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버넷
1.외톨이가 된 메어리
해질녁, 미스르스웨트로 향하는 마차 안에는 한 어린 소녀가 고집스런 얼굴
로 앉아 있었다. 소
녀의 팔 안에는 온몸이 은빛털로 뒤덮인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겨 있
었다.
그 소녀의 이름은 메아리.
메어리의 조그마한 얼굴은 야윌 대로 야위었고 몸은 삐쩍말라 있었다. 게다가
검은 색 옷에 검
은 색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더욱 침울해 보였다.
메어리는 팔 안에 안긴 고양이가 자꾸 몸을 비틀자 검은 색 장갑을 낀 여윈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패티, 조금만 있으면 돼."
메어리는 고개를 내밀어 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
름이 둥실둥실 흘러
가고 있었다.
"저거 봐, 패티. 구름이 꼭 코끼리 모양 같애. 영국에도 코끼리가 있을까?"
메어리는 인도에서 살다가 영국에 있는 클레이븐 아저씨의 집에서 살기 위
해 미스르스웨트로
가는 중이었다. 메어리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아저씨의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어머니와 아버
지를 한꺼번에 잃었기 때문이다.
메어리가 살고 있던 인도에는 콜레라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퍼졌는데 메어리
의 어머니와 아버지
도 이 병에 걸려 하루 아침에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패티를 안고 있는 메어리의 앞에는 메드로크 부인이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앉
아 있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클레이븐 씨 저택의 하인들을 관리하는 하녀 감독이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메어리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휴, 정말 볼품없이 생긴 애로군. 게다가 저 고양이는 또 뭐야?'
그때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스며 들어오자 패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메드로크 부인이 낮게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저 고양이 좀 치울 수 없어요? 털이 마차 안에 날리잖아요."
메어리는 패티를 더욱 꼬옥 껴안으며 앙칼지게 쏘았다.
"아줌마가 이 마차 밖으로 나가면 될 거 아냐?"
메드로크 부인은 어이가 없었지만 메어리가 클레이븐 주인님의 조카였기 때
문에 꾹 참을 수밖
에 없었다.
메어리는 신경질을 잘 부리는 버릇없는 아이였다. 바쁜 부모님 밑에서 쓸쓸
하게 자란 메어리는
거의 하녀들의 손에 맡겨져 자랐다.
메어리의 아버지는 영국 정부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늘 바쁘셨고, 어머니는
뛰어난 미인이었지
만 파티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을 좋아했다.
하녀들은 메어리가 요구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해주었기 때문에 메어리는
점점 더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갔다.
메어리의 고집스러운 성격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
다.
메어리는 부모님을 잃고 난 뒤로 세상에서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메어리의 성격은 더욱 비뚤어졌다.
"지금부터 가게 되는 곳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데, 클레이븐 아저씨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메드로크 부인이 묻자 메어리는 무뚝뚝한 말투로 짧게 대답했다.
"아니."
"아저씨에 대해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나요?"
"응."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부모님께서 특별히 아저씨에 대해 말씀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그럼 아가씨가 놀라는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해
좀 얘기해 드리
는 편이 좋겠군요. 굉장히 색다른 곳이거든요."
메드로크 부인은 숨을 크게 내쉬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곳의 건물은 600년 이상된 집으로, 황량한 벌판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
요. 집에 있는 방만
도 거의 100개나 되지만 대부분의 방들은 열쇠로 채워져 있고 사용하지 않아요.
몇 대에 걸쳐 쓰
던 가구 같은 것도 항상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답니다. 집 주변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어요. 그
정원에는 가지가 땅까지 늘어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많이 있지요."
메드로크 부인은 잠시 밖을 바라보고 다시 말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는 생각난 듯이 다시 말했다.
"주인님은 꼽추이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마음까지 비뚤어지게 만들었지요. 젊
은 시절에는 무척
까다로운 분이셨어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 많은 재산이나 넓은 땅도 아무런
즐거움이 되지 못
하셨나봐요."
메어리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놀란 듯 엉겁결에 눈이 휘둥
그래졌다. 메드로크
부인은 그런 메아리를 힐끗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인 마님은 정말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이었지요. 사람들은 돈 때문에 주인
마님이 주인님과
결혼했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예요. 주인 마님과 주인님은 서로 사랑하셨답니
다. 주인님은 주인
마님을 만난 뒤로 무척 행복해 하셨지요."
메드로크 부인은 단호히 말을 이어갔다.
"주인 마님이 돌아가셨을 때...."
"뭐? 돌아가셨다구?"
메어리는 흠칫 놀라 외쳤다. 언젠가 동화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불쌍한 꼽추
와 공주님의 이야
기가 기억났다. 메어리는 클레이븐 아저씨가 참 안됐다고 생각했다.
"네, 돌아가셨어요. 그후로 주인님은 전보다 더 이상해지셨지요. 누구에게도
마음을 쓰지 않으
시고, 사람들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으세요. 늘상 집을 비우시는데 간혹 계시더
라도 서재에만 틀
어박혀 계시지요."
메드로크 부인의 이야기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메어
리는 창 밖으로 시
선을 돌렸다. 마차는 들판의 끝에 있는 늪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메어리는
늪지대를 서성거
리고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어! 저 여자는 누구지?'
메어리는 뿌연 김이 서린 창문을 옷소매로 닦아내고 창문 가까이 얼굴을 들이
대었다.
늪지대에 서 있는 여자는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모
습이었다. 긴 머리
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어깨에 걸친 붉은 망토는 바람에 부풀어 올라
펄럭이고 있었고,
높이 들어올린 양쪽 손목에는 커다란 링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여자는 메어리
가 타고 있는 마차
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메어리는 오싹 소름이 돋아 패티를 꼬옥 껴안았다.
"저 여자는 누구야?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야?"
메어리의 질문에 메드로크 부인은 창 밖을 힐끗 내다보더니 커튼으로 얼른
창문을 가려 버렸
다.
"신경 쓸 거 없어요. 저 여자는 마녀예요. 저 늪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메어리가 너무 세게 끌어안았던 탓인지 패티가 목을 캑캑거렸다.
"어머, 패티. 미안해."
메어리는 패티를 토닥이고 난 후 메드로크 부인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
을 타 커튼을 조금
걷어 보았다. 그러자 마차는 이미 늪지대를 지나쳐 있었다. 마차는 울퉁불퉁한
길을 계속 달렸
다. 바깥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듯했다. 메어리는 거세게 부는 바람이 이
상한 소리를 내자
메드로크 부인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파도소리야?"
"아니에요. 여긴 몇 킬로미터나 이어진 황량한 땅이에요. 히드꽃이나 금작화
만이 자라고 있어
요. 그리고 야생말이나 양들이 살고 있지요."
메어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물만 있으면 바다라는 느낌이 들 거야. 지금도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해."
마차는 이제 캄캄한 어둠 속을 달렸다. 마차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달리
고 작은 다리도 몇
번인가 건넜다. 메어리는 언제까지나 마차 여행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
었다.
"이런 곳은 정말이지 싫어!"
메어리는 투덜거렸다. 또 다시 말이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
로 앞쪽에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메드로크 부인도 빛을 보고 안심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겨우 도착했네. 문지기 집에서 나오는 불빛이에요."
그러자 마차가 문지기 집을 빠져나간 후에도 3킬로미터의 가로수 길이 더 있
었다. 길게 가지를
뻗은 가로수 밑을 달리는 느낌은 마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착각을 일
으켰다. 가로수 길
을 빠져나와 마차가 멎은 곳은 돌을 깐 광장에 우뚝 서 있는 굉장히 넓고 큰 건
물 앞이었다.
처음에 메어리는 그 큰 건물을 보고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차에서 내려 자세히 보니 2층 구석의 방 하나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
다. 묵직한 떡갈나
무로 만들어진 현관문에는 철로 만든 장식 거울이 아로새겨져 있고, 굵은 쇠빗
장으로 채워져 있
었다.
메어리와 메드로크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놀랄 만큼 커다란 방이었
다.
'이런 곳엔 더 이상 있고 싶지도 않아.'
메어리는 엄숙한 표정의 철갑 군인들 초상화가 걸려 있는 이 집이 마음에 들
지 않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를 이끌고 넓은 계단들을 지나 여러 개의 복도를 지
난 후에야 겨우 어
떤 방 앞에 멈춰 섰다.
"주인님은 내일 아침 일찍 런던으로 가시기 때문에 오늘 아가씨를 만나실 수
가 없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딱딱하게 말하며 방문을 열었다. 난로에는 불이 피워져 있
었고 테이블 위에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아가씨! 이 방과 바로 옆방이 아가씨가 쓰실 방입니다. 아가씨가 들어가도
좋은 방은 이 두
개의 방뿐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메드로크 부인은 말을 마치자 벨을 눌렀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하녀가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통통한 몸에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하녀였
다.
"부르셨어요?"
"그래, 마르사. 이 아가씨가 인도에서 오신 분이야. 네가 시중을 해드려라."
메드로크 부인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
고 메어리가 안고
있는 패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가씨. 이 집에선 고양이 따위는 키울 수 없어요. 마르사, 저 고양이 좀 치워
버려."
메드로크 부인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방을 나갔다. 메어리는 메드로크 부인
이 나간 방문을 향
해 눈을 흘겼다.
"흥! 내게서 패티를 빼앗아 갈 수 있을 줄 알아! 어림도 없어!"
메어리는 마르사를 향해서도 눈을 흘겼다.
"난 패티를 절대로 뺏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패티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
마르사는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음식 두껑들을 열다가 메어리를 보며 웃었
다.
"전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아요.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걸요. 자, 식사하셔야죠?"
메어리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안 먹어."
"피곤하신가 보죠?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 해요. 몸도 무척 마르셨는데."
"혼자 있고 싶단 말야!"
메어리는 소리를 빽 질렀다. 마르사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나갔다.
메어리는 마르사가 나가고 나자 패티를 꼬옥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패티, 이곳이 싫어.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 메드로크 부인도 하녀도 다 싫
어."
2. 이상한 하녀
이튿날 아침, 메어리가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어젯밤에 보았
던 하녀였다. 하녀
는 깔개에 무릎을 꿇고 난로의 재를 긁어내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무척 좋은 아침이에요."
마르사는 메어리를 뒤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부산하게 재를 긁어내는 모습
이 활기차 보였다.
마르사는 재 긁는 일에 열중하면서 메어리를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제가 아가씨를 돌봐 드리게 되었어요."
메어리는 시선을 돌려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음침한 느낌이
드는 방으로, 벽에
는 숲 속의 풍경을 그려 넣은 벽걸이가 걸려 있었다.
메어리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으로는 넓게 경사진 오르막길이 보였
다. 그러나 그 길엔
나무 한 그루 없이 마치 연보라빛 바다처럼 느껴졌다. 메어리는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키며 물
었다.
"저게 뭐야?"
"아, 저곳은 황야 들판이라고 하는 곳이에요.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아니, 난 저런 것은 싫어."
"아직 익숙치가 않아서 그래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서 더 그
렇겠지만 금방 좋
아하게 되실 거예요."
메어리는 다시 창 밖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넌, 여기가 좋아?"
"그럼요. 전 이곳이 아주 좋아요. 들판은 사실 벌거숭이가 아니에요. 봄과 여
름에는 히드꽃이
나 금작화가 흐드러지게 피는데 얼마나 아름답다고요. 향기는 또 어떻고요. 달
콤한 내음이 주위
를 가득 감싸죠."
마르사는 손을 털고 창 밖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하늘도 얼마나 높은데요. 꿀벌이 붕붕대는 소리, 종달새가 지지배배 지저귀
는 소리... 전 어
떤 일이 있어도 이 들판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메어리는 인도의 하인과는 전혀 다른 마르사의 태도를 보고 놀랐다. 인도에
서 메어리가 본 하
인들은 언제나 굽신거리고, 아첨하고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메어리는 인도에 있을 때는 화가 나면 늘 유모의 뺨을 때렸다. 메어리는 당
당해 보이는 이 하
녀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만약 마르사의 뺨을 때린다면 어떻게 될까?'
마르사는 마음씨가 고운 처녀였지만 어린아이에게 맞고만 있지는 않을, 어딘
가 다부져 보이는
하녀였다. 메어리는 머리를 베개에 기댄 채 건방진 말투로 말했다.
"넌 정말 이상한 하녀야."
마르사는 청소 솔을 든 채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만약 이곳이 다른 저택 같았다면 저처럼 보잘 것없고 사투리가 심한
애는 고용될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 댁은 조금 이상해요. 메드로크 부인이 마치 주인 같
거든요. 클레이븐
씨는 거의 집을 비우세요. 이곳에 계실 때도 뭐 하나 상관하지 않으시고요. 저
는 메드로크 부인
이 고용해 주셨어요."
메어리는 인도에서 하던 대로 거만하게 물었다.
"네가 내 하녀야?"
"전 메드로크 부인에게 고용되어 있어요. 전 메드로크 부인에게 아가씨를 돌
봐 드리라는 명령
을 받았어요."
"그럼 네가 내 옷을 갈아입혀 주겠네?"
마르사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요? 아니, 혼자서 옷을 못 입는단 말이에요?"
"그래! 난 혼자서 옷 못 입어! 언제나 유모가 옷을 입혀 줬단 말이야!"
마리사의 놀리는 듯한 태도에 메어리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마르사
는 차분하게 타이르
듯 말했다.
"아가씨,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배우세요. 자기가 할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거예요. 저희 어
머닌 항상 말씀하시길, 훌륭한 저택의 아이들은 마치 강아지처럼 유모가 얼굴
을 닦아 주고 옷도
입혀 주고, 산책도 데려가기 때문에 바보가 된다고 하셨어요. 전 처음에 아가씨
가 인도에서 온다
고 하길래 검둥이가 아닌가 했어요."
"뭐라고? 이 건방진 것이!"
메어리는 분함을 이기지 못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
다.
"아가씨, 전 검둥이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흑인들이 얼마나 신앙심
이 깊은데요. 흑
인도 우리들의 형제라고요. 전 흑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번엔 꼭 볼
수 있으리라 생각
한 거예요."
마르사는 계속 울기만 하는 메어리를 보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우세요. 아가씨, 제발요."
마르사는 침대로 다가가 메어리를 달랬다.
마르사의 사투리와 어눌한 말씨는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다정함을 느
끼게 했다. 마르사
의 말씨에 메어리는 차츰 울음을 멈추었다.
"자, 아가씨. 이제 일어날 시간이에요. 옆방에 준비되어 있는 아침밥을 드셔야
죠. 지금 일어나
시면 제가 옷 입는 것을 도와 드릴게요."
마르사는 옷장에서 메어리가 입을 옷을 꺼내 왔다. 그 옷은 메어리가 어제
입었던 검은 옷이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진 흰색 옷이었다.
"이 옷은 내 옷이 아냐! 내 옷은 검은 옷이야!"
"이 옷이 아가씨가 입을 옷이에요. 클레이븐 씨 지시로 메드로크 부인이 사
오신 거예요. 클레
이븐 씨는 검은 옷을 입으면 집 안이 더욱 어두워진다고 싫어하세요."
메어리는 마르사가 옷을 입혀 줄 때도 꼼짝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그
러나 마르사는 어린
동생들의 옷을 입혀 주는 일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메어리의
옷을 입힐 수 있
었다.
메어리는 옷을 입고 난 뒤 잠자코 발을 내밀었다.
"왜 혼자서 구두를 신지 않죠?"
"유모가 신겨 줬어."
마르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메어리를 보자 동생들이 생각났다. 마르사
의 동생들은 모두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었다.
"아가씨를 제 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마르사가 말했다.
"저희 집은 아이들이 열두 명이나 돼요. 아버지의 적은 벌이로 많은 식구들을
먹여야 하는 어
머니의 고생이 말이 아니지요. 제 동생들은 하루 종일 들판에서 뛰놀며 다녀
요. 저희 어머니는
들판의 공기가 아이들을 살찌운다고 말씀하시죠."
마르사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디콘이라는 열두 살 된 제 남동생은 동물들을 아주 좋아해요. 야생 망아지
를 길들여서 자기
말이라고 하며 굉장히 예뻐한답니다."
메어리는 마르사의 말이 신기했다.
"와, 어디서 붙잡은 건데?"
"들판에서요. 젖먹이 망아지일 때 엄마 말이랑 같이 있는걸 발견한 거예요.
디콘이 빵 부스러
기를 먹이고 부드러운 풀도 주곤 했는데 둘은 사이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어
떤 때는 디콘을 등
위에 태워 주기도 할 정도랍니다. 디콘이 원래 마음이 착하니까 동물들도 알고
좋아하나봐요."
메어리는 패티 외에는 동물을 한 번도 길러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르사
의 말을 듣자 언젠
가는 꼭 망아지의 등에 타 보고 싶어졌다. 메어리는 망아지를 길들였다는 디콘
에게 흥미를 느꼈
다.
'망아지를 길들였다는 디콘은 어떤 애일까?'
자기 외의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메어리로서는 다른 사람에
게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마르사는 웃고 있는 메어리를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디콘에게는 여우 친구도 있답니다. 디콘은 그 여우를 캡
틴이라고 불러요.
디콘이 붙여준 이름이죠. 캡틴은 디콘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녀요. 디콘도 많은
동물 친구들 중에
서 캡틴을 제일 좋아하죠. 캡틴은 저희 집에서 디콘이랑 함께 살아요."
메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우하고도 친구란 말이야? 여우는 어떻게 만났는데?"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날, 구덩이에 빠져 있는 새끼 여우를 건져온 거예요.
엄마 여우는 곁
에서 죽어 있었대요. 디콘은 그 새끼 여우를 가슴 속에 품고 집으로 데려왔어
요."
메어리는 마르사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메어리는 여우 친구와 함께 산다는
디콘을 꼭 만나보
고 싶었다.
"마르사, 나 디콘을 만나보고 싶어."
마르사는 밝은 웃음을 지었다.
"곧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디콘은 클레이븐 씨의 양들을 돌보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곳에서
살지는 않아요. 들판에서 캡틴과 함께 양들을 돌보다가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
아가죠."
메어리는 디콘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 마르사를 닮아 자그마한 키에 거무스
름하고 건강해 보이
는 얼굴을 하고 있겠지?
"자, 아가씨. 이제 식사하러 가셔야죠."
메어리는 자신을 위해 새롭게 고쳤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 잤던 방
보다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았다.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에는 맛있어 보이는 아침 식사가 잔뜩 준비되어 있었지
만 메어리는 마르
사가 내민 접시를 불쾌한 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 먹고 싶지 않아."
마르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높여 말했다.
"오트밀이 싫다고요?"
"그래, 싫어."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러지 말고 꿀이랑 설탕을 넣어서 드셔 보세요. 훨씬 맛
있을 거예요."
"먹고 싶지 않다니까!"
"그럼 이 맛있는 음식들을 버리란 말이에요? 너무 아깝잖아요. 제 동생들이라
면 오분도 안 돼
서 다 먹어 치웠을걸요."
"왜?"
"왜냐구요? 제 동생들은 한 번도 음식을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
래서 매일 굶주려
있어요."
"난 배 고프다는 게 뭔지 몰라."
메어리는 정말 배고프다는 것이 뭔지 잘 몰랐다. 배가 고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사는 몹시 화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한 번 정도 배고파 보는 것도 좋겠네요. 전 맛있는 빵과 고기를
앞에 두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요. 디콘과 필, 제인 그리고 다른 애들에게 이
런 음식을 먹일 수
있다면..."
"그럼 가지고 가서 네 동생들에게 주면 되잖아."
"이건 제 것이 아니에요."
마르사는 딱 잘라 말했다.
"게다가 오늘은 제가 쉬는 날도 아니구요. 쉬는 날이라면 집에 있는 동생들에
게 갖다 줄 수도
있겠지만 말예요. 전 한달에 한 번씩만 쉬거든요."
"쉬는 날은 뭘 하는데?"
"집에 돌아가서 청소나 집안일을 해요. 엄마를 하루 정도 쉬게 해 드리려고
요."
메어리는 마르사의 말을 듣고 마말레이드를 바른 토스트를 한 조각 먹어 보
았다. 그러나 맛이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은 못 먹겠어. 하나도 맛이 없는걸."
"옷을 두툼하게 입고 밖에 나가 놀면 어때요? 몸에도 좋고 배가 고파져서 밥
도 맛있게 먹게 될
텐데요."
메어리는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여러 개의 정원과 오솔길, 커다
란 나무가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썰렁해 보였다.
"이런 날 밖에 나가서 놀라구? 무척 추워 보이는걸."
"밖에 나가지 않으면 집에만 계셔야 하는데 집에서 뭘 하려고 그러세요?"
메어리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가지고 놀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안에
는 가구만 잔뜩 들
어 차 있었다.
"인형도 없어? 난 나가기 싫단 말이야."
"메드로크 부인이 준비해 놓지 않으셨나봐요. 이 집에서 놀수 있는 건 들판
에 나가 뛰어노는
일밖에 없어요."
"누가 나랑 같이 나가 줄 건데?"
마르사는 어이가 없었다.
"혼자 가세요. 아가씨도 혼자 노는 법을 배워야 해요. 제 동생 디콘은 혼자
서 들판의 양들을
몰고 다니는걸요. 디콘의 친구들은 모두 들판에서 사귄 친구들이에요."
"어떤 친구들인데?"
"들판에 있는 동물들이 모두 디콘의 친구예요. 새들에게는 손바닥에 모이를
놓아 먹게 하고 다
람쥐에게는 빵을 나눠 주곤 하죠."
마르사는 메어리에게 코트와 모자를 내밀고는 튼튼해 보이는 작은 부츠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저기로 들어가면 여러 개의 정원이 있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피어 있지 않
지만 여름엔 꽃이
활짝 핀답니다."
마르사는 조금 주저하는 듯한 태도로 덧붙였다.
"정원들 중의 하나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 정원엔
10년 동안 아무
도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
"어째서?"
메어리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마르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윽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주인 마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주인님께서는 아무도 그 정원에 들어
가지 말라고 하시
고는 커다란 자물쇠로 입구를 잠가 버리셨어요. 그 정원은 주인 마님이 무척
아끼던 정원이었거
든요. 주인님께서는 정원의 열쇠를 땅에 묻어 버리셨답니다."
메어리는 마르사의 말을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미스르스웨트 저택
은 온통 비밀과 신
비에 싸인 집 같았다.
그때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이런, 메드로크 부인이 벨을 울리고 계시네요. 전 이제 가봐야 해요."
마르사는 빠른 걸음으로 메어리의 방을 나갔다.
3. 빨간 가슴을 가진 새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울타리가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정원은 어떻게 생겼을까? 꽃들은 모두
죽어 있을까?'
울타리를 빠져나가자 커다란 정원이 나왔다. 정원에는 여러개의 잔디밭이 있
고 꼬부라진 오솔
길이 길게 나 있었다. 정원에는 화단도 있고 색다른 모양으로 베어낸 상록수
도 있었다. 커다란
연못도 있었는데 연못의 한가운데에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
다.
하지만 화단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분수도 물을 뿜어 내지 않고 있었다.
"여긴 잠겨져 있다는 정원이 아닌가 보지?"
메어리는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다.
"왜 정원을 잠가 버렸을까? 정원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앞쪽에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길다란 벽이 나타났다. 담 가까이 가보니 담쟁
이 덩굴 아래 녹색
의 문이 보였다.
"이 문일지도 몰라."
메어리는 녹색 문에 손을 댔다. 그러나 문은 열려 있었다.
"에이, 이 문도 아니야. 하지만 문이 열려 있다는 건 들어가도 좋다는 걸 거
야."
메어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사방이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이었는데 이 정원외에도 몇 개인가 담
으로 둘러싸인 정
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원들은 모두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와, 이렇게 많은 정원들은 처음 봤어!"
메어리는 다른 쪽에 있는 녹색 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야채밭이었다.
그러나 겨울이어
서인지 야채밭은 모두 황폐해져 있었다.
"피, 뭐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저분한 곳이잖아!"
그때 패티가 갑자기 울음소리를 냈다. 메어리가 뒤돌아 보니 쟁기를 어깨에
짊어진 노인이 정
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다가 메어리를 보고 깜
짝 놀라는 듯했다.
그러나 곧 모자를 약간 위로 올려 인사를 했다.
"이곳은 뭐하는 곳이에요?"
"채소밭이야."
"그럼 저곳은요?"
메어리는 다른 초록색 문을 가리켰다.
"거기도 채소밭이야."
역시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담 맞은편에 또 다른 채소밭이 있고 그 맞은편은 과수원이야."
"들어가 봐도 돼요?"
"상관 없어. 하지만 들어가 봤자 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메어리는 오솔길을 걸어 두번째의 초록색 문을 빠져나갔다. 그곳에도 담벼락
과 야채밭이 있을
뿐이었다. 담장의 구석에는 또 다른 초록색 문이 있었다. 메어리는 문으로 다가
가 조심스럽게 손
잡이를 돌려 보았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찾았다! 바로 이 문이었어."
그러나 다시 한 번 힘을 주는 순간 문이 쉽게 열렸다.
메어리는 실망한 얼굴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과수원이었다. 그러나
벌거숭이가 된 나
무들이 말라 버린 채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곳이야. 모두 다 죽어 있나봐."
메어리는 바람이 휭하니 부는 과수원에 서서 담 맞은편에 있는 나뭇가지를
쳐다보았다. 그 순
간 메어리는 나뭇가지의 끝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가슴이 빨간털
로 뒤덮인 작은 새
였다.
"와! 새다. 예쁜 새야."
메어리는 패티를 쓰다듬으며 새가 있는 나뭇가지로 다가갔다.
"패티, 조용히 해야 해. 안 그러면 예쁜 새가 날아가 버릴거야."
메어리는 패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혹시라도 새가 날아가 버
릴까 겁이 났던 것
이다.
그런데 작은 새는 메어리를 보더니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찌르르 쫑 찌르르 쫑 찌르르르."
메어리는 가만히 서서 작은 새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메어리의 마음은 점
점 즐거워졌다. 메
어리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번졌다.
"죽은 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 예쁜 새가 있다니."
인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새였다.
"패티, 저 새는 비밀의 화원에 살고 있는 새인지도 몰라. 또 만났으면 좋겠어.
그렇지?"
메어리는 새가 날아간 하늘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패티, 클레이븐 아저씨는 부인을 매우 사랑했다고 하던데, 왜 부인이 아끼던
정원은 싫어하는
걸까?"
메어리가 중얼거리자 패티는 야옹 울음소리를 내며 메어리의 손에 얼굴을 비
볐다.
"난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만나게 되더라도 아저씨는 날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날
좋아해 주는 건 패티 너밖에 없어."
메어리는 처음 들어갔던 채소밭으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아까 그 할아버지가
흙을 일구고 있었
다. 메어리는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 일만
했다.
"다른 정원에 갔다 왔어요. 과수원에도 들어갔다 왔구요. 그런데 거기엔 다
른 문으로 통하는
문이 없었어요. 다른 곳엔 다 있었는데."
"어느 정원이었는데?"
할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하늘을 쳐다보던 할아버지의 무뚝뚝
한 얼굴에 부드러
운 미소가 번졌다.
"휙휙휙휙."
할아버지가 과수원 쪽을 향해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메어리는 무뚝뚝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공중을 스치는 작은 날개 소리가 들
려온 것이다. 메어
리는 얼굴을 들어 공중을 바라보았다.
"와, 새다. 빨간 가슴 새야."
그것은 아까 보았던 그 작은 새였다. 작은 새는 정원지기 할아버지의 발치로
내려오더니 높게
쌓아올린 흙더미 위에 앉았다.
"오! 왔구나. 어디에 있었니? 이 건방진 녀석. 오늘은 널 보는 것이 처음이구
나."
할아버지는 소리를 죽여 웃으며 아이에게 이야기하듯이 작은 새에게 말했다.
작은 새는 자그마
한 머리를 갸웃거리며 까만 구슬처럼 선명하고 귀여운 눈으로 할아버지를 올려
다보았다.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아, 신기해."
메어리는 할아버지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이 마치 귀여운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할아버지가 부르면 꼭 오나요?"
"그럼, 오고 말고. 난 저 녀석이 새끼일 때부터 알고 지냈어. 다른 정원의 둥
지에서 태어났는
데 처음 담을 넘어 날아왔을 땐 몸이 약한 상태였지. 그래서 둥지로 2, 3일 정
도 돌아가지 못했
어. 그때 나랑 친하게 되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저 새는 다시 둥지로 날아갔나요?"
"저 녀석이 다시 담 너머로 돌아갔을 때 다른 새끼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어.
혼자 남게 된 거
지. 결국 저 새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어."
"이 새 이름이 뭐예요?"
"울새라고 해. 강아지처럼 사람을 아주 잘 따르는 새지. 저것 좀 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우리들 쪽을 보고 있지? 저 녀석은 우리가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
는 거야."
할아버지는 빨간 조끼를 입은 것 같은 둥글둥글한 울새를 미소를 머금고 바라
보았다.
"저 녀석은 무척 잘난 체한단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좋아
하지. 그리고 무엇
이나 알고 싶어해. 내가 뭘 심고 있으면 꼭 이렇게 보러 온단다. 주인님께서도
알지 못하는 일을
저 녀석은 알고 있지. 정원지기의 대장격이야."
울새는 까만 구슬처럼 선명한 눈을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내며 메어리를 쳐
다보고 있었다.
메어리는 이 작은 새가 아주 친한 사람처럼 점점 친근하게 여겨졌다.
"다른 새끼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어요?"
"나도 잘 모른단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겠지. 이 녀석은 영리하니까 자
기가 외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야."
메어리는 울새에게 다가가 울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외톨이야."
할아버지는 머리에 쓴 모자를 조금 뒤로 젖히고는 잠시 메어리를 바라보았다.
"네가 인도에서 왔다는 그 애니?"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뭐예요?"
"벤."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짓고 손가락으로 울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이 없었을 땐 나도 무척 쓸쓸했단다. 나도 외톨이였지. 내겐 저 녀
석 말고는 친구가
없단다."
"나도 친구 같은 건 없어요. 나랑 놀아 주는 건 이 고양이 패티뿐이에요."
"너랑 나는 닮은 점이 많구나. 못생긴 것도 닮고, 친구가 없는 것도 닮고, 삐
뚤어진 성격도 닮
고 말이다."
메어리는 자신의 용모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걱정
이 되었다.
'내 얼굴도 아까 할아버지의 얼굴처럼 무뚝뚝할까? 난 정말 나쁜 성격을 가졌
나?'
메어리는 우울해졌다.
그때 갑자기 메어리 곁에서 구슬을 굴리는 것 같은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찌르르 쫑 찌르르 쫑 찌르르르."
울새가 메어리 가까이에 있는 사과나무 가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울새가 왜 이러는 거예요?"
벤은 소리 높여 웃었다.
"이 녀석은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네가 마음에 든 게 틀림없
어."
"제가요?"
메어리는 사과나무 곁으로 다가가 작은 새를 올려다보았다.
"나와 친구가 되어 주겠니?"
메어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는 보통 때의 으스대거나 무
뚝뚝한 말투가 아
닌, 듣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 주는 말투였다.
벤 할아버지는 메어리의 말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 네가 이렇게 다정하게 말할 줄은 몰랐구나. 디콘이 동물에게 이야기
할 때랑 꼭 닮았
어."
"디콘을 알고 있어요?"
"그럼, 누구든지 디콘을 알고 있지. 디콘은 어디든지 잘 돌아다니거든. 산딸기
나 히드꽃도 그
애를 알고 있을 정도야. 여우들도 디콘에게만은 새끼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
지. 종달새들도 디
콘에게는 둥지를 감추려고 하지 않아."
디콘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메
어리는 디콘에게 비
밀의 화원과 같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때 노래를 끝낸 울새가 조그만 소리로 날개짓을 하더니 날개를 펴고 날아가
버렸다.
"담 저쪽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메어리는 울새를 눈으로 좇으며 말했다.
"아! 과수원으로 날아갔어요. 저기는 입구가 없는 정원인데."
"저 녀석은 저곳에서 살고 있단다. 태어난 곳도 바로 저곳이야."
벤 할아버지는 쟁기를 들고 다시 흙을 일구기 시작했다.
"저곳엔 장미나무도 있나요?"
"10년 전에는 있었단다."
"그 장미를 보고 싶어요. 초록색 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딘가에 있겠지요?"
"10년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입구가 없다구요? 아니에요. 꼭 있을 거예요."
메어리가 외치자 할아버지의 얼굴은 다시 무뚝뚝해졌다.
"찾아봐도 소용없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아라. 난 이제부터 다시 일을
해야 하니까 너
도 돌아가서 놀거라. 난 더 이상 시간이 없어."
할아버지는 흙을 일구던 손을 멈추고 쟁기를 어깨에 지고는 잽싸게 사라졌다.
4. 늪지에 사는 카멜라
메어리는 다음날도 패티를 안고 정원으로 나갔다. 울새와 벤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패티, 이제 심심하지 않을 거야. 벤 할아버지랑 울새가 우리와 놀아 줄 테니
까."
벤 할아버지는 정원에서 채소밭을 일구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메어리는 할아버지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러나 벤
할아버지는 그저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왔니? 난 지금 몹시 바쁘단다. 다른 데 가서 놀아라."
할아버지는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메어리는 쟁기질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등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치, 할아버지도 날 싫어하는 거야.'
메어리는 토라진 얼굴로 휙 돌아섰다.
"난 울새랑 놀 거예요. 울새는 날 좋아한다구요."
메어리는 채소밭을 나와 과수원으로 갔다.
"울새야! 어디 있니? 내가 왔어."
메어리는 과수원 주위를 둘러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혹시나 울새의 아름다
운 노랫소리가 들려
올까 해서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울새의 귀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패티, 울새가 날 잊어버렸나봐."
메어리는 갑자기 슬퍼졌다.
"울새도 날 좋아한 게 아니었어. 날 잊어버린 거야."
메어리는 울먹였다. 패티도 메어리를 따라 갸르릉거렸다.
메어리는 시든 나무와 쓸쓸한 바람 소리만이 무성한 과수원을 나와 들판 쪽
으로 발길을 옮겼
다.
멀리 들판에 시선을 주던 메어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래, 디콘. 디콘을 찾아가는 거야."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들판으로 달렸다.
"디콘은 들판에서 양들을 돌본다고 했어. 디콘을 찾으면 여우 친구 캡틴을 소
개시켜 달라고 하
자, 패티."
메어리는 디콘과 캡틴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디콘도 마르사에게서 내 얘기를 들었을까? 들었을 거야."
메어리의 입에서는 방울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패티도 메어리
의 품 안에서 몸을
뒤척였다.
"패티, 우리 누가 먼저 디콘을 찾나 내기할까?"
메어리는 패티를 내려 놓아 주었다. 패티는 꼬리를 흔들며 들판을 향해 뛰어
갔다.
"같이 가자. 기다려, 패티."
메어리는 패티를 따라 들판을 달렸다. 이렇게 넓은 들판을 뛰는 건 처음이었
다.
들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패티, 이렇게 넓은 곳에서 어떻게 디콘을 찾지?"
메어리는 멀리 들판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메어리의 옆에서
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메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패티! 패티! 어디 갔니?"
메어리의 외침 소리는 들판으로 퍼져갔다. 그러나 패티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
았다.
"패티! 어디로 간 거야! 패티!"
메어리는 들판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들판에는 갈색으로 변해 버린 키 작은
꽃나무들만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사그락거리는 소리에 메어리가 혹시나 하고 뒤돌아보면 그것
은 바람에 풀잎들
이 몸을 눕히는 소리였다.
"패티, 빨리 나와. 패티."
메어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패티는 메어리의 단 하
나밖에 없는 친구였
다. 패티를 잃으면 메어리는 정말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메어리는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해는 어느새 기울
어지고 있었다. 햇
볕이 사라지자 바람은 더욱 싸늘하게 불어왔다. 그러나 메어리는 패티를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
아갈 수는 없었다.
"패티, 엉엉, 패티. 어디 있는 거야?"
메어리의 목소리는 울음소리로 변해 있었다. 메어리는 어느새 들판의 끝에
있는 늪지대에 다다
랐다. 늪에서는 기분 나쁜 찬 바람이 흘러나와 늪 주위에 있는 풀잎들을 감싸고
있었다.
메어리는 늪 가까이로 다가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들
었던 메드로크 부인
의 말이 떠올랐다.
'저 늪에는 마녀가 살고 있어요. 늪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마세요.'
늪 주위에서 언뜻 보았던 붉은 색 망토를 입은 여자의 모습도 떠올랐다. 늪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는 넓은 이파리들이 매달려 있었다. 이파리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마치 마녀의 머리카
락이 날리는 모습 같았다.
'그 여자는 정말 마녀였을까? 하지만 유모는 마녀는 숲 속에서 산다고 말했었
는데.'
메어리는 커다란 나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 뒤에서 갑자기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메어리는 발이 땅바닥에 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나무 뒤에서 나온 것은 메어리가 마차를 타고 갈 때 보았던 이상한 여자였
다. 치렁치렁 늘어뜨
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위로 솟구쳐 있고 등에는 붉은 색 망토가 걸쳐져 있
었다.
"난 카멜라란다. 늪에 있는 오두막 집에서 살고 있지. 넌 아주 먼 곳에서 온
아이로구나."
카멜라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조금씩 떨렸다. 메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
고 겁에 질린 얼굴
로 카멜라를 바라보았다.
"무서워할 것 없다. 난 널 도와 주고 싶단다. 넌 뭔가를 잃어버렸구나, 그렇
지?"
메어리는 카멜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네, 전 고양이를 잃어버렸어요. 패티는 하나밖에 없는 제 소중한 친구예요."
"패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이에요."
메어리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럼 패티를 믿니? 패티가 너의 진정한 친구라면 분명히 네 곁으로 돌아올
거야."
"하지만 들판은 너무 넓어요. 게다가 여우랑 매도 있는걸요."
카멜라는 들판을 둘러보았다. 카멜라의 눈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들판은 열심히 살아가려는 자들의 편이란다. 그 대신 살아 갈 용기를 잃은
자들에게는 냉엄하
지. 너도 패티도 이 들판에서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 봐."
"전 길도 잃어버렸는걸요."
카멜라는 손가락으로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저 별을 따라가면 네가 원하는 것을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 냇가를
따라가다 보면 저
택으로 향하는 길이 나올거야."
메어리는 카멜라가 가리키는 별을 보았다. 그 별을 따라가면 패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 메어리예요. 저기 들판 끝에 있는 저택에 살고 있어요."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거야."
빛나는 별은 동쪽으로 향해 있었다. 메어리는 동쪽으로 난 들판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패티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패티는 혼자 무서워서 울고 있을지도 몰라
요."
메어리는 카멜라가 가르쳐준 대로 빛나는 별을 보며 동쪽으로 걸어갔다.
옆의 풀 숲에서 패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야옹"
메어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패티는 풀숲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패티! 찾았어. 패티!"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한편 하녀 마르사는 날이 저물도록 메어리가 돌아오지 않자 정원과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메어
리를 찾았다. 그러나 메어리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아가씨가 들판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마르사는 등불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아가씨! 메어리 아가씨!"
저 멀리서 메어리의 부름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여기야! 마르사, 나 여기 있어!"
마르사는 메어리에게로 달려갔다.
메어리는 패티를 품에 안고 오돌오돌 떨며 저택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러나 메어리의 얼
굴에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
"아가씨, 어딜 갔다 오시는 거예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아가씨가 길
을 잃은 줄 알았단
말예요."
"패티를 잃어버렸었어. 그래서 늦은 거야."
메어리는 패티의 보드라운 털에 볼을 비볐다.
"패티를 잃었다구요? 그런데 어떻게 찾으셨어요?"
마르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멜라가 찾아 줬어."
"카멜라라구요?"
"응, 늪에 있는 오두막 집에서 살고 있대."
메어리는 마르사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마르사도 카멜라에 대해서 알고 있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단지 소문으로 조금 들었을 뿐이에요."
"사람들이 뭐라고 그래?"
"예언과 점성술을 하는 여자래요. 마녀라고도 하죠. 하지만 마녀는 아닐 거예
요. 그저 점을 치
는 떠돌이 집시일 거예요. 아가씨는 카멜라가 무섭지 않아요?"
마르사는 웃옷을 벗어 오돌오돌 떨고 있는 메어리에게 걸쳐 주었다.
"무섭지 않아. 패티를 찾아 주었는걸."
메어리는 정말로 카멜라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웬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이었다.
카멜라는 메어리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5. 클레이븐 씨의 슬픔
며칠 동안 메어리는 거의 매일 같은 생활을 되풀이했다. 메어리가 아침에 눈
을 뜨면 마르사는
난로 앞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메어리는 매일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집에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메어리는 밖에 나가는 것이 자신의 몸에 얼마나 좋은지 깨닫
지 못하고 있었다.
"패티, 바람이 너무 신선해. 흠, 숨을 들이마셔봐. 그렇지?"
메어리는 히드꽃 위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쉬면서 들판을
뛰어다녔다. 메어
리의 마른 몸은 점점 건강해졌다. 뺨에도 발갛게 생기가 돌았다.
하루 종일 밖에서 보낸 날이 2, 3일 계속되던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메어리
는 배가 고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르사, 아침 식사. 나 배 고픈 것 같애."
아침밥을 앞에 둔 메어리는 접시가 빌 때까지 스푼을 놓지 않았다.
먹기 싫던 오트밀도 맛있게만 느껴졌다.
"오늘은 잘 드시네요."
마르사는 다른 날과 달리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메어리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응, 오늘은 맛있어."
메어리도 자신이 놀라웠다.
"들판의 공기 때문에 식욕이 생긴거예요.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거
예요. 저희 집 동생들은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는 적이 많아요. 아가씨, 매일
밖에서 놀면 몸
도 건강해지고 혈색도 훨씬 좋아질 거예요."
"응, 그런데 뭘 하면서 놀아?"
"제 동생들은 나무토막이나 돌멩이를 가지고 놀아요. 뛰면서 돌아다니기도 하
고, 큰 소리를 지
르기도 하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보기도 하고 말예요."
메어리는 정원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벤 할아버지는 메어리
를 보아도 여전히
모른 척하거나 바쁜 척할뿐이었다.
메어리가 특별히 잘 가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담에 둘러싸인 채소밭
밖의 긴 산책길이
었다. 담은 담쟁이 덩굴로 온통 덮여 있었다. 그 담에는 다른 곳보다 더 초록색
의 덩굴이 빽빽히
우거져 있었다.
"다른 곳은 다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는데, 이곳만 이상해."
메어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길다란 덩굴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었
다. 그때 메어리는
언뜻 빨간 것이 눈 앞에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아름다운 새 소리가 들
려왔다.
"울새야! 울새! 패티, 울새가 저기 있어!"
울새는 담장의 꼭대기에 앉아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메어리를 보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너도 내가 보고 싶었니?"
메어리는 울새와 말이 통해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믿는 듯 이야기했다. 울새
는 여러 가지를 얘
기해 주는 것처럼 지저귀며 담 위를 훨훨 날았다. 울새는 메어리에게 이렇게 말
하는 것 같았다.
'안녕, 정말 바람이 시원하지? 해님은 또 얼마나 멋지니? 모든 것이 아름다워.
우리 함께 노래
하고 뛰어다니면서 놀자. 자, 어서.'
메어리는 웃으면서 벽을 따라 날으는 울새의 뒤를 좇았다.
"난 네가 좋아! 네가 너무 너무 좋다구!"
메어리는 뛰면서 소리쳤다. 패티도 '야옹'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메어리의
뒤를 따랐다. 메어
리는 울새의 노랫소리를 흉내내며 달렸다.
"찌르르 쫑 찌르르 쫑 찌르르르."
울새는 날개를 펴고 재빠르게 나무 꼭대기로 날아올라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렀다.
"찌르르 쫑 찌르르 쫑 찌르르르."
메어리는 울새가 올라앉아 있는 나무를 보자 울새를 처음 보았던 때가 생각났
다.
그때 이 울새는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었고 메어리는 과수원에 있었다.
지금 메어리는 과수원 반대편의 담 옆에 서 있다. 그리고 같은 나무가 담 안
쪽에 있다.
"저 나무는 비밀의 정원에 있는 나무야."
메어리는 뛰어다니던 발걸음을 멈추고 혼자 중얼거렸다.
"울새는 비밀의 정원에 살고 있는 거야. 아,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
메어리는 뛰어서 과수원으로 갔다. 담 맞은편에는 울새가 앉아 있던 나무가
이었다.
"저게 그 정원이야. 틀림없어."
메어리는 정원과 과수원 사이의 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입구가 보
이지 않았다. 메어
리는 반대 편부터 벽을 다시 살펴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다. 정말로 입구가 없네. 십년 전에는 분명히 있었을텐데."
메어리는 매일 비밀의 정원 입구를 찾기 위해 정원을 두리번거렸다. 메어리
는 이제 전혀 심심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의 생활이 즐거웠다.
미스르스웨트 들판의 시원한 바람은 메어리의 머릿속에 있는 어두운 생각들
을 몽땅 날려 주었
다.
메어리는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팠다. 메어리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다음 노곤한 기
분 속에서 마르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디콘의 친구 캡틴은 아주 영리해요. 디콘이 돌보는 양이 다른 길로 가면 캡
틴은 울음소리로
그걸 가르쳐 주지요. 캡틴은 여우인데도 양들과 아주 사이가 좋아요. 디콘이 다
른 동물들과 놀고
있을 때면 캡틴이 양들을 지켜요."
메어리는 마르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는
듯했다. 그림 속
에는 동물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디콘의 모습과 양들을 지키는 캡틴이 있었다.
메어리는 마르사의 이야기가 끝나자 비밀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클레이븐 아저씨는 왜 그 정원을 싫어하셔?"
"또 그 정원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긴 저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그랬으
니까요."
"어째서 아저씨는 그 정원을 싫어하시는 걸까?"
메어리는 되풀이해서 물었다.
"아가씨, 밖에서 불고 있는 바람소리를 들어 보세요."
바람이 집 밖에서 주변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무섭게 휘몰아 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집
안에 들어오려고 벽과 창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그 정원을 싫어하셔?"
메어리는 또 다시 물었다. 마르사는 메어리가 끈질기게 묻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고 있
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말은 메드로크 부인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건데 괜찮을지 모
르겠네요. 이 집에
는 말해서는 안 될 일이 굉장히 많아요. 클레이븐 씨의 명령 때문이지요."
"뭔데? 어서 말해 봐."
"저 정원만 없었다면 주인님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저 정원
은 주인 마님의 정
원으로 두 분이 결혼하셨을 즈음에 만들었답니다. 주인 마님은 저 정원을 굉장
히 좋아하셔서 그
분은 늘 자신이 직접 꽃을 돌보셨대요. 정원지기에게는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하
게 하시고요. 주인
님과 주인 마님은 안으로 들어가셔서 문을 잠그고는 몇 시간이나 그곳에서 책
을 읽기도 하고 이
야기를 하시기도 했대요.
주인 마님은 가지가 의자처럼 되어 있는 오래된 나무에 장미를 뻗게 한 후
늘 거기에 앉아 계
셨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가지가 부러져서 주인 마님이 큰 부상을 입으셨답
니다. 그것이 원인
이 되어 주인 마님은 다음날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주인님도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돌아가시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 이후로는 아무도 정원에 들어가는 일
이 없었고, 주인님
께서는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답니다."
메어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빨갛게 타오르는 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메어리의 마음속에는 네 가지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메어리는 울새
와 친해졌고, 몸 안
의 피가 뜨거워질 때까지 바람속을 달렸다. 또 메어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
고픔을 느꼈고, 다
른 사람의 일을 안됐다고 생각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6. 복도의 울음소리
다음날의 폭우가 몰아쳤다. 창 밖의 들판의 뿌연 안개와 구름에 뒤덮여 잘 보
이지 않았다.
메어리는 방 안에 앉아 폭우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폭우는 그칠 생각
을 않고 더욱 세게
몰아칠 뿐이었다. 메어리는 하루 종일 방 안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심심해
서 견딜 수가 없었
다.
"이렇게 비오는 날은 너희 집에선 모두 뭘 하고 지내?"
메어리는 마르사에게 물었다.
"큰 아이들은 외양간에서 놀아요. 디콘은 비 따윈 상관하지 않고요. 디콘은
비가 와도 햇볕이
비치고 있을 때처럼 밖으로 나가죠. 햇볕이 비치는 맑은 날 볼 수 없는 것을
빗속에서는 볼 수
있다나요?"
"빗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게 뭔데?"
"음, 예를 들어서 물에 빠진 까마귀 같은 거죠. 디콘은 물에 빠진 까마귀 새
끼를 데리고 와서
길들인 일도 있어요. 몸이 새까매서 '검댕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디콘이
가는 곳은 어디
든지 따라다닌대요."
"어! 까마귀 친구도 있어? 디콘은 친구가 무척 많구나. 망아지, 캡틴, 그리고
검댕이까지."
메어리는 마르사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혹시 마르사가 이야기를 그만
둘까봐 염려가 될
정도였다. 마르사가 해 주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마르사의 어머
니와 디콘의 이야
기였다.
"마르사의 어머니도 동물을 좋아하셔?"
"그럼요. 디콘 다음으로 동물을 좋아하세요. 디콘의 친구들은 모두 어머니의
친구예요. 특히
캡틴과 검댕이는 어머니를 잘 따르죠."
"내게도 까마귀나 여우 새끼가 있다면 함께 놀 수 있을 텐데."
메어리는 동물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마르사네 가족들이 부러웠다. 메어리의
엄마는 동물을 무
척 싫어했다. 메어리가 패티를 안고 다니면 집안에 털이 날린다고 얼굴을 찡그
리셨다.
"마르사, 디콘과 마르사네 엄마 얘기를 더 해줘. 난 마르사네 엄마도 디콘만큼
좋아."
그때 아래층에서 메드로크 부인이 부르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마르사
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죠? 전 내려가봐야 해요. 아가씨, 뜨개질 할 줄 아세요?"
"아니, 못해."
"바느질은요?"
"그것도 못해."
"그럼 책은 읽을 줄 아세요?"
"응, 읽을 수 있어."
"그럼, 도서실에 들어가도 좋은지 메드로크 부인에게 물어 보세요. 도서실에
는 수천 권의 책이
있거든요."
마르사는 도서실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채 급한 걸음으로 아
래층으로 내려가 버
렸다. 마르사가 나가고나자 메어리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도서실을 직접 찾아보는 거야. 이 이상한 집을 둘러 보는 것도 재미있
을 거야.'
메어리는 이 저택에서 사람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메어리의 식사는 언제나
마르사가 가져다
주었고 그 외에는 메어리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이
틀에 한번 정도씩
메어리가 잘 있는지 보러 왔다.
메어리는 문득 메드로크 부인의 말이 떠올랐다.
'집에 있는 방만도 거의 백 개나 되지만 대부분의 방들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사용하지 않아
요.'
메어리의 마음 속에 서서히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백 개나 되는 방이 정말 모두 열쇠로 잠겨 있을까? 방안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방이 정말
백 개나 될까? 내가 가서 그 방을 세어 보면 어떨까?'
메어리는 자꾸만 커져가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
갔다. 메어리의 방
이 있는 긴 복도는 중간 중간에 몇 개인가의 작은 복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메
어리는 긴 복도를
벗어나 작은 복도를 걸었다. 막다른 곳에 이르자 좁은 계단이 있고 계단을 오
르자 또 복도가 있
었다.
복도 옆에는 방들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어휴, 가도 가도 방이야. 잠깐, 내가 몇까지 세었더라. 스물 다섯? 스물 여
덟?"
메어리는 세던 방의 개수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메어리는 방의 개수 세는 것을 포기하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천천히 복도
를 지나갔다. 그림
은 풍경화도 있었지만 대개는 멋진 옷을 입은 여자와 남자의 초상화였다. 그
중에는 어린아이의
초상화도 있었다.
메어리는 한 여자 아이의 초상화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초상화의 여자 아
이는 메어리 자신
처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게 호기심이 강한 것 같은
아이였다.
"얘, 넌 이름이 뭐니? 어디로 간 거야?"
메어리는 발꿈치를 올리고 손가락으로 초상화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메어
리의 목소리는 조
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넌 지금 어디에 살고 있니? 여기에 있으면 좋을 텐데."
메어리는 넓은 집안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거나 복도를 지나며 혼자 서성
거리고 다녔다. 계
단에도 복도에도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은 없었다.
3층 다다르자 메어리는 방문을 열어 보기로 했다. 메드로크 부인의 말대로
문이 잠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은 쉽게 열렸다.
그 방은 침실이었다. 큰 창문에 쳐진 커튼은 자수가 수놓인 빌로드로 되어 있
었다.
"와, 멋있다."
메어리는 이끌리듯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구석에 놓인 장식장에는 상아로 만들어진 코끼리가 백 개 정도 늘어서
있었다. 그 코끼리
들은 모두 크기가 달랐다. 아주 큰 코끼리도 있었고 아기 코끼리도 있었다.
메어리는 유리로 된 장식장 문을 열고 코끼리를 꺼내 가지고 놀았다. 그러
나 곧 싫증이 나자
상아 코끼리를 다시 장식장 안에 넣고 복도로 나왔다.
"이상한 집이야.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바로 그때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메어리는 흠칫 놀라 난로 쪽
의 소파를 보았다.
그쪽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야? 거기 누가 있는 거야?"
메어리는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소파의 한 구석에 빌로드로 된 쿠션이 있었
는데 그 쿠션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속에서 무엇인가가 이쪽을 엿보고 있었다. 메어리
는 가만히 옆으로
다가갔다.
"너였구나. 여기가 너희 집이니?"
그 주인공은 작은 생쥐였다.
메어리는 생쥐 옆에 달라붙어 있는 새끼 생쥐들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그 자리
를 떠났다.
'방으로 돌아가야겠어. 마르사가 걱정할 거야.'
그러나 메어리는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메어리는 이리저리 헤
매다가 자기 방이
있는 2층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길을 잃어버렸어. 내 방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때 고요함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메어리는 귀를 기울였다. 그 소
리는 바람소리 같
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메어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
록 그 소리는 울음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울고 있어. 누구일까?"
그 소리는 칭얼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메어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메어리는 어두운
복도의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벽을 더듬는 메어리의 손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그것은 벽걸이였다. 메어리
의 손이 벽걸이에
닿는 순간 덜컥하는 소리가 났다.
"꺄악!"
메어리는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조그맣게 소리를 질렀다. 그
벽걸이 뒤에 문이
감추어져 있었고 열린문 맞은편으로는 또 다른 복도가 보였다.
메어리는 갑자기 나타난 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문이지? 복도가 얼마나 많은 거야?'
그런데 복도 쪽을 보고 있던 메어리는 깜짝 놀랐다. 복도 저만치서 메드로크
부인이 화난 얼굴
로 열쇠 꾸러미를 들고 메어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메드로크 부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메어리는 갑자기 나타난 메드
로크 부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길을 잃어버렸어."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팔을 잡고 질질 끌었다.
"지난번에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죠? 방을 함부로 얼씬거려서는 안 된다고 말
했잖아요."
"길을 잃었다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여기 서 있는데 울음소리가 들렸
단 말이야."
메어리는 메드로크 부인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메드로
크 부인은 더욱 더
세게 메어리의 팔을 죄었다.
"그런 소리가 들릴 리 없어요! 어서 방으로 돌아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뺨을
때려 줄 거예요!"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가 몸부림을 치자 멱살을 잡고 끌어 당겼다. 그리고
는 메어리의 방까지
오자 메어리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제가 있어도 된다고 말한 곳에만 가만히 계세요! 알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방문을 열쇠로 잠
가 버려서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할 거예요. 아무래도 아가씨에겐 엄하게
다스릴 사람이 필요
한 것 같군요."
메드로크 부인은 방을 나간 후 문을 찰칵 잠가 버렸다. 메어리는 화가 나 얼
굴이 새파랗게 질
렸다.
"나를 가두어 놓겠다고? 흥! 할 수 있으면 해 보라지!"
메어리는 이를 갈았다.
"난 확실히 들었어. 분명히 누군가 울고 있었어. 그 정체를 꼭 밝혀내고 말겠
어."
메어리는 마치 힘든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몸이 피곤했다. 메드로크 부인에
게 화가 났지만 어
쨌든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메어리는 상아로 만든 코끼리와 놀았고, 쿠션에 보금자리를 만든 재색 빛의
새앙쥐도 만난 것
이다.
7. 화원의 열쇠
폭풍우는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틀이 지난 날 아침 메어리는 일어나자마자 창 밖을 내다보고 마르사를 불렀
다.
"마르사, 저 들판 좀 봐. 저기 말야."
들판에는 세차게 휘몰아치던 바람도 그치고 뿌연 안개와 구름도 어디론지 사
라지고 없었다. 지
금은 눈부신 파란 하늘이 들판 위에 높게 떠올라 있었다.
"난 저렇게 푸르고 예쁜 하늘은 처음 봐. 인도에서는 하늘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게 빛을 내고
있었거든."
메어리는 창가에 서서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아름다운 호수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여기저기엔 새
털 구름이 떠 있었
다.
마르사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폭풍이 금방 없어졌지요? 해마다 이때쯤이면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폭풍
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황폐했던 땅이 모두 살아나지요. 봄이 가까이 온 탓이에요."
"난 영국은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들만 계속되는 줄 알았어."
"그렇지 않아요. 특히 이곳 요크셔 지방은 세계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이
에요. 아가씨도 들
판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마르사는 창가에 서 있는 메어리 곁으로 다가가 창 밖을 바라보았다.
"금작화도 피고 히드꽃에도 보라색 방울이 피어요. 나비들이 훨훨 하늘을 날
아다니고 꿀벌도
붕붕거리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다니죠. 그리고 종달새는 하늘 높이 올
라 노래를 불러요.
아가씨도 곧 디콘처럼 하루 종일 들판을 놀러 다니고 싶을 때가 올 거예요."
"마르사, 너희 집에 가 보고 싶어."
마르사는 메어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메어리의 얼굴은 처음 이 저택에 왔
을 때처럼 마르지도
않았고 고집스럽게 보이지도 않았다. 메어리의 얼굴은 동생 제인이 뭔가를 매
우 하고 싶어할 때
의 얼굴과 꼭 닮아 있었다.
"저희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엄만 저희들 일이라면 뭐든지 아시거든요. 오늘
은 제가 집에 가는
날이니까 물어볼 수 있을 거예요."
"난 마르사의 엄마가 좋아졌어. 만난 적은 없지만 말야."
마르사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퍼졌다.
"저희 엄마는요, 이해심도 많으시고 마음씨도 고우세요. 일도 얼마나 잘하신
다고요. 엄마를 만
나는 사람은 누구나 엄마를 좋아하게 되죠. 전 쉬는 날 집에 가서 엄마를 볼
생각을 하면 걸음이
날 듯이 가벼워지죠."
"난 디콘도 좋아. 디콘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런데 디콘은 날 좋아해 줄까?"
메어리의 얼굴은 자신 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가씨는 아가씨 자신을 좋아하세요?"
"아니, 전혀 좋아하지 않아. 정말이야. 아무도 날 좋아해 준 사람이 없는걸."
메어리는 마르사가 집으로 돌아가 버리자 더욱 쓸쓸했다.
"패티. 정원에 나가서 놀자. 울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정원으로 나갔다. 메어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신
선한 봄냄새가 났
다.
메어리는 담쟁이 덩굴이 뒤엉켜 있는 긴 담 바깥쪽의 산책길을 걸었다. 메어
리는 담 너머 안쪽
에 있는 나무의 긴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울새가 없나봐. 늘 저기에 앉아 있곤 했었는데."
패티도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실망한 듯 까실까실한 수염을 메어리의 손에
비볐다.
"너도 울새가 좋은 모양이구나. 그렇지?"
메어리는 패티를 꼬옥 안아 주었다. 그런데 패티가 갑자기 메어리의 품 안에
서 고개를 내밀며
반가운 울음소리를 냈다.
"왜 그래?"
메어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메어리의 등 뒤에는 울새가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땅을 쪼아대고 있
었다. 마치 메어리의 뒤를 쫓아오다가 메어리가 뒤돌아보자 아닌 것처럼 하려는
몸짓 같았다.
"날 기억해 주었구나. 날 기억하고 있어. 네가 세상에서 최고야."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봤지, 패티. 울새는 날 좋아해. 울새는 날 좋아해."
메어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메어리는 패티와 함께 울새를 따라 달렸
다. 메어리는 달리
다가 그 자리에 서서 뱅글뱅글 춤을 추기도 했다.
"찌르르 쫑 찌르르 쫑 찌르르르."
메어리의 입에서는 울새를 흉내내는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울새도 메어리
를 따라 뛰어오르
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메어리는 노래를 부르는 울새의 곁으로 다가갔다. 울새는 메어리가 가까이
가도 놀라거나 날아
가려 하지 않았다.
"울새는 내가 손을 대거나 놀라게 하는 짓을 절대 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
는 거야. 날 이해
하는 거야."
메어리는 팔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메어리는 숨이 막힐 정도의 행복감을 느꼈다.
울새는 흙더미 위에 올라 흙을 파헤치며 벌레를 찾고 있었다. 메어리는 울새
에게 다가가 흙더
미를 바라보았다.
"배 고프니? 내가 맛있는 빵 갖다줄까?"
그런데 흙더미에 무엇인가가 묻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녹슨 철이나 고리
같았다.
"이게 뭐야?"
메어리는 손을 내밀어 그 고리를 주워 올렸다. 그것은 고리가 아닌 열쇠였다.
그 열쇠는 오랜
세월 파묻혀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녹이 슬어 있었다.
"이건 십년 동안 묻혀 있던 그 열쇠일지도 몰라!"
메어리는 손가락에 매달려 있는 열쇠를 눈을 크게 뜨고 무서운 것이라도 보듯
바라보았다.
"맞아, 비밀의 정원 열쇠일 거야."
메어리는 꽤 오랫동안 그 열쇠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어리는 비밀의 정원을
보고 싶어 견딜 수
가 없었다.
8. 마르사의 선물
다음날 아침 메어리가 눈을 떠보니 마르사는 아침 일찍 집에서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다. 메어
리는 잠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열쇠는 그대로 있었다.
마르사는 집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가 절 보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몰라요. 한 달 사이에 얼굴이 더 좋아
졌대요. 전 엄마와
둘이서 빵을 굽고 산더미처럼 쌓인 동생들의 빨래들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어요."
마르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들판에서 동생들이 돌아왔을 땐 따끈따끈하게 구워진 과자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 있었어요.
장작도 활활 타고 있었구요. 모두들 굉장히 좋아했지요. 무척 왁자지껄 했어요.
디콘은 이런 곳이
라면 임금님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답니다."
메어리는 마르사 곁에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메어리의
머릿속에는 또 다시 한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오두막집 안에 마르사와 마르사의 어머니가
웃고 있다. 그 주
위에 둘러 서 있는 아이들의 입가에도 밝은 미소가 번져 있다.
"그래서? 또 얘기해 줘. 응?"
"밤에 식구들이 모두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을 때 전 모두에게 아가씨 얘기
를 했어요."
"내 얘기를? 와, 정말이야? 뭐라고 했는데?"
"음, 인도에서 온 여자 아이라고 했지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모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양
말 하나 신을 줄 모른다고 했어요."
마르사는 메어리를 쳐다보며 짓궂게 웃었다. 메어리는 마르사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금은 신을 줄 안단 말이야. 마르사가 가르쳐 줬잖아."
"하지만 모두들 아가씨의 이야기를 재미있어 했어요."
메어리는 마르사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디콘과 마르사네 엄마도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해?"
"그럼요. 디콘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었어요. 그렇
지만 어머니는 클레
이븐 씨가 아가씨를 외롭게 내버려 두었다고 화를 내셨어요. 왜 가정교사나 유
모를 두지 않으시냐
는 거죠."
"흥, 가정교사 따위는 필요없어!"
메어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닌 아가씨도 이제 공부해야 할 나이라면서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하
셨어요. 그러면서 제게 아가씨 기운을 북돋아 주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전 그렇
게 하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메어리는 마르사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르사, 난 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참 즐거워. 넌 이미 내 기운을 복돋아 주
고 있어."
"잠깐만요, 아가씨."
마르사는 밖으로 나가더니 앞치마 안에 무엇인가를 숨겨가지고 들어왔다.
"이게 뭐 같아요? 아가씨에게 드릴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
마르사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내게 줄 선물이라고?"
메어리는 큰 소리로 물었다.
"장사꾼이 저희 집에 왔었어요. 항아리, 냄비 등 여러 물건이 쌓여 있었지만
어머니는 돈이 없
어서 아무것도 사지 못했어요. 장사꾼이 가려고 할 때 엘리자벳이 빨갛고 파란
손잡이가 달린 줄
넘기가 있다고 외쳤어요.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그 장사꾼을 불러 세웠어요."
메어리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마르사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제가 드렸던 월급에서 줄넘기 값인 2펜스를 꺼내셨죠.
어머닌 제게 이렇
게 말씀하셨어요. '마르사, 넌 참 기특하구나. 돈 쓸 일도 많을 텐데 내게 네 월
급을 전부 주다니
말이야. 그 돈에서 2펜스를 아가씨에게 줄넘기를 사 드리는 데 쓰는 게 어떻
겠니?' 하고 말예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마르사는 앞치마에서 줄넘기를 꺼냈다.
"이게 바로 그 줄넘기예요."
줄넘기는 튼튼하게 생긴 가느다란 줄로, 양끝에 빨갛고 파란 줄무늬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와,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메어리는 줄넘기를 받아들고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메어리는 줄넘기를 본
적이 없어서 줄넘기
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뭐하는 거야?"
메어리의 말에 마르사는 큰 소리로 되물었다.
"뭐하는 거냐구요? 인도에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나요? 이건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
마르사는 방 한복판으로 가서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
다.
"어때요?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요?"
메어리는 마르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메어리의 얼굴에 호기심이 깃든
표정이 점점 퍼져갔
다. 마르사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메어리를 보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
라했다.
"자, 보세요. 이제부터 개수를 세면서 할 테니까요. 하나, 둘, 셋..."
마르사는 깡총깡총 뛰면서 개수를 세었다.
"와, 잘한다. 벌써 육십 개째야."
메어리는 박수를 치며 마르사를 따라 개수를 세었다. 마르사는 가쁜 숨을 몰
아쉬면서도 얼굴에
는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구십구, 백! 와! 백 개나 했어."
메어리도 마르사를 따라 깡총깡총 뛰었다.
"예전에는 훨씬 잘했었어요. 제가 열두 살 땐 지금처럼 뚱뚱하지도 않았고 연
습도 열심히 해서
오백 번까지도 했어요."
메어리는 마르사에게 다가갔다.
"참 재미있을 것 같아. 너희 엄마는 정말 친절하고 좋은 분이셔. 나도 너처
럼 줄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럼요. 자, 해 보세요."
마르사는 줄넘기를 메어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처음부터 백 번을 하는 건 힘들지만 연습하면 차츰 많이 할 수 있을 거예요.
저희 어머니는 줄
넘기가 아이들의 좋은 장난감이라고 하셨어요. 아가씨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래요. 집 밖의 공
기 좋은 곳에서 이걸로 줄넘기를 하게 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손발이
쑥쑥 자라고 튼튼해
진대요."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르사가 했던 대로 줄넘기를 넘겨 보았다. 그
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잘 안돼. 하지만 재미있어."
메어리는 줄넘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는 처음이었다.
"춥지 않게 옷을 단단히 입고 밖에 나가서 한 번 해 보세요."
마르사는 옷장에서 외투와 모자를 꺼내 메어리에게 주었다.
"엄마는 될 수 있는 대로 아가씨를 밖에서 놀도록 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옷
을 두껍게 입으면
될 거라고 하시면서요."
메어리는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줄넘기를 팔에 걸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
가려다가 뭔가가 생
각난 듯 다시 되돌아와 머뭇머뭇 말했다.
"마르사, 이거 네가 월급 받은 돈으로 산 거라고 했지? 정말 고마워."
메어리의 말투는 매우 어색했다. 메어리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뭔가를 해 주었다는 것도 깨
달은 적이 없었다.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마르사는 메어리가 내민 손을 어설프게 잡고 웃었다.
"제 동생 엘리자벳이었다면 손등에 키스해 줬을 텐데."
그러자 메어리의 표정은 더욱 어색해졌다.
"내가 키스해 줄까?"
"아니에요. 됐어요. 언젠가는 아가씨가 먼저 키스하고 싶으실 때가 있을 거예
요. 자, 나가서 줄
넘기를 하세요."
메어리는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방을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 요크셔
에는 색다른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메어리는 발 밑에서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패티에게 소근거렸다.
"패티, 난 말이지. 마르사가 참 좋아. 처음엔 굉장히 싫었지만 말이야."
9. 미스르스웨트의 봄
줄넘기는 굉장히 멋진 놀이였다. 메어리는 줄넘기를 하며 정원으로 달려갔다.
"패티, 이것 봐. 열 개나 했어. 처음엔 세 개밖에 못 했었는데 말이야."
메어리는 줄이 자꾸만 다리에 걸려도 재미있기만 했다. 패티는 줄이 휙휙 돌
때마다 발톱을 세
우고 줄을 잡으려고 했다.
"그게 아니야, 패티. 이렇게 넘어야 되는 거라구."
메어리는 빨갛게 상기된 뺨에 함빡 웃음을 머금고 줄을 넘었다.
"봐, 나도 잘하지? 다시 해 볼게."
메어리는 몇번이고 다시 줄넘기를 했다. 해님은 햇볕을 쏟아 주었고, 바람은
상쾌한 흙냄새를
싣고 불어왔다.
"정말 재미있어. 이런 놀이는 처음이야."
메어리는 줄넘기를 하며 정원을 이리저리 돌았다. 메어리는 벤 할아버지가
있는 채소밭으로 갔
다.
채소밭에는 벤 할아버지가 땅을 일구면서 울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벤 할아버지! 울새야! 안녕!"
메어리는 줄넘기를 멈추지 않고 상기된 얼굴로 할아버지와 울새에게 인사를
했다.
벤 할아버지는 줄넘기를 하고 있는 메어리를 신기한 표정으로 보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정말 놀랐는걸. 네가 줄넘기를 하다니. 역시 넌 어린아이
로구나. 네 속에도
어린아이의 피가 흐르고 있어."
벤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조금 전에 막 시작했는걸요. 아직
스무 번밖에 못 했
어요."
"처음 시작하는 것치곤 아주 잘하는 거야. 봐라, 울새 녀석도 널 가만히 쳐다
보고 있지 않니?"
벤 할아버지는 울새를 보며 미소지었다.
"저 녀석, 아마 오늘 하루 종일 네 뒤를 쫓아다닐 거다. 줄넘기라는 물건을
처음 보니까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말이야."
메어리는 잠깐씩 쉬면서 정원 전부와 과수원을 줄넘기를 하며 돌았다. 나중
에는 몸이 더워지고
숨이 가빠서 계속할 수가 없었다. 메어리는 30분 동안이나 줄넘기를 하며 정원
을 돌았던 것이다.
"하아, 하아, 스무 번도 더 뛰어 넘었어."
메어리는 몸을 숙이고 숨을 몰아 쉬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
다. 그것은 흙더미
에서 주웠던 열쇠였다.
"잊고 있었어. 어서 정원의 문을 찾아야 해."
메어리는 다시 과수원의 담장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문이 보이지 않
자 메어리는 손으로
벽을 더듬었다. 그러나 만져지는 건 담쟁이 덩굴의 까칠한 느낌뿐이었다.
메어리는 다시 벤 할아버지가 있는 채소밭으로 갔다. 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울새와 함께 있어
서인지 아까보다도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 그 땅은 왜 일구시는 거예요?"
"봄을 맞기 위해서란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쭈욱 펴고 하늘을 보았다.
"이제 봄이야. 어때? 봄 냄새가 좀 나니?"
메어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웬지 기분이 좋고 신선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흙내음이야."
할아버지는 다시 땅을 일구면서 대답했다.
"땅은 생물을 키울 준비를 하고 있어. 씨뿌릴 시기가 오면 땅은 무척 기뻐하
지. 아무것도 할 일
이 없는 겨울이 무척 지루했기 때문이야.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면 초록색 싹
들이 깜깜한 땅에서
머리를 내밀게 될 거야."
"그 싹은 나중에 무엇이 되는데요?"
메어리가 물었다.
"크로커스, 수선화, 갈란투스 같은 꽃들이 되지. 이런 꽃들을 본 적이 없니?"
"없어요. 인도에서는 장마가 지나면 너무 덥고 눅눅해서 모든 것이 녹색으로
변해 버려요. 전
그래서 하룻밤만 자면 모든 게 자란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에서는 하룻밤 가지고는 자라지 않아. 좀더 기다려야만 한단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로 울새가 날아들었다. 메어리는 부드럽게
스치는 날개짓 소리
만으로도 그것이 울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울새가 살고 있는 정원에도 땅 속에서 여러가지 싹이 틀까요?"
"어떤 정원 말이냐?"
벤 할아버지는 다시 무뚝뚝한 얼굴이 되었다.
벤 할아버지는 비밀의 정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메어리는 끈질기게 물었다.
"오래된 장미 나무가 있는 정원 말이에요. 꽃은 모두 죽어 버린 걸까요? 아니
면 여름이 되면 다
시 피어나는 꽃들도 있나요? 장미 나무는 정말 있나요?"
"저 녀석에게 물어봐라."
할아버지는 귀찮다는 듯이 어깨로 울새 쪽을 가리켰다.
"알고 있는 것은 저 녀석뿐이야. 십년 동안 울새 말고는 어느 누구도 그 정원
에 들어간 적이 없
어."
메어리는 흙을 일구고 있는 할아버지를 두고 채소밭에서 나왔다.
메어리는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들어갈 거야. 그런데 어떻게 찾지? 아무리 살펴봐도 문 같은 건 보이지
않잖아.'
메어리는 과수원 담을 바라보며 줄넘기를 했다.
갑자기 바람이 씽 불어와 나뭇잎들을 날렸다. 메어리는 그 모습이 마치 나무
의 머리카락이 날리
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갑자기 메어리의 머릿속에는 카멜라의 모습
이 떠 올랐다.
"그래! 카멜라가 있었지! 카멜라에게 물어보면 될 거야!"
메어리의 가슴은 방망이질치듯 두근거렸다.
"카멜라라면 비밀의 정원에 대해 분명 알고 있을 거야."
메어리는 갑자기 얼굴에 발갛게 홍조를 띠며 즐거워했다.
메어리는 줄넘기를 넘으며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
메어리의 머릿속에는 비밀의 정원에 싹이 트고 장미 나무가 자라는 상상이 아
름답게 펼쳐졌다.
10. 카멜라를 찾아가다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들판으로 나갔다.
들판에는 봄을 알리는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의
부드러운 손이 메어
리의 얼굴과 머리칼을 자꾸만 쓰다듬었다.
"아이, 간지러워."
메어리는 바람을 손으로 막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패티는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메어리를 올
려다보았다.
"패티, 우린 카멜라한테 가는 거야. 카멜라는 뭐든지 알고 있으니까 정원의
문이 어디에 있는지
도 알 거야."
메어리는 사각거리는 풀잎을 밟으며 들판을 지났다. 들판에는 히드꽃과 금작
화가 삐죽삐죽 얼굴
을 내밀고 있었다. 메어리는 들판의 한복판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택은 보이지
않았다.
"패티, 이곳은 정말 이상한 것투성이야. 그런데 카멜라가 사는 늪은 아직 멀었
을까?"
메어리는 발돋움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이는건 끝없이 펼쳐진
들판뿐이었다.
"이상해. 늪은 어디에 있지?"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방향도 모르는 채 들판을 걸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
갔다. 메어리는 한
참을 걸은 후에야 늪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메어리는 늪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한기에 몸
이 오싹해졌다.
"패티, 카멜라의 오두막집은 어디에 있을까?"
메어리는 겁 먹은 눈으로 늪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집 같은 건 어디에도 보
이지 않았다. 단지
늪 앞에 서 있는 키 큰 나무만이 눈에 들어왔다. 메어리는 그 나무를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금방
이라도 그 뒤에서 카멜라가 긴 머리와 망토를 휘날리며 나타날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풀잎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메어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
다.
카멜라가 어느새 메어리의 뒤에 서 있었다.
"안녕, 메어리. 오늘은 뭘 잃어버렸지?"
카멜라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두 눈은 빛을 발하고
있고 팔찌에서는 짤
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메어리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패티를 안은 팔에 너무 힘을 주었는지 패티
가 야옹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
"아, 이 고양이가 메어리의 잃어버렸던 친구군."
카멜라는 고개를 숙이고 패티를 들여다보았다. 카멜라는 가늘고 긴 손을 올려
패티의 털을 쓰다
듬었다. 그러자 패티는 기분 좋은 듯 갸르릉 울음소리를 냈다.
"어, 이상하네?"
패티는 낯선 사람이 만지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카멜라
가 만지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이다.
"자, 메어리.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지?"
카멜라는 메어리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메어리는 카멜라의 초록빛 눈동자 속
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알고 싶은 게 있어 왔어요."
카멜라는 조용히 웃었다.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알고 싶어하는군. 그렇지?"
"모두들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가르쳐 주지 않아요."
"호! 메어리, 클레이븐 가의 비밀은 아가씨만 모르는 게 아니야. 그 집의 비밀
은 아무도 말을 하
거나 물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지."
"왜요? 어째서 이야기하거나 물으면 안 되는 거죠? 카멜라는 알고 있죠? 좀
가르쳐 주세요. 십
년 동안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정원에 대해서 말예요."
카멜라는 고개를 돌려 늪을 바라보았다. 카멜라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
려 이리저리 흩어졌
다.
"메어리, 비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야."
"슬픈 일?"
메어리는 카멜라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메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패티도
따라서 작은 머리
를 흔들었다.
"매우 슬픈 일이지."
카멜라는 메어리에게로 다가왔다.
"메어리,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소중한 비밀이 들춰지는 건 슬
픈 일이란다. 비밀
은 엿보는 것보다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편이 좋아."
"하지만 전 그 정원의 입구를 꼭 찾고 싶어요. 아저씨의 비밀을 엿보려는 게
아니라구요."
메어리의 간곡한 부탁에 카멜라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널 내 오두막으로 데리고 가 주마."
카멜라의 오두막은 황야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나무가 낡아서 그런지 문이
바람에 삐그덕거렸
다.
"이곳이 내 집이란다."
카멜라는 문을 열고 캄캄한 집안으로 들어가 등불을 켰다. 메어리는 주춤거
리며 작은 오두막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메어리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크고 작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짐승의 뼈를 닮은 장식물이 벽에 걸려 있고 방울이 바람에 흔들려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메어리, 주위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돼. 사람들은 매우 약하지. 모두들 언제
나 뭔가를 두려워
하면서 살고 있단다. 그래서 때때로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지."
카멜라가 촛불을 켜며 말했다. 집 안이 갑자기 환해지자 메어리는 눈을 깜박
였다.
"소중한 것이라니요?"
"멀지 않아 알게 될 거야."
카멜라는 방 한가운데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다섯 개의 수정 구슬
과 카드가 놓여 있
었다.
"자, 메어리. 이리 와서 앉으렴."
카멜라와 메어리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탁자 위의 촛불이 흔들리며
벽에 이상한 그림자
를 만들고 있었다.
"자, 메어리. 마음 속으로 빌어봐."
"무엇을요?"
"알고 싶은 것과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 거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깨닫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네 운명에 대해서 점
을 쳐주마. 메어리,
손을 모으고 마음을 가다듬으렴."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에 손을 모은 후 눈을 감았다.
카멜라는 탁자 위에 있는 카드를 집어 빠르게 펼쳤다가 다시모았다. 카드를
다루는 카멜라의 손
은 너무도 능숙해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카멜라는 카드를 뒤집은 다음 탁
자 위에 펼쳐 놓았
다.
"라바라 사박다라 디비리리 사박다라, 운명의 별이여 내 손으로, 라바라 사
박다라 디비리리 사
박다라."
카멜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카드를 한 장 집어 올렸다.
"사막의 카드가 나왔어."
메어리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사막? 그건 뭐예요?"
"많은 고난, 그리고 오래된 커다란 집."
메어리는 깜짝 놀랐다. 오래된 커다란 집은 클레이븐 씨의 저택을 말하는 것
이었다.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은 그 집밖에 없다고 나와 있어."
카멜라는 다시 한 장의 카드를 집어 올렸다. 이번에는 전차가 그려진 카드였
다.
"이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고난을 극복하라는 뜻이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메어리는 카멜라의 말을 조용히 되뇌었다.
카멜라는 탁자에서 또 한 장의 카드를 집었다.
"불의 카드, 그 괴로움을 견디면 넌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소중한 것? 내게 소중한 것은 비밀의 정원이에요. 난 비밀의 정원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밀의 정원에 대해서 알고 싶니?"
"네, 입구를 알고 싶어요."
메어리는 눈을 반짝이며 카멜라를 보았다. 카멜라는 카드를 한 곳으로 모으고
수정을 집어 탁자
의 가운데로 모았다.
"눈을 감아라. 그리고 마음속으로 비밀의 정원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야."
메어리가 두 눈을 꼭 감자 카멜라는 두 손을 서서히 위로 올리며 주문을 외웠
다.
"라바라 사박다라 디비리리 사박다라, 비밀의 문이여 모습을, 라바라 사박다
라 디비리리 사박다
라."
카멜라의 손목에 채워진 짤랑거리던 팔찌에서 이상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카멜라는 두 손을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손을 서서히 아래로 내려 수정 구슬
을 집어 탁자 위로
휙 던졌다. 수정의 빛이 공중에서 반짝 빛나며 아래로 쏟아졌다. 세 개의 구슬
은 탁자 밑으로 떨
어지고 두 개의 구슬이 탁자 위에서 또그르르 굴렀다.
"바람과 새가 나왔어."
카멜라는 수정 구슬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바람과 새라구요? 그걸로 어떻게 정원의 입구를 알 수 있어요?"
메어리는 수정 구슬과 카멜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카멜라는 여전히 수정
구슬을 뚫어져라 바
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입을 떼었다.
"빨간 가슴을 가진 새야. 빨간 가슴을 가진 새와 바람을 좇으면 입구를 알 수
있어."
"빨간 가슴을 가진 새라구요? 그건 울새예요. 울새는 제게 정원의 열쇠도 찾게
해주었어요."
메어리는 신이 나서 말했다. 메어리는 카멜라의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었
다.
11. 비밀의 문
다음날 아침 메어리는 눈을 뜨자마자 줄넘기를 가지고 정원으로 나갔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나무와 채소들 위로 반짝이고 있었다. 메어리는 숨을 크
게 들이쉬었다.
"흠, 상쾌한 냄새! 이게 바로 벤 할아버지가 말한 봄냄새인가봐."
메어리는 줄넘기의 손잡이를 양손에 꼭 쥐었다.
"자, 시작!"
메어리는 줄을 돌리며 깡총깡총 뛰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혔다. 메
어리는 줄넘기를 하
며 정원을 돌았다. 한 발짝씩 움직일 때마다 주머니에 넣어둔 열쇠가 흔들렸다.
"빨간 가슴을 가진 새와 바람, 빨간 가슴을 가진 새와 바람."
메어리는 카멜라의 말을 중얼거렸다. 메어리의 눈에 울새는 보이지 않았다.
메어리는 숨이 차서 줄넘기를 멈추고 몸을 힘껏 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울
새가 짹 하고 인사
를 보내왔다.
"울새구나!"
메어리는 얼굴에 함빡 웃음을 담고 뒤돌아보았다. 울새는 과수원의 흔들거리
는 담쟁이 덩굴 위
에 앉아 있었다. 울새는 메어리를 보며 반갑다는 듯 자그마한 얼굴을 갸웃거렸
다.
메어리는 울새를 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 울새야. 난 어제 카멜라에게 갔다 왔단다. 정원의 입구를 알려고 말이
야. 카멜라는 네
가 입구를 알고 있대. 정말이니?"
울새는 여전히 작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마치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넌 내게 열쇠가 있는 곳도 가르쳐 주었으니 오늘은 입구를 가르쳐 주지 않
을래? 넌 그곳에서
살고 있잖아."
울새는 흔들거리는 담쟁이 덩굴에서 담 위로 날아올라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 노랫소리는 메어리에게만 들려 주기 위한 소리 같았다. 울새의 노랫소리만
큼 귀엽고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때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메어리가 유모에게서 들은 어떤 마
법의 얘기보다도 더
굉장한 마법이었다.
메어리가 서 있는 산책길에 기분좋은 바람이 갑자기 휙 불어왔다. 그것은 과
수원의 담에 드리워
진 담쟁이 덩굴을 흔들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메어리는 덩굴에 앉아 있던 울새
가 떨어지지는 않을
까 걱정이 되었다.
"울새야, 이쪽으로 와."
메어리는 울새 곁으로 다가갔다. 담쟁이 덩굴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 때문에
한쪽으로 쏠려 있었
다. 그런데 그 밑으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덩굴 밑에 숨겨져
있던 둥근 손잡이였
다. 바로 정원의 문이었던 것이다.
"찾았어! 찾았다구!"
메어리는 잎새 밑에 손을 넣어 담쟁이 덩굴을 떼어냈다. 담쟁이 덩굴은 두껍
게 뒤덮여 있었지만
쉽게 떨어져 나왔다. 메어리는 흥분과 기쁨으로 가슴이 뛰고 손까지 떨렸다.
"울새야, 이것 봐. 틀림없는 정원의 입구야."
울새도 흥분했는지 메어리의 곁으로 와 머리를 내밀고 노래를 계속했다.
메어리는 덩굴을 떼어내고 드러난 네모진 철판에 양손을 댔다.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십년 동안이나 잠겨져 있던 문의 열쇠였다. 메어리는 주머
니에서 열쇠를 꺼
냈다. 그리고 자물쇠 구멍에 맞춰 보았다. 열쇠는 구멍에 꼭 맞았다.
"와, 맞았어. 꼭 맞아."
오랜 세월 동안 잠겨져 있었던 탓인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메어리가 양손
을 사용해 돌리자
열쇠는 겨우 돌아갔다.
"휴, 겨우 열었어. 녹이 슬었나봐."
메어리는 팔을 올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누가 있지
나 않은지 산책길을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메어리는 긴 한숨을 쉬었다. 메어리는 흔들거리는
담쟁이 덩굴을 옆
으로 젖힌 후 힘껏 문을 열었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메어리는 살며시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그 문에 기
대어 주위를 살펴보
았다. 흥분과 놀라움과 기쁨으로 숨이 가빠왔다. 지금 메어리는 비밀의 정원 안
에 서 있는 것이다.
"정말 멋있어. 저 장미 덩굴 좀 봐. 울새야, 여기가 네가 살고 있는 곳이구나."
정원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비밀스러웠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에는
잎사귀 없는 덩굴 장미가 서로 뒤엉켜 담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덩굴은 마치
길게 늘어진 커튼처
럼 흔들리며 서로 뒤얽히거나 먼 가지에까지 뻗어 있었다. 나무에서 나무로 멋
진 줄사다리를 만들
고 있는 덩굴도 있었다.
"저 장미 나무들은 살아 있는 걸까, 죽어 있는 걸까?"
잎새도 꽃도 없는 장미 나무들은 시들어 버린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갈색의
가는 줄기와 가지는 담이나 나무, 풀 위에까지도 넓게 퍼져 있었다. 이 정원이
신비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나무에서 나무로 엉겨붙어 망토를 걸친 것 같은 장미 덩굴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조용할까?"
메어리는 숨을 죽이고 말했다.
"정말 조용하다."
메어리는 우두커니 서서 고요함에 귀를 기울였다.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던
울새도 날개짓을 하
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십년 동안 여기에서 말을 한 것이 내가 처음이라니."
메어리는 조심스럽게 정원 안을 걸었다. 메어리는 옛날 이야기나 동화 속에나
나올 듯한 재색의
아치 밑을 통과하면서 아치를 이루고 있는 장미 가지와 덩굴을 올려다보았다.
"모두 시들어서 죽어 버린 걸까? 여긴 죽어 버린 정원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
면 좋겠는데."
메어리의 눈에는 재색과 갈색의 가지만이 보였다. 작은 잎새의 싹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벤 할아버지라면 보기만 해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메어리는 이제 원한다면 언제나 덩굴 아래의 입구를 지나 이곳으로 올
수 있다.
"여긴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곳이야."
메어리는 태양이 내리쬐는 정원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울새도 나뭇가지에
서 내려와 메어리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이 수풀에서 저 수풀로 옮겨 다녔다. 울새는 지저귀며 부산
하게 움직였다.
'자, 이곳을 봐. 아름답지 않니? 난 네게 이 정원을 보여 주고 싶었어.'
울새는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메어리는 이 정원의 모든 것이 신
기했다. 메어리의 머
릿속은 정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잎새가 나오고 꽃들이 봉오리를 맺게 될까? 울새야, 생각
해 봐. 몇 천 그루
의 장미가 온통 꽃을 달고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말야. 아, 너무너무 아름다울
거야."
정원 안에는 상록수로 덮여 있는 작은 정자도 있었다. 그 안에는 돌로 된 의
자와 이끼 낀 커다
란 화분이 놓여 있었다.
"난 이 정원을 줄넘기를 하면서 모두 돌아볼 거야."
메어리는 팔에 걸치고 있던 줄넘기를 손에 쥐고 줄을 넘으며 정원을 돌았다.
정자 쪽으로 갔을
때 메어리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거기에는 뭔가가 검은 흙에서 머리를 내밀
고 있었다. 끝이 뾰
족한 연두빛의 작은 싹이었다.
"싹이야. 봄이 되면 작은 싹들이 고개를 내민다고 벤 할아버지가 말해 주셨
어."
메어리는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래, 작은 싹이 나오고 있는 거야. 이건 크로커스나 갈란투스, 수선화가 될
싹이야."
메어리는 흙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촉촉한 흙의 신선한 냄새를 맡아 보았다.
흙에서 좋은 냄새
가 났다.
"다른 곳에도 있을지 몰라. 다른 곳도 돌아봐야지."
메어리는 줄넘기를 그만두고 정원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길 가장자리의 화단
도 풀들 사이도 살
펴보았다.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돌아보니 연두빛의 뾰족한
싹이 몇 개 더 발견
되었다. 메어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 정원은 죽어 버린 것이 아니었어."
메어리는 목소리를 낮추고 소리쳤다.
"살아 있어. 장미는 몰라도 다른 건 모두 살아 있어."
메어리는 뾰족한 싹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싹 주위에는
많은 풀이 우거져
있었다.
"풀들 때문에 답답할 거야. 잠깐만 기다려. 내가 마음껏 숨쉬게 해줄게."
메어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싹 주위에 나 있는 잡초를 뽑아 주었다. 그러자
싹 주위에 깨끗한
빈터가 생겼다.
"자, 이젠 숨을 쉴 수 있을 거야."
메어리는 탁탁 손을 털고 일어났다. 메어리의 얼굴에는 붉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다른 싹들도 숨 쉬게 해줘야지. 해줄 곳이 너무 많아. 오늘 다 못 하면 내일
도 해줄 거야."
메어리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흙을 파 일구거나 잡초를 뽑아냈다. 풀을 뽑
는 것이 너무나 재
미있었다. 메어리는 화단의 풀들을 뽑아주고 나무 밑의 수풀 속에도 들어갔다.
울새도 몹시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메어리의 뒤를 쫓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휴, 덥다. 참 이상하지. 날씨는 추운데 몸에서 열이나."
메어리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나중에는 모자까지도 벗어 버렸다.
메어리는 점심 시간이 될 때까지 정원에서 일을 하며 보냈다. 메어리가 눈을
들었을 때는 벌써
정원에 들어온 지 두세 시간 지난 후였다. 그 시간은 메어리가 지금껏 보냈던
시간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메어리는 자신이 다듬어 준 연두빛 새싹들을 엎드린 자세로 둘러보았다.
새싹들은 다듬어 주지 않았을 때보다 두 배는 더 건강해 보였다.
그것을 보자 메어리는 몹시 기뻤다.
자신이 직접 가꾸어 주고 사랑을 쏟아 기른 생명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었다.
메어리의 얼굴에도 건강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밥 먹고 또 올게."
메어리는 자신의 새로운 영토를 둘러보며 나무와 장미에게 인사했다.
낡은 정원의 문을 열고 나오는 메어리의 발걸음은 날 듯이 가벼웠다.
12. 메어리의 비밀
메어리는 마르사가 있는 방으로 우당탕 뛰어갔다.
"마르사, 나 배 고파. 밥 많이 줘."
마르사는 메어리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밥을 많이 먹는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
다.
"고기 두 조각에 푸딩도 두 개씩이나! 굉장해요. 줄넘기가 이렇게 효력이 좋
을 줄 몰랐어요. 저
희 엄마가 보시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메어리는 식사를 마치고 난로 앞에 앉았다.
"저, 마르사. 나 삽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삽이요? 어디에 쓰시려구요? 땅을 파려고요?"
메어리는 마르사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밀의
정원을 자기만의 장
소로 해 두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만약 클레이븐 아저씨가 아시게
된다면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어쩌면 다신 열 수 없도록 새 열쇠로 꼭꼭 잠가 버릴지도 모르는 일
이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메어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너무 심심해."
메어리는 천천히 말했다.
"여기도 저기도 다 잠겨 있잖아. 인도에선 할 일 없어도 사람들이 많아서 좋
았는데. 어떤 때는
악단이 와서 연주도 하곤 했었어. 여기선 너하고 벤 할아버지말고는 얘기할 사
람도 없는데 넌 매
일 일을 하니까 바쁘고 벤 할아버지는 나랑 말도 잘 안 하려고 하고 말야. 작은
삽이 있다면 나도
벤 할아버지처럼 씨도 뿌리고 작은 정원도 만들 수 있을 텐데."
메어리의 말을 듣고 있던 마르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머, 엄마가 말씀하신 대로예요. 저희 엄마는 아가씨에게 꽃이나 야채를
심을 수 있는 작은
공터가 있으면 참 좋을 거라고 하셨어요."
"정말? 마르사네 엄마는 뭐든지 알고 계신가봐."
"그럼요. 열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기르셨는걸요."
"삽은 어떻게 구해야 되지? 얼마나 할까?"
"스웨트 마을에 있는 가게에서 튼튼해 보이는 작은 삽을 본 적이 있어요. 2실
링이었어요."
"2실링 정도는 가지고 있어. 메드로크 부인이 클레이븐 아저씨가 주셨다고 하
면서 돈을 조금 주
었거든."
마르사는 깜짝 놀랐다.
"주인님은 아가씨를 기억하고 계셨나봐요. 돈까지 주셨다면 분명히 기억하고
계신 거예요."
"아저씨가? 하지만 난 아저씨를 본 적이 없는걸."
"아가씨의 어머니에게서 아가씨 얘기를 들으셨을 수도 있죠."
메어리는 클레이븐 아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이 저택에 들어온
뒤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마르사, 아저씨는 언제 돌아오실까? 아저씨는 여행 다니는걸 좋아하셔?"
"아마도 마님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일 거예요. 주인님은 마님이 돌아가시기 전
에는 집을 떠나신
적이 별로 없으셨답니다."
메어리는 클레이븐 아저씨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부인을 굉장히 사랑하셨나봐. 부인은 어떤 분이셨어? 무척 아름
다웠을 거야. 그렇
지?"
"저도 본 적이 없지만 매우 아름다운 분이셨대요.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마음씨도 아주 고와
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셨대요."
"난 클레이븐 부인을 보고 싶어. 비밀의 정원을 가장 아꼈던 분이잖아. 그런
데 화단에 심을 꽃
씨는 어디서 구하지?"
"디콘한테 구할 수 있을거예요. 디콘은 저희 집 작은 뜰에 많은 꽃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정말이야? 그런데 디콘이 내게 꽃씨를 나누어 줄까?"
"물론이에요. 아가씨, 글씨 쓸 줄 아세요? 편지를 써서 디콘에게 꽃씨와 삽
을 가져오라고 하면
돼요."
"응, 쓸 줄 알아. 내가 가서 메드로크 부인에게 펜과 잉크, 종이를 달라고 할
게."
메어리가 방을 나가려 하자 마르사가 불렀다.
"제 것이 있어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사 두었던 거예요. 제가 가서 가
져올게요."
마르사가 방에서 나가자 메어리는 좋아서 작은 손을 맞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삽이 있으면 싹을 다듬어 주기가 훨씬 편할 거야. 흙을 깨끗하게 해 주고 잡
초도 뽑아 줘야지.
그리고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면 정원은 활짝 살아날 거야."
메어리는 마르사가 가져온 종이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인도에 있을 때 가정교사들이 모두 메어리를 싫어해서 금방 그만두었기 때문
이다.
메어리는 겨우 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르사, 디콘이 가져온 걸 내가 어떻게 받지?"
"디콘이 갖고 올 거예요. 양들에게 풀을 먹인 뒤 이곳으로 들르면 되니까요."
"와, 신난다. 그런데 왜 난 들판에서 한 번도 디콘을 보지 못했지?"
"디콘은 싱싱한 풀을 먹이려고 멀리까지 양들을 데리고 가요. 그리고 가까운
들판으로 양을 몰
고 갔다가는 양들이 히드꽃이나 금작화를 먹어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디콘은
사랑스러운 꽃들이
밟히거나 먹히는걸 보지 못해요."
메어리는 손을 모으고 마르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난 디콘을 만날 수 있어. 여우와 까마귀 친구를 가진 디콘을 볼 수 있다구."
마르사는 메어리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날 밤, 메어리는 새근새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흙을 일구는 일로 인한
피곤함과 줄넘기,
그리고 신선한 공기 덕분이었다.
해님은 며칠 동안 계속 비밀의 화원 안을 비추고 있었다. 메어리는 매일매일
정원에 가 나무들
을 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정원에서 줄넘기를 했다.
"패티, 난 이곳이 너무너무 좋아. 바람도 좋고 정원도 좋고. 다좋아."
패티도 덩달아 깡총깡총 뛰며 메어리의 뒤를 따랐다.
메어리의 달리기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줄넘기도 백 개나 할 수 있
게 되었다.
"자, 봐. 나도 마르사만큼 할수 있어. 그렇지?"
메어리는 줄넘기를 하며 울새와 이야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즐거운
일은 정원의 싹들
과 둥근 뿌리를 마음껏 숨 쉬게 해 주는 것이었다.
메어리는 어느날 흙을 파다가 양파처럼 하얀 뿌리를 발견했다. 메어리는 그게
뭔지 몰라 흙으로
가만히 덮어 주었다.
메어리는 벤 할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할아버지, 양파처럼 하얀 뿌리는 뭐예요?"
"그건 모양이 둥근 구근이란다. 봄에 피는 꽃들은 대부분 뿌리가 둥글지. 뿌
리가 아주 작은 것
도 있는데 그건 갈란투스랑 크로커스이고, 큰 것은 수선이란다. 그리고 제일 큰
뿌리는 백합과 다
알리아지. 이런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단다."
벤 할아버지는 정원 일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메어리는 벤 할아
버지의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런 뿌리들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어도 살 수 있나요?"
메어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둥근 뿌리는 조금도 돌볼 필요가 없단다. 그냥 내던져 두어도 땅 속에서 혼
자 잘 자라지. 이
저택에도 갈란투스가 몇 천 그루나 된단다."
벤 할아버지는 이제 메어리를 보아도 예전처럼 귀찮다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네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지?"
"한 달 정도요."
"너도 이제 겨우 미스르스웨트의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구나. 살도 붙고
피부도 건강해졌
어. 네가 처음 이 채소밭에 왔을 땐 마치 깃털이 뜯긴 까마귀 같았단다. 보기도
흉하고 성격도 무
척 비뚤어져 있었지."
메어리는 예전 같았으면 왈칵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살이 쪘나봐요. 예전엔 헐렁헐렁했던 양말이 꼭 조여요."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쟁기를 들고 흙을 일구었다. 메어리는 이제 언제든
지 안심을 하고 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원을 갖고 계세요?"
"아니, 난 문 옆에 있는 정원에서 살고 있지만 그게 내 정원은 아니란다."
"만약에 정원이 있다면 뭘 심고 싶으신데요?"
"뿌리가 둥근 구근이나 좋은 향기가 나는 꽃을 심으면 좋겠지. 하지만 대개는
장미가 될 거야."
메어리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벤 할아버지는 잡초를 한 움큼 뽑아 저만치 던져 버리고서 대답했다.
"나는 내가 정원지기로서 섬기고 있던 젊은 마님에게서 장미 가꾸는 법을 배
웠어. 그분은 자기
가 아끼시는 정원에 장미를 굉장히 많이 심으시고는 어린아이 대하듯이 귀여
워하셨어. 언젠가는
장미 곁에 웅크리고 앉아 사랑스럽게 키스하고 계시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단다."
할아버지는 다시 잡초를 한 움큼 뽑아 던졌다.
"이미 십년이나 지난 얘기야."
"그 아주머닌 지금 어디에 계세요?"
메어리는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하늘나라에."
벤 할아버지는 쟁기를 흙 속에 깊이 박아 넣었다.
"하늘나라에?"
"목사님께서 마님은 착한 분이고 꽃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예쁜 분이니까 하늘
나라에 가셨을 거
라고 말씀하셨어."
"그러면 그 장미꽃은 어떻게 됐어요?"
메어리는 더욱더 흥미를 느꼈다.
"아무렇게나 내던져 두었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서 장미가 시들어 버렸나요? 네? 죽어 버렸을까요?"
메어리는 이제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난 그 정원 안에 있는 장미를 좋아했어. 장미를 사랑하는
마님도 좋아했단
말이야. 그래서 일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 정원에 가서 손질을 해주곤 하지. 쓸
데 없이 너무 자란
나뭇가지를 친다든지 뿌리 주변의 흙을 파 일궈주거나 하는 일을 하지."
메어리는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잎이 거의 떨어져 버린 잿빛 나무가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를 알려
면 어떻게 해야 하
죠?"
"봄까지 기다리면 알 수가 있단다. 햇빛이 비치고 땅을 촉촉하게 적셔 주는
비가 오면 차차 알
게 될 거야."
"어떻게 알 수 있는데요?"
"나뭇가지를 봐라. 갈색으로 작게 부풀어 있는 가지가 있지? 그 부분이 어떻
게 변하는지 잘 살
펴봐라."
"요즘도 그 장미를 보러 가세요?"
"올해는 아직 못 갔어. 류마치스 때문에 온몸이 마디마다가 쑤셔서 말이야."
벤 할아버지는 툴툴거리며 말하더니 갑자기 또 성난 표정이 되었다.
"너처럼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는 애는 처음 봤다. 저쪽에 가서 놀아라."
벤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메어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비밀
의 정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원은 메어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한 비밀이
었다.
13. 디콘의 피리소리
메어리는 줄넘기를 하면서 산책길을 뛰었다. 이 길은 월계수 울타리가 있는
산책길이었다. 메어
리는 산책길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패티는 벌써 숲까지 달려가 메어리를 기
다리고 있었다.
"패티, 벌써 거기까지 가 있었니? 너도 달리기가 빨라졌구나?"
메어리는 줄넘기를 멈추고 패티에게 다가갔다. 그때 어디선가 낮은 음의 휘
파람 소리가 들려왔
다. 그 소리는 유난히 색다른 소리였다.
"들어봐, 패티. 저게 무슨 소리일까?"
메어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메어리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 아이가 나무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 아이의 나이는 열두
살쯤 되어 보였는데
하늘을 향하고 있는 들창코에 뺨도 양귀비처럼 빨갰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파란색의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봐. 정말 신기하지 않니?"
그 남자 아이가 앉아 있는 나무에는 다람쥐가 있었고, 옆에 덤불에서는 꿩이
머리를 내밀고 있
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두 마리의 토끼가 앉아 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나무
옆에 엎드려 있는
잿빛 털을 가진 여우였다. 동물들은 모두 남자 아이의 낮은 피리소리에 이끌려
모인 것 같았다.
"쉿, 움직이지 마. 여기 있는 동물들이 놀라면 안 되니까."
메어리가 가만히 있자 남자 아이는 피리부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 아이가
몸을 똑바로 일으키자 동물들은 모두 제자리로 달아났다.
그러나 여우만은 달아나지 않고 남자 아이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난 디콘이야. 넌 메어리지?"
디콘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편지는 잘 받았니?"
메어리의 말에 디콘은 갈색의 곱슬머리를 끄덕였다.
"정원을 가꾸는 도구를 사 가지고 왔어. 작은 삽이랑 갈퀴, 그리고 괭이야. 가
게집 아줌마가 덤
으로 꽃씨를 주셨어. 하얀 양귀비꽃 씨앗이랑 푸른색 참제비 씨앗이야. 내가 가
져온 꽃씨도 있어."
디콘의 말투로 보아 메어리가 마음에 든 듯했다.
"우리 이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씨앗을 보도록 하자."
메어리와 디콘은 통나무 위에 걸터얹았다.
디콘은 웃도리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 안에는 꽃 그림이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예쁘고 작은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목서초랑 양귀비야. 내 화단에서 가져온 거야. 이 꽃들은 어디에 심어도 잘
자라서 피리를 불
어 주는 것만으로도 싹이 나오고 꽃이 펴."
디콘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저건 울새 소리야. 우리를 부르고 있어."
호랑가시 덤불에서 울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소리가 정말 우리를 부르는 소리야?"
"그럼, 친구를 부르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야. '이쪽을 봐. 나랑 얘기
하면서 놀자.' 저 새
가 누구 것인지 아니?"
"응, 벤 할아버지 거야. 나도 알고 있는걸."
"너도 알고 있다구? 아, 울새가 말하던 그 아이가 바로 너구나. 난 저 녀석에
게 너에 대해서 많
이 들었어. 저 녀석이 널 친구라고 하던데?"
"정말? 정말 내가 좋다고 했어?"
메어리는 울새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응, 싫어했다면 네 옆에 오지도 않았을 거야. 저것 좀 봐. 네게 관심을 끌려고
하고 있잖아."
디콘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울새는 덤불위에서 날아다니며
지저귀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저 여우는 누구니? 아, 알았다. 캡틴이구나."
메어리는 아까부터 계속 디콘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여우를 보며 말했다.
"맞아, 캡틴이야. 내 제일 친한 친구지. 캡틴, 이리 와. 새로운 친구를 소개시켜
줄게."
디콘이 부르자 캡틴은 디콘에게로 다가와 고개를 쫑긋 들었다. 캡틴은 메어리
의 무릎에 길고 뾰
족한 주둥이를 대고 조그맣게 울음소리를 냈다.
메어리는 움찔 뒤로 물러났다가 조심스럽게 캡틴의 털을 만져 보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나봐. 나도 캡틴이 무섭지 않아. 여우는 다 무서울 거라
고 생각했었는데."
"캡틴이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반갑다고 하는데?"
"정말이야? 나도 정말 반가워!"
"참, 네가 안고 있는 고양이가 패티니? 마르사 누나가 말해줬어. 아주 장난꾸
러기라며?"
디콘은 패티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패티는 앞발로 디콘의 손가락
을 살짝 긁었다.
"하하, 이 녀석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본데? 하지만 너도 곧 나랑 친해질
거야. 난 모든 동
물들과 친하거든. 그런데 네 꽃밭은 어디니? 클레이븐 씨가 정원을 좀 나누어
주셨겠지?"
메어리의 얼굴색이 변했다. 메어리가 입을 열지 않자 디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누어 주지 않으셨어? 그래서 그러니?"
"만약 내가 비밀을 말하면 넌 그걸 사람들에게 말하고 말거야. 그렇지?"
"난 언제나 비밀을 지켜. 내가 만약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여우 새끼의 굴이
나 작은 새의 보금
자리를 아이들에게 말해버렸다면 동물들은 안심하고 살 수 없었을 거야. 난 절
대로 비밀을 지켜."
메어리는 손을 내밀어 디콘의 팔을 잡았다.
"난 정원을 훔치고 말았어. 그 정원은 내 것이 아니야. 아무도 갖고 싶어하지
않고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정원이야. 어쩌면 꽃이 모두 죽어 버렸을지도 몰라."
메어리는 몸이 달아올라 재빨리 말했다.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정원을 내가 돌보고 있어. 누구도 내게서 그 정원을
빼앗아가지 못해.
저 정원을 자물쇠로 잠가버리고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메어리는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디콘의 파란
눈이 동그래졌다.
"어어, 울지 마."
메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가자. 내가 보여 줄게."
메어리는 디콘에게 정원을 보여 주고 싶었다. 디콘은 메어리만큼 정원을 사랑
해 줄 것 같았다.
메어리가 담 곁으로 다가가 담쟁이 덩굴을 들어올리고 그 밑에 있던 문을 열
자 디콘은 깜짝 놀
랐다. 메어리는 안으로 들어가 자랑이라도 하듯 손을 들어 정원을 가리켰다.
"여기가 비밀의 화원이야."
디콘은 몇 번이나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우와! 굉장히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이구나.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애."
디콘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담에 늘어져 있는 덩굴과 풀 속에 가지를 뻗
고 있는 장미, 큼지
막한 화분 등을 살펴보았다. 캡틴도 디콘을 따라 살금살금 정원을 돌아다녔다.
"이 정원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디콘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 정원에 대해 알고 있었어?"
메어리가 큰 소리로 묻자 디콘은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작은 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돼. 누가 듣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마르사 누나한테
들었어. 그 얘길 듣고 늘 궁금해 했었는데."
"장미꽃이 필까? 난 장미가 모두 죽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넌 알
지? 역시 죽은 거
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여길 봐."
디콘은 재색으로 변해 버린 오래된 장미나무 곁으로 갔다.
"잘라 버려야 하는 오래된 가지가 많아. 하지만 새로 돋는 것도 있어. 이게 바
로 그거야."
디콘은 재색 가지 밑에 가려져 있던 녹색의 어린 가지를 만졌다. 메어리도
소중한 것을 만지듯
어린 가지를 쓰다듬었다.
"이것? 살아 있는 거야? 정말?"
"그럼. 이번 여름엔 눈부신 장미 정원을 볼 수 있을 거야. 잘 다듬어 주면 말
이야."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디콘이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어, 누가 손질을 해 줬네?"
그것은 메어리가 잡초를 뽑아 주고 숨을 쉬게 해준 새싹들이었다.
"내가 해준 거야. 숨을 쉬게 해주려고 새싹 근처를 파줬어. 하지만 난 저게
어떤 싹인지도 몰
라."
"참 잘했어. 정원사도 이렇게 해주지는 못했을 거야. 자, 봐. 이건 크로커스,
저건 갈란투스, 그
리고 이건 수선화야. 어, 캡틴. 그걸 만지면 안 돼."
디콘의 말에 새싹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캡틴이 얼른 고개를 들고 딴짓을
했다.
"네 앞에서 야단을 맞으니까 창피해서 저러는 거야. 네게 아주 잘 보이고 싶은
거봐."
디콘은 캡틴의 부드러운 잿빛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메어리와 디콘은 죽은 가지를 잘라주고 흙을 파며 부지런히 일을 했다.
"여기에는 할 일이 굉장히 많아."
"다시 와서 도와주지 않을래? 부탁이야, 디콘. 또 와줘."
메어리가 부탁했다.
"매일이라도 올게. 날씨가 맑든 비가 오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이렇게 재
미있는 일은 처음이
야."
디콘은 웃으며 말했다. 메어리는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예전에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질문
을 했다.
"디콘, 넌 내가 좋으니?"
"응, 좋아."
디콘은 진심으로 대답했다.
"굉장히 좋아. 울새도 분명히 나처럼 널 좋아할 거야."
"와, 그럼 두 명이나 날 좋아하는 거네? 울새하고 디콘하고."
그때 정원 안에 있는 커다란 시계가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냈다.
"어머, 가 봐야 해. 너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되지?"
디콘은 방긋 웃었다.
"이제 양들에게로 돌아가 봐야 해. 널 만나러 오느라고 잠깐 우리 안에 넣어
두었거든. 답답해
할 거야. 빨리 가서 들판의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해줘야 해."
"또 올 거지?"
"그럼. 이 정원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어. 내게 둥지를 가르쳐
준 티티새처럼 넌
안심하고 있어도 돼."
메어리는 정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는 디콘과 함께 정원을 나왔다.
14. 땅을 조금만 나누어 주세요
메어리는 숨을 헐떡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메어리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
었고 뺨은 환한 장
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테이블에는 이미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르사는
테이블 곁에 서 있
다가 메어리를 맞았다.
"늦으셨네요. 어딜 갔다 오셨어요?"
"디콘을 만났어, 디콘을."
"그 애가 꼭 오리라고 생각했어요. 어떠셨어요?"
"난 말이야. 디콘이 아주 멋있는 애라고 생각해. 둥근 코도 마음에 들고 초
원 같은 파란 눈도
좋아. 난 캡틴도 봤어. 디콘이 그러는데 캡틴은 날 마음에 들어한대."
메어리는 수저를 들고 접시에 담긴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꽃을 어디에 가꾸면 좋을지 누구에게 물어보셨어요? 디콘이 가져온 꽃씨를
심어야 하잖아요."
"아직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어."
메어리가 주저하면서 말했다.
"벤에게 물어보지 그러셨어요? 벤이라면 심을 만한 곳을 아가씨에게 찾아줄
거예요."
"만약 아무 방해가 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땅인데, 내가 가지면
안 된다고 하는 사
람은 없겠지?"
"그럼요.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죠."
메어리는 빨리 식사를 했다. 다시 정원에 가서 상한 가지들을 잘라 줘야 했
기 때문이다. 메어리
가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마르사가 불러 세웠다.
"아가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오늘 아침에 주인님께서 돌아 오셨어요. 아가씨
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계셔서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뵙고 싶어하세요."
"아저씨가 날 만나고 싶어하신다고? 내가 여기 처음 온 날은 만나고 싶지 않
다고 하셨잖아?"
"저희 어머니가 스웨트 마을에 돌아오시다가 우연히 주인님을 만나신 모양이
에요. 저희 어머니
는 주인 마님을 두세 번 정도 저희 집에 초대하신 적이 있으시거든요. 저희 어
머니가 주인님에게
아가씨 얘기를 하셨나봐요.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님께서 아
가씨를 뵙고 싶어하
세요."
그때 문이 열리고 메드로크 부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메드로크 부인은
검정색 옷에 검정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목언저리에는 남자 얼굴의 사진이 붙은 커다란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그 사
진은 몇 년 전에 죽은 메드로크 부인의 남편 사진이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치장
을 할 때마다 항상
그 브로치를 달았다.
"머리가 흐트러져 있군요."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를 보며 딱딱하게 말했다.
"머리를 다시 매만지세요. 마르사, 네가 아가씨를 도와서 제일 좋은 옷을 입
혀 드려라. 아가씨,
클레이븐 씨가 서재로 아가씨를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메어리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메어리는 옷을 갈아입고 메드로크 부인을
따라 서재로 갔다.
메어리가 안내된 곳은 이 집에서 지금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서재 안의 난로 앞 안락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메어리 아가씨를 모셔왔습니다."
"그 아이를 두고 물러가도 좋아요. 이야기가 다 끝나면 종을 울릴 테니 그때
데려가도록 해요."
클레이븐 씨가 말했다. 메드로크 부인은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클레이븐 아저씨는 곱추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어깨가 약간 구부러져 있
을 뿐이었다. 클레
이븐 아저씨는 어깨 너머로 메어리를 돌아보았다.
"이쪽으로 오너라."
메어리는 아저씨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니? 몸이 너무 말랐구나."
"옛날보다는 많이 찐 거예요."
"내가 널 잊고 있었구나. 네게 가정교사나 유모가 필요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것마저 잊고 있었
어."
"전 이제 다 컸으니까 유모는 필요 없어요. 그리고 가정교사도 제발 두지 말아
주세요."
아저씨는 이마를 문지르며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마르사의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구나. 그럼, 넌 뭘 하고 싶지?"
"밖에서 놀고 싶어요. 여기저기서요. 마르사네 어머니가 줄넘기도 사 주셨어
요."
"뭐 갖고 싶은 건 없니? 책이나 장난감, 인형 같은 거라도."
"전 씨앗을 심고 꽃이 자라는 걸 볼 수 있는 땅을 좀 갖고 싶어요."
클레이븐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땅을 달라?"
아저씨는 멈춰서서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아저씨의 눈빛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변해 있었다.
"원하는 만큼 땅을 주마. 네 말은 꽃을 아주 사랑하던 어떤 사람을 생각나게
했어. 네가 마음에
드는 땅이 있다면 말해보거라. 그것을 네게 주마."
아저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어디라도 상관 없나요?"
"그래, 상관 없단다."
메어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럼 비밀의 정원을 주세요."
클레이븐 씨의 안색이 변했다.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도 사라졌다.
"비밀의 정원이라고?"
메어리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십년 전부터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그 정원 말예요."
클레이븐 씨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책이 툭 떨어졌다. 클레이븐 씨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
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누구에게 들었어? 누구에게 들었냐고 묻고 있잖아!"
클레이븐 씨는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손으로 쾅쾅 두드렸다. 의자가 뒤로 콰
당 넘어졌다.
"메드로크 부인! 메드로크 부인!"
클레이븐 씨는 종을 울렸다. 소란스러운 종소리가 서재 안에 울려 퍼졌다. 그
러자 메드로크 부
인이 급한 걸음으로 서재로 뛰어들어 왔다.
"부르셨어요? 무슨 일이십니까?"
클레이븐 씨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메어리를 가리켰다.
"저 애를 당장 데리고 나가!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해
줘!"
클레이븐 씨는 빠른 걸음으로 서재를 빠져나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매서운
눈으로 메어리를 쳐
다보았다.
"주인님께 어떻게 했지요?"
"별로. 모두 내게 시중을 잘 들어 주느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말했을 뿐이
야. 그리고 뭐 갖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어 보셔서 정원을 달라고..."
"정원이요?"
메어리는 머뭇거리며 메드로크 부인을 바라보았다.
"어디든 좋을 대로 가져도 좋다고 하셔서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그 정원
을 갖고 싶다고 말
씀드렸어."
"뭐라고요? 세상에! 그 말을 누구에게 들었죠?"
메어리는 우물쭈물 했다. 마르사에게 들었다고 했다가는 마르사가 혼이 날
게 틀림없기 때문이
다.
"아무도 말해 준 적 없어. 그냥 우연히 들었을 뿐이야."
메어리는 무엇인가 더 물으려는 메드로크 부인의 곁을 지나 서재를 빠져나와
버렸다.
메어리는 저택을 나와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울새가 지저귀며 메어리를 뒤따
랐다.
"안녕, 오늘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야. 이 정원을 달라고 했더니 아저
씨가 무섭게 화를
내셨거든."
메어리는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아 정원을 둘러보았다.
"난 이 정원을 클레이븐 부인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데 말이야. 난 이곳이
제일 좋아. 초록빛
새싹들도 내가 모두 숨쉬게 해 주었어."
그때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울새가 갑자기 날아 오르며 부산을 떨기 시작했
다. 그리고 소리 높
여 지저귀었다.
"울새야, 왜 그래?"
메어리는 정원의 입구로 다가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 울새가 자꾸만 정원의
벽을 왔다갔다하며
부산을 떠는 모습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메어리는 열쇠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
다.
"아무래도 누가 오고 있는 것 같애."
저만치서 클레이븐 씨가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메어리는 깜짝 놀라 구멍에서 눈을 떼었다가 다시 들여다 보았다. 클레이븐
씨는 정원의 문으로
다가와 덩굴을 걷어내려 했다.
'설마 열리지는 않겠지? 들키게 된다면 난 이곳에서 쫓겨나고 말 거야.'
메어리는 몸을 정원의 구석으로 숨겼다.
클레이븐 씨는 덩굴을 걷어내고 정원 입구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손
잡이를 돌려보기 시
작했다. 문이 단단히 잠겨져 있음을 안 클레이븐 씨는 안도의 빛을 띠며 그 자
리를 떠났다.
메어리는 잠시 후 숨을 죽이며 열쇠 구멍으로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멀어져
가는 클레이븐 씨
의 뒷모습이 보였다. 메어리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웬지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했
다.
"아저씬 참 외로우신가봐. 이 정원을 다시 사랑하게 되면 행복해지시지 않을
까?"
울새는 나뭇가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푸드득 날아올랐다.
"고마워, 울새야. 네가 아니었으면 난 이 정원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
을 거야."
울새는 가만히 날아와서 메어리의 어깨 위에 앉았다.
15. 마르사의 가족
메어리가 저택으로 돌아오자 메드로크 부인이 메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가씨께서는 며칠 동안 다른 곳에 가 계셔야겠어요. 주인님께서 아
가씨를 만나고 싶
어하지 않으세요."
메어리는 깜짝 놀랐다.
"내가 가 있을 곳이 어디에 있어? 난 나쁜 짓을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메드로크 부인은 딱딱하게 말했다.
"마르사네 집에 가 계세요. 마르사에게는 이미 말을 해 놓았어요. 양치기 소
년 디콘이 마중을
나올 거예요."
메어리는 마르사네 집이라는 말에 조금 안도가 되었다.
"빨리 떠날 준비를 하세요. 정원에서 디콘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주인님
은 얼마 후면 다시
여행을 떠나실 거예요. 그때가 되면 아가씨를 부를게요."
메어리는 짐을 챙기러 방으로 올라갔다. 메드로크 부인이 다시 메어리를 불렀
다.
"그 고양이도 같이 데리고 가 주세요. 아가씨가 없으면 하루 종일 시끄럽게 울
어댈 거예요."
"물론 패티도 데리고 갈 거야."
메어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방으로 올라왔다. 방에는 마르사가 메어리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마르사, 마르사를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슬프지만 마르사네 엄마와 동생들을
만나게 돼서 기
뻐."
"저희 어머니도 아가씨를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아가씨 얘기만 듣고도 아주
좋아하셨는걸요."
메어리는 가방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디콘이 캡틴과 함께 메어
리를 기다리고 있었
다.
"잘됐어, 메어리. 네가 우리집에 머무르게 됐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았는
지 몰라. 그런데 왜
이곳을 떠나 있게 되었니?"
메어리는 디콘의 집으로 향하는 들판을 걸으면서 디콘에게 아저씨의 얘기를
해 주었다.
"아저씬 부인이 돌아가신 뒤로 그 정원을 잠가 버리신 거야. 아무도 들어가
지 못하게 말이야.
그런데 내가 오늘 그 정원을 달라고 했어."
디콘은 나뭇가지로 땅을 톡톡 두드리며 걷다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레이븐 씨에게 비밀의 정원을 달라고 했단 말이야?"
"응, 그랬더니 불같이 화를 내시며 다시는 나를 안 보겠다고 했어."
메어리는 디콘에게 클레이븐 부인의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디콘은 그 이야
기를 들으며 동그란
눈을 계속 깜박거렸다.
"그래서 클레이븐 씨가 그 정원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싫어하시는 거구나."
둘은 어느새 들판을 지나 디콘의 집에 다다랐다. 디콘의 집은 아담하게 생
긴 오두막집이었다.
집 주위에는 많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저거 봐, 메어리. 저기가 우리 집이야!"
"와! 보인다. 저기 연기 나는 집 말이지?"
"응, 우리 집까지 달리기 할까?"
"좋아. 자, 시작!"
메어리와 디콘은 디콘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메어리가 조금 앞서고
있었고 디콘이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캡틴도 바람을 가르며 메어리의 앞을 달렸다.
메어리와 디콘이 집 앞에 도착하자 디콘의 엄마 스잔이 나왔다.
"엄마, 메어리예요."
디콘은 메어리를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스잔은 마르사처럼 통통한 몸에 건
강한 피부색을 가진
아줌마였다. 스잔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잘 오셨어요. 피곤하시죠, 메어리 아가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어요. 지난 번 주신 줄넘기 잘 받았어요. 얼마나 재미있
는지 몰라요."
"마음에 드셨다니 참 기뻐네요.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메어리는 스잔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메어리는 깜
짝 놀랐다. 많은 아
이들이 제각기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냄비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소쿠리
를 가지고 있었다. 또 한 명은 다리미질을, 그리고 나이가 어려 보이는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얘들아, 잠깐만 이쪽을 보거라."
스잔이 짝짝 손뼉을 치자 아이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메어리를 돌아보았
다.
"이분은 마르사 언니가 있는 저택의 메어리 아가씨란다."
스잔은 메어리에게도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자, 제일 큰 애부터. 이쪽은 제일 언니인 엘리자벳, 저기 요리를 하고 있는
아이는 제인, 아가
씨와 동갑인 아홉 살이에요. 그리고 다리미질을 잘하는 세릴, 앤은 네 살, 개구
장이 봅, 그리고 또
어디 갔지? 얘들아!"
스잔의 말에 방문이 열리고 얼굴이 똑같이 생긴 세 명의 아이들이 나왔다.
"우린 세 쌍둥이예요. 제 이름은 필이에요."
"전 제임스."
"그리고 난 잭키."
세 명의 쌍둥이들이 인사를 하자 메어리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
었다.
"이쪽이 제임스?"
메어리가 한 명을 가리키며 묻자 모두 깔깔 웃었다.
"전 잭키예요."
"정말? 너무 똑같이 생겨서 구분을 할 수가 없어."
스잔은 방에서 담요에 싼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이 아이는 막내 크리스예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죠."
"아, 귀여워."
메어리는 아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기는 메어리의 손을 꼭 쥐었
다.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
스잔은 크리스를 꼭 껴안으며 정겨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이 애들말고도 장남 마이클이 있는데, 그 애는 요오크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남자 아이가
여섯 명, 여자 아이가 여섯 명, 합해서 모두 열두 명이죠."
"열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처음 봤어."
메어리와 아이들은 스잔이 정성스럽게 차려 준 식사를 했다. 메어리는 스잔이
만들어 준 음식이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도 맛이 있었다.
"너무 맛있어요. 정말."
메어리가 그릇을 다 비우자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음식을 덜어 메어리에게 주
었다. 메어리는 그
따뜻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식사를 하고 난 메어리와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이층 침대 아래에는 세릴이 자고 위에는 엘리자벳, 선반 위에는 봅과 앤, 그
리고 커다란 소쿠리
안에는 잭키와 제임스, 필, 세 쌍둥이가 잠이 들었다. 또 다른 이층 침대에서
는 제인과 메어리가
잠들었다.
"참 포근한 집이야. 그렇지, 패티?"
밖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구리 소리에 섞여 디콘의 피리소리
도 들려왔다.
"패티, 너도 잠이 오지 않지? 우리 디콘한테 가 볼래?"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 피리소리는 언덕 위에 있는 헛
간에서 들려오고 있
었다.
"디콘은 헛간에 있나봐."
메어리는 헛간으로 들어갔다.
"왜 혼자 이런 곳에 와 있어?"
디콘은 피리 부는 것을 멈추고 메어리를 향해 웃었다.
"맑게 개인 날 밤은 헛간에서 자곤 해. 기분이 참 좋거든."
"여기서?"
"응, 너도 잠이 오지 않아?"
"응, 이렇게 빨리 잠자리에 든 적이 없거든."
메어리는 디콘이 앉아 있는 푹신푹신한 짚더미 위에 앉았다.
"우리 집은 모두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도 빨라. 해가 졌
는데도 자고 있지
않으면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초랑 석유값도 걱정해야 되거든."
"그래? 내가 있는 저택과는 굉장히 다르구나."
"그래서 해가 진 후에 저녁을 먹는 일은 좀처럼 없어. 오늘처럼 늦게 먹은 건
특별한 손님이 왔
기 때문이야."
"내가 와서? 어머! 몰랐어."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헛간의 문이 열리고 스잔이 들어왔다.
"어머, 메어리 아가씨. 여기에 계셨어요? 사라져 버려서 걱정했어요. 이 들판
의 봄은 쌀쌀해요.
그러니 어서 집으로 들어가세요. 디콘, 아가씨를 집 안에 데려다 드리거라."
디콘과 메어리는 일어서서 스잔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디콘, 넌 헛간에서 잘 거니? 아가씨, 안녕히 주무세요."
스잔이 방으로 들어가자 디콘은 메어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양의 숫자를 세다보면 빨리 잠들 수 있을 거야."
"응, 고마워. 디콘."
메어리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아 디콘이 가르쳐준 대로 양의 숫자
를 세었다.
"213마리의 양, 214마리의 양, 215마리의 양, 내일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스잔을 도와드려야
지. 216마리의 양..."
메어리는 숫자를 세다가 잠이 들었다.
환한 아침해가 떠울랐다. 디콘과 세 쌍둥이는 이른 아침부터 장작을 쪼갰고
엘리자벳과 앤은 음
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어리는 아직까지도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제인이 방으로
들어와 커튼을 걷
었다. 강한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제인은 자고 있는 메어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해가 이렇게 높이 떴는데."
제인은 메어리를 깨우려고 했다. 그러자 엘리자벳이 제인을 말렸다.
"푹 주무시게 해 드려. 먼 길을 걸어오느라고 피곤했을 거야."
그러자 문을 열고 세 쌍둥이가 들어왔다. 쌍둥이들의 손에는 장작이 한아름
안겨 있었다.
"으ㅆ! 누나, 장작 여기 놔 두었어."
소란스러운 소리에 메어리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다들 일어났는데 나만 혼자 늦잠을 자고 있었네?"
제인은 선반에서 접시를 꺼내다 말고 메어리를 돌아보았다.
"어머, 이제야 일어났네."
메어리는 제인에게로 다가갔다.
"접시 놓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아니, 괜찮아."
메어리는 제인의 사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인에게서 접시를 받아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
간 접시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마루위로 떨어져 모두 깨지고 말았다. 메어리는
새파랗게 질려 당황
해서 얼른 접시조각들을 주워 들었다.
"미안해요. 어쩌면 좋지? 어? 아야!"
메어리는 흩어진 접시조각에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메어리의 손가락 끝에서
빨간 피가 흘러 나
왔다.
"어머! 피나 나."
"어머! 이런. 손가락을 이리 줘 봐. 내가 피를 멈추게 해줄게."
앤은 메어리의 손가락을 잡더니 입으로 빨았다. 그리고는 당황해 있는 메어리
를 보며 방긋 웃었
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손가락을 다치면 이렇게 해주셔."
"고마워, 앤. 그런데 어떡하지? 접시를 모두 깨버렸으니."
"괜찮아. 걱정하지 마."
엘리자벳이 메어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제인은 못마땅한 눈으로 메어
리를 보며 쌀쌀하게
말했다.
"왜 접시를 놓겠다고 나서서 깨뜨리니? 내가 하겠다니까."
그때 집 앞에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마차 소리가 멈추더니 문을 열고 메드
로크 부인이 들어왔
다.
"아가씨를 모시러 왔어요."
"날 데리러 왔다구?"
메어리는 스잔의 뒤로 몸을 숨겼다.
"주인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어요. 주인님의 명령이세요. 지금 바로 돌아가셔
야 합니다."
"싫어! 돌아가지 않을 거야!"
메어리는 소리를 질렀다. 메어리는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디콘의 집에서 살
고 싶었다. 클레이븐
아저씨의 무서운 얼굴을 다시 보는 일은 싫었다.
"절대로 가지 않을 거야!"
메어리가 악을 쓰자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를 끌어당기며 강제로 마차에 태
우려고 했다. 메어
리의 몸이 땅에 질질 끌렸다. 메어리가 소리를 지르자 패티가 메드로크 부인의
손을 꽉 깨물어 버
렸다.
"아야! 이 버릇없는 새끼 고양이가!"
메드로크 부인은 패티를 잡아채더니 휙 던져 버렸다.
"패티! 패티!"
메어리는 메드로크 부인의 손에서 빠져나오며 던져진 패티를 안았다.
"흥! 내가 돌아갈 줄 알고! 절대로 가지 않을 거야! 두고 보라구."
메어리는 들판 쪽으로 달려가 도망가 버렸다.
"기다려요! 아가씨! 아가씨!"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를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있던 스잔이 메
드로크 부인의 팔을
잡았다.
"제가 디콘에게 찾게 해서 돌려보낼 테니까 저택으로 돌아가 계세요."
"그래요?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겠군요."
메드로크 부인은 분한 듯 씩씩거리며 마차에 올라타고 저택으로 향했다.
메어리는 한참을 달리다가 디콘의 집이 보이지 않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
다.
"배가 고파. 너도 그렇지, 패티?"
패티는 그렇다는 듯 야옹 울음소리를 냈다.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잔디 위에 누웠다.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었
다.
디콘의 집에서의 짧은 시간은 메어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결코 풍족
하지는 않지만 서로
도우며 살고 있는 디콘의 식구들이 메어리의 눈에 아름답게 비쳤다.
"패티, 난 스잔이 꼭 우리 엄마 같아. 스잔이랑 같이 있으면 꼭 우리 엄마랑
함께 있는 것 같
아."
메어리의 눈에는 뿌연 눈물이 차 올랐다. 메어리는 인도에서 같이 살던 돌아
가신 엄마가 생각났
다. 자꾸만 구름이 흐리게 보였다.
한편 디콘은 메어리를 찾아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메어리 메어리. 어디로 가버린 거지?"
그때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디콘이 비 오던 날 건져 주었던 검댕이
였다.
"검댕아, 메어리를 찾았니?"
검댕이는 까악까악 울음소리를 냈다.
"못 찾았다구? 자, 이번엔 저쪽을 한 번 찾아보자."
디콘은 검댕이와 함께 다른 쪽의 들판으로 갔다.
메어리의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패티, 배가 너무 고파. 메드로크 부인은 돌아갔겠지? 디콘 집에 가 보자."
메어리는 들판을 지나 디콘의 집으로 가서 창문을 기웃거렸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제인이 메어
리의 등을 톡톡 쳤다.
"뭘 하고 있어?"
메어리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어머, 제인이었어? 놀랐잖아. 메드로크 부인은 돌아갔지?"
"돌아갔어."
제인은 빨래를 들고 있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그거 빨래지?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제인, 난 네가 부러워. 넌 좋은 엄마랑 아빠가 있고 형제도 많잖아. 난 계속
이곳에 있고 싶어."
제인은 메어리를 향해 눈을 흘겼다.
"줄곧 이곳에 있고 싶다구? 말도 안 돼. 네가 이곳에 있으면 우리 집은 점점
더 가난해진단 말
이야!"
메어리는 제인의 차가운 말에 놀랐다.
"어, 어째서?"
"어제 저녁밥은 평소보다 훨씬 분에 넘쳤어. 그렇게 무리를 하고 나면 우리들
이 앞으로 먹을 것
이 줄어든단 말이야."
"몰랐어."
메어리는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택에는 항상 맛있는 음식들이
쌓여 있어서 아무
리 많은 사람들이 먹어도 모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접시도 공짜가 아니야."
제인은 다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돈이라면 조금 가지고 있어."
메어리의 말에 제인은 코방귀를 뀌었다.
"놀리지 마. 베풀어 달라고 말한 적 없어. 너 같은 애는 정말 싫어. 다시는 이
곳에 오지 마."
메어리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제인을 바라보았다. 메어리의 눈에는 조금씩
눈물이 차 올랐다.
"누가 올까봐? 다시는 안 올 거야!"
메어리는 뒤돌아서서 들판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디콘은 들판에서 메어리를 찾고 있었다.
디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린채 검은 먹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빨리 찾아야 하는데, 한바탕 비가 내릴 것 같아."
디콘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었다.
디콘은 까마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좀 더 찾아보면 될 거야. 자, 다시 찾아보자."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들판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메어리의 머리에서
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배고파. 몸도 춥구. 패티, 너도 춥지? 날 좋아해 주는 건 너밖에 없나봐.
난 역시 외톨이야."
메어리는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저 멀리 카멜라의
집이 보였다.
"카멜라의 집이야. 카멜라는 분명히 따뜻한 수프를 대접해 줄 거야. 패티, 조금
만 참아."
메어리는 카멜라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늪지대여서 여기저
기 작은 웅덩이들이
패여 있었다. 메어리는 달리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꺄-악! 도와줘요!"
메어리의 몸은 웅덩이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었다. 그때 디콘이 웅덩이 쪽으
로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늪근처에서 메어리를 찾고 있다가 메어리의 비명소리를 듣
고 달려온 것이다.
"어! 기다려. 내가 건져줄게."
디콘은 메어리의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메어리는 한 손으로는 디콘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패티를 안고 간신히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휴, 큰일날 뻔했어. 춥지? 자, 내 옷 입어."
디콘은 조끼를 벗어 떨고 있는 메어리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빨리 집으로 가자. 감기 걸리겠다."
"싫어! 너희 집에는 안 갈 거야! 제인이 있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아. 제인은
싫어."
"싸웠니?"
"그래, 내가 있으면 너희 식구들에게 폐가 된다고 했어."
"뭐? 난 잘 몰랐어. 하지만 그건 제인이 몰라서 한 말이야. 우리 식구는 모두
널 좋아해. 자, 어
서 우리 집으로 가자."
디콘은 메어리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메어리는 고집을 부리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 메어리. 이러다 정말 감기 들겠다. 빨리 집에 가서 몸을 녹여야 해."
디콘이 다시 일으키려 하자 메어리는 벌떡 일어서서 카멜라의 집으로 달려갔
다.
"싫어! 너희 집에는 가지 않을 거야! 난 카멜라한테 갈 거라구!"
디콘도 메어리의 뒤를 따라서 달렸다. 메어리는 카멜라의 오두막집에 도착하
자 노크도 하지 않
고 문을 벌컥 열었다. 카멜라는 탁자에 앉아 있다가 놀란 눈으로 메어리를 바라
보았다.
"카멜라, 나-어?"
메어리는 카멜라를 부르다가 말을 멈추었다. 카멜라 앞에 디콘의 엄마 스잔
이 앉아 있었다. 스
잔은 메어리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이런, 흠뻑 젖었구나, 감기에 걸리겠어. 어서 안으로 들어오거라."
뒤쫓아오던 디콘도 스잔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왜 이곳에 계세요?"
스잔은 카멜라와 마주보며 웃었다.
"카멜라와 난 친구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말이야."
16. 정원의 비밀 통로
디콘과 메어리는 카멜라의 오두막 집에서 따뜻한 수프와 모닥불로 몸을 녹였
다.
"메어리, 카멜라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디콘은 오두막집을 나오면서 궁금한 듯 메어리를 보았다.
"응, 얼마 전부터. 카멜라는 패티도 찾아주고 비밀의 문도 찾게 해주었어. 카
멜라는 모르는 게
없나봐."
디콘은 카멜라의 오두막 집을 뒤돌아보았다.
"사실 난 너랑 엄마가 카멜라를 알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
"왜?"
"마을에 있는 목수 아저씨가 늪 주위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었거든. 마녀
가 살고 있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카멜라는 아주 좋은 사람 같아. 목수 아저씨는 카멜라를 잘못 알
고 있는 거야."
디콘과 메어리는 들판을 걸었다.
"모르겠어. 클레이븐 아저씨는 날 보면 막 화를 내실 거야. 하지만 정원을 돌
봐줘야 하는데. 뽑
아줄 잡초도 있고 죽은 가지들도 잘라줘야 되거든."
메어리는 비밀의 정원으로 가고 싶었다. 울새도 보고 싶고 마르사도 보고 싶
었다. 메어리의 얼
굴은 침울해졌다. 그러자 디콘이 메어리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나도 정원이 걱정 돼. 수선화랑 갈란투스도 줄기를 뻗으려하고 있을 거야."
그때 저만치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어? 메어리, 저건 클레이븐 씨의 마차야. 우릴 봤나봐. 이쪽으로 오고 있어."
마차는 메어리와 디콘의 앞에서 멈추어 섰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클레이븐
씨가 내렸다.
"메어리, 널 찾고 있었다. 메드로크 부인을 보내도 오지 않았더구나."
메어리는 휙 고개를 돌렸다.
"메드로크 부인은 따라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메드로크 부인은 저
랑 패티를 싫어해
요."
"메드로크 부인은 내가 화난 걸 보고 널 마르사네 집으로 보낸 거란다. 하지만
난 널 남의 집에
맡길 생각은 없었다. 화를 내서 미안하구나."
메어리는 그제야 화가 조금씩 풀렸다.
"마르사네 집에서는 재미있었니?"
아저씨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메어리도 방긋 웃었다.
"네.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 집의 가족은 열네 명이나 돼요. 저 스잔 아줌마
네 집에 또 놀러가
도 되죠?"
"그럼, 네가 가고 싶다면 가도 좋단다. 하지만 네 집은 이곳이란 걸 잊지 말아
라."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메어리는 디콘과 작별 인사를 하고 클레이븐 아저씨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메어리는 마차에 오르기 전에 디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디콘, 조금 있다 정원으로 와. 나도 가 있을 테니까."
디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어리는 마차에 올라 디콘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차는 덜컹거리며 돌멩이가
깔린 자갈길을 지
났다. 클레이븐 아저씨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메어리, 네게 꽃을 심을 수 있는 땅을 주라고 벤에게 일러뒀다. 하지만 비밀
의 정원은 절대로
안 된다. 그곳은 아무도 들어가선 안 돼. 네가 뭘 해도 좋지만 이 집의 규칙만은
지켜다오. 들어가
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곳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메어리는 클레이븐 아저씨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저씨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마치 정원
의 열쇠 구멍으로 보았던 아저씨의 뒷모습 같았다.
'아저씨는 정말로 아줌마를 사랑하셨나봐.'
메어리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메어리에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그래, 정원을 다 살려 놓으면 아줌마는 분명히 기뻐하실 거야. 돌아가신 아줌
마를 기쁘게 해 드
리는 게 아저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야.'
메어리는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비밀의 정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정원의 입
구 앞에서 인부들이
모여 땅을 파고 있었다. 인부들은 나무를 심고 있는 중이었다.
'어떡하지? 인부들이 있으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잖아.'
메어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열쇠만 만지작거렸다. 메
어리는 정원에 들어
가지 못하고 숲의 오솔길을 걸었다.
"패티, 난 꼭 정원으로 들어가고 싶어. 장미랑 새싹들을 보고 싶단 말이야. 울
새도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메어리는 속이 상해서 패티에게 중얼거렸다. 정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점점 간절해졌다.
그런데 메어리는 숲길을 걷다가 나뭇가지와 풀들에 가려진 구멍 안으로 몸이
빠지고 말았다.
"아악!"
메어리는 구멍의 입구를 손으로 잡고 매달렸다. 구멍은 꽤 깊어 보였다.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메어리의 외침소리는 숲으로 퍼졌다. 그러나 숲은 저택에서 꽤 떨어져 있어
서 아무도 메어리의
외침소리를 듣지 못했다. 메어리가 붙잡고 있던 입구의 흙이 조금씩 무너져 내
렸다.
"악! 살려줘요!"
메어리는 그만 깊은 구멍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메어리는 어두운 구멍
속에 쓰러져 기절을
했다.
메어리는 한참 후에야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메어리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찍찍 생쥐의 울음소
리가 들려왔다.
"어머, 생쥐네? 넌 여기에 살고 있니?"
생쥐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메어리를 바라보다가 구멍을 따라 어디론가 가
려 했다.
"좋아, 생쥐를 따라가 봐야겠다."
메어리는 몸을 숙이고 생쥐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걷자 머리위로부터 빛이
새어 들어왔다.
메어리는 손을 뻗쳐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잡았다.
"여기가 어디지?"
메어리는 밖으로 나왔다. 공중에서 울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울새? 아, 보고 싶었어. 어? 그렇다면 여긴 비밀의 정원?"
메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비밀의 정원이었다. 메어리는 정원의 나무
들을 둘러보며 함
빡 웃었다.
"다행이야. 너희들을 볼 수 있어서. 정원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었다니, 정말
몰랐어. 어서 디콘
에게도 얘기해 줘야지."
메어리는 다시 구멍으로 내려가 숲으로 갔다. 그곳에는 디콘이 메어리를 찾고
있었다.
"메어리구나. 인부 아저씨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정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겠어.
어쩌지?"
"걱정하지 마. 아저씨들에게 들키지 않고도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어."
"뭐라고? 어떻게?"
메어리는 디콘을 데리고 구멍으로 갔다.
"이 구멍을 통과하면 비밀의 정원이야. 이 구멍은 정원과 연결되어 있어."
"와, 대단해."
디콘은 탄성을 질렀다. 둘은 캄캄한 구멍을 지나 정원으로 갔다.
"봐, 맞지? 장미 나무와 덩굴들. 여기가 비밀의 정원이야. 그런데 그 구멍은 뭘
까?"
"그건 수도관이야."
"수도?"
"응, 들판 너머에 있는 냇가의 물을 저택 안으로 끌어들여서 밥 짓고 빨래에
이용하는 거야."
디콘은 여러가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중에는 벤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도 있었고 들판의 동물들에게서 배운 것도
있었다.
"그런데 디콘, 어째서 물이 흐르지 않지?"
"냇물의 흐름이 바뀐 걸 거야. 분명해."
메어리는 디콘과 함께 정원에 있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메어리는 정원으로 통하는 다른 입구를 알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을 이
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문 앞에 사람들이 서 있어도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어.'
메어리는 뒤척이며 혼자 조용히 웃었다. 밖에서는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
다. 메어리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건 바람소리가 아니야."
메어리는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분명히 바람소리가 아니야. 다른 소리야. 그래, 맞아. 언젠가 들었던 그 울음
소리야."
복도 저쪽에서 희미하게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방문에 대고 귀를 기
울이니 울음소리는
더욱 확실하게 들려왔다.
메어리는 침대 곁에 있는 양초를 들고 살짝 방을 나왔다. 복도는 매우 길고
어두웠지만 흥분해
있는 메어리에게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다.
"오늘은 꼭 저 울음소리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 테야."
메어리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촛불이 조금씩 흔들려 빛
이 점점 흐려졌다.
메어리는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울음소리는 그쳤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메어리는 복도를 쭉 걸어 왼쪽 모퉁이를 돌아 넓은 계단을 올라 또 오른쪽으
로 돌았다. 그러자
전에 메어리가 방들을 돌아다니다 메드로크 부인을 보았던 벽걸이가 나타났다.
"그래, 전에 들었던 울음소리도 바로 이 근처에서 나고 있었어."
메어리는 벽걸이를 밀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복도가 나타났다. 그 복도에
서 울음소리가 더욱
확실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비밀의 화원 2권
버넷
1.코린의 울음소리
울음소리는 복도의 왼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메어리는 벽을 더음으며 복도
를 따라 걸었다. 저만치서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메어리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으로 다가가 살며시 문을 열었다. 네 개의 기
둥으로 받쳐진 침대 안에서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남자 아이는 창백하고
마른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야?"
남자 아이는 메어리를 보고 두려워하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이마로 흘
러내린 곱슬머리 때문에 여윈 얼굴이 더욱 갸름하게 보였다.
"유령이야?"
남자 아이는 몸을 움츠리며 침대에 드리워진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아냐, 너야말로 유령 아니니?"
메어리는 남자 아이의 까만 속눈썹과 터무니없이 커보이는 눈을 바라보며 조
그맣게 물었다.
"난 유령이 아냐. 난 코린이야. 코린 클레이븐. 넌?"
"난 메어리야. 클레이븐 씨는 우리 아저씨야."
코린은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
"어, 클레이븐 씨는 우리 아버지신데?"
"네 아버지라구? 클레이븐 씨가?"
메어리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저택의 누구도 메어리에게 코린의 얘기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저씨께 아이가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메어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리 가까이 와 봐."
코린은 여전히 불안한 듯한 눈으로 시트에서 손을 꺼내 메어리에게 내밀었다.
코린은 손으로 메어리의 잠옷 소매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넌 정말로 유령이 아니구나. 난 가끔 진짜 같은 꿈을 자주 꿔. 그래서 네가
나타난 것도 꿈일 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나도 아까는 네가 유령이 아닌가 생각했어. 내가 널 꼬집어 줄까? 내가 정말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말이야. "
코린은 메어리의 소매를 잡고 있던 손을 얼른 시트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러
자 메어리는 조그맣게 웃었다.
"그런데 넌 어째서 울고 있었던 거니?"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게다가 머리까지 너무 아파서."
코린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니?"
"이젠 괜찮아.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는 건 싫어."
"왜?"
메어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난 병 때문에 늘 누워만 있거든. 아버지도 사람들이 내 얘기 하는 걸 싫어하
시고 말야. 난 아 마 아버지처럼 꼽추가 될거야."
코린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여긴 정말 이상한 집이야. 방에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정원에도 그렇
고. 혹시 너도 이 방에 계속 갇혀 있었던거 아니니?"
"아니, 난 나가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만 있는 거야. "
코린의 말에 메어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는 널 마나러 오시니?"
"가끔 오셔. 하지만 거의 내가 자고 있을 때만 오셔. 아버진 날 만나고 싶어하
지 않으시거든."
"그건 왜?"
코린의 얼굴에 화난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날 낳자마자 돌아가셨어. 그러니까 아버지는 날 보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메드로크와 피쳐 집사가 하는 말을 다 들었어."
"그런 말은 믿을 수 없어. 아저씨는 그런 분이 아닐 거야."
메어리는 고개을 저었다. 그러나 코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정말이야. 아버지는 날 한번도 따뜻하게 대해 주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어째
서 돌아가신 걸까 까?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난 이렇게 몸 약한 아이로 살지는
않았을 거야."
"그랬을지도 모르지. 넌 내가 몇 살 정도로 보이니?"
코린은 메개에 머리를 기댄 채 메어리를 쳐다 보았다.
"날 왜 그렇게 쳐다보니?"
메어리는 코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응, 언제나 똑같은 꿈을 꾸어서 그래. 이렇게 눈을 뜨고 있어도 내가 자고 있
는 건지, 깨어 있 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어."
"우린 확실히 깨어 있어. 꿈이 아니라구."
메어리는 힘주어 말했다.
"정말 꿈이 아니라면 좋겠어. 메어리, 또 와줄 거지? 네가 와주면 정말 기쁠
거야. 난 내 또래 의 아이와 얘기하는게 처음이거든."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메드로크 부인이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날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코린은 입술을 꽉 다물고 말했다. "매드로크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우리집
하인이야."
"하지만......."
메어리가 머뭇거리자 코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넌 오늘 날 만난 걸 비밀로 해 두면 돼. 나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 테니
까. 난 혼자 있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간호사를 내보낼 수 있어."
"간호사?"
"응. 참 간호사는 잠깐 언니집에 갔다는 걸 있고 있었어. 메어리, 너 혹시 마르
사를 알고 있니?"
메어리는 얼른 고개를 끄던였다.
"응. 잘 알아. 마르사가 날 돌봐주고 있거든."
"그럼 널 마나고 싶을 땐 마르사에게 불러 달라고 할께. 간호사가 없을 땐 마
르사가 나를 돌봐주거든."
코린은 하품을 하며 몸을 시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함 피곤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말해본 건 처음이야."
"이제 좀 쉬도록 해. 잘 자. 코린."
메어리가 몸을 돌리려 하자 코린이 다시 메어리의 잠옷 소매를 잡았다.
"나......난 네가 이곳에 있을 때 잠들고 싶은데......."
메어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메어리는 코린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럼 두 눈을 꼭 감아, 코린. 인도에 있을 때 유모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해
줄께."
코린이 눈을 감자 메어리는 시트 위로 내민 코린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앞뜰과 뒷동산에 작은 꽃잎들. 하늘의 별님
도 잠이 드는데.. 자장 자장 잘도 잔다......."
메어리의 다정한 자장가 소리에 코린은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메어리
는 살며시 코린의 손을 놓고 방으로 돌아 왔다.
다음날 아침, 메어리는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햇살에 눈을 떴다. 마르사가 커
튼을 걷으며 메어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날씨가 무척 좋아요. 어젠 그렇게 바람이 불어대더니, 오
늘은 바람 한 점 없어요."
메어리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눈은 아직도 반쯤 잠긴 채로였다.
"또 밤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군요. 책이라도 읽으셨어요?"
"아니, 코린이랑 얘기했어. 이상한 울음소리를 듣고 따라갔더니 코린이 울고
있었어."
마르사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도련님을요? 그러시면 안되요. 아가씨가 그러시면 제가 곤란해져요."
"왜 그래?"
마르사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링 것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메크로크 부인은 분명히 제가 도련님 얘기를 했다고 생각 하실 거예요. 그럼
전 이 저택에서 쫓겨나게 될 거라구요."
"걱정할 거 없어. 네가 쫓겨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메어리의 느긋한 말에 마르사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메어리를 쳐다보았
다.
"코린은 내가 찾아와 줘서 기쁘다고 했어."
"정말이세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도련님은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모습
을 들키는 걸 아주 싫어하시는데."
마르사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어도 가만히 있던걸. 이 방으로 오기 전에는 코란에게 자
장가까지 불러서 재워 주었다구."
"도련님이 가만히 계셨단 말이죠? 그렇게 짜증이 심하신 도련님이......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마르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아가씨가 요술을 부리신 거에요."
"요술?"
메어리는 눈을 비비다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마르사는 쳐다보았다.
"네, 요술이요. 요술을 부리지 않았다면 도련님이 그렇게 고분고분 하실 리가
없어요."
"아냐, 난 요술 같은 건 부릴 줄 몰라. 마르사, 코린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
랑 만난 사실을 메드로크 부인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어."
"아, 다행이에요."
마르사는 휴우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가슴을 쓸었다. 메어리도 마르사가 안심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코린은 날 또 만나고 싶대. 그러면서 나랑 만나고 싶을 때는 너한테 얘기한다
고 했어."
마르사의 얼굴은 다시 울상이 되었다.
"저한테요? 전 분명히 쫓겨나게 될 거예요, 메드로크 부인이 절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구요."
"걱정하지 마.메드로트 부인도 코린의 말에는 어쩔 수 없을 거야."
메어리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방 안으로
퍼졌다.
"흠, 정 말 좋은 아침이야."
메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동물 모양의 구름들이 천천히 흘
러가고 있었다.
"난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어. 마치 시파이어 같애. 맞아, 정원을 보러
가야지."
메어리는 옷을 갈아입고 줄넘기를 들었다.
2. 어린 임금님
메어리는 저택을 나오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양손에 줄넘기를 쥐었다. 그리고
줄을 뛰어넘으며 작은 길을 돌아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패티도 덩달아 깡총깡
총 뛰며 메어리를 따라 왔다.
"오늘은 디콘이 와줄 거야."
메어리는 푸르게 돋아난 새싹들을 지나 비밀의 정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원
의 문 위에서 처음 들어보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여왔다.
"이건 무슨 새 소리지?"
메어리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게 윤이 나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새가 덩굴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새는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메어리와 눈이 마주치자 정원
안으로 날아가 버렸다.
"처음 보는 새야. 어디서 왔을까?"
메어리는 패티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문을 열고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디콘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메어리."
메어리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가에 커다란 웃음이 번졌다.
"어머, 디콘! 벌써 왔어?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어?"
디콘은 빙긋 웃으며 정원 구석에 있는 통로를 가리켰다.
"아, 비밀 통로로 왔구나. 그렇지?"
"응, 난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어. 이렇게 멋진 아침에 잠만 자고 있을 수는
업ㅅ잖아? 자, 저걸 봐."
메어리는 디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장미 나무 가지에 잎사귀
가 돋아나 있었다.
"잎사귀야. 장미 나무에 잎이 돋아났어."
"그것만이 아니야, 네 발밑을 보라구."
메어리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살펴보았다.
"와, 꽃이 피었어. 여기도, 어, 저기도. 굉장해, 디콘."
크로커스 한다발이 메어리의 바로 발밑에서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보라색 꽃
과 오랜지색 꽃, 그리고 금색의 꽃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너무 예뻐. 크로커스가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는 줄은 몰랐어."
메어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꽃들에게 뽀뽀를 해 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
고 있는 메어리의 목덜미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다가와 스쳤다.
"응? 뭐야?"
고개를 들어보니 귀엽게 생긴 망아지가 메어리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망아지는 또랑또랑한 맑은 눈으로 메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망아지야! 디콘, 네 친구구나! 그렇지?"
디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아지에게로 다가와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젖먹이 망아지일 때 들판에서 발견했어. 이름은 점프야. 워낙 뛰는 걸 좋아해
서 말이야."
저ㅁ프는 사랑스러운 털복숭이 망아지였다. 곱슬곱슬한 털이 눈 위에까지 늘
어져 있었다. 점프는 반들거리는 코를 메어리에게 밀어붙였다.
"아이, 간지러워."
메어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 그러자 코린이 점프의 앞발을
들어올렸다.
"자, 점프. 메어리와 악수하자. 만나서 반가워, 메어리."
코린은 점프의 앞발로 메어리와 악수를 하게 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작은 코
로 메어리의 뺨에 뽀뽀를 하게 했다.
"내게 뽀뽀를 해 주었어. 나도 반가워. 점프."
그때 까마귀 한마리가 디콘의 어깨와 내려와 앉았다. 까마귀는 탁한 소리로
까악까악 울었다.
"어? 아까 문 앞에서 봤던 까마귀야."
디콘은 까마귀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 녀석이 샘을 내는 데? 널 먼저 본 건 자기인데 인사는 늦게 시켜준
다고 투덜거리고 있어."
"정말이야?"
메어리는 기분이 좋아서 소리쳤다.
디콘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이 녀석은 검댕이야. 들판에서 널 찾으러 다닐 때 이 녀석도 같이 있었어."
"검댕이? 정말 털이 까맣다."
디콘과 메어리는 정원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정원은 놀랄 만큼 많이 달라
져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ㅎ짝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디콘, 나 말이지. 비밀을 또 하나 발견했어."
메어ㅣ는 ㅂ이 발갛게 산기된 채 말했다. 디콘은 파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밀?"
"나 코린을 만났어. 어젯밤에 말이야."
"코린? 아, 도련님 말이구나. 어른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 저택에 병을 앓고
있는 남자 아이가 있다고 말야. 어른들 말로는 그 애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하던데."
"너도 알고 있었어? 그럼 나만 몰랐던 거네."
메어리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자 코린을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난 그것밖에는 몰라. 정말이야. 메드로크 씨는 도련님에 대해 소문이 나는 걸
싫어하시거든. 주인님은 도련님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셔."
"어째서?"
메어리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디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도련님의 눈이 마님의 눈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래."
메어리는 코린의 커다란 눈을 생각했다. 매우 아름다운 눈이었지만 생기가 없
어 보였다
"너무해. 부인 생각이 나서 코린을 만나지 않으시다니. 그렇다면 코린이 너무
불쌍하잖아."
메어리는 코린이 가엾게 여겨졌다. 그리고 코린은 지금쯤 혼자 침대에 누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콘, 나 코린에게 가봐야 해. 놀러 가기로 했었거든. 내일도 올거지?"
"응."
메어리는 코린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마르사가 복
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다 메어리를 보고 작게 외쳤다.
"아가씨, 어디 갔다 오셨어요?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찾고 계세요. 얼른 도련님
에게 가 보세요.:
"응, 알았어."
메어리는 코린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다. 코린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메
어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메어리, 찾고 있었어. 마침부터 줄곧 네 생각만 했거든."
메어리는 코린이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마르사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몰라. 우리가 만나는 걸 메드로트 부인이
알게 되면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래? 내가 마르사에게 말해 볼게."
코린은 침대 옆에 있는 줄을 잠아당겨 벨을 울렸다. 그러자 마르사가 금세 코
린의 방으로 들어왔다.
"마르사, 넌 내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임무지?"
코린의 말에 마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드로트도 그렇지?"
마르사는 영문을 몰라하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코린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메어리를 불러 달라고 명령한 사람도 나지? 그런데 어째서 메드로크가 널 쫓
아낼 수 있다는 거지?"
"하, 하지만......."
마르사가 뭐라고 말하려 하자 코린은 마라사의 말을 잘랐다.
"누구든지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이 저택에서 쫓아내 버릴 거야. 그러니까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자, 이제 물러가도 좋아."
코린은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마르사가 나가고 나자 메어리는 코린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코린은 얼굴을 쳐들고 메어리를 보았다.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뭔데?"
"한 가지는 네가 어린 님그님 같다는 거야. 인도의 임금님 말이야. 인도에 있
었을 때 어린 임금님을 본 적이 있어. 임금님은 온몸에 루비랑 에메랄드, 다이아
몬드를 잔뜩 달고 있었어."
메어리는 단숨에 말을 이었다.
"임금님이 뭐라고 명령하면 누구든지 그대로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당할 것 같았어. 네가 지금 마르사에게 얘기하는 말투를 듣고 있으려니까, 인도
의 어린 임금님이 생각났어."
코린은 메어리의 말을 잠시 생각해 보더지 다시 물었다.
"그래? 그럼 다른 하나는?"
"그건 말이지. 넌 디콘과는 무척 다른 애라는 거야."
"디콘? 이상한 이름이구나. 그 애는 어떤데?"
메어리는 디콘의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잠시 망설였다. 디콘의 이야기를 하면
비밀의 정원 이야기도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 디콘은 마르사의 동생이야. 디콘은 여우랑 까마귀랑 망아지란 그리고 올
새와도 모두 친구야. 그애는 모든 동물들과 다 친해."
"동물과 친구라고? 이상한 애로구나."
메어리는 코린에게 디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디콘의 친구야. 디콘이 부는 피리 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그
애가 피리를 불면 그 주위로 온갖 동물들이 모두 모여들어. 피리소리를 들으려
고 말이야."
"그 앤 요술을 부리는 거야?"
메어리는 고개를 저었다.
"요술이 아냐. 디콘은 동물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 그 애는 자기가 망아지
나 양이나 까마귀가 된 느낌이 들 정도로 동물을 사랑한다고 했어. 그래서 동물
들이 그 애를 잘 따르는지도 몰라. 게다가 디콘은 들판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코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들판을 좋아할까? 정말 이상하다. 들판은 넓기만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 말이야."
"나도 들판을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생각했어. 보잘 것 없고 아름 다운 것은 아
무것도 없는 재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구. 하지만 지금은 달라. 거기처럼 아름
다운 곳은 아마 없을 거야. 셀 수도 없이 많은 꽃들이 피고, 동물들은 부지런히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낳아서 길러. 땅 밑에서도 나무나 꽃들이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메어리의 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어?"
코린은 턱을 괴고 메어리를 바라보았다.
"디콘한테 들었어. 디콘은 마치 내 눈으로 보고 잇는 것처럼 얘기를 해줘. 정
말 그 애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여러가지 것들이 눈에 보여."
"난 병 때문에 누워만 /있어서 들판에 가 본적이 없어. 한번은 정원에 나갔다
가 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했던 적도 있어. 난 들판 같은 데는 가지 않을 거야."
메어리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왜? 너도 들판에 나가 보면 좋아할 거야. 너도 들판에 갈 수 있어."
그러자 코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가지 않아. 아니, 갈 수 없어. 난 이제 곧 죽게 될 건데. 뭘. 필요없어."
메어리는 코린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코린은 마치 자기가 죽게 될 것을 자랑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지?"
"모드들 내 뒤에서 수근거리고 있는 걸 난 다 알아. 하인들이나 의사 선생이나
모두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메어리는 발끈 화를 냈다.
"그만 해. 그럴 리가 없어. 그리고 만약 정말로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면, 나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의사 헨리와 메드로크 부인이 들어왔다.
메어리를 본 메드로크 부인의 눈은 놀라움으로 크게 치켜 떠졌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여길!"
메드로크 부인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의사 헨리도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이 아가씨는 누구요? 코린에게는 안정이 필요하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그러나 코린의 얼굴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코린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얜 내 사촌인 메어리야. 내가 와 달라고 부탁했어."
헨리는 메드로크 부인을 책망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저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인들에게도 절대 누구에게도 알리
지 말라고 확실히 말해 두었어요."
그러자 코린이 거만하게 말했다.
"맞아,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어. 메어리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거야. 난
메어리가 와줘서 정말 기뻐.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줘, 메드로크."
헨리는 코린의 말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코린의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맥박을 쟀다.
"코린, 너무 많은 말을 하거나 흥분하는 건 몸에 좋지 않아."
헨리의 말에 코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메어리를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난 진짜로 흥분하고 말 거예요."
헨리는 메어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쁘지도 않고 무뚝
뚝해 보이는 이런 아이의 어떤 점이 코린의 마음에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
다.
메드로크 부인과 헨리는 메어리를 쳐다보다가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코린은 방문을 노려보며 메어리에게 말했다.
"헨리는 우리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야. 내가 죽게 되면 헨리는 나 대신 이 미
스르스웨트 장원을 물,려받게 될 거야."
"그게 사실이야?"
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는 내 병이 더 악화되길 바라고 있어. 내가 죽게 되면 이 저택을 물려받
을 수 있으니까."
"설마."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이야. 우리 아버지까지도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뭐."
코린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3. 메어리의 땅
메어리는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패티와 한께 정원으로 나갔다. 패티는 메
어리를 졸졸 따라가다가 가끔씩 길 옆에 난 숲길로 빠지곤 했다.
"패티, 자꾸 다른 데로 가면 난 숨어 버릴 거야."
메어리가 장난스럽게 흘겨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패티가 다시 숲길로 들어가자
메어리는 나무 뒤에 숨엇다. 패티는 숲길에서 나와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야옹, 야옹."
패티는 애처러운 울음 소리를 냈다. 한참 후에야 메어리는 나무 뒤에서 살그
머니 나왓다. 패티는 메어리를 보고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놀랏지?"
메어리는 패티를 안아올이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때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
려왔다.
"메어리, 패티가 놀랐겠다. 벤 할아버지가 널 찾으셔."
메어리는 그 복소리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 차렸다. 메어리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확 퍼졌다.
"디콘, 벌써 왓어? 그런데 벤 할아버지가 왜?"
"좋은 일인가봐. 네가 아주 기뻐할 거라고 하시던데."
"그래? 무슨 일일까? 어서 가보자."
메어리와 디콘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채소밭 옆에 있는 벤 할아버지의 오두
막으로 갔다.
"할아버지, 메어리를 데리고 왔어요."
디콘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벤 할아버지가 나왔다.
"주인님께서 네게 땅을 주셨단다. 며칠 전 여행을 떠나시면서 내게 부탁을 하
고 가셨지."
"와, 정말이에요? 어떤 곳인데요? 빨리 보고 ㅅㅍ어요."
벤 할아버지는 메어리와 코린을 데리고 정원의 작은 오솔길을 걸어 새 정원으
로 갔다. 새 정원은 채소밭의 옆에 있는 커다란 공터였다.
"자, 여기가 네 땅이란다. 어떠냐?"
멘 할아번지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어리는 놀라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아저씨가 이렇게 넓은 땅을 제게 주셨단 말예요?"
디콘도 땅을 둘러보며 놀랐다는 듯이 가늘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 정도의 땅이라면 집이라도 지을 수 있겠다. 여기에 뭘 심을 거니?"
"글쎄, 아! 잠미랑 수선화란 갈란투스를 심을 거야. 그리고 사과나무도 심고
말야."
그러자 디콘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메어리, 꽃들은 많이 있으니까 채소를 심는 게 어때? 양배추랑 오이랑 샐러리
를 심는 거야."
"피, 난 채소 따위는 심지 않을 거야. 꽃이 훨씬 좋아."
메어리가 입을 삐죽이자 디콘은 벤 할아버지가 듣지 못하도록 귓속말로 속삭
였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이곳에서 우리가 키운 채소를 코린에게 갖다 주는 거
야. 싱싱한 채소를 먹으면 코린도 건강해 질지 몰라."
디콘의 말에 메어리는 손뼉을 쳤다. 그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좋아, 난 여기에 채소를 키우겠어. 벤 할아버지, 이곳에 심을 채소 씨를 구해
주세요."
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디콘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채소를 심겠다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다.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건, 꽃이 자라나는 것만큼 기쁜 일이거든. 내가 이곳
에 담을 쌓아 주마. 채소들이 바람에 뽑히면 안 되니까 말이다."
메어리는 새로운 떵을 가꿀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코린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면 무척 기뻐할 것 같았다. 그때 멀리서 마르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
다.
"어, 마르사야. 디콘, 나 마르사한테 갔다 올게. 먼저 거기로 가 있어."
메어리는 숨을 몰아쉬며 저택으로 뒤어 들어갔다. 마르사는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발갛게 산기된 볼과, 바람에 날려 흐트러진 머리를 보자 얼굴을 찡그
렸다.
"요즘은 계속 밖에만 나가 계시는군요." 가정교사가 왔으니 옷매무사를 단정히
하세요. 주인님께서 고용한 선생님이에요."
"가정교사라고?"
메어리의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점점 찌푸린 얼굴이 되었다.
"난 가정교사 따윈 필요없어! 혼자서도 공부 할 수 있단 말이야!"
메어리는 주먹을 꼭 쥐고 외쳤다. 메크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팔을 잡았다.
"고집 부리지 마세요. 아가씨도 이제 공부할 나이가 되었어요. 자,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메드로크 부인은 꼿꼿이 서서 입을 다물고 있는 메어리의 팔을 잡고 방으로
갔다.
가정교사는 메어리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가정교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오늘부터 아가씨를 가르쳐 주실 헬렌 멕코이 선생님이세요."
멕코이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러자 높이 올려 묶은 긴
머리가 팔랑거렸다.
"멕코이예요. 메어리라고 했죠?"
메어리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메드로크 부인이 메
어리를 제촉했다.
"뭐허시는 거예요? 어서 선생님께 인사하셔야죠."
"안녕."
메어리는 마지 못해 퉁명스런 목소리로 인사했다. 멕코이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내밀지 않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못마땅한 눈으로 메어리를 매섭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아가씬 예의 범절이 전혀 없어요. 배울 게 무척 많답니다. 선생님이 좀 엄
하게 가르쳐 주세요."
메드로크 부인이 맥코이 선생님에게 말을 마치자 메어리는 쌀쌀하게 말했다.
"전 할일이 있어요. 밖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수업시간이 되면 절 부
르세요."
메어리는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메어리는 멕코이를 보자 인도에서의 가정교사가 생각났다. 가정교사들은 메어
리에게 늘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들만 가르쳤다. 그러다가 메어리가 말을 듣지
않자 모두 나가 버렸다.
"가정교사는 싫어. 난 방에 앉아서공부하는 것보다 디콘이랑 정원에서 노는 게
훨씬 좋아."
메어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비밀의 화원으로 갔다. 그런데 디콘은 캡틴과 나
무 그늘에 숨어 뭔가를 살피고 있었따.
"뭐 해, 디콘."
디콘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손으로
가까이 오라는 표시를 했다.
"왜 그래?"
메어리는 목소리를 낮추며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디콘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걸 봐. 울새가 둥지를 짓고 있어. 여자친구와 함께 말야."
디콘은 손가락으로 울새가 늘 앉아 있던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울새는 주둥이에 작은 가지를 물고 바쁘게 운직이고 있었다. 울새의 옆에는
가슴이 빨간 또 한마리의 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리고 너무 빤히 쳐다봐도 안 돼. 안 그러면 저 녀석은 다른
곳에 둥지를 틀게 될지도 몰라. 우린 저 녀석 눈에 풀이나 나무처럼 보여야 해."
디콘은 거의 잘 들리지도 않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메어리는 풀이나 나무
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메어리는 디콘을 힐끗 쳐다보았다. 디콘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디콘, 나 좀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 울새의 여자친구는 처음 보잖아."
메어리가 속삭이자 디콘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둥지를 다 지을 때까지는 가까이 가면 안 돼. 다른 얘기를 해봐. 얘기
를 하다 보면 금세 둥지를 다 지을 거야."
메어리는 울새가 짓고 잇는 둥지를 쳐다보며 다시 얼굴을 찡그렸더.
"나 가정교사가 생겼어.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이야."
디콘의 파란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가정교사라구? 정말이야?"
디콘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엿다가 손으로 입을 막앗다.
메어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난 정망 가정교사는 싫어.인도에 있을 때 만났던 가정교사들은 내가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한다며 모두 날 싫어했어. 멕코이 선생님도 남 싫어할 거야."
"아니야. 울새가 널 좋아하듯이 맥코이 선생님도 널 좋아하실 거야."
"그럴까?"
메어리는 맥코이가 자신을 좋아해 줄지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그래서 아까
더울 쌀쌀하게 대했던 것이다.
그때 멀리서 마르사의 목소리도 함께였다. 목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일까? 잘못하다간 걸릴 것 같아."
메어리와 디콘은 정원의 비밀통로로 빠져나와 숲으로 갓다. 그리고는 클레이
븐 씨에게 받은 새 땅으로 가서 땅을 일구는 척했다.
"아가씨, 여기 계셨어요? 어서 집으로 가 보세요. 도련님께서 난리가 나셨어
요."
마르사는 정원에 있는 메어리를 발견하자마자 발을 동동 굴렸다.
"왜 그래? 코린이 아파?"
"아녜요. 아가씨가 오지 않는다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셨어요. 오후 낸 달랬
는데 소용이 없어요. 식사도 안 하시고 계속 시계만 보고 계세요."
메어리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는 화난 걸음으로 코리느이 방으로 갔다.
코린은 소파에 앉아 있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일어나 있지 않아?"
"오늘 아침엔 네가 와주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째서 오지 않은 거야?"
코린은 메어리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오후엔 침대에만 누워 있었어. 등이 아프고 머리도 아팠어. 어째서 오지 않은
거야?"
"디콘이랑 정원에서 일하고 있었어."
메어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코린은 고개를 홱 돌려 메어리를 쳐다보며 소리질렀다.
"나랑 얘기 하지 않고 그 애랑 같이 있었다구? 나보다 그 애가 좋단 말이지?
좋아 이제 그 아이를 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야."
메어리는 발끈 화를 냈다.
"만약 디콘을 쫓아 버리면 난 다시는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내가 오라고 하면 넌 와야만 해! 꼭!"
코린은 얼굴이 벌개져서 외쳤다.
"흥 내가 올 줄 알아?"
"오게 하고 말 거야. 억지로라도 끌고 오게 할 거니까."
메어리는 비웃으며 말했다.
"아이구 그러세요. 어린 임금님."
그리고는 콧방귀를 뀌며 코린을 쳐다보았다.
"흥,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있어도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을걸. 난 앉은 채로 이
를 악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을 테니까. 널 쳐다보지도 않고 마루만 보고 잇을
거야."
"넌 너무 자기 멋대로야!"
코린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넌 어째서 그래? 너야말로 제멋대로 굴면서. 난 너처럼 버릇없는 아이는 처
음 봤어!"
"아냐! 난 달라!"
코린은 베개에 기댄 채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앗다. 굵은 눈물 방울이 뺨 위
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난 제멋대로가 아냐. 난 늘 병 때문에 누워 잇어야 하고, 등에는 혹까지 생길
거란 말야. 그뿐인 줄 알아? 난 이제 곧 죽게 될거야."
"죽는다는 말 거짓말이야!"
코린은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눈에서는 계속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어렸을 때 간호사와 함께 해안가에서 갔던 적이 있었어. 난 유모차에 뉘
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날 힐끔힐끔 쳐다 봤어. 그리고 어떤 여자가 간호사와
소근거렸어.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어떤 사람은
내 뺨을 쓰다듬으며 불쌍하다고까지 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메어리는 숨을 죽이고 고개를 저었다. 디콘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소리 높여 말했다.
"난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어. 그 여자에게 달려들어 손을
물어 버렸어. 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어. 난 계속 죽게 될거라는 말만
들어왔단 말이야."
코린의 어깨가 가늘게 들썩이고 있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가엾은 모습을 보자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끓어오르던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넌 살 수 있어. 내가 정원에도 데려가 줄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건강해질
거야."
코린은 잠시 메어리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저기 잇는 가구의 첫번째 서랍을 열어 봐."
메어리는 코린이 가리키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놓인 헝겊으로 만든 작고 예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이거?"
메어리가 상자를 들어 보이자 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이리 가져와서 뚜껑을 열어봐."
메어리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메어리는 너무 놀라서 '아' 하고 작
게 탄성을 질렀다. 상자 안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나비 모양이 그려진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코린, 이 머리핀 네 거니?""
메어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머리핀은 메어리의 엄마가 메어리에게 물려주신 머리핀과 같은 모양의 것
이었다.
코린은 불빛에 반짝이는 머리핀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준 유물이야. 엄만 애게 그것만 남겨 주시고 돌아가셨어."
"나도 이것과 똑같은 머리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분명히 엄마가 준 것과
똑같은 모양의 머리핀이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메어리는 머리핀을 급
히 등 뒤에 숨겼다.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가씨는 이제 방으로 돌아가셔서 쉬세요. 도련님은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주
무셔야 돼요."
"난 잠이 오지 않아."
코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메어리는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내가 잠 재울게. 약속할게. 난 코린이 잠드는 것까지망 보고 금방 나갈 거야."
"그래, 난 머리가 아파. 메어리의 노래를 듣고 싶어. 저번에 들려 줬던 노래 말
이야. 그 노래는 조용하니까 금방 잠들게 될거야.."
간호원이 나가고 나자 코린은 시트 위로 손을 꺼내 올려놓았다.
"나탈리라는 내 간호사야. 어제 언니 집에 갔다가 돌아왔어."
"응, 이제 자야지."
메어리는 시트 위로 내민 코린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앞뜰과 뒷동산에 작은 꽃잎들, 하늘에 별님
도 잠이 드는데,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코린은 서서히 잠 속에 빠져 들었다.
코린의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메어리는 코린의 머리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
다. 그리고는 다시 머리핀을 상자에 넣어서 서랍 속에 간직해 두었다.
4. 코린을 정원으로
다음날 아침 마르사는 식사를 가지고 들어와 메어리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도련님이 몸이 좋지 않으신가 봐요. 얌전하게 계시긴 해도 몸에서 열이 나고
있어요. 마구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다음날엔 늘 그렇거든요."
마르사는 메어리의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코린의 말을 전해 주
었다.
"도련님이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하세요. 참 이상해요. 어젠 그렇게 화를 내시
더니, 이젠 아가씨에게 제발 와 달라고 부탁을 하시고."
"디콘에게 먼저 가봐야 하는데. 새 정원을 일궈 주기로 했거든."
메어리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 정원엔 뭘 심으실 거예요? 디콘에게 꽃씨를 부탁해 보지 그러세요?"
"아냐, 채소를 심기로 했어. 벤 할아버지가 채소 씨를 주신 댔어."
메어리는 옷을 갈아 입다가 다시 뒤돌아 섰다.
"아냐, 코린에게 먼저 가봐야겠다. 날 많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메어리는 모자를 쓰고 코린의 방으로 갔다. 메어리의 옷차림을 본 코린의 얼
굴에실망스런 표정이 스쳤다.
"너 어디 나가니?"
메어리는 코린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응, 아저씨가 땅을 주셨거든. 오늘 거기에 채소를 심을 거야."
"아버지가?"
코린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땅을 달라고 했거든.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면 너한테도 보여 줄게."
"정말?"
코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메어리는 코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코린도 꼭
정원에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 정원에서는 디콘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돌맹이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디
콘 옆에는 몇 그루의 나무와 씨를 담은 봉지가 쌓여 있었고 망아지 점프는 흙을
발로 밟으며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디콘! 야, 점프도 왓구나."
"응, 오늘은 이 녀석이 날 태워 줬어.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말이야."
"와, 힘도 센가봐."
점프는 가늘지만 튼튼해 보이는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디콘은 잘 길들여진
다람쥐도 데리고 왔다. 디콘은 웃옷의 주머니를 벌려 보였다.
"이거 봐. 너트하고 쉘이야. 이 녀석들은 내 주머니를 좋아해. 자, 너트 나와
봐."
디콘이 너트를 부르자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다람쥐가 디콘의 어깨 위로 뛰어
올랐다. 너트의 작은 손에는 도토리 한 알이 들려 있었다.
"쉘도 나와야지."
그러자 왼쪽 주머니에 있던 다람쥐가 디콘의 어깨 위로 뒤어 올랏다.
"오늘은 널 찾아올 사람도 있어. 내 쌍둥이 동생들이 이리로 와서 채소 심는
걸 도와주기로 했거든."
메어리는 기뻐서 손을 모으고 팔짝팔짝 뛰었다.
"재키와 제임스와 필이 온단 말이지? 보고 싶었어. 너희 집에 간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잖아."
얼마 후에 쌍둥이들이 정원으로 들어왔다.
"메어리, 오랜만이야. 이 정원이 메어리의 땅이구나."
쌍둥이들은 함박 웃음을 머금고 메어리에게 인사했다. 재키는 땅을 둘러보며
손으로 흙을 비벼 보기도 했다.
"씨앗을 뿌리면 좋은 채소밭이 될거야."
제임스와 필은 들고 온 모종삽을 하나씩 나눠 가졌다. 디콘은 봉지에서 씨앗
을 꺼냈다.
"너희들은 여기에 구멍을 좀 파줘. 메어리와 내가 씨를 심을게."
"응, 알았어."
쌍둥이들은 한 이랑씩 나누어 삽으로 구멍을 팠다. 메어리와 디콘은 한참 일
을 하고 난 뒤에야 씨를 다 뿌릴 수 있었다. 메어리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
이 맺혔다.
"아, 힘들다. 여기서 내가 심은 씨앗들이 싹을 틔운단 말이지? 생각만 해도 행
복해."
메어리는 곧게 펴고 팔을 쭈욱 뻗었다.
"제임스, 재키, 필, 도와줘서 고마워. 채소가 나면 꼭 가지러 와."
메어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쌍둥이와 디콘을 따라 들판으로 나갔다. 오랜 만에
맡아 보는 들판의 냄새에서는 금잔화와 히드꽃의 향기가 함께 풍겨오고 있었다.
"음, 이 좋은 향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 봄이 온걸 모두 기뻐하나
봐."
메어리의 말에 쌍둥이들도 모두 킁킁 코를 움직이며 냄새를 맡았다.
"정말이야. 히드꽃 향기가 나고 있어."
메어리와 쌍둥이, 디콘은 들판을 달리며 크게 웃었다. 상쾌한 공기가 몸 속으
로 스며들어와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너트와 쉘은 디콘의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와 들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택을 꽤 지나쳐 있었다.
"메어리, 그만 돌아가. 너무 멀이까지 왔어."
디콘과 쌍둥이는 손을 흔들며 들판을 내려갔다.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들판을
걸었다. 히드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곳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향기를 들이마시
기도 했다.
메어리는 눈을 조그맣게 보였다.
"카멜라한테 가자, 패티. 어쩌면 스잔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메어리는 히든꽃과 금작화 무리를 지나 늪지로 갔다. 카멜라는 눈을 감은 채
늪지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메어리는 살금살금 카멜라의 등 뒤
로 다가갔다.
"메어리?"
카멜라는 눈을 뜨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인 줄 아셨어요?"
"네 냄새를 맡고 있었어.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향기가 있거든."
"향기라구요?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어요? 꽃도 아닌데."
메어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멜라 옆에 앉았다. 카멜라 옆에는 커다란 바구
니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뭐예요? 무슨 풀 같은 게 잔뜩 담겨 있네."
"약초야. 약으로 쓸 풀을 캐어서 담아 놓은 거지."
카멜라는 눈을 뜨고 메어리를 보며 빙긋 웃엇다.
"이걸 어디에 쓰시는데요? 카멜라가 쓸 거예요?"
"아니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야. 스잔도 가끔씩 이곳에 약초를 얻으
러 오지. 동물이나 사람이 다쳤을 때, 이 약초를 쓰면 금방 낫거든."
메어리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약초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흠흠
냄새를 맡아 보고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향기도 없어요. 난 아픈 곳을 낫게 해 준다기에 좋은 향기가 날 줄 알았
는데."
"향기가 나는 꽃만이 좋은 건 아니야. 약초처럼 아무 향기가 없어도 좋은 곳에
쓰일 수 있는 것들도 많단다."
"나 사실은 궁금한 게 잇어요. 제겐 엄마가 물려주신 작은 머리핀이 있는데 코
린도 똑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
"코린을 마났다구?"
카멜라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코린을 아세요?"
카멜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멜라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
다.
"왜 코린과 제가 똑같은 머리핀을 가지고 있을까요?"
카멜라는 멀리 들판에 시선을 주었다.
"그 머리핀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란다. 세 사람이 그 머리핀을 가지고 있는
거지. 얄궂은 운명이야."
"세 개라구요? 나머지 하나는 누가 갖고 있는데요?"
"내가 가지고 잇단다."
메어리는 깜짝 놀라 카멜라를 바라보았다.
"카멜라가요? 어떻게 된 거예요? 카멜라는 이유를 알고 있죠?"
"클레이븐 부인과 네 엄마는 무척 사이가 좋았었지. 나도 그 분들과 친했었단
다. 너희 엄마는 인도로 가기 전 머리핀을 세 개 만들어서 하나는 코린의 엄마
에게, 다른 하나는 내게 주었어. 서로 뿔뿔이 헤어지게 되더라도 잊지 말자는 의
미에서 말이야. 그리고 십년 후에 꼭 정원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했어."
"정원?"
카멜라의 표정능 더욱 어두운 빛을 띠었다. 카멜라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했
다.
"그런데 클레이븐 부인이 사고를 당하고 말았지. 그 후 네 엄마도 돌아가시고
말이야. 그래서 결국 세 명 중에서 나만 남게 되었단다. 머리핀 세 개와 함께 말
이야."
"카멜라는 정원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잇어요?"
카멜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리 들판만 바라보았다. 메오리도 더 이상 묻
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코린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메어리는 함참 후에 입을 열었다.
"코린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엿다.
"나 코린한테 많은 얘길 해 주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동화책도 읽어 주고
요."
"어떤 얘기였는데?"
카멜라는 메어리를 바라보앗다. 그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왕비의 얘기예요. 그 왕비는 아이가 없어서 매일 하나님에게 빌
었어요. 하나님, 아이를 하나만 갖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말예요. 그래서 왕비는
아주 건강한 아이를 낳게 되었대요."
카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그맣게 소리를 질렀다.
"메어리!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돼."
"네? 왜요?"
메어리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몸이 약한 코린에게 건강한 남자 아이 얘기를 하다니, 그런 건 좋지 않아. 게
다가 엄마 얘기까지......."
"저희 엄마도 돌아가셨는걸요. 하지만 그 얘긴 너무 재미있어요."
메어리는 볼을 불룩 부풀렸다.
"넌 엄마와 함께 살았었지만 코린은 엄마의 얼궁조차도 몰라. 넌 코린이 불쌍
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네."
그러자 카멜라는 메어리에게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을 해 주었
다.
"코린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동정하는 마음이 든다는건,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불쌍하다고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런 생각은 마음 속에서 보두 지워야 해. 그게 코린을 위하는 거야."
카멜라는 다시 말을 이었다.
"코린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생각하지 마. 대신 그냥 함께 즐겁게 놀아 주는 게
코린에게 제일 좋은 거야."
"전 코린에게 디콘과 동물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그리고 코린이 걸
을 수 잇게 도와주고 싶어요."
메어리는 진심으로 말했다. 카멜라는 한참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오두
막으로 들어가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왔다.
"메어리, 이건 릴리아의 사진이야. 코린의 엄마 말이야. 무척 아름다운 분이셨
지."
메어리는 빛이 바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의 여자는 금발의 긴 머리
를 푸른색 리본으로 묶고 있었다. 코린의 눈과 같은 커다란 재색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우울해 보이는 코린의 눈과는 달리 사진 속의 눈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새까만 속눈썹이 눈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름다워요. 정말 코린의 눈과 꼭 닮았어요."
"릴리아는 마음씨도 아주 고운 분이었단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많이 도와
주었지."
카멜라는 사진 속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카멜라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
득 차 잇었다.
"케어리, 코린을 걷게 하고 싶으면 비밀의 정원으로 데리고 가라. 그곳에는 릴
리아의 영혼이 숨쉬고 있지. 릴리아가 코린을 걷게 해 줄 거야. 그리고 이 사진
을 코린에게 갖다 주렴."
5.동물 친구들의 방문
메어리는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가 코린의 방문을 열었다.
메어리가 코린의 침대에 걸터 앉자 코린은 코를 킁킁거렸다.
"너한테서 꽃 냄새가 나. 게다가 풀 냄새도....... 또 무슨 냄새야? 상쾌하고 달
콤한데."
메어리는 방긋 웃으며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들판의 바람 냄새야. 들판에서 오는 길이거든. 들판은 좋은 향기로 가득해."
메어리는 코린에게 새 정원에서 디콘과 세 쌍둥이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엇
다.
"디콘은 점프하고 쉘과 너트를 데리고 왔어. 그것들은 망아지와 아주 귀엽고
작은 다람쥐야. 점프는 디콘을 태워 주기도 한대. 온몸이 곱슬곱슬한 털로 덮여
있는데, 내게 쪽 하고 뽀뽀도 해 주었어. 디콘이 그렇게 시켰거든."
"와, 굉장해. 디콘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 듣는단 말이야?"
"그런 것 같애. 디콘은 동물과 친구가 되면 그 동물과 얘기를 할 수 잇다고 했
어. 하지만 진정한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대."
코린은 잠시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마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나 여러 동물들과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친구를 가져
본 적이 없어."
"내가 있잖아. 난 네 친구야. 코린, 내가 디콘에게 동물 친구들을 이곳으로 데
려오라고 할까?"
코린ㅇ 러굴에 확 웃음이 퍼졌다.
"정말?"
그러다 갑자기 코린은 다시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난 동물을 보면 막 기침을 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해."
"왜?"
동불들의 털 때문이야. 내가 어렸을 때 사냥개들을 키우고 있었어. 덩치가 아
주 큰 개도 있었는데 그 개가 갑자기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난 침대에 혼자 누워
있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마구 기침을 하고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어."
코린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였을 때 일이잖아. 봐 지금 넌 아무렇지도 않잖아. 난 조금 전까지 망
아지란 다람쥐란 함께 놀다 왔어. 그러니까 내 옴몸에 털이 붙어 있을 텐데도
넌 기침을 하지 않잖아."
"그럴 리가......."
"분명해. 넌 디콘의 동물들과 만나도 끄덕없을 거야. 네가 기침을 한다는 건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코린은 믿기지 안흔다는 듯 고개를 저어ㅆ다.
"그럴 리가 없어."
코린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에, 에취! 이것 봐."
"에이, 거짓말쟁이."
메어리는 코를 찡그리며 코린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두드렸다.
"잠깐만 기다려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메어리는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마르사가 방 벽난로 앞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마르사는 재를 긁어내
며 청소를 하고 잇는 중이엇다.
"이제 봄이ㅡ 왔으니 벽난로를 청소해야 돼요. 벤 할아버지도 밖에서 굴뚝을
청소하고 있어요."
마르사는 일어서지도 않고 계속 재를 긁어냈다.
"마르사, 나 코린에게 동물 친구들을 소개해 주기로 했어."
마르사는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도련님은 동물을 가까이 하면 안 돼요. 도련님은 동물을 보면 심하게 발작을
한단 말예요."
"쉬, 메드로크 부인한테는 비밀인데, 난 지금 패티를 데려가서 코린에게 실험
을 해볼 거야. 걱정하지 마. 코린은 동물을 봐도 끄덕없을 테니까."
마르사는 방문을 나가는 메어리를 불러 세웠다.
"참, 아가씨. 멕코이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곰부하실 시간이라고 하시던
데."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해. 금방 가겠다고 말이야."
메어리는 패티를 작은 상자에 넣어 코린의 방으로 갔다. 코린은 누워 책을 읽
고 있었다.
"공부하고 있었던 거야?"
그때 패티가 상자 안에서 몸을 부스럭거리며 야옹 울음소리를 냈다. 답답하니
빨리 꺼내 달라는 것이다. 코린은 침대 근처를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메어리는 시치미를 떼고 코린처럼 침대 근처를 둘러보앗다.
"무슨 소리? 난 못 들었는데."
"분명히 이상한 소리가 났어.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하고."
코린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기침을 하지는 않았다. 메어리는 한 손으로 상자
를 꼭 누르고 코린과 얘기를 나눴다. 패티는 상자 안에서 나오고 싶어 자꾸 몸
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다 메오리가 책을 집기 위해 잠깐 손을 뗀 사이에 패티는
상자에서 뛰어나오고 말앗다.
"야옹!"
코린은 패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패티는 코린의 침대 위에 뛰어 올랐다.
"고, 고양이잖아!"
코린은 놀라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렷다. 그러나 코린의 입에서는 기침이 터져
나오지 않앗다.
"와! 성공이야! 성공이야, 코린. 넌 패티가 옆에 잇어도 기침을 하지 않앗어.!"
메어리는 기뻐서 손뼉을 쳤다. 코린은 살그머니 얼굴에서 손을 떼고 코를 씰
룩거려 보았다.
"어, 정말이네."
"잘됐어. 이젠 디콘의 친구들을 만나 볼 수 있어. 내일 당장 오라고 할게. 디콘
도 네게 동물 친구들을 보여주고 싶어하거든."
메어리와 코린은 동물 친구들을 데려올 계획을 짰다. 코린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잇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방에서 나와 맥코이에게 갔다.
맥코이는 메어리늬 책상에 앉아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메어리. 왔군요. 자, 공부를 시작해야죠. 글자는 어느 정도까지 읽을 수 있
지요?"
맥코이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무르었다. 메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조금은 읽을 수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시를 읽은 적이 있나요?"
"시?"
메어리는 동화를 읽은 적은 있지만 시를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어 본 적이 없나 보군요. 시는 문자의 보속이예요. 그걸 알게 하기 위해서
제가 멎진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어요."
맥코이는 흠흠 목청을 가다듬고 감정을 듬뿍 넣어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
나 메어리는 그 시가 무었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함!"
메어리는 손으로입을 두드리며 하품을 했다.
그러자 맥코이는 읽고 있던 시를 멈추고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메어리. 지금 하품을 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 지루해요. 다른 걸 가르쳐 줘요."
맥코이는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메어리에게 이 시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 같군요."
"난 좀 다른 걸 배오고 싶어요."
"어떤 고죠?"
메어리는 잠시 방설이다가 말했다.
"음 간호사들이 하는 일이요. 환자를 돌본다는 건 확실히 중요한 일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메어리는 기대감에 차서 얼른 대답했다. 그러나 맥코이는 조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메어리에게 가르치기로 한 건, 예의범절이지 간호하는 일이 아니에요.
전 메어리에게 공부나 미술, 숙녀로서 몸에 익혀야 하는 예절을 가르치기로 되
어 있어요."
"예의범절이아구요? 전 좀 더 쓸모있는 걸 배우고 싶어요. 병을 고쳐 준다든
가, 빵을 굽는다든가, 요리를 만든다든가 하는......."
"그런 걸 배우고 싶다구요?"
맥코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또 있어요. 청소를 한다든가, 꽃을 가꾼다든가 하는 것들 말예요."
"메어리는 이 저택의 아가씨예요. 그런 것들은 모두 하인들이 해 주는 거예요.
자, 오늘은 수업을 그만 마치겠어요. 다음 시간에 수 놓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어
요."
메어리는 맥코이 선생이 나가고 나자 정원에 나가 줄넘기를 했다.
수업시간 내내 몸을 꼿꼿이 하고 앉아 있느라 굳어 있었던 몸이 다시 활기에
넘쳤다. 메어리는 줄넘기로 백 번을 뛰어 넘은 뒤 다시 스무 번을 더 뛰어 넘었
다.
다음날 아침 메어리가 코린의 방으로 가자, 코린은 일찍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왔구나. 나 조금밖에 자지 못했어. 디콘과 동물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아서 말이야."
"디콘은 지금쯤 들판에서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을 거야. 풀만 먹이고 나면
동물들을 데리고 금방 이곳으로 온댔어."
메어리는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
왔다.
"아, 이 햇살 좀 봐. 공기도 무척 신선할 거야. 코린, 창문을 열어 줄까?"
코린은 햇살을 손등으로 가리며 눈을 찡그렸다.
"추울 거야. 아직 바람이 찰 거라구."
"아니야. 봄바람이 얼마나 상쾌한데. 너도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야."
메어리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흠흠, 봐. 좋은 냄새가 나지 않니? 달콤한 봄 낸새 말야."
코린은 메어리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응, 네 말을 들으니까 그런 것 같아."
그때 간호다 나탈리가 들어왔다. 나탈리는 열여 있는 창문을 보고 놀란 표정
을 지었다. 코린은 지금까지 더운 날도 창을 꼭꼭 닫아두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감기에 걸릴 거라며 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춥지 않으세요, 도련님?"
코린은 찬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응, 난 지금 신선한 공기를 잔뜩 마시고 있던 참이었어. 그렇게 하면 튼튼해
질 테니까. 아침밥은 소파에서 먹을 거야. 메어리와 함께 말이야."
나탈리는 마르사에게 부탁해 메어리와 코린의 식사를 가져오게 했다.
코린은 메어리와 함께 있어서인지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아침을 먹었다.
"디콘에게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했어. 마르사에게 뒷문을 살펴 달라고 부탁도
해놓았어. 메드로크 부인이 알면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의사 선생님도 오늘은 오지 않을 거야. 아침에 간호사가 다녀갔으니까 말이
야."
잠시 후 마르사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아가씨, 디콘이 왔어요."
코린은 숨을 죽이고 문을 바라보았다. 디콘은 멋진 웃음을 얼굴 가득 띠고 들
어왔다.
디콘의 팔에는 새끼 양이 안기어 있었다. 재색 털의 여우 캡틴은 종종걸음으
로 디콘을 따라 들어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람쥐 너트가 왼쪽 어깨에 앉아 있
고, 쉘은 웃도리 주머니에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까마귀 검댕이는 오른
쪽 어깨에 앉아 있었다.
"안녕, 난 디콘이야."
디콘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코린의 눈에는 신기함이 가득 담겨 잇었다.
코린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디콘의 인사에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응? 그래. 안, 안녕. 난 코린이야."
코린은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디콘이 신기하기낭 했다. 지금까지 메어리
에게 디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엇지만, 이렇게까지 동물과 잘 어울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얘들은 너트와 쉘이야. 너란 놀고 싶어서 재롱을 떠는 거야."
너트와 쉘이 어깨와 주머니에서 깡총 뛰어내려 방안을 돌자 디콘이 방긋 웃으
며 말했다.
"이거 가까이 와도 괜찮은 거야?"
코린은 약간 머뭇거리며 메어리는 바라보았다. 메어리는 너트를 안아들고 활
짝 ㅇ었다.
"그럼, 괜찮고 말고. 봐, 귀엽지 않니?"
디콘은 안고 있던 새끼 양을 코린의 무릎에 가만히 올여 놓았다. 새끼양은 코
린의 옷에 얼굴대고 자꾸만 파고들려 했다.
"뭘 하는 거야? 응?"
코린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디콘에게 물었다. 디콘의 얼굴에는 한층 더 밝은
웃음이 퍼졌다.
"배가 고파서 그래. 일부러 아침을 조급밖에 먹이지 않았거든. 네게 우유 먹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말이야."
디콘은 소파 곁에서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우유병을 꺼냈다.
"꼬마야, 이리 온. 에가 찾고 있던 게 바로 이거지?"
"디콘이 우유병을 물려 주자 새끼 양은 열심히 우유를 빨기 시작했다. 그때 너
트와 쉘이 코린의 무릎 위로 팔짝 뛰어 올랐다.
"어!"
코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메어리는 코린을 보며 멍하니 입
을 벌렸다.
"코, 코린."
"응, 왜?"
메어리는 손가락으로 코린의 다리를 가리켰다.
"너 지금 일어나 있어."
그 순간 코린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놀라움
이 뒤섞인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나 일어났어. 처음이야. 난 늘 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디콘이 외쳤다.
"이 녀석들이 널 설 수 있게 해준 거야. 동물이 몸에 좋지 않을 리가 없어."
디콘은 코린에게 새끼 양을 발견하게 된 얘기와 양을 치는 얘기를 들려 주었
다. 디콘이 말을 하는 동안 코린의 눈은 신기함으로 반짝거렸다.
코린으로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였다.
디콘의 말이 끝나자 메어리는 주머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코린, 네게 보여줄 게 있어."
코리능ㄴ 금발의 긴 버리에 커다란 재색 눈을 가진 사진 속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네 엄마야."
코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더니 사진 속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분이 우리 엄마?"
"응, 맞아."
메어리는 코린과 같이 사진 속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었다.
"참 아름다운 분이셔. 눈 좀 봐. 모양도 크기도 너랑 똑같애."
디콘도 가까이 다가와 사진을 보았다. 캡틴과 검댕이, 너트, 쉘도 모여들어 고
개를 갸웃거렸다.
"와, 정말 코린과 닮았다. 클레이븐 씨 부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분인지 몰랐
어."
디콘도 감탄했다. 코린은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다 겨우 눈을 떼고 메어
리에게 말했다.
"이 사진을 머리핀과 함께 둬야겠어. 메ㅓ리, 네가 좀 보관해 둘래? 자."
코린이 사진을 내밀자 메어리는 이상하다는 듯 물엇다.
"왜? 항상 볼 수 잇도록 가깡눈 곳에 두면 좋잖아."
그러자 코린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에게 내 아픈 모습을 보이는 건 싫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 주고 싶지도 않구."
"알았어."
메어리가 사진을 서랍에 넣으려 하자 코린이 다시 메어리를 불렀다.
"메어리,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메어리는 방긋 웃으며 코린에게 사진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코린에
게 속삭엿다.
"콜니.네게 알려 줄 비밀이 있어. 이건 디콘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이야."
"비밀?"
"응, 하지만 그 전에 꼭 약속을 해야 돼. 아무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않겠다
고."
메어리는 코린에게 다짐을 받고 난 후에 디콘과 자신의 비밀을 말해 주었다.
"이건 비밀인데......."
메어리가 뜸을 들이자 코린은 믿어도 된다는 듯 가슴을 살짝 두드려 보엿다.
"정말로 날 믿어고 돼. 난 지금까지 비밀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애게
비밀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킬 거야."
그러자 메어리는 숨을 크게 한 번 등리쉬다가 단숨에 말했다.
"코린, 너의 엄아가 아끼셨던 정원을 아니? 비밀의 정원 말이야."
"비밀의 ㅈ원?"
"응, 아저씨가 잠가 놓으신 정원이 이 저택 안에 있어. 십년 동안이나 숨겨져
있던 정원이야."
"십년 동안이나? 아버짐 왜 정원을 잠그셨지?"
"너희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잠그신 거야."
디콘은 코린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도 얌전히 앉아
서 메어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원을 내가 발견했어."
"뭐라고?"
코린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메어리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정원을 디콘과 내가 살려 놓았어. 십 년 동안이나 버려져 있던 정원을 말
이야."
"그 정원은 어떤 고이야? 엄마가 아끼셨다는 저원을 꼭 가보고 싶어."
코린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그래, 널 데리고 갈 거야. 그곳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름다워. 장
미 덩굴들이 벽을 뒤덮고 있고 수선화랑 갈란투스가 무리지어 피어 있어. 그리
고 그곳에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손님이 잇어. 그건 바로 울새야. 울새는 그
정원에 둥지를 짓고 살고 있어. 여자친구랑 함께."
"정말로 날 데려가 줄거지? 하지만 난 걸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가지? 게다가
난 방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휠체어도 없어."
코린이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자 디콘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코린의 어깨를 다
독거렸다.
"헛간을 찾아 보면 탈 만한 게 있을 거야. 내가 구해 볼게."
그 다음에 메어리와 디콘은 코린을 비밀의 정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계획을 세
웠다.
"먼저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사람이 없는 길로 가는 거야. 참, 코린을 정원으
로 데리고 나가도 메드로크 부인이나 헨리 위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디콘은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다가 깜박 잊었다는 듯 코린
을 보며 물었다.
"아마 암 될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정원에 나갔다가 심하게 앓은 적이 있거든.
막 열이 나고 기침이 계속 와서 고생을 많이 했어."
코린의 말에 메어리는 양손을 쥐고 힘주어 말했다.
"그건 네가 너무 방에만 있었기 때문이야. 밖의 공기도 마셔봐야 해. 그래야
익숙해지지. 정원의 상쾌한 공기와 바람을 쐬면 병이 다 나을 거야."
"그럼 호수 쪽을 통해서 가자.거기라면 메드로크 부인에게 들키지 않고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세 사람은 마치 전쟁에서 진군계획을 짜는 장군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
게 계획을 짰다.
코린은 비밀의 정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6.실패한 계획
아침 일찍 메어리가 코린의 방으로 건너가자 코린은 나탈리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싫어. 이제 약은 먹지 않을 거야."
코린은 나탈리가 들고 있는 약을 거들떠보지도 않앗다.
"안 됩니다. 오늘은 꼭 이 약을 드시게 하라는 헨리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습니
다."
"필요 없다니까! 어서 나가!"
그래도 나탈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탈리는 한 손에는 약을, 한 손에는 물컵
을 든 채 계속 코린을 타일었다. 그러자 코린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 먹을 테니까 뒤로 돌아 있어."
"왜 그러는데요?"
코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는 거야! 내가 뒤로 돌아서 있으라면 돌아서 있어."
나탈리는 그제야 코린에게 약을 건네 주고 뒤돌아섰다 코린은 혹시나 나탈리
가 보고 잇지 않나 살피며 약을 슬그머니 침대 곁에 있는 꽃병에 쏟아 버렸다.
"아, 쓰다. 자, 됐지?"
코린은 나탈리에게 빈 약봉투를 보여 주었다. 나탈리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코
린의 방을 나갔다. 코린은 문가에 서 있는 메어리를 보고 씨익 웃엇다.
"어때? 감쪽 같지? 헨리 의사가 주는 약은 먹기 싫어."
메어리와 코린은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평소에는 시시해 보이던 사소한 얘기들도 모두 재미있게만 여겨졌다.
둘이 한참 즐겁게 웃고 있자 디콘이 바퀴 달린 위자를 끌고 들어왔다. 코린은
디콘을 보자 발을 구르며 장난스럽게 안달을 했다.
"너무해. 디콘.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디콘은 위로 치켜올라간 코를 손으로 비비며 씨익 웃었다.
"헛간에서 이걸 찾느라고 말이야. 벤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이건 어릴 때 쓰
던 바퀴의자래."
메어리는 바퀴의자를 보고 깔깔 웃었다.
"정말 조그맣다. 코린이 조금만 더 커도 들어갈 수 없을 거야."
"악 나보고 이 바퀴의자에 타라구? 너무해."
바퀴의자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두 개의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었다.
"자, 가자! 우리들의 비밀의 정원으로!"
디콘이 팔을 높이 쳐들고 외치자 코린과 메어리도 팔을 들고 디콘을 따라 외
쳤다.
"가자! 비밀의 정원으로!"
디콘이 침대 위에 베개를 놓고 시트로 그 위를 덮었다. 누눠 있는 것처럼 보
이기 위해서였다.
메어리가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망을 보고 그 뒤로 디콘이 바퀴의자를 밀며 뒤
따랐다. 정원으로 나오자 코린은 감자기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
다 그러다가 조금씩 천천히 눈을 뜨고 정원을 둘러보앗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나비와 새들이 꽃들 위를 날아다니고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움트고 있
었다.
"와, 움직이고 있어. 모든 거들이 생기잇게 운직이고 있어."
코린은 신기한 듯 눈을 빛내며 외쳤다.
"그래, 모든 것이 살아 잇어. 이걸 봐."
디콘은 땅을 가리켰다. 한떼의 개미들이 작은 씨를 들고 행렬을 지어 가고 있
었다.
"개미들이 풀씨를 나르고 있는 거야. 저렇게 매일매일 자기들의 집까지 날라.
먹을 것이 없는 겨울 동안 살아가기 위해서야."
디콘은 쭈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행렬을 지켜보며 말했다.
"여기서는 나무나 풀, 새들, 동물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개미들까지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무, 풀, 새들, 동물들도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구......."
코린은 디콘의 말을 되받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응, 그래. 코린, 이 들판에서 나는 것들은 모두 살아 있어. 얼마나 아름답니?
모두 널 위해 만든 것들이야. 네가 빨리 건강을 되찾으라고. 그러니까 죽음 같은
걸 생각해선 안 돼."
메어리는 옆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엇다.
"코린, 깊숙이 숨을 들이쉬어 봐. 나무랑 풀들, 꽃들의 향기로운 냄새가 날거
야."
코린도 메어리를 따라 팔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어때, 코린?"
코린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응, 참 이상하게도 기분이 무척 좋아져. 기침도 나오지 않구. 어쩐지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서 여러가지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날 데려
다 줘."
셋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디콘은 코린이 모든 걸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바
퀴의자를 천천히 밀면서 갔고 메어리는 앞으로 껑충껑충 뛰어가며 까르르르 웃
었다.
"나비야, 나비. 기다려 봐. 코린. 잡아서 너 줄게."
메어ㅣ는 수손화 위에 앉아 잇는 호랑나비를 잡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
나 메어리가 손을 펼치는 순간 나비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메어리가 울상을 짓
자 코린과 디콘은 깔깔 웃어댔다. 그때 멀리서 울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찌르르 쫑 찌를 쫑 찌르르르."
메어리의 얼굴에 확 웃음이 퍼졌다. 메어리는 멈춰서서 새 소리에 귀를 기울
였다.
"코린, 잘 들어 봐. 저 새소리 들리지? 저게 울새 소리야."
"울새?"
"응, 너랑 디콘이랑 내 친구야."
그러자 옆에서 디콘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울;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친구야. 비밀의 정원에 빨리 가보고 싶
어. 울새도 만나고 싶고. 디콘, 메오리, 날 어서 비밀의 정원으로 데려가 줘."
"그래, 가자!"
"와! 비밀의 정원으로 가자!"
메어리가 앞서서 달렸다. 그런데 멀리서 마르사와 메드로크 부이느이 목소리
가 들려왓다.
"도련님! 코린 도련님!"
셋은 당황해서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디콘은 살짝 머리를 내밀고 주
위를 둘러 보았다. 아직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앗다.
"어쩌지? 코린이 방에 없다는 게 발견됐나봐."
그러자 코린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난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괜찮아. 비밀의 정원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어. 자,
어서 가자."
셋은 나무 뒤에서 나와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 정원 쪽으로 갔다. 그런데 정원
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저만치서 걸어오는 메드로크 부인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
다.
"큰일났다. 발견됐어. 어서 도망가자."
셋은 정원 반.대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메드로크 부인은 소리를
지르며 셋을 쫓아왔다.
"도련님! 멈추세요! 아가씨! 멈추지 않으면 혼을 내줄 거예요!"
당황해하는 메어리와 디콘과는 달리, 바퀴의자에 앉아 있는 코린은 즐거워서
깔깔 웃엇다.
"좀 더 빨리 달려, 디콘. 빨리."
디콘은 바퀴의자를 더 빨리 밀었다. 그러다 내리막길에서 디콘은 그만 바퀴의
자의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어어, 위험해! 코린! 코린!"
디콘은 바퀴의자를 잡기 위해 있는 힘껏 달렸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코
린의 바퀴의자는 매리막길을 굴러 그 아래 있는 호수에 풍던 빠지고 말았다.
"으아! 사람 살려!"
코린은 고개를 내빌고 허우적거렸다. 디콘과 메어리는 깜짝 놀라 호수를 향해
달렸다. 메드로크 부인도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다행이도 디콘이 코린을 건져
내 주었다.
"코린, 괜찮니?"
코린은 물에 흠뻑 젖은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냈다.
"응, 괜찮아."
메드로크 부인은 손으로 코린의 물기를 닦아 주며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콘, 어서 도련님을 집 안으로 모셔야겠다. 물에 젖었으니, 혹 감기라도 걸리
시면 큰일이야."
디콘은 떨고 있는 코린을 등에 업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메외를 쏘아보았다.
"아가씨, 또 쓸데없는 짓을 하셨군요. 도련님께서 얼마나 몸이 약하신지 모르
세요?"
그러자 디콘의 등에 업혀 있던 코린이 콜록거리며 베드로크 부인의 말을 막았
다.
"아냐, 메어리는 잘못한 게 없어. 밖으로 나가자고 한 건 나야. 메어리를 꾸짖
거나 혼내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코린은 말을 마치자 마자 얼굴을 찡그리더니 연거푸 기침을 하며 몸을 떨었
다. 디콘은 코린을 업고 저택 안으로 달려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저택으로 들어가는 코린을 보며 메어리에게 소리쳤다.
"아가씨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도련님을 보세요. 저렇게 괴
로워하고 있잖아요. 이제 두번 다시 도련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겠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차갑게 말하고 나서 뒤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메어ㅣ른 코린의 방으로 달려갔다.
코린이 심하게 기침을 하고 누어 있는 침대 곁에서 헨리 의사와 나탈리가 코
린의 맥박을 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메드로크 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코
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코린, 제발 아프지 말아 줘."
메어리는 혼자 문가에 서서 중얼거리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무
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코린을 도와주세요. 코린이 다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코린 대신 저
를 아프게 해주세요."
메어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메어리는 두 손을 꼬옥 쥐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해서 기도하다 잠이 들어 버렸다. 메어리가 눈을 떴을 때 밖은 칠
흑처럼 깜깜해져 있었고 괘종 시계에서 열한 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열한시나 되었으니까 나탈리도 메드러크 부인도 다 잠들어 있을 거야.
어서 코린에게 가 봐야지."
메어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계단을 올랐다. 코린의 방에
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방문 앞에서 마르사그 꾸벅꾸벅 졸다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야?"
"쉿, 나야, 메어리."
메어리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마르사에게 다가갔다. 마르사는 메어리를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여기 오시면 안 돼요. 저도 들여 보내고 싶지만, 메드로크 부인께서
아가씨를 들여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단 말예요. 도련님은 지금 안정이 필요하
데요."
"미안해, 마르사. 잠깐이면 돼. 부탁해."
마르사는 옆방의 문쪽을 쳐다보았다.
"옆방에서 나탈리가 자고 있어요. 저희는 두 시간씩 교대를 하고 있거든요."
"그냥 살짝 들어갔다가 나오면 되잖아."
"그게 안 돼요. 방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거든요."
"자물쇠라구? 정말이야?"
메어리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옆방에서 나탈리의 졸리운 목
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사, 누가 왔어? 무슨 일이야?"
마르사는 당황해하며 얼른 둘러댔다.
"으응, 누가 온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니었어. 어서 더 자. 시간이 되면 깨울
게."
마르사는 메어리를 재촉했다.
"아가씨, 제발 돌아가 주세요. 메드로크 부인이 오실지도 모른다구요."
메어리는 자물쇠로 잠긴 코린의 방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대신 하나만 가르쳐 줘. 그러면 돌아갈 테니까."
"약속하신 거죠? 궁금한게 뭐예요?"
마르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코린은 어때? 아까보다 좀 좋아졌어?"
"조금 좋아졌어요. 아까는 기침을 심하게 하고 열이 높았는데 지금은 기침이
좀 그쳤어요. 하지만 열이 아직도 높아서 몸이 축 늘어져 있어요."
메어리는 가슴이 아팠다. 코린의; 병을 낫게 해주려고 정원에 나갔다가 오히려
더 아프게만 해버린 것이다.
"점점 좋아지겠지? 그렇지?"
"그럴 거예요. 아가씨, 어서 가세요."
메어리는 힘없는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혼자 아파하고 있을 코린을 생각
하니 자리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코린, 아프지 마."
메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벽
난로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메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난로 가까이 갔다.
"코린이냐. 코린의 울음소리야."
울음소리는 벽난로의 굴뚝을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메어리가 비오던 날 들었
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가는 울음소리가 간간이 끊기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코린이 괴로운가봐.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메어리는 안타까워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코린의 방으로 갈 수가 없었다.
메드로크 부인이 코린과 메어리가 만날 수 없도록 코린의 방문에 자물쇠를 채
워 놓았기 때문이다.
7.다람쥐 연락병
메어리는 아침이 되자 코린의 방문으로 통하는 복도를 살펴보았다. 복도에서
는 나탈리와 메드로크 부인이 서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방문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디콘에게도 이 일을 알려 줘야겠어. 디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을까?"
메어리는 정원으로 나가 디콘을 찾았다. 디콘은 씨앗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메어리의 새 따으로 오기로 했었다. 메어리가 새 정원으로
가자, 디콘은 팔을 걷어 붙이고 땅을 힘차게 일구고 있었다.
"디콘!"
"야! 메오리!"
디콘은 팔을 걷어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았다.
날씨가 졸아서 씨앗들이 금방 싹을 틔울 것 같애. 어ㄸ넌 건 벌써 삐죽 솟아
오른 싹도 있어. 얼마 안 있으면 파란 채소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정말이네."
쭈그리고 앉아 삐죽 솟아나 싹들을 쳐다보니 연두빛 새싹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디콘, 나 어젯밤에 코린의 울음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찾아가도 만날 수가 없
어. 메드로크 부인이 코란의 방문을 자물쇠를 채워 버렸거든."
"자물쇠를 채웠다구? 널 만나지 못하게 하려교?"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서든 만나고 싶은데. 함께 정원에도 가고 싶고 말이야. 코린은 괴로
운가봐. 어제도 흐느끼며 울고 있었어. 혹시 옛날처럼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디콘은 쟁기를 놓고 저택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지, 그 울음소리가ㅣ 벽난로를 통해서 들리고 있었어."
"벽난로에서?"
그때 디콘의 주머니에서 너트와 쉘이 고개를 내밀고 반가운 울음소리를 냈다.
두 다람쥐는 메어리가 손으로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지 메어리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날 잘 따르네? 날 잊지 않고 있었나봐."
"응. 반가운가 본데."
디컨은 너트와 쉘의 줄무뇌가 새겨진 몸에 /입을 맞추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
다. 그 바람에 너트와 쉘의 균형을 잃고 뒤뚱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잘하면 이 녀석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 몰라. 벽난로의 굴뚝을 이용해서 이 녀
석들을 코린의 방으로 보내느 거야. 네 방과 코린의 방 굴뚝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울음소리가 들렸던 거야."
메어리는 너트와 쉘을 양쪽 주머니에 넣고 저택 안으로 돌아왔다.
한편, 코린은 힘이 빠진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코린은 메
드로크 부인이 들고 온 식사를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안항ㅆ다.
"도련님, 조금이라도 좀 드세요. 드시지 않으면 기운을 차리실 수가 없어요."
코린은 메드로크 부인의 간곡한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 제발 식사를 하세요."
코린은 고개를 돌린 채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메어리......메어리를 불러줘. 메어리를...... 불러줘."
메드로크 부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돼요. 메어리 아가씨는 만나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가씨 때문에 도련님
이 이렇게 되신 거예요."
코린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메어리는 청소를 하고 있는 마르사에게 물었다.
"코린의 방을 마탈리 혼자서 망을 보고 있어?"
"아뇨. 메드로크 부인과 둘이 보고 있어요."
메어리는 마르사 쪽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코린의 방 안에는 언제 들어가는데?"
"아홉 시와 열한 시에 도련님의 상태를 보러 들어가요."
"메드로크 부인이 지키고 있다구? 조심해야겠는걸."
메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마르사가 이상하다는 눈빛으
로 메어리를 보았다.
"뭘 조심해요?"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혼자 해본 소리야."
열한 시가 조금 지나고 나자 메어리는 주머니에서 다람쥐를 꺼냈다.
"열한 시가 넘었으니까 괜찮겠지? 직ㅡ 정도의 시간이라면 코린의 방에는 아
무도 없을 거야."
메어리는 너트와 쉘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둘 중에서 누가 코린에게 가 주겠니? 너트, 네가 가 주겠니? 코린이 널 보면
무척 기뻐할 거야."
"부탁해, 너트."
메어리는 너트를 쓰다듬어 주고는 벽난로의 굴뚝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너트
는 굴뚝을 타고 빛이 보이는 쪽으로 또르르르 기어올랐다.
메어리는 벽난로 속에 얼굴을 넣고, 편지가 묶인 꼬리를 흔들,며 굴뚝을 오르
는 너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너트는 빛을 따라가다가 코린의 방 벽난로로 톡 떨어졌다. 너트는 잠시 사방
을 두리번거리더니 코린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응......응......뭐야?"
코린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가슴 위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코린은 눈을 비볐다. 그러자 너트의 꼬리에 묶인 편지가 눈에 띄었다. 코린은
너트를 안아올리고 편지를 풀었다.
"메어리한테서 온 거야."
편지를 펼쳐본 코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코린은 메어리의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너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편지야. 무사히 도착했다면 네가 읽었다는 표시로
편지를 길게 찢어서 너트의 꼬리에 리본으로 ㅁ어 줘.>
코린은 너트를 보았다.
"그래, 지난번에 봤던 그 다람쥐야."
<코린,열도 많이 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며? 먹고 싶지도 않아도 뭐든지
먹어야 해. 그래야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잖아. 네가 기운을 차려야 비밀의 정
원에도 갈 수 있지 않겠니? 다람쥐;를 보내서 편지를 주고받자는 생각은 디콘의
생각이야. 네 방 굴뚝과 내 방 굴뚝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애. 내가 네 울
음 소리를 들었건든. 얼마 전에 마르사가 봄을 맞아 벽난로와 굴뚝 청소를 했어.
그때 그을음이 제거돼서 네 소리가 들렸나봐. 이제부터는 다람쥐를 통해서 서
로 연락하자. 안녕, 또 연락할게.>
코린은 크게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길게 찢어서 너트의 꼬리에 묶은 후 너트
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전해줘, 너트."
코린은 벽난로 속으로 들어가는 너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있는 끈을 잡아당겼다. 종이 울리자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메드로크 부인
이 급히 들어왔다.
"그래. 나 뭐가 먹고 싶으니까 어서 먹을 것을 갖다 줘."
메드로크 부인의 눈은 놀라움으로 휘둥그래졌다.
"먹을 거라고 하셨나요?"
"그래. 뭐 하는 거야! 어서 가져 오라니까!"
메드로크 부인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음식을 가지러 나갔다.
초조하게 너트를 기다리고 ㅇ;ㅣ던 메어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벽
난로 앞을 왔다갔다했다.
그때 벽나로 안에서 너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너트는 벽난로를 타고 내령
하 넓게 펼친 메어리의 손바닥 위에 뛰어 내려 앉았다.
"어서 와, 너트. 코린에게 갔다 왔그나. 고마워. 정말 잘했어. 다행이야."
너트는 메어리를 쳐다보며 찌지 울음소리를 냈다.
"디콘이 있었음년 좋겠다. 네가 뭐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있게 말이야. 별닌, 코
린의 병이 빨리 나아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메어리는 밤하늘 별들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을 보벼 기도했다.
메어리는 매일매일 코린에게 편지를 썼다.코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비밀
의 정원에 가는 것만큼이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 되었다. 메어리는 하얀 종이
에 한줄 한줄 정성 들여 편지를 썼다.
<코린, 메드로크 무인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해. 비밀의 정원에 가려면 바
깥 공기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니까. 하지만 밤에는 안 돼. 곡기가 차가워서 감
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말야. 그리고 바람이 불 때도 안 되고.......>
메어리는 편지를 너트의 꼬리에 묶어 코린의 방으로 보냈다.
코린은 하루 종일 메어리의 편지를 기다라고 있다가 너트의 소리가 들려오면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메어리의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서 메어리의 방으로 보
냈다.
8. 클레이븐 씨의 편지
메어리는 잠에서 깨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하늘은 높고 맑게 개어 있었다. 작은 뭉게구름이 새처럼 듬성듬성 떠 있었다.
메어리는 정원에서 들려오는 여러가지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와,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벌들이 붕붕거리는 소리,
상쾌한 바ㄹ소리......."
메어리는 줄넘기를 가지고 정원으로 나갔다. 패티도 붕붕거리는 벌을 쫓으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비밀의 정원에 가보자, 패티."
메어리는 줄넘기를 하며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정원의 문을 돌리자 안에서
여우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캡틴의 울음소리야. 디콘도 와 있어."
디콘은 캡틴과 한께 정원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디콘은 메어리를 보자 활짝 웃었다.
"어때? 편지는 성공했니?"
"응, 너트와 쉘 덕분이야. 아, 잠깐 기다려봐. 보여줄 게 있어."
메어리는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종이 쪽지 하나를 꺼냈다. 그갓은 코린이 메
어리에게 보낸 편지였다.
"디콘, 이걸 봐. 코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지를 써본 거래."
코린의 편지 글씨는 비툴비툴했다. 그래도 메어리는 삐툴삐툴한 코린의 편지
가 좋았다.
"코린을 정원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메드로크 부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아
저씨가 코린을 메드로크 부인에게 부탁하고 가셔서 그렇대."
"그럼 클레이븐 씨가 허락을 하시면 정원으로 나올 수 있는 거야?"
메어리의 얼굴에 갑자기 확 웃음이 퍼졌다.
"아! 좋은 생각이 났어.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는 거야. 정원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클레이븐 씨에게 편지를? 네가?
"아니, 코린이. 코린에게 편지를 쓰라고 해야겠어."
메어리는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쉘의 꼬리에 묶어 코린의 방
으로 보냈다.
코린은 침대에 누워 벽난로를 쳐다보고 있다가 쉘이 쪼르르르 나오자 침대 아
래로 팔을 내렸다.
"왔구나, 쉘. 자, 이리로 올라와."
쉘은 코린의 팔을 타고 친대 위로 올라왔다.
"이거 먹어. 내가 너 주려고 모아둔 거야."
코린은 침대 머리맡에 있던 비스켓을 집어 쉘에게 주었다. 그리고 쉘의 꼬리
에 묶인 편지를 풀었다.
<코린, 너희 아빠에게 편지를 써.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이야. 그럼 내가 편
지를 붙여줄 테니까. 쉘의 꼬리에 묶어서 보내.>
"아빠에게 편지를? 그래, 아빠의 말이라면 메드로크 부인도 꼼짝 못할 거야."
코린은 침대에 팔꿈치를 괴고 엎드려 아빠에게 모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처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린은 정성을 들여
한자 한자를 써 내려갔다.
"부탁한다, 쉘."
코린이 쉘의 꼬리에 편지를 묶어 주자, 쉘은 비스켓 조각을 물고 벽난로 속으
로 들어갔다.
메어리는 편지를 가지고 온 쉘을 보자 얼른 꼬리에서 편지를 풀어냈다. 코린
이 아빠에게 모낼 편지를 적어 보낸 것이다.
"됐어. 이젠 이 편지를 부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마르사한테 봉투와 우표를
얻어야지."
메어리는 마르사가 가져다 준 봉투와 우표로 코린의 편지를 봉했다.
"그런데 주소를 모르잖아.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메드로크 부인밖에 없는데."
메어리는 태연한 척 메드로크 부인이 있는 주방으로 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하인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메드로크, 나 양말이 없어. 마르사가 알고 있을 텐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혹시 마르사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정원에 있어요. 벤이 바빠서 마르사가 대신 화초에 물을 주고 있어요."
메어리는 주방을 나가는 척하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클레이븐 아저씨가 있는 곳은 어디야? 나 책을 좀 사다 달라고 하고 싶은데."
"주인님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실 시간이 없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딱 잘라 말.했다.
"꼭 일고 싶은 책이라서 그래. 맥코이 선생님도 그 책이 좋다고 했단 말이야."
메드로크 부인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이번 한 번만이예요. 아셨죠?"
메드로크 부인은 마지 못해 클레이븐 씨가 있는 곳의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메어리는 기뻐서 계단의 난간을 타고 쭈욱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때 뒤에서
메드로크 부인이 불,ㄴ,ㄴ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호텔 이름이 잘못됐어요. 런던 호텔이에요."
메어리는 메드로크 부인을 뒤돌아보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히고 말
았다.
"아이쿠!"
"그러길래 왜 얌전하게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으세요?"
메드로크 부인은 계단 아래로 내려와 메어리를 부축 하다가 메어리의 옆에 떨
어져 있는 편지를 발견했다. 메어리가 벽에 부딪히면서 주머니에 있던 편지가
떨어진 것이다.
"이게 뭐죠? 아치볼드 클레이븐 씨 앞?"
메어리는 얼른 메드로크 부인에게 편지를 빼앗았다.
"내가 말했잖아. 아저씨에게 책 부탁을 하러 편지를 보낸다고 미리 다 써 놨거
든."
메드로크 부인이 여정히 의심스런 표정으로 메어리를 쳐다보자 메어리는 시치
미를 뚝 뗐다.
"정말이야. 화초를 키우는 법에 대한 책인데, 내 정원을 가꿀 때 꼭 필요하단
말이야."
"혹시 또 도련님을 종원으로 데리고 나갈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건
절대로 안 돼요. 제겐 도련님을 지켜 드릴 책임이 있어요. 주인님과 굳게 약속을
했으니까요."
메어리는 뒤돌아서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려내고 메드로크 부인을 보
았다.
"하지만 아저씨가 코린을 저렇게 가둬 놓은 걸 보면 뭐라고 하실까? 기뻐하실
까?"
메드로크 부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건 아가씨 때문이에요. 아가씨가 도련님을 정원으로 끌고 나갔기 때문이라
구요. 도련님은 아가씨를 만,나는 한 병을 고칠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코린을 꼭 가둬 놔야 하는 거야? 코린의 방문을 열어 줘. 그
렇지 않으면 아저씨에게 이를 거야. 메드로크 부인이 나와 코린을 만나지 못하
게 방해하고 있다고 말이야."
"뭐,라고요?"
메드로크 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케어리도 지지 않고 메드로크 부인을 마주보았다. 한참 동안 메어리를 쳐다보
던 메드로크 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좋아요. 도련님의 방문을 열어 드리지요. 하지만 다른 곳에 데리고 나갈 생각
은 하지 마세요."
메드로크 부인이 코린의 방문을 열어 주자 메어리는 코린의 핌대로 날려갔다./
"코린!"
코린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코린은 메어리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메어리? 설마 꿈은 아니겠지?"
코린은 시트에서 손을 빼내 메어리에게 내밀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꿈이 아냐. 메드로크 부인이 문을 열어 줬어."
코린의 얼굴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내가 작은 초록색 잎사귀로 가득한 곳에 서 있었어.
여기저기에 새들의 둥지가 있었어. 새들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아,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
메어리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코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잿빛 눈 가득
행복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 지금이라도 당장 비밀의 정원에 가고 싶어."
메어리는 코리느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돼. 널 데리고 않겠다는 조건으로 이 방문도 열어주었는걸. 메드루
크 부인의 눈이 무섭게 빛나고 있는 한 나갈 수 없어."
코린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번졌다.
"너무 실망하지 마. 네가 아저씨한테 보낸 편지를 내가 가지고 있어. 주소도
알아냈어. 오늘 꼭 이 편지를 부칠게. 아저씨는 네가 종원에 나가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걸 좋아하실 거야."
메어리와 코린은 편지를 부치고 나서 매일 클레이븐 씨의 답장을 기다렸다.
메어리는 코린에게 비밀의 정원에 대힌 여러가지 얘기를 들려 주었다. 울새는
만났던 자리와 정원의 열쇠를 찾게 된 얘기, 그리고 입구를 가르쳐 준 카멜라의
얘기 등.
편지를 부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날 클레이븐ㅆ로부터 답장이 왓다.
"주인님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아가씨가 주인님께 편지를 보냈나요?"
"아니, 코린이 직접 썼어. 아ㅈ니 뭐라고 쓰셨어?"
"주인님은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라고 하셨어요."
메어리는 기뻐서 팔짝 뛰었다.
"정말이야? 그럼 이제 동물 친구들을 만나도 되고, 정원에 나가도 되는 거지?"
"그래요. 대신 주의하셔야 해요. 이번처럼 다시 병에 걸리게 되면 주인님께 말
씀드려서 나가지 못하시도록 하겠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팔짝거리는 메어리의 모습을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가씨가 예의범절을 배우는 건 질색이야. 그런 건 인도에 있을때도 얼마든지
배웠어."
메어리는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 코린에게로 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뒷모습을 보며 끌끌 혀를 찼다.
"코린! 코린! 드디어 아저씨한테서 편지가 왔어. 메드로크 부인이 정워ㅓ에 나
가도 된대."
"정말?"
코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외쳤다. 그러나 코리느이 얼굴은 금세 시들해
졌다.
"편지를 쓴 건 난데, 어째서 아빠는 내게 답장을 보내시지 않은 걸까? 역시 아
빠는 날 사랑하지 않으셔."
메어리가 고개를 힘차게 흔들었다.
"아냐. 그렇지 안항. 네가 걱정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편지를 보내지도 않으
셨을 거야."
그럴까?"
코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메어리는 눈을 크게 떠 보이며 구ㅡ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마나 잘된 일이이? 이제부터는 메드로크 부인 신경쓰지 않고도 얼마
든지 나갈 수 있잖아. 우리 셋이 함께 비밀의 정원에 가는 거야. 아, 좋은 생각
이 있어."
"뭔데?"
메어리는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씨익 웃었다.
"혹시라도 비밀의 정원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우
리가 정원에 나갈 때는 아무도 정원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도록 말이야. 넌 사람
들의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하니까. 어때, 좋은 생각이지?"
"그래, 그럼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비밀의 정원애 갈 수 있겠다."
메어리는 디콘과 함께 코린을 정원으로 데려갈 계획을 짰다.
"시간은 내일 아침으로 하는 거야. 내가 다시 그 바퀴위자를 가지고 올게. 벤
할아버지가 다시는 바퀴가 빠짖 않도록 바퀴의 나사를 조여줬어."
코린은 메드로크 부인을 불러 말했다.
"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게 싫으니까, 내가 정원에 있을 때는 아무도 정원 근
처에 오지 않도록 해줘."
셋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다음날이면 코린도 비밀의 정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
9. 비밀 화원의 새로운 손님
다음날 아침 메어리와 디콘은 코린을 바퀴의자에 앉혀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
에는 세 사람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코린은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파란 하늘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단 말이지?"
코린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셋은 그래도 비밀스러운 설레임을 떨치고 싶지 않
았다. 그래서 계획해 두었던 코스를 따랐다.
"이쪽으로 가면 우리가 말했던 초목들이 우거진 곳이 있어."
코린은 길게 자란 풀들이 얼굴을 스치며 간지럽히자 까르르 웃어댔다. 초목이
우거진 숲을 빠져나오자 코린이 빠졌던 년못이 나왔다.
"코린 네가 저기에 빠졌을 땐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메어리의 말에 코린은 몸서리를 쳤다.
"나도 놀랐어. 어찌나 물이 차던지, 그곳에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는 줄 알
았다구."
셋은 담쟁이 덩굴이 뒤덮인 벽을 따라 걸었다.
"이곳은 내 산책길이야. 난 여기를 지나면서 줄넘기를 해. 이 길이 바로 비밀
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야."
"여기?"
코린은 무심결에 외치고 덜굴 사이를 열심히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걸. 정말로 이 덩굴 사이에 문이 숨겨져 있단 말이지?"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어. 봐, 저기가 울새가 ㅇ아소 흙을 파고 있던
곳이야."
메어리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 밑의 솟아오른 흙더미를 가리켰다. 바퀴의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담 위에 울새가 앉아서 나랑 얘기를 나눴어."
메어리는 입을 다물고 웃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코린은 더욱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응?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가르쳐 줘."
그러자 옆에 잇던 디콘이 하하하 웃었다. 마치 메어리와 코린의 실라이가 재
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사실은 말이지. 메어리 내가 말해 줘도 돼지?"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였다.그러나 디콘은 계속 웃으며 코린에
게 말.했다.
"저 채소들은 메어리가 널 위해서 키우는 거야. 네가 싱싱한 채소를 먹고 얼른
건강해지라고 말이야."
코린의 얼굴에 붉은 빛이 돌았다.
"날 위해서라고? 날 위해서 메어리가 이 채소밭을 가꾸고 있는 거야?"
"응, 널 위해서야. 그러니까 넌 빨리 건강해져야 해."
코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ㄱ ㅡ날 오후는 코린뿐만 아니라 메어리와 디콘에게도 행복한 하루였다. 순간
순간마다 새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이 웃어서 볼이 당길 정도야. 모든게 즐겁고 재미 있어. 난 내일도 올
거야. 그리고 모레도, 또 그다음날도 올거야."
코린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자 메어리가 힘주머 말했다.
"그래, 너도 다른 사람과 맡찬가지로 걷기도 하고 흙을 파일굴 수도 있어."
걷는다구? 흙도 일구고?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
디콘도 주먹을 꼭 쥐며 소리 높여 말했다.
"분명히 걸을 수 있을 거야. 네게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리가 았잖아.
우리가 널 도와줄게."
코린은 바퀴의자 밑의 가느다란 다리를 바라보았다.
"내 다리도 특별히 나쁜 곳은 없어. 하지만 너무나 가늘어 힘을 쓸 수가 없어.
일어서려고 해도 멀리서 금방 주저앉고 말야."
메어리와 디콘은 한숨을 휴우 하고 내쉬었다. 코리느이 다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걷는 연슴을 하면 꼭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메어리와 디콘은 코린의 손을 꼬옥 잡았다.
10. 카멜라의 이야기
메어리, 디콘, 코린 세 사람에게는 매일매일 비밀의 정원에ㅐ 가는 일이 즐거
운 일과가 되었다.
코린은 정원 안에 있을 때는 편상실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보였다. 이 아이가
그렇게 짜증을 많이 내고, 베개를 쥐어뜯고, 울부짖으며 신경질을 부리던 아이라
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날 맨 처음 정원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던 게 누구야?"
코린은 몸을 등받이에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햇볕을 받으면서 물었다.
"응, 그건 카멜라야. 정원으로 데려가면 걸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카멜라가 말
했어."
"정말?"
코린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
"정말이야. 카맬라는 너의 엄마와도 친했던 것 같았어."
"엄아 사진도 카멜라가 보여 줬던 거지? 우리 엄마는 어떤 분이셨을까? 난 엄
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디콘은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돌리고 있던 나뭇가지로 소리나게 땅을 쳤다.
"좋은 생각이 있어. 클레이븐 씨 부인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방법 말야."
코린과 메어리가 디콘을 쳐다보았다.
"카멜라에게 가서 물어 보는 거야. 카멜라는 많은 걸 알고 있잖아. 게다가 코
린의 엄마와 친했다면서?"
셋은 들판을 지나 늪지에 있는 카멜라의 오두막으로 갔다.
카멜라는 늪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들판에 앉아 약초를 캐고 있었다.
"메어ㅗ리! 디콘!"
메어리와 디콘이 오두막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자 카멜라가 먼저 둘을 불
렀다.
카멜아의 어머니는 이리저리 점을 치며 돌아다니느 집시였다. 가족 이라곤 카
멜라 하나뿐이었다. 카멜라의 어머니는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마을에서 사람들
에게 많은 멸시를 당하고 굶주림과 병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카
멜라의 어머니는 이 들판을 지나던 중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쓰러지고 말았
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요."
카멜라가 아무리 울먹이며 불러도 어머니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릴리아가 발견하게 되었다.
카멜라의 어머니가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본 것은 따뜻함과 자애심이 가득한
커다란 눈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코리늬 엄마, 릴리아였다.
"자, 내 손을 잡아요."
릴리아가 손을 내밀었지만 선뜻 손을 뻗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받
았던 차가운 냉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필요 없어요!"
카멜라의 어머니는 릴리아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런데도 릴리아는 카멜라
의 어머니를 설득해 마차에 태우고 클레이븐 ㅆ의 저택으로 갔다. 카멜라와 그
녀의 어머니는 릴리아의 간호를 받으며 저택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ㄴ의 어머니
는 워.낙의 깊은 병이 든 카멜라의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숩을 거두고 말
았다.
릴리아는 숨을 거둔 카멜라 어머니의 손을 잡고 통곡을 했다. 그 후로 카멜라
는 릴리아의 잔심부름을 하며 저택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메어리의 엄마를 알게 되엇다. 메어리의 엄마는 릴리아의 오빠인 레녹
스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카멜라와 메어리의 엄마, 그리고 릴리아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무척 사이가 좋았다. 세 사람은 마치 친 자매 같았다.
카멜라의 얼굴에는 조용한 미소가 떠올라 잇었다.
"릴리아는 그 정원을 무척 사랑했어. 정원에서 장미꽃들과 어울려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지. 정원에 있을 때의 리리아는 장미꽃보다 더 화사해 보였
어."
카멜라는 코리느이 빛나는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릴리아는 아주 건강했었단다. 넌 릴리아를 닮았으니까,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12.요술의 힘
다음날 아침에도 세 사람은 비밀의 정원에 갔다.
코린은 다른 날보다 유나히 들떠 보였다. 코린은 메어리와 디콘을 둥글게 모
아놓고 말했다.
"난 어젯밤 잠도 잘자지 못했어. 새로운 생각을 해냈기 때문이야. 너희들도 이
말을 들으면 놀랄 거야."
"뭔데?"
메어리와 디콘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찼다.
"그건, 이 세상엔 요술의 힘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거야. 단지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모르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지?"
디콘은 코린의 흥미로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음.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랄 때, 계속 그 일이 일어난다고 외우는 거야. 그러
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그러자 메어리가 ,소리 높여 말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인도에서 엄마가 해 준 말인데, 어떤 승려는
같은 말을 천 번이나 되풀이해서 외운대."
디콘은 동그란 눈을 재미있다는 듯이 깜박였다. 디콘의 어깨에는 너트와 쉘이
올라타 있었고 가슴에 안긴 새끼양은 기분이 좋은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난 이제부터 매일 이렇게 되풀이해서 외울 거야."
코린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 듯이 말했다.
"난 요술의 힘을 믿는다. 내 속에는 요술의 힘이 있다. 요술이 나를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코린은 주문을 마치고 메어리와 디콘을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매일 그렇게 말해 줘. 그럼 난 혼 자 외우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질
거야."
"응 약속할게. 매일매일 외울거야."
메어리와 디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실험해 보자. 날 부축해 줘. 저기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자."
셋은 배꽃 나무 아래 둥글게 모여 앉았고 너트와 쉘, 새끼양도 세 사람 사이
에 끼여 앉았다.
"자, 내가 주문을 외울게."
코린은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메어리와 디콘은 숨을 죽이고 코린의 모습
을 지켜보았다. 코린은 숨을 한본 크게 들이쉬고 주문을 외었다.
"살아 있는 것은 요술의 힘, 강하게 되는 것은 요술의 힘, 요술은 내 속에 있
다. 내 속에, 내 속에. 요술의 힘이여, 내게 힘을 달라."
코린은 노래를 부르 듯 주문에 가락을 붙여 와웠다.
메오리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코린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다. 코린은 같은
말을 몇번씩 되풀이했다.
담ㄴ장 위를 날아다니던 검댕이와, 둥 지에 있던 울새와 울새의 여자친구도
코린의 주위에 몰려 들었다.
"까악까아."
검댕이가 탁한 소리로 울자 디콘은 입에 손/가락을 대ㅑ며 검댕이를 쳐다보았
다.
검댕이는 울음소리를 멈추고 메어리의 어깨에 얌전히 앉았다. 코린은 한참 후
애 주문을 멈추었다.
"이번엔 정원을 돌아보자."
메어리와 디콘은 모리능ㄴ 일으켜 세웠다. 코린은 둘의 부축을 받으며 한발짝
한발짝을 땅에서 땠다.
"요술의 힘이 나를 강하게 한다. 난 걸을 수 있다."
코린은 계속 주문을 중얼거렸다. 콜ㄴ이 중심을 잃고 비툴거리자 디콘이 코린
의 팔을 힘껏 밥아 주었다.
"그래, 넌 할 수 있어. 넌 건강해."
메어ㅗ리도 코린의 왼쪽 팔을 부축해 주며 힘주어 말했다.
코린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몇번이나 도중에 쉬기도 했지만 걷는 것
을 그만 두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조그만 더 걸으면 돼."
메오리와 디콘은 코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코린은 결굴 자신의 발로
정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해냈어! 처음으로 걸어 본 거야. 요술의 힘이 날 걷게 해 ㅈ어!"
코린은 처음에 앉아 있던 배꽃 나무 밑에 도착하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메
어ㅗ리와 디콘도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성공이야! 굉장해, 코린."
코린은 배꽃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정원을 바라보았다.
"다음엔 꼭 부축을 받지 않고도 헌자서 걸을 거야. 혼자서 이러나 이 정원을
걸을 거야."
15.홉킨스의 진실
메어리는 비밀의 정우너에 모인 코린과 디콘에게 서재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이야길,ㄹ 들려주었다.
"저택이 홉킨스라는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대. 아저씨가 메드로크 부인과 말하
는 걸 들ㅇ었어."
"저택이?"
콜;ㄴ의 몸은 꼿꼿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저택이 팔렸다구? 아니야, 거짓말일 거야!"
코린은 감자기 고개를 마구 흔들며 소리쳤다.
"벤을 불러와! 벰에게 물어봐야겠어."
디콘이 벤을 불러 왔다.
"벤, 이 저택이 헙킨슨 이라는 자의 선에 넘어간게 사실이야?"
코린은 벤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벤의 주름진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
다.
:사실입니다. 저택도 미르스웨트 정원도 모두 홉킨스의 손에 넘ㄹ어가게 되었
답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야 메드로크 부인에게 들었습니다."
코린의 얼굴이 하얗게 됐다.
"홉킨스란 자가 대체 누구야? 응 ? 어서 말해 봐!"
"옛날에 이 저택에서 살았던 하닝입니다. 불쌍한 사람.이죠."
디콘이 나섯 물었다.
"어째서요? 정원지기 아저씨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홉킨스는 저택의 돈을 가
로채서 쫓겨난 거라고 하던데."
벤 할아버지는 무서운 얼굴로 디콘을 쳐다보았다.
"아냐, 그건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사람들이 아무리 홉킨스르 이러쿵
저러쿵 해도 난 홉킨스의 억울함을 안다."
벤 할아버지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이 더욱 깊게 파였다.
"난 홈킨스가 마님에게 하는 얘기를 들엇지. 아마 마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해
였을 거야. 그 해는 추위가 오랬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농사가 흉작이 되었어.
마님은 토지 대금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지. 그래서 마
님은 홉킨스에게 사람들에게 대금을 받을 때까지 장부상으로는 지불한 것으로
해주자고 하셨던 거야."
메어ㅗ리는 안타까운 소리를 터트렸다.
"그 장부를 기록한 사람이 홉킨 스였구요?"
벤 할아버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마님이 돌아가신 후에 일이 벌어진 거야. 주인님께서
장부와 돈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차렸거든."
메어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울상을 지엇다.
"아주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아저씨에게 얘기해 주셨을 텐데. 아, 불쌍한 홉킨
스."
"험킨스는 자신의 결백을 증먕하지도 못한 채, 이곳을 떠나고 말았지. 토지대
금을 횡령한 것으로 오해를 받고 말이야."
메어리는 가슴이 아팠다. 그 일로 행복까지 무참히 깨져 버린 카멜라가 생각
났기 때문이다.
"그래, 카멜라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 카멜라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
줘야지."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정원을 달려 나갔다.
"메어리! 메어리, 어딜 가는 거야?"
코린과 디콘이 소리쳐 불러도 메어리는 멈춰 서지 않았다.
"잠깐만! 다녀올 데가 있어."
메어리는 홉킨스의 얘기를 하며 괴로워하던 카메라를 생각했다. 홉킨스의 결
백을 빨리 카멜라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카멜라! 카멜라!"
메어리는 오두막집 낭으로 뛰오 둘어갔다. 카멜라는 카드로 점을 치고 있었다.
얼굴이 무척 수척해 보였다.
:홉킨스는 곧 이곳으로 올 거야. 점에 그렇게 나오하 있어."
"카멜라, 홉킨스는 죄가 없어요. 저택의 돈을 빼돌린 게 아니었어요. 아저씨는
모든 걸 오해하신 거예요."
메어리의 말으 ㄹ들은 카멜라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역시 홉킨스는 죄가 없었어. 아, 다행이야. 하지마......."
카멜라의 표정이 다시 어두우ㅠㅓ졌다.
"홉킨스가 미스르스웨트 정원을 차지해 린다면....... 아, 릴리아가 얼마나 슬펴
할까? 그리고 또 너희들은 어떻게 되는 ㄱ서지?"
메어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메어니는 디콘이나 코린과도 헤
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또 다지 예전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ㅈ;ㅣ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16.저택에 찾아온 봄
홉킨스는 미스르스웨트의 정원에 도착하자 맨 먼저 늪지에 있는 카멜라의 오
두ㅁㄱ을 찾았다.
들판은 10년전과 멸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금,작화나 히드꼿이 흐드러지게 피
어 있고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코끝을 간지럽혔다.
홉킨스는 카멜라의 오두막집 앞에서 말을 세웠다. 저만치에 카멜라의 모습이
보였다. 카멜라는 약초를 캐고 있었다.
"카멜라........ 카멜라!"
홉킨스는 반가움으로 목이 메었다.
카멜라는 약초를 캐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카멜라의 눈이 놀라움
과 기쁨으로 크게 벌어졌다.
"홉킨스? 홉킨스!"
카멜라는 홉킨스에게 달려갔다. 홉킴스도 말에서 내려 카멜라에게로 달려갔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흐렬ㅆ다.
"날 기다려 줘서 고마워. 생각보다 너무 늦어 버렸어."
홉킨스의 목소리에는 카멜라를 향한 사랑이 담뿍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카멜
라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야? 이유가 뭐지? 카멜라는 10년 동안이나 날 기
다린 게 아니었어?"
카멜라는 누믈 자국이 묻어 있는 눈으로 홉킨스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저택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돌아오신 거예요. 난 당신이
부자가 되어 올아오는 걸 원치 않았어요. 차라리 당신이 가난하여도 날 빨리 맞
으러 와 주었다면 그게 훨씬 기뻤을 뻔 했어요."
"죄도 없는 날 누명을 씌워 쫓아낸 건 클레이븐이야. 그 사람 때문에 카멜라와
나느 10년 동안 떨어져 살았어."
홉킨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카멜라는 얼굴을 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릴리아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한시도 그 분 은혜를 잊은 적이 없어
요."
카멜라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저택을 다시 돌려 주세요. 그 저택은 우리보다 클레이븐 가족에게 더 필요
해요. 릴리아도 그걸 바랄 거예요."
"카멜라."
홉킨스는 눈물을 글써이는 카멜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메오ㅓ리와 디콘은 비밀의 정원에서 코린의 걷는 연습을 도와주고 있었다.
"자, 이제 혼자서 걷는 거야."
디콘은 부축해 주던 코린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코린은 몸의 중심을 잃
고 비틀거렸다.
"어어, 조심해."
디콘은 콜니의 몸을 받쳐 주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팔을 놓았다.
"할 수 있어. 코 린! 할 수 있어! 넌 요술의 힘을 믿잖아."
메어리는 주먹을 꼭 쥐고 외쳤다. 코린은 입술을 깨물며 다리에 힘을 모았다.
"난 요술의 힘을 믿는다. 내 속에는 요술의 힘이 있다. 난 걸을 수 있다."
코린은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메어리와 디콘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코린은 열 발짝 정도를 혼자서 걸었
다. 코리느이 얼굴은 발갛게 물들었고 커다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메어리! 디콘! 날 봤지? 혼자서 걸었어."
"그래! 굉장해, 코린!"
메오리와 디콘은 팔짝팔짝 뛰었다.
한편 클레이븐 씨는 저택의 서재에서 슬픔에 잠겨 있었다.
클레이븐씨는 주머니에서 팬던트를 꺼내 뚜꺼을 열었다. 그 속에는 릴리아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릴리아, 미안하오. 이 저택을 처분하게 되었소. 당신이 그렇게도 아끼던 이 저
택을 말이오."
클레이븐 괴로운 듯 머리를 양선으로 감싸쥐었다. 클레이븐 씨의 머릿속에는
콜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코린이 태어났을 때 의사들은 콜닝이 2, 3일 밖에 살지 못할거라고 했다.
그러나 코린은 일주일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코린이 잠들어 있을 때 외에는 그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다.
클레이븐 씨가 알고 있는 코린은 신경질이 심하고, 짜증을 많이 내며, 몸이 매
우 약한 환자라는 것뿐이었다.
클레이븐 씨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때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이븐 씨, 저 홉키느입니나."
"홉킨스?"
클레이븐 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홉킨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ㄴ다."
"그게 뭔가?"
홉킨스는 클레이븐 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 클레이븐 씨의 돈을 훔치치 않았습니다. 벤이 바로 그 증인 입니다."
그러자 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 그때 홉킨스와 마님의 대화를 들었습니다ㅓ. 마닌은 간난에시달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위헤 장부에 이름을 기입해 준 것입니다."
벤은 그때의 상황을 자ㅅ; 설명했다.
"그런 일이, 그게 사실인가?"
클레이븐 씨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릴리아가 그랬으리라고는 생각ㅈ;도 못했네. 난 단지 자네가 돈을 빼돌린 것
으로만 알고.......자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클레이븐 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여기네 온 이유는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 정원을 보고 싶었습니다.마님께서
아끼셨던 정원 말입니다."
"내게 그 정원을 보여 달라고? 난 못 가겠으니 벤을 데리고 가게."
클레이븐 씨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홉킨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전 클레이븐 씨와 함께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이 저택의 주인은 클레이븐 씨
니까요."
"그곳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네. 내가 그 정원의 열쇠를 땅에 파묻어 버렸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정원의 입구라도 보고 싶군요."
하는 수 없이 클레이븐 씨는 홉킨스를 데리고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덩굴을
헤치던 클레이븐 씨는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안에서 소리가 들리고 있어. 설마 누가 안에......."
클레이븐 씨는 입구의 손잡이를 잠아 당겨 보았다. 문은 자연스럽게 열렸다.
"아니!"
클레이븐 씨는 잣;ㅣ의 눈을 의심했다. 정원의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우뚝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너,너는."
클레이븐 씨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빠......."
"코린! 네가 정말 코린이냐?"
코린은 클레이븐 씨 앞으로 걸어와 손을 내밀어 아버지의 팔을 만졌다.
"아빠 저 코린이에요. 전 이제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요. 기쁘지 않으세요? 전
건강해졌다구요."
클레이븐
씨는 꼿꼿이 서 있는 코린의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서 있을 뿐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클레이븐 씨는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날 정원 안으로 데려가 주지 않겠니?"
정원 안에는 꽃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장미꽃들이 덩굴을 뻗고
이름답게 활짝 피어 있었다. 나무잎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아, 이 정원은 이제 영여 못 쓰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클레이븐 씨는 우두커니 서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메어리와 디콘이 정원을 살려 놓았어요."
코린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아아, 이 정원을 ."
클레이븐 씨의 눈은 기쁨과 놀라움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콜ㄴ은 바퀴의자를 조만큼 밀어 버렸다.
"아버지, 저랑 함께 집까지 걸어가요."
코린과 클레이븐 씨가 앞장을 서자 메어리와 디콘이 그 뒤를 따랐다. 벤은 정
원에 서 있다가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는 저택으로 뛰어가 사
람들에게 외쳤다.
"어서들 나오하서 이 모습을 보시오! 저기 잔디 위를 걸어오는 두 사람을 말
이오!"
메드로크 부인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칸성을 터뜨렸다.
"도련님! 도련님께서!"
하인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달려갔다.
"세상에, 저 분은 도련님 아냐?"
모두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잔디 위를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은 클레이븐 씨와 코린이었다.
코린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웃음을 머금은 채 저택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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