해."
  귀청을 찢는 폭발음이 잇달아 들리고  비명소리가 뒤따르더니 통신
이 끊겼다. 밧줄은  더 이상 풀리지 않은 채로 팽팽해져  있었다. 지
하실 밖의 경찰관들은 밧줄이 어디에 끼인  것이 아닌가 하고 잡아당
겨보았다. 처음엔 셋이 밧줄에 달려들었다가 나중에  다섯이 붙어 당
겨보앗다. 갑자기 밧줄이 느슨해졌다.
  경찰관들은 밧줄을  끌어올려 그것을 부엌에서 식당까지  끌고나가
식당을 거대한 실패로 삼아 감았다. 마침내  밧줄의 끈이 나왔다. 이
빨로 갉은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끊어져 있었다.
  "어떻게 하죠, 국장님?"
  경찰관 가운데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이걸로 끝이야.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기자들한테  아무 얘기도
하지 마. 누구한테든  아무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이  지하실들을 되
도록 빨리  폐쇄해 버려. 수사는  끝난 거야. 사건을 완결지을  테니
다시는 이 저주받은 지하실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말라구. 자, 빨
리, 가서 벽돌하고  시멘트를 사 오게. 그리고 자네들  말이야, 치안
대원들의 미망인들을 잘 무마하라구."
  정오를 갓 넘기고  나서, 경찰관들이 마지막 남은 몇  개의 벽돌을
쌓으려고 하는데, 아래에서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다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관들이 길을 틔웠다. 어둠  속에서 머
리 하나가  나타나더니 뒤를 이어  생존자의 몸 전체가  빠져나왔다.
치안 대원 한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 이제  아래에서 일어난 일의 자
초 지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엄청난 공포로 일그러
져 있었다. 어떤 습격을 받은 듯 안면  근육의 일부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유령이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코 끝이 찢어져서  피가 철
철 흘렀다. 그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떨고 있었다.
  "나브나아아아나...."
  그가 토막난 소리로 드듬거렸다.
  그의 축 늘어진 입에서 끈끈한 침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가 상
처 투성이의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동료들이 보기에 그  상처는 칼
로 몇 차례 맞아서 생긱 것으로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습격을 받은 거야?"
  "난봐아아아았난!"
  "저 아래 살아 있는 사람이 또 있어?"
  "봤어나아아봐봐나보았!"
  그가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은 그의 상처
를 치료하고 그를 정신 치료 센타에 데려다준  다음, 지하실 문을 막았다.

  두 개미의 다리가  땅에 아주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  빛의 세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두  개미가 오고 있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것
처럼 빛이 가볍게 떨고 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개미들이 정말 그 빛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할 양으로 가만히 걸음
을 멈춘다. 빛은  여전히 점점 더 밝아지면서 통로의  구석구석을 모
두 비추고 있다. 두 첩보 개미는 그  이상한 발광체가 눈치채지 못하
게 재빨리 몸을 숨긴다. 그런 다음 빛의  세기가 잠시 약해지는 틈을
타서 그 발광체에 덤벼든다.
  이런, 알고 보니  인광을 발하는 딱정벌레의 하나다.  발정기를 맞
은 개똥벌레다. 침입자들을 발견하고부터  개똥벌레는 꽁무니에서 빛
을 발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침입자들이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자,  살며시 약한 푸
른 색  빛을 다시 발하기 시작한다.  희미한 빛을 발하는  품이 아직
침입자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103683호가 적의가  없다는 뜻의 냄새를 보낸다.  딱정벌레라면 으
레 이해할 그 언어를 개똥벌레는 이해하지  못한다. 개똥벌레의 푸르
스름한 불칭이  사그라들더니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가 조금씩  불그스
름해진다. 개미들은 그  새로운 불빛이 의문의 뜻을 담고  있다고 추측한다.
  '우리는 이 흰개미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
  늙은 탐험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처음에는 아무 대꾸가  없다
가, 잠시 뜸을 들인 뒤에 개똥벌레가  빛을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그
것은 화났다는 표시  같기도 하고 기쁘다는 표시 같기도  하다. 의아
해 하면서 개미들이 기다린다. 개똥벌레가 점점  빨리 불빛을 깜빡이
면서 옆  통로로 간다.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개미들이  뒤를 따른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훨씬 더 선선하고 습한 곳이다.  어디선가 음
산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고뇌의 절규 같은 것이  냄새와 소리의
형태로 번져오고 있다.
  두 탐험 개미가  의문을 갖는다. 그럼, 빛을 발하는 저  곤충은 말
은 못해도 듣기는 완벽하게 듣는다는 것인가?  그들의 의문에 대답하
기라도 하듯 개똥벌레가  긴 간격을 두고 불을 켰다 껐다.  한다. 마
치 '걱정하지 말고 나를 따라오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셋은 이상한  땅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서 마침내  통로들이
훨씬 넓은, 아주 추운 지대로 들어간다.
  비명소리가 훨씬 격렬하게 들려온다.
  '조심해!'
  4000호가 갑자기 페로몬을 발한다. 103683호가  몸을 돌린다. 개똥
벌레 불빛에 괴물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얼굴은 쭈글쭈글하
고 몸뚱이는 속이  비치는 하얀 수의를 걸치고 있다.  103683호가 강
렬한 공포의 냄새를  발한다. 그 서슬에 두 동료도  숨막히는 긴장을
느낀다. 미라 같은 그 괴물이 계속  다가온다. 괴물은 그들에게 말을
붙이려고 몸을 숙이는 듯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땅바닥에 몸을
길게 뻗는다. 껍데기가  벌어지면서 괴물 같은 벌레가 갓  태어난 생
명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흰개미 번데기다!'
  그 번데기가 어떤 구석진 곳에서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껍
데기가 갈라지게 되자 비명을 내지르면서 계속  몸을 뒤틀고 있는 것
이다. 비명소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던 것이다.
  미라는 그것 하나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더 있다.  그러니까 세
곤충은 흰개미의 영아실에 있는 셈이다. 수백  개의 번데기가 벽들에
기대어 수직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4000호는  그 번데기들을 조사
해보고 나서  일부는 돌보지 않아서  죽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살아
있는 번데기들은 유모  흰개미들을 부르느라고 고통에 찬  냄새를 뿜
어대고 있다.  유모 희개미들이 번데기들을  핥아주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기온 2도 때의 시간  길이만큼 되었다.
번데기들은 모두 영양 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듬살이 곤충치고 단  1도 때
의 시간  길이만큼이라도 알들을  방치하는 곤충은 없다.  그렇다면?
똑같은 생각이 두  개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흰개
미 일개미들이 모두 죽고 번데기들만 남아 있다는 말인가!
  개똥벌레가 다시  불빛을 깜박여  다른 통로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상한 냄새가 공기 중에 섞이고  있다. 103683호는 어떤 단
단한 것을 밟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홑눈이
없어서 병정개미는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없다.  개똥벌레가 다
가와 103683호의 다리를  비춘다. 병정 흰개미의 시체다!  완전히 하
얗고 배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개미와  닮은 점이 많다.
  수백 마리의 하얀  시체가 땅에 깔려 있다. 엄청난  대학살이 벌어
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이한 것은  시체들에 상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이 찾아
온 것이다.  죽어 있는 흰개미  도시의 거주자들은 여전히  일상적인
노동을 할 때의 자세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한 시체도 있고  위턱 사이에 나무를 물고 자르고 있는  듯한 시체들
도 있다.  이런 끔찍한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4000호가 시체들을 조사한다. 시체에는 아주 독한  냄새가 배어 있
다. 두 개미가  전율을 느낀다. 독가스다. 바로 이것  때문에 흰개미
도시로 파견했던 첫번째  첩보 분대가 사라진 것이고  마지막 파견대
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개미가 상처도 없이 죽었던 것이다.
  두 개미가 냄새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가
스가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데기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
까? 늙은 탐험개미가 하나의 가설을  내놓는다. 번데기들은 면역적인
특별한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다.  번데기들은 고치 덕분에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번데기들은  이제 독에 면역이 되어  있음이 틀림
없다. 바로 이  면역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곤충들은 돌연  변이 세대
를 만들어 어떠한 살충제에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치명적인  가스를 누가 흰개미 도시  안으로 끌어들였단
말인가? 그건 정말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
를 풀려고 나선 103683호에게 또 다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4000호가 나가고  싶다고 하자, 개똥벌레가 알았다는  뜻으로 불빛
을 깜박인다. 두  개미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흰개미의  어린 벌
레들에게 섬유소  몇 덩이를 건네주고  출구를 찾아 그 자리를  떠난
다. 개똥벌레가 그들의 뒤를 따른다.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병정 흰
개미의 시체 대신에  여왕 흰개미를 돌보던 일개미들의  시체가 나타
난다. 어떤 시체들은 위턱 사이에 여전히 알들을 물고 있다.
  건물의 구조가 점점 복잡해 진다. 세모꼴의  단면을 가진 통로들에
는 여러 가지  기호들이 새겨져 있다. 개똥벌레가 불빛의  색깔을 바
꾸어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다.  뭔가를 감지한 것임에  틀림없
다. 과연 통로의 안쪽에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 개미와 개똥벌레는  다섯 마리의 거대한 경비  흰개미가 지키고
있던 어떤  동굴 앞에 다다른다.  경비 흰개미들은 모두 죽어  있다.
동굴 입구는 스무  마리쯤 되는 작은 일개미들의 시체가  막고 있다.
두 개미가 시체들을 다리에서 다리로 건네가며  치운다. 그러자 거의
공처럼 생긴 동굴이  드러난다. 여왕 흰개미의 방이다.  아까 소리가
흘러나왔던 곳이 바로 여기다.
  개똥벌레가 흰색의  아름다운 불빛을 비추자 민달팽이처럼  이상하
게 생긴 벌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왕 흰개미다.  여왕개미를 우스
꽝스럽게 흉내낸  모습이다. 자그마한 머리와 구부정한  가슴 아래에
길이가 50머리 가까이  되는 기이한 배가 길게 이어져  있다. 지나치
게 비대해진 안면 돌기가 경련 때문에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여왕 흰개미는 고통에  겨워 작은 머리를 흔들면서  소리와 냄새의
형태를 띤  울부짖음을 발하고 있다.  일개미들의 시체가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었던 탓에 가스가 스며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
왕은 이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 배를 보게! 알들이 속에서 자라고  있는데 여왕은 혼자서 알을
낳을 수 없는 거야.'
  개똥벌레는 천장으로  올라가더니 천진 난만한 모습으로  오렌지색
불빛을 비춘다. 조르쥬 드 라투르의 그림에 나오는 불빛 같다.
  두 개미가  힘을 합쳐 애쓴  덕분에 커다란 알 주머니에서  알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생명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이라  할 만하
다. 고통이 덜어지자 여왕 흰개미가 소리치기를 멈춘다.
  여왕 흰개미가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원초적인  형태의 냄새
언어로 누가 자기를 구해 주었느냐고 묻는다.  여왕 흰개미는 개미의
냄새를 알아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대들은 가장개미들인가?
  가장개미는 유기 화학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종이다. 체구가
큰 개미들로서  북동 지역에 살고  있다. 가장개미는 풀즙,  나뭇진,
꽃가루, 침을 알맞게  섞어서 통행 허가 페로몬, 자취  페로몬, 의사
소통 페로몬 등 어떤 페로몬이라도 위조해 낼 수 있다.
  가짜 페로몬으로 위장을  하고 나면 가장개미들은 흰개미  도시 같
은 곳에 발각되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잠입하고 나서
가장개미들은 도시를 약탈하고 거주자들을  살해한다. 희생자들은 그
드리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가장개미가 아니오.'
  여왕 흰개미가 두  개미에게 자기 도시 안에  생존자들이 있느냐고
묻자 개미들은 없다고 대답한다. 여왕 흰개미는  고통받는 시간을 단
축할 수 있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한다. 다만  그러기에 앞서 한 가지
알려주고 싶은게 있다고 한다.
  여왕 흰개미는 자기  도시가 무엇 때문에 파괴되었는지를  알고 있
다. 최근에 흰개미들은 세계의 동쪽 끝을  찾아냈다. 거기는 이 땅덩
어리의 끝으로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는 시커멓고  반질반질한 고장이다.
  '거기에는 아주 빠르고  아주 사나운 기이한 동물들이  살고 있고.
그 동물들이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오.  그들은 무엇이든 박살낼
수 있는 검은  판으로 무장하고 있소. 게다가 그들은  이제 독가스까
지 사용하고 있지요.'
  듣고 보니 옛날  비스탱 가 여왕이 품었다는 야망이  생각난다. 세
계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두 개미가 여왕 흰
개미의 얘기를 듣고 어리둥절해져 있다.
  두 개미는 여태껏  지구는 너무 광대해서 그  가장자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여왕  흰개미는 세계의 끝이
가까이 있다고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곳을 괴물들이 지키
고 있다고  한다. 비스탱 가 여왕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니란 말인
가?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라서 두 개미는  무엇부터 물어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데 그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뭐 하려고  여기까지 진
출한 걸까요? 서쪽 도시들을 침략하려는 건가요?'
  뚱뚱한 여왕  흰개미는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아는 게  없다. 그
흰개미는 이제 죽기를 바라고 있다. 흰개미가  자기를 죽여달라고 간
청한다. 흰개미는  제 심장을 멎게 할  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그
흰개미를 죽여야 한다. 흰개미가 나가는 길을  일러주고 난 뒤에, 두
개미가 흰개미의 목을 자른다.
  두 개미는 알  몇 개를 주워먹고 이제는 한낱 유령  도시에 불과한
그 숨막히는  도시를 떠난다. 그들은  도시 입구에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자초지종을  담은 페로몬을 뿌려놓는다. 연방의  탐험 개미로서
자기들의 의무를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똥벌레가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개똥벌레도 비를 피하려다
가 흰개미 도시에서  길을 잃었던 모양이다. 이제 날씨가  다시 화창
해졌으니 개똥벌레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으로 되돌아가,
먹고, 빛으로  암컷을 유인하고, 교미하고,  알 낳는 일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런게 개똥벌레의 삶이 아닌가!
  두 개미의 시선과 더듬이가 동쪽을 향한다.  이곳에서는 별다른 것
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두 개미는 세계의  끝이 멀지 않다는 것
을 알고 있다. 저쪽에 세계의 끝이 있다.

      문명의 충돌
  두 문명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미묘하다. 인류가 경험한  것 중
에서 재조명해  볼 만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18세기에
노예로 끌려나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경우를 주목해 볼 만하다.
  노예가 된 아프리카  흑인들의 대부분은 평원이나 숲속에  터를 잡
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웃의 왕  하나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전쟁을 걸어오더니,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서 사슬로 묶고 해안 쪽으로 끌고갔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긴 여정 끝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두 가
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바다였고 또 하나는 하얀 피부를  가진 유럽
인들이었다.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사자
들이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인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외계인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피부색도 이상했으며 입고 있는  옷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흑인들이 무서워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너무나 겁에 질린 나
머지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상어의 밥이 된  사람도 있었다. 살아남은
흑인들은 갈수록 놀라운 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
고 놀랐을까? 한 가지 예로 그들은 백인들이  포도주 마시는 것을 보
았다. 그들은 그것이 피, 그것도 자기들의 피라고 믿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여왕개미 56호가 허기를  느낀다.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자기 몸
이 먹이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한 도시의 전 구성원들이  먹이를 요
구하고 있다. 뱃속에 품고 있는 겨레붙이들에게  어떻게 영양을 공급
할 것인가? 56호는  마침내 산란 구멍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몇백 머
리쯤 기어나가서 솔잎 세 개를 가져와  그것들을 열심히 핥고 잘근잘근 씹는다.
  그것으로는 허기를 메울 수가 없다. 사냥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
으나 그럴 힘이 없다. 도리어 주위에 숨어  있는 수천의 포식 동물에
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꼼짝없이 구멍에 틀어박혀서  죽음을 맞아야 할판이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알 하나가 빠져나온  것이다. 최초의
클리푸캉 백성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처음에  56호는 알이 빠져나오
려는 기미를  아주 어렴풋하게 느꼈다.  56호는 기력이 빠진  다리를
흔들고 정성껏 배에  힘을 주었다. 알이 잘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끝난다. 마침내 알이 흘러나온다.  자그마하고 거의 검게 보
일 정도로 잿빛 도는 알이다. 그런 알은  부하가 되어도 죽은 몸으로
태어나는 개미가 될  것이다. 게다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영양을 공
급해 주어야 하는데,  56호에게는 그럴 기력도 없다.  그래서 56호는
자기의 첫번째 자식을 먹어버린다.
  그러고 나자  56호에게 힘이 솟는다.  배에서 알이 하나  빠져나온
대신 위에 알이 하나 들어간 것이다. 알  하나를 희생시켜 힘을 찾은
56호가 두 번째  알을 낳는다. 첫번째 알만큼 시커멓고  자그마한 알
이다. 56호는  그것도 먹어치운다. 한결  기력이 좋아진다. 세  번째
알은 빛깔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도 56호는 그것을 삼켜버린다.
  열 번째 알을 삼키고 나서야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알 먹는 방식을
바꾼다. 알의 빛깔이 연한 잿빛으로 되었고  크기도 여왕개미 눈알만
해졌다. 클리푸니는 세  개의 알을 낳아서 하나를 먹고  나머지 둘은
살려서 제 몸 밑에 두고 덥혀준다.
  클리푸니가 계속 알을  낳는 동안에, 운이 좋았던 두  알은 길쭉한
애벌레로 탈바꿈한다.  그 애벌레들의 머리에는 기이한  주름이 잡혀
있다. 애벌레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산술이 복잡해진다. 알  세 개를 낳을 때마다 하나는  여왕개미가 먹
고 나머지 두  개는 애벌레들이 먹는다. 그것이 바로  외부와의 교류
가 차단된 상황에서 무로부터 유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한 애벌레
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여왕개미는 그  애벌레를 다른 애벌레에게 먹인
다. 애벌레가 진짜 개미로 탈바꿈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자
면 그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애벌레는 여전히 굶주려 있다.  그 애벌레가 몸을
비틀며 울부짖는다. 겨레의 구성원들을  그렇게 먹어치우고도 허기를
메꾸지 못한 것이다. 결국 클리푸니는 개미가 될  뻔한 그 첫번째 애벌레를 먹어버
린다.
  나는 그 일을 해내야 돼. 나는 그  일을 해내야 돼. 클리푸니가 그
렇게 되뇐다.  클리푸니는 수개미  327호를 생각하며 한꺼번에  다섯
개의 알을 낳는다. 빛깔이 훨씬 맑아졌다.  클리푸니는 그 가운데 두
개를 먹고 나머지 셋을 키운다.
  그렇듯 영아 살해에서  산란으로 생명이 갈마든다. 3보  전진을 위
한 2보  후퇴다. 그렇게 잔인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완전한
개미의 원형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개미는 영양이 모자라서 아주 자그마하고  허약한 편이다. 하지
만 클리푸니가 마침내  최초의 클리푸니 개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
한 것이다. 도시를 만들기 위한 잔혹한 경기에서  이제 반은 이긴 것
이다. 그 일개미는 여왕개미보다 퇴화되기는 했어도  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주위 세계에서 곤충의 시체, 씨앗,  나뭇잎, 버섯 등과 같은
식량을 날라올 수 있다. 그 일개미가 실제로 그런 일을 했다.
  클리푸니는 마침내 정상적으로 영양을 공급받고  제대로 된 알들을
낳는다. 알들이 훨씬 맑고 단단해진다.  견고한 껍데기가 추위로부터
알들을 보호한다. 애벌레들의 크기도 알맞다. 이  새 세대의 어린 개
미들은 크고 힘이 세다. 그들이 클리푸캉  구성원들의 토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동안 먹이를 날라다주었던,  첫번째 일개미
는 어떻게 되는가?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그 일개미는  아주 빠르게
죽음을 맞고 제 겨레붙이들의 먹이가 된다.  그러고 나서, 도시의 건
설을 위해 희생된  모든 죽음과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이로써 클리
푸캉이라는 개미 도시가 고고를 울리게 되었다.

       모기
  모기는 인간과 가장 흔하게 대결하는 곤충이다.  우리는 저마다 한
번쯤은 잠옷 바람으로 침대 위에 올라서서  한 손에 끌신을 움켜쥐고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일은 모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살갗을 가렵게 하는
물질은 모기의 주둥이에서  나온 소독용 침일 뿐이다. 그  침이 없으
면 모기는  살갗을 찌를 때마다  오염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기는
살갗을 찌를 때 언제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지점을 조심스럽게 골라서 찌른다.
  인간에 맞서기 위해 모기들은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모기들은 더
욱 빨라지고 더욱 신중해지는 법을 터득했고,  더욱 잽싸게 날아오르
는 법도 터득했다. 모기를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최
근 세대에 속하는  어떤 뻔뻔스러운 모기들은 희생자의  베개밑에 숨
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모기들은 에드가 엘런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에 나오는 원리, 즉 가장 좋은 은닉처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곳
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을 찾으려
고 언제나 더 멀리 갈 생각만 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오귀스타 할머니는 꾸려놓은 가방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일 시바리트 가로 거처를 옮기려는 참이다.  놀랍게도 에드몽은 조
나탕의 실종을 예상했던지 유언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두었었
다. '만일 조나탕이  죽거나 사라지면서 유언서를 직접  작성하지 못
하게 되면, 나의  어머니 오귀스타 웰즈가 내 집에  오셔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어머니마저 사라지거나  어머니께서 유증을 거부하신
다면, 다니엘 로젠펠트가  그 집을 상속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다니
엘 로젠펠트마저 유증을 거부하거나 사라지면, 자종  브라젤이 그 다
음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에 비추어 보면,  에드몽이 적어도 네  명의
상속자를 미리  정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에드몽이 인간
을 혐오했다. 한들, 제 조카나 어머니가  죽기를 바랄 이유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도 들었다. 자종 브라젤은 또  어떤가! 그는 에드몽과 가
장 절친했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한 가지 호기심 어린 생각이 오귀스타  할머니의 뇌리를 스치고 지
나갔다. 혹시  에드몽은 자기가 죽은  뒤에 모든 일들이  시작되도록
꾸며놓고 미래를 관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두 개미는 며칠 동안 해 뜨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4000호의 건
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도 그 늙은 병정개미는  불평없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정말  용감하고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진 개미
이다.
  어느 날 해질  무렵, 두 개미는 어떤 개암나무  줄기를 기어오르다
가 문득  자기들이 빨강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깨달았다. 남쪽
에서 세상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개미들이 또  올라온 모양이다. 그들
의 기다란 몸뚱이에는 독침이 붙어 있다. 두  개미는 그 독침에 살짝
닿기만 해도 즉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  불개미는 그런 것은 생
각하고 싶지도 않다.
  퇴화된 용병 개미 몇 마리를 도시 안에서  본 적은 있어도, 103683
호는 바깥 세계에서  빨강개미를 본 적이 없었다. 결국  동쪽 지방에
와서 그들을 보게 된 것이다.
  빨강개미들이 더듬이를  흔든다. 그들은  벨로캉 개미들과  똑같은
언어로 의사 소통을 할 줄 안다.
  '너희들은 제대로  된 통행 페로몬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나가라!
여기는 우리 구역이다.'
  두 불개미가 자기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이며 동방의 세계 끝
으로 가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빨강개미들이 의논한다.  빨강개미들
은 두 개미가 불개미 연방의 구성원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벨로캉 연방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힘이 강하고 최근에 있은  결혼
비행 전까지 64개의  도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벨로
캉 군대의 명성이  서쪽 강을 넘어갔던 것이다. 이동성을  지닌 빨강
개미들인지라 언젠가는 숙명적으로 불개미 연방의  영토를 지나게 될 날이 있으리라.
  더듬이들의 떨림이  점차로 잦아든다. 각자가 내놓은  의견을 종합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빨강개미 한 마리가  자기 무리의 의견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원한다면 세계의 끝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  너희와 함께 갈 용의도 있다. 그  대신 우리
에게 너희 신분 페로몬 중의 일부를 남겨주기 바란다.'
  그 정도면  공정한 거래다.  103683호와 4000호가  빨강개미들에게
자기들의 페로몬을  주는 것은 연방의  광활한 영토, 어디나  드나들
수 있는 귀중한 통행 허가 냄새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
계의 끝에 갈 수 있다는 것과 거기에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다.
  빨강개미들이 위쪽  가지에 만들어놓은 야영장으로 불개미들을  데
려간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둥지다. 실을 자아 바느질을  하는
빨강개미들이 커다란 개암나무 이파리 세장의  가장자리를 맞대고 꿰
매어서 임시 둥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파리 하나는 바닥이  되고 나
머지 둘은 측벽 구실을 한다.
  103683호와 4000호는 한 무리의 천막개미들이 밤이  되기 전에 '지
붕'을 씌우려고  일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관찰한다.  천막개미들이
천장 구실을 할 개망나무 잎새를 고른다. 그  잎새를 다른 세 잎새에
붙이기 위해서 일개미  열 마리가 차곡차곡 포개지면서  천장 잎새에
닿을 수 있을 만한 봉긋한 둔덕을 만든다.  살아 있는 사닥다리라 할만하다.
  빨강개미들의 더미가  몇 차례 무너진다.  잎새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 그러자 빨강  천막개미들은 방법을 바꾼다. 한  무리의 일개미
들이 천장 잎새 위에 기어올라가 사슬을  엮더니 잎새의 뾰족한 끝에
매달린다 아래쪽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닥다리가  만들어져 있고,
천장 잎새에 매달린 사슬이 그 사다리에  닿으려고 점점 아래로 내려
온다. 그러나  아직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 천장 잎새에  매달린
사슬의 끝에 빨강개미들이 다시 포도송이처럼 달라붙는다.
  이제 거의 됐다.  잎줄기가 휘어졌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사슬을 이루고  있는 개미들이 간격을 메꾸기 위해  진자 운동
을 시작한다. 한번 흔들릴 때마다 사슬이  늘어지면서 금방이라도 끊
어질 듯하면서도 별탈이 없다. 마침내 아래위  양쪽 곡예사들의 위턱
이 하나로 연결된다.
  착!
  2단계 작업은 사슬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다. 사슬  가운데에 있는
일개미 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대열 밖으로 빠져나와  동료들의 어깨
위로 올라가고, 모든  천막 개미들이 두 잎새를 접근시키기  위해 잡
아당긴다. 천장 잎새가  조금씩 야영장 위로 내려와 바닥  위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것으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상자에 뚜껑이 생겼으면  이제
그 것을 봉해야 한다. 늙은 빨강개미 한  마리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서 커다란 애벌레  한 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그  애벌레에게서 실을
자아내려는 것이다.
  빨강개미들은 잎새들의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맞추어  서로 닿게 해
놓은 다음 싱싱한 애벌레를 갖고 온다. 가련한  그 애벌레는 아주 조
용한 상태에서 허물벗기를 하려고 제 고치를  짓던 중이었는데, 이제
는 그럴 겨를이 없게 되었다. 일개미 한  마리가 실뭉치와도 같은 그
애벌레에서 실 하나를 잡고 뽑아내기 시작한다.  일개미는 침을 약간
묻혀서 그  실 끝을 잎새에  붙이고 애벌레를 옆의 일개미에게  넘긴
다. 애벌레는  실 하나가 뽑혀나간 걸  느끼고 그 대신에  다른 실을
만들어낸다. 실이 뽑힐 때마다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애벌레는 자꾸
자꾸 실을 뱉어낸다.  일개미들은 그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개미
들은 그 살아  있는 베틀을 위턱에서 위턱으로  건네가면서 아낌없이
실을 뽑아낸다.  자기들의 어린  자식이 기진 맥진하여  죽어버리자,
그들은 다른 애벌레를  가져온다. 그렇게 해서 그 천막  하나를 짓는
데 열두 마리의 애벌레들이 희생된다.
  천장 잎새의  두 번째 가장자리를  막고 나니 야영장은 이제  하얀
모서리를 지닌 풀빛 통처럼 보인다. 103683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본다.
  '까망개미들은 용병들인가?'
  '아니다, 그들은 노예들이다.'
  빨강개미들이 노예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금시 초문이다.
빨강개미들 가운데  하나가 설명에 응한다. 그들은  최근에 서쪽으로
가고 있는,  노예 제도를 가진  무사개미 떼와 만났다고 한다.  그때
이동식 천막 둥지를  하나 준 대가로 그들에게서  까망개미의 알들을
받았다는 것이다.
  103683호는 대화의 상대방을 바로 놓아주지 않고,  그 개미들을 만
났을 때  싸움을 벌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빨강개미들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무시무시한  개미들은 배가 불러
있는 상태였고, 노예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게다가 빨강개
미들의 독침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막 둥지와 맞바꾼  알에서 나온 까망개미들은 자기  주인들의 통
행허가 냄새를 지니고  그들이 자기네 어버이라도 되는  것처럼 섬긴
다. 그들은 유전 형질대로라면 자기들이 다른  개미들의 노예가 아니
라 다른  개미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개미가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빨강개미들이 이야기해  준 것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저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두렵지 않은가?'
  사실 덜컥 겁이  날 때가 있긴 있었다고 한다.  대개 빨강개미들은
말안 듣는 노예들을  격리시킴으로써 그런 사태에 대비해  왔다는 것
이다. 자기들이 어떤  둥지에서 탈취당해 와서 다른 종의  일원이 되
었다는 사실을  까망개미들이 모르고 있는  한, 반란을 일으킬  만한
현실적인 동기는 없으리라는 거였다. 개암나무 위에  밤고 추위가 찾
아온다. 빨강개미들은  두 탐정 개미에게  야간의 수면 시간을  보낼
자리를 마련해 준다.

  클리푸캉이 차츰차츰 커진다.  제일 먼저 궁궐을 마련했다.  그 궁
궐은 그루터기 속에  건설되지 않고 그 자리에 묻혀 있던  이상한 물
건 안에 건설되었다.  그 이상한 물건이란 사실은 녹슨  통조림 깡통
이었다. 설탕에 절인  과일 3킬로그램이 들어 있던  통으로서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서  나온 폐품이었다. 그  새 궁궐 안에서  클리푸니는
개미들이 날라다 주는  당분과 지방과 비타민을 먹으면서  열심히 알을 낳는다.
  제일 먼저 나온 일개미들은 궁궐 바로  밑에 부식토의 열기로 난방
이 되는  영아실을 만들었다. 도시  건설 공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잔가지 지붕과 햇빛방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러는 게 편리한 점이 많다.
  클리푸니는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기술을 활용해서 자기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한다. 버섯  재배실, 꿀단지 개미, 진딧물  가축, 송악
뿌리 버팀대, 분비물 발효실, 곡물 가루  제조실, 용병실, 첩보원실,
유기화학실 등을 모두 갖추고 싶은 것이다.
  여왕의 그러한 뜻이 도시 구석구석에 전해  진다. 젊은 여왕개미는
자기의 열정과  희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여왕개미는
클리푸캉이 다른 도시들과 같은 연방의 한  도시가 되는 것으로 만족
하지 않을  것이다. 여왕개미는 자기  도시로 하여금 진보의  선두에
서서 개미 문명의  첨단을 걷게 하리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왕개미인지라 이것저것 제안도 많다.
  예를 들어 지하  12층 주위에서 지하수를 발견했을  때 여왕개미는
물이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요소라면서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했다.
  제안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떤  동아리가 물방개, 닷벌레,  물벼룩
등과 같은 민물에  사는 벌레들을 연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벌레
들은 식용에  적합한가? 장차 웅덩이를 만들어놓고  그것들을 사육할 수 있을까?
  여왕개미가 행한 최초의 연설은 진딧물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전란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무기들이  나날이 복잡해
지고 있어서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무기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이다. 바깥 세계에서 사냥하는 일이 위태로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
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도시는 가능한  한 깊
숙이 뻗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모든 방법보다 진딧물 사육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장 아래
층에  축사를  짓고 그  가축들을  거기에서  키우는 게  좋을  것이다.....'
  일개미 30마리가 밖으로 나가더니 알 낳기  직전에 있는 진딧물 두
마리를 가져왔다. 몇  시간 지나서 어린 진딧물 수백  마리가 생겨났
고 일개미들은  진딧물의 날개를 잘랐다.  일개미들은 그 가축  떼를
지하 23층에 살개 하면서 무당벌레로부터  지켜주고 싱싱한 잎새들과
즙이 많은 줄기들을 듬뿍 준다.
  클리푸니는 탐험  개미들을 사방으로  파견했다. 돌아오면서  어떤
탐험 개미들이 느타리 홀씨를 가져왔다. 일개미들이  그 홀씨들을 버
섯 재배장에  심었다. 탐구욕이 왕성한 여왕개미는  어머니가 꿈꾸던
일을 실현해  낼 생각까지 했다.  여왕개미는 동쪽 경계에  벌레잡이
식물의 씨를 한  줄로 심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를
흰개미들의 공격과 그들의 비밀 무기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여왕개미는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와 수개미 327호의  암살과 화강
암 밑에 감추어놓은 식량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여왕개미는 벨로캉 쪽으로 한 무리의 사절을  파견했다. 이 사절이
띠고 있는 공식적인  임무는 어머니 여왕개미에게 예순다섯  번째 도
시가 건설되었다는 사실과  그 도시가 연방에 가맹한다는  사실을 알
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그 사절들은  벨로캉 지하 50층
에서 조사를 계속하라는 임무를 받고 있었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애지 중지하는 세피아 사진을  회색 벽 위에 핀
으로 고정시키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할머니는 안전  사슬이
걸려 있음을 확인하고 문을 빠끔히 열었다.
  아주 깔끔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저고리 깃 위에  비듬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웰즈 부인.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아드님 에드몽
의 동료, 르뒤크 교수입니다. 제가 온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
인의 손자와  증손자가 지하실로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방대원 여덟 명, 치안 대원 여섯  명, 경찰관 두 명이 마찬
가지로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인,  저는 지하
실에 내려가 보고 싶습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  사람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는지 보청
기의 볼륨을 최고로 올렸다.
  "로젠펠트 교수이신가요?"
  "아니요, 르뒤크라고  합니다. 로젠펠트  얘기를 들으신  모양이군
요. 로젠펠트와 에드몽과 저는 모두  곤충학자입니다. 전공도 같아서
셋 다 개미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에드몽이  저희보다 월등하게 앞
서갔지요. 인류가 그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
다..... 저는 부인 댁의 지하실에 내려가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잘 듣지 못할  때는, 보는 건 더 잘 보게 되는  법이다. 할
머니는 그 르뒤크라는  사람의 귀를 찬찬히 살폈다. 인간은  아주 오
래된 자기의 과거  모습을 몸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귀는 태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귓볼은 머리를 상징하고  귓바퀴
테두리는 척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르뒤크라는  사람은 태아 때는
야윈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태아 모습이
야윈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뭘 찾고 싶어서 그러시우?"
  "책입니다. 에드몽이 자기의 모든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적어놓
은 백과 사전이지요. 에드몽은 숨기기를  좋아하는 친구였습니다. 그
는 틀림없이 모든  걸 저 아래에 숨겨놓았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것
도 모르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물리칠  수 있는 함정을 만들
어 놓았을  거고요. 저는 모든 걸  알고 가는 겁니다. 잘  아는 사람은...."
  "잘 아는 사람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아주 많은거라우."
  오귀스타 할머니가 그의 말을 자르며 불쑥 말했다.
  "기회를 주십시요."
  "들어오겠수?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더라."
  "르뒤크입니다. 국립 과학 연구소 352호 실험실의  로랑 르뒤크 교수입니다."
  할머니는 그를 지하실 쪽으로 데리고 갔다.  경찰이 막아놓은 벽에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 저주받은 지하실에 절대로 내려가지 마시오."
  할머니가 그 글귀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르뒤크 씨,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우? 사
람들은 여기가 지옥의  입구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집은  식인 동물
같아서 자기  목을 간지럽히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거지요. 아예
콘크리트로 이 집을 싸발라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르뒤크 씨는 죽는 게 무섭지 않수?"
  그 물음에 르뒤크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요. 무섭지요. 저는  저 지하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
르는 채 바보처럼 죽는 걸 무서워하지요."

  103683호와 4000호는  며칠 전에  빨강 천막개미들의 둥지를  떠났
다. 뾰족한  침을 가진 병정개미 두  마리가 그들과 함께  길을 나섰
다. 그들은 자취  페로몬의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나는 길을  따라 한
동안 걸었다.  그들은 개암나무 가지에  있는 천막 둥지로부터  벌써
수천 머리  떨어진 길을 답파했다.  이름조차 모르는 낯선  동물들과
마주쳤다. 의심스러울 때면 그들은 낯선 동물을 피하곤 했다.
  밤이 되면 그들은 되도록 땅을 깊게  파고 틀어박혀 유모 개미와도
같은 대지의 다사로운 열기를 이용하면서 대지의 보호를 받았다.
  오늘은 빨강개미가 그들을 어떤 언덕 꼭대기까지 데려왔다.
  '세계의 끝은 아직 멀었는가?'
  '저쪽으로 가면 된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동쪽 아스라히  먼 곳에 시커먼 덤불로  된
어떤 세계가  보인다. 빨강개미들은 이것으로써 자기들의  임무가 끝
났으니 더 이상  불개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다. 빨강
개미들의 냄새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역에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 그들은  불개미에게 수확개미들의  들녘까지 곧장 가라고  일러준
다. 수확개미들은 줄곧 '세계의 끝' 근처에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틀림없이 길을 가르쳐줄 거라는 것이다.
  안내자들과 헤어지기 전에  두 불개미가 연방의 신분  페로몬을 건
네준다. 여행에 동반해  준 대가로 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두 불
개미는 수확개미들이  경작하는 들녘에 닿으려고 비탈길을  달려내려간다.

       뼈대
  뼈대가 몸 안에 있는 것이 나을까. 거죽에 있는 것이 나을까?
  뼈대가 몸  거죽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을 막는 껍질의 형태를  띤
다. 살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지고 거
의 액체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 껍데기를 뚫고  어떤 뾰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뼈대가 몸 안에  있으면 가늘고 단단한 막대 모양을  띤다. 꿈틀거
리는 살이 밖의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처가 수없이 많이 생
기고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바로 밖으로  드러난 이 약점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고 섬유의 저항력을 키워준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출중한 지력으로 '지적인'  감각을 만
들어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 보였
다. 그들은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비웃었다. 그러
나 어떤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단단한 껍질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그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아
주 사소한 이견,  아주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
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에
민감했고, 어떠한 공격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무사개미들이 공격해 온다!'
  클리푸캉이 공포에 휩싸였다. 기진 맥진한 척후  개미들이 이제 갓
태어난 도시에 그 소식을 전한다.
  '무사개미들이다! 무사개미들이다!'
  무사개미들의 무시무시한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몇몇 개
미들이 목축, 저장, 버섯 재배, 화학 등과  같은 분야에서 특별한 발
전의 길을 찾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사개미들은  오로지 전쟁
분야에서만 전문성을 키워왔다.
  무사개미들은 전쟁밖에 모른다. 그렇지만  전쟁을 완벽한 예술처럼
수행한다. 그들의 몸은 온통 전쟁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그들의 관
절치고 어느 것 하나 뾰족하게 휘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고, 그들의
껍질은 불개미들보다 두 배는 두껍다. 좁다랗고  완전한 세모꼴을 이
루고 있는 머리는  어떠한 발톱으로도 잡을 수 없다.  그들의 위턱은
뒤로 젖혀지기까지하는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지닌 것으로 두  개의 휘
어진 검이라고 할  만하다. 무사개미들이 그 검들을 자유  자재로 휘
두르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그들이 노예 제도를  갖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과도한 전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  권력욕 때문에 자칫하면 그 종  자체가 소멸하게
될 지도 모를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싸움질에 골몰해서  그 개미들
은 둥지를 짓거나 제 새끼들을 키울 줄  모르며, 심지어는 제 스스로
먹이를 구할  줄도 모른다. 검처럼  생긴 위턱은 전투에서는  쓸모가
있지만 일상적인  삶에서는 도통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전쟁에 미쳐  있기는 해도 무사개미들은 어리석지는  않다. 일상적인
삶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집안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다
른 개미들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게 만들었다.
  무사개미들은 주로  까망개미나 노랑개미들의 중소 도시를  공격한
다. 침이나 개미산이  없는 종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선 공
격하려고 마음먹은 도시를 에워싼다. 안에 갇힌  개미들은 밖에 나간
개미들이 전멸한 것을 알고 바로 입구를  봉쇄한다. 그러면 무사개미
들은 첫번째 돌격대를 뽑아 공격에 나선다.  돌격대는 쉽게 방어선을
뚫고 구멍을 열어버린다. 통로는 일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그 때 겁에  질린 일개미들이 알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도
시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무사개미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되는 것이
다. 무사개미들은  모든 입구로 지쳐들어가 일개미들이  자기들의 귀
중한 짐을  포기하게 만든다. 무사개미들은 항복하지  않는 개미들만
죽인다. 개미 세계에서 아무런 이요없이 개미를 죽이는 일은 없다.
  전투의 막바지에 무사개미들은 둥지 안으로  쳐들어가 살아남은 일
개미들에게 자기들 대신 알을 옮겨서 계속  돌보아줄 것을 요구한다.
나중에 번데기를 깨고 나온 개미들은  침략자인 무사개미들을 섬기도
록 훈련을 받는다. 그들은 과거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커다란 개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상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약탈이 벌어지는 동안에 잡혀온 지 오래된  노예 개미들은 뒤로 물
러서서 주인들이  그 지역을  완전히 소탕하기를 기다리면서  풀숲에
숨어 있는다.  그러다가 주인들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면 허드렛일
하는 잡부로  현장에 투입되어  포로들과 어린 개미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는다. 예전에 납치된 알에서 나온 개미와  새로 포로가 된 알
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침략자들이  이동하는 대로 그렇게  새로운
세대의 노예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사개미 한 마리마다 대개 세 마리의 노예  개미가 달려 있다. 한
마리는 무사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무사개미는 갈무리  주머니에서
되올려 입으로 먹여주는 먹이밖에 먹을 줄  모른다), 나머지 한 마리
는 배설물을 치워준다.  (그것을 치우지 못하면 무사개미의  껍질 주
위에 쌓여서 껍질을 부식시킬 것이다.)
  오로지 싸움밖에 모르는 무사개미들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노예들
이 자기들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사개미들은
약탈한 둥지를  재빨리 빠져나와서 새로운 도시를  정복하러 나선다.
밤이 되기 전까지  새 도시를 찾지 못하면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 때
문에 죽을 수도 있다. 그 대단한 무사들에게  그런 죽음은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클리푸니는 무사개미들에 관한 전설을 수도 없이  들었다. 어떤 개
미들의 주장에 따르면,  노예 개미들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 적
이 있으며, 노예  개미들은 자기들의 주인이 어떤 자들인지  알고 있
기 때문에 반드시  복종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또,  어떤 무사개
미들은 모든 크기, 모든 종류의 알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개미 알
을 수집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클리푸니는 크기도 각각이고  빛깔도 가지 각색인 온갖  종류의 알
들이 가득 차 있는 방을 상상해 본다.  하얀 덮개 아래마다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개미 문명의 한  구성원이 그 미개한 야수들을  섬기기
위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클리푸니는 고통스러운  상상에서 깨어난다. 우선 그들과  맞설 생
각을 해야 한다.  무사개미 떼는 동쪽으로부터 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클리푸캉의 척후 개미들과 첩보 개미들은  그 병정개미들의 수
가 40만에서 50만 사이라고 한다. 무사개미들은  사테이 나루의 지하
터널을 건넜다. 그들은  지금 아마도 무척 '조바심을 내고  있을 것'
이다. 왜냐하면 터널을 건너느라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잎새로 만든
이동 천막둥지를  처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들에겐
거처가 없다. 그들은 클리푸캉을 손에 넣지  못하면 틀림없이 밖에서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젊은 여왕개미는  되도록 침착하게 숙고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이
동 천막  둥지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텐데 무엇 때문에  굳이
강을 건너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클리푸니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무사개미들은 도시를  혐오한다. 그들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는
그 증오심은 도무지 그 뿌리를 이해할 수  없다. 모든 도시가 그들에
겐 위협이고 도전이다.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 사이의  끝없는 대결
을 연상시킨다. 그런 무사개미들이 강 건너편에 너나  할 것 없이 풍
요롭고 세련된  수백 개의 개미  도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클리푸캉은 불행하게도 그런  공격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
다. 물론 며칠 전부터 백만은 족히 되는  거주자들이 도시를 가득 채
우게 되었고, 동쪽  경계에 벌레잡이 식물의 장벽을 만든  건 사실이
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클리푸니는  자기 도
시가 이제  갓 생긴 터라 전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연방에 가맹한다는 뜻을 전하러  벨로캉에 보낸 사절들에게서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러니 이웃  도시와 연대해서 싸울 수가  없다.
게예이톨로 기지마저도 수천  머리나 떨어져 있어서 그  여름 둥지의
개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없다.
  어머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클리푸니는  완전 소
통을 하기 위해 가장 뛰어난 사냥 개미들  가운데 몇 마리를 불러 모
으기로 마음을 정한다. 그 사냥 개미들은  아직 자기들이 병정개미라
는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시급히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 된다. 사냥 개미들이 궁궐에 모여  있는데, 클리푸캉 위로 튀어나
온 관목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개미들이 달려와  군대가 달려오는
냄새를 맡았다고 전한다.  모두가 채비를 한다. 뾰족한  전략이 나오
지 않았다. 임기 응변으로 맞서나가야 한다.  전투 준비를 알리는 냄
새가 퍼져나가고  군대의 모습이 그럭저럭 갖추어진다.  그들은 난쟁
이개미들과의 전투에서 비싼  희생을 치르고 배운 병법을  아직 전혀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병정개미들은  벌레잡이 식물의 장벽에  더
희망을 걸고 있다.

      말리에 사는 도공
  말리에 사는 도공 부족은 태초에 하늘과 땅이  혼인할 때, 땅의 생
식기는 개미 둥지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혼인의 결과로  인간이 만들어질 때, 음문은 입이  되었고 거기
에서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는 데 물질적인  토대를 마련
해 준 것은 개미들의 실 잣는 기술이다.  개미들은 그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수하였다.
  오늘날에는 도공  부족의 잉태를  기원하는 의식은 여전히  개미와
관련이 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은 개미  둥지 위에 앉아서 아마
신에게 잉태를 하게 해달라고 빈다.
  개미들이 인간을 위해 해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개미들은 인간
들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샘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기도 했다. 도공  부족 사람들은 물을 찾으려면 개미  둥지 아래를
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바로 저쪽에서  메뚜기들이 사방 팔방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것이
신호다. 시력이 좋은 개미들의 눈에는 벌써 바로  저쪽에 한 줄기 먼
지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무사개미 얘기를  많이 했다 해도, 막상 그들이  공격해 오
는 것을  보면 전혀 느낌이  다르다. 무사개미들에게는 기병대가  없
다. 그들 자신이  기병대인 것이다. 그들의 몸은  유연하면서도 견고
하다. 그들의 다리는 두툼하고 근육이 발달해  있다. 균형 잡힌 뾰족
한 머리에 딱  들어맞게 되어 있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다리가 움직
이면서 머리가 공기를 가를 때 바람결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풀이 눕고, 땅이 흔들리고,  흙 먼지가
물결친다. 앞을  향하고 있는 더듬이들이  노호라고나 할 만한  독한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다. 안에  틀어박혀서 저항해야 하나,  아니면
나가 싸워야 하나? 클리푸니는 망설인다.  두려워하면서 무슨 명령을
내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니 불개미 병정들이 해서는  안 된
는 짓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병정개미들이 둘로 나뉜다. 반은
맨몸으로 적에게 맞서겠다고  나가고 다른 반은 예비  병력과 농성시
의 저항 병력으로서 도시 안에 웅크리고 있다.
  클리푸니는 '개양귀비' 전투를 기억해 내려고 애쓴다.  그 당시 적
의 군대에  가장 커다란 타격을  주었던 것은 개미산 포격이었던  것
같다. 클리푸니는 곧 포수 개미 3열을  선두 대열에 배치하라고 명령한다.
  무사개미 군대가  이제 벌레잡이 식물의 장벽으로  달려들고 있다.
따뜻한 고기 냄새를  맡은 그 식물들이 무사개미들이  지나가는 길목
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나 그 동작이 너무  느려서 적의 모든 병정개
미들은 끈끈이귀개가 그들을 붙잡기 전에 빠져나온다.
  어머니께서 잘못 생각하신 것이다!
  돌격해 오는 적에 맞서서 첫번째 줄의  클리푸캉 개미들이 근접 사
격을 한차례 퍼붓는다.  그러나 그 사격에 쓰러진 침입자는  겨우 스
무 마리 남짓이다. 두  번째 줄은 사격 자세를 취할 겨를도  없이 무
사개미들이 달려들어 목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개미산  한 방울 못 쏘아보고 무너진다.
  머리만 공격하는 것이 무사개미들의  커다란 특징이다. 무사개미들
이 미친 듯이  위턱을 휘두른다. 어린 클리푸캉 개미들의  머리가 어
지러이 날린다. 머리 잘린 몸뚱이가 이따금  마구잡이 공격을 계속하
기도 하고 생존자들을 더욱 겁먹게 하면서 달아나기도 한다.
  12분이 지나자, 불개미 병사들의 대부분이  쓰러졌다. 불개미 군대
의 나머지 반이  모든 입구를 막는다. 클리푸캉에는 아직  둥근 지붕
을 씌우지  않았기 때문에 흙으로  둘러싸인 열 개의 작은  분화구가
지표에 드러난 모습을 하고 있다.
  모두가 얼이 빠져 있다. 그토록 많은 고생을  해서 세운 새 도시를
먹이도 혼자 구할 줄 모를 만큼  미개하고 야만적인 개미떼의 처분에 맡기게 되다니!
  클리푸니가 아무리 완전  소통을 반복해 봐도 적에게  저항할 만한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입구에 설치한  돌담은 기껏해야 몇
초 밖에 더 못  버틸 것 같다. 통로에서 전투를 한다고  해봐야 밖에
서 엄폐물 없이 하는  전투보다 나을 것도 없다. 준비가 안  되어 있
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밖에서는 마지막  남은 병정개미들이 악착같이 싸우고  있다. 몇몇
병정개미들은 퇴각을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로 자기  등 뒤에
서 입구가  닫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모든 게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과 자기들이  침략자들의
진입을 늦추면 늦출수록  입구의 봉쇄가 강고해 지리라는  생각이 그
들의 저항을 더욱 가열차게 만든다.
  마지막 남은  클리푸캉 개미의 목이  잘린다. 그러자 그  몸뚱이는
반사적으로 입구 앞으로 옮겨가더니 문에 발톱을  박는다. 하찮은 방
패에 불과할지언정 끝까지 제 몫을 다하려는 것이다....
  클리푸캉 안에서는  무사개미들의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음울한 체념에 젖어 있다. 결국 기술로써  압도하지 못하니까 단순한
물리력이 효력을 발휘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무사개미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로마 앞에  선 하니발 처럼
무사개미들은 정복을 주저하고 있다. 모든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
는 것  같다. 틀림없이 함정이  있을 게다. 우리의 명성이  어디가나
뜨르르 하듯이  불개미들의 명성도 만만치 않다.  무사개미 진영에서
는 불개미들이 교묘한  함정을 만드는 데 도통한  자들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무사개미들은 불개미들이  용병 개미들과 동
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일 때라도 용병
개미들이 튀어나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무사
개미들은 불개미들이  사나운 곤충들을 길들이고, 견디기  어려운 고
통을 가져오는 비밀  무기를 만들 줄 안다고 말한다.  게다가 무사개
미들은 한데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터라 안에 쳐들어가서 벽에
둘러 싸이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사개미들은 입구에 놓인 바리케이트를 치우지 않는다.
  무사개미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밤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불개미 도시의 개미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그들이 왜 쳐들어오지
않는 걸까? 클리푸니는 그걸 꺼림칙하게 느끼고  있다. 적이 '자기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더 힘이 강한 적이  그럴 필
요가 없는데 왜  주저하고 있는 걸까? 몇몇 개미들이  조심스럽게 의
견을 내놓는다. 저들이  우리를 굶겨죽이려는 게 아닌가  하고. 하나
의 가능성으로 얘기된  것일 뿐인데도 그 의견이  불개미들에게 힘을
준다. 지하의 축사,  버섯 재배장, 곡물 가루 창고, 꿀단지  개미 등
이 있는 덕분에, 그들은  두 달은 족히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클리푸니는  적이 원하는  게 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다. 위에 있는  적은 밤을 보내기 위한 둥지를 필요로  한다. 클리푸
니는 어머니의 유명한 격언을 떠올린다. '만일  적이 더 강하면 적의
의표를 찌르라.' 그렇다. 저 야만적인 개미들에  맞서려면 첨단의 기
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게 살 길이다.
  50만의 클리푸캉 개미들이 완전 소통을 실행한다.  마침내 한 가지
흥미있는 제안이 나온다. 자그마한 일개미 하나가 다음과  같은 페로몬을 발한 것이
다.
  '벨로캉의 선조들이  사용했던 무기와 전략을 답습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다. 모방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 페로몬이 나오자 마자 정신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곧 하나의 결
정이 이루어진다. 그 결정을 따라 모두가 일에 매달린다.

      터키의 근위병
  14세기에 터키의 술탄  무라드 1세는 약간 특별한 부대를  하나 만
들고 '새로운  부대'(터키 말로는 에니  체리)라 명명하였다. 이  새
근위대는 고아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터키
병사들은 아르메니아 슬라브의 마을을 약탈하면서  아주 어린 아이들
은 모아다가 특수 군사 학교에 집어넣었다.  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
게 세계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오로지
무술 훈련만 받고  자란 이 아이들은 전 오토만 제국에서  가장 뛰어
난 전사들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진짜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들을 가차없이  짓밟았다. 그 근위병들은  자기들의 부모 편에  서서
납치자들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
의 힘은  나날이 커졌고, 급기야는  술탄 마무트 2세가 그들의  힘에
불안을 느끼게까지 되었다.  결국 마무트 2세는 1826년  그들을 죽이
고 그들의 학교에 불을 질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르뒤크 교수는 커다란  여행 가방 두개를 가지고 왔었다.  그중 하
나에서 그는  가솔린 엔진이 달린  최신형 망치 겸 구멍뚫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경찰관들이 만들어놓은 벽에  구멍을 내
기 시작하여, 사람이  드나들 만한 둥근 구멍이 생길  때까지 계속했다.
  망치질이 끝나자 오귀스타  할머니가 다가와 마편초 한  잔을 권했
다. 그러나  르뒤크는 차분한 어조로  그것을 마시면 소변이  마려울
염려가 있다면서 사양했다.  그는 다른 가방 쪽으로 몸을  돌려 동굴
탐사장비 일습을 꺼냈다.
  "이럴 만큼 지하실이 깊다고 생각하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말이지요.  여기 오기 전에 이  건물에 대해
서 조사를  해두었어요. 이 건물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이 살았는데, 그들이 비밀 통로  하나를 만들었다는군요. 저는
그 통로가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을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프
로테스탄트들이 그리로 해서 박해자들을 피해다녔을 겁니다."
  "그러면 아래로 내려간 사람들이 숲으로  빠져나왔을텐데, 왜 그들
이 안  나타나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손자,  증손
자, 손자며느리, 게다가 열 명이 넘는  소방대워과 치안 대원들인데,
그들 가운데  누구도 숨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잖수.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프로테스탄트도 아니고  이제는 종
교 전쟁도 없잖수."
  "정말 그럴까요, 부인?"
  그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종교 대신에  다른 것들이  나타났지요.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이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교조적이기
는 마찬가지지요."
  그는 동굴  탐사 복장으로 갈아입으려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가
옹색한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이맛등이 달린  새빨간 헬멧을 쓰고 다
시 나타나자, 오귀스타 할머니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 프로테스탄트들  다음에는 이 집에  별의별 사람이 다  살았어
요. 고대의 이방  종교에 빠졌던 사람도 있었고, 양파나 검은  두 라
디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르죠."
  "양파와 라디는 건강에  아주 좋은 거라우. 그런  것들은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이해할 만하지. 건강보다 더  중한 게 뭐가 있겠
수. 보라구요.나는 귀가  먹었고, 곧 늙어 꼬부라질거요.  매일 조금
씩 죽어가고 있어요."
  그는 자기 말이 할머니에게 위안을 주리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아직 정정하신데 그러세요."
  "그래요? 그럼 내가 몇 살이나 된 것 같슈?"
  "글쎄요. 예순이나 일흔 살 정도요."
  "백 살이라우. 1주일 전에 백살이 되었지.  이제 온몸이 다 병들었
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져. 특히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잃고 나서 더하다우."
  "그러시군요. 부인, 늙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난이지요."
  "이렇게 계속 남의 아픈 가슴을 찌르는 소리만 하고 있을거요."
  "그런 게 아니라."
  "자, 빨리 내려가시오. 내일 당신이 안  올라오면 경찰에 신고할거
요. 그러면 그들은 틀림없이 더 이상 아무도  못 부수게 아주 두툼한
벽을 만들거라우."

  맵시벌 애벌레들이  몸 속에서 끊임없이 갉아대는  통에, 4000호는
밤 기온이 아주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의  끝을 발견하는 일처럼 흥미있고  위험이 따르
는 행동에 전념하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런  행동에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개미는 여전히 수확개미들의 들판을 향해  가고 있다. 103683호
는 그렇게 걸어가는 시간을 이용해 예전에  유모 개미들이 가르쳐 준
것들을 되새기고 있다. 유모 개미들은 이  땅덩어리가 입방체로 되어
있으며 그 표면 위에만 생명이 있다고 그에게 가르쳤었다.
  세계의 끝에 다달하면  무엇을 보게 될까? 문? 다른  하늘의 허공?
103683호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동료는 시간이  시작된
이래 나타난  어떤 탐험 개미나  불개미보다도 세계의 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03683호의 발걸음에  갑자기 힘이  넘치자 4000호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정오를 반나절이나  넘기고 나서야, 무사개미들은 입구를  뚫고 들
어가기로 결정한다.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  것이 놀랍다. 이 도시
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불개미 군대 전
부를 궤멸시킨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바깥에서 사는  데 길들여져 있고 밝고 탁 트인  곳을 좋아
하기 때문에  지하에 들어가면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불개미들 중에서도  비생식 개미
들은 땅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이  암흑 세계
의 미로 속을 헤집고 다니는 데 익숙해져 있다.
  무사개미들이 궁궐에 다다른다. 완전히 비어  있다. 땅바닥에는 전
혀 건드리지 않은 양식 더미들도 있다.  그들은 계속 내려간다. 창고
마다 양식이 가득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 안에  개미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하 5층에서  그들은 발산된 지  얼마 안 된 페로몬을  발견한다.
무사개미들은 그 페로몬에 담긴 대화 내용을  해독하려고 애쓴다. 그
러나 불개미들이 백리향  잔가지를 놓아둔 탓에 거기에서  나는 향이
모든 페로몬에 섞여 있었다.
  지하 6층. 이  도시 안은 너무 캄캄하다! 무사개미들은  그렇게 땅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싫어한다. 불개미들은 죽음처럼  어둡고
밀폐된 이런  공간에서 어떻게 영원히  지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지하 8층에서  무사개미들은 한결  더 신선한 페로몬을  발견한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한다.  불개미들은 이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하 10층. 무사개미들은  알을 옮기고 있는 한  무리의 일개미들과
맞닥뜨린다. 일개미들이 침입자들을 보고  달아난다. 그러면 그렇지!
무사개미들의 의혹이 마침내 눈 녹듯이 스러진다.  전 도시의 개미들
이 알들을 구하려고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모든 일의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자,  무사개미들은 이제
껏 지녀왔던 신중한 태도를 다 털어버리고  그들 특유의 괴성 페로몬
을 내지르며 통로 속을 달린다. 클리푸캉의  일개미들은 그들에게 쫓
겨 달아난다. 벌써 지하 13층이다.
  갑자기 알을  나르던 일개미들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들이 달려
오던 통로는 어떤 커다란 방으로 통해 있다.  그 방의 바닥에는 분비
꿀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무사개미들은  본능적으로 그 맛
있는 끈끈물을 핥으려고 달려간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땅으로 다
스며들어 갈 염려가 있는 것이다.
  다른 병정개미들도  서둘러 그들 뒤를  따라간다. 그러나 그  방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모든 무사들이 들어갈  공간이 되고 분비꿀 웅덩
이도 충분하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다! 이곳은 꿀
단지 개미들의 방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한 무사개미가 꿀단지
개미에 대해서 들은  얘기를 기억해 낸다. '이른바  현대적인 기술이
라는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가련한  일개미들로 하여금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배를 최대로 늘인 채 평생을 보내게  하는 거라네.'
  무사개미들은 분비꿀을  마음껏 먹으면서 새삼스럽게 꿀단지  개미
의 삶에 조롱을  보낸다. 그때 무사개미 하나가 문득  대수롭지 않으
나 뭔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음을 눈치챈다.  이렇게 중요한 방에 입
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무사개미에게 좀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불개미
들이 천장을 뚫어버렸던 것이다. 천장에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무사개미들이 통로 쪽으로  달아나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커다란 바
위로 막혀 있다.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진다. 쏟아져내리는 물에 맞아
죽지 않은 무사개미들이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친다.
  이 전술은 선조들을  모방하려고만 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환기시
켰던 클리푸캉의 그 일개미에게서 나왔다. 그가  잇달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우리 도시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단하나의 페로몬일 뿐이다. 즉, 지하 12층의 개울!'
  클리푸캉 개미들은 개울에서  물길이 갈라질 수 있도록  도랑을 팠
다. 그리고  땅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게 두툼한 나뭇잎을  깔아서
그 지류를 운하처럼  만들었다. 남은 것은 이제 꿀단지  개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클리푸캉 개미들은 어떤 방에  커다란 저수지를
만들고, 나뭇가지로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가장 어려운  일은 그
구멍 뚫는 막대기를  물 위에 꼿꼿이 세워두는 일이었다.  꿀단지 개
미 방의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개미들이 그런 영웅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아래에서 무사개미들이 발버둥을 친다.  대부분은 벌써 익사했지만
저수지에 있던 물을 아래층으로 다 쏟아부은  터라 수위가 꽤 높아져
서 몇몇 무사개미들이 천장 구멍을 통해  기어나온다. 불개미들이 그
들에게 개미산을 쏘아 쉽게 해치운다.
  한 시간이 지나자  무사개미들이 빠져죽은 물에는 이제  아무런 움
직임이 없다. 클리푸니 여왕이 승리했다.  승리를 기념하여 여왕개미
가 역사적인  최초의 격언을  발한다. '험난한 장애물일수록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힘을 발휘하게 해준다.'

  둔중한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을  느끼고 오귀스타 할머
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르뒤크 교수가 몸을  비비꼬면서 벽의 구멍
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저런, 24시간을 넘겼길래  못 올라오는 줄 알
았더니! 이번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내려갔던 터라 실종되거
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의 동굴 탐사용  작업복은 찢어져 있었지만, 그는  온전했다. 보
아하니 그 역시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데라니오, 그런데 뭐지요?"
  "그들을 찾았수?"
  "아뇨...."
  오귀스타 할머니는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지하실에  내려간 사람
이 아무 일 없이 살아서 다시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
다면 이 모험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아래에  뭐가 있습니까?  당신 생각대로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던가요?"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먼저 마실  것 좀 갖다 주세요. 비상 식량이  다 떨어
져서 어제 정오부터 물도 못 마셨어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보온병에 넣어 따뜻하게  해두었던 마편초 차를 가져왔다.
  "저 아래에 뭐가 있는지 듣고 싶으세요?  수백 미터 아래로 가파르
게 내려가는 나선 계단이  있고 문이 하나 있어요. 붉은 빛을  띤 통
로에 쥐가 우글거리고  그 통로의 끝에 벽이 하나  있지요. 틀림없이
부인 손자인  조나탕이 만들어놓았을 겁니다. 너무  단단해서 착공기
로 구멍을  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어요. 틀림없이  돌거나 움직이는
문일 겁니다. 암호 글자판이 하나 있었거든요."
  "암호 글자판이라구요?"
  "예, 어떤 질문의 답이 되는 단어를 누르는 거지요."
  "질문이 뭔데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그 과
학자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다.
  "답을 아시는군요!"
  딸꾹질 사이사이로 오귀스타 할머니가 잘름잘름 말했다.
  "아니, 아니라우! 난  답을 몰라요! 하지만 그 문제는 아주  잘 안다우!"
  그러면서 할머니는 웃고 또 웃었다. 르뒤크 교수가 투덜거렸다.
  "답을 찾느라고 몇  시간 동안 끙끙거렸어요. 물론 V형태로  된 것
까지 삼각형에 포함시키면 답이 금방 나오지만  V형태는 삼각형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는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수학하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왜죠?"
  "기회는 단 한  번이라우.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으니,  이제 기
회는 없어요.  이 여행 가방들을  내 집에서 끌어내주시구려. 잘  가우!"
  할머니는 짐이  많은 그를 위해  택시를 불러줄 생각도 하지  않았
다. 그에 대한  혐오감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에게는  확실히 할머
니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가 있었다. 할머니는 구멍난  벽을 마주하
고 부엌 안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할머니는
자종 브라젤과 로젠펠트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좀더 인생을 즐기기로 결심한 거였다.

       인간의 페로몬
  냄새로 의사 소통을  하는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후각 언어
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은밀하게 대화를 나눈다.
  우리에게는 냄새를  발하는 더듬이가 없으므로, 우리는  겨드랑이,
유방, 두피, 생식기 등으로부터 페로몬을 발산한다.
  그 메시지는 무의식적으로 감지되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덜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5천만  개의 후각 끝신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혀
가 겨우 4가지  맛을 구별하는데 반해서 5천만 개의 세포로  수천 가
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냄새를 통한 의사 소통 방식은 어느때 사용하는가?
  우선, 성적인 유인을 하는 데 쓰인다.  인간의 암컷은 인위적인 향
기를 쓰지  않고도 인간의 수컷을 아주  잘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컷이  암컷 본래의  향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인위적인 향기 때문에  본래의 향기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
다!). 마찬가지로 수컷은 다른 암컷에게 배척을  당할 수도 잇다. 암
컷의 페로몬이 그에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미묘하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후각적인 대화를 나누었
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고는 그저  '사랑은 맹목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의 페로몬은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들
이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공포'의  메시지가 담긴 냄새
를 맡게 되면, 그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페로몬이  가장 뚜렷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가
운데 하나로  월경 주기가 같아지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함께
사는 여러  여자들이 냄새를 발산하면,  그 냄새들이 그들의  기관을
조절해서 동시에 월경  주기가 시작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실제로
확인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두 개미는 황금  들녘의 한가운데서 자기들이 만나고자  했던 수확
개미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수확개미들은  사실은 나무꾼 개미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법하다. 자기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줄기의 밑동을 잘라서 먹이가 될 낱알들을 떨어뜨린다.
  곡물 줍는 일을 제외하면, 수확개미들의 활동은  자기들 문명의 주
위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자기들이 직접 만든 제초제를 사용한다. 배애  달린 분비샘에서 나오
는 인돌 초산이 그것이다.
  103683호와 4000호가  다가가자 수확개미들은 아는 체를  하느둥마
는둥 한다. 그들은 불개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두
개미는 기껏해야 도망쳐 나온 노예  개미이거나 로메슈제의 분비물을 찾는 개미이다.
  그럼에도 수확개미 하나가 마침내 두  개미에게 빨강개미의 냄새가
섞여 있음을 알아차린다.  동료 하나를 데리고 그 개미가  일하던 것
을 멈추고 다가온다.
  '그대들은 빨강개미들을 만났는가?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벨로캉  개미들은 몇 주 전에  빨강개미들이 수
확개미들의 둥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빨강개미들은, 독
침으로 백여 마리의 일개미와 생식 개미를  죽이고 비축해 놓은 곡물
가루를 다  빼앗아갔다고 했다. 당시에 수확개미들의  군대는 새로운
곡물을 찾아서 남쪽으로 통하는 들녘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피해를 확인하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두 불개미는  자기들이 빨강개미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찾으러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수확개미들
이 질문을 하자 두 불개미는 자기들의 모험담을 들려준다.
  '그대들은 세계의 끝을 찾아나선 것인가?'
  두 개미가 그렇다고  하자 수확개미들이 발랄한 냄새가  나는 웃음
의 페로몬을 터뜨린다.
  '왜 웃음보를 터뜨리는가? 세계의 끝이 없단 말인가?'
  '아니, 있다. 그대들이  있는 곳이 바로 세계의  끝이다! 수확하는
일외에 우리의  주된 활동이  세계의 끝을  건너려고 시도하는  일이다.'
  수확개미들은 다음날 아침부터 두 '관광객'을  그 형이상학적인 곳
으로 안내하겠다고 자원한다. 그날 저녁은 너도밤나무  껍질 속에 수
확개미들이 파놓은 작은  둥지의 보호를 받으며 토론의  시간을 보낸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던데.'
  103683호가 묻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곧 그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떤 군대도  일거에 박살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던데 그게 사실인가?'
  수확개미들은 이 낯선  개미들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사실이다.'
  그렇다면 103683호는 곧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게 될 것이다.
  그날 밤 103683호는 꿈을 꾸었다. 땅덩어리가  직각을 이루며 멎는
다. 물로 이루어진  수직 벽이 하늘을 침범하고, 그 물  벽에서 아주
파괴적인 아카시아 가지들을 들고 있는 파랑개미들이 나온다.
  그 마력을 지닌  가지의 끝을 갖다대기만 하면  어느것이나 박살이 난다.

      제 1 부
       개미

     제4장  미로의 끝


  오귀스타 할머니는 하루  내내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씨름하
였다. 벽은 현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다. 할머니는 그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에드몽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
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들이  뭔가를 발견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기의 지력을 이용해서 그것을 감춘 것이다.
  할머니는 에드몽이  어린 시절에 만들었던 둥지를  떠올렸다. 그에
게는 자기의 '굴'을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그의 모
든 굴을  부수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굴을
하나 만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무도 자기를  방해할 수 없는  장
소.... 내면의 어떤  장소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를 사로잡고  있던 무기력감을 떨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느 겨울 밤이었다.  아주
어릴 때 문득, 영 아래에 수들이 존재한다는 즉,  3, 2, 1, 0 다음에
-1, -2, -3.....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갑을 뒤집은 것처럼 거
꾸로 뒤집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0은 모든 것의  끝이나
시작이 아니었다. 반대  편에 또 다른 무한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
을 알게 된 것이었다. 갑자기 '영'의 벽이  폭발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밖에 안 되었을 때의  일이지만, 그 발견이 어
린 오귀스타의 마음을  흔들어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게  했다. 뒤집
어놓은 수.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이 열린 것이었다. 3차원. 입체!
  오 하느님!
  할머니의 손이 흥분으로  떨리고 있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할
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성냥개비들을 집는다.  성냥개비 3개를 세
모꼴로 놓는다.  그런 다음  꼭지점마다 성냥개비를 하나씩  세우고,
그 세 성냥개비가 위쪽의 한 점에서 만나게  한다. 그러자 세모꼴 하
나가 만들어진다. 세모뿔 하나와 정삼각형 네 개.

  여기가 세계의 끝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너무나 놀랍
다.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땅 한 뼘 보이지  않는다. 103683호
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다. 세계의 끝은 검은색이다.  그렇게 까만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아주  단단하고 매끈매끈하며 미지근하고
광물성 기름의 냄새가  난다. 꿈에서 본 수직의 바다는  없고 어마어
마하게 사나운 공기의 흐름들이 있다. 두  개미는 어찌된 영문인가를
이해하려고 한동안 애를  쓴다. 이따금 진동이 느껴진다.  진동의 강
도가 기하 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더니 돌연  땅이 흔들리면서 세
찬 바람이  더듬이를 강타하고, 끔찍한 소음이  앞다리 종아리마디에
있는 고막을 찢는 듯하다. 사나운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듯한데,
그 현상은 일어나기가 무섭게 멎어버리면서  먼지의 소용돌이만을 남긴다.
  수확개미들 가운데 많은  탐험 개미들이 이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
지만 감시자들이 지키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소음,  그 바
람, 그 진동이 바로 세계의 끝을  지키는 감시자들이다. 그들은 검은
땅 위로 나아가려는 모든 것들을 죽여버린다.
  두 불개미가 수확개미들에게 그 감시자들을  본적이 있느냐고 묻는
다. 불개미들이 대답을 들으려는 찰나, 또  한차례 격렬한 소음이 일
었다가 사라진다.  불개미들과 동행한 여섯 수확개미들  가운데 하나
가 아무도  저 '저주받은 땅'  위로 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검은  땅을 밟기만 하면 감시자들이  으깨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감시자들이  바로 라숄라캉과 수개미 327호의  원정대를 공격했
던 그 자들일 게다. 그런데 그들이 왜  세계의 끝을 떠나서 서쪽으로
진출했던 것일까? 그들은 세계를 침략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수확개미들은 그  점에 대해서 불개미들보다  더 아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그  자들의 생김새를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들이 아는  거라곤, 감시자들에게 다가섰던  모든
개미들이 박살이 났다는 것뿐이다.
  심지어는 그 감시자들이 어떤 생물의  범주에 들어가는지조차 모르
고 있다. 즉,  그들이 거대한 곤충인지, 새인지,  식물인지조차 모르
는 것이다. 수확개미들은  그저 그 감시자들이 아주 빠르고  힘이 세
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들의 힘은 개미들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
보다 월등하다고 한다.
  그때 4000호가 먼저 도전해 보겠다고  나선다. 뜻밖이다. 4000호는
그 무리를 떠나  과감하게 금기의 땅에 올라선다. 죽을  때 죽더라도
4000호는 그렇게 대담하게 세계의 끝을 건너보고  싶은 것이다. 다른
개미들이 가슴을 졸이며 그를 바라본다.
  그가 천천히 나아간다. 다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죽음
을 예고하는 아주  사소한 진동이나 냄새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50머리,  100머리, 200.  400, 600, 800머리를  건너갔다.
아무 일도 없다. 그가 무사하다!
  개미들이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는 자기가  얼마만큼 왔는지 돌아본다.
  좌우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하얀 띠들이  보인다. 검은 땅 위
에는 목숨 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곤충 한 머리, 풀 한  포기 보이
지 않는다.  땅이 너무 시커멓다.... 이런  건 땅이라고 할  수가 없다.
  머리 앞쪽에 식물들이 보인다. 세계 끝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
단 말인가? 4000호가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려고 둑 위에 머물러
있는 동료들에게 페로몬을 쏘아보낸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
어서 대화하기가 힘들다.
  4000호가 반 바퀴  돈다. 그때 거대한 진동과 소음이  다시 일어난
다. 감시자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그의 동료들은 엄청나게  큰 어떤 덩어리가 어마어마한  소리로 붕
붕거리면서 그들 앞의 허공을 스쳐가던 짧은  시간 동안 돌처럼 굳어
있었다. 감시자들이 광물성  기름의 냄새를 풍기며 지나갔다.  그 서
슬에 4000호가 사라졌다.
  개미들은  가장자리로 바싹  다가서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4000호의 몸뚱이는 두께가  10분의 1머리밖에 안 될 만큼  바싹 짓눌
러져서 검은 땅에  늘어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벨로캉의 늙
은 탐험 개미의 자취는 오간 데가 없다.  맵시벌 애벌레들이 주던 고
통도 동시에 끝이 난다. 그 와중에서 맵시벌의  애벌레 하나가 등 껍
질을 뚫고 나오는  게 보인다. 붉은 갈색의 납작한  몸뚱이 한가운데
에 하얀 점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감시자들은 그렇게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저
한바탕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한줄기 바람이  스쳐갔을 뿐인데,
순식간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가루가 되고,  으깨어진다. 103683호
가 그 현상을 분석해 내기도 전에 또  다른 폭음이 들려온다. 아무도
제 문지방을 건너지 않았는데 죽음의 사자들이  휩쓸고 지나간다. 먼
지가 일어났다가 내려앉는다.
  검은 땅을  건너보겠다는 103683호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사테이 나루를 생각한다. 위로 건널 수  없다면 밑으로 가야한다. 이
검은 땅이  강물이라고 생각하자. 강물을  건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밑에 터널을 뚫는 것이다.
  그가 여섯 마리의 수확개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다, 그들은 즉
각 열띤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었는데  왜 여태껏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모두 위턱을 부지런히 눌러  땅을 파기 시작한다.

  자종 브라젤과 다니엘  로젠펠트 교수는 마편초 차를  그다지 즐겨
마시지 않는데도,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귀
스타 할머니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자상하게  설명했다. 에드몽이 자
기 다음으로 두  사람을 집의 상속자로 지명했다는 것,  오귀스타 할
머니 자신이 그런 것처럼 두 사람도  언젠가는 지하실을 탐사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될  거라는 것, 그래서 셋이서 힘을 합해  아주 효
과적으로 일을 해내고 싶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이미 오귀스타 할머니가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터라, 세 사람에겐
말이 별로 필요없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해쓸 것도 없이  눈길 하
나 미소 하나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셋  중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즉각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마치  하나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고, 세 사람의  유전자 배열이 서로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늙을 대로  늙은 오귀스
타 할머니이지만  두 사람은  할머니를 대단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드몽을 떠올렸다. 한점의 사심도 없이  고인에 대한 애정
이 새삼스럽게  솟아오르는 것에 그들  자신이 놀랄 정도였다.  자종
브라젤은 자기 가족들을 들먹이지 않았고, 다니엘  로젠펠트는 자기 일
을 들먹이지 않았으며,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  건강을 들먹이지 않
았다. 그들은 그날  저녁에 당장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은 정보 공학, 특히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의
개념을 뒤섞어서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마
디로, 전자 공학에서  새로운 철학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고 해서 최초의 질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
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관념이라는 점에서 결국  마찬가지 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에
서 벗어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클리푸캉은 규모  면에서나 지력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하여, 이제
하나의 '청년' 도시가  되었다. 치수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지하 12
층에 완벽한 운하망을 만들어놓았다. 그 운하들  덕분에 식량을 도시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신속하게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클리푸캉 개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수상  운송 기술을 본 궤도
에 올려놓았다. 둥둥 떠다니는 월귤나무 잎새가  뗏목으로는 아주 제
격이었다. 물의 흐름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수백 머
리의 물길을 여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쪽의 버섯 재배장에서 서
쪽의 진딧물 축사까지 물길로 오고갈 수가 있는 것이다.
  클리푸캉 개미들도  언젠가는 물방개 사육에 성공하리라고  기대하
고 있다. 물  속에 사는 커다란 딱정벌레들은 그들의  딱지날개 아래
에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아주 빨리 헤엄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을 길들여 월귤나무 잎새를 밀게 만든다면,  다소 불안정한 현재
의 뗏목 추동 방식을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클리푸니가 손수  미래 지향적인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거
미 그물에서  자기를 구해준 뿔풍뎅이를  떠올린 것이다. 그  곤충을
전투에 이용한다면 얼마나 완벽한 무기가 될  것인가? 뿔풍뎅이는 이
마에 커다란 뿔을  하나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갑을  두른 것처
럼 단단한  딱지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기도
한다. 여왕개미의 생각은 그 곤충들의 부대를  만들어, 그 곤충 하나
하나의 머리마다 열 마리의 포수 개미들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클리
푸니의 눈에는 벌써  포수 개미들을 태운 뿔풍뎅이가  적진으로 날아
가 적들의 머리  위로 개미산을 쏟아붓는 광경이 선하다.  거의 완벽한 무기가 아닌
가....
  한 가지  걸림돌은 아직 그들이  언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방개나 뿔풍뎅이를  사육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개미 수십 마리가 그들의 후각적인  발산물을 해독하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들에게  개미의 페로몬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
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결과가 보잘것없지만, 클리푸캉 개미들은  그래도 그들
에게 분비꿀을  주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먹이야말로 곤충 세계의 가장 확실한 공통어인 것이다.
  도시 전체가  이렇게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클리푸니는 마
음이 편치 않다.  예순다섯 번째 도시를 재가받으려고 세  번이나 사
절단을 연방 쪽으로 보냈건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벨로키우키
우니가 동맹을 거부하는 것인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기가 보낸 사절단 겸  첩보원들이 서투르게
행동하다가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들킨 게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하 50층에 있는 로메슈제의  환각제 분비
물에 유혹당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무슨 일일까?
  클리푸니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었다. 여왕개미는  연방의
재가를 받는 일도  조사를 계속하는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
왕개미가 801호를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클리푸캉에서 가장  훌륭하
고 민첩한 병정개미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 위하여 여왕개
미가 젊은 병정개미와 완전 소통을 시행한다.  그 병정개미는 여왕개
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클리푸
캉의 눈,  클리푸캉의 더듬이, 클리푸캉의  발톱이 되어 보고,  느끼
고, 싸울 것이다.

  할머니는 식량과 음료가  가득 든 배낭을 준비했다. 그  속에는 따
듯한 마편초  차가 든 보온병도 세  개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못된 르뒤크처럼 식량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되올라 오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터였다.....  그런데 혹시 그 사람
이 암호 단어를  찾아낸 것은 아닐까?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고 단정했다.
  자종 브라젤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챙겨왔는데, 그 가
운데는 대형 최루탄과  방독면 세 개도 들어 있었다.  다니엘 로젠펠
트는 플래시를 부착한 최신형 사진기를 가져왔다.
  세 사람은  바햐흐로 회전 목마와도  같은 나선 계단 속에서  돌고
있었다. 앞서 계단을 내려갔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계단을 내려가노
라니 옛날  일들과 묻혀 있던 생각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린 시
절, 부모님,  가장 먼저 겪은  고통, 이러저러한 잘못들, 못다  이룬
사랑, 이기주의, 오만, 회한....
  세 사람의 몸은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
었다. 그들은 지구의 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과거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긴 것이다.  그 긴 인생을 우리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살아왔던가? 창조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너무 쉽
게 파괴적인 삶 쪽으로 쏠려왔던 것은 아닌가!
  세 사람은 마침내 어떤 문 앞에 다다랐다.  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
귀가 새겨져 있었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위대한 '신비'를 깨운친  사람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느낀다.
  맨 먼저 힘겨운 에움길을 무작정 달린다.  어둠 속을 나아가는, 불
안하고 끝없는 행로이다.
  그 다음에는 종말을  앞두고 공포가 절정에 달한다.  전율, 부들거
림, 식은땀, 격심한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단계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갑작스럽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빛을 향해 올라간다.
  눈에 경이로운 빛이  비치고 영혼은 노랫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울
려퍼지는 순결의 땅과 풀밭을 지난다.
  성스러운 말들이  신심을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은  완벽한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신비'를 찬양한다.

  다니엘 로젠펠트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저 글귀를 읽은  적이 있지요. 플푸타르코스의 책에  나오는 겁니
다."  자종이 힘주어 말했다.
  "정말 멋진 글귀인데요."
  "어째 으시시하지 않아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물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저 글귀에 딱 들어맞는  것
같은데요. 저대로라면,  두려움 다음에 빛이 나타나겠군요.  이제 저
글귀대로 단계를  밟아나가면 되는 겁니다. 두려움이  필요하다면 두려워합시다."
  "바로, 쥐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는 듯이 정말로 쥐들이 나타났다.  세 탐
험가는 쥐들이 굽  높은 신발께까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서 쥐들이 몸에  닿을까 전전 긍긍했다. 다니엘이 다시  사진기를 작
동시켰다. 회색 낯짝에  새까만 귀를 가진 징그러운 털  짐승의 모습
이 플래시  불빛에 드러났다. 자종이 부랴부랴  방독면을 나누어주고
주위에 최루가스를 듬뿍 뿌렸다. 쥐들은 이내 줄행랑을 쳤다.
  세 사람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더 내려갔다.
  "우리 뭐 좀 먹을까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제의했다.
  할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은 식사를  했다. 쥐 사건을  모두 잊은 듯했다.
세 사람 모두  최강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좀  썰렁했기 때문에
그들은 식사 끝에 술 한 모금과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씩을 마
셨다. 마편초 차는 언제나 그렇듯이 간간이  입가심으로만 마시는 거였다.

  개미들은 한참을 파들어간 다음 무른 흙이  있는 지대를 거쳐서 다
시 올라온다. 마침내  더듬이 한 쌍이 땅 위로 비죽  솟아올랐다. 잠
망경 같다. 처음 맡는 냄새들이 잠만경에 밀려든다.
  개미들이 한데로 나온다.  세계의 끝 건너편에 다다른  것이다. 여
전히 물의 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다. 몇 그루의  나무, 몇 군데의 풀밭이 보이는가 했더니  이내 단
단하면서 매끄러운,  잿빛의 허허벌판이 나타난다. 개미  도시 하나,
흰개미 도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몇 걸음 나아가니 시커멓고 거대한 것들이  그들 주위로 덤벼든다.
감시자들과 비슷하기는 한데, 마구잡이로 덤벼든다는 점이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앞쪽 멀리에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서 있다. 너무
높아서 더듬이로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돌덩이는 하늘을 가
리고 땅을 짓누르고  있다. 저건 세계의 끝의 벽일 게다.  저 뒤에는
문이 있다. 103683호가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다가 그들은 한 떼의  바퀴벌레들과 맞닥뜨린다. 바
퀴들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 위에  달라붙어 있다. 그들의 딱지는
투명하기 때문에 내장과  기관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혈관  속에서 움
직이는 피도 보인다.  흉측한 것들! 개미들이 바퀴벌레들을  피해 달
아난다. 그때  어떤 덩어리가 떨어져서  수확개미 세 마리가  가루가 되었다.
  그럼에도 103683호와 세 동료는 계속 가기로  마음을 정한다. 구멍
이 송송 뚫린 나지막한 벽돌을 지나  커다란 돌덩어리가 있는 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때, 그들은 너무나 기이한  구역 안으로 들어온 것
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곳은 땅이 빨갛고  우툴두툴하다. 우
물같이 생긴  것이 하나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좀 취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름이 10머리는 족히 될 하얀  공이 하늘
에서 떨어져  통통거리며 그들을 쫓아온다. 그들은  우물로 뛰어들어
가까스로 벽에 달라붙자 공이 바닥에 부딪힌다.
  그들이 다시  우물에서 나온다. 겁에  잔뜩 질려서 허둥지둥  달린
다. 주위를 둘러보니 땅이 파랗기도 하고  풀빛이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다. 도처에 아까와  같은 우물이 있고 하얀 공들이  그들을 쫓아온
다.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 용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 세계는 정말
이지 너무 기이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숨이 끊어질 정도로 내달려  도망을 친다. 지하도를
건너 정상적인 세계로 되돌아온다.

      문명의 충돌(계속)
  두 문명이 만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또 다른  예는,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
다.
  중국 한나라의 연대기를 보면, 서기 115년  경에 로마 제국의 것으
로 보이는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며칠간 표류한 끝에 중국 해안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곡예사들과 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뭍에 닿자마자 그 미지의 나라  주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구경
거리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코 큰  이방인들이 불을 뱉어
내고 자기들의 사지를 묶고 개구리를 뱀으로  바꾸는 광경을 넋을 읽고 보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서방에는 광대와  불 먹는 자들이 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당연하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흘러서야  중국인들의 그릇
된 생각을 일깨워줄 기회가 생겼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이 마침내  조나탕이 만들어놓은 벽 앞에  이르렀다. '성냥
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다니엘은 사진
찍기를 잊지  않았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PYRAMIDE'라는  단어의 철
자를 하나하나 누르고 나자 벽이 스르르  돌아갔다. 오귀스타 할머니
는 자기 손자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지나가자  곧 벽
이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종이 벽에  불빛을 비추었다.  어디나 바위뿐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보았던 벽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아까는 벽이 불그스름했는
데 이제는 벽이 노랗다. 유황의 광맥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공기는 여전히  숨쉬기에 거북함이 없었다. 어디선가  조금씩 공기
가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르뒤크 교수 말대로  이
동굴이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또  한 무리의 쥐들이 나타났다. 앞서  만났던 쥐들보
다 훨씬 더  공격적인 놈들이었다. 자종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방독
면을 다시 쓰고 최루 가스를 뿌렸다. 조나탕이  만든 벽이 자주 회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때마다 '적색  시대'에 있던 쥐들이  먹이를
찾아 '황색  지대'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적색 지대의  쥐들은
그래도 근근히 살아나갈 수 있었겠지만 황색  지대로 이주해 온 쥐들
은 먹고살  만한 것을 전혀  찾아내지 못한 나머지 저희들끼리  먹고
먹히고 했을 것이었다.
  그러니 세 사람은  그 살아남은 쥐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놈
들에게는 최루  가스가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놈들이  덤벼들었
다. 펄쩍펄쩍 뛰면서 달라붙으려고 했다.
  다니엘은 혼비  백산하여, 놈들이 앞을  못 보도록 손전등  불빛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그 흉측한 짐승들은  무게가 수 킬로그램이
나 되는데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세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자종이 오피넬표 접칼을 빼어들고 쥐 두  마리를
찌른다음 그것을  다른 쥐들에게 먹이로 던져주었다.  오귀스타 할머
니는 작은 권총을 몇 방 쏘았다..... 그렇게  그들은 쥐 떼를 벗어났
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렸을 때  나는 몇 시간  동안 땅바닥에 길게 엎드려서  개미집을
관찰하곤 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텔레비전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
로 느껴졌다.
  개미집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개미집을 유린하고 난  뒤에, 개미들은
다친 개미들 중에서 어떤 개미는 데려가고  어떤 개미는 죽게 내버려
두었다. 크기가 모두  똑같았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어떤  선별 기준
이 있길래 어떤  개체는 쓸모가 있고 어떤 개체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은 유황 광맥의 노란 줄무늬가 있는  굴 속을 달렸다. 그러
고 나서 다다른 곳은 어떤 철망이었다. 철망의  가운데에 나 있는 출
입구가 철망  전체의 모습을 고기잡이  할 때 쓰는 통발처럼  보이게했다.
  출입구는 보통 몸집을  가진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
아지면서 둥근 뿔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둥근 뿔의  출구에 뾰족한
것들을 놓았을 것으로 보아 한번 빠져나가면  다시는 되돌아 나올 수 없을 것 같았
다.
  "이건 최근에 설치한 거예요...."
  "그렇군요. 이 문과  이통발을 만든 사람들은 일단  들어온 사람들
이 되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군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것 역시 조나탕의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나탕은 문과 금속에 통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보세요!"
  다니엘이 새김글 위에 불빛을 비추었다.

  여기에서 의식이 끝납니다.
  무의식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하죠?"
  모두가 같은 순간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끝까지 가봅시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다니엘이 말꼬리 같은  머리채가 걸리지 않도록 깃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차례차례 강철 통발 속을 통과했다.
  "이상하네.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말했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통발 속에  들어가 보신 적이  있다구요?"
  "그래요.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
  "아주 오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아주 어렸을 때지. 생후.... 1초나 2초쯤 되었을 때지."

  도시로 돌아온  수확개미들이 세계의 건너편, 괴물들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로 가득 찬 땅을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
다.  바퀴벌레,  시커먼 덩어리들,  거대한  돌덩어리,  우물,  하얀
공....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렇게 괴상한  세계에 도시를 만드는건 불가능해.
  103683호는 구석  자리에 앉아 힘을  다시 모으며 생각에 잠겨  있
다. 동포들이 그의  얘기를 듣게 되면, 모든 지도를 다시  만들고 지
리학의 기본 원칙들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연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통발을 빠져나오고 나서도 세 사람은 한참을  더 걸었다. 정확하게
는 알 수  없었지만 10킬로미터 정도는 족히 나아간  듯했다. 그렇게
걸었으니 피곤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동굴  바닥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에 다다랐다.  실개천의 물
은 아주 뜨겁고 유황 성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다니엘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물의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
뭇잎 위에  언뜻 개미들을 본 것  같았다.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
다. 아마도 유황  냄새 때문에 환각이 일어나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햇다.
  몇백 미터를 더  나아갔을 때, 자종의 발 밑에서  우두둑거리는 소
리가 났다. 그가 불빛을 비추어 보고  떨리는 비명을 질렀다. 해골의
갈비뼈였다! 다니엘과 오귀스타 할머니가  손전등으로 주위를 비추어
보다가 다른 해골 두 개를 더 찾아냈다.  그중의 하나는 크기로 보아
아이 것 같았다. 혹시 조나탕 네 식구들은 아닐까?
  그들은 다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하여 내처  달렸다. 쥐들이 다가
오는 듯 둔중한  울림이 느껴졌다. 벽의 노란 빛깔이  흰색으로 바뀌
었다. 석회암의 빛깔이다.  기진 맥진한 상태가 되어서야  그들은 동
굴의 끝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다시 올라가는  나선 계단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총알을 쥐들을  향해 쏘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나선 계단 쪽으로 뛰어들었다.  자종은 아직 정신이 말
짱해서 그 나선  계단이 먼저 것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계  방향으로 돌
면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벨로캉 개미 하나가 도시 안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온 도시가 술렁
거리고 있다.  클리푸캉이 연방의 예순다섯 번째  도시로 공인되었음
을 알리기 위해 연방의 사절이 올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백성들처럼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
지 않았다. 클리푸니는 벨로캉에서 온 그  개미를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벨로캉에서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를 파견하여 이
도시에 침투시킨 것은 아닐까?
  '그 자는 어떻든가?'
  '아주 지쳐  있습니다. 며칠  만에 오느라고 벨로캉에서부터  달려
온 것 같습니다.'
  기진 맥진해서 주위를 배회하고 있던 그  개미를 발견한 것은 목축
개미들이었다. 그 개미는 이제껏 아무  페로몬도 발산하지 않았으며,
클리푸캉 개미들은 그의 원기를 되찾아주려고  그를 꿀단지 개미들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를 여기로 데려오라.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렇지
만 경비병들은 입구에 머물러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즉각 출동하기 바란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에서 소식이  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던 차에  그곳의 개미 하나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것이
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접하고 클리푸니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 개미가 첩자가  아닐까라는 의심과 그렇다면 그를  죽여버려야 한
다는 생각이었다. 그를 만나볼 때까지는  두고볼 것이지만,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바위 냄새가 풍긴다면 가차없이 죽여버릴 것이다.
  클리푸캉 개미들이 그 벨로캉 개미를 데려온다.  클리푸니와 그 벨
로캉 개미는 상대방을 알아보고 이내 서로에게  달려들어, 위턱을 활
짝 벌리고 가장  기름진 먹이를 교환한다. 감정이 복받쳐서  두 개미
는 한 동안 발산할 페로몬을 잊고 있다.
  클리푸니가 먼저 페로몬을 발한다.
  '조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흰개미 도시는 가보았나?'
  103683호는 동쪽 강을 건너 흰개미 도시를  찾아갔던 일이며, 폐허
가 된 도시에는 흰개미가 한마리도 살아  있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려
준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 몬느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일으킨 자들은 세계의  동쪽 끝
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병정개미가 설명한다. 그  동물들은 보이지 않
고, 느껴지지도 않는  아주 이상한 것들이며, 갑자기  하늘에서 튀어
나와 모든 개미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클리푸니가 주의 깊게 듣고 있다. 103683호가 덧붙인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어떻게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을 조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클리푸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첩자들도  아니고 용병들도  아니며, 유기체와도  같은
도시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는  비밀 군대이다. 그
들은 도시를 고뇌에  빠뜨릴 염려가 있는 정보들을  차단한다.... 그
리고 클리푸니는 그  암살자들이 327호를 죽인 것이며,  클리푸니 자
신을 죽이려 했던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럼 도시 바닥의  바위 밑에 감추어놓은 식량은 어떻게  된 겁니
까? 화강암 속의 통로는요?'
  그 점에  대해서는 클리푸니가 아무 대답을  못 한다. 바로  그 두
가지 수수께기를 풀려고 사절 겸 첩자들을 파견해 놓은 터였다.
  젊은 여왕개미가 벗에게 자기 도시를 구경해  보라고 권한다. 길을
가면서 여왕개미는 물을  얼마나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
한다. 예를 들어 동쪽  강은 빠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곳으로 줄곧
생각되어 왔지만, 그것 역시 물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여왕개미는 거
기에 빠졌어도  죽지 않고 살아났다.  언젠가는 나뭇잎 뗏목을  타고
그 강을 내려가서  세계의 북쪽 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클
리푸니는 어쩌면 북쪽  끝을 자들도 있을 거라면서  그들을 부추겨서
동쪽 끝에 있는  자들과 싸움을 붙일 수도 있으리라며,  흥분된 페로
몬을 발한다.
  103683호는 클리푸니에게 거창한 계획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모든 계획이 실현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벌써 이루어놓은 성과가
분부시다. 그 병정개미는 이렇게 광대한 버섯  재배장이나 진딧물 축
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고, 지하  운하 위를 떠다니는  뗏목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병정개미를 놀라게  한 것은 여왕개
미가 발한 마지막 페로몬이다.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사절들이 두 주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벨로캉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단언한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태어난 그 도시가  세계에 대한 적응력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
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나만  보아도 그
도시가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다. 벨로캉은 달팽이처럼 겁이 많은  도시이다. 옛날에는 혁신적이었
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져 있다. 세댁  교체가 필요하다. 여기 클리푸
캉 개미들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연방을 이끌
게 된다면 연방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65개 도시가  함께 클리푸니의 제안을  실천해 나간다면 열 배나  더
많은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클리푸니는 벌서 강물을  정복할 생각
을 하고 있으며  뿔풍뎅이를 이용하여 비행 군단을  가동시킬 구상을
가지고 있다.
  103683호가 망설인다.  그는 자기의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하여 벨
로캉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클리푸니가  그 계획을 포
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벨로캉에는 비밀 부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자기네들이 원하
지 않는 것은 굳이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나선 계단의 꼭대기에 알루미늄으로 된 층층대는  몇 계단 더 이어
져 있다.  그 알루미늄 층층대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세 사람은 어떤 하얀 문에 다다른다. 또 뭔가가 씌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벽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그 벽은  수정으로
지어졌고, 넘실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처음에 겁을 먹었습니다.
  그런 뒤에 나는  넘실거리는 불길을 헤치고 들어가  수정으로 지어
진 커다란 저택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바라보니 그 집의 벽은 바둑판 무늬가 진  수정의 물결 같았고, 다
닥도 수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천장은 은하수 같았습니다.
  별들 사이사이에 불의 형상이 있었고, 하늘은 물처럼 맑았습니다.
  '에녹' 1장

  그들은 문을 밀고들어가 아주 가파른 통로를  올라간다. 그깨 갑자
기 그들이 밟고 있던 바닥이 무너진다.  회전 바닥이다! 추락의 시간
이 길어지고, 공포의 순간이 지나가자, 그들은  날고 있는 느낌이 든
다. 그들이 날고 있다!
  그들의 몸은 그네  곡예사들이 쓰는 그물처럼 코가  촘촘한 거대한
그물에 떨어진다. 엉금엉금 기면서 그들이  땅바닥을 더듬는다. 자종
브라젤이 다른 문 하나를 찾아낸다. 이 문에는  암호 글자판 같은 것
은 없고 평범한 손잡이가 달려 있을 뿐이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두
동료를 부른 다음, 문을 연다.

  노인
  아프리카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부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움
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자기의 죽
음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살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 아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에 비
해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노
인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이곳에는 파르스름한  빛이 흘러넘치고 있다. 성화와  성상이 없을
뿐 하나의 사원이나 다름없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르뒤크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옛날에 신
교도들이 박해가 심해질 때마다 이곳으로  피신했다는 얘기가 사실인
듯하다.
  돌을 깎아 만든 넓다란 둥근 천장  아래에 널찍하고 아름다운 네모
꼴의 방이 하나 있다. 장식이 될 만한  것이라곤 가운데에 놓인 자그
마한 옛날  풍금뿐이다. 풍금 앞에  보면대가 있고, 그 위에  두툼한
서류철이 하나 놓여 있다.
  벽은 온통 새김글로  덮여 있는데,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은 세속의
안목으로 보더라도  사람의 솜씨라기보다는  악마의 솜씨에  가깝다.
르뒤크가 말한 대로,  신교도들의 뒤를 이어 밀교도들이 이  지하 은
신처를 차지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회전 벽이며, 통발처럼  생긴 문
이며, 그물를  간춘 허방다리는 옛날부터  있던 것이 아님에  틀림없
다.
  어디선가 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세 사람은 소
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두리번 거리며 보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파르스름한 불빛이  오늘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거기에  일종의 실
험실 같은  것이 있다.  컴퓨터와 시험관들이 가득하다.  컴퓨터에는
모두 불이 들어와  있다. 사원을 밝히는 그 파르스름한  빛은 컴퓨터
의 화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뭐가 뭔지 모르시겠지요, 예?"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천
장에 달린 전등에 불이 켜진다.
  세 사람이 몸을 돌린다. 하얀 잠옷을 입은  조나탕 웰즈가 그들 쪽
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실험실 반대쪽에 있는  문을 통해 사원 안
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브라젤  선생님, 로젠펠트 선생님!"
  이 느닷없는 인사에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대답을 못
한다. 그는 죽지  않았다! 저기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 여기에
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지? 세 사람은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갈피
를 못잡고 있다.
  "우리 작은 공동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가 어디지?"
  "여기는 17세기 초에 앙드루에 뒤 세르소가  세운 신교도 사원안입
니다. 장 앙드루에는 파리 생탕투안 가에 있는  쉴리 저택을 지어 유
명해졌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지하 사원이 그가 남긴  최고의 걸작
이에요. 돌을 깎아  만든 수 킬로미터의 동굴이지요.  이미 아셨겠지
만, 어느 곳이나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 앙드루에가 환기
구멍들을 따로 설치해 놓았거나 천연 동굴에  있는 공기 구멍의 원리
를 활용했던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놀
라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공기가 통할 뿐만 아니라  물도 있습니
다. 동굴  몇 군데에 개울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보세
요, 여기까지도 개울이 하나 흘러들고 있습니다."
  조나탕이 졸졸거리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곳을  가리킨
다. 풍금 뒤에 조각 장식을 새겨넣은 샘이 하나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고요를 찾아서 이곳에
은둔했습니다. 어떤 일, 예컨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일을 하
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지요. 에드몽  삼촌은 어떤 비서에서  이
동굴을 발견하고 여기에 와서 일을 하신 겁니다."
  조나탕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에게서 예전  같지 않은 부드러움
과 느긋함이 풍겨나온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건 그렇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진이 다 빠졌을텐데,  저를 따라 오세요."
  그는 방금 전에  들어왔던 문을 밀고 들어가 세 사람을  어떤 방으
로 데려간다.  방 안에는 팔걸이가 없는  긴 의자 몇  개가 둥그렇게 놓여 있다.
  조나탕이 소리친다.
  "뤼시, 손님들이 오셨어!"
  "뤼시라구! 그 애도 함께 있니?"
  오귀스타 할머니가 기쁜 마음에 소리친다.
  "그렇군, 여기에 모두 몇 명이 있는 겐가?"
  다니엘이 묻는다.
  "여러분께서 오시기  전까지 열여덟 명이었습니다. 뤼시,  니콜라,
소방대원 여덟, 갈랭  형사, 치안 대원 다섯, 빌솅 경정,  그리고 저
까지 열여덟  명입니다. 한마디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내려온 사람들
전부죠. 곧  그들을 만나게되실 겁니다.  모두 자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지금 새벽 네 시거든요. 여러분께서  오시는 소리를 듣
고 저만 잠이 깬 거예요. 그건 그렇고  오시면서 봉변을 당하지는 않으셨나요?"
  뤼시가 나타난다. 그녀 역시 잠옷 차림이다.
  "안녕하세요!"
  뤼시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세 사람과  뺨을 맞대며 인사를 나눈
다. 그녀의 뒤에는  파자마 차림의 사람들이 새로 온  사람들을 보려
고 문설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나탕이 샘물이 담긴 커다란 병과 물잔을 가져온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들어가서 옷도 갈아입고  나머지
사람들을 깨워서 여러분을 맞을 준비를 해야  되니까요. 우리는 새로
운 사람들이 올  때마다 조촐한 잔치를 벌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
밤중에 오실 줄은 몰랐어요.... 조금 있다 뵙겠습니다!"
  오귀스타 할머니와 자종과 다니엘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사실이 너무나  엄청나다. 다니엘이  갑자기 자기 팔뚝을  꼬집는다.
오귀스타 할머니와 자종도 다니엘의 행동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 자기들도 따라 한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이  꿈보다 더 믿기지 않
을 때가 있는  법이다. 세 사람은 얼떨떨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마
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몇 분 후,  모든 사람들이 긴 의자 위에 둘러앉았다.  오귀스타 할
머니와 자종과 다니엘은 마음을 가다듬고 온갖  궁금증을 풀 수 있으
리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좀 전에 환기  구멍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지표 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겐가?"
  "아니예요. 기껏해야 4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거예요."
  "그럼 바깥으로 다시 나갈 수는 있는 겐가?"
  "아니예요. 장 앙드루에 뒤 세르소는 이  사원을 어떤 것으로도 깨
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도 거대한 바위 바로  밑에다 세웠어요.
화강암으로 된 바위예요."
  "그래도 팔뚝 크기만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기는 해요. 그 구멍이
당시에는 통풍구 구실을 했던 거지요."
  뤼시가 남편의 말을 거들었다.
  "지금은 그것이 통풍 구멍으로 안 쓰인다는 얘긴가요?"
  "예, 지금은 그  구멍을 다른 용도로 쓰고 있어요.  그래도 상관없
어요. 옆쪽에 다른 통풍 구멍들이 있거든요.  지금 숨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시잖아요."
  "우리는 그럼 나갈 수 없는 겐가?"
  "예, 다른 곳으로는 혹시 몰라도 바로 위쪽으로는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제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자종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조나탕 자네는 왜 그 회전  벽이며 통발이며 밑이 빠지는
바닥이며 그물 따위를 설치한 겐가?"
  "그건 바로  에드몽 삼촌께서  계획한 대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거 만드느라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썼고 힘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
나 꼭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이 사원에 와서  저는 보면
대와 마주쳤습니다. 그 위에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
전' 말고도 에드몽 삼촌이  직접 제 앞으로 써놓은 편지가 한  통 있
었습니다. 이게 그 편지입니다."
  세 사람이 편지를 차례로 읽는다.

  사랑하는 조나탕에게
  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려오기로 결심을  했구나. 결국 너
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용기가  있었던 셈이야. 잘했다. 나는
네가 성공할 확률이 5분의 1정도라고 생각했지  네 어머니가 너의 어
둠 공포증에 대해서 얘기해 준 적이 있단다.  네가 여기에 왔다는 사
실은 무엇보다도 먼저 네가 그 약점을  극복해 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의지력이  강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 서류철 속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사전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연구 작업에 대해
서 적어놓은 288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네가  288개의 장
들을 모두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것들은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이 사전에 담긴  연구의 주안점은 개미 문명에 있다.  읽어보면 자
연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먼저 너에게 당부해 둘 것이  하나 있
다. 네가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은 내가  미처 내 비밀을  지키는 데
필요한 안전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내가 그것을
마련했더라면 네가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안전 장치를 설치해 줄 것을 부탁한다.  내가 구상한 것을 몇가
지 스케치해 두겠지만, 네가 더 잘 아는게  있다면 내 제안을 수정해
도 좋다. 이 기계 장치의 목적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이곳까지 쉽사
리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하고,  일단 들어온 사람은  자기가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러 다시 나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네가 잘해
내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장소가 나에게 가져다준  만큼의 '풍요로
움'을 너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에드몽

  "조나탕은 그 일을  해냈어요. 에드몽 삼촌이 구상한  함정들을 다
설치했지요. 여러분께서도 그것들의 성능을 확인하셨을 거예요."
  뤼시가 토를 달았다.
  "그런데 그 시체들은 뭐였지? 쥐들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인가?"
  "아니예요. 에드몽 삼촌이 여기에 자리잡으신  뒤로 이 지하실에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장담할 수 있어요. 여러분께서  보신 해골들
은 아무리  못 돼도 50년 전에  죽은 사람들 거예요.  그때 여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지요. 어떤 밀교 집단이...."
  "그런데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겐가?"
  자종이 불안해 하며 물었다.
  "전혀 없어요."
  "밖으로 나가려면 그물 위쪽에 있는 구멍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물
에서 구멍까지의 높이가 8미터나 돼요. 또  통발같이 생긴 그물은 들
어올 때와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지요.
게다가 암호 글자판이 있는 문도 통과해야  하는데 조나탕이 문의 이
쪽에서 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놓지 않았어요."
  "쥐들은 또 어떻고요...."
  "쥐를 어떻게 지하실로 데리고들어온거지?"
  다니엘이 물었다.
  "그건 에드몽  삼촌의 생각이예요.  삼촌은 울퉁불퉁한 바위  벽의
어느 우묵한 자리에  아주 크고 공격적인 쥐 한 쌍을  충분한 먹이와
함께  놓아두었어요. 라투스  노르베기쿠스라는 쥐였습니다.  삼촌은
그 쥐들이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셨던  겁니다. 먹
이를 충분히  먹으면 그 쥐들은  기하 급수적인 속도로  불어납니다.
매달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두 주일  지나면 그것들이 또 새끼
칠 채비를 하지요..... 삼촌은 그 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류 동물들이  견디기 힘들어  하는 공격적인 페로몬을  분사하곤 했지요."
  "그럼 우아르자자트를 죽인 게 그 쥐들이로구나?"
  오귀스타 할머니가 물었다.
  "불행하게도 그건  사실이예요. 그리고  조나탕은 회전 벽  건너로
옮겨간 쥐들이 훨씬 더 사나와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요."
  "제 동료들 가운데  하나는 전부터 쥐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커다란 쥐 한 놈이 얼굴로 달려들어  코 한 귀퉁이를 깨무는 바람
에 완전히 넋이 나갔어요. 그 친구는 회전  벽이 제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바로 빠져나가서  다시 올라갔어요. 바깥에서 그 친구  소식 못 들으셨어요?"
  치안 대원 한 사람이 물었다.
  "소문에 그 사람은 미쳐버려서 정신 병원에 갇혀 있다더군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대답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  물잔을 가지러 갔다가 탁자  위에 개미들
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손전등으로 개미들을 쓸어버린다. 조나탕이  펄쩍 뛰
어와서 할머니 손목을 잡는다.
  그의 눈길이 자못 험악하다. 이제껏 그들  집단에서 물씬 풍겨나오
던 극도의 평온함과  아주 대조적이다. 입술을 바르르 떠는  그의 옛
버릇이 되살아났다.
  "다시는 이러시면 안 돼요.... 절대로!"

  자기 방에 홀로 있는 벨로키우키우니가 제가  낳은 알 한 무더기를
무심히 집어먹는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의 영양  섭취가 우선인 것이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801호라는 자가 새 도시의  사절로만 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56호, 아니 자칭  클리푸니 여왕이 자기가 조사하
던 일을 계속하게 하려고 그를 보낸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아무 문제
없이 그  자를 처치할 것이다.  특히 절름발이 병정개미는  불필요한
목숨을 제거하는  데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거의  예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꺼림칙한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클리푸니가 사
절들을 보내온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 사절들은  한결같이 도시
의 비밀을 꼬치고치  캐려고 했다. 첫 사절들은 로메슈제가  있는 방
을 찾아내기도 전에 죽음을 당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절들은 그
딱정벌레의 중독성 강한 환각 물질에 빠져버렸다.
  801호라는 자도 벨로키우키우니와의 면담을  끝내자마자 아래로 내
려간 듯하다. 사절들이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다. 매번 도시 밑바닥
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그  사절들 가운데 기어이  그 통로를
찾아낸다면? 그리고 비밀을 알아낸다면? 그리고  그 비밀을 폭로하는
페로몬을 퍼뜨린다면....
  겨레는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막는 병
정개미들도 더 이상 정보를 차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벨로
캉의 백성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 하나가 서둘러 들어온다.
  '그 첩자가 로메슈제를  죽여버렸습니다. 그 자가 바닥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무제
  666이 그 짐승의 이름입니다. '요한 계시록'
  그런데 누가 누구에 대해서 짐승이 되는 것일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조나탕이 할머니의  손목을 놓는다. 어색한 분위기가  오래가기 전
에 다니엘이 기분을 바꾸려고 얼른 말문을 연다.
  "사원 초입에 있는 저 실험실은 뭐 하려고 만든 거지?"
  "그건 '로제타  석'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열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열망이란 그들과  의사 소
통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라니, 누구 말인가?"
  "개미들입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요."
  그들은 거실을  떠나 실험실로 간다.  조나탕이 돌로 만든  작업대
위에서 개미가 가득  담긴 시험관을 꺼내 눈 높이로  들어올린다. 그
의 표정에 에드몽 후계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만족해 하는 빛이 역력하다.
  "보세요, 이게  그 생명들입니다. 완전한 자격을  갖춘 생명들이지
요. 이들은 한낱 보잘것 없는 미물들이  아닙니다. 삼촌은 그 사실을
진작에 깨달았습니다.... 개미는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문명
을 이루고 있습니다. 에드몽 삼촌은 말하자면  콜롬부스 같은 분입니
다. 우리의 발가락 사이에서 신대륙을  발견한거죠. 우주로 외계인들
을 찾으러  가기 전에 먼저  지중 생물들을 만나야 마땅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분입니다."
  모두 할 말을 잊고 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
리고 있다. 퐁텐블로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신발창 밑
에서 뭔가 아주  작은 것들이 오도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 무리
의 개미들을 밟은  것이었다. 몸을 숙여 바라보니 개미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개미들은 끝이 뒤집
어진 화살 모양을 이루려는 듯 나란히 줄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조나탕이 시험관을 내려놓고 자기 얘기를 이어간다.
  "삼촌은 아프리카에서 돌아오신 뒤에 시바리트 가의  그 건물과 지
하실과 이  사원을 발견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습니
다. 그분은 여기에 실험실을 만드셨습니다.... 그분  연구의 첫 단계
는 개미들이  대화할 때 발산하는 페로몬을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에 사용된 기계는 질량 분광기입니다. 그  이름에서알 수 있듯이
그것을 통해 질량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고, 어떤  물질이라도 분석
해서 구성원소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다  삼촌께서 적어놓으
신 것을 읽고 알게 되었죠. 삼촌은 우선  실험용 개미들을 유리 덮개
아래에 놓았습니다. 그  유리 덮개에는 대롱이 달려 있고  그 대롱을
통해 덮 개 안에 발산된 페로몬이  질량 분광기로 빨려들어오도록 되
어 있습니다. 삼촌은  개미를 사과 한 조각과 만나게 합니다.  그 개
미가 다른 개미를 만나서 틀림없이 이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저기
사과가 있다.' 결국 그러한 가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삼촌은 개
미가 발산한 페로몬을  빨아들여서 그것을 분석한 다음  하나의 구조
식을 이끌어냅니다.....
  예를 들어  '북쪽에서 사과가 있다.'라는 말은  '메틸-4메틸피롤-2
카르복실산'으로 표현됩니다. 페로몬의 양은 지극히  적어서 한 문장
마다 약  2-3피코그램(10E-12g)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충분했
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사과'와 '북쪽'을  개미들이 어떻게 말하
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삼촌은  많은 물건과 먹이를 가지고,  또
상황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 가면서 실험을  계속하셨습니다. 그 결과
로 '프랑스어-개미어  사전'이라고 할  만한 것을 얻게  되셨습니다.
삼촌은 열매 이름  약 100개, 꽃 이름  약 30개, 방위 이름  열 개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경보 페로몬, 기쁨 페로몬, 제안  페로몬, 묘사
페로몬 등을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식 개미들도 만나서
그들이 더듬이 일곱  번째 마디로 '추상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
법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삼촌은 개미들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삼촌은 다음  단계로 개미들에게 말
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대단해!"
  경탄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로젠펠트 교수가 중얼거린다.
  "삼촌은 먼저  각각의 구조식을 음절 형태의  소리에 대응시켰습니
다. 예를 들어 메틸-4메틸피롤-2카르복실산을 MT  4MTP 2CX로 나타내
고, 이것을  다시 '미티카미티피디식수(Miticamitipidicixou)'로  표현하는 겁니다.

     대화발췌
  불개미속 루파 종의  전형적인 한 병정개미와 나눈  첫번째 대화의 발췌문.

  인간: "내 신호를 받고 있나요?"
  개미: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
  인간: "내가 신호를 보냅니다. 내 신호를 받고 있나요?"
  개미: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크르르르크르르르르르르르르.  개미살려.....'
  (주: 기계를 몇  군데 조정했다. 특히 송신이 너무  강해서 피실험
자를 놀라게 했으므로 송신 스위치를 1에  놓아야 한다. 반대로 수신
스위치는 분자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10까지  밀어올려야 한다.)
  인간: "신호를 받고 있나요?"
  개미: '이게 뭐야.'
  인간: "내가 신호를 보냅니다. 내 말이 들리나요?"
  개미: '에그머니나, 개미살려. 아유 숨막혀.'

   세 번째 대화의 발췌문
  (주: 이번에는 어휘를  80단어 더 늘였다. 송신이 여전히  너무 강
했으므로 다시 조종해서 스위치를 0에 아주 가깝게 놓아야 한다.)

  개미: '뭐요?'
  인간: "뭐라고요?"
  개미: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개미 살려!'
  인간: "더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개미: '당신 냄새가 너무 강해요! 내  더듬이가 포화 상태예요. 개
미 살려! 아유 숨막혀.'
  인간: "자, 됐나요?"
  개미: '아니오, 당신 대화할 줄 모르는군요?'
  인간: "그럴 겁니다."
  개미: '당신 누구세요?'
  인간: "난 커다란 동물입니다. 내 이름은 에드-몽. 인-간입니다."
  개미: '뭐라구요,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개미 살려!  도와 줘요 아유 숨막혀
!....'
  (주: 이  대화를 끝내고 그  피실험자는 5초 후에 죽었다.  송신이
여전히 너무 강했던 걸까? 그가 겁을 먹었던 걸까?)

  조나탕이 읽기를 중단하고 설명을 계속한다.
  "아셨겟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어휘만 축적한다
고 그들과 대화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개미  언어는 기능하
는 방식이 우리 언어와 다릅니다. 개미들이  주고받는 페로몬에은 순
수하게 대화를 위한  것 말고도, 나머지 열한 개의  더듬이마디가 발
산하는 페로몬이 더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개미들은 개체의 신
분, 직업, 심리  상태.... 즉, 개체 상호간의 원만한  이해에 필요한
전체적인 정신 상태  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에드몽  삼촌이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분의  노트을 읽어보겠습니다.

      어리석은지고
  어리석은지고! 설사  외계인이 존재한다. 한들, 우리는  그들을 이
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려고 할 때 그것이
그들에게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우리가 악수를 하려
고 손을 내밀며 다가가면, 그들은 그것을  위협하는 몸짓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할복 자살을  하는 일본인이나 카스트 제도를  가진 인도인
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들끼리도 서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마당에.... 개미를 이해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품었다니!

  801호의 배가 잘려나가고 짤막한 동강만  남았다. 로메슈제를 제때
에 죽이기는 했어도  버섯 재배장에서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
들과 접전을  벌이다가 몸뚱이가 참혹하게 잘린  것이다. 낭패스럽기
도 하고 잘된  일이기도 하다. 배가 떨어져나가고 나니  가볍기가 이
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801호는 화강암  속에 파놓은  널찍한 통로로 들어간다.  개미들의
위턱으로 이런 통로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  바닥에 이르니 클리푸니
가 일러준 것이  나타난다. 많은 양식으로 가득 찬 방이다.  방 안으
로 몇발짝  들어가자 다른 출구가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이내
하나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냄새가 나는 완전한  하나의
도시가! 도시 아래 또 도시가 있다.

  "결국 에드몽은 실패한 겐가?"
  "사실 삼촌은 한동안  그 실패를 되새기며 연구를  중단했지요. 인
간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다른 출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그러던 차에  어떤 일
이 벌어져 염세적이  태도가 도지면서 삼촌은 다시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전에 삼촌 얘기 해주신  거 기억하시죠? '스위트밀크'라
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동료들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 말이에요."
  "상사 가운데 한  사람이 삼촌의 사무실을 뒤졌습니다.  그 상사가
바로 마르크 르뒤크로서 로랑 르뒤크 교수의 형입니다."
  "곤충학자 말이냐?"
  오귀스타 할머니가 끼여든다.
  "스스로 그렇다고 주장하지요."
  "이럴 수가.... 그 사람 우리 집에  왔었다. 자기가 에드몽의 친구
라고 주장하면서 지하실에 내려갔었지."
  "그 사람이 지하실에 내려왔어요?"
  "그래,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그는 얼마 못  오고 되올라갔으니
까, 회전 벽을 통과 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랬군요. 그 사람  니콜라를 만나고 간 적도 있어요.  백과 사전
을 손에  넣으려고 했던 거지요.  그건 그렇고.... 마르크  르뒤크는
삼촌이 기계 설계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바로 로제
타 석의 기초  설계도들을 본 것입니다. 그는 에드몽  삼촌의 서류함
을 열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에  관한 서류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는  개미와 의사 소통을 위한 기계의  초기 구
상을 담은 모든 설계 도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이 이해하기에
충분한 주석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기계가  쓸모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동생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연  동생은 아주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내 그  서류들을 훔쳐달라고  형에게 부탁을  했지
요.... 그런데 에드몽  삼촌이 누군가가 자기 물건들을  뒤졌다는 것
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하려고 서랍 안
에 맵시벌 네 마리를 넣어두었지요. 마르크  르뒤크는 서류를 훔치러
다시 들어왔다가 그 곤충들에게 쏘였습니다. 그  곤충들은 살갗에 침
을 박아서 몸 속에 알을 깔기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나중
에 그 애벌레들이 몸 안에서 살을 파먹게 되지요.
  다음날 에드몽 삼촌은  곤충의 침을 조사하여 범인을  찾아내고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했습니다. 그 뒷얘기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쫓겨난 건 삼촌이었지요."
  "르뒤크 형제는 어떻게 됐나?"
  "마르크 르뒤크는  벌을 톡톡히  받았어요. 맵시벌 애벌레들이  몸
속에서 그의  살을 파먹었거든요.  아주 오랫동안 시달렸지요.  아마
몇 년은  될 겁니다. 애벌레들이  성충으로 탈바꿈하려면 그  거대한
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출구를  찾아서 사방
으로 파고드는 겁니다. 결국 고통을 견디다 못  한 그는 지하철 차량
밑으로 몸을 던졌어요.  저는 그것을 우연히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로랑 르뒤크는?"
  "그는 기계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어요...."
  "그런 것이 에드몽으로 하여금 다시 연구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는 얘기 같은데, 도대체 그 오래  전 사건하고 에드몽의 연
구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겐가?"
  "뒷날 로랑  르뒤크는 에드몽  삼촌을 직접  만났어요. 그때  그가
'개미와 대화하는 데  쓰이는' 기계에 대해 알고  있다고 고백했습니
다. 그는 그것에 관심이 많다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지요. 삼촌
은 그 제안을  별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연구가 답
보 상태에 있는 데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사람이  홀로 계속 나아갈 수 없는  때가 오리라'라
는 성경 말씀도 있잖습니까. 에드몽 삼촌은  르뒤크를 동굴로 데려갈
생각과 함께, 그를 좀더 알고 싶어했어요.  둘이서 많은 얘기를 나누
었습니다. 그때 로랑이 인간이 개미들과 대화하게  되면 분명히 개미
들을 모방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개미들의 질서
와 규율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에드몽  삼촌은 심한 노여
움을 느꼈습니다. 삼촌은  화를 벌컥 내면서 다시는 자기  집에 얼씬
도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지요."
  다니엘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보탠다.
  "푸후, 뻔한 일이지.  르뒤크는 어떤 비교 행동 학자들  패에 가담
하고 있지. 동물의 행동을 어떤 측면에서  모방하여 인류을 변화시키
려는 자들이 도이치  학파인데, 그 안에서도 그 패거리들이  제일 심
하다네. 활동 구역에 대한 동물들의 지각,  개미들의 규율 따위에 대
해서 그들은 여전히 환상을 품고 있지."
  "에드몽 삼촌이 갑자기 연구를 다시 시작할  이유를 갖게 되었습니
다. 삼촌은 말하자면 정치적인 관점에서 개미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
습니다. 삼촌은  개미들이 무정부주의적인 원리에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긴 그래!"
  빌솅이 중얼거렸다.
  "삼촌은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개미의 입장에서  연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촌은 다시 오랫동안 곰곰히 생각한  끝에 개미와 의
사 소통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은 '개미 로봇'이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조나탕이 그림이 그려진 종잇장을 흔든다.
  "이것이 그 로봇의 설계도입니다. 삼촌은 그  로봇에 '리빙스턴 박
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재료는 플라스틱입니다. 그  작은 걸작
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
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일을 어디 손목 시계  만드는 것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마디 하나하나를  개미의 걱과 똑같이  만들어
아주 작은 전기 모터의 힘으로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그 전기 모터
는 뱃속에 있는  전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더듬
이는 실제와 똑같이  동시에 열두 가지 페로몬을 발할 수  있는 열두
마디를 갖추고 있습니다. '리빙스턴 박사'가 진짜  개미와 다른 점은
머리카락 굵기만한 11개의 대롱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
롱들이 다시 모여서 가는 실 굵기만한  일종의 탯줄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자종이 흥분된 어조로 경탄한다.
  "그런데 '리빙스턴 박사'는 어디에 있니?"
  오귀스타 할머니는 묻는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801호를  추격하고 있다. 도망치던
801호가 문득  아주 널찍한 통로를  발견하고 서둘러 그리로  들어간
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에 거대한 방이 하나 있는데,  방 한가운
데에 이상한 개미  하나가 오도카니 웅크리고 있다. 몸집은  보통 개
미보다 월등히 크다.
  801호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 홀로 있는  이상한 개미는 반 정
도 진짜 개미의 냄새를 풍긴다. 그 개미의  눈은 빛나지 않고 껍데기
는 검은색을 덧씌운 것처럼 보인다..... 젊은  클리푸캉 개미는 호기
심을 느낀다. 어떻게 저렇게 생기다 만 개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병정개미들이  벌써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절름발이가
결투를 하려고  혼자서 다가온다.  그가 801호의 더듬이로  덤벼들어
물기 시작한다. 두 개미가 땅바닥에 나뒹군다.

  801호는 어머니의 충고를 떠올린다. '적이 너의  어떤 부분을 유달
리 자주 공격하는지  보거라. 그곳이 대개 그  자의 약점이니라....'
과연 801호가 절름발이 개미의 더듬이를 낚아채자  그가 격렬하게 몸
을 뒤튼다  그자는 너무나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련한 것! 801호는  그의 더듬이를 싹뚝 자르고  달아나는데 성공한
다. 그러나 이제 50마리가 넘는 개미떼들이  801호의 뒤를 쫓아 몰려든다.

  "'리빙스턴 박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으세요? 질량 분광기에
서 나온 실들을 따라가세요."
  조나탕 말대로 투명한 대롱 같은 것이  석조 작업대를 따라 가다가
벽에 연결되어 천장까지  올라간 다음, 사원 한가운데 풍금  바로 위
에 매달린 커다란 나무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 상자에
는 흙이 채워져 있는 듯하다. 새로 온 세  사람은 상자를 좀 더 자세
히 보려고 목을 길게 뺀다.
  "우리 머리 위에 깨뜨릴 수 없는 바위가 있다더니."
  오귀스타 할머니는 의아한 점을 지적한다.
  "예, 그런데  우리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통풍 구멍이  있다는
말씀도 드렸잖아요."
  "그것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막아버렸기
때문은 아니예요."
  갈랭 형사가 거든다.
  "여러분들이 막은 게 아니라면?"
  ".... 그들이죠!"
  "개미들이요?"
  "그렇지요! 거대한 불개미  도시가 돌 바닥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
다. 숲속에 커다란 잔가지 지붕을 만드는 개미들이지요...."
  "에드몽 삼촌의 추정에  따르면 저 위에 천만 마리  이상의 개미가
있다고 합니다."
  "천만 마리? 그럼 개미들이 우리 모두를 죽일 수도 있겠구만!"
  "아니예요, 겁내실  건 없어요, 우선  그들이 우리와 대화를  하고
우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요. 그 다음으로 그 도시의  모든 개미들
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조나탕이 그 말을 하고 있는데 개미  하나가 천장의 상자에서 떨어
져 뤼시와 아미  위에 닿는다. 뤼시가 그 개미를 집으려고  한다. 그
러나 801호는  도망을 쳐서 뤼시의  살구빛 머리채 속에서  해매다가
귓볼 위로 미끄러져 내려가 목덜미를 달려내려간  다음, 잠바 속으로
들어가서 젓가슴과 배꼽을  돌아 허벅지의 여린 살갗  위를 내리닫더
니 발목으로 떨어진다. 거기에서 땅바닥을  향해 뛰어내리더니, 잠시
방향을 가늠하다가 측벽에 뚫린 구멍 쪽으로 달려간다.
  "저 개미 왜 저러지?"
  "글쎄요. 잘은 몰라도 통풍 구멍의 신선한  공기가 저 개미를 유인
했을거예요. 별문제 없이 다시 나올거예요."
  "하지만 저래 가지고는 제 도시를 못  찾아가겠는걸. 아예 연방 동
쪽으로 가겠어. 그렇지?"

  '첩자가 달아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스스로  예순다섯번째
도시라고 칭하는 도시를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더듬이를 낮추고  보고를 해왔다.
그들이 물러간 뒤에  벨로키우키우니는 잠시 자기의 비밀  정책을 심
각한 실패에  빠뜨린 그 사건을  곱씹는다. 그러다가 아주  피곤해진
벨로키우키우니는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던가를 회상한다.

  아주 어렸을 때  벨로키우키우니는 어떤 거대한 실체가  배후에 있
음을 추정케 하는 무시무시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를 목격한 적이 있
었다. 어머니에게서  떨어져나온 직후에, 벨로키우키우니는 어떤  시
커먼판이 몇몇  수태한 여왕개미들을 잡아먹지도 않으면서  짓눌러버
리는 것을 보았다.
  훗날 자기의  도시를 건설하고 나서,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주제를
다룰 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그 회의에는  어이딸 가리지 않고
모든 여왕개미들이 참석했었다.
  벨로키우키우니가 지나간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을 때  제일 먼
저 말문을 연  것은 주비주비니였다. 그 여왕개미는 자기가  보낸 원
정대 가운데 몇몇이  장미빛 공의 세례를 받고 백 마리  이상이 사망
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여왕개미들은 한술씩 더 떴다. 각자 장미빛  공과 검은 판 때
문에 생긴 사망자와 부상자의 수를 들먹였다.  늙은 여왕개미 콜블가
이니가 이르기를, 증언에 따르면 장미빛 공들은  언제나 다섯씩 떼를
지어 다니는  듯하다고 했다. 루브그펠리니라는 다른  여왕개미는 지
하로 거의  300머리 가까이 들어와서 꼼짝  않고 있는 공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장미빛  공은 꽤 독한 냄새가 나고  물렁물렁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위턱으로 뚫고 들어가보니  하얗고 딱딱한
줄기가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그 동물들은  몸 밖에 껍데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껍데기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회의를 끝내면서,  모든 여왕개미들은 그러한 현상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개미 도시에  공포가 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절대적인 비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벨로키우키우니는 아주 신속하게 자기 나름의  '비밀 정치'를 계획
하고 당시에  병정개미 50마리로 구성된  작업 단위를 말들었다.  그
병정개미들의 임무는 도시  안에 광기와 공포의 위기가  생기지 않도
록 장미빛 공이나 검은 판에 대해  증언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지의 어떤 도시에서 온 일개미 하나가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
개미들에게 붙잡혔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일개미의 이야기가 이제
껏 들어본 어떤 이야기보다 기상 천외해서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 일개미는 자기가 장미빛 공들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
다. 장미빛 공들은 그를 다른 수백 마리와  함께 투명한 감옥에 가두
었다. 그러고는 개미들을  가지고 갖가지 실험을 했다.  장미빛 공들
이 가장 흔히 했던 일은 개미들을 유리  덮개 밑에 넣어두고 아주 농
도가 짙은 냄새들을 뿜어 개미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에는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냄새가 희석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마침내 그 냄새들과  유리 덮개를 매개로 장미빛  공들이 개미들에
게 말을 걸어왔고, 자기들을 '인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동
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벨로캉 밑의 화강암 속에 통로가  나 있
다면서 여왕개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여왕개미는 그게
별로 해로울 게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벨로키우키우니
는 그들의  '개미 사절'인 '리빙스턴  박사'를 만났다. 그는  내장이
훤히 비치는 기다랗고 이상한 개미였지만  벨로키우키우니는 그와 대
화를 나눌 수 있었다.
  둘은 오랫동안 대화를 가졌다. 처음에는 그의  얘기를 전부 이해하
지는 못했다. 하지만 둘 다 똑같은 흥분을  느끼고 있었고 함께 나눌
얘기가 너무나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인간들은 통풍 구멍 입구에 흙이  가득 담긴 통을 설치했다.
그리고 벨로키우키우니는 다른  모든 백성들 모르게 그  새로운 도시
에 알을 뿌렸다. 제2의 벨로캉은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의 도
시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미들의 세계와 인간들의  세계 사이에 있
는 중개 도시였다. '리빙스턴 박사'(어쨌든  참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다)가 상주하고 있는 곳이 그곳이었다.

    대화발췌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와 나눈 열여덟 번째 대화의 발췌문.
  개미: '바퀴라고요?  우리가 바퀴를 사용할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쇠똥구리들이  공을 밀고 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거기에서 바퀴를 생각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인간: "이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개미: '현재로선 모르겠습니다.'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와 나눈 쉰여섯 번째 대화의 발췌문.
  개미: '어조가 슬프게 느껴집니다.'
  인간: "냄새를  발산하는 내 기계를  잘못 조절해서 그럴  겁니다.
감성적인 언어를 첨가한 뒤로 기계가 작동이 잘 안 됩니다."
  개미: '어조가 슬프게 느껴집니다.'
  인간: "....."
  개미: '더 이상 발산할 냄새가 없습니까?'
  인간: "이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입니다만, 사실 나는 슬픕니다."
  개미: '무슨 일인가요?'
  인간: "나에게  암컷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서는 수컷들
이 암컷만큼 오래  삽니다. 그래서 수컷과 암컷이 서로  도우며 짝을
지어 삽니다. 그런데  나의 암컷을 몇 년 정에 잃었습니다.  나는 그
암컷을 사랑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개미: '<사랑한다>는게 무슨 뜻입니까?'
  인간: "우리가  같은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마 사랑한다는 것일 겁니다."

  벨로키우키우니는 '인-간 에드-몽'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다.
  난쟁이개미들과 첫번째  전쟁을 치르던  때의 일이었다.  에드몽은
벨로캉 개미들을 돕고 싶어했다. 에드몽은  지하실에서 나왔다. 그는
페로몬을 줄곧 다루어왔기 때문에, 몸에는 온통  페로몬이 배어 있었
다. 그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숲속으로 들어왔다. 말하자면  그는
연방의 한  불개미로서 온 셈이었다.  마침 그때 전나무의  말벌들이
그의 통행허가  페로몬 냄새를 맡았다(그 당시  불개미들은 말벌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말벌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말벌들은 그를  벨로캉 개미로 알고  죽인 것이다. 그는  행복하게
죽었음에 틀림없다.
  뒷날, 조나탕이라는 사람과 그의 공동체가 연락을 재개했다....

  조나탕이 새로  온 세 사람의 잔에  꿀물을 더 붓는다.  세 사람은
계속 질문을 던져 그의 대답을 재우친다.
  "그런데 '리빙스턴  박사'는 저 위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재생해서
전달할 수 있는가?"
  "예, 그리고 우리는  개미들의 얘기를 그 로봇을 통해 들을  수 있
지요. 개미들의 대답이 저 화면에 나타나면  그걸 보는 겁니다. 에드
몽 삼촌이 완전히 성공하신 거예요!"
  "그런데 에드몽과 개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었지! 그리고 자네들
은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
  "그건 말이죠.... 로봇을 통한 접촉에 성공한  다음부터 에드몽 삼
촌의 기록이 조금 듬성듬성해졌어요. 삼촌은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
에 집착하지는 않았던  듯해요. 그건 그렇고, 초기에는  서로 자기를
설명했고, 각자 자기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
리는 개미들의 도시가 벨로캉이라는 것을 알았고,  벨로캉이 수억 개
미를 가진 어떤 연방의 중심 도시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군!"
  "그 후  양쪽은 자기 세계의  거주자들이 정보를 퍼뜨리기엔  너무
이르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접촉'에 관한 절대적인  비밀을 보장하
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소방대원 한 사람이 끼여들어 덧붙인다.
  "에드몽 웰즈 교수가 조나탕보고 그 모든  장치를 설치하라고 신신
당부했던 게 그  때문입니다. 그분은 특히 사람들이 너무  일찍 알기
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나 신문들이 야단 법석을 떨면서 일을  망쳐버릴까봐 무척 걱정을 했
던 것이지요.  광고, 열쇠 고리,  티셔츠, 인기 연예인들의 쇼  들의
제작자들이 그 발견을  둘러싸고 벌일 온갖 어리석은  짓거리를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도  자기 백성들이 그 사실을  너무 일찍알게 되면 바로
그 위험한 외계인들을 상대로  싸우러나설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뤼시가 덧붙인다.
  "그렇지요. 두 문명은  아직 서로를 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하물며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개미들은 파시
스트들도 무정부주의자들도  왕정주의자들도 아닙니다. 그냥  개미입
니다. 그들의 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은 우리 것과 다릅니다.  또 그
렇게 다르다는 것이 그들 세계의 풍요를 만들어내는 것일 테고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은 빌솅 경정이다. 그는 상관인  솔랑쥬 두망
을 떠나 여기에  들어온 이후로 확실히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 조나
탕이 말을 잇는다.
  "도이치 학파와 이탈리아  학파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
미들을 '인간의' 이해  체계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하기 때문입
니다. 그러니 분석이  거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우
리의 삶을 개미들의 삶과 비교하여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
자면 인간을 개미의  이체 동종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미들의 특수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흥미진진하지요. 사람들
은 일본 사람,  티벳 사람, 인도 사람 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들의 문화,  음악, 철학에 홀딱  반하고, 우리 서양의  사고방식으로
왜곡하기도 하지요.  우리 지구의 미래는  이종 교배에 있음이  아주 분명합니다."
  "그런데 두 문명이  만난다고 할 때 개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오귀스타 할머니가 의아해 묻는다. 조나탕은 아무  대답 없이 뤼시
에게 신호를 보낸다.  뤼시는 잠깐 사라졌다가 잼 단지로  보이는 것
을 들고 돌아온다.
  "보세요, 바로 이런  겁니다. 아주 귀중한 것이죠.  진딧물 분비꿀
입니다. 자, 드셔보세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집게 손가락을 놀린다.
  "음, 아주 달콤한데.... 아주 맛있어! 벌꿀하고는  사뭇 다른 맛이야."
  "그렇지요! 할머니는 우리가  이 앞뒤가 꽉 막힌 땅 속에서  뭘 먹
고 살아왔는지 물어보지 않으셨지요?"
  "왜, 이제 물어볼 참이었는데...."
  "개미들이 저희들의  분비꿀과 곡물 가루로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
어요. 개미들은 우리를 위해 저 위에  양식을 저장하고 있어요. 그뿐
이 아니예요.  우리는 저들의 농업기술을 본따  느타리버섯을 키우고 있어요."
  조나탕이 커다란  나무 상자 뚜껑을  열자, 위쪽에 하얀  버섯들이
보인다. 버섯들이 부식토 더미 위에서 자라고 있다.
  "갈랭이 우리의 위대한 버섯 전문가랍니다."
  갈랭이 겸손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직 배울 게 많은걸요."
  "하지만 버섯과  꿀만 가지고는 틀림없이 단백질  결핍증이 생길텐데."
  "단백질이라면 막스가 맡고 있지요."
  막스라는 이름의 소방대원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킨다.
  "저는 개미들이 저  흙 상자 오른쪽의 작은 상자에  놓아주는 곤충
들을 모으는 겁니다.  그것을 끓여서 겉껍데기를 분리해  내죠. 그러
고 남은 것은  작은 새우 요리나 다름없습니다. 맛도  생김새도 새우하고 비슷해요."
  "보시다시피 여기에서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편안함을 누리고  있지요. 전기는 작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만들어집니다.  그 수명은 500년이지요. 에드몽  웰즈 교
수가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설치해 놓은 것입니다.  공기는 통풍
구멍으로 들어오고 먹이는  개미들이 가져다 주고 신선한  샘물도 있
고요. 게다가 열중해서 매달릴 수 있는  작업도 있어요. 우리는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개척자들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우리는  우주 기지에 상주하면서 이따금  이웃의 외
계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우주 비행사 같습니다."
  그들이 웃는다. 즐거운  기분이 짜릿하게 등골을 타고  흐른다. 조
나탕이 거실로 돌아가자고 권한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랫동안 내 주위의 벗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모색했지요. 공동체,  집단 거주, 푸리에 식의  공동체 등등,
그러나 저는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저 자신이 바보까지
는 아니라  하더라도 얼치기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
런데 바로 여기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고 서로를 완성시켜야 하며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도망갈 방법도  없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공동체를 꾸려나가
는 것이 삼촌의 깨달음을 이어받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머리 위에
존재하는 개미들이  우리를 가르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현재로서는 우리의 공동체가 아주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네 그래요, 우리가  특별히 애를 쓴 것도 아닌데 잘  되어가고 있
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각자가 마음 놓고 퍼 쓸  수 있는 공동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 말에 자종이 나선다.
  "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네. 장미 십자회와 몇몇  프리
메이슨 집단에서는 그런 것을 일컬어  에그레고르라고 한다네. <동아
리>의 정신적인 자산이라는  뜻이지. 하나의 냄비에 자기  힘을 쏟아
서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수프를 만드는  것과 같지.... 그러나 일반
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힘을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둑이 있게 마련이라네."
  "여기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땅 속에서 작은  동아리를 이
루어 사는 마당에 개인적인 욕심을 가질 리가 없는 거지요...."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말을 적게  합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거든요."
  "그래요, 여기에서  뭔가 이루어지고  있는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아직 통제하지도  못해요. 우리는 아
직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여정의 중간에 있을 뿐입니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어쨌든 간단히 말씀드려,  저는 우리 작은 공동체가  여러분들 마
음에 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801호가 기진  맥진한 채로 자기  도시에 다다른다. 그가  해냈다!
그가 해낸거야!
  클리푸니는 곧바로  완전 소통을 시행하여 자초  지종을 알아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화강암 바닥 밑에 감추어진 비밀에  대한 자기
의 가정에 확신이 선다.
  클리푸니는 즉시  벨로캉에 대한 군사적인 공격을  결심한다. 밤새
도록 병정개미들이 준비를 한다. 새로 편성된  뿔풍뎅이 비행 군단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103683호가 전술을 제안한다. 군대의 일부가 정면  공격을 하는 동
안 12개 군단은 도시를 슬쩍 우회해서  궁궐이 있는 그루터기를 공격하자는 것이다.

       세계는
  세계는 복잡성을 지향하고 있다. 수소에서  헬륨으로, 헬륨에서 탄
소로, 끊임없이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다단해지는 것이  만물이 진화
하는 방향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행성 가운데 지구가  가장 복
잡하다. 지구는  자체의 온도가 변화할  수 있는 지대에 들어  있다.
대양과 산이 지구를 덮고 있다.
  생명 형태의 다양성은 거의 무궁 무진하다.  그러나 지력으로 다른
생명들을 압도하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개미와 인간이
다. 신은 지구라는 행성을 어떤 실험을 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신은 어느 쪽이 더 빨리  가는가를 보려고 완전히 상반
된 철학을 가진 두 종을 의식의 경주 위에 던져놓았다.
  그 경주의 목표는 아마도 지구적인 집단  의식에 도달하는 것일 게
다. 즉, 그 종의 모든 뇌를 융합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보기에
는 의식의 경주가 나아가게 될 다음  단계이고 복잡성을 지향하는 진
화의 다음 수준이다.
  그러나 선두에 선 두 종은 비슷한 발전 경로를 걸어왔다.
  -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인간을 괴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뇌
의 크기를 부풀려왔다. 장미빛이 도는 커다란 꽃양배추 같다.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개미들은 수천 개의 작은  뇌를 아주
미묘한 의사 소통 체계로 결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미들의 양배추 가루 더미와 인간의  꽃양배추는 절대적인 의미에
서 보면 재료나 지능 면에서 동등하다.  경쟁은 막상 막하이다. 그러
나 지능을 가진  두 생명이 나란히 달리지 않고 협력한다면  어떤 일
이 벌어질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장과 필립은 텔레비젼  말고는 별로 좋아하는 게 없다.  기껏 한다
는 것이  핀볼 게임 정도이다. 최근에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해 놓은
최신식 미니  골프에도 이제 관심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숲속
산책도 그렇다. 감독  선생이 바람 쐬라고 내모는 것만큼  두 아이가
마딱찮게 여기는 것도 없다.
  지난 주에는 두꺼비를  죽이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너무나 짧았다.
  그런데 오늘 장이 정말 재미있는 장난거리를  찾아낸 모양이다. 다
른 고아들이  따분하게 낙엽을  모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나  만들며
놀고 있는데,  장이 필립을 그  무리에서 멀리 끌고가더니  진흙으로
된 적은 무덤 같은 것을 가리킨다. 흰개미 집이다.
  "도로 보수하는 아저씨가  여기다 약을 뿌렸어. 살충제  냄새가 나
는데. 봐. 안에 흰개미들이 다 죽어 있어."
  실망한 두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던 찰나, 장이 실개천 건너편에서 관목에  반쯤 가려진 파라미드
모양의 개미집을 발견한다.
  이번에는 진짜다! 너무나 인상적인 개미집이다.  지붕의 높이가 아
무리 못 돼도 1미터는 되겠다! 기다란  개미 행렬들이 들어가고 나온
다. 수백  수천 일개미,  병정개미, 탐험개미들이다. 여기에는  아직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다.
  장이 그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야, 너 저거 봤지?"
  "아이 싫어! 또  개미 잡아먹으려고 그러냐? 지난 번  개미들 아주
구역질 나는 맛이었잖니."
  "누가 먹겠대! 지금  네 앞에 하나의 도시가 있는  거야. 뉴욕이나
멕시코 시티 같은  곳을 뺨치는 도시란 말이야. 방송에서  사람들 얘
기하던 거 생각나니? 안에 개미들이 우글우글해.  봐. 일밖에 모로는
이 바보들. 이 멍청한 놈들!"
  "그래도.... 너 니콜라가 개미에 관심 갖다가  결국 사라져버린 거
알지? 내  생각엔 걔네 지하실  안에 개미들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 놈들이 니콜라를 잡아먹었을거야. 그래서 하는  얘긴데 난 저놈들
옆에 있고 싶지가  않아. 저놈들이 싫어! 에이 더러운  개미놈들. 어
제는 미니 골프장  구멍에서 몇 놈이 기어나오는 것도  봤어. 그놈들
은 그 속에다가 둥지를 만들려고 했나봐.  에이, 더럽고 멍청한 개미새끼들!"
  장이 필립의 어깨를 흔든다.
  "바로 그거야! 네가 개미를 싫어하듯이 나도  그래. 이놈들을 죽여
버리자! 우리 친구 니콜라의 복수를 해주잔 말이야!"
  "이놈들을 죽이자고!"
  "그래 바로 그거야!  이 도시에 불을 지르자고. 멕시코  시티 같은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는 걸 상상해봐 정말 재미있지 않겠니?"
  "좋아. 불을 지르자. 니콜라를 위해서 하는 건데 뭐...."
  "잠깐만. 더 좋은 생각이 있어. 저 안에  농약을 집어넣고 불을 지
르는 거야. 그러면 꽃불처럼 멋있게 탈거야."
  "멋진 생각이야...."
  "지금 11시거든. 정확히 두 시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그 시
간이면 감독 선생이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고. 애들은 모두 구
내 식당에 있을거야.  나는 농약을 찾으러 갈 테니까  너는 성냥통을
슬쩍 가지고 와. 라이터보다 그게 나을 거야."
  "좋아!"

  보병 군단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벨로캉 연방에  속한
다른 도시의 개미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클리푸캉 개미들은 서
쪽지역에서 도마뱀을 발견했다든가, 중심도시가  자기들의 도움을 요
청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보병 군단의  머리 위쪽 공중에서는 뿔풍뎅이가  웅웅거린다. 머리
위에 포수 개미들을 얹고 가는데도 비행 속도가 별로 느리지 않다.

  13시. 벨로캉  개미들이 한창 일을  하고 있다. 햇볕이 좋을  때를
이용하려고 알과 번데기와 진딧물을 햇빛방에 모으고 있다.

  "더 잘 타게 하려고 알콜을 가져왔어."
  필립이 알린다.
  "잘했어. 난 농약을 사왔어. 요만큼에 20프랑이래, 젠장!"
  장이 말한다.

  벨로키우키우니가 벌레잡이  식물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벌레잡이 식물들을 이곳에  가져오고 나서 처음엔 그것들을  심어 방
호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벨로키우키우니의 생각이 다시 바퀴에 미친다. 그  멋진 생각을 어
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진흙으로 커다란 공을  만든 다음 다리 끝으
로 밀고가서  적들을 으깨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겠다.

  "됐어. 알콜과 농약을 다 뿌렸어."
  장이 그  말을 하는 동안에 탐험  개미 한 마리가 그  아이 몸으로
기어오른다. 개미가 더듬이 끝으로 아이의 바지 천을 두드린다.
  '당신은 살이 있는  거대한 구조물 같은데,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
지 알 수 있을까요?'
  아이는 개미를  붙잡아 엄지와  집게로 눌러 으깨어버린다.  이크!
노랗고 까만 즙이 손가락 위로 흐른다. 장이 의기 양양하게 말한다.
  "자 벌써  한 놈이  죽었다. 좋아, 이제  저리 비켜, 불을  붙여야지."
  "이로써 놈들은 천벌을 받는거야."
  필립이 소리친다.
  "<요환 계시록>이지!"
  장이 히죽거리며 말한다.
  "저 안에 개미가 몇 마리나 될까?"
  "틀림없이 수백만  마리는 될거야.  작년에 개미들이 근처에  있는
어떤 별장을 습격한 모양이더라."
  그 말을 받아 장이 소리친다.
  "그 사람들의  원수도 갚아주자. 자, 너는  저 나무 뒤로  피해 있어."

  여왕개미는 인간들을 생각하고 있다. 다음 번에  그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해야겠다. 그들은 바퀴를 어떻게 사용하지?

  장이 성냥을 그어서  잔가지와 바늘잎으로 된 봉긋한  지붕을 향해
서 던진다. 그러고는 파편에 다칠까봐 뛰기 시작한다.

  마침내 연방의 중심 도시가 클리푸캉 군대의  눈에 들어온다. 참으
로 커다란 도시이다.

  날던 성냥개비가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여왕개미는 더 기다릴 것 없이 인간들에게  말을 걸기로 결심한다.
별 문제없이 분비꿀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할 생각이
다. 올해는 분비꿀 생산량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성냥개비가 지붕의 잔가지 위에 떨어진다.

  클리푸캉의 군대가  이제 돌격 태세에  들어갈 만큼 가까이 와  있다.

  필립이 먼저 와 숨어 있던 커다란 소나무 뒤로 장이 뛰어든다.

  성냥개비는 연료 알콜이나  농약이 스며든 어떤 자리에도  닿지 못
한채 꺼져버린다.

  두 아이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이런, 빌어먹을!"
  "불을 붙이려면 이렇게 해야 돼, 종이  쪼가리를 저기다 놓는거야.
그러면 커다란 불꽃이 일어나면서 알콜에 불이 붙을거야."
  "너 종이 가진 거 있니?"
  "어디.... 지하철 표 한 장밖에 없는데."
  "이리 줘."
  지붕에서 보초를 서던  개미가 뭔가 이상한 것이  있음을 알아차린
다. 조금 전부터 몇 군데서 알콜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방금 노란
나뭇개비 하나가 나타나더니 지붕 꼭대기에 꽂힌  것이다. 그 개미는
곧바로 한 무리의  일개미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잔가지들을  닦게 하
고 노란 들보를 치우게 한다.
  다른 보초 개미가 5번 문으로 달려온다.
  '비상! 비상! 불개미 군대가 공격해 온다.'

  두꺼운 종이가 타고 있다. 두 아이는 다시  소나무 뒤에 가서 숨는다.

  세 번째 보초 개미가 노란 나뭇개비  끝에서 커다란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클리푸캉 개미들이  돌격 자세로  달려간다. 무사개미들이  그러는
걸 보고 배운 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폭발.
  일거에 온 지붕에 불이 붙는다.
  폭음, 불꽃.
  장과 필립은 뜨거운  기운이 뻗쳐옴에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려
한다. 두 아이는 그 장관에 흡족함을  느낀다. 마른 그루터기에 금방
불이 붙는다. 농약이 고인 곳에 불꽃이  닿자 또 폭발음이 일어난다.
'길 잃은 개미의 도시' 벨로캉에서  폭발음이 터져나오고 푸르스름한
불꽃, 빨간 불꽃, 연보라빛 불꽃이 솟아오른다.

  클리푸캉 군대가 갑자기 정지한다. 처음에 햇빛방에  불이 붙어 알
과 가축들을 모두 태우더니 이어서 지붕 전체를 태워버린다.
  몇 초가 지나자 재앙이 궁궐이 있는  그루터기에도 미쳤다. 입구에
끼여 있던  문지기 개미들은  터져버렸다. 병정개미들이  여왕개미를
꺼내려고 달려간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여왕개미는 이미  유독 가
스에 질식해 버렸다.
  경보 페로몬이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1단계 경보: 개미들
이 자극적인 페로몬을 뿜어대고 있다. 2단계  경보: 바닥을 두드리는
불길한 소리가 모든 통로에 울려퍼진다. 3단계  경보: '미친' 개미들
이 통로를 뛰어다니면서  공포를 확산시킨다. 4단계 경보:  알, 생식
개미, 가축, 양식 등 귀중한 것을 모두  가장 깊숙한 아래 층으로 옮
기는 동안 병정개미들은 적들과 맞서기 위해  그 행렬과 반대 방향으
로 올라간다.
  지붕에 있는 개미들이  대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포수 개미  몇 개
군단이 농도  10% 미만의 개미산을  쏘아서 몇 군데를 진화한다.  그
임시 소방대원들은 자기들의  임기 웅변이 효과가 있음을  알고 그루
터기에 개미산을 뿌린다. 그것을 축축하게 적시면  그루터기 안에 있
는 개미들을 구해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불을 당할 수가 없다. 갇혀 있는  개미들은 모두 유독 가스
에 질식해  죽었다. 혼비 백산한  개미떼 위로 불붙은  나뭇가지들이
무너져 내린다.  불기에 닿은 플래스틱처럼 개미들의  딱지가 비틀리며 녹아버린다.
  그 뜨거운 불길의 공격을 당해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삽화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인간과 개미는 대등하지  않으며 서로 경쟁하
지도 않는다 인간들의  존재는 그들이 전적으로 지구를  지배하는 동
안에 일어난 짤막한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개미들은 우리보다 더,  한없이 더 수가 많다. 그들이 더  많은 도
시를 가지고 있고 훨씬 더 많은 생태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건조  지대, 한랭 지대,  열대 지대,
습지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눈길이  미치는 어느 곳에나  개미들이 있다.
  개미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기 1억 년  전에도 있었고, 원자 폭탄을
견디어낸 희귀한  유기체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때,
우리가 지구에서 사라나고  난 1억 년 후에도 틀림없이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3백만 년에 걸친 우리의  역사는 그들의 역사에 비하면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어느 날 외계인들이  우리 행성
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겉모습에 속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
이 개미들과 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개미들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다음날 아침,  지붕은 완전히 사라지고 검은  구루터기만이 알몸을
드러낸 채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박혀 있다.
  벨로캉 거주자 5백만 마리가 죽었다. 지붕과  그 바로 근처에 있던
모든 개미들이 죽은 셈이다.
  아래로 내려간 개미들은 무사하다.
  벨로캉 밑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대
한 화강암 바닥이 가로막고 있는 데다가  모든 사건은 그들이 임의로
정한 밤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벨로키우키우니의 죽음이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남아  있다. 알 낳
는 여왕개미를 잃어버린 겨레의 운명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데 불을 상대로  한 전투에 동참했던 클리푸캉  개미들은 벨로
키우키우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자기들  도시로 전령을 보낸
다. 몇 시간 후 클리푸니가 손수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뿔풍
뎅이를 타고 온다.
  클리푸니가 궁궐에 이르러  보니 소방수 노릇을 하던  개미들이 여
전히 잿더미 위에 개미산을 뿌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다. 클리푸니가 질문을  던지자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태한 여왕개미가  없으므로 클리푸니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벨로
키우키우니가 되고 중심도시의 궁궐을 차지한다.

  가장 먼저 잠이  깬 조나탕은 컴퓨터 프린터가  드르륵거리는 소리
를 듣고 깜짝 놀란다.
  화면 위에 한 단어가 보인다?
  '왜?'
  그러고 보니 개미들이 밤새 신호를 보냈던  모양이다. 개미들이 대
화를 하고 싶어한다. 조나탕은 대화에 으레  선행하는 문장을 두드린다.

  인간: "안녕, 나 조나탕이다."
  개미: '난 새 벨로키우키우니다. 너희는 왜....'
  인간: "새 벨로키우키우니라고? 그런  전 벨로키우키우니는 어디에 있는가?"
  개미: '너희가 죽였다. 난 새 벨로키우키우니다. 너희는 왜....'
  인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개미: '너희는 왜?....

  그러고 나서 대화가 끊겼다.

  이제 클리푸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인간들이 그 짓을 했다.
  어머니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비밀에 부쳐왔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낌새를 채는 자들이  있으면 다 없애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어머니는 자기 백성들을 죽이면서까지  그들을 도왔던 것이다.
  새 벨로키우키우니는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경비 개미들이 쓰레기터에 버리겠다고 시체를  가지러 오자 새
여왕개미가 펄쩍 뛴다.
  '안돼, 이 시체를 버리면 안돼.'
  클리푸니는 이미 죽음의 냄새가 나고  있는 전벨로키우키우니를 유
심히 살펴보다가  명령하기를, 부서진 다리들을 나뭇진으로  다시 붙
이고 물렁한 살을  빼낸 다음 흙으로 채우라고 한다.  어머니의 시신
을 자기 방에 놓아두고 싶은 것이다.
  새 벨로키우키우니가 된  클리푸니가 병정개미 몇 마리를  불러 모
아 중심 도시를 더욱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건하라고 당부한다. 둥근
지붕과 그루터기는 너무  취약하니 지하 개울을 찾는  데 몰두하라고 한다.
  나아가 연방의 모든  도시들을 연결하는 운하를 뚫는  데 진력하라
고 이른다. 벨로캉의 미래는 물을 잘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이 클리
푸니의 생각이다. 물을 잘 다스리면 화재를 막을  수 있고 빠르고 안
전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떻게 하지요?'
  새 벨로키우키우니가 대답을 얼버무린다.
  '그들에겐 별로 흥미가 없어.'
  질문을 던졌던 병정개미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불로 우리를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지요?'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해주지.'
  '그럼 커다란 바위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요?'
  벨로키우키우니는 아무 대답 없이 혼자  있게 해달라며 병정개미들
을 내보내고는 전벨로키우키우니의 시체 쪽으로 몸을 돌린다.
  새 여왕개미는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 더듬이를  어머니
이마에 갖다댄다. 그러고는 아주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는다. 길고긴
완전 소통에 몰입해 있는 듯하다.
      -----------------
   * 제1부 '개미' 끝

  제목: 개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제 2 부
  개미의 날

  카트린에게,

  다음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제라르 앙잘라그와 다니엘 앙잘라그, 다비드  보샤르, 파브리스 코
제, 에르베 드젱쥬, 미셸 드제랄드 박사,  파트릭 필리피니, 뤼크 고
멜, 조엘 에르상, 이리나 앙리, 크리스틴  조세, 프레데릭 르노르만, 
마리 라그,  에릭 나타프, 파스라  교수, 올리비에 랑송, 질  라포포
르, 렌 실베르, 이리 슬롱카와 도탕 슬롱카.

  그리고, 펄프를 제공해서 소설 '개미'와 '개미의  날'을 제작할 수 
있게 해준 모든 나무들을 생각한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
루어지지 않았으리라.

  차례
  첫  번째 비밀 새벽의 주인들
  두  번째 비밀 지하의 신들
  세  번째 비밀 세계의 끝으로
  네  번째 비밀 대결의 시대
  다섯번째 비밀 개미들의 주인
  여섯번째 비밀 손가락들의 나라

  모든 것은 하나 안에 있다(아브라함).
  모든 것은 사랑이다(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은 경제적이다(칼 마르크스).
  모든 것은 성적이다(지그문트 프로이트).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그 다음엔 ?...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부
      개미의 날

     첫 번째 비밀
     새벽의 주인들

   1. 전경

     어둠.
  1년이 지났다. 8월의  어둑새벽, 달 없는 하늘에  별들이 가물거린
다. 이윽고 어둠살이 설핏해지면서 빛살이  스며든다. 안개가 너울처
럼 퐁텐블로  숲을 휘감고 있다.  붉은 햇덩이가 솟아오르자  안개가
스러지고 모든 것에 이슬이 반짝인다. 거미  그물은 오렌지빛 구슬을
꿴 천연의  레이스로 변한다. 햇살의  열기가 서서히 대지를  덥히고 있다.
  나뭇가지 아래, 풀잎 위, 풀과 풀  사이 어디에서건 미물들이 꼼지
락거린다. 종류도 갖가지이고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맑은 이슬
을 받아  말쑥하게 당장한 대지  위에서 곧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려
한다. 더 할 나위 없이 기이한 사건이....

   2. 도시 한가운데로 잠입한 세 첩자

  <빨리 나아가자.>
  페로몬에 담긴  명령이 단호하다. 한가롭게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
을 겨를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거뭇한  형체가 비밀 통로를 따라
서둘러 나아간다. 그중 하나는 천장에 붙어서  더듬이를 바닥 쪽으로
축 늘어뜨린 채  가고 있다. 동료들이 내려오라고 이르건만  그는 그
렇게 머리를 아래로 두는 것이 더 좋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는 사물
의 모습을 거꾸로 보고 싶어한다.
  두 동료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따지고 보면 세상을  거꾸로 본다
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 갈림목에서 세 개미는 더 좁은  통로 쪽으
로 들어간다.  통로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나서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까지는 모든 게 너무 순조로워서  오히려 불안한 느낌을 준다.
  세 개미가  도시 한가운데로 다다랐다.  필시 경계가 아주  삼엄한
지역일 것이다.  그들의 걸음걸이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나아갈수
록 통로의 벽이 점점 더 반드르해진다. 낙엽  조각들이 깔려 있는 곳
을 지난다. 붉은  갈색 몸뚱이의 핏줄 속으로 어렴풋한  불안감이 밀려든다.
  마침내 그들이  찾던 방이 나타난다.  나뭇진 냄새, 고수풀  냄새,
숯 냄새가 끼쳐온다.  이 방은 아주 최근에 고안된 것이다.  다른 개
미 도시에도 이런 은밀한 방이 있지만  그것은 먹이나 알을 저장하는
데만 쓰인다. 그런데 여기 이 방의  온도는 특별하다. 작년 겨울잠에
들어가기 직전에 어떤 개미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겨레의 지력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우리의  지식이 후
대에까지 이어지지 않고 소실될 염려가 있다.  선조들의 지혜를 우리
후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개미 세계에서  지식을 축적하자는  제안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
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벨로캉 개미들이 그  제안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그릇이 고안되었고  모든 개미들이 와
서 저마다 자기  지식이 담긴 페로몬을 그 그릇에  쏟아부었다. 그런
다음, 그 그릇들을 주제별로 배열하였다.
  그때부터 겨레의 모든  지식을 이 커다란 방에 모아둘 수  있게 되
었고, 이 방을 '화학 정보실'이라 명명하였다.
  세 개미는  바짝 긴장해 있는  경황에도 찬탄을 느끼며 방  안으로
들어선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더듬이가 떨리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형광을 발하는 알들이 여섯  줄로 배열되어 있고,
그 둘레에 암모니아  증기가 서려 알들을 덥혀주고 있다.  그러나 흙
으로 싸인 채  고정되어 있는 그 투명한 껍질 속에는  생명의 씨앗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수백 가지  주제로 정리된 후각 정
보들이 들어 있다.  즉, '니'왕조 여왕개미들의 역사,  일반 생물학,
동물학(동물학 관련  정보가 특히 많다),  유기 화학, 지상  지리학,
지하 지층 지질학, 아주 유명한 대규모  전투에서 사용된 전략, 최근
1만 년간의 영토  정책 등에 관한 정보들이 담겨 있고,  심지어는 요
리법이나 도시 내의 비위생 구역에 관한 정보도 들어 있다.
  더듬이들이 움직인다.
  <자 빨리 해치우자.>
  세 개미는 앞다리에  난 털을 솔로 삼아 재빨리 더듬이를  닦고 기
억 페로몬이 담겨 있는 캡슐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더듬이의 예민
한 끄트머리로 알들을 문질러 내용물을 가려낸다.
  세 개미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무슨  소리를 들은
듯하다. 무슨  소리일까? 세 개미는  들킨 것이 아닐까 하고  가슴을
졸이며 기다린다. 누굴까?

   3. 살타 형제의 집

  "가서 문 열어. 노가르 양일거야."
  세바스티앵 살타가 훤칠한 허우대를 구부려 손잡이를 비틀었다.
  "안녕하세요!"
  그가 인사말을 건넸다.
  "그래요, 다 됐어요."
  살타 삼 형제는 일제히 안으로 들어가서  슈티를 수지로 된 커다란
통을 가지고 나오더니,  거기에서 윗부분이 열려 있는 공  모양의 유
리 그릇을 꺼냈다. 유리 그릇 안에는 갈색의  작은 알약들이 가득 들
어 있었다.
  네 사람은 모두  그 유리 그릇 위로 몸을  구부렸다.카롤린 노가르
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유리  그릇 안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노가르의 손가락  사이로 익은 흙빛의 알갱이들이  흘러내렸다. 노
가르는 향기 좋은 커피 알갱이의 냄새를  즐기듯 그것들의 냄새를 맡았다.
  "이거 만드느라고 고생 많으셨죠?"
  "말도 마십시요."
  살타 삼 형제가 이구 동성으로 대답했다. 그중 하나가 덧붙였다.
  "그래도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살타 삼 형제, 즉 세바스티행, 피에르,  앙투안은 모두 신장이 2미
터 가까이나 되는 거구들이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노가르가
한것처럼 자기들의 기다란 손가락을 유리 그릇 안에 집어넣었다.
  높은 촛대에 꽂힌  세 개가 주황색 불빛으로 그 기이한  무대를 비
추고 있었다.
  카롤린 노가르는 유리 그릇을 여러 겹의  나일론 망사로 감싼 다음
여행 가방 안에  넣었다. 노가르는 세 거인을 올려다보며  미소로 작
별인사를 대신했다.
  피에르 살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한거야."

   4. 도주와 추격

  공연히 겁을 먹었다.  낙엽이 바스락거린 것뿐이다. 세  개미는 탐
색작업을 계속한다.
  액체 상태의 정보가 가득 들어 있는  캡슐들의 냄새를 하나하나 맡
아 나가던 세 개미가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아낸다.
  다행히 별로 힘들이지 않고 찾아낼 수 있었다.  세 개미는 그 보물
을 들어내어 다리에서 다리로 건네가며 살펴본다.  페로몬이 가득 담
겨 있는 그 알은 송진 방울로 단단히  봉해져 있다. 개미들이 마개를
떼어내자 더듬이의 열한 마디로 첫번째 냄새가 훅 끼쳐온다.
  <해독 금지.>
  옳거니, 특급  비밀 정보임을 알리는  표시로는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 세 개미는 알을 내려놓고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그 속에 더
듬이를 허겁지겁 집어넣는다. 정보를 담은 냄새가  뇌 속의 구불구불
한 신경계로 전해진다.

  <해독 금지
  기억 페로몬 번호 : 81
  주제 : 자서전
  내 이름은 클리푸니. 벨로키우키우니의  딸이며, '니'왕조의 333번
째 여왕으로서 불개미 도시 벨로캉의 유일한 산란자이다.
  여왕이 되기 전에는 암개미 56호라 불렸다.  계급이 암개미이고 산
란 번호가 춘계 56번이기에 그렇게 불린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도시 벨로캉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으며,
우리 개미들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이룬  생물이라고 믿었다.
흰개미와 꿀벌과 말벌은  무지 몽매한 탓에 우리의  관습을 받아들이
지 않는 미개한 족속이라고 생각했다.
  또 우리 불개미와 종이 다른 개미들은  퇴화한 자들로 여겼고 난쟁
이 개미들은 너무 작아서 우리의 근심거리가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줄곧  궁궐 안 암개미들의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나
의 유일한 소망은  어머니 같은 여왕이 되어,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말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강력한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수개미 327호가 상처를  입고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와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내 생각에 커다란  변화가 일
어났다. 그는 사냥을  나갔던 원정대가 새로운 살상 무기  때문에 전
멸당했다고 단언했다.
  처음에 우리는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들이었기에 그 의심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들과 대규모 전투를 치렀다.  그것이 이른바 '개양귀비'
전투이다. 수백만의 병정개미들이 목숨을 잃긴 했지만  우리는 그 전
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 승리를 통해서  난쟁이개미들에 대한 우리
의 의심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난쟁이개미들은  고성능 비
밀 무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다음에 우리가 혐의를 둔 쪽은  대대로 내려오는 적인 흰개미들
이었다. 그것 역시  오판이었다. 동쪽의 거대한 흰개미  도시가 유령
도시로 변해 있었다.  그 도시의 모든 거주자들이 염소  가스에 독살
되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  도시 내부를 조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한
비밀 군대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 비밀 군대의 임무는  사회에 지나
친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보들을 차단함으로써  공공의 안녕을 유지하
는 것이었다. 비밀  군대에 속한 암살자들은 바위 냄새를  풍기고 다
녔으며 자기들이 세균을  잡아먹는 백혈구와 같은 구실을  한다고 주
장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알 권리를  억압했다.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은 우리  공동체 안에 독소가 스며드는  것을 막는다는
구실 아래 그들은  위험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비생식  병정개미 103683호의  기상 천외한 모험담을  듣고
나서 우리는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계의 동쪽 끝에 어마어마하게 큰....>
  세 개미 가운데 하나가 읽기를 중단한다.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
세 첩보 개미가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
는다. 더듬이 하나가 은신처 위로 쭈뼛거리며  올라오더니 이내 나머
지 다섯 더듬이가 그 뒤를 따른다.
  여섯 개의 감각기가 레이더로 바뀌어 초당  진동수 1만 8천으로 떨
린다. 주위에 떠도는 모든 냄새가 즉시 감지된다.
  이번에도 공연히 겁을  먹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세 개미는
다시 페로몬을 해독하기 시작한다.
  <세계의 동쪽 끝에 어마어마하게 큰 동물들이 떼지어 살고 있다.
  개미 세계의 전설에 그 동물들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한 대목이 있
기는 하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어떠한 시로도  형상화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유모 개미들은 무서운 얘기로 우리를 오싹하게  만들고 싶을 때 그
동물들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시무시한 옛날 이야
기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 아니었다.
  전에 나는  다섯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세계의 끝을  지키고
있다는 거대한  괴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다지 믿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순진한 암개미들을 놀리려는 객쩍은 이야기로만 여겼다.
  이제 나는 '그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냥을 나간 첫 원정대를 몰살한 것이 '그들' 짓이었다.
  벨로캉을 유린하고 어머니를 죽인 불의 재앙도 '그들' 짓이었다.
  '그들', 바로 '손가락들'이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숲속 어디에서나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첩보 개미들의  보고를 접하고 판단하건대, 분명히  그들은 나날이
우리 세계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나는 이제 우리 벨로캉  개미들을 설득하여 '손
가락들'을 상대로 성전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이 세계
에서 '손가락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할 생각이다.>
  페로몬에 담긴 정보가  너무나 황당해서 세 개미는  잠시 어리둥절
해 있다가 늦게서야 그 내용을 이해한다. 비로소  세 첩보 개미는 알
고 싶어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손가락들을 응징하기 위한 원정군!
  이 사실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른 동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
러기 전에 이 정보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세 개미
는 일제히 더듬이를 캡슐에 다시 담근다.
  <이 괴물들을  없애버리자면 예상컨대 원정군의 규모가  23개의 돌
격  보병 군단,  14개의  경포병 군단,  45개의 백병전  군단,  29개
의....>
  다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누군가가
아른 흙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세 잠입자는  극비 정보가 묻은 더듬
이를 다시  빼낸다. 어쩐지 모든  게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싶더니
함정에 빠진  것이다. 경비 개미들은  그들이 침투한 것을  알면서도
정체를 더 잘 알기 위해서 화학  정보실에 잠입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리라.
  세 개미는  다리를 오그리며 뛰어오를  채비를 한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병정개미들이 벌써 와 있다. 반체제  진영에 속한 세 개미는
가까스로 소중한  기억 페로몬이 들어  있는 알을 챙겨서 옆  쪽으로
나 있는 작은 통로로 달아난다.
  벨로캉 특유의 냄새 언어로 된 경보가  울린다. 화학식으로 나타내
면 'C8-H18-O'가 되는  경보 페로몬이다. 즉각 반응이  나타난다. 벌
써 병정개미 다시 수백 개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세 잠입자가 전속력으로 달아난다. 반체제 개미  가운데 화학 정보
실에 잠입해서 클리푸니  여왕의 가장 중요한 기억  페로몬을 해독하
는 데 성공한 것은 자기들뿐인데 여기서  허망하게 죽는다는 건 안될 말이다.
  벨로캉의 통로들을 오가며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개미들은
아주 빨리 내닫기 때문에 통로의 굽이를  돌 때는 봅슬레이 경주에서
처럼 바닥과 수직을 이룬 벽면을 타고 유연하게 돈다.
  때로는 바닥으로 다시  내려가지 않고 천장에 붙어서  계속 나아간
다. 사실 개미는 도시에서는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발톱이 있기에 개미들은 어디에서나 걷고 달릴 수가 있다.
  여섯 개의 다리가  달린 봅슬레이들이 현기증이 일  정도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다. 벽들이 와락와락 덤벼드는 느낌이 든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리저리 돌아간다.  벼랑이 나타나자 도망자와
추격자가 모두 아슬아슬하게 뛰어넘는데 잠입자  하나가 벼랑에 떨어
진다. 그 개미  앞에 번들거리는 딱지를 가진 병정개미  하나가 나타
나더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을 사이도  없이 개미산이 가득 들
어 있는 배 끝을 들어올린다. 뜨거운 개미산을  맞은 첩보 개미가 금
세 물렁물렁한 반죽이  되어버린다. 겁에 질린 두 번째  첩보 개미는
몸을 돌려 옆의 통로로 재빨리 달아난다.
  <흩어지자!>
  그가 냄새 언어로  부르짖고 다리 여섯 개로 땅바닥을  깊이 판다.
기력이 빠진다. 병정개미  하나가 그의 왼쪽에 나타난다.  너무 빨리
달려온 탓에 그 병정개미는 희생물을 바로  앞에 두고도 위턱으로 잡
지 못하고 개미산 포를 겨누지도 못한다. 그  틈을 놓칠세라 첩보 개
미는 그 병정개미가 벽에 부닥히게 하려고 힘껏 떼민다.
  딱지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서로 부딪친다.  벨로캉의 비좁은
통로에서 두 개미는 시속 0.1킬로미터 이상으로  움직이며 강타를 주
고받는다. 상대의 딴죽을 걸어보기도 하고 위턱의  뾰족한 끝으로 상
대를 찌르기도 한다.
  두 개미는 너무  빨리 움직이느라고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깔때기  모양의 통로 속으로  빨려들어가
서로 충돌하고 만다. 봅슬레이처럼 질주하던 두  개미의 몸뚱이가 터
지면서 키틴질 조각이 주위에 널리 흩어진다.
  세 번째 반체제  개미는 다리를 천장에 대고 머리를 아래로  둔 채
재빨리 달아난다. 포수 개미 하나가 그를  겨누더니 정확한 사격으로
오른쪽 뒷다리를 으깨어버린다. 그것에 충격을 받은  첩보 개미가 여
왕의 기억 페로몬이 담긴 알을 놓친다.
  경비 개미가 그 보물을 회수해 간다.
  다른 포수 개미가 개미산 열 방울을  연달아 쏘아 마지막으로 살아
남은 첩보 개미의 더듬이 하나를 녹여버린다.  빗나간 개미산 방울들
이 천장에 구멍을  내면서 그 파편들이 쌓여  일시적으로 추격자들의
앞길을 막는다.
  첩보 개미가 잠시 한숨 돌린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멀리 나아갈
수가 없다. 더듬이  하나와 다리가 없어진 데다 길목마다  경비 개미
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병정개미들이 뒤에  와 있다. 개미산이 분출한다.  다시 다리
하나가 잘린다. 이번에는  앞쪽이다. 그래도 첩보 개미는  남아 있는
네 다리로 힘껏 달아나 통로의 어떤 우묵한 곳에 들어가 웅크린다.
  경비 개미  하나가 그에게 개미산  포를 겨눈다. 그러나  그에게도
개미산은 있다. 그는 배를 흔들어 재빨리 사격  자세를 취한 다음 경
비 개미를 겨눈다.  명중이다. 경비 개미는 그만큼  노련하지 못해서
겨우 왼쪽 가운뎃다리를  잘랐을 뿐이다. 이제 다리가  세 개뿐이다.
첩보 개미는 가쁜  숨을 쉬면서 절뚝절뚝 나아간다. 어떠한  일이 있
어도 이  함정에서 빠져나가  다른 반체제 개미들에게  '손가락들'을
상대로 한 원정이 준비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 자가 저쪽으로 갔다. 저쪽이다!>
  첩보 개미의 개미산에 타 죽은 시체를  발견한 한 병정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살아남은 첩보 개미는  있는 힘을 다하
여 천장을 파고들어간다. 천장 속에 들어가면  추격자들이 눈치를 못
챌 것이다. 천장은 확실히 임시 변통의 은신처로 이상적인 곳이다.
  경비 개미들은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두 번째 지나갈  때 한
경비 개미가 위에서  액체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첩보 개미
가 숨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첩보  개미의 투명한 핏방울이  떨어진 것이다.
  중력 법칙은 어디에서나 가차없이 작용한다. 빌어먹을 중력!
  반체제 개미는 천장에서 뛰어내리더니 남아  있는 다리와 더듬이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병정개미 하나가 그의  다리를 낚아채어 부
러질 때까지 비튼다. 다른 병정개미가 뾰족한  위턱으로 그의 가슴을
꿰뚫는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달아난다. 남은 두  다리로 절뚝거리
며 기어간다.  그러나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기다란  위턱
하나가 벽을  뚫고 나오더니 그의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다.  머리가
바닥에서 되튀어 비탈진 통로를 따라 데구르르 굴러간다.
  남은 몸뚱이는 열 걸음 정도를 더  가다가 차츰 움직임이 둔해지더
니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고 풀썩  무너진다. 경비 개미들은  토막난
몸뚱이들을 모아 다른 두 첩보 개미의  시체와 함께 도시의 쓰레기터
에 버린다. 너무 호기심이 많은 자들의 최후는 이러한 것이다.

   5. 수사착수

  '일요 메아리'의 기사

  프장드리 가에서 의문의 삼중 살인
  지난 목요일 퐁텐블로  시 프랑드리 가에 있는 어떤 집에서  세 형
제가 변시체로 발견되었다. 같은 집에 있던  세바스티앵, 피에르, 앙
투안 살타 삼 형제가 변을 당한 것인데,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 구역은 범죄가 없기로 이름난 곳이다.  돈이나 귀중품은 그대로
있었고, 가택  침입의 흔적은 물론  범행에 사용되었을 법한  어떠한
흉기도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까다로운 점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의 수사는 퐁텐블로 형
사대 소속의  유명한 자크 멜리에르  경정에게 맡겨졌다. 이  기이한
사건은 추리 소설의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하는 납량  스릴러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 살인범이  잡히는 건
시간 문제다. L.W.

   6. 백과 사전

  또 당신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내책의 두 번째 권을 발견했다는 얘기가 된다.
  첫번째 권은 지하  사원의 보면대 위에 눈에 잘 띄게  놓여 있었을
테지만, 이  두 번째 권을  발견하기는 그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경하할 일이다.
  당신은 정확히 누구인가? 내 조카 조나탕인가?  내 딸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가?
  미지의 독자인 그대에게 먼저 인사를 보낸다.
  나는 당신을 더 알고 싶다. 이 책장들을  넘기기에 앞서 당신의 이
름과 나이, 직업, 국적을 말해주기 바란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가?
  이런,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당신
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
  나는 내 책장에 닿는 당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다. 그것도 기분 좋
은 손길을 말이다. 당신 손가락 끝의 지문에서  나는 당신의 가장 내
밀한 특성을 알아낸다.
  지문은 당신  몸이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거기에서 나는 당신  조상들의 유전자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버렸더라면  당신이 태
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짝짓기를 한  끝에 당
신이 태어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당신이 내 앞에  보이는 듯하다. 하나, 웃지 말
고 그냥 그대로 있어주기 바란다. 당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다.
당신은 스스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다.
  당신에겐 하나의 사회사가  담긴 성과 이름이 있지만  그게 당신의
전부일 수 없다.
  당신은 71%의 물과  18%의 탄소, 4%의 질소, 2%의 칼슘,  2%의 인,
1%의 칼륨, 0.5%의  황, 0.5%의 나트륨, 0.4%의 염소로  이루어져 있
다. 거기에다 큰 숟가락  한 술 분량의 여러 가지 희유 원소,  즉 마
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를 함유하
고 있다.  또 소량의 코발트,  알루미늄, 몰리브덴, 바나듐, 납,  주
석, 티탄, 붕소도 가지고 있다.
  이상이 당신의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이다.
  이 모든 물질들은 별들이 연소하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당신 몸 안
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당신의
물은 흔하디흔한  바닷물과 다를 바  없고, 당신의 인은  성냥개비의
인과 한가지이며,  당신의 염소는 수영장  물을 소독하는 데  쓰이는
염소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들을 합쳐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며 훌륭한 건축물이다.  구성 물질
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안정되게 평형을  이루면서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다. 그  복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당신을 이루는  분자들은
다시 원자, 미립자, 쿼크,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것들은
전자기적인 힘과 인력과  전자의 힘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그 절묘
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각설하고, 당신이 이  두 번째 권을 찾아냈다는 것은  당신이 꾀바
른 사람임을 말해주는 것이고 당신이 벌써  나의 세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첫번째 권에서 당신이  얻은 지
식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혁명이  일어났는가? 개혁이 일어
났는가? 물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책을 더 잘 읽기  위해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바
란다. 등을 곧게 펴고 호흡을 잔잔하게 고른  다음 입의 긴장을 풀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의 모든 것 중에서  쓸모없는 것이라
고는 아무것도 없다.  당신도 물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하루살
이 같은 당신의 삶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  당신의 삶은 막다른 골목
으로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있을 때쯤이면, 이 말을 하고 있는  나는 구
더기들의 밥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풀의 새싹을 무성하게 키워
줄 비료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세대의 사람은  내가 이루고
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겐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자취인 이 책뿐이다.
  나에겐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만 당신에겐 시간이  있다. 편하게 자
리를 잡았으면 근육의  긴장을 풀고 오로지 우주만 생각하라.  그 속
에서 당신은 그저 하나의 티끌일 뿐이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간다고 상상해 보라. 응애,  하고 당신이
태어난다. 흔해빠진 하나의 버찌 씨처럼 어머니  몸에서 빠져나온 것
이다. 쩝쩝거리면서  당신은 수천  끼의 갖가지 음식을  먹어치운다.
수천 톤의 식물과  동물이 이내 똥으로 변한다. 억, 하고  당신이 죽는다.
  당신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랴.
  물론 당신은 그런 삶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행동하라! 무엇인가를 행하라! 하찮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의 생명을 의미있는 뭔가로  만들라. 당신은 쓸데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는지를 발견
하라. 당신의 최소한의 임무는 무엇인가?
  당신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명심하라.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7. 탈바꿈

  그 애벌레는  누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미들을 조심하라는 잠자리의 충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통통한 나
비 애벌레가 잠자리  곁을 떠나 물푸레나무 가지 끝으로  간다. 풀빛
과 검정과 하양이 어우러져 있고 털이 나 있는 애벌레다.
  그 애벌레는  물결이 구비치듯 기어간다.  먼저 앞다리 여섯  개를
앞으로 내민다. 그  다음 몸을 고리처럼 둥글게 만들면서  뒷다리 열
개를 앞다리가 있는 자리로 옮긴다.
  나뭇가지 끝에 다다르자  애벌레는 끈끈한 침을 뱉어  꽁무니를 붙
인 다음 머리를 아래쪽으로 두고 대롱대롱 매달린다.
  애벌레는 아주  지쳐 있다.  애벌레의 삶이 끝나간다.  허물벗기의
고통을 마감하고  이제 고치를 지으려는 것이다.  그것은 탈바꿈이기
도 하고 하나의 죽음이기도 하다.
  침묵이 흐른다.
  애벌레는 수정같이 맑고  단단한 실로 된 고치로 몸을  싼다. 애벌
레의 몸뚱이가 마법의 냄비로 변한다.
  애벌레는 이  날을 오래오래 기다려왔다. 너무나도  오랜 기다림이었다.
  고치가 단단해지고  뽀얘진다. 산들바람이 그 이상하게  생긴 하얀
열매를 가만가만 흔든다.
  며칠 후  고치는 크게 부풀어오른다.  금방이라도 긴 숨을  한바탕
내쉴 기세다.  호흡이 점점 고르게  되어간다. 고치가 바르르  떤다.
고치 안에서 바야흐로 연금술처럼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 여러 가
지 색과  희유 원소, 옅고 진한  갖가지 냄새, 체액과  호르몬, 래커
같은 진, 지방, 산, 살과 껍질이 뒤섞인다.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하여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모
든 것이 조절되고 배합된다. 그러고 나자  고치 꼭대기가 갈라지면서
나선모양으로 감겨 있던  더듬이 하나가 풀어지며 은색  껍질을 뚫고
쭈뼛쭈뼛 나온다.
  요람이기도 하고 관이기도 한 고치를 뚫고  나오는 그 곤충의 모습
은 예전의 애벌레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
  근처를 지나던 개미 한 마리가 그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그 황
홀한 탈바꿈 장면에 매료되어 있던 개미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그
게 하나의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개미는 그 곤충이
도망가기 전에 죽이려고 가지 위로 달려 올라간다.
  박각시나방이 촉촉한  몸뚱이를 완전히  고치에서 빼내고,  날개를
편다. 화려한  빛깔이다. 가볍고, 연약하고 뾰족한  날개가 아롱아롱
반짝인다. 톱니 모양을 한 날개 가장자리의  거뭇한 색조에 대비되어
번쩍이는 노란색, 광택  없는 검정색, 광택 있는  오렌지색, 진홍색,
주홍색, 자개빛이 도는 석탄색이 뒤섞인 묘한  색조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병정개미가 배를 가슴 아래로 움직이면서 사격  자세를 취한다. 시
각과 후각을 사용하는 그의 조준점 안에 박각시나방이 들어온다.
  박가시나방이 개미를  발견한다. 자기를 겨누고 있는  개미의 뾰족
한 배 끝에 잠시  넋을 읽고 있던 나방이 그 배 끝에서  치명적인 무
기가 발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나방은  죽음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안 된다. 지금 죽
는 건 너무나 허망한 노릇이다.
  두 곤충이 서로를 응시한다. 개미는 나방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정
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벌레들에게 싱싱한  살코기를
먹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개미들은 풀만 먹고는 살  수가 없다.
개미는 나방이  곧 날아오르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나방의  움직임을
감안하면서 배  끝을 들어올린다. 나방은  그 순간을 놓칠세라  얼른
날아오른다. 발사된  개미산이 나방의 몸뚱이를 맞추지  못하고 빗나
가면서 날개를  뚫고나간다. 날개에 아주  동그란 작은 구멍이  생겻다.
  나방이 조금 가라앉는다. 오른쪽 날개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빠
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노련한 사수인  그 개미는 나방이  자기가
쏜 개미산에  맞았다고 확신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방은 날갯짓을
계속하고 있다. 날갯짓 한 번 할 때마다  축축하던 날개가 점점 건조해진다.
  나방은 다시 고도를 높이면서 아래에 있는  자기 고치를 바라본다.
서운한 감회가 한 가닥 스치고 지나간다.
  병정개미는 여전히  나방의 목숨을 노리면서 개미산을  다시 쏜다.
하늘이 돕느라고 그러는지  산들바람에 밀린 나뭇잎 하나가  그 치명
적인 발산물을 막아준다. 나방은 방향을 틀어  경쾌하게 날개를 저으
며 멀어져간다.
  벨로캉의 병정개미  103683호가 사냥감을 놓친 것이다.  그의 사냥
감은 이제  사정권 밖에 있다.  103683호는 날아가는 나방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  순간 나방을  부러워한다. 어디로 가는걸까?  동쪽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세계의 끝을 향해 가는 듯하다.
  박각시나방은 몇  시간 동안을 내쳐 날아가다가,  하늘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멀리에  불빛이 있음을 발견하자 그쪽으로  서둘러 날아간다.
  불빛에 홀린 박각시나방은 그 황홀한  빛에 다가가야겠다는 일념으
로 힘껏 나아간다. 불빛이 가까워지자 나방은  한시라도 빨리 황홀경
을 맛보려고 더욱 속도를 낸다.
  이제 불빛이 바로  눈앞에 있다. 날개 끝에 불이  붙으려는 순간이
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방은 불 속으로 뛰어들어  그 뜨거운 힘을 즐
기려 한다.  태양과도 같은 그  불 속에서 녹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 박각시나방은 그렇게  불 속에서 자기 몸을 불사르고 말게  될 것인가?

  8. 멜리에스 경정, 살타형제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풀다.

  "안 되겠지요?"
  그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어 깨물면서 대답했다.
  "안돼,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기자들은 들여보내지  말게. 내
가 시체를 차분하게  조사하고 난 다음에 보자고, 그리고  저 촛대에
꽃힌 촛불들 좀 꺼주게.  그런데 촛불은 왜 켜놓은 거지? 아,  이 집
전기가 나갔었군. 하지만 이제 전기가 다시  들어왔지 않은가, 안 그
래? 그러니 촛불을 끄게. 화재가 발생할 염려도 있고 하니 말일세."
  누군가가 촛불을 불어 껐다. 날개 끝에 이미  불이 붙어 있던 나비
한 마리가 아슬아슬하게 불에 타 죽는 것을 모면했다.
  멜리에스 경정은 껌을  요란하게 씹으면서 프랑드리 가의  그 집을
조사하고 있었다.
  21세기 초가  되었는데도 지난 세기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었
다. 그래도 범죄 수사 기술에는 약간의  진보가 있었다. 살해당한 시
체를 처리하는 방법이  개선된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시체
를 사망하던  순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포르말린과
투명한 밀랍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경찰은  여유를 갖
고 마음껏 범죄현장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방법은 옛날에 분
필로 시체가 있던 자리를 표시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시체의 끔찍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게 된다는 점이  약간 곤혹스럽
기는 했지만  수사관들은 이내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죽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눈을  뜬 채 살갗이며 의복에 온통 투명한  밀랍을 뒤집
어 쓰고 있는 피살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이 누구지?"
  "카위자크 형사입니다."
  "에밀 카위자크 말인가?  에밀 형사 어디 있지? 아,  아래에 있지.
좋아, 에밀 형사 좀 오라고 하게."
  한 젊은 경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경관님....  '일요 메아리'의  여기자가 와서 이런  얘기를..
.."
  "누가 뭔 얘기를  한다는 거야? 안돼! 나중엔 몰라도  지금 기자들
은 사절이야. 가서 에밀 형사나 데려오라고."
  멜리에스는 거실 안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세바스티앵 살타의 시체
위로 몸을 구부렸다. 멜리에스는 자기 얼굴을  일그러진 시체의 안면
에 거의 닿을 정도로 바싹 갖다대고,  휘둥그래진 눈이며 치켜올라간
눈썹, 벌름하게 벌어진 콧구멍, 쩍 벌려진  입과 늘어진 혀를 살펴보
았다. 그는 피살자의  이가 틀니라는 것과 마지막 간식으로  먹은 것
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피살자는 땅콩과 건포도를  먹었음에 틀림없었다.
  멜리에스가 이번엔 다른  두 형제의 시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피
에르 역시 눈을  휘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투명 밀랍이
그의 살갗에 돋은  닭살을 그대로 보존해 주고 있었다.  앙투안의 얼
굴 역시 공포에 짓눌린 듯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경정은 주머니에서 조명 돋보기를 꺼내  세바스티앵 살타의 살갗을
살펴보았다. 털이 빳빳하게 일어서 있고 그에게도  역시 닭살이 돋아 있었다.
  눈에 익은  윤곽이 멜리에스 앞에  나타났다. 에밀 카위자크  형사
다. 퐁텐블로 형사대에서  40년 동안 충실하게 봉직해  온 사람이다.
살쩍이 희끗희끗하고 콧수염을 뾰족하게  길렀으며 배가 두두룩하다.
카위자크는 분수를 지키며 사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의 유일한 소
망은 퇴직할 때까지 별다른 풍파 없이 평온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여기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이 에밀 형사요?"
  "그렇습니다."
  "뭐 본 거 있어요?"
  "경정이 본 것과  똑같은 걸 보았습니다. 오자마자  시체에 밀랍을
입히라고 지시했습니다."
  "잘 했어요.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처도 없고, 지문도  없고, 흉기도 없고, 들어오고  나간 흔적도
없고.... 한마디로 골치 아픈 사건 같은데요."
  "의견 잘 들었어요. 고마워요."
  자크 멜리에스 경정은  젊은 사람이었다. 이제 겨우 서른  두 살이
었다. 그러나 벌써  명민한 수사관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틀에 박힌 수사 방법을 경멸하면서 아주  복잡한 사건도 독창적인 방
법으로 해결해 내곤 했다.
  자크 멜리에스는 자연 과학 공부에 충실했던  사람인데, 그 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과학자로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길을  포기하고 자기
가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범죄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맨 처음 멜
리에스가 의문 부호  투성이의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소
설을 통해서였다.  그는 티 판사에서  메그레, 에르퀼 푸아로,  뒤팽
릭 테커드를 거쳐,  셜록 홈즈 등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명탐정이 등
장하는 추리소설을 탐독했다. 그리고 3천 년에  걸친 범죄 수사 기록을 섭렵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완전 범죄였다. 언제나  이루어질
뻔하다가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는  것이 그 완전  범죄였다. 그는
범죄학에 대한  조예를 더 깊이  하기 위하여 파리 범죄학  연구소에
등록했다. 거기에서 그는  난생 처음 시체 해부를  경험했다(그 과정
에서 처음으로 졸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또 거기에서 머리 핀
으로 자물쇠  따는 법과 사제  폭탄을 만들거나 그 뇌관을  제거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인간 고유의 사망  원인을 탐구했다.
  그러나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그를 실망시키는 것이  있었다. 1차
적인 연구 소재가 적절치 않다는 점이었다.  거기에서는 체포된 범인
들만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보들만  연구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른자들, 즉 영리한  자들은 잡힌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벌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완
전 범죄를 실행하는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경찰에 투신해서 스스로  범인들을
추적해 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멜리에스는 경찰에 몸을  담았
다. 그는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했다. 그가  처음으로 개가를 올린 것
은, 테러집단의  두목임을 감쪽같이 속이고 범죄학  연구소에서 폭발
물 제거법을 가르치던 자기 교수를 체포하게 된 일이었다.
  멜리에스 경정은  거실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이윽
고 그의 눈길이 천장에 머물렀다.
  "이봐요, 에밀 형사. 당신이 여기 왔을 때 파리가 있던가요?"
  에밀 형사는  거기까지는 신경을 못  썼다고 대답했다. 그가  와서
닫혀 있던 문이며 창문을 열었으니까, 파리들이  있었더라도 그 동안
에 열린 창문으로 날아가버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에밀 형사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제 와선 별  의미가 없게 되었어요.  그건
그렇고 피살자들에 관한 서류 가지고 있지요?"
  카위자크는 어깨에  둘러매고 있는  가방에서 판지로 된  서류철을
꺼냈다. 경정은 서류철에 담긴 서류 몇 장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뭔가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형제가  모두 화학자인데, 셋
중의 한 사람 세바스티앵은 언뜻 생각하기와는  달리 좀 특이한 인물
입니다. 그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더군요."
  "아 그래요....?"
  "이 세바스티앵이라는 친구, 도박에 홀딱 빠져  있었어요. 특히 포
커를 잘  해서 '포커의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어요.  키가
크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돈을 어마어마하게 걸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최근에  그는 큰 돈을 잃고 빚에  쪼들리고 있었어
요.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걸  수밖에 없
게 되었던 거구요."
  "그런 사실을 다 어떻게 아셨어요?"
  "조금 전에 도박장에서 조사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 친구 빚더
미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어요. 빨리 돈을  갚지 않으면 죽여버리
겠다고 누군가가 위협한 적도 있었던 모양이오."
  멜리에스는 껌 씹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세바스티앵에게는  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군...."
  카위자크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 친구 지레 겁먹고 자살해 버린걸까요?"
  경정은 그 질문을 못 들은 체하고 다시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기에 처음 왔을 때 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었지요. 안 그래요?"
  "맞습니다."
  "창문도요?"
  "창문도 전부 다요."
  멜리에스는 다시 껌을 요란하게 씹기 시작했다.
  "뭔가 집히는 게 있으신가요?"
  "자살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자살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요. 밖에서  침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인의  자취가 없는거지
요. 모든 게  내부에서 이루어졌어요. 세바스티앵이 두  형제를 죽이
고 자기도 죽은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흉기를 사용했을까요?"
  멜리에스는 영감을 더욱  잘 떠올리려고 눈을 감고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독입니다.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강력한 독이지요.  캐러멜을 입
힌 시안화물  같은 것입니다. 위  속에서 캐러맬이 녹으면  내용물이
흘러나오면서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지요.  화학적인 시한 폭탄이라고
나 할가요. 그 친구가 화학자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맞습니다. 종합 화학 회사 즉, CCG에서 일했습니다."
  "그렇다면 세바스티앵 살타가 자기 무기를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였겠군요."
  카위자크는 아직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피살자들의 얼굴이  왜 저렇게  공포에 짓눌려  있는걸까요?"
  "고통 때문이지요. 시안화물이 위벽을  뚫으면 고통이 엄청나지요.
위궤양 정도는 새발의 피라고요."
  "세바스티앵 살타가  자살했다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가
왜 애먼 형제들을 죽였을까요?"
  여전히 의혹을 떨치지 못한 카위자크가 물었다.
  "형제들이 알거지로  전락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
요. 죽으면서 자기 가족들을 함께 죽음에  끌어들이는 인간의 반사적
행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죽
으면 아내와 시종, 동물, 가구들을 매장하지  않았습니까! 혼자 저승
으로 가기가 무서워 가까운 사람들을 데려가는거지요...."
  에밀 형사는 그제서야 경정의 확신에 동조하는  빛을 보였다. 살타
형제들이 자살했을 거라는  가정은 너무 단순하고 천박해  보이는 점
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
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었다. 멜리에스가 말을 이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문이며 창문이 왜 모두  잠겨 있었는가! 모
든 일이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누가 죽였는가?  세바스티앵 살
타가 죽였다.  사용된 무기는 무엇인가?  그가 만든 시한  독약이다.
동기는 무엇인가?  바로 도박 때문에  걸머진 거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밀 카위자크는 수수께기가 너무 쉽게  풀려나가는 바람에 어리둥
절했다.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걸 가지고  신문에서는 '납량 스릴러'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물론 가설을  입증하고 증인을 찾
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남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한
마디로 직업상의  자질구레한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다.  멜리에스 경
정의 명성이 거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추리가 논리적
으로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정부 경찰관 하나가 다가와서 말했다.
  "'일요 메아리'의 그 여기자가 또 왔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데요.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사코...."
  "그 여자 예뻐?"
  경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아주 예쁩니다.  유럽 인과 아시아 인의
혼혈인 것 같습니다."
  "그래? 이름이 뭐야? 충 리? 망 시낭?"
  "아닙니다. 레티샤 웰인가 뭔가 하는 이름입니다."
  자크 멜리에스는 어쩔까 망설이다가 손목  시계를 흘끗 들여다보고
나서 결정을 내렸다.
  "그 아가씨한테 시간이  없어서 미안하게 됐다고 전해  주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텔리비젼 프로, '알송달쏭 함정  퀴즈'가 나올 시간이
야. 에밀 형사, 그 프로 알아요?"
  "얘기는 들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저런, 그런 걸 안 보다니요! 두뇌 훈련을  위해서 형사들은 꼭 봐
야되는 건데."
  "이 나이에 뭐 새삼스럽게."
  경관이 헛기침을 하며 끼여들었다.
  "'일요 메아리'의 여기자에게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통신사를 통해  수사 결과를 발표할  거라고 해. 그 여자는  그걸
받아서 그대로 기사를 쓰면 될거야."
  경관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한 가지 더 물었다.
  "그럼 벌써 이 사건을 종결하시는 건가요?"
  자크 멜리에스가 피식 웃었다. 너무 쉬운  수수께끼에 실망한 전문
가의 웃음이었다.
  "둘은 타살이고  하나는 자살이야. 모든 독극물  때문에 죽은거지.
세바스티앵 살타가  빚더미에 깔려  미쳐버렸어 그래서 모두를  위해
일거에 끝내버린거지."
  말을 마치고 경정은  모두 현장에서 나가라고 지시한  다음 전등을
끄고 문을 닫았다.
  범죄 현장은 다시 텅 비었다.
  거리의 빨갛고 파란  네온 불빛이 밀랍을 입혀  번들거리는 시체에
반사되고 있었다.  멜리에스 경정의 뛰어난 활약으로  시체들이 풍기
던 비극적인  분위기가 사라져버렸다. 그저  독극물 때문에 죽은  세
구의 시체일 뿐이었다.
  멜리에스가 가는 곳에 불가사의란 없었다. 그저  하나의 사건이 있
을 뿐이었다.
  오색 불빛에  번쩍이는 시체들은  하이퍼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린
형상 같았다.  폼페이 대재난의 희생자들처럼  미라가 되어 버린  세
형상. 그러나 어머어마한 공포로 일그러진 그  얼굴들은 베수비오 화
산 폭발보다 더 무시무시한 어떤 것을  보았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
다.

   9. 쓰래기터에 버려진 개미 머리

  사냥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잠복하고 있던 103683호가  긴장
을 푼다.  아름다운 박각시나방은  돌아오지 않았다. 103683호는  털
달린 다리로 배  끝을 닦고 가지 끝으로 나아간다.  나방이 버리고간
고치라도 주우려는  것이다. 그런 것도  개미 둥지에서는 쓸모가  있
다. 꿀단지 개미처럼  분비꿀을 담는 단지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103683호는 더듬이를  닦고 주위에 뭐  쓸 만한 다른 것이  없는지
알아보려고 더듬이를 초당  진동수 1만 2천 회로 떤다.  사냥감이 움
직이는 낌새가 없다. 하는 수 없다.
  103683호는 벨로캉의 불개미로서 나이는 한 살  반인데, 그 나이는
인간 세계의 나이로는  마흔 살에 해당한다. 그의 계급은  비생식 병
정개미 중에서도 탐험 개미이다. 새의 도가머리  같은 더듬이가 높이
솟아 있고  목과 가슴의 생김새가  갈수록 늠름해지고 있다.  솔처럼
털이 나 있고 박차  같은 톱니가 달려 있는 종아리 마디  가운데 하나
가 부러지기는 했지만 몸 전체가 아직  하나의 완벽한 기계처럼 작동
하고 있다.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생겨난 딱지의 줄무늬도  흠이 되지 않는다.
  103683호는 다리  끝에 달린  부착반을 사용해서 관목에서  내려온
다. 작은 섬유질  덩어리인 그 부착반에서 끈끈한 물질이  나오기 때
문에 아주 미끈미끈한 표면도 수직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103683호는 자취 페로몬이 뿌려진 길을 따라  자기 도시 쪽으로 간
다. 주위에 풀들이 울창하게 솟아 있다.  똑같은 냄새길을 따라 달려
오는 많은 벨로캉 일개미들과 마주친다. 길  닦는 일개미들이 곳곳에
서 땅 속으로 길을 내고 있다. 길을  이용하는 개미들이 햇빛에 방해
를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민달팽이 한 마리가 경솔하게 개미들이 다니는  길로 지나간다. 병
정개미들의 위턱의 뾰족한 끝으로 민달팽이를  찔러 곧바로 잡아버린
다. 그런 다음 길에 남아 있는 민달팽이의 끈끈물을 닦아낸다.
  103683호가 이상하게  생긴 곤충과 마주 쳤다.  날개가 하나뿐이고
땅바닥에 닿을 듯이  기어가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다름이 아니
라 개미 하나가 잠자리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두 개미가 인사를 나
눈다. 그  사냥 개미는 103683호보다  운이 좋았다. 사실 나방  고치
하나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허탕치고 들어가는 것이나  크게 다를게 없다.
  도시의 그늘이 펼쳐지더니 하늘이 사라지고  나뭇가지로 이은 지붕
만이 보인다. 벨로캉이다.
  길 잃은  여왕개미가 세웠다고  해서 벨로캉이라 이름지어진  도시
다. 개미들끼리의 전쟁과 회오리바람, 흰개미,  말벌, 새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벨로캉은 5천 년 이상을 꿋굿하게 버텨왔다.
  벨로캉, 퐁텐블로 불개미들의 중심 도시로서 이  지역에서 가장 강
력한 정치력을 가진 도시.
  벨로캉, 개미들의 혁신적인 운동이 꽃핀 도시.
  위협이 있을 때마다  벨로캉은 더욱 공고해 진다. 전쟁을  겪을 때
마다. 벨로캉은 더욱  사기가 높아진다. 패배할 때마다  벨로캉은 더
욱 슬기로워진다.
  벨로캉. 3천  6백만 개의 눈과 1억  8백만 개의 다리와  1천 8백만
개의 뇌를 가진 도시, 활기가 넘치고 찬란히 빛나는 도시.
  103683호는 벨로캉의 모든 교차로와 모든 다리를  알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하얀 팡이들을 재배하는 방들과  진딧물 떼를 사육하는 방
들, 꿀단지 개미들이  천장에 붙어서 꼼짝 않고 있는  방들을 둘러보
았다. 옛날에 흰개미들이 소나무 그루터기 속에  파놓았다는 금단 구
역의 통로들을  달려보기도 했다. 그는  새 여왕 클리푸니와  모험을
함게 했던 옛 동료로서 클리푸니가 행한 모든 개혁의 증인이었다.
  '혁신 운동'을  일으킨 것이 바로 클리푸니다.  클리푸니는 자신의
왕조를 세우기  위해 신 벨로키우키우니라는 호칭을  버렸다. 클리푸
니는  공간을 재는  단위를 머리(3밀리미터)에  걸음(1센티미터)으로
바꾸었다. 벨로캉 개미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더  큰 단위
가 필요했던 것이다
  혁신 운동의 일환으로 클리푸니는 '화학  정보실'을 만들었고 특히
동물학 정보를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개미와 공생하는  갖가지 동물
들을 모아  연구하였다. 날아다니는 곤충과 수영하는  곤충을 길들이
려는 시도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풍뎅이와 물방개 등이 그 예이다.
  103683호와 클리푸니가 서로 만나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알 낳
고 도시 개혁하느라고  너무나 바쁜 젊은 여왕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병정개미는  도시 지하에서 그들이 함께  했던 모험,
즉 비밀 무기를  찾으려고 함께 조사했던 일, 그들을  마약으로 중독
시키려고 했던  로메슈제,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과의 싸움
등을 잊지 않았다.
  103683호는 동쪽으로  대탐험을 떠났던 일이며, 세계의  끝에 다다
랐던 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여버리는 손가락들의  나라도 잊지 않고 있다.
  병정개미는 새로운 탐험대를  구성하고 몇 차례 제안을  했으나 그
때마다 다른 개미들은  여기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자살  행위나 다
름없이 탐험대를 세계의 끝으로 보낼 수 없다고 대답했다.
  모든 게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개미는 대개  과거를 생각하는 일이  없다.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
다. 개미는 개체로서의  자기 존재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개
념도 '내 것'  '녜 것'이라는 개념도 없이, 공동체를  통해서만 그리
고 공동체를 위해서만 자아를 실현한다. 자아에  대한 의식이 없기에
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개미는 실존적인 고뇌를 모른다.
  그런데 103683호에게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의 끝을 다녀
오고 난  뒤에 그의 내부에  희미하나마 '나'에 대한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아직 맹아에 불과하지만 수용하기에  너무나 고통스러
운 의식이다.  자아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추상적인'  문제가 생겨난
다. 개미세계에서는 그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부른다. 그  병은 대
개 생식 개미들에게 생긴다. '내가 마음의  병에 걸린 게 아닐까?'라
고 자문하는 것 자체가 벌써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고 개미 사회의 격언은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103683호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으려고  애쓴
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주위에  있는 길들이 이제  넓어졌다. 교통이 상당히  번잡하
다. 그는 군중  속에서 부대끼며 자기가 커다란 집단  속의 자그마한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려고 노력한다. 다른  개미들이 있
다는 것,  다른 개미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개미들 때문에  자기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 그
런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는 개미들이  북적거리는 넓은 길로 경쾌하게  나아간다. 도시의
네번째 문이 나타난다.  여느 때처럼 개미들이 혼잡을  이루고 있다.
개미들이 너무 많아서 해쳐나갈 수가 없다.  4번 출입구를 넓히고 통
행 규칙을 만들어야 할 듯하다. 예를 들면  부피가 작은 사냥감을 운
반하는 자가  길을 비켜야 한다든가,  들어가는 자가 나오는  자보다
통행에 우선권이 있다라는  식의 규칙 말이다. 그런 게  없으니까 모
든 대도시들이 교통 체증으로 골치를 앓는 것이 아닌가?
  초라하게 텅 빈  고치 하나를 운반하고 있는  103683호로서는 그렇
게 서둘 계체가  아니다. 통행이 원활해 지기를 기다리다가  그는 쓰
레기터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작정한다. 그는 어렸을 때  쓰레기 속
에서 놀기를  아주 좋아했다. 같은  병정개미 계급의 동료들과  함께
그는 쓰레기터에 있는 개미 머리를 공중에  던져서 개미산을 쏘아 맞
추는 놀이를 하곤  했다. 그것을 하려면 개미산 주머니에  압력을 넣
는 속도가 빨라야 했다. 103683호가 명사수가 된  것도 어쩌면 그 덕
분인지도 모른다. 쓰레기터에서 그는 위턱 다루는 법도 배웠다.
  아, 쓰레기터다....  개미들은 언제나 도시 앞에  쓰레기터를 만든
다. 한번은 다른  도시에서 처음으로 벨로캉에 온 어떤  용병 개미가
'쓰레기터는 보이는데  도시는 안 보이니 이거  어떻게 된거요?'라고
페로몬을 발한  적이 있었다. 시체와  곡물 껍질과 갖가지  배설물이
쌓여 높은 둔덕을 이루고 있는 바람에  도시 입구가 가려져버렸던 것
이다. 몇몇 입구는 완전히 쓰레기에 막혀버려  그것을 치우느니 차라
리 새 통로를 하나 파는 게 나을 정도가 되었다.
  (살려줘요!)
  103683호가 몸을 돌린다. 방금 누군가가 어떤  냄새를 토해낸 듯했다.
  <살려줘요!>
  틀림없다. 오물  더미에서 분명히  대화 페로몬이 날아오고  있다.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냄새다. 103683호는 냄새가  날아온 쪽
으로 다가가 더듬이 끝으로 시체 더미를 뒤진다.
  <살려줘요!>
  세 개의 머리  중에서 하나가 페로몬을 발하고 있다.  무당벌레 머
리, 메뚜기 머리,  불개미 머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103683호는 세
마리를 더듬어보다가 불개미 더듬이에 미미한  생명의 냄새가 있음을
감지한다. 그러자 103683호는  앞의 두 다리 사이에 그  머리통을 끼
우고 자기 머리 정면으로 들어올린다.
  <꼭 알아야 할 게 있소.>
  하나 남은 왼쪽  더듬이로 때가 덕지덕지한 불개미  머리가 페로몬을 발한다.
  별 해괴한 일이  다 있다! 몸뚱이에서 잘려나온 머리가  아직도 페
로몬을 발하고  싶어하다니! 그렇다면 이 개미는  구차스럽게 죽음의
휴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03683호 한 순간  옛날에
즐겨하던 것처럼 그  머리를 공중에 던져서 개미산으로  박살내고 싶
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것을 억누른다.  단지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페로몬을 발하고 싶어하는 자들의 메시지를  거부해선 안된다'는 것
이 개미 사회의 오랜 가르침이기 때문이었다.
  103683호는 더듬이을 움직여 그 가르침에 따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불개미 머리가  발하고 싶어하는 페로몬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낸다.
  머리뿐인 그 개미는 생각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느끼면서 자기
가 알아낸 중요한  정보를 기억해 내려고 한다. 몸뚱이가  붙어 있는
한 개미로서의  자기 삶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은  더듬이에
자기의 생각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몸뚱이가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머리에는 이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뇌의  주름이 약간 건조해져 있다. 그래도  전기 작용
은 여전히 일어날 수가  있다. 뇌수 속에 아직 신경 전달  물질이 남
아 있다. 그  미미한 습기를 이용해서 신경 세포들이  서로 연결되고
소량의 전기가 흐른다.  두 개미의 생각이 교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셋이었다.  어떤 종의  개미인가? 불개미. 반체제  불개미.
어느 도시에서  왔는가? 벨로캉.  우리는 '화학 정보실'에  잠입했었
다. 거기에서 아주 놀라운 기억 페로몬을  해독했다. 무엇에 관한 페
로몬인가?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경비 개미들이  우리를 잡으
려고 쫓아왔다. 나의  두 동료는 병정개미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머
리의 습기가 말라가고 있다. 기억이 소실되면 세   개미의 죽음이 부
질없게 된다. 정보를 다시 모아야 하는데, 다시 모아야 하는데....
  103683호는 전달하려는 게 뭐냐고 여러 번 되묻는다.
  머리만 남은 개미의 뇌 속에 다시 피가  조금 모인다. 그걸 사용해
서 좀더 생각을 계속해야 한다.
  뇌 속의 기억  장치와 더듬이의 송수신 체계가  전기적으로 화학적
으로 결합된다.  전두엽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과  당분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은 뇌가 마침내 정보를 전달한다.
  <클리푸니가 그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원정군을 보내고 싶어한다.
한시라도 빨리 다른 반체제 개미들에게 알려야 한다.>
  103683호는 그 개미, 아니 개미 머리가  발하는 페로몬을 이해하지
못한다. '원정군'은 무엇이고 '반체제 개미들'은  또 무엇인가? 도시
내에 반체제 개미들이 있단 말인가? 그런  건 금시 초문이다. 그러나
한가로운 질문으로 냄새 분자를 허비해서는 안된다.  그 개미 머리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그렇게 황당한 페
로몬 정보를 접하고  보니 뭘 물어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
다. 103683호의 더듬이에서 저절로 페로몬이 튀어나간다.
  <그 반체제  개미들에게 알려주려면 어디로  가야 그들을 만날  수
있는가?>
  개미 머리가 다시 힘을 내어 바르르 떤다.
  <새로 지은  뿔풍뎅이 축사 위에  천장처럼 교묘하게 위장해  놓은
곳이 있다....>
  103683호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 원정군은 누구를 상대로 싸우려는 것인가?>
  개미 머리가 진저리를 치고 103683호도 더듬이를  떤다. 개미 머리
가 마지막 페로몬을 발할 듯 말 듯 하며 조바심을 갖게 한다.
  더듬이로 겨우 감지할  만한 옅은 냄새가 풍긴다. 거기에는  단 하
나의 페로몬 단어만  담겨 있다. 103683호가 더듬이의 끝  마디로 그
것을 받아  냄새를 맡는다. 그가  알고 있는 단어다. 그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단어다.
  <손가락들.>
  머리만 남은 개미의 더듬이는 이제 완전히 말라버렸다.
  머리가 경련을 일으킨다.  이제 그 검은 머리 안에는  정보 페로몬
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103683호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손가락
들을 전멸시키기 위한 원정대라니.

   10. 돌아온 박각시나방

  왜 갑자기 불빛이 꺼진걸까? 나방은 불길이  자기 날개를 갉아먹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그럼에도 나방은 빛의  황홀경을 맛보기 위해
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었다. 그 뜨거운  기운이 막 몸에 스
며들려던 찰나였는데....
  실망한 박각시나방은  퐁텐블로 숲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 한참을 날아서 자기가 탈바꿈을  끝냈던 장소에 다다른다.
  수천 개의 낱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방은 공중에서 그 지역의
지리를 훤히 분별할 수 있다. 가운데 있는  것이 개미 도시 벨로캉이
다. 그 주위에  불개미 여왕들이 분가해서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있
다. 그 전체를  개미들은 '벨로캉 연방'이라고 부른다.  연방은 하나
의 제국이라고 할  만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숲에서
누가 감히 불개미들의 헤게모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랴.
  불개미들은 가장 영리하고 가장 잘 조직되어  있다. 그들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흰개미들과 난쟁이개미들을 정복한  바 있고, 자기들
보다 100배나 더 큰 동물과도 싸웠다.  이 숲속에서는 그들만이 세계
의 주인임을 부정할 자는 아무도 없다.
  벨로캉 서쪽에는 거미와 사마귀가 우글거리는  위험한 영토들이 펼
쳐져 있다. 나방들이 몸조심을 해야 할 지역이다.
  남서쪽은 다리가 넷이나 여섯 또는 여덟  개이고 그만한 수의 입과
이빨과 독침을  가진 갖가지 괴물들이  독을 뿜고, 으깨고,  부수고, 녹여버린다.
  북동쪽에는 갓 건설된 꿀벌 도시 아스콜레인이  있다. 사나운 꿀벌
들이 거기에 살고 있는데,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는 지역을 넓힌다는
구실 아래 벌써 말벌 둥지 여러 개를 파괴한 바 있다.
  훨씬 더 동쪽에는 '아귀'라 불리는 강이 있다.  그 수면에 닿는 족
족 뭔든지 먹어치우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  조심해야 할 곳이다.
  그 강둑에 새로운 도시 하나가 생겨났다.  박가시나방이 그 도시로 접근한다.
  흰개미들이 아주 최근에 그 도시를 세운   모양이다. 아주 높이 솟
은 망루 위에  자리잡은 포수 흰개미들이 침입자인  박각시나방을 공
격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방이 너무 높이  날아가고 있어서 흰개미들
의 공격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박각시나방은 방향을 틀어 커다란 떡갈나무를  에워싸고 있는 북쪽
의 가파른 둔덕  위를 날아 남쪽으로 내려온다. 대벌레와  빨간 버섯
이 많은 지역이다.
  문득 그 높이까지 강렬한 성 페로몬을  발하는 암나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박각시나방은  암나방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가간다.
암나방의 빛깔은 그의  것보다 훨씬 더 현란하다.  아름다운지고! 그
런데 이상하게도 암나방이  꼼짝을 안 하고 있다.  기이하다. 분명히
냄새며 생김새는 암나방과 비슷한데.... 이런 낭패가  있나! 이건 나
방이 아니라 꽃이다.  꽃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짐짓  나방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비난초의 꽃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든 게
거짓이다. 냄새도  빛깔도. 식물의  감쪽같은 속임수다.  애석하게도
박가시나방은 너무 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다리가 끈끈물에
붙어버렸다. 이제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박각시나방은  너무
세게 날갯짓을 하는 바람에 근처에 있던  민들레 꽃에서 꽃씨가 떨어
져나온다. 박각시나방이 대야처럼 생긴  꽃부리 가장자리로 미끄러진
다. 그 꽃부리는 하나의 위가 쩍 벌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
밑바닥에 소화 작용을 하는 산이 감추어져  있어서 꽃이 나방을 잡아
먹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아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집게처
럼 휘어진 손가락 두 개가 나타나서  박각시나방의 날개를 잡고 위험
에서 구출하여 투명한 단지 안에 던져넣는다.
  단지가 먼 거리를  이동하여 노란 박각시나방을 불빛이  환한 지역
으로 데려간다.  손가락들은 단지에서 나방을 꺼내더니  냄새가 아죽
독한 노란  물질을 발라 나방의날개를 단단하게  만든다. 날아오르기
가 더 수월할 것 같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크롬을 입힌 거대한 말뚝
을 잡더니 빨간  공으로 위를 깜싸고 심장에 잽싸게  짤러넣는다. 그
러더니 묘비명 대신에 '파필로누스 불가리스'라는  학명이 적힌 꼬리
표를 나방의 머리 위쪽에 붙인다.

   11. 백과 사전

     문명의 충돌

  두 문명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미묘하다.  중앙 아메리카에 유럽
인들이 처음 왔을  때 아즈텍 인들은 유럽 인들을 아주  엉뚱하게 오
해 했다. 당시 아즈텍 인들은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을 가졌다는 케칼
코아틀이라는 신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아즈텍 신앙은  장차 그 신의
사자들이 지상에 도래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 사자들은 살
갗은 깨끗할  것이고, 네 발 달린  커다란 동물들을 타고  올 것이며
우레를 통하여 경건하지 못한 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1519년 스페인의 기병대가 멕시코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식
이 전해졌을 때 아즈텍 인들은 '툴'(중미  인디언들의 언어인 나우아
틀 말로 신을 뜻함)이 재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인 1511년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일깨워 준  사람이 있었다. 구에레로라는 스페인 선원이  그 사
람이었다. 그는 코르테스의 군대가 아직 산토  도밍고 섬과 쿠바섬에
주둔하고 있던 때에  유카탄 해안에서 난파를 당하여  멕시코에 상륙하게 되었다.
  구에레로는 멕시코 원주민들과 쉽게 친해졌고  원주민 여자와 혼인
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곧  상륙할 것임을 알리는  한편
그들은 신이 아니고 신의 사자들도  아님을 역설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또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방
어할 수  있도록 쇠뇌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그때까지  인디언들은
화살과 흑요석 날이 달린 손도끼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르
테스 군대의 갑옷을 뚫을 수 있는 무기는 쇠뇌밖에 없었다).
  구에레로는 스페인 사람들이  타고 올 말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고 신신 당부했고  특히 불을 뿜는 무기에 겁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것은 마법의 무기도  아니고 우레도 아니라고 일깨웠다.  그는 '스
페인 사람들도 당신들과 똑같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거듭
거듭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그는 스
스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모든 원주민들과 똑같은 빨간  피가 흐
르는 것을  보여주었다. 구에레로가 자기 마을의  인디언들을 지성으
로 가르친 덕분에  코르테스 군대의 정복자들이 그  마을을 공격했을
때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군대다운 인디언 군대와
맞닥뜨리고 크게 놀랐다.  마을 원주민들은 몇 주 동안  스페인 군대에 저항했다.
  그러나 구에레로의 가르침이 그 마을 이외의  곳까지 널리 퍼져 있
는 상황은 아니었다. 1519년 9월 아즈텍  왕 목테수마는 공물로 보석
을 가득 실은  수레들을 이끌고 스페인 군대를 맞으러  떠났다. 바로
그날 저녁에 왕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 1년  후에 코르테
스는 대포로  아즈텍의 수도  테노크니틀란을 파괴했다. 3개월  동안
그 도시를 포위하여 주민들을 기아 상태에  빠뜨린 다음의 일이었다.
구에레로는 스페인의 어떤 요새에 대한 야간  공격을 준비 하던 중에 죽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2. 레티샤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살타 형제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고 나서 자크  멜리에스 경정은
샤를 뒤페롱 경찰  국장의 호출을 받았다. 경찰 책임자는  친히 그를
치하하고 싶어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거실  안에 들어서자 국장은 대뜸 그  '살타 형제
사건'이 '윗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털어놓았다.  저
명한 정치인들  가운데 몇몇은 그의  수사를 '프랑스 식의  신속성과
효율성의 전형'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국장은 멜리에스에게  결혼했느냐고 물었다. 멜리에스
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독신이라고 대답했다가, 국장이  계속 물어오
는 바람에, 자기도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성병에  걸리지 않도
록 조심하면서 상대를  계속 바꾸어가는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실토했다.
  샤를 뒤페롱은 장가들 생각을 하라고  권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
다. 사회적인 이미지를  잘 가꾸어놓아야 정계에 입문할  수 있으며,
정계에 들어갈 생각이  있으면 먼저 의원이나 시장부터  시작해 보라
는 얘기였다. 국장은 어떤 나라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
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폐쇄된  공기에서 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자크  멜리에스 같은 사람이라면,
다른 까다로운 문제들도 잘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예컨
대, 실업을  해소하고, 변두리의 우범  지대를 다스리며, 사회  보장
예산의 적자를 줄이고,  정부 예산의 수지를 맞추는 문제, 즉  한 나
라의 지도자들이 매일  맞닥뜨리는 갖가지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거였다.
  "우리에겐 두뇌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요즈음엔 그
런 사람들이 점점 드물어져가고 있어."
  국장은 한탄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정치라고 하는  이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다면,  내가 제일
먼저 자네를 지지하겠네."
  자크 멜리에스는  자기가 수수께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것이
추상적이고 보상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
는 세계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대답했다.
  멜리에스는 남을  지배하는 일은 너무나 피곤하며,  국장이 문제삼
고 있는 자기의 애정 생활이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니고, 애정 생활을
사생활의 영역 밖으로 끌어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뒤페롱 국장은 기꺼운 마음으로 웃고 나서,  멜리에스의 어깨 위에
손을 엊고 자기도 멜리에스만한 나이 때는  그와 똑같은 생각을 가졌
었는데,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남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
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권력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돈을 경멸하려면 부자가 되어야 하고,  권력을 경멸하려면 권력을
쥐어야 하는걸세."
  그런 생각에 뒤페롱은 젊은 시절 기꺼이  위계의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왔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기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이제  미래가 잘못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두 자녀를 그  도시에서 가장 학비가 비
싼 사립 학교에  입학시켰고,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여
가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고, 자기를  떠받드는 수백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이상 뭘 더 바라겠는가?
  '추리 소설에 푹 빠질 수 있는  어린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라지요'
라는 말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 멜리에스는 자기  생각을 지켜나가리라 다짐했다.
  면담을 끝내고 경찰국을 떠나려다가 경정은  철책문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게시판에 선거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선거
구호가 가지 각색이었다.
  '참된 가치에  뿌리박은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  민주주의자에게 한
표를!', '위기 타파! 헛약속은 이제 그만!  급진 공화파 운동과 함께
하십시요!', '범국민  녹색 혁신당을  지지하여 지구를  살립시다!',
'불의에 맞서  일어서십시오! 독립  인민 전선에 동참하십시요!'  운
운.
  어디를 보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한결같이 기름기가 번드르르
하고 정부를 비서로  두고 스스로를 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얼굴들이었다.
  멜리에스는 명예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정치가의  삶보다는 자유
로운 자기의  애정 생활과 텔레비젼과  범죄 수사가 더  나아보였다.
'근심을 갖고 싶지 않거든 야망을 버려라.'라고  그의 아버지가 충고
하곤 했었다.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오늘 같은 날이면 아버지
는 아마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그런  바보들과 똑같은 야망을 갖지
말아라.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너만의 어떤 것을  찾아내어 진부
한 삶을 뛰어 넘으라.'
  자크 멜리에스는 벌써 두 번 결혼했고 두  번 이혼했다. 그는 환희
를 맛보며 50여 건의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고,  아파트 한 채와 서재
와 한  무리의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런 것에  만족해 하고
있었고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을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푸아들뤼일 광장과  라트르 르 타시니 원수  대로와 라뷔토카
이으 가를 거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주위의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사방으로  달리고 있었고 자동차들
은 지나치게 경적을 울리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창가에서 융단을 요
란하게 털어대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이 물총을 서로  쫓고 쫓기는 장
난을 하고 있었다. '빵, 빵, 빵, 너희 셋  다 죽었어!' 그중의 한 아
이가 소리쳤다. 도둑  잡기 놀이를 하는 그 사내아이들이  자크 멜리
에스의 신경을 끌었다.
  아파트 건물 앞에 이르렀다. 높이 150미터에  너비 150미터로 거대
한 사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었다.  텔레비젼 안테나 주위로
까마귀들이 선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출입을 살피고  있던 경비 아
주머니가 경비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멜리에스  씨! 신문에서 멜리에스 씨에  대해 써놓은
걸 봤어요.  그 사람들 멜리에스  씨를 시기하느라고 그러는  거니까
너무 언짢아하지 말아요."
  멜리에스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어쨌든 멜리에스 씨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멜리에스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집에는 여느때처럼  마리
샤를로트가 신문을  찾아다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 샤를로
트는 그를 아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도 마리 샤를로트는  여전히 이빨 사이에 신물을 물고  있었다. 그
가 명령을 내렸다.
  "이거 놔! 마리 샤를로트."
  마리 샤를로트는  다소곳이 그의 말에 따랐다.  멜리에스는 조바심
을 내며 신문을  펼쳐들었다. 그는 이내 자기의 사진과  그를 압도해
오는 커다란 기사 제목을 찾아냈다.

  경찰 수사, 갈피를 못 잡고 있다.
  - 레티샤 웰즈의 논평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많은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  권리 중에
는 죽은 자의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시체 상태로 전락
했을 때조차도 우리는  그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고 살타
형제에게는 그 권리가 부정되고 있다. 그 삼  형제는 죽음에 얽힌 의
혹이 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서 고  세바스티앵 살타
씨는 이제 자기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형제를 살해하
고 자기의 죄과 때문에 자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체라서 죄를  뒤집어씌우기는 쉽
겠지만, 그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라 프장드리 가의 살인  사건이
그나마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자크  멜리에스 경정의 사람 됨됨이
여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서 명성에
들뜬 어떤  사람이 파렴치한 졸속  수사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멜리에스 경정은 중앙 통신사를 통해 살타  형제가 모두 독극물 때문
에 죽었다고  발표했는데, 그것은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건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망자들을 모욕한 것이기도 하다.
  자살이라니! 세바스티앵  살타의 시신을 얼핏 본  것만으로도 필자
는 그가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어떤 것에 희생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두 형제를 살해하고  난 뒤 너무나 심한 회한을 느낀  나머지 그런
표정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심
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멜리에스 씨의  주장에 동조하기
가 어려울 것이다. 자기 형제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음식에 독을 넣
은 사람이라면  이미 회한 따위는  초월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니라 마침내 되찾은 차분한  표정만이 어
려 있을 것이다.
  그럼 고통 때문인가? 독극물이 일으키는 고통은  그토록 격심한 것
이 아니다.  그리고 독극물에 의한  사망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그
독극물이 어떤 종류의  건인지 알아야 한다. 필자는 경찰이  살인 현
장에 대한 조사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의학  센터를 찾아가서
법의학자에게 살타 삼  형제의 시체를 부검한 사실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 법의학자는  시체를 부검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살타 형제  사건은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결
말이 지어진 것이다. 그토록 훌륭한 명성을  지닌 범죄학자 멜리에스
경정이 아주 중대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살타 형제 사건을 그렇게 서둘러 매듭짓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곰
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는 경찰의 졸속한  처사에 불안감마저 느
끼고 있다. 우리는 날로 교묘해져 가는 신종  범죄에 대응할 수 있을
만한 연구 수준을  우리 국립 경찰 간부들이 갖추고 있는지  묻지 않
을 수 없다.>

  멜리에스는 신문지를 구겨 돌돌 뭉치면서 상소리를 내뱉었다.

  13. 103683호가 고민에 빠진다.

  <손가락들을 상대로 한 원정이라니!>
  손가락들! 막연한 두려움이 103683호를 엄습한다.
  개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상적
인' 103683호에게  찾아온 이  두려움은 무엇인가? 쓰레기터의  개미
머리가 '손가락'이라는 단어를 발함으로써 103683호의  뇌 한 부분이
잠에서 깨어났다. 아주  오랜 조상 때부터 사용하지 않은  탓에 잠들
어 있던 부분, 즉 공포를 지각하는 부분이다.
  이제껏 103683호는 세계의  끝에 다시 생각이 미칠  때마다 옛날의
경험을 되새기는  것을 억제해 왔다.  그는 손가락들과 만났던  일을
되새기지 않았다. 손가락들과  그들의 어마어마한 힘, 파악할  수 없
는 그들의 형체, 그들의 맹목적인 살생 충동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머리,  아니 몸뚱이가 잘려나간 시체 조각이  공포를 지
각하는 부분을 자극한 것이다. 103683호는 예전에는  불요 불굴의 기
상을 지닌  병정개미였다. 그는 난쟁이개미들과 대전투를  벌이던 시
절 언제나 대열의  선두에 서곤 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위험
한 서쪽으로 탐험을 떠나기도 했고 바위  냄새를 풍기는 개미들과 싸
우기도 했다. 머리가  너무 높아서 쳐다볼 수도 없는  동물들을 사냥
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손가락들을 만나고  나서는 완전히 기가 꺾여버렸다.
  103683호는 그  대재앙의 괴물들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다. 엄
청나게 빠른 검은  구름 같은 것에 풀잎처럼 깔려 죽은  늙은 병정개
미 4000호의 모습도 떠오른다.
  어떤 개미들은 손가락들을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 '무한대의
동물', '무자비한 유령', '나뭇개비에 불을 붙이는  자', '죽음의 냄
새를 풍기는 자' 등으로도 불렀다.
  그러나 얼마 전에 일대의 모든 개미  도시들은 그 괴물들을 가르키
는 이름을 통일하기로 합의하였다. 그것이 바로 '손가락들'이었다.
  손가락들, 그들은 어디에서나 동물이고, 독물을  뿌려 숲을 오염시
키고 생명을 독살하는 유령들이다. 생각만 해도 혐오감이 치민다.
  103683호는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동요하
고 있다. 두려움은 개미들에게 낯선 감정이긴  하지만 호기심은 개미
의 주요한 특성을 이루는 감정이다.
  1억 년 전부터  개미들은 줄기차게 진보해 왔다.  클리푸니가 일으
킨 혁신 운동도 따지고 보면 끊임없이 더  멀리, 더 높이, 더 강하게
를 지향하는 개미 사회의 전형적인 욕구가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03683호는 손가락들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호기
심이 두려움을 누른 것이다. 어쨌든 반체제  개미들이 있다는 것이며
손가락들을 상대로 한  원정군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103683호가 더듬이를 닦는다. 이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를 분명히 하고 싶다는 표시이다. 103683호는  더듬이를 미심쩍은 하
늘 쪽으로 세운다. 공기가 무겁다. 어딘가에  적이 숨어서 도시로 쳐
들어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만 같다. 홀연  한 줄기 미풍이 불
오와 주위의  나뭇가지들을 흔든다. 나무들이 그에게  조심하라고 이
르는 듯하다. 그러나 나무들의 흔들림에 뜻이  담겨 있을 리가 없다.
103683호는 될대로 되라면서  움직일 줄 모르는 나무들의  기질을 별
로 좋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을  정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들도  폭풍에
쓰러지고 부러지며, 번개에 타버리거나  흰개미들에게 파먹히는 일이
있다. 나무들이 그렇게 무너질 때면 개미들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난쟁이개미들의 격언에 나무들이 무너지는 그런  현상을 잘 설명한
것이 있다. 즉 '커다란 것은 작은 것보다  더 부서지기 쉽다'는 격언
이 그것이다.  손가락들은 어쩌면 움직이는 나무와  같은 자들일지도 모른다.
  103683호는 그 문제로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쓰레기터의
개미 머리가 전해  준 정보를 확인하러 떠난다. 그는  쓰레기터 옆의
좁은 통로로 들어가  외곽 순환 도로에 들어선다. 금단  지역으로 통
하는 대로들이  거기에서 시작된다. 103683호가 가려는  길은 서쪽이
아니다. 그는  아주 가파른  통풍구로 들어간다. 거기에서는  발톱을
사용해서 내려가야  한다. 가파른 통로를 미끄러져  내려오자 얼키설
키한 통로들이 나온다.  여느 때와는 달리 그리 혼잡한  편은 아니었다.
  먹이와 나뭇가지를  운반하던 일개미들이 103683호에게 인사를  건
넨다. 개미 세계에  개인적인 영예가 따로 있을 리  없겠지만 벨로캉
에서는 많은  개미들이 103683호가  손가락들의 나라에 가서  세계의
끝을 보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03683호는 더듬이를  세워 뿔풍뎅이 축사가 있는  곳을 탐문한다.
어떤 일개미가 지하 20층, 남남서쪽 구역  왼쪽, 흑버섯 재배실 뒤에
있다고 일러준다.
  103683호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지난해 화재가 있은 뒤에 많은 공사가  이루어졌다. 옛날의 벨로캉
은 지상 50층  지하 50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클리푸니가  새로 설계
한 신도시는  지상 80층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지하의  바닥에는
화강암이 버티고  있어서 더 밑으로  파내려갈 수가 없다.  내려가는
길에 도시를 둘러보면서 103683호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도시의 모습에 감탄한다.
  지상 75층. 여기에는 알을 모아 둔 방과  번데기를 모아둔 방이 있
다. 전자는 부식토의  열기로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후자는
습기를 빨아들이는 고운 모래를 깔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완만한 비탈을 이룬  운송용 활주로가 설치되어 있어서  알들을 유모
개미들이 있는 아래층으로 쉽게 내려보낼 수  있다. 거기에서는 배가
묵직한 유모 개미들이 쉬지 않고 알들을  핥아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알들이 완전하게 성숙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과 항생  물질을 투명한
막을 통해 전해주는 것이다.
  지상 20층. 여기에는  마른 고기와 열매 조각과 버섯  가루를 모아
둔 방들이 있다.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모든 식량에  개미산을 적절
하게 뿌려놓았다.
  지상 18층. 두툼한 나뭇잎으로 만든 커다란  통에 군사적인 목적에
사용되는 실험용 산이  들어 있는데, 거기에서 김이  모락거린다. 화
학 개미들이 기다란 위턱 끝으로 산들이  가지고 있는 용해력을 시험
하고 있다. 사과산처럼 열매에서 추출한 산도  있지만, 좀 희귀한 것
에서 추출한 산도 있다. 즉, 참소리쟁이에서  뽑은 옥살산과 노란 돌
에서 뽑은 황산이 그것이다. 사냥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것은 최근에
개발된 농도 60%의  개미산이다. 그것을 개미산 주머니에  담고 있으
면 좀  뜨겁기는 하지만,  그것의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03683호는 이미 그것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
  지하 15층.  전투 연습실이 증축되었다. 여기에서는  병정개미들이
몸과 몸을 맞부딪치며  전투 훈련을 한다. 새로 개발된  전투 기술은
기억 페로몬에  꼼꼼하게 저장되어 화학 정보실에  보내진다. 경향은
예전처럼 적의 머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하나하나 잘라
서 적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포수
개미들이 열 걸음 떨어진 곳에 씨앗들을  놓고 개미산을 정확하게 쏘
아 녹여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하 9층. 여기에는 진딧물 축사가 있다.  클리푸니 여왕은 사나운
무당벌레들이 진딧물 때를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진딧물  축사를 모
두 도시  안에 세우도록 고집했다. 일개미들이  진딧물에게 호랑가시
나무 조각을 던져주고 분비꿀을 짜낸다.
  진딧물의 번식률이  증가되었다. 이제는 초당 10마리의  비율로 태
어난다. 지나가는 길에  103683호는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진
딧물 한 마리가  새끼를 낳자 이번에는 작은 진딧물이 새끼  칠 준비
를 하더니, 그보다 더 작은 진딧물을  낳았다. 그런 식으로 진딧물들
은 순식간에 어미가 되고 할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하 14층. 버섯 재배장이 끝이 가물거릴  만큼 펼쳐져 있다. 개미
들이 와서 쏟아놓고  간 배설물이 버섯의 양분이 된다.  버섯재배 개
미들은 웃자란 팡이실을  자르기도 하고 기생 팡이를  막아주는 마르
미카신을 뿌리기도 한다.
  그때 돌연 풀빛  곤충 한 마리가 103683호 앞으로  튀어오른다. 그
곤충을 또 다른 풀빛 곤충이 추격하고 있다.  둘이서 싸움을 하고 있
는 듯하다. 103683호는 주위의 개미들에게 그  이상한 곤충들이 뭐냐
고 물어본다. 어떤 개미가 설명하기를, 굴  속에 살기를 즐기며 냄새
가 고약한  풀노린재들이란다. 그  곤충들은 끊임없이 교미를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성적 능력을 타고난 곤충
임에 틀림없다. 클리푸니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 곤충들을 연구하고 있다.
  예로부터 모든 개미 둥지에는 공생 생물들이  번창해 왔다. 개미들
의 묵인 아래 개미 둥지 안에 눌러  살고 있는 곤충과 다족류와 거미
류의 종이 2천 이상을 헤아린다. 어떤  종들은 탈바꿈을 하는 곳으로
개미집을 이용하고 어떤 종들은 쓰레기를  먹어치움으로써 방들을 청
소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동물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도시는 벨로캉이 처음
이었다. 클리푸니 여왕은  어떤 곤충이든 길들일 수 있고  강력한 군
대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개체와 의사  소통을 이루기만
하면 그 쓸모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 여왕의 생각이다.  그 다음
에는 그것을 잘 감시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여왕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딱정벌레  속에 딸
린 몇몇 곤충들에게, 진딧물에게 하는 것처럼,  먹이를 주고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그들을  길들이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뿔풍뎅이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 단연 돋보인다.
  지하 20층. 남남서쪽  구역 왼쪽, 흑버섯 재배장 뒤,  일러준 데로
가보니 과연 통로 안쪽에 풍뎅이들이 있었다.

  14. 백과 사전

      두려움

  개미에게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개미집 전체가 하나
의 유기체처럼 살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각각의  개미는 인
체의 세포와 똑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손톱을 깎을 때  우리의 손톱 끝이 그것을 두려워할까?  면도를 할
때 우리의  턱수염이 면도기가 접근해  오는 것에 전율할까?  뜨거운
욕탕물의 온도를 가늠하려고 발을 집어넣을  때 우리의 엄지발가락이
두려움에 떨까?
  그것들은 자율적인 단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왼손이 오른손을 꼬집어도  오른손은 왼
손에 대해 아무런  원한을 품지 않는다. 오른손에 왼손보다  더 많은
반지가 끼어져 있다고 해서 시샘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자기를 잊고
유기체와도 같은  공동체 전체만을 생각한다면 번뇌가  사라진다. 그
것이 어쩌면 개미  세계의 모듬살이가 성공한 비결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5. 레티샤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분노를 삭히고 나서 자크 멜리에스는 작은  트렁크를 열고 살타 형
제에 관한 서류를  꺼냈다. 그런 다음 모든 서류와  사진들을 꼼꼼하
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입을  벌리고 있는 세바스티앵  살타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세바스티앵의 입술에서 어떤  비명이 새
어나오는 듯했다. 공포의 비명일까?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앞둔 저항
의 절규일까? 살인범은 어떤 자일까?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그는 수치
심 때문에 낯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벌떡  일어나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쳤다.
'일요 메아리'의 여기자가 옳았다. 그가 멍청한 짓을 했던 것이다.
  그는 사건을 과소 평가했다. 매사에 겸손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
을 얻은 셈이었다.  상황이나 사람을 과소 평가하는 것보다  더한 잘
못은 없다. 고맙소, 웰즈 부인 아닌 웰즈 양!
  그런데 어쩌다가 이 사건에서 그렇게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 타성 때문이다.  실패를 모르고 일을 해온  탓에 터무니없는
자만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날림 수사를  했던 것
이다. 그런 짓은  어떤 경찰관도 하지 않는다. 경찰에 갓  들어온 풋
내기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명성이 워낙 쟁쟁하다  보니 그
여기자를 빼고  아무도 그가  잘못을 저질렀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수사를 다시  해야 한
다. 그래도 계속  잘못된 채로 놔두지 않고 이제서나마  실수를 깨달
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가 맞닥뜨린 사건은 자살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아주 까다로
운 것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닫힌  공간을 드나
들었을까? 어떻게 상처도 내지 않고 흉기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그런 수수께끼는  멜리에스가 이제껏 읽은  어떤
추리소설에도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흥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혹시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완전 범죄라는 것과 맞닥뜨린 것이 아닐까?
  멜리에스는 에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에 나오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 생각했다. 실제의 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그 소설에서
는 한 모녀가  폐쇄된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여인은  면도칼에 찔
렸고, 딸은  구타를 당했다. 도난당한  흔적은 없었다. 심하게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사 결과 범인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곡마단
에서 도망친 오랑우탕이었다.
  오랑우탕은 지붕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고, 그  짐승을
보자마자 모녀가 비명을 질러댐으로써  오랑우탕이 미쳐버린 것이다.
오랑우탕은 소리를 못 지르게 하려고 모녀를  죽인 다음 들어왔던 길
로 도망쳤다. 그때 오랑우탕의 등이 내리닫이  창문의 창틀에 부딪히
면서 창문이 닫혀버렸다. 창문을 안에서 잠가놓은  것처럼 보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
다.
  살타 형제 사건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창문이 내
리닫이가 아니라서 등으로 쳐서는 닫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멜리에스는  사건 현장을 조사하
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전기는 끊겨  있었지만 조명  돋보기를 가져왔기 때문에  조사에는
지장이 없었다. 멜리에스는 거실을 조사했다.  거리의 번쩍이는 네온
불빛이 간간이 방  안을 비추었다. 살타 형제는 거기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수라장 같은 도시에서 튀어들어온 어떤  끔찍한 것을 목격
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멜리에스 경정은  문과 창문을 살펴보았다. 빗장을  질러놓은 문으
로 범인이  드나들었을 가능성은 없었다. 창문에는  에스파냐 자물쇠
가 설치되어 있어서,  창문으로 빠져나간 뒤 밖에서 다시  잠글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 일은 우연하게라도 일어날 수 없었다.
  멜리에스는 어떤 비밀 통로라도 있을까 싶어  밤색 장식 융단이 걸
려 있는 칸막이 벽들을  두드려 보았다. 또 벽에 걸린 그림  밑에 금
고 같은  것이 감추어져 있지  않을까 해서 액자들을 들춰보기도  했
다. 거실 안에는 값진 물건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즉, 금 촛대, 은
조상, 하이파이 컴팩트  음향 기기 등이 그것들이었다.  도둑이 들었
다면 그런 것들을 챙겨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의자 위에  옷들이 놓여 있었다. 멜리에스는  반사적으로 그것들을
뒤적거렸다. 손 끝에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웃옷에 작은 구멍
이 나 있었다. 좀이 쏠아놓은 구멍인 듯도  했지만 테두리가 네모 반
듯했다. 멜리에스는 옷을 내려놓고 구멍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
지 않았다. 그는 늘 가지고 다니는 껌  통에서 껌을 하나 꺼냈다. 그
바람에 주머니에 있던  신문 쪼가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가 '일요
메아리'에서 오려낸 기사였다.
  그는 레티샤 웰즈의 기사를 다시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웰즈 기자는 공포에 짓눌린 표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건 사실이었다. 살타 형제는 공포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면 겁에 질려 죽게 할 만큼 무서운 게 도대체 무엇일까?
  멜리에스는 자기가  겪었던 공포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어렸을
때 딸꾹질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늑대 가면을 쓰고 불쑥 나타나서 딸꾹질을 멎게  했다. 그때 그는 비
명을 질렀고 한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어머니는 이
내 가면을 벚고 딸꾹질이 멎은 것을 기뻐하면서 키스를 퍼부었다.
  한마디로 자크  멜리에스는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 자라왔다고  할
수 있었다. 병에 대한 두려움, 교통 사고에  대한 두려움, 사탕을 주
며 자기를 납치하려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 경찰에 대한  두려움 등
과 같은 사소한 것들이 있었는가 하면,  낙제에 대한 두려움, 하교할
때 공갈범들에게 돈을  갈취당할 일에 대한 두려움, 개에  대한 두려
움 등 심각한 것들도 있었다.
  그것 말고도 어린  시절의 공포의 경험은 많이 있었다.  자크 멜리
에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두려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두려움이었다.
  그가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침대  속에 뭔
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있던  침대 속
에 괴물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이불 밑으로 발을 들이
밀 엄두를 못내고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씩조금씩  이불 속으
로 다리를 디밀었다.
  그때 갑자기 발가락에 미지근한 입김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침대  발치에 괴물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괴물은 그
의 발가락을 떼어  먹으려고 아가리를 벌린 채  발가락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발가락이  침대 발치까지 이르지  않았다.
아직 그럴 만큼 키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매일 자라기
때문에 그의 발은  발가락을 잡아먹는 그 괴물이 숨어 있는  시트 자
락 쪽으로 점점 다가갈 게 분명했다.
  어린 멜리에스는 며칠 밤을 방바닥이나 이불  위에서 잤는데, 몸이
저려서 계속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대신 몸이  침대 발
치에 닿지  않도록 자기의 근육과  뼈에게 너무 많이 자라지  말라고
부탁했다. 멜리에스가 그의  부모들 만큼 키가 크지 않은  것도 어쩌
면 그것 때문일 것이다.
  매일 밤이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나의 해결책을 찾아
냈다. 그는 플러시  천으로 된 장난감 곰을 꼭 껴안고  잤다. 장난감
곰을 품고 있으면 침대 발치에 숨어 있는  괴물과 당당히 맞설 수 있
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난감 곰을  껴안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그는 팔이나 머리카락이나 귀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이불잇을
단단히 여몄다. 밤이  이슥해져서 괴물이 집 주위를 한  바퀴 돌려고
밖으로 나갈 때  그의 머리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침대 위에 이불과  시트가 둘둘 뭉쳐져 있
고 그 안에  멜리에스와 장난감 곰이 파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
다. 그의 어머니는  그 이상한 짓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
크는 자기와 장난감  곰이 힘을 합쳐 한 괴물을 상대로  밤새도록 어
떻게 싸우고 있는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괴물과의 싸움은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가 이긴 적도  없었고 괴
물이 이긴 적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성장하
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눈이 빨갛고 입술이  치켜올라가고 송곳니에
침이 끈적거리는 무시무시한  어떤 것과 맞서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경정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조명 돋보기를 들고  처음 할
때 보다 더 진지하게 범죄 현장을 조사했다.  상하 좌우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을 다 뒤졌다.
  융단 위에는  흙 묻은 신발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고,  살타 형제
것과 다른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으며  유리창에는 단 하나의 지
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리 잔에도  외부인의 지문은 전형 없었다.
멜리에스는 부엌으로 가서 손전등으로 붓질을 하듯 비추어보았다.
  멜리에스는 흩어져 있는 음식들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보았다. 에밀
형사가 이미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투명한  피막을 씌워놓았다. 거기
에까지 신경을 써준 에밀 형사가 미덥게  느껴졌다. 멜리에스는 물병
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독극물의  냄새는 전혀 느껴지
지 않았다.  과일 주스와 소다수에서도  전혀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살타 형제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들이  느낀 공
포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에 나오는 두 여자가 거실  창문으로 뒤
뚱거리며 들어오는 오랑우탕을 보았을 때의  두려움과 비슷한 것이었
을지도 모른다. 멜리에스는  다시 그 사건을 생각했다.  겁을 먹기는
오랑우탕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오랑우탕이 두 여자를 죽인  것은 그
여자들의 울부짖음을  멈추게 하려는  이유에서였다. 오랑우탕은  그
여자들의 비명을 무서워했다.
  그 사건  역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다.
누구나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커튼 뒤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
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살인범이 돌아왔다!
경정이 조명  돋보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불빛이  꺼져버렸다. 거리
에서 흘러들어오는 네온 불빛만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무진장 바>
라는 술집의 네온사인이 점멸하면서  무-진-장-바라는 글자들이 차례
로 번쩍거렸다.
  자크 멜리에스는 몸을 감추고 꼼짝 않고  있으려다가, 용기를 내어
조명 돋보기를  집어들고 수상쩍은 커튼 쪽을  비춰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투명 인간 같은 것이 있었던 걸까?
  "거기 누구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줄기  바람이었나 보다. 그는 그곳
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겠다 싶어 이웃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로했다.
  "실례합니다."
  기품있게 생긴 한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경찰입니다. 들어갈 것까지는 없고 여기서  한두 가지만 여쭤보고
가겠습니다."
  자크 멜리에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첩을 꺼냈다.
  "살인 사건이 있던 날 밤 댁에 계셨습니까?"
  "예."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다른 소리는 못 들었고 그 사람들이  느닷없이 비명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명을 질렀다고요?"
  "예, 아주 새된  비명이었습니다. 소름이 오싹 끼쳤어요.  30초 정
도 계속되더니 그 다음에는 잠잠하더군요."
  "세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까?  아니면 차례차
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습니까?"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소리 같지가 않고  무슨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았어요. 무척  고통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내  생각엔
세 사람이 동시에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그 사건
이 있은  다음부터 잠이 잘 안  와요. 그래서 이사갈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뭣 때문에 그들이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하세요?"
  "벌써 다른 형사들이  다녀갔어요. 아마 어떤 경찰  간부는 자살이
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어떤  아주 무시무시한 것을 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
게 뭔지는 알 수 없지요. 어쨌든 범인의 기척은 전혀 없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떤 고정 관념이 멜리에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미친 늑대
같은 것이 아주  조용히 나타나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살인을 저
지른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
었다. 그런게 아니라면,  지붕을 통해 들어와 면도칼을  휘두른 오랑
우탕보다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머리가
좋은 어떤 광인이 완전 범죄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16. 백과 사전

       광기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다.  무엇에 미치느냐는 사람
마다 다르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  자신도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나는 너무나 민감하게 현실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기에 그 광기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
기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동력으
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미치면 미칠수록 내가  설정한
목표를 더  잘 달성하게 된다. 광기는  각자의 머리 속에  숨어 있는
사나운 사자이다. 그  사자를 죽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의 정체
를 알고 그것을  길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순치된  당신의 사자
는 어떤 선생, 어떤 학교, 어떤 마약,  어떤 종교보다도 당신의 삶을
훨씬 더 높이  끌어올릴 것이다. 그러나 광기가 힘의  원천이 된다고
해서 그것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위험하다. 때때로  사자는 극도로 흥
분하여 자기를  길들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덤벼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7. 발자국

  103683호는 뿔풍뎅이 축사를 발견했다.  거대한 체구의 뿔풍뎅이들
이 커다란 방에  모여 있다. 도톰하고 오톨도톨한 검은  딱지들이 서
로 맞물린 채 그들의 몸을 덮고 있다.  몸의 뒷부분은 둥글고 매끈매
끈하며, 앞부분은 키틴질로 된 두건을 쓴  모습인데 거기에 기다랗고
뾰족한 뿔이 달려 있다. 그 뿔은 장미 가시보다 열 배 정도나 크다.
  103683호가 아는 바로는,  그 비행 곤충은 길이가 여섯  걸음에 너
비가 세 걸음이다. 그들은 어슴푸레한 곳에  살기를 좋아하는데 엉뚱
하게도 빛이라면 사죽을  못 쓰고 쫓아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곤
충의 세계에서  빛은 커다란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이끌리지
않을 수 있는 곤충은 그리 많지 않다.
  뿔풍뎅이들은 나무를  가루로 만들어  먹거나 썩은 싹을  뜯어먹는
다. 그들은 아무데서나 배설을 한다. 축사의  천장이 너무 낮고 그들
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배설물의 고약한 냄
새가 진동을 한다.  축사를 청소하는 개미들이 있는데,  그들이 다녀
간 지가 꽤 오래된 모양이다. 뿔풍뎅이  같은 딱정벌레목의 곤충들을
길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클리푸니  여왕은 딱정벌레 덕분
에 거미 그물에서 구출된 뒤에 그들과 동맹을  맺을 생각을 했다. 여
왕이 되자마자 클fl푸니는 뿔풍뎅이들을 모아서  비행 군단을 만들었
다. 그러나 아직 그들을 전투에 투입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아직 개미산  세례를 받아본 적이 없으며, 전투  상황에서 성
난 병정개미들이 몰려올 때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그 초식 동물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103683호는 날개 달린 그 거구들의 다리  사이로 헤치고 들어간다.
방 한가운데에 그들에게 물통 구실을 하는  나뭇잎이 하나 놓여 있는
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뿔풍뎅이가  갈증을 풀러 오면 나뭇
잎 위에 놓여 있던 커다란 불방울이 옆으로 길게 늘어난다.
  클리푸니는 뿔풍뎅이들을  냄새 언어로 설득하여 벨로캉에  머물게
했다. 클리푸니는 곤충들을 설득하는 자기의 능력에  긍지를 갖고 있
다. '의사 소통의  방법을 찾아내기만 하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고
체계를 결합시킬 수  있다.' 클리푸니는 혁신 운동의  일환으로 그렇
게 가르치고  있다. 의사 소통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클리푸니는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했다. 먹이를 주고 통행 허가  페로몬을 주
었으며, 설득력있는  페로몬으로 그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클리푸니
의 주장에 따르면 의사 소통을 이룬 두  동물은 서로를 죽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벨로캉 연방  여왕개미들의 최근에 모임에서, 몇몇  참석자들은 클
리푸니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기  종과 다른 것들은  무조건
제거하는 것이 모든  종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행동  양식이라는 것
이다. 즉, 한  쪽은 대화를 하고 싶어하고 다른 쪽은  죽이고 싶어한
다면, 전자가 언제나  패배하게 되리라는 거였다. 그것에  대해 클리
푸니는 대화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죽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화의 한 형태라고 교묘하게 반박했다.
  즉,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해 나아가고  상대를 바라
보고 연구하고  상대의 반응을 예견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상대에
대한 관심이고 대화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클리푸니의 혁신 운동은 역설이 아주 풍부하다.
  103683호는 뿔풍뎅이 구경을 중단하고 반체제  개미들에게로 갈 수 있는 비밀 통
로를 찾기 시작한다.
  축사 천장에 발자국들이 어지러히 찍혀 있다.  발자국의 방향을 흐
트러뜨리려 한 듯  사방 팔방으로 발자국이 나 있다.  그러나 병정개
미 103683호는 뛰어난  척후 개미이기도 하다. 그는 가장  나중에 찍
힌 발자국들을 식별하여 그것들을 따라간다.
  발자국들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 보니 작은  돌기 하나가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것은 입구를 감추기 위한  위장물이다. 저기가 틀림없다.
그는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나방 고치를  팽개치고 비밀 통로 안으
로 머리를 디밀고 들어간 다음 약간의  불안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간다.
  개미들의 냄새가 풍겨온다.
  반체제 개미들이다.... 벨로캉 같은 동질적인  도시에 어떻게 반체
제 개미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그것은 내장의 한 귀퉁이
에서 세포들이 몸 전체의 기능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반기를 드는 것
과 같다. 말하자면  맹장염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103683호는 지
금 살아 있는  도시에 맹장염의 위기를 불러일으키려는  집단을 만나
러 가고 있는 셈이다.
  그 집단에 속해  있는 개미가 얼마나 될까?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
까?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들의 진의를  알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
다. 반체제  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터라 그들의  정체를
알고 그들의 활동 방식과 목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절실해 지는 것이다.
  103683호는 좁은 통로를 계속 나아간다. 방금  지나간 개미들의 냄
새가 끼쳐온다. 그때 돌연  네 개의 발톱이 달린 다리 두  개가 그의
앞가슴을 그러쥐더니  앞으로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그는  빨려가듯
통로 속으로 끌려가 어떤 방에 다다른다. 위턱  두 개가 집게처럼 그
의 목을 잡고 조르기 시작한다.
  103683호는 발버둥을 치면서 자기 몸에  부딪혀오는 등딱지 너머로
방 안을 살핀다.  그 방은 천장이 아주 낮고 널찍한  편이다. 더듬이
의 어림짐작으로 길이가 30걸음에 너비가 20걸음은  될 듯하다. 그러
니까 이 방은  천장으로 위장된 채 뿔풍뎅이의 축사를 덮고  있는 것
이다. 100마리쯤  되는 개미가 그를  둘러싸고 있다. 몇몇  개미들이
의혹을 가득 품고 잠입자의 정체를 탐색한다.

   18. 백과 사전

     개미를 제거하는 방법

  부엌에 출몰하는  개미를 몰아내는  방법이 없느냐고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당신은 무슨 권리로 당
신의 부엌이  개미 것이 아니고  당신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당신이
그것을 샀기 때문인가?  좋다. 당신은 시멘트로 부엌을  만든 사람에
게서 그것을 샀고  거기에 자연에서 나온 음식물을  채워놓았기 때문
에 부엌이 당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어
떤 약속이 맺어졌기 때문에 가공된 자연의  일부가 당신 소유물이 되
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끼리의 약속일  뿐이다.
당신 천장 속에 있는 토마토 소스가 개미  것이 아니고 꼭 당신 것이
라고 말할 수  있는가? 토마토는 땅에서 난 것이고  시멘트도 땅에서
난 것이다. 당신 포크의 재료가 된 금속도,  당신 잼의 원료가 된 과
일도, 당신의  벽을 이루고 있는  벽돌도 모두 땅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그저 그것들에 이름과 상표와 가격을  붙였을 뿐이다. 그것만
으로 인간이  '소유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와 지구의  자원은
세입자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너무 생경해서 당신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이다. 당신이 기어코 그 미미한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
다면, 내가 추천할 수 있는 '가장 덜  나쁜' 방법은 박하를 이용하는
것이다. 개미의  출몰을 막고 싶은 곳에  박하 한 포기를  키우면 된
다. 개미는 박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십중 팔구는  당신의 이웃
집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A쩦   19. 반체제 개미들
N

H  103683호는 더듬이를 빠르게 움직여 반체제  개미들에게 자기를 소개한다.
A  <나는 병정개미다. 쓰레기터에서 어떤  개미의 머리를 발견했는데,
A그 개미 머리가  부탁하기를 당신들에게 가서 손가락들과  싸우기 위
/한 원정군이 곧 파견될 것임을 알려주라고 했다.>
A  그 정보가 전해지자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개미들은 거짓 냄새를
D발할 줄 모른다.  거짓의 유용성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위턱이 느슨해진다.  둘러선 개미들이 더듬
&이를 떨면서 저희들끼리 의견을 나눈다.
G  <화학 정보실에 특공대가 파견되었는데, 오랫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다.>
A  <그 특공대원 가운데 하나와 저 병정개미가  대화를 나누었을 가능
성이 있다.>
A  겨우 몇  마디의 대화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103683호
A는 자기가 진짜  비밀 운동 조직과 만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들
3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A  반체제 개미들은  103683호가 전해준  정보를 놓고 토론을  계속한
A다. '손가락들과 싸우기 위한 원정군'이라는 표현이  특히 그들을 괴
?롭히는 모양이다. 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런데 그
A때 몇몇 개미들이 달갑지 않은 외래자를  어떻게 처분할 것이냐고 묻
A는다. 반체제  개미도 아닌 자가  자기들의 본거지를 알았기  때문에
$그냥 놔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A  103683호는 자기를 규정하는 모든 특성들을 밝힌다.  산란 번호 출
A생 도시.... 그러자  반체제 개미들은 깜짝 놀란다. 자기들  앞에 있
A는  개미가  바로 세계의  끝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그  병정개미
A103683호인 것이다.  개미들은 103683호를 풀어주고 뒤로  물러선다.
다시 대화가 시작된다.
A  개미 세계에서는  냄새를 이용해서 대화한다. 더듬이를  이루는 열
A한개의 마디에서 페로몬을 발하여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다. 페로몬
A이란 몸 밖으로 나가서 공중을 떠돌다가  몸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호
A르몬이다. 한 개미가  어떤 감정을 느껴 그것을 몸  밖으로 발산하면
A주위의 다른 모든 개미들이 그 개미와 동시에  그 감정을 느낀다. 어
A떤 고통스런  자극을 받은 개미는  즉시 자기 고통을 주위에  전달한
D다. 그러면 주위의  개미들은 그 개미를 도울 방법을  찾기에 골몰한다.
A  더듬이의 열한 마디는  각각 다른 냄새를 발한다. 그것은  마치 저
A마다. 고유의 파장을 지니고 열한 개의 입이  동시에 말하는 것과 같
A다. 어떤 마디는  저음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발하고 어떤  마디는 고
음으로 사소한 정보를 보낸다.
A  더듬이의 열한  마디는 또 귀의  구실도 한다. 그러니까  개미들이
A대화할 때는 양 쪽이 열 한개의 입으로  말하고 열한 개의 귀로 듣고
A있는 셈이다. 그것도  동시에 말이다. 그래서 개미들의  대화는 뉘앙
A스가 아주 풍부하다. 개미들의 대화는 사람들의  대화보다 열한 배나
A내용이 풍부하고 열한 배나 속도가 빠르다고 볼  수 있다. 두 개미가
A만나는 장면을 관찰할 때 더듬이의 끝을  맞대기가 무섭게 각자 자기
A의 일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미
1미한 접촉을 통해서도 모든 게 다 전해지는 것이다.
A  병정개미 하나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그는  다리가 다섯  개뿐이
A다) 103683호 앞으로  다가와 묻는다. 옛날에 수개미  327호, 암개미
M56호와 함께 활동했던 그 병정개미가  맞느냐고.... 103683호는 맞다고 대답한다.
A  절름발이 개미는 그를 죽이려고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일이 있음을
A털어놓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절름발이 개미가 씁쓸
한 느낌이 섞인 냄새를 발한다.
@A  <이젠 우리가 비정상이고 당신이 정상이다. 세월이 바뀐 것이다.>
A  절름발이 개미가 영양 교환을 제안한다. 103683호가  그 제안을 받
A아들여 두  개미는 입과 입을  맞대고 더듬이로 서로를  어루만진다.
A마침내 영양 제공자의  갈무리 주머니에 들어 있던  먹이가 103683호
A위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영양 교환은 연통관 속의 액체가  흘러 통
>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소화 기관끼리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A  절름발이 개미는 자기 몸에서 에너지를  빼내고 103683호는 그것을
A자기 몸에  채운다. 103683호는 마흔제  번째 천년기의 개미  격언을
A떠올린다. <남에게 줌으로써 풍요로워지고  받음으로써 가난해진다.>
*그러나 어찌 주는 것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A  반체제 개미들은 103683호에게 자기들의  본거지를 구경시킨다. 씨
I앗과 꿀들이 저장되어 있고 기억 페로몬으로  가득 찬 알들이 보관되어 있다.
A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비밀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그 모든 병정개
A미들이 103683호에게는  별로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
A권력에 굶주린 반역자들이라기보다는 어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전
전긍긍하는 자들로 보인다.
.  절름발이 개미가 다가와서 솔직히 털어놓는다.
A  <반체제 개미들은 예전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현 여왕
A클리푸니의 어머니인  벨로키우키우니의 명령에 따라 조직된  일종의
A비밀 경찰로서,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라 불렸다. 당시
A우리는 아주 강력했다. 벨로캉의 화강암 바닥  아래에 비밀 도시, 즉
"제2의 벨로캉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A  수개미 327호와 암개미 56호와 당신을 제거하려고  갖은 짓을 다한
A것도 바로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었다.  당시에는 손가락
A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른 개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A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은 하나의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거
A대한 동물들이 불개미들과  거의 대등한 지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A을 알게  되면 벨로캉 개미들이  엄청난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A  그래서 벨로키우키우니는 손가락들의 사절과  협정을 맺었다. 벨로
A키우키우니는 손가락들의  존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
A고, 그  손가락들도 개미의 지능에 대해서  이미 안 것과  장차 알게
A될 것을 다른  손가락들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양쪽이  만나고 있
F다는 사실을 각자 자기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던 것이다.
A  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은 두  문명이 서로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
A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손
A가락들의 존재를  알게 된 개미들은  모두 제거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 지령이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A  절름발이 개미는 손가락들의  존재를 알게 된 수천의  다른 개미들
:을 죽인 것처럼 자기들이 수개미 327호를 죽였다고 실토했다.
*  103683호가 잔뜩 호기심을 느끼며 묻는다.
5  <불개미들과 손가락들 사이에 대화가 있었단 말인가?>
A  <도시 밑의 동굴에 몇몇 손가락들이 머물고  있다. 그들은 어떤 기
A계와 개미  사절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도  페로몬을
A발산하고 감지할 수 있다. 그 기계는 '로제타  석'이라 하고 그 사절
A을 '리빙스턴 박사'라  한다. 손가락들이 지은 이름이다.  그들을 매
A개로 해서  손가락들과 개미들이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크기가
A다르고 종이 다르지만 이 지구 위에  각자의 문명을 건설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A  첫번째 접촉을 통해 얻은 게 그것이었고  이후에도 많은 접촉이 있
A었다. 그 손가락들은 벨로캉 밑의 동굴에  갇혀 있다. 그래서 벨로키
A우키우니는 그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그들이 살아남도록  보살펴주
A었다. 한철  내내 대화가  정기적으로 계속되었다. 손가락들  덕분에
A벨로키우키우니는 바퀴의  원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써먹
@)을 새도 없이 도시의 화재 때문에 죽었다.
A  새로 여왕에 즉위한  클리푸니는 더 이상 손가락들에  대한 이야기
A를 꺼내지 못하게  했다. 여왕은 그들에게 식량 공급하는  일을 중단
A하게 하고, 제2의 벨로캉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진흙으로 막어버리라
A고 명령했다. 그  통로가 막히면 손가락들의 동굴로 가는  길도 막히
D는 것이므로 결국 클리푸니는 그들에게 굶어  죽는 형벌을 내린 셈이다.
A  때를 같이하여 클리푸니  새 여왕의 경비대가 바위  냄새를 풍기는
A병정개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새 여왕은  개미들이 손가락들과
A협력했던 수치스런  사건의 흔적을 일체  남기지 않으려 했다.  종과
A종 사이의 접촉에  그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클리푸니가 손가락들
1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무자비한 일면을 드러냈다.
A  단 하루 만에 제2 벨로캉 병정개미들의  거의 반이 죽음을 당했다.
A목숨을 부지한  병정개미들은 벽 속으로  천장 속으로 몸을  숨겼다.
A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를 식별해 주는 냄새를  버리기로 결정
A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결집했다.  즉 우리는 '손가락들을  지지하는
반체제 개미들'이 되었다.>
A  103683호는 반체제 개미임을 자처하는  그들을 바라본다. 대부분이
A절름발이다. 여왕의 경비대에 쫓기는 피곤한  삶의 모습이 역력하다.
A그러나 생기가 넘치는 젊은 개미들도 있다.  그 병정개미들은 손가락
-문명과의 접촉에 매료된 순진한 자들일 것이다.
A  그런데 모든 벨로캉  개미들을 동족 상잔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A미친 짓이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  것인가? 손가락들
A을 위해서인가? 결국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지 않
A은가? 절름발이 개미는 반체제 개미들이 이제  일사 불란하게 자기들
A의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면서 뿔풍뎅이 축사 위의  천장으로 위장
A되어 있는 그곳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벨
A로캉의 다른 개미들이 아직 식별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냄새를 발산
할 수 잇다고 털어놓는다.
.  <그러나 이 비밀 운동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A  절름발이 개미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며  긴장감이 감돌게 한다.
A그러더니 단도 직입적으로 바위 밑에 있는  손가락들은 아직 죽지 않
A았고, 반체제 개미들이  화강암 속의 통로를 다시 열었으며  식량 공
!급도 다시 시작되었다고 알려준다.
+  <당신도 우리 일에 동참할 생각이 없는가?>
A  103683호는 주저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호기심이  모든 걸
A눌러버린다. 103683호는 동의의 뜻으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모든
A개미들이 환호한다.  비밀 운동은 이제부터  세계의 끝을 다녀온  한
병정개미를 포함하게 된 것이다.
A  많은 개미들이 한꺼번에 영양 교환을 제안해  오는 바람에, 103683
A호는 자기 입을  어디에 갖다대야 할지 모른다. 영양을  공급하는 그
)모든 입맞춤이 그의 몸에 열기를 더해준다.
A  절름발이 개미는  손가락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A곧 꿀단지 개미들을 훔쳐서 바위 밑으로  데려갈 특공대를 파견할 것
A이라고 귀띔한다.  103683호가 리빙스턴 박사를 만나고  싶다면 이번
 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것이다.
A  103683호는 대뜸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도시 밑에  숨겨진
A손가락들의 둥지를 보게 된다는 기대에 부푼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
A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는  손가락들에
A대한 강박 관념을 지니고 살아왔다. 이제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키
0면서 그 '마음의 병'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A  30마리의 용감한  반체제 병정개미들이 모여 특공대를  이룬다. 그
A들은 힘을 얻기 위하여 분비꿀을 한껏  먹고 꿀단지 개미들의 방으로
&향한다. 103683호도 그 속에 끼어 있다.
*  순찰 개미들에게 발각되지 말아야 할텐데.
@
   20. 텔레비젼

A  경비 아주머니는 반쯤 열린 창문 뒤의  자기 자리를 충실히 지키면
$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  멜리에스 경정이 그 여자 곁으로 다가갔다.
7  "저 말이예요. 아주머니,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A  여자는 엘리베이터 거울이 너무 지저분하다  어떻다 하면서 핀잔이
,라도 한마디 하려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1  "이제껏 살아오시면서 가장 무서웠던 게 뭐예요?"
A  엉뚱한 질문이었다. 여인은 바보 같은 소리나  지껄이지 않을까 두
A려워하면서, 또 가장 이름이 나 있는  세입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고심하면서 대답했다.
A  "외국인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요,  외국인들이 제일  무서워요.
A이제 어디에서나  그들이 활기를 치고  다녀요. 우리 나라  사람들의
A일거리를 가로채고  저녁마다 길모퉁이에서 사람들을  습격하잖아요.
E그들은 우리하고 달라요. 그들의 머리 속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A  멜리에스는 턱을  주억거리며 여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벌
M써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여인이 뒤늦게 소리쳤다.
!  "좋은 밤 되세요. 멜리에스 씨."
A  집에 들어오자 멜리에스는 신발을 벗고 텔리비젼  앞에 앉았다. 수
A사를 하고 온  날 저녁에 그의 머리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기계장치
A를 멈추게 하는  것으로는 텔레비젼보다 더 효과적인 게  없었다. 잠
A자고 꿈꾸는  시간에도 머리 속  기계는 여지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A텔레비젼은 머리를 비워준다. 신경 세포가 휴식에  들어가고 뇌 속의
-모든 불빛들이 깜박거림을 멈춘다. 황홀경이다!
(  그는 텔레비젼의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
#  채널 1675번, 미국 텔레비젼 영화.
A  -그러니까 빌, 너는 별 볼 일 없는거야.  안 그래? 너는 네가 가장
A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남들과 다름없는  가난뱅이라
는 걸 알아야 돼....

  877번 채널, 광고.
#  -'크락크락'으로 한 번에 모든....
A  그는 다시  채널을 바꾸었다.  그가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은  모두
A1825개였지만 저녁 8시 정각에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알쏭달쏭 함
&정 퀴즈'가 나오는 622번 채널뿐이었다.
A  타이틀 백과 음악이  나온 다음 사회자가 나타나고  박수소리가 터
2진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사회자가 입을 연다.
A  -우리 622번 채널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방청객
A여러분, 다시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백네 전째 우리 프로그
@램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하면서,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알쏭달쏭....
  ....함정퀴즈>!
#  방청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A  마리 샤를로트가 다가와서 그의 무릎에  기대어 웅크리며 쓰다듬어
A달라고 졸랐다. 멜리에스는 마리 샤를로트에게 참치  파이를 조금 떼
<어주었다. 마리 샤를로트는 애무보다 참치 파이를 더 좋아했다.
A  -우리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하신 분들을 위하여  먼저 규칙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F  그런 한심한 사람들을  격려라도 하려는 듯 방청석에서  함성이 터진다.
A  -감사합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저희가  수수께기를 하나 제시하
?면, 출연하신 도전자가 그 해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알쏭달쏭....
@  ....함정퀴즈>!
  방청객들이 신나게 소리친다.
2  여전히 웃음을 가득 머금고 사회자가 말을 잇는다.
A  -정답을 찾아낼  때마다 1만 프랑짜리  수표 한 장과 조커  하나를
A드립니다. 조커를 사용하시면 한 번의 실수가  허용되어 다음 1만 프
 랑에 계속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A  현재 우리의 도전자는  벌써 몇 달 전부터 계속 도전자  자리를 고
A수하고 계신 쥘리에트....라미레 여사이십니다.  라미레 여사께서 계
A속 도전에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이제 다시 라미레  여사를 모시겠습
A니다. 어서  오십시오. 늘 하던  질문이지만 또 하겠습니다.  직업이
무엇인가요?
  -우체부입니다.
  -결혼하셨습니까?
3  -예, 남편이 틀림없이 집에서 지켜보고 있을거예요.
A  -그러면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안녕하세요. 라미레  씨! 그럼 아이
는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취미는 무엇인가요?
$  -음.... 십자 말 풀이.... 요리....
  박수소리.
A  -더 힘차게,  훨씬 더 힘차게  박수를 쳐주십시오. 라미레  여사는
"마땅히 박수를 받을 만한 분입니다.
  더 힘찬 박수소리.
F  -자, 이제, 라미레  여사, 새로운 수수께끼를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예, 준비됐어요.
>  -그럼, 문제가 담긴 봉투를 열고 수수께끼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빠른 속도로 둥둥거리는 북소리.
A  -자 문제를 읽겠습니다. 다음에 지시된 여섯  줄의 수는 어떤 규칙
A에 따라 배열된 것입니다. 그 규칙에 따라  만들어질 일곱 번째 줄의
수는 무엇일까요?
3  하얀 판 위에 사회자가 매직 펜으로 숫자를 적는다.

  1
  11
  12
  1121
          122111
          112213

8  의아해 하는 표정이 담긴 도전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음.... 쉽지 않은데요!
A  -천천히 생각하십시요.  라미레 여사.  내일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A요. 그리고 여기 해답을 찾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힌트가 있습니다.
9자, 들으세요. <영리한 사람일수록 답을 찾기가 더 어렵다.>
8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진다.
  사회자가 인사를 한다.
A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펜을 들고 함께  풀어보십시오. 그
H럼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도 변함없이 저희와  함께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A  자크 멜리에스는 지역 뉴스 방송으로 채널을  바꾸었다. 머리 모양
A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한 여자  아나운서가 프
<롬프터에 스쳐가는 기사 원고를 앵무새처럼 지껄여대고 있었다.
A  -뒤페롱 경찰국장은 오늘 살타 형제 사건에서  빛나는 개가를 올린
A바 있는  자크 멜리에스 경정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자로  추천
A했습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레지옹 드뇌르  사무국에서는 그
@+추천을 호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A  자크 멜리에스는  분통을 참지 못하고 텔레비젼을  꺼버렸다. 이제
A어쩐다지? 그 사건을  묻어버리고 스타 행세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
A면 실패를 모르는  수사관이라는 명성에 흠집이 나더라도  진실을 밝

혀낼 것인가?
A  결국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완전 범
?죄라는 미끼를 당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A  "여보세요. 법의학  센터죠? 부검  의사 좀 바꿔주세요....  (귀에
A거슬리는 짧은 음악) ....여보세요, 박사님? 살타  형제의 시체를 세
.심하게 부검해 보아야겠는데요.... 예, 급해요!"
,  그는 전화를 끊고 다른 전화 번호를 눌렀다.
A  "여보세요, 에밀 형사?  '일요 메아리' 여기자에 관한 서류  좀 챙
A겨다 주겠어요? 그래요,  그 레티샤 뭐라는 여자 말이에요.  한 시간
A후에 법의학 센터에서 만납시다. 아참 그리고  에밀 형사, 질문이 하
A나 있는데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무서웠던  게 뭐에요?.... 아,
A그래요? 그것 참  유별나군요. 그런 게 사람들에게 겁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군요. 자, 법의학 센터에서 만납시다."

   21. 백과 사전

      인디언의 덫

A  캐나다의 인디언들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곰  덫을 사용한다. 그
A것은 커다란  돌덩이에 꿀을  바르고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놓는
A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곰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생각하고 다가와
A발길질을 하면서 돌덩이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면  돌덩이가 진자 운
A동을 시작한다. 앞으로 밀려갔던 돌덩이가 뒤로  되돌아올 때마다 곰
A을 때린다. 곰은 화가 나서 점점 더  세계 돌덩이를 때린다. 곰이 돌
A덩이를 더 세게  치면 칠수록 돌덩이는 더 큰 반동으로  곰을 후려친
다. 마침내 곰은 나가떨어진다.
A  곰은 '이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A할 줄  모른다.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더욱 안달을  할 뿐이
A다. '저 놈이 나를 때렸겠다. 그렇다면  본때를 보여줘야지!'라고 곰
8은 생각한다. 그러면서 곰의 분노는 점점 증폭되는 것이다.
A  그러나 만일  곰이 돌덩이  때리기를 중단하면 돌덩이도  움직임을
A멈출 것이다. 곰은 돌덩이가 일단 멈추고 나면  그게 밧줄에 걸려 있
A을 뿐 움직이지 않는 물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A이빨로 밧줄을 잘라서 돌덩이를 떨어뜨린 다음  거기에 묻은 꿀을 핥
는 일만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에드몽 웰즈
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  22. 꿀단지 개미 방에 파견된 특공대

A  지하 40층. 많은  개미들이 움직이고 있다. 8월의 더위가  한창 기
A승을 부리고 있는  탓에 모든 개미들이 짜증을 내고  있다. 밤중까지
)땅속 깊은 곳에서도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A  벨로캉의 흥분한 병정개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는 개미들을
A물어뜯는다. 일개미들과  알들을 보살피는 유모 개미들의  방과 분비
A꿀을 저장해 둔 방 사이로 달려간다. 개미  둥지 벨로캉이 더위에 시
A달리고 있다. 한  무리의 개미들이 미지근한 림프처럼 개미  둥지 안
을 흐르고 있다.
K  서른 마리의 반체제 개미들이 조심스럽게  꿀단지 개미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A  그들은 경탄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당분 저장고를  바라본다. 꿀단
@B지 개미들의 모습은  일종의 열매와 같다. 살이 많고  금빛으로 반짝
A거리며 불투명한 빨간 띠를 두르고 있는  과일이다. 꿀단지 개미들이
A열매처럼 보이는 것은  배를 늘어뜨리고 천장에 매달려  있느라고 키
'틴질이 지나치게 늘어나버렸기 때문이다.
H  일개미들이 비어 있는  갈무리 주머니에 꿀을 채우려고  분주히 움직인다.
A  클리푸니 여왕도 가끔 몸소 꿀단지 개미들의  방에 와서 꿀을 먹는
A다. 여왕이 와도  꿀단지 개미들은 데면데면하게 대한다.  오랜 세월
A동안 움직이지 않고 살아오면서 그들은 관성의  철학을 터득했다. 어
A떤 개미들은 그들의 뇌가 아주 작아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능은
A기관을 낳고 기능이 사라지면 기관이 쇠퇴한다는  것이다. 꿀단지 개
A미들은 채우고 비우는 일만을 하기 때문에  조금씩조금씩 두 가지 동
작만하는 기계로 변형되어왔다.
A  이 방을 벗어나면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
A하지 못한다. 그들은 꿀단지 개미 아계급으로  태어났고 꿀단지 개미
로 죽을 것이다.
A  그래도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을  천장에서 떼어내는 일은 가능
A하다. '이동'이라는 뜻이 담긴 페로몬을 발하기만  하면 그들을 떼어
A낼 수가  있다. 꿀단지 개미들이  저장고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A이동이 필요할 때 자기가 운반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살아 있는 저장고이다.
A  반체제 개미들은  덩치가 좋은 꿀단지  개미들을 몇 마리 고른  다
A음, 그들의 더듬이로  다가가 '이동'이라는 뜻이 담긴 틀에  박힌 페
A로몬을 발한다. 그러자 거대한 꿀단지 개미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천
A장에서 다리를 하나씩 떼고 아래로 내려온다.  몇몇 개미들이 달려들
9어 꿀단지 개미가 바닥에 부딪혀 깨지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어디로 가는가?>
&  꿀단지 개미들 가운데 하나가 묻는다.
  <남쪽으로 간다.>
A  꿀단지 개미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반체제 개미들이 이끄는 대로
A몸을 맡긴다.  꿀단지 개미 한 마리를  옮기는 데 개미  여섯 마리가
A달라붙어야 한다. 그  만큼 그들은 무겁다. 손가락들을  위해 이토록
)반체제 개미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  <그들이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까?>
  103683호가 묻는다.
6  <그들은 우리가 너무 적게 가져온다고 불평을 한다네.>
  어떤 반체제 개미가 대답한다.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다!
A  특공대는 신중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이윽고 화강암  바닥에
A뚫린 작은 구멍이  나타난다. 저 구멍을 지나면 리빙스턴  박사가 있
I는 방이  있고 거기에서 그들은  리빙스턴 박사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A  103683호는 전율을  느낀다. 그 무시무시한 손가락들과  대화를 나
1누게 되다니, 그게 이처럼 쉬운 일이었더란 말인가?
A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당분간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그 구역
A에서 순찰을 돌던 경비 개미들이 돌연  반체제 개미들을 추격하기 시
A작했던 것이다. 빨리!  반체제 개미들은 좀더 빨리  도망가려고 일껏
!확보한 꿀단지 개미들을 포기한다.
  <반역자들이다!>
A  다른 개미들이 아직 식별하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던 반체제 개미
A들만의 냄새를 어떤 병정개미가 맡았다. 경보  페로몬이 사방으로 퍼
저나가고 추격전이 펼쳐진다.
A  경비 개미들도  빠르긴 하지만  반체제 개미들을 따라잡지는  못한
A다. 그러자 그들은  바리케이트를 쳐서 몇몇 통로를  차단한다. 마치
9반체제 개미들을 모두 어떤 곳으로 몰아가려는 느낌이 든다.
A  병정개미들은 특공대원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위층을 향해 올라가
@B도록 압박한다. 지하 40층, 30층, 16층,  14층. 병정개미들은 틀림없
A이 사냥감들을 미리  정해 둔 어떤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 103683호
A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함정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
A나 이제 다른  출구가 없다. 병정개미들이 그들을 잡지  않고 내버려
A둔 데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꼼짝없이 그들이 내
모는 대로 갈수밖에 없다.
A  반체제 개미들은  풀노린재들이 가득한  끔찍한 방으로  들어간다.
1무시무시한 광경 앞에서 그들의 더듬이가 곤두선다.
A  등딱지에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린 풀노린재 암컷들이  사방으로
A뛰어다니고 수컷들은  송곳처럼 뾰족한 생식기를 흔들면서  암컷들을
A쫓아다닌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동성 교미하는  수컷들이 서로 껴안
A고 있는데, 그 모습이 기다란 풀빛  송이들 같다. 풀노린재가 지천으
A로 우글거린다.  수컷들은 송곳 같은  생식기를 바짝 세우고  딱지를
뚫으려고 벼른다.
A  반체제 개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그 끔찍한 곤충들
A이 덤벼들기  시작한다. 발정난 풀노린재들의 넓적하고  두툼한 몸뚱
A이에 눌린 개미  하나가 풀썩 무너진다. 아무도 개미산을  쏘아 그들
A을 막아낼  겨를이 없다. 수컷들의  송곳 생식기가 반체제  개미들의
등딱지를 뚫는다.
!  103683호는 미친 듯이 저항한다.

  23. 백과 사전

       빈대

A  동물들이 교미를  하는 방식은 천태 만상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A놀라운 것은  빈대(학명은 시멘스  렉투랄리우스)의 교미  방식이다.
A빈대들의 교미 방식은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난잡함의 극치
를 보이고 있다.
A  첫번째 특성 :  음경 강직증. 빈대는 끊임없이 교미를  한다. 어떤
&빈대는 하루에 200번 이상 교미를 한다.
A  두 번째 특성 : 동성애와 수간. 빈대는  자기의 교미 상대를 잘 구
A별하지 못한다.  게다가 제 무리들  속에서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는
A데는 더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빈대 수컷들이 행하는  교미중에서
A50%는 동성 교미이고 20%는 다른 곤충들과의  교미이며 나머지 30%만
이 암컷과 이루어진다.
A  세 번째 특성  : 송곳 음경. 빈대는 뾰족한 기다란  생식기를 갖고
A있다. 아 주사기  같은 생식기를 이용해서 수컷들은 딱지를  뚫고 아
A무데나 정액을 사출한다. 머리, 배, 다리,  등 심지어 암컷의 심장에
A까지 정액을  쏟아넣는다. 그 방식이  암컷의 건강에는 별로  영향을
A끼치지 않겠지만  그런 상태에서  어는 세월에 수정이  이루어지겠는
)가? 그런 이유로 네 번째 특성이 나타난다.
A  네 번째  특성 : 질 접촉이  없는 처녀 수정. 겉으로  보기에 빈대
A암컷의 질은 수컷의  생식기가 닿지 않은 채 그대로 있고  등에만 구
A멍이 뚫렸을  뿐인데, 정받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A정자들이 혈액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인가? 사실  대부분의 정
A자는 면역 체계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온 다른  미생물들처럼 파괴되
A어버린다. 수컷들의  정자가 정받이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A서 사출되는 정액의  양은 엄청나다. 알기 쉽게 비교하기  위해서 빈
A대 수컷들의 크기가 사람만하다고 가정한다면, 수컷들은  한 번 사정
A할 때마다  30리터의 정액을 쏟아내는  셈이다. 그 어마어마한  양에
A비해서 살아남는 정자는 아주 적다. 정자들은  동맥 귀퉁이에 숨어서
A또는 정맥에 붙어서  자기들의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  불법 입주
A자들을 몸 안에 간직한 채 암컷들은 겨울을  보낸다. 마침내 봄이 되
@B면 머리,  다리, 배, 등에 숨어  있던 정자들의 본능에  이끌려 난소
A주위로 모여들고  곧 이어, 난소의  막을 뚫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A  다섯 번째 특성  : 복수 생식기를 가진 암컷. 칠칠치  못한 수컷들
A이 생식기를 아무데나  마구 찔러대는 바람에 빈대  암컷들의 몸뚱이
A는 상처 자국으로  뒤덮인다. 밝은 색 바탕에 갈색  구멍들이 과녁처
A럼 도드라져 보인다. 그럼으로써 암컷이 교미를  몇 번이나 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A  자연의 섭리는 빈대들에게 기이한 적응력을  부여하여 난잡한 교미
A질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몇 세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차례의 돌연
A변이가 이루어진 끝에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빈대 암컷들이
A아예 등  위에 갈색 반점을 지닌  채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밝은
A색 바탕에  아주 도드라져 보이는  갈색 반점 하나하나가  '보조적인
A생식기'에 해당한다. 그것들은 주 생식기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암
A컷들이 복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특성은  실제로 진화의 모든 단
A계에 존재해 왔다. 반점이 없던 단계, 몇  개의 반점 겸 생식기를 갖
A추고 태어나던 단계,  등에 진짜 보조 생식기를 갖춘  단계를 거치면
 서 그 특성이 강화되었을 뿐이다.
A  여섯 번째 특성 : 자동으로 오쟁이지기.  한 수컷들이 다른 수컷의
A몸에 구멍을 뚫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살아남은 정자들은 본능에
A따라 난소가 있는 부위로 움직인다. 난소를  찾아내지 못한 정자들은
A체내의 여러  가지 관으로 흘러들어가  원래 그 몸에 있던  정자들과
A섞인다. 그 결과 다른 수컷에게 당했던 그  수컷이 어떤 암컷의 딱지
A를 뚫게 되면,  그 수컷은 자기의 정자들뿐만 아니라  동성교미로 관
-계를 맺었던 수컷의 정자까지도 주입하게 된다.
A  일곱 번째  특성 : 암수 한  몸. 빈대라는 실험 동물을  상대로 한
A자연의 교미  실험은 계속되었다. 빈대의  수컷들 역시 돌연  변이를
A일으켰다.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로시멕스  콘스트릭투스라는  빈대가
A있는데, 그 수컷은 등에 보조적인 작은  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
A나 거기에서 정받이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질들은 장식으로 등
I에 붙어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동성 교미를 고무하기 위해  있는 것일 게다.
A  여덟 번째 특성 : 원거리에서 정액을  사출하는 대포 생식기. 열대
A지방의 어떤 빈대들 즉, 앙토코리드 스콜로페리앵은  원거리 대포 생
A식기를 갖고 있다.  커다랗고 도톰한 대롱 모양으로 생긴  정관이 둘
A둘 감겨  있는데 그 안에 정액이  압축되어 있다. 정액을  몸 밖으로
A분출하는 특별한 근육이 붙어 있어서 빠른  속도로 정액을 쏘아 보낼
A수 있다. 몇 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암컷을 발견하면, 수컷은 암
A컷의 등에 있는  질을 과녁으로 삼아 음경을 겨눈다.  발사물이 공기
A를 가른다.  쏘는 힘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정액은 질  부위의 가장
얇은 딱지를 뚫고들어간다.
      에드몽 웰즈
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24. 땅 속에서의 추격전

A  죽음을 눈앞에 둔  한 반체제 개미가 강렬한 냄새로  외친다. 날카
!로고 이해하기 어려운 페로몬이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다.>
A  그 페로몬을  발하고 나서 그 개미는  다리를 쭉 뻗는다.  그의 쭉
2뻗은 몸이 마치 여섯 개의 가지가 달린 십자가 같다.
A  다른 동료들도 하나씩하나씩 쓰러지며 103683호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장들을 똑같이 되풀이한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다.>
A  흥분한 노린재들은  반체제 개미들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뒤쫓아
@B온 병정개미들은 더 이상 반체제 개미들에게  형벌을 내릴 필요가 없
어졌다는 듯 덤덤하게 바라본다.
A  103683호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죽을 때
A죽더라도 '신'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죽어야겠다는
A생각이 든다.  격렬한 분노에 휩싸인  그는 더듬이를 휘둘러  가슴에
A달라붙는 열 마리쯤 되는 노린재를 후려치고  머리를 낮춘 다음 병정
A개미들의 무리 속으로 돌진한다. 급습의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유혈
A이 낭자한 그 장면에 넋을 잃고  있던 병정개미들은 돌진하는 103683
K호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A  그러나 103683호는  추격전이라면 이골이 난 개미다.  그는 천장으
A로 달려올라가 더듬이  끝을 넓게 벌리고 천장을 끌기  시작한다. 천
A장에서 흙덩이가 뿌옇게 쏟아진다. 103683호는 그  흙을 이용해서 자
A기와 추격자들 사이에  하나의 흙벽을 만든다. 그는 사격  자세를 취
A하고 기어이 그 벽을 넘어오는 경비  개미들에게 개미산을 쏘아 쓰러
A뜨린다. 그러나 여러 경비 개미들이 함께  장애물을 넘어오자 103683
A호는 한꺼번에  그들을 쏘아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게다가  개미산
주머니도 이제 거의 비어 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난다.
  <반역자다! 저놈을 붙잡아라!>
A  103683호는 통로를 진동한동 내닫다가 문득  발씨가 익은 통로임을
A알아차린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는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
A달려온 것이다.  이제 그는 다시  꿀단지 개미의 방에 들어와  있다.
A반대 방향으로 방금 거쳐갔던 길이라 기억이  그만큼 잘 되어 있었던
F것이고, 그의 다리들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  그를 이끌고 온 것이다.
A  다리에서 피가 흐른다.  어디로든 숨어야 한다. 천장이  안전할 것
A이다. 그는 천장으로  올라가 꿀단지 개미의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
A어간다. 꿀단지 개미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몸을  완전히 숨길 수 있
*다. 경비 개미들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  그들은 더듬이로 구석구석을 살핀다.
I  103683호는 꿀단지 개미의  다리 하나를 천장에서 떼어  자기 몸을 가린다.
  <무슨 일인가?>
  꿀단지 개미가 힘없이 묻는다.
  <이동이야.>
A  103683호가 짐짓 위엄을  부리며 대답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다리
D를 떼어낸다. 그러나 이번엔 꿀단지 개미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  <이거 왜 이래.... 당장 그만두라고!>
A  아래에 있던 경비  개미들이 한 곳에 투명한 피가 고여  있음을 발
A견하고 두리번거린다. 한 경비 개미의 머리 위에  피 한 방울이 떨어
#진다. 그는 더듬이를 닦고 소리친다.
  <옳지, 그 자를 찾았다!>
A  당황한 103683호는 꿀단지  개미의 다리 두 개를 또  떼어낸다. 꿀
A단지 개미는  이제 다리 하나에 달린  발톱 두 개로 천장에  붙어 있
다. 그가 겁에 질려 소리친다.
   <나를 당장 제 자리로 돌려놔!>
A  103683호를 처음 발견한 경비 개미가 몸을  뒤집고 배의 자세를 조
절하여 천장을 겨눈다.
A  103683호는 꿀단지  개미의 마지막  다리를 위턱으로 쳐서  떼어낸
A다. 경비 개미가  사격을 하려는 찰나 오렌지색 꿀단지  개미가 그의
A위로 떨어진다.  꿀단지 개미와 경비  개미의 배가 터지면서  파편이
온 방에 튀어오른다.
A  다른 병정개미들이  나타난다. 103683호는 머뭇거리면서  개미산이
A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세 차례 쏠 수  있는 양이 남아 있다. 그
A는 그것을 꿀단지 개미를 천장에서 떨어뜨리는  데 사용하기로 한다.
A천장에 꼼짝 않고  붙어 있던 꿀단지 개미 세 마리가  느닷없는 개미
@B산 공격을  받고 떨어지면서 추격자들의 몸뚱이  위에서 터져버린다.
D그 와중에서도 경비 개미 한 마리가  분비꿀을 뒤집어쓴 채 빠져나온다.
A  103683호의 개미산 주머니는  이제 텅 비어 있다. 그래도  그는 상
A대를 겁줄 생각으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자기 삶을 마감해  줄 뜨거
*운 개미산이 날아오기를 의연하게 기다린다.
A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는다. 저 자도  개미산이 다 말라버린  것일
A까? 몸과 몸이  맞부딪는다. 위턱들이 뒤엉키고 서로  상대의 몸뚱이
를 자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A  세계의 끝을 다녀온 백전 노장이 아무래도 한  수 위다. 그는 상대
A의 몸을 뒤집고 머리를 뒤로 당긴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일격을 가
A하려는데, 다리  하나가 마치 그에게  영양 교환을 청하기라도  하듯
그를 툭툭 건드린다.
$  <자네, 왜 그 자를 죽이려 하는가?>
A  이미 알고 있는 친근한 냄새가 풍긴다.  103683호는 냄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려고 더듬이를 회전시킨다.
A  여왕이 몸소 그곳에  왕림했다. 그의 옛 전우이며 그의  첫 모임을
권유했던 그 여왕이....
A  주위의 병정개미들이  싸울 태세를 하고 덤벼든다.  그러나 여왕은
=옅은 냄새를 발하여 그 개미가 자기의 보호 아래 있음을 알린다.
  <따라오게.>
  클리푸니 여왕이 권한다.

   25. 일이 복잡해진다.

  목소리가 완강해진다.
  "따라오게."
A  강렬한 네온 불꽃  아래 시체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시체들
A은 각자 엄지발가락에 꼬리표를 하나씩 매달고  있었다. 에테르 냄새
1와 영원과도 같은 죽음의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퐁텐블로 법의학 센터.
  "경정. 이쪽으로 오게."
  부검의가 말했다.
A  그들은 시체들  사이로 나아갔다. 플라스틱 덮개를  씌워놓은 시체
A도 있고 하얀  시트를 덮어놓은 시체도 있다. 각각의  꼬리표에는 성
A명과 사망 날짜와 사망시의 정황을 알려주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3
A월 15일, 노상에서 칼에  찔려 사망: 4월 3일, 버스에 깔려  사망: 5
월 5일, 창문에서 투신 자살....
A  그들은 꼬리표가  걸려 있는 세  개의 엄지발가락 앞에  멈추었다.
A꼬리표는 그 엄지발가락들이 각각 세바스티앵,  피에르, 앙투안 살타
의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5  멜리에스는 조바심이 나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  "사망 원인이 뭔지 알아냈어요?"
A  "어느 정도는.... 강한 정신적 충격이 원인이  된 것 같아. 그것도
아주 강력한 충격말일세."
  "공포인가요?"
A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뭔가에 크게 놀란 것일 수도  있지. 어
A쨌든 심장이 멎을 만큼 강렬한 자극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여기에
A적힌 소견을 보게.  세 사람 다 아드레날린의 혈중  농도가 정상치의
        열배야."
,  멜리에스는 그 여기자가 옳았다고 생각했다.
%  "결국 공포 때문에 죽은 거군요...."
A  "꼭 그런  건 아니야. 정신적인  충격이 유일한 사망 원인은  아닐
세. 이리 와 보게."
K  부검의는 불이 들어와  있는 판독기 위에 엑스 선 하나를  올려 놓고 말했다.
@/  "그들의 몸에 헐어서 난 작은 상처가 가득해."
"  "그런 상처가 어떻게 생긴 거죠?"
A  "독극물 때문이지.  틀림없이 독일거야. 그러나 아주  새로운 형태
A의 독일세. 시안화물 같은 독극물이라면 커다란  상처 하나만 생겼을
+텐데, 보다시피 여기엔 상처가 아주 많거든."
5  "그렇다면 사망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겁니까?"
A  "좀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먼저  정신적인 충격
A을 받아 죽고 난 다음 위와 장의 손상이  일어난 것 같네. 물론 위와
#장의 손상도 치명적인 것이긴 하지."
F  하얀 가운을 걸친 부검의는 서류를 정돈한  다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E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박사님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십니까?"
!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A  "난 말일세, 끔찍한 걸 하도 많이 보고  살아서 그런지, 이제 어떤
걸 봐도 꿈쩍 안 한다네."
A  멜리에스 경정은 작별 인사를 하고 껌을  씹으며 법의학 센터를 떠
A났다. 들어올  때보다 그의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해져 있었다.  그는
2이제야 말로 자기가 강적을 만났음을 깨닫고 있었다.

   26. 백과 사전

      개미의 성공

@  지구를 대표하는 모든 생물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이 개미이다.
A  개미들은 아주 기록적인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도
A처에서 개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열대의 밀림이나 극권의  사막성
A초원에서도 개미를 발견할 수 있고, 유럽의  숲이나 대서양 해변, 화
A산 주변, 수렁,  심지어 인간의 주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개미의
A적응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사하라 사막
A에 사는  카타글리피스라는 개미는  섭씨 6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의
A폭염에 적응하기 위해서  독특한 생존 방법을 개발해 냈다.  그 개미
A는 뜨거운 모래에  데지 않으려고 여섯 다리 중에서 두  다리만을 사
A용하여 앙감질하듯 걷는다. 그리고 습기가 빠져나가  탈수 상태에 빠
&져드는 것을 막으려고 호흡을 억제한다.
A  1킬로미터 거리의 육지를 걸어가다 보면 반드시  개미를 만나게 된
A다. 개미는 지구의 표면 위에 가장 많은  도시와 촌락을 건설한 생물
A종이다. 개미는 모든 포식자을 이겨냈고, 비,  눈 더위, 추위, 가뭄,
A장마, 등 모든  기후 조건에 적응해 왔다. 최근의 어떤  연구에 따르
A면 아마존  살림의 총 동물의  3분의 1이 개미와 흰개미로  이루어져
9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개미와 흰개미의 비율은 8대 1이다.
      에드몽 웰즈
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27. 여왕과의 재회

A  머리가 납작한 문지기 개미들은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
A켜 준다.  그들은 금단 구역의 나무  통로 속을 나란히  걸어가고 있
A다. 병정개미  103683호와 클리푸니  여왕은 아주 오랫만에  만났다.
A클리푸니는 분가해 있던 시절 벨로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었다. 처
A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공격에  103683호가 참가했던 것은  물론이
A다. 그 일이 있은  지도 1년이 넘었다. 그 후로 여왕과  103683호 사
A이에 연락이 두절되었다. 여왕은 그들이 옛날에  함께했던 일들을 잊
은 것일까?
A  그들은 여왕의 산란실로 들어간다. 클리푸니는 자기의  방 안에 어
A머니의 처소를 따로  마련하고 껍데기뿐인 시신을 밤의  보늬로 덮어
@B놓고 있다. 103683호는 방 한가운데에 자기의  어머니이기도 한 벨로
9키우키우니의 시신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A  개미 역사에서 여왕이 자기를 낳아준 선대  여왕의 시신을 곁에 두
A고 사는  일은 유래가 없었다.  더군다나 클리푸니는 여왕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하고 정복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A  클리푸니와 103683호는 알을  꼭 닮은 둥그런 방  한가운데에 자리
를 잡고 더듬이를 접근시킨다.
A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닐세. 백전  노장인 자네를 오랫동안 찾
A았네. 자네가 필요해. 손가락들을 상대로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하여
A세계의 동쪽  끝에 세워 놓은  그들의 모든 둥지를 파괴할  생각이라
&네. 자네가 원정군을 이끌 적임자일세.>
A  반체제 개미들의 말이 사실이었다.  클리푸니는 실제로 손가락들과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다.
A  103683호는 머뭇거린다.  동쪽으로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
A하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도 만만치  않다. 손가락들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다.
A  세계의 끝을 다녀온 뒤 겨울잠을 자는  동안 103683호는 줄곧 손가
A락들과 거대한 빨간 공들의 꿈만 꾸었다.  그들은 자그마한 먹이들을
A해치우듯이 개미  도시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겨울잠에서  가까스로
4깨어났을 때 103683호는 더듬이가 젖어 있음을 알았다.
  <왜 그러는가?>
  여왕이 묻는다.
E  <세계의  끝 너머에  사는 손가락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게 뭐지?>
E  <자기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A  그러자 클리푸니는 어머니의 말씀이 담긴  기억 페로몬을 읽으면서
K어머니가 그 '두려움'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어떤 페로몬을 남겼는지 들려준다.
A  <말씀에 따르면, 개체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서로에 대해
A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불
E가능하다고 믿었던  많은 일들을  완벽하게 이루어낼  수 있다고  한다.>
A  103683호는 선대의 여왕이  남긴 그 가르침이 값진  것임을 인정한
5다. 오른쪽 더듬이를 살며시 떨면서 클리푸니가 묻는다.
0  <두려움 때문에 원정군을 이끌 수 없단 말인가?>
.  <아닙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A  클리푸니는 마음을 놓는다. 옛 전우 103683호의  도움 없이는 자기
=의 원정군을 안심하고 파견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했던 터이다.
E  <지구에  있는 손가락들을  모두 죽이려면  병력이 얼마나  필요할까?>
.  <지구의 손가락들을 모두 죽이고 싶으십니까?>
A  <그러고 싶다. 손가락들은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들은 어
리석은 기생충 같은 자들이다.>
9  클리푸니는 분을 참지 못하고 더듬이를 접었다 폈다 한다.
A  <손가락들은 개미들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들, 모든 식물
A들, 모든 광물들에게도 위험한 존재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고
H그걸 느끼고  있다. 나는 내가  일으키는 전쟁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다.>
#  클리푸니의 어조가 사뭇 비장하다.
A  103683호는 필요한 병력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여왕의 질문에 답하
A려고 재빨리 계산을 한다. 손가락 하나를 없애는  데는 적어도 잘 훈
A련된 5백만의 병정개미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구 위에는  적어도 네
/개의 무리, 즉 20개의 손가락들이 존재할 것이다.
(  <병정개미 1억 마리는 있어야겠는데요.>
A  103683호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거대한 검은 띠를  다시 떠올린
A다. 그리고 원정에 나선 모든 병정개미들이  어마어마한 소음과 탄화
A수소의 연기  속에서 단 한  번에 아주 얇은 나뭇잎처럼  납작해지는
/광경을 상상한다. 세계의 동쪽 끝은 그런 곳이다.
@B  클리푸니 여왕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여왕은  산란실 안을 이리
A저리 오가며 위턱의 끝으로 밀 알갱이들을  툭툭 건드린다. 그러더니
$이윽고 더듬이를 낮추고 몸을 돌린다.
A  <그 원정에  필요한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많은
A개미들과 토론을 벌였네. 알다시피 나는 내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할
A수 없네. 나는 제안만 하고 결정은  공동체 전체가 하는거지. 그런데
A내가 이야기를 나눈 다른 여왕이나 벨로캉  백성들 중에는 나와 생각
A을 달리하는  자들이 있어. 그들은 난쟁이개미들과  흰개미들이 다시
A쳐들어올 것을  염려하고 있다네. 그들은 원정군이  파견되면서 벨로
*캉이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
A  나는 원정을 지지하고  다른 개미들은 반대하는 많은  개미들과 이
A야기를 나누었네. 그들은 애를 많이 썼고  나도 노력을 많이 했다네.
2결국 우리가 확보한 병력은 모두 합해서 8만이라네.>
  <8만 군단요?>
A  <아니, 8만 마리. 자네가 참가한다면 그  병력으로도 해볼 수 있을
A거야. 자네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면 추가로 모아보겠네.  그러면
A100에서 200마리의 병정개미를 더 차출할 수  있을거야. 그러나 그게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최대치라네.>
A  103683호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여왕은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난
A일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구의 모든 손가락들과  맞서는데 8
*만의 병력을 이끌고 간다는 건 말도 안된다!
A  그러나 변함없는 호기심이 그를 설레게 한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A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는 기운을 내려고 애쓴다.  어쩔 수 없이 8만
A병력으로 능력껏 해보는  수밖에 없다. 좀 무모한 일이긴  하지만 그
A래도 얻을  것은 있다. 물론  모든 손가락들을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A  <좋습니다. 8만 병력으로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만 물어보
A고 싶습니다.  원정군을 파견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어머니
U벨로키우키우니는 손가락들에게  호의적이셨는데, 왜 그렇게  손가락들을 미워하십니까?>
/  여왕은 방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향한다.
.  <따라 오게. 화학 정보실을 구경시켜 주겠네.>

   28. 레티샤가 나타난다.

A  사무실은 시끌시끌했고 담배 연기가 자욱했으며  책상과 의자와 커
%피 자동 판매기 따위가 들어차 있었다.
B  전화 벨이 울리고 있었고, 긴 의자 위에  엎드린 부랑자들은 지청구
A를 늘어놓고 있었으며, 유치장 철책에 매달린  자들은 이러면 재미없
?다는 둥 변호사와 전화를 하고 싶다는 둥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A  게시판에는 흉악범들의 사건이 붙어  있었다. 범인들마다 현상금이
A붙어 있는데, 금액은 1천 프랑에서 5천  프랑 사이로 다양했다. 그들
A의 몸속에 있는  장기와 체액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생각한다
A면 그 현상금은  싼 편이었다. 콩팥, 호르몬, 혈관, 그  밖의 체액을
6상품으로 한다면 모두 합해 7만 프랑에 육박할 것이었다.
A  레티샤 웰즈가  경찰서에 나타나자 그녀에게 많은  눈길이 쏠렸다.
=그런 일은 그녀가 사람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늘 있는 일이었다.
8  "실례합니다. 멜리에스 경정이 계신 사무실이 어딘가요?"
A  정복 차림의 말단  경관 하나가 방문증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말했다.
+  "저쪽 안으로 들어가서, 화장실 앞입니다."
  "감사합니다."
I  그녀가 문을 밀고  들어서자 경정은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멜리에스 경정을 뵈러 왔는데요."
@  그녀가 말했다.
  "접니다."
5  그는 말 대신 몸짓으로 그녀가 의자에 앉도록 권했다.
A  그는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A그토록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최근에  또는 옛날
A에 그와  사랑을 나눈 여자들  가운데 레티샤를 따라갈 만한  여자는
하나도 없었다.
A  가장 먼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연보라빛 눈이었다.
A그 다음에 성모상 같이 고운 얼굴과  가냘픈 몸매와 은은하게 풍기는
A체취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화학자라면 아마  그녀의 몸에서 나는
A냄새를 베르가모트향, 베티베르  향, 귤 향, 갈록시드  향, 백단향에
A피레네 야생 염소의  사향이 살짝 곁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을 것이
K다. 그러나 자크  멜리에스는 그저 황홀한 기분으로 그  향기를 맡을 뿐이었다.
A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말뜻
A을 이해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지?  그는 마음을 추스리려고 애를
A썼다. 그녀가  던져주는 시각적이고  후각정이며 청각적인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그의 뇌는 포화 상태가 될 정도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윽고 그가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A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죠. 인터뷰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줄 알고 있는데 이렇게 응해주셔서 말이에요."
A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빚을 졌습니다.  내가 이 사건을  제대로
A보게 된 건 웰즈 기자 덕분입니다. 그런  분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되지요."
A  "감사합니다. 제가 좋은  분을 알게 된 것 같군요.  우리의 대화를
녹음해도 되겠습니까?"
  "좋으실 대로 하십시요."
A  그는 몇 가지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최면에  걸린 사
A람처럼 여전히  그 젊은 여인의  하얀 얼굴과, 앞머리를  늘어뜨리고
A루이즈 브룩스 스타일로  깎은 아주 짙은 빛깔의 검은  머리와, 오똑
A하게 볼가진 광대뼈  위로 길게 늘어진 연보라빛 눈에 넋을  잃고 있
A었다. 레티샤  웰즈는 도툼한 입술에  핑크빛 연지를 연하게  바르고
A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자주빛 앙상블은 멋이  무엇인 줄 아는 디
A자이너의 작품처럼  보였고 그녀의 보석에서도 몸가짐에서도  일류의
향취가 물씬했다.
  "담배 피워도 되겠습니까?"
A  그가 동의를 표시하며  재떨이를 내밀자 레티샤는 작은  궐련용 파
A이프를 꺼냈다. 레티샤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편 냄새가  섞인 푸
A르스름한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뿜었다. 그런 다음  가방에서 수첩
'을 꺼내고 그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E  "결국 멜리에스 씨는  부검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부검 결과 무엇을 알아내셨나요?"
A  "공포 그리고 독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둘 다 옳았다고 할
A수 있겠군요. 그러나 부검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5생각합니다. 부검으로도 밝힐 수 없는 게 많이 있지요."
"  "혈액에서도 독이 검출되었나요?"
A  "아닙니다. 그러나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검출이 불가능
한 독도 있으니까요."
4  "범죄 현장에서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으셨습니까?"
  "아니오. 전혀."
  "침입한 흔적은요?"
  "전혀 없습니다."
9  "살타 형제를 살인할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있었나요?"
@B  "보도 자료를 통해 이미 발표한 것처럼  세바스티앵 살타는 도박을
하다가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9  "이 사건에 대해서 내심으로 확신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A  "전엔 있었지만 이젠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내 쪽에서 물어
A보고 싶은 게  있는데.... 당신은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조사
를 한것 같더군요. 그렇지요?"
.  연보라빛 눈동자에 놀라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대단하군요. 어떻게 아셨죠?"
A  "그게 내  직업인걸요. 그래 뭘  좀 찾아내셨습니까? 세  사람에게
*겁을 주어 죽음으로 몰아간 게 무엇인가요?"
%  레티샤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A  "저는 기자예요.  제 직업은  경찰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지
정보를 제공하는게 아니예요."
A  "좋습니다. 그럼  간단한 거래를 하나  하기로 합시다. 그러나  꼭
응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D  레티샤는 포개고 있던, 실크 스타킹에 싸인  가느다란 다리를 풀었다.
9  "멜리에스 씨에게 두려움을 주는 게 있다면 뭐가 있지요?"
J  레티샤는 재떨이에 재를 떨려고 몸을  구부리면서 멜리에스를 올려다보았다.
A  "아니예요. 대답하지 마세요. 그건 너무  사사로운 질문이군요. 제
A질문이 좀 엉뚱했죠?  공포는 상당히 복잡한 감정이에요.  동굴 속의
A원시인들이 가졌던  최초의 정서가 아마 공포였을  거예요. 두려움이
A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주  강력한 어떤 것이지요. 두려
A움은 우리의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통제할
수가 없을거예요."
A  레티샤는 담배를 몇 모금 세게 빨고  재떨이에 비벼댔다. 그러고는
1다시 머리를 들고 멜리에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D  "멜리에스 씨.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에 맞닥뜨려  있어요. 그 수수께
A기는 우리가 감당해  낼 만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멜리에스 씨가
8그 수수께끼를 회피할까봐 걱정이 돼서 그 기사를 썼어요."
  레티샤는 녹음기를 껐다.
A  "멜리에스 씨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멜리에스 씨에게 알려드릴 게 하나 있어요."
&  레티샤는 벌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A  "이 살타 형제 사건은 멜리에스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흥
8미 진진해요. 이 사건은 곧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거예요."
'  멜리에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  "이 사건에 대해서 뭐 아시는 거 있습니까?"
  "다 아는 수가 있지요...."
A  매력적인 입술을 늘여 뜻 모를 미소를  머금고 연보라빛 눈의 가장
&자리에 주름을 잡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29. 불을 찾아서

A  103683호가 화학  정보실에 들어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A인상적인 곳이다. 액체 상태의 생생한 정보가  담긴 알들이 까마득히
A늘어서 있다. 알 하나하나에 증언과 서술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담
A겨 있다. 알이 늘어선 줄 사이로 나아가는  동안에 클리푸니가 그 간
A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클리푸니는 벨로캉의  금단 지역을 차
A지하고나서 어머니  벨로키우키우니가 지하 동굴의 손가락들과  교류
A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는 손가락들  때문에 완전히 정
A신이 혼미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이 완전하게  하나의 문명을 건
A설했다고 믿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했고,  그 대
A신에 그들은  어머니에게 신기한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바퀴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B  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은  손가락들이 유익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A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클리푸니는 그런  사실을 입증할
A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모은 증언들이  일치하고 있다. 즉 '손
A가락들이 벨로캉에 불을  질러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유일한 여
/왕 개미인 벨로키우키우니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A  손가락들의 문명이 불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사실이
A다. 바로 그것  때문에 클리푸니는 그들과 더 이상  대화하지 않으려
A했고 식량  공급을 중단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클리푸니는  화강암
A바닥에 뚫린 통로를 봉쇄했고 지구상에서  그들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I것이다. 똑같은 정보를 강조하는 첩보 개미들의  정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A  즉 '손가락들은 불을  켜고 불을 가지고 놀며 불을  이용하여 물건
A을 만든다.'는  것이다. 개미들은 이  무분별한 동물들이 계속  그런
A짓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다. 그것은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어가
D는 지름길이다. 벨로캉이 겪은 시련이 그것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
A  불!.... 103683호가 진저리를  친다. 그는 이제 클리푸니가  왜 손
A가락들을 혐오하는지 더  잘 알게 되었다. 개미들은 모두  불이 무엇
A인지를 알고 있다. 그들 역시 옛날에 그  원소를 발견한 바 있다. 사
A람들처럼 우연히 말이다. 번개가 어떤 관목을  후려치고 나서 불붙은
A잔가지 하나가 풀  사이에 떨어졌다. 개미 하나가 거기로  다가가 자
F세히 살펴보니 그 불덩어리는 주위에 모든  것을 시커멓게 만들고 있었다.
A  개미들은 신기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둥지 안으로  가져가려고 한
A다. 불을 처음  발견했던 그때는 그것을 옮기는 데 실패했다.  그 뒤
A로 몇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런 뒤에 주도 면밀
A한 척후 개미  하나가 마침내 불붙은 나뭇가지 하나를 그의  개미 둥
A지 근처까지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처음에는 짧은 나뭇가지를
A가지고 시도하다가  점점 긴 나뭇가지를  잡고 끌고 온 끝에  성공한
A것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태양의 조각들을 운반할  수 있음을 보여
0주었다. 동료들이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환대했다.
A  불이란 정말 신기한  것이다. 불은 열과 빛과  힘을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그 빛깔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빨강, 노랑, 하양, 파랑....
A  불을 발견한 것은 겨우 5천만 년 전으로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
I다. 모듬살이 곤충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A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불꽃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A점이었다. 그래서 다시 번개가 칠 때를  기다려야 했는데 유감스럽게
A도 번개에 뒤이어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 비가  불을 꺼뜨리
고는 했다.
A  어떤 개미가 불붙은  보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잔가지로  지어진 도
A시 안으로 그 불을 끌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끔찍한 재
A난을 초래했다. 불이  더 오래 지속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즉시 잔
A가지 지붕을 태워버리고  수천 개의 알과 일개미와  병정개미의 목숨

을 앗아갔다.
A  혁신적인 제안을 내놓았던 그 개미는 칭찬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
A나 그 때문에 불에 대한 탐구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개미들은 무슨
A일에서든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그들은
A언제나 가장 나쁜  해결책으로 시작을 하지만, 몇 차례의  수정과 재
9수정을 거쳐 마침내는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고는 만다.
6  개미들은 오랫동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몰했다.
?  클리푸니는 그러한 그들의 노력을 기록한 기억 페로몬을 꺼낸다.
A  선조 개미들은 우선 불이 아주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A자기 자신에게  불을 붙이고 싶으면  그저 불 가까이에 가기만  하면
A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불은 부서지기도 아주 잘  부서졌다. 나
A방이 날개를 퍼득거리기만 해도 까만 연기로  바뀐 뒤 공중으로 사라
A져버렸다. 불을 끄고 싶을 때 개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A방법은 불 위에  농도가 아주 낮은 개미산을 발사하는  것이었다. 실
@B험 정신이 강한 어떤 개미들은 잉걸불에  너무 강렬한 개미산을 쏘다
'가 살아 있는 횃불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A  그로부터 75만 년이 지나서 개미들은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시도
A하던 중에(개미 과학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번개칠  때를 기
A다리지 않고도 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일개
A미가 바싹 마른  나뭇잎 두 개를 서로 비비던 중  나뭇잎들이 연기를
A일으키고 불이  붙는 것을 보았다.  다시 실험이 이루어지고  연구가
D계속되었다. 그때부터  개미들은 불을 마음대로  피울 수 있게  되었다.
A  대발견의 뒤를 이어 환희의 시대가 도래했다.  둥지마다 거의 매일
A같이 새로운 응용 기술이 개발되었다. 불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나무
A들을 없애버렸고,  아무리 단단한 물질이라도 부숴뜨렸으며,  겨울잠
A에서 깨어난 개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고,  병든 개미들에게 온
;기를 주었으며, 대체로 사물의 빛깔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A  그러나 불은 군사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불에 대한  열광이 시들
A해지기 시작했다. 개미 네 마리가 불붙은  기다란 나뭇가지를 가지고
M적의 도시로 뛰어들면 백만의 개미를 가진  도시가 30분도 안되어 사라져 버렸다.
A  산불이 일어나기도  했다. 개미들은 번져나가는 불길을  제대로 다
A스리지 못했다.  어떤 것에 일단 불이  나면 바람만 한  줄기 불어도
A크게 번졌다. 소방 개미들이 저농축 개미산을  쏘아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산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  관목 덤불에 불이  붙으면 금방 나무에서 나무로 번졌고,  단 하루
K만에 30만 개미  정도가 아니라 3만 개의 보금자리가  시커먼 잿더미로 변했다.
A  화재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아무리  커다란 나무나 곤충도  불길
A속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새들마저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에
A대한 열광이 저주로 바뀌었다. 불을 폐기하자는  제안에 개미들은 만
A장 일치로 동의했다.  예전의 환희는 완전히 사라졌다.  불은 너무나
A위험했다. 모듬살이  곤충들은 모두 불을 저주하면서  다시는 사용하
지 않기로 합의했다.
A  그 후로  아무도 불에 접근하지  않았다. 나무에 번개가  떨어지면
A거기에서 멀리 달아나게 되었고, 마른 나무가지에  불이 붙었을 때는
A누구나 불을 끄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그 가
A르침은 대양을  건너 다른 대륙에도  전해졌다. 지구의 모든  개미와
A모든 곤충들은  곧 불을 피해야  한다는 것과 특히 불을  다스리려고
 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  여전히 불길 속으로  달려드는 몇몇 종의 날파리와  나방들이 남아
A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는 것은 불빛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
O기 때문이었다.  다른 곤충들은  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격하게 지켰다.
A만일 어떤 둥지나 어떤 개체가 전쟁에  이기기 위해 불을 사용하려고
H들면, 크고 작은 다른  모든 곤충들이 즉시 동맹을 맺고 그  자를 응징했다.
0  클리푸니는 기억 페로몬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A  <손가락들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금지된  무기를 사용했고
A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손가락들의 문명은 불의  문명이다.
A그러므로 그들이 숲  전체에 불을 놓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의 문
명을 파괴해야 한다.>
)  여왕은 강렬한 확신이 밴 냄새를 발한다.
A  103683호에게는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클리푸니 자
A신의 주장에 따르면  손가락들의 존재는 지엽적인 문제이다.  즉, 손
A가락들은 지표면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세입자들이다. 그것도 아주
A짧은 시간 동안 거주할 세입자들이다. 그들이  지구상에 거주하게 된
A지는 겨우 3백만  면 밖에 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보다  더 오랫
동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A  <그들에 대해서 관여할  것 없이 땅거죽 위에서 대를  이어가며 살
A다가 죽게  내버려두면 그만 아닙니까?  굳이 원정군을 보낼  이유가
있습니까?>
@L  103683호가 더듬이를  닦고 묻는다. 그에 대한  클리푸니의 대답이 완강하다.
H  <그들은 너무 위험해.  그들이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  103683호는 여전히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A  <도시 밑에 손가락들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손가락들을 제
4거하고 싶다면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순서일텐데요.>
O  여왕은 103683호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설명을 계속한다.
A  <도시 밑에 있는 손가락들은 위협이 되지  않아. 그들은 그 동굴에
A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 갇혀 있는 거지. 굶어 죽게  내버려두면 모
A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지금쯤이면  아마 그들은 시체가  되어
있을거야.>
  <안됐군요.>
  여왕이 더듬이를 곧추세운다.
A  <뭐라고? 자네  손가락들을 좋아하나? 세계의 끝을  탐험하면서 그
&들과 대화라도 해본 적이 있다는 건가?>
#  병정개미도 더듬이를 마주 세운다.
A  <아닙니다. 하지만 굴  속에 갇힌 손가락들이 죽는  것은 동물학의
A발전을 위해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거대
A한 동물의 관습이며 생김새를 제대로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A원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이 어떤 자
E들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세계의  끝으로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이치에 닿는 병정개미의 말이 여왕을 당황하게 만든다.
A  <도시 밑에 있는  손가락들은 아주 커다란 횡재나  다름없어요. 우
A│는 손가락들의  둥지 하나를 완전히  우리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2│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용하려 하지 않습니까?>
A│클리푸니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103683호가  옳다. 사실 속
A가락들은 포로나  다름이 없다. 동물학 연구실에서  자기가 연구하는
A진드기 류와 똑같은 신세인 것이다. 개암 껍질  안에 갇혀 있는 진드
A기 류가 무한소의 실험 대상이라면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손가락들은
무한대의 실험 대상이다....
A  여왕은 한 순간 병정개미의 주장에 마음이  끌렸다. 그의 주장대로
A손가락들의 둥지를 관리하고  아직 살아 있는 손가락들을  살려 대화
<를 재개하는 것도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A  그들을 길들여 거대한 탈것으로 바꾸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먹
7이를 주겠다는데 그들이 굴복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A  어디선가 특공대  개미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클리푸니에게  달려들
A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103683호는 뿔풍뎅이  축사에서 온 반체제
A개미 하나가  여왕을 시해하려고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103683호는
M그 무모한 개미에게  달려들어 그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위턱으로 쓰러뜨린다.
!  여왕은 시종 태연함을 유지한다.
A  <이게 손가락들이  시킨 짓이라네.  손가락들은 바위 냄새  풍기는
A병정개미들을 제 여왕도 기꺼이  죽이려는 광신자들로 만들어버렸지.
A보게 103683호. 우리는  그들과 대화를 해선 안돼.  손가락들은 다른
A동물들과는 달라. 그들은 너무 위험해. 그들은  말 한 마디로도 우리
를 죽일 수 있는 자들이야.>
A  클리푸니는 도시 내에  반역 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A털어놓는다. 여왕은 그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자들이 도시  바닥 밑
A에서 고통받고 있는 손가락들과 계속 연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
A다. 게다가 여왕은 그들을 통해서 나름대로  손가락들을 연구하고 있
A다. 여왕에게 헌신하는 첩보 개미들이 반체제  운동에 잠입하여 손가
A락들이 둥지 내에 송신하는 모든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다. 클리푸니
A는 103683호가  반체제 개미들과 접촉한  사실도 알고 있다.  여왕은
A그것을 오히려 잘된 일로 생각하고 있다.  103683호가 반체제 개미들
>과 접촉하면서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G  바닥에 쓰러진 반체제  개미가 마지막 냄새를 발산하려고  힘을 모은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다.>
K  그 다음엔 아무 냄새가 없었다. 그는  죽었다. 여왕이 시체의 냄새를 맡는다.
#  <'신'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지?>
A  103683호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여왕은 산란실을
A오락가락하면서 한시바삐  손가락들을 죽여야 한다고 되뇐다.  '그들
A을 쓸어버려야 돼.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여왕은 많은 그 병정개
0미가 그 중차대한 과업을 실현하리라고 믿고 있다.
A  103683호는 여왕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군대를 모으기 위해
이틀의 말미를 달라고 한다.
A  이제 이틀 후면 진군이 시작된다. 세계에서  모든 손가락들을 몰아
내기 위한 대장정이....

   30. 신의 계시

  <공물의 양을 늘리라.
  목숨을 아끼지 말고 헌신하라.
.  손가락들은 여왕이나 알 모다기보다 중요하다.
  명심할지어다.
(  손가락들은 무소부재하고 무소불위하다.

3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기 때문이다.
5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3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의 말씀이니라.>

A  누군가가 그런 계시를  만들어 보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 전
에 얼른 기계 앞을 떠났다.

   31. 두 번째 도전

A  카롤린 노가르는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H않았다. 카롤린은 조용히 자기의 '입'을 다시  시작하려고 식사를 서둘렀다.
A  그녀 주위에서 식구들은 요란한 몸짓을  섞어가며 떠들어대고 있었
A다. 음식을  서로 건네주기도 하고  우적우적 씹기도 하면서  갖가지
A화제를 도마 위에  올리고 있었다. 한결같이 그녀가 경멸해  마지 않
는 화제들이었다.
  "어째 이렇게 덥냐!"
  어머니가 말했다.
A  "텔레비젼에서 기상  통보관은 삼복 더위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9고 하던걸. 이게 다 지난 20세기 말의 환경 오염 때문이다."
  아버지가 거들었다.
A  "잘못은 할아버지들에게  있어요. 할아버지들은 지난 90년대에  마
R구 지구를 오염시켰어요. 할아버지 세대 전부를  법정 앞으로 끌어내야 할 판이에요."
&  손아래 누이가 되바라진 소리를 했다.
A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카롤린 노가르 말고 세 명이 더  있을 뿐
D이었지만, 카롤린은 그 나머지 세 사람과  어울리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7  "우린 곧 영화관에 갈건데, 너도 같이 가겠니? 카롤린?"
  어머니가 제안했다.
/  "아뇨, 됐어요, 엄마. 집에서 할 일이 있어요."
  "밤 여덟신데?"
  "예, 중요한 일이예요."
@B  "싫으면 그만두려므나,  우리하고 놀러가는  것보다 남들 다  노는
H시간에 혼자 집에서 일하는 게 더 좋다  이거지.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A  카롤린 노가르는 마침내 자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단단히 잠
A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카롤린은  가방이 있는 곳으로 달려
A갔다. 그녀는 거기에서  작은 알약들이 가득 든 둥그런  유리 그릇을
A꺼내더니, 안에 든  것을 넓적한 금속 그릇 안에 쏟아넣고,  그 금속
,그릇을 분젠 버너 위에 올려놓고 열을 가했다.
A  그러자 갈색의 죽  같은 물질이 생겼다. 거기에서 한  줄기 기체가
A피어오르더니, 이어 잿빛 연기가 솟아오르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
A꽃은 처음엔 연기에 가려 안 보이더니  이윽고 밝고 투명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A  일을 하는  방식이 좀 구식이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도리가
K없었다. 카롤린은 자기 작품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A  문을 여니 거의 붉은색에 가까운 적갈색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나
A타났다. 막시밀리앵 매커리어스는  은빛 줄에 메어 데리고 온  두 마
A리의 그레이하운드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인사도
하기 전에 대뜸 물었다.
  "다 됐어요?"
A  "예, 집에서 마지막 실험을 끝냈어요. 하지만  주된 작업은 실험실
에서 했어요."
   "좋습니다. 별 문제 없었지요?"
  "예, 전혀요."
"  "아무도 알고 있는 사람 없지요?"
  "예, 아무도요."
A  카롤린 노가르는 황토색으로  변한 뜨거운 물질을 두툼한  병에 쏟
아붓고 병을 그에게 내밀었다.
3  "이제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노가르 양은 쉬세요."
  그가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A  자기들끼리 통하는  신호로 두 마리의 그레이하운드를  부른 다음,
0그는 그 개들과 함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A  다시 혼자가 된 카를린 노가르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
A었다.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 같았다. 그토록 많은
0사람들이 실패했던 일을 그들이 해내게 된 것이다.
A  카롤린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셨다.  그런
A다음 작업복을  벗고 핑크빛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카롤린은 가운의
A한쪽 소매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과 바늘을
챙겨 텔레비젼 앞에 앉았다.
A  <알쏭달쏭 함정  퀴즈>가 나올 시간이었다. 카롤린  노가르는 수상
기를 전원에 연결했다.
  텔레비젼.
A  도전자는 여전히  라미레 부인이었다. 생김새는 프랑스  보통 여자
A들 모습 그대로이고,  해답이나 그 해답을 이끌어내게 된  논리적 과
=정을 이야기할 때는 꾸밈없이 소심한 모습을 드러내는 여자였다.
#  사회자가 늘상 소리를 되풀이했다.
A  -자, 어떠십니까, 답을 찾으셨습니까? 이 백색  판을 잘 보시고 시
D청자들께 답을  말씀해 주십시오. 다음  줄에 나올 숫자는  무엇일까요?
A  -뭐랄까, 문제가  정말 특이해요. 간단한 단위에서  출발하여 훨씬
I더 복잡한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는 삼각형 모양의 수열과  관계가 있어요.
A  -훌륭하십니다! 라미레 부인.  그 길로 계속 가십시오.  그러면 답
을 찾아내실 겁니다.
A  -첫머리에 '하나'를 가리키는 숫자가 있습니다.  그건 마치.... 마
치....
A  -시청자들께서 듣고 계십니다. 라미레  부인. 방청객들께서 부인을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
'  -자, 라미레 부인, 말씀을 계속하시죠.
A  -어떤 경전의 한 구절 같습니다. 1이 나뉘어  두 개의 숫자가 됩니
9다. 다시 그것은 네 개의 숫자가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어쩌면?
A  -어떤 탄생의 전조 같은 것입니다. 원래의  알이 처음엔 둘로 나뉘
A었다가 다음엔 넷으로 나뉘고, 그 다음엔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직
A감적으로 저는 저  삼각형 모형의 수열에서 하나의  탄생을 떠올립니
A다. 즉 하나의 존재가 출현하고 전개되는  모습으로 보여요. 이건 상
$당히 형이상학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A  -맞습니다. 라미레 부인.  바로 그거예요. 저희가 아주  훌륭한 수
A수께끼를 드렸죠?  부인의 통찰력과 방청객 여러분의  갈채에 걸맞는
수수께기입니다.

  박수 갈채.
  사회자가 긴장을 고조시켰다.
A  -이 수열에 관통하는 규칙은 무엇일까요?  라미레 부인께서 말씀하
 신 그 탄생의 역학은 무엇이지요?
  도전자의 안타까워하는 표정.
'  -모르겠어요.... 조커를 사용하겠어요.
A  방청석에서 실망한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미레 부인이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8  -정말이십니까, 라미레 여사? 조커 하나를 쓰시겠습니까?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A  -유감이군요, 라미레 부인. 지금까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멋지게
해오셨는데....
A  -이 수수께끼는 상당히 독특해요.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할 만한 가
6치가 있어요. 그래서 도움을 받기 위해 조커를 쓴거예요.
A  -좋습니다. 이미 첫번째 힌트는  드렸습니다. 생각나시죠? '영리한
A사람일수록 답을  찾기가 더 어렵다.'  아시겠어요? 두 번째  힌트는
8이렇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다 잊어버려야 한다.'
  도전자의 실망한 표정.
  -그게 무슨 뜻이에요?
A  -그건 부인께서  찾아내셔야죠. 제가  정신 분석학자는  아니지만,
A부인을 돕기  위해서 정신의  내면으로 되돌아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A싶습니다. 마음을 비우십시오. 논리와 선입견이라는  고정된 틀을 버
"리고 그 자리에 공허를 채우십시요.
:  -쉽지 않은데요. 생각으로 생각을 없애라는 말이 아닌가요?
A  -당연히 어렵지요.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의 이름이  바로 <알쏭달
쏭....
  -....함정퀴즈>!
A  방청석에서 일제히 말을 받았다.  방청객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워하
는 빛이 어려 있었다.
A  라미레 부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사회자는 기꺼이
돕고 싶다는 뜻의 몸짓을 했다.
M  -조커를 쓰셨으니까 이  수열의 다음 줄 하나를 추가로  보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매직 펜을 들고,

  1
  11
  12
  1121
          122111
          112213
@
(  이라고 쓴 다음, 다음의 수를 덧붙였다.

  12221131

A  라미레 부인의  낙담한 표정이 클로즈업되었다. 부인은  눈을 깜박
A이며 '1', '2', '3'이라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 수열은 마치 마른
A자두가 든  카트르 카르과자의 제과법  같은 것을 부호로 나타낸  것
G같았다. '3'의 비율에  특히 신경 쓸 것. '1'의 비율도  소홀히 하지 말것.
2  -어떻습니까? 라미레 부인. 이제 감이 잡히십니까?
A  생각에 몰두하느라고 라미레 부인은 대답 대신에  '음-' 소리를 냈
A다. 그 소리에는 '이번엔 답을 찾아낼 것  같아요'라는 뜻이 담겨 있
는 듯했다.
K  사회자는 라미레 부인의  숙고할 권리를 존중해 주면서  마무리 인사를 했다.
A  -시청자 여러분. 오늘 보여드린 일곱 번째  줄에 주목해 주십시오.
2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변함없는 사랑 부탁드립니다.
+  박수 갈채, 종료 타이틀 백. 음악. 환호성.
A  카롤린 노가르는 텔레비젼을 껐다. 무슨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듯
A했다. 카롤린은 바느질을  끝냈다. 작은 구멍이 흔적이  감쪽같이 사
A라졌다. 카롤린은 바느질 도구를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종이를 구길
$때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다시 들렸다.
A  욕실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새앙쥐 소리 같지는  않았다. 새앙쥐
A가 타일 바닥을 달리면서 그런 소리를 낼  리가 없었다. 그러면 도둑
#일까? 욕실에서 볼일이 뭐가 있을까?
A  혹시나 해서  카롤린은 서랍장으로 가서 구경  6밀리미터 리볼버를
A꺼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런 사태에  대비해서 숨겨둔 권총이었다.
A침입자들에 대한 기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카롤린은 텔레비젼을
D다시 켜고 소리를  높인 다음, 발소리를 죽이고 욕실  쪽으로 다가갔다.
A  텔레비젼에서는 랩송을 부르는 어떤 그룹이  나와서 반항을 부추기
#는 노래를 악을 쓰고 부르고 있었다.
A  -당신들의 집, 당신들의 가게, 모두, 모두,  불태울거야. 모두, 모

두, 모두,
A  카롤린 노가르는 두  손으로 권총을 꽉 잡고 문에  착 달라붙었다.
A미국 영화에서  본 그대로를 흉내낸  것이었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카롤린은 문을 확 열어젖혔다.
A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소리는 분명히 거기에서 나고  있었다. 샤
A워장 커튼 뒤에서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카롤린은 날
랜 동작으로 커튼을 젖혔다.
A  카롤린은 눈앞에 벌어진 일을 더 잘  이해하려고 앞으로 나섰다가,
A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결국은 탄창의  탄알을 다 허비했다. 그녀
A는 숨을 헐떡거리며 뒤걸음질쳤다. 방으로 돌아온  카롤린은 문을 단
T단히 걸어 잠그고 기다렸다. 신경이 극도로  흥분되어 발작이 일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1  그래도 '그것들'이 문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었다.
#  그러나 '그것들'은 문을 통과했다.
A  카롤린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방  안의 자질구레
A한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그
;러나 그녀에게는 그런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32.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

4  103683호는 종아리 마디에 있는 털로 머리를 닦는다.
8  그는 자기가 지금 어느 편에 들어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A  그는 손가락들을 무서워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모두 죽이라
@B는 사명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반체제 개미들의  명분에도 일
A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배신해야 한다.
A그는 스무 마리의  탐험 개미들을 이끌고 세계의 끝에 간  적이 있었
A다. 그런데 이제 8만의 병력을 이끌고 가라고  하는데도, 그 수가 터
무니없이 적게만 느껴진다.
A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그 반체제 운동이다.
A그는 처음에 그들이  사려 깊은 모험가들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A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자들은  반쯤 미친 자들이었고, 걸
6핏하면 '신'이라는 뜻 모를 단어를 발산하는 자들이었다.
A  여왕의 태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왕은 너무  개미의 입장
A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정상은 아니다. 여왕은  모든 손가락들
A을 죽이고 싶어하면서도  도시 밑에 사는 손가락들을  연구할 생각은
A하지 않는다.  다른 생물 종들을  연구해야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A주장하면서 정작  도시 밑의 손가락  둥지를 활용할 생각은  안한다.
K그들을 통해서 가장  진기하고 가장 놀라운 실험을 할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A  클리푸니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지  않았다. 반체제 개미들
A도 마찬가지다. 다들 그를 무시하는 것이거나  그를 이용하려는 것이
A다. 그는  자기가 여왕이나  반체제 개미들의 꼭두각시라고  느낀다.
@어쩌면 동시에 양쪽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A  문득 벨로캉 전체에 어떤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
A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 위에 있는 어떤 개미  둥지에서도 일어난
A적이 없는 일 말이다. 그렇다. 분명히 어떤  변화가 일고 있다. 벨로
A캉에 있는 모든 개미들이 상식을 잃고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면서 마
A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전보다 더  못난 개미들이
되어가고 있다.
A  벨로캉 개미들에게  돌연 변이가 일어난 것임에  틀리없다. 반체제
A개미들은 돌연 변이체다. 클리푸니도 돌연  변이체다. 103683호 자신
A도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 자신을 생각하기 일쑤이므로  이제 정상적
A인 개미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벨로캉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는 것일까?
A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묘한  이 표현을 구사하고 있
I는 그 반체제 개미들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신'이란 무엇인가?
1  103683호는 뿔풍뎅이 축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33. 백과 사전

     사자의 숭배

A  어떤 문명이 지혜로운 문명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첫번째 요소는
'죽음의 의식'이다.
A  인간들의 시신을 쓰레기와 함께 버렸던  시절은 짐승이나 다름없었
A다. 인간들이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명사의 획
A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자를 돌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
A위에 놓인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또 사
A자를 돌본다는  것은 인생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가는  과정으로
H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적인  행동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A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사자 숭배가 가장 먼저  행해진 것
A은 지금으로부터 7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 중기의 일이었다. 당시에
A몇몇 부족들은 시신을  길이 1.04미터, 너비 1미터,  높이 0.3미터인
A묘혈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부족의 구성원들은 시신  옆에 고기 덩어
A리와 부싯돌로 만든  무기들과 고인이 사냥한 동물의  머리를 놓아두
A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부족 전체가 함께  모여서 식사를 했다. 개미
A세계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B어떤 개미들은 여왕개미가 죽은 뒤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먹이를 갖
A다준다. 개미들의 시체에서는 올레인산이  발산되기 때문에 여왕개미
A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텐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놀라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드몽 웰즈    
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34. 투명 인간

A  자크 멜리에스 경정은 카롤린 노가르의 시체  앞에 무릎을 꿇고 있
A었다. 시체의 얼굴을  살펴보니 눈은 뒤집혀 있고 입은  공포로 일그
?러져 있었다. 이미 본 적이 있는, 공포로 짓눌린 그런 표정이었다.
(  그는 카위자크 형사에게로 몸을 돌렸다.
&  "물론, 지문은 없겠지요. 에밀 형사?"
A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똑같은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상처도
I흉기도 없고, 침입한  흔적이나 단서도 없습니다. 완전히  오리 무중입니다."
  경정은 껌을 꺼냈다.
  "문도 물론 잠겨 있었겠지요?"
  그가 물었다.
A  "자물쇠 세 개는  잠겨 있었는데, 두 개는 따져  있었습니다. 죽는
2순간에 그 여자는 빗장을 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  "잠그려고 했던 건지 풀려고 했던 건지는 아직 모르잖아요?"
A  멜리에스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몸을 기울여  손의 위치를 조사하
고 나서 소리쳤다.
A  "열려고 했던 거군요!  범인은 내부에 있었고 여자는  도망을 치려
4고 했군요. 여기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이 에밀 형사요?"
!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파리는 없던가요?"
  "파리요?"
'  "그래요, 파리, 초파리도 상관없고요."
N  "살타 형제네 집에서도  파리에 신경을 쓰시던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A  "아주 중요하지요.  파리는 탐정에게  아주 훌륭한 정보를  제공해
A주지요. 내 교수 가운데 한 분은 파리를  제대로 조사하기만 하면 많
/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시곤 했어요."
A  에밀 형사는  도무지 못 믿겠다는  듯 입을 비죽거렸다.  현대적인
D경찰 학교에서 겨우  그렇게 시시껄렁한 수사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니!
A  카위자크는 여전히  전통적인 수사 방법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
K도 그는  경정이 조사하는 수사  방법에 차질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었다.
A  "살타 형제 사건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창문을 닫힌 채로  그냥 두
A었습니다. 만일  파리가 있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여기에 있을  겁니
6다. 그런데 파리에 집착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A  "파리는 중요한 겁니다.  파리가 있으면 어딘가에 통로가  있는 것
4이고 그게 없으면 이 집이 밀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A  사방을 둘러보다가 경정은  마침내 하얀 천장의 한  모서리에서 파
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7  "저거 봐요. 에밀 형사. 저 위에 붙어 있는 거 보여요?"
A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게 거북살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파리는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A  "파리가 있으면 공중  어딘가에 파리 통로가 있기  마련이지요. 저
A거보세요. 에밀 형사.  창문 위쪽에 작은 틈새가 있지요?  아마 파리
는 저기로 들어왔을거예요."
<  파리는 잠시 공중을 선회하다가 안락 의자 위에 내려 앉았다.
G  "여기서 보기에 저놈은 금파리인 것 같군요.  그러니까 제2군 파리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  멜리에스가 설명했다.
A  "사람이 죽으면  파리들이 몰려듭니다.  그러나 아무 파리나  오는
A것은 아니고 아무  때나 오는 것도 아닙니다. 날아오는  순서가 정해
A져 있어요.  대개 청파리calyphra가  제일 먼저 도착합니다.  그래서
A제1군 파리라고  부르죠. 청파리들은 사람이  죽은 지 5분이  지나면
A날아옵니다. 청파리들은  더운 피를  좋아하지요. 땅이 쉬를  슬기에
A좋지 않다 싶으면  그놈들은 살 속에 쉬를 깔기고 시체에서  역한 냄
A새가 나자마자  날아가버립니다. 청파리의 뒤를 이어  날아오는 것이
A제2군 파리인  금파리muscina입니다. 금파리들은  조금 썩은  고기를
A좋아합니다. 그놈들이  고기를 먹고 쉬를  슬고 나면 다음엔  쉬파리
Asarcophaga가 찾아오지요.  제3군 파리입니다.  쉬파리들은 더  많이
A썩은  고기를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치즈  파리piophila와 침  파리
Aophira가 옵니다.  그런 식으로 다섯  무리의 파리가 우리의  시체를
A차례차례 거쳐가는  겁니다. 각자 자기  몫에 만족하고 다른  파리들
몫은 건드리지 않아요."
  "사람도 별거 아니군요."
6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에밀 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G  "관점에 따라 다르지요. 시체 하나면 파리  수백 마리가 포식을 하지요."
E  "그건 그렇다  치고, 그게 우리  수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  자크 멜리에스는 돋보기를 들고 카롤린 노가르의 귀를 조사했다.
A  "귓바퀴 안에 피가  있고 금파리의 쉬가 있어요.  아주 흥미로운데
A요. 정상적인 경우라면  청파리의 쉬도 발견할 수 있을텐데  그게 보
A이질 않아요. 그렇다면 제1군 파리들이 오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이
건 아주 대단한 정보예요."
A  에밀 형사는 그제서야  파리의 관찰이 얼마나 훌륭한  정보를 제공
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  "그럼 왜 청파리들이 오지 않았을까요?"
A  "이 여자가 죽은  후 5분 동안 뭔가가 아니면 누군가가  시체 곁에
A서 꾸물거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십중  팔구는 살인범이 그랬겠
A지요. 그래서 청파리들이  감히 접근을 못했을거예요. 그런  다음 시
A체가 썩기 시작하니까  청파리들은 시체에 더 이상  관심이 없었겠지
A요. 그때 금파리들이 날아왔고, 그놈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체
A에 달려들 수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범인은  5분 동안 머물렀습니다.
2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떠난겁니다."
A  에밀 형사는  그 추리에 경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멜리에스
A자신은 그다지  만족스러워하는 낯빛이 아니었다. 그는  청파리가 접
<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  "마치 투명인간하고 대결하고 있는 느낌이...."
A  에밀 형사는 말을 중단했다. 맬리에스처럼 그도  욕실 쪽에서 나오
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
K  그들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샤워장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A  "정말 투명 인간과 대결하는 느낌입니다. 그가  방 안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  그 말을 하면서 에밀 형사는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멜리에스는 생각에 잠긴 채 껌을 질겅거렸다.
A  "투명 인간이  아니더라도 문이나 창문을  열지 않고 드나들  수는
A있어요. 투명 인간만  상상하지 말고 이왕이면 벽을 뚫고  다니는 사
람도 상상해 보지 그래요!"
A  멜리에스는 투명한  밀랍을 씌운 피살자에게 몸을  돌렸다. 시체의
A얼굴도 살타 형제의  시체와 마찬가지로 두려움 때문에  경직 경련이
일어나 있었다.
  흉측한 모습이었다.
K  "카롤린 노가르라는 이 여자 직업이 뭐예요?  서류에 뭐 특별한 거 있어요.?"
I  카위자크는 고인의 이름이  적힌 서류철에서 서류 몇  장을 들여다 보았다.
@B  "애인은 없고요.  사생활이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죽음을  당할 만
6큼 원한을 사지도 않았습니다. 화학자로 일을 했습니다."
  "이 여자도요? 어디에서요?"
  멜리에스가 놀라며 물었다.
  "CCG요."
A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CCG.  종합 화학 회사. 세바
스티앵 살타가 일했던 회사!
A  마침내 그들은  단지 우연의  산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똑같은
D두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드디어  실마리 하나가 잡힌  것이었다.

#  35. 신이란 하나의 특별한 냄새다.

%  저 냄새가 그들이 있는 곳의 냄새다.
?  103683호는 냄새를 따라 반체제 개미들의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  <당신들의 설명을 듣고 싶은 게 하나 있다.>
A  한 무리의  반체제 개미들이 103683호를 둘러싼다.  그들은 103683
6호를 쉽게 죽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를 공격하지 않는다.
  <'신'이라는 게 무엇인가?>
/  절름발이 개미가 다시 대변인 구실을 자처한다.
A  절름발이 개미는 자기가 103683호에게 모든 걸  말해 준 것은 아니
A지만, 손가락들을  지지하는 반체제 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
A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에 전폭적인 신뢰의 증거가  된다고 역
A설한다. 비밀 조직은 겨레의 경비 개미들에게  쫓기는 처지이기 때문
D에 누구에게도  그렇게 쉽게  털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H  절름발이 개미는 솔직함을 나타내려고 더듬이를  꼿꼿이 세우며 설명한다.
A  <지금 벨로캉 안에서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
A리 도시뿐만 아니라  연방의 도시, 나아가 모든 개미  종에게도 중요
A한 일이다. 반체제 운동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수천 년 전의 진보를
A앞당길 수도 있고 수천 년 뒤로 퇴보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A하나의 목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절대적인 비밀 유지와  아울러
A각자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103683호  자네의 역할이 중요하
A다. 자네에게 모든  걸 털어놓지 않은 건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 모
든 걸 다 알려줄 생각이다.>
A  두 개미는 방의  한가운데서 더듬이를 결합하고 완전  소통의 의식
A에 들어간다. 완전  소통 덕분에 개미는 상대방의 정신에  담긴 모든
A것을 즉각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그것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라
3기보다는 두 개미가 똑같은 순간을 함께 사는 것이다.
A  103683호와 절름발이 개미는 자기들의 더듬이  마디를 서로 결합한
A다. 그럼으로써 열한 개의 입과 열한 개의  눈이 직접 결합되는 것이
0다.머리가 둘 달린 단 하나의 곤충이 되는 셈이다.
*  절름발이 개미가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A  작년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벨로캉이 잿더미가 되고  벨로키우키우
A니 여왕이 죽고  나자, 바위 냄새를 풍기는 개미들은  존재할 이유가
A사라졌다. 그들은 새 여왕 클리푸니가 일으킨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A맞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바위 냄새를  풍기는 개미들은 반체
A제 개미들이 되어 이 은신처로 숨어들었다. 그  후 그들은 화강암 바
A닥 속으로 난 통로를 다시 열고  식량을 훔쳐서 손가락들에게 공급했
>다. 그들은 손가락들의 사절인 리빙스턴 박사와 대화를 계속했다.
A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리빙스턴 박사는 '우리
A는 배고프다',  '왜 여왕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거부하는가?'와 같은
A간단한 메세지를  전했다. 손가락들은 반체제 개미들의  활동에 관한
A소식을 계속  전해 듣고 있었다.  그들은 반체제 개미들을  설득하여
A되도록 은밀하게 식량을 훔치기 위하여 특공  작전을 감행하게 했다.
A손가락들이 요구하는  먹이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다른  개미들에게
@I들키지 않고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것이  반드시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A  그래도 모든  일이 정상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이루어졌다. 그러던
A어느날, 손가락들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표현이  담긴 메세지를 보내
A왔다. 페로몬의 냄새가 이상했다. 손가락들은  훈신조의 냄새로 개미
A들이 손가락들을 과소 평가하고 있으며, 이제껏  그런 사실을 감추어
5왔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개미들의 '신'이라고 주장했다.
&  개미들은 신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A  손가락들은 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신
A은 세계를 건설한  동물들이며 개미들은 모두 그들을  '섬겨야 한다'

는 것이었다.
A  다른 개미 하나가 와서 103683호화 절름발이  개미 사이의 완전 소
?통을 방해한다. 그 개미가 열렬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A  <신들은 모든 것을 만들었다.  신들은 무소불위하며 무소부재하다.
A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현
;실은 그들이 우리를 실험하기 위해 꾸며놓은 무대에 불과하다.
A  비가 내리는 것은  신들이 물을 뿌리기 때문이고, 날씨가  더운 것
A은 신들이 태양의  열기를 높이기 때문이며, 날씨가 추운  것은 그들
6이 태양의 열기를 낮추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신이다.>
A  절름발이 개미는 그날  손가락들이 리빙스턴 박사를 통해  전해 온
'놀라운 이야기를 103683호에게 옮겨준다.
A  <손가락 신들이  없다면 이 세계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
A다. 개미들은 그들의 창조물이다. 개미들은  손가락들이 그저 즐기기
G위해서 꾸며놓은 가공의  세계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A  103683호는 당혹감에  빠진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손가락들이 어
A째서 도시 바닥  밑에서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
A은 지하에 갇혀 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은  개미 한 마리가 자기들
;을 상대로 원정군을 파견하려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
#  절름발이 개미는 설명을 덧붙인다.
A  <물론 리빙스턴 박사의  주장에 몇 가지 헛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
A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세계가  어떻게 지금
A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
A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신'이라는  개념이 그 모든 질
문에 답하고 있다.>
A  어쨌든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리빙스턴 박사가 전해 준  그 최초
A의 신의 가르침은 한 무리의 반체제  개미들을 사로잡았고 다른 많은
A개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 뒤로  며칠간은 '신'에 대한  언급이
A빠진 정상적인 메시지만 이어졌다. 그러나 반체제  개미들은 그런 정
A상적인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 리빙스턴  박사의 더듬이에
A서 마음을 사로잡는 그 '신의' 계시가 다시  울렸다. 그 계시는 손가
A락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다시 일깨우면서,  이 세상에 우연은
A없으며 개미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기록되고  있음을 분명히
A했다. 그러면서  '신들'은 자신들을 떠받들지 않거나  공양하지 않는
&자들은 온전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  103683호는 놀라움에 더듬이를 곧추세운다.  거대한 동물들이 세계
A의 거주자들을 하나하나 감시하면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A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도 곧잘 개미의  표준을 벗어난 상상을
A하긴 하지만 그런  생각은 꿈에서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모든 거주
;자 들을 감시하다니, 그렇게 손가락들은 할 일이 없단 말인가.
F  그래도 103683호는 절름발이 개미의 이야기에  계속 더듬이를 기울인다.
A  반체제 개미들은 곧 리빙스턴 박사가 완전히  다른 정신이 담긴 두
A종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리빙스턴 박사가
A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을  믿는 개미들만 더듬이를 기울이고
A다른 개미들은 뒤로 물러섰다. 또 리빙스턴  박사가 '정상적인' 화제
A를 들고 나올 때는  신을 믿는 개미들이 자리를 떴다. 그  결과 손가
@B락들을 지지하는 반체제 개미들 내부에 조금씩  분열이 나타났다. 신
A을 믿는  자들이 있었고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신을 믿지
A않는 개미들이 생각하기에, 신을 믿는 자들은  개미 문화에 낯선, 완
A전히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개미들  사이에 불화
가 생기지는 않았다.
A  103683호는 절름발이  개미와 결합하고 있던 더듬이를  풀고, 그것
F을 닦은 뒤에  딱히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주위의  개미들에게 묻는다.
+  <당신들 중에 신을 믿는 개미가 누구인가?>
  한 개미가 앞으로 나선다.
8  <나는 23호라고 한다. 나는 전능한 신의 존재를 믿는다.>
<  절름발이 개미가 방백을 하듯 103683호에게 넌지시 일러준다.
A  <신을 믿는 자들은  저렇게 틀에 박힌 문구들을  되풀이한다. 대개
A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저러지. 하지만 알고  모르고가 저
A들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리빙스턴 박사가  전해주는 메
K시지가 이해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저들은 더  열심히 그것을 되풀이한다.>
A  103683호는 리빙스턴  박사라는 손가락들의 사절이 어떻게  완전히
A다른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다. 그러자 절름발이 개미가 대답한다.
A  <그게 손가락들의 위대한 신비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중
A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과 나
?란히 있으며, 일상적인 페로몬이 추상적인 메시지와 나란히 있다.>
A  그러면서 절름발이  개미는 지금은  신을 믿는 자들이  소수이지만
)그들 편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A  그때 한 젊은  개미가 나방 고치 하나를 끌면서  다가온다. 103683
&호가 축사 입구에 묻어놓았던 고치이다.
  <이건 당신 겁니까?>
A  103683호는 그렇다는 뜻의  페로몬을 발하고 그 개미  쪽으로 더듬
이를 내밀며 묻는다.
E  <그런데 자네는  어느 쪽인가?  신을 믿는  쪽인가? 안 믿는  쪽인가?>
A  젊은 개미는  머뭇거리며 머리를 숙인다. 그는  자기에게 페로몬을
A발하고 있는 그 개미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산전 수전을 다 겪은
A그 유명한  병정개미가 아닌가. 젊은 개미는  신중하게 대답해야겠다
J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뇌 깊은 곳으로부터 느닷없이  말들이 튀어나온다.
E  <나는 24호라고  합니다. 나는  전능한 신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36. 백과 사전

      사고

?  인간의 사고는 무슨 일이든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A  1950년 대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화
A물을 양륙하기 위하여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포르투
A갈 산  마디라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다.  한 선원이 모든  짐이 다
A부려졌는지를 확인하려고  어떤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
A때 그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
A아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서 벽을  두드렸지만 아
=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배는 포루투갈을 향해 다시 떠났다.
A  냉동실 안에  식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선원은 자기가  오래
A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힘을 내서 쇳조각 하
A나를 들고  냉동실 벽 위에  자기가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A날짜별로 새겨나갔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냉기
A가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꽁꽁 얼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적
A었고, 찬 공기에 언 부위가 견딜 수  없이 따끔거리는 상처로 변해가
A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자기의 온몸이 조금씩  굳어지면서 하나의 얼
@&음덩어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A  배가 리스본에 닻을  내렸을 때, 냉동 컨테이너의 문을  연 선장은
A죽어 있는 선원을 발견했다. 선장은 벽에  꼼꼼하게 새겨놓은 고통의
A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장은 컨
A테이너 안의 온도를  재 보았다. 온도계는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
A었다. 그곳은 화물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돌아
A오는 항해 동안  냉동장치가 내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그 선원은
A단지 자기가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죽은 것이다.
      에드몽 웰즈
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37. 메르쿠리우스 임무

!  <리빙스턴 박사를 만나고 싶다.>
A  그러나 반체제  개미들은 103683호의 소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은 일제히 더듬이를 세우고 103683호의 의도를 탐색한다.
5  <우리가 자네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일 때문이다.>
A  절름발이 개미가  설명한다. 어제 103683호가 여왕  개미를 만나고
A있는 동안에 한 무리의 반체제 개미들이  화강암 속으로 내려가서 리
A빙스턴 박사를  만났다. 그들은 리빙스턴 박사에게  손가락들을 치기
(위한 원정이 준비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A  <어느 쪽 말을 전하는 리빙스턴 박사였는가?  신과 관계된 쪽인가,
신과 관계가 없는 쪽인가?>
A  <신과 관계가  없는 쪽이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이며,  모든 더듬이
A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메세지를 전하는 리빙스턴 박
A사였다. 어쨌든, 리빙스턴  박사와 그를 통해서 자기들  의사를 표시
A하는 손가락들은, 모든 손가락들을 없애기 위해  세계의 끝으로 원정
A대가 파견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A오히려 그것을 아주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놓칠  수 없
$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A  손가락들은 오랫동안  숙고하고 난 뒤에, 리빙스턴  박사를 통해서
A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시 사항들을 전달했다.  그 임무
A를 그들은 '메르쿠리우스 임무'라고  불렀다(메르쿠리우스는 로마 신
A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으로 다른 신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다). 그
A임무는 동방 원정과  연결되어 있다. 그 원정을 수행함과  동시에 이
룰 수 있는 일이다.
L  벨로캉 군대를 이끌고 가는 것이 자네이므로,  그 임무의 적임자도 자네일세.>
A  절름발이 개미는 103683호에게 그의 새로운  임무가 무엇인지를 설
명하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A  <명심하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 꼭 성사시켜야  하네. 메르쿠리
4우스 임무는 세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네.>

   38. 바위 밑 동굴에서

E  "그  개미가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요?"
A  오귀스타 할머니는  이제 막  개미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제시하고
A난 뒤였다.  할머니는 류머티즘 때문에  보기 흉해진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  "제발, 그 작은 불개미가 해내야 할텐데!"
A  모두들 입을 다물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 사
A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그 반체제  개미들을 믿어야만 했다. 달
A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맡은 개미의 이름을
8모르고 있었지만, 그 개미가 죽음을 당하지 않기를 빌었다.
@B  오귀스타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지하 수 미터의 이  동굴에 내려
A온 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 백  살이 시작될 때 들어와서  이제 백
하고도 한 살이 되었다.
/  할머니는 그간의 모든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A  맨 먼저 아들  에드몽이 퐁텐블로 숲 기슭의 시바리트  가 3번지에
A자리를 잡았다.  며느리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몇 년 후에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A  에드몽은 상속자인 조카  조나탕에게 편지 한 통을  남겼다. '특히
A당부하건대, 지하실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가지  말 것!'이라는
)당한 문장의 충고가 적힌 이상한 편지였다.
A  나중에야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부추김이었다
A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것은 감자의 소비를 권장하기  위해 파
A르망티에 썼던 방법과 같은 것이었다. 파르망티에는  울타리를 친 밭
A에 감자를 심은 다음, 울타리에 '절대로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게시
A판들을 빙 둘러가며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앞으로 감자를  많이 먹
A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게시판이 설치된  첫날 밤부터 서리꾼들이
A그 귀한  덩이줄기들을 훔쳐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세기가  흐른
2뒤에 감자는 세계인의 주요한 식량의 하나가 되었다.
A  조나탕 웰즈는  결국 금단의  지하실로 내려왔고 다시는  올라가지
A않았다. 그의  아내 뤼시가 용감하게도  그를 찾으러 내려왔고  이어
A그의 아들 니콜라도 내려왔다. 그 뒤를 이어  갈랭 형사의 지휘를 받
A으며 소방대원들이 내로왔고  빌솅 경정이 이끄는 치안  대원들이 내
A려왔다. 마지막으로  오귀스타 할머니 자신이 자종  브라젤과 다니엘
로젠펠트를 데리고 내려왔다.
A  다 합해서 스물한 사람이 끝없이 이어진  나선 계단을 달려 내려왔
A다. 모두가 쥐들과 마주쳤고, 성냥개비 여섯  개로 네 개의 정삼각형
A을 만드는  수수께끼를 풀었다. 또  어머니 자궁을 빠져나올  때처럼
A몸을 압축시키는  통발을 지나왔다. 그  다음에는 다시 나선  계단을
A올라갔고 허방다리에  빠졌다. 사람들은 모두 소아적인  공포증과 무
A의식의 함정을 이겨냈으며  탈진할 만큼 힘겨움과 시체들에  대한 두
려움을 극복했다.
A  멀고 험한  미래를 헤쳐나와서 그들은  지하 사원을 발견했다.  그
A사원은 거대한 화강암 밑에 만들어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었고
A바로 위에는  개미 왕국이 하나  있었다. 조나탕은 그들에게  에드몽
A웰즈의 비밀  실험실과 에드몽  웰즈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발명품을
A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 '로제타 석'이라고 명명된  기계가 있었다.
A개미들의 냄새 언어를 이해하고 개미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A기계였다. 그  기계에서 대롱 하나가  나와 탐지기에 연결되어  있었
A다. 그 탐지기는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개미로서 마이크
A와 스피커 구실을 겸하고 있었다. 그 개미  로봇이 개미 세계로 파견
#된 그들의 사절, 리빙스턴 박사였다.
A  그 통역자를 매개로 삼아 에드몽  웰즈는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
A와 대화를  나누었다. 에드몽과 벨로키우키우니는 많은  이야기를 나
A눌 시간을 갖지는  못했지만, 대등한 수준을 가진 두  개의 대문명이
*만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A  조나탕은 삼촌이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계승했고 지하에  내려온
A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열정에 끌어들였다. 그는  곧잘 그들이 외계인
A과 대화하려고 애쓰는  우주선 속의 우주 비행사들과  같다고 말하곤
A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실험은 우리 세대의 경험 중에서  가장 매
A혹적인 것이  될지 몰라요. 개미와  대화하는 일에 도달하지  못한다
A면, 우리는 지구상에  있는 것이든 외계에 있는 것인든  지능을 가진
;어떠한 생명체와도 대화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는 단언했다.
A  조나탕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생각도
A너무 이른 때에  나타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들의 이상주
@B의적인 공동체는  얼마 안 가서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D미묘한 문제들에 봉착했고, 아주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7  어느 날 소방대원 한 사람이 조나탕에게 불쑥 지껄였다.
A  "우리가 우주선  속의 우주 비행사들과  같다는 자네 얘기에  어는
A정도는 동감일세, 그러나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선에  들어갈 때는 남
A자와 여자가 동수가 되도록 배려를 하지.  그런데 우리는 이게 뭔가.
A한창 나이의  남자가 열여덟 명인데 여자는  하나뿐이니, 할머니하고
어린애는 빼고 말이야."
)  그 말에 조나탕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E  "개미 세계에서도 수개미 열여덟 마리에 암개미는  한 마리 뿐이라네!"
(  그들은 웃음으로 그 문제를 넘겨버렸다.
A  그들은 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이  죽었다는 것과 그 뒤를  계승한 여
A왕 개미가 그들과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위
A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새 여왕개미
 는 급기야 식량 공급을 단절했다.
A  대화가 끊기고 식량  공급이 중단되자 그들이 실험하고  있던 공동
A체는 하나의 지옥이  되어버렸다. 스물한 사람이 땅 속에  갇혀서 기
<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결코 헤쳐나가기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A  어느 날 알랭  빌솅 경정은 개미들이 날라다 주는 식량  통이 완전
A히 바닥난  것을 발견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식량은  버섯뿐이었
A다. 개미들에게서  재배하는 법을  배워 수확한 버섯이었다.  그들은
A그것만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하수가  있어서 신선한 물
8은 부족하지 않았고, 통풍 구멍이 있어서 공기도 충분했다.
A  그러나 물과  공기와 버섯만으로 버티기는 너무나  힘겨웠다. 절식
도 이만저만한 절식이 아니었다.
A  참다 참다 못한 치안 대원 하나가 기어이  이성을 잃고 말았다. 고
A기! 그는 살코기를  달라고 때를 썼다. 그는 제비를 뽑아서  다른 사
A람들에게 싱싱한  고기가 되어줄 사람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A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날 그 참담한 장면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
하게 기억하고 있다.
  "난 먹고 싶어!"
  그 치안 대원이 악을 썼다.
  "하지만 먹을 게 없잖아."
A  "왜 없다고 그래. 우리가 있잖아! 우리들  서로가 서로에게 먹거리
A가 될  수 있어. 제비로 몇  사람을 뽑아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희생시켜야 돼."
  조나탕 웰즈가 벌떡 일어났다.
A  "우리는 짐승이 아니야 짐승들이나 서로  잡아먹는거야. 우린 인간
이야. 인간이란 말이야!"
A  "자네보고 사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조
A나탕. 먹고 안 먹고는 자네 마음이야.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고기
'를 제공할 사람이 자네가 될 수도 있어."
A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치안 대원은 자기 동료 한  사람에게 몸짓
A으로 신호를 보냈다. 미리 짠 듯한  몸짓이었다. 그들은 함께 달려들
A어 조나탕을  껴안고 때리려고 했다. 조나탕은  주먹으로 후려치면서
D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니콜라  웰즈가 난투극에  끼여들었다.
A  난투극이 확대되었다.  사람 고기를 먹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A반대하는 사람들로 편이  갈렸다. 곧 모든 사람들이  뒤엉켜 싸웠고,
A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에는  상대를 죽여야
A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었다. 사람 고기를  먹겠다는 사람들은 자기들
M의 뜻을 효과적으로  이루려고, 깨진 병 조각과 칼과  나무 막대기를 움켜쥐었다.
A  오귀스타 할머니와  뤼시와 어린  니콜라까지도 화가 머리  끝까지
A나서, 손톱으로 할퀴고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렀다.  할머니는 입이
@B닿을 만한 거리로  지나가는 어떤 팔뚝을 물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
A니의 틀니만 뚝 부러졌을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람 근육이 이
%렇게 단단한데…A, 그걸 먹으려 하다니.
A  지하 수 미터 되는 곳에 고립된  사람들이 갇힌 짐승들처럼 으르렁
A거리며 싸웠다.  고양이 스물한 마리를 바닥  면적이 한 평  밖에 안
A되는 상자 안에  한 달 동안 가두어두면, 저희들끼리  맹렬하게 싸우
A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날,  인간 사회를 진보시키겠다던 이상주
0의자 집단이 벌였던 난투극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F  경찰도 없고 증인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A  사망자가 하나  생겼다. 소방대원 하나가  칼에 찔려 죽었던  것이
A다. 싸우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즉시 싸움을 중단하고  시체를 바
5라보았다. 죽은 사람을 먹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  그들의 영혼에  고요가 찾아들었다. 다니엘 로젠펠트  교수가 싸움
*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A  "우리는 타락했어! 동굴  속에 살던 원시인의 속성이  여전히 우리
A내부에 도사리고 있어. 교양과 예의의 너울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
A게 너무 얇아서  별로 깊이 긁지 않아도 그 원시인의  속성이 튀어나
A오는거야. 5천 년  문명의 무게가 이것밖에 안되는걸세.  (그는 한숨
A을 쉬었다.) 먹을  것 때문에 지금 우리가 서로 죽이는  광경을 개미
'들이 본다면 우리를 얼마나 비웃겠는가!"
  "하지만...."
$  치안 대원 하나가 끼여들려고 했다.
'  "입 다물게, 인간 버러지 같으니라구!"
)  교수는 버럭 고함을 지르고 말을 이었다.
A  "모듬살이 곤충이라면,  하다못해 바퀴벌레도  방금 우리가 한  것
A같은 그런 행동은  절대로 안 한다네. 우리는 스스로를  하느님이 지
A으신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 이게
A뭔가, 코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나 말일세.  미래 인간의 선구적인 모
A습을 보일 책임이 있는 집단이 마치 쥐  떼들처럼 행동하고 있어. 보
<게, 우리의 인간성으로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란 말일세."
A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모두가 소방대원의 시체에게로  다시 눈길
A을 떨구었다. 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사원 한
A귀퉁이에 그를 위한 무덤을 팠다. 그들은  간단한 기도문을 옰조리면
A서 그를 묻었다. 극단적인 폭력만이 일거에  중단시킬 수 있었다. 그
D들은 자기들의 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자기들의  상처를 핥았다.
A  "선생님의 도덕 군자  같은 말씀에 토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
K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요."
A  제라르 갈랭  형사가 말했다. 서로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A사라졌지만, 그러나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 있는
가? 그가 제안을 했다.
A  "우리 모두 동시에  자살을 해버리면 어떨까요? 그러면  우리는 고
A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새  여왕개미 클리푸니가 안겨준 모
욕도 씻을 수 있을거예요."
A  사람들은 그 제안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갈랭  형사는 분
통을 터뜨렸다.
A  "에이 빌어먹을. 개미들이 왜 우리에게 그리  못되게 구는거지? 우
A리는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한 유일한 인간들이  아닌가. 그것도 자네
A들의 언어로 말이야.  그것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렇게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니. 이거야 원."
A  "그런 거라면 별로 놀라운 것도 없네.  인간 세계에서도 그런 일은
A종종 있었지.  인질극이 성행하던 시대에 레바논에서  납치자들은 아
A랍어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먼저 죽였다네.  그들이 자기네들 말을 알
A아듣는게 두려웠던거지.  아마 클리푸니도 우리가 자기들  언어를 이
+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서워하는 것일걸세."
@B  "우리가 서로  잡아먹거나 자살하는 일  없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아야 돼요."
  조나탕이 소리쳤다.
A  그들은 침묵에 잠겨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뱃속이 비어 있어서
+인지 그들의 정신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  이윽고 자종 브라젤이 입을 열었다.
$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네...."
A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자종 브라
젤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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