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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학습에 대하여

by Casey,Riley 202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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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에 대하여
  
세상에는 크게 나누어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또 잘 가르치기도 하는 사람'과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를 
좋아하고, 또 잘 배우기도 하는 사람' 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쪽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양족 다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략 처음에 말한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타입으로,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데는 그야말로 젬병이다. 그래서 강연의뢰라든가 
컬쳐스쿨의 '소설 작법 강좌'를 맡아 달라는 의뢰같은 게 와도 늘 
사양하고 있다. 세상에서 뭐가 불행하니 어쩌니 해도, 가르치는 일에 
능숙하지 못한 인간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입장에 놓이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게서 소설 작법을 배운 사람이 훗날 도대체 어떤 소설을 쓰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빗쭈빗해진다. 가르치는 쪽도 
불행하지만, 배우는 쪽 역시 상당한 불행이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창작과(크리에이티브 코스)'라는 게 있어, 거기에서는 
작가가 학생들에게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친다. 나도 내 두 눈으로 본 게 
아니라서 정확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대충 열 명 이내의 학생이 주에 
한번 모여 자기가 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하고, 거기에 대하여 토론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교사인 작가가 학생들의 작품을 체크하여, 
새로 고쳐쓰기 위한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의 좋은 점은 학생들이 프로 작가들과의 교제를 통해 실전적인 
어드바이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작가의 수입이 안정된다는 것에 있다.
교사로서의 업무량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작가는 여가를 자신의 창작에 
할애할 수도 있다. 이런 시스템이 교육 수단으로써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잘 판단할 수 없으나, 일본의 대학에도 조금쯤은 이런 코스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도저히 무리지만, 가르치는 게 장기인 작가와 
배우는 게 장기인 학생이 일체가 되면, 그 나름의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대학 강의실에서 소설 작법 같은 걸 배울 수 있을 법한가' 하는 
의견은 역시 지나치게 일면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특시 젊은 사람은─모든 
것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워 나가는 법이고, 그 장소가 대학의 강의실이라 해서 
나쁠 건 없다.

하긴 내 자신은 학교라고 하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변변하게 공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항심 투철한 학생쪽이었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한테 
얻어 맞은 일밖에 기억나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은 마작을 하거나 
여자친구랑 놀러 돌아다니는 사이에 삼 년이 지나가 버렸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학원분쟁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게 일단락지어질 무렵에는 
학생인 주제에 결혼을 했으니, 그 다음은 생활에 쫓겨서 라는 이유 등등으로 
암만 되새겨 보아도 지긋하게 엉덩이를 눌러 붙이고 면학에 힘쓴 기억이 없다.
특히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는 7년 동안이나 적을 두고 있었으면서도─이건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얘긴데─무엇 하나 배운 게 없다. 와세다 대학에서 
얻은 지금의 마누라뿐인데, 마누라감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게 교육기관으로서의 
와세다대학의 우수성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된 것은 대학을 나와 
소위 '사회인'이 되고부터이다. 어쩌면 그것은 학생 시절에 마음껏 놀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학교라고 하는 제도가 애당초 내 성격에 안맞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혹은 또 내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 데 
가치를 두는 타입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이 한가한 틈을 타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국 소설을 찔끔찔끔 
번역하거나, 아는 사람한테 프랑스어를 배우거나 하는 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여러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주의 깊게 듣도록 노력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일이란 무척 재미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생각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 다르다. 
그중에는 '과연 그럴 듯한데'하고 감탄하게 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있다. 그러나 무의미하고 허무맹랑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유심히 들어보면 그것은 또 그 나름의 가치 기준위에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됐든 이 편이 한걸음 물러나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태도를 
보이면 대개의 사람들은 비교적 정직하게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는다. 
그 당시에는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이러한 학습 체험은 
훗날 소설을 쓰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런 것들은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젊은 시절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하면 어른이 되어 완전히 공부 벌레가 되거나, 
반대로 공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인이란, 학생 시절에는 무턱대고 공부를 했는데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뒹굴뒹굴 뒹굴면서 TV나 보는 타입이고, 공부벌레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튼 무슨 공부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타입이다.

뭐 그런 거야 어차피 타인의 삶이니까 어째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어린 시절에 실컷 놀 수 있었던 사람쪽을 좋아한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화풍으로 봐서 꽤나 여유로운 소년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데, 글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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