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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분지 이야기

by Casey,Riley 2022.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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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분지 이야기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빌붙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마누라의 친정집에서 나와 고쿠분지(國分寺)로 이사를 
했다. 왜 하필이면 고쿠분지냐 하면, 거기에서 재즈 찻집을 
시작해 보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취직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 좀 연줄이 닿는 TV방송국 같은 델 몇 군데 
다녀 봤지만, 일의 내용이 기가 찰 정도로 한심스러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자그마한 가게라도 
좋으니 나 혼자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재료를 골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한테 제공할 수 있는 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재즈 찻집 정도에 불과했다. 좌우지간 
재즈가 좋았고, 조금이라도 재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사업 자금은 나와 마누라 둘이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저축한 
돈 이백 오십 만엔에다, 나머지 이백 오십 만엔은 양쪽 부모님에게 
빌려서 조달하였다. 1974년의 일이다.

그 당시의 고쿠분지는 오백 만엔쯤 있으면 그런대로 좋은 장소에 
스무 평 정도 넓이의 제법 분위기 좋은 찻집을 차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오백 만엔이란 돈은 거의 자본이 없는 
사람이라도 좀 무리를 하면 긁어모을 수 있는 액수였다.
요컨대 돈은 없지만 그렇다고 취직도 하고 싶지 않은 인간도, 
아이디어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고쿠분지의 내 가게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경영하는 흥미로운 가게가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고쿠분지나 쿠니다치(國立) 부근 조차도 땅값이 상당히 많이 
올랐고, 건축비도 올랐으니 역 가까이에다 열 다섯 평에서 스무 
평 남짓의 좀 세련된 가게를 벌이려고 하면 최소한 이천 만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이천 만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젊은이가 모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과거에 내가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었던 만큼, 요즘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염려스럽다. 
빠져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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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하루키는 고쿠분지에다 <피터 캣(고양이 피터)>이라는 재즈 
  찻집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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