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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막스 폰 데어 그륀 ] 악어클럽

by Casey,Riley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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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동화집 악어클럽
막스 폰 데어 그륀 

    이 책을 읽는 친구들에게 
    내가 악어 클럽의 꼬마들에 관한  이 이야기를 쓴 것은 나 자신이 바로 바
 퀴의자(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열살 짜리 아들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도 이웃집 아이들이 와서  축구장이나 미니 골프장으로 데려가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  그저 맘내키는데로 다른  아이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도와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어린 소년에게는 무척
 이나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혹시 여러분은  이웃에서 신체 장애자인 친구들을 
 만나게되면, 누구라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 친구들을 친
 절하게 대하고 힘써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엄청난 도움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으니까요.
    막스 폰 데어 그륀
    내 아들  프랑크에게
    "무섭지? 이 겁쟁이야!"
    대장인 올라프가 소리치자 다른 악어 패들이 입을 모아 합창했다
    "무섭지?무섭지!"
    자기 오빠 올라프보다 한  살이 적은 열세살 짜리 마리아만이 덩달아 소리
 치지 않았다.그애는 하네스가  너무 걱정이 돼서 아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버렸다. 아홉 명의  악어 클럽 회원들은 수직으로 10미터 높이의  지붕에 걸쳐
 서 있는 사다리  맡에 반원형으로 둘러서서, 얼굴아  주근깨투성이라서 은하수
 라는 별명을 가진 하네스가 담력 시험을 치르기 위해 천천히 사다리르 기어오
 르는 것을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악어 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이 시
 험을 통과해야 했다.
    하네스는 겁을 먹고 있었다. 얼굴 표정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눈
 이 빙빙 돌고 어지러웠다. 그러나 열 살짜리  소년인 하네스는 이미 이 시험을 
 치른 다른 애들 못지않게 지기도  용기가 있다는 걸 나이 많은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하네스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녹슨 소방용 사다리에 매달린 채 감히 아래
 쪽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려와. 넌 안될꺼야, 이 겁쟁이야!"
    올라프가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애들이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네스는 소방용 사다리의 위쪽을 더듬었다. 의로 
 올라 갈수록  그 사다리는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사다리로  고정시키는 못이 
 군데군데 벽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사다리의 디딤판도  몇 개는 너무 삭아
 서 밟으면 꺼져 버릴 지경이었다, 하네스는  감히 아래쪽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자기목표만을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하네스는 지붕에 도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래쪽을 내려다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서 재빨리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10미터란 까마득한 
 높이였다. 겁이 나서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그  애는 턱이 아플 정도로 이빨
 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담력 시험의 첫  번째 관문밖에 통과하지 못한 셈이었다. 
 번째 관문은 사다리에서 지붕위로 기어올라가  용마루(지붕 위의 마루)에서 두 
 손을 치켜들고 "악어!"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야 다시 아래
 로 내려올 수 있었다.
    "자, 계속해! 지붕위로 올라가!"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겁내지마, 은하수야." 하고 프랑크도 소리쳤다.
    마리아가 자기 오빠한테 나직하게 말했다.
    "내려오라고 해. 저러다가 떨어지겠어."
    그러나 하네스는 이미  사다리에서 추녀의 물받이를 넘어 지붕으로 올라간 
 뒤, 배를 깔고 엎드려 천천히 용마루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두 손으로 위
 쪽의 기왓장을 움켜쥐고는 발 디딜 데를 찾아내면  두 발로 몸을 받쳤다. 그야
 말로 굼벵이 걸음이었다. 한 뼘씩 한 뼘씩 앞으로 나갔다. 힘겹고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기왓장이 부스러지고 비바람에 삭아서 지붕을 기어올라가는 생각하는 순간 손 
 밑에서 기왓장하나가 빠져나가 마당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면 하네스는 겁에 지려 꼼짝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드디어 용마루까지 올라갔다.
    하네스는 숨을 헐떡거렸다. 그 애는 잠시 동안 배를 깔고 누워 쉰 다음, 조
 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두 손을 쳐들고 소리쳤다. 
    "악어! 악어! 난 해냈어!"
    아래쪽 마당에 있는 악어들이 맞받아 소리쳤다.
    "합격이다. 만세! 은하수야, 내려와! 넌 합격이야!"
    그리고 올라프가 또 이렇게 외쳤다,
    "좋았어. 장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그의 느이동생은 다시 나직하게 말했다.
    "제 앤 틀림없이 떨어질 거야."
    "이 바보 같은 계집애가! 입닥쳐!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올라프가 기분이 상해서 쏘아붙였다.
    그러자 프랑크가 마리아에게 말했다.
    "넌 저길 기어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었지. 올라프가 네 오빠이기 때문에 넌 
 그저 우리 옆에 있어도 되는 거야."
    지금 그들이 서  있는 낡은 벽돌 공장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앵무새 주택 
 단지로부터 약 2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그곳은  몇 년 전부터 버려져 있었고 
 ---물론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판은 있었지만 ---때때로 애들의 놀이
 터가 되었다,
    그 벽돌공장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낡은  사무실 건물의  유리창들을 이미 
 오래전에 깨져 보렸고 벽들은 허물어지고 지붕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
 고 폭풍이나 심한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기왓장들이 빠져 나와 땅바닥에 떨
 어졌다. 벽돌  공장에서 노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벌써 몇  해 전부터 
 이 건물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슈퍼마켓이 들어설 거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지금가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악어들이  거기서 노는 것은 다른데서 
 적당한 놀이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앞뒤에 있는 녹지대에서는 놀 
 수가 없었고, 길에서 노는  것은 훨씬 위험했다. 그리고 어쩌다 녹지대에서 놀
 려고 하면 이런 호통을 들을 뿐이었다.
    "이놈들, 잔디를 망치는구나... 이건 원, 모조리 망가뜨려 놨구나!"
    앵무새 단지 옆은 조그만 숲과 연결돼 있었는데 그 숲은 '작은 스위스'라고 
 불렸다. 그러나  어디서 그 이름이 유래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애들은 다른 
 어느 곳 보다도 거기서 노는 수가 많았고 나뭇가지와 덤불로 오두막집을 지어 
 놓았다.
    산림 감독관은 그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애들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
 았기 때문에 내쫓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그 클럽에 가입하길 원해서 담력시험을 치러야 할 때면 아이들은 
 언제나 그 벽돌  공장으로 갔다. 담력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아이는 가입이 
 되지 않았다.
    하네스에겐 지붕위로 기어오르는 것이 다시  내려오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왜냐하면 내려올 때는 어디다 발은 디뎌야 할지 볼 수가 없었고 현기증대문에 
 감히 아래를 내려다볼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다.
    두손으로 움켜 쥘 데를 찾아야  할 때면 다시 안심하고 발 디딜 데를 두발
 로 더듬어 찾아서  딛고 있어야 했다. 그건 물론 힘겨운  일이었지만 하네스는 
 배를 깔고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ㅁ러져 내려왔다.
    하네스의 바지 무릎은 찢어진 지 오래였고 스웨터도 팔꿈치께가 쓸려서 해
 져 있었다. 두 손은 온통 긁힌 상처투성이였고 손거락 끝에선 피가 났다. 하네
 스는 언제나 좀 깔보는 듯한  태도를 취했던 악어 클럽 회원들에게 자기가 그 
 클럽에 들어가기에 너무  어리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다는 걸 보란 듯이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해 내야만 했다.
    이제 저 아래  마당에 내려가면 어엿이 그들 축에 낄  것이고, 그러면 이제
 는 누구도 "야, 이 꼬마야 저리 꺼져!" 하고 말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때 갑자
 기 지붕의 아래쪽  3분의 1 지점에서 하네스가 발을  닫고 있던 기와 한 장이 
 제자리에서 빠져 나갔다.
    하네스는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왔고,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랐
 지만, 더 이상 몸을 멈출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미끄러 떨어지겠어..."
    하네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몇 장의 기왓장이 떨어져 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지만 악어 클럽 회원들
 은 그 애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너무 놀라서 그저  멍하니 지붕 위
 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기왓장에 맞지 않으려고  몇 발짝씩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마리아는 흥분한 나머지 제 주먹을 깨물었다.  올라프는 입을 벌린 채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그도 한 마디 말이 없었다.
    처마의 물받이에까지 와서야 비로소  하네스는 두 팔로 다시 디딜 곳을 찾
 았고 기왓장을 고정시키는  산자널(지붕 서까래 위에 까는 널판)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마침내 올라프가 소리쳤다.
    "하네스! 꼭 붙잡아. 우리가 도와줄게. 꼭 붙잡아!"
    그러나 불안과  절망에 못 이겨 하네스가  울부짖기 시작하자 악어 패들은 
 후닥닥 뛰어 달아났다. 그걸  볼 수 없는 하네스는 지붕에 뚫린  구멍 속에 얼
 굴을 처박은 채, 있는 힘을 다해 살려 달라고 계속 아우성쳤다.
    하네스는 악어 클럽 회원 가운데 하나가 도와주기 위해 지붕위로 올라오리
 라 기대했다. 물받이도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겁이 났다. 그것도 녹
 이 슬어 몇군데는  못이 빠져 있었다.금방이라도 물받이가  망가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물받이가 몸무게를 얼마나 지탱해 줄  것인지는 시간 문제에 불
 과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당황한 나머지 다른 남자애들의 뒤를 쫓아 갔지만 일단 
 벽돌 공장 밖으로 나오자 도망치는 남자애들을  ㅂ잡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들은 쫓기는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달아났다. 아이들은 개굴창에  숨겨놓았던 
 자전거를 끄집어내어  차례로 올라타고는  앵무새단지를 향해 질주했다.  악어 
 패들은 갑자기 지붕위의 하네스보다 더 겁이 났던 것이다.
    마리아는 소년들의 뒤를 따라 자전거를  달리다가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을 하더니 큰길까지 내처 달려갔다.  그러고는 공중 전화실로 들어가
 서 119를 돌리고는 다급하게 전화기에다 대고 소리쳤다. 
    "빨리 좀 와  주세요... 사다리를 가지고요. 앵무새  단지 옆 벽돌 공장이에
 요... 애가 홈통에 매달려 있어요...그 앤 곧 떨어져요... 빨리 와 주세요!"
    그러고 나서 마리아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큰길로 걸어  나왔을 때 마리아는 하네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벽둘 공장까지는 1킬로미
 터 이상이나  되었고, 하네스가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큰길을  오가는 차량의 
 소음대문에 그 소리가 들릴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공중 전화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 애는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
 다. 그러나  그때 벌써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곧 뒤이어  붉은 색의 
 커다란 소방차가 모퉁이를 돌아  벽돌공장으로 통하는 좁은 길로 사라지는 것
 이 보였다.
    마리아는 자기 자전거를  잡아타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벽돌 공장앞에 
 이르렀을 때 소방대원들은  이미 긴 사다리를 끌러내  놓고 이제 막 소방대원 
 한며이 사다리를 올라가는 참이었다. 
    마리아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덤불  뒤로몸은 숨겼다, 하네스를 위험한 곳
 에 내버리고 도망쳤다는 걸 사람드링 알아챌까봐 겁이 났다.
  ,  그때 마리아는  두 번째 소방재원이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하네
 스를 지붕에서  사다리를 거쳐 마당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이들의 장난처럼 
 여겨졌다.
    하네스는 땅위에 내려져 제다리로  서 있게 된 지가 한참 되는데도 여전히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소방대원 한명이 그애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른 소방대
 원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녀석 혼 좀  나야겠군. 흠씬 맞아야겠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다
 니. 살아 있는 게 다행인 줄 알아!... 나, 참, 기가차서. 네 아빠가 손 좀 봐야겠
 다."
    "하마터면 넌  죽을 뻔했어."  하고 다른 소방대원이  말하는 것도  들었다. 
 "죽었을 거라구.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다니! 도대체 저 지붕위에서 뭘 하
 려고 했지?"
    그때 하네스가 그동안 발을  디디고 있던 처마의 물받이가 부소져 두 동강
 이 났다. 그중 한 조각이 마당위로 털썩  하고 떨어지는 통에 소방대원들도 어
 마 뜨거라 하고 펄쩍 뛰어 물러났다.
    "정말,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 하고 다시 소방대원 한명이 말했다.
    하네스를 지붕에서 끌어내린 소방대원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너 봤지?  넌 지금 죽어  있을지도 몰라.  그런 어처구니 없느  짓을 하다
 니..."
    하네스가 도대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
 다가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안, 소방차 운전수가 말했다.
    "넌 참 운이 좋은 녀석이야...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야...내가  네 
 아빠라면 버릇을 좀 가르치겠다만... 네 아빠도 그러시길 바란다."
    그 벽돌 공장은 가장 가까운 주택과도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벌
 써 몇 명의 호기심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자전거외 모페드(모터
 와 페달을  갖춘 자전거의 일종)를 타고 왔다.
    마리아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숨었던 곳에서  나와,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들 뒤로 갔다.마리아는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다. 그애는 누구라도 
 자기 얼굴을 보면 자기가  이사건의 공범자라는 걸 알아차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소방차가 2,3분만 늦게 왔더라면 하네스에게 어떤 일이 벌
 어졌을 지를 상상하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넌 대체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한 소방대원이 하네스에게 물었다. 그러나 하네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 정말 혼자 있었던 말이냐? 아무도 너랑 함께 있지 않았어?"
    그러나 하네스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 그럼 그만둬라."
    그 소방차의 운전수는 큰 소방차에  태워 단지 안의 그 애 집에 데려다 주
 었다. 그러나 빨간색의 대형 소방차가 하네스네 집 앞에 서고, 두 명의 소방대
 원이 하네스를 길 건너로 데리고 왔을 때  벌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
 연히 창문 밖을 내다보던 하네스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얘진 채 대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자기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 여자는 너무  당황해서 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 보는 것도 잊어버렸다."
    "이  녀석, 좀  알아듣게 타일러야겠습니다."  하고 한  소방대원이 말했다. 
 "'출입금지'라고 씌어있는  곳에는 몰래 들어가면 안된다는  걸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 앤 글씨를 읽을 줄 아나요?"
    하네스의 어머니는 그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하네스를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다.
    "자 그럼," 하고 그 소방대원은 다시 말했다. "  아주머니를 더 이상 붙들어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일이 무사히 끝났으니까요... 운이 좋았죠."
    어머니는 하네스를 부엌으로 데리고 간 뒤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그저 두손을 모으고 이렇게만 말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어... 넌 죽었을지도 몰라."
    하네스가 울음을 터트리자 어머니는 아이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자, 울지 마라... 널 야단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
 어나선 안된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하네스는 담력  시험과 악어클럽의 가입에  관해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저 
 고개를 흔들더니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넌 참 훌륭한 친구들을 사귀었구나.  친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무
 조건 도망치는 알량한 친구들을 말이다. 그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필요
 는 없겠구나."
    하네스의 아버지는 들어오자마자---그는 전차  정거장에서 아는 동네 사람
 으로부터 무슨일이 일어 났는지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우선 자기 아들
 의 뺨을  한 대 갈겨 주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중간에  뛰어들어 이렇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이 애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하세요. 
 운이 나빴으면 무슨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세요."
    기가 죽은 하네스는  부엌에 앉아서 감히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애는 이 순간 아버지가 무엇이라고 해도  다 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눈앞의 화를 모면하는 것이었다.
    "똑똑히 알아 둬, 이  녀석아. 벌로 넌 보름 동안 텔레비젼 보는 걸  금지한
 다."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토끼 한니발과 노는 것도  안 돼.밖에 나가 노는 
 것도 금지다. 보름동안은 용돈도 없어. 또..."
    그만하면 충분해요." 하고 어머니가 소리쳤다.
    "충분하긴 뭐가 충분해!  당신 입으로 우리 도련님 같은 녀석들의  하는 짓
 거리에 대해 불평을 했지  않아. 그 생각을 좀 해봐요...그 녀석들은 항상 숲에
 서 규폐증이 있는  퇴직 광부들 등뒤에다 대고  해수쟁이라고 놀려 화를 돋구
 고, 여자애들을 골려 대고  자전거로 둘러싸는가 하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사
 람들에게 돌을 던지고, 또..."
    "아, 잘 알았어요. 그렇지만 그 애들은 또 다른 짓도 한다구요. 자,  이젠 그 
 정도로 해 두고, 우리 애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아직도 살아 있다고!" 하며 아버지가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애당초 그
 런 일이 생겨서는 안되는 거요. 저 녀석은 떨어질 뻔했어."  
    "그렇지만 전 떨어지진 않았어요. 전 이제 악어 클럽에 가입했어요..."
    아버지에 대해 겁이 없어진 하네스가 소리쳤다.
    "악어 클럽이라,  거 멋진 클럽이구나.그저 어른들을  화나게 하는 것  밖엔 
 다른 재주라곤 없는 녀석들이..."
    아버지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으르렁거렸다.
    "걔들은 모두 멋진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요."하고 하네스가  대답했다. "걔
 들은 또 수영 클럽에도 들어있어요. 걔들이 숲  속에 오두막집을 지은 걸 산림 
 감독관도 아무 말 안 해요."
    "넌 숙제나 해라. 할 말이 많잖니." 라고 말하면서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맥
 주 한 병을 꺼냈다.
    "도대체 그 악어 클럽엔 누구누구가 있니?"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그러니까 올라프라는 애가 대장이고,  그담엔 마리아라고 올라프의 누이동
 생이에요. 그리고 페터하고..."
    "항상 콧구멍을 후비는 그 머리칼이 까만 애 말이지?" 하고  아버지가 물었
 다.
    "그리고 그 빌리라고 있잖아요? 긴 금발 머리를 가진..."
    "그 앤 항상 손톱을 깨물지." 하고 어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앤 별명
 이 토끼라고 하더라...항상 뭘 씹으니까..."
    "전 그런건 잘 몰라요. 그렇지만  수영을 잘해요. 그 앤 시내 수영 대회 자
 기 나이 급에서 벌써 세 번이나 상을 탔어요." 하고 하네스가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그의 아버지가 불만인 듯이 웅얼거렸다.
    "또 오토라는 애도 있어요.  걔는 자전거 위에서 물구나무를 설 수  있어요. 
 그리고 태오는..."
    "저 뒷골목의 빨강머리 말이냐? 언제나 꼬마 여동생을 태우고 다녀야 하는 
 애지? 그래 하네스야, 걘 좋은 애야."
    "있잖아요, 프랑크라는 애도 있어요. 걘 별명이 원숭이예요. 아무데나 잘 기
 어올라가니까요. 그리고  루돌프라는 아주  기똥찬 불란서제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요."
    "걔 아버지는 그런 걸 사줄 수 있을  만큼 돈을 잘 버는 모양이지. 널 지붕
 에서 내려 줬다고 소방서에서 돈을 내놓으라는 청구서나 보내지 않을지..."
    "그럴까요?" 하고 아내가 물었다.
    "소방서에서 공짜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거야. 당신이 오랫동안 아파서 
 가뜩이나 나갈 돈이 많은 판에 말이야."
    "전 집에서 재봉일을 해서 그 돈을 벌겠어요."
    "그런 뜻으로 한 얘긴  아니야. 내얘기는, 다음달엔 내가 천이백 마르크  이
 상은 받지 못한단  말이야. 이제 잔업도 없어졌어.  요즘 회사 사정이 꽤나 안 
 좋아. 흔해 빠진 게 연마공인데..."
    "그렇지만 당신이 설마..."
    어머니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래 난 쫓겨나지는  않아.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그저 지금은 
 힘든 때이니까 우리 도련님께서 또 무슨 엉뚱한 일이나 저지르지 말았으면 하
 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저 녀석은 제  용돈으로 충분히 그 돈을  치르는 수 
 밖에 없어."
    그 앤 제 용돈으로 충분히 그 돈을  낼 수 있을 거예요." 하고 아내가 말했
 다. "매주 받는 5마르크로... 그리고 그  돈을 그냥 내버리는 건 아니에요. 용돈
 으로 한니발의 먹이도 사니까요."
    "새해부턴 집세도 오른다는 거야. 20마르크나."
    "그렇다면 3백 50을 내야 된단 말예요?"
    "그래." 하고는 아버지는 신문을 집어들고 거실로 들어가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부엌에서 나가자마자 한니발이 열린 문을 통해 깡총깡총 뛰어 들
 어왔다. 하네스가 나지막하게  부르자 그 꼬마 토끼는 내뻗은 팔  위로 깡총거
 리며 뛰어올랐다. 하네스는 한니발을 무릎 위에 앉히고 당근 하나를 내밀었다. 
 토끼는 그걸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한니발은 네가 길에만 와도 벌써 네 소리를 알아듣는단다."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곤 개처럼 문을 긁어."
    어머니가 한니발을 쓰다듬었지만 한니발은 아랑곳없이 계속 먹어댔다.
  그잿ㅂ 토끼는 하네스의 할머니가 준 생일  선물이었다. 아버지가 그 꼬마 토
 끼를 위해 커다란  토끼장을 고쳐 주었다. 토끼장은 애들 방에  있었고 이틀마
 다 한 번 씩 하네스가 청소를 해줘야 했다.
    한니발을 계속해서 가둬 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토끼와 노는 것
 을 금지시킨 명령을 취소했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청 금지령은 그대로였다. 그
 래서 하네스는  다음 며칠 동안 창문  밖을 내다보는 일이 많았다.  특히 방에 
 혼자 있을 때는 더 그랬다.
    셋째 날에 하네스는 바퀴의자에  앉은 어린이를 밀고 가는 한 부인을 눈여
 겨보게 되었다. 그 소년은  하네스보다 약간 나이가 더 들어 열두  살쯤 돼 보
 였다. 그애는 머리카락이 갈색이었고 두 다리가 담요로 싸여 있었다.
    다음날 그 부인이 그 소년과 함께 있는  것을 다시 보았을 때, 하네스는 거
 실로 들어가서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한테 그 소년이 어떻게 된 거냐
 고 물어 보았다.
    "왜 나한테 묻니?"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 애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질버 가에 산단다."
    "걘 어떻게 된거예요?하고 하네스는 물었다.
    "걸을 수가 없어. 그래서 언제나  누가 들어 주거나 태워 줘야 해. 그앤 몸
 의 반쪽을 못쓴단다. 세 살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지."
    "굴렀다고 그렇게 될 수가 있나요?"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물론이지. 운이 나쁘면 말이다. 그 당시엔 수술을 해도 벌 수가 없었지. 앞
 으로평샐동안 바퀴의자 신세를 져야 해."
    "그건 정말 너무한데요."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네가 지붕에서 떨어졌다면  너도 그렇게 됐을지 모르지.  누구한테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내일 아침 7시반에  그 애를 데려갈때 잘 좀 봐 두
 렴. 넌 열시에야 수업이 시작되니까."
    다음날 아침, 하네스는  더 자고 싶었지만 질버  가로 갔다. 하네스는 그저 
 어머니가 설명해 준 집의 맞은 편 건물 옆에 서 있었다.
    희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통학용 포드 버스가 문 앞에  멈추었다. 운전수
 가 뒤쪽의 두 짝 문을 열고 양쪽에 부목이  붙은 계단을 땅에다 내렸다. 그 순
 간  그 집 현관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그 부인이 현관문 앞의 계단 옆에 설치
 된 특수 계단으로  바퀴의자를 밀고 보도를 지나 차도로 내려왔다.  버스 운전
 수는 부인을 도와 소년이 탄 바퀴의자를 통학버스 속에 밀어 넣었다.
    하네스는 재빨리 길을 건너 뛰어가서 소리쳤다.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러기엔 넌  너무 힘이 약해." 하고  그 운전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바퀴 
 의자를 가죽끈으로 동여맸다. 차 안에는 벌써 크고  작은 몇 명의 작은 아이들
 이 앉아 있었다. 장애아들은 특수 학교로 실려 갔다.
    하네스는 바퀴의자에 앉아 있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쿠르트야. 넌 은하수 하네스지? 소방대가 지붕에서 끌어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난 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다 알고 있어."
    쿠르트가 대답했다. 그러자 운전수가 문을 닫았고  잠시 후 차는 큰길 쪽으
 로 떠났다.
    "그런데 얘, 넌 집에 가지 않니? 오늘은 수업이 없어?"
    쿠르트의 어머니가 물었다.
    "아녜요. 있어요."
    하네스는 대답하고 그곳을 떠났다. 집에  돌아오자 하네스는 어머니에게 말
 했다.
    "걸을 수 없다니, 참 안됐어요."
    "물론 안됐지. 그 애  엄마한테도.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대 근무를 하기  때
 문에 항상 도와줄 수는 없지. 그래서 쿠르트를  집 안으로 데려갈 땐 운전수가 
 그 애 엄마를 도와줘야 한단다."
    "제가 언제 그 애한테 놀러 가도 될까요?"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물론이지. 네가 그 악어 클럽 애들하고 어울려서 이 동네를 불안하게 만들
 고 또 노인네들을  놀라게 하고 여자 애들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 
 그래. 너한테 진작부터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네가 지붕에 매달려 있을 때 네 
 알량한 친구들은 어디 있었는지 말 좀 해봐라."
    하네스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네스는 그 애들이 부끄러웠다. 그 애는 
 소방서에 연락을 한 것이 마리아라는 걸 알  턱이 없었다. 하네스는 아무 말없
 이 부엌에서 빠져  나왔다. 어머니는 빨랫감을 다림질하기 시작했다. 한니발이 
 그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한니발은 방 소파  위에 뛰어올라가 몸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하네스는 책
 가방을 집어들었다. 텔레비전을 못 보게 된 뒤부터  한 번도 숙제를 밀리는 법
 이 없었다.
    악어 클럽 패들은 자기네  오두막으로 가다가 '작은 스위스'에서 죽은 노루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애들은 노루 주위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죽은 노루를 
 어떻해야 할지  난감했다. 흥분한 페터가  너무 세게 콧구멍을  후볐기 때문에 
 하네스가 소리쳤다.
    "페터야, 제발 좀 그만둬라.  안그러면 저 위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에게  그
 림 엽서나 쓰렴."
    "그러나 누구도 웃지 않았다. 발치의 죽은 노루가 그애들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올라프가 말했다.
    "이건 길에서 차에 치인 걸 누가 여기까지 끌고 온 게 틀림없어."
    "껍질을 벗겨 꼬챙이에 꿰어 구워  먹을 수 있을 텐데..." 하고 마리아가 말
 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하고 페터가  소리쳤다. "우선 그건 맛이 없고, 또 만
 약 우리가 숲 속에서 불을 피우면 누구나 연기를 볼 수 있을 거야."
    "들판으로 가면 되잖아?"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들에선 우리가 금방  눈에 띌걸." 하며 프랑크가 대꾸했다. "대체  누가 이
 렇게 커다란 짐승의 껍질을 벗겨내고 내장을  끄집어낸다지?...난 농부 홀트 캄
 프씨네 집에서 긴급 도살하는걸 봤는데 속이 메슥메슥하더군..."
    "그렇다면 그걸 파묻자."
    마리아가 말했다. 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찌되든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 은 그렇게 되면 그 짐승이 더 이상 여기놓여서 그들을 성가
 시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애들은 삽과  곡괭이 한 자루씩을 가져왔
 다. 오두막집은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애들은 쓰레기더미에서 낡은 의자들과 
 탁자 하나를 가져다 놓았고 어디선가 내버린 물건이 눈에 띄면 그걸 가져왔던 
 것이다. 바닥엔 이끼를 깔아 놓았고 집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너도밤나무 
 둥치엔 심지어 낡은 거울까지 걸려 있었다. (집은 그 나무 둥치 주위에 지어져 
 있었다.) 올라프와 프랑크는 1년 전에 그 너도밤나무 가지에다 비밀 본부를 만
 들었었는데 산림  감독관의 명령에 따라  그걸 다시 철거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독관은 그들을 오두막에서 내쫓았을  것이다. 애들은 노루가 쓰
 러져 있는 곳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숲의 밑바닥 땅은  수많은 잔뿌리들
 로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그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교대로 일을 해도 
 땀을 뻘뻘 흘렸다. 두 시간 후에야 겨우  노루를 파묻을 만한 깊이의 구덩이를 
 팠다. 아이들은 구덩이를 다시  메우고 땅을 밟아서 다졌다. 새로 생긴 불룩한 
 봉분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위에 꽃을 뿌려야 하는데."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넌 참 돌아가도 어지간히 돌았구나." 하고 마리아의 오빠 올라프가 쏘아붙
 였다. "자, 빨리 꽃집에 가서 리본이 달린 화환을 주문하지 그래, 이 멍청한 계
 집애야."
    "어이구, 그냥 너까지 함께 파묻어 버리는 건데." 하고 프랑크가 외쳤다.
    그러자 마리아는 토라져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버렸다.
    하네스는 저녁때 자기 어머니한테  숲 속에서 죽은 노루를 발견해 묻어 주
 었다는 얘기를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하네스가 도대체 어디를 오랫동안 싸
 돌아다녔는지를 알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요담에 또다시 죽은 짐승을 발견하면 산림 감독관에게 신고해야한
 다. 감독관은 자기 짐승들을 모두 알고 있단다. 농부가 자기 짐승들을 모두 알
 고 있듯이 말이야. 그  사람은 노루가 없어져서 무척 궁금하게 생각할꺼야. 그
 리고 그 노루를 먹을 순 없다 해도, 어쨌든 털은 사용할 수 있을 거야...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건 감독관에게 신고하는 게 도리지."
    다음날 애들이 다시 오두막에  앉아 있을 때 하네스는 자기 어머니한테 들
 은 얘기를 악어 클럽 회원들에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저 놀란 듯이 하네
 스를 쳐다보았을 뿐이다. 그 애들은 그런 일을 알지 못했다. 오두막을 짓기 전
 에는 자기들이  사는 커다란 공업도시에 도대체  산림감독관이라는 게 있는지 
 조차 몰랐었다.  산림 감독관이란 시골에만  있는 것이지 집과  공장들이 몰려 
 있고, 그저  좀 커다란 공원의 숲밖에  없는 루르 지방에는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이라도 산림 감독관에게 신고 할 수 있지." 하고 모자를 쓴 테오가 말
 했다. 그 애는 아무리 더워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그 사람이 우릴 막 야단칠 거야."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노루를 파내지 않고서도 노루가 어디 묻혀 있
 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꺼야." 하고 테오가 대답했다.
    "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이젠 안  돼. 모든 
 걸 다 잊어버리자. 다음 번에나 그렇게 하자고."
    "아마 상을 받을 지도 몰라." 하고 페터가 끼어들었다.
    프랑크는 짓궂게 대꾸했다.
    "그래, 너 쓰라고 자동 콧구멍 소제기를 줄 거다."
    다른 애들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  너희들 참 못돼먹었구나!" 하고 페터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자전거에 뛰어
 올라 숲을 떠났다.
    "못돼먹었다고? 넌  못돼먹은 게 뭔지나  아니? 벌거벗은 사람의 주머니를 
 뒤지는 게 못돼먹은 거야."
    그러나 아무도 웃진 않았다. 모두들 이미  그런 따위의 말장난을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다음날 오후에  하네스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소비조합으로 물건을 사
 러 가는 도중에 실내  수영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올라프와 페터, 프랑크, 
 루돌프를 만났다.
    "같이 안 갈래?"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안 돼. 우리 엄마  심부름으로 장을 봐 와야 돼. 엄마는  정맥류(정맥의 일
 부분이 기계적인 혈액 순환 장애로 인하여 혹과 같이 불룩하게  된 뭉치) 때문
 에 다시 다리가 안 좋거든."
    "그래? 그럼 안 되겠구나." 하고  올라프가 말했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 버렸다.
    소비조합의 현관문  앞에 가니 바퀴의자를 탄  쿠르트가 가게 안에서 일을 
 보고 있는 자기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따뜻한데도 쿠르트의 다리
 는 여전히 담요로 싸여 있었다.
    "넌 왜 언제나 다리에 담요를 감고 있니?"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난 다리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다리가 시려워. 그래서 발을 담요로 감
 싸고 있어야 해."
    "다리를 차게 해서는 안되니?"
    "너라면 발가락이 얼도록 내버려 두겠니?" 학 쿠르트가 되물었다.
    "그렇지만 날씨가 아주 따뜻한데..."
    "물론 너한테는 그렇지만  내 발한테는 그렇지가 않아.  다리가 차가워지면 
 피가 통하지 않는다고  그러셨어. 알겠니? 그리고 그렇게 되면  위험하다는 거
 야."
    "아, 그렇구나."
    하네스는 무슨 얘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누가 좀 붙잡아  주면 난 일어설 수 있어."  하고 쿠르트는 계속해서 말했
 다.
    "네가 서 있을 수  있다고? 도대체 얼마 동안이나?" 하고 하네스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뭐, 그리  오래는 아니야. 그저 한  2,3분 정도지. 엄마가 내가  연습하는걸 
 도와줘. 넌 구드른  가에 살지? 난 질버  가에 살아 그렇지만 그건  너도 알잖
 니? 난 너희 악어 클럽 패들을 죄다  알고 있어. 난 언제나 너희들을 지켜보거
 든. 난 근사한 쌍안경을 가지고 있어."
    "쌍인경이라고? 그게 대체 뭔데?"
    "넌 망원경이 뭔지 전혀 모르니?"
    "아, 그래 망원경을 말하는구나.  진작 그렇게 말하지." 하고 하네스가 대답
 했다. 그러고 나서 그애는 걷지도 못하고,  특수 학교에 다녀야 하고, 자전거도 
 탈 수 없고, 길에서 놀 수도 없는 소년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쿠
 르트에게 악어 패들에 대해, 그리고 숲 속의  오두막집과 그들이 파묻어 준 죽
 은 노루에 대해 더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그 애가 그런  걸 재미있게 생각할
 지 자신이 없었다. 아마  쿠르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노루를 본  적이 없을 것
 이다. 쟤는 걸을 수가  없으니까 산림 감독관 앞에서 도망치거나, 사람들을 화
 나게 만들거나, 자전거로 여자 애들을 포위하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소 어른들
 에게 돌을 던진  후 위를 쳐다보아도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나뭇잎 속에 꼭꼭 
 숨는 것이 어떤지를 모르겠지.
    "언제 나한테 좀 안 올래?" 하고 하네스는 물었다. "좀  놀러 오라구. 난 아
 주 근사한 꼬마 토끼 한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그 녀석은 내 손에 있는 걸 받
 아먹는단다. 이름은 한니발이야."
    "그건 안 돼."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너희 집 앞에는  집안으로 통하는 
 장애자용 계단이  없거든. 그러면 두 사람이  날 어의 집 안으로  운반해 줘야 
 해. 그렇지만 네가 나한테 얼 수는 있지."
    쿠르트는 하네스가 거절할까 봐 겁이 나는 것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갈 수 있으면 내 꼭 갈게. 너의 엄마가 그걸 허락해 준다면 말이야."
    그때 쿠르트의  어머니가 벌써 두 개의  불룩한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하네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척을 했다.
    "쿠르트를 밀어도 돼요?"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 너한테는 너무 힘들텐데... 그렇지만  같이 가서 바퀴 의자를 어떻게 조종
 하는지 구경해도 괜찮아."
    쿠르트의 어머니는 두  개의 무거운 장바구니를 쿠르트의 무릎에 올려놓았
 고, 쿠르트는 그걸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하네스는 하마터면 자기 심부름을 
 잊어버릴 뻔했다, 하네스는 마가린과 과일을 사러 가게 안으로 뛰어갔고, 쿠르
 트와 어머니는 가게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 다음 하네스는 바퀴의자  옆에 서
 서 질버 가까지  따라갔는데 길이 좀 오르막일 때면 함께  밀도록 허락되었다. 
 쿠르트도 어머니다 장바구니를  받아 들자 자기 나름대로 거들었지. 즉  그 애
 는 수레바퀴 옆에 붙어있는 두 개의 금속  바퀴를 돌렸는데, 그건 비록 천천히 
 돌아가기는 했지만 미는  사람의 힘을 훨씬 덜어 주었다. 그리고  바퀴마다 제
 동 장치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내리막길에서는 쿠르트가 제동을 걸어 줌으로
 써 바퀴의자를 미는 사람이 혼자서 그 무게를 다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하네스는 바퀴의자를 비스듬한 비탈 계단을 거쳐 현관으
 로 밀어 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동안에는 바퀴의자를 어떻게  조종하는 지
 를 눈여겨보았고 그 무거운 바퀴이자를 조종하는 데 필요한 요령을 머리 속에 
 새겨 두었다.
    "너 참 잘하는구나." 하고 쿠르트의 어머니가 칭찬했다.  "며칠이면 너 혼자
 서도 할 수 있겠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그렇지만 너 혼자서  하려면 우선 고깃국을 몇 그릇  더 먹어야겠다. 하고 
 쿠르트의 어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현관에 서도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도 두 모자는 이미  숙달 돼 있
 었다. 어머니가 엉거주춤하게 몸을 구부리자 쿠르트는  두 팔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쿠르트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는  천천히 방바
 닥에 내려놓았다. 하네스는 장바구니  두 개를 끌고 왔다. 그리고 쿠트트가 방
 안에서 혼자 움직이는  걸 보고 꽤나 놀랐다.쿠르트는 양탄자를 깐  방바닥 위
 를 기어갔다. 두 팔만을 써서 움직이는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았다.
    쿠르트의 방은 컸고 널찍한 창문이 있어서 그걸 통해 낡은 벽돌 공장의 일
 부를 내다볼  수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흰 선반에는 일부를  수많은 장난감 
 자동차들이 놓여 있었고 방바닥에는  세차장과 전기 승강기가 붙어 있는 장난
 감 차고가  있었다. 자동차들은 이 전기  승강기에 실어 각 층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네 아버지는 뭘 하시니?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쓰레기장의 운전수야."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너의 아버지는  뭘 하시
 는데?"
    "우리아버지는 기계공장의 연마공이야. 우리 엄마는 반 년 동안 아팠어.  정
 맥류로 수술을 받았지. 지금은 훨씬 좋아졌어."
    "우리 아버지는 차 속에 무선  전화기가 있단다. 그래서 운전수들끼리 서로 
 얘길 주고받을 수 있지."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제 잔업을 더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요즘은 돈을 많이 못 
 벌어."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전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쓰레기는 항상 있으니까 
 말야."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그렇지만  우린 항상 쪼들리지. 아는지 모르지
 만 우리 부모님은  나 때문에 늘 돈을  써야 해. 의료 보험에서 모은  돈을 다 
 내주진 않거든. 부모님들은  가끔 보조금을 받으러 사회후생국으로 가야해. 그
 럴 때면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기분이 상해서 그놈의 돈을 타내려면 1킬로미
 터의 서류를 써내야 한다고 투덜대시지."
    "우리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야." 하고 하네스
 가 말했다. 
    쿠르트는 자기 방에서는 혼자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애는 바퀴의자에 앉아 
 방안을 아무데나 다닐 수 있었고 혼자서 화장실에도  갈 수 있었다. 시간이 걸
 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남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쿠르트를 목욕시킬 
 때만은 쿠르트와 어머니도  힘에 벅찼다. 어머니는 혼자서 그걸 할  수 없었으
 므로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많은  장난감 자동차를 하네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장난감 
 가게에서도 말이다. 쿠르트와  하네스는 자동차와 차고를 가지고 놀았다. 주차
 된 차들이  나선 계단을 통해 다시  차고 밖으로 굴러 나오게도  하고, 십자형 
 창살에 붙여진  알록달록한 경주로를 따라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들을  주유소로 보냈다. 고층 차고 밑에는 역시 전기
 로 작동되는 주유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차장에서는 진짜 물이 나왔다.
    "네 토끼를 언제 좀 데려오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건 안 돼. 그 녀석은 도망을 칠거야. 그 녀석은 낯선 곳에 오면 겁을  내
 니까. 가장 좋은 건 네가 언재 우리 집에 오는거야. 우리 아버지가 널 업어 나
 를 수 있어. 우리 집도 일 층이야."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쿠르트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하네스야,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널 찾으실거
 야."
    "너 다시 올래?"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난 매일 4시 이후엔  집에 있어. 
 토요일엔 전혀 수업이 없어. 그때 와도 좋아."
    "물론 다시 오고말고. 내가 와도 좋다면 말이야."
    "물론 와도 좋고  말고." 하고 쿠르트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매일  와도 좋
 아."
    "하네스는 그 집을 나왔다.
    집에 들어가니 너무 오랫동안 나가 있었다고 어머니다 야단을 치려고 했지
 만 쿠르트를 찾아갔었다고 설명하자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진 않았다. 어머니는 
 그저 악어 클럽 패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엉뚱한 짓을 하느니보다는 그래도 그
 게 낫다고 말했을 뿐이다. 하네스는 그렇게  생각하진 안았지만 어머니의 말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텔레비전 시청 금지가 연장될  것이 겁났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오후에  악어 클럽 패들은 모두  숲 속의 오두막에서  만났다. 다음 
 일요일에 그 애들은 가까이에  있는 뮌스터란트로 자전거 여행을 할 작정이었
 고, 어떤 길로 갈  것이며 각자 이 여행을 위해 무엇을  가져와야 할지를 상의
 했다. 하네스는 느닷없이  쿠르트 볼퍼만을 악어 클럽에  받아들이자고 제안함
 으로써 회원들을 놀라게 했다. 쿠르트는 물론 담력 시험 없이, 정식 악어 클럽 
 회원이 아니라 말하자면 명예회원으로 받아들이자고 하네스는 말했다.
    하네스가 말을  마치자 올라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깔깔거리고 웃기만 
 했다. 다른 애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싱긋이 웃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우리가 걔하고 뭘 한단  말
 이야? 항상 뭘 타고 다녀야 하는 병신하고.  우린 나무와 지붕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애들만 필요해."
    "쿠르트는 결코  병신이 아니야." 하고  하네스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 
 앤 그저 걸을  수가 없을 뿐이야... 그리고  걔 머리 속에는 우리  모두를 합친 
 것만큼이나 많은 게 들어 있어. 너희들이 그걸 좀 알기나 하면 좋겠는데..."
    "이봐, 하네스야." 하고 페터가 달래면서 말했다. "올라프  말이 맞아. 그 쿠
 르트라는 애는 항상 누가 밀고 다녀야 해. 그런 애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니?"
    프랑크가 말했다.
    "만약 그 앨 우리  패에 넣어 준다면, 우린 앞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을걸. 
 그렇게 되면 언제나 그 애를 봐줘야 돼. 그 앤 자전거도 못타니까."
    페터가 계속해서 물었다. 
    "대체 누가 그 앨 밀겠니? 혹시  우리더러 밀라는 건 아니겠지? 이봐 ,하네
 스야. 그런 의자를  밀려면 사전 교육이 있어야  해. 만약 무슨 사고라도 나면 
 그건 우리 책임이야."
    "난 어제 그 앨 밀어 주었는데 아무런 사전 교육도 받지 않았어. 그리고 쿠
 르트는 혼자서도 얼마간은  움직일 수 있어. 길이  편편하면 말이야... 난 걔네 
 집에도 가봤어."
    "그앤 걸핏하면 넘어지겠더라." 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난 그 애가 소비조합 앞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걸 본 적이 있어." 하
 고 마리아가 말했다.
    "우린 그런 일들이 모두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몰라. 만약 무슨 일이 일
 어나면 우리 책임이야... 그리고  말야, 이런 걸 생각해 봐. 길을  가다가 그 애
 가 혹시 화장실에 가야  한다던가, 뭐,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린  덤불 속에 가
 서 적당히 해결할 수도 있지만... 혹시 오줌을 눈다던가 큰일을 봐야 할 때면... 
 자, 그걸 좀 생각해 봐."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하네스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왜냐하면 하네스는 전혀 문제를  이런 쪽에
 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하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도 배워야지. 뭐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쿠르트가 
 어떻게 하는지 모든 걸  다 설명해 줄 테니까... 난 혼자서 그  앨 밀어 봤는데 
 보기만큼 어렵진 않아."
    "그앨 들어 얾겨야 할 경우에 우린 그 앨 들지 못할거야."
    "물론 자전거 소풍엔  데리고 가선 안되지." 하고 하네스가 대답했다.  그러
 자 하네스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만 그 앤 우리 오두막엔 올 
 수 있어."
    "그앤 지붕 위엔 절대 올라갈 수 없어." 하고 올라프가 다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ㄱ 문젠 이제 영원히 끝장이 난 것  같은데..." 하고 마리아가 
 대꾸하면서 싱긋 웃었다. "소방차가 출동하는 난리를 쳤으니 말이야."
    올라프와 다른 악어패들은  찔끔하고 잠시 말무니 막혔다. 아이들은  이 문
 제를 끄집어내면 맘이 편치 못했다. 그때 그들은 비겁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좀 머뭇거리다가 더 이상 반론이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올라프가 잘
 라 말했다.
    "끝장이 났건 안 났건 간에, 그렇게 항상 누가 밀고 다녀야 하는 앨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 하네스의 제안은 말도 안 돼."
    "그럼 표결을 해봐." 하고 마리아가 제안했다. 
    표결을 해보니 모두가 쿠르트의 가입에  반대였고 하네스만이 찬성했다. 그
 리고 마리아는 기권이었다.
    하네스는 분이 나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올라프가 하
 네스의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달래려고 했다.
    "자, 하네스야, 쿠르트가  네 이웃에 산다고 해서  네가 그 앨 위해  발벗고 
 나서는 것은 좋아.  그렇지만 생각을 좀 해봐. 그 앤  우리한테 큰 짐이 될 거
 야. 무슨 일을 하든 우린 항상  그 앨 생각해야 될 거야. 너도 그걸 좀 차분하
 게 생각해 봐라."
    이날 오후에  악어 패들은 계획했던 뮌스터란트  소풍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도 꺼내지 않고 헤어졌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러 갔다.. 테오는 
 원래 꼬마 누이동생을 자전거에 태워 주기 위해  집에 가야 했지만, 다른 애들
 과 어울려 수영장에 갔다.
    때는 6월이었다. 대도시인  도르트문트는 참기 힘든 더위에 짓눌려 있었다. 
 큰 공장들에서  나오는 먼지와 냄새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웠다.  방학은 아직 
 멀었고, 숲 속이나 수영장에나  가야 견딜 만 했다. 애들은 학교에서 수업중에 
 졸기가 일쑤였다. 굉장한 더위였다. 이때 또한 시가의 북쪽 변두리 지역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상잠에서 도둑이 들었다. 없어지는 물건은 주로 포도주와 소주, 
 라디오, 테레비전 등이었지만 금전 출납기 속에 돈이 있으면 그것도 훔쳐갔다.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어디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났다. 깡
 통 맥주다 상자째로  없어지거나통조림이나 저장용 소시지가 없어지기도 했지
 만,특히 카세트 녹음기나 라디오, 전축 등이  잘 없어졌다. 도둑들은 항상 흔적
 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지곤 했다. 그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누구도 증
 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벌써 경찰과  주민들은 귀신들의 
 짓이라고 수군거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도대체  아무런 흔적이나 지문도 없었
 으니까 말이다. 경찰  수사는 오리무중이었다. 5백 마르크의  현상금이 걸렸다. 
 피해를 본 상점 주인들이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다시 1천 마르크의 현상
 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절도 사건은 북쪽 변두리 지역
 에서만 일어났다.
    주민들은 이런 때면 으레 그렇듯이, 우선  터키 사람들과 이탈리아 사람 등 
 외국인들을 의심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작은 스위스'  뒤쪽의 낡은 건물이 있는 동네에서 살았
 다. 그런데 집주인들이 전혀 수리를 안 해줘서 그 동네는 꼴이 영 엉망이었다. 
 새로운 고층 건물들을  짓기 위해 그 집들은 몇  년 후엔 철거하도록 돼 있었
 다. 이미 오래 전에 칠이 벗겨진 집들이 많았고, 깨진 유리창대신 마분지를 붙
 여 놓기도 했다.
    앵무새 단지의 어떤 사림들은 터키사람이  도둑이라고 점잖게 얘기했고, 어
 떤 사람들은 그런   짓은 오히려 이탈리아 사람이 했음직하다고  떠들었다. 그
 렇지만 크게 보아 그들은 외국  노동자들밖에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경찰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고를 근거로 이미  외국인 동
 네에서 가택 수색을 했지만 그러한 혐의를 뒷받침해 줄 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특히 올라프의 아버지는  집에서나 단골 술집에서 외국인들에게 죄를 뒤집
 어씌우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놈들은 제 나라로 쫓아 보내야 해. 이놈들은 그저 우리 일자리만 빼앗아 
 간다니까."
    언젠가 저녁 식사 도중에 올라프는 범인이 독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말
 했다가 아버지한테 따귀를 한 대 얻어맞으면서 이런 호통을 들었다.
    "내가 외국인들이라면 그건 외국인들인 거야, 임마!"
    "밖에 하가 났는데 비가  온다고 우긴다고 해서 정말 비가 오는 건 아니에
 요."
    이렇게 말하고 마리아는  따귀를 얻어맞지 않으려고 재빨리 밖으로 도망쳤
 다.
    물론 악어 패들도 그 도둑  사건에 며칠 전부터 그 애들의 집에서 가장 많
 이 듣는 화제 거리였으니까 말이다.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떠돌았고, 말도 안되
 는 혐의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네스는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아버진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하이네의 아버지는 아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그게 진짜 도둑들이라고 생각지 않는단다. 그건 아마 장난을 치려는 사
 람들일 거야."
    악어 패들은 일요일 오전에  그들의 오두막에서 만났을 때도 물론 그 문제
 에 대해 얘기했다.  집에서는 항상 교회에 간다고 말했지만 실제  일요일 오전
 에 그 애들이 늘어가는 곳은 '작은 스위스'였다.
    악어 패들이 오두막  앞에 서 있을 때  웬 아이들이 길을 따라  왔다. 악어 
 패들은 터키 말과 이탈리아 말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게 외국 아이들이라는 
 것은 금방 말소리로 알았다. 어쨌든  독일어는 한 마디도 없었으니까.
    그 애들이 거의 오두막 앞에까지 왔을  때, 프랑크는 인디언처럼 괴성을 지
 르면서 그 애들한테 덤벼들었다. 그리고 전나무  열매와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서 뒤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꺼져, 이 이탈리아 놈들아!"
    그건 이탈리아 아이들이었다.  그 애들은 깜짝 놀라 꽁무니가  빠지도록 멀
 리 도망쳤는데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꼬마 하나만이 그걸 주워 가려고 되돌
 아 왔다. 그러자 프랑크는 그 꼬마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 꼬마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그제서야 프랑크는 그 애한테서 물러섰다.
    그 사이에 다른 악어 패들이 거기까지  왔다. 올라프는 카우보이처럼 두 발
 을 벌리고  길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그 애들의 뒤에다 대고 깔깔 웃어댔다.
    페터가 말했다.
    "그 꼬마는 너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꼬마한테 손찌검을 하다니!" 하고 하네스가 외쳤다.
    "그게 어때서?" 하고 프랑크가 대꾸했다. "우리 아버지는 늘 외국 사람들은 
 모두 도둑놈들이라고 그러시거든.  그들 앞에선 남아 나는 게 없다는  거야 그
 리고 우리 형도 외국인 아이들은 타고난 깡패라고 그러던걸."
    "네 아버지와 형의 말이  모두 옳은 건 아니야." 하고 페터가 대답했다.  페
 터는 화가 나서 콧구멍을 후비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우리 아버지한테 가서 그런 말을 해보렴. 아버지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는
 지 알게 될  테니까. 우리 아버지는 종아리를 걷으라고 하고선  회초리를 앵길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공장에서도 너의 아버지는 항상 외국인들 욕을 
 한다더라."
    하네스가 대들었다.
    프랑크의 아버지는 공장의 반장이었고 거기서 하네스의 아버지는 연마공으
 로 일했다.
    프랑크는 하네스를 노려보았으나 뭐라고 대꾸하진 않았다.
    "자, 얘들아, 우리 부모들 문제 가지고 싸우진 말자구. 어른들은 다 그런 거
 야. 벽에 붙은 파리 한 마리 때문에도 화를 내니까."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그렇지?"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
 렇지 않아."
    "하네스의 그 말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이들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프랑크가 한 짓이 모두를 언짢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악어 클럽의 규약에는 "너보다  약한 자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크도  이제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프랑크는 사과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 녀석들이 여기  이 숲 속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기웃거리는 거
 야! 저희들 동네에서나 놀 일이지."
    "이게 네 숲이니?" 하고 마리아가 물었다.
    "우리도 이탈리아 동네서 놀진 않아." 하고 프랑크가 대답했다.
    오후 늦게 하네스는 그  전날 약속대로 쿠르트와 같이 놀려고 질버가로 자
 전거를 타고 갔다. 비가 왔기 때문에 애들은 어차피 바깥에선 놀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엔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통에 사방이 어두워져서 방안의 불을 켜
 야 했다. 번쩍번쩍하는 번갯불만이 잠시 동안 동네를 환히 비추었다.
    하네스가 방에 들어갔을 때, 쿠르트는 자기 특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
 고 수채 물감으로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책상은  쿠르트의 아버
 지가 목수를 시켜 만들어 준  것이었는데 쿠르트가 필요한 대로 자기 혼자 조
 절할 수 있었다.
    쿠르트는 자기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물건들을  그렸다. 학교에서
 는 쿠르트의 그림들이 교실과 복도의 진열장 속에  걸렸다. 그 애가 그린 그림
 들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르트는 가끔 자기  부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수도 있었다. 그리고 뷔겔 냇가의  너도밤나무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고 부모들이 말할라치면 그저 이렇게 대답했다.
    "전 제가 본 대로 너도밤나무를 그리는 거예요."
    그렇게 나오면 부모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쿠르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왜냐하면 그  애가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차고 놀이를 할까?"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나랑 같이 그림 그리지 않을래?"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그렇지만 난 그림 그릴 줄 모르는데..." 하고 하네스는 말했다.
    "어째서 그림을 못 그리니? 넌 그럼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해본 적이 
 없니?"
    하네스가 고개를 흔들자 쿠르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 그렇다면  넌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는  얘기구나. 
 내 옆에 앉아."
    하네스는 그림을 그려보았다. 서툴게 뭔가를  그려보기는 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흰 종이 위의 얼룩덜룩한  물감뿐이었다.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해
 야만 그것이 집이나 정원 울타리, 또는 어떤 동물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네스의 작품을 자세히 훑어본 쿠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다음 번엔 더 나아질 거야."
    그리고 하네스가 새로운 종이를 꺼내놓고 붓으로 물감을 섞기 시작했을 때 
 느닷없이 쿠르트가 말했다.
    "난 도둑들이 누군지 알고 있어."
    하네스는 놀라서 하마터면 붓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러고는 눈이 휘둥그래
 져서 쿠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네가 안단 말이지? 도둑들이 누군지..."
    "그렇게 큰 소리 내지마. 우리 부모님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한 마
 디도 하면 안돼."
    "네가 정말 안단 말야? 맙소사. 그럼  왜 신고하지 않는 거지? 누굴 통해서 
 그걸 알게 됐니?...누가 너한테 그걸 말해 줬을까? 그게 대체 누구지?"
    마침내 하네스가 목소리를 낮춰 캐물었다.
    "좋아, 얘기하지. '작은 스위스'에 있는 너희들의 오두막에  나를 데려간다고 
 약속하면 그걸 얘기할게."
    "쿠르트야, 빨리 말해. 그건 굉장한 사건이 될 거야. 거액의 상금이 걸려 있
 어. 1천 마르크야.  생각 좀 해봐. 그걸  가지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거야."
    "너희들 오두막에 날 데려갈 거니?"
    "물론 데려가고 말고!"
    하네스가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는 통에 쿠르트가 다시 손가락을 입에 갖
 다 댔다.
    "물론 널 함께 데려가지." 하고 하네스가 소곤거렸다. 
    하네스는 이 순간에는 무슨 일이든 다  약속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둑
 들이 누군 지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그건 악어  패들을 깜짝 놀라게 할 사건이
 었다.
    "너의 부모님들이 허락하시면 널 데리고 갈게." 하고 하네스는 다짐하듯 속
 삭였다. 하네스는 그러나 쿠르트를 악어 클럽에  가입시키자는 자기 제안이 거
 부됐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거부된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
 았다. 하네스는 갑자기 다른 악어 패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쿠르트를 오두막
 으로 데려가도 되는지의  여부를 혼자서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건 회원 모두가 찬성해야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지금 당
 장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너도나도  떠들어대면서도 그 정확한 진상은 
 전혀 모르는 사실에 대해,  경찰조차 까맣게 모르는 사실에 대해, 쿠르트의 이
 야기를 듣는 거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졸라대면 틀림없이 함께 가도록 허락해 주실 거야. 부
 모님은 내가 하겠다는 걸 못하게  하는 법이 없어. 안된다고 할 리가 없지. 그 
 점은 전혀 염려하지 마."
    "쿠르트야, 얘기 좀 해봐.  그게 누구지? 외국인들이야? 아니면 독일인? 생
 각 좀 해봐. 현상금이 걸려 있다구. 우리는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면 우린 어떻게 되겠니?
    "도둑은 세 명이야."  하고 쿠르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셋  다 모페드를 
 타고 다녀... 난 이  창문으로 도둑들을 보았지. 보름 전에 그들이 우리 동네의 
 소비조합에 침입했을 때였어. 너도 알겠지만 다음날  아침 엄청난 소동이 벌어
 졌잖아. 경찰은 아무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고... 소주와 포도주가 없어졌었지."
    하네스는 자기도 모르게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길모퉁이의 소비조합이 잘 
 보였다. 진열창 하나와 문 반쪽이 보였다.
    "네가 그놈들을 봤다구? 그런데도  넌 한마디도 안했단 말이지? 전혀 신고
 도 하지 않고... 그렇지만 그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아. 의사 선생님  말씀
 으로는, 난 하루 종일 뛰어다닐 수 있는  다른 애들처럼 몸이 피곤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야. 늘 앉아 있거나 의자에  앉은 채 밀려 다녀야하니까 그
 렇게 피곤해지지 않는 거지."
    "정말 그렇겠구나. 얘길 계속해!" 하고 하네스가 다그쳤다.
    "그런데 말야, 난 잠이 안 올때면 침대에서 일어나 내 바퀴의자로 가.  그일
 은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그러고는 책을 읽거나동에와 거리를 지켜보지... 
 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돌아다니는지 모를 거야."
    "그래, 알겠어." 하고 하네스가  참지 못하고 말을 가로막았다. 쿠르트가 하
 네스에겐 전혀 관심 없는 얘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자, 빨리 얘길 계속해 
 봐!"
    하네스는 조바심을 치며 재촉했다.
    "모두 셋이었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셋 다  모페드를 가지고 있었어. 
 하나는 초록색이고 다른 하나는 빨강색인데 세 번째 모페드는 확인할 수 없었
 어. 그건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곳에 없었거든."
    "아, 그래."  하고 하네스는 실망해서 대답했다.  쿠르트가 범인들의 이름을 
 댈 걸로 기대했었는데 모페드에 관해서만 얘기하니까 실망을 한 것이었다. "그 
 이상은 모르니? 이봐, 쿠르트야, 시내에는 초록색과 빨강색 모페드가 바닷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아. 물론 무한정 찾아볼 수는 있겠지. 그건 마치 건초더미에
 서 바늘을 찾으려는 것과 같아."
    "우선 네 말처럼 그게 그렇게 많진 않아. 그리고 둘째로, 그건 어쨌든  훌륭
 한 단서야... 그리고 뭔고 하니, 또 있지...  그 초록색 모페드는 좌석 뒤쪽에 높
 은 짐받이가 있고  그 짐받이에는 길고 알록달록한 리본들이 달려  있었어. 달
 릴 때면 펄럭거리는 띠 말야...그 이상은 유감스럽게도 볼 수가 없었어. 밤이었
 고 내 망원경은 유감스럽게도 야간용이 아니거든.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나서
 면... 거, 뭐드라... 그,  추적을 하면 말이야, 틀림없이 뭔가 잡힐 거야. 우린  단
 서를 쥐고 있어."
    "아마 그런 머페드는 수천개는 될 거야." 하고 하네스가 실망해서 말했다.
    "그놈들을 다시 보게 되면, 내 장담하는데, 틀림없이 알아볼꺼야.  물론... 그
 놈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말야. 보통 키에 셋 다 항공  헬멧을 쓰고 있었
 어. 내 생각엔 가운데  줄이 쳐진 빨간헬멧 같아... 그리고 그 모페드들의 짐받
 이엔 옆주머니가 달려 있었어."
    "쿠르트야, 넌 왜 부모님께 그런 얘길 한마디도 하지 않았니? 이봐, 쿠르트
 야, 나 같으면 밤중에 부모님을 깨웠을 거야."
    하네스는 조금씩 실망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있잖니, 하네스야,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내 얘길 믿지 않을거야. 부모님들
 은 그런 말을 하면 항상  내가 꿈을 꾸었다고 말하거든. 그리고 있잖니, 또 내
 가 기끔 하룻밤의  반을 꼬박 새운다는 걸 부모님들이 알면  곤란하거든. 그렇
 게 되면 우리 엄마는 내가 잠들때까지 내  침대머리에 앉아 있을 거야. 전에도 
 그랬어. 그래서 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부
 모님들은 즛시 의사를 부르거든. 그러면 의사는  틀림없이 무슨 약을 먹으라고 
 그래... 안 돼 그럼 쓸데없는 소동이 일어나."
    하네스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창문 밖으로 약  백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소비조합을 쳐다보았다. 하네스는 만약 한밤중에  잠을 안 자고 드러누워 
 도둑들을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어쨌든 그 3인조는 젊은 사람들이었어." 하고 쿠르트가  계속 말했다. " 아
 주 새파랗게 젊었어.  어른은 결코 아니었어. 그  몸놀림을 봐서도 알 수 있었
 지."
    이날 저녁 하네스는  집에 돌아오면서 쿠르트한테서 들은 말을 부모님에게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집에  도착하자 그 애는  부모님에게 자기 
 말을 부모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부모님이  자기 말을 그저 웃어넘기면
 서 지금까지 흔히  했던 것처럼 "그따위 옛날얘긴 집어치워!"  하고 말할 것이 
 두려웠다
    저녁 식사 후에  하네스는 한 시간 동안밖에 나가 널  수 없었다. 비바람은 
 좀 누그러졌고 거리에선 김이 피어올랐다. 하네스는  자전거를 타고 슈테른 가
 에 있는 올라프한테 갔다. 마리아와 올라프는 길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하네스는 보도 가장자리에 앉아 둘의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애들
 은 분명  그에게 물어 볼 것이다.  이 시간에 하네스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벌써 예삿일이 아니었으니까.
    과연 마리아가 말을 걸었다.
    "이봐, 은하수야, 웬일이니? 말 좀 해봐!"
    "난 도둑들이 누군지 알아." 하고  하네스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
 한 일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마리아와 올라프는 앞에서  하네스를 내려다보며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
 으나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얘기해 봐. 너 혼자서 모든 비밀을 꼬불치지 말고!"
    올라프는 약이 올라 다그치면서 발을 굴렀다.
    그때서야 하네스는  쿠르트가 한 얘기를 더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했다. 올라프와 마리아 역시처음엔 몹시 긴장했다가 나중엔 좀 실망했다. 왜
 냐하면 그 애들도 이름과 주수가 나오리라고 기대했었으니까.
    "아마 쿠르트가 잘못  봤을 꺼야."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아
 픈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말씀하시거든."
    "맞아." 하고 올라프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 사람은 전혀 있지도  않은 헛
 것을 보는 수가 많아."
    "그렇지만 그게 전혀 상상이 아니라면 어쩔테야?" 하고 하내스가 되물었다. 
 "쿠르트가 번 것이 모두 맞는다면 말야."
    "혹시 그게 정말로 맞을  수도 있겠지. 그 앤 망원경도 있으니까... 근데 왜 
 그 앤 그걸 다른 사람에겐 얘기 하지  않았을까?... 왜 너한테 그 얘길 했을까?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하네스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걔한테 우리랑  함께 오두막에 가도 된다고 약속했어.  어쩔 수가 없었
 어."
    "아니 뭐라고? 그건 아주 치사한 수법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지?... 
 말도 안 돼."
    올라프는 화를 냈다.
    "그만둬, 이 바보야." 하고 마리아가 자기 오빠한테 쏘아붙였다. " 그렇지만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게 맞는다면  어쨌든 우린 단서를 잡은 셈이
 야."
    "단서라고?"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오빤 가끔 못 말리게 멍청하다니까."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물론이지, 단
 서야... 그 모페드와  모페드에 붙은 짐받이, 짐받이에 달린  알록달록한 띠, 항
 공 헬멧, 모페드에 붙은 주머니... 이런 것들이 충분한 단서가 되지..."
    "그런 모페드는 시내에 수천 대나 있어."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건초더
 미에서 바늘 찾기지."
    "그렇지만 세대의 모페드는 결코 바늘이  아니야. 오빤 자기가 그걸 찾아내
 지 못했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 거야. 솔직히 고백해. 그렇지?"
    "쓸데없는 소리 집어쳐. 한시간 동안 창문 가에 앉아 있어 봐. 그럼  초록색 
 모페드와 빨강색 모페드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테니까."
    "마치 벌써  한 시간 동안 창문  가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집어
 쳐!" 하고 마리아가 소리쳤다.
    "어쨌든 내일 다른 애들한테 모든 걸 털어놓고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자
 고."
    올라프가 말했다.
    "그리고 쿠르트도 같이 가야 돼. 난 걔한테 약속했어."  하고 하네스가 덧붙
 였다.
    "그건 네가 약속한 거지.  우리 악어 크럽 회원들은 절대 약속한 적  없어." 
 하고 올라프가 따졌다.
    하네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부엌 식탁에 앉
 아 신문을 읽다가 다시 라디오 가게가 털렸는데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
 다고 말했지만, 하네스는 이번에도 부모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 웬일이니?"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마치 닭한테  먹던 빵이라도 뺏긴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으니... 자, 가서 자라. 내일 아침 또 늦잠 잘라."
    "저, 아버지, 그 상금은 누가 타나요?"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누가 타느냐고? 아, 그러니까 범인을 찾아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사
 람이지." 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이들도 돼요? 아직 어른이 아닌 애들도 말예요."
    "글쎄, 되겠지...  그렇지만 난 정확히는 모른다.  너 뭣 때문에  그런 걸 묻
 지?... 무슨 일이 있니?"
    "아녜요. 그저 여쭤 본 거예요."
    하네스는 이렇게 대답하고 목욕실로 들어갔다.
    악어 패들은 하네스의 보고를 듣기위해 월요일 오후 늦게 그들의 오두막에
 서 만나가로 이미 약속이 돼 있었다.
    그러나 자갈이 깔린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두막으로 달려
 갔을 때, 악어 패들은 전혀 뜻밖의 불행한 사태에 부딪쳤다.
    앞서 달려가던 마리아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른 애
 들이 마리아와 부딪칠 뻔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이 멍청한 계집애야,  왜 그렇게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
 니?"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마리아는 말없이 팔을 뻗쳐 숲 속을 가리키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 오두막 좀 봐!"
    오두막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악어 패들은  너도밤나무 쪽
 을 쳐다보고 차츰 무슨 일인지를 깨달았다.
    "오두막이 없어졌어."
    "그럴 리가 없어!"  하고 프랑크가 소리쳤다. "바로  어제도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어!"
    아이들은 자전거를 굵다란 참나무에  기대 놓고  천천히 원래 오두막이 있
 어야할 자리로 다가섰다. 마치 위험한 곳에 접근하듯이 조심스럽게.
    이윽고 그들은 너도밤나무 앞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모조리 없어져 버렸어."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페터는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공들여 바닥에 깔았던 이끼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애들이 며칠 동안 
 숲 속에서 모아 온 것이었다.
    "이건 절대로 누가  혼자 한 짓이 아니야."  하고 마리아다 말했다. "  이건 
 몇 명이 한 짓이 틀림없어. 산림 감독관은  절대 아니야. ...그리고 퇴직 광부들
 은... 아니야. 그 사람들도 아니야.  그 노인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 그럼 대
 체 누굴까?"
    성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두막에 있던 가구들이 숲 속에 흩어져 있었다. 
 탁자와 의자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현관문 노릇을 했던 낡은  모포는 너
 도밤나무의 위쪽 가지 위에 걸려 있었다.
    아이들은 오두막이 있던  자리를 멍청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테
 오가 더 이상 참다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 나쁜 놈들... 나쁜 놈들..."
    악어 패들은 누가 그런 짓을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찾아 숲 속을 뒤졌다. 
 한 시간 후에 아이들은 수색을 포기했다.  누가 오두막을 망가뜨렸는지를 밝혀 
 줄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자전거 있는 데로 돌아왔을 때. 올라프가 말했다.
    "그건 이탈리아 놈들의 짓이야. 우리가 얼마 전에 걔들을 쫓아 보냈기 때문
 에 아마 복수를 하려고 했을 꺼야. 그럴 거야."
    "너하고 프랑크가 걔들을 쫓아 보냈어." 하고 마리아가 소리쳤다.
    "너 그게 이탈리아 애들이라는  걸 어떻게 아니? 그건 우리 동네 사람들일
 지도 몰라." 하고 페터가 말했다.
    "이런 빌어먹을."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이제 우린 만날 곳이 없어... 그놈
 들은 그저 몽둥이찜질을 해야 하는데..."
    오두막을 잃어버린 충격을 제일 먼저 극복한  것은 마리아였다. 그 애는 자
 기 자전거를 큰길까지 끌고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두막이 없으면 어때.  비가 올 때면 그  안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잖아. 
 기껏해야 우산을 쓰고서야 겨우 앉아 있을 수 있었는데, 뭐."
    "마리아 말이  맞아. 오두막이 없으면  어때." 하고 페터가  맞장구를 쳤다. 
 "오두막이 없어도 상관없어."
    "그래 상관없어." 하고 테오가 흉내를 냈다. "바보 같으니라고. 넌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이제 어디서 회의장을 찾아내지?"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어쨌든 우린 그
 게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클럽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거야."
    "슈테른탈러 술집  모퉁이는 어떨까? 근사한 공터가  있어." 하고 루돌프가 
 말했다.
    "아, 가기 말야? 거긴 언제나 모페드를 탄 큰애들이 들락거려. 걔들이 금방 
 우리 냄새를 맡을 거야... 그리고 또 우린 모든 사람의 눈에 띄게 돼." 하고  다
 시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빌리가 대답했다.
    갑자기 페터가 말했다. 
    "그럼 집을 다시짓자구. 그렇게 힘들진 않을거야."
    "집을 짓는다구?"  하고 오라프가 소리쳤다.  "이탈리아 놈들이 다음날이면 
 다시 모조리 뚜들겨 부술 텐데."
    "오빤 어떻게  해서 그게 이탈리아 애들이란  걸 그렇게도 잘 알지?"  하고 
 마리아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오빤 항상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거든."
    "그 옛날 벽돌  공장은 출입 금지야." 하고 마리아가 대꾸했다.  "거기 가려
 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지. 사방이 출입금지야."
    "여기 이 숲 속도 출입금지야."
    테오가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어쨌든 벽돌 공장은  안 돼." 하고 마리아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소방차
 가 출동했던 마당에..."
    "벽돌 공장이 그렇게 나쁘진 않겠는데..."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벽돌 공장은 안 돼." 하고 마리아는 고집했다. "그건 다른 문제야. 거긴 위
 에 높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사방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어. 너희들도 하
 네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봤잖아?"
    악어 클럽 패들은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올
 라프가 말했다.
    "그래, 좋아. 담력 시험은 그만둬야겠군. 하네스 사건은 한 번으로 족해."
    "너희들은 그때 모두  도망쳐 버렸었지." 하고 하네스는 소리쳤다. 그  애는 
 거의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 그야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테오가 말했다. 그러나  그 애는 그 말을 
 하면서 하네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자, 그건 그만두고, 그 얘길 
 해봐. 네가 중요한 얘기를 할거라고 올라프가 그러던데."
    국도에서 멀지 않은 조그만 공터에  아이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러고 
 나소 하네스는 쿠르트가  한 얘기를 전했다. 올라프와 마리아는 그걸  이미 알
 고 있었다.
    악어 패들은 긴장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 쿠르트 볼퍼만은 벼룩의 기침 소리도 다 듣는구나."
    하네스 보고를 마치자 페터가 말했다.
    "시내에는 수많은 모페드가 있는데 어떻게 그 모페드를  찾아낸다지?" 하고 
 테오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말했다.
    "우리 형도 뒤쪽에 짐받이가  있고 알록달록한 리본이 달린 모페드를 타고 
 다니는데, 너희들은 우리 형이 그 사건과 관련되 있다고 생각하니?" 하고 프랑
 크가 소리쳤다.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 범인들을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지!"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
 다.
    페터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콧구멍을 후볐다. 마리아가 그를 꾹 찔렀고, 올
 라프가 이렇게 말했다.
    "이봐, 페터야,  너 저 위에 하늘나라에  올라가거든 우리한테 그림  엽서를 
 한 장 보내야 한다."
    "세계 콧구멍  후비기 챔피언!" 하고  프랑크가 킬킬거렸다. 페터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자기 제안을 되풀이했다.
    "벽돌 공장에다 벽돌로 우리 집을 다시  짓자구! 거기 건조실이 안성맞춤일 
 거야."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하네스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난 쿠르트에게 우리 오두막집에 데려간다고 약속을 했어."
    "집은 망가졌잖아?"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그렇다면 바로 망가진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해. 난 걔한테 어쩔 수 없이 약
 속을 했어.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야."
    "어째서 네 맘대로 그런 약속을  했니? 우리한테 먼저 물어 봐야 하잖아..."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그건 내가 결정하지!"
    "올라프, 이젠 그만 떠들어! 이미 약속한걸 자꾸 따지면 어떡해? 이미 하네
 스는 약속을 했고 그 앤 약속을 지켜야 해." 하고 테오가 말했다. 다른 애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쿠르트한테 약속했어.  그러니 어쩌란 말야!" 하고  하네스가 소리쳤다. 
 그는 올라프한테 화가 났다.
    "우리가 그놈들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 도둑놈들  말이야." 하고 프랑크가 
 꿈꾸듯이 말했다. "그럼 땡을 잡는 거야."그러면 상금을 탈 수 있지. 그 돈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텐데."
    테오가 말했다.
    "그럼, 난 집에서 뒤쳐 나올 거야. 내 누이동생을 계속 이리저리 밀고  다니
 지 않아도 될 테니까."
    "난 멀리 여행을  할거야." 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얘들아,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우리형한테  물어보면 어떨까? 혹시 우리형이  알지도 몰라. 짐받이가 
 붙고 띠를 매단 모페드를 타고 다니는 게 누군지 형은 알 거야."
    "그건 그만둬."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우리 일은  우리끼리 하자고. 알겠
 니?"
    "나도 멀리 여행을 할거야." 하고 페터가 말했다.
    "네가? 이봐, 넌 멀리 못 가. 넌 항상 손가락을 콧구멍 속에 넣고 있으니까 
 모두가 널  금방 알아보거든. 그래서  네가 혹시 손가락을  부러뜨릴까 걱정이 
 되서 네 뒤에다 구급차를 딸려 보낼 거야." 하고 테오가 말했다.
    그러자 페터가 테오한테  달려들려고 했지만 올라프가 그 사이에 뛰어들었
 다. 
    "어쨌든 우리 모두가 새 자전거를  사고도 남을 거야." 하고 마리아가 말했
 다.
    "거금 천오백 마르크라. 이야, 그건 우리 아버지 한달 월급보다 많구나." 하
 고 하네스가 떠들었다. 
    "이제 좀 그만 해."  하고 프랑크가 소리를 쳤다. "그건 모두 바보  같은 짓
 이야. 이렇게 큰 도시에서 어떻게 쿠르트가 봤다는  그 세 대의 모페드를 찾아
 낸다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잖아? 우리형도 그런 거리 가지고 있는데."
    "혹시 네 형이 그 3인조 가운데  하나인지 알게 뭐니." 하고 마리아가 웃으
 면서 말했다.
    "프랑크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마리아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아, 흥분하지 마." 하고  마리아가 달래듯이 말했다. "그저 농담으로 한 소
 리야."
    "농담할 게 따로 있지."
    프랑크는 그러면서 마리아를 흘겨보았다.
    "자, 이제 그 옛날 벽돌 공장으로 가자."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그곳 지
 형을 일단 정찰해보자구. 혹시 우리가 정말 뭘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벽돌 공장으로 달렸다.
    그곳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철망 울타리의 개구멍을 통해 자전거를 끌고 들
 어갔다. 그건 이미 오래 전에 발견한 것으로  누군가가 담력 시험을 치러야 할 
 때면 항상 이용하던 것이었다.
    건조실에는 숲 속에 있던  것과 비슷한 크기의 집을 짓기에 충분한 벽돌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손가락이  파묻힐 정도로 온통 붉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보아하니 이 벽돌 공장에서는 이 터진 긴 건물이었는데 지붕은 튼튼해서 비가 
 새지 않는 반면에 벽돌을 얹어놓고 말리는 나무 건조대는 이미 삭아서 푸석푸
 석했다.
    그 공장은 전체가 2미터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철조망
 은 녹이 슬어 군데군데 삭아 있었고 기어서 드나들 수 있는 개구멍이 여러 군
 데 뚫려 있었다. 입구의 두 문짝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이 쇠사슬은 커다란 
 맹꽁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누가 길을  잃고 잘못해서 이곳에 들어올  가능성도 거의 없었고 일요일에 
 누가 이쪽으로 산책을 올 리도 없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길은 마지막 백 미터
 가 포장이 돼있지 않았고 자갈과 쓰레기만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비가 올 경
 우, 웅덩이가 모두  마르자면 며칠이나 걸렸다. 산보객들이란 물구덩이를 지나
 가기를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올라프와 프랑크는  건조실의 한 모퉁이에서 집
 을 짓기에  안성맞춤인 멋진 장소를  찾아냈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아이들은 
 이리저리 다니면서 그 일대를 정찰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유리창이 깨진 두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뭔
 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낡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는  간판이 붙
 어 있었는데 그걸 읽어보니 한때 슈뢰더 회사가 여기서 벽돌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리아는 힐끗 계단 안을  들여다보고는 컴컴한 게 왠지 섬ㅉ해서 얼른 도
 로 나와 버렸다. 그 건물의 열려진 문과 창문을 통해 바람이 윙윙거렸다. 그러
 는 동안에 악어  클럽 회원들은 벽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올라프와 프랑
 크가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었다.  그들은 담장들을 미리  눈여겨봐 두었지만 
 막상 해보니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담장은 1미터 높이가  됐을 때 다시 
 무너져 버렸다. 수준기(수평선 또는   수평면을 결정하기 위한 기계)도 모르타
 르도 없었으니 그게 당연했다.
    "벽 두께를  배로 늘려. 그러면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꺼야." 하고  페터가 
 말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땀을 뻘뻘 흘렸다. 아이들의  얼굴과 옷
 이 뻘건 벽돌 가루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한 시간 후에 담장은 1
 미터 높이에 3미터  길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 쌓을 담장을  위한 연결 모
 서리도 완성되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진짜  벽돌장이처럼 먼지투성이에 너저분하기 이를 데 없
 었다. 목이 말랐지만 마실 거라곤 아무 것도 가져온 게 없었다.
    올라프가 말했다.
    "얘들아, 오늘은 이만 하자. 방학이  시작되면 하루 종일 시간이 있어. 이쯤 
 해 두자구."
    아이들은 옷에서 먼지를 털어 내고 얼굴에 묻은 얼룩을 서로 닦아주었다.
    "이 얼굴로 집에  갈 수는 없어."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이건 꼭  무대에 
 나서는 배우 꼴인데."
    "그렇다면 쥐겔바하 시냇가에서 잘 좀 씻으렴." 하고 마리아가 소리쳤다. 
    쥐겔바하 시내는 '작은  스위스'를 뚫고 흐르는 조그만  냇물이었다. 그렇게 
 찌는 듯한 무더위가 몇 주 동안 계속됐는데도 아직 물이 마르지 않은 게 신가
 했다.
    아이들이 벽돌 공장  터에 갔었다는 걸 부모가 알면  큰일이었다. 부모들은 
 전에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말로만 당부했지만, 하네스를  소방대가 지붕에서 
 끌어내린 다음부터는 눈을 부릅뜨고 애들을 감시했다.
    다시 마을로 들어섰을 때 올라프가 하네스한테 말했다.
    "내일 쿠르트를 데려와도 돼. 우리가 그 바퀴의자를 어떻게든 조종할 수 있
 겠지, 뭐. 약속은 어쨌든 약속이니까 말야."
    "다른 애들은 어떡하지?"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내버려 둬 . 그냥  쿠르트를 데려오라구. 난 쿠르트더러 꺼지라고 하는  악
 어 클럽 회원이 있는지 보고 싶어."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나랑 쿠르트에 집에  가지 않을래?" 하고 하네스가 지금까지 얘기를  듣고 
 있던 마리아를  졸랐다. 마리아는 좀 망설이다가  걸국 하네스를 따라 나섰다. 
 둘이서 쿠르트의 부모에게 쿠르트를 데려가고 싶다고 하니까 쿠르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낯선 아이들에게 맡기는 걸 썩 내켜 하지는 않으면서도 바퀴의자
 의 구조와 작동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지만 쿠르트가  언제나 어른들하고만 
 지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어머니는 마리아와 꼬마 하네스가 그래도 조
 심스런 아이들이고, 그 애들을 믿어도 된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다. 쿠르트는 
 말없이 자기 특수 의자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월요일 오후 4시경 악어 클럽 회원들은 모두  쿠르트의 집 앞에 모였다. 올
 라프가 전날 저녁 쿠르트를  빼놓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른 애들한테 설득시
 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쿠르트가  집에 올 때 타고  오는 통학 버스를  기다렸다. 이윽고 
 포드 버스가 질버 가로 꺾어 들어와 그  집앞에 섰다. 아이들은 모두 쿠르트가 
 바퀴의자를 탄 채 이동식 비탈계단은 통해 차에서 길로 내려지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루돌프와 오토는 불란서제 자전거를 타고 그 소형 버스를 돌면서 곡예서처
 럼 안장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두 손으로 페달을 돌렸다.
    마리아와 하네스는 바퀴의자를 밀 때 거추장스러울까봐 자전거를 볼퍼만씨
 네 집 뒤에 세워놓았다.
  바퀴의자를 다루는 데  처음엔 애를 먹었지만 나중엔 잘되었다.  쿠르트는 바
 퀴의자를 어떻게  조종하는 가를, 그리고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일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바퀴의자를 미는 데 재미까지 느꼈다.
    아이들이 동네를 지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쿠르트는 자기 바
 퀴의자에 앉아 있었고  마리아와 하네스가 그걸 밀었다. 그리고 이들  셋을 다
 른 악어 패들이 자전거를 탄 채 계속  에워싸고 있었다. 쿠르트는 필요할 때면 
 직접 바퀴의자에 제동을 걸었고,  힘들 경우엔 힘을 보태기도 했다. 보도 가장
 자리의 돌멩이 때문에  아이들은 애를 먹었다. 보도로 올라갈 때면  의자를 약
 간 뒤로 들면서  우선 조그만 바퀴들을 올려놓아야 했고, 보도에서  내려올 때
 는 쿠르트가 길 쪽을 등지고 앉은 채 우선 큰 바퀴를 내려놓으면 작은 바퀴들
 은 저절로 따라 내려왔다. 이런 요령을 터득하자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없었다. 
 교통이 혼잡한 국도로  진출하기 전에 한적한 곳에 우선 시험을  해보았다. 그
 리고 바퀴의자  다루는 솜씨가 이젠 쿠르트의  부모처럼 능숙하다고 쿠르트가 
 인정했을 때 국도를 건넜다.
    그러나 숲 속에 들어서자  길이 울퉁불퉁해서 몹시 힘이 들었기 때문에 두 
 명의 악어 패가 함께  거들어야 했다. 올라프까지 함께 밀어야 했다. 올라프는 
 마지못해 거들긴 했지만 겉으로 싫은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너도밤나무에 도
 착하자 하네스가 말했다.
    "봐라, 저기 우리 오두막이 있다."
    "망가졌어." 하고 테오가 말했다. "완전히 망가졌어."
    "안됐구나."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린  새로운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어. 옛날 벽돌  공장 자리에
 다." 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그건 전처럼 간단히 부숴 버리진 못할 거야. 돌로 
 지은 거니까."
    "벽돌 공장은 나한테는 너무 먼데." 하고 쿠르트가 대꾸했다.
    "너무 멀다구?" 하고 프랑크가 물었다. "널 벽돌 공장으로 밀고 가는 게 여
 기 숲 속으로 밀고 오는 것보다는 훨씬 쉬워."
    "그래? 그렇다면 그 벽돌 공장으로 한 번 가 보자구 ." 하고 쿠르트가 말했
 다. 쿠르트는 악어 패들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 지를 보기 위해  그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쿠르트를 위해 
 애를 썼던  하네스와 마리아까지도 쿠르트를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었다.
    "벽돌 공장으로 가자고?" 하고 올라프가 천천히 확인하듯 물었다. "널 데리
 고? 바퀴의자를 타고 말야? 안돼, 그건 안돼."
    쿠르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애들의 얼굴을  죽 훑어보았다. 그러나 악어 패
 들은 쿠르트를 똑바로 쳐다보고 싶지가 않은지  모두 외면을 했다. 하네스만이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왜 안된다는 거지?"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너희들한테 너무 힘들다는 거
 니? 난 너희들이 아무리 높은 나무나 아무리 가파른 지붕이라도 올라갈 수 있
 다고 생각해 왔지...난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어."
    "우린 그까짓 거  그렇게 힘들지 않아."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그건 그
 저 너한테 너무 멀 뿐이야. 문젠 그거야  게다가 마지막 백미터는 아주 대단한 
 오르막길이거든 게다가 그 길은 포장도 안 돼  있어. 너의 어머니가 절대로 허
 락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한테 알릴 필요는 없지."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마리아가 중재에 나섰다.
    "일단 시험삼아 한 번 해보자구. 교대로 밀면 될 거야."
    쿠르트는 고맙다는 듯이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악어 클럽 회원들은 쿠르트의  뜻을 꺾기 위해 계속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
 만 나중엔 프랑크와 페터도 일단 한 번 시험해 보자는 데 찬성했고 결국은 올
 라프도 항복해버렸다. 그들은 출발했다.
    아이들은 복잡한 국도를  다시 건너야 했다. 그것도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말이다.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보도 가장자리에 서서 자동차들을 
 쳐다보았다. 혹시  그 중의  한  대가 스스로 멈추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으나 
 차들은 그저 쌩쌩 거리며 달려 지나갔다.  악어 클럽회원들은 쿠르트를 데리고 
 차도를 횡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자  갑자기 테오가 차도를 뛰어들더니 
 가운데 흰 줄 위에  서서 두 팔을 옆으로 쳐들었다. 악어  클럽 패들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악어 클럽 패들이 쿠르트와 함께 길을 건널 때까지 차들이 멈추었다.
    "자, 어때? 내 솜씨가."  하고 테오가 모든 친구들로부터 굉장한 칭찬을  받
 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형편없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넌 죽었을지도 몰라. 넌 운전하는 사
 람들이 얼마나 강심장인지 알잖니. 그건 미친 짓이었어."
    "그렇지만 난 죽지 않았어." 하면서 테오는 자랑스럽게 자기 자전거를 쿠르
 트 옆으로  밀고 왔다. 쿠르트의  바퀴의자는 여전히 마리아와  프랑크가 밀고 
 있었다.
    벽돌 공장 앞의  마지막 백 미터는 정말 힘들었다. 작은  앞바퀴들이 큰 돌
 에 걸려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바퀴의자가 몇 차례나 뒤집힐 뻔했다.
    마침내 그 돌멩이 장애물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게 새로운 장애
 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2미터 높이의 철조망이었다.
    물론 울타리에는 개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지만 바퀴의자가 통과할 만큼
 은 크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 바퀴의자를 접으면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
 지만 아무도 쿠르트를  바퀴의자에서  안아 올릴 용기가 없었고,  쿠르트도 집
 에서 하듯이 혼자서 그 구멍을 기어서 통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 이제 어쩐다지?"  하고 프랑크가 물었다. "쿠르트를 혼자  이 바깥에다 
 놔둘 순 없어. 일이 영 꼬였는데."
    "그것 봐라. 내 말이 맞았지."하고는 올라프가 승리자처럼  모두를 쳐다보았
 다.
    "너희들 중 누군가가 철망 위에 올라가서 철망 윗부분에 묶인 굵은 철사를 
 떼어 낼 수 있다면  그 철망은 간단히 뚝 떨어 질  꺼야." 하고 쿠르트가 말했
 다.
    "말도 안되는 소리야."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쿠르트  녀석을 집으로 밀
 고가."
    "우리가 저 위에  올라가서 이빨로 철사를 끊으란 말이야?"하고 페터가  물
 었다.
    바퀴의자의 왼쪽에는 가죽  주머니가 달려 있었는데 쿠르트는 거기서 ㅃ찌
 와 작은 장도리를  끄집어냈다. 그 주머니 속에는 또한 열쇠와  드라이버 따위
 의 공구들이 들어 있었다. 그건 혹시 길에서  가벼운 수리를 해야할 경우를 대
 비한 바퀴의자의 부속장비였다.
    "자, 여기 있어."  하고 쿠르트는 하네스는 하네스에게 ㅃ찌와 장도리를  건
 네주었다. "이젠 누가 저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
    오토가 가장  몸무게가 가장 가벼웠기 때문에  올라프의 어깨 위로 올라갔
 다. 프랑크와 루돌프가 오토의 두 발을 꽉 붙잡았다.
    그 철사는  군데군데 몹시 녹이 슬어  있어서 오토는 철망을 뜯어내는데는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오토는  철사를 좌우로 죽 
 잘라 냈다. 그러자  철망의 한 부분이 밑으로 떨어져나가 울타리에  큼직한 구
 멍이 뚫렸다. 오토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자 "야, 이 녀석 꽤나 무겁구나."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올라프는 숨을 헐떡거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약골 같으니라고." 하고 오토가 말했다. "그러고도  왕 노릇을 하려고 
 해?"
    이윽고 애들은 구멍을  통해 조심스럽게 쿠르트를 밀고 마당으로 들어갔고 
 이어 새집을 짓고 있는 건조실로 갔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내복을 벗어 던지고  일을 시작했다.  이날 오후에 
 두 번째 벽을  쌓아 올릴 작정이었다. 쿠르트는 의자에 앉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그 애는 자신이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쿠르트가 말했다.
    "난 혼자서 마당을 좀 살펴보고 올께. 너희들도 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난 혼자서 잘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쿠르트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어쩔 줄 모르고 아이
 들을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러니?" 하고 마리아가 물었다. 쿠르트는 멈칫멈칫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글쎄, 이 얘길 어떻게 해야 할지... 왜냐하면 난 좀... 미안해."
    악어 패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 진작부터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오토가 소리쳤다. "이거 야단났군. 까
 짓 거 바지에 싸버려."
    "이런 바보!" 하고 마리아가 소리쳤다.
    "괜찮아."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이제   두 사람이 날 들어올려 주면...둘이
 서 날 붙잡아 주면 난 혼자 서 있을 수 있어."
    프랑크와 올라프가  처음엔 좀 망설이다가 쿠르트를  의자에서 들어올렸다. 
 제동장치가 고정되었다.
    "자, 이제 됐니?" 하고 올라프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제 누가 내 바짓가랑이를 열고 고추를 좀 꺼내 줘." 하고 쿠르트가 말했
 다. 그게 쿠르트로서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는 그  애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럼 혼자 눌 수 있니?"
    올라프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애들이 와 하고 웃었다. 악어 패들은 어쩔 
 줄 몰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마리아가 결심한  듯이 쿠르트
 한테로 걸어가더니 바지 앞자락을 열고 그의  고추를 꺼냈다. 그제서야 쿠르트
 는 오줌을 눌 수  있었다. 쿠르트가 일을 다 끝내자 마리아가  옷을 여며 주었
 고, 올라프와 프랑크는 쿠르트를 다시 의자 속으로 들어 앉혔다.
    마리아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 이 겁쟁이들아, 이제 잘 봤지? 이렇게 하는 거야."
    악어패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올라프도 감히 뭐라고  대꾸를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마치 오늘 내로  그 집을 다 짓지 않은면 안
 되는 것처럼 부지런히 일를 했다.
    쿠르트는 잠시동안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의자를 돌려 건조실 밖으
 로 나갔다. 마리아가 쿠르트의 등뒤로 소리쳤다.
    "너무 멀리 가지 마! 조심해. 마당엔 온통 돌맹이 투성이니까."
    쿠르트는 두 손으로  큰 바퀴를 밀면서 천천히 마당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자기 방 창문에서 이곳 공장터를 잘 볼 수 있었지만 한 번도 전체를 다 볼 수
 는 없었고, 그저 망원경을 통해 그중 일부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쿠르트는 
 사방에 흩어져있는 벽돌과 깨진 기왓장을 조심스럽게 비켜 갔다.
    그러는 사이에 견딜 구  없이 더워졌가 때문애 악어 패들은 팬티 바람으로 
 일을 했다.  또한 집에 돌아갔을 때  귀찮은 질문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옷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르트는 마당 한가운데까지 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굵은 쇠사슬로 잠겨 
 있는 정문 옆에  버려진 사무실 건물이 있었다. 흔히 말하듯이  여우라도 나타
 날 듯한 후미지고 으슥한 곳이었다. 쿠르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낡은 
 사무실 건물로 다가갔다. 혹시 저기 가면 무엇을  보거나 발견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높은 굴뚝이 솟아 있었는데 그 굴뚝 벽의 벽돌이 몇 
 개씩 빠져 달아나 있어서 금방이라도 굴뚝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쿠르트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문턱을 넘
 어설 수가 없었다. 거기엔 이제 문이라곤  없었고 어두컴컴한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여러 차례 돌진을 감행한 끝에 마침내  쿠르트는 문턱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복도는 어두웠고 그의 눈은  밝은 햇빛 속에 있었기 때
 문에 윤곽만을 볼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 좀더 들어가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쿠르트는 그  복도가 계단 쪽으로 경사가  져 있다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 결국 그걸 알아차리기 전에 바퀴의자는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 
 애는 너무 놀라서 제동 장치의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걸 잊어버렸다. 쿠르트는 
 약 3미터 떨어진 벽에 "꽝" 하고 부딪쳐서 하마터면 의자  밖으로 나뒹굴 뻔했
 다.
    그 애는 정신이 들자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이윽고 충격에서 벗어나 정
 신이 들자 그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바퀴의자를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경사가 너무 급해 남의 도움 없이는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 애는 지
 친 상태로 가만히 앉아서 이리저리 궁리를 짜냈다.  그런 다음 냅다 고함을 쳤
 다.
    "도와줘! 이리 좀 와! 나야! 쿠르트야! 도와줘! 이리 좀 와!"
    쿠르트는 여러 번 구조를 외쳤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자 겁이 났다.
    벽돌을 모아 쌓는 일에  열중한 악어 패들은 20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쿠르트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 전에  마리아가 살펴보았을 때 쿠르트는 
 마당 한가운데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쿠르트가 없어진 것을 맨 처음 알아차린  것도 마리아였다. 그 애는 쿠르트
 를 찾다가 건조실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쿠르트는  눈에 뛰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 애 이름을 부르다가 다시 건조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 쿠르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내버려 둬. 갤 걱정할 필요는 없어  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독
 립적이야. 혼자서도 아주 잘 해낸단 말이야."
    프랑크가 말했다.
    그렇지만 쿠르트의 안전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마리아는 여전히 불
 안했다. 그 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마리아는 바짝 긴장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두 손을 대롱
 처럼 만들어 귀에 갖다 댔다. 그러자 정말  구조를 요청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
 다. 이번엔 아주 뚜렷하게, 그리고 그녀는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 지도 알아차
 렸다. 마리아는 악어 패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아이들은 모두 하던 일을  팽개치고 마당을 지나 마리아가 가리킨 낡은 건
 물로 달려갔다.
    올라프가 제일 먼저 건물에 도착했다. 복도에  들어섰을 때도 그도 잠시 동
 안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눈이 익어 있던 
 쿠르트가 소리쳤다.
    "네가 와줘서 정말 고맙구나! 난 혼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올라프는 그저 이렇게 대꾸했다.
    "괜히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려고 하니까 그 모양이지. 도대체 이 안에서 뭘 
 하려는 거니?"
    다른 악어들도 헐레벌떡 달려와서 복도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봐, 쿠르트야, 너  쪼다 짓을 하는 모양이구나. 너 도대체  이 안에서 뭘 
 하려는 거니?" 하며 페터가 소리쳤다.
    "너희들을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복도가 이곳에서 급경사로 돼있는 
 걸 알 수가 있었어야지." 하고 쿠르트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그저 말썽만 일으키는구나."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네가 오니까 금
 방 문제가 생기잖아.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다신 널 데리고 오지 않을 
 거야."
    "그래, 잘  알았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진정해. 그만 하고  저 아래쪽 
 지하실 안을 좀 살펴봐. 그 철문 뒤에 뭐가 있는지."
    이제 역시 어둠에 눈에  익은 악어 패들도 쿠르트가 가리킨 쪽을 쳐다보았
 다.
    "정말이군." 하고 프랑크가 소리쳤다. "저건 철문이야."
  너희들도 같이 가자."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저 밑에 뭐가 있는지 한  번 살
 펴보자."
    "뭐 별게 있을라구. 기껏해야 생쥐와 거미겠지."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혹
 시 들쥐일지도 모르지."
    "야, 너 겁이 나는  모양이구나."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그럼 여기 남아
 서 쿠르트나 지켜."
    "좋아. 난 여기 남아있겠어." 하고 마리아가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저 밑에  무엇이 있는지 난 지금 당장  알아맞힐 수 있어." 하고 
 쿠르트가 은밀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처럼 놀라서 그를 쳐
 다보았다. 
    "그럼, 넌 저 밑에 가봤니?"
    올라프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내가무슨 수로 거길 가봤겠니?... 그렇지만 난  저 밑에 뭐가 있는 지 알고 
 있어... 너희들 내려가 보면 깜짝놀라 자빠질걸."
    "넌 점을 쳐봤니?"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아니지만 내 짐작이 맞을 거야."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악어들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프가 맨  앞에 서고 그 다음에 프랑
 크, 페터,  테오, 오토, 루돌프와 빌리의  순서였다. 하네스는 마리아,  쿠르트와 
 함께 복도에 남았다.
    철문은 좀처럼 열리지않았다. 그건  꽉 닫혀 있었다. 세명이 달려들어 다리
 로 벽을 밀면서 힘을 쓰자  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
 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틈새가 벌어졌다. 문 앞에서 아이들은 
 흠칫 놀라서 몸이 굳어졌다. 그들은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으므로 서로 용기
 를 북돋우려는 것처럼 팔을 꼈다.
    올라프가 침묵을 깼다.
    "이건 놀랠 노자구나... 놀랠 노자야..."
    "그건 별게 아니야." 하고 프랑크가 속삭였다. "진짜 배기 창고지."
    지하실 문을 통해 충분한  빛이 지하실 속으로 들어왔으므로 이제 그 애들
 은 모든걸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수 백개의 포도주병이 그  곳에 쌓여 있었고 맥주와 소주병과 휴대용 라디
 오와 텔레비젼 수상기 등이  들어있는 상자와 수많은 담뱃갑들과 통조림 깡통
 과 과일  병조림이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또한 공장에서 금방 나온  듯한 새 
 자전거 두 대가 기대 놓여 있었다. 
    "맙소사." 하고 올라프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정말 굉장하구나."
    "어때, 내말이 맞지?" 하고 쿠르트가 의기양양하게 위쪽에서 소리쳤다.
    "자, 우리 꺼지자."
    다시 올라프가 속삭였다.  마치 멀리까지 그 소리가 들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는 것처럼.
    "만약 지금  누가 나타나면  우린 억을하게 누명을  쓰거나 곤경에 빠지게 
 돼."
    아이들은 차례차례지하실에서 나온 다음,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닫았다.
    큰 소리가 날세라 조심조심 마리아의와 올라프가 쿠르트를 건물 밖으로 밀
 고 나갔다. 건조실 안의 반쯤 완성된 집에 도착했을 때, 올라프거 쿠르트를 쿡 
 찌르면서 물었다.
    "넌 그게 창고일 거라고 짐작했었니?"
    "물론이지. 이젠 도대체  누가 그런 창고를 만들어 놓았을까  잘 좀 생각해
 봐. 너희들이 뭘 보았는 지  내가 맞혀 볼까? 휴대용 라디오와 텔레비젼, 자전
 거, 담배... 뭐 이런 거지?"
    "그만둬. 넌 정말 쪽집게구나!" 하고 마리아가 외쳤다.
    "프랑크가 갑자기 이마를 치면서 소리쳤다.
    "아, 그렇구나! 바로 그거야! 그 도둑들이야. 그  모페드 타고 다니는 놈들... 
 쿠르트가 본 것이 맞는다면 말야. 그놈들이 이 창고를 만들어 놨을 거야."
    "그래, 맞아 그 놈들 말고 누구겠니."
    쿠르트가 소리쳤다.
    "어떤 도둑들 말이야?"
    페터가 어리둥절해서 한 사람씩 얼굴을  훑어보았다. 페터는 자기도 모르게 
 콧구멍을 후비고 있었다.
    "이봐, 지금 한 말을 써서 액자로  만들어 네 방벽에다 기념으로 걸어 놓으
 라고."
    마리아가 비아냥거렸다.
    :그만둬. 너무 아는 체 하지마!: 하고 페터가 대답했다.
    "그건 모페드 패들이야. 내 생각엔 그놈들이 훔친 물건을 그 지하실에다 숨
 겨 놓은 거야. 거긴  아무도 오지 않는 안전한 곳이거든." 하고 쿠르트가 말했
 다. 
    "난 쿠르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
    올라프가 말했다.
    "암 맞고 말고. 난 내 방에서 망원경으로 살펴볼 수 있어... 아직 그 모페드 
 패들이 누군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내 말이 틀림없어!"
    "분명히 뭔가 남의 눈을 꺼리는 사람이 그걸 지하실에 갖다 놓은 거야." 하
 고 프랑크가 말했다.  우린 그곳을 잘 알고  있는데도 전혀 낌새를 못 챘었지. 
 오늘 우연히 쿠르트가 복도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린 여전히 아무
 것도 몰랐을 거야."
    "도둑놈 둘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군."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그놈들은 그 
 물건들을 팔아먹거나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여기다 숨겨 두는 거
 야."
    "사용한다고? 누가 라디오 스무  대를 사용할 수 있겠니?" 하고 페터가  소
 리쳤다.
    "지금 우린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어."하고 테오가 말을 막았다.  " 그렇지
 만 지금 당장은 어쩌지? 지금 우린 어떻게 해야 되지?"
    테오의 질문에 악어  패들은 대답할 수 없었으니까. 모두가  쿠르트를 쳐다
 보았다. 마치 그 애가 틀림없이 어떤 해결책을 찾아낼 것처럼. 뜻밖의 일에 부
 딪칠 때마다  쿠르트는 항상 묘수를  내놓곤 했다. 언젠가  마리아는 애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앤 걸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해."
    그러나 쿠르트도 어깨를  움찔할 뿐 묘수를 내놓지는 못했다.  그저 이렇게
 만 말했다.
    "우선 여기선 없어지는 게 제일 좋아. 혹시 그놈들이 낮에도 창고에 나타날
 지 몰라. 그놈들이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보면 볼장 다 보는 거야. 따지고 보면 
 우린 아무 것도 증명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마리아와 하네스가 쿠르트를 울타리까지 밀고  갔다. 이미 연습을 했었지만 
 밀고 가는 건 여전히 힘들고 까다로웠다.
    울타리 앞길에서 벌써 몇  명이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 갑자기 쿠르트가 소
 리쳤다.
    "근사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악어 패들은 모두 이런  구원의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발길을 멈
 추었다.
    아이들은 쿠르트를 빙 둘러싸고 기대감에 가득 차서 그 애를 주시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데?" 하고 올라프가 바짝 긴장해서 물었다.
    "내 말은 이젠 우리가 더 이상 모페드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이제 우
 린 매복하고 있다가 그놈들이  물건을 가져가던가 아니면 그놈들이 또 어딘가
 를 털 경우, 훔친  물건을 창고 속에 집어넣기 위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
 리면 되는 거야... 어때, 알겠니? 너희들 생각은 어때?"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아마 우린  어떤 녀석이 
 나타날 때까지 꼬박 일년을 죽치고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그리고 만약 그  지하실 속의 물건이 그  도둑놈들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하고 오토가 물었다.
    "이봐, 멍청한 소리 좀 작작해!" 하고 프랑크가 소리쳤다. "넌 그럼 어떤 백
 화점에서 거기다 물건을 쌓아 뒀다고 생각하니? 개가 들어도 웃겠다, 얘"
    "그 물건들은 도둑들 거야. 그건 분명해. 거기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할  필요
 가 없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너희들은 바로 신문에 늘  났던 물건들을 그
 대로 발견한 거야. 바로 그 물건들 말이야. 라디오, 텔레비전, 담배..."
    "그만둬!"하고 올라프가  외쳤다. "물건 임자는 분명해.  그렇지만 쿠르트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그렇게 쉽진 않아. 무슨 얘긴고 하니, 매복을 해서 그놈
 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도 말이  안돼, 넌 그 놈들이  훤한 대낮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니?... 그놈들은 밤에만 올  꺼야. 그건 분명해. 낮은 그놈
 들에겐 너무 위험하니까 말야."
    악어 패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네 말이  맞아, 올라프."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그놈들이 모페드 
 패라면 밤에만 올 꺼야. 그런데 밤엔 우린 아무도 밖에 나갈 수가 없거든..."
    "대체 누가 밤새도록  매복을 설 수 있겠니!"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다른 
 애들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제기랄!" 하고  쿠르트가 소리쳤다. "뭔가를 찾아냈는데도 전혀  손을 
 쓸 수 없다니! 우린 증거가 하나도 없어, 증거가!"
    "1첨 5백  마르크라..." 하고 페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눈을 반짝거렸다.
    "이봐, 페터야, 꿈을 깨라. 정신차려!" 하고 올라프가 가볍게 쿡 찔렀다.
    악어 패들은  천천히 단지로 통하는  길을 되돌아갔다.  교대로 바퀴의자를 
 밀면서, 아이들은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퀴의자의 앞
 뒤를 에워싼 채 따라갔다.
    마리아와 하네스가 쿠르트네  집 현관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흥분해서 뛰어
 나왔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자기 아들 쿠르트와 다른 애들을  본 사람이 
 없나 하고 이미  이웃집에 다니면서 수소문을 했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두 아
 이들을 야단치려고 했지만,  쿠르트가 몹시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곤 
 그만두었다.
    "너희들, 다음 번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안 들어오게 되면 어디 있다는 말이
 라도 해다오."하고 쿠르트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우린 벌써 바퀴의자에 대해선  훤하니까
 요. 괜찮으시다면 우린 더 자주 쿠르트를 데리고 가겠어요." 하고 마리아가 말
 했다.
    "난 괜찮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어디서 노는지 꼭 좀 알아야겠구나."  하고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마리아는 집으로 갔다. 그러나 하네스는 쿠르
 트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애는 볼퍼만 부인이 쿠르트를  어깨에 매고 
 업어서 집안으로 운반하는 모습을 다시 지켜보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쿠르트는 혼자 자기 방으로  기어들어 갔는데 그 동작이 
 얼마나 재빠른지 하네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쿠르트는 창문  가에 있는 
 자기 특수의자에 앉더니 책꽂이에서 망원경을 꺼내서는 눈에 갖다댔다.
    "그렇다고 거기서 밤새도록 앉아 있을 순 없어."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못할 것도 없지."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렇지만 난 야간용  적외선 망
 원경이 없거든."
    "그래도 그렇게 감시하는 건 아무 소용도 없어."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쩌다 운이 좋을 때도  있는 법이지. 자, 생각해 보라구. 소비조
 합에서 도둑들을 봤을 때도 난 운이 좋았었어."
    "밤새도록 여기 앉아 있으면 다음날 아침엔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을 꺼야."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곧 방학이 돼. 그리고 하네스야, 사실은 말야, 밤새 꼬박 앉아 있을 필요도 
 없어. 그놈들이 벽돌  공장에 나타난다면 분명히 자정 후에 나타나진  않을 거
 야."
    "어떻게 그걸 아니?"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난 꼭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자, 그럼 행운을 빈다. 난 어쨌든 집에 가 봐야겠어."
    그러나 하네스는  30분이나 더 있으면서  여러 번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벽돌공장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다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사람얼굴을 알아보기에는 그 망원경의 성능이 모자랐다.

    7월 18일 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악어 패들은 벽돌 공장에는 거의 발을 들
 여놓지 않았다. 혹시 도둑들이  눈치를 채서 일이 다 어그러질까 봐서였다. 아
 이들은 집을 완성하기  위해 건조실에 두 번 갔을 뿐이다.  쿠르트는 데려가지 
 않았다. 물론  뭔가 변한 게 없는가  살펴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여러  번 벽돌 
 공장주변을 돈 적은 있지만,  수상쩍은 기미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
 하실 안에는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이 없어졌는지, 또는 무
 엇이 더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쿠르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여러  번 물어 보았지만 쿠르트도 
 뾰족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그렇지만 쿠르트는 자기의 남는 시간을  모두 바
 쳐 망원경으로 벽돌  공장을 감시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허긴  쿠르트도 오
 늘까지는 수상쩍은 기미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네스가 다시 한 번 쿠르트네 집에 놀러  왔을 때, 밖엔 비가 오고 있어서 
 야외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하네스가 쿠르트에게 말했다.
    "너 알지? 프랑크의 형말야. 그형은 밤에 바깥에 나갈 수 있어.벌써 나이가 
 그렇게 됐거든.
  열 여덟이니까 말야. 내 생각엔 그 형한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형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잠복을 할 수 있을 거야."
    "안 돼. 프랑크의 형한테는 절대로 아무 말도 해선 안돼. 절대 안 돼." 하고 
 쿠르트가 
  소리쳤다. 쿠르트는 그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왜 안된다는 거야?" 하고 하네스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왜냐하면 ... 나도 모르겠어. 무엇  때문인지... 내 말은 우리가 큰애들을 끌
 어들여서는 
  안된다는 거야."
    쿠르트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하네스의 눈길을 피했다.
    "그렇지만 너 정말 웃기는구나."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너 프랑크의 형한테 도둑 얘긴 한마디도 않겠다고 약속해!"
    쿠르트가 다소 흥분해서 말했다. 
    "자, 약속하라고!"
    하네스는 어깨를 움찔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원한다면 약속하지. 그렇지만 그건  웃기는 짓이
 야."
    "내가 걸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틀림없이 알 텐데." 하고 갑자기 
 쿠르트가 
  말했다.
    "도대체 뭘 말이야?"
    "나중에 얘기할게."
    "지금 예기해 줘."  하고 하네스가 졸랐다. "혹시  내가 네 대신에 그걸  할 
 수 있을지 아니? 난 걸을 수 있거든."
    "아니, 그만둬. 그건 그저 나  혼자 생각일 뿐이야. 난 누군가를 뒷조사하겠
 어."
    쿠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하네스의 손에서 망원경을 빼앗았다.
    "누굴 뒷조사한다는 거니?"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그때 프랑크가 왔다. 더운 날씨에도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프랑크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뭐 아는 게 있지? 경찰에 신고하자구."
    "너 올라프와 먼저 그  문제를 상의해봤니? 우린 그 도둑들이 누군지를 정
 확하게 알아낸  
  다음에야 신고를 하기로 결정했어." 하고 하네스가 대답했다.
    "그럼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프랑크가 대답했다.
    "난 그 공장을 감시하고 있어."
    쿠르트가 말했다.
    "아 그래."  하고 프랑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쓸데없는 
 짓이야."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좀더  참아야 해." 하고 쿠르트가 다시 말했
 다."때로는 일이 생각보다 빨리 풀리는 수도 있거든."
    "어쨌든 나로선 일이 진행되는 게  너무 답답해." 하고 프랑크가 다시 소리
 쳤다. "우리가 그 창고를  발견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어. 그런데 거기서 우리
 가 얻어낸 게 뭐야? 아무 것도 없어.
  우린 여전히 몸조심만 하고 있어. 우린 그 공장에는 거의 발을 끊고 있거든."
    쿠르트가 천천히 말했다.
    "너희들은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니까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 거야. 난 언제
 나 바퀴의자에 앉아서  누가 날 어디로 데려가 줄 때까지  기다려야해. 그렇게 
 되면 정말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되지."
    쿠르트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다른 아이들은 마치 그가 어른이 다 된 것 같
 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크는 그 말에 뭐라거  대꾸할 수가 없었다. 프랑크는 쿠르트가 좋았다.
 모두가 쿠르트를  좋아했다. 처음에  쿠르트의 가입을 반대했던  올라프까지도 
 그 애를  좋아했다. 이제 바퀴의자를  미는 것은 아이들에겐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프랑크가 집으로 가려고 하자 쿠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잠깐!  나한테 무슨 생각이 있어.  우린 다시 절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러면 매복을 하고 기다리는 거애. 그담에 그놈들
 이 그 공장터에 나타나는 건 시간 문제지."
    프랑크는 처음엔 쿠르트의 생각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으나 곧 손을 내저으
 면서 말했다.
    "그게 얼핏 듣기엔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뭐냐하면 절
 도 사건이 발견되는건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이거든.  그럼 절도
 범들은 밤중에 안전하게 그  벽돌 공장으로 갈 수 있고, 우린  잠만 자다가 다
 음날 아침에야 신문에서 간밤에 그런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알 숭 있게 
 된단 말이야."
    "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이건 놓칠  수 없는 유일한 기회야. 알겠니? 우리가  부모님들에게 비
 밀을 털어놓거나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야. 그런데 우린 그러고 
 싶진 않거든."
    "자, 그럼 내일 보자."
    프랑크는 이렇게 말하고 갔다. 하네스도 잠시 후 가버렸다.
    두 아이가 가버리자 쿠르트는  다시 책장에서 망원경을 꺼내 공장 터와 그 
 벽돌 공장으로 통하는 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으나 수상한 기미는 전혀 발견
 할 수 없었다. 그  벽돌 공장은 이제 다시 평소처럼 환한  햇빛을 받고 있었고 
 딱 한  번 사냥개를 데리고 산보하는  사람 하나가 눈에 뛰었을  뿐이다. 이때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서는 허리에 손을 짚고 따지듯이 물었다.
    "얘야, 도대체 무슨 일이니?" 며칠  전부터 거기 앉아 망원경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아녜요. 갑자기 이게 재미있어졌을 뿐이에요." 하고  쿠르트가 대
 답했다.
    "아니, 이 녀석이! 참 잘도 둘러대는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가  버리자 쿠르트는 다시  망원경을 잡았다.  쿠르트는 망원경을 
 너무 들여다보아서 눈이 아팠지만 바로 그 순간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에 감전
 된 것처럼 화들짝 놀랬다.  모페드를 탄 세 명이 공장 터를  빙빙 돌더니 잠시
 동안 쿠르트가 볼  수 없는 옆쪽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쿠르
 트는 그  모페드를 알아보았다. 좌석  뒤쪽에 짐받이가 달린  초록색 모페드가 
 있었고 그 짐받이에는  알록달록한 띠들이 펄럭거렸다. 이  모페드에는 프랑크
 의 형 에곤이 타고 있었다.
    쿠르트는 너무도 놀라서 계속 입술을 핥았다.  얼마 후 그 모페드들이 큰길
 로 탕탕거리면서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르트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었고 잠
 시후 세 명 모두가 자기 집 앞을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 그건  틀림없이 프랑크의 형  에곤이었다. 두 
 번째는 칼리였고, 그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세 번째 애는 누군지 알 수 없
 었다. 말도 안돼. 이건 잘못된 거야. 이 세 사람을 의심하다니. 그들은 재미 삼
 아 또는 심심해서 그저 모페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 
  뿐이야.
    아니야. 에곤은 그런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에곤은 언젠가 우연히 쿠르
 트네 집 앞을 지나가다가 쿠르트를  위해 바퀴의자를 고쳐 준 적도 있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때  쿠르트의 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에곤이 그의 
 손에서 스패너를 빼앗아 들더니 이렇게 말했었다.
    "볼퍼만씨, 저한테 맡기십시오. 전 기계공이라 그런 걸 잘 아니까요."
    5분 후에는 오른쪽  바퀴의 굴대(수레바퀴의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에  끼워 
 수레가 바로 놓이게 하는 긴 나무나 쇠)가 다시 제자리에  끼워졌고 그들은 계
 속 움직일 수  있게 되었었다. 고장난 곳을 고치는 동안  쿠르트를 바퀴의자에
 서 들어낼 필요도 없었다.
    아니야, 에곤은 그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에곤은 동생인 프랑크와 마찬
 가지로 좋은 친구야. 쿠르트는 프랑크 역시 매우 좋아하고 있었다.

    방학이 시작된 지  두 번째 두에 접어들자 악어 피들은  겁이 없어졌다. 아
 이들은 월요일 오전에  쿠르트네 집앞에서 만난 다음  곧장 벽돌 공장으로 갔
 다.
    아이들이 공장터에 도착하자  올라프와 프랑크가 먼저 옛날 사무실 건물로 
 가서 지하실 안을  살펴보았다.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었다. 그 무거운 철문은 
 보름 전과 똑같은 틈새만큼 열려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이후로 아무도 
 그 지하실에 들어온 적이 없었음이 분명했다.
    "저 물건들을 끄집어내어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데."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바보같은 소리 마."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미련하긴... 마치 네가 더위 속
 에 긴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과 똑같구나!"
    그런 다음 아이들은 다시 지하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건조실 안의 다른 
 악어 패들한테 갔을 때 올라프가 말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모든 게 아직도 전과 마찬가지야."
    "제기랄." 하고 페터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코로  가져가려고 하자 
 마리아가 팔을 꽉 잡았다. 페터는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섰다.
    오토와 루돌프는 지난  며칠동안 가까운 쓰레기장에서 헌 플라스틱 핀들을 
 모아놨었는데 아이들은 그걸로 자기네 집의 바닥을  깔았다. 테오와 페터가 의
 자용 나무판자들을 가져왔고 아이들은 벽을 따라 쌓아올린 벽돌 위에 그걸 얹
 었다. 그리고 마리아는  자게네 집의 조그만 온실에서 슬쩍한 낡은  꽃병 하나
 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마리아는 웃음거리가 됐을 뿐이다. 페터
 가 마리아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꽃병에 꽂힌 그 엉겅퀴는 어디서 가져왔니?" 하고 나서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너 벌써 브래지어를 하고 다니니? 솔직히 털어놔!"
    다른 애들이  킥킥거렸다. 마리아가 팔꿈치로 페터의  옆구리를 쥐어박았기 
 때문에 페터는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들은  초저녁 무렵까지 그 오두막 
 안에 있었다. 그건 특히 올라프가 카세트 녹음기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이이
 들은 또한 새로운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쯤에는 도둑들이 이
 미 멀리멀리 사라저버리고 없을 것이라는 프랑크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
 었기 때문에 그 계획은 이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 있
 는 비밀  창고를 발견하기 전에는  거의 매주 이동네에서  사건이 일어났는데, 
 지금은 그 녀석들이 하늘로  날아갔는지 땅으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
 는단 말야."
    "원 제기랄. 자, 그럼 이제 어쩌지?" 하고 페터가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 아무  것도 필요 없어. 그저 기다리는 거지!" 하고쿠르트
 는 대답했다.
    "넌 항상 그농의 기다린다는 말밖에 모르는구나." 하고  올라프가 대꾸했다. 
 "우린 너처럼 그렇게 시간이 많지가 않아.  우린 무슨 일을 시작하기위해 돈을 
 하수고대하고 있단 말야."
    "나도 그래."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쿠르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마침내 마리아가 물어 보았다.
    "넌 도대체 그 돈으로 뭘 하려고 그러니?"
    "그럼 너희들은 그걸로 뭘하려고  하는데?" 하고쿠르트가 되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상금을 타게되면  그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
 해서는  아무도 차분히 샐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좀 도와줘."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하네스와 마리아가 다시 쿠르트를 집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너희들 대체 어디 갔다 왔니?" 하고 쿠르트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방안으
 로 옮기면서 
  물었다.
    "숲에 갔었어요." 하고 마리아가 둘러댔다. 쿠르트와 하네스도  그개를 끄덕
 거렸다. 사실을 말하는 않는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벽돌 공장
 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이제 금지돼 있었다.마링아는 집에 가고  하네스는 남
 았다.
    갑자기 쿠르트가 말했다. 
    "얘, 하네스야. 난 아주 엉뚱하게 의심이 가는 데가 있어."
    "넌 그게 누군지 아니?" 하고 하네스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냐... 그저 추측일 뿐이야... 그렇지만 내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그냥 안
 들은 걸로 치고 잊어버려."
    하네스가 가버리자 쿠르트의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자,쿠르트야, 말 좀 해라. 너희들은 언제나 뭐가 그리 비밀이 많지?"
    어머니는 의자에 앉으셨다. 그것은 쿠르트가 말을  할 때 까지 알어나지 않
 겠다는 의사표시였다. 하는  수 없이 쿠르트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
 았다. 어머니는 쿠르트의 말을 중간에 막지 않고 그저 열심히 듣기만 했다. 쿠
 르트가 자기 의심나는 데를 얘기했을 때야 비로소 어머니는 말을 막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모를땐 함부로  다른 람을 죄인 취급하면 못써.  그건 너만 혼자 
 알고 정신 바짝 차려 살펴봐라.  어쨋든 넌 그 일을 계속해도 좋아. 난 조금도 
 반대하지 않는다. 다른 애들이 널 돌봐 주는게  너한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면 말이다."

    일요일 오전에 올라프는 악어  클럽 회원들에게 각자 동네 안에 있는 모페
 드들의 특징응  모두 조사해서  적어오라고 지시했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쿠르트가 설명한 것과 같은 모양의 모페드들을 주ㅢ깊게 살피도록 했다.
    몇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자정거를 타고 앵무새 단지 안의 큰길과 골목길을 
 휘젓고 다녔고 남의 집 뒷마다과 집 뒤의 정원 안도 살펴보았다.
    이날도 뜨겁고 무더운 날씨였다. 마리아는  혼자서ㅗ 쿠르트를 밀고 단지를 
 지나 약속     장소인 교회 앞 광장까지 갔다. 
    마침내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 모두가 다시  교회앞 광장에 모였을 때, 아이
 들은 각자 적어온 번호를  쿠르트에게 제출했고 쿠르트는 그것을 차례로 노트
 에 적어 넣었다.
    소득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13대의 초록색 모페드가  단지 안에서 발견되었고 10대의 빨간색 모페드가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서 좌석 뒤쪽에 알록달록한 띠가 달린  높은 짐받이가 
 있는 건 4대뿐이었다.
    "프랑크네 형의 모페드를 빼면 모두  12대의 초록색 모페드가 있는 셈이군. 
 좀더 정확히   말하면, 짐받이와 띠가 달인 모페드는 3대뿐이야." 하고  쿠르트
 가 말했다.
    "어째서 프랑크의 형은 제외하는 거니? 에곤도 초록색 모페드를 가지고 있
 어. 그게 누구   것이든 초록색은 초록색이야." 하고 페터가 소리쳤다.
    "바보같은 소릴 하는 구나."  하며 프랑크가 열을 냈다. "제발 부탁인데, 너
 희들 우리형은 좀 내버려 둬라."
    그리고 잠시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난 더 이상 너희들과 어울리지 않을꺼야. 그만 좀 해 둬."
    에곤의 모페드 번호는 110GBB였다. 쿠르트는 그걸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아이들은 다시 어떻게 할까 갈피를  못 잡고 하릴없이 교회앞 광장에 서 있었
 다. 모페드 번호들은 금방      알아냈지만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그 정도야 
 별게 아닐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생각보다 꽤나  어렵다는 걸 깨달은 것이
 었다. 모페드의 번호들을 알아냈지만 그 주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밤에 집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텐데..."하고 페터
 가 말했다.
    밤중에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회원은  쿠르트였다. 그 애는 망원경으로 뭘 
 좀 지텨볼 수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쿠르트에게 매일 밤  공장터를 지켜보
 라고 부탁했을 때 쿠르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면서 아렇게 말했다.
    "너희들 혹시 내가 밤새 잠  안 자고 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
 니니?"
    쿠르트는 자기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다른 애들한테 고백하려다
 가 그만두었다. 그럴  경우 돌아올 건 비난과 귀찮은 질문밖에  어ㅃㅅ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우린 전보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구나. 정말  골치 아픈 일이야. 난 그걸 
 너무 쉽게 생각했어." 하고올라프가 말했다.
    "아, 그 돈!"하며 페터가  코에 손을 가져갔다. 빌리는 손톱을 깨물었다.  하
 네스와 마리아가  다시 쿠르트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마리아가  가 버리자 
 하네스가 물었다. 
    "쿠르트야, 말 좀 해봐. 너 짚이는 데가 있니?"
    "아니, 전혀 짚이는 데가 없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때때로 난 프랑크의 형이 거기  끼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고 하네스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이런 말이 입밖에  냈다는 게 갑자기 부끄러운 
 듯이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니?"하고 쿠르트가 떠보듯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분명히 그런 
 것 같은       느낌이..."
    "그래 알겠어,"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우린 아무 증거도 없어. 
 단 하나의 증거도. 그모페드만으로는  아무 증거도 안돼. 그리고 난 그때 얼굴
 을 하나도 보지 못했어... 실은 나도 가끔 그런 의심이 들긴 들어."
    "너도?" 하고 하네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렇지만 뭣 때문에 에곤이  거기 끼겠니?... 에곤은 좋은 사람이야. 그  형
 은 언젠가 우리   아버지를 도와서 내 바퀴의자를 고쳐 준 적도 있어."
    "자, 그렇다면,"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우리 그 문재는 덮어두자.. 어쩌면 
 모든 것이 우리 생각과는 다를지도 몰라... 혹시 전혀 딴판일지도 모르지."
    "아냐,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네스야, 난 우리 추측이  맞다고 생각
 해."
    하네스는 쿠르트와  함께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와 말다툼이 
 벌어질까봐      집으로 갔다.  하네스의 부모는 오후 늦게 베스트팔렌 공원으
 로 산보를 가든가 카페에서 과자를   먹기위해 텔레비젼 송산탑에 올라갈지도 
 몰랐다.
    "자, 그럼 내일보자."하고 하네스는  말했다. "그럼 정신 비짝 차리고 잘 살
 펴봐. 혹시 뭘    알아낼지도 모르니까. 넌 좋은  망원경이 있고 다른 할 일도 
 없잖니?"
    저녁 식탁에 앉았을 때 갑자기 쿠르트의 아버지가 물었다.
    "자 우리 도련님, 말씀 좀 해보시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
    쿠르트의 어머니가 얼른 앞질러 대답했다.
    "일은 무슨  일에에요? 쿠르트가 이젠 놀이  친구들이 생겨서 전보다 약간 
 시끄러워진건    사실이지만...당신 그게 싫어요?"
    "싫을 리가 있어? 기ㅃ기만 한걸." 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자, 그렇다면 됐어요."
    어머니는 그러면서 아버지가 눈치 못 채게 슬쩍 쿠르트에게 고개를 까딱했
 다.

    그런데 월요일에 일이 벌어졌다.
    프랑크와 하네스가 쿠르트를 데려왔고, 그  후에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옛날 
 벽돌 공장으로  갔다. 비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오전인데도 벌써 30도가 넘는 
 무더위였다.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싸 왔고 페터와 오토는 차가 든  커다란 보
 온병을 들고 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자기네 오두막에 머물면서  점심때도 집
 에 가지 않을 셈이었기 때문이다. 올라프는 역시 카세트 녹음기를        가져
 왔다.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자정거위에서 재주를  부렸다. 특히 오토와 테오는 
 안장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거나 두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는가 하면 길 안
 내용으로 자전거 앞에  달린 거울 하나만을 보면서  자전거를 거꾸로 타는 등 
 아찔한 묘기를 부렸다.
    악어 패들은 모두  방학중에는 평소보다 많은 용돈을 받았다.  왜냐하면 부
 모들은 금년에  휴가여행을 갈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아버지들은 
 조업 단축 때문에  휴가여행을 갈 수가 없었다. 쿠르트의 부모는  노동자 후생
 국의 휴양에서 방을  하나 구해야만 쿠르트를 데리고 여행을 갈  수가 있었다. 
 호텔과 여관들은 그들 형편으로는 너무 비싼 데다가 바퀴의자를 탄 아이를 방
 과 목욕탕과 화장실로 밀고 다닐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안돼 있었기 때문이다.
    테오와 빌리의 아버지는 심지어 몇 주  전부터 실업 상태였다. 그러니 돈을 
 절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네스의 아버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
 다.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
    악어 패들이 점심때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 쿠
 르트는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바퀴의자를 타고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토와 빌리와 테오가 쿠르트를 위해 위험한 벽돌과 기왓장과 다른 장애물
 들을 치워놓았었기 때문에,  이제 쿠르트로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전
 보다 쉬웠다. 또 그  애들은 건조실 옆의 콘크리트 문턱 위에  두 장의 판자를 
 깔아 놓아 쿠르트가 혼자서도 바퀴의자를 운전해서 넘어갈 수 있게 해놓았다.
    쿠르트가 막 공장 터의  남쪽 편으로 가려는 순간 (그 곳에는 높은  굴뚝이 
 있었는데 이것이 무너질까  봐 다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갑자기 전에 보지 
 못했던 울타리의 개구멍을 통해 모페드를 탄 두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
 이 보였다.
    그들은 울타리 안으로 모페드를 밀고 들어왔다.
    쿠르트는 금방  프랑크의 형인 에곤을 알아보았다.  다른 한 명은  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쿠르트는  미처 몸을 숨길 틈이 없었으므
 로 바퀴의자에  앉은 채 동상처럼 마당  한가운데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앞에 쿠르트가 있는 걸 보자 깜짝 놀라서 잠시 동안 어쩔 줄을 몰라했
 다. 그들도 눈에 띄지 않게 도망칠 수 없게 돼버렸다. 어쨌든 쿠르트가 그들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페드를 몰고  쿠르트한테로 다가왔다. 쿠르트 앞에 선  에곤이 따
 지듯이 물었다.
    "이봐, 너 여기서 도대체 뭐 하는 거니?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쿠르트는 처음엔 대답을 하지 않고 악어 패들이 숨어 있는 걸 숨기려고 했
 지만 혼자서 이곳에 왔다고 말을 해도 그 두사람은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쿠르트는 "다른 애들과 함께 왔어요." 하고 대답하면서 건조실을 가
 리켰다.
    "다른 애들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니?"
    에곤이 의심쩍은 듯이 캐물었다.
    쿠르트는 다시 건조실을  가리켰고 그때 올라프와 프랑크와 마리아가 달려
 나왔다.
    프랑크는 자기형과 마당에서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너희들 여기서 꺼져!" 하고  에곤이 위협하듯 말했다. "안 그러면 혼을  내
 줄 테니까. 너희들은  글씨도 읽을 줄 모르니? 저 밖에  벽돌 공장 출입금지라
 고 쓰인 커다란 팻말도 못 봤어?"
    "형은 들어와도 괜찮아?" 하고 프랑크가 자기형에게 물었다. 
    "입 닥쳐, 이 바보 녀석아." 하고 에곤이 화를 내며 말했다. " 안 그러면 아
 버지한테 모조리 일러바칠 테다."
    "흥, 이를테면 이르라지. 내가  이곳에 들어와선 안된다면 형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나도 아버지한테 그 얘길 할 꺼야. 알아두라고." 하고 프랑크가 맞받
 았다.
    "까불지 마, 이 바보 녀석아. 계속 그러면 아구창을 몇 대 갈겨 줄 테니까." 
 하고 에곤이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  에곤은 정말 프랑크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에곤이 막 자기 동생을 향해 돌진하려는  순간, 그걸 미리 알아차린 쿠르트
 가 바퀴의자를 작동시켜  에곤의 왼쪽 발을 치었다. 에곤은 아무  방비가 없었
 던 까닭에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악어 패들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에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쿠르트는 아주 상냥하게 물었다.
    "넘어졌어요? 정말 미안해요.  제 바퀴위자에 달린 조그만  바퀴들을 못 본 
 모양이지요?"
    에곤이 넘어진 것보다  악어 패들은 그를 비웃은 것 때문에  더 화가 났다. 
 그는 쿠르트에게 소리쳤다.
  "너 또한번만 그따위 짓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의자에서집어 내동댕이
 칠 거야.  그런 다음에 어디 재주껏  그놈의 달구지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 
 보라구."
    "만약 그따위 짓을 한다면 너도 뜨거운  맛을 보게 될걸. 이건 빈말이 아니
 야... 우린 네  타이어의 바람을 빼놓을거야. 어디계속  모페드를 몰고 다닐 수 
 있는지 두고 보라구..." 하고 갑자기 올라프가 분이나서 소리쳤다.
    나머지 악어 피들도 그 사이에 건조실에서 마당으로 달려왔고 누가 시키지
 도 않았는데 여차하면 에곤과 그의 친구에게 덤벼들 자세를 취했다.
    "그만둬."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에곤이 본심으로 그런 얘길 하는  건 아
 니니까."
    "입 닥쳐!"하고 에곤이 호통쳤다."난 본심으로 그런 얘길 하는 거야. 이바보 
 멍청이 새끼야."
    그러나 에곤과  그의 친구는 악어 패들의  위협적인 자세를 보고는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는 없었다.
    에곤은 뭐러고  더 떠들어대더니 자기  친구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런다음 
 그들은 모페드에  올라타더니 들어올 때 통과했던  개구멍 쪽으로 달려가서는 
 다시 모페드에서 내려  모페드를 밀고 나갔다.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얼마종안 탕탕거리는 모터 소리만 들렸다.
    "이봐, 쿠르트야,"  하고 올라프가  소리치면서 쿠르트의  어깨를 두드렸다. 
 "참 멋지게 잘했다. 네가에곤의 발가락을 친 건 아주 기똥찼어."
    그러자 스코틀랜드 모자를 쓴 테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불쑥 말했다.
    "아니야, 그 두 명은  도둑질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들은 아마 그때  우리처
 럼 우연히 이 공장에 왔는지도 몰라."
    "넌 어떻게 그따위 생각을  할 수 있니!" 하고 프랑크가 소리쳤다. 그런 다
 음 악을 쓰듯이 외쳤다. "우리형은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형은 괜히 
 그렇게 폼을 잡는 것 뿐이야. 우리형은 좋은 사람이야."
    "암 좋은 사람이고  말고." 하고 쿠르트가 거들었다. "에곤은 언젠가  내 바
 퀴의자를 고쳐준 적이  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버지가 그걸  고칠 순 
 없었을 거야. 그리고 암 대가도 받지 않았어."
    이러한 만남이 있은  후 아이들은 기분이 잡쳐버렸다. 페터와  테오와 루돌
 프(그 애는 언제나 사슬이 달린 잭나이프를 바지에  매달고 다녔다)는 깊은 생
 각에 잠겼고 놀이를 할 때도 딴 생각을 하느라 정신을 집중하지 못했다.
    마리아가 쿠르트에게 물었다.
    "에곤이 왜 우리한테  그렇게 심하게 굴었는지 나한테  설명해 줄 수 있겠
 니? 특히 너한테 말이야."
    "사실 프랑크한텐 너무했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우리한테도 그랬어. 그 사람은 정말 못되게 굴었어. 내가 알기로는  그렇지
 가 않았는데 말이야." 하고 마리아가 받았다. "그건 무슨 뜻이 있는 거야."
    "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무슨 별다른  뜻이 있을 리가 없어. 그따위 생
 각은 머리 속에서 지워 버려."
    쿠르트는 마리아를 달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쿠르트는 진실을 말하지 않
 았다. 쿠르트는  사실 에곤을 줄곧 자세히 관찰했었다. 그리고 에곤의 두 눈이 
 남 몰래 낡은 사무실 건물을     건너다보는걸 처음부터 눈치챘었다. 그렇지만 
 쿠르트는 자기가 본 사실을 큰 소리로 떠들고   싶지 않았다. 에곤은 아이들이 
 금지된 장소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걱정을 했는지도   모르니까 말
 이다. 누가 그걸  확실히 알 수 있겠는가.  어쨌든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
 가.
    쿠르트는 건물 안으로  의자를 밀어달라고 했다. 마당이 너무  뜨거웠기 때
 문이었다. 쿠르트는 여전히 아무것도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내일 오후에 어디 좀 갈래?"
    올라프가 그의 악어 친구들에게 말했다.
    "도대체 어디로 말이야?"
    그의 누이동생이 물었다.
    "아무데나."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난 아무데나 가진 않겠어."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내일도 오늘처럼 몹시 더우면 난 집에 있어야 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의사 말이 그건 나한테 좋지 않대. 난 너희들보다 햇빛을 더 많이 쪼이게 돼. 
 난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까."
    초저녁에 아이들은 그  공장 터를 떠나, 다음날 만날 약속을  하지 않은 채 
 동네로 들어갔다.  쿠르트는 기분이 울적했다.

    저녁 식사후 쿠르트의 아버지가 신문을 읽다가 불쑥 말했다.
    "그 낡은 벽돌 공장이 이제 마침내 철거되는군 허긴 진작 철거했어야지/"
    쿠르트는 씹던 음식이 목구멍에 꽉 막혔다. 그는 아버지한테 물었다.
    "언제요? 당장요?"
    "가을이라고 돼 있는데... 도매 시장이 세워진다는 구나. 그 낡은 굴뚝은 곧 
 폭파시킨대. 너무 위험하게  돼버렸으니까. 다른 철거 작업은 가을에 계속한다
 는군."
    "이거 야단났는데..."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뭐라고? 노 지금 뭐라고 그랬니?"
    아버지가 캐물었다. 그러나  쿠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탁에서 바퀴
 의자로 들어간 다음 부엌을 나와 자기 방으로 갔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일이야?"하고 쿠르트의 아버지가 자기 아내에게  물었
 지만 어머니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해 보일 뿐, 가스레인지  앞에서 부
 엌일을 계속 했다.
    '빌어먹을.' 하고 쿠르트는 자기 방으로 들어왔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제기랄. 내가 지금 다른 애들처럼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걔들은 분명히 아직 
 그걸 모르고 있어.'
    쿠르트는 악어 피들과 사귀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가끔 자기 집이  감옥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쿠르트는 누군가가  데리러 올 
 때까지 줄곧  기다렸다. 전화라도 있었다면  다른 애들과 전화로  의견을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거나 악어 패들  가운데 아무도 그를 데리러 오지 
 않을 때면  쿠르트는 특히 자신의  무력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네스만 가끔 
 찾아와 놀다 가곤 했다.
    방에 들어와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니?"
    "예,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요, 우린 드디어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곳
 을 찾아냈는데 그게  모두 망가져 버렸어요. 그러면...  굴뚝을 폭파시켜버리면, 
 틀림없이 그 창고가 발견될 거예요. 그리고 우린 도로 아미타불이 될 거예요."
    그러고 나서 쿠르트는 어머니에게 에곤과 그의 친구를 벽돌 공장에서 만났
 던 일을 얘기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 일을 두 애가 그 도둑 
 패의 일당이라는 증거로 보는 건  말이 안 돼. 남을 의심할 땐 조심해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얘길 입밖에 내선 안돼."
    다음날은 다시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볼 수 없는 날씨였다.
    하네스와 프랑크와 그리고  얼마 후에 마리아가 데리러 왔을  때, 쿠르트는 
 즉시 벽돌 공장의 철거 계획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 애들도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네스의    아버지도 신문에서 그 기사를  보고 읽어 
 주었고, 마침내 이 고장의 보기 싫은 흉터가  시라지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덧
 붙여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하네스는 곧바로  올라프에게 달려갔었고    결국 
 올라프가 그 소식을 다른 애들한테 전해진 것이다.
    교회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하네스가 이렇게 말했다
    "이거 잘못하다간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겠는데...우리가 이상적인 장소를 찾
 아내고 그     도둑들을 알아낼 수도 있는 바로 이때 그런 일이 생기다니..."
    "누가 아니래?"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역시 긴 바지 차림이었다.  "지금 그 
 굴뚝을 폭파한다면  십중팔구 그 지하실 속에  있는 창고가 발견 될  꺼야. 네 
 생각은 어때? 쿠르트야."
    쿠르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 일이 혹시 우리에겐  행운이 될지도 몰라.  생각해 
 봐. 그 도둑들    가운데 누군가가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었다면 말이지... 자, 
 그럼 어떻게 되겠니? 생각  좀    해봐. 그들은 틀림없이  가장 빠른 방법으로 
 새로운 창고를 찾아내야  하겠지. 그러면 우리는 그 창고가 정말  누구 것인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알아내게 될지도 몰라."
    "그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올라프는  다른 
 애들이 모르는   사이에 자전거를 타고  옆에 와있었다. "지금 쿠르트가 한 말
 이 맞을지도 몰라."
    "틀림없어. 그 굴뚝이  폭파된다면 그건 우리에게 아주 잘된 일이야."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지금은 방학이야. 우린 하루 종일 잠복해 있을 시간이 있
 어.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언제나 그 벽돌 공장에  가 있을 수도 있고, 또 
 우리 모두 오두막집을 다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게 그리 지루하지도 
 않을 거야... 난 너희들이 내 망원경을 사용하도록 기꺼이 내놓겠어."
    "그런데 밤에는 어떻게 하지?"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그 놈들은 지금까지 
 대낮에 오지는 않았어. 난 그놈들이 환한  대낮에 창고를 치우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는데..."
    "올라프 말이  맞아." 하고 마리아다  끼여들었다. "우린 아직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 거야." 
  "틀림없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우리가 머리를 좀 
 짜낸다면 말이야."
    "자, 그럼 네 머리를 좀 짜내 보렴."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아이들은 막 이틀 전에  문을 연 숲 가장자리의 미니 골프장으로 자전거를 
 몰고 갔다.
    한 번 노는 데 1마르크였다. 올라프와 페터가  첫 번째로 시합을 했고 다른 
 애들은 우선 구경만  했다. 하네스와 프랑크는 두 애가 계속해서  새로운 골프
 코스로 들어 갈 때마다  쿠르트를 2,3미터씩 앞으로 밀고 갔다. 쿠르트도 바퀴
 의자에서 골프채를 잡고 공을  칠 수 있는지 한 번 시험해  보려고 했다. 그러
 나 그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두 개의 앞바퀴  때문에 골프채가 직접 땅에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쿠르트를 시합에는 끼워주지 않은 채 함께 경기하도록 허
 락해 주었다. 그러나 쿠르트의 공은 경기장 밖으로 날아가 버리기가 일쑤였다.
    "신경 쓸 것 없어."  하고 페터가 위로했다. "1년 후면 넌  독일 선수권자가 
 될 거야."
    그때 갑자기 미니 골프장의 주인이 달려왔다.  그는 두 손을 휘저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안돼. 안돼, 안된다고. 바퀴의자로 새 잔디를 망가뜨리면 안돼."
    쿠르트는 깜짝 놀라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전 걸을 수가 없는데요."
    쿠르트는 흥분한 골프장 주인에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야. 어쨌든 넌  그 바퀴의자를 타고 이 잔디 위를 돌
 아다녀선 안돼. 넌 내 새  잔디를 망치고 있어. 이 바퀴 자국을 보라고 얼마나 
 깊이 패어 있는지."
    악어 패들이 쿠르트 주위에 모여들었다.  애들은 처음엔 히죽히죽 웃었지만 
 곧 주인이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올라프가 말했다.
    "그렇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는 팻말은 안 보이
 던데요."
    그 사람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곧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당연한 거야. 안 그래?"
    "그럼 목발을 짚은  사람은 들어와도 되나요?" 하고 마리아가 모른  척하고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물론 그런 사람들은 들어올 수 있지."
    "그렇지만 전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사실은 목발
 이 바퀴의자보다 잔디에 훨씬 더 깊은 자국을 남기는데요."
    그 사람은 잠시 동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마침내 힘차게 손을 내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긴 내 집이야. 여기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내가  결
 정한다."
    "말씀 다 하셨나요?" 하고 올라프가 대들었다.
    "그래, 어쩔 테냐?" 하고 주인이 대답했다.
    그러자 올라프가 악어 패들에게 찡긋하고  신호를 보내면서 고갯짓을 했다. 
 그들은 금방 무근 뜻인지 알아차리고  쿠르트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미니 골
 프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인은 그걸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얘들아, 저 애를 데리고 가!" 하고 그는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들어와
 서 저 애를 데려가라니까!"
    "우린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하고 올라프가 밖에서 소리쳤다. 
 "그 바퀴가 잔디를 모두 망가뜨릴 거예요. 자 ,보세요. 바퀴자국이 잔디에 얼마
 나 깊이 패어 있는지!"
    쿠르트는 혼자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인이 쳐다보자 고통스럽다
 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주인은 화가 나서 발을 그르며  왔다갔다하다가 결
 국은 직접 쿠르트를 그 곳에서  밀어 옮기려고 했으나 의자는 꼼짝도 하지 않
 았다.
    "빌어먹을, 이 녀석 무겁기도  하구나." 하며 그는 숨을 헐떡거렸다. "좀 도
 와다오!"
    그가 바퀴의자를 흔드는 순간 쿠르트는  잽싸게 푹신한 잔디위로 떨어졌다. 
 쿠르트는 창에라도 찔려  크게 다친 것처럼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이때 울
 타리 앞쪽 길에 있던 악어  패들도 합세하여 큰 소리로 아우성을 쳤기 때문에 
 그 소리가 동네 안에까지 들리 지경이었다.
    "저 사람이 애를  내동댕이쳤어요! 저 사람이 애를  죽이려고 해요! 힘없는 
 어린애한테 폭력을 휘둘러요!"
    주인은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그리고  놀랑 나머지 쿠르트의 몸 위로 허
 리를 구부리고 이젠 정말  얼이 빠져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바깥쪽 길에 있
 는 악어 패들을 향해 쿠르트를 들어올려달라고  사정했다. 애들이 일제히 와르
 르 달려왔다. 올라프와  마리아가 쿠르트를 들어서 바퀴의자에 앉혔다. 쿠르트
 는 아픈 것처럼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그는 두 애들한테 찡긋하고는 눈
 짓을 했다. 악어 패들은  화가 난 눈초리로 꼴 보기 싫다는  듯이 주인을 노려
 보았다. 그러나 주인은 너무 흥분해서 두손을 떨고 있었다.
    규폐증 환자들이 낀 몇  명의 퇴직 광부들이 산보를 하다가 울타리에서 발
 길을 멈추고 이  광경을 모두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주인에겐 고통스러
 운 일이었다.
    악어 패들은 쿠르트를  골프장에서 밀고 나왔고, 주인은 뒤따라  나와 울상
 을 지으며 말했다.
    "난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어. 운이 나빴어. 운이 나빴다고."
    올라프가 돌아서서 을러댔다.
    "이제 저 애를 데리고 의사한테 가겠어요. 아마 뭐가 부러졌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그건 아저씨 책임이에요... 힘없는  애를 사정없이 바퀴의자에서 끌어 
 내던졌다고... 그렇게 고발하겠어요."
    "그렇지만 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고 주인은 소리쳤다. "저 앤  앞
 으로 바퀴의자를 타고 내  골프장에 들어와도 괜찮아. 괜찮고 말고. 게다가 입
 장료도 필요 없어."
    악어 패들은  그가 뭐라고 떠들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쿠르트를 
 밀고 숲 속으로 들어갔고 안심할  만큼 멀리 놨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마음
 껏 소리내어 웃었다. 페터는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봐, 쿠르트야." 하고 하네스가  외쳤다. "네가 그때 굴러 떨어진 건 정말 
 잘했어. 그야말로 기가 막혔어! 그 아저씨의 얼빠진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놨어
 야 하는 건데."
    "그런데 처음에 나는 그 아저씨가 정말 너를 끌어낸 줄 알았어."
    올라프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말야.,가장 멋진  것은 골프장 주인이 낑낑대며 안간힘을  쓰면서도 
 내가 제동장치를 잡아당겼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거야. 내버려뒀으면 그 아저
 씨는 얼굴이 벌개질 때까지 밀었을지도 몰라."
    그 말을 듣자 아이들은 더욱더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후에
 야 비로소 아이들은 다시 진정했다. 그러자 올라프가 말했다.
    "얘들아, 그만 해.  이제 진지한 얘기를 하자. 내일 오전에  그 굴뚝이 폭파
 돼.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 가서 지켜봐야 돼."
    "이런 제기랄, 난 거기  갈 수 없어." 하고 쿠르트가 끼여들었다.  "좋아, 그
 래도 난 내 창문에서 그걸 지켜볼 수는 있을 거야."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하고  올라프가 맞받았다. "우리가 틀림없이  널 
 데리러 갈 테니까. 그렇지만 넌 감시를 게을리해선 안돼."
    볼퍼만씨네 잡에서 마리아와 프랑크가 돌아가료고  했을 때, 쿠르트의 어머
 니가 비밀을 털어놓듯 슬며시 말했다. 
    "우리가 널 위해 뭘 사왔단다."
    다른 애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보자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휘들도 같이 가도 좋아."
    볼퍼만 부인은 쿠르트를 밀고 거실을 지나 좁은 발코니로 데리고 갔다. 
    발코니 문에서 약 6미터쯤 떨어진  벽에 세 가지 색깔의 두꺼운 노루 가죽
 으로 엮어 만든 직경 50센티미터짜리과녁이 거려  있었다. 보라퍼만 부인은 아
 들에게 활과 화살을  다섯 개를 주었다. 화살은 플라스틱 화살통에  꽂혀 있었
 다. 
    "넌 언제나 활쏘기를 소원했었지. 안 그래?"하고 말하면서 어머니는 기대에 
 찬 눈초리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쿠르트는 너무도 흥문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쿠르트
 는 즉시 화살통에서화살 하나를 뽑아 활에 잰  다음 시위를 딩겨 쏘았다. 화살
 은 과녁의 ㅂ은 점애서 불과 몇 센티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박혔다.
    "쇠로 된 화살촉이 달려 있구나." 하고 화살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프랑크가 
 말했다. "이봐,쿠르트야,그것만 있으면 웬만한 사람 하나쯤은 간단히 해치울 수 
 있겠는데..."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릴랑 집어치워라." 하고 쿠르트의 어머니가  말했다. 
 "활과 화살을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선  안된다. 아니면 너휘들 나름대로 다른 
 무슨 수를 찾아봐라."
    "그렇지만 전 그런 화살을 엉덩이에  맞고 싶진 않아요." 하고 마리아가 말
 했다.
    "맙소사, 누가 네 살찐 엉덩이를 쏠까 봐서?"
    "다시 한 번 그딴  소리 해봐!" 하며 마리아다 화가나서 소리쳤다.  "그러면 
 사정없이 널 한 방 갈겨 줄 테니까."
    약이 올라 팔짝팔짝 뛰는 마리아를 쿠르트가 겨우 진정시켰다.
    이제 그들은 모두 한  번씩 과녁을 쏠 수 있었다. 과녁 한  복판의 붉은 점
 을 명중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대체로 솜씨가 나쁘진 않았다.
    "활쏘기가 쿠르트한테는  단순한 놀이만은 아니란다."  하고 볼퍼만 부인이 
 악어 패들에게 설명했다. "그건 의사 선생님이  저 애의 근육을 튼튼하게 단련
 시키기 위해 해보라고 지시한 거야. 쟤는 다른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니까 말
 이야."
    "그러지만 아주 재미있는데요."  하고 하네스가 말했다. "그걸로  꿩도 잡을 
 수 있겠어요."
    "아니면 그 미니 골프장 주인의  엉덩이를 쏠 수도 있겠어요." 하고 프랑크
 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니, 너희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하고 볼퍼만 부인이 소리쳤고 
 마리아가 미니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쿠르트가 슬쩍 
 마리아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기 때문에,쿠르트가  의자 밖으로 굴러  떨어질 
 뻔한 일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심했구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내 이담에  그 사
 람에게 좀 따져야겠다... 못된 사람 같으니라구..."
    "그러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벌써 손을 봤어요."
    프랑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다음 악어 패들은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마리아가 말했다.
    "활과 화살이라, 그것만있으면 필요할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겠는데..."
    "아무렴." 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그런데 누구한테 그걸 써먹지?"
    "너희들 가운데 엉큼한 짓을 하는 사람한테."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하네스와 프랑크는  아침 일찍 쿠르트를 집에서 데리고  나갔다. 악
 어 패들은 모두 교회앞 광장에서 만나가로  약속을 했었다.거리에 나서자 쿠르
 트가 말했다.
    "우선 날 집 뒤로 데려다 줘. 그렇지만 우리 엄마가 보지 못하게 해야 돼."
    그들은 이상히 여겼지만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쿠르트의  요청으로 프
 랑크는 발코니 밑에서  꾸러미 하나를 들고 와야만  했는데 그것은 포장이 돼 
 있었고 스카치 테이프가 붙어있었다.아이들은  뭐냐고 물었지만 쿠르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두 교회 앞 광장에 모였을때야 비로소  쿠르트는 그 종이를 뜯었다. 가로 
 세로 50센티미터쯤 되는 베니어 판이 나타났는데 그 표면은 희게 칠해져 있었
 고 그 위에는 붉은 페인트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주의! 정신적 육체적 정상인만  출입할 수 있음. 기타인은 잔디를 망치므로 
 일체 출입을 금함. 주인 백.
    "엊저녁에 만들었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너도나도 한 번씩  그 팻말을 손에 들어 보료고 했다.  애들에겐 그게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올라프가 소리쳤다.
    "이제 그걸 울타리에 매달아놓자. 문제 없어. 주인은 오후에야 골프장을  여
 니까 지금은 거기 없거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아직 닫혀 있는 미니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
 고 그 팻말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곳애 매달았다. 그런다음 숲
 을 지나 벽돌 공장으로 갔다. 
    그러나 공장 울타리까지 아직 100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에 도착했을 때 두 
 대의 경찰차가 길을 막았다.  아무도 그앞으로는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도 벽돌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놓치지않고 지켜볼 수 있었다.
    "저 굴뚝이 하늘로 날아가면  틀림없이 저 지붕과 우리 오두막집도 망가질 
 거야."하고 페터가 말했다.
    "그렇지만 돌멩이  하나 튀지 않을  거야." 하고 올라프가 반박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굴뚝은 폭파시킬 때 장난감 집처럼 그 자리에 폭삭 내려
 앉는데."
    그 순간 아이들은 에곤이 자기  친구 두 명과 함께 몇 미터 떨어진 옆자리
 에 서 있는 걸 문득 알아차렸다. 쿠르트가  올라프를 쿡 찔렀지만 올라프는 이
 렇게 말했다.
    "난 쟤들을 아까부터 복  있었어. 이봐, 저 칼리의 아버지는 고속도로  경찰
 이야. 그 사람은 아주 빠른 순찰차를 몰고 다녀. 저 애들이 그 사건과 무슨 관
 계가 있을리는 없어." 
    세명의 모페드 패와 악어 패들은 공장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그걸 믿다니, 넌 머리가 좀 돈 모양이구나."
    올라프가 대꾸했다.
    "우리 아버지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늘 입보릇
 처럼 말씀하시거든."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넌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아직 그렇게까진 생각하지 않아."
    올라프는 다른 애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얼마 후 곧 폭발이있을 것이라는 경고하는 길고 지루한 사이렌 소리가울렸
 다. 약 백 명쯤되는 구경꾼들은 조용해졌다.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쿠르트는 흥
 분한 나머지 바퀴의자  속에서몸을 이리저리 뒤챘다. 쿠르트는  망원경을 나꿔
 채 갔다.
    갑자기 "쿵" 하는 폭발 소리가 일어났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요란하지
 는 않았다.
    바로 뒤이어 높은 굴뚝이 떨리면서 휘청거리더니 고속 촬영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돌맹이 하나도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았고,  마치 굴뚝이  천천히 땅속으로 
 가라 앉는 것처럼 보였다. 자욱하게 먼지만 피어  올라 바람을 타고 시내 쪽으
 로 날아갔다.
    다시 경고 해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린 후 앞쪽의 경찰관 한명이 말
 했다.
    "자,끝났군. 간단하구만."
    경찰관들이 다시  길을 틔어주었다. 그들은  경찰차에 타고  시내쪽으로 가 
 버렸다.
    치츰차츰 구경꾼들도 사라졌다. 악어 패들은  그 폭발로 다른게 망가졌는지 
 알아보려고 울타리 쪽으로 달려갔다.
    쿠르트는 폭파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면서도 줄곧 세 명의 모페드에게서 눈
 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보고 싶었다. 그들이 불
 안해하면서 때때로 초조하고 걱정스런 눈초리로 사무실 건물을 곁눈질하는 것
 을 쿠르트는 놓치지 않았다.
    폭발이 끝났을 때  그 세사람은, 이번에도 무사히 넘겼구느  하고 말하려는 
 듯이 서로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울타리 앞에서 우선 악어 패들의 눈에 띈 것은 철망이 다시 수리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돌맹이하나도 폭발 때문에  건조실 위에 떨어지지 ㅇ았다. 폭발  전 굴뚤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쓰레기더미  만이 남아 있어 마치 화물차들이벽돌과 허물
 어버린 담장을  다른 데로 나른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세 명의  모페드 패가 
 그들 뒤로 왔다. 에곤이 자기 동생한테 물었다.
    "너 또 여기서 뭘 하는 거니? 말 좀 해봐라."
    "보면 몰라?" 하고 프랑크가 대답했다. "구경하는 거야.형처럼 말야."
    "썩 꺼져." 하고 에곤이 말했다. 
    "형도 꺼져."하며 프랑크가 맞받았다. "괜히 큰소리만 치지 말고."
    "까불지마, 이 멍청아."
    "형이나 까불지 마 허풍쟁이 같으니라고."
    프랑크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형제간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악어 패
 들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에곤은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다른 두 친구한테 눈짓을 하고는 타다달거
 리며 들길을 따라 벽돌 공장으리 다른 쪽,  커다란 출입문이 있는 곳으로 모페
 드를 몰고 사라졌다.
    올라프는 다른 애들이 들을 수 없게 목소리를 낮춰 쿠르트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암, 맞고 말고, 그렇지만 난 아직도 그걸 믿고 싶지 않아."
    쿠르트가 속삭였다.
    "그렇지만 맞다는 것만으론 충분치 못해. 쿠르트야, 우린 그걸 증명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말을 믿지 않을거야."
    올라프가 역시 속삭이듯 말했다.
    올라프 혼자서  바퀴의자를 말었다. 악어 패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그때 쿠르트가 물었다.
    :만약 우리 추측이 맞고 또 그걸 증명할 수 있다면, 프랑크는 어떻게 되지? 
 그 앤 어쨌든 에곤의 동생이니까 말이야."
    "프랑크가 자기형과 무슨  상관이야. 프랑크는 만의 가게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도둑질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만 , 우리가 걔들을  신고하면 프랑크는 자기 친형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진 않을 거야. 이건 정말 골치 아픈 문제구나."하고 올라프가 대답했
 다.
    "프랑크가 안됐어. 그 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으니..."하고 쿠르트가  말
 했다.
    네 명의 폭파반이  공장 앞의 화물 트럭에  장비를 실었고 짐을 싣는 일을 
 끝내자 커다란 출입문을  굵은 쇠사슬과 맹꽁이 자물쇠로 잠갔다. 그  일을 마
 치자마자 그들은 출발했다. 모페드 패들은 더 이상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자, 이제 어쩐다지?"
    마리아가 물었다.
    모두들 그 애를  쳐다보았다. 마치 마리아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상
 한 말이라도 한 것처럼.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린 도대체 어떻게 해야되지?" 하고 마리아가 물었다.
    "지금 말야?"
    잠시 후 루돌프가 되물으면서 자기 잭나이프를 쇠사슬에 대고 문질렀다.
    "지금 우린 집으로 가야지. 오늘은 공장에 갈 수 없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네 형은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 나타났지? 직장 일은 안해
 도 되니? 아니면 병원 진료증이라도 떼온 모양이지?" 하고 페터가 물었다.
    "나도 몰라." 하고 프랑크가 화가  난 듯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프랑크를 내버려 둬."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자, 준비! 땅!"
    오토가 소리치면서  불란서제 10단계 자전거를 뛰어올랐다.  오토는 안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선  채 언덕배기를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다른  애들은 그
 처럼 위험하고 대담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뒤따라 달려갔다.
    쿠르트 옆에 남아 있던 마리아가 말했다.
    "오토는 저러다 언제 다시 한 번 목이 부러질 거야."
    "나도 자전거가 있으면 탈 수 있을 텐데..."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뭐라고? 네가 자전거를 탄다고?"
    마리아가 깜짝놀라소 물었다.
    "물론이지. 바퀴가 세 개 달린 특수 자전거가 있으면 말야. 그럼 상체와  다
 리에 벨트를 메고 특별히 고안된 페달이  있어야지.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에겐 
 그런 특수 자전거는 너무  비싸, 천 마르크가 넘는걸. 의료 보험으로는 그런걸 
 할 수 없어. 사회후생국에서도 그건 안 해줘. 그 사람들은 한마디로 그게 사치
 라는 거야."
    "그렇게 비싸니?" 하고 마리아가 물었다.
    :그럼, 그런 자전거는 엄청나게 비싸."
    쿠르트가 대답했다.
    숲 밖으로 나왔을 때 아이들은 미니 골프장 앞에 퇴직 광부들이 서서 뭐라
 고 떠드는 것을 보았다.  몇 구역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골프장 주인이 흥
 분해서 뛰어왔다.
    악어 패들은 마리아와 쿠르트를 기다리기 위해 숲의 가장자리에서 쉬고 있
 었다. 그들은 관목 덤불에서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지켜보았다.
    골프장 주인이 팻말을 읽어보더니 그걸 울타리에서 떼 내면서 소리쳤다.
    "녀석들, 혼을 내줘야지... 이런 뻔뻔한 짓을 하다니!"
    그런 다음 그는  골프장 정문을 열고 팻말을 든 채,  골프채와 공을 보관해 
 놓고 입장권도 파는 조그만 집안으로 사라졌다.
    쿠르트가 다급하게 프랑크에게 물었다.
    "프랑크야, 말 좀 해봐. 네 형은 공장에서 월급을 많이 받니?"
    "모르겠어. 어쨌든 형은 언제나 쪼들려. 뭐 때문에 그런 걸 다 묻니?"
    "아, 그저 그냥..." 하고 쿠르트는 얼버무렸다.
    "넌 가끔 가다 엉뚱한  걸 묻더라." 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그런 다음  아이
 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일요일에는 매년 앵무새  주택 단지의 각종 단체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숲의 축제"가 열렸다.  사격 클럽과 노래클럽, 구주회(아홉 개의  핀을 네모꼴
 로 새워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가죽으로  싼 목재 공을 굴러 쓰러뜨려 그 득점
 을 이루는 경기)클럽,  체조 클럽, 핸드볼 클럽  등이 공동 주최하는 것이었다. 
 숲 속에는 탁자와 의자들을 갖다 놓고 노점과 텐트에서 순대와 맥주, 과자, 풍
 선 따위를 팔았다. 소방서 악대가 무도곡을 연주했다. 무도장은 나무판자로 꾸
 며져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와  오락도 마련돼 있었다. 두 눈을 가리고  3미터 길이
 의 막대기로 원 한가운데에  놓여진 소리나는 병을 찾아내어 깨뜨리는 놀이도 
 있었다.
    높은 기둥을  기어올라가는 경기도 있었는데,  기둥 꼭대기에는  여러 가지 
 선물들을 달아 놓은 바퀴가 부착돼 있어서 그 바퀴에서 선물을 낚아채는 아이
 는 그걸 가질 수  있었다. 악어 패 가운데서 가장 나무  타기에 능숙한 프랑크
 는 손목시계를 낚았고  올라프는 수영복을, 그리고 오토는 흰 운동화  한 켤레
 를 얻었다.
    복권도 팔았고 따라서 돈도  많았기 때문에 남는 돈은 후에 양로원에 기부
 했다.
    악어 패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잔치  마당에 나타났다.  마리아와 하네스가 
 쿠르트를 데려오긴 했지만, 쿠르트의 부모도 축제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쿠
 르트는 집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들은 느지막하니 축제에 갈 작정이었다. 쿠
 르트의 아버지는 너무 일찍  가면 돈을 너무 많이 쓸까 봐  겁을 냈다. 쿠르트
 는 악어 패들과 어떤 계획에 관해 상의하고  싶었기 때문에 빨리 ;축제에 가고 
 싶어 몸이 달았다.
    마침내 부모와 함께 축제를 위해 숲 속에 왔을 때 쿠르트는 다른 손님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자전거를 타고 탁자와 의자 사이를 요리조
 리 맴돌고 있는 마리아와 올라프를 금방  찾아냈다. 쿠르트는 올라프에게 손짓
 을 했지만 올라프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올라프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가와서는 바퀴의자 
 옆의 긴 의자에 앉았다. 쿠르트는 자기 부모가  이웃 사람들과 열을 내서 얘기
 에 몰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라프에게 가만히 말했다.
    "너희들이 날 여기서 풀어주지 않으면 난 오후 내내 여길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지?"
    올라프가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일에는 자기보다 경험이  많은 누이
 동생 마리아에게 손짓을 했다.
    "나도 몰라. 궁리를 해봐.... 근데 말야, 난 우리가 오늘 그 모페드들을  현장
 에서 붙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또 그놈의 예감이구나."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봐. 그놈들에겐 가장 좋은 기회가 바로 오늘일  거야. 
 모두가 축제에 와있으니까... 그건 분명해. 생각 좀 해보라고."
    "그건 말도 안 돼."
    그들 옆에 앉은 마리아가 말했다.
    :이런 훤한 대낮에..."
    "훤한 대낮이라도 어쨌든 오늘은  그놈들에겐 밤보다도 더 안전하거든... 맹
 세코 내 말이 맞아...  그놈들은 이제 시간이 많지 않아. 곧 불도저가 몰려오고 
 그러면 그 세 녀석은 산통 다 깨지는 거야."
    "좋아."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내가 가서  프랑크를 데려오지.  그 애가 
 뭘..."
    "안 돼. 프랑크는 안  돼." 하며 쿠르트가 황급하게 가로막았다. "다른 애들
 은 다 데려와도 좋지만 프랑크는 안 돼. 걔는 거기 없는 게 제일 좋아."
    "그렇지만 너 참 웃기는구나. 프랑크는 나와 함께 바퀴의자를 가장 잘 조종
 할 줄 안다구."
    "하네스가 보이거든 걔한테 부탁해. 그 애가 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루돌
 프한테 부탁하던가, 페터도 전에 날 밀어 준 적이 있어...프랑크한테 만은 제발 
 우리가 뭘 하려는지 말하지마."
    "너 정말 웃기는구나."
    마리아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나 마리아의 오빠인 올라프가 거들었다.
    "쟤가 말한 대로 해.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쿠르트의 추측
 이 옳다면 오늘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거야. 이제 가 봐. 입 조심해. 이 
 계집애야."
    쿠르트는 그 후에도 한 시간을 더 부모님 옆에 앉아서 구운 소시지를 먹고 
 콜라 한잔을 마셔야  했다. 이제는 뭘 먹거나  마시는 게 전혀 겁나지 않았다. 
 일을 봐야 할 때면 악어 패들이 능숙하게  쿠르트를 도와줄 수 있었으니까, 모
 든 게 몇 주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 버렸던 것이다.
    쿠르트는 악어 패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마리아가  쿠르트에게 신호
 를 보낸 다음.  다가와서 쿠르트의 부모에게 쿠르트와 함께 가도  되느냐고 상
 냥하게 물었다. 쿠르트의 어머니는 뭐라고 토를  달았지만 아버지는 선선히 승
 낙했다.
    "그래, 데리고 가렴. 걔가  하루 종일 우리 옆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는  없
 지.
    마리아와 하네스가 쿠르트를 밀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다른 악어 패
 들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프가 말했다. 
    "쿠르트야, 말 좀 해봐. 우리가 네 활과 화살을 가져가면 안 되겠니?"
    "난 우리 집 열쇠가 없는데..."
    "그럼 그게 지금은 발코니 위에 없단 말이야?"
    빌리가 물으면서 생각에 잠겨 금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니, 틀림없이 발코니 위에 있어.  올라프야, 네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발
 코니위로 올라가... 어쨌든 집안엔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도 널 보는 사람은 없
 을 거야."
    올라프가 훌쩍 자전거에 올라타고는 선수처럼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오토
 가 물었다.
    도대체 프랑크는 어디 있지?"
    "찾을 수가  없었어." 하고 마리아가  둘러댔다. 마리아는 프랑크를  보기는 
 했지만 악어패들이 자기네 오두막집에서  만나려고 한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
 지 않았었다.
    "말도 안 돼." 30분 전에도 숲 속에 있었는데..." 하고 루돌프가 대답했다.
    "눈치가 있으면 틀림없이 우릴 찾아낼 거야."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같은 악어 패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
 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사가 잘됐으면, 하고 마리아는 속으로 빌었다.
    올라프가 10분 후에,  정말로 활과 화살을 가지고  돌아 왔을 때, 아이들은 
 벽돌 공장으로 향했다. 올라프가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옆집에 누가 있었어. 하루 종일 창가에 붙어 있는 할머니 말야. 그  할머니
 가 내가 발코니로 기어올라가는 걸 본 것 같아."
    "그래도 상관없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오르막길에서 그들은  멈추었다. 그리고 올라프가 흥분한  목소리로 쿠르트
 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넌 그  놈들이 오늘 나타나서 창고를  비울거라고 정말 믿는 거
 니?"
    "그런 예감이 들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뭐라구? 나도 너처럼 예감이란 걸 가져 봤으면 좋겠다."
    페터가 소리치면서 콧구멍을 후볐다.
    "만약 네 말이  맞는다면 어떡하지?"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그럴지도 몰
 라. 안 그래?"
    "그놈들이 안  온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계속 축제 마당을 돌아다녀봐야 별볼일 없다구. 그건 노인들 잔치니까."
    아이들은 바퀴의자를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다시 울타리에 뚫지 않
 으면 안되었다. 요전처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쿠르트는바퀴의자옆주머니에 
 자신의 공구를 지니고  있었다. 바퀴의자가 쉽게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구멍
 을 뚫는 데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바보들  같으니라고." 하고 마리아가  한탄을 했다. "몇주 후면  모든 
 게 다 날아가  버릴텐데도, 그전에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다  철저하게 틀어막
 는단 말이야."
    페터가 커다란 벽돌 위로 바퀴의자를 밀었기 때문에 쿠르트는 하마터면 곤
 두박질을 칠 뻔했다.  위기일발의 순간 바퀴의자를 붙잡아서  가까스로 무사할 
 수 있었다. 
    "아이고, 쿠르트야. 넌 좌우지간 우리한테 엄청난 골칫거리구나."
    자신의 실수에 화가 난 페터가 말했다.
    "이것 좀 봐라."  하고 올라프는 자기 누이동생에게  두손을 내밀면서 말했
 다. "난 곧 손톱이다 닳아 없어질거야. 저 빌어먹을 철조망 때문에 말야."
    "그렇지만 아직 손톱이 멀쩡한데, 뭘...너무 허풍떨지마. 자 이제 가자구."
    마리아가 소리쳤다. 건조실과 벽돌 안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이젠 어쩐다지?"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이제 우린 산 앞에 선 황소 꼴이
 구나."
    "기다려. 그저 기다리는 거야." 하고 쿠르트가 달래듯이 말했다.
    "넌 참 태평이구나.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야? 제기랄."하고  페
 터가 대꾸했다.
    "왜 그렇게 안달이지?" 하고 쿠르트가 소리쳤다. " 너희들은 언제나 명령만 
 떨어지면 제꺽제꺽  대령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구나. 그저 모든  게 금방금방 
 이루어져야 한다, 이 말이지...  너희들은 인내심 같은 건 손톱만큼도 모르는구
 나..."
    "인내심이라..." 하고 오토가 물었다. "대체 그게 뭔데?"
    "맛있는 과자지." 하고 마리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대답하고 모두가 
 와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오토는 뜨거운 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녔다.
    "난 7시까지 집에 가야 하는데..." 하고 페터가 말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하고 올라프가 되물었다.  "오늘. 같은 날 숲의 
 축제에도 참석하지 않고... 게다가  지금은 방학이잖아. 네가 부모님과 함께 휴
 가 여행을 떠났더라면 7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됐을 거 아냐"
    "그렇지만 우린 휴가 여행을 가지 않았거든." 하고 페터가 대꾸했다.
    카세트 녹음기를 자전거에 싣고 온 올라프가 그걸 오두막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날씨는 무더웠고  숨이 턱턱 막힐 듯한 열기가 마당  위를 어른거렸
 다.
    "마실 건 아무 것도 안 가져왔구나."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그럼 그 지하실로  가 보렴."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거긴  쌔고 쌨으니
 까. 소주와 포도주와 맥주 같은 게 말야."
    "그렇지만 집에 가서 술 냄새가 나면 아버지한테 뺨을 맞을 텐데." 하고 마
 리아가 대답했다.
    "그 음악을 좀 줄여라."
    쿠르트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바퀴의자  옆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띄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쿠르트는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울타리를 따라 달려가는 사람을 .발견했던 것이다. 쿠르트는 망원경을 들
 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프랑크로군"
    쿠르트와 올라프는 당황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고 하네스도 머리를 떨
 어뜨렸다.
    "저 녀석 집에나 쳐 박혀  있을 것이지..." 하고 쿠르트가 조그만 소리로 말
 했다. 그러나 페터가 그 소리를 듣고는 쿠르트를 쿡 찌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니? 도대체 뭐 때문에 프랑크가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 거지?"
    "나중에 얘기해 줄게."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그때 프랑크가 벌써  오두
 막집으로 들어서면서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너희들 정말 의리 없는 애들이구나...아무 말도 안하고 너희들끼리만 싹 새
 버리다니..."
    "널 찾았지만 안 보이더라." 하고 마리아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렇게 흥분
 하지 말고 여기 앉아."
    프랑크는 기분이  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뚱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벌어진 활쏘기애도 끼지 않았다.
    올라프가 나무판자 하나를 가져다가 벽에 붙여놓고 볼펜으로 그 위에 원을 
 그려 넣었다. 한 사람이  다섯 번씩 쏠 수 있었다.1회전에서는 페터가 두 발을 
 명중시켜 일 등을 차지했고  마리아가 다섯발 가운데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하
 자 모두들 괜히 고소해했다. 그중 두 번은 아예 나무 판자도 맞히지 못했다.
    프랑크는 구석에 고집스럽게  앉아서 아직도 화를 풀지 않고  있었다. 쿠르
 트는 왜 프랑크가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이 좋은지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그
 럴 수가 없었다.  만약 의심했던 것이 사실로 증명되지 않으면  프랑크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고, 그렇게 되면 프랑크와의  우정도 끝장날 것이기 때문
 이었다.
    갑자기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그 놈들이다!"
    쿠르트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폴크스바겐 트럭 한 대가 공장 앞 들길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네 예감이 맞는 구나."
    페터가 싱긋이 웃으며 쿠르트에게 말했다.
    "이놈들, 오기만 해봐라. 활로 쏴버릴 테니까"
    흥분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빌 리가 활을 집으려고 하자 쿠르트가 나
 직하게 말했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하라구! 그 놈들이야.  그놈들이 왔어... 정말 그놈들이
 야."
    아이들이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 조용해져서 그저 마당 저쪽 건너편의 
 공장 정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정말로 폴크스바겐 트럭이  정문 앞에 나타났다. 공장 문은  앞서 폭파조가 
 꽁꽁 잠가 놓은 상태였다. 트럭은 문 앞에  서 있었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
 다.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고 자동차 위로 뜨거운 열기만이 어른거렸다.
    "유령 차구나." 하고 마리아가 속삭였다.
    그런데 갑자기 세명이  문 앞에 서서 잠긴  문을 열려고 손을 쓰기 시작했
 다. 올라프는 흥분해서 쿠르트의 손에서 망원경을 낚아채 갔다.
    "뭐니?" 하고 마리아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놈들이 ㅃ찌로  울타리를 자르고 있어."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다.  지금 
 문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려고 서로 망원경을  빼앗았다. 그러나 
 악어 패들은 아직 아무도 세명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철망이 잘려 나갔고  그 3인조는 마당을 지나 곧바로 사무실  건물로 갔다. 
 마침내 자기  망원경을 되찾은 쿠르트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마디 툭 던졌다.
    "에곤 칼리야. 다른 하나는 모르겠는데."
    "그럴 리가 없어!" 하고 프랑크가 소리쳤다.
    마리아가 손으로 프랑크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 미쳤니! 저놈들이 네 소리를 들으라고 그렇게 고함을 치니?"
    "우리형이라고?"
    프랑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물었
 다.
    "그래, 네 형이야."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난  벌써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 
 난 그저 그걸 믿고싶지 않았던 거야."
    "칼리가 한패라니..." 하고  페터가 말했다. "걔 아버지는 순찰차를  모는 경
 찰관인데."
    세명의 청년은 낡은 사무실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악어 패들은 그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따름이었다. 아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프
 랑크만이 계속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형이...형이..."
    악어 패들은 숨어 있는 곳에서 꼼짝 못하고  감히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그저 홀린  듯이 낡은 사무실 건물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가슴을 졸이면서 다음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기다
 렸다. 프랑크는 다시  오두막집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
 다. 입술만이 움직이고 있을  뿐,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아무도 들을 수 없었
 다.
    잠시후 세명이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각자 마분지 상자들을 들
 고 광장을 건너 정문의 구멍은  통해 밖으로 나가더니 뒷문이 활짝 열려 있는 
 트럭에다 상자들을 쌓아 놓았다.
    "난 전부터 알고 있었어." 하고 쿠르트가 속삭였다.
    "넌 우리형이 한패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 하고 프랑크가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내지마." 하고 마리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난 첨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3인조는 사무실 건물로 돌아가더니 2,3분 후에  다시 마분지 상자들을 들고 
 밖을 나와 자동차 있는 데까지 운반했다.
    "이제 우린 어쩐다지?"
    올라프가 약간 말소리를 높여서 물었다. 
    "낟 모르겠어."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넌 무슨 수가 있니?"
   그러나 올라프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쿠르트는 화살  다섯 개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손에는 활을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초조한 듯 그걸 만지작거렸다.
    "쫄리는데..."
    갑자기 하네스가 말했다.
    "뭣 때문에?"
    올라프가 물었다. 
    "그 놈들이 우릴 발견하면 우릴 반쯤 죽여 놓을 거야." 하고 하네스가 말했
 다.
    3인조가 세 번째 건물 밖으로  나와 상자를 들고 마당을 지나갈 때 쿠르트
 가 말했다.
    "이제 드디어 증거를 잡았군."
    "물론이지."하고 올라프가 맞장구를 쳤다. "물건을 치우는 걸  보면 그걸 훔
 친 게 분명해."
    숲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축제가  지금 한창이라
 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악간 큰 소리로 다시 얘기를 계속했다. 더구나 그 
 3인조가 마음을 턱 놓고 자기들을 누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
 었으니까.
    올라프가 물었다.
    "이제 어쩌지? 마당으로 뛰어나가 저  세녀석들한테 '바로 네놈들이 도둑이
 구나!"하고 호통을 칠까?  그놈들은 아니라고 딱 잡아떼겠지. 경찰은 우리말을 
 믿지 않을 거야...  저 녀석들도 그때 우리처럼 우연히 발견한  거라고 우길 테
 니까."
    "물론이지."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렇지만 그 놈들이 우릴  없애버릴 순 
 없어. 그리고 우릴 없애버릴  수 없으니까 우린 증인 인 셈이야... 경찰은 틀림
 없이 우리말을  믿을 거야.  경찰은 뭐든지  다 알아낼  수가 있거든... 그리고 
 또... 우리 엄마도 내 말을 믿고 우리아버지도 내 말을 믿어. 그게 제일 중요한 
 거지."
    "이봐 쿠르트야, 넌 정말 대단한 탐정이구나." 하고 페터가 말했다.
    "그건 수사관이라고 히는 거야."하고 올라프가 받았다. "이제  제발 좀 콧구
 멍 좀 그만 후벼라."
    "난 수사관이 아냐."  하고 쿠르트가 대답했다. "난 너희들 보다  시간이 많
 을 뿐이야. 난 바퀴의자에 앉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지켜볼 시간이 더 많고 
 혼자 생각을 할 수 있거든..."
    그 3인조는 아주 안심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의심의 눈초리
 로 주위를 살펴보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지하실에 숨겨 두었던 자전
 거 두 대도 트럭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이때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전에 악어 패
 들이 자기네  오두막 근처에서 쫓아버렸던 이탈리아  아이들이 울타리 주위를 
 따라 걸어왔던 것이다.  그 아이들은 큰 소리로 떠들고 노래하고  웃어대며 술
 래잡기도 했다. 올라프는 조그만  목소리로 혼자 욕을 했다. 이 이탈리아 녀석
 들이 이에 일을 모두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올라프는 생각했다.
    그 3인조도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얼른 어두컴컴한  복도로 들어가서 기다렸다. 아이들은  폴크스바겐 트
 럭 있는 데까지  오더니 발길을 멈추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저 녀석들이 이제 무슨  짓을 하려는지 조마조마한데..." 하고 올라프가 속
 삭였다.
    "얘들아, 난 지금  혼자 마당으로 나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좀 봐야겠
 다.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너 미쳤구나." 하고  마리아가 놀라 소리치면서 옆으로  가서 쿠르트를 꼭 
 붙잡았다. "그놈들이 널 보면 너  혼자 여기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꺼야. 너 
 혼자서는 이 공장으로 올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말이야."
    마리아는 흥분해서 말했다.
    "제발 좀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줘."  하고 올라프가 거들었다. "너  때문에 
 우리 모두가 발각된다고. 마리아 말이 맞아."
    프랑크는 풀이 죽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프랑크는 아직도 자기형
 이 도둑 패들의 하나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악어 패들은 오두막 안에  앉아 홀린 듯이 마당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
 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서로 망원경을 뺏
 느라 옥신각신했다.  무엇보다 그 이탈리아  애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
    갑자기 이탈리아 애들이  놀라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애들은 
 활짝 열린 트럭 뒷문을 발견하고 차안에 쌓인  물건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 녀
 석들은 너도나도 다투어 모두들 트럭에서 자기가 가져갈 수 있는 무엇들을 들
 고 나왔다. 검은머리를 길게 땋아 늘인 한  여자에는 두 대의 자전거가운데 한 
 대를 잡더니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나섰다.
    이 순간 칼리가 어두운 복도에서 뛰쳐나왔고  에곤이 바로 뒤를 따랐다. 그
 들은 자기들 차  있는 데로 달려가면서 아이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겁을 주었
 다. 아이들은 두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꼬마는 에
 곤과 칼리가 갑자기 쫓아 나오자 놀라소 전리품인 담배와 술병을 내던지고 도
 망쳤다. 에곤과 칼리는 고함을 지르고 을러대면서 아이들을 쫓아갔다.
    "이거 참 웃기는  군." 하고 쿠르트가 갑자기 말했다. "저  이탈리아 애들은 
 다른 사람이 훔친 물건을 또 훔치는구나."
    이탈리아 아이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들판으로 냅다 도망쳤다. 검은머리를 
 길게 땋은 여자 애는 훔친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좁은 길을 달려 내려갔다.
    에곤과 칼리는  숲 가장자리까지 아이들을  뒤쫓아갔지만 하나도 붙잡지는 
 못했다. 둘은 감히 그  이상 쫓아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계속 쫓아갈 경우엔 
 숲의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에 띌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
 시 돌아섰다.
    이탈리아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세 명의 절도범들은 이제 서둘러 창고를  비웠다. 그들은 뭐라고 욕을 내뱉
 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이렇게 약 30분이 지났다. 악어 패들은 아무
 도 은신처에서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벌벌 떨고 있으니 참 한심하구나."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럼 어쩌란 말이야?"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경찰한테 가서 세 명을 신
 고하면 어떨까?"
    그러고 나서  올라프는 쿠르트와 마리아만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죽여 
 이렇게 덧붙였다.
    "프랑크의 형이 끼어있으니, 원..."
    빌리는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그 사람이 단지 프랑크의 형이라는 이유 때문에 도둑질을 해도 된단 말이
 니?" 하고 마리아가 대들었다. "생각 좀 해봐. 우리가 모르는 낯선 사람이라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라면 어쩌겠니?"
    "그렇지만 이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냐."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이건 
 프랑크의 형이야. 모두 한꺼번에, 에곤까지  신고해버리든가, 아니면 아예 신고
 하지 않던가 둘 종 하나지."
    "이것 참 골치 아픈데."
    올라프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악어 패들은 기가 죽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무도 신통한 수를 내놓지 
 못했다.
    그들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면서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동안에 쿠르
 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마당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쿠르트는 환한 햇빛
 이 눈에 익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뚜렷한 생
 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악어 패들은 쿠르트가 천천히  두 개의 큰 바퀴를 밀면서 마당으로 나가고 
 있을 때야 비로소 그 애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놀라서 몸이 굳어질 
 지경이었다. 마리아가  돌아오라고 소리를 치려다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모두들 그 자리에 선 채 마당을 쳐다보며  기다렸다. 이제 무슨 일인가가 벌어
 질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쿠르트는 그 3인조에게 발각될 것이 분명했다.
    "저 쿠르트 녀석, 돌았군."
    풀이 죽어 있다가 좀 기운을 차린 프랑크가 말했다.
    그때 에곤이 복도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칼리가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그들은 이번에도  물건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에곤은 
 발길을 멈추고는 땅에  뿌리가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에곤이 저것 
 보라고 칼리를 발로  건드려 신호를 보냈다. 세 번째 친구도  어두운 복도에서 
 마당으로 나왔다.
    쿠르트는 세 사람과  약 2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쿠르트는  바퀴의자를 멈
 추었다. 이제  쿠르트도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만약의 경우에 한 
 발짝이라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에곤은 천천히 상자를 두 발 사이에  내려놓았다. 그도 쿠르트의 출현에 놀
 라서 입을 다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천천히 팔을  내리더니 에곤이 쿠르트를 향해  걸어왔다. 다른 두  명이 그 
 뒤를 따랐다.
    갑자기 무슨 생강이 떠올랐는지 쿠르트는 자기 옆을 더듬어 바퀴의자의 손
 잡이네 걸려 있는  활을 집어들고는 화살 하나를 활에 재었다.  그러곤 활시위
 를 약간 당긴 다음 에곤한테 소리쳤다.
    "더이상 가까이 오면 네 배에다 화살을 쏠  테다! 화살엔 쇠로 된 화살촉이 
 달려있어."
    에곤은 쿠르트의 예기치 않은  단호한 태도에 기가 질려 정말 발걸음을 멈
 추고 유령을 쳐다보듯이 쿠르트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에곤이 말했다. 
    "이것 보게! 질버가의 그 병신 새끼로군."
    그러고 나서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썩 꺼져! 임마, 꺼지라구! 그렇지 않으면 가만 안 놔둘 테다!"
    칼리가 에곤 옆에 와 있었고 세 번째  녀석은 그 뒤에서 있었다. 셋은 모두 
 쿠르트를 노려보았다. 쿠르트를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쿠르트로부터 약 10미터쯤  떨어져 있
 었다. 쿠르트는 활에다 화살 하나를 먹여들고  금방이라도 쏘아버릴 것처럼 때
 때로 시위를 약간씩 당겼다.
    "썩 꺼져, 이 영신  새끼야." 하고 에곤이 소리쳤다.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걸."
    쿠르트는 울음이 터지게 직전이었다. 쿠르트는 되받아 소리쳤다.
    "다시 한 번 나한테 병신이란 말을  하면 네 배때기에다 화살을 먹여 주지, 
 이 도둑놈아!"
    "대체 저 꼬마가 누구니?" 하고 쿠르트가 모르는 세 번째  녀석이 장난기를 
 흘리며 물었다.
    "아, 이건 그저 우리 동네에 사는 병신 새끼야." 하고 에곤이 대답했다.
    그 순간 쿠르트는  활을 당겨 발사했고 화살을 에곤의  허벅다리에 맞았다. 
 화살은 박힌 채로 빠지지 않았다.
    에곤은 고통에 못  이겨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는  쿠르트한테 달려들
 려고 했지만 오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춤을 추듯 
 날뛰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화살을 다리에서 빼내려고 했지만, 한 번 손
 을 댔다가는 고통에 못 이겨 더욱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쿠르트는 즉시 화살 하나를 또 활에  재었다. 쿠르트는 혼자서 자기를 지켜
 야 할 경우에는 누구든 접근하는 사람에겐  화살을 날릴 작정이었다. 쿠르트는 
 몇 걸음 다가온 칼리한테 소리쳤다.
    "한발만 더 오면 에곤처럼 맛을 보여주지. 거기 멈춰, 이 녀석아. 아니면 당
 장 꺼져버려."
    에곤은 마침내 허벅지에서 화살을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상처에서 피가 흘
 렀다. 그는 붕대를 가져다 상처를 싸매려고 절뚝거리며 차 있는 데로 갔다.
    칼리는 망설였다.  갑자기 쿠르트의 화살이 무서웠다.  그는 쿠르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칼리가  쿠르트를 향해 씩 웃었다.  그는 얼굴 가득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쿠르트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누가 쿠르트
 를 밀었고,  그 바람에 바퀴의자는 마당으로  굴러갔다. 쿠르트는 자기 등뒤로 
 세 번째 녀석이 다가온 것을 몰랐었던 것이다. 
    쿠르트는 너무  놀라서 바퀴의자의 제동장치를  잡아당기는 것도 잊어버렸
 다. 바퀴의자는 너무 빨리 굴러가는 바람에 뒤집힐 지경이었다.
    쿠르트는 사무실 건물 벽이 점점 더 빨리,  그리고 점점 더 겁나게 자기 앞
 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다음 순간 바퀴의자가 "쾅" 하고  벽에 부딪쳤다. 충격이 너무도 컸기 때문
 에 바퀴의자는  30센티미터나 되퉁겨  나와서 뒤집혔다. 쿠르트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쳐다. 그러나  이 순간 악어 패들이 건조실에서 마당으로  쫓아 나
 왔다. 아이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목이 터져라 악을 썼기 때문에  마치 수 백
 명이 몰려나오는  것 같았다. 악어  패들은 달려나오면서 땅바닥의  돌을 주워 
 들고는 도둑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에곤은 마당으로 돌아오지 않고 차안에서  허벅지를 붕대로 싸매고 있었다. 
 악어 패들은  쿠르트를 벽에다 밀어붙인 녀석에게  집중적으로 돌멩이 세례를 
 퍼부었다.
    두 녀석은 갑자기 악어  패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놀라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자동차 있는 데로 도망치더니 에곤이 앉아 있는 운전석으로 뛰어들어 차
 를 몰고 가 버렸다.
    악어 패들은 떠나는 차에다 돌을 던졌지만 맞히지는 못했다.
    마리아와 하네스가  곧장 쿠르트한테 달려왔다. 마리아는  즉시 바퀴의자를 
 일으켜 세웠지만, 하네스와 힘을 합쳐도 쿠르트를  다시 의자 안에 들여앉히기
 에는 힘이 부쳤다.
    쿠르트는 땅바닥에 고꾸라져서 약하게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올라프와 프랑크가 함께  힘을 합쳐 쿠르트를 의자 안에  들여앉혔다. 마리
 아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뇌었다. 
    "아직 살아 있구나... 이런 나쁜 놈들... 이런 나쁜 놈들..."
    마리아는 침으로 손수건을 적셔서 쿠르트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조그만 상
 처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마리아는 테오의 스코틀랜드 모자로  쿠르트의 옷을 
 털어 주었다.
    "그놈들, 뜨거운 맛을 보여줄 테야.  돼지 같은 놈들..." 하고 올라프가 소리
 쳤다. "이제 놈들을  신고해야겠어. 힘없는 애한테 폭력을  휘두르다니. 놈들을 
 신고하자구! 프랑크의 형이 끼어 있다고 해도 난 이제 상관안해."
    마리아와 함께 쿠르트를  보살피고 있던 프랑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뺨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우리 부모님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줘."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렇
 지 않으면 난 다시는 너희들과 함께 다닐 수  없을 거야. 그저 숲 속에서 나뭇
 가지에 얼굴을 긁혔다고만 말해 줘."
    "걱정 마. 틀림없이 그렇게 말할 테니까."
    마리아가 안심시켰다.
    그런 다음 아이들은 그 공장을 떠났다.
    숲이 시작되는 곳에서  올라프는 바퀴의자에 혹시 흠집이라도 있는지 자세
 히 살펴보았다. 쿠르트의 이마에  난 상처에는 피가 멈추었다. 그것은 마치 나
 뭇가지에 긁혀서 생긴 벌 것 아닌 상처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좀 안심이 되었
 다. 바퀴의자도 부서지거나 긁힌 자국은 없었다.
    아이들은 숲 사이의 길을 따라 걸었다.
    축제 마당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소방서 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지만 악
 어 패들의 부모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집에 가버린 뒤였다.
    올라프가 활과 화살을  들고 먼저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쿠르트네 집 
 뒤의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 한 다음 활
 과 화살을 발코니 위로 던졌다.
    올라프는 다시 큰길로 돌아갔다. 그  동안에 마리아와 하네스가 바퀴의자를 
 집앞까지 밀고 왔다.
    "아무도 날 본 것 같지 않아."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자, 이젠 어떻게 하지?" 하고 마리아가 물었다.
    아이들은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쿠르트도 마리아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확
 실히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마리아는 다시  한 번 물
 었다.
    "내 얘긴 뭐냐  하면, 이젠 누가 범인인지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거야. 이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할 순 없어."
    올라프가 주저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린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어."
    "그리고 누가 쿠르트를 바퀴의자  채로 벽에다 부딪치게 했는지도... 쿠르트
 는 잘못하면 아주 갈 뻔했어."
    하네스가 끼여들었다. 그 애는 잔뜩 화가 나있었다.
    "난 상관없어."하고 쿠르트가 말을 막았다.
    "이젠 너만이 문제야." 하고 하네스가 대꾸했다. "너 혼자만이... 넌 죽을 뻔
 했어... 우리가 또다시 겁을 먹고 오두막집에서  몸을 사리고 나가지 않기 때문
 에 말이야."
    그때 쿠르트의 어머니가 집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애들이 너무  늦게 돌아왔다고 야단을 치려다가 쿠르트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았다. 그러나 마리아가 재빨리 선수를 쳤다.
    "별거 아니에요. 우리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쿠르트의  얼굴에 나뭇가지가 
 떨어졌어요."
    하네스와 올라프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트도  그렇다는 시늉을 
 했다.
    "엄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하고 쿠르트가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자, 들어가자."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잠깐만요. 엄마, 우린 좀 상의할 게 있어요,"
    "너희들은 언제나 상의할 게 많기도 하구나."
    어머니는 싫은 기색을 보이면서도 집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어머니가 대문
 을 닫자 하네스가 이렇게 말했다.
    "자, 너희들이 전에  나한테 물었다면 난 프랑크의 형이  끼어 있기 때문에 
 신고하자는 걸 반대했을 거야... 쟤는 죽을 뻔했어."
    "그렇지만 난 죽지 않았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들, 신고하자는 거니?"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그래 신고해." 하고 마리아가 말했고 하네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누가 하지? 누가 경찰서에 갈래?"
    올라프가 다시 물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따지듯이 훑어보았다.
    "좀 기다려." 하고  쿠르트가 끼여들었다. "너무 서두르지 마 난  다른 제안
 을 하고 싶어. 내일 우리 오두막에서 모두들  함께 만나서 어떻게 할지 상의를 
 하자는 거야... 다른 애들한테  들러서 그 얘길 해줘. 프랑크가 반드시 그 자리
 에 있어야해... 자기형이 집에서 무슨 얘길  했는지 프랑크가 우리한테 알려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넌 프랑크 더러 자기형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요구할 순 없어. 
 그건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일이야."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프랑크가 자기형에게 반대표를 던질 필요는  없어. 그건 떳떳치 못한 일이
 야. 어쨌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려
 고 하는지를 걔한테 우선 알려야 해."
    "그래서 걔가 금방  자기형한테 모든 걸 그대로 일러바치라고?" 하고  올라
 프가 말했다. 그 일은 내가 보기엔 그렇게 쉽지가 않아."
    그런 다음 애들은 특수 계단으로 쿠르트의 바퀴의자를 밀어서 집안으로 들
 여보냈다. 현관에서 쿠르트는  올라프의 등에 업혔다. 둘은 쿠르트의 어머니가 
 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그 일을 해냈다.
    "너희들 요담엔 좀더 잘  보살펴 다오 하마터면 나뭇가지가 쿠르트의 눈에 
 맞을 뻔했어."
    거실 문 앞에서 쿠르트의 어머니가 말했다. 
    셋은 정말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쿠르트가 자기 어머니 몰래 씩 
 하고 웃음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애들은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그 도시에는  심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쿠르트는 창가에 앉아 
 금방 날이 개일까, 어떨까, 조바심을 치며  밖을 내다보았다. 날이 개이지 않으
 면 악어 패들은 약속한대로 공장에 있는 오두막에서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
 다.
    쿠르트가 바퀴의자를 혼자 밀고 부엌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늦은 아침 식사
 를 하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낮 근무 조였으므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쿠르트는 아버지의 손에서  신문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신문을 내
 주지 않았다.
    "역시 그 이탈리아 사람들이 도둑질을 했어... 자기애들을 시켜 도둑질을 한 
 거야... 그놈들이 꼼짝 못할 증거를 찾아야해... 그럼 평온이 되찾아지겠지."
    쿠르트가 캐물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도둑들 말이다...  마침내 잡혔어. 이탈리아인들이었어... 애들이지...  엊저녁
 에 경찰이 교외에서 아이들 여섯 명을 붙잡았지.  그 애들은 술과 담배를 지니
 고 있었고  도둑질한 자전거도 가지고 있었어...  신문에 나있어... 그렇지만 그 
 애들이 저희들끼리 그런 짓을  했을 리는 만무하지... 그거야 뻔한 일이야... 어
 른들이 애들을 시킨 거야."
    "그래서요?"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그래서라니?" 하고  아버지가 기분이 상해서  대꾸했다. "이건 분명해.  그 
 애들은 붙잡혔을 때 하나같이 독일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어... 공장 일
 을 할  때도 그런 식이야. 그  사람들은 독일어를 배워서 의사소통  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지. 뭐냐 하면, 일이 자기네 맘에 
 들지 않으면 그런 단 말야."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쿠르트는 아버지로부터 신문을  넘겨받았다. 기사를 
 읽어보았지만 방금 아버지한테서  들은 자세한 얘기는 없었다.  쿠르트는 신문
 에서 한 아이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건 검은 머리를 한 아이의 사진을 보았는
 데 그건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인 그 소녀였다. 아이들은  그 물건들을 어
 떤 자동차에서 꺼내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신문에는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자동차는 어떤 들길에  문이 활딱 열린 채 세워져 있었고,  그 자전거는 버
 려진 차에 기대 놓여 있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가택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아
 이들의 부모들이 사는 집을  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
 다.
    훔친 물건들은  경찰에 압수되었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경찰들
 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쿠르트는 경찰이  헛다리를 짚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도둑맞은 물건을 집어갔을  뿐이었느니까. 그리고 쿠르트는 그 
 아이들이 물건을 다른 데다 팔아 넘길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쿠르트는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버지, 말씀 좀 해주세요. 그전에 다른 사람이 이미 훔친 물건을 어떤  사
 람이 훔친 경우에도 절도가 되나요?"
    "그래, 넌 뭐가 그 따위 걸 질문이라고 하니?"
    "제 얘긴요, 그럴 경우에도 벌을 받게 되는가 하는 거예요."
    쿠르트가 다시 캐물었다. 
    "그만둬라. 그런 일은 없으니까." 하고 아버지가 말을 잘랐다.
    "그건 네가 늘 그런 책을 읽은 탓이야." 하고 부엌에 들어와서 얘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서 넌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훔친 물건을 누가 좀 훔칠 수도 있잖아요." 하고 쿠
 르트는 물고 늘어졌다.
    어머니는 잠시동안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제 얘긴요, 엄마,  이미 다른 사람이 훔친  물건을 좀 슬쩍한 사람도  벌을 
 받게 되느냐는 거예요." 하고 쿠르트가 다시 물었다. 밖에선 비가 조금씩 그치
 고 있었다.
    "오늘도 찌겠는걸."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난 또  하루 종일 그 진
 절머리나는 기계를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하는구나"
    "그런 사람도 벌을 받느냐고? 물론  받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아버지한테 
 여쭤 보는 게 낫겠다."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이제  집어쳐." 하고 아버지가 짜증을 내면서 말했
 다." "범인은 이 아이들이었다고. 그게 전부야."
    "그렇지만 경찰이 잘못 짚었다면요?"
    "경찰은 실수를 하지 않아.  이제 그 바보 같은 소리는 집어쳐." 하고  아버
 지는 대답했다.
    "아마 십중팔구 모든 일이 그저 어처구니없는 우연에 불과했을 거예요." 하
 면서 쿠르트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애들은 정말 아무 죄도 없
 어요. 경찰은 벌써 여러 번 실수를 했다고요."
    "쿠르트의 말에도 분명히  일리는 있어요." 하고 어머니가  거들었다. "따지
 고 보면 그 아이들이 상점에 침입할 수는  없어요. 그러기엔 애들이 너무 어리
 거든요."
    "너무 어리다고? 또 그  소리야... 너무 어리다니, 그렇다면 그건 그  애들의 
 부모 짓이지... 대체 그 애들이 그 물건을 어디서 가져왔겠어?... 그게 하늘에서 
 떨어진 건 분명히 아닐  테니까... 자, 이젠 날 좀 귀찮게  하지마. 난 지하실의 
 선반을 치우러 가야해."
    바로 뒤이어 초인종이 울렸다. 프랑크였다.
    프랑크는 주저주저하면서 좀처럼 말을 꺼내려고 하지 않았다. 
    쿠르트의 방에 둘만 있을 때에야 프랑크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희들 오늘  오후에 오두막집에 가서  우리형을 신고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려고 하지? 난 반드시 그 자리에 참석해야겠어."
    "너 오늘 네 형을 봤니?"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그래, 형은 일하러 가지 않았어. 형은 병원에 갔어. 다리를  절룩거려. 잘못
 했으면 배를 맞았을지도 몰라."
    "만약 내가 스스로 지키지 않았더라면 네 형이 날 어떻게 했겠니? 하고 쿠
 르트가 물었다.
    프랑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나서 불안한 듯이 방안을 서
 성거렸다. 이윽고 프랑크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우리형을 쉽게 신고할 수는 없어."
    "왜 안된다는 거지? 너도  그 이탈리아 애들을 생각해본 적 있니? 그 애들
 은 어떻게 돼 있는  지 알아? 계들은 오늘 신문에 아주 크게  났어. 걔들이 도
 둑이라는 거야. 그걸 좀 생각해 봐."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네 친형이 그렇다니, 그게 사실일 리가 없어." 하며  프랑크가 혼잣말로 중
 얼거렸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간단하게 우리 형을 신고할  순 없어. 형은 감옥에 들어
 갈 거야. 틀림없어... 우리 아버지가 그걸 알면 형을 죽일 거야."
    프랑크는 이렇게 말하면서 거의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럼 혹시 이탈리아 애들이 네 형 대신에 감옥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야?"
    쿠르트가 물으면서 눈을 크게 뜨고 프랑크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버진 일단 화를 냈다 하면 인정사정 없이 형을 때릴 거야... 그리고 
 형은 아마 일자리도 잃을 거야... 다시는 일자리를 얻지도 못할 거야."
    "이따 오후에 오두막집으로  와. 그때 모든 문제를  다 상의할 테니까... 너 
 꼭 와야 한다. 알았지?" 하고 쿠르트가 다짐했다.
    "고맙다. 형이 감옥에  가는걸 내가 찬성해야 한단  말이니? 너희들도 나한
 테 그걸 요구할 순 없어."
    "아니야. 아무도 그런 걸  요구하진 않아. 그렇지만 우린 널 젖혀놓고는  아
 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쿠르트는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프랑크가 가  버리자 쿠르트는 화가 나서  엉엉 울 뻔했다.  쿠르트는 집을 
 나가 다른  악어 패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애는  자기 의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이
 렇게 말했다.
    "자, 이제 털어놔라. 나뭇가지에 쓸렸다는 말은 실은 맡지 않았다. 나뭇가지
 에 긁힌 상처는 그렇지가 않아.... 자, 무슨 일인지 얘길 해라."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꼼짝 못하게 다그쳤다. 
    쿠르트는 더듬거리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어제 축제를 떠
 난 후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쿠르트는 얘기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
 했다.
    "범인은 이탈리아 애들이 아니에요. 걔들은 아무 죄도 없어요. 걔들은  다른 
 애들이 이미 훔친 걸 훔쳤을 뿐이에요."
    어머니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
 속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진퇴양난이구나... 진퇴양난이야..."
    "엄마,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되지요?  우리가 그 세사람을 신고하지 않으
 면 이탈리아  애들은 전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감옥에 갈  거예요. 그리고 
 신고를 하면 우린 프랑크를 잃게 되요. 그런데 프랑크는 참 좋은 .애거든요."
    "아버지한테 여쭤 봐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가 그걸 알면 안돼요. 제발 아버지한텐 아무 말씀하지 마세요."
    "넌 더 이상  그걸 비밀로 할 순 없어  아버지도 어쨌든 결국은 알게 되실 
 거야. 왜 아버지한테 그 얘길 안 하려는 거니?"
    "엄마 같으면 하시겠어요?"
    쿠르트는거의 애원하듯이 물었다.
    "신고하라고 말하겠지... 그렇지만  다른 애들과 한 번 상의를 해봐라.  혹시 
 이탈리아 애들을 그 사건에서  구해 내면서도 프랑크의 형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수가 생각날지도 모르니까... 그허지만 도둑질은 결국 도둑질이지..."

    점심때 쿠르트는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마지못해 수프를 몇 숟
 가락 떠먹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또 걱정을 하면서  밖으로 내보
 내지 않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쿠르트는 아버지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오후가 되자 곧  마리아와 하네스가 쿠르트를 데리러 왔다.  벽돌 공장으로 
 가는 ㄷ중에 쿠르트는 둘에게 프랑크와 했던 말을 전했고 자기 어머니한테 모
 든 걸  다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결국  어른들에게 모든 걸 얘기하는  게 나을 
 거라고 쿠르트는 말했다.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악어패들은 이미  빠짐없이 모여  있었다. 프랑크는 
 이 세상의 고민은 혼자 짊어진 듯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올라프가 말했다.
    "난 오늘 오후에 벌써 한 번 여기 왔었어. 비가 그치자마자 저 건너 지하실
 로 가봤지. 안에는 아직도  많은 물건이 있었어. 그리고 그 놈들이 잊어버리고 
 건물 앞에 놓고 간 상자들을 복도에 갖다 놓았지."
    그러자 프랑크도 그날 아침 쿠르트와 나누었던 얘기를 다른 악어 패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해서 곧 표결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올라프가 오두막집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물었다.
    :자, 신고하는 데 찬성하는 사람?"
    프랑크만 빼고 모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지
 만 쿠르트는 손을 들지 않았다.
    "너도 반대니?" 하고 하네스가 물었다. 
    "그래... 우린 그럴 수밖에 없어."
    쿠르트는 더듬거리면서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놈들한테 그렇게 당하고 또  에곤한테 그런 소릴 들었으니 너야말로 당
 연히 신고하는 데 찬성해야 되잖아?" 하고 올라프가 말했다. "넌  죽을 뻔했어. 
 정말로."
    "그렇지만 그건 이제 나하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야." 하고 쿠르트가 반
 박했다. 그 도둑  패가 자기한테 어떤 식으로 대했는가에 따라  결정이 좌우된
 다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건 비겁한 짓이야."  하고 마리아가 소리쳤다. "힘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선 안돼. 그러니까 우린 신고해야 돼. 힘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니..."
    그때 갑자기 프랑크가 펄쩍 뛰어 일어나는  통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프랑
 크는 이렇게 외쳤다.
    "그 개  같은 놈들, 신고해 버려!  신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놈들은 
 맛을 보여줘야 해!"
    그러고 나서 프랑크는  왁 하고 울음을 터트리면서 벤치에  주저앉았다. 프
 랑크는 감정에 북받혀 흐느껴 울었다.
    악어 패들은 프랑크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쿠르트가 말했다.
    "얘들아 , 내 말 좀 들어 봐.  내게 다른 생각이 있어. 일을 전혀 다른 식으
 로 해결해보자구. 뭐냐하면 , 우리가 함께 빌헬름 가에 있는 경찰서에 가서 어
 제 본 일을 알려 주는 거야. 그러니까 이탈리아 애들은 그 사건과, 즉 그 절도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얘기해 주는 거야. 우린 그  도둑들이 지하실에서 
 물건을 내오는 것만 보았지  그들이 누군지는 알아보지 못했다고만 말하는 거
 야. 그렇게 말하자고."
    악어 패들은  쿠르트의 제안에 놀라서  어리둥절했다. 한참동안  상의를 한 
 다음 아이들은 경찰에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아무도 배반하지 않는다는 쿠르트
 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프랑크만이 다시 소리쳤다.
    "이제 와서 어쩌자는 거야?  우린 신고해야 돼, 신고를. 내 친형이 끼어 있
 어도 할 수 없어. 쿠르트는 잘못하면 죽을 뻔했어."
    "그렇지만 난 죽지 않았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러자 올라프가 중재에 나섰다.
    "자, 내 말을 들어  봐. 내 생각엔 쿠르트의 제안이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다만 경찰들이 우리말을 믿어줄지 어떨지..."
    "안 믿긴 왜 안 믿어. 우린  3사람이 지하실에서 물건을 꺼내 폴크스바겐으
 로 운반하는 걸 봤다고만 말하면 되는 거야.  그런 다음 그 3인조는 우리가 있
 다는 걸 눈치채고는 그냥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고 하면 돼...우린 그 사람
 을 밀고하는 건  아니야. 그러면 이탈리아 애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순 없을 
 거야."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좋아!" 하고 올라프가 소리쳤다. "그렇게 하자구." 
    악어 패들은 마지못해  머뭇거리면서 대장 말을 따랐다 아이들은 쿠르트의 
 제안이 옳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빌헬름 가의 파출소까지는 반쯤 황폐화된 정원 뒤에 숨에 잘 눈에 띄지 않
 는 낡은 잿빛 건물이었다. 그걸 보니 안에 들어갈 생각이 싹 가셨다.
    악어 패들이 파출소 계단 앞에 죽  늘어서 있는 모습부터가 묘했다. 바퀴의
 자를 타나 쿠르트는 다른 애들보다 훨씬 앞쪽에 있었다. 마리아가 물었다.
    "그럼 누가 들어가지?"
    "내가 들어갈게" 하고 올라프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악어 패들은 줄을 선 
 채 기다렸다. 영원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1층 창문에 두명의 경찰관
 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마치 동물원의 동물 구경하는 것처럼  악어 패들
 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런 다음 경찰관들이 열려있는 창문에서 사라지고 잠시 후 두명의 제복이 
 문에서 나왔다. 그들은 악어 패들 앞에 나란히  섰고 올라프가 그 뒤를 따라왔
 다. 약간 뚱뚱하고 나이든 경찰관이 물었다.
    "자, 그러니까 그 이탈리아 애들이  폴크스바겐 화물차에서 물건을 꺼내 가
 는 걸 봤단  말이지? 그리고 그 폴크스바겐은 옛날  벽돌 공장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이거지?"
    "맞아요", 하고 악어 패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러나 쿠르트가 덧붙였다.
    "그건 폴크스바겐 화물차가 아니라 폴크스바겐 덤프트럭이었어요."
    "아, 그래." 하고 그 뚱뚱한 경찰관이 말했다.  "아주 정확한 애구나, 그러니
 까 폴크스바겐 덤프 트럭이란 말이지?" 
    "그래요." 하고 이이들은 다시 합창하듯 일제히 대답했다.
    그러자 그 경찰관이 쿠르트한테 와서 이렇게 물었다.
    "넌 걸을 수 없니?"
    마리아가 잽싸게 쏘아붙였다.
    "저 애가 뭐 재미로 바퀴의자에 앉아 있는 줄 아세요?"
    "자, 자, 진정해요, 어린 숙녀님. 왜 그렇게 금방 흥분하실까." 하고 그 경찰
 관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우리가 본 건 모두 사실이라고 맹세할 수 있어요."
    페터가 말하고서 콧잔등을 잡아당겼다.
    두 명의 경찰관은 다시  한번 악어 패들을 자세히 훑어보았고 젊은 경찰관
 은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너희들도 우리와 함께 사무실에 좀 들어가자."
    마리아가 쿠르트를 가리켰다.
    "그러면 저 앤 어떻게 하죠?"
    "저 애도 함께 가야지." 하고 나이든 경찰관이 말했다.
    "아니, 어떻게요?"  하고 마리아가 물었다. 악어  패들은 파출소 앞에  서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두 명의 경찰관은 어쩔  줄 모르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
 다. 젊은 경찰관이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안으로 데려가야지."
    "자 그럼 안으로 데려가 보세요." 하고 마리아가  대답했다. "바퀴의자가 다
 닐 수 있는 계단이 없잖아요? 여긴 성한 사람들만 찾아오나요?"
    두 경찰관은 더욱더 당황했고 마리아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만약 여기 와서 무슨 예길 하려는 사람이 바퀴의자를 타고 있다면 아저씨
 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할 거예요?"
    "정원에서 얘길 듣지요." 하고 올라프가 대답했고 악어 패들은 싱글싱글 웃
 고 있었다.
    "너희들 이제 장난은  그만 쳐라." 하고 나이든 경찰관이 소리쳤다.  "자 안
 으로 들어가자... 저앤 우리가 데려갈 테니까."
    머뭇거리면서 두 경찰관이 쿠르트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둘이서 힘을 합
 쳐 쿠르트를 바퀴의자에서 들어내어 계단을 거쳐  사무실로 안고 올라갔다. 젊
 은 경찰관이 되돌아와서 올라프와 함께 바퀴의자를  건물 안으로 운반했다. 파
 출소 안으로 들어가자 경찰관들은 쿠르트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경찰관은 조서 용지를 꺼냈다 
    올라프가 설명을 했고 악어 패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올라프는 도둑들을 보기는 했지만 누군지  알아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
 리고 이탈리아 애들이 어떻게 그 물건 있는  데로 왔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두 
 경찰관이 올라프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올라프는 마침
 내 그 벽돌 공장의 낡은 사무실 건물 지하실에 아직도 훔친 물건들이 많이 남
 아 있을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올라프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경찰관
 을 태운 경찰차가 파견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순찰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악어  패들은 파출소의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래지 않아 순찰차를 타고 간 경찰들이 올라프의 말이 사실이라고 확인하
 는 전화를  걸어왔다. 파출소에 있던  경찰관은 전화기에다 대고  계속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래, 알았어." 하고  그 경찰관은 전화기에다 말했다. "틀림없군.  즉시 감
 식 반을 보내지. 이상."
    그는 일어나서 재빨리 악어 패들 앞으로 걸어왔다.
    "장하다 너희들 참 잘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너희들이 진술한 내용
 이 틀림없구나... 자 그렇다면  너희들은 상금을 받게 될 거다. 우리가 그 도둑
 들을 붙잡는다면 .말이다."
    "이제 가도 되나요?" 하고 올라프가 물었다.
    "물론 가도 되지."
    그 경찰관은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동료한테 다시 한 번 물었다. 
    "이 애들 주소도 적어두었나?"
    "적어두었지."
    "좋아, 그럼 이제 너희들은 가도 좋아."하고 그 경찰관이 말했다. 두 경찰관
 은 쿠르트를 바퀴의자 채로 안아서 파출소 밖 계단 아래까지 데려다주었다.
    "때가 되면 다시  너희들한테 연락을 하지." 하고 뚱뚱한 경찰관이  말했다. 
 "무슨 얘긴고 하니, 너희 부모님들께 연락을 하겠다는 말이다."
    악어 패들은 돌아가는 실에 그 낡은 벽돌 공장에 들렀다 커다란 정문은 활
 짝 열려 있었다. 현관 앞에는 순찰차가 약간 옆으로 비켜져 있었다. 그들이 백
 미터쯤 더 갔을  때 또한대의 경찰차와 마주쳤다. 그 차도  공장문앞에 멈추었
 다.
    교회앞 광장 못미처에 모페드  한 대가 그들을 향해 인도 위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  얼른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마리아와 하
 네스는 하마터면 바퀴의자를 넘어뜨릴 뻔했다. 칼리였다. 그는 애들 곁을 지나
 가면서 싱긋이 웃었다.
    "이런 돼지 같은 놈." 하고 하네스가 소리쳤다.
    교회앞 광장에서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오늘 겪은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갑자기 프랑크가 말했다.
    "너희들이 모두 이름을  대지 않아서 정말 고맙다. 이젠 모든  게 잘 될 거
 야. 그 이탈리아 애들은  더 이상 의심을 받지 않을 거고  우리형은 감옥에 가
 지 않아도 될 거야."
    프랑크는 안심을 한 것 같았다.
    "너희들 이제 집에 가면 부모님에게  모든 걸 다 말씀드려야 해."하고 쿠르
 트가 말했다. "이젠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언젠가는 경
 찰이 우리한테 전화를  할 텐데, 그렇게되면 아무래도 부모님들도 알게  될 거
 야."

    경찰서에 찾아간지 일  주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메
 일 아침 아이들은 열심히  신문을 뒤졌으나 경찰이 단서를 발견했다는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쿠르트의 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하다가 이렇게 한 번 말했을 뿐이었
 다.
    "경찰 말로는 이탈리아 애들은 범인이 아니라는데... 수사 결과 그게 밝혀졌
 대. 어쨌든 신문에 그렇게 났어."
    볼퍼만 부인은 몰래 아들한테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트는 아버지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때때로 쿠르트는 상금을 타면 그 돈을 어떻게 쓰나,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아마  특수 자전거를 사 줄  수 있겠지. 그 돈이면 충분할 
 것이다. 도둑들이 붙잡히기만 한다면 말이다.
    다음 일요일 아침  11시경에 하네스와 마리아는 쿠르트를 미니 골프장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다른 애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가는 도중에 모페드를 
 탄 에곤을 만났다. 그는 혼자였다.
    에곤은 아이들과  함께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모페드를 멈추고 쿠르트에게 
 소리쳤다.
    "야, 이 꼬마야. 오늘은 활과 화살이 없으니 그렇게 까불진 못하겠지? 그렇
 지만 기다려. 너한테 진 빚을 갚을 테니까, 건방진 녀석."
    "어디서 겁도  없이 우리한테 호통이야."  하고 마리아가 맞받았다.  그러나 
 에곤은 마리아에게 달려들 듯이 겁을 주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잔말 말고 입 닥쳐, 그렇지 않으면 몇 대 갈겨줄 테니까, 이 바보 같은  계
 집애야.!"
    "꺼져." 하고 쿠르트가 침착하게  말했다. "이 도둑놈아, 안 그러면 정말 신
 고해 버릴 테니까."
    에곤은 찔끔해서 쿠르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처 마리아와 하네스가 눈
 치채기도 전에 에곤은 바퀴의자 있는 데로 펄쩍 뛰어와서 쿠르트를 와락 밀어
 버렸다. 쿠르트는 오른쪽으로  기우뚱했으나 울타리의 철망이 그를  받쳐 주었
 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쿠르트는 철망에 뒤엉켜 꼼짝할 수 없었다. 에
 곤은 펄쩍 모페드에 올라타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
 이라 하네스와 마리아는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바퀴의자의  오른쪽 작은 
 바퀴가 고약하게도 철망 속에  끼어서 하네스와 마리아 둘만의 힘으로는 쿠르
 트를 철망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때 다행히도 퇴직  광부들이 지나가다가 
 애들을 도와 쿠르트를 떼어 내 주었다.
    한 퇴직 광부가 말했다.
    "너희들 좀더 조심해야겠다. 그러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구나."
    하네스와 마리아는 흥분해서 그 노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도 잊
 어버렸다.
    노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 버렸을 때 마리아가 말했다.
    "자, 우린 그놈한테 빚을 갚아야 해... 비겁한 놈 같으니... 저런 녀석을 봐주
 려고 했으니..."
    "아니야, 미리아, 우린 에곤이  아니라 프랑크를 보호하려고 했던 거야." 하
 고 쿠르트가 말했다. 
    "어쨌든 이젠 그놈도  혼이 나야 돼."하고 마리아가 외쳤다. 그러고는  이렇
 게 물었다. "은하수야, 너 산보 좀 할 수 있겠니?"
    그런 다음 그들은 쿠르트를 계속 밀고  미니 골프장을 지나갔다. 거기엔 아
 직 악어 패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숲을 지나 벽돌 공장으로, 벽돌공장을 
 지나 빌헬름 가로 갔다. 쿠르트는 여러 번  질문을 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마침내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렸다.
    "안 돼, 너희들은 그러면 안돼. 그건 프랑크한테 떳떳하지 않아." 
    "그럼 에곤은 너한테 어떻게 하는데?"
    파출소 앞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가 물었다.
    "너 미쳤구나."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천만에, 쟤는 미치지 않았어."  하고 하네스가 대답했다. "철망이 없었다면 
 넌 또 쑤셔  박혀 있었을 거야... 넌  대체 언제까지 그런 일을  당하고만 있을
 래?"
    "그럼 프랑크는 어떡하지? 프랑크는?"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하네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마리아가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금방  두명의 경찰관이 밖으로 나와 
 쿠르트를 바퀴의자 채로 번쩍 들어 한마디 설명도 없이 파출소 안으로 운반했
 다.
    "아무래도 앞으로 장애자용 비탈 계단을 설치해야겠구나."하고 경찰관이 말
 했다. 뚱뚱한 경찰관이 일요일  당직이었다. 그는 세 명의 악어 패를 살펴보고
 는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털어놓고  얘길 해봐라. 나는 너희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린 아저씨한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요." 하고 마리아가 말했다.
    "그래, 너희들은  거짓말을 하진 않았어. 너희들을  일주일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나한테  전부 털어놓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도 그  결과는 마찬
 가지야."
    그런 다음 마리아가  모든 걸 처음부터 설명했다. 즉 숲  속에 있던 그들의 
 오두막과 벽돌 공장에 있는  오두막과, 지하실의 발견과, 그 후에 목격한 일들
 에 과해. 그리고 따지고 보면 쿠르트가 이런  일을 모두 발견한 셈이라고 덧붙
 였다.
    다시 진술 조서가 작성되었다.
    마리아가 말을 끝냈을 때 그 뚱뚱한 경찰관이 말했다. 
    "그래, 너희들은 그 에곤이란 애를 신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아니에요. 그 사람 동생이 우리 친구인 프랑크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
 린 아무 말도 하려고 하지 않은 거예요."
    "그 녀석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우린 사건 현장에서 
 지문을 찾아냈으니까."
    그러자 하네스가 그  경찰관에게 또 쪽지  한 장을  내놓았다. 그 경찰관은 
 "이게 뭐지?"하고 하네스에게 물었다.
    "전 그 폴크스바겐  트럭 번호를 외워뒀다가 적어놓았어요.  이건 그놈들이 
 물건을 치울 때 쓴 차예요."
    "참 잘했다." 하고 경찰관이 칭찬했다. "너희들 이제 집에 가도 좋아."

    방학이 끝나기 이틀 전에 그 낡은 벽돌 공장에는 포크레인 한 대와 불도저 
 한 대, 그리고 5명 1개조로 된 철거반이  도착했다. 그 낡은 건물은 헐렸다. 트
 럭들이 포크레인으로  쓰레기더미와 부서진 담벼락 따위를  받아 공장 터에서 
 실어 날랐다. 일꾼들이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서 철거할 때 먼지가  덜 나
 도록 낡은 담벼락에다 물을 뿌렸다. 불도저가 모든 걸 싹 밀어버렸다.
    하루 종일 할  일 없는 퇴직 광부들이 그걸 지켜보았다.  악어 패들도 마찬
 가지였다. 프랑크만 빠졌다. 형이 체포된 다음부터 아버지가 악어 패들과 어울
 리는 걸 금지 시켰던  것이다. 에곤과 그의 친구 두 명은  그래도 체포된지 하
 루만에 다시 석방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미성년자였다. 그들은 이제 재판을 기
 다리고 있었다.
    불도저가 건조실의  나무 기둥을 쓰러트렸다. 기둥은  성냥개비처럼 탁하고 
 부러졌고 그와 동시에 기다란 건조실이 폭삭  주저앉았다. 무너지는 지붕이 모
 든 걸 파묻어 버렸다.  " 이제 다시 숲 소에다 집을 지어야겠구나." 하고  올라
 프가 말했다.
    "난 더이상 집을 짓고 싶지 않아." 하고 마리아가 대답했다.
    "다른 애들은 아무 말도 없이 철거 작업을 지켜보았다.
    "우리가 지어 놓은 건 모조리 부숴 버리거든."
    하네스가 말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뽀얀 먼지가 안개처럼 덮쳐오자 악어 패들은 집으
 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니 골프장에서 그들은 헤어졌다. 언제나처럼 마리아
 와 하네스가 쿠르트를 집으로 밀고 갔다. 그런데  쿠르트의 집 앞에서 깜짝 놀
 랄 일이 벌어졌다.
    프랑크가 거기 서 있었다. 그 애는 세  사람이 오는 걸 보자 몹시 당황하면
 서 두 손을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쩔쩔맸다. 마침내 프랑크가 말했다.
    "넌 찾아보려고 했어. 쿠르트야."
    "그래? 그럼 집으로 들어가자."
    쿠르트가 대답했다. 프랑크는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국 프랑크는 함께 힘을 
 합쳐 쿠르트를 집으로 말고 들어갔다. 하네스와  마리아가 작별인사를 했을 때 
 프랑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우리아버지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뭐냐하면 , 에곤이 너한테  어떻
 게 했는지를 말이야. 내가  아버지한테 모든 걸 다 얘기했어. 그랬더니 아버지
 는 너무  화가 나서  에곤을 반쯤 죽이려고  했어. 에곤이 도망쳤으니  망정이
 지..."
    "알았어." 라고  쿠르트가 말했다 "넌  그게 무슨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
 니?"
    "우리형은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어. 형은 이제 얌전하고 착실해. 아버지가 
 형한테서 모페드를 빼앗았지.  재판이 끝난 후엔 많은 돈을 물어야  할 테니까 
 그걸 팔아 버리겠대."
    "왜 사과를 하러 에곤이  나한테 직접오지 않고 네가 대신 사괄 하니?"  하
 고 쿠르트가 물었다.
    "형은 그럴 용기가 없어."
    그런 다음  둘은 쿠르트의 특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프랑크는 수채화 
 물감으로 종이에 뭔가를 그려보려고 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다음 프랑크
 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상금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질 거라고 하셨어. 그런
 데 우린 그 상금을  받아선 안된다는 거야. 그 돈을 네  부모님께 드려서 너한
 테 그 자전거를 사 주도록 해야한대."
    쿠르트는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너의 아버지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니?"
    "그래 그렇게 말씀하셨어." 하고 프랑크가 대답했다.
    " 너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구나.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마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실 거야. 우리 부모님은 아주 자존심이  강해서 남
 한테 공짜로 뭘 받는 건 딱 질색이거든."
    "우리아버지가 너의 아버지한테 얘기하실 거야.."
    프랑크가 말했다. 그 다음에 둘을 말없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프랑크가 말했다. 
    "악어클럽 회원들이 모두 찬성하면 너의 부모님도 그걸 받으실 거야... 회의
 를 소집해야겠다."
    "그럼 너 다시 우리한테 온다는  얘기니?"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너 이젠 
 화가 다 풀렸니?"
    "그럼, 난 너희들한테 더 이상 유감이 없어. 난 한 번도 너희들이  야속하다
 고 생각한 적이 없어." 하고 프랑크가 대답했다.
    프랑크는 집에 가려고 문을 나서면서 이렇게 물었다. 
    "다시 너희들한테 가도 되겠니? 말 좀 해봐."
    "물론 괴고 말고.  넌 언제라도 우리한테 올  수 있어. 그렇지만 제일 좋은 
 건 네가 바퀴의자를 밀고 우리 회원들을 모두 찾아보는 거야."
    "그러니? 그렇다면 난 올라프에게 상금 문제로 회의를 열자고 제안하겠어." 
 하고 프랑크가 말했다. 
    "좋아, 그럼 어디서 회의를 하지?" 하고 쿠르트가 물었다.
    "어디냐고?... 그래 어디서든!"
    "다시 집을 지어야겠어." 하고 쿠르트가 말했다.
    "그래 ,다시 집을 지어야 해."
    프랑크가 맞장구를 치고서 가 버렸다.
    
    개학한 지 일 주일 후에  악어 패들은 산림 감독관의 양해하에 벌써 숲 속
 에다 새 집을 지었다. 
    퇴직 광부들이 그 일을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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