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입문
유판애언 저
@[ 머리말 @]
이 책은 음악애호가가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가이드역을 한다는 생각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감상하는 데 이러한 지식이 꼭 필요한가하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원래 음악을 맛보려면 자유로이 듣고 자유로이 느끼면 좋으므로 사람에
따라 그 받아들이는 법, 느끼는 법, 심지어 그 평가까지도 가지각색인 것이
당연하다. 그것으로 조금도 지장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지식보다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회에 여러 가지 종류의 음악을 많이 들음으로써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 즐거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음악을 듣고 있으면 여러 가지 의문도 생긴다. 그것은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사항보다는 오히려 그 음악의 주의에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지금까지 여기에서 말해 온 것은 그 음악의 주의에 관한 설명, 그것도 아주
적은 설명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어 주신 여러분에게는 다시 음악의 발달을
말한 '음악사'의 책, 또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음악가의 전기류, 많은
명곡에 대한 해설서, 그 밖의 참고서 등을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읽어볼 것을
권한다. 또 음악에 관해서 잘 모르는 말도 많이 나오니까 간단한 음악용어의
사전 등을 갖춰 두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요즈음에는 매일 어디선가 음악회가 열리고 있지 않은 날은 거의 없다.
그밖에 라디오, 텔레비전, 레코드 등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은 조금도
부자유를 느끼지 않는다. 그 외에 거리에 서 있거나 식당, 극장의
로비에서도, 전국 곳곳에 음악이 범람하고 있다. 그것도 고전에서 현대까지,
또 극히 정도가 높은 것에서 대중적인 것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전세계의 음악이 언제든지 귀에 날아들어오는 세상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문명의 은혜이기도 하며, 또 동시에 하나의 커다란
불행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음악을 자기의 마음을 통해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전에, 먼저 전혀 외계의 하나의 현상으로서 차갑게
보려는 듯한 경향, 그리고 마음대로 골라잡는 바겐세일의 매장을 돌아
다니는 듯한 태도로 음악을 접하는 습관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깊이 체험하거나 잘 생각하기에는 현대인은 너무 지나치게 바쁘다.
체험하지 않더라도 조금도 수고하지 않고 음악을 맛본 기분이 될 수 있는
짜임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문명이 낳은 편리함은 어쨌든 그것대로 매우 좋은 일이라고 접어
두고, 음악과 같은 예술은 좀더 몸 가까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음악을
전문가나 기계의 손에 완전히 맡겨 버리고 높은 산의 꽃으로만 보고 있지
말고, 이것을 자기 곁에 끌어당겨 생활의 영양소(영양소)로 삼고, 그것을
통해 고금의 명곡이나 세계의 명연주를 감상하기로 하면 어떨까.
한국에 서양음악이 수입되고 나서 이제 겨우 백년. 아직 제대로 소화도
못하고 있는 동안에 급격히 기계음악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므로 우리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라디오나 레코드로 천하의 명곡을 감상함과
동시에 음악을 구성하는 음을 만드는 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서, 함께
노래하고, 함께 악기를 울려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호흡한다면,
설령 음악에 관한 이론이나 지식은 별로 없더라도 좀더 효과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1. 음악은 누구나 알 수 있다 @]
"나는 음악을 매우 좋아하지만 잘 알 수 없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음악을 들었을 때, 대체 무엇을 마음에 느끼어 이해할 수 있어야만 그
음악을 알았다는 것이 될까.
"나는 음치여서 음악은 모르겠다"고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음치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귀가 전혀, 혹은 거의 들리지 않는, 즉 무언가 병적인 장애때문에 음을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머지 않아 그런 불행한 사람들도 아마 어떤
방법으로든지 음을 느끼게 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연구가 완정될
지도 모르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장애자만은 이
문제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그러면 보통 음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음치란 이른바 '가락이 맞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즉 귀에는
이상이 없더라도 자기 스스로 무언가 노래를 부르려 하면 전혀 엉뚱한
가락이 되고 마는 사람이 있다. 또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정확한 음정을 잡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전문 음악가 중에도 의외로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귀의 감각은 대개 정확하다. 그래서 남의 '가락이
맞지 않은' 것은 잘 알면셔도 막상 자기가 노래할 차례가 되면 무의식 중에,
또는 의식하면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이 가락을 틀리게 부르고 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른바 음치는 발성의 올바른 훈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며,
음악을 듣고 감상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진짜 음치란 음의 높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리학자는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말하고 있다. 음악을
즐길 수 없을 정도의 선천적인 음치란 이 세상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치이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은 '음악이
나타내는 의미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또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혹은 또 '음악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라는 겸손일는지도 모른다. 또한 음악을 듣는
것은 따분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음치'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음악이 나타내는 의미'란 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음악을 듣고 그
속에서 무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구체적인 것을 기대하기 쉽다.
예컨대 이 음악은 어떤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든지, 어떤 풍경, 어떤
인물을 그리고 있다든지, 또는 좀더 추상적인 것으로, 예컨대 이 음악은
작곡자가 어떤 기분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연인과 헤어진 슬픔을 그린
것일까 혹은 애국의 열정을 그린 것일까 하는 식으로 무언가 우리의 경험에
연결되는 회화적, 문화적인 것으로 음악을 바꿔 놓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작곡자가 이것을 만들었을
때의 심경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열심히 상상해 보기도 하며, 또
제삼자의 그럴싸한 해설에서 그것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그런
구체적인 것을 포착할 수 없을 때에는 이것은 통 알 수 없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음악의 아름다움을 음악 이외의 것에서 구하려 하는 일이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음악 그 자체의 모습으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문학이나 회화와 비슷한 상상을 음악 속에서 찾아내려
한다거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도리어 음악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있다.
악곡은 노래나 연주에 의해 각양 각색의 음의 흐름으로써 그 아름다운을
말해 주고 있다. 음악의 의미란 이 이외의 것이 아니다. 갖가지 음이 여러
가지로 편성되거나 단속되기도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며 진행해 간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 아름다움을 마음에 느끼어 이해하는 일이다.
음악의 감상은 먼저 음악의 재료인 '음'을 듣는 데서 시작된다. 어떤
명인이나 거장이 연주하는 명곡이건, 서툰 아마추어의 기예이건, 결국은
우리의 청각을 자극하는 '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청각의 자극만으로는
아직 '음악'으로서 감상케 하는 작용이 되지 않느다. 그 자극이 듣는 사람이
지닌 감성, 사상, 경험, 교양, 취미, 거기에 다시 인생관, 윤리관, 종교심
등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정신 구조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감상이라는 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 정신 구조가 풍부하면 음악의 감상이라는 활동도
풍부하고 활발하게 된다. 그 정신 상태가 단순하고 소박하다면 감상의
작용도 단순해지고, 만약 이것이 현저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그
감상도 또한 거기에 따라 일그러진 것이 된다. 예컨대 어린이는 어린이
나름의 단순한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서, 또 어린이다운 솔직한 감성을
가지고 감상하며, 지식이나 인생 경험도 풍부하고 깊은 교양을 지닌 사람이
만약 음악을 감상하려 한다면 그 나름대로 깊고 풍부하게 감상하는 작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의미'란 어디까지나 음악 그 자체에 있으므로 음악 외에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듣는 사람의 정신 구조가 풍부함으로써 여러
가지 경험이나 연상이 그 음악적 '의미'와 결부되는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령 음악과 관계 없는 연상이라 할지라도 그 음악을 깊이 음미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어떤 교향곡을 듣고 있다고 하자. 듣고 있는 동안에 문득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고향의 숲이나 언덕이 마음에 떠올랐다고 하자.
음악의 진행과 함께 고향의 추억도 잇달아 차례차례 발전하여 즐거웠던
회상, 슬픈 날의 추억 등이 마음 속을 오갈 것이다. 원래 그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연상은 그 교향곡의 작곡자가 전혀 모르는 바이다.
그렇다고 해서 듣는 이의 마음에 자연히 솟아오른 정서를 부정해 버릴
필요는 없다. 이 경우 감상하는 사람의 기분은 작곡자의 의도에 관계없이 그
'연주된 음의 모습', 즉 음악적인 의미에 단단히 결부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새삼스레 '음의 모습'으로서 느껴진 것에 무언가 구체적인
연상을 결부시키려고 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아는' 것이지 남이 '알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슬픈 음악이라든가, 즐거운 곡이라든가 하는 해설 등에
의해서, 자기가 이제부터 들으려 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해설서에
무엇이라 적혀 있건, 또한 작곡자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즐거운가 슬픈가
하는 감정은 실제로 자기가 느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좀더
복잡한 갖가지 음악적인 의미에 이르러서는 정말 자기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
아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음악의 감상, 곧 음악을 알려면 될 수 있는 대로 주의 깊게 잘 들어보아야
한다. 만약 한번 듣고 미처 못 들은 곳이 많다고 생각하거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들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듣는 사람의 지식, 교양, 취미 등에
따라 각각 자기식으로 그 음악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비추어 볼 일이다.
음악은 처음부터 회화, 조각 혹은 문학처럼 사물이나 사건을 묘사하려
하는 예술이 아니다. 각자의 기분을 음의 미적인 구성에 의해 말하려 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하나의 같은 악곡이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방법에 대단한 개인차를 나타낸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일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의 흐름이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음악은 인간의 창작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 과정도 긴 역사를 통해 짜 올려져 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형식상의 약속이나 유형이 존재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에 관해 다소의 예비 지식을 갖고 있으면, 이것이 간접으로 감상의
작용을 돕는 것이다.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 생기는 지식욕이나 의문은
순수하게 감상하려 하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 언제나 저항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건 어떤 체험을 하는 경우에 조금이라도 사정을 알고 있으면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주의력이 잘 미쳐서 대상의 참된
모습을 잘 응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음악을 '안다'는 비결은 잘 들어보는 일에서
비롯된다. 만약 알 수 없다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지식욕이나 의문이 저항이
되고 있든가, 혹은 아무래도 좋은 일, 즉 음악과 관계가 없는 일을 그 음악
속에서 굳이 추구하기 때문이다. 들어보고 따분하면 따분한 대로, 시시하면
시시한 대로, 이것을 듣고 무엇인가를 느꼈다면 그 느낌을 다시 잘 음미해
본다. 그러면 거기에 여러 가지 의문도 생기고 지식도 구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을 펼쳐본다든가 남에게 물어본다든가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지식을 흡수하여 의문을 풀어 둘 일이다. 그리고 음악을 여러
면에서 깊이 연구하고, 동시에 자기의 취미를 다양하게 발휘해서 차츰 높고
좀더 풍부하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찾아 보자. 음악을 안다는 것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 그 자체의 모습을 아는 것이 음악의 기분을
안다는 일이다.
베토벤은 자신이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 말하고 있었던 "미사
솔렘니스"(장엄미사곡) 총보의 첫머리에,
"이것은 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라는 뜻의 글을 적은 바 있지만, 이는 음악을 안다는 일의 모든 것을
설명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 2. 음악 감사의 방법 @]
음악의 감상은 먼저 '듣는 일'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스스로
노래하는 일, 악기를 연주하는 일, 다시 뭔가 작곡해 보는 일 등 어느
것이나 즐거운 감상의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그것을 모두 실제로 해 보는
것이 음악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명곡이나 대작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고, 노래를 부르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춤을 추기도 하면서 음악을 여러 각도에서 아는 일, 이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학교 교육의 제도는 국민학교, 중학교의 과정에서 옛날에는 창가를 불렀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악기를 다루는 일' '감상' '창작' 등 각 종목이
나누어져 있음은 특별히 음악의 전문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고, 국민의
일반 교양을 높이기 위해서 음악에 대해 넓은 의미에서의 감상력을 육성하려
하는 목적에 의한 것이다.
또 음악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간접적인 지식 곧 음악의 역사나 작곡가의 진기 등, 음악의
주위를 둘러싼 지식도 감상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악곡에 관한
해설서와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지식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귀로
듣는 음악을 결코 좋게도 나쁘게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음악을 듣고
직접 얻은 감명을 더욱 확실하게 하고 인상을 깊게 남게 하는 일도 되며,
감상의 작용에 저항 요인이 되는 의문을 해명해 주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동기도 되며, 이것도 감상을 한층
즐겁게 하는 지식의 재료로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감상의 방법'으로서 이것을 '듣는 일'과 '연주하는 일'의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기로 하자.
@[(1) 듣는 일 @]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큰 도시에서는 한 달에 적어도 2--3개의 주요한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언제라도 어떤 음악회에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모두 사업이나 직장
일에 바빠서 좀처럼 연주회에 갈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음악회에 갈
시간이 없으면 레코드도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로도 음악을 들을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 있는 무수한 음악 중에서 뭐니뭔니
해도 실제의 생연주를 듣는 아름다움보다 나은 것은 없다. 육성이나 악기의
연주에서 직접 울려 오는 음악은 뭐니뭐니 해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음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노래하고 있는 사람, 연주하고 있는 사람과 듣는
사람간에 마음의 교류를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기계라도
연주의 '전부'를 전달하여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재도 생활이 불편한 고장에 가면 음악회는 좀처럼 없으며 이런
경우에는 라디오나 레코드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레코드는 또 다른
잇점도 있기 때문에 음악 감상에는 없어서 안 되는 기계로 되어 있다.
규모가 큰 명곡 등은 몇 번이고 같은 것을 되풀이하여 들음으로써 깊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며, 갖가지 연주의 비교를 연구하는 것도 실제
문제로서 레코드 이외에는 특별한 수단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라디오나 레코드 등의 기계 음악은 한편으로는 매우 편리한 것인 동시에
또 그 음질이 다소간에 진짜와 다르다는 결점도 있다. 아무리 하이파이나
스테레오라고 해도 진짜는 아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재생장치를 갖고
있더라도 진짜가 아니라면, 실연의 아름다움과는 훨씬 거리가 멀 것이며
일반적인 재생기나 라디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음악의
감각적인 미감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음악의 참된 모습' 즉
'음악적인 의미'를 불명확하게 한다.
그러면 이런 기계 음악, 진짜가 아닌 음악에 대해 일반인은 어떤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두 어느 정도 진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짜는
이런 것이다"라는 지식과 경험의 도움을 받아 진짜로 듣는 것과 똑같은
감상의 작용을 지닌, 이를테면 착각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음악은 지식만으로 감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라디오나
레코드, 사운드 테이프 등에 관한한 무의식 중에 지식과 경험이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즉 기계에 의한 불완전한 '음악적인 의미'를 진짜에 대한
지식으로 보충하여 이것을 완전에 가까운 것처럼 의식한다. 옛날 사람들과는
달리 현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이러한 감상의 작용도 필요하다.
실제의 연주를 자주 보고 듣는 사람은 레코드나 라디오를 들었을 때 전혀
무의식 중에 그 부족한 점을 경험과 지식으로 보충하고, 기계 때문에
일그러진 구분을 그 체험의 기억으로 수정하여 진짜와 똑같은 '음악적인
의미'를 그 속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습관이 어느 사이엔가 박혀버린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음악감상자가 지닌 뛰어난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진짜는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귀를 통한 감상과 동시에 음악에 대한 넓은 지식을 준비함으로써
더욱 그 감상이 세부에 걸쳐 두루 미치고 그 아름다움을 깊이 추구하게
된다. 그 직접적인 지식은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진짜의 연주를 많이
들을수록 풍부해진다.
@[ (2) 연주하는 일 @]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음악의 감상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귀로 듣기만 하는 경우와는 달라서 대뜸 천하의 명곡을 손댈
수는 없다. 더우기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기술을 배우고 향상해가야 한다.
옛날에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음악을 감상하려 할 때는 이따금 열리는
음악회에 가서 듣는 것과 자신이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또 가정이나 친구의
집에 모여 코러스나 합주를 즐기는 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먼저 기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중 오르골이나
자동피아노와 같은 기계 장치의 악기가 만들어져서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자기의 집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877년에 미국의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자 이 편리한 기계는 곧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윽고 원반형의 레코드가 개발되고 나서 처음으로 이것이
음악 감상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70년 동안에 레코드는
눈부시게 발달하여 오늘날에는 어떤 산골에 있더라도 레코드와 재생기만
있으면 전세계의 어떤 음악이라도 자기 집에서 듣지 못하는 것은 없을 만큼
감상 재료는 발달했다. 그 뿐만 아니라 라디오, 영화, BG음악 등 도시에도
24시간에 걸쳐 좋아하고 안하고에 상관없이 다양한 음악이 범람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계 문명이 세상을 구가하고 있는 한편으로는 스스로 노력하고
공부를 해서 악기를 연주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 아름다움을 차츰 잊어 가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실은 스스로 노래하고 악기를 연습하고 있는 동안에
악보를 읽는 힘도 향상되어 악곡의 해석력이 생기며 악기의 구조 및 여러
가지 주법과 그 성능 등에 대해 점차 자세히 알게 되어, 고도의 명곡을
레코드나 음악회에서 듣는 경우에도 이 지식과 경험은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 노래를 부른다든가, 악기를 연주한다든가, 합창이나 합주를 하기도
하는 것은 예술의 창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이고 미적이며 더우기
운동 감각을 만족시키는 즐거운 놀이이기도 해서 스포츠와 같은 요소도 갖고
있다.
그러나 또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거기에 따른 공부와 노력의
고통을 수반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올바른 음악 감상을 위한
공부는 어디까지나 본격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결코 어렵고 무리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시작할 때에 전문가 선생에게 배워 올바른 연습을
해야 한다. 초보자에게는 초보자를 위한 음악이 있으며, 조금 향상되면 또
거기에 따른 곡이 많이 있다. 자기의 수준에 맞추어 가면서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전문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라든지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
뿐이니까"라는 생각아래 적당한 방법으로 익혀서는 결국 좋은 감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으로는 언제까지고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낮은 의미의 '즐거움'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단순한
놀이와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음악 감상의 참된 기쁨은 역시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 3. '음'의 특성 @]
@[ (1) 고른음과 시끄런음 @]
약간 오래된 백과사전 등에서 '음악'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고른 음을
사용하여 회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등으로 적혀 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현대의 음악에 대한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첫째로 현대의 음악에서는 '고른 음'만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고른
음에 대해서 시끄런 음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현대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어떤 종류의 악기에는 시끄런 음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심벌의 음, 박자목, 작은북 등의 타악기에는 시끄런음이 많이 들어 있다.
다시 근대에 와서는 관악기나 현악기에까지 시끄런음을 첨가한 주법도
이용되고, 현대의 뮈지크 콩크레트(musique concrete)나 전자음악 같은 것에
이르면 무릇 귀로 느낄 수 있는 온갖 음은 고른 음이건 시끄런 음이건 모두
음악의 재료로서 무제한 사용하려 하는 사고방식으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미 '고른 음을 사용하여'라는 말은 음악의 정의에서 제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시 '고른 음', '시끄런 음'이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음악적 혹은
물리학적으로 이름붙여진 음의 성질의 종류를 말하는 것인데, 인간의 생활이
복잡해진 현재에서는 '시끄런 음'이라는 말의 의미도 차츰 바뀌어졌다.
한자로도 근년에는 '소음'이라고 적는 수가 많고, 이것은 '들으려 하는 목적
이외의 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A와 B와의 경우, A가 피아노의 연습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스테레오를 듣고 있는 B에게는 이것이 소음으며, 동시에 A에게도 B가 듣고
있는 스테레오는 소음이 되는 것이다. '고른음' '시끄런음'이라는 음질
자체의 의미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용되고 있다.
다음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라는 사고방식에도 많은
의문이 있다. 대체로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나, 아니면
구체적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목적인가 하는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갖가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므로 뒤의 항에서 말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현재의 사고방식에 따라
음악이란 '음을 재료로 해서 이것을 미적으로 구성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해
두자.
그러면 그 '음'이라는 것이 지닌 여러 가지 특성과 음악을 구성하기 위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인간의 성대, 피아노에 사용되고 있는 강철선,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현,
클라리넷의 리드와, 나팔의 마우드피스에서 진동하는 입술, 또 큰북의
몸통에 씌운 가죽과 종이나 방울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발음체에 의해 생기는
음향을 사용하여 작곡가는 아름다운 효과를 나타내도록 계획하고 조립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라고 할 만한 것이 악보이다.
이 설계도만으로는 아직 음악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연주가의 손에
넘어가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듣는 이의 심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옛날부터 작곡가로서 연주가를 겸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 일은
별도이다. 연주가는 그 설계도를 잘 살펴 작곡자의 계획을 될 수 있는 대로
충실히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때 연주가 각자의 취미(미적 가치의
판단)나 주장에 의해 자연히 연주의 개성이 듣는 이의 귀에는 각각 특색있는
음악으로 들리게 된다. 하나의 악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나타내는 효과가 매우 다른 점이 있음은 이 때문이다. 최초의 설계에서 음의
조립이 매우 아름답고 작곡자의 기분을 명확히 나타내어 연주자의 마음에
강하게 전해지도록 작곡된 것이 이름바 명곡이며, 또 이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여 이것을 명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여 듣는 이의 귀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 이른바 명연주라는 것이다.
@[ (2) 음의 높이 @]
음은 높고 낮은, 혹은 강하고 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높다는 것은
발음체의 진동수가 많은 경우이며, 그 진동수가 적어질수록 음은 낮아진다.
흔히 음의 고저를 일반적으로는 강약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높은
소리는 외친다' '낮은 소리는 속삭인다'라고 하는 것은 보통의 대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말인데, 적어도 음악의 말로는 이것을 '강한 소리', '약한
소리'라고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커다란 음이란 '강한 음' 을 말하며 작은
음이란 '약한 음'을 말한다. 강한 음과 약한 음은 발음체의 진폭의 대소,
진동시키는 힘의 대소에 의해서 생긴다.
따라서 여성이나 어린이의 목소리는 남자 성인의 목소리보다는 높은
것이며, 절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는 짤랑짤랑 하고 울리는 방울 소리보다
낮은 음이 된다. 또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한 마리의
모기가 우는 소리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음의 높이가 여러 가지로 변할 때 '가락'이 생긴다. '가락'을 음악의
말로는 선율이라 하며 영어로는 이것을 멜로디라고 한다. 가락은 여러 가지
느낌을 나타낸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락, 사랑스러운 가락, 고상한 가락,
야비한 가락, 우울한 가락, 원기 있는 가락 등과 같이 듣는 이의 귀로부터
곧 그 느낌이 전달된다. 또 고풍스런 가락이라든가 현대적인 가락이라는
느낌도 있으며 동양풍의 가락, 서양풍의 가락이라는 식으로 구별되는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가락'을 지닌 '음악'은 곧 유행된다. 또 곧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자주 듣고 있는 동안에 점점 좋아하게 되는 그런
가락은 이른바 명곡 속에 많이 있다.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그 가락의 느낌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그
가락만으로는 쉽게 그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고급 음악도 많이
있지만, 또 완성된 상태가 나쁘거나 시시한 노래로서 좀처럼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가요 같은 것을 들으면 너무 단순해서 곧
싫증이 나고 말 것이다. 많은 서양음악은 이 가락이 갖는 의미가 대단히
중요하며, 한국 음악에는 가락보다 그 문학적인 내용을 주로 하는 종류의
것이 많다. 따라서 가락을 만드는 법은 서양음악이 더 정교하고 한국음악은
좀더 대범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과 노래하는 방법은 한국음악이
더욱 미묘한 변화에 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3) 음의 강약 @]
음의 강약의 변화도 여러 가지 음악적 효과를 나타낸다.
리듬은 강약의 규칙 바른 변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리듬은 인간이 아직
음악이라는 정도의 것을 갖고 있지 않았던 먼 옛날부터 그 감정을 지배하는
중요한 하나의 재료가 되고 있다. 먼 옛날,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할 때, 손장단, 발장단 또는 판자조각 등을 두르려 그 리듬을
강조하였고 그 때의 기분을 나타내어 하나의 음악적 효과를 만들어냈음에
틀림없다. 의복이나 기물 등에 무늬를 새기는 데에도 거기에는 일정한 리듬,
이른바 기하학적 무늬라는 시각적 리듬을 가진 것이 많아, 인간의 생활은
모두 리듬으로 지배되고 있다. 생각하면 인간의 호흡도, 맥박도, 걷거나
뛰거나 하는 운동도 모두 리듬을 가지고 있다. 해조의 간만, 천체의 운행,
춘하추동의 한없이 규칙 바른 반복이 모두 리듬적이다. 거기서 태어나는
생활은 아침 저녁의 기도와 세 번의 식사에도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고 있다.
아마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도 가락보다는 먼저 리듬이었다는 생각 또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음악의 기술적인 진보와 함께 강약의 변화는 단지 리듬을 만들 뿐만
아니라 그 불규칙한 변화에 의해서 더욱 많은 의미를 음악에 부여하게
되었다. 또 감정의 격한 변화와 강렬한 의지의 느낌, 긴장이나 이완의 느낌
등 그러한 것들은 강약의 변화에 의해서 표현되는 일이 많이 있다. 약한
음에서 점점 강해져 가면 차츰 힘이 충실하고 흥분해 가는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작곡가는 강약의 미묘한 변화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인간의 섬세한
활동과 기분을 그리려 하는 것이다.
@[ (4) 음색 @]
음에는 또 음색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음빛깔'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색이라고 하면 시각상의 말이 되는데, 음에도 편의상 이 색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빛나는 풍부한 음색을 지닌 명인도 있는가 하면,
똑같은 악기인데도 '이가 들뜬 것 같은' 지독한 음색을 들려 주는 서툰
사람도 있다. 같은 높이, 같은 세기의 음이라도 피리 소리, 나팔 소리
오르간 소리는 모두 각각 음색이 다른다. 피아노 같은 기계적으로 정교한
악기도 명인과 아마추어와는 음색이 다르다고 할 정도이다. 사람의 목소리도
문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달콤한 목소리, 차가운 목소리, 부드러운
목소리, 둥근 목소리, 앙칼진 목소리, 노란 목소리나 하면서 각각 들은
느낌을 미각이나 촉각, 온각 또는 시각에서 받는 느낌으로 비유하여
형용하듯이 음색의 차이도 또한 여러 가지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음색의 차이는 무엇에 의해서 생기는 것일까. 물리학에서는 그
음에 포함되어 있는 배음의 성질과 양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음색이
달라진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배음의 관계뿐만 어떤 음에 다른 종류의
음, 특히 시끄런 음 등이 섞인 경우에 넓은 의미에서 음색의 변화가 되는
일도 있다. 이 자세한 이론은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어쨌든 음에는 여러
가지 음색이 있다. 작곡가는 이 많은 복잡한 음색을 미적요구의 입장에서
선택하기도 하고, 조합하기도 하고, 대조시키기도 하면서 그 음악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 (5) 화성 @]
2개 이상의 각각 다른 높이의 음을 동시에 울리면 '화성'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2개 이상의 음이 서로 다른 높이의 관계에 의해 여러 가지
효과가 생긴다. 그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화성법이라든가
화성학이라 하고 작곡가는 먼저 이것을 공부한다. 화성은 영어로
하모니(Harmony)라고 한다.
개개의 음이 몇개인가 동시에 울림으로써 화성이 되는데, 노래의 경우
코러스로서 두 사람 이상이 각각 다른 가락을 노래할 때, 즉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멜로디가 동시에 진행하면 어찌 될까. 이것은 개개의 음을 혼합한
경우보다 좀더 어려운 문제인데, 또 한없이 재미나는 효과도 생겨날 것이다.
이 연구는 벌써 천여년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것을
'대위법'이라고 하며, 이것도 작곡가의 중요한 공부의 하나가 되고 있다.
화성학도 대위법도 옛날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규칙에 묶여서 전해져
왔는데, 실은 그 규칙을 익힐 뿐만 아니라 많은 천재적인 작곡가들은 항상
그 새로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아름답게
울려퍼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왔다. 따라서 그 내용도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발전해 가기 마련이다. 대위법과 화성의 발달에 대해서는 다음의
'음악의 양식'이라는 곳에서 역사적인 경과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모든 종류의 음이 여러 가지 수법에 의해서 미적으로
조작되어 있는 예술이다. 성악도 기악도 각각 어느 때는 단순하게, 어느
때는 복잡하게 구성되어 많은 종류의 악곡을 만들어 간다.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직된 많은 음악의 종류에 관해 이하
간단한 해설을 해 가기로 한다.
@[ 4. 성악 @]
노래를 부르는 일은 음악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인 동시에 또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효과를 지닌 음악이다.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음악으로서
나타내는 것은 물론 피아노나 바이올린으로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인간이 노래 부른다고 하는 일에는 미치지 못한다.
노래는 원래 '시'와 '음악'이 혼연히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혹은 시의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해서 이야기하려 할 때, 그것에 '가락'이 붙어서 자연히
노래가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노래는 거의 모든
경우에 '말'을 갖고 있다. 때로는 극히 드물게 말이 없는 노래, 즉
'아-'라든가 '라-'라든가 하는 노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보통으로
생각하면 노래에는 가사가 있다. 말에는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 그 의미에
따라 '가락'이 생기고, 그 말이 갖는 발음의 아름다움까지 이것에 더해져
비로소 '노래'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음악으로서 이만큼 이것에 더해져
비로소 '노래'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음악으로서 이만큼 듣는 이에게 그
내용이 잘 이해되는 것은 달리 없다. 듣는 이의 아름다은 음악과 함께 그
시가 지닌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는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에 비하면 훨씬 의미가 뚜렷하고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섬세한 정서와 힘찬 박력, 혹은 관능적인
연상을 일으키는 음악은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보다 노래로 불려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또 아무래도 인간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악기를
사용한 음악에 비하면 스스로 한계가 있다. 음의 고저의 범위도 악기보다
좁고 강약의 넓이에도 한계가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 '가락'을 부르는
방법만 하더라도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로 굉장히 빠른 변화를 붙여 마구
연주하듯이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곡은 악기에 맡겨 두면 좋고,
노래는 역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음악으로서, 인간의 신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므로 듣는 이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주는
음악이며, 거기에 성악의 가장 아름다운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은 옛날부터 악기의 음악보다는 성악이 그
대부분이다. 특히 판소리나 민요는 그 내용에 풍부한 문학이 있으며, 듣는
이는 음악과 함께 그 문학이 이야기하는 정신을 맛보려고 한다. 따라서
노래의 음역을 너무 넓힐 필요도 없고 오히려 한 사람의 안정된 목소리로 그
문학의 정신을 깊이 파내려가 여기에 음악적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은 성악이 기악에 미치지 못하는 점, 즉 음역이라든가
강약의 범위를 될 수 있는 대로 넓혀서 기악과 마찬가지의 능률을 올리려고
하였다. 음의 고저를 넓히기 위해서는 여자 또는 어린이의 높은
소리에서부터 남자의 낮고 굵은 소리까지를 순서 있게 잘 늘어놓아 넓은
음역을 만들어냈다. 또 몇백명이라도 합창을 계획하여 매우 커다란 음을
내는 것도 생각해 냈다. 소프라노, 테너라고 하는 것은 목소리의 높이,
음색, 성격 등에 의해 인간의 소리를 구분한 명칭이다.
서양에서는 12, 13세기 경부터 여자의 목소리를 그 높이의 순으로 각각
소프라노, 알토, 남성을 테너, 베이스의 4개로 구분했는데, 다시 18, 19세기
경부터 소프라노 다음에 멧조 소프라노, 남성에는 테너 밑에 바리톤을
더해서 모두 6개의 종류로 나누고 있다. 이 호칭은 각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러면 소프라노라든가 테너라고 하는 것은 대체 어느 정도의 음역을 갖고
있으며, 어느 높이까지 나오는 사람을 바리톤이라고 하는가 하게 되면,
이것은 각각 가수의 능력에도 따르고 하나하나의 노래에 의해서도 다르므로,
거기에 엄격한 경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말한 6종류의 각
성부의 높이와 범위는 대체로 예보와 같이 된다.(그림생략)
물론 이 각 성부의 가수는 이 음의 범위 이외의 음은 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모짜르트가 "코시 판 투테"(여자는 모두 이런 것)라는 오페라를
작곡했을 때 마침 당시 유명한 소프라노와 알토의 양쪽 음역을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가수였기 때문에 모짜르트는 이 사람을
위해서 이 오페라 속에 무척 음역이 넓은, 도저히 다른 사람은 부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노래를 써넣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게 보는 하나의
예이지만, 악곡에 따라서는 이처럼 소프라노라든가 알토라든가 하는 구분을
때로는 지키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합창의 경우에는 대체로 예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목소리의 높이에
따라 각각 그루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소프라노라든가 알토라고 하는 것은 음의 높이의 구별인 동시에
그 음색이나 표현되는 성격이나 감정에도 또한 커다란 차이가 있다.
@[ (1) 목소리의 종류 @]
소프라노
여성의 가장 높은 소리를 맡고 있는 만큼 가장 밝고 화려하며 다른 성부
속에 들어가도 굉장히 두드러지게 들리기 때문에 합창의 경우에는 가장
중요한 멜로디를 부르는 것이 통례이다.
오페라의 배역으로서는 젊고 아름답고 정열적인 여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어 이것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해 가도록 만들어진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티"의 비올렛타, "리골렛토"의 질다와
"아이다"의 아이다, 그리고 또 풋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와 "나비
부인"의 나비 부인 등과 같은 역은 모두 소프라노이다.
또 소프라노는 때로 무척 화려하고 또한 장식적이며 더우기 기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수가 있다. 이것은 콜로라투라(Coloratura)라는 수법으로서,
옛날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발성 기술의 하나이다. 인간의 목소리가 마치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과 같은 악기가 연주하는 것처럼 다루어지고, 때로는
더욱 그 빛을 늘리기 위해 반주 악기 외에 플루트나 바이올린의 독주로
이것을 도와 한층 기교적으로 과장해서 들려 주도록 만들어진 곡도 있는데
이것을 '오블리가토'라고 한다. 목소리의 곡예 같은 곡도 만들어지고 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는 유명한 노래로서 영국의 헨리 비솝경이 쓴
"보라, 저 다정한 종달새를!"이 있으며, 또 오페라 중에서도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노래를 널리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예컨대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의 '광란의 장면', 혹은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중의 '종의 노래' 등은 모두 소프라노 콜로라투라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발휘한 것으로, 모두 플로트의 오블리가토가 달려 있다.
같은 소프라노에도 이와는 달리 내면적인 감정의 표현에 중점을 두는
창법, 즉 극적인 효과를 콜로라투라의 외면적, 기교적, 장식적인 것과는
전혀 정반대의 의미로서 화려함과 열정적인 강력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프라노에는 이 밖에 보이스 소프라노라고 하여 7, 8세의 사내아이가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옛날의 가톨릭 교회의 교회 음악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성가대에 여성을 넣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여인 금제가 되면 합창
속에 소프라노와 알토가 없어지고 말기 때문에 그 대신 변성기 전의
사내아이로 하여금 부르게 한 것이 시초로서, 현재도 그러한 성가대를 가진
교회가 있다. 옛날의 대작곡가 헨델이나 하이든, 슈베르트 등도 10세
무렵까지, 즉 그 변성기까지는 교회의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로 활약했었다는
것이 저마다의 전기에 적혀 있다. 물론 어린이였기 때문에 음역의 넓이나
음악적인 표현력의 크기, 박력 있는 강약 등에서는 부족했지만, 그 투명한
음색이나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발성은 또한 여자의 목소리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멧조 소프라노란 소프라노보다 조금 낮은 소리로서, 약간 폭이 넓은
성질을 갖고 있다.
알토
알토(영어로 콘트랄토라고 하는 것도 같다)는 여성의 낮은 소리를
담당하는 것으로서 그 음색이나 성격에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과 또
힘차고 깊은 열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오페라의 배역에서는 알토는 나이를 먹은 여성이라든가 모친과 같은 역,
혹은 주역인 소프라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소박한 하녀와 같은 역을 맡게
된다. 그런가 하면 세상의 쓴 맛, 단 맛을 본 중년 여자, 때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악역도 맡게 된다. 그런가 하면 또 극히 내성적이어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자, 그러나 안에
숨긴 강한 성격의 여자, 이런 여성의 역은 대개의 경우 알토가 맡는다.
실례를 보면 먼저 주역으로는 카르멘. 이것은 정열적인 집시의 젊은 여자로
악당 남자들과 겨루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고, 그러면서도 생각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필요없다고 하는 순진하고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 이런 역에는 힘찬 알토의 목소리가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카르멘은
멧조소프라노가 부르는 일도 있고, 또 극히 드물게는 소프라노가 연기하는
일도 전혀 없지는 않다. 또한 토마의 오페라 "미뇽"의 주인공으로 내성적인
소녀 미뇽. 이것은 주역이지만 또 한 사람의 화려한 성격의 필리네가
소프라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항해서 온순한 처녀 미뇽의 역은 알토 또는
멧조소프라노가 맡아서 유명한 '그대여 아는가 저 남쪽나라를'을 부른다.
그렇지만 알토나 멧조 소프라노는 주역이 아니라 조역을 맡는 수가 많다.
"나비 부인"의 가정부 스즈키, "라 트라비아타"의 가정부 안니나,
"아이다"에 나오는 이집트의 왕녀 암네리스 등은 조역이지만 그 노래와
연기는 극의 전체를 긴장시키기 위한 중요한 역할이어서 확고하고
드라마틱한 성격을 풍부하게 발휘해야 한다.
테너
독일식으로 말하면 테노르, 이탈리아어로는 테노레이며 남성의 가장 높은
소리이다. 따라서 그 음색은 가장 밝고 탄력이 있으며 때로는 영웅적이고
힘차며 남자의 감미로운과 약함을 지닌 미남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오페라에서는 역시 여주인공인 소프라노에 대해 상대 주역은 테너가 주로
많이 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카르멘"의 돈 호세, "나비
부인"의 핀커톤처럼 고운 사내의 역은 모두 테너이다. 그리고 어느 것이나
어딘가에 약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예컨대 "아이다"에
나오는 백전 연승의 강한 장군 라다메스조차도 연인에게 군사 기밀을
누설하여 일생을 망치는 사내이니까 역시 테너의 역이다.
테너에도 음색이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이탈리아어로 '테노레 디 그라치아'라는 것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아한
느낌을 주는 테너인데 이것은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데 알맞다. 또
이것과는 반대로 극적이며 강렬한 음색과 표정을 지닌 테노레 로부스토라는
것이 있으며, 내면적인 성격 표현을 장기로 하는 테노레 드라마티코라는
것도 있다. 또 경쾌하고 밝은 성질을 지닌 테노레 렛지에로, 희극에 적합한
테노레 부포라는 것 등이 있어서 각각 그 다른 특색으로 자기가 잘하는
노래의 범위를 정한다. 유럽과 미국, 특히 이탈리아 등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직업적인 가수가 많고, 특히 테너의 밝은 목소리는 그 용도도
많으므로, 같은 테너라고 해도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나 성격의 특징에 따라
각각 전문 가수가 있다. 한국에는 유감스럽게도 본격적인 테너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에 혼자서 여러 가지 성질의 것을 구분해
불러야 할 형편이다.
이탈리아의 민요 "산타 루치아"의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은 모두 남국의 강렬한 태양을 생각케 하듯 밝고 명랑하여 자유분방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이런 노래는 소프라노나 바리톤, 베이스 등이 불러서는
어울리는 느낌이 나지 않고 역시 테너에게 어울리는 노래이다.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테너의 노래도 역시 이탈리아의 것에 많은데
베르디의 "아이다"에서 라다메스 장군이 부르는 '청결한 아이다', 또
"라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도의 '축배의 노래', "리골렛토"에서는 공작이
부르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여자의 마음' 등은 모두 오페라의 유명한
아리아이다.
바리톤
바리톤은 테너보다 낮은 음역을 맡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질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폭넓고, 힘차고, 정력적이며 또 착실하고 안정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오페라의 역으로서는 노련한 성격, 강직한 인간, 사려 깊은
인간, 혹은 용기 있고 또 자신에 찬, 강한 성격을 표현하는 역을 맡는다.
바리톤의 성격을 오페라 속에 교묘하게 사용한 것은 모짜르트이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피가로가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며 세상 물정에 밝은
남자를 나타내고, "돈 지오반니"에서는 세계 제일의 바람둥이로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대담한 남자 돈 지오반니(돈환)를, 또
"마적"에서는 파파게노라는 익살스럽고 교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나타내는 바리톤의 성질을 안정된 느낌으로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유명한 '저녁별의 노래'를 부르는 볼프람은 사려
깊은 사나이,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의 제2막에서 늙은 부친에게
엄하면서도 자애에 넘치는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라는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게 한다.
또한 바리톤은 차분하고 내성적인 기분을 나타내는 데 알맞기 대문에
조용하고 로맨틱한 노래를 부르면 참으로 아름다운 효과가 있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가곡집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등의 많은
예술가곡은 바리톤의 안정된 깊은 맛이 있는 표현을 하기 때문에 참된
아름다움이 이해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베이스
인간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낮은 부분을 노래하는 것이 베이스이다.
합창의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합창의 토대가 되는 곳을 부르는 셈이므로 그
역할도 중요하다. 독창에서는 어둡고 침울하며 또 저력이 있는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낮은 목소리, 일상 생활에서 별로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역의
목소리는 오히려 초인간적인 느낌마저 갖게 한다. 또 오페라의 경우에는
국왕이라든가 영주와 같은 주권자의 위력을 지닌 성격, 또한 사려 분별이
있는 노인의 인물을 표현하거나 종교적인 신비감을 수반하는 하느님, 고승,
덕망 있는 은자 등은 반드시 베이스의 역이다. 또 낮고 어둔 목소리는
사람의 공포심을 자아내고 끔찍한 느낌마저 주는 것으로, 사악하고
밉살스러운 정신을 인격화한 악마나 마법사, 또 흉악한 등도 거의 예외없이
베이스가 부른다. 따라서 베이스가 주역을 부르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드문
예로서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있다. 1938년에 죽은
세계적 베이스 가수 샬리아핀은 이 오페라의 주역, 보리스 황제의 역을 가장
훌륭하게 했었다.
이것으로 6개의 '목소리의 역할'에 대해 각각의 음역, 성격 등을 말해
왔는데, 다음에 이들 목소리를 편성한 경우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 (2) 목소리의 편성 @]
노래는 혼자서만 불러도 아름답지만, 몇사람이 복수가 되어 합리적으로 그
목소리가 조직될 경우에는 중창이 되고 합창이 되어 풍부한 색채와 명암을
만들고, 혹은 중량감을 수반하여 독창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낳는 것이다.
몇사람이 함께 노래하면 보통으로는 이것을 '합창'이라고 하는데, 음악
용어로는 그것을 다시 제창, 중창, 합창의 세 종류로 나눈다. 각각 그
방법도 다르고 효과도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둘이서 목소리를 맞추어 같은 가락의 노래를 같은 높이의 조로 부른
경우를 '제창'이라고 한다. 같은 가락을 같은 높이로 부르면 3명이건,
5명이건, 백명이건, 2백명이건 역시 제창이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조화하도록 작곡된 각각 다른 가락을 함께 부르는 것을
'2중창'이라고 한다. 세 사람이 이처럼 다른 가락을 동시에 부르면 이것은
3중창이며, 4중창, 5중창도 각각 같은 방법으로 부르는 것이다.
합창(코러스)에 대해 중창을 앙상블(ensemble)이라고 한다.
중창은 각 성부를 한 사람씩, 즉 2중창인 경우에는 각각 다른 2개의
가락을 한 사람씩 부르기 때문에 그 한사람씩의 목소리의 색채나 성격을
각각 명확하게 구분해 들을 수 있다. 더구나 오페라의 경우에는 그 이야기에
ㄸ라 각 등장인물의 성격이 매우 뚜렷하므로 이것을 잘 짜맞추어 작곡하면
매우 재미나는 중창을 할 수 있다. 모짜르트 시절부터 오페라 속에는 특히
흥미 깊은 뛰어난 중창이 많이 있다. 예컨대 연인끼리 사이 좋게 서로
이야기하는 2중창도 있는가 하면 빚장이와 싸움을 하면서 부르는 2중창도
있으며, 거기에 중재가 들어가 3중창이 되기도 하고 4중창이 되기도 해서
인물이 늘어남에 따라 그 작곡상의 기교도 복잡해지고, 오페라적 구성도
점점 재미가 있게 된다.
위에 말한 '중창'의 경우에는 2중창이건 3중창이건 선율을 한 사람이 맡고
있지만 이것이 한 사람씩이 아니라 복수가 될 경우, 즉 A의 그루프가 제1
선율을, B의 그루프가 제 2 선율을 부르게 될 때 그 그루프가 2개이면 2부
합창, 3개이면 3부 합창이라고 하게 된다. 예컨대 4중창의 4개의 선율이
각각 두 사람 이상의 수로 불려질 때 이것은 4부 합창이 되고, 그 각
그루프의 수는 백명씩이 되거나 2백명씩이 되어도 역시 4부 합창이다.
합창은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여성 합창,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을 남성
합창이라고 하며, 이 양자가 뒤섞인 것을 혼성 합창이라고 한다. 가장 많이
행해지는 표준적인 경우에 대해서 보면 여성 합창은 제1소프라노,
제2소프라노 및 알토로 이루어진 3부 합창과 남성 합창은 제1테너, 제2테너,
바리톤, 베이스의 4부 합창. 혼성인 경우에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4부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합창은 각 성부가 집단이 되어 커다란 두께를 나타내고 마치 파이프
오르간 같은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종교음악과는 가장 깊은 관계가
있으며, 옛날부터 서양에는 합창용으로 만들어진 교회음악의 명곡이 많이
있다.
또 독창에는 거의 모든 경우에 피아노나 관현악의 반주가 붙어서 이것을
화성적으로 장식해 주지만 합창은 그 자체가 이미 화성을 가졌고 여러 가지
목소리의 질에 의한 색채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므로 종종 반주 없는
합창곡도 많이 있다. 무반주의 합창곡을 '아 카펠라(a capella)'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 교회에서 무반주 합창만이 행해진 데서 생긴 말로서
'교회풍으로'라는 뜻이다.
합창음악은 민요나 예술가곡에도 여러 가지 명곡이 있는데 직업음악가는
물론이고 음악애호가들의 그루프에서 불려지게 되었으며, 근대에 와서는
영화음악이나 재즈 그 밖에 포퓰러한 경음악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오페라 속에서도 예컨대 베르디의 "아이다" 제2막의 개선의 장면에서
불려지는 장대 화려한 대행진곡, 그리고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노래시합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기사와 숙녀의 대합창 등은 불후의
명작으로서 친숙해지고 있다.
또한 교향곡의 대작곡가 베토벤은 그 마지막 대작 "제9번 교향곡"에서
악기만으로는 그의 커다란 구실을 모두 말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독창,
중창, 합창을 포함하는 대성악곡을 끝악장에 덧붙였음은 교향곡의 역사상
가장 특기할 만한 업적이었다.
@[ 5. 성악곡의 종류 @]
@[ (1) 민요 @]
갖가지 노래 중에서 각기 국가나 민족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민요이다. 민요에는 그 민족 특유의 소박한 감정과 일상생활, 언어, 동작
등이 바탕이 되어, 여기에 시대적 색채가 더해진, 독특한 음악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지방마다 커다란 특색이 있다.
민요의 가락은 각 민족의 언어의 억양이나 일반적인 생활 감정의 특색과
관련이 있다. 민요의 리듬도 그 생활 감정의 특징과 특수한 노동 작업, 민족
무도 등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또 각 민족이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악기의 특징, 즉 어떤 특수한 음계에만 알맞은 피리라든가, 독특한
리듬을 나타내는 데 적절한 타악기류가 그 민요의 가락이나 리듬을
고정시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민요에는 그 민족의 생활과 감정이
가장 자유롭고 소박한 형태로 음악화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많은 민족이 각각 옛날부터 갖고 있던 취미나 생활이 음악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민요는 민족의 생활에서 직접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시의 내용은 그 생활
환경이나 풍경, 행사 등을 그린 것이 많이 있다. 또 종교적인 노래, 연애의
노래, 시정의 노래, 노동의 노래, 전쟁의 노래, 자장가, 전설이나 이야기의
노래, 무도의 노래, 도박의 노래, 사냥의 노래 등 어느 것이나 그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고 있다. 또 그 가사의 구절이 극단적으로 각 고장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민요의 가사는 대개는 단순하고
짧은 것이 많지만, 때로는 또 이야기노래풍의 장대한 시를 가진 것도 있다.
곡은 형식상으로는 간단한 것이 많은데 어느 것이나 짧은 가락을 몇번이고
반복하는 '유절가곡'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절가곡이란 예컨대 한국에서
보통 불리는 국민학교의 동요, 가곡, 교가 혹은 찬송가처럼 같은 각수와
같은 행수의 구를 1절, 2절, 3절로 늘어놓은 시를 각각 같은 가락으로
반복하는 것으로서, 한국의 "아리랑"이나 "바위 고개"는 모두 이
유절가곡이다.
본래의 민요는 오랜 시대부터 그 고장에서 누구인지도 모르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많아서, 그 작사자의 이름도 작곡자의 이름도 전해지고 있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그리 오랜 것이 아니고 뚜렷하게 알려진 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그 민족의 정신이나 감정과 일치하여 널리 불려지며, 또
외국인이 이것을 들어도 곧 그 고장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민요처럼 생각할
만큼 그 민족 특유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노래는 일반적으로 민요로써
다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아일랜드의 민요로서 한국에서도 많이 불려지고
있는 "한 떨기 장미꽃"과 같은 아름다운 노래는 18세기 말의 아일랜드의
시인 토머스 무어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미국의 포스터가 만든 "켄터키
옛집", "고향 사람들", "올드 블랙 조" 등도 미국 민요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민요는 또 시대나 환경과 함계 변하고 있다. 정말 원형 그대로의 민요는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장에서 노인들이 불러 전해진 것이라든가, 혹은
학문상의 필요로 특별한 방법을 강구하여 원형을 보존하려 했던 경우 외에는
별로 현대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또 이 선율만을 따서 음악회용의
독창곡이나 합창곡으로 편곡하고, 피아노 반주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다시
그 선율이나 리듬을 따서 이것을 관현악요으로 편곡하기도 하고 탱고나
재즈로 편곡하는 일도 있다. 가요곡의 가수가 오케스트라 반주로 감미롭게
부르는 민요는 민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지 모르지만 고장에 전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유감스런 일로 생각된다. 그것은 어떤 고장에서
태어나 자란 노래 치고는 너무 다른 느낌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그러한 방법으로 퍼지고 전해져 있기에 뛰어난 민요가 한 지방에 파묻히거나
멸망하지 않고 전세계에서 불려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민요는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예술적인 음악이나 대중적인 음악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리고 각기 시대에 따른 신선한 감각으로써 대중과 접촉하고 시대의 추이,
환경의 변천과 함께 변해 가는 민족의 마음 속에 길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요가 그 원형을 여러 가지로 바꿔 가는 것은 시대의 추세이며
이것을 막을 수는 없다. 또 그러기에 어느 시대에나 민요는 대중과 함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유행가 등이 만들어졌다가는 사라지고
유행했다가는 사라져 가는 모습이 요즈음처럼 템포가 빠른 세상에서는
참으로 어지러울 정도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이따금
민요조 붐 등이니 하여 민요를 소재로 한 유행가는 다른 많은 유행가를 훨씬
앞질러 히트하고 있다. 그리고 오래된 민요가 이따금 새로 단장을 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변해 가면 민요는 처음에 어떤 형태였을까 하는 것이
점점 알 수 없게 되어 버릴 염려가 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민요를 그대로 보존하려 하는 운동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혹은 세밀하게 채보하거나 녹음하기도 하여 이것을 수집 보존하는
일이 중요시되고 있다. 민요가 언제나 그 시대의 시대 감각이나 생활의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양을 바꾸어 가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근원을 잃지 않도록 잘 연구해서 보존하는 것도
더욱 중요한 일이다.
지금 전세계의 작곡계에서 '음악의 민족성'이라는 것이 크게 주장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음악 속에 민요나 민족무곡을 도입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은 아니고, 하나의 민족이 먼 옛날부터 갖고 있는 민요나 춤의
음악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것을 잘 연구하여, 그 민족 고유의 음악을
기반으로 해서 거기에 새롭고 자유로운 음악을 쌓아올려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민요의 충분한 연구와 보존이 필요한 동시에
작곡가에게 새로운 것을 창작하려 하는 의욕과 역량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가곡은 물론이고 그 교향곡이나
실내악곡의 주제가 되고 있는 선율(가락)은 민요에 뿌리 박은 것이 많으며,
민족무곡이나 민요는 고금의 대작곡가들에게 있어 예술의 고향과 같은
것이었다.
@[ (2) 예술가곡 @]
민요와는 달리 작곡가의 창작에 의해 태어난 가곡을 예술가곡이라고
부른다. 독일어의 '리트'에 해당하는 말이다. 리트(가곡)라고 하면 우리들은
곧 슈베르트를 생각케 된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 일컬어지며 불과
32년의 짧은 일생 동안에 주옥같이 아름다운 예술적인 가곡을 6백곡
이상이나 만들어 불후의 이름을 남긴 천재이다. 그 중에는 유명한
"들장미"나 "보리수"와 같은 민요풍의 것도 있으며, 괴테의 "마왕"이나
파우스트 중의 "실을 잣는 그레트헨"에 곡을 붙인 서사시풍의 극적인 곡도
있다. 긴 것도 짧은 것도 있지만, 어느 것이나 시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여
이를 노래의 가락과 피아노의 반주로 나타내고 있다. 그 시와 음악은 흔연히
하나가 되어 섬세한 정서와 힘찬 열정을 남김없이 표현한다.
가곡의 형식은 크게 나누어 '유절가곡'과 '통작가곡'의 두 종류가 된다.
유절가곡이란 앞의 '민요'의 항에서 말했듯이 운율이 갖춰진 몇 줄의 가사가
몇 절인가 있고 이것을 동일한 선율로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다. 즉, 가사는
각각 다르지만, 같은 선율을 반복해서 부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한번만 노래의 선율을 외어 버리면 그 다음은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2절, 3절 등, 얼마든지 가사가 있는 만큼 계속 부를 수 있으므로 비교적
부르기 쉬워서, 민요라든가 동요, 가곡, 교가 등은 이 형식에 의한 것이
많다.
그런데 예술가곡의 사고방식, 즉 시가 지닌 의미나 심정을 음악적으로
그려 가는 것이 가곡이라고 한다면 시가 처음부터 차츰 진행함에 따라 그
심정과 의미도 차츰 변해 가는 경우에, 유절가곡처럼 동일한 선율을
반복해서 부르면 종종 시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 선율로 불러야 한다는 일이
생긴다. 시의 의미가 바뀌면 그 선율과 반주도 이것을 잘 표현하도록 바꾸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하나의 선율을 반복하기만 하는
유절가곡으로는 불편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시의 내용에 따라 곡도
또한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통작가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낭만적이고 향기 높은 시는 한결같이 똑같은 선율의 반복이 없고, 언제나
시와 함께 노래의 선율도 바뀌어 가는 통작가곡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컨대 슈베르트의 리트 등도 그 시에 따라서 각각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순한 민요풍의 "들장미"나 "자장가"처럼 소바한 느낌을
노래한 것은 유절가곡으로 작곡되고 있지만, 또 "마왕" 등을 들으면 완전히
모양이 바뀌고 있다. 이것은 통작가곡의 형식이며, 괴테의 유명한 서사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가락은 하나도 없을 만큼 이야기의 내용과 일치하게
작곡되어 있다. 피아노의 전주 부분부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의 긴장된
정경을 그려내고 시시각각 변하는 내용을 항상 극적인 박력으로써 밀고
나아간다. 그러나 슈베르트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은 하나의 가곡 속에
유절가곡과 통작가곡의 두가지 요소를 부여하거나, 혹은 양쪽을 편성해서
작곡한 것도 많이 쓰고 있다. 어쨌든 시의 내용은 그 의미와 감정을 노래의
가락과 악기의 반주에 의해 잘 어울리게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 예술가곡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 (3) 가사의 문제 @]
예술가곡은 이처럼 시의 의미나 심정이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감상할 때 그 시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이 가곡의 맛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는 셈이다. 듣는 이에게 있어서뿐만 아니라 이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외국의
예술가곡을 감상하기 위해 가사의 번역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영어나 독일어, 그 밖의 외국어로 만들어진 노래의 말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부르는 일은 종래에도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외국의 노래를 감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예컨대 슈베르트가 괴테의 어떤 시를 읽고 감명을 받고
이것을 노래하기 위한 음악을 썼을 때에는 그 시가 지닌 아름답고 깊은
의미에 감동했음은 물론이지만, 또 그는 그 원 시가 지닌 발음의 아름다움과
그 말의 발음에 의해 드러나는 감정, 또한 발음에서 생기는 리듬의
흐름까지도 그 음악 전체 속에 예정했으리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것을 선율은 그대로 두고 말만을 한국어로 바꿔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한국어로 고치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그 의미를 잘
알아, 이 가곡을 맛보는 데는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슈베르트를
감동시킨 '말의 울림'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역어를 붙이는 방식에 따라서는 선율 속의 섬세한 어세의 강약이 변하거나
모음과 자음과의 관계, 예컨대 특히 자음이 강하게 울리는 독일어와 우리
말과는 그 느낌은 매우 달라진다. 요컨대 원어와 역어가 '문학적'으로는
상당히 가깝다고 할지라도 '음악적'으로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또 번역된 시가 한국어의 시로 잘 되어 있다면 모르거니와
혹시 서툴게 번역된 가사라도 붙여져 있다면 노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몹시 흥이 깨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가사를 번역한다는 일이 음악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가 하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음악을 잘 이해하는 사람에 의해 능란하게
만들어진 번역 가사가 붙은 곡 등은 때로는 원어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을 익숙하게 불러서 완전히 한국의 가곡처럼 되고
만 번역 가사는 충분히 그 원곡의 의미와 심정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번역
가사라면 노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잘 알 수 있고, 음악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손상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원곡을 들었을 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민요 등은 그 재미가 주로 각기 민족성을 강하게 드러낸 선율에 있으며,
또 가사의 의미나 감정을 그다지 엄밀하게 곡과 결부시킨 것도 적고
유절가곡이 많으므로 보통은 번역 가사로 부르는 일이 대부분이다. 또한
전혀 의미가 다른 가사를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들이 슈베르트를 비롯해서 외국의 예술가곡을 가능한한
완전하게 감상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컨대 슈베르트를 듣는
경우,가령 우리가 독일어를 많이 공부하여 그 시를 알고 또 독일인의
전통적인 생활 감정이나 그 환경을 충분히 알았다 하더라도 아직 독일의
예술가곡이 한국인인 우리에게 마음으로부터 이해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의 의미를 미리 번역해 달라든가, 혹은 스스로 공부해서 잘 읽어 본
다음에 '원어'로 능숙하게 불려지는 것을 듣고 감상해 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스스로 불러서 즐기는 데는 무리하게 서툰 독일어로
부르기보다는 조금 느낌은 달라도 되도록 번역가사를 택해 그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부르는 것이 좋겠다. 만약 어휘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양
말고 원어로 불러 그 원래의 말이 아름다운 음악과 어떻게 밀접하게
결부되고 잘 조화되어 울리는가 하는 것을 잘 음미해 보면 더욱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예술가곡(리트)에 관하여 여기서는 슈베르트를 예로 들었지만,
슈베르트에 이어지는 독일 낭만파의 작곡가들은 어느 사람이나 뛰어난
예술가곡을 많이 썼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볼프, 말러 등의 대가들은
모두들 독일의 민요에 뿌리 박은 아름다운 불후의 가곡을 남겼다.
@[ (4) 유행가 @]
유행가는 넓은 범위의 대중의 노래이다. 그리고 항상 그 유행은 변해서,
유행하는가 싶으면 곧 잊혀져 버리고, 잊었다고 생각한 노래가 어느
사이엔가 부활해서 유행하고 있다는 식으로 언제나 대중의 생활, 사회의
변천과 함께 변해 간다. 또 유행가는 각각 독특한 민족성, 국민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행가는 시대에 따른 민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유행가가 민요와 다른 점은 민요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오래 불러서
전해진 것임에 대해, 유행가는 항상 새로 만들어져 세태에 영합하고 종종
상업주의에 이용당하기 때문에 그 생명이 매우 짧다는 것이 그 특색이다.
그러나 물론 가사나 작곡도 뛰어난 것은 오래 불러져 마침내 민요처럼 되는
일도 종종 있다. 또 유행가는 대중의 노래이기 때문에 부르기 쉬운 곡,
이해하기 쉬운 가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대중의 교양이 향상되고 취미가
풍부해지면 거기에 따라 유행가도 뛰어난 좋은 노래가 널리 보급되어 긴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또 세태가 밝고 국민생활이 풍부하면 유행가도 이를
반영하고, 그 반대면 빈약하고 저질의 노래가 유행하는 것은 세계 각국의
예를 보더라도 명백한 일이다.
@[ (5) 종교음악 @]
서양음악에서 종교음악이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그리스도교 음악이다.
물론 오랜 시대부터 유대교의 음악, 혹은 마호멧교의 음악도 존재했고,
드물게는 그 음악의 요소를 따서 작곡가가 이것을 예술적인 음악 작품으로
만든 예도 있지만, 이른바 대작곡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그리스도교이며, 그 사람들이 실제의 요구에 따라 쓰거나 또는 후세에까지
각각 교회에서 불려질 만한 대작을 남기려 생각하여 작곡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고금의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걸작은 모두 그리스도교
음악으로서 전해지고 있는 작품이 많은 것이다. 그러한 명곡은 처음에는
교회에서 엄숙한 의식의 음악으로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에 가장 아름다운 작품만은 다른 명곡들과 함께 교회의
의식에 떠나 음악회나 레코드로 감상용 음악으로서 친해지고 있는 것도
적지않다.
불교에도 음악은 있다. 경전의 낭독(이른바 경)은 음악적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지만, 이것이 뛰어난 작곡가에 의해 연주되거나 작곡되기도 하는
습관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극히 좁은 형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데 그쳤으며, 예술적 음악으로 후세 사람들이
감상하기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찬불가라든가
불교음악이라든가 하는 창작이 드디어 행해지게 되었다.
어쨌듯 서양에서는, 특히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생활양식,
풍속이나 습관상으로도 음악이 담당하는 역할은 크고, 또 각 시대의
대표적인 대작곡자가 거의 모두 그 음악에 심혈을 기울여 뛰어난 대작을
썼으므로, 종교음악은 모든 서양음악 중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음악이 처음으로 예술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멀리 4세기,
밀라노의 사교 성 암브로지우스로 거슬러 올라가며, 더욱 이것이 조직적인
발전을 본 것은 6세기의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시대부터이다.
@[ #1 그레고리오 성가 @]
현재도 로마 정교에서 정식 성가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무반주, 단음의
것이며, 그 선율은 8종류의 고대 선법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1세 무렵에는 아직 하모니(화성)가 없었고, 지금 불려지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도 또한 이른바 단성성가(플레인 찬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음악에
조직적인 화성, 즉 다른 높이의 음을 2개 이상 짜맞추거나 2개 이상의 다른
선율을 합리적으로 짜맞추는 방법은 10세기 경에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 #2 코랄 @]
16세기 초에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대종교가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주창하고 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온 것으로 4부합창에 의한
단순한 성가이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는
'찬송가'가 이것이며 모두 유절가곡을 채용한 것이다. 루터는 음악에
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코랄과 시와 곡을
모두 많이 만들어 이것을 퍼뜨렸다.
@[ #3 미사곡 @]
미사는 가톨릭교의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서, 이 때 외에는 기도문이
라틴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초에는 이것이 음악 없이 읽었던 것인데,
후에는 여기에 가락이 붙어 노래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음악이 없는
경우를 '낮은 미사' 또는 '작은 미사'라고 하며, 음악으로 부르는 경우를
'높은 미사' 또는 '대미사'(미사 솔렘니스), 혹은 '노래미사'라고 했는데,
차츰 그 형식, 내용이 정비되어 15세기 경에는 일정한 형식을 가졌고,
일관된 합창음악으로서 작곡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가사는 모두 라틴어가
사용되고 이 음악을 '미사곡'이라고 한다.
미사곡은 통상의 경우, 다음의 5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키리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제2장 글로리아(영광의 찬가)
제3장 크레도(신앙선언)
제4장 상크투스(감사의 찬가) 및 베네딕투스(축복해 주소서)
제5장 야누스 데이(평화의 찬가)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그레고리오 성가풍의 단선율로 부르고 후에 무반주의
합창곡도 불려졌지만, 근세에 이르러 대관현악이나 오르간의 반주를 지닌
독주, 중창, 혼성합창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대규모의 연주가 되었다.
바하의 b단조 "대미사", 베토벤의 D단조 "장엄미사"(미사 솔렘니스)등은
현존하는 최대의 미사곡이며,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는 우미하고 화려한
곡의 정취로 유명하다. 또 앞에서 말했듯이 미사곡은 모두 라틴어의 가사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인데, 드물게 보이는 예외로서 독일어로 만들어진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가 있는데 이것은 명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4 레퀴엠(진혼곡)
레퀴엠은 '사자를 위한 미사'로서 그 기원은 미사와 거의 같은 무렵이다.
미사와 마찬가지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예외로서 브람스는
자기의 죽은 어머니를 위해 유명한 "독일 레퀴엠"(독일어)을 만들었다.
내용은 대체로 미사곡과 마찬가지여서,
제1장 레퀴엠(requiem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키리에(Kyrie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제2장 디에스 이레(Dies irae 진노의 날)
제3장 도미네 예수(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주여)
제4장 상크투스(Sanctus 거룩할 진저)
제5장 야누스 데이(Agnus dei 신의 어린양)
을 표준으로 하고 그 규모에 따라 좀더 많은 장을 넣는 수도 있다.
모짜르트의 마지막 대작인 d단조의 "레퀴엠"은 실로 12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밖에 포레, 베르디 등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대걸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 #5 오라토리오 @]
성서 속의 이야기를 독창, 중창, 합창으로 대규모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이야기는 모두 기복에 넘친 흥미 깊은 것들이다.
현재는 이것을 연주회 형식으로 부르게 되어 있지만 15, 16세기 경에는
오페라와 같은 연극 형식으로 상연한 예도 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을
'신극'이라 번역한 적도 있다. 또한 오라토리오는 성담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오라토리오를 많이 만든 것은 헨델이다. 그는
1720년에 쓴 "에스테를"를 비롯해서 "사울",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람",
"삼손", "마카바이오스의 주더스", "솔로몬"등의 걸작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구세주"(메시아)는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
"구세주"가 맨처음 연주되었을 때 유명한 '할렐루야 코러스'가 울려 퍼지자
때마침 임석해 있던 영국왕 조지 1세는 너무나 엄숙해서 무의식 중에
기립하여 들었다고 해서 그 이래 영국에서는 연주회에서 이것이 불려질 때
청중은 일제히 기립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하이든의 작품에도 "천지창조" 와 "사계"의 2대 걸작이 있으며, 둘 다 그
음악의 아름다움은 종교음악이라는 냄새나는 관념을 떠나 실로 즐겁게
감상되고 있다. 특히 그 "천지창조"가 처음 연주되었을 때, 당시는 적국의
관계에 있었던 나폴레옹 1세도 이것을 듣고 몹시 감격했다고 한다.
@[ #6 패션(수난곡) @]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를 말한 음악으로 형식은 대략
오라토리오와 마찬가지로 독창, 중창, 합창에 관현악이나 오르간을 첨가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단지 테너 독창자가 항상 이야기의 추이를 레치타티보로
설명해 가는 점이 특징이다.
바하의 작품에서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의 두 곡은 모두
대걸작이다.
오라토리오나 수난곡은 미사곡이나 레퀴엠과는 달리 의식의 음악은 아니고
좀더 일반 대상으로 충분히 흥미롭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가사도
라틴어가 아니라 각각 그 나라의 말을 사용하여, 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잘
알 수 있도록 불려진다.
@[ #7 칸타타 @]
이 말의 기원은 16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악기를 울리는 음악을
'소나타'라고 했음에 대해 노래하는 곡을 '칸타타'라고 했던 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넓다. 바하는 종교적인 독창곡이나
합창곡에다 관현악이나 실내악의 반주를 붙인 "교회 칸타타"와, 또
서정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가사를 가진 독창곡이나 합창곡의 "세속
칸타타"를 많이 썼다. 세속 칸타타란 대중적이고 알기 쉬운 내용의 것이기
때문에 각각 자국어 가사를 사용한다. 베토벤의 서정적인 노래
"아델라이데"도 하나의 칸타타로서 발표된 바 있지만 현대에서는 역시
이것도 예술가곡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칸타타'라는 말을 한국에서 교선곡이라 번역한 적도 있지만 이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역어이다.
@[ #8 모텟토 @]
13세기 경부터 시작된 교회용의 독창곡, 또는 합창곡으로서 경전, 기도문
등에서 그 가사를 따왔다. 형식은 자유로와 초기에는 반주 없는
합창곡뿐이었지만 후에 오르간이나 관현악의 반주를 붙인 것이 많아지고,
차츰 발달함에 따라 독창을 포함하는 몇개의 장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바하는 앞에서 말한 코랄을 이 속에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모텟토라고 하면 매우 차분한 노래처럼 생각되지만 상당히 즐거운
것도 있으며, 모짜르트의 유명한 "알렐루야"라는 아름다운 이탈리아풍의
소프라노 독창곡은 그의 모텟토 "엑술타테 유빌라테" 속의 한 장이다.
@[ (6) 오페라와 악극 @]
오페라의 기원을 물으면 아마 2천5백년 전의 그리스 비극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페라라는 명칭이 생기고 지금의 오페라와
가까운 형태가 된 것은 지금부터 3백50년 전즘, 즉 16세기 말에서 17세기를
걸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 비극의 부흥운동이 일어난 뒤의 일이다.
당시 플로렌스에서 페리라든가 캇치니라는 작곡가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후 로마와 베니스로 퍼졌으며, 마침내 몬테베르디가 나타나 완전히 오늘날의
오페라의 기초를 구축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보다 조금 늦게 쉬쯔라는 사람이, 또 프랑스에서는 라모,
륄리, 영국에서는 퍼셀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직접 간접으로 수입해서 각
나라들의 전설이나 독특한 숫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오페라란 음악과 연극과의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주로 음악을 하는데
주로 음악을 가지고 연기하는 연극일까? 그렇지 않으면 또 연극이 있는
음악일까? 이 의문은 19세기에 이르러 바그너가 나타나고 나서 한참 동안
논의된 것인데, 원래의 오페라란 연극을 가미한 음악의 연주 형태의
일종으로 발달해 왔다. 이것은 무대장치를 하고 의상을 입고 동작을 하면서
노래 부른다고 하는 매우 사치스러운 음악회와 같은 것이다. 노래는 독창,
중창, 합창의 모든 형식을 자유롭고 풍부하게 망라하고 있다. 반주로서는 그
시대의 가장 큰 편성을 지닌 관현악이 사용된다. 노래의 반주뿐만 아니라
관현악만으로 연주되는 서곡과 전주곡, 간주곡이나 발레의 음악, 행진곡
등도 많이 너온다. 또 많은 오페라에는 화려한 발레가 딸려 있다. 그리고
이들 음악에는 한 곡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그것은 극의 줄거리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되고 연주되어 간다. 이 얼마나 즐겁고 규모 큰 음악회인가.
오페라는 원래 이처럼 연극을 본다기 보다는 음악을 듣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이므로, 극의 대본은 별로 잘되어 있지 않더리도 훌륭한 음악으로
이것을 살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반대로 모처럼 좋은 대본을
가졌었으면서도 그 음악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히 묻혀 버린
작품도 있다. 즉 음악이 좋지 않으면 연극으로서 아무리 재미가 있더라도
오페라로서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오페라에서는 가수가 우수해야 하고 합창이나 관현악이 훌륭해야
하며 숙달된 지휘자와 연출자의 기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오페라는
'본다'고 하기 보다는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페라는 어쨌든 연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장치와 조명,
의상 등의 무대미술이나 특히 인물의 연기가 서툴러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역시 훌륭한 음악에 조화가 되지 않는 빈약한 장치나 이야기의 줄거리와
모순되는 서툰 연기로는 아무리 노래가 능란해도 별로 좋은 오페라라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페라는 음악의 가장 넓은 의미의 연주로서
참으로 어렵고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만큼 가수에게
있어서나 관현악단과 지휘자, 연출자에 있어서도 일하는 보람이 있으며,
이토록 화려한 음악은 달리 없다는 것이 된다.
보통의 오페라, 즉 정가극(오페라 세리아)을 그랜드 오페라라고도 하는데
대사는 없고 그 대신에 레치타티보(서창)를 사용한다. 이것은 단순한 대사에
조금 가락이 붙은 듯한 것으로서, 반주도 극히 간단한 화음만을 군데군데
붙인다. 레치타티보에 간단한 화음만을 곁들인 것(옛날에는 이 부분을
관현악이 쉬고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만으로 연주했음)을 레치타티보
세코(건조 서창 즉 단순한 서창)라고 하며, 관현악의 연주로 극적인
분위기를 그리면서 부르는 것을 레치타티보 아콤파니야토(반주 붙은
서창)라고 한다. 전자의 간단한 레치타티보는 근대의 오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독일의 오페라에서는 19세기 초까지 레치타티보를 사용하지 않고 보통의
대사로 된 회화를 삽입한 것도 있었다. 예컨데 모짜르트의 "마적",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버의 "사탄의 마수"등은 모두 가사가 들어 있다. 이것은
옛날에 독일에서 징시피일(노래연극) 이라는 것이 행해져 대사와 노래를
지닌 극이 대중에게 환영받았던 습관을 도입한 것으로서, 그 후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이 전성해짐에 따라 이 습관도 차츰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레치타티보는 아름다운 노래와 노래 사이를 연결하여 줄거리를 알기 쉽게
끌고 가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에 대해 가수가 그의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노래를 '아리아'(영창)라고 한다. 아리아가 되면 작곡자는 가수의
전능력을 발휘시킬 만한 아름답고 화려한 노래를 대담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의 아리아는 대체로 어려운 것이 많고, 그만큼 뛰어난 가수에
있어서는 노래할 보람이 있는 명곡이 많은 셈이다.
유명한 아리아가 끝나면 청중은 기뻐하며 그 가수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한 때의 가수도 그 박수에 응해 극의 진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앞에 나와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현악에 신호하여 처음부터 다시 한번 그 아리아를 불러서 들려주는 일조차
있었다. 극을 관람하는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되는 셈이지만,
이것도 오페라가 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음악회라고 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말해 주는 것이다.
중창도 오페라 속에서는 중요하며 유명한 2중창이나 3중창, 4중창 등의
아름다움과 재미는 오페라 애호가에겐 정말 더없이 즐거운 것인데, 어쨌든
두 사람 내지는 3명, 4명이 각각 다른 가사로 다른 선율을 따로따로 부르기
때문에 음악적인 재미는 있어도 가사를 전부를 알아듣지 못해 몹시 무리한
줄거리가 되는 수도 있다.
그 한 예를 들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렛토"의 제3막에 유명한
4중창(콰르텟)이 있다. 이것은 4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다른 입장에서
따로따로의 가사를 함께 부르고 있다고 하는, 음악적인 복잡한 재미가
베르디의 노련하고 교묘한 작곡 기교를 통해 표현된 것이다.
지금 그 무대를 구경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무대 오른쪽에
막달레나라는 여자의 집이 있고 방의 내부가 보이도록 되어 있다. 밤중에 그
방에는 불이 켜져 있다. 그곳에 만토바 공작이 서 있다. 여자를 좋아하는 이
귀족은 지금까지 남달리 귀엽게 여겨 사랑했던 질다라는 순진한 처녀를
버리고, 이번에는 이 막달레나를 열심히 유혹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자여,
그대의 상냥한 말을 한 마디만 해 주오."하고 테너 특유의 감미로움과
밝음을 십분 발휘해서 노래하기 시작한다. 유명한 '리골렛토의 4중창'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막달레나는 실은 어떤 살인청부업자의 누이동생인데 "그런 달콤한 말을
해도 그 수단에 넘어가지 않아요"하고 얼버무리면서 이 돈환 같은 공작을
속여 주려 하고 있다. 이것은 알토의 목소리로 매우 요염하지만, 감미로운
테너와 조화되어 명랑한 2중창이 된다.
동시에 무대의 왼쪽 어두운 옥외에서는 이 공작에게 버림받은
질다(소프라노)가 신세 한탄을 하며 슬퍼하고 있는 것을 그의 부친
리골렛토(바리톤)가 조용하게 위로하면서 그 분노의 마음에 복수를 맹세하는
2중창이 이에 얽히고, 동시에 진행하는 두 쌍의 2중창이 합류하면
청중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4중창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오페라의 정말 즐겁고 재미나는 곳이며 작곡자의 솜씨를 보여
주는 곳이지만, 거기에 더해 4명의 뛰어난 가수들의 아름다운 음악상의
기술이 모두 일체가 되어 오페라를 좋아하는 구경꾼을 감탄시키고야 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줄거리와 등장 인물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며, 만약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처음으로 이
4중창을 들은 사람에게는 네 사람이 따로따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도저히
구분해서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야기의 내용과 줄거리를 미리
읽고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뿐만 아니라 각 장면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면 알수록 무대를 보았을 때의 흥미는
깊어진다. 이 장면에서는 어떤 춤의 곡이 있다든가 다음에는 어떤 아름다운
노래가 불려지는가 하는 것, 즉 '핵심'과 같은 것을 알고 있으면 그만큼
재미 있는 셈이다. 또 가수나 그 밖의 출연자에 대해서도 예컨데 저
아리아를 이 가수는 어떤 식으로 부를까, 저 곳의 어려운 3중창을 이
사람들은 얼마나 능란하게 다룰까 하는 식으로 들으면 오페라는 음악회와
똑같은 점에서 흥미가 고조되게 되는 것이다.
오페라의 가사는 최근에는 각국이 모두 원어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곡자가 그것을 만들었을 때 사용했던 말대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약
20년 전에는 각각 사용하는 나라의 말로 번역해서 부르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인 가수로 상연하는 경우에는 현재도 대개는 한국어 가사를
사용한다. 이것은 얼마간이라도 청중이 알아듣기 쉽도록 하려는 것인데,
앞의 '예술가곡'의 곡에서도 말했듯이 노래는 음악적인 울림으로 보더라도
원래의 가사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원작과 다른 말로 부르는 것은
예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점과, 또 들어서 처음으로 그 노래의 의미를
안다기보다는 오페라는 처음부터 줄거리 정도는 안 다음에 이것을 듣는다는
식으로 되어 왔기 때문에 설령 개개의 말의 의미는 모르더라도 노래로서,
보다 아름답게 불려지는 데 중점을 두고 감상한다면 오히려 원어로 부르는
편이 좋다는 사고방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특히 미국처럼 유럽 각국에서 뛰어난 가수가 많이
모여드는 나라에서는 하나의 무대에서 각각 다른 나라의 가수가 자국어로
다른 가사를 동시에 부르는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무척 이상한
이야기인데, 원래 오페라의 청중은 단지 능란한 노래에 도취해서 즐거워하고
있으면 좋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각각 조화가 안 잡힌 가사로 부르는
것을 들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은 극보다는 음악 쪽에 중점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처럼 오페라는 너무 지나치게 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왔기 때문에 극 쪽은 언제나 소홀해지기 쉽다. 가령 어떤
오페라가 문학적 가치와 연극적인 구성력이나 정신적인 높이가
부족하더라도, 그 음악만 훌륭하게 작곡되어 연주되면 구경꾼은 까닭도 없이
즐거워하고 있다. 문학으로서는 전혀 깊은 맛이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음악때문에 오페라로서 성공한 것도 많다. 오페라는
종합예술로서는 너무 지나치게 음악회의 기분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시대와
함께 점점 감상자가 만족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근대의 오페라는 어느
것이나 연극적인 효과를 강화하도록 연구하게 되었다.
오페라가 정말로 음악과 연극의 종합예술이라면 좀더 문학적으로 높은 것,
연극으로서도 충분히 완성된 형태를 지닌 것이 음악과 함께 만들어지고,
이것이 무대예술의 효과와 일치해서 상연된다면 어떨까.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이 19세기 후반, 이른바 '오페라 개혁'의 커다란 이상을 내건
바그너이다. 바그너는 완전한 희곡을 소재로 해서 음악을 그 표현 수단으로
진행하는 참된 의미의 종합 예술이 이런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새로 '악극'을 창시하였다. 그가 이 커다란 일에 손을 댄 것은 꼭 지금부터
백년 전쯤의 일이었는데, 바그너도 처음부터 아극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리엔찌",
"로엥그린"등, 모두 종래와 같이 오페라로서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로엥그린"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동시에 사실상 최고의 '악극(무지크
드라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은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다.
바그너는 이 이상을 그의 작품 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냈을까. 먼저
그는 종래의 '서곡'(이것은 오페라 속의 화려한 선율을 접속해서 만든 것)을
없애고 그 대신에 전주곡(프렐류드)을 두기로 하였다. 이로써 그 음악은
단순한 개막의 기분을 떠들썩하게 하는 음악이 아니고, 희곡의 내용을
암시하여 청중의 마음을 어느 사이엔가 극의 진행에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그 전주곡의 첫 음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막은 아직 내려져
있다라도 이미 극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바그너는 라이트 모티브(지도동기) 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희곡 속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물건, 혹은 관념, 감정 등이 극의 줄거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을 하나하나 개성적인 짧은 가락으로 각각 나타낸다. 예컨데
지크프리트의 모티프라든가, 검의 모티프, 가락지의 모티프, 연애의 모티프,
죽음의 모티프라는 식으로 각각 정해진 많은 짧은 선율을 만들어 두고
그러한 것들이 극의 진행과 함께 여러 가지로 활동하거나 편성되기도 해서
음악적으로 발전하여, 음악으로 극을 구성해 가는 것이다.
또 바그너는 1막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희곡적 구성 아래 음악은 극의
발전을 중단시키는 일 없이 이끌어가도록 만들었다. 거기서 불려지는 노래만
하더라도 종래의 오페라처럼 레치타티보니 아리아니 하는 구별은 없어지고,
노래도 관현악도 똑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극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어
작용한다. 바그너는 이 수법을 '무한선율'(단락이 없는 음악)이라 부르고
있다. 종래의 오페라는 구경꾼이 기뻐할 것 같은 화려한 아리아와 중창이나
합창도, 극으로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용치 않는다. 또 오페라에는
거의 대부분이 발레 장면을 삽입했었는데 바그너는 거의 이것을 넣지
않는다.
그 대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향시라도 듣고 있는 것처럼 음악을 멋진
연극과 함께 진행해 갔다.
바그너는 종래의 오페라에 대해서 이것을 악극(무지크 드라마)이라고
하였다. 악극은 바그너의 극히 높은 예술의 이상과 음악에 대한 강한
신념에서 태어난 새롭게 창조된 형식의 무대예술이다. 이것은 종래의
오페라를 개량했다든가, 그 미비한 점을 보충했다든가 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고,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바그너
이후, 오페라와 악극이 양립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종래의 오페라에는 오페라로서의 즐거움이 있다. 그 모순도,
어리석음도, 오페라 애호가에게는 다시 없는 매력인 것이다. 그 입장에서
말하자면 악극은 아무래도 긴장의 연속으로서 답답하고 이론적이며, 때로는
지루한 것인지도 모른다. 악극에도 또한 발전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바그너가 오페라 개혁을 뜻하고 악극을 창시했다고 해서 장래의 것이 모두
악극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악극이 전세계의 근대
오페라에 헤아릴 수 없는 지대한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 6. 기악 @]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음악에 대해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기악이라고
한다.
악기는 인간의 목구멍과는 달리 그 구조가 시대와 함께 급속한 진보를
나타내기 때문에 성악에 비해 기악은 그 작곡에 있어서나 연주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양식으로 변천해왔다.
성악은 '말'을 갖고 있지만 기악에는 그것이 없다. 각 악기가 지닌 여러
가지 음색과 특유의 성능과 그 효과가 기악이 말하는 '말'이다. 많은 악기는
각각 그 특성을 발휘하여 작곡자가 말하려 하는 것과 연주자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을 멋진 웅변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기악은 인간의 말을 하지 않는
대신에 인성보다는 더욱 교묘한 서술을 하는 악기로서의 특성이 있으며, 또
인간의 목소리보다 훨씬 넓은 음역과 훨씬 큰 강약의 범위, 또 더욱
화려하고 장식적인 효과와 박력에 넘친 음악적 표현을 행할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그리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독주곡 등을 감상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악기의 갖가지 특성을 대충 알아두는 것도 헛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악기를 대별하여 현악기(현을 발음체로 하는 악기), 관악기(피리나
나팔류), 타악기(종이나 북 종류)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일상
많이 쓰이는 피아노나 오르간 등은 발음의 원리로 말하면 이 세 종류의 어느
하나에 속하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건반'을 갖고 있는 데서 이것들을
'유건 악기' 또는 '건반 악기'라고 통틀어 일컫고 있다. 건반이란
손가락으로 두드린다거나 누르거나 해서 그 악기를 울리는 장치이다.
피아노는 가장 보통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악기이므로 먼저 이 종류부터
설명하기로 하자.
@[ (1) 건반 악기 @]
@[ #1 피아노 @]
피아노는 현대의 독주 악기로서, 또 노래 등의 반주 악기로서 대표적인
것이며,또 가장 널리 일반에게 보급되어 있는 악기이다.
피아노에는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와 어프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의 두 가지 형이 있다. 어느 것이나 주철로 만든 커다란 포레임에
나무로 만든 공명판을 갖추고 200개 이상의 강철선을 팽팽하게 매어 각 줄을
펠트로 싼 나무 해머에 전달하기 위해서 옛날부터 그 복잡한 기구는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현대의 것은 극히 정교하게 되어있다. 이 기구를
액션이라고 한다.
해머로 쳐서 음을 낸 현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는 동안은 아직 그
여운을 울리고 있지만 손가락이 건반을 떠남과 동시에 댐퍼(Dampfer
울림멈춤)가 현을 눌러 그 여운을 멈추게 하는 장치로 되어 있다.
그러나 손가락을 떼어도 발로 댐퍼(dampfer) 페달을 밟고 있으면 모든
현에서 댐퍼가 떨어져 여운은 길게 울려 공명을 풍부하게 한다.
또 그 밖에 소프트 페달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밟고 치면 전체의 음이
부드럽게 울린다.
그랜드형의 피아노는 바로 위에서 보면 마치 커다란 새가 한쪽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독일어로는 그랜드 피아노를 특히 '플뤼겔
(날개)' 이라고 부르는 수가 있다. 그랜드 피아노에는 음악회에서 사용하는
콘서트 그랜드라고 하는 대형의 것, 중형의 세미 그랜드, 가정용 베이비
그랜드 등의 종류가 있다.
가정용으로는 주로 어프라이트형이 쓰이고 있음을 주지하는 바와 같은데,
장소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악기를 옮길 때도 좁은 문으로 들여오거나
내가는데 편리하다. 그렇지만 음량이나, 음색의 아름다운 점에서는 역시
그랜드 피아노에 미치지 못한다.
피아노는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으며 표준형의
것이라도 그 건반수는 88개, 대형의 것은 그 음역이 8옥타브에 달한다. 이
넓은 음역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구조가 개량된 결과 음악적인 표현능력이
크다는 점에서는 '악기의 왕자'라고 일컬어질 정도이며 옛날부터 많은
작곡자가 피아노를 위해 실로 많은 명곡의 걸작을 남기고 있다.
피아노는 1709년에 이탈리아인 크리스토포리(Bartolommeo Cristofori
1655--1731)가 발명했다고 하며 그 후 바하 시대의 독일의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3-1753)이 현을 치는 해머의 기구를 크게 개량했으며
시타인이라는 사람이 약음페달을 완성하여 드디어 오늘날의 악기와 같은
구조로 되었다.
그러나 바하에서 모짜르트 무렵까지는 그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본따 철제
프레임이 아니고 튼튼한 목제의 프레임을 사용하고 여기에 놋쇠선을 맨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강철선에 비하면 그 장력도 별로 세지 않았고
따라서 음량도 작았으며, 강약의 가려쓰기나 음색에 이르기까지 아직
하프시코드의 영역을 별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피아노가 대략 오늘날과 같은 것이 되고 이 악기의 발달과 함께 이
피아노에 대해 대단한 정열을 나타낸 것은 베토벤이었다. 그는 32곡의
불후의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하여 5개의 협주곡과 많은 변주곡과 소곡
그리고 피아노를 넣은 많은 실내악곡을 작곡하여 이 악기에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커다란 표현능력을 부여하였다. 또한 베토벤은 당시의 유럽에서
제일류의 명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 연주 기술면에서도 참으로 혁신적인
발달을 가져 왔다. 당시의 고전파의 대가들 중에서 하이든이나 모짜르트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정도의 화려한 색체적인 효과와 깊은 정서의 표현과
정열에 넘친 힘참 등을 이 악기 위에 나타낸 것이다. 베토벤이 활동하는
동안에 처음으로 철제 프레임과 강철선을 사용했고, 페달의 구조도 완비된
피아노가 나타나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베토벤에 이어 슈베르트, 베버, 멘델스존에서 슈만, 쇼팽, 리스트에
이르러 화려한 피아노음악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현대의 음악에 있어서도 피아노는 독주용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협주곡과 실내악곡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대중과
친해지고 있는 경음악이나 재즈와 같은 합주에서도 피아노는 없어서는
안되는 악기가 되고 있다. 그 밖에 학교나 가정 등에서도 혹은 교육에, 또는
오락에까지 피아노는 근년에 점점 많이 쓰이는 악기가 되었다.
음악을 널리, 또 깊이 감상하려 하는 사람은 피아노를 배워 두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스스로 뭔가 악기를 연습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피아노를 생각함이 마땅할 것이다. 피아노는 확실히 무겁고
부피가 커서 운반하거나 놓는 장소 등 상당히 성가신 악기이다. 특히 한국의
가옥에서는 이웃집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격도 가정용
악기로서는 상당히 비싸다.
그렇지만 피아노는 바이올린이나 피리 등과는 달리 반주악기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혼자서 즐길 수 있다. 독주에도 좋고, 또 다른 사람의
노래나 악기에 반주를 하는 악기가 되기도 한다. 피아노의 교칙본이나
악곡은 매우 쉬운 것부터 상당히 어려운 것까지 그 범위가 넓고, 그러한
악보는 우리 나라에서도 풍부하게 출판되고 있다.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칠
줄 알면 이번에는 뭔가 다른 악기를 손대어 보려고 생각했을 때, 매우
배우기 쉽다는 이점도 있다.
어린이에게 음악을 배우게 하는 데도 피아노는 가장 적당한 악기이다.
바이올린 등과는 달리 선율이 빗나가는 일이 없고, 아무리 초보자라도
이른바 이가 들뜬 것 같은 불쾌한 음이 나올 걱정도 없다. 또 피리나
나팔처럼 어린이에게 과도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먼저
건반을 눈으로 봄으로써 음계의 구조를 알 수가 잇고, 화음이나 리듬의
관념도 다른 악기보다는 빨리 머리에 넣을 수 있다. 더구나 극히
초보과정부터도 선생님과 연탄(1대의 피아노를 둘이서 치는 일)을 함으로써
단 한개의 악기로 합주의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악보를 빨리 읽는 것과
곡을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피아노의 연습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는 빠르면 3, 4세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가 있다. 배우기
시작해서 한 달쯤 지나면 벌써 간단한 소곡 등을 칠 수 있을 것이다.
@[ #2 클라비코드 @]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가
사용되고 있었다.
클라비코드는 16세기 초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까지 존재했던
모노코드(1현금)를 개량한 것으로서, 건반을 누르면 그 끝부분에
탄젠트(Tangent)라는 작은 금속 기둥이 있는데 이것이 밑에서 줄을 받쳐
올려 소리를 내게 된다. 피아노처럼 줄을 치는 것도 아니고 거문고 처럼
손톱으로 긁는 것도 아니다. 줄을 눌러서 음을 내기 때문에 그, 음량은 극히
작고 음색도 맑지 못하며 음역도 겨우 3, 4 옥타브에 불과하더. 그러나
당시는 이것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건반악기이고 화음과 겹음을 내는
것이 가능하며 또 건반의 누르는 법에 따라서는 다소의 강약도 붙일 수
있어서 상당히 널리 애용되었다. 바하는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보다 오히려 이
클라비코드를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데, 역시 이 악기는 그 음량이 너무
작아서 현대에 와서는 전혀 실용성이 없게 되고 말았다.
@[ #3 하프시코드 @]
하프시코드(영어), 클라브생(프랑스어), 쳄발로 또는 클라비쳄발로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등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부르고
있지만 어느 것이나 동일한 악기이다.
하프시코드의 외관은 현대의 그랜드 피아노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역사를 더듬어 보면 처음 11, 12세기 경,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수입된 각종 악기 중에 프살테리움(Psalterium) 이라는 금의 일종이 있었다.
이 프살테리움은 소형의 하프와 같은 모양을 한 목제의 프레임에 금속선,
혹은 거트(양장선) 줄을 몇개 맨 것으로서, 여기에 끈을 달아 어깨에서
가슴에 걸고 손끝이나 작은 채를 사용해서 탄주하였다. 이것이 차츰 대형이
되어 바닥 위에 세워서 치도록 한 것이 지금의 하프의 전신이며, 이것을
평평하게 놓고 2개의 채로 치도록 한 것을 옛날 독일에서는 하크브레트라
했으며 지금도 헝가리 지방에서 지방에서 집시의 합주단 등이 사용하는
쳄발로로 되었다. 또한 지금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쓰이는
찌터(Zither)라는 악기는 이것을 손끝으로 뚱겨서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평평하게 놓고 줄을 뚱기는 손톱을 건반으로 움직이는 구조로 한
것을 스피넷(Spinet)이라고 불렀다.
스피넷은 그 음색도 아름답고 소형이어서 휴대하기도 편리하며, 탁상에
놓고 치는 가정용 악기로서 발달하였으며, 16세기 경부터 노래의 반주
등에도 자주 쓰이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이것을 버지널(Virginal)이라고
부른다. 16세기 말에 엘리자베드 왕조의 전성기에 영국에서는 존 불, 윌리엄
버드 등의 궁정 작곡자가 종종 스피넷을 위해 아름다운 곡을 만들었다.
엘리자베드 여왕도 이 악기를 매우 애호하여 자신도 잘 연주했으므로, 버진
퀸이라 이 여왕의 이름을 따서 영국에서는 이것을 버지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스피넷은 그 후 차츰 개량해서 대형으로 되었고 그 음역이 4옥타브 이상의
것도 만들어졌다. 건반을 누름으로써 그 손톱(잭)으로 줄을 긁는 장치도
많이 개량되어, 16세기 말 경에는 하프시코드가 완성되게 되었다.
이 잭은 처음에는 새깃의 축으로 만들어졌지만 후에 가죽제의 것이나
금속제로 되어 풍부한 음량을 갖게 되었다.
하프시코드는 클라비코드처럼 줄을 눌러서 음을 내는 것과는 달리 줄을
손톱으로 긁어서 울리기 때문에 그 음색은 훨씬 명랑하고 화려하다. 더구나
그 음량은 풍부하여 다른 많은 악기 속에 섞여서 합주해도 잘 조화되고
어울린다. 이것이 완성되고 나서 클라비코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을
정도이다. 단지 가장 커다란 결점으로 여겨진 것은 그 초기의 것은 강약의
변화를 붙일 수 없었던 점에 있다. 건반을 아무리 세게 눌러도 줄을 긁는
손톱의 길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음량을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악곡을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 강약의 표정을 나타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후에는 건반을 한 단을 더 설치하여 음색과
음량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키거나, 여운을 조절하도록 개량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에서 보이듯이 발로 누르는 페달은 없었지만, 이것도 후에는 몇 개의
페달에 의해 음량이나 음색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하프시코드는
극히 정교한 악기로서 전유럽에 보급되었는데, 강약의 변화를 건반의
운동에서 직접 나타낼 수 없는 것이 유일한 결점으로 여겨지고 있던 차에
크리스토포리가 발명한 피아노가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피아노는
하프시코드보다 더욱 미완성품이라 연주상의 결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건반을 두드리는 힘의 강약이 직접 연주의 표정이 되어 나타나는 점이 큰
장점이었기 때문에 이 특색만으로도 많은 음악가에게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피아노의 항) 바와 같이 현을 펠트로 싼 목재의 해머로
두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강약의 표정을 뜻대로 낼 수 있다. 그래서 이
새로운 악기에 대해 이탈리아어로 클라비쳄발로 피아노 에 포르테(강약을
지닌 하프시코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피아노(약음)와 포르테(강음)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당시의 음악가들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했었는지 이 새로운 악기의 명칭으로도 상상할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바르게 말하면 피아노포르테이며 줄여서 피아노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약음'이라는 말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하프시코드도 모짜르트 이후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고전음악의 부흥과 함께 다시 이 악기는 일부의 진보적인 작곡자들이
애호하게 되었으며, 현대 스페인의 팔랴(Manuel de falla 1876-1946) 등은
이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을 썼다.
또한 최근 재즈 음악이나 일부 경음악에서도 하프시코드가 사용되어
현대와 동떨어진 우아한 음색 속에서 종종 가장 신선한 감각을 추구할 수가
있다.
어쨌든 하프시코드는 특수한 악기로서, 일반에게 널리 보급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코드를 통하여 하프시코드의 고전 악곡을 풍부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 #4 첼레스타 @]
첼레스타도 또한 건반악기의 일종으로서 외관은 작은 상자형 오르간과
비슷하다. 내부에 음의 수만큼 철편을 해머가 치는 것으로서, 마치 종과
같은 음색을 갖고 있으며 그 음은 맑고 부드럽고 또 사랑스럽게 울린다.
별로 음량이 크지는 않고 음역은 겨우 4옥타브, 현재의 가장 큰 것이라도
5옥타브에 불과하므로 독주악기로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관현악 속에서 종종
효과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유명한 발레음악 "호도까기
인형" 속에서 '별사탕의 춤'에 이 첼레스타를 교묘하게 살려 감미로운
효과를 내고 있는 예가 있다. 요즈음에는 경음악 속에도 이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첼레스타는 항상 악보에 적힌 음보다 1옥타브 높은 음이
울리게 되어 있다.
@[ #5 오르간 @]
오르간이라 하면 흔히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서 사용하는 오르간, 바르게
말하면 아메리컨 오르간(미국식 오르간) 또는 캐비넷 오르간(상자형
오르간)을 말하면, 이것은 발음체에 리드(혀)를 갖고 있기 ㄸ문에 리드
오르간이라고 한다.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큰 규모의 악기는 보통
가정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그 음색을 본따
작은 상자형으로 만든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구미에서는 단순히
오르간이라고 하면 모두 파이프 오르간을 가리킨다.
@[ 가) 파이프 오르간(pipe organ) @]
현대의 모든 악기 중에서 파이프 오르간만큼 큰 규모의 것은 없다. 높이,
폭이 각각 약 10미터, 무게는 수백톤에 달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이프 오르간의 구조를 알려면 크게 나누어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오르간의 발음체인 파이프(관)이다. 파이프는 긴 것은 10여미터나
되고, 작은 것은 겨우 몇 센티에 불과한데, 그 파이프의 수는 작은 것이라도
3백개에서 5백개, 대규모의 오르간은 1만개 이상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
악기의 용적은 대단해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는 데는 우선 교회라든가
공회당 등 어쨌든 큰 건축물이라야 한다.
파이프의 종류는 금속관과 목제관, 그리고 금속관에 리드를 지닌 작은 것
등으로 크게 분류한다. 또 근대의 정교한 오르간은 종, 방울, 징 따위의
타악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 많은 파이프에 바람을 보내어 울리는 장치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관을 울리는 공기의 양은 매우 커서, 옛날부터 여기에는 많은
설계자가 골치를 앓았다. 고대 이집트에서 극히 간단한 작은 악기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번갈아 입김을 불어넣어 울린 적도 있지만 후에는
풀무(Bellows 송풍기)가 발명되어 사람의 힘으로 이것을 눌렀다. 이 풀무는
손으로 누르는 것과 발로 누르는 것이 있다. 또 오래 전부터 수압장치로
바람을 보내는 방법도 고안되었다. 높은 곳에 장치한 탱크에 물을 채워 두고
이것을 조금씩 떨어뜨려 그 압력으로 풀무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 인력과
수압의 시대는 1천여년이나 계속되었는데, 19세기 초에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이것은 오르간의 송풍장치에 이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고 나서 오르간의
송풍 장치는 거의 모두 전기 모터에 의존하게 되었다.
세째로 중요한 것은 건반의 장치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건반은 큰 악기에
5단, 극히 작은 것이라도 2단을 갖추고, 각단에 6옥타브에 걸친 건반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양손의 손가락으로 누르는 건반이기 때문에 메뉴얼
키보드(Manual Keyboard 손건반, 줄여서 매뉴얼)라고 하며, 또 따로 양발을
사용하여 조작하는 페달 키보드(발로 밟는 건반)가 약 2옥타브 반 정도
설비되어 음악의 최저음부를 맡고 있다.
건반의 전면 상부 및 양쪽에는 많은 스톱이 있으며 음색의 가려쓰기나
8도의 음을 중복시켜 한층 그 연주 효과를 강화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근대의 오르간처럼 파이프가 수천개에 달하는 대규모의 오르간은 여러 가지
음색을 만드는 스톱이 많이 배열되어 있다.
또 강약의 표정을 붙이는 장치, 음을 떨게 하는 장치 등은 모두 이
건반이나 스톱을 갖춘 연주대에 붙어 있는데 이 연주대를
콘솔(console)이라고 한다.
네째로 이 콘솔에 붙인 각종 장치, 즉 음을 내는 건반은 음량이나 음색을
가려쓰는 스톱 등이 손이나 발의 조작에 의해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도록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이것은 송풍기와 함께
악기의 뒤쪽에 있는 한 방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콘솔에서 행해진 각종 조작을 곧 송풍기의 운전이나
수천개의 파이프에 전달하는 역할을 가진 중요한 부분이다. 근대의 대규모의
악기에서 많은 종류의 다양한 음을 사용하게 되자 스톱과 그 밖의 구조도
점점 복잡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교한 전기장치에 의해 이른바
전자두뇌처럼 지체없이 정확하게 작용한다.
오르간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자는 바하(1685--1750)이다. 바하는 일생
동안에 놀랄 만큼 많은 교회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교회용 오르간곡은
무수히 있지만, 연주회용 오르간 독주곡도 많이 썼다. 또 이 시대에는
라이켄(Jan Adams Reinken 1623-1722)이라든가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라든가 하는 오르간의 명인과 뛰어난 작곡가가 배출된
이를테면 오르간음악의 황금시대였다.
바하와 같은 시대의 대작곡가인 헨델은 대오르간과 관현악을 위해 많은
'오르간 협주곡'을 만들어 이 악기의 장대 화려한 연주 효과를 한껏
발휘하였다.
18세기도 중반이 지나자 관현악의 조직이 크게 발달했으므로 오르간음악은
바하 시대만큼의 융성을 계속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 멘델스존, 프랑크, 생상스 등은 각각 오르간을 위한 명곡을
남긴 바 있다. 생상스(1835--1921)는 그의 교향곡(c단조)에서 관현악 속에
오르간을 첨가하여 훌륭한 효과를 거둔 진기한 하나의 예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보통의 관현악에서는 오르간을 사용치 않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오르간 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아직 지금의 한국에서는 상당히
어렵다. 그것은 국내에 파이프 오르간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레코드로는 제법 많은 오르간 명곡이 있으며 라디오로도 드물게 방송되는
수가 있다. 그러한 것들은 오르간의 음색은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진짜
연주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든다. 실연을 들으면 그 최저 음역을 맡은
거대한 파이프가 울려 퍼질 때는 대가람도 흔들 정도의 풍부한 음량을 갖고
있어서, 장려한 음의 소용돌이 속에 온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현대의 진보된 스테레오 레코드나 라디오 수신기를
가지고서도 아직 이 실감을 얻기에는 이르지 못했다. 파이프 오르간을
설비하는 데는 막대한 돈을 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교회, 학교 등에서는
최근에 이것을 대신할 전기오르간을 갖추는 곳이 많아졌다.
@[ 나) 리드 오르간과 하모늄 @]
오르간 항의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나라에서 보통 '오르간'이라
부르는 것은 리드 오르간을 말한다. 5옥타브(60건)의 것이 가장 크고, 작은
것으로는 3옥타브(36건)의 베이비 오르간도 있다. 가장 높은 쪽의 음역이나
가장 낮은 음은 별로 풍부하지 않고 대체로 그 음량이 작아 음악회에서
사용할 수는 없지만, 보통의 가정이나 학교, 유치원 등에서 피아노의
대용으로 쓰이고 있다. 악기의 값이 비교적 싸고 운반하기 쉽다는 것이
특색이다.
이 리드 오르간의 음색은 맑고 부드러워 평화롭고 밝은 가정의 분위기에
어울리며 어린이도 쉽게 다룰 수 있어서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널리
보급되고 있다.
리드 오르간은 양발로 번갈아 밟는 페달에 의해 풀무를 움직여 공기실에
저장한 공기를 놋쇠제를 리드(혀)에 보내어 음을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근년에 이르러 페달을 밟는 대신에 소형 전동기를 사용하여 공기를 보내는
방식의 것이 만들어져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하모늄이라 하고 있는 것은 리드 오르간과 거의 같은 구조인데
주로 강철제의 리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리드를 진동시키는 공기의
움직이는 방향이 그 음색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외관은 대체로 리드
오르간과 마찬가지이며 음역도 거의 같다.
@[ 다) 전자건반악기 @]
위에서 말해 온 피아노, 오르간 등은 모두 19세기까지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지만, 20세기도 중반이 되면서 파이프오르간의 송풍 장치에
전력이 쓰인 것을 비롯해서 다른 건반악기의 발음체에도 전기를 응용하고,
다시 이것을 전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발명되어 여러 가지 건반악기가
태어났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발명된 하몬드 오르간이다.
그러나 제2차대전 후 세계 각국의 전자 공업은 비약적인 진보를 이룩하여
컴퓨터를 비롯한 많은 통신 공업을 완전히 일변시키고 말았다. 이것을
음악에 응용한 건반악기도 다양하게 나왔으며, 더우기 해마다 새로운 연구와
개량이 가해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하몬드 오르간도 지금은 이같은
전자악기의 하나가 되었다.
또 건반뿐만 아니라 전자의 응용에 의한 신디사이저(신디사이저 항
참조)의 연구도 해마다 새로와지고 음악의 표현 방법의 재료는 점점
풍부해졌다.
그러나 미래의 음악은 어떨지 몰라도 현재로서 이들 전자악기는 아직 발전
도상에 있다고 생각되며, 주로 포퓰러 음악이나 편리한 가정악기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이른바 클라식 음악의 무대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예컨대 파이프오르간의 설비가 없는 연주회장에서 꼭 오르간이 필요한
경우에 대용으로 사용되어 그나름의 효과를 발휘하는 수가 있다.
@[ (2) 현악기 @]
현을 진동을 울림통에 전달해서 이것을 울리게 하는 원리에 의한 악기는
동양, 서양이 모두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었다. 예컨대 비파, 호궁,
서양에서는 바이올린과 기타 등 그 종류도 많이 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현악기를 크게 나누면 바이올린의 일족처럼 활로 줄을 문질러서 음을
내는 찰현악기류와 기타처럼 손끝 또는 골무나 채를 사용하여 줄을 뚱겨서
음을 내는 발현악기 등 두 종류가 있다. 관현악에 사용하는 현악기는
하프(수금) 등을 제외하면 보통의 경우는 모두 찰현악기뿐이니까 먼저
이것에 대해 설명키로 하자.
@[ A. 찰현악기 @]
@[ #1 바이올린 @]
현악기 중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4개의 악기는 그 모양이나 구조는 대체로 같지만 크기에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음역을 분담할 뿐만 아니라 그 음색이나
표정의 성격도 각각 다르기 ㄸ문에 실내악, 관현악 등 합주의 경우에는 이
네가지 악기가 각각 여러 가지 성격을 맡아서 활약한다.
바이올린의 기원은 이미 2천년 전에 아라비아 지방에서 발생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오늘날과 같은 바이올린의 모양이나 크기, 그 구조등이
정해진 것은 지금부터 약 4백년 전 이탈리아에서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곳에 아마티(Andrea Amati 1520-80)라는
악기 제작가가 있었는데, 초대인 안드레아 아마티가 만든 바이올린은 현재의
것보다 조금 소형이었다고 한다. 단, 당시는 아직 이 악기의 크기가 일정치
않아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바이올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재질은 거의 일정해서 대체로 현재의 것과 같았던 모양이다.
바이올린은 대개 어느 것이나 다음과 같은 재료로 되어 있다.
1. 앞판: 낙엽송류
2. 뒤판: 단풍나무류
3. 목(네크): 위와 같음
4. 옆판(사이드 보드): 위와 같음
5. 머리(헤드): 위와 같음
6. 지판(핑거 보드): 흑단 또는 자단
7. 줄감개(너트): 위와 같음
8. 새들(테일): 위와 같음
여기에 4개의 양장선을 건너매고, 활에 맨 말꼬리털로 문질러서 음을
낸다. 양장선은 양의 장의 섬유를 말려 아교로 이긴 것으로서, 옛날에는
모든 바이올린이 이것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근년에 이르러 이를 대신하는
강철선을 만들게 되어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강선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
활의 모양이나 구조도 지금부터 2백년 전 쯤에 크게 개선한 바 있다. 활에
맨 흰 말털에는 수지를 발라서 켠다. 이들 재료는 바이올린의 일족에
해당하는 악기, 즉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도 모두 같다.
아마티 일가이며 명공으로 가장 유명한 니콜로 아마티의 제자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라는 명인이 나타나 매우 뛰어난 악기를 만들었는데, 그보다
조금 늦게 역시 아마티의 제자 중에서 지우젭페 구아르네리라는 명공이
나왔다. 이 세 사람의 바이올린 제작가를 '크레모나의 3거장'이라 부른다.
현대에도 세계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옛 명기는 이들 제조가, 또는 일족의
손으로 만든 것이 많고, 또 그 후 크레모나의 유파를 따라 프랑스, 독일,
보히미아 등지에서도 각각 우수한 악기의 제조가가 나왔다.
바이올린의 구조는 앞에서 말했듯이 매우 간단하지만 수백년 동안 무엇
하나 부족한 점은 없었고, 극히 부분적인 개량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손댄
것이 없다. 이렇게 단순하고 오히려 원시적인 구조의 악기일수록 사용자의
솜씨의 좋고 나쁨이 그 연주 효과를 완전히 좌우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바이올린은 매우 어려운 악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명인이 켜면 이
간소한 작은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적인 표현력은 참으로 무한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크고, 그 아름다운 음색으로 웅혼 장대한 감정을, 혹은 경쾌,
발랄한 기분을, 혹은 또 더없이 정치하고 미묘한 심정이나 애절한 감상 등
온갖 정서를 자유자재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올린보다 나은 악기는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옛날부터 "바이올린은 연주자의 몸의
일부분이다" 라고들 하거니와 이 악기의 특징을 잘 파악한 말이다.
바이올린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은 흔히 연주자의 왼손의 손끝이 어지럽게
활동하면서 정확히 현의 급소를 누르는 광경과 열정을 담아 음을 떨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만, 이 아름다운 음이 진짜로 나오는 곳은 오히려
오른손의 활놀림(보우잉)에 있다. 활의 끝쪽, 혹은 자기 손쪽, 또 매끄럽게
현 위를 달리거나 도약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음을 낸다. 모든 섬세한
표정과 화려한 색체의 변화는 모두 미묘한 활놀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더블스토핑이라 하여 2개의 현을 동시에 울림으로써 2중주와 같은 겹음의
효과도 나타내고, 하모닉스(또는 플래절렛)라고 해서 줄에 가볍게 손끝을
대어 켜면 피리처럼 높은 음도 낼 수가 있다.
또 현을 활로 켜지 않고 손끝으로 뚱기는 것을 피치카토라고 한다. 이
피치카토만으로 켜는 곡도 있을 정도이다. 활로 켜는 경우에도 활털로
문지르지 않고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두드려 음을 내는 것을 콜 레뇨(Col
Legno)라고 한다.
바이올린에는 또 약음기(소르디노, 또는 뮤트라고 부른다)를 사용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나무 또는 상아, 금속 등으로 만든 빗 모양의 작은
부분품으로 3개 혹은 2개의 발을 가졌는데, 이것을 줄받침 위에 고정시키고
켜는 것이다. 약음기는 단지 음을 약하게 한다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사용했을 때는 은근하고 수수한 일종의 아름다운 음색을 수반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성능은 바아올린뿐만 아니라 그 일족인 비올라, 첼로
등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특색이다.
바이올린은 초보자에게는 어려워서 좀처럼 다루기 힘든 악기이다. 첫째,
갓 시작한 단계에서는 쉽게 아름다운 음을 내지도 못해 이가 들뜬것
같다든가 톱날 같다느니 하고 험담을 듣는 것은 모두 이 악기이다. 더우기
만돌린이나 기타처럼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표시'도 없어서 좀처럼
음정을 바르게 잡을 수도 없다. 초보자는 가능하면 먼저 피아노나 오르간을
배운 다음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올린은 장소를
차지하지 않고 휴대에도 편리하며, 더우기 보통의 것이라면 비교적 싼
값으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으로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들 중에는
바이올린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면 처음부터 되도록 교사에게 배워 바른 주법을
습득하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곧 싫증이 나서 스스로 이것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략 기술을 익히게 되면 이 악기는 매우 즐거움을
줄 것이다. 다만 혼자서 켤 때 피아노의 반주가 없으면 매우 힘든 악기인데,
가정에서 친구들과 실내악이라도 할 수가 있다면 더욱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이올린의 명곡은 옛날부터 많이 있지만 오늘날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모두 17세기 이후의 것 뿐이다. 그것은 이 악기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연주법이 발달하여 갖가지 명곡을 낳은 것이 그
시대부터였기 때문이다.
17세기에는 이탈리아에 비탈리, 코렐리 등의 대가가 나타났다. 비탈리의
"샤콘느", 코렐리의 "라 폴리아"등은 모두 고풍스러운 변주곡 형식의 느린
무곡인데, 이것을 화려한 바이올린의 기교를 통해 아름답게 나타난 것이다.
독주 악기로서 화려한 무대를 장식함과 동시에 이 시대부터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등 합주음악의 중추를 차지하게 되었다. 실내악인
경우에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나누어 악곡 속에서의 역할을
분담하고 관현악에서는 각각 2개 그루프로 나누게 된다. 제1, 제2라고 해도
특별히 악기가 다른 것도 아니고 또 연주자의 솜씨나 지위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합주 음악 속에서 바아올린의 성능을 가장 유효하게 사용하기
위해 각기 일을 분담하므로, 이것은 오늘날의 관현악이나 실내악에도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
18세기가 되자 바이올린의 연주는 한층 그 수준을 높였으며 아직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번영하고 있었다. 베니스의 비발디라는 작곡가는
승직에 있으면서 '빨강머리 사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실로 150곡의 협주곡을 만들었다.
또 같은 이탈리아에서는 타르티니라는 명인도 나타나 비발디와 함께 이
시대의 바이올린 연주법을 진보시켰다고 한다. 타르티니가 꿈 속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는 "악마의 트릴"(떤음)이라는 곡은 굉장히 어려운 연주
기교와 눈부신 효과를 발휘한 소나타의 하나이다. 그 밖에 같은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는 나르디니, 푸냐니, 비옷티 등의 명인 대가가 잇따라 나타나
드디어 바이올린의 명인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19세기의 유럽은 낭만파 음악의 시대인 동시에 '명인형의 시대'이다.
잇따라 나타난 바이올린의 대연주가들은 자기의 뛰어난 연주 기술을 한껏
발휘하여, 바이올린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성능의 한계를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 때문에 당시의 작곡가들도 이들 바이올린의 거장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시킬 만한 아주 화려한 각가지 명곡을 작곡한 것이었다. 독일의
시포어, 다비드, 또 프랑스의 크로이찌, 바이요, 로드, 라퐁 등은 이 시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들이며 이들은 자기 스스로도 뛰어난 바이올린곡을
만들었는데, 또 이 명인을 목표로 해서 당시의 대작곡가가 바이올린의
명곡을 쓰기도 했다. 베토벤은 유명한 "크로이쩌 소나타"를 작곡하여
크로이쩌에게 바쳤다. 또한 멘델스존은 다비드가 켜도록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이탈리아의 파가니니(Paganini, Nicolo 1782-1840), 밧치니(Bazzini,
Antonio 1818-1897), 벨기에의 비외탕(Vieuxtemps, Henry 1820-1881),
스페인의 사라사데(Sarasate Pablo de 1844-1908), 폴란드의
비에냐프스키(Wieniawski, Henryk 1835-1880), 독일의 요아킴(Joachim,
Joseph 1831-1907), 러시아의 아우어(Auer, Leopold 1845-1903) 등은
19세기의 가장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독일의 대작곡가 브람스는 요아킴을 위하여 명곡 "D장조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었다. 또 스페인의 사라사테가 켜기 위해 프랑스의 작곡가
랄로가 "스페인 교향곡"을 쓴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라사테는
스스로도 스페인의 민족적인 작품을 바이올린곡으로 많이 만들고, 또 헝가리
집시의 민요를 도입하여 예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을 작곡하였다. 이곡을
들으면 참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화려함과 정서의 섬세함에 경탄하게
된다.
오늘날 바이올린의 명곡은 레코드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레코드는 그 녹음이나 재생의 기능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바이올린 등은
마치 진짜처럼 아름답게 녹음되어 있다. 또 근년에는 레코드에 들어있는
곡목의 수가 매우 풍부해졌으므로, 고전에서 현대까지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연주회에서도 별로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진기한 곡까지 모두
레코드에 의해 세계적인 명수들의 연주에 의해 들을 수 있다.
뒤에 실내악, 관현악의 항에서도 말하겠지만 바이올린은 많은
합주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로서 다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음악,
탱고 등의 음악에도 사용된다. 또 최근에는 생활에 '위안'을 주는 음악으로
'무드 음악'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무드 음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관현악 속의 바이올린군이다.
@[ #2 비올라 @]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한층 대형이고 바이올린의 조현보다 5도 낮게
맞추도록 되어 있다. 프랑스에선 이 악기를 알토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바이올린을 소프라노라고 하면 비올라는 이에 대해 알토의 역할을 한다는
데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브라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옛날 16세기 경에 이 종류의 여러가지 현악기를 총칭하여
비올(프랑스어), 비올라(이탈리아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소형의 것을
비올리노(작은 비올라), 중형이며 그리고 바이올린처럼 팔로 떠받치고 켜는
것을 비올라 다 브랏치오(팔의 비올라), 또 더욱 대형으로 양 다리에 끼우고
켜는 것을 비올라 다 감바(다리의 비올라)라고 불렀다. 이 중 비올리노는
바이올린의 이탈리아어이다. 또 비올라 다 브랏치오를 줄려서 단지
비올라라고 하며, 비올라 다 감바는 더욱 개량되어서 오늘날의 첼로가
되었다. 물론 명칭과 함께 그 모양도 당시의 것과는 얼마간 달라 모두
바이올린과 같은 외형이 되고, 현의 수도 모두 4개로 통일되었다.
독일어로 비올라를 브라체라고 하는 것은 이 비올라 다 브랏치오의
브랏치오에서 바뀐 명칭이다.
비올라의 음색은 그 낮은 쪽은 투명하고 힘차고 또 우아한 느낌이며 높은
쪽의 음은 얼마간 은근한 맛이 있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악기는
바이올린처럼 화려하다든가 빛난다든가 하는 느낌은 적고 다른 악기에 비해
두드러진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옛날부터 독주악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관현악이나 실내악과 같은 합주 음악 속에서 그 중간 정도의 음역을
충실하게 하는 악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짜르트는 이 비올라의 소박하고 우아한 특성을 좋아하여 실내악 속에서
흔히 그것을 살려 사용했고, 또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2중주곡과 협주곡을
썼다. 또 독일의 낭만파 음악의 거장 슈만의 만년의 작품에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로 "옛이야기의 그림책"이라는 아름다운 모음곡이 있다.
비올라는 독주악기로서는 별로 화려하지 않고 경음악에서는 전혀 사용치
않는 악기이며 또 악기도 좀처럼 구하기 힘들어서, 한국의 보통 가정에서는
별로 이것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비올라는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조용한 음의 악기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혼자 즐기기에도 좋은 악기라고
생각한다.
비올라의 악보는 가온음자리표(알토표) 를 사용한다. 이것은 보통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고 또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 등에도 사용치 않는
낯선 표이므로, 이 점도 비올라가 아마추어들 사이에서는 별로 보급되지
않은 악기가 되고 있는 하나의 이유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익히려고 하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므로 조금씩이나마 음악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가온음자리표를 대강 읽을 수 있도록 해 두는 편이 편리할
것이다.
비올라는 지금 말했듯이 보통 음역의 곳에서는 가온음자리표를
사용하지만, 악곡에 따라서 높은 음역의 부분은 바이올린과 같은
높은음자리표를 사용하는 수도 있다.
다음에 참고삼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각 현악기의
조현을 비교한 악보(다음 페이지)를 실어 두기로 한다.
그림생략
(주) A는 각 악기에 고유한 기호에 의한 것이며, B는 이 4종류의
상호관계를 알기 쉽게 나타낸 것이다.
@[ #3 첼로 @]
첼로는 본래의 이름을 비올론 첼로라고 하는데 이것은 너무 길어서,
줄여서 첼로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첼', 프랑스어로 '셀'이라는 말도 쓴다.
첼로는 비올라보다 다시 8도(1옥타브)만큼 낮게 조현한다. 따라서 그
모양은 크고, 다른 악기처럼 팔로 떠받쳐 턱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켤 수는
없기 때문에 연주자는 의자에 걸터앉아 양 다리의 무릎에 끼우고 켠다. 그
때 악기를 단단히 바닥 위에 안정시키기 위해 짧은 막대가 달려 있다.
이것은 악기의 끝부분에 있기 때문에 엔드 핀이라고 한다.
그러나 17세기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첼로의 기교가 아직 별로 발전하지
않았던 무렵의 회화 등을 보면 이 엔드 핀이 없고, 양 무릎으로 악기를
공중에 떠받치거나 또는 조그만 받침대를 발 밑에 놓고 거기에 악기를
세운다든가 해서 켜고 있는 것을 보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근대의 어려운
악곡을 연주하려면 그런 식으로 떠받쳐서는 매우 곤란하므로 오늘날과 같은
엔드 핀을 사용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18세기까지는 이 악기의 구조가 오늘날처럼 완전하지는 않았고, 앞의
비올라의 항에서 말한 것과 같은 비올라 다 감바, 혹은 바리톤이라 불렀던
악기가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바리톤이란 하이든 시절(18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는데 어느 것이나 6현, 혹은 그 이상의 수의 현을 가졌고 각 현의
간격도 4도 음정이며, 더우기 지판에는 모두 오늘날의 기타나 만돌린처럼
지판이 구분되어 있다. 현대의 악기에 비해서 아마도 그 주법은 얼마간
쉬웠으리라고 여겨지지만, 표정이 모자라고 음색도 또한 첼로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당시는 이 악기에 대해 별로 뛰어난 연주가도 많지
않았고, 작곡가도 또한 그 독주악기로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일이
적었으므로, 합주 때 더블베이스와 함께 전체의 낮은 음만을 맡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말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무렵까지 계속되었는데,
당시는 이미 이 악기도 상당히 개량되고 뛰어난 연주가도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모짜르트 등은 뛰어난 작곡가였기 때문에 관현악이나 실내악
속에서도 첼로의 성능을 살리고 더블베이스가 당담했던 것을 분리시켜
독자적으로 활약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든의 유명한 "첼로
협주곡" 등은 실은 앞에서 말한 비올라 다 감바, 또는 바리톤을 위하여 만든
작품일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첼로 음악은 19세기 초에 베토벤에 의하여 획기적인 약진을 이룩하였다.
베토벤 자신이 이 악기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롬베르크, 뒤포르, 링케 등의 명수가 나타난 것도 이 시대의 첼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베토벤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해 5개의 소나타와 3개의 변주곡을
작곡했으며 그 밖에 많은 실내악곡과 관현악곡에서도 첼로에 중요한 역할을
주었다.
첼로의 음색은 힘차고 폭넓고 그 저음부는 은근하면서도 호탕하며,
고음부는 빛나고 바이올린처럼 풍부한 표정을 갖고 있다. 그 음역도 널리
사용되고, 악보상으로도 F음자리표, 가온음자리표 (비올라의 알토표보다
다시 3도 낮은 테너 기호), 좀더 높은 음역을 사용할 때는 종종 G음자리표도
쓰인다. 화려한 독주악기로서, 또 관현악이나 실내악에서는 중요한 악기가
되고 있다.
@[ #4 더블베이스 @]
현악기 중에서 가장 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더블베이스(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이다. 그 길이는 대략 어른의 키 정도가 되는데, 이것은
일어서서 켜든가 혹은 특별히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켤 때도 있다.
이 악기는 합주, 특히 관현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저음 악기인데 독주
악기로 사용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이 악기의 음색 때문이다.
더블베이스의 음은 극히 둔중한 느낌을 가졌고, 어느 음이 울리고 있는지
확실하게 구분해서 들을 수 없을 만큼 낮은 음을 낸다.
보통은 4현 악기로서, 그 가장 낮은 현은 E음으로 조현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좀더 낮은 음을 요구하게 되어 지금은 5현의 더블베이스도 있다.
이것은 보통으로 조현된 4현 밑에 또 하나 가장 낮은 C음에 맞춘 현이 1개
더 추가되었다. 이 악기는 그 모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현악기처럼 5도
음정의 조현으로는 연주가 어려우므로 4도 간격으로 조현하기로 되어 있다.
또 악보에 적힌 음보다도 실제는 1옥타브(8도) 낮은음이 울리도록 옛날부터
약속되어 있다.
더블베이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독주 악기로서는 별로 쓰이지 않지만 17,
18세기 경의 실내악곡에서 극히 드문 예를 볼 수 있다. 또 19세기 초에
슈베르트가 "숭어"라는 제명으로 알려진 5중주곡에 더블베이스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진기한 하나의 예가
되고 있다. 슈베르트의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의 5중주이다. 이 진기한 작품에 대해서 당시 이탈리아 태생으로
이 악기의 명수였던 드라고넷티라는 사람이 슈베르트의 뛰어난 작곡법, 특히
더블베이스의 사용법에 관해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왜 더블베이스는 실내악에 사용되지 않았던 것일까. 후에 '실내악'의
항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실내악을 듣는 즐거움은 그 하나하나의 악기의
작용을 각각 명확하게 구분해서 들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악기는 '더블베이스'라는 이름 그대로 첼로의 낮은 음을 강화하고 그 음색을
한층 풍부케 하기 위해 이것과 겹쳐서 사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독립성을 갖지 않은 악기였다. 따라서 각 악기의 독립성을
즐기는 실내악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 연주법이
진보함에 따라 이 악기도 첼로와 떨어져 독립해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더블베이스도 극히 드물게 실내악 속에 쓰이게 되었으며 슈베르트도 이것을
시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악기의 음색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너무나 낮고 더우기 둔중한 데다가 그 모양이 매우 커서
좀처럼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이기 때문에 바이올린처럼 화려하고 또 경쾌한
표정을 가질 수가 없다. 현재도 이 악기는 실내악에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관현악은 물론 경음악, 재즈, 탱고 등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의
낮은 음 악기로서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B. 발현악기 @]
@[ #1 하프 @]
오늘날 하프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대형의 수금을 말한다. 영어로
하프, 이탈리아어로는 아르파, 프랑스어로 아르프, 독일어로는 하르페라고
한다.
하프는 역사상 가장 오래 전부터 있었던 악기의 하나로서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조각과 벽화에도 남아 있다. 그 모양이나 크기도 여러 가지이며
각각 다른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었는데, 대개 현재의 것보다 소형으로
휴대할 수 있는 것이 많고 극히 간단한 구조의 것이다.
근대의 하프는 우아한 형상과 장식이 있으며 대개는 화려하게 금빛으로
칠해져 있다. 하프는 보통 47개의 양장선(거트)과 금속선을 매었으며 테의
일부는 커다란 울림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악기 중에서 이
하프 만큼 귀족적이고 화려한 외관을 지닌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이 악기는 바닥 위에 세우고 한 쪽에는 이것을 안는 것처럼 해서 양손의
손끝으로 줄을 뚱겨 연주한다. 하프는 밑 부분에 7개의 페달이 있으며, 이
장치에 의해서 여러 가지 조로 바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정교한 구조를 갖게 된 것은 극히 근대의 일로서, 1801년에 프랑스의
에라르에 의해 페달이 발명한 이후의 일이다. 그 때까지는 손으로 조를
바꾸는 (갈고랑이로 조작한다)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가정의
음악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아일리시 하프(아일랜드식 하프)는 이
손갈고랑이를 장치한 단순한 것이다.
하프의 음색은 약간 피아노를 닮았지만 더욱 부드럽고 우아하며 조용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이 악기는 관현악에도 많이 쓰여지게
되었다.
옛날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하프의 구조가 오늘날처럼 정교하지 않고
그 음악적인 표현력도 작았으므로 단지 가정의 음악으로 사용될 뿐이고
관현악에 참가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베토벤이 젊었을 때 만든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속에서 이 악기를 사용하여 그리스 신화를
상기시키는 효과를 나타냈고, 또 모짜르트는 파리에 체재했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긴 공작과 그 딸을 위해 하프와 풀루트의 협주곡을 작곡한 바
있다.
하프는 19세기가 되고 나서 페달 장치가 완비되었으며, 충분히 그
표현능력을 발휘하게 된 근대에 이르자 많은 대작곡가들에 의해서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보통 1대
또는 2대의 하프를 사용하지만, 극단적인 예로는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속에서 관현악에 8대의 하프를 사용하였다.
@[ #2 기타 @]
기타는 13세기 경 아라비아 지방에서 발생하여 스페인에 수입되고 차츰
세계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6개의 현을 가졌고, 각 현의 간격은 4도로
조율된다. 단, 그 제2현과 제3현 사이만은 3도가 되고 있다.
기타는 독주용으로서도 좋고 또 반주 악기로서도 편리한 악기로 근년에
우리 나라 가정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음량이 작아 그만큼 한국
가옥에도 적달하다. 일상의 즐거움으로 뭔가 악기를 배웠으면 하고 생각한
경우에 기타는 참으로 좋은 악기의 하나이다. 단, 이 악기도 명곡을 연주해
내려면 상당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기타는 경음악에도 흔히 사용된다. 이 경우 코드(화음)만으로 반주로서
사용하는 수가 많고, 그 때는 손끝으로 뚱기거나 피크(골무)를 사용해서
화음을 탄주하므로 피크 기타, 또는 코드 기타라고 부르지만 악기는 같은
것을 사용한다.
단지 독주용(클라식 기타)인 경우는 양장선(거트)를 사용하고, 경음악의
경우에는 주로 금속선을 사용하고 있다. 거트도 최근에는 나일론제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타의 악보는 보통의 G음자리표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울리는 음은
악보에 적힌 음보다 1옥타브 낮다고 하는 약속이 되어 있다.
기타의 음색은 하프를 닮아 부드럽고 조용하며 상냥한 느낌을 갖고 있다.
또 하프보다 더욱 섬세한 표정이 넘쳐 있다. 기타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래의 선율을 연주하는 일도 있으며, 또 경쾌하고 발랄한 무도곡이나
행진곡을 칠 수도 있다. 옛날부터 연인의 창 밑에 서서 부르는 사랑 노래는
대개의 경우 기타로 반주한다고 여겨지고 있으므로, "세레나데"라고
이름붙여진 노래, 예컨대 유명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그 밖에 드리고,
토스티, 토셀리 등 이탈리아 작곡가의 손으로 된 감상적인 세레나데도 모두
그 피아노 반주 부분에 기타와 같은 표정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것이 많은 것
같다.
기타는 만돌린의 음과도 잘 조화되므로 만돌린의 합주 때 흔히 그 낮은
음이나 리듬의 악기로 사용된다. 보통의 관현악에는 극히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타는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관현악의 많은 악기에 비해
기타는 그 음량이 적어서 주로 가정용 악기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경음악에 쓰일 때는 화음이나 리듬을 맡는 수도 많지만, 또 전기 장치에
의해 음을 확대하는 일도 있으며, 그것을 전기 기타 또는 일렉트릭 기타라고
말하고 있는데, 줄여서 '일렉기'라고도 한다.
스틸 기타라는 것은 기타의 하와이식 주법, 즉 무릎 위에 옆으로 눕히고
금속봉으로 현을 누르고 금속의 손톱으로 대어 치는 방법에서, 더욱 나아가
이 원리만을 채택하여 전혀 다른 모양을 한 악기가 되고 있다. 모두 전기로
확성하여 여러 가지 기발한 효과를 내며, 경음악에서는 상당히 널리
쓰여지고 있다.
@[ #3 만돌린 @]
만돌린도 처음에는 스페인에서 생겨난 악기라고도 하는데, 일찍부터
이탈리아에서 수입되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이탈리아의 국민적인 악기가 된
바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나폴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각각
특색있는 발전을 했으며, 나폴리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세계에 널리
퍼졌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모두 나폴리식 만돌린이 사용되게 되었다.
만돌린은 경쾌하고 사랑스런 음색과 표정을 가졌으며, 대충 연주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널리 가정
음악에 사용되어 왔다.
만돌린의 현은 모두 강철선을 사용하고 2개씩 한 음에 맞춰서 4쌍, 즉
8개가 있다. 그 조현은 바이올린과 같고, 이것을 치는 데는 구갑 또는
셀룰로이드제의 작은 피크를 오른손에 쥐고 뚱긴다.
보통 관현악에서는 만돌린이 사용되지 않지만, 19세기의 독일 작곡가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대지의 노래"와 "제8번 교향곡", 그리고
이탈리아의 카젤라(alfredo Casella 1883--1947) 라는 작곡가가 만든
"기슭의 정원"이라는 모음곡 속에 사용된 예도 있다. 옛날에는 모짜르트가
그 오페라 "돈 지오반니" 속에서 제2막의 세레나데의 반주로서 관현악과
함께 이 만돌린을 사용하여 아름다운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만돌라는 만돌린보다 한츤 더 대형 악기로서 구조나 주법은 만돌린과
같지만, 1옥타브 낮은 음이 나오므로 가온음부의 악기로서 흔히 합주의
경우에 사용된다.
만돌린 합주에는 이 밖에 만도첼로(만돌라보다 5도 낮다), 가장 낮은 음을
치는 만돌로네, 혹은 키타르로네(Chitarrone) 라는 큰 악기도 있다.
@[ (3) 관악기 @]
관악기(또는 취주악기)의 개개의 명칭은 한국에서는 여러 나라 말로
제각기 다르게 사용되고 있어서 그 호칭이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호칭에 따라 설명해 두고 마지막에
전부 일괄하여 각국어의 대조표를 실어 두기로 한다.
관악기는 크게 나누어 피리류(목관악기)와 나팔류(금관악기)의 두 종류가
된다.
@[ A. 목관악기 @]
피리류는 옛날 서양에서는 모두 목재였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 일부
혹은 전부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더라도 총괄하여 목관악기라고 하낟.
목관악기는 19세기가 되고 나서 그 구조가 매우 진보하였다. 이것은
19세기에 모든 공업이 발달하기 때문이며, 또 그 중기에 뮌헨에 사는 뛰어난
풀루트 주자인 테오발트 뵘이라는 사람이 커다란 개량을 시도한 뒤 이것을
모든 목관악기에 응용하게 되어 그 연주 기술이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그때까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어려운 곡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는 모두 뵘(Bohm)식의 목관악기가 쓰이고 있다.
목관악기는 한국의 가로피리처럼 관에 입김을 불어넣어 울리는 것과 관의
한 끝에 붙인 리드(혀)를 불어서 관을 공명시키는 것이 있다.
(1) 무황악기(리드가 없는 것): 플루트, 피콜로, 블록플뢰테(Blockflote
리코더), 가로피리, 명적, 퉁소 등.
(2) 복황악기(2개의 리드가 있는 것): 오보, 잉글리쉬 혼, 버순,
더불버순, 피리, 차르메라 등.
(3) 단황악기(1개의 리드가 있는 것): 클라리넷 종류, 색소폰 종류.
리드가 없는 목관악기도 플루트족이나 퉁소처럼 관에 직접 입김을
불어넣어 이것을 먼저 작은 공기실을 통해 가느다란 통로에서 나온 공기로
관을 울리는 두 종류가 있는데, 전자는 동양에서 생겨나 10세기 경 서양에
전해진 것이며 후자는 옛날부터 서양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후자의 작은
공기실 부분을 블록이라고 하며 블록플뢰테, 플래절렛, 팬 파이프(목신이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 몇 개의 관을 옆으로 늘어세운 피리) 등은 모두
이것에 속한다. 이것으로 보면 후자의 악기는 멀리 그리스 신화 시대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 #1 블록플뢰테 @]
블록플뢰테는 영어로 리코더라고도 하는데 최근의 고전음악 부흥의
기운으로 전세계에서 가정 음악에 널리 사용하게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음악애호가 간에 종종 연주하게 되었다. 그
단순하고 소박하며 맑은 음색은 현대의 복잡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고요함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 악기는 입김을 불어넣기만 해도 음이
나오기 때문에 웬만한 연주라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으므로, 국민학교
등에서 '세로피리'로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곳도 많아졌다.
블록플뢰테의 재질은 딱딱한 목재, 주로 회양목, 단풍나무, 배나무,
벗나무, 사과나무, 호도나무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값싸게
양산하기 위해 플라스틱제의 것이 학교의 음악교육 등에 많이 사용된다.
블록플뢰테는 1개만으로 연주할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조금 지나치게
음색이 단순해서 쓸쓸하므로 몇사람의 합주, 즉 거기에 나타나 류트 등의
반주를 곁들인 앙상블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크고 작은 각종 블록플뢰테가
사용되었다. 음이 높은 순서로 늘어놓아 보면,
여러 가지 블록플뢰테
소프라니노-F조
소프라노-C조
알토-F조
테너-C조
베이스-F조
그레이트 베이스-C조
여기서 C조라든가 F조라든가 하는 것은 각각의 크기의 관에서 이들 조를
기본으로 한 길이가 가장 잘 울리고, 따라서 불기 쉽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다만 옛날에는 이밖에 D조, G조, B?조 등의 악기도 있었던 모양이나,
현대의 것은 대체로 이 6종류의 악기가 앞에 말한 조로 통일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한국에서도 블록플뢰테의 교칙본이나 곡집, 그리고 고전의
명곡에서 쉬운 곡까지 쉽게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 음악으로도
몇사람의 합주로 즐길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 악기보다 늦게 발달한 플루트가 차츰 구조의 개선과
연주기술의 진보에 의해 그 때까지의 블록플뢰테를 대신하는 지위를 차지해
왔다. 음량이 크다는 점, 표정이 풍부한 점에서 플루트는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블록플뢰테는 바로크 시대의 헨델이나 바하의 시대까지는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 이후에 연주회에서는 별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주로 가정용 악기로서 남았으며, 이를 대신해서 플루트의 연주 기술에
대단한 진보를 보이게 되었다.
@[ #2 플루트와 픽콜로 @]
플루트는 리드(혀)가 없는 가로피리로서 명적 등과 같은 원리로 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구조의 관악기였다. 그러나 이 악기도 19세기가 되고 나서 앞에
말한 뵘이라는 사람에 의해 극히 정교한 기계적 장치를 갖추고 완전한
악기가 된 바 있다. 원래는 흑단과 같은 딱딱한 나무로 만들었지만 현재는
전체를 금속제로 만든 것이 가장 널리 보급되고 있다.
플루트의 음색은 부드럽고 투명하고 아름다워 상냥하고 순수한 느낌을
나타내고, 또 경쾌하고 좋은 기분을 묘사하는 데 적합하다. 관현악 속에
독주로서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는 예는 비제가 작곡한 "아를르의 여인"
이라는 극음악의 제2모음곡에 하프의 반주를 수반한 플루트의 아름다운
독주가 있으며, 또 드뷔시의 전주곡 "목신의 오후"의 첫부분에 플루트가
독주를 하는 곳이 있다. 그밖에 독주 플루트와 관현악을 위해 만들어진
협주곡도 많이 있다.
픽콜로라는 것은 이탈리아어로 '작다'는 의미로서 원래는 플라우토
픽콜로(작은 플루트) 라고 해야 하는 것을 줄여서 단지 픽콜로라고 하게 된
것이다. 그 이름대로 플루트의 약 절반 정도는 작은 관인데 그 음은
플루트보다 1옥타브높아서 옛날에는 이것을 옥타브 플루트라고 한 적도
있다. 그 음색은 맑고 빛나고 경쾌하며 때로는 원기 있는 어린이처럼
사랑스런 느낌을 갖고 있다.
플루트나 픽콜로는 웬만한 연주를 하기가 비교적 쉽고, 또 나팔처럼
시끄럽지가 않아서 가정용 악기로서, 그리고 요즘에는 어린이나 여성들
간에도 취미로서 이것을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목관악기 중에서 '리드'가 없고 또 옆으로 해서 부는 피리는 플루트와
픽콜로뿐이며, 그 밖의 목관악기는 모두 세로피리이다.
@[ #3 오보와 잉글리쉬 혼 @]
오보, 잉글리쉬 혼 및 버순과 더블버순의 4종류는 복황, 즉 2개의
'리드'를 가진 것이다. 이 '리드'는 잘 말린 갈대줄기를 얇게 깎아 이것을
2개 합쳐서 실로 단단히 묶어 밑 쪽을 1개의 관으로하여 이것을 악기의
마우드피스에 끼워 넣어서 사용한다. 아악에 사용하는 피리나 '차르메라'
등은 역시 어느 것이나 2개의 리드를 지닌 같은 원리의 것이다. 그리고 이
2개의 리드의 틈 사이로 입김을 불어넣어 울린다. 마치 어린이가 노는
풀피리와 같은 이치로 음이 나오기 때문에 그 음색은 마치 시골티가 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오보가 높은 음을 맡는 데 반해서 잉글리쉬 혼은 바이올린에 대한
비올라처럼 중음부를 맡는 악기로서 구조는 오보와 거의 같다. 단지 모양이
조금 크고, 리드를 붙인 관이 약간 구부러져서 취주를 쉽게 하고 있다.
음역은 오보보다 5도 낮고 악보 위에서는 실제로 나오는 음보다 5도 높게
적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다.
잉글리쉬 혼은 한국에서는 종종 프랑스어로 코랑글레라고 부른다. 오보에
비해서 그 음색은 은근하고 폭넓으며 낮은 쪽의 음역은 다소 거친 느낌을
수반하는 수도 있으며,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느낌을 나타낼 대 흔히
사용된다. 롯시니의 오페라 "빌헬름 텔"의 서곡 속에서 목장의 조용한
풍경을 묘사한 부분에서 잉글리쉬 혼이 플루트와 함께 아름다운 독주를 들려
준다. 또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의 제2악장에는 잉글리쉬 혼이
독주하는 유명한 주제가 있다.
@[ #4 버순과 더블버순 @]
복황목관악기 중에서 가장 모양이 큰 것이 버순이다. 이탈리아어 또는
독일어로 파곳이라 하면 다발로 묶은 장작을 말하는데, 이 악기가 장작을
2개 묶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독일어로는 파곳,
프랑스어로는 바송,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다.
버순의 음색은 저음부에서는 둔중하고 은근하며 때로는 신비로운 느낌도
있고, 조금 익살을 부리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는 수도 있다.
더블버순은 독일어로는 콘트라파곳이라고 한다. 이것은 보통의 버순보다
다시 1옥타브 낮은 음이 나는 악기이지만, 악보는 실제보다도 1옥타브 높게
적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다.
이 악기는 현악기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더블베이스와 겹쳐서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관현악의 경우에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은데, 때로는
이 악기의 독주를 사용하여 특수한 효과를 내는 예도 있다. 프랑스의 근대
작곡가 라벨이 모음곡 (마더 구스) 속의 '미녀와 야수의 대화'에서 이
더블버순을 사용하여 야수의 말과 같은 효과를 내게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예이다.
@[ #5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 @]
클라리넷의 일족은 그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두 단황, 즉 1개의
폭이 넓은 '리드'를 갖고 있다.
이 종류의 단황 목관악기는 오보나 버순보다 훨씬 늦게 발달한 것으로서,
클라리넷이 실내악이나 관현악에 쓰이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 모짜르트
시대부터이다.
클라리넷의 음색은 밝고 명랑하며 매우 확실한 음을 내는 것이 특색이다.
또 그 투명하고 화려한 음색은 풍부한 표정으로 강하고 날카로운 음을
내는가 하면 부드럽고 조용한 느낌도 낼수 있다. 표정이 자유로운 점에서는
목관악기 중에서 제일의 스타이다. 취주악 (브라스밴드) 에서는 클라리넷이
마치 관현악에서의 바이올린처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활약한다.
클라리넷 일족은 '조옮김 악기' 라고 하며, 실제로 나오는 음의 조와 다른
조의 악보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지만 이것은 조금 까다로운 이론이 되므로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단지 관악기는 여러 가지 악기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가장 효율이 좋은 관의 길이가 있으며, 그 효율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각기 관악기의 구조에 따라 다른 조의 악기를 사용한다. 그
때문에 악보의 조도 다른 것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보통 널리 사용되는 클라리넷은 'B플랫조' 또는 'A조'의 두 종류이다.
그밖에 'E플랫조' 클라리넷이 있는데 이것은 크기가 작고 매우 날카로운
음을 낸다. 이것은 취주악에는 반드시 들어가며 관현악에도 가끔 사용된다.
'E플랫'을 독일어로 '에스'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을 '에스 클라리넷' 또는
'에스클라' 라고도 한다.
'B플랫조'의 클라리넷보다 다시 1옥타브 낮은 음이 나오는 악기를 '베이스
클라리넷'이라고 한다. 1옥타브나 낮아지면 그 관도 매우 길어지기 때문에
다루기 편리하도록 앞의 그림처럼 양 끝이 크게 구부러져 있다.
모짜르트는 당시의 새로운 악기였던 클라리넷의 명쾌한 효과를 좋아하여
이것을 실내악이나 관현악에 사용해서 악기 편성법에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이 악기의 기교적인 효과를 살린 협주곡도 작곡한 바 있다.
클라리넷은 목관악기 중에서도 가장 음을 내기 쉬워서 아마추어라도
조금만 연습하면 곧 불 수 있게 된다. 또 어린이라도 국민학교의 고학년이
되면 연습할 수가 있고 음정도 비교적 안정되어 바른 조를 잡기 쉬우므로
가정이나 학교의 음악으로서 참으로 적당한 악기이다.
클라리넷뿐만 아니라 모든 취주악기 (관악기)는 호흡기가 허약한
사람에게는 적당치 않으므로 그러한 사람은 피아노나 오르간, 혹은 현악기를
택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 #6 색소폰 @]
19세기 중엽에 벨기에의 아돌프 삭스(Adolph Joseph Sax 1814--1894)라는
사람이 클라리넷을 바탕으로 해서 발명한 것이 색소폰이다. 따라서 음이
나오는 원리는 클라리넷과 마찬가지인데 그 관에 원추형의 긴 금속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극히 특색 있는 음색과 표정을 낸다. 이것도 또한
조옮김 악기로서 소프라노(B플랫조), 알토(E플랫조), 테너(B플랫조),
바리톤(E플랫조), 베이스(B플랫조)라는 식으로 매우 넓은 음역에 걸쳐 각종
악기가 있다.
19세기까지는 보통 관현악에 별로 쓰이지 않았지만 취주악에서는 각종
색소폰을 많이 사용하고, 또 현대의 재즈 같은 경음악, 혹은 새로운 시대의
양식을 지닌 관현악에는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 음색은 폭넓고 밝고 더욱기 각종 악기에 따라서 각각 특징이 있으며,
더구나 표정이 매우 풍부하다. 너무 지나치게 표정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다른 관악기와 조화시키는 기술이 어렵다고 하여 19세기 까지의 관현악,
특히 독일계의 작곡가들은 거의 이것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비제는
알토 색소폰을 "아를르의 여인"과 "카르멘" 속에서 아름답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색소폰은 처음부터 마우드피스(부는 곳)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지만 클라리넷과 똑같은 원리에 의한 악기이기 때문에 목관악기로
다루어지고 있다.
@[ B. 금관악기 @]
나팔은 옛날부터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금속 관악기' 또는
'금관악기'라고 한다. 다만 그 금속은 대개의 경우 모두 놋쇠이기 때문에
'놋쇠 관악기'라고도 한다. 금관악기는 모두 조옮김 악기이다.
19세기는 유럽에서 금속공업이 가장 발달한 시대이며 정련법, 단련법,
공작법 등이 모두 18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진보를 나타내고
있다. 또 각종 기계 장치의 발명이나 개선에도 매우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가장 근대적인 기계장치를 필요로 하는 금관악기가 이 동안에 옛날의
것과는 훨씬 좋은 성능을 갖게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 때문에
작곡법에도 커다란 진전을 보여 준 것이다.
@[ #1 혼 @]
나팔류 중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관현악에 참가한 악기이다. 호른이란
말은 독일어이고 영어로는 프렌치 혼, 프랑스어로는 코르, 이탈리아어로는
코르노라고 한다. 이 나팔은 옛날에 사냥을 할 때 신호로 사용했던 뿔피리의
모양에서 발달한 것으로서, 가느다란 관을 원형으로 돌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혼의 음색은 폭넓고 부드러우며 투명하고 우미하다. 음색이 부드럽기
때문에 금관악기이지만 목관악기와의 합주에도 잘 어울린다. 베토벤
시절에는 혼을 비롯하여 모든 금관악기에 현재와 같은 피스톤 또는 밸브가
없고 단 1개의 관을 빙글빙글 돌리기만 했기 때문에 연주할수 있는 음의
수에 제한이 있고, 따라서 작곡상으로도 많은 불편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악기를 발트혼이라고 한다. 발트혼(숲의 혼)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것은
옛날에 사냥의 신호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자 음을 변화시키는 피스톤이나 밸브의 발명과 함께 모든
금관악기는 그 연주 기술에 커다란 혁명을 가져왔다.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서는 그 서곡의 첫머리에서 아름다운 혼의
4중주를 들을 수 있다. 또 멘델스존은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해 서곡과 무대음악을 작곡했는데 혼의 독주를 중심으로 한 유명한 녹턴을
넣었다. 베토벤은 혼과 피아노를 위한 F장조의 소나타를 만들었고 브람스는
바이올린, 혼, 피아노를 위한 3중주를 만든 바 있다.
혼은 나팔류 중에서는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이며, 세계적인 음악가
중에서도 혼을 정말 잘 부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관악기명 대조표)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플라우토 플루트 플뢰테 플뤼트
오보에 오보 호보에 오브와
코르노 잉글레제 잉글리쉬 혼 엥글리셰스 호른 코랑글레
파곳 버순 파곳 바송
콘트라 파곳 더블버순 콘트라 파곳 콩트라 바송
클라리넷 바소 베이스 클라리넷 바스 클라리넷테 클라리넷트 바스
색소포노 색소폰 색소폰 색소퐁
코르노 프렌치 혼 호른 코르
트롬바 트럼펫 트롬펫테 트롱페트
코르넷타 코넷 코르넷 피스통
트롬보네 트롬본 포자우네 트롱봉
투바 튜바 투바 튀바
(여러 가지 금관악기 그림 생략)
트럼펫 코넷 혼 트럼본 알토 바리톤 튜바 수자폰
@[ #2 트럼펫과 코넷 @]
트럼펫은 신호나팔처럼 생긴 악기로, 그 음색도 씩씩하고 활발하며
군대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이 악기도 옛날과는 피스톤이 없었으므로 여러
가지 조의 악기가 몇 가지나 있으며, 18세기 경에는 매우 높은 조의 악기도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주로 B플랫조의 것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속에 트럼펫의 아름다운 독주가 있는
것은 극 중에 어떤 고관이 등장하는 기분을 나타내고, 또 롯시니의 오페라
(빌헬름 텔)의 서곡에서는 그 끝 곡의 첫머리에서 군대가 행진하는 듯한
용감한 느낌을 트럼펫의 빛나는 취주로 그려내고 있다.
하이든은 트럼펫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오히려
진기한 한 예이고, 이 악기가 독주악기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의
일이다.
코넷은 그 모양이 트럼펫과 아주 비슷하지만 좀 더 짧고, 그 음색이
부드럽고 부푼 듯한 맛이 있다. 주로 취주악에 사용되는 악기이고
관현악이나 실내악에 쓰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코넷은 나팔류 중에서는 비교적 쉬운 악기이므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잘 부는 사람이 있다. 금관악기를 연습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한 호흡기와 충분한 폐활량이 필요하지만, 또 바른 치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 #3 트롬본 @]
트롬본은 나팔류 중에서 가장 힘찬 느낌이 드는 악기이며, 장중한 위력과
거칠고 강한 힘을 나타낼 때에 사용된다. 보통의 것은 관을 신축시켜 음의
높이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늘고 긴 나팔인데 이것을 슬라이드
트롬본이라고 한다. 피스톤에 의해 음을 바꾸는 트롬본도 있는데 현재는
별로 쓰이지 않고 있다.
이 악기가 관현악에 참가하는 경우는 알토, 테너, 베이스 등 세 종류의
악기가 1개의 조로 편성되어 사용된다.
트롬본은 옛날부터 오페라의 관현악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교향곡에 등장한 것은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이후이다. 그
장려한 피날레(끝곡)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처음으로 트롬본이 참가한 위풍
당당한 승리의 가락이 당시의 청중을 매우 감격시켰다.
@[ #4 튜바, 그 밖의 금관악기 @]
여러 가지 나팔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것은 튜바이다. 취주악의
경우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튜바가 사용되는데 그 가장 큰 것은
더블베이스 튜바(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 튜바) 라고 하며 관현악의
더블베이스에 해당한다. 관현악의 경우에는 단순히 더블베이스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트롬본 일족의 가장 낮은 음으로 활약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악기는 독주악기로서 독주나 실내악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뷰글(Bugle)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나팔' 이라는 뜻이지만,
취주악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는 악기는 코넷의 대형의 것이며, 그 음색은
부드럽고 가온음부의 음역을 갖고 있다.
취주악에는 이밖에 알토 혼, 테너 혼, 바리톤(유포늄이라고도 한다),
베이스, 더블베이스 등 앞에서 말한 튜바와 비슷한 모양의 나팔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색스혼족의 나팔이라고 불리며, 벨기에의
색스가 취주악용의 악기로 만들어진 금관악기이다. 높은 음부터 낮은 음까지
약 일곱가지 종류의 나팔이 있다.
@[ (4) 타악기 @]
물건을 두드려 음악이나 춤의 리듬을 강조한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행해졌기 때문에 타악기는 바이올린이나 나팔류에 비하면 그 착상은 훨씬
원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먼 옛날에 여러 가지 타악기로 쳐서 울린
리듬은 어느 시대에나 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타악기의
구조나 이것을 다루는 기술은 시대와 함께 점점 발달하여 관현악과 그 밖의
합주에도 근대는 그 종류도 많아지고, 사용하는 방법도 향상되었고
화려해졌다. 타악기는 그 구조에 따라 다음의 네 종류로 크게 나누어진다.
@[ A. 선율타악기 @]
어떤 '가락'을 낼 수 있는 타악기를 말한다. 보통의 큰북이나 종으로는
노래와 같은 '가락'을 연주할 수가 없다. 선율타악기란 두드려서 음을 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발음체가 음의 고저에 맞추어 순서있게 늘어서 있어
'가락'을 연주할 수가 있다.
@[ #1 실로폰 @]
영어로 자일러폰(실로폰은 잘못), 독일어로는 크실로폰이라고 한다.
조율된 나무조각을 음계의 순서로 늘어놓고 이것을 채로 두드려 연주한다.
채는 가느다란 등나무로 만들어진 30센티 정도의 막대 끝에 목제,
에보나이트제 혹은 고무제 등의 동그란 구슬을 붙인 것으로, 이 물질에 의해
딱딱한 음, 브드러운 음의 구별이 가능하며 각각 연주의 효과도 다르므로,
전문가는 항상 몇가지 채를 준비하고 한 곡 안에서도 수시로 바꾸어
사용함으로서 여러 가지 효과를 낸다. 때로는 고무 구슬을 다시 펠트로 싸서
매우 부드러운 음을 낼 수도 있다. 발목은 보통의 경우 양손에 한 개씩 들고
사용하지만, 때로는 동시에 3개, 4개의 채를 교묘하게 구분해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실로폰은 마림바 자일로폰이라고 하여 각
나무조각에 1개씩 금속제의 공명판이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음을
풍부하게 하고 음색을 아름답게 한다.
실로폰은 피아노나 관현악 등의 반주를 곁들여 독주를 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근대는 관현악 속의 타악기 군에 참가하여 극히 신선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작곡가 생상스는 그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라는 곡 속에서 이 실로폰을 교묘히 사용하여 해골이 서로 부딪쳐
덜그럭덜그럭 하고 뼈를 울리는 듯한 느낌을 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실로폰은 가정음악이나 학교음악에서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며, 그
밝고 경쾌한 음색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더구나 어린이도 쉽게 연습할 수
있다. 그러나 잘 만들지 못한 초라한 악기도 있어서 기후나 습도의 변화에
따라 종종 음의 높이에 이상을 일으키는 수도 있으며, 또 이상이 생긴
악기를 깨닫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으면 어린이의 올바른 청각을 나쁘게 하는
수도 있으므로 주의 해야 한다.
@[ #2 바이브러폰 @]
외관은 대형 실로폰과 아주 비슷하지만, 나무조각 대신 울림이 좋은
철편을 사용하며 공명통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전동기의 장치에 의해
여운을 희미하게 진동시킴으로써 멜로디에 서정적인 효과를 준다. 이 작용을
이용하여 경음악 등에도 종종 사용되는 악기이다.
@[ #3 글로켄시필 @]
철금의 일종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이브러폰보다 더욱 작은 철편을
배열한 것으로, 보통의 것에는 공명통이 없다. 매우 높은 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하는 합주 속에서 연주하더라도 항상 두드러진 효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금 속의 딱딱한 채로 두드려서 울린다.
그 음색은 빛나며 밝고 경쾌한 느낌을 갖고 있다. 관현악에도 흔히
사용되므로 오케스트라 벨이라고도 한다. 또 독일어로는 이것을
글로켄시필이라고 한다.
글로켄시필에는 또 건반을 장치한 것도 있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적"
속에서 2대의 글로켄시필을 사용하여 극히 아름다운 효과를 낸 예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 건반이 달린 것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옛날부터 이 악기를 군악대의 취주악에 사용하여
픽콜로(피리)와 겹쳐서 쓰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군악대의 행진 중에
연주하므로 휴대하기 편리하고 또 장식을 겸했다는 의미에서 이 악기를
리라(하프의 일종)의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을 리라라고 부르는
수도 있다.
@[ #4 튜블러 벨 @]
직경이 5cm나 되는 긴 금속제의 관을 커다란 쇠테 속에 음계의 순서로
매어단 것으로, 이것을 목제의 망치로 두들겨 연주한다. 보통은 그 금속관의
맨 위 부분을 두드린다.
관(튜브)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튜블러 벨이라 부르지만 또
카리용(프랑스어), 혹은 캄파냐(이탈리아어) 라고도 하며 어느 것이나
'종'이라는 뜻이다.
이 악기는 마치 교회의 종 같은 음색을 갖고 있으므로 관현악에서도
그러한 효과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유명한 대서곡(1812년)
에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러시아의 승리를 축하하는 교회의 종이 떠들썩하게
울리는 부분에 이 악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B. 가죽타악기 @]
동물의 가죽을 몸통에 씌워 이것을 채나 손으로 쳐서 울리는 큰북이나
장구는 세계 각국의 민족이 고대부터 갖고 있던 악기이다. 이것은
현대문명인들의 음악에도 그 구조는 얼마간 정교해졌다 하더라도 같은
원리의 악기가 많이 사용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 #1 팀파니 @]
이 악기는 이미 천년 전부터 타악기로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근대의
관현악에서도 각종타악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외관이 깊은 남비나 가마솥
모양과 비슷하므로 영어로는 이것을 캐틀 드럼(가마솥형의 북)이라고도
한다.
팀파니는 보통 2대를 한 쌍으로 해서 사용하고 동고 윗면에 씌운 가죽을
죄이기도 하고 느슨하게 하기도 해서 음의 높이를 바꿀수 있다. 마치 한국의
장구의 끈을 손으로 죄이기도 하고 느슨하게 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팀파니의 가죽을 조이는 장치는 옛날부터 여러 가지로 고안하여
개량, 진보되어 왔는데, 현재는 여러 가지 기계적인 장치에 의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고 또 정확하게 조율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발로 페달을
밟아 연주하면서도 그 사이에 음의 높이를 변화시키는 정교한 장치도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이 한 쌍(2대)의 팀파니는 그 중 1대는 악곡의 주요한 조에 맞추고 다른
1대는 그 곡의 딸림음(제5도)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 밖의
조에 맞추는 경우도 있다. 또 한 쌍뿐만 아니라 3대에서 5대 혹은 그 이상의
수를 사용하는 악곡도 드물지 않다.
팀파니를 치는 채는 보통의 것은 펠트의 공을 부드러운 양의 가죽으로 싼
것을 많이 사용하지만 드물게는 딱딱한 목제 혹은 에보나이트제의 머리를
가진 채를 사용하는 수도 있다.
@[ #2 큰북, 작은북 @]
큰북과 작은북은 취주악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되며 관현악에도 언제나
참가하는 일반적인 악기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설명을 생략한다.
경음악이나 재즈 밴드에 팀파니를 사용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큰북
작은북은 항상 그 리듬의 중심이 되어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다.
@[ #3 콩가, 봉고, 기타 @]
최근에 갑자기 유행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댄스 음악, 예를 들어
쿠바, 브라질 등의 룸바, 삼바, 맘보, 로캄보, 바이욘, 차차차 등, 춤의
음악에는 모두 콩가, 봉고 등의 원시적인 북이 사용 된다. 어느 것이나 채를
사용하지 않고 마치 한국의 장고 처럼 손으로 이것을 쳐서 울리는 점에 다른
서양 악기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콩가는 직경이 약30센티, 깊이 70, 80센티의 길쭉한 목제의 몸통 윗면에만
가죽을 씌운 것으로서, 그 밑면은 뚫린 채로 되어 있다. 이것을 크고 작은
2개를 수직으로 세우고 윗면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봉고는 소형으로 직경은 15센티에서 20센티 정도이고 깊이도 약
20센티인데, 이것도 대소 2개를 금속봉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정시켜 양
무릎 사이에 기우고 역시 손으로 두드린다.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음악에는
반드시 필요한 리듬을 함께 연주한다.
가죽타악기는 이러한 것들외에 각 국, 각 민족이 제각기 독특한 것을
가졌고 각기 민족음악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중
정규의 관현악에 잘 나오는 것은 탬버린(한쪽에만 가죽을 씌운, 방울이 달린
북), 탕부르 프로방스(tambour de Provence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길쭉한 작은북) 등이다. 탕부르 프로방스는 비제의 모음곡 "아를르의
여인"의 파랑돌 무곡에서 눈부시게 활약한다.
@[ C. 금속타악기 @]
가죽타악기를 총칭해서 '북'이라고 한다면 금속타악기는 한 마디로
'종'류라고 할 수가 있다.
@[ #1 심벌 @]
독일에서는 베켄(Becken)이라고 한다. 놋쇠제의 원반 모양으로 된 것
2개를 마주쳐서 울리는 것으로 큰북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그 1개를 채로 쳐서 울리는 수도 있다.
외관은 놋쇠제의 원반 모양인데 그 제법은 가느다란 놋쇠줄을 평면
모양으로 감아 판자처럼 두들겨 늘이고 접합해서 만드는 것이 진짜이다.
따라서 대형의 것은 매우 불규칙한 진동에 의해 시끄런음을 많이 내고, 긴
여운을 내어 특수하고 화려한 효과를 거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값싼
아마추어용 심벌은 놋쇠의 원반을 프레스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음의 효과도 진짜가 아니다.
심벌은 옛날부터 터키의 특산품으로 현재도 우수한 악기를 생산하고 있다.
@[ #2 트라이앵글 @]
가느다란 쇠막대를 삼각형으로 구부려 이것을 끈에 매어달아 늘어뜨리고
작은 쇠막대로 쳐서 울린다. 모양은 작아도 그 음은 빛나고 또 날카로와
대관현악 속에서도 두드러지게 잘 들린다. 리스트의 "제1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그 끝악장의 첫머리부터 이 트라이앵글이 화려하게 활약하여
이런 악기의 사용을 별로 경험한 적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트라이앵글은 그 삼각형의 정점에 가까운 곳, 양변이 접근한 곳에
채를 넣어서 빠르게 좌우로 움직여 연속된 방울소리와 같은 효과를 내게
하는 일도 종종 있다.
@[ #3 공 @]
이른바 징을 말하며 나라에 따라서는 '탐탐'이라고도 한다. 큰 것은
직경이 1미터 이상이나 되며 이것을 튼튼한 테에 매어달아 펠트로 싼 커다란
채로 쳐서 울린다. 그 음색은 매우 깊고 어두워 때로는 처참한 느낌으로
들리기도 한다.
근대의 관현악에는 종종 이것이 사용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의 끝부분에서 단 1개, 이 공이 조용히 울려퍼지는 부분은 참으로
깊은 감명을 준다.
@[ D. 목제타악기 @]
잘 말린 경질의 목재를 발음체로 하는 것으로서 앞에서 말한 선율
타악기의 항에서 든 '실로폰'은 여기서도 속하는 것이다. 목제 타악기는 그
발음체의 성질상 어느 것이나 밝고, 특히 여운이 짧은 건조한 느낌의
음색으로 특수한 효과를 낸다.
@[ #1 캐스터네츠 @]
스페인의 무용수가 양손의 손바닥 속에 쥐고 딱딱 울리면서 춤추는데 흑단
등 딱딱한 나무로 만든 것이다. 이것을 관현악 속에서 사용할 때는 연주에
편리하도록, 또 음량을 늘리기 위해 목제의 자루가 달려 있다.
@[ #2 우드 블록(Wood Block) @]
네모진 상자 모양, 혹은 원통형의 가운데가 빈 목제타악기로서, 큰북 옆에
붙여놓고 작은북의 채로 통통 두드린다.
@[ #3 목탁 @]
절에서 두드리는 목탁도 또한 우드 블록의 일종이다. 대소 몇 개를 한
조로 해서 늘어놓고 재즈나 경음악에서 흔히 사용된다.
@[ #4 마라카스(Maracas) @]
야자 열매의 중핵을 건조시켜 그 안에 콩류나 또는 작은 돌을 넣고 여기에
자루를 달아 양손에 한 개씩 들고 흔든다. 룸바나 그 밖의 중남미 음악에
종종 사용된다.
@[ #5 클라베스 @]
한국의 딱따기와 비슷하지만 좀더 소형이며 티크와 같은 경질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마라카스와 마찬가지로 룸바의 연주에는 반드시 사용된다.
@[ #6 귀로(Guiro) @]
표주박이나 수세미 외의 알맹이를 꺼내고 바깥쪽을 잘 말려, 마치 술을
담는 호리병처럼 만든 표면에다가 두툴두툴 이랑이 지게 하고 이것을
가느다란 강철줄로 긁어서 음을 낸다. 역시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음악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되는 악기인데, 이러한 여러 가지 타악기는 여러 나라의
민족음악을 찾아보면 더욱 많은 종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7. 실내악 @]
실내악이라는 말은 보통 적은 인원의 기악합주라는 뜻이다. 몇
사람까지의 합주를 '실내악'이라고 하느냐 하는 질문을 받은 일도 있지만
특별히 인원수의 제한은 없다. 단지 실내악이란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갖고 있는 합주를 말하는 것이다.
(1) 두 사람 이상의 합주일 것.
(2) 각자가 연주하는 부분은 서로 대등한 의미를 갖고 독립되어 있을 것.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경우에는 보통 실내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그 두 사람 이상 중 어느 쪽이 주인이고 어느 쪽이 종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각 악기가 서로 대등하게 접촉하면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악곡을
실내악곡이라 한다.
예컨대 피아노로 반주되는 바이올린의 독주는 2명의 연주이지만
실내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바이올린이 주이며 피아노가 반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형을 연주하고 있더라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인 경우에는 이것을 실내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2개의 악기는
서로 대등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 반주니까 중요하지 않다든가
쉽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고, 반주라도 2중주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며
음악적인 의미로 말하더라도 2중주와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작품도 적지
않지만, 습관상 반주 붙는 독주는 실내악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다. 또 각
악기는 서로 독립된 부분을 따로따로 연주하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가령
몇 사람이 합주하는 경우, 그 중 두 사람이 아주 똑같은 악보를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실내악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 두 사람은 서로 독립된 것을 연주하지 않고 같은 것을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 이상의 합주이며 또 서로 독립된 대등한 입장을 가진
합주라면 이것을 실내악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원인은 몇 명이 있거나 상관이 없지만 만약 인원수가 너무
많아지면 각자가 담당하는 '독립성'이 엷어져서 실내악의 참된 재미를
줄이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2명에서 3, 4명, 많아야 5명 정도까지가
실내악으로 가장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다만 이이상의 인원을 가진 실내악도 조금은 있으며, 그 중의 몇 가지는
명곡으로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된다. 예를 들면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베토벤의 유명한 7중주곡, 슈베르트나 멘델스존의 8중주곡 등인데,
시포어의 9중주곡 같은 것은 이미 지금은 진기한 예가 되고 있다. 이 보다
인원수가 많아지면 이미 '작은 관현악' 의 영역에 물려 주게 된다.
실내악을 듣는 재미는 각기 다른 주자의 뛰어난 연주 기술을 통해 그
조화의 아름다움과 합주의 능란함을 맛본다는 점에 있으며, 관현악처럼
강렬한 색채나 강렬한 느낌을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관현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섬세한 맛과 내성적인 깊이를 지닌 아름다움과 음색의 맑은
아름다움은 비할 데가 없다.
대저 실내악이 근세에 발달하게 된 것은 교회나 극장과 같은 넓은 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서, 18세기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 살롱의 음악으로
즐기는 습관이 성해진 뒤의 일이다. 따라서 고전의 실내악에는 어느 곡이나
다 고상하고 온화하며 친근미가 있으며 감정이 풍부하다는 특색이 있다.
실내악은 특히 옛날에는 직접 연주를 하면서 즐기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많았으므로, 가능하면 자기가 직접 연주해 보는 것이 가장 즐길 수
있는 감상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자기가 맡은 부분이 전체와 조화되어
아름답게 울린다는 것을 경험하는 데는 실내악의 연주에 미치는 것은 없다.
한국은 서양 음악의 기술이 수입된 후 아직 별로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실내악을 즐기는 습관이 매우 적고, 따라서 일반
음악애호가들도 실내악을 즐기는 습관이 매우 적고, 따라서 일반
음악애호가들도 실내악은 떫고 난해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가정에도 보급되기 시작하고 그 애호가도 차츰 많아져 가고 있는 것
같다.
@[ (1) 2중주 @]
둘이서 연주하는 실내악을 2중주(듀오 또는 듀엣) 라고 한다. 2대의
바이올린이라도 좋고 바이올린과 첼로의 두 사람이라도 좋고 또 관악기의
2중주 등도 있지만 가장 재미가 있고 더구나 명곡이 많은 것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와의 2중주이다. 이것은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이탈리아의
마리니(Biagio Marini 1587--1668) 라는 작곡가가 처음으로 바이올린 혹은
그 밖의 관악기 등과 하프시코드와의 2중주를 만들어 본 것이 그 시초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극히 오래된 시대의 형태여서
오늘날의 2중주와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음악적 효과에 있어서나 훨씬
소규모의 것이었다. 그후, 역시 이탈리아의 코렐리, 비발디 등의
작곡가들도 이것을 발전시켜 많은 소나타를 쓴 바 있다.
그러던 중 18세기가 되어 피아노가 실용적인 악기로서 점차 완성된
구조를 가졌으며, 피아노에는 그 전 시대의 하프코드에 비해 훨씬 커다란
표현 능력을 드러냈다. 더구나 하이든 이후의 음악이 근대 양식을 갖춤에
따라서 새로운 소나타의 형식과 합류하여 여기에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등한 위치에서 2중주를 하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의한 2중주의 소나타를 통상 '바이올린 소나타'
라고 부른다. 악곡의 주요한 멜로디를 바이올린으로, 혹은 피아노로 번갈아
가며 연주하고, 또 서로 상대를 북돋아 주면서 마치 이 두 악기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곡을 진전시켜 간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의 가장 표준적인 형은 다음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악장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제2악장 가요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의 느린 곡
제3악장 론도 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각 악장의 형식은 이밖에 예외도 있는데 한 악장을 더 추가시켜서
4악장도 있으며 또 2악장 의 소나타도 있다. '소나타 형식' 에 관해서는
뒤에 말하는 '기악곡의 종류'의 항을 참조하기 바란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18세기의 후반에서 하이든, 모짜르트 및 베토벤 등 빈
고전파의 작곡가들에 의해 수많은 불후의 명곡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자주
연주되는 힘차고 화려한 곡들이 충실한 실내악의 양식으로 되었다.
모짜르트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약 42곡이나 작곡하였다. 이 무렵에
이르러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참으로 섬세한 정서를 지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C장조(K.296),
B플랫장조(K.378), E플랫장조(K.481), B플랫장조(K.454) 등이다.
(주) 모짜르트의 작품번호에 한해서 K 몇번이라고 적힌 것이 사용된다.
이것은 모짜르트가 자기 작품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으므로 오스트리아의
모짜르트 연구의 권위자인 루드비히 쾨헬(1800--1877) 이 오랫동안 고심한
결과, 그 전작품을 작곡의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여기에 번호를 붙여
1862년에 발표하였다. 그 이래로 모짜르트의 연구가에게 매우
편리해졌으므로 이 번호가 표준이 되었으며 그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K
몇번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것을 쾨헬번호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가서
발견된 미발표의 작품 등은 K의 추가번호로서 정리되고 있다.
베토벤에 이르면 다시 기교적으로도 고도해지고 내용도 충실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10곡이나 작곡하였다. 그 중에서도 '봄'이라고 불리는
F장조(작품24번), 러시아의 알렉산더 1세에게 바친 c단조(작품 30번의
제2곡)와 크로이쩌 소나타로 유명한 A장조(작품 47번) 등은 특히 유명하다.
그밖에 슈만, 브람스, 그리크 등의 손으로 된 작품도 오늘날 자주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장식한다.
2중주는 이밖에 첼로 소나타, 플루트 소나타, 클라리넷 소나타 등도
있는데 그 형식은 어느 것이나 바이올린 소나타와 같다.
2중주는 반드시 소나타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
바이올린과 피아노와의 2중주를 위해서 쓴 론도나 변주곡이 있으며 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유명한 3개의 변주곡도 역시 2중주이다.
@[ (2) 3중주 @]
3중주를 가르켜 트리오라고 한다. 무엇이건 3개의 악기로 합주하면
트리오인데 옛날부터 가장 그 수도 많고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 많은
것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3 중주, 이른바 피아노 트리오이다.
그밖에 현악기만으로 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3중주도 있으며,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시절에 가정 음악용으로 작곡한 2대의 바이올린과
1대의 첼로로 된 3중주도 많이 있다.
피아노 트리오는 각 악기의 연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훌륭한 명곡이
잇달아 태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세 사람의 연주가가 서로 독주악기로서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서로의 개성을 마음껏 즐기면서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이 피아노 3중주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연주하는 3사람의 연주자는 제각기 훌륭한
독주가로서의 기술과 관록도 있어야 한다. 이 점은 다른 실내악에도
적용되는 일이지만 종종 세계적인 명인에 의해 연주되는 피아노 3중주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더욱 느끼게 한다.
피아노 트리오는 위에 말했듯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편성이
표준적이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악기를 다른 관악기 같은 것으로 바꿔
놓는 경우도 있다.
베토벤이 남긴 7곡과 그밖에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 등 그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중에는 피아노 3중주곡이 있다.
@[ (3) 4중주 @]
갖가지 실내악 중에서도 4중주, 특히 현악4중주는 가장 흥미깊은 형태의
음악이다. 4중주를 영어로는 쿼텟트(Quartet), 독일어로는
콰르텟트(Quartett) 라고 부른다.
2대의 바이올린, 1대의 비올라, 1대의 첼로로 조직된 현악4중주는 가장
이상적인 편성으로서, 하이든 이후의 유명한 작곡가들은 누구나 이
형식으로 갖가지 명곡을 남긴바 있다.
앞에서 말한 피아노 3중주곡은 그 3대의 악기가 제각기 독주자와 같은
입장에서 서로 그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커다란 조화를
요구하는 성질의 것이지만, 현악 4중주는 마치 관현악과 같은 원리에 의해
조직되고 있다. 이를테면 관현악 속에서 현악 부분을 고스란히 뽑아낸 듯한
작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 각자의 '개성'은 일단 제쳐 두고 4명의
음색이나 표정이 깨끗이 통일되어, 마무리된 하나의 힘찬 표현력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이 4대의 악기는 마치 한 사람의 지휘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관현악처럼 완전히 하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유명한 현악4중주단 중에는 20년,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그
멤버를 별로 바꾸지 않고 계속하여 그 전통과 역사를 자 랑하고 있는 것도
있다.
피아노 3중주의 경우에는 우선 유명한 연주가나 명인의 이름이 나란히
기재되어 있다는 점에 청중의 커다란 기대가 쏠리기 마련이지만, 현악
4중주의 경우에는 바로 관현악과 마찬가지로 그 단체로서의 기술이나
역사에 흥미가 쏠리는 법이다.
따라서 그 곡도 피아노 3중주 쪽은 각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독주적이며,
그 형식도 협주곡처럼 3악장으로 된 것이 많지만 현악 4중주는 마치
교향곡처럼 4개의 악장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 다.
제1악장 빠른 소나타 형식
제2악장 느린 가요 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
제3악장 미뉴에트, 또는 스케르조
제4악장 빠른 론도 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
이것이 통상의 형식이지만 이 느린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은 하이든
시절부터 종종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또 드물게는 3악장만으로 이루어진
곡도 있으며, 베토벤의 후기부터는 대곡일 때는 5악장으로 되어 있는 것과,
악장과 악장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연주되는 자유로운 형식의 것도
나왔다.
이런 형식이 처음으로 갖춰진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며 하이든의
공적이라고 한다. 하이든은 이러한 형식으로 약80곡이나 작곡하여 그
놀라운 다작 속에서 차츰 이 형식을 완전한 것으로 체계화시켰다. 그래서
오늘날 하이든을 가르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현악
4중주의 아버지'라고도 부르는 일이 있음은 그 때문이다. 하이든의 작품,
또는 여기에 이어지는 모짜르트의 작품들은 모두 명랑하고 감미로운 당시의
궁정 양식으로 작곡되어 있어서 오늘날 에도 널리 애호되고 있는데
현악4중주곡은 베토벤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을 보 이고 있다.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무렵에는 이러한 실내악은 주로 왕후 귀족의
살롱음악이며, 가정에서 연주하여 즐기는 성질의 것이었지만 베토벤
시대에는 이미 완전히 음악회를 위한 작품으로서 풍부한 내용과 힘찬 연주
효과를 고조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연주하는 기술적인 면도 또한 베토벤 이후에는 매우
어려워졌다.
4중주의 가장 주요한 형식은 여기에서 말하는 현악4중주인데 2대의
바이올린 중 1대를 플루트나 오보 등의 목관악기로 바꾼 것과 또 그것을
피아노로 바꾼 것에도 여러 가지 작품이 있다. 피아노가 들어간 4중주인
경우에는 이것을 '피아노 4중주'라고 부른다.
@[ (4) 5중주 @]
5중주에는 현악5중주, 피아노5중주 및 관악기가 들어간 5중주 등이 있다.
현악5중주는 통상의 현악4중주에 비올라를 또 1대 참가시킨 것이 가장
많고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스 등은 누구나 이 형식에 의해 아름다운
작품을 쓴 바 있다. 이 제2비올라 대신에 제2첼로를 참가시킨 것, 즉 2대의
바이올린, 1대의 비올라, 2대의 첼로라는 편성에 의한 5중주도 있 지만,
이것은 슈베르트의 유명한 C장조를 제외하고는 별로 그 예를 볼수 없다.
피아노5중주는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짜 맞춘 것으로 슈만, 브람스,
드보르작, 프랑크 등 로맨틱한 음악 속에 걸작으로 애호되는 명곡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낭만음악의 시대, 즉 19세기 후반에 중후하고 정치하며
힘찬 실내악곡이 사랑받았던 것도 그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피아노5중주곡에 "숭어"라고 이름붙여진 곡이 있다.
이 실내악은 악기의 편성법이 조금 색달라서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된 5중주이다. 실내악에 더블베이스를 사용한다는 것은
별로 그 예가 없다. 이것은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는 독주악기로서 활약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좀더 큰 편성의 합주에서 그 낮은 음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진기하게도 이실내
악곡에 더블베이스를 사용하여 뛰어난 효과를 올렸다. 당시 빈에 왔던
이탈리아의 드라고넷티라는 유명한 더블베이스 주자는 이곡의 악기의
사용법에 관해 대단히 이 것을 극찬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클라리넷 1대를 현악4중주에 참가시킨 '클라리넷5중주'도
실내악으로서 좋은 효과를 지닌 것인데 모짜르트와 브람스가 각각 명곡을
남긴 바 있다.
@[ (5) 6중주, 그 밖의 중주 @]
실내악도 6중주 이상이 되면 옛날부터 그 작품의 수도 훨씬 적어진다.
원래 실내악의 재미는 각 악기의 독주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전체로 조화가
잡힌 좋은 합주를 감상하는 데 있으므로 악기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전체로서는 화려하고 힘차게 되지만, 개개의 악기가 지닌 독립성은 점점
약해져서 실내악으로서의 흥미는 엷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작곡가, 연주자, 청중에게 있어서는 2, 3명에서 4,5명 정도의
실내악이 가장 즐겁다는 것이된다. 그러나 6중주 이상의 인원수의 것도
드물 게 있다.
6중주는 브람스가 명곡을 2개 남겼다. 어느 것이나 현악6중주로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각 2대씩 사용하여, 중후한 효과를 지닌
합주이다.
7중주로서는 베토벤이 30세 무렵에 만든 작품20번의 E플랫장조가 가장
유명하다. 이것은 클라리넷, 버순, 혼이라는 3대의 관악기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4대의 현악기로 편성된 것으로 6개의 악장을
가진 대곡인데 그 감미로운 매력은 굉장하다. 이것은 그 당시 빈에서
대단한 평판을 얻은 곡으로, 많은 악기를 다룬 실내악의 가장 성공한
하나의 예이다.
8중주로서는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의 작품에서 그 뛰어난 예를 볼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이미 실내악이라기보다는 작은 관현악처럼 되어 있다.
@[ 8.관현악 @]
@[ (1) 관현악의 발달과 편성법 @]
현대의 기악합주 중에서 가장 큰 조직을 가진 것은 관현악이다.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극장에서 무대 앞쪽에 있는 무용을
하거나 합창을 하기도 하는 장소의 명칭에서 생겼으며, 후에는 여기에
설치된 객석도 오케스트라석이라 불리게 되었다. 16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그리스 극이 부흥된 뒤, 이 무대와 객석과의 사이에 합창단이나 음악대가
가늘고 긴 위치를 차지하 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 음악대를 가리켜
오케스트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관현악을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극장의 앞쪽 관람석의 명칭도
되고 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의
오페라가 상연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그 밖의 음악, 즉 교회나 살롱에서
연주되는 음악과는 달리 떠들썩한 극장의 음악이며, 또 극의 내용을
음악으로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보다 한층 화려한 음의 색채,
풍부한 울림, 힘찬 표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
오늘날의 관현악의 시초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초의 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악기의 편성등도 전혀 아무런 계획이 없고 그때 그때에
따라 가지각색이었다.
처음에는 그 당시 가정 같은 곳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었던 류트,
테오르보 (Theorbo), 작은 하프와 같은 발현악기를 주로하여 여기에 2,
3대의 가로피리를 더한 정도의 것으로서, 지금의 오페라로 생각하면
실내악처럼 작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의 구경꾼은 매우 기뻐했었다. 그
후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의 발전과 함께 진보하여 온 것이다.
관현악의 발전에 먼저 획기적인 공헌을 한 것은 1567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곳에서 태어난 몬테베르디라는 오페라 작곡가이다.
크레모나라고 하면 후에 세계에서도 유수하게 뛰어난 현악기를 만들어낸
곳이다. 몬테베르디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활로 문질러서 음을 내는
현악기를 많이 오케스트라에 사용했고, 다시 트롬본, 코넷, 트럼펫 등의
금관악기와 플루트를 비롯, 클라리온이라는 클라리넷의 전신이 되는
목관악기 등을 사용하여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었던 화려한 효과를 올렸다.
바이올린같이 활로 켜는 현악기에 트레몰로라는 주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이 몬테베르디였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새로운 기술을 곳곳에서
사용하여 당시의 오케스트라가 지닌 표현능력을 크게 넓혔다. 트럼펫이나
코넷에 약음기를 사용하는 일조차도 당시 이미 고려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몬테베르디가 1624년에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해서 상연했을 때는 너무도 그 수법이 새로왔으므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크게 놀라 당황하 면서 처음에는 연주하기를 거절할 정도였으나,
막상 해 보니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예기하지 못했던 멋진 색채적 효과와
힘차고 극적인 박력에 청중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몬테베르디보다 약 백년 가까이 늦게 나타난 알렉산드로 스카롤랏티라는
사람도 또한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였으며, 따라서 오케스트라의 개선에도
힘을 다한 사람인데, 이 백년 동안에 바이올린계의 현악기는 그 제작법과
연주법, 또는 작곡상으로도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스카를랏티는 이
각종 현악기군을, 합창인 경우의 목소리의 취급과 마찬가지로 4개의
그루프로 나누어 소프라노에 해당하는 곳에 제1바이올린을, 알토에
제2바이올린, 테너 부분에 비올라를, 그리고 베이스에 해당하는 1군을
첼로와 더블베이스에 맡겨서 인성의 4부 합창을 현악기군으로 연주해
보았다. 그러자 이것은 매우 충실하고 힘찬 효과를 올리는 데 성공했으므로
이 현악합주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 플루트, 버순 등의 관악기를 덧붙여서
색채를 아름답게 했는데 근대의 관현악법의 바탕은 바로 여기서부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합리적이며 또 효과적인 악기 편성은 같은 시대에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던 륄리 (Jean-Baptiste Lully 1632--1687)에 의해서 더욱
개선되었다. 륄리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성장하여
프랑스에 귀화하고, 루이 14세의 궁정 직속 오케스트라의 총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국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훌륭한 오페라단을 가졌으며,
새로운 오페라를 많이 만들었다. 오페라 그 자체도, 또 합창 부분에서도
커다란 진보를 보여 주었는데, 그 개막에는 이른바 프랑스식 서곡이라는
장중하고 화려한 곡을 연주하는 것을 비롯하여 발레 장면 등도 많이
넣음으로써 오페라에 있어서의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졌고 그
때문에 한층 이것을 대규모로 조직하여 기술도 향상시켰음은 륄리의 커다란
공적이다.
그 무렵 오페라와는 별도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바이올린의 연주
기술이 급속히 향상되있고 작곡상으로도 크게 발전하였다. 바이올린의 대가
코렐 리(Arcangelo Corelli 1653--1713)와 비발디가 잇달아 나타나 이
악기의 고도의 기술을 오케스트라에도 응용하여 협주곡(콘체르토)이나
모음곡을 많이 작곡했으므로 관현악의 효과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표현력도
풍부해졌다. 여기에 가장 장려한 울림을 준 것이 대작곡가인 바하와
헨델이다.
바하는 교회음악과 실내악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도 4개의 모음곡과 6개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관현악의 수법에 관한 많은 효과적인 시도를 하였다.
헨델은 많은 오라토리오와 함께 대중적인 오페라를 수없이 만들었다.
이것은 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많았으므로 그 오케스트라의
악기편성도 바하보다 더욱 화려했고, 외면적인 효과도 크게 발휘하여
청중을 감격시켰다. 그 오케스트라는 많은 트럼펫과 트롬본이 북소리와
함께 빛나게 울려퍼졌던 것이다.
그 무렵 남독일 라인강의 상류에 있는 만하임의 궁정음악가들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수법이 발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타미쯔(Jogann Wenzel Anton Stamitz 1717--1757), 필츠(Johann Anton
Filtz 1733--1760), 칸나 비히(Christian Cannabich 1731--1798)와 같은
사람들은 수백년 전부터 바하, 헨델에까지 발달해온 음악, 즉 교회음악에서
발전한 장중하고 중후한 음악에서 둘변하여 좀더 밝고 경쾌한 음의
사용법을 생각해 냈다. 이것은 이미 이탈리아에서 번창하고 있었던 아르스
노바(ars nova 신예술파)의 영향에 따른 것인데, 그 음악의 명랑한
즐거움은 대단한 형세로 세상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되어 갔다.
만하임의 궁정에서는 당시 유럽에서도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이
단체가 먼저 새로운 양식에 의한 악기의 편성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
악단의 우수 한 연주 기술과 함께 그 무렵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강약의
변화에 획기적인 음영을 지닌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헨델의 시대에는
개개의 연주가가 강약을 붙인다고 하는 기술이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합주 때에 작곡자가 강한 음을 요구하는 곳은 악기의 수를
늘리고, 약한음을 원할 때는 그 수를 줄인다는 간단한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헨델이 어느 곳에서 오페라를 상연했을 때는 10개의 오보를
사용했다는 등의 기록이 있을 정도인데, 이런 일은 바그너의
오케스트라에서 조차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당시는 악보에도 강약의
기호는 거의 없고 단지 '총주'라든가 '단주'라는 문자만으로 수를 증감하여
그 강약성(다이내믹)의 표정을 처리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하임의 지휘자들은 현악기 주자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잡한
표정을 요구했다. 종래의 '총주, 단주' 식으로는 약음에서 차츰 강해지는
크레센도(점점 세게)나 그 반대인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의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었지만, 만하임의 오케스트라는 그것을 손쉽게 해냈다. 또
전체가 약음으로 연주되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강음으로 바뀌는 스포르짠토
등도 쉽게 할 수 있게 되 었다.
당시의 청중도 이 새로운 효과에는 몹시 놀란 모양인 듯, 이런 것을
기록한 사람이 있다. "연주중 크레센도의 부분에서는 청중이 모두 일제히
숨을 죽이고 의자에서 허리를 들었다. 또 디미누엔도로 연주할 때는 가슴
속에 가득 들이마신 숨을 토해 냈고, 들었던 허리를 의자에 내렸다." 이
기록은 조금 과장해서 쓴 것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당시의 청중이 만하임의
오케스트라를 듣고 음악적인 새로운 경험에 눈이 휘둥그래졌는가 하는
사실의 일부를 알 수 있다.
이 만하임 악파의 신선한 여러 가지 수법은 유럽 전체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 우아하고 섬세하며 또 힘차고 명쾌한 표현력이
작곡가들을 자극하여 더욱 많은 뛰어난 작품을 낳게 된다. 모짜르트가 소년
시대에 만하임을 찾아가 그 곳의 오케스트라를 들었을 때,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아름다운 연주를 들었다고 하면서 감격했다고 하는 아야기도
있다.
오케스트라가 이처럼 섬세한 표현을 하거나, 또 인원수가 많아지면
악곡의 올바른 해석을 단원 각자가 명확하게 파악하여 통일된 연주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지휘자의 역할이 한층 무거워진다. 그 당시까지의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하프시코드(쳄발로) 를 치면서 전체의 연주를
정리하거나, 바이올린의 수석 주자가 자기도 연주하면서 지휘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관현악의 편성은 음의 충실함을 보더라도 완전한
것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하프시코드의 음을 첨가할 필요는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사 지휘자가 단원으로 부터 독립하여 지휘봉으로
음악을 진행한 것은 이 무렵부터이다.
이 시대의 대작곡가 하이든은 교향곡만도 백곡 이상이나 썼을 정도의
다작가로서 '교항곡의 아버지' 라고 불리웠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거니와 그는 평생을 통하여 오케스트라의 편성법의 발전과 정비에도
진력하여 오케스트라의 기본을 쌓아 올렸다. 지금의 어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도 하이든의 관혁악이 그대로 확대 증강된 것에 불과하다.
하이든이 그 제1교향곡을 쓴 것은 그가 27세 때의 일인데 그 편성은 다음과
같다.
목관악기 오보(2)
금관악기 흔(2)
현악기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각수명).
그가 이보다 40년 후, 즉 원숙기에 이른바 '영국 교향곡집'에 사용한
편성은 이 최초의 것에 다시 다음의 악기를 첨가시켰다.
목관악기 플루트(2), 클라리넷(2), 버순(2).
금관악기 트럼펫(2)
타악기 팀파니(1쌍)
위의 편성이 이른바 2관 편성인데 이 형은 그대로 모짜르트, 베토벤으로
계승되었다.
하이든의 '영국 교향곡집' 중 "군대 교향곡"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곡에서는 그 밖에 큰북, 심벌, 트라이앵글 등 3종의 타악기가 참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로서는 오히려 특별한 경우이며, 이 3종의 타악기는
베토벤이 "제9번 교향곡"에 사용할 때까지는 교향곡에 쓰인 예는 거의
없다.
이 2관 편성은 당시부터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 표준형이 되고 19세기에
이르러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등 낭만파의 작곡가에게까지 계승되지만,
그대로가 아니라 조금씩 확대되어 갔다.
하이든과 거의 같은 시대에 나온 프랑스의 작곡가 고섹(Francois joseph
Gossec 1734--1829, 우리나라에서는 고섹의 가보트 작품으로 유명)도 또한
관현 악법의 연구에 힘을 쏟 은 사람으로, 그가 1970년에 작곡한 1기의
레퀴엠은 당시의 청중을 아연케하리만큼 새로운 수법을 갖고 있었다. 이
레퀴엠이 처음으로 어느 큰 교회에서 연주되었을 때, 교회에 모인 사람
들의 눈에 비친 것은 파이프 오르간을 등진 음악대의 자리에 현악을
중심으로 하는 보통의 오케스트라가 합 창단에 둘러싸여 있는
것뿐이었으나, 차례로 곡이 진행되다가 이윽고 제2악장 (진노의 날) 끝
부분에 가까워질 무렵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지는 순간'이라는 매우 장엄한
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교회당 밖에서 대기하던 트럼펫, 혼, 트롬본등
금관악기가 일제히 놀라울 정도로 장려한 코랄을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선고인양 불어댄다.
동시에 교회당 안의 오케 스트라에서는 많은 바이올린이 높은 음역의
트레몰로로 마치 천사의 합창처럼 숭고한 음향으로 이에 응한다. 이 빛나는
연주의 효과는 당시의 관현악법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확실히
사람들 을 놀라게 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베토벤은 하이든의 만년의 관현악 편성을 대체로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그가 불후의 9개의 교향곡을 쓰는 동안에 그는 많은 독창적인 수법으로
여기에 새로 악기를 첨가해 왔다. 제5교 향곡에는 당시의 교향곡으로서는
최초의 시도로서 픽콜로, 더블버순, 트롬본 등을 첨가했으며, 또 제3교향곡
"영웅"에는 처음으로 3 개의 혼을 사용하고 "제9번"에 이르러 4개의 혼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각 악기의 성능과 그 역할을 충분히 살려 그
집단과의 관계를 명백히 하고 합주 전체의 기능을 그가 구했던 커다란
예술적 표현에 잘 어울리도록 넓힌 것이었다. 즉 관현악법의 형식상의
혁신이라기보다는 하이든의 2관 편성이 근대 관현악법의 기본으로서 참으로
훌륭한 것이며, 장차 이것이 한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불후의 명곡을 통해 확고하게 뒷받침한 것이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의 역사상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이다. 베토벤이 제9교향곡에 사용한 관현악 편성은 다음과 같다.
목관악기: 플루트(2), 픽콜로(1), 오보(2), 클라리넷(2), 버순(2),
더블버순(1).
금관악기: 혼(4), 트럼펫(2), 트롬본(3).
타악기: 팀파니(1쌍), 큰북, 심벌, 트라이앵글.
현악기: 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각군).
여기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 각각 한 사람과 백명
이상의 합창이 딸린다. 이 악기 편성이 지금도 가장 많은 경우에 사용되는
표준적인 것으로서, 이 가운데 혼과 트롬본은 각각 4대, 3대이긴 하나
편의상 이것을 2관 편성이 근대 관현악법의 기본으로서 참으로 훌륭한
것이며, 장차 이것이 한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불후의 명곡을 통해 확고하게 뒷받침한 것이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의 역사상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이다.
베토벤이 제9교향곡에 사용한 관현악 편성은 다음과 같다.
목관악기: 플루트(2), 픽콜로(1), 오보(2), 클라리넷(2), 버순(2),
더블버순(1)
금관악기: 혼(4), 트럼펫(2), 트롬본(3)
타악기: 팀파니(1쌍), 큰북, 심벌, 트라이앵글
현악기: 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각군)
여기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 각각 한 사람과 백명
이상의 합창이 딸린다. 이 악기 편성이 지금도 가장 많은 경우에 사용되는
표준적인 것으로서, 이 가운데 혼과 트롬본은 각각 4대, 3대이긴 하나
편의상 이것을 2관 편성이라 부르고 있다. 또 흔히 이것을 베토벤형
편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베토벤의 시대를 하나의 경계로 하여 관현악에서 활약하는 모든 악기는
저마다의 특색에 따라 각각 그 임무가 매우 무거워졌다. 예컨대 지금까지
단지 합주의 낮은 음을 맡고 있던 첼로와 더블베이스도, 그리고 버순이나
혼의 낮은음도,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제각기 명확하게 따로따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하이든의 시대보다도
훨씬 어려운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베토벤의 만년부터 유럽의 음악은 이른바 낭만파 시대가 된다. 낭만파의
작곡가들은 먼저 베토벤의 관현악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것을 발전시키고
더욱 새롭고 생생한 정서와, 힘차고 극적인 감정을 고조시켜 19세기의
화려한 오케스트 라의 황금시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베토벤의
오케스트라를 직접 계승한 것은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이며,
이것을 오페라 혹은 악극 위에 크게 키워낸 것이 베버와 바그너였다.
오페라에서는 무대의 진행에 따라 음악도 매우 커다란 표현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화려한 느낌, 환희에 찬 느낌, 처절한 감정, 슬픈 감정
등은 극의 발전과 함께 오케스트라가 관중을 긴장시키거나 흥분시키가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작곡가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그
관현악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옛날부터 오페라라 하면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점점 대규모가 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헨델이나
모짜르트 등의 무렵에도 협주곡이나 교향곡은 대개는 살롱에서 연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악기 편성은 비교적 작아도 괜찮았지만, 그들이 오페라를
만들 때에는 악기의 종류나 그 수도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베토벤 이
후에는 교향곡도 또한 대극장으로 진출했으므로 그 악기 편성도 오페라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도 오페라를 많이 쓴 작곡가는
극적인 효과를 더욱 증대시키기 위해 대규모의 악기 편성을 사용했다.
바그너는 지금까지의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에 바탕을 둔 오페라가
연극과 음악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할 종합 예술로서는 많은 결점을 갖고
있음을 불만으로 여기고 '오페라 개혁'이라는 높고 원대한 이상 아래 새로
'악극'을 창시하였다.
바그너는 이 이상을 실현하려면 도저히 종래의 관현악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 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목관악기, 금관악기를 3대씩, 이른바 3관 편성으로 하였다.
그 위에 잉글리쉬 혼이나 베이스 클라리넷, 튜바, 더블베이스 등을
참가시켰다. 물론 관악기가 이만큼 많아지면 이보다 음량이 작은 현악기의
각 군도 2배 가까이 증원하지 않으면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바그너는 이 새로운 3관 편성으로 '악극'을 시작하기 전의 마지막 오페라인
"로엔그린"에 서시도 하여 1850년에 비로소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바그너는 아직 만족할 수가 없어서, 후에는 필요에 따라 좀더 관악기의
수를 늘리고 자신이 고안한 바그너 튜바라고 하는 혼과 작은 튜바 중간
크기의 악기를 혼의 수만큼 참가시키기도 하였다.
바그너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온, 헝가리의 대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이기도 했던 리스트와, "환상 교향곡"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베를리오즈는 둘 다 관현 악법의 대가로서, 그 풍부한 체험을 많은
교향곡이나 교향시의 명곡 속에서 실천하고 훌륭하게 이론화하였다. 이
대가들은 표제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표제음악은 오페라나 악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관념이나 감정, 사상까지도 마치 문학처럼 음악으로
그리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오케스트라에도 풍부한 색체와 음영 등이
힘찬 묘사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점점 커지고 그 효과는 더욱 화려해
졌는데, 거기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일이 있다. 작곡가가 아무리 음악의
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생각해도, 그 머리 속에서 생각한 주문대로의
음을 자유자재로 악기가 내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작곡가의
요구는 차츰 커져서 뛰어난 연주가를 모아들이고 뛰어난 연주가는 끊임없이
악기의 구조나 성능에 대해 그 개량을 요구하게 되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에서는 금속공업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관악기도 크게 개량되었다. 예를 들면 독일의 테오발트 뵘(Theobald Boehm
1794--1881)이라는 사람이 플루트의 구조를 연구하여 금속제의 키를 눌러
관에 붙어 있는 구멍의 뚜껑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장치에 대해
커다란 개선을 했으며 플루트 이외의 목관악기에도 이 원리가 응용되어
오늘날의 이른바 뵘식 악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또 나팔류, 혼이나
트럼펫 등에도 여러 가지 개량이 가해진 결과, 그 때까지는 도저히 불 수
없었던 어려운 곡과 빠른 곡도 불 수 있게 되어, 관현악에 이 악기를
사용한 경우의 효과로 대단한 진보를 보게 되엇다.
또 하나는 고전 시대의 오케스트라는 어느 것이나 왕후 귀족이나 부호의
개인 소유인 경우가 많았지만, 19세기 중엽이 되면서 봉건 제도가 차츰
무너지고 새로운 자본주의가 일어났다. 원래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경영하는 데는 거액의 경비가 들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지탱해
나가기에는 스스로 한게가 있다. 오페라단이나 오케스트라를 경영하는 자본
형태도 속속 변해가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래서 종래보다 좀더 큰 자본,
대중에 의해 유지되는 대자본이 투입되어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그너의 3관 편성은 마침내 대작인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이르러
4관 편성이 되었다. 이것에 의하면 각 관악기마다 4성부의 화성군을 갖고
그 표현력은 더욱 충실해진 셈이다.
그 후 구스타프 말러, 리햐르트 시트라우스,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등은
점점 대규모의 악기 편성을 시도하고 악기에 따라서는 6관, 8관에 달하는
것도 많이 나왔다. 그러면 말러가 제2교향곡 "부활"에 사용했던 악기의
편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목관악기: 픽콜로(4), 플루트(4), 오보(4), 잉글리쉬 혼(2),
클라리넷(3), 베이스 클라리넷(1), E플랫클라리넷(2), 버순(4),
더블버순(1).
금관악기: 혼(6), 트럼펫(6), 트롬본(4), 튜바(1).
타악기: 팀파니(6개), 큰북(1), 심벌(1쌍), 작은북(1), 트라이앵글(1),
탐탐(고저2), 글로겐시필(1), 큰종(3).
건반악기: 파이프 오르간(1).
무대에서 떨어진 객석 속에 혼(4), 트럼펫(4), 팀파니(1쌍), 그 밖의
타악기 몇대.
현악기: 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현악기만으로 70명
이상),하프(2).
성악: 알토 독창자(1), 합창단(수백명).
이쯤되면 이미 음악의 아름다움도 그렇거니와 그보다는 이 대규모의
합주를 눈으로 본 장대 호화로운 위용, 대음향이 소용돌이 치는 속에
스며든 관능적인 상쾌함과 같은 사치한 효과를 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20세기가 되어 그토록 전성기를 맞이했던 낭만주의가
사양길로 접어들자 이러한 대규모의 관현악 편성도 점점 수그러들고,
근년에는 좀더 간결하게 정리되어서, 직절적인 방법으로 좀더 투명하면서도
보다 많은 인상의 깊은 효과를 내는 관현악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관현악의 연주를 무대에서 보면, 각각 자기가 맡은 악기를 가진 70명에서
백명에 달하는 단원이 배치되어 있다. 그것도 단지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년의 역사와 경험에 의해서 될 수 있는 대로
합리적으로 아름다운 연주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그
방법에는 몇가지의 형이 있다. 다음에 그림과 사진으로 나타내어 보자.
그림A는 유럽에서 많은 악단이 사용하고 있는 형이다. 그림B는 근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방법으로 지금은 유럽에서도 이렇게 배열하는 방법을
채용하고 있는 교향악단이 있다. 각기 일장일단이 있어서 어느 형이
최상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주로 지휘자의 의견에 따라, 혹은 그
악단의 전통에 따라, 그 어느 하나의 형을 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직
부분적으로 다소 색다르게 배열하는 방법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하프나
첼레스타는 A, B 모두 마주 보아 왼쪽, 혹은 오른쪽의, 전방의 가장자리에
두는 경우도 많이 있다.
위에 말한 2관 편성, 혹은 3관 이상의 관현악 편성은 일반적으로
교향곡이나 서곡 등도 연주하는 표준적인 것으로서 이것을 '교향악단' 혹은
'교향관현악단'(심포니 오케스트라)이라고 부르는 수가 있다. 또 이보다
적은 인원의 편성이 되면 '실내관현악단'(살롱 오케스트라) 또는
'소관현악단'이라고 부른다.
표준적인 관현악단의 제1바이올린군(마주 보아 왼쪽 전방) 속에서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의 바깥쪽에 앉아 있는 것이 콘서트
마스터(독일어로는 콘체르트마이스터)이다. 콘서트 마스터는 그 악단의
바이올린 주자 중에서 기술이 가장 뛰어나고 또 다년간 관현악의
연주자로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 임무를 담당하여 현악기군 전체를
통솔해 가는 것이다. 또한 연주하는 악곡 속에 바이올린을 혼자서만 켜는
곳이 있으면 콘서트 마스터가 이것을 켜도록 되어 있다.
@[ (2) 지휘자 @]
소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제외하고 보통 표준적인 관현악단의 연주에는
거의 모든 경우에 지휘자가 있으며 이 지휘자가 그 연주를 통일한다.
세계 일류의 모든 교향악단은 앞을 다투어 뛰어난 지휘자를 맞아들이고,
그들 노련한 명지휘자에 의해 더욱 더 교향악단의 진가를 발휘하도록
힘쓰고 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중앙, 맨 앞의 단위에 서서 악단을 구석구석까지
바라다보고, 여기에서 악곡의 진행에 수반하여 자기의 뜻대로 악단을
움직여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현악단을 하나의 피아노로
본다면 지휘자는 피아니스트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도
음이 안맞은 피아노, 음이 잘나오지 않는 낡은 피아노로는 도리가 없다. 또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이것을 치는 피아니스트의 솜씨가 나빠서는 역시
소용이 없다. 지휘를 한다는 것은 단원에게 지휘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음악을 충분히 내게 한다고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자면 갖가지
악기의 연주 기술과, 그 성능이나 효과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 좀더 중요한 것은 연주하려 하는 악곡에 대한
이해이다. 악곡에 대해서 자기가 이해한 음악적인 의미를 커다란
관현악단에 의해 청중에게 잘 알 수 있도록 들려 준다. 그러자면 관현악을
자기의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지휘자는 음악에 대한 많은 지식과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앞에 예를 든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와의 관계와는 달리 제각기 한
사람의 구실을 하는 살아 있는 음악가를 몇십명 움직이는 셈이기 때문에
지휘자는 그 인간성과 예술적인 인격이 많은 단원간에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지휘자는 17세기 초부터 나타났다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 역할의
필요성은 좀더 오래 전부터 인식되고 있었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남아있는 옛 기록에는 13세기 독일의 미네젱거(Minnesanger, 음유시인의
일종)로 유명한 하인리히 폰 마이센이라는 사람이 그린 합창대와 반주자를
앞에 놓고 긴 막대를 들고 지휘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하는 합창이나 합주의 박자를 맞추고 그 표정을
일치시키려면 아무래도 누군가 잘보이는 곳에 있는 한 사람의 행동을
목표로 해서 이것에 맞추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휘자는 이 필요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대개의 경우 그 곡을 만든 사람이라든가,
혹은 단원 모두의 선생격인 사람이 이것을 맡아 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휘자의 역할과 그 필요성이 명확히 인식된 것은 17세기의
이탈리아오페라가 번성해지게 된 뒤의 일이다. 작곡가가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이것을 치면서 관현악과 무대 위의 가수들에게 필요한 신호를 주어
이것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프시코드를 치는 사이에는 손을
흔들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 신호를 하거나, 때로는 발로 바닥을 쿵쿵 눌러
박자를 짚기도 했을 것이다. 이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지휘를 하는 방법은
널리 이탈리아에서 행해지고 그로부터 프랑스로 들어가 륄리, 라모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보급되었으며, 륄리의 제자였던 퍼셀에 의해
영국에서도 행해졌다. 또 독일의 오페라작곡가 쉬쯔(Heinrich Schutz
1585--1672)도 이탈리아에 들어가 페리(Jacopo Peri 1561--1633)라는
사람이 쓴 오페라 "다프네"를 독일에 가지고 돌아가 드레스덴에서 상연했을
때 이 지휘법도 함께 수입했으므로 독일에서도 이것이 보급되게 되었다.
그래서 이 형태의 지휘법은 19세기 초엽까지 유럽 전지역에서 행해졌던
것이며 하프시코드 주자는 따로 있고 지휘자는 긴 막대를 들고 모두에게 잘
보이도록 박자를 짚는 수도 있다. 막대 대신에 악보 등을 가늘고 길게
말아서 드는 수도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말은 종이를 양손에 한 개씩 들고
지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륄리가 그 많은 오페라를 지휘할 때는 하프시코드 자리에
앉고, 또 궁정 직속의 악장으로서 무도회나 궁정음악회 때에는 지휘봉을
들고 관현악단 앞에서 화려한 지휘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 이래로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파리의 음악회에서는 눈부신 지휘봉이 유행하였고,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역시 소박한 하프시코드의 지휘가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짓궂은 평론가였던 장 자크 루소는 "유럽에서 파리의
오페라만은 지휘자가 멋대로 막대를 휘두르고, 단원들은 이것에 맞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밖의 곳에서는 지휘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있지만
단원이 잘 맞춰서 연주하고 있다"고 험담을 했다는 것이다. 화려한 지휘의
원조라고 일컬어졌던 륄리는 어느 때 너무 지나치게 신바람이 나서 절도를
잃고 그 장기인 긴 지휘봉을 크고, 격렬하게 휘두른 순간, 그만 자기의
무릎을 세게 쳐서 상처를 입었는데, 그 상처가 곪은 것이 원인이 되어
1687년 3월에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 시대부터 잠시 동안 지휘봉을 흔드는 일과 하프시코드의
자리에서 지휘를 하는 일은 병행해서, 어느 쪽이든 간에 지휘자의 역활은
합주 전체의 박자나 속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춰서 음악을
진행시킨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관현악의 합주를 하는 기술이 시대와 함께 진보하여 단지 박자를 맞추고
강약을 맞추는 정도의 일이라면 지휘자 없이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을 지나 관현악의 인원수도 30명, 40명 등 대편성이 되고
악보의 내용도 점점 복잡해져 갖가지 감정을 교묘하게 표현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그 내용을 바르게 '해석'하여 이것을 많은 단원들의 연주 위에
정확하게 나타내는 일이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이것은 1820년 경부터 갑자기 성해지기 시작한, 이른바 낭만음악의
경향이며 인간의 가진 섬세한 정서나 정열 등을 크게 나타내려 하는 경향의
음악이 자주 만들어지게 되고 나서 점점 중요시되어 관현악의 편성은 더욱
더 증대하여 '표제음악'의 발달과 함께 그 악곡을 '해석'하는 명언도
잇달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지휘자는 언제나 단원의 움직임을 보면서 지시를 해야 한다.
스스로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뜻대로 지휘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차츰 모든 지휘자가 하프시코드에서 떠나 중앙의 지휘대 위에 서게
된 것이다. 음악사에서는 1829년 5월에 멘델스존이 런던에서 자작의
교향곡을 지휘했을 때, 피아노 옆에 앉아 이것을 이따금 치면서 지휘를
했다는 것이 이 구식 지휘법의 마지막 기록이 되고 있지만, 이 보다 이미
9년 전에 당시의 작곡가이며 명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시포어라는
사람이 "요즈음에는 교향곡이나 서곡의 연주에 피아노나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지휘를 하는 사람은 이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쓴 바 있다.
현대의 지휘자는 먼저 악곡을 바르게 해석해서 이것을 관현악이나 합창의
연주에 완전하게 나타내어 간다고 하는 음악성과 그 기술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자면 첫째로 복잡한 악보를 빠르고 정확히 읽고 그
형식상의 표현은 물론, 그 음악이 갖고 있는 의미를 똑똑히 파악하여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이나 의미뿐만 아니라 작곡자가 그것을 통해
나타내려 했던 깊은 정신, 사상까지 듣는 이에게 전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세계의 대지휘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악보도 지휘자가 사용하는 악보는 관현악의 각 악기의 분담을 모조리
나타낸 것으로,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이것을 한 눈으로 쭉 훑어 보면서
피아노로 계속 쳐 볼 정도의 힘이 없으면 좀처럼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이
지휘자용 악보를 '총보'라고 하며 영어로는 '소코어(Score)', 독일어로는
'파르티투르(Partitur)', 프랑스어로는 '파르티시옹(Partition)'이라고
한다.
관현악용 총보는 맨 위쪽에 목관악기, 다음에 금관악기의 각 군을 적고,
그다음에 각종 타악기를 적는다. 여기까지는 그 각 악기의 수까지 알 수
있도록 숫자가 기입되어 있지만, 그 밑에 쓴 현악기의 각 군은 어느 것이나
복수로서 수의 지정은 없어도 보통은 제1, 제2바이올린(각16명),
비올라(14명), 첼로(12명 내지 10명), 더블베이스(10명 내지 8명) 정도라고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성악, 합창, 혹은 독주 악기 등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현악기군과 타악기군 사이에 이것을 적어넣는 것이 통례이다.
앞 페이지에 든 '총보'의 한 예는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 전주곡의 첫머리이다.
@[ (3) 현악 합주 @]
관현악 속에서 목관과 금관을 제외하고 현악기 군만으로 편성한 합주를
현악합주라고 한다. 영어로는 스트링 오케스트라, 또는 스트링 앙상블이다.
편성은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콘트라바스) 의 5군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 드물게는 하프,
피아노, 첼레스타와 그 밖의 타악기 등을 첨가시키는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는 현악기만으로 조직되는 것을 현악합주라고 한다. 그 인원수는
특별히 일정한 규칙은 없고 각 부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면 좋은데, 그
대부분은 전부 20명 내외인 경우가 보통이다.
현악합주는 모두 같은 개통의 악기뿐이기 때문에 관현악에 비해
색채적으로는 다소 단조롭지만 음색이 맑아서, 우아한 취미를 지닌 음악에
적합하다. 구미에서는 매우 훌륭한 연주 기술을 지닌,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체도 많이 있다.
현악합주로 연주되는 곡목은 헨델, 바하 이전, 즉 18세기 이전의
협주곡이나 모음곡이 많고, 또 모짜르트 등이 현악합주를 위한 세레나데를
여러 곡 쓴 바 있다. 19세기가 되어서도 이 현악만의 음색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 등 외에 그리크, 드보르작, 시벨리우스
등도 명곡이라 할 수 있는 몇몇 작품을 남겼다.
@[ (4) 만돌린 합주 @]
만돌린과 기타는 가정음악으로서 또 학생의 음악으로서 널리 보급되고
있는데, 이들 발현악기(활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이든가 발목으로 뚱기는
것)만으로 조직하는 합주도 참으로 즐거운 것이다. 이것은 만돌린과 기타
계통에 속하는 악기만으로 합주하는 것이며, 그 편성은 관현악처럼 일정치
않지만, 지금 극히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다.
제1만돌린
제2만돌린
만돌라(만돌린보다 8도 낮은 악기)
만도첼로(모양이 더 큰 것)
기타
키타르로네(더블베이스에 상당하는 저음부)
여기에 피아노, 첼레스타 등의 건반악기, 또는 하프를 참가시키는 수도
있으며, 또 각종 타악기를 더 하거나 드물게는 플루크 등의 목관악기가
들어가는 수도 있다.
@[ 9. 취주악 @]
야외에서 연주하거나 대열을 싸고 행진하면서 연주하기 위해 옛날부터
취주악기(목관과 금관) 및 타악기로 이루어지는 합주가 널리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취주악, 영어로는 윈드 밴드, 또는 밴드라고 한다. 이
취주악은 군대의 행진에 사용된 일이 많았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라도
밀리터리 밴드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취주악을 브라스 밴드라고 하지만, 유럽에서는 브라스
밴드라고 함은 특히 브라스(놋쇠)제의 관악기, 즉 나팔류와 타악기만으로
편성된 것을 말한다. 군악대 중에서도 신속한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기마악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금관악대는 보통의 취주악에 비해 음의
느낌이 더욱 강대, 명확하지만, 목관악기가 없기 때문에 멜로디의 섬세한
표정이나 음색의 미묘한 조화가 결여되었다는 점도 있다.
취주악은 관현악에 비하면 음색도 명랑하고 힘차며, 음량이 풍부하므로
야외 연주에 적합하다. 또 휴대할 수 있는 악기만을 갖추고 있어서
이동하기 쉬우므로,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일은 이것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또 기후에 대해 민감한 영향을 나타내는 현악기(바이올린족)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추위와 더위, 건조와 습기의 변화는 물론이고, 때로는 풍설이나
폭풍 속에서도 연주할 수 있다고 하는 커다란 특색이 있다.
취주악도 때로는 행진이나 이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 즉
연주회장이나 공원, 음악당 등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옥내에서
연주할 때에는 음악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현악의 더블베이스나 팀피니,
혹은 하프 등을 사용하는 일도 드물게는 있다. 연주회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취주악대는 종종 콘서트 밴드라고 불리고 있다.
취주악은 군대용의 음악으로서 이미 8백년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편성이 된 것은 불과 백년 남짓 한 것으로서 프러시아의
군악장 비츠레히트 이후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면 다음에 취주악의 악기 편성에 대해 말해보자. 관현악의 편성은
앞에도 적었듯이 기본적인 형이 상당히 오래된 시대에 정해지고, 이것을
합리적으로 확충 강화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의 예외는 있더라도 대체로
일정한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취주악은 역사도 새롭고 또 각국의
군악대에 의해 발달했다고 하는 지방적인 특징도 많이 볼 수 있어서
현재에도 나라들에 따라서 그 편성법은 상당히 다르다. 다음에 드는 한
예는 극히 일반적인 것으로, 우리나라의 취주악은 대개는 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목관악기: 픽콜로, 플루트, 클라리넷, 소형 클라리넷(E플랫조), 베이스
클라리넷, 버순, 색소폰 각종.
금관악기: 코넷, 뷰글, 혼, 트럼펫, 트럼본 각종, 유포늄(바리톤), 알토
혼, 테너 혼, 소형 베이스, 베이스 튜바, 헬리코 혹은 수자폰(이 2개는
모두 최저음부, 즉 더블베이스에 해당한 것으로서, 어깨에 비스듬히 걸치고
연주하므로 행진하는 데 편리하다).
타악기: 큰북, 작은북, 심벌, 트라이앵글, 휴대용 글로켄(종) 등.
이들악기, 특히 관악기는 각기 같은 종류의 것을 몇명이 연주하므로
전체의 인원은 30여명에서 4, 50명에 달한다. 이상이 대략의 표준이고,
학교 음악 등 소편성의 경우는 15, 6명으로 편성하는 것도 있으며, 또
각국군악대에서 규모가 큰 것은 7, 80명에 달하는 것도 적지 않다.
위에 든 악기의 명칭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취주악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개개의 설명은 생략하였다.
취주악은 각자 개인의 기술이 좋고 또 뛰어난 지휘자에 의해 잘
훈련되었을 때는 그 합주의 음색이 매우 빛나며, 중후하고 힘찬 하모니,
명확한 리듬 등에 의해 듣는 이의 마음을 복돋우는 듯한 용장화려한 효과를
갖고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연주 기술이 크게 향상되어 직업적인 취주악단
외에도 각 회사의 직장악단, 혹은 학교의 취주악단 등도 그 수가 늘어나고
음악을 가장 건전하게 즐기는 방법으로 널리 보급하게 되었다.
@[ 10. 기악곡의 종류 @]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성악에 비하면 그 종류도 훨씬 많다. 이것은
악기를 사용하면 가사의 속박도 받지 않고, 또 한계가 있는 '인성'이라는
육체적 능력을 넘어 무한히 자유로운 음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악은 아마도 인류가 발생한 것과 동시에 존재했다고 여겨질만큼
오랜 기원을 가진 것이지만, 악기의 역사는 이에 비해 아직 짧고 더구나
기계를 사용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대와 함께 악기의 변천이나 진보
발달도 현지하여, 오늘날의 음악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악기가 완성된 것은
2백년도 채 못된 근대의 것이 많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악곡은 세계의
음악이 이미 상당한 발달을 이룩하고 나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기악곡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형식의 변천이나
작곡상의 수법에까지 미쳐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단지 가장 주요한 몇
종류의 기악곡을 듣고 그 개략을 설명하는 데 그치려고 한다.
@[ (1) 절대음악과 표제음악 @]
음악이 표현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 책의 처음에서도 말해 두었는데,
여기서 다시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먼저 음악은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것은 운동의
속도이다. 빠르다든가 느리다든가 하는 것은 음악 그 자체가 운동의 연속에
의해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눈이 핑핑 도는 것처럼 빠른
음악에서는 어수선한 느낌, 혹은 정력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또 느린
음악에서는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 평화로운 안도의 느낌, 또 때로는
권태감이나 절망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음의 높이에 연속된 변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멜로디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감정, 우울한 감정, 즐거운 감정, 익살스런 감정, 애수의 감정
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듣는 사람이 그
때의 심리적인 상태에 의해 동일한 멜로디(가락)를 듣더라도 각각 다른
감정을 일으킨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가락'을 들으면 어떤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강약이라는 역학적인 느낌도 확실하게 나타낼 수가 있다.
음은 운동의 에네르기에 의해 직접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 강약은 즉시
음파의 진폭의 대소가 되어 우리에게 강음, 약음으로서 인상지어진다. 단,
단독의 경우보다는 상대적으로 강약이 비교되고 대조된 경우에 인상은 한층
명확해지고, 그로부터 적극적인 느낌, 소극적인 느낌 등을 얻을 수 있다.
리듬도 또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강약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다음에 음색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목소리든, 여러 가지 악기의
음악이든, 모두 제각기 음색이 다르다. 음악은 많은 종류의 음색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조화시킴으로서 거기에서 생기는 갖가지 느낌, 색채, 그 변화의
묘를 맛볼 수 있다.
음악이 직접적으로, 또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대략 이 정도이고,
눈에 보이는 '사물'이라든가,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경험과 연상의 작용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가곡처럼 말을 가진 것은 그 말로 설명되지만, 가사를 갖지 않은
기악곡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일은 듣는 사람의 많은 체험이나 상상력의
도움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전원교향곡"의 '폭풍우'의 악장은 우리에게
베토벤의 훌륭한 묘사력을 느끼게 한다. '폭풍우'의 역학적인 특징을 강하게
그리고, 더우기 이것을 충분히 예술화하고 있음은 잘 알 수 있지만, 만일
'폭풍우'를 경험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음악에서 처음으로 '폭풍우'를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 독일의 대작곡가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이라는 것을
들어보자. 이것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쓴 교향곡이기 때문에 악장간에 명확한
끊음새는 없고, 40분 이상이나 걸리는 이 대곡이 계속해서 연주되는데, 잘
들어보면 대략 4개의 부분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선 먼저 첼로가 차분한 선율을 연주한다. 이것은 작곡자가 '아버지'를
나타내는 가락이라 말하고 있다. 작곡자는 이 부친에게 세 가지 성격을 주고
있다. '느긋하고 차분한 아버지' '잘 생각하는 아버지' '적극적인 아버지',
이 세 가지 성격이 각각 다른 짧은 가락으로 표시된다. 과연 저마다의
'가락'은 빠르거나 강약, 곡조에서 받는 느낌으로 그러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있다.
다음에는 '어머니'를 나타내는 가락이 나온다. 처음의 아버지는 첼로만의
낮은 음으로 나왔는데 어머니의 가락은 바이올린, 플루트, 오보와 같은
고음부의 부드럽고 상냥한 느낌의 음색을 지닌 악기를 통해서 나타낸다.
첼로의 낮은 쪽의 음은 보통 우리들이 경험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연상시키고, 더구나 이 악기가 낮은 곳에서 짧게 음을 끊어서 켜는 것은
약간 거치른 느낌을 준다. 매우 순박하고 조금 서투른, 소탈한 남자의
느낌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쪽은 '밝고 유쾌하지만 조금 변덕스러운 아내'의
성격과 '평범한 주부이며 상냥한 마음씨의 아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역시 각기 짧은 가락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보 다모레라는 악기의 음으로 나타내는 '어린이'이다.
그 아이는 외아들이다. 이 가락은 단순하고 순진한 느낌을 갖고 있지만
이따금 개구장이다운 면모를 발휘해서, 곡 속에서도 이따금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 "가정 교향곡"은 이러한 가락들을 소재로 해서, 흔히 있는 부모와
자식, 세사람의 오붓하고 평범한 가정의 정경을 그리려 한 것이다. 부친과
모친의 대화, 어린이가 장난을 치거나, 쓰러져서 울기도 한다. 이
사랑스러운 어린이가 중심이 되어 양친의 아주 가정적인 생활이 묘사되고,
그 심리적인 움직임을 음악으로 묘사하여 평화로운 가정과 풍부한 인간성을
말해 주고 있다.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놀랍고 숙달된 작곡 기법과 그
날카로운 색채감 등에 의해 이 곡은 듣는 이에게 즐거운 인상을 준다. 이런
종류의 음악을 표제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가정 교향곡"이 표현하는 '사물'이나 '성격'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자. 여기에 그려진 부친과 모친, 어린이 등은 우리들이 일반
세상에서 흔히 보는 형의 사람들이며, 그런 것을 지금까지 많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작곡자로부터 그런 암시를 받으면 곧 연상 작용으로 이 설정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표제음악에 대해서도 곧 납득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작곡자가 그 내용을 미리 말로 설명해 두지 않았을
경우에는 이것을 아무리 들어 보아도 우리는 이 속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린이'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의 인물이
어떤 생활을 하는가 하는 것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곡에서 받는 인상은 예컨대 그 가락의 아름다움, 몇 가지 주제의 교묘한
대비와 그 발전의 재미, 또 관현악의 필목할 만한 색채적인 아름다움 등에
감탄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전세계의 나라들에 '아버지'라든가 '어머니'라든가 하는 말은
각각 확실하게 있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아버지',
'어머니'에 상당한 '가락'은 없다. 이 곡에서는 작곡자가 이 '가락'은
아버지이다. 이 '가락'은 '어머니'라고 정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그렇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그 설명이 없으면 이 '가락'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린이도 아니다. 그러나 그 '가락'의 아름다움만은
작곡자의 설명이 있거나 없거나 변함은 없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가락'의
아름다움은 듣는 이의 판단에 따라 알게 된다. 그 것은 그 '가락' 자체가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작곡자가 '인간의 말'을 갖고 설명하는
음악이 이른바 '표제음악'이며, '음악 그 자체'가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절대 음악의 입장에서 감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은 전혀 별종의 음악은 아니고, 동일한 음악
속에 이 양쪽 면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교묘하게 그 설명과
내용이 결부된 표제음악이라도, 절대음악의 입장에서 아름답다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좋은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처음부터 아무
'표제'를 달지 않은 음악도 많이 있는데, 이것을 들은 우리는 음악 그
자체가 설명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음악의
본래의 모습이며, '인간의 말'에 의해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그런 음악은 진짜 좋은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표제음악'의 설명문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설명문에 의해 그 음악이 듣는 이를 더욱 강한 감동으로
이끄는 수도 있으며, 한층 깊이 음악을 즐기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으로 예로 든 "가정교향곡"도 그렇지만, 듣는 이는 그
설명문(표제)에 의해 작곡가가 그리려 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고, 더우기
음악 본래의 모습, 즉 절대음악의 입장에서 들어도 아름다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갖가지 체험과 문학적,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고, 많은 기억이나 연상의 작용을 갖고 있는 현대인은 이
표제에 의해 사고를 음악과 결부해서 발전시킨다. 그리고 사고가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 일으켜 이것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딱 조화되었을 때에
'표제음악'은 굉장한 박력으로써 듣는 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즉 베토벤의 무렵까지는 대부분의 음악이 절대음악의
입장에서 작곡되고 또 감상되어 왔다. 그 후에 낭만음악이 성해져 음악은
문학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문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발전하려 하는 경향이
일어나, 여기에 표제음악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표제음악을 듣는 경우에는 미리 그 표제에 대해 잘 알고 이것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령 표제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그 음악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그 '표제'의 설명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우리의 마음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2) 소나타와 소나티네 @]
16세기 말, 오르간 음악이 활발해 질 무렵에 칸쪼네(노래)라는 자유로운
형식의 소곡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이윽고 성악곡의 명칭이 되고,
악기로 연주하면 '칸쪼네 다 소나레'(울리는 노래), 즉 '기악을 위한
소곡'이라고 하게 된다. 이 말이 간소화 되어 소나타라는 용어가 생겼다.
따라서 소나타는 17세기 초에는 단지 '기악곡'이라는 의미였고, 특별히
정해진 형식은 아니었다.
17세기 중엽, 기악이 융성하던 시대에 소나타는 모음곡처럼 몇 곡을
한조로 한 악곡의 명칭이 되었는데, '모음곡'이 한 조의 무도곡집이었음에
반하여 소나타는 무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곡자의 자유로운 구상과
기술에 의해 작곡되었다. 이 시대의 대작곡가 코렐리(1653--1713)는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의 두 종류를 창시하였다. 교회 소나타는,
제1악장 매우 느린 곡.
제2악장 빠른 곡(푸가 형식).
제3악장 단순한 형의 느린 곡.
제4악장 매우 빠른 곡.
이에 대해 '실내소나타'는 대개는 가정적인 합주, 혹은 왕후 귀족의
거실이나 살롱의 음악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형식에 더해
무도곡인 알르망드(Allemande 독일 풍의 춤), 가보트, 사라반드 등을 섞어서
연주하거나 듣기도 하며 즐기는 요소를 많이 가미한 것이다. 또 연주에
어려운 푸가 형식 등을 생략하고 경쾌한 느낌을 많게 하였다. 또 일정한
형식을 지키지 않고 악장의 수도 자유로 해 두었다. 위의 두 종류의
소나타를 바로크 양식의 소나타라고 하며 바하나 헨델 등의 소나타도 대개는
이에 따르고 있다.
18세기가 되어 이탈리아의 비발디, 비옷티 등 바이올린 대가들에 의해
소나타는 더욱 밝고 가정적인 기분의 것이 되고, 그 속에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이른바 '소나타 형식'이라는 형식을 갖춘 곡을 제1악장에 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 '소나타 형식'은 남독일 만하임 악파들의 손에 의해 다시
완성되고 오늘날과 같은 소나타의 제1악장을 이루게 된다. 이 근대 소나타는
보통은 3개의 악장을 갖고 있다.
제1악장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제2악장 가요 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의 느린 곡.
제3악장 론도 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이 형식은 빈에서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이 이어받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로 계승되어 오늘날의 소나타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소나타'라는 명칭과 '소나타 형식'은 단어상으로는 매우 혼동하기
쉬운 것이지만 전혀 다른 뜻인데, 즉 근대 소나타는 '소나타 형식'이라는
형으로 작곡된 제1곡과 다른 두 곡을 가진, 3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곡을
말하는 것이다.
소나타형식이란 두 개의 주제가 되는 '가락'의 미적인 취급법에 하나의
약속을 가진 것인데, 여기서는 그 설명을 생략한다.
소나타는 원칙적으로는 위에 든 것과 같은 형식을 갖고 있지만, 작곡자에
따라서 많은 예외가 생겼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악장만을 가진 것도 있으며,
혹은 사이에 미뉴에트 등의 무도곡을 넣어서 4악장을 구성하는 것도 있다.
혹은 모짜르트의 유명한 터키행진곡 소나타처럼.
제1악장 주제와 변주곡.
제2악장 미뉴에트.
제3악장 론도(터키행진곡).
즉, 이 3개의 악장 속에 '소나타형식'의 곡을 하나도 포함하지 않는 곡도
극히 드물지만 있다.
'소나티네'란 '작은 소나타'라는 의미이며, 소나타를 그대로 단순화하고
또 소규모로 한 것인데, 피아노 등의 연습곡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 (3) 론도 @]
론도라는 명칭은 이미 13세기 경 남프랑스의 농촌 등에서 행해진, 무도를
수반하는 합창의 명칭으로서, 2조의 팀이 번갈아 노래하고 또 춤추며, 혹은
독창과 합창이 번갈아 되풀이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그 후 이것은 기악곡의
명칭이 되고 무도곡의 하나로서 바로크 양식의 모음곡에 넣은 것도 있다.
오늘날 보통 론도라 말하고 있는 형식은 다음과 같은 형을 갖추고 있다.
론도 주제 - 제1부주제 - 론도주제 - 제2부주제 - 론도주제 - 코다.
단, 이 부주제의 수는 3개 또는 4개를 갖는 것도 있으며 단 하나 뿐인
경우도 있다. 또 이 론도 형식과 소나타형식을 절충한 론도 소나타
형식이라는 것도 있다.
론도는 소나타의 끝악장이나 합주곡의 끝악장에 쓰이는 것 외에, 독립된
론도 형식의 악곡도 많이 있다.
@[ (4) 변주곡(바리에이션) @]
변주곡이란 하나의 가락을 바탕으로 해서 이것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키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그 가락을 '주제'라고 하는데, 대개의
경우 이것은 단순한 짧은 가락이다. 즉 변주곡은 먼저 1개의 가락이 나온다.
듣는 사람이 그 주제를 잘 마음 속에 새겨 두면 이 가락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되풀이할 때마다 처음의 형은 아니고,
곡조를 바꾸거나, 장식적인 음이 붙거나, 조를 바꾸기도 하면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마치 한 인간이 그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는 몇 번이고 나오는
것처럼 주제 그 자체는 하나이지만 그 되풀이의 변화가 풍부한 점에서
작곡가의 기교의 재미를 감상할 수가 있다.
변주곡은 17세기 경부터 있었는데, 초기에는 오르간의 낮은 음이 동일한
가락을 되풀이하고 그 반복 때마다 높은음 부분에서는 여러 가지 장식적인
변주를 행해 가는 곡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는 이것을 파사칼리아라든지
샤콘느라고 불렀는데 어느 것이나 스페인의 옛 춤의 명칭이다.
18세기 초부터 변주곡의 형도 거의 일정해지고 그 수법도 더욱 정교한
것이 되었다. 변주곡은 독립된 피아노곡 등에도 많이 보이지만, 그 밖에
소나타, 실내악곡, 교향곡, 협주곡 등의 1개의 악장으로서 혹은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 (5) 교향곡(심포니) @]
교향곡은 앞에 말한 소나타(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를 그대로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듯한 형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러던 중에 4개의 악장이
보통이 되고 그 초기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갖고 있었다.
제 1악장 느린 서주 - 빠른 소나타형식.
제 2악장 느린 가요 형식의 곡.
제 3악장 미뉴에트.
제 4악장 빠른 소나타 형식의 곡.
18세기 빈의 대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은 백곡 이상의 교향곡을 만들어
'교향곡의 아버지'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놀라운 다작 속에서 현대까지
전해지는 교향곡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하이든 당시부터 이 교향곡의 형식에도 예외는 있어서 제3악장의
미뉴에트를 생략한 곡도 있다. 또 제1악장의 느린 서주도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이든에 이어서 나온 모짜르트도 41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더욱 내용이 충실한 작품을 남겼는데, 이 뒤를 따르는 베토벤은 다시 그
형식을 발전시켜 자유롭고 힘찬 걸작을 수없이 내놓고 있다. 그 최후의
걸작인 "제9 교향곡"은 제 2악장에 스케르쪼, 제 3악장에 아름다운 느린
곡을 두고, 그 끝곡인 제 4악장에는 4명의 독창자와 합창을 참가시켜 사상
최대의 규모를 가진 교향곡을 만들어 냈다.
교향곡은 원래 절대음악으로서 발달해 온 것이지만, 베토벤의 제 6번
교향곡 "전원"은 표제음악의 시초라고 볼 수가 있다. 각 악장은,
제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 생긴 명랑한 감정.
제2악장 시내의 풍경.
제3악장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제4악장 폭풍-뇌우
제5악장 목동의 노래-폭풍 뒤의 기쁨의 감사에 넘친 감정.
교향곡에 이러한 표제를 설정하는 일은 그 후 낭만시대의 작곡가에 의해
차츰 많아지고, 19세기의 끝 무렵에는 교향곡의 형식도 그 표제가 나타내는
내용에 따라 점점 자유로운 것으로 되어 갔다. 각 악장의 형식은 물론이고
전체를 하나의 악장으로 만들고, 내용의 구성도 다음에 말하는 "교향시"에
가까운 것, 혹은 사실상 교향시라고 부르거나 교향곡이라 해도 구별이 안 될
만한 작품도 점차 많아졌다.
@[ (6) 교향시, 음시 @]
음악으로서 풍경, 인물, 전설, 혹은 시적(시적)인 상념 등을 그리려 하는
표제음악을 음시라고 한다. 교향시에는 바람 소리, 물결 소리 등을
음악적으로 그린 직접 묘사도 사용되며, 또 일반의 상식으로 곧 그 의미를
연상할 수 있을 것 같은 민요라든가, 어떤 사람의 작품의 일부에서 그
사람을 생각게 하는 그런 간접 묘사의 수법도 사용된다.
음시는 피아노곡과 그 밖의 독주곡에도 있지만, 교향시라는 것은 대규모의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오케스트라는 독주곡에 비해 표음악적인
묘사를 하기 때문에 그 표현 범위가 넓고, 색채나 명암의 느낌, 힘의 느낌
등을 웅변으로 말할 수 있으므로, 이로써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을 그려내어
하는 것을 "교향시"라고 한다. 물론 곡에 따라 그 의미는 같더라도,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것도 음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교향시라는 말은 19세기 헝가리 태생의 대작곡가이며 명피아니스트로서도
그 이름이 알려진 프란쯔 리스트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리스트는 그 숙달된 관현악법을 충분히 구사하여 13곡의 교향시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시 "전주곡"은 그 세
번째의 곡으로, 프랑스의 시인 라마르티느 시의 일부를 따서 이를 표제로
하여 음악화한 것이다. 리스트는 이 13곡의 교향시 외에 "단테 교향곡"
"파우스트 교향곡" 등 2개의 교향곡을 쓴 바 있는데, 이것도 각각 몇 곡의
교향시를 교향곡의 각 악장으로 했다는 의미의 곡으로, 종래의 교향곡과는
전혀 취향이 다른 것이다.
근대 독일의 작곡가 리햐르트 시트라우스도 또한 많은 교향시를 썼다.
"돈 환",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 "죽음과 변용",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그 밖의 곡도 모두 오케스트라의 특히 큰
규모의 편성에 의해 어지러운 음의 효과와 함께 복잡한 시적 내용을
그리려고 힘쓰고 있다.
음시, 교향시 등은 어느 것이나 표제음악이기 때문에 만약 가능하면 일단
그 표제를 읽고 나서 음악을 들어보는 편이 알기 쉬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표제에 구애되어 음악의 순수한 아름다운, 음악 그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들어야 마땅한 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이지
'문학'은 아닌 것이다.
@[ (7) 협주곡(콘체르토) @]
17, 18세기 즉 바로크 시대에는 협주곡의 대부분은 "합주 협주곡"이었다.
합주 협주곡(콘체르토 그롯소)은 몇 명의 독주자군(이것을 콘체르티노라고
한다)이 다른 많은 인원의 현악 합주(이것을 리피에노(Ripieno)라고 한다)와
함께 합주하는 것이다.
그 독주자군의 수나 악기의 종류는 곡에 따라 변화는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 이것은 3명이다. 악기는 2개의 바이올린, 1개의 첼로가 많고, 2개의
오보와 1개의 버순이 이를 대신하는 수도 있다. 이것은 현재의 협주곡처럼
한 사람만의 독주 악기가 스타가 되어 화려하게 활약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 주로 합주 전체의 표정을 풍부하게 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즉
당시는 아직 여러 가지 악기의 연주 기술이 별로 진보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의 연주에서 너무 강약의 범위를 넓게 요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곡 속에서 강한 음을 필요로 할 때는 전체가 합주하고, 약한 음을
원할 때는 3명만으로 연주한다고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등을 보아도 이 습관이 남아 있다. 예컨대 그 관현악의 총보에는
오늘날과 같은 강, 약을 나타내는 기호는 거의 없고, 강음에 해당하는
곳에는 '리피에노' 혹은 '투티'(총합주)라고 적어 넣었으며, 약한 표정을
표현하는 곳에는 '솔리'(복수의 독주)라고 적혀 있어 3명이 연주하도록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합주 협주곡은 오늘날의 (협주곡)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독주 협주곡은 코렐리와 같은 시대의 토렐리라는 사람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일컬어지지만, 오늘날과 같은 화려한 독주 협주곡은 역시 만하임 학파
이후의 일이다. 18세기 초의 만하임 궁정의 우수한 기술을 가진 관현악단은
갖가지 새로운 연주의 기교에 의해 아름다운 효과를 발휘했으므로 이미
관현악은 지금까지의 합주 협주곡을 연주하는 수법이 필요없게 되었다.
합주의 인원수를 증감하지 않더라도 강약은 물론이고 섬세한 표정을 붙여
합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플루트, 오보 등의
명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던 독주
협주곡의 재미가 크게 활약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종래의 답답하고 장중한 다선율음악의 양식에 반해서 새롭고
명쾌한 단선율음악의 양식을 가장 잘 표현했던 만하임악파는 이 양식의
특색을 협주곡에서 유효하게 발휘한 것이다. 즉 합주부에 대해, 뛰어난
연주기술을 지닌 독주부가 명확하게 빛날 정도로 두드러지게 잘 울리는
구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식도 소나타나 교향곡도 같은 것이 되었다.
제 1악장 빠른 소나타형식
제 2악장 느린 가요 형식
제 3악장 경쾌한 론도 형식
이 제 2, 혹은 제 3악장에는 변주곡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이든은 이 형식에 의해 많은 독주 협주곡을 썼다. 그 뒤를 이은
모짜르트는 이 형식으로 더욱 풍부하고 정서에 넘친 명작을 남겼으며, 또
베토벤에 의해 이것은 형식 내용이 더욱 확충되어, 힘찬 작품으로 되었고,
고전 협주곡의 양식은 여기에서 완전히 완성된 것이다.
협주곡(콘체르토)은 뭐니뭐니 해도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의 화려하고
빛나는 연주 기술이 중심이 되었으며 특히 19세기 낭만시대에 이르면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많은 명인 대가가 나와 제각기 그 현란한
묘기를 겨루게 되었으므로, 이에 따라 협주곡의 양식도 점점 화려하게 또
고도의 기교를 나타내게 되었다. 따라서 그 외면적인 연주 효과가 이 같은
음악으로 매우 중요한 '음악의 의미'가 되고 있다.
협주곡은 거의 '표제'를 갖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것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연주의 기술적인 발전으로 악곡을 형성해 가는 경우가 많고,
그 기술적 발전과 문학적인 관념의 발전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는 표제적인 협주곡의 예도 있다. 예를 들면 19세기
전반의 초기 낭만 시대의 작곡가 베버가 쓴 f단조의 피아노 협주곡 등이다.
이것은 재래의 협주곡 형식을 일단 무시하고 극히 자유로운 수법에 의해
문학적인 내용을 말한 것이다. 3개의 악장이 따로따로 늘어서 있는 종래의
형식을 그만두고, 전체가 1개의 악장과 같은 형을 취하고 내용의 발전에
따라 임의로 형식을 만들어 갔다. 고전파의 작품처럼 주제의 형식적인
반복이나 전개는 문학적 내용과 관계가 없으므로, 될 수 있는대로 이것을
'콘체르트시튀크'라고 하였다. 직역하면 '협주곡의 단편'이며 의미로 말하면
'소협주곡'이라고나 해야 하겠지만, 오늘날의 협주곡이라는 관념에서 본다면
이것은 별로 '작은' 것도 '단편'도 아니다.
작곡가 베버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표제(설명문)를 덧붙이고 있다.
"십자군의 출정 때 기사 그라이헨 백작을 싸움터로 보낸 부인은 여러해
동안 남편을 기다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부인은 어느 때 백작이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꿈을 꾸고 슬픔에 젖은 나머지 정신을 잃지만,
이윽고 의식이 회복되어 꿈결에 멀리서 울려오는 군악소리를 듣게 된다.
십자군의 용사들은 당당히 개선하고, 부인은 그리운 남편 백작의 팔에
안긴다."
이 곡은 상당한 걸작으로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지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이러한 표제음악으로서의 협주곡은 달리 그 예를 별로 볼
수 없다.
@[ (8) 랩소디, 카프릿치노, 발라드 @]
랩소디는 우리 나라에서는 "광시곡"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별로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음유시인 랍소도스라는
사람은 주로 역사상의 이야기에 의한 서사시를 노래했는데 그 후 이러한
시에 대해 그 가수의 이름을 따서 랩소디라 이름을 붙였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19세기가 되고 나서 이 말은 기악곡의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경우, 원래의 의미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예컨대 브람스의 피아노곡 "랩소디"는 반드시 특정한 내용을 나타낸
표제음악은 아니고, 단지 작곡가의 마음에 떠오른 자유로운 환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또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15곡과 "스페인풍의
랩소디"는 각각 그 고장 특유의 민요풍의 선율, 민족 무곡의 리듬 등을
소제로 하여 이것을 자유로운 형식에 의해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극히 자유분방하게 발전해 가는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광시곡"이라는
역어가 쓰이고 있는 셈이다.
브람스는 또 알토 독창, 남성 합창 및 관현악을 위해 괴테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에 의해 랩소디를 한 곡 작곡한 바 있다. 성악에 의한 랩소디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진기하여 이것을 "알토 랩소디"라고 부르고 있는데,
참으로 깊은 맛을 지닌 아름다운 명곡의 하나가 되고 있다.
카프릿치오는 역어로서는 '기상곡'이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더욱 까닭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원어인 이탈리아어의 카프릿치오는 '변덕'이라든가
'마음이 변하긴 쉬운'이라든가 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으며 이것도 결국은
자유분방한 형식과 내용을 지닌 곡이라는 것이다. 주로 화려한 곡이 많아서
옛날에는 기상곡이라는 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2개의 역어는
지금 다같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카프릿치오라는 제목의 곡은 17, 18세기 경 프랑스, 이탈리아의
하프시코드 음악에 이 이름을 가진 소곡이 많이 있다. 또 유명한 곡으로는
바하가 그 둘째 형이 여행을 떠날 때 그를 보내면서 만든 "사랑하는 형의
여행에 즈음하여" 라는 제목의 6곡 일련의 카프릿치오가 있다. 이것은
한곡마다 설명문을 붙인 자유로운 형식의 모음곡과 같은 피아노곡이다.
관현악곡으로서는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카프릿치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스페인 카프릿치오" 등이 있으며, 어느 것이나 색채적으로
화려한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발라드는 "담시곡"이라고 번역한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발라드라고 원어
그대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원래는 이야기를 지닌 시를 말하며,
성악곡으로서는 그러한 시에 작곡된 것도 많이 있는데, 기악곡으로서도
브람스나 쇼팽의 피아노곡과 그 밖에도 몇개가 있다. 피아노곡의 경우에는
표제음악으로서의 어떤 특정된 이야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은 별로 없고,
마치 뭔가 서사시라도 읽고 있는 듯한 감정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많은
듯하다.
랩소디, 카프릿치오, 발라드, 판타지 등의 명칭은 이론상으로는 일단
구별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실제문제로서 많은 곡을 보면 그 사이에
명확한 형식상의 구별을 둘 수 없는 것이 많다. 즉 작곡자가 이름붙인
제목에 무조건 따르고 있는 셈이다.
@[ (9) 서곡, 전주곡 @]
서곡의 최초의 형은 17세기 프랑스에서 생긴 "프랑스 서곡"인데, 이것은
처음에 느리고 장중한 서의 부분에 이어 빠르고 화려한 푸가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다시 느린 부분이 나와서 마치게 되는 형식의 것이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의 오페라 작가 퀼리가 즐겨 사용했던 형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퀼리식 서곡"이라고도 불렀다.
바하의 시대, 즉 17, 18세기에는 관현악용 모음곡의 제 1곡을 "서곡"
(오버추어)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모두 이 프랑스 서곡이 사용되고
있다. 바하가 쓴 4개의 관현악 모음곡은 그 제 1곡으로서 어느 것이나
훌륭한 서곡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음곡 전체에 대해서도
서곡(오버추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수가 있다. 이 장중한 형식도 후에는
마지막의 느린 부분을 생략하고 빠른 곡으로 화려하게 끝맺은 것이
많아졌다.
프랑스 서곡과는 달리 18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성해졌을 때
"이탈리아 서곡"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앞에 말한 프랑스 서곡과는
정반대로 먼저 빠른 곡으로 시작되고, 한가운데에 느린 부분을 삽입하고
다시 빠른 곡이 되어 끝나는 형을 갖고 있다. 모짜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라는 오페라의 서곡은 이 형식으로 작곡되어 있다. 역시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도 처음에는 이런 형식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후에
한가운데의 느린 부분을 생략하고 오늘날과 같은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 이탈리아식 서곡은 처음에 신포니아(교향곡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었지만, 후에는 이것도 오버추어(서곡)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바하나 헨델처럼 북독일 또는 영국의 작곡가로서 바로크 양식의 음악을 쓴
사람들은 장중한 프랑스 서곡의 형을 취하고, 남독일의 만하임 악파에 속한
작곡가는 주로 밝은 이탈리아풍의 서곡을 채용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서곡은 오페라나 연극의 개막에는 꼭 필요하게 되었는데
빈고전파의 사람들과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서곡은 모두 빠른 소나타형식을
채용하고 그 앞에 느린 서주부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서곡,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등은 그 예로서, 마치 당시의
교향곡의 제 1악장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느린 서주가 붙지
않은 곡도 많이 있다. 이 형식의 서곡은 19세기 낭만음악의 시대까지
계속되어 많은 명곡이 있다.
'서곡'은 또 오페라, 연극, 혹은 발레 등의 개막 음악으로서뿐만 아니라
연주회용의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쯔 2세의 생일날 음악회를 위해 만든 서곡
"명명 축일"이 있으며, 빈의 요제프시타트 극장의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서
쓴 서곡 "헌당식"이라는 것도 있다.
또 그 후의 시대에는 교향시라든가 음시라든가(앞항 참조) 하는 말을
사용한 표제음악이, 19세기 초엽에는 아직 그 말이 없었기 때문에, 편의상
이것을 '서곡'이라고 이름붙인 적도 있다. 예를 들면 멘델스존이 괴테의
2개의 시를 음악화한 서곡 "고요한 바다의 즐거운 항해"와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보았던 황량한 풍경을 그린 서곡 "핑갈의 동굴" 등이 있다.
롯시니 오페라 "빌헬름 텔" 서곡은 '새벽' '폭풍' '고요' '끝곡' 으로
명확히 나뉜 4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과 같은 형인데, 이것은 특히
색다른 형식의 한 예이다. 단, 모음곡과는 달리 이 4개의 곡은 사이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연주된다.
'서곡'과 '전주곡'은 오늘날에는 거의 똑같은 의미가 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의 많은 오페라의 개막에 사용되었던 서곡은 극 중의 주요한 음악을
접속해서 만들었고, 또 전주곡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극 중의 음악에
상관없이 그 극 전체의 기분을 암시하거나, 혹은 그 음악 뒤에 막이 열린
최초의 장면으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을 가진 것이 많다. 따라서 "전주곡"은
일반적으로 서곡보다는 짧은 곡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바그너는 그 초기의 작품, 예컨대 오페라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리엔찌" 등에서는 각각 당당한 '서곡'을 만들었지만,
'오페라'라는 명칭을 사용한 마지막 작품 "로엔그린"에서 처음으로
전주곡(프렐류드, 독일어로는 포르시필)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그 이후는
'오페라'라고 쓰지 않고 그의 이상에 따라서 '악극'(뮈지크드라마)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서곡을 그만두고 모두 '전주곡'이라 하고 있다. 또 같은
시대의 이탈리아의 대작곡가 베르디도 또한 그 영향을 받아 오페라
"리골렛도",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에 어느 것에나 짧은 전주곡을
쓰고 오페라 전체의 기분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 현대의 오페라, 혹은
악극의 대부분은 더욱 짧은 전주곡을 사용하든가, 전혀 음악 없이 곧 막을
여는 것도 많아졌다.
@[ (10) 모음곡, 피르티타 @]
몇 개의 곡을 짜맞추어 일련의 모음곡으로 한 것인데 독주곡에도,
실내악곡에도, 관현악곡에도, 또 드물게는 성악곡에도 있다.
모음곡은 17세기 경에 시작된 것인데, 그 시대에는 몇 곡의 무도곡을
짜맞추는 것을 통례로 하였다. 그 형식도 차츰 일정해져서 18세기 헨델이나
바하의 시대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것을 표준으로 했다.
1. 전주곡(관현악곡의 경우에는 서곡)
2. 알르망드
3. 쿠랑트
4. 사라반드
5. 미뉴에트
6. 지그
제 5곡은 미뉴에트 대신에 가보트, 부레 등을 사용하는 수도 있으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무도곡뿐만 아니라 아리아라는 가요풍의 곡, 변주곡, 그
밖의 소곡을 삽입하는 일도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바로크 양식의
모음곡인데, 당시의 작곡가들은 이 형식으로 쳄발로(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독주용의 모음곡, 또 실내악이나 관현악을 위해서도
모음곡을 많이 만들었다.
'피르티타'라는 것도 모음곡과 같은 뜻이며, 주로 독주 악기용으로
만들어진 경우에 이 이름을 사용했다.
하이든의 시대에 이르러 소나타나 교향곡과 같은 다악장 형식의 음악이
많이 쓰이게 되자 모음곡은 한 때 별로 만들지 않게 되었지만, 19세기 말,
음악의 대중화에 수반하여 다시 여러 가지 모음곡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근대의 모음곡은 그 종류도 많은데, 예를 들어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의
"알자스의 풍경", "그림과 같은 풍경", 또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등은
가장 친숙해지고 있는 곡일 것이다. 물론 근대의 모음곡은 무도곡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바로크 시대의 것과는 전혀 달라서 내용, 형식이 모두
자유롭게 되어 있다.
또 오페라의 음악, 혹은 연극의 부수음악 중에서 인기있는 것들을 모아,
후에 연주회용 모음곡을 만든 것으로는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등이 있으며 그리크의 "페르 귄트 모음곡"도 똑같은 의미의
것이다. 이것들은 4곡 정도씩을 하나의 모음곡으로 하여 제 1모음곡, 제
2모음곡이라 나누는 수도 있다.
발레 음악을 음악회용 모음곡으로 한 것도 많아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그리고 들리브의
"코펠리아", "실비아" 등은 언제나 대중적인 음악회에서 프로그램을 장식
하고 있다.
프랑스 인상파의 작곡가 드뷔시는 형식적인 소나타나 교향곡 대신에 각각
표제음악적인 기분을 나타낸 모음곡을 만들고 있다. 피아노곡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관현악곡 "바다", "녹턴", "이벨리아" 등은 그 예이다.
@[ (11) 판타지(환상곡) @]
판타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예컨대 쇼팽, 슈만의 피아노곡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작곡자의
마음에 떠오는 시적인 환상(환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어느
것이나 낭만적인 기분이 넘치고 꿈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 음악의 양식은 다르지만 바하의 오르간곡이나 하프시코드용의 판타지,
모짜르트의 피아노곡으로서의 판타지 등은 모두 작곡자의 자유로운 마음의
움직임을 그린 것에 변함은 없다.
판타지의 또하나의 의미는 어떤 기성의 가락을 주제로 하여 이것을
자유로이 변주하거나 발전시키기도 해서 하나의 기분을 그린 것도 있다.
슈베르트가 자작의 가곡 "방랑자"의 가락의 일부를 따서 피아노 독주곡으로
만든 "방랑자 탄타지" 등은 그 예이다.
이 의미를 더욱 밀고 나아가 민요의 가락을 바탕으로 한 것, 또는 다른
작곡가의 유명한 음악에서 가락을 따서 판타지로 만든 것도 있으며, 또한
통속적인 오페라의 발췌곡, 민요집 등, 특히 청중을 즐겁게 하는 그런
가락을 접속해서 만든 포부리(접속곡)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즉, 이것을
들은 사람의 머리 속에 그 오페라의 기분이나 어떤 지방의 풍경 등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것도 판타지라고 하는 것이다.
@[ (12) 세레나데, 녹턴 @]
밤의 음악, 또는 해질녘의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고전파의 시대 즉 하이든,
모짜르트 등이 쓴 세레나데는 각각 모음곡풍으로, 혹은 작은 교향곡처럼 몇
악장을 지닌 밤의 연회용 음악이다. 따라서 관현악이나 실내악곡이 많고,
때로는 정원 등에서 연주하기 위해 관악기(취주악기)만으로 합주하는 것도
작곡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것이나 당시 요구를 받고 실용에 제공키 위해
만든 셈이어서 그 내용도 명랑 쾌활한 곡이 되고 있다.
낭만파 시대, 즉 19세기 이후가 되면 그러한 연회를 여는 왕후 귀족의
시대는 아니게 되고, 세레나데는 주로 서정적인 가곡, 또는 기악의 소곡의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원래 세레나데는 연인의 집 창 밑에 서서 기타 등을 치면서 부르는 사랑
노래의 뜻이 있다. 이 의미의 세레나데와 대중적으로도 친해져서 고금에
애창되고 있는 노래가 무수히 있다.
녹턴(야상곡)도 세레나데와 대체로 같은 의미의 것인데, 이 쪽은 영국의
작곡가 필드(John field)가 이 이름을 피아노곡에 사용한 이래 주로
피아노 독주용의 낭만적인 소곡의 제목으로 많이 쓰인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일컬어졌던 쇼팽이 많은 녹턴을 쓴 바 있음은 너무도 유명하다.
@[ (13) 무도곡(무곡) @]
무도곡의 종류는 매우 많아서, 여기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으나,
고전적인 모음곡 등을 감상하기 위해 그 이름을 열거해 두자. 이들 곡의
형식은 어느 것이나 두도막형식 또는 세도막 형식이다.
#1 알르망드: '독일풍'이라는 의미로서, 16세기 경 프랑스에서 시작된 바
있다.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본 독일풍의 춤이라는 것이리라. 2 박자이며
힘차고 경쾌한 무곡이다.
#2 쿠랑크: 보통은 3박자, 때로는 2박자의 것도 있다. 16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곡으로 빠르고 경쾌한 춤이다.
#3 사라반드: 스페인에서 16세기 경부터 행해졌던 무곡으로 3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춤. '리 폴리아', '샤콘느', '파사칼리아' 등은 모두 사라
반드와 같은 계통의 것이다.
#4 미뉴에트: 16세기의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 3박자의 경쾌한 곡으로,
처음에는 농민들 사이에서 생겨났다고 하나 얼마후 궁정의 무도곡이 되어
우아한 취향을 더하고, 고전무곡 중에서는 가장 넓고 또 오랜 시대에 걸쳐
행해졌다. 하이든 시대에 이 미뉴에트가 교향곡의 제 3악장에 쓰이게
되었다.
#5 가보트: 16세기의 프랑스에서 시작된 2박자 리듬의 아름답고 경쾌한
춤곡이다.
#6 파반느: 2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춤. 공작이 느긋하게 날개를 펼치고
걷는 듯한 기분을 지닌 무곡의 의미로, 이것도 역시 16세기 경스페인의
궁정에서 행해졌다. 근대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은 이 무곡의 형을 빌어(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명곡을 만든 바 있다.
#7 부레: 16, 17세기 경 프랑스에서 시작된 2박자의 경쾌한 춤. 가보트와
비슷하고, 좀더 빠르게 연주된다.
#8 지그: 16세기 경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대의 바이올린을
반주로 하여 선원이나 민중이 추었다고 하는 빠른 템포의 춤인데, 후에는
모음곡의 끝곡으로 쓰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바이올린을 독일어로
가이게라고도 하는데, 지그라는 이름의 기원은 거기서 온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옛날부터 있었던 춤이라고도 하며,
고전무곡 중에서는 가장 그 기원이 불분명한 무곡이다. 박자는 2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8분의 6, 8분의 12, 4분의 6 등 악보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결국 셋잇단음표로 구성된 2박자로서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된다.
#9 시칠리아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농민간에 생겼다고 일컬어지는
무곡, 8분의 6박자의 우아하고 또 아름다운 가락을 지닌 무곡이다. 바로크
양식의 협주곡이나 모음곡에 그리스도 탄생과 관련된 내용을 지닌 경우에
종종 파스토랄(전원곡)이라는 한 악장이 삽입되는데, 그 경우의 파스토랄은
거의 모두 이 시찰리아나의 형식을 갖고 있다.
이상으로 각종 고전무곡을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 밖에 민족적 무곡과 또
근대에 시작된 춤도 많은 종류가 있으므로 다음에 그 개략을 말하기로 하자.
(주) 위에 말한 각종 무곡에서 2박자라고 되어 있는 것은 어느것이나
2박자를 기본으로 했다는 뜻이고 2/2,2/4,6/8,12/8 등을 포함한다.
#10 타란텔라: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의 민족적인 춤으로 매우 빠른 템포인
8분의 6박자. 옛날에 나폴리에서 독거미에게 쏘였을 때 그 독을 없애기 위해
이 빠른 춤을 열광적으로 추었던 데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 그 독거미는
타란토스라고 불렸다.
#11 살타렐로: 이것도 이탈리아의 민족 무곡으로서 대표적인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서곡 "로마의 사육체",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교향곡"의 끝곡,
또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카프릿치오" 등은 어느 것이나 그 일부에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 춤의 리듬이 사용되고 있다.
#12 폴로네이즈: 16세기 경부터 폴란드의 궁정에서 행해졌다. 처음에는
궁중의 식전의 무곡으로서 예복차림을 한 기사가 카라벨라라는 반달형의
장검을 빼고 추었던 용장한 무도이다. 3박자의 힘찬 리듬을 지닌 곡이다.
폴로네이즈는 헨델, 바하 등에 의해 고전무곡 속에도 사용되고 또 베토벤도
이것을 실내악에 쓴 예가 있다. 또 폴란드 태생의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피아노곡으로서 만든 14곡의 포로네이즈는 어느 것이나 명곡이다.
#13 마주르카: 이것도 역시 폴란드의 민족적인 춤인데, 앞의 포로네이즈는
귀족적이며, 이 마주르카는 농민들 사이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선율도 리듬도 단순 소박하고 야성적인 취향에 넘쳐있다. 3박자로서 명확한
리듬이 필요하다. 쇼팽은 이 마주르카의 형식을 갖고 50곡이 넘는 예술적인
피아노곡을 만들었다.
#14 하바네라: 쿠바의 하바나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에 쿠바는 스페인의 영토였으므로 이것은 옛 스페인 무곡에서 온
것이다. 4분의 2박자, 탱고와 비슷한 리듬을 갖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에
유명한 '하바네라'의 노래가 있으며 또 생상스의 라벨, 사라사테 등에 의해
아름다운 '하바레나'의 곡이 만들어진 바 있다.
#15 호타: 스페인의 아라곤 지방의 한 쌍의 남녀가 뛰고 돌면서 추는
춤으로 빠른 3박자의 활기가 넘치는 곡. 사라사테와 팔랴의 명곡이 있다.
#16 볼레로: 1780년 경에 비롯된 느린 3박자를 지닌 스페인 무곡. 라벨이
만든 관현악곡 (볼레로)는 가장 유명하다.
#17 판당고: 3박자의 옛 스페인 무곡. 모짜르트는 이것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속에 아름답게 짜 넣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마을 처녀들이 많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연주된다.
#18 세기달라: 역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지방의 경쾌한 민족무곡의 하나.
3박자의 왈츠와 같은 리듬을 갖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제 1 막에
유명한 '세기딜랴의 노래'가 있다.
#19 차르다시: 헝가리의 집시의 춤. 정열적인 멜로디와 강열한 리듬을
지닌, 빠른 2박자의 무곡이다. 느린 도입부 라수(lassu)와 빠른
프리스(friss)로 구성되며 싱코페이션이 있다.
#20 트레팍: 빠른 2박자의 러시아의 춤.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
속에도 있다.
#21 왈츠: 17세기 경 독일 농민의 무곡 렌틀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하는 4분의 3박자의 춤이다. 실제로 추는 경우에도 쓰이고 또 예술적
작품으로서도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슈베르트, 베버에서 슈만, 브람스,
쇼팽, 리스트 등과 또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에도 많은 아름다운 왈츠가 있다.
이 무곡처럼 국경을 넘어 사랑받고, 더구나 생명이 긴 춤도 달리 유례가
없다.
왈츠는 '원무곡'이라 번역되는 수도 있다. 이것은 옛날에 남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크게 원을 그리고 추는 데서 이
이름으로 불린 것이었다.
19세기 말의 빈에서 '왈츠왕'이라 일컬어졌던 요한 시트라우스 일가의
작품은 예술적으로도 높고, 또 실용적인 무도곡으로서도 일세를 풍미한
것이다.
현대의 왈츠에는 비엔나 왈츠(또는 퀵 왈츠)라는 템포가 빠른 것과
영국풍의 왈츠(또는 슬로우 왈츠)라는 느린 속도의 것이 있다.
형식은 초기에는 단순한 두도막 형식, 또는 세도막 형식의 것이었으나,
요한 시트라우스 등 빈 음악의 전성시대에는 왈츠도 대규모의 것이 되어
먼저 긴 서주부가 있고 다음에 두도막 형식, 또는 세도막 형식의 왈츠가
3곡에서 5곡 정도 계속되고, 마지막에 이 각 곡을 회고하는 듯한 느낌을
지닌, 긴 코다부를 갖는 매우 큰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것을 당시는 특히
대왈츠라고 했는데, 오늘날 음악회 등의 곡목을 장식하는 빈의 왈츠는
대개는 이 형식에 의한 것이다.
#22 폴카: 1830년 경에 보헤미아의 농촌에서 생겼다고 일컬어지는 이
춤곡은 2박자이며 행진곡풍의 경쾌한 것으로서, 19세기 말까지는 많이
추어졌던 무도곡이다.
#23 탱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된 2박자의
춤이며, 하바레나와 같은 계통의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초부터 남미
식민지에 보급되었고,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르헨티나 탱고'라는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미에서 독일로 퍼지고 여기서 클라식
음악의 요소를 더한 독특한 아름다운 스타일의 '콘티넨털 탱고'로 되었다.
#24 래그타임: 20세기 초에 미국 남부의 흑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춤의리듬인 것 같다. 이것은 폭스 트롯트의 기본이 되고 다시 블루스,
찰스턴, 부기우기, 그 밖에 이른바 재즈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재즈는 말할
나위도 없이 현대의 대중음악으로서 가장 널리 보급되고 있는데, 재즈가
지닌 요소를 현대의 예술적인 음악 속에 도입한 작품도 많이 태어나고 있다.
@[ (14) 행진곡 @]
마치(영), 마르쉬(불) (독), 마르치아(이)라고도 불리우는 행진곡은
보통의 것은 세도막 형식이며 2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곡의 앞뒤에 서주부와
코다를 지닌 것도 있다.
행진곡에는 제전행진곡, 군대행진곡, 장송행진곡, 패트롤등 많은 종류가
있다.
제전 행진곡(페스티벌 마치)은 대규모의 것이 많으므로 종종 '대행진곡
(그랜드 마치)'이라 불린다. 종교적인 제전뿐만 아니라 오페라 속의 장면에
나오는 것, 또 연주회용으로 만들어진 것 등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어느
것이나 대편성의 관현악으로 연주된다. 또 그 중에는 합창을 수반하는 것도
많이 있다. 실례를 들어보자.
오페라 "아이다" 개선 행진곡(베르디 작곡)
오페라 "탄호이저" 노래 시합의 궁정에 입장하는 행진곡(바그너 작곡)
오페라 "예언자" 대관식 행진곡(마이어베어 작곡)
영웅 행진곡(생상스 작곡)
슬라브 행진곡(차이코프스키 작곡)
결혼 행진곡(멘델스존 작곡)
이상은 모두 대관현악용의 것이며 음악회에서 흔히 연주된다.
군대 행진곡(밀리터리 마치)은 실제로 군대의 행진곡으로서 사기를
고무함올 목적으로 한 것이 많으므로, 취주악으로 연주하는 것이 통례이다.
따라서 명랑 쾌할하고 힘차며, 리듬도 명확하게 만들어져 있다.
미국의 군악장 수자가 만든 "성조기여 영원하라", "미 중의 미", "사관학교
생도", "워싱턴 포스트" 등은 항상 대중과 친해지고 있다. 또한 독일은 가장
오래된 시대부터 군악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행진곡의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것도 적잖게 있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군대 행진곡"은 처음에 피아노
연탄용으로 가정에서 친숙해지고 있었으나, 후에 관현악과 취주악으로
연주된다.
장송 행진곡도 갖가지 명곡이 있다. 가장 유명하고, 관현악이나
취주악용으로 편곡된 것이 실용으로 자주 쓰이는 것은 쇼팽의 b플랫단조
피아노소나타의 제3악장이다. 또 예술작품으로서 뛰어난 것은 베토벤의 제
3교향곡 "영웅"의 제2악장, 또한 같은 작곡자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26번은
그 제3악장이 '영웅의 장송'이라 불린다. 극적인 작품의 한 예로서는
바그너의 악극 "신들의 황혼"에 비창한, '지크프리트 장송 행진곡'이 있다.
패트롤이라는 것도 또한 행진곡의 일종이다. 보통의 군대 행진곡은 마치를
연주하면서 행진해 간다고 하는 기분을 갖고 있음에 대해, 패트롤은 듣는
사람이 어느 일정한 지점에 서있고 악대가 아득히 멀리서 마치를 연주하면서
다가와 그 앞을 통과하고, 또 먼 곳으로 사라져 간다는 기분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아테네의 폐허"라는 연극을 위해 만든 유명한 "터키
행진곡"은 하나의 패트롤 형식의 마치이다. 또 미카엘리스의 "터키의
순찰병", 미첨의 "아메리카 순찰병" 등도 같은 형의 것이다.
행진곡의 박자는 4분의 4, 4분의 2, 2분의 2 등 2박자를 기본으로 한 것이
보통이며 8분의 6 등도 종종 쓰이는데, 이것도 2박자로서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 11.음악의 양식 @]
우리들은 매일 여러 가지 양식을 지닌 음악을 경험하고 있다.
아침에 교회에서 중세의 찬송가를 들었는가 하면 낮에는 라디오로
재즈음악을 듣고, 오후에는 음악회에 가서 슈베르트의 가곡에 귀를 기울이
고, 집에 돌아오면 텔레비젼으로 포크 송을 듣는다는 식으로 동서고금의
음악이 언제나 우리들 현대인의 주위에는 준비되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현대 문명의 은혜를 한껏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매우 편리한 일임과 동시에 극히 잡다해서, 때로는 머릿속을 정리할
짬도 없이 잇달아 갖가지 양식의 음악이 소용돌이 치며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 양식은 시대와 함께 항상 쉴새 없이 변하고 머무르는 법이
없다. 예술도 또한 인류의 의식주의 양식이나 사회 상태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그 양식을 변화시켜 간다.
음악예술은 어느 시대에나 민족의 전통이며 종교와 결부되며, 혹은 귀족의
손에, 자본 계급의 손에, 또 민중의 손에 의해 그 시대, 그 국민에게
특유한 양식을 만들어 발전해 왔다. 이 발달의 자취를 더듬는 것은 음악사의
과제이다. 평소에 우리들이 경험하는 음악도 오랜 시대, 넓은 세계의 그
어느 하나의 양식에 속하는 것이며, 또 그것은 반드시 다른 양식의 음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관계를 명확히 머리에 넣어 두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려 할 때, 그 이해를 한층 빠르게 하고 또 깊게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자면 음악사를 읽어 인유 사회와 함께 발전해 온 음악과
이것을 오늘날의 양식으로까지 조금씩 겹쳐 쌓아 온 많은 예술가에 관해서,
또 그 가치가 높은 작품에 관해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극히 간단하게 음악의 각 시대에 걸친 양식의 발전에 관해
알아보자.
@[ (1) 고대의 음악 @]
음악은 아마도 인류의 생활이 시작된 최초부터 생활과 함께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농업이나 어업(어업), 그 밖의 노동에 수반된
노래이며, 연애의 노래, 전쟁의 노래, 혹은 종교와 관계가 있는 노래 등의
형태로 주로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것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회화,
공예, 연극, 무용 등의 예술과 함께 성장, 발전해 온 것이다.
처음에는 음악도 이처럼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는데, 바로 고대인이
토기에 새끼줄의 무늬를 새기거나, 방패의 표면에 무언가 기하학적인 도안을
새기기도 하는 것과 같은 장식의 취미가 인간 생활의 문화를 나타내기
시작한 무렵에는 음악도 또한 예술적인 의식을 갖고 혹은 노래가 되고,
원시적인 기악이 되어 행해지기 시작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시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선율이나 박자를 지닌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민족의 집단 생활이 대규모가 되어 도시나 국가가 만들어졌고, 서력 기원전
약 3천년 경의 고대 바빌로니아의 문화, 고대 이집트의 문화 등은 다소나마
그 유적에 의해 상상할 수가 있다. 동시에 그러한 음악에 대해서도 고분의
벽면에 새겨진 회화나 무늬 등에 의해서 당시의 악기와 그것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 등을 막연하게 상상할 수가 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사학자 쿠르트 작스(Curt Sachs 1881--1959) 박사, 그
밖의 학자의 손에 의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시대의 종교음악 등을
복원해서 녹음한 것도 있으며, 대략 기원전 6백년 정도 이후의 음악은
현대의 레코드로 들을 수 있다. 모두 단음, 무반주이고 마치 경을 듣는 듯한
느낌의 독창이나 제창이다. 이것은 옛 그리스 문자로 표현된 악보를
연주하여 음으로 재현한 것이며, 반주 악기에 대해서는 당시의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서, 이것을 제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음의 음악은 그리스도 탄생의 시대를 거쳐 9세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동안에 6, 7세기가 되면 로마 법황 그레고리오 1세처럼 교회음악에 주력한
권위자도 나타났고,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 세계 최초의
음악학교)도 창설되어서 음악의 조직적인 연구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화성법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수학자에 의해서 그 이론적인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음악 예술에까지 이것을 응용하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레고리오 1세 때에 만들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는 오늘날에도
로마정교의 교회에서 불려진다. 그러나 그 이전의 것은 앞에 말한 특수
연구용 레코드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이것을 들을 수가 없다.
@[ (2) 중세의 음악 @]
유럽의 중세는 그리스도 음악의 시대이다. 그리고 단음악에서 복음악으로
옮겨져 이것이 완성된 시대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교회에 봉사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하였다. 10세기에서 12세기 경까지 그리스도교의 사원이나 교회는
이른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건축물이 잇달아 만들어지고 여러 나라의
왕후는 모조리 그 시주가 되었다.
음악은 겨우 이 시대에 극히 원시적인 복음악의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었다. 9세기 중엽 벨기에의 성 아만드의 신부 후쿠발트가
오르가눔이라는 화성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것은 5도라든가 4도라든가의
이른바 완전어울림음을 병행시켜서 만든 것이다. 즉 위의 가락과 아래의
가락이 언제나 5도든가 4도의 간격을 유지하고 진행해 간다. 그리고 그
처음과 끝은 8도(옥타브)가 되는 일도 있다. 후크발트는 이것을 교회의
합창에 사용하였다. 아마 후크발트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단음의 선율만으로
부르고 있었던 성가에 화성(하모니)을 붙이는 일은 당시의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음악으로서는 대모험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안전제일로,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부분을 놓고 보더라도 5도든가 4도의 완전어울림음이
되고 있으니까 무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래도 이것은
유치한 하모니이다. 오늘날에도 5도나 4도의 병행은 너무 지나치게 어울려서
도리어 효과가 나쁘다고 하여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 합창을 듣고 처음으로 체험하는 이상한 음의
두께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떳을 것이다. 이 방법은 다소 개량되면서 그 후
3백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12세기 경부터 새로운 화성법인 디스칸투스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2개의 가락이 이른바 반진행하는 것이다. 위의 가락이 올라갈 때는 아래의
가락은 내려간다. 한 쪽이 내려가면 동시에 다른쪽은 올라간다는 방식이다.
이것은 확실히 앞의 오르가눔보다 재미있는 효과를 나타냈다.
다시 14세기 경이되면 포부르동(Fauxbourdon)이라고 하며 3도, 6도니 하는
것과 같은 불완전어울림화음을 병행시킨 것이 이에 더해졌으므로,
복음합창의 효과는 한층 다양한 색채를 갖추게 되었다.
건축과 미술은 그 무렵 이른바 고딕 양식이 전성을 이루고 있었다. 교회나
사원의 건축에는 당시의 과학자, 건축가를 총동원하여 가지각색의 역학적인
신기축을 내놓아 영구적이며 또 천국에도 닿을 것 같은 석조의 대가람이
하늘높이 솟아오르게 되었다. 회화나 조각, 그 밖의 조형미술도 모두
교회건축을 위해 그 기술을 겨루었다. 참으로 그리스도교가 있으므로 해서
예술이라는 느낌을 더욱 깊게 하였다. 정교한 스탠드 글라스도 당시의 화학
공예의 정수를 모아 교회의 로즈 윈도우에서 청, 황, 홍, 백, 흑색의
다섯가지 아름다운 빛을 빛나게 하였다. 이런 세상에서 홀로 음악만이 그
권외에 있을수는 없다. 성가의 합창은 이 대가람에 울려퍼지는 듯한 천사의
목소리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점점 일어나고 있던 복음악은
가장 커다란 음악적 효과를 올리려고 열심히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다.
악보의 기보법은 전부터 9세기 경에 발달한 네우마가 12세기 경에는
상당히 개량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진보된 복잡한 합창곡에는 이
기보법이 이미 불편해졌으므로, 이것이 더욱 크게 개량되어 오늘날의 악보와
비슷한 것이 되었으며,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인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14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약 3백년 동안은 유럽 문화위에 드디어 빛나는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당시의 복음악, 즉 합창의 경우처럼 몇개의 선율이 동시에 진행하는
'다선율식'의 음악도 차츰 복잡하고 아름다운 효과를 내게 됨에 따라 이
많은 음을 정연하게 조직적으로 다루는 그런 가지각색의 약속이나 규칙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것을 '대위법' 이라고 하며, 이 때부터 다시 약
3백년동안을 '대위법 음악의 시대'라고도 한다.
중세에는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한, 장중한 합창음악 외에
'음유시인'이 활약하였다. 자기가 시를 짓고 곡을 만들어 스스로 하프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여러 나라를 편력하는 시인들은 먼 고대 그리스가
번영했던 시대에도 있었지만, 이것이 유럽 전 지역, 특히 북구 제국에까지
퍼진 것은 7세기 경부터 12, 13세기에 걸쳐 가장 성하였다. 특히 기사도가
화려했던 10세기 이후에는 종교적인 의미도 더해져서 여러 나라의 귀족이
스스로 이 음유시인으로서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프랑스의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젱거, 영국의 민스트럴 등은 모두 이
시인들의 명칭이다. 이들은 주로 귀족이나 기사 등 상류 사회의 사람이 하는
일이었지만, 15세기 경이 되면 독일의 시민들 사이에서 마이스터징거라는
즉홍시인이 나타났다. 마이스터라는 것은 평소에는 거리의 제화점, 재봉소,
금속 장식품점 등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당시 이러한 장사는 모두 도제 제도였으으로 우두머리와 직공, 도제의
관계는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곳곳의 중소도시에서
그 우두머리들이 노래의 콩쿠르를 열면 도제들은 모두 자기의 우두머리를
응원하여 떠들썩한 노래시합이 된다. 그 중에서도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는
가장 성대하게 이 노래 시합이 행해졌으므로, 후에 바그너는 이것을 제재로
한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만든 것이다. 흔히 우리 나라에서
노래제목에 마이스터징거를 '명가수'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런 의미로 보면
잘못이며, 마이스터징거는 그 '우두머리 가수'라는 뜻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생긴것이 아니므로 그 노래의 내용도 시민 생활과 밀착된 제재가
선정되고, 그 시나 곡도 아마 당시는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교회 이외의 음악, 즉 속악이 성해진 사실은 이윽고 유럽의 음악
문화가 화려하게 발전하는 데 대한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건축을 비롯하여
회화, 조각 등의 조형미술에 그 정신문화의 융성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 고장에서는 신예술파(아르스 노바)라는 속악의 일파가 있어서 화려한
오페라를 성하게 하고 기악을 발달시켰다. 관현악의 연주도 아직 초기의
것이지만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교회의 음악은 장엄 웅대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민중의 음악은 차츰
'즐거움'의 요소를 많이 갖추게 되었다. 즐겁고 밝은 음악에는 아무래도
교회의 합창 양식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악이 발달하고 가벼운
반주를 지닌 단음의 노래가 환영받게 된다. 수백년이나 음악가들이 고심을
거듭해 온 대위법 음악은 과연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많은 가락이 항상
짜맞춰져 복잡하게 진행해 가는 음악은 아무래도 경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정교한 다선율음악에서, 명쾌한
단선율음악의 이론을 추구하려 하는 노력이 이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다.
@[ (3) 근세의 음악 @]
르네상스의 화려한 예술 운동은 차츰 안정되고 고정되어 갔다. 참으로 이
문화 운동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유럽 전 지역에는 엄청난 예술의
재산이 축척되어갔다. 그리고 16세기를 정점으로 하여 새롭고 자유분방한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바로크 양식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 쪽에서는 플로렌스의 음악가들이 가지각색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었는데,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역시 답답하고 장중한 교회적인
다선율음악에서 좀더 밝고 경쾌한 단선율음악 쪽으로 옮겨 가려 하는
노력이었다. 예컨데 처음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증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부친인 벤첸초 갈릴레이는 아름다운 독창곡을 즐겨
작곡하였고 여기에 명쾌한 기악반주를 붙였다. '명쾌한' 이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노래에 붙여진 반주는 모두 합창곡풍으로, 기악도 모두
대위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갈릴레이가 시작한 단선율음악에서는 그
반주는 화성적으로, 즉 반주의 음은 옆으로 흐르는 선율의 조합이 아니라
세로로 겹치는 화음의 형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그 느낌은 무척 명쾌해지고
독창과 반주가 깨끗하게 분리되어 들리게 된다. 이것은 곧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의 수법에도 응용되었고 다시 기악곡에도 사용되었다.그래서
오페라는 캇치니에서 카발리에리와 몬테베르디, 카릿시미(Giacomo Carissimi
1650--1674) 등에서 알렛산드로 스카를랏티로 이어져 화려한 오페라로
되었고, 이것이 프랑스와 영국에 수입되어 여기에 17, 18세기의 오페라 융성
시대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또 르네상스 이후 악기의 제조법이 매우 진보한 것도 음악의 새로운
양식을 낳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르간, 클라비코드,
하프시코트(쳄발로) 등도 모두 이 시대에 참으로 정교하고 새로운 것이 되고
그 연주 기술도 현저히 향상되었다.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그 밖의 현악기가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해서 활발하게 만들어졌으며, 뛰어난
대연주가가 많이 나온 것도 또한 이 시대이다. 바이올린의 명연주가로서는
비탈리가 있으며 또 소나타와 합주협주곡을 많이 만든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도, 독주협주곡을 처음으로 작곡한 토렐리(Giuseppe
Torelli 1658--1709)도 모두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였다. 도메이코
스카를랏티(앞에 말한 알렛산드로의 아들)는 쳄발로의 명수였으며, 이에
이어 프랑스에서는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73), 다캥(Louis
Claude Daquin 1694--1772), 샹보니에르(Jacques Champion Chambonnieres
1602경--1672) 등의 명인이 많이 나타나 모두들 쳄발로를 위한 명곡을 남긴
바 있다.
오르간 음악에서는 이탈리아에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가 있으며 독일에는 북스테우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라는 대가가 있다. 한편으로는 교회음악에도 이 시대에 일대
이변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르틴 루터 일파의 종교개혁(1517년)이다. 루터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자기도 류트를 잘 연주했으며 작곡 기술에도
뛰어났었다.
당시의 교회음악은 모두 로마정교(가톨릭)가 제정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 의해 모두 라틴어로 부르게 되어 있었다. 성가뿐만 아니라 온갖
의식이나 예배 방식도 여러나라, 여러 민족의 생활양식과는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그 규칙을 지키고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루터는 민족이나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여러 민족이 제각기 사회생활에 적합한
신교(프로테스탄트)를 세웠다. 신교의 찬송가는 각각 자기 나라 말로 부르고
그 곡도 자기 나라의 민요를 다루거나 새롭고 뛰어난 작곡가를 기용하여
신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 긴 예배음악 대신에 짧은 가요 형식의 노래를
채용하였다. 짧아도 이것은 유절가곡이고, 같은 멜로디로 몇장이건
되풀이하는 형이기 때문에 누구나 곧 익힐 수 있다. 그래서 정래의
교회에서는 전문가의 성가대만이 라틴어로 불렀던 것을 이번에는 교회에
모이는 대중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부를 수 있도록 고쳤다.
이러한 종교음악의 개혁은 다시 르네상스 정신의 영향과 바로크 양식의
영향도 받아서,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발전하는 길이 열였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크 양식의 시대, 또 다선율 음악(대위법)시대의 최후의
대가인 헨델과 바하의 위대한 업적으로 이어져 갔던 것이다.
@[ (4) 근대의 음악 @]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발달한 단선율 음악에의
취향은 이윽고 베니스와 나폴리로 전해졌고 얼마 후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
하나는 화려한 오페라의 아리아로 발전하고 하나는 밝고 즐거운 기악의
전성으로 이끌어 갔다.
베니스의 산 마르코 사원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음악학교의 교장도
겸하고 있었던 비발디는 이 새로운 경향을 한층 풍부한 것으로 하여
바이올린 음악과 합주협주곡을 대성시켰으며, 독일의 바하나 헨델에게
이탈리아 음악의 새로운 시대의 양식에 대한 많은 시사를 주었다.
이 밝고 풍부한 이탈리아 음악은 새로운 독일의 음악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남독일의 만하임의 뛰어난 음악가 요한 시타미쯔,
안톤 필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만하임 악파의 융성을 초래하였다.
그 무렵 만하임의 궁정에는 40명으로 구성된 당시의 유럽에서 제일이라고
일컬어졌던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시타미쯔는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으므로 관현악의 연주에 대해 많은 기술을 체험하였으며 이것을
새로운 작곡의 수법으로 도입하였다. 예컨데 강약의 변화에 의한 가지각색의
표현은 이 악단의 가장 뛰어난 연주 기술의 하나였는데, 이것은 곧 작곡상의
중요한 수법으로서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품도 내놓았다.
만하임 악파는 또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의 형식을 아주
새롭게 해서 이들 악곡의 제 1악장이 되는 '소나타 형식'이라는 훌륭한
형태를 완성하였다. 이 악파를 고비로 하여, 비발디 이전의 이른바 바로크
양식의 소나타나 협주곡, 그리고 근대의 소나타, 협주곡의 양식을 판이하게
구별된다. 그리고 이 완성된 양식은 현대의 음악으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기서 '근대'라 부르고 있는 것은 20세기부터의 이른바 근대 음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좀더 넓은 의미의 18세기 중반부터를 말한다. 그것은
악곡의 형식을 비롯해서 관현악을 편성하는 원리, 기악 연주의 기술등이
근대, 현대로 직접 이어서 발전해 온 요소가 이 시대에 대충 형성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근대라고 함은 넓은 의미의 근대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만하임 악파는 대바하의 아들들 몇사람을 비롯, 많은 음악가가 이에
참가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도 그 음악의
양식으로 본다면 모두 직접, 간접으로 이 만하임 악파를 이어받은 것이다.
@[ #1 고전파 @]
만하임 악파에서 나온 사람들과, 그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을 고전파라고
한다. 대바하의 아들들, 장남 프리데만을 비롯해서 에마누엘, 크리스티안
등, 또 디터스도르프, 복케리니, 그리고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도 또한
고전파의 작곡가이다. 특히 이 세사람은 빈을 중심으로 해서 활동했기
때문에 빈 고전파라고 말하는 수도 있다.
당시의 예술적 음악은 교회가 아니면 왕후 귀족의 저택 내에서 연주되는
일이 많았다. 고전파 작곡가들의 직장은 이들 귀족 사회였다. 직접 귀족
등에게 고용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러한 기분의 음악이 그 시대의 음악의
양식이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음악은 항상 밝고 명랑하며 우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곡자의 너무 강렬한 개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누가
어떤 기분일 때에 듣거나 항상 즐겁고 아름다와야 하기 때문이다. 힘찬
정열이나 비창한 느낌 등도 우선 당시의 화려한 살롱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국민성이나 민족성이 너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도 안된다. 이것을
듣는 손님은 아름다운 사교복으로 몸을 장식하고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더러는 졸기도 하는데, 그 동안에 실내악 등이
연주된다. 만약 그 졸음을 깨우는 듯한 강렬한 외침이 나온다거나, 우울한
감정을 일으키는 종류의 것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걸작이라도 낙제이다.
베토벤이 젊었을 때 작품 1번으로서 세 곡의 피아노 3중주곡을 썼다. 그
첫째와 둘째는 과연 우아한 당시의 궁정 양식의 음악이지만, 세째인 c단조의
곡은 가장 개성적이고 비극적인 느낌을 지닌 것이다. 그러자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이 그 세번째 곡만은 함께 출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음에도, 베토벤은 이 비평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그것을
무릅쓰고 출판하고 말았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고전파의 음악은 유형적인 것이 되기 쉽다. 오늘날까지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장식하고 있는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명곡은 과연 대천재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 유형적인 무수한 악곡 속에 있어도 역시 후세에 남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비슷한 느낌의 곡이 많은가.
하이든의 백곡을 넘는 교향곡과 80곡에 달하는 현악 4중주곡만 하더라도
지금 연주회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그 가운데 아주 일부의 작품에 한정되어
있다. 모짜르트의 아름다운 피아노 3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평소
연주회에 나오는 것은 그 많은 것중의 몇곡일까. 이러한 대작곡가의 작품도
그런 형편이니까, 다른 고전파의 많은 작곡가들이 남긴 몇백, 몇천개의
음악이 어느 것이나 아름답고 즐겁고 온화한 작품이긴 할테지만 매우
유형적인 것 뿐이어서, 오늘날에 와서 보면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대표적인
곡에 의해 전부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음악, 고전파의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처럼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며 게다가 솜씨 좋은 작곡가가 이런
유형의 테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고전주의 속에 자라 그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의 근본은
고전주의의 형식, 내용 아래 창작하면서도, 다음에 오는 낭만파시대의
화려하게 번영했던 백년간의 싹을 이미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 #2 낭만파 @]
베토벤의 일대 동안에 유럽 천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자유사상의 발흥과 봉건제도의 붕괴가 각국의 정치 위에 크게 실현되어온
일이었다. 귀족이나 대지주의 폭정에 이미 민중은 견딜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루소와 볼테르, 또 영국의 기번 등이 자유를 부르짖고 전
유럽 사람들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었으며, 18세기 중엽부터 독일에서 일어난
낭만문학의 유행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구하는 용기와 청신한 활력을 주었다.
미국이 영국 정부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마침내
성공한 것도 이 무렵이다.
프랑스는 가장 위험한 상태에 있었는데, 1789년의 바스티유 감옥의
파괴에서 발단한 역사적인 대혁명은 수행되고, 영화를 자랑했던 루이 16세의
일족을 단두대(단두대)에 보낸 것은 베토벤이 22세 때였다.
이것은 유럽만의 일이 아니고 전세계가 무엇이건 새로와져야 하는 때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어 유럽에서는 미증유의 공포시대에 들어간다. 나폴레옹
1세는 대혁명의 뒷처리에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예술의 보호자였던 귀족들의 그 재력도 권력도 점차
위태로와지기 시작하였다. 음악가도 귀족의 살롱을 나와 도시의 극장이나
공회당에서 민중을 상대로 작품을 발표하거나 연주를 하거나 해야 한다.
살롱에 초대된, 예의범절에 밝은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을 때는 비평 등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이미 특권 계급의 도구가 아니게 된 음악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으러 오는 민중의 비평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처럼 만인 대상의 무난한, 단지 차의 향기를 북돋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유형적인 것은 말살되고 말았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개성'이다.
강렬한 개성, 인간의 마음의 밑바닥에서 스며나오는 힘찬 정열과 미묘한
정서의 표현이야말로 민중이 구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이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풍부한 인간성의 표현에 그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고도의 연주 기술, 잘 울리는 악기, 정교한
구조와 힘찬 표현력을 지닌 피아노, 그리고 수천명의 청중에게 호소할수
있을 만큼의 색채와 음량이 풍부한 오케스트라, 또 그러한 연주를 언제든지
할 수 있게 하는 커다란 자본 능력을 필요로 했다.
베토벤의 시대를 경계로 하여 이 여러 가지 조건은 착착 실현되어 갔다.
다만 모든 것이 단번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예술가에게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많고, 아직 옛 귀족계급은 여전히 음악예술에 대해서는 옛날
그대로의 커다란 세력이었던 곳도 있다. 민중이라고 해도 진짜 예술애호가는
주로 그 속의 지식계급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러나 이미 세상은 바뀌었다.
살롱에 초대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전주의 양식의 음악이 차츰 그 존재 이유를 약화시키고 있음은
이미 시간의 문제이다.
그러면 음악의 양식은 어떻게 변해갔을까. 먼저 고전주의 시대의
장식취미의 예술보다 좀더 주관적인 인간의 혼의 외침을 듣고 싶다는
요구에서 깊이와 중후한 맛이 있는 악곡이 잇달아 나왔다.
베토벤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나 현악 4중주곡, 또 제9교향곡, 미사
솔렘니스 등은 당시의 젊은 작곡가였던 슈베르트, 멘델스존, 베버 등에게
측정할 수 없는 커다란 감명과 그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같은
무렵 프랑스의 베를리오즈는 최초의 본격적인 표제음악인 "환상 교향곡"을
만들고 낭만음악의 새로운 면을 개척한 바 있다.
섬세한 정서나 순간적으로 변하는 미묘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음악으로, 비로소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당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짧은
소곡 속에 한없이 풍부한 시적인 정서를 담을 수도 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6개의 악홍의 한 때", "즉흥곡", 멘델스존의 49곡이나 되는
"무언가", 슈만의 "판타지"와 "환상소곡집", 그 밖에 쇼팽과 리스트, 브람스
등의 피아노 소곡 등은 이런 생각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낭만파 음악의 커다란 특색의 하나로 표제음악이 있다. 앞에 말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도 그 걸작의 하나인데, 같은 시대에 멘델스존의
서곡 "핑갈의 동굴"과 괴테의 시를 음으로 그린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등이 있으며, 베버는 십자군 병사의 삽화 하나를 표제로 해서 f단조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이 뒤를 이은 리스트의 13곡의 교향시 등은 어느
것이나 문학과 관계를 가진 표제음악이다.
예술가곡도 낭만파의 풍부한 소산이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리베, 그 밖에 많은 작곡가는 시와 노래와 반주가 혼연일체가 된 뛰어난
예술가곡을 만들어 냈다.
19세기 낭만파의 시대는 또 명인의 시대라고 일컬어질 만큼 기악, 성악에
우수한 연주가가 많이 나온 때이다. 피아노는 쇼팽, 리스트, 클라라 슈만
등을 비롯해서 멋진 기교와 표현력을 지닌 피아니스트가 잇달아 나타났다.
또 바이올린에서는 귀재라고 일컬어졌던 피가니니를 위시하여 시포어,
비외탕, 비에냐프스키, 사라사테 등. 또한 이들은 많은 뛰어난 문제를
양성하여, 기악 연주의 수준은 이 시대에 일찌기 없었던 진전을 보여 준
것이다.
관현악은 더욱 색채를 화려하게 했고, 그 악기 편성은 아주 방대하였다.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말러, 리햐르트 시트라우스 등의 놀랄만한
대규모의 편성은 무릇 음악적 표현 능력의 절정에 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발달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능케 한 이유의 하나는 기계 공업의 발달로 악기의
구조가 진보되고 개량이 촉진되어 우수한 악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점과, 또 하나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규모가 큰 교향악단의 경영이
합리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 점, 그리고 또 음악이 문학이나 회화 등의
내용을 표현하려고 하여 더욱더 오케스트라의 커다란 표현 능력을 요구하게
된 결과이다.
고전파 시대에는 유럽 중에서도 일류의 문명국 즉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중심도시인 베를린, 빈, 파리, 런던, 로마,
등은 그 음악의 양식이 매우 공통되어 있어서 거기에 확실한 민족성의
차이는 별로 없었고, 예컨데 파리의 궁정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그대로
빈의 궁정에도 통용된다는 식으로 국민적인 개성은 오히려 희박해져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낭만파의 시대에는 작곡가나 연주가의 개성이 존중받게
된 것과 동시에 나라나 민족의 개성도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요구되게
되었다. 이것은 낭만파 시대의 말기에 가까와짐에 따라 더욱 성해지고
각국에 국민음악을 수립하려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고전파 시대에
문명국의 중심에서 오히려 제외되어 있었던 주변의 나라들일수록 성해졌던
것이다. 즉 러시아, 북구의 여러 나라,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 스페인
등이다. 각 민족이 그 전통적인 음악의 요소를 기반으로 해서 그 국민에게
고유한 감정이나 정서를 사양하지 않고 선명하게 드러내어 거기에 강한
개성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낭만파의 음악이 기울어진 뒤에도
현대음악 위에까지 더욱 힘차게 추진되고 있는 특색의 하나이다.
낭만파 음악은 오페라와 발레와의 무대예술 위에도 극도로 화려한 발전을
보여주었다. 아직 베토벤이 살아있던 1821년에 베버가 최초의 국민작인 낭만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발표한 뒤, 지금까지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에만
의존하고 있었던 작곡가나 청중도 대단한 오페라열에 들떠서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종종 오페라를 창작하여 상연케
되었다. 그 결과 무대 장치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사치한 의상과 등장
인원의 수, 오케스트라의 편성까지 차츰 대구모가 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가수가 많이 나온 점, 앞을 다투어 대가극장이 속속
건설된 사실에 의해서 19세기는 '오페라의 시대'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 개혁이라는 대작업이 있고 새로 악극이라는
분야로까지 발전한 셈인데, 이것은 앞의 '오페라'의 항에서도 말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낭만주의는 19세기의 후반을 사상 공전의 화려한 음악 예술로 장식한
셈이지만, 또 일면에서는 다소 지나친 재앙도 초래하게 되었다. 그것은
낭만음악이 가장 아름답게 여겨졌던 특색이 지나치게 과장된 사실과, 시대의
추이에 의한 인간의 감각이 하루하루 새로와져간 사실에 의한 결과이다.
예컨데 개성적, 주관적인 표현도 도를 넘으면 공허한 환상을 쫓게 되고,
개인적인 정서도 너무 이것을 추구하면 건강하지 못하고 병적이 될 우려가
있다. 비르투오소(명인예)만 하더라도 너무 연주가의 개성이 강조되면 악곡
본래의 모습이 일그러지거나 개인적인 취미에 취우쳐 청중은 그 음악에서
공허한 것을 느끼게 된다.
문학적인 사상이나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하려 하는 경우에도 너무
지나치면 음악은 문학의 내용을 설명키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을 위해 비로소
존재하므로 그 아름다움은 음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 문학이 없고서는 음악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사고방식이 만연해 왔다. 그리고 음악 속에 문학 등을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바하의 음악과 모짜르트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문학은 음악에 있어서 악처와 같은 것이다"라고
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하로
돌아가라"고 하는 이른바 신고전주의도 나왔다.
그리하여 낭만주의의 음악은 이윽고 과거의 것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 #3 현대의 음악 @]
낭만파의 어떤 부분은 이처럼 너무도 현실을 벗어난 공상에 빠지거나
주관적인 영웅주의에 흘러 음악의 본질을 잃으려고 해서, 차츰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었다. 청중은 좀더 직접, 감각에 호소하는 그런
음악을 구하고 있다. 머리로 생각하는 음악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음악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상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수법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그 화려했던 낭만파의 음악을 갑자기
잊어버릴 수 없는 청중도 많이 있다. 또한 낭만파의 대가들이 남긴
가지각색의 뛰어난 수법은 이것을 좀더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컨데
19세기 말까지 배양되었던 대규모의 관현악법이나, 많은 독주 악기의 고도된
연주 기술 등은 그대로 연장하여 진보케 하고 다시 그 특색을 살려 간다면
현대인의 감각에도 충분히 환영받는 요소가 된다.
또 슈만이나 쇼팽과 같은 낭만파의 대가가 장기로 했던, 순간적인
시적기분을 포착하여 이것을 음악으로 나타내어 가는 간결한 작곡의 목표에
대해 수법의 차이는 있을 망정 그 사고방식은 드뷔시, 무소르그스키등의
인상주의로 계승되어 갔다. 다만 인상주의의 음악과 인간의 인상과의 사이에
문학적인 것의 사고방식을 넣지 않고 직접, 감각적으로 하나의 기분을
구성하는 것이다.
드뷔시의 음악은 옆으로 흐르는 선이 아니고, 즉 멜로디를 으뜸으로 한
것이 아니고, 세로로 겹친 음이 빚어내는 색채와 명암의 감각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적인, 혹은 회화적인 기분을 만들어 내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작곡자와 또 동시에 청중의 심정의 참된 모습이 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드뷔시의 음악을 '수직주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즉
멜로디가 으뜸이 아니고 새로로 겹친 음의 하모니로 구성되어 가는
음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드뷔시의 음악에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작품이 많이 있지만, 그보다는 음의 감각적인 취급을 좀더 소중히 했다는
것이리라. 그것은 확실히, 작곡자의 현실과 동떨어진 제멋대로의 공상의
세계는 아니고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음악이다.
드뷔시는 파리에서 많은 인상파의 화가나 시인과 교제하여 이 새로운
영향을 받았다고 일컬어지지만, 또한 당시의 자연주의 문학도 음악의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음악의 이 새로운 경항은 많은 작곡자들을 공명케 하였다. 음악은
지금까지처럼 명확한 관념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강한
'선'의 흐름에서, 좀더 막연한 기분을 나타내는 색채나 음영의 느낌으로
옮겨 갔다. 따라서 지금까지처럼, 선을 다루는 갖가지 법칙, 즉
조성이라든가 음계의 형이라든가 하는 것은 좀더 자유로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선과 선을 짜맞추는 기술이나 법칙, 대위법과 같은 것에 대한
사고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주기적인 리듬을 나타내는 박자 관념도 가로의 선이 풀어놓여지고 보면
거기에 옹색한 약속은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만다. 가지각색의 신선한 색채를
새로운 팔레트 위에서 뒤섞어 보면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아름다운
빛깔도 만들어져서, 이미 수백년래의 낡은 화성법 등은 거의 그 원칙을
나타내는 일 밖에는 소용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상주의의 작곡가들은
색채감이 풍부한 전혀 새로운 화성도 만들어냈다.
이와 동시에 독일에서는 쇤베르크 등에 의해 새로 표현주의의 음악이
시작되었다. 표현주의는 드뷔시 등의 인상주의와는 반대로 멜로디의 '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낭만파처럼 감미롭고 도취적인
멜로디를 쫓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많은 선이 전혀 새로운 감각을 지닌
대위법적인 수법에 의해 동시에 진행하면서 색채감이나, 그림자와 빛의
느낌을 만들어내어 가는 것이다. 물론 옛날의 엄격한 법칙을 지닌
대위법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선이 주체가 되면 박자도 중요한 것이 되는 셈인데, 이것도 획일적인
리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몇개의 박자를 동시에 짜 맞추어 거기서
복잡한 어떤 감각을 구하기도 한다.
또 이 새로운 대위적 수법은 멜로디의 '조'를 가장 자유로운 입장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무조가 되고 어느 때는 다조, 즉 많은 다른
조가 동시에 짜 맞춰지고, 또 거기서도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냈다.
인상주의와 표현주의는 그 표현법에 대한 생각은 이처럼 전혀 다르지만,
결국 그 목적으로 하는 바는 음악 그 자체에서 아름다운 감각과 감정의
표현을 구하므로 19세기의 낭만주의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임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적인 수법이나 취향을 완전히 버렸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과에 있어서, 수백년에 걸쳐 음악사상이 걸어 온
갖가지 양식이 많건 적건 모든 시대의 예술양식 속에 깊이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 축척되어 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시 가까운 현대음악에 대해서 본다면, 어쨌든 인간의 사고방식이 한없이
자유로와지고, 그 수법도 여러 가지 편리한 악기나 기계의 힘을 빌 수가
있기 때문에 갖가지 잡다한 양식의 것이 나온다. 형식은 점점 자유로와지고
조성, 박자, 화성 등의 관념도 이미 옛날의 것과는 전혀 다른데, 그러한
것들 중에는 새로운 고전주의도 있는가 하면 새로운 낭만주의도 있다고 하는
셈이다. 또 20세기의 미국의 흑인 간에 생긴 재즈음악의 수법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음악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뭔가 새로운 시대의 정신 생활,
사회 생활에 적합한 감각을 추구하고 청신한 기분을 내려 힘쓰고 있는
점에서는 같다.
현대음악은 종종 감상자를 당황케 하는 수가 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맛보기 전에, 먼저 그 너무도 새로운 색다른 수법에 갈피를 못 잡는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고전파나 낭만파의 음악에 길들여진 귀를 깜짝 놀라게
하는 듯한 '틀에 박히지 않은' 수법이 많기 때문이다. 옛 음악으로 부터는
명확히 포착할수 있었던 관념이나 감정을 똑같이 새로운 음악에서도
구하려고 하면 참으로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쨌든 20세기에 태어나 현대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간이다. 귀에 익지 않았더라도 역시 현대의 음악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아름답고 슈베르트의 가곡이 정말
감동을 준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더라도, 지금의 작곡자가 베토벤과
비슷한 교향곡을 만들고 슈베르트를 꼭 닮은 가곡을 써 준다고 하면, 그것은
현대의 청중의 마음으로부터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시 현대의
작곡자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이 반드시 현대인의 감정을 높이는
요소를 어느 시대의 작품보다도 많이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 #4 전자음악과 뮈지크 콩크레트 @]
근년에 전자과학의 눈부신 진보와 함께 전혀 새로운 음악의 양식이
생겨났다. 그것은 뮈지크 콩크레트와 전자음악이다. 이미 이러한 것들의
음악회도 있었고 발레와 그 밖의 실용에도 제공되고 있으니까 간단하게나마
그것을 설명해 두기로 하자.
가) 뮈지크 콩크레트: 1950년 경 파리 국립방송국의 음악감독이었던
피에르 세페르(Pierre Schaeffer 1910- )가 창시한 것이다.
종래의 음악은 그 재료로서 인간의 목소리든가, 혹은 음악의 소리든가,
또는 그 양쪽을 합해서 사용하였다. 극히 드물게, 예컨데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속에서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녹음헤서 사용했다거나,
리햐르트 시트라우스의 "돈 키호테" 그 밖의 곡에서 윈드 머신(연극 때
바람소리를 만드는 도구) 등 악기가 아닌 것의 음도 쓰여진 예가 있지만,
우선 거의 모든 음악은 성악과 기악만을 그 재료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페르의 사고방식은, 음악이 인간의 청각을 통한 예술인 이상,
어쨌든 귀에 들리는 음은 무엇이건 음악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바람소리며 비 소리, 폭풍, 파도소리, 화산의 굉음과 같은 자연계의 여러
가지 음향은 물론이고 벌레 소리, 새의 울음소리, 짐승과 그밖에 일체의
돌물이 내는 소리도 사용한다. 또 군중의 웅성거림, 각종 작업의 잡음,
기계의 울림에서 자동차, 항공기의 엔진소리와, 그밖에 총포,
다이너마이트처럼 큰 음에서 컵 속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물 속의
물고기 소리를 마이크로 모은 음처럼 미약한 음에 이르기까지 무릇 인간의
귀에 들리는 일체의 음향이 음악의 재료가 된다. 그러한 현실음을 사용
한다는 데서 뮈지크 콩크레트를 '구상음악' 이라든가 '구체음악'이니 하고
직역한 적도 있지만, 참된 목적은 아직 다른 데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성악이나 기악도 참가한다.
이런 무수한 종류의 음 속에서 작곡자는 그 작품에 필요한 것을 택하여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전기적으로 변형해서 사용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많은 종류의 음을 녹음하여 모아 두는
라이브러리가 필요해진다. 실제 문제로서 음악회 때에 동물이 언제나 알맞게
울어 준다고는 할 수 없다. 또 좀더 규모가 큰 기계 따위를 회장에 들여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녹음 테이프에 수록해 두는 것이다.
지금 가령 비 소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작곡자는 반드시 이것을 바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음향으로서 이것을 적당한 높이, 셈여림,
음색 등으로 가공하여 하나의 악기처럼 생각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이미 '비'라는 관념이나 연상은 없어지고 만다. 모든 음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셈이니까 가령 사자의 소리가 들리더라도 청중은 곧
아프리카의 정글 등을 상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통의 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의 솔로가 나왔구나 하는 정도로 듣고 있는 셈이다.
모든 음이 전기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종래에 도저히 인간의 솜씨로는 할
수 없었던 그런 일도 가능해진다. 예컨데 트럼펫의 명인에게 있어서 1초
동안에 1옥타브의 음계가 고작이었다 하더라도 전기적으로 처리하면 이것을
2분의 1초로도, 5분의 1초로도 줄일 수가 있다. 또 대형 피아노로 8옥타브
정도가 고작이었다 해도, 진기적으로 다루어 그 음역을 2배로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테이프의 속도를 변화시킨다거나 음의 필터를
사용하기도 해서 모든 음의 음색을 바꿀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의 귀에 들리는 무수한 음의 종류를 사용하고 더우기 이것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킴으로써 작곡에 사용하는 음의 종류는 몇 만배나 되며,
따라서 이것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의 표현능력에 무한한 가능성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뮈지크 콩크레트에도 여러 가지 길점이 있다. 우선 매우 풍부한,
현실음의 라이브러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긴 세월을 필요로 하며, 만약 작곡자가 요구하는
현실음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을 만들기 위해 역시 상당한 수고를 하고
어디선가 만들어 와야 한다. 또 가령 작곡에 필요한 현실음이 전부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각각 전기적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합성하거나
편집하기도 하고 많은 인원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너무 오랫 동안 많은
품을 들이고 있노라면 맨 처음 작곡자의 머리에 떠오른 음악의 이미지가
상실되거나 바뀌고 마는 일조차 있다. 이론으로서는 재미있는 착상인 뮈지크
콩크레크도 최근에는 별로 제작되지 않고, 작곡가는 오히려 그 다음에
나타난 전자음악 쪽에 많은 흥미와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뮈지크 콩크레트는 또 적당한 역어가 없기 때문에 보통은 원어로 부르고
있다.
나) 전자음악, 신디사이저: 이것은 앞에 말한 뮈지크 콩크레트보다 조금
뒤늦게 시도된 것이지만, 전자공학의 놀라운 진전으로 지금은 이 쪽에서 더
많은 연구와 그 성과를 볼 수 있다.
뮈지크 콩크레트가 인간의 귀에 들리는 것이라면 자연계의 음이건
인위적인 음이건 모두 이것을 음악의 재료로서 사용하겠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전자음악은 이 생각과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
즉, 인간의 목소리도 악기의 음도 사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연계의 음이나
그 밖에 기성의 음은 일체 그 재료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음을 새로
만들어 가겠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러자면 먼저 '순음'을 만든다. 순음이란 것은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아주 순수한 음을 말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전기적으로 만드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피아노도, 플루트도, 오르간도, 언뜻 생각하면 상당히
순수한 음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재각기 많은
배음이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기에 각각 '음색'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며 피아노, 플루트, 오르간이라고 곧 그 음색에 의해 구분해서 들을 수
있는 셈인데, 만약 이들 악기가 순음이었다면 이것을 음색으로 판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높이의 순음을 만들고, 이번에는 그것을 여러 가지로 합성한다.
그러면 거기에 여러 가지 음색이 생긴다. 그 종류는 몇천만, 몇억이라고 할
만큼 거의 한 없이 많고, 물론 기재의 악기의 음색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들이 아직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 그런 진기한 음색이 얼마든지 가능한
셈이다. 이것은 모두 치밀한 수학적 계산과, 이것을 전자공학에
응용함으로써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극히 정밀하고
게다가 대규모의 기계나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음색만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이 음악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작곡가는
음의 강약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리듬, 음의 감쇠, 혹은 증강의 자유자재로운
변화, 고저의 여러 가지 변화를 이것도 역시 전기적인 처리에 의해 합성해서
만들고, 작곡가가 생각하는 대로의 음악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전자음악의 악보는 처음 보아서는 전혀 알수 없을 만큼 복잡한 것으로서,
악보와 많은 숫자와 정밀기계의 설계도와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데, 이것도
아직 현재로서는 각 작곡가가 자기가 사용하기 쉽도록 멋대로 고안해서 적고
있는 것 같다.
전자음악은 연주가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두 전기적으로 음이
만들어지고 컴퓨터에 의해 계산되고, 기억되고, 합성되어, 이것이
음악으로서의 목적을 위해 처리되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은
테이프와 그 밖의 수단으로 녹음되고, 이것이 또 전기적으로 재생된 것을
감상한다고 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작곡가는 자기자신 혹은 전자기술자와 협력하여, 최초의 기획,
작곡에서부터 마지막에 이것이 음이 되어 청중이 들을 때까지의 책임을 지게
되는 셈이다.
이 작업을 하는 '악기'로는, 얼마간 쓰기 쉬운 형과 장치를 지닌 것을
신디사이저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종래의 피아노나 파이프 오르간처럼
완성된 악기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까다로운 작품이 되면 몇대의
신디사이저를 동시에 사용하거나, 혹은 몇번 녹음을 거듭하기도 해서
작곡하는 일이 많다.
사고방식으로서는, 앞에 말한 모든 현실음을 사용하는 뮈지크
콩크레트보다 더욱 합리적이고 장래의 발전성도 있지만, 아무튼 기계장치에
많은 경비가 들기 때문에 선뜻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전자공학은 일진 월보의 빠른 개발에 의해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짐작을 할 수 없을 만큼 진보해 간다. 그러면 1년 전의 작품은 이미 낡았고,
5년 전의 작품은 유치해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 보거나 작곡의 기법상으로 보거나, 전자음악은
커다란 장래의 희망을 가지면서, 현재는 아직 개발도상의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장차 그 속에서 불후의 걸작, 천하의 명곡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현재 유능한 작곡가들이 여러 가지 실험과 창작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 현상이다.
이상과 같이 최근의 전혀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극히 간단하게
소개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종래의 음악으로 되돌아가 생각해 보자.
6세기경에 생겼다고 하는 최초의 기보법인 네우마에서 개량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음악은 악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일단 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주자가 임의로 판단해야 하는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다. 가령 A와
B의 두 피아니스트가 같은 악보를 사용해서 연주했다 하더라도 그 2개의
연주를 비교해 보면 반드시 어딘가에 차이가 있다. 연주가 각자의 해석,
감각, 취미의 차이, 즉 개성이 자연히 혹은 인위적으로 세밀한 부분에서
연주의 차이가 되어 나타난다. 같은 오케스트라로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해도 지휘자가 다르면 거기서 나오는 음악에 큰 차이가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점이 종래의 음악적인 표현에 있어서 재미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하나의 표준적인 연주가 가장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을 레코드라든가 테이프로 들어야만 한다면 이렇게 시시한 일은 없다.
쇼팽의 피아노곡도, 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개성을 듣고 이해할 수가
있기에 음악은 즐거운 것이다. 전자음악과 같은 전혀 새로운 음악은 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음악에도 이를 대신하는 즐거움이
장래에는 생길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인간이 만드는 예술이 인간성을
부정하지 않도록 미래의 음악에 대해서도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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