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리자 강바람이 사납게 얼굴을 때렸다. 살을 에는 냉기가 얇은 작업복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갑철은 도로를 훌쩍 건너뛰어서 불빛이 번져나오는 횟집 문을 열었다.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리고 갑철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혹시 담배도 팝니까?”
“히힝, 담배가게서 띠어다 써비스 차원에서 파는 것이 있기는 있어라우.”
“한 갑만 파십쇼.”
“히힝, 그러시쇼.”
여자는 습관처럼 의미없는 웃음을 날렸다. 갑철은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며 수족관에 몸을 기댔다.
“아줌마, 저건 얼마요?”
“광어 말이요?”
“저게 광업니까?”
“히힝, 회로 잡술라고요?”
“………”
“히힝, 주는 대로 받지라, 뭐.”
설거지로 부산한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더 물어본다는 것이 내키지 않기는 했지만 어쨌든 확인은 해야만 했다.
“여기서 윗한배미까지 걸어가면 몇시간이나 걸립니까?”
“거까지 뭔 일로 걸어갈라고요, 이 밤중에?”
여자가 새삼스레 갑철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러나 경계하는 시선은 아니었다.
“차라리 택시를 타고 돌아서 가쇼.”
“택시비는 얼마나 나와요?”
“이삼천원이나 나올랑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택시를 타고 갈 일은 아니었다. 밤길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 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것이 대수랴.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가게문을 나서려다가 여자를 한번 힐끗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설거지통에 손을 담근 채 내력없이 히힝, 웃었다.
“아줌마, 그 광어회 한 접시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히힝, 그러지라.”
여자가 내놓은 회는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여자에게 좀 먹어주기를 권했다. 여자는 사양했다. 안주 양에 비해서 소주가 적긴 했지만 추운 밤길을 걸어가기에는 적당한 듯싶었다.
“윗한배미는 뭔 일로 갈라고 한다요?”
“집을 보러 갑니다.”
“그 산골짝에 뭔 집을 보러 가요?”
“살 집이요.”
“거 가서 살라고요?”
“빈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요.”
“빈집이 윗한배미 거그밖에 없간디요? 쌔고 쌘 것이 빈집인디.”
“누가 소개를 해줘서요.”
“누가요?”
여자의 물음이 의외로 길어졌다. 그러나 대답하는 것이 귀찮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남도(南道) 여자들이 붙임성이 좋다는 걸 갑철은 알고 있었다. 저러는 것이 그네들의 천성이려니 했다. 그러고 나자 처음에는 의아했던 그네들의 그칠 줄 모르는 타인에의 관심이 오히려 다정하게 여겨지던 거였다.
“그 집에 살던 사람이요.”
“그 집에 살던 사람이요? 누구까?”
“소 기르던 사람이요. 왜 왼눈에 좀 흰창이 많고……”
“아아, 그 양반!”
“알아요?”
“알다마다요. 아니, 그 양반을 어디서 만났다요? 그러고 시방 어디서 오는 양반이요?”
이쯤 되면 대답하는 쪽에서 서서히 지칠 법도 한데 포만감 때문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사뭇 느긋해지는 갑철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자의 필요 이상의 관심이 갑철에게는 필요했다.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를 마을이었고 여자를 통해서 그 마을에 대한 정보라든가 이 지역 물정에 대해서 도움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주는 일이 꼭 손해날 일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지역 안에서 사람을 사귀어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는 이곳에서 사귄 최초의 사람이 아니겠는가.
“남원 산동간 길을 닦다가 오는 길이요.”
“기술자다요?”
“떠돌이 노가다요.”
“그 양반이 거가 있습디까?”
“누구요? 아아, 그 사람이요! 예, 거기서 만났소.”
“그 미친 작자가 거그 가 있었그만이.”
“미친 작자라니요?”
“암시랑토 안헌 처자식 뚜드려패서 도망가게 해놓고 새각시 얻어서 인자 자기는 자유가 되었다고 좋아라 지랄발광을 허더니, 새여편네한테 꽤가 다 빗개져서는 우세는 우세대로 다 사고 기껏 토낀다는 것이 엎어지먼 코방아 찔 구례 산동이그만이.”
갑철은 웃고 말았다. 더할 수 없이 선한 인상의 여자가 흥분을 해서 뭐라고 뭐라고 해쌓는 것이 보통 재미있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자도 제 말이 우스웠던지 웃었다.
웃음을 머금은 여자의 손에 돈을 치르고 가게문을 열었다. 아까 차에서 막 내릴 때보다 강바람이 한결 누그러진 듯했다.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더군다나 그믐이었다. 산길을 올라갈수록 하늘이 가까워졌다. 바로 머리 위에 하늘이 있고 검은 구름장이 그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갑철은 구름장이 하늘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 위를 누르고 있는 것같이 답답했다. 가겟집 여자한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신뢰성 없는 사내의 말만 믿고 허위허위 이곳까지 달려온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고 급기야 화가 났다. 발에 뭔가가 걸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확 걷어찬다는 것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바람이 차긴 했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춥지는 않았다. 갑철은 넘어진 자리에 한동안 그대로 엎디어 있었다. 흙냄새가 올라왔다. 향긋한 것이 풀냄새 같기도 했다. 그것은 여리지만 질기고 약하지만 강렬한 그런 냄새였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차츰 사내와 자신에 대한 화가 가라앉았다.
갑철은 사내가 일러준 대로 윗한배미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우산각에서 마주 보이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을 쭉 따라 실개울을 하나 건너니 건물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건물이라기보다 보온천과 비닐로 동여맨 움막이었다. 그는 역시 비닐로 된 움막 문을 잡아당겼다. 움막 안은 밖에서 보기보다는 깨끗하고 넓었다. 안온한 기운도 느껴졌다. 수도까지 설치되어 있는 게 처자식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살아보려고 노력은 한 것 같았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고맙게도 물이 나와주었다. 기둥에 달려 있는 전기스위치를 올렸다. 신기하게도, 거짓말같이 불도 들어왔다. 불이 들어오자 여태껏 긴가민가하고 숨죽이고 있던 생쥐들이 혼비백산했다. 갑철은 방문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았다가 내뱉었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이었다. 행운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왔다.
“대체 누가 온 거여, 누가?”
“불써지는 것을 내가 봤당게 그러네.”
“어디 한번 들어가보더라고.”
자박자박하는 발소리들이 움막 문 앞에 멈추었다.
“진갭이 왔능가?”
상노인 두엇이 움막 안으로 빠끔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갑철은 머뭇거렸다.
“당신은 누구요?”
“진갑이란 사람한테 소개받고 온 사람입니다.”
“뭔 소개를 했소?”
“이 집 소개를 했습니다.”
“이 집을 샀소?”
“아뇨, 임시로 빌렸습니다. 올 겨울만 좀 날려구요.”
“어디서 왔소?”
“산동 남원간 도로 공사장에서 왔습니다.”
“진갭이를 거그서 만났소?”
“예.”
“패애앵, 숭헌.”
“………”
“물은 나오요? 엊저녁에 불써진 것 본께 전기는 오는갑드만.”
“물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옵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여그도 윗한배미 마을인께 언제까장 살란가는 몰라도 마을 사람들헌티 인사도 허고 그러쇼.”
“그래야지요.”
“누가 왔능가 알았응게 우리는 인자 갈라요.”
거기까지 말하고 마을 노인들은 총총히 물러났다. 아침해가 움막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갑철은 찬물을 마셨다. 안온감과 더불어 미세한 불안감이 교차했다. 처자식을 찾아 헤매는 사내, 진갑이 말대로 공사장에 다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우선 청소를 해야지. 찬물로 배를 채우고 나자 갑철은 턱없이 유쾌해졌다. 그래서 히힝, 하고 말같이 웃었다. 그렇게 웃고 나자 어젯밤 가게 여자가 웃던 것이 생각났고 그래서 또 한번 진저리를 치듯 히힝거렸다. 걸레와 빗자루, 양은냄비와 숟가락, 밥그릇, 세숫대야, 치약, 칫솔 따위의 쓸 만한 물건들은 몽땅 있었으므로 당장에 살림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천지를 찾아봐도 쌀은 어디 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청소를 해놓고 나가서 쌀을 구해와야지. 갑철은 쥐똥이며 뭐며 청소를 야무지게 해놓고 움막 문을 닫았다. 무거운 돌을 굴려다 문에 기대놓았다. 혹시나 아는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누가 이 행운의 보금자리를 낚아채가버릴지. 행운이란 늘 불안한 것이다.
쌀을 사러 산길을 내려왔다. 당장에 아침밥을 해먹어야 하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이어선지 길은 어젯밤 올라갈 때처럼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몸 누일 자리를 구했다는 안도감이 작용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머리 위를 내리덮던 구름장도 말끔히 가셔서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드셌다.
쌀을 구하러 나온 길인데도 이상하게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싶어지는 것이. 행운은 이렇게 오면 안되는 거였다. 옆구리가 결리는 것 같았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아서. 구례읍에 나가 쌀 한 말을 팔고 반찬거리와 귤 한 봉지를 사들고 산길을 다시 올라올 때 자신이 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도 생겼고 내일 먹을 양식도 있는데 사람이 없구나. 식구들이 생각났다. 노망든 어머니, 말기 위암환자였던 형, 파출부 형수, 그리고 조카 홍기. 그들이 제 식구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주소가 생기면 편지하라던 어머니는 아무리 편지를 써도 받지 못할 세상으로 떠난 지 오래. 형은 객사했고 형수는 집 나갔고 홍기는 어디 있지? 옆구리가 자꾸 결리는 것이 홍기였나. 고 자식 홍기가 그랬나. 돌아가 누울 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갑철에게 턱없는 용기를 주었다. 홍기를 데려오기로 작심한 것이다. 그래도 세상에 유일한 제 피붙이가 아닌가. 그리고 혼자서 그 겨울을 나기에는 사팔뜨기 사내 진갑이 내준 그 움막이 너무 호사스러웠으므로. 거기에 여자까지 들이는 호사란. 아서라, 숨이 막힐 것이었다. 여자 대신 조카라. 좋은 일이었다.
홍기를 위하여 밥을 짓는 일은 아주 즐거웠다. 다 허물어져내린 연탄 아궁이를 갑철이 새로 손보았다. 방은 기분좋게 뜨끈뜨끈했다. 햇빛 좋은 날 손바닥만한 마당을 서성거리며 은근히 진갑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그냥 한번 왔으면 싶었다. 그가 안된다고, 못 살게 하면 그냥 또 정처없이 떠날 셈이었다. 그렇다 한들 하나도 속상하지 않을 자신이 갑철에게는 있었다. 어디 속상한 일을 한두 번 겪었던가, 바리바리 절룩발이 김갑철이가. 그러면 홍기는 어떡하나. 이제 학교에도 들어가야 할 일곱살 홍기는 다시 고아원으로 가야 하나. 지난 겨울 삼촌 노릇을 참으로 뿌듯하게 했다. 유일한 혈육이 아닌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홍기가 까르륵대면 평생 제 여자 없어도, 제 자식 없어도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홍기가, 내 따순 혈육이 있으므로.
비가 한번 오고 나자 움막 문 앞 산수유나무에 노란 산수유꽃망울이 툭툭 터졌다. 이 집 주인 진갑이는 진달래꽃 필 참에나 올라나. 움막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고 나니 봄 나기는 일도 아니게 느껴졌고 그래서 갑철은 이곳을 떠나기 싫었다. 그것을 예감하고 홍기를 데려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먼산에 안개가 자욱하고 산수유꽃망울에 빗방울이 달려 있는 푸근한 아침에 갑철은 움파를 듬뿍 썰어넣은 무국으로 아침을 먹고 나서 홍기를 단장시켜 학교로 갔다. 홍기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학교는 마을 안길을 지나서 마을을 감싸고 도는 개울 건너에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는데 이상하게 아이들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개가 컹컹 짖었다. 안경 쓴 여자가 갓난애를 포대기에 들쳐업고 나왔다.
“여기 학교 아닙니까?”
“폐교된 학굔데요.”
“그럼 학교는 어딥니까?”
“산길을 내려가서 구례 쪽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곡성 쪽으로 가다 보면 삼거리에 있는 합록초등학교로 가야 해요. 우리 아이들도 거기로 다니고 있는걸요.”
“알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갑철은 공손히 인사하고 폐교된 분교 운동장을 돌아나왔다.
학교가 바로 저기 있구나, 하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믿거라 한 일에 발등 찍히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낭패였다. 어찌됐든 홍기는 이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자신은 그애를 학교에 보내야 할 의무가 있는 유일한 보호자였다.
합록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입학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 사십여명 되는 전교생 중에 입학생은 일곱명이었다. 오밀조밀 오십여명을 앞에 놓고 한 삼십분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으로 섬진강의 매운 바람이 막바로 불어왔다.
유독 얇은 옷을 입고 있는 홍기가 두 다리를 달달 떠는 모습이 영 마음에 걸렸다. 구례장에 가서 홍기 옷을 살 생각을 마음속에 꿍치고 갑철 역시 덜덜 떨면서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경청했다.
바람이 워낙 세고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무슨 말씀인지 영 알아듣기가 힘들다가 연설 말미에 가서야 목청이 한껏 올라간 덕분에 확실히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래설라무네 어린이 여러분과 뒤에 계신 자모자형 여러분께서는 학교폭력의 뿌리를 근절하는 데 다같이 앞장서주시기 바랍니다. 아, 이것으로 오늘 입학식 훈시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일동 차려엇, 경례.”
갑철도 얼른 차렷, 경례를 하였다.
교장선생님 말씀마따나 그것으로 입학식을 마친 뒤, 삼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마을 앞 섬진강사랑 슈퍼 겸 식당 앞에서 내렸다.
“히힝, 어디 갔다 오시요?”
내력없이 잘 웃는 가겟집 여자 순임이가 갑철에게 알은체를 하였다.
“조카애 입학식 하고 옵니다.”
“히힝, 그러시고만이라우.”
갑철은 여자에게 빠르게 말하고 빠르게 지나쳤다. 그리고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산길을 올라갔다. 숨이 턱에 차도록 올라챘다.
“삼촌, 왜 그래? 씨이.”
저를 떼어놓고 쏜살같이 앞서가버리는 삼촌이 이상한 홍기가 인상을 있는대로 쓰며 따라왔다.
“낼부턴 인자 이 길을 너 혼자 다녀야 하는 거여. 그래서 너 연습시킬라고 그러는 겨.”
“나 혼자 다녀야 하는 겨?”
삼촌이 충청도말을 하면 홍기도 충청도말을 한다.
“그려, 너 혼자 댕겨야 하는 겨. 날마다 삼촌이 델다줄 수 읎 는 겨. 나도 인자부텀은 바쁘니께.”
“일할 거여?”
“그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쌀도 사고 우리 홍기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공책도 사고 헐 수 있는 겨.”
우리 홍기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공책도 사고…… 제가 해놓았지만 어쩐지 제 말 같지가 않았다.
아침에는 푸근할 것 같던 날이 비가 흩뿌리면서 조금씩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오들오들 떨리고 한속이 드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오전에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오후에 날씨가 괜찮으면 움막 위 축사를 손볼 참이었다. 짐승이라도 길러서 홍기를 가르쳐봐야지. 어쨌든 지금 당장은 으슬으슬 춥고 사지가 찌뿌드드한 것이 뜨뜻한 아랫목이 급했다. 몸은 급한데 걸음걸이가 따라주질 않아서 갑철은 자꾸 뒤뚱거렸다. 열심히 따라오던 홍기가 움막을 가리키며 경상도 억양으로 소리쳤다. 그애는 이제 사방 팔도말을 쓰는 삼촌을 닮아가고 있었다.
“삼촌, 집이 이상해져부맀네.”
홍기 말대로 움막이 어째 이상했다. 다가가 보니 움막 전체의 의지가 되어주고 있는 축담이 무너져 있는 거였다.
“누가 그랬을까?”
한쪽 기가 탁 막혀와 갑철은 홍기에게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홍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봄비가 그랬다!”
의지를 잃어버린 비닐은 힘없이 흐물거리며 주저앉아 있었다. 벽이 없어져버렸으므로 방이랄 수도 없는 움막 한켠에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동동거리던 갑철은 자꾸만 한속이 드는 몸에 옷가지를 더 주워입고 바닥에 밥을 차렸다.
“밥 묵자.”
홍기도 쭈그려앉았다.
“어쩔래? 인자 집도 못쓰게 되어부렀고. 다시 고아원 갈래?”
“집 다시 고치면 되제.”
어쩌는가 보려고 고아원 다시 갈라냐는 삼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아원 다시 가기 싫은 홍기는 집 고치면 된다, 한다. 그것이 갑철의 가슴을 때렸다.
“알았다. 밥 묵자.”
밥을 다 먹고 나서 꼴이 아닌 집 모양을 그래도 어떻게라도 해볼 양으로 비닐을 들추고 밖으로 나왔다.
“웜마, 참말로 왕창 무너져부맀다. 워째 이런 일이 다 있노.”
축담 옆에 핀 산수유꽃망울이 오들오들 떨었다. 꽃을 보고 갑철이 중얼거렸다.
“춥제? 나도 춥다.”
담을 다시 쌓으려도 일단 무너진 흙과 돌들을 쳐내야 했다. 홍기하고 주질러앉아 돌을 들어냈다. 흙을 쳐내자면 무슨 도구가 있어야겠는데 싶다. 고아원 가기 싫은 홍기는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돌을 주워내고 있다.
“홍기야, 삼촌 마을에 가서 괭이랑 삼태기 빌려오께.”
“알았다. 그러고 경상도말 그만 써라.”
“그래.”
마을로 들어선다. 뉘 집을 들어가야 하나. 뉘 집에 가서 괭이랑 삼태기를 빌리지? 골목에 사람 소리 하나 나지 않고 저만치 앞에 폐교된 분교에 사는 안경 쓴 여자가 아기를 업고 지나가고 있건만 이봐요, 소리가 선뜻 나오지 않는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여자는 골목을 돌아가고 말았다.
애기 엄말 부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겨울 움막에 온 노인들 말대로 동네에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이 몹시도 후회스럽다. 막상 인사를 하려 해도 무슨 말로 어떻게 자신을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맘먹고 나섰다가도 번번이 포기하고는 했었다.
“어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틀림없다. 우뚝 선다. 뒤돌아본다. 키가 작고 눈이 작은 오십줄의 동네 사내다. 술냄새를 풍기며 건들거리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다.
“저 부르셨습니까?”
“진갭이 집에 사는 사람 아닌가?”
“맞습니다.”
“아, 이 사람아, 이사를 왔으면 진작에 동네 사람들헌티 인사를 해야지. 인자사 와서 기웃기웃허고 있는가?”
“죄송합니다.”
“죄송헐 것꺼지는 없고 그래 성함이 어떻게 되신가?”
“김갑철입니다.”
“짐갑철? 어디 짐간가?”
“김해 김갑니다.”
“그건 그렇고, 그런디 자네 집 담이 무너져부렀등만.”
“예.”
“올라오다 봉게 애기가 앉아서 돌을 줏어내고 있등마는.”
“예.”
“혼자 그 일을 어뜨케 허겄는가?”
“글쎄요. 해봐야지요.”
“그려?”
“그런데 저어……”
“말해보소.”
“연장이 좀 필요해서 그러는데……”
“아, 이 사람아, 연장보담은 사람이 필요헌 일이네, 그 일이. 가만있어보소, 어이.”
팔짱을 끼고 오종종거리며 다가오는 상노인을 뱁새눈의 사내가 손짓해 부른다.
“이센, 내일 뭔 일 없소?”
“왜?”
“저 아래 진갭이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인디 담이 무너져서 낼 하루 가서 봐줘야 쓰겄는디.”
“그려.”
“어이, 짐센, 나허고 이 양반허고 한 두어 사람 더 불러서 낼 자네 집으로 내려감세.”
일은 순식간에 해결이 나버렸다. 연장을 빌리러 왔다가 결과적으로 사람을 구한 폭이 되었다. 어려운 숙제 하나를 푼 듯이 발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움막으로 들어오는 오솔길로 접어드는데 아직도 돌을 주워내고 있는 홍기의 작은 등어리가 보였다. 아이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돌 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홍기야.”
명치끝이 콱 막혀오는 통에 홍기를 부른 목소리가 좀 갈라졌다.
저녁이 되자 날씨가 더욱 쌀쌀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지 해서 그 밤을 보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홍기 몸에서 서서히 열이 끓기 시작했다. 추위와 공포에 짓눌린 어린것이 끝내는 아파버리는 것이다. 더 늦어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한데나 마찬가지인 움막 안에 아픈 아이를 재울 수는 없는 것이다. 갑철은 홍기를 들쳐업고 움막을 나섰다. 먹장구름이 서쪽으로 몰려가고 있는 하늘에 언뜻 별이 빛났다.
25년 생에 쉰번째 취직한 공장에서 첫월급을 받아와 어머니 옆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새벽에 포크레인 소리가 났었다. 그것은 이명처럼 먼데서 다가왔고 차츰 또렷해지면서 바로 갑철이 잠자고 일어난 방문 앞까지 진격해 들어왔다. 식구들은 혼비백산했고 그 와중에 홍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형과 형수가 가당찮게도 포크레인 앞에 두 발 뻗고 누웠고 갑철은 어머니와 홍기를 동시에 업어야 했다. 그때 홍기가 세살이었다. 그때 업어보고 두번째다.
산길을 다 내려와 철둑길을 건너서 가겟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어쩐 일이다요?”
가겟집 여자 순임이 이번에는 히힝 소리를 내지 않고 놀란 얼굴로 갑철을 바라보았다. 갑철은 말없이 공중전화 쪽으로 갔다.
“합록택시죠? 여기 섬진강사랑 횟집인데요. 지금 와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택시 운전수는 알았다고 느리게 대답했다. 아니나다를까 금방 온다고 느리게 말한 합록택시는 금방 오지 않았다. 순임이 홍기 이마에 조용히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고는 갑철이 품에서 아이를 떼어냈다.
“놔둬요.”
갑철이 억양없이 순임의 친절을 거절했다. 그러나 순임은 아랑곳없이 홍기를 번쩍 안아들고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갑철은 담배 한 대를 피워물었다. 날씨가 쌀쌀해선지 손님도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례에서 오는 막차가 가게 밖 도로에 멈춰섰다가 어둠속으로 멀어졌다. 찻소리가 멀어지자 섬진강이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몸을 뒤채는 사람 소리처럼 아주 가까이서 들려왔다. 갑철은 담배 한 대를 더 피워물었다. 담배 한 모금을 다 빨기도 전에 가게문 앞으로 택시가 들어와서 빵빵거렸다. 갑철은 급하게 담뱃불을 발로 비벼 끄고 나서 홍기를 불렀다. 순임이 입에 손을 대며 조용히하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택시를 돌려보내고 들어왔다.
“아니, 애가 아파서 병원에 가려는데 왜 택시를 돌려보내요?”
갑철이 언성을 좀 높여서 순임에게 따져 물었다.
“애기 자요.”
“자나마나, 아픈 애를 병원에……”
“약 멕여서 재워놨응게 한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그만요.”
순임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갑철은 맥없이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색한 침묵을 여자의 히힝 소리가 깼다.
“히힝, 아까 입학식 허고 올라올 때만 해도 괜찮허등만.”
“예.”
갑철이 내뱉듯이 대답했다.
“그런디 갑자기 왜 그러까?”
“병이란 것이 어디 갑자기 생깁니까? 아플 때 돼서 아프겠지요.”
여전히 불퉁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갑철을 힐끗 바라보던 순임이 술 한 병을 가져온다.
“히힝, 은어 좀 잡수어볼라요? 참 맛있소.”
아닌게아니라 이녁 몸도 으스스 한기가 도는 것이 영 남의 몸뚱이 같다. 더운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야 조금 풀어질란가 싶다.
“홍기가, 되었든가보요.”
“되다니요?”
“아무래도 고됐는가 싶어요, 첨으로 학교를 간 것이.”
학교를 간 때문이 아니라 그럴 일이 있습니다, 소리를 꾹 누르고 그는 천연스레 술을 따라주는 순임의 얼굴을 얼핏 곁눈질로 본다. 훤한 이마 아래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눈매가 서늘하여 갑철이 가슴속에서 느닷없이 쿵 하는 소리가 난다.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게지, 싶어 가만히 귀기울이니 이번에는 짤랑짤랑 두부장수의 요령소리 같은 것이 이녁 가슴을 때린다.
철커덕철커덕 하는 기차 소리에 눈을 떴다. 동쪽으로 난 창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제 옆에 홍기가 누워 있다. 갑철은 발딱 일어나 앉는다. 아이구 큰일났구나, 싶다. 이곳이 순임이 집이란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속이 쓰리고 머리도 좀 어지럽다. 숙취다. 빌어먹을 년 같으니라구.
“홍기야, 홍기야.”
혼곤히 잠든 홍기를 거칠게 깨운다. 순임이 문을 연다.
“더 자게 놔두제 그러요.”
갑철은 순임이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은 채 홍기만 깨우고 있다. 슬쩍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내린 성도 싶어 순임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더러운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짤랑짤랑 울리던 종소리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사내를 유혹해 사는 인생, 순임에게서 한시 바삐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홍기야, 홍기야.”
홍기가 겨우 눈을 뜬다.
“홍기야, 학교 가자.”
딱딱딱딱 도마 소리를 내던 순임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밥은 먹여 보내야지라우.”
아이를 들쳐업고 나오며 갑철이 씹어뱉듯이 뇌까린다.
“필요없슴다.”
가게문을 나서니 강바람이 매섭다. 아침해가 눈부신데 햇빛 속으로 성긴 눈발도 날린다. 구례에서 오는 첫차에 홍기를 태운다. 홍기는 허청허청 비틀거리며 차에 오른다. 그래도 학교에 가라고, 움막에 가봤자 지금 집도 아니니 학교에나 가라고 갑철은 홍기를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순임이 가게문 밖으로 나와 있다.
“뭐 낀 놈이 성질낸다더니 꼭 그 짝이구만이라. 집이들 때문에 나는 부엌에서 한뎃잠을 잤구마는……”
그 말 뒤에도 순임이 뭐라고 뭐라고 구시렁거리거나 말거나 갑철은 맥없이 푸푸거린다. 자신이 오해를 해놓고 씩씩거린 것이 낯뜨거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철둑길을 건너 산길을 올라챈다. 빈속이 마구 울렁거리며 식은땀이 주욱 등골을 타고 내린다.
“어이, 짐센. 어디 갔다 오는가?”
찬 햇빛 속에서, 성긴 눈발 속에서 동네 남자들 네 명이 아침 일찍부터 담을 쌓고 있다.
“어디 가서 자고 오는가?”
뱁새눈 남자가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갑철의 위아래를 살핀다. 속으로 불쑥 불쾌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내 집 일을 해주러 온 자기보다도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불쾌한 속을 접어두고 인사부터 챙긴다.
“그나저나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지들은 자셨는지요.”
“지금 시간이 몇신디 밥을 안 묵어. 아침이 아니라 새참때그만, 새참때.”
퍼뜩 정신이 든다. 맞는 말이다. 내 집 일 해주러 온 사람들한테 밥은 못 해줄망정 새참거리는 제공해줘야 도리가 아닌가 싶다. 평생 일만 해오던 상일꾼들이라 담 쌓는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전국 각지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공사판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갑철이 기분이 꽤 좋아진다.
“어르신들, 새참은 뭣을 준비해야 좋겄습니까요?”
기분이 좋아지자 술술 전라도말이 나와준다. 깍듯한 서울말씨를 쓸 때는 어쩐지 뻑뻑한 표정이던 사람들이 금방 선선한 얼굴들이 된다.
“많이 헐 것도 없어. 간단허게, 자네 형편대로 허는 것이제.”
“나는 담배나 한 갑 사다주소.”
“그러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소.”
아침녘인데도 일은 반나마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어디서 퍼왔는지 붉은 황토흙을 이기고 두 사람은 이겨진 흙을 돌 위에 척척 얹으며 또 그위에 돌을 쌓고 하는 식으로 손발을 척척 맞춰가며 일하는 모습이 갑철을 속없이 기쁘게 만들었다. 이따 홍기가 학교에서 돌아올 쯤이면 흙내는 나겠지만 집이 다시 근사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갑철은 일꾼들의 새참거리를 마련하러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왔다. 산길을 내려올 때까지는 별 생각 없다가 철둑길을 넘어서는 순간 순임의 가게로 들어가는 것이 왈칵 두려워졌다. 아까 그다지도 매정하게 그곳을 빠져나온 것이 아무래도 켕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쭈뼛쭈뼛 가게문을 소리없이 밀었다. 손님이 들었는지 순임은 부엌에서 바쁘다.
“이봐요.”
“말허쇼.”
평소 같으면 히잉, 뭔 일이다요, 해야 한다. 그러나 순임이 목소리는 냉랭하기가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 자체다.
“빵허고 음료수 좀 줘요.”
“가져가쇼.”
한 사람 앞에 한 개씩만 하면 어쩐지 야박할 것 같아 여덟 봉지의 빵과 콜라를 비닐봉지에 담아든다. 값을 대충 계산하여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가게를 나온다. 그때까지도 순임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려면 그러라지. 내 참 우스워서. 철둑길을 넘으며 혼잣소리로 중얼중얼해본다. 자기가 왜 그러는지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스럽다. 빵봉지를 메고 산길을 퍼떡퍼떡 달려오른다. 득의양양하여 일꾼들 앞에 비닐봉지를 펼친다.
“앗따, 새때거리 한번 거네.”
“푸지그만.”
겨우 삼백원짜리 빵에 콜라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하는 생각에 송구스러워진다. 눈치없게도.
“빵에다 콜라를 마셨드니 어째 이상들 안허요?”
“글씨, 어째 속이 들큰허니 영 개운허지를 못혀서 말이여.”
“그렁게 말이시. 일이 잘 안되느만.”
“힘이 딸려서 이거 원.”
자기 딴에는 생각해서 한 사람 앞에 두 봉지씩 돌아가게끔 여덟 봉지를 사가지고 왔는데 빵을 먹은 사람은 두 사람, 두 사람은 아예 빵봉지를 밀쳐두고 담배만 피워물고 맨입맛만 다신다.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쩐지 이상하게 일이 더디다 싶어질 때다.
“허어, 이러면 하루에 일 다 못허겄는디.”
“기계도 몸에 지름칠을 해야 돌아가는 것인디.”
“애기들도 아니고. 빵이 뭣이여!”
일꾼들 중의 한 사람이 성질이 나서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화를 버럭 낸다.
“어이, 젊은 친구, 밥은 안 준가!”
“밥이요? 물론 드려야지요.”
밥을 하려면 일단 쌀을 안쳐야 하겠기에 부엌 쪽으로 간다.
“어이, 짐센. 걸게 헐 필요도 없네. 그냥 간단허니 도야지괴기 한 닷 근에다가 막걸리 한 말이먼 뒤집어써부러.”
순임이 가게로 다시 갈 수밖에 없다.
“부탁 좀 합시다.”
“뭔 부탁이요?”
“밥 좀 해주쇼.”
“뭔 밥이요?”
“일꾼들 밥이요. 돼지고기 다섯 근하고 막걸리 한 말하고.”
순임은 한참 만에 그야말로 한참 만에 히힝, 그러지라 한다.
“고맙소.”
순임에게 밥을 부탁해놓고 나오는데 구례 버스가 가게 앞에 멈추고 이어서 한 무더기의 아이들 틈 속에 홍기가 맨 나중에 따라 내린다. 그런데 홍기 눈에 눈물자국이 선연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캐물어도 홍기는 대답을 안하고 급기야 갑철은 화가 나기 시작한다.
“교감선생한테 맞아서 글지…… 쪼다야!”
아래한배미와 윗한배미 아이들이 침을 뱉듯이 뇌까리며 도망친다.
“정말이냐?”
“응.”
“왜?”
“복도에서 뛰었다고.”
“내 이런 개자식을! 그래 어떻게 맞았는데?”
“귀 옆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단 말야.”
“뭐야? 왜!”
이젠 정말로 불 같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아까 말했잖아.”
“이런 개자식이 다 있나.”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학교로 달려가 교감이란 작자의 귀 옆머리를 똑같이 들어올려주고 싶지만 할 수 없이 참는다. 그리고 이것이 가정교육이 아니지 싶기도 하다. 선생님 욕을 아이 앞에서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합록주조장 차가 순임이 가게 앞에 멈춘다. 순임이 술 주문을 한 모양이다. 차소리가 나자 순임이 가게 안에서 나오다 홍기를 보고 반색한다.
“운 기색이 있네?”
“선생자식이……”
아차, 싶어 갑철이 얼른 입을 다문다.
“히잉, 알겄다. 교감선생님이 머리크락 잡아댕겼지야?”
홍기가 고개를 끄덕인다. 순임이 단번에 알아채는 것이 교감선생이란 작자가 한두 번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내 이 작자를, 하고 갑철은 속으로 단단히 벼른다.
“홍기는 놔두고 가쇼. 홍기 밥 멕여서 올려보내면 그때 내려와서 밥 가져가요.”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으나 갑철은 말없이 홍기 등을 가게 안으로 떠밀고 나서 산길을 올라갔다.
돼지고기 닷 근에 막걸리 한 말로 ‘간단하게’ 준비한 새참이 제공되자 일은 다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돌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돌을 주워올 요량으로 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려는데 마을 위 폐교된 분교에 사는 안경 쓴 애기엄마가 저만큼 지나가다가 인사를 한다. 인사만 하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무슨 할말이 있는 것처럼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의아하고 어색했지만 막바로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애기엄말 기다렸다.
“홍기 아버님!”
갑철은 가만히 서 있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정정한다.
“삼촌입니다.”
“아, 그래요?”
여자가 반짝 놀란다.
“무슨 일이십니까?”
“집 고치나봐요?”
“봄비에 담이 허물어졌길래……”
“바쁘실 텐데,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이곳이 폐교된 지역이잖아요? 폐교된 지역에는 원래 교육청에서 통학차를 제공하게 되어 있는데 이곳은 통학차가 없어서 대신 교통비를 지급받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폐교된 후에 이사온 아이들이라고 교통비가 지급되지 않아서 교육청에다 문의를 해놨거든요. 홍기도 저희 아이들하고 같은 입장이 된 것 같아서 홍기 아버님, 아니 홍기 삼촌하고 같이 이 문제를 논의해보고 싶기도 하고, 만약 교통비를 지급해주지 않으면 같이 교육청에 가서……”
말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이 미안했던지 여자가 언뜻 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다.
“아, 예에.”
얼떨떨한 기분에 얼른 예에, 하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감이 얼른 오지 않는다. 교통비라, 그러면, 교통비를 타가지고 학교를 왔다갔다하면, 차비가 들지 않겠구나. 그러면 나쁠 것은 없지. 그렇지 나쁜 일은 아니야.
늘 일이 생기기만 하면 나쁜 일이었다. 좋은 일은 가물에 콩 나듯 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따지게 된다. 이것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하고. 이번 일은 나쁜 일은 아니야, 좋은 일이야. 이 집을 얻은 것이 좋은 일이었던 것처럼.
갑철이 산에서 자루 가득 돌을 주워 왔을 때에는 이미 완벽하게 담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갑철이 주워 온 돌은 더이상 소용이 없게 되었다.
일은 끝났고 그래서 모든 게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다.
“어이, 어쩐가? 좋제?”
“예에 좋습니다!”
정말 좋아서 좋다고 참으로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가 있었다.
“맨입으로 좋다고 허면 쓰겄는가?”
이제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아채는 갑철이었다.
“무엇으로 준비할까요?”
“나는 말이시, 간단허게 쏘주 한됫병허고 하나로 한 갑이면 되야부러.”
“그리고요?”
“나는 말이시 아까 자내가 사온 콜라보다는 암바싸가 더 좋드라고. 그것허고 오마싸리뿌 한 갑.”
“또요?”
“거, 나는 말이시. 섬진강사랑 횟집이서 참게탕 한 사발에다가 밥 한 술 묵고 그 집 방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다가 노래나 한 곡조 뽑아봤으면 헌디 어째? 되겄는가?”
“좋습니다. 가시죠들.”
갑철은 흔쾌히 일꾼들을 순임이 가게로 모셔간다. 외상 달기가 자존심 상해 비상금의 절반을 일꾼들 밥값, 술값으로 떼어놓고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큰 일이 되었다는 계산이 그때사 나온다.
“어이, 자네, 여기로 오기 잘했네. 어디를 가보소, 여기만큼 인심 존 디가 없을 것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어디를 간들 품삯도 안 받고 남의 일 해주는 데가 있겄는가?”
“맞습니다.”
고개가 절로 살랑살랑 흔들어지는 것을 갑철은 힘을 써서 자제하느라 목이 좀 뻣뻣해져온다.
“어이, 순임이!”
오매불망 노래방 기계가 자기 차지가 될 것을 기다리느라 아까부터 애가 타는 일꾼이 순임을 부른다.
“저기 노래방 기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여?”
“히힝, 학교 선생님들이구만이라.”
“선생님들?”
“예. 오늘 단체 회식이 있다고 오셔서들 기분 풀고 계시는갑서라우.”
“선생님들이라 할 수는 없지마는, 해도 거 너무 해묵고 있그만이.”
노래방 기계에다 노래 한 곡조 뽑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일꾼이 참다 참다 못하여 선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술이야 밥이야 거나하게 포식한 일꾼들은 끝내 노래방 기계를 차지하지 못하고 산길을 비척이며 올라가고 갑철은 상 위에 어지럽게 널린 부스러기 음식과 부스러기 술을 마신다. 섬진강 물결 몸 비트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오고 선생들의 소음이 물결소리를 덮는다.
“윗한배미 사는 안해성이 자모가 말이여, 교육청에 신고를 했든갑드라고오. 교장선생님은 그것이 불쾌했든 거여. 왜 학교에다 먼저 문의를 안허고 상부기관에다 잘난드키로 척허니 문의를 해가지고 우리 교장선생님 입장을 난처하게 했느냐 그거여. 그래가지고서는 교장선생님은 날 보고 왜 그 사실을 진작 파악 못했느냐고 한 구사리 헌 것이제. 그 소릴 듣고 막 나오는 참인디 웬 쥐알만헌 녀석이 내 앞을 팍허니 미끄러져가더란 말이시. 내 이놈 잘 만났다, 허고는 그놈 귀밑머리를 붙잡고 하늘로 추켜올렸는디, 선생인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따 그놈 눈이 겁나게 무섭데. 그놈이 고아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되는 놈이랑만……”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갑철은 그것만을 생각하였다. 아아,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아니야, 떠나더라도 저놈의 귀밑머리를 한번 들었다 놓고는 떠나야 할 것인데. 그래야 할 것인데. 왜 이렇게 비척거리는지. 아, 저놈의 머리를 어떻게 한번 들었다 놔야 할 것인데. 와장창창 상 엎어지는 소리가 나고 우당탕탕 달려온 순임의 커다란 젖가슴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안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들의 노랫소리가 섬진강사랑 횟집 지붕 위로 낭자하게 퍼지고 있는 저녁이었다.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스트모던 과학철학은 가능한가? (0) | 2023.04.04 |
---|---|
포스트 모던 작가들 (0) | 2023.04.04 |
타임 퀼트 [제임스 데이비드] 01 (0) | 2023.04.04 |
타임 퀼트 [제임스 데이비드] 02 (0) | 2023.04.04 |
테스 [토마스 하디] (0) | 2023.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