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
(저자 소개)
빅토르 위고는 1802 년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 태어나 1885 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위대한 작가입니다.
위고는 인간의 기분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작품 속에 담은 작가입니다.
위고의 시집에는 "가을날의 나뭇잎", "황혼의 노래", "마음의 소리" 등이
있으며, 특히 소설에는 불후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드
파리"(우리나라에선 "노트르담의 꼽추"로 번역됨)가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
1815 년 10월초,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멀리 남쪽으로 떨어진
프랑스의 디뉴라는 시골 마을에 어떤 낯선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들어
왔습니다. 5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로 중간 키에 딱 벌어진 체격을 하고
있었지만 먼 길을 걸어온 듯, 몹시 지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차림새는 마을 사람들이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웃옷은 다 떨어져 너덜너덜하고 낡은 넥타이는 꾸깃꾸깃 구겨진
데다 바지는 닳아서 무릎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창가나 문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웬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 낯선 남자를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무슨 볼일이 있는지 관청으로 들어가더니 15분 쯤 지나자 다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관을 한군데 찾아내자 거리 쪽으로 나 있는
주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안에서는 요리사들이 한창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주인이 불 옆에서 얼굴도 들지 않고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식사를 하고 좀 묵어 갔으면 하는데요."
"예, 예. 어서 들어오십시오!"
기분좋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난 주인은 뒤를 돌아보며 손님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식사할 돈은 가지고 있겠지요?"
"예, 물론 돈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들어 오십시오."
여행객은 안심한 듯 불 가까이 다가가 앉았습니다.
추위를 걱정하기엔 이른 가을이긴 하지만 이 산골짜기 마을에서는 밤이 되면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들었습니다. 여관 주인은 바쁜
듯이 왔다갔다 하면서 손님 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종이 쪽지에 무엇인가를 적어 견습 요리사인 소년을 불러 귀엣말을 했습니다.
소년은 곧장 관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여행객은 아무런 눈치도 못한 채, 재촉하듯 물었습니다.
"아직 식사 준비가 안 됐나요?"
"예, 이제 곧 됩니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소년이 관청으로부터 무어라고 잔뜩 적힌 서류 용지룰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심각하게 있더니 손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안 됐지만 재워 드릴 수가 없소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어쨌든 우리 집에서는 숙박은 안 돼요. 물론 식사도 안 되고. 자,
빨리 나가 주시오!"
여행객이 다기 무엇인가 말하려 하자 주인은 남자의 귓가에 입을 바싹 대고
위협하는 듯한 말투로 덧붙었습니다.
"이러쿵저럭쿵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마시오. 당신이 장발장이라는 것도, 또
당신이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도 다 알고 있으니까. 자, 보시오 당신도
관청의 이 서류는 읽을 수 있을 테니."
그 말을 듣자 여행객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가죽
배낭을 어깨에 메고 한층 피곤해 보이는 걸음으로 그 곳을 나갔습니다.
남자는 드디어 정제가 알려졌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허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느덧 주위는 깜깜해졌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선술집 같은 가게가 눈에 띄었습니다. 살짝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술을 마시던 손님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이미 이 여행객을 알고 있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남자는 이
곳에서도 매정하게 내쫓겼습니다.
"아까 여관을 쫓겨났습니다. 난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죠?"
"그런 건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선술집 주인은 서슬이 퍼런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또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밤거리로 나왔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들개처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헤맸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교도소 앞에 와 있었습니다. 그렇다,
이 곳에 사정해 보자. 그는 문에 달린 종을 울렸습니다.
쪽문이 살짝 열리고 수위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저어, 하룻밤만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묵어 갈 수 없을까요? 어디서도 나를
재워 주지 않아서요."
"이봐,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여긴 여관이 아니란 말이야!"
수위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또다시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아담한 주택이 늘어서 있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문득 보니 어떤 집의 창문으로부터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 마침 저녁 식사를 하려는 듯 방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술병은 불빛에 아름답게 반짝이고
요리 냄비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부모와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식탁에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여행객은 빨려들어가듯 넋을 잃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집이라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하여튼 그는 결심을 한 듯 창유리를 똑똑
두드려 보았습니다.
주인이 자리에 일어나 램프를 손에 들고 창문을 열러 왔습니다.
"저어, 실례합니다. 돈은 낼 테니까 수프를 한 그릇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원 구석의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재워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하고 주인은 의심스러운듯 물었습니다.
"저는 길가던 여행자인데 오늘 저녁 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왔더니 이젠 완전히 지쳐 버렸습니다.
돈은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당신 혹시 마을에서 떠들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오?"
하고 소리치더니 창문으로부터 물러나 벽에서 총을 내리자마자 그 총부리를
창 밖의 남자에게 겨누었습니다. 부인은 황급히 두 아이를 껴안고 주인의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빨리 없어져! 꾸물거리면 당장 쏴 버릴 테다!"
"제발 물 한 컵만이라도."
매달리듯이 애원하는 여행객의 눈앞에서 창문은 거칠게 닫히고 빗장을
지르는 소리가 차갑게 울려 펴졌습니다.
밤은 깊어 가고 알프스 산에서 내리부는 쌀쌀한 바람이 세차게 그의 얼굴에
몰아쳤습니다.
여행객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마을 변두리 나무 밑에서 밤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늘에는 어느 사이엔가
먹구름이 몰려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마을 안으로 되돌아와 큰 교회 앞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돌벤치에 몸을 던지듯이 아무렇게
드러누웠습니다. 이미 배고픔도 피로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교회 건물에서 나이든 부인 한 사람이 나와 벤치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을 걸었습니다.
"아니,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보다시피 자고 있지 않소?"
그의 대답은 자신도 모르게 심술궂고 거칠게 변해 있었습니다.
"어째서 여관에 가지 않았나요?"
"마침 돈이 다 떨어졌어요."
하고 그는 불쾌한 듯 대답했습니다.
"이걸 어쩌나! 나도 마침 가진 돈이 없는데."
"그래도 있는 대로 좀 주세요."
여행객은 부인으로부터 몇 개의 동전을 받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돈으로는 여관에 갈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밤을 새울 수도 없잖아요? 글쎄요, 어딘가 부탁을 해 보면 재워
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부탁해 보았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그럼 저기 있는 숙소에도 부탁을 해 보았나요?"
"아니오."
"그렇다면 지금 곧 가 보세요."
부인이 가리킨 것은 미리엘 주교관(카톨릭 지역을 관리하며 책임을 갖고
있는 주교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미리엘 주교
미리엘 주교는 75세였지만 나이보다는 젊어 보였습니다. 웃으면 새하얀 이가
보이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덕이
많고 자비가 넘치는 성직자로서 디뉴 마을에서 이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동생인
바티스틴과 가정부 마글루아르였습니다. 두 사람 다 60세가 넘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미리엘 주교는 원래는 풍족한 상류 사회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1789
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교로서의
급여도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검소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주교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한밤증에도 빗장을 지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던 사람들도
마음대로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여자는 항상 그것을 불안하게
생각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주교는 변함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자는 방에만 자물쇠를 채우도록 해요."
동생인 바티스틴은 원래부터 오빠를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별 불평을 하지
않았으나 마글루아르는 늘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 주교는 서재에 틀어박혀 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일이
끝나 식당으로 들어간 주교에게 마글루아르는 식탁을 차리면서 자못 심각한 듯
말했습니다.
"저녁에 시장으로 물건 사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인데요, 무서운 부랑자가
마을에 들어왔대요. 모두들 걱정하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오늘 밤만이라도
바깥문을 잠그게 해 주세요."
바로 그 때 밖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들어오세요."
하고 주교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문이 휙 열리면 한 남자자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 여행객이었습니다. 한 발을 들여놓자 그 남자는 그
곳에 우뚝 섰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글루아르는 숨을 들이쉰 채 두려움에
떨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바티스틴도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꼼짝도 않고 주교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미리엘 주교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말을 걸려는 순간 남자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장발장이라는 사람인데 죄를 짓고 툴롱 교도소에서 19 년 동안
있었습니다. 4일 전에 겨우 형기를 마치고 출옥했습니다. 툴롱에서 50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걸어왔더니 이젠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관청에서 준 죄수였다는 표시인 노란 통행권을 보였을 뿐이데
어디서도 재워 주질 않는군요.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광장의 돌벤치에 누워
있었지요. 바로 그 곳에서 어떤 친절한 부인이 지나다가 이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는 여관은 아닌 것 같은데 하룻밤 묵어 갈 수 있을까요?
돈이라면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일해서 모은 돈이 109 프랑쯤
됩니다. 그러니까 숙박비는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습니다. 배도 고프고 죽을
것 같아서." 주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마글루아르에게 말했습니다.
"마글루아르, 저녁 식사를 1인분 더 준비해 줘요."
그 말을 듣고 남자는 믿어도 좋을지 어떨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세 발짝 앞으로 나오며 다시 말했습니다.
"설마 저를 놀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이제 막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노란 통행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그래도 재워 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마글루아르, 손님 방도 준비해 줘요."
마글루아르에게 그렇게 명령하고 나서 주교는 다시 남자 쪽으로 얼굴을 돌려
의자에 앉기를 권했습니다.
그제야 남자는 비로소 이 곳의 주인이 자기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재워 주시는 겁니까? 이런 죄인을 말입니까! 저를 개처럼 쫓아
버리지는 마십시오! 아, 정말 좋으신 분이군요! 당신은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여기에 살고 있는 신부입니다."
"아아, 정말 그렇군요. 제가 깜박 했습니다. 그 둥근 모자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런데 신부님, 돈은 얼마나 내면 되겠습니까?"
"돈은 필요없습니다. 아, 참 당신은 아까 109 프랑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요? 그만큼 모으는데 몇 년이 걸렸나요?"
"19 년입니다."
"19 년이나? 그것도 교도소에서."
미리엘 주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그 곳에 마글루아르가 1인분의 식기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램프가 좀 어두운 것 같군요."
주교는 마글루아르에게 말했습니다.
마글루아르는 그 말뜻을 곧 알아차린 듯 즉시 주교의 침실로 가 훌륭한 한
쌍의 은촛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 이리로 좀더 가까이 오시오."
매우 친절한 주교의 말에 그는 참지 못하고 소리치듯이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몹시 배가 고팠거든요. 그런데 너무 친절히 해해 주셔서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당신은 자신의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대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슬픔과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집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이 곳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요."
"아니, 뭐라고요?"
"그 이름은 '형제'라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들은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마글루아르가 저녁 식사를 날라 왔습니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수프 그리고 조금이지만 그래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돼지고기와 양고기에다 무화과나 무 열매와 치즈까지
곁들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커다란 빵과 포도주 한 병도 있었습니다.
주교는 기도를 하고 나서 빨리 먹으라고 남자에게 재촉했습니다. 그는
걸신들린 듯이 마구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주교가 마글루아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어쩐지 식탁이 허전한 것 같군요. 무엇인가 부족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자 마글루아르는 잠자코 침실로 가 6인분의 은식기와 커다란
스푼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행객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은식기를 꺼내 와
손님에게 대접하는 일은 미리엘 주교의 순수한 자랑거리였습니다.
식사가 끝났습니다. 주교는 앞으로 여행객이 갈 길을 잠시 물었으나 그
이상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주교는 밤 기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지만 곧 돌아와 은촛대를
남자에게 하나 들게 하고 말했습니다.
"자, 손님이 주무실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남자는 주교의 뒤를 따라갔는데 여행객의 침대는 예배실 앞에 준비되어
있으므로 그 곳에 가기 위해서는 주교의 방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지나가자 마침 마글루아르가 주교의 침대 가까이에 있는 벽장 안에
은식기를 넣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안내 받은 방의 침대에는 새하얀 침대보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편안히 쉬십시오. 내일 아침에는 떠나시기 전에 여기서 막 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한 잔 드리지요."
하고 주교는 말했습니다.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남자는 온순하게 대답하고 손에 들고 있던 은촛대를 옆의 작은 탁자에
놓고 왼손에 들고 있던 배낭을 침대 밑의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이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주교의 친절에 그저 감사하기만 한 것처럼 보였던 그의 눈은 돌연
험상궂은 빛을 띠었습니다.
"아니,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신부님. 바로 옆방에 저를 재우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남자는 뻣뻣하게 서서 미리엘 주교를 향해 팔짱을 끼고 위협하는 듯한
표정으로 상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거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주교는 온화하고 밝은 얼굴로 남자를 다시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래도 좋단 말입니까? 정말 괜찮다는 말이죠, 신부님?"
미리엘 주교는 천장으로 눈길을 돌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지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교는 커다란 휘장(여러 폭의 천을 이어서 만든 것으로 둘러치는
막)이 쳐 있는 제단 앞으로 다가가 그를 위해 소리내어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단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성큼성큼 침대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주교는 뜰에 나가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
깊이 깨닫고 크나큰 기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편 남자는 피곤에 지쳐 녹초가 되어 있었으므로 침대에 새하얀 침대보가
깔려 있는 것 따위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곧잘 그렇듯이 콧김으로 거칠게 양촛불을 끄자 옷을 입은
채로 쓰러지듯이 침대에 몸을 던져 그대로 정신없이 잠들어 버렸습니다.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이 남자 장발장이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 온
사람일까요?
그가 태어난 곳은 파리의 동쪽에 있는 브리라는 시골 농가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어릴 때 글을 배울 수도 없었습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몇 살 위인 누나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25세가 되었을 때 누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이번에는 뒤에 남은
누나와 일곱 명의 어린 조카들을 그가 돌보아야만 했습니다. 가장 큰 아이가
여덟 살, 막내가 한 살이었습니다.
그는 정원수나 가로수의 가지를 치는 일을 했으나 그 수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농가의 일을 도우며 어렵게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젊은이 장발장은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을 모으기 위해 그저 일만 할
뿐, 친구를 사귄다거나 결혼을 꿈꾸는 일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그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마주앉아 잠자코 형편없는 저녁 식사를 들곤 했습니다. 그럴 때 누나는
그의 접시에서 고기 조각과 양배추 건더기 등을 건져 말없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수프를 떴습니다.
어느 해인가 몹시 추운 겨울, 일을 하러 나가려고 해도 일거리가 없고
집에는 빵 한 조각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곱 명의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어느 일요일 저녁, 마을의 교회 근처에 있는 빵집 앞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놀란 주인이 뛰어 나가 보니 밖으로부터 뻗은 손이 한
조각의 빵을 움켜지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밖으로 뛰어 나가 도망치는 남자를
붙잡았습니다.
빵도둑은 다름아닌 장발장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795 년의 일이었습니다.
장발장은 재판에 넘겨졌는데 빵을 훔친 것뿐만 아니라 이따금 총으로 밀렵을
한 사실도 발각되어 5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무거운 벌을 받았습니다.
쇠줄에 묶인 27일 간의 괴로운 여행 끝에 그는 툴룽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발장이라는 이름은 이미 없어지고 24601 호로
불려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나와 일곱 아이들의 일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어서 교도소에
있는 동안 네 번이나 탈옥을 시도해 그 때마다 붙잡혀 형량이 점점 무거워져
결국에는 19 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세월을 꾹 참고 견디며 1815 년 10월 드디어 자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장발장은 이미 46세가 되어 있었지만 새로운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도소를 나온 그를 맞이해 준 것은 세상 사람들의 차디찬
눈초리와 멸시뿐이었습니다.
도둑질
교회의 큰 시계가 밤 2시를 알리는 소리에 장발장은 놀란 눈을 떴습니다.
주교관의 푹신한 침대 위였습니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으나 쉽게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그의 머리속에 어젯밤까지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식탁, 훌륭한 은식기, 커다란 스푼,
은촛대.
그것은 훌륭한 은제품들이었습니다. 가지고 나가서 팔면 아무리 적게 받아도
2백 프랑은 받을 수 있을 텐데.그것이 바로 옆의 벽장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1시간 남짓 가슴 속의 어두운 생각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큰
시계가 3시를 알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그는 부스스 상반신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침대 곁에 있는 배낭을 끌어당겨 그 안에 손을 쑥
집어넣어 무엇인가 예리한 철봉 같은 것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휙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이며 옆의 주교 침실 쪽으로 살짝 다가갔습니다.
은제품이 그 곳의 벽장 안에 놓여 있는 것은 어젯밤에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슬며시 문을 밀자 옆방은 깜깜하고 미리엘 주교의 희미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주교의 침대 가까이로
갔습니다. 마침 그 때 구름 사이로부터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방 안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온화하게 미소 짓는 듯한 주교의 잠자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장발장은 오른손에 철봉을 꽉 쥐고 핏발선 눈을 주교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주교의 자는 얼굴은 아무런 불안감이나 의심도 없는 듯 평화로운 모습
그 차체였습니다. 이런 죄인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는 마음을 털어 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고 성큼성큼
벽장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뜻밖에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식기와 은촛대를 움켜쥐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자기 침대 옆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훔친 식기와 은촛대, 철봉을 가방 속에 쑤셔 넣고
창문을 넘어 정원으로 뛰어내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미리엘 주교는 여느때처럼 일찍 일어나 정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글루아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습니다.
"주교님, 은식기와 은촛대가 보이질 않아요! 주교님께서 어디 다른 곳에
두셨어요?"
"아니, 난 모르는 일이오."
"그럼 역시 도둑맞은 것이 분명하군요. 그 남자예요. 바로 그 남자가
훔쳐 갔다구요!"
정원의 화초가 누군가의 발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혀 있었습니다. 주교가
그것을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데 그 자리를 떠났던 마글루아르가 다시
돌아와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없어요. 도망가 버렸어요. 저길 보세요. 저기에서 담을 넘어간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주교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이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도대체 그 은식기는 원래 우리들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군요. 그것은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더욱더 가난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젯밤의 그 남자도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마글루아르는 놀란 얼굴로 주교를 향해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주교님? 앞으로 식사를 하실 때는
어떻게 하지요?"
"아니, 난 나무 그릇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았을 때, 누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 들어오세요."
하고 주교가 대답하자 문이 거칠게 열리며 헌병처럼 보이는 세 남자가 한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왔습니다. 붙잡혀 온 사람은 바로
장발장이었습니다.
그 중에 계급이 높은 듯한 헌병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을 때,
주교는 벌떡 일어나 장발장 곁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아, 난 또 누구신가 했군요. 은촛대 한 짝을 잊고 가셨더군요. 그것도
당신에게 드리려고 했는데."
장발장은 깜짝 놀라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주교는
모르는 척했습니다.
"그러면 이 남자가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이상한 차림새가
눈에 띄어 붙잡아 조사해 보니 은식기와 은촛대를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말씀드렸겠지요? 이 곳에서 묵었는데 선물로 받았다고요."
"예,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럼 이대로 놓아 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장발장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교가
내미는 은촛대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부들부들 몸이 떨렸습니다. 주교는
속삭이듯이 그러나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이것들은 당신이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악의 세계가 아니라 선의 세계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장발장은 주교의 집을 나서자 도망치듯이 디뉴 마을을 빠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무작정 들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조금도 시장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몹시 어지러웠습니다. 그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인간을 믿지
못하는 그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흔들림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차라리 헌병에게 끝려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멀리 저편에는 알프스 산들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자
들판에 응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길 건너편에서 열 살 정도 된 소년이 행상 바구니를 등에 지고 이
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이 뚫어졌지만 소년은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며 손 한의 동전을 공기처럼 던져 올리면서
걸어왔습니다.
마침 장발장이 있는 곳 가까이까지 왔을 때 40수(20수가 1 프랑)짜리
동전이 소년이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 그의 앞으로 굴러왔습니다. 장발장은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그 위를 큰 구두로 밟았습니다.
소년은 그의 앞으로 달려와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 발 좀 치우세요. 그 돈은 제 것이예요."
장발장은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잠자코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저어, 아저씨, 그 발을 치우고 제 돈을 돌려 주세요. 그 돈은 제 돈이란
말이예요."
장발장은 소년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느닷없이 소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 이름이 뭐니?"
"쁘띠 제르베라고 해요."
장발장은 그 말을 듣고 아무 소리 하지 않은 체 또 입을 꽉 다물었습니다.
소년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의 웃옷 칼라에 손을 대고 그의 몸을
흔들며 외쳤습니다.
"저 좀 보세요, 아저씨. 돈을 돌려 주셔야지요!"
장발장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소리쳤습니다.
"시끄러워, 임마! 빨리 꺼져
소년은 두려움에 떨며 잠시 주춤하더니 돌연 뛰기 시작해 그 길러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뛰자 숨이 찼는지 소년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슬픈 울음소리는 장발장의 귀에도 들렸으나 그는 멍하니
깊은 생각에 잠겨 꼼짝도 않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소년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어느덧 해도 완전히 빛을 잃어 어두워졌습니다.
장발장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한기를 느낀 듯 웃옷의 단추를 채우고
일어서려고 발을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은화 한 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이것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소년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소년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얘야, 쁘띠 제르베! 쁘띠 제르베!"
대답은 없었습니다. 차가운 바람만이 되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장발장은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끓고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며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아아, 난 왜 이렇게 어리석고 마음이 비뚤어졌을까!"
후회로 가득한 장발장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19 년 이래 그가 우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장발장은 깜깜한 들판 한가운데 혼자 웅크린 채 한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과 함께 그 때까지 비뚤어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함께 흘러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그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다음 날 아침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둑어둑할 때, 어떤 마부가 미리엘
주교관 앞을 지나다가 한 남자가 대문 앞에 깔린 돌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2 년쯤 지난 1817 년의 어느 봄날 저녁이었습니다. 파리
근처의 몽페르메이유라는 쓸쓸한 마음에서의 일입니다.
그 마을 변두리에 색다른 간판을 입구에 내건 여관이 있었습니다. 간판에는
한 사람을 등에 업고 걸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귀퉁이에 "워털루의 용사"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습니다.
마침 이 여관 앞을 오른팔로는 어린 여자 아이를 안고 왼팔로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든 젊은 여자가 지나갔습니다. 여자는 차림새가 초라하고 몹시
피곤해 보였습니다. 얼굴색도 나빠 마치 병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팔에
안긴 어린 아이는 마치 병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팔에 안긴 어린
아이는 예쁜 옷을 입고 뺨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꼭 사과 같았습니다.
이 여자는 여관 앞에서 두세 살 정도의 작은 여자 아이 두 명이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자기 팔에 안고 있는
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입니다. 그녀는 다정한 눈길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나, 정말 귀여운 아이들이로구나!"
그 소리를 듣자 문 입구의 의자에 앉아 두 딸을 넌지시 쳐다보고 있던
어머니인 듯한 여자가 그 길을 지나가던 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잠시 쉬었다 가세요. 저는 저 아이들의 엄마랍니다. 이 여관은 제 남편인
테나르디에가 운영하고 있고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여자의 말투는 어딘가 만만찮은 구석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젊은 여자는 기쁜 듯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아이를 내려놓고 잠시 우리 아이들과 놀게 하면 어떻겠어요?"
하고 여관의 안주인은 자못 친절한 듯 말했습니다.
곧 친해져 재미있게 놀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젊은 여자는
상대방의 친절한 말투에 마음이 느긋해져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팡틴이라고 하며 시골을 떠나와 파리로 가 직장 생활을
했는데 남편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고향인 몽뜨르유로 돌아가 무슨 일이든
하며 살아갈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뭐예요."
"코제트라고 해요."
"나이는요?"
"이제 곧 세 살이 돼요."
"그럼 우리 집 큰 애와 동갑이군요."
두 여자는 순진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한동안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쩜 저렇게 금방 친해질까요? 저렇게 놀고 있는 것을 보니 마치
세 자매인 것 같군요."라고 말하고 여관집 안주인은 혼자서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팡틴은 갑자기 무엇인가 결심한 듯 여관집 안주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저어, 부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잠시만 맡아 주실 수는
없을까요?"
여관집 안주인은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 상대방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팡틴은 깊이 생각하며 고민하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아이를 데리고는 마음먹은 대로 일할 수가 없어요.
지금 갑자기 우리 아이를 댁의 아이들과 함께 길러 주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양육비는 제가 힘 자라는 대로
드리겠어요."
여관집 안주인은 안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남편과 의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위에 밖으로 나온 안주인은 팡틴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맡기려면 한 달에 7 프랑은 내셔야 해요. 그리고 6개월 분은 선불로
주셔야겠어요. 말하자면 7 프랑씩 6개월이니까 42 프랑을 지금 당장 지불해
주신다면 아이를 맡아 드리겠어요."
"맡아 주실 수만 있다면 물론 이 자리에서 드리지요."
"그것말고도 준비금이 15 프랑은 더 필요합니다."
안에서 남자가 소리쳤습니다.
"아, 참 그렇군요. 그럼 전부 해서 57 프랑인데 어떠세요?" 라고 다시 말을
바꾸는 여관집 안주인에게 젊은 여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습니다.
"물론, 괜찮아요.
뒤를 쫓아오듯이 남자가 또 소리쳤습니다.
"아이에게 입힐 옷은 가지고 있겠지요?"
"그럼요, 가지고 있고말고요. 전부 고급옷들뿐이에요. 이 가방 안에 있어요."
"그것은 전부 두고 가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겠어요."
이 때 안에서 소리치던 여관 주인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르고 작은 몸집에
족제비 같은 눈을 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팡틴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신다면 좋습니다. 아이는 우리들이 맡아 키우기로 하겠소."
팡틴은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어요.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 날 밤 팡틴은 테나르디에의 여관에 머물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몽뜨로유
마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지만 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은 살을 에는 듯이 괴롭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여관에 전혀 손님이 오질 않고 빚 갚을 날짜도 닥쳐 와
고민하던 참이었으므로, 뜻밖의 행운이 굴러 들어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당신 참 잘했소. 덕분에 빚도 몽땅 갚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하고
테나르디에는 싱글벙글하며 말했습니다.
"뭘요, 제가 한 일이 있나요? 저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뿐인데요, 뭐."
이 테나르디에 부부는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는 여관 주인이지만 사실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워털루 전쟁
프랑스에서는 1789 년에 일어난 대혁명으로 인해 그 때까지 계속되었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 정치가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군인의
영웅으로 나타난 나폴레옹이 혁명 중에는 눈부신 활약을 했으나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어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스스로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815 년 6월 18일,
영국, 프러시아(독일), 오스트리아의 연합군과 워털루 평원에서 결전을
벌이다 참패했습니다.
바로 그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 도처에 시체가 널려 있는 싸움터를 비추어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하고도 어쩐지 기분나쁜 광경이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들개들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짐승뿐이
아니었습니다. 전사자로부터 소지품을 빼앗아 가려는 사람들 또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이 가까운 시각에 어떤 그림자가 쥐처럼 싸움터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온통 주위에 쓰러져 있는 시체의 주머니를 마구
뒤져서는 금이나 귀중품 등을 훔쳐 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둑이니만큼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대담하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침착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훔친 물건을 들고 있을 수 없을 만큼 많아지면 근처의 숲
속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에게 그것을 건네주고 또 기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슬렁거리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서서 몸을 구부렸습니다. 몇 구의 시체가
겹쳐져 있는 그 밑으로 팔 하나가 쑥 나와 있었습니다. 그 손가락에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금반지였습니다. 남자는 재빨리 그것을
빼냈습니다.
허리를 펴고 만족스러운 듯이 주위를 둘러보는 남자의 얼굴을 달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그는 움찔 놀라서 몸을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누군가에게 뒤에서 붙잡힌 것이었습니다. 몹시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시체의 손이 남자의 웃옷 끝을 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헌병일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죽은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안심을 하면서도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래도 그 시체 위에 다시 한 번 몸을 구부리고 살펴보니 높은 계급의
군인답게 가느다란 금줄의 계급장 표시를 어깨에 달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은으로 된 십자 훈장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깊은 상처는 나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급히 십자
훈장을 떼어 내고 시체의 웃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시계와 돈을 꺼내
자기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죽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 남자가 눈을 떴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몸을 스쳐 의식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아, 간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그 남자는 쥐어짜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어느 쪽이 이겼나요?"
"영국군입니다." 하고 남자는 쌀쌀맞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내 주머니를 좀 뒤져 보아 주시겠습니까? 지갑과 시계가 있을
텐데."
남자는 그의 말을 따라 찾는 시늉을 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그런 것은 없는데요."
"아, 도둑맞았군요. 당신에게 드리려고 했는데."
그 때 순찰하는 병사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당황해서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잠깐 기다려 주시오. 내 목숨을 구해 준 당신의 이름은?"
남자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군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프랑스 군인인 것 같군요. 계급은 뭐죠?"
"하사입니다."
"이름은?"
"테나르디에입니다."
"그 이름을 잊지 않겠소. 당신도 내 이름을 기억해 두십시오. 나는
퐁메르시라고 합니다."
남자는 그 말도 채 끝나기 전에 근처의 숲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이 날 밤, 싸움터를 헤매며 금품을 찾아다녔던 사람들이 테나르디에
부부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 날 밤 훔친 것을
밑천으로 몽페르메이유에서 여관을 차렸던 것입니다.
더구나 테나르디에는 뻔뻔스럽게도 자신이 마치 워털루 전쟁의 용감한
병사였던 것처럼 간판을 내걸고 마을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게다가 혹시라도
퐁메르시가 살아 있다면 사례금을 듬뿍 받아 내려고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못된 꾀를 내는 데 있어서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뛰어났으나 장사하는 수완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이 부부의 인품이
알려짐에 따라 여관에는 전혀 손님이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여관을 꾸려 나가기가 힘들게 되어 두 사람은 여기저기서 자구만 돈을 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팡틴이 나타나 코제트를 맡겨 준 것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호박이 덩굴째로 굴러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테나르디에는 팡틴을 속여서 받은 돈으로 여기저기 빌린 돈을 갚았습니다.
그러나 돈은 금방 또 없어지고 빚은 다시 쌓였습니다.
그러자 테나르디에 부인은 코제트의 옷을 전부 파리로 가지고 가 내다
팔았습니다. 그 때문에 코제트는 입고 있는 옷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팡틴이 코제트의 양육비로 두고 간 돈도 몽땅 써
버리고 옷도 다 없애자, 어쩐지 코제트를 공짜로 키워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를 한층 더 혹독하게 다루었습니다.
코제트는 개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다 먹고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만 했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호되게 야단을 맞고 늘상 얻어 맞기만
했습니다.
주인 부부의 두 딸이 공주님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코제트의
생활은 가엾은 짐승의 삶처럼 비참했습니다.
한편 어머니인 팡틴은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편지를 보내 코제트의 안부를 물어 왔습니다. 그러면 이 부부는 코제트는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 답장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팡틴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선불 기한인 6개월이 지나자 약속대로
코제트의 양육비를 매달 7 프랑씩 꼬박꼬박 보내 왔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
돈이 코제트를 위해 쓰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 년도 채 지나기 전에 테나르디에는 더 한층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팡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코제트도 점점 커 가기 때문에 더 잘 키우기 위해서는 7 프랑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앞으로는 매달 12 프랑씩 보내 주십시오.
팡틴은 그의 요구대로 힘든 생활 속에서도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매달 12
프랑을 어떻게든 마련해 욕심많은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12 프랑은 다시 15 프랑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1 년이 지나고 2 년이 지났습니다.
그 근처의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저 부부도 그러고 보면 상당히 인정이 많지 않아요? 생활도 넉넉지 않은데
버린 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있으니 말이에요."
사람들은 코제트를 버려진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설령 버려진 아이라고 하더라도 어린 코제트의 생활은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코제트는 다섯 살이 되자 이미 하녀가 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심부름을 하고 청소, 빨래, 설거지에다
손님들의 짐까지 날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혹사를 당하면 어린 아이가 주눅이 들고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코제트는 야위고 창백한 얼굴에 끊임없이 힐끔힐끔
주의를 둘러보며 남의 눈치만 살피는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겨울이 되자 코제트의 모습은 더욱 가련해졌습니다. 온통 누덕누덕 기운 헌
옷을 걸치고 빨갛게 곱은 손에 커다란 비를 쥐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괸 채,
새벽 거리를 쓸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코제트에게 종달새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종달새처럼 작고 오들오들 떨면서 아침 일찍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 소녀의 모습은 그 별명과 딱 어울렸습니다.
다만 이 가련한 종달새는 결코 지저귀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들렌
팡틴이 고향인 몽뜨르유로 돌아가기 2 년쯤 전부터 이 마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몽뜨르유 마을은 옛날부터 목걸이와 팔찌를 만드는 보석 산지였으나 원료가
비싸기 때문에 아무리 팔아도 그다지 이익이 남지 않았습니다.
1815 년이 저물어 갈 무렵 한 남자가 이 마을에 들어와 싼 재료를 이용해
검은 장식 구슬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내 훌륭하게 성공했습니다. 그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싸게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어 프랑스 전역에서 많은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마들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몽뜨르유 사람들은 자기네 마을에 활기를 번영을 되찾아 준 인물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인물은 12월의 어느 알 저녁, 등에 배낭을 짊어지고 손에 지팡이를 짚고
남의 눈을 피하듯이 이 마을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마을에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불길에 휩싸인 두
아이를 구해 냈습니다. 그 아이들이 바로 헌병 대장의 아이들이었으므로 그
사람은 통행권을 보일 필요도 없이 아무 조사고 받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그는 마들렌이라는 사람으로 나이는 50세 가까이로
보이며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머리는
은회색이고 학자처럼 고지식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손이나 얼굴 색깔은
오랫동안 노동을 해 온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장식 구슬의 제조로 큰 이익을 올려 2 년 만에 훌륭한 공장을 세우고 많은
직원을 둘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은행에도 막대한 예금을 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돈만 아는 벼락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고 마을의 병원에도 많은 기부금을 내어 훌륭한
시설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학교도 여러 개 짓고 보육원도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마들렌 씨를 시장으로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국왕은 그에게 훈장을 하사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한사코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이 흘러 그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게 되자
국왕은 다시 그를 시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습니다. 이번만은 마을 사람들도
그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들렌 씨는 본의 아니게
시장 자리에 앉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마들렌 씨는 총을 쏘면 백발 백중이고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뛰어나
체력을 가지고 있어서, 넘어진 말을 일으켜 세우거나 진창에 빠진 마차를
거뜬히 움직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외출을 할 때에는 언제나 주머니를 금화로 가득 채우고 나갔지만 돌아오면
주머니는 텅 비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중에 만난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고 자비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1821 년초, 디뉴의 주교 미리엘 신부가 운명하셨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마들렌 씨는 그 소식을 듣자 다음 날부터 검은 색 옷을 입고
미리엘 주교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 일이 또다시 마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들렌 씨가 그 훌륭한 성직자였던 미리엘 주교와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가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모임이 있던 날 저녁, 나이가 지긋한 어떤 부인이 용기를 내어 마들렌
씨에게 물었습니다.
"시장님은 돌아가신 주교님의 친척 뻘이 되십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은 양복을 입고 계시잖아요?"
"아, 그건 제가 젊었을 때 주교님 밑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을 듣자 노부인은 물론 마을 사람들은 시장의 겸손한 인품을 더욱
높이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시장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신뢰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들렌 씨와 스쳐 지나갈 때에도 그 남자의 지켜 보는 사람들 중에는
그를 차가운 의심의 눈으로 끊임없이 감시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마을 안에서 마들렌 씨와 스쳐 지나갈 때에도 그 남자의 눈은 '저 자는 어떤
사람일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남자는 쟈베르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형사였습니다. 그는
경찰관으로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생각과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경차관으로서 자신의 임무에는 끝까지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부랑자나 불량배 또는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진드기처럼
미워하는 남자였습니다. 쟈르베는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모른 채,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사람을 체포하는 냉담한 일을 하는 것만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몽뜨르유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포슐방이라는
짐마차를 끄는 할아버지가 진창에서 마차가 옆으로 나자빠지는 바람에 그 밑에
깔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때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마들렌 씨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차에는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전날 내린 비로 길바닥이 축축해져
수레 바퀴는 점점 진창 속으로 가라앉아 할아버지의 몸은 서서히 밑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애썼으나 허사였습니다. 할아버지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눌려
죽을 것같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힘을 합쳐 마차를 움직이려고 모두 매달렸지만 마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도와 줘! 죽을 것 같아!"
하고 할아버지는 신음했습니다.
기중기(무거운 물건이 들어올리는 기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려면 15분이나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마들렌 씨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누군가 마차 밑에 들어가 등을 받치고 들어 올릴 사람은 없었습니까? 제가
100 프랑의 사례금을 내겠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해 보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 200 프랑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볼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군요."
하고 이 때 많은 인파 뒤쪽에서 냉냉한 목소리가 울려 펴졌습니다. 잿빛
프록 코트를 입고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굵은 지팡이를 든 남자,
쟈베르 형사였습니다.
"마들렌 씨,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딱 한 사람 알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퉁룰 교도소 죄수였던 남자인데."
그의 말에 마들렌 씨의 얼굴 근육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그 동안에도 마차는 조금씩 진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포슐방
할아버지의 비명 소리도 차츰 가늘어졌습니다.
마들렌 씨는 쟈베르를 흘끗 보더니 씰룩이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런 뒤 한 마디도 없이 순식간에 마차 밑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습니다.
마들렌 씨는 납죽 엎드려 팔과 다리에 있는 힘을 다했으나 마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마들렌 씨의 이마에 진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속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힘을 다한 마들렌 씨의 등이 마치 기중기처럼 마차를 조금씩 들어올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달려와 일제히 힘을 모았습니다.
마차는 들려 올라가고 노인은 구조되었습니다.
마차 밑으로부터 기어나온 마들렌 씨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고 온몸이
진흙투성이였습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포슐방 할아버지는 마들렌 씨의 발밑으로 기어와,
"오오, 하느님!"
하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단 한 사람, 쟈베르 형사만은 마들렌 씨에게 차디찬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들렌 씨의 친절한 행동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포슐방 노인의 다리뼈가
부러진 것을 알고 즉시 병원에 입원시키게 하고 마차가 부서지고 말도 죽어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람을 시켜서 파리의 어느
수녀원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으로 변해 활기찬 마을이 되어 있는
몽뜨르유로 돌아온 팡틴은 검은 구슬 장식을 만드는 마들렌 씨의 공장에
취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공으로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어서 팡틴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될 수 있는 한 절약해서 코제트에게
열심히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 년쯤 지났을 때, 팡틴에게 숨겨 둔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 그 이야기가 공장 감독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공장에 나가자 감독은 그녀를 불러내 50 프랑을 건네
주며,
"내일부터는 공장에 나올 필요가 없소."라고 명령했습니다.
팡틴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이가 있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듣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앞으로
테나르디에게 보낼 돈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울면서 감독에게
애원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감독은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여자들로부터 소문을 듣고 마들렌
씨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팡틴을 그만두게 했던 것입니다.
마들렌 씨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팡틴 쪽에서는 마들렌 씨를 몹시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에서 해고당한 팡틴은 날마다 몽뜨르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좀처럼 일거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숨겨 둔 아이가 있는
단정치 못한 여자라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겨우 바느질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군인들의 셔츠를 꿰매
주고 하루에 12수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 10수를 저축해 테나르디에게
보내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불을 때지 않고 식사도 변변히 하지 못했습니다. 파리에
있을 때부터 원래 건강한 몸이 아니었으므로 곧잘 피로에 지쳐버렸습니다.
게다가 가슴이 나빠진 듯 심한 기침이 나와 그녀를 괴롭게 했습니다. 열도
나고 몸이 나른했습니다.
테나르디에게 끊임없이 돈이 재촉해 왔습니다. 곧 보내지 주지 않으면
코제트를 내쫓아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어떤 때, 테나르디에로부터
온 편지에는 이번 겨울에 코제트에게 입힐 옷이 없어서 털실 옷을 만들어
주어야 하니 10 프랑을 더 보내 달라고 씌어 있기도 했습니다.
팡틴은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습니다. 퍼뜩 생각이 떠올라 거리의 이발소로
달려가 아름다운 금발을 빗어 보이며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이 머리카락을 사 주시겠어요?"
이발소 주인은 머리카락을 10 프랑에 사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코제트가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팡틴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또 테르나르디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코제트가 심한
홍역에 걸렸으므로 비싼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되니 당장 40 프랑 보내
달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팡틴은 너무 지나친 요구에 질렸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치과 의사에게로 가
예쁜 앞니를 두 개 뽑아 달라고 해서 그것을 팔았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해
넣을 때, 다른 사람의 진짜 이를 사용했던 것이었습니다.
코제트의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이 가련한 어머니는 이를
뽑아 피가 흥건한 입을 씰그러뜨리며 쓸쓸하게 미소짓는 것이었습니다.
1823 년초, 큰 눈이 내린 날 밤이었습니다.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던 팡틴은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젊은 남자들에게 이가 뽑힌 얼굴이 이상하다며 심한
모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중의 한 남자는 팡틴을 붙잡아 길에 쌓여 있는 눈을 그녀의
목덜미에 억지로 쑤셔 넣었습니다.
너무나 분한 나머지 팡틴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남자에게 맹렬히 달라들었습니다. 남자는 불시에 공격을 당해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팡틴은 울면서 그 남자를 마구 때리고 할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쟈베르 형사가 나타나 팡틴을 통행인에게 난동을
부린 몹쓸 여자라고 하면서 경찰서로 끌고 갔습니다.
경찰서에서 아무리 그 이유를 설명해도 들어 주질 않았습니다.
"네가 어떤 여자인지는 자세히 다 알고 있다. 교도소에 6개월 간 들어가
있으라구."
하고 쟈베르 형사는 차디차게 내뱉었습니다.
"6개월이나 교도소에 있으라니요!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에요! 그 남자가
제게 아주 나쁜 짓을 했단 말이에요! 아아, 우리 코제트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형사님,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그런 끔직한 일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팡틴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쟈베르 형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인가? 자, 6개월 간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거야.
이렇게 결정되면 하느님이라도 어쩔 수 없는 법이지."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점잖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쟈베르는 뒤를 돌아보고 그 사람이 마들렌 시장이라는 것을 알자 눈을
번뜩였지만 그래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니, 시장님이 아니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마들렌 시장은 말했습니다.
"쟈베르 형사, 이 여자를 감옥에 넣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죄가
있는 쪽은 이 여자를 조롱하고 폭력을 휘두른 그 남자들입니다.
팡틴은 이 사람이 마들렌 시장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자신을
공장에서 내쫓은 나쁜 남자인 것입니다. 그 남자가 지금 자기를 구해 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시장과 쟈베르는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니, 시장님, 이 여자는 시민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것은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사람을 체포하는 것은 경찰관인
제 의무입니다."
"쟈베르 형사, 그 말은 틀렸습니다. 시장은 판결권을 가질 수 있다는 법률에
근거해 이 여자의 석방을 명합니다."
"그렇지만, 시장님, 이 여자는 제 입장으로서는."
"내 말대로 하십시오."
반론의 여지가 없는 강력한 말이었습니다. 쟈베르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팡틴은 그 때까지 미워하고 있었던 마들렌 씨에 의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들렌 씨에게 그녀가 공장에서 해고당한 사정을
사실대로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시장님."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끓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팡틴이 마들렌 시장의 친절한 도움을 받았을 때 그녀
가슴 속의 병은 이미 몹시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마들렌 씨는 몸이 쇠약해진 팡틴을 즉시 자신이 경영하는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 곳은 카톨릭의 수녀들이 간호사로 일하면서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아 주는 병원이었습니다.
마들렌 시장은 팡틴의 신상을 조사해 보고 그녀가 얼마나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테나르디에에게 많은 돈을 보내
팡틴은 병석에 누워 있으므로 즉시 코제트를 데리고 와 달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테나르디에는 코제트를 데리고 오기는커녕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더욱더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마들렌 씨는 날마다 3시에는 어김없이 병원으로 가 팡틴을 문병했습니다.
의사에게 상태를 물어 보니 그녀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들렌 씨는 팡틴에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서 코제트를 데려오겠어요."
마들렌 씨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대필을 해서 편지를 쓰고 팡틴에게 서명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편지를 가진 사람에게 코제트를 보내 주십시오. 지금까지 든 비용은 전부
이 사람이 지불할 것입니다.
팡틴으로부터
쟈베르 형사
다음 날, 마들렌 씨는 코제트 데리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쟈베르 형사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안내를 받아 마들렌 씨 앞에 온 쟈베르는 여느 때와는 달리 몹시 우울한
표정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지요, 쟈베르 형사?"
"실은, 저를 면직시켜 주도록 본부에 말씀드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느닷없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시장님, 저는 당신을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당치 않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장은 순간 얼굴색이 변했으나 쟈베르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당신을 옛날 20 년 전 툴룽 교도소에서 보았던 장발장과
동일한 인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교도소를 나온 뒤에도 또 어떤 주교관에서 도둑질을 한 것 같은데
그 때 이후로는 그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함부로 쓸데없는 상상을
해서 당신을 장발장이라고 경시청에 고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경시청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제 고발은 엉터리라고 하면서."
"그럼?"
"결국 진짜 장발장이 잡혔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마들렌 씨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탁자
위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괴로운 듯한 소리를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부터 토해 냈습니다. 쟈베르는 매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 경위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그 남자는 어떤 주교관에서 은촛대를
훔쳐서 아라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원래 장발장을 알고 있던 죄수가 이
자가 장발장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시 툴룽에서 장발장을 보아서
알고 있던 다른 세 명의 죄수와도 대면을 시켰더니 대답은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시장님을 고발할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놀란 저는 즉시 아라스까지 가서 아 두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요?"
"유감스럽게도 그 남자는 틀림없는 장발장이었습니다."
마들렌 씨는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것이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그 남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는 샹마티외라는 사람이며 장발장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증거는
완벽하게 확보되어 있습니다."
마들렌 씨는 웬지 침착하지 못한 태도로 손에 든 서류를 까닭없이 넘기고
있다가 다시 쟈베르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리스의 재판은 언제 열린다고 합니까?"
"내일입니다. 아마 하루면 끝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습니까?"
마들렌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방의 한쪽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쟈베르에게 나가도 좋다고 알렸습니다.
"아니, 시장님. 저는 면직을 시켜 주십사 하고 찾아왔는데."
마들렌 씨는 제 정신이 돌아온 듯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아니오, 당신은 훌륭한 경찰관입니다. 자신의 작은 잘못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면직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 주시오.
"시장님, 고마운 말씀이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부디 면직시켜
주십시오."
그래도 시장이 고개를 흔들자 입구 쪽으로 걸어가 경례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관대하신 말씀에 그대로 따를 수는 없지만 어쨌든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
직무는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쟈베르의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들으면서 마들렌 씨는 깊은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마들렌 씨가 장발장이라는 것은 여기서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다시 태어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리엘
주교의 고귀한 사랑에 감화되어 참된 인간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해 온 결과가
지금의 마들렌 씨인 것입니다. 현재의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자처럼
여겨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쟈베르 형사의 말은 마들렌 씨의 가슴에 엄청난 충격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 이름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의 생각은 몹시 어지럽혀져 괴롭고 답답한 느낌이 그의
가슴을 죄어 왔습니다.
쟈베르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샹마티외라는 남자는 누구일까?
마들렌 씨의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의 대립된 생각이 서로 뒤엉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좋단 말인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 고장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해 왔던 몸이 갑자기
죄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스스로 자청해서 지옥으로 떨어질
필요가 있는 것일까?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회생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 사람의 죄 없는 인간이 나의 희생물이 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태연하게 모른 체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아아, 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이 두 가지 생각과 싸우다 지친 마들렌 씨는 방 안을 돌아다니기를 멈추고
의자에 기대어 잠시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바로 그 때 시계가 새벽 3시를 알렸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와
마들렌 씨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디차게 식어 있었습니다. 창 밖은 여전히 깊은
어둠이 싸인 채, 적막하기만 했습니다.
고백
마들렌 씨를 태운 마차가 아라스 마을에 도착한 것은 그날 밤 8시가
지나서였습니다. 그는 곧장 재판소로 달려 갔습니다. 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방청석은 만원이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수첩을 꺼내 '몽뜨르유 시장 마들렌'이라고 써서 그것을
찢어 내 정리(법정에서 잡일을 하는 법원 직원)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야 겨우 특별 방청인 자격으로 법정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피고석을 보니 두 사람의 경찰관 사이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더러운 옷차림, 거친 태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 그것은
디뉴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그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나는 다시 저런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숨이 답답하고 가슴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검사가 일어나 막힘없는 어조로 논고(검사가 피고의 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함)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마들렌 씨는 두려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재판이 끝나갈 무렵 재판장이 피고를 향해 말했습니다.
"피고는 특별히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남자는 벌떡 일어나 갑자기 큰 소리로 아우성치기 시작했습니다.
"순엉터리 이야기야! 다 엉터리라고! 난 떨어져 있는 사과를 주웠을 뿐이야.
그것뿐이라고! 그런데 모두들 나를 장발장이라고 했어. 난 샹마티외란 말이야.
내가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만 하냐고!"
재판장이 증인을 불렀습니다. 세 사람의 증인은 다들 입을 모아 이 남자가
장발장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에게는 이미 반론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형을 선고한다."
하고 재판장이 말했습니다.
바로 그 때 마들렌 씨가 급히 방청석에서 일어나 칸막이 문을 밀어젖히며
법정으로 나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마들렌 시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재판장이 의아한 듯 물었습니다. 재판소에 가득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들렌 씨는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듯 증인석으로 걸어갔습니다.
"너희들 나를 잘 봐라! 여기 있는 나를 본 기억이 없나?"
마들렌 씨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증인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고개를 흔들며 그를 본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들렌 시장은 말했습니다.
"재판장님, 이 피고를 석방시켜 주십시오. 부디 부탁합니다. 장발장은 바로
접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검사는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 이 중에
의사가 있으면 나와 마들렌 씨를 진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마들렌 씨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들렌 씨는 검사를 향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검사님,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정신이 돈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이
일의 경위를 자세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저는 틀림없는 장발장입니다.
저는 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죄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집의 난로 안을 찾아보시면
증거가 나올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세 사람의 죄수를 향해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맞히고 각자의 팔과 등에 난
상처자국뿐만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무신까지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이제 모든 이야기는 끝난 셈입니다. 저는 분명히 진짜 장발장입니다."
마들렌 씨는 여린 미소를 띠면서 주위를 띠면서 주위를 둘러보ㄴ았습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채 말이 없었습니다. 재판관도 검사도 배심도 모두들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들의 역할을 잊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마들렌 시장이 장발장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장발장이 자기 대신에 감옥에 가야 할 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자청해서 이름을 밝히고 나선 숭고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도 또한
똑똑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을 끼얹은 듯 아주 고요해진 법정 안에서 장발장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했습니다.
"저를 체포하시지 않는다면 일단 돌아가겠습니다. 정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제 주소에 대해서는 검사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터이니
언제라도 담당관을 보내 주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문 쪽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문은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는 그 곳을 빠져 나가 법정 밖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이윽고 샹마티외는 석방되었으나 그는 무슨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팡틴은 열이 매우 높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와 주던 마들렌 시장이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일이 그녀에게는
몹시 걸렸습니다.
아침 해가 뜰 무렵 수녀가 약을 조제하고 있는 곳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마들렌 시장이었습니다. 그는 수녀의 안내를 받아 팡틴의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야윌 대로 야위어 꺼칠해진 팡틴의 자는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들렌 씨의 머리도 하룻밤새 하얗게 세어
버렸습니다.
이윽고 팡틴은 눈을 뜨고 그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마들렌 씨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힘없는 목소리로 재촉하듯 말했습니다.
"저어, 코제트는, 코제트는 어디?"
마들렌 씨는 당황했습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때마침 그 때
의사가 들어와 대신 대답해 주었습니다.
"자, 침착하세요. 아이는 저 쪽에 있어요."
"그럼 당장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팡틴은 결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아직은 안 됩니다. 아이를 만나면 흥분해서 몸에 해롭습니다. 좀더
기다리세요."
바로 그 때 밖의 정원 쪽에서 여자 아이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아, 저 목소리는 코제트야! 틀림없어! 저건 코제트의 목소리야! 얼마나
컸을까? 앞으로는 함께 살 수 있어. 그리고."
거기까지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를 잃어 갔습니다.
"팡틴!"
하고 마들렌 씨는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팡틴은 입을 다문 채, 마들렌 씨의
팔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다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들렌 씨가 뒤를 돌아보니 그 곳에 서 있는 것은 쟈베르였습니다.
쟈베르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은 냉랭한 표정 뒤에 감출 수 없는 승리의
기쁨에 찬 기운이 넘쳐 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내 생각은 틀림없었던 거야
라고 말하는 듯이.
"시장님, 도와 주세요!"
팡틴의 비명에 마들렌 씨, 아니 장발장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안심해요. 저 사람은 당신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에요."
그러고 나서 쟈베르를 향해 말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당신의 용건은 알고 있소."
"잔소리 말고 빨리 나와!"
방에 들어선 쟈베르는 태도가 돌변해 갑자기 시장의 목에 팔을 걸었습니다.
"시장님!"
하고 팡틴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습니다.
"잠자코 있어! 시장 따위는 여기 없으니까!"
하고 쟈베르는 차갑게 웃었습니다.
"부탁이 있는데."
장발장은 목에 감긴 상대의 손을 뿌리치려고도 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어떤 부탁이냐? 말해봐라!"
"나를 체포하는 것을 3일 간만 기다려 주시오. 이 여자의 아이를 찾으러
갔다 오겠소."
"웃기지 마! 그 사이에 달아날 속셈이로군!"
팡틴은 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가다니요? 그럼 그 애가 여기 없단 말인가요? 시장님,
우리 코제트는 어디에 있는 거죠?"
"시끄럽다! 시장 같은 것은 이제 없어! 여기 있는 건 장발장이라는
도둑이야! 그 놈을 이렇게 잡으러 온 거라구!"
팡틴은 갑자기 상반신을 일으켜 장발장과 쟈베르를 번갈아 쳐다보며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듯이 입을 열을 벌렸으나 이가 부딪치기만 할 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양팔을 앞으로 내미는가 싶더니 그대로 푹 쓰려져
버렸습니다. 눈은 크게 뜬 채 더 이상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팡틴은 이미
숨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장발장은 자신의 목을 잡고 있던 쟈베르의 손을 휙 뿌리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여자를 죽인 것이오."
"이봐, 농담하지 마.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수갑을 채울 테다."
방의 한구석에 낡은 침대가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그 침대에 다가가더니
아주 간단한 받침 철봉을 떼어 내 손에 쥐었습니다. 그 힘을 보자 쟈베르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장발장은 철봉을 한 손에 쥔 채 팡틴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가 뒤를 돌아보며 쟈베르에게 말했습니다.
"잠시 동안 나를 그냥 놔 두시오."
그렇게 서슬이 퍼래서 큰 소리치던 쟈베르도 숨을 죽이고 장발장이 하는
일을 지켜 볼 뿐이었습니다.
장발장은 팡틴 앞에 무릎을 꿇고 무엇인가 속삭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머리를 살짝 들어 베개에 눕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크게 뜬 채로 있던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이제 됐소. 자, 앞으로는 어떻게 하든지 따르겠소."
하고 장발장은 일어서서 쟈베르에게 말했습니다.
생플리스 수녀
쟈베르는 장발장을 경찰 유치장에 넣어 버렸습니다.
마들렌 시장이 체포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에 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라스 재판소에 있었던 일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때
까지 마들렌 시장이 해 온 훌륭한 일 등에 대해서는 곧 잊어버리고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제멋대로 마구 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일이었습니다.
마들렌 씨의 집을 지키는 할머니가 몹시 낙담해서 문 옆의 작은 창가에 앉아
있을 때 입니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고 팔 하나가 안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팔을 싸고 있는 소매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것은 마들렌
씨의 팔이 틀림없었습니다.
"어머나, 시장님."
할머니는 매우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무래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서 내 마음대로 나왔어요.
미안하지만 생플리스 수녀님을 불러 주시겠어요?"
할머니에게 있어서 마들렌 시장은 지금도 여전히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부탁을 받자마자 즉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수녀를 부르러 갔습니다.
마들렌 씨는 층계를 올라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 앉더니 종이에다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나고 생플리스 수녀가 들어왔습니다. 수녀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으며 지금까지 울고 있었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마들렌 씨는 무엇인가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주교님께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수녀님이 읽어 보셔도
괜찮습니다."
수녀가 그 종이를 들고 읽었습니다.
"방에 남겨 둔 종이를 전부 맡아 주십시오. 오늘 병원에서 죽은 팡틴의 장례
비용은 제가 맡기는 이 돈으로 처리해 전부 써 주십시오. 그리고."
마들렌이 보여 준 종이의 글을 다 읽은 생플리스 수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장님, 불쌍한 그 여자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가겠어요. 나는 쫓기고 있는 몸입니다. 만약 그 방에서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죽은 사람의 영혼에 더욱 상처를 주는 일이 될
테니까요."
하고 그가 대답한 바로 그 순간 대문 근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습니다.
"누구 한 사람 들어가지도 않았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문지기
할머니였습니다.
"거짓말! 2층에 불이 켜져 있잖아!"
하며 거칠게 소리치는 목소리는 쟈베르였습니다.
마들렌 씨는 급히 손에 든 촛대의 촛불을 끄고 방의 구석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수녀는 책상 옆으로 가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문을 밀어 젖히며 쟈베르가 뛰어들어왔지만 그 곳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수녀를 보자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는 수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실례하지만 이 방에 아까 아무도 없었습니까?"
"네, 저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고 수녀는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제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하느님을
섬기는 수녀를 더 이상 의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는 방을 나갔습니다.
생플리스 수녀는 존경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그로부터 2시간쯤 지났을 때 몽뜨르유 마을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숲
속을 무엇인가 무거워 보이는 꾸러미를 옆에 낀 남자가 땅바닥을 살피는 듯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날로부터 4일 뒤 마들렌, 즉 장발장은 파리에서 몽페르메이유로 가는
마차 안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그는 이미 전의 그
묵직한 꾸러미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경찰도 그것을 감춘 장소를 알 리가
없었습니다.
장발장은 원래 있었던 툴룽 교도소로 다시 보내졌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23 년 가을, 툴롱 항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랜 항해 끝에 선체가 파손된 오리온 호라는 군함이 수리를 받기 위해 툴롱
항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배에 짐을 싣고 내리는 따위의 작업에는 교도소의
죄수들도 동원되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오리온 호를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의 눈앞에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리온 호 배 위에서는 수병(해군의 병사)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몇 명인가 모여서 돛대에 돛을 달려고 한순간 그 중의 한 사람이 발이
미끄러져 몸이 완전히 거꾸로 되어 밑으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돛대로부터 늘어져 있던 로프를 재빨리 붙잡아 공중에 엉거주춤한
상태로 매달렸습니다. 그 곳은 상당히 높은 곳으로 게다가 아래는 깊은
바다였습니다.
수병이 매달려 있는 로프는 그네처럼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필사적으로 로프를 잡고 기어오르려고 했으나 점점 힘이 빠져 드디어는 두
손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밑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도 곧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얼굴을 손으로 가렸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한 남자가 원숭이같이 가벼운 몸짓으로 쭈르르 돛대를 타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붉은 옷을 입고 녹색 모자를 쓴 무기
징역수였습니다.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돛대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로프의 끝부분을 그 곳에 매고 밑으로 늘어뜨렸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로프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
축 늘어진 수병에게 다가가더니 로프 끝을 그의 몸에 묶었습니다. 한 발짝만
늦었더라면 수병은 기력이 다해 바다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몸놀림이 가벼운 죄수는 놀라운 정도의 힘으로 수병을 끌어 안고 돛대를
내려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안심한 사람들의
환성이 부둣가를 매웠습니다.
죄수들을 지키는 툴롱 교도소의 나이 많은 간수 한 사람은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에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대단한 공적을 세웠어. 저 사람은 교도소에서 내보내 줘야 해."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죄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까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저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수병을 구출한 것이 힘들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느라 현기증이 났는지 갑자기 남자는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가슴을 죄고 있을 때, 그의
몸은 바다에 완전히 거꾸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즉시 보트를 타고 근처 일대를 수색했으나 결국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주위는 수심이 깊고 오리온 호 외에도 다른 군함이 정박해
있었으므로 헤엄쳐 나 갈 수가 없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음 날 툴롱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1823 년 11월 17일
어제 오리온 호 선상에서 작업 중이던 죄수 한 사람이 수병을 구하고
돌아오던 도증에 잘못해서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그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죄수의 이름은 장발장이라고 한다.
코제트
1823 년 크리스마스날 밤에는 작은 시골 마을인 몽페르메이유도
떠들썩했습니다.
선술집도 겸하고 있는 테나르디에의 여관에서는 마부와 행상인 등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어 술을 마시며 법석대고 있었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손님들을 상대로 자신도 술을 마시고 말다툼을 하면서 뭔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코제트는 주방의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몸에는 매우 남루한 옷을 걸치고
맨발에 나막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뜨개질하고
있는 것은 테나르디에의 딸들이 신을 양말이었습니다.
난로 옆의 벽에는 가죽 채찍이 걸려 있었습니다.
밖은 이미 깜깜했습니다. 코제트는 물 길러 갈 일만이 걱정이었습니다. 이
근처에서는 멀리 떨어진 숲 속까지 샘물을 길으러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물통은 점점 비어 가고 있었습니다. 코제트는 뜨개질을 하면서도 물 길러 갈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물이 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행상인인 듯한 남자가 들어와 말에게 먹일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코제트, 어서 물을 길어 와!"
하고 테나르디에 부인이 코제트에게 소리쳤습니다.
코제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 큰 물통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 빵을 사 가지고 와. 자, 돈 여기 있다."
코제트는 돈을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문 입구로 나갔으나 잠시 그 곳에 멈추었습니다. 어두운 숲 속까지
가는 것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빨리 갔다 와!"
안으로부터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코제트는 쫓기다시피 밖으로
나왔으나 크리스마스날 밤이어서 거리는 밝고 활기에 차 있었습니다. 코제트가
몹시 가지고 싶어하는 인형이 늘어서 있는 가게도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앞을 지나자 길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집집마다 문틈으로 아주
희미한 불빛만이 새어 나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을의 집들도
보이지 않고 주위에는 깜깜한 들판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쪽 멀리
으슥한 숲이 보였습니다.
겨우 숲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숲 속은 한층 더 어둡고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몸이 떨려 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야단을 맞아도 좋다,
이대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되돌아간다면 테나르디에 부인의 얼굴은 숲 속의 어떤 도깨비보다 더 무섭게
변할 것입니다.
숲 속에서도 샘까지의 샛길은 익숙해져 있으므로 헤매는 일은 없었습니다.
샘은 천연적으로 솟아나는 물로 30센티미터 정도의 깊이였습니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낮에 물을 길을 때 하는 것처럼 왼손으로 떡갈나무
가지를 더듬어 찾아 그것을 꼭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윗몸을 앞으로 구부려
통을 샘물 속에 담갔습니다.
그 때 주인에게서 받은 돈이 앞치마 주머니에게 샘물 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서 코제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코제트는 물이 든 물통을 들어올려 풀 위에 놓고 잠시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두운 하늘에 불그스름한 별 하나만이 기분 나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섭다기보다는 차라리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두려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코제트는 굳게 마음먹고 물통의 손잡이를 잡은 다음 깜깜한 어둠
속을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시작했습니다.
큰 소리로 하나, 둘, 셋, 넷 하고 세면서 걸어갔습니다. 열까지 세자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서 소리내어 외쳤습니다.
그러나 불과 두세 발짝만 걸으면 물통의 무게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열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가는 쉬고 또 열 걸음 걸어가서는
쉬어야 했습니다. 소녀의 가늘고 야윈 팔은 어깨로부터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작은 몸은 한 발짝도 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버렸습니다. 어두운 숲 속의 길은 아직도 여전히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코제트는 외로움과 슬픔이 가슴 속에 복받쳐 올라 그 자리에 쓰러져 울고
싶어졌습니다. 물통 따위는 그 곳에 내팽개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물을 길어 가지 않으면 주인 여자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혼이 날
것인가? 또 벽에 걸려 있는 그 가죽 채찍으로 죽도로 매를 맞을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오, 하느님! 하느님!"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지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이 갑자기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물통의 손잡이를 함께 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가 큰 남자가 소녀의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코제트는 웬지 이 사람이 조금도 무섭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뜸직해 보이는 그 사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물통은 너에게는 너무 무거운 것 같구나. 손을 놓아라. 내가 들어다
주마."
코제트는 물통을 놓았습니다.
"정말 무겁구나. 이것은 어린 아이가 들기에는 무리다. 넌 몇 살이니?"
"아홉 살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곳까지 물을 길으러 오니?"
"예, 숲 속 깊은 곳의 샘까지요."
"그래서 이 물통을 어디까지 가지고 가니?"
"저어기, 아주 멀리 가야 해요."
그 남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럼 넌 어머니가 안 계시니?"
"예,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남자는 멈춰서서 어린 코제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네 이름이 뭐니?"
"코제트예요."
그 남자는 코제트라는 이름을 듣자 깜짝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둠
사이로 소녀를 찬찬히 뜯어보며 다시 말했습니다.
"집은 어디니?"
"몽페르메이유예요."
"그럼 여기서 몽폐르메이유 마을까지 돌아가는 거니?"
"예."
"누가 너에게 이렇게 고된 일을 시키니?"
"테나르디에 부인이요."
"그 집은 무슨 일을 하지?"
"여관이에요."
"그럼 아저씨는 오늘 밤 그 곳에서 묵어가야겠다. 나를 좀 안내해 다오."
그 사람은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었으나 코제트는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웬지 마음이 즐거워지고 피로는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그 여관에는 하녀가 없니?"
"없어요. 하지만 여자 아이가 둘 있어요."
"그 주인 집 딸들이로구나. 그 애들은 뭘 하니?"
"날마다 예쁜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요."
"그럼 너는?"
"저는 하루 종일 일을 해요."
그렇게 대답하자 마음이 슬퍼져 코제트의 눈에 눈물이 괴었습니다. 그러나
코제트는 다시 말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일이 끝났을 때에는 조금은 놀 수 있어요."
"뭘 하고 노니?"
"납으로 된 조그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요. 저는 장난감이 그것밖에
없어요. 주인집 아이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빌려 주지 않으니까요."
드디어 교회 앞을 지나 가게가 늘어서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가제들이 문을 닫지 않았구나."
"예, 크리스마스니까요."
두 사람은 빵가게 앞을 지나쳤으나 코제트는 주인 여자가 빵을 사 오라고 한
이야기를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여관 근처까지 오자 코제트는 남자의 팔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왜 그러니?"
"집에 다 왔으니까 이제 물통을 저에게 주세요."
"다른 사람이 물통을 들어다 준 것을 알면 주인 아주머니에게 매를 맞아요."
"흐음, 그래?"
문이 열리고 주인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지금까지 뭘 하다 오는 거니!"
코제트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습니다.
"이 아저씨가 여관에 묵고 싶다고 해서?"
"으응, 그러니? 손님을 안내했니?"
그녀의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했으나 남자의 차림새를 보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우리 집은 싸게는 안 돼요. 아시겠지요?"
남자는 테나르디에의 여관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는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툴롱
항에서 일부러 바다에 떨어져 익사한 것처럼 꾸미고 물 속으로 잠수해 헤엄쳐
나가 한 척의 작은 배를 겨우 찾아 밤중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한밤중에
남몰래 해안으로 헤엄쳐 가, 다행히도 약간의 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간신히
허술한 옷을 사 입고 모습을 감추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몽페르메이유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숲 속에서 코제트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발장은 테이블을 향해 앉아 다시 소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이 아이가 바로 코제트란 말인가. 결코 사랑스러운 소녀라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몸은 야위고 얼굴은 창백한 데다 자주 울어서인지 눈은 부어서
부석부석했습니다. 손에는 동상이 생기고 다리는 갸날펐습니다. 그리고 주눅이
들어 흠칫거리는 태도가 온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누더기옷 사이로 보이는
맨살에는 주인 여자에게 맞은 상처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습니다. 팡틴이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테나르디에 부인은 갑자기 버럭 소리쳤습니다.
"그래, 빵은 어떻게 했니?"
코제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습니다. 빵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했습니다.
"빵집이 문을 닫아서 빵을 사지 못했어요."
"정말이냐? 내일이면 알 수 있겠지. 거짓말을 했다가는 그냥 두지 않을
테다. 그럼 어서 돈을 내 놔."
코제트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
"너, 없어졌다고 말하려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얼렁뚱땅 날 속일 셈이냐?"
여주인은 무섭게 소리를 지르며 벽에 걸려 있는 채찍에 손을 댔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저도 모르게 그만 어딘가에 떨어뜨렸나 봐요. 앞으로
조심할 테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코제트는 몸을 움츠리며 필사적으로 외쳤습니다.
이 때 아까부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장발장이 가만히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며 말을 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 아까 그 아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떨어진 것
같았는데.혹시 이것이 아닙니까?"
그는 은화를 주인 여자에게 내밀었습니다.
"아아, 맞아요.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주인 여자가 말했으나 그것은
코제트에게 준 것보다도 훨씬 큰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려는 시치미를 떼고
돈을 받더니 코제트에게 얼굴을 돌리고 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다!"
이 때 여관집의 두 딸이 그 곳에 들어왔습니다. 코제트와는 전혀 딴판으로
예쁘고 귀여운 옷을 차려 입은 모습에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둘
다 인형을 안고 있었습니다.
코제트는 너무나도 인형이 갖고 싶었지만 아직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으므로 부러운 듯이 두 소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 게으름 피우면 안 돼! 열심히 일하란 말이야, 알았지!"
하고 주인 여자가 소리쳤습니다.
장발장은 주인 여자를 돌아보며 타협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좀 놀게 해 주시지요."
주인 여자는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말하려는 듯 벌컥 화를 내며 말을
쏘아붙였습니다.
"당치 않아요. 공짜로 먹여 주고 있는데. 거기다가 태평하게 놀릴 수는
없어요."
"뭘 뜨게 하는 것이죠?"
"우리 아이들 양말이에요."
"저것을 다 뜨면 얼마어치의 물건이 됩니까?"
"글쎄요, 한 30수는 되겠지요."
"그럼 그것을 나에게 5 프랑에 넘겨 주십시오."
그 소리를 듣고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들이 장발장을 돌아보며
어리석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인 테라르디에게 뻔뻔스럽게 앞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손님이 이처럼 희망하시니 거절할 수가 없네요. 말씀하신
가격대로 넘겨 드리지요."
"그럼 여기 5 프랑 있소이다. 자, 코제트, 네가 일할 대가를 내가 지불했으니
마음껏 놀아도 좋다."
코제트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인 여자를 쳐다보았습니다.
"네 마음대로 해!"
하고 주인 여자는 내뱉듯이 말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귓가에다
속삭였습니다.
"저 남자 차림새는 볼품없지만 사실은 부자인가 봐요."
"애 생각도 그래."
하고 테나르디에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코제트는 주뼛주뼛 일어서더니 뒤에 놓인 상자에서 나무 조각과 나무 토막
따위를 꺼내 와 조용히 인형 놀이를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보니 테나르디에의 딸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이 바로 옆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코제트는 살짝 다가가 잠시 망설이더니
재빨리 손을 뻗쳐 그 인형을 안아 보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아 보는
인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 딸 이이 하나가 곧 알아차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나, 엄마, 코제트가 내 인형을!"
코제트는 난생 처음 인형을 안아 보고 너무나 기뻐서 정신이 없어 그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코제트, 너 뭘 하는 거냐!"
코제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고 당황해서 인형을 내려놓고 두려움에 떨며
훌쩍이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부인?"
하고 장발장은 주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것이 글쎄 우리 아이 인형에 손을 댔잖아요."
"그것이 어쨌단 말입니까? 그저 만지기만 한 정도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천만에요. 저런 더러운 손으로 만지다니 참을 수 없어요."
그 말을 듣자 장발장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틈을 타 테이블 밑에서 울고 있는 코제트를 힘껏 걷어찼습니다.
장발장은 곧 돌아왔습니다. 그의 팔에는 멋진 인형이 안겨져 있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무척 가지고 싶어하는 인형으로 아직 아무도 사지
못했던 '여왕님 인형'이었습니다.
그것을 코제트 앞에 놓고 그는 말했습니다.
"자, 네게 주려고 사 온 인형이다."
코제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장발장을 쳐다보았습니다.
주인 여자와 두 딸들도 어안이 벙벙해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코제트는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면서도 걱정스러운 듯이 주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받아도 괜찮은가요?"
"괜찮겠지, 뭐!"
하고 주인 여자는 분해서 내뱉는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정말 제가 가져도 돼요. 아저씨?"
하고 코제트는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장발장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코제트는 처음에는 주뼛주뼛 인형에 손을 대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보더니
드디어 인형을 의자 위에 놓고 자기는 그 앞에 앉아 기쁜 듯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술을 마시던 손님들도 전부 돌아갔습니다. 장발장도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내려가려고 하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층계 밑의 초라한
방을 들여다보니 코제트의 잠자리가 보였습니다. 더럽고 누추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으면서도 코제트는 인형을 꼭 껴안고 행복한 듯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맡에는 떨어진 나막신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코제트에게 도대체 누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것인가! 그의
가슴에 뜨거운 감정이 끓어올랐습니다.
장발장은 커다란 금화를 나막신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발소리를 죽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증명서
다음 날 아침, 여관 주인 테나르디에는 어젯밤 손님의 숙박료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테나르디에 부인도 놀랄 정도의 비싼 정도의 비싼
금액이었습니다.
"당신, 이건 너무 지나친 것 같지 않아요?"
"상관 없어. 돈이 있는 놈에게서는 받아 낼 수 있는 만큼 받아 내는 거야."
그 손님은 놀랄 정도의 비싼 숙박료를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지불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인 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장사는 잘 되나요?"
"아휴, 웬걸요. 지독한 불경기라서요. 손님 같은 분은 좀처럼 와 주시질
않아요. 게다가 우리 집에는 귀찮은 식객이 있어서."
손님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으나 화가 난 때문인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귀찮은 식객이라면 제가 데리고 갈까요?"
"정말이세요, 손님?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요."
"그럼 그 아이를 불러 주십시오."
"코제트! 코제트!"
하고 부인은 큰 소리로 코제트를 불렀습니다.
안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테나르디에가 억지 웃음을 띠며 나타났습니다.
"손님, 저희들이 그 아이를 어릴 때부터 키웠습니다. 사실은 떼어 놓고 싶지
않습니다. 애를 키우는 데 돈도 상당히 많이 들었고."
"그러면 보내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만한 돈을 내지 않으면."
"그 돈이 얼마죠?"
"1500 프랑 정도 받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것은 기가 질릴 정도의 큰 금액이었지만 손님은 잠자코 지갑을 꺼내 그
돈을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자, 코제트를 불러 주시오."
곧 주인 여자의 손에 이끌려 코제트가 나타났습니다. 어젯밤에는 멋진
인형을 받고 오늘 아침에는 나막신 속에서 금화를 발견한 코제트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손님은 코제트에게 보따리를 건네 주면서 말했습니다.
"자아, 넌 오늘부터 이 아저씨의 딸이 되는 것이니까 이 안에 있는 옷으로
갈아 입거라."
보따리 안에는 여덟 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입을 따뜻하고 예쁜 털옷과 멋진
구두, 양말 등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해가 높이 솟았을 때, 초라한 옷차림을 한 손님이 예쁜 옷을 입은
소녀의 손을 잡고 몽페르메이유 마을에서 파리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가 여관에서 일하던 코제트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여관에서는 테나르디에게 부인을 불러 손님으로부터
우려낸 1500 프랑을 자랑스러운 듯이 보였습니다.
"흐음.그런데 좀더 받아 낼 걸 그랬나 봐요."
하고 부인은 말했습니다. 그녀는 테나르디에보다 더한 욕심쟁이였던
것입니다.
"정말 그렇군. 상당한 부자인 것 같던데 우리가 요구하기만 하면 만
프랑이라도 주었을지 모르겠군."
"그러고 보니 그 남자는 처음부터 코제트에게 입힐 옷을 준비해 가지고
있었어요. 어딘가 수상한 남자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 남자는 이상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테나르디에는
황급히 집을 뛰쳐 나가 두 사람의 뒤를 쫓았습니다. 언덕 기슭 가까이에서 두
사람을 겨우 따라잡았습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그 손님에게
말했습니다.
"손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코제트를 도로 데려가야겠습니다. 그 대신
돈을 돌려 드리겠어요."
코제트는 두려워 떨며 그 손님에게 매달렸습니다.
"무슨 일입니까?"라고 그 손님은 정색을 하고 되물었습니다.
"아, 예. 원래 코제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맡아 기르던
아이이기 때문에 남에게 넘겨 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아이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이 아이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라도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여행객은 잠자코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테나르디에는 다시 큰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꺼낸 것은 돈이 아니라 작은 종이 쪽지였습니다.
"자, 여기 당신 말대로 증명서가 있소이다. 이것을 읽어 보시오."
테나르디에는 그것을 받아 들고 읽었습니다.
이 편지를 가진 사람에게 코제트를 보내 주십시오. 지금까지의 비용은 전부
이 사람이 지불합니다.
팡틴으로부터
증명서는 틀림없이 팡틴의 글씨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테나르디에는 한층 더 악인의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아, 정말 그렇군요. 하지만 손님, 여기에도 씌어 있듯이 지금까지의 비용은
전부 지불해 주셔야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 손님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엄한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 아이의 어머니는 120 프랑을 빌렸는데 나는 300
프랑을 보냈소. 여러 가지 비용을 계산하더라도 당신에게 줄 돈은 35 프랑밖에
되지 않는데 나는 아까 1500 프랑이나 지불하지 않았소?"
테나르디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마구
지껄여됐습니다.
"그런 핑계는 아무 소용이 없소! 어쨌든 3000 프랑을 더 내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코제트를 데리고 가겠소!"
여행객은 그의 그런 말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굵은 지팡이를
바꾸어 잡으며 코제트에게 말했습니다.
"자, 가자. 코제트."
테라르디에는 상대의 당당한 태도와 굵은 지팡이를 보자 겁에 질려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커다란 사냥감을 잡으려다 놓친 것만이
못내 분했습니다.
드디어 장발장은 코제트를 데리고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한적한
교외에 있는 고르보 저택이라는 크지만 매우 황폐한 집에 살았습니다.
노인과 소녀의 즐거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코제트의 즐거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코제트의 생활은 이제까지 지내 온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여관 앞을 청소하지 않아도 되고 주인 여자의 눈치를
보아 가며 흘끔흘끔 주위를 살필 필요도 없었습니다. 코제트는 밝고
구김살없는 소녀로 변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노래도 부르고 웃기도 하였습니다.
이 낡은 집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지만 조금도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코제트는 장발장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장발장도
코제트를 자신의 딸처럼 귀여워했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새 사람으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단지
코제트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코제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에 있는 팡틴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발장은 몽뜨르유 시장으로 있을 때 모았던 많은 재산의 일부를 나중 일에
생각해 어떤 비밀 장소에 숨겨 두었던 것입니다. 현재 생활에 곤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그 돈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근처
사람들에게는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한다고 말하고 전말 그런 사람인
것처럼 옷차림도 수수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저택의 한쪽 방에 한 노파가 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장발장의 집 청소 등의 일도 해 주었는데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아주 좋아해
두 사람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장발장이 자기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할머니는 문틈으로 살짝 그
안을 엿보았습니다. 장발장은 그 때 웃옷자락을 뜯어 천 프랑짜리 지폐를 몇
장이나 꺼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즉시 할머니의 입을 통해 이웃 여자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당시 교회 근처에 언제나 저기 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항상 얼마간의 돈을 살짝 적선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그 곳을 지날 때 또 동전을 던져 주었더니 그
때까지 웅크리고 앉아 있던 거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에게 흘끗 시선을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곧 얼굴을 파묻어 버렸습니다. 극히 짧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장발장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다시 한 번 거지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거지는 얼굴을 푹 파묻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어디선가 본 얼굴이야. 그래, 그건 틀림없는 쟈베르의 얼굴이야.
그렇지만 그가 거지 노릇을 하고 있을 리는 없어. 아마 착각이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두 번 다시 그 일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3, 4일이 지난 어느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는데 누군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 복도에서 그의 방을 살짝
들여다보는 눈치였습니다.
그는 촛불을 끄고 꼼짝 않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멀어져 가는
발소리에 그는 문으로 뛰어가 열쇠 구멍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무서운 그 남자, 쟈베르 형사와 똑같았습니다. 이제
한시도 더 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곧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방 안을 정리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밖으로 나와 거리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다행히도 안개가 낮게 깔리기 시작하고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코제트의 손을 잡고 고르보 저택을 뒤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독사의 이빨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정처없이 걷고 또
걸어갔습니다.
그 남자가 쟈베르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몇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든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코제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저씨의 손에 매달려 가듯이 열심히 걷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이 아저씨와 함께라면 어디를 가도 괜찮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구불구불한 길을 골라 걸었습니다. 시각은 임 11시 가까이 되어 마을은
깊은 잠에 빠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붉은 등이 켜진 파출소 앞을 지날 때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뿔싸!'
장발장은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동시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남자 셋이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달빛이 그들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앞쪽의 키가 큰 남자는 말할 것도 없이 쟈베르 형사였습니다.
장발장은 코제트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양쪽에는 높은 담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주위는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뛰어가니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오른쪽 길을 택하자 다시 뛰었습니다. 추격자들과의 거리는 꽤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길은 막다른 골목길이었습니다. 당황해서 되돌아가 왼쪽 길로 들어가려고
하자 앞쪽에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역시 추격자의 무리인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추격자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이러고 있다가는 그냥 잡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망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망가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돌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담 위에 커다란 나뭇가지 뻗어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가로등에 램프를 올렸다가 내렸다 하는 밧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으로 달려가 칼로 줄을 잘라 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담 안으로 던져 놓고 줄 끝을 코제트의 몸에 붙들어 맨 다음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높은 담에 손과 발을 걸치는가 싶더니 단숨에 기어올라가
나뭇가지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담 위에 서자 줄을 끌어당겨 스르르 코제트의
몸을 끌어올렸습니다.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단련되어 온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가벼운 몸의 움직임 등이 지금 여기서 단단히 한몫을 한 셈입니다.
그는 코제트를 껴안은 채 담 안쪽의 넓은 뜰처럼 보이는 곳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담 바깥쪽에서는 뚜어 돌아다니는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들려
왔습니다.
"막다른 골목을 다시 한 번 찾아봐! 출구는 없으니까 도망가진 못했을 거야!"
그렇게 소리치는 것은 분명한 쟈베르의 목소리였습니다.
두 사람이 내려선 곳은 넓은 정원의 한구석인 듯 전혀 인적이 없는 장소였습니다.
달빛 사이로 보니 멀리 저 쪽에 큰 건물이 있고 가까이에는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넓은 야채밭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원 외의 다른 곳은 몹시
황폐했습니다.
잠시 그늘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피니 담 밖의 발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장발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드디어 체념한 모양이었습니다.
한밤중이 지난 새벽 1시나 2시쯤 되었을 시각입니다. 코제트는 추위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장발장만을 믿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일어서서 자기의 웃옷을 벗어 코제트의 등에 덮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올 테니까."
바로 그 때 그의 귀에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짝 엿보니 남자의 그림자 같은
것이 채소밭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방울은 그 남자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다리가 불편해 보였습니다. 사람의 그림자가 멈춰서자 방울 소리도
그쳤습니다.
저 남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왜 소나 양처럼 방울을 달고 다니는 것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떤 곳일까? 그럼 생각에 빠져들면서 문득 코제트의 손을 만져 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코제트! 코제트!"
하고 부르며 몸을 흔들어 보았으나 코제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몸도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죽은 것일까?"
아니, 코제트는 죽지는 않았으나 추위와 피로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코제트를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미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야채밭의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여보세요, 오늘 밤 여기서 좀 묵어 갈 수 없을까? 사례로 백 프랑을
드리겠습니다만."
마침 달빛에 비친 장발장의 얼굴을 흘끗 본 남자는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어, 혹시 당신은 마들렌 시장님이 아니신가요? 이런 곳에서 만나
뵙다니.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셨습니까?"
뜻밖의 장소에서 전혀 낯모르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대자 장발장도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은 누구시죠?"
하고 그는 상대편 남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저는 전에 마차에 깔려 생명이 위험했을 때 시장님께서 구해 주신 포슐방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시장님께서 일자리를 주선해 주신 수녀원입니다."
"아, 당신이었군요.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군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어째서 허리에 방울을 달고 다니나요?"
"이것은 일종의 신호입니다. 이 곳은 여자들만 있는 수녀원이기 때문에 남자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방울 소리가 나면 수녀들은
저를 피하는 것입니다."
장발장은 자기가 포슐방 영감을 부탁한 그 수녀원에 우연히 들어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여길 들어오셨습니까? 여기는 남자는 일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영감님은 남자가 아닙니까?"
"저는 특별하지요. 저만은요."
"그렇지만 사실 나는 당분간 여기에 꼭 좀 있었으면 좋겠소."
포슐방 영감은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소.
이번에는 당신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군요."
"시장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바로 앞의 오두막집입니다. 비좁은 곳이긴 하지만 빈 방도 있습니다."
"그럼 부탁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내 이야기를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과 또 하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물어 보지 말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와 함께 가 주지 않겠소?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해요."
"아니 아이가 있습니까?"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이상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잠자코 뒤를 따라왔습니다.
곧 코제트는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옮겨져 따뜻한 불을 쬐자 원기를 되찾아 푹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과 포슐방 영감은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장발장으로서는 이미 쟈베르에게 들킨 이상 파리 시내로 나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싫어도 이 수녀원에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곳은
남의 눈에 뛸 염려도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장소가 아닌가.
포슐방 영감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수녀원 안으로, 더구나 아이까지 데리고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그리고 저
마들렌 시장이 어째서 이런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포슐방 영감은 수녀원의
문지기가 된 이후로는 몽뜨르유 마을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사업에 실패해서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정치적인 일로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리라.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마들렌 씨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자기는 마들렌씨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장발장에게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우선 어떻게든 시장님을 저와 함께 이 곳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는 남성 금지 구역이니까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여기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발장은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자기가 이 곳에 숨어들었다는 것이 알려진 이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스스로 잡히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오, 그것은 안 돼요. 이대로 여기 있게 해 줄 수는 없겠소?"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곤란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괜찮습니다. 수녀님 한 분이 임종이 임박해 모두들 하루 종일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까 이 근처에 사람들이 올 염려는 없습니다. 다만 기숙사의 학생들은
언제 어느 때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여기에 학생 기숙사도 있나요? 그러면 이 아이의 교육도 부탁했으면
하는데."
"따님인지 손녀인지는 모르겠지만.이 어린 소녀라면 문제 없습니다. 풀
베는 바구니에 넣어서 제가 등에 지고 나가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집에 맡겨 두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몸집이 큰 장발장을 어떻게 밖으로 내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이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단 이 곳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큰 건물 쪽에서 종이 울렸습니다.
"드디어 수녀님이 돌아가셨군요.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여러가지 지시가 있을
것입니다. 마침 잘 됐습니다. 이 기회에 시장님의 일을 잘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꼼짝 말고 숨어 계십시오."
할아버지가 나간 뒤 마침 코제트가 눈을 떴으므로 장발장은 여러 가지 사정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잠시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와 말했습니다.
"시장님을 고용하도록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내일 원장 수녀님께서
만나시겠다고 합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부탁받은
어려운 일을 떠맡아 하는 대신 시장님을 이곳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다만 그 전에 어떻게든 여기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해 보는
수밖에는."
원장 수녀로부터 부탁받은 어려운 일이란 죽은 수녀가 자신의 시체는 밖의 묘지가
아니라 수도원의 제단 밑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나라의 법률을 어기는
일이 되지만 간절한 그 소원을 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해 주도록 포슐방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것이 원장
수녀의 말이었습니다.
"그 부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제 동생을 저와 함께 정원지기로 일하게 해 주고 그
아이도 기숙사에 넣어 달라고 단단히 부탁해 승낙을 받아 낸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곤란한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관을 무덤 파는 일꾼이 메고 나갈 때 안이
텅 비어 있으면 곧 발각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장발장은 물었습니다.
"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2 미터쯤 됩니다."
"그럼 그 안에 뭔가를 넣으면 되지 않겠소?"
"흙이나 돌멩이 말인가요? 그런 것을 넣으면 금방 발각이 됩니다. 죽은 사람을
대신 찾을 수도 없고."
"그런 것이 아니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살아 있는 사람을 넣는 것이오."
"어디의, 누구를 말입니까?"
"여기 있는 나를 말이오."
할아버지는 몹시 놀라 장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안 될 일도 없지 않겠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밖으로 나가면 두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겠소?"
포슐방 영감은 기가 막히는 한편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얼마나
위험한 모험인가. 안에서 숨이 막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장발장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관에 못을 박는 것은 관청에서 보낸 일꾼인가요?"
"아니오, 그 일은 바로 제가 합니다."
"그렇다면 적당히 헐겁게 못을 박아 주면 좋겠소."
"그래도 숨이 막힐 겁니다."
"아니오, 송곳으로 작은 구멍을 몇 개만 뚫어 놓으면 괜찮아요.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이죠. 그렇게 하면 숨도 쉴 수 있으니까요. 여하튼 관 속에 들어가 여기서 밖으로
나가는 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군요. 일이 어떻게 되든 그 다음은
하느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소."
그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보고 포슐방 할아버지도 그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단, 문제는 묘지로 옮겨간 후의 일이오."
"그 점이라면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묘를 파는 영감과 저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아주 술고래라서 술집으로 데리고 가 잔뜩 술에 취하게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묘지에 출입하는 데 필요한 통행증을 영감에게서 슬쩍 꺼내 저
혼자서 묘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장님을 관에서 나오게 해 둘이서
묘지를 빠져 나가면 됩니다."
"과연,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영감님, 이것으로 이제 일은 잘 될 것이오."
장발장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산 송장
다음 날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갈 무렵, 수녀원을 나선 장례 행렬은 조용하게
묘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물론 관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은 장발장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차는 묘지의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포슐방 영감이 문지기에게 시체를
묻기 위한 허가증을 보이고 있는데 낯선 젊은 남자가 나타나 관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어깨에 곡괭이를 메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영감이 물었습니다.
"무덤을 파는 사람이올시다."
포슐방 영감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이 무덤 파는 사람이라고? 메티엔느 영감일 텐데!"
"그 영감은 죽었소. 그래서 내가 그 후임으로 나온 거요."
뜻밖의 일에 포슐방 영감은 새파랗게 질려 젊은 남자의 얼굴을 꼼짝 않고
쳐다보았습니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티엔느 영감이 죽었다고? 흐흠, 그럼 우리 영감을 애도하는 뜻에서 기도하는
틈을 타 한잔 하러 가지 않겠소?"
"아니오, 일이 먼저요. 그리고 난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그래도 서로 사귀게 된 기념으로 한잔 하러 가세."
"내게는 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소이다. 술이라니 당치 않아요."
포슐방 영감은 아주 난처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관을 넣을 묘지에 다다랐습니다. 무덤 구멍은 이미 파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 관이 놓여졌습니다. 신부가 기도문을 외고 소년 합창단이 고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손으로 흙을 떠올려 관 위에 드문드문 뿌렸습니다.
포슐방은 관 속의 마들렌 씨를 생각하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식이 끝나자 일행은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남은 일꾼이 곡괭이를 손에
들었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이제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여보게, 잠깐만 기다리게나. 우선 한잔 하고 난 다음에 일을 하세.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자, 어서!"
"거 참, 끈질긴 영감이로군. 술은 일이 끝난 뒤에 해도 되지 않소?"
"너무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게. 한잔 하면 힘이 나서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니까. 자, 우선 술부터 한잔 하세."
"마음대로 하시오, 영감. 나는 우선 일을 끝내야 하니까."
젊은 남자는 더 이상 영감과는 말하지 않고 흙덩이를 파 놓은 구멍 속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난감해진 포슐방 영감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젊은 남자는 상체를
구부려서 흙을 떠올려 구멍 속으로 던져 넣고 있었습니다.
이 때 포슐방 영감은 젊은이가 앞으로 구부릴 때 웃옷 주머니로부터 하얀
통행증이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감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젊은이의 표를 살짝 빼냈습니다. 그것은 폐문 시각 이외에도 묘지에 출입할 수 잇는
증명서였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시치미를 떼며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네 통행증은 틀림없이 가지고 왔겠지?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네."
"물론 가지고 왔죠."
그렇게 말하고 젊은이는 웃옷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당황하며 바지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앗, 없다! 이상한데. 분명히 가지고 왔는데!"
"통행증이 ,ㄳ면 벌금 15프랑을 물어야 해."
영감은 일부러 위협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젊은이는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15 프랑! 5 프랑짜리 은화가 3개나 있어야 되잖아!"
"그래, 큰 돈이야.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어떻게 하면 좋지요, 영감님?"
"앞으로 5분만 지나면 문이 닫히네."
"그렇군요."
"5분 내에 구멍을 다 메울 수는 없네. 어쨌든 이렇게 깊으니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좀 여유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해 보세. 자네, 집이 어딘가?"
"여기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그럼 지금 빨리 집으로 가서 찾아오는 것이 좋겠네. 그 때 까지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테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젊은이는 정신없이 뛰어나갔습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포슐방 영감은 무덤 구멍 속으로 뛰어내려, 관
위에 덮인 흙을 마구 파헤치며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시장님.마들렌 시장님.괜찮으세요?"
그러나 관 속에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가슴이 섬뜩했지만 가지고 온 끌과 쇠망치로 관 뚜껑을 비틀어
열었습니다.
누워 있는 장발장의 모습이 나타났으나 눈을 꼭 감은 채,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돌아가셨구나! 도와 드리려고 한 것이 그만 이런 꼴이 되고
말았어!"
영감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마구 소리 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장발장이 갑자기 눈을 뜨고 영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한잠 푹 잔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 장발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틀림없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들렌 씨가 입을 열었으므로 포슐방 영감은
너무나 기뻐서 서 소리쳤습니다.
"시장님, 돌아가시지 않았군요! 살아 계셨군요! 아, 다행이다! 정말 잘 됐어요!"
"웬지 좀 추운 것 같군." 하고 장발장은 말했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준비해 온 술병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말했습니다.
"그럼 이걸 마시고 몸을 좀 녹이세요."
장발장은 그것을 마시고 몸이 따뜻해지자 완전히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둘이서 텅 빈 관에 열심히 흙을 끼얹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깜깜해진 묘지를 떠나왔습니다. 장발장은 포슐방 영감이 젊은이로부터 살짝
빼낸 통행증을 가지고 유유히 통과했던 것입니다.
포슐방 영감은 도중에 젊은이의 집을 찾아가 통행증이 묘 옆에 떨어져 있었다고
하며 그것을 돌려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두 남자와 한 여자 아이가 수녀원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포슐방, 장발장 그리고 코제트
이렇게 세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발장은 수녀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슐방
영감의 동생이라고 하며 정원지기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코제트도 수녀원의 기숙사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아 그 곳에서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은 '아버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도 받았습니다.
장발장과 코제트에게 평온하고 즐거운 날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코제트는 밝고
건강하고 총명한 소녀로 커갔습니다. 장발장의 가슴에는 부드럽고 온화하고 깨끗한
마음이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몇 년이 흘렀습니다.
마리우스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일을 계기로 그 때까지 세력을 잃고
지중해의 엘바 섬에 유배되어 있던 나폴레옹이 1815 년 3월에 파리에 입성해 다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도 이야기했듯이 나폴레옹은 1815 년 6월 18일 위털루 전쟁에서
영국, 프러시아(지금의 독일) 연합군에 패해 황제의 지위도 잃어버리고 미국으로
망명하려다가 실패하고 붙잡혀서 8월에는 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리고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라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을
섬기고 그 밑에서 일했던 사람들로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풍메르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군인은
워털루 전투에서 적군의 군기를 빼앗는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 때 적군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의 용기와 공적을 기려 풍메르시 남작이라는 귀족의 직위를
수여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섬으로 유배되고 루이 18세가 당시 왕위에 오른 지금에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풍메르시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듯이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나폴레옹 시대를 그리워하고 루이 18세의 정부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지르노망이라는 파리 갑부의 딸을 아내로 맞아 마리우스라는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어린 마리우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루이 18세의 열렬한 지지자이고 원래 딸의 결혼에 반대했던
지르노르망 노인은 딸이 죽자 그 아이를 억지로 빼앗아 와 아이의 아버지와는
절대로 만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아이에게는 그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풍메르시는 1 년에 두세 번 정도 파리로 나가서는 아들인 마리우스가 지르노르망
가 사람들의 손에 이끝려 교회의 일요일 미사에 가는 모습을 남몰래 지켜 보고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1827 년, 마리우스는 이미 17세의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밖에서 돌아오자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나폴레옹이나 그를 받들던 아버지나
다 변변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슬프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가 살던 마을인 베르농으로 갔습니다.
베르농으로 간 마리우스는 이미 숨을 거둔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는 위엄과 인자함이 넘쳐 흘러 할아버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 집의 하인으로부터
마리우스 앞으로 쓴 아버지의 유서를 전해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나는 워털루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남작의 직위를
하사받았지만 현재의 정부는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에게는 내
아들로서 이 남작의 직위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또한 워털루 전쟁에서 테나르디에라는 하사관이 나를 위험에서 구해 주었다. 만일
이 사람을 만나면 아버지를 대신해서 꼭 은혜를 갚아 다오.
마리우스는 베르농 마을에서 아버지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진실하고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과 아들인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와 함께 살 수 없어서 얼마나 쓸쓸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마리우스를 지르노르망 가로 보냈던 것도 그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마리우스의 마음은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도서관을 다니며 나폴레옹 시대의 신문과 기록을 모조리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훌륭한 공훈을 세운 군인으로서 여기저기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영웅이었다는 것과 그런데도
세상에서 받아 주지 않아 쓸쓸한 생애를 마쳤다는 사실에 대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내 마리우스가 할아버지와 충돌할 순간이 닥쳐 왔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마리우스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풍메르시인지 누군지의 유언을 진짜로 받아들여 남작이 될 모양인데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거라. 그리고 점점 이상한 생각에 열중해 가는 것 같구나."
"어쩔 수가 없어요. 전 풍메르시 남작의 아들이니까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라! 네 아버지는 여기 있는 내가 아니냐?"
"아니오, 저의 진짜 아버지는 퐁메르시 남작입니다. 아버지는 프랑스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훌륭한 군인이셨습니다.
여러 가지 사실을 조사해 본 결과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던 분입니다."
이런 마리우스의 단호한 말을 듣고 지르노르망 노인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노인은 자신에게 정면으로 거역하는 마리우스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 퐁메르시의 편을 드는 너 같은 어리석은 녀석은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 당장 나가거라!"
마리우스는 말없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앞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돈과 두세 벌의 옷만을 챙겨 파리의 거리로 향했습니다.
소녀와 노인
할아버지의 집을 뛰쳐 나온 마리우스는 파리의 뒷골목에 살면서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살아 나가야 했으므로 외국어를
번역하거나 광고문을 쓰는 등 닥치는 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그런 일로 버는 돈은 극히 적었으므로 그의 생활은 그 날 하루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들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싸구려 하숙집의 꾀죄죄한 방에서 양의
갈비뼈를 씹으며 허기를 달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지만 마리우스는 열심히 공부를 해 드디어는 변호사
자격을 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풋내기 변호사에게는 그다지 사건을 의뢰하는 손님이 많지 않아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하고 싼 집을 찾아 돌아다니고 고르보
저택을 발견하고 그곳의 방 하나를 빌렸습니다. 고르보 저택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발장과 코제트가 살았던 낡은 저택입니다.
마리우스의 가슴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테나르디에라는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워털루 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쓰려져 있던 아버지를 구해 준
하사관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버지의 유서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사람을 찾아 내 꼭 은혜를 갚으라고 유서에서까지 아들인 마리우스에게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수단을 써서 겨우 알아낸 것은 그 하사관은 한동안 몽뜨르유
마을에서 여관을 경영했으나 장사에 실패하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 고르보 저택은 방이 많고 그 때쯤에는 몇 세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고르보 저택의 2층 방 하나를 빌려서 살고 있었는데 옆방에는 아주 가난해 보이는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 대한 일은 없었지만
이 가족들이 머지않아 이 곳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관리인 할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왜 쫓겨나는 것이지요?"
"방세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방세가 어느 정도 밀려 있습니까?"
"20 프랑이에요. 그 집에서 방세를 지불한다는 것은 무리이지요."
그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잠시 생각한 뒤에 방으로 들어가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30 프랑을 꺼내 와 할머니에게 건네 주며 말했습니다.
"이 돈으로 그 사람들의 방세를 치르고 나머지는 그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제가
주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요."
마리우스는 사람이 붐비는 곳 따위에도 가지 않고 그다지 사람들과도 사귀는 일
없이 책을 읽거나 가까운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책을 하러 나갈 때 가끔 공원 안에서 노인과 젊은 아가씨를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60세 정도로 튼튼해 보이는 몸집을 하고 있었으며 위엄 있는 표정에는
예전에 군인이었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그 사람의 표정에는 동시에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면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편 노인의 곁에 바싹 다가앉아 있는 아가씨는 꽃처럼 사랑스러운 16,7세의
소녀였습니다. 넘실거리는 금발, 아름다운 이마, 장밋빛 뺨 그리고 푸른 눈동자는
드높은 하늘처럼 맑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뤽상부르 공원에도 싱그러운 봄의
향기가 넘쳐 나 마로니에 가지에서는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소녀에게 말을 걸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도저히 그런 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소녀의 이름과 주소만이라고 알 수는 없는
것일까?
소녀 쪽에서도 마리우스가 마음에 있는 듯 이따금 그에게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눈길을 보내고 그가 눈치챈 것을 알아 차리면 살짝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마리우스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공원에서 나가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았습니다. 노인과 소녀가 들어간 곳은 파리 안에서고 호젓한 곳에 있는 쓸쓸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문지기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지금 여기로 들어간 사람들의 방이 어디입니까?"
"4층 통로 쪽에 있는 방인데요."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르블랑 씨입니다. 그다지 큰 부자도 아닌 것 같은데 이 근처의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돌봐 주시는 분이지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문지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마리우스에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경찰입니까?"
마리우스는 몹시 당황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어찌 된 일이지 노인과 소녀는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두 사람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리우스는
매우 우울해서 견딜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4층의 그 노인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제 이사가셨어요."
"어디로 이사를 가셨지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문지기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아, 당신이군요. 역시 경찰이었군요."
어느 날 아침 누군가가 마리우스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웬 아가씨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차림새가 몹시 초라하고 매우
수척한 얼굴에 나이는 15,6세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마리우스는 물었습니다.
"저는 옆방에 사는 종드레트 씨의 딸입니다.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요."
그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락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남의 방에 들어와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마리우스가 편지를 열자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옆방의 친절한 젊은 분께
반 년 전 당신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저희들의 밀린 방세를 대신 갚아
주신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가족이 모두
4명인데 그저께부터 한 조각의 빵도 없이 지내는 데다가 아내는 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얼마만이라도 인정을 베풀어 주신다면 생명의 은인으로 일생 동안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종드레트
그가 편지를 읽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소녀는 책상에 다가가 그 곳에 있는
책이 있는 것을 발견하자,
"앗, 책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게슴츠레하던 눈이 갑자기
반짝였습니다.
"나도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책을 들어서 아주 거침없이 읽어 보였습니다.
"아아, 워털루! 나도 알아요. 굉장한 전쟁이었지요?
우리 아버지도 참가했었어요. 군인이었거든요."
소녀는 책을 놓자 이번에는 펜을 집어들고 소리쳤습니다.
"나 쓸 줄도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펜이 잉크를 찍어 흰 종이에 '개가 있다'라고 썼습니다.
"맞춤법, 안 틀렸죠? 나도 어릴 때는 공부를 했었거든요.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어요, 우리들도."
이 때 마리우스는 언젠가 시내에서 이 소녀와 자매인 듯한 소녀가 마리우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 두 소녀가 편지 뭉치를 떨어뜨린 것을 주운 생각이
났습니다.
"이것은 아마 아가씨의 물건 같은데 돌려 드리지요."
소녀는 손뼉을 치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나, 그것 때문에 얼마나 여기저기 찾아다녔는지 몰라요! 당신이 주우셨군요.
큰 길을 달려가다가 바보 같은 내 동생이 떨어뜨린 것이에요.
우린 매맞기가 싫어서 잘 전했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런데 그것이 내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요? 아아, 글씨가 똑같구나!"
소녀는 그 중의 한 통을 열어 보였습니다.
"이건 언제나 교회의 미사에 오는 인정 많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것이에요. 아,
참 그렇군요. 마침 그 할아버지가 올 시간이 되었으니까 빨리 이 편지를 전하러
가야겠어요. 식사비 정도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 때 마리우스는 소녀가 자기에게로 온 이유가 생각났습니다. 조끼 주머니와
여기저기를 뒤져 겨우 5 프랑 60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이 때 그가 가진
전재산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녁 식사비로 60수를 남겨 놓고 나머지 5 프랑은
모두 소녀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어머나, 좋아라! 5 프랑짜리 금화야! 이것으로 온 식구가 이틀은 먹을 수 있겠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가려던 소녀는 찬장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딱딱해진
빵조각을 발견하자 갑자기 달려들어 으드득 으드득 씹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맛있어! 딱딱해서 이가 부스러질 것 같지만 그래도 맛있어."
소녀는 빵조각을 들고 방을 나갔습니다.
옆방
어떤 가족일까? 마리우스는 그들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종드레트의 딸을 만난 날부터 이 가족의 생활 모습이 어떤가 알고
싶어졌습니다. 문득 보니 옆방과의 경계인 벽 천장 가까운 부근에 틈이 있었습니다.
그는 곧 벽장 위로 기어올라가 옆방의 동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인간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소굴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기가 막힌 광경이었습니다.
가구라고 해야 다 부서지고 속의 짚이 비어져 나온 다리가 하나뿐인 의자와 다
쓰려져 가는 식탁 그리고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두 개 뿐이었습니다.
한쪽으로 기운 테이블을 향해 나이든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나이는
60세쯤 되었고 깡마르고 얼굴색은 창백하고 어딘지 모르게 잔인하고 교활한 표정이
엿보였습니다.
이 집의 가장인 종드레트일까? 지저분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파이프를 입에
물고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까 마리우스가 보았던 것과
같은 편지를 여기저기 보내려고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작은 불꽃이 바지직 타고 있는 난로 옆에는 몸집이 커다란 여자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몸에 걸친 것은 역시 꾀죄죄한 셔츠와 스커트입니다.
그리고 침대 하나에는 바싹 마른 소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아까 온 소녀의 동생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특별히 무엇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아까 보았던 그 소녀가 들어와 가족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와요, 이리로. 그 노인이."
종드레트는 펜을 집어던지며 되물었습니다.
"정말이냐? 노인이 그 편지를 읽었단 말이냐?"
"정말이에요. 교회에서 잽싸게 편지를 전해 주었는걸요. 언제나 같이 다니는 그 딸
아이와 함께 마차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이제 곧 올 거예요."
"고맙기도 해라! 이 영감, 잘 걸려들었군! 역시 머리는 쓰고 볼 일이야. 자아,
물을 끼얹어 난로 불을 꺼라."
그렇게 말하고 자신은 침대의 지푸라기를 전부 끄집어 내 여기저기 흩뿌리고 나서
주먹을 꽉 쥐고 유리창을 깼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세 여자를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어? 남한테서 돈을 우려 내려면 될 수 있는 한 비참하게 보이는
것이 제일이라구!"
그러고 나서 다시 부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니, 언제까지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거야! 빨리 가서 누우라니까. 당신은
중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고 찬 바람이 눈을 방 안으로 몰아쳤습니다. 세 여자는 불
꺼진 난로 옆에 바싹 다가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보기 좋군 그래. 이 꼴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돈을 듬뿍 내놓고 싶어질
거야.그건 그렇다 치고 이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잖아? 혹시 주소를 잘못
안 것 아냐?"
그가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종드레트는 튕겨 나가듯이 문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고 공손하게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자, 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정말 잘 와 주셨습니다."
노인과 소녀가 들어왔습니다.
자기 방 틈새로 안을 엿보고 있던 마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공원에서 날마다 보았던 그 노인과 소녀가
아닌가! 마리우스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그 두 사람이 아닌가! 꿈이 아닐까? 그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마리우스는 가슴이 뛰고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소녀는 테이블 위에 큰 꾸러미를 놓았습니다. 종드레트 일가에게 주는 선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드레트의 아내와 두 딸은 소녀의 몸에 장식된 것들과 그
모습을 질투하는 듯한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안에는 옷과 담요, 양말 등이 들어 있습니다. 부디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노인은 테이블에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원, 이렇게 자비로우신 어른이 또 어디 계실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종드레트는 이마를 바닥에 문질러대듯이 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것 말고 어떻게든 현금을 우려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어, 나으리. 이것 좀 보십시오. 저희 방에는 불도 없고 당장 먹을 빵도
없습니다. 유리창은 깨진 채 그대로이고 눈이 휘몰아쳐 들어오는데 아내는 누웠다
일어났다 정신을 못 차리고. 게다가 저까지 공장에서 이렇게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
그렇게 말하고 종드레트는 유리를 깰 때 다친 손을 내보였습니다.
"그것 참 안됐군요."
하고 노인이 한숨 섞인 말투로 걱정을 하자, 소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종드레트는 이윽고 거짓 눈물을 흘리면서 또 마구 지껄여댔습니다.
"이 손의 상처 말씀인데요, 어쩌면 팔을 잘라 버려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은 할 수 없고 돈은 한 푼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될지."
그러나 종드레트는 이렇게 마구 떠벌리면서 노인의 얼굴을 아까부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옛 기억을 더듬으려고 할 때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노인에게로 얼굴을 돌려 더욱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친절하신 나으니, 또 한 가지 곤란한 것은 이제 내일이라도 당장 여기서 쫓겨날
판입니다. 도저히 방세를 낼 수는 없고 밀린 방세가 60 프랑이나 되어."
"공교럽게도 지금은 5프랑밖에 가진 것이 없군요."라고 말하면 노인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종드레트가 속으로 노인을 우습게 여기며 이까짓 5 프랑으로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고 투덜거리자 노인은,
"지금은 5 프랑밖에 없지만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가지고 오늘 저녁 6시까지 다시
한 번 들르지요."
하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고 입구 쪽으로 갔습니다. 딸이
그것을 말하려 하자 종드레트는 쏘는 듯한 무서운 눈초리로 딸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럼, 나중에."
그렇게 말하고 노인과 소녀는 떠나갔습니다.
흉계
마리우스는 엿보기를 그만두고 바닥으로 내려섰습니다.
이제 막 엿본 광경은 그에게 있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던 그 천사 같은 소녀를
다시 본 것만으로도 그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는 그 소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의 뒤를 쫓으려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그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마차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실망해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는 종드레트의 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왜 또 왔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지요?"
소녀는 입구에 선 채 주삣주삣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부자가 아닌데도 오늘 아침에는 저희들에게 친절하게 해 주셨어요.
당신은 지금 어쩐지 매우 슬퍼 보이는군요.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제게 어떤 일이든 시켜 주세요."
마리우스는 잠시 당황했으나 문득 생각이 떠올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가씨 방에 손님이 왔었지요? 그 사람들의 주소를 알고 있어요?"
"아니오."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 사람들을 찾든 말든."
"만일 아가씨가 찾으면 뭘 해 줄까요?"
"무엇이든 좋아요. 그럼 꼭 찾아오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소녀가 나간 뒤 혼자가 되자 마리우스는 아까 보았던 이상한
광경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노인과 소녀가 어째서 그런 곳에
나타났는지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옆방으로부터 종드레트의 커다란 외침 소리가 울려왔습니다.
"분명히 그 놈이야. 내 눈이 틀림없다구!"
마리우스는 다시 벽장 위로 기어올라가 벽의 틈새로 엿보았습니다.
종드레트가 눈을 번뜩이면서 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하고 부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 눈은 있으나마나 소용이 없다구. 벌써 8 년 가까이나 된 일이지만
나는 그 놈인 줄 첫눈에 알아봤지. 차림새는 나아졌지만 목소리나 얼굴 모습은
변하지 않았어. 그런데 또 한 가지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가르쳐 줄까?"
"그게 뭔데요?"
"녀석이 데리고 있던 딸 아이 말이야."
"그 딸 아이가 어쨌는데요?"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집에 있던 그 애라구."
"네엣? 설마!"
"설마가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부인의 모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그렇게 멋지게 차려 입은 예쁜 아가씨가 그 계집애란
말이에요?"
부인은 귀신 같은 모습을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거 어디 분해서 견딜 수가 있나.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고, 놈은 6시에 온다고
했어. 마침 옆방의 가난뱅이 변호사도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관리인 할머니도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야. 이제부터 가서 친구들을 서너 명 데리고 와야겠어. 놈을
해치우고 돈을 왕창 우려 내는 거야!"
"그래요, 잘 해 봐요."
"금방 나갔다 올게. 친구하고 계획을 짜 가지고 와야지. 이번에야말로 그 놈의
가면을 벗겨 버려야겠어!"
옆방의 틈새로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마리우스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이 곳에서 무서운 흉계가 꾸며지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뿐만 아니라 그 소녀도 말려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을
구해 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 뒤에 마리우스는 곧장 경찰서로 달려가 안내하는 소년을 따라 어느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스토브 앞에 키가 큰 형사가 서 있었습니다.
네모진 얼굴, 얇은 입술, 게다가 남의 마음 속 구석구석까지 꿰뚫어보는 쏘는 듯이
차갑고 예리한 눈빛.
이 사람은 우리들이 이미 알고 있는 형사입니다. 마리우스는 이 형사에게 일종의
불쾌감을 느꼈으나 동시에 강한 신뢰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남김없이 상세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집의
위치를 말하자 형사는 그 집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 복도 맨 끝의 구석방이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형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권총을 두 자루 꺼내
마리우스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두 자루 다 총알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방에 숨어 계십시오. 노인과
아가씨에게 위험이 닥치면 천장이나 바닥을 향해 총을 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들이 뛰어들겠습니다. 단 너무 일찍 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마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만일 저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쟈베르를 찾으면 됩니다."
하고 형사는 뒤돌아서 나가는 마리우스에게 말했습니다.
권총을 손에 들고
마리우스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살짝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입니다.
마리우스는 다시 벽장 위로 기어올라가 벽의 틈새로 옆방의 상황을 살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섬뜩하리만큼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테이블에 양초가 한 자루 놓여 있었는데 온 방 안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난로 안에서 석탄이 활활 타오르고 그 안에 꽂힌 쇠로 만든 인두는 시뻘겋게
달구어져 불꽃을 튀기고 있었습니다.
종드레트는 물론이고 그 부인도 얼굴이 아주 빨갛게 물들어 마치 악마 부부와도
같았습니다.
드디어 교회의 큰 시계가 6시를 알렸습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종드레트의 부인이 서둘러 문을 열고 억지 웃음을 띠면서 매우
공손한 말씨로 인사했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노인이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왔습니다.
노인은 테이블에 금화 네 닢과 80 프랑 놓으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밀린 방세와 당장 필요한 일에 써 주십시오. 그 다음 일은 나중에 다시
의논합시다."
"원, 이렇게 고마우실 데가. 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시기를."
그렇게 말하고 나서 종드레트는 부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이 늙은이의 마차를 빨리 돌려 보내라구."
부인은 즉시 그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따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노인이 침대에 아무도 누워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 예,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렇습니까? 부인은 건강이 좋아 보이시는 것 같군요."
"아니오, 결코 건강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여자는 원래 소나 말 같아서
이상하게도 완전히 녹초가 되지는 않습니다."
종드레트가 열심히 지껄이고 있을 때 마리우스는 문이 소리도 없이 쓱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랑자처럼 보이는 차림을 하고 양팔에 흉측한
문신을 새겨넣은 남자였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고 노인은 그 남자에게 신경이 쓰이는 듯 물었습니다.
"네, 저 사람은 옆방에 사는 사람인데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종드레트는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나으리, 보다시피 저희들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옛날에 가지고 있던 것들도 전부 팔아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림만은 한 장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나으리께서 사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만."
그 때 시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서너 명의 남자가 슬쩍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인상이 좋지 않은 수상쩍은 무리였습니다.
종드레트는 그림을 꺼내 왔습니다. 그림은 아주 조잡한 것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간판 그림이었습니다. 노인은 그 그림을 보면서 방의 구석으로 흘끗 시선을
돌렸습니다. 거기에는 네 명의 남자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딘가 수상쩍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그런 패거리들이었습니다.
"나으리, 이 친구들은 이 근처에 사는 저와 절친한 녀석들이죠. 그런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그림을 사 주기지 않겠습니까? 제 딸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히 아껴 온 것입니다만."
"어는 가게의 간판 같군요. 3 프랑이나 나가겠습니까?"
"아이고, 나으리. 무슨 농담을 그렇게. 5천 프랑이면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듣자 노인은 벌떡 일어서 벽을 등지고 방 안을 휘둘러보았습니다.
순간 종드레트는 태도를 확 바꾸어 갑자기 깡패 같은 말투로 소리쳤습니다.
"이봐, 영감. 내 얼굴을 본 기억이 없나!"
"없소."
하고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긴장을 한 탓인지 약간 창백해지기는 했으나
두려워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마치 서로 미리 짠 듯이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의 남자가 더 들어왔습니다.
세 사람 다 복면을 하고 푸른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쇠막대기를
손에 쥐고, 또 한 사람은 소를 잡을 때 쓰는 도끼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교도소에서라고 훔친 듯한 커다란 갈고랑이를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여러 명의 적을 앞에 놓고도 억세 보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인정 많고 지금은 힘세고
용감한 투사로 변해 있었습니다.
남몰래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마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신호를 표시하는 권총을 발사해야만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권총을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습니다.
종드레트는 아주 밉살스러운 말투로 다시 소리쳤습니다.
"모르겠다면 가르쳐 줄까! 난 종드레트 따위가 아니야! 테나르디에라고!
몽페르메이유에서 여관을 했던 바로 그 테나르디에란 말이야! 자, 이제 알겠지!"
노인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소."
놀란 것은 마리우스였습니다.
테나르디에! 아버지의 유서에 씌어 있던 그 이름이 아닌가! 그는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유서에 테나르디에를 만나면 반드시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워털루의 용사였던 인물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인물은 그가 이제껏 머릿속으로 그려 왔던 것처럼 훌륭한 인물은 커녕
이렇게 흉악한 인간이 아닌가! 지독한 악당이 아닌가!
더구나 그 악당은 마이우스가 동경하고 오랫동안 찾아온 그 소녀의 아버지를 지금
죽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자기가 총을 쏘면 악당은 체포되고 노인은 무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버지 유언을 어겨야만 합니다. 아버지의 은인을 그냥 놔 두면 소녀의
아버지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마리우스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그 동안에도 종드레트, 즉 테나르디에는 의기 양양해서 노인을 쏘아보며 계속 큰
소리로 외쳐 댔습니다.
"여기 있는 나를 모른다고? 멍청한 영감쟁이 같으니라구!
8 년 전 크리스마스날 밤, 몽페르메이유의 우리 여관에 와서 그 작은 계집아이를
데려갔던 게 바로 영감이었잖아?
단돈 1500 프랑에 그 계집아이를 채 갔지. 덕분에 우린 그 이후로 온통 나쁜 일만
생겼다구. 내가 되찾으러 갔을 때, 숲속에서 날 위협했었지. 그 때는 영감이
이겼지만 이번에는 내가 승리할 차례야. 자, 잘 보라구. 영감은 내 덫에 걸려든
거리니까!" 노인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소. 당신이 누군가와 착각을 하고 있는 거요!"
"착각이라고? 시치미떼는 짓은 작작해 둬! 누굴 얕보는 거야! 이래봐도 난 원래
프랑스 군인이었다고. 워털루 전쟁에서는 아주 훌륭한 군인을 구해 준 용사란
말이야!
그렇지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난 지금 돈이 좀 필요하단 말이야. 그걸 당신
딸이 가져오도록 시켜야겠어. 어때? 싫으면 목숨을 내놓든지."
테나르디에가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를 치며 무엇인가 동료와 의논하려고 등을
돌린 틈을 타, 노인은 재빨리 의자를 걷어차고 테이블을 밀어젖히며 창가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창문에 발을 걸치고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악당들에게 웃옷 자락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영감쟁이가! 어딜 도망가려고!"
한 악당이 노인의 머리를 쇠막대기로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기다려! 죽이면 안 돼!"
하고 테나르디에가 소리쳤습니다.
"꽁꽁 묶어서 밧줄 끝을 침대 다리에 붙들어매."
노인은 그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의 몸과 양팔은 밧줄에 칭칭
감기고 두 다리는 침대 다리에 묶어져 있었습니다.
테나르디에는 노인 앞으로 의자를 끌어당기고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사하게
말했습니다.
"나으리, 우리 서로 위험한 일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다리를 다칠 것입니다.
그보다는 서로 좋게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군요. 나으리는 이런 와중에서도 전혀 소리를 지르지
않으시는군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마리우스는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금껏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살려 달라고 소리쳤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소리를 내면
달려오는 것은 경찰이겠지? 어쩐지 영감도 경찰은 딱 질색인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뭔가 뒤가 켕기는 일이 있다는 증거라구. 그러니까 얘기를 빨리 끝내자구."
테나르디에는 씩 웃더니 난로 앞의 병풍을 치웠습니다. 난로 안에는 시뻘겋게
달구어진 커다란 인두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린 돈이 필요하단 말이야. 한 20 만 프랑쯤 있으면 되겠는데 말이야."
노인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은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종이에 받아 적으면 되는 거야."
테나르디에는 그렇게 말하고 잉크와 종이를 테이블 서랍에서 꺼내 와 노인 앞에
놓았습니다.
"아, 참 그렇지. 팔이 묶여 있으니 글씨를 쓸 수 없겠군. 오른쪽 팔은 풀어
주어야지."
그리고 노인의 오른쪽 팔에 감긴 밧줄을 풀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좋다, 나도 좋아서 일부러 이런 난폭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 말대로
얌전하게 써서 그걸 심부름꾼이 가지고 갔다 돌아오면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거야.
물론 밧줄도 즉시 풀어 줄 것이고."
"뭐라고 쓰면 되겠소?"
"좋아, 내가 말하는 대로 쓰는 거야. 얘야, 지금 바로 오너라. 꼭 와야 한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너를 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안심하고 오너라. 이제 됐어. 거기에 서명하는 것도 잊지 말고.
영감, 이름이 뭐지?"
"유르방 파블르."
하고 노인은 가짜 이름을 댔습니다.
"주소도 쓰라구. 영감 주소 말이야."
노인이 그가 시키는 대로 쓰자 테나르디에는 부인을 불렀습니다.
"자, 편지를 다 썼으니까 밑에 내려가 마차를 부르라구. 당장 가서 데려와. 옳지,
누구 한 사람 따라가는 것이 좋겠군. 딸 아이를 빨리 데리고 와."
부인은 곧 남자 한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옆방의 벽 틈새로 엿보고 있는 마리우스의
귀에는 무엇인가를 비벼대는 듯 둔탁한 소리가 희미하게 노인의 근처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테나르디에가 다시 노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됐지만 우리 계획대로 다 되었군. 아내는 영감의 그 편지를 가지고 가서 당신
딸을 데리고 올 거야. 하지만 여기로는 오지 않는다구. 어떤 다른 장소에 숨겨 놓을
테니까. 아니, 그렇다고 딸에게 손을 대지는 않겠어. 20만 프랑만 받아 내면 딸은
돌려 보내 주겠다."
노인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또다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악당들은 그 소녀를 이 곳으로
데리고 오지 않고 어딘가에 숨기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권총을 쏘아
경찰관들에게 알리는 것은 도리어 소녀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잠시 뒤에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뛰어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시에
부인이 숨을 헐떡이며 방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엉터리 주소예요!"
하고 부인은 소리쳤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유르방 파블르 따위는 아무도 모른대요!"
테나르디에가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엉터리 주소라고! 나를 잘도 속여 넘겼겠다. 이봐, 왜 그런 짓을 했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하고 노인은 갑자기 방 안이 떠나갈 듯한 소리로 외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놀랍게도 노인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은 전부 끊어져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만이 침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악당들은 한편 놀라면서도 노인에게 덤벼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노인은 난로 쪽으로 몸을 기울여 시뻘겋게 달구어진 커다란 인두를 덥석
잡았습니다. 제 아무리 흉악한 악당들이지만 그것을 보자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단단히 꽉 묶여 있던 밧줄이 어떻게 해서 끊어져 버렸을까?
그것을 설명하려면 나중에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발견한 한 개의 동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전은 둘로 나누어지는데, 안에 시계의 강철톱이 숨겨져 있어 이것을
사용하면 어떤 단단한 것이라도 자를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우스가 아까 들었던 둔탁한 소리는 바로 아 도구를 사용해 노인이 밧줄을
끊으며 낸 소리였습니다.
악당들은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걱정 마! 아직 왼발이 묶여 있어. 도망가지는 못할 거야!"
그 때 노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난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나에게 쓰고 싶지 않은 것을
강요하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한다면."
노인은 왼팔 소매를 걷어올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자, 다들 잘 봐라! 모두 이렇게 해 주겠다!"
노인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뻘겋게 단 인두를 서슴없이 자기 팔에
갖다대었습니다.
그 흉측한 악당 패거리들도 숨을 죽인 채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이상한 악취가 온 방안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에서는 고통의 빛이나 증오의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장엄할 정도의 엄숙한 분위기가 엿보였습니다. 노인은 차분한 눈길로 테나르디에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지? 난 너희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인두를 창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좋아, 해치워!"
"죽여 버려!"
악당들은 저마다 소리치면서 노인에게 달려들려고 했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서랍에서 예리한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한편 옆방의 마리우스는 권총을 쏘아야 할지 어떨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자기 방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던 종이 쪽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테나르디에의 큰 딸이 이 곳에 와서 자기도 글씨를 쓸 수
있다고 하며, '개가 있다'고 써 보였던 쪽지였습니다.
그의 머리를 번뜩이며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급히 벽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 종이 쪽지를 벽의 틈 사이로 해서 테나르디에의 방 안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여보, 뭔가 떨어졌어요."
하고 테나르디에의 부인이 외치며 그것을 주워 남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어디에서 떨어졌지?"
"어디긴 어디에요? 보나마나 창문으로 들어왔겠죠."
서둘러 종이 꼭지를 펼쳐 촛불 가까이 갖다댄 테나르디에는 허둥대며
소리쳤습니다.
"딸애의 글씨야! 개가 왔다고 씌어 있어! 이거 큰일났군!"
악당들은 서로 앞다투어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창문으로 타고 내려갈 밧줄이
던져졌지만 그들은 누가 먼저 내려갈 것인가를 놓고 서로 욕을 퍼부으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쟈베르를 선두로 경찰관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밀어닥쳤습니다.
사라진 노인
쟈베르는 마리우스가 신호로 보내기로 한 권총 소리를 기다리다 못해
밀어닥쳤습니다.
악당들은 자신들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돌연 위협 적으로 저항할 기미를
보였습니다.
"쓸데없이 저항할 생각 말고 흉기를 버려!"
그들은 경찰관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쟈베르의 말에 따라 손에 들고 대항했지만
곧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테나르디에만은 될 대로 되라는 듯 칼을 머리 위로 번쩍 쳐들고 대항했지만 곧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테나르디에의 부인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쟈베르에게 바닥에 있던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돌은 쟈베르에게 맞지 않고 바닥을 굴렀습니다. 부인도 꼼짝 못
하고 항복했습니다.
쟈베르는 테이블에 앉아 악당들의 이름을 모두 서류에 써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하 경찰관에게 말했습니다.
"묶여 있던 그 노인을 이리고 데리고 오게."
경찰관들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노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혼란한 틈을 타 재빨리 창문으로 빠져 나간 것이었습니다.
경찰관 한 사람이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뜰에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으나 창문으로 늘어뜨려진 밧줄이 아직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놓쳤군! 그 자가 제일 거물이었는데!"
쟈베르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그 다음 날 아침, 고르보 저택을 떠나 친구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짐승보다도 못한 추하고 잔인한 사람들의 행동을 직접 목격하니 더 이상 그 곳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과 소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건 그렇고 그 노인은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일까? 경찰관들이 들이닥쳐 악당들을
체포했을 때, 어째서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일까? 모든 것이 마리우스에게는
의문투성이였습니다.
마리우스는 그 소녀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서까지 소녀를 보았지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습니다.
4월의 어느 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테나르디에의 큰딸을
만났습니다.
"그 날 우리들도 경찰서에 끌려갔었어요. 하지만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또 아이들이니까 곧 풀려 났지요. 결국 아버지는 교도소에 들어가셨지만."
마리우스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웬지 쓸쓸해 보이시는군요. 왜 그러시는지 알아요.난 그 사람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에포닌."
"어머나,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원하신다면 안내해 드릴 수도
있어요."
"꼭 부탁합니다. 사례비는 얼마든지 내지요."
"그럼 제가 바라는 대로 해 주시겠어요?"
마리우스는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5 프랑을 전부 다 꺼내 에포닌의 손에 쥐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뿌리치며 슬픈 듯이 말했습니다.
"전 돈 같은 것은 원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제 친구가 되어
주시는 거예요."
은신처
여러분은 이미 그 노인이 장발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장발장은 왜 수도원을 나온 것일까요? 수도원에서 하는 정원지기 일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장발장도 코제트도 모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살다가는 코제트는 자연히 이 곳에서 수녀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장발장에게
있어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포슐방 영감이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일을 기회로 장발장은 수녀원장에게 도와 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전하고
수녀원을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5, 6 년이나 지났으므로 그 끈질긴 쟈베르도 이제는 그의 일은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므로 언제나 신분을 숨기고
포슐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파리의 다른 장소에 세 채의 집을 빌려 두었습니다.
이렇게 해두면 비상시에 몸을 숨기는 데 곤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생활해 나가면서 돈 문제로 인해 힘든 일은 없었습니다.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절에 모아 두었던 큰 액수의 돈이 몽뜨르유 근처의 숲 속에
묻혀 있어 필요한 때면 그 곳에 가서 조금씩 파내 오곤 했습니다.
코제트는 수녀원을 나온 뒤에도 장발장을 친아버지처럼 따르며 어디를 가든지 꼭
따라다녔습니다.
코제트의 방은 아름답게 꾸며져 창문에는 다마스크 천으로 만든 커튼이
드리워지고 바닥에는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추운 날에는 언제나
난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화사한 모습에 행복해 보이는 코제트를 지켜 보며
장발장은 이 행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도록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장발장과 코제트는 늘 가까운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의 미사에 참석하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자선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테나르디에의 처량한 그 구걸 편지를 그의 딸로부터 전해 받은 것도 이 교회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코제트는 공원에 갈 때마다 기품 있는 멋진 청년이 항상 책을
읽으면서 산책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청년은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리고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처럼 코제트도 마리우스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마리우스는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두 사람의 뒤를 쫓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장발장은 그를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청년이 왜 자신의 뒤를 쫓는지 그로서는 그 일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뒤 바로 또 하나의 다른 집으로 이사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마리우스가 날마다 뤽상부르 공원에 나가도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지
못해 몹시 우울해 있었던 일은 우리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코제트도 웬지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장발장이 몽뜨르유로 나간 어느 날 밤 코제트는 자기네 정원에 나와 보았습니다.
불현듯 공원에서 늘 마주쳤던 청년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문득 정원 구석에 누군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돌아 보니 과연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그는 그녀가 지금 마음을 쏟고 있는 청년, 공원에서 늘
마주쳤던 그 청년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는 에포닌의 도움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 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코제트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불안감이나 두려운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때 처음으로 말을 주고받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 마리우스는 늘상 코제트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만 웬지 코제트의 마음 속에서는 마리우스의 일을 장발장에게 이야기하기 힘든
일종의 두려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쩐지 장발장을 몹시 슬프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코제트는 매우 슬픈 표정으로 마리우스를 맞이했습니다.
"마리우스, 오늘 아침 아버지께서 여행 떠날 준비를 해 두라고 말씀하셨어요.
가까운 시일 안에 영국으로 간다고 하시면서."
"영국이라고요?"
마리우스는 몹시 놀라 자기도 모르게 그만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고 결혼의 꿈도 깨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영국으로 갈 만한 돈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코제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돈을 받아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코제트, 내일 저녁에는 올 수 없지만 모레 저녁에는 틀림없이 이 곳으로 오겠소."
하고 마리우스는 말했습니다. 코제트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 날 마리우스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 지르노르망을 찾아갔습니다.
지르노르망 노인은 이미 나이가 81세나 되어 아직 건강하기는 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손자 마리우스와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늘 어두운 생각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곤 했습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마리우스가 뜻밖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노인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4 년 만에 돌아온 손자는 겉보기에도 훌륭하고 늠름한 젊은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오히려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그런 모습은 노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오, 잘 돌아왔다. 잘 돌아왔어. 나는 네가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게로구나."
"실은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저는 어떤 여성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은데
그만한 비용이 없어서 어떻게든 마련해야겠기에."
노인은 갑자기 얼굴이 변했습니다.
"뭐라구? 결혼을 하겠다고? 그리고 영국으로 가겠다고?
그럼 사과를 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 결혼을 하겠다니, 상대는 어떤 집안의
아가씨냐?"
"저와 같은 평범한 처녀입니다."
"그럼 돈은? 지참금은?"
"그런 것은 특별히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털터리가 아니냐! 안 된다! 그런 여자는 안돼! 절대로 안 돼!"
"아무래도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안 된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 아가씨는 보나마나 변변치
못한 처녀다!"
할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5 년 전에는 저희 아버지를 모욕하셨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의
아내가 될 사람을 모욕하신 겁니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황한 할아버지가 팔을 뻗쳐 일어서려고 했을 때에는 마리우스의 모습은 이미
대문 밖으로 사라져 버린 뒤였습니다.
마리우스는 무참히 짓밟힌 어두운 기분으로 파리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코제트는 영국으로 가 버린다. 이제는 결혼할 희망도 없는 것이다.
여하튼 코제트를 한 번 더 만나 보자. 뭔가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리우스는 코제트가 사는 마을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코제트의 집에 도착해 보니 창문은 전부 닫혀 있고 집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벌써 영국으로
떠나 버린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정원의 벤치에 앉아 머리를 감싸쥔 채 마리우스는 시간 가는 것도 잊은 듯
언제까지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이 때 문득 공화파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는 이 때 공화파 동료들의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화제를 지지하는 그의 정열이 그의 가슴으로부터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모두의 선두에 서 있는 앙졸라라는 청년의 정열에는 지금도 강하게 끌리고
있었습니다.
코제트를 잃어버리자 살 의욕도 없어졌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는 공화파의
전투에 참가해 죽자. 마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832 년 여름이 가까워졌습니다. 봄부터 유행하던 콜레라가 극성을 부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파리에는 평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에서의 마지막 결전에 패해 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로
귀양가 있었습니다. 그 뒤 프랑스는 다시 군주 제도로 돌아갔으나 루이 필립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는 나라를 다스려 나갈 힘이 부족했습니다.
군주 제도에 반대하는 공화파 사람들의 운동은 점점 거세어져 1789 년의
대혁명과 같은 소요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정세였습니다.
그 때문에 경찰은 공화파 사람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들여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가명으로 살고 있는 장발장이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우스가 공화파 사람들 속에 가담해 싸우려고 결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전쟁터로
마리우스는 샹젤리제 거리를 빠져 나가 루브르 궁전에 가까운 상트렌느 거리로
들어갔습니다. 거리의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광장에는 정부군 기병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공화파 동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다가갔습니다. 바로 앞에
바리케이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장애물)가 보였습니다.
마리우스는 떼를 지어 몰려 있는 정부군의 총검이 번뜩이는 속을 빠져 나가
동료들이 모여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가 겨우 무리와 합세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만들다 만 바리케이드를 정부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짐수레와 책상과 의장 등 온갖 물건이 동원되어 거리의 한가운데
겹쳐 쌓였습니다.
청년들의 지도자는 앙졸라라는 이름을 가지 학생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정열과 굳센 결의가 청년들의 씩씩하고 젊은 얼굴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멀리서부터 보조를 맞춘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정부군 부대가
가까이까지 쳐들어온 것입니다.
곧 정부군 장교인 듯한 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바리케이드 저 쪽으로부터 울려
퍼졌습니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항복하라!"
"뭐가 쓸데없는 저항이냐? 너희들이야말로 그냥 두지 않을 테다!"
흥분된 앙졸라의 외침과 함께 공화파의 젊은이들은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군도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미친 듯이 싸웠지만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부군은 점차 바리케이드로 조금씩 다가섰습니다. 숨막히는 듯한 화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가 고통스럽게 메아리쳤습니다.
정부군은 총을 번쩍 쳐들고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때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광장을 가로질렀습니다.
"비켜! 바리케이드를 폭파하겠다!"
적도 아군도 모두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한 젊은이가 화약통을 껴안고 바리케이드 쪽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불빛에 비친
그 얼굴은 마리우스였습니다.
정부군이나 아군 모두 순간 숨을 죽이고 마리우스를 지켜 보았습니다.
마리우스의 얼굴에는 죽음을 각오한 숭고한 표정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정부군 병사들은 두려워하며 바리케이드로부터 뛰어내려 서로 앞다투어
도망쳤습니다.
바리케이드는 여전히 굳게 지켜졌습니다.
동료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바리케이드를 내려온 마리우스는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리우스."
그것은 이제 곧 숨이 끊어질 듯한 희미한 목소리였습니다.
소리나는 쪽을 보니 땅바닥에 깔린 돌 위에 한 노동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저예요.에포닌이에요".
"아니!"
마리우스는 놀라서 달려갔습니다. 그것은 남장을 한 에포닌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왔소? 뭘 한 거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괴로운 듯 말했습니다.
"아까, 당신을 총으로 쏜 놈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앞으로 뛰쳐 나갔어요. 총알은 제 등을 꿰뚫었어요. 이젠."
"에포닌, 당신은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나를 구해 주었군요!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읍시다."
"아니에요. 전 이미 가망이 없어요. 저어, 제 주머니 속을
뒤져 보세요. 편지가 있을 거예요.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부탁 받았는데 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제가 나쁜 여자지요?
하지만 전 당신을 좋아 했어요. 그래도 역시 좋아요."
가엾은 에포닌은 마리우스의 손을 잡은 채 편안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망연히 그 곳에서 멈춰서 아름답고도 슬픈 에포닌의 마음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편지 생각이 나자 촛불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읽었습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우스
아버지는 오늘 이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일단 교외의 집으로 옮겼다가
일주일 뒤에는 런던에 가 있을 거예요.
코제트
아아, 코제트는 멀리 떠나가 버린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전사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 두 사람의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나의 죽음을 코제트에게 알리고 싶다.
마리우스는 수첩을 찢어 연필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랑하는 코제트
나는 조국 프랑스 민중을 위해 죽겠습니다. 비록 결혼을 하지 못했지만 내 영혼은
영원히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우스
그는 이 종이 쪽지를 넷으로 접어 받는이의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군의
잡무를 맡아 일하는 소년에게 그것을 건네 주며 전해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받는이의 주소를 찾아온 소년은 어둠 속에서 노인인 듯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침 교회 종소리가 밤 11시를 알렸습니다.
"여보세요, 이 근처에 포슐방이라는 사람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우리 집인데."
"아, 마침 잘됐군요. 그럼 코제트 양이라는 사람에게 이 편지를 좀 전해
주시겠어요?"
소년은 노인에게 편지를 건네 주고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노인은 다름아닌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 그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코제트가 슬픔에
잠겨 있는 까닭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를 구해야만 한다고 장발장은 결심했습니다.
장발장의 활약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하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부군의 공격은 어제에 비해 한층 더 격렬해져 그에 따라 아군의 희생자 수도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공화파 젊은이들은 모두 싸우다가 죽을 결심을 하고 필사의 저항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한 노인이 아군 깊숙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저건 누구지?"
하고 앙졸라가 물었습니다.
"아, 저 노인은 내가 아는 사람일세.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마리우스는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바로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마리우스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저 노인이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
곳에 나타난 것일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코제트 앞으로 보낸 편지를
보고 이 곳으로 달려온 것일까?
바로 그 때 적병 하나가 높은 굴뚝에 몸을 바싹 붙이고 이쪽을 정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눈에 거슬리는 정찰병이 나타났군."
하고 앙졸라가 말했습니다.
장발장은 그 말을 듣자 잠자코 총을 겨누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찰병의 철모에 탄환이 명중해 소리를 내며 길가로
떨어졌습니다. 정찰병은 당황해서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자 다른 정찰병이
나타났습니다. 이 병사도 역시 철모를 맞아 떨어뜨리자 몸을 감췄습니다. 그 뒤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죽이지 않는 거요?"
누군가가 물었으나 장발장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군의 포격은 점점 거세어졌습니다. 아군은 차례로 쓰러지고 탄환도 점차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본부가 되어 있는 선술집은 전사자와 부상자로 가득
차 신음 소리와 피비린내로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갑자기 젊은이 한 사람이 벽 옆에 앉아 있는 몸집이 크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를 가리키며 앙졸라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놈이 수상해. 아무래도 정부의 스파이 같아."
앙졸라는 잠자코 그 남자에게 다가가 갑자기 따져 물었습니다.
"넌 누구냐?"
남자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으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을 알아차린 듯
대담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나 말인가? 난 보다시피 너희들의 동태를 살피는 사람이다."
"그럼 정부의 스파이로군."
"정부의 관리다."
"이름은?"
"형사 쟈베르다."
앙졸라가 신호하자 너댓 명의 젊은이들이 쟈베르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꽁꽁
묶어 버렸습니다.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기 전에 너를 총살하겠다."
쟈베르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말했습니다.
"왜 지금 당장 죽이지 않지?"
"총알이 아까워서 그렇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앙졸라는 적의 포탄으로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다시 쌓도록
지시했습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포석이 순식간에 쌓여 바리케이드는 다시
견고해졌습니다.
때마침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적은 마지막 공격 준비에 들어간 듯
잠시 총성이 멎었습니다.
이 때 앙졸라는 기둥에 묶여 있는 쟈베르를 가리키며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이 자를 사살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장발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이 자를 처단하는 일을 나에게 맡겨 주지 않겠소?"
앙졸라는 노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해 주었소. 좋소, 당신에게 맡기겠소."
이 때 정부군의 돌격 나팔이 울리고 마리우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적이 공격해 온다!"
모두가 무기를 들고 달려나갔습니다. 뒤에는 장발장과 쟈베르만이 남았습니다.
"일어서."
장발장은 쟈베르가 묶여 있는 밧줄 끝을 풀고 함께 선술집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꼼짝 않고 쟈베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것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눈길이었습니다.
"자, 어서 보복해라."
하고 쟈베르는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장발장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습니다.
"칼로 할 텐가? 그것도 좋겠지."
하고 쟈베르는 목청을 높였습니다.
장발장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쟈베르의 허리와 손과 목을 묶고 있던 밧줄을
끊어내고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이야. 어디를 가든 마음대로 하시오."
쟈베르는 좀처럼 놀라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이 때만큼은 몹시 놀라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빨리 가는 게 좋을 거요. 나는 살아서 여길 빠져 나갈 수는 없겠지만 만일 살아
남는다면 언제든 나를 체포하시오."
쟈베르는 두세 발짝 걸어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이건 곤란합니다. 차리리 나를 죽여 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말투가 정중해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빨리 가시오."
하고 장발장은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쟈베르는 서서히 멀어져 가 모퉁이를 돌아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때
장발장은 하늘을 향해 공포를 한 발 쏘아 처형이 끝난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청년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마침내 바리케이드 중앙부가 무너져 정부군이 우르르
밀어닥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몇 사람도 잇달아 쓰러졌습니다.
오직 마리우스 한 사람만이 끝까지 바리케이드에 매달려 있다가 마침내 어깨에
총을 한 방 맞고 굴러 떨어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개의 팔이 그의 몸을 받아냈습니다. 장발장의
팔이었습니다.
장발장은 그 때까지 바리케이드 안에 있기는 했지만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 쭉
마리우스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를 부둥켜안고 있는데 이미 주위에는 적병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문득 보니 바로 그의 눈앞에 맨홀 뚜껑이 있었습니다. 지름 60센티미터 정도의
쇠로 만들어진 뚜껑이었습니다. 그는 그 뚜껑을 들어내고 마리우스를 껴안은 채 그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구멍의 깊이는 3 미터 정도로 그 곳에서부터 하수도 관이
길게 뻗어 있었습니다.
파리 시내에는 하수도가 그물코처럼 둘러쳐 있어 센 강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질척질척한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결에 발이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지상의 소요가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침묵과 암흑과 악취의
세계였습니다.
하수도는 거미줄처럼 뒤얽힌데다 좌우에 샛길이 뻗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빠져
헤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물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30분쯤 걸었을 때, 갑자기 뒤쪽으로부터 희미한 불빛이 비치더니 자신의 그림자가
천장에 어렴풋이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가 걸어왔던 길에 붉은 빛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경찰관들이 하수도 안을 수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경찰관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 그가 있는
쪽으로 총을 한 방 쏘고 멀어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은 한동안 꼼짝 않고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의 질척거리는 폐수는 점점 깊어져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욱 곤란해졌습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왔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깨 위의 마리우스는
갈수록 무거워졌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갑자기 발이 주르르 진창 속으로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황해서 발을 빼려고 했으나 발버둥치면 칠수록 발은 한층 깊숙이
진창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순식간에 더러운 물이 가슴 근처까지
차올라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 계속해서 발을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마리우스를
받치고 있던 팔도 진창 속에서 발버둥치는 발도 마비되어 차츰 감각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끝장이다!"
하고 절망의 신음 소리를 냈을 때 발에 딱딱한 것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뒤로
젖혀져 기울어진 포석 모퉁이였습니다. 그는 겨우 끝을 알 수 없는 진창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부터는 포석이 쭉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기나긴
길이었습니다. 이러고 있다가는 마리우스는 숨이 끊어지고 자신도 기력이 다해 죽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앞쪽에
어슴푸레하게 불빛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까 비쳤던 그 기분 나쁜 붉은
불빛이 아니라 흰 태양 광선이었습니다. 하수도의 출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었습니다.
그는 등의 무게도 피로도 허기도 잊은 채 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걷는다기보다는 오히려 뛴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릴 것입니다.
드디어 출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우뚝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출구에는 튼튼한 철책이 꼭 맞게 끼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철책 밖에는 센 강변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 해가 저물어 가는 파리 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옆의 납작한 돌 위에 내려놓고 미친 듯이 철책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철책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허탈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제 와서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따위의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동안 마리우스는 죽어 버릴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그의 어깨에 무엇인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한 남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습니다.
"이봐, 반씩 나눠 먹는 게 어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지 같은 차림을 한 남자였습니다. 그 얼굴을 보자 장발장은
무의식중에 '앗!'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남자는 바로 테나르디에가 아닌가! 그러나 테나르디에 쪽에서는 장발장의
얼굴이나 몸 전체가 ㄳ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므로 그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하고 남자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있어서 나올 수가 없지?"
"그렇소."
"그러니까 반씩 나눠 먹자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장발장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상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너, 그 녀석을 죽였지? 하지만 넌 여길 나오지 못해. 그런데 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그러니까 네 몫의 반을 주면 이걸 열어 주겠단 말이야."
테나르디에는 그를 강도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녀석을 강물에 던져 버릴 거지? 이봐, 얼마 있었어?
반은 이리 내 놔."
장발장이 대답하지 않자 테나르디에는 마리우스의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졌습니다. 그러나 찾아 낸 것은 겨우 30 프랑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전부 자기
주머니에 찔러넣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우스의 웃옷 자락을 재빨리 뜯어 내 그것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증거로 협박이라도 할 계산이었습니다.
"자, 어쨌든 꺼내 주지."
테나르디에는 열쇠를 자물쇠에 질러 넣었습니다. 철책문은 소리도 없이
열렸습니다. 벌겋게 녹이 슬기는 했지만 이런 무리가 늘상 드나드는 것 같았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장발장을 꺼내 준 뒤 다시 철책문을 잠그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쟈베르의 최후
밖으로 나온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센 강변에 살짝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강물을
손으로 떠서 그의 얼굴에 끼얹어 보았으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약간 벌린 입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문득 자신의 뒤쪽에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니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쟈베르였습니다.
그는 장발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자 경찰서로 돌아가 곧 도둑질을 한
테나르디에를 쫓아 이 곳에 온 것입니다. 테나르디에가 하수도 속에 숨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쟈베르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장발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발장은 스스로 이름을 댔습니다.
"나요, 장발장이오."
쟈베르는 깜짝 놀라 장발장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쟈베르 형사, 나는 이제 잡힌 몸이나 다름없소.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소. 하지만
딱 한 가지 부탁이 있소."
쟈베르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멍하니 서서 되물었습니다.
"당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이 남자는 누구요?"
그는 전처럼 장발장을 '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탁이란 이 사람의 일인데 이 남자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는 데 도움이
필요하오."
쟈베르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강물에 적시더니 피투성이가 된
마리우스의 얼굴을 닦았습니다.
"바리케이드에 있던 남자로군. 마리우스라고 했던가? 그럼 당신은 이 남자를
바리케이드에서 이 곳까지 데려왔단 말이군."
장발장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쟈베르는 마리우스의 손을 잡고 맥을 짚어
보았습니다.
"죽었군."
"아니, 아직 죽지는 않았소."
장발장은 마리우스의 웃옷을 뒤져 주소를 적은 종이를 쟈베르에게 보였습니다.
쟈베르는 그것을 보자, '지르노르망가.'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부!"
하고 소리쳤습니다. 마차가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차는 세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쟈베르는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차가 지르노르망 가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드디어 잠에 취한 흐리멍덩한 눈으로
일어나 나온 문지기에게 쟈베르가 소리쳤습니다.
"아드님을 데리고 왔소. 빨리 들어가 의사를 부르시오!"
온 집 안 사람들이 당황해서 허둥대며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두 사람은 마차로
되돌아왔습니다.
장발장은 쟈베르에게 침착한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쟈베르 형사, 지금부터 잠시 집에 들르는 것을 허락해 주셨으면 하오. 일을
끝내면 곧 돌아오겠소. 그 다음에는 당신이 좋을 대로 처리하시오."
쟈베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차가 달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마차는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좋소, 혼자 갔다 오시오.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쟈베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차를 돌려보냈습니다. 장발장은 깜짝 놀라 다시
쟈베르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쟈베르가 범인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놔 두는 일
따위는 전에 없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장발장은 코제트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마리우스가 있는 곳도 가르쳐 주고
재산도 정리해 두고 싶었습니다. 코제트와도 이젠 이별이다. 하지만 그 아이만은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깊은 생각에 잠겨 2층으로 올라가 창가에 서서 문득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쟈베르가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입니다!
쟈베르는 그 때 뒷짐을 지고 센 강변을 행해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잃었을 때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발걸음도 몹시 무거워 보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당이라고 생각하며 쫓아다녔던 사람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껏
법률 쪽에 선 자만이 정당하고 훌륭한 인간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악한
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의 행동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쟈베르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던 것입니다. 법률만으로 판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는 지금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 때까지 그의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 소리를 내듯 무너지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센 강은 풍요로운 물을 가득 채우고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쟈베르는 다리
위에 우뚝 서 한동안 넋을 잃고 물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평소의 냉정한 빛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장발장, 난 당신에게 졌소!"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는 난간 위에 섰습니다. 순간 그의 몸은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센 강의 물 위로 완전히 거꾸로 떨어져 갔습니다.
냉혹한 형사 쟈베르의 남자다운 최후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 지르노르망 가로 옮겨진 마리우스는 한때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맸으나
극진한 간호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지르노르망 노인은 전에 자신이 그렇게 화냈던 것도 잊고 마리우스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우스울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아, 마리우스! 살아났구나! 고맙다, 정말 고맙구나!"
노인은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마리우스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훌륭한 옷차림을 한 백발의 신사가 날마다
찾아와서는 환자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의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까지 마리우스는 높은 열에 시달리면서 바리케이드에서의 전투 상황을
희미하게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차례로 쓰러져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간 동료들의
일과 에포닌의 가련한 죽음 등도 어슴푸레하게 의식 속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창 전투 중에 갑자기 나타난 포슐방 씨의 일만은 아직껏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채 남아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자기를 바리케이드에서 할아버지
집으로 데려다 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집안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는 한밤중에 마차로 이 곳에 옮겨졌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를 태워다 주었다는 마부를 찾아 냈으나 그로부터 들은 것은 센 강변
하수도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업혀 마차로 할아버지의 집까지 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내가 하수도 출구에 있었던 것일까?
그 바리케이드로부터 어떻게, 왜 그 곳까지 왔던 것일까?
점차로 몸이 회복되어 가던 어느 날 마리우스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결심을 하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실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무슨 이야기냐?"
"저어.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아, 그 일이라면 벌써 알고 있다."
"알고 계시다면?"
"그 아가씨와 결혼한다면 나도 대찬성이다. 그 아가씨는 날마다 그 노신사를
대신해 여기 와서 네 상태를 물어 본단다 아주 훌륭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더구나."
마리우스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 3일 뒤 코제트가 노신사의 손에 이끌려 병문안을 왔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꿈인 듯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습니다. 드디어 두 사람의 뺨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오, 생각했던 대로 훌륭한 아가씨야!"
하고 지르노르망 노인은 외쳤습니다. 노인은 첫눈에 코제트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알아차린 것 같았습니다.
코제트와 함께 들어온 사람은 물론 포슐방 씨, 바로 그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손에는 무엇인가 꾸러미를 들고 조심스럽게 방의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지르노르망 노인은 포슐방 씨에게 다가서며 친근감 있는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포슐방 씨, 손자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대신해 따님에게 청혼하고 싶습니다만."
"감사합니다. 딸 아이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포슐방 씨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리우스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코제트의 아버지일 것이라고는 노인도
마리우스도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다 되었습니다.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도 가진 재산을 거의 다 써 버려 마리우스에게 물려 줄 재산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 그 이야기입니다만 실은 코제트는 60 만 프랑 정도의 지참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고 포슐방 씨는 꾸러미를 풀어 지폐 뭉치를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60 만 프랑이라고요! 그것 참 잘 됐군요. 마리우스는 운이 좋은 아이로군요."
놀란 것은 지르노르망 노인뿐만 아니라 마리우스나 코제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0 만 프랑은 장발장이 몽페르메이유 숲 속에 감추어 두었던 돈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 날부터 코제트는 날마다 포슐방 씨와 함께 지르노르망가를 방문해 온 정성을
다해 극진하게 마리우스를 간호했습니다. 마리우스는 몰라보게 건강해졌습니다.
포슐방 씨는 그럴때면 언제나 방의 한구석에 멈춰서 다소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다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결혼식은 다음 해인 1833 년 2월에 치러졌습니다.
그 날 포슐방 씨는 다쳤다고 하면서 목에서부터 오른손까지 붕대로 감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서명을 할 수 없어서 지르노르망 노인이 대신
후견인으로 서명했습니다. 코제트는 장발장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날의 코제트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새하얀 드레스가 잘
어울렸습니다. 마리우스도 코제트에게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젊은이였습니다.
교회에서의 결혼식이 끝나자 지르노르망 가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연회
테이블이 정돈되고 손님들이 각각 자리에 앉기 시작했을 때 지르노르망 노인은
포슐방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손가락의 상처가 아프다고 하시면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인님께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발장은 혼자 집으로 돌아와 팔을 걸어매고 있던 천을 풀고 손가락의 붕대로
풀어 버렸습니다. 손가락에는 상처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코제트가 떠나 버린 방은 몹시 추워 보이고 텅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혼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는 허전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장롱에서 작은 트렁크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코제트가 몽페르메이유의 테나르디에의 여관을 떠나올 때 입었던 옷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코제트는 그에게 매달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그만을 의지하고 있었던 어린 소녀였습니다.
지난 일을 머리에 떠올리며 장발장은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백발이 된 머리를
흔들면서 소리를 죽여 울었습니다.
진실
다음 날 장발장은 지르노르망 가를 방문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얼굴은
초췌해 있었습니다. 곧 마리우스가 나타나 다정하게 말을 걸며 어젯밤에는 연회에
나오질 않아 섭섭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마리우스의 이야기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무엇인가
혼자만의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드디어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을 때의 긴장되고
창백한 얼굴로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실은 자네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네. 이젠 더 이상 숨기지
않겠네. 나는 원래 죄수였다네."
"무슨 농담을!"
"아니, 정말일세. 나는 도둑질을 한 죄로 19 년 간이나 교도소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라네."
이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상대의 말을 더 이상 의심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도
또한 얼굴이 창백해져 말했습니다.
"전부 이야기해 주십시오. 어쨌든 코제트의 아버님이 아니십니까?"
장발장은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니, 아닐세. 난 코제트의 아버지가 아니라네. 내 본명을 포슐방이 아니라
장발장일세. 코제트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코제트는 고아였지. 나 같은
사람이라도 곁에서 그 아이의 힘이 되어 주고 싶었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내 곁을 떠나 퐁메르시 부인이 되었네. 이제 코제트는
행복하게 되었지. 60 만 프랑은 전혀 꺼림칙한 돈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세세한
일을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코제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난
셈이네."
마리우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막혀 우물거리며,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왜 일부러 하시는 겁니까? 잠자코 계시면 그것으로 그만이
아닙니까? 누구에게 쫓기고 계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장발장은 쟈베르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집요한 형사 쟈베르까지도 자신을 보고
눈감아 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성실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네. 이대로 자네와
코제트와 함께 살더라도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걸세. 아니, 나는 자네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못 되네.
나는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고민했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결심이 섰네.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았네. 양심에 따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일세."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묵묵히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곳에 코제트가 들어와 두 사람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 장발장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어쩐지 얼굴빛이 나빠 보이시는데요. 손이 아프세요?"
"아니다, 손의 상처는 이제 다 나았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잠시
마리우스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겠니?"
코제트는 곧 방으로 나갔습니다. 장발장은 다시 마리우스를 향해 말했습니다.
"마리우스, 내가 지금 했던 이야기는 부디 코제트에게 말하지 말게. 저 아이가
불쌍하니까."
"이렇게 된 이상 자네는 내가 코제트와 만나는 것을 더 바라지는 않겠지."
"그렇게 하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알겠네, 잘 알겠네."
장발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듯이 말하고는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애원하듯 슬픈 얼굴로 뒤돌아보았습니다.
"마리우스, 자네는 연약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은 코제트를
만나고 싶네. 나와 코제트는 19 년 가까이 쭉 같이 살아 왔네. 이것을 끝으로 그
아이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네. 이따금씩 만나러 오는 것을
허락해 주게. 얼굴만 보고 곧 돌아가겠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저녁이라도 오십시오."
장발장은 안심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방을 나갔습니다.
다음 날부터 장발장은 가끔 코제트를 만나러 왔으나 잠깐 이야기만 나눌 뿐
허둥지둥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오는 횟수가 하루 걸러, 이틀
걸러, 그러더니 이윽고 전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삶의 보람이고 마음의 지주였던 코제트가 자기 곁을 떠나자 장발장은 살아갈
의욕을 잃고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제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먹을 것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언제나 곁에 두는 트렁크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코제트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코제트는 이미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나로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앞으로는 코제트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 아이를 만나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강했던 장발장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눈물은 드디어 참을 수 없는
울음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 살아갈 의욕을 잃은 노인의 구슬픈
울음소리였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같은 날 정오를 조금 지났을 무렵, 한 남자가 마리우스의 저택을 방문해 하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그 편지의 글씨와 종이와 잉크 색깔이
낯이 익었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고르보 저택의 그 지옥 같은 방에 살면서 악마처럼
생활하던 종트레트가 그에게 자비를 구했던 편지와 똑같았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퐁메르시 남작 각하
저는 테나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각하와 관계가 있는 중대한 비밀을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들어만 주신다면 큰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아, 드디어 나타난 것일까! 워털루 전쟁에서 아버지의 은인인 테나르디에 쪽에서
먼저 찾아와 준 것이다! 마리우스로서는 은혜를 갚지 않으면 안 될 인물 중의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하인에게 명령해 그 남자를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온 사람은 아주 낯선 남자였습니다. 그 테나르디에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도 훨씬 들어 보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각하, 제 편지를 읽어 주셨군요. 중대한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돈을
좀 주셨으면."
"비밀이란 어떤 것이오?"
"각하의 저택에는 끔찍한 살인자가 드나들고 있습니다."
"내 집에?"
"예, 그렇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장발장이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라면 알고 있소."
"하지만 그 남자는 감옥을 탈출한 죄수입니다."
"그것도 알고 있소"
"지금 제 말을 듣고 아셨겠지요?"
"아니오, 전부터 알고 있었소."
이 때 남자의 눈빛이 음흉하고 예리하게 빛났습니다. 그것은 고르보 저택에서
장발장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기다리고 있던 테나르디에의 눈빛이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남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발장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이름도 알고 있소."
"그야 물론 그러시겠지요. 편지에 쓴 대로 저는 테나르라고 합니다."
"거기에 디에가 붙겠지?"
남자는 움찔하는 눈치였습니다.
"제 이름은 그게 아닙니다."
"숨겨도 소용없소. 당신은 전에는 종드레트라고 했지. 몽페르메이유에서 여관을
했던 적도 있었고. 게다가 당신은 지독한 악당이야. 그 본성을 내가 다 알고 있소.
자 이걸 줄 테니 당장 돌아가시오!"
마리우스는 남자의 얼굴에 500 프랑짜리 지폐를 내던졌습니다.
남자는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그렇게 큰 돈을 보자 싱글벙글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지요. 남작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테나르디에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안경을 벗자 원래 테나르디에의 얼굴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당황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는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테나르디에와 마리우스는 전에 고르보 저택에서 서로 옆방에 살고 있었지만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풍메르시 남작이 그 때의 가난뱅이
변호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우스 쪽에서도 마음 속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얽혀 있었습니다. 이런
악당이 아버지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된 것인지 확실히 밝히고 싶었고
코제트의 지참금에 대해서도 물어 보고 싶었었습니다.
"나는 당신 이름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알고 있소. 당신이 말한
대로 장발장이 살인자에다 도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소. 그는 마들렌이라는 돈많은
공장주의 재산을 훔쳤고 쟈베르 형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소. 나는 현장에
있었으니까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소."
"남작님, 어딘가 이야기가 좀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하신 이야기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저도
진실을 말씀드리지만 장발장은 마들렌씨의 것을 훔치지도 않았고 쟈베르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요?"
"무엇보다도 자기가 자기 것을 훔치는 따위의 일은 없으니까요. 장발장과 마들렌
씨는 동일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가 어디 있소?"
"쟈베르 형사를 죽인 것도 장발장이 아닙니다. 쟈베르는 스스로 센 강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테나르디에는 주머니에서 두 장의 낡은 신문을 끄집어냈습니다.
"남작님, 저는 장발장이라는 녀석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증거를 모았습니다."
그가 보인 신문 기사 하나는 마들렌 씨가 재판소에서 스스로 장발장이라고 밝힌
내용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쟈베르의 센 강 투신 자살을 보도한 기사로 자살하기 전에 쟈베르가
경시총감 앞으로 보고한 구두 기록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그것에 의하면 쟈베르는 바리케이드에서 포로가 되었으나 장발장이라는 남자가
권총을 하늘에 대고 쏘아 그를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리우스는 두 가지 기사를 단숨에 읽고 놀라움으로 정신이 없었으나 동시에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악인이나 살인자가 아니라 성인과 같은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놈이 도둑에다 살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의 사소한 절도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 일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이야기가 아니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저만이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작년 6월 6일
폭동이 한창이었던 날의 일입니다만 저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하수도가 센
강으로 내려가는 출구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센 강, 하수도 출구!
테나르디에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저는 그곳의 철문 열쇠를 가지고 있었지요. 밤 8시경이었는데 몸집이 큰 한
남자가 사람 시체를 메고 하수도 안에서 나오더군요. 자기가 죽인 시체를 센 강에
내버리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남자와 나는 딱 마주쳤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싶다며 열쇠를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어찌나 억세 보이든지 저는 무서워서 열쇠를 빌려 주었습니다. 그 때
얼핏 보니 남자의 등에 업힌 죽은 사람은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였는데 젊은 사람
같았습니다.
저는 기회를 엿보아 죽은 사람의 옷자락 끝을 살짝 찢어 두었습니다.
나중에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죠. 그래서 그 남자가 장발장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옷 조각으로 말씀드리면."
테나르디에는 피가 엉겨붙은 옷조각을 꺼내 손가락으로 집고 펄럭펄럭 흔들어
보였습니다.
마리우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속을 뒤져 웃옷
하나를 찾아 냈습니다. 검붉은 피가 달라붙은 낡은 웃옷이었습니다.
"그 웃옷이란 바로 이것이오! 그 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은 여기 있는 나란
말이오!"
그렇게 소리치고 마리우스는 상대의 손에서 옷조각을 휙 잡아채 웃옷의 찢어진
부분에 갖다댔습니다. 찢어진 부분과 옷조각은 꼭 맞았습니다.
마리우스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 자신을 구해 주었던
사람은 장발장인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은 그 사람에
대해서.동시에 그의 가슴에는 테나르디에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1000 프랑과 500 프랑짜리
지폐를 몇 장 끄집어내 그것을 테나르디에에게 들이대며 소리쳤습니다.
"이 거짓말쟁이야! 너야말로 진짜 악당이 아니냐! 넌 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내게서 돈을 우려 내려고 찾아왔어. 하지만 공교롭게도 네 생각과는
반대로 그 사람이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 되었군.
이봐, 테나르디에, 아니 종드레트, 나는 고르보 저택의 그 방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옆방에서 보고 전부 다 알고 있었다.
너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은 간단해. 증거는 얼마든지 자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이 1000 프랑을 줄 테니 당장 사라져 버리라고!
이것은 워털루 전쟁에서 은혜를 베풀어 준 대가다."
"워털루? 아니, 그러면 그 때의 군인은 당신의."
"그렇다. 아, 아직 3천 프랑이 더 남아 있군. 이것도 주겠다. 딸을 데리고
미국이든 어디든 떠나란 말이야. 그 때에는 2 만 프랑을 적선해 주겠다. 이것도
아버님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생각해라!"
"각하, 고맙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영문을 모르는 채 지폐 뭉치로 불룩해진 주머니를 손으로 누르며
꾸벅 절을 하고 방을 나갔습니다.
마리우스는 즉시 코제트를 부르고 하인들에게 말해 마차를 준비시키고는 급히
장발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마차 안에서 그는 코제트에게 장발장에 대해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발장에 대해 취했던 태도를 부끄럽게 여기며 후회했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영웅의 죽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장발장은 대답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장발장이 눈을 크게 뜨고 무엇인가 말하려 했을 때에는 코제트가
이미 그의 목에 매달려 사랑과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로 장발장을 불렀습니다.
"아버님!"
코제트 옆에서 마리우스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외에는 달리 장발장에 대한
자신의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 이제 자네도 나를 이해해 주는군. 고맙네."라고 장발장은 목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코제트는 노인의 주름잡힌 이마에 입을 맞추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어릴 때의 소녀처럼 행동했습니다. 장발장은 눈을 감은 채,
기쁨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한층 가늘고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리우스, 자네도 나를 이해해 주고 너도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주니 참으로
기쁘구나. 하지만 나는 이미."
"왜 그러세요, 아버지?"
하고 코제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쥐고 있던 장발장의 손이 점점
차가워 지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아버지?"
"아니다. 아픈 것이 아니라. 이제 죽을 때가 온 것 같다."
코제트와 아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마리우스, 내가 준 그 60 만 프랑은 안심하고 써도 좋은 돈일세. 부디 코제트를
행복하게 해 주게나."
그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져 갔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이제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사랑해야 해. 이 세상에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비참함을 경험하면서 맑고 아름다운 영혼에 눈떠
이제 막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장발장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한쪽 구석에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작은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 묘비에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 기구한 생애를 살다 간 한 사람이 잠들었네.
그는 자신의 천사를 잃자 세상을 떠났네.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작품에 대하여)
장발장
빅토르 위고는 1802 년,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서 태어나
1885 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작가입니다. 즉 19세기와 함께 태어나
19세기와 함께 살았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란 문학의 한 형식인 소설을 만드는 방법이 완성되어 소설이 가장 성행했던
시대입니다. 그 19세기 속에서도 위고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장발장(원제목은 레미제라블로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위고가 태어나기 13 년 전인 1789 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미국 독립과 때를 같이해 18세기말의 세계적 대사건으로 낡은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낡은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한 번의 혁명으로 사회가 바뀌고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립하고, 게닥 외국의 세력도 가세해
19세기 전체를 통해 극심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위고는 바로 그러한 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살았던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위고는
사회를 새롭게 만들려는 입장, 즉 공화파의 지도적인 중요한 인물이며,
시인, 소설가로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한때 프랑스를 떠나 영불 해협(영국과 불란서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
도버 해협이라고도 함)의 작은 섬으로 피신해 그 곳에서 19 년 동안이나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위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수선한 사회에서 불안한 생활을
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1815 년부터 1833 년에 걸친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치와 사회 문제, 사람들의 생활 태도, 사고 방식
따위의 문제들이 이 작품 속에 짙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위고의 문학 작품 성격은 낭만주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화파가 낡은
사회를 바꾸어 새로운 사회로 만들려고 했듯이 낭만파 작가들도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딱딱한 규칙이나 규제를 버리고 인간의 기분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회와 인간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위고는
낭만파의 지도적인 시인이며 소설가였습니다.
"장발장"은 위고의 이러한 사상, 사회관, 인생관, 소설관에 입각해 씌어진
대작입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인도주의적 사상입니다.
주인공 장발장이 이를 대표하는 인물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장발장은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죽어 갑니다. 그것은 그 말 그대로 작자 위고의 신념이었습니다.
위고가 1885 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국민적인 대작가, 공화제의 열렬한
옹호자로 이해했던 프랑스 국민은 국장의 예를 갖추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이 작품은 방대한 분량의 대장편 소설이지만 그 줄거리와 작품의 정신을
최대한으로 살리도록 노력하면서 줄여 쓴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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