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변화시키는 3분
하나오카다이가쿠
우리가 가야할 곳, 혹은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며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바로 그것이 인생이라.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미래는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묻어 두라.
행동하라-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속에는 마음이 있고 위에는 신이 있다.
위인들의 모든 생애는 가르치나니
우리도 장엄하게 살 수 있고
떠날 제엔 시간의 모래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아마 먼 훗날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외로이 부서질 때를 만나면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발자국을.
그대여, 부지런히 일해나가자.
어떤 운명에도 무릎꿇지 말고
끊임없이 이루고 바라면서
일하고 기다리기를 힘써 배우자.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중에서
제1장 나를 이긴다는 것
한정된 인생이 다 가기 전에 다해야 할 자신의 사명을 깊이 생각하면서
생명의 불꽃을 활활 태워야 한다.
001 다이너마이트
노벨상은 수많은 상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계적인 상이며,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이 만들어 널리 알려졌다. 노벨은 니트로 글리세린을
폭약으로 이용하는 특허를 얻어 폭약 제조 공장을 세웠다. 그런데 니트로
글리세린의 화학적 성질은 매우 불안정하여 공장에서는 툭 하면 폭발 사고
가 일어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 문을 닫던 날, 낙심한 노벨은 인부들이 공장을 정리하는 것을 맥없
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옮겨지던 깡통에서 니트로 글리세린
이 새어나와 바닥에 스며드는 광경을 보고 갑자기 펄쩍 뛰어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기다려! 공장 폐쇄는 중지다."
액체 상태인 니트로 글리세린은 불안정하여 잘못해서 충격이 가해지기만
하면 바로 폭발해 버린다. 그러나 노벨은 그것을 고체인 규조토에 스며들
게 하여 안전한 폭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 폭약에 '다이너
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때문에 그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고 마침내
노벨상을 창설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은 없다.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좌절이 따라다니는 법이다. 그런데도 조금만 좌절하면 완전히 자신
감을 상실한 채 훌쩍거리면 세상에 나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탄
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무슨 일에나 반드시 따라 다니는 좌절이라
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의지가 나약한 인간들을 걸러내기 위한 신의 섭리
일지도 모른다. 물론 좌절은 뼈아픈 것이다. 좌절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
무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나 가혹하면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픔과 낙담 속에서도 좌절을 오히려 호의적인 시련이
라 받아들일 때 적극적인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다. 좌절은 한 번
에 그치지 않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녹초
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뚝이는 쓰러지고 쓰러져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난다. 7전8기라는 말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말은 좌절하고 또 좌절해도 다시 일어나는 끈질
긴 집념을 말한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처럼, 그렇게 끈질긴 자세로
모든 일에 직면할 때 좌절의 슬픔 속에서 단번에 성공으로 이어지는 발견
을 이룰 수도 있는 것이며, 바로 여기에 지치지 않고 일과 씨름하는 기쁨
이 있다고 해야 한다. 험난한 고개를 넘고 또 넘어 노벨상을 창설하기까
지 노벨의 인생 역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002 어떤 난봉꾼
엄격한 리얼리즘을 추구하여 19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드가. 젊었을 때의 그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파리의 경마
장을 열심히 드나들고, 메일 밤 오페라 극장에 나타나 분장실을 얼쩡거리
는, 누가 보기에도 천박한 난봉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즐기기 위
해 경마장이나 오페라 극장을 나다닌 것이 아니었다. 무대에 선 무용수나
달리는 말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들의 순간적인 동작에 화가로서 흥미
를 갖고 , 그것에서 여러 가지 모티프를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경주마를 즐겨 그렸는데, 기존의 화가나 조각가처럼 달리는
말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내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마장에
40대의 카메라를 세워 말이 지나갈 때 자동적으로 셔터가 눌리게끔 해 두
고, 기계를 통해 순간순간 말의 정확한 움직임을 확인했다. 그 결과 그의
그림은 달리는 말의 모습을 잘못 그리던 기존 화가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화폭에 생생한 박진감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좀 길지만 플로베르의 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나타내는 단어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는 것은 하나의 동사밖에 없다. 그것을 형용
하는 것은 하나의 형용사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단어를 그 동사
를 그 형용사를 발견할 때까지 찾아야 한다.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적당
한 것으로 만족하거나 교묘하게 말해서 속이거나 말의 요술을 부려서 바
꿔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문학에서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단 하나밖에 없는 단어를, 동사
를, 형용사를 찾아 피투성이가 되도록 몸부림친다. 그것을 찾기 위한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니 적당하게 속이거나 교묘하게 요술을 사용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
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높은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회화의 세계에
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비록 천박한 난봉꾼이라거나 40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말을 찍어 때는 촬영이 헛 껍데기 허세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그런 것은 둘째 문제일 뿐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무용수나
질주하는 말의 생태를 올바르게 포착하려면 그럼 비난이나 비방을 초월한
뼈를 깎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자신이 항상 내부적으로 타오르는
예술에 대한 정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세속의 손가락질을 뛰어넘는 용기가 늠름하게 넘쳐흘러야 한다. 화폭에
새로운 박진감을 담아 일세를 풍미한 드가의 이 조그만 일화는 언제든지
안이하게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를 엄하게 가르친다.
003 네 손으로 장작을 패라
헨리 포드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동차 발명을 완성하여 불과 20여
년만에 세계 굴지의 부호가 되었다. 그는 '적당한 운동과 조금 부족한 듯이
먹는 소식과 신선한 공기'를 건강의 비결로 삼아 지극히 간소한 생활을 유
지해 왔다. 그래서 몸은 학처럼 여위었지만 매우 건강하여 엄동설한에도
외투를 입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시의 모임에서 대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는, 첫눈에도 중역 티가
자르르 흐르는 뚱뚱한 친구를 만났다. 그가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포드 군, 자네는 당장 에라도 굶어 죽을 것처럼 바싹 여위었군 그래. 아
무리 능률 향상이 중요해도 목숨을 이어갈 정도는 먹는 게 어떤가?"
능률 향상은 포드 회사의 방침이었다. 포드는 말했다.
"충고는 고맙지만 건강에 대해서라면 자신 있네. 아직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네. 시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가끔 구경가지만 과식
해서 수술 받는 사람들을 보면 으레 자네 같은 뚱보더라구."
회의가 끝나자 포드는 그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내 건강의 비결을 보여 줄 테니 따라오게나."
포드는 그 친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난로 앞으로 끌고 갔다. 난로
위의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액자에 적힌 글귀는 이런 것이었다.
"네 손으로 장작을 패라. 이중으로 따뜻해진다."
조금 풍족해지면 우리는 곧 의식주의 유혹에 두 손을 들고 만다. 인간의
가련한 약점이다. 누구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즐기고, 사치스러운 음식
에 파묻혀 호화롭고 큰 저택에 살고 싶어한다. 사람이 이런 일차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은 동물적 본능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들 당연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유가 있다면 느긋한 삶을 즐기는 것을 특
권처럼 생각하고 갖은 여유는 부리며 유유자적 일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싫
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게 우쭐대는 짓이며, 스스로 무
덤을 파는 비극의 시작이다.
포드는 세계 굴지의 부호였다. 그러면서도 전혀 우쭐대지 않고 자신의
무덤을 파는 비극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적당한 운동과 조금 부족한 듯이
먹는 소식과 신선한 공기 세 가지를 건강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포드의 위대한 정신은 오로지 이것으로 대변된다. 나태해지기 쉬운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는 성실성이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것이다.
네 손으로 장작을 패라. 이중으로 따뜻해진다.
이 짧은 글귀 속에는 인생에 대한 갖가지 교훈이 가득 넘쳐난다.
004 쌀을 받아 가시오
하이쿠(일본의 단형시)의 작가로서도 이름 높았던 오와리의 이노우에 시
로는 당시 전국에 이름을 떨치는 명의였다. 배포가 커서 많은 기행과 갖가
지 색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이 일화도 그 중 하나다.
어느 날 겐추사의 화상이 중병에 걸렸는데. 용하다는 의사가 수없이 드
나들어도 차도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로가 치료하였는데, 그것이 효력이
있어 화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겐추사는 오와리 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영묘로 지어진, 부에서 으뜸가는 큰 절로 세력이 대단했다. 병이 완쾌된 것
을 크게 기뻐한 화상은 막대한 사례금을 보냈다. 그러나 시로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건 너무 과분한데요."
심부름 왔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돌아갔는데 곧 다시 찾아와서 애원했
다.
"화상님이 꼭 드리고 오라고 해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만약 받지 않으시
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신다 생각하시고 받아 주십시
오."
시로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물었다.
"할 수 없군요. 그렇다면 제가 받은 액수를 사람들에게 알려도 상관없겠
습니까?"
"그건 뜻대로 하십시오."
굳이 비밀로 할 필요가 없어서 심부름 온 사람은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
하고 돌아갔다. 그러자 시로는 곧 집앞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서 붙였
다. '이번에 겐추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례금을 받았는데, 내가 갖기에는 너
무 과분하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 이 돈을 전부 쌀로 바꿔서
나눠주고 싶다. 받고 싶은 사람은 며칠 몇 시까지 찾아와 주기 바란다.' 쌀
을 나눠주겠다는 날이 되자 시로는 집 문 앞은 밀치락달치락하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시로도 직접 그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쌀 나눠주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엄격하게 평가하면서도 자
기를 평가할 때는 좀처럼 같은 척도로 하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실질
적인 가치는 5밖에 없는데도 10의 가치를 매기고 싶어한다. 가치를 갑절로
매기고도 태연해 한다. 자기 과신도 여기에 이르면 애교로 봐 주기가 힘
든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하면 우리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도 않게 그런 짓을 한다. 특히 위의 일화와 같이 다른 의사가 모두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환자를 치료하여 완쾌시킬 정도라면 누가 보기에도 대단한
의술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쉽게 자만에 빠지고 거만하게 어깨에 힘을
주고 뽐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로는 단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면 담담하고 태연한 태도를 취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것은 얼핏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극히 어려운 경지다. 그
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사례금을 과분하다고 거절하고,
억지로 떠맡기니까 어려운 사람에게 송두리째 나누어주는 애정을 물 흐르
듯이 베푸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경향에 익숙한 우
리에게 이 일화는 따끔한 채찍이 되어 날아온다.
005 표준 시각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는 팔십 평생을 오로지 연구에만 바친 것으로 유명
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여행도 하지 않고 사람도 사귀지
않고 오로지 서재와 대학 사이를 오가며 검소하게 지냈다. 그는 특히 시간
에 대하서는 과학자처럼 엄격했다. 기상은 다섯시, 취침은 열 시로 정해 놓
고 그에 맞춰 생활하며 매일 일 분 일 초도 늦지 않았다.
5시 직전에 충실한 하인 란페가 그를 깨운다.
"시간이 됐습니다."
전날 밤 부득이한 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더라도, 그는 깨우는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칸트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란페 자네와 삼십 년이나 함께 지냈지만, 한 번 불러서 나를 깨우지 못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게야."
실제로 그랬다. 또 언제나 오후 세시에는 반드시 산책을 나갔고 그 시간
도 일 분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툭하면 가다 서다 하는
거리의 시계탑을 믿지 않고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
바쁜 요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그것이 관록이기라도 되는 양 멋대
로 신간을 무시하는 가람이 가끔 있다. 물론 이것은 당치도 않은 착각이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사소한 기간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젊은 사람들 중에도 시간
관념이 지극히 약한 사람이 적지 않은 데. 그 자체가 일과 인생에 대해 진
지한 자세를 갖추지 못한 증거라고 단언해도 좋다.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
가는 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칸트의 위대성은 엄격한 시간표를
만들어 그것을 일 분 일 초도 어기지 않고 지켜 온 정확성에 크게 힘입었
다는 것을 조용히 생각하기 바란다.
006 금일 부재중
프랑스의 물리학자로 전자기학의 기초 법칙 '암페르의 법칙'을 발견한 유
명한 암페르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연구를 방해하는 손님들 때문에 그
만 질리고 말았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문 앞에 '금일 부재중'이라는 팻말
을 걸어놓기로 했다. 일일이 상대하지 않고도 손님을 돌려보낼 수 있는 기
막힌 방법이라고 무릎을 치고는 곧 실행에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생각하면서 외출에서 돌아왔다. 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언뜻 그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없잖아.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다시 와야겠군."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오던 길을 총총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수학
문제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팻말을 본 순간 문득 자신이
다른 친구의 집이라도 찾아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인류의 기억에 남을 만큼 훌륭한 일을 완성하는 위인은 몇 십억에 달하
는 사람들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몇 십억이라
는 엄청난 사람이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대단한 업적을 꿈꾼다. 대단한 업
적을 이루는가 그렇지 못하는가는 별도의 문제지만, 목표를 세우고 추구하
는 한 곁에서 보기에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몰두하는 것이 진실한 생
활 태도다. 손해가 되는가 득이 되는 가, 칭찬을 받을 것인가 비난을 받을
것인가, 웃음거리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외곬으로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는 암페르의 모습은 흐뭇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성실하게 몰두하지 못하고 젊
어서부터 약삭빠른 잔꾀만을 익히려고 한다. 그렇게 잇속만을 차리려는 우
리의 앞길을, 자기 집앞까지 왔다가 오던 길로 총총걸음으로 되돌아가는
얼빠진 암페르가 두 팔을 벌려 막아 주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이다.
007 음치 카루소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카루소는 소년 시절
음악 선생에게 놀림을 받을 만큼 노래를 못했다.
"제 목소리는 마치 문풍지 사이로 새는 바람 같구나."
그래서 자신은 음악에 소질이 없다고 믿었다. 다만 어머니만은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 네게는 음악가가 될 소질이 충분하니까 열심히
공부해라."
어머니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또 원래 그는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열심히 노래를 연습했다. 마침내 스물한 살 때 단역
으로 오페라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았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
런데 때마침 한 가수가 병에 걸려 출연하지 못하는 바람에 카루소는 그 대
역을 맡게 되는 행운을 만났다. 카루소는 열심히 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그만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에 몹시 비관한 카루소는 홧
김에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다며 자살을 하
려고 결심했다. 그때 마침 극장에서 심부름꾼이 찾아왔다.
"카루소, 해고는 취소라네. 유력한 손님 하나가 찾아와서 아까 대역을 맡
았던 신인을 내놓으라고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가세."
자살을 하기는커녕 그때부터 카루소는 두드러지게 재능을 발휘하여 천재
가수의 지위를 쌓아올렸다. 장차 세기의 테너로 각광받을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문풍지 사이로 새는 바람 소리'라고 놀림을 당한다면 평생
동안 재능을 펴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묻어 버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
이다. 카루소의 경우에는 다행히 그 재능을 인정해 주는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놀림 당한 아픔을 잊고 재능을 연마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우수한 선천적 재능이 있다
고 해도 그것이 결코 그대로 불쑥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불굴의 수
련과 부단한 노력이 뒤받침 되어야만 서서히 연마되어 나타난다. 카루소가
오페라의 단역을 맡았다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나 대역으로 나섰다가 관
객의 호응을 얻지 못해 해고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직 그가 가진 재
능을 충분히 연마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매우 다행스럽게도
유력한 손님이 나타나 아직 제대로 연마하지 못한 부분만 다듬으면 우 훌
륭한 재능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그 덕택에 카루소는
자살까지 하려 했던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벗어나서 천재 사가수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때마침 유력한 손님이 나타나 하마터면 그대로 묻혀 버릴 뻔했던
재능을 살려 준 것은 틀림없이 '운'이었다. 그러나 운은 누구에게나 우연히
낮아오는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타고난 재능을 끊임없는 수련과 불
굴의 정신으로 연마하는 노력을 계속할 때에만 늦든 빠르든 그 우수한 재
능을 인정해 주는 운이 찾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운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
이다.
008 독서 3원칙
19세기 초, 사상계를 제압하고 있던 유물론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이상주
의를 주창하면서 크게 활약한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만년에 콩코드
(Concorde)에 살면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사람들은 그를 '콩코드의 철
인'이라 부르며 숭배하고 존경했다. 그런 어느 날 그에게 어떤 손님이 찾아
와서 물었다.
"독서할 때 어떤 점이 중요한지 들려주십시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독서에 대해서 나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출판후 적
어도 일년이 지나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이미 이름이 알려
져 있는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좋아하는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는 것이죠. 셰익스피어는 즐거움이 없는 곳에는 이익도 없다
고 했지만 독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춰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좋아하는 책이 아니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이익이 되어 몸에 배
지 않는다. 이것은 에머슨이 말한 세 원칙 가운데 세 번째 원칙이다. 다만
독서의 경우에 주의해야할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괴롭
다'는 과정을 거쳐 생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경박하고 안이한 방법으로
얻은 즐거움은 어지간히 경계하지 않으면 진짜 즐거움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진짜 즐거움은 오히려 괴로운 과정을 거쳐 찾아온다. 예를 들면 알프
스를 정복한 사람은 산을 알고 산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진짜 즐거움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높은 산
의 험한 비탈길을 한발한발 기어올라가는 고통을 거쳐 정상을 정복했을 때
라야 비로소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 번째 원칙을 바탕으로 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이 무게를
더하게 된다. 즉 부근에 있는 조그만 산에 아무리 올라가도 진정한 산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류 이하의 책을 아무리 읽는다
해도 일류의 책을 읽은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이미 준엄한 세상의 평가
를 거쳐 가치가 인정되고 이름이 알려진 일류의 책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먼
저 읽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출판 후 1년이 지난 책
을 선택한다는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드는 것에서 이른바 베스트셀러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예리한 눈길을 던지는 주도면밀한 에머슨의 의도를 정확
하게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그대로 양서라고 해석하는 사람
이 많다. 물론 개중에는 양서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일류에 미치지 못하므로 베스트셀러가 결코 책의 선택 기준이 될 수 없다
는 것을 그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처
음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만 출간한 지 1년도 채 못 되어 물거품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말로 빈틈
없는 '독서 3원칙'이다. 모두들 독서 생활의 지표로 삼아두면 좋겠다.
009 장래를 생각하는 넓은 시야
도쿠가와 바쿠후의 해국 장관이었던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1867년 3월 네
덜란드에서 새로 만든 군함 가이요마루로 귀국했다. 바쿠후 말기, 바쿠후
측과 정부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 그는 바쿠후 측에서 동란에 참전했다.
전황은 바쿠후 측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는 군함11척을 끌고 홋카이도로
탈출하여 하코다테의 고료가쿠를 거점으로 정부군에게 완강히 저항했다.
하다 못해 홋카이도를 바쿠후의 손으로 제압하여 가신들의 회생을 꾀하려
고 했지만, 오후레츠항 동맹의 붕괴에 이어 센다이, 아이즈, 요네자와 등
여로 항이 잇달아 굴복하여 대세는 이미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태로
기울었다. 고료가쿠를 공격하는 군대를 지휘하던 구로다 기요다카는 에노
모토의 사람됨을 아까워하여 항복을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
"쓸데없는 반항으로 개죽음을 당하는 어리석은 짓을 멈추고 항복하는 게
어떤가?"
에노모토는 이에 정중하게 거절하는 답장을 보냈다.
"후의는 감사하지만 그 뜻에 따르기 어렵다."
그는 답장과 함께 해진전서라는 책 두 권을 보내 왔다. 책에는 이런 편
지가 끼여 있었다.
"이것은 네덜란드에서 고심하며 배운 귀중한 해군 서적인데, 전화로 흔
적도 없이 타 버리는 아픔을 차마 견딜 수 없어 귀관에게 증정한다."
구로다는 적과 아군으로 갈려져 싸우는 현실에 구애되지 않고 나라 전체
의 입장에서 해군의 장래를 생각하는 에노모토의 넓은 도량에 감동하여 답
례로 청주 다섯 통을 보냈다.
사태가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우리는 그 절박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타개
하려고 절박한 부분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높은 곳에서 전체를 내려다보
는 시야를 잃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특별히 탓하지도 않는다. 그러
나 사태가 급박한데도 조금도 구애되지 않고 여유 있게 전체를 두러보면서
대처하는 에노모토의 인격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보통 사람
으로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세계라 할지라도 , 항상 좁은 시야에 갇혀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어진다.
010 한다면 한다
검은 셔츠로 통일한 대원 9만 명을 이끌고 로마로 무혈 입성하여 대권을
잡아 내각 조직을 마친 무솔리니는 ,수도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검은
셔츠 대원들을 한시라도 빨리 고행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래서 재빨리
철도 장관을 불러서 분부했다.
"오늘 밤 여덟 시부터 스물네 시간 이내에 대원 사만 명을 고향으로 송
환하도록 준비하게."
"그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사흘은 걸려야......"
"나는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스물네 시간이내에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거다. 자네는 단지 명령을 실행하면 돼."
"그러나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장관은 버티려다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무솔리니의 명령에는 아무
도 반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관은 곧 비상 조치를 취했다. 모든 철도
시설을 집중시켜 로마 정거장에서 사방으로 대원들을 가득 실은 열차를 잇
달아 출발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명령을 내린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로마 시는 조용해졌다. 무솔리니는 이튿날 장관을 불렀다.
"자네 잘해 줬네."
"네.....간신히....."
"수고했네, 그때 자네는 놀랐던 모양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걸세. 그리고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법이라구."
기술을 요하는 일이라면 기술자의 과학적 계산에 기초하여 어떤 일이 가
능한지를 판단해야한다. 그런데 무솔리니는 그 판단을 무시하고 일방적으
로 실행을 강요했다. 이른바 파시즘의 전형이다. 이러한 독선적인 행동에
강한 반발을 느끼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상 조치를 취하여 주어진 시간
내에 강요된 명령을 실행했으니, 이쯤에 이르면 오히려 장관이 판단을 잘
못할 것이 되어, 강권에 대한 반발이 어느새 희미해진다. 그래서 독재자의
당당한 말이 의외의 호소력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언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
에 하는 걸세."
파시즘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를 떠날 때,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 생활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내는 우리는 , 항상 '할 수 있기 때
문에 한다'라는 지극히 안이한 행로를 택하고 어려움을 피한다. '해야만 하
기 때문에 한다'라는 적극적인 용맹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적극적인 생활
은 온갖 어려움을 수반하더라도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한다'라는 강하고 굳
센 의지를 토대로 성립된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011 삶과 죽음
아코의 의사 중 한 사람이 다케바야시 타다시치는 그 뜻을 이룩한 후 모
리저택에서 1703년 2월 4일 할복했다. 나이 서른 둘이었다. 그때, 타다시치
의 할복을 도와 줄 입회인으로 모리저택의 가신 사카키바라 소자에몽이 뽑
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소자에몽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칼이 타다
시치의 어깻죽지로 깊이 파고들었다. 타다시치는 앞으로 엎어졌다가 몸을
조용히 들어올리고 말했다.
"서두르지 말라."
"잘 알겠습니다."
소자에몽은 칼을 고쳐 쥐고 이번에는 실수 없이 그의 목을 쳐서 떨어뜨
렸다. 어떻게 보면 끔찍하고,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단
지 그뿐이라고 간과할 수 없는 가르침을 이 이야기는 숨기고 있다. 뭔가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느껴진다. 그러면 도대체 그게 무
엇일까. 자신의 손으로 배를 갈라 촌각 후에 반드시 찾아올 죽음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여유 있고 차분한 모습으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삶과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 경지인가. 그것도 있다. 정신이 이미 그렇듯 높은 경
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배를 과감하게 가르고
앞으로 푹 고꾸라졌던 몸을 조용히 들어올려 무사로서 할복을 행하면서 그
에 맞는 예절을 진지하게 지키려 한 의연한 용맹이 돋보인다. 바로 그것이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가 깊은 감동을 받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한 겉치레
나 체면을 위한 형식주의가 아니라, 정신이 지극히 심오한 경지에 올랐을
때 이룰 수 있는 훌륭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신 소자에몽의 지체 없는
짧은 응답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012 진짜 최고의 기수
도쿠가와 요리노부는 마술에 능했다. 높은 토담을 거뜬히 뛰어넘기도 하
고 깎아 내린 뜻한 절벽도 단숨에 달려 올라갈 정도였다. 그래서 내심 자
신만만해서 일본의 많은 다이묘 가운데서 자신만큼 말을 능란하게 타는 사
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마술에 능했다
고 하지만 자심만큼은 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우쭐해 했다. 자신이 생기
면 생길수록 이것저것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 내고, 아슬아슬한 재주를 가
신들 앞에서 과시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기와가 날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 쉬지 않고 몰아 닥쳤다.
"땀 한 번 흘리고 올까?"
요리노부는 시종을 데리고 모래바람이 소용돌이치는 마장으로 갔다. 바
람막이 두건을 끄고 풀쩍 애마에 올라탄 요리노부는 말을 달리기 시작했
다. 가신들은 옆의 소나무 숲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요리노부의 말 다루는
솜씨를 지켜보았다. 차츰 속력을 높인 말은 이윽고 자욱한 모래먼지가 피
어오르는 속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요리노부가 쓰고 있던 두건이 바람에 불려 날아올랐다. 그러나
요리노부는 발걸이를 밟고 일어나더니 상체를 채찍처럼 뒤로 젖혀 날아오
른 두건을 재빨리 받아 냈다. 대단한 솜씨였다. 보고있던 가신들도 자기도
모르게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요리노부도 자신의 아슬아슬한 재주에
아주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비었다. 그 일은 마술 사범인 마츠노 소타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소타로는 감탄하기는커녕 고개를 젓고 한마디
했다.
"나리의 마술도 아직 멀었군."
이번에는 요리노부가 그 말을 들었다. 소타로의 강직함을 잘 아는 요리
노부는 화도 내지 않고 물었다.
"내 마술이 아직 미숙하다고 말했다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들려주게."
소타로는 대답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님의 마술은 도카이도에서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오다와라진때 선봉대로 진군하고 있을 때 계곡 물이 앞을 가로막
았습니다. 그곳에는 혼자 겨우 건널 수 있는 허술한 다리가 걸려 있었습
니다. 이에야스 님은 다리 앞에서 말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하였습니다.
뒤따라온 단파 나기시게, 다니가와 히데가즈, 호리 히데마사 세 다이묘는
도카이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수가 어떻게 저 다리를 건널까, 이건 정말
좋은 구경거리라고 지켜보고 있었다 합니다."
"음 ,아버님께서는 멋지게 건너셨는가?"
"물론 건너기는 건너셨습니다. 하지만 말에서 내려 시종인 호위대원의
등에 업혀서 다리를 건너셨습니다. 병졸들은 저분이 도카이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수인가 하고 웃었지만, 세 다이묘는 신음 소리를 내더니 과연
도카이도 제일의 기수이시다라고 극구 칭찬했다 합니다."
"......"
"아시겠습니까, 나리? 참으로 말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위험한 짓을 사서
하지 않는 법입니다. 나리가 자신만만하게 아슬아슬한 재주를 펼치시는
한 나리의 마술은 아직 미숙하다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요리노부는 그 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내가 진저리를 치며 싫어하는 말에 '근사하다'는 단어가 있다. 멋진 솜씨
라는 의미보다는 경망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기야 '근사하다'는 칭
찬을 받으면 아이 어른 구별 없이 누구나 솜씨를 과시하고 싶어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쓸데없이 우쭐거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신감
과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이 일화
는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과시욕은 누구나 많든 적든 감추고 있기 때
문에, 이일화는 과시하고 싶은 경망스러운 충동을 감명 깊게 나무라고 있
다. 이 일화는 아슬아슬한 재주를 부려 쓸데없이 '근사함'을 과시하고 박수
갈채에 우쭐해 하는 것이 얼마나 미숙한 태도인가를 도카이도 최고의 기수
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깊은 맛이 있는 에피소드에 의해서 해명해 준
다. 도쿠가와 요리노부도 크게 깨달으며 이에 수긍했다. 어떤 길을 가더라
도 자신의 솜씨에 우쭐해 하는 과시욕이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으면 그 자
체가 이미 미숙함을 말해 준다는 진실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리
고 자기가 걷는 길의 달인이 되고자 한다면 화려한 묘기 같은 것을 뽐내서
는 안 된다. 이에야스가 결코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말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듯이 견실함 속에서 길을 찾을 때 앞날이 환하게 빛나는 것이다. 그것
은 기술 따위의 특기를 뽐내는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하
루의 생활 속에서도 견실한 태도를 추호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013 구두가 없어도 걸어다닐 수 있다
영국의 문호 사무엘 존슨 박사는 소년 시절에 집이 가난해서 구두마저
사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늘 맨발로 걸어 다녔다. 존슨이 옥스퍼드 대학
에 다닐 때 부잣집 아들을 친구로 사귀었는데, 그 친구는 존슨의 가난을
매우 딱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 새 구두를 몰래 그의 방문에 걸어
두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존슨은 그것을 보자 창 밖으로 홱 던져 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남에게 구두를 얻어 신는 것은 남의 비호를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
는 비록 굶어 죽는 일이 있더라도 남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다. 옥스퍼
드의 거리를 구두 없이 걸을 수 없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겠지만 , 나는
지금 훌륭히 걸을 수 있는 맨발을 가지고 있다. 구두가 무슨 필요가 있
겠는가."
존슨은 여전히 맨발로 통학했다. 굳이 맨발로 다니는 것이 훌륭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길을 걸으려면 단정하게 구두를 신고 걷는 것이 좋고,
아무래도 그쪽이 자연스럽다. 존슨이 맨발로 걸은 것은 취향 때문이 아니
라 구두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가 우리를 감동시킨
다. 우리의 생활과 비교하여 곰곰이 생각할 문제를 던져 주는 것이다. 하나
는 '굶어 죽는 일이 있어도 남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다'라는 견고한 정신
이다. 우리가 그런 가난한 지경에 놓이면 어떻게 행동할까? 어떻게 해서라
도 도움을 받을 계기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을까. 숙이고 싶지 않은 머리를
얼마든지 숙여서라도 도움을 구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잠자코 도움을 주면
뜻밖의 행운이라고 덥석 달려들지 않을까. 적어도 이왕에 생긴 새 구두를
창 밖으로 내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의 호의를 무시하는 행동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사맒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문제와는 분명히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은 그 문제와는 별도로 생각하기로 하자. 여기서는 남의 도움을 거절한 당
당한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깨끗한 인격을 쌓아올리는 기반이
된다. 요즈음 세태가 너무나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고 있고, 또 그것을 당연
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들 사이에 횡행하고 있기 때문에 구두를 창 밖
으로 내던진 존슨의 굽힘 없는 행동은 더욱 빛이 나는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구두를 신지 않고 다니는 데 대해 조금
도 구애되지 않은 마음가짐이다. 훌륭하게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으니
구두를 신지 않으면 어떠냐는 떳떳함이다. 그것은 결코 가난에서 비롯된
허세가 아니다. 이상한 허세 나 저항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맨발로 걷는
것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존슨은 아무 것에도 구애되
지 않는 자연스러운 태도로 생활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옥
스퍼드 거리를 맨발로 당당하게 걸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어떤 일에도 구애되지 않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은 상당히 어렵다. 존슨이 문호로서 크게 성공하여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강한 의지 덕분이 아니었을까.
014 샘솟는 용기
하나와 호키이치는 다섯 살밖에 안 되었을 때 눈이 멀었다. 열 세살 때
그는 사이다마의 고향마을을 떠나 에도로 가서 검교로 있는 나가도미의 제
자로 들어갔다. 그러나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감각이 둔해서 무엇을 시켜
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스승은 포기하고 말했다.
"아무리 해도 너는 안마도 하지 못하고 음악을 시켜도 가락이 맞지 않으
니 더 이상 가망이 없다. 하지만 애써서 왔으니 지금부터 삼년 동안 공
짜로 먹이고 재워 주마. 그 동안 네가 좋아하는 것을 뭐든지 해 보도록
해라. 그 대신 삼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려보
낼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호키이치는 몹시 낙담하였다. 어느 날 그는 구단의 우시가후치로가서 투
신 자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행에서 자신의 성공을 기다리는 부모와 형
제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갑자기 결심이 솟구쳤다.
"그렇다, 장님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학문을 하지 못할 건 없다. 좋다, 죽
을 각오로 공부하자."
심기 일전한 것이다. 그로부터 호키이치는 부자유스러운 몸을 채찍질하
며 신들린 듯이 학문에 매달렸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 학문
에 정진하면 할수록 점점 여러 가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잇달아 길이 열렸다. 약속한 3년 후에는 집인 이라는
안마사의 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스승을 기쁘게 했다. 스물네 살 때부
터는 가모노 마부치를 스승으로 국학을 연구했고, 서른 아홉 살에 검교가
되었을 때는 이미 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곧 미토 미츠구니의 초빙을 받아 대일본사의 교정에 종사했다.
그런데 연구 자료인 고서 기록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탓에 연구에 불
편을 느꼈다. 그래서 그것을 집대성하기로 결심하고 42년이라는 세월에 걸
쳐 군서유종이라는 방대한 저서의 편찬을 완성하여 불후의 공적을 남겼다.
무슨 일이라도 그것이 '되고' '안되고'의 문제는, '되기'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되고'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되는'것이 아니다.
최악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되도록'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만 뒷받침되면 최악의 조건이 오히려 방향을 바꿔 '되는'방향으로 기능하기
도 한다. 그러나 맹인 학자 하나와 호키이치의 일화에서도 보았듯이 최악
의 조건 같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그것을 극복해 가는
불굴의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되고' '안된'문제의 열쇠는 오로지 이 의지 하나에 달
려 있다. 그 일을 끝끝내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요한 마음 앞에는 최악의
조건도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이 '안 되는'경우에 곧바로
그 이유를 조건이 나쁘다는 것에서 찾는다. 그리고 맥을 놓고 비관론자로
전락한다. 그런 만큼 맹인 학자 하나와 호키이치의 절박한 호흡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깊이 성찰할 대 비로소 몸
속에 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삭막한 각자의 인생을 찬연하게 채색해 준다.
015 뜻을 세우는 나이
영국의 총리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정계의 거물로서 활약한 볼드윈은 시
골에서 제일 가는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가 경
영하는 회사에 사원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중역이 되었다. 이렇듯
처음에는 일에 전념하는 회사원으로서 평범한 코스를 걸었다. 그런데 막
20세기에 접어들어 볼드윈이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국회의원을 하던 부친이
갑자기 사망했다. 그래서 그대까지 거의 정치와 관련이 없었던 볼드윈을
아버지의 기반을 이어받아 국회의원에 입후보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입을 모아 반대했다.
"그런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왜 그러나? 내가 정치에 맞지 않는다는 건가?"
"아니, 맞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이미 늦었다구. 자네 정도 연배의 사
람들은 이미 슬슬 차관이나 장관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게 이유라면 나는 별로 상관없어. 내가 정치인이 되려고 결심을 한
것은 입신 출세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다행히 아버지가 유산을 약
간 남겨 주셔서 먹고 살 걱정은 없다네. 그러니 앞으로는 내 한 몸을 바
쳐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아무래도 마흔 살의 나이로는 노무 늦었다
구."
그러나 볼드윈은 강한 결의를 보이며 말했다.
"충고는 고맙지만 뜻을 세우는 데 너무 늦는 일은 결코 없다고 확신한다
네."
그는 희망대로 국회의원이 되자 일신의 이해가 아니라 국가를 중심에 놓
고 활동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인정을 받아 보수당 총재가 되고, 이
윽고 영국 총리로서 그 정치적 수완을 세계적으로 떨쳤다.
젊었을 때 자신이 꿈꿨던 이상적인 일을 갖게 되어, 그 일에 사명감을
갖고 혼신을 다하여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회가 닿지 않아 젊었을
때의 이상과는 동떨어진 일을 갖게 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좋든 싫든
그 일을 해 나가는 사이에 어느새 중년을 넘기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
이을 그만 둘 수 없어 이상으로 그리던 일을 꿈꾸면서도 타성에 젖어 살아
가기도 한다. 타성에 젖어 일을 해나가는 것은 최악이다. 자신의 일에 적극
성을 젖지 못하면서 종사하는 것은 비굴한 자세이다. 그런 일은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볼드윈의 '뜻을 세우는 데 너무 늦는 일은
결코 없다'라는 지극히 타당한 말에 따라야 한다. 젊었을 대 세운 이상의
꿈을 버릴 수 없다면 깨끗이 현재의 일을 버리고 꿈꾸던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고 갖가지 어려움에 가로막혀있다.
입신 출세하겠다는 안이한 정신으로는 절대로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 시점에 서 그 사람이 취해야 할 길은 그 길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계속해 온 자신의 이로가 젊었을 때 세운 이상의 꿈을 결
합시키는 또 하나의 길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나성에 끌
려 왔으니 이제부터는 볼드윈의 말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면서 그와 동시에
타성을 싹둑 잘라 버리고 재출발하는 것이다. 한정된 인생이 다 가기 전에
다해야 할 자신의 사명을 깊이 생각하면서 생명의 불꽃을 활활 태워야 한
다.
016 폭력배를 물리친 여성
법학 박사 하토야마 가즈오가 1890년 제1기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의 어느 날, 반대당의 폭력배들이 일본도를 뽑아들고 그의 집에 들이닥
쳤다. 무서운 살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아직 서른 살밖에 안 된 젊은 부인
하루코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성큼 나섰다.
"아무리 폭력배라 해도 여자를 베진 않겠죠."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서 응접실에 나가 폭력배를 만났다.
"그 번쩍거리는 건 뭐죠? 여자인 나를 벤들 당신들의 명예가 높아지지도
않을 테고,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하토야마에게 동정이 모아질 겁니다.
우선 그 칼부터 거두세요."
그녀의 차분하고 가라앉은 말투에 기세 등등하던 폭력배들은 기가 꺾여
칼을 칼집에 넣었다.
"용건이 뭐죠?"
폭력배들은 서로 미루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부인은 틈을 주지 않
고 몰아붙였다.
"아, 하토야마를 위해 열심히 일할 테니 보수를 받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죠?"
폭력배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서 있자 종이에 싼 것을 내밀었다.
"이쪽에서 부탁한 적이 없으니 드릴 수 없어요. 적은 돈이라도 좋다면
이번만은 내 약간의 성의를 보여 드리지요."
하루코 부인의 태도에 압도당한 폭력배들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고
거북한 듯이 인사를 하고 나가 버렸다. 옆방에서 그 모습을 엿보고 있던
이 집의 서생들이 수군거렸다.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어.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사모님의 태
도에 정말 탄복했어."
너무나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서른 살밖에 안 된 젊은 부인의 차분한 태
도는 관객의 갈채를 받기에 족하다. 관객은 다음 세 가지 요점 때문에 갈
채를 보냈을 것이다. 우선 여느 부인이라면 그 살벌한 분위기에 질려 맨
먼저 안으로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인은 도망치기는커녕 남
편을 대신하여 자발적으로 나서 폭력배와 맞섰다. 안방마님은 연약하다는
이미지를 깨는 속이 후련한 장면을 연출했다. 예기치 못했던 일에 대항하
여 즉석에서 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것이다. 둘째는 쓸데없이 위세를 부리기
좋아하는 폭력배들의 속성을 잘 알고, 항상 기선을 제압하는 말로 몰아붙
였다는 것이다. 폭력배뿐만 아니라 누구든 기선을 제압 당하면 으레 수동
적으로 변해 공세를 늦춘다. 여기서도 "용건이 뭐죠?"라고 물어도 서로 미
루면서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이 혼란에 빠졌다. 폭력
배와 맞서는 상황에서 실로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여기
에 이르러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는데도, 정치가의 부인답게 억제해야 할
것을 확실하게 억제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돈을 주어 보내야 한다고 생각
했겠지만 하토야마가 아니라 부인의 성의로 이번에 한해서만 주겠다고 다
짐하고, 따라서 소액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고, 게
다가 시종 압도당한 폭력배들이 인사까지 하고 돌아가게 한 것은 감탄스러
울 정도로 차분한 태도다.
이상 세 가지 요점이 갈채를 받았고, 게다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한 행
동이기에 그녀의 행동은 한층 더 두드러졌다. 말할 것도 없이 돌발적인 상
황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평소부터 하루코 부인이 스스로의 자질을 가꾸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하토야마 가즈오의 정치 활동 하나
하나에 큰 보탬이 되었으니 이 사건에 감탄할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
내들은 귀감으로 삼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굳이 정치가 부인에 관
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평소에 그런 자질을 갈고 닦
아 아내의 자리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야겠다.
017 클레망소의 금연법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총리로서 유럽 정계에서 크게 활약한 클
레망소는 의사에게 엄중한 경고를 들었다.
"건강에 크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클레망소는 시거를 매우 즐기는 애연가였다. 그런데 의사는 시거를 하루
여섯 개비로 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클레망소는 아예 이렇게 선언했
다.
"겨우 그것밖에 피울 수 없다니, 차라리 피지 말자."
그런데 그의 책상에는 여전히 시거 상자가 놓여 있었다. 게다가 뚜껑까
지 항상 열려 있었다. 도무지 금연을 선언한 사람 같지 않아 어떤 사람이
물었다.
"각하는 금연하셨다고 들었는데 다시 피우십니까?"
클레망소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저 좋아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있는 거라네. 고
난이 클수록 승리의 기쁨도 크니까. 그리고 기뻐해 주게. 아무래도 승리
가 임박해 오는 것 같네."
담배뿐 아니라 즐기던 기호를 끊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조그마한
핑계라도 생기면 그 하찮은 핑계에 의지하여 욕망의 포로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지간한 의지가 없으면 지속적으로 온갖 욕망과 유
혹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클레망소가 담배를 끊는 과정을 다룬 이 작은 일
화의 재미는 그 지독한 유혹의 대상을 일부러 눈앞에 늘어놓고 이를 악물
고 참았다는데 있다. 이 의지력의 실험은 , 금연이라고 하는 보잘것없는 싸
움에서 거둔 승리의 기쁨을 초월하고 있다. 크게 소리내서 웃는 클레망소
의 인간성에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제2장 내가달라져야 하는 이유
누군가가 말했듯이 모든 창조적인 일은 광기와 제정신의 사잇길에서 비
로소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일을 달성하게 하는 것은 그 사잇
길에 있는 열정적 자세이다
018 달걀과 시계
뉴턴은 만유 인력의 발견을 비롯하여 수많은 연구를 완성, 18세기 과학
분야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
다. 그의 업적은 타고난 재능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그 무
엇에도 굽히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결실이었다. 연구와
독서를 시작하면 거기에 푹 빠져들어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시장기가 느껴졌다. 그는 달걀을 삶아 먹
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달걀을 냄비 속에 넣고 삶았다. 얼마 후 달걀이
적당히 삶아졌겠지 하고 생각한 그는 비로소 책을 덮고 냄비 뚜껑을 열었
다가 깜짝 놀랐다. 냄비 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것은 달걀 바로 옆에 두었
던 회중 시계였다. 달걀은 책상 위에 있었다. 물론 뉴턴은 회중 시계를 집
었을 때 속엔 잡힌 느낌이 달걀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것
이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청년은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를 지극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아주 폭이 좁은 '자신 혼자만의 세계
속의 행복'에 집착하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따라서 선택한 일이 '자
기 혼자만의 세계 속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실로 간단하
게 유리한 일로 방향을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극성스러울 정도다. 그러면
서도 부끄러워하지도 낳고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눈금이 세밀한 저울을
품속에 넣고 그 눈금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저울로 달
아보고 재보고 계산한 뒤에 결정하고 판단하다. 그런 식으로 선택한 일에
정열을 불태울 수 있을까.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선택을 너무나 안이하게 한 데 있다. 무엇보다 '자
기 혼자만의 세계 속의 행복'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천직을 선택하는 기
백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의가 높아져, 잠자
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열심히 심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에 공헌
하는 업적은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해 정열을 불태우는 가운데 조금씩 싹이
트지 않을까. 냄비 속에 회중시계를 넣고 펄펄 끓이는 정열을 청년에게서
엿보고 싶다.
019 학문과 전쟁
1868년 5월 15일 아침.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 무렵 교바시의 뎃포즈에
있던 게이오 의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
에 소란해 지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발소리가 났다.
"전쟁이 시작됐다구. 우에노에서 전쟁이 일어났어. 전쟁이야! 큰일났어!"
그 말을 듣자 학생들은 놀라 얼굴을 마주보았다. 개중에는 당장에라도
뛰어나가려고 엉거주춤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우에노에 틀어박혀 있던
쇼기다이가 드디어 관군에게 저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불안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키치는 이렇게 말하고 태연하게 강
의를 계속했다.
"학문과 전쟁은 별개의 것이라네."
그러나 어느새 대포 소리와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기 시
작했다. 젊고 혈기 넘치는 학생들은 전혀 강의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모
두들 창밖에 정신이 팔려 안절부절못했다. 그것을 본 유키치는 쓴웃음을
짓고 마지못해 강의를 중단했다.
"그러면 십 분만 휴식한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면 곧바로 강의를 속행
할 것이니 모두들 강의실로 돌아오도록. 알겠나?"
학생들은 앞을 다투어 강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섞여 우에노 쪽을 바라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10분이 지나자 모두들 아쉬워하며 웅성웅성 강의실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유키치는 조용하게, 그러나 정열이 담긴 말투로 말해
다.
"여러분, 에도 전체가 당장 에라도 뒤엎어질 듯이 야단법석이 난 지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곳은 아마도 이곳 게이오 의숙뿐일 걸세. 여러분
은 이것을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네. 장차 새로운 문명을
쌓아 나가야 될 여러분이 같은 동포끼리 맞붙은 사사로운 싸움을 보려고
비록 십 분이라 할지라도 그 중요한 강의 시간을 허비했으니 어찌 각자
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겠는가. 저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략했을
당시, 네덜란드도 프랑스군에게 짓밟혀 결국 본국 어디에서도 국기가 게
양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단 한 군데만은 네
덜란드국기를 계속 게양했다네. 그곳이 바로 나가사키의 데지마 일각이
었지. 데지마는 네덜란드의 거류지였는데, 그 대단한 나폴레옹의 힘도 거
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일세. 이렇게 하여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것이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
는가. 세상이 아무리 소란한들 우리 게이오 의숙은 단연코 한 나라 문화
의 중추인 학문의 명맥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안목과 기개를 지켜야 하
는 걸세. 즉 우리 게이오 의숙이 계속되는 한 우리 민족은 세계의 문명
국 속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존속한다는 사실을 긍지를 갖고 생각해
야 한단 말이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까지 열기가 넘치는 유키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
던 학생들은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아 단 10분이라 할지라도 강의 시간을 낭
비한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을 크게 부끄러워했다. 갑자기 소동이 일어나면
그 소동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덩달아 휩쓸리
는 심리를 속된 말로 '야차마 근성'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관계
없는 일에 주제넘게 나서서 이유도 없이 소란을 피우는 천한 근성을 말한
다. 이 이야기의 경우에는 에도 시에서 동란이 벌어졌으니 에도 시민과 아
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키치는 그것을
같은 민족끼리의 '사사로운 싸움'이라 간주했다. 에도 시민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은 누군가가 '큰일났다'라고 외치자 '큰
일'이라고 믿고 경솔하게 동요했다.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엉거주춤 일어나
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 것을 부화뇌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안
목 따위는 전혀 없이 남의 마로가 생각에 우르르 따라가는 것을 바로 부화
뇌동이라고 한다. 야차마 근성과 부화뇌동은 둘 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
하지 않고 군중 심리에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야차마 근성과 부화뇌동
에 사로잡힌 집단은 대개 지성이 부족하여 규율도 통제도 없는 이른바 오
합지졸로 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근성이 있다. 그러나 유키치는
그것에 대해 엄격한 선을 긋는다. 옆에서 누가 아무리 떠들어대든 자기의
중심을 지키라는 것이다. 따가 바쿠후 말기의 동란 기였던 만큼 정말로 의
연한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안목과 기개는 오히려 경솔
하고 소견이 얕은 대중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진 오늘날 가장 필요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이다. 이쪽
저쪽의 눈치를 보면서 부화뇌동하는 일없이 '나 혼자 이 길을 가는'당당한
기개로까지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기개가 너무도 부
족하다.
020 장사꾼의 기개
관군과 쇼기다이의 전쟁으로 에도가 떠들썩한 1868년 5월 14일 밤이었
다. 쇼기다이 대원 20여 명이 몰래 총포상 오쿠라 기하치로를 찾아와서 을
러댔다.
"같이 가자!"
그 전날 밤 총포상 둘이 쇼기다이에게 살해되었다. 그래서 오쿠라는 죽
음을 각오하고 그들을 따라갔다. 우에노의 산 속으로 들어가자 살기가 감
돌았다. 대장인 듯한 사람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너는 관군에게는 총을 팔면서 왜 우리에게는 팔지 않나? 팔 건지 안 팔
건지 네 대답에 따라서 제 목숨도 결정된다."
그러나 오쿠라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나는 장사꾼입니다. 돈만 주면 누구에게도 총을 팝니다. 그러나 나는 협
박당해도 공짜로는 총을 건제 줄 수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상도에
어긋납니다. 돈을 지불해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팔겠습니다."
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좋다. 재미있는 놈이군. 돈은 꼭 준다. 총을 팔겠다고 약속하라."
대장은 정중하게 오쿠라를 돌려보냈다.
이것은 백 년 전에 있었던 조그만 사건이다. 백 년이라는 세월이 갖가지
모진 시련을 몰고 와 거의 모든 것을 무섭게 변모시켜 버렸다는 사실에 새
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역사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궤도를 찾아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결코 한 곳에 머물거나 뒷걸음치지 않는다. 역사
의 발전에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고, 현 시점에 서서 메이지 백 년을 회
고하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찬미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집단의 힘
에 의존한 폭력으로 법질서를 무시하는 일이 태연하게 먹혀드는 세태를 때
마침 일깨워 주는 이 이야기에서 오쿠라 기하치로의 상인으로서의 기개를
엿보면서, 백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잃어서는 안 되는 것마
저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속도는 낡은 것을 깨끗이 버릴 때 더욱
빨라진다. 그러나 이때 낡은 것 중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항상 새롭게 빛나
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을 확인하는 눈을 잃어버린
다면 새로운 역사를 올바르게 건설할 수 없다. 백년 전의 이 작은 일화는
그 점을 조용히 일깨워 주지 않는가.
021 쪽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배운 겸손
벤자민 프랭클린은 전기 연구로 세계를 놀라게 한 공적을 남긴 대과학자
이자 대정치가다. 그는 미국 독립 전쟁 때 유럽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를
전개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오로
지 겸손한 태도와 부드러운 인품으로 외교를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작은 사건에서 얻은 교훈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한다.
어느 날 넒은 프랭클린이 존경하는 선배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쪽
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비틀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선배가 비틀거리는 프
랭클린을 부축해 주면서 뼈아프게 충고했다
"그렇게 심하게 부딪쳤으니 몹시 아프지? 하지만 프랭클린 군, 그렇게
아프게 머리를 부딪친 것은 오늘 자네가 나를 찾아와서 얻은 최상의 수
확이었다고 생각하게나.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무사히 살아가려면 항상
머리를 낮추라는 것을 평생의 교훈으로 가슴에 새기라는 말일세."
눈에서 물이 번쩍 날 정도로 아픈 가운데도 프랭클린은 그 선배의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 이후 학문을 연구할 때나 정치 활동을 할 때 한결
같이 항상 머리를 숙이고 겸손을 생활화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겸손
이란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꽁무니를 빠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프랭클린이 남긴 유명한 금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언뜻 보기에 평범
하게 보이면서도 사실은 지키기가 대단히 힘든 일상생활의 방침을 성실하
게 지켜 나갔다. 프랭클린은 이렇게 꾸준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역사적 위
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엄격하게 응시하는 것, 더구나 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
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응시하면 할수록 그 눈에 비치는 것은 더러운 자
신, 어리석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각을 가르치는 근대적 사상은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의 이익을 확대하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
는 있어도 어쨌든 그런 사상 속에서 자라난 우리들이기에 자신을 응시하고
악에 쌓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래서 결국 시
선을 돌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돌
리지 않고는 뱃길 수 없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때, 나아가 더욱 더 집요하
게 끝까지 자신을 응시 할 대, 새벽빛과도 같은 희미한 길이 열린다.
겸손은 이처럼 꾸준한 자기 응시의 뒷받침을 받을 때 비로소 진짜가 된
다. 프랭클린이 쪽문에 머리를 아프게 부딪친 일을 계기로 겸손을 몸에 익
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겸손의 중요성을 깨달은 단순한 실마리에
불과하다. 그 빛나는 역사적 위업을 이룩한 겸손은, 부단한 노력으로 승화
시킨 진짜 겸손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022 일등을 하고도 나서지 않은 사람
미국 제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과묵한 칼'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청년 시절의 쿨리지가 해먼드라는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공화당이 전국에
서 현상 논문을 모집 중이었다. 쿨리지는 몰래 그 현상 모집에 응모했는데
멋지게 일등으로 입선되었다. 그 기사가 신문에 크게 게재된 것을 본 변호
사 해먼드는 그 영예의 입선자가 자신의 직원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농담 삼아 말했다.
"여기 일등 입선으로 금메달을 받은 사람 이름이 쿨리지라고 하는데, 설
마 자네는 아니겠지?"
그러자 쿨리지는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사실은 접니다."
해먼드는 놀라서 되물었다.
"뭐라고? 이렇게 대단한 영에를 얻고도 왜 말하지 않았나?"
쿨리지는 더욱 부끄러워하면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은 이런 일에 별로 흥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잠자코 있었
습니다."
큰 기쁨을 얻었다고 그것을 남에게 알린들 사람이란 본디 남의 기쁨 따
위를 별로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쁨
을 얻으면 그것을 남에게 알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광고 본능을 지니
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솔하게도 그런 기쁜 일이 생긴 것은 다 자신
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라고 과장해서 떠벌리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생각
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기 힘들지만, 자신의 기쁨과 재능을 남에게 강요
하려고 잔꾀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 본능의 꼭두각시가 되어 춤추는 자신
을 문득 깨달았을 때, 우리는 견디기 힘든 자기 혐오에 빠져들기도 한다.
때문에 쿨리지의 작은 일화가 빛나 보이는 것이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이것저것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겸손하게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과묵한 칼'의 자세를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중시하여야한다.
023 끈질긴 근성
무로마치 시대의 렌카의 대가로서 많은 명구를 남긴 소기가 렌카에 뜻을
품은 것은 청년기도 어느덧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길을 깊이 연구하기 위
해서는 탁월한 스승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당시 일류 스승이라 일
컬어지던 신케이를 찾아가서 문하생으로 삼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소
기의 초라한 모습을 언뜻 본 신케이는 문전 박대할 뿐, 만나 주려고도 하
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 때가되어 문득 보니 소기가 아직도 현관에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그의 끈기에 진 신케이는 겨우 방으로 들이기는 했지만
첫 마디부터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이 길에서 어엿하게 제구실을 하려면 최소한 이십 년은 걸린다네. 자네
는 지금 출발해도 다른 사람보다 십 년이나 늦은 셈이지 따라잡을 가망
이 없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서 다른 실로 나가는 게 좋을 걸세."
그러나 소기는 끈질기게 매달려서 결국 입문을 허락 받았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도 이 일념을 관철하기 위해 앞으로 십
년 동안 밤낮없이 노력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낮에
이 십 년 배우는 것과 같아집니다. 꼭 해낼 생각입니다. 부디 거두어 주
십시오."
소기는 약속한 대로 밤 낮 가리지 않고 노력하여 결국 그 분야의 최고봉
이 되었다.
어떤 길을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분야에서 우뚝 서고자 한다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흉내내기 힘든 독한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 이치 정도는 누
구나 날 알지만, 아무나 한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일
단 결심해도 조금만 힘든 곤경에 부딪치면 곧 녹초가 되기 때문이다. 끈질
기게 한 분야에 달라붙어 이를 악물고 견디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
히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일단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가지 그것을 관
철하고야 마는 끈질긴 근성과 집요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부평초같이
물결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10년간 밤낮없이 노력하면 낮에 20년간 배우는 것과 같다는 계산
은 쉽지만,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실천한 소기의 끈질긴 근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부평초같이 흔들리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안
타까워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는 과연 어떨까하는 생각에 문득 부끄러워
진다.
024 자네, 누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를 쓴 영국의 작가 스위프트는 실로 파
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그의 성격도 색달라서 여러 가지 기행이 전해지
고 있다.
어느 날, 인쇄 출판업을 하는 친구 포크너가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아주
득의 만만한 얼굴로 찾아와서 말했다.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네. 실은 런던에 가 있다가 지금 막 돌아오
는 길에 얼굴이나 보러 온 걸세."
그러자 스위프트는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자네를 모르는데 이름이 뭐더라?"
포크너는 깜짝 놀랐다.
"자네 나를 잊었나? 포크너라구."
스위프트는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포크너라는 이름을 사칭하고 있는 가짜야."
포크너는 곧 '아아, 그렇구나' 하며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평소에 입던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찾아왔다. 그러자 스위프트는 매우 기쁘게
맞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어, 자넨가. 아까는 말일세, 사치스러운 옷을 우스꽝스럽게 입은 남자
가 자네 이름을 사칭하고 찾아왔기에 쫓아 보냈다네."
유행, 특히 의상 따위의 유행은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따르
기 때문에 유행으로 자리잡는다. 기존의 것과는 달리 참신하고 신기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끌린다. 따라서 유행에는 일종의 '미'가 존재
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유행이라는 것은 그 글자 자체가 분명하게 보
여 주듯이 성격상 짧은 기간 동안만 빤짝하다가 만다. 지속성을 가지면 이
미 유행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유행에 일종의 '미'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참다운 미의 개념에 입각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때문에 어떤 유행
이 한 시기를 휩쓸고 사그라들면, 그것은 즉각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스
타일로 전락하는 것이다. 다라서 쓸데없이 유행을 쫓아다니는 자들은 진실
한 미의 추구자라기보다 신기한 것을 찾아 철새처럼 몰려다니는 경박한 무
리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도 그렇게 경박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몰
수 있다. 여자들만 보더라도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맹목적
으로 유행을 따르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거기에
서 참다운 미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차마 봐 주기 힘든 경박함과
뻔뻔스러움에 눈을 감고 싶은 것이다. 스위프트가 잠시 런던에 머무는 동
안 천박한 유행을 모방하고 뽐내는 친구에게 면박을 준 것은 그 경박스러
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의상에 한정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경박스런 것이 미치는 해악을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사회를 혼탁하
게 하는 세균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스위프트의 태도에서 통
쾌함마저 맛보는 것이다.
025 진주왕 미키모토
진주왕으로서 그 이름을 세계에 떨친 미키모토 고키치는 1858년 이세의
도바 항구에서 조그만 가락국수가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열 다섯 살 때 야채가게
로 전업했지만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열 여덟
살 때 때마침 도바 항구에 영국 군함이 입항하였다.
"오랜 항해에 지친 수병들에게 갓 낳은 달걀을 가지고 가면 팔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고키치는 달걀을 잔뜩 모아 가지고 갔다. 그랬더니 수병들은 기뻐하며
모두 달걀을 샀다. 뜻하지 않은 벌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
로 장차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 훗날 진
주로 널리 외국 무역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야채가게가 너무 안 되자
달걀을 팔아 번 돈으로 곡물상을 해 보았지만 그것도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럭저럭 하는 사이에 나이는 어느덧 서른 세 살이 되었다.
그 나이가 되면 보통 열정이 시들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 무렵 값비싼 중국산 진주를 본 그는
도바 항구의 바다 밑에 있는 진주조개를 생각해 재고, 틈틈이 바다 밑으로
잠수하여 진주조개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주가 들어 있는 조개는
백에 하나도 안 되었다. 어떻게든 좀더 많이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도쿄대학의 미즈쿠리 박사가 역설하는 말을 들었다.
"진주는 양식할 수 있다. 방법만 좋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것을 채취할
수 있다."
당시에 이론상으로는 진주의 양식이 가능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것
을 시도한 자는 아직 세계에서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그
는 결심했다.
"좋다! 내가 해 보자."
그는 온 가족을 이끌고 다카노리 섬으로 이사해서 이모저모 연구하면서
진주를 양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도해도 실패만 거듭할 뿐 진주 한 알
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전 재산을 다 털어 넣어
남들의 비웃음과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상태에서
도 진주 양식에 몰두하였다. q통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
으로 일에 매달렸다. 섬에 틀어박힌 지도 어언 4년째 되는 어느 여름, 시험
용 진주조개를 하나하나 조사하던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와아! 진주다!"
진주조개 하나하나마다 훌륭한 진주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피나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는 전매 특허를 얻어 일본 유일의,
그리고 세계 최초의 진주 양식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은 점점
번창하고, 외국을 상대로 한 무역도 해마다 늘어갔다. 마침내 소년 시절부
터 어렴풋하게 품었던 꿈을 실현하여 '진주왕 미키모토'로서 그 이름을 세
계에 떨친 것이다. 이것은 일본에서 유명한 진주왕 미키모토 고키치의 입
신 출세담이다.
요즘 세상에 남의 입신 출세담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입신 출세가 풍기는 배타주의와 속물 근성 때문에 극심한
비난을 할지언정. 분명히 이런 종류의 출세담에는 비속한 이기주의적인 색
채가 짙게 깔려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남을 돌아다보지도 않거니와 자기
가 나아가는 길에 장해가 되는 것은 가차없이 밀어젖히는 냉혹한 태도는
경멸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 더구나 위의 일화에서 볼 수 있
듯이 대인 관계를 별로 망치지 않고도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서 온갖 난
관을 헤치고 전진하는 불굴의 정신이 힘을 발휘하는 사례도 있다. 그것은
오히려 항상 살아 숨쉬는 빛나는 광채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대체로 그런 불굴의 정신을 상실하고 허약해
진 만큼, 출세주의 그 자체는 거부하더라도 입신 출세를 강력하게 뒷받침
하는 근성을 새로운 인생의 지주로 적극적으로 익힐 필요가 있다. 누군가
가 말했듯이 모든 창조적인 일은 광기와 제정신의 사잇길에서 비로소 이룩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일을 달성하게 하는 것은 그 사잇길에 있는
그 열정적 자세이다. 미키모토 고키치가 전 재산을 쏟아 붓고 진주 양식이
라는 새로운 일에 몰두했던 것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는 비웃을
만한 광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을 광기가 아니라 그 한 걸음 바로 앞
에 있는 열정적 자세로 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세계의 진주왕이 되
는 빛나는 길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광기와 제정신의 사잇길에 있는 열정적
자세에 있다. 자신이 이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에 열정적 자세로 임하
는 자가 너무나 적어지는 현상을 바라볼 때,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다고
하는 불굴의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굴의 정신은 입신 출세의 지주
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창조적인 일을 수행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키모토 고키치는 서른 세 살이라는 나이에 진주 양식에 성공했
다. 창조적인 일과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
이든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도전하는 바람직한 인생관을 갖자. 그
인생관을 떠받치는 것은 과감한 용기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026 시저의 몸값
기원전 75년 7월의 어느 날 밤, 휘황하게 빛나는 달빛을 받아 거울처럼
잔잔한 지중해를 조용히 항해하던 배 한 척이 갑자기 해적의 습격을 받아
아수라장이 되었다.
배에 옮겨 탄 해적들은 화물이며 귀중품을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두려
움에 더는 승객들 중에서 몸값을 뜯어낼 수 있겠다고 보이는 사람들은 따
로 추려내 억류했다. 마침 그 배에 타고 있던 훤칠한 풍채의 줄리어스 시
저도 해적의 눈에 띄게 되었다.
"넌 누구냐?"
"나를 모르는가? 내가 바로 시저다. 머지않아 천하를 호령할 사람이니까
잘 기억해 두어라!"
"풋내기 주제에 이놈이 큰소리를 치는군."
해적 두목은 그 와중에서도 태연자약한 시저의 대담함에 약간 놀라면서
말했다.
"어디 가는 거냐?"
"로도스 섬의 대웅변가 모론 선생 밑에서 공부하러 간다."
"흥, 조금은 건더기가 있는 놈 같군. 좋아, 네놈의 몸값은 이십 탤런트로
해 주지. 네놈의 가신을 로마로 돌려보내 줄 테니 돈을 가지고 오게 하
라. 그때까지 네 몸은 내가 맡아 두겠다."
"잠깐!"
시저가 끼여들었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뭐라고? 몸값이 비싸서 놀랐나?"
"아니다. 내 목숨이 겨우 그 정도 값으로 거래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
"뭐라고?"
"아무리 많은 금액을 말한다 해도 부족하겠지만, 하다 못해 네가 말한
몸값의 두 배 반으로 해 주지. 그러나 그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의 몸이
되면 너희들을 남김없이 나무 기둥에 묶어 놓고 찔러 죽일 테니 지금부
터 각오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이놈이 잠꼬대를 하는구먼."
해적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비웃으면서도 시저의 대담한
태도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윽고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된 시저는 곧 군대
를 모아 해적들을 모아 잡아 처형함으로써 약속을 실행했다.
우리 생활은 대부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가득 찬 채 흘러간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둘러싸고 내가 옳다 네가 옳다 떠들어 대고, 끝내는 서고
욕을 퍼붓고 때리며 유혈 참사마저 일으킨다. 그러나 조금만 높은 곳에서
그런 꼴을 바라보면 보잘것없는 미물의 꿈틀거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
게 될 것이다. 사소한 일에 구애되지 말라. 얼굴을 붉히고 흥분하는 어리석
은 자신을 돌아다보라. 이제 차원을 전환시키고자 노력하라. 그렇게 할 때
욕도 시기도 탐욕도 분노도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활달하면서 대담하고
당당한 인생이 열릴 것이다.
027 신의 아들 콜럼부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인 콜럼부스가 탐험을 도와준 에스파
냐로 돌아오자 이사벨라 여왕이 친히 앞장서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그 자리에서 성공을 시기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배를 몰기만 하면 콜럼
부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때 콜럼부스가 달걀 한 귀퉁이를 깨뜨려서 그것을 식탁
위에 세워 보임으로써 무엇이든지 일단 알려지고 나면 그 다음은 쉽게 느
껴진다는 것을 보여 준, 이른바 '콜럼부스의 달걀'이라고 하는 일화는 모르
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콜럼부스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대서양을 건너갔다. 네 번째 탐험에서
는 함께 항해했던 네 척의 배 중에 두 척이 침몰하고, 게다가 자메이카 섬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비참한 상태로 내몰렸
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문득 묘안을 떠올린 콜럼부스
는 재빨리 그 고장의 추장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섬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하여 신께서 노하셨다. 그래서
신께서는 앞으로 이 섬에 달빛을 비춰 주지 않겠다고 계시를 하셨다."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콜럼부스는 마침 그때가 월식 때인 것을 알고 시
간을 가늠하여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달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주위가
어둠으로 덮이자 추장들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그들은 간청했다.
"필요한 것은 뭐든지 드리겠으니 도와주십시오."
콜럼부스는 잠시 주저하는 태도를 보아다가 곧 열심히 기도하고 나서 말
했다.
"신께서 간청을 들어 주셨다."
달이 다시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추장들은 콜럼부스를
신의 아들이라고 우러러보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의 사막을 무대로 하여 무한한 상상력으로 기괴한 사건을 전
개하는 소설 솔로몬의 동굴. 19세기 영국 작가 하거드가 쓴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콜럼부스와 비슷하게 원주민을 위협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는 대목
이 있다. 콜럼부스의 일화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하거드가 그
것을 이용했는지 어땠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포인트는, 월식이
라는 과학적 사실과 원주민의 신앙을 잘 결부시켜 전혀 그런 지식이 없는
섬사람들을 굴복시켜 식량 위기를 타개했다는 '착상'에 있다. 물론 그것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항해한 발상과도 일맥 상통
하고, 헐뜯는 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연결된다.
콜럼부스의 착상은 모두 그것이 일단 실행된 뒤에 생각하면 실로 아무 것
도 아닌 것들이었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서 반짝이는 착상이 문득 떠오
르려면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착상은 결코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념으로 굳어져 실행을
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결실을 맺는다. 따라서 그 결실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깎아 내리는 것은 바로 자신이 사물을 얼마나 천
박하게 보는가를 폭로하는 데 불과하다. 주어진 일을 보다 능률적으로 혼
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할 때 천편일률적인 생활을 극복하고 새로운 착상을
얻는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착상이란 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028 내가 가는 길은 내 손으로
서양화단의 대가이자 서예가로서도 이름 높은 나카무라 후세츠는 집이
가난하여 열두 살 무렵에 마츠모토시에서 한 잡화상의 심부름꾼으로 일하
게 되었다. 바쁜 고용살이 속에서도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책을 사고 밤
에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다. 열 일곱 살 때 한 화가에게 그림
의 초보를 배우고는 장차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는 월급을 모
아 여비를 만들어 1888년 도쿄로 갔다. 그리고 그 무렵 서양화단의 거장이
라 일컬어지던 고야마 쇼타로를 찾아가서 마츠모토에서 그린 그림 세 장을
보이고 입문을 간청했다. 고야마 쇼타로는 그 화풍에 장래성이 있다고 생
각하고 다행히 입문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면 매일 여기 와서 내 일을 거들어 주게. 단 숙식은 자네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게나."
후세츠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당장 들어가 살집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쥐어짜다가 문득 고행 친구가 다카하시 고레키요의 저택에서
마부로 일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집으로 달려가 부탁한 끝에 헛
간이나 다름없는 한 평 반쯤 되는 방을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가지고 올
라온 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기 때문에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운송업자의 차를 끌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돈을
벌었다. 돈을 아끼느라 짜디짜게 볶은 완두콩을 먹으며 지내는 일도 잦았
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일 분 일 초를 아끼며 필사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솜씨가 눈에 띄게 늘어갔다.
그 후 한 장에 1전을 받고 석판화에 색칠을 하기도 하고, 싸구려 초상화
를 그려 팔기도 하면서 가난한 생활을 견뎌 냈다. 이렇게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한 보람이 있어서 처녀작 도쇼구의 사생이 메이지 미술전에서 입선했
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사오카 시키의 잡지에 표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얻어서 월급 10엔을 받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하여 그는 사생화의 제일인
자가 되고, 또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신문 삽화가가 되었다. 그 화풍이 높은
평가를 받아 감칠맛이 나는 서체와 더불어 서화의 확고한 대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매우 특이한 점은 지독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빚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의 큰 뜻을 안 하쿠붕칸의
사장 오하시 신타로가 유학 자금을 대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후세츠는 일
언지하에 거절했다.
"저는 지금까지 아무리 먹지 못해도 남에게서 일 전도 빌린 적이 없습니
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이 마음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돈을 모아서 자기 힘으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
뜻을 이루었다.
수박 겉핥기 식의 자극과 감각에 취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이 청춘
의 특권인 양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것은 당치도 않은 태만한 착각
이다. 정신과 육체가 활짝 꽃을 피우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착각이다. 정
신과 육체가 활짝 꽃을 피우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이야말로 몸과
마음을 모두 쏟아 '나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른바 큰
뜻이란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고, 그 큰 뜻을 향하여 정진하는 불굴의 정
열을 불태우는 것이 그 시기만의 유일한 특권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는 길은 내 손으로 개척하고 내 발로 딛고 나아가는 것.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따라서 이 길을 나아가기 위해서는 심혈을 기울여 몰두
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정진'이라 일컫는다. 내가
선택하여 가는 길이 무엇이든 아무런 장해나 곤란이 없는 일은 있을 수 없
기 때문에 무슨 일에나 필연적으로 정진이 요구된다.
자신의 길이 평탄하게 개척될 것처럼 안이하게 예상하는 것은 가련한 환
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짜디짜게 볶은 완두콩을 먹으며 큰 뜻을 밀고 나간
다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우리는 후세츠의 이 작은 일화에서 구
체적으로 알 수 있다. 또 파리로 유학할 비용을 대 주겠다고 하면 누구나
선뜻 달려들겠지만, 평생 한 번도 빛을 진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 역시 후세츠의 청빈한 정진을 상징적으
로 보여 준다.
029 간단합니다
독일 북부 아이네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렸을 대 부모를 잃고 열 다
섯 살 무렵부터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했다. 형에게 음악의 초보를
배운 바흐는 음악을 배우자마자 빼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게다가 일단 마
음먹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마는 집념까지 지녔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곳이라도 닥치는 대로 기억하여 연주했다.
어느 날 함부르크에서 네덜란드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라인켄이 연주회
를 연다는 말을 들은 바흐는 그것을 듣기 위해 일부러 6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함부르크까지 갔다. 그는 이렇듯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
고 공부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이윽고 바흐는 훌륭한 오르가니스트
가 되어 서른 두 살 때는 라인켄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한 번도
남의 연주를 칭찬한 적이 없는 독설가인 라이켄도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작곡가로서도 유명해져 종교적인 깊이를 가진 갖가
지 명곡을 남겼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멋진 명곡을 만들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자 바흐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내가 했던 만큼만 공부하고 노력하면 누구든 나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유전학이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듯이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일화가 잘 보여 주듯이 타고난 재능을 어디까지나
조그만 싹이자 조그만 인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싹이 반드시 무럭무럭 자
라 소담스런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천적인 재능이 있
는가 없는가에 조금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재능을 키워
나가고, 없으면 후천적으로 재능을 개발하고 무럭무럭 키워 소담스런 꽃을
피우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정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초점을 맞춰 정진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바흐의 말을 빌
릴 것도 없이, 그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정면으로 맞서 끝내는 해
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력으로 공부에 공부를 거듭하는 것을 뜻한다.
"간단합니다."
바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치가 않다. 조금만 괴로운 일
에 부딪치면 맥없이 뒷걸음치거나, 조금만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풋내기 정신이나 육체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준엄한
경지라는 사실을 눈을 똑바로 뜨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통해서 어떠한 장해가 있어도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
를 불태울 때 비로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된다.
030 천재가 된 열등생
1871년 아이치현의 오카자키에서 태어난 혼다 고타로는 철강분야의 대학
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에게는 형이 둘 있었다. 여렸을 때는 두 형
이 뛰어난 성적을 올려 장래가 촉망된다는 평을 듣는데 반해, 고타로는 초
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열등생이었다. 그래도 학과목 중에서 단 하나 물
리학만은 탁월한 성적을 얻었다. 그래서 저능아로 손가락질 받지는 않았지
만 다른 학과목은 맹타이라 모두들 '낙제생'이라고 깔보았다. 가정에서도
모두 바보 취급했고, 부모님은 공부 잘하는 두 형은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
면서도 고타로만은 초등학교를 나오자 외갓집에 맡겨서 들일을 거들게 했
다. 농사일밖에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타로는 다른 친구들은 모
두 중학교에 진학하는데 자신만이 농사를 짓는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
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형과 어머니에게 자신도 도쿄로 가서 공부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물론 아무도 그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1888년 열 여덟
살 때 마침내 허락을 했고 고타로는 기뻐서 도쿄로 향했다. 걸어서 코즈까
지 가서 거기서 비로소 기차를 탔는데, 너무나 빠르고 편리한 탈것을 본
소년 고타로는 마음속으로 놀랐다.
그리고 그는 굳게 결심했다.
"히야, 발에 못이 박히도록 걸어도 도쿄까지는 일 주일 이상 걸리는데,
기차를 타니 단 하루밖에 안 걸리네. 앞으로는 모든 길을 철길로 바꾸어
야 해. 좋다, 이 철길과 기차를 열심히 공부해 보자."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는 형들과 함께 하숙을 하게 된 고타로는 간다 스
루가다이의 교릿샤라고 하는 사립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가 좋은지 나쁜
지는 문제 삼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우수한 성
적으로 그 학교를 졸업하자 1890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제1중학교에 입학했
다. 1897년에는 도쿄 제국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무렵의 고타로는 조금의
빈틈도 없이 학문에 몰두했다. 일 분 일 초를 아끼며 노력하는 그의 태도
는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타로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대로 학교에 남아 연구에 몰두한 끝에 서
른두 살 때 '철의 자성에 관한 신학설'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9년에는 마침내 세계를 경탄시킨 '자석강'을 발명하여
확고한 대학자로서 세계에 이름을 떨친 것이다.
요즘 교육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매우 높아졌다. 특히 유아 교육의 중요
성이 떠들썩하게 부각되어, '인간의 성격은 세 살 때쯤 에 결정된다'는 것
이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옳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유아시절에
똑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부모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아, 아이들이
초등학교 과정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앞길이 캄캄하다며 절망하
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지나친 속단이요, 어림짐작이다.
물론 학습 능력과 유아기에 정해지는 성격에는 상관 관계가 있기는 하지
만, 학습능력이 뒤떨어지는 데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원인 이 있다. 그런
원인들을 제거하면 학습 능력이 커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학습능력이란 것
은 틀에 박힌 듯이 고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어렸을 때의 성적
이 나쁘다고 구제할 길 없는 지진아로 취급하고 무신경하게 대놓고 조롱하
면, 아이는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하여 학습 능력이 뒤떨어지는 학생으로
굳어지고 만다.
위의 일화가 분명하게 보여 주듯이 학습에 장해가 있고 없고 는 중요하
지 않다. 장해가 있으면 그것을 얼마나 빨리 배제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 가운데는 지능 개발이 늦은 대기만성형도 얼마든지 많다. 아이를
교육하는 부모는 아이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지능을 키우기 위해서는 본인이 자신감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을 쌓아 나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자각하게 만
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노구치 히데요는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싫어서 항상 이렇게 말했다.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 따위는 없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면서 노력에
노력을 쌓아 남보다 세 배 다섯 배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천재다."
이런 점에서 아이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야말로 부모로서 취해야 할
교육의 본연의 자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031 거장의 노력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상을 조각하고 있는 아틀리에에 친구가 놀러 와서
완성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돌아가다. 그로부터 두 달 후 그 친구가
다시 놀러 왔다가 깜짝 놀랐다. 미켈란젤로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
었는데, 석상은 두 달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는 물었다.
"이게 뭔가? 자네는 두 달 동안이나 게으름 피우고 있었나?"
"게으름을 피우기는커녕 지난 두 달 동안 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네."
미켈란젤로는 피로에 지친 얼굴로 말했다.
"저기를 다듬고 이쪽을 다시 닦고, 여기 얼굴을 부드럽게 하고 저 근육
을 팽팽하게 만들곤 했다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아직
입가 언저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하고 이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야 하는
일이 남았다네."
친구는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하지만 자네, 너무 오래 끌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사소한 일에 집착하
느라 일을 밀고 나가지 못한대서야 어떻게 대작을 만들겠나?"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제대로 만들고
싶다구. 그리고 제대로 된 잡품은 세심한 주의와 불굴의 노력을 통해서
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네."
이 작은 일화는 세계 미술사에 불후의 명작을 남긴 거장의 비밀을 이야
기하는 동시에,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시사하고 있는 의미가 크다. 일 그 자
체에는 경중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에 따라서 자신의 지위가 높은가 낮은가를 재려고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
을 맡으면 화풀이를 하듯이 그 일을 적당하게 처리해 버리기 일쑤이다. 그
래서 이 일화가 시사하는 바를 진지하게 읽어 내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할 때 맡은 일의 경중을 떠나 오로지 진지하게 완성하고자 하는 자
세를 가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032 노력은 영감의 어머니
나치스의 박해로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 박사는 '상대성 원리'를 확
립하여 전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저명한 근대 물리학의 대가이
지만, 성격은 지극히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의 일이었다. 어
느 석상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님은 기와공이 지붕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상대성 원리를
착안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아인슈타인은 평소와는 다르게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말했다.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는 엄격하게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뉴턴은 마음속으로 인력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며 실
험을 반복하다가 때마침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일종의 영감 얻은
것입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위대한 발견이 불쑥 이루어지
는 일은 단연코 없습니다. 오로지 거기에만 생각을 집중시키며 노력을
하고 있을 때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단순한 착상으로 이룰 수 있
는 일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약 있다고 해도 변변치 못한 것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엄숙한 말에 사람들은 숙연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영감이란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반짝하고 빛을 발하는 번뜩임을 말한
다. 그러나 그 번뜩임은 격렬하게 정신을 뒤흔들어, 우리의 앞길에 펼쳐져
있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환하게 비추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과학자나 예술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거나 훌
륭한 명작을 창조하는 것은 크든 적든 그런 번뜩임에 힘입은 것이라고 한
다. 그러나 이런 발견이나 창조는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엄연
한 사실에 숙연하게 눈을 떠야 한다. 영감의 번뜩임은 뼈를 깎듯이 심형을
기울여 고심하고 노력할 때만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대과학자나 대
예술가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막연한 인생 항로를 단순한 착상이나 억측으로
풀어 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일화는 엄중하게 시
사하고 있다. 우리 나름대로 진지하게 인생에 도전하고 고민할 때 순간적
으로 번뜩임이 일어나 자신의 길을 밝게 비쳐 준다는 것이다.
033 감동과 광기
괴테가 아직 젊었을 때의 일이다. 라이프치히에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
가 중병을 이겨낸 그는, 다시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슈트라스부르크
로 갔다. 슈트라스부르크는 역사적 기념물과 고색 창연한 건물이 많아, 아
름다움에 민감한 학생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특히 괴테는 탄성을 자아내
게 하는 대성당을 마음껏 찬미했다.
어느 날 그는 그 성당의 정면에 서서 찬란한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짐차를 끄는 젊은이가 휘파람을 불면서 그의 곁을 지나치
려고 했다. 순간 괴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젊은이의 따귀를 힘껏 후려
갈겨 쓰러뜨렸다. 그리고 어이없어 하는 젊은이를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는 듯 쏘아보며 성당을 가리켰다.
"감동도 하지 않다니, 건방진 놈!"
이유가 어떻든지 휘파람을 불면서 기분 좋게 짐차를 끄는 젊은이에게 느
닷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욕을 퍼붓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정상적인 사
람이라면 이럴 수 없다. 더구나 따귀를 후려친 이유가 '감동도 하지 않는
건방진 놈'이기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일화의 재미
는, 이야기를 여기에서 일단 끊고 괴테 개인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시각을 바꾸면 이번에는 괴테의 병적인 행동이 괴테의 젊은 날에
있었을 법한 '괴테다움'으로 부각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거치고 고전주의
문학으로 현란한 근세 독일 문학을 구축하여 문학사상 불멸의 공적을 단숨
에 쌓아 올린 괴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인 것이다. 이 일화에 새로
운 각도에서 조명을 비추면, 그것이 그대로 새로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학의 기본은 말할 것도 없이 감동에 있다. 진실한 감동이란 광기
를 띤 병적인 태도에서 불타오를지도 모른다. 그것을 세속적인 상식으로
억압할 때, 문학은 순식간에 보잘것없고 통속적인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화는 괴테의 문학을 설명하는 흥미진진한 비밀을 감추
고 있다.
034 목숨을 걸고 조각한 관음상
바쿠후 말기 무렵의 조각가로서 이름 높은 하마노 구즈이의 아들인 구즈
이 2세는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앓고 다른 조각가의 밑에 들어가 10년 동안
이나 수행하였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기술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작품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
갈 수밖에 없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홀어머니가 병으로 앓아 눕고
말았다. 구즈이는 어떻게든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며칠 동안 작업장
에 틀어박혀 작품을 조각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 대부터 드나들던 만물상 신페에의 가게를 찾
아갔다. 신페에는 그 작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면 물었
다.
"이건 뭘 조각한 겁니까?"
"너구리가 참선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페에는 한숨을 짓고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명인 구즈이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솜씨가 변
변치 못합니까. 너구리인지 여우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으니 이거야 원,
당신에게 진짜 근성이 있다면 차라리 조각을 깨끗하게 집어치우시요. 그
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감을 잃고 살아가던 구즈이 2세는 완전히 절망하여
자살할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신 어머니가
낌새를 눈치채고 물었다.
"너 죽을 생각을 하고 있구나? 무슨 일이 있었니?"
베개에 몸을 의지하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차마 거짓
말을 하지 못하고 신페에에게 조롱 당한 이야기를 그대로 하자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다. 명예롭게 죽거라. 내가 지켜봐 주마. 그러나 임종 때 이 어미에
게 남길 유물로 관음상 하나를 조각해 놓고 죽거라. 부탁한다."
구즈이는 곧 작업장에 틀어박혀 사흘 밤낮 동안 침식을 완전히 잊고 관
음상을 조각했다. 어머니에게 남길 유물이니 한 세대를 풍미할 조각이 되
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사흘만에 간신히 완성한 관음상을 보여
드리자 어머니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아, 이걸 만물상에 가지고 가서 쉰 냥 달라고 해라. 쉰 냥에서 한 푼
이라도 깎으려 들면 절대로 팔지 말거라."
만물상 신페에는 관음상을 받아 들고 화들짝 놀랐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나는 선친의 작품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
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게 남아 있었습니까?"
구즈이 2세가 자신의 잡품이라고 말하자 신페에는 더욱 크게 놀라며 곧
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네? 당신 작품이라고요? 사람 놀리지 마십시오."
그래서 어머니에게 유물로 남길 생각으로 조각했다고 말하자 신페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기꺼이 쉰 냥에 사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정말로 훌륭한
작품이라 쉰 냥도 오히려 싼 겁니다. 과연 명인의 아드님입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구즈이는 그 후 수행을 거듭하여 명공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재능에는 선천적인 요소와 유전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선
천적인 재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위축되어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다.
사실 선천적인 재능이란 것은 있어 봤자 한계가 너무나 뻔하다. 누구나 모
두 비슷해서 구별하기 힘든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도토리
키 재기'란 정확한 규격품처럼 모두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약간 키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가 하면, 굵은 것도 있고 가는 것도 있다는 식으로 개
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그 차가 대수롭지 않아 어차피 도토리이긴 마찬가지
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시점까지 각 개인은 한결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숨긴 잠재
적인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한결같이 무한한 가
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재능을 훌륭하게 꽃을 피울 수 있는데
도, 어떤 이는 두드러지고 찬연하게 재능을 빛내는 반면에 어떤 이는 재능
을 그대로 썩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잠
재된 재능을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는지 없는 지는 오로지 그 소유자의 마
음 자세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
는 가를 잠깐만 둘러봐도 이 작은 일화가 감동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를 금
방 실감할 수 있다. 어머니에게 남길 유물인 관음상을 목숨을 걸고 조각하
겠다는 일념이 순식간에 무한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던 재능을 찬란하게 꽃
피운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조형 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
아가는 그 누구든 결코 자신의 재능이 뒤떨어진다고 절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숨은 재능을 훌륭하게 빛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뼈를 깎는다는 각
오와 불굴의 인내와 노력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035 태양왕을 거절한 철학자
괴테와 독일 철학에 깊은 영향을 준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렌즈
를 닦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철학 연구에 열중했다. 그리고 수
학과 기하학 등 자연과학의 원리를 철학에 도입하여 새로운 학설을 세웠
다. 그런데 그런 방식에 대해서 당시의 보수적인 철학과 종교계가 격렬하
게 비난했고, 그 때문에 그의 생활은 점점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는 굳은 신념을 앞세워 결코 그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학설을 굽히지 않았다.
그 무렵 절대 왕정의 화신이라고 일컬어지던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
는 문예를 좋아하고 문화 전체에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스피노자가 생활에
곤란을 겪고있다는 말을 듣고 사자를 파견했다.
"만약 그대가 프랑스에 와서 그대의 저서를 내게 헌상해 준다면 해마다
충분한 돈을 보내 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태양왕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냉담했다.
"뜻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학문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내
책을 헌상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에 거절하겠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가 계속되면 처참한 심정에 빠져 자신을
무너뜨리기 쉽다. 가난은 의식주라는 욕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먹이'를 내보이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달려들게 된다. 하물며 이 일화와 같
이 중상주의 정책으로 당시 유럽에서 둘도 없는 부와 권세를 휘어잡은 루
이 14세가 직접 돈을 대 주겠다고 하면 덥석 먹이를 물지 않을 사람이 없
다. 게다가 보수적인 학풍 속에서 자신의 학설이 동네북이 되고 있을 때
그 저서를 헌상하라는 조건은 지극히 회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우
리들이라면 이를 파격적인 영광으로 여기고 기꺼이 수락하였을 것이다. 그
런데 스피노자는 자신의 학문을 지키려는 순수한 자세를 견지하여 궁핍한
생활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권세 위에 군림하는 문화 이해자'에
게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고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의
강철같은 신년에서 나온 행동이다.
스피노자의 굽힘 없는 당당한 자세는 먹이만 생기면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오히려 인간의 본능으로 긍정하려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엄하게 꾸짖고 있다.
036 대본이 필요 없는 배우
미후네 도시로는 연기로 보나 스케일로 보자 현대 일분의 영화계에서 특
출한 존재였다. 그는 세계 영화제에서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명실공히 뛰어난 배우였다. 물론 한순간에 거기까지 성장한 것은 아
니고 남 모르는 피나는 노력에 힘입어 세계적인 배우가 된 것이다. 그가
얼마나 힘들여 노력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미후네가 처음으로 다니구치 셍키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의 일이다. 미후네가 촬영장에 나왔는데 다니구치가 문득 보니 미후네의
손에 대본이 들려 있지 않았다. 배우라면 늘 대본을 갖고 다니며, 성실하
게 일하는 배우일수록 대본을 소중히 여긴다. 다니구치 감독이 불끈해서
소리쳤다.
"자네, 대본은 어떻게 된 거야?"
"네, 집에 두고 왔습니다."
"대본은 집에 두라고 나눠주었나? 그 따위 자세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
다고 생각하나?"
"......"
감독은 투덜거렸지만 미후네가 주연 배우라 어쩔 수 없이 촬영을 시작했
다. 그러나 미후네는 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깨알 만하게 씌어져 있던 지
문까지 한자도 틀리지 않게 완전히 암기하고 있었다. 대본은 머릿속에 있
었던 것이다. 다니구치 감독도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본은 머
릿속에 있었던 것이다. 다니구치 감독도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선천적인 재능
이 그 사람의 재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뛰어난 재주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외곬으로 쏟
아 붓는 피나는 노력 덕분이라는 것을 이 일화는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영화에서 대본이라는 것은 그 극 전체를 말로써 표현한 것이며, 게다가
거기에는 지문이라고 하여 그 진행에 수반되는 인물의 동작까지 명시하고
있다. 연기자는 그 대본을 보고 극 전체를 이해하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영화라는 예술을 완성시킨다. 따라서 대본이 손안에 없으면 아무리 재능
있는 연기자라 할 지라도 연기를 하기는커녕 꼼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자
연히 일에 정열을 쏟는 사람일수록 대본을 소중히 하고 한시라도 이것을
떼어놓지 않는다.
그것이 스타라고 불리는 자의 본연의 자세이다. 미후네가 대본을 지니지
않은 것을 보고 다니구치 감독이 불손한 놈이라고 화를 낸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미후네가 대본을 암기하여 지문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암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것이 피나는 불굴의 고행이다. 걸핏하면 우리는 뛰어난 재주를
지닌 자의 화려함에만 시선을 준다. 그런 재주를 지니기까지의 고통을 생
각하지 않은 채 그 화려한 측면만을 헛되게 꿈꾼다. 우리는 한 가지 조차
뛰어난 재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일화에서 자세에게 주어진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겸손하게 배우기 바란다.
037 차라리 나를 죽이게
호조 요시도키와 고토바 상황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1222년 5월 14일
고토바 상황은 호조 요시도키를 추격하라는 내용의 선지를 내렸지만 뜻대
로 병력을 미처 모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요시도키와 도키후사가 인솔하
는 20만 대군이 대거 상경하였다. 이로써 기소가와 연안의 수비대와 우지,
세타가와강의 요새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상황의 군세도 몰락하여 조큐의
난은 간단히 실패로 끝났다. 그때 패전한 교토 쪽 무사 중에 도가노의 코
잔사로 도망쳐 온 자가 상당히 많았는데 코잔사의 고승 묘에 스님은 도망
자들을 태연하게 숨겨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호조 군에게 새 나가는
바람에 묘에는 포졸 아다치 요시가케에게 잡혀, 요시도키의 진영으로 끌려
가서 취조를 받게 되었다. 요시도키가 엄격하게 추궁했지만 묘에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코잔사는 불교의 영지로 살생을 엄하게 금하고 있소, 그래서 사냥꾼에
게 쫓겨 이 산으로 도망쳐 온 새나 짐승도 마땅히 목숨을 구해 주오, 하
물며 적에게 쫓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도망쳐 온 것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거절하겠소. 석존께서도 다른 생물을 구하기 위해 당신 몸을 던
졌다고 하는 고사가 있으니, 출가한 승려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만약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먼저 내 못을 치도록 하시오. 나는 출가한
승려로서 목숨보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를 소중히 여기고 싶소."
후에 집권하여 만인이 따르는 선정을 베풀게 되는 요시도키는, 묘에의
도리에 맞는 의연한 태도에 탄복하여 그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영지를
주고 이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소승에게 배운 무사 무
욕의 불교 정신을 정치 이념으로 삼아 훌륭한 정치를 펼쳤다. 또한 묘에를
잡았던 포졸 아다치 요시가케도 훗날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젊은 사람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눈앞의 이
해관계에만 급급하여 자신에게 이득이 없을 것 같은 일은 거침없이 내던져
버리고 돌아다보지도 않는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태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거침없이 내던지고 돌아보지
도 않는 것마저 하나의 신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이해타산에 구애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확실히
하는 묘에의 태도는 요즘과 같은 세태에 밝은 빛을 던져 준다. 나가 처음
부터 끝까지 이치를 내세워 흔들리지 않고, 그 때문에 자신의 목숨마저 버
리고 돌아보지 않는 묘에의 의연한 자세는 역사의 흐름을 초월하여 영원히
빛나는 인간 본연의 자세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타오르는 신념의
불꽃에 자신을 불태우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기개를 되찾을 때다. 그러한
기개야말로 의지할 곳을 잃고 쓸데없이 헐떡이는 젊은이들이 가장 시급하
게 배워야 할 자세임을 새삼스럽게 통감한다.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행위하나, 행동 하나만을 보고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어떠어떠한 인물이라고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역시
긴 안목으로 관찰하여 그런 행위와 행동을 왜 했는가를 확인한 후에 평가
하지 않으면 당치도 않은 오해가 생가는 경우가 흔하다.
038 전하는 어엿한 음악가입니다
악성 베토벤이 베를린에 머물 때의 일이다. 음악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도 잘하고 작곡도 손수하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프로이센의 왕자 페르디난드가 그 누구보다 숭배하던 베토
벤을 위해 궁중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물론 베토벤은 궁정 악장 힘멜을 따
라 기꺼이 참석했다. 음악회장에는 프로이센의 왕족을 비롯하여 상류사회
의 신사 숙녀가 즐비하게 앉아 있었다. 맨 먼저 힘멜이 연주하고 이어서
왕자 페르디난드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 페르디난드의 연
주가 끝나자 음악회장 가득히 조심스러운 박수 갈채가 나왔지만, 이윽고
그렇게 하는 것이 궁정의 예절인 모양인지 갈채는 금방 가라않고 넓은 홀
이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만큼 조용해졌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여
연주에 귀기울이던 베토벤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거리낌없이 페르디난드에
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예절도 모르는 외국인을 비난하듯이 째려보았지만
베토벤은 미처 깨닫지 못한 눈치였다. 그는 페르디난드의 앞에 서서 친밀
한 말투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전하는 전하답게 연주하시지 않고 음악가답게 연주하셨습니다. 이제 어
엿한 음악가라고 말씀드려도 좋습니다."
페르디난드는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솔직한 비평에 감격하면서
베토벤의 손을 굳게 잡았다.
예의 범절이라는 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여겨져,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서랄 것도 없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는 예의 범절이란 겉치레에 불과하다며 무턱대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
러나 언제부터인가 예의 범절이 딱딱한 형식으로 고착되는 바람에 사람들
이 그것의 포로가 되고, 진실마저도 왜곡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
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 따위 예의 범절
은 깨끗이 때려 부수는 편이 낫다. 베토벤을 왕자라는 지위 때문에 항상
예의 범절에 맞는 왜곡된 비평밖에 듣지 못했던 페르디난드에게 신선한 충
격을 주었다. 예의범절을 극복한 파격적인 행동으로 새로운 예의 범절을
제시한 것이다.
039 까마귀는 꽁지로 울지 않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열 번째 아들로키수의 항슈가 된 도쿠가와 요리노
부가 젊었을 때 중병에 걸렸다. 그러자 까마귀 떼가 집 근처가지 날아와
시끄럽게 우짖어 댔기 때문에 가신들은 매우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혹시
영주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요리노
부의 가신이자 다나베의 성주인 안도 나오츠구가 그런 측근들의 모습을 보
고 느닷없어 물었다.
"까마귀는 입으로 우는가, 꽁지로 우는가?"
기이한 물음에 가신들이 우물쭈물했다.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입으로 웁니다만......"
그러나 나오츠구는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되지 않았는가, 만약 꽁지로 운다면 재수가 없을지 모르지만 단
지 입으로 울고 있는데 왜 재수가 없다 말인가. 시시한 일에 쓸데없이
신경쓸 것 없어."
과학 만능의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과학의 세계를 받은 과학자들까
지도 길흉의 조짐을 들먹이면서 시시한 미신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예가
의외로 많다. 그런 점에서 말하면 버스든 승용차든 차라고 이름 붙은 것들
이 예외 없이 부적인가 하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매달고 달리는 현실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부적이 교통사고를 막아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이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안정시켜 준다는 것은 사
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부적을 매달아야 안정감을 얻는
원시적 정신의 소유자를 점점 심해지는 교통 지옥 속에서 운전하도록 놓아
두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있을까. 물론 부적뿐만이 아니다. 황당무계한 미
신이나 길흉조짐을 들먹이는 일이 횡행하고,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이러한
행태에 한몫 끼여서 그것으로 부를 쌓아 간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까마귀는 입으로 우는데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040 산비둘기를 쏘아 죽인 장군
무예와 지략을 겸비했던 전국 시대의 영웅호걸 다케다 신겡에게 이런 일
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대 결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출전을 격려하기 위한 주연이
벌어져 전군이 한창 흥청거리는 중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산비둘기 한 마
리가 날아왔다. 그리고 마치 신겡의 출전을 축하하는 듯 연회장 위를 두어
번 돌더니 조용히 뜰 앞의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 진용을 완전히 갖추고
막 출전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본 일동은 기뻐하며 투지를 불태웠
다.
"이것이야말로 필승의 길조다!"
그런데 그때 도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똑같이 연회장 위를 맴돌
고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 일동은 더욱 기뻐서 모두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정말 좋은 조짐이야."
"이것이야말로 전승의 징조다. 한 마리도 길조인데 두 마리씩이나 왔으
니 이번 싸움은 대승을 거둘 게 틀림없어."
그러나 그것을 보고 있던 신겡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땅
치 않은 얼굴로 잠시 산비둘기를 쏘아보더니 옆에 있던 활을 집어 화살 하
나로 산비둘기 두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기뻐하던 일동이 한순간에 조
용해졌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물었다.
"왜 상서로운 비둘기를 쏘셨습니까?"
그러자 신겡은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새 중에서도 비둘기는 가장 머리가 나쁘다고 한다. 그런 비둘기가 싸움
에 앞서 승패를 알 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다음 번에 이렇게 출전할 때
비둘기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오늘 것이 길조라면 오지
않는 것은 흉조라고 하겠지. 이렇게 된다면 이런 시시한 것이 군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음에 미혹이 끼는 것이야말로 싸움에 임
하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부하들은 과연 옳은 말이라고 감탄하면서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을 부끄
러워했다.
과학이 눈부시게 진보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의
외로 "재수가 좋다"라든지 "재수가 나쁘다"는 말이 활개치고 있다. 이 일화
처럼 재수가 좋으면 이것을 길조라 하고 재수가 나쁘면 이것을 흉조라고
하는 사고 방식이 의외로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
들은 이때 사용하난 "재수"라는 말의 의미를 "모든 일을 해 나아감에 있어
서 길흉의 징조",또는 "전조"라는 식으로밖에 파악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징조나 전조를 길조나 흉조와 결부시키는 결정적 관건이 되는 "재수가 좋
다"라든지 "재수가 나쁘다"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비과학적이고 하찮은 현
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일화에서 출전을 앞두고 비둘기가 날아왔다고 하는 것 역시 하찮은
미신이다. 만약 비둘기가 승리를 의미한다는 전승이 전해져 온다면, 아마도
그것은 일찍이 어디에선가 출전을 앞두고 비둘기가 날아오는 사건이 있었
고,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었다는 아주 우발적인 관련이 마치 비둘기를 길
조인 양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신겡이 그것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비둘기를 쏘아 떨어뜨림으로써 부하들을 꾸짖었듯이, 싸움을 앞두고 비둘
기 따위가 승패를 예견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런 하찮은 것, 그런 어리석은 것에 질질 끌려 다니며 재수가
좋다느니 재수가 나쁘다느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는 것
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것을 생활에서 없애지 못하는
것일까. 게다가 이상하게도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맹신자가
의외로 많다. 우리는 이것을 "현대 지성의 놀라운 원시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모든 것의 결과는,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있기 때문
이며, 그 원인이 결과를 낳게 하는 직접적인 이유인데, 그렇다고 원인만으
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반드시 인연이라고 하는 간접적인
이유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쉬운 예를 들면 벼라고 하는 결과
가 나타나게 하는 것은 볍씨라는 원인인데, 그 원인을 책상 위에 놓아둔다
면 아무리 기다려도 벼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 원인에 밖에서의 힘,
즉 흙이라든가 물 또는 빛이라는 인연이 가해질 때 비로소 벼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인데, 그 본래적인 의미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면
징조라든가 전조 하는 것으로 왜곡된 대수롭지 않은 의미와 그 비과학성을
단숨에 떨쳐 버릴 수 있다.
위의 조그만 일화에서 재수 따위를 하찮게 여기는 신겡의 태도에서 무용
과 지략을 겸비한 무장의 놀라운 의연성을 엿볼 수 있고, 동시에 "현대 지
성의 원시성"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041 동요하지 않는 마음
에이헤이사의 제2조 에조 선사가 도겡 선사 밑에서 수행을 할 때의 일이
다. 병석에 누워 있던 에조의 어머니가 목숨이 위태롭다는 소식이 전해졌
다. 당장 집으로 가 봐야 할 일이지만, 그러나 스승인 도겡 선사가 정한 규
율에 따르면 에조가 속세로 나갈 수 있는 것은 한 달에 두 번, 한 번에 사
흘뿐이었고, 어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제한된 날
짜를 따 쓴 뒤였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50여명의 동문들이 입을 모
아 권했다.
"어머니와 금생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면 이보다 더한 불효가
있겠는가. 불가의 계율이 엄격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하니
까 스승님께서도 허락하실 거야. 말씀드리고 빨리 가보게나."
도겡 선사는 제자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들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에조도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잠시 후에 고개를 저으면 말했다.
"여러분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에 따라야겠지만, 그보다도 불가의 규범
이 한층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머니의 인정에 끌려 불가의
수범을 거역하면 이보다 더 큰 불효의 죄는 없을 것입니다. 출가한 자는
부모를 도에 들게 해야 하는데, 지금 내가 인정대문에 계율을 깨면 어머
니는 최후의 대죄를 범하게 되어 영겁의 영락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
니다. 나는 계율을 깨면서까지 어머니 가시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습
니다."
그리고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수행을 계속했기 때문에 모두들 그 굳은
불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임종소식을 들으면 한시라도 빨리 머리맡으로 달려가서 금생의
이별을 하고 싶은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소망이다. 아무리 불도수행에
정진하던 에조라 할지라도 같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자식으로
서 부모를 잃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라, 아무리 수행자라
고 해도 자칫 그 슬픔의 무게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몰라서 당황하다가 냉정
한 판단을 잃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주위 사람들은 으레 자식의
도리를 우선시하고 그 사람이 해야 할 임무 같은 것은 누군가가 대신 메울
테니 빨리 달려가라고 권한다. 에조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 시점에서는 불
가의 규율이 엄중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만은 특별한 경우이니 예외를 인
정받을 수도 있다는 일종의 "안이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소용
돌이쳤을 것이다.
이 일화에서는 도겡 선사가 제자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도 잠자코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지극히 의미심장하다. 즉 좌선의 스승
으로서 도겡의 그릇이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 준다.여기서 도겡선사가 무엇
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
기 때문에 도겡선사는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에조는 수행자로서 그리고 어머니의 아들로서 자신이 취해야 할 최선의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담담한 심경으로 수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조의 행동은
아들로서 결코 불초하고 냉혹한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효성에 관한 단순
한 미담 따위가 아니다. 침착하지 못하게 허둥지둥하다가 현실에 "굴복"하
는 것밖에 모르는 우리의 경박한 눈에는 에조의 단정하고 논리 정연한 정
신 자세가 우러러 보일 뿐이다.
042 돈에 환장한 거지 스님
에도 시대의 승려 겟셍은 승려로서보다 그림의 명인으로 유명했다. 그런
데 돈에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는 탓에 지각 있는 사람들은 "거지 겟셍"이
라고 비웃었다.
어느 날 그는 한 창녀의 부탁을 받고 그림을 그려서 가지고 갔다. 그런
데 그 창녀는 전부터 겟셍의 치사한 근성을 싫어하며 어떻게든 성실한 화
가로 다시 돌아가게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보자 쏘아붙
였다.
"겟셍 스님, 당신은 가사를 걸친 스님이시죠? 그런 분이 창녀에게까지
머리를 숙이고 돈을 탐한다는 건 너무 한심하지 않아요? 당신의 그림 따
윈 이렇게 써야 어울리겠죠?"
창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을 허리띠로 두르고
말았다. 아무리 돈에 환장한 겟셍이라도 이런 모욕에는 화를 내지 않고 배
길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지만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오오, 그거 정말 잘 어울립니다 그려."
그는 사례금을 받아들고 싱글싱글 웃으며 돌아갔다.
그 말을 들은 이케노 다이가가 화를 참지 못하고 겟셍을 찾아가서 충고
했다.
"욕심 없이 봉사해야 할 승려의 몸으로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까지 돈
에 집착하다니 우리 화단을 위해서도 통탄할 일입니다. 더구나 창녀에게
까지 조롱을 당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젠 제발 마음을 고쳐 먹
으시오."
그 말을 들은 겟셍이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까지 거지라고 욕하는 것을 참고 오로지 돈에 집착한 것은 내게 세
가지 서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세 부근에 요즘 천재지변이
계속되어 빈민의 참상을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라 그들을 구하려고 결심
했는데, 바로 조금 전에 애마다 장관에게 오백냥을 의연금으로 주었습니
다. 둘째는 이세의 조상을 모신 묘 부근의 도로가 형편없이 허물어져, 이
것을 수리해서 참배객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역시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선사의 유지를 이어
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승방을 개축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삼년
정도는 거지라는 말을 들어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소원을 이룰 생각입
니다. 그때가면 화필을 꺾고 단연코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부처님의 길을 따르고 싶습니다."
다이가는 그 말을 듣고 쓸데없이 충고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머리
숙여 사과했다.
돈이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배금주의 적인 사고는 확실히 인생
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며, 인간을 저속하게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인생의 외관만 보고 판단하거나 저속한 파악방법에 의존하여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무리 고매한 이상을 내세우고 순수한
계획을 수립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돈의 힘을 빌지 않고는 그 실현이 불
가능하다. 고매한 이상도 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 것 신기루에 불과하
다. 따라서 높은 이상과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하는 것은
돈을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창녀에게 그려 준 그림이 사람들의 면전에서 허리띠로 쓰이는 조
롱을 당하면서도 싱글싱글 웃고 사례금을 받아 갔다는 겟셍의 행동은 지나
치게 비굴해 보인다. 그래서 그것이 "세 가지 서원"을 모르는 이케노 다이
가를 격분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돈에 눈이 먼 비굴한 행동이
아니었다. 겉으로 태연을 가장했지만 아마도 견디기 힘든 인욕의 수행이었
을 것이다. "세 가지 서원"이라는 겟셍의 개인의 사리사욕을 떠난 순수한
소망이 있었기에 그의 수행은 용솟음치는 고귀한 신념으로서 빛을 발한다.
마치 돈에 눈이 먼 듯이 보인 것은 오로지 서원을 실현하기 위한 열렬한
소망의 현상에 불과했고, 따라서 사실은 돈의 가치에 피상적이고 저속하게
의존하는 마음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화는 신념에 뒷
받침된 겟셍의 용기 있는 행위와 불굴의 정신을 이야기해 주는 동시에, 우
리를 비열하게 만들기 쉬운 돈의 마력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준다.
043 가난하더라도 자유롭게
도쿠가와 중기의 대정치가로서 우수한 치적을 남긴 아라이 하쿠세키는
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일류 대학자이기도 했다. 집이 가난하여 소년 시절
부터 고학을 해 가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면학에 정진했기 때문에, 성장하
여 기노시타 중안의 문하생으로 있을 때는 그 학식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동문 중에 대부호 가와무라 즈이켕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하쿠세키의 재
능을 높이 사고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생활에 도움을 주어서 마음 편히 공
부하게 해 주고 싶어서 아버지와 상의했다. 가와무라 즈이켕은 즉석에서
승낙했다.
"좋다. 네가 그렇게 전도 양양한 사람이라고 보았다면 일 년에 삼천 냥
의 학자금을 도와주지."
청년은 하쿠세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면 틀림없이 춤을 추듯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랴부랴 그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
다. 그런데 하쿠세키는 아주 미안하다는 듯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자네의 호의는 정말 뼈에 사무치도록 고맙네, 그러나 그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세."
"아니, 어째서?"
"옛날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는군. 료잔이라는 곳에 조그만 뱀이 있었는
데 어떤 사람이 그 뱀의 몸에 작은 상처를 입혔다네, 그런데 수십 년 후
에 그 뱀이 구렁이가 되어 죽었는데, 어렸을 때 다쳤던 상처 자국이 한
자 크기의 큰 상처가 돼 있었다는 거야. 내가 지금 가난해서 힘겨운 생
활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삼천 냥의 학자금을 받으면 평생 그 무거운 짐
을 짊어지고 가야하네, 만약 내가 훌륭한 학자가 된다면 그 은혜는 더욱
크고 무거워서 자네의 아버지에게 머리를 들 수 없게 되네, 그러느니 이
대로 가난한 채 자유롭게 학문을 계속해 나가고 싶은 거야. 나를 위해
애쓴 자네의 노력을 헛되게 해서 미안하지만 방자한 나를 용서해 주게,
자네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내 마음을 이해하시리라 믿네."
나중에 가와무라 즈이켕은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친구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약삭빠르게 주판알을 퉁기고, 이익을 위해
서라면 지조마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돌아다보지 않는 무서운 세상에
대하 이일화는 엄중한 질책을 가한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거절하는 하쿠세키의 기개도 대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장
래를 확실하게 내다보고 동요하지 않는 그의 마음가짐에 우리는 더욱 놀라
게 된다.
044 귀족이 되었거나 말거나
괴테와 더불어 질풍노도 시대의 대표적 시인인 쉴러는 "빌헬름텔"을 비
롯한 명작으로 독일 문화에 공헌했다고 하여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세속적인 영예에 대해서는 아무런 흥미가 없어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귀족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
람은 별로 없었다. 어느 날 쉴러를 도와 서재에서 그가 최근에 쓴 원고를
찾던 친구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초고더미속에서 웬 서류를 하나 발견했
다. 친구가 펼쳐서 읽어보니 그것은 "귀하를 귀족으로 봉한다"는 내용의
사령장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자칫하면 휴지로 만들 뻔했잖아. 잘 간수해두었어
야지."
사령장을 받아든 쉴러는 흘끗 그것을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가?"
쉴러는 별로 소중히 보관하려고도 하지 않고 다시 열심히 원고를 찾기
시작했다.
세속적인 영예 따위는 원래 문제 삼을 가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삶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는 애처롭게도 명리에 눈이 멀어 진정한 삶의 모습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 채 헛된 것만을 추구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은 "부끄러워해야 하고 괴로워해야 한다"고 말했
다. 인간의 진실을 직시하고, 그 비탄 속에서 절대적인 삶을 발견한 것이
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삶이 부끄러우며 괴로운 것이라고 인정하는 마
음속에 오히려 바르고 참된 심성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영예
에 집착하지 않는 쉴러의 욕심 없고 깨끗한 마음이야말로 참된 심성의 정
수가 아닌가.
045 백 냥짜리 휘호
일본의 문인화의 시조로서 유명한 이케노 다이가는 서예의 대가이기도
했다. 1723년 교토에서 태어나 히가시야마의 마쿠즈하하라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그에게 서화를 부탁하는 자들이 초당 앞에 넘쳐 났다.
어느 날 후시미 지방의 이나리 다이묘진을 정일 품에 봉하는 조서가 내
렸기 때문에 신불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상의하여 절 앞에 길이 수십 미터
나 되는 노보리를 세우기로 하고 그 휘호를 다이가에게 부탁했다. 노보리
를 앞에 놓고 잠시 묵묵히 생각하던 다이가는 사람들이 침을 삼키며 지켜
보는 가운데 큰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서 뚜렷하게 첫 자를 썼다 그리고는
계속 이어 쓰는가 했더니 문득 붓을 놓고 말했다.
"그런데 이 휘호료는 얼마나 주실 겁니까?"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다이가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그러면 즉석에서 백 냥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미 한 자를 써서 노보리를 더럽힌 뒤라 어쩔 수 없이 그러마고 대답했
다. 다이가는 승낙을 받아 낸 후에 다시 붓을 들어 단숨에 나머지를 썼다.
그리고 사례금 백 냥을 받아들자 부랴부랴 어디론가 가 버렸다. 뒤에 남은
사람들이 크게 분노하여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욕을 퍼부었다.
"다이가라는 사람은 돈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결한 인물이라고 들
었는데 이제보니 도대체가 돼먹지 않았군. 한 글자 쓰고 사례금을 요구
하다니 비겁한 처사가 아닌가."
"저렇게 더러운 자가 쓴 노보리를 신전에 세운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
는 짓이야. 차라리 찢어 버리는 게 낫겠어."
이렇게 떠들고 있는데, 잠시 후에 당사자인 다이가가 어슬렁거리는 걸음
걸이로 돌아오더니 품에서 조금 전에 받았던 백 냥을 꺼내놓고 말했다.
"실은 이삼 일 전에 시피조의 골동품상에서 훌륭한 차 가마를 발견했는
데 값이 백 냥이나 되어서 나 같은 가난뱅이 화가는 엄두고 낼 수 없었
다오. 갖고 싶어 견딜 수가 없지만 도리가 있었겠고? 그때 마침 휘호를
써 달라는 얘기가 나와서 꽤 비싸다는 것 알면서도 백 냥을 요구했던 거
요. 그런데 서둘러 골동품상에 가보니 한 발 차이로 팔려 버린 후였소,
그래서 이 돈은 필요 없게 되었으니 돌려 드리겠소."
이유를 들은 사람들은 사정도 모르고 경솔하게 다이가를 욕한 것이 부끄
러웠다.
"그렇지만 모처럼 드린 것이니 넣어 두십시오."
그들은 사양하는 다이가에게 그 돈을 억지로 주었다.
이 이야기가 곧 세상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노보리를 구경하러 몰려들었
다. 그런데 다이가는 일부러 시골뜨기 같은 모습으로 군중 속에 섞여서 사
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노보리에 대해 평하는 것을 몰래 들었다. 구경꾼들
중에는 안목이 높은 사람도 있어서 비평이 자못 날카로웠다.
"과연 훌륭한 글씨이지만 아무래도 저 글씨는 약간 힘이 빠져 있는걸."
다이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똑같은 크기의 노보리를 주문하여 고쳐
썼다. 그리고는 주문한 사람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먼저 노보리와 바꾸
게 했다. 이렇게 휘호를 바꿔 쓰기를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는 바람에 마지
막에는 받았던 백 냥이 모두 사라지고 심지어 자기 돈까지 털어 넣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 이야기도 금방 세상에 퍼져서 다이가의 순수함과
일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큰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 새로 만든 노보리에 뚜렷하게 한 글자 쓰더니
뭇을 놓고 느닷없이 사례금 이야기를 꺼냈으니 부탁한 사람들이 다이가는
돈에 눈이 먼 비열한 인간이라고 욕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인물 평가는 잘못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행위하나, 행동 하나만을 보고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어떠어떠한 인물이라고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위험
하다. 역시 긴 안목을 관찰하여 그런 행위와 행동을 왜 했는가를 확인한
후에 평가하지 않으면 당치도 않은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인
물이 비열한 행위를 한다고 여겨지더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이 일화처럼 욕을 했던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즉석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한
인물의 가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뢰도와도 관계가 깊기 때문에 특히 상
급자가 하급자를 볼 때는 상대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긴 안목으로 평가해
야 한다. 이것이 위의 일화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이다.
두 번째로 배워야 할 것은 금전에 집착하지 않는 다이가의 자세다. 사례
금 백 냥을 다라고 해서 오해를 샀지만, 그것은 돈에 욕심을 부린 것이 아
니라 차 가마를 갖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 때문이었다. 한 발 늦어서
가마가 팔렸으니 맥 냥이라는 큰돈이 필요 없어졌다고 어슬렁거리는 걸음
걸이로 돌아온 그에게는 우리가 따르기 힘든 순수함이 있다.
순수함이란 사물에 대해 조금도 집착하지 않고 깨끗하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금전에 지나칠 만큼 집착한다. 하물며 백 냥이라는
큰돈에 이르면 더욱 큰 집착이 생겨, 설사 그 돈이 필요 없어졌다고 해도
깨끗이 돌려주기는 힘들다. 약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당연히 받을 사례금
을 받은 것뿐이라고 태도를 바꿀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어린애
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돌려주러 갔다고 하니 우리가 도저히 넘보기 힘든
순수함이 우러러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 금전에 집착하는 마음을 그렇게
깔끔하게 버릴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지겠는가. 그런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백 냥을 끝까지 돌려주지 못하고 소유하게 된 다이가는 그 후 자신이 쓴
휘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두 번 세 번 고쳐 쓴다. 자기가
한일을 완벽하게 끝맺으려는 일에 대한 열정도 높이 살 만하지만 그로 인
해서 새로 구입해야 할 노보리의 비용이 백 냥을 넘어서 오히려 자기 돈까
지 털어 넣어야 했다는 일화가 너무나 참신하게 들린다. 손해인가 이득인
가를 따져 보지 않는 너무나 바보스러운 계산 방법이지만, 그것을 바보스
럽다라고 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에 다이가의 행동은 매서운 채
찍질이 되어 돌아온다.
046 비구니와 밤손님
어느 날, 비구니 안요니의 여승방에 도둑이 들었다. 어지간히 궁한 도둑
이었는지 안요니가 덮고 자던 이불까지 벗겨 가 버렸다.
자다가 도둑을 맞은 안요니는 간신히 남은 종이 이불을 둘러쓰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옆방에서 자던 다른 젊은 비구니가 도둑이든 것을 알고 달려
와서 방 입구에 소매가 좁은 평상복이 한 벌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도둑이 흘리고 간 겁니다. 자아, 빨리 입으세요."
그러자 안요니가 대답했다.
"당치도 않아. 일단 훔친 이상 도둑은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남의 물건을 멋대로 입을 수는 없어, 도둑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테
니까 가져다주게나."
젊은 비구니는 어쩔 수 없이 도둑의 뒤를 쫓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옷
을 내 주었다. 그러나 도둑은 너무나 감동하여 훔쳐 간 것을 전부 돌려주
었다. 젊은 비구니가 기뻐서 그것을 가지고 달려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설
명하자 안요니가 정말 안됐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머, 그래? 이걸 미안해서 어쩌지?"
눈감으면 코 배가는 어수선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
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일화와 같이 너무나 얼빠진 인간 관계를 보며 아
마도 백이면 백 사람 모두가 일소에 붙이고 생각지도 않으려 할 것이다.
과연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사건이라 단
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고, 현대 사회 속에서 안요니처럼 살아가기란 애초
에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안됐다는 표정을 짓는" 안요니
의 얼굴이 당당한 빛을 발하면서 우리 마음의 어딘가를 꼭 잡고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실리다, 합리다, 사기다, 라고 아
우성치는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며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지
만, 그렇더라도 모두들 마음속으로나마 안요니의 얼굴을 애타게 바라기 때
문에다. 안요니를 비웃던 웃음을 지금 당장 멈추고 마음속을 조용히 들여
다보자.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비원이 몽상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047 은고양이 장난감
1186년 가을의 일이다.
사이교 법사가 도다이사를 재건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려고 오슈로 내
려갔는데, 가는 도중에 가마쿠라에 들러서 쇼군 요리토모를 배알했다. 요
리토모는 크게 기뻐하며 사이교를 맞아 기나긴 가을밤을 와카와 무도 이야
기로 지새웠다. 그 이튿날 사이교가 돌아가려고 할 때 요리토모는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은으로 만든 고양이 상을 주었다. 매우 진귀하고 훌륭한 작
품이었다. 사이교는 은제 고양이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부근에서
놀던 아이들을 보자 서슴없이 말했다.
"얘들아, 장난감을 갖고 싶지 않니?"
"주세요! 주세요!"
그는 달려온 아이들 손에 조금 전에 받은 고양이를 아무렇게나 던져 주
고는 성큼성큼 가 버렸다.
무소유.
이 경지는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이르고 싶어하는 지
고의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막상 현실 생활에서는 정반대 방향으로
밖에 걸어갈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에는 정이 떨어질 수밖에. 우리는 자나
깨나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내 것' 만을 좇아 허둥지둥 한다. 스스로 생각해
도 너무나 인색한 삶이다. 남들도 이렇게 인색한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아
도 다들 비슷비슷하게 마찬가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당시의 초고 권력자인 쇼군에게 받은 걸작 은제 고양이를 아무렇지도 않
게 아이들에게 주고 미련 없이 떠나가는 사이교의 뒷모습과, 하루하루 물
질에 집착하면서 억척을 부리는 정나미 떨어지는 우리의 생활을 비교해 보
자. 욕심을 툴툴 털어 버리고 빈손이 되어 가볍게 걸어가는 사이교에 비하
면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가. 스스로 돌이켜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
을 것이다.
048 마음을 비운 검법
어느 날 다쿠앙 선사가 야규 다지마노카미의 대문 앞을 지나가다가 안에
서 무사들이 훈련 삼아 칼싸움하는 소리를 듣고 혼잣말을 했다.
"허허, 사범이라는 것들이 형편없군."
문지기가 그 소리를 듣고 즉시 다지마노카미에게 알렸다. 그랬더니 다지
마노카미가 화를 내며 명령했다.
"당장 그 건방진 놈을 끌고 오너라!"
다쿠앙은 도장으로 끌려 들어왔다. 다지마노카미는 그를 아래위로 훑어
보며 물었다.
"그대는 출가한 몸이면서도 검술을 좀 아는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유파
를 익혔는가?"
"으하하하....."
다쿠앙이 느닷없이 크게 웃더니 말했다.
"그대는 천하제일의 사범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제보니 검술은 참으로 서
투르기가 짝이 없군. 무슨 유파를 익혔는가가 검술의 비결은 아니오. 검
을 사용하는데 무슨 유파인가 하는 따위가 왜 필요하단 말이요."
다쿠앙의 당당한 태도에 다지마노카미는 좀 기가 죽었다.
"그렇다면 할 수 가르쳐 주시기 바라오."
다지마노카미가 안절부절못하다가 목도를 들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대는 어떤 무기를 택하겠소?"
"소승은 출가한 몸이라 아무 것도 들지 않겠소. 자아, 무슨 유파를 써서
든 빨리 쳐보시오."
다쿠앙이 대답하고 도장 한복판에 우뚝 섰다. 다지마노카미는 놀랬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자세였다.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
랐다. 다지마노카미는 목도를 내려놓고 다쿠앙에게 무릎을 끓으며 엎드려
간청했다.
"황송합니다. 정말 스님이야말로 지덕이 뛰어난 성승이십니다. 어떤 경우
에도 동요되지 않는 심법의 수업을 하교하여 주십시오."
다지마노카미의 그릇에 마음이 움직인 다쿠앙은 그에게 심법의 비결을
전수해 주었다.
검술에는 갖가지 유파가 있고, 스승은 제자에게 우의의 비결과 독자성을
비밀리에 전수한다. 그러나 다쿠앙의 검술관은 달랐다. 유파의 족자성에 구
애되어 그것을 비밀리에 전수하는 것은 고작 검술의 입구에서 헤매는 "형
편없는" 상태이고, 정말로 "훌륭한" 검술은 그런 개별적인 유파를 초월한
데 있다는 것이다. '심법의 비결'이 개별적인 유파를 초월한 비법인데, 그것
은 검술만의 독특한 비결이 아니라 인생의 온갖 측면에 적용되는 궁극적이
고 '가장 훌륭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며, 마음의 자세를 무아의
드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무아'란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다. 승부
에 신경 쓰지 않고 일체의 집착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며, 불교에
서 말하는 깨달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좀처럼 쉽사리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가시밭길을 헤치듯이 지난한 정신 수행 과정을 거
쳐야만 도달할 수 잇는 경지이다. 따라서 검술을 연마하기 위해 기술을 습
득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피투성이의 인생 수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인생의 모든 측면에 적용된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그대로 피투
성이의 인생 수업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비운다'고하는 심법의 비결을 향
해 항상 정진해야 한다.
049 부자가 되는 방법
사쿠마 조상은 에도 바쿠후 말기 근왕파에 속하는 유학자로서 많은 지사
를 가르치는 지도적 입장에 있다가 결국 교토에서 자객에 의해 쉰네 살을
일기로 암살당하고 만 선각자이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조상에게 부탁했다.
"선생님은 뭐든지 잘 아시는데 부디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조상은 곧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야 아주 쉽지. 방뇨할 때 한쪽 다리를 들고 싸기만 하면 돼."
"아니, 개처럼 한쪽 다리를 들고 방뇨하라고요?"
조상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적어도 사람 사는 이치를 아는 자는 부자가 될 수
없다네."
이것은 지나치게 신랄하고 이 세상의 모든 부자에게 적용되는 논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부유층이 지닌 특성 한 가지를 매우 예리하게 지적
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부자가 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
면 반드시 거래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많든 적든 '흥정'을
벌여야 한다. 흥정이란 '책략을 써서 매사를 유리하게 이끄는 것'이다. 흥정
을 제대로 하려면 거짓이나 모사와 같은 편법을 써서 상대를 꺾거나 밀어
내야 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한쪽 다리를 들고 방뇨하는 것과 같은 지경
이 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상의 과장된 비유이며, '흥정'이 반드시 그렇
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상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런
천박한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동시에, 개처럼 한
다리를 들고 방뇨하는 패거리에게 철퇴를 내려 조상의 암시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050 한집안 식구
시즈가타케의 시지흔야리로 이름 높은 가토 요시아키는 중국에서 전래된
10개가 한 짝을 이룬 '무시쿠이낭킹'이라는 명기를 비장하고 있었다. 남색
과 흙색이 잘 어울린 명품으로, 요시아키는 이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겨 어
지간히 귀한 손님이 아니면 내놓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귀한
손님이 오자 하인에게 명하여 명기 하나를 내오도록 했다. 그러나 하인은
긴장한 나머지 그것을 떨어뜨려 두동강을 내고 말았다. 하인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제 옥에 갇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목이 잘리거나 할복
하라는 명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어전을 물러나 그대로 방에 틀
어박혀 있었다. 이튿날 아침, 과연 사자가 왔다. 곧 어전으로 나오라는 것
이었다. 하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속옷까지 갈아입고 어전으로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시아키는 하인을 보자 밝게 웃으면서 남아있던 무시쿠이낭킹
아홉 개를 모두 깨뜨려 버렸다.
"아무리 훌륭한 명기라도 한집안 식구와는 바꿀 수 없다. 명기가 없어도
아프다거나 가렵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한집안 식구는 내 수
족과 같으니 한시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걱정할 것 없다. 내일부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하도록 하라."
말할 나위도 없이 하인은 그 후 요시아키의 손과 발이 되어 충성을 다했
다.
물건은 어디까지나 물건일 뿐이다. 아무리 역사적인 내력이 깊다고 해도
또한 아무리 그것이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이라 해도 인간의 존엄성과 비교
할 수는 없다. 애당초 그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경중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에 대한 우리의 고집스런 집착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시하게 만든다. 물품의 역사적 내력이 깊고 예술적으로 뛰어나면 뛰어날
수록 미련하게 집착하면서 인명마저 경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물건의 소유자가 봉건 시대의 권력자였던 경우, 물건을 제대로 다
루지 못했다고 사람을 해친 사례가 역사상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
다. 하인의 목숨을 빼앗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상황과 조건이었는데
요시아키가 나머지 아홉 개의 명품을 깨 버렸다는 점에서 이이야기의 이색
적인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라는 역사적 현
실에서도 여전히 마음을 흔드는 감동을 준다는 저이 대단히 중요하다.
애지중지 아끼고 간직하던 명기를 송두리째 깨뜨리면서 까지 인간 생명
의 존엄성을 존중할 수 있다고 여러분은 말할 수 있겠는가.
051 참억새 지붕과 판자 지붕
사츠마지방의 사마즈 가 제16대 항슈 시마즈 요시히사가 머물렀던 고쿠
부의 성문이 무너졌다. 성문은 원래 참억새 지붕이었기 때문에 가신이 이
제 판자지붕으로 개조하자고 진언했다.
"판자 지붕은 되어야 영주님의 위엄도 손상 받지 않을 겁니다. 참억새
지붕이라면 아무래도 좀....."
요시히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성문이 영주의 위엄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느냐? 성문이참억새 지
붕이더라도 백성들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외국사람이 보아도 조금도 부
끄러울 것이 없다. 쓸데없는 짓을 해서 돈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
다 중요한 게야."
영주의 마음가짐이 그러했기에 백성들이 고분고분 순종한 것은 말할 나
위도 없다.
요시히사가 지적했듯이 '성문'과 '위엄'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
가 없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람들은
관련도 없는 두 가지를 연결지어 생각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위엄을 유지
하기 위해 남이 보기에 좋아 보이도록 집을 개축하거나 더 크고 좋은 집으
로 옮겨가려고 한다. 물론 집을 개축하는 이유가 위엄에 집착하기 때문만
은 아닐 것이다. 집이 너무 오래되어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라거나 식구 수
가 늘어나서 공간이 부족하다면 당연히 개축하거나 이사해야 한다. 그러나
많든 적든 집의 개축을 통해서 쓸데없이 허세와 허영을 부리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말할 것도 없이 허세란 실질을 수반하지 않는 외관적인
과시이며, 허영 역시 속은 텅텅 비었으면서도 가득 찬 것처럼 보이려 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의 천박한 근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집을 개축하는 것도 위엄 문제라고 생각하고 여봐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
는 천하태평한 사람은 더 말할 가치도 없겠지만, 적어도 위엄과 성문 사이
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므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둘을 관련지어 허세를 부리려는 천박한 자신의 근성을 반성하는 사람이더
라도 아마도 이일화에 나오는 요시히사의 단호한 경지에는 좀처럼 도달하
기 힘들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그런 습성은 무서운 마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딸
서 이 점에서 이 일화의 명쾌한 교훈은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052 욕심의 껍데기
이즈모의 태수 아마코 츠네히사는 자신의 물건을 칭찬하는 자가 있으면
무엇이든 주어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칼, 책, 먹이나 연적, 말안장뿐만 아
니라, 심지어 자신이 입고 있던 옷가지 주어 버렸다. 그래서 가신들은 츠네
히사 앞에서는 아무것도 칭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츠네히사가 수행원을 데리고 흔마루의 정원을 걷고 있을 때 마침 정원사
가 소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굵기가 한아름이나 되고 가지도 멋지게 뻗
어 있는, 보기에도 훌륭한 소나무였다. 츠네히사는 그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 소나무의 수령은 몇 년이나 됐나?"
"삼백 년은 될 겁니다. 정말 훌륭한 나무죠. 보기 좋기로는 성에서 으뜸
입니다."
"그래, 그렇게 훌륭한가?"
"네, 이렇게 잘생긴 나무는 좀처럼 없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이 소나무는 그대에게 주지. 집으로 가지고 가도록 하
라."
정원의 소나무까지 서슴없이 주는 것이었다.
이튿날 많은 인부들이 소나무를 파내서 수레에 실어 운반하려고 했다.
그런데 워낙 큰 소나무라 수레에 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지가 넓게
뻗어 있어서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인부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츠
네히사에게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을 했다.
"커서 운반할 수 없다면 잘게 잘라서 운반하면 되지 않은가."
소나무는 몸통이 잘린 채 성 밖으로 운반되엇다.
훗날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뒤에서 험담을 했다.
"이즈모의 영주는 바보짓을 했어."
츠네히사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소나무를 자른 게 아냐. 내 욕심의 껍데기를 벗겨낸 것일 뿐이
지."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라고 일컬어진다. 실제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활
은 하나부터 열까지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의 포로가 되어 억척을 부리
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하루하루에 불과하다. 그것이 동물적이고 본능
적일수록 더욱 뚜렷이 소유욕의 덩어리를 이룬다. 그리고 나와 남을 확연
하게 구별한 뒤에, '남'을 밀어 젖히고 '내'쪽으로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끌어당겨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행동한다. 그와 동시에 일단 '나'의 손에 들
어온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린다. 탐욕이란 이때
나타나는 냉혹한 의지이며 인색이란 이때 나타나는 비정한 감정이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문제가 못 된다. 우리가
냉혹한 의지와 비정한 검정을 앞세워 남과 무섭게 대립하면서 하루하루 살
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는 것이 동물적이고 본능
적인 거에 집착하고 거기서 나오는 의지나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가
련한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자신의 생활이 그러한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것
자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수긍을 하면서도 어쩐지 쓸쓸해지고 슬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
까. 여러분도 슬픔과 쓸쓸하지 않은가. 인간으로서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는
곳에 비로소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이 조용히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을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이 필요하다. 곧 '욕심을 버리는 일'
이다. 이 일화에서 보이는 치네히사의 행위는 영주의 사치스러운 변덕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인간의 냉혹하고 비정한 욕망에 대한 저항이 가득 숨어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
기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뤄 보았다. 그러나 물론 문
제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달려 있으며,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욕
심의 껍데기'를 차분히 벗겨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053 무슨 일이 났습니까?
제 1회 문화 훈장을 받은 천문학자인 기무라 히사시는 1900년 스물 아홉
살 때 이와테 현 미즈자와에 있는 위도 관측소장으로 부임하여 1943년경까
지 그 자리에서 천문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한 일로
관측소를 나와 시내로 나가보니 온 거리가 제등 행렬로 대단히 소란스러웠
다. 기무라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옆 사람에게 살짝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당신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요? 오늘은 일본 해군이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를 침몰시킨 것을 축하하는 경축일입니다."
"허어,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했다는 겁니까. 그런 줄은 전혀 몰랐습니
다."
실제로 기무라는 관측소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뿐 연구 이외의 일에는 전
혀 관심이 없었다. 온 나라를 뒤흔든 러일 전쟁 같은 사건도 전혀 몰라서
옆에 있던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러일 전쟁이라고 하면 당
시 일본이 세계 굴지의 대국이었던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이어서, 일본
에게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릴 판이었다. 따라
서 아무리 연구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으로서 그것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난받을 만하다.
언론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도가 지나친 사람은 한 사람
도 없겠지만, 설사 그것이 메이지 시대라 해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무관
심한 태도이다. 따라서 그런 태도 자체를 학자답다고 덮어 줄 수만은 없다.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이 일화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자신까지 잊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현대
인의 가장 큰 취약성은 모든 것을 이해타산으로 따지려는데 있다. 사람들
은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냉담하게 외면하고, 이득이 되는 것에만 모여든
다. 자연히 사람들의 움직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예상되는 일에
만 집중되고 따라서 오로지 약삭빠른 계산의 지배를 받는다는 느낌을 지우
기 힘들다. 그런 마음가짐에서 결코 진실이 나올 리가 없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하고 있다. 이 일화는 그 가장 중요한 것을 아주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시해 주지 않는가. 무엇을 하든 진실은 역시 이해 득실을 뛰어넘은 곳이
있고, 그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잊고 그것에 몰두하는 길밖에는
없다.
054 자객을 심복으로 삼은 아량
어느 날 가토 키요마사는 가신 몇 사람을 데리고 매사냥을 나섰다. 어느
산기슭에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숲에서 험악한 사내가 뛰쳐나와 느닷없이
키요마사가 탄 가마를 칼로 찔렀다. 다행히 키요마사는 가마 뒤에 기대어
졸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가신들이 그 사내를 붙잡았다.
키요마사는 가마의 문을 열어 젖히고 사내에게 물었다.
"누구냐? 왜 나를 죽이려 했는지 말하라."
사내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대구했다.
"내 이름은 단에몽이다. 집도 없고 성도 없고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보잘것없이 몰락한 것은 우리 일문이 키요마사에게 짓밟
혔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오늘 그 원수를 갚으려고 온 것이다."
"나는 그런 기억은 전혀 없다."
키요마사는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떤가. 그런 일로 부랑자로 살기보다 이번 기회에 내 가신이 될 생각
은 없는가. 제법 힘깨나 쓸 것 같으니 후하게 대우하지!"
단에몽은 키요마사의 가신이 되었다. 키요마사는 약속대로 단에몽을 근
위병으로 임명했을 뿐 아니라 어디에 가도 바로 옆에 두고 자신의 칼도 단
에몽에게 맡겼다. 의심하는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단에몽은 완전히 감동하
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후로는 키요마사의 팔다리가 되어 충성을 바치다
가 전사했다고 한다.
일단 의심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보인다. 마침내 의심이 깊
이를 알 수 없는 수렁으로 이어져, 결국 의심하고 있는 자신이 가장 괴로
워진다. 자승자박에 빠지는 것이다. 의심이란 결국 어리석고 못난 일인극이
다. 오직 자신의 손으로 의심의 고비를 싹둑 자르고 마음을 비워야만 괴로
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량이란 그렇게 마음을 텅 비운 상태를 말한다.
자신을 원수라고 여기고 죽일 기회를 엿보던 자에게 칼을 맡기는 배포를
접한다면 단에몽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그 품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
다.
055 내 이름을 걸고
닛다 요시사다가 하코네 전투에서 아시카가에게 패하고 교토로 퇴각할
때의 일이다. 덴류가와를 다 건너자 군사들이 조금이라도 적의추격을 늦추
기 위해 다리를 끊으려고 했다.
"잠깐!"
요시사다가 황급하게 그것을 막았다.
"패군인 우리가 건널 정도의 강이라면 다리를 끊는다 해도 기세가 오른
아시카가 군대가 건너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요시사다가 다리를 끊고
허둥지둥 도망쳤다는 말을 들었다가는 후세에까지 수치스럽게 될 것이
다. 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일부러 그 고장 사람에게 다리를 온전하게 지키도록 한 다음 퇴
각했다. 요시사다를 추격해 온 아시카가 군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
탄했다.
"과연 무사 집안에 태어난 자답다."
그 순간에만 편리하다면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어쩌든 나중에 주변으
로부터 무슨 말을 듣든 알 바 아니라는 억척스러운 생각이 새로운 사고 방
식인 양 당당하게 횡행하는 현실에 가끔 아연해지곤 한다. '이름을 중시한
다'고 하는 것이 무사도나 기사도의 핵심적인 정신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명예는 어떻게 되는 순간순간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이기적인
일 처리를 하다 보면 어느덧 비열한 겁쟁이가 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견
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중시한다'는 것은 성실한 인간성을
지켜 간다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런 것을 새삼스럽게 생
각해야 할 정도로 세상에서 지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일
화가 빛을 발하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한 생활 태
도는 뜻밖에도 낡았다고 외면 받는 것 속에 섞여 있다.
056 박진감 넘치는 연기
이치가와 사단지 1세가 아직 엔쇼라는 이름을 무대에 오르던 무렵의 일
이었다. 사단지는 충신인 엔야 판관을 맡았고, 상대인 고노 모로나오 역은
이치가와 단쥬로 9세였다. 드디어 마츠노 로카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는 장
면이었다.
"네 이놈 모로나오! 내 칼을 받아라."
판관으로 분장한 사단지가 이렇게 외치며 재빨리 내리쳤는데, 모로나오
로 분장한 단쥬로가 도망치면서 관객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렇게 맥없이 내려치면 어떻게 해?"
사단지는 화가 치밀어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있는 힘을 다해서 내려쳤
지만 단쥬로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빈정거렸다.
"도저히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맥이 없어서야....."
마치 연기가 서투른 배우 취급을 하는 바람에 사단지는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었다.
"좋아, 빌어먹을 놈. 사람 업신여기는 것도 분수가 있지. 두고 봐라. 내일
은 그 우쭐거리는 면상을 정말로 묵사발내 줄 테다."
사단지는 단단히 마음먹고 노기등등해서 무대로 올라갔다. 드디어 그 장
면이 되었다.
"네 이놈 모로나오, 내 칼을 받아라!"
사단지는 외치자마자 연극을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분노에
불타 진자 베려고 달려들었다.
"앗!"
단쥬로는 놀라서 홱 비켜섰다. 그러나 관객들이 보기에 둘 사이의 호흡
이 기가 막히게 맞아서 우렁찬 갈채가 터져나왔다. 나중에 사단지가 그때
의 기분을 이야기하자 단쥬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해야 뛰어난 배우가 될 수 있는 걸세, 앞으로도 항상 그런 마음
으로 연기를 하게나."
단쥬로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연극이기 때문에 진짜로 베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러나 진짜로 베어서는 안 된다는 데 구애받으면 아무리 날쌔게 달려들어도
베는 흉내밖에는 안 된다. 이미 마음에 제어 장치가 있는 한 실감나는 연
기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베는 흉내만 낸다면 상대가 칼
을 피해 내는 동작도 실감이 나지 않고 느슨할 테니 당연히 김빠진 연기가
된다. 연극은 현실을 허구적으로 재현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허구적인 진
실은 허구를 초월한 때 박진감 있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허구를 초
월한다는 것은 마음의 제어장치에 전혀 구애받지 안고 자칫 실수하면 진짜
벨 수도 있다는 기백을 가지고 달려드는 것을 말하다. 이쪽에서 그런 기세
로 달려든다면 상태 역시 다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비켜서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베는 자와 피하는 자의 호흡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맞아떨
어지며, 이때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갈채를 터뜨리게 된다.
연극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연기자의
호흡을 각자의 업무를 추진할 때 적용하도록 애써야 한다. 서비스 하나만
해도 그렇다. 그저 서비스하는 척만 하는 어설픈 흉내로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역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한가지 더, 사단지를 가혹할 만큼 꾸짖던 단쥬로의 마음을 잘 새기기 바
란다. 단쥬로가 사단지의 매서운 칼질에 화를 내기는커녕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는 것은 그의 진심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잘 말해 준다. 선배가 진
심으로 해 주는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한 자세를 지니기 바란다.
057 문이다 닫고 가게
학자 라이산요와 가깝게 지내던 다이강이라는 걸승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책상에 앉아 책을 앍고 있노라니 칼을 든 도둑이 들어왔다. 다이강을
태연히 도둑을 쏘아보며 물었다.
"목숨을 원하는가, 돈을 원하는가?"
도둑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돈을 원한다는 게 뻔하지 않나."
다이강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말했다.
"자아, 이걸 가지고 가라."
그는 돈을 내던져 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둑이 잠자코 돈을 집어들고 나가려고 하자 다이강이 한바탕 호령했다.
"잠깐!"
도둑이 얼굴빛이 변해서 우뚝 서 있자 이렇게 덧붙였다.
"문단속이 너무 허술하니 문을 닫고 가게."
도둑은 시키는대로 문을 닫고 나갔으나 며칠 후 잡혔다. 도둑이 포졸에
게 말했다.
"오랫동안 도둑질을 했지만 그때만큼 기분 나쁘고 무서웠던 적은 없었습
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을 관리가 다이강을 불러서 물었다.
"왜 도난 신고를 하지 않았소?"
그러자 다이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돈을 도둑맞은 게 아니라 그냥 내 준 것인데 뭐하러 신고합니까."
다이강의 침착한 태도는 신경이 날카로운 요즘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잡
을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다. 이렇게 대담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기반은
무조건 물질에만 집착하는 아집에서 해방된 넓은 마음에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내 것'과 '남의 것'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조금이라도 '내 것'을
늘리면 늘렸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고집스럽게 물질에 집착한다. 한 마디
로 억척을 부리는 것이다. 재산을 늘리려고 할 때 탐욕이 생기고, 잃어버리
지 않으려고 할 때 공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둑을 두려워
하는 것은 두둑이 들고 있는 칼 때문이 아니다. 재산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고 물질에 집착하는 억척스러운 마음 때문에 도둑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집에서 해방되면 이미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별이 사라진다. 이런 경
지에 올라설 때 '문단속이 너무 허술하니 문을 닫고 가라'고 하는 배포 큰
유머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제4장 완전한 기쁨을 주는 인생 수업
하나하나의 만남이 각자의 일생을 방향 짓는 결정적인 사건이 아니더라
도,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을 신비로운 인연을 받아들이는 것
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058 가장 기쁜 일
'달과 6펜스'라는 작품으로 동양에서도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문호 서머셋 몸이 일흔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축하연을 연 날 밤, 친구
한 사람이 물었다.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일은 뭔가?"
서머셋 몸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 있지. 제2차 세계 대전에 종군 중인 한 병사에게 편지를 하나 받
았었는데, 이런 편지였다네. '당신의 작품을 통독했는데 한번도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
서 이이상의 기쁨은 없다네. 그것이 평생을 통해서 제일 기뻤던 일일세."
쉽게 쓰려면 쓸 수 있는데도, 아니 그렇게 쓰려고 노력해야 하는 데도 ,
억지로 어려운 말을 사용해서 이상하게 빙빙 돌려쓰는 사람들이 있다. 얼
핏 읽어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장을 늘어놓고는 뿌듯해 하
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현학적인 악취미다. 그런 글을 써 놓고
스스로 훌륭하게 썼다고 생각하며 뿌듯해 하는 얼굴은 그 사람이 얼마나
유치한가를 상징한다. 현학적인 악취미를 즐기는 것은 학자가 아직 진지한
학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때의 현상이 다 진지한 경지에 이르면 그런
버릇은 당연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문장이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매
개물인 이상 그 기능을 충분히 다하려면 무엇보다도 일단 쉬워야 한다. 그
래야 누구나 쉽게 전달받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문장의 가장 필
수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교묘하게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쉽게 쓰느냐가 문제가 된다. 적어도 글을 쓰겠다고 하는 사람이라
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면으로 도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
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어려운 기술이
면, 난해한 어구를 사용하여 읽는 사람을 혼란시키는 것이 오히려 문장의
초보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059 결정적인 만남
유치원 교육의 창시자로서 유명한 프뢰벨은 스무 살 대 아버지를 잃고
측량 기사로 또는 회계 담당 직원으로 일하면서 독일 각지를 유랑했다. 처
음부터 교육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는 항상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 천직은 무엇일까?"
그리고 마침 프랑크푸르트에서 건축일을 거들다가 우연히 그 무렵 페스
탈로치의 교육이념을 받아들여 진보적이 교육을 하던 한 학교의 교장과 알
게 되었다. 교장은 프뢰벨이 성심 성의껏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자네는 건축가보다 교육자가 적임일세."
그는 프뢰벨을 자기학교의 교사로 채용해 주었다. 이 뜻하지 않은 기회
가 프뢰벨의 생애를 결정한 것이다. 프뢰벨은 2년 후에 교장의 친구인 부
호의 아들 셋을 교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 세 아이를 데리고 페스
탈로치의 학교에 들어가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연마했다.
이 일화에서 프뢰벨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전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진보
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장을 만난 일은 실로 신의 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만남은 바로 프뢰벨의 생애에서 결정적이 사건이며, 이 사건 이
없었으면 아마 세계적인 교육자로서의 프뢰벨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름 없는 건축가로서 평범하게 살다가 사라지는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프뢰벨 자신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역시
이것을 단순히 '우연한 기회'라고 가볍게 여기기 힘들다.
왜 만났을까.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이 만남이 이루어졌을까. 어떤 인연
이 있었는지까지는 아 수 없지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었
기에 평생의 일대 사건인 이 만남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만남이 각자의 일생을 방향 짓는 결정적인 사건이 아니더라
도, '인생은 만남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
을 신비로운 인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할 때 인연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을 깨달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프뢰벨의 주창한 유아 교육의 뿌리도 아마 여기에 두고 있
음이 틀림없다.
060 어린 스승과 나이 많은 제자
이토 사치오는 마사오키 시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가인으로, 이
른바 경쟁 관계에 있었다. 실제로 아무리 사소한 차이를 놓고도 논쟁을 벌
이곤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사치오는 시키가 자신보다 한층 더 뛰어나다
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시키를 찾아갔다. 그리고 직접 시키가 얼마나 위대
한가를 접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시키의 문하생으
로 들어갔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치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허심탄회하게 노래를 사랑하고 시키를 스승으로 존경했다. 그
리고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토론을 즐겨 밤이 으슥해지는 것도 모르고 이
야기를 나누었다. 먼동이 틀 대야 사치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
였다.
시키가 죽자 사치오는 한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스승으로 섬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사치오는 새로 스승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만엽집'뿐임을 깨닫고 마침내 단가의 왕좌에 오를 수 있었다.
본래 그래서는 안 되지만,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경쟁 의식을 느끼고
서로를 견제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좀처럼 머리를 숙여 스승으로 모시려고 하지
않는다. 하물며 상대의 나이가 자신보다 어리면 그저 연상이라는 것만을
내세워 거세게 벋댄다. 같은 길을 걷는 사이라는 것에 쓸데없이 구애되어
상대의 발밑에 무릎꿇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굴욕으로 여긴다. 그러나 스승
이란 말할 것도 없이 그 길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상대에게 존경
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를 스승으로 우러러보고 그 가르침을 얻는 것이야
말로 그 길을 보다 잘 걸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정진하겠다는 의
지가 굳으면 굳을수록 이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사치오가 단호하게 결심하여 일체의 잡음과 구애를 떨쳐버리고
시키의 제자로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길에 대한 순수한 의욕에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사치오가 어린 시키의 문하생이 되겠다는 용
기를 발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훗날 그 길의 왕좌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
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베이컨은 말했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더욱 허리를 낮추고 남에게 배우려고 한다."
우리는 걷는 길에서 뿐 아니라 별 것도 아닌 시시한 것에 구애되어 쓸데
없이 어깨에 힘을 주는 일이 많다. 그런 태도야말로 더없이 어리석다는 것
을 깊이 깨닫기 바란다.
061 이건 내 소설이군
대작가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후반의 영국 독서계를 석권하여 국민적 영
웅으로서 존경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두 도시
이야기'는 오늘날가지 전세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그가 '두 도시 이야기'를 쓰던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깊은 생각에 잠겨 산책하다가 그만 한 소녀가 끌고 가는 장난감
수레를 발로 차, 수레에 태워진 소녀의 인형을 부수고 말았다. 소녀가 울기
시작하자 당황한 디킨스는 몇 번이나 사과하면서 달래고는 집으로 데려가
선반 위에 장식품으로 놓아두었던 멋진 인형을 주었다. 소녀는 그 인형이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기 때문에 디킨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그 소녀가 찾아와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어제 너무 고마워서 지금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사왔어요."
포장지를 풀어보니 그것은 그가 쓴 소설 '데이빗 코퍼필드'였다. 디킨스
는 저도 모르게 웃으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고마워, 고마 아가씨. 이렇게 기쁜 일도 없을 거야."
그 소녀가 멋진 인형을 얻은 답례로 왜 '데이빗 코퍼필드'를 택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 책이 어린이용 도서가 아님은 분명하다. 따라서 소녀 자
신이 읽고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책이 대한
높은 평판을 듣고 그것을 선물하면 그 아저씨가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혹은 서점 주인에게 물어 그가 추천하는 대로 골
랐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소녀는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을 것이니 그것을 고른 것은 정말 우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디킨스는 그것을 잘 알았겠지만, 공교롭게도 자신의 작품계열 중에
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이빗 코퍼필드'를 어여쁜 소녀가
고운 손으로 골라 자신에게 전했다는 것이 너무도 기뻐 '이렇게 기쁜 일도
없을 거야'라고 밝게 웃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지극히 단순할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단순하다. 그러나 당
시에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디킨스가 소녀의 선물을 받고 '이렇게 기쁜 일
도 없을 거야'라고 최고의 기쁨을 표했다는 사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감
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하다는 것은 실로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곧게 뻗치는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숲처럼 상쾌한 느
낌을 준다. 남의 호의마저도 일부러 왜곡시키거나 저의를 살피면서 받아들
이는 것을 현대적 감각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요즈음, 이 일화를 곰곰이 되
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062 노동의 소중함
'셰익스피어 이야기' 등의 저서로 유명한 영국의 문호 찰스 램은 30년 동
안 인도 상회에 근무하면서 매일 아침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판에 박은 듯
한 생활을 해 왔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면 밤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
었기 때문에 램은 언제나 안타까워했다.
"낮 근무만 없으면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마침내 램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왔다. 정년 퇴직을 하게 된
것이다. 인도 상회는 오랫동안 근무한 것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그에게 넉
넉한 퇴직금을 주었다. 램은 매우 기뻐하면서 친구인 버튼에게 서둘러 편
지를 보냈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네. 앞으로 50년은 더 살 수 있을 거야. 분명 사
람이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노는 일'이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마도 그 다음으로 좋은 일 일거야."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독하게 신물나는 2년이었다. 램은 그
동안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원이나 관리로서 매일 정해진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무치게 깨닫게 된 것이다.
램은 다시 버튼에게 편지를 보냈다.
"인간에게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일이 너무 많은 것보다 나쁘다네. 한
가하면 자신의 마음을 파먹게 되는데, 인간이 먹는 음식 중에서 이만큼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없어."
직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매일 하는 일이 그다지 두드러진 변화
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우리는 형식적인 단조로움에 물려
일에 대한 불만과 혐오감을 갖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쪽 눈
을 감고 스스로 파는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램의 지적은 직업이
있고 없고 와 관련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떤 중요한 일을 함에 있어 날
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도 무척 의미가 크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감고 있는 한쪽 눈을 뜨고 그 단조로움 속에 숨은 커다란 과제를 발
견하기 바란다. 그때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이 그대로 새로운 창조의 의욕
이 되어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을까.
063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
겡헤이 야시마의 싸움에서 헤이가의 대장 가케키요와 모리츠구 등은 어
떻게든 미나모토노 구로 요시츠네를 치고 싶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어찌된 일인지 요시츠네는 손에 들고 있던 활을 놓쳐 버렸
다. 활은 물결을 따라 휩쓸려 내려갔다. 요시츠네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
지만 도저히 손이 닿지 않자 물결을 따라 쫓아갔다. 그런데 그 모습을 헤
이 가의 사람들이 발견하고 이때다 하고 요시츠네를 향해 배를 저어 왔다.
그들은 갈퀴로 요시츠네의 갑옷을 거머잡고 끌어당겼다. 요시츠네는 칼
을 빼어 들고 그것을 막으면서 겨우 활을 주워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
고 돌아왔다. 혼비백산한 시종들이 그가 무모한 짓을 했다며 탓했다.
"공께 활 하나쯤이 뭐가 중요합니까. 쓸데없는 것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가볍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요시츠네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활이 아까웠던 게 아니야. 이름을 아꼈던 거지. 그 활이 강도가 강한 활
이었다면 그대로 흘려 보내도 상관없겠지만 보통 활보다 강도가 약한 활
이라 주웠던 것이다. 이 요시츠네가 그렇게 형편없는 활을 가지고 있었
다고 후세에까지 전해져 영원히 웃음거리가 되는 걸 견딜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한사코 주우려고 했던 거다."
요컨대 요시츠네는 물결에 휩쓸린 활이 약한 활이었기에 후세에까지 웃
음거리가 되는 것이 두려워 위험을 무릅쓰고 끝끝내 그것을 주웠던 것이
다. 이 일화의 초점은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라는 것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미 쉰 살을 넘긴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큰 감동과 함께 이 일
화를 가슴 깊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는 세대가 떨어진 젊은이
들이 과연 이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이름을 아낀다'고
하는 것이 봉건 사회에서 이른바 무사도의 골격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봉건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행위도 귀중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어리석은 봉건적
잔재로 매도당했다. 그러나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행위가 앞
에서 예로든 요시츠네의 일화와 같은 형태를 취할 때는 오히려 그것이 자
기 존재에 대한 차원 높은 책임감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시원한 감동을 안
겨 준다. 그런 뜻에서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행위는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에서나 새로운 생명을 갖는 덕목이 된다.
그런 덕목까지 그릇된 봉건적 잔재와 더불어 한데 몰아 버려서는 안 된
다. 특히 세상이 요즘처럼 혼란할 때는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세상이 이토록 혼란한 까닭은 그렇게 차원 높은 책임감이 각자의 마
음에서 너무나 쉽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신념처럼 언제까지
라도 새로운 빛을 발하는 중요한 덕목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064 열 냥과 쉰 냥
호조 도키요리를 섬기며 효조슈가 되어 공정한 재판을 하였기 때문에 좋
은 평판을 받았던 아오토 후지츠나가 어느 날 가마쿠라의 나메리카와라는
조그만 강을 건너다가 실수하여 엽전 열 냥을 물 속에 떨어뜨렸다. 후지츠
나는 쉰 냥을 주고 횃불을 사고 많은 인부를 고용하여 엽전을 간신히 찾아
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뒤에서 비웃으며 수군거렸다.
"겨우 열 냥을 주우려고 쉰 냥으로 횃불과 인부를 사다니 정말 어리석
군."
후지츠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물론 엽전 열 냥은 별 게 아닌 돈이지. 그러나 천하의 보물임에 틀림없
다. 그것을 강물에 빠뜨려 잃어버리는 것은 천하의 보물을 잃는 것과 같
다. 나는 비록 쉰 냥이나 되는 돈을 썼지만, 내가 쓴 그 돈은 천하에 널
리 통용될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나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천하를
생각하면 한 냥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얼마 안 되는 엽
전이라 하여 포기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단돈 열 냥을 찾으려고 쉰 냥이나 되는 돈
을 쓴 아오토 후지츠나의 행동은 산술 계산에 맞지 않아 당연히 비웃음을
살 일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더더구나 아차 하면 그런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라 잠시도 방심도 할 수 없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그런 비웃음에 시달려 삐꺽대기 일쑤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산술 계산은 낮은 차원
에서 자신에게 집착했을 때나 맞아떨어질 뿐이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는
오히려 반대가 된다. 천하를 생각하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때 후지츠나
의 행동은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 된다. 이 일화가 그것을 분명하게 말
해 준다. 높은 차원에 입각한 계산이야말로 우리가 진실로 추구해야 할 길
이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자.
065 성공의 비결
소년공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석유와 철강 사업으로 세계 굴지의 부호
가 된 미국의 실업가 카네기에게 신문 기자가 찾아왔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청년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카네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떤 직업을 택해도 좋으니 끊임없이 그 직업의 일인자가 되겠다고 다
짐하는 것입니다. 그 직장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라는 뜻이죠."
카네기는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은 내 체험에서 얻은 확신입니다."
"그러면 그 체험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기자가 부탁하자 카네기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집이 가난해서 열두 살 때 방적 회사의 화부로 취직했습니다. 그
때 공장에서 제일가는 화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이리저리 연구하고 궁
리하면서 열심히 일했지요. 내가 성실하게 일하는 태도를 보고 어떤 사
람이 우편 배달부로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때도 미국에서 제일가는 우체
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한 집 한 집 번지와 이름을 암기했기 때문에 배
달 구역 내에서라면 모르는 골목이 없을 정도가 되었지요. 이런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아 나는 상당히 필요한 인물이 됐답니다. 그것을 또 높이
사는 사람이 나타나서 곧 전신기사로 채용되었지요. 그런데 거기에서도
역시 일인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철강왕이 될 수 있었답니다."
이 카네기의 체험담은 성공의 비결을 밝히고 있다는 의미에서 입신 출세
를 위한 훌륭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입신 출세를 위해 이 방법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도 물론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입신
출세라는 자기 이익만을 목표로 일해서는 어떤 직장에서도 카네기가 말하
는 일인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즉 입신 출세를 하려면 먼저 입신 출
세를 희구하는 마음가짐을 송두리째 버려야 한다. 자기 이익에 대한 집착
을 버리고 오로지 일에 정진할 때 진정한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다. 불교에서 말하는 '어떤 경우에도 항상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자유
자재로 일한다'는 것도 '무아'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될 수 있다는
뜻으로 같은 의미의 경지이다. 성공은 차가운 작위의 정신으로 일할 때 저
절로 솟구친다는 것을 이 조그만 일화에서 배워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이 일화는 귀중한 지표가 되어 우리의 생활을 충실하게 해 준다.
066 혼담을 거절한 이유
독특한 화풍으로 메이지 화단에 이채로운 업적을 남긴 데라사키고교는
처음에 의사가 될 생각으로 고향 아키다항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나 원
래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기 때문에 열 여섯 살 때 방향을 전환, 그 고장의
고무로 이사이라고 하는 화가 밑에서 오로지 그밀 공부에 몰두했다. 그림
솜씨는 눈에 띠게 좋아져 스무 살이 될 무렵에는 스승이 이제 더 이상 가
르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자 곧 상경하여 동향 출
신의 대가 히라후쿠 스이앙의 서생이 되어 그 집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 후 하숙 생활을 시작했는데, 생활고가 워낙 심해 어쩔 수 없이 인쇄
화의 판목을 뜨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면서 고학을 했다. 그렇게 고통스러
운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에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어떤 사람이 당시의 유
명한 화가 사타케 에이코의 딸과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혼담을 넣었다. 생
활고에 허덕이던 때이니 기꺼이 그 혼담을 승낙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고교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모처럼 생각해 주신 배려 감사합니다만 장래 제가 유명해졌을 때 처갓
집 덕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때문에 명가에
서는 아내를 맞지 않을 생각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고교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것은 과연 무엇과도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이다. 고
통에 못 이겨 사람을 배신하고 지조를 팔고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사악한
무리와 어울린 자는 동서 고금의 역사를 통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
다. 그것이 인간의 취약점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생활고에 무
릎을 꿇은 수많은 사례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그 연약함
을 극복한 불굴의 기개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이해 득실에 따라 재단하려는 세태의 큰 흐름 속에서 고교가
보여 준 기개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오히려 너나
할 것 없이 유리한 조건에 매달리려는 작태가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아무
렇지도 않게 횡행하고 있다. 이것은 적신호다. 항상 한 걸음 물러서서 세태
를 응시하자. 매사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자칫하면 우리 몸을 찌를 수
도 있는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067 금화를 부채로 받는 사람
쥬라쿠다이의 집합장소에 모인 다이묘들이 다테 마사무네를 둘러싸고 황
금의 오항을 바라보며 저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격찬했다.
"뿜어내는 빛이 휘황찬란하군,"
"정말 훌륭합니다."
그것은 마사무네가 자기 금광에서 채굴한 금으로 만든 새 돈이었다.
"좋으시다면 한 개씩 드리겠소. 이곳에서는 금이 썩어날 정도로 많이 나
니까요."
마사무네의 말에 모든 사람이 기뻐했다.
그곳에 우에스기 가게카츠의 중신이며,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나오에 가네츠구가 왔다. 그래서 마사무네는 그에게도 오항 하나를 깨내
보였다.
"어디 한 번 볼까요."
가네츠구는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펼쳐서 그것을 받았다. 마사무네는
자신이 62만 석의 다이묘이고, 나오에의 영지는 6만 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을 존경하여 직접 손으로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오에공. 어려워 말고 손으로 직접 받아보시오."
그러나 가네츠구는 마사무네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전쟁터에서 언제나 주군 가게카츠님의 선봉
에 서서 깃발을 잡는데, 그 손에 그렇게 더러운 것을 잡을 수는 없습니
다."
가네츠구는 돈을 부채에 얹은 채 마사무네에게 돌려주었다.
아무리 가네츠구가 청렴결백한 무사라고는 하지만 '깃발을 잡는 손에 그
렇게 더러운 것을 잡을 수 없다'고 말하며 오항을 손에 들기 거절했다는
것은 좀 억지 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는 없다. 실제로
억지이며 지나친 과장이다. 그런 이유로만 오항을 손에 들기를 거절했다면
그것은 비뚤어진 행위이며, 음습한 그늘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가네츠구가 격분한 까닭은 빛나는 황금 오항에
마음을 빼앗긴 다이묘들이 그것을 얻게 되었다는 기쁨에 비굴한 태도를 보
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에 우쭐해서 62만 석의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
라는 인간이 이곳에는 금이 썩을 정도로 많다며 뻐기는 천박하고 속된 채
도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억제하기 어려운 격분을, 억지 이
유를 내세워 마사무네를 똑바로 바라보며 표출한 것이다. 그는 끝까지 부
드럽게 행동했지만, 그 속에 숨은 굳건한 용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일화를 볼 때 억지로 이유를 붙이는 듯한 음습한 그늘
이 사라지고, 가네츠구의 의연한 용기를 뒷받침하는 격분에 진심으로 공감
하게 된다. 황금 앞에서라면 저도 모르게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꼬리치
는 자들에게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는가.
068 느낌이라는 미덕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등의 명작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프랑
스의 대조각가 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쉰 살이 다 되어서였다. 그때까지는
지겹도록 밑바닥 생활이 계속되었지만 이를 악물고 그것을 참았다.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벨기에의 네에라고 하는 병사를 모델로 저 유명
한 '청동시대'라는 작품을 조각하여 전람회에 출품했는데, 그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오히려 심사 위원들의 의심을 샀다.
"이것은 틀림없이 살아 있는 모델에서 바로 형을 떠서 만든 사기 조각이
다."
이렇듯 어이없는 이유로 낙선시키려는 것을 한 심사 위원이 만류했다.
"비록 사기 조각이라 해도 그 사기가 실로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는 다른 심사 위원들을 설득해서 로댕의 작품을 입선시켰다.
그런데 신문과 잡지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은 로댕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
고 공격했다. 그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로댕이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
다. 이 사건은 로댕의 작품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말해 준다. 역시 걸작이
라 일컬어지는 '발자크 상'을 만든 것은 쉰 여덟 살 때였다. 이 작품이 나
왔을 때도 온갖 악평을 퍼붓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로댕은 그런 말에
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제 다들 알게 될 것이라며 부지런히 노력했다.
"느리다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라네."
이렇게 그는 미소짓는 얼굴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 작품을 접하고 비판적인 평을 퍼붓는 것만큼 부당한 일은 없습니
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반드시 명백한 오해로 끝날 뿐입니다."
릴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걸핏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하지
만."
릴케는 잘 알려졌듯이 젊은 날에 로댕 밑에서 그 예술적인 영향을 받으
며 훌륭한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닦았다. 그런 만큼 비평을 불신하는 릴케
의 말은 로댕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느 예술가
가 사기 조각 사건이라는 당치도 않은 오해로 여론의 총공격을 가혹하게
받았다면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필시 순식간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영락해 버렸을 것이다. 물론 로댕도 사기라는 주장과는 단호하게 끝까지
싸워서 결국 결백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원래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제
의 초검이 빗나가 있었던 만큼, 쉰 여덟 살이 된 뒤에도 집요한 악평을 받
으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의 의연한 태
도를 통해 예술가로서 보기 드문 넓은 도량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초점이
어떻게 빗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릴케가 같은 책에서 잘 대변했다.
"당신이 쓰지 않을 수 없는 근거를 찾아 주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어떤지 검토해 주십시오. 만약 당신
이 쓰는 것을 중단한다면 죽어야만 하는지 어떤지 스스로에게 고백해 주
십시오."
이렇듯 로댕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제는 천박한 곳에 뿌리박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검토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게다가 그것이 죽음을
건 검토라는 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느리다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라네."
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는 이 말에는 역설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본디 말로 다할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찬 존재이다. 예술 작품의 생명은 덧없는 우리의 생명을 뛰어넘어 영원히
계속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잔재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댕의 예술에 대한 의연한 태도는 단순히 예술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
다. 그것은 마치 세평의 꼭두각시가 된 양 가련하게 조종당하면서 실로 경
박하게 일희일비하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을 날카로운 바늘처럼 거침없이
찌르고 있다.
069 이해할 수 없는 추천
이세 지방 32만 석의 영주 도도 다카토라가 쇼군 이에미츠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궁금해하며 부랴부랴 성으로 들어갔다. 이에미츠는 뜻밖의 말을 했
다.
"가모우 히데사토가 죽어서 아이즈의 영지 40만 석을 회수했다. 오슈 제
일의 요충지라 누구를 그 후임으로 할까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그대에
게 맡기기로 했는데 가겠는가?"
물론 파격적인 영전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다카
토라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정말 고맙고 기쁘기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이 늙은 몸으로
는 도저히 그 막중대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거두어
주십시오."
이에미츠가 물었다.
"그렇다면 누구로 하면 좋겠는가?"
"예, 요시아키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요시아키? 그 가토 요시아키 말인가?"
뜻밖의 대답에 이에미츠는 되물었다. 임진왜란 때 해전의 공을 다툰 이
래 다카토라와 요시아키가 견원지간이 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다카토라는 대답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야말로 그 대임을 다할 수 있는 큰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미츠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
"도저히 그대의 마음을 알 수 없군 하필이면 왜 그대는 그렇게 사이가
나쁜 요시아키를 추천하는가?"
그러자 다카토라는 자세를 고쳐 대답했다.
"사이가 나쁜 것은 개인적인 사소한 일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천하의
대사를 그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한 몸의 영예를 위해서라면 친구마저 밀어내겠다는 사심이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깨닫고 추악한 자신에게 분노와 실망을 느낀 적은 없는
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윗사람에게는 굽신굽신 아첨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데 열중하는 가증스러운 자신을 깨닫고 암담했
던 적은 없는가.
우리의 모든 행위는 감정의 산물임을 생각할 때, 다카토라의 시원스러운
품격은 날카롭게 휘두른 검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관통한다.
070 속 편한 알렉산더 대왕
원정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전전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국운을 걸고 전 병
력을 집결시킨 페르시아의 대군과 가우가멜라에서 맞서게 되었다. 날은 이
미 저물었으므로 알렉산더 대왕은 다음날 일전을 치르기로 하고 숙영 명령
을 내렸다. 그런데 적진의 형세를 지켜보던 대왕의 막료 파르메니온 장군
이 파랗게 질려 대왕의 막사로 들어왔다.
"큰일났습니다. 적의 병력은 시시각각 증가하고 있습니다. 적진은 마치
불야성 같습니다."
과연 페르시아 진영에는 지원군이 속속 도착하는 중이었다. 적진일대에
타오르는 횃불이 어두운 밤하늘을 새빨갛게 불태웠다. 그러나 막사를 나온
대왕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파르메니온은 참다못해 말했다.
"대왕님, 이 상태로 라면 내일 싸움은 도저히 승산이 없습니다. 당장 야
습을 하여 적진을 단숨에 분쇄합시다. 승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자 젊은 대왕은 밝은 얼굴로 돌아다보며 말했다.
"파르메이온. 나는 승리를 도둑질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 허영도 아니
고 허세도 아니다. 진정한 페르시아 정복은 페르시아 왕에게 트지를 버
리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야습을 하여 이긴다 해도 그는 낮이라면
질 성싶은가 하고 더욱 이를 악물고 달려들 것이다. 그래서는 목적을 달
성했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이 싸움은 밝은 대낮에 정정당당하게 승부
를 가려야 한다. 그러니 그렇게 초조해 하지 말고 내일을 기다리자."
알렉산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막사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곧
잠든 모양인지 조용한 숨소리가 밖으로 새나왔다.
알렉산더가 고르게 내쉬는 숨소리에서 태산과도 같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가. 사태가 아무리 급변해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대응
하는 경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사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만 확인하면 허둥거릴 이유가 조
금도 없다. 돌아다보면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 어리석은 허둥거림과 낭패로
가득 차 있다. 아니, 그렇게 가볍게 처신하는 자신을 끈질기게 변호하려는
집념이 뿌리깊이 도사리고 있기까지 하다.
071 훈장을 마다한 퀴리 부부
라듐을 발견하여 세계의 물리학계를 놀라게 한 퀴리 부부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 어느 날 부부를 찾아온 한 신문 기자가 수상 소감을 묻다가 새
로운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정부도 당신들에게 레종 드 뇌르 훈장을 수여하기로 한 모양입
니다."
기자는 퀴리 부부가 프랑스 최고 영예를 얻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피에르 퀴리는 얼굴을 들고 곤란하
다는 듯이 말했다.
"훈장을 수여하는 일 같은 건 그만두어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훈장 같은 건 조금도 원하지 않습니다. 과학자가 가슴에 훈장을
달아 봤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사실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훈장보다는 훌륭한 연구소입니다."
그때 마침 예닐곱 살 가량 먹은 금발의 소녀가 달려왔다. 선한 눈에 이
마가 넓은 아이였다. 퀴리 부부의 딸 이렌이었다. 피에르는 딸을 껴안고 기
쁜 듯이 말했다.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이 아이가 내 뒤를 이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곁에 있던 마리 부인도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렌은 아빠의 뒤를 잇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야 해."
그녀는 상냥한 눈빛으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크게 감동을 받은
신문 기자는 이튿날 신문에 그 이야기를 크게 보도했다.
세상의 명성과 이익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의외로 집요하고 강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속으로는 온통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학문마저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물론 실망하면서도 그 모습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쉽
게 웃지도 못한다. 인간은 욕망의 도가니에 갇혀 살아가는 슬픈 존재일 지
도 모른다. 욕망의 도가니 속에서 서로 꿈틀거리기 때문에 훈장이 주는 세
속적인 영예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퀴리 부부의 순수한 행동은 큰
감동을 준다.
가련한 거짓 몸짓을 버리고 퀴리 부부를 마음의 거울로 삼자.
게다가 딸을 안고 그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따뜻한 눈길이 얼마나
순수한 것인지를 생각하자.
072 시계를 보지 말게
일개 신문팔이에서 시작하녀 헤아릴 수도 없는 발명으로 세계 제일의 대
발명가가 된 에디슨. 그가 이룬 발명 하나하나는 그의 천재적 재능보다는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는 새로운 발명에 도전할 때면 며칠이고 연
구실에 틀어박혀 먹고 잠자는 일도 완전히 잊은 채 연구에 몰두했다. 부인
이 정성껏 만든 식사가 연구실 탁자에서 식어 버리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
었다.
어느 날 에디슨의 친구가 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을 데리고 그를 찾아왔
다.
"이제부터 세상에 나갈 이 아이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좋은 얘기를 들려주게나."
에디슨은 쾌히 그 청년에게 악수를 청하더니 연구실에 걸려 있는 큰 시
계를 가리키며 일렀다.
"결코 시계를 보지 말 것. 이것이 젊은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나의 소중
한 충고일세."
적어도 한 가지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모든 것
을 잊고 그 일에 정진하라는 의미다. 재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에는 대단한 차이가 없고, 후천적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재능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체념하는 것은 노력하고
자 하는 의욕을 상실한 패배주의다.
문제는 '좋아, 한 번 붙어 보자.'하는 의지 단 하나다. 하려고 마음먹었으
면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것이고, 관철하려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지
편안한 길만 찾는 안이한 마음 자세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먹는 것을 그만두라. 잠도 자지 말라. 특히 '결코 시계를 보지 말라'고 하
는 에디슨의 엄격한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퇴근 시간에나 신경
을 쓰면서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자들에게는 '돼지 발에 진주'격인 충고
다. 그런 자는 오히려 오락이니 도박이니 하는 유흥에는 시간 가는 줄 모
르고 자신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유흥에 몰두하듯 자신의 일에도 몰두해
보자.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시계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073 미끼를 피해 가는 지혜
제17대 혼인보 슈에이는 자나깨나 바둑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여느 사람
들과는 상당히 색달라서 교제하는 폭도 좁았다. 어느 날 거상 한 사람이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슈에이를 초대했다 그러나 슈에이는 초대를 매정하
게 거절했다.
"제 솜씨는 보잘것이 없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문하생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저 사람은 현재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큰 부자입니다. 서로 알고 지내
시면 돈에 쪼들릴 일 이 없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도 사정이 좋아질 텐
데 왜 거절하십니까?"
그러자 슈에이가 꾸짖었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어떤 기예라도 열중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높
은 경지에 이를 수가 없어. 한눈을 팔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끝장이야. 돈
은 한눈을 팔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에 되도록 멀리 하는 게 좋
아. 너희들도 이것을 명심하도록 해라."
바둑의 지도자로서, 견줄 자가 없을 정도의 거상과 유대를 맺으면 아마
문하생들이 말하듯이 돈에 쪼들릴 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
문에 사람들은 대개 그런 초대를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기고 미끼에 달려드
는 물고기처럼 달려든다. 그러나 미끼에 달려든 물고기가 그것을 덥썩 무
는 것과 동시에 바늘이 목구멍에 걸려 꼼짝도 할 수 없게 되듯이, '조건 없
는' 돈이라 해도 그것을 받아드는 순간에 끝끝내 떨쳐 버리기 힘든 '제약'
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풍족한 생활의 대가는 뼈아픈 제약이다.
돈을 받은 것과 자신의 신념은 별개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아야 허
망하고 딱한 허세에 불과하다. '낚시 바늘을 덥썩 물어' 오염된 마음으로는
어떤 기예도 꽃피울 수 없다. 슈에이가 돈이란 한눈을 팔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경계하여 이것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예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매
달리려고 한 것은 역시 명인다운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보기
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한 가지 재주에 뛰어난 자는 역시 이 정도의
강인한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인한 정신과 불굴의 노력이 한 가지 기예에 뛰어난 자의 전유
물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자기 분야에서 맡은 일만큼은 자신을 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만들겠다는 자세를 취하면 그 일이 그대로 한 가지
재주가 된다. 자기 일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어떤 일에도 한눈을
팔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기 바란다.
'낚시바늘에 걸린 미끼'라는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순수성을 유지하고
자기 일리 바로 한 가지 재능이라는 자부심으로 이에 몰입할 때, 비로소
삶의 보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074 손대지 않고 이기는 검법
츠카하라 보쿠텡이라고 하면 무로마치 시대의 명검객으로서, 여러 가지
야담에 그이 활약상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아마 그 때문인지 전해 내
려오는 기담도 상당히 많다. 유명한 일화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보쿠텡이 히가시쿠니로 내려가기 위해 교토를 출발하여 비파호의 야바세
에서 나룻배를 탔다. 배에는 대략 열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체
격도 좋고 눈매도 날카로워 실력이 뛰어날 듯한 무사가 하나 있었다. 그런
데 그는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승부를 겨루어 왔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진 적
이 없다. 겨룰 만한 상대가 없어서 솜씨가 녹슬 지경이란 말이다."
보쿠텡은 무릎을 껴안고 앉아 주위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못 들은 척 시
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 무사는 보쿠텡을 흘깃 보더니 그를 놀려 주어야겠
다고 생각했는지 대뜸 빈정거리는 말투로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 있는 사무라이! 그대도 무사 나부랭이라면 검술 한 수쯤은
터득하고 있겠지? 그대는 어떤 유파인가?"
보쿠텡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몸은 무수승류라네."
"뭐라고? 들어보지도 못한 유파로군, 그건 누가 시작한 유파인가?"
"무수란 칼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라네. 대저 칼이라는 것은 사람을 베
는 흉기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도구지. 그렇다면 무도의 비법은 칼을
빼지 않고 적에게 이기는 것이어야만 하네. 내가 시작한 유파가 바로 무
수승류라네."
그러자 그 무사는 벌떡 일어나서 다가왔다.
"그러면 그대는 칼도 빼지 않고 나와 맞설 수 있다는 말인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쿠텡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
했다.
"원하지는 않지만 그대가 굳이 하고 싶다면 상대해 주지."
그 무사는 어깨를 으쓱 이며 고함쳤다.
"그렇다면 빨리 육지로 올라가 승부를 경정하자. 이봐 사공, 빨리 배를
육지에 대라."
보쿠텡은 조용히 말했다.
"육지는 사람이 많으니, 저기 보이는 섬에서 겨루면 어떻겠나? 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 폐가 되겠지만 잠시 입회인이 되어 구경을 한다고 생각하
면 괜찮을 걸세."
"좋다!"
그 무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배가 섬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기슭
에 뛰어내려 칼을 뽑았다.
"자, 덤벼라!"
보쿠텡은 허리에 찼던 팔 두 개를 사공에게 맡기더니 사공이 배를 젓던
삿대를 빌렸다. 삿대를 지렛대 삼아 육지로 뛰어내리는가 했는데 뜻밖에도
그 삿대로 강기슭을 힘껏 밀었다. 배는 스르르 기슭을 떠나 강 가운데로
미끄러졌다.
이것을 본 무사는 당황해서 발을 구르며 고함쳤다.
"비겁한 놈! 왜 올라와서 승부를 겨루지 않는가?"
보쿠텡은 웃으면서 허리에서 부채를 꺼내 펼치더니 여유 있게 맞고함쳤
다.
"이미 승부는 끝났네. 다시 한 번 승부를 겨루고 싶으면 여기까지 헤엄
쳐서 오게나. 내 무수승류라는 것은 대충 이런 것이네."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었다. 섬에 홀로 남
은 무사는 그 웃음에 더욱 발을 구르며 분해했지만 물론 어쩔 도리가 없었
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다. 정말로 높은 경지에 도달
한 사람은 결코 실력을 여봐란 듯이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다. 따라서 자신의 역량이나 재능이 남보다 우수하다고 믿고 우쭐거리는
행동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그 길에서 '익은
벼'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은 실로 단순한 존재여서,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라
고 일컬어지는 사람들 중에도 의외로 자신의 재능을 필요 이상으로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누구나 주변에서 그런 사람과 흔하
게 마주칠 것이다. 아니,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우리 자신이야말로 그런
사람일 지도 모른다. 특히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솟구치는 모양이어서, 더욱 노골적으로 우쭐거리는 일이 허다
하다.
이 일화의 보쿠텡과 같은 입장에 놓인다면 누구나 배를 같이 탄 손님에
게 솜씨를 자랑하고 싶기도 할 것이고, 남자가 되어서 상대편이 걸어온 싸
움을 피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는 이상한 아집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게
다가 보쿠텡은 천하무적의 명검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터무니없는 생트집을 무수승류로 살짝 비켜 나간 보쿠텡의 행동은 역시 명
검객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경지'를 훌륭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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