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유산
P. 라핀 (오영숙)
차례
머리말
제1부 꿈은 이루어지고
풍부한 유산
충만된 삶
어머니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나눔
하느님이 보고 계시단다
어머니만이 자녀들의 마음을 가꾼다
어떤 어머니들은 사제의 영혼을 지녔다
가슴아픈 이별
희생의 열매
제2부 새 세계는 새 등불로
아들이 죽어 가요!
위협하는 세상
도시 빈민가의 버림받은 사람들
어머니들의 여왕
좋은 시절 나쁜 시절
말보다 실천이 어려운 가난
놀람의 시간
공포의 시간
천국에서도 우리는 하나
머리말
어느 서점에 가든지 인간 행동학에 관한 책들이 있는 곳을 보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평정도 즉시 가져다 준다는 베스트 셀러들이
대량 생산된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즉 그 책들의 대부분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베스트 셀러들이 내놓은 이론들은 더 나은 이론이
등장하면 금세 뒷전으로 밀려나 그 책의 저자들의 책꽂이에서나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책들의 속임수에
도취되고 있는지 모른다.
더욱 놀라운 일은,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정신요법에 대한 책들이며, 또
그것을 목마른 자가 물을 들이키듯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정신분석학 책들이 - 또한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하는 정신과 치료까지도 - 독자들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소용없는 것이다. 만일 이런 종류의 책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거나
시장터에서 병을 팔다 이젠 책장수로 변해 버린 협잡꾼일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서점의 인간행동학 책꽂이 앞에서 서성이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허전한 마음 때문이다. 그리곤 해결점을 찾을까
하여 탐욕스럽게 읽은 책들이 유행에 밀려 나는 것을 보게 되며, 때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 만병통치 요법을 시도해 보니 결국에는 그것도
미궁 속으로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여러 가지의 정신치료법들이
텅 빈 마음의 공간을 메워 주고 그 허기를 채워 주는 것 같기도 하나 얼마
못 가 또다시 공허를 느끼고 어둠 속에 빠져들게 되며, 종국에는 오히려
처음보다 더 악화된 자신을 보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또다시 빈
손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든지 아니면 하느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린이 교육에도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자주 어린이
전문가가 새롭게 등장하여 자녀교육은 이러해야 한다는 이론을 내 놓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동쪽으로 가라 하고 어떤 이는 서쪽을 가리키고 또
어떤 이는 바람개비 같이 사방을 가리키며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새 이론을 실험해 보는 실험대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새로운 실험 방안이 제대로 통하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어떤 결과이든 상관 없이 재빨리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현대의 교육 전문가들은 우리의 어린이들을 이런 지경에까지 몰고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실험들이 하느님의 교육방법, 또 하느님께서 자녀양육을
잘 하도록 모든 어머니들에게 주신 모성 본능을 무시하였다. 그
실험가들은 출산 그 때부터 은총에 힘입어 모성 본능이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는 것임을 전연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책은 어떤 새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즉석에서 얻어지는 행복이나 마음의 평정을 약속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어머니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성 본능을 어떻게 최선을 다해
살았으며, 하느님께서 가장 고귀한 일인 자녀출산에서부터 양육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때맞추어 잘 협력해 주시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뿐이다.
이 어머니의 이야기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많은 어려움 중에 방황하는
어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한 사람으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전쟁과 기근, 질병과 죽음이 만연하던 시대에 세 자녀들을
기르며 어렵게 살았다는 사실 앞에서 많은 어머니들은 용기를 얻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자의 한 사람인 요한 보스코 신부는
바로 이 어머니의 아들이며, 그도 이 어머니의 모범을 따라 아이들을
가르쳤노라고 고백하였다. 어머니는 아들 요한 보스코의 협조자로서
교육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교육 방법을 실현하는 데 동참하였고, 오늘날
그 교육 방법은 세상 여러 곳에서 여러 교육 기관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어머니가 직면하였던 문제나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당하는 문제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특히 젊은이들이 사건을 보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하겠다.
자신의 아이들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버림받은 수백 명의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된 신앙의 기로 나아간 이
어머니는, 신약의 여인들의 모범이 되어준 구약의 전설적인 위대한
여인들처럼 이 시대의 어머니들에게서 존경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불
인류의 모든 어머니들이야말로 말보다 모범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가르친
예언자들이라고 하겠다.
유명한 교육자이자 성인인 요한 보스코의 어머니는 활달한 한 여인의
생애에 대한 이 이야기가,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밝혀 그 어머니들 밑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날로 지혜롭고 사랑받는
어린이들로 성장할 것을 바란다.
제 1 부
꿈은 이루어 지고
풍부한 유산
야 - 야! 야 - 야! 군인들이 무릎을 두드리면서 내는 소리였다.
야! 야! 그러자 이쪽에서 소녀가 되받아 소리쳤다. 보! 보! 야!
이렇게 되자 군인들은 더 재미가 나서 큰 소리로 소녀의 말을 받았다.
보, 보, 야, 야! 소녀가 다시 소리쳤다. 보, 보, 야, 야! 두 단어를
합치면 보야 가 되는데요( 보야 란 사투리로 교수형 집행인 또는
악한이라는 뜻이다) 그게 아저씨들 별명이에요! 아저씨들은 사람 죽이는
사람들! 악한들이란 말이예요.
소녀는 경멸과 호기심이 섞인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군인 아저씨들이 가는 곳엔 늘 말썽이 따른다구요!
말가리다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군인들을 아주 멋있게 보는
친구들과는 달리 멋있는 군복과 번쩍이는 훈장과 모자에 꽂은 아름다운
깃털 뒤에 숨어 있는 군인들의 진면목을 이미 보았던 것이다. 이 눈에
띄는 화려한 복장 뒤에는 얼마나 그 모습과 상반되는 면이 숨겨져 있던가!
단정한 군복을 입고 있지만 그들이 비천한 출생이라는 것은 금세 드러나
보인다. 때로는 그들이 도둑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들이 주둔하고 있을
때에는 젖소나 양, 염소들을 풀밭에 그대로 놓아 두어서는 안되고 여자도
나가서는 안 되었다.
그 날도 소녀는 집 앞에서 옥수수를 펴놓고 말리고 있었다. 겨울에 온
집안 식구에게 양식이 되어 줄 귀한 옥수수였기에 한 톨이라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었다. 소녀의 주위에는 9월의
찬란한 태양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소녀의 집이 있는 언덕
너머로는 알프스 산맥이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고, 남쪽으로 낮은 산들과 몬트페랏의 비옥한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딱딱한 도로에서 부드러운 들로 들어설 때 내는 절그렁거리는
쇳소리와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말 탄 한떼거리 군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이
보였다. 군인이나 말들이 모두 헐떡거리는 것을 보아 가파른 산을
넘어오느라고 모두 지쳐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군인들이 먼저
앉을 자리를 찾기 전에 말을 풀어 주자 말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군인들은 쉴 자리를 찾자 깃털이 꽂힌 모자를 벗거나 윗도리의 단추를
벗기면서 담배를 피우려고 주머니에 든 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소녀와 군인들 사이에는 말장난이 벌어졌던 것이다.
소녀는 군인들을 바라보며 소리지르던 것을 그만두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벌써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소녀가 군인들과 말장난을 하고 있는
사이에 말들은 널어 놓은 옥수수 옆으로 다가가 염치 없이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녀는 즉시 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비켜! 꺼지라니까! 소녀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지만 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한가하게 쉬며 담배를 피우던 군인들은 오히려
즐거운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중 몇 사람은
놀리기까지 하였다.
잘 한다, 애야! 더 크게 소리질러 봐!
소녀는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군인들에게 뛰어갔다. 이 옥수수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식구들은 겨울을 나기 위한 이 식량을 좀도둑의 눈에
띄지 않게 잘 보관하기 위해 처마 밑이나 헛간 지붕 밑에 감추어 두는
형편이었다. 소녀는 군인들에게 말들을 쫓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말들이 우리 옥수수를 먹어 버리면 안 된단 말이예요! 소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여름 내내 우리가 땀흘려 가꾼 옥수순데 저 말들이 다 먹어
버리면 우린 겨울에 무얼 먹고 살아요? 말들을 좀 쫓아 주세요. 네?
불행하게도 소녀는 피에몬테 지방의 억센 사투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소녀의 이 애원의 소리 앞에 잠시
조용하는 듯싶더니 그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소녀는 다시 몸을 돌려 뛰어가서 쇠갈퀴를 집어 들고 말들을 밀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푸짐한 음식에 빠져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먹어 대었다. 그러자 소녀는 갈퀴의 쇠끝으로 말들의
옆구리와 부드러운 말의 코를 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하니 그제야 말들은
놀라 히힝거리며 도망갔다.
이젠 군인들이 야단이 났다. 도망가는 말들을 겨우 붙잡아 옥수수
낟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무에 붙들어 맨 군인들은 이 겁 없는 아이가
어른 농군이었다면 단단히 혼을 내주었을 것이다. 그 당시 기마병들은
정예부대로서 자부심도 대단한 데다가 잔인하기도 해서 농민들이 항거라도
해오면 칼로 사정없이 베어 버리곤 하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이 조그만
소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군인들은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쉬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파이프를 물었다.
이 군인들은 누구이며 이탈리아의 이 농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때는 1799년으로 그들은 방금 피에몬테 지방을 점령한 오스트리아
군인들이었다. 그무렵 이탈리아의 북쪽에 외국 군인들의 침입이
빈번했는데 - 프랑스, 오스트리아, 또는 러시아 그 침입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 때의 분위기로 말하자면,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은 평화를 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그 반대의 것을 가져다 주었다. 바로 그 알프스
산맥이 로마로 통하는 길목에 있었고, 피에몬테 지방은 로마를 정복하려는
주변국가들과 인접하여 있었기 때문에 그 곳은 외세의 침입의 정류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폴리의 무어 라고 불리던 루도비코스포르자가
1494년에 불란서의 샤를 7새애개 이탈리아를 통치할 권력을 다시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 이래로, 이탈리아 반도는 침략의 난무장으로
인간살륙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전쟁에 부추겨져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 사이에도 전쟁이 일어나 (역주; 이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소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평안한 날이 없었다. 오래도록 강대국들에게
시달려야 했던 이탈리아는 메테르니히(역주;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1773-1859)의 말처럼 지도상에나 존재하는 나라로서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이러한 군인들과 지금 겁 없이 마주 섰던 이 소녀는 누구인가?
이 소녀 말가리다는 1788년 4월 1일, 카프릴리오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제 겨우 열한 살이었지만 발등까지 오는 갈새 rclak에나 무거운
나막신에 색이 바랜 하늘색 앞치마를 입고, 빨간 머리수건으로 밤색
머리를 가린 그녀는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피에몬테 지방의 살을 에는
겨울 추위와 여름의 뙤약볕을 이겨 낸 얼굴은 싱싱하였고, 연갈색으로
꿰뚫어보는 눈빛과 넉넉지 못한 음식과 포도밭을 오르내리는 힘든 일에
군살이 없이 단단해 보이는 모습은 그녀가 순수한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보여 주었다. 숱한 민족들의 침입과 잦은 이민으로
엮어진 이탈리아 역사를 따라 이 어린 소녀의 혈관에도 켈트 족, 로마 족,
골 족, 게르만 족, 그리고 슬라브 족의 피가 섞여 있었고, 지방 사투리인
말투에는 여러 종족의 언어가 뒤섞인 것이 보였다.
사실 여러 민족의 용각하고 호전적인 귀족들의 혈통과 기개가 담긴
풍부한 유산 덕분으로 피에몬테 지방은 이탈리아 반도의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전쟁 용사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성인들을 배출하였다.
불란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말가리다는 한 살짜리 어린이였지만, 알프스
산맥 너머로 혁명과 단두대의 공포를 피해 도망간 사람들이 오만명이나
되었다는 사건의 전모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에 이은 유혈사태와 나폴레옹의 득세에 대한 이야기도 수없이
들으면서 자라야 했다. 1797년에도 나폴레옹은 피에몬테 지방을 점령하여,
국민들을 탄압하고 약탈하는 바람에 키에리의 식량값은 치솟을 대로
치솟았고,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처형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오래도록 주둔하였고 특히
피에몬테 지방에는 군인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래서 현실을
무시한 카를로 엠마누엘 4세를 위해 무장하고 봉기하자는 우스꽝스러운
포고문이 나붙기도 하고, 늘 승리를 약속하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이탈리아 군인들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빗발치듯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늘 전쟁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번창하는 것은 군복 생산업체고, 그러다 보니 군복의 디자인이 너무
요란해져 희극 배우 의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 군복과 군인들에
대한 선망은 상류층을 깊이 파고들었고, 농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려 온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더욱 큰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두둑한 봉급과 멋진
제복, 미지의 모험에 대한 꿈으로 부푼 젊은이들은 죽음의 마당으로 밀려
나갔다. 더욱이 그 당시 나폴레옹을 위해 24만 명의 이탈리아 인들이
스페인에서 죽었ㅎ고, 15만 명은 러시아에서 죽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이탈리아 반도에 진을 치고 있는 프랑스,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터키
군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말가리다의 아버지도
이런 전쟁에 징용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말가리다는 이 모든 일들을
똑똑히 기억하였다.
말가리다가 아홉 살 때 나폴레옹의 사절들과 피에몬테 지방의
혁명가들이 카를로 엠마누엘 4세를 거슬러 전쟁을 일으켰다. 국민들도
왕을 위해 거세게 맞서 이 때에는 사형선고와 약식처형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었다. 프랑스 군대가 그 다음 해에 보복하기 위해 다시 밀려들어 오자
프랑스 군대의 잔인성에 분노한 군중들이 대항에 나섰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나폴레옹의 군대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하였고, 숨어 있는 혐의자들을 수색해 내서 무기 소지자들을 현장에서
총살해 버렸다.
나폴레옹은 교회의 예술품과 귀중품들도 약탈했고, 사제들도 노동을
시키거나 정부의 강요에 의한 조작된 교리를 가르치도록 했다. 나폴레옹은
교회의 종으로 대포를 만들었고, 남자들을 데려다가 대포밥이 되게
하였다. 사람들은 나폴레옹의 이러한 처사에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교회에
가서는 나폴레옹을 도와 달라는 기도를 바치곤 했는데 이것은
말가리다로서는 죽을 때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였다.
말가리다가 열한 살이 된 지금은 오스트리아 국왕의 편에 서서 피에몬테
지방을 점령하고 있는데 세금은 또다시 오르고, 남자들은 또 징집당할
것이고, 반대파들은 또다시 체포당할 것이 분명했다. 양식은 더
귀해졌는데 정부 관리들이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밀을 수입하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었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말 탄 네 남자드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난 것만 같은 살벌한 시대였다.
얼만큼 시간이 지나자 소대장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군인들은
일어나서 파이프를 집어 넣고 윗도리의 단추를 잠그고는 말에 안장을
얹었다. 그리고 두 번째 명령이 떨어지자 말을 타고 총총히 사라져 갔다.
그 중 몇 명은 겁 없이 대들던 소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말가리다는 완강히 고개를 돌린 채 옥수수만 쳐다보았다.
해가 기울자 언덕 아래 마을에서 작은 우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 어떤 엄마가 아이를 꾸짖는 소리에 섞여 장난치는 아이들의
소리도 들렸다. 마차의 덜그덕거리는 소리와 나귀의 울음소리, 젖소의
방울소리, 젖을 짜 주기를 바라는 염소들의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집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나 축일이 되면 온 마을에, 언덕 발치에 서 있는 교회와 언덕
옆에 붙어 있는 교회의 종들이 서로 화답하듯이 즐겁게 울려 퍼졌다.
말가리다의 교회(출생 서류와 세례 증명서가 있는 교회)는 카프릴리오
마을에서도 제일이었다.
위대한 용사들과 정치가들만이 피에몬테 지방의 역사를 빛내 준 것은
아니다.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교회의 성인들도 많이 배출되어 이 지방의
역사를 더욱 영광스럽게 해 주었다. 이 지방을 다스리던 사보이 왕가도
성인들을 여러 명 내놓은 자랑스러운 가문이었다. 말가리다가 세례를 받은
교회의 세례대는 벌써 코톨렝고, 카파소, 란테리, 베르타냐 등의 성인들이
세례받은 영광된 자리였다.
2천 년을 두고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과 관습 및 예식, 성사와
사말(역주;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문제. 즉, 죽음, 심판, 천당,
지옥을 의미한다)에 대한 견고한 믿음에 기초한 종교는 말가리다의 삶의
일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 모든 것들은 교리시간에
가르쳐지고, 강론대에서 설명되었으며, 매일매일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자연이 주는 계절의 리듬에 따라 강화되었다.
말들이 떠나갔으니 옥수수는 안전하고, 또한 하늘의 해길이가 하루
일과가 다 끝났음을 알려 주자, 말가리다는 갈퀴를 어깨에 메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는 포도나무 사이로 뚫린 가파른 길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포도는 어느새 통통해졌고, 대기 속에 배어 있는 새 포도의 향기는 포도
수확철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포도를 따서 으깨고, 소풍
가고, 잔치에 사람들이 모이고 ... 이 모든 것들이 즐거운 시간들을
약속4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자 말가리다는 지금까지
빠져있었던 언짢은 생각들을 깨끗이 씻어 버려, 나막신을 덜그덕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갈 때엔 어느새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충만된 삶
일어나! 모두 일어나거라!
도미니카 오키에나는 위로 열네 살박이 마리안나로부터 네 살박이
미카엘까지 다섯 아이를 깨우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다. 열한 살인
말가리다와 여덟 살의 프란치스코, 그리고 여섯 살 루치아, 큰 아이들은
잠이 모자라 투덜거리고, 작은 아이들은 멀뚱히 눈을 뜬 채로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막내 미카엘은 어머니가 도와 주어야 하기에 겨드랑이에
팔을 껴서 마룻바닥에 세워 놓자 비틀거리며 눈을 비벼댔다.
오키에나 씨의 집은 오래 되어 여기저기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파란
칠을 한 바깥벽도 칠이 다 벗겨졌지만 다행히 담쟁이덩굴이 그 보기 흉한
곳을 가려 주고 있었다. 집안 구조는 일층에 하얀 칠을 한 부엌 겸 거실이
있고(겨울에는 이 방만 불을 땐다) 이층에 작은 침실 두 개가 있다. 집
한쪽 끝으로 헛간이 있고, 그 헛간 위가 건초와 겨울 식품을 넣어 두는
다락으로 되어 있는데, 둥근 적갈색 오지 벽돌 지붕이 모든 것들을 잘
감싸 주고 있었다. 오키에나 씨는 다섯 자녀가 더 있었으나 모두 갓난
아기일 때 죽었다. 그 당시엔 갓난 아기들이 죽는 것은 모든 어머니가
겪는 슬픔이었고, 다른 자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대로 쉽게 충격을
견딜 수 있었다. 가난한 가정에서는 자녀를 많이 둔다는 것이 경제적인
이익이 되기도 했다 ... 먹여야 할 입이 많은 만큼 일할 손도 많기
때문이다. 멜키올 마르쿠스 오키에나는 마흔일곱의 건장하고 따뜻한
마음씨의 남자였고, 도미니카 보소네는 남편과 동갑이었으나 남편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였다.
오키에나 일가가 살고 있는 카프릴리오 마을은 카스텔누오보 읍의 다섯
마을 중의 하나로, 인구가 사백여 명쯤 되었다. 카프릴리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자기네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작은 것은 분명했지만 마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늘 애를 써 왔다.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도 파손되지 않은 기록들을 보면, 오키에나 가문은
자기들의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이 자손대대로 그 곳에 머물러 살았기
때문에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르고, 오늘날에도 카프릴리오를 대표하는
가문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비록 귀족 가문은 아니지만 그 가문은 그
지방 역사의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록 뿌리가 깊다.
카프릴리오에서 오키에나 가족은 그런 대로 잘사는 축에 끼었다.
식탁에는 음식이 늘 충분하였고, 옷은 대를 물리며 입게 마련이라 별로
돈이 들지 않았다. 오키에나 집안에도 그 마을의 다른 집안처럼 공부한
사람이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 일고 써야 할 일이 생기면
그 때마다 신부님께 가져갔고, 신부님은 장터에서 돈 받고 읽어 주는
사람들과 달리 그 일을 모두 공짜로 해 주셨다.
오늘이 그 날이다! 하고 아버지는 마당에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말가리다는 왜 꼭 오늘 포도를 따야 하는지 다시
궁금해지기 시작햇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버지만 아는 비밀이었다.
아버지는 포도주 만드는 비법도 몇 가지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 비법을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빨리 서둘러라! 하루 종일 집안에서 빈둥거릴 시간은 없다! 마리안나!
네, 아버지.
소를 마차에 매거라. 말가리다!
네, 아버지.
나귀를 데려 내다가 광주리를 등에 매달아라.
말가리다는 늘 어려운 일을 차지하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노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한
사람씩 가족 모두가 그 날 할 일을 배당받았다. 그리고 배당받은 대로
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식구들은
소시지 한쪽과 빵을 한꺼번에 입 안으로 밀어넣고, 물이나 포도주와 함께
담숨에 삼켜 버리는 식으로 아침식사를 끝냈다.
말가리다가 나귀의 등에 U자 모양의 나무등걸이에다 커다란 광주리를
양쪽에 하나씩 걸어 놓고, 마리안나는 긴 뿔박이 황소에다 마차를 매달
때쯤이면 막내를 제외한 식구 모두가 덩굴에서 따 낸 포도송이를 던져
넣을 바구니를 하나씩 등에다 끈으로 매달고 밖으로 나왔다.
10월 아침의 태양이 밝게 빛나는 좋은 날씨였다. 북쪽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장미 산의 담청색 봉우리가 눈 앞에 보이고, 동쪽 멀리로는
앞프스 산맥의 영완인 몬테비안코가 하얀 옷을 입고 툼여한 보랏빛 하늘
아래 장엄하게 누워 잇었다. 그 아래로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이어지면서
비옥한 몬트페랏 대평야가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 펴쳐져 있었고 그
평야에는 두더지가 파놓은 흙무덤 같은 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운데 1,700피트나 되는 가장 높은 카프릴리오 산이 높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산들을 잘 아는 것만 아니라 깊이 사랑햇으므로 평생을 그 산
속에서 살라고 해도 기뻐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사람의 전형적인 기질인
말가리다에게 산은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안락한 집 과도
같았다.
그 지방의 수도도 이 산들의 이름을 따서 토리노 혹은 투린 이라고
불렀다. 켈트어로 토르 는 작은 산이라는 뜻이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토리네시 혹은 작은 산의 사람들 이라고 불리었다.
지금 말가리다가 서 있는 주위에는 조상들이 공들인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수확철마다 소을 갈아 입는 줄줄이 서 있는 검은 뽕나무들하며,
연두색 수양버들, 그리고 한 줄로 즐어선 삼나무들이 마치 융단 자락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자연은 그보다 더 풍성한 선물을 주고
있었다. 고지대에는 포플라, 소나무, 아카시아 들, 저지대에는 잡목들
사이로 떡갈나무, 느릅나무, 그리고 울타리를 따라서 분홍과 하얀 빛깔의
말채나무와 밝은 진노랑의 퓨셔가 있었고, 알프스 산맥도 그 몫을 톡톡히
하는 것이었다. 알프스 산맥은 산 밑까지 사정없이 내려 부는 얼음 같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어 초겨울까지도 산의 푸프름을 그대로 간직하게 해
주었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으로 농부들의 더위를 식혀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조건 때문에 농부들은 더위나 추위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단 하나 우박은 그렇지 않았다. 우박은 군대가 짓밟고 간
자리보다 더 무섭ㅓ게 농작물을 파손시키곤 하였다. 어쨌든 사람들은
자연의 힘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지었으므로, 산과 계곡 그리고 날씨의
변화는 하느님의 권능과 그분의 현존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하여 주는 그런
지역이었다.
말가리다!
네, 아버지.
멍하게 서 있지만 말고 일을 해야지!
네, 아버지.
말가리다가 이미 어려서부터 배운 농가의 일은 일년 내내 계속되는
일이었다. 이른 봄이면 땅을 갈아일구고, 도량과 수채를 치우고, 그리고
근심스레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시작된다. 또 봄은 작은 포도꽃이 점점
커질 때 포도나무에 비료를 뿌려 주어야 하는 때이고, 포도나무
사이사이에 땅을 일구어 다른 작물들을 심어서 해와 함께 일어나 별이
보일 까지 일하며 가을의 수확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노고를 바치면서 맞게 되는 추수철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웃고 야외 잔치를 벌이는 때였으므로 말가리다에게 있어 가을은
가장 행복한 계절이었다.
자연과 잘만 싸운다면 농부들은 행복할 수 있었다. 자연은 농부와 그
가족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풍성하게 내어 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농부들은 부지런히 한 치의 땅이라도 남김없이 개간하고,
언덕배기에도 포도나무와 과일나무들을 심어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일 해야
하는 것이다.
풍년이 들었던 어느 해에는 수확물이 넘쳐서 곳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땅에서는 귀리, 보리, 밀, 옥수수, 삼이 잘도 자라 주었고, 뽕나무는
누에들의 먹이를 추분히 제공하여 주고도 남아(중요한 가내부업이었다)
부인들은 남편에게 잎담배까지 마련해 주었다.
말가리다가 일년 중 가장 좋아하는 때는 말할 것도 없이 포도
수확철이엇다. 다른 농작물이 아무리 잘 되었다 하여도 포도만큼
사랑받지는 못하였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식탁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포도주가 대개는 그곳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이 마을의 큰
자랑거리였다. 포도철 작업은 포도를 따러 가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포도를 담을 통과 나무 물토, 바구니와 포도즙을 걸러 내는 채 등을 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아 놓아야 하는 것이다.
포도밭에 도착하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막내를 제외한 아이들
모두가 언덕을오르내리며 포도송이를 잘라 등 뒤에 있는 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바구니와 광주리가 가득 차면 그것을 마차에 가득 싣고 집으로
가져오는데,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혼자서 처리하셨다.
형제들이 포도덩굴 사이로 오르내리며 쉬지 않고 일하는 광경을 보면서
말가리다는 딸기덤불에서 꿀을 빠는 큰 벌들을 연상하였다. 해가 중천에
뜰 때쯤이면 포도가 바구니에 가득 차고, 손가락, 팔, 팔꿈치 등에는 진한
보라색의 포도즙이 잔뜩 묻어 있다.
가장 오래된 모리알도 교회의 삼종기도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기까지
이 일은 계속되었다. 그 교회의 종소리를 시초로 계곡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종소리가 합창하듯 울리면, 쉴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가족들
모두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포도밭 가에 있는 아버지 앞으로 모였다.
포도밭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도 고된 일이지만 뜨거운 대낮의
태양이야말로 참기 어려운 것이다.
주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오니...
아버지는 옛날 선조 때부터 해 내려온 대로 팔을 뻗치고 큰 소리로
기도를 바쳤다. 드디어 아버지가 자, 식사를 하자! 라고 소리치면
아이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 소리지르며 어머니가 큰 느릅나무
그늘 아래 미리 차려 놓은 식탁으로 달려갔다. 식구들이 임시 식탁 주위로
둥글게 둘러앉으면 어머니는 음식과 마실 것을 나누어 주시는데, 오늘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두었던 특별 소시지도 나왔다.
자, 식사가 끝낫으니 모두 다 잠시 쉬거라.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아버지의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식구들은 조용히 각자 쉴 자리를
찾아갔다.
말가리다는 부드러운 땅에 등을 대고 누워서 처음에는 하늘을 보다가
언덕 아래 서 있는 나무들을 내려다보았다. 말가리다는 눈 앞에 피어 있는
꽃에 앉아서 꿀을 빠는 벌을 지켜 보았다. 벌은 꿀을 다 빤 다음에는 미련
없이 하늘 위로 솟구쳐 큰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 갔다. 나비 한 마리도
꽃에 앉아서 날개를 활짝 펴고 펄럭이다가 벌처럼 날개를 펴고 멀리
날아갔다.
말가리다는 아직 자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추위가 몰아치는
무정한 겨울, 끊임없이 고된 일, 그리고 심술궂은 날씨의 변덕스러움
앞에서 당황했던 일들, 특히 흉년이 들었을 때의 절망감, 땅에 매달려
사는 이들의 거친 성격, 더러움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든 것은
말가리다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인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산과 언덕과 계곡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 내는
기막힌 정경들, 그리고 지금과 같이 하늘과 땅이 미소짓는 것 같은
순간들은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야-호! 야-호! 야-호!
말가리다는 소리를 지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귀에게 여물을
주는 것을 잊었네! ㅁ라가리다는 벌떡 일어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이르는 말은 사람보다 먼저
가축을 돌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와 가축들 사이에는 비밀스러운
대화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도 사실 말가리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가축들의 머리를 툭툭 쳐
주거나 겨우 몇 마디를 중얼중얼하는 게 전부였지만, 가축을 잘 먹이고,
잘 돌봐 주었는지 확인하는 데에는 여간 철저하지 않았다. 한편 아이들은
가축들을 귀여워해 주고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다가도 금세 싫증을 내 버려
먹이를 주는 것조차 자주 잊어비리는 것이었다.
얘들아, 다시 시작이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불렀다. 모두 충분히
쉬었겠지?
가족들은 다시 남은 반 나절을 일하기 위해 일어났다. 아버지는 포도를
가득 싣고 갈 첫 번째 마차의 도착을 준비하러 먼저 집으로 갔다.
말가리다. 아버지가 말가리다를 불렀다. 내가 먼저 갈 테니 저기
있는 마차를 끌고 오너라.
말가리다가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아버지는 어느새 포도를 짤 때 입는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 앞에서 웃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말가리다의
아버지 조수 노릇도 거대한 통 앞에서 끝나야 했다. 포도밭에서 그 통
앞에까지 포도를 가져와 쏟아 붓는 일은 모두가 함께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 혼자서 포도를 만졌다. 포도를 발효시키는 동안,
반갑지 않은 손님인 모기떼들이 올 때부터(절대 비밀로) 제 맛이 날 때
까지 소금 조금, 설탕 조금 등 마치 음식에 간을 맞추듯 하여 포도주를
통에 붓고 빌봉하여 상품으로 내기까지 아버지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포도즙은 좋은 것 혹은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고유의 포도주
제조법을 지니고 있어 각 집마다 조금씩 다른 맛의 포도주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저마다 자신의 비법이 최고이고, 가장 품질이 우수하다고
확신하므로 포도주 상인들에게도 서로 더 높은 가격을 자신 있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그 나라 포도원들이 폐허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탈리아 산 포도주 값을 올리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포도 수확철이 끝나면 마을에는 장이 서고 서로 잔치도 벌이면서
사람들은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리고 겨울은 제 때에 어김없이 찾아왔다. 겨울은 말가리다에게, 습기가
많은 추운 날 밖에 나가 나뭇가지를 쳐 주고 그것들을 땔감으로
모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당시 석탄은 아주 귀했고 숯은 더더욱
그랬다. 드디어 겨울이 제자리를 잡으면, 식구들에게 주어진 일은 음식에
넣을 밤의 껍질을 벗겨 실에 꿰어서 매다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헛간이나 건초 위에 붙어 앉아 밤을 구워 먹으며 밖에서 매서운 바람이
산허리를돌며 신음소리를 낼 때에 그에 어울리는 귀신 이야기나 옛날
이야기를 하는 데에 정신을 뺏기곤 했다. 여자들은 뜨개질과 바느질, 혹은
상자를 만들고 수양버들가지로 바구니를 짜면서 잡담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집안 수리를 하거나 농기구들을 고치고 가축을 돌보았다.
말가리다의 하루 일과도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남자들만큼의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아버지가 어려운 살림과 빚을 갚아 나가느라고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를 안 후부터 자기도 아버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바람을 막아 주는 따뜻한 집이 있고, 해를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오키에나 가족은 호강처럼 느껴야 했다. 그리고
말가리다에게는 또 하나 귀중한 것이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사귐,
이따금씩 열리는 잔치에서 얻은 애인 외에 종교가 있었다. 그녀에게
종교는 위로와 용기의 원천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여기 아이들은 설거지를 하고 그 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로사리오 기도였고, 말가리다가 선창자로 늘 기도를 이끌어 갔다.
로사리오 기도가 끝나면, 신심예배 (역주; 교회에서 갖는 여러 형태의
기도 모임)가 없는 날은 아이들은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놀았고,
아버지는 한 시간 정도 더 일을 하든지 아니면 포도주병을 들고 마음맞는
친구와 이야기하러 밖으로 나갔다.
이 마을은 마을 자체도 규모가 작고 색다른 일이라곤 없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사방 몇 평방 마일밖에 안 되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면 결혼하고, 죽어 갔다.
밤이 늦어 짙은 어둠이 땅을 덮을 때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외딴 농가의 불빛들이 점을 찍어 놓은 듯하고,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불빛이 밤 늦게 외로이 귀가하는 여행자의 길을 밝혀 준다. 그리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신간이 되면 마을 전체가 불이 꺼져 버리고 내일로 모든 일을
밀어 둔 채 긴 단잠에 빠져든다.
어머니
말가리다, 같이 가지 않을래? 가서 춤도 추고 재미있게 놀자.
말가리다는 그 친구들의 옷차림을 훑어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난 안 갈래. 가고 싶지 않아. 난 춤추는 것 좋아할 수가 없어. 오늘은
교회에 갔다 왔기 때문에 충분히 산보한 셈이니까 집에 있겠어.
사실 집에서 교회까지는 빤히 보이는 거리였지만 그 곳에 가자면
언덕들을 몇 개나 넘어야 하므로 하루 운동을 충분히 했다는 말가리다의
말이 옳기도 하였다. 그리고 말가리다는 이 혼란한 시대에 한밤중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춤음 추는 시끄러운 그런 장소가 못마땅했으므로
거절한 것이다. 신부님의 말씀대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말가리다의 이 거절은 친구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가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말가리다는 그 마을 총각들의 시선을 끌 만큼 매력적인 아가씨로
자랐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식구들이 먼저 미사에 다녀오도록 하고
말가리다는 늦은 미사에 갔는데 그 때마다 혈기왕성한 시골 젊은이들은
말가리다를 기다려서 함께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으로만
끝나야 했다. 말가리다는 그들과 함께 걷지 않으려고 거의 뛰다시피하므로
교회에 도착할 때쯤이면 숨이 차서 바보 같은 꼴이 되어 버리기 때문
이었다. 말가리다의 남자 아이들 따돌리기 작전의 또 하나는 자기 친구
중에서 가장 못생기고 재미없는 친구와 같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누구도 따라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남녀의 좌석이 따로 있어 서로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그 당시 피에몬테
지방에는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여자들의 수가 훨씬 많았는 데도 말가리다
남자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말가리다는 점점 더 바빠졌다. 마리안나는 바깥 일을 더 좋아했고,
어머니가 자주 앓아 누웠기에 말가리다는 집안 일을 떠맡아 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사 준비가 그렇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고작 옥수수죽이나 콩죽에 마늘과 양파를 넣어 끓이고, 치즈나
야채 그리고 포도주와 집에서 구운 빵을 준비하면 그만이었다. 육류는
비싸서 아버지가 사냥해서 잡은 날에만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말가리다가 또 해야 할 일은 남자 동생과 시장에 가서 농작물을 팔아서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장을 자주 오가게 되는데 그
시장과 집의 중간 지점에 프란치스코 보스코의 집이 있었고, 부인
말가리다는 자기 집에 들러 달라고 여러 번 말가리다에게 말하였다.
말가리다에게는 들러 달라는 말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시장에 갈때마다
뜨거운 햇볕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었는데 들 가운데로 새로 생긴 길 옆에 보스코의 집이 있어 쉬기에
알맞는 장소였다. 이런 일로 해서 두 사람은 친해졌고, 신앙 면에서 잘
통했으므로 더 자주 만나며 교회도 함께 나갔다. 보스코의 집안도
오키에나 집안처럼 땅 몇 에이커를 소유하고 있을 뿐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집안이었다. 보스코의 집이 있는 베키 마을은 계곡 북서쪽 언덕
위에 예닐곱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베키라는 이름은
처음에 그 곳에 정착해 살았던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보스코 가족은 땅 주인인 빌리오네 농장 한쪽 끝에 붙은 집에서 살았다.
땅 주인이 보스코 가족에게 집까지 내준 것은 프란치스코가 그 농장의
감독이었을 뿐 아니라 헌신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가 특별한 일도 없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불행히도 그 시간들은 피에몬테 지방에 평화도 번영도
가져다 주지 못한 사건들로 가득 채워졌다. 특히 두려운 것은 세금의
과중한 부담이었다. 먹고 살기가 괜찮던 사람들도 높아지는 세금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졌다.
나폴레옹은 마렌고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격전 끝에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여 - 이 전쟁에 말가리다가 아버지의 참전하였다 - 다시 이곳에
지배자가되어 도둑질과 범죄자들과 탈영병들을 소탕하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농부들의 재산을 지켜 준다는 명목과는 달리 농가를
괴롭히는 귀찮은 것이었다. 이렇게 피에몬테 지방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손 안에서 오가는 비참한 운명을 겪어야 해서 토리노 시의
주민들은 지배자들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갈팡질팡이었으나 시골의
농가들은 아무 변화도 없었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진 관습을 따라
투박하게 살면서 다만 바라는 것은 마음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화였고,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군인들 봉급을 위해 무거운 세금을
내지 않는 때가 오도록 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말가리다는 이웃 사람들이 모두 탐을 내는 스물네 살의 훌륭한
색시감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청혼자들이 여럿 손을 내밀었지만 모두
거절당하였다. 말가리다는 결혼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신앙생활에만
열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녀가 되려는 것도 아닌 듯했는데 마을
사람들 생각에도 말가리다는 독립심이 강하고 다른 이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해서 수도생활은 맞지 않을 듯싶었다.
말가리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 인생을
기쁘게 살아갔다. 카스텔누오보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면 시내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러 보스코 집에 들르는 것도 여전했다.
집주인인 프란치스코 보스코는 거의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말가리다가 그
집에 가는 것은 대개 오후였으므로 프란치스코는 가장 바쁜 때여서 겨우
한 번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건넨 것이 고작이었다. 말가리다가
프란치스코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가 손님을 사랑하는 근면한
사람이라는 소문뿐이었다.
어느 날 보스코의 집에 들렀을 때 말가리다를 마중 나온 사람은 부인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였다.
집 사람이 아프답니다. 말가리다가 집안으로 들어가도록 길을
비켜주면서 프란치스코는 말하였다.
말가리다가 보니 말가리다 보스코의 병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부인이
아파 누워 있는 동안 말가리다는 보스코의 집에 더 자주 가게 되었다.
환자를 돌보고 하나뿐인 어린 아들 안토니오와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거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 보스코는 가족의 정성도 소용 없이 세상을 떠났다.
집안에 여자가 없어지니 더 자주 그 집에 들러 도와 주었다.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집안은 하루하루 더욱 쓸쓸해졌다. 프란치스코의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였고, 프란치스코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안토니오는 외톨이가 되어 버려 성격까지
이상해지는 듯했다.
프란치스코 루이 보스코는 1784년 2월 4일에 태어났다. 형제가 열둘이나
되었으나 그 중 여섯 명은 열두 살이 되기 전에 모두 죽었고, 열여덟 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프란치스코는 그 때부터 가장이 되엇다.
프란치스코는 1801년 말가리다 카리에로와 결혼하여 안토니오를 1808년
3월 1일에, 테레사를 1810년 2월 16일에 나았으나 테레사는 태어난 지
이틀 후에 죽었다.
보스코 가는 카스텔누오보에서 오랫 동안 살아 온 집안으로 굳건한
정신과 고결한 성품은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아 왔다. 보스코
가족도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재주가 많고 부지런한
프란치스코는 생활에 어려움이 없이 착실히 재산을 불려 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새로 닥친 시련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부인이 죽은 후
사실 프란치스코는 집안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주인 빌리오네의
집안 감독일말고도 자기 밭을 돌봐야 했고, 그래서 집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을 두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프란치스코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재혼을 독촉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어떻게 생각하니? 안토니오를 위해서도 새 엄마가
있어야겠다.
그 사람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래요, 어머니?
벌써 7개월이 되었지. 우리 풍습으로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집안 꼴이 뭐냐?
프란치스코도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의 말이 옳앗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겠니? 어머니는 다그쳤다.
말가리다 오키에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말가리다는 오키에나 식구이니
너무나 잘 아는 집안이고, 또 그렇게 성실하고 부지런한 여자를 어디에서
또 찾겠니 ... .
옳은 말이었다. 프란치스코도 말가리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말가리다는 이런 집에 오고 싶지 않은 거예요. 프란치스코는 고개를
숙였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네가 직접 물어 보는 거야!
프란치스코는 용기를 내어 말가리다에게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혼자 계신 연로하신 아버지를 돌보아야 한다는 핑계로 이
청혼을 거절하엿다.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듣고 노발대발하였다.
네가 나를 돌본다고?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
왔다. 전쟁 중에도 죽지 않고 살았고, 지금도 아무 도움 없이 잘 살 수
있다. 나이들어 가시는 아버지 란 말은 무슨 소리냐? 내가 지금 곧
죽기라도 한다든? 나는 아직까지는 죽을 생각이 없다.!
사실 이 말대로 아버지는 아흔두 살까지 살았다.
말가리다는 아버지의 이 말과 또 프란치스코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보를 하고 청혼을 받아들였다.
말가리다가 결혼 때 가져간 지참금의 내용서는 법적인 용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변호사만이 해독할 수 있는데 말가리다는 지참금으로 250리라와
소지품을 넣을 함을 가져갔다 - 후에 이 함이 큰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와 말가리다는 읍사무소에 혼인신고를 하고 1812년 6월 6일
카스텔누오보에 잇는 성안드레아 교회에서 혼인성사를 받앗다. 재미있는
것은 결혼 증명서는 불어로, 교회 기록은 라틴어로, 혼인 예식은 피에몬테
지방의 사투리로 치러 다는 것이다!
말가리다가 이 집으로 왔을 때 프란치스코의 집은 부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땅이 몇 에이커가 있는 것 외에도
양과 젖소 두 마리, 돼지와 암탉들이 꽤 있었고, 양식도 풍족하였다.
그런데다가 프란치스코는 성실하고 근면한 농부엿고, 말가리다도 이에
지지 않을 알뜰한 주부였다.
말가리다에게 단 한 가지 어려움은 안토니오였다. 안토니오는 그 동안
혼자만 사랑을 받아오다가 말가리다가 오니 그녀를 아버지의 사랑의
경쟁자로 보앗다. 안토니오가 가장 화가 나고 섭섭한 것은 말가리다
때문에 아버지의 침대에서 쫓겨나 건초더미 위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엇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네 식구는 - 할머니, 프란치스코, 말가리다 그리고
안토니오 -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갔다. 1813년 4월 18일 말가리다의
첫아기 요셉이 태어났고, 2년 뒤 1815년 월 15일 성모 승천 축일 - 얼마나
상서로운 날인가! - 자정이 넘은 8월 16일에 두 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둘째 아기는 관습대로 그 다음날 성당에 데려가서 하느님께 봉헌하였으며,
이름을 요한 멜키올 보스코라고 지었다.
프란치스코는 세례식에서 돌아오면서 기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들이 이젠 셋이나 되었고, 집안엔 늘 웃음을 선사해 주고, 들에서는 또
힘차게 함께 일해 나가는 사랑스러운 부인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말가리다도 행복했다. 매일 밤 쌔근거리는 아기들의 숨소리를 들을 때
가슴이 벅차 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아무리 뛰어난 예술작품도,
또 그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대리석 미술관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먼지로
돌아가지만, 말가리다와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걸작품인 이어린이드은
자손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살게 될 것이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다른
이들의 삶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고 창조주께 영광을 드릴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말가리다의 마음 그 깊은 곳에 깔린
하나의 신념이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이들은 아버지에게로 뛰어가며 노래하듯이
불러 대었다.
하루의 일을 끝낸 프란치스코는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허리를 펴고
활짝 웃었다.
아버지에게 먼저 달려간 아이는 안토니오였다. 그리고 요셉, 마지막에
달려온 아니는 막내 요한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아이들은 차례로 들어올려
안아 주고는 요한의 갈색 더벅머리의 천사와도 같은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이번에는 아이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 다. 그리고는 한
손에는 요셉을, 다른 손엔 안토니오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말가리다! 프란치스코가 힘차게 외쳤다. 여기 장군님들이 오셨소!
농삿일은 늘 힘이 들었지만 이른 봄에는 더욱 일이 많아 프란치스코는
피곤에 지쳐 있었다. 땅 주인 빌리오네는 지독한 구두쇠여서 프란치스코는
몇 번이나 주인을 바꿀 생각도 했었ㄷ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든 것을
꾹 참고 지내야 햇다.
그 때는 바로 어두운 기아시대 였다. 사태는 매우 심각하엿다.
피에몬테 지방은 늘 전쟁에 휘말려 있어서 일손 부족이 극심하였고,
농사를 지어 보았자 세금 때문에 남는 것도 없는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몇
년 동안은 날씨마저도 고르지 못하여 농사는 더 힘이 들엇다. 가뭄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많았던 겨울은 프란치스코의 기억에 사상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금까지는 가족의 생계를 그런 대로 꾸려 나올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가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울한 생각에 잠겨 있던
프란치스코를 꼬마 세 명이 달려와서 모두 잊어버리게 해 준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목소리를 들은 말가리다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문앞에
나타났다. 집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서 놓여 나자 프란치스코는 난롯가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인사하러 갔다.
어머니, 오늘은 좀 어떠세요?
어제보다 조금 나은 것 같구나. 너는 어땠느냐?
뭐 그저 그래요. 오늘은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시장에서 거의 하룰를
보냈어요. 빌리오네 씨와 같이 갔었지요. 물건은 점점 더 귀해지고 값도
갈 때마다 달라지는 거예요. 걱정스러운 얼구로 프란치스코는 말하였다.
그리고 언제 이런 상태가 끝날지 아무도 모른대요.
저녁식사 후 프란치스코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말가리다가 말아 주는
담배를 기다렸다.
카스텔누오보에 가서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들었어요? 말가리다가
물었다.
한 가지 있었지. 나폴레옹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것
... 세인트헬레나의 싸움에서 졌대요. 이젠 전쟁터에 끌려갈 위험이 없게
됐다는 거지. 드디어 평화를 누리고 살 수있게 된 거야. 잠시
동안이겠지만... .
그래, 오래 가지 않을 게다. 이번에는 또 다른 날 군인들이 와서
남자들을 전쟁터로 데려가겠지.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프란치스코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쪽에는 프랑스 혁명 때 짓밟힌 포도밭이 아직도 그대로래요. 덕분에
여기 포도주 값이 아주 좋은 값에 팔리고 있어요.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아버지가 앉은 의자 옆에 모여서 서로 아빠를
차지하려고 다투기 시작했다. 안토니오는 순한 요셉을 쉽게 밀어 내고는
요한을 밀쳐 내려고 했으나 요한은 형에게 지지 않았다. 이것을 보던
프란치스코는 얼른 아이들을 양편에 사이좋게 앉히고는 저녁마다 해 주는
옛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옛날 이야기가 다 끝나 갈 때 말가리다가 들어왔다.
자, 어서 애들과 같이 주무시러 가세요. 말가리다는 거의 명령조로
말했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셨잖아요. 요사이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정말이다. 빌리오네 같이 막 부려먹는 주인 때문에 너무 몸을 상하는
것 같다. 어머니가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월급을 좀 봐라. 어디 그게 월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냐?
그들에게 이런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별탈 없이 살아갔다. 아이들도
씩씩하고 행복하게 자랐다. 아이들에게는 그 곳이 낙원이었다. 산과 언덕,
넓은 들판으로 이어진 마을은 매일매일 새로운 탐험과 모험, 즐거운
놀이를 가져다 주어 아이들의 얼굴은 늘 싱싱하였고 기쁨으로 넘쳐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의무적으로 쉬며 교회에 가야 하는 일요일 외에는 늘 일찍
일어나서 쉴새없이 일을 해야 했다. 말가리다도 남편 못지않게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교육에 마음을 썼고 특히 안토니오에 대해서는 더
사랑과 정성을 쏟았다.
어느날 새벽, 말가리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잠이 깼다. 남편의
신음소리였다. 말가리다는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피에몬테 지방은 며칠간이긴 하지만 이른 봄이면 남쪽에서 불어오는
열풍 때문에 기온이 갑자기 더워진다. 요즈음이 바로 그런 떼인데 어제
프란치스코는 밭에서 윗도리까지 벗어 젖히고 땀을 흘리며 일하다가
주인집의 포두주와 야채를 넣어 두는 지하실에 내려가서 일을 해야 했다.
그 지하실은 추엇기 때문에 저녁때부터 오한이 들었으나 자고 나면 열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소대로 잠을 잔 것이다.
말가리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잔불을 켜고 나서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남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말가리다는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던 방법으로
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의 열은 여전하였다. 그 다음 날이 되어
사실 병이 더 악화된 상태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의사를
부르기로 했다.
의사는 다음날에야 베키에 올 수 있다는 전갈을 보내면서 환자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열 내리는 약초를 달여 뜨거울 때 주라고 했다.
의사는 다음날 아침에 말을 타고 왔다.
남편이 어디 있소? 의사가 물었다.
이츨에 계셔요.
말가리다는 이층으로 의사를 안내하였다.
말가리다는 그 곳에 같이 있고 싶었지만 의사는 말가리다에게 나가라고
하였다.
아주머니는 밖에 나가 있는 게 좋겠어요.
말가리다는 아래층에 내려와서 할머니와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조금
있다가 의사도 내려오더니 말가리다를 따로 불렀다.
남편은 증세가 좋지 않읍니다.
언제쯤이면 회복될까요?
글쎄요...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읍니다.
일주일? 한달?
그러나 의사는 계속 고래를 가로저었다.
의사 선생님. 말가리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우리 남편이 나을 가망이 없다는 건가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나을 수 없는 병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말가리다는 숨을
몰아쉬었다.
남편은 폐렴에 걸렸읍니다. 몸이 쇠약해진 데다가, 뜨거운 뙤약볕을
받다가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있는 곳에 들어갔으니 무사할 리가 없지요.
사실 아주 건강한 사람도 그렇게 하면 위험한 거지요.
그 당시 폐렴이라고 하면 모든 불치병의 통칭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 의학 기술로는 환자의 숨소리와 청진기를 대어 보는 것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비슷한 증세면 쉽게 폐렴이라고 진단을 해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지금 이 상태에서 아주머니가 해야 할 일이란 희망을 갖고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의사의 이러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면서도 말가리다는 희망을
갖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나흘이 지나면서 환자의 증세는 눈에 띄게
악화되어 갔다. 말가리다는 남편의 죽음을 예감했다. 남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을을 알아본 말가리다는 정오쯤 되자 친천들을
불러들이고 신부님을 오시도록 했다.
까만 수단과 방백의를 입은 신부는 사람들에게 노자성체(역주; 임조중의
신자에게 마지막으로 영해 주는 성체)의 행렬임을 알리고, 이제 머나먼
천국의 길을 외로이 떠나갈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알리기 위해
촛불을 들고 종을 울리는 소년 두 명을 앞세우고 보스코의 집 앞에
도착하자 이웃 사람들도 집 주위로 모여들었다.
프란치스코는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임을 잘 보여 주었다. 그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는데 프란치스코는
말가리다를 머리맡으로 가까이 불렀다.
하느님이 내게 크나큰 은총을 주셨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에 나를
부르시니 말이요. 나이도 예수님과 똑같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시간까지
똑같으니....
이렇게 말하던 프란치스코는 부인과 영원히 작별하기 전에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구려. 특히 요한을 잘 길러 줘요....
프란치스코는 1817년 5월 11일, 33세에 숨을 거두었다.
말가리다는 남편의 시신을 거두는 것까지 자기 손으로 다 처리했다.
장례식 날, 말가리다는 안토니오를 손에 잡고 관이 실린 마차 앞을
앞장서 갔다. 카스텔누오보의 성베드로 공동묘지는 여러 해 동안 그냥
버려 둔 상태여서 폐허처럼 보였다. 말가리다는 그 폐허의 한쪽에 방금 판
놓은 흙구덩이로 남편의 시신이 안치되자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남편의 몸
위에 한 줌의 흙을 뿌리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그 공동묘지는
너무 허렀기에 프란치스코가 묻힌 이후로 문을 닫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대하는 식구들의 태도는 그들의 성격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아들을 잃는 슬픔보다는 아들이 죽은 다음 며느리의
태도가 변할까 봐 그것만 걱정햇다. 둘째인 요셉은 타고난 태평스런
성격대로 이 비극을 잘 견뎌 냈다.
안토니오는 문제가 달랐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처를 지닌
그 아이는 이제 외톨이가 되었고,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빠져
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방 안을 뒹굴면서 짐승처럼 소리를 내어 울곤
했지만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요한은 요한대로 말가리다의 슬픔을
더하게 만들었다. 호기심과 고집으로 꽉 차 있는 요한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고집을 부렷다.
왜 아버지가 안 보여? 왜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가 버렸어? 아버지랑
같이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말가리다는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돌아가셨다는 게 뭐야?
아버지는 천국에 가셨단다.
말가리다는 겨우 참았던 울음을 다시 터뜨렸다. 요한도 따라 울면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들었다.
요한아, 이젠 아버지가 안 계시단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단다.
요한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긴 했으나 엄마의 슬픈 얼굴이 두려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때부터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 갓난 아기의 죽음은 흔한 일이었고, 새 아이가 태어나면 그
슬픔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어른의 죽음은 달랐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삶이라는 베틀을 함께 짜 나가다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베틀에서
잘려 나간 아픔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 쓰러지지 않았다. 이제부터야말로
식구들의 기둥이 되어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 아이들의 움녕이 이제는 말가리다의 손에 달렸다. 그
당시에는 여성이 후견인이 될 수 없었기에 프란치스코의 사촌 요한 주카가
법률적으로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었다.
프란치스코의 유언장은 백망장자의 유언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장황했다.
200리라 나가는 황소 두 마리부터 심지어는 25전짜리 다림질용 세발
의자까지 74개의 항목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유언장 낭독 때 증인으로
참석했던 여덟 사람 중 다섯명은 서명을 십자가 모양을 그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말가리다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일이 다 처리된 어느 날, 밤이 늦어 다른 살마들이 다 잠자러
간 후에 말가리다는 드디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말가리다는 그야말로 정신 없이 바빠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었는데 이제 혼자 앉아 있으니 지나간 일들이 꿈처럼 떠올랐다.
남편과는 길다고 할 수 없는 겨우 몇 년간을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 사소한 일로 다투었던 일, 둘만이 가졌던 시간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지낸 즐거운 일들이 저절로 미소를 떠오르게 했다. 프란치스코는
남편으로도 훌륭했고,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아버지였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남편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가난했지만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고, 또 앞날에 대한 여러 가지 꿈을 지니게
해 주었던 따뜻하고 든든했던 남편이 이제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차차 어둠이 밀려오는 방 안처럼 말가리다의 마음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말가리다와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남편을 필요로
하는 이 때, 식탁에 내좋을 빵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 때,
이제 막 자라나는 남자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굳건함이 더없이 필요한 이
때에 남편은 가고 없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남편을 데려가신 하느님이
야속하였고, 그분의 뜻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을 키우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더욱이 생긴 모습들처럼 성격도 판이한 이
아이들을 혼자 손으로 먹이고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할까!
말가리다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혼자서 싸워 내야 할 외로운 삶의 길을
멀리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나 눔
아무리 길고 험한 길이 눈 앞에 가로놓여 있다 해도 그 길을 용감히
걸어 나가리라 그 다음날 아침 말가리다는 이 말을 마음속에 몇 버이고
되새겼다. 남편의 죽음보다 더 큰 불행이 있겠는가! 결코 다시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말가리다는 현재와 미래만 바라보며 살
것을 결심했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가리다의 머리와 손을 쉴
틈이 없었다. 가족들은 말가리다의 손길만 기다리는 형편이고, 농삿일은
말가리다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농사를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길
수도 없었다. 친척들 모두가 다 나름대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처지였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늘
말가리다에게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했다. 사실
말가리다는 그렇게 믿으면서 하느님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말가리다는 집안에서 여자의 일만 아니라 남자들이 해야 하는 중노동도
악착 같이 해냈다. 주인과의 계약이 끝나는 11월까지 말가리다는 그렇게
살았다.
드디어 계약이 끝나자 말가리다는 일꾼들에게 월급을 계산해 주고, 방
열쇠를 주인에게 넘겨 주고는 남편이 죽기 전에 빌리오네한테 사 두었던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은 방이 세 개, 부엌 겸 거실 하나, 외양간 하나,
그리고 건초를 넣어 두는 헛간이 하나 있는 역시 낡고 허술한 집이었다.
하지만 말가리다의 마음은 편했는데, 이제 남이 집 신세를 면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말가리다는 일꾼을 고용하면서도 자기도 밭을 갈고,
낫질까지 했다. 그렇게 해도 일이 줄어들 줄을 몰랐다. 일꾼들이 일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일꾼들은 한 아녀자가 하는
양만큼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건들거렸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말가리다가 들에서 일한 때면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았다.
비록 짐이 무거웠지만 말가리다는 일을 잘 처리해 나갔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와서 방해를 놓는다 해도 겁날 게 없었다.
그런데 날씨마저도 말가리다의 불운을 재촉하는 듯 그해 겨울은 무섭게
춥다가 여름은 또 가뭄이 심해서 2년 연속 흉년이 들어 돈을 주고도
양식을 구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상황이 이러허게 심각해지자 북쪽
지역의 숲속에서는 먹이를 찾지 못한 늑대들이 내려와 사냥꾼들을 기쁘게
해 주었으나 사람들은 혹독한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보스코 집안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고통을 겪었다. 양식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이 며칠을 굶게
되자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마지막 남아 잇던 송아지를잡아
아이들의허기를 면케 했다. 다해히 조금 뒤에 곡류가 남쪽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말가리다의 남다른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웃
사람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양식이든 약이든 포도주이든
땔감이든 사람들이 말가리다에게 손을 벌리면, 말가리다는 그 사람이
되갚을 힘이 없어도 상관 없이 어떻게든 도와 주었다.
한 번은 말가리다가 밀가루를 가지러 갔다가 통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자 요한이 말했다.
엄마, 생각 안 나요? 아까 밀가루를 그 집에 주었잖아요.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필요하다고 하면서요.
말가리다의 이러한 너그러운 마음을 이웃이 모를 턱이 없었다.
말가리다의 선행에 감동한 부유한이웃들이 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환자들을 돌보는 일도 말가리다는 도맡다시피 하였다. 그 당시에는
의사들도 의료시설도 빈약했기 때문에 말가리다는 환자들을 방문만 한
것이 아니라 치료도 해 주고 가끔 환자들 곁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여관이 별로 없었기에, 특히 겨울에는 지친 나그네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이 때에도 말가리다는 거절하는 법이 없이 맞아들였다.
그 당시에도 나라는 정치적인 안정이 없이 거의 무정부상태였기 때문에
무기를 든 약탈꾼들이 마을을 돌아 다니는 것이 보통이엇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이탈리아는자기네 반도를, 통일과 자유로 되찾아야 할 한 개의
국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비밀결사대들이
이탈리아의 이쪽 저쪽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는데, 그중 특히 피에몬테
지방에 비밀결사들이 제일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비밀 결사대는
1811년에 구성된 숯장수라는 이름을 가진 카르보나리로서, 선두에 서서
침략자들을 쫓아 내는 항쟁의 종을 울린 첫 번째 단체였다. 1820년까지
비밀결사대에 가담한 사람의 수는 70만이나 된적이 있엇다. 하지만
그사람들 모두가 애국심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많은 수의
범법자, 밀수꾼, 도망병 혹은 감옥에서 나온 탈출병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해가 진 뒤에는 외출을 삼갔고, 대낮에도
혼자 다니는 것을 피했다.
말가리다의 마음씨 좋다는 소문은 이런 약탈꾼들에게도 퍼져 겨울통안에
음식이나 잠자리를 청하러 오곤 했다. 고요한 한밤중에 동네에 살그머니
들어와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든지 이층 창문에 조그만 돌을 던져서
말가리다를 깨워서는 먹는 것만 아니라 잠자리까지 얻는 것이었다.
말가리다의 이러한 소문과 함께 또 그 집이 동네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말가리다의 집은 약탈꾼들만 아니라 경찰들도 쉬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연락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약탈꾼들과 경찰들은 서로
부딪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이하여 신홀글 정해서 나타나곤
했다. 어떤 때에는 두 패거리가 같은 시간에 나타나기도 했으나 경찰은
약탈꾼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저항하리라는 것을 알아 자리를 피했기에
어떤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경찰은 그들을 쉽게 잡아들일
기회를 노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물질적으로만 아니라 윤리 면에서도 이웃 사람들을 돕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소녀들이 건전치 못한 춤놀이에 간다거나
복장이 단정치 못할 때 충고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다.
말가리다의 이러한 도움은 이웃 사람들의 환심을 사게 되어 말가리다는
그 마을에서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 이웃에 대한 말가리다의 깊은 사랑은 이웃간에 베푸는 단순한 친절을
훨씬 넘는 것이엇고, 말가리다는 가끔 그런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한테도 손길을 뻗쳤다. 보스코 가족의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체코라는 남자가 살았다. 이웃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그는 먹기는 아주
좋아하지만 일하기는 아주 싫어하는 남자라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어서
일하기도 싫고 구걸은 이웃 사람들이 흉볼까 두려워서 못할 짓이었으므로,
그는 굶주림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말가리다는 이 딱한 사정을 들었을 때 그 남자가 굶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자주 체코의 열려 있는 창문에다
빵을 던져 주곤 하였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어느 날 말가리다는 체코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엇는데 그는 말가리다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백 번 하였다. 말가리다는
그의 가난한 모습이 불쌍해서 어던 때는 수프까지 갖다 주는 것이었다.
어느 겨울날 밤 온 천지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듯했는데 누군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불쌍한 나그네가 쉬어 갈 곳을 청하였다.
말가리다는 그 사람의 발가락이 떨어진 신발 사이로 나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에게 잠잘 곳은 마련해 줄 수 있었지만
발을 따뜻하게 해 줄 신발은 마련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 아침 말가리다는 그를 앉혀 놓고 질긴 헝겊으로 그 발을 고대
로마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단단히 감아 싸 주었다. 어찌나 헝겊을 잘
감았는지 그 거지는 아무 불편과 어려움 없이 눈과 얼음으로 덮인 길을 잘
걸어갔다.
이런 사랑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가끔은 보답으로 대신 무언가를
말가리다에게 줄라치면
고마워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보답으로 하는
것뿐이지요. 라는 겸손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하느님이 보고 계시다
말가리다는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재혼하라는 권유를
여러 번 들었다. 그 주의 한 곳은 꽤 괜찮았다. 그 청혼자는 부자이기도
하였고, 말가리다가 아이들을 무척 아낀다는 것을 잘 알아서 아이들을 잘
도와 주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친구들과 친척들은 그 청혼을 받아들이라고
적극 권유하였으나 말가리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세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만 키우겠다는 마음을 굳게
지니고 있었다. 말가리다가 너무 힘이 들 것이니 가정교사가 되어
주겠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말가리다는 그것도 거절하였다.
말가리다는 어려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의 시작으로 아이들이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갖도록 하였다.
인생이란 너무 짧은 거란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잘
살기에도 바쁜 세상이야. 긴 시간을 잠으로 채우고 나면 천국의 삶을 사는
데 그만큼 시간이 줄어드는 거란다. 또 노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손해란다. 왜냐하면 잠이란 죽음의 상징일 뿐인데,
우리가 잠자고 노는 대신에 좋은 일을 좀더 한다면 하늘에 공덕을 그만큼
많이 쌓을 수 있단다!
겨울에는 양털이불이, 여름에는 말털이불이 유행하고 있을 때도
말가리다는 그런 이불을 아이들에게 사 주지 않았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이들은 옥수수껍질이나 밀집으로 된 것을 깔거나 덮고 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리 습관을 들여 놓으면 나중에 더 나쁜 것을 사용해야
하는 때에도 그것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단다.
밤중에 이웃 사람이 병이 나서 도움을 청하러 올 때에도 말가리다는
즉시 아이 하나를 깨워서 그 집에 같이 가곤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아침식사는 마른 빰 한 조각과 우물에서 길어 온 물 한 컵뿐이었다.
말가리다가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대로 놓아 두는 것은 싱싱한
과일뿐이었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양순하고, 특히 친구를 골라 사귀며 밖에 나갈때는
허락을 받도록 잘 가르쳤다. 그래서 아이들은 친구가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에게 어떤 친구가 왔는지를 알리고 같이 놀아도 좋은지 묻고
어머니의 좋다는 허락이 내려야만 함께 나가곤 했다. 만약 어머니가 안
된다. 하면 아이들은 아무 불평 없이 집안에서 형제끼리 노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밖에서 오래 있다 오면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를 찬찬히 물어 분명히 알아야만 했다.
장날 어머니가 시장에 갔다 돌아올 시간이 되면 세 아이들은 어머니의
모습이 언덕에 나타날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보이면
뛰어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말가리다는 오랫동안 걸었기 때문에 먼지와
땀으로 온몸이 범범이 되어 있었고 몹시 피곤하지만 아이들이 엄마, 빵을
주요. 빵 좀 주세요! 하고 큰 소리로 합창을 해 대는 것을 들으면서도 꼭
거쳐야 할 것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대로 빵을 내어 주는 법이 없었다.
꼭 몇 가지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들어야 했다.
삼종기도는 바쳤니? 이것이 첫 번째 질문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하라는 심부름은 잘 했는지를 알아 본다. 그리고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이
또 하나 있다. 할머니 말씀은 잘 들었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서 말가리다는 아이들을 칭찬해 주거나 다음부터는 더 잘
하라고 타이른 다음에야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에게 온순할 것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시어머니를 공손히 대함으로써 아이들이 그 모범을 따르도록 하였다.
프란치스코가 죽은 이래로 할머니는 늘 며느리가 잘 대해 줄까 하는 것만
염려했는데, 이제는 움직일 기력도 없이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할머니는 며느리가 조금도 변함 없이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것에 감탄할
뿐이었다. 말가리다는 남편이 죽기 전에 시어머니를 잘 돌봐 드릴뿐만
아니라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 모실 것을 약속했었다. 말가리다는 그
약속대로 할머니를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틈만나면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해 드리고, 몸이
불편할 때에는 특별히 더 마음을 썼다. 말가리다가 시장에 갔다 돌아올
때마다 할머니를 위한 특별한 빵과 과일을 잊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늘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나한테보다 할머니 말씀에 더 온순해야 한다.
할머니는 나름대로 집안 일을 도우시려고 노력하였다. 집 안팎의 여러
가지 일과 뜨개질, 헌 옷 수선은 도맡아 하시면서 며느리가 밖에서 일할
때 아이들을 돌보아 주었다. 의자에만 앉아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일을 저지르면 엄하게 꾸중을 했다.
회초리를 갖고 오너라.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할머니의 엄한
명령이었다.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한쪽 구석에 회초리를 두고 있었다.
매를 드는 것은 전통적으로 부모나 아니면 가족 중에 제일 어른이었고,
회초리는 맞아야 할 사람이 들고 와야 했다. 잘못을 하면 할머니가
회초리를 든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이들은 물론 핑계를 댈 때도 있었다.
내 잘못이 아네요!
그러면 두 대를 맞아야 한다. 한 대는 네 실수 때문이고 한 대는
거짓말 때문에 두 대가 되는 거지.
알았어요,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그러지 않을 게요.
정말 잘못을 뉘우치는 거냐?
네. 잘못했읍니다.
음! 그렇다면 회초리를 치워라. 하지만 다음부터는 용서 없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이 말을 들으면 믿을 수 없어했다. 할머니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으셔서 붙잡지도 못할 텐데...왜 도망을 가지않지?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친구들을 더 놀라게 했다.
엄마가 아시면 슬퍼하시기 때문이야.
말가리다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한 번도 회초리를
들거나 때리려고 손을 드는 일도 없었다. 말가리다는 매를 들 때 아이들의
사랑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벌을 주지 않으면 안될
상황일지라도 그녀는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벌을 줄
때는 먼저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여 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벌을 받기 전에 먼저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했다. 말가리다는
벌을 주기보다는 아이들이 자기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방식을 더
좋아하였다.
말가리다의 교육방법 중 하나는 되도록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무슨
이야기든 어머니에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오든 귀찮아하지 않고 잘 들어 주었고, 그 야야기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또 아무리 지루해도 끝까지 들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숨기는 것이 없도록 하고, 동시에 자기들이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도록 도와 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말가리다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란 하느님께서 보신단다. 였다.
아이들이 화 내는 것을 보면 귀에다 대고 하느님이 보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을 감추려 들고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을 눈치 채면 그 때도 아이들에게 가만히 일러 주는 것이다.
하는님이 네 마음을 보신단다. 라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아이들에게 실용적인 것을 가르쳤다.
아침에는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저녁에는 장엄하게 지는 해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깨 게 해 주었다. 하느님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만드셨으니 하는님도 아름다운 분임에 틀림없단다. 예쁜 꽃들과 하늘의
별들, 또 이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잘 사용하도록 하느님이 창조해 주신 것임을 일러 주었다.
하늘이 천둥번개를 치고 심한 폭풍이 몰아칠 때는 하느님의 권능을 보여
주는 것이며, 하느님의 듯을 잘 따르지 못할 때 그렇게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갑작스럽게 우박이 내려 농작물을 망가뜨릴 때에도 아이들에게 잘
이해하도록 해 주었다. 주님께서 주셨으니 주님꼐서 다시 가져가신
거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제일 좋은지 아신단다.
풍년이 들엇을 때에는 풍성한 양식을 주는 주님께 감사드릴 것을 잊지
않도록 가르쳤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난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구우며
옛날 이야기를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을 깊이 새겨 주었다.
보스코 집안의 밭은 나무들과 큰 돌들로 울타리를 쳐 놓았고, 한쪽에는
말가리다가 제일 좋아하는 작은 포도밭이 있었다. 포도가 무르익으면
말가리다와 세 아이들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하루 종일 고리버들
바구니에다 포도를 따 넣었다.
어떤 날 포도를 따고 있을 때 말가리다는 낯선 사림이 농장 뒤에 숨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그 곳에서 쉬고 있는 것처럼 했지만 말가리다는
그 남자가 무엇 때문에 이 곳에 있는지 금세 알아 차렸다. 그 해에는 포도
농사가 흉작이었기 때문에 도둑이 많았다.
오늘밤에 조심해야겠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에게 미리 일렀다.
우리 포도를 훔치러 온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아주 힘이 세어 보이니
우리 힘만으로 어림없을 것 같구나.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꾀를 내서 해
보는 거다. 너희들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 때부터 목청껏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헛간문을 막대기로 두드리고 온통 소란을 떨면 도둑도 놀라서 도망칠게디.
그날 밤 아이들은 헛간문 앞에 모여 서서 어머니의 신호를 기다렸다.
포도밭으로 검은 그림자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아직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는 포도덩굴에 다가서서 막 괄을
올리려는데....
여기예요. 순경 아저씨! 갑자기 말가리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순경 아저씨, 도둑이 여기 있어요. 요한도 크게 소리쳤다.
놓치면 안 돼요. 아저씨. 안토니오와 요셉도 온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그러면서 네 사람은 발을 구르고, 헛간문을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둑은 혼비백산해서 어둠 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우리는 총도 없이 도둑을 쫓아 냈구나. 그 사람이 그렇게 놀라서
도망친 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사건을 통해서도 말가리다는 아이들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웃 사람들을 더 감동시킨 것은 말가리다가 어린 두 아들 요셉과
요한을 데리고(안토니오는 할머니가 돌봐 주셨다)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일하다가 저녁이 늦어서야 들어오곤 한다는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저녁 종이 울리면 삼종기도와 함께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저녁 기도를 거른 적이 없었고,
집에 함께 있는 누구에게라도 같이 기도할 것을 권하였다. 밤에 잠잘 곳을
찾아 들어온 부랑자이든 누구이든 꼭 함께 기도하도록 했다! 그들은
말가리다의 친절한 제안에 끌려 마지못해 무릎을 꿇고는 어렸을 때 해
보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말가리다가 아이들에게 또 한 가지 철저히 요구한 것은 청결함이었다.
말가리다는 일요일이 되면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머리를
단정히 벗겨 주었다. 이웃 사람들은 교회에 갈 때마다 그 네 사람의
단정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사람들은 너희를 보고 칭찬할 때 기분이 좋지? 말가리다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엄마!
하지만 왜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했는지 아니? 그것은 일주일 중에서
일요일이 가장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또 아름다운 옷은 나의 아름다운
영혼을 나타내야 한단다. 예쁜 옷을 입었는데도 영혼은 보기 싫다면 그건
무슨 꼴이겠니? 마음이 늘 착하도록 해야 한다. 잘 기억해 둘 것은
사람들의 칭찬에 너무 쏠리지 말아야 하는 거란다. 사람들의 칭찬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욕심스럽게 만들 뿐이고 하는님은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시지.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천사 같다고 말하는 걸
들었ㄷㅈ? 그렇다면 행동도 천사처럼 해야 돼. 특히 교회 안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거나 소곤거리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기도할 때는 두
손을 모으고 해야 하고, 그럴 때 좋으신 주님께서 너희들에게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신다.
말가리다에게 있어서 또 뛰어난 것은 순결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순결에 대한 사랑을 자기 아이들에게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깊이
심어 주었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순결하게 자라나도록 그들의 일거일동을 늘
주의해서 지켜 보았지만 언제나 자연스럽게 처신하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머니가 있다고 해서 다르게 행동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는 말가리다는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 더
부드럽게 차근차근히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말가리다는 귀찮아하지를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들
놀이에 끼어들어 더 재미있는 놀이까지 가르쳐 주며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곤 하였다.
한 번은 돌팔이 약장수가 동네에 들어와서 트럼펫을 요란스럽게 불어
대어 세 아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구경을가겠다고
졸라 댔다.
잠깐만 기다려, 어던 구경거린지 먼저 보고 나서 보내 줄게. 이것이
말가리다의 대답이었다. 그 구경거리가 아이들에게 괜찮을 거라는 판단이
될 때 말가리다는 아이들에게 가도 좋다는 허락을 주었다. 별로 이롭지
못할 것 같으면 말가리다의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고 바뀌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 다른 애들도... 가끔 아이들은 엄격한 어머니에게
항의할 때도 있엇지만 그때 말가리다는 이렇게 대답햇다.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내게는 상관 없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너희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야. 알겠니?
어머니만이 자녀들의 마음을 가꾼다
말가리다는 아이들과 함께 주의 기도 를 외우다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라는 구절에 이르자 기도를
멈추고 안토니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이 구절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네가 그 기도를 하게 되면
거짓말하는게 되거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느님께 자기 죄를 용서해 다라고
하겠니?
안토니오는 자신을 잘못을 깨닫고는 머리를 숙였다.
오스트리아인들이 피에몬테 지방을 지배하게 되면서 사회가 평온해지고,
보스코의 집안도 피기시작했다. 또 아이들이 농장에서 제 몫을 할 만큼
컸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점점 적어졌다.
그러나 생활이 편해졌다고 해서 집안의 분위기까지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이를 더 먹게 되고, 개성이 뚜렷해짐에 따라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착하고 걱정이 없는 아이는 요셉이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아서 별로 화 내는 일도 없었고,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심술을 부리던
것도 없어졌다.
이제 안토니오는 열두 살로 성인 남자의 몫을 할 만큼 튼튼하게 자라
땅을 사랑하는 부지런한 일꾼이 되었다. 그러나 말가리다에게는
안토니오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말가리다가 보스코의 식구가 되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안토니오는
말가리가 친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을 더욱 굳혀 가는 듯하였다. 요셉과
요한이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형제로서의 기쁨보다는 아버지의 땅을
나누어 가져야 할 귀찮은 존재라는 적대감이 더 깊어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요셉과 요한의 우애가 더 깊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자기의 탓이 크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질투심을 키우고 있었다.
말가리다에 대해서도 그 두아이의 편이라고 단정지어 놓고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갔다. 안토니오에게 그래도 가까운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안토니오는 아주 작은 일들로 자주 식구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싫어하였으므로 부드럽게 타이르며 그
아이가 스스로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곤 했다. 안토ㅇ니오도 심술을 부리고
나서 잘못했다고 쉽게 용서를 청하곤 했다. 그런데 한 번은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무섭게 화가 난 안토니오는 식구들 앞에서
주먹을 흔들어 대며 마구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당신은 내 엄마가 아냐! 이 독사 같은 계모!
두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 어머니에게 매달렸고, 할머니도 너무 놀라
벌벌 떨었다. 말가리다는 눈을 감으며 잠깐 마음을 가다듬고는 안토니오의
손을 잡았다.
안토니오야, 자, 고만 진정하고, 내 말좀 들어라. 너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아들이야. 나에게는 너나 네 동생들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너도 알지? 내가 너를 때리지 않는 것은 친아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런 방법이 싫어서야. 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 봐라.
안토니오는 어머니의 이 침착하고 온유한 태도에 몹시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쉽게 화를 내는 만큼 또 단순한 면도 있는 안토니오는 곧 용서를
청했다.
세 아이 중에서 가장 특이한 아이는 요한이었다. 여덟 살이 되면서
다루기가 힘든 아이라는 것이 더욱 드러났다. 잘못한다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집이 센 꼬마아이는 사람들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요한은
형들에게 잘못을 해 놓고도 그 큰 갈색 눈으로 귑엽게 미소지으며
다가서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이었다. 요한도 성질이 급한 편이고 화를
잘 내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는 아이였고, 뭔가 다르다는
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요한에게 특별히 마음을 썼다. 마음이
너그럽고 장난기도 많으며 머리가 좋은 이 총명한 막내아들의 충동적인
성격을 잘 다스려 주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에도 더 엄하게 가르쳤고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다.
어떤 날 요한과 요셉이 함께 집으로 뛰어들어 왔다. 두 사람 다 뙤약볕
아래에서 오랫 동안 일하느라고 목이 말라 똑같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물 좀, 엄마! 둘 다 합창하듯 외쳤다.
말가리다는 물그릇을 가까이 서 있던 요한을 무시한 채 요셉에게 먼저
주었다. 그러자 요한이 항의했다.
엄마, 내가 먼저 왔잖아요?
말가리다는 못 들은 척하고 요셉이 마시고 난 물그릇에 다시 물을 떠서
요한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자 요한은 심술이 나서 부엌을 나가 버렸다.
말가리다는 아무 말 없이 물을 쏟아 버렸다.
오 분쯤 뒤에 요한이 다시 왔다.
엄마, 목이 말라요!
그래서?
물 좀 주세요.
조금 전에는 왜 안 먹었니?
잘못했어요. 엄마, 이젠 안 그럴께요.
커다란 갈색 눈이 귀엽게 웃고 있어 엄마도 따라 웃게 되었다.
한 번은 요셉과 싸우면서 성질이 급한 요한이 형에게 돌을 던졌는데
말가리다가 이것을 보았다. 당장 요한을 불러들였다. 어머니에게 오는
사이 요한은 화가 가라앉았고 잘못했다는 것도 알았다.
저 회초리 보이지? 말가리다는 구석에 있는 회초리를 가리켰다.
요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저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요한은 눈에 눈물이 가득 차서 어머니를 쳐다보기만 했다.
어서 가져와. 잘못했을 때는 벌을 받아야지.
요한은 천천히 구석으로 가서 회초리를 집어서는 어머니에게 내밀엇다.
그러면서 요한은 그 갈색 눈으로 사정했다.
잘못했어요. 엄마. 다시 안 그럴 게요. 맹세할 게요. 엄마.
아무리 엄격한 말가리다도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하며 달려드는
요한을 때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도록, 또 어린 마음에
자만심이 끼어들지 않도록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자기가 키우던 칠면조를 도둑 맞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어떤 사람이 칠면조를 가져갔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아가서
칠면조를 뺏어 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그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요한에게 말가리다는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잘한 것이 아냐. 한눈을 팔아 남에게 도둑질할 기회를 주었고, 또
칭찬을 바라는 것도 좋지 않은 거야.!
하지만 엄마. 난 칠면조를 다시 찾았어요! 내가 한 행동이 틀렸어요?
맞아. 칠면조는 다시 찾았지. 어머니는 그 말을 인정했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칠면조 한 마리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물건을 훔칠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은 아주 큰 일이지. 네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요한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지만 자기의 잘못은 인정했다.
어느 날 저녁 요한은 밤꾀꼬리새의 둥지를 보러 갔다가 뻐꾸기가 어미와
아기새를 죽여 둥지 으로 밀어 내고 자기가 그 둥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염치 없는 뻐꾸기는 알을 하나 낳아 놓고는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었고, 이번엔 개똥지빠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요한은 그
뻐꾸기알이 염려되어 자주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커다란 발가락과 보기 흉한 부리를 한 뻐꾸기 새끼가 알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 새끼 뻐꾸기가 날 수 있게 되자 요한은 집으로 가져와
새장 안에 넣은 것이었다. 자기가 키워 보겠다는 마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가 수확철이라 요한은 너무나 바쁘고 피곤해서 뻐꾸기의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채근을 하자 그 때서야 생각이 나 새장 앞으로
달려갔으나 그 불쌍한 새는 배가 고파서 새장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 듯
목이 철장 사이에 걸려 죽어 있었다. 요한은 그 죽은 새를 어머니에게
보여 주며 울음을 터뜨렸으나 말가리다는 그를 달랬다.
다른 이의 것을 훔칠 때, 그 훔친 ㅁ루건과 함께 불운도 유산으로
남기게 된단다.
그 후게 요한은 어미 잃은 새끼 까치를 잡아서 새장에 넣고 키웠는데,
그 새는 얼마나 먹보인지 늘 먹을 것만 찾았다. 어느 날 요한은 앵두 한
바구니를 집에 갖고 왔다가 그 까치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 까치가 앵두를
얼마나 잘 받아 먹던지 그 재미에 빠져 정신 없이 주다 보니 까치는 입을
벌린 채 옆으로 쓰러져 버리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까치는 너무 먹어
죽어 버린 것이었다. 울상을 하고 있는 요한에게 말가리다는 말했다.
무절제가 생명까지 잃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 아이들의 종교교육에 대한 말가리다의 열정은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다. 말가리다는 매주 일요일에 아이들을 성당에 데리고 가 복사를
시켰고, 교리공부를 하게 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말가리다는
신부님 강론 중에 어떤 것을 기억하는지, 어떻게 해야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묻곤 하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미사 때에
장난을 치거나 할 수가 없었다.
요한이 열한 살이 되자 첫영성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멀었기
때문에 교리도 말가리다 자신이 직접 가르쳤고 마음준비도 잘 시켜
주었다.
말가리다의 종교교육은 말과 모법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교리도
아이들의 일상생활과 비교시켜 실체의 삶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말가리다는 성당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가리다가 갖고 있는 종교 지식은 성당에서 들은 교훈과 교리시간과
성서봉독 시간에 들은 성서말씀, 그리고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통해서 얻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자식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훌륭한 교육자일 수 있었다. 어머니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잇는 직감을 통해서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고 또 어떻게
해줘야 할지를 민감하게 느꼈고 필요한 것을 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말가리다는 학문을 통해서 배우진 못했으나 모성애의 고귀함을 알았고,
이것이 자녀 양육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선물임을 믿었다. 아이들을
잠자리에 보내고 난 뒤 조용한 난롯가에 앉아서 말가리다는 시어머니와
아니면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지를 생각했다.
말가리다는 하느님의 법을 따라서 사랑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했으므로 그의 말은 항상 솔직하였고, 행동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었다.
말가리다의 진리와 순결에 대한 사랑, 용기와 역경 중에서도 굳건함으로
아이들에게도 이웃에게 베풀 줄 아는 관대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의 구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슴속
깊이 심어 주었다.
어떤 어머니들은 사제의 영혼을 지녔다
5월의 태양이 유난히 빛나 보이는 어느 날 아침, 아침식사를 하러 오는
요한의 눈이 이상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기쁜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할머니의 말에 요한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요.
무슨 꿈인데...? 이번에는 안토니오가물었다. 낮에 일을 더
부지런히 하면 밤에 꿈 같은 걸 꿀 새도 없을 텐데.
그래, 무슨 꿈을 꿨는지 들어 보자. 할머니가 재촉했다.
말가리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요한은 꿈속에서 한 무더기의 소년들 틈에 끼어 있었다. 그들은 웃고
떠들어댔는데 갑자기 한쪽에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화가 난
요한이 욕을 입에 담았던 소년을 리자 소년들은 모두가 한 패가 되어
요한을 둘러쌌다. 아이들의 수효가 많아 큰일났구나 하고 걱정을 하는데
갑자기 밝은 빛으로 둘러싸인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해지면 그 남자를 쳐다보앗다.
이리 오너라, 요한아. 그 사람은 요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잘 가르쳐 줘야 한다. 그리고 순결이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어라.
하지만 요한은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으므로 머리를 저었다.
나쁜 아이들을 어떻게 참아 줄 수가 있어요?
나는 네가 하루에 세 번씩 기도로 인사드리고 있는 그분의 아들이란다.
내가 시키는 일은 하나도 어려울 게 없다. 나의 어머니의 말을 잘 들으면
모든 일이 쉽게 될 게다.
그렇게 말해 주던 사람이 사라지자 소년들이 개와 늑대들로 변했다.
요한이 무서워서 도망치려는데 바로 그 앞에 금빛 망토를 입은 아름다운
귀부인이 서 있는 게 아닌가!
겁내지 말아라, 요한아. 귀부인은 요한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 동물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잘 보아라. 너도 나의 자녀들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잘 하려면 먼저 겸손하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 사납던 동물들이 모두 순한 양으로 변해서
그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요한은 이 모든 광경이 너무나 신비스럽고 두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분이 다시 말했다.
걱정 말아라, 내 아들아. 때가 차면 다 알게 될 것이다.
요한이 꿈이야기를 마치자 요셉이 큰 소리로 놀렸다.
아마 커서 양지기가 될 거라는 계시 같다.
아니야. 안토니오가 빈정거리며 나섰다. 무슨 비밀결사대의 두목이
되는 걸 거야.
쓸데없는 소리들을 하는구나. 할머니가 꾸짖으셨다. 꿈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아무튼 너는 그 전부터 얘기꾼이었어. 언젠가 어떤 자가 땅에
귀를 대면 수천 마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아맞힌다는 얘기도 네가
했지. 이 꿈도 그런 따위 이야기 같구나.
말가리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황당한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은 이상한 꿈을 잘 꾸는 아이였다. 또 이야기를 잘 꾸며
낸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꿈은 그의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누껴졌다. 말가리다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신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자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윽고 할머니가 입을 열엇다.
요한이 신부가 될지도 모른다구? 제발 부탁한다. 아이의 머리 속에
분에 넘치는 생각일랑 넣어 주지 말아라. 우리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고, 우리 형편으로는 신부란 하늘 같은 존재인데... 안토니오
말대로 우리의 처지를 받아들이면서 땅에만 의지하면서 편안히
살아가자꾸나. 분에 넘치는 생각일랑 갖지 말자.
할머닌의 말씀은 이곳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성직자들이란 교육받는 상류층, 귀족계급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시골사람들은 설사 부유하다 해도 늘 명령을 받는 계층이었지 한 번도
누구를 지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할머니가 성직자 계급 을 꿈도
꾸지 말라고 하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식구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자기 일들로 돌아갔고, 또
변함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그 꿈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요한의 인생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한의 요즈음 행동과도 묘한 연관을 짓게 되는
것이었다.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곡예나 마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구경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 보겠다는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에 곡마단이 들어오면 어머님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자기도 직접
곡예를 해 보겠다고 나섰다.
말가리다는 처음에 어린아이의 장난이겠거니 하고 무심히 보아 넘겼다.
그러자 어느 날 요한은 진짜 판을 벌였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지에 그럴 듯한 나무 두 그루를 골라 줄타기를 할 밧줄을 걸었다.
시간은 점심 후 동네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고 난 뒤로 정하고는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에 그 날 아침 식사 때 들은 신부님의 강론을 다시
한 번 해 보일 테니 그것을 꼭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대개 어린아이들이었으나 호기심 많은 어른도 몇 끼어
있었다. 요한의 이러한 조건에 어른들이 흥, 꼬마 신부라도 난 것 같군.
하면서 놀리는 소리도 들렸으나 강론이란 것이 짧게 끝났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 다음에 요한이 진짜 곡예사처럼 줄 위로 올라섰을 때
말가리다는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마음을 졸였으나 놀랍도록 능숙하게
줄타기를 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짧은 기도로써그 공연의 막을 내렸다.
말가리다는 이 모든 일이 어떤 전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웃
사람들까지 말가리다의 이러한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저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되려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한의 곡예사의 재주말고도 재담도 뛰어났다. 요한은 겨울 밤 따뜻한
헛간 건초더미 위에 앉아 역사나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잘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러 아이들만 아니라 젊은이, 노인들까지 모여서는 밤이
늦었어도 이야기를 더 하라고 조르곤 하였다. 요한의 이야기는 대개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들이었다.
요한은 다섯 살 때 벌써 친구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그저 놀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진지하게 했다.
이런 특이한 면을 보이던 요한은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신부가 되고 싶노라는 이야기를 했다. 막연히 생각했던 걱정스러운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때부터 말가리다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선 학교를 보내는 것이 필요한데 그녀의 집안 형편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 없었고,
그런 생각도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살아 왔다. 말가리다는 혹시 자기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한은 다른 아이들과는
비범한 데가 있고 이 아이를 그냥 놓아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앞으로 그 아이가 신부가 되는 못 되는 공부는 시켜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말가리다가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좋았지만 그러나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도 피에몬테 비장에서
학교교육이란 거의 들어 보지도 못한 단어였다. 최근에 와서야 겨우
나폴레옹이 대중 교육을 위해 국민학교 과정을 신설하였으나, 정부의
도움이 전혀 없이 그 지방의 사정에 따라 선생이나 교실 문제를 해결하여
운영하는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들은 대부분이
그 지역 교회 보좌신부들이었고, 교실이 부족해서 모든 학생이 한 반에서
공부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 같은 것도 모두 부모가
부담해야 했으므로 보통 가정에서는 밥도 겨우 먹은 형편이라 공부란
사치에 속하는 것이었다. 요한은 공부를 하자면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학교에 가야 하는데 지금의 집안 형편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안토니오는 요한의 학교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부터냈다.
요한도 우리처럼 이제 일할 나이가 된 거예요. 그런데 학교엘 보내야
한다구요? 정말 배부른 소리를 하시는군요....
요한에게만 잘해 주려는 건 아니다. 너도 읽고 쓰는 걸 배웠잖니?
요한에게도 그만큼만 해 주려는 거야. 이젠 학교 다니는 게 특권이
아니야. 누구라도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온 거야.
문제는 학교는 돈을 쓴다는 걸 의미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땀 흘린 그
귀한 돈을요.... 보세요, 나는 공부를 안 했어도 이렇게 힘도 세고 일도
잘 하잖아요? 사실 나는 학교에 간 날보다 못간 날이 더 많았어요. 요한도
이 땅에 발을 붙이고살라고 하세요. 우리의 고향, 우리의 터전은
땅이에요. 이 땅!
안토니오의 말은 옳았다. 요한과 관계가 없다면 말가리다도 안토니오의
말에 적극 동의하였을 것이다. 보스코 가족에게나 오키에나 가족에게나
그리고 이 마을 누구에게도 땅은 안전과 탄탄한 미래를 의미했다. 땅을
소유하고 있을 때 독립과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물론 가뭄이 들
때는 굶주림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땅은 그들에게 생명의 젖줄인
것이다. 하지만 요한과 관련시켜 볼 때, 그 타고난 재능과 비범함을 볼 때
말가리다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토니오에게 더
설명해 봤자 납득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요셉 라콰 신부를 만나러 갔었으나
실망은 더욱 커졌다. 요한이 카프릴리오의 행정 구역이 아닌 베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입학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숨은 이유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였으리라. 학년이 서로 다른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북적대었으니 더 받을 마음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수에 사는 농장 일꾼이 요한에게 에이, 비, 시를 가르쳐 보겠다고
나섰다. 말가리다는 아드의 공부의 첫걸음이 무식한 농부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말가리다는 아들을 학교에 넣을 희망이 보이지 않자 몹시 실망했다.
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따로 있었다. 라콰 신부의 가정부가 갑자기
죽자 말가리다의 언니 마리안나에게 신부님의 시중을 들어 달라는 부탁이
왔다. 마리안나는 요한을 좋아했고 또 그 딱한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요한을 학교에 받아들이면 가정부로 일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신부님은 당장 가정부가 필요했기에 학교 규칙을 수정해서 그 청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요한의 공부는 1년 동안 라콰 신부님의 지도 아래 시작
되었다. 그리고 우수한 학생의 학과 진전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러나
어려운 일은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그 먼 길을 통학해야 한다는 것과,
안토니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한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즉시 젖소들을 돌보며 농장에서 일하였고 밤이 되어야 침침한
등잔불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말가리다는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아들의
교육 문제도 하느님꼐서 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며
기도에 매달렸다.
가슴아픈 이별
그 나이에 약이 무슨 소용이에요....공연히 돈만 버리지말고 아이들
장래나 걱정하세요.
마을 사람들의 이러한 충고처럼 이제 시어머니는 기력이 다한 것이
눈에도 보였다.그러나 말가리다는 할머니 옆을 떠나지 않았고 온갖 정성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덜어 드리고 더 오래 사시게 하려고 특별한
음식을 해 드리고 약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1826년 2월 11일. 아직도 겨울 바람이 차가운 날, 운명을 하신
할머니께서 마지막에 세 손자에게 하신 말씀은 말가리다에게 내려 주시는
상과도 같았다.
절대 잊지 말아라. 너희가 행복하게 되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네
어머니 말씀을 잘 따르고 효도를 해야 한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긴 세월
동안 자신에게 해 왔던 것처럼 너희들도 어머니에게 복종하고 효도를
다하라고 누누이 타일렀다. 어머니는 청혼해 온 사람이 많았으나
시어머니와 세 아이를 위해 좋은 혼처를 다 거절하고 스스로 고생을
짊어지고 희생하며 살아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간절히 부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예감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안토니오가
가장처럼 행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열여덟 살이 된 안토니오는 건장한
청년으로 그 마을에서 일 잘하는 일꾼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만큼
수입도 있었지만, 아직 어린 동생들을 자신이 번 돈으로 돌봐야 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특히 요한에 대한 태도가 날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누가 이 집안을 꾸려 나가는지 너는 아직
모르는모양이지!... 툭하면 자신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공치사를 앞세우는 안토니오는 요한의 교육 때문에 돈을 써야 할 때면
무섭게 야단을 쳤다. 말가리다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안토니오의 심통을
말없이 참았다. 안토니오를 야단치고, 말을 듣도록 해 줄 할머니가 안
계시니, 안토니오가 화를 내지 않도록만 조심하는 것밖에 없었다.
말가리다는 성미 급한 요한이 안토니오에게 잘못해서 큰 일이 벌어질 것이
두려워 더욱 조심을 했다.
그래서 둘이 서로 만나게 되지 않도록 하면서 요한이 오전 중에 학교에
다녀오면 오후에는 일을 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요한은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들에 나가면서도 책을 갖고 나가곤 했고, 점심 후에
남들이 다 쉴 때에도 요한은 쉬지도 못하고 공부를 하곤 했다. 말가리다도
요한의 몫까지 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이런 것이 눈에 거실리기만 했다.
밭에서 일하는 데 라틴어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안토니오는
어머니에게 대들며 요한을 비웃었다. 촌놈이 라틴어를 배우신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말가리다는 안토니오가 요한이 공부를 잘하는 것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칭찬을 받고 누구든지 좋아한다는 데 대한 시기심 때문에 더 화를 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요한은 요한대로 자신이 재능을 잘 살리지 못하고
공부할 시간이 없어 쫓기고 있다는 것 때문에 늘 분만스러운 상태였다.
어느 날 말가리다가 두려워했던 일이 생각보다 빨리 터졌다. 안토니오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니 요한이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 이 얄미운 놈은 공부만 하다니.... 안토니오는 얼굴이
시뻘개지며 책을 잡아 채서 방바닥에 내동댕이를 쳤다.
이젠 책을 집어치우라는 얘기를 하는 데도 지쳤다.! 안토니오는
으르렁대면 소시를 질렀다. 나는 책 같은 건 보지 않아도 이렇게
건장하게 일도 잘해!
안토니오의 거친 태도 앞에서 평소에 늘 참아 왔던 요한의 분통도
터졌다. 흥! 우리집 당나귀는 형보다 더 크고 힘도 더 세다고! 물로 그
당나귀도 책 같은 건 보질 않지!
이 말은 안토니오의 화에 불을 당겨 준 격이 되었다. 안토니오는 고함을
지르며 요한을 죽일 것처럼 덤벼들었으나 재빠른 요한은 어느새 집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말가리다는 안토니오에게 지을 떠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죽은 남편에게
안토니오를 친자식처럼 키우겠다고 약속을 한 것 때문에도 그렇지만,
말가리다의 종교적인 양심이 안토니오의 태도가 어떻든 그것 때문에 집을
나가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안토니오의 성격 때문에
집을 나간다 하더라도 평탄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토니오를 위해 또한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도 어떤 해결점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도 알았다.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요한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 당시
부모들이 친척집에 일하러 보내는 것이 풍습이었기에 다른 사람들 눈에도
이상하게 비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가리다는 울며 기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부틸리에라에서 사는 친지집으로 가기로 하고 요한에게 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1828년 2월 몹시 추운 날 아침, 요한은 옷 몇 가지와 책 몇 권을 싸
들고는 집을 떠났다. 매서운 북풍이 몰아치는 언덕길을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한 요한이 작은 몸뚱이를 웅크리고 걸어 내려가 산모퉁이를 돌아서
버리자 말가리다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속에서는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처사였는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고, 그 곳에
가서 더 고생을 하는 것을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말가리다는 모든 걱정과 염려를 누르며 안토니오가 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마음을 다졌다. 그 때가
되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요한이 공부를 잘 할 수있도록 해 주리라.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요한에게서 소식이 왔고, 말가리다의 처사가 잘한
것이었음도 증명되었다. 요한은 이제 친척집이 아니라 모리아라는
대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고용 계약서에 서명을 하러 말가리다에게 와
달라는 소식이었다. 요한은 그 곳에서도 착하고 부지런해서 한 식구처럼
귀여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한은 그 곳에서 2년을 살았다. 공부만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더 있고 싶도록 마음에 드는 곳이었으나 공부 때문에 그 곳에
떠나야 했다.
말가리다도 모르게 외삼촌을 만나 자신의 학업어ㅔ 대한 의논을 한
요한은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말가리다는 몹시 놀랐으나 설명을 듣고는
미카엘 외삼촌이 올 때까지 요한도 밖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안토니오가
어떤 행패를 부릴지 몰라 겁이 나서였다.
미카엘 삼촌이 오자 말가리다는 요한의 진학문제에 대해 다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카스텔누오보의 주임신부를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 형편이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학생들이 너무 많아 받아 줄 수 없다는 거절이었다. 부틸리에라 본당
신부님을 소개해 주었으나 그 곳도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요한은 몹시
낙심했으나 별 방도가 없었다.
교회에서는 1829년 3월 31일 비오 8세의 성대한 교황 즉위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해에 특별 대사를 선포하여, 각 지역 주교들은 자신의 교구를
순방하여 강론과 대사를 베풀었다. 토리노의 콜롬바노키아베로티 주교는
그 해 11월 8일부터 22일까지 그 마을 가운데서 가장 큰 큰 교회가 있는
부틸리에라를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행사였다. 먼 마을에서도 될 수 있으면 온
가족이 다 참석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베키 마을은 별로 먼 곳도
아니었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아직도 추수가 덜 끝나 일손이 딸렸으므로
부틸리에라에서 남의 집 목동 노릇을 하고 있던 요한만이라도 꼭 참석해서
나중에 주교님의 강론을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 미사에 다녀오던 요한은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가까운 모리알도
교회에 새 신부님이 오셨기에 우연히 인사를 하다가 요한의 똑똑함이 그
신부의 마음에 들어 어머니와 함께 자기를 찾아오라는 언질을 주었던
것이다.
이 전갈을 들은 말가리다는 자기의 기도의 응답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다음 일요일, 두 사람은 요한 칼로소 신부를 만나러 갔다. 나이도 많고
상냥한 성격의 신부는 요한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니 더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매일 이 교회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너무나
오랫 동안 기다려 왔던 기회였기에 선뜻 승낙을 했다.
그러나 말가리다가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하자 안토니오는 절대
반대였고 요한을 집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신부와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상히 생각한 칼로소 신부가 집에까지 찾아
왔다. 안토니오의 부당한 반대 때문이라는 것을 알자 신부는 무섭게 화를
냈다.
이 아이의 공부는 내가 시키는 거야! 내일부터 이 아이는 나에게 와야
한다. 누구도 반대할 수 없어!
신부의 위엄에 찬 질책 앞에서 안토니오도 물러섰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말가리다는 요한이 책을 옆에 끼고 집을 나서는 것을
뒤에서 지켜 보았다. 이것은 요한이 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딛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칼로소 신부는 요한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했다. 그
신부의 평가에 의하면 요한은 한 번 읽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말가리다에게 말했다.
요한이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이제 곧 배울 것이 없어질 거예요!
굉장한 아이예요!
이런 일들은 더욱 안토니오의 마음을 편치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더 심하게 요한을 괴롭혔고, 요한은 이 어려움을 신부에게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칼로소 신부는 성급한 성격이었다. 요한의 이야기를 듣자 금세 결단을
내려 요한에게 집을 아주 옮기도록 했다.
그 심술궂은 형을 떠나서 나와 함께 살자! 내가 네 후견인이 되어
주마!
이 말을 듣고 말가리다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안토니오도 신부의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했고, 요셉은 요한 몫의 일을 자기가 더
하겠다고 나섰다. 다만 안토니오의 화를 풀어 주기 위해 농장이 아주 바쁠
때에는 요한이 와서 도와 준다는 단서를 붙였다.
칼로소 신부는 약속한 대로 요한의 후견인이 되어 주어 모든 필요한
것을 돌봐 주었다. 요한은 요한대로 이 은인을 도울 만한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였다. 요한은 집안 청소부터 시작해서 사제관과 교회 건물의
수리라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심성의껏 하여 생활비와 교육비까지
담당하고 있는 신부님의 후의를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애썼다. 요한은 난생
처음 미래에 대한 걱저에서 풀려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기억마저
어렴풋해진 친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본 이래 처음으로 든든한 아버지와
같은 분의 다정한 보살핌을 받는 요한으로서는 그 사랑이 너무나 고마운
것이었다. 신부는 요한에게 공부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보다 깊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그리고 사제생활의 매력을 느끼도록 이끌어 주었다.
요한의 공부는 더욱 진보하였고 밝은 미래에 대한 포부도 더욱 커졌다.
그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후일 요한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칼로소 신부님에게서 친아버지보다 더 큰
애정을 느낄 수 있었어. 나는 그분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지. 신부님은 내게 자주 말씀하셨어. 미래에 대해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라.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도록 해줄 테니... 만일 내가
죽더라도 염려 마라. 모든 걸 잘해 놓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던 신부님과의 이별이 너무 빨리 닥쳐왔다.
1830년 11월 요한은 잠깐 집에 다니러 왔다. 그때 급한 전갈이 왔다.
칼로소 신부가 갑자기 뇌빈혈을 일으켜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요한이
단숨에 사제관으로 달려갔을 때 칼로소 신부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혀가
굳은 신부는 겨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요한에게 주면서 그 열쇠를
아무에게도 주지 말 것과 책상 안에 있는 것도 모두 요한에게 준다는 것을
손짓으로 알렸다.
그러나 친척들이 도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요한은 그들의 의심과
냉대에 놀랐다. 그들은 친척도 아닌 요한이 어떻게 해서 자기들의
아저씨의 유산을 상속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따졌다. 요한은 난처해졌다.
신부는 미처 유서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자기에게만 구두로
의사를 표시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유산을 받기 위해서 법정에까지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돌아가신 신부님께 누를 끼쳐 드리는 것
같아 조용히 물러서자고 생각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세태에도 밝지
못한 요한은 신부의 친척들과 맞서 싸울 힘도 없었다. 또 돈 때문이라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요한은 용기 있게 그 유산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그
행위가 그렇게 현명한 것은 아니었음을 요한은 금세 느껴야 했다. 그때에
요한은 돈보다는 은인을 잃음과 동시에 공부할 기회까지 잃었다는 것에 더
실망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돌아가신 그분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신부님 생각을 떠날 수 없었고 꿈속에서도 그분을
만났다.
요한은 너무 상심을 하여 건강까지 상할 정도였으므로 말가리다는 그를
카프릴리오에 있는 친척집에 보내어 쉬도록 하였다. 말가리다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요한의 공부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카스텔누오보의 한 신부가 잠시 요한을 가르쳤지만 그 신부도 몇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요한은 꿈에 성모님을 뵘으로써 이 시기의 어두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꿈에서, 성모님은 요한에게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지 못하고 사람들의
도움에 매달리고 있음를 꾸짖었다.
말가리다가 이러한 일들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왜 아들이 가는 길에
그토록 많은 장애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겨우 길이 터졌다
생각하면 생각도 못한 장애물이 길을 막아 버린다! 허나 말가리다는
실망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요한이 사제가 되길 원하신다면 그 길을
열어 주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희생의 열매
말가리다는 실망한 아들의 모습과 또 아들의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들을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학교에 보내리라고 결심했다.
말가리다는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시장에 자주 갔기에, 요한이 다녀야 할
학교가 어떻다는 것과 또 얼마나 먼 길을 걸어다녀야 하는지 잘 았았다.
하루에 적어도 12마일을 걸어야 하는데 추운 겨울이나 여름의 땡볕을
생각하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 그렇기 때문에 그 곳에서 머물 수
있는 곳까지 마련해 둬야 하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아늑한 좋은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행히 마음씨
좋은 양복점 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하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하나의 장애물은 안토니오였다. 안토니오는 요한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반대만 하고 나서는 것이 여전했다. 말가리다는 드디어 단안을
내려 안토니오와의 재산 분배에 들었갔다. 물론 안토니오는 원하지
않았으나 말가리다는 이 문제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땅 분배가 해결되었다. 집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 절반의 땅을
안토니오의 으로 주고 그 나머지를 말가리다의 몫으로 했다. 요셉은
수삼브리노에 소작인으로 들어갔으므로 말가리다는 수삼브리노와 베키에
있는 집 사이를 오가면서 살았다.
안토니오는 스스로 자초한 외로운 생활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는지
1831년 3월 20일 한마을의 안나 마리아 로소와 결혼하였다. 처음에는 옛날
집으로 신부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몹시 불편한 것을 깨닫고는 가까운 곳에
따로 집을 지었다.
요한의 공부는 그런 대로 순조로웠다. 그런데 선생이 바뀌면서 또
새로운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바뀐 선생은 니콜라스 모리아 신부로 옛날
은인이었던 루이스의 사촌이고, 요한이 모리아 씨 댁에 있을 때 요한과
루이스에게 기초 라틴어를 가르쳐 준 분이었다. 그래서 이미 구면인
처지였으나 불행하게도 이분은 베키와 같은 가난뱅이 마을 출신들은 모두
바보라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에게도 못된 무식자
라는 별명으로 부를 뿐 아니라 요한의 재능을 조금도 알아 주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75세의 모리아 신부가 여생을 편히 지내기 위해 부유층 편을
들다 보니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요한의 공부에 진전이 없자 키에리에 있는 상급학교로 보낼 것을
결정하였다.
다탑의 키에리 라는 이름처럼 키에리는 한때 위세를 떨치던 귀족
가문들의 대 저택들이 모여 있던 도시로서 15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은
피에몬테 지방에서 가장 손꼽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그 옛날의 영화도
퇴색되어 교육의 도시로 겨우 이름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의
키에리는 성루이 곤자가와 성요셉 카파소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 당시의 학교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키에리의 학교도 성직자들이
신학교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매일 미사와 일요일 저녁
기도 시간에 참석해야 했고, 학기말 시험을 보기 전에 부활절 의무를
지켰다는 표를 먼저 제출하여야 했다. 규율이 엄했고 학생들의 품행은
일일이 학교 간부회의에 제출되엇다. 교시에서 싸우거나 사소한 욕이 오고
가는 것도 용서가 없었으며 이를 방관했을 경우 선생까지도 파면당하였다.
말가리다는 이 곳에서 아들을 교육받게 하기 위해서 우선 값이 싼
하숙집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하숙업을 하고 있는 과부가 자기 아들의
공부를 봐 주면 하숙비를 싸게 해 주겠다고 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1831년 11월의 어느 날 말가리다는 밀 한 포대와 옥수수 한 포대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요한아,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다. 하느님의 섭리가 그 다음
것을 채워 주시겠지.
그 포대들을 키에리까지 가지고 가는 문제도 큰 일이었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친구가 마차 운임을 받지 않고 그 곳까지 실어다 주기로 했다.
말가리다는 작은 밀가루 한 포대와 옥수수 한 포대를 더 마련해서
이것들을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시장에서 팔아서 필요한 학용품을 샀다.
말가리다는 키에리의 하숙집을 떠나 오면서 그 주인에게 간절히 말했다.
너무 약소한 것이어서 면목이 없읍니다만 요한이 부족한 것을 잘 채워
드리리라 생각합니다. 요한이 부인 마음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말가리다는 아들을 껴안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후 9년 동안 말가리다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키에리까지의 먼
길을 마다않고 요한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마련해서 가져간
것들은 사실 학비에 보탤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요한은 계속
장학금을 탔고, 또 스스로 일해서 학비와 학용품을 해결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요한은 많은 일을 했는데, 재주가 있어서 목공술, 제화술
등을 배워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기까지 했다.
혹시 앓아 눕기라도 하면 그 때는 어머니가 집에 데려와 쉬게 했다. 긴
여름 방학 동안에는 요한은 친구들까지 데려와 어머니의 일을 거들어
주었다. 요한을 위해서 말가리다가 한 일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으랴! 한
어머니가 바친 거룩한 희생의 역사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쌀쌀한 12월의 어느 날 해가 아직도 하늘에 높이 떠 있는데 한 신부가
말에 올라 앉아 눈에 덮인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놀이에 팔려
있던 아이들이 이 신부를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다사노 신부님!
신부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였다. 아이들의
소리에 집안에 있던 여인들이 문 밖에 나와 신부가 누구를 찾아왔는가
싶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신부님은 보스코 집 문 밖에 말을 세웠다. 신부님과 멋있는 검정 말에
홀린 듯이 몰려와 둘러싸는 아이들 사이로 말가리다와 요셉이 나와 얼른
신부에게서 말고삐를 받았다.
신부는 말가리다를 찾아온 것이었다. 말가리다의 안내를 받아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부는 몸을 돌려 인사하는 여인들을 강복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집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결혼한 요셉의 딸 데레사가 포도주병과 잔 두 개를 두고 나갔다. 두
사람은 포도주를 마시며 그 해 포도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다사노 신부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표정을 하였다.
말가리다 부인, 요한이 나를 찾아왔었지요. 요한을 만날 때마다 내
기쁨도 더 커집니다만 ... 참 믿음직한 청년이에요. 지금 요한으로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 나를 찾아온 것이었는데, 요한은 사제가
되고 싶어하는데 부인도 아시겠지요?
잘 알고 있지요.
지금 요한은 사제의 길로 들어서면 수도사제냐, 재속사제냐를 결정할
단계이지요.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던가요?
네,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성소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는게 좋다고 늘 생각하고 있읍니다.
옳은 말이에요! 신부도 동감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포도주를 한
모금 더 마신 다음에 말을 이었다. 요한 일은 요한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지요. 하지만,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보세요. 부인과도 관계되는
문제니까. 만약 아들이 수도회에 입회한다면 어머니가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수도회에서 음식, 옷, 책 등등 모든 비용을 대니까요. 하지만
일단 서원을 하고 신부가 된 다음에는 아들과 영원히 이별해야 합니다.
요한은 그 수도회 사람이 되어서 멀리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신부는 포도주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요한이 만약 나처럼 재속신부가 되기로 결정하면, 어머니가
계속 학비, 생활비를 다 대야 합니다. 교회법에서 요구하는 지참금도
포함되면 그 금액이 작지도 않아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잘 들어
봐요. 일단 신부가 되면 요한과 당신은 이제 아무 걱정도 없게 되는
겁니다. 특히 요한은 유능한 인물이라 장래가 아주 밝아요. 나를 도와서
내 본당에 함께 있어도 좋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 당신도 이젠 농사에서
손을 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다시 요약해서
말한다면 요한이 수도회 사제가 되면 어머니를 조금도 도와 드릴 수 없게
되지만 재속사제가 된다면 아들을 사제로 키우기까지 공을 들인 대가를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부인 생각은 어떤지요?
말가리다는 한참 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드디어 말가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아들을 그렇게 생각해
주시고 또 우리 두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자상히 일러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요한에게 모두 이야기하겠읍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나 마지막 결정은 요한이 하게 될 겁니다. 저는 그 결정을 그대로
따를 거구요.
좋읍니다. 부인 나도 그걸 부탁하러 온 거지요. 아들이 당신이나
자신을 위하여 좋은 결정을 내리길 기도하겠소.
말가리다는 여전히 바구니를 든 변함 없는 모습으로 키에리로 갔다.
요한을 만나서는 신부와 약속한 대로 신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어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요한이 이야기를 다 듣고는 물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아주 조심해서 잘 생각하거라. 그러나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뿐이다. 내 걱정은 말라는 것이지. 나는 네게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결코 네게 기대지도 않을 테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고, 가난 속에서 살아 왔다. 그리고 또 가난한 가운데
죽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한 말을 잘 기억해 두어라. 어머니는 다음에
할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잠시 쉬었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재속신부가 되는 것을 나는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네가 부자가 된다면
나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게다!
요한은 재속신부의 길을 택했는데 이것은 누구의 권유보다도 자신의
특별한 계획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가난을 강조하던 그 놀라운 말씀은
요한의 앞으로의 인생에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떠나는 날 저녁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
말했다.
이제 신학생으로서 늘 수단을 입을 테니 벌써 신부가 된 것처럼
기쁘구나.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아무도 모를 게다. 그러나 수단을
입었다고 해서 네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혹시라도 네 송소에 유혹이 생긱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제발 하느님을 욕되게 해 드리는 일은 없기 바란다.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그런 신부를 내 아들로 둘 수는 없다.
말가리다의 떨리는 엄숙한 음성은 요한의 마음 깊이 박혀 왔다. 요한은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았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네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너를 복되신 성모님께 바쳐 드렸다. 네가
공부를 시작하였을 때에도 나는 성모님께만 매달리라고 말해 왔다. 이제는
완전히 그분의 것이 되길 바란다. 어서 더 성숙하거라. 친구를 사귈
때에도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고르고, 신부가 되면 성모께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키에리에서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요한은 여름 방학 때마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요셉 형의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요한은 수확기에는 일을
거들고 틈틈이 목공 기술을 발휘해서 집안에 필요한 가구들을 만들었다.
1840년 마지막 시험의 어려운 관문도 무난히 통과한 요한은 1841년 6월
5일 드디어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 서품식은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어야 하는데 그 해에는 주교관 내의 소성당에서 조용히 거행되었다.
서품식을 집전할 주교가 정부의 미움을 받는 인물이어서 시내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하는 금족령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첫 미사를
토리노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성당에서 드렸다.
그 첫 미사 때 말가리다가 가지 못하는 사건이 생겼다. 뽕잎을 따다가
그만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부러진 나뭇가지에 이마를 크게 다친 것이다.
이 상처는 말가리다가 죽을 때까지 남게 되었다. 그래서 카스텔누오보에서
드리는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나 이번에는 말가리다도 고집을
부려 그 미사에는 겨우 참석했다.
아들의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말가리다는 기운도 없긴 했지만 그보다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제대 앞에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을 때 자꾸
쓰러지려고 해서 요셉이 그 튼튼한 팔로 받쳐 주어야 했다. 영성체 때는
온몸이 굳어 버리는 듯한 전율까지 느꼈다. 아들의 손에서 성체를
받아모시고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새 사제의 첫 강복을 받을 때 말가리다는 어머니의 특권으로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었다. 요한이 팔을 뻗쳐 두 손을 어머니 머리 위에
올려놓았을 때 말가리다는 또다시 온몸이 굳어져 버리는 듯한 감동에
빠졌다.
어머니,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하는 속삭임과 함께 요셉이 일으켜
세워 줘도 몸이 잘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잠시 후 말가리다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강복을 주러 제대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신부가 내 아들이란 말인가?
사람들에게 강복을 주고 있는 저 의젓한 신부가 줄타기를 하면서 마음을
졸이게 했던 그 꼬마란 말인가! 이 엄마가 첫영성체를 하도록 가르쳤던 그
아이란 말인가! 낯선 친척집으로 억지로 등을 떠밀어 보냈던 그 불쌍한
아이란 말인가! 이제 말가리다의 눈은 아들의 손에 머물렀다. 손에 힘이
남아 있는 한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강복을 줄 그 거룩한 손! 이
지상에서의 삶과 천국에서의 삶을 위해 수많은 이들을 도와 줄 그 힘찬
손을!
서품식이 끝나자 입이 빠른 이웃 사람들은 말가리다에게 이제 신부
아들을 두었으니 우리와는 신분이 달라지고 살 걱정도 없어졌다고 말들을
했다. 말가리다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그드이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그 기뻤던 순간들을 설명해 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아들은 그 마을 사람들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는 그 느낌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이웃 사람들에게
이제 내 소원이 다 이루어졌노라고, 지금 곧 죽는다 해도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노라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말가리다는 이
크나큰 기쁨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춤을 추고 싶기도 하고 큰
소리로 울고 싶기도 했다. 이제야말로 성모님께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며 한ㄴ 마니피캇을 노래하실 때의 기분이 어더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말가리다는 예언자 시므온의 노래야말로 지금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임을 느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읍니다.
모든 복잡한 일들이 다 끝난 후 드디어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지나간 행복하였던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웃었고,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 앞에서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화제가
미래로 돌려졌다. 말가리다는 대견하게 아들을 바라보며 다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드디어 네가 신부가 되어서 미사를 드리게 됐구나. 이제야말로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미사를 드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곧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이 사실을 빨리 닫지
못하겠지만 살아가면서 이 어미의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게다. 나는
네가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해 준다는 것을 믿는다. 내가 살았거나 죽었거나
다른 것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없구나. 지금부터 절대 내 걱정을 말아라.
구원해야 될 영혼들만 생각하거라.
요한은 신부로서 수입도 괜찮은 좋은 일자리 부탁을 꽤 받았고 다사노
신부는 신부대로 자기 교회에 요한을 묶어 두려고 애를 썼다. 요한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어머니의 충고를 따르고 싶어 자주 어머니의 도움을
청햇지만, 말가리다는 아들의 성소에 대해 일체 간섭을 않겠다는 약속대로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다. 어머니가 간섭을 했던 적은 꼭 한 번으로 어떤
부유한 제노바사람에게서 가정교사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였다. 그
당시 성직자가 그런 청탁을 받는 것은 보통이었다. 이웃 사람들은
말가리다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고, 일 년에 1,000 리라나 되는 큰 보수를
받게 되었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내 아들이 그런 부잣집에서 산다고요?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면서요?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요? 나도 그렇지만 내 아들 요셉도 제 땅이
있으니 다른 돈은 필요없어요. 그리고 내 아들 요한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말가리다는 그 부자들과 생활하고 있는 지도 신부들의 삶이 엉망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이나 부유층과 함께 생활하는 지도 신부들의 생활은 차차 문제로
드러나고 있었다. 사제들이 필요한 곳에 가서 일하지 못하고 부유층들의
이야기 상대나 되어 주고, 또 그 부유층들은 사제들과 친밀히 지내면서도
한쪽으로는 교회를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장본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태연히 자기들은 교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권을 반대하는
것뿐이라고 공언하고 있었다.
요한은 가장 신뢰하는 분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분은 다름
아닌 요셉 카파소 신부였다. 카파소 신부는 몇 년 전부터 말가리다가
성인이라고 하면서 존경하는 분이기도 했다. 카파소 신부는 요한에게
토리노에 있는 사제 양성소에 들어가서 몇 년 동안 공부하고 훈련을
쌓으라고 했다.
그 사제 양성소는 카파소 신부에 의해 창설된 것으로 나폴레옹 황제의
억지 때문에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교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충실하고 열성적인 성직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요한을 떠나 보낼
때 슬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들과의 이별이 처음이 아니건만 이번
작별은 더욱 생소하기만 하였다. 카파소 신부도 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이것은 요한의 특별한 자질은 다시 확인하게 해
준 것이다. 말가리다의 아들과의 이번 작별에서의 느낌은 아들이
훌륭하므로 멀리 떠나 보내야 한다는 그런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슬픔의
무게가 가볍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이 헤어짐은 옛날의 헤어짐과 얼마나 다른가? 그 전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공부하기가 어려워 낯선 이들에게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요한은 일생일대의 하느님의 과업을 시작하기 위해 어머니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말가리다도 요한 자신도
확실히는 모른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첫째, 하느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요, 둘째 젊은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아들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말가리다의 아픔을 달래 주는 것은
요한이 하게 될 어떤 일도 말가리다가 함꼐 하게 되리라는 확신이었다.
요한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말가리다의 기도와 희생과 어던 불가능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기 때문이었다.
이제 요한이 사제가 되어 새 삶을 시작하러 큰 도시로 떠나는 지금
말가리다는 달리기 선수가 운동장을 다 돌고 골인을 하고 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 것이었다. 하는님은 말가리다에게 세 아들을 주셨고,
그 아들들은 이제 제각기의 자리를 찾았다. 말가리다에게는 이제 감사
드리는 것만 남았다.
제2부
새 세계는 새 등불로
아들이 죽어가요!
말가리다 보스코는 이제 58세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편하게 쉬어
볼 틈도 없이 일을 해온 덕택으로 아직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건장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돌봐 줘야 할 손자들이 많아 더욱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키가 5피트 8인치나 되는 말가리다는 두꺼운 목양말에 그 당시
시골에서 누구나 신는 나무로 창을 댄 가죽 신발을 신고 아직도 많이
걸어다녀야 했다. 옷도 목면으로 된 것이 몇 벌 되는데 농장에서 심한
일을 해야 하므로 거기에 맞는 튼튼한 감에, 색깔도 별로 더러움을 타지
않는 것들이었다. 바깥에 나갈 때는 챙이 없이 턱 밑에서 끈으로 매게
되어 있는 모자를 쓰고 망토나 숄을 걸치면 그대로 외출복이 되어 주기도
했다.
말가리다의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굳세어 보이는 네모진 턱과 두텁고
선명한 입술, 이탈리아인 특유의 메부리코와, 눈은 세월 탓으로 조금
흐려졌지만 그 진한 갈색은 여전하였다. 조금 튀어나온 앞 이마에는
주름이 파였으며 머리도 회색으로 변했으나 본래 색깔인 적갈색 머리칼이
듬성듬성 보였다. 말가리다의 얼굴 전체에서는 악을 용인하지 않으면서도
늘 선을 찾고 격려하고자 애쓰는 사람의 얼굴이 보여주는 따듯함과
이해성이 풍겨 나왔다.
인생은 이제 말가리다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건강도
좋았고, 이웃 사람들을 도와 주려는 열의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용기에 마을 전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세 살부터 열네 살에 이르는 다섯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되었고, 여섯번째 아이가 1년 전에 죽는 슬픔도 겪었다. 안토니오는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기의 농장에서만 아니라 다른 농장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다. 이제는 안토니오도 철이 들어서 말가리다와도 화해를
했다. 말가리다의 인내와 변함 없는 따뜻함에 안토니오도 마을을 돌려
이제는 일만 생기면 어머니의 조언을 구하러 만나러 오곤 하였다.
안토니오의 우락부락하던 성격도 변하여서 동네에서 인기 있는 익살꾼으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요셉은 여전히 착한 성품에 열심히 일하며 이제는 생활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 지혜가 있어 마을 사람들의 의논 상대로
신망을 얻고 있엇다. 요셉은 1833년 마리아 칼로소라는 아가씨와 결혼하여
생후 육 개월 된 갓난 아이부터 열한 살에 이르는 아이 다서명을 둔
다복한 가장이 되었다. 말가리다는 이제 두 아들 내외와 10명의 손자들에
둘러싸인 행복한 할머니였다.
그러나 말가리다의 마음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요한이었다.
말가리다와 요한은 공간적인 거리에 상관 없이 함게 살고 있는 것과
같았다. 요한은 15마일이나 떨어진 토리노에서 오후 2시쯤 출발하여 저녁
8시까지 걸어 집에 도착하게 되는 어려운 길을 상관하지 않고 자주
어머니께 찾아왔다.
그런 이유로 요한은 늘 이웃들이 마음속에 살아 있었고, 특히 이웃
사람들은 요한이 한동네에서 살 때에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 준 좋은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거 참 이상하지. 한 여인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말하였다. 요한이
아직도 보좌신부인가 봐. 갈 곳 없는 여자 아이들을 모아 놓은 집에서
보좌신부 노릇만 하나 봐. 재능이 그렇게도 많은 양반이 ... 그보다 좋은
자리가 많을 텐데... 안 그래요?
마을 사람들은 재능이 많고 똑똑한 요한 신부가 마차도 없이 이렇게 먼
길을 오가는 가난한 모습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 요한
신부가 사제로서 위엄을 보이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두 형과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그랬다.
요한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고,
말가리다는 요한 신부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만을 하게 되도록만 바라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요한의 성공 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말가리다의
단 하나의 소원은 아들이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길을 꼭 찾으리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만 기도했다. 지금 요한은 바로 그 뜻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었다.
1846년 6월의 어느 날 모두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가리다를
찾는 사람이 있엇다. 토리노에서 온 심부름꾼은 다급하게 용건을 말했다.
보스코 신부님이 임종 중이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보고 싶으시면
지금 즉시 가셔야 합니다!
말가리다는 즉시 떠날 준비를 하였다. 말가리다는 그 바삐 서둘러야
하는 중에도 직접 만든 빵 한 덩이와 포도주 한 병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전에도 요한이 아플 때 그것들로 병을 낫게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는 요셉과 함께 마차에 올라 토리노로 향하였다. 마차가 달리고
있었으나 말가리다의 눈에는 거리 풍경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요한의 얼굴만이 크게 떠올라 올 뿐이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왔을 때 너무 엄청나서 좀
기다리라고 했었는데 어쩌다가 병이 났을까? 말가리다가 일을 시작하는
것을 기다리라고 한 것을 요한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성급함과 타협을 모르는 고집을 걱정해서였다. 그런데 그 원대한 계획을
시작도 못 해 보고 끝나야 하는 걸까? 그러나 지금 말가리다는 어떤 것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많은 시련을 겪어 온 그였고 그 시련의
의미를 알아들을 만큼 나이도 먹은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으로 잘
받아들일 때 그분은 이겨 낼 힘도 주시리라!
요한도 하느님의 뜻만을 이루려 해 왔으니, 그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어려우나 그 뜻대로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요한은 사제 양성소에서 공부하며 보낸 3년 동아 어머니를 찾아올때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잇는지, 마음에 든 생각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해 주어서 말가리다는 얼마나
기뻤던가! 요한은 하고 있는 공부에 만족했고, 특히 카파소 신부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것 같았다. 요한은 그 곳에서 교회와 정부의 중요한
인물들도 만난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눈물까지 흐를 정도로 감명
깊게 들은 이야기는 요한이 미사를 드리고 있을 때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소년을 친구로 만들어 버린 이야기였다. 요한은 그 소년의 도움으로 다른
소년들도 알게 되어 교리를 시작하였다.
사제 양성소에서 공부를 끝낸 뒤 요한은 탈선한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구호소 에 지도 신부로 들어가 그 봉급으로 의식주도 해결하고
소년들을 도와 주고 있는 중이었다.
요한은 구호소 일에서 시간이 나는 대로 이 불우한 소년들에게 힘을
쏟고 있었다. 이 소년들이야말로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누구나
다 귀찮아하는 불량아들이었다. 이 아이들 때문에 경찰과도 자주
부딪쳤다. 그들은 구제불능인 그 아이들에게 공연한 돈과 인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요한 신부와
함께 있자 불량인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질책과 요시찰 인물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동료 성직자들도 골치 아픈 그런 일을 자청하고 있는
요한 신부를 말리다 못해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집어 넣으려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그 때도 요한이 선수를 쳐서 대신 그 동료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버리자 그 다음부터는 귀찮게 간섭하는 이들이
없어졌다.
말가리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걱정보다는 오히려 재미있어 했다.
요한이 하는 일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
신부가 불량 소년들을 계속 돌보자 구호소 의 책임자는 요한을 해고시켜
버렸다.
이 모든 난관을 겪어 오던 요한이 지금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요한이
애초부터 생활 환경이 너무나 다른 토리노에 발을 들여 놓은 게
잘못이었을까? 요한에게는 평화롭고 조용한 고향 언덕이나 지키고 사는
것이 더 좋은 일이었을까?
말가리다와 요셉은 저녁이 다 되어 토리노에 도착하여 구호소로
찾아갔다. 구호소 주변에는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걱정스럽게 모여
있던 소년들이 두 사람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말가리다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소년들도, 친구요 은인인 보스코 신부의 모습을
조금이라고 가까이에서 보려고 따라 올라갔지만 환자를 안정시켜야 된다는
의사의 엄한 지시에 따라 건장한 청년 몇 명이 소년들을 막았다.
말가리다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달려가 아들을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안은 채 잠시 동안 말도 잊고 있었다. 요한은 움푹 패인 두 볼과
빛을 잃은 눈, 힘없이 늘어진 두 팔이 전연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몸이 건장했던 그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오랫 동안 고열에
시달리느라고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말가리다는 마음을 놓으면, 새로이 구호소 의 지도 신부로 온 요한 보렐
신부에게서 그 동안의 경과를 들었다. 보렐 신부는 보스코 신부를 잘
이해하는 친구로 어려울 때마다 늘 가까이서 도와 주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오라토리오(역주; 원래는
기도하는 곳이라는 뜻이나 요한 보스코가 세운 소년들의 집 의 명칭이
되었다)로 사용할 만한 집을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18개월 동안에
오라토리오는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지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거리를 찾아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누가 이런 아이들에게 일을
줍니까? 그러니 굶어 죽지 않게 먹여야 하고 옷을 줘야 하고 또 공부도
가르쳐야죠. 이런 아이들이 들어가 있는 교도소도 방문하면서
고백성사에다 교리를 가르치고... 아무리 보스코 신부가 건강하다 해도
어떻게 당해 내겠습니까? 일을 좀 덜어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지만,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주일 전에 지독한 폐렴에 걸렸는데 가망이 없어 보였어요. 지난
일요일에 병자성자까지 주었ㅇ읍니다. 아이드은 모여들어 떠드기만 할
뿐이어서 쫓아내 버리고 나이가 많은 아이들 몇을 불러 보스코 신부를
지키라고 한 겁니다. 이 아이들은 밤낮으로 교대하며 신부님을 지켰어요.
나도 아이들도 기도와 희생을 바치고 요한의 회복을 위해 금식까지
했답니다.
말가리다는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보렐
신부의 이야기가 열을 띠어 갔다.
보스코 신부에게서 또 놀란 건 하던 일 걱정도 없이 자신의 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 태도였어요. 죽게 되는 데오, 지금까지 그렇게
열성으로 해 오던 일에서 떠나야 하는 데도 아무 원망의 빛도 보이지 않는
거였읍니다. 제가 답답해서 흔들어 댔죠. 기도라도 하자구요. 그랬더니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이 말뿐이었읍니다. 그래서 다시 다그쳤죠.
낫게 해 달라고 기도라도 하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요한은
여전히 같은 말이었어요. 그래, 하지만 아 르을 생각해야지. 자네가
가고 없으면 아이들은 어떡하나?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가겠나? 아마 자네를
만나기 전처럼 돼 버려 길거리나 배회하면서 나쁜 짓을 찾아다니며
하겠지... 자네는 죽어서는 안돼. 이 아이들 때문에라도 살아야 해.
요한은 그제서야 마음을 움직이더군요! 제가 하는대로 따라서 기도를
했어요.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낫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
기도를 끝내면서 보스코 신부의 치유를 확신했읍니다. 그 때가 토요일
밤이었어요. 그 밤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지만 일요일 아침 의사가 와서
진찰해 보더니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했지요. 잘 먹으면서 쉬면 건강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했읍니다.
요한은 긴 회복기를 가져야 했다. 거동이 가능해지자 말가리다는 요한을
데리고 시골로 돌아왔다.
요한은 폐렴만 아니라 다리는 정맥류가 심해 몹시 부어 올랐고 그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또 심한 과로로 눈에도 염증이
생기는 등 그 건강햇던 몸이 다 부서진 상태였다. 지난친 과로에 서 오는
후유증이었다.
말가리다는 틈만 나면 아들의 손을 잡고 타일렀다.
제발 내 말을 들어라. 네 자신을 위해서도 먹는 것, 쉬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네가 얼마나 버텨 낼 것 같니? 건강하지 않으면 무슨 이을
할 수 있겠니?
알았어요, 어머니.
그러나 아들의 이 온순한 대답이 사실은 자기의 염려를 하나도 듣지
않았다는 표시임을 알았다. 어쩌겠는가? 아들의 이 고집을! 말가리다는 이
동안만이라도 많이 먹이고 편히 쉬도록 온갖 방법들을 다했다. 이웃
사람들도 보스코 신부를 위해 질 좋은 포도주와 고기들을 아끼지 않고
갖다 주었다.
말가리다에게는 요한의 이 정양 기간이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랫 동안 떨어져 있었던 아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기쁨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훌륭한 신부임을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기쁨은 더욱 컸다. 특히 요한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좋았다.
요한이 꽤 많은 시간을 베키에서 지내게 되자, 토리노의 소년들은 어서
돌아오라는 전갈을 노배더니 거의 한 나절이 걸리는 베키 마을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다. 토리노의 아이들은 이곳 아이들도 요한을 따르는 것을
보자 신부가 이 곳에 있게 될까 봐 걱정을 했다. 그래서 올 때마다 보스코
신부에게 다짐을 했다.
신부님이 토리노로 오시지 않으면 저희가 몽땅 베키 마을로 이사
오겠읍니다!
걱정하지 마라. 올 가을이 지나기 전에 돌아가게 될 거다.
정양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다 되어 오자 요한은 돌아갈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말가리다와 매일 비슷한 말씨름을 벌여야 했다.
이제 갈 때가 됐읍니다.
아직 멀었어. 더 쉬어야 한다.
이만큼 쉬었으면 됩니다. 이젠 아주 건강합니다. 어머니.
그건 네 생각이구... 형들도 의사도 본당 신부님도 나도 다 똑같은
생각인데 너는 지금 더 쉬지 않으면 안 돼. 너는 보기보단 건강이 안좋아.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그렇지만 어머니, 저는 가야 해요. 아이들이 저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아시잖아요?
그게 이유라면, 여기도 아이들이 있고 그들에게도 네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머니, 우리 협상하도록 합시다. 이제부터 일주일만 더 있을
게요.
요한의 고집을 어머니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고집 때문에 그는
죽을 때까지 폐기종으로 고생해야 했다.
말가리다는 요한이 신학교에 있을 때에도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
요한은 병 무에 여러 차례 집으로 돌아와 있곤 하였다. 한 번은 요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빵 한 덩이와 질 좋은 포도주를 한 병 가지고
가자 요한은 그것을 순식간에 다 먹어버린 후 곧 잠에 빠져 꼬박 40시간을
자고 나더니 아주 건강하게 일어난 적도 있었다. 두 번이나 벼락을 맞을
뻔한 일도 있었다. 요한이 자기 몸을 돌볼 줄 모르는 데서 생긴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몸을 잘 돌보라고 쉬지 않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기 몸에 대해서는 생각할 줄을 몰랐다.
요한의 고집으로 주교에게서 토리노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나
과중한 일은 절대 못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말가리다는 요한이 주교님의
명령을 잘 따르겠다고 언약은 하였으나 강론이나 고백성사, 교리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나 친지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토리노로 돌아간 요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반갑지 못한
일뿐이었다. 그리고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큰 일이었다. 구호소 의 지도
신부 직책도 떨어졌으므로 그 곳을 떠나 다른 셋집을 얻어야 했는데
환경도 좋지 않거니와 가정부 문제도 심각했다. 누군가 도와 줄 사람이 꼭
있어야 했는데 이런 곳에 누가 와 준단 말인가!
계속 고민 중에 있는데 본당 신부가 그럴 듯한 제안을 해 왔다.
자네 어머니를 모시면 어떤가? 그러면 서로가 편안하고 자네로서는
수호천사를 모시고 사는 셈이 될 테니 얼마나 좋은가?
본당 신부는 무릎을 치면서 좋은 의견이라고 내놓았지만 보스코 신부는
용기가 없었다. 58세이신 어머니의 연세도 연세지만 어떻게 베키 마을을
떠나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베키 마을은
어머니에게 있어 육신의 일부처럼 느끼는 곳이다. 그리고 효성스러운
아들들과 손자들, 존경하고 사랑해 주는 이웃에 둘러싸여 어머니는
그야말로 행복하시다. 그 행복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요한은 깊이 생각하며 기도했다. 하느님께 다른 방도를 주시도록
애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것만이 최선의 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방도라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요한은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는 성녀시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길을
함께 가자고 말씀드릴 수 있다. 이 일은 영혼구원을 위한 것이니 어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이실 것이 분명하다.
어느 날 요한은 어머니를 찾아가 ㅈ용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저와 함께 가실 생각 없으세요?
내가 너와 함께...
말가리다는 입을 딱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너무나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이 고향과 집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자기
분신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마을과 사람들... 죽기 전에는 이것들을
떠나리라고 꿈도 꿀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요한은 분명히
말했다. 나를 따라 나서지 않겠느냐고... 그 곳은 어디일까?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일까?
말가리다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깊은 충격을 받아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주님의 종이오니....
지금 말가리다의 귓전에 쟁쟁하게 울려 오는 것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치는 삼종기도의 한 구정이다. 이 기도를 삼종기도 때만 아니라 얼마나
자주 바쳤던가!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은 그대로 이울어지소소... 가
아닌가!
이 말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희생을 요구하실 때
성모님꼐서 응답하신 말씀이다. 말가리다도 지금 똑같은 요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말가리다는 고개를 쳐들어
아들을 잠시 동안 쳐다보았다.
요한 신부야, 내가 여기서 너의 형제들과 또 마을 사람들과 얼마나
기쁘게 살고 있는지 알지? 하지만 너를 따라가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마음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시다면 어머니, 11월 2일 위령의 날을 여기서 지내고 떠나기로
합시다.
말가리다는 토리노에 가서 우선 며칠 동안 굶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야채와 밀, 옥수수 조금을 미리 보냈다.
1846년 11월 3일 , 드디어 떠나는 날 말가리다는, 아마포 몇 마와
필요한 식기를 챙겨 들었고, 아들은 성무일도서와 미사도구 가방만
들었다.
이별은 요한에게도 가슴아팠다.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 사귄 소년들과
이별이 아쉬워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요한을 둘러싸고 자기 아들들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면서 왜 요한이 꼭 그 곳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말가리다의 이별의 발걸음은 더욱 무겁고 힘들었다. 그러나 안토니오와
요셉의 자주 찾아 뵙겠노라는 인사를 들으면서 말가리다는 꿋꿋하게
돌아섰다. 말가리다는 자신의 건강과 아들의 지혜에, 하느님의 선하심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며 그 곳을 떠났다.
두 사람은 마차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토리노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으면서 말가리다는 마음껏 눈물을 쏟았다.
식구들과 친지들, 정다운 고향을 떠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슬펐다.
더구나 지금 걸음을 시작한 미래는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말가리다는 아들의 하숙집이 있는 발도코의 주변 환경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베키 마을과는 전연 다른 아주 불결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말가리다는 눈물을 닦으면서
스스로를 타일렀다.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들을 얼마나 많이
넘어왔는가....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으니 이번 일도 잘 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아들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것이고,
평소에 소원이 아들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가리다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그의 운명도 함께 지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고
기쁨인가 하는 건만 생각하자고 마음을 돌렸다.
이렇게 눈물을 보여서 요한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얼마나 걱정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내가 도와 주어야 한다. 말가리다는
밝은 얼굴을 아들에게 돌리며 말했다. 우리가 함꼐 잘 부르던 노래를
부르자꾸나.
좋지요. 요한이 동의했다. 어머니의 명랑한 얼굴이 기뻐서 요한도
웃으면서 곧 피에몬테 지방민요를 큰소리로 부르기 시작했고, 말가리다도
따라 불렀다. 이렇게 해서 토리노로 향한 여정은 명랑해졌고, 중간 지점인
키에리의 친구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아서 두 사람은 지치지 않고
무사히 토리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가리다는 토리노에 가까워지면서 새로 기거할 집과 그 주변 환경이
얼마나 형편 없는 곳인지를 보기 시작했다. 요한이 자기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을 그 절박함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이런 곳에 누가 오려고
하겠는가?
요한이 불우한 소년들을 위해 오라토리오를 세운 발도코는 살벌한
들판에 집 몇 채와 나무들, 제멋대로 엉켜 있는 수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그 집들이란 것도 대부분이 하류 술집들이여서 팔에 여자들을 매달고
나오는 남자들이 두 여행자를 외면한 채 지나쳐 가는 것이 보였다. 길에서
마주치면 모든 이들이 인사를 하는 시골에서 온 말가리다로서는 이 일이
이사하게 보였다. 그들의 셋집으로 가기 위해서 들판을 가로질러야
했는데, 그 길로 들어서기 전에 요한은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궁금해 하는 말가리다에게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 길 옆이 죄수를 목매달아 사형시키던 곳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한동안 그 사형수들을 동반해 주는 일을 했었는데, 너무나 괴로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들은 말가리다도 정성스럽게 성호를 그었다.
저녁 어두움이 쓰레기 처리대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오물들을 가려
주고 있었으나 공기 중에 깔려 있는 악취만은 갈 곳이 없어 구토증을
일으켯다. 길 도중에서 요셉 볼라 신부를 만나서 두 사람은 놀랐다. 볼라
신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이 오면서 인사했다.
몹시 지쳐 보이시는데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베키에서 걸어서 오는 길이야. 보스코 신부가 대답했다.
거기서부터 걸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마차삯이 비까서 할 수 없었네.
볼라 신부는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차다가 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살 곳은 찾은 건가?
피나르디의 하숙집으로 정했어. 동료들이 마련해 놓은 거야.
하지만 돈도 없고, 지금 당장 일도 없고! 어떻게 살아갈 셈인가?
얼마 동안은 하느님의 섭리에 맡길 수밖에.
볼라 신부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다가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더니 시계를 꺼내 들었다.
자네 믿음에 감복했네. 자, 지금은 이것밖에 없네. 하지만 이것으로
며칠간은 살 수 있을 걸세. 난 시계 없이도 아침에 눈을 잘 뜨고 하루
일도 잘해 나갈 테니까 걱정일랑 말게. 그럼, 난 가보겠네.
볼라 신부는 어리둥절해서 서 있는 두 사람을 어둠 속에 남겨 두고 가
버렸다.
두 사람은 말 없이 새로 살 집을 향해 걸었다. 그들이 살림을 시작해야
할 곳은 하숙집의 한쪽 구석이었다. 바깥 계단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방과
침실이 두 개로 하나는 부엌 겸용이었다. 물론 가구 같은 것도 없었지만
마룻바닥과 창문은 깨끗이 닦여져 있었고, 벽도 하얗게 칠해져 있는 것이
이 집을 마련한 사람드리 정성을 쏟았다는 것이 보였다.
요한은 서쪽 방을, 말가리다는 아들이 필요하면서 쉽게 달려갈 수
있도록 바로 옆에 붙은 부엌 겸용 방을 쓰기로 했다. 나머지 방 두 개는
아이들을 위해 쓸 것이었다. 말가리다의 살림살이는 간단했다. 작은 침대
두 개, 걸상 두 개, 등받이가 있는 의자 두 개, 그리고 접시 몇 개였다.
상황이 별로 낙관적은 아니었으나 말가리다는 기가 죽거나 걱정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또 지금까지 베키의 집에서 얼마나 잘 해 왔는가! ... 이 곳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또 해 보면 될 것이다. 말가리다는 스산한 집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안 정리를 하고 식구들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
주는 걸로 난 너무 바빴는데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지내도 될 것 같구나.
그렇지 않니? 요한 신부야?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를 쳐다보고 미소만 지었다.
위협하는 세상
말가리다는 냉기를 느끼면서 눈을 떴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이
낯설어 이 곳이 어디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야 했다. 도시의 11월은 습기가
많고 공기가 몹시 싸늘했다. 도시의 11월은 습기가 많고 공기가 몹시
싸늘했다. 불기가 없는 방 안이라 말가리다는 추위에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식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커피 한 잔과 마른 빵 한 조각의
간단한 것이긴 했으나 정성껏 차리고는 식사를 하는 아들 곁에 앉아 여러
가지 의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한은 아침을 순식간에 끝내고는
모자를 머리에 앉고 재빨리 집을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러는 요한의 팔을 잡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잊었구나. 얼마 동안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고 하셨잖니?
마귀가 쉴 때 저도 쉴 겁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요한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말가리다는 저녁때가 되기까지 집안 정리를 다 하고 나니 무료해져서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주위 풍경이라든지 허름한 집에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런 거리에서 사니 요한이 병이 난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어젯밤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 지역은 분지로 되어 있는 11월의 회색 안개가 살벌하기
그지 없는 풍경 위로 우울하게 내려 앉고 있었다. 발도코 거리는 토리노
시내 북쪽 외곽지대에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암거래 상인들을
막기 위해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하숙집 건물은 동서향을 향한 2층 집으로, 북쪽에 긴 광이 있었다. 바깥
발코니를 통하여 남쪽에 있는 방으로 돌라가게 되었고, 집안에 있는
계단을 통하여서는 집안 내 어느 곳이든 다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현관은 남쪽에 있었고, 현관 바로 앞에 펌프가 하나 있어 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펌프에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다. 건물의 지붕 창 밑에는
빛과 공기가 별로 들어오지 않는 다락이 있었고, 작은 지하실은 광으로
이용되었다. 말가리다와 요한은 서쪽에 있는 방들을 사용하였다. 이
방들은 나중에 요한과 봉사자들이 쓰는 거실로 이용될 것이었다. 또 광도
오라토리오로 개조하여 놀고 기도하는 장소 로 변할 것이었다. 이 광의
지붕은 가파르게 경사가 져 바깥 지붕은 아이들이 껑충 뛰면 손이 닿을
정도로 낮았고, 방 안에서도 쉽게 천장을 만질 수 있었다.
말가리다가 발도코에 왔을 당시에는 두 사람이 기거할 방 네 개와 광과
거기에 딸려 있는 땅을 조금 빌렸으나 12월 1일 요한은 그 집 주인
판크라티우스 소아베 씨한테서 건물 전체를 빌릴 것이었다.
피나르디 하숙집은 5각형으로 들쑥날쑥한 모양의 목초지에, 여기저기
제멋대로 심겨져 있는 나무와 울퉁불퉁 되는 대로 쌓아 올린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동쪽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시내버스 운전사와 그
조수들 그리고 술꾼들과 도둑들 심지어는 살인범까지 각양각색의 사람이
사는 하숙집이 있었따. 이 사람들은 어느 날 말리려고 밖에내다넌 요한의
수단까지 훔쳐 가 버렸다. 서쪽으로도 비슷한 거리를 두고 마담 벨레차의
하숙집과, 지아르디니에라(꽃바구니)라는 시적인 이름의 선술집이 있어
바로 그 곳에서 음주, 도박 등의 시끄러운 일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피나르디 집의 셋방 여자들도 이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하숙집들이
오라토리오 분위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것이 분명했으나 그래도 하숙집
하나는 주말이면 비어 있어 괜찮았다. 문제는 마담 벨레차의 하숙이었다.
이 선술집은 주말이면 성업 중인 데다가 또 위치가 정면으로 오라토리오
성당을 굽어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성당에 있을 때 그 술집에서
하는 이야기와 내용까지 낱낱이 들을 수 있었고 빤히 바라보이기까지
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이 선술집은 그야말로 수라장이었다. 술을 마셔
대면서 서로 욕설을 퍼붓는 소리들이 그대로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보스코 신부는 이 소음 가운데서 도저히 강론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자, 잠깐 아이들에게 기다리라고 하고는 제의를 벗어 놓고 술집으로
내려갔다. 술집 안에는 50여 명이나 되는 술꾼들이 담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끼어 앉아 떠들고 있었다.
말가리다와 아이들은 보스코 신부의 이 갑작스러운 방문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 몰라 걱정했지만, 술집 지배인은 걸걸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들였다.
보스코 신부 만세! 토리노에서 제일 가는 신부가 우리집을 방문해 주신
기념으로 건배!
보스코 신부는 그들의 시끄러운 인사를 만류하며 그들 가운데서 가장
연장자인 듯싶은 남자를 일으켜 세워 이 곳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앞으로 20분 동안만 조용히 해 주시면 됩니다. 들어 주시겠지요?
나이들어 보이는 남자는 위엄 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소리를 질렀다.
신부님의 말씀 잘 들었지? 앞으로 20분간은 말뿐 아니라 움직이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알아듣겠나?
이 술집 때문에 받는 피해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술이 취한
육군 장교가 여자를 데리고 이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장교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것도 상관 없이 여자를 무릎에 앉히는 추태를 부렸다. 보스코
신부는 여자를 먼저 끌어 내고는 모욕을 당햇다면서 칼을 빼려는 장교의
손목을 꽉 잡았다. 보스코 신부의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안 장교는
기가 꺾였다.
보스코 신부는 잡힌 손목이 아파 쩔쩔매는 장교를 엄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당신은 장교답지 못한 행동을 했소. 그 어깨에 달린 계급장이 아무래도
어울리지않소...!
장교는 보스코 신부의 말의 의미를 알았다. 상관에게 이 사건이 보고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아챈 장교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과드립니다. 나의 행동이 온당치 못했음을 용서하십시오.
보스코 신부는 그 장교가 용서를 빌자 그러면 어서 가시오! 하고
장교를 보내 주었다.
그 곳에 온 지 며칠이 지나자 말가리다는 시내 북쪽에 있는 시장에
갔다가 쌓아 놓은 엄청난 곡식더미와 물건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풍성한 물건들 중에는 생전 처음 보는 것도 있엇다.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시장에서는 중고품가구를 길에 늘어놓고 파는 값싼
노점을 발견하여 말가리다는 싼 가격의 가구들을 사서 엉성하던 방안을
꾸밀 수 있어서 기뻤다. 그뿐만 아니라 시장에는 편지 대서인, 점장이들,
노상 가수들, 곡예사 등 재미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ㅁ라가리다는
시장에 가기를 즐겼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창 밖의 황폐한 풍경을 볼 때마다 베키 마을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그리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 곳에서
오랫동안 누렸던 포도 수확철과 기뻤던 나날들, 웃으며 달려들던 손자들의
정겨운 모습들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남쪽으로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 산들 아래로 햇빛 속에서 밝게 빛나던 평야, 북쪽에는 일년 내내 흰
눈에 덮인 위용을 자랑하는 알프스의 장관이 눈 앞에 가득해졌다. 그런데
지금 이 곳은 얼마나 대조적인 풍경인가?
눈 앞이 흐려지더니 어느새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발도코에 온
이후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슬픔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아무리 이웃이
험악한 사람들이라 해도, 밤이면 소리지르고 싸우고 총까지 쏘아 대는
소리를 들어도 별 상관 없이 지내왔다. 하숙집 건너편 방에 살고 있는
여인들도 어떤 직업의 여자들인지 금세 알게 되었지만 집안에서 만날때는
상냥한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그 여자들을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슬프고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말가리다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눈물을 닦았다.
요한이냐? 말가리다는 창가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네, 접니다. 오늘은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왔읍니다!
요한이 부엌으로 불쑥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토마라고 합니다. 요한은 열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년의 손을
끌어당겨 옆으로 세웠다.
다리 밑에서 만났어요. 춥고 배도 고픈데 갈 곳이 없다고 해서 우선
우리집에 가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지요. 다행히도 말을 잘 듣더군요.
요한이 소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토마야, 우리 어머니셔. 인사드려야지.
안ㄴ녕하세요. 토마가 머리를 꾸벅하며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인사했다.
형편 없이 더럽구나! 말가리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아들은 어머니를 잠깐 쏘아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얼굴과 손을 씻게 한 다음 식탁에 앉게 했다. 식사가 끝나자 보스코
신부는 돈을 몇 푼 주며 다음 일요일에 오라토리오로 오라고 일렀다.
아이를 보낸 다음 요한은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보스코 신부는 어머니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제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잘 아시지요...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고 계시지요? 어머니께서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이해하셔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예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제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머니도
나도 잘 알게 될 거예요.
요한은 아까 도ㅔ리고 온 소년처럼 이 거리에는 얼마나 불행한 아이들이
많은지 모른다고 했다. 집도 부모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그들은 남의 집
대문 계단이나 다리 밑이 잠자리이고 구걸한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씻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누구도 받아 주지 않고 냉대와 의심을 받는다. 경찰은 이들을 무조건
도둑이나 거지 취급이다. 그래서 몇 아이들은 경찰의 요시찰 명단에 올라
있기도 하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가리다는 아들의 어떤 마음, 어떤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아까 창 옆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상들이 단번에 멀리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난한
가운데서지만 얼마나 행복하게 사랑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 것인가도
알았다. 이 세상에는 버림받은 어린 생명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큰 층격기도 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도 느끼지 못한 채 세상의
악한 면만을 보며 그대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 그
소년에게 더럽다고 화를 낸 것을 얼마나 미안한가!
이 때의 토리노는 농촌의 단조로운 생활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로
넘치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의 과도기 현상의 하나로 도시로만 몰려드는
인력은 표화상태가 되어 일자리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사회의
급변은 사람들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눈을 돌린 요한은 그야말로 해야 할 일이 태산같았다.
그러나 요한은 해 낼 것이라는 자신이 넘쳤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회
근본을 뜯어 고치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차 있었다. 도시빈민가의
걸인 소년들로부터 그의 사업은 첫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경탄의 눈으로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들 요한은 어떤 때묻은 더러운 얼굴을 보아도 그 뒤에 숨은 힘차게
고동치는 하느님의 생명을,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의 값진 보석을, 하느님
신비의 반짝임을,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 하느님이
용서하시기를! - 그 가엾은 소년들을 인간 쓰레기 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한은 그 소년들 가운데에서 사제로서의
자신의 온 생애의 목적을 발견하고 자신의 온 존재를 다 쏟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그처럼이나 갈망했던 참 사제로서의 삶을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통해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발가리다는 이 아들이
자랑스럽기만 해서 어려움을 잠시 잊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 후 며칠 뒤에 요한은 또 걸인 소년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 아이는 먼저 왔던 소년과 비슷한 나이였지만 먼젓번
아이보다 고생을 덜한 듯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다. 마가리다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앞 이마를 덮고 있는 숱많은 밤색 고수
머리와 둥근 얼굴, 커다란 밝은 눈빛을 보는순간 요한의 어릴 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나타난 듯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요한은 답답한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말가리다는 이 소년이 그 옛난 럴레벌떡 뛰어와서 물을 달라고 하던 바로
너의 모습을 닮아서 놀랐노라는 설명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아니다. 이 아이가 아주 착해 보이는구나!
말가리다는 부드럽게 웃으며 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말가리다의
가슴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리었다. 이제는 모든 일이 더욱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 하는 일에 어떤 장애물이 있다 해도 의문을 던지지
않으리라! 지금 앞에 서 있는 이 아이와 다리 밑에서,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울고 있는 외롭고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리라! 이제부터는 그 어떤 아이도 모두 환영하리라!
하지만 말가리다는 이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인내와 힘든 일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았다. 첫째로, 소년 저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소중한 인간 존엄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 줘야 하는 것이다. 때묻은
얼굴을 씻겨 ㅈ고 해진 옷을 꿰매 주듯 불신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 두
누이 다시 빛나도록 영혼을 다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작업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아주 쉽겠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고통을 겪은
뒤라야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말가리다와 요한이 어던 희생과 사랑을
다 바쳐도 끝내는 물러서야 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가리다는낙관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에 대한 보상이 분명히
클 것이니 어떻게 뛰어들지 않으랴!
이제 말가리다의 하루 일과는 분주해졌다. 결코 넉넉할 수 없는 돈으로
집안을 꾸려 나가고, 또 아들이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데리고
오는 소년들에게 밥을 주고 옷을 마련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가 이 도시에 와서 또 침밀하게 된 곳은 역시 콘솔라타라는
유서 깊은 성모 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토리노 시에 어려움이 잇을 때마다
성모님께 간구하던 곳으로, 문 앞의 기둥 위에 모셔진 송모상은 전염병이
도시 전체를 강타했던 1834년경에 성모님이 도와 주셨음을 기념하게 위해
세운 것이라고 했다.
시장을 다니면서 익숙해진 거리에는 요한 신부를 정신병자로 몰아
입원시키려다 동료들이 오히려 갇혀 있었던 정신병원 건물이 있었고, 로마
군인들이 요새르 구축하였던 전쟁 유적지가 과거의 위풍당당했던 로마
대제국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물러간 후에 이 곳에
자리잡은 이탈리아 왕가드은 견고한 로마식 건축물에 호사를 극한 왕궁을
세우고 도로를 확장하여 도시는 화려한 번영을 부였었으나 산업혁명은 그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는 11세기부터 사보이
왕가를 위시하여 여러 소 군주들이 거쳐 가면서 남겨 놓은 흔적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잘 정리된 아름답고 넓은 도로와, 거리에
즐비한 수백 개의 영웅들의 동상이 이 도시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이 거리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거리의 매력 따위와는 거리가 먼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볼라 신부가 준 시계를 판 돈도 베키 고향집에서 갖고 온
음식도 금세 바닥이 나 버렸고, 보스코 신부의 수입은 변변치 못한 데다가
일정치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계속 음식과 옷이 필요했고, 방세와 또 낡은 이라
이곳저곳 계속 수리할 곳도 생겨 눈만 뜨면 돈 걱정을 해야 했다.
누구에게 손을 벌릴 곳도 없었다. 말가리다는 가난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다시 깊은 체험을 해야 했다. 가난이란, 생각 속에서는 눈 덮인 알프스
산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야 하는 가난은 굶주림과
추위를 견뎌 내야 하는 비장한 것이다. 믿음으로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믿음마저 없다면 그 가난은 그야말로 비참한 것이 돼 버린다.
가난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가난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역시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영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가난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굳게 일치한 두 사람은 과감한 결단을 내려 유산으로
받은 고향의 포도밭과 밭을 팔아 넘겼다. 그것마저 다 써 버리자
말가리다는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가져온 유서 깊은 함을 내놓았고
결혼예물과 남편의 유품마저 내놓았다.
그 물건들을 내놓으면서 말가리다는 처량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물건들이 돈으로 바뀌어지고 그 돈이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었을 때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 팔아 버릴
예물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도시 빈민가의 버림받은 사람들
토리노 시는 도시 계획이 잘된 깨끗한 곳으로 성 안 중심지에는
빈민가가 보이지 않으나 오히려 성 외곽지대에서 빈민가 라고 불릴 수
있는 거리가 있었다.
토리노 시는 처음 설계될 때에 이미 왕족들의 궁궐과 관청, 교회,
부유층과 고관들의 공관이나 사택들, 그들에게 필요한 부대시설들만
생각했다. 그러므로 부유층에 끼여들 수 없는 빈민들은 성의 변두리에서
모여 살게 되었고, 일거리와 기거할 곳을 찾아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더욱 외진 발도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토리노 시는 또한 자선의
도시 라고 불리울 만큼 사회복지 시설이 여러 곳 있었는데 제일 큰 시설이
코톨렝고와 바롤로의 집이었다.
요셉 베네딕도 코톨렝고(1786-1842, 1934년 시성됨) 성인이 창설한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 은 7천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단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코톨렝고는 은인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었지만, 돈 보스코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청하였다.
마르치오네스 줄리에테 갈레티 디 바를로 네 콜베르(라 바롤로)는
불란서의 정치가 콜베르의 직계 자손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게 될
위험을 피해 나폴레옹의 보호 아래 있는 코블렌트로 가서 살았다.
콜베르는 서른넷이 되던 해에 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콜베르는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다. 콜베르는 그 감옥 안에서
가공할 가난과 악덕과 부패가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를 본 것이다.
50세에 콜베르는 자녀도 없이 과부가 되어 유산을 많이 받게 되자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가난하고 불운한 사람들에게 바쳤다.
보스코 신부가 발도케에서 시작한 오라토리오라고 불리우는 작은
자선단체는 하루하루 더욱 인원이 늘어갔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때, 오라토리오의 문을 닫을 때가 되면 재울 자리가
없어 소년들을 모두 돌아가게 해야 했다. 소년들 중에는 돌아갈 집이 없어
길거리나, 공원,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자야 될 형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보스코 신부는 이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요한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고, 말가리다도 이 아들의
생각에 동의하였다.
우선 하숙집을 모두 전세를 낼 수 있을까 하여 집세를 집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8만 리라!
그 가격은 그들에게는 천문학적인 숫자인지라 하숙집을 빌린다는 생각은
버리고 분수에 맞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말가리다가 오라토리오에 발을 들여 놓은 그 다음 해가 되는 때,
어머니와 아들은 헛간을 치우고 침대가 열두 개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 말가리다는 타고난 솜씨를 발휘하여 모자라는
침대 메트리스는 헌 자루에 짚을 잔뜩 집어 넣어 홑이불을 씌워 군
용모포를 덮으니 그리 흉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할 일은 첫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요한이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여기 열두 제자가 왔어요! 오늘 저녁 잠자리가 필요한
손님들입니다. 먼저 먹을 것 좀 주시겠어요?
요한은 퍽 유쾌해 보였다. 오늘 저녁은 대단한 일을 해 낸 기분이에요.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담담했다. 어디서 이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몰고 왔니?
요한은 어머니에게 조금 전에 길에서 겪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환자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거리에는
이런 불량배들이 많았다. 그들의 일이란 패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주로
돌팔매질을 해 대며 싸웠지만 몹시 거칠기 때문에 경찰들도 이들을 피하는
형편이었다.
그 아이들이 심심했던지 시비를 걸어 오는 것이 분명했다. 이 낌새를
알아챈 요한은 얼른 그들에게 선수를 쳤다.
친구들,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때? 재미가 좋은가?
별 신통한 게 없어요. 두목인 듯한 소년이 머쓱하며 말을 받았다.
지금 우린 목이 마른데 돈이 한푼도 없어요. 어때요? 우리에게 한 잔
사 주실래요? 그러면 신부님을 고이 보내 드딜 텐데....
그거 좋지. 나도 사실은 뭔가 마시고 싶었거든....
야야! 모두 앞프스 선술집으로 가자! 소년들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두목이 소리쳤다. 바텐더, 잔을 가득히! 그리고는
술잔을 높이 들며 다시 외쳤다. 자, 건배! 토리노에서 제일 가는 보스코
신부님을 위하여!
고맙다, 얘들아! 신부와 아이들은 똑같이 술잔을 비웠다. 요한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자, 이젠 기분이 좋아졌나?
물론이죠, 신부님.
좋다! 요한도 힘차게 소리지르고는 이번에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만 하세요!.... 이 집 창문이라도 왕창 깨 벌릴까요? 아니면 누구
혼 좀 내줄까요?
아니다. 내 부탁은 너희들 말버릇 좀 고상하게 하자는 거다.
고상한 말씨라구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지금 내게 말하듯이 하면 된다. 그리고 너희들 이번 일요일에 우리
오라토리오에 초대한다. 알겠니?
아이들은 오라토리오라는 말에 좀 놀란 듯싶었으나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젠 집으로 돌아가자.
집이라구요? 지금 우리에게 집으로 가서 얌전히 자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사람은 누구나 잘 곳이 있게 마련이니까.
우리에겐 그런 곳이 없어요. 운이 좋으면 임시 숙소에서 돈 몇 푼내고
자 보는 거죠.
가끔은 마구간에 숨어 들어가기도 하고....
아니면 빈 집이 우리들의 잠자리죠.
어 든 집으로 갈 시간이다. 그러면 집이 있는 사람은 잘 가고... 갈
곳이 없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수 있다.
잠시 침묵이 훌렀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친절한 초대에 모두 놀란
듯하였다. 이윽고 여섯 명이 따라 나섰다.
손해볼 것이 없지...
말은 이랬지만 그들의 눈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요한은 그들을 데리고 오다가 침대가 12개니까 다시 여섯 아이를 길에서
더 끌고 왔다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해서 내가 생각했던 꿈의 실현이 시작되는 겁니다.
요한은 열띤 음성으로 이야기를 끝냈지만 말가리다는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젠 아들의 충동적인 행동에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지금은 어떻게 저 굶주린 젊은이들 열둘을 먹여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다고 저들을 몰아 낼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말가리다는 어떻게 해서든 음식을 만들어 냈다. 식사가 끝나자
요한은 그들을 공들여 만든 그 숙소로 데리고 가서 기도를 같이 하고,
이웃 사람들을 위해서 조용히 어서 자라고 하였다.
말가리다는 자신도 바보 같은 일을 한두 번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요한의
느닷 없는 결정이나 행동도 관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모한 처사였다. 소년들의 기숙사를
시작할 생각이람면 다루기 쉽게 한두어 명으로 시작해서 차츰 인원수를
늘려 나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길에서 싸움이나 일삼는 무지막지한
젊은이들을 그것도 열두 명이나 데리고 오다니!.... 아마 침대가
20개였다면 20명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말가리다와 요한은 열두 제자들 을 깨우러
헛간으로 갔다. 헛간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였다. 잠을 곤히
자는 모양이에요, 어머니. 요한이 어머니에게 속삭였다. 그리고는
헛간문을 소리나지 않게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너무 일찍 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 늦게 온 것이었다. 제자들 께선 홑이불과
베갯잇과 담요까지 몽땅 갖고 사라진 것이다! 잠시 동안 요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이윽고 두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요한은 고개를 숙인
채 문을 닫았다.
이젠 어쩌면 좋을까? 말가리다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하자 요한도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잠시 뒤에 요한은 다시 말했다.
새로 시작해야지요. 다음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말가리다는 네가 너무 무모하게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고 섰는 아들이 가여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첫 싶패를 경함한 지 얼마 안 되는 5월 어느 날 저녁, 비가 창문을
두들겨 대는 소리가 요란한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벽난로 앞에 앉아
있던 말가리다가 놀라서 문을 열자 소년 한 명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말가리다는 즉시 그 아이를 집아능로 들어오게 하여 난롯가에 옷을
말리도록 하면서 분명히 몇 끼니 굶었을 그 아이를 위해서 식탁을 차렸다.
그 소년이 밥을 다 먹자 말가리다는 그를 군인 망토로 둘둘 말다시피 하여
난롯가에 데려다 놓고 따뜻한 슬리퍼를 바라에 신겨 주엇다.
자, 이제는 네가 어디서 왔는지 얘기해 보렴.
그 아이는 알프스 산 근처에 있는 발세시아라는 마을에서 일을 찾으러
도시로 왔으나 돈이 다 떨어져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다음 질문을 하기 전에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두 사람은 옛날에 한 소년이 집이 없어서 낯선 사람들한테
가서 살았던 생각을 똑같이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시절을 두
사람은 잊고 싶어했지만 이미 기억 속에 박혀 버린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잘 거니? 말가리다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어느 집 모퉁이에서.... 여기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요한이 말하였다. 너를 믿을 수만 있다면 오늘밤 여기에 재워 주겠는데
말이다. 지난 번에 어떤 아이들을 재워 주었더니 글세 담요를 몽땅 갖고
도망갔지 뭐냐.
저는 한 번도 훔친 적이 없어요! 아이가 힘을 주어 말했다.
하루 저녁 재워 보내다. 그 다음은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자꾸나.
말가리다가 말하였다.
어디서 재우시려고요?
여기 부엌에.
그러면 솥하고 프라이팬을 다 갖고 가게요? 요한은 어머니에게만
들리게 말하며 웃었다.
내가 그러지 못하도록 하마.
두 사람은 벽돌 몇 장을 가져다가 그 위에 널빤지를 깔고 짚메트리스를
깐 다음 홑이불과 담요를 폈다. 이렇게 해서 오라토리오의 첫 번째 침대가
다시 만들어졌다.
자, 침대 속으로! 하지만 먼저 기도를 해야 한다. 말가리다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아는 기도가 없어요.
그럼 우릴 따라 하거라.
말가리다와 요한이 무릎을 꿇고 저녁 기도를 시작하자 소년도 무릎을
꿇고는 기도를 따라 하려고 애썼다. 말가리다는 소년이 잠들기 전에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이것이 오라토리오의 전통적인 밤
기도의 시초가 되었다. 잠자리를 준비하면서 그 날 일어난 일을 반성하는
형식의 기도였다. 말가리다는 부엌문을 잠그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뻔하였다. 그
다음날 부엌에 가 보니 그 소년은 아직도 자고 있었고, 부엌의 물건들도
그대로 있었다. 요한은 아침식사 후 그 소년을 데리고 가서 일자리를 찾아
주었고, 그 소년은 고향집에 돌아가기까지 그 겨울을 오라토리오에서 지낼
수 있었다.
곧 두 번째 아이가 오게 되었다. 요한이 시내에서 돌아오던 중 나무에
이마를 대고 울고 있는 소년이었다.
왜 울고 있닌?
어제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사람들이 엄마의 시체를 땅에 묻어야
한다고 가지고 가 버렸어요. 엄마와 단 둘이서만 살았는데 엄마는 나를
정말 사랑해 주셨어요. 소년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너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니?
아무도 없어요.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렸을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어요.
어젯밤엔 어디서 잤지?
우리집에서요. 하지만 집주인이 밀린 방세 대신에 가구들을 모두
가져갔고, 저보고는 집에 얼씬도 하지 말래요. 배도 고픈데 갈 곳이 없는
거예요.
나와 같이 가자.
누구세요?
응, 나를 그냥 친구라고만 불러.
요한은 소년을 데리고 와 어머니 앞에 세웠다.
어머니, 여기 주님께서 보내신 또 한 사람이 왔어요! 지난 번에 해
주신 것처럼 이 아이에게도 잘 해 주세요!
요한아. 어머니가 물었다. 주님이 저 아이에게는 무엇을 주시라던가?
우리 먹는 대로 주시면 됩니다. 어쨌든 배만 부르게 해 주세요.
천연스럽게 말하는 요한을 말가리다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
집에는 넉넉한 양식이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오라토리오에 자리잡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가자
말가리다는 더욱 바빠졌다. 말가리다는 이제 세 아들에게 해 왔던 교육을
이 많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베풀기 시작하였다. 오라토리오에 온
아이들은 오랫 동안 머물곤 했기 때문에 말가리다의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라토리오가 점점 커지자 말가리다의 일과는 양식을 마련한는
일만으로도 바빠졌다. 아침식사는 요한이 아이들에게 몇 푼씩 나누어
주어서 일터에 가는 길에 사 먹도록 하였기에 문제가 안 되었지만
점심식사와 저녁식사가 문제였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돌아올 대쯤이면 어떻게 해서든지 쌀이나 감자, 국수, 콩, 밤,
옥수수 가루 등 국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다 집어 넣은 뜨끈뜨끈한 국을
준비하여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도록 했다. 특별한 날이면 국 외에 치즈나
소시지가 곁들여져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저녁밥도 주로 잡탕국 한
사발이었다.
초창기에 오라토리오의 요리는 이렇듯 간단한 것이었기에 식사 준비
문에 거들 사람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보스코 신부를 만나고 나서는 길 거리를
방황하거나 굶주리지 않게 되고 외롭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천대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가 요한에게 해 주는 식사도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말가리다가
주 초에 고기와 달걀과 야채를 섞어 요리를 만들어 두면 요한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 먹는 것이었다. 오래 되어서 좀 상했다 싶으면 그 때에도
요한은 스스로 알아서 그 음식에다 기름이나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려서
먹었다. 물론 말가리다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좋아할 리가 없어서 건강을
생각해서 적적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지만 너무나 일이 많은
요한도 말가리다도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요한은 이렇게
간단한 식사인데도 걸르고 지나가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래서 음식이
상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인데,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밤이 늦어 집에 들어오더니 요한이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걱정을 했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플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요한을 바라보던
말가리다가 물었다.
점심을 먹기나 했니?
아, 맞아요. 점심을 먹는 것을 잊은 거예요.
요한은 점심을 먹는 것을 잊는 것만 아니라 맛에 대해서도 너무나
무감각했다. 어느 날은 늦게까지 성당에 남아 고백성사를 주느라고 모두다
잠자리에 든 후에 집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그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부엌에 가서 남겨 놓은 음식이 없나 해서 둘러보다가 부뚜막 옆에 놓아 둔
냄비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먹어 치웠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되자
요한은 지잔 밤에 먹은 것이 빨래 때문에 쑤어 둔 밀가루풀이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더 걱정인 것은 아무것이나 먹거나 혹은 먹은 것도 잊어버리는
식사도 문제이지만 도무지 쉴 줄을 모르고 일에만 매달리는 성격이었다.
요한은 소년들을 돌보는 일만 아니라 책을 몇 권이나 써 냈고 또 계속
저술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한 장소와 때가 필요했기에 주로
밤시간을 이용해서 친구집으로 가 버리거나 했는데, 예정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일주일에 하루는 완전히 밤을 새우게 되었다. 그러니 늘 졸린
상태여서 성당에서 또 식탁에서조차 졸곤 하였다. 이러한 아들옆에서
말가리다는 늘 마음을 졸여야 했으나 어떻게 도와 줄 방법이 없었다.
말가리다는 또한 아이들의 식사와 빨래, 집안 정리로 언제나 과로
상태엿다. 보스코 신부는 자신이 애써 가꾸고 있는 오라토리오의 분위기가
깨뜨려질까 봐 외부의 도움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몇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집안 일은 끝이 없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말가리다의 고된 하루는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끝내고 각 방에 모여 앉아 공부를 할 때에도 뒷 정리에 바빴다. 아이들
공부가 끝나 자러 간 뒤에도 말가리다는 옷이 한 벌뿐인 아이들이 다음날
아침에 깨끗이 입고 가게 하기 위해 옷가지를 집어 와 손을 봐야 했다.
오라토리오에서 기숙하는 소년들의 평균 연령은 18세와 20세 사이였으나
학교 기숙사 제도가 도입된 후로는 12세와 15세 정도로 낮아졌다.
기숙사의 방들은 재래식을 면할 수 없었다. 여러 아이들이 함께 살기에는
불편한 것이 많았지만 소년들 스스로 잘 참아 나가면서 필요한 것을
만들어 냈다. 말가리다와 보스코 신부가 자신들을 위해서 구걸행각까지
하며 집안을 꾸며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나름대로 보답하려고
열심히 일했다.
봄과 여름에는 그래도 살기가 괜찮았다. 하지만 겨울이 닥치면 이 볼품
없는 집안은 그야말로 호된 고난의 연속이었다. 집안 전체를 덥힐 수가
없었기 때문에 두터운 옷도 없는 아이들은 성당이고 교실이고 어디서든지
추위에 떨면서 살아야 했다. 보스코 신부가 겨우 생각해 낸 것은
육군부대에 부탁하여 군인들이 입다 버린 군인 망토를 얻어 오는
일이었다. 큰 망토를 두른 모양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아이들은
동상에 걸리는 것을 면하며 추운 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말가리다는 이발사 노릇까지 해야 했다. 기술이 없는 말가리다로서는
하면 된다는 뚝심뿐었는데 어느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라토리오에 사는 동안 말가리다 엄마는 제 머리를 깍아 주시곤
하였는데, 문제는 머리 왼쪽이 언제나 층계처럼 돼 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불평을 하면 엄마는 그 층계를 타고 천국에로 올라가거라
하면서 끝내 버리시는 겁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말가리다 엄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우리가 삶의 역경을 잘 이겨 내면 우리 영혼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었지요.
말가리다 엄마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사랑이 넘치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읍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좋아했고 그분을 따랐지요. 그분은
그 당시 우리의 희망, 우리의 모든 것이었읍니다. 그분은 성녀처럼
사셨읍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았던 어떤 소년의 이야기였다.
어머니들의 여왕
편한 삶은 게으름뱅이를 만든다. 말가리다가 입버릇처럼 되뇌인
말이다.
말가리다는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인간의
지혜가 번득이는 옛 격언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아무리 해 내도 끝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헌옷을 꿰메고 있노라면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고개를 떨구고 말가리다의 의자 옆에 서 있곤 하였다.
그러면 말가리다는 차분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착한
애였는데 어떻게 된 거냐? 요즘에는 기도를 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이렇게 말하는 말가리다는 으레 격언 하나를 들어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의
훈계를 끝내는 것이었다. 죄는 원하는 자가 저지르고 상은 노력하는 자가
받는다.
그 아이에 뒤이어 잘못을 저지른 또 다른 아이가 들어왔다. 다 그렇듯이
그 아이도 숨가쁘게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래, 그래. 네 말대로 용서해 주마. 그런데 고백성사는 보았겠지?
어제는 시간이 없었어요. 고백성사를 보지 않은 아이는 얼른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토요일에?
마음 준비가 안 되어서 못 봤어요.
그렇겠지. 이유야 얼마든지 있지. 얘야,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단다.
그런데 하느님은 핑계 대고 있는 네 속마음을 다 아신다. 하느님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들어오는 아이는 울고 있었다. 어떤 아이가 때렸기 때문이었다.
말가리다는 포도 한 송이를 주어 그 아이의 슬픔을 달래 주었다.
다음부터는 무서운 아이들이 있는 길로는 다니지 말아라.
말가리다의 이런 훈계가 다 주효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는 잘 듣는
척하면서도 돌아서서는 비웃고, 자기의 행실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단순한 말가리다는 아이들을 의심할 줄을
몰랐다. 아이들이 고분고분한 것이 기뻐서 요한에게 가끔 자랑까지 하곤
했다. 아이들이 거칠어 보여도 속마음은 다 착하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뿐이다.
요한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약삭빠른 아이들이 뒤돌아서서는 또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어머니에게 그것을 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와 요한은 아이들에게 절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말가리다는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어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쏟았다.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보스코 신부가 피땀 흘려 네게 앞길을 터
주려고 하는데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구나. 천성적으로 인정이
많은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려
주면서 스스로 깨달아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아주 부끄러운 짓을 했기 때문에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없게 된 아이가
밥을 굶은 채 부엌 한구석에 서 있었다. 그 처량하고 배고픈 모습을 보자
말가리다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얼른 따로 밥을 주면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일렀다. 요한이 세운 규칙을 어긴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터가 멀어서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게 되는 아이가 있었다. 말가리다는
아무리 피곤해도 이 아이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꼭 밥을 먹여서 재우곤
했다.
많은 아이들이 똑같이 나누어 먹기 위해서 과자를 만들거나 할 때에는
누구도 들어오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말가리다에게
다가와 과자를 꼭 하나만 달라고 조르곤 했다. 거절을 못 하는 말가리다는
꼭 비밀로 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곤 하지만 드디어는 아이들이 몰려와
과자를 달라는 아우성을 들어야 하는 지경이 되곤 했다. 이 때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가리다의 평소의 훈계를 이용해서 아이들은
변명을 해 댔고, 말가리다도 그런 이유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했으므로
소동은 무마되곤 했다.
말가리다는 나이를 먹은 큰 아이들에게 그 나이게 맞게 존중해 주면서도
어린 아이들보다 책임이 더 무겁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들 중의
하나가 사제를 지망하여 신학교에 들어가자 말가리다의 태도는 더
신중해졌고, 그 아이에 대해서는 꾸중이나 충고를 삼갔다. 자기보다는
아들이 더 잘 지도해 줄 것을 믿었고, 그 아들의 지도를 자신이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대문잉었다.
이런 가운데에서 말가리다의 하루하루는 더 편해지지는 못했다. 요한은
집 안에 자리가 있는지, 또 먹을 것이 있는지 하는 것은 상관 없이
거리에서 눈에 띄는 대로 불쌍한 소년을 데리고 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가리다는 아들의 이러한 무모함 앞에서 화를 내곤 하지만 그
아이의 딱한 이야기를 들으면 화는 눈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그 아이를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병이 나거나 슬퍼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말가리다는 더
정성을 쏟아 그 아이들을 돌보아 주곤 했다. 말가리다는 어떤 이유에서
아이들이 이 집에 들어오게 됐건 아이들 모두를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품어
주었다. 그래서 아픔 아이들이 병원에라도 실려 가고 집을 떠나게 되면
그녀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슬픔이었다.
요한의 사업이 점점 커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부터 그를 도와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시당국에 원조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내었다.
시당국은 보스코 신부의 사업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조사위원을
파견하였다.
그런 연유로 시의원들에게 오라토리오의 구석구석을 다 구경시킨 보스코
신부는 마지막으로 부엌으로 안내하였다. 말가리다는 혼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위원 중의 한 사람인 프레드릭 스클로피스 백작은
말가리다를 가정부로 생각하며 이름을 물었다. 보스코 신부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분은 저의 어머니십니다. 그리고 이곳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시기도
합니다.
아, 어머님이 요리까지 하시는군요. 백작의 감탄한 듯한 말에
말가리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천국에 있을 집을 마련하려면 어떤 것이든 다 할 줄 알아야 한다우.
아이들에게 주는 음식은 몇 가집니까?
몇 가지라구? 우리 형편에는 빵과 국만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라오.
그러면 보스코 신부에겐 어떤 음식을 해 줍니까?
더 간단합니다. 빵과 수프를 다 함께 넣어서 주면 되니까요.
그건 너무한데요! 아마 특별 요리인가 보군요.
그런지도 모르죠. 내 아들 신부는 그것을 목요일까지 계속 먹는다우.
목요일까집니까? 그럼 다른 날은 다른 것이 있습니까?
금요일과 토용일은 단식하는 날이라우.
아...아, 금식을 하는군요. 뚱뚱한 백작이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누가 식사 준비를 도와 줍니까? 다른 위원이 물었다.
있긴 하지만 몹시 바빠서 별 도움이 안 된다우.
그게 누굽니까 실례지만...
저기 있다우. 말가리다는 대답하면서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국자로
아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먼저 웃기 시작해서 다른 위원들도 덩달아
웃엇다.
축하합니다! 보스코 신부님! 스클로피스 백작이 탄성을 질렀다.
신부님은 교육자요, 자각요, 또 요리사시군요. 이제 잘 알았읍니다.
그때 한 소년이 부엌으로 뛰어들어 왔다가 놀라 서 돌아서는 것을
백작이 잘 되었다는 듯 불러 세웠다.
어디 출신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묻다가 부모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소년은 두려움에 움츠러들면서도 분명하게 대답했다.
대개의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럼 어머니는? 백작은 누구를 책망하는 듯한 못마땅한 어조엿다.
그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도 돌아가셨니? 재촉하는 듯한 질문에
어머니는 감옥에 계셔요! 소년은 이 말을 하곤 곧 울기 시작하였다.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였다.
미안하구나, 얘야. 그러면 어디서 먹고 자니?
지금까지 주인집에서 얻어 먹으며 지냈는데 보스코 신부님이
오늘부터는 여기에서 재워 주신대요.... 소년은 눈물을 닦으며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스클로피스는 놀라면서 보스코 신부를 바라보았다. 오라토리오말고도
소년들을 재울 수 있는 집까지 있소?
아직 집이 없읍니다. 지금 아이들 30명이 이 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형편이라 원조를 청하고 있는 겁니다.
내 이름과 내 동료들의 이름으로 여기에 온 보람이 있다는 것을
신부님께 알리고 싶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시의원으로서
신부님의 사업과 그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오. 부디 성공하시길
빌겠소! 스클로피스 백작은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 효과도 즉시
나타나 오라토리오는 필요한 보조금도 받게 되었다.
말가리다가 2년간 오라토리오에서 보낸 삶은 베키에서 50여년간 보낸
삶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말가리다에게 맞지 않은 삶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말가리다의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은 오라토리오에서 살게 된
아이들을 다스리는 데는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말가리다는 날카롭고
기지에 찬, 지극히 현실적이고 거친 방법까지도 사용할 줄을 알았다.
그렇다고 항상 잘 되어 간 것은 아니다. 예의범절과는 거리가 먼 제멋대로
자란 아이들 때문에 수없이 속을 썩어야 했다. 더럽고 품행도 좋지 않은
아이들의 일거리를 찾아 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말가리다는 그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어떤 잘못도 용서해 주며 인내해 주었다.
그런데 어떤 날 너무 지독한 일이 벌어졌다. 1848년 카를로 알베르토
왕이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였을 때 피에몬테 지역의 모든 주민도
왕의 편을 들어 토리노는 전쟁의 중심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이들이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을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군인놀이를 시켰다.
놀이라고 하지만 자원 봉사자 중에 실전을 경험했던 사람이 있어 정규
군인들과 같은 체제로 조직을 짜 실제와 비슷한 전쟁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체력단련까지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아이들도 신이
나서 바깥 세상의 전쟁 같은 것은 잊어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 훈련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말가리다였다.
말가리다에겐 이 곳에서 가장 아끼는 채소밭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서도
말가리다는 정성을 쏟아 많은 식구들이 자급자족할 채소밭을 일구어
내었고 그것은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이 밭이 글자 그대로 쑥밭이 돼 버린 것이었다. 흥분한 가짜
병정들의 난폭한 발밑에서 값비싼 채소들이 모두 밟혀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이 사건 앞아ㅔ서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한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용서를 빌며 위로를 하려 했지만
말가리다는 막 흘러 내리는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만으로 최대의 인내를 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좋은 시절 나쁜 시절
매년 요한은 베키에서 며칠간 머무르곤 하였는데, 요한은 그 곳에
머물면서 미사 때문에 카프릴리오나 모리알도로 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베키에다 작은 성당을 하나 말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허락을 받아 요셉 형을 설득하여 집아래층에
있는 방 하나를 성당으로 만들고 출입구를 뒤쪽으로 내었다. 이렇게 해서
작은 성당이 완공되었고, 그 성당은 요한이 성모님께 드리는 첫 번째
선물이 되었다. 요한은 성당의 이름도 로사리오 성모 라고 했다.
토리노의 소년들에게 그 성당을 보여 주고 싶어 소풍 계획을 세웠다.
말가리다도 그 소풍에 따라 나서기로 했다. 겉으로는 별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말가리다는 아이들보다 더 들떴다. 아이들에게는 신앙심을 더해
주면서 또 즐겁게도 해 주자는 소풍길이었지만, 말가리다에게는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가는 소풍이었다. 2년 만에 두 아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열한 명의 손자 손녀들을 만나러 가는 베키 행이었다. 비록 이제 나이가
육십이 되었지만 걸어서 가야 할 15마링ㄹ의 길도 가깝게만 보였다.
소풍을 떠나는 날 아침 말가리다는 바구니를 옆에 끼고 행복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소년들을 따라 나섰다. 발도코에 온 이래 시골길을 걷는 것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도시의 경계선을 넘어 서면서 일행의 맨 앞으로
나선 말가리다는 아이들에게 로사리오 기도를 하며 걷자고 제안했다.
말가리다는 삼종기도와 로사리오 기도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고
사랑했다. 삼종기도는 요한이 꿈에 본 여인을 성모님으로 알아보게끔
만들어 준 기도이다.
말가리다가 로사리오 기도를 얼마나 사랑했고, 아이들에게 그 신심을
깊이 심어 주었는지는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 당시 정치계에서 꽤 영향력이 있던 사람인 마르퀴스가 보스코 신부의
오라토리오를 적극 돕고 싶어했다. 물질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던
마르퀴스는 오라토리오를 방문하여 보스코 신부의 미래의 사업 설계를
듣고 많은 제안을 주곤 했다. 그런데 이 선량한 정치가는 로사리오 기도
따위는 현대 신심에는 맞지 않는 구식 기도이며, 꼭 같은 반복이 되풀이
되는 그런 기도는 필요 없다는 지론으로 보스코 신부를 설득시키려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대단한 설전이 벌어졌고, 드디어 보스코 신부는
결론을 내렸다. 내게는 로사리오 기도가 내 사업의 기반입니다. 그 기도
없이는 이 사업은 무너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과의 우정과
로사리오 기도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 기도를 택할
수 밖에 없읍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벌덕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난 마르퀴스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물질적인 원조가 끊어진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보스코
신부의 사업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로사리오 기도를 끝낸 말가리다와 요한은 이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걸어가던 길에는 어느새 도시의 소음과 특이한 악취가
사라졌다. 그 대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농부들은 마무리
추수를 하고 있었고,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소란스러웠다. 말가리다는 마치
그 소리들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래고 새로 말린 향긋한 건초 냄새와,
사과냄새, 포도주를 짜고 있는 냄새들이 맑고 상큼한 10월의 공기를 타고
풍겨왔다. 말가리다는 머리를 젖히고 마치 가슴속에 그 신선한 공기를
영원히 저장해 두려는 듯 마음껏 들여 마셨다.
일행은 길가에 앉아 점심을 먹느라고 한 번 쉬었다. 키에리에 도착하자
요한의 친구들이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키에리는 도 다른 추억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신학교를 다니던 요한을 위해서 무거운 밀가루와
음식을 싸들고 수없이 키에리를 오갔던 이 곳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일이 힘들기는 하였지만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기쁘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
때를 돌이켜보는 말가리다는 요한을 위해서 한 일들이 지금의 요한을
본다면 너무도 작은 일에 불과하다고 깨닫는 것이었다!
키에리를 떠나 언덕을 몇 개씩 넘어야 하니 지친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키가 보이기 시작하니 아이들은 새롭게 생기를 얻어
힘차게 걸었다. 앞장선 아이들이 뛰어가는 맞은편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요셉의 맏아들 프란치스코와 안토니오의 맏달
필로메나였다. 두 아이는 달려와 할머니를 얼싸안고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가리다는 그녀를 부툭해 주는 손자 손녀의 팔을 가볍게
뿌리쳤다.
난 아직 늙지 않았다.
언덕 꼭대기에 요셉과 안토니오의 가족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기를
안은 며느리 두 사람과 건장한 두 아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고 서 있는
아홉 명의 손자 손녀들이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눌 때 가장
말가리다의 마음을 감격스럽게 해 준 것은 안토니오의 인사였다.
말가리다와 안토니오는 서로 얼싸안고 오랫 동안 감격스러워했다. 그
다음은 손자 손녀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낯이 익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요셉은 따라간 소년들이 머물 곳과 먹을 것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했다.
요셉은 혼자 힘으로 그들을 맞아들이기가 힘들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 했다. 신학생 동생을 위해서 늘 도움을 구하러 다녔던 요셉이
이번에는 동생이 돌보는 소년들을 위해서 또 기꺼이 도움을 청하러
다녔다.
이렇게 첫 시작이 된 베키 마을까지의 순례는 보스코 신부의
손년들에게는 연중에 꼭 치러야 할 대대적인 행사가 되었다. 행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다양한 계획으로 이 행사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기쁨으로 넘치는 소년들의 모습은 그 당시 교회를 억누르고 있던
얀세니즘(역주: 17세기 중엽 불란서의 코르넬리우스 얀센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여 인간은 본래부터 죄에 물들었으며, 그리스도는 뽑힌
자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주장하였던 사상으로 극단적 금욕주의를
강조하였다)에 기를 못 펴고 고생하던 사람들에게 종교에도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더 특기할 만한 일은, 그 행사
중에 방문한 여러 본당에서 요한은 좋은 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때 요한은 도미니코 사비오(1954년 시성)와 요한
칼리에로(나중에 추기경이 됨)를 만났다. 아마도 말가리다가 어린
사비오의 비범한 자질을 먼저 발견하여 보스코 신부에게 소개해 주었을
것이다. 칼리에로는 보스코 신부가 사다 준 아코디언 연습에 너무
열중하다가 빗자루를 든 말가리다로부터 그만두라고 호통을 들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칼리에로는 나중에 음악인으로도 유명해졌다!
베키의 순례는 말가리다에게 두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손자 손녀들
그리고 사랑하던 이웃 사람들과의 재회만 아니라 그리운 나의 집 이라
부르는 유서 깊은 집을 방문해 보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 다음해 1849년에도 말가리다는 베키에의 순례 행렬에 끼었었는데
이때 하찮게 보이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안토니오가 갑자기 죽어, 그의
마지막 임종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안토니오는 마흔한 살에 부인과 다섯
자녀를 두고 죽었다.
말가리다는 안토니오가 난폭하던 성격이 변화되어 그토록 괴롭히던
요한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마을에서도 존경받는 인물로 살았던 것에
감사드렸다. 이러한 결과도, 말가리다의 인내심과 이해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안토니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해서 얻은 것이다.
말가리다가 오라토리오로 이사한 후 안토니오는 자주 찾아왔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의논하느라고 오래 머물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말가리다를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안토니오가 계모 라는 말 대신 가장 아름다운 칭호인
어머니 라는 호칭을 썼을 때였다.
이러한 생각들이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에 잠긴 말가리다의 마음에
많은 위로를 주었다.
말가리다에게는 또 어려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 유명해진 보스코
신부는 다른 여러 지방에도 오라토리오를 열어 달라는 간절한 청원에 그의
생애 중 가장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때를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외에도 마감날에 쫓기면서 책을 써 내야 하는 보스코 신부는 말없이 친구
요셉 브로시오의 집이나 사제 양성소로 잠적해 버리는 일도 많았다. 이
때문에 말가리다는 그야말로 과중한 짐을 혼자 져야만 했다.
말가리다는 50여 명이나 되는 기숙생들 외에도 매일 오라토리오를
들락거리는 오륙백 명의 소년들까지도 모두 돌보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렇게 소년들이 많아지자 그 중에는 규율과는 거리가 멀고 고마워 할
줄도 모르는 그런 아이들이 끼어 있었다. 그래서 말가리다가 힘들게
얻어온 빵이나 옷들이 마당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가 하면 물건이
없어지고, 서로 속이고, 싸우고 더욱이 아들의 사업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요한이 이러한 일들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말가리다가 어떤 아이가 월급을 타 가지고
와서 내놓지 않고 감춘 것을 알게 되어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세요 라는 대답뿐이었다. 그 아이가 거짓말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다시는 그 아이가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겹치자 말가리다도 더 참을 수가 없어졌다. 어떤 날 나도
더 이상 이일을 하지 못하겠다. 는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 이
아이들은 모두 구제 불능이야! 너는 계속 나보고 참으라고만 하지만...
나도 이제 더 참을 수가 없구나. 도대체 이 아이들은 은혜도 모르고, 아니
사리판단도 못하는 것이 분명해. 옷을 빨아 줘도 금방 더럽히고 새 것을
사 주면 무슨 소용이냐? 금세 다 못 쓰게 만드는 걸... 너는 계속
참으라지만 요한아, 이제 도를 지나친 것 같다. 난 아무래도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 가서 남은 여생을 마음 편히 살고 싶구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말가리다는 이야기를 끝내고는 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듯이 앞치마를 벗어서는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요한은 잠시 놀라고 당황했으나 어머니에게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육체적으로
지친 것이다. 요한은 오랫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그 아이들은 은혜도 모르고 받으려고만
하고...도대체 자신들을 위해서 애쓰는 어머니에게 감사할 줄도 몰라요.
잘못된 아이들이지요. 나쁜 아이들이예요. 그리고...그리고.... 요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힘들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이들은 천사 같지가
않아요. 그래요. 그런데 천사 같이 착하다면 왜 오라토리오에 와야
합니까? 그리고 제가, 아니 어머니까지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버릇이 없고 은혜도 모르고 막된 아이들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한 거지요. 그 아이들의 영혼이 구원받도록 우리가 도와
주어야 하는 거지요. 어머니, 제 말씀 알아들으시겠지요?
말가리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탁 위에 시선을 두고 있는
말가리다의 얼굴은 지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요한은 한참 있다가 다시 침묵을 깼다. 이번에는 어머니. 라는 단 한
마디 말뿐이었다. 그리고요한은 천천히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로 신선을
돌렸다.
말가리다도 아들의 시선을 따라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무언의 대화가 잠시 오고 갔다. 아들은 그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였던가? 착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차별 없이 그 모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쏟고 있는 아들! 그는 또 얼마나 많이 그
아이들로부터 오는 좌절과 실망과 노골적인 모욕까지 참아야 했던가?
말가리다는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그 아이들의 차림새와 말시와 행도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런데 그 중의 많은 아이들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품행이 바르고 정직하고 거룩하기까지 한 젊은이로 변화된 것을
보았다. 희망이 없어 보이던 아이들이...요한의 말이 맞다. 나와 아들이
그 불운한 소년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돌볼 것인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그 동안
말가리다에게는 새로운 결심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불평하지 않고, 그보다는 이 아이들에게야말로 관심과 사랑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는 잊지 않으리라는 생각 속에서 말가리다는 새로운
힘이 솟아남을 느꼈다.
사람들이 따뜻이 반겨 주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베키 마을에 대한 향수도
끊어 버려야 한다고 결심했다. 다시는 햇볕에 반짝이는 눈 덮인
산봉우리들과 과일나무 가지들이 늘어진 들판, 그리고 그렇게나 좋아했던
산 속을 걷는 기쁨과 이곳 발도코의 부서진 건물들과 지저분하고
어둠침침한, 쓰레기가 뒹굴고 있고, 술꾼들이 누워 있는 거리와 비교하며
슬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드맑은 공기를
고 들려오던 성당의 종소리, 갓 베어 낸 건처의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
찬 베키의 공기를 잊어버리고 그 대신 숨이 막힐 것 같은 부패와 죽음으
ㅣ냄새로 가득 찬 발도코의 공기와 오라토리오의 건물을 꿰뚫고 들어오는
습기와 안개를 더 사랑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발도코 거리의 더러운 아이들을 볼 때, 겉을 보지 않고 그 속에 숨은
영혼을 볼 주 아는 아들은 얼머나 복받은 사람인가? 그러므로 아들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따뜻하고 가식 없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하느님께서 아들과 똑같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자신에게도
주시도록 간절히 빌며 다시 천천히 풀어 놓았던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
발도코의 오라토리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보스코 신부는 열심히
소년들을 모아들여서 집안은 언제나 북적거렸고 발가리다는 쉴사이 없이
뒤치닥거리를 해 나갔다.
어느 날, 모시고 있던 라콰 신부님이 돌아가셔서 잠깐 도와 주러 와있던
마리안나가 아이들을 야단치는 소리를 들엇다. 아이들이 이 집안에 소중한
재산인 암탉을 가지고 심한 장남을 했기 때문이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언니에게 말가리다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니, 가만 내버려 둬요. 아이들은 그러다가 그만둘 거예요.
말가리다는 자기가 기르고 있던 암탉들을 무척 아끼고 있었다. 그래서
닭들이 집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 두었고, 아이들이 흘린
음식찌꺼기를 먹느라고 부엌까지 들어와도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암탉을 사랑하는 만큼 아이들도 이해했고 아이들을 어떻게
참아 줘야 하는지도 잘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가리다가 일 때문에 서너 주 동안이나 카스텔누오보에 머물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온 때가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저녁식사를 끝내고
공부하느라고 조용한 때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말가리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책을 내던지고 마중하러 뛰어나와 법석을 떨었다. 말가리다가
겨우 말려 아이들이 차츰 조용해지는데 갑자기 다른 곳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닭들이 떠드는 소리였다. 닭들은 웅크리고
있던 날개들을 활짝 펴더니 뒤뚱거리며 ㅁ라가리다에게 몰려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웃어 대며 닭들이 말가리다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말가리다는 오라토리오와 가족을 위해서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어머니였다. 이 곳에 온 아이들의 상당수가 어머니 얼굴을 모르고
자랐기에 더욱 말가리다의 엄마 역할은 소중한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아주 작은 일부터 열심히 하도록 가르쳤고, 자신도 아이들의
옷차림이나 일거일동을 세세히 보살펴 주었다. 말가리다는 이러한 사소한
것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가치를 알아 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말가리다의
진정한 아들들이었고, 이 집은 말가리다의 집이었다.
몇 년 전 베키를 떠날 때 말가리다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고 자신을
사랑하였던 아들과 손자들 곁을 아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는 열둘이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이,
아니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말가리다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어느새 말가리다를 엄마 라는 애정이 담긴 특별한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말가리다는 이제 누구에게나 말가리다엄마 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말보다 실천이 어려운 가난
말가리다 어머니, 들어가도 돼요? 말가리다의 하루가 시작되면서
끊임없이 듣게 되는 소리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말가리다를 찾아왔다. 방문객들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었으나 그녀는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똑같이 정중하고 공손하게
대해 주었다. 공작 부인이나 농부 아낙네, 은행가, 빵집 아저씨, 이들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똑같이 대접을 해 주는 것이었다. 아들을
찾아왔던 고관들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방을 들르곤 하였는데 요한이
집에 늦게 들어올 대가 많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말가리다의 방에서
기다리며 담소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 당시 요한은 예사로 약속시간을 대여섯 시간씩 어겼다. 그만큼 일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기 때문인데 사실은 요한을 만난 사람들이
놓아 주질 않고 계속 기도를 부탁한다는가 뭔가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가리다는 아들이 올 때까지 손님을 대접해야만 했다.
말가리다는 발도코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그 중에는 보스코
신부의 명성 때문에 호기심으로 잠깐 다녀가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돈이나 물건을 조금 주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자기들의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서 이 곳은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아들은 그렇지 않다. 아들은 가난하고 딱한
처지의 사람들과 한두 시간만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같이 지내는
것이다. 또한 아들은 자기가 가진 것중에서 조금만 떼어서 주는 인심을
쓰는 따위가 아니다. 가진 것을 다 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자신의 희생도 아들의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발도코에서 하는 일은 늘 옛날부터 해 오던, 여자가 해야 될 일을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녀들을 위해서 하는 것뿐인 것이다.
그러나 오라토리오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은 어떤 사람들이든지 반갑게
맞아들여졌다.
어서들 오세요.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하는 인사 속에서
방문객들은 꿰맨 옷이 가득 쌓인 사이에 앉아 있는 말가리다를 만나게
된다. 말가리다는 방문객들의 대개가 토리노 시의 저명인사들이었어도
조금도 주저하는 빛 없이 어수선한 방으로 맞아들여 쌓아 둔 옷가지들을
치우며 앉으라고 의자를 권하곤 하였다.
그리곤 스스럼없이 대화를 풀어 나가 방문객들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
주었다. 찾아온 사람들은 대개 말가리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여러 가지
신상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정치, 역사, 종교에 대한 대화로 끌고가
시험해 보려는 심술궂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말가리다는 어떤
질문앞에서도 직접적인 대답보다는 격언이나 유머가 담긴 이야기로
상대방을 웃기면서 슬쩍 대해 나가는 요령이 있었다. 또 대화가 너무 길다
싶으면 혼자 기도문을 바치기 시작하여 방문객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아들의 은인들이 찾아오면 ㅁ라가리다는 특별히 생각해서 커피 한
잔을 대접하였고, 찾아온 이가 사제라면 아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도록
하여 특별한 음식도 준비하곤 했지만 말가리다는 그 식탁에 같이 앉는
일이 없었다. 말가리다는 아이들이 먹는 똑같은 음식으로 만족하였다.
하루는 왕의 지도 신부인 스텔라디 신부가 보스코 신부를 만나러 왔다.
스텔라디 신부는 어떤 계획이 있어 방문하였기 때문에 쉽게 식사초대를
받아들였고, 또 아주 겸손한 태도로 절대로 특별 음식이 아니라 평소에
먹는 대로 달라고 간청했으므로 말가리다는 그대로 따랐다.
스텔라디 신부는 며칠 전에 오리아노 백작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보스코 신부가 손님들이 오면 잘 대접하고 자신도 잘 먹지만 아이들은
형편없이 먹인다는 비난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서로 의견이 달라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기도 해서 그
진상을 알아 보러 온 것이었다.
식탁이 준비되어 함꼐 자리에 앉자 올리브 기름에 담근 생선 한 조각이
나왔는데 신부는 그 역한 기름 냄새 때문에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는 야채를 푹 삶아서 소금으로 간한 것과 치즈 한 조각이
나왔는데 그것도 식욕을 돋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텔라디 신부는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음식에 손을 대지 않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이 가 버렸다. 그 속셈을 다 알고 있었던 보스코 신부의 동료들은
재미있게 웃어 댔다.
주교좌 성당의 론조니 신부도 식사를 함께 한 일이 있었다. 그 신부는
말가리다의 특별한 음식 을 해 주겠다는 청을 받아들였으나 그 식탁에
오른 음식은 삶은 쇠고기와 양배추에 소시지 몇 개가 더 첨가된
것뿐이었다. 보스코 신부의 호화스러운 식탁에 관한 소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신부는 이 가난한 식탁의 정경에 너무나 감동되워 작별 인사 할
때에 눈물마저 보였다.
말가리다가 아이들과 함께 먹는 음식은 더욱 간단했따. 옥수수죽과
고추, 양파, 소금에 절인 무로 만족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것마저
먹기 힘들단다. 우리에게는 먹을 것이 늘 있으니 감사드려야지! 하는
것이었다.
1851년 2월 2일은 보스코 신부와 오라토리오의 식구들에게는 대단한
명절이었다. 보스코 신부가 키워 온 네 명의 청년들이, 신학생이면 누구나
기다리게 되는 수단(사제들이 평소에 입는, 단추가 많이 달린 긴 옷)을
입는 품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어머니에게 그 날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야말로 누구나 기뻐하도록 맛있는
음식들이 나왔으나 고기와 커피만은 예외였다. 이 특별한 날을 위해서
초청된 손님들이 고기나 커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손님들이 돌아간
다음에야 그 이유가 밝혀졌다. 말가리다의 언니 마리안나가 실수로 냄새
나는 냄비에다 고기를 삶아 내고 또 같은 매비에 커피를 끓여 내었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이 손도 안 댄 식탁에 둘러 앉은 식구들이 냄새 나는
고기에, 고기 냄새가 나는 커피를 마셔 가며 재미있게 웃어 댔다.
말가리다는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돈을 쓰려 하지 않았다. 그 당시
유행하던 비싸지도 않은 향수를 사라고 했을 때 말가리다는 정색을 하고
거절했다. 아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 주려면 돈을 아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 비싼 것을 쓰기 시작하면 누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주교로부터 고급 향수를 선물로 받을 때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아이들의 양말을 여러 켤레 살 수 있겠지요? 라고 말해서
주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말가리다는 상류층 인사들의 방문 답례로 그들을 방문해야 했을 때에도
초라한 옷차림이나 토박이 사투리를 쓰는 자신의 말씨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고 또 무엇하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꾸밀 필요가 있겠니?
말가리다의 고지식한 성품이 부자들이나 관직의 높은 양반들까지도
놀라게 만들 때가 있었다. 말가리다는 찾아오는 은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둘 아들 요셉이 보내 준 산토끼나 꿩, 아니면 철에 따라 나오는 과일을
주곤 하였다. 그러면 은인들은 또 사례를 하게 마련인데, 어떤 은인이
말가리다의 옷이 너무 낡았으므로 비단옷 한 벌을 보내 준 일이 있었다.
말가리다는 그 비싼 옷을 바라보더니 두말않고 가위를 들어 그 옷을
잘라서는 아이들의 옷을 만들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좋은 옷을
허락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가리다는 항상 정직할 것을 주장했다. 어느 날 말가리다는 사소한
물건을 몇 개 산 뒤에 돌아오는 길에 거스름돈을 세어 보았다. 놀랍게도
가게 점원이 잔돈을 너무 많이 거슬러 준 것이 아닌가! 말가리다는
동행했던 소년에게 말했다.
가게로 가 보거라. 가서 일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말해라. 가게주인이
알면 언짢을 테니 잘 해라.
그 돈을 되돌려 받은 가게 점원은 여간 고마워하지 않았다. 더욱이
주인에게 알려지지 않게 해 준 섬세함에 감격하기까지 했다.
말가리다는 가게에 갈 때마다 망설여야 했다. 자기 옷도 다 낡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들 때문에 살 것이 더 많고, 필요한 것보다 돈은 늘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가리다는 낡은 옷만 입어야 했다. 그런
것을 보다 못한 요한이 성화를 했다.
손님이 올 때 예의에도 어그러지는 일이니 제발 새옷으로 바꾸라고
간청했다. 돈이 없어 안 되겠다고 여전히 고집을 피우는 어머니를
위협까지 했다.
어머니가 새옷을 사 입으실 때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읍니다.
알았다. 20리라면 옷을 사겠지...
말가리다는 아들에게서 돈을 받았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났어도
말가리다의 낡은 옷이 바뀌지 않았다.
요한이 답답해서 다시 재촉햇다.
어머니, 언제 옷을 사실 거예요?
마가리다는 빙긋 웃기만 했다. 그 돈으로 아이들 신발이랑 마침
필요했던 것을 사 버려 한 푼도 안 남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번에만은 꼭 어머니 옷을 사셔야 한다고 다짐을 받으면서 다시
20리라를 내놓았다.
염려 말아라.
그러나 이 말의 뜻은(요한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이들에게 제대로
해 주지 못해 쩔절매는 형편인데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말라는 그런
뜻이었다.
요한은 이미 공장 두 개를 운영하고 있으면서(비록 소규모의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제3의 공장 즉 제본소를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한은
자신이 직접 쓴 [우리들의 수호천사들]이라는 책부터 직접 제본할 준비에
착수하였다.
제본소의 시작은 단순했다. 한 아이에게 인쇄지 접는 법을 가르쳐 주고
또 꿰매도록 하였다. 말가리다는 밀가루풀을 쑤어 겉표지를 붙였다.
문제는 둘쑥날쑥한 책 모서리를 가지런히 다듬는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무언가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호기심에 차서 그 세사람 둘레에 빙 둘러서서 한 마디씩 말로 거들었다.
책모서리를 다듬는 문제에 대해서도 저마다 한 마디씩 하였다. 칼로
자르자는 의견이 가장 그럴 듯했다. 요한이 부엌으로 가더니 반달 모양의
커다란 정육점용 식칼을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했으나 요한은 책장이 가지런해지도록 잘라 냈다.
너희는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이 일을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멋진 제본소를 세울 계획이다. 요한이
힘주어 말하자 아이들은 손뼉을 쳤다.
책 둘레에도 금색을 입히세요! 한 아이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것도 좋지! 어머니는 좋은 생각이 없으세요?
그러자면 돈이 많이 들 텐데. 말가리다가 말하였다.
우리가 돈은 없으니 그 대신 노란 색칠을 하도록 하자. 요한이 밤색
물감을 조금 갖고 왔으나 잠시 동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물에 타세요. 한 아이가 말했다.
안 돼. 그러면 종이가 젖어서 책이 망가져. 다른 아이가 말하였다.
식용유에 물감을 풀면 어떨까? 말가리다가 말하였다.
아, 그게 좋겠는데요. 요한은 한 아이를 보내어 기름을 가져오게 하여
밤색 물감을 풀어서 그것을 책둘레에다 발랐다. 윤기가 도는 멋있는
장정의 책이 나왔다!
아이들은 좋아라 소리치고 요한과 말가리다도 이 성공을 기뻐하며
마음껏 웃었다.
놀람의 시간
저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까? 하는 이웃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요한을 키워 왔다. 과연 말가리다와 이웃 사람들이 기대했던 대로 요한은
사제가 되었고,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새로운 일에 정열을
다하고 있다. 말가리다는 이 모든 것에 깊이 감사드리고 있엇다. 그런데
아들에게서는 아직도 무언가 더 많은 힘이 남아 있고 더 특별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떠도는 소문 같은 것에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었으나 아들에
관한 이야기에는 무관심할 수 없었다. 시장에서 생선을 사고 있을 때였다.
어던 여인이 옆으로 다가왔다.
복지관을 운영하는 신부의 어머니시죠?
네, 그래요.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군요.
그러자 다른 사람들까지 호기심에 차서 말가리다 곁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카를로 소년에 대한 일을 모르시나요?
말가리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말가리다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 듯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서로들 수군대는 것이었다.
그 사건이란 이러했다. 오라토리오를 자주 드나들던 카를로라는 열다섯
살의 소년이 생명이 위독해졌다. 의사가 카를로의 어머니에게 사제를
모셔오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소년은 보스코 신부님을 불러 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보스코 신부를 찾을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본당 신부를 모셔다가
병자성사를 받게 하였다.
보스코 신부는 이 소문을 듣자 즉시 카를로의 집으로 갔다.
우리 불쌍한 카를로가 죽기 전에 신부님을 줄곧 찾았답니다. 카를로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카를로의 방이 어딥니까?
보스코 신부는 카를로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이미 수의가
입혀진 카를로가 눕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나가 주시겠습니까 카를로 어머니와 이모님은 원하신다면 남아
계십시오. 보스코 신부는 사람들을 나가게 한 다음 방문을 닫았다.
조문객들은 굳게 닫혀진 방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궁금증에 모두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방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모두 놀라서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카를로가 일어나 아서 어머니와 이모에게,
꿈을 꾸다가 보스코 신부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 보니 자기가 수의를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스코 신부는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였다.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고백성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보스코 신부가 카를로에게 몸을 돌렸다. 카를로, 이제 천국문이 네
앞에 활짝 열려 있다. 자, 그 곳에 가고 싶니? 아니면 이 곳에서 더
살겠니?
카를로는 잠시 동안 고개를 숙였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천국에 가고 싶어요.
이렇게 말한 카를로는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는 가운데 다시 눕더니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말가리다는 아들이 시내에서 돌아올
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요한이 들어오자 말가리다는 그 이야기의
진상을 캐물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말가리다가 묻자 요한은 심상한 얼굴로
말했다. 여자들이 할 일이 없으니까 공연한 소리들을 해 대는 겁니다.
별일 아녜요. 어머니. 그리고는 층계를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반쯤
올라가던 요한이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누가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하던가요? 내가 갔을 그 아이는 자고 있었어요.
같은 해 위령의 달이 시작되는 날 요한은 기숙생들과 복지관에 오는
아이들, 총 육백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데리고 관습대로 기도하기 위해
묘지를 방문하였다. 요한은 어머니에게, 아이들이 묘지에서 돌아올 때
삶은 밤을 모자 안에 가득 찰 만큼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말가리다는 밤 세 자루를 샀으나 한 자루만 삶았다.
묘지 참배가 끝난 후 보스코 신부는 약속대로 아이들에게 밤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도 듬뿍듬뿍 주자 밤이 한 자루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이가 걱정을 했다.
보스코 신부님, 그렇게 주시면 모자라요. 밤이 한 자루뿐이던걸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보스코 신부는 직접 확인하러 부엌으로 가 보니 그 아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보스코 신부는 당황했다. 아이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신부는 단호한 얼굴로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왔다.
바닥이 날 때까지 약속한 대로 나누어 주자. 신부는 다시 먼젓번에
주던 양과 똑같이 아이들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광주리의
밤이 서너 움큼만 남아 있었는데 밤을 받은 아이들은 삼분의 일 정도였다.
광주리가 빈 것을 보고는 기대감에 차서 시끄럽던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용해졌다. 바로 그 순간 아이들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많은 아이들이 모두 다 제 몫을 받을 때까지 밤을
줄어들지 않았다.
자기들 눈 앞에서 일어난 일에 놀란 아이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박수를 치기 시작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보스코 신부님은 성인이시다!
보스코 신부님은 성인이시다!
말가리다와 오라토리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보스코 신부의 꿈이
하느님의 계시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보스코 신부의 꿈이 현실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결과였다. 말가리다는 어느 날 보스코
신부가 아이들에게 꿈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난 너희들하고 같이 운동장에 있었어. 너희들이 보통 대처럼 기쁘게
뛰고 소리치면서 시끄럽게 노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너희 중에 한 아이가 비단 모자를 쓰고 집안에서 나오지 않겠니?
그 모자는 투명해서 속이 환하게 들여다보였는데 불빛 가운데에 22라는
숫자가 보였단다. 너희들은 어느새 행렬을 지어 서 있었고, 모두가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그 중 몇 명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어. 나는 그 파랗게
질린 아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하다가 그 중의 한 명이 그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얼굴이 아주 창백했고 장례
때 입는 까만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어. 그래서 왜 그 옷을
입었느냐고 그 아이한테 물으려고 하는 순간 근엄한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서 말했어.
이 아이는 스물두 달밖에 더 못 산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그 달이 다
차기 전에 그 아이는 죽을 것이다. 그 아이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잘
보살펴 주어라.
나는 그 낯선 사람이 왜 갑자기 나타났으며 그 말은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사라져 버렸어. 나는 죽을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어.
요한이 공공연하게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한 이야기는 처음이었기에
아이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말가리다도 근심이 되었다. 요한이 다시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것은 꿈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한 가지 확실 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늘 마음을 준비해야 된다는 거란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꿈에 나타났던 아이는 내가 잘
보살펴 주려고 한다. 너희는 아무 걱정 하지 마라.
요한이 가끔 이제 몇 달 남았지? 하고 물으면서 아이들에게 꿈을
상기시키려 했어도 시간이 흐르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꿈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숫자를 제대로 대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요한
신부로부터 꿈 속의 소년의 이름을 알아 내려고 애쓰기도 했다.
1855년 10월 어느 날 요한은 칼리에로를 불러서 물었다.
네가 책임 맡은 방이 세 개지? 그 중 어느 방에서 자니?
제가 책임 맡은 두 방이 잘 보이는 맨 끝방에서 자는데요.
그 방은 습기가 많아요. 칼리에로가 못마땅한 듯 대답하였다.
이제 겨울이 곧 닥쳐올텐데, 감기에 걸리기 쉽거든요. 그리고 지금
있는 방에선 다른 방이 잘 보인다구요.
그래도 네가 그 방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12월 중순 어느 날 구르고라는 소년이 복통이 심해 의사를 불러 와야
했다. 약 1주일 가량 치료를 받았으나 구르고는 별 차도가 없었다.
구르고의 아버지가 왔다. 구르고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고기가 먹고 싶다고
졸라서 아버지는 그가 바라는 대로 해 주었다. 욕심스럽게 고기를 먹은
그날 밤 구르고는 통증을 못 견뎌하더니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다음날 아이들은 보스코 신부를 둘러쌌다.
구르고가 22달 꿈에 나타난 아이였나요?
그렇단다. 보스코 신부는 칼리에로에게 얼굴을 돌렸다. 다음부터는
내가 무엇을 시키는 대로 하여라! 보스코 신부는 나직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내가 얼마나 구르고에게 죽음에 대해 준비시켰는지, 이제
구르고는 알 게다.
보스코 신부는 이 일 외에도 여러 번 죽음을 예언했다. 말가리다가
아들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니?
가끔 저는 꿈에서 멀리 펼쳐진 여러 오솔길들을 봅니다. 그 오솔길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뛰어가고 있어요. 오솔길에도 도랑이 가로로 파져
있는데 어떤 것은 바로 앞에, 어떤 것은 중간쯤에, 또 어떤 것은 멀리
있는 것도 있어요. 그 도랑이 바로 그 아이들의 수명이예요. 또 어떤 때는
그 오솔길 위헤 숫자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보는데 그 소년이 죽을 해와 달,
날짜를 보여 주는 거예요.
요한은 어릴 때 성모님의 꿈을 꾸었고, 그 성모님은 요한을 앞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가리다는
얼마나 감동했던가! 그런데 이제 아들이 꾸는 꿈은 더 크고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이 꾼 꿈을 아이들이 더 착해지도록
교훈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훈적으로만 이용될 것이 아닌
실제적으로 겪어야 할 시련의 때가 꿈에서 예고되었고, 그 때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에몬테 지방의 정치적 상황은 점차로 악화되어 종교
억압으로 화살이 돌려지고 있었다. 수도원들이 폐쇄되고 교회 재산을 국가
재산으로 수용해 들이려는 법안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과시키려는 반교권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요한은 꿈을 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요한은 꿈속에서 오라토리오의 현관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데 운동장에
궁중식의 빨간 복장을 한 사람이 바삐 걷고 있었다.
중요한 담화문이요! 그 사람이 소리쳤다.
요한이 그 담화문의 내용을 묻자 그 사람은 다시 소리쳤다. 궁중의
귀빈이 죽은 장례식이요! 궁중의 귀빈이 죽은 장례식이요!
요한이 더 자세히 알아 보려고 하였으나 그 사절은 사라졌다.
요한은 그 꿈이야기를 하면서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아침에 편지
석장을 썼어요. 하나는 교황님께, 하나는 국왕에게, 하나는 사형
집행인에게.
말가리다는 아들이 왜 편지를 썼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또 왕족중에
누군가 앓고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요한이 닷새 후에 두 번째 꿈을 꾸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곧 방문이 활짝 열리며 먼젓번 꿈에 본 그 사람이 빨간 큰 책을 들고
들어오는 거예요.
담화문이요!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지요. 궁중에서 장례식은 여러
번이요! 궁중에서 장례식은 여러 번이요. 그러면서 사라졌어요.
그 다음날 아침 요한은 국왕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서 국왕의
거부권을 행사하여 반교권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왕 자신이
위험에 빠질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나
국왕은 그 법안의 통과를 막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법안이
의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을 즈음 비극은 시작되었다.
황태후가 앓아 눕더니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났다. 황태후의 시신을
관속에 넣는 순간 제2의 편지가 국왕에게 전달되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왕께 경고합니다. 눈을 크게 뜨시오! 한
사람이 벌써 죽었소. 그러나 그 법안이 통과되면 황실 안에 빅극이 일어날
것이며 이것은 앞으로 닥칠 더 큰 슬픔의 시작에 불과하오. 그 법안을
제지시키지 않으면 불운이 연달아 황실에 덮칠 것이오....
하지만 그 편지가 전해졌을 때는 국왕은 사냥을 가고 없었다. 연락을
받은 왕은 이 말썽꾸러기 신부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뒤에 왕은 평복으로 갈아 입고 신하 몇 명만을 데리고 오라토리오를
찾아왔다. 그들을 마난 사람은 칼리에로였다. 보스코 신부가 성당에서
고백성사 중이므로 지금은 만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 번에
오기로 하고 돌아갔다. 왕이 그 다음날에 나타났을 때에는 보스코 신부는
출판 날짜에 맞추어 원고를 쓰느라고 여유가 없었고 왕이 찾아왔다고는
생각도 못했으므로 왕께서 친히 나를 찾아도 내가 집에 없다고 말하라.
고 시켰다. 그래서 국왕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궁중에서 황태후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왕후에게 병자성사를 달라는
전갈이 내려졌다. 마리아 아델라이데 왕후는 나흘 전에 사내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황태후께서 돌아가신 것을 너무 슬퍼한 나머지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가서 왕비의
회복을 비는 기도를 바쳤지만 며칠 후 왕비도 병자성사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왕의 문제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날 밤 왕의
하나밖에 없는 형제 제노바의 페르디난디 백작이 마지막 성챌글 영한후
죽었다.
말가리다는 아들의 예언이 그렇게도 빨리 들어맞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 꿈이 모두 맞았구나. 그런데 제발 이런 일은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의노가
가라앉으셨느지 모르겠읍니다.
하느닙의 의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궁중에는 또 한 번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며칠 전에 탄생한 왕자의 장례식이었다.
공포의 시간
어느 일요일 모두가 성당에 있었다. 두 남자가 벽에 몸을 붙이고
기어가더니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가서 창문에
비치고있는 그림자를 조용히 지켜 보았다. 그러더니 망토 속에서 길고도
남렵하게 생긴 물체를 하나 꺼내서는 눈 앞에 대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건물 전체를 흔드는 요란한 음향이 이는 사이로 총을 쏜 사람은 무기를
망토 속에 감추고 동료와 함께 급히 오라토리오를 빠져 나갔다.
그때 보스코 신부는 제대 뒤에 있는 작은 방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고, ㅈ성당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공부하는 소년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총소리에 놀란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갈팡질팡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보스코 신부 바로 옆에 있는
아이들은 벽이 부서진 것을 보았지만 그것이 총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총알이었다는 것을 안 아이들이 달려가서 보스코 신부를
에워쌌다. 아이들은 보스코 신부의 수단자락에 뚫린 구멍 두 개를
가리켰다.
어떤 사람이 장난으로 그랬을 게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내 수단에
구멍을 내고 벽을 망가뜨렸으니 큰일이구나. 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보았으니 교리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
말가리다는 비록 오라토리오 안에서 살고 있었지만 바같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또는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엇다.
토리노 시는 지하 세력들이 집결된 곳으로 무언가 역사가 바뀌려는
비밀스런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여러 건의
암살과 폭동을 일으켜 이탈리아 역사상 최악의 시대라고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독립을위한 마지막 길로서 유혈노선을
택하였다.
요한은 시내에서 돌아와서는 몹시 불안해 하며 얼굴이 굳어 있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말가리다는 요한의 어려움을 눈치채면서도 침묵을 지키며
집안의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말가리다는 아들이 오라토리오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정부
고위층과 어떤 관계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지만, 아이들이 혼자
길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요일 고위층들이 요한의
생명까지 앗아 가려고 총질을 하였을 때 말가리다는 오라토리오의 건물
안에서조차도 아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말가리다는 이 위험한 사건에 대한 요한의 설명을 기다렸지만 요한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말가리다가 수단자락에 뚫린 구멍을 들먹이자
요한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처한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가리다는 문제의 심각함에 온 몸이 굳어지는 듯
했다.
오라토리오의 바쁜 일들이 지금까지 말가리다를 혹사시켜 왔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이 몇 배나 힘이 센 적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는 일은 말가리다를 아주 지치게 만들었다.
정부 당국은 보스코 신부가 발도코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저
글솜씨가 좋고 불량배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는 재능을 지닌 으스대는 시골
신부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보스코 신부의 영향력이 날로 증가되면서, 그
동안 그가 집필한 글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든지 또는 신부가
관여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끌게 되었다.
말가리다도 그 동안 요한을 공격한 신문기사들과, 이상하게 비꼰
풍자만화나 고십을 담은 점잖지 못한 인쇄물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 앉아 요한을 이탈리아 국민의 적이며 외국
압제자들의 친구라는 비난까지 해 댄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아들의생명까지
노리는 적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이 일이 터진 이후부터 말가리다는 늦게까지 자지 않고 아들을
기다렸따. 더욱 어려운 일이 많아지고 늘 과로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을 놓지 못했다. 말가리다는 더욱 자주 아들에게 쉬라고 말했지만
아들의 대답은 늘 같은 것이었다. 마귀가 수리 때 저도 쉴 겁니다.
요한은 이데 거리를 나다니기가 더욱 위험해졌다. 요한의 나쁜 평판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고, 그의 뒤를 끊임없이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말가리다가 집안을 청소하고 있을 때 운동장에서 무슨
소동이 벌어진 듯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떤 남자가 칼을 휘두르며
날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가리다는 한눈에 그 사람이 안드레아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피나르디의 집에 살고 있을 때 요한이 친구로 삼았던
정신 박약자로 지금은 벨레차 하숙집에서 살고 있었다. 갑자기 안드레아의
시선이 정문 근처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보스코 신부에게 닿았다.
그러자 보스코 신부가 저기 있구나! 안드레아가 소리질렀다. 가서
죽여버릴 테다.
아이들은 이 소리를 듣고 혼미백산하여 흩어졌다. 그 중에 수단을 입고
있던 사제가 있었는데 그 미친 사람은 그 사람이 요한인 줄알고 즉시 뒤를
쫓아갔다. 이 틈에 요한은 층계로 올라가 철문을 닫았다. 오라토리오는
과수원과 밭 한가운데에 울타리도 없이 외따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말가리다가 너무 허술하게 생각되어 층계 아래에 단단한 이 철문을 달았던
것이다. 안드레아는 곧 사람을 잘못 본 것을 알고는 요한의 뒤를
쫓아오다가 문 앞에 서서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모두 하나씩
들고 그 침입자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유혈극이 벌여질 찰나였다. 요한이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 손에 든 것들을 버리거라! 나는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도와 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 말을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소년들은 망설이면서, 날뛰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즉시 경찰을 부르러 보냈다. 그러나 반교권주의가 만연하고
있었기에 경찰 두 명이 나타난 것은 한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경찰들을
보더니 안드레아는 곧 진정되어 칼을 던지고는 오라토리오를 빠져 나갔다.
1850년 8월 14일은 말가리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요한은
저녁에 돌아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말가리다에게 항상 하던
것처럼 인사를 하고도 부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오늘은 웬일이냐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말가리다가 물었지만
요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머리를 저었다.
그냥 이 곳에 있고 싶군요. 어머니,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가만히
계세요. 놀라시지 말구요....
다음 한 시간 동안은 말가리다에게 있어 그의 생애 중에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
산타로시라는 정부 고관이 관련된 사건에서 그 일은 시작되었다.
산타로시는 수도원의 재산을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찬성표를
던져서 파문을 당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병이 나서 병자성사를 달라고
요청하자, 병자성사를 주기 위해 방문한 사제는 산타로시에게 법안 통과를
찬성했던 것을 철회해야 성사를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자 이 사건이
반대파들이 찾고 있던 반교권 운동의 돌파구를 열어 준 계기가 되었다.
교권 반대자들은 그 사제가 소속되어 있던 세르비테 수도원을 폐쇄하고
수도자들을 추방시켰다. 그 다음에는 그 사제를 옹호한 주교를 돌산에
기대어 지은 어둠침침한 회색 건물 페네스트렐레 감옥에 가둬 버렸다.
요한도 수도회를 옹호하는 글을 썼기 때문에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반교권운동자들은 요한을 없애 버리고 오라토리오를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요한의 친구들은 그 음모자들이 그날 오후에 오라토리오에 도착할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고, 그래서 말가리다와 요한 두 사람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나중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세르비테 수도원을 공격했던 시위대들은 오라토리오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한때 요한과 가깝게 지냈던 그 시위대 중의 한 사람이 과거의
은인이었던 요한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요기를 내어 마차 위로 뛰어 올라가 분노의 열기에 휩싸인
군중들을 잠깐 멈추게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친구들이여, 잠깐 귀를 기울여 주시오. 우리들은 지금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중이오. 그래서 보스코 신부도 처벌하려고 가고 있는 중이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봅시다. 오라토리오에는 보스코 신부와 그의 어머니와
불쌍한 아이들이 있을 뿐이오. 보스코 신부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소. 우리가 진정 정의의
투사라면 우리의 아들들을 길러 주는 보스코 신부를 옹호하고 도와 주는
것이 옳지 않겠소?
또 한 명이 나섰다. 절대 찬성이오. 보스코 신부는 우리 적들과 교제한
일도 없소! 그 사람은 우리 민중 편이오. 우리의 진짜 적을 찾아 내어
몰아 냅시다!
두 사람의 호소는 시우대 방향을 바꾸게 하는 데 주효하였다. 그래서
요한도 오라토리오도 무사했지만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수상한 두 남자가 갑자기 찾아와서 임종
환자에게 성사를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사람들은 차림새만 보아도
호감이 가지 않았고 아들이 밤늦게 밖에 나가는 것이 안심이 되지
않았으나 사제의 직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말가리다는 힘을 쓸 수 있는
큰 아이들을 몇 명 데리고 가도록 했다.
우리가 잘 보호해 드리겠읍니다. 위독한 환자인데 외부 사람이 많으면
좋지 않읍니다. 두 남자가 반대했으나 요한마저 동행이 없이는
안되겠다고 하자 남자들도 양보했다. 요한은 소년 여섯 명과 함께
남자들을 따라 나섰다.
말가리다는 나중에 들어 알았지만 환자가 있는 곳은 어떤 술집이었다는
것이다. 요한은 소년들을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들어가 환자를
만났는데 한참 후에 요한이 문을 열고 급히 나왔으며 바로 뒤에 험악한
남자 네 명이 쫓아 나오긴 했지만 무사했다.
그런데 또다시 병자성사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어떤 부인의
임종이라는 것이었다. 심부름 온 사람들의 행색을 보아 요한을 해치려는
것이 분명했지만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큰 아이들이 함께
따라갔는데 요한은 머리와 손에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분명히 어떤
결투가 벌어졌을 것 같은데 요한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말가리다는 아들이
많이 다치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며 지나갔다.
1852년 12월 1일 늦은 밤이었다. 말가리다가 막 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집이 무너져 내리는 굉장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로 옆 건물에서
나고 있었다. 신축 중이던 새로운 기숙사가 무너져 내린 모양이엇다. 얼마
전 11월에도 이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 때에는 이보다 훨씬 소리가
작았다.
말가리다가 달려가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일은 더 컸다. 남쪽 건물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구건물의 기초까지 흔들어 놓고 만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자려던 아이들을 재빨리 건물 밖으로 피신시켰다. 요한도 그
건물에서 자고 있었으나 무사했다.
요한은 새 기숙사의 교실이 시급했기에 건물 완공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붕만 남고 거의 완성되는 단계인데 며칠간 비가 퍼부어서 벽돌
사이에 발랐던 회반죽이 녹아 내리거나 거의 씻겨져 버렸다. 그런 위험한
형편인데 저녁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위험을 아지 못한 채 그곳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장난을 쳤다. 그래서 가뜩이나 약하던 벽이 지금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벽이 무너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가리다와 요한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들과 둘러앉았다.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잠결에 일어나 빠져
나오느라고 허겁지겁 입은 옷들이 너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날 밤 제의실, 거실 등 잘 만한 장소를 찾아서 밤을 지냈다.
이런 위기를 겪는 동안 말가리다의 놀라운 면모가 더욱 드러났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인지를 깊이 심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콜레라가 전 도시를 휩쓸었던 때에는 말가리다는 오히려
요한을 독려하며 구호사업에 전적으로 뛰어들었다.
콜레라가 손을 쓸 수 없도록 도시 전역으로 퍼져가자 민심은
어지러워지고 유언비어가 나돌아 사람들은 의사나 당국의 예방 정책도
따르지 않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만 가증되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일지라도 병에 걸린 이들은 거리에 방치해 버리고 자식들을 길가에
내다 버리는 일까지 생겼다. 시의 의료진은 전염병의 확산과 내버려진
시체를 거두기 위해 집들을 부수고 대개 불을 질러 버렸다. 거리는 인적이
드물어지고, 시체를 나르는 마차의 덜그덕거리는 소리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개들의 짖는 소리가 거리를 더 음산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거리 곳곳에는 가능한 대로 격리병원들이 세워졌다. 요한도 한
격리병원에 지도신부로 임명받았다.
오라토리오는 아직 안전했다. 말가리다는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아이들의 영양관리에 힘썼다.
요한은 이 기간 동안 환자와 임종자들에게 매달려야 했기에 집안 일은
모두 어머니에게 맡겼다. 요한이 담당했던 구역에서만도 전 가족이 모두
죽은 가종되 꽤 되고 8백명 이상이 병을 앓아 한달 안에 죽어간 사람만도
5백 명이나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말가리다는 전염병 예방만 아니라 가난한 중에도 있는
것을 다 내놓아 환자들을 도와야 했다. 가장 많이 필요했던 것이 홑이불,
담요 등이었다. 환자를 따뜻하게 덮어 줄 것과 계속 많은 붕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대로 내어 주다 보니 집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주어
버렸고 심지어는 식탁보까지 주어야 하였다. 더 이상 줄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 또 환자를 싸 주어야 한다고 무슨 천이든지 달라고 사람이 또
왔을 때, 잠시 동안 말가리다는 멍청히 서 있었다. 무엇이 남아 있을까?
말가리다는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안에 있는 눈에 띄는 천 종류는 모두
싸들었다. 장백의와 개두포(역주;장백의는 사제가 제의를 입기 바로 전에
입는 속옷의 일종이고, 개두포는 장백의를 입기전에 어깨에 걸치는 네모진
헝겊 조각)를 손에 들었던 말가리다의 눈길이 하얀 제대보 위에
이르러서는 잠시 망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였다. 이것도 보내자.
말가리다는 제대 위에 덮었던 천을 걷어 내어서는 놀란 누으로 서 있는
아이의 팔에 안겨 주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 토리노 시는 병마에서 놓여나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말가리다도 오라토리오도 다시 제 궤도에 올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요한에게는 또 새로운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요한이 거리에서
취한에게 봉변을 당할 찰나 갑자기 개가 나타나 요한을 구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말가리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 개를 보는 순간 말가리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긴
회색털 때문에 그리지오라고 불리우던 커다란 그 개는 보통 개로 보이지
않았다.
그 개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요한이 겨울밤 늦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골목길을 피해서 큰 길로 오고 있는데 두
남자가 뒤를 밟고 있는 것을 느꼈다.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두 그림자는
요한이 걸음을 멈추면 그들도 따라 멈추면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쫓아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요한이 피해 버리려는 낌새를
알아채고 재빠르게 덮쳐와 망토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보스코 신부는 몸을 비틀었지만 건장한 두 남자의 힘을 당할 수가
없어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바로 그때 요한은 가까이서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지오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개는 몸을 날려 두 남자를 자빠뜨려서 요한이 빠져
나오게 하였다. 그리지오는 땅에 누워 있는 두 습격자들에게 사나운
이빨을 내보이며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들이 요한에게 제발 개를 불러
달라고 사정하였다. 요한이 그리지오를 부드럽게 부르자 그리지오는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두 남자가 도망을 쳐도 가만히 있었다. 그 때부터
그리지오는 요한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외출할 때마다 따라다녔고, 어떤
때에는 요한이 외출을 못 하도록 막기까지 하였다.
그날 보스코 신부는 중요한 일을 잊은 것이 있어 밤이 늦었는데도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말가리다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혼자서는
너무 위험하므로 동행을 자청하고 나선 소년들과 함께 요한이 오라토리오
대문을 나오려는데 그리지오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평소에 그
양순한 모습이 아니었다. 온몸의 털을 일으켜 세운 개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리지오. 나를 잊었니? 잠깐만 나갔다 오자. 요한이 손을 벌렸으나
그리지오는 다시 으르렁거렸다. 요한이 그리지오를 지나가려 하자
완강하게 막아섰다. 절대로 요한을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얘야, 그 개가 너보다 더 생각이 깊구나. 이번에는 제발 우리말을 들어
다오.
요한이 결국 어머니에게 항복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한 남자가
오라토리오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보스코 신부님을 나가지 못하게 하세요! 저 길 끝에 건달 서너 명이
숨어서 보스코 신부님을 죽여 버리겠다고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나 침묵을 지켜 온 말가리다가 어느 날 저녁 요한과 둘이 있게 되자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에게도 말해 다오.
무슨 일이라니요?
시치미 떼지 마라. 이제는 나갈 도 말없이 나갔다가 살짝 들어오곤
하지 네가 들어올 때 모습은 한바탕 싸우고 온 것처럼 보이고... 게다가
사람들은 네게 총까지 쏘았어. 길거리에서도 습격을 당했고, 또 사방에서
너를 비방하는 흉칙한 소리가 들려 오고, 너를 없애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뭐냐? 나도 알 권리가 있다. 무서워 하지 않을
테니 어서 말해 다오.
요한은 두어 번 턱을 비비다가 좋아요, 어머니.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큰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이 문제는 세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정치, 종교, 사회, 다시 말해서 이 나라 국민들 생활 전반을 다
건드리고 있는 문젭니다. 지금 우리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분산되었던
것을 통일시켜 외국 군대들을 몰아내 버리고 하나의 강력한 군대를
세우자고 힘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고
야단들이죠. 피를 많이 흘리게 될 겁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런데 너는 어디 소속이냐? 너는 정치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인도 아니고 사제일 뿐인데....
이야기해 드릴게요. 이젠 종교 문제가 되겠는데요, 어머니도 잘
아시죠? 교황은 교회의 통치자이시고 교황국가의 최고이시죠. 지금 우리
교황은 교황국가와 교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빼앗긴 교회의 권리를
되찾기 전에는 통일국가에 속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것은 교회의 재산과
권한을 약탈해 간 자들과 맞서서 싸우기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내가 나라를 통일시키는 데 찬성한다면 나는 교황의 반대자가
되는 것이구나.
바로 맞았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이 정부의 구너력과 맞서게 되는
겁니다. 신자들은 통일 이탈리아를 원하기도 하지만 먼저 교황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교황을 반대하는 강력한 세력도 있는데
이들이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교란시키고 있어요. 그들은
교황이 국민을 저버린 외국 압제자들의 편을 들고 있다고 비방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들려는 거지요. 또 우리
주변을 보세요. 모두 도시로 몰려들고 있지요. 농촌보다도시에서 일할 때
수입도 많고 덜 고되기 때문이지요.
나는 평생 농사를 지어 왔지만 한 번도 고되다고 생각하거나, 적게
벌린다고 불평을 해 본 적이 없다.
요즘 사람은 틀려요. 어머니. 모두 편하게 살고 싶어하지요. 모두
도시로만 몰려드니 어떻게 되겠어요? 주택 문제, 임금 문제, 윤리적인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험악하고,
적들이 많고 싸우고 있는 겁니다.
요한이 일어서려는데 말가리다가 아들을 붙잡았다.
요한아, 아직 네가 말을 안 한 것이 있다. 네 문제지. 너는 어디
소속이냐?
저는 가난한 젊은이들 편이죠. 이 젊은이들을 위한 특수한 사업을
이끌어 가자니 정부 고위층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아요. 그러자니까 제가
교황과 진리 편에 있다는 것이 문제되죠. 그러나 저는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교황과 진리를 옹호하는 말을 해야 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공격당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
첫번째가 제가 통일 이탈리아를 반대하고 교황님과 손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자들한테서 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저의 진리를 옹호하려는
말이나 글을 막으려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거예요.
말가리다는 아들의 두 손을 꼬옥 쥐었다. 가엾은 내 아들! 성모님께서
늘 너를 보호해 주신다. 나도 더 기도하마.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정부측에선 개가 혁명을 계획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교회를
파괴시키려는 사람들은 스스로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고 있음을 깨달을
날이 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평안해지겠지요. 그러면 저도 딴 걱정 하지
않고 제 일만 열심히 해도 되겠지요.
말을 끝낸 요한은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천국에서도 우리는 하나
십년 전, 말가리다는 아주 건장한 몸으로 오라토리오에 왔다. 이제
예순여덟. 말가리다가 고향에서 사랑했던 산으로 둘러쌓인 공기 좋은 환경
속에서 신선한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면 여전히
건강하고 혈기 왕성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라토리오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말가리다는 맞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을 감내하여 했다. 식사는 불규칙한 데다가 영양가도 낮은 형편
없는 것이고, 집 주변은 나무와 꽃들이 아니라 쓰레기와 오물로 뒤 덮인
어수선한 풍경이 둘러싸고 있었다. 말가리다는 빈민가의 악취로 가득 찬
오염된 공기르마셔야 했고, 공기만큼이나 불건전한 타락한 이웃과 마주
보며 살아야 했다. 또한 아들이 겪는 온갖 시련과 불운과 좌절들에
동참하여야 했던 그녀는 애써 일궈 놓은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가는
절망과 반대와 역경이 밀어닥쳐 몸과 마음이 다 찢기는 듯한 고통도 여러
번 맛봐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겨 나간 끗끗한 정신의 말가리다는 결코 평범한
아낙네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이 강건해도 육신의 쇠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불운이 말가리다의 꿋꿋한 정신을 더 견고케 해 준 반면에 최악이라고
해야 할 생활조건은 말가리다의 육체를 아주 허약하게 만들어 버렸다.
1856면 11월, 토리노의 기후가 습기와 추위로 가장 좋지 않은 이때
말가리다는 드디어 앓아 눕게 되었다. 육체적으로 쇠잔해진 틈을 타서
폐렴이 공객해 온 것이다. 한 번 자리에 눕자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드문 일로 의사까지 불러야 했다. 진찰을 마친 오라토리오의 주치의인
첼소 벨린게리 박사는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방을 나갔다.
어떤 상탭니까? 요한이 물었다.
폐렴이 아주 심해요.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집시다.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어머니가 안 계신 오라토리오를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말가리다는 보스코 신부 다음으로 오라토리오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의사의 정성을 다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말가리다의
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다. 말가리다의 고백신부가 불려 오고
병자성사를받고 노자 성체를 영했다. 임종이 가까워 온 것이다.
말가리다는 갈 때가 된 것을 느끼면서 침대를 둘러싼 요셉과 이젠
어른이 된 두 손자, 언니 마리안나, 오라토리오에서 함께 일을 해 온 친구
요안나 마리아 루아를 바라보았다. 말가리다는 요한을 곁으로 가까이 오게
하였다.
지금 너에게 고백소에서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구나. 요한아,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자신을 가져라. 네가 하고 있는 일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들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위해서
일하고 있다. 나는 이제 떠나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하겠구나. 변화가 많겠지. 하지만 성모님께서 너를 도와 주실
것이다. 남에게 멋있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아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일을 하여라. 또 가난이 네가 하는 일의 기초가 되게 하여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함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만 가난을 실천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나 가장 큰
가르침은 남에게 요구하는 것을 본인이 먼저 실천하는 것이다.
말가리다는 요한이 미처 깨닫지 못하던 다른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요한은 내심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어머니는
절대로 무식한 분이 아니었음을 다시 깊이 느꼈다.
ㅁ라가리다는 이제 요셉에게 얼굴을 돌렸다. 요셉과의 관계는 늘
따뜻하였었다. 요한이 공부하러 집을 떠났을 때부터 요셉은 소작인으로
일하던 수삼브리노에서 또 새로 큰 집을 지었던 베키에서도 어머니를
모셨다. 한때 반항적이었던 안토니오와 고집이 세었던 요한과는 달리,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늘 편안함을 주었고 온순하였다. 요셉은 늘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고 다른 두 형제와 마찬가지로 말가리다의 교육의
좋은 열매라고 할 수 있었다. 요셉은 요한이 키에리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동생의 공부를 계속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자주 집집마다 도움을 청하러
다녔던가! 또 요한이 오라토리오의 문을 열었을 때 너무나 궁핍한 것을
보고 그 때도 최선을 다해 동생을 도왔다. 요셉은 해마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오라토리오에 건과나 포도, 밀 또는 감자들을 마차 가득히
실어다 주곤 하였다.
말가리다가 손을 내밀어 요셉의 손을 잡았다. 너와 네 가족을
떠나야겠구나. 나는 너를 위해 할 만큼 다했다고 생각한다. 네 식구
모두도 나의 말을 잘 따라 주었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라. 그 아이들이
하느님께서 불러 주신 직분에 따라 잘 살도록 말이다. 신부가 되거나
수도자가 되지 않는다면 농부로서 살아가겠지만 정직하게 살도록
가르쳐라. 너무 욕심을 부리다간 이마에 땀을 흘려 애써 번 돈마저 다
잃을 게다. 내가 지금 한 말을 새겨들어라. 그럴 때, 내가 지금 힘이 들어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다 알게 될 게다.오라토리오를 힘 닿는 대로
도와 주어라.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리시어 앞으로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하느님께 영혼을 맡겨 드리며, 그리고 모두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밀가리다는 다시 요한에게 머리를 돌렸다. 나는 네가 첫영성체해야 할 때
너를 도아 주었다. 이젠 네가 나를 도울 차례구나. 임종 기도를 바쳐
다오.
숨을 쉴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말가리다는 그 옛날 가을을 맞아
그토록 아름답던 계곡을 내려다보며 언덕 위에 서 있던 어린 소녀를
천천히 눈 앞에 떠올렸다. 그 산과 계곡들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일단의
군인들이 몰려왔을 때 당돌하게 맞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가리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군인들은 건방진 소녀를 혼내
주고도 남았으련만.... 이제 말가리다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며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그 짧은 바지! 포도는 혼자만
만지시겠다고 늘 고집하셨지. 포도 수확철과 그 행복하던 시절이 끝날
줄은 생각도 못했느데....
갑자기 결혼을 하였다.... 조용하게 미소짓던 남편, 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굳세고 친절하던 남편. 남편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남편을 따라 죽고 싶은 마음까지 간절했었다. 이제
말가리다는 남편의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것이다...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요한은 지금쯤 훌륭한 농부가 되어
있었으리라. 더 이상은 아닐 게다ㅣ. 그렇다면 요한이 갖고 있는 재능과
재주는 어떻게 되었을까!...말가리다의 어려운 시절, 배고프던 시절들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또다시 괴로운 발작이 시작되고, 심해지는 고통으로 말가리다는 숨을
몰아쉬었다.
요한은 말가리다의 자랑이자 기쁨이었지만 근심덩어리이기도 하였다.
얼마나 비범한 아이였던가! 두 사람은 가장 가까웠으면서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바친 요한의 그 완전한
헌신... 어머니,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예요. 아이를 데려올 때만다
변명처럼 하던 말이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잘 곳이 없자 어떤 아이는
종탑에서 자기도 했다. 요한에게는 모든 아이들이 특별하였다. 모두 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었기에...어떻게 요ㅕ한은 이런 부랑아들과 고아들을
모아 대가족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그리고 요한은 또 다른 면도
지니고 있었다...기적들, 미래를 내다보는 눈, 사람과 사건에 관한
꿈들...어떻게 내 아들이 그 모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제 내가 가 버린다면 누가 요한을 돌봐 줄까? 요한은 제 몸도 돌볼 줄
모르는데. 그리고 누가 또 이 많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 줄까?...하지만
걱정은 필요 없다. 요한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사람이고, 하는님은 늘 돌보아 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내 아들들아. 말가리다가 중얼거렸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러한 모든
생각 때문에 말가리다는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요셉은 끝까지
꿋꿋했지만 요한은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말가리다는 힘들게 요한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하느님만 아신다. 말가리다가
요한에게 말하였다. 저 세상에서는 너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나의 의무를 다하였기에 내 양심에 거리낌은 없다.
어떤 때는 내가 너무 엄하게 비친 적도 있었지. 하지만 나의 의무 때문에
그런 거야. 그리고 오라토리오 기숙사에 있는 나의 자식들에게 말해다오.
내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 아이들을 사랑했노라고. 그 아이들에게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나를 위해서 영성체를 해 달라고 부탁해 다오.
요한은 슬픔이 복받쳐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요한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어머니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혼자 있게 해 다오. 네가 나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나도 볼 수가 없구나. 내 마음이 더 아프니 어서 네 방에 가 있거라.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렴.
요한이 망설이자 어머니가 더 강하게 말했다. 네가 괴로워하는 것이
나를 더 괴롭히는구나. 제발 가거라. 우리 함께 천국에서 만나자.
요한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를 남겨 놓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요한은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등잔불을
켜려고하였으나 불이 켜지지 않았다. 겨우 불을 켜고 보니 놀랍게도
요한의 침대 옆에 걸려 있던 어머니의 사진이 뒤집어져 있었다. 아무도
손댄 일이 없는데 그렇게 된 것을 본 요한은 어머니가 곧 천국으로 가실
것을 알았다. 요한은 즉시 어머니의 방으로 갔다.
아들이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말가리다는 다시 손짓을하며 나가라고
하였으나 요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마음이 아플 게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어머니 곁을 떠나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견딜 수 없을 거야. 말가리다는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며 애원하듯
맣했다.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나를 혼자 내버려 둬 다오. 네가 괴로워하고
있으면 내 고통이 더 심해진다. 혼자 있게 해 다요. 가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다오. 마지막 부탁이란다. 안녕, 요한아.
요한이 떠나자 심한 고통이 온몸을 조여들게 했다. 말가리다는 눈을
감았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사이로 또다시 옛나레
듣고 보았던 음성과 사람들이 엇갈려 왔다. 이따금씩 가슴이 죄어 올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리는 듯했으나 다시 새로워지곤 했다. 숨을 쉴
때마다 아픔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남편도 죽기 전에 이런
고통을 당하였을까?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에 더 이상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말가리다는 혼수상태인가? 아니면 드디어 숨이 끊어진 것인가?
모든 것이 미끄러져 달아나 버리는 것을 느끼자 말가리다는 곧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알았다. 기도를 하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의 심판이
너무 엄하지 않기를...그리고 성모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바라는
말가리다에게 마지막 발작이 찾아오자 그녀는 몹시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요한은 울며 기도하고 있으면서 형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새벽
3시였다. 어머니의 방문 앞으로 다가가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로
쳐다보다가 울음을 터뜨리며 껴안았다. 요한은 몹시 추운 이른 새벽,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콘솔라타 성당에 가서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끝내고 요한은 위로자이신 성모 동상 아파에서 오랫동안
기도하였다.
사람들은 말가리다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그녀가 가난을 어떻게
살았는지 잘 볼 수 있었다. 말가리다의 친구들이 기념으로 어머니의 옷을
달라고 했지만 요한은 줄 수가 없었다. 말가리다의 옷은 단 한 벌뿐이었고
그것은 시신을 덮어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말가리다의 단벌 옷의 주머니
속에는 새 모자를 사라고 요한이 준 돈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1856년 11월 27일 장례가 치러졌다. 가난한 여인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례식이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가난하게 살아
왔고 가난하게 죽기 바란다. 라는 말가리다의 유언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요한도 어머니의 장례식을 유별나게 하여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요한이 직접 지도한 살레시오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도 그런 식으로 땅에
묻힐 것이다. 가난이 살레시오 회원들의 바탕이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난하게 살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일한다. 회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며, 도시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일할 것이다.
장례식 비용은 오라토리오의 은인인 도미니코 그로피가 대 주었다.
장례미사를 오라토리오의 작은 성당에서 드렸고, 말가리다가 부탁했던대로
소년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성체를 영하였다. 장례미사가 끝나자
장례행렬은 시립묘지로 향하였다. 말가리다의 시신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묻혔다. 묘지번호는 31열 117번이었다.
장례식 후 요한은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얼마 동안 친구집에 가서
지냈다.
어머니네 대한 요한의 사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오랫 동안
지속되었다. 요한은 자주 어머니의 일생과 신심에 관한 일화들을 들려
주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요한 자신의 전기작가인 레모인 신부에게 전기를
집필하게 하면서 그 모범을 모든 여성들이 뒤따르기를 바랐다. 요한은
레모인 시부에게 대여섯 번쯤 어머니를 꿈에서 뵈었노라고 말하였다.
요한이 1869년 8월에 꾼 꿈에서는 오라토리오로 돌아가는 길에 콘솔라타
성당 근처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가 웬일이세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잖아요?
나는 죽었지만 아직 이곳에 있단다.
행복하세요?
무척 행복하단다.
요한은 곧장 천국으로 가셨느냐는 것도 물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며
아니. 라고 하셨다. 요한은 일찍 죽은 소년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천국에
갔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천국에 사는 행복은 어떤가요?
설명 못할 정도란다.
어머니께서 누리는 행복을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실 수 있잖아요?
이 말에 어머니는 대답 대신 몸 전체가 빛나며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뒤에서는 합창소리가 들리고 어머니도 그 합창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셨다. 그 노래가 얼마나 감미롭던지 요한은 더 이상 할 말을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노래를 끝내고 사라지기 전에 요한에게 말하였다.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너와 나는 늘 함께 있을 게다.
요한의 전기작가인 요한 레모인 신부는 말가리다가 죽은 지 8년째 되는
해에 오라토리오에 온 사람이지만 그 때에도 말가리다가 모든 살마들 마음
안에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말가리다를 어머니들 중의
여왕 이라고 불렀다. 레모인 신부는 보스코 신부의 생애에 관한 자료를
모으면서 말가리다의 생애에 관한 자료들도 모았다. 오라토리오가 보스코
신부를 위해 잔치를 벌이던 1885년 6월 24일 세례자 축일에 사람드은 화가
롤릭나가 그린 말가리다의 초상화를 보스코 신부에게 증정하였다. 이
초상화는 아직도 오라토리오에 걸려 있다. 이 때 레모인 신부는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아서 다음 행사 때에는 또 다른 말가리다의 초상화를
증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초상화란 글로 씌어진 것이었다.
레모인 신부는 곧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미 모든 자료들과 말가리다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 오라토리오에 남겨진 기록들, 보스코
신부가 아파서 누어 있을 때 나눈 대화를 통한 보스코 신부 자신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말가리다의
친구들의 재촉과 보스코 신부의 고집 때문에 1886년 6월 23일에 완성될 수
있었다.
레모인 신부가 그 책을 증정할 때 보스코 신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하였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보스코 신부는 늘 그 책을 책상위에 놓아
두고 틈만 생기면 그 책을 펼쳐 들었다. 보스코 신부는 레모인 신부의
작품을 대단히 만족해 했고 그 책을 많은 은인들에게 선물했다. 보스코
신부는 어머니의 생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표현했다. 나의
어머니는 성인이셨읍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남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던 말가리다는 죽은
후에도 잊혀진 사람들 가운데 묻혀 있었으므로 별로 드러날 일이 없었다.
1876년 사람들은 어던 이유에선지 말가리다의 유해를 파내어 묘지 바깥쪽
입구에 십자가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 다른 가난한사람과 함께 묻었다.
그 곳은 신분 높은 사람들의 묘지의 그림자가 비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고관들의 이름은 잊혀진지 오래지만 말가리다의 이름은 오래오래 남아
있다. 세상 곳곳에서 말가리다의 모범에 감동되어 말가리다를
수호성인으로 삼은 교회 내 단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말가리다가 아들과 함께 발도코에 심었던 씨앗, 눈물로 물을 주었고,
고통이라는 비료를 주어야 했던 그 씨앗은 자라서 거대한 나무가 되었고,
그 나무의 가지들은 세상 곳곳으로 뻗어 나가서 셀 수 없는 수천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젊은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묘목에 새겨진 이름이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커지듯이, 아들의 명성이
커지게 되자 겸손과 희생으로만 살았던 어머니의 명성도 커졌다. 오늘날
보스코 신부의 이름이 존경받는 곳이면 어머니 말가리다도 함께 존경받고
있다.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이트 심리학 입문 (0) | 2023.04.02 |
---|---|
프랜차이즈 시스템 (0) | 2023.04.01 |
풀 사이드 [무라카미 하루키] (0) | 2023.04.01 |
푸코의 하이데거 비판 [푸코] (0) | 2023.04.01 |
푸코의 권력 개념 [푸코] (0) | 2023.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