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아서.C.클라크
킹맨이 그 다람쥐를 본 것은 우리가 숲을 지나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우리의 배낭은 작았지만 그 내용물은 다
양했다--그 곳에는 세마리의 뇌조, 네마리의 토끼(말하기가 뭣하
지만, 미안하게도 그 중 한 마리는 팔에 새끼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두마리의 비둘기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과
는 반대로, 두마리의 개들도 아직 살아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다람쥐도 우리를 보았다. 다람쥐는 자기가 근처
의 나무들에 끼친 손상으로 인해 지금 자신이 처형의 대상이 되
고 있다는 것을 이내 알아 차렸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가까운
친척들이 킹맨의 총에 희생되는 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세번
을 뛰어 다람쥐는 가장 가까운 나무밑으로 달려가더니 잿빛을
몇번 깜박이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윽고 지상
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곳의 은폐물 사이로 딱 한번 얼굴을 내
밀었을 뿐 그 녀석은 우리가 총을 여러개의 나무가지에 겨누고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모습을 드려내지 않았다.
우리가 잔디밭을 지나 훌륭한 고풍스러운 저택을 향해 걸어가
는 동안에도 킹맨은 내내 무슨 생각인가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
가 사냥감들은 별 흥미없어 하는 요리사에게 건네줄 때에도 그
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끽연실에 앉아 있을 때
에야 비로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 그 나무쥐는 말입니다."하고 갑자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는 감상적인 이유로 다람쥐를 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식해
서 언제난 다람쥐를 나무쥐라고 불렀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겪었던 어떤 사건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었지요."라고 카슨이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카슨을 노려 보았다. 그는 해군에 있었고 킹맨의 이야기를
전에 많이 들었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
다.
"믈론 듣고 싶지 않으시다면..." 킹맨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계속하시지요."하고 내가 급히 말했다. "흥미가 당기는데
요. 회색빛 다람쥐와 제2차 제우스 전쟁이 어떤 관련이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군요".
킹맨은 기분이 좀 누그러지는 둣 보였다.
"이야기 속에서 이름들은 좀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사려 깊게 말했다. "하지만 장소는 바꾸지 않겠어요. 그 사건은
화성에서 태양쪽으로 백만 킬로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K.15는 군사 정보원이었다. 무식한 사람들이 자신은 스파이라
고 부를 때마다 그는 고통스러워했지만, 그 당시 그는 보다 더
다급한 고통 속에 처해 있었다. 요 며칠동안 속도가 빠른 적의
순찰선이 그의 뒤를 슬고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우주선과 그렇
게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의 관심을 며칠씩이나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K.15가 기꺼이 포기하고 싶은 명예이기도 했다.
상황을 두배로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순찰선 정도로는 어림
도 없는 큰 우주선에 탄 그의 친구들이 약 12시간 후에야 화성
근처에서 그와 만나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물론
K.15가 꽤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불
행하게도 6시간 이내에 그가 적 순찰선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
게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불과 6시간 5분
후에 K.15는 넓은 우주공간 속으로 산화되어 사라지게 되어 있
었다. 어쩌면 화성에 착륙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
태를 더 악회시킬 염려가 있었다. 그의 화성착륙은 중립적인 화
성인들을 자극시켜 복잡한 정치적 문제들은 야기시킬 확률이 높
았다. 그리고 만일 그의 친구들이 그를 구하려 화성에 착륙한다
면, 일초에 천 킬로그램 이상의 연료를 소모해야만 하는데 그것
은 우주선 비축연료 전량의 소모를 의미했다.
그에게는 오직 한가지의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마저도 대단히 의심스러운 유리함이었다. 즉 순찰선의 함장
은 그가 다른 우주선과 랑데뷰를 하러간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는 있었지만, 그와 만나기로 되어 있는 우주선이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그 그것의 크기가 얼마인지에 대하서는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일 그가 12시간만 버틸수
있다면 그는 안전할 것이었다. 그 '만일'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K.15는 계기판을 바라보며 차라리 연료를 다 소비해서라도 최
후의 돌진을 해볼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도데체 어디를 향해
돌진한다는 말인가? 연료를 다 써버리면 정말이지 아무런 희망
도 없어질 텐데. 적 순찰선은 아직도 연료가 많이 남아 있을 가
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구조의 희망도 없어진 채 친
구들의 우주선을 지나쳐 텅빈 암흑속으로 사라져갈 것이고, 그
의 친구들은 상대적인 속도 때문에 그를 구하지 못하고 그냥 지
나쳐 가 버릴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해 질수록 머리가 느리게
회전을 한다.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에 최면이라도 걸린듯, 운명
에 체념하고 위기를 피하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K.15는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을 당하자 자신의 정신력이
더 강해지고 더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리는 과거 그 어
느 때보다도 더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찰선 '도라두스'호의 스미스 함장은 K.15가 속도를 늦추는
것을 조금도 놀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스파이 우
주선이 어쩌면 화성에 착륙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반쯤은 하
고 있었다. 왜냐하면 격추되는 것 보다는 포로로 남이있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은 정찰선이 '포보스'를 향
해 가고 있다는 보고를 상황실에서 전해 듣고 그는 완전히 어리
둥절해졌다. 그 위성에서는 20여 킬로미터에 걸쳐서 바위와 돌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경제적인 화성인들조차도 불모지로 버
려둔 곳이었다. 만일 그곳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K.15도 어지간히 다급해 있음이 틀림 없었다.
그 조그만 정찰선을 거의 붙잡으려는 찰나 '포보스'의 덩치에
가려 그의 레이다는 그만 K.15를 놓쳐 버렸다. 브레이크를 거느
라고 K.15는 그동안 확보해 왔던 유리한 거리를 다 잃고 이제는
'도라두스'로부터 불과 수분 거리에 위치해 있게 되었다. 추적
선은 정찰선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 속도를 줄였고, '포보스'
로부터 불과 3000키로미터 지점에서 완전 정지를 했다. 그런데
K.15는 아무데에도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틀림없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흔적조차 찾을수 없었다.
그것은 작은 달 뒤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수 분 후에 그 정찰선은 다시 나타나 태양과 정반대 쪽을 향
해 고속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섯배쯤 속력을 늘이
고 있었고 이윽고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동 녹음기가 흥미
있는 메세지를 반복해서 송출하고 있었다.
"지금 '포보스'에 착륙해서 제트 순찰선의 공격을 받고 있음.
구하러 올 때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음. 속히 와 주기 바람."
그 메세지는 암호로 되어 있지도 않았다. 함장은 완전히 어리
둥절해 졌다. K.15가 아직도 정찰선에 타고 있고, 그 메세지가
허위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것은 속
임수일 수도 있었다. 즉 그것은 메세지를 일부러 암호화 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듣고 어리등절하도록 만들어낸 조작일수도 있
었다.만일 K.15가 정말로 달에 착륙했다면 함장으로서는 그를
추적할 시간도 연료도 없었다. 구조선이 오고 있다는 것이 명확
해 졌기 때문에, 한시라도 그곳을 떠나는 것이 함장으로서는 그
만큼 더 유리해질 것이었다. "구하러 올때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음."이라는 말은 완전히 허풍일 수도 있고, 동시에 진짜 구조
대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K.15의 정찰선은 이제 무선을 멈췄다. 명백히 연료가 떨어진
것이었다. 이제 그것은 일초에 6킬로미터씩 태양으로부터 멀어
져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K.15는 분명 착륙한 것이었다. 왜냐하
면 그의 우주선은 이제 속절없이 태양계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스미스 함장은 그것이 송출하고 있는 메세지
가 싫었으며, 그 정찰선이 접근해오고 있는 구조선의 궤도 속으
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
는 일은 사실 거의 없었다. '도라두스'호는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 '포보스'를 향해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표면상으로는 스미스함장이 우세한 것 같았다. 그의 우주선은
열두개의 우주 미사일과 두개의 전자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적은 우주복을 입고 겨우 20킬로미터 전방에 있는 한사람
일 뿐이었다. 100킬로미터까지 접근해서 '포보스'의 모습이 잘
보였을때 비로소 함장은 K.15의 운명도 이제는 별수 없게 되었
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문학 서적들이 '포보스'의 직경을 20킬로미터라고
기록한 것은 분명한 착오였다. '직경'이라는 말은 대칭을 전제
로 한 것인데 '포보스'는 대칭으로 이루어진 달이 아니었기 때
문이다. 다른 우주의 유성들처럼, 그것도 역시 공기도 없고 중
력도 없으며, 형태도 분명치 않은 바위덩어리일 뿐이었다. 그것
은 매 7시간 39초마다 자전을 했기 때문에 언제나 화성을 바라
보고 있었으며, 화성과 너무 가까와서 다만 절반만 보이는 달이
었다. 그리고 양극이 지평선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위성이었다.
그것 말고는 '포보스'에 대해 더 묘사할 만한 것은 없었다.
K.15는 자신의 머리 위 하늘에 펼쳐진 초생달 모양의 아름다
운 세계를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내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땅으로 던진 다음, 자동조종으로 바꾸어 놓고
정찰선에서 뛰어내렸다. 자신의 우주선이 별들을 향해 사라져가
는 것을 보면서 그는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복수
를 위해 자신의 우주선을 불태워버렸으며, 다만 다가오는 구조
선이 자신의 정찰선이 무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내보내는 메세지
를 수신하기만을 기원했다. 적 순찰선이 그것의 뒤를 추적할 가
능성도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 과분한 희망이었
다.
그는 새로운 피난처가 된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양은 지평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빛은 화성에서 오는 희미한 광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빛도 그에게는 충분했다. 그는 2킬
로미터에 걸쳐 낮은 구릉들이 펼쳐져 있는 불규칙적인 평원의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읽은 '포보스'에서 우연히 뛰
어내린 사람이 아야기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왜냐
하면 --비록 그것이 '데이모스'에서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여
기에서는 탈출 속도가 일초에 겨우 10미터 밖에 되지 않기 때문
이다. 하지만 만일 조심하지 않으면, 그는 지상에서 너무 높이
떠올라 다시 내려가는데 몇시간이 걸릴 위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치명적이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K.15의 계획은 간
단했기 때문이다--그는 가능한한 '포보스'의 표면에 붙어 있는
것 (그것은 곧 그가 순찰선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
을 의미했다)이었다. 그러면 '도라두스'호는 20킬로미터에 펼쳐
져 있는 바위 위에다 갖고 있는 모든 포화를 퍼부을 것이지만
그것은 그에게는 타박상조차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
만 두가지 심각한 위험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아예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천문학에 대해 세부지식이 없는 평법한 사람들에게는 그 계획
이 자살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선 '도라두스'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와 추적선을 떼어놓
고 있는 20킬로미터는 우주선의 속도로 불과 일초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러나 스미스 함장은 영리한 사람이었고 그래
서 이미 불쾌해지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만든 수송선 중에서
우주 순찰선이 가장 조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우주선이 한바퀴 돌 동안에 K.15는 자신의 작은
세상을 적어도 여섯번은 돌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들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믿지 못하는 사
람들은 다음과 같은 기본 지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로켓 추
진 우주선은 다만 축을 따라--말하자면 '앞으로만'--가속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직선 코스부터 벗어나려면 몸체를 실
제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모터가 반대방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와 같은 동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모
두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시간을 소요하는지 아는 사람
은 거의 없다. 연료를 가득 채우면 2000 내지 3000톤이나 되는
보통 순찰선의 동작은 결코 빠를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우주선의 무게나 크기가 아니라 그와 같은 동
작중에 그것이 경험해야만 되는 무력상태이다. 더우기 몸체가
길고 가느다란 순찰선의 경우, 그것이 겪는 순간적인 무력상태
는 엄청나다. 서글픈 사실은 (천문학 기사들은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우주선을 180도로 돌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분이
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제트 분사 조종기 역시 별로
빠르지 못하며 결국 우주선은 탑승객을 괴롭히며 언제나 슬로우
모션 바퀴처럼 돌아가기 때문이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와 같은 불리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
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때에는 우주선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공간이나 시간이 충분해서 특별히 그것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현재와 같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는 방향을 돌리는 것 자체가 규정에 어긋나
는 것이었다. '도라두스'호의 함장은 기분이 우울했다. K.15가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영리한 달 위의 인간은 더 나쁠 수도 있었을 상
황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세번의 도약으로 구릉에
도착했고 공터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안전한 기분을 느꼈다. 우주
선에서 가지고 내린 식량과 물건들은 나중에 찾을 수 있는 곳에
감추어 놓았다. 자신의 우주복이 생명을 하루 이상 연장을 시켜
주는 한은 그것을 별로 걱정거리가 못 되었다. 이 모든 추적전
을 초래한 조그만 꾸러미는 아직도 수많은 주머니가 달린 우주
복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비록 생각했던 만큼 외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속에서 그
는 솟아오르는 외로움을 느꼈다. 하늘에 고정된 채, 화성은 '포
보스'가 밤하늘에 떠오름에 따라 현저하게 기울어져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운하를 구별해 주는 화성의 도시들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그외에는 별들과 침묵과 같이 느
껴지는 산봉우리들이 있을 뿐이었다. '도라두스'호의 흔적은 아
직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쯤 낮 쪽의 '포보
스'를 망원경으로 세밀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었다.
화성은 아주 편리한 시계였다. 에컨데 화성이 반달처럼 되면
달이 뜨는데, 그러면 아마도 '도라두스'호의 모습도 떠오를 것
이었다. 하지만 그 추적선은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그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
었지만--이미 착륙해서 수색대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사실 그것은 맨 처음 스미스 함장의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이
었다. 그러나 그는 곧 '포보스'의 표면이 적어도 천 평방 킬로
미터는 될 것인데, 승무원 중에서 수색대로 보낼 수 있는 인원
은 기껏해야 열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K.15는 분명히 무장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도라두스'가 소유
하고 있는 무기들을 생각할 때 K.15의 무장은 얼핏 실없는 것
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보통
의 순찰에서는 휴대용 무기란 우주선에 있어서 겨우 단도나 활
같은 정도의 기능 밖에는 필요없는 것이었다. '도라두스'는 우
연히도 한자루의 자동 소총과 백발의 탄환을--그것도 사실은 규
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수색대를 조직
한다면 무장하지 않은 몇사람이 유리한 지형에서 필사적으로 저
격해 올 무장한 사람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K.15
는 다시 한번 규칙을 깨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화성은 반달의 모습을 드러내었고, 바로 그 순간에 태양
이 천둥처럼이라기 보다는 원자탄의 투하처럼 떠올랐다. K.15는
눈에 낀 보호경의 필터를 조정한 다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햇빛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그늘에 있어야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이고, 또 햇빛
속에서 눈이 예민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쌍안경 하나만
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도라두스'호는 노츨거리가 적어도 20
센티미터는 되는 자동 망원경을 갖고 있엇다.
K.15는 가능하다면 그 순찰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 좋으리
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대단히 꺼림직힌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것의 위치를 알고 지켜볼 수 있다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
다. 그런 다음, 그는 지평선의 아래쪽에 숨어 있으면 되고, 그
것의 움직임은 로켓의 불빛으로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조심스럽게 지평선을 따라가면서,그는 자신의 세계를 우
회해서 움직여 나갔다.
좁아지는 초생달 형태의 화성이 지평선 밑으로 가라 않자, 하
나의 거대한 뿔형태가 되어 수수께끼처럼 별들쪽으로 뻗어나갔
다. K.15는 다소 걱정이 되었다. 아직도 '도라두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순찰선은 밤처럼 검은색이었고 백킬로미터쯤 우주공간에 떠
있을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멈추어서서, 과연 자기
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바로 그때 그는
무었인가 커다란 물체가 거의 수직으로 떠오르면서 머리 위의
별들을 빠른 속도로 가리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가 얼마
나 바보짓을 했는가를 깨달았다.
하늘을 가로지으며 나타난 그 검은 그림자가 사실은 순찰선은
아니었지만 똑같이 치명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한
참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그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
었고 휠씬 가까이에 있었다. '도라두스'호는 그를 찾기 위해 텔
레비젼 유도 미사일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두려워했던 두번째 위험이었다. 가능하면
보이지 않도록 숨어 있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라두스'호는 많은 탐색기구들을 갖고 있었지만,그것
들은 아주 심각한 약점을 갖고 있었다. 즉 그것들은 별을 배경
으로 햇빛을 받고 있는 우주선을 찾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었지
바위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을 찾기 위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리
고 그것들의 텔레비젼 화상은 아주 빈약했고 게다가 오직 전방
만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장기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게임은 점점
치명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 폭탄은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곧
'포보스'를 뒤로 하고 떠나가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K.15는
곧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그는 곧 한
쪽에서 로켓의 불빛이 반짝하더니 유도탄 하나가 떠올라 궤도
속에 자리를 잡았고, 잠시 후 또 다른 쪽에서도 로켓의 섬광을
보았다. 지금 저런 도구가 몇개나 돌아다니고 있을까 그는 의아
하게 생각했다. 그가 알기로는 제트타입 우주선에는 모두 네개
의 미사일이 있는데. 지금 그 네개가 모두 사용되고 있는 것 같
았다.
갑자기 그는 너무나도 좋아서 과연 실현 될 수 있을까 의심스
러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우주복에는 주파수 조종이 가능한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는 주파수를 천 메가사이클을 올
려 '도라두스'로부터 나오는 무전을 수신하기 시작했다.
무전은 재빨리 잡혔다--교신기의 윙윙하는 소리가 가까이에
서 들려왔다. 아마도 그는 다만 그 윙윙 소리만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어도 소리
는 분명했고, 처음으로 K.15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긴 안목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도라두스'호는 자기 함정에 자기가 빠
진 것이었다. 그것의 미사일을 작동시키는 한, 그는 그것의 정
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몸을 움직여 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호가 약해지더니 잠시후 다시 강해지가 시작
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자신이 전파분산지역 속을 전진하고 있
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일 그가 유능한 물리학자였다면 그 전
파분산지역의 범위가 흥미를 끌었겠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도라두스'는 햇빛을 받으며 지상에서 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
에 떠 있었다. 그것의 '비반사'페인트는 다시 칠해야 될 때가
훨씬 넘었고, K.15는 그것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가
어듬 속에 가만히 서 있자, 그늘이 그로부터 움직이기 시작했
다. 그는 이곳이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리라고 판단했다. 그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기다리며 순찰선을 관찰했다. 유도 미사일
은 결코 이렇게 모선 가까이에는 오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쯤
'도라두스'의 함장은 아주 화가 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것은 백번 옳은 생각이었다.
한시간쯤 후에, 순찰선은 하마처럼 우아하게 한바퀴 돌았다.
K.15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측해 보았다. 스미스
함장은 드디어 한바퀴 둘러보기 위해, 위험한 50킬로미터 여행
을 하려고 하는 것이리라. 그는 우주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
는지 면밀히 살폈고 드디어는 그것의 우현이 자기쪽으로 향햐
서는 것을 보고 저으기 안심했다. 그러자 승무원 들에게 불쾌감
을 줄만한 경련을 몇번 일으키더니 그것은 지평선을 향해 내려
가기 시작했다. K.15는 편안한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가면서,
이것이야말로 아무나 못해 보는 스릴 만점의 축제라고 생각했
다. 그는 거의 일킬로미터나 되는 우주선의 활주대를 밟지 않도
록 노력했으며,혹시라도 미사일이 나타나지 않나 극도로 조심을
했다.
'도라두스'가 50킬로미터를 다 도는데는 거의 한시간이 걸렸
다. 그것은 우주선의 평균속도의 천분의 일도 못되는 속도였다.
그것의 계산은 그를 즐겁게 했다. 한 번은 우주선이 곁길로 나
가 그만 우주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것은 몸체를 돌리기 보다
는 포탄을 발사해 속도를 줄였다. 우주선은 드디어 다시 제자리
로 돌아 왔고. K.15는 자리를 잡고 앉아 우주선을 바라볼 수 있
는 두 바위 사이로 들어가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우주선에서는
그를 볼 수 없는 것이 확실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스미스 함장
이 과연 자기가 '포보스'에 착륙했는지 의심했으리라는 것을 알
았다. 순간 그는 신호탄을 쏘아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을 물리쳤다.
그로부터 10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여기에다 다 이
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지금까지의 상
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라두스'는 세번 더 움직
였고 K.15는 마치 코끼리 사냥꾼처럼 조심스럽게 그 주위를 맴
돌았다. 힌번은 우주선이 햇빛속으로 그를 몰아내었고, 그는 그
것의 신호소리만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우주선을 지평 밑으로 내
려가게 했다. 그러나 대개는 편리한 언덕 위에 숨어 그는 관찰
을 계속했다.
한번은 미사일 하나가 몇 킬로미터밖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
렸다. K.15는 아마도 그것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피곤한 나머지
그림자를 보고 미사일을 폭파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기사 한사람이 그것의 폭팔 신관 퓨즈를 꺼두는 것을 잊어버렸
는지도 모른다. 그외에는 상황에 활기를 주는 일은 아무것도 일
어나지 않았다. 사실 그 모든 것은 매우 지루했다. 그래서 그는
가끔 머리 위로 지나가는 미사일의 출현을 거의 반가와 할 뻔
하기도 했다. 사실 그가 적절한 곳에 숨어 움직이지 않는 한은
그것들이 자기를 찾아낼 염려는 없었다. 그가 순찰선의 반대 방
향쪽 '포브스'에만 숨어 있는 한은 그는 안전했다. 왜냐하면 우
주선은 전파 분산지역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만일 순찰선이 다시 움직이면 안전지역에 숨어
있는 것이 가장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종말은 매우 빨리 다가 왔다. 갑자가 요란한 제트 분사음이
나더니 우주선은 힘과 영광 속의 우주로 떠올랐다. 다음 순간
'도라두스'는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앞을 방해하던 바위 덩어
리들을 떠나 드디어 자유롭게 우주를 향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깨닫자, K.15에게는 평화와 안도의 감정이
휩쓸고 지나갔다. 순찰선의 무전실에서는 과속으로 접근해 오는
구조선의 불협화음을 들었다. K.15에게는 이제 우주복의 무전기
를 켜놓고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그는 이제 담배 한대를 피
워 물 여유까지 생겼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군요."라고 내가 말했다. "이제 그 이
야기가 다람쥐하고 어떤 연관을 갖는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한두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그래요?" 하고 루퍼트 킹맨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끝까지 파고 드는 성미였고, 또 우리를 초대한
사람이 별로 언급은 하지 않지만, 제우스 전쟁에 직접 참전했다
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비정규적인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
시는지요? 혹시 당신이 그 K.15는 아니신지요?"
그 순간 카슨이 목이 졸리는 듯한 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자 킹맨이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오."
그는 일어나더니 엽총실로 갔다.
"만일 실례를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그 나무쥐를 한번 떠 쏘
러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그 놈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요." 그는 가버렸다.
카슨은 마치 내게 이렇게 쳐다보았다. "너는 이제 이집에서도
두번 다시 초대받지 못할 거야." 그리고는
우리의 주인이 멀리 사라지자 시니컬하게 이렇게 말했다.
"넌 또 그런 일을 저질렀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니?"
"충분히 근거 있는 추측이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가 그렇게 잘 알고 있겠어요?"
"사실은 말이다. 그가 전쟁 후에 K.15를 만난 걸로 알고 있
다. 그들은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나누었지. 그러나 나는
네가 그때 사건으로 루퍼트가 부함장으로 강등되어서 제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사문위원회는 결코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어. 어쨌든 당시 우주함대에서 가장 빠른 우주선
의 사령관이 우주복을 입은 사람 하나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납
득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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