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류시화-씨뿌리는 사람의 씨앗

by Casey,Riley 2023. 2. 23.
반응형

        씨뿌리는 사람의 씨앗 
    지은이: 브라이언 카바노프  


  이 책에 대하여
  인도와 네팔의 히말라야 지역을 여행하면서 나는 그곳 고산부족의 집에 머문 적이 종종 있다. 
이들의 집은 대부분 3층으로 되어있다. 맨 아래층은 염소 따위의 가축을 위한 공간이고, 2층은 사
람들의 주거 공간이며, 허리를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꼭대기의 야트막한  층은 부엌이다. 이
러한 구조는 가파른 비탈의 산악지대에서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간활용을 최
대로 하기 위한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그 부족들과 함께 2층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저마다  방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한 칸짜
리 툭트인 공간에서 늙은 시어머니와 자식 부부와 손자들이 콩깍지 속의 강낭콩처럼 나란히 잠을 
잤다. 처음엔 그들의 숨소리와 부스럭거리는 기척 때문에 새벽녘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얼핏 잠
이 들라 쳐도 바로 아래층에서 이른 잠을  깬 염소의 중얼거리는 소리와 닭 홰치는  소리가 꿈을 
방해했다.
  독특한 집 구조 못지 않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항상 씨앗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살림을 하고 잠을 자는  주된 공간인 2층은 차라리 생활공간이라기보다
는 씨앗들을 위한 저장소나 다름없었다. 붉은 흙벽돌로 지어진 사방 벽이,  네모난 창틀까지도 온
갖 씨앗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옥수수, 콩, 감자, 무, 유채, 밀  등이 이듬해 봄에 파종되기까지 
자루에 담기거나 바싹 말려져 벽에 걸리 채로 그 집 사람들과 함께 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의 비좁은 집에서 잠을 얻어 잘 때마다 내 머리 밑 베개는 으레껏 조나  수수가 담긴 자루
였고, 침대는 부스럭거리는 옥수수 자루이기 일쑤였다. 설치는 잠을 위로할 겸  벽 쪽으로 돌아누
우면 마른 강아지풀 같은 이름 모를 씨앗들이 얼굴 위로 떨어져내렸다. 그러면 건너편에 늙은 호
박을 베고 누운 시어머니가 잠결에도 "저 머리 긴 외국인이  아까운 씨앗을 다 흩뜨려 놓는구먼"
하며 궁시렁 거리는 것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히말라야를 상상하면 만년설 쌓인 신비의 설산과  해질녘 깜박거리며 켜
지던 등불이 떠오르고, 그것들과 더불어 집 안에 가득하던 그 온갖 씨앗들이 그려지곤 했다. 또한 
씨앗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 수 없는 그 곳 사람들이 생각났다.  
  중국의 침략으로 공산화된 티벳을 여행하면서도  나는 같은 체험을 했다.  티벳은 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면적을 가진 나라이지만 대부분이 황폐하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히말라야 지대
이다. 우기인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나무 한 그루나 풀 한 포기 구경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제는 
중국이 티벳 영토에 매장된 갖가지 지하자원과 삼림을 마구잡이로 약탈해 가는 바람에 나라 전체
가 갈수록 더 황폐해져 가고 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걸인으로 변하고 높은 장막에 가려져 아무런 독립의 희망도 없는 티벳이지
만 내가 여행한 종마, 사가, 세가르,  팅그리 지역에서 나는 독립보다 더 큰  희망을 발견했다. 그 
황폐하고 흙먼지 이는 대지에 그들은 해마다 어김없이 씨를 뿌리고  있었다. 그곳은 도저히 생존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지리적 위치였다. 게다가 나라와 종교마저도 빼앗긴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씨 뿌리는 사람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이  열렬히 따르고 있는 불교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어떤 진리를 본 듯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는 노력, 이듬해를 위해  씨앗을 뿌리고 저장
하는 지혜, 나아가 대지를 신뢰하는 그 깊은 믿음은 감동적이었다.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대지가 황폐해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경작지를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우리모두는 씨 뿌리는 사람들이다.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것은 결코 농부의 일만이 아니다.
  브라이언 카바노프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이자 신
부이다. 그는  10년전부터 (사과 씨앗)이라는 작은 소식지를 만들어 자신이 재직하는 대학의 학
생들과 교직원들에게 매달 한 권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인생에 지침에 되고 지혜를 주는 이야기
들을 모은 이 (사과 씨앗)은 성 프란치스코 대학뿐 아니라 미국내의 다른 대학들에도 알려졌고, 
나중에는 대통령 부부와 백악관 직원들까지 정기 구독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일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브라이언 카바노프는 (사과 씨앗) 소식지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서 특별히 감동적이고 의미 있
는 것들을 가려뽑아 한 권의 결정판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애독서가 되었고, 종교인들이 추천하는 '가장 읽은 만
한 책'으로 꼽혔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사과 씨앗)지를 만드느라  브라이언 카바노프는 바쁘다. 그는 이 모
든 작업을 자신의 작은 방에서 혼자서 해내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의 비서이며, 출판인이고, 편집 
기자이다."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는 또 미국의 여러 명상센터와 자연학교에서도 강연을 했고, 콜
로라도 스프링스의 미국 올림픽 선수촌에서도 강연했다. 
  (사과 씨앗)과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은 대단히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앞으로 언제나 배울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의미를 찾을 것이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
  브라이언 카바노프의 씨앗 가게에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 배움, 지혜, 인내의 씨앗들
이 진열되어 있다. 단, 이 가게에서는 씨앗만을 팔 뿐 열매는 팔지 않는다. 그 씨앗들을 마음밭에 
심고, 속눈을 틔우고, 덩굴을 뻗게 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류시화-  독자에게
  나는 성 프란치스코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이며 학교 신부로 재직하면서 매달 (사과 씨앗)이라
는 제목의 소식지를 발간했습니다. 인생에 지침이 되고  지혜를 주는 글들을 모아 학생과 교직원
들에게 나눠 준 것입니다. 처음에는 2백부를 찍던 것이   차츰 다른 대학들에도 알려져 혼자서는 
찍기 어려운 부수까지 이르렀습니다. 
  (사과 씨앗)의 성공에 힘입어 만든 책이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입니다. 처음에 나는 이 책
을 출간하기 위해 여러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그
러나 나는 내가 모은 이야기들의 가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 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 자신이 먼저 나를 믿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입니다. 배움의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자신과 삶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데 있습니다. 
  열두 개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이  책은 결국 미국 전역에서 읽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
다. 이 책에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많은 씨앗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당신 역시 씨 뿌리는 사람
입니다. 하지만 씨앗들을  한꺼번에 다 심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씨앗에 파종 시기가  있듯이 이 
이야기들이 당신의 마음에 뿌려지려면 적당한 기후와 햇빛과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파종된 뒤에도 어떤 씨앗은 금방 싹이 트겠지만, 어떤 것은 열매를 맺는 데 10년 이상 걸릴 수
도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한 개의 씨앗을 심듯이 한 편의 이야기를 읽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차
츰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어 버릴 수도 있지만 훌
륭한 농부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어떤 씨앗은 전파력을 갖고 있습니다. 날개를 매든  씨앗이 바람에 날려 다른 영토로 이동하듯
이 당신에게 깨우침을 준 이야기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밭에도 뿌려 질 것입니다. 
  내가 정해 놓은 이야기의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거기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각 이야기들의 주제에 대해서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해설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선 당신의 이해력을 믿으니까요.
  사람에 대한 신뢰, 삶 자체에 대한 신뢰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또 새로운 씨앗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씨 뿌리는 사람의 더 많은 씨앗)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올 것입니다. 이듬해 봄쯤에는 당신의  뜰이나 화분에 인생의 새로운 씨앗 이 
심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씨앗을 파는 가게
  한 여인이 꿈을 꾸었는데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가게 주
인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느냐고 여인이 묻자 신은 대답했다.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여인은 한참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여인은 말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지혜와 행복,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미
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부인. 이 가게에선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
앗만을 팔지요."  
  -하즈라트 이나야트 칸-   

  빨간 우산
  가뭄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미국 중서부  지방의 이 작은 마을은 큰 위기에  처했다.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비는 농작물 재배에도 중요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도 필수적이었
다.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을의 교회는 비를  매려 달라는 대대적인 기도회를 열기로 결정
했다. 
  인디언 원주민들이 행하던 기우제를 연상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교회 앞마당에 모여들기 시작
했다. 곧이어 목사가 도착하고, 신도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마침내 단상에 올라선 목사는 이제 군중을 조용히  시키고 집회를 시작할 때라고 판단했다. 모
두를 향해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하려는 순간 목사는 맨 앞줄에 앉은 열 살  가량의 소녀가 눈에 
띄었다. 소녀는 흥분과 기대에 찬 얼굴로 천사처럼 앉아있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빨간 우산 하
나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 순수한 믿음에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일어버렸지만, 이 
어린 소녀만은 아직도 순수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비를 매려달
라는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으나, 이 소녀는 신이 틀림없이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
었던 것이다. 
  -타냐 그레이-

  양말 한 켤레
  나는 지방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따금 빈민가에 있는 무료 급식 시
설에 가서 자원 봉사자로 일을 한다. 
  어느 날 나는 식당 뒷골목을 청소하다가 한 늙은 부인이 모퉁이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녀는 꽃무늬가 그려진 낡은 치마에 색이 바랜 노란 털 스웨터와 닳아빠진 검은색 신발을 신고 있
었다. 그날 밤은 몹시 추웠는데도 그녀는 양말조차 신지 않은 상태였다. 
  양말을 어디다 버렸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기에겐 양말이 원래부터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마
지막으로 양말을 신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노부인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 자리서 내가 그녀에게 베풀 수 
있는 건 따뜻한 양말 한 켤레뿐이었다. 
  나는 운동화를 벗고 내가 신고  있던 흰 양말을 벗어 그 자리서 그녀에게 신겨 주었다. 그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친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감동들 받은 듯,  마치 할머니가 손
자를 바라보는 듯한 사랑이 넘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밤에 따뜻한 
발로 잠자리에 드는 일이라오. 언제 마지막으로 그랬었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말이야." 그날 밤 나
는 가슴 뭉클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튿날 저녁 내가 또다시 무료 급식 시설에서  일하고 있을 때 두 명의 경찰관이  걸어 들어왔
다. 그들은 한 여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웃 사람이 그녀가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는 것이었다. 경찰은 내게 그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난 사진 속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았
다. 바로 어젯밤 내가 양말을 신겨준 그 노부인이었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죠? 이 노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나요?"  경찰은 그녀가 가족도 친구도 없는 늙
은 과부라고 말했다. 두 블록쯤 떨어진  난방도 안되는 낡은 판잣집에서 그녀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이따금 방문하는 이웃 사람이 아침에 그녀가 죽은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에게 커피를 따라주면서 내가 말했다. 
  "정말 슬픈 이야기군요."
  경찰이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소. 검시관이 시신을 내갈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죽은 
그녀의 얼굴에 매우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져 있었소.  맹세코 말하건대 아주 행복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표정이었소. 나도 죽을 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소. 그처럼 불행한 처지에 있는 노인이 어떻게 그런 만족스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는지 모
르지만 말이오."
  나는 노부인이 겪어야만 했을 힘들고 궁핍한 삶을  생각하면서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
다가 문득 내가 그녀에게 양말을 신겨줄 때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건 밤에 따뜻한 발로 잠자리에 드는 일이라
오."
  내가 그 노부인에게 물질적으로 해준 것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날 밤에 따뜻한 발을 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트레버 B. 쿼크-    

  어떤 친절
  몇 해 전 내가 혼자서 폭스바겐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갑자기 차의 엔진이 꺼졌다. 나
는 가까스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나왔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옥수
수 농장뿐이었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지독한 아일랜드 사
투리로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슈?" 
  나는 얼른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좀 들여다봐도 되겠수?"
  그가 엔진을 점검한답시고 차 앞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폭스
바겐은 다른 차와는 달리 엔진이 앞에 있지 않고 뒤에  달려 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
는 사람에게 도움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였다.
  그는 깜짝 놀라더니 엔진이 어디로  가버렸는냐고 물었다. 내가 엔진은  뒤에 있다고 가리키자 
그는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위치를 바꾸더니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2,3분이 흐른 뒤 갑자
기 그가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무엇이 문젠지 알았슴다. 나한테 연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슈."  그는 자기의 차로 돌아가 한
참을  뒤진 끝에 스카치 테이프를 들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완전히 맥이  빠졌다. 나
를 구조해 줄 다른 차가 오지  않나 싶어 나는 고개를 빼고 길게 뻗은 도로를 살폈다. 옥수수 농
장 사이로 난 2차선 도로에는 아지랑이만 피어오를 뿐 차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그 남자는 스카치 테이프를 들고 기적이라고 펼쳐 보이려는 듯 다시 태 차 엔진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잠시 후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어서 시동을 걸어 보슈."
  나는 속는 셈치고 그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고
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달리면서 백미러를 보니 그가 계속해서 내  차 뒤룰 따라오는 것이었다. 마침내 도시가 
나타나 내가 안전하게 자동차 정비소에 도착한 것을 보고서야 그는 손을 흔들며 자기 갈 길을 갔
다. 놀랄 만큼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내 설명을 듣고  정비소의 일급 정비사가 엔진을 조사하기 시작했는
데, 그 남자가 어디에다 스카치 테이프를 붙였는지 찾아내는 데 무려 20분이 걸렸다는 것이다.
  -카렌 보리스-

  토론과 비판
  여러 해 전 미국 중서부의  한 대학에 매우 뛰어난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문학에 있어서 
대단히 창조적이고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들 각자가  장차 시인, 소설가, 수필가가 될 꿈
을 갖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들은  탁월한 문장력과 표현력을 갖고 있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이 
젊은이들은 (문학 비판 클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서로의 작품을 읽으며 비판을 했다. 
  모임의 이름답게 그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에 대해 비평을 가했다. 아무리 사소한 문학
적 표현이라도 100조각으로 분해했다. 말 그대로 혹독한 비판이었다.  냉정하고, 무자비했으며, 가
혹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을 통해 상대방의 문학적 재능을 최고로 끌어낼 수 있다고 생
각했다. 이들이 모임은 문학 비평의 경연장과도 같았다. 
  한편, 그 대학에는 여학생들로 구성된 또다른 성격의 문학 클럽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
임을 (문학 토론 클럽)이라고 불렀다.  이들 역시 상대방의 작품을  읽었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다. 이들의 비평은 보다 부드럽고 , 보다 긍정적이며, 보다 서로를 격려하는 차원이
었다. 사실 비평이나 비판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학적  시도라도 이 클럽에서
는 높이 평가받고 격려를 받았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그 대학의  교무과에서 학생들의 경력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문학 
비평 클럽)과 (문학 토론 클럽)의 회원들 사이에  문학적인 성취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음
을 발견했다. 비평 클럽에 소속해 있던 그 많은 문학 천재들  중 단 한 사람도 이렇다 할 문학적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에 토론 클럽에 소속해 있던 문학도들 중에서는 여섯 명의 뛰어난 작
가가 탄생했으며, 이들은 나라 전체에서 커다란 문학적 명성을 얻었다. 
  -테드 엥스톰-

  빵과 이스트
  러시아 출신의 신비주의자 구제프가 프랑스에서 영적 공동체를 만들었을 때의 일이다. 이 공동
체에는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노인이 한 사람  있었다. 노인은 참을성도 없고, 지저분했으며, 
걸핏하면 주위 사람들과 싸우려고 들었다. 청소도 하지  않을뿐더러 남의  일을 거들어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매번 비난과 불평뿐이었다. 그 결과 그는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낼 수 없
었다. 
  몇 달 동안 공동체의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으나  노인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
서 그는 짐을 꾸려 파리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노인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구제프는 당장 뒤따라서 노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노인
에게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노인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
다. 
  마침내 구제프는 그에게 다시 공동체로 돌아온다면 매달 많은 액수의  보수를 주겠다고 제의했
다. 지금까지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파격적인 제의였다. 그런 제의를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노인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자 다들 놀랐다. 게다가  그가 다달이 높은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 모두가  불만을 느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
람들은 매달 비싼 돈을 내면서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만 일으키는 쓸모 없는 
노인이 돈까지 받아가면서 그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불만이 심각해진 것을 보고, 어느 날  구제프는공동체의 회원들 모두를 한 자리에 불
러모은 뒤 말했다. 
  "이 노인은 빵에 넣는 이스트와 같다. 그가  이곳에 없다면 그대들은 진정으로 배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를 통해서 그대들은 분노에 대해, 조급함에 대해, 그리고 이기심과 자비심에 대해 배우
고 있는 중이다. 바로 그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 그대들은 내게 돈은 내는 것이고, 난  그 돈으로 
이 노인을 고용한 것이다."
  -켄트 널번-

  진정한 지도자
  간디가 세상을 떠나고, 그가 이끌던 운동이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졌을 때 이것을 바로잡은 대
표적인 예가 있다. 간디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간디의 작업을 이어 나가는 최선의 길인
가를 찾아내기 위해 전국적인 집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간디의 가장 가까운 제자이자 명
백한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많은 연장자 비노바 브하브에게  이 대집회의 위원장이 되어 
회의를 이끌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비노바 브하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과거를 되살릴 수 없소."
  많은 애원 끝에 간디의 추종자들은 마침내 비노바로부터 승낙을 받아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
었다. 바노바는 집회를 여섯 달 정도만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만 해주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대집회가 열리는 장소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도 대륙을 절반이나 횡단
해야 하는, 상상도 하기 힘든 장거리 도보 여행이었다. 걸어가는 동안 그는 인도인들의 의견을 직
접 듣겠다는 것이었다.
  비노바 브하브는 마을에서 마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각의 마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에는 생전에 간디가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모아  영적인 집회를 가졌다. 비노바는 마을 사람들의 
이런저런 문제를 듣고 그들에게 충고하곤 했다. 자연히  그는 매우 가난한 마을들을 계속해서 지
나가야만 했다. 인도는 대부분이 그런 마을들이었다.
  한 마을을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노바 브하브에게 자신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배고픔과 먹을 것이 없음을 호소했다. 비노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왜 당신들은 당신들 자신의 식량을 생산하지 않소?"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하층민들이었다. 그
들은 말했다.
  "우리도 우리 자시의 식량을 생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우리에겐 우리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도의 법률이었다. 하층민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깊이 생각한 끝에 
비노바 브하브는 자기가 델리에 돌아가면  수상에게 이야기해서 인도의 가장  가난한 주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법을 통과시키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은 그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노바는 그 문제를 껴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그는 마을 주민들을 다시 불러 모아놓고 사과를 하면서 말했다. 
  "나는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소. 설령 내가 몇 해에 걸쳐 그들을 설득해 
토지를 분배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해도 당신들은 결국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오. 그 시행령
이 중앙 정부에서 지방 정부로 내려가고, 지방  행정관에서 마을의 촌장에게 내려가 마침내 분배
된 토지가 여러분에게 도착할 무렵이면 정부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몫을 떼어 가질 것이고, 아마
도 결국에는 당신들을 위해서는 한 평의 땅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슬프지만 솔직한 예
측이었다. 비노바는 말했다. 
  "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소."
  그때 마을의 대지주인 어떤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나는 많은 땅을 갖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땅이 전부 얼마나 됩니까?"  그 마을
은 모두 열 여섯 개의 가구였고, 각각5에이커의 땅이 필요했다. 그래서 비노바는 말했다. 
  "80에이커의 땅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간디와 비노바의 정신에 깊은 감동을 그 부호는 기꺼이 자기가 가진  토지 중에서 80에
이커의 땅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비노바가 말했다.
  "아니오,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 없소, 당신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  당산의 토지를 유산으로 물
려받을 아내와 자식들과 진지하게 얘길 해보시오. 그런 다음에 결정하시오." 그 사람은 집으로 돌
라가 가족들에게 허락을 구한 뒤 돌아와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토지  중에서 80에이커의 땅을 내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날 
아침80에이커의 토지가 마을의 가장 가난한 세대들에게 분배되었다. 다음날,  비노바 브하브는 또
다른 마을로 걸어가 사회의 가장 하층민인 사람들로부터 배고픔과 토지를 갖지 못하는 고통의 탄
원을 들었다. 이 마을에서 비노바는 지난번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대지주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가난한 세대들을 위해 110에
이커의 땅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역시 집으로 가서 가족들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그날로 토
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다.
  마을에서 마을로, 비노바 브하브는 매일 밤 집회를 가지면서 이 과정을  계속했다. 마침내 그는 
여러 달 뒤에 대집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걸어서 그곳까지 오는 도중에 그는 모두 2천2백 
에이커의 땅을 가난한 세대들에게 분배해줄 수 있었다.    
  비노바 브하브는 이 이야기를  대집회장에서 인도의 모든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들려주었으며,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인도의 토지 개혁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후 14년 동안 
비노바 브하브와 그에게 감명 받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인도의 각 주, 각 지방, 각 시골을 걸어서 
행진했다. 정부의 어떤 복잡한 과정이나 관료적 형식주의의 도움이 전혀 없이 그들은 1천만 에이
커가 넘는 토지를 기증 받아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주민들에게 분배할 수 있었다. 
  이것은 현대역사에서 가장 평화스럽게 진행된 토지 개혁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열린 마음과 진정한 지도자적 정신에서 시작되었다. 
  -스티븐 리바인-

  노승과 개인
  티벳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1982년에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곳에서 그는 나
이가 매우 많은 제 10대 파워 린포체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
로 파워 린포체 역시 중국이 티벳을 침략했을 때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처지였다. 두 
사람은 티벳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근에 세상을 떠난 어느 고승의 환생에  대한 예측을 주
고받았다.
  바로 그때, 파워 린포체가 식당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개미는 미끄러운 마
룻바닥 위를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파워 린포체는 너무 늙어서 이미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달라이 라마에게 자기 
대신 그 작은 생명체를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노승의 부탁을  받은 달라이 라마는 조심스럽게 
개미를 집어들어 축복의 말을 속삭인 다음 햇볕이  드는 뜰에 안전하게 옮겨다 주었다. 그리고는 
식탁으로 돌아와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씀대로 했습니다. 린포체 님. 당신의 눈은 이미 노안이 되었지만 마음의  눈은 제 눈보다 훨
씬 밝군요. 사람들은 명상과 자비심에  대해 말하지만,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를  눈여겨보는 것이 
지정한 사랑의 정신이지요." 
  -수리야 다스-

  박수를 치는데 두 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미국의 가장 유명한 연예인 중  하나였던 지미 듀란테의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참전 용사들을 위한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미 듀란테는 쇼 기획자에게 자신의 스케쥴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단 몇 분밖에  출연할 수 없
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간단한 원맨쇼를  한 뒤에  곧바로 내려와도 된다면 기꺼이 출연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쇼 기획자는 그렇게 라도 지미 듀란테를 무대에 세운다면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어 지미 듀란테가 무대 위로 올라가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짤막
한 원맨쇼를 끝내고도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박수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지미 듀
란테는 계속해서 쇼를 진행해 나갔다.
  그렇게 15분, 20분, 30분이 흘러갔다. 마침내 지미 듀란테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
왔다. 무대 위에서 쇼 기획자가 그를 붙잡고 물었다. 
  "난 당신이 몇 분간만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지미 듀란테가 대답했다. 
  "나도 그럴 계획이었지만, 내가 계속 쇼를 진행한 데는 이유가 있소. 저기 무대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시오."
  쇼 기획자는 무대 틈새로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대 맨  앞에 두명의 참전 용사가 
앉아 있었는데, 둘 다 전쟁에서 팔 한 쪽씩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을 오른쪽 팔을 잃었고, 
또 한사람은 왼쪽 팔을 잃었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남은  한 쪽 팔을 서로 부딪쳐 열심히 박
수를 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즐거워하면서.   
  -팀 한셀-

  춤추는 슈바이처
  열 일곱 살 때 알버트 슈바이처의 (생명의 외경)을  읽고, 그해 여름에 나는 개미조차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다녔다. 모기가 팔뚝에 앉아 피를 빨아먹어도 꾹 참았다. 
  슈바이처가 쓴 (역사 속의 예수를 찾아서)라는 책은 내게 훨씬 더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 책 
덕분에 예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져 목숨을  바쳐서까지 바퀴를 멈추게 
한 정신적 영웅으로 내게 다가왔다. 예수는 우리 인류가 미래의 구원을 끝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
라 '지금 이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기를 바랬다. 또 하늘 나라가 지금   우리 안에 있으며,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임을 깨닫기를 원했다.
  슈바이처의 저서를 읽은 다음부터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잠에서 깨어나야해. 정신을 차려야지. 넌 지금 하늘  나라에 있어." 덕분에 나는 점점 더  자주 
하늘 나라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슈바이처가 쓴 바흐에 대한 세 편의 논문을 읽은 다음부
터는 록펠러  성당 안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바흐의 곡을 들을 때면 더욱더 하늘 
나라에 있을 수가 있었다. 
  내가 슈바이처와 바흐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성당의  신부님은 슈바이처가 말년
에 시카고 대학을 방문했을 때 나를 그의 프랑스어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슈바이처는 헐렁한 검은 양복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가늘고 짧은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모두
가 원했듯이 나 역시 슈바이처가 우리를 위해  오르간을 연주해 주었으면 하고 희망했다. 하지만 
노란 수염에 등이 굽은 이 늙은 의사는 연주회를 갖기에는 자신의 손가락이  너무 녹슬었다고 사
양했다. 그 대신 그는 혼자서 오르간 앞에서 한두 시간 보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느 날 밤 나는 슈바이처를 록펠러 성당으로  안내했다. 그가 신부님의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
는 동안 나는 단 위에 불을  켜기 위해 먼저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새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신도석은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성가대석까지 만원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당장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모두가 조용히 하겠다면서 한 번만 봐달
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근처에 있는 인터폰으로 달려가 신부님을 찾았다.
  신부님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슈바이처 박사님은 눈도 거의 안 보이고 귀도 반쯤 들리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실 겁니다."
  나는 성당 안에 모인 사람들에게 반드시 침묵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받아냈다. 그런 다음 조마
조마한 기분으로 슈바이처를 제단 뒤의 장식 벽을 따라 오르간이 놓인 곳으로 안내했다. 그는 의
자를 한두 번 두들겨 보더니 나더러 옆에 와서 앉으라고 말했다.
  이 오르간은 네 개의 연주대를  갖고 있었으며, 화강암 벽이 울릴  정도의 굉장한 소리를 갖고 
있었다. 유명한 음악가들이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것을 나도 몇 차례나 들은 적이 있었다.
  슈바이처는 코안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103개의  건반 중에서 단지 몇 개만  갖고 연주를 
시작했다. 동작이 느린 노인답게 그는 아주 단순하게 바흐의 파사칼리아와 푸가를 연주했다. 그의 
굳은살 박힌 손가락들이 건반 위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안 나는 아프리가 람바레네에 있는 정
글 병원의 오솔길들을 따라 발을 끌며 걸어다니는 슈바이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소절은 다시 또다시 반복해서 연주했다. 그 소절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 연
주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듯했다.
  마침내 슈바이처는 연주를 끝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내가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성가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뭔가를 느꼈는지  코안경 너머로 성가대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슈바이처는 깜짝 놀라고 , 나는 가슴
이 철렁 내려앉았다.
  슈바이처가 몹시 화를 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어린애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낄낄대며 웃더니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장난을 친 걸  알고서 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십자가 앞에서 슈바이처는 아주 우스꽝스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발끈 하나가 
풀어져 버릴 때까지. 
  -피에르 델라트르-

  신과의 대화
  많은 신자를 거느린 큰 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담임 목사는 설교 때마다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
았다. 그는 만인의 존경과 인기를 한 몸에 받았으며, 덕분에 그의 교회는 나날이  더 많은 사람들
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서서히 그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어떤 특
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목사는  여전히 유창한 어조로 설교를 했으며, 교회  내의 모든 
시설도 오히려 전보다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 어쨌든 목사는 차츰 인기를  잃어가고, 교인들의 신
앙심도 약해져갔으며, 과거에 충만하던 영적인 기운도 교회 안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떤 사악한 힘이 교회를 파국으로 몰아간 것이 아니었다. 목사가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믿
음이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매력적인 요소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목사에게 있었다. 그가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는 이것이었다. 그는 하나남과 대화하는 
대신,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서서히 영적인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프레드 크레독-

  배우기 위한 안내
  한 청년이 어려서부터 보석 감정사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학교를 졸업한 그는 유
명한 보석 감정사를 찾아가 기술을 가르쳐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늙은 보석 감정사는 그 자
리서 거절했다. 보석 감정 기술을 배우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끈기와  인내심인데, 젊은 사람들
에겐 그런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어려서부터의 꿈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충분한 
소질과 열정을 갖고 있다고 보석 감정사를 설득했다. 마침내 그 전문가는 청년에게 말했다. 
  "그랬다면 내일 여기로 오게."
  다음 날 아침 청년이 찾아가자 보석 감정사는 젊은이에게 작은 의자를 내주며 거기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에 작은 보석 하나를 쥐어 주면서, 절대로 아무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
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청년이 앉아 있는 동안 보석 감정사는 보석들의 무게를 달고 자르고 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계
속했다. 청년은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가 다 흘러갔다. 
  다음날 아침에도 보석 감정사는 청년의 손에 어제의 보석을 쥐어 주고는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
했다. 셋째 날도, 넷째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뭔가 가르쳐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침에 
출근을 하면 또다시 어제와 똑같은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청년은 보석을 손에 움켜쥐고 앉긴 했지만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
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 전 언제부터 배우게 됩니까?"
  보석 감정사는 말했다. 
  "곧 배우게 될 거야."
  그리고는 또 자신의 일만 계속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크게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제자
로 받아들이기 싫으면 싫다고 할 일이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건 옳지 못한 일이
었다. 
  마침내 열흘째 되는 날 아침, 보석 감정사가 그날도 똑같은 보석을 쥐어 주며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하자 청년은 화가 나서 그것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외치려고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골탕 먹일 셈인 가요?"
  그런데 청년은 보석을 집어던지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이건 어제까지의 그 보석이 아니잖아요!"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이제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군."
  -작자미상-

  포기하지 않는 마음
  경제 불황이 온 나라를 덮친 가운데 한 젊은이가 직장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어느 날 그는 자
신의 재능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구인광고를  발견하고 서둘러 그 회사로 달려갔다. 그러
나 벌써 서른일곱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보다 먼저 와서 줄을 서 있었다. 
  젊은이는 그냥 줄 맨 끝에 서서 기다리다가  면접 기회도 가져 보지 못하고 물러날  수도 있었
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메모를 써서 사장 비서에게 건네주면서 면접을 주관
하고 있는 사장에게 꼭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내용이었다. 
  "부탁합니다. 응시번호 38번인 헨리 제임스를 면접하기  전에는 아직 어떤 사라도 채용 결정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
  쪽지를 전하고 젊은이는 대기자들 위에 가서 섰다. 잠시 후  사장이 밖으로 나오더니 줄 맨 끝
으로 가서 그 젊은이에게 말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창조적인 생각과 독창성이오. 제임스, 난 당신을 채용하겠소."    -
브라이언 카바노프-

  두 번의 구조
  한 영국인 가족이 스코틀랜드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혼자서 주위를 돌
아다니다가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숲을 거닐던 소년은 연못을 발견하고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곧바로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몇 번 헤엄을 치기도  전에 다리에 쥐
가 난 것이다. 소년은 경련이 이는 다리와 싸우면서 살려 달라고 고함을 쳤다.
  마침 근처 밭에서 한 소년이 일을 하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절박한 외침소리를 들은 소년은 
당장에 달려가 영국 소년을 연못에서 구해 냈다. 
  구조된 소년의 아버지는 당연히 매우 감사해 했다.  이튿날 그는 아들의 목숨을 구한 스코틀랜
드 소년을 만나러 갔다. 둘이서 대화하던 도중에 그 영국인은 용감한 소년에게 장래 희망이 무엇
인가를 물었다. 
  소년이 대답했다. 
  "전 아마도 저의 아버지처럼 농사꾼이 되겠지요."
  고마움을 느낀 영국인이 말했다.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스코틀랜드 소년이 말했다.
  "사실은 전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하지만 저의 집은 가난하기 때문에 학비를 댈 수가 없어
요."
  영국인이 말했다. 
  "근건 걱정하지 마라. 넌 네 마음이 원하는 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지금부터 의학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될 계획을 세워라. 내가 모든  비용을 대 주마."  그렇게 해서 스코틀랜드  소년은 실제로 
의사가 되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해 뒤, 1943년 12월에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북부 아프
리카에서 폐렴에 걸려 매우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이 소식이 새로운 기적의 약 페니실린을 발명
한 알렉산더 플레밍 경에게 전해졌다. 
  플레밍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위험에 빠진 처칠 수
상에게 자신의 새로운 약을 주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플레밍은 두 번째로 처칠의 목숨을 구했
다. 여러 해 전 숲 속의 연못에서 윈스턴 처칠을  구조한 소년이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이었던 것
이다. 
  -작자 미상-

  기회의 나라
  나오미 로데는 미국 여성이 중국에 관광여행을 갔다가  한 중국인을 알게 되었다. 기념품 가게
에서 일하는 청년이었다. 나오미는 몇 가지 기념품을  사려고 들렀다가 청년이 완벽한 영어를 구
사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청년은 나오미에게 오늘은 어느 곳을 구경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왔다
고 대답하고는, 무심결에 청년에게 최근에 만리장성을 구경한 적이 언제냐고 물었다.
  청년이 대답했다.
  "아. 불행히도 전 아직 한 번도 만리장성을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건 쉽지 않을 거
예요."
  청년은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가게 점원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하루 
열 시간을 일해야 하며, 쉬는 날은 한 달에 하루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장거리 여행은 꿈
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오미가 물었다.
  "당신이 가진 꿈이 뭔가요?"
  청년이 곧바로 대답했다. 
  "미국에 가서 사는 겁니다. 기회의 나라에서 말입니다." 나오미가 물었다. 
  "그건 왜죠?"
  그러자 청년이 말했다.
  "미국에서 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으니까요."  
중국인 청년과 헤어져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나오미 로데는 생각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기회의 나라라고 여겨지는 미국이지만, 정작 미국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몇 퍼센트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 값으로 따질 수 
없이 소중한 그 기회들을 그냥 흘려 보내고 있지 않은가. 
  -브라이언 카바노프-

  나 자신을 위한 그네 타기
  내겐 어린 조카들이 있다. 나는  가끔씩 그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가서 그네를 태워 주곤 
했다. 한 번은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도 그네에 올라탄 적이 있다.  천천히 그네를 구르면서 
난 약간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 내가 애들처럼 그네를 타고 있다니!  나이를  먹
고 나서 나는 그네를 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몸에 반동을 실어 점점 더 높이 올라
갈수록 짜릿한 흥분감이 몸 전체에 느껴졌다.  힘차게 발을 굴러 하늘 높이 솟아올라  보았다. 내 
밑에서 땅바닥이 휙하고 다가와서는, 완벽한  반원을 그리며 다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쁨의 환성이 터져나왔다.
  난 그네 위에 올라선 채로도 타 보았고, 거꾸로 매달려서도 타 보았다. 비상이  가져다 주는 순
수한 기쁨을 새로이 발견한 것이다. 그네를 타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한 이래 꿈속에서
만 체험하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나는 놀이터의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갈 필요가 없어졌다. 오랫
동안 잊고 있던, 나 자신을 위한 그네 타기를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바라 니콜스-

  누가 내 곡을 연주할 것인가
  지난 수년 동안 내 인생에서 일과 예술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내 예술이란 음악을 말한
다. 나는 두 살 때부터 이모의 무릎에 앉아 피아노의 건반을 두들겼다. 그때 이후 나는 하루에 최
소한 한 시간씩은 피아노 앞에서 보냈다. 
  그리고 내 일이란 기업체 경영자와 간부들을 교육하는 일이다. 심리학과 조직 행동학이 음악과 
마찬가지로 나를 매료시켰다. 이따금 세미나 도중에  식사테이블에서 음악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 곡을 연주해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남들에
게 발표할 만큼은 아직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공공 장소에서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유명한 
작품을 연주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조용한 호텔 로비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며칠 동안 경영 세미나를 진
행하는 중이었고, 그날 밤은 자유시간이었다. 다음날에 있을 행사 자료를 준비할  겸 일찍 저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던 것이다.
  피아노를 보는 순간 나는 잠시 피아노를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호텔 로비는 한산
했다.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 잠시후 한 노신사가 근처 라운지에서 걸어와 피아노 옆의 큰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곳에서 그는 천천히 와인을 마시면서 피아노를 치는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약간 불편
하고 거북해졌다. 내가 모르는 어떤 곡을 연주해 달라고 할까 봐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내가 연주를 마치자 그가 물었다.
  "그 곡의 제목이 뭡니까?"
  "영화 (문리버)의 주제곡이에요."
  "아, 그건 나도 알아요. 그 곡 전에 연주한 것 말이요. 그건 무슨 곡이죠?"  내가 대답했다.
  "그거 제간 만든 곡이에요. 아직 제목은 안 붙였고요."  그가 말했다.
  "제목을 붙이세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곡이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다음 그는 말했다. 
  "당신의 음악은 아름다워요. 하지만 당신은  다른 곡들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군요."  
내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 내 발걸음을 이곳으로 향하게 만든 건 당신이 작곡한 곡이오."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면서  그
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다른 곡이에요." 그가 말했다. 
  "그건 사람들이 음악을 진정으로 듣고 있지 않을 때만 그렇소. 몇 곡 더 연주해 보시겠소?"  그
런 다음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는 노신사의 청에 따라 내가 작곡한  곡들을 몇 곡  더 쳤다. 연주가 끝나고 노신사와 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마침내 그가 눈을 뜨고 천천히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그가 물었다. 
  "그 음악을 가지고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요. 이건 단지 저 자신을 위한 것이에요."
  그는 내 대답이 의외란 듯이 되물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나는 그에게 내가 이 호텔에 오게 된 이유와 내 직업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런 세미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많겠죠?" 나는 말했다. 
  "물론 많이 있겠죠. 하지만 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사명은 이 일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에요."
  그가 말했다. 
  "그거야 그럴 수 있겠죠."
  그는 내 말에 담긴 강한 확신에 감명 받은 듯 했다.  그런 다음 그는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내
려놓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곡을 연주하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의 곡을 연주하겠소?"  난 
항의했다. 
  "내 곡은 아무 곡도 아닌걸요."
  나는 또다른 변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 노신사가 강렬한 시선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당신이 받은 재능입니다. 그것을 낭비하지 마시오." 그  말과 함께 그는 의자에서 일어
나 내 어깨에 잠시 손을 얹었다가는 와인잔은 들어 무언의 건배를 하고 나서 천천히 라운지로 돌
아갔다. 
  나는 얼어붙은 듯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가 내 곡을 연주할 것인가?' 이  질문이 화살처럼 
내 마음속에 와서 박혔다. 
  예술이 꼭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하는 특별한 재능일 필요는 없다. 남을 보살피거나 타인의 고민
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도 아름다운 예술일 수가 있다.  그 노신사는 내가 내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 자신의 삶을 살도록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날 내
게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그 이후 나는 세미나 일을  중단하고, 그날 밤 내가 연주한  곡들을 녹음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곡들을 작곡해 나갔다. 한 개의 음반은 열 개의 음반으로 이어졌으며, 이제는 내가 가까운 친구들
하고만 나누었던 음악이 세상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중단한 일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전에 하던 심리 상담
과 경영 세미나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과는 매우 달랐다. 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채
우기 위해 내 자신의 것을 문밖에 세워 둘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나는 세미나를 이끌면서 전처럼 도표와 계획서와 이론들만을 가져가지 않는다. 그것에 덧
붙여 나는 나 자신을 가져가고, 감동적인 이야기들과, 연주회에서 사용하는 그랜드 피아노까지 가
져간다. 그리고 호텔 로비에서 만난 그 노신사를 위해 피아노  옆에 자리 하나를 만들어 놓는 것
을 잊지 않는다. 
  -마이클 존스-

  너의 선은 어느 것인가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과 천재성을 인정받은 사람이 있었다. 부모의 권유로 그는 일찍부터 정
규 미술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국내의 가장 유명하다는 예술학교에서 배웠으며, 대
학교 역시 최고의 미술대학을 다녔다. 곧이어 대학원까지 졸업한 그는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
야말로 화가로서의 황금코스를 밟은 것이다.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는 한 편, 그는 미술대학을 지원하는 고등학생들의 레슨 선생으로도 가
장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특히 데생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40대 중반이 되어, 이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그는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학
교 수업과 레슨의 바쁜 일정 속에서 제대로 그림 작업에  몰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큰 계획과 결심을 안고 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유명한 파리 미술대학
에 입학원서를 냈다. 
  시험은 그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데생이었다. 수없이  학생들의 입시 지도를 해온 그였기 때문
에 선과 면의 흔들림 없는 배치, 음영의 조화, 비율의 정확성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초조
하게 손을 놀리는 옆의 지원자를 구경하면서 그는 여유 있게 데생을 마쳤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는  F점수를 받았고, 그가 비웃던  옆의 지원자는 A점수를 받았다. 
결과를 승복할 수 없었던 그는 채점관에게 달려갔다.
  채점관이 두 사람의 그림을 꺼내 나란히 보여주며 말했다. 
  "물론 당신의 뎃생이 정확하고 훌륭하다는 점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 그림의 이 옆 곡
선은 세잔이 그렸던 선이고, 위쪽의 곡선은 모네의 선이고, 아래쪽 곡선은 드가의 곡선입니다. 이
것들은 훈련과 반복에 의해서 얼마든지  그릴 수 있는 선들입니다.  그것은 재능이나 천재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사람의 그림을 보십시오. 선도 정확하지  않고 음영의 비
율처리도 훈련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 그은 이 선은 이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표현하기 힘든 
선입니다. 세잔도, 모네도, 드가도 이런 선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만의 독창적인 선이지요. 
당신이 그린 그림을 보니 당신은 많은 지식과 훈련을 쌓은 것 같군요. 하지만 미술은 정확성보다
는 독창성을 더 평가하지요. 이 그림에서 당신만의 독창적인 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유명한 미
술대학 교수였던 그는 비로소 자신이 오랫동안 무시해온 미술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천재 미술학도들의 독창성을 파괴해왔는가를 알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당신의 선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그은 선들을 모방하기에 바쁜가?  -
작자 미상-

  새로운 날
  여든 살의 J.B. 프리슬리는 말했다.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나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날,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 또 한 번의 새로
운 시작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떤 마술적인 일이  이 아침 너머 어딘가 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흔 아홉 살의 루즈 루크는 어떤 것이 가장 기쁜 일이냐는 질문에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지금 당신과 얘길 나누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기쁨이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말기 암을 이겨낸 극작가이며 연기자인 에반 핸들러는 말한다. 
  "치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치아를 갈아대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다. 내가 살
아있다는 증거이니까. 난 삶이 내게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다."  -바바라 니콜스-  
  구두가 없어서 불편할 때에는 다리가 없는 사람을 생각하라.
  백만장자 데일 카네기는 경제 불황이 미국을 덮쳤을  때 뉴욕 맨하탄에서 살고 있었다. 그에게
도 모든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진 데일 카네기는 차라리 이대로 인생을 끝
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강물에 몸을 던지려고 집밖으로 나왔다.  강 쪽으로 가기 위해 모퉁이를 돌
아섰을 때 한 남자가 그를 소리쳐 불렀다. 뒤돌아보니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바퀴 달린 판자 위
에 앉아 있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보나마나  아주 불행한 처지에 놓은 사람이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카네기에게 말했다.
  "선생님, 연필 몇 자루만 사 주시겠습니까?"
  카네기는 남자가 내미는 연필 자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1달러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강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가 카네기에게로 굴러오면서 소리쳤다. 
  "선생님, 연필을 가져 가셔야죠."
  카네기는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말했다. 
  "그냥 두시오. 난 이제 연필이 필요 없는 사람이오."  하지만 그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두 블록
이나 따라오면서 카네기에게 연필을 가져가든지 아니면  돈을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는 동안 내내  그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연필 
몇 자루를 받아든 카네기는 자신이 더 이상 자살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훗날 카네기는 말했다.
  "난 내가 살아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 다리가 없으
면 서도 미소 지을 힘을 갖고 있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한 미소 하나가 
한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임무의 차이
  마더 테레사 수녀가 전세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대통령, 수상, 국왕들의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
었다. 참석자 모두가 고급 의상과 화려한 보석으로 꾸미고 나왔지만 마더 테레사는 인도 전통 의
상인 낡고 단순한 사리를 옷핀으로 고정시키고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한 정치 권력자가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더 테레사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
기 시작했다. 그는 연설 끝에 마더  테레사에게, 자신의 임무가 별다른 성공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가끔은 좌절하거나 실망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더 테레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신은 저에게 성공의 임무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선의 임무를 주신 것이지요."
  -앨리스 그레이-

  진정한 위로
  난 슬픔에 잠겨 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곁에 와서 신의 섭리에 대해,  그리고 왜 이런 불
행한 일이 일어났으며 무덤 너머엔 어떤 새로운  세계가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듣기에도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난 그가 
그만 가 주기를 바랄 뿐 아무 감동도 받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자리를 떴다.
  그때 또다른 사람이 와서 내 곁에 앉았다. 그는 그냥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내가 뭔가를 말하면 그는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간단히 대답하고, 조용히 내 손을 잡
아 준 다음에 내 곁을 떠났다. 난 그에게서 큰 감동과 위안을 받았다. 난  그가 떠나는 것이 싫었
다. 
  -조셉 베일리-
 
  약보다 더 중요한 것
  일시적으로 죽음을 체험한 어린아이들을 연구해 온 멜빈 모르스 박사의 저서(빛에 더 가까이)
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주인공들은 의학적으로  사망 진단을 받았거나 신체 기능이 완
전히 정지되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소생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저쪽에 있는 커다란 
빛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어떤 영적 세계를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모르스 박사가 이 저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아이들이 죽음을 체험할 때 
그 자리에 가족이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어 가는 아이가 그 '커다
란 및'을 체험할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한다고 모르스 박사는 말한다. 
이 경험은 영적인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일깨워준다.
  모르스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불행히도  환자가 강한 항생제나 진통제를  투여 당한 경우에는 
환자의 섬세한 감각기관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뿐 아니라  주위에서 지켜보던 가
족들까지도 이 중요한 영적 경험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임종을 앞둔 환자
에게는 강력한 약보다 주위의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엘리자벳 큐블러 로스-

  얼마나 사랑했던가
  목사가 묘지에서 장례식 진행을 마쳐가는 중이었다. 50년 동안 함께 산 아내를 방금 떠나 보낸 
일흔여덟 살의 노인이 갑자기 관 위에 엎어지면 울부짖기 시작했다. 
  "여보, 난 당신을 정말 사랑했소!"
  노인의 슬픔에 찬 울부짖음이 장례식의 엄숙한 정적을  깨뜨렸다. 묘지 주위에 서 있던 가족과 
친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성장한 자녀들이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그만 진정하세요. 다 이해해요. 이제 그만 조용히 하세요."   노인은 땅 속으로 서서히 
내려가는 관에 시선을 붙들어 맨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목사가 의식을 진행해  나갔다. 끝으로 
목사는 고인의 가족들에게  장례식의 마지막 의식으로 흙을 한 삽씩 퍼서 관위에  뿌리라고 말했
다. 가족들이 순서대로 흙을 뿌렸지만 노인은 거부했다.  또다시 큰 소리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여보, 난 정말 당신을 사랑했소!"
  노인의 딸과 아들들이 또다시 아버지를 진정시키려고 애썼지만 노인은 계속 소리쳤다.
  "난 네 엄마를 정말 사랑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둘 묘지를 떠나기 시작했지만 노인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무덤에 시선을 박은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목사가 다가와서 말했
다.
  "선생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젠 댁으로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일터
로 돌아가야 하고 삶을 계속해야 하니까요."
  노인은 비통한 어조로 울먹였다.
  "아, 난 정말로 내 아내를  사랑했소! 당신은 이해 못할 겁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목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난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소."  -하녹 메카티-
  우리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아버지와 함께 작은 토지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청년이  있었다. 1년에 몇 차례씩 그들은 농작
물을 소달구지에 싣고 근처 도시로 가서 내다 팔곤 했다. 한 식구이며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점 외에 이 아버지와 아들은 거의 닮은 점이 없었다. 노인은 매사를  천천히, 그리고 순리
에 따라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반면에 청년은  대체로 늘 서두르는 편이었다. 언제나 더 
빨리, 더 많이 갖겠다는 성격이었다. 
  어느 화창한 이른 아침, 그들은 소달구지에 농작물을 가득 싣고 먼길을  떠났다. 이들은 자신들
이 밤낮 없이 걷는다면 이튿날 아침 일찍 시장에 도착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그래서 그는 막대기
로 소를 채찍질하면서 계속해서 더 빨리 걷도록 재촉했다. 노인이 말했다.
  "천천히 가자, 아들아. 오래 걸어야 하니까."
  아들이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남들보다 일찍 시장에 도착하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아
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모자를 눈썹 밑까지 눌러쓰고  소달구지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청년은 초조하고 짜증이 나서 더 빨리 걷도록 소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소는 고집 센 발
걸음을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네 시간 동안 10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서 그들은 작은집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삼촌네 집인데, 잠시 들러서 인사라도 하고 가자."  성질 급한 청년이 불평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린 이미 한 시간이나 늦었어요."
  아버지가 천천히 말했다.
  "그럼 몇 분 더 늦는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겠구나. 네  삼촌과 나는 이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지 않니."
  두 노인이 반가워하며 한 시간이 넘도록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청년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
렸다. 다시 출발했을 때는 아버지가 소를 몰 차례였다. 두가래 길에 왔을 때  아버지는 소를 오를
쪽 길로 몰았다. 아들이 소리쳤다.
  "아버지, 왼쪽이 지름길이에요!"
  노인이 말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이 길이 경치가 더 좋아."
  청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버진 시간 개념이 전혀 없으세요?"
  "나야말로 시간 개념이 철저한 사람이다. 그래서 매순간  충분히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것이야."  
구불구불한 길은 아름다운 초원과 야생화들, 그리고 잔물결 이는 시냇물들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아들은 속이 끓어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업었다.  그는 그날의  황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그들은 온갖 꽃들이 만발한  넓은 초원지대에 도착했다. 노인은 풀꽃 향기를 
맡으며 재잘거리는 물소리를 듣고는 소를 멈추었다. 그는 달구지에서 내리며 말했다.
  "여기서 오늘밤을 지내고 가자꾸나."
  아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 이제 앞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가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는 돈을 버는 일보다 저녁
노을 같은 것이나 감상하고, 꽃냄새 맞는 데만 더 관심이 있을  뿐예요."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
다.
  "너 모처럼 옳은 소릴 하는구나."
  몇 분도 안 돼 노인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청년은 별들을 노려보며 웅크리고  앉았다. 밤은 매
우 천천히 흐르고, 아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태양이 뜨기도 전에 아들은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그들은 다시 달구지를 몰고 길을 떠났다. 
1킬로미터쯤 갔을 때 그들은 다른 농부를 만났다. 처음 만나는 초면의 농부였다. 농부는 웅덩이에 
수레가 빠져 애를 먹고 있었다. 노인이 아들에게 말했다.
  "내려서 좀 거들어 줘야겠다."
  청년이 투덜거렸다.
  "또다시 시간을 낭비하잔 말예요?"
  "아들아, 좀 편안하게 생각하거라. 너도 언젠가는 웅덩이에  수레가 빠질 수 있어. 곤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잊으면 안 돼."  청년은 화가 나서 시선을 돌렸다.
  농부의 수레를 웅덩이에서 꺼내 주었을 때는 이미 아침 여덟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갑자
기 거대한  섬광이 하늘에 번쩍이더니 천둥 같은 소리가 뒤따랐다. 산너머에는 하늘이 회색 빛으
로 변해가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도시에 큰비가 내리는 모양이구나."
  아들이 불평을 했다.
  "만일 우리가 서둘렀다면 지금쯤 농작물을 다 팔았을 거예요."  노인은 부드럽게 타일렀다.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한두 해 농사 짓고 말 일이 아니잖니. 네 인생을 더 많이 즐기는 게 중
요하다."
  오후 늦게서야 그들은 산등성이에 올라 겨우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들
은 그곳에 멈춰 서서 오랫동안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침내 청년
이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제 알겠어요."
  그들은 수레를 되돌려 한때 히로시마라고 불리던 도시를 등지고 천천히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
다.
  -빌리 로즈-

  병 속의 편지
  1965년 여름, 우리의 온 일가 친척이 플로리다 주 플랜트 시티에 모였다. 그런데  새벽 두 시에 
갑자기 할머니가 우리 모두를 두들겨 깨우더니 빈 콜라병과 코르크 마개와 백지를 준비하라고 명
령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난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해야만  해."  할머니는 백지 위에 
몇 개의 성경 구절을 써 내려가셨고,  우리 손자 손녀들은 그 종이를 둘둘 말아 병 속에 넣고 코
르크 마개로 막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날 아침 우리 일가 친척들은 할머니의 명령에 따라 코코아 해변으로 차를 몰고  가서 2백 개
의 콜라병을 파도에 실어 보냈다.
  그로부터 수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고, 또는 직접 찾
아와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콜라병에 든 구절을 읽고는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할머니
는 1974년 11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다음달인  1974년 12월에  마지막 편지가 할머니에게 
도착했다.

  가우스 부인께,  전 지금 촛불 아래서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농장엔 더 이상  전기가  들어오
지 않습니다. 남편은 트랙터가 전복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내게 열한 명의 아이
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큰애가 열네 살이랍니다. 은행은 더  이상 대출을 거부하고 있고, 이제 우
리에겐 빵 한 덩어리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고, 크리스마스가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주님께 용서를 빌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강으로 나갔습니다. 몇 주째 강이  얼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오
래 걸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난  돌을 가져다가 얼음을 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구멍을 
뚫자 콜라병 하나가 떠올라 오더군요. 전  코르크 마개를 열고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그 
안에 적힌 희망의 글귀를 읽었습니다. 전도서 9장 4절의 말씀이 적혀 있더군요.
  "모든 산 자들과 함께 있는 자에게 희망이 있으니,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
니라."
  당신은 히브리서와 요한복음서의 다른 구절들도 적어 놓았더군요. 전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내 주신 메시지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고난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부디 우릴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지만 우리  모두 잘 해나갈 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과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실 거예요. 오하이오의 농장에서.
  -크리슬 화이트-

  눈이 안 보이는 영웅
  찰리 보스웰은 변함없는 나의 영웅이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환경을 딛
고 일어서도록 강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찰리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불길에 휩싸인 탱크에서 친구를 구출하다가 실명을 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그는 훌륭한 육상선수였다. 눈이 먼 뒤에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펄쳐 보일 새로운 스
포츠를 하기로 결심했다. 두 눈이 멀쩡할 때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것은 골프였다.
  그는 정열을 갖고 골프 경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 전국 맹인 골프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이 우
승은 13차례나 이어졌다. 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골프 스타는 위대한 골퍼인  벤 호간이었다. 따라
서 찰리가 1958년에 벤 호간 골프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생애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벤 호간을 만난 자리에서 찰리는 자신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그것은 위대한 벤 호간과 골
프 경기를 한 번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벤 호간도 찰리와 함께  경기를 갖는 것이 자신에게 큰 
영광이라며 동의했다. 그 역시 찰리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고  그의 골프 실력을 높이 평가하
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찰리가 무심결에 말했다.
  "우리 돈을 걸고 경기를 해 볼까요, 호간 씨?"
  호간이 말했다.
  "전 돈을 걸고 당신과 경기를 할 순 없어요. 그건 공평치 않으니까요."  앞이 안 보이는 찰리가 
말했다.
  "아, 걱정 말아요. 한 홀마다 1천 달러씩 내기를 합시다. 호간 씨."  신사다운 골퍼는 말했다.
  "전 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눈이  안 보이는 당신의 불리한 조건을 내가 
이용했다고 수군거리지 않겠습니까?"
  "겁쟁이군요, 호간 씨."
  마침내 할 수 없이 벤 호간은 동의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전 절대로 봐 주지 않을 거예요."  자신감에 찬 찰리 보스웰도 말했다.
  "저 역시 당신이 봐 주기 게임을 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좋소, 보스웰 씨. 시간과 장소는 당
신이 정하시오."  그러자 찰리 보스웰이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열두시 정각에 시작합시다. 바로 오늘밤 말이오."
  -존 카나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 
  미국의 스룰리 블로토닉 연구 조사에서 난 1,500명의 사람들을 두 분류로 나누어 20년 동안 추
적했다. 그룹 A에 속한 사람들이 연구 대상의 83퍼센트를  차지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면 먼저 돈부터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17퍼센트
인 그룹B에 속한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돈은 나중에 걱정하겠다는 정신으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이 조사는 몇 가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았다. 
  20년 후에 1,500명중에서 101명이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 101명의 백만장자 중에서  한 명을 제
외한 100명이 그룹B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추구한 사람들의 그룹이었
다. 
  한편,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심장 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사추세츠 주의  한 연구 단체에서는 심장병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 대상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가?
  이 두 가지 대답에 '네'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심장 질환에 결릴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자신을 존중하는 일
  프로 라켓볼의 최고 선수인 루벤 곤잘레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몇 해 전 그는 최초로  프로 라켓볼 대회에 출전해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 우승하면 
그는 큰 상금을 거머쥐고 프로 세계에서 이름을 휘날릴 수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인 5회의 매치 포인트(승패를 결정하는 최후의 1점)에서 곤잘레스는 앞쪽 코너에 
강타를 매겼다. 주심은 유효를 선언했고, 선심 중 한사람도 유효를 선언했다. 
  하지만 잠시 망설인 뒤 곤잘레스 자신은 볼이 바닥을 먼저 치고 벽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유효
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 결과 상대방  선수에게 서브권이 넘어가고, 상대방 선수가  1점을 먼저 
따는 바람에 곤잘레스는 패배하고 말았다. 
  루벤 곤잘레스는 경기장을 걸어나갔다. 모두가 곤잘레스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승
을 결정짓는 마지막 1점의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
로 자신에게 불리한 선언을 해서 경기에 진다는  건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
다.  
  다음달 유명한 라켓볼 잡지는 표지 기사로 곤잘레스를 실었다. 편집장이 프로 라켓볼 경기에서 
최초로 일어난 이 사건을 취재했다. 왜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을 받자 곤잘레스는 대답했다. 
  "그것만이 내가 내 자신을 존중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델마 스핀라드

  마음을 여는 32가지 방법
  울고 싶을 때는 크게 운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심판하지 않는다. 
  마음에 어떤 공간을 남겨 두고, 그곳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넣어둔다.
  고민스러울 때는 심하게 고민한다. 
  앞으로 일어날 것 같은 일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루에 한 번은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마음의 눈에서 두려움의 안경을 벗어 던진다. 
  과거의 상처들에 대해선 한바탕 운 다음에 그것들로부터 벗어난다. 
  어떤 선택들이 가능한지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라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 
  "자신을 주장하되 부드럽게 주장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자신에게 기다림의 기술을 가르친다.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오늘이 자기 자신에게 하나의 모험이 되게 한다. 
  마음에 와 닿는 모든 느낌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마음이 내린 결정을 지지한다.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어린아이를 소중히 여긴다. 
  생각 속에서 남을 비판하려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는 그것을 침묵시킨다. 
  삶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한다. 
  마음속에 유머를 나눌 공간을 늘 남겨둔다. 
  때로 자기 자신에게 놀라운 기쁨을 안겨준다. 
  새로 피어난 꽃들로 자신의 집안을 장식한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자신에게 말해준다. 
  마음이 들려주는 교훈에 귀를 기울인다. 
  어떤 순간이든지 그 순간에 몰입한다. 
  괴짜가 되어 행동하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 
  폭포의 근원을 알기 위해 절벽을 기어오르는 모험을 과감히 시도한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얼마나 큰 변화의 힘을 갖는가를 기억한다. 
  자신에게 시를 한 편 써서 읽어준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을 높이 인정한다. 
  이제 막 내린 눈 위를 달빛 아래서 걷는다. 
  -얼렌 개이 레바인-

  고민을 해결하는 법
  당신이 현재 갖고 있는 고민을 종이에 순서대로 적어놓는다. 당신을 고민되게 하거나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을 가능한 한 다 죽어 고민 목록표를 작성한다. 작은 고민이라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그 목록표를 접어서 봉투에 놓고 풀칠을 한다. 그 다음에 그것을 상자안에 넣어 당신만이 아는 
장소에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 네 시까지 놓아둔다. 단, 그때까지는 거기에 적힌 고민들에 대해선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토요일 오후 네시가 되었을 때 그 상자를 가져다가 봉투를  뜯고, 고민 목록이 적힌 종이를 꺼
낸다. 그리고 각각의 고민거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1. 당장에 그 고민을 해결할 행동을 취한다. 
  2. 그 고민에 대해선 영원히 잊어버리기로 결정을 내린다. 
  3. 아니면 그 고민에 대한 결정을 다음주 토요일 오후 네 시까지 연기한다. 
  -노만 빈센트 필-

  단순한 친절
  뉴욕에서의 일이다. 비가 줄기차게 퍼붓고  있는데, 머리가 헝클어진 한 노부인이  비를 피하기 
위해 커다란 가구점 안으로 들어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비에 흠뻑 젖었고 돈도 한 푼 없어 보
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때 판매 점원으로 일하는 한 젊은이가 다가와 말했다. 
  "집에 가실 수 있도록 제가 택시를 불러올 테니, 그 동안 잠시  이 의자에 앉아 계세요."  그리
고 나서 젊은이는 곧바로 거리로 달려가 택시를 잡아왔다. 떠나기 전에 노부인이 말했다. 
  "젊은이, 이 종이 쪽지에 젊은이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주시겠소?"  젊은이가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었고, 곧이어 그들은 헤어졌다. 
  이튿날 이 노부인의 아들인 미국 최대의 철강 재벌 앤드류 카네기가 그  가구점으로 전화를 걸
었다. 그는 자신이 최근에 매입한 스코틀랜드의 성을 장식하는 데 필요한 모든 가구를 그 가구점
에서 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아가 그곳에서 일하는 한 젊은이의 이름을 대면서 그 친구가 모
든 판매를 관리하고 커미션도 그 젊은이에게 돌아가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그 
젊은이가 스코틀랜드까지 가서 그 가구들을 배치하는 일을 도와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가구 대리점의 총책임자는 애써 놀라움을 감추면서 그 젊은이는 사실은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
으며, 자신이 그곳에서 이미 몇 년을 일했기 때문에 중대한 일을 맡기에는 적임자라고 역설했다. 
  그 총책임자에게 카네기는 말했다. 
  "나의 모친께서 일 젊은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큰 친절을 베풀었다고 말씀하셨소. 그
것이 그 젊은이의 인간됨을 잘 설명해 준다고 난 생각하오. 난 그 친구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고, 
또 그가 모든 커미션을 갖게 되기를 원하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지 내가  다시 점검할 것이고,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난 다른 곳에서 필요한 가구들을 구입하겠소."  -델마 스핀라드-  
  아버지의 메시지
  12월 24일,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저녁이기도 했다. 형
제 자매들과 나는 어린시절을 보낸 집에 모여 우리의 엄마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벌였다. 
  아버지는 54년간 함께 사신 엄마와 다섯 명의 자녀를 뒤에 남기셨다. 엄마는 이제 너무 쇠약해
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으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엄마
의 힘이 되어 주셨다. 엄마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했다. 
  우리는 회의를 시작했으며, 엄마가 옆에서 듣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목소리들일 금방 높아졌
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가
족간의 결속력이 약해져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엄마가 어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가보다 엄마를 
보살피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논쟁이 길어짐에 따라 우리는 서로 상처가 깊어졌다.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진다는 생가 때문에
도 더욱더 상처를 받았다. 엄마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말없이 듣고 계셨다. 이러다가 아버지의 죽
음과 함께 가정이 해체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논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갑자기 밖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들리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
리가 났다. 오빠가 가서 문을 열었다. 우리 모두 논쟁이 잠시 중단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무슨 
일인가 보려고 다 함께 현관으로 갔다. 
  바깥의 현관과 잔디밭은 집집마다 돌며 캐럴송을 불러주는 어린 소년 소녀들로 가득했다. 그리
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목사는 다름 아닌 그날 낮에 아버지를 묘지에 모실 때  기도를 해준 목사
였다. 우리도 그를 보고 놀랐지만 그 역시 우리를 보고 놀랐다. 그는 그곳이  우리 부모님이 사시
는 집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서서 그들이 부르는 '땅 위의 평화'라는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
서 문을 닫았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큰오빠가 말했다. 
  "아버지가 저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게 틀림없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어머니를 잘 돌
보라고 일러주신 거야."
  그 말이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메아리 치면서 논쟁을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금방 하나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엄마는 둘째 오빠의 집으로 옮겨가기로 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폐쇄되고 버려졌지만, 가족은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메릴린 테플리츠-

  늙음,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늙음,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딘 것.
  예전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
  저 모퉁이까지 가는 데 이젠 두 배나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그리고 그토록 얕아 보이던 고갯길이 이젠 언덕처럼 높아 보이는 것.
  난 이미 버스를 따라가는 걸 포기한 지 오래다.
  버스는 예전보다 훨씬 더 빨리 떠나 버리지.
  그리고 사람들은 전보다 계단을 더 가파르게 만들고   신문에선 더 작은 활자체를 사용하고 있
지.
  당신이 그 사실을 알기나 할까?
  사람들에게 좀 더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다는 걸 난 알지. 
  모두가 왜 그토록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지 난 거의 들을 수가 없어.
  옷감들도 왜 그런 재료로만 만드는지 엉덩이 부위에서 꽉 조이지.
  이젠 허리를 구부려 신발끈을 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조차 변하고 있어.
  그들은 내가 그들의 나이였을 때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지.
  반면에 내 나이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지.
  저번 나 옛 동창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너무 나이가 들어 날 기억조차 못하더군.
  오늘 아침엔 머리를 빗으려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지. 
  이젠 거울조차도 옛날처럼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는 걸.
  -마크 링크-

  용서
  기차가 달리고 있는데, 한 부유한 상인이 우연히 가난한 노인과 마주앉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자는 드러내 놓고 노인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거드름을 피우면서 그의 초라한 차림새를 경멸했
다. 
  마침내 기차가 어떤 역에 도착했을 때 부자와 그 가난한 사람은 동시에  기차에서 내리게 되었
다. 부유한 상인은 역에 수많은 경건한 유태인들이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군중
은 유럽에서 오는 어떤 성자 랍비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성자 랍비
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앞에 앉아서 여행을 한 가난한 노인이었다. 
  지혜롭고 성스런 현자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기
도 하고, 그에게 드러내 놓고 모욕을 준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상인은 군중을 헤치고 노인에게로 
갔다. 마침내 노인 앞에 다가간 부자 상인은 용서를 구하며 그의 축복을 청했다.
  그러자 늙은 랍비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소. 용서를 받으려면 당신은 세상에 있는 모든 가난한 노인들을 한 사
람씩 전부 찾아다니며 일일이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이요."  -엘 리 위젤-
  아이의 눈
  몇 해 전에 나는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대형  장난감 세일 매장으로 물건을 사러 갔다. 장난
감들이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우리가  막 복도를 돌아 옆의 매장으로 갔을  때였다. 머리가 
길고 수염이 난 한 청년이 휠체어를 타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어떤 끔찍한 사고를 당했
는지 두 다리가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 순간 일곱 살 먹은 내 아들이 그 청년
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저 사람 좀 봐!"
  나는 보통의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아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장애자를 손가락질하는 것은 예의
가 아니라고 나무랐다. 하지만 아들은 내 손을 뿌리치고는 복도를 뛰어가 휠체어를 탄 그 사람에
게로 달려갔다. 아들은 그 사람 바로 앞에 가더니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와, 정말 멋진 귀고리네요! 어디서 그런 멋진 귀고리를 샀어요?"  -주디 하트- 
  603호 비행기
  콘티넨탈 항공사 소속의 DC-10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순간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시속167마일로 속력을 내면서 고도를 올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펑  하고 폭발이 일어
났다. 공포에 휩싸인 채 나는 무릎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두 다리를 껴안았다. 추락시에 배운 요령
이었다. 비행기는 화염을 내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길이 왼쪽 기내 전체를 집
어삼켰다. 수십 미터 상공으로 불길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지난 7년간 나는 로스엔젤레스에서 힘겨운 여배우의 인생을 살아오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경제
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완전히 밑바닥을 맴돌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미스 
하와이 출신으로서 나는 지금 미스 하와이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호놀룰루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
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내 자신에게 거듭 다짐하곤 했다. 
  "내 삶을 바꿔야만 해. 결코 지금까지처럼 살아선 안 돼.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런데 폭발이 일어나는 그 순간, 극적으로 내 자신이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부턴가 
모든 것을 감싸는 고요함이 내려왔다. 나는 보호받는 걸 느꼈다. 마치 어떤  튼튼한  방패가 나를 
에워싸는 것 같았다. 나는 횐 빛의 중심에  있었다.  불붙은 비행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대신 나는 갑자기 평화와 기쁨의 한  가운데 앉아있었다. 나는 우주 전체로부터 무조건
적인 사랑을 느꼈다. 흰빛이 나를   감싸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어디서부턴가  하나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네겐 이 인생이 주어졌다. 넌 그 인생을 갖고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다음 순간 네 가지 질
문이 내 마음을 스쳤다. 
  "넌 너 자신을 사랑하는가? 넌 너의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는가? 넌 너의 목표와 꿈들을 살아
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만일 네가 오늘 죽는다면 넌 이 지구라는 행성을 살아볼  만한 좋은 장소
라는 느낌을 갖고 떠날 수 있는가?"
  난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난 살고 싶어!"
  불꽃이 점점 다가오는 사이에 나는 비상구를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미끄럼 탈출 통
로를 통해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탈출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불타는 기체로부터 절뚝거리며 멀어지면서 나는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되었음을 깨달았
다. 이제부터의 모든 것은 나한테 보너스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지금까지 내가  인생에서 행한 모
든 잘못된 결정들이 칠판 위에  적혀있었는데 그것을 지우개로 전부 지워  버린 것과 같았다. 이 
깨끗이 지워진 칠판에 앞으로 무엇을  써나가든지 그것들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기로, 눈물을 
흘리며 나는 결심했다.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기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내 
곁을 지나 뛰어갔다. 그들 뒤를 따라서 나는  활주로 끄트머리의 철조망 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
갔다. 죽음으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인생에 닥쳐오는 재난은 때로 삶의 깊숙한 곳을  강타한다. 그것은 진실의 밀알을 남겨놓고 거
짓의 겨를 날려 버린다. 더불어 그것은 함께 고통받는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을 가져
다준다. 충격을 가누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우는 한 젊은 여성은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애쓰는 한 
남자의 팔에 안겨 있었다. 어떤 노부인은 초면인 다른 여성의 팔에 안겨 흐느끼고  있었다. 그 여
성은 마치 그 노부인이 아이라도 되는 듯이 가만히 흔들어 주고 있었다.
  남편들은 전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듯이 아내들을 꼭 붙들고 있었다. 그들 모두의 영혼으로부
터 곧바로 사랑이 나오고, 가식과 체면을 버린 채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난 이제 안다. 중요한 것은 삶에서 당신에게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그것을 가지
고 무엇을 만드는 가라는 것을. 인생은  소중한 선물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비행기 사고 이후 난 현재 무엇이 달라졌는가? 난 '미안해요'라든가 '난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결코 미루지 않는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난 다른 사람들을 보는 대신에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난 내일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을 나의 마지막 날인 
것으로 살아간다. 
  -도나 히틀리(현재 미국 최고의 카운슬러)- 

  길에 놓인 장애물
  고대에 어떤 왕이 길 한복판에 큰  돌을 갖다 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숨어서 누가 그 커다란 
돌을 치우는가 지켜보았다. 나라의 부유한 상인들과 관리들이 걸어왔지만 그들은 돌 옆으로 돌아
서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제대로 치워놓지 않은 왕에  대해  비난과 불평을 늘어놓을 뿐 
아무도 그 큰 돌을 다른 곳으로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한 농부가 커다란 채소 짐을 지고 나타났다. 돌이  있는 곳까지 다가온 농부는 짐을 내려
놓더니 그 큰 돌을 길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수없이 들어올리고 밀어낸 끝에 마침내 농부는 돌을 
치우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다시 채소 짐을 등에 지려는 순간 농부는  큰 돌이 놓여있던 자리에 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주머니에는 많은 양의 금화와 함께, 이 금화는 길에서 그 돌을  치우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는 왕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농부는 그 금화 덕분에 오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농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배웠다. 
모든 장애물은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렌 반 에케렌-

  작은 동기
  한 신사가 있었는데, 그는 회사에서 오후 네시부터 자정까지 근무를 했다. 퇴근을 하면 그는 걸
어서 집으로 갔다. 어느 날  밤엔 달이 너무도 밝았기 때문에  그는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빙 둘러가는 것보다 10분은 단축할 수 있었다. 전에도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
고 별다른 일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주저 없이 공동묘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그쪽 길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달빛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낮에 묘지 인
부들이 새로운 무덤을 만들기 위해 길 중간에 구덩이를 파놓은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만 발일 헛디뎌 곧바로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그는 구덩이 밖으로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벽이 너
무 가파르고 높아서 어떤 노력을 해도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한참을 시도하던 그는 결
국 아침에 누군가 와서 꺼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구덩이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그때 어떤 술취한 남자가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그는 잠이 깨었다. 그 술 취한 남자 역시 자기가 무덤 구덩이 안
에 떨어진 걸 알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것이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신사는 그 술 취한 남자는 날 듯이 단숨에 구덩이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쏜
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이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작은 동기만 있으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켄 맥파랜드-

  플라워 파워
  미국에서는 장례식 때 관이 땅 속에 묻힐 때 꽃을 뿌려 준다. 하지만 어느  날 난, 죽어서 꽃에 
둘러싸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난 꽃을 좋아하지만, 살아 있을  때 꽃으로 장
식하고 싶었다. 
  하루는 내가 강연을 하러 나가면서 아직 자고 있는 막내딸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달아 이
는 졸린 눈을 뜨고 날 쳐다보더니 신음소리를 냈다. 
  "아유, 유치해!"
  난 당황했다. 
  "뭐가 유치하다는 거니?"
  "엄마 머리에 꽂은 그 꽃 말이예요.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기엔 너무 이른 거 아녜요?"  난 미
소를 지으며 차고로 향했다. 그런데 부엌을 지나갈 때쯤 둘째딸이 아침 신문을 보다가 날 쳐다보
더니 역시 한 마디 했다. 
  "아유, 촌스러!"
  난 미소를 거뒀다. '유치해'와 '촌스러'가 내가  아침에 들을 수 있는 말의  전부란 말인가. 다
시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보고 있는데 첫째 딸이 하는 말이 내 귓가에 날아왔다. 
  "오늘 엄마의 강연을 들으러 오는 3백 명의 사람들 중에 과연 몇 명이  머리에 꽃을 꽂고 오겠
어요? 엄마 혼자서 너무 튀어 보이지 않겠어요?"
  그러나 난 머리에 꽂은 꽃을 빼버리지 않았다. 난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기에 너무 이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너무 늦었다.
  몇 년 후, 난 카드 한 장을 우편으로 받았다.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당신이 머리에 꽃을 꽂고 강연을 한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저는 늘 머리에 꽃을 꽂고 살아
왔습니다. 웨인 코크란으로부터.'
  -로시타 페레즈-
 
  레몬을 레몬네이드로
  인생은 당신의 손에 레몬을 들려주었다.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것은 당신에게 달린 일
이다. 
  여러 해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 축구선수가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그는 한
창 떠오르는 신인이었으며, 장래가 유망한 선수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사고로 모
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절망에 빠진 채로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때 한 간호사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기타를 가져
다주었다. 그는 기타를 받아들었고, 바로 그날부터 새로운  인생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오
늘날 전세계의 모든 여인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음성의  가수가 태어났으니, 그 사람은 바로 홀리
오 이글레시아스였다.
  -엘런 엡스타인-
  
  분노의 마술
  갑자기 교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독재자'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교감  선생이 뚜벅
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 여성 독재자는 교실 뒤켠에 서서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 뜬 채로 수업
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독재자는 평범한 여성이 결코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여성이랄 수가 없
었다. 그녀는 언제나 "난 괜찮지 않아. 너도 괜찮지 않고"라는 태도였다. 
  그녀는 그런 자세로 나의 수업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나는 학생들과 함께 토마스 하
디의 유명한 저서 (난 괜찮아. 너도 괜찮고)에 대해  토론하면서 인간의 마음 자세가 인생에 어
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놓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업을 지켜보다 말고 갑자기 그  독재자는 냉랭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 시간 정도 노려보더니 그녀는 교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 모두는 큰 안도의 숨을 쉬
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얼굴을 돌리고 날 째려보더니  잔뜩 화가 난 손짓으로 날 가리키면
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필드선생,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이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의 수업을 
하고 있는지 보시오. 당신은 자신이  심리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당신은  일개 교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에서  혈압이 상승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심장은 본능적인 전투 의지로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주전자 뚜껑을 꼭 내리누르는 일 뿐이었다.
  그 독재자가 모욕적인 발언을 끝내고 마침내 교실을 나가자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옹호하기 시
작했다. 한 학생은 소리쳤다. 
  "저 여잔 단단히  혼이 나야해요."
  또다른 학생이 말했다. 
  "정말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구요. 오늘 화장실에서 내 지갑을 빼앗더니 담배가 들어있지 않
느냐고 마구 뒤지는 거였어요."
  평소에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남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특히 내 감정을 자극했다. 
  "저 여자는 우리가 우리들의 문제를  자기와 토론하지 않고 선생님과 함께  토론하니까 질투가 
난 거예요."
  그날 저녁 집까지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난 아직도 화산이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었고, 위로 
받지 못한 눈물이 용암처럼 철철 흘러내렸다. 밤이 되어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도 난 도저히  잠
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꾸만 그 독재자가 내뱉은 말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당신은 자신이 심리학자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명심하시오. 당신은 자신
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심리학자가 아니오. 당신은  일개 평범한 교사란 말이오...."  끝
없을 것 같던 밤이 마침내  물러나고 새벽이 밝아왔다. 아침별이 내   얼굴에서 빛날 때쯤 한 줄
기 빛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심리학자가 못될 이유가 뭐지?"
  분노 대신 열정이 자리잡았다. 나는 곧바로 차에 올라타고 대학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날 하루
가 다 가기 전에 나는 임상 심리학 과목에 수강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인생의 스승은 많은 형태로 다가온다. 전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것 같지 않은 그런 순간
에조차 스승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변화를 시도하게 만든다. 
  그 독재가 교감 선생이야말로 나를 성공으로 이끈  스승이었다. 내 안에 일어난 분노의 불길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선택의 길을 찾도록 연료가 되어 주었다. 그 결과 내 정신은 높이 비상할 수 
있었다.
  내 삶의 그런 큰 변화가 있은 이래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제 내 심리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나와 상담치료를 하기로 예약된 새로운 환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찻주전자처럼 부글부글 끓
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필드 박사님. 전 학교 교사인데요, 오늘 정말  끔찍한 하루였어요. 완전히 독재자인 교장이 있
거든요. 그 여자가 학생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절  모욕했어요. 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내안에서 자비심이 물결쳤다. 난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난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엘리노어 S.필드-

 손의 체온
  내 친구가 심장수술을 받게 된 적이 있었다. 수술을 받기  하루 전날 한 간호사가 그의 병실로 
찾아왔다. 그녀는 내 친구의 손을 잡더니  자기 손의 체온을 느껴 보라고 말했다.  친구는 이유를 
모르고 그녀가 하라는 대로했다. 
  그런 다음 그녀가 말했다.
  "내일 수술하는 동안 당신은 심장과  분리된 상태로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오직 기계들에 
의해서만 살아 있게 될 거예요. 심장이 다시 제자리에 놓이고 수술이 끝나면 당신은 회복실로 옮
겨가 의식을 회복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당신은 적어도 여섯 시간 동안은 움직
일 수가 없을 거예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심지어 눈을 뜰 수조차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의 의식은 완벽하게 깨어있을 겁니다.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당신 주위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모두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섯 시간 동안  내가 당신 곁에 앉아서 당신의 손을 잡고 
있을 거예요.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예요. 당신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난 당신 옆에 있
을 겁니다. 설령 자신이 완전히 무기력하다는 느낌이 든다 할지라도 내 손의 체온을 느끼면서 당
신은 내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이튿날 예정대로 수술이 진행
되고, 그 간호사는 내 친구에게 말한 그대로 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지만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제대
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몇 시간이나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앉아 있는 간호사의 손
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친구의 마음에 큰 차이를 가져다주었다.
  -데이비드 시맨즈-

  간디의 오두막
마하트마 간디가 오두막에 앉아 어느 날 아침 나는 이 오두막의 정신과 메시지를 이해해 보았다. 
내게는 두 가지가 크게 감명적이었다. 하나는 그 정신적인 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쾌적함이었
다. 나는 간디가 그 오두막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 나는 그 집의 단순
성과 아름다움과 청결함이 참으로 좋았다. 간디의 오두막은 모든 사람과의 사랑과 평등의 원칙을 
실천하고 있었다. 
  멕시코에 있을 때 내게 제공되었던 집이  여러 가지로 이 오두막과 비슷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이 오두막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오두막은 일곱 개의 작은 장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입구에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신체적,  정신적 준비를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
다. 그 다음에는 대가족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중간 방이 있다. 세  번째 공간은 간디 자신이 
앉아서 일하던 곳이다. 두 개의 방이 더 있는데, 하나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
들을 위한 것이다. 노천 베란다가 하나 있고 넓은 욕실이 있다. 이 모든 방들은 서로 잘 연결되어 
있다. 
  부유한 사람들이 이 오두막을 본다면  아마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박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는 간디의 오두막보다 더 큰 가옥이 있어야 할 까닭을 알 수 없다. 오두막은 나무와 
진흙으로 만들어졌고 이 모든 것은 기계의 힘을 빌지 않고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이다. 나는 오두
막이라고 불렀지만 실은 훌륭한 집인 것이다.
  집과 주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주택은 사람들이 가구와 자신의 소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것은 사람들 자신보다는 가구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마련된 곳이다. 델리에서 내가 머문 주택
은 많은 편의시설이 있었다. 그  건물은 이 편의시설들을 설치하는 관점에서  건축되었다. 그것은 
시멘트와 벽돌로 만들어졌고, 가구와 기타 편의시설들이 담겨진 상자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은 불구자의 목발 같은 것이다. 그런 
편의물들을 우리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도 더 커진다. 다른 한
편 간디의 오두막에서 내가 발견한 가구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가구에 사람이 
의존적으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병원에 의존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학교에 의존한다. 그런데 실
제로는 병원의 수는 그만큼 사람들의 무지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유물의 증가는 
창조성의 표현을 줄어들게 한다.
  역설적인 것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  우월한 존재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의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월한 존재로 간주된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간디의 오두막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이런 잘못된 관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마음이 슬펐다. 간디가 살았던 
이 오두막보다 더 큰 장소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마음과 몸과 생활방식에서  가난한 자들이
다. 그들은 자연과 거의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으며 그들의 동료 인간들과도 친밀하지 못하다.
  내가 설계사들에게 어째서 그들은 간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소박한  접근방법을 이해하지 못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간디의 방식은 너무 어렵고  사람들이 그걸 따를 수 없을 것이라
고 말했다. 그런 단순한 원리가 이해되지 않고 있다니  어찌된 일일까? 실제에 있어서 일반 민중
은 그런 단순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물건이나 상품들이 주위 환경으로부터  행복을 얻어낼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위축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간디의 오두막은 평범한 사람의 존엄성이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세상에 알려  주고 있
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단순한 생활과 나눔과 진실함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상징
이기도 하다.
  -이반 일리치-

  기름을 더 넣어야겠군
  아버지는 스톡턴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하셨다. 모든 차들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가 몰고 다니는 
1958년형 캐딜락은 아버지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다. 아버지가 그  차에 쏟는 정성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궂은 날씨엔 결코 바깥에 세워져 있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정성껏  세차가 되고 반짝
반짝 광택이 나 있었다. 가히 남자가 아끼는 차의 모범이라고 할 만했다. 
  그때 나는 막 열 여덟 살이 되었고 마침내 운전 면허를  땄다. 아버지는 그 캐딜락을 한 번 운
전해 보고 싶어하는 나의 불타는 욕망을 눈치채시고 3달러를 주시며 가서 차에 기름을 넣어 오라
고 하셨다.
  나는 흥분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서 캐딜락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유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주유소 직원이 기름을 채우고 유리창을 닦아주고  오일과 타이어 바람을 체크해 주는 동
안(1960년대였기 때문에 이 모든 서비스가 가능했다)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운전대 앞에 앉
아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차를 후진하다가 핸들을 너무 바짝 꺾는 바람에 
그만 주유소 기둥에 차 옆구리를 긁히고 만 것이다. 난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순간적으
로 멀리 달아나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를 마주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화를 내시는 
것도 두려웠지만, 아버지가 실망하실 것을 생각하니 그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어
쨌든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대면해야만 했다. 
  나는 차를 몰고 가서 집 앞에 세운 다음, 완전히 기가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아버지를 만나
러 들어갔다. 
  아버지는 내 고백을 듣고는 차가 얼마나 손상됐는가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셨다. 그것은 정
말로 보통 긁힌 자국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바라보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영원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난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
리로 물었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는 문득 자동차에서 고개를 돌리시더니 뒷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2달
러를 꺼내 내게 주셨다. 내가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자, 아버지는 웃음이 담긴 시선으로 내 눈
을 쳐다보면서 말씀하셨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기름을 더 넣어야 할 것 간다. 얼른 가서 2달러  어치만 더 채워라."  -보
브 임펠드-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
  우리가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때 큰 생명력이 우리를  통해 작용하기 시
작한다. 나는 이 중요한 진리를 몇 해 전 캄보디아  난민 수용소의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발견
했다. 당시에 나는 그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대학살이 있고 나서 대부분의  가족들의 서로를 잃고 몇  명만이 살아남은 상태였다. 
엄마와 세 명의 아이들, 늙은 삼촌과 두 명의 조카. 수용소의 각 세대에게는 폭 1.2미터에 길이 2
미터, 높이 1.5미터의 작은 대나무 오두막집이 주어졌다. 
  각각의 오두막집 앞에는 1평방미터도 안  되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수용소 생활이 불과 한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그 손바닥만한  마당에다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세 
개의 호박씨와 콩, 그 밖의  몇 가지 식물을 더 심었다.  씨앗들이 싹을 내자, 사람들은 그것들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줄기를 지탱하도록 대나무 지지대도 세워졌다. 콩과 식물의  넝쿨은 그 막대
기를 휘감고 오두막집 지붕 위로 올라갔다. 
  난민 세대들은 날마다 15킬로미터 정도를 걸어 수용소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샘으로 갔다. 그
곳에서 그들은 한 시간 반 동안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뒤에 양동이에 물을  길어 와서는 자신들이 
키우는 식물에 주었다. 아무것도 자랄 것 같지 않은 뜨겁고 황폐한 땅에서, 그것도 메마르기 짝이 
없는 건기의 수용소 한복판에서 푸르게 가꿔진 채소밭을 보는 것은 실로 감동적인 일이었다.
  전쟁으로 망가진 이 가족들은 씨앗을 심고  자신들의 작은 정원에 물을 줌으로써  결코 멈춰질 
수 없는 생명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우리 자신도 그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어떤 
내적인 고통이나 외부적인 시련을 겪을지라도 이들과 똑같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줌으로써 결코 
멈춰지지 않는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 
  -메리 루 코우나키-
  
  위대한 여성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당신은 가장행렬에 입고 갈 내 의상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웠
어요. 난 당신이 좋은 엄마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난 당신이 때로 두 가지 직업을 동시에 가졌던 것을  기억해요. 당신은 우리 집의 수입과 지출
을 맞추기 위해 집 앞에 미용실을 차린 적도 있었어요. 당신은 여러 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지요. 
하지만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으셨어요. 난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엄마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왔던  날을 기억해요. 자정이 넘어서 집에  들어온 나는 이튿날 학교 
연극에서 왕 역을 맡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엄마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왕이 입는 자주색 옷과 
그 위에 걸치는 검은 가운까지  만드셨어요.(무명 천에 검은 매직으로  색을 칠한 것이었지만요.) 
연극이 끝난 뒤 나는 무대에서 한 바퀴 도는 걸 잊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신이  만든 작품이 얼
마나 완벽한가를 제대로 알 수 업었죠. 하지만 엄마는 그런 순간들을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행복
해 하셨어요. 난 그때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싸우다가 여섯 번째로  머리가 찢어졌을 때 당신은 전화  연락을 받고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어요.
  "걱정 마세요. 우리 애는 괜찮을  겁니다. 조금 쉬게 하세요.  제가 나중에 가서 상태를 살펴볼 
테니까요."
  학교 선생님들과 나는 당신이 강한 여성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
닫지 못했어요. 
  내가 중학생과 고등학생일 때 당신은 늘 내 과제물을 도왔어요. 학교의 특별한 행사 때마다 의
상을 만들었고, 내가 참가하는 모든 경기에  구경을 와 주셨어요. 난 그 당시  당신이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거의 모든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소년 봉사대에서 일할 때, 어느 날 새벽 세시 반에 나는 마흔 세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집
에 와서는 그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엄마는 네 
시 반에 일어나셔서 영웅적인 일을 해내셨어요. 그 당시 난 엄마가 늘 긍정적이고 너그럽게 베푸
는 분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시절, 당신은 내가 참가한 모든 축구 경기와 농구 경기마다 찾아와 너무 흥분해서 응
원을 하느라 뿅 망치로 앞에 앉은 남자의 머리를 후려치곤 했었어요. 난 경기장 한복판에서도 내
게 힘내라고 소리치는 당신의 응원을 들을 수 있었어요. 난 당신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어떤  치
어리더보다 내게 더 큰 응원이 되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
지 못했어요. 
  내가 스탠포드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당신이 나를 위해 치른 모든 희생을 난 기억해요. 내 학
비를 위해 당신은 시간외 근무를 해야만 했고, 내가 혼자라는 걸 느끼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편지
와 꼼꼼한 소포들을 보내주셨어요. 난 당신이 훌륭한 친구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
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한 달에 2백 달러의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소년 봉사대에 취직하기
로 결정했던 날을 난 기억해요. 아버진 내가  사다리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지
만 당신은 여전히 날 격려해 주었어요. 사실 당신이 내 작은 원룸 아파트를 수리해 주기 위해 오
셨던 것까지 난 기억해요. 작은 다락방에 불과한 그 공간에 당신은 특별하고 애정 넘치는 솜씨를 
발휘해 주셨어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그때 난 당신이 대단히 창조적인  천재라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시간이 흘러 난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기 시작했어요. 당신은  '할머니'가 되었
고, 당신의 새로운 역할을 소중히 여겼어요.  하지만 당신은 결코 조금도 더 늙어  보이지 않았어
요. 난 그때 신이 당신을 만들 때  당신의 삶에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그리고 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지요 .모든 상황이 내게 힘들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내 곁에 있어 주셨어요. 어떤  것들은 결코 변하
지 않는다는 걸 난 알았어요. 그리고 깊이 감사하게 생각했지요. 난 그때 내가  오래 전부터 느끼
고 있었듯이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간호사인가를  깨달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위대한 여성이라는 
건 깨닫지 못했어요.
  난 몇 권의 책을 썼고, 사람들이 내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당신과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이룩한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내 책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선물했어요. 난 그때 당신
이 얼마나 훌륭한 홍보자인가를 깨달았지만,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여성인가는 깨닫지 못했어요.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계절은 지나가고, 내가 알았던 많은 훌륭한 남자들 중의 한 사람도 세
상을 떠났어요. 난 아직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당신이 눈부신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서 사람들
에게 "우리가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라고 말하던 그 장면을 기억해요. 그 순간들 속에서 난  가장 어려운 순간과 힘든 상황에서도 꿋
꿋이 서 있고 감사할 줄 아는 한 여성을 보았어요.  난 비로소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여성인가를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마지막 해에,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제  당신 혼자서 서 있어야만 하게 되었을 
때, 그 여러 해 동안 내가 지켜봐 오고 경험해온 모든 것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왔어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웃음은 더 풍성해지고, 당신의 힘은 더 강해지고, 당신의 사랑
은 더 깊어졌어요. 
  난 진실로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여성인가를 깨달았어요.
  나를 당신의 아들로 선택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려요. 
  -팀 한셀-

  한 번 더 포옹을
  중환자실의  간호사로 여러 해 동안 일해 왔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 환자가 가망이  없다는 사
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움직임도  없고, 숨소리조차 미약했으며, 온갖  주사 용액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환자 기록표를 훑어보면서 나는 그가 더 이상 치료약에 아무 반응도 보
이고 있지 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그는 지금 이곳 중환자 실에 누워 있으며,  육체가 영원한 휴
식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의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 한 인생의 마지막 여정과,  그에게 투여되는 무의미한 
약물들,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순서대로 링거 주
사관에 표시를 해 나갔다. 어떤 병의 주사약이 어떤 팔로 주입되고 있는가를 쉽게 알기 위해서였
다. 
  생각에 잠겨 있느라 나는 그 여자가 걸어 들어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런 기척
도 내지 않을 채 신속히 침대 곁으로  걸어가더니 몸을 굽혀 그 남자 환자의  머리칼을 쓰다듬었
다. 순간 나는 매우 사적인 관계에 끼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환자에게만 눈길을 준 채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무슨 변화가 있나요?"
  내가 대답했다.
  "변화가 있으면 저도 좋겠어요."
  나는 그녀가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그의 한 손을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아무 반응 없는 
얼굴에서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물었다.
  "서로 껴안아 보신 적이 얼마나 오래됐나요?"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너무도 극진했기 때문에 내 질문은 결코 무례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눈물골이 패인 것 같은 얼굴에 또다시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아주 오래됐지요.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어요.  그렇게 빨리 심장마비가 올  줄은...."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좀더 가까이 병상으로 다가앉으며 흐느낌이 더해 갔다. 
  내가 물었다. 
  "남편은 다시 한 번 껴안고 싶지 않으세요? 두 팔로 남편을 겨안아 보고 싶으시죠?"  처음으로 
그녀는 날 쳐다보았다. 호기심에 찬, 희망에 찬,  그리고 약간은 어색해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흐
느낌이 멎고 그녀가 대답했다. 
  "믈론이에요. 우리가 한 번 더 껴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재빨리  병상으로 다가가 
복잡하게  늘어진 주사관과 기계장치들을 정리한  다음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그녀는 머뭇거리
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내 도움을 받으며 남편이 누워 있는 좁은 침대 옆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어색해졌다. 난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이나 다름없었다. 난 얼른 등을 돌리고 그 작은 병상 둘레에 커튼을 쳤다.  둘만의 공간에 그들을 
있게 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간호사로서 나머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나는 그녀가 남편에게 부드러운 말으 속삭
이고,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에게도 용기를 주며,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게도 용기를 
주는 그런 말을 속삭이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주상  용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재조정하기 위해 몸
을 돌린 순간 난 그녀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남편의 뺨을 어루만지고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남
자의 뺨에 입을 맞추는 걸 보았다. 
  나는 굳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남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껴안고 
있는 사이에 잠시 수 남편의 영혼은 먼 여행을 떠났다.
  난 한 번 더 그녀를 껴안아 주었다. 
  -패티 로센-

  어떤 엄마
  내가 존경하는 어떤 홀어머니가 혼자서 네 명의 자식들을 키우면서 여러해 동안 고생한 이야기
를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돈은 없고 자유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
든 걸 다 했다. 그런데 열네 살인 막내딸이 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되었다.  그러자 위대한 모성
애가 무조건적인 에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딸은 말을 하거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병원의 의
사들은 아이가 다시 움직이게 될 확률은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따의 의식이 아직 살
아 있음을 알았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그녀는 자신의 딸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걸 존재 
깊은 곳으로부터 느꼈다. 엄마는 아예 병실로 옮겨 가서 딸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행한 치
료는 단순히 딸의 팔을 들어올렸다가 내려놓고, 또다시 들어올렸다가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 다음
에는 딸의 눈동자 앞에서 물체를 앞 뒤 양옆으로 움직이는 일을 날마다 했다. 그 결과 마침내 딸
의 두 팔과 눈동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3년 뒤 그 딸은 학교를 다닐 만큼 회복이 되었다. 
이제 성장을 해서 딸은 법률 학교를 졸업했으며,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자비심은 강요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깊이 연결되어 있고, 깊이 사랑하고 있을 때 우리를 통해 흘러 나온다. 
  -자크 루세란-

  후회없는 삶은 살기 위해
  1940년 여름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했다. 그러자 폴란드에 살고 있던 많은 유태인들이 인접한 
나라 리투아니아로 피난을 왔다. 그곳 역시  안전한 곳은 못되었다. 언제 독일군이 침공할  지 알 
수 없었다. 리투아니아에 있는 각국 영사관에도 이미 철수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유태인들은 또다시 다른 나라로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입국을 허락하는 
비자가 있어야만 했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비자를 발급하는  각국 영사관들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접촉이 가능한 곳은 일본 영사관뿐이었다. 유태인들은 서둘러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갔다.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영사관의 스기하라 부영사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본국 정부에 문의 전보
를 쳤다. 본국에서는 곧바로 회신을 보냈다.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독일과 우호 관계
에 있던 일본으로서는 독일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 
  영사관 담장 밖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태인들을  바라보면서 스기하라 부
영사는 다시 두 차례나 본국 정부에 허락을 요청하는 전보를 쳤다.  하지만 회답은 마찬가지였다. 
절대로 유태인들에게는 비자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틀 밤을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마침내 본
국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한 사람의  고뇌하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 많은 사람들
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영사관 문을 열고 유태인들에게 들어오게 한 스기하라는 그날 이후  리투아니에서 철수하는 마
지막 순간까지 잠과 식사도 거른 채 비자를 발급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목숨을 구한 유태인 숫
자는 무려 6천 명이 넘었다. 스시하라는 얼마 후 독일군을 물리치고 새로 점령해 온 소련군에 포
로로 붙잡혔다. 
  전쟁이 끝난 뒤 억류 상태에서 풀려난 스기하라는 곧바로 일본 정부에 복직 신청을 냈다. 하지
만 일본 정부는 그의 복직을 거부했다. 중요한 전시 상황에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개인의 판단
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다시 공작에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어싸. 하지만 스기하라는 인간으로
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리투아니아에서는  수도 한복판의 큰 거리를  '스기하라 거리'라고 명명했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자기 나라에 스기하라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었다. 그의 인도적인 행동 덕분에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뉴욕에 모여 그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스기하라는 죽기 전에 아
내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소."    -브라이언 카바노프-     

  변화한 인생들
  1921년에 루이스 로웨스는 싱싱 교도소의 교도소장으로  부임했다. 그 시절에는 싱싱 교도소만
큼 악명 높은 곳도 드물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로웨스가 교도소장을 정년퇴임할 무렵에는 싱
싱 교도소는 인도주의가 실천되는 장소로 크게 달라져 있었다. 
  싱싱 교도소의 관리 체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그 중대한 변화는 모두 루이스 로웨스 때문이었다
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로웨스 자신은 그러한 변화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것은 나의  아름다운 아내 캐더린  덕분입니다. 캐더린은 지금  싱싱 교도소의 담장밖에  
  묻혀 있지요."
  남편이 교도소장이 되었을 때 캐더린 로웨스는 세 명의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주부였다. 주
위 사람 모두가 그녀에게 교도소 담장안에는 애초부터 일절 발을 들여 놓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캐더린 로웨스는 개의치 않았다. 처음으로 교도소  농구 대회가 열렸을 때 그녀는 그곳
으로 갔다. 세 명의 귀여운 아이들을 데리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재소자들과 함께 스탠
드에 앉았다. 
  그녀의 시각은 그런 것이었다. 
  "내 남편과 나는 이 사람들을 보살펴  줄 것이고, 따라서 이 사람들은 나를  보살펴 줄 것이다. 
그러니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재소자들과 얼굴을 익혔으며 그들의  신상 명세서를 읽었다. 또한  살인죄를 수감된 한 
재소자 장님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찾아갔다. 그의 손을 잡고 그녀는 물었다. 
  "브리유 점자(프랑스인 루이 브라유가 고안한 점자)를 읽을  줄 알아요?"  장님 재소자가 물었
다. 
  "브라유 점자가 뭔데유?"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점자책 읽는 법을 가르쳤다. 몇 해  뒤 그 장님 재소자는 자신을 변화시
켜 준 그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따. 
  나중에 캐더린은 감옥 안에서 귀머거리 재소자를  발견했다. 그녀는수화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녔다. 많은 사람들은 캐더린 로웨스가  1921년부터 1937년  사이에 싱싱 교도소에 다시 부활해 
온 예수의 화신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은 다음날 아침 교도소장 루이스 로웨스
는 근무하지 않았으며, 다른 간수가 대신 그의 임무를 맡았다. 금방 교도소 전체에 그녀의 사망사
실이 전해졌다.
  이튿날 그녀의 시신은 교도소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교도소장 사택으로 옮겨졌다. 대리로 교도
소장을 맡은 고참 간수가 이른 아침 산책을  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난폭하고 험상궂기
로 소문난 죄수들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도소 정문에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임시 교도소장은 그들의 눈에 슬픔과 애도의 눈물이 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는 그들이 얼마나 캐더린 로웨스를 좋아했는가를 알았다. 임시 교도소장이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
며 말했다.
  "좋소. 여러분! 가도 좋소. 하지만 오늘 밤 안으로는 모두 돌아와야 하고!"  그런 다음  그는 교
도소 문을 열었다. 죄수들이 행렬을 이루어 경비원도  없이 1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
다. 캐더린 로웨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들 모두가 교도
소로 돌아왔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팀 킴멜-

  하늘나라
  우리는죽어서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완
벽하게 살아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그리고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를 껴
안을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호흡을 의식할 때, 우리의  눈, 심장, 간, 치아를 
자각할 때 우리는 곧바로 낙원으로 이동한다. 평화가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만지고 느껴야 한
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 나무가 하늘나라의 한 부분임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우리 자신 역시 하늘나라의 한 부분임을 느낄 수 있다. 우주 전체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
고 있지만 그러한 접촉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데에만 모든 노
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지상에 살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다면 단 한 번의 깨어있는  발걸음과 단 
한 번의 깨어있는 호흡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평화와 접촉할 때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우리
는 우리 자신이 되며, 현재의 순간에 완벽히 깨어 있게 되며, 나무와 아이들과 다른 모든 것이 완
벽한 충만감 속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기적은 공중이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위를 걷는 일이다. 
  -틱낫한-

  가장 중요한 질문
  간호 학교에 입학해서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교수가  우리에게 예고도 없이 시험을 냈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막힘없이 문제들을 풀어나갔따. 그런데 마지막 문제가 이것이었다.
  '이 강의실을 청소하는 아줌마의 이름이 무엇인가?'
  분명히 이것은 일종의 유머라고 여겨지는 문제였다. 나는  대여섯 번 정도 그 청소하는 아줌마
를 본 적이 있었다. 키가 크고, 검은 머리에, 5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안단 말인가? 나는 마지막 문제를 공백으로 남겨둔 채 답안지를 제출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한 학생이 마지막 문제가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물었다. 교수가 대답
했다. 
  "물론이다. 앞으로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들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다. 그들은 여러분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다. 설령 여러분이  그들에게 해 줄수 
있는 것이 미소와 한마디의 인사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 교훈을  결코 잊은적이 없다. 
나는 또한 그녀의 이름이 도로시라는걸 알았다.
  -조안C.존스-   

  백만장자와 청소하는 여자
  퍼스트 내셔널 뱅크 빌딩 3층에 백만장자가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에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는 계단을 이용했다. 한때는 가난했지만 이제 세계정상에 오른 그는 
오만하고 도도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매달 첫째 날에 사무실 임대료를 냈다. 하지만 그는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거나 
복도 옆에 높이 매달린 유리창을 닦고 보일러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그
런 사람들이 그 빌딩에 있는지조차 그는 의식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어도 그들 중 누구
에게 팁을 주거나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
  그 건물에는 복도와 계단을 닦는 가난한 여자가 있었다. 백만장자는 계단을 내려갈 때 종종 그
녀 옆을 지나가기도 했지만 한 번도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다. 높이 고개를 쳐들고 더 많
은 사업에 대해 생각하느라 주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사무실을 나와 계단을 걸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청소하는 여자는 층
계 중간쯤에 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그녀는 퍼스트  내셔널 뱅크 건물의 계단을 닦아 내
려가는 중이었다. 계단 맨 위쪽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고, 그곳에 네모난 크기의  노란 비누 하나
가 놓여 있었다. 백만장자가 그만 그 비누를 밟고 말았다.
  비누 위에 얹힌 그의 발이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올라가고 다른쪽 발은 해  지는 서쪽으로 벌어
졌다. 백만장자는 엉겹결에 계단 첫 칸에 주저앉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거기서 멈춰지지 않았다. 
애초에 아래로 내려가려 했었기 때문에 몸의 중심이  이미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 결과 
그는 계단을 내려가긴 했지만,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북을  치는 것처럼 계단마다 쿵쿵쿵 엉덩방
아를 찧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청소하는 여자는 그가 내려갈 수 있도록 두 손을 모으고 옆으로 공손히 비켜서 있었다.
  맨 아래 계단까지 미끄러져 내려간 그는 벌떡  일어나 사무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빌딩 
관리실로 전화를 걸어 청소하는 여자를 당장 해고하라고 호통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자기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빠진 이야기가 건물  전체에 퍼지리자는 걸 
그는 알았다. 그래서 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청소하는 여자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조심스럽게 그녀 옆을 지
나갔다. 왜냐하면 누구도 다른 인간 존재를 무시할 만큼 그렇게 높거나  우월하지는 않으니까. 또 
아주 평범한 청소하는 여자와 쓰다 남은 아주 평범한 노란 비누 하나가  사업상의 문제로 골똘한 
백만장자의 마음을 순식간에 되돌려 놓았으니까.
  -윌리엄 ㅌ. 바튼-

  어떤 외식
  가족 전체가 어느 날 저녁 외식을 나갔다. 메뉴판이 모두에게 돌려졌다. 여덟 살  난 딸 몰리에
게도 메뉴판이 주어졌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대화는 주로 어른들 위주였고,  몰리는 무시당한 채 
앉아 있었다.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몰리에게 물었다.
  "넌 뭘 먹을 거니?"
  몰리는 핫도그와 콜라를 주문했다. 그러자 당장에 어머니가 말했다.
  "이 애는 양념 치킨과 당근과 감자 튀김을 주세요."   아버지가 거들었다.
  "그리고 마실 걸로는 우유를 주시구요."
  웨이터는 주문서를 작성해서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몰리에게 물었다.
  "핫도그에는 케첩을 쳐 줄까, 아니면 겨자를 쳐 줄까?"  가족들은  모두 당황했다. 몰리가 얼른 
말했다.
  "케첩을 발라 주세요."
  그리고 나서 몰리는 가족들 모두에게 말했다.
  "거 보라구요. 저 사람은 나를 사람으로 인정해 주잖아요."    -토머스 윌록-

  자물쇠가 필요없는 물건
  남편과 나는 결혼하고 나서 2,3주일 뒤에 어느  집 차고 세일(필요없는 물건을 차고에 늘어 놓
고 파는 일)에서 자전거 한 대를 샀다. 가격은 5달러였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자전거는 훌륭했고, 타고 다니게에 손색이 없었으며, 탈  때마다 우리를 행
복하게 했다. 그 자전거의 가장 큰 장점은 전혀 도둑 맞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에 세워 
두든, 아무리 오래 있다가 돌아오든,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5달러
짜리 자전거를 훔쳐가서 골치 썩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두 해가 지나서 우리는 신상품의 자전거를 새로 샀다. 그것을 끌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 우리는 
자전거에 채울 자물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어떤 것을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을 ㅇ어 버리지 않으려고 
걱정해야 걱정해야 하는 걸까?"
  이제 그때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으며, 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 것만 같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물건은  자물쇠가 필요없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건강,  선택의 자
유, 추억, 아름다운 순간, 사랑...... 이런것들은 자물쇠가 필요없다.
  -낸시 코에이-

  의심
  도끼를 잃어버린 농부가 이웃집 청년을 의심했다. 그 청년은 도둑처럼 걸었고, 도둑처럼 말했으
며, 도둑처럼 행동했다. 미소짓는 것도 도둑 같았으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것도 도둑 같았다. 청년
이 상점에 가는 모습도, 신문을 보는 모습도, 신발을 꺽어 신는 모습도 농부에게는 모두 도둑처럼 
보였다.
  하지만 농부는 밭을 걷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도끼를 발견했다.  그 다음부터는 그가 
그 이웃집 청년을 보았을 때 청년은  다른 청년들과 똑같이 걷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했
다.
  -독일의 우화-

  성서의 값어치
  아나스타시우스 수사에게는 고급 양피지에 쓰여진 귀중한 성서 한 권이 있었다. 구약과 신약을 
다 담고 있는 이 성서는 값이 18펜스나 되었다. 한 번은 어떤 형제 수사가 그를 방문했다가 책상 
위에 놓인 성서를 발견하고는 몰래 가져가 버렸다.
  방으로 돌아온 아나스타시우스 수사는 성서가 없어진 것을 보고 그 형제 수사가 갖고 간 걸 알
았다. 하지만 그는 그 수사가 도둑질한 죄에 거짓말하는 죄까지 저지를까 염려해 조사를 하지 않
았다.
  형제 수사는 근처 도시로 그 양피지 성서를 팔러 갔다. 그가 상인에게 16펜스를 달라고 요구하
자 상인이 말했다.
  "나에게 그 책을 잠시 빌려 주시오.  그것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확인해  보겠소."  상인은 
성서를 들고 존경하는 아나스타시우스 수사를 찾아가 말했다.
  "신부님, 이 성서를 한 번 봐 주십시오. 그래서 이것이 16펜스의  값어치가 있는지 판단해 주십
시오. 이것이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아나스타시우스 수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히 있지요."  상인이 형제 수
사에게 돌아와 말했다.
  "자. 돈을 받으시오. 이 성서를 아나스타시우스 수사에게 감정을 의뢰했더니  좋은 책이라고 하
시면서 최소한 16펜스의 값어치는 나간다고 하였소."
  그러자 그 형제 수사가 물었다. 
  "그것이 그분이 하신 말씀의 전부였습니까?  그것밖에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까?"   상인이 
말했다. 
  "예. 그분은 다른 말씀은 전혀 없으셨소."
  형제 수사가 말했다.
  "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 책을 팔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아나스타시우스 
수사에게 급히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책을 돌려 주었다. 그러나 아나스타시우스 수사는 끝내 그
것을 돌려받기를 거절하면서 말했다.
  "형제여,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준 선물이오. 그러니 평화로운 마음으로 가져 가시오."  형제 수
사가 말했다.
  "당신이 이 책을 돌려받지 않으면 전 영원히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그 이후 그 형제 
수사는 평생 동안 아나스타시우스 수사와 함께 머물며 그에게서 배웠다.
  -토머스 머톤-
  
  하산의 스승
  이슬람교의 위대한  신비가 하산이 임종 직전에 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하산, 당신의 스승은 누구였습니까?"
  하산이 말했다. 
  "나에게는 수천수만의 스승들이 계셨습니다. 그들의 이름만 나열하는 데에도 몇 달 몇 년이 걸
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죽을  시간을 놓치고 맙니다. 하지만 이 한명의  스승만큼은 분명히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 스승은 도둑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행중에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는 어떤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가게며 집들이 모두 문을 닫고 거리에는 사람 하나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어떤 집의 담에  구멍을 뚫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 하나
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하룻밤 머물 곳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밤 늦은 시간에 어디서 머물 곳을 찾겠소? 당신이 나 같은 도둑과 함께 있는 것이 괜찮
다면 내 집에서 하룻밤 묵어도 좋소.'
  그 도둑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하룻밤이 아니라 한 달 동안을 그 도둑과 함
께 지냈습니다. 매일 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자, 나는 물건을 훔치러 갑니다. 당신은 여기서 푹 쉬면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그가 돌
아오면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훔쳤소?'
  그는 말했습니다. 
  '오늘 밤은 실패했소. 하지만 신의 뜻이 그렇다면 내일 밤 나는 또 다시 시도할 것이오.'  그는 
단 한 번도 절망한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행복에 넘쳤습니다. 여러해를 명상과 사색을 계속했음
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가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을  때면 나는 늘 깊은 절망에  빠져 이  모든 
어리석은 짓을 포기하려고 마음먹곤 했었습니다. 그럴때면  매일 밤 이렇게 말하던 그 도둑이 생
각났습니다.
  '신이 뜻이 정 그렇다면 내일은 아마도 뭔가 소득이 있을 것이오!' 그 도둑 덕분에 나는 포기하
지 않고 수행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하즈라트 이나야트 칸- 
  불가능한 싸움
  사막의 토굴에서 여러 해 동안 함꼐 생활한 두 형제  수사가 있었다. 그들은 한 번도 다툰적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수사가 말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번 만이라도 싸워 봅시다."  다른 형제 수사가 말했다.
  "난 어떻게 해야 싸움이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그러자 첫 번째 수사가 말했다. 
  "보세요. 여기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벽돌 한 개가 있습니다. 내가 이건  내꺼요 하고 말할테니 
형제는 아니오, 이건 내꺼요 하고 말하세요.  그렇게 하면 싸움이 시작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두 사람은 가운데에 벽돌 한 개를 놓고 한 사람이 먼저 말했다.
  "이 벽돌은 내꺼요."
  그러자 다른 수사가 말했다. 
  "아니오. 이건 내꺼요."
  그러자 첫 번째 수사가 말했다. 
  "맞아요. 사실은 그건 당신 겁니다. 그러니 가져가세요."  그렇게 해서 두사람은 결국 싸워 보지
도 못하고 각자의 토굴로 돌아갔다.
  -사막의 교부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따금 나는 한밤중에 잠이 깨어 어떤 심각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침내  교황에게 그 문
제를 물어 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다시 잠이 든다. 그런데 아침에 완전히 잠이 깨어서는 내 
자신이 교황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교황 요한 13세-

  평화를 위한 순례
  메논과 나는 '평화를 위한 순례'를 시작하기에 앞서 축복을 받기 위해 비노바 브하브를 찾아갔
다. 간디의 후계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비노바는 우리가 찾아가자 따뜻한 미
소로 맞아 주었다. 이미 우리의  평화 술례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면서 그는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고 우리가 방문할 나라들과 여행 경로, 가져갈 준비물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다음날 아침, 비노바 브하브는 우리와 함께 일정 거리를 행진했다. 비노바가  메논과 내 어깨에 
각각 팔을 두르고 걸으며 물었다. 
  "돈은 얼마나 가져가시오?"
  우리가 대답했다.
  "장사를 하는 친구 몇 명이  여행 비용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거쳐갈 나라의 돈으로 
환전하는 일까지 그 친구들이 해줄 겁니다."
  우리의 말을 들은 비노바는 침묵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부탁했다.
  "저희가 여행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비노바는 여
전히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얼마동안 그렇게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서야 
마침내 가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이번 평화의 순례는 여정이 길기 때문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러자면스
스로를 지킬 무엇인가가 필요할 테니 내가 그대들에게  두 개의 무기를 선물하겠소."  내가 반문
했다.
  "간디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비폭력을 추구하는 우리가 어떻게 무기를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비노바가 말했다.
  "비폭력을 따르는 자도 거기에 합당한 무기를 가질 수 있소. 내가 그대들에게 주는 첫 번째 무
기는, 어디를 가든 채식주의를 지키라는 것이오. 그리고 두 번째 부기는 단 한푼의  돈도 몸에 지
니지 말라는 것이오."
  내가 다시 물었다.
  "어디서나 채식을 지키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게 오랜 여행을 하면서 돈을 갖고 가지 
말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군요."
  비노바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승려가 되어 9년 동안이나  탁발을 하고 살았으면서도 그걸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오? 
항아리는 속이 비어 있어아면 채울 수 있는 법이오. 참된  인간관계에 있어서 돈은 장애가 될 뿐
이오. 순례를 하다 지쳤을 때 돈이 있으면 편안한 호텔에서  잠을 자고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할 
테니 사람들ㅇ르 만날 필요가 없을 거이오. 하짐나 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해야 할 거이오. 그대들이 평화의 순례를  하는 진정한 목적도 세상의 사람들을 가능한 
한 많이 만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소? 또 만일 사람들에게 도움을받게 되었
을 ㄸ 그대들이 '저희는 채식을  하기 때문에 고기는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물을 것이오. 그러면 그대들은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그대드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그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이오."
  비노바의 말을 들은 메논과 나는 서로 마주보았다. 그가 선물하겠다는 '무기'의 뜻을 이해한 우
리는 그 말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비노바는 우리와 헤어지기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용기를 가지시오. 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시오. 세상은  두 팔 벌려 그대들
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 속에서 많은 깨우침을 얻으시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우리 어깨에 손
을 얹고는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비노바와 작별을 하고 델
리행 기차에 뛰어올랐다. 
  -사티쉬 쿠마르-

  진정한 가르침
  캄보디아의 난민 수용소에서 행해진 놀라운 가르침의 장면을  나는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캄보디아의 매우 특별한 승려인 마하고사난다와  함께 있었는데, 그는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승려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크메르 루즈 공산주의 치하에 있는 황폐하기 그지없
는 난민 수용소에 불교 사찰을 열었다. 그곳에는 총부리 앞에서 공산주의자로 변신했다가 간신히 
태국 국경의 난민 캠프로 피신해 온 5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수용소 안에서도 지하 단체인 크메르 루즈의 수용소 지도자들은 누구든지 절에 가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절을 처음 개원하는 날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법회가 열리는 진흙 
마당에 모였다. 이들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슬픈 유가족들이었다. 부모를 잃고 삼촌만  남은 아
이, 세 명의 자식 중에 한 명만 살아 남은 어머니, 그리고 거의 모든  가족들이 식구들 중 누군가
는 학살당하거나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나는 마하고사난다가  너무도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의아했다.
  마하고사난다는 천 년이 넘게 불려져 온 전통적인 찬불가로 법회를 시작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절이 파괴되는 8년동안 이 노래들은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지구상의 누구보다도 많은 슬픔과 불
행ㅇ르 겪은 이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아직 그  노래들이 생생히 기억되어 있었다. 이윽고 마하고
사난다가 붓다의 법문 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팔리어오, 그  다음에는 캄보디아어로 
그 법문이 연달아 낭송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선 결코 멈춰지지 않으니 오직 사랑으로써만 치료된다. 이것은 아주 옛날부
터 전해져 온 영원한 법칙이다. 
  그가 이 법문을 반복해서 읽는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와  함께 그것을 따라했다. 그들은 
그 구절을 계속 낭송하면서 저마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놀라운 순가이었다.  바싹 마른 사막과
도 같았던 그들의 가슴이 용서를 결심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 승려의 존재와 그가 
낭송하는 진리는그들이 참아야만 했던 슬픔보다도 더 큰 것이었다. 
  -메리 루 코우나키-

  내가 가진 모든 것
  4세기경에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지의 사막에서 수행하던  카톨릭 수사들의 일화를 모은 (사막
의 지혜)에는 이런 짤막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세라피온이라는 이름의 수사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귀한 성경책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동료 수사들이 그에게  어떻게 주님의 가르침이 담긴 성서를 팔
아 버릴 수가 있느냐고 비난했다. 성서도 없이  어떻게 묵상과 수핼 생활을 계속하겠느냐는 것이
었다.
  그러자 세라피온 수사가 말했다. 
  "성경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렇
게 실천했을 뿐입니다."
  -토머스 머튼-

  남을 심판하는 일에 대해
  한 형제 수사가 잘못을 저질렀다. 징계 위원회가 열리고 모세 수사가  초청되었다. 하지만 모세 
수사는 참석을 거부했다. 그러자 위원장이 또다시 사람을 보내 모세 수사에게 말했다. 
  "꼭 참석해 주십시오. 모두가 형제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세  수사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세 
일어나 그곳으로 갔다.  가면서 그는 금이 간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머리에 이고서 갔다. 그를 
마중나온 다른 수사들이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형제님?"
  늙은 수사가 말했다. 
  "내가 저지르는 잘못들은 내 뒤에서 떨어지고 있는데 나는 그것들을 보지 못한 채 오늘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심판하러 왔소."
  이 말을 듣고 수사들은 잘못을 저지른 형제 수사를 더 이상 문책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용서해 
주었다. 
  -사막의 교부들-

  비난
  쉬라즈의 사디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르 했다. 
  어렸을 때 나는 매우 신앙심이  강한 소년이었다. 기도와 헌신에 열성적이었다.  하루는 사원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무릎에 코란을 올려 놓고 철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기도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졸기  시작하더니 아예 잠이 들어 버렸다. 그래
서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다들 잠자느라고 고개를 들어 기도문을 읽을 생각들을 하지 않는군요. 모두 죽은 사람들 같아
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들아, 난 네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느니 차라리 그들처럼 잠들어 버리는 편이 낫다."   -하
즈라트 이나아트 칸-

  노승과 벌레
  늙은 티벳 노승이 있었다. 이 노승은 연못가의 납작바위 위에 앉아  명상하기를 좋아했다. 그러
나 그가 기도를 시작할라치면 작은 벌레가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노승은 그럴 때마다 삐걱거리는 늙은 몸을 일으켜 그 작은 생명체를 건져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
고 나서 다시 명상을 시작하곤 했다. 
  노승과 함꼐 승원에서 공부를 하는 형제 승려들은 마침내, 노승이 연못에서 벌레들을 건져내느
라 명상시간 대부분을 허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크든 작든 의식이 있는 생명체를 구하는 것
은 옳은 일이지만, 그런 일에 방해받지 않고 다른 곳에서 수행을 한다면 더 큰 진전이 있을 것이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날 그들은 노승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한 승려가 그에게 말했다. 
  "다른 곳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명상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더 빨리 온전
한 깨달음을 얻으실 테고, 그때가  되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을 텐데요."
  어떤 승려는 이렇게 제안했다. 
  "연못가에서 수행을 하시더라도 아예 눈을 감고 앉아 계시면 어떨까요? 명상할 때마다 수십 번
씩 앉았다 일아났다 하면 어떻게 완전한 평정과 정신집중에 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형제 승려들의 말을 경청한 노승은 마침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
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 말처럼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수행하면 많은 진전을 볼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불교에 입문할 때 어려운 중생을 돕고 구제하는 데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에 맹세
를 거듭했거늘, 이제 나이 먹어 아무 쓸모없게 된 이 늙은이 앞에서 힘없는 생명이 물에 빠져 죽
어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른 척하란 말인가? 눈을 감고  마음을 닫은 채, 중생을 도우라는 관세음
보살의 가르침만 외우고 있으만 말인가?"
  노승의 간단하고 분명한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승려들 중 누구 하나 대꾸를 하지 못했다. 
  -수리야 다스-

  세상에서 살려면
  리틀 요한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리틀 요한이 형에게 말했다. 
  "나는 모든 걱정을 떨쳐 버리고, 아무 방해 없이 그저  산에 대해서만 명상하고 싶어요."  그렇
게 말하고 그는 수도복을 걸치고 사막의 명상처로  갔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문 뒤 그는 형에
게로 돌아왔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형일 물었다. 
  "누구시오?"
  "형, 저 요한이에요. 문 좀 열어 주세요."
  형이 말했다.
  "요한은 천사가 되어 떠났고 더 이상 사람들  속에 살지 않아요."  리틀 요한이 다시 사정하며 
말했다. 
  "형, 제가 요한이에요. 어서 문좀 열어 주세요."
  하지만 형은 이튿날 아침까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요한은 할 수 없이  문밖에서 기다렸다. 
아침이 되어 문을 연 형이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넌 세상에서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리틀 요한이 후회의 눈
물을 흘리며 말했다. 
  "용서해 줘요, 형.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사막의 교부들-
 
  나까지 물들지 않도록
  나는 A.J. 머스트에 관한 일화를 좋아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밤바다  촛불을 들고 백악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반전  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혼자서 외롭게 
서 있어야 한 적도 많았다. 그는 그렇게 매일 밤마다 촛불을 들고 무언의 시윌르 계속했다.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젼 방송기자가 빗속에 촛불을 들고 서  있는 그를 취재 하기 위해 나왔다. 
기자는 대화 중에 머스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머스트 씨, 당신이 밤에 혼자 촛불을 들고 이곳 백악관 앞에 서 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고 
이나라의 정책이 변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난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
는 다만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
드레아 야바시안-

  자신의 이야기
  유태고 신비학파에는 이런 금언이 있다.
  '그대가 순결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들판을 거닐면 온갖 돌과, 온갖 자라나는 초목과, 온갖 들
짐승의 영혼에서 쏟아지는 섬광들이 그대에게 달려오고 그대 안에서 순화되어 성스러운 불꽃으로 
변한다.'
  위대한 랍비 바알 셈토브는 유태인들을 위협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숲  속의 어떤 장
소로 명상을 하러 가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내면에 불꽃을 피워 놓고,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러면 얼마 안가서 기적이 일어나 불행한 일들이 사라졌다. 
  훗날 그의 제자인 메즈리츠의 축복받은 랍비 역시 똑같은 이유로 기도를 하러  숲 속의 동일한 
장소에 가곤 했다.
  그곳에서 그는 말했다. 
  "우주의 주잉이시여, 들으소서!  저는 불꽃을 피울  중은 모릅니다만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시 기적이 일어나 불행한 일들이 사라졌다. 
  더 훗날 사소브의 모세 라이브 랍비도 자신의 만족을 구하기 위해 또 다시 숲  속의 같은 장소
로 가곤 했다. 
  그곳에서 그는 말했다. 
  "저는 불꽃을 피울 줄도 모르고 제대로 기도를  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기도하는 장소
가 어딘지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또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리친의  랍비 이스라엘에게도 불행을 물리쳐야만 하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의자
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신에게 말했다. 
  "저는 불꽃을 피울 줄도 모르고 기도를 할 줄도 모릅니다. 숲 속의 기도 장소가 어딘지도 모릅
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께 제 이야기를 들려 주는 일입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
니까?"
  역시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시디즘(유태교 신비학파)의 일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한국 전쟁 당시 한 장교가 군인들을 이끌고 마을에서 마을로 진격해 가고 있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체드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렸다. 
  어느 마을에서 그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산  속으로 피신했다. 군대를 이끌고 텅 빈 
마을에 도착한 장교는 병사들을 시켜 샅샅이 수색하게  했다. 병사들은 돌아와서 오직 한 사람만
이 남았는데, 절의 승려라고 보고했다. 장교가 절 안으로 걸어 들어가 칼을 빼고 말했다. 
  "넌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널 벨 수 있는 사람이다."  선승이 그를 
올려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렇소? 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당신한테 베일  수 있는 사람이오."  이 말을 듣고 장교는 
놀라서 크게 절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선의 일화-

  슬픔의 나무
  하시디즘에는 '슬픔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하늘나라에 있는 커
다란 슬픔의 나무 밑으로 가게 되어있다. 그 나뭇가지에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겪은 고통과 불행
한 일들을 걸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 천천히  그 나무 주위를 돌면서 자신이 나뭇가
지에 건 것보다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인생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의 것과 바꿔도 된
다. 
  그러나 누구든지 결국에는 다른 어떤 사람의 것보다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
이다. 아무리 봐도 조산의 인생이 그래도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럽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
고 각각의 사람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한결 더 지혜로워져서 슬픔의 나무  밑을 떠난다는 것
이다. 
  -마르틴 부버-

  너를 창조한 이유
  어느 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한 젊은 여자가 어린  딸을 데리고 길가 모퉁이에서 돈이든 음
식이든 무엇이든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구걸하며 초라하게 서 있었다. 엄마뿐 아니라 어린 딸도 
아주 형편없는 옷차림이었다. 수치심이 일 정도로 더럽고 지저분했다.
  늘 그렇듯이, 잘 차려입은 한 중년 신사가 모퉁이를 지나가면서  소녕게는 눈길 한 번 주지 ㅇ
낳았따. 하지만 자신의 좋은 집, 행복하고  편앙한 가정으로 돌아와 잘 차려진 저녁을  먹었을 때 
신사는 문득 모퉁이에 서 있던 그 젊은 여가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존재하도록 내버
려두는 하나님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그는 하나님에게 항희에 찬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도록 방치해 둘 수 있습니까? 왜 이 여자와 딸을 도울 수 있는 아무런 조
치도 취하지 않습니까?"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었다. 
  "난 분명히 조치를 취했다. 너를 세상에 보내지 않았느냐?"   -제임스 콕스-
  후원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ㅇ르 입고 돌아온 한 청년이 1919년 미국  시카고의 작은 아
파트에 세를 들었다. 그가 그곳으로 이사한 것은 유명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집과 가깝기 때문
이었다. 당시 앤더슨은 (오하이오 위네스버그)라는 소설을 써서 격찬을 받고  있었으며, 젊은 작
가들을 잘 후원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청년과 작가는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두 해 동안 거의 날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긴 산책을 했으며, 밤 늦게까지 소설 작법에 대해 토론했다. 청년은 종종 자신이 
쓴 작품을 앤더슨에게 가져갔으며, 이 노련한 작가는 냉정할 정도로 솔직한 비평을 가했다. 
  하지만 젊은 작가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매번 그는 선배 작가의 비평을  귀담아 듣고, 
조심스럽게 메모를 하고, 그런 다음 타자기로 돌아가 자신의 작품을 고쳐 썼다. 그는  한 번도 잣
니을 방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훗날 그가 고백한  대로 그는 셔우드 앤더슨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젊은 문하생에게 앤더슨이 해준 가장 큰 도움은 그를 미국 문단에 소개한 일이었다. 오래지 
않아 젊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에 그는 첫 번째 소설을 발표했으며, 문단 
안팎에서 놀라운 찬사를 받았다. 소설의  제목은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였고,  작가의 이름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헤밍웨이가 시카고를  떠난 뛰 앤더슨은 뉴올리언즈로 이사했
다. 거기서 그는 또다른 문학도를 만났다. 잣니으 ㅣ문장력을 개선하려는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가진 시인이었따. 앤더슨은 헤밍웨이와 했던 것과 똑같은 과정을 그 젊은  시인과 함께 해나갔다. 
쓰고, 비평하고, 토론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언제나 더 많은 작품을 쓰게 했다. 앤더슨은 젊은 친
구에게 자신의 소설 작품들을 주면서  그것들을 정독하고, 단어와 주제와  이야기 전개를 배우게 
했다. 1년 뒤 앤더슨의 도움으로 이 문학도는 첫  번째 소설(군인 월급)을 출간했다. 3년 뒤, 눈
부신 재능을 가진 이 신인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소리와 분노)를 출간했으며 금방 미국 문단의 
대표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는 앤더슨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는 극작가 
토머스 울프, 그리고 존 스타인벡이라는 이름의 신인 작가와 함께 동일한 작업을 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앤더슨의 문하생들 중에서 모두 합해, 세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네 며으이 퓰리처 상 수
상자가 나왔다. 유명한 문예 비ㅍ가 말콤  코울리는 앤더슨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문장력과 세계
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그 시대의 유일한 작가'라고 평했다. 
  무엇이 앤더슨으로 하여금 자신의 시간과 정열을 쏟아 젊은 작가들을 돕게 만들었는가?  한 가
지 이유는 앤더슨 자신도 우대한 선배 작가 테오드르 드라이저 밑에서 문장력을  쌓았다는 데 있
을 것이다. 그는 또 시인이자 전기 작가 칼 샌드버그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칩 맥그레거-

  그때 당신같은 사람이 있었더라면
  19세기의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에게  어느 날 하 노인이 찾아왔다. 노
인은 자신이 그린 그림과 스케치 몇 점을 꺼내 보여 주며 로제티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자기에게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는지 어떤 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로제티는 그 그림들을 주의 깊게 넘겨 보았다.  그것들이 최소한의 미술적 재능도 갖추고 있지 
않은 무가치한 그림들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로제티는 친절한 마음의 소유자
였기 때문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그 그림들이  어떤 가치나 재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의지를 꺾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
이었다. 
 노인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로제티의  그러한 평가를 조금은 예상한 듯  했다. 그는 
로제티에게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고 새과하고는, 그림 몇 점을 더 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그
림들은 노인이 아는 어떤 젊은 미슬학도가 그린 것인 모양이었다. 
  로제티는 그 그림들을 대충 보고서도 그것들이  대단한 재능을 드러내 보이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았다. 그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 이 그림들은 정말 훌륭합니다. 이 젊은  학생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친구를 격려해서 화가가 되는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한다면 이 친
구에게는 대가로서의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로제티는 노인이 깊이 감동받았
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로제티는 물었다.
  "이 뛰어난 청년 미술학도는 누구입니까? 댁의 아들입니까?"  그러자 노인이 슬픈 얼굴로 말했
다.
  "아닙니다. 이 그림은 제가 그린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그렸지요. 만일 그 당시 당
신같은 사람이 이 그림들을 칭찬해 주었더라면 난  화가의 길에 매진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사람을 없었고, 나는 용기를 잃은  나머지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리고 말았지요."   -에드워드 
헤이스-

  누군가 조금만 밀어 줘도
  텍사스의 유명한 부자가 잣니의 딸을 위해 텍사스  풍으 ㅣ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수만 에이커
의 토지에 수만 마리의 가축, 그리고 수백 개의 유전을  소유한 이 대부호는 스물아홉 개의 침실
과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에서 미모의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파티에서 그는 딸을 소개시키기 위해 텍사스와 인근 주에 사는 모든  훌륭한 젊은이들을 초
대했다. 파티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대부호는  참석자들에게 지금 즉시 수영장 주위로 모이
라고 발표했다. 그는 올림픽을 치러도 될 만한  크기의 수영장 주위에 모여든 젊은이들을 일렬로 
서게 한 다음 말했따.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있듯이 이 수영장 물속에는  온갖 종류의 뱀과 악어들이 가득 차 있다. 
여러분들 중 누구든지 이 수영장 속으로 뛰어들어 반대편 끝까지 헤엄쳐 간다면  백만 달러의 상
금이나 아니면 천 체이커의 토지, 또는 내 딸과 결혼하는  영광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
  텍사스 부호의 입에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쪽 끝에 한 청년이 고함을 지르며 물 속으로 뛰
어들더니 맹렬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올림픽  기록에 가까운 속력으로 이쪽 끝까지 헤
엄쳐 왔다. 
  마침내 청년이 번개같이 물 밖으로 기어나오자 텍사스 부호가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는 백만 달러를 원하는가?"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대부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천 에이커의 땅을 택하겠는가?"
  물에 젖은 청년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따. 
  "말씀을 감사하지만 그것도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내 딸과 결혼하기를 바라는군?"
  "아닙니다.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대부호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젊은이, 자네가 바라는게 도대체 뭔가?"
  청년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훔쳐내며 단호한 의지로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선생님. 다만 저는,  저를 뒤에서 민 친구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 누군가 뒤에서 조금만 밀어 줘도 얼마든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낼수 있다. 
  -직 지글러-

  재능이 없다고?
  한 젊은 화가가 자신이 그린 삽화를 들고  신문사를 찾아다녔으나 매번 거절당했다. 캔사스 시
티의 한 신문사 편집당은 대놓고 그에게 아무 재능이 없어 보인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젊은 화가는 자신으 재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ㅇ다.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 많
은 언론 매체들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그는 어느 교회 출판물에  삽화 그리는 일을 얻을 수 있었
다. 
  싸구려 차고에 세를 든 그는 생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사 줄 것이라
는 희망속에 계속 작품을 그려 나갔다. 하루는 작업 도중에  그는 차고 안을 뛰어 다니는 생쥐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결과 그는 미키마우스라는 이름의  동물 캐릭터를 창조해 낼 수 있었
다. 그렇게 해서 월트 디자니는 전설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델마 스핀란드-

  실패로부터 배우다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는 데 필요한 필라멘트를 제작하기 위해 무려 2천가지의 재료를 
실험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어떤 것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실험실 조수구 마침내 불만을 터뜨
렸다. 
  "우리의 작업은 모두 헛수고가 됐어요. 여태까지 고생했지만 아무것도 건진게 없다구요."  에디
슨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아니지, 우린 먼 길을 걸어왔고 도중에 많은 것을 배웠어. 이제  우리는 좋은 전구를 만드는데 
적합하지 않은 재료를 2천 가지나 알게 되지 않았나. 그것은 대단한 수확이지."   홋날 한 신문기
자가 에디슨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2천 번이나 실패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전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에디슨은 말했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2천 번이나 실패한 적이 없소. 2천 번 실패한 끝에 전구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2천 개의 단계를 거쳐 전구를 발명한 것이오."  (하루에 3분)
  악마의 바겐세일 
  우리가 잠시 생각해 불 만한 이야기가 있다. 
  악마가 다른 장소로 가게를 이전하기 위해 가게에서 쓰던 물건들을 헐값에 내놓았다. (장소 이
전, 재고 정리)라는 간판이 내걸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흥미있는 눈으로 악마가 쓰는 도구들
을 구경했다. 한 사람이 그 중에서 가장 값이 비까게 매겨져 있는 도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바겐 세일이라면서 이것 하나만은 왜 이렇게 비쌉니까?"  악마가 말했다.
  "내가 가장 즐겨쓰는 도구니이까요. 이것만 있으면  누구의 인생이든지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온갖 종류의 계획을 무효화 시킬 수 있습니다."
  손님이 물었다.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악마가 말했다. 
  "이건 '포기'라는 이름의 도구입니다. "
  (하루에 3분)

  별을 바라보는 사람
  미국의 여류작가 델마 톰슨의 남편은 군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전쟁중에 사막 근처에 위치한 
육군 훈련소에 배속되었고, 델마 톰슨 역시 사막 근처의 오두막집에 살게 되었다. 그곳은 섭씨 46
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로 견디기 어려웠을뿐더러 수시로 불어대는 모래바람이 그녀를 더욱 힘들
게 했다. 한 번 모래바람이 불때마다 음식물 위에는 물론 모든 살림살이에 모래가 쌓였다. 얘기할 
상대도 찾기 힘들었따. 주변에는 멕시코인들과 인디언들뿐이었다. 
  델마는 고향의 부모에게 편지를 써서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모든걸 팽게치고 집으로 돌아가겠
다고 호소했다. 차라리 형무소에 있는 것이 여기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그녀는썼다. 며칠 후 그
녀는 아버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딱 두 줄로 씌어진 간단한 것이었다. 
  "형무소에 수감된 두 사람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바닥의 진흙탕을 보
았고, 다른 사람은 하늘레 빛나는 별을 보았다."
  이 두 줄의 글이 델마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항상 긍적적
인 것을보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발견한 수많은 별들은  나중에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의 소
재가 되었고, 그 결과 그녀는 작가로써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윌리엄 화이트-
 
  지금 그 자리서 출발하라
  나는 재은있는 친구 한 명을 알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으며, 아이들 역시 그녀의 
명랑하고 부드러운 성격에 잘 이끌렸다. 막내아들이 고등학교에들어가자 그녀는 자유시간이 많아
졌다. 그래서 교사가 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짐나  그녀는 대학 졸업장이 없었고, 마흔의 나
이게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오랜 꿈을 포기하고 잠깐씩 머
물다 그만두는 임시직들에서 일하기 시작했따. 그녀가  그런결정을 내린 것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이다. 이 기간이면 충분히 훌륭한 교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임시직에서 일
하고 있다. 
  나는 또 다른 친구 한 명을 알고 있다. 그녀는  막내아들일 대학을 졸업하자 53세의 나이에 대
학에 들어가 3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으며, 대학원이 진학해서 사회복지학과의  박사학위를 땄다. 
학위를 가졌기 때문에 그녀는 직장을 얻기가 한결  쉬었으며, 특히 그 분야에서는 그녀의 원슥한 
나이가 한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녀의 편지는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자신의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아주 멀리 설정해 놓고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기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경
주마들의 눈을 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낸시 코에이-

  정글은 중립이다
  프레드 스펜서는 (정글은 중립이다)라는 제목의 유명한 저서를 썼다. 스펜서는 제 2차 세계대
전 당시 말레이 반도의 맨 끄트머리에 있는 싱가포르의 한 섬에서 영국군 병사로 군복무를 했다. 
그런데 그곳의 영국측 요새는 한쪽 방향으로만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북쪽의 정글 지대
는 워낙 숲이 우거져서 그쪽으로 적군이 공격해  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싱가포르
에 대한 공격은 남쪽에 있는 해상으로부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일본군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북쪽 정글 지대를 통과해 영국군 요새
를 공격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싱가포르 일본군의 손에 들어갔다. 
  스펜서는 간신히 정글 속으로 도망쳤으며, 그곳에서  원주민들에게 발견될 때까지 혼자서 아홉
달을 숨어 지냈다. 
  과거에 그는 정글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따라서 절글로 도망ㅎ
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 자신은 어떤 예측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정글이 뱀과 독충들
로 가득 차 있는 공포의 장소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열매들도 독 있는 열매일 가능성이 
크고, 야새으이 맹수드 또한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야생의 정글 속
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든지 쉽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정반대되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정글은 온갖 풍성한 열매들과  신선한 물, 약
초들로 가득한 열대의 낙원지대라는 것이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정글이야말로 누구든지 비교적 
쉽게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장소라고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글 속에서 혼자 아홉 달을 생활하면서 스펜서가 발견한 사실은 그 두  가지 다 틀
린 주장이라는 것이었다. 정글은 절대적으로  중립이었다. 스펜서에게 있어서 정글은  절대적으로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험지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든  면에서 그를 보살펴 주는 그런 장
소도 아니었다. 정글은 어디까지나 중립이며, 그곳에서의 생존 확률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과 사
장 깊은 관련이 있음을 스펜서는 알았다. 따라서  그는 정글에서의 생활을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
는 상황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 
  사라들은 인생 역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인생 역시 하나의 정글인가? 그
렇다면 인생 역시 중립이 아닌가?
  -로저 다우슨-

  기회를 붙잡으라
  내가 아는 한 친구가 수년 동안  적자를 낸 작은 민간 철도를  구입한 적이 있다. 그는 그곳을 
아주 싼 가격에 샀지만, 사실 그곳을 판 사람은 이 친구의 어리석은 결정을 비웃고 다녔다. 그 철
도 구간은 이용자가 거의 없어서 선로는 고철덩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땅을 매입한 뒤 내  친구는 실제로 선로들과 장비들을 걷어  모두 고철덩이로 팔아 넘겼다. 
가격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엇다. 그리고 선로를 걷어내자 전에는 철도 구간에 
지나지 않았던 그 지역 일대가 수천 에이커의 토지로 탈바꿈했다.
  이전 소유자는 그곳을 적자 투성이의 철도 용지로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친구는 기회를 놓
치지 않고 그곳을 가치있는 토지로 바꾸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누구나 한두개씩은 적
자 투성이의 철도와 같은 성격적 장애물을 갖고  있다. 그것때문에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고 우리는 불평한다. 중요한 것은ㅇ  그 고철덩이의 선로를 녹슬게 그냥  내버려 두고 포기한 채 
살아가느냐, 아니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걷어내 훌륭한 토지가  나타나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얼 나이팅게일-

  가장 위대한 인물
  고대의 어떤 왕이 나라 안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찾아내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맨 먼저 많
은 재산을 가진 한 재력가가 추천되었다. 그리고 훌륭한 의술을 갖춘  사람도 추천을받았고, 법률 
분야에 높은 지식과 지혜를 갖춘 인물도 천거되었다. 또다른 후보는 경제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
둔 사람이었다. 그 밖의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왕궁으로 모여들었으며, 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가려내기란 누가봐도 쉽지 않았다. 
  마침내 마지막 후보가 왕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사람은 여자였는데,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허연 백발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아직도 지혜와 이해심과 사랑을 빛난고 있었다.
  왕이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때문에 이곳에 왔는가?"
  왕의 수석 신하가 말했다. 
  "왕께서는 지금까지 모든 훌륭한 사람들의 이력을  보고 들으셨습니다. 이 여성이 그들 모두를 
가르친 학교 교사입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왕
관을 벗어 그녀에게 씌워 주었다. 
  -글렌 반 에케렌-

  사람에 대한 관심
  내가 사는 루이스빌 근처 큰 교회에 어느 나 한 남자가 모자를 쓰고 예배에 참석했다. 그는 예
배 진행자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모자 벗기를 거부했다.  신도들도 그에게 모자를 벗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목사 역시 이 남자 때문에 적이  당황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뒤  문 앞에 나가서 그 남자를 
기다렸다. 목사는 그 남자에게 교회에 와 주서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예배에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모자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예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
았다. 남자가 말했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저와 대화를  나눠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예배에 초대해 주시니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저는 3년 전에 이 교회에 처음 나왔고, 그 이후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저에게 관심을 갖기는 오늘이 처음이군요. 3년  동안 무관심을 당하다
가 오늘에서야 저는 예배 진행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순전히 제가 쓰고 있는 
모자 때문에 말입니다. 또 언제나 바쁘게 지나가기만 하시던 목사님과 직접 몇 마디 대화르 나누
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사람에 대해 얼마큼의 관심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바쁜가?
  (하루에 3분)

  벤이라는 이름의 사람
  지난해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를 벤이라고 부르자. 그의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
니까. 어떤 관계로든 우리는 벤을 알아왔고, 또 우리 자신이 벤일 수도 있으니까.
  벤은 세상을 떠날 당시 일흔여섯 살이었으며 혼자 산  지 2년째였다. 그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
하고 건강하고 지적이었으며 감성이 풍부했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불행했다. 
  봄에 길을 걷다가 벤은 그만 심하게 넘어졌다. 의사는 상처가 깊지 않다고 진단했지만 사흘 뒤 
벤은 눈을 감았다.
  벤을 아는 다수의 사람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벤이 갑작스럽게 죽은 것은  그 스스로 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벤은 넘어져서 죽은 게 아니었다. 심한  고독감이 그를 죽인 것이다. 벤은 살
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의 생활이란 것이 텅 빈 외로움의 연속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마도 벤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그 자신도 고독을 선택했다는 점일 것이다. 아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그를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다. 여행에도 초대했고, 친구들의 모임에도 불렀으며, 식사 초청도 했다. 그럴 때마다 벤은 말
했다. 
  "난 그런 늙은 바보들하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벤이 자기 주위에 쌓아 올린 담장은 
점점 높아져만 갔고,  마침내 그는 그 안에 갇혀서 고독하게 눈을 감고 말았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외로움
  나는 동료 교사와 함께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 한복판에 있는 알라 와이운하  근처 아파트에 
세들었다. 나는 스물세 살의 독신에댜, 호놀룰루에 살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멋진 조건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좋지는 않았다. 석달쯤 지나자 처음의 흥분이 가라앉고 차츰 이유없이 우울해지
기 시작했다. 하와이에서 그런 기분이 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운하를 따라  산책하다가 강둑에 주저앉아 무엇이  잘못됐는가 생각했다. 마침내 
나는 이유를 찾았다.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숨을 쉬며 앉아  있는 동안에도 수정처
럼 맑은 물이 운하를 따라 흘러가고, 대기는 한없이 맑아 멀리 있는 산들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
와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장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푸념을   늘어 놓으면 들어줄 사람이 하나
라도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아무도 나를 안됐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이 나를 더욱  우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내 문제를 함께 의논해 줄 친구들이  있었다. 팔을 걷더 붙이고 당장 달려올 
사람들잉, 그런데 지금 그들은 인간이 아무리 아름다운  장소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장소가 인간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눈 건 아니다. 
  -낸시 코에이-

  지금 말하라 
  한 노신사가 이따금 뉴햄스셔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 들러 고가구를 팔곤 했다. 하루는 그가 왔
다 간 뒤 골동품 상인의 아내가 말했다. 
  "저분이 왔다 가면 참 기분이 좋아요. 이 얘기를 언젠가  저분께 꼭 해드리고 싶어요."  남편이 
말했다. 
  "다음번에 그 사람이 들르면 직접 그렇게 말해  줍시다."  여름이 되자 한 젊은 여성이 골동품 
가게에 찾아와 자신이 그 노신사의 딸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 자기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는 것이었다.  골동품 상인의 아내는 그 노신사가 지난번 마지막으로  게게에 왔다 갔을 때 남편
과 자기가 나눈 얘기를 딸에게 들려주었다. 젊은 여성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녀는 울먹
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그 말을 직접 들었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누군가 자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눈을 감으셨더라면 무척 행복해하셨을 거예요." 훗날 이 골동품 가게의 부부는 말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으면 그 자리서  본인에게  그것을 말해 
줬지요.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글렌 반 에케렌-

  세상은 그대의 것
  희랍 철학자의 제자가 있었다. 스승은 그에게 앞으로 3년 동안 그를 비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주라고 지시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고생스런 시시게 끝나자 스승은 그에에 말했다. 
  "이제 그대는 아테네로 가서 지혜를 배우라."
  제자가 아테네로 들어가는데, 어떤 늙은 현자가 문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비난하
고 있었다. 그는 이 철학자의 제자에게도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자 제자는  즉각적으로 웃음을 터
뜨렸다. 
  현자가 물었다.
  "내가 비난을 하는데 그대는 왜 웃는가?"
  제자가 말했다. 
  "왜냐하면 난 3년  동안 나늘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이제는 그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리 날 비난해도 당신은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오."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어서 도시로 들어가라. 도시 전체가 그대의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
  적을 사랑한 이야기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그를 가장 심하게 비난한 사람은 에드윈 맥마스터 
스탠턴이란 사람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스탠턴은 링컨을 몹시 미워했다. 그는 대중 앞에서 링컨
을 흠집내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링컨에 대한 미움이 너무도 뿌리 깊었기 때문에 그는 링컨의 
신체적인 외모에 대해서까지 조롱을 일삼았고, 모든 관점에서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미합중국의 제 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링컨이 내각을 구성할 시기가 다가왔다. 정부 각료들은 아무래도 링컨의 정책을가장 충실히 수
행할 수 있는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해야만 했다. 링컨은 신중히  각 분야의 책임자들을 한 명씩 
임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장 중요한 국방장관을 임명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 자
리에 스ㅌ턴이 임명되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 측근들부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온갖 조
언이 링컨에게 전달되었다. 
  "각하,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스탠턴이란 자를 몰라서 그러십니까? 그  자가 각하에 대해 늘어 
놓은 터무니 없는 비방들을 잊으셨습니까?  그 자는 각하의 적입니다.  머지않아 그 자는 각하의 
여러 정책들을 무산시켜 버릴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링컨은 확실하고 단
호하게 응답했다. 
  "그렇소, 나는 스탠턴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나에 대해 퍼뜨린 많은  비난들도  잘 기억하고 있
소. 하지만 이 나라를 둘러 볼  때 국방장관 자리를 그 사람만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은 
없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링컨 대통령은 암살범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링컨이 죽은 뒤 링컨의 업
적과 고귀한 인격에 대한 찬사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에이브라함 링컨에 대한 수
많은 평가 중에세도 가장 뛰어난 것은 역시 에드윈 맥마스터 스탠턴이 내린 평가이다. 자기가 한
때 그렇게도 미워했던 링컨의 시신 옆에 서서 스탠턴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송했다. 스탠턴은 말했다 
"이제 이 위대한 인물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을 것입니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더 중요한 것
  몇 해 전 미국 시애틀에서 장애인 올림픽이  있었다.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홉 명의 선수들이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모였다. 총성이 울리고  모든 선수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정확히 말해 달려 나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다들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결승점을 향
해 달려갔다. 
  그런데 한 어린 선수가 아스팔트  경주로 위에 몇 번이나 넘어졌다.  마침내 그 선수는 바닥에 
엎어져 울기 시작했다. 다른 여덟 명의 선수들이 소년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은일제히 달리기
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한 선수도 빠짐없이  방향을 돌려 뒤로 달려갔다. 두운 증후군에  걸린 한 
여자 선수가 몸을 숙여 소년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그런 다음 아홉 명의 선수들은 모두 팔짱을  끼고 함께 결승선을향애 걸어가가 시작했다. 경기
장에 있던 모든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10분 동안 박수를 보냈다.
  -보브 프렌치-

  일단 씨앗을 심으려면
  중국 동부의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 대마무를 심고서 기다렸다. 
  첫해에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두 번째 해에도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해도, 네 번째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섯 번째 해가 되었을 때 수백 평방 미터의 땅 밑에 대나무의 뿌리가  빽빽히 퍼져 있
었으며, 마침내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대나무 싹들이 지면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대나무들은 하루에  한 자가 넘게 자랐다. 불과 여섯  주만에 대나무들은 
15미터 이상씩 키가 커졌다. 그래서 농부는 대나무들을 잘라다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사실 그것은 마술이 아니다. 이  대나무는 중국 동부에 자라는  것이로 '모소'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싹을 내기 전에 사방 수십 미터까지 뻗어간다. 그래서 일단 싹을 내면 뿌리에서 보내주는 
거대한 양의 자양분 덕분에 순식간에 키가 자라는 것이다. 5년이라는 기간은 말하자면 뿌리를 내
리기 위한 준비 기간인 셈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에 확신을 갖는다면 누구든지 이와 같이 될 수 있다. 
  -조엘 웰던-

  기도하는 손
  1490년대에 두 명의 젊은 친구 알브레히드 뒤러와 프란츠 크닉스타인은  고생하는 젊은 화가들
이었다. 둘 다 가난했기 때문에 그림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했다. 
  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쏟느라 두 사람 다 그림 공부는 별로 진척이 없었다. 마침내 두 사
람은 한 가지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제비뽑기를  해서 이기는 사람은 그림 공부에만 전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일을 해서 생활비를 책임지자는 것이었다. 알브레이드가 제비뽑기에서 이겨 공부
를 시작했고, 반면에 프란츠는 두 사람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막노동을 했다. 알브레이드
가 화가로 성공하면 그때가서 프란츠가 그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알브레히드는 그림 공부를 하러 유럽의 도시로 떠났다.  에제 세상은 그가 재능있는 화가일 뿐 
아니라 그림의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화가로서 대성공을 거둔 알브레히드는 프란
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이제 그가 돈을 대고 프란츠가 그림을 시작할 때였다.
 하지만 알브레히드는 자신의 친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했음을 발견했다. 프란
츠는 친구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너무도 힘든 노동을 했기 때문에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옆으로 비틀어지기까지 했다. 그의 가늘고 예민했던 손가락들은 이제는 완전히 망겨져 보린 뒤였
다. 회화를 그리는 데 필수적인 섬세한 붓 터치를 그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을 알고 알
브레히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화가로서의 꿈이 좌절되긴 했지만 프란츠는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의 성공을 기뻐했
다.
  어느 날 알브레히드는 약속도 하지 않고 친구를  방문했다. 친구는 마디진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비록 그 자신은 더 이상 화가가 될 수  없지만 친구의 성공을 조용히 빌어 주고 있
었다. 취대한 천재 화가 알브레히드 뒤러는 재빨리 그 충실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고, 
나중에 이 그림을 (기도하는 손)이라는 제목의 걸작으로 탄생시켰다. 
  오늘날 전세계의 수많은 미술관들이 알브레히드 뒤러의  작품을 소장하고있다. 그 중에서도 특
히 이 걸적은 사랑과 희생과  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에서 용기와 힘과 위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자미상-

  사람이 앉아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꿈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
며 살아가고 있을까? 래리 월터스는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믿기 어렵지만 그의 이
야기는 사실이다.
  래리는 원래 트럭 운전사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졸업한 그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는 희망을 품고  공군에 입대했다. 불행히도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그는 
파일럿이 될 수가 없었다. 공군에서 재대한 뒤 그는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 다니는 제트 전투기를 
올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뒷마당의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는 
공중을 나는 마술쇼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가지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시내에 있는 군용품 상점으로 
달려가 헬륨 탱크 하나와 기상 관측용 풍선 마흔다섯 개를 구입했다. 화려한 색깔의 파티용 풍선
은 아니었지만 바람을 최대한 불어넣으면 직경이 1미터가 넘는 아주 튼튼한 풍선들이었다.
  래리는 그것들을 뒷마당으로 운반한 뒤 길다란 끈을 이용해 풍선들을 의자에다 단단히 묶었다. 
의자는 어느 집에나 있는 그런 평범한 나무의자였다. 그는 의자를 지프차의 범퍼에 묶고 나서 풍
선에 헬륨을 채웠다. 그 다음 샌드위치와 마실  것, 그리고 착륙을 위해 풍선 몇 개를  터뜨릴 수 
있도록 공기총 한 자루를 챙겼다. 
  준비가 완료되자 래리 월터슨는 의자에 앉아 지프차에  연결된 끈을 잘랐다. 그의 계획은 의자
에 앉아 유유자적하게 공중을 떠돌다가 땅 위로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지프차에 묶여 있던 끈을 끊자마자 그는 유유자적하게 떠오르는 대신  대포알처럼 쏜살같이 하
늘로 솟구 쳐 올랐다. 또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100미터 정도 올라간 것도 아니었따. 그는 계속해
서 올라가 마침내는 국제선 여객기가  운항하는 높이닌  고도 3천3백미터 상공까지 비상했다. 그 
높이세서는 풍선을 터뜨릴 수가 없었다. 잘못하다간 균형을 잃고 정말로 완저히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려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 높잉서 열네 시간을 비행했다. 
  결국 래리 월터스는 로스엔젤레스 국제 공항의 진입 지점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근처를 지나가
던 팬암 항공사의 조종사가 관제탑에다 어떤 남자가 공기총을 들로 나무 의자에 앉아 고도3천3백 
미터 상공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무전으로 알렸지만 관제탑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
다.
  로스엔젤레스 국제 항공은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밤이 
되면 해안가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그래서 황혼녘쯤에 래리는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다. 
이 무렵 미해군에서 래리를 구조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띄웠다. 하지만  구조대는 래링게 접근할 
수가 없었따. 프로펠러가 내는 바람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래리가 만든 신발며품은 점점 더 
달아났다. 마침내 구조대는 더 상공으로 올라가 위쪽에서 래리에게  구조사라리를 내렸으며, 래리
는 그것에 매달려 안전히 지상에 착륙할 수 있었다. 
  지상에 내리자마자 래리는 곧장 경찰에 체포되었다.  수갑이 채워져 경찰차에 태워지기 직전에 
한 텔레비젼 방송기자가 소리쳐 물었다.
  "래리씨,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한 겁니까?"
  래리는 걸음을 멈추고 기자를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이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칩 맥그레거-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 무렵, 데이브 스톤 목사가 이끄는 쉬벌리  감리교외의 학생부 신도들은 이웃에 있는 쉬벌리 
침례교회와 모든 점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특히 소프트볼 경기에서는 경쟁의식이 더
욱 치열했다. 쉬벌리 감리교외의 학생들은 스톤 목사가  지도하는 여름 성경 학교에도 매우 열심
히 참가했다. 
  첫째 주 성경 공부는 요한복음 13장에 수록된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ㅆ겨주는  내용에 관한 것
이었다. 봉사와 희생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스톤 목사는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실천에 옮기
게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난 여러분이 앞으로 두시간에 걸쳐  이 도시에 나타난 예수처럼  행동해 주길 바란다. 예수가 
이곳에 온다면 어떤 일을 하실까? 그분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를 잘 생각해 보고, 
그대로 실천해 주기 바란다." 
  두시간 뒤 학생들은 자신들이 실천에 옮긴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스톤 목사의 집에 모였다.
  한 그룹은 두 시간 동안 어떤 노인의 집을 청소해  주었다. 다른 그룹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교
회에 나오는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 배달했다. 세 번째 그룹은  교회 신도 중에 병원에 입원한 사
람들을 찾아가 위문 카드를 전달했다. 또다른 그룹은  양로원에 가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러 주
었다. 8월 중순에 크리스마스 기분을 선물한 것이다. 한 노인은 그것이 자기  생전에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섯 번째 그룹이 일어나  자신들이 한 일을 발표하자 모두가  워 하고 야유를 보냈다. 
이들은 다름아닌 라이벌 관계에 있는 쉬벌리 침례교회에 찾아가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가를 물었던 것이다. 그 교회의 목사는  정원 손질이 필요한 어떤 할머니의 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두 시간에 걸쳐 잔디를 깎고, 마당을 쓸고, 울타리를 손질했다.
  그들이 떠날 때 쯤 그집 할머니가 그들을 불러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학생들이 없으면 난 살아갈수 없을꺼야. 쉬벌리  침례교회 학생들은 이렇게 언
제나 많은 도움을 주거든."
  스톤 목사가 놀라서 끼어들었다. 
  "쉬벌리 침례교회라고? 그래서 너희들은 그 할머니들에게 너희드링  쉬벌리 감리교회에서 왔다
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드렸겠지?"
  학생들이 말했다. 
  "아뇨. 그럴 필요를 못 느꼈어요. 예수님에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찰스 콜손
-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매튜 헨리는 널리 알려진 성경 주석자였다. 어느 날 그는 강도를 만났으며, 그날 저녁 일기에다 
이렇게 썼다. 
  주님, 저로 하여금 다음의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첫째, 전에는 한 번도 강도를 당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둘째, 그가 내 지갑을 빼앗아 갔을 뿐 내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에 대해.
  셋째, 그사 내가 가진 전부를 빼앗아 갔지만 그것이 별로 많지 않은 것에 대해.
  넷째, 강도질을 한 것이 내가 아니고 강도를 당한 것이 나인 것에 대해.
  -매튜 헨리-

  올려 보낸 재료
  세상에 살아 있을 때 호화로운  생활과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죽어서 천국에 도착하자 한 천사가  마중나왔다. 천사는 그녀가 앞으로  살 집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아름다운 대저택을 사이로 지나갔다. 저택들 앞을 지나가면서 여
성은 자기에게도 그런 대저택들 중 하나가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큰 도로를 지나 대저택들 
사이를 다 통과한 뒤 천사는 맨 끄트머리에 이르러 걸음을 멈췄다. 그곳부터는 형편없이 낡고 작
은 집들이 전개되고 있었다. 바로 그 판잣집들 중 하나로 다가가서 천사가 말했다. 
  "이곳이 부인이 살 집입니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네모난 상자곽에 가까웠다. 여성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라구요! 이 집에서 살라구요? 난 이런 집에선 살 수가 없어요. 저쪽의 대저택들을 놔두고 왜 
이런 형편없는 집을 나한테 주는 거죠?"
  천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인. 부인꼐서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올려 보낸 재료로는  아무리 해도 이런 집밖
에 지을 수 없었습니다."
  -폴 와톤-

  죽음의 상인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한 남자가 조간신문을 펼쳐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곳에 자신의 사망 
소식이 실려 있었다. 신문이 다른 사람의 사망과 혼동해 오보를 실었던 것이다. 자연히 이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놓고 세상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 알고 싶었다. 신문에는 '다이너마이트
의 제왕, 마침내 세상을 떠나다'라는 큰 제목 아래 그를 '죽음의  상인'이라고  묘사한 해설 기사
가 실려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였고, 파괴의 무기를 제조해 엄청난  부를 
축척했다. 하지만 그는 이 해설 기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죽음
의 상인'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인생의 실패이고 큰 불행이었다.
  바로 그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가진 파괴력보다 훨씬  더 위대한 치료의 힘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개종의 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날부터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와 
경제력을 인간의 복지와 평화를 실현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그가 소망했던  대로, 오늘날 그는 
'죽음의 상인'이 아니라 노벨 평화상을 창시한 알프렛 노벨로 기억되고 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난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또 그것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가?
  -제임스 콜라이니-

  일을 하는 자세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는가를 알기 위해 한  사회학자가 조사에 나
섰다. 그는 파리 시내의 어느 건축 현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첫 번째 건축 기사에게 그는 물
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이 학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보면 모르오? 나는 지금 현장 감독이 시키는 대로 이 원시적인 연장들을 갖고 여기 있는 무지
막지한 돌들을 깨뜨려 나란히 이어 붙이기를 하고 있소. 이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며 허리가 휘어
지도록 일을 하고 있고, 지겨워서 정말 죽을 지경이오."  학자는 얼른 그 자리를 떠나 두 번째 건
축 기사에게로 갔다.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다.
  "이 돌들을 깨뜨려 쓸모있는 모양으로 만들고 있소. 건축 설계사가 설계한 대로 짜맞추기 위해
서요. 당신이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또  아주 반복적인 일이오. 하지만 일주일에 5프랑은 
벌어야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니 어쩔  수 없지 않소. 내 직업이 이것이고,  이만한 일이라도 
얻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약간 용기를 얻은 학자는 세번째 건축 기사에게로 가서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 사람은 손으로 하늘 꼭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면 모르오? 난 지금 대성당을 짓고 있는 중이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에 대
한 생각이 그만큼 다르다는 걸 학자는 알았다.
  -글렌 반 에케렌-

  이해할 수 없는 일
  신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경건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사는 마을에 큰 비가 내
려 집들이 전부 물 속에 잠기기 사작했다. 그 사람은 1층에 있다가 비가 계속 퍼붓자 2층으로 올
라갔다. 결국에는 지붕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가 비를 맞으며 지붕 위에 앉아 있는데 구조대가 배를  타고 와서 어서 타라고 소리쳤다. 하
지만 이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오.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고,  신께서 나를 보살펴 주시리라고  믿소."  
할 수 없이 구조대는 다른 지붕을 향해  떠나갔다.  폭풍이 불고, 비가 더 많이 내려   이제 그는 
목까지 물 속에 잠긴 신세가 되었다. 두번째 구조대가 배를  타고 왔지만 그는 또다시 그들의 손
길을 거부했다.
  "난 신앙을 가진 사람이고, 절대적으로 신을 믿고 있소. 내 기도를 신께서 안  들어 주실 리 없
소."
  그의 완강한 고집에 구조대는 그냥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가 줄기차게 내려 점점 수위가 높아
지고 이제 그는 입과 코로 숨쉬기조차 어려워ㅈ다.  공중에 헬리콥터가 날아와 사다리를 내려 주
며 소리쳤다.
  "어서 올라타시오. 시간이 없소. 당신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소."  그는 허우적거리면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신을 믿어요. 지금까지 신의 뜻에 따라  살아왔고, 현재도 기도하고 있소. 신꼐서 틀림없
이 날 구원해 주실 것이오. 그러니 걱정 말고 돌아가시오."  헬리콥터는 포기하고 돌아갔다. 하지
만  비가 더욱더 세차게 내렸고,  수위는 더욱 높아졌으며, 마침내 그는 익사하고 말았다.
  하늘나라로 간 그는 잠깐 동안 신과 면접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절대자 앞에 
앉자마자 따져 묻기 시작했다.
  "난 당신에 대해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었소.  언제나 당신을 믿었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소. 
당신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으며 항상 기도드렸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내 기도를 들
어 주지 않고 날 죽게 내버려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신께서는 머리를 흔들며 말
했다.
  "나 역시 널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너한테 구조선 두 척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헬리콥터까지 보
냈지 않은가?"
  -브라이언 카바노프-
 
  가장 슬픈 환상
  티벳의 위대한 스승 마르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전에 티벳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장에는  이 위대한 스승밑에서 공부하려고  모여든 많은 승려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르파의 큰아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마르파는 매우  슬펴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 한 승려가 다가와 말했다.
  "이해할 수 없군요. 스승님께서는 저희에게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도 스승
님께선 지금 울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아들이 죽은  것도 환상에 불과할 텐데 왜 이
토록 크게 슬퍼하시는 겁니까?"
  마르파가 그 승려에게 말했다.
  "실제로 모든 것이 환상이다. 그리고 한 어린아이의  죽음은 모든 환상 중에서도 가장 슬픈 환
상이다. 그래서 나는 울고 있는 것이다."
  -티벳 불교의 일화-

  나비
  나비를 좋아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그는 나비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나비 채집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나비를 채집해 박제로 만들어 두는 것은 그의 취미가 아니었
다. 그 대신 그는 나비의 생김새가 나는 모습에 이끌리곤 했다. 공중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는 
그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한 번은 몸이 아파 학교도 못 가고 한동안 집에 누워  지낸 적이 있었다. 어느날 문을 열고 밖
을 내다보니 나비 한 마리가 마당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봄이었던 것이다. 나비의 유연하
고 생명력 있는 날갯짓을 보는 순간 소년은 놀랍게도 병이 나아 있었다. 이 기억은 그를 더욱 나
비에게로 이끌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는  차츰 나비에게서 멀어졌다. 나비를 생각하는 
대신 많은 세상일들이 그의 관심을 빼앗았다. 이제 그는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두
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는  길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했다. 누가 부러뜨
렸는지 길가에 있는 나무에서 잔가지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의 눈길을 사로잡
은 것은 그 잔가지가 아니라  거기에 매달려 있는 나비의 고치집이었다.  작고 흰 고치집 하나가 
다행히 상처를 입지 않고 아직도 나뭇가지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에서 고치집이 매달려 있는 줄기를 떼어냈다. 그리고 손수건을 거내 그것을 다치
지 않게 잘 감싼 뒤 집으로 가져왔다.
  주둥이가 큰 유리병에 고치집을 넣은 뒤, 그는 아이가 만지지 못하도록 유리병을 책상 위 선반
에 올려놓았다. 그 후 날마다 집에 돌아오면 나바의 고치집무터 살피는 것이 그의 습관이 되었다. 
아내는 처음엔 관심을 보였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틈 나는 대로 유리병으로 다가가 
무슨 변화가 있는가를 살폈다. 나비를 좋아하던 어릴 적 꿈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일요일, 얼핏 보면 알 수 없는 미세한 변화가 고치집에 일어났다. 명주실로 
된 한쪽 끝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약간씩 고치
집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더 자세히 유리병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고치집은 나뭇가지에 단단히 달라붙은 채로 있었으며, 고치집을 ㄸ고 나비가 나
타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비는 고치집에서 나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듯
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빈틈없이 짜여진 고치집은 연약한 어린 나비가 뚫고 나오기엔 너
무도 단단하게 여겨졌다.
  마침내 고치집이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아직도 나비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때, 그는 나비가 힘이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리병을  책상 위에 내
려놓고 서랍에서 잘 드는 연필 깎는 칼을 꺼냈다. 그리고  유리병 안으로 손을 넣어 나비가 다치
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고치집 한 귀퉁이를 칼로 잘라 주었다. 갑자기 생겨난 구멍을 비집고 나비
는 거의 즉각적으로 한쪽 날개를 내밀더니 뒤이어  다른쪽 날개도 고치집 밖으로 내밀었다. 나비
는 드디어 자유를 얻은 것이다.
  고치집 밖으로 나온 나비는 자유를 누리려는 듯  분주히 유리병 안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러더니 주둥이를 타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그는 나비가 날아갈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
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비는 전혀 날아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날개가 마르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잠시 책상 위를 기어다니던 나
비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가  놀라서 지켜보는  사이에 나비는 가늘게  몸을 떨다가 이내 
죽고 말았다.
  훗날 그는 이웃에 사는 과학 교사를 통해 비로소 생존의 힘과 날갯짓할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
었다. 나비가 자유를 획득하는 데 필요했던 노력의  시간과 기다림의 순간들을 이해하지 못한 그
의 성급함이 결국 나비를 죽게 했던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여행자
  폴란드 태생의 신비주의 랍비 하페즈 하윔이 미국 뉴욕에 살고 있을 때였다. 한 여행자가 우연
히 하페즈의 집을 방문했다. 유명한 랍비의 집이라는 것이 방도 하나밖에 없고 그 방마저 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여행자는 무척 놀랐다. 가구래야 고작 탁자와 긴 의자 하나뿐이었다.
  여행자가 랍비 하페즈에게 물었다.
  "랍비여, 나머지 가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랍비 하페즈가 여행자에게 반문했다.
  "그러는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 가구요? 전 여행을 온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랍비 하페즈가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이곳에 여행을 온 사람일 뿐입니다."   -마르틴 부버-
  
  나를 일깨워 주는 일
  랍비 나프탈 리가 살던 마을에서 부자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의 집은 다른 집들과 떨어진 외딴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밤이면 경비원들이 그 부자들의 집을 지켜 주었다. 어느 늦은 저녁 
랍비 나프탈리는 산책을 하다가 한 경비원과 마주쳤다. 랍비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시오?"
  경비원은 자신이 이러이러한 부자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하고 나서 이번에는 랍비를 향해 똑
같은 질문을 했다.
  "랍비님은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이 예상치 않은 질문에 랍비 나프탈리는 당황했다. 그는 간신히 대답했다.
  "나는 아직 누구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소."
  그리고 나서 그는 경비원과 함께 숲속을 거닐다가 문득 경비원에게 말했다.
  "혹시 내 하인이 되어 줄 수 있겠소?"
  경비원이 되물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만, 제가 할 일이 무엇인가요?"  랍비 나프탈리가 대답했다.
  "나를 일깨워 주는 일이오."
  -마르틴 부버-

  사랑의 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는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수도원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
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이  많았다. 결국 프란치스코는 글라라를 멀리  보내기로 결심했다. 
수도원 밖은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글라라를 배웅 나간 프란치스코는 말없이 눈에 덮
여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글라라는 작별인사를 하고 눈길로 돌아섰다. 짧은 작별의 말 외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갑자가 글라라가 돌아서서 프란치스코에게 물었다.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글라라 수녀도 알고 프란치스코도 알고 있었다. 프란치스코
는 아무런 말없이 눈이 쌓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마 저 산에 눈이 녹고 꽃이 필 때쯤이면."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눈이 녹고 산마다 꽃이 피었다.
  -작자 미상-

  사랑의 불꽃
  어느 날 성 프란치스코가 수도원으로 글라라 수녀를  방문했다. 바로 그날 수도원에 화재가 발
생한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니 수도원 지붕 전체가 불빛으로 환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수도원이 있는 아씨시 마을 사람들은 그 불을 끄기 위해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어
떤 불길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간소한 식탁 주위에 앉아  있는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수녀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와 그녀의 머리위엔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동심원의 빛이 비추이고 있었다.
  -크리스티앙 보벵-

  종교
  중국 베이징에 파견된 어떤 선교사가 레스토랑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웨이터 한 사람을 붙잡
고 중국 사람들이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
  웨이터는 선교사를 데리고 발코니 밖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보입니까, 선생님?"
  "거리와 집, 그리고 행인들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버스와  택시들이 보이는군요."  "그밖에 다른 
것도 보입니까?"
  "나무들이 보이는군요."
  "그것뿐입니까?"
  "바람이 불고 있구요."
  그러자 그 중국 청년은 두 팔을 크게 벌려 보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종교입니다. 선생님."
  -앤소니 드 멜로-

  더 위대한 경전
  일본의 선승 테쯔겐은 불경 간행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당시는 불교경전을 중국에서나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전부 일본에서 간행하기로 한 것이다. 
  테쯔겐은 일본 전역을 돌면서 기금을 모집했다. 금을 기부한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은 가난한 사람들이 낸 작은 모금들이었다. 10년 여행 끝에  마침내 그는 불경 간행에 필요한 기
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지강에 큰 홍수가 일어 수만 명이 집과 식량을 잃었다. 그 가
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느라 테쯔겐은 위대한 불사를 위해 마련했던 돈을 다 써 버렸다.
  또다시 그는 기금 마련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 필요한 금액을 모으는 데 또  여러 해가 걸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돌아 테쯔겐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다 썼다. 
  다시 여행에 나선 그는 20년이나 지난 후에 숙원 사업이었던 일본어 불전 간행을 마칠 수 있었
다. 그 초판본이 일본 교토의 오파쿠  사찰에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테쯔겐이 불전  간행을 세 
차례에 걸쳐 했다고 말한다. 처음 두 번의 불전 간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세 번째의 눈에 
보이는 불전 간행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었다고.
  -파울 렙스-

  당신이 춤을 춘다면 난 노래를
  심리 치료 의사로서 나는 골수암에 걸린 한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다. 그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엉덩이 아래에서 다리 하나를 절단한 상태였다.
  내가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스물네  살이었으며, 다리를 잘라낸 좌절감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모든 건강한 사람들에 대해 아주 
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인생을 체 시작하기도 전에 그토록 끔찍한 손실을 겪는다는 것이 그
에게는 불공평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청년이 갖고 있는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그림 그리기와 그밖의 여러 가지 심리 치료를 
통해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거의 2년 동안이나 그를  치료하던 중에 마침내 큰 변화가 찾아왔
다. 그는 서서히 자기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심각한 육체적인 손실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일어난 가장 
인상적인 일화들을 내게 들려주곤 했다. 
  한 번은 그가 거의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 여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매우 무더운 날
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반바지르 입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 그의  의족이 다 
보였다. 그 여성은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모두  절단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
으며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그녀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고 나갔었다. 그래서 그녀의 관
심을 끌기 위한 노력으로 그는 자신의 의족을 풀어 놓고 한쪽 다리로 방안을 돌며 손가락으로 음
악에 장단까지 맞추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눈물이 날 정도
로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춤을 출 수 있다면 난 노랠 부를 수 있어요!"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그와 마주앉아서 
지난 이들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치료 초기에 그가  그린 그림을 꺼냈다. 그것은 항아리를 그린그
림이었는데, 항아리 전체에  검은색 금이  가 있었다. 이것은 그의  신체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그는 검은 크레용으로 온 사방에 갈라진 금을 그렸던 것이다. 그 당시 그는 분노로 늘 이를 악물
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여 주자 그는 한참 들여다 보더니 말했다. 
  "아, 이 그림은 아직 완서이 안 됐군요."
  그는 크레용 상자에서 노란색 크레용을 꺼내 항아리의 갈라진 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갈라진 틈이 보이시죠? 여기서 빛이 나오는 거예요." 그는 노란색 크레용으로 그 갈라진 틈
에서 눈부시게 새어 나오는 빛을 그리기 시작했다. 
  -라첼 나오미 레멘-

  중요한 것은 영혼
  유태교의 율법학자였던 도브 베어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겁을 집
어먹었다.
  그는 교리에 정통했고 신학적인 면에서는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는 탈무드 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웃는 법이 없었다. 그는 금욕과 고행의 철저한 신봉자였고 여러 날씩 금식을 행하기
도 했다. 
  마침내 그는 지나친 고행으로 병이 들었으나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했다. 누군가 그에게 바알 
셈 토브를 만나라고 권했다.  바알 셈은 신비학파인  하시디즘의 창시자로 가슴의 신앙에 기초한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바알 셈에 대해 이단이라고 거부감을 갖고  있던 도브 베어는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그가 병을 
치료하는 기적을 행한다는 주위의 권유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자정이 지나서 바알 셈이 도브 베어의 방에 나타났다. 바알 셈은 곧장 방안으로 들어가 성결책
을 도브 베어의 손에 쥐어 주고 큰소리로 읽으라고 말했다. 
  도브 베어가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바알 셈이 문득 중지시키고 말했따. 
  "당신에게는 무엇인가 빠져있소. 당신의 신앙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소." 병자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란 마링오?"
  바알 셈이 말했다. 
  "영혼이오. 당신에게는 영혼이 빠져 있소."
  -마르틴 부버-

  캥거루와의 약속
  그해 여름 우리는 산림청으로부터 임야를 사서 목초지로 바꾸기 위해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
렸다. 카빌라라는 이름의 이 땅은 해발 1천2백미터 높이에 있었으며, 한 쪽 방향으로 북쩍 해변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자연 경관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은 삐죽삐죽 솟아오른 높
은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의 목장과 한쪽 끝이 맞닿아 있는 카빌라는 주변이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우거진 삼림이었
다. 따라서 목초지로 개간한 뒤에도 카빌라에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한동안 토질을 개선하고 거름ㅇ르 실어 날라도  카빌라는 내가 기대한 것만큼 풀이  자라 주지 
않았다. 얼마 후 나는 숲의  야생 동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풀들의 상당량을 먹어 치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밤 지켜 본 끝에 놀랍게도 거대한 캥거루 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목장을 보호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일주일에 이틀 밤씩 캥거루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안 나는 그것
이 매우 끔직한 일임을 알았따.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 대신 그 잔인한 일을  맡겼다. 주민들은 
고기도 얻을 겸 사냥하는 재미도 즐길겸 얼른 그 일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것도 별 성과가 없었다. 목초지는 겨우 서른 마리의  소들을 들여 보낼 수 있을 만큼
밖에 풀들이 자라지 않았다. 
  다른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래서 또다시 직접 야간 사냥에 나선  어느날, 자동차 헤드라이트 
속에 들어온 커다란 캥거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는 재빨리 총을  들고 뛰어내렸다. 내가 총을 
겨눴을 때 캥거루는 단지 열 걸음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캥거루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강렬한  자동차 불빛을 받아 붉은색 보석처럼 변한 
캥거루의 두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꼼짝않고 서서 아름다
운 야생 동물의 영혼을 응시했다. 오랫동안 우리의 시선이 그렇게 서로에게 못박혀 있었다. 그 동
물은 서서히 고개를 돌리더니 조용히 풀을 뜯기 시작했다.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딘가 내 안 깊은 곳에서 강한 자비심
이 일었다. 농사의 실패를 눈앞에 둔 농부에게 자비심이란 사실 흔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총을 내리고 지프차로 돌아갔다.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만 했다.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이런 식으론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음을 난 알았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카빌라의 언덕 지대로 차를 몰고 가서 방목장 한가운데 있는 몇그루의 나무 
근처에 멈췄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고 캥거루들과 대화할 준비를 갖췄다. 
  나는 마음속에 생각해 둔 내용들을 하나씩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바보가 된 듯한 기분도 
없지 않았지만, 스스로 확신을 갖고자 노력했다. 어디선가 내 말을 듣고 있을 지도 모를 캥거루들
을 향해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너희 캥거루들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너희들에게 한 가지 타협안을 제시하고
자 한다. 난 너희들에게 내 목초지에서 더 이상 풀을 뜯더먹지 말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하며 다
시는 아무도 너희들을 향해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땅을 너희들과 함께 나눠 가져
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방목장 부근에서는 마음껏 풀을 뜯어먹도록  해주겠다. 하지만 
방목장 안으로 스무 걸음 이상 들어와선 안된다."
  이렇게 발표하고 나서 나는 기대를 갖고  잠시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한 
말들만 머릿속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전혀 확신할 수가 없
었다. 하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장 출입문을 잠그고 사냥꾼들에게 더 이상 내땅에서 사
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나를 정신나간 사람처럼 쳐다보면서도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였
다. 이유를 묻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다. 
  불과 몇 주일 만에 목초지의 풀들이 빽빽하게 자라기 시작해서 열 마리의  소와 송아지들을 더 
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황은 점점 더 좋아졌다. 머지 않아 나는 카빌라에 아흔 마리의 소들
을 넣을 수 있게 되었고, 토끼풀이 지천으로 자라났다. 
  우리가 이 불확실한 약속을 지켜가는  3년동안 목초지는 말할 수  없이 풍요로운 땅이 되었다. 
풀들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면서 여기저기 캥거루들이 지나간 자국이 나타났지만 캥거루들은 목초
지의 경계선 부근에서만 풀을 뜯었다. 물론 내가 정한 스무 걸음에 대해선 서로가 기준이 달랐다. 
보폭이 큰 캥거루들에게 스무 걸음은 내 기준으로는  마흔 걸음 정도는 되었다. 어쨌든 캥거루들
은 그 이상은 목초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소원을 그 야생 동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며, 
서로의 이익을 위해 타협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생명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갖고 있음
을 나는 알았고, 자연과 협력하는 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 해 뒤 우리는 목장을 팔ㅇ고, 카빌라는 새로운 목장주가 이
사 오기까지 2년 동안 빈 터로 남아 있었다. 그  사이에 주민들이 자물쇠를 열고 들어와 몰래 사
냥을 시작했다. 목장을 팔고 나서 3년 뒤에 내가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목장주가 카빌라에 풀
이 자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카빌라를 떠날 때 그 곳엔 토끼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 있었는걸요."  목장
주가 말했다. 
  "글쎄요. 하지만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장주의 설명은 이러했다. 카빌라를 구입하고 나서 2년 뒤에 그곳에 와보니 온통 캥거루 천지
였다. 주민들은 그 2년 동안 캥거루를 무려 6천 마리나 사냥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난 캥거루들이 나와의 약속을 지켰음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사냥이 다시 시작
되자 캥거루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6천마리나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목초지를 휩쓸
어 버린 것이다. 난 충격을 받았고, 죄책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새 목장주에게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내가 캥거루와 한 약속에 대해 그에게 말한다 한들 그가 믿어 주기나 할 것
인가?
  -마이클J. 로즈-

  아주 작은 행성에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당신이 서 있는 이 행성은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행성이다. 
  아홉 개의 행성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가장 온화한..
  당신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두 눈이 하는 일을 가장 잘하게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보게 되리라.
  세상 만물이 당신에게 하고 있는 일과
  당신이 세상 만물에게 하고 있는 일을.
  그때 당신은 알게 되리라.
  이곳이 비록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만
  매우 아름답고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소라는 사실을.
  따라서 이 행성 위를 걸어다니면서
  보고,  관찰해 보라.
  작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멋진 곳
  마치 하나의 물방울 처럼.
  -작자 미상-

  인디언이 바라보는 세상
  인디언이 하는 모든 일이 원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당신은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힘이 항상 원의 형태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원에 가까워 지
려고 노력한다. 
  그 옛날 우리들이 행복하고 힘센 부족이었을 때 우리들의 모든 힘은 부족의 신성한 원으로부터 
나왔고, 그 둥근 원이 부서지지 않는 한 부족은 풍요롭게 살았다. 꽃을 피우는 나무가 그 원의 중
심에 심어져 있었고 동서남북의 동그라미가 그것에 영양분을 주었다. 
  동쪽은 평화와 빛을 주었고, 남쪽은 따뜻함을 주었다. 서쪽은 비를 주었으며, 차갑고 힘센 바람
이 있는 북쪽은 기운과 인내력을 주었다. 이  지식은 우리들의 종교로서 바깥 세상으로부터 우리
에게 온 것이다. 
  세상의 힘이 하는 모든 일은 원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늘은 둥그렇고,  듣기에는 땅덩어리도 공
처럼 둥글다고 한다. 별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바람도 힘이 가장 셀때는 원의 형태로 소용돌이 친
다. 새들이 집을 짓는 것도 둥그렇다. 새들의 종교도  우리들의 종교와 같기 때문이다. 태양이 뜨
고 지는 것도 원속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계절의 바뀜도 원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들이 있언 자
리로 항상 둥글게 되돌아 온다. 
  사람이 사는 것도 아런시절에서 다시 어린시절로 되돌아가는 원의 형태이다. 이렇게 세상의 힘
이 작용하는 모든 것은 항상 원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언디언의 천막은 새둥지처럼 원의 형태였고, 천막들을 칠때도 원형으로 둘러쳤따. 그 속에
서 위대한 정령은 우리로 하여금 자식들을 키우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명인들은 우리를 이런 사각형의 상자 속에 집어 넣었다. 세상의  힘은 사라지고, 세상
의 힘이 이제 어리 안에 없으므로 우리는 시들어 죽어가고 있다.
  당신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우리들 사는 꼴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식으로 
원의 힘에 살았을 때는 소년들이 열두살이나 열세  살만 되어도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지금
은 그만큼 자라려면 세월이 훨씬 더 지나야 한다. 
  그렇다.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검은 큰사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