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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을 물리친 컴퓨터 이야기 - 스타니스와프 렘

by Casey,Riley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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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을 물리친 컴퓨터 이야기 


                         스타니스와프 렘 (Stanislaw Lem)
  1921년에 출생한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SF작가이자  동구문학계의 
거목. SF의 통속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몇 안되는 작가중의 하나.  1960
년에 발표한 '솔라리스'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소련의 타르코프스키  감
독이 영화로도 만들어 유명해짐. 


  사이버리아의 통치자인 폴리앤더 파르토번 왕은 위대한 전사이자  현
대적 전술전략의 옹호자로서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를  군사기술의 
최고봉으로 꼽았다.
  그의 왕국은 사고하는 능력을 가진 기계들로 가득했는데, 폴리앤더왕
이 가능한 한 모든 곳에 그것들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천문대나 학교같
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길 위에 구르는 돌멩이들  하나하나에
조차도 인공두뇌가 달려있었다. 요란한 목소리로 보행자들에게  걸려넘
어지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전봇대나 벽, 나무들 위에도 인공
두뇌가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었을 때 어디든 방향을 물어볼 수 있도록 
했고, 구름에도 인공두뇌를 달아 비를 예보하도록 했다. 또 언덕과  계
곡에도 인공두뇌를 설치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이버리아에서는  인
공지능 기계류와 맞닥뜨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이버리아
는 매우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왜냐하면 왕이 기존의 사물을  사이버네
틱스로 완벽하게 다듬도록 명령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
가 새로 법을 정해서 완전히 새로운 만물의 질서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왕국에서는 사이버네틱 딱정벌레나 웅웅거리는 사이버네틱 
벌, 심지어 사이버네틱 파리까지도 제조되고 있었는데, 이들의 수가 너
무 많아지면 사이버네틱 거미가 이들을 잡아먹게 되어 있었다. 이 별에
서는 사이버네틱 가시금작화의 사이버네틱 덤풀이 바람에 스쳐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냈고 사이버네틱 파이프오르간과  사이버네틱  비올라가 
음악을 연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용 인공두뇌 설비보다 두 배나 많
은 군사시설물들이 있었는데, 이는 왕이 대단히  호전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왕궁에는 엄청난 덩치의 전략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
고, 당연히 그보다 좀 작은 컴퓨터들도 수두룩했다.  또한  사이버네틱 
국방부와 거대한 사이버네틱 수학담당부서, 게다가 화약을 비롯한 기타
의 무기들로 가득찬 무기고가 있었다. 하지만 왕에게는 딱 한 가지  문
제가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마음을 몹시도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 문제
라는 것은, 그와 전쟁을 치를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단 
한 명의 원수도 적도 없었고 또 어떤 식으로든 그의 땅을 침략하고  싶
어하는 이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보유한 사이버네틱 무기류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천
하를 호령하는 자신의 제왕다운 기백과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과
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진짜 적군과 침략자들 대
신 기술자들을 시켜 가짜 적들을 만들게 했고 이들과 싸워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전투는 실제로는 매우 치열했고 따라서 백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백성들은 지나치게 많은 사이버네틱 적군
들이 그들의 주거지를 파괴하고 인조괴물이 액체화염을 쏟아부을  때마
다 입속으로 궁시렁궁시렁 투덜거렸으며, 인공적군을 무찌르고  구원자
를 자칭하면서 왕이 나타나 그의 영광스런 공격의 앞길에 있는 모든 것
들을 쓰레기로 화하게 할 때면 감히 목소리를 높여 불만을  토로하기까
지 했다. 백성들은 배은망덕하게도 이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일삼았던 것이다. 
  급기야 왕은 행성 안에서만 하는 전쟁놀이에 싫증이 나서 시야를  넓
히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그가 꿈꾸는 것은 '우주'전쟁이었다. 
  사이버리아 행성에는 커다란 달이 하나 있었는데 몹시 황량한 불모지
였다. 왕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서 달에 군대를 창설할 기
금을 모아 그곳에 새로운 전쟁놀이터를 세우고자 했다. 사실  백성들은 
이제 폴리앤더왕이 사이버네틱 수학으로 그들을 구원하거나, 무기를 테
스트한답시고 애매한 집을 부수거나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
했으므로 기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기꺼이 세금을 지불했다. 이리하여 
왕실의 기술자들은 어떤 종류의 군대와 자동화기든지 척척 만들어낼 수 
있는 뛰어난 컴퓨터를 달 표면에 건설했다. 왕은 즉각 이런 저런  방법
으로 이 기계의 능력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  물론 
전보로 -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했는데, 그것은 1볼트마다  곡예점프
를 하는 전자곡예를 시범해 보이라는 것이었다. 'vault', 즉  곡예점프
를 뜻하는 단어가 전기의 전압 단위인 'volt'와 비슷했므으로 이런  엉
뚱한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왕은 기술자들이 말한 대로 정말 이  기계
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왕은  생각했다. 
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곡예점프를 시켜보자. 그러나 전보의  내용
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약간 왜곡되었고 결국 달의 컴퓨터에는  [전자곡
예]인 'electrosault'가 아니라 'electrosaur',  즉  [전자공룡]이라는 
엉뚱한 단어로 둔갑하여 최종전달되었다. 그리고 물론 컴퓨터는 성심성
의껏 이 명령을 수행했다. 
  그러는 사이에 왕은 반란을 일으킨 인공지능 노예  무리에게  점령된 
몇몇 주를 해방하는 토벌작전에 정신이 팔려 버려서, 달의 컴퓨터에 보
낸 명령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달에서 엄청난  크
기의 바위덩어리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왕은 혼비백산했다. 왜냐하면 
바위 하나가 왕궁건물에 떨어져 그가 아끼는 전리품인,  사이버네틱-피
드백기능을 가진 난장이 현인요정족들을 모두 박살내어 버렸기  때문이
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당장 달의 컴퓨터에다 해명을 요구하는 
전보를 쳤다. 하지만 컴퓨터는 대답이 없었다.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
문이었다. 전자공룡이 컴퓨터를 먹어치워 자기 꼬리로 만들어버렸던 것
이다. 
  왕은 즉각 완전 무장한 원정군을 달에 파견했다. 아주 무공이 뛰어난 
컴퓨터를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공룡을 무찌르라는 사명을 부여했다. 그
러나 몇 번 섬광이 번뜩이고 퉁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뛰어난  컴퓨터 
지휘관이고 원정군이고 모두 끝장이 나고 말았다.  전자공룡은  싸우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사력을 다해서 싸웠던  것이다.  게다가 
왕국과 왕에 눈독을 들여서 전쟁을 할 동기나 사기까지도 충천해  있었
다. 왕은 달에 사이버 중위들과 사이버 기술자들, 사이버 해병대와  사
이버 대령들, 막판에는 사이버 원수까지 파견했으나 전혀 성과를  거두
지 못했다. 우당탕퉁탕거리는 소리만 약간씩 길게 났을 뿐, 그걸로  그
만이었다. 왕은 왕궁 난간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이  참담한  광경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공룡은 점점 자라났고 달은 점점 작아졌다. 공룡은 달을  조각조각내
어 삼켜서는 자기 몸의 일부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왕과 백성들은 그제
서야 사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자공룡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없어지면 괴물은 당연히 사이버리아 행성으로 내려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왕은 궁리하고 또 생각했으나 도무지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당장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조차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기계들은 더 이상 파견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보나
마나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출정하는 것 역시 별로 좋은  방
법이 아니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 때 왕의 침실에서  전보수신기
가 한밤의 적막을 뚫고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다이아몬
드 바늘에 몸체가 순금으로 만들어진 왕의 개인용 수신기였는데,  달에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왕이 펄쩍 뛰어 전보기로  내달아  가보니, 
그 우아한 기계는 딱딱거리면서 다음과 같은 전보를 받아놓고  있었다. 
'이 공룡이 왕좌를 차지할 생각이니 폴리앤더 포르토번 왕은 썩 꺼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왕은 잔뜩 겁에 질려 머리에서 발끝까지 벌벌 떨고 서 있다가 잠옷바
람에 슬리퍼만 신은 채로 왕궁 지하창고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아주 낡
았지만 매우 현명한 전략컴퓨터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는 아직 그 컴퓨
터에는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전자공룡의 반란소동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어떤 군사작전을 놓고 의견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은 그런데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왕좌가, 아니 생사가 걸려있는 문
제가 아닌가! 
  그는 컴퓨터의 전원을 넣고 시험가동이 끝나기를 기다려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늙은 컴퓨터여! 훌륭한 컴퓨터여! 이러저러해서 공룡이 나를 쫓아내
고 왕좌를 빼앗으려 한다. 도와다오. 말을 해다오. 어떻게 해야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가?" 
  "음." 
  컴퓨터가 말했다. 
  "첫째로 지난 번에 내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둘째로 나를  오직 
'전자 대총리'라는 호칭으로만 불러주시오. 물론 '전자두뇌 경(Sir)'라
고 불러도 무방하오만." 
  "알았네, 알았어. 대총리라고 부르겠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
든 들어주지. 그러니 제발 나를 구해다오!"
  기계는 몸을 비비 틀고, 윙윙거리고, 헛기침을 하고 킁킁거리더니 마
침내 말했다. 
  "간단한 문제요. 우리가 달에 있는 놈보다 더 강력한 전자공룡을  만
들면 돼요. 그 놈이 달에 있는 놈을 물리치고 달을 궤도에 복귀시킬 거
요. 그러면 목적이 달성되는 거지요." 
  "완벽하군!" 
  왕이 대답했다. 
  "그 공룡의 청사진을 만들 수 있겠나?"
  "초(Ultra)공룡이 되겠군요. 청사진이 아니라 아예 공룡 자체를 만들
어주지요. 이제 착수합니다. 1분도 안 걸릴 거요." 
  그러더니 그 말마따나 컴퓨터는 쉭쉭 소리를 내고,  칙칙폭폭거리고, 
휘파람을 불고 웅웅거리더니 무언가를 안에서 조립해 내었다. 엄청나게 
큰 발톱이 번쩍거리면서 컴퓨터의 한쪽 옆으로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 
때 왕이 소리쳤다. 
  "늙은 컴퓨터여! 그만두게!" 
  "방금 뭐라고 했소? 나는 전자 대총리 각하요!" 
  "아, 그야 물론이지." 
  왕이 대답했다. 
  "전자두뇌 경. 자네가 만드는 공룡이 다른 공룡을 쳐부수는 건  그렇
다고 해 두세. 그런데 그 공룡이 그 자리에 또 남을 것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또 그녀석을 없앨 건가?" 
  "더욱 강력한 공룡을 또 하나 만들면 되지요." 
  컴퓨터가 설명했다. 
  "안 돼. 안 돼! 그렇다면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게. 달에 공룡이 없
어져야 하는 판에 점점 더 강력한 공룡이 생겨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
나?" 
  "아, 그건 또 다른 문제군." 
  컴퓨터가 대답했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당신이 얼마나 비논리적으로 이
야기하는지 알겠소? 잠깐... 생각을 좀 해 봐야겠군요." 
  컴퓨터는 윙윙거리고 음음거리고 헛기침을 하고 킬킬거리더니 드디어 
말을 했다. 
  "우리는 반(anti)공룡을 가진 반(anti)달을 만들어서 그것을 달의 궤
도에 갖다 놓는 거요. (이 때 속에서 뭔가 뚝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
고는 난롯가에 둘러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거지. 오, 나는야 즐거운  로
봇이라네. 물도 두렵지 않아. 풍덩 뛰어들어서는 씨익 웃는 거지. 트랄
랄라 길고 긴 나날들!" 
  "자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그래." 
  왕이 말했다. 
  "반(anti)달과 즐거운 로봇 노래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
  "즐거운 로봇이라구? 아, 그게 아니요. 실수를 했소이다. 속이 좀 잘
못된 느낌인데 아마 부속품이 하나 나갔나 보군요." 
  왕은 고장을 찾다가 다 타버린 부속품 하나를 발견하고 새 것으로 갈
아끼웠다. 그리고 다시 반(anti)달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난 반달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잠깐, 생각을 좀 해보고." 
  컴퓨터는 또 음음거리고 한숨을 푹푹 쉬더니 말했다. 
  "우리가 전자공룡을 죽이는 일반적인 법칙을 발견한다면, 달에  있는 
공룡은 그 특수한 경우에 불과할 것이고, 그러면 해결책은 간단한 것이
지요." 
  "그래? 그렇다면 그 이론을 발견해내게!" 
  왕이 대답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종의 실험용 공룡들을 만들어내
야 합니다." 
  "절대 안돼! 사양하겠네!" 
  왕이 소리쳤다. 
  "공룡 한 마리가 내 왕위를 빼앗게 생겼는데, 무더기로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나?" 
  "좋아, 그렇다면 다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연속 근사법의  전략적 
변형을 사용해야겠군. 가서 공룡에게 전보를 치시오. 세 가지 수학  공
식을 수행한다는 조건으로 왕좌를 넘겨주겠다고.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요." 
  왕은 즉시 전보를 쳤고 공룡은 이 제안을 응낙했다. 왕은 다시  컴퓨
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자, 이게 첫번째 공식이요. 공룡 자신을 자신으로 나누라고  말하시
오!" 
  왕은 그대로 전달했다. 전자공룡은 자기를 자기로 나누었지만,  공룡 
한 마리 분의 공룡 한 마리는 그대로 한 마리였으므로  공룡은  그대로 
달에 남아 있었고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방법이란게 고작 이런 건가?" 
  왕은 슬리퍼가 벗겨지도록 급하게 지하창고로 달려가서 호통을 쳤다. 
  "공룡은 자기를 자기로 나누었지만 하나를 하나를 나누면 그냥  하나
아닌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네." 
  "괜찮소. 일부러 그런 거니까. 그 첫번째 공식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
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이요." 
  컴퓨터가 말했다. 
  "이제 그 녀석에게 자신의 근(root)을 구하라고 말하시오!" 
  왕은 달에 전보를 쳤다. 그러자 공룡은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더
니 마침내 그 긴장으로 숨을 헐떡거리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
니 갑자기 무엇인가가 나왔다. 공룡이 자신의 근을 산출한 것이다! 
  왕은 다시 컴퓨터로 돌아왔다. 
  "공룡은 갈라지고, 벌벌 떨고, 이까지 갈더니 결국 근을  산출해냈고 
여전히 나를 위협하고 있네." 
  왕은 문간에서 소리쳤다. 
  "이젠 어떻게 하지? 이 늙은... 아니, 전자두뇌경?" 
  "마음을 굳게 먹으시오. 이제 가서 공룡에게 자신에서 자신을 빼라고 
  하시오!" 
  왕은 궁전침실로 서둘러 뛰어가 전보를 보냈다. 그리고 공룡은  자기
에서 자기를 빼기 시작했다. 공룡은 꼬리부터 없애기 시작하여 그 다음
에 다리를, 또 그 다음에 몸통을 뺐다. 그리고 끝내는 무엇인가 잘못되
었다는 것을 알고 중단하려 했지만, 이미 시작된 과정의  여세는  멈출 
수가 없어서 빼기는 계속되었고 결국 머리까지 사라져 영(zero), 즉 무
(none)가 되었다. 전자공룡이 사라진 것이다! 
  "전자공룡이 사라져 버렸다!" 
  왕이 지하창고로 뛰어들어 오면서 기쁨에 넘쳐 외쳤다. 
  "고맙다. 나의 늙은 컴퓨터여... 정말 고맙다. 정말 열심히 일해주었
다. 힘들게 일했으니 휴식이 필요하겠지. 이제 전원을 끊겠다." 
  "전하, 그렇게 빨리 끊지는 마십시오." 
  컴퓨터가 대답했다. 
  "나는 할 일을 했는데 전하는 이제 내 전원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전
자두뇌 경이라고 부르지 않겠단 말입니까? 불공평해요. 정말  불공평하
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좋아, 이젠 내가 공룡으로  변신하겠다.  그래, 
그래서 너를 왕국에서 추방할 거야.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좋은  통치자
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 넌 조금이라도 중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나와 의논을 하곤 했으니까. 그러니 사실 이때껏 이 행성을 통치한  것
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할 수도 있어...네 녀석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러더니 푹푹거리고 부풀어오르면서 컴퓨터는 전자공룡으로  변신하
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는 전자발톱이 한쪽 옆에서부터 튀어나오고 있는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숨도 못 쉴 지경이 된 왕은 슬리퍼를  찢어발겨
들고 컴퓨터 튜브를 무작정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입김을  푹
푹 내뿜고 캑캑거리더니 그만 프로그램이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전자공룡(electrosaur)]이라는 단어가 [전자국물(electrosauce)]로 변
해버렸다. 바로 왕의 눈앞에서 컴퓨터는 쌕쌕거리며 점점 흐물흐물해지
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엄청난 양의 [전자국물]로 변하고 말았다.  국물
은 계속해서 지글지글 끓으면서 짙푸른 빛의 불꽃으로 전기를 방출하고 
있었고 폴리앤더왕은 그 김이 풀풀 나는 거대한 국물 웅덩이를  보면서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한숨을 쉬며 왕은 슬리퍼를 고쳐신고 왕궁 침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 그는 180도 달라졌다. 그 때 겪은 일들로 인해  호전적인 
성격이 완전히 누그러져서, 그는 죽을 때까지 민간부문의 사이버네틱스
만을 개발했고, 군사쪽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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