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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이링 피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by Casey,Riley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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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피처



  지은이: 이링 페처(Iring Fetscher)는 1922년 넥카 강변의 마르바흐에서 태어나 튀빙엔과
파리에서 철학, 역사, 그리고 문학을 공부했다. 1963년 이래로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치학
교수로 있으며, 마르크스 철학과 마르크스 주의의 연구에 관한 많은 저서를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마르크스로부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로>(1956),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1967), <루소의 정치철학>(1960), <인류의 생존조건>(1980) 등이 있다.

  옮긴이: 이진우는 1956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독문학과 졸업. 독일 Augsburg
대학에서 철학, 사회학, 정치학, 독문학을 수학하였으며 동 대학에서 1985년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8년에 "허무주의의 정치철학, 정치학과 형이상학의 관계에 관한
니이체의 재규정"(Politische Philosophie des Nihilismus. Nietzsches Neubestimmung
des Verhaeltnisses von Politik und Metaphysik)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미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나타난 권력과 이성>(Macht unt Vernunft
im politischen Denken Machiavellis, Frankfurt/M. : Peter Lang, 1987)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Nietzsche und die Postmetaphysik", "Strukturen der Macht bei
Machiavelli und Nietzsche", "철학은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가?", "권력과 정당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후설 현상학과 탈현대", "마르크스의 자연개념" 외 다수가
있다.


    [지은이의 말]

  나는 머리말에서 글을 쓰는 데 도와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를 하려고 한다. 동화를 혼란시키는
놀이는 세 개의 아주 다른 계기(나의 세 아이들, 헤센주의 대학법, 그리고 한 명의 프랑스인 외과
의사)의 덕택으로 형성되었다. 내가 그림 형제의 어린이 동화와 가정 동화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아이들 덕택이다. 대학 자치 행정의 모든 구성원들로 하여금 몇 시간
걸리는, 그리고 때때로 아주 지루한 회의에 참석할 의무를 부과한 헤센주의 대학법은 나로
하여금 그 시간에 동화 혼란 놀이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인 외과 의사는 지난
방학 동안에 나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수술함으로써 아무 일도 못하도록 하였지만, 그것은
동화 놀이를 하는 데 더욱 좋은 계기가 되었다. 세 가지의 계기들은 모두 이 글을 바칠 만한
값어치가 있다. 끝으로 나는 이 글을 내가 건립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였던 카셀 대학에
바치려고 생각한다. 그림(Grimm) 형제가 바로 150년 전에 카셀로부터 어린이 동화와 가정
동화를 세상에 퍼뜨렸다는 사실 때문에도 카셀 대학은 그림 형제를 상기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첫번째 마당 - 늑대의 복권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
  산양과 일곱 마리의 새끼 늑대
  빨간 모자 소녀
  빨간 머리 소년과 늑대

    두번째 마당 - 부르주아지의 등장 : 반봉건적 혁명과 계급 대립 사회의 문제
  행운아 한스
  행운아 한스와 장사꾼 파울
  장사꾼 파울
  백설공주
  원본 백설공주
  재단사와 세 아들
  상차려라 식탁, 금당나귀와 몽둥이 자루 : 중국 공산주의적 해석과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용감한 재단사
  용감한 재단사 또는 권력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아름다운 꿈
  신데렐라
  신데렐라의 의식화 과정
  홀레 부인
  불행한 마리에 대한 보고서
  브레멘의 악사들
  브레멘의 시립 악사 또는 퇴직자 집단의 성공적인 첫번째 주택 점거
  헨젤과 그레텔
  헨젤과 그레텔의 범죄 폭로 또는 파시즘 역사의 에피소드
  룸펠스틸츠헨
  룸펠스틸츠헨과 프랑크푸르트 학파

    세번째 마당 - 공주들의 성적 문제
  개구리 왕자
  개구리 왕자 : 소아적 나르시시즘의 극복

  잠자는 공주 : 처녀성 상실에 대한 공포의 극복

    지은이의 덧붙임말










    [서론]

  단지 아이들만 동화를 가지고 속여넘기는 것은 아니다. (레싱, 현인 나탄)
  문학 없이 감화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문학은 동화이다. (괴테)
  혼란시킬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 혼란을 피하는 것이다. (Hi Hi-Hao-Dsu, 기원전 2500년)

  영국의 유명한 사회 언어 학자 번슈타인(Basil Bernstein)은 동화를 '최대의 군더더기에
가까워지는 언어적 전달의 형식'으로 성격 지운다[주]. 군더더기는 내용이 없다는 데에 대해 배운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동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떠한 새로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오히려 이야기를 들은대로 이야기하는 데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조그만 빨간 모자 소녀가 혼자서 숲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틀에 박힌 휴식이 있고, 또 항상 틀에 박힌 질문이 뒤따른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니?" 엄마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또는 그 경험의 특이함을 아이에게
전달하고 싶다면, 엄마는 대체로 언어 표현의 가능성을 변화시켜서 전달하는 데에는 무능력한
것이다. 엄마들은 대개 몸짓이나 얼굴 표정, 제스처를 변화시키거나 강조를 달리하는 것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어찌되었든간에 번슈타인은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네 명의 아이들로 인하여 내
자신이 번슈타인에 의해 그렇게 가련하게 묘사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탈출구를
찾기 시작하였다. 결국 나는 어떻게 그림 동화의 고정적인 전형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를
발견하였고, 또 시대에 부합하는 일반 상식을 보유한 어떠한 동화 이야기꾼이라도 그 효력이
아주 썩 좋은 세 가지의 동화 혼란 방법의 도움으로 아주 다양한 변형과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었다. 이렇게  해서 소위 말하는 '축소된 코드'라는 동화에  대한 마력은 깨진 것이
다.
  이제 동화 이야기꾼은 전해져 내려오는 동화의 무의미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동화의 유일함을
앞으로는 다양하게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동화를 혼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조그만 지침서로서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리고 가장 효력이 있는 혼란 방법에 대한 개요를
다음과 같이 앞세우고자 한다.

    첫번째 혼란 방법: 문헌학적 텍스트 비판과 해석
  가장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제일 쓸모 있는 혼란 방법은 문헌학적 방법이다. 이 방법은
달리 기대할 필요도 없이 조작된(기독교적으로 수정된) 전래 동화에서 고대의 원본을 다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본주의 시대에 막 등장하는 비판적 시민 사회에 의해
발전되었다. 후에 이 방법은 더욱 비판적으로 되었고 결국에는 용기 있는 신학자들은 이 방법을
성경 텍스트에까지 적용하였다.
  이 방법은 동일한 주제에 관한 다양한 텍스트들을 서로 비교하여 어떠한 텍스트가 가장 오래된
것인가를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나서, 다른 텍스트들을 그것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배제되거나 또는 기대된 기본 텍스트와 일치할 때까지 해석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학식
있는 동료들과의 문학적 논쟁에 아주 적당하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젊은 강사들이 벌이가 되는
강좌를 얻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원본에 대한 연구가 아주 힘들거나 또는 원본이 분실되거나
원전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도움으로 부족한 것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편안하게 메울 수가 있었다.
  텍스트 비판과 해석의 영역에 있어서의 전문가들은 잘못 찍혀진, 그래서 의미를 왜곡시키는
마침표에 관해 수백 장을 쓰거나 또는 한 표현의 원천적인 단어의 의미를 환원함으로써 텍스트의
한 대목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엎기까지도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훌륭한 문헌학자의
도움으로 어떠한(물론 가능한 한 뜻이 애매모호한) 텍스트에서도 거의 원하는 의미를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혼란 방법
  이 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정신 분석학적 혼란 방법은 그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1856
-1939)에 의해 문화 현상에도 대단히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정신 분석학적 방법은 개인들의
말을 은폐된 무의식의 전언으로 파악하고, 학습될 수 있는 분석 방법으로 해독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치료 과정에서 정신과 의사들에게 훌륭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생산물에 적용하면 이 방법은 예술가, 이야기꾼, 작가, 음악가들의 무의식적 동기를
발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들의 생산물이 무의식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정신분석학자들이 표현된 것을, 예컨대 불안의 꿈 또는 욕망의 충족으로부터 파악하거나 해서
상반된 해석을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것이다. 어쨌든 분석학적 방법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즉, 정신 분석학적 방법은 부정되기 어려운 것이다.
어떠한 반박의 시도도, 조그만 의혹까지도 분석 학자들에 의해 무의식으로부터 오는 저항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해석되고, 바로 이 저항은 의식하고 있는 의심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이
방법의 정당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신 분석이 바로 무엇이 무의식을 
'건드렸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의식은 저항하는 것이고, 의식에 의해 제기된 의심의 근거는
단지 무의식의 저항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사후에 생산된 '합리화'인 것이다. 분석 학자는 따라서
반박되거나 비판될 수 없는 것이다. 분석학자는 어차피 옳은 것이고, 분석학자에 반박하면,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저항을 통해서 비의도적으로 진리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물론 동화 혼란을 위해서는 다른 심층 심리학 학파들이 오히려 더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핵심적 욕구로서 프로이드의 리비도 대신에 권력의지를 설정하고,
빌헬름 라이히는 정신분석을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적으로 변형시킨다. 그러나 융 학파는 그
자체가 워낙 복잡해서 능동적인 혼란 방법에는 적당하지 않다.

    세번째 혼란 방법 : 역사적 유물론과 희망의 원칙
  역사적 유물론은 동화 혼란에 있어서 특히 적당하다. 동화는 민중의 생산물이기 때문에 동화
속에는 단순한 민중들의 경제적 이해가 표현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가정할 수 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반동적인 전설과 해방적인 동화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지적한 바 있다. 동화에서는
흔히 약자의 간계가 강자의 권력을 이긴다. 그러나 전설에서는 마법적인 힘이 지배한다. 전설에
나타나는 마법적인 힘의 작용은 아무도 파악하거나 통찰할 수 없는 데 비해서, 동화에서는
이성과 실천적인 지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즉 마법적인 힘이 탈신화화한 것이다.
  독일 동화 수집가인 야콥 그림(1785-1863)과 빌헬름 그림(1786-1859)의 낭만주의적 정신은
물론 동화의 합리적이고 해방적인 성격을 적지 않게 전설적인 것으로 변형시켜 모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유물론적 방법이  적용되기 이전에 때때로 문헌학적인 방법을 통해  '본래 동화'

복원해야 하는 것이다.
  유물론적인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론 계급 성격과 역사적 발전 단계에 관한 정확한
규정이다. 계급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진보적이거나 반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림 동화에서는 초기
시민 사회적이고 소시민적인, 그리고 초기 자본주의적인 시도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미
파시즘을 예견하는 반동적인 사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림 형제 자체는 명확하게 시민적,
혁명적이지도 않았고(야콥은 바울 교회 의회에 선출되기는 하였지만 세습제국당에 속하였다), 또
철저하게 반동적이지도 않았다(그러나 1837년 하노버 국가 기본법 폐지에 대한 용감한 저항
때문에 괴팅엔의 교수직이 박탈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형제의 동화 작업은 모순적인
성격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그 당시 독일의 후진성(1818년 동화의 제 2 수정판이 나옴)과 이미
알려진 독일 시민 계급의 빈약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유물론적 해석
방법은 우선 동화가 과연 발전하는 민중 계층(후기 봉건주의의 전 프롤레타리아적 대중을
일컬었던 하층 민중)의 직접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그것이 전래자의 책임이건 아니건 간에 이미
정립된 시민적 계급 사회의 맥락에서 나타나는 보수적인 사회화 수단인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동화의 내용이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물론역사 유물론적 방법과 연계될
수 있는)정신 분석학적 방법보다는 더 문헌학적 텍스트 비판의 적용과 원본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백설공주'와 '불행한 마리"의 경우가 그러하다.
  유물론적 방법의 독자적인 변형은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해서 발전된 방법이다. 이 방법은
동화와 민요가 일차적으로 속하는 집단적인 문화 생산품은 미래의 행복에 대한 예견과 보다 좋은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라는 전제 조건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용감한 재단사'에서는 등장하는
시민 계급이 봉건 귀족과 왕권에 대한 미래의 승리를 희망하는 것이다. 동화들은 그러나 해방의
전략을 단지 드물게만 제공하는데, 그것도 대개는 이솝의 언어 형식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여기에서 사용하지 않고 언급하지 않은 많은 혼란 방법들이 있다. 그러나 이미
제안된 세 가지의 방법들은 연계된 형식으로나 또는 개별적으로 모든 동화 이야기꾼들을
동화라는 축소된 코드의 제한된 틀로부터 해방시키기에 족한 것이다.

  [주] '사회 언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언어 이해가 얼마나 좁고 형식적인가 하는 것은 이
학문에 의한 동화의 성격 규정을 비교하면 명백해진다. 동화란 단어는 인도 게르만 어족의
어간 'mero'로부터 유래하는데, 이 말은 아직도 독일어 'mehr'(더 많이) 또는 고아일랜드어
'mar'와 'mor'(이 말은 고아일랜드 말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덧붙이자면 '훌륭한' 또는
'커다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에 담겨져 있다. 본래의  단어 의미는 아직도 '유명한'이라는 뜻으

풀이될  수   있는  복합어   'waldemar',  'theudemar'에   들어  있다.   이로부터  'kunde'(기
별),'Nacharicth'
(중요한 소식)이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클루게-괴쩨(Kluge-Goetze)의 사전에 따르면
동화라는 단어는 유명한 루터의 성탄 찬미가 속에 나오는 '좋고 새로운 소식'(gute neue mar)
이라는 대목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동화(mar)는 원래 민중에게 아주 의미 있는 기별, 정보,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의 단어  '소식'(mar)에 축소사 '-lein' 또는 '-chen'이 붙여져 만들어

단어 '동화'(marlein, marchen)는 분명 이와 같은 정보를 경시하고 축소하려는 의지에 기인하며,
그것은 단순한 민중이 사회적 의사 소통의 체계를 건설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막강한 보건계급의
의도에 책임을 돌릴 수밖에 없다. 중세 사회의 '파르티잔'을 '난쟁이'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실존과 활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와 소식을 단순한 '동화'로 축소한 것이다.



      [첫번째 마당 - 늑대의 복권]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

  옛날에 일곱 마리의 새끼양을 데리고 사는 엄마 산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식들을
사랑하듯이 엄마양은 새끼양들을 모두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양은 먹이를 찾기 위해
숲속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엄마양은 일곱 마리의 새끼양들을 불러 모아 놓고서 말했습니다.
  "얘들아, 엄마가 숲에 다녀오는 동안 늑대를 조심해야 한다. 늑대가 들어오면 너희들을
송두리째 삼켜 버릴 거야. 그 나쁜 놈은 변장을 잘 하지만 거친 목소리를 듣고 까만 발을 보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어린 양들은 대답했습니다.
  "예. 엄마, 조심할께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그러자 엄마양은 메에 하고 나서는 안심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말을 했습니다.
  "얘들아, 엄마다. 문 열어라. 너희를 위해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단다."
  그러나 어린양들은 거친 목소리를 듣고 늑대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문 안 열거야."
  어린 양들은 외쳤습니다.
  "너는 우리 엄마가 아니야. 우리 엄마 목소리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데, 네 목소리는 너무
거칠어. 너는 우리 엄마가 아니야."
  그러자 늑대는 잡화상에 달려가서 카다란 백묵을 샀습니다. 늑대는 백묵을 먹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돌아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얘들아, 엄마다. 문 열어라. 너희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단다."
  아기양들은 문틈으로 늑대의 까만 발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문 안 열거야. 우리 엄마는 너처럼 까만 발을 가지고 있지 않아. 너는 늑대야."
  그러자 늑대는 빵가게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다리를 다쳤는데 반죽을 발 위에다 발라 줘."
  빵 만드는 사람이 반죽을 발라 주자 늑대는 방앗간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하얀 밀가루를 내 발 위에다 뿌려 줘."
  방앗간 아저씨는 '늑대가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밀가루를 뿌리지 않으면 너를 잡아먹어 버린다."
고 말했습니다. 겁이 난 방앗간 아저씨는 늑대 발을 하얗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란
다 그렇답니다.
  이제 그 나쁜 놈은 세번째로 산양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말했습니다.
  "문 열어라, 얘들아. 사랑하는 엄마가 숲에서 너희 모두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왔단다."
  어린 양들은 대답했습니다.
  "우리 엄마인지 알 수 있도록 우선 네 발을 보여 주렴."
  그러자 늑대는 발을 창문에 갖다 댔습니다. 발이 하얀 것을 보고 어린 양들은 엄마인 줄 알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늑대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 왔습니다. 어린 양들은 놀라서 모두
숨으려고 하였습니다. 한 마리는 책상 밑으로, 두번째 새끼 양은 침대 밑으로, 세번째 양은 난로
속으로, 네번째 양은 부엌으로, 다섯 번째 양은 장롱으로, 여섯번째 양은 세면대 밑으로, 그리고
일곱번째 양은 벽시계 안으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새끼양들을 모두 찾아내 꿀꺽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벽시계 속에 숨어 있는 막내둥이는 찾아 내지 못했습니다. 배가 부른
늑대는 뒤뚱거리며 밖으로 나가서 나무 밑의 풀밭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숲에 갔던 엄마양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광경입니까?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책상과 의자는 내동댕이쳐져 있고, 세면대는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불과 베개는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엄마양은 아이들을
찾았지만 도대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이름을 차례대로 불러 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막내의 이름을 부르자 작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엄마,저 여기 벽시계 안에 숨어 있어요."
  엄마가 막내를 꺼내 주자 막내는 늑대가 들어와서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잡아먹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엄마양이 불쌍한 아기양들 생각에 얼마나 많이 울었겠는지 생각할 수
있겠지요.
  엄마양은 시름에 잠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막내 아기양도 따라 나왔습니다. 풀밭에
가보니 늑대가 나무 밑에 누워서 나뭇가지가 흔들릴 정도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엄마양은 늑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불룩한 배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늑대가 저녁 식사로 먹어 치운 우리 불쌍한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아기양들이 살아 있다고 믿은 엄마양은 집으로 달려가서 가위와 바늘과 질긴 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늑대의 불룩한 배를 갈랐습니다. 배를 조금 찢자마자 여섯 마리의 양이
차례로 뛰어나왔습니다. 모두가 살아 있고 다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탐욕스러운 늑대가
새끼양들을 통째로 꿀꺽 삼켜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기쁨이 컸겠습니까. 새끼양들은
너무 기뻐서 엄마를 껴안고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엄마양은 새끼양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얼른 가서 돌을 잔뜩 주워 오너라. 그래서 늑대가 잠자는 동안에 배를 채우자꾸나."
  그러자 일곱 마리의 새끼양들은 재빨리 돌을 가져다가 늑대의 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엄마양이 순식간에 다시 꿰매었기 때문에 늑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늑대가 푹 자고 나서 일어섰습니다. 뱃속에 돌이 가득 들어 있어서 목이 마른 늑대는
우물로 가서 물을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늑대가 가려고 이리저리 움직이자 배 속에 든
돌들이 서로 부딪쳐서 덜거덕 소리를 내었습니다. 늑대는 말했습니다.
  "무엇이 배 속에서 이리 쿵 저리 쿵? 여섯 마리의 산양인 줄 알았더니 모두가 돌멩이라네."
  늑대가 우물에 와서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리자 무거운 돌 때문에 늑대는 우물로 빠져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일곱 마리의 새끼양들이 이것을 보고는 달려와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늑대가 죽었다. 늑대가 죽었다."
  새끼양들은 기뻐서 엄마양과 함께 우물가를 돌며 춤을 추었습니다.


    [산양과 일곱 마리의 새끼 늑대]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은 늑대라는 짐승을 교활, 음흉하고 간악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짐승은 효과 있는 변장을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사악한 의도를 순진한 새끼양들에게 속이고
있다. 늑대를 성격 지우는 것은 동물적인 굶주림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교활함이다. 보수적인
그림 형제에 의해 전래되고 있는 이 유명한 동화는 단지 단편에 불과하고, 분실된(아니면
의도적으로 금지된) 첫번째 부분이 늑대의 성격 변형에 관한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타당성 있는 가설로부터 출발해서 한 유명한(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민속학자는 실제로 몇 개의 흩어진 단편들로부터 상실되었다고 믿어 온 첫번째 부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후세에 전해져 내려온 동화에서 이 부분이 삭제된 것은 결코
역사적인 우연만은 아니고, 따라서 단지 그림 형제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동화가
첫번째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은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짐승에게 인간과 유사한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있어서 늑대 같은 인간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전래된 동화를 이데올로기적인 동기에서 줄여버린 연대는 대충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가 '시민론(De Cive)'을 발표한 뒤로 추정되는데. 이 저서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늑대이다(homo homini lupus)'라는 은유가 인간 사회를 규정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다음의 텍스트는
문헌학적으로 완성된 동화의 재구성을 의미하며, 이로써 독일 민속학은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드디어 독일 민속학의 진보적인 수준을 확실하게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옛날에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늑대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빠 늑대, 엄마 늑대, 그리고 일곱
마리의 새끼 늑대가 있었습니다. 새끼 늑대들은 일곱 쌍둥이로 세상에 태어났는데 아직은 숲으로
나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아빠가 일하러 나가고 없을 때에 엄마 늑대가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엄마가 침구류 가게 '이끼'에 가서 너희들 새 요와 이불을 사 가지고
  와야겠구나. 다른 흠은 말할 것도 없이 요가 너무 낡아서 편안하지 않단다. 내가 없는 동안
  동굴 밖으로 나가지 말고 착하게 잘 있어라. 숲 속에 누가 나타날 지 아무도 모른단다. 사냥꾼,
  경찰, 군인도 있지. 그리고 늑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무장한 다른 사람들도 있단다. 점심때쯤
  돌아올 텐데 착한 아이에게는 아주 맛있는 것을 갖다 줄 거예요."
  "예, 엄마, 그러고 말고요."
  일곱 마리의 새끼 늑대들은 조바심이 나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방해받지 않고
마음대로 뛰어 놀고 이끼를 던지면서 전쟁놀이도 할 수 있도록 엄마가 빨리 가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가자마자 어린 늑대들은 제멋대로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동굴 입구에서 땅바닥을 문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조그만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얘들아, 이리 나오너라. 엄마가 너희들에게 맛있는 것을 가지고 왔단다. 밝은 태양 빛에 볼 수
있도록 빨리들 나오너라."
  그러나 이 목소리는  '매에' 하고 재잘거리는 경박한  소리였습니다. 어린 늑대들은 소리쳤습니
다.
  "아니야, 우리는 안 나갈 거야. 너는 우리 엄마가 아니야. 너는 늙은 산양이야. 우리 엄마는
깊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그러자 사악한 산양은 몹시 화가 나서 어떻게 하면 엄마 늑대처럼 깊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였습니다.
  어찌할 바 모르는 산양은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그러듯이 가장 현명한 동물로 알려진 늙은
부엉이한테 갔습니다.
  "존경하는 부엉이 어른, 제 목소리가 엄마 늑대처럼 깊고 우렁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산양은 물어 보았습니다. 늙은 부엉이는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고 잠깐 생각하고 난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내게서 가창 수업을 받는 것이지만 공짜로는 해 줄 수가 없다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고 산양은 대답했습니다.
  "진짜 치이즈를 만들 수 있는 아주 좋은 산양 우유를 1리터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부엉이는 대답했습니다.
  "1리터는 충분하지 않아. 2리터 주면 해 주기로 하지."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렇게 치이즈를 많이 먹어 가지고 위장을 버리고 싶다면 그러기로
하지요."
하고 가창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늙은 부엉이는 정말 훌륭한 선생이었고 산양은 오로지 아기
늑대들을 속이겠다는 일념 때문에 매우 열심히 배웠습니다. 반 시간의 수업을 받고 난 뒤에
산양은 교회 합창대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예쁜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엉이에게 수업료를 내고 나서는 꼬마 늑대들이 있는 동굴로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얘들아, 이리 나오너라. 엄마가 맛있는 것을 가지고 왔단다. 빨리 나와서 밝은 빛에 보려무나."
  이번에는 목소리가 깊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꼬마 늑대들은 완전히 속아넘어갔습니다. 꼬마
늑대들은 눈을 깜박거리며 한낮의 햇볕이 따가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자마자
사악한 산양의 뿔에 받혀서 높은 잣나무 위로 내동댕이쳐져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늑대는 나무를 탈 수 없기 때문에 꼬마 늑대들은 무서워서 나뭇가지에 꼭 매달려 있었습니다.
동굴 입구가 아주 좁았기 때문에 항상 늑대들은 한 마리씩 나갈 수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떠밀었기 때문에 맨 앞에 있는 늑대는 누가 밖에 있는지를 알아차렸어도 되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맨 뒤에 있던 힘이 가장 약한 아기 늑대만이 산양이 보기 전에 제때에
안전하게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셈하는 데는 형편없는 산양은 벌써 일곱 마리의 늑대를
잣나무 가지에 내동댕이쳤다고 믿고는 만족해서 유유히 사라져 갔습니다.
  산양이 도대체 왜 그렇게 꼬마 늑대들에게 화가 났는지 물어 본다면, 양이 늑대들의
자유분방하고 억압이 없는 숲 속의 생활을 시기하고, 산양의 주인으로부터 배운 소시민적인 생활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것을 증오하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은 산양의 증오가 아니라, 산양을 통해서 표현되는 소시민적인 주인의 증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산양을 다년간 우리에 가두어 놓고 사육함으로써 자유로운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산양은 그 증오를 아기 늑대와 같은 아주 약한 동물에게
내보이는 것입니다.
  예쁜 이끼 이불을 가지고 엄마 늑대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부르자 막내둥이 아기 늑대만이
동굴에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곧 엄마 늑대는 머리 위의 잣나무
가지 위에서 여섯 마리의 아기 늑대들이 울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기 늑대들은 벌써
오랫동안 가지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힘없이 소리쳤습니다.
  "엄마, 엄마. 우리를 내려 주세요."
  그러나 엄마 늑대도 나무를 기어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에나 돌아올 아빠 늑대도 물론
나무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늑대는 나이 많은 곰이 잠자고 있는 이웃 동굴로 가서 곰을 깨우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곰 노인은 꿀같은 단잠에서 깨었지만, 원래 마음씨 좋고 거기다가 채식을 하는 친구였지 때문에
문을 열어 주고 순식간에 여섯 마리의 아기 늑대를 나무에서 끄집어 내렸습니다.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요. 흥분한 엄마늑대는 아이들을 꾸짖는 것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저녁에 아빠 늑대가 집에 돌아와 일어난 일에 관해 듣자 매우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며
말했습니다.
  "두고 보자. 산양에게 복수를 하고 말 테다."
  엄마 늑대가 진정시키려는 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빠 늑대는 산양의 우리에
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피해는 산양과 아빠 늑대가 인간들로부터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다른
종류의 사람과 약자를 시기, 증오하고 박해하며 악은 악으로 보복하는 것을 배운 데에서
기인한다. 누군가가 콘라드 로렌쯔(Konrad Lorenz)의 이론을 빌어서 인간이 악한 것은 우리의
선조인 동물들이 악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려고 하면 '산양과 일곱 마리의 늑대'  이야기를 해

사태가 아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빨간 모자 소녀]

  옛날에 아주 깜찍한 꼬마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를 보기만 하면 모두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너무 귀여워서 무엇을
주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언제나 할머니는 빨간 비로드로 된 조그만 모자를 선물했습니다.
모자가 너무 잘 어울리고 또 그 아이는 항상 이 모자만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냥
소녀를 '빨간 모자 소녀'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소녀를 불러 말했습니다.
  "이리 온, 빨간 모자 소녀야. 여기 떡하고 포도주 한 병이 있는데 할머니께 갖다 드려라.
할머니가 아파서 힘이 없으신데 이것을 드시면 기운을 차리실 거야. 얘야, 날씨가 뜨거워지기
전에 가거라. 얌전하게 가야 한다.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그러다가 넘어지면 병이 깨지고
할머니는 아무 것도 드실 수가 없단다. 그리고 방안에 들어가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지 말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것 잊지 말아라."
  "잘 할 거예요."
하고 소녀는 엄마한테 말하고 새끼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동네에서 반 시간쯤
걸리는 숲 속에서 살았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가 숲 속에 다다랐을 때에 늑대와 마주쳤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는 늑대가 아주 나쁜 짐승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야, 안녕!"
하고 늑대는 말했습니다.
  "늑대야, 안녕."
  "빨간 모자 소녀야, 아침 일찍 어디 가니?"
  "응, 할머니한테."
  "앞치마 밑에 가지고 가는 것은 뭐니?"
  "떡하고 포도주란다. 병이 나서 쇠약해지신 할머니 힘내시라고 어제 쪘단다."
  "빨간 모자 소녀야, 너의 할머니 어디에서 사시는데?"
  "아직도 한 십오 분쯤 가야 되는데 할머니 댁은 숲 속에 아주 큰 세 그루의 떡갈나무 밑에
  있고 그 앞에는 호도나무 울타리가 있단다. 아마 너도 알 거야."
  늑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것 참 싱싱하고 토실토실한데. 늙은이보다는 훨씬 더 맛있을
거야. 두 명을 다 잡아먹기 위해서는 꾀를 내야겠는걸.'
  빨간 모자 소녀와 얼마 동안 같이 가다가 늑대는 말했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야, 여기저기 피어 있는 예쁜 꽃들 좀 보아라. 왜 너는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는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는 소리도 듣지 않는 모양이지? 너는
학교에 가는 것처럼 그저 앞만 보고 가지만, 숲 속에는 아주 재미있는 게 많단다."
  빨간 모자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서는 햇빛이 나무들 사이로 비치면서 이리저리 춤추고
온갖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한테 꽃다발을 한 아름 가져다
드리면 기뻐하실 거야.' 빨간 모자 소녀는 길에서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가서 꽃을 찾았습니다.
꽃 하나를 꺾고 나서는 조금 더 들어가면 더 예쁜 꽃이 있겠거니 생각하고는 꽃을 따라 숲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곧장 할머니 집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밖에 누구냐?"
  "빨간 모자 소녀예요. 떡하고 포도주를 가지고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문 손잡이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하고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내가 너무 힘이 없어서 일어설 수가 없구나."
  늑대가 문 손잡이를 누르자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늑대는 한 마디도 없이 침대로 가서
할머니를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할머니의 옷을 입고 두건을 쓰고 침대에 누워서
커튼을 쳤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는 꽃을 꺾으러 다녔습니다. 더이상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았을 때에야
할머니 생각이 다시 나서 길을 재촉했습니다. 집에 다가왔을 때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아이 참 이상도 하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무서울까?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빨간 모자 소녀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지만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침대로 가서 커튼을 열었습니다.
할머니는 두건을 깊숙이 얼굴까지 내려 쓰고 있었는데 참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왜 이렇게 귀가 크지요?"
  "응, 너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고 그렇게 크단다."
  "할머니, 할머니. 왜 이렇게 눈이 크지요?"
  "응, 너를 잘 보려고 그렇게 크단다."
  "할머니, 할머니. 왜 이렇게 손이 크지요?"
  "응, 너를 잘 잡으려고 그렇게 크단다."
  "할머니, 할머니. 왜 이렇게 입이 끔찍하게 크지요?"
  "너를 잘 먹으려고 그렇게 크단다."
  이 말을 하자마자 늑대는 침대에서 뛰어나와 불쌍한 빨간 모자 소녀를 삼켜버렸습니다.
  욕망을 채운 뒤에 늑대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어 벌써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사냥꾼이 집을 지나가다가 생각했습니다. '노인네가 저렇게 코를 고는 것을 보니 혹시 어디
불편한 데가 없는지 살펴보아야겠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다가갔을 때 그 안에 늑대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나쁜 놈을 여기서 만나는구나. 너를 오랫동안 찾아 다녔다."
하고 사냥꾼은 말했습니다. 사냥꾼은 총을 쏘려고 하다가 문득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었을지도
모르고 혹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총을 쏘는 대신에 가위를 가지고
잠자는 늑대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조금 가르자 빨간 모자가 빛나는 것이 보였고,
조금 더 가르자 소녀가 퉁겨져 나와 소리쳤습니다.
  "아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늑대의 배 속이 얼마나 깜깜하던지."
  그리고 나서는 늙은 할머니가 아직 살아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는 재빨리 돌을 주워다가 늑대의 배를 채웠습니다. 늑대가
깨어나서 가려고 하였지만 돌이 너무 무거워서 그대로 주저앉아 죽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만족했습니다. 사냥꾼은 늑대의 가죽을 벗겨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는
빨간 모자 소녀가 가지고 온 떡과 포도주를 마시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빨간 모자
소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시면 이제 다시는 길을 벗어나서 숲 속으로
들어가지 말아야지.'

  빨간 모자 소녀가 할머니에게 다시 떡을 가지고 왔는데 다른 늑대가 말을 걸어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인하려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빨간 모자 소녀는
이번에는 조심하였습니다. 똑바로 길을 걸어 할머니한테 와서는 도중에 늑대를 만났는데 그
늑대가 자기한테 인사를 하고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큰 길이 아니었다면 나를 잡아먹었을 거예요."
  "이리 오너라. 늑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자꾸나."
하고 할머니는 말을 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늑대가 문을 두드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머니, 문 여세요. 빨간 모자 소녀예요. 떡을 가지고 왔어요."
  그러나 할머니와 빨간 모자 소녀는 조용히 있고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회색 대가리
늑대는 여러 번 집을 돌다가 드디어 지붕 위로 올라가서는 빨간 모자 소녀가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따라가서 깜깜할 때에 잡아먹을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늑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습니다. 할머니는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야, 어제 소시지를 삶았는데, 이 양동이를 가지고 가서 소시지 삶은 물을
길어다가 여물통에 부어라."
  빨간 모자 소녀는 여물통이 가득 찰 때까지 물을 길었습니다. 그러자 소시지 냄새가 늑대의
코를 찔렀습니다. 늑대는 코를 킁킁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목을 너무 길게 내밀고
보다가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늑대는 결국 지붕에서 미끄러져서
여물통으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빨간 모자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빨간 모자 소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빨간 머리 소년과 늑대]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에서와 마찬가지로 '빨간 모자 소녀'에서도 늑대는 교활하고
사악하게 등장한다. 할머니와 손녀딸을 삼켜 버리는 늑대의 범죄 행위는 굶주림과 같은 충분한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 이야기꾼은 늑대의 철저하게 악한 본성을 주장하지만, 여기에서도 짐승의
일반적인 호전성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진보적인 민속
학자는 이 경우에도 성공적이었는데, 잊혀진 것으로 믿었던 동화의 단편을 발굴함으로써 늑대의
진정한 동기를 해명하게 되었다.

  옛날에 빨간 머리를 가진 꼬마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도 '빨간 머리 소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동네에는 이 아이 외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또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빨간 머리 소년은 아무런 기쁨도 없고 따돌림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학교 성적에 만족하지 않는 아버지는 단지 욕만 하고 벌써 몇 번 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남들의 눈에 띄는 자신의 특이함에 관한 감정을 덜 갖도록 여동생에게 빨간
모자를 만들어 주어 '빨간 모자 소녀'라고 불렀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간 머리 소년은 숲으로 가서 동물들과 노는 꿈을 꾸고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빨간 머리 소년은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집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마자 소년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덩굴 속을
헤치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늑대가 나타나서는 소년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서 같이 맛있는 산딸기를 따면 나중에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바구니 두 개는 넝쿨로 같이 묶어서 내 등 위에 걸면 너는 바구니 한 개만 들고 가면 돼.
그러면 훨씬 빨리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기쁨에 가득 차서 빨간 머리 소년은 늑대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년은
학교도, 동네도, 학급 친구들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딸기를 따 가지고 왔으니 얼마나
자기를 환영할까 하고 머리 속으로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늑대도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고
고마워할 것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빨간 머리
소년의 아버지는 그 동안 아이가 학교에 안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늑대와 나란히
평안하게 오는 것을 보자 아버지는 분통이 끓어올랐습니다. 아버지가 커다란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자, 늑대는 캥캥거리며 도망가 버렸습니다. 빨간 머리 소년은 벌로 매를
맞고 방 안에 갇혔습니다. 다음 날 동생과 함께 할머니에게 떡을 갖다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그림 형제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빨간 모자 소녀'의 동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늑대 간계는 화창한 토요일에  어두운 골방에 갇힌 친구 '빨간 머리 소년'의 복수를  하고 아버지

혼내 주고자 하는 동물의 욕구로 쉽게 설명이 되는 것이다. 빨간 머리 소년과 빨간 모자 소녀의
나쁜 아버지가 아직도 엄마 품(어머니와의 정서적 유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유별난 남편과
무서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늑대는 적어도 알아차린 것이다. 따라서 늑대는 아버지의 엄마를
삼켜 버림으로써 제일 약한 데를 맞히고자 한 것이다. 대개 삼켜 버리는 것을 잡아먹는 것으로
혼동하였지만, 명백한 것은 늑대가 할머니와 손녀를 전혀 다치지 않도록 힘들여 삼켜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노고의 의미는 아무도 심하게 다치게 하지 않고 아버지를 놀라게 해서
제정신이 들도륵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늑대의 복수는 이성적인 것이다. 물론 동화의 끝 부분은
몇 가지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할머니 집을 지나가던 사냥꾼이 코 고는 소리를 듣고 늑대의 배를
갈라 두 사람을 구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나서 늑대의 배를 돌로 가득 채워
늑대는 죽었다는 것이다.
  정신 분석학적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이 동화는 바로 빨간 머리 소년의 아버지가 꾼 꿈
이야기라는 것을 당장 알아차릴 것이다. 사냥꾼은 다름 아닌 아버지 자신인데, 아버지는 전형적인
꿈 해석에 있어서 항상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서 획일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늑대는 할머니를
상징한다. 할머니의, 더 정확하게는 자기 엄마의 배를 가르는 것은 탯줄을 자르는 것을 연상케
하는데, 이것은 엄마와의 심리적인 유대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다. 빨간 머리 소년의
아버지가 꾸는 꿈은 따라서 엄마 유대에 대한 심리적 치료 기능을 가지고 있는 정신 분석학적
정화의 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쁘게 해결된 동화의 끝을 설명해 준다.
  그렇지만 다른 관점이 또 하나 있다. 엄마의 배를 무거운 돌로 채우는 것은 무겁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gravis와 이로부터 파생된 임신(gravidita)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킨다. 따라서 동화의
결말은 모든 리비도적 관계에 특징적이고 전형적인 반대 감정의 양립이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꿈 속에서 엄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치료 과정을 거치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잔인하게 일그러진 형태로 외디푸스적 욕망을 충족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급진적인 정신
분석학자인 빌헬름 라이히에 의하면 몸을 가르는 행위는 처녀성을 더럽히는 것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생리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그러나 신화적으로
표현된 처녀성과 첫번째의 유일한 남자로서 자신의 엄마와 동침하겠다는 희망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동화 '빨간 모자 소녀'는 정당하게 해석하면 표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의
반대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에 우리는 동화를 늑대의 위험성에 대한
표현으로 오해하였고, 그래서 늑대 이야기만 들으면 두려워서 움찔하였다. 전래 과정의 후기에
있어서 보수적인 그림 형제의 동화에 상상으로 보충된 것은 명백히 억압적인 기능인 것이다
동화를 분석해 보면 정신 분열증적인 빨간 머리 소년과 빨간 모자 소녀 아버지의 단지
표면적으로 은폐된 꿈 이야기일 것이라는 암시가 보이는 것이다. 아마도 동화의 첫번째 부분
(순진한 빨간 모자 소녀를 속이고 할머니와 손녀를 잡아먹는 이야기)은 이미 아버지의 꿈의
맥락에 속하는 대목이다. 꿈의 동기는 늑대를 팬 것이 자신의 양심에 꺼려지고, 이것을 사후에
정당화하고자 하는 욕구일 것이다. 늑대가 실제로 (물론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단지 순수한
호전적 행위로 해석한다면)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면 막대기로 때린 것은 단지 정당한 방어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이중성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거나 죽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망은 항상 리비도적 관계와 병존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감정 관계는 빨간
모자 소녀의 꿈 속에서 명백하게 표현된다. 라이히의 학설에 따르면 이러한 표현은 이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삼켜 버린다는 것과 배를 가른다는 파괴적인 행위가 이제는 처녀성을 더럽히는
행위로 해석된 배를 가르는 행위와 돌로 채우는 행위(임신)로 표현되는 것이다. 잡아먹는다는
것이 이중적인 의미를 가자고 있다는 사실은 '아유, 예뻐서 잡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일상적인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잊혀진 것으로 믿어졌던 '빨간 머리 소년과 늑대'라는 부분을 통한 새로운
동화 해석은 '빨간 모자 소녀'라는 독일 민속 동화를 보다 진보적이고 계몽적인 교육 과정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두번째 마당 - 부르주아지의 등장 : 반봉건적 혁명과 계급 대립 사회의 문제]

    [행운아 한스]

  칠 년 동안 주인 밑에서 일한 한스는 어느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 어른, 제 계약 기간도 끝났는데, 저는 다시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임금을 주시지요."
  주인은 대답을 했습니다.
  "너는 내게 충실하고 성실하게 일을 했으니, 일한 대가만큼 임금도 주어야지."
  그리고 나서 주인은 한스의 머리만큼 커다란 금덩이를 주었습니다. 한스는 주머니에서
보자기를 꺼내어 금덩이를 싸 가지고 어깨에 멘 다음에 집으로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한스가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걸어가고 있을 때에 마침 즐겁게 말을 타고 가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승마는 아주 재미있겠구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앉아 있기만 하면 넘어지지도 않고
신발도 닳지 않고 가는 줄도 모르게 가겠구나."
하고 한스는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기사는 멈추어 서서 말을 걸었습니다.
  "어이, 자네는 왜 걸어서 가는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한스는 대답했습니다.
  "이 금덩이를 집에 가지고 가야 하는데, 고개도 똑바로 할 수 없고 어깨도 아프고 그렇다네."
  "그렇다면 우리 교환하지 않겠는가? 내가 말을 줄 터이니, 내게 그 금덩이를 주게나."
하고 기사는 말했습니다. 
  "그거 좋지. 그러나 미리 말해 두지만 그것을 질질 끌고 가야 할 걸세."
  기사는 말에서 내려서 금덩이를 받아 들고 한스가 말 타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고삐를
한스의 손에 쥐어 주고 기사는 말했습니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혀로 쯧쯧 소리를 내고 '이랴 이랴' 하고 외쳐야 되네."
  한스는 말 위에 앉아서 자유롭게 가는 것이 아주 기뻤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더욱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혀로 쯧쯧 소리를 내고 '이랴 이랴'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말이
갑자기 빨리 달렸기 때문에 한스가 잘못을 저지르기도 전에 벌써 떨어져서 길과 밭을 경계
지우는
도랑에 자빠졌습니다. 그 때 소를 앞세우고 걸어오던 농부가 잡지 않았더라면 말은 아마 멀리
달아났을 것입니다. 한스는 다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습니다. 한스는 아주 불쾌해서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승마라는 것은 아주 더러운 재미로군요. 그것도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고 해서 사람 목을
부러뜨릴 수 있는 이 망할 놈의 말을 만나면 더욱 그렇지요. 내 더 이상 말은 안 탈 거예요.
오히려 당신의 소가 좋습니다. 느긋하게 뒤에 따라 갈 수 있지요, 매일 우유를 짤 수 있으니
버터와 치이즈는 확실한 것 아닙니까. 그런 소를 가지려면 얼마나 주어야 되지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지요. 당신의 말과 내 소를 바꿀 용의가 있습니다."
  한스는 기쁜 마음으로 응낙했습니다. 농부는 말 위로 올라타고는 재빨리 그곳을 떠났습니다.
한스는 소를 천천히 몰고 가면서 아주 잘 된 흥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빵 한 조각만
있다면 부족할 게 없지. 먹고 싶을 때마다 버터와 치이즈를 곁들여서 먹을 수 있지, 목마르면
젖을 짜면 되지, 무엇을 더 바랄 게 있는가?' 주막집에 와서는 휴식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점심빵 할 것 없이 모두 다 먹어 치웠습니다. 가지고 있던 몇 푼의 동전도 맥주 한 잔을 마시는
데 다 써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어머니가 계시는 동네를 향해서 계속해서 소를 몰고
갔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더위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한스는 이제 황무지에 왔는데 아직도 한
시간은 더 가야 했습니다. 갈증이 나서 혓바닥이 목구멍에 달라붙을 정도로 더웠습니다. '더위에
대책이 있지.'하고 한스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젖을 짜서 우유로 목을 축이면 될 거야.' 한스는
소를 말라빠진 나무에다 묶었습니다. 양동이가 없었기 때문에 가죽으로 된 모자를 갖다 대고
노력했지만 한 방울의 젖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서투르게 하였기 때문에 불안해진
소는 드디어 뒷발로 한스의 머리를 쳐서 땅에 뒹굴어 한동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다행히도 그 때 한 푸줏간 사람이 손수레에 새끼 돼지를 싣고 강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세게 채였나?"
하고 말하고는 한스를 도와 일으켰습니다. 한스는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푸줏간
사람은 한스에게 자신의 호리병을 건네주고 말했습니다.
  "마시고 우선 정신 차리게. 소가 젖을 내지 않는다고? 그거 늙은 소군. 기껏해야 마차를 끄는데
쓰거나 아니면 도살하는 수밖에 없겠군."
  "어이, 참."
하고 한스는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누가 그것을 생각이나 했담. 집에서 소를 잡는다면 물론 좋을 텐데, 고기가 많이 나올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쇠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름기가 별로 없거든요. 새끼 돼지라면 아주
좋을 텐데. 맛이 다른데다가 소시지를 만들 수 있지요."
  "한스, 들어보게나."
하고 푸줏간 사람은 말했습니다.
  "자네를 위해서 바꿀 용의가 있다네. 소 대신에 내가 돼지를 놓고 가지."
  "당신의 호의에 하느님의 가호가 있을 거예요."
하고는 한스는 소를 넘겨주었습니다. 돼지 새끼는 수레에서 끌어내려 돼지가 묶여 있던 끈을
받아 쥐었습니다.
  한스는 계속해서 걸어가면서 모든 일이 희망하는 대로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쾌한 일이
생기면 곧 회복되고는 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팔 밑에 예쁜 거위 한 마리를
가지고 가는 청년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한스는 항상 자신이 유리하게
교환을 하였다는 자신의 운수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아이들을 포식시키려고
거위를 사 가지고 간다고 말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오."
하고는 날갯죽지를 거머쥐면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무거운 것을 보니 한 8주 동안은 포식할 수 있을 겁니다. 불고기로 해서 먹으면 양쪽으로
기름기가 배어 나오지요."
  한스는
  "그래요."
하고는 거위를 한 손으로 달아보았습니다.
  "무게는 꽤 나가는데, 그렇지만 내 돼지도 암퇘지랍니다."
  그러는 동안에 청년은 돼지를 이모저모 살피다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이거 보시오. 당신 돼지는 뭔가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지나온 마을의 이장 집에서
돼지 한 마리를 도둑맞았다고 하더군요.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바로 그 돼지를 손에 쥐고
있는 것 같군요. 사람들이 찾으러 다니는데, 당신이 돼지와 함께 걸리면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디에 숨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순진한 한스는 겁이 났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나를 궁지로부터 구해 주시오. 당신은 무슨 궁리가 있는 모양인데 내 돼지를
가지고 가고 거위를 내게 주시오.:
  "나도 모험을 해야 되지만 당신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군요."
하고 청년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돼지의 고삐를 받아 쥐고 돼지를 몰고 샛길로 재빨리
사라졌습니다. 근심을 던 한스는 손에 거위를 안고 고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환하는 데 있어 내가 이득이 많아."
하고 한스는 스스로 말했습니다.
  "우선 좋은 불고기 감이지, 그리고 나서는 불고기할 때에 떨어지는 많은 양의 기름은 한 삼
개월 동안 거위 기름 빵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흰 깃털로는 베개를 만들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거야.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마지막 동네에 들어왔을 때 가위 가는 사람이 수레에서 가위 가는 바퀴를 달달거리는 소리가
나게 돌리며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위를 갈고 바퀴를 돌리면 외투 자락은 바람결에 흩날린다네."
  한스는 서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가위를 갈면서 그렇게 즐거운 것을 보니 재미있는 모양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라고 가위 가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손재주는 대단한 밑천이지요. 훌륭한 연마공은 주머니에 손을 넣기만 하면 돈이 나오는 그런
사람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어디에서 그렇게 좋은 거위를 사셨습니까?"
  "산 것이 아니라 내 돼지하고 바꾼 것입니다."
  "그럼 돼지는?"
  "그것은 내 소하고 맞바꾸었지요."
  "예, 소는요?"
  "소는 말 대신에 받은 것입니다."
  "그럼 말은요?"
  "예, 말 값으로 내 머리 만한 금덩이를 주었습니다."
  "금덩이는 어디에서 났습니까?"
  "아, 그거야 칠 년 동안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지요."
  "허, 그 때 그 때마다 참 똑똑하셨습니다."
하고 칼 가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일어서면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한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을 잡은
것이요."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한스는 물었습니다.
  "나처럼 연마공이 되면 간단하지요. 숫돌만 있으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되지요. 내가 하나 가지고
있는데 물론 흠은 조금 있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거위만 받고 줄 수도 있습니다."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는군. 돈이 필요할 때에 주머니에 손만 넣으면 된다면
무엇을 더 걱정할 것이 있는가?"
  한스는 거위를 건네주고 대신 숫돌을 받았습니다.
  "좋소."
하고는 칼 가는 사람은 옆에 놓여 있는 평범한 돌 하나를 주워 한스에게 주었습니다.
  "여기 오래 된 못을 똑바로 펼 때에 쓸 수 있는 단단한 돌도 줄 터이니 잘 보관하시오."
한스는 돌을 잘 챙기고 아주 만족해서 길을 걸어갔습니다. 한스의 눈은 기뻐서 빛났습니다.
  "나는 행운아로 태어난 모양이야."
하고 한스는 외쳤습니다.
  "일요일에 태어난 행운아처럼 원하는 모든 일이 척척 이루어지니 말이야."
  그렇지만 한스는 새벽부터 걸었기 때문에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예비
식품도 소를 흥정했을 때에 기뻐서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허기가 져서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매번 쉬어야 했습니다. 가련할 정도로
무거운 숫돌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돌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달팽이처럼 간신히 기어서 우물가로 갔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었다가 갈 참이었습니다.
앉을 때에 돌이 다치지 않도록 우물가에 조심스럽게 놓았습니다. 그러나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리다가 부주의로 돌을 살짝 건드렸더니, 두 돌은 물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습니다. 돌이
물 속 깊이 가라앉는 것을 두 눈으로 본 한스는 기뻐서 팔짝 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책할 필요도 없이 짐이 되었던 돌로부터
해방되게 해 주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처럼 행복한 사람은 하늘 아래 아무도 없을 거야."
하고 한스는 외쳤습니다. 모든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가슴을 펴고 한스는 어머니가 계신 집에
이르기까지 기분 좋게 뛰어갔습니다.


    [운아 한스와 장사꾼 파울]

  '행운아 한스'의 이야기는 그림 형제가 전래한 몇 안되는 역설적인 동화 중의 하나이다. 동화를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쾌락은 전형적으로 소시민적인 쾌락으로서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기는
것이고, 행운으로 묘사된 한스의 운명은 객관적으로 보면 순전히 불행인 것이다. 여기에서
객관적인 관점이란 어찌되었든 '경제인(homo economicus)'의 관점이다. 동화는 경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선 두 형제가 한 것보다 조금은 더 냉정하게 동화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기로 한다.
  칠 년 동안 일한 대가로 한스는 주인으로부터 머리 만한 금덩이를 받는다. 동화의 이야기가
잘 말해 주고 있듯이 이 머리가 썩 크지 않다고 가정해도, 적어도 20㎏의 무게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돈으로 약 100,000마르크는 나갈 것이다. 들고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스는 이 금덩이를 말과 교환한다. 아주 훌륭한 경주용 말이라고 해도 값은 3000마르크
밖에 안 되고 한스는 벌써 97,000마르크를 손해 본 것이다. 말이 자기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한스는 최대로 500마르크의 값어치가 있는 도살용 소와 바꾼다.(손해 2500마르크). 소를 돼지
(약 150마르크)와 바꾸어서 350마르크의 손해를 보고, 다시 30마르크 정도의 거위와 교환하여
120마르크의 손해를 입는다. 다시 거위를 2마르크 짜리의 숫돌과 바꾸어 28마르크의 손해를 본
다음에 물을 마시다가 숫돌이 우물에 빠져 행운아 한스는 모든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기쁘게
집으로 뛰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동화는 완전히 장사에 실패한 이야기인데, 실패의 원인은 상품 사회에 기능하고 있는
가치의 평가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가치 평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한스는 단지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경제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계산적 사유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 대가는 엄청나다. 하루에 전체 손해가 100,100마르크인 것이다 물론 이
동화는 하나의 경고로 이해될 수 있다. 절대화된 사용 가치의 공허한 형식을 통해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개념인 '가치'를 논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스의
단순함은 사회적인 붕괴의 형식으로 처벌된다.
  한스가 저지른 실수를 하나 하나씩 살펴보면, 첫번째 매매 교환이 벌써 결정적인 실수임을
알게 된다. 한스는 어떠한 경제적인 계산도 없이 일반적인 가치 형식(금=화폐가치)으로부터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 1권 제 1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단순하고 개인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
형식'으로 되돌아간다. 한스가 금을 등가의 말과 교환하였다고 할지라도, 말 평가는
비전문가에게는 문제점이 많고 말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교환은
상당히 꺼림칙한 것이다. 그래도 말과 소는 어머니의 농가에 쓸모 있는 생산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스는 작은 생산 수단과 '상품의 상품'(금 또는 가치 화폐)과의 비경제적인 교환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표현된 바와 같이 돼지와 거위는 순전히 가내 소비를 위해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파산하기 직전에 숫돌과 바꿈으로써 소규모의 개인적 상품 생산
(서비스 상품)을 위한 소규모의 생산 수단으로 교환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사 숫돌이 우물에 빠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한스는 필요한 기술과 이 방면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스는 또한 당시 사회의 최하류층이었던 이 직업이 간신히 구걸을
면할 정도여서 충분한 생활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운아 한스'는 실패한 사회화과정의 본보기이다. 아마도 한스는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특정한 수공업을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 사회의 등가 교환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상업
정신도 한스에게는 낯설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행운아 한스' 동화의 반대로서 긍정적인
동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조금은 억지가 되겠지만  '행운아 한스'를 혁명적으로 해석한다
면,
이 동화는 계산되지 않은 행운과 상품 생산 사회와는 병존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치된다면 반대 동화는 '장사꾼 파울'이 아니라 '불행한 파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자신의 행운과 순진함을 상실한, 소위 말해 머리가 일찍 트인 사업가의
성공담인 것이다.


    [사꾼 파울]

  파울은 습득이 빠른 아이였는데 아주 빨리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하는 사회의 성공 전략을
터득했습니다. 벌써 열 다섯 살 때에 도제 점원으로서 첫번째 성공적인 흥정을 하였답니다.
부모님들이 살고 있는 전세 집의 창고에서 파울은 오래 된 칼 가는 도구를 발견하였는데, 이
도구는 시골에서 집집이 찾아다니는 연마공들에 의해 아직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파울은 그 주인으로부터 2마르크를 주고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래된 것을
감추기 위해 색깔을 멋있게 칠한 다음에 골동품 중개상한테 가지고 갔습니다.
  영어로 정성 들여 쓴 '17세기 골동품, 남부 독일의 칼 가는 도구'라는 쪽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판매 가격으로 100달러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순진한 구매인이
나타나서 중개상에게 10달러를 떼어 주고 파울은 90달러를 벌었습니다. 두번째 장사는 얼마 있지
않아 이루어졌는데 파울은 320마르크를 주고 중고 메르세데스 차를 사가지고 친구의 도움으로
고쳐 가지고는 중고차 값이 가장 비쌀 때인 휴가철 직전에 1500마르크에 되팔 수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파울이 직접 타려고 차를 고친다고 생각했고, 또 같이 휴가 여행도 갈 수 있다는 기대도
막연히 하였기 때문에 파울이 사 준 몇 병의 콜라 외에는 도와준 데 대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파울은 또 다락방 치워 주는 사람으로 일을 했는데 그렇게 해서 가사도구를 값싸게 또는
공짜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골동품 중개상을 통해 돈 많은 미국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중간 규모의 양복점에서 도제로 일하는 동안에 파울의 재산은 비슷한 방법으로 해서
5000마르크라는 상당한 액수에 달했습니다. 이때에 파울의 주인에게는 불행이 겹쳐서 일어났는데
파울에게는 아주 호재였습니다. 그래서 파울은 항상 '신은 성실한 자를 돕는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부 일을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주던 부인이 앓아 누웠습니다. 보험에
안 들었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와 약 값으로 많은 돈을 지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임금이 비싼 여자 부기 계원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낙관적으로 창고를 가득
채웠을 때에 바로 유행이 바뀌었습니다. 재고품 위에 타고 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상당히
밑지고 팔아야 했습니다. 공급 회사는 신용 매매하는 것을 거절하였고 은행도 공급 가격의
10프로 이상 대출해 줄 용의가 없었습니다. 바로 파산 직전이었습니다.
  곤경에 빠진 주인의 딸은 친구인 파울에게 와서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파산은 면하고자
하는 겁에 질린 아버지를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상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파울이 아무도
모르게 한 밑천 잡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씨 좋은 딸은 파울이 돈을 적어도 일부분이라도
아버지에게 빌려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파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사업가는 마음이 여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겠지? 물론 마음이 (사업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설사 원한다고 할지라도 큰 은행들도 하지 않는데
  너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없는 것이야. 그렇지만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
  소녀가 해결책을 말해 보라고 재촉하자 파울은 결국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상점을 넘겨준다면 회사의 빚을 떠맡을 용의가 있지. 그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상점 지키는 사람으로 일하고 네가 판매원과 장사하는 사람으로
  일해 준다면 상점 위에 있는 이층에 살 수 있는 권리도 부여할 용의가 있어. 아버지의 임금은
  평생 동안의 방세로 하기로 하고 너는 보통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너는 계속
  상점에 남는다는 것을 서약하여야만 되지. 그것이 밖으로도 우리에게 이로울 테니 말이야."
  주인의 딸은 말을 잃을 정도로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곤경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얼마나 그의 제안을 싫어하는지를 파울에게 감히 맞대 놓고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하고
의논하기 위하여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파울은 주인이 파산을 면하려고 한다면 동의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던 것입니다. 파울은 주인이 구시대적인 명예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헛되이 다른 방편을 강구하다가 주인 노인은 결국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파울은
상점을 떠맡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재물이었던 자신의 돈을 이제는 자본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는 빚을 갚고 새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재고품은 유행이 뒤떨어진 외국에 팔았고,
그렇게 해서 아주 짧은 시간에 재산을 배로 늘릴 수가 있었습니다. 늙은 주인은 단지 가게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옛날 소유를 돌볼 수 있었고, 딸은 사표를 제출할 권리도 없이
예전에는 친구로서 그리고 미래의 신랑감으로 생각했던 사람을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파울을 유산을 많이 물려받은 섬유 업계의 여자한테 성공적으로 청혼을 하였고, 이러한
방식으로 사업 관계를 확장하였으며 재산을 불렸습니다.
  어느날 파울은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행복한가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지."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파울이 사업상의 행운을 냉심장이라는 아주 비싼 대가로 치렀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파울이 별로 평가하지 않는 낭만주의자들이었습니다.

  파울이 아마 철학의 고전을 알았다면, 이미 1640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토마스 홉즈를
인용하였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경주와 비교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에 적합하다. 그러나 이 경주는 첫째가 되는
것 이외의 어떠한 목표도 알지 못하고, 또 그 이외의 어떠한 명예도 알지 못해야 한다. 경주에
있어서 다른 사람한테 지는 것은 불행이고, 우리 앞의 사람을 이기는 것은 항상 행복이다.
그리고 이 경주를 포기하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파울은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인이고, 토마스 홉즈와 아담 스미스는 파울의 예언자이다.


    [백설공주]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 눈이 깃털처럼 내리는 한 겨울이었습니다. 왕비가 까만 흑단으로 된
틀이 있는 창문 곁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느질을 하면서 눈오는
것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바늘에 찔려 눈에 세 방울의 피가 떨어졌습니다. 하얀 눈 위의 빨간
피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왕비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눈처럼 희고, 피처럼 빨갛고, 창문틀의
나무처럼 까만 아이가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되지 않아 왕비는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의 피부는 눈처럼 희고, 입술은 피처럼 빨갛고, 흑단나무처럼 까만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는 백설공주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왕비는 죽었습니다.
  일 년이 지나자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부인이었지만, 아주 거만하고
불손하여서 예쁜 것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왕비는 마법의 거울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울 앞에만 가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항상 물어 보았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그러면 거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비 마마.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답니다."
  그러면 왕비는 만족했습니다. 왜냐하면 왕비는 거울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설 공주는 자라면서 점점 더 예뻐졌습니다. 백설 공주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에는 달덩이처럼 예뻐서 왕비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왕비가 어느날 거울에게
물었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그러자 거울은 대답했습니다.
  "왕비 마마, 당신이 여기서는 제일 예쁘지만 백설공주가 당신보다 몇 천배 더 예쁘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왕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기로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이 때부터
왕비는 공주를 볼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려서 공주를 미워했습니다. 시기와 불손은 잡초처럼
점점 더 크게 자라나서 밤낮으로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왕비는 사냥꾼을 불러
말했습니다.
  "공주를 숲으로 끌고 가서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그리고 공주를
죽이고 나서는 그 증거로 허파와 간을 가지고 오너라."
  사냥꾼은 순종하여 공주를 끌고 나갔습니다. 사냥꾼이 옆에 차고 있던 엽도를 꺼내어 아무
죄 없는 백설공주의 가슴을 찌르려고 하자 공주는 흐느껴 울면서 말했습니다.
  "사냥꾼 아저씨, 나를 살려 주시면 숲 속에 있으면서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백설공주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냥꾼은 동정심이 생겨났습니다.
  "가련한 아이야, 도망가거라."
  '야수들이 너를 곧 잡아먹을  텐데.' 하고 사냥꾼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죽일 필요가  없기 때문

사냥군의 가슴은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습니다. 그 때 마침 산돼지 새끼 한 마리가 뛰어나와
사냥꾼은 돼지를 죽이고 허파와 간을 꺼내어 증거로 왕비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요리사는
허파와 간을 소금을 쳐서 요리해야 했고, 사악한 왕비는 그것을 먹어 치우고는 백설공주의
허파와 간을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련한 공주는 깊은 숲 속에 홀로 남았습니다. 나무의 울창한 잎들이 갑자기 무서워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공주는 막 뛰기 시작했습니다. 뾰족한 돌멩이 위로 그리고 가시덤불
위로 달렸습니다. 야수들은 공주 곁을 지나가곤 하였지만 공주를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공주는 달렸습니다. 막 저녁 땅거미가 내릴 때쯤 해서 공주는 조그만 집을 하나
보고는 쉬기 위해서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 안에는 모든 것이 조그마했지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고 풍부했습니다. 방 안에는 흰
식탁보 위에 일곱 개의 접시에 음식이 차려져 있는 탁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접시에는 숟가락이
있었고, 그 밖에도 일곱 개의 칼과 포크, 그리고 일곱 개의 잔이 놓여 있었습니다. 벽 쪽에는
일곱 개의 침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모두 하얀 시트로 덮여 있었습니다. 백설 공주는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기 때문에 모든 접시에서 빵과 야채를 조금씩 먹고 모든 잔에서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왜냐 하면 백설 공주는 한 접시를 모두 먹어 치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너무 피곤하였기 때문에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어떤 침대도
맞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너무 길고, 다른 것은 너무 짧았습니다. 일곱 번째의 침대는 딱
맞았습니다. 그 곳에 누워 백설공주는 잠이 들었습니다.
  아주 깜깜해졌을 때에 집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일곱 사람의 난쟁이들이었는데 산에서 광석을
캐고 돌아온 것입니다. 일곱 개의 불을 켰습니다. 이제 집이 환해지자 그들은 누군가가 집에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것들이 집을 떠날 때와 같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 의자에 앉았지?"
  두 번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 접시에서 먹었지?"
  세 번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 빵을 베어먹었지?"
  네 번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 야채를 먹었지?"
  다섯 번째 난쟁이는
  "누가 내 포크를 사용했지?"
하고 말했습니다. 여섯 번째 난쟁이는 말했습니다.
  "누가 내 칼로 썰었지?"
  일곱 번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 잔에서 포도주를 마셨지?"
  그리고 나서는 첫 번째 난쟁이가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침대가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했습니다.
  "누가 내 침대에 누웠을까?"
  다른 난쟁이들도 달려와서는 소리쳤습니다.
  "내 침대에도 누군가가 누웠다."
  일곱 번째 난쟁이가 자기 침대를 보았을 때 그 안에서 자고 있는 백설공주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난쟁이들을 부르자 달려와서는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일곱 개의 등불을 가지고 와서는
백설 공주를 비추었습니다.
  "오, 하느님! 얼마나 예쁜 아이인가!"
하고 난쟁이들은 감탄했습니다. 난쟁이들은 너무 기뻐서 백설공주를 깨우지 않고 침대에서
그대로 자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일곱번째 난쟁이는 한 시간에 한 침대씩 동료들 침대에서
잤습니다. 그러다 날이 샜습니다.
  아침이 되자 백설 공주는 깨어났습니다. 일곱 사람의 난쟁이를 보자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나
난쟁이들은 친절하게 물었습니다.
  "네 이름은 뭐니?"
  "제 이름은 백설공주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 집에 왔지?"
하고 난쟁이들은 계속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백설공주는 계모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데
사냥꾼이 살려 주어서 종일 헤매다가 이 집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난쟁이들은
말했습니다.
  "우리 집 살림을 맡아서 요리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빨래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한다면,
그리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돈한다면 우리 집에 머물 수가 있단다. 아마 부족한 것은
없을 거야."
  "예,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하고는 백설공주는 난쟁이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백설공주는 집을 잘 보살폈습니다. 난쟁이들은
아침에 산으로 가서 광석과 금을 찾았고 저녁에나 돌아왔습니다. 낮 동안에는 혼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난쟁이들은 주의를 시켰습니다.
  "계모를 조심해야 한다. 네가 여기 있는 것을 곧 알게 될 거야. 아무도 들여보내서는 안된다."
  백설공주의 허파와 간을 먹었다고 믿는 왕비는 이제 자신이 가장 예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거울 앞에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그러자 거울이 대답했습니다.
  "왕비 마마, 여기에서는 당신이 제일 예쁘지만 숲 속의 일곱 난쟁이하고 같이 있는 백설공주가
몇천 배나 더 예쁘답니다."
  왕비는 거울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사냥꾼이 자기를
속였고 백설공주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백설공주를 죽일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왕비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는 한 질투심 때문에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무엇인가를 생각해 냈을 때에는 왕비는 늙은 보따리 장수로
얼굴에 칠을 하고 옷을 변장해서 아무도 못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왕비는 일곱
개의 언덕을 넘어 일곱 난쟁이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외쳤습니다.
  "좋은 물건 팝니다. 물건 사세요."
  백설공주는 창문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얼 파시는가요?'
  "좋은 물건이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색깔의 실타래가 있습니다."
하고 때깔 좋은 비단으로 된 실을 꺼냈습니다.
  '저런 부인은 들여보내도 될 거야.'
하고 백설공주는 생각하고는 문의 빗장을 열고 예쁜 실타래를 하나 샀습니다.
  "너는 참 예쁘구나."
하고 노인은 말했습니다.
  "이리 와 보아라. 내 너의 허리를 제대로 죄어 주지."
  백설공주는 별다른 생각 없이 옆에 서서 새로운 실로 허리를 조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재빨리 아주 꼭 죄었기 때문에 백설공주는 숨을 못 쉬고 죽은 듯이 쓰러졌습니다.
  "흥, 네가 제일 예쁘다고?"
하고는 노인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저녁 먹으러 난쟁이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백설 공주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난쟁이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백설공주는 죽은 것같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백설공주의 허리가 너무 꼭 조여 있는 것을 보고는 실로 된 끈을 두 동강이로
끊었습니다. 그러자 백설공주는 조금씩 숨을 쉬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일어난 일을
듣고 난 난쟁이들은 말했습니다.
  "그 보따리 장수 노인은 다름 아닌 저주받을 왕비임에 틀림없어. 조심해라. 우리가 없는 동안에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집으로 돌아온 나쁜 왕비는 거울 앞으로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그러자 거울은 대답했습니다.
  "왕비마마, 여기에서는 당신이 제일 예쁘지만, 숲 속의 일곱 난쟁이와 같이 있는 백설 공주가
몇천 배나 더 예쁘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왕비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이 놀랐습니다. 백설 공주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너를 없애 버릴 생각을 해 내고 말 테다."
  왕비는 마녀의 기술로 독이 있는 머리빗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노인으로
변장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개의 언덕을 넘어서 일곱 난쟁이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좋은 물건 있습니다. 좋은 물건 사세요."
  백설공주는 밖을 내다보고 말했습니다.
  "다른 데로 가 보세요. 아무도 들여보내서는 안돼요."
  "보는 것은 괜찮겠지."
하고 노인은 독이 있는 빗을 꺼내어 쳐들어 보였습니다. 빗이 너무 맘에 들어 공주는 속아
넘어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흥정이 끝나자 노인은 말했습니다.
  "내가 머리를 제대로 빗겨 주지."
  가련한 백설공주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노인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빗을
머리에 꽂자마자 독이 퍼져서 공주는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졌습니다
.  "네가 절세의 미인이라고? 너도 이제 끝장이다."
하고 사악한 노인은 말하고 떠나갔습니다. 다행히도 곧 저녁이 되어서 일곱 난쟁이들이 집으로
왔습니다. 백설공주가 죽은 듯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난쟁이들은 바로 계모를 의심했고
곧 이어서 독이 묻은 빗을 찾았습니다. 빗을 뽑자마자 공주는 제정신이 들어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난쟁이들은 다시 한번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왕비는 집에 돌아가 거울 앞에 앉아 물었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그러자 거울은 전과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왕비 마마, 여기에서는 당신이 제일 예쁘지만 숲 속의 일곱 난쟁이와 같이 있는 백설 공주가
몇천 배나 더 예쁘답니다."
  거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자 왕비는 화가 나서 안절부절을 못했습니다.
  "백설공주는 설사 내 목숨이 희생되더라도 죽어 없어져야 돼."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방으로 들어가서 아주 독이
많이 든 사과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빨간 볼을 가진 흰 얼굴과 같이 아주 예쁘게
보여서 한 번 본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싶을 정도였지만, 누구라도 한 입 베어먹기만 하면
죽을 것입니다. 사과가 완성되자 시골 아낙네처럼 얼굴을 칠하고 변장하여서 일곱 언덕을 넘어
일곱 난쟁이 집으로 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백설 공주가 창으로 머리를 내밀고는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들여보내서는 안돼요. 일곱 난쟁이들이 금지했어요."
  "내게는 상관없어."
하고 아낙네는 대답했습니다.
  "사과를 떨이하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너에게 사과 하나를 선사하지."
  "싫어요."
하고 백설공주는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받아서는 안돼요."
  "왜, 독이 들어 있을까 보아 겁이 나니?"
하고 아낙네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보거라. 사과를 두 쪽으로 나누어서, 내가 흰 부분을 먹을 터이니 빨간 쪽은 네가
먹어라."
  그러나 사과는 단지 빨간 부분만 독이 있도록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백설공주는
사과를 먹고 싶은 듯이 바라보다가, 아낙네가 베어먹는 것을 보고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손을 내밀어 독이 든 반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입을 깨물자마자 백설공주는 땅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왕비는 잔인한 눈빛으로 백설공주를 바라보고는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눈과 같이 희고, 피와 같이 빨갛고, 흑단나무같이 까맣다고! 이번에는 난쟁이들도 너를 다시
소생시키지 못할 거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거울한테 물어 보았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그러자 거울은 드디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비마마,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답니다."
  어디 시기심 많은 사람이 안정을 찾을 수야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왕비의 시기심은 그런 대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난쟁이들은 백설공주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에는
숨이 붙어 있지 않았고 백설공주는 정말 죽은 것입니다. 난쟁이들은 백설공주를 들어올려서
어디에 독이 있는가 하고 이리저리 찾았습니다. 허리끈도 풀러 보고, 머리도 빗겨 보고, 물과
포도주로 씻겨도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습니다. 불쌍한 공주는 죽어 버린 것입니다.
난쟁이들은 공주를 관에 넣고 일곱이 모두 앉아서 사흘 동안 울었습니다. 땅에 묻으려고
하였지만 공주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싱싱하였고 볼이 아직도 불그레하였습니다.
난쟁이들은 말했습니다.
  "공주를 깜깜한 땅 속에 묻을 수는 없어."
하고는 사방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유리로 된 투명한 관을 만들어서 공주를 그 안에다
놓았습니다. 금빛 글자로 이름을 쓰고 소녀가 공주라는 사실도 기입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관을
산 위에다 두고는 항상 한 사람이 남아서 관을 지켰습니다. 그러자 짐승들도 와서는 백설공주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엉이가 오고, 그 다음에는 까마귀가 오더니, 마지막으로
비둘기가 왔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공주는 관에 누워 있었지만 썩지 않고 마치 잠자고 있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공주는 여전히 분과 같이 희고, 피와 같이 빨갛고, 흑단나무와 같이 까맣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웃 나라의 왕자가 숲 속으로 왔다가 난쟁이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왕자는 산 위에서 관에 누워 있는 백설공주를 보았고 그 위에 금색으로 쓰여 있는
것을 읽었습니다. 왕자는 난쟁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가지고 싶은 것을 줄 터이니 내게 관을 주렴."
  그러자 난쟁이들은
  "세상의 금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내게 선사하면 어떻겠니? 백설공주를 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받들고 존중할 것을 약속하마."
  왕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난쟁이들은 동정을 느껴서 관을 내주었습니다. 왕자는 신하를
시켜서 관을 어깨에 메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덩굴에 걸려 관이 흔들거리자 백설공주가
먹은 독사과의 조각이 목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공주는 눈을 뜨더니
관의 뚜껑을 열어 젖히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공주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느님 맙소사.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지?"
하고 공주는 외쳤습니다. 왕자는 기뻐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 곁에 있다오."
하고는 일어났던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와 함께 아버지의 성으로 가서 나의 부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주는 승낙하고 왕자와 함께 성으로 갔습니다. 그들의 결혼식은 화려하게 치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잔치에는 백설공주의 계모도 초대되었습니다.  예쁘게 옷을 차려 입고  왕비는 거울  앞으로 다

가서 말했습니다.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
  거울이 대답했습니다.
  "왕비마마. 여기에서는 당신이 제일 예쁘지만 새로운 왕비가 몇천 배나 더 예쁘답니다."
  그러자 이 사악한 여자는 저주를 내뱉었습니다. 자신을 진정하지 못할 정도로 왕비는 점점 더
무서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결혼식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안정할 수가 없어서 새로운 왕비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궁 안에 들어서자 왕비는 백설공주를 알아보고 두려움과 공포로 그
자리에 서서는 움직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숯불 위에 마련해 놓고 있었던 쇠로
된 신을 불집게로 가지고 들어와 못된 왕비 앞에 놓았습니다. 그녀는 벌겋게 단 신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어야 했습니다.


    [원본 백설공주]

  에른스트 블로흐는 1930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화는 시대와 그 내용의 복장에 얽매여 있지 않은 욕망의 충족을 이야기한다."
  이것을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컨대 그림 형제에 의해
전래된 '백설공주'에 다른 원본이 그 토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이
원본을 재구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백설공주를 작업한 그림형제의
동기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옛날에 백설공주라고 불리는 그림같이 예쁜 소녀가 양친의 성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머리는 흑단나무처럼 까맣고 뺨은 눈처럼 희고 입술은 핏빛처럼
빨갛습니다. 그렇지만 공주는 궁궐의 모든 부귀영화가 백성들의 가난과 착취를 토대로 한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 속 깊이 매우 불행했습니다.
  어느날 말을 타고 숲 속을 가다가 거칠게 보이는 수염을 기른 젊은 청년을 만났습니다. 공주는
친절하게 청년에게 말을 걸어 청년이 전제 정치와 착취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반란군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헤어질 때에 그 유격대원은 공주에게
조그맣고 빨간 책 하나를 선물하면서 몰래 그 책을 읽고 궁 안의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백설공주는 일곱 밤 동안을 이 책을 읽어서 거의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공주는 그
유격대원이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하다고 확신을 하였습니다. 다음에 숲 속에 갔을 때에 공주는
몰래 몇 개의 무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공주가 일곱 언덕을 넘어 유격대원들의 진영에 도착하자
그들은 열광적으로 환영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유용한 무기를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아름다운 공주가 반란군에 가세하였다는 소식은 산불처럼 왕국에 퍼져 나가서 자유
해방군에 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습니다.
  여러 번 왕의 군대의 교활한 음모를 물리친 반란군들은 드디어 성을 함락시키고 왕정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는 백설공주가 가담한 혁명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사악한 왕비는
민중군에 대한 음모죄로 처형당하였고, 폐위된 왕은 민중에게 행한 것을 적어도 보상하기 위하여
평범한 직책에서 민중에게 봉사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만주의 마지막 황제가 겪은 것과
마찬가지지요. 혁명 정부에서 백설공주는 여성 해방을 위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백설공주를 좋아하고 존경하였습니다. 아마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아주 근본적인 것만 보면 백설공주의 원본은 위와 같을 것이다. 소시민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겁많은 작가들은 그림 형제와 같이 이러한 원본을 변형시키는 데 온 정성을 다 쏟았다. 정치적
동기를 가진 백설공주의 자발적인 결의를 백설공주와 무자비한 아름다움의 경쟁을 하는 질투심이
많은 왕비의 사적인 복수극의 결과로 만들어 놓았다. 일곱 언덕을 지나 살고 있던 용감한
반란군은 이제 일곱 난쟁이로 변했다. 여기에서 동화의 원본을 별 탈 없이 만들고 우스꽝스럽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유격대 집단과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백설공주는 이제 난쟁이 같은 총각들의 가정부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다. 험한 계급 투쟁 중에서
남은 것은 변장한 왕비가 교활하게 독살하려는 몇 시도들 뿐이다. 다시금 정치적인 것이 사적인
것으로 변형되었다.
  왜곡의 정점은 뭐니뭐니 해도 갑자기 신분에 맞는 신랑의 등장으로 끝나는 해피엔드일 것이다.
이 끝 마무리가 단지 위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난쟁이들의 당황함과 백설공주의 관을 내어
주지 않으려고 하는 난쟁이들의 설득력이 없는 자세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물론 몇 군데에서는
아직도 원본 백설공주의 흔적이 엿보인다. 위조되지 않은 것은 반란군(난쟁이들) 사이의 연대감과
계급적인 적(계모)에 대한 경계심이다. 백설공주가 프롤레타리아로 가장한 계급 투쟁의 적(보따리
장수와 사과 장수로 변장한 왕비)을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왜냐 하면 다른
반란군에게는 변장한 왕비를 폭로하도록 할 수 있는 확실한 계급 본능이 백설공주에게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왕비의 교활한 대응책은 백성(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백설공주의
윤리적인 사랑을 바로 백성을 속이기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권이 반란군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 음모 술수(변장, 독이 묻은 빗과 사과)를 사용하는 것도 사실적인 묘사로서 원본
백설공주로부터 따온 것이다.
  끝으로 왕비에게 왕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그렇게 왕비에게
제공하는 벽거울은 구석구석마다 염탐꾼과 스파이를 두고 있는 비밀 경찰에 대한 동화적이
비유인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거울과, 거울의 매수되지 않는 강직함의 비유를 통한 사적인
변형은 특히 설득력 있고 정교하다고 할 수 있다. 반란군의 색출과 박해에 있어서 왕비의
주도적인 역할은 실제로 현실에 부합하고, 또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비슷한 행동 방식이
발견된다.
  물론 동화를 변형시킨 것이 그림 형제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림 형제는 아마
동화를 이미 형편없이 변형된 형태로 발견하여서 단지 균형 있게 다듬었을 것이다. 그렇게
영웅적인 민중 봉기가 진부하고 조잡한 이야기로 되어 버렸는데, 이런 투의 이야기는 삼십
년대의 헐리우드 방식인 것이다.
  민중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진부한 이야기를 전해 왔겠는가? 기껏해야 종교가 위로해 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해서일 것이다. 종교가 저 세상에서의 보상적인 정의로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면 동화는 벌써 이 세상에서 사악한 계모에게 정당한 벌을 주고 순박한
백설공주에게 정당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동화가 과연 민중의 아편인가? 원본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재단사와 세 아들]

  옛날에 세 아들과 단지 염소 한 마리를 가지고 있는 재단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염소의
우유로 모두 살아야 했기 때문에 염소는 먹이를 잘 먹어야 하고 그래서 매일 목초지로 데리고
나가 꼴을 먹여야 했습니다. 세 아들들은 차례대로 하였습니다. 한번은 큰아들이 염소를 좋은
풀이 자라고 있는 교회의 마당으로 데리고 가서 풀을 뜯어먹도록 하고 이리저리 뛰어 놀게
하였습니다. 저녁에 시간이 되어 집에 가려고 염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염소는 대답했습니다.
  "배가 무척 불러서 더이상 풀 먹기 싫어. 메에! 메에!"
  "그럼 집에 가자."
하고 새끼줄을 잡아 우리에다 집어넣고는 꼭 묶었습니다. 재단사 노인은 물었습니다.
  "그래, 염소는 먹이를 제대로 먹었느냐?"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예. 배가 너무 불러서 풀을 더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로 가서 염소를 쓰다듬으며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그러자 염소는 대답하였습니다.
  "어떻게 배부를 수가 있습니까? 도랑 위로만 다녀서 풀 한 포기 못 먹었습니다. 메에! 메에!"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는 재단사는 뛰어 올라와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 이놈, 거짓말쟁이야. 염소를 굶게 해 놓고는 무엇이 배부르다고 해."
  화가 난 재단사는 벽에 걸린 자를 가지고 아들을 때려서 내쫓았습니다.
  다음날은 둘째 아들의 차례여서 울타리 근처에서 풀이 좋은 곳을 찾아 염소가 뜯어먹도록
하였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아들은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염소는 대답했습니다.
  "배가 무척 불러서 더이상 풀 먹기 싫어. 메에! 메에!"
  "그럼 집에 가자."
하고는 젊은이는 염소를 집으로 끌고 와서 외양간에 꼭 매었습니다. 재단사 노인은 물었습니다.
  "그래, 염소는 먹이를 제대로 먹었느냐?"
  "예."
하고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배가 너무 불러서 풀을 더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단사 노인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양간으로 내려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그러자 염소는 대답하였습니다.
  "어떻게 배부를 수가 있습니까? 도랑 위로만 다녀서 풀 한 포기 못 먹었습니다. 메에! 메에!"
  "이 나쁜 놈, 귀중한 짐승을 굶기다니."
하고 재단사는 소리치면서 뛰어 올라와 자로 아이를 때려 쫓아내었습니다.
  이제 셋째 아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막내는 일을 아주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풀이 좋은
곳만을 골라 염소에게 뜯어먹도록 하였습니다. 저녁에 집에 가려고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염소는 대답했습니다.
  "배가 무척 불러서 더이상 풀 먹기 싫어. 메에! 메에!"
  "그럼 집에 가자."
하고는 젊은이는 염소를 집으로 끌고 와 외양간에 꼭 매었습니다. 재단사 노인은 물었습니다.
  "그래, 염소는 먹이를 제대로 먹었느냐?"
  "예."
하고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배가 너무 불러서 풀을 더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단사는 믿지 않고 내려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그러자 아주 나쁜 염소는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배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도랑 위로만 다녀서 풀 한 포기 못 먹었습니다. 메에! 메에!"
  "이 거짓말쟁이 같으니. 하나같이 모두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책임감이 없다니!"
하고 노인은 소리쳤습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화가 난 재단사가 뛰어 올라가 자를 가지고 불쌍한 아이의 등을 후려
갈기자 아이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이제 재단사 노인은 자기의 염소와 함께 단둘이만 남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노인은
외양간으로 가서 염소를 어루만져 주며 말했습니다.
  "이리 오너라, 귀여운 짐승아. 내가 너를 목초지로 데리고 나가마."
  노인은 고삐를 잡고 풀밭으로 끌고 가 염소가 좋아하는 것들을 뜯어먹도록 하였습니다.
  "한번 배부를 때까지 실컷 먹어라."
하고는 저녁까지 풀을 뜯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물어 보았습니다.
  "염소야, 배부르니?"
  염소는 대답했습니다.
  "배가 무척 불러서 더이상 풀 먹기 싫어. 메에! 메에!"
  "그럼 집에 가자."
하고 재단사는 우리로 데리고 가서 꼭 묶었습니다. 노인은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돌아서서
물어 보았습니다.
  "너 이번에는 정말 배부르지?"
  그러자 염소는 노인이라고 더 잘 대답하지도 않고 소리쳤습니다.
  "어떻게 배부를 수가 있습니까? 도랑 위로만 다녀서 풀 한 포기 못 먹었습니다. 메에! 메에!"
  재단사는 이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 세 아들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쫓아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다려 봐라, 이놈!"
하고 재단사는 소리쳤습니다.
  "너를 쫓아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더이상 품행이 바른 재단사에게는 얼굴을 비치지 못하도록
표시를 남겨 놓을 테다."
  서둘러 올라가서 재단사는 수염을 깎는 칼을 가지고 내려와 염소의 대가리에 비누를 칠하고
나서는 손바닥처럼 반드르하게 깎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잣대는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채찍을
갖고 나와서 후려치자 염소는 뛰어 도망가 버렸습니다.
  재단사는 외로이 집에 앉아 있을 때마다 슬픔에 빠져 아들들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습니다. 큰아들은 소목장이한테 도제로 들어가서 싫증내지
않고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서 떠나야 할 때에 주인은 모양도 특별나지 않고
보통의 나무로 만들어진 조그만 탁자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탁자는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탁자를 세워 놓고
  "상차려라, 식탁."
하고 말하면 탁자에 순식간에 깨끗한 보가 깔리고, 그 위에는 접시와 칼과 포크가 놓여지고, 온갖
요리가 가득한 그릇이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도 넉넉했고 적포도주가 담긴 커다란
병이 빛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젊은이는 생각했습니다. '이 탁자만 있으면 내
평생동안 충분하겠다.' 하고는 세상의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주막이
좋든 안 좋든 먹을 것이 있든 없든 신경을 안 썼습니다. 설사 마음에 든다 하여도 음식점에
들르지 않았습니다. 들에서건 숲에서건 뜰에서건 기분 내키면 등에 지고 가던 탁자를 앞에
내려놓고
  "상 차려라, 식탁."
하고 말하면 먹고 싶은 것들이 모두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버지한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화도 풀렸을 것이고 '상차려라 식탁'을 가지고 가면 기꺼이 자기를 받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녁에 손님들이 가득 찬 주막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손님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식사를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목장이는 대답했습니다.
  "싫습니다. 당신들 식사를 제가 어떻게 빼앗아 먹겠습니까? 오히려 여러분들이 저의 손님이
되시지요."
  손님들은 웃으면서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소목장이는 나무로 된 식탁을
방 한가운데에다가 세워 놓고 말했습니다.
  "상차려라, 식탁."
  순식간에 탁자는 주막집 주인이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음식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음식 냄새가 거기에 있던 손님들의 코를 찔렀습니다.
  "여러분들, 드세요."
하고 소목장이는 말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손님들은 두 번 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탁자로
와서 자신들의 칼을 꺼내어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을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그릇이 비자마자
금방 음식물이 가득 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인은 구석에 서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말을 하여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음식점에 저런 요리사 하나만 있으면 쓸모 있겠군.'
  소목장이와 손님들은 밤늦게까지 재미있게 놀다가 잠자러 갔습니다. 우리 젊은 친구도 침대로
가서 탁자를 벽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여러 생각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헛간에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탁자와 꼭 같아 보이는 아주 오래된 탁자 하나가
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와서 요술 탁자와 바꾸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소목장이는
여관비를 치르고 자기 탁자를 챙겼습니다. 그것이 가짜라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점심때쯤 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아주 기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래, 내 아들아. 그 동안 무엇을 배웠느냐?"
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소목장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온 것 중에서 최고는 탁자입니다."
  재단사는 탁자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말했습니다.
  "대단한 작품은 아니구나. 낡고 형편없는 탁자가 아니냐."
  "그러나 그것은 상차려라 식탁입니다."
하고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앞에 세워 놓고 '상 차려라' 하고 말을 하면 곧바로 맛있는 음식들과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가 상 위에 차려집니다. 친척과 친구분들을 초대하시지요. 그 분들도 한번 기분 좋게
먹고 마시고 해야지요. 탁자가 모든 사람들을 배부르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아들은 탁자를 방 안에 세워 놓고 말했습니다.
  "상차려라, 식탁."
  그러나 식탁은 전혀 거동이 없었습니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다른 탁자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빈 채로였습니다. 그때서야 가련한 젊은이는 비로소 탁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친지들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를 비웃었습니다. 아버지는 헝겊을 가지고 와서 계속해서 재단을 하였고, 아들은
한 장인 밑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어느 방앗간의 주인에게서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 주인은
말했습니다.
  "그 동안 일을 아주 잘 했기 때문에 네게 마차를 끌지도 않고 가마니를 운반하지도 않는 아주
특별한 나귀를 선사하마."
  "어디에 쓸모가 있지요?"
하고 젊은이는 물었습니다.
  "금을 뱉어 내지. 보자기를 씌우고 나서 '브리클레브리' 하고 말을 하면 이 짐승은 앞뒤로 금을
토해 낸단다."
  "그것 아주 좋은데요."
하고는 젊은이는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금이 필요하면 단지
'브리클레브리'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금화가 비오듯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화를 땅에서 줍는 것 이외에는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제일 좋은 것을
충분하게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비싸면 비쌀수록 더욱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주머니가
두둑하였기 때문이지요.
  한동안 세상 구경을 하고 난 뒤에 젊은이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를 찾아뵈어야지.
금나귀하고 같이 가면 노여움을 다 잊어버리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실 거야.' 그런데 자기 형이
탁자를 바꿔치기 당한 바로 그 주막집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나귀 고삐를 잡고 들어가자 주인은
짐승을 받아서 묶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수고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 짐승은 내가 직접 우리로 데리고 가서 묶겠습니다. 나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주막집 주인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나귀를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낯선 젊은이가 주머니에서 금화를 두 개 꺼내어 주면서
좋은 것을 준비하라고 말하자 주인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그리고는 달려나가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구해 왔습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손님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주인은 옳다구나 하고 실제보다 더 많이 요구하여 금화 몇 개를 더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는 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돈이 없었습니다.
  "잠깐 기다리시오. 가서 금화를 가지고 오겠소."
하고 말하고는 식탁보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주인은 영문을 모르고 호기심이 나서 몰래
쫓아갔습니다. 손님이 외양간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에 구멍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낯선 이는
보자기를 나귀의 밑에 깔고는 '브리클레브리'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짐승은 정말로 비가 쏟아
붓듯이 앞뒤로 뱉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족히 천은 되겠군. 저러면 금세 부자가 되겠군. 저런 돈주머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손님은 대금을 치르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밤중에 몰래
외양간으로 들어가 금나귀를 밖으로 끌고 나가고 그 자리에 다른 나귀를 묶어 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젊은이는 나귀를 끌고 길을 떠났습니다. 자기 나귀를 금나귀라고 생각한 것은
물론입니다. 점심때쯤 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을 기뻐하고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었느냐, 내 아들아?"
하고 노인은 물어 보았습니다.
  "방앗간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고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그래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단지 나귀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도 나귀는 흔한데. 좋은 염소 한 마리가 오히려 나을 걸 그랬다."
하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 나귀가 아니라 금나귀랍니다."
하고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브리클레브리'라고 말하면 금화를 한 보자기 뱉어 놓습니다. 친척들이나 부르시지요. 그러면
모두 부자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그것 잘 되었군. 그렇다면 나도 더이상 바늘을 가지고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고 말하고는 황급히 나가서 친척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모두 모이자 방앗간
기술자인 아들은 자리를 잡고 보자기를 펼치고는 외양간에서 나귀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 잘 보십시오."
하고는
  "브리클레브리."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의 금화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귀가 요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어떠한 나귀나 다 요술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자 가련한 젊은이는
난처한 얼굴을 하였고 그 때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올 때와 똑같이
가난하게 돌아가야 할 친척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인은 바느질을 해야 했고
아들은 방앗간 기술자로 고용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셋째 아들은 선반공으로 도제를 하였습니다. 선반 일은 아주 기술을 많이 필요로 하는
수공업이었기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편지로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과 주막집 주인이 마지막날 밤에 요술을 할 줄 아는 멋있는 물건들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선반공이 일을 다 배웠기 때문에 이제 길을 떠나려 하자 주인은 일을 아주 잘했다고
자루 하나를 선사했습니다.
  "그 안에 몽둥이 하나가 들어 있다."
하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자루야 어깨에 메고 갈 수 있어서 유용하겠지만 몽둥이는 어디에다 씁니까? 그저 무겁기만
하지요."
  "내가 말해 주지. 누가 너를 해치려고 하면 '자루야, 몽둥이' 하고 말하기만 하면 몽둥이가
자루에서 튀어나와 사람들의 등을 신나게 두들겨 줘서 여드레 동안 움직이지 못할 거란다.
'몽둥이, 자루 속으로' 하고 말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거야."
  젊은이는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에 자루를 둘러메고 길을 떠났습니다. 누군가가
가까이 와서 몸에 손을 대려고 하면
  "자루야, 몽둥이!"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몽둥이가 자루에서 나와 못살게 군 사람들을 차례대로 두들겨
주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두들기는지 피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젊은 선반공은 저녁때쯤 자기
형제들이 사기를 당한 주막집에 도착했습니다. 젊은이는 자루를 자기 앞의 탁자 위에 내려놓고
세상에서 진귀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물론 상차려라 식탁, 금나귀와 같은 좋은 물건들도 많지만 내가 얻어서 자루 안에 가지고
다니는 보물하고는 상대가 안되지요."
  주막집 주인은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물건인데 그렇게 귀중할까?'하고 주인은
생각했습니다.
  "저 자루는 틀림없이 보석으로 가득 차 있을 거야. 저것도 쉽게 손에 넣어야겠다. 좋은 것은
모두 세 개이니까 말이야."
  잠잘 시간이 되어서 손님은 긴 의자 위에 자루를 베개 삼아 누웠습니다. 손님이 깊은 잠이
들었다고 생각한 주인은 살금살금 와서 아주 조심스럽게 자루를 빼내고 다른 것을 놓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반공은 이미 오랫동안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대담하게 빼
내려고 할 때에 선반공은 소리쳤습니다.
  "자루야, 몽둥이!"
  그러자 몽둥이가 자루에서 튀어나와 주막집 주인을 옷의 실밥이 뜯어지도록 두들겨 주었는데
그 모습은 볼만했습니다. 주인은 가엾을 정도로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크게 소리치면 칠수록
몽둥이는 더 세게 박자를 맞추어 드디어 기진맥진해서 땅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주인의 등을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선반공은 말했습니다.
  "상차려라 식탁하고 금나귀를 내놓지 않으면 몽둥이 춤이 새로 시작될 것이다."
  "아, 주고 말고요. 모든 것을 다시 내놓을 터이니 제발 그 요술쟁이나 자루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시오."
  그러자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관대하게 처분하기로 하지. 그러나 엉뚱한 생각일랑은 하지 마시오."
  그리고는
  "몽둥이, 자루 속으로!"
하고 외치고는 몽둥이를 가만히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선반공은 상차려라 식탁하고 금나귀를 가지고 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재단사는
아들을 다시 보자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선반공이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술이구나. 그래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아주 귀중한 물건입니다."
하고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자루 속에 든 몽둥이지요."
  "뭐라고. 몽둥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소리쳤습니다.
  "그게 그렇게 고생할 가치가 있니? 몽둥이야 아무 나무나 잘라서 만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이것은 그런 몽둥이가 아닙니다. '자루야 몽둥이' 하고 외치면 몽둥이가 튀어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을 땅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빌 때까지 두들겨 주지요. 보세요. 이
몽둥이를 가지고 도둑놈 같은 주막집 주인한테 형님들이 빼앗긴 상차려라 식탁하고 금나귀를
도로 찾아 왔습니다. 이제 형님들을 부르시지요. 그리고 친척들도 초대하면 모두 배불리 먹이고
주머니 가득 금화를 줄 테니까 말이에요."
  재단사 노인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척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자 선반공은
방 안에 보자기를 깔고 나귀를 데리고 와서 자기 형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나귀한테 말하세요."
  방앗간 기술자는 말했습니다.
  "브리클레브리."
  그러자 소낙비가 오듯이 보자기 위로 금화가 쏟아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더이상 가지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질   때까지 나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반공은 이제   탁자를 가지
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 형님께서 말하세요."
  소목장이 형이
  "상차려라, 식탁."
하고 말하자마자 탁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찬 그릇들로 차려졌습니다. 재단사 노인이
평생동안 자기 집에서 겪어 보지 못한 향연이 베풀어졌습니다. 친척들은 밤늦게까지 머물렀고
모두 흥겨웠고 만족했습니다. 재단사는 바늘과 실, 자와 다리미를 장에 넣어 버리고 세 아들과
함께 아주 잘 살았습니다.
  재단사의 세 아들을 내쫓은 데 책임이 있는 염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이제 이야기해
주지요. 대머리가 된 것이 창피하여서 염소는 여우굴 속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여우가 집에
들어오자 깜깜한 굴 속에 두 개의 커다란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곰이 여우를 만나 제정신이 아닌 것을 보고는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니, 여우야.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어휴, 사나운 짐승이 내 굴에 앉아서 나를 불타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겠어."
  "그럼 우리 바로 쫓아내기로 하지."
하고 말하고는 곰은 같이 굴 안으로 들어가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타는 듯한 눈을 보자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곰은 괜히 사나운 짐승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도망쳤습니다. 벌이 곰을
만나 곰의 몸이 편치 않은 것을 알고는 말했습니다.
  "곰아, 왜 그렇게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니? 네 유쾌한 성격은 다 어디로 갔니?"
  "너 말 한번 잘하는구나."
하고 곰은 대답했습니다.
  "빨간 여우의 집에 딱부리 눈을 가진 무서운 동물이 하나 있는데 쫓아낼 수가 없단다."
  벌은 말했습니다.
  "곰아, 너는 내가 가련하고 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고 불쌍해하고, 길을 가면서 바라보지도
않지. 그렇지만 내가 너희들을 도울 수가 있을 것 같구나."
  벌이 여우굴로 날아 들어가서 염소의 대머리 위에 앉아 아주 세게 쏘았더니 염소는
  "메에! 메에!"
소리치며 미친 듯이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염소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가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상차려라식탁, 금당나귀와 몽둥이자루 : 중국 공산주의적 해석과 이에 대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중국의 문예 학자 핑 펭퐁은 그림 형제의 유명한 동화인 '재단사와 세 아들'을 중국적
마르크스주의의 방법으로 해석하였다. 그렇지만 이 해석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강하게
비판될 수 있는 것이다. 몇몇의 소련 학자들도 참여한 이 논쟁에 관한 정보가 독자들에게
보류되어서는 안된다.
  핑 펭퐁의 견해에 의하면 이 동화는 노예 사회가 해체된 이후로 유럽의 국가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의 모습을 규정하였던 사회 구성체에 관한 비유적 서술이라는 것이다. '상차려라
식탁'은 단순화시키면 군주의 소비 생활에 방향을 맞춘 봉건 사회의 표어이다. 봉건 군주를 위해
종사하는 백성들은 마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불평 없이, 그리고 재빨리 일해야
하는 것이다.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상은 진귀한 음식과 음료들로 차려져야 하는 것이다.
신하들의 일은 아주 효과적으로 실행되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뱉어라 금나귀'는 물론 금화를 생산하기 위해서이고,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표어이다.
여기에서는 벌써 임의로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는, 그리고 영원히 참고 만족하는 짐나귀의
형태로 나타나는 민중은 부적절한 것이다. 위에서 순전한 긍정인 '예에 예에'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 외에는 민중은 어떠한 표현과 저항의 수단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일하는 하인이 사치와 소비를 지향하는 봉건 군주의 이상인 것과 같이 나귀는
부르주아에게 있어서 기꺼이 착취당하도록 하는 참을성 있는 노동 계급의 이상이다.
  '자루야 몽둥이'는 대중적인 이해에 있어서 날카로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가난한 농부들의 혁명적인 민중 전쟁을 상징하고 있으며, 골동화된 형식으로 이미 '모든 권력은
총칼로부터 나온다.'는 마오쩌뚱의 유명한 정식을 서술하는 것이다. 동시베리아 대학의
Prawilowitsch 교수는 벌써 오래 전에 이와 같은 중국 공산당의 해석이 완전히 타당성이 없음을
증명하였고 이러한 해석은 동화를 혼란시키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를 올바로 적용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의 해석에 의하면
이 동화는 두 가지의 사회 구성체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비유적 서술이 아니라,
고전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에서 보이는 시민 혁명의 세 가지 양상에 관한 정확한 서술이다.
  '상차려라 식탁'의 현상은 인간의 직접적인 노동이 근대적인 생산 기술에 의하여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시민 사회에 있어서는 대두하는 부르주아 계급
출신의 대부분의 작가들에 의하여 기술의 해방적인 성격이 강조되었다. 기술은 인간의 평등을
초래하여 주인과 종의 구분을 소용없이 만들 것이라고 당시의 사람들은 믿었다. 이러한 기대가
그 동안에 환상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할지라도 기술에 대한 열광과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의 해방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은 시민 혁명에 있어서 진보적인
역할을 하였다. '뱉어라  금나귀'는 실제로 새로운 사회 질서의 자본주의적  양상을 말해 주고 있
다.
배설물로 금을 생산해 내고 있는 나귀는 스스로 증가하는 자본 또는 '스스로 증가하는 가치에
대한 상징인데 가치와 자본에 유기체적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과정의 본질은 나귀가 자신의 몸 안에 지니고 있던 금을 배설하였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귀가 금을 항상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이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독창적인 상징 수단을 통해서 자본의 본질이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지 '화폐는 더 많은 화폐를 산출한다'는 마르크스의 정식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하고 고통을
당하는 민중을 묘사하고 있다는 중국인의 가정은 벌써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도 타당성을 잃고
있다. 왜냐하면 시민 사회의 초기에는 상 시몽(Saint Simon)과 같은 진보적인 사상가조차도
프롤레타리아의 실존에 관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단지 기업가와 함께 산업인 이라는
집단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므로 동화의 창작과 잉여 가치의 법칙에 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상당한 양의 잉여 가치는
한 편으로는 나귀가 소비한 먹이의 가치와 다른 한 편으로는 나귀가 산출한 금의 가치와의
차이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이론을 1848년 이후에야 확실하게
발전시켰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1819년에 발표된 동화가 잉여가치론에 대한 언급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고 단지 사실에 대한 어설픈 설명을 유기적 도해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루야 몽둥이'에 관한 한 동화 안에서 하고 있는 기능을 볼 때에
(몽둥이는 도둑놈 같은 주인으로 하여금 상차려라 식탁과 금나귀를 내놓도록 한다) 다름이 아닌
시민 혁명에 필수적인 민중적인 요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민중적인 요소가
없다면 시민 혁명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힘있는 시장의 아줌마들을 포함한
파리의 민중들의 압력이 비로소 봉건 질서의 붕괴를 가져 왔고 자코방당의 압력을 통해 공화제가
도입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재단사와 세 아들'은 시민적 자본주의 혁명의 세 가지 양상에 대한
대단히 성공한 압축적인 묘사인 것이다. 즉 기술적인 혁명(탁자), 경제적인 혁명(금나귀),
정치적인 혁명(몽둥이 자루)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의 변증법적인 상관 관계에 관해 동화는
몽둥이에 마지막으로 해방적인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상당히 인상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도둑놈
같은 주막집 주인은 구체제(ancien regime)의 대변인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리고 3차 산업의
종사자들이 대개 구시대의 지배 계급에 연관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근거 :
귀족들의 팁, 구사회의 소비지향성). 핑 펭퐁에 의한 해석은 현재의 중국에 있어서 마르크스-레닌
주의적 방법이 형편없이 타락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징후로 볼 수 있다.[주]

  [주] 하버드 대학에 있는 나의 동료 칼 도이취(Karl Deutsch)는 정신 분석학의 범주를
가지고도 동화를 설득력 있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세 가지의 상징은 이 방법에
의하면 개인적 리비도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각각 '구강 지향적(식탁)', '항문 지향적(금을
배설하는 나귀)',  그리고 '성기 지향적(몽둥이)' 시기를  성격 지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취에 의해 제안된 해석 방법은 전체적으로 핵심에서 빗나가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이
미국에서 생겨난 이유는 아마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고는 단지
충분하게 발전되고, 특히 미국이 이러한 문제들이 항상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h:누가잠자는..2e


    [용감한 재단사]

  어느 더운 여름날 아침 재단사는 창가의 자기 책상에 앉아 좋은 기분으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촌 아낙네가 길을 내려오면서 소리쳤습니다.
  "좋은 잼 사세요! 좋은 잼 사세요!"
  그 소리가 재단사의 귀에 아주 달콤하게 들려서 그는 머리를 창 밖으로 내밀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이리 올라오세요. 여기에서 물건을 파실 수 있습니다."
  그 부인은 무거운 광주리를 가지고 세 계단을 올라와서는 단지를 모두할 것 없이 풀어야
했습니다.
  "잼이 좋은 것 같군요. 제게 4로트만 달아 주시지요. 4분의 1파운드라도 상관없습니다."
  물건을 많이 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였던 부인은 그가 원하는 것만큼 주었지만 아주 화가
나서 투덜거리며 떠났습니다. 재단사는
  "잼이 아주 맛있겠군. 원기를 북돋워 주겠지."
하고 말하고는 찬장에서 빵을 꺼내어 한 조각을 잘라서 잼을 그 위에다 발랐습니다.
  "맛있을 거야, 그렇지만 먹기 전에 우선 자켓을 만들어야지."
  재단사는 빵을 옆에다 놓고 계속해서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잼의 냄새가
파리들이 많이 모여 있는 벽에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파리들이 떼로 모여들어 빵 위에
달라붙었습니다.
  "에이, 누가 너희들을 초대하였느냐?"
하고는 재단사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리들은 물러나지 않고 더욱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드디어 울화가 치밀어 오른 재단사는
천조각을 잡아
  "이놈들, 맛 좀 봐라."
하고는 사정없이 그 위에다 내리쳤습니다. 손을 떼고 세어 보니 일곱 마리가 다리를 뻗고 죽어
있었습니다.
  "너도 대단한 놈이군."
하고 재단사는 스스로 말하며 자신의 용기를 찬탄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온 도시에 알려야지."
  서둘러 재단사는 허리띠를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커다란 글자로
'일곱을 일격에'라고 새겨 넣었습니다.
  "어디 도시 가지고 되겠나."
하고 재단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전세계에 이 사실을 알려야지!"
  그의 가슴은 기쁜 마음에 양 꼬리처럼 두근거렸습니다.
  재단사는 띠를 몸에다 감고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떠나기 전에 뭐 가지고 갈 것이
없나 하고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성문 앞에서 재단사는 새 한 마리가 덩굴 숲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새를 잡아 치이즈가 든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이제 재단사는 길을 용감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는 원래 가볍고 잘 걸었기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길은 산으로
이어졌는데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에 엄청나게 큰 거인이 그 곳에 앉아 느긋하게 주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단사는 과감하게 거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어이, 친구분! 안녕하시오? 거기에 앉아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있소? 내 지금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 중인데 같이 갈 생각 없소?"
  거인은 재단사를 조소하듯이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얘, 꼬마야. 형편없는 친구야!"
  "그래!"
하고는 재단사는 코트의 단추를 끄르고 거인에게 띠를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읽을 수 있겠지?"
  '일곱을 일격에'라는 문구를 읽고 거인은 그것이 재단사가 때려죽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거인은 조그만 친구에 대해 조금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거인은 재단사를 일단 시험해 보려고 하였기 때문에 돌 하나를 집어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꼭 쥐었습니다.
  "힘이 있다면 어디 한 번 해 보시지."
하고 거인은 말했습니다.
  "그거 별것 아니군."
하고 재단사는 대답했습니다.
  "우리한테는 그런 것은 어린애 장난이지."
하고 말하고는 재단사는 주머니에서 부드러운 치이즈를 꺼내어 즙이 떨어지도록 꼭 쥐었습니다.
  "어때, 너보다는 조금 낫지?"
  거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꼬마 녀석을 믿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거인은 돌 하나를 주워서 사람이 볼 수 없을 정도로 하늘 높이 던졌습니다.
  "오리 만한 녀석아, 한번 흉내 내 보시지."
  "잘 던졌군."
하고 재단사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이 다시 땅에 떨어졌지 않은가. 내가 돌이 다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나를
던져 보지."
하고는 주머니에서 새를 잡아가지고 하늘로 던졌습니다. 다시 자유로워진 새는 기뻐서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려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 어때? 마음에 드는가?"
하고 재단사는 물었습니다.
  "던질 줄은 아는군."
하고 거인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네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을 들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거인은 재단사를 쓰러져 땅 위에 누워 있는 아주 커다란 참나무로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네가 정말 힘이 세다면 어디 나를 도와서 이 나무를 숲 밖으로 옮겨 볼까?"
  "기꺼이 하고 말고."
하고 꼬마 재단사는 말했습니다.
  "내가 몸통을 어깨에 지면 내가 모든 가지를 다 들께. 가지 부분이 그래도 제일 무겁지
않은가."
  거인은 몸통을 어깨에 매었습니다. 그러나 재단사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탔습니다. 뒤돌아볼 수
없는 거인은 나무와 재단사를 모두 옮겨야 했습니다 재단사는 뒤에서 아주 재미있어 하였고
기분이 좋아서 마치 나무를 지고 가는 것이 아이들 장난인 것과 같이 휘파람으로 '세 재단사가
성문 밖으로 나간다'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거인은 무거운 짐을 얼마 동안  지고 간 다음에 더이

갈 수 없어 소리쳤습니다.
  "이보게, 나무를 떨어뜨려야 하겠네."
  재단사는 민첩하게 뛰어 내려와 마치 나무를 지고 왔던 것처럼 두 손으로 가지를 쥐고는
거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덩치만 컸지 나무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군."
  그들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벚나무 곁을 지나갈 때에 거인은 열매가 많이 달린 나무의
꼭대기 끝을 아래로 휘게 잡아당기고는 재단사로 하여금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단사는
나무를 잡고 있기에 너무나 약했습니다. 거인이 손을 놓자 나무는 다시 제자리로 치솟았고
재단사도 같이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재단사가 다친 데 없이 다시 떨어지자 거인은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니, 아주 약한 가지 하나 잡을 힘도 없는 거니?"
  그러자 재단사는 대답했습니다.
  "힘이 없는 것은 아니지. 그래 어디 일곱을 일격에 해치운 사람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저 밑의 숲에서 사냥꾼이 총을 쏘았기 때문에 나무 위로 뛰어 오른 것뿐인데 너도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 보지 그래."
  거인은 시도를 해 보았지만 나무 위로 뛰어 오를 수가 없었고 가지에 걸렸습니다. 여기에서도
재단사는 우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거인은 말했습니다.
  "네가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라면 나와 같이 우리 동굴로 가서 하룻밤 묵고 가라고."
  재단사는 그러기로 하고 거인을 쫓아갔습니다. 동굴에 도착하니 다른 거인들이 불가에 모여
앉아서 모두가 불에 구운 양을 한 마리씩 손에다 들고 먹고 있었습니다. 재단사는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가 그래도 내 작업실보다는 훨씬 넓군."
  거인은 침대 하나를 내 주고 그 안에 누워서 푹 잠을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침대가
재단사에게 너무 커서 그는 침대 위에 눕지 않고 구석으로 기어갔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거인은
재단사가 아주 깊이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일어나서 커다란 쇠막대기를 들어 침대를 한 방에
내리쳤습니다. 그리고는 메뚜기 같은 작은 놈을 끝장 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거인들은 숲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재단사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단사가
갑자기 아주 유쾌하고 대담하게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거인들은 깜짝 놀라서 재단사가 모두를
때려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황급히 도망갔습니다.
  재단사는 항상 자신의 예감에 따라 여행의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한 끝에 한
궁전의 마당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피곤하였기 때문에 풀밭에 누워서 잠이 들었습니다. 재단사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와서 재단사를 이모저모 살피다가 '일곱을 일격에'라는 글자가
쓰여진 띠를 읽었습니다.
  "아니, 위대한 전쟁 영웅이 이 평화로운 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하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왕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중요하고 쓸모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값을 치르고서라도 보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조언이 왕의 마음에 들어 왕은 궁궐의 사람을 재단사에게 보내서
깨어나면 군무를 제공하라고 하였습니다. 파견 나온 궁인은 자고 있는 사람의 곁에서 사지를
뻗고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제안을 하였습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제가 여기에 온 것이오."
하고 재단사는 대답했습니다.
  "왕을 위해 복무할 용의가 있습니다."
  재단사는 아주 정중하게 대접을 받았고 특별한 저택도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사들은 재단사에게 적의를 품었습니다. 그래서 재단사가 멀리멀리 떠나 버렸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어떻게 하지?"
하고 무사들은 서로 수군대었습니다.
  "저놈하고 싸우면 한 방에 일곱 명을 쓰러뜨릴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무도 안 남게 되지."
  그래서 무사들은 결의를 하고 왕에게 가서 하직할 수 있도록 청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일격에 일곱을 해치우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무사들은 말하였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일곱의 충복을 잃어야 한다는 것을 애석하게 여긴
왕은 재단사를 아예 안 보았더라면 하고 생각하였고 기꺼이 재단사로부터 다시 벗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왕은 감히 재단사를 해고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만약 그렇게 하면
재단사가 자기를 죽이고 왕위에 오를까 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왕은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드디어 묘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왕은 재단사에게 사람을 보내서 정말 위대한 전쟁 영웅이라면
무술 솜씨를 보이라고 통지를 하였습니다. 이 나라의 숲 속에 살고 있는 두 거인이 약탈하고,
살인하고, 방화를 해서 커다란 해를 끼치고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거인을 해치우기만 하면 왕의 외동딸과 결혼시키고
지참금으로 왕국의 반을 내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백 명의 기사도 같이 출정하여
재단사를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너 같은 사람한테 어울리는 일이지."
  "아, 그것 좋습니다."
하고 재단사는 대답하였습니다.
  "거인들은 제가 제압하겠지만 백 명의 기사들은 필요 없습니다. 일곱을 일격에 해치우는
사람은 그까짓 거인 둘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재단사는 출정하였고 백여 명의 기사들은 뒤를 따랐습니다. 숲의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재단사는 동행한 기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거인들은 내가 혼자 상대하겠다."
  그리고 나서는 재단사는 숲으로 뛰어들어가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얼마 지나서 재단사는 두
거인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거인은 나무 밑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릴 정도로 코를 골며 잠자고
있었습니다. 게으르지 않은 재단사는 두 주머니를 돌멩이로 가득 채워 가지고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중간쯤 올라가서 한 나뭇가지 위로 미끄러져 내려가 정확히 잠자고 있는 두
거인들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거인에게 돌멩이를 한 개씩 떨어뜨렸습니다. 거인은 한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드디어 깨어나서 다른 친구를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너 왜 나를 때리냐?"
  "너 꿈을 꾸었구나. 나는 너를 때리지 않았어."
하고 다른 거인은 말했습니다. 두 거인은 다시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러자 재단사는 다른
거인에게 돌멩이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
하고 첫번째 거인이 대답을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한 동안 다투다가 너무 피곤하였기 때문에
두 거인은 화해하고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재단사는 돌 던지기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커다란 돌멩이를 찾아가지고 첫번째 거인의 가슴을 향해 모든 힘을 다해 던졌습니다.
  "이것은 너무 심하군!"
하고 소리치고 첫번째 거인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자기 동료를 나무에다 나무가 떨릴
정도로 처박았습니다. 다른 거인도 똑같이 보복하였습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나무를 뽑아가지고
죽어서 땅바닥에 고꾸라질 때까지 서로 내리쳤습니다. 재단사는 이제 뛰어 내려왔습니다.
  "내가 앉아 있는 나무를 뽑지 않은 것이 다행이군. 그랬다면 다람쥐처럼 나무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녀야 했을 텐데. 그렇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신속하니까!"
  재단사는 칼을 뽑아서 거인들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리고는 기사들에게 걸어가서 말했습니다.
  "일이 끝났다. 두 거인을 모두 해치웠다. 그렇지만 격투가 아주 치열했지. 궁지에 몰린
거인들이 나무를 뽑아 가지고 대항을 하였지만 일곱을 일격에 해치우는 나 같은 사람이 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당신은 전혀 다치지 않았습니까?"
하고 기사들이 물었습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거인들은 내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였지."
하고 재단사는 대답하였습니다. 기사들을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숲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피로 범벅이 된 거인들을 발견하였고 주위에 뽑혀진 나무들이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단사는 왕에게 약속한 보상을 요구하였지만 왕은 약속한 것을 후회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
귀찮은 영웅을 내쫓을 수 있을까 하고 다시 궁리하였습니다.
  "내 딸과 왕국의 반을 가져가지 건에 다시 한번 영웅적인 일을 실행해야 하겠다."
하고 왕은 말했습니다.
  "숲에 뿔 하나 달린 괴물이 살고 잇는데 해를 많이 끼친다. 그것을 잡아 와야 하겠다."
  "일각수 쯤이야 두 거인보다 훨씬 덜 무섭지요. 일곱을 일격에 해치우는 게 제 일 아닙니까."
  재단사는 밧줄과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갔습니다. 물론 왕이 재단사에게 붙여 준 기사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래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이 뿔 하나 달린 괴물이 나타나서
재단사를 뿔로 받을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하고 재단사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빨리는 안되지."
  재단사는 서서 짐승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날렸습니다.
뿔 하나 달린 괴물은 온 힘을 다해 나무를 향해서 질주하였고 그 결과 뿔은 나무 밑동에 깊이
박혔습니다. 괴물은 뿔을 다시 뺄 힘이 없었기 때문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식은 죽 먹기지."
하고 재단사는 나무 뒤로 돌아가서 일각수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는 도끼로 뿔을 잘라서
나무로부터 뺐습니다. 모든 일이 제대로 되자 그는 짐승을 끌고 왕에게로 갔습니다.
  왕은 아직도 약속한 보상을 허락하지 않고 세번째 요청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재단사는 우선 숲에서 피해를 많이 입히는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냥꾼들이 도와주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지요. 그거야 어린애 장난 아닙니까."
하고 재단사는 말했습니다. 재단사는 사냥꾼들을 숲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사냥꾼들은
멧돼지한테 벌써 몇 번 좋지 않은 일을 당하여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대문에 오히려 흡족해
했습니다. 돼지가 재단사를 보자 입에 거품을 물고 이를 번뜩이며 땅바닥에 팽개칠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재빠른 재단사는 근처에 있는 예배당으로 뛰어 들어갔다가는 곧바로
창문을 통해 단숨에 튀어 나왔습니다. 돼지가 쫓아 들어왔지만 재단사는 밖으로 껑충 뛰어
밖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돼지는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창문으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성난
짐승은 드디어 잡혔습니다. 재단사는 사냥꾼들을 불러 왔습니다. 사냥꾼들은 잡힌 돼지를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영웅은 왕에게 갔고 왕은 싫든 좋든 간에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재단사에게 공주와 왕국의 반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전쟁 영웅이 아니라 한낱
재단사라는 것을 왕이 알았더라면 왕의 가슴은 더욱 사무쳤을 것입니다. 그래도 결혼은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기쁨은 덜했습니다. 재단사가 왕이 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젊은 왕비는 밤중에 자기 남편이 꿈꾸며 잠꼬대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얘야, 내 자켓을 만들고 바지를 꿰매어라. 그렇지 않으면 자를 가지고 귀싸대기를 갈기겠다."
  이렇게 하여 남편이 어떤 출신인지를 안 왕비는 다음날 아침 아버지에게 가서 재단사에 지나지
않는 자기 남편과 헤어지게 도와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왕은 딸을 위로하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밤에 침실을 열어 두어라. 내 신하들이 밖에 서 있다가 잠이 들면 들어가서 그를
묶어 가지고 배에다 실어 멀리 떠내려보낼 것이다."
  젊은 부인은 아주 만족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말을 엿들은 왕의 무기 담당 신하는 젊은
주인에게 마음이 기울어서 모든 음모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일에 빗장을 미리 걸어 놓지."
하고 재단사는 말했습니다. 저녁에 그는 평상시와 같이 자기 부인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남편이 잠들었다고 생각한 부인은 일어나서 문을 열어 놓고 다시 누웠습니다. 자는 것처럼
행세하였던 재단사는 큰 목소리로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얘야, 내 자켓을 만들고 바지를 꿰매어라. 그렇지 않으면 자를 가지고 귀싸대기를 갈기겠다!
나는 일곱을 일격에 해치웠고, 두 거인을 죽였고, 뿔을 하나 가진 괴물을 없앴지. 그리고
멧돼지를 잡았다. 그런데 내가 밖의 방문 앞에 서 있는 놈들한테 겁을 낼 것 같으냐!"
  재단사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감히 그에게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단사는 평생 동안 왕으로 지냈습니다.


    [용감한 재단사 또는 권력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아름다운 꿈]

  기지, 풍자, 그리고 술책은 둔하고 생각이 더디며 자신의 명예에만 집착하는 그 당시 영주들에
대비되는 부르주아지의 특성이다. 사회적으로 부상하고 있던 부르주아지의 투쟁은 그림 형제가
전하는 많은 동화 속에 반영되고 있다.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곳은 '용감한 재단사'인데
거기에서 재단사는 결국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왕국의 절반(아마 나중에는 전체 왕국)을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그 당시 독일의 시민 계급은 자신들의 미래의 권력을 꿈꾸었다. 물론 전혀 다른 형태로
시민 계급의 권력은 1918년에 성취되었다. 소시민적인 안장장이 출신의 대통령을 위한 왕족
출신의 신부도 없이, 그리고 바람직하였던 공화주의자들의 책략을 통한 승리도 없었지만
말이다.
  꾀를 써서 전쟁 당사자인 황제와 그의 추종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파산을 시만 계급인
공화주의자들에게 관리하게끔 한 것은 오히려 그 당시 반동적인 왕정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용감한 재단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한 때 시민 계급의 희망이 미래를 얼마나 더 아름답게
그려 왔는지를 알게 된다. 
  어느날 한 재단사가 일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일곱 마리의 통통히 살이 오른 파리가 그의
저녁 끼니를 위한 빵 위에 모여 앉자 그는 단 일격에 그 파리들을 죽여 버렸다.
  바로 이와 같은 단순한 사건에 의해 수백 년간 봉건주의의 종살이에 억눌려져 있던 자의식이
불붙는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말하자면 그는 항상 자신의 용기와
무훈을 뽐내는 기사들에 지지 않는 처형자인 것이다. 죽임을 당한 것이 파리이면 무슨 상관이랴!
저 위풍당당한 귀족 출신 전사들도 종종 제대로 무장하지도 않은 농민군을 물리쳤으면서도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지 않은가. 생전 처음의 그 성공적인 살상을 통하여 보잘 것 없는
재단사는 자신을 비로소 동등한 인간으로 느끼는 것이다.[주]
  그는 당장 기사와 영주를 본떠 문장의 제명을 '일곱을 일격에'라고 짓는다. 그러면서 그가 슬쩍
X나 Y의 자랑스러운 문장의 표어를 곁눈질하였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일곱을 일격에'라는 표어를 가지고 그는 아직 봉건적이고 전투적인 세계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떠나 수많은 모험을 이겨낸다.
  재단사가 적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어쨌거나 그 뛰어난 시민적인 책략이다.
힘세고 둔한 거인(교양 없고 무식한 시골 영주의 상징)을 돌 누르기 경기에서 이기는데 그 때
오래 된 치이즈를 짓이겨 멀리 던지면서 동시에 주머니에서 새 한 마리를 날려보내는 속임수를
써서 이기는 것이다. 그의 인생의 새로운 장은 그가 왕의 군대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맡음으로써
시작된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늙은 귀족 장군들은 새로운 시민 계급의 최고 책임자를
모략하려는 의도에서 그에게 생명이 위험한 임무를 부여한다.
  우선 그는 숲에 사는 위험한 두 거인을 얌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도 그 재단사는
오래된 기사적인 방법에 따라 거인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지 않고 기지에 넘치는 전술을
사용한다. 그는 나무에 올라가 그 밑에서 잠자고 있는 두 거인을 향해 한번은 이쪽으로, 또
한번은 저쪽으로 돌을 던지는데 결국 조금 모자라는 거인들은 서로 오해해서 싸우게 되고 마침내
서로 죽이게 된다. 여기에서 시민 계급이 지배하던 당시 영국의 국제 외교정책과의 유사성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스스로 싸우는 대신 영국의 외교 역시 대륙의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도록
부추기면서 그때 그때 약한 편에 원조를 하는 것이었다.
  원래 왕은 이 모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포상으로 공주와 왕국의 절반을 줄 것을
약속하였으나 그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또 다른 두 가지의 영웅적인 임무를 부여한다. 재단사는
일각수 한 마리와 왕의 숲을 엉망으로 만든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왕 앞으로 데리고 올 것을
명령받는다. 여기에서 일각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 낼 수 있다. 그것은
틀림없이 정력이 왕성한 왕의 귀족 출신 경쟁자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일각수가 명백하게 남근
상징을 표현하며 따라서 정력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재단사를 승리자로 만드는 것은 다시금 그
능란함과 잔꾀인데 그는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일각수의 공격 욕구를 한 그루의 나무에
발산하도록 만든 것이다. 재단사가 잡는 데 성공한 멧돼지는 천민, 즉 일일 노동자, 시골 노동자,
실업 당한 도제들과 방랑자들을 뜻하는데 그들의 야만성은 그 당시 시민 계급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리의 용감한 재단사는 여기에서 미래의 권력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함정으로 사용하여 단순한 민중을 붙잡는 것이다. 이로써 이 동화는 분명하게
교회나 기독교 종파들이 낮은 계층의 국민들의 저항적이고 반체제적인 경향을 가장 효과적으로
흡수시킬 수 있으며 그러므로 영리하고 사려 깊은 시민 정부로부터는 결코 배척 당하지 않고
오히려 지원 받는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업적 후에는 결혼식과 왕국 절반의 양도가 더이상 지연될 수 없었다. 시민
혁명은 소위 말해 공주와 전직 재단사와의 결혼을 통해 일시불이 아닌 할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승리는 확고하지 못하다. 둔하고 미신적이고 거만한 공주를 이용하여 반동적인
세력은 옛날의 봉건왕정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쿠데타를 계획한다. 그러나 재단사는
왕의 시민계급 출신 부하들 가운데 있는 정치적 친구들을 통해 그들의 계획을 사전에
통보 받는다. 그는 잠자는 척하면서 잠꼬대처럼 자신의 영웅적 행위에 대해 얘기하는 한편 바로
그 때 문 앞에 서 있는 음모자들에 관해서 언급함으로써 그들을 두려움과 놀라움에 성급히
도망쳐 버리게 한다. 그렇게 하여 재단사는 죽는 날까지 왕이었다.
  그는 자기 장인보다는 젊었고 따라서 왕보다 오래 살았을 것이기 때문에 분명 언젠가는 왕국의
나머지 절반도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귀족 계급을 폐지하고 위의 두 계급이 가진 모든
특권도 없애 버림으로써 온 나라를 시민 공화국으로 변혁시켰을 것이다. 영리함, 끈기, 기지,
그리고 동화에서는 (아마 그림이 의식적으로 삭제한)단지 역주의 끝머리에 잠깐 언급한 시민
계급의 대중과 결속이 재단사로 하여금 봉건적 영주 제도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공주 마음에 들었건 아니건 간에 그녀는 그 벼락 출세자의 뜻에 따라야만 했을
것이다. 신데렐라와 왕자의 낭만적인 결혼식이 아니라(아직도 헐리우드의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듯이) 공주와 재단사와의 강요된 어울리지 않는 결혼이 봉건적 시대의 종료와 동시에 시민
평등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왜 실제 역사는 달리 흘러갔는가? 아마 독일 시민 계급에게 기지, 끈기와 용기가
부족하였기 때문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독일의 재단사와 구두장이, 문필가와 작가 염색공과
편물공들이 서로 분리되어 단지 민족의 적과 대치할 때, 예를 들어 프랑스인에 대항하여서는
서로 단합하지만 봉건 영주나 제후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할 때는 단결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혁명에 대한 희망이 거의 사라져 버렸을 때에 국민은 용감한 재단사라는 동화
속에서나마 거의 아이러니컬하게 보이는 위안을 찾는다. '일곱을 일격에' 마치 그것이 단지 일곱
마리의 살찐 파리가 아니라 일곱 명의 막강한 영주들인 것처럼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이 동화를
읽으면서 생각하였을 것이다.

  [주] 알 만한 사람은 누구나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헤겔이 말하고 있는 지배와 예속의 변증법과
식민지 국가의 해방을 위해 필요한 폭력의 역할에 관한 프란츠 파농의 이론을 생각할 것이다.


    [신데렐라]

  어느 부잣집의 부인이 병이 들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유일한
혈육인 딸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정숙하고 착하게 살아라. 신께서 항상 너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도 너를 천국에서 내려다보며 네 곁에 있을 것이다."
  곧이어 그녀는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소녀는 매일 어머니 무덤에 가서 울었으며
어머니의 말씀대로 착하고 정숙하게 지냈습니다. 겨울이 오자 하얀 눈이 무덤을 덮었고 다시
봄이 되어 눈이 녹았을 때에 소녀의 아버지는 재혼하였습니다.
  새 부인은 전 남편 소생인 두 딸을 데리고 왔는데 겉으로는 하얗고 아름다웠지만 마음은
시꺼멓고 야비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 소녀에게는 고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 미련한 계집애가 우리와 같이 한 방에서 먹다니!"
하고 계모는 소리쳤습니다.
  "빵을 먹고 싶은 사람은 그 몫의 일을 해야지. 이 식모야, 당장 나가!"
  그들은 그 소녀의 예쁜 옷을 빼앗고는 그 대신 회색의 낡은 겉옷을 입히고 나무 신을
신겼습니다.
  "저 당당한 공주가 어떻게 광내고 꾸몄는지 좀 보아라!"
하고 웃으면서 그 소녀를 부엌으로 쫓아 버렸습니다. 거기서 그 소녀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힘든 일을 해야 했는데 새벽에 일어나 물을 긷고 불을 지피고, 요리하고 청소까지 해야
했습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의붓언니들은 갖가지로 괴롭히고 조롱하면서 완두콩과 불콩을
재 속에 쏟고는 신데렐라로 하여금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줍게 하였습니다. 힘든 일을 하여
피곤한 밤에도 그 소녀는 침대에서 잘 수 없었고 불 옆에 있는 재 위에 몸을 눕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재먼지를 뒤집어써서 꾀죄죄하고 더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데렐라라고
불렀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큰 시장에 가게 되었을 때 그는 두 의붓딸에게 무엇을 선물로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예쁜 옷들이라고 첫째가 말하자 진주와 보석이라고 둘째가 말했습니다.
  "신데렐라야,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아버지 돌아오시는 길에 모자에 부딪히는 첫번째 나뭇가지를 저를 위해 꺾어다 주세요."
  그는 두 의붓딸을 위해 멋있는 옷들과 진주와 보석을 사고 집에 돌아오는 도중 푸른 숲 속을
달릴 때 개암나무의 가지에 걸려서 모자가 벗겨졌습니다. 그러자 그 가지를 꺾어 가지고
왔습니다. 집으로 와서 의붓딸들에게 그들이 원했던 선물을 주었고 신데렐라에게는 개암나무의
가지를 주었습니다. 신데렐라는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서는 어머니의 무덤에 가서 그
가지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이 가지 위에 떨어져 무덤을 적실
정도였습니다. 그 가지는 어느덧 자라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습니다. 신데렐라는 매일 세 번씩
가서는 울며 기도하였는데 그 때마다 하얀 새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서는 신데렐라가 한 가지
소원을 말할 때마다 원하는 것을 던져 주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소문이 돌기를 그 나라의 왕이 삼 일 동안 축제를 베풀어서 나라 안의 모든
아름다운 처녀들을 초대하여 왕자의 신부를 구할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두 의붓언니는 기분이 좋아 신데렐라를 불러 말하였습니다.
  "우리 머리를 빗겨 주고, 구두도 닦아 놓고 허리끈도 묶어 줘. 우리는 왕의 성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갈 거야."
  신데렐라는 시키는 대로 하였으나 자신도 그 곳에 가서 춤추고 싶었으므로 새어머니에게 그
곳에 가게 허락해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계모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했습니다.
  "신데렐라야! 너는 온통 먼지투성이에다가 더러운데 무도회에 가고 싶다고? 옷도 구두도
없으면서 춤추고 싶다고?"
  계속 부탁하자 새어머니는 마침내 말하였습니다.
  "여기 내가 불콩 한 바가지를 재 속에 쏟았는데 네가 두 시간 내에 콩을 모두 골라내면 가도
좋다."
  그러자 소녀는 뒷문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서 소리쳤습니다.
  "너의 집비둘기들아, 멧비둘기들아,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새들아. 나에게로 와서 콩 고르는
것을 도와 다오."
  "좋은 콩은 냄비 속으로, 나쁜 콩은 멀떠구니 속으로."
  그러자 부엌 창으로 두 마리의 하얀 비둘기가 들어오고 그 다음에 멧비둘기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새들이 푸드득거리면서 날아와 재 위에 앉았습니다. 비둘기들은 머리를 숙이고
콕콕콕 쪼아대기 시작했고 나머지 새들도 콕콕콕 쪼아대면서 좋은 콩들을 그릇에 담았습니다.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일은 끝났고 새들은 다시 날아가 버렸습니다. 소녀는 그릇을 새어머니에게
들고 가면서 이제 무도회에 가도 되겠지 생각하고는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계모는 말했습니다.
  "안 돼, 신데렐라, 너는 옷도 없고 춤도 못 추잖아. 너는 남들의 웃음거리만 될 거야."
  소녀가 울자 계모는 말했습니다.
  "네가 한 시간 내에 두 그릇에 가득 불콩을 재 속에서 가려낸다면 가도 좋아."
  그러나 계모는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절대로 그건 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두 그릇 가득한 불콩을 재 위에 쏟고 뒷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가 소리쳤습니다.
  "너희 집비둘기, 멧비둘기, 하늘 아래 모든 새들아, 와서 콩 고르는 것을 도와 다오."
  "좋은 콩은 냄비 속으로, 나쁜 콩은 멀떠구니 속으로."
  그러자 부엌 창으로 두 마리의 흰 비둘기가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멧비둘기들이 그리고 마침내
떼를 지어 하늘 아래 모든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와 재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가
머리를 숙여 픽픽픽 줍기 시작하자 다른 새들도 콕콕콕거리며 좋은 곡식을 그릇 속에
담았습니다. 반 시간도 안 되어 일은 끝났고 새들은 모두 다시 날아가 버렸습니다. 소녀는 그릇을
어머니에게 들고 가면서 이제는 허락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소용없어! 너는 같이 갈 수 없어. 왜냐 하면 너는 옷도 없고 춤도 못 추니 우리가
너 때문에 창피스러워."
  그리고 나서는 등을 돌리고 두 거만한 딸들과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남게 되자
신데렐라는 개암 나무 밑의 어머니 무덤으로 가서 소리쳤습니다.
  "새야, 떨어뜨려라. 예쁜 옷을 나에게 떨어뜨려라."
  그러자 새는 소녀에게 금빛과 은빛의 옷을 밑으로 던지고 비단과 은으로 장식한 구두를 던져
주었습니다. 서둘러 옷을 입고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갔습니다. 그녀의 언니들과 새어머니도
소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마 먼 나라에서 온 공주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금빛 옷을 입은
소녀는 아름다웠습니다. 신데렐라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소녀는 집에서 재
위에 앉아 불콩을 골라낼 거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왕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고 소녀는
왕자와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다른 누구와도 춤을 추지 않았고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춤추기를
청해도 그는
  "그녀는 나의 춤 상대자야."
라고 말했습니다.
  밤이 되도록 그들은 춤을 추었고 마침내 소녀는 집에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가 어느 집 딸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왕자를 피해
집으로 달아나서 비둘기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왕자는 소녀의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에게 어떤 소녀가 저 비둘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신데렐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는 도끼와 괭이를 가져오게 하고 비둘기
집을 반으로 잘랐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집에 오자 신데렐라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재 속에 누워 있었고 굴뚝 속에는 희미한 기름 램프가 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데렐라는 재빨리 비둘기 집 뒤쪽으로 뛰어내려 개암나무로 달려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쁜 옷을 벗어 무덤 위에 놓자 새가 다시 가져갔고 소녀는 다시 회색 옷을 입고 부엌의
재 위에 앉았던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축제가 새로 시작되어 부모와 의붓언니들이 떠나자 신데렐라는 다시 개암나무로 가서
말했습니다.
  "새야, 떨어뜨려라. 예쁜 옷을 나에게 떨어뜨려라."
  그러자 새가 전날보다 훨씬 멋있고 화려한 옷을 던졌습니다. 소녀가 이 옷을 입고 무도회에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소녀가 오기를
기다렸기 때문에 곧장 그녀의 손을 잡고는 오로지 그녀하고만 춤을 추었습니다. 다른 남자들이
소녀와 춤추려고 하면
  "그녀는 나의 춤상대야."
라고 말했습니다.
  밤이 되어 소녀가 떠나려 하자 왕자는 그녀 뒤를 쫓아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를 알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그보다 먼저 달려와 집 뒤에 있는 정원으로 갔습니다. 정원에는
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나무가 서 있었는데 소녀는 다람쥐처럼 날쌔게
나뭇가지 사이로 기어올라가 왕자는 소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왕자는 말했습니다.
  "낯선 소녀를 놓쳐 버렸는데 저 배나무 위로 올라간 것 같습니다."
  '혹시 신데렐라가 아닐까?'
하고 아버지는 생각하면서 도끼를 가져오게 해 나무를 쓰러뜨렸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엌으로 가보니 항상 그랬듯이 신데렐라는 재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소녀는
다른 나무 쪽으로 뛰어내려 개암나무 위의 새에게 아름다운 옷을 돌려주고 다시 자신의 회색
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셋째날 부모와 의붓언니들이 떠나자 신데렐라는 다시 어머니 무덤으로 가서 나무 위의 흰
새에게 말했습니다.
  "새야, 떨어뜨려라. 예쁜 옷을 나에게 떨어뜨려라."
  그러자 새는 옷 하나를 던졌는데 그 옷은 너무나 화려하고 빛이 나서 아무도 그런 옷을
가졌을 리가 만무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신발은 완전히 금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 무도회에 나타나자 모두 경탄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왕자는
그녀하고만 춤을 추었고 다른 사람이 춤을 청하면
  "그녀는 나의 춤상대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밤이 되어 신데렐라가 떠나려 하자 왕자는 같이 가려고 하였으나 소녀가 재빨리 달아나는
바람에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꾀를 써서 온 카페트 위에 피치(역청)을 발라
놓았습니다. 소녀가 뛰어내릴 때 왼쪽 구두가 그 위에 붙어 버렸습니다 왕자는 구두를 집어들어
보았는데 그것은 작고 귀엽고 그리고 완전히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자는 신발을 가지고 소녀의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 금구두에 발이 맞는 여자 이외에는 어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두 자매는 무척 기뻐했는데 왜냐하면 그 둘은 예쁜 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딸은
신발을 가지고 방안에 들어가 신어 보려고 하였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것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신발이 너무 작아서 엄지 발가락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칼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발가락을 잘라 버려. 네가 왕비가 되면 걸어다닐 필요가 없지 않느냐?"
  소녀는 발가락을 자른 후에 억지로 그 신발을 신고는 아픔을 참으면서 왕자에게로 나갔습니다.
그는 그녀를 신부로 생각하고 말에 앉히고는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무덤 옆을 지나가자
두 마리의 비둘기가 개암나무 위에 앉아 소리쳤습니다.
  "꾹꾹, 살펴봐! 꾹꾹, 살펴봐! 구두 속에 피가 있지요. 구두가 너무 작아, 진짜 신부는 아직 집에
있지요."
그러자 그는 그녀의 발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을 돌려 집으로 달려가 가짜 신부를 돌려주고는 그녀가 진짜가 아니니 다른 딸에게
구두를 신겨 보라고 말했습니다. 동생이 신발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신으려고 하자
발가락은 잘 들어갔으나 발뒤꿈치가 너무 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칼을 주면서 말하였습니다.
  "뒤꿈치를 조금 잘라 버리렴. 네가 왕비가 되면 걸어다닐 필요가 없을 테니까."
  소녀는 뒤꿈치를 조금 자르고는 억지로 구두를 신고 아픔을 참으면서 왕자에게로 나갔습니다.
왕자는 그녀를 신부로 생각하고 말에 앉혀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그 개암나무 아래로 지나가자
그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두 마리가 소리쳤습니다.
  "꾹꾹, 살펴봐! 꾹꾹, 살펴봐! 구두 속에 피가 있지요. 구두가 너무 작아, 진짜 신부는 아직 집에
있지요."
  그는 그녀의 신발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고 하얀 양말이 아주 빨갛게 물이 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을 돌려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 소녀도 진짜가 아닙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다른 딸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덧붙여서 말했습니다.
  "단지 죽은 저의 전처로부터 조그맣고 더러운 신데렐라가 있기는 하지만 그 애는 틀림없이
신부가 아닐 겁니다."
  왕자가 소녀를 데리고 오라고 하자 어머니가 대답하였습니다.
  "아이, 안됩니다. 그 애는 너무 더러워서 보일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왕자가 보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그들은 신데렐라를 불러야 했습니다. 그녀는 우선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고 나가 왕자 앞에 고개를 숙이고 그가 내미는 구두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무거운 나막신을 벗고 구두에 발을 집어넣었는데 맞춘 듯이 잘 맞았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서 왕자가 얼굴을 보자 비로소 왕자는 자신과 춤을 추었던 아름다운 소녀를
알아보고는 소리쳤습니다.
  "이 소녀가 진짜 신부입니다."
  의붓어머니와 의붓언니들은 놀라고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왕자는 신데렐라를
말 위에 앉히고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개암나무 옆을 지나가자 하얀 비둘기 두 마리가
소리쳤습니다.
  "꾹꾹, 살펴봐! 꾹꾹, 살펴봐! 구두에 피가 없지요. 구두는 작지 않고, 그는 진짜 신부를 집에
데리고 가지요." 
  그렇게 외치고 난 뒤에 날아와서는 신데렐라의 두 어깨 위로 내려앉았는데 한 마리는 오른쪽에
다른 한 마리는 왼쪽에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왕자와의 결혼식이 열리자 그 못된 언니들이 와서는 비위를 맞추면서 신데렐라를
축하했습니다. 신랑 신부가 교회에 들어갈 때에 큰언니는 오른쪽에 작은 언니는 왼쪽에 서서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비둘기들이 각각 그들의 눈 하나씩을 쪼아 내버렸습니다. 나중에 신랑
신부가 교회에서 나가자 이번에는 큰언니는 왼쪽에 작은 언니는 오른쪽에 서서 나왔습니다.
그 때 비둘기들이 각각 두 사람의 나머지 눈알 하나씩을 쪼아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못된
짓을 한 벌로 평생 그렇게 장님으로 지냈습니다.


    [신데렐라의 의식화 과정]

  "동화 같은 얘기 하지 마." 하고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를 향해 말하곤 한다. '동화적'이란 것은
불가능한 것, 즉 사실이 아닌 것을 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는 우리 인간 속에 있는
깊은 욕구에 부합하므로 즐겨 믿어지는 것이다. 대부분 행복을 향한 욕구, 종종 정의를 향한
욕구에, 혹은 단지 복수를 향한 욕구에 일치하는 것이다. 신데렐라는 동화의 정수 그 자체이다.
그 이야기는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야기되고 들려진다. 헐리우드는 20년대와 30년대에
여러 번 그것을 영화로 변형시켰고, 통속 소설은 아직도 그 내용을 우려먹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가장 먼저 그 이야기를 지어내고, 왜 무슨 이유에서 지어냈을까? 한 성직자였을까? 누구였든
간에 그 동기는 분명한데 그것은 민심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이다. 기다리기만 해라, 너희
가난하고 억눌리고, 착취당하고 경멸받는 자들아. 언젠가는 너도 금과 은 속에서 아름답고 막강한
왕자 옆에서 너의 착취자들에게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 날은 사기와 사악함이 더이상 소용없고
동시에 온 자연이 착한 인간들과 함께 부활을 축하하는 그런 날이 될 것이다. 꿈은 아름답지만
행동을 못하게 하고 꿈꾸는 자들로 하여금 단지 나쁜 현실을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화가 영향을 끼치도록 동화를 활성화하여야만 한다. 그럼 이제
신데렐라의 원본을 재구성해 보자.
  어느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부인이 죽자 재혼하였는데 새 여자는 전처
딸을 곧 하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녀는 더러움과 재 속에서 끝도 없이 고되게 일을 해야
하는 반면에 그녀의 거만한 의붓언니들은 무도회에 가고 피아노를 치며 연애를 하고 다녔습니다.
얼마 동안 이러한 굴욕적이고 착취적인 상황을 겪은 뒤에 소녀는 무엇인가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소녀가 사는 도시 구역의 우물가에서 매일 아침 다른 집 하녀들과 만나서 서로
쓸 데 없는 이야기나 하는 대신에 하녀의 처지에 관한 보고서를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소녀는 그 보고서를 어머니 무덤에서 열린 그 구역 모든 하인들의 비밀
집회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소녀가 그 장소를 택한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니고, 또한 커다란
묘지에서 하녀들이 방해받지 않고 모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황 보고서에 관해 충분히 얘기를 한 후에 미래의 집단 행동에 관해 토론하였습니다.
겨울이 다가왔으므로 그들은 크리스마스 전을 기해 이틀의 추가 휴일을 승인하고 10마르크의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파업하겠다고 협박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스트라이크의 날(그
당시에는 그렇게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 개념은 나중에 영국으로부터 건너 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시민의 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녀들은 일손을 놓고
그들의 요구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친지의 집에 사람을 보내 이 바쁜 크리스마스
전날 집의 하인들이 반항을 해서 기약 없이 해고했는데 이틀이나 사흘 동안 한두 명의 하녀를 좀
빌릴 수 없는지 물어 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 집 하인들도 일손을 놓았답니다.' 그렇게 하여 단결된 부엌데기
신데렐라의 연대는 첫번째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주인들은 어쩔 수 없이 하인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첫 성공으로 인하여 아직 허술한 단체인 채로 새로운 단원들이
가입하게 되고 몇 주 안되어 신데렐라는 하녀, 하인 노동조합의 사무실을 열기 위하여 집안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노동조합은 어려운 처지의 하녀, 하인들을 도와주고 잘 조직된 공동 행동을
통해 그들의 처지를 훨씬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공담은 곧 여기저기서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신데렐라는 지역 신문과 이어서 수도의 신문에까지 나게 되고 큰 시장에서는
그녀의 사진과 연설이 새겨져 있는 나무 조각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결은 힘이다."
라든지 아니면
  "우리 팔이 쓸기 싫으면 모든 빗자루는 멈추어 선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신데렐라와 그녀의 성공에 대한 소문은 왕실에까지 미쳐, 마음 착하고 그 당시
얘기되듯이 국민을 걱정하던 황태자는 신데렐라를 한 번 만나기를 고집하고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차를 여섯 마리의 백마에 끌게 하여 시내에 사는 그녀에게 갔습니다. 물론 온 국민들은
왕자가 오는 것을 보고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하녀 신데렐라를 방문하러 온다는 것을
들었을 때에 놀라움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시기심 때문에
창백해져서는 그들의 친척과의 끊어진 관계를 재빨리 다시 이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왕자는 몇 번 그녀와 깊은 대화를 한 후에 정말로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여기에서 그런 식의 동화는 가장 질 나쁜 거짓말을 하는데)신분 차이가
아닌, 이해 관계와 정치적 신념의 차이가 결코 좁혀질 수 없다는 확신 때문에 거만함 없이
청혼을 거절합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과 용감한 변신을 높이 평가하지만, 저는 당신의 가족, 신분과 재산이
당신의 가슴에 따라 행동하게 계속해서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마 내가 당신 뜻을 따라 나의 지금의 의무에 불충실하게 되던가, 아니면
지금 하는 것보다 한층 더 마음 아픈 이별을 해야 될 것입니다."
  깊은 슬픔에 빠져 왕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신데렐라는 대답했습니다.
  "당신 아버지를 졸라 모든 직종의 임금 주동자들의 연합을 허용하고 중세적인 하인법을
철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왕자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능란하고 사업에 밝은
자문가들의 의견에 따라서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렇게 올 것이 드디어 왔습니다. 화창한 어느날 왕의 병사들이 시내로 들어와 신데렐라를
체포하였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은 해체되고 곳곳에서 판사와 성직자는
  "한 신분계층이 다른 신분계층에 대항하여 그들을 협박하기 위해 결합하는 것은 죄악이다."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단어 '자유'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왕실 모독과 하인법 위반으로 형기를 마치면 왕도 왕자도 없는, 그녀의 믿음에
의하면 모든 인간이 정말로 자유롭고 동등하다는 미국으로 이민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그가 실행하고자 하던 첫번째의 진지한 정치적 임무에서 실패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까지 살아서 아버지가 정당한 인식을 하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홀레 부인]

  한 과부에게 딸 둘이 있었는데 한 딸은 예쁘고 부지런했으며 다른 딸은 밉고 게을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밉고 게으른 딸이 친딸이었기 때문에 훨씬 예뻐하였고 다른 딸은 모든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집안의 부엌데기였습니다. 불쌍한 소녀는 매일 우물 옆의 길 위에 앉아
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베를 짜야만 했습니다. 실패가 완전히 피에 젖자 소녀는 손을 우물에
담가 씻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패는 손에서 퉁겨 나가 우물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울면서 계모에게 달려가 일어난 불행을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무섭게 야단을 치면서
무자비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실패를 빠뜨렸으니 네가 도로 건져야 해."
  소녀는 우물가로 되돌아갔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슴이 조여드는
무서움도 아랑곳없이 소녀는 실패를 건지려고 우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정신을 잃어버렸는데 다시
깨어나 정신을 차려 보니 소녀는 햇빛이 비치고 수천 가지 꽃이 피어 있는 들판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들판을 걸어 빵이 가득 찬 빵 굽는 가마에 이르자 빵이 소리쳤습니다.
  "아, 나를 꺼내 줘, 나를 꺼내 줘! 그렇지 않으면 나는 타 버려, 나는 벌써 잘 구워졌어."
  그래서 소녀는 다가가 빵주걱으로 차례차례 모든 빵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런 후에 계속
걸어가자 사과가 가득 달린 나무가 나타났는데 나무가 그녀에게 소리쳤습니다.
  "아, 나를 흔들어 줘, 나를 흔들어 줘! 우리 사과들은 모두 잘 익었어."
  나무를 흔들었더니 사과가 비오듯이 떨어졌고 소녀는 하나도 안 달려 있을 때까지 계속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 곳에 모아 놓고는 다시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조그만 집에
다다랐는데 그 집에서 한 늙은 노파가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노파는 어찌나 커다란 이빨을
갖고 있던지 소녀는 겁이 나서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늙은 노파는 소녀 등 뒤에다
소리쳤습니다.
  "무엇을 겁내니. 귀여운 소녀야? 내 곁에 있어라. 네가 집안 일을 제대로 하면 잘 지내게 될
거야. 너는 단지 내 침대를 잘 정돈하고 이불을 열심히 털어서 오리털들이 날리도록 신경을
쓰면 된단다. 그 오리털을 날리면 저 세상에는 눈이 오게 된단다. 나는 홀레 부인이야."[주]
노파가 아주 다정하게 얘기하였기 때문에 소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노파 집에서 일하기로
승낙했습니다. 소녀는 노파 마음에 들도록 모든 것을 처리하고 이불을 항상 힘차게 흔들어
오리털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도록 하였습니다. 그 대신 그녀는 노파 집에서 나쁜 말도 듣지 않고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홀레 부인 집에서 잘
지냈지만 언젠가부터 소녀는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으나 나중에는
고향이 그리워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 곳이 소녀에게는 집보다 수천 배나
지내기가 편했지만 집에 가고 싶은 욕구 또한 무척 컸습니다. 마침내 소녀는 노파에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에서는 지내기가 무척이나 편하지만 더이상 여기 있을 수는
없어요. 제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야만 해요."
  홀레 부인이 말했습니다. 
  "네가 다시 집에 가고 싶다니 나도 좋구나. 이곳에서 그렇게 충실하게 나를 위해 일하였으니
내가 직접 너를 저 위 세상까지 데려다 주마."
  노파는 소녀의 손을 잡고 커다란 대문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문이 열리고 소녀가 그 밑에
서자마자 황금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모든 금이 소녀에게 붙어 소녀는 금으로 뒤덮였습니다.
  "그걸 모두 가져도 된다. 제가 열심히 일한 대가야."
  홀레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녀가 우물에 빠뜨린 실패를 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문은
닫혔고 소녀는 위의 세상에 어머니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습니다. 소녀가
마당에 들어오자 우물 위에 있던 수탉이 소리쳤습니다.
  "꼬꼬댁, 꼬꼬! 우리 황금 처녀가 다시 왔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소녀는 어머니와 언니로부터 가지고 간 금 때문에 대단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소녀는 겪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는 소녀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를 듣자
자신의 밉고 게으른 딸에게도 같은 행운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미운 소녀는 우물가에 앉아 베를
짰습니다. 그녀는 실패가 피에 젖도록 손가락을 찌르고 손으로 가시나무를 쳤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실패를 우물에 던지고 자신도 뛰어들었습니다. 미운 소녀도 착한 소녀처럼 아름다운
들판에 이르고 같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소녀가 빵 굽는 가마에 다다르자 빵이 다시 소리를
쳤습니다.
  "아, 나를 꺼내 줘, 나를 꺼내 줘! 그렇지 않으면 나는 타 버려, 나는 벌써 잘 구워졌어."
  게으름뱅이는 대답했습니다.
  "내 몸을 어떻게 더럽힐 수 있단 말이니."
  곧 소녀는 사과나무에 이르렀는데 사과나무는 소리쳤습니다.
  "아, 나를 흔들어 줘, 나를 흔들어 줘! 우리 사과들은 모두 잘 익었어."
  그러나 소녀는 대답하였습니다.
  "너 마침 잘 되었다. 사과 하나만 내 머리 위로 던져 줄래."
  그리고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소녀가 홀레 부인 집에 이르자 이미 들은 바가 있어 노파의
커다란 이빨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녀의 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첫날에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을 잘 했는데 그 이유는 홀레 부인이 선물할 금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벌써 게으름 피우기 시작했고 셋째 날에는 한 술 더 떠 아침부터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약속했던 것과 달리 홀레 부인의 이부자리도 안 개고 오리털이 날리게끔 털지도
않았습니다. 홀레부인은 곧 지쳐서 소녀를 해고시켰습니다. 게으름뱅이는 속으로 만족하고는 이제
곧 황금비가 쏟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홀레 부인은 소녀를 문 앞까지 데리고 갔고 소녀가
그 아래 서자 황금 대신 커다란 통 속에서 피치(역청)가 쏟아졌습니다.
  "네 일의 대가야."
  홀레 부인이 말했습니다. 게으름뱅이가 집에 돌아오자 시커먼 피치로 뒤덮인 소녀를 보고 우물
위의 수탉이 소리쳤습니다.
  "꼬꼬댁, 꼬꼬! 우리 더러운 처녀가 다시 왔네."
  피치는 그녀 몸 위에 찰싹 붙어 살아 있는 동안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주] 그렇기 때문에 헤센주에서는 눈이 오면 '홀레 부인이 이부자리를 정돈한다'고 한다.


    [불행한 마리에 대한 보고서]

  '홀레 부인'에 대한 동화는 수많은 세대에 걸쳐 얌전한 주부와 복종하는 하녀들을 교육해 왔다.
그것은 시민 사회에 맞는 유익한 사회화의 보조 수단이었으며 아직도 동화는 얼마 전에 인기
있는 한 정신과 여의사가 증명한 것처럼 사회화 수단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이 유익함이
미심쩍은 동화의 근원을 찾으려던 민속학자는 해방적인 핵심을 찾으려 하였지만 허사였다.
  우리는 기껏해야 수확해 줄 것을 요청하는 잘 익은 사과와 잘 구워진 빵과 같은 비유를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나중에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펼쳐 보이고 있듯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암시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은 잘 다루는 사람에게 속해야 한다.'  '자동차는 잘 운전하

사람에게, 아이들은 어머니다운 사람에게, 그리고 물은 관개인에게 속해야 한다.' 등등...
  그러나 동화 '홀레부인'에는 실천적인 교훈이 결여되어 있다. 말하자면 황금 마리가 빵들을
(아마 그 빵들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나 힘들게 노동하는 자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아닌)
소유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소녀는 친절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나 남을 위해서도
중요하지 않은 그러한 행위에 만족하고 마는 것이다.
  다행히도 진보적 민속학자들의 수년에 걸친 탐구 작업은 놀라운 발견을 통해 보답 받는다.
프란치스카나 사원 마리아 피난처(이름은 그 자료를 교회 당국의 허락 없이 보여 준 그 경건한
사제를 고려하여 작가가 지어냄)의 문고에서 얼마 전 1490년 한 이웃 성에서 피치로 뒤덮여
고해성사에서 자신의 운명을 고백하여 신부가 깊이 감동한 한 젊은 처녀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가
발견되었다. 그 내용에 의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이 불쌍한 소녀는 다름 아닌 '홀레 부인'의
동화에 나오는 불행한 피치 마리인 것이다. 지금에야 비로소 다행히도 완전한 상태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하여 이 동화의 근간을 이루는 원래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역사적 전실을 왜곡시킨 데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그림 형제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후원자들인지는 명백하게 알아낼 수 없다.

  라틴어로 전해 내려오는 그 보고서의 독일어 번역을 한번 살펴보자.
  "저는 1472년 일일 노동자 W. 클링엔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때부터 항상 제가 검은 머리를 가져 마음에 안 든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저는 집안이나
들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마음에 들게는 결코 할 수 없었습니다. "황금
마리를 봐라." 그들은 인종적 선입관에 사로잡혀 저의 금발머리 동생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저
아이는 부지런하고, 착하고, 예쁘고 등등 하며 저를 항상 책망했습니다. 저는 더이상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종종 저는 짚이 든 요 위에 앉아 울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때때로 정말 신에게 기도하면서 삶이 견딜 수 없으니 제발 저를 데려가 달라고 빌었습니다.
  어느날 부모님은 리터슈타인 성의 홀레라는 이름의 성주가 하녀를 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장 우리 황금 마리가 그 일에 적당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세련된
예의범절을 익히고, 돈도 모으고, 나중에는 쉽게 돈 잘 버는 남자를 고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여진 것은 곧 실행되었습니다. 동생은 그 곳으로 갔고, 일년 후에 실제로 금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비록 그녀는 받은 금 중에서 부모님께 아주 조금 갖다
드렸을 뿐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단한 환영을 하고 고마워하였습니다.
  밤에 동생은 저에게 그녀가 어떻게 많은 금을 가지게 되었는가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결코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라 (알다시피 어디서나 하녀의 봉급은 적었다) 홀레
씨의 성적 욕구를 들어 준 대가로 받은 것이었는데, 이 주인은 흉측하게 일그러진 눈을 가진
뚱뚱한 늙은이여서 동생은 몰래 이 남자를 놀려대곤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부모님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셨죠. 아마 그들은 필요한 금이 집안에 굴러들어 왔으니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곧 저 역시 (일년 후에 많은 금을 가지고 오기 위해서) 성주 홀레에게 일하러 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저 역시 고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홀레 씨의 성적 욕구에 따르려고 하지
않자 곧 저의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저는 정말 하찮고 의미
없는 일들을 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휴식 시간이라고는 없었고 일요일이나 휴가일에는 가장 이른
예배 시간에 교회에 가고, 곧장 부엌으로, 빨래터로, 빗자루로 되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매일 아침
아홉 개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 아침 준비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그리고 나서는 점심식사
준비하고, 그러면서 저는 흑빵과 곡식죽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한번은 발에 통증이 와서 의사에게 가도록 해 달라고 했는데 저는 홀레 부인의 지시에 따라
홀레 씨에게 매를 맞았습니다. 가장 지독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깃털이불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홀레 부인이 무척 아끼는 것이었지요. 매일 아침 저는 그 이불들을 깃털이 날리도록 잘 털어야
했지만 동시에 털 하나라도 없어져서는 안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골짜기로 내려가서
(성은 산 위에 있었는데) 깃털들을 힘겹게 다시 주워서 씻고 말려서는 다시 베개나 이불 속으로
넣어야 했습니다. 그 일로 저는 반나절을 보내거나, 종종 밤중에도 계속하여야 했습니다. 홀레
부인은 이 무의미하고 단조로운 일에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부분에 우리의 경건한 후원자는 단테의 '신곡'과 시지프스의 그 유명한 구절을 참조하라는
학자다운 역주를 달아 놓았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홀레 부인의 악마적인 성격을
추론하여 '홀레'와 '횔레'(지옥)의 어원적 유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는 나중에
통용된 '홀데'(인자함)와의 연관을 단호히 제외시킨다. '인간 마음의 사악함은 헤아릴 수가 없다.'
라고 우리의 신부는 생각한다. 늙고 미운 부인의 예쁜(그리고 남편이 열렬히 탐하는) 피치 마리에
대한 단순한 시기심이 결정적인 동기였다는 생각은 아마 수도원에서의 격리로 인하여 꿈에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다시 마리의 보고서로 되돌아가 보자.
  "언젠가 제가 밤에 골짜기에서 깃털을 모아 되돌아오니 홀레 씨가 저를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을 많이 해서 저는 나무꾼처럼 힘이 세어져 쉽게 그를 뿌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홀레 부인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만약 홀레 부인이 상황을 보았으니
적어도 제 편을 들 거라고 생각했다면 커다란 착각이었습니다. 그 다음주는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마침내 계약 기간이 끝나자 저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구두로나 문서로 계약하지 않은)
저의 보수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홀레 부부는 저를 리터슈타인 성의 커다란 대문으로
데리고 나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문 위에 있는 망루에 있던 뜨거운 피치를 제게 쏟아 부어서
저는 소리를 지르고 도망쳤습니다 밤이 되자 저는 길의 구덩이 속에 숨어 있다가 숲을 통해
이 곳 '마리아 피난처 수도원'으로 왔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에게로 갈 엄두도 안 나고
홀레부부가 종들을 시켜 뒤쫓아와서 저를 죽일까 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보고서를 건네 준 그 경건한 신부는 불행한 마리가 멀리 떨어진 프란치스카나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착실하고 부지런한 수녀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고 살았다고 적었다.
거기에서는 아무도 그녀가 어디에서 오고, 어떤 역경을 헤쳐 왔는지 몰랐다. 리터슈타인의 성주의
손은 멀리 뻗쳐, 근처의 어떤 수도원이나 주교도 그 영향력 있는 사람에 나서서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진실에 일치하는 보고서는 그 이래로 수도원의 문고에
감추어져 있었고, 몇 년 후에 홀레의 지시에 따라 한 젊은 사제가 정말 '동화', '픽션'인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에 아무도 이견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 동화 보고서에서 조심스럽게 홀레 씨를 완전히 빼고 진짜 홀레 부인에 대해서는
동화의 독자들이 의아해 했을 '밉고 커다란 이빨'만이 마지막에 남아 있게 했다. 다른 모든 것,
예컨대 홀레 부인의 성격, 그녀의 천성, 그리고 두 소녀의 역할과 그들의 부모는 완전히 몰라볼
정도로 왜곡되었다. 나중에는 어두운 게르만족의 신화까지 그 보고서에 가미되어 마침내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화 과정의 지침서가 탄생된 것이다. 그것은 지배 계급에 그리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들에게 편안한 모든 덕성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1. (집안 주인의 지시에 대한, 그리고 바깥 주인의 성적 욕구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2. 아무런 저항 없이 의미 없는 일들을 행하는 것 (예를 들어 깃털 이불을 털어 내고 그
깃털을 다시 줍는 일)
  3. 일한 후의 관대한 보상을 믿으면서 노동 시간과 보수를 계약으로 정하는 것을 포기할 것
등이다.
  '불행한 마리'에 관한 진짜 보고서가 18, 19세기에 그리고 20세기에도 온갖 수모를 다 당한
아메리카 남부 국가의 탄압 받는 무수한 흑인들을 연상케 하는 반면에, 유명한 동화
'홀레 부인'은 집에서의 가사 노동을 순수한 전원생활로 묘사하고 또 '불행한 마리'의 운명을
충분하지 못한 가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벌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어떠한
아이들도 (자신들이 게으르고 집안 일을 안하여서 그런 벌을 받았다면 절대적으로 부당하다고
느꼈을) 비열한 처사를 '불행한  마리'가 겪는데도 분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98년에도 프로이

독일에서는 하인들의 노동 조합 결성을 반대하는 하인법이 유효하였다. '불행한 마리'는 만약
이전에 마리의 피난처였던 수도원의 문고가 공식적으로 열렸다면 해방적 노동 조합과 여성 해방
운동의 수호신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중의 피해자로 기억돼야만 한다. 첫째 그녀의
실제 운명 때문에, 둘째, 수백 년 동안 홀레의 지시에 따라 조작된 동화가 그녀에게 가한 명예
훼손 때문이다. 교회 당국은 '불행한 마리'가 탄생한 지 오백 년 후에도 아직 그녀에게 죄를 지은
계급을 침묵으로 덮어 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곧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브레멘의 악사들]

  옛날에 한 남자에게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당나귀는 오랫동안 꾸준히 곡식 포대를
정미소에 날랐으나 힘이 다하여서 일하기에는 이제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먹이를
주지 않을 생각을 하게 되었고 불길한 낌새를 알아차린 당나귀는 집을 떠나 브레멘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시립 악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얼마 동안 걸었을 때
그는 길 위에 지치도록 달려 헉헉거리고 있는 사냥개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렇게 헐떡거리니? 사냥개야."
  당나귀는 물었습니다. 개는 대답했습니다.
  "아! 내가 이제 늙고 매일매일 약해져서 사냥터에서 더이상 뛰지 못하자 우리 주인이 나를
때려죽이려고 해서 도망쳐 나왔어. 그렇지만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해."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브레멘으로 가서 시립 악사가 되려고 하는데 너도 같이 가서 모집에 응모해라.
나는 라우데(일종의 현악기)를 연주할 테니 너는 북을 치면 되지 않니."
  개는 승낙하고 둘을 같이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늙은 고양이야, 무엇 때문에 일이 어긋났니?"
하고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내 생명이 왔다갔다하는데 누가 농담하고 있어?"
라고 고양이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늙고 이빨도 둔해져서 쥐는 안 잡고 난로 옆에 앉아 놀고 있자 내 주인 여자가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해서 겨우 도망 나왔는데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 함께 브레멘으로 가자. 너도 어느 정도 세레나데 같은 것을 할 수 있으니 시립 악사가
될 수도 있어."
  고양이는 그 제안에 동의하고는 그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얼마 안 가 그 세 도망자는 어느
농가를 지나쳤는데 문 앞에는 수탉 한 마리가 앉아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너는 골수에 사무치게 소리를 지르고 있구나."
하고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너 왜 그러니?"
  "우리 주인 여자가 아기 옷을 빨아 말리고 싶어해서 나는 오늘 날씨가 좋을 거라고
예고했었어. 그런데 내일 일요일에 손님들이 오는데 우리 주인 여자는 동정심도 없이
요리사에게 내일 나를 가지고 국을 끓여 먹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서 오늘 저녁 내 목은
잘릴 것인데 나는 할 수 있는 한 목청을 다해 소리지를 거야."
  "아이구, 뭐라고 붉은 대가리야."
하고 당나귀가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브레멘으로 가는데 우리랑 같이 가자. 어디를 가든지 죽음보다는 나을 거야. 너야
좋은 음성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함께 음악을 하면 그것도 멋있을 거야."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그들은 이제 넷이서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브레멘까지 갈 수 없어 저녁에는 숲에 들어가 그날 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당나귀와 개는 커다란 나무 밑에 눕고 고양이와 닭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는데 닭은
가장 안전한 나무 꼭대기 위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그가 잠자기 전에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니
멀리서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곧 동료들을 깨워 불빛이 보이니 멀지 않은
곳에 집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였습니다.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자, 우리 일어나 그곳에 가자. 여기는 잠자기에 불편하니까."
  개는 '뼈다귀 몇 개하고 고기가 조금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불빛이
비치는 쪽을 향해 걸어갔는데 점점 불빛이 밝아지더니 마침내 불이 환히 켜진 강도의 집 앞에
당도했습니다. 제일 큰 동물로서 당나귀는 창문에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뭐가 보이니, 회색 당나귀야?"
  수탉이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음식과 술이 잔뜩 차려진 식탁이 하나 있고 그 식탁에 도둑들이 둘러
앉아 기분 좋게 먹고 마시고 있어."
  "그 음식과 술은 우리가 먹어야 되는데."
라고 수탉이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우리가 저기 들어갈 수 있다면."
하고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둑놈들을 집에서 몰아낼 수 있을지 의논한 후에 네
동물은 드디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당나귀는 앞발을 창문에 세우고, 개는 당나귀
등 위에 올라가서 앉고, 고양이는 개 위에 올라가 앉고, 마지막으로 수탉이 고양이 머리 위로
날아가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신호에 따라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나귀는
소리지르고, 개는 짖고, 고양이는 야옹 야옹 울어대고, 수탉은 꼬꼬댁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이닥치자 유리들이 와장창 깨어졌습니다. 도둑들은 끔찍한 소리에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겁이 나서 뛰쳐나가 숲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네 동물은 식탁을 둘러싸고
남아 있던 음식을 마치 한 달이나 굶은 것처럼 먹어댔습니다.
  네 동물들은 식사를 마치자 불을 끄고는 각자에게 알맞고 편안한 잠자리를 찾았습니다.
당나귀는 거름 위에 눕고, 개는 문 뒤에, 고양이는 부엌 아궁이의 따뜻한 재 속에, 그리고 수탉은
홰 위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멀리서 집안에 불이 꺼지고 조용한 것을 보고 도둑의 두목이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치는 게 아니었는데."
  그리고는 부하 한 명을 보내 집 안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파견된 부하는 모두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불을 켜려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양이의 빛나는 눈을 아직 타고 있는 석탄으로
생각하고는 불을 붙이려고 성냥개비를 갖다 댔습니다. 그러나 고양이가 장난을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습니다. 도둑의 얼굴에 달려들어 침을 뱉고 할퀴었습니다. 도둑은 너무 놀라 뛰어서
뒷문으로 나가려고 하였지만 거기에 있던 개가 뛰어들어 다리를 물었습니다. 그가 퇴비 옆을
지나쳐 가자 당나귀가 뒷다리로 마지막 한 방을 먹였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에 잠이 깨어 정신을
차린 수탉은 들보 위에서 '꼬꼬댁 꼬꼬'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도둑은 있는 힘을 다해 두목에게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아, 집 안에는 무시무시한 마녀가 있는데 내 얼굴에 입김을 불어 대고 긴 손가락으로 얼굴을
할퀴었습니다. 문 앞에는 한 남자가 칼을 들고 있다가 내 다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마당에는
검은 괴물이 있다가 나무 막대기로 나를 쳤으며 지붕 위에는 판사가 앉아 저 나쁜 놈을 나에게
데리고 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때부터 도둑들은 집 안에 들어갈 생각을 못했지만 그 네 명의 브레멘의 음악가들은 전부
집이 마음에 들어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마지막으로 한 사람은
아직 입에 침도 안 발랐답니다.


    [브레멘의 시립 악사 또는 퇴직자 집단의 성공적인 첫번째 주택 점거]

  '브레멘의 악사들'이라는 동화는 하나의 우화이다. 늙고 죽을 때가 다 된 동물들에 대한 얘기는
변형되고 감추어진 형태로 사람들의 운명, 그것도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회적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 하의 러시아에서 반체제적 작가들은 종종 그들의
발표작에서 이솝의 언어로 말하곤 했다. 이솝은 기원 전 6세기 경에 살았던, 많은 우화를 쓴
그리스의 작가이다. 제 3제국 때나 스탈린 시대에도 작가들은 가끔 이솝의 언어를 사용하였고,
비판을 갈망하는 독자들은 종종 단순한 우화 속에서 공격적인 정치적 의도를 읽어 내곤 했다.
간단히 말해서 비판적 의도를 우화 형식을 빌어 표현하는 전통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고 우리가
가끔 그림형제의 동화 속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가끔 오래 걸리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현실적인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우화의 의미가
이해되어지기도 한다.
  지난 달의, 지난해의 그 수많은 성공적인 혹은 실패한 주택 점거 사건이 주의 깊은 동화
독자들을 민감하게 만들고 수백 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우화의 의미를 단 한 순간에 명확히 알게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우화의 해독을 시도해 보는데 이것은 오늘날 독일에서는 검열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연방 공화국 기본법 제 5조 1항 '검열은 행해지지 않는다'를 참조) 아무런 위험 없이
가능한 것이다. 우선 이솝 식의 언어인 우화 형식을 벗겨 내고 우화의 인간적인 핵심을 끄집어
내기로 한다.

  옛날 옛날에 한 부두 노동자가 살고 있었는데 배에서 짐을 싣고 내리고 하는 힘든 노동 때문에
일찍 불구가 되어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보수는 겨우 그때그때 살기에
족했고 다시 말해 노후를 위해 아무런 저축도 하지 못했고 또 그 당시에는 어떠한 사회 연금도
없었으므로 그는 실로 빈털터리였습니다. 어디선가 그는 브레멘에서 시립 악사를 모집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베이스 음성이 좋다고 생각해서 응모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도중에 그는 늙은 용병을 만났는데 그 역시 떨리는 손 때문에 총조차 가만히 잡고 있을 수
없어 주인에게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부두 노동자는 같이 브레멘에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그 역시 군대에서 적어도 북치는 것을 배웠을 테니 아마 시립 악단에서
뭔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 안 가서 두 남자는 근심이 가득 차 불쌍한
처지를 하소연하는 늙은 창녀를 만났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모퉁이로 나가 손님을
구하지는 않고 집에 앉아 난로나 쬐고 있는 그녀를 포주가 쫓아내 버린 것입니다. 거기다 직장
없는 젊은 처녀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쏟아져 나오니 그녀를 찾는 손님들도 줄어들었습니다. 두
남자는 불쌍한 여자를 동행에 넣어 주어 브레멘의 시립 악단에 추천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도중에 그들은 마지막으로 자존심이 센 테너 가수를 만나는데 그는 귀한 손님 앞에서 높은
음'다'음(C-moll)대신 올림'다'음(cis-moll)을 불러 주인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다행히
그는 도망쳐 나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 한푼 없이 길거리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불구자와 연금 없는 퇴직자의 모임이 충분히 커졌을 때 테너 가수는 저녁 경에 적당한
잠자리를 찾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곧 불빛이 새어나오는 어느 외딴집에 오게 되는데
집주인은 마침 풍성한 식탁에서 식사 중이었습니다.
  그림 동화에서는 이 집주인이 도둑들로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이 집에 대한
소유권을 도덕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빚에 넘어가 집을 아주
싸게 샀거나 투기 목적으로 비워 두고 가끔 연회 장소로만 이용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대지와 집은 훔칠 수 없고 단지 동산만이 훔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동화에서
도적으로 불리는 집주인이 강도질로 살든 아니면 그들의 도둑질이 형식으로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집의 소유에만 국한하든지 간에 상관없고 한가지 분명한 점은 동화 작가는 그들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이유로 은퇴자들의 침입과 계속적인 주거를 명백하게 허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진행은 잘 알려져 있다. 단결을(노동 조합이나 정당의 허술한 초기 형태) 해서
강하여진 네 명은 식사하던 집주인을 쫓아내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려 하자 그것 역시 성공적으로
막게 된다. 왜 그 집주인이 경찰을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동화이기 때문에, 또는 그들이 은밀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주인들이 도적이며 추위에 떨고 배고프고 불구인 그들이 그 집에 대해 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 동화의 발생 연도를 17세기나 18세기로 볼 때 일말의 타당성이 있는데
그 이유는 초기 시민 사회의 소유 개념은 사용과 스스로의 경작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임대나
소작에서 얻는 최고 이득도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사용권보다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 우화, 동화는 끝난다. 마지막에는 단지 네 명이 새로 얻은 집에 계속 머무르며
고무적인 소식이 안 들리는 브레멘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얘기가 있을 뿐이다. 그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 집이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네 명의 불구자가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조그마한 농가였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도적들은 추측컨대 도둑 두목, 즉 영주로부터
농경지를 수익 좋은 목초지로(우리가 약간 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 유희를 한다면 혹은 대리주택
자리로) 바꾸기 위해서 소작인 가족을 내쫓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구자 집단의
점거 행위는 마르크스가 1867년에 쓴 자본론 1권의 24장에서 말하는 '원천적인 축적'에 대항한
가난한 국민의 저항 운동의 한 일화였을 것이다. 동화가 브레멘 지방 근처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마르크스가 서술하는, 소위 말하는 원천적인 축적은 전통적인
형태로는 영국에서 일어나는데 브레멘을 1715년에서 1810년까지 하노버 왕가에 속하고 이 왕가는
영국 왕실과 인척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화의 우화가 뜻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지금 대도시의 심각한 주택난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높은 고층의 사무실 건물을 짓기 위해 빈 집들을 부셔 버리는 데서 기인하는 오늘날의
주택점거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동화를 오늘날 갑자기 해독할 수 있게 되고 그
동화의 유토피아적인 희망의 소식이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

  커다란 숲의 앞자락에 한 가난한 나무꾼이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내
아이는 헨젤이라 불리었고 여자 아이 이름은 그레텔이었습니다. 양식조차 부족할 정도로 그는
가난해서 어느날 그 나라의 물가가 오르자 매일 먹는 빵조차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때
잠자리에서 고민에 뒤척이면서 한숨 섞인 목소리고 그는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오. 우리도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 애들을 먹여
살리지?"
  "여보, 우리 이렇게 합시다."
하고 부인은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가장 울창한 숲 속으로 애들을 데리고 갑시다. 그리고 불을 지피고 각자에게
빵 한 조각씩 주고 애들을 내버려두고 우리는 일하러 갑시다. 애들은 돌아오는 길을 못 찾을
것이고 우리는 애들을 떼버릴 수 있어요."
  "그렇게는 안돼."
  남편이 말하기를
  "나는 못해. 사나운 짐승들이 와서 애들을 죽일텐데. 어떻게 그 애들을 숲 속에 내버려 둘 수가
있단 말이오. 나는 할 수 없어요."
  "정말 바보 같군요. 그러면 우리 넷은 모두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를 위한 관이나
짜세요."
하고 부인은 말하면서 남편이 동의할 때까지 들볶았습니다.
  "애들이 정말 불쌍해."
하고 남편은 말했습니다.
  두 아이들은 배가 고파 잠이 들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계모가 아버지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레텔읕 슬피 울면서 헨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죽을 거야."
  "조용히 해, 그레텔."
하고 헨젤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부모가 잠들자 그는 일어나 옷을 입고 집 뒷문으로 살며시 빠져나갔습니다. 달이 환하게
비추어 집 앞에 있는 하얀 돌멩이가 커다란 동전처럼 반짝거렸습니다. 헨젤은 고개를 숙여
돌멩이를 주머니 속에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주워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레텔에게
돌아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그레텔. 이제 자자.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는 그도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이른 새벽 계모가 와서 애들을 깨웠습니다.
  "일어나라, 이 게으름뱅이들아! 숲으로 가서 나무를 해와야 해."
  그리고는 각자에게 빵을 한 조각씩 주고는 말했습니다.
  "이 빵은 점심이야. 그렇지만 미리 먹지는 말아. 더이상 안줄 테니."
  헨젤은 주머니에 돌이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레텔이 앞치마에 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두 함께 숲으로 갔습니다. 조금 걸어갈 때마다 헨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버지는
  "헨젤, 무엇을 그렇게 쳐다보니? 넘어질라, 조심해라."
  "네. 아빠."
하고 헨젤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붕 위에 앉아 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제 하얀 고양이를 쳐다봤어요."
  부인은 말했습니다.
  "바보야, 그건 네 고양이가 아니라 굴뚝 위로 떠오르고 있는 아침해야."
  그러나 헨젤은 고양이를 쳐다본 것이 아니라 주머니 속의 하얀 돌멩이를 하나씩 길 위에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숲 한가운데에 다다르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무를 주워 오너라. 너희들이 떨지 않도록 불을 피워 주마."
  헨젤과 그레텔은 나무 덤불을 가져와 작은 산처럼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덤불에 불이 붙어
불꽃이 솟아오르자 계모는 말했습니다.
  "얘들아, 불가에 앉아 쉬고 있어라. 우리는 숲으로 가서 나무를 베어야 해. 일이 끝나면
너희들을 데리러 오마."
  헨젤과 그레텔은 불가에 앉아 쉬다가 점심이 되자 각자 빵을 먹었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에 그들은 아버지가 옆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 찍는
소리가 아니라 아버지가 마른 나무에 묶어 놓은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
것이었습니다. 오래 앉아 있자 피곤에 겨워 눈이 감겨졌고 그들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눈을
뜨자 벌써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레텔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숲 밖으로 나가지?"
  헨젤은 누이를 위로하였습니다.
  "잠깐 기다려. 달이 떠오르면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보름달이 떠오르자 헨젤은 동생의 손을 잡고 새 동전처럼 빛나서 길을 알려 주는 돌멩이들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밤새도록 걸어서 다음날 해 뜰 무렵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문을
두드리자 계모가 문을 열었고 아이들을 보자 소리쳤습니다.
  "이 나쁜 것들아, 그렇게 오랫동안 숲 속에서 잠을 잤었니? 우리는 너희가 안 돌아오려는 줄
알았다."
  애들을 버려 두고 와서 몹시 마음 아파하던 아버지는 애들을 보자 기뻐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온 나라에 식량난이 일어나자 아이들은 다시 밤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는 얘기를 엿들었습니다.
  "다 먹어 버리고 이젠 반 덩어리 빵밖에 없어요. 애들을 다시 길을 못 찾도록 깊은 숲 속으로
데리고 가서 버리고 옵시다. 안 그러면 우리는 모두 죽어요."
  아버지는 마음이 아파서 말하였습니다.
  "차라리 마지막 한 조각이라도 애들과 나누는 게 낫겠소."
  부인은 책망하였습니다. 처음 아이들을 버렸을 때 부인 말에 따랐으므로 두번째 역시 그녀의
뜻대로 해야 했습니다.
  애들은 잠을 안자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모두 들었습니다. 부모가
잠들자 헨젤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 지난번처럼 돌멩이를 주우려고 했지만 계모가 문을 잠가 놓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이동생을 위로하면서 말했습니다.
  "울지마, 그레텔. 편안히 잠자. 사랑하는 하느님은 우리를 도와 주실 거야."
  이른 아침 계모가 와서 애들을 깨웠습니다. 아이들은 지난번보다 작은 빵 한 조각씩을
얻었습니다. 숲으로 가는 도중에 헨젤은 주머니 속의 빵을 부수어 길가에 부스러기를
떨어뜨렸습니다.
  "헨젤, 왜 자꾸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지붕에 앉아 작별 인사를 하는 비둘기를 봤어요."
라고 헨젤이 대답하였습니다.
  "바보야, 그건 비둘기가 아니라 굴뚝 위에 떠오르는 아침해야."
라고 계모는 말했습니다. 헨젤은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빵 부스러기를 모두 길 위에 뿌렸습니다.
  계모는 이이들을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갚은 숲 속으로 데기고 갔습니다. 다시 모닥불을
피워 놓고는 계모가 말했습니다.
  "여기 가만있어라. 피곤하면 잠을 자도 된다. 우리는 숲에 가서 나무를 베고 밤이 되면
너희들을 데리러 올께."
  점심때가 되자 그레텔은 자기의 빵을 헨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는데 밤이
지나가도 아무도 그 불쌍한 애들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일어났습니다. 헨젤은 그레텔을 위로하면서 말했습니다.
  "기다려, 그레텔. 달이 떠오르면 내가 아까 버린 빵부스러기를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어."
  달이 떠오르자 길을 나섰지만 빵부스러기는 볼 수 없었습니다. 숲을 날아다니는 수천 마리의
새들이 모두 먹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헨젤은 그레텔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들은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밤새 헤매고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온종일 다녔지만
숲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 동안 땅 위에 있는 작은 딸기 몇 개만 먹은 아이들은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피곤하고 더이상 걸을 수 없어 나무 밑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집을
떠난 뒤 삼일 째 되는 날도 온종일 헤매었지만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곧 도움의
손길이 안 뻗치면 아이들은 허기와 갈증으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아이들은
아름다운 하얀 새 한 마리가 가지 위에 앉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들었습니다. 새는 노래를 마치자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고 아이들은 그 새를 쫓아 조그만
집으로 갔습니다. 그 새는 집의 지붕 위에 앉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조그만 집은 빵으로
지어졌고 지붕은 과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창문은 하얀 사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서 먹자."
하고 헨젤은 말했습니다.
  "나는 지붕을 먹을 테니 너는 창문을 떼어 먹어. 무척 맛있을 거야."
  헨젤은 지붕 위로 올라가 조금 떼어 먹고 그레텔은 창문으로 다가가 갉아먹었습니다. 그러자
방 안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바삭, 바삭, 바삭거리는 소리. 누가 내 집을 갉아먹느냐?"
  아이들은 대답했습니다.
  "바람, 바람, 하늘에서 온 아이."
  그리고는 한눈 팔지 않고 계속해서 먹었습니다. 지붕이 너무 맛있어서 헨젤은 커다란 조각을
뜯어 내 먹었고 그레텔은 둥근 창문 조각을 깨어 내서 앉아서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아주 늙은 노파가 나왔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너무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떨어뜨렸습니다. 노파는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아, 귀여운 아이들아. 누가 너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니? 들어와서 나와 같이 살자. 너희에게
나쁜 일은 안 생길 테니."
  노파는 둘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좋은 음식들, 우유와 잼을 바른 빵,
사과와 땅콩들을 날라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조그맣고 귀여운 침대 위에 하얀 요를
깔았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그 위에 눕자 마치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노파는 친절한 척 했지만 실제로는 이이들을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는 나쁜 마녀였고 과자집도
아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지은 것이었습니다. 아이 하나가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오면 죽여서
요리를 해서 먹어 버리는 마녀에게는 그 날은 그녀의 축제날이었습니다. 마녀들은 빨간 눈을
가지고 있어 멀리 볼 수는 없지만 동물처럼 좋은 후각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이 오면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다가오자 마녀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너희들은 도망 못 간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이들이 깨기 전에 일어난 마녀는 통통하고 불그레한 뺨을 해 가지고 곤히
자고 있는 애들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것들은 아주 맛있겠어."
  그리고는 깡마른 손으로 헨젤을 잡아서는 조그만 우리에 넣고는 철문을 잠갔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힘껏 소리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레텔에게 가서 그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일어나, 이 게으름뱅이야. 물을 길어 와. 네 오빠에게 맛있는 걸 만들어 주어라. 네 오빠는
바깥 우리 안에 있는데 좀 살이 올라야 돼. 살이 통통히 찌면 내가 잡아먹을 거야."
  그레텔은 슬피 울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녀는 마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헨젤은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그레텔은 가재 껍질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매일 아침
노파는 우리로 가서 소리쳤습니다.
  "헨젤, 손가락을 내밀어 봐라. 내가 만져 봐서 살이 쪘나 느낄 수 있게."
  그러나 헨젤은 뼈다귀 하나를 내밀었고 눈이 나쁜 노파는 그것을 못보고 헨젤의 손가락이라
생각하고는 전혀 살이 안 오르는 것에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헨젤이 아직
마른 채로이자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봐, 그레텔."
하고 노파는 소녀에게 소리쳤습니다.
  "날쌔게 물을 길어 와라. 헨젤이 살쪘든 말랐든 내일 잡아서 요리해야겠다."
  물을 길어 오면서 불쌍한 누이동생은 얼마나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고 탄식했습니다.
  "숲 속에서 사나운 짐승이 우리를 잡아먹었다면 적어도 같이 죽을 수는 있었을 텐데."
  "조잘거리지 마라! 아무 소용없으니."
라고 노파는 소리쳤습니다.
  아침 일찍 그레텔은 밖으로 나가 물주전자를 걸고 불을 지펴야만 했습니다.
  "우선 가마 속에 넣어 구워야겠다."
하고 노파는 말하면서
  "벌써 빵 굽는 가마에 불을 넣었고 반죽도 다 만들었어!"
  그녀는 그레텔을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는 가마로 밀었습니다.
  "들여다 봐, 적당히 데워졌는지. 그러면 빵을 집어넣을 수 있지."
  그레텔이 안으로 들어가면 마녀는 가마 문을 닫아 버려 그레텔을 그 속에서 구울
생각이었습니다. 그레텔이 마녀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아차리고는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죠?"
  "멍청한 것 같으니."
라고 마녀는 말했습니다..
  "입구가 충분히 커서 나라도 들어갈 수 있어."
  마녀는 기어가서 머리를 가마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레텔은 그녀를 밀어서 안으로
집어넣고는 철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마녀는 무시무시하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레텔은
뛰어 나갔고 그 신이 무서운 줄 모르는 마녀는 비참하게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레텔은 숨을 헐떡이며 헨젤에게 가서 우리 문을 열어 주면서 소리쳤습니다.
  "오빠, 우리는 풀려났어. 늙은 마녀는 죽었어!"
  문이 열리자 새가 새장에서 날아 나오듯 헨젤은 뛰어 나왔습니다. 둘은 얼마나 기뻐하든지
서로 껴안고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아무것도 더이상 무서워할 것이 없으니 둘은 구석구석 보석과
진주 상자가 놓여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들은 돌멩이보다 좋은 거야."
  헨젤은 말하면서 주머니에 보석들을 가득 집어넣고 그레텔도 앞치마에 가득 담았습니다.
  "자, 이제 우리 집에 가자."
하고 헨젤은 말하였습니다.
  "어서 마녀 숲에서 빠져나가야지."
  몇 시간 걸어가자 넓은 호숫가에 다다랐습니다.
  "우리는 건너갈 수가 없어. 다리가 없으니."
  헨젤이 말했습니다.
  "건너다니는 배도 없어."
  그레텔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저기 하얀 오리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잖아. 우리가 부탁하면 건네 줄 거야."
  그리고 소녀는 소리쳤습니다.
  "작은 오리야, 작은 오리야. 여기 헨젤과 그레텔이 서 있단다. 널빤지도 다리도 없으니 너의
하얀 등 위에 태워 주렴."
  오리가 다가오자 헨젤은 그 위에 앉고 누이동생보고는 곁에 앉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리에게 너무 무거워. 한사람씩 건네 주어야 될 거야."
  마음씨 좋은 오리는 그렇게 해 주었고 그래서 그들은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숲은 점점 더 낯익었고 드디어 저 멀리 아버지의 집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고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아버지의 목에 매달렸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숲에
버린 이래로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동안 죽었습니다. 그레텔이 앞치마를
풀자 진주와 보석들이 방 안에 뒹굴었습니다. 헨젤도 주머니에서 보석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렇게 근심 걱정은 끝이 나고 그들은 아주 기쁘게 함께 살았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범죄 폭로 또는 파시즘 역사의 에피소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우리는 하나의 범죄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보통 이야기되는 다정한
어투와 그리고 동화의 전통이 동화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믿음이 이 동화가 한
가지의 범죄가 아니라 두 범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두 범죄 중에서 두번째 범죄는 물론 정당 방어로 용서될 수 있는 것같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가난한 나무꾼의 두 아이들은 엄마의 사주로 양친에 의하여 공동으로 굶겨 죽이려는 의도로
숲에 내버려진다. 양친의 첫번째 살인 음모는 남자 아이 헨젤의 꾀에 의해서 실패한다. 돌아갈
길을 몰래 조약돌로 표시해 놓아서 누이와 함께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살인 음모 때에는 새들이 길을 표시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빵부스러기를 먹어 버렸기 때문에 길
표지가 실패하였다. 아이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첫번째 범죄에 관한 서술은 여기까지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범죄는 전통적인 동화
이야기꾼에 의해서도 비난받고 있는데 이것은 부인의 사주 역할이 남편의 공동 책임을 명백히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보면 명백히 두 사람에 의해
공동으로 저질러진 범죄 행위가 존립하는 것이다. 단지 숲에 아이를 유기한 것이 반드시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 행위가 완전한 살인 기도로 묘사될 수 없을
뿐이다. 양친의 첫번째 살인 음모를 고발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법치 국가적
제도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는 아주 낮았던 것같이 보인다. 그것을 물론 양친에 대한 두려움이나
또 그 권위에 대한 복종심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아니면 불의에 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양친과 항상 적 아니면 친구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자신도 범죄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의 두번째 
부분이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헨젤과 그레텔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사회적 조건 속에서, 즉
궁핍에 시달리고 틀림없이 결혼 생활이 불행한 양친 밑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헨젤과 그레텔이 하는 모든 것이 정당하고 자기
비판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나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화의 두번째 부분은
조금은 더 비판적인 회의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모두 두 아이들의
보고에만 의존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물론 자신들의 행위가 유리하게 보이도록 하는 이해 관계를
가질 법한 것이다.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하고 있는가?
  "오랫동안 헤매다가 우리는 드디어 빵으로 지어진 집에 도달했는데 창은 사탕으로 되어 있었고
지붕은 과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곧바로 집을 뜯어먹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집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삭, 바삭, 바삭거리는 소리! 누가 내 집을
갉아먹느냐?' 우리는 누구 소리인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바람.
하늘에서 온 아이!'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소리를 세 번 듣고 세 번 대답했을 때에 갑자가
사악한 마귀 할멈이 집 밖으로 나와서 들어오라고 청했습니다."
  '서! 들어가면 안돼.'
하고 사람들은 이 아이들에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인이 마귀할멈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아이들은 이 물음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마귀 할멈처럼 보였어요."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또 우리는
  "그런데 마귀들이 어떻게 생긴 줄 어떻게 아니?"
하고 되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화는 아마 이쯤에서 끝날 것이다. 왜냐 하면 아무도 여태껏 마녀를 본 적도 없고 또
마녀는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살아왔던 동네의 사람들은 아마 붉은 머리를 가진
가련한 과부나 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집시들을 보고 마녀라고 하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행동하였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을 헨젤과 그레텔은 아마도 집과 마을에서 받아들였고 그래서 꼬부라지고 흉측하게
생긴 늙은 노인들을 그저 마녀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누이가 인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할머니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였고 먹고 마실 것을 주고는 포근하고 예쁜 침대로 데려다
주었다. 늙은 할머니가 마녀라고 주장하는 사실을 제외하면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대충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계속 이야기되는 부분은 비판적인 연구를 거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다.
늙은 할머니가 그레텔을 다음날 아침 일찍 깨워서 우악스럽게 집안 일을 하도록 강요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헨젤은 살찌워 가지고 잡아먹기 위해서 거위 우리에다 가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고 내용은 지극히 믿을 만하지 못하다. 오누이의 고백을 따른다 해도 노인은 아주
근시였고 힘이 없어서 강하고 재빠른 사내아이를 가둘 수 없을 뿐더러 또 왜 하필이면 훨씬 더
부드럽고 맛있는 계집아이를 안 잡아먹고 사내아이를 잡아먹으려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아이를 가두고 살찌우게 하였다는 것은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고 이
이야기는 오누이가 나중에 노인을 살해하고 약탈한 사실을 단지 가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 동기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한 달 후에 헨젤과 그레텔이 기회를 엿보아서 노인을
빵을 굽는 가마에다 밀어 넣고 태워 죽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볼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에 오누이는 집을 약탈하여 보석과 금을 가득 가지고 아버지한테 돌아온 것이다. 나쁜
엄마는 그 동안 죽어 버렸고 아버지는 아이들이 훔쳐 온 보물을 가지고 임금 노동자를 데리고
독립적인 기업을 설립하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전에는 바로 자신이 그 밑바닥에서 고통을
당했던 초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 성공적으로 끼여들게 된 것이다.
  선량한 독자들은 성난 아이들의 연대 행위를 거역이라는 무정부주의적 행동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질 것이다. 많은 동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그들이 살고 있는 경제 체제에 관한 지식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소비재와 소득 관계의 불평등한 분배(생산영역 자체에서가 아니라 분배
영역의 불균형)을 파악하고 노인에게서 약탈한 것을 정의로운 재분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의 행위의 실제적인 결과는 물론 무정부주의적 행동에서 대개 그러하듯이 그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추구하였던 것의 반대이다. 홀로 살고 있는 노인에게는 단지 쓸모 없는
보물이었을 금과 보석은 이제 아버지의 손을 통해 잘 기능 하는 자본과 생산 수단으로 변형된다.
임금 노동의 도움으로 가동된 생산 수단은 이제는 이전에 임금에 구속되어 있는(동화에서 말하고
있는 물가 등귀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무꾼의 극단적인 가난을 초래하였던 동일한 경제 체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무정부주의적 행동의 구제할 수 없는 변증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이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어차피 마귀할멈이라고 낙인이 찍힐 수 있는 노인을 기회를
이용해서 약탈하였다는 것이 훨씬 개연적이다. 아이들의 행위에 있어서 우리를 경악시키는 것은
헨젤을 훗날 잡아먹기 위해서 살찌우게 하였다는 말도 되지 않는 중상모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을 마녀라고 비방하는 것이다. 그레텔에 대한 노인의 살인 음모도 결코 믿을 만하게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인이 정말 마녀였다면 어떻게 뼈다귀하나로 꾀어내고 또 불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옛날의 청소년 범죄보다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거의 백 오십 년 동안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잘 알려진 동화 중의 하나로 문학적으로 고정되고
여태껏 거의 비판적인 시험대 위에 놓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헨젤을 가두고 그레텔을
살인하려고 하였다는 자기 보호를 위한 아이들의 주장은 명백하게 믿어졌다. 헨젤을 특히 잘
먹여서 몇 주 지나지 않자 몸무게가 부적 늘었다는 것은 아이들에 의해 설득력 있게 설명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롭게 살고 있는 노인의 좋은 마음씨를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마녀가 있고 또 마녀를 죽여도 벌받지 않는다는 대중적인 선입견이 아이들의 행동을 법률적으로
조사하고 도덕적으로 부정하는 데에 방해가 된 것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면 동화 '헨젤과
그레텔'은 명백하게 파시즘적 박해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범죄행위가 일어난 사회적 환경(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발전에 따라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빈곤화된 소시민 계급), 행위자와 양친의 심리적 구조, '우리가 살려면 아이들이 죽어야 한다'는
엄마의 사회 진화론, 그리고 그레텔이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노인을 가마 안으로 밀어 넣는
잔인함과 이방인의 강제 수용과 이를 통해 가능해진 가족구성원의 개인적인 부유함, 이 모든
것들은 더 강화된 형식으로 20세기에 다시 등장하는 특히 독일의 파시즘적 운동을 성격 지우는
특성들이다. '헨젤과 그레텔'에게 살인 강도죄를 부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있어서도 실제적인 책임은 벌써 이 당시에 아동 범죄를 만들어 낸 사회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행위를 미화하여 서술하는 것과 두 번 실패한 유아 살인 음모에 대한 아버지의 공범은
가능한 한 빨리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룸펠스틸츠헨]

  옛날에 아주 가난한 방앗간 주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아주 예뻤습니다. 어느날 그는 왕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왕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는 밀짚을 가지고 금을 짤 수가 있답니다."
  왕은 방앗간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것 아주 마음에 드는 기술이구나. 너의 딸이 말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재주가 있다면
내일 성으로 데리고 오너라. 한 번 시험해 보겠다."
  소녀 아이가 왕에게 가자 왕은 밀짚으로 가득 찬 방으로 데리고 가서 물레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일을 해 보아라. 내일 아침까지 밀짚을 금으로 짜지 못하면 너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는 왕은 방을 직접 잠갔습니다. 소녀는 방 안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가련한 방앗간집 딸은 목숨을 구하는 방법, 즉 어떻게 밀짚을 가지고 금을 짜는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점점 커져서 그녀는 마침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아주 작은 꼬마 남자가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안녕, 아가씨! 왜 그렇게 울고 있지?"
  "아, 글쎄 밀짚을 가지고 금을 짜야 하는데 나는 할 수가 없어."
  그러자 난쟁이는 말했습니다.
  "내가 네 대신에 짜 주면 무엇을 주겠니?"
  "내 목걸이를 주지."
하고 소녀는 말했습니다. 난쟁이가 목걸이를 받아 들고 물레 앞에 앉아서 덜거덩, 덜거덩,
덜거덩 세 번 뽑으니 실패가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실패를 걸고 또 덜거덩,
덜거덩, 덜거덩 세 번 뽑으니 두번째 실패도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아침까지 가자 모든
밀짚은 다 짜져서 실패는 금실로 가득했습니다. 해가 돋자 벌써 왕이 왔습니다. 금을
바라보자 놀라서 매우 기뻐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금에 대해 탐욕스러워졌습니다. 왕은
방앗간집 딸을 더 많은 밀짚으로 가득 찬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목숨이 아깝거든 하룻밤
동안에 모두 짜라고 명령했습니다. 소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문이 열리고 꼬마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네 대신에 짜 주면 무엇을 주겠니?"
  "내 반지를 주지."
하고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난쟁이는 반지를 받아 들고 물레를 덜커덩거리며 실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모든 밀짚을 반짝이는 금실로 짰습니다. 왕은 엄청난 양을
보고 기뻐했지만 아직도 금을 더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저것을 하룻밤 동안 다 짜야 한다. 이번에 성공하면 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
  '방앗간집 딸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더 부유한 여자를 발견할 수는 없을 거야.' 하고 왕은
생각했습니다. 소녀가 홀로 있자 꼬마 남자가 세번째로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네 대신에 이번에도 짜 주면 무엇을 주겠니?"
  "이제는 줄 것이 더 없어."
하고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비가 되면 내게 첫번째 아이를 주겠다고 약속하렴."
  '어떻게 되겠지.' 하고 방앗간집 아가씨는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이 곤경으로부터 달리
벗어날 도리가 없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난쟁이에게 약속하자 난쟁이는 그 대가로 밀짚을
금으로 짰습니다. 아침에 왕이 와서 원하였던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을 보고는 이 아가씨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집 딸이 왕비가 된 것입니다.
  일년이 지나자 왕비는 예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지만 꼬마 남자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난쟁이가 방 안을 들어와 말했습니다.
  "이제 약속한 것을 주시지요."
  왕비는 깜짝 놀라서 아이를 그대로 두면 왕국의 모든 재화를 다 주겠다고 난쟁이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난쟁이는 말했습니다.
  "안됩니다. 살아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보물보다 내게는 더 좋지요."
  그러자 왕비는 통탄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꼬마 인간은 동정심이 생겨나서 말했습니다.
  "사흘의 시간을 주겠소. 그때까지 내 이름을 알아내면 당신 아이를 그냥 두어도 좋소."
  왕비는 밤새도록 들었던 이름을 모두 생각해 보았고 또 심부름꾼을 보내어 있는 이름을
모두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음날 난쟁이가 오자 왕비는 이름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카스파, 메키오, 발쩌 등등 왕비가 알고 있는 모든 이름을 차례대로 다 댔지만 난쟁이는 그
때마다
  "내 이름은 그게 아니오."
하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왕비는 이웃 나라에 가서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쟁이에게 가장 비범한 진귀한 이름들을 대었습니다.
  "네 이름 혹시 리페니스트 아니야? 또는 함멜스바데, 아니면 쉬뉘어바인 아니니?"
  그러나 난쟁이는 항상
  "내 이름은 그게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심부름꾼은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더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우와 토끼가 서로 인사를 하는 아주
높은 산의 숲 가장자리에 갔을 때에 아주 조그만 집을 하나 보았습니다. 집 앞에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난쟁이가 한 발로 뛰면서 소리쳤습니다."
  "오늘은 빵을 굽고, 내일은 술을 빚네. 모레는 왕비의 아이를 데려오는데. 아, 얼마나
좋은가, 내 이름이 룸펠스틸츠헨인지 아무도 모르니!"
  이 이름을 듣고 왕비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마자
난쟁이가 들어와서 물었습니다.
  "그래, 왕비마마. 내 이름이 뭐지요?"
  왕비는 우선 물어 보았습니다.
  "네 이름 쿤츠 아니니?"
  "아니오."
  "네 이름 하인츠 아니니?"
  "아니오."
  "혹시 룸펠스틸츠헨이 네 이름 아니니?"
  "악마가 너에게 말해 주었지? 악마가 너에게 말해 주었지?"
하고 난쟁이는 소리쳤습니다. 화가 난 난쟁이는 오른발로 땅을 너무 세게 굴러 몸뚱이까지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분노를 못 이겨 두 손으로 왼발을 잡아 당겨 스스로 두 갈래로
찢어 버렸습니다.


    [룸펠스틸츠헨과 프랑크푸르트 학파]

  도대체 룸펠스틸츠헨이 데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사람들은 물어 볼 것이다. 나는 상당히 많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조금은
간단히 하기 위하여 나는 헤겔의 변증법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룸펠스틸츠헨이라는
이름이 외국인에게는 발음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상관 관계는 더 많이
있고 그것도 단지 표면적인 것이 아니다.
  동화 '룸펠스틸츠헨'은 틀림없이 중상주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에는 왕들이 금과
은을 나라 안에 남아넘치도록 많이 가지는 것에 열중하였고 또 인위적으로 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뿌렸다. 당시에 작센의 제후는 연금술사 뵈트거를 초청하여
금을 만들도록 하였으나 금 대신에 도자기를 발명하여 제후의 제조소에다 지금도 그 정치적
후손들에 의하여 이용되고 있는 수출품을 마련하였다. 이 시대에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초기의 발전 단계에 머물렀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비밀이 아직은 파악되지 않았다. 바로 이
비밀에 관하여 '룸펠스틸츠헨' 동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거드름 피우는 한 사람이 왕의 총애를 받고 싶어서 자기 딸이 밀짚을 가지고 금을 짤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곧바로 딸은 감금되어 방안에 가득한 밀짚을 금으로 만들어야 했다.
어찌할 바 모르는 차에 조그만 난쟁이가 튀어나와 아가씨 대신에 일을 해치운 것이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연금술사일까? 마술사일까? 사실은 다름 아닌 바로 자본주의 정신
또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과 스스로 증가하는 가치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물론 발전이
덜 되어서 아직은 마법적인 실체와 거의 구별이 안되는 상태이다.
  물론 밀짚을 가지고 금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단지 임금 노동의 수단을 통해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산된 상품을 적당한 시장으로 가지고 가서 돈(금)으로
바꾸는 것이다. 앞으로 벌 수 있는 이윤을 토대로 은행 신용 대출을 받거나 아니면
채무자에게 어음을 발행함으로써 이 과정을 가속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동화는 이러한
과정을 비유적으로 하룻밤의 노동으로 압축하여 잉여가치 생산이라는 경제적 기계 장치의
불투명한 성격을 암시하는 것이다.
  첫날밤의 노동의 성공은 왕의 탐욕을 오히려 더욱 부채질한다. 왕은 소녀를 다시 더 많은
밀짚이 있는 더 큰 방에다 가둔다. 조그만 난쟁이는 다시 나타나서 소녀를 도와 모든 밀짚을
금으로 짜낸다. 셋째날 밤 소녀가 더 많은 양의 밀짚 앞에 앉아 있을 때에 꼬마 사람은 다시
나타나서 자기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소녀가 앞으로 출산할 아이를 요구한다.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왕이 위협하였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소녀는 약속을 하고야 다음날 아침
다시 금으로 가득 찬 방을 보여줄 수가 있다.
  자신의 비인간적인 요구를 통해 꼬마 인간은 바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자본주의 정신의
야수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다. 당시의 아직 미성숙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임금 노동자의 착취와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비인간화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소녀의 약속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어머니의 기쁨과
같은 호의와 사랑을 포기한다. 이러한 사람은 꼬마인간과 같이 냉혹하고 무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동화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이 점을 넘어서면 낙관적인 유토피아가
시작된다. 소녀는 왕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일 년 뒤에 아이를 낳는 것이다. 어느날 밤 꼬마
난쟁이가 와서 아이를 요구한다. 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난쟁이는 사흘 내에 자기 이름을
알아맞히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승낙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유토피아적이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정신은 냉철한 계산과 형식적 등가 교환의 원칙은 결코
예외를 두지 않고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엄격한 법률 (예컨대 채권과
어음법)은 계산 가능한 사업 과정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어서 이 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단지 이름을 대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마력을 꺾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순전히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바로 '룸펠스틸츠헨'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동화 작가는
룸펠스틸츠헨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 맞추면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은 엄격한 채권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소녀는 첫번째 아기에 대한 어음을 발행하였고 난쟁이는 어음을
만기일에 제시하고는 (그것이 설사 충족될 수 없는 조건하에서라고 할지라도) 어음 인수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염탐꾼이 룸펠스틸츠헨이 자기 입으로 이름을 말하는 것을 엿듣는 우연을 통해 왕비는
룸펠스틸츠헨의 비밀을 알게 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왕비는 계약상의
의무로부터 해방되고 마치 자본주의 정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 학파의 핵심 개념이 물론
룸펠스틸츠헨은 아니고, 상품생산 경제의 마력과 상품 물신주의와 화폐의 베일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동화에서 왕비에까지 올라간 소녀가 믿고 있는 것과 같이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생산 방식의 압박으로부터 적어도 의식으로나마 (이 학파는
무엇보다 바로 이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 이름을 비판적인 의도로
말하기만 하면 족하다고 믿고 있다. 동화의 위력이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말의
위력은 아직도 살아남은 것이다.[주] 그런데 누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게 비밀을 털어
놓았는가? 바로 룸펠스틸츠헨이 털어놓은 것이다. 즉 가장 섬세하고 정기가 어린 형태인
철학, 예술, 음악과 문학을 통해 자본주의 정신을 엿듣고 대담하게 비밀을 발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폭로 행위도 당시에는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암스테르담, 1947) 안에
막스 호르크하이머로부터 유래하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이 중 한 대목은
동물들의 이성이 없는 세계에 대한 '마법을 푸는 주문'의 의미를 서술하지만 이것은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마법화된 세계에 대한 의미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오! 자신의
과거 역사를 통해 동물과 하나인 인간이 마법을 푸는 주문을 발견해서 모든 시간의 끝에
무한성의 돌과 같은 마음을 바로 이 주문을 가지고 부드럽게 하지 않는 한 이성의 결핍은
동물에게 마법을 걸어 영원히 동물의 형태로 붙들어 매었구나."



      [세번째 마당-공주들의 성적 문제]

    [개구리 왕자]

  소망이 아직도 이루어지던 아주 먼 옛날에 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딸들이 모두 예뻤는데
그 중에서도 막내딸이 가장 예뻐서 그렇게 많은 것을 보아 온 해님마저도 이 아이의 얼굴을
비칠 때마다 찬탄을 할 정도였습니다. 성 가까이에는 아주 어두컴컴한 숲이 있었고 숲 속에
있는 오래된 고목나무 밑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우면 공주는 숲 속으로
가서 서늘한 연못가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리고 심심해지면 금으로 된 공을 하늘로 던지고
다시 잡았는데 이것이 공주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공이 높이 쳐들고 있던 공주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옆의 땅에 떨어져서
바로 연못으로 굴러 들어가 버렸습니다. 공주는 눈으로 공을 쫓았지만 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연못은 아주 깊어서 바닥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울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심하게 울면서 진정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공주가 탄식하자 누군가가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니, 공주. 돌마저 연민을 느낄 정도로 울고 있지 않니."
  공주는 어디에서 소리가 들리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흉측하고 커다란
머리를 물위로 내밀고 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 너였구나. 물장난꾼."
  "진정하고 울지 말아라."
하고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내게 방법이 있지. 그런데 네 장난감을 다시 가져오면 무엇을 주겠니?"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을 줄께, 개구리야."
하고 공주는 말했습니다.
  "내 옷, 진주, 보석과 금관도 네게 주마."
  개구리는 대답했습니다.
  "네 옷, 진주, 보석, 그리고 네가 쓰고 있는 금관도 싫단다. 그런데 네가 나를 좋아하겠다면,
그래서 내가 네 놀이 친구가 되어 식탁에서 네 옆에 앉아 너의 금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너의 금잔에 담긴 것을 마시고 너의 침대에서 자게 해 준다고 약속하면 내려가서 공을
다시 가져다주마."
  "아, 그래. 내게 공을 다시 가져다준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약속할게."
하고 공주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형편없는 개구리가 뭐라고 지껄이고 있담. 물 속에 있는 제 친구들과 같이 앉아서 꽥꽥
울고 있는 주제에 어디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응낙을 받아 낸 개구리는 머리를 물 속으로 처박고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있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공을 입에 물고 있었는데 이제 공을 풀밭으로 던졌습니다. 예쁜 자기
장난감을 다시 본 공주는 너무 기뻤습니다. 공주는 공을 집어들고 재빨리 그곳을 떠났습니다.
  "기다려, 기다려."
하고 개구리는 외쳤습니다.
  "나를 데리고 가야지. 나는 너처럼 뛰어갈 수 없단 말이야."
  그렇지만 개구리가 있는 힘을 다해 목청을 높여 꽥꽥 울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공주는 듣지도 않고 집으로 와서는 다시 연못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개구리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습니다.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공주는 왕과 다른 모든 신하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자기 금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가 첨버덩 첨버덩 대리석 계단을 올라오더니 맨
위에 도달하자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공주, 막내 공주. 문열어."
  공주는 밖에 누가 와 있는가 보려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자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문을 재빨리 다시 닫고 다시 식탁에 와서
앉았습니다. 공주는 몹시  무서워졌습니다. 공주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본  왕이 말했습니
다.
  "내 딸아, 무엇이 그렇게 무섭니? 너를 데리러 거인이라도 문 앞에 와 있단 말이냐?"
  "아, 아니에요. 거인이 아니라 더러운 개구리 한 마리예요."
  "개구리가 너한테 무엇을 원한단 말이냐?"
  "아, 아버지. 어제 숲에 있는 연못가에 앉아 놀다가 금으로 된 공을 떨어뜨렸어요. 울고
있으니까 개구리가 공을 다시 가져다주었어요. 그런데 개구리가 원해서 개구리에게 나의
친구가 되어도 좋다고 약속했어요. 개구리가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개구리가 밖으로 나와 나한테 오려고 그러는 것이에요."
  그때 마침 개구리가 두번째로 문을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공주야, 막내 공주야. 문열어라. 어제 차가운 연못 물가에서 내게 말한 것을 잊었니?
공주야, 막내 공주야, 문열어라."
  그러자 왕은 말했습니다.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단다. 가서 문을 열어 주거라."
  공주가 가서 문을 열자 개구리는 펄쩍 뛰어 들어왔습니다. 개구리는 점점 더 공주의 발
가까이 와서 공주가 앉아 있는 의자까지 왔습니다. 그리고는 앉아서 말했습니다
  "나를 네 곁으로 들어 다오."
  공주는 왕이 명령할 때까지 머뭇거렸습니다. 개구리는 앉아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내 쪽으로 네가 가지고 있는 금으로 된 접시를 밀어 다오."
  공주는 물론 개구리가 원하는 대로 하였지만 기꺼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역력했습니다. 개구리는 아주 맛있게 먹었지만 공주는 먹는 것마다 목에 걸렸습니다. 드디어
개구리는 말했습니다.
  "아주 배부르게 먹었더니 피곤하군. 나를 너의 방으로 데리고 가 주렴. 너의 비단 이불을
덮고 우리 함께 자자꾸나."
  공주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개구리가 겁이 나서 감히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개구리가 이제 공주의 깨끗한 침대에서 잠을 자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왕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네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에 너를 도와준 은인을 경멸해서는 안된다."
  그러자 공주는 두 손가락으로 개구리를 들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서 구석에다 놓았습니다.
공주가 침대에 눕자 개구리가 기어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몹시 피곤해서 너와 같이 자고 싶다. 그러니 나를 네 침대 위로 들어 주렴. 그렇지
않으면 네 아버지에게 말할 테다".
  그러자 공주는 몹시 화가 나서 개구리를 집어서는 온 힘을 다해 벽에다 내동댕이쳤습니다.
  "이제 조용히 하겠지, 더러운 개구리 녀석아."
  그런데 떨어진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아주 아름답고 친절한 눈을 가진 왕자였습니다. 이
왕자는 왕의 의사에 따라 공주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공주에게 아주 나쁜
마녀에 의해 저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주가 아니면 아무도 자기를
연못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공주와 왕자는 내일 같이 왕자의
왕국으로 가기로 하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해님에 의해 잠이 깨자 여덟 마리의
백마가 끄는 마차 한대가 달려왔는데 말들의 머리는 흰 깃털로 장식이 되어 있고 금사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차 뒤에는 젊은 왕의 하인이 서 있었는데 그는 충복
하인리히였습니다. 충복 하인리히는 자기 주인이 개구리로 변할 때에 너무 슬퍼서 자신의
가슴이 슬픔과 비통 때문에 터지지 않도록 가슴을 세 개의 쇠사슬로 묶도록 하였습니다.
마차는 젊은 왕을 왕국으로 데리고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충복 하인리히는 왕자와 공주를
모셔다 마차에 태우고 다시 뒤에 서서는 왕자가 왕자가 구원된 것에 대해 아주 기뻐했습니다.
얼마쯤 길을 갔을 때에 왕자는 뒤에서 무엇인가 부서지는 듯이 우지끈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왕자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
  "하인리히, 마차가 부서진다."
  "아닙니다, 왕자님. 마차가 아닙니다. 왕자님이 연못에 있을 때에, 왕자님이 개구리였을
때에 커다란 고통 속에 잠겨 있던 제 가슴을 죄던 쇠사슬입니다."
  다시 한 번, 그리고 또다시 한 번 길가는 도중에 우지끈 소리가 났습니다. 그때마다 왕자는
마차가 부서진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주인이 이제 구원되어 행복하였기 때문에 충복
하인리히의 가슴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쇠사슬 소리였습니다.


    [개구리 왕자: 소아적 나르시시즘의 극복]

  그림 형제는 자기들이 수집한 동화의 제 2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적당하지 않은 표현은 이 판에서 신중하게 삭제하였다"(1819년 7월 2일) 이
언급은 '개구리 왕자'와 같은 동화를 학문적인 목적으로 혼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동화는 해님마저 얼굴을 비칠 때마다 찬탄을 금치 못하는 공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공주는 아버지의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두컴컴한 숲 속에 있는 연못가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혼자 금으로 된 공을 가지고 놀고는 하였다는 것이다. 동화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과 같이 결혼할 나이에 있는 젊은 여자가 혼자서 공놀이를 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열 일곱 또는 열 여덟 먹은 처녀가 유독 공놀이를 하면서(그것도 대단히
다루기 어려운 공을 가지고) 심심풀이를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자폐증적 나르시시즘이라고
진단할 것이다. 그리고 공주가 홀로 하는 공놀이는 성애에 관련된 것이라는 추측도 거의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꿈에서와 같이 동화에서도 진술은 자주 은폐되어 있다. 게다가 이미
언급된 그림 형제의 문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도록 하는 축소화 원칙은 흔히 그러하듯이
흔적을 지워 버렸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금으로 된 공'은 해독을 필요로 하는
동화의 암호이다.
  내가 여태까지 접해 본 것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헤센주의 방언과 예전의
독일의 귀족들이 하던 성애의 행동 유형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유래하는데
적어도 그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금으로
된 공(ball)'은 사실은 금으로 된 음경(phallus)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주 자신과 헤센주의
동화 이야기꾼은 당연히 그림 동화는 몰랐을 터이고 따라서 틀림없이 금으로 된
공(ballus)으로 발음했을 것이다. '금공'은 이러한 맥락에서 물론 재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애의 장난감에 대한 공주의 애착 관계를 서술하는 것일 뿐이다.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여기에서도 원래의 의미는 점차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면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때문에 일부러 은폐시킨 것이다.
  공주의 나르시스적으로 제한된 본능의 발전을 극복하는 극적인 과정은 놀다가 연못 속에
떨어뜨리는 금으로 된 공의 상실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상실은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여자
교육자의 섹스 금기를 초자아로 내면화하고 그래서 몰래 하는 놀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공주의 무의식적인 자기 징벌의 의도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설명은 동화의
전개 과정에서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아버지의 성교육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주는 일상생활에서 받은 여자 가정교사와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그들의 억압적인 성도덕을 내면화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억압적인 성도덕은
자기징벌 의도뿐만 아니라 아주 형상적으로 묘사된 '차갑고 벌거벗은 개구리'에 대한
접촉공포를 설명해 준다. 이 접촉공포가 심리적인 장치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물론이다.
  공주의 본능의 발전에 있어서 운명적인 전환은 금으로 된 공을 되찾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공을 되찾은 쾌락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처음으로 공주의 자폐증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깨어지게 된 것이다. 단순하고 불완전한 의복 때문에 공주의 눈에는 벌거벗은
것으로 보이는 서민계층의 한 청년을 공주는 경멸적으로 개구리라고 칭하고 있다. 없어서는
안될 장난감을 연못으로부터 끄집어내도록 도와준 대가로 젊은이는 아주 명백하게 공주의
반려자와 놀이동무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나르시스적으로 승화된 신분의 어둠 때문에
공주는 그러한 희망을 전혀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희망을 들어주겠다고 가볍게
약속한다. 그리고 공주는 '물 속에서 같은 종류의 친구들과 앉아 꽥꽥거리며 울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공주의 눈에는 신분의 차이가 감사의 표시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보호의 울타리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성교육의 영역에 있어서 자유주의적인 입장으로 딸을
키우는 공주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도록 딸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인 명령으로
아버지는 딸의 성적 행위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왕은 그에게도 아직
존재하고 있는(농부 또는 어부에 대한) 편견을 뛰어 넘는데, 그것은 왕이 이를 통해 자기
딸을 자폐증적이고 나르시스적인 편집으로부터 이성간의 상호 주관성으로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의 접촉공포는 동화에서 아주 형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공주는 울기 시작했으며 이제 공주의 예쁜 침대에서 같이 자려고 하는 개구리가 겁
나서 감히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되돌려 받은 딸의 장난감의 성격뿐만
아니라 공주의 접촉공포증의 무의식적 동기를 잘 알고 있는 왕은 딸이 약속을 지킬 것을
고집한다. '네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에 도와준 사람을 후에 경멸해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명심시키는 것이다.
  결국 공주는 축축하고 차가운 친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개구리가 다시 한번 왕에게 고해 바친다고 협박해서야 비로소 공주는 개구리를 집어 가지고
침대로 데리고 가는 것을 가까스로 응낙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동화의 텍스트는 다시 한번
은폐되고 위조되었다. 동화에서는 공주가 개구리를 온 힘을 다해 벽으로 내동댕이쳤고,
그리고 나서 갑자기 개구리가 친절한 눈을 가진 왕자로 변신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마술과
탈마법화는 해석되어야 하고 또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처녀가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청년을 건드리는 순간에 세계와 자기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경험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더럽고 축축한 친구가 이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애인이
된 것이다. '벽에다 내동댕이치다'라는 표현은 개구리에 대한 혐오감과 반감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서술한 것이다. 변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루하루 일어나는 변화
과정을 동화의 언어로 묘사한다. 이와 같은 사랑의 과정에서 반감과 증오가 사랑으로의
급전이 마치 한 점에 압축된 것과 같이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공주는
본래 첫번째 만났을 때부터 무척 강한 성적인 매력을 느꼈으나 이 느낌만큼 격렬하게
배척하였는데 아버지의 명령을 도움으로 이성의 매력이 교육받은 섹스 금기와 고착된
나르시스적인 태도를 이기는 상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동화의 진보적인 정치적 내용은 성해방적인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민계급
출신의 청년이 친절한 눈빛을 가진 왕자로 변신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자연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은폐된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그 전에 공주에
의해 아직도 강렬하게 느껴진 신분의 차이(물 속에서 자기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과 같이 앉아
꽥꽥거리는 개구리)가 갑자기 명백한 환상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친절한 눈빛에서
공주는 동등한 시민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발전된 그리고 이성간의 사랑을 느낀
성인들의 동반자의 관계에서는 신분의 차이가 마치 마법과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동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자연법적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
  다른 경우와 같이 그림 형제에 의한 편집은 동화가 가지고 있는 해방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의미를 은폐하였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불행한 공주는 첫번째 이성 경험을 통해
자폐증으로부터 해방되지만 이제 동화에서 개구리를 겁내고 단지 진짜 왕자하고만 잠자리를
같이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여자로 표현되는 것이다. 동화의 본래 주인공은 그림형제의
판에서도 자유주의적인 왕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후기 자본주의적인 영주 푼틸라와는
반대로 왕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딸을 신분에 맞게 결혼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딸의 성적인 만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림 형제의 동화에 있어서 이와 같은 바람직한 태도는 왕이 서민적인 개구리가
진짜 왕자로 변신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고 그래서 약속을 지킬 것을 고집하였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감소되는 것이다. 왕의 진보적인 성교육학이 우악스러운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에 앞에서 실행한 우리의 학문적인 동화 혼란은
자유주의적인 왕의 명예 회복에 기여한다.


    [잠자는 공주]

  먼 옛날에 왕과 왕비가 있었는데 매일
  "야! 우리도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항상 말했지만 아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왕비가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물에서 뭍으로 나와 왕비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소망은 성취될 것입니다. 일 년이 가기 전에 당신은 딸을 낳을 것입니다."
  개구리가 말한 것이 이루어져서 왕비는 딸을 낳았습니다. 딸은 정말 예뻤습니다. 왕은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친척과 친구와 친지뿐만 아니라 아이가
잘되고 또 아이를 좋아하도록 여자 점장이들도 초청하였습니다. 나라 안에는 점장이가 모두
열 세 명 있었는데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금접시가 단지 열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은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잔치는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잔치가 끝나자
점장이들은 아이에게 비범한 힘을 선사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덕성을, 다른 사람은
아름다움을, 세번째 사람은 재화를,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세상에서 바랄 만한 것을
선물하였습니다. 열한번째 사람이 소망을 말하자 열세번째 사람이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것을 앙갚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한테도 인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그 여인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공주는 열 다섯 살 되는 해에 물레가락에 찔려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한 마디의 말도 더 하지 않고 뒤돌아 서서 방을 떠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까무러치게 놀라 있을 때에 축복의 주문을 하지 않은 열두번째 사람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점장이도 나쁜 주문을 거둘 수는 없고 단지 약화시킬 수만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주가 떨어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백 년 동안의 깊은 잠일 것이다."
  귀여운 아이의 불행을 막기 위하여 왕은 나라 안의 모든 물레가락을 태우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녀에게는 점장이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소녀는 정말
아름잡고, 단정하고, 친절하며, 사리가 밝아서 보는 사람은 모두 좋아하였습니다. 공주가
열 다섯 살이 되는 날 마침 왕과 왕비는 성에 없고 공주만이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기분 내키는 대로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방을 둘러보았는데 드디어 성탑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자물쇠에는 녹이 슨 열쇠가 꽂혀 있었는데 공주가 이것을 돌리자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조그만 방 안에는 늙은 부인이 물레 앞에 앉아서 아마를 열심히 짜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고 공주는 말했습니다.
  "무얼 하는 거지요?"
  "실을 짠단다."
하고 말하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저기 재미있게 흔들리는 물건은 무엇이지요?"
하고 공주는 말하고 물레가락을 잡아 자기도 실을 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레가락에
손을 대자마자 마법의 주문은 들어맞았습니다 공주는 손가락이 찔린 것입니다.
  공주는 찔리는 것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바로 옆에 있던 침대 위로 쓰러져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잠은 성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막 집으로 돌아와서 방안으로
들어오던 왕과 왕비는 잠이 들기 시작하였고 궁중에 있는 모든 신하들도 따라서 잠이
들었습니다. 지글지글 끓던 불고기도 멈추어 버리고 무엇인가를 잘못한 주방 일꾼의 머리털을
잡아당기려고 하던 주방장도 손을 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람도 자서 성 앞에 있는
나무에서는 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 주위에는 가시나무 숲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더 높이 자라서 지붕 위의
깃발마저도 안보일 정도로 성을 둘러싸고 덮어 버려서 성 주위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부터 나라에는 잠자는 아름다운 가시나무 장미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공주는 바로 가시나무 장미로 불렸던 것입니다. 이 전설을 듣고 때때로 왕자들이
와서 가시 덤불을 헤치고 성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들이 마치 손을 가지고 있는 듯이 그들을 꼭 잡았기 때문에 청년들은 그
곳에 걸려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몇 해가 흘러간 후에 한 왕자가 이 나라에 들렀다가 한 노인이 가시나무 숲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숲 안에는 성이 하나 있는데 가시나무 장미라고 불리는 아주
예쁜 공주가 벌써 백 년 동안 잠을 자고 있고 공주와 함께 왕과 왕비, 그리고 모든 신하들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왕자들이 와서 가시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그곳에 걸려서 가련하게 죽었다는 것을 노인도 자기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들어가서 아름다운 가시나무 장미를 보겠습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는 말리려고 하였으나 젊은이는 노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백년이 흘러서 가시나무 장미가 깨어날 날이 온 것이었습니다. 왕자가
가시나무 숲에 가까이 가자 숲은 온통 크고 예쁜 꽃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숲은 저절로 열려서
왕자를 다치지 않고 지나가도록 하고는 다시 닫혀서 울타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는
궁궐의 뜰에서 말들과 얼룩이 있는 사냥개가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들이 머리를 깃털 안에 숨기고 앉아 있었습니다. 왕자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벽에 붙어 있는 파리들이 잠자고 있었습니다 부엌에는 주방장이 지금에라도 주방
일꾼을 잡으려는 듯이 손을 들고 있었고 하녀는 날개 털이 반쯤 뜯겨진 검정 닭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왕자가 더 걸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는 신하들이 누워서 잠을 자고 왕과
왕비는 옥좌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자는 계속 걸어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조용했습니다.
  드디어 탑으로 와서 가시나무 장미가 잠자고 있는 조그만 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공주가 누워 있는데 정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왕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공주에게 입맞추었습니다. 왕자가 공주에게 입을 맞추자마자 가시나무 장미는 눈을 뜨고
왕자를 아주 친숙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같이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왕과
왕비도 깨어나고 신하들도 깨어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마구간에 매어
있던 말도 일어나서 몸을 흔들었고 개들도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지붕 위의
비둘기는 깃털 속에 묻었던 머리를 빼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들로 날아갔습니다. 벽에 있는
파리들은 계속 기어다녔고 부엌의 불은 다시 살아나서 반짝반짝하면서 음식을 끓였습니다.
불고기는 다시 지글지글거렸습니다. 주방장이 따귀를 갈겨서 일꾼은 소리를 질렀고 하녀는
닭의 털을 마저 뜯었습니다. 그리고는 왕자와 공주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죽을 때까지
만족하게 살았습니다.


    [잠자는 공주 - 처녀성 상실에 대한 공포의 극복]

  '잠자는 공주'를 우리는 하나의 꿈과 같이 해독하여야 한다. 근대에 들어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의학자 중의 하나인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만들어 낸 꿈 해석의 열쇠는 이 동화에서도
숨겨진 의미를 열어 준다. 매혹적일 정도로 타의적인 동화의 중간 채색은 학문의 명확한 빛을
회피하는 것이다. 동화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서민들의 정신이 오히려 동화의 비밀을 밝혀
준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물론 청교도적인 동화 수집가들에 의해서 강화된 꿈의 통제와
동화의 검열은 지양되어야 하고 또 억압된 대목들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작해
보기로 한다.
  한 왕 부부가 아이를 갈망하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왕비는 목욕하다가 개구리를 만나는데
(여기에서 동화 개구리 왕자와의 연관관계가 암시되고 있다.) 개구리는 일 년이 다 가기 전에
딸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여기에서 개구리 자신이 공주의 생부인지(물론 법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아니면 성적인 유희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경직된 왕비를 해방시켜서 왕비가
이어 자기 남편의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젊은 남자인지 하는 문제는 보류하기로
한다. 어찌되었든간에 아주 명백한 사실은 왕비의 불임증이 개구리, 즉 서민 계층의
청년과의 만남을 통해서 극복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화의 머리 부분에서 지나가는
듯이 언급된 이야기는 동화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일화는
왕비에게(그리고 정신적인 감염을 통해 왕에게도 아마) 죄책감을 남겼고 이 콤플렉스는
자라나는 딸의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성교육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자리 또는 그릇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초대받지 못한 나쁜 점장이가 아이에게 요절을
주문하고, 좋은 점장이가 죽음 대신에 백 년 동안의 잠을 소망하였다는 세례 축하의 향연에
관한 이야기는 양친이 가지고 있는 성행위에 대한 억압적인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꾸며진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본으로 환원시킬 필요가 있다. 원본에는 사악한 요정이 아이가 열 다섯 살
먹었을 때
죽을 것을 소망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이가 나이보다 빨리 임신할 것을 소망하였다.
요정은 다시 말해 공주에게 혼외 임신을 바란 것이다.
  외도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비로소 아이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포가
오랫동안 심리적으로 임신할 수 없었던 왕비를 생생하게 따라다녔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악한 요정의 소망은 자신의 운명이 곧 아이에게서 반복될 것에 대한
엄마가 가지고 있는 공포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선량한 요정이 불행을 막기 위해 희망한
백 년 동안의 잠은 다름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처녀성을 보전하였으면 하는 엄마의
희망에 대한 표현의 강조인 것이다.
  이 외에도 동화는 프로이드적 해석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열쇠들을 더 가지고 있다.
공주가 죽는 방식으로 사악한 요정은 물레가락에 찔리는 것을 말하였다. 중세를 거쳐서
그리고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긴긴 겨울밤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실을 잣던 공공의 방이 자주
성애를 즐기던 장소로 이용되었고 그리고 이 성애가 심심치 않게 임신까지 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처녀들이 실을 잣는 동안에 총각들은 노래를 부르고 애무를 하여
처녀들의 기분을 돋구곤 하였다. 송진과 초를 이용한 희미한 불빛과 벌써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잠자러 갔다는 상황은 어차피 별로 없었던 성 억압이 완전히 풀어지는데 기여하였다. 따라서
사악한 요정이 죽음의(우리의 해석에 따라 더 정확하게는 임신의) 동기가 될 물레가락을
언급하는 것은 당시의 물레 잣던 방의 공공연한 용도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레가락은 동시에 음경의 상징으로 그리고 찔리는 것은 처녀성의 상실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주]
  이와 같은 설명을 토대로 해서야 비로소 왜 왕이 왕국에 있는 모든 물레를 태우라고
명령을 내리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명령을 통해서 물레 잣던 방의 관습과 이
방이 가지고 있던 부수 기능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혹자는 물론 과연 그렇게 단호한
경제정책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는가 하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물레의
경제적인 효용이 벌써 문제점을 노출하였을 것이고 또는 왕이 영국의 보조금을 받고 당시
영국의 섬유 수출 산업에 있어서 아주 유익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정신분석학적 설명 방법과 사적 유뮬론적인 설명 방법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동화의 생성 연대를 정확히 산출할 수 있다. 동화는
1762년 (John Wyatt의 방적기계의 발명) 또는 1767년 (Hargreave의 방적 기계 '제니' 발명)과
나폴레옹에 의한 대륙 봉쇄(1806년) 사이에 생성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림 형제 동화의 몇 군데에서는 원본의 텍스트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야 그 진정한 의미가 인식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손이 찔리는 순간에 공주는 침대 위로 쓰러져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홀로 물레에 앉아 있는 외딴 성탑에 침대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이상한 것이다. 그 대신에 이 침대는 열 다섯 살 먹은 공주가 몰래 즐기는 성애를
위해 있고 부모가 외출하고 없을 때에 거기에서 애인과 만나기로 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있을 때에는 성 안을 돌아다녀서는 안되는 공주가
갑자가 생겨난 호기심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호기심도 야단치고 동시에 지성의 발전을
억압하는)성억압적인 교육에 대한 반항의 형식으로 이해가 가는 것이다.
  백 년 동안의 잠은 딸이 처녀로 남기를 바라고 또 열 다섯 살의 나이로 항상 젊게
보이기를 원하는 부모들의 희망에 대한 과장이다. 이로써 상류 계급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양립할 수 없는 규범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젊고 싱싱한 아름다움과 결혼할 때까지의
형식적인 처녀성이 그것이다. 백 열 여덟 살 먹은 신부는 분명히 정상적인 왕자가 바라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신부가 열 다섯 살 먹은 처녀와 같이 보인다면 물론 문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동화의 마지막 장은 한 번의 입맞춤으로 가시나무 장미를 잠에서 깨우고 동시에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과 물질과 요소들(예:불)까지도 재생시키는 젊은 왕자의 구원 행위이다. 물론
동화의 의미 있는 구성에 있어서 성공적인 구원행위와 백 년 동안의 잠이 끝나는 날과
일치하기 때문에 기적은 근본적으로 현대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이성간의 성교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중요한 정확한 시간 감각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입맞춤은 이야기의 실제적인
내용으로서 처녀성 상실에 대한 공포증의 극복이다. 공주는 혼전의 임신에 대한 부모의
신경질적인 불안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이와 같은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백 년 동안
연장된 처녀성은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부모들을 만족시켜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섹스
금기의 즉각적인 폐지를 초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적 금기의 지양을 통해 마법에 걸린 성에- 생명이 비로소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과 삶은 헤시오드, 엠페도클레스와 단테에 의하면 에로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에로스 없이는 생물학적인 생명이 없고 비유기체적인 생명(불)도 동화에서는 명백하게
에로스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귀를 갈기는 주방장으로 상징된 남성적인 호전성의
발동마저도 왕자의 에로스적인 구원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물론 섹스와 남성적인 호전성과의
이와 같은 연결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것은 당시의 시민적인 전통에 부합하는
것이다. 오랫동안의 잠과 지연된 재생의 경제 정책적인 결과와 영향에 관해서는 동화가 말을
해주고 있지 않다. 인구 정책상의 이유로 인해서 왕이 물레를 잣는 방을 부활시키는 것을
희망하던가. 아니면 나폴레옹이 설정하였던 영국 수출에 대한 대륙 봉쇄가 다시 자국의 섬유
생산을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딸의 신분에 맞는 행복한
결혼으로 인해 왕비의 심리적인 콤플렉스가 변형되어 종교적인 노이로제로 끝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모든 것을 카톨릭화 하는 낭만주의 시대였다. 그러나 동화의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일상생활에서와는 반대로 상징적인 처녀성 상실로 시작하여 왕자의
입맞춤으로 끝나게 함으로써 동화의 시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차원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주] 물레가락에 관한 이와 같은 해석은 물레가락의 생긴 모습 때문에도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주가 물레가락에 대해 "저렇게 재미있게 흔들거리는 물건이 무엇이지요?" 하고
묻는 말에서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남자의 성기는 민중의 말로는
'물건' 또는 '내 물건'이라고 표현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현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성적인 성격에  대한 소외된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물화의 문제에 관해서는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이라는 저서 중에서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이라는 장을
참조할 것).


      [지은이의 덧붙임말]

  동화 혼란이 출판된지 일년이 지나고 나서 그 영향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였던 것이 사실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동료들과 젊은 독자들은
내가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많은 유머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이해심이 없는
반론과 아주 진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화를 가지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라는 흔히 내게 던져진 물음에 우선 내 자신과
독자들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경직된 태도를
해방하고, 방법을 가지고 놀이를 하고, 독창성을 계발하고, 단순 인과적인 해석의 틀을
상대화하는 것이다. 특히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막스 뤼티와 같은 진짜 동화 연구가가 나를
이해하였다는 점이다. 내가 하고자 하였던 것은 결코 옛 동화의 파괴가 아니다. 반대로 나는
예전의 동화가 보다 날카로운 해석과 혼란에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화의
다의성(다양한 혼란 가능성은 바로 동화의 힘이다. 로버트 민더(Robert Minder)가 이 동화
혼란 놀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익살, 진지함, 풍자, 그리고 심오한 의미는 바로 동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몇 개의 동화 텍스트를 통해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상투적인 틀에
박힌 동화의 의미는 동화를 다시 의미 있게 회춘시키는 혼란작업을 자극시켰다.
  가장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어린이들과 초등학생들이 스스로 동화를 혼란시키는 작업을
하였고 또 몇몇 동료들도 공휴일에 이와 같은 취미활동을 하는 것을 자신들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브라운슈바이크에 있는 열 한 살 짜리들의 한
학급은 '늑대와 일곱 마리의 산양'. '산양과 일곱 마리의 늑대'의 끝부분을 상상해서 덧붙이는
작업을 하였다. 여선생은 아마도 늑대와 양 사이의 싸움이 끝나고 화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을 하였던 것 같지만 아이들은 아주 독창적인 대안을 발전시켰다. 그 중
간단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빠 늑대가 죽었다는 것을 안 엄마 늑대는 새로운 늑대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두
엄마는 그들의 일곱 아이들을 우연히 똑같은 유치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서로 재잘거리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없는 화해에 순응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해
대신에 복수를 설정하였다.

  "아빠 늑대가 동굴로 돌아오지 않자 모두 매우 침울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사실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새끼 늑대들은 점점 자라서 자기 아버지와 같이 꾀가 많고 건장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힘이 센 막내 늑대는 아빠를 몹시 사랑하였기 때문에 양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항상 한 마리의 새끼양이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항상 엄마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구실을 대어 새끼양을 엄마 양으로부터
떼어 낼 수 있는 한가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새끼양이 없는 동안에 엄마양을 습격하고
사라지면 되는 거야. 말을 했으면 실행에 옮겨야지.' 늑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늑대가
양 우리에 도달하자 목소리를 꾸며서 말했습니다. '친구야, 문 열어! 네 형제들이 늑대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데 네가 도와주어야겠다. 나는 먼저 갈게. 다른 사람한테도 도움을
청해야겠어." 그러나 사실 늑대는 우리 문 뒤에 서서 양이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양이
뛰어가자 늑대는 엄마양을 기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복수 행위에 만족해서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늑대는 아빠의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늑대와 양은 오늘날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복수를 복수에 이어지는 화해와 연결시켰는데 대개는 늙은 양이 죽고
엄마늑대가 고아가 된 새끼양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동화 이야기꾼은 엄마
양이 늑대 부인에게 고인이 된 남편 양이 익사하였다고 이야기한다는 착상을 하였다. 그래서
두 미망인은 똑같은 슬픔을 느끼고 서로 도와 간다는 것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늑대와 산양 사이의 잠재적인 호전성을 스포츠 경기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착상은 거의 콘라드 로렌츠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아빠 늑대가 익사하고 난 다음에 늑대와 산양은 우물가로 가는 길에 서로 만났습니다.
그러자 산양은 증오에 가득 차서 말했습니다. "나는 5미터나 높이 뛸 수 있다. 너는 그럴 수
없지?" "믿을 수 없어."하고 늑대는 대답했습니다. "네가 5미터를 뛰면 나는 10미터를 뛸 수
있어." 그러자 산양은 웃었습니다. "네가 5미터를 뛸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면 내가
오늘 오후에 풀밭에서 보여주마." 그렇게 늑대와 산양은 헤어졌습니다. 오후에 둘은
만났습니다. 늑대가 말했습니다. "어디 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여줄래?" 그러자 산양은
스타트를 하더니 뛰었습니다. 그러나 2미터도 못 뛰었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웃고 역시
뛰었습니다. 늑대는 조금 더 높이 뛰었으나 10미터는 훨씬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둘은 모두
웃고는 서로 화해를 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늑대와 양은 서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두 경쟁자가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환상을 수치스럽게 웃음으로써 해결하는 것은 물론
경기를 통해 호전성을 가라앉히는 것보다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아이들이 증오와 호전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실력 경쟁과 연결시키는 것이 또한 재미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호전성의 문제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동화는 이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호전성을 표현하도록 허락한다. 왜냐 하면 동화는 관습적인 도덕이 지배하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전성이 늙은 산양에게 집중되고 아이들이 자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새끼양이 호전성의 대상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은 확실히 우연이 아니다. 이와 같은 성격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엄마 늑대는 다시 복수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늑대는 상점에 가서 염산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염산을 가지고 늑대는 양의 집으로 몰래 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염산을 우물에
쏟아 붓고는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곧 양은 물을 길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양은 바로 한 모금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양이 한 모금 마시자 그 자리에서 죽어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늑대가
숲에서 나왔습니다. 늑대는 어린 양들을 자기 자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는 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1973년에 상을 탄 비버라커 학교의 아이들의 동화 중에서 단지 하나만이 기대치 않게
호전성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빨간 모자 소녀'의 현대판 동화이다.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아홉 살 먹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애는 항상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빨간 모자 아가씨라고 불렀습니다. 어느날 엄마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시장에 가야 하니 너는 할머니한테 가거라." 그러나 빨간 모자 아가씨는 할머니
댁에 기꺼이 가지 않았습니다. 첫번째는 재미가 없었고 두번째로는 할머니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분명히 할머니 집에 갈 것이니까 택시를 부르마." 하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대답하였습니다. "아이, 또 거기 가요? 나는 할머니한테 가기 싫어요."
그 때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늑대와 일주일 전에 할머니를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할 것을 약속하였던 것입니다. 예, 바로 그것이 음모였습니다. 그들은
할머니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그래서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밀이었기 때문에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벌써 택시는 문 앞에서 빵빵거렸습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뛰어나가 택시에 탔습니다. "커다란 참나무 밑으로 가 주세요." 하고 택시
운전사에게 말했습니다. 도착해서 빨간 모자 아가씨는 요금을 지불하고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결정을 하고 빨간 모자 아가씨는 늑대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늑대는 금방 나왔습니다.
그러나 덤불 뒤에서 빨간 모자 아가씨의 친구 하나가 엿듣고 있었습니다 늑대와 빨간 모자
아가씨는 다시 한 번 계획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의논하였습니다. 따라서 친구는 음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논하고 난 다음에 그들은 떠났습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의
친구는 뒤를 쫓아갔습니다. 저기 벌써 할머니의 집이 보였습니다. 늑대가 반만 닫았던 문을
조용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치채지 못하게 친구도 기어들어 갔습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실 옷장 뒤에
숨었습니다. 이제 대단한 순간이 드디어 온 것입니다. 늑대는 할머니에게 달려들어 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친구는 자기 아버지를 불러왔습니다. 그는 근처 어디에선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의사였습니다. 그는 늑대의 배를 가르고는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늑대가 건강해지자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질서는 있어야
되는 것이니까요. 늑대와 빨간 모자 아가씨는 살인 미수로 고발되었습니다. 판결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사흘 동안의 감금과 매달 5마르크의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둘은 평생 동안 지불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보상으로 점보 제트여객기를
타고 하와이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두 범인에 관해서는 죽지 않았다면 아직도 대가를
치르고 있을 것입니다."

  이 텍스트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외부의 영향이 많이 들어 있다. 텔레비전의 수사극이
표현 방식과 구성에 영향을 끼쳤지만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호전성은 경험에 의거한 것일
수도 있다. 현대화되었다는 점은 부모와 조부모에 대해 아이가 거리를 두고 있다는
데에서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해방자로서 수의사를 계몽주의의 입장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살인 기도에 대한 낮은 형량이다. 가장 대담한 전향은
할머니와 손녀가 공동의 희생이었던 것이 이제는 할머니에 대해 늑대와 빨간 모자 아가씨가
공동으로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다.
  다른 동화 이야기꾼은 빨간 모자 아가씨로 하여금 재봉틀의 부속품을 가지고 오도록 하고
위험한 늑대를 병든 사냥개로 변형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보다 유익한 것은 열두 살
먹은 아이에 의한 '잠자는 공주'의 변형이다. 여기에서는 왕 대신 사업가가 등장하고 요정
대신에 클럽의 동료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젊었을 때에 사업가의 부인에게 구혼을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이 부인은 그 동안에 죽었지만 그 딸인 가시나무 장미는 너무 엄마를
빼 닮았다. 이렇게 사건은 전개된다.

  "의사(열세번째)는 소녀가 엄마를 꼭 닮은 것을 보고 결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겔리카는 가난한 청년 토마스와 약혼하였기 때문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이
청년을 사위로 맞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분노를 못 이겨 쓰러졌습니다. 그리고는 이
때부터 소녀를 손에 넣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 배에 태워 가지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의사는 산 위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다 안겔리카를 가두고 자기의
충실한 하녀로 하여금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소녀가 정신이 들어서 질문을 하거나 또는
도망가려고 하면 그 때마다 또 주사를 주었습니다. 교활한 의사가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와 경찰이 한 모든 탐문은 헛되었습니다. 토마스도 안겔리카를 찾았습니다.
그는 우선 사업가의 가장 친한 친구들로부터 수소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도 물론
토마스에 의해 감시를 당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이전에는 의사가 가끔 산으로 갔었는데
이제는 점점 자주 산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미행하자 의사는 교묘하게
따돌렸습니다. 토마스는 이제 의사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헬리콥터를 빌려서 산을 구석구석 안겔리카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습니다. 어느날
토마스는 덤불 숲에서 새어나오는 아주 작은 연기를 발견하였습니다. 화가 난 토마스는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주먹으로 범인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의사를 끈으로 묶어 가지고
헬리콥터로 질질 끌고 갔습니다. 안겔리카는 충격으로부터 회복되자 자기의 구원자인
토마스와 결혼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명백하게 발견된다. 역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것은
의사이다. 마법의 힘을 가진 요정이 이러한 방식으로 탈마법화된 것이 바로 의사인 것이다.
범죄적인 행위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관습적인 사교 집단의 표면성은 사악한 요정의 증오를
발동시킨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화를 현대화하는 작업에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쉽게
추리소설이 떠오른다면 TV시대에 있어서 추리소설은 이제 동화의 역할을 넘겨받았다는 데
기인할 것이다 추리소설에서도 대개 선과 권력과 간계는 고전적인 동화에서와 거의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어찌되었든 탐정소설과 같은 것이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다. 세상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밖에 없는 작고 약한 사설 탐정이 전지전능한(그러나 부패한
아니면 단지 무능한) 경찰뿐만 아니라 큰 범죄 집단을 이긴다는 것으로 에른스트 블로흐는
탐정소설을 성격 지우고 있다. 사설탐정은 현대판 게오르그이거나 아니면 용감한 재단사인
것이다. 통속 문학이나 통속 영화 같은 것들이 민속 동화의 기능을 떠맡았기 때문에 동화들이
그렇게 쉽사리 추리소설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대적 동화들의 생산은
적어도 통속 문학의 틀에 박힌 모방성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준다. 흔해 빠진 담보물들이
사용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린이 동화는 독창성의 잘된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나를 조금 슬프게 한 것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혼란 놀이를 처음으로 잡지에
발표하였을 때에 아주 심각한 비난을 서술한 독자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나는 비난을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유물론적인 역사 해석의 토대를 떠나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시민적인 개념의 덫에 걸린다. 그는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들에게 소아 유기죄를
덮어씌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본주의적 체제의 희생물이고 숲은
바로 이와 같은 체제가 가지고 있는 위험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치스러운 집을 가지고 있는 마귀할멈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빵굽는 가마의 기능을 바꿈으로 해서 파괴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해석은 가능하다. 나도 원래는 무정부주의적인 해석을 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문제되지 않던 마녀 추방과 박해가 보다 결정적이라고 여겨졌다. 동화를 정말
진지하게 토론하고자 한다면 나를 비판한 사람이 언급한 계기들도 이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회 질서를 비판적으로 통찰할 수 없는 부모와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불행에 대한 책임을 서술할 수 있는 마녀가 존재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무방비한
노인에 대한 아이들의 범죄 행위는 따라서 상징적으로 의도된 것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사회 질서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저항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항상
그들과 같이 역시 체제의 희생물인 가난하고 약한 다른 사람들만 해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것이 올바른 해석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 혼란에 대한 이
독자의 비판이 바로 마르크스 주의를 무조건 옹호함으로써 마르크스 주의를 오용하는
전형적인 예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의 또는 자기가 동정적으로 인정하는 폭력과 호전성의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적인 거리낌없이 그것을 개인화하고 도덕적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마르크스 자신이 자본론 제 1판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본가와
지주가 설사 주관적으로 사회 관계를 넘어선다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항상 이 사회 관계의
피조물로 남는 그러한 (사회)관계에 대해 자본가와 지주를 책임 지우려고 하는 것'이 자기의
의도는 아니라고 매번 지적하고 있다. 동일한 비판가는 편지에서 '나의 아마추어적인 유머는
공개되면 조소와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언은 뜻밖에도 한
논단에서 내가 쓴 동화 혼란을 '부르주아적인 염소들의 증오에 관한 동화'라고 화살을 퍼부은
바이에른주의 한 보수적인 신문에 타당한 것이다. 만일 이 논단의 글쓴이가 나를
반권주의적인 조류의 결과.'로 등장한 새로운 권위주의적인 조류에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동화 혼란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나는 혼란을 풀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한 노력들이 쓸모 없게 될 것이다.
  1974년 1월 프랑크루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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