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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크리스티) 승전 무도회 사건

by Casey,Riley 202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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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무도회사건 - 아가사 크리스티


                             승전무도회 사건
                      The Affair at the Victory Ball

                                                        Agatha Christie 著   

전 벨기에 경찰대 대장인 내 친구 에르큘 포와로는 어떤 계기로 스타일즈 저택
의 괴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포와로는 유명해졌고, 
그 또한 범죄사건의 해결에 전념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한편, 나는 좀 솜전
투에서 부상을 입고 육군을 제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런던에서 포
와로와 한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래서 포와로가 손을 댄 사건의  대부분을 내
가 곁에서 듣고 보았으므로, 그 가운데에서 보다 재미있는 사건을  골라 기록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자면  당시 그처럼 세상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바로 그 괴사건부터 써나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그 괴사
건부터 써나가기로 했다. 그 괴사건이란 바로  승전무도회 사건이다. 그 사건에
서는 다른 보다 어려운 사건의 경우만큼  포와로 특유의 방법이 충분히 나타나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점, 유명인사가 관계하고 
있는 점, 그리고 여러 신문이 대서 특필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대 사건의 자격
도 있고,  또 포와로가 이 사건 해결에 관여했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가장 주의를 끌었던 것이다. 화창한 봄날 아침 
우리는 포와로의  방에 앉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산뜻하게 차려입은 키 작은 
내 친구는 달걀형의 머리를  한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새 포마드를 
콧수염에 정성스레 문질러 바르고 잇었다. 이런 종류의 분별없는 허영은 포와로
의 특색이라고도 할수 있는 것으로써, 그것은 질서와 방법에 대한  그의 일반적
인 취향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에 잠겨서 읽고 있던  데일리 뉴스매거
진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포와로가 부르는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자네는?"
"사실은 말이야, 승전무도회날 밤에 일어난 바로 그 이유를  알수 없는 사건 때
문에 머리를 썩히고 있었네. 신문은 온통 그 기사뿐이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느 손가락으로 신문을 툭툭 쳐보였다.
"그래?"
"읽으면 읽을수록 사건 전체가 온통 수수께끼 같단 말이야.!"
나는 사실 그 문제에 열중해 있었다. 
"누가 크론쇼 경을 살해했을까? 코코 코트네이가 같은 날 밤에 죽은 것은 단순
한 우연의 일치인가? 뜻밖의 죽음인가? 아니면 그녀가 일부러 코카인의 치사량
을 복용한 것인가?"
나느 거기서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이런 것들을 나는 자문하고 있던 중이지."
그러나 곤란한 것은 포와로가 이 이야기에 끌려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 새 포마드는 콧수염에 아주 좋군!" 하고 그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중
얼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말했다. 
"맞는 말일세―그럼, 자네는 그 의문을 어떻게 해결하겠나?"
그러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재프 경감이 왔
다고 알려주었다. 이 런던 경시청의  경관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우리 두 사람은 그를 따뜻이 맞아들였다. 
"여어, 재프.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길 다 오셨나?"
포와로는 큰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포와로씨" 재프는 의자에 앉으면서 내게 눈인사를 보냈다. 
"당신에게 꼭 알맞은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  맛있어 보이는 
파이에 손댈 생각이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왔지요."
포와로는 재프의 능력을―아깝게도 그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고는 하면서도 ― 
괘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재프에게서 가장 높이 사줄 점이 
잇다면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사실은 상대방에게서 호의를 끌어
내고 마는 빈틈없는 그 기술에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 승전 무도회사건말입니다."재프는 흥미를 자아내려는 듯이 말했다.
"어떻습니까? 당신이 손대고 싶어하실 것 같은데."
포와로는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헤이스팅스라면 그럴 것 같구먼.  이제 방금  그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참이었으니까. 어때, 그렇지?"
"그러시다면―"하고 재프는 은혜라도 베풀  듯이 말했다.  "그러시다면  당신도 
그럴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런 종류의 사건 내막을 안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되
니까요. 그럼 용건으로 들어갑니다, 포와로씨. 사건의 줄거리는 이미 아시죠?"
"지상발표 정도라면  ― 저널리스트들의  억측이라는 것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자초지종을 한번 들려주게."
제프는 편히 다리를 꼬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지나번 화요일에 승전 축하 대무
도회가 열렸습니다. 요즘 와서는 보잘것없는 파티까지도 무도회  어쩌고 합니다
만, 그것은 진짜 무도회로서 컬로서스 홀에서  열렸습니다. 런던에 있는 명사가 
전부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 가운데 젊은 크론쇼 경 일행도 있었지요."
"경의 약력은?" 하고 포와로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경은 바이오스코프―아니, 뭐라고 하더라?―바이오그래프라고 하나?"
"크론쇼 자작은 5대째 귀족으로서 나이는 25세이고  돈많은 독신자이며, 연극계
의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소문에 의하면  자작은 올버니 극장의 코트네이  양과 
약혼한 모양입니다.―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코코라고 불리고  있는 여
배우인데,  정말 매혹적인 젊은 아가씨이지요."
"그래? 계속하게."
"크론쇼 경 일행은 6명이었습니다. 경과  경의 백부되는 유스터드 벨테인, 아름
다운  미국인 미망인인 맬러비 부인,  젊은 배우 크리스 데이비드슨과 그의  처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그 코코 코트네이 양입니다. 아시다시피 가면   무도회
였으니까 크론쇼 경 일행도 ―그 뭐라고  하는―옛날 이탈리아 희극의 극중 인
물로 분장을 하고 참석했습니다. "
"16세기 이탈리아의 즉흥극이었지," 하고 포와로는 중얼거렸다.
"어쨋든 그 의상은 유스터스 벨테인 씨의  수집품 중에 있는 도자기 인형 세트
를 모방한 겁니다. 크론쇼 경은 할리퀸으로, 벨테인은 푼치넬로,  맬러비 부인은 
그 상대역인 풀치넬라, 데이비드슨 부부는 피에로와 피에레테, 그리고 코트네이
양은  물론 할리퀸의 상대역인 컬럼바인으로  분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초저녁부터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크론쇼 경은  침울했고 행동도 
여느때와 좀 달랐습니다. 일행이  저녁식사를 하도록 주인인 경이 예약해둔  작
은 식당에 모이자, 경과 코트네이 양이 서로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일
행은 눈치챘습니다. 어쩐지 그녀는 그때까지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고, 히스테리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 일행에겐 맛없는  저녁식사가 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일행이 그 식당을 나서자 코트네이  양은 크리스 데이비드슨 쪽을 돌아
보며, '춤도 싫증났어요.  그러니 집까지 바래다  주면 고맙겠어요.'하고 크론쇼 
경이 들으라는 듯이  말한 겁니다. 그러나 젊은 배우인 크리스 데이비드슨은 크
론쇼 경을  보고 주저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결국 두 사람을 데리
고 작은 식당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한 그의 노
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지요. 어쩔수 없이 데이비드슨은 택시를  잡아서 울고 있
는 코트네이양을 그녀의 아파트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충격으로  꽤 흐트러진 
모습이긴 했지만 그녀는 데이비드슨에게 사정을 밝히지는 않고, 다만 여러번 되
풀이해 가며, '반드시  그자에게 갚아주고 말겠어.'라고  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코트네이양의 죽음을  단순히 우연한 죽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힌트
는 이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단정해 버리는 것도 역시 좀 경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데이비드슨은 간신히  그녀를 달래어 안정을 시키긴했습니다만, 
그 컬로서스 홀로 되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는 곧바로 첼시 가
(런던 남서부의 자치구로, 예술가·작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의 자기 아파트
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내가 돌아와서 그가 출발한 뒤에 일어난 무
서운 비극을 알려준 겁니다. 크론쇼 경은 무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더 기분
이 나빠진 모양입니다. 경은 내내 일행들과 떨어져 있어서 저녁  식사뒤에 경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새벽 1시 30분경 모두가 가면능 벗는 대 코티용(18
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유행한 사교춤)이 시작
되기 직전에 경의 가면을 알고 있었던 동기생인 딕비대위가  연주석 한옆에 선
채 그곳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경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어, 크론쇼!'하고 대위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내려와서 함께 추자고! 왜 거기
서 그렇게 멍청히 서 있나? 자, 어서와. 한바탕 떠들고 놀아야지!'
'좋았어!' 크론쇼경은 이렇게 말하고는, '잠깐 기다려. 사람들 속에 섞이면 기분
이 나빠지니까 말이야.' 경은 뒤돌아보고서 그런 말을  남기고는 그곳을 떠났습
니다. 딕비 대위는 데이비드슨 부인과 함께 경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대위는 결국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그녀석, 내가 밤새도록 기다릴 줄 아는 모앙이지?'하고 말입니다.
그때, 맬러비 부인이 다가왔기에 두 사람은 그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머!' 미모의 그 미망인은 좀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지요.
'그분, 오늘밤은 아이처럼 보채는군요. 우리 모두 함께 찾아보기로 해요.'
모두들 찾기 시작했습니다만 경의 모습은 아무대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맬러비 부인의 머릿속에 어쩌면 한시간전에 식사를 한 그 작은 식당에 경이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일행이 가보았더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분명히 할리퀸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장에 테이블  나이프가 꽂힌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겁니다!"

재프는 입을 다물었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전문가다운 흥미를 드러
내면서 말했다.
"재미있는 사건이야! 그러니 가해자에 대한 단서는  없었겠군? 하긴, 있을 리가 
없지!"
"대강 그렇습니다." 하고 경감은 말을  이었다. "그 다음은 포와로씨도  아시지
요? 비극이 겹쳐 일어난 겁니다. 다음 날 모든 신문이 커다란  표제로 침대속에
서 인기 여배우인 코트네이 양이 시체로 발견된 일과, 그  사인은 코카인복용에 
의한 것이라고 간단히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실일까요, 아니면 자살
일까요? 증인으로서 심문을 받은 코트네이양의  하녀는 여주인이 마약상습자였
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과실사로 일단 인정되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
다고 해서 우리는 자살 가능성을 처음부터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공교로
운 것은, 그녀는 전날 밤에 있었던 크론쇼 경과의 불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단
서가 될 만한 것을 남기지 않고 죽은 겁니다 그리고 조그만 에나멜  상자가 경
의 시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코코라는 이름이 다이아몬드로 새겨져 있었고, 속
에는 절반쯤 코카인이 들어 있었지요. 코트네이 양의 하녀는 그  상자가 여주인
의 것이며, 최근에 와서는 언제나 그것을 지니고 다녔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
녀는 아무래도  끊을 수가 없어서 코카인을 그  속에 넣어서 언제나 가지고 다
녔던 모양입니다. "
"크론쇼 경도 코카인을 복용하고 있었나?"
"아닙니다. 경은 마약에 대해서는 특히 강경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포와로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상자가  경의 수중에 있었다면  경은 코트네이양이 마약중독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되지. 아주 암시적이군. 그렇지 않나, 재프?"
"흐음" 재프는 다소 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웃었다.
"이것이 대강―"하고 재프가 말했다. "이 사건 전체의 줄거리가  됩니다만, 당신
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더 발견된 단서는 없나?"
"예,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재프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조그만  물건
을 꺼내어 포와로에게 건네주었다. 밝은  초록색의 비단실로 만든 구슬  모양의 
술인데, 거칠게 뜯어낸  탓인지 끝부분이 고르지 못했다.
"고인이 된 경이 손에 이것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경감이 말했다.
포와로는 말없이 그것을 경감에게 되돌려주며 물었다.
"크론쇼 경에게 적이 있었나?"
"그럴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경은 평판이 좋은 청년이었거든요."
"경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백부인 유스터스 밸테인이 작위와 재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는 수상한 점이 
한둘 있습니다. 그 당시 바로 그 조그만 식당에서 크게 다투는 소리를  여러 사
람이 들었는데, 다투던 사람 중 하나가 벨테인 씨의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격분
한 나머지 탁자위에 있던  테이블 나이프를 움켜잡고  찔렀다고 하면 이야기는 
됩니다만."
"벨테인씨는 말다툼한 이유를 뭐라고 하나?"
"하인 하나가 술에 취해 있어서 꾸짖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시각도 1시 30분이 
아니고 1시에 가까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딕비 대위의 증언은 상당히  정확하
게 시간을 한정하고 있습니다. 대위가 크론쇼 경에게 말을 걸고 나서 경의   시
체가 발견되기까지는 겨우 10분정도의 간격밖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
"좋아, 어쨋든 푼치넬로로 분장한 벨테인씨는 등이 불숙  나오고 헐렁하게 주름
진 옷을 입고 있었겠지?"
"의상에 대한 세밀한 점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제프는 그렇게 말하
면서 신기한 듯이 포와로의 얼굴을 보앗다. "그러나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관
계가 있는지 알수가 없군요."
"모르겠다고?" 빙긋 웃는 포와로의 표정에는  어렴풋한 경멸의 기색도 섞여 잇
었다. 그는 조용히 말을 계속 했는데, 그의  두 눈동자는 이젠 내게도 익숙해진  
낯익은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작은  식당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지, 그렇
지 않나?" 
"예, 하지만 ―"
"그 커튼 뒤에는 사람 하나가 숨을 만한 움푹 파인 공간이 있고?"
"예―분명히 사람 하나가 들어설 공간은 있었습니다만,  대체 어떻게 해서 그걸 
아십니까―그곳에 가보신 적은 없으시죠? 아닙니까, 포와로씨?"
"가본적은 없네, 재프, 커튼이 있었을  것이라는 건 내 추리지.   그것이 없으면 
이 드라마는 합리적일 수 없어, 인간이란  언제나 합리적이어야만 하네, 그런데 
의사는 부르지 않았는가?"
"물론 곧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죠. 즉사였으니까요."

포와로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랬겠지. 그런데 그 의사는 검시에 대한 증언은 했겠지."
"예"
"그리고 뭐 이상한 증후가 있다고는  하지 않았는가―다시 말하자면 의사가 시
체를 검시하고 나서 놀라는 듯한 이상한 일은 없었느냔 말일세"
재프는 키작은 이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 포와로씨. 당신이 노리고 있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의사는 시체의 
팔다리에 긴장과 경직이  있다고하더군요. 하지만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지
요."
"으흠! 아무렴! 재프, 그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일세, 그렇지?"
그러나 재프에게는 그것이 도무지 의미심장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당신이 독살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무슈, 먼저  사람을 독살하고 나서 다시 칼
로 찌르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거야 정말 이상한 일이지." 포와로는 태연하게 동의했다.
"그밖에 뭐 보시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 만일 시체가 발견된 식당을 조사해 보
고 싶으시다면―"
포와로는 손을 내저었다.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네. 자네 이야기 중에 내 흥미를 끈 단 한 가지는―크론
쇼 경의 마약 복용 문제에 대한 견해였다네."
"그렇다면 보시고 싶은 건 없습니까?"
"한가지 있네."
"뭔데요?"
"의상의 모델이 되었다는 도자기  인형 세트를 보고 싶은데."  제프가 뚫어지게 
그를 쳐다보았다.
"예? 포와로씨는 정말 별난 분이군요!"
"그렇게 해줄수 있겠나?"
"원하신다면 지금 곧 버클리 스퀘어로  가시지요. 벨테인씨도―아니, 이젠 경이
라고 불러야 되겠지만―반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곧 택시를 타고 갔다. 크론쇼 경이 된 벨테인 씨는 집에 없었다. 그러나 
재프의 요청에 따라 일행은 수집품중 고급품이  보관되어 있는 '도자기실'로 안
내되었다. 재프는 다소 주체하기 어려운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원하시는 것을 찾아낼 것인지 저는 도저히 짐작이 안되는 
군요, 포와로씨."
그러나 포와로는 이미 장식용 벽난로 앞에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고 재빠른 개
똥지바귀같이 가볍게 그 위에 뛰어 올랐다. 거울 위에는 일부러 맞추어 놓은 조
그만 선반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섯 개의 도자기 인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자세히 그것을 감상해 가면서 포와로는 두세 가지 주석을 달았다.
"이거 참! 이탈리아의 고전희극이야. 세 쌍이  있군! 할리퀸과 컬럼바인, 피에로
와 피에레테―이건 흰색과 녹색으로 상당히  정교한 복장을 하고 있군―그리고 
자색과 황색의 푼치넬로와 풀치넬라. 푼치넬로의 의상은 정말 여간 섬세하지 않
군―주름장식에 테두리 장식, 등에  나 있는 검은색 실루엣,  정말 내가 상상한 
대로 기막히게 정성을 쏟은 일품이야."
포와로는 인형을 가만히 제자리에 놓고서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재프 경감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포와로는 도자기 인형을 보자고 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생각이 전혀없어 보였기  때문에 경감은 그 일에 대해서
는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일행이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는데 저택의  주인이 방
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재프 경감은 포와로와 나를 그에게 소개하게 되었다.
6대째의 크론쇼 자작은 50대의 남자로, 사교적인 태도는 세련되어  있었지만 어
딘지 방탕아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나른한 자세에다 거만해  보이는 그
의 몸짓은 분명히 난봉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첫눈에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명탐정  포와로의 높은 명성은 오래전부
터 들었으며,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은 힘껏 노력하고 있습니다." 포와로가 말했다.
"하지만 조카의 죽음이 이대로 영원히 미궁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나는 
걱정이 됩니다. 사건 전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포와로는 날카롭게 그를 바라보았다.
"조카분에게 혹시 당신이 알고 있는 적될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그 점은 분명합니다."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그밖에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하나 있습니다." 포와로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때 여러분들이 입고 계시던 의상 말씀인데요―그것은 소장하고 있는 인형의 
의상을 그대로 복제한 겁니까?"
"미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본뜬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경. 내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럼 이만 실례
합니다."
세사람이 서둘러 거리로 나오자 재프 경감이 물었다.
"그런데 이젠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나는 경시청에 보고하러 가야 하는데요."
"좋아! 무리하게 잡진 않겠네. 나는  한 가지 더 조사해 볼것이  있는데, 그것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요?"
"사건 종결이지."
"뭐라고요? 설마! 그럼 누가 크론쇼 경을 살해했는지 아십니까?"
"분명하네!"
"그게 누굽니까? 유스터스 벨테인입니까?"
"아야, 친구! 자네는 나의 그 조그만 악취미를 알고 있잖나. 나는 언제나 마지막 
순간까지 사건의 고삐를 이 내 손안에 쥐고 싶단 말일세. 그러나 걱정할  것 없
네! 때가 오면 전모를 밝히지. 나는 명예는 바라지 않네―그건 자네에게 돌리겠
어. 다만 내가 내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눈감아 준다는 조건하에 
말이야."
"그것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일 그것으로 사건이 해결된다면 
말입니다! 나중에 다른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재프 경감의  말에 포와로
는 미소로 답했다. 
"그럼, 이만 실례하고 전 경시청으로 가겠습니다."
재프는 성큼성큼 거리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포와로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 하고 나는 호기심에 끌려서 물었다.
"첼시 가로 가서 테이비드슨 부부를 만날 거야."
포와로는 운전사에게 행선지를 일러주었다.
"당신은 새로 작위를 물려받은 크론쇼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물었다.
"자네야말로 어떻게 생각하나, 헤이스팅스?"
"나는 본능적인 느낌으로 그를 믿을 수가 없더군."
"소설같은 것에 흔히 나오는 '뱃속 검은 백부'라고 생각하나, 그런가?"
"자네는 그렇지 않나 보군?"
"나 말인가? 나는 크론쇼 경이 우리에게 꽤  친절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는데…." 
포와로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포와로는 나를 바라보며 슬픈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뭐라고 중얼거렸는
데 내게는, "조직적이지 못해." 라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

데이비드슨 부부는 맨션아파트의 4층에 살고 있었다. 데이비드슨 씨는 외출중이
었지만 부인은 집에 있었다. 두 사람은 현란한  동양풍 벽걸이가 걸려 있는, 천
장이 나지막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안은  환기가 잘 안되는 탓인지  답답하고 
음울한 느낌이었으며, 강한 선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데이비드슨 부인은 곧 나
타났다. 자그마한 미인이었다. 만일 그녀의 맑고 푸른 눈 속에서 빈틈없이 타산
적인 기색을 찾을 수 없었더라면 그 청초한 모습은 애수마저 느끼게 했을 지도 
모른다.
포와로가 사건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자 부인은 슬픈 듯이 머리를 가로저었
다.
"가엾은 크론치―불쌍한 코코! 남편과 저는 코코를 아주 좋아했죠. 코코가 죽었
다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군요. 그런데 용건은 뭔가요? 그 무서웠던 밤의 
일을 다시 되풀이해서 말씀드려야 하나요?"
"아니, 부인, 저는 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실은 
필요한 이야기는 모두 재프 경감에게서 이미 들었습니다. 저는 다만 그날 밤 무
도회에서 부인이 입었던 의상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부인은 약간 놀라는 듯했지만 포와로는 망설이지도 않고 다음 말을 계속했다.
"이해해 주실 줄 압니다만, 부인, 저는  언제나 제 나라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
가고 있습니다. 벨기에 경찰에서는 항상  범죄를 '재구성'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실연'을 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의상이 꼭 필요해지기 때문이죠."
데이비드슨 부인은 아직 약간은 믿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저도 범죄를 재구성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세밀한 점에까지 마음을 쓰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그럼, 곧 그 의상을 가져오
죠."
부인은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곧 하얀 공단과 녹색의 우아한 드레스를 들고 돌
아왔다. 포와로는 그것을 받아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부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부인! 잘봤습니다. 그런데 녹색 술장식을 하나 잃어버리신 것 같군
요, 여기 어깨위에."
"그래요. 무도회 때에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전 그것을 주워서 크론쇼 경에
게 좀 맡아달라고 맡겻었죠."
"저녁식사 뒤에 말입니까?"
"예."
"그렇다면 사건이 일어난 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겠군요?"
데이비드슨 부인의 푸른 눈에 어렴풋이 경계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 아니에요―훨씬 전의 일이었어요. 분명히 저녁 식사 바로 뒤였죠."
"알겠습니다. 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그것뿐입니다. 더 이상  폐를 끼치진 않
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부인."
건물을 나오면서 내가 말했다.
"이것으로 녹색 술장식의 수수께끼가 풀렸군."
"글쎄."
"글쎄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의상을 살펴보는 것을 자네도 보고 있었지, 헤이스팅스?"
"물론 봤지."
"그런데 말이야. 그 의상에서 없어진  술장식은 부인이 말한 것처럼  뜯겨 나간 
것이 아니었다네. 그것은 잘라낸 것이었어. 가위로 말이야. 잘린  부분의 풀어진 
실의 길이가 일정했거든."
"뭐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사건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군."
"오히려 그 반대지." 포와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고."
"포와로―"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가만 놔두지 않겠어. 뭐든지 다 알아내  버리
는 당신을 보면 속이 다 뒤집힌다고."
"그러나 정작 내가 설명할 단계가 되면 말이야. 자넨 아주  단순했다는 것을 알
게 될 걸세."
"그건 그렇죠. 그래서 속이 상한다는  거네! 자네 설명을 들으면  나도 그런 것 
정도는 알아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일세."
"자네도 할수 있네, 헤이스팅스. 자신의 추리를  정리하는 노력만 하면 되는 걸
세. 어떤 일정한 방법을 가지고―"
"그렇고 말고." 포와로가 가장 신이 나서 떠들어댈  그 방법이라는 것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그 뒤는 끝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급히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럼, 이젠 뭘 할 건가? 정말 범죄의 재구성인가 하는 것을 할 생각인가?"
"아니, 그럴 생각은 없다네. 말하자면 연극은 끝난 거지.  다만 다음 등장인물을 
제안해 볼까―할리퀸!"

포와로는 다음날인 화요일에 그 수수께끼 같은 연극을 실제로 연출해 보이기로 
했다. 이 준비는 내 호기심을 광장히 자극했다. 양쪽을 두꺼운 커튼으로 막아놓
은 방 한편에 하얀 나무로 된 칸막이가 세워지고, 이어서 조명기구를 둘러맨 남
자가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직업 배우들 한 무리가 간이 분장실로  꾸며진 포와
로의 침실로 들어갔다.
8시 조금전에 재프가 도착했지만 별로 재미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는 경감이 
포와로의 이 제안에는 찬성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포와로 씨의 착상답게 좀 연극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하지만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겠고, 그분 말처럼  뜻밖에 우리의 수고를 많이 덜게  될지도 모르지
요. 포와로 씨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꽤 쉽게  풀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나도 물론 단서는 잡고 있습니다."―나는 직감적으로 재프가  무리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해보라고 이미 약속을 했으
니까 기다려 봐야죠. 아! 모두가 오는데요."
제일 먼저 내가 그때까지 만난적 없는 맬러비 부인과  함께 새 크론쇼 경이 들
어왔다. 부인은 검은 머리의 미인으로, 언뜻 보기에 신경질적인  여성이었다. 데
이비드슨 부부가 그 뒤에 나타났다. 내가 크리스 데이비드슨을 만나보게  된 것
도 또한 처음이었다. 큰 키에 약간 검은  피부, 약간은 눈에 띄는 미남이었지만 
역시 배우답게 느긋하고 품위있는 태도였다.
포와로는 칸막이 정면에 일동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칸막이는 눈부신 라이트
의 조명을 받고 있었다. 포와로는 칸막이 이외의 부분이 어둡게  되도록 스위치
를 내렸다. 그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울렸다.
"신사 숙녀 여러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섯 명의  배우가 지금부터 칸막이 
앞을 지나가겠습니다. 모두 낯익은 사람들입니다.  즉, 피에로와 피에레테, 익살
꾼인 푼치넬로와 우아한 풀치넬라, 경쾌하게 춤추는 아름다운 컬럼바인,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요정 할리퀸!"
이런 서두와 함께 연극은 막이 올랐다. 포와로가 소개한 인물들이  차례차례 칸
막이 앞으로 춤추고 나와서는 잠깐 멈췄다가 사라졌다. 그런 다음에는  불이 들
어오고 가벼운 한숨이 객석에 흘렀다. 모든 사람들이 뭐가 뭔지  몰라서 초조한 
얼굴이었다. 내게는 이 연출이 싱겁게  느껴졌다. 만일 범인이 이  가운데 있고, 
그 가면극을 목격하고는 이 자리에서 꽁무니를 내보일 것으로 짐작했다면 그것
은 여지없이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이미 그런 기미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와로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밝게 미소지으
면서 앞으로 나섰다.
"자, 신사 숙녀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한 분식  차례로 지금 보신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크론쇼 경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경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소만."
"지금 보신 것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그―말하자면, 여섯명의 배우가 칸막이 앞을 지나갔는데, 그들은 이탈리
아 고전희극의 분장을 하고 있었던 것같이 생각되는 군요. 아니면―그―그날 밤 
우리와 똑같은 분장을 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되겠고."
"그날 밤 일은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경." 포와로가 말을 막았다. 
"처음 하신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부인, 부인께서도 크론쇼 경과 동감이신지
요?"
포와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맬러비 부인을 쳐다보았다.
"전―예, 물론이에요."
"이탈리아 희극의 분장을 한 여섯 명의 배우를 보신것에 동의하십니까? 데이비
드슨 씨는, 당신도 역시?"
"그렇습니다."
"부인은?"
"저도요."
"헤이스팅스? 재프는? 동감인가? 여러분 모두 같은 생각이십니까?"
그는 휙 일동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  보였고, 두눈은 고양이 
처럼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여러분들은 모두 다 틀렸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이 착각을 일
으킨 겁니다―승전 무도회가 있었던 날  밤에 일으킨 착각과 똑같이  말입니다. 
'내눈으로 본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그것은 반드시 진실을 본다는 뜻은 아닙
니다. 심안으로 보아야만 하는 거지요. 조그만  회색 뇌세포를 움직여야만 합니
다. 그렇게 한다면 오늘 밤이나 무도회 밤이나 여러분이 본 것은 여섯  명이 아
니고다섯 명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겁니다. 보십시오!"
불이 꺼졌다. 배우 하나가 칸막이 앞으로 튀어나왔다―피에로였다!
"이건 누굴까요? 피에로입니까?" 포와로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일동이 대답했다.
"다시 한번 보십시오."
피에로는 재빠른 동작으로 헐렁한 의상을 벗어던졌다. 그랬더니  무대조명을 받
고 서 있는 것은 눈부신 할리퀸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앗 하는  소리
가 들리고 의자하나가 나동그라졌다.
"빌어먹을!" 신음하는 듯한 데이비드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어떻게 알았지?"
찰칵 하고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가 들리고 재프의  냉랭한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을 체포하겠소, 크리스데이비드슨―크론쇼 자작  살해혐의로―지금부터 당
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로 쓰일 수도 있소."

그로부터 15분 뒤에 조촐한 밤참이 나왔다. 포와로는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고
서 여러 사람의 열기 띤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녹색 술장식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이 범인의 의상
에서 쥐어뜯긴 것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았지요. 그래서  피에레테는 용의자
의 리스트에서 제외하고(테이블 나이프로 급소를 찌르려면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피에로라고 결정한  것이지요. 그러나 피에로는 살인
이 일어나기 약 두 시간전에 무도회장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피에로는  뒤에 다
시 돌아와서 크론쇼 경을 살해했거나, 아니면―즉,  떠나기 전에 경을 살해했거
나 그 어느 쪽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불가능할까요? 그날 밤  저녁식사 뒤
에 경을 본 사람이 누굽니까? 데이비드슨 부인 단 한사람뿐입니다. 부인의 진술
은 없어진 술장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짜여진  거짓말이 아닐까 하고 
나는 의심을 했습니다. 물론 그  술장식은 남편의 의상에서 뜯겨나간  술장식을 
벌충하기위해 그녀가 자신의 의상에서 잘라낸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1시
간 30분에 무도회장 안에서 그 모습을  볼수 있었던 할리퀸은 누군가의 변장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처음에 나는 벨테인 씨에게 공범 가능성이 있는  지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벨테인 씨의 타이트한 의상으로는  푼치넬로와 할리
퀸의 1인 2역을 연출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했습니다. 한편 피해자와  키도 
비슷하고 직업배우인 데이비드슨이라면 그런 일은 누워서 떡먹기였겠죠. 
그런데 저를 고민하게 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설마 의사라는 사람이 두 시간 
전에 죽은 시체를 10분전에 죽은 시체로 잘못 볼 리가 없습니다! 의사는 틀림없
이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진단을 위해 불려갔을 때에, '이사람
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는가?'하는 질문을 받은 것이 아니라 10분 전에도  그 사
람이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여러 사람의 말을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의사는 
시체부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 경직이 사지에서 발견되었다고 진술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뒤는 나의 가설 그대로 만사는 척척 진행되었습니다. 데이
비드슨은 저녁식사 바로 뒤에, 다시 말하자면 여러분께서도 기억하고 잇듯이 그
가 식당으로 경을 데리고 되돌아 왔을때에 그를 살해 한겁니다. 그런 다음에 코
트 네이 양을 바래다 준다며 무도회장을 떠나 그녀의 아파트까지 함께 가서 문
앞에서 그녀와 헤어져서는 (안에 들어가서  그녀를 위로하려고 했다는 그의 증
언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부랴부랴 컬로서스로 뒤돌아왔습니다―그러나 이번
에는 피에로가 아닌 할리퀸으로 가장한  겁니다―덧입고 있는 의상만 벗어버리
면 둔갑하는 것은 문제 없었으니까요."

세상을 떠난 경의 백부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데이비드슨은 처음부터 희생자를  살해할 준비를 하고 
무도회에 온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의 동기는 무엇이었소? 그동기를 나는 이
해할 수가 없군요."
"아아! 거기서 제 2의 비극―코트네이양의 죽음이 문제가 되지요. 모두 그냥 지
나쳐 버린 간단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코트네이 양은 코카인  중독으로 죽었습
니다―그러나 그녀의 코카인은 크론쇼  경의 시체에서 발견된  에나멜 통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를 죽게 한 약을 그녀는 어디에서  손에 넣었을
까? 그것은 그녀에게 줄 수 있엇던 사람은 오로지 한사람―데이비드슨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설명되지요.  그녀가 데이비드슨과 사이가 좋았던  이유
도, 집에까지 바래다 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이유도 설명이 됩니다. 마약복용에 
대해서 절대적인 반대론자였던 크론쇼  경은 그녀가 코카인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고, 데이비드슨이 그것을 그녀에게 공급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슨은  아니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경은 무도회 석상에서 코트네이 양의 입을  통해서 그 진상을 밝혀내기로 결심
했습니다. 경은 그 가엾은 여성은 용서할 수는 있었지만 마약을  팔아서 살아가
고 있는 사내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지요. 데이비드슨은 자신의  나쁜짓이 
탄로나서 파멸하게 될 위기에 직면하게 된겁니다. 그래서 무슨일이 있어도 크론
쇼 경의 입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무도회에 참석한 것이지요. "
"그럼, 코코의 죽음은 과실사였습니까?"
"데이비드슨에 의해서 교묘하게 짜여진 사고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그
녀는 경에 대해서 대단히 화가 나있었습니다. 첫째는 경에게 꾸짖음을 당한 일, 
둘째는 코카인을 빼앗긴 일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비드슨은 그녀에게 다시 많
은 약을 주고는 아마도 '고루한 크론치'에 대한 반발심을 부추겨 약의 복용량을 
늘리도록 넌지시 권했겠지요."
"한가지 더 묻고 싶은데―"하고 내가 말했다. 
"커튼 뒤에 있었던 그 우묵하게 들어간 곳 말입니다, 가보지도  않고 그것을 어
떻게 알았습니까?"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지. 하인들이 그방을 들락거리고 있었는데, 시체가 발견
되었을때처럼 그 자리에 그냥 나뒹굴고 있었을 리는 없지 않겠나.  방의 어딘가
에 시체를 숨긴 곳이 있어야 겠지. 그래서 나는 커튼이 있고 그 뒤에 조금은 빈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추리한 걸세. 데이비드슨은 거기에 시체를 끌어다 두었다
가 나중에 연주석 옆에서 여러 사람들의  주의를 쏠리게 하고는 마지막으로 무
도장을 떠나기 직전에 다시 그 시체를 끌어내어 놓은 거지. 교묘하기 짝이 없는 
트릭이었어.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내야!"
그러나 나는 포와로의 녹색 눈 속에 다음과 같은 소리 나지 않는 말을 읽을 수
가 있었다.
"그러나 이 에르큘 포와로만큼 잘 돌아가는 녀석은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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