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 얼마나 아십니까?
J.D.래트클리프
당신의 몸 얼마나 아십니까 ?
미국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67년 "나는 조의 심장"이라는 기사를 실은 이래, 인체 각 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는 J. D. 래트클리프씨의 매력적인 글들을 연속물로 싣기 시작했는데 이 연속물은 즉시 무지무지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국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는 개별 기사의 복사 요청이 무려 700만 건이나 접수되었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이 연속물이 미국 잡지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시리즈를 한 권의 책으로 모은 것이다. 삽화를 보완하고 논리적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이 책은 귀중한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을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 인체의 주요한 기관과 조직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조(47세)와 제인(42세)은 전형적인 중년부부이다. 조만이 가진 기관도 몇 있고 또 제인만이 가진 기관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남녀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기관들이다.
신체의 기본단위인 세포에서 시작해서 조와 제인이라는 평범한 한 쌍의 인간이 지닌 신체 각 기관들이 그 기능에 따라 중추신경계, 감각기관, 내분비선, 순환계, 소화기관, 생식기관, 비뇨기 그리고 골격 및 기타 신체부위로 분류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를 위협하는 병에는 어떤 것이 있고 우리는 그 병과 어떻게 싸우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어떻게 하면 해가 되는가, 또 주요한 신체 각기관의 기능, 거기 생기는 사소한 고장들, 그리고 생명의 신비 등등이 제1인칭 화법으로 설명되어 있다. 즉 눈은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보는가를 설명하고 위장은 음식물이 어떻게 소화되는가를, 발은 발톱이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병을 예방하는 법을, 자궁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이 놀라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우리 신체에 대한 이해는 독자인 우리들을 매혹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다 건강하고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글들을 남기고 간, 저자인 고 J. D. 래트클리프씨에게 새삼 사의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래트클리프씨는 미국의 주요 잡지에 자주 글을 발표하던 기고가였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로버트 J. 데머리스트씨는 콜럼비아장로교 메디칼센터의 도해 책임자이다. 서문을 쓴 하워드 A. 러스크 박사는 뉴욕대학교 메디칼센터 재활연구소소장이며 세계재활기금 이사장이다.
감사의 말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면담을 통하여 도움을 준 탁월한 내외과 의사 및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다.
의학박사 헨리 F. 앨런, 하비 블랭크, 루이스 E. 브레이버먼, 앨지 C. 브라운, 윌리엄 C.클리블런드, 윌리엄 D. 데이비스 2세, 리처드 G. 이튼, 대니얼 S. 엘리스, 움베르또 페르난데즈-모란, 로렌스 M. 피시먼, 어빙 글리크먼, 프란치스꼬 곤잘레스, 허스트 B. 해치, 로버트 L. 헹킨, 하워드 P. 하우스, 존 K. 래티머, 윌리엄 J. 르메어, 초 하오 리, 데일 린드홈, J. 윌리엄 리틀러, 존 M. 마시, 대니얼 민츠, 올턴 옥스너, 어빈 H. 페이지, 케니스 새버드, 에드워드 B. 슬레신저, 앨버트 시걸로프, 아서 G. 셔피로, 랜드럼 B. 셰틀즈, 데이비드 A. 스프링, 프랭크 E. 스틴취필드, 해럴드 G. 탭, 도널드 태플리, 리온 워커, 잭 윅스트롬, 알렉산더 S. 워너, 필립 D. 윌슨 2세, 어빙 S. 라이트, 저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주 드위트 월리스옹, 호버트 루이스씨 및 제임스 머크래컨씨에게서 특별히 은혜를 입었다. 여기 실린 자료들은 형태를 조금 달리하여 이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기사들을 재편집한 것이다.
목차
감사의말
조와 제인
머리말
1. 기본단위
세포
2. 중추신경계
뇌
시상하부
3. 감각기관
눈
귀
코
피부
혀
4. 내분비선
뇌하수체
갑상선
흉선
부신
5. 순환계
심장
폐
혈류
6. 소화기
송곳니
인후
위
장
간
췌장
7. 생식기관
자궁
난소
유방
고환
8. 비뇨기
콩팥
방광
전립선
9. 골격 및 기타 신체 부분
척추
대퇴골
발
손
모발
조와 제인
조는 전형적인 중년 남자이며 그의 아내 제인은 전형적인 중년 부인이다. 조는 나이가 47세, 제인은 42세이며 그들에게는 세 자녀가 있다.
그들의 신체기관들(조에게만 있는 기관도 몇 있고 제인에게만 있는 기관도 몇 있지만 대부분은 남녀에게 다 있는 기관들이다)이 자기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미국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연재되어 '잡지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머리말
일반독자들을 위하여 과학적인 사실을 재미있고 구미에 맞게 쓴다는 것은 일종의 예술 작업이다. 그러자면 완벽한 음감을 지닌 음악가의 그것처럼 특수하고도 예민한 제 6감이 있어야 한다. 음악에서 음이 1도 높거나 낮으면 불협화음이 나오거니와, 그에 못지 않게 과학에 관한 글을 쓰는 데에도 정확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 말투가 한 음정만 낮아도, 일부 독자들은 "날 얕잡아 보고 썼구먼. 난 어린애가 아니야" 할 것이다. 또 말투가 단 1도라도 더 높으면, 독자들은 "이거 수준이 너무 높은데. 잘 모르겠는걸. 재미없어" 할 것이다. 과학을 다룬 글이 허구 아닌 사실이 되려면 그에 알맞는 완벽한 균형과 완벽한 말이 필요하다.
J. D. 래트클리프의 저서는 이와 같은 훌륭한 자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딱딱한 과학적 사실들을 알기 쉽고 흥미진진하며 잊을 수 없는 지식으로 바꿔놓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품위 있고 금슬좋은 한 부부를 등장시켜, 그들의 신체기관과 조직을 소개하면서 거기 숨겨진 비밀들을 독자에게 전해 준다. 그의 안내 관광과도 같은 솜씨로 인해 이 소설같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과학 도큐멘터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 나오는 부부 조와 제인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사실들은 저자 혼자서 연구, 분석한 결과가 아니고 저명한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분석하고, 그 정확성을 공인한 사실들이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각기 민감하고도 믿을 수 없으리만큼 복잡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인체의 온갖 부분들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
재미 삼아 읽으면서 기본적이고 오래 남는 지식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인체에 관해서는 특히 그렇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도 권장할 만한 책이다. 보건과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 젊거나 늙거나 관계없이 핵심적인 건강지식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오래 전에 배운 사실의 일부를 잊어버렸거나, 수많은 과학자들이 전세계 수천 개의 연구기관에서 알아낸 새로운 지식의 일부를 놓쳐 버린 보건 분야 전문가들에게는 훌륭한 복습과정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비단 우리의 인체와 정신에 그치지 않고 생명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적마다 독자들은 보다 지혜롭고, 보다 풍요롭고 보다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생명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기본단위
세포
나는 대도시를 닮았다. 수십 개의 발전소, 하나의 수송망, 정교한 통신망이 갖춰져 있다. 나는 원자재를 수입하여 제품을 만들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과 능력도 있다. 내 안에는 능률적인 정부 실은 아주 엄격한 독재체제 가 있고, 나는 또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 관할 구역을 순찰하기도 한다.
나의 작은 덩치 안에 이 모두가 들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려면 고성능 현미경이 있어야 하고, 나라는 대도시 안을 들여다보려면 초고성능 현미경이 있어야 한다. 나는 조의 몸 안에 60조 개나 있는 세포 가운데 하나이다. 세포를 흔히 생명의 기본요소라 부르지만 사실 우리들은 생명 그 자체이다. 나는 조의 오른쪽 눈에 있는 간상세포 가운데 하나인데 이제 세포 전체를 대변해서 종류도 많고 수도 많은 세포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을 해드리고자 한다.
'전형적'인 세포란 없다. 우리는 기린과 생쥐가 다르듯 모양과 기능이 서로 다르다. 우리의 크기도 가지가지이다. 타조알만큼 큰 것이 있는가 하면 가장 작은 것은 바늘끝에 100만 개가 편안히 올라앉을 만큼 작다. 또 우리의 모양도 원반, 막대기, 공 모양 등 가지각색이다.
우리들은 조가 하는 모든 일에 참여한다. 조는 가방을 들어올리면서 자기 팔이 가방을 들어올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근육세포가 수축하여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어느 넥타이를 맬까를 생각한다고 하자. 이때도 생각하는 것은 뇌세포 들이다. 면도를 할 적에도 역시 활동하는 것은 신경과 근육세포 들이다. 이때 잘라내는 얼굴의 털도 다른 세포들이 생산해 놓은 것들이다.
눈의 간상세포인 내가 하는 일은 희미한 빛 이를테면 별의 반짝임 을 잡아 그것을 단순화시켜 전기신호로 바꾼 다음 조의 뇌로 전달하는 것이다. 충분한 신호들이 도달하면, 조는 그별을 '보게' 된다.
조의 눈 안에 있는 우리들 2억 5,000만 개의 간상세포 하나하나에 각각 3,000만 개의 감광색소 분자들이 들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히 많은 전기를 사용하게 된다. 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나는 약 1,000개의 미토콘드리아 땔감(당분)을 태워 발전을 하고 '재'(물과 이산화탄소)를 남기는 미소한 소시지 모양의 발전소 를 가지고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이 복잡한 화학작용을 통해 아대노신삼인산염 약해서 ATP 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 이 물질은 대황초에서 대합조개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에게 힘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다. 가령 심장을 뛰게 하거나, 숨쉬기 위해서 가슴을 확장하거나 눈까풀을 움직일 때와 같이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ATP는 한층 단순한 성분으로 분해되며,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방출된다. 조가 살아 있는 한, 이와 같은 에너지 및 ATP에 대한 수요는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가장 깊은 잠에 빠져 있어도 바쁜 활동은 계속된다. 몸을 따뜻이 하기 위해서 세포의 아궁이에 불을 때고, 뇌세포들에서 전기를 방출하여 꿈을 만들어 내고, 혈액순환을 지속시키기 위해 심장이 박동을 계속하는 등. 이처럼 ATP의 분해(그리고 생성)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모든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는데, 한 가지 두드러진 예외가 적혈구이다. 적혈구는 제조작용을 하지 않고, 피의 흐름에 실려 다니기 때문에,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마도 세포 가운데서도 가장 경이로운 것은 조의 어머니의 몸에 있는 것과 같은 난자일 것이다. 단 한 개의 세포로 된 이 난자가 일단 수정을 하면 분열을 계속하여 마침내 2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아기가 된다. 이러한 세포증식은 그 자체만도 놀랍지만,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수정란 안에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자그마한 생명의 조각 속에는 복잡한 화학공장과도 같은 간의 설계도가 들어 있다. 그 안에는 또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머리빛깔, 살결, 몸의 크기에 관한 암호화된 정보가 들어 있다. 그것은 새끼손가락의 성장을 중단시킬 정확한 시점도 알고 있다. 나아가서 장차 조가 어느 정도 머리가 좋을 것이며, 어떤 질병에 걸리기 쉬울 것이고, 그의 대체적인 모습이 어떠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작은 알은 포유류의 경우는 그 크기가 거의 같다. 그런데도 그것이 자라서 어느 것은 고래가 되고, 어느 것은 토끼가 되고 또 어느 것은 조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창조를 가능케 하는 기적의 물질 DNA 디옥시리보핵산 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모든 세포들의 독재자인 DNA는 우리들 세포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만들며 무엇을 찾고 무엇을 피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한다.
나를 다스리는 DNA는 삶이라는 건축물의 대설계도를 작성하는 건축설계가에 비유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실제 건축작업은 청부업자들 RNA 즉 리보핵산 에게 넘겨준다. 건축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DNA의 서로 얽힌 쌍나선에 '인쇄'되어 있다. RNA중에서 메신저 노릇을 하는 '메신저' RNA가 DNA의 나선에 다가가 자기가 담당해야 할 일의 청사진을 찾아낸다. 그 다음 그 정보를 다른 모양의 RNA, 즉 '전환'RNA에게 전해 준다. 그러면 후자가 그 지시에 따라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것은 흔히 조의 몸 안에 있는 숱한 단백질 중 하나를 조립하는 일이 된다. 단백질의 원료가 되는 20여 가지의 아미노산을 특정한 형상으로 염주처럼 엮어 나간다. 그 결과 조의 심장을 뛰게 하는 근육세포, 걸어다닐 수 있게 하는 다리 근육, 그 밖에 DNA가 명령한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어진다.
놀라운 사실은 조의 눈에 있는 간상세포에 간직된 DNA가 그 자체로서 완전한 아기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귀 세포내의 DNA가 발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세포 안의 DNA들은 각기 일종의 형판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이 허황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DNA는 간상세포만을 만들어 낼 뿐, 다른 것은 일체 만들지 않는다.
조를 탄생시킨 세포분열은 평생 계속된다. 1초마다 수백만의 세포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죽어가는 세포들이 두 개의 똑같은 세포로 갈라지는 과정을 통하여 수백만 개의 세포가 새로 태어나고 있다. 커다란 저장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 세포들은 천천히 불어난다. 그와는 달리 피부 세포는 10시간마다 한번씩 불어난다. 세포는 이와 같이 끊임없이 재생되거니와 한 가지 두드러진 예외가 있는바 그것은 뇌세포이다. 조가 태어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일생동안 필요한 최대한의 뇌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노쇠하거나 상처를 입는 세포들은 그대로 죽어버리고 다시는 새 세포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는 애초부터 갖고 있던 뇌세포의 여분이 많기 때문에, 뇌세포가 줄어든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들 세포는 효소라는 놀라운 물질을 600가지 이상이나 만들어 낸다.
최고의 화학자와도 같은 이 효소들은 RNA의 주문에 따라 즉시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단백질을 가공해 낸다. 예를 들면, 생선 한 토막이 들어오면 거기서 단백질을 뽑아서, 그 구성물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들을 재배열함으로써 이를테면 조의 손톱에 필요한 인간용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효소들은 또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호르몬들과 질병과 싸우는 항체들을 만들어 내고, 그 밖에도 세계에서 제일 유능한 화학자들도 감히 해내지 못할 숱한 과제를 척척 해낸다.
우리의 내부구조에 못지 않게 바깥 가죽도 아주 훌륭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피막은 두께가 겨우 0.0000001mm 밖에 되지 않는다. 아주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이 비단거미줄 같은 껍질을 일종의 단단한 셀로판 주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자현미경 덕택으로 이제 그들은 그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의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우리의 세포막은 우리 안에 들여보낼 것과, 들여보내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구실을 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세포의 내부환경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즉 우리 세포 내부에 염분, 유기물질, 물과 그 밖의 다른 성분의 정확한 균형을 유지해 준다. 이 균형이 유지되느냐 않느냐는 조의 생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단백질 제조에는 어떤 원료가 필요할까? 우리의 세포막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필요한 원료는 받아들이고, 필요치 않은 것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세포막에는 필요한 물질을 가려내는 정밀한 인지장치가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세포들은 각자 다른 세포들의 세포막이 알아볼 수 있는 팻말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낯선 자나 침입자가 들어오려 하면 당장 쫓겨난다. 만약 외부침입자를 들어오도록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상상해 보라. 가령 털 세포 하나가 내구역으로 빈들빈들 들어왔다면, 조의 눈에는 느닷없이 털이 돋아날 것이다. 우리들이 자기 구역을 잘 지키지 못하면 신장에 사마귀가 나고, 눈두덩에 간장세포가 달라붙는 등 별의별 이변이 다 일어날 것이다.
세포막은 또한 다른 세포들과 말을 할 수 있는 통신수단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세포막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내는지는 나도 모른다. 효소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심장을 떼내어, 세포를 모두 따로따로 떼어놓는다면, 그 세포들은 각기 제멋대로 맥박칠 것이다. 그러나 곧 그들은 다시 장단을 맞추어 일제히 맥박치게 될 것이다.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말이 통하는 것은 분명하다.
호르몬 역시 통신체계의 일부로서 화학적 메신저의 구실을 한다. 예컨대, 조의 혈당이 올라 가기 시작하면 그의 췌장은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의 생산을 가속화시키는데 그 호르몬은 "빨리 당분을 연소시켜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혈액이 이 작업지시를 사방에 전달하고, 세포들이 그 지시를 따른다. 또 조가 장작을 패기로 했다고 치자. 그는 가외의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그의 갑상선이 세포들에게 작업지시를 내린다. "ATP 생산에 박차를 가하라"고.
우리들의 무서운 적은 바이러스들이다. 이 성가신 꼬마 기생생물들은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므로, 자기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 이따금 우리들의 세포막 경비병들이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 바이러스가 세포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수가 있다. 일단 세포 속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우리의 미토콘드리아를 이용하여 증식을 시작한다. 불어난 바이러스들의 등쌀 때문에 불운한 그 세포는 죽어버린다. 그러면 거기서 풀려나온 바이러스들이 다른 세포들을 공격한다. 제일 가벼운 바이러스 감염에도 수백만 개의 세포들이 파괴되곤 한다. 만일 조의 신체내에 갖가지 방어 체제가 없다면, 바이러스들이 온 몸을 차지하여, 조는 오래지 않아 죽고 말 것이다.
아마도 우리 세포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은 조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우리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60조에 달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그처럼 조화롭게 살 수 있느냐, 어떻게 그렇게 각자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능률적으로 자기 과업을 수행하느냐 하는 것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요, 아마도 인간이 풀 수 없는 최고의 신비라 할 것이다.
2. 중추신경계
뇌
우주에는 경이로운 일도 많지만 그 모든 경이도 나와 비교한다면 무색해진다. 나는 균일한 아교질로 이루어진 1.36kg짜리 버섯 모양의 회백색 조직이다. 내가 하는 무수한 기능들을 그대로 흉내낼 수 있는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부속품의 수효는 굉장하며 신경세포인 뉴런이 약 300억 개이고, 교질세포로 말하면 신경세포의 5∼10배에 달한다. 나는 조의 뇌이다. 조의 별로 크지 않은 머리통 속에 이 엄청난 수의 세포가 모두 들어 있다. 나는 보기에는 조의 일부에 불과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바로 조이다. 그의 개성을 대표하고 그의 행동과 그의 지능을 다스리는 것이 나이다. 조는 자기가 귀로 듣고 혀로 맛을 보며 손가락으로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 모든 일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귀, 혀, 손가락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구실을 할뿐이다. 조가 어디가 아프다든지 배가 고프다든지 할 때도 내가 그에게 그것을 알려 준다. 나는 또 그의 성충동, 기분, 그 밖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다.
그가 잠자고 있을 때마저도, 나는 전세계의 전화교신량을 다 합친 것보다는 많은 양의 교신을 취급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조에게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정보량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이 엄청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까? 내가 중요한 것만 추려주면, 조는 나머지는 무시해 버린다. 가령 조가 전축에 음반을 걸어 놓고 동시에 글을 읽으려 한다면, 음반이나 책 가운데 어느 한쪽에 집중해야지 동시에 두 가지에 집중하지는 못한다. 만약 조가 특별히 재미있는 소설에 몰두하고 있다면, 자기가 무척 좋아하는 음악의 일절을 듣지 못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론 각별히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나는 마치 자동차의 기어를 바꾸는 것처럼 즉각 기어를 바꾸어 넣는다. 가령 조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면, 나는 즉시 그가 균형을 되찾도록 지시를 내리고 팔을 짚어 넘어질 때의 충격을 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조가 얼음 바닥에 넘어지면, 나는 그가 다쳤는지 다치지 않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 사건을 나의 기억에 저장해 두었다가 또다시 얼음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라고 조에게 경고한다.
이와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일 이외에도 나는 수천 수만 가지 집안의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조의 숨쉬기를 감독하는 일도 내가 담당한다. 감각기관이 조의 혈액 안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고 있으며 산소가 좀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 오면 나는 호흡 가슴 근육의 수축과 확장 회수 을 높여 준다.
이와 비슷한 수천 가지 방법으로 나는 조를 어린애같이 보살펴 준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그 대가도 철저하게 요구한다. 나는 조의 몸무게에서 불과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그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20%, 그리고 그의 심장이 펌프질하는 피의 5분의 1을 요구한다. 나는 산소와 피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않으면 안되며 만약 잠시라도 공급이 부족하면, 조는 실신하고 만다. 단 몇 분 이라도 공급이 중단되면, 나는 중대한 손상을 입고 조는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가 마비되며 심하면 사망하기도 한다. 또한 나는 영양분 포도당 을 꾸준히 공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없으면 조는 죽기 때문에, 설사 조가 심각한 기아상태에 빠진 경우에도 있는 영양분은 내가 제일 먼저 차지한다.
여러 가지 점에서 나는 해안선의 대체적인 윤곽만이 겨우 알려진 광대한 미지의 대륙과 같다 그런데 나의 내부에 대한 탐험을 시도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이미 상당히 매혹적인 사실을 발견해냈다. 조가 느끼는 온갖 고통이 나를 통해서 느껴지지만, 막상 나 자신은 칼로 잘려지더라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뇌수술은 환자에게 일체 마취를 하지 않은 채 실시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나의 특정 부분을 전기로 자극함으로써 그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조가 만약 뇌수술을 받게 된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놀랄 것이다. 한 곳에 살짝 전기를 통하면,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국민학교 3학년 담임선생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곳을 자극하면,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되살릴 수 없었던 기적이나 자장가 가락을 '듣게' 된다. 나는 일생의 기념물들이 들어 있는 오래 된 다락방과 비슷하다. 조는 다락방에 무엇이 있는지 일일이 모를 수도 있으나, 나에게는 그가 평생 동안 모은 온갖 기념품이 들어 있다.
뇌지도를 작성하는 학자들은 나의 내부의 어떤 곳에서 무슨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 그 담당구역들의 어렴풋한 윤곽은 알고 있다. 시각은 나의 뒷부분, 청각은 옆부분에서 담당한다는 등등.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 있는 발견으로는 아마도 '쾌감중추'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쥐에게 '쾌감중추'에 미세한 전기자극을 주는 장치를 해놓고 스위치를 눌러서 자극을 주는 법을 가르쳐 주면 그 쥐는 거의 쉬지 않고 그 스위치를 눌러댄다. 음식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계속 그 스위치만 눌러댄다. 그렇게 오래 놓아두면, 굶어 죽는 수도 있다. 아마 죽어도 행복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조가 심한 우울증에 걸리면 의사들은 그의 뇌 안에 이런 전극을 심어 놓을 수도 있다. 전기자극을 조금만 주어도 침울한 조를 황홀한 기분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우 단단한 요새 안에 들어 있다. 두개골은 꼭대기의 두께가 0.6cm 정도이고, 밑둥은 한층 더 두껍다. 나는 충격을 받았을 때 그를 완화시켜 주는 구실을 하는 물 같은 액체에 잠겨 있다. 뇌혈액관문이 문지기의 구실을 하며 어떤 것들은 들어오게 하고 어떤 것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가령 내가 필요로 하는 포도당은 맞아들이지만, 병균들과 유독성 물질들은 물리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통제와 마취제들은 쉽사리 이 관문을 통과하는데, 그 결과 불행히도 나의 정상적인 활동을 크게 일그러뜨리는 알콜과 환각제들도 쉽사리 들어온다.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나는 시각적인 영상을 눈으로 보지 않고 '듣는' 수도 있다.
나의 구조에 관하여 한마디하겠다. 잔디밭에서 뗏장 한 조각을 들어올려 보면, 어지럽게 뒤얽힌 뿌리들을 보게 된다. 나는 그것과 비슷하되 다만 그것보다 몇 백만 배나 더 복잡하다. 300억 개나 되는 나의 신경세포(뉴런)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신경세포는 6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뉴런은 필라멘트에 달라붙어 있는 거미와 흡사하다. 거미는 세포체부이고, 필라멘트는 축삭돌기이며, 거미의 다리들은 수상돌기이다. 그 다리들이 인접 뉴런으로부터 신호를 잡아서 체부로 전달한다. 그러면 그 신호가 다시 시속 최고 460km로 필라멘트를 따라 전달된다. 신호가 하나씩 통과한 뒤에, 필라멘트가 화학적으로 재충전되는 데는 약 2,000분의 1초가 걸린다.
어느 점에서도 나의 뉴런이 다른 뉴런과 서로 닿지는 않는다. 신호들은 방전 형식으로 전달된다. 한번 '방전'할 때마다 신경과 신경 사이에 화학적으로 교신이 이루어진다.
나는 갖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재생이라는 경이는 전혀 배우지 못했다. 피부, 간장 조직, 혈액세포들은 손상이나 손실을 입은 뒤에도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세포 하나를 잃으면 그것은 영영 잃어버리고 만다. 나이 35세에 이르렀을 때 조는 뇌세포를 하루에 1,000여 개씩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내 무게 역시 줄어든다. 만약 우리 뇌세포에 충분한 여분이 없다면, 이런 현상이 무서운 결과를 빚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겐 보상의 길이 있다. 설사 1,000개의 세포가 죽는다 하더라도, 다른 1,000개의 세포들은 그 손실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세포가 너무 많이 파괴되는 경우에는 조가 눈치를 챌 수도 있다. 후각이 약화되거나 미각이 한결 둔해지거나 청각이 쇠퇴하는 수가 있다. 조는 자신의 주의집중 능력이 감소되는 것을 의식할 것이고 이름, 날짜, 전화번호를 기억하기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가 살아 있는 한 절대로 중요한 일들은 끝까지 처리해 나간다.
조는 자기에게 신장과 폐와 부신이 각각 둘씩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흔히 나를 좌우 양쪽으로 갈라진 기관이라 생각지 않고 있지만 사실 나는 좌우 반구로 뚜렷이 나뉘어 있다. 나의 좌반구는 조의 오른쪽 몸의 활동을 대부분 지배하고, 나의 우반구는 왼쪽 몸의 활동을 다스린다. 오른손잡이들은 좌반구가 우세하고 왼손잡이들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나의 좌반구가 조의 걷기, 쓰기 능력과 수학 능력을 지배한다고 시사하고 있다. 나의 우반구는 근본적으로 벙어리지만, 공간판단과 같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여러 가지 사물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 조에게 가르쳐 주는 지원 시스템에 있다. 나는 기억 하나하나를 여러 곳에 저장해 둔다. 가령 사과나무 한 그루를 보거나, 개울물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후일 어느 지방에 가서 동일한 현상에 부딪쳤을 때 추억을 불러일으켜 준다. 나의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조는 별로 큰 지장 없이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 나머지 부분이 안하던 일을 떠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러나 나는 흔히 없어진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신경연락망을 구축할 수 있다. 말을 못하던 사람이 다시 말할 수 있게 되고 마비된 팔다리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의 이 경이로운 적응력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보호장치가 있긴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종양이 생겨 갖가지 재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적시에 종양을 제거하기만 하면 요즘은 거의 예외 없이 안전할 뿐 아니라, 씻은 듯이 회복되는 사례가 많다.
뇌졸중은 또 다른 큰 문제이다. 나의 작은 정맥에 핏떡이 생기거나 작은 동맥이 약화되어 파열하면, 나의 일부가 굶게 된다. 뇌졸중의 증후는 사소한 사고 장애에 그치는 수도 있는가 하면 전신 마비 및 사망에 이르는 수도 있다. 뇌졸중으로 이러한 결과가 일어나면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잡을 방도가 거의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회복이 가능하다. 그 성공 여부는 나의 어느 부분이 어느 정도 파괴되었는가에 좌우된다.
나의 세번째 큰 적은 뇌손상이다. 뇌척수액과 단단한 두개골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지만 심한 타격을 받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경우, 내가 심한 충격을 받는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나는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가령 손가락을 망치 같은 것으로 찧었을 때처럼 부어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부어오를 자리가 없다. 따라서 압력이 가중되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조는 실신하거나, 심할 때는 죽는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얘기했듯이 많은 경우 나는 신기할 정도의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신비로운 존재인 나에 대한 얘기가 절대로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룩한 업적 말, 기억, 논리적 판단과 그 밖의 온갖 놀라운 능력 이 대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앞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에 비긴다면 하잘것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닌 자원으로 말하면 이제 겨우 개발을 시작한 단계에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역시 엄청나게 크다. 현대의 사람들에게는 고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의 뇌가 극히 원시적인 것같이 보이겠지만 몇십만년 뒤의 사람들이 볼 때 오늘의 나의 모습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시상하부
조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조의 몸 안에서 단일 세포집단으로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조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거의 모르고 있으나, 나는 하루 24시간 근무하고 있다. 나의 주임무는 조의 내부에 평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나는 조의 뇌와 그 밖의 신체의 다른 부위들이 활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면 활동이 요청된다고 통보해 준다. 조가 배고픔, 목마름, 더위와 추위를 느끼고, 분노와 공포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아는 것은 내가 항상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가 하는 일에는 무슨 일이든 직접, 간접으로 간여한다. 나는 조의 시상하부이다.
나는 조의 뇌 속에 있는 다른 부위처럼 명석하지는 못하다.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나는 말하자면 조의 몸 안에 있는 중앙교환대, 또 다른 표현을 빌린다면 신경계의 상당부분과 뇌하수체를 조정하는 일종의 조정관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뇌하수체는 신진대사와 성장, 제2차 성징, 그리고 호르몬체계의 기타 다른 기능들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주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의 겉모양은 별로 보잘것없다. 나는 뇌의 아래쪽, 조의 머리 중심 부근에 누워있다. 빛깔은 홍회색이고, 크기는 대략 작은 말린 오얏만해서 뇌 전체 부피의 3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체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 풍부한 혈액을 공급받고 있으며, 고도로 발달된 감지체계를 갖고 있고 또 신경계 내부에 직접 간접으로 폭넓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조상을 찾자면 1억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는 최초의 원시적 동물들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해온 많은 일들을 지금도 조를 위해서 하고 있다. 예컨대, 체온조절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내 덕택에 조는 영하 70 C 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나 60 C까지 올라가는 리비아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조가 어느 곳엘 가든 나는 그의 내부 온도를 약37 C로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그의 온도가 위 아래로 몇 도만 변해도 조는 죽고 만다.
더운 날에 조의 피의 온도가 10분의 1도만 올라가도 나는 작업에 착수한다. 나는 뇌하수체와, 언제라도 명령에 복종할 태세가 돼 있는 신경계를 통해 체표의 혈관들을 확장시키고 수만 개의 땀구멍을 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면 땀이 피부를 식혀 조의 피 속에 있는 쓸데없는 열을 제거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나는 뇌의 다른 부위에 호흡을 빠르게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조는 숨을 가쁘게 쉬어서 더 많은 열을 밖으로 내보낸다.
반대로 추운 날 조의 혈액온도가 10분의 1도 떨어지면 나는 부신과 뇌하수체를 통해 간으로 하여금 신체의 주요한 용광로 구실을 하는 근육에 연료인 혈당을 더 많이 내보내도록 한다. 나는 조로 하여금 몸을 덜덜 떨게 하여, 근육활동으로 열이 발생하도록 한다. 아울러 땀구멍을 닫아 버리고, 혈액도 열을 많이 빼앗기게 되는 신체표면을 피해 흐르게 한다. 그런데 조의 몸이 만약 너무 식으면, 체표 혈관들이 거의 완전히 닫혀 버리기 때문에 그의 피부색깔이 푸르둥둥하게 변한다. 나는 조가 추위를 느낄 때 별 소용이 없는 일을 한 가지 하는데 그것은 소름이 돋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털이 많았던 조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다. 털이 많았던 조의 조상들을 위해서 나는 피부근육을 죄어 털을 곧추세움으로써 외부와의 절연호과를 더 냈던 것이다.
조가 세균에 감염되면, 박테리아는 나의 감지기능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나의 감지장치들은 마치 온도조절기로 조절한 것처럼 그들이 작동하는 온도를 한 단계 높인다. 그러면 조는 체표 혈관을 수축시키고 몸을 떨어서 체온을 그 온도에 맞추고 그래서 조가 체온을 올리는 데 성공하면, 나는 조로 하여금 땀을 흘리고 혈관을 팽창시켜 열을 방출하도록 한다. 조가 세균감염에서 벗어나면, 나의 감지장치들은 정상적인 작동으로 되돌아가고 조의 열도 사라진다.
나의 또 다른 중요한 일은 체내의 수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조는 근본적으로 해양동물이다. 갓난 아잇적에 그는 75%가 물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물이 50%에 가깝다. 날마다 폐를 통하여, 그리고 땀과 오줌으로 그는 약 3ℓ의 수분을 잃는다. 만약 총 재고량의 5분의 1 이상을 잃으면 그는 죽고 만다.
그러므로 수분이 너무 적어지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즉 나의 탐지장치들이 물이 부족해서 피의 염분 농도가 너무 높아지고 있음을 알아내면, 뇌하수체와 나의 공동 노력으로 항이뇨호르몬(ADH)이 방출되도록 한다. 그리하여 여분의 ADH가 방출되면 신장으로 하여금 평상시보다 많은 수분을 흡수하게 하여, 오줌이 진해지고, 타액선은 침의 흐름을 줄인다. 이어 조의 몸은 가능한 한 물을 아끼고 조는 갈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그는 한두 잔의 물을 마시고, 그럼으로써 수분의 균형이 회복된다.
맥주 서너 잔을 마셨을 때처럼 조의 피가 너무 묽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런 때는 내가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는데 그러면 뇌하수체는 피 속에 방출되는 ADH의 양을 줄인다. 신장은 통상적인 양의 수분을 보존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보다 빨리 오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러분들은 조가 배고파지면 조 자신이 그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는 그것을 모른다. 식사시간이 되면 그 바로 직전에 수천 개의 정보가 나에게 홍수처럼 밀려들어온다. 조의 혈당공급이 떨어지고, 근육에 가벼운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모두를 평가하여, 위액과 침의 생산을 증가시키라는 신호를 내보내기 시작한다. 위는 수축 확장의 속도와 힘을 증가시키고, 미뢰는 감각이 한층 더 예민해진다. 이래서 조는 식사시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세포집단, 또는 핵들 가운데서 두 개가 먹는 것과 특별히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둘 중 하나가 손상을 입으면, 조는 음식을 잔뜩 쓸어넣으면서 도대체 끝낼 줄을 모를 것이다. 다른 하나에 손상이 가면, 즉시 먹기를 그치고 음식에 완전히 흥미를 잃을 것이다.
성욕 역시 내가 관리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나는 뇌하수체를 시켜 생식선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 이상 성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뇌 속의 다른 부분들이 성욕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것만을 확실하며 우리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성욕을 자극하는 일을 혼자 담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없다면 조는 성적으로 전혀 절제없는 사람이 되고, 만약 나의 한 부위가 파괴되면 성욕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반면에 이따금 뇌 안에 압력이나 자극이 생기는 경우에는 내가 뇌하수체로 하여금 성호르몬을 과도하게 많이 방출하게 함으로써 조의 성적반응이 강해지는 수도 있다.
때때로 조는 크게 화를 낸다. 피질(뇌의 회색 물질)이 이 사실을 나에게 알리면, 즉시 조가 싸우거나 도망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주어야 한다. 나는 뇌하수체에게 호르몬을 내보내게 하여 다른 선들을 작동시켜 신진대사율을 높이게 한다. 근육에 필요한 피를 보존하기 위해서 피부 혈관들은 수축하고, 반면 근육혈관들은 확장된다. 조는 창백해지지만, 모든 근육들은 언제든지 혈액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호흡과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심장이 뛸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피의 양이 증가된다. 위의 활동은 떨어지고, 조는 소변을 보고 싶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 밖에 다른 잡다한 일들이 있다. 뇌신경은 눈, 얼굴 근육, 인두와 심장으로 하여금 긴장에 대비하게 한다. 근육의 긴장이 증가하고, 피부온도가 낮아지며, 타선은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닫힌다. 그래서 조는 입이 마른다. 조가 진정되면 즉시 모든 것이 반대로 작동하여 몇 분 뒤 정상으로 돌아간다. 조의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그의 내부에서만은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나는 노력한다. 다행히 나는 탈이 나는 일이 별로 없다. 나는 아주 잘 보호되어 있어 좀처럼 상처를 입지 않는다. 내가 주로 걱정해야 할 일은 인접 부위에 생기는 종양이나 뇌에 혈액공급이 중단되는 일이다.
조가 나의 작업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별로 없다. 사실 나는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경험이 워낙 많아서 조나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조의 내부 환경을 조절하는 일에 관한 한 훨씬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감각기관
눈
복잡하기로 말하면 조의 몸 안에 있는 다른 어떤 기관도 나와 맞설 수 없다. 크기는 탁구공 정도밖에 안되지만 나는 수천만 개의 전기회선을 가지고 있어서 전달되는 150만 개의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조가 흡수하는 모든 지식의 80%를 수집한다. 그는 나를 소형 텔레비전 카메라쯤으로 생각한다. 그런 비유는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제일 크고 값비싼 TV 카메라보다 훨씬 민감하다. 나는 모든 기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으로 손꼽히는 시각을 관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나에게 고달픔을 안겨 주고 있다. 나는 원래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의 선사시대 조상들에게는 눈의 주요 임무는 먼 거리에 있는 사물 피해야 할 위험, 잡아야 할 짐승 등등 을 보는 데 있었다. 내가 계속적인 근거리 작업을 하라는 소임을 받은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다.
나의 해부도를 보면, 왜 내가 오늘날의 요구에 적응하기 어려운지 알게 될 것이다. 먼저, 나의 앞창 미국 돈 10센트짜리 주화만한 투명한 각막 을 보라. 각막은 광선을 질서정연한 모양으로 굴절시킴으로써 모는 과정의 첫 단계를 담당한다. 나의 동공으로 말하면 조절이 가능한 광선의 통로이다. 눈부신 햇빛 속에서는 거의 닫히고 어두운 밤에는 활짝 열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이런 정도의 그저 보기만 하는 일이라면 값싼 카메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나의 경이로운 작업은 수정체 크기와 모양이 타원형 비타민 정제와 같은, 액체가 담긴 자그마한 주머니 에서 시작된다. 나의 수정체는 작지만 지극히 힘이 세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는 근육 고리에 에워싸여 있다. 나의 수정체는 긴장을 하면 두꺼워져 가까운 물체를 볼 수 있게 되고 긴장을 풀면 납작해서 멀리 떨어진 물체를 보게 된다. 이것은 동굴에 살던 조의 조상들에게는 알맞는 조절장치였다. 그들은 주로 6m 또는 그 이상의 거리에 있는 사물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수정체의 근육은 대체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조는 가까이 있는 것들을 보면서 즉 독서와 책상에서 하는 작업등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나의 모양체근은 긴장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따라서 지치게 된다.
나의 수정체 앞뒤에는 액체가 가득 찬 방이 두 개 있다. 앞쪽에 있는 액체는 물과 같고, 뒤쪽에 있는 것은 달걀 흰자위처럼 농도가 진하다. 물 같은 액체는 내가 쭈그러지지 않고 단단하게 부풀어 있게 해준다. 이 액체가 둘 다 티 하나 없이 맑아야만 빛이 통과할 수 있다. 눈부신 빛을 볼 때 조의 눈에 들어오는 '반점들'은 내가 자궁 안에서 만들어지던 때부터 있었던 세포의 잔재들이다. 이 세포의 잔재들은 조가 살아 있는 한 그의 눈에 있는 액체 속을 정처없이 떠다닐 것이다.
조가 어떤 물체를 볼 때,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 수정체는 나의 안쪽 후면 3분의 2를 덮고 있는, 얇은 반투명 벽지 모양의 망막에 정확히 초점을 맞춘다. 조의 뇌를 제외하고는 그의 몸 어디에도 그처럼 좁은 공간에 그처럼 많은 것이 채워져 있는 곳은 없다. 넓이가 6.25㎠도 안되는 나의 망막에는 1억 3,700만 개의 감광세포가 들어 있는데, 그중 1억 3,000만 개는 명암을 식별하는 작용을 하는 막대기 모양의 세포(간상세포)이고, 700만 개는 색을 식별하는 기능을 하는 원추 모양의 세포(추상세포)들이다.
간상세포들은 나의 망막 도처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밤에 반딧벌레 한 마리만 지나가도 그들은 복잡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반딧벌레가 지나가면 그 희미한 빛이 간상세포에 들어 있는 붉은 자줏빛 색소인 로돕신을 하얗게 변화시킨다. 로돕신을 하얗게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아주 약한 전기 -- 모기를 간질이기도 어려운 수백만 분의 1볼트 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짚 굵기만한 시신경으로 들어가, 시속 약 480km의 속도로 조의 뇌에 전해진다. 뇌는 홍수같이 밀려드는 신호를 해석하여 이것이 반딧벌레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 모든 복잡한 전기화학작용이 일어나서 끝나기까지 0.002초밖에 안 걸린다!
간상세포들도 복잡해 보이지만 추상세포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 세포들은 내 방 뒤쪽에 있는 좁쌀만한 크기로 노랗게 파인 중심와에 모여 있다. 이곳에 예리한 시각 독서나 그 밖의 근접 작업 등 과 색채감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추상세포들 역시 하얗게 변할 수 있는 색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다. 추상세포 하나에 빨강, 초록, 파랑에 작용하는 색소가 각각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팔레트에다 물감을 섞는 화가처럼, 조의 뇌는 이 색들을 혼합하여 수십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낸다. 만약 이 복잡한 전기화학작용에 이상이 생기면 조는 색맹이 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8명에 1명 꼴은 색맹이다. 빛이 희미한 데서는 추상세포들의 활동이 감소되어, 색채감각이 사라지며, 간상세포가 일을 떠맡음에 따라 만물이 회색으로 변한다.
조는 사물을 나 즉 눈으로 보지만, 그는 또한 뇌 안에서 본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아 뇌에 있는 시각중추가 파괴되면 조는 영영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보다 약한 타격을 받으면 조는 '별들' 혼란스러운 전기교란 을 보게된다. 뇌가 가지고 있는 '보는' 기능은 조가 꿈을 꿀 때를 생각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나의 뚜껑(눈까풀)이 닫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다. 그가 만약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면, 다른 감각적 자극 촉감, 소리, 냄새 을 통해서 꿈을 꿀 것이다.
조가 태어날 때의 눈은 지금의 눈이 아니었다. 출생 당시에는 단지 명암만을 식별할 수 있었다. 처음 몇 달 동안 그는 동굴에 살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원시였다. 그래서 그는 딸랑딸랑하는 장난감 같은 것을 자세히 뜯어볼 때면, 그것을 얼굴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지게 들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처음에는 조의 두 눈이 서로 보조가 잘 맞질 않았다. 내가 이쪽으로 가는데, 내 짝은 저쪽으로 가곤 했다. 우리들이 따로 노는걸 보고 조의 어머니는 걱정을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생후 수개월이 되자 우리들은 빈틈없이 행동을 통일할 수 있게 되었다. 조가 6살이 되자, 그의 시력은 아주 좋아졌다. 그러나 내 시력은 8살이 되어서야 절정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에, 조는 어둠침침한 데서 책을 읽곤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러면 눈을 '망친다'고 꾸중을 했다. 당치도 않은 말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더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설사 가장 나쁜 환경에서 무얼 본다고 하더라도 시력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
나는 이 밖에도 별난 속송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나의 근육들은 비록 작지만, 단위 중량의 힘으로 말하면 몸 안에서 가장 힘이 센 근육 축에 낀다. 나는 하루 평균 10만 번 가량 물체들을 정확하게 초점에 올려놓기 위하여 움직인다. 조가 다리 근육에 비슷한 양의 운동을 시킨다면, 그는 같은 시간에 80km를 걷게 되는 셈이다.
나의 청소장비도 또한 이에 못지 않게 놀랍다. 나의 눈물샘은 끊임없이 수분 먼지와 기타 이물질들을 씻어내는 눈물 을 만들어 낸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내 눈까풀은 자동차의 창닦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조는 1분에 3 6회 눈을 깜박거리는데 내가 피곤하면 그 회수가 많아진다. 이렇게 해서 나의 각막은 항상 축축하고 깨끗하게 유지된다. 또한 눈물에는 리소자임이라고 하는 강력한 살균제가 들어 있는데 이 물질이 감염성 세균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이 쉼으로써 피로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조가 눈을 깜박일 때, 나는 휴식을 취한다. 또 나는 내 짝과 번갈아 가며 일을 한다. 내가 업무량의 90%를 맡고 있는 동안, 조의 다른쪽 눈은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가 그쪽이 일을 시작하면, 내가 쉰다.
자연의 여신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보호장치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충격흡수장치 역할을 하는 불쑥 튀어나온 광대뼈와 이마로 둘러싸인 뼈의 동굴 속에 들어있다. 자연의 여신은 또한 나에게 티처럼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침입자가 들어올 경우 경보를 울리는 초고성능의 신경을 주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골칫거리들이 있다. 나의 초점조절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때가 가끔 있다. 이 문제는 안경으로 95%를 교정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질병이다. 또 한 가지 걱정거리는 배수 문제 즉 나에게 들어오는 액체가 너무 많거나, 그것이 너무 적은 경우이다. 안구의 압력이 항진하여 나의 시신경에 공급될 혈액을 감소시키기도 하는데 이것이 녹내장이다.
녹내장에 걸리면 심한 경우에는 며칠 만에 영영 장님이 되는 수도 있다. 이 병은 진행속도가 더딘데다가 초기의 증후가 아주 미미한 까닭에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기 쉽다. 등불의 주위에 무지개 같은 색륜이 보이고 측면시력이 감퇴하며 어둠에 대한 적응이 잘 안되고 시상이 몽롱해지는 것이 녹내장의 증후이다. 47세인 조가 그 나이에, 시력의 손상이나 완전 실명을 가져오는 녹내장에 걸릴 확률은 40분의 1이다. 의사는 내 안구에 음진동측정계라는 작은 계기를 갖다 대고 누름으로써 녹내장을 간단히 검진할 수 있다. 조는 해마다 이 같은 검진을 받아야 한다. 녹내장을 치료하려면 점안약을 사용하거나 수술을 해야 한다.
나에게 흔한 또 다른 질환은 난시이다. 나의 망막 표면이 고르지 못해서, 유리조각 속에 거품흠집이 들어 있는 경우처럼 상을 일그러뜨리는 것인데 안경을 끼면 교정된다. 그보다는 망막박리가 더 무서운 병이다. 벽지 모양의 망막이 부풀어오르거나 벗겨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보통으로 번쩍이는 빛이 보이고 영상이 일그러지거나 희미한 반점이 보이는 등 뚜렷하게 증세가 나타난다. 외과의사가 나의 벽지를 '압정'으로 다시 제자리에 붙일 수 있는데, 그 성공률은 80% 정도이다.
나의 각막과 수정체 정상일 때는 완전히 투명함 가 모두 흐려져서 실명할 수도 있다. 각막이 원인이라면, 조는 각막이식으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수정체에 원인이 있다면, 백내장 수술을 받고, 그 뒤 두꺼운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를 사용해야 한다.
다행히 조는 지금껏 이 모든 질병을 모면해 왔다. 그렇긴 하나 나는 조의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늙어 간다. 내 수정체의 투명도가 떨어지고, 조절근육들이 점차 약해지고, 동맥들이 굳어져서 나의 망막에 공급되는 피의 양이 줄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되겠지만, 조가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가 죽는 날까지 내가 그에게 든든한 시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귀
조는 얼마 전 자기 회사에 사다놓은 컴퓨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얼핏 보기에 그것은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콘크리트 혼합기같이 엉성한 기계에 불과했다. 컴퓨터에 대한 나의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고도의 소형화기술을 대표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조의 몸 어디에도 나의 내부구조같이 아주 작은 공간에 그처럼 많은 것들이 꽉 채워져 있는 곳은 없다. 나는 상당히 큰 도시의 전화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전기회로를 갖추고 있다. 나는 또한 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쓰러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키잡이이기도 하다.
나는 조의 오른쪽 귀인데, 개암알만한 공간에서 이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 조는 눈을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짝과 내가 없다면,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비운 실청은 실명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더 해롭다 에 빠지게 된다.
조는 나를 단순히 자기 머리 옆에 달려 있는 살덩어리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외이일뿐이다. 외이는 소리를 모으는 나팔이다. 거기서 길이 2.5cm의 동굴이 비스듬히 고막과 이어지는데, 이 동굴은, 꼬부라져 있어서 섬세한 나의 내부구조를 보호하고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서 내부환경을 아늑하게 유지해 준다. 이 동굴에는 엄청나게 많은 털과 4,000개의 귀지샘들이 있는데 이들은 벌레, 먼지, 그 밖의 다른 잠재적인 유해물들을 잡아내는 일종의 파리잡이 끈끈이 구실을 한다. 귀지는 세균 감염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특히 조가 더러운 물에서 수영을 할 때 귀지가 큰 몫을 한다. (그가 보기 흉한 귀지를 씻어내는 것은 무방하지만, 귀지를 모조리 파내진 말았으면 좋겠다. 내 고막을 다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어차피 내가 또 여분의 귀지를 내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지름이 1cm 정도밖에 안되는 팽팽하게 당겨진 질긴 막인 고막은 소리를 듣는 복잡한 작업이 시작되는 곳이다. 소리를 실어 오는 공기의 파동이 이곳을 때린다. 마치 북채로 북을 치는 것처럼. 속삭임에서 나오는 가녀린 진동으로도 고막을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주 미소하여 10억 분의 1cm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미세한 자리 이동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신비로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의미를 지닌 소리로 변한다.
그 과정을 보려면 내 고막을 거쳐 완두알만한 조의 중이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경첩같이 서로 이어진 세 개의 작은 뼈가 있는데, 생김세를 따라 각각 침골, 추골, 등골이라 부른다. 이들은 내 고막의 미세한 운동을 조절하고, 이 운동을 22배로 증폭시켜 등골에 붙어 있는 타원형 창을 통하여 나의 내이로 전달한다.
나의 내이 진짜 청음기관 는 몸에서 가장 단단한 뼈가 파여서 생긴 요새 같은 동굴 안에 있는데 이 동굴은 물 같은 액체로 채워져 있다. 그 주요한 청음부위는 달팽이 모양의 와우각인데, 이 와우각의 꼬부라진 내부에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이는 털 모양의 신경세포 수천 개가 박혀 있고,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정한 진동에 조율되어 있다. 중이의 등골이 내이로 이어지는 타원형 창을 '노크'하면, 이 액체가 진동한다. 가령, 중간 C음이 울렸다고 가정하면, 와우각의 중간 C 털세포가 조수에 일렁이는 바다풀처럼 임파액 속에서 흔들린다.
이 흔들림으로 극히 약한 전기가 일어나서 나의 청신경 연필심의 굵기밖에 안되는 이 신경에는 3만여 회선이 들어있다! 으로 들어가고, 다시 1.5cm쯤 떨어져 있는 조의 뇌로 전달된다. 나의 와우각은 똑같은 일을 하는 조의 왼쪽 귀와 함께 수천 개의 이런 전기신호를 받아들이지만, 이 자료들을 정리하여 의미있는 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은 뇌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조는 나를 가지고 듣지만, 사실은 그의 뇌 안에서 듣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공기의 파동으로 전달되는 소리만을 이야기했다. 조는 또한 뼈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조가 말을 하면, 소리의 일부는 입을 떠나 내 고막을 때리지만, 다른 일부는 바로 턱뼈를 통하여 나의 내이의 임파액에 직접 전달된다. 그러므로 조가 듣는 소리는 상대방이 듣는 소리와 아주 다르다. 그 때문에 그는 녹음 테이프에 담은 자기 목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과연 자기 목소리일까 하고 의아해 한다. 또 조가 셀러리를 먹으면서 자기가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것은 신기한 나의 내이에 관한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와우각 위에 액체가 가득 찬, 3개의 아주 미세한 반원형의 도관 즉 삼반규관을 가지고 있다. 이 삼반규관은 조의 평형기관이다. 그중 하나는 상하운동을 탐지하고, 다른 하나는 전진운동,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좌우운동을 알아낸다. 조가 넘어지기 시작하면, 한 반규관의 액체가 자리바꿈을 한다. 그러면 그곳에 있는 털세포가 이것을 탐지하여 조의 뇌에 알리고, 그의 뇌는 조를 똑바로 서 있도록 하기 위해 근육에 힘을 주라는 명령을 내린다.
어린 시절에 조는 이따금 어지러워 비틀거릴 때까지 다른 소년이 자기를 빙글빙글 돌려 주는 것을 좋아했다. 조가 어지러워 비틀거린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삼반규관으 액체가 자리바꿈을 빨리 하는 바람에 뇌가 미처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메시지들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조는 근육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뒤흔들리는 배 안에서처럼 무질서한 자리바꿈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다른 기관들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조는 땀을 흘리게 된고, 멀미가 뒤따르는 게 보통이다.
조의 청력은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나의 세포조직이 탄력을 잃고 털세포들이 퇴화하고 칼슘앙금들이 중요한 부위에 침투함에 따라, 그의 청력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조가 갓난 아이였을 때, 조는 진동수가 매초 16에서 3만까지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약 진동수가 초당 16 이하인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면, 그는 자기 신체의 진동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조는 지금도 자기 몸의 진동을 들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면 웅하는 나직한 울림이 긴장한 손가락과 팔의 근육을 타고 들려온다.) 여남은 살 되었을 무렵 그는 초당 진동수가 2만 이상인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그는 초당 진동수가 8,000 이상인 소리는 듣지 못한다. 80 살이 되면 그는 초당 진동수 4,000 이하의 소리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는 조용한 장소에서 하는 대화는 제법 잘 들리겠지만, 시끄러운 곳에서는 잘 안 들릴지도 모른다. 그는 높은 소리보다는 낮은 소리를 더 잘 들을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데시벨 로스(decibel loss 난청)도 나타나고 있다. 데시벨은 어느 특정한 주파수에서의 소리의 강도를 측정하는 단위이다. 조용한 방안 1.2m 거리에서 들리는 속삭임은 약 30데시벨이며, 정상적인 대화는 약 60데시벨, 로큰롤의 연주는 120데시벨, 그리고 엽총 소리는 140데시벨로 나타난다. (그러나 로큰롤 밴드가 일상 대화보다 볼과 2배 정도만 시끄럽다는 뜻은 아니다. 데시벨의 수치가 20 많아지면, 소리의 강도는 100배로 증가한다.) 지금 조는 데시벨 로스 40을 나타내고 있다. 이만하면 그의 청각은 꽤 쓸 만하다. 하지만 그는 요즘 사람들에게 가끔 한 말을 되풀이해 달라고 청하곤 한다.
나와 같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관은 탈이 날 소지가 많다. 고막 파열이 자주 일어나는데, 다행히 고막은 파열돼도 대개 저절로 낫거나, 수술로 고칠 수 있다. 이명 즉 귀울음 또한 두통거리다. 이 이명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약물(일부 항생제, 알콜), 열병, 순환계 이상, 청신경에 생긴 종양 등이 모두 이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단 그 원인을 추적하여 제거해 주면 내 속에서 나는 소리가 멈추는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두통거리는 중이염이다.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중이염이 악화되어 결국 청력을 상실하게 되는 수도 종종 있었다. 중이에서 조의 인후로 통하는 에우스타키오관(오이스타히관, 유스타키관, 이관, 청관, 구씨관 이라고도함 편집자주)이 그 범인이다. 미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인후는 아주 불결한 곳인데, 에우스타키오관은 미생물들이 중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감기가 들었을 때, 조는 코를 너무 세게 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코를 세게 풀다가 목구멍에 있는 오염물질을 내 안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뼈의 지나친 성장으로 중이에 있는 뼈들의 움직임이 방해받는 수가 있다. 이 뼈들의 움직임이 정지되면, 청각에 장애가 일어난다. 이것이 전도청각상실이다. 조는 이 증세의 초기단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심한 실청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열에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청각을 상실하더라도, 조에게는 두가지 길이 있다. 즉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수술을 하는 것이다. 수술(성공률 80%)을 통하여 나의 등골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은 필라멘트로 대체한다. 그러면 뼈의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조는 다시 들을 수 있게 된다.
아마 지금 조가 제일 걱정해야 할 것은 소음공해일 것이다. 시끄러운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난청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 현재 로큰롤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몇 년 뒤에는 보청기를 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조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현대의 날카로운 소음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나치게 요란하면서도 낮은 저음이 내 고막을 때리는 한, 나는 근육을 움직여 고막을 팽팽하게 하여 그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저음이 아닐 때는 나로서 대처할 길이 없다. 조의 조상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천둥이나 사자의 울부짖음이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였고, 이들 소리는 저음이었으니까.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새로 등장한 고음 제트기의 굉음, 리베트 박는 기계의 탁탁거리는 소리
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한 한 예로, 생쥐에게 계속적으로 큰 소음을 들려 주면 생쥐의 내부기관이 파괴되어 결국 생쥐는 죽고 만다. 만약 그러한 실험을 조에게다 할 경우, 그 결과가 같아지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쓸데없는 소음에 큰 소리로 항의해야 한다. 집안과 사무실에서는 되도록 고요와 안식을 찾도록 할 것이며 사냥 같은 것을 할 때면 두 귀를 막도록 해야 한다. 되풀이해서 발사되는 엽총의 총성이 나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담배를 끊거나 줄이도록 해야 한다. 니코틴(커피도 마찬가지)은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내이의 동맥을 수축시켜, 내이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의 공급을 감소시킨다.
조는 정기적으로 눈 검사를 받는데 나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침묵의 세계가 얼마나 갑갑하고 외로운가를 조가 안다면, 그는 내 짝과 나를 보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코
나는 조의 얼굴 한복판에 솟아 오른 작은 언덕 즉 그의 코다. 조는 자기 눈과 귀와 소화기관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만, 나는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겨울철에 콧물을 흘리고 아무때나 재채기를 하며 감기에 걸리면 막히기 일쑤고, 사고를 당할 때면 잘 깨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굴의 다른 부위 눈, 귀, 입술 에 대해서는 다채롭고도 시적인 비유를 하곤 하지만 나는 그런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혹사당하고 이용당하면서도, 나는 얼굴에서 가장 천대를 받는 신세이다.
그러나 나는 조의 몸에 있는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이며, 그가 모르는 숱한 일을 하고 있다. 예컨대 그가 왼쪽으로 누워 잘 때면, 그의 왼쪽 콧구멍이 점차 충혈된다. 약 2시간이 지나면 나는 소리없는 신호 그를 깨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를 보내서 그를 돌아눕게 한다. 이것은 조가 잘 때에도 그로 하여금 몸운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몇 가지 격발장치 중 하나이다. 그래야만 조가 아침에 일어날 대 근육이 저리지 않게 된다.
조가 음식을 먹기 전에 나는 자동적으로 그 냄새를 맡아 식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상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해준다. 또한 조가 먹을 때 느끼는 쾌감의 상당한 부분은 나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다. 익어가는 스테이크의 냄새를 맡으면, 나는 침샘을 활발하게 작동시켜 입에 침이 고이게 하고 위액분비가 시작되도록 한다. 이미 조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감기 등의 병으로 내가 둔해지면, 음식이 맛이 없어지고 식욕이 떨어지며 따라서 조는 체중이 줄어든다. 내 자극이 없으면 조는 좀처럼 음식을 잘 먹으려 하지 않게 된다.
또 한 가지. 조는 감미롭고도 깊은 목소리의 소유자인데 그 점에 대해서도 그는 나에게 얼마간 감사해야 한다. 내가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데 어느 만큼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 코를 손가락으로 꽉 쥐어보면 아마 내가 목소리에 어떤 몫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건축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자랑할 게 전혀 없다. 나는 조의 입 천정과 뇌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있다. 실상 나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격벽이라 부르는 칸막이가 나를 둘로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조의 입 위에 동굴과 같이 움푹 파인 내실이 있는데 이곳이 나의 작업실인 비강이다. 아울러 나를 둘러싼 여러 개의 뼈 두 뺨의 뼈, 눈 위에 있는 이마 뼈, 나와 두 눈 사이의 벽을 이루고 있는 뼈, 그리고 나의 비강 뒤에 있는 뼈 에는 작은 구멍들이 파여 있다. 이 8개의 구멍들을 부비강이라고 한다. 이 구멍들은 내 안의 공기를 축축하게 하는 데 필요한 습기의 일부를 제공하고 음질에도 약간의 공헌을 하며 조의 두개골을 가볍게도 하지만, 대체로 탈이 잘 나는 곳이다. 박테리아가 몰래 들어가 감염을 일으켜서 나의 주요 통로로 이어지는 좁은 관들을 막아버리곤 한다. 그러면 조는 머리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나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는 조의 허파에 들어갈 공기를 정화시키고 조절하는 것이다. 매일 나는 약 1만 3,500ℓ의 공기 작은 방에 하나 가득 찰 만한 양 를 처리해야 한다. 조는 메마르고 매섭게 추운 날 스키를 할 수 있겠지만, 그의 허파는 메마른 영하의 공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의 폐는 습한 여름날의 그것과 비슷한 공기 습도 75∼80%, 30 C 정도 를 원한다. 폐는 또한 병균이 거의 없고 먼지, 연기와 기타 자극적인 이물질이 제거된 깨끗한 공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중간 정도의 방에서 사용하는 에어컨은 작은 트렁크 만한 데 비해 나의 에어컨장치는 불과 몇 cm 길이의 작은 공간에 압축되어 있다.
가습작업을 위해 나는 하루에 1ℓ가량의 수분을 분비한다. 수분은 대개 끈끈한 점액의 형태로 콧구멍에 줄지어 있는 해면 같은 빨간 막에서 분비된다. 조의 콧구멍에 있는 털들이 대충 정화작업을 하고 나면 점액이 본격적인 정화작업을 하는데 마치 파리잡이 끈끈이처럼 털이 걸러내지 못한 세균과 미립자들을 잡아낸다. 물론 이 점액은 몇 시간 쓰고 나면 썩는다. 그래서 나는 20분마다 깨끗하고 새로운 점액을 만들어 대체해 준다. 오래 묵은 점액을 쓸어내기 위해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비 섬모 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미세한 털들은 오래 된 점액을 잽싸게 목구멍으로 쓸어내어 삼키게 하고는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강력한 위산이 목구멍을 통해 삼켜진 병균을 대부분 파괴한다. 이러한 작업은 조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밤낮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추운 날이면 추위가 내 섬모의 일부를 마비시켜 점액을 과잉 생산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는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때에는 그 점액이 목구멍으로 쓸려 들어가지 않고 바깥으로 뚝뚝 떨어진다. 콧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방어수단 외에 나는 병균에 대한 또 다른 방어수단을 가지고 있다. 조의 눈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꼭 같은 물질인 리소자임이라 불리는 살균제가 그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모든 기관들 중에서도 제일 깨끗한 것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 깨끗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코수술은 따로 소독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다.
조가 숨쉬는 공기를 데워 주는 일 역시 상당히 벅찬 작업이다. 이일은 거의 모두 갑개골이 하고 있다. 작은 뼈토막 3개로 이루어진 갑개골은 제일 큰 것의 길이가 2.5cm 가량인데 내 콧구멍의 측벽에 불거져 나와 있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작은 난방기들이다. 이것들은 비교적 많은 혈액 난방기의 증기인 셈 이 공급되는 발기성 조직으로 덮여 있는데 대체로 피는 작은 동맥에서 흘러나와 모세혈관을 통해 흐른 다음 정맥으로 들어간다. 나의 갑개골 안에는 모세혈관들이 발기성 조직의 작은 웅덩이와 연결되어 있는데 피가 더 많이 흘러 들어오면 그 작은 웅덩이들이 팽창한다. 이 현상은 조가 찬 공기를 마실 때 일어나는데 내가 팽창함에 따라 열을 방출하는 표면이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나의 또 다른 중대 임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냄새를 맡는 일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조는 4,000여 가지의 냄새를 가려낼 수 있다. 아주 민감한 코는 최고 1만 가지까지 냄새를 판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나의 이런 훌륭한 기능들은 제대로 쓰여지지 않고 사장되어 있다. 조가 장님과 벙어리로 태어났다면, 그는 나의 거대한 잠재능력을 보다 많이 이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사물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의 하나가 되어 그는 냄새만으로 사람, 집, 방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냄새를 어떻게 알아낼까? 내 비강들의 천정에는 예외 없이 우표보다 작은 황갈색 조직이 있다. 그 조직마다 대략 1,000만 개의 수용세포들이 있고, 그 세포 하나하나에는 6 8개의 작은 감각털이 돋아 있다. 이 모든 장치가 2.5cm 가량 떨어져 있는 조의 뇌에 연결되어 있다.
이상이 내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이 설명은 조가 어떻게 익어가는 스테이크의 냄새를 알아맞히는지는 밝혀 주지 못한다. 여기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분자들을 내뿜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뜨거운 양파 수프는 많은 분자들을 방출하고 차가운 강철은 분자들을 거의 방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학설에 따르면 나의 수용세포들은 서로 다른 분자들의 크기와 모양을 판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 차이가 어떤 방법으로 기록되어 특정한 분자가 분출되면 약한 전기가 발생하여 뇌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 전기신호를 조의 뇌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식초다, 금잔화다, 혹은 불에 타고 있는 고무다 하고 판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색깔에 삼윈색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냄새에도 기본적인 냄새가 있을지도 모른다. 팔레트에서 삼원색을 섞어 여러 가지 색을 만들어 내듯이 뇌가 기본적인 냄새들을 배합하여 여러 가지 냄새를 만들어 내는지도 모른다.
내가 특정한 냄새에 압도당하게 되면 잠시 후에는 그 냄새를 가려내지 못하게 된다. 처음 몇 차례 뿌릴 때 외에는, 조의 아내는 자기가 쓰는 향수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조가 가죽공장, 아교공장 또는 외양간에서 일을 한다면, 처음에는 그 냄새에 기가 질리고 만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는 그 특별하고도 지독한 냄새에 마비가 되어 거의 냄새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냄새에 대한 그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죽공장의 지독한 악취 속에서도 장미의 향기는 변함없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인체에서 가장 노출된 기관 중 하나인 내가 광범한 질병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미생물들 특히 매독과 결핵의 세균 은 나의 물렁뼈를 공격해서 내 모양을 일그러뜨릴 수도 있다. 또한 나의 점막에 폴립 작은 것은 완두, 큰 것은 포도알만한 다양한 크기의 작은 '버섯들' 이 돋아나기도 하는데 그것들이 기도나 비강의 통로를 막아 갖가지 고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알레르기 항원, 담배연기와 먼지들은 나의 점막을 자극하여 부어오르게 하고, 점액을 과잉 생산케 하여 목으로 흘러가게 한다. 이것이 가래다. 때로는 감기로 기도에 염증이 생겨 기도가 막힐 경우도 있다. 조는 곧잘 냅다 코를 풀어 뚫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건 위험한 짓이다. 에우스타키오관을 통하여 나의 부비강이나 중이 안을 감염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조는 아마 점비약 각종이 조직수축제 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아주 조심해야 한다. 점비약들은 '반동' 현상 일시적인 수축 뒤에 당초보다 더 심하게 부어오르는 현상 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점비약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결국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사용을 경계하고 있다.
조는 지금 47살이고, 따라서 나의 감도는 쇠퇴해 가고 있다. 커피도 옛날처럼 향기가 좋질 않고, 다른 악취들도 그전만큼 지독하지 않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사람이 아직 자라는 동안 어느 시점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장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조의 지금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조가 마지막 숨쉴 공기를 데우고 정화할 때까지 나는 그를 위하여 내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기관에 비해 비천한 나의 신분을 변호하는 뜻에서 한마디 덧붙이거니와 조가 노인이 된 후에도 나는 눈과 귀보다 훨씬 훌륭하게 나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피부
조는 자기 피부인 나를 보기를 면도, 목욕, 긁기, 화장 등 요구하는 것은 많으면서도 주는 것은 별로 없는 힘없는 양피지나 별로 흥미를 끌 수 없는 소시지 포장지쯤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하고 있다. 그는 나를 정교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고는 생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최소한 한가지 중요한 비타민 비타민D 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조의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호르몬을 활성화시키는 구실도 한다. 나는 혈압조절을 돕고 있으며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조는 곧 죽게 된다), 또 물이 몸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조가 몇 시간 동안 수영을 해도 물먹은 통나무처럼 불지 않는 것은 이때문이다.) 나의 복잡한 신경계는 통증, 촉감, 열, 추위를 탐지하고, 그 결과를 즉각 조의 뇌에 전달한다. 흔히 나를 조의 신체의 전선이라 부르지만 차라리 '성벽'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표면에 살고 있거나 내려앉은 무서운 침략자의 대군 세균 을 막아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조의 손톱과 발톱, 그의 머리카락, 그의 뒤꿈치 군살, 한때 그의 손가락에 났던 사마귀, 이 모두가 나의 변신이다. 나는 세 겹으로 이루어졌는데, 제일 위에 표피, 그 아래에 진피, 그리고 그 밑에 피하조직이 있다. 조의 몸주위 대부분에 있는 나의 겉껍질은 종이처럼 얇다. 혹시 조가 손가락을 볼에 데게 되면 조는 나의 표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집 위에 덮여 있는 투명한 조직이 나의 표피이다. 표피에는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뒤꿈치의 군살을 벗겨 내더라도 피가 나지 않는다. 그 세포들은 밑에서 확산되어 올라오는 영양분을 받아먹고 살아간다.
뱀은 짧은 시간에 허물을 벗어버리지만 나의 겉껍질을 벗어버리는 작업은 느리게 오래 지속되는 과정이다. 나의 표피 가장 깊은 곳에서 날마다 수백만 개의 새로운 표피세포들이 형성되어 밖으로 밀고 나오기 시작하는데, 올라오는 동안에 그 세포들은 젤리 같은 세포질에서 점점 딱딱한 각질로 바뀌어 간다. 나의 각질층은 펑퍼짐한 널빤지 모양의 세포들 모두 생명이 없다 로 구성되어 있다. (연약한 세포들은 외부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조가 샤워를 하거나 피부가 옷에 쓸릴 때 날마다 수백만 개의 세로가 떨어져 나간다. 그리하여 그는 세포들이 탄생해서 사망할 때까지의 기간인 27일마다 완전히 새로운 표피를 갖게 된다.
지방질로 이루어진 나의 피하조직의 기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 그것은 내부기관을 보호하는 충격흡수장치의 역할을 하며, 체온을 보전하는 절연체로서 또 보기 좋은 육체의 고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도 중요하다 을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이 피하조직층을 아예 나의 일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피하란 말은 '피부의 밑'이라는 뜻으로서 피하조직은 피부의 일부로 볼 수 없다는 시사가 담겨 있다.
그러면 이제 나의 질긴 '가죽' 즉 진피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은 모든 것을 안에 담고 있는 튼튼하고 탄력성 있는 자루이다. 이 자루가 체내의 혈관이나 지방질 등이 불룩 불거져 나오거나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한다. 진피에는 신경, 혈관과 샘들이 복잡하게 모여 있다. 무엇이 얼마나 촘촘하게 있느냐는 몸의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1㎠의 표면 즉 조의 새끼손톱만한 크기에 두께 3mm인 진피에 약 100개의 땀샘, 3.6m의 신경, 수백 개의 신경종말, 10개의 털주머니, 피지샘 15개와 혈관 90cm 정도가 들어 있다!
나의 복잡한 혈관망은 특히 흥미롭다. 조가 더운 날 운동을 하면, 이 혈관들이 팽창하여 그의 얼굴이 상기된다. 이는 내가 열을 밖으로 발산해 내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 추운 날에는 그와 반대현상이 일어난다. 나의 혈관들이 닫혀서 피를 조의 몸 안쪽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진다. 나의 혈관은 감정의 지배도 받는다. 화가 나면 조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얼굴의 혈관을 활짝 열어놓기 때문이다. 공포를 느끼면 혈관이 닫히고 조의 몸은 싸늘해진다.
땀이 증발하면서 몸을 식힌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나의 복잡한 온도조절체계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상체온인 37℃에서 상하로 몇 도만 변화해도 조는 죽어 버린다. 이것을 피하고자 나는 어마어마한 수의 땀샘 200만 개 을 가지고 있다. 이 많은 땀샘들이 1만 5,200㎠쯤 되는 조의 몸 표면에 퍼져 있다. 그 하나하나는 단단하게 감긴 작은 관으로서 진피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 12m의 도관이 피부 표면을 향해 솟아 있다. 비록 작기는 하지만, 내가 가진 이런 도관을 모두 합하면 그 길이가 10km에 이른다.
혈액에서 물과 소금, 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노폐물을 걸러내기 위해서 나의 땀샘들은 거의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조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쾌적한 날씨일 때도 나의 땀샘들은 하루에 약 1/4ℓ의 땀을 만들어 낸다. 만일 조가 프로 미식축구의 전위로 더운 날에 경기를 한다면, 그는 7ℓ가량(무게로 치면 약 6.3kg)의 수분을 잃게 된다.
한편 나의 땀샘들은 정서적인 자극에도 반응을 보인다. 불안할 때 조는 이른바 '식은 땀'을 흘리게 된다. 이때는 많은 땀이 나서 급속히 증발하기 때문에 찬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포를 느낄 때에는 조의 손바닥이 축축해지는데, 역시 많은 땀이 난다는 증거다.
그 가치가 보다 의심스러운 존재가 나의 피지선들이다. 이것들은 수십만 개에 이르고 있으며 반액체형의 기름을 만들어낸다. 그 대다수는 모낭(털주머니
)에 붙어 있고 털과 그 둘레에 있는 피부에 기름을 공급해 준다. 털가죽을 가지고 있었던 조의 원시시대 조상들에게는 이 기름샘들이 보다 쓸모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들의 털에 방수처리를 하여 주고 열보유능력을 높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기름샘들이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이들 때문에 나의 털주머니가 막히면, 세포 찌꺼기들이 모여서 젊은이들의 특별한 고민거리인 여드름과 구진 등이 생긴다.
이제 내가 털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한다. 나는 1㎠에 약 10개의 모낭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는 구군 모양의 모근과 위로 뻗어올라가 밖으로 솟아 있는 모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의 아내 제인도 거의 같은 수의 모낭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인의 모낭들은 대체로 아주 섬세하고 옅은 색깔의 털을 만들어내므로 그 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나의 모낭들은 쉬지 않고 털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죽은 세포들을 표면 위로 밀어낸다. 나는 또한 멜라닌이라는 색소를 생산해 내는 흑색세포(melanocyte) 수백만 개를 가지고 있다. 멜라닌은 조의 털과 눈, 피부의 빛깔을 결정하는 물질이다. (이 색소가 모자라면 조는 백자환자 [백자는 피부, 모발,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는 병 편집자주] 가 된다. ) 멜라닌은 주로 보호적인 성격을 지닌 물질로 태양광선 중 인체에 위험한 요소인 자외선을 막아낸다. 조가 하루쯤 햇빛에 나가 있으면 나의 색소입자들이 나의 표피 밑바닥에서 표면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피부를 갈색으로 변화시켜 그를 보호해 준다. 죽은깨는 이 멜라닌 색소가 뭉쳐 생긴 것이다.
나의 신경조직은 정말 놀랍다. 조의 손가락 끝에는 1㎠당 1천개가 넘는 감각신경종말이 있다. 그가 발가락을 돌에 부딪치거나, 손가락에 화상을 입거나, 면도칼에 베이면, 나는 즉각 경고를 발한다. 그의 몸이 차가워지면, 나의 추위 감지가가 그의 뇌에 그를 통보한다. 그러면 조의 근육들은 곧 작업에 착수한다. 즉 그는 몸을 떨어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소름 나의 모낭에 있는 작은 근육들이 피부에 이와 같은 돌출현상을 일으킨다 이 돋아난다. 소름이 당초에 가지고 있던 목적은 털을 곤두세우는 데 있었다. 털을 곤두세움으로써 싸울 때에는 보호기능을 더해 주었고, 추울 때에는 한층 따뜻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지금도 조의 개한테는 유용하지만, 조 자신에게는 아무 수용이 없다.
조는 47세이고, 그래서 나에게도 노화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 나는 으레 보다 얇아지고 한층 투명해진다. (나이든 사람의 손에는 혈관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나의 지방질층이 점점 없어지고 따라서 살갗에 주름이 생긴다. 탄력있던 피부섬유가 활기를 잃기 때문에 눈 아래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며, 뺨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나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암이다. 대체로 그 원인은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되는 데 있다.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은 피부를 늙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마, 코, 귀가 암이 좋아하는 부위다. 다행히 나에게 걸리는 암들은 치료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때로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으므로 피부에 이상 특히 출혈이 멎지 않는 증세 이 생기면 조심해야 한다.
조가 나를 위해서 해줄 일이 있을까? 햇빛에 과다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골프를 칠 때에는 꼭 모자를 쓰는 것도 그가 지켜야 할 일이다. 또 피부에 지나치게 기름기가 많으면 몰라도, 겨울철에 욕조에 지나치게 오래 몸을 담그는 것은 좋지 않다. 나를 메마르게 하기 때문이다.
조가 아무리 나를 잘 돌본다 하더라도 내게 아무 탈이 없을 수는 없다. 나는 몸의 안과 밖을 갈라놓고 있는 방파제로서 안과 밖 양편에서 오는 질병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2,000가지가 넘는 숱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건선이 나의 중요한 질병이다. 그 비늘 같은 빨간 반점은 표피세포들이 너무 빨리 27일 걸려야 정상인데 5일 가량 형성되어 벗겨져 나가기 때문에 생긴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대상포진이 나를 파멸시키는 또 다른 원흉이다. 이것은 수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처음에 통증이 오는데 흔히 그 통증이 매우 심하다. 그 뒤 대체로 몸통에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사라진 후에도 얼마 동안 통증이 지속되는 수도 있는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경우가 많다.
위에 든 병이나 그 밖의 갖가지 병에 걸렸을 경우, 조는 의사의 충고를 따라야 할 것이지만 내가 그래도 이만큼 일을 잘 해내고 있는 데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혀
조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쑥 내밀고 요리저리 살펴보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펴보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어도 십중팔구는 엉뚱하게 잘못 해석하게 된다. 나에 대한 관심은 그 정도가 고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길이가 10cm남짓하고 무게 또한 57g 밖에 안되며 더구나 보통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조의 혀이다.
나는 눈이나 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평한 대접을 못 받아 왔다. 흔히들 말하기를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별 볼 일 없는 것" 이 미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항의한다. 그러한 인식은 전혀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내가 없으면 조가 어떻게 되는가 한번 따져 보자. 예를 들어 조에게 나를 입 밖으로 내밀고 이빨로 가볍게 누른 다음 말을 해보라고 한다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몇몇 동물의 혀처럼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나는 개구리 혀처럼 잽싸게 곤충을 채서 잡거나 또는 뱀의 혀처럼 어두운 동굴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더듬이' 구실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긴 해도 나는 수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우선 나는 음식물을 씹는 일을 돕는다. 입 안에 든 음식물을 굴려서 골고루 씹히고 갈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쓸모있는 이쑤시개 역할도 하고 있으며 온갖 찌꺼기를 말끔히 치워서 내 담당구역을 항상 깨끗이 하는 청소부 노릇도 한다. 나는 감정표시의 도구로 이용되기까지 한다. 조의 자녀들은 반감이나 혐오감을 나타낼 때 나를 밖으로 쏙 내밀곤 한다.
그러나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일 중의 하나가 음식을 삼키는 동작을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 앞부분은 입천장에 있는 경구개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내 뒷부분은 둥글게 말리면서 음식물을 식도 입구로 밀어 넣는다. 이렇게 설명하면 매우 간단하게 보이지만 실제는 신경조직의 지휘와 복잡한 근육의 움직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활동이다. 조는 이미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기 전에 삼키는 방법을 익혔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삼킨다는 반사작용이 생명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하는 일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나는 말이라는 신경근육의 특이한 묘기를 습득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릴 때 조는 2년 이상 여러 가지 소리를 실험한 후에야 비로소 간단한 말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운동선수가 되어 극히 다양한 형태로 몸을 굴신시키면서 한층 복잡한 말을 해내고 있다. 간단한 문장 한 구절을 발음해 보면 조는 내가 부리는 곡예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말을 할 때 내 움직임을 눈여겨본다면, 그 변화무쌍한 동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조는 이 밖에도 다른 일도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다. 나는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인 치아와 가까이 붙어살고 있다. 치아들이 실제로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몸을 피하는 재주가 뛰어나기 때문에 치아의 움직임을 잘 피해서 물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래 나는 평평하고 두툼하게 생겼으며, 복잡하게 얽힌 근육과 신경을 점액막이 둘러싸고 있다. 내 위쪽표면엔 조그만 돌기형태의 설유두가 수없이 돋아나 있는데 이 설유두 중 일부에는 미뢰가 들어 있다. 이 미뢰 속에 맛세포가 들어 있으며 이것이 미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아래쪽에는 소대라는 조그만 끈이 있다. 이 소대가 너무 짧으면 정상적인 움직임을 제약하게 되고 나는 결국 혀짤배기가 되고 만다. 일단 혀짤배기가 되면 평생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되는데 오늘날에는 외과 수술로 이런 결함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내 미뢰들은 극히 작은 장미꽃 봉오리처럼 보이는데 이 미뢰의 미각작용은 취각작용과 마찬가지로 화학적인 과정을 거친다.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은 미뢰들이 내 윗면뿐만 아니라 아랫면에도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최근까지도 그들이 미뢰의 위치를 완전히 밝혀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짠맛은 내 끝에, 단맛은 내 중간에, 쓴맛은 내 뒤쪽에, 그리고 신맛은 내 옆부분에서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4가지 기본미각이다. 기본색인 빨강, 파랑, 노랑이 섞여 수많은 색채를 만들어 내듯이 이 4가지 기본적인 맛도 뒤섞어서 수많은 미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들의 판단은 그릇된 것이었다.
미뢰는 결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의 구강내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신맛과 쓴맛을 주로 느끼는 미뢰는 입천장의 경구개와 연구개가 맞닿는 부분 근처에 있다. 조가 구개부분까지 덮는 틀니를 끼어 이 부분의 미뢰가 덮이게 되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레몬파이는 톡 쏘는 특유의 신맛이 사라질 것이고 홍차나 커피도 그 맛의 대종을 이루는 쓴맛이 없어져 그 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짠맛과 단맛을 받아들이는 미뢰는 대부분 혀에 있지만 일부는 다른 곳, 특히 목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음식물은 일단 녹아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이스크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입안에서 물처럼 녹기까지는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물처럼 녹게 되면 단맛을 감지하는 미뢰의 맛세포에 붙게 되고, 그러면 화학작용에 의해 극히 약한 전류가 발생하여 이것이 뇌신경에 의해 뇌의 미각중추에 전달된다. (음식물의 신맛, 쓴맛, 짠맛도 다른 자극에 의해 뇌에 전달된다. ) 팔레트에서 원색을 섞어 갖가지 색채를 만들어 내듯이 뇌에 전달되는 미각도 여러가지가 혼합되는데 뇌는 이러한 혼합된 미각을 전달받고 판정을 내린다. 예를 들면, '이건 아이스크림이고 맛이 좋다' 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모든 음식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맛을 전한다고 생각했다.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 사람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잘 알면서도 맛에 대해서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에 따라 맛을 느끼는 감도에 큰 차이가 있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어떤 사람에겐 시금치가 정말 맛있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쓰고 지겹게만 느껴진다. 다른 많은 음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부 순수한 화학물질도 사람에 따라 맛에 대한 반응이 크게 다름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방부제로 쓰이는 안식향산나트륨은 어떤 사람에겐 단맛으로, 다른 사람에겐 신맛이나 쓴맛, 짠맛, 또는 아무 맛도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당신이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양젖치즈를 다른 사람은 싫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미각은 사람마다 타고난 배경에 따라 다르다는 시사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 혀는 상당한 정도의 적응성을 지니고 있다. 조가 전에 도저히 입에 댈 수 없었던 음식물을 이제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유아들 중에 버터밀크(버터를 빼낸 뒤의 우유)를 좋아하는 아기는 거의 없지만 어른이 되면 버터밀크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내가 카레나 고추, 맛이 진한 치즈 따위에 맛을 들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번 맛을 알고 나면 나는 그 맛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신체의 다른 대부분의 기관과는 달리 나는 나이가 들어도 제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다. 조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청각이나 시력이 감퇴하지만 미각은 그렇지 않다. 콩수프는 그가 10세 때 느끼던 맛이나 90세가 되어서 느끼는 맛이나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조는 가끔 나를 쑥 내밀고 요리조리 살펴보는 일이 있다. 그러다가 내 몸에 무엇인가가 '덮여 있으면' 소화장애나 변비증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성적인 변비증세를 보이면서도 혀에 아무 것도 끼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는 반면 변비증세가 없으면서도 혀에 녹백색의 물질이 덮여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내 몸에 끼는 이 '태'는 설유두 사이에 끼어서 세균의 침범을 받은 미세한 음식물 조각과 노후한 세포에 불과하다. (이 태는 깨끗이 문질러 낼 수 있다. ) 입으로 숨쉬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이런 태가 끼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혀는 '질병의 거울'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다른 신체부위의 병이 혀를 통해 그 중후를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다. 악성빈혈에 걸리면 내 모습은 붉은 색을 띠고 두툼해지며 또 반질반질해진다. 황달에 걸리면 황색을 띠게 되며, 피부병의 일종인 펼라그라가 나타나면 시뻘개진다. 또 어떤 균종에 걸리면 내 몸이 검은 색으로 변할 수도 있다.
내 몸에 생기는 불쾌한 질병 중 하나가 미각장애인데 이병에 걸리면 미각이 엉뚱하게 뒤틀려서 설탕이 비위에 거슬리거나 고기맛이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사탕이 짜게 느껴지기도 하고 고등어가 단맛을 띠기도 한다. 요즘에 와서 널리 인식된 이 증세는 주로 체내의 아연 결핍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아연 결핍증은 식이요법 과정에서 빚어질 수도 있고, 충분히 섭취했어도 제대로 흡수가 되지 않거나 또는 인플루엔자 같은 다른 질병을 앓으면서 아연을 한꺼번에 많이 상실했을 경우에 나타난다. 아연섭취를 늘리면 미각은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내 몸에 생기는 또 다른 병은 미각감퇴증인데 이것은 이름 그대로 음식물에 대해 느끼는 맛이 감퇴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음식에 아무 맛도 뭇 느끼기 때문에 불고기를 먹어도 연한 고무를 씹는 맛이고 오린지는 무미건조한 아교를 씹는 맛이다. 따라서 조가 만약 이 병에 걸리면 커피를 마실 때도 설탕을 듬뿍 타야만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미각감퇴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요인들이 미뢰의 모양과 기능을 변화시킴으로써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각감퇴증이 극심한 경우에는 모든 맛을 완전히 느낄 수 없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환자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미각이 가장 유쾌한 감각기능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처럼 크게 봉사하는 기관이 형편없는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상시에 조는 나에게 머리카락이나 손톱에 기울이는 것만큼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데 사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조의 건강에 긴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불공평한 처사를 시정할 힘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저 죽을 때까지 맛을 느끼고 말을 만들면서 꾸준히 내 할 바를 다하는 도리밖에 없다.
4. 내분비선
뇌하수체
나는 연분홍색을 띤, 완두콩 만한 조직 덩어리다. 나는 조의 뇌 아래쪽으로 뻗어나간 조그만 뇌간에 마치 벚나무의 버찌처럼 달려 있다. 나는 무게가 약 0.56g에 불과하며 85%가 수분이다. 그러나 나는 아마 조의 신체에서 뇌 다음으로 가장 복잡한 기관일 것이다. 나는 조의 거의 모든 활동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내가 분비하는 극히 중요한 호르몬들은 놀라운 일을 해낼 수도 있고 또 큰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나는 조가 완전히 정상적인 삶을 누리도록 할 수도 있고, 갖가지 기이한 질병에 걸리게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그의 생명을 끊을 수도 있다. 조가 모체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첫 과정에서 내 호르몬 중의 하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즉 옥시톡신이란 호르몬의 작용으로 그의 어머니의 자궁이 수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를 키가 1m도 안되는 난쟁이도 아니고 2.5M나 되는 거인도 아닌 정상적인 키의 사람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나다. 나는 조의 성기를 다시 어린아이들의 성기처럼 왜소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의 노화과정을 촉진시켜 몇 개월 사이에 그를 노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조의 뇌하수체이다.
나는 조의 갖가지 내분비선으로 이루어진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지칭되곤 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내분비선의 우두머리인 셈이다. 나는 조의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자두 크기 만한 뇌의 한 부분에 달려 있으며 이 부분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다. 내가 하는 일은 다른 내분비선의 활동을 감독하면서 이들이 저마다 적정량의 호르몬을 정확하게 분비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조의 신체 속의 화학공장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내 자신이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치밀하고 가장 정교한 화학공장이라고 자칭한다 해도 절대로 허풍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두 개의 편엽으로 나뉘어 있다. 크기가 작은 후엽에는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진 두 종류의 호르몬이 저장되어 있으며 후엽보다 훨씬 큰 전엽에서는 10여종의 호르몬이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이 호르몬들은 인간에게 알려진 물질 중에서 가장 복잡미묘한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하루에 만들어 내는 호르몬은 모두 합쳐 100만 분의 1g도 채 안되는 극소량이다.
처음으로 나의 비밀이 알려지기 시작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수백년 동안 의사들은 내 기능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즉 콧물이나 흘려 보내는 곳쯤으로 믿었던 것이다. 내분비물은 너무도 양이 적기 때문에 현대 화학이 확립될 때까지 그 정체를 밝혀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동물과 인간의 뇌하수체들에 관한 지식이 많이 축적됨에 따라 내가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분비물들의 정체가 차츰 밝혀지고 있다.
내 호르몬 중의 하나는 조의 목에 자리잡고 있는 갑상선을 관리한다. 내가 갑상선자극호르몬을 너무 많이 분비시켜 갑상선의 기능을 과도하게 촉진시키면 조는 체내의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조는 왕성한 식욕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대도 몸은 여전히 바싹 마른 상태로 남게 된다. 만대로 이 호르몬을 너무 적게 분비하면 조는 비만증으로 굼뜨고 아둔해질 것이다. 다행히 나는 자동제어장치를 갖추고 있어서 이런 극단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조의 고환에서도 이와 상당히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나는 고환의 기능을 지배하는 두 가지 호르몬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정충세포와 남성호르몬의 생산을 자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충을 나르는 정관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우연하게도 조의 아내도 난소의 발육과 난자의 생산을 촉진시키는 동일한 호르몬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생식력 나아가 생명 은 우리들 뇌하수체에게 의존하는 셈이다.
조의 아내의 경우, 노하수체는 여포지극호르몬(FSH)과 간질세포자극호르몬(ICSH)을 분비하는데 한 달에 한 개의 성숙된 난자를 생신하기에 알맞을 만큼만을 분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내가 흥이 나서 FSH와 ICSH를 과도하게 분비시켜 한 달에 다섯 개 이상의 난자를 배출하면 제인은 다섯 쌍둥이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조의 정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FSH와 ICSH를 너무 적게 분비시키면 조는 성깔을 부리고 투덜대면서 성적인 무관심상태에 빠지는 반면, 과도하게 분비시키면 힘이 넘치는 황소같이 된다.
내가 만들어 내는 화학물질 중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양도 많은 것이 성장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조의 성장기에 큰 구실을 했다. 이 호르몬은 뼈 끝부분이 닫히고 더 이상 키가 커지지 않을 때까지 조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보살폈다. 그렇다고 성장호르몬의 역할이 성장기가 지나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는 지금 47세이지만 성장호르몬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즉 조가 골절상을 입었을 때 새로 뼈가 돋아나 아물도록 촉진시키는 것이 바로 이 성장호르몬이 하는 일로 믿어진다.
성장호르몬은 또 면도칼에 살을 베었을 때 그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도 하며 닳아 없어진 세포조직을 대체할 새로운 조직의 성장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어떤 우연한 일로 내가 이 호르몬을 지나치게 많이 분비하게 되면 이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조는 당장 다시 손과 발, 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의 턱은 홀쭉하고 길다랗게 튀어나올 것이고 코는 커다란 전구처럼 부풀어오를 것이며 손발 또한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성장호르몬은 암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한 가지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판단은 성급한 것일지 모르겠으나 암이란 지나치게 급속한 세포증식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내 자극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동물에 어떤 발암성 화학물질을 주입하여 실험을 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험대상동물의 뇌하수체를 제거했을 경우에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면 최소한 동물의 경우에는 나와 암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만약 내가 분비하는 성장호르몬을 상쇄시키는 어떤 물질 가령 항호르몬 같은 것 이 발견된다면 암의 진행을 정지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동물에게서만 발견된 또 다른 뇌하수체호르몬도 질병을 억제할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리포트로핀(지방친화성호르몬)이라는 이 호르몬은 체내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호르몬은 고체의 지방질을 간으로 운반하여 거기서 에너지로 전환시키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호르몬을 적절히 이용할 수만 있다면 내가 분비하는 리포트로핀으로 조의 아랫배에 끼기 시작한 지방층을 분해시켜 계속 젊은이처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도록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의 머리 한가운데 있는 뼈로 된 요람 속에 편안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상처를 입을 위험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완벽한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손상을 입는 경우도 있는데, 일단 손상을 입게 되면 별의별 결과가 빚어지곤 한다. 한 예로서, 머리를 다치게 되면 신장에 대한 브레이크 구실을 하는 배소프레신(이뇨저항호르몬)의 분비량이 적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신장이 제멋대로 이뇨작용을 하기 때문에 소변량이 하루에 10ℓ 정도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가 생명을 부지하려면 물론 같은 양의 물을 마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양의 물을 마시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심한 갈증을 계속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몸이 손상을 입는 경우가 드문 것처럼 나에게 종양이 생기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일단 이런 종양이 생기면 그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광범하게 나타날 수 있다. 가령 내게 종양이 생겨 조의 콩팥 위에 붙어 있는 2개의 부신의 호르몬활동을 감독하는 ACTH(부신피질자극호르몬)가 과도하게 분비된다면 조는 복부에 지방질이 잔뜩 끼어 배가 불쑥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리는 아주 가늘어져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고 또 혈압은 높아질 것이며 성적인 욕구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뼈 속에서는 칼슘이 고갈되어 척추가 붕괴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체가 엉망이 된 가운데서 조의 심장은 한층 격심하게 박동을 하다가 결국은 멈추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의사들은 방사선으로 내 기능을 둔화시키려 하거나 조의 부신을 제거하는 수술을 단행할지도 모른다. 그런 수술을 받고 난 다음에도 조는 계속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소 매우 조용하게 내 임무를 잘 수행하기 때문에 조는 나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나 폐, 그 밖의 다른 신체기관을 위해서는 그들을 북돋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저 고마움을 표시하는 외에 달리 해줄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갑상선
나는 조의 결후(Adam's apple) 후두융기라고도 함 바로 밑, 기관의 양옆으로 붙어 있는 연분홍색 나비 모양의 선이다. 나는 무게가 약 19g정도 된다. 나의 하루 호르몬분비랑은 3,500분의 1g도 채 안된다. 크기나 호르몬분비량이 보잘것없기 때문에 나를 과히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상 나는 발전소 구실을 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나는 조의 갑상선이다.
조가 태어날 때 내가 분비하는 호르몬이 없었다면, 그는 입술은 두툼하고 코가 납작한 난쟁이에다, 지능이 모자라는 바보나 저능아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조의 신체 안에서 내가 맡은 주된 역할은 그의 삶의 속도, 즉 신진대사라는 면에서 그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한지, 아니면 산토끼처럼 잽싼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나는 대장간의 풀무에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생명의 불꽃에 부채질을 하면서 수십억에 달하는 조의 세포들이 음식물을 태워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속도를 통제한다. 나는 생명의 불꽃을 재 속에 묻어둘 수도 있고 부채질을 해서 훨훨 타오르게 할 수도 있다. 내가 호르몬을 너무 적게 분비시키면, 조는 얼굴이 부은 것처럼 부풀어오르고 몸은 뚱뚱해지며 동작이 굼뜨고 또 멍청해질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하는 반식물인간처럼 되기도 한다. 그 반대로 내가 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시키면 왕성한 식욕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대지만 신진대사의 속도가 빨라져서 몸은 바싹 마르게 된다. 또 눈은 툭 튀어나와 심하면 눈을 제대로 감을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른다. 정신적으로는 안절부절못하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정도에 이른다. 또한 심장의 박동이 빨라져 때로는 탈진하여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조의 다른 내분비선과 마찬가지로 나도 혈관에서 여러 가지 물질을 뽑아 조합해서 복잡미묘한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조그만 화학공장이다. 내가 분비하는 두 개의 주요 호르몬은 근 3분의 2가 요드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요드의 양은 5,000분의 1g밖에 안된다. 그러나 이 극소량의 요드야말로 사람이 어린아이일 적에 백치가 될 것이냐 아니면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활기찬 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병약하고 무기력하게 사느냐를 결정한다.
나의 뛰어난 화학적 재주를 낱낱이 설명하여 독자들의 머리를 어지럽힐 생각은 없지만, 몇몇 중요한 대목은 그런대로 독자 여러분의 흥미를 끌 수도 있을 것이다. 요드는 조의 소화관에서 요드화합물의 형태로 나에게 온다. 내가 가진 효소(나는 각기 기능이 다른 여러 가지 효소를 가지고 있다)가 이 요드화합물을 분해해서 요드로 바꾸면 요드는 다시 티로신이라는 일종의 아미노산과 결합한다. 이러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진 후에야 나는 두 개의 중요한 호르몬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내 효소들은 다시 이 호르몬들의 분자들을 조의 혈중 단백질과 결합시켜 그들이 혈관을 따라 조의 온몸 구석구석에까지 이르게 해준다.
내 호르몬의 효능은 대단하다. 갑상선호르몬이 없으면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지 못한다. 내 호르몬들은 조의 신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세포들을 거의 모두 자극하여 제구실을 하게 한다.
이처럼 효능이 크기 때문에 내 호르몬들은 특정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만을 공급하도록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조의 아내가 임신을 하면 갑상선의 호르몬분비량은 평상시보다 약간 많아져 임신에 따른 특별한 수요를 충족시킨다. 조가 잠을 잘 때는 에너지 수요가 극히 적어지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수요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저 침대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에너지 수요는 잠잘 때보다 크게 늘어나며 또 서 있으면 앉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힘겨운 운동을 하게 되면 다시 에너지 수요량은 몇 배나 늘어난다. 그러나 정신적 활동을 할 때는 그것이 아무리 집중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에너지 수요랑이 늘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조가 소득세 신고를 하면서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이때의 정신적 활동에 따른 에너지 소비는 1시간에 땅콩 반 알 정도로 충당될 만큼 하찮은 것이다.
다른 두 개의 내분비선이 내가 적당한 양의 호르몬만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통제하는 기능을 도와준다. 조의 뇌 안에 있는 작은 조직 덩어리인 시상하부가 그 밑에 달려 있는 뇌하수체를 자극하면 이 뇌하수체는 다시 갑상선자극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이 그때그때의 에너지수요를 충족시키도록 나에게 활동지시를 내린다. 그리하여 내가 호르몬을 너무 많이 분비하면 뇌하수체의 자극이 봉쇄된다. 이러한 자동제어장치로 호르몬 분비는 고르게 유지된다.
앞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나는 화학적인 통제뿐만 아니라 신경적인 통제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나 걱정이 쌓여 나를 자극하면 과도한 양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조를 극도의 신경과민으로 몰아넣어 때에 따라서는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 중에 누가 죽거나 사업이 실패하거나 큰 자동차사고가 나거나 또는 중대한 수술을 받거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거나 하는 스트레스 요인들이 몇 개월 또는 몇 년간 계속 쌓이게 되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불안에 싸인 뇌가 시상하부로 하여금 뇌하수체를 과도하게 자극하게 하고 그러면 뇌하수체는 다시 나를 과도하게 자극하여 나는 조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그를 몰아대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조의 신체 중 가장 취약한 부위 가운데 하나이다. 나를 고장낼 수 있는 요인들은 굉장히 많다. 내 통제 수단들은 매우 정교하고 또 내 호르몬 분비는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그 과정의 어느 한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장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요드 부족이 나의 가장 흔한 두통거리다. 그러나 선진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조 역시 요드결핍증을 일으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해산물과 바다 근처의 밭에서 재배된 채소류에는 요드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식품을 구할 수 없을 때는 요드로 처리한 소금을 섭취하면 조나 내가 필요로 하는 요드를 얻을 수 잇다. 그러나 후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조처럼 운이 좋지 못하다. 산악지대에서는 논밭이나 물 속에서 일년 내내 거의 요드성분을 찾아볼 수 없으며 빙하에 한번 뒤덮였던 지역도 마찬가지다. 빙하가 녹으면서 토양 속의 요드성분을 말끔히 씻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지역에서는 요드로 처리된 소금마저 쉽사리 구할 수 없다.
요드가 결핍되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부족한 요드를 구하기 위해 수백만 개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결국 나의 몸은 훨씬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28g도 채 안되던 내 몸무게가 몇 배나 급속하게 늘어나서 100g이 넘게 된다. 이것이 요드결핍성 갑상선종인데 '비중독성'갑상선종 외양상으로는 다소 보기 흉할지 모르나 건강상으로는 별다른 위험요인이 되지 않는다. 갑상선이 기관을 협착시킬 만큼 비대해진다면 위험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밖의 여러 가지 요인이 나의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가령 선천적인 결함이나 어떤 약제, 질병 따위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는 효소 중의 어느 하나를 약화시키면 나의 호르몬 분비능력은 둔화되거나 정지되고 만다. 또 아직 규명되지 못한 이유로, 내가 활동을 중지하거나 혹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갑상선조직으로 대체되는 수가 있다. 또는 조의 뇌하수체가 고장이 나서 내가 필요로 하는 자극호르몬을 너무 적게 분비하는 경우도 있다.
위에 든 현상과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원인으로 내가 호르몬을 너무 많이 분비하는 경우도 있다. 또 마치 요드 결핍 때처럼 나의 부피가 엄청나게 커지는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중독성'갑상선종이라고 하는데 이상스럽게도 요드 과잉이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조의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갑상선자극호르몬을 지나치게 많이 분비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조의 몸에 넘쳐흐를 만큼 많은 호르몬을 만들어 내게끔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암도 나에게 생기는 병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한테 생기는 암은 비교적 덜 위험한 축에 든다. 나에게 발생한 암은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고 나한테만 머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적기에 찾아서 제거하면 외과수술로도 완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약으로 치료해도 진행을 정지시키거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다행히 의사들은 내 몸의 고장을 고치는 방법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아마 의사들은 조의 다른 어느 내분비선보다도 내 몸의 치료방법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게으름을 피워 기능이 떨어지려 하면 의사들은 부족한 호르몬을 약으로 공급해서 조의 원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 또 내가 너무 많이 호르몬을 분비하면 몇 가지 약 중 하나를 써서 나를 통제하는 효소를 조절함으로써 호르몬 분비량을 억제시킬 수 있다. 또는 조에게 방사성 요드가 든 칵테일을 마시도록 권할 수도 있다. 방사성 요드는 보통 요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직접 오게 되는데 그러면 방사선이 호르몬을 지나치게 생산하는 나의 세포들을 진정시킨다. 방사성 요드는 급속히 붕괴되기 때문에 방사선은 수주일내에 체내에서 사라진다.
갑상선의 과도한 기능항진은 대부분 위에 설명한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수술을 받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수술중 의사는 내 몸의 얼마만큼을 제거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만약 너무 적게 떼어낸다면 나는 여전히 호르몬을 과분비하게 될 것이고 너무 많이 떼어내면 갑상선 호르몬제 투여라는 보조적인 요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의사들은 내가 고장을 일으켰는지를 어떤 방법으로 알게 되는가? 조가 팔을 쭉 뻗었을 때 손가락이 떨리거나, 신경과민 상태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거나 또는 식욕은 왕성한데 체중이 계속 줄어들거나 하면 의사들은 내가 지나치게 활동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조가 얼굴이 부은 듯한 비만증세를 보이면서 움직임이 굼뜰 때는 나의 활동이 너무 저하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또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나에게 생긴 고장을 진찰해 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 한 가지가 혈액검사인데 혈액을 뽑아 혈중 단백질 속에 들어 있는 호르몬 양을 측정해 보면 내 활동의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10여 가지의 검사방법이 있지만 이중에서 어느 방법이 특정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가는 의사만이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비밀들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 칼시토닌이라는 호르몬은 거듭된 연구 끝에 196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되었는데 이 호르몬의 발견이야말로 앞으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칼슘은 뼈와 치아의 주성분을 이루는, 인체의 중요한 광물질 중의 하나이다. 내 이웃이며 동료인 부갑상선들이 조의 혈액 속의 칼슘농도를 높이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은 주로 뼈 속의 칼슘성분을 뽑아냄으로써 혈액 속의 칼슘 농도를 높인다. 뼈 속의 칼슘성분을 지나치게 뽑아내면 뼈들이 약해진다. 내가 분비하는 칼시토닌은 이렇게 되는 것을 막고 균형이 유지되도록 돕는다.
앞으로 칼시토닌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이 보다 많이 규명되면 이 호르몬이 노인의 뼈가 부서지거나 부러지기 쉽게 변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큰 구실을 할 수 있음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으나 가능성은 있는 일이다. 어쨌든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은 아직 나에 관한 이야기를 남김없이 다 듣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흉선
최근까지도 나는 조의 내분비선 가족의 한 가난한 친척쯤으로 취급되었다. 나는 맹장(충양돌기)이나 마찬가지로 진화의 유물로서 아무 쓸모없고 비생산적이며 도움은커녕 사고만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 누가 알았으랴! 갑자기 나는 열띤 의학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알레르기와 관절염에서부터 암과 노화현상에 이르는 광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다름 아닌 조의 흉선이다.
내 외모로 말하면 결코 멋지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종이성냥첩만한 크기의 볼품없이 생긴 조그만 회황색 조직덩어리가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의 두 폐 사이, 흉골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조는 나의 친척을 먹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네크 스위트 브레드는 바로 송아지의 흉선이다.) 내 크기는 나이에 따라 변한다. 지금은 무게가 9g이 약간 넘지만 조가 태어났을 때는 나의 무게는 지금의 2배쯤 되었고 조가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는 6배 가량이나 되었다.
나의 신묘한 기능이 새로이 인식된 요즘, 나는 흔히 '면역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병의 근원이 될 만한 외부의 침입자를 가려내서 파괴하려는 신체의 노력을 말한다. 이러한 외부의 침입자로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혈액형이 틀리는 피, 손가락에 파고 든 가시, 균류, 암세포, 독물, 이식된 피부 등을 들 수 있다. 조의 몸은 임전태세를 갖춘 병사들이 지키는 하나의 요새와 같다. 이 병사들은 모든 형태의 침입자, 즉 조에게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즉각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나라의 방위체제보다도 더 복잡한 조의 방위체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나는 이 방위체제의 많은 구성요소들 비장, 임파결절, 골수, 편도선, 아데노이드(선증식 비대 특히 편도선이 부어 비대해지는 것 편집자 주), 맹장(충양돌기)이나 창자의 다른 부분들 역시 포함될 가능성이 있음 을 지원하고 뒷받침한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가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즉 조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 있을 때는 내가 조의 심장은 물론, 조의 폐보다도 더 컸었다는 사실이다. 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어머니의 혈액을 통해 받은 면역요인들을 제외하면 질병에 대해 거의 무방비상태었다. 어머니로부터 받는 면역요인들도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고 만다. 만약 조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없었다면 가끔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극히 사소한 세균감염만 되어도 생명에 커다란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또 발육불량의 병약한 유아로서 몇 달 살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어린 조는 곧 자기 힘으로 감염에 대항해 싸울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골수 속에 임파구라 불리는 미성숙의 세포 '묘목'인 수많은 백세포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 풋내기 전사 세포들이 혈류에 실려 나에게 보내졌다. 이 세포들을 빨리 키워서 비장과 임파계, 그 밖의 다른 기관들로 보내 완전하게 성숙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나는 또한 이들 기관에 호르몬자극제를 보내서 활동을 촉진시키는 일도 담당했다. 조가 태어나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이미 어린 조의 면역성을 만들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이 면역체계를 계속 관장해 오고 있다.
내가 만들어 낸 이 임파구들과 또 장기 어디에선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다른 무리의 임파구들은 비상한 재주꾼들이다. 이들은 탐정 노릇과 살해자 노릇을 겸하고 있다. 조의 백혈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고름을 만드는 포도상구균, 또 손가락에 파고 들어간 가시 등 온갖 잠재적인 적들을 즉각 알아본다. 적의 소재를 확인하면 이들은 즉각 비상을 건다.
조가 손가락을 베여 그곳이 약간 감염되었다고 하자. 내 임파구들에게는 '사소한' 감염이란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즉각 항체를 쏟아내기 시작하고 다른 세포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요청한다. 침입자에 따라 그를 담당하는 특수한 항체가 각각 따로 있다. 즉 이하선염에 대항하는 항체, 백일해와 싸우는 항체 등등이 별도로 있다. 조의 몸 안에는 그 기능이 서로 다른 항체들이 아마 100만 개쯤 있을 것이다. 이 항체들은 상처를 통해 침입해 온 세균들을 공격하여 죽인다. 한편 임파구는 식세포, 즉 혈액 안에 있는 백세포들과도 협력한다. 식세포들은 단순히 죽은 박테리아의 시체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해서 조의 손가락상처는 별탈없이 아문다. 조는 이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상처가 낫기까지는 워털루전투와도 같은 대격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때로 내 임파구는 위험을 과대 평가하고 지나치게 호전적으로 대응함으로서 갖가지 번거로운 증세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특정한 침입자 예를 들어 개쑥갓속 식물의 꽃가루 따위 에 대해 이처럼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레르기라고 한다. 다른 사람처럼 조도 몇 가지 가벼운 알레르기가 있어 괴로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알레르기들은 최소한 조에게 자신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조는 두 가지 면역체계를 갖추고 이다. 하나는 아마도 그 본부가 창자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주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들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내 임파구들인데 임파구도 물론 일부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들과 대항해 싸우지만 주된 적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과 갖가지 형태의 균류감염, 그리고 이질적인 조직 등이다. 가령 조가 어느 날 간장이식수술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내 임파구는 사전에 억제시켜 놓지 않는 한, 이 새로운 간장이 조의 것이 아님을 즉시 알아차리고 항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해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이유로 조의 의사는 이식수술에 앞서 나와 내 보조기관들의 활동을 약제나 방사능으로 처리해서 기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잠시라도 우리의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킨다면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심한 감염으로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로 면역반응도 나이가 들면 둔해진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암에 잘 걸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여기 또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이 있다. 의사들은 오래 전부터 암의 '자연'치유, 즉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암이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품어 왔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충분히 입증되어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면역체계가 일시적인 고장을 일으켰다. 그러자 암이 생겼다. 그때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회복, 이 암세포를 발견하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암은 사라져 버렸다. 이상이 한 가지 설명이고 또 다른 설명은 외과적 수술로 비록 불완전하지만 암조직을 제거한다면, 그때까지는 암조직이 워낙 커서 감당하지 못했던 면역장치가 나머지 종양을 물리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부 암환자, 특히 어린이 환자의 경우 이렇게 해서 암이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설명들이 암의 자연치유에 대한 시원한 해명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 면역체계처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장치가 언제나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임파구는 가끔 엉뚱한 실수를 저질러, 정상적인 신체조직을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온 물질로 착각하고 공격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은 관절의 안쪽을 공격하여 류마티스성 관절염 같은 고통스런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만약 임파구들이 이처럼 엉뚱한 실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가장 흔한 형태의 관절염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도 스트레스에 자주 시달리는데 내가 특히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는 그것이 계속되는 소음이나 불안, 피로, 질병 등 어떤 형태의것이든간에 신체 내부기관에 커다란 타격을 준다. 나 역시 스트레스로 인해 커다란 타격을 받는 신체기관 중의 하나이다.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면 나는 며칠 사이에 평상시 크기의 3분의 1로 줄어들기도 한다. 내가 스트레스와 싸워 나가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할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성인이 된 조에게는 내가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나의 임파구생산도 그렇게 큰 중요성을 갖지는 못한다. 내가 오래 전에 다른 기관들에게 나누어 준 임파구들이 이제는 그곳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왕성하게 증식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종양으로 기능을 상실하면 조는 갖가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즉 균류가 파고들어 손톱을 갉아먹기 시작하고 입안이 균류에 감염되어 고통을 느낄 것이며 또 근육에 염증이 생겨 약해지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병들이 생겨 살맛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조가 성년이 된 후에 내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 현재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발견된 사이모신이라는 내 호르몬이 그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좋은 예이다. 내가 사이모신을 혈류 속에 흘려 넣으면 이 호르몬은 전면역체계를 자극시킨다. 비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임파계를 자극해서 적절한 분량의 임파구를 만들어 내도록 한다. 조가 과도한 양의 방사선을 조사받아 면역체계가 파괴되었을 경우 내 호르몬이 활동을 중지하고 있던 비장과 다른 기관을 자극하여 다시 항체생산에 나서게 함으로써 조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는지도 모른다. 사이모신에 관한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조가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 호르몬의 생산을 점차 줄이다가 50세 전후가 되면 완전히 중지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노화과정의 중요한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사이모신을 주사함으로서 노화를 늦출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나는 조의 신체기관 중에서 아직도 많은 의문에 싸인 기관이다. 나에 관해서는 아직도 규명해야 할 사실들이 많이 남아 있다. 물론 나는 나에게 기울여지는 많은 관심 때문에 우쭐한 기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내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부신
내 작은 체구를 감안할 때, 나는 조의 다른 어느 기관보다도 더 많은 위험물질을 내포하고 있는 기관이다. 나는 조를 불구자로 만들 수도 있고 병들게 하거나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 물론 나는 이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사실 내 처신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에 조는 내 존재를 거의 잊고 있을 지경이다.
나는 그의 오른쪽 신장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부신이다. 나의 쌍둥이 형제도 마치 꼬마 기수처럼, 조의 왼쪽 신장 꼭대기에 걸터앉아 있다. 나는 삼각모자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는 손가락 끝만하다. 무게도 50원짜리 동전의 무게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나 나의 재능은 무궁무진하다. 내가 만들어 내는 50여 종의 호르몬이나 호르몬 비슷한 물질들을 합성해 내려면 수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화학공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하루에 만들어 내는 호르몬의 양은 1g의 30분의 1도 채 안되지만, 이 미량의 호르몬들이 조가 하는 모든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생명유지에 절대 필요한 존재이다. 내 쌍둥이 형제와 나를 없애 버린다면, 의사가 서둘러 인공호르몬을 공급하지 않는 한, 조는 하루 이틀 사이에 죽고 말 것이다. 우리의 활동이 둔화되면 조의 활동도 똑같이 둔화된다. 그는 곧 쇠약해져서 피골이 상접해질 것이다.
조가 어렸을 때 나의 일부가 지나치게 활동적이었다면 그 역시 충격적인 결과를 빚었을 것이다. 조그만 소년이 조그만 어른으로 변해 버렸을 것이다. 목소리가 굵어지고 수염이 돋아났을 것이며 성기는 어른의 성기처럼 커졌을 것이다. 뼈는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유연성을 지니면서 끝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끝이 닫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조는 어린애처럼 몸집이 작은 모습으로 일생을 보내게 됐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신비에 싸인 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단지 내가 없으면 죽는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내가 무슨 구실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화학자들이 내 비밀을 캐내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닌 탁월한 재주가 알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분비하는 코티손성 호르몬들을 발견했을 때, 화학자들은 이 호르몬의 유용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호르몬들은 통풍에서부터 궤양성 대장염과 천식에 이르기까지 100여 종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김새를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조의 신체 안에서 혈관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기관 중의 하나다. 매분 내 무게의 6배에 해당하는 혈액이 나를 통과한다. 나는 또 굉장한 예비능력을 지니고 있다. 내 몸조직의 10% 만으로도 평상시에 조에게 필요한 호르몬을 충분히 분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10분의 1정도로 축소되었을 때 조가 가령 중병에 걸린다거나 큰 수술을 받게 된다면, 그는 목숨을 잃기 쉬울 것이다. 그의 생명을 구해 줄 나의 호르몬들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호르몬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수질이 분비하는 호르몬들과 피질이 만들어 내는 호르몬들이 그것이다. 수질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조의 뇌와 직접 연결되는 독자적인 긴급연락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조가 격정 급작스런 격분 상태나 감당하기 힘든 공포감 등 에 휩싸이면 수질은 즉각 이 사실을 포착한다. 물론 나는 그 긴급사태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가 싸우거나 또는 도망할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추어 준다. 이때 수질은 두 가지 호르몬 아드레날린과 노라드레날린 을 분비해서 혈류 속에 쏟아 붓기 시작한다.
조의 신체는 비상 반응을 보인다. 간장은 즉각 비축된 당분 당장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물질 을 혈류 속으로 내보낸다. 내 호르몬들은 피부혈관들을 폐쇄시키고 조는 창백해진다 그쪽으로 흐르던 피를 근육과 내부기관들로 돌리기 시작한다. 조의 심장은 박동이 빨라지고 동맥은 혈압을 끌어올리기 위해 팽팽해진다. 소화작용은 정지되고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부상으로 인해 조가 피를 흘릴 경우에는 피가 엉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이런 모든 조치를 취한다. 갑자기 조는 수퍼맨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가 살아 남기 위해 전보다 더 빨리 달리거나, 더 멀리 뛰거나, 더 세게 치거나, 더 많이 들어 올려야 한다면, 이제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조는 차에 깔리거나 갇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뒤집힌 승용차를 들어올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부신호르몬들이다.
이러한 비상상태가 끝없이 지속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된다면 조의 신체는 기진해서 숨이 끊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교묘한 보호장치가 작동하게 된다.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킨 긴장싱태는 또한 시상하부로 하여금 뇌하수체에 ACTH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게끔 한다. 이 ACTH는 피질을 자극하여 피질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긴장상태에서 혈압을 적정수준으로 유지시키고, 극히 중요한 기관들에 혈액이 흘러가게끔 하며 또 지방질과 단백질을 당장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당분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돕는 것이 이 호르몬들의 임무이다. 곧 모든 것이 다시 제어된 상태로 돌아간다.
피질이 만들어 내는 호르몬들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가지(코티손계통)는 지방질, 탄수화물, 단백질의 신진대사를 감독하고 두번째 것은 조의 신체내의 수분과 무기질의 균형상태를 감시한다. 세번째 것은 성호르몬들로서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을 보충해 주는 구실을 한다. 이 호르몬들은 저장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이 호르몬들을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없는데 너무 많이 생산되어 남는 것이 있으면 간장이 그것을 틀림없이 파괴해 버려야 한다. 따라서 피질에서 분비된 호르몬들은 2시간만 지나면 새로 만들어진 호르몬들로 대부분 교체된다.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이다. 조가 부상당하거나 병에 걸려 피질의 활동세포들이 기능을 정지했다고 가정하자. 학자들이 내가 분비하는 주요 호르몬들의 합성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피질세포의 기능정지는 곧 죽음을 뜻했다. 그것은 깨끗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그런 사람은 한꺼번에 10여 가지 병에 걸린 것같이 된다. 피부는 청동색을 띠고 빈혈증세가 나타나며 근육은 야위어 없어져 버린다. 체중과 혈압은 떨어지고 식욕도 줄어든다. 뱃속이 메스껍고 구토증과 설사가 생긴다. 그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게 된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오늘날에는 이런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 피질에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인공호르몬 처방으로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질호르몬은 너무 적게 분비되어도 좋지 않지만 또 너무 많이 분비되어도 역시 좋지 않다. 코티손계통의 호르몬인 코티솔이 너무 많이 분비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과잉분비된 코티솔이 근육 속의 단백질을 계속 당분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조의 팔다리는 쪼그라들 것이다. 또한 뼈도 무기질을 많이 빼앗겨 쉽사리 부러지게 될 것이고 지방질은 조의 등과 배에 층층이 축적되어 가늘어진 다리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혈압은 오를 것이고 정신이상증세가 빈번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피질에서 분비되는 또 하나의 주요 호르몬이 알도스테론인데 이 호르몬은 조의 몸에 무기질과 물의 균형상태를 유지시키는 일을 돕고 있다. 이 호르몬이 극소량이라도 과잉분비되면 조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우선 소변으로 매우 중요한 칼륨성분이 빠져버리고 체내에는 과도한 양의 염분이 남게 된다. 조의 근육은 약해지고 어떤 때는 마비되기도 한다. 심장은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은 급속하게 올라가며 손가락이 욱신욱신 쑤신다. 견딜 수 없는 두통이 계속된다. 알도스테론의 과잉분비는 보통 종양 때문에 생기는데 원인이 된 종양을 제거하면 예외 없이 정상으로 회복된다.
물론 이런 일들은 그 어느 것도 아직 조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재앙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들이다.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내가 맡은 역할들을 충실하게 수행한 탓으로 조는 내 존재마저 거의 잊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내 존재를 까마득히 잊지 않는 편이 좋다. 내가 계속 충실하게 구실을 다할 수 있도록 그가 도와 줄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는 과도한 긴장상태 지나친 근심이나 분노, 증오 따위 가 그 자신과 나에게 다같이 좋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5. 순환계
심장
나는 확실히 아름다움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무게가 340g쯤 되는 나는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볼품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나는 조의 충직한 노예인 그의 심장이다.
나는 인대에 매달린 채 조의 가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나는 길이가 약 15cm 제일 넓은 부분의 너비가 10cm쯤 되는데 모양은 흔히 알려진 하트 모양보다는 먹는 서양배 모양에 더 가깝다. 시인들이 나를 두고 읊은 미사여구를 많이 들었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로맨틱한 존재는 아니다. 사실 나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펌프에 불과하다. 보기에는 4개의 펌프가 있는것 같지만 실제적인 펌프장치는 2개이다. 하나는 피를 폐 속으로 보내 주고 다른 하나는 피를 온몸으로 밀어 보낸다. 나는 매일 총길이 9만 6,000km에 달하는 혈관에 피를 펌프질해 보내는데 이것은 1만 5,000ℓ 용량의 탱크를 펌프질해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활동량이다.
조가 어쩌다 나를 생각한다 해도 그는 나를 연약하고 가냘픈 존재로 생각한다. 연약하다니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지금까지 조의 가슴 속에서 나는 30만t 이상의 피를 펌프질했는데 나를 연약하다고? 나는 질주하는 육상선수의 다리근육이나 해비급 복싱 챔피언의 팔근육보다도 갑절이나 힘차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와 같은 속도로 팔다리 근육을 움직여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마 몇 분도 안돠어 흐느적거리게 될 것이다. 사람의 신체근육 중에서 아기를 낳을 때 활동하는 여자의 자궁근육을 제외하고는 나만큼 힘센 것도 없을 것이다. 또 나보다 더 세다는 자궁근육도 나처럼 70여 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진 않는다.
사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말은 좀 과장된 말이다. 나도 고동치는 사이 사이에 짬짬이 휴식을 취한다. 좌심실이 한번 수축하면서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는데는 대략 0.3초가 걸린다. 그러고 나서 나는 0.5초 가량 휴식을 취한다. 또 조가 잠을 잘 때는 대부분의 모세혈관들이 활동을 중지한다. 이것은 내가 모세혈관들에 피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을 잘 때는 내 고동수가 평상시의 1분에 72회에서 55회로 떨어진다.
조는 나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것은 좋은 현상이다. 나는 그가 심장노이로제에 걸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걱정이 쌓이다 보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가 나에 대해 걱정이나 근심을 할 경우 그것들은 거의 예외없이 근거없는 것들이다. 어느 날 조는 잠을 자려고 뒤척이다가 문득 내가 조용히 쿵쿵 뛰고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것은 내 판막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인데 그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가 중간에 고동을 한번 '거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걱정에 싸였다. 내가 활동을 멈추려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내 점화장치는 조의 승용차 점화장치나 마찬가지로 가끔 순간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충격전파를 보냄으로써 수축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가끔 점화를 잘못 일으켜 고동이 다음번 고동과 겹치는 일이 있다. 그때 내가 마치 고동을 한번 '거른' 것처럼 들리게 되지만 실제로 고동을 한번 거른 것은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를 안다면 조는 놀라 자빠질 것이다.
조는 가끔 악몽에 시달리다 잠이 깨서 내가 몹시 뛰고 있는 것을 알고 걱정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조가 끔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칠 때 나도 그에 맞게 고동쳤기 때문이다. 조가 가슴이 몹시 뛰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면 나는 더 빨리 뛰게 된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면 나도 역시 진정된다. 그러나 그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때라도, 나를 가라앉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미주신경에게 브레이크 구실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신경들은 귀 뒤쪽, 턱뼈가 걸려 있는 부분의 목을 지나는데 이 부분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내 고동을 늦출수 있다.
조는 피로감이나 현기증 등을 거의 모두 내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나는 조가 느끼는 피로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또 가끔 나타나는 현기증은 보통 그의 귀에 원인이 있다. 가끔 그는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조는 심장마비가 일어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 통증은 2∼3시간 전에 잔뜩 먹은 식사 때문에 소화관에서 생기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이상이 있을 때는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이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이 통증은 격심한 활동이나 격렬한 감정변화가 있은 뒤에야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부과된 일을 수행하는 데 충분한 영양분을 내가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에게 알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가? 물론 혈액에서 섭취한다. 나는 조의 체중의 200분의 1밖에 안되지만 전체 혈액공급의 20분의 1을 필요로 한다. 이는 내가 다른 기관이나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영양분의 10배나 되는 영양분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좌우심방과 심실 등 4개의 방으로 흐르는 혈약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별도의 관상동맥 두 개가 있어 그것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스한다. 이 관상동맥은 굵기가 음료수의 빨대만한 것으로서 작은 '가지' 들이 붙어 있는데 이 관상동맥이 나에겐 취약지점이다. 이곳의 고장이 가장 큰 단일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이곳의 고장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릴때 경우에 따라서는 태어날 때 지방성 침전물이 관상동맥에 쌓이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동맥 하나를 막아버릴 수 있다. 또는 웅혈이 생겨 갑자기 동맥이 막혀 버리기도 한다.
동맥이 하나 막혀 버리면 그 동맥으로부터 영양공급을 받던 심장근육의 일부가 죽고 만다. 죽은 조직은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 흔적은 작을 경우, 조그만 조약돌만하고, 큰 경우는 테니스공의 절반크기만하다. 따라서 병이 얼마나 심한가는 막힌 동맥의 크기와 부위에 좌우된다.
조는 5년 전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었으나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었다. 분주한 생활을 하다보니 가벼운 가슴의 통증쯤은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막혔던 동맥은 내 후면 벽에 있는 조금만 동맥이었는데 내가 죽은 조직을 밀어내고 완두콩만한 크기의 상처가 생긴 그 부위를 말짱하게 고쳐 놓기까지는 2주일이 걸렸다.
조의 집안은 심장병을 자주 앓아온 집안이므로 통계에 비춰 볼때 나도 앞으로 말썽을 일으켜 그를 괴롭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가 이런 유전성 요인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노력으로 위험을 극소화시킬 수는 있다.
우선 체중초과문제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조는 현재 허리와 배에 군살이 찌고 있어서, 중년의 그 펑퍼짐한 몸매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놀림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지방이 몸에 붙어 있으면 그 지방 100g당 약 70km의 모세혈관이 자리잡게 되어 나는 그 속으로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는 추가부담을 안게 된다. 조는 쓸데없는 군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이런 큰 부담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혈압이 문제가 된다. 조의 혈압은 140/90이었다. 이것은 그 나이 또래의 정상적인 혈압수치의 상한선에 해당한다. 140이란 수치는 내가 수축할 때 작용하는 압력을 측정한 것이고 90은 박동과 박동 사이에 내가 쉬고 있을 때의 압력이다. 큰 수치 보다는 작은 수치가 더 중요하다. 이 수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만큼 내 휴식은 줄어든다. 사실 심장은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활동하다가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만다.
혈압을 보다 안전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그 첫째가 군살을 없애는 것이다. 살을 빼고 나면 조의 혈압은 깜짝 놀랄 정도로 떨어질 것이다.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금연이다. 조는 하루에 담배를 두갑씩 피운다. 이것은 그가 24시간 동안에 80--120mg의 니코틴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니코틴은 매우 독한 물질로서 동맥, 특히 손발의 동맥들을 수축시킨다. 손발의 동맥이 수축되면 내가 받는 압력은 자연히 늘어나게 된다. 니코틴은 또한 나를 자극해서 내 고동을 더욱 빠르게 만든다. 담배 한 대를 피우면 내 고동은 평상시의 72회에서 80회로 늘어난다. 조는 이제 담배를 끊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담배의 해독이 이미 온몸에 퍼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가 담배를 끊고 지속적인 니코틴 자극을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내 부담을 훨씬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조는 다른 방법으로도 나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 그는 경쟁적이고 정력적이며 여러 가지 문제에 신경을 쓰는 다시 말해서 성공적인 사업가타입이다. 그는 자신이 계속 초조하게 쫓기는 생활을 함으로써 부신을 계속 자극해서 많은 아드레날린과 노라드레날린을 분비케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니코틴과 똑같은 영향을 미친다. 즉 동맥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이고 나로 하여금 보다 빨리 고동치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조는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나 역시 편안해진다. 항상 그렇게 조바심을 하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끔 가볍게 낮잠을 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회사의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와서 붙잡고 있기보다는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운동도 도움이 된다. 조는 주말에 집중적으로 과도한 양의 운동을 하는 타입이다. 그는 지금도 테니스코트에 들어서면 마치 자기가 젊은 대학생인 것 처럼 공을 쫓아서 네트 앞으로 전력질주하곤 한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내 활동량은 평상시의 무려 5배로 급증한다.
조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규칙적이면서 과격하지 않은 운동이다. 하루 2∼3km를 걷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며 자기 사무실까지 가면서 두어 층 정도를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무실은 10층에 있으니까 3층 까지 걸어 올라가저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조그만 일들이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방성 퇴적물이 이미 내 동맥 중 일부를 막아버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운동은 혈액이 흘러갈 새로운 통로들이 생겨나게 한다. 따라서 동맥 하나가 막힌다 하더라도 나는 다른 동맥에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끝으로 식이요법이 있다. 나는 조에게 엄격한 규정식을 취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방질은 내 동맥 안에 퇴적물이 쌓이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조는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 중 45%를 지방질 식품에서 얻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런 식의 식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맥이 막혀 사망할 가능성이 50대 50쯤 된다.
조는 지방질 식품을 많이 먹었을 때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가를 알았으면 좋겠다. 지방질의 조그만 말맹이는 혈액 속에서 적혈구와 엉겨 걸쭉한 물질로 변한다. 나는 이 물질을 모세혈관 속으로 밀어내야 하는데 이 일은 상당히 힘이 드는 작업이다.
나는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게 많은 타입이 아니다. 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조를 위해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몇 가지 형태의 휴식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체중을 약간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조금 더 느긋하게 긴장을 풀고, 지방질 식품과 담배를 줄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그를 위해 계속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폐
나는 조의 오른쪽 폐다. 내가 대표로 나선 것은 내가 그의 가슴 왼쪽에 있는 나의 짝보다 약간 크기 때문이다. 왼쪽은 폐엽이 2개 뿐이지만 나는 3개의 폐엽을 갖고 있다. 조가 나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매우 놀랄 것이다. 그는 내가 속이 텅빈 연분홍색 럭비공 껍데기 같은 모습으로 가슴에 매달려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나를 잘라 단면을 살펴보면 속이 텅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마치 욕실에서 쓰는 고무스폰지와 비슷한 모양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나는 연분홍색이 아니다. 조가 아기였을 때는 물론 연분홍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5만 개비의 담배연기와 5억회쯤 들락날락한 더러운 도시공기에 더럽혀진 탓으로, 검은 반점으로 얼룩진 보기 흉한 암회색을 띠고 있다.
조의 가슴에는 서로 분리되어 밀폐된 3개의 구획이 있다.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왼쪽 폐가, 또 다른 하나는 심장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나는 내 구획 속을 꽉 채운 채 느슨하게 매달려 있으며 무게는 450g을 약간 넘긴다.
나는 아무런 근육도 없기 때문에 호흡을 할 때는 수동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내 구획 속은 가벼운 진공상태로 되어 있어 조가 숨을 들이마시면 나는 늘어나고 반대로 숨을 내쉬면 줄어든다. 이것은 단순한 반동장치에 불과하다. 어떤 사고로 조의 흉벽에 구멍이 뚫리면 내 구획 속의 진공상태는 깨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상처가 치로되어 진공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나는 축 늘어져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다.
내 생김새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0cm 가량 되는 조의 기관은 아래쪽 끝에서 두 개의 큰 기관지로 갈라져 하나는 내 속으로, 다른 하나는 왼쪽 폐로 들어간다. 기관지는 내몸 속에서 마치 거꾸로 선 나무처럼 가는 가지를 뻗고 있다. 먼저 큰 기관지가 가지처럼 뻗어 있고 다시 그 가지에서 0.25mm밖에 안되는 가느다란 기관지들이 뻗어 나간다. 크고 작은 이 기관지들은 단지 공기의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작업은 미세한 공기 주머니들이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내 폐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폐포들을 쫙 펴 놓으면 아마 테니스코트를 절반쯤은 덮을 수 있을 것이다.
폐포 하나하나는 모두 거미줄 같은 모세혈관으로 덮여 있다. 심장으로부터 공급되는 혈액은 이 모세혈관 끝까지 빠짐없이 스며든다. 적혈구가 이 혈관을 지나가면서 적혈구는 순식간에 통과한다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 적혈구는 모세혈관 벽의 가늘고 엷은 막을 통해서 싣고 온 탄산가스를 폐포 속에 퍼뜨리고 대신 산소를 받아 가지고 나간다. 그것은 마치 가스관판매점에서 가스를 바꾸어 가는 것과 같다. 즉 모세혈관의 한쪽 끝으로 파란빛을 띤 혈액이 스며 들어와서는 버찌처럼 붉은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어 다른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조의 중요한 신체기관들 그중에서도 특히 심장 은 자동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나도 대부분의 경우는 자동적인 통제를 받지만 스스로 임의적인 통제를 하기도 한다. 어릴 때 조는 몹시 화가 나면 가끔 얼굴이 새파래질 때까지 숨을 멈추고 있을 때기 있었다. 이때 어머니는 몹시 걱정을 했지만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어떤 탈이 생기기 훨씬 전에 자동적인 호흡작용이 시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적인 호흡작용에 의해 조는 숨을 쉬고 싶지 않더라도 쉬게 되었을 것이다.
자동적인 내 호흡통제장치는 척수가 뇌와 연결되는 곳에 자리잡은 연수에 있다. 연수는 극히 민감한 화학적 탐지장치다.조가 힘드는 일을 하게 되면 근육은 빠른 속도로 산소를 소비하고 대신 탄산가스를 찌꺼기로 내놓는다. 탄산가스가 쌓이면 혈액은 약간 산성을 띠게 된다. 호흡통제본부에서는 이를 즉각 포착하고 나에게 더 빠르게 활동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내 호흡활동이 조가 심한 운동을 할 때처럼 충분한 정도까지 빨라지게 되면 이 통제본부는 또한 깊은 호흡을 하도록 명령한다. 이렇게 해서 호흡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조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는 1분에 약 9ℓ의 공기가 필요하며 앉아 있을 때는 약 18ℓ, 걸어갈 때는 27ℓ, 그리고 달릴 때는 55ℓ의 공기가 필요하다. 조는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많은 산소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는 평상시에 1분에 16회 정도 호흡을 하며 한번에 약 0.5ℓ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나는 이 정도의 호흡으로는 일부만 부불어 오른다. 나는 이 호흡량의 8배까지도 흡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0.5ℓ의 공기가 모두 나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3분의 1정도은 기관과 다른 공기통로의 안팎으로 아무 쓸모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나는 내가 받아들이는 공기가 열대지방 늪지에 있는 공기처럼 습기가 많고 따뜻하기를 바란다. 들이마신 공기가 불과 몇 cm의 공간을 거치는 사이에 바로 그런 공기로 바뀐다는 것은 정말 요술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의 두 눈을 적시는 누선과 또 코와 목에 있는 그 밖의 다른 수분을 분비하는 샘들은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축축하게 만들기 위해 하루에 약 0.5ℓ의 액체를 내놓는다. 한편 공기가 흡입되는 통로쪽의 표피혈관들 이 혈관은 날씨가 추울 때는 활짝 열리고 날씨가 따뜻할 때는 닫힌다 은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역할을 한다.
내 몸에 고장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는 매일 갖가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을 들이마신다. 이러한 균들은 대부분, 코와 목에서 분비되는 리소자임이라는 강력한 살균물질에 의해 죽고 만다. 어두컴컴하고 따뜻하고 습기찬 내 통로 이 통로야말로 신바람나는 세균사냥터다 까지 용케 들어온 놈들은 보통 내가 맡아 처치할 수 있다. 식세포들이 내 통로를 순찰하다가 세균이 보이면 벌떼처럼 둘러싸서 먹어치워 버린다.
물론 나에겐 더러운 공기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다른 신체기관들은 아늑한 곳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나는 사실상 조의 신체 밖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각종 환경적인 위험요인과 오염물질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굉장히 예민하고 연약한 내가 아황산가스나 벤조피렌, 납, 이산화질소와 같은 독한 물질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중 일부 물질은 나일론양말을 녹일 만큼 독한 것들이니 이런 것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공기정화 과정은 코 안에 있는 털에서부터 시작된다. 코털이 큰 먼지 입자들을 걸러낸다. 다음에 코와 목, 기관지 통로에서 분비되는 끈적끈적한 점액이 파리잡이 끈끈이 구실을 하면서 미세한 먼지 입자들을 잡아낸다. 그러나 진짜 정화작업은 섬모가 담당한다. 섬모는 극히 미세한 털로서 공기가 들어오는 내 통로에 수천만 개가 돋아 있다. 이 섬모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보릿대처럼 1초에 12회 정도 앞뒤로 물결치듯 흔들린다. 이 섬모들이 위로 쏠리면서 점액을아래쪽 통로에서 인후로 쓸어올리면 조는 그곳에서 이 점액을 쉽게 삼킬 수 있게 된다.
조가 현미경으로 내 섬모를 살펴볼 수 있다면, 담배연기나 몹시 오염된 공기가 섬모 위로 덮일 때 이들은 앞뒤로 물결치듯 흔들리는 동작을 중지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시적인 마비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자극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섬모는 쇠약해져 죽게 되며 일단 죽고 나면 다른 섬모로 대체될 수가 없다.
조는 30년간이나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섬모들이 죽었고 이에 따라 공기가 들어가는 통로의 점액을 분비하는 막들은 정상적인 두께의 8배로 두꺼워졌다. 조는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그는 사실상 익사의 위험에 빠져 있는 셈이다. 만약 많은 점액이 내 폐포 속의 공기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면 결과적으로 폐속에 물이 가득찬 것이나 마찬가지로 호흡작용을 정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는 한 가지 작용이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터뜨리는 시끄러운 기침이다. 이 기침이 죽어 버린 섬모의 효능을 대신하는 것이다. 조는 이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공기정화방법임을 잊지 말고, 함부로 진해제를 복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정말 쓰레기같이 더러운 공기를 들이마시라고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 먼지 입자들의 일부가 가느다란 내 공기통로에 끼는가 하면 어떤 입자들은 내 조직에 상처를 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연약한 내 폐포벽은 신축성을 잃고 마는데 그 결과 내가 숨을 내쉴 때 폐포가 수축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숨을 들이마실 수는 있으나 내쉴 수는 없게 될지도 모른다.) 탄산가스가 폐포 속에 그대로 남게 되고 이런 폐포는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고 찌꺼기인 탄산가스를 뽑아내는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폐기종이 생겨 한번 숨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는 모르고 있지만 이런 일은 이미 수백만의 내 폐포에게 일어난 일이다. 조는 사무직 근무에 필요한 폐활동의 약 8배나 되는 폐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상당히 많은 예비기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금만 힘을 써도 숨이 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조는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폐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이미 그 폐에 고장이 생긴 것이다." 아울러 그는 나를 좀더 잘 보살펴야 한다. 나를 잘 보살핀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보다 맑은 공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담배를 끊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안된다면 좀 아쉬운 대로 그가 달리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실내 공기를 얇은 활성화탄소층 방독면제작에 사용되는 재료 으로 여과, 순환시켜 내 세포조직에 치명적인 화학물질들을 뽑아내서 실내공기를 정화시키는 조그만 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값도 그리 비싸지 않다. 이런 기구를 조의 침실과 사무실에 설치해 두면 나는 조가 취침하는 8시간과 그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8시간 등 도합 16시간 동안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약간의 운동이나 보다 분별있는 식생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계단오르기나 산책, 조깅 등 대부분의 운동은 나로 하여금 보다 깊이 호흡하게 하는데 이런 심호흡은 매우 좋은 것이다. 또 나만을 위한 운동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좋은 호흡방법은 천천히 많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복식호흡이다. 조도 복식호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식호흡이란 어린아기나 오페라 가수들이 호흡하는 것처럼, 주로 가슴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횡경막을 내리누르는 식으로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복식호흡을 하면 들이마신 공기가 폐포 가장 깊숙한 곳까지 빨려 들어간다.
조는 또한 하루에 몇 차례씩 내 몸에서 공기를 싹 빼줄 수 있을 거이다. 그는 보통 숨을 내쉬면 내 속이 텅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에게 입을 벌리고 숨을 한껏 내쉬도록 한 다음, 다시 입을 오므리고 내쉬라고 해 보면 아직도 공기가 많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담배연기를 들이마신 후에 이렇게 해 본다면 미처 몰랐던 다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입을 오므리고 숨을 한껏 내뿜을 때 빠져나오는 연기는 그대로 놓아 두면 내 몸 속에 남아서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혼탁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내 주변의 다른 대부분의 신체기관들은 웬만한일쯤은 불평없이 감당해 낼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조물주는 내가 요즘 세상에서 꼭 필요로 하는 방위능력을 갖추어 주지 않았다. 갖가지 폐질환이 전염병처럼 늘어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는 나에게 좀더 주의를 기울려야 할 것이다.
혈류
나에 대해 생각할 때는 부득이 어마어마한 수자를 사용해야 한다. 나는 총연장 12만km에 달하는 대규모 수송망으로 이 수송망은 전세계 항공노선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더 긴 것이다. 나는 또 청소부이자 배달부로서 내 고객은 무려 60조에 달하며 이는 전세계 인구의 1만 7,000배나 되는 수자이다. 내 고객은 조의 신체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다. 나는 이들의 쓰레기를 거둬 가고 대신 생명의 필수품물자를 공급한다. 나는 조의 혈류이다.
조는 나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24시간 내 속에서 눈코 뜰 새 없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음을 거의 모르고 있다. 조가 눈을 한번 깜박하는 사이에 내 적혈구 중 120만 개가 120일의 수명을 마치고 죽어 버린다. 같은 순간에, 주로 늑골과 두개골, 척추에 있는 골수에서 같은 수의 새로운 적혈구가 탄생한다. 이 뼈들은 일생 동안 약 500kg에 달하는 적혈구를 만들어 낸다. 적혈구는 120일 밖에 안되는 짧은 일생을 사는 동안 조의 심장에서 신체 각 부위 사이를 무려 7만 5000여 회나 왕복한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조의 신체를 돌고 있는가? 조의 심장이 나를 펌프질하여 주는 주된 장치이지만 나에 관한 한 이 펌프장치가 썩 좋은 것은 못된다. 이 펌프는 피를 울컥울컥 펌프질해 낸다. 따라서 대동맥에 올 때까지의 피의 흐름은 매우 불규칙하다. 심장이 피를 펌프질해 낼 때는 대동맥이 확장하고 펌프질 사이사이에는 수축하기 때문에 혈액은 내 말단부분까지 일정하게 흐르게 된다. 혈액이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다시 되돌아가려 할 즈음에는 혈액의 압력이 거의 0으로 떨어진다. 이때 그대로 두면 혈액은 결코 심장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 혈관 바깥쪽 근육의 도움을 받아 혈액이 심장까지 되돌아가게끔 한다. 어설픈 방법이지만 그런 대로 기능은 발휘된다. 조의 다리근육이 수축되면서 이 근육이 정맥을 눌러짜듯 혈액을 밀어 올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 판막이 혈액의 역류를 막는다.) 걷는 것이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판막이 부실하여 피가 새면 정맥이 확장되거나 응고된 피로 인해 막히게 된다. 이것을 정맥류라고 하는데 흔히 통증이 수반되는 아주 성가신 병이다.)
복잡한 내 수송관 속을 흐르는 액체는 기본적으로 적혁국와 과립구, 임파구, 단핵구 등 여러 가지 기묘한 형태의 백혈구, 혈소판, 그 밖에 콜레스테롤과 당분, 염분, 효소, 지방질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녹을 수 있는 성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다니게 만드는 액체인 혈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전한 혈액량과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액체성분을 항상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나는 조가 마시는 물을 남김없이 흡수하는데 이중 남는 것은 소변이나 땀, 내쉬는 공기를 통해 배출시킨다. 수분이 부족하게 되면 나는 한 방울의 물까지 아끼면서 애타게 도움을 청한다. 중상을 입은 사람이 항상 물을 애타게 찾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내 기본 혈액형인 O, A, B, AB형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혈액 속에는 그 밖의 다른 많은 인자들 (M, N, P, RH 등) 이 있으며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인자들이 발견되고 있는 중이다. 조의 혈액이 그의 지문만큼이나 독특해 지구상의 다른 모든 사람의 혈액과 구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사실 거대한 경기장에 입장한 사람들의 혈액샘플을 하나하나 채취한 다음, 1년 후에 다시 혈액셈플을 채취한다면, 개인의 혈액상의 특징을 바탕으로, 1년 전에 앉았던 그 자리를 정확히 되찾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산소와 영양분을 온 몸에 배급해 주는 일은 마치 도시의 상수도시설을 통해 수도물을 각 가정에 공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장에서 펌프질을 하면 혈액은 큰 동맥을 거쳐 점차 작은 동맥들로 흘러가 마지막에는 모세혈관에까지 이르게 된다. 동맥과 정맥을 연결시켜 주는 이들 거미줄처럼 가는 모세혈관들이야말로 혈액의 진짜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모세혈관을 너무 가늘어서 적혈구들이 이곳을 통과하려면 일렬로 늘어서서 억지로 비집고 나가야 한다. 억지로 비집고 나가느라고 적혈구가 이상한 모양으로 찌그러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모세혈관을 통과하는 1∼2초 동안에 분주한 활동이 일어난다. 그 활동은 화물 트럭이 싣고 간 물건을 내려 놓고 더 이상 쓸모엾개 된 물건을 다시 싣고 나오는 것과 같은 일이다. 무론 내려 놓는 큰 화물은 산소이고 대신 싣는 주된 폐품은 세포의 연소작용에서 생긴 탄산가스이다.
그러나 세포조직에 배달해 주는 물품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개개의 조직이나 신체세포들이 주문하는 물품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세포는 코발트를 조금 주문하는가 하면 다른 세포들은 무기질이나 비타민, 호르몬, 포도당, 지방질, 아미노산 또는 단순히 물을 주문하기도 한다. 조가 운동을 하면 세포조직이 요구하는 물량은 거의 무엇이나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때 그의 피부가 붉어지는데 이는 모세혈관들이 최대한의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가 잠을 잘 때는 세포조직의 영양분 소요량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모세혈관의 90% 이상이 활동을 중지한다.
결국 조의 건강은 그의 모세혈관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달려 있다. 그는 폐로 숨쉬고 입으로 먹으며 내장으로 영양분을 섭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 모든 일이 모세혈관에서 이루어진다. 병원을 찾아가면 항상 의사가 검안경으로 조의 망막을 자세히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의 몸에서 모세혈관을 똑똑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그의 눈의 망막뿐이기 때문이다. 망막의 모세혈관들이 막히고 팽창해 있으면 조의 모에 어디엔가 탈이 생긴 것이다.
조에게 이런 고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혈액이 손실되고 있음을 알게 되면 칼에 조금 베였든 총상을 입었든간에 나는 즉각 피가 흘러나가는 상처부위로 혈소판을 보낸다. 혈소판은 수초내에 임시로 땜질을 한다. 그 다음 나는 보다 든든한 방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상처를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섬유소를 만들어 낸다. 보통때 내 혈액 속에는 섬유소가 없다. 만약 있다면 동맥을 막아 버려 당장 죽음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대신 언제라도 섬유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원료와 섬유소를 만드는 화학적인 전환과정에 필요한 효소를 가지고 있다. 나는 몇 초내에 섬유소 제조에 착수할 수 있다. 이처럼 혈소판이 응급조치를 취해 줌으로써 나는 원료를 꺼내 상처를 완전히 아물게 하는 섬유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내 수송관조직에 생기는 손상은 어떤 것이나 모두 심각한 위급 사태를 초래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큰 위협이 되는 것은 갖가지 외부침입자들 안플루엔자 바이러스, 꽃가루, 가시 종류(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다. 나는 100만이 넘는 이러한 외부침입자들에 대항해서 싸울 항체라는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항체들은 저마다 단 하나의 적만을 상대하게끔 되어 있다. 이것은 특정범죄 하나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100만 명의 경찰관을 거느리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내가 거느린 항체들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이들의 기억력일 것이다. 조는 41년 전인 6살 때 앓은 이하선염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하선염 항체들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하선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이 조의 몸 안으로 들어오면 이 항체들은 쥐를 쫓는 테리어견처럼 이들을 추격한다. 조는 이러한 싸움을 모르고 있지만 이 싸움은 어느 한편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그야말로 사투이다. 이들이 죽고 나면 일부 백혈구(식세포)들이 와서 시체들을 먹어치운다. 나는 깔끔한 주부이기 때문에 시체들이 내 집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독자들이 지금 이 문장을 읽는 짤은 시간에도 나는 수십억에 달하는 새로 대체되는 항체들을 보충받고 있을 것이다. 이 항체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조는 극히 사소한 감염으로도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내가 갖춰야 하는 조건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자연히 내게 생길 수 있는 고장도 많기 마련이다. 내 동맥 속에 칼슘성분이 침투하면 사기로 만든 담배파이프처럼 딱딱하게 굳어질 수도 있다. 또한 동맥에 지방성 퇴적물이 쌓여 막히게 되면 발가락이 썩는 병에서부터 뇌일혈이나 치명적인 심장마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당분(포도당)함유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조는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그 반대일 경우에는 저혈당증에 걸려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땀을 많이 흘리고 현기증을 일으키는 쇠약증세가 나타난다. 적혈구 수가 너무 적거나 부족하면 빈혈이 생긴다. 무과립세포증이라는 병에 걸리면 내 백혈구 수가 급속하게 떨어지게 되는데 이 병이 나을 때까지 항체가 감염을 방지하지 못하면 며칠 안에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 또 백혈구 수가 너무 많아지기도 한다. 정상적인 수준인 혈액 1mm³당 6,000∼8000개에서 10만 개 이상으로 늘어나면 이것이 바로 백혈병이다. 또 내 혈액응고장치에 고장이 생기면, 혈우병이나 자반병, 또는 그 밖의 출혈이상증에 걸릴 수 있다.
내 짐을 덜어주기 위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매우 많다. 그는 우선 내 혈압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혈압이 너무 높으면 나는 계속 긴장상태에 놓이게 된다. 약물로써 혈압을 안전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운동은 혈액의 흐름을 적절하게 유지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식생활도 문제가 된다. 지방질을 너무 많이 섭취할 경우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입증된 사실이다.
요컨대 나는 다른 신체조직이나 기관보다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또 그만한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다. 다른 모든 신체기관, 그리고 조 자신의 건강이 주로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6. 소화기
송곳니
나를 조의 몸 속에 있는 육체노동자 중 하나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는 간처럼 훌륭한 화학자도 아니고 심장처럼 헌신적인 노예도 아니다. 나는 조가 살아 있는 동안에 가장 사라져 버리기 쉬운 신체부분이지만, 반면에 그가 죽을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죽은 후에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의 다른 부분이 먼지가 되고 난 뒤에도 나는 수천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조의 오른쪽 위 송곳니이다. 나는 나의 쌍둥이, 즉 왼쪽위에 있는 송곳니와, 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 아래턱의 두 송곳니와 함께 조가 어른이 되면 전부 32개가 되는 우리 팀의 구성원이다. 조가 식사를 할 때 우리는 그의 소화과정의 첫 부분을 담당하며 그가 음식맛을 즐기게 하는 데도 한몫을 한다. 음식이란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서는 맛을 모르는 법이니까.
우리들의 속성 중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것들도 있다. 우리들에게는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을 씹는 담당이 따로 있으며, 음식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들 중 누가 그것을 담당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탐지기구도 있다. 우리는 다른 기관 같으면 떡이 되고 말 큰 압력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신장이나 피부, 그리고 조의 다른 신체부분들은 상처를 입어도 어느 정도 자가치료를 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한번 상처를 입으면 그대로 지내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조의 입속에 있는 다른 치아들을 대표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가장 흥미를 끄는 치아는 송곳니라고 생각한다. 옛날 조의 조상들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조의 조상들은 내가 그들의 눈에까지 이르는 긴 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 뿌리가 빠지면 그들의 눈도 병들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런 생각이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날에 와서도, 조는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송곳니하고는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들 치아의 조상은 아마 먼 옛날 바다 속에 살던 물고기의 비늘일 것이다. 그러나 육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우리들은 점차 그 형태와 위치를 바꾸어 오늘의 치아가 되었다. 조는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들을 입안 가득히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잇몸 속에 52개나 되는 치아가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제대로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않았었지만 그중 20개가 유치로 성숙해 갔다. 성숙되는 과정에서 표면이 법랑질(사기질)로 덮이게 되었다. 조가 갓 태어났을 때는 그의 턱은 작고 제대로 발육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의 얼굴 구조는 젖을 빨게 되어 있었을 뿐, 무엇을 씹을 수 있게 되어 있지는 않았다. 유치들이 겨우 자리잡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을 뿐, 32개의 영구치가 들어앉기에는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잇몸은 말하자면 우리의 자궁이었다. 조가 태어난 지 여섯 달이 지났을 때, 우리들 가운데 첫번째로 아래쪽 중앙의 두개의 치아 조는 이것을 앞니라고 부른다 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송곳니)의 유치는 생후 18개월 만에, 마지막으로 나는 유치인 둘째 어금니는 24개월 만에 솟아났다.
조가 6살이 되었을 때, 영구치 중에서는 첫번째로 어금니가 유치들 뒤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의 나(영구치 송곳니)는 조가 12살 때 났고 마지막에 나는 치아인 사랑니 지치 는 18살이 지나서야 나왔다.
나의 구조를 살펴보자. 그야말로 하나의 정밀한 공학설계 작품이다. 잇몸을 뚫고 나오는 나의 부분은 법랑질 '피부'를 갖고 있다. 법랑질은 유기물질(생명체의 구성물질)도 함유하고 있지만 주성분은 인산칼슘이다. 나의 법랑질 피부는 똑바로 서 있는 연필 묶음과도 같이 6각형의 막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로 머리카락 크기만큼 되게 만들려면 아마 100개는 모아야 할 것이다. 나의 법랑질 피부에는 신경조직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음식을 씹을 때의 엄청난 압력에도 끄떡없이 견딜 만큼 단단하다.
나의 법랑질 피부 밑에 있는 상아질은 뼈와 친척간이다. 치아의 감각기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상아질 밑에는 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치수가 있다. 비교적 연한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치수에는 신경, 혈관 및 세포가 들어 있다. 이 신경, 혈관, 세포들은 상아질의 미세한 관속으로 뻗어 있다. 이렇게 구성된 치아 전체는 딱 맞는 크기인 턱의 강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골질조직과 수천 개의 섬유조직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턱뼈의 한 부분은 아니다. 화분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우리는 우리들이 수행하는 과업을 위해 제가끔 거기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음식을 자르는 역할을 하는 양쪽 윗니나 나(고기나 질긴 음식을 찢는 역할을 한다) 같은 경우는 하나의 뿌리면 충분하다. 그러나 저 안쪽에서 음식을 분쇄하는 힘든 과업을 수행하는 어금니는 세 개의 뿌리가 받쳐 주어야 한다.
우리들 치아에도 고장이 잘 생긴다는 것을 조는 잘 알고 있다. 조는 벌써 우리들 중 넷을 잃었으며 또 다른 우리 동료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조의 동료 중에는 40세에 이미 치아 10개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그가 우리를 제대로 돌봐주었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는 규칙적으로 칫솔질을 하고 양치질 약도 사용하고 있으니까 자신의 입이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입은 사실상 거대한 세균배양소이며, 이들 세균을 박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조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입 속의 음식 찌꺼기와 박테리아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기는 부식이다. 치아의 갈라진 틈에는 자연히 음식 찌꺼기가 모여며 이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조의 치과의사는 이것을 플라크라고 부른다. 플라크 속의 활동성 박테리아가 음식 찌꺼기를 발효시켜 산을 만들어 내고, 그 산이 법랑질을 분해해서 박테리아가 내부조직 속으로 침투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침투방식도 있다. 조의 치아의 법랑질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을 수 있고, 이 틈을 통해 박테리아 스며들어 법랑질 안쪽에서 치아를 부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부식은 X선 촬영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부식은 35세 이후에는 줄어든다. 이제 조가 아주 조심해야 할 것은 잇몸선 아래에 생기는 치주염이다. 여기서도 주범은 플라크이다. 눈에 띄지 않는 플라크가 침 속에있는 미네랄을 오랫동안에 걸쳐 조금씩 흡수해 딱딱하고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치석이 된다. 치석이나 플라크가 쐐기처럼 치아와 잇몸 사이를 벌려 놓음으로써 음식찌꺼기나 박테리아가 끼어들 수 있는 작은 주머니들이 생긴다. 그러면 갖가지 탈이 생길 수 있다. 잇몸에 염증이 생길 수도, 출혈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원래 잇몸으로 보호되던 치아의 연한 부분을 박테리아가 공격할 수도 있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고름주머니가 생겨 우리와 턱뼈의 결합이 느슨해진다. 이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조와 이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47세인 조가 현재 가지고 있는 치과질환 중 중요한 것은 대개 이런 과정을 밟아 생긴 것이다.
조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가 차아교정을 해주었더라면 치주염의 또 다른 원인이 되는 부정교합 현상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교합은 위턱에 있는 우리들 중의 하나가 마주보고 있는 아래턱의 동료와 꽉 맞물려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한 치아는 일하는데 다른 치아는 놀게 되어 치근 부위가 자극을 받지 못한다. 놀고 있는 치아의 잇몸이 벗겨지고 박테리아가 침입하여 고름주머니가 생겨서, 치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늘날에는 부식이나 치주염은 거의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조가 자랄 때 불소가 섞인 음료수를 마신 덕분에 우리들 치아는 훨씬 단단해지고 부식에 대한 저항력도 커진 것 같다. 조의 나이가 벌써 47세라고는 해도 나에게 생기는 골칫거리를 최소한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치아 사이를 깨끗이 칫솔질해서 입 안을 깨끗이 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쑤시개는 사회적으로 금기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아주 훌륭한 청소기구이다. 깨끗한 물을 뿜어 헹구는 것도 좋다. 식사 후, 특히 단맛 나는 디저트를 먹은 다음에는 입 안을 씻어 주는 것이 좋다. 박테리아 번식의 온상인 당분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의 치과의사가 조에게 플라크를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수 있다. 플라크는 형식적인 칫솔질만 해서는 떨어져 나가지 않으며 또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 방법이란 하루에 몇 분만 할애하면 되는 손쉬운 것이다. 조는 그저 식품 색소를 함유하고 있는 특별한 알약을 씹기만 하면 되는데, 약방에서 살 수 있는 그 알약을 쓰면, 플라크는 붉은색 반점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그는 그것이 우리를 해치기 전에 제거할 수 있다.
만약 조가 이 일을 규칙적으로 계속하기만 한다면 많은 골칫거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치과의사에게서 전문적인 입 안 청소를 받는다면 그때 조가 모르는 사이에 잘못되고 있는 부분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치아의 저작면에 균열이 생겼을 경우, 치과의사는 플라스틱으로 때워서 박테리아의 침입을 예방해 줄 것이며, 아래 윗니가 정확히 맞물리지 않는 곳이 있으면 치아를 갈거나 똑바르게 세워서 맞추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조는 또한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다른 징후들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잇몸의 출혈은 가장 상처를 받기 쉬운 곳인 잇몸선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과의사들은 대개 첫눈에 그 원인을 알 수 있으므로 조는 조속히 치과의사를 찾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에게는 운동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는 명심해야 한다. 씹으면 파삭파삭한 음식, 예컨대 사과나 셀러리 같은 음식은 우리들의 지지구조에 자극을 주어 좋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하나가 효과를 그만큼 더 해주는 것들이다. 만약 조가 우리들을 깨끗히 닦아 주고, 1년에 두번씩 전문의사의 청소를 받게 해주고, 잇몸에 출혈이 있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준다면 우리도 그를 위해서 오랫동안 봉사해 줄 것이다. 조 역시 값비싼 금속성 물질을 입 안 가득 넣고 있는 것보다는 우리와 더불어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다.
인후
조가 아침식탁에서 "잘 잤니" 하고 아침 인사를 할 때 그 소리를 내는 데 필요한 기계적 및 전기적 작용과 복잡한 통제기능은 우주선의 복잡성을 무색하게 한다. 조가 음식물을 한 숟갈 삼킬 때에도 정확한 시간에 맞춰 또 다른 일련의 작용이 일어나면 그 정확성 여하에 따라 조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이러한 경이로운 일을 맡아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는 나를 코와 폐, 입과 위를 연결하는 불그스레하고 짤막한 호스쯤으로 생각한다. 대개 그는 내가 아플 때에나 나를 의식한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서 나를 그저 조의 인후라고 부르기로 하자. 정원에 물이나 주는 호스라고? 천만의 말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화물의 기체, 액체, 고체로 분류하고 그 분류에 따라 화물을 운반하도록 설계된 정교한 전철장치를 갖춘 극히 복잡한 수송시스템이다.
나는 조가 태어날 때에 이미 하나의 완성된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세상에 나와 처음 마신 우유 한 모금에 질식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내가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덕분이다. 만약 무언가가 나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기라도 한다면, 그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예컨대 조가 고기 한 점을 삼키려고 할 때, 누가 웃기면 나는 그것을 위로 운반하지 않고 기관속에 빠뜨려 숨통을 막아 버리고 만다. 조는 마치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처럼 쓰러질 것이며 누가 재빨리 그 고기덩어리를 빼내 주지 않는다면, 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나는 모범적인 행동을 한다.
나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는 나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풀어가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조의 목은 신경조직, 혈관, 척추 및 기타의 여러 부분들로 그야말로 교통혼잡을 빚고 있는데, 나의 관들이 바로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첫째번 관은 코의 뒷부분에서 후두융기 뒷부분까지 연결되어 있는 13cm 길이의 인두인데, 윗부분이 넓어서 깔대기 모양과 흡사하다. 다음 관이 나의 주전철 지점인 후두인데, 이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교통정리를 할 뿐 아니라 조의 발성기관의 주요 부분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위에서 보면 야구배트를 약간 닮은 4.4cm 정도 길이의, 끝이 좁은 실린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복잡하게 배열된 9개의 연골이 점막으로 덮여 있으며 인대에 의해 한데 묶여 있다. 조의 목에 그것의 일부가 튀어나와 있다. 이것을 후두융기 또는 결후라고 부른다. 그 밑으로 또 두개의 관이 있는데 위로 연결되는 식도와 폐로 연결되는 기관이다. 둘 다 직경이 2.5cm 정도이다.
내가 어떻게 일을 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선 조가 음식 삼키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음식을 다 씹고 나면 조의 혀가 그것을 입 안 뒤편으로 옮겨 준다. 이때 목젖 입천정 위쪽에 매달려 있는 작고 붉은, 손가락처럼 생긴 것 이 일어서서 콧구멍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아 준다. (이렇게 목젖이 막아주지 않으면 조의 코로 수프가 뚝뚝 떨어질 것이다.) 그 다음에는 혀가 둥글게 구부러지면서 음식을 밀어붙여 아래로 내려보낸다.
나는 조가 음식을 삼킬 때 그것이 기관으로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는 특별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음식을 삼킬 때 후두 융기를 만져 보면, 조는 그것이 위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관 위에 정확히 덮여 있는, 아래 위로 여닫히는 밸브(후두개)가 닫히는 신호이다. 따라서 입안 가득한 음식은 안전하게 기관 옆을 통과, 25cm 길이의 음식용 통로, 즉 식도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근육이 잘 발달 되어 있는 식도는 꿈틀꿈틀하는 율동적인 운동을 하면서 그 음식을 밀어서 위까지 운반한다.
음식물은 위 속으로 직접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떨어진다면 조는 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이다. 조가 음식을 먹으면 나는 식도와 위가 연결된 곳에 있는 밸브 모양의 근육을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위가 부담 없이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음식만 적당한 간격으로 통과시킨다. 만약 조가 게걸스럽게 너무 먹으면 많은 음식이 쌓이므로 일싲거으로 그는 약간 답답한 만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때로는 밸브의 작동이 갑자기 멈춰 위산이 위쪽으로 새어 올라와 식도의 섬세한 피막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백 번씩 조는 음식이나 음료수, 그리고 침을 아무런 문제 없이 삼키고 있다.
소리는 어떻게 내는 것일까? 조는 나의 성대를 폐에서 나오는 바람에 의해 진동하는 바이올린 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는 성대는 조가 휘파람을 불 때의 입술처럼 조의 소리의 높이가 변하는 데 따라 닫혔다 열렸다 하는, 번쩍번쩍 빛나고 희끄므레한 입술 모양에 더 가깝다. 성대는 복잡미묘한 근육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서 낮은 소리를 낼 때는 넓게 열리고 높은 소리를 낼 때는 좁게 닫한다. 조가 음식을 삼킬 때는 성대는 완전히 막힌다. 음식을 먹을 때 조가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의 성대가 알맞게 닫히는 것을 방해하는 것 폴립, 종양, 염증 등 이 있으면 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조가 축구장에서 소리를 질렀을 때 목이 쉬는 것은 성대가 지쳐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너무 맹렬하게 선거운동을 하는 정치인이나 너무 많이 출연하는 가수에게도 쪽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나의 음성기관은 또한 감정을 반영하기도 한다. 격노한 상태에서는 조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성대의 마비현상은 졸업생 답사를 해야하는 중학생들에게도 종종 일어난다.
후두에서 입술까지, 18cm 정도의 길이인 나의 소리 관은 소형 파이프오르간과 같은 기능을 한다. 폐에서 나오는 공기가 나의 성대를 통과하면서 내는 소리는 성대가 열려 있는 정도와 성대 가장자리에 있는 질긴 섬유질의 진동대가 얼마나 팽팽하게 펼쳐져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조가 중얼거리는 낮은 소리에서 비명소리와 같이 높은 소리로 목청을 높여 갈 때, 진동대는 0.6cm 정도 더 펴진다. (훈련을 쌓은 오페라 가수의 진동대는 거의 1.3cm까지 펴질 수 있다.) 내가 내는 소리는 거칠고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소리이며, 마무리작업은 입술, 혀, 비관, 구개등이 한다.
내가 갖추고 있는 또 다른 장비인 편도선을 소개해야겠다. 이들 작은 임파선을 나는 4개 갖고 있고, 또 다른 하나 즉 아데노이드는 조의 비관속에 들어 있다. 쌍을 이루고 있는 나의 인문 편도선은 조의 목구멍 입구에 보인다. 이 편도선들을 절제해 버리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그보다 훨씬 아래쪽에 있는 설편도선은 보통 때는 크기가 녹색 완두콩만하지만 훨씬 더 커질 수도 있다.
실제로 편도선절제수술은 포경수술 다음으로 많이 행해지는 수술이다. 의사들은 한때 편도선을 아무 쓸모없느 진화과정의 잔존물로 생각했고, 부작용에 대한 아무런 걱정없이 그것을 잘라냈다. 요즘에 와서는 편도선을 절제하면 절제하기 전보다 상기도에 더 많은 이상이 생긴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의사들도 단순히 편도선이 붓는다고 수술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데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나는 나의 편도선이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소낭 속에 자리잡고 있는 편도선들이 침입하는 박테리아를 덫으로 잡으면, 마치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파리를 잡아먹듯 혈액 속의 식세포가 이들 박테리아를 잡아먹어 버린다. 편도선이 감염되면 염증이 생기고 붓지만 그것은 편도선이 중과부적으로 병균들에게 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작지만 용감한 이들 수비병을 제거해 버리는 것보다는 잘 보살펴서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질벼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병원을 찾는 환자의 4분의 1이 인후에 고장이 생긴 사람들이라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공기나 음식물을 통해서 나는 항상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에 노출되어 있다. 나의 편도선들이 그들을 파괴해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의 관을 덮고 있는 점액도 그것들을 잡아 쓸어 버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끝없는 전쟁이다. 어쩌다 침략자들이 이기면 조는 인후염을 앓게 된다.
나의 후두는 이들 침략자들의 주공격 목표이다. 후두를 자극시키는 것으로는 유독한 자동차의 배기가스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담배연기 등 수없이 많다. 그러한 자극을 받으면 흔히 후두염이 생긴다. 조의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작아지며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기도 한다.
기침은 조의 가장 중요한 반사작용 중 하나이다. 기침을 '인후를 지키는 개' 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기침은 나를 자극하는 것들 그것은 '길을 잘못든' 콧물일 수도 있고 음식물이나 음료수 또는 담배연기일 수도 있다 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주요 장치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나는 공기를 모아 그것을 시속 320km로 내보냄으로써 그 골칫거리를 쫓아 내려고 한다.
나의 후두는 암이 좋아하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진행속도가 느린 이 암은 가장 쉽게 탐지되고, 코발트치료나 수술을 통해 가장 쉽게 치료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만약 2주일 동안 계속해서 목이 쉰 채로 있으면 의사를 찾는 것이 좋다.
만약 암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어면 후두를 제거해야 한다. 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식도가 꽉 찰 때까지 공기를 들이마셧다가 그것을 조절해 가면서 토해 내야 할 것이다. 혀와 입술, 치아와 후두등이 그러한 공기의 흐름을 적당히 조정해서 정상적인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전자후두를 붙이는 방법도 있다.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즐거운 일이 못되고 또 여간해서 생기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훌륭하게 일을 해내기 때문에 조는 나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를 정원에 물이나 주는 호스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다니!
위
조는 그의 몸 속에 있는 어떤 기관에 대해서보다 나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쓴다. 그는 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은 나는 하나의 편리한 도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없으면 조가 하루에 여섯 번 또는 그 이상 식사를 해야 할 것을 세 번으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음식 저장고에 지나지 않으며 소화에 관한 한 소장이 진짜일꾼이다. 나는 조의 위이다. 나는 단백질에 작용해서 그것을 폴리펩타이드로 분해한다. 그러나 이 일마저도 최종 마무리작업은 장이 해낸다. 장은 탄수화물과 지방질, 그리고 그 밖의 음식물들도 처리한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생기지는 못한 것 같다. 나의 겉모양은 번들번들한 핑크색이고 안쪽은 미끈미끈한 벨벳천을 구겨 놓은 것처럼 생겼다. 갈빗대 아래쪽 복부에 구겨 넣어져있는 나는 속이 비어 있을 때는 흡사 바람 빠진 풍선 모양이다. 속이 차 있을 때는 나는 조의 몸통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놓여 있는데 위쪽은 크고 아래쪽은 작아서 대충 구근을 닮은 J자 모양과 비슷하다. 나의 용량은 2ℓ 가량 된다. 조의 뉴파운드랜드산 개는 나보다 세 배나 큰 위를 갖고 있다.
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는 많은 일을 해서 그가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나의 대면에는 3,500만 개의 선이 있어서 하루에 약 3ℓ의 위액 주로 염산 을 분비한다. 그산은 나의 또 다른 분비물인 펩신이라는 효소의 활동을 촉진시키며, 이 펩신이 단백질은 소화시키기 시작한다. 펩신이 없다면 조는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소화시키느라 애를 먹을 것이다. 나의 선은 다른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 또 다른 효소도 분비한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조가 삼키는 모든 것을 맹렬히 휘저어 섞는 기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가 만찬을 들면 음식은 들어오는 순서대로 층층이 쌓인다. 새우 전채요리가 먼저 쌓이고, 다음에 고기, 감자, 야채가, 그 위에 애플파이가 쌓인다. 나는 나의 벽에 닿아 있는 새우부터 처리하기 시작한다. 나의 근욱은 위쪽에서부터 아래쪽으로 파도가 치듯 수축작용을 하여 새우를 소화액과 완전히 섞는다. 새우는 곧 진한 죽이 된다. 나는 이 죽을 십이지장과 연결되어 있는 유문밸브 쪽으로 밀어 내린다. 길이 30cm쯤 되는 십이지장은 소장의 맨 앞부분이다.
여기가 위험한 곳이다. 만약 위액이 십이지장 속으로 많이 흘러 들어가며 그것이 십이지장 멱을 갉아 먹는다. 이 때문에 이곳에 궤양이 가장 많아 생긴다. 그러나 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나의 우문밸브는 음긱을 조금씩만 내려보내며, 보통 알칼리성인 십이지장인 금방 중화시킬 수 있는 양 이상은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긴 감자요리를 내가 처리하는 데는 2,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고기를 처분하려면 좀더 시간이 걸리고 잎이 많은 야채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린다. 정확한 시간은 경우에 따라 큰차이가 나며 조의 기분에도 크게 좌우된다. 앞에서 말한 음식이라면 아마 평균 4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시금치가 들어 잇다면 아마 24시간은 걸릴 것이다.
지방질 음식은 나에게 특별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조가 아침 7시에 버터와 크림을 섞어 익힌 달걀, 베이컨과 버터 바른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했다고 하자. 이와 같이 지방질이 많이 들어오면 십이지장은 나의 근육운동을 더디게 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십이지장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십이지장이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양의 지방질을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가 점심식탁에 앉을 때까지도 나는 아직 그가 아침식사 때 먹은 것의 4분의 1쯤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활동을 더디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냉기이다. 만약 조가 아이스크림을 작뜩 먹는다면 나의 체온은 정상적일 때의 37℃보다 섭씨로 11°나 낮아질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30분간은 모든 활동이 정지된다. 그렇다고 무슨 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내가 특별히 서두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꽤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간, 심장, 폐 및 신장은 하루 24시간 계속 근무해야 하지만 나는 보통 저녁에 조가 잠자리에 들 때쯤에는 나의 일을 끝낼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잠들 때면 나도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즉 내가 다른 단백질은 소화시키면서 왜 나 자신은 소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나는 소의 위는 얼마든지 소화시킬 수 있다.) 그 이유는 나의 안쪽 벽이 보호 점액으로 덮여 있지 때문이다. 만약 그 점액을 씻어내 버리면 나는 나 자신을 잡아 먹는 잔인한 짓을 하고 말 것이다.
나에게는 또 다른 놀라운 속성이 있다. 그것은 조의 기분을 반영하는 속성이다. 그가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개지면 나도 시뻘개진다. 그가 놀라서 창백해지면 나도 창백해진다. 그가 축구경기를 보면서 흥분하면 나도 격력한 수축운동을 하며 나의 위액 분비가 3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또 조가 고기 굽는 냄새를 맡거나 빵가게에서 맛있어 보이는 과자를 보면, 나는 활동을 시작한다. 조는 이것을 배가 고파 속이 쓰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의 생각이 맞을는지도 모른다.
조가 의기소침해 있을 때도 나는 그와 기분을 같이 한다. 나의 근육운동은 거의 정지되고 위액도 거의 분비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는 습관적으로 계속 식사를 할 것이다. 그러면 먹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고 그는 팽만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이런 때 조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스트레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긴장된 생활은 위산의 분비를 촉진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궤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조가 긴장된 생활을 하고 있을 경우 식사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다. 소화 잘 되는 음식을 조금씩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눠 먹는 것이 위산과다를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 조는 경미한 퀘양을 앓은 적이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넘어갔다. 이런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조가 대학에 다닐 때, 그는 시험 걱정을 했다. 이로 인해 나의 위산 생산량이 갑자기 늘어났고, 위산은 결국 점막 가운데 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말았다. 조는 몇 차례 쑤시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음식을 잘못 먹어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나면 그의 마음이 가라앉았고 위산의 분비량도 줄어들었다. 그러면 나는 점액을 흘려 내보내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
궤양과 암을 제외하면 나에게 어떤 대단한 탈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생선뼈에 긁힌 자국 같은 것은 24시간내에 치료할 수 있다. 피부에 그런 상처가 생겼다면 치료하는 데 1주일은 걸릴 것이다. 오염된 고기를 증류수에 한 조각 넣어 보면 세균들이 맹렬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기 조각을 나의 위액 속에 넣으면 대부분의 세균들은 금방 죽어 버린다. 조가 조심해야 할 대상은 나의 위액 속에서도 죽지 않는 세균들이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을 여행할 때, 조가 음식 조심을 해야 하는 거도 바로 그런 세균들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나를 자극시킨다. 후추가 특히 그렇고 그보다는 좀 덜하지만 겨자나 고추도 나를 자극시키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나의 안쪽 벽에 닿으면 나는 새빨갛게 충혈이 된다. 커피, 니코틴, 알콜 등도 나의 위산 분비를 촉진시키며 마티나라도 몇잔 마시면 위산 분비는 배로 늘어난다. 따라서 궤양 환자들은 이런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조에게 그런 음식물을 먹지 말라는 애기는 아니다. 다만 그가 음주나 흡연을 절제해 준다면 나의 생활이 좀더 유쾌할 수 있고, 그러면 나도 그를 위해 좀더 열심히 일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커피가 그렇게도 마시고 싶으면, 크림을 타서 자극성을 완화시켜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약품도 문제거리다. 조는 내가 필요로 하든 않든간에 약 먹기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상 약이라는 약은 모두 나를 자극시킨다. 나처럼 비교적 건강한 위조차도 예를 들어 아스피린을 과량 복용하면 미량의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위산과다를 치료하는 조의 특효약 중 하나는 중탄산소다이다. 그러나 그것을 과용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소다는 금방 혈액 속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복용하면 그것은 신장에 큰 부담을 주는 알칼로시스(알칼리과다) 위산과다보다 훨씬 더 두려운 병이다 를 유발시킬수 있다. 마그네시아나 알루미늄화합물 같은 흡수되지 않는 산중화제를 복용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나는 결백한데도 조는 많은 일들의 책임을 나에게로 돌린다. 예를 들면 그의 뱃속에서 꾸르륵꾸르륵라는 소리가 날 때도 그는 그것을 내 탓으로 돌린다. 그 소리는 장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가스발생기가 아니다. 조가 트림을 하는 것은, 그가 탄산가스가 든 음료를 마셨거나 음식을 급히 먹으면서 공기를 마셨기 때문이다. 만약 천천히 잘 씹어 먹었더라면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가 분별없는 식사를 하거나 술을 과음하면 나는 구토라는 잘알려진 수단을 동원하여 집안 청소를 한다. 기묘하게도 그 기분 나쁜 음식물을 치워 버리라는 신호는 나한테서 나오지 않는다. 그 신호는 뇌에서 오며 신호와 동시에 일련의 격렬한 사건이 벌어진다. 복부와 가슴의 근육이 나를 죄어 짜고 식도 아래쪽 끝에 있는 분문밸브가 넓게 열린다.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말 안해도 알 것이다.
흉골 근방이 타는 듯 아픈 통증은 성격이 좀 다르다. 이것은 조가 일례로 맥주를 좀 과하게 마셨는데 유문밸브가 제대로 여리지 않아 내 속을 비울 수가 없는 경우이다. 조는 트림을 해서 가스방울을 일으키는데 나를 자극하는 염산의 일부가 이 가스방울을 타고 식도 아랫부분까지 올라온다. 이것이 가슴의 통증이다. 대단한 병은 아니다.
조는 식후에 운동을 하면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지만 그중 대부분은 잊어버려도 괜찮은 말들이다. 격렬한 운동이 소화작용을 중단시켜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벼운 운동은 유익하다. 식사 후 천천히 걸으면 실상 나는 더욱 일을 잘 할 수 있다.
누구나 지켜야 할 하나의 볍칙이 있다. 만약 나한테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한 시간 이상 계속되면 의사를 불러야 한다! 단순한 배탈이라고 생각했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아주 많다. 실제로 담낭의 통증을 비롯한 많은 통증의 원천은 바로 나인 것 같다. 그러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정상적인 위에 생긴 탈은 대개 금방 사라진다.
나는 신체기관 중 가장 혹사당하는 기관으로 일컬어져 왔고 아마 실제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구조적으로 혹사되도록 되어 있다. 조가 조금만 나에게 신경을 써 준다면 나는 그에게 평생 동안 탈없이 봉사해 주겠다고 약속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말고 어떤 기관이 이런 약속을 할 수 있겠는가?
장
나는 조의 몸 속에 있는 미운 오리새끼이다. 다른 기관들은 아주 겸손하게 처신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서 그를 당황케 하는가 하면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너무 과도하게 활동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활동을 너무 안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조에게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나는 길이가 8m인 조의 장관이다.
조는 나를 그의 몸 속에 코일처럼 감겨 있는 관쯤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한 존재는 아니다. 정교한 식품가공공장이라고 하는 것이 나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조는 자기가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물들은 그의 혈류 속으로 직접 섭취되면 방울뱀의 독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을 혈류에 섭취되어도 괜찮은 성분으로 바꾸어 몇 조 개에 달하는 그의 세포에는 식량을, 그의 근육에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조가 아침식사 때 먹은 베이컨에 들어 있는 지방질을 지방산과 그리세롤(그리세린의 학명 편집자주)로 변화시킨다. 또 그가 저녁식사 때 먹은 양고기 속의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이긴 감자요리 속의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 바꾼다. 나의 이런 화학적인 재주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먹더라도 조는 굶어 죽고 말 것이다.
밤 껍질이나 셀러리 섬유 같은 셀룰로스를 빼고는 사실상 나는 조가 먹는 모든 것을 소화시키며, 소화시킨 다음에는 그것을 그의 혈액 속 또는 임파계로 보낸다. 나한테 남는 최종적인 폐기물의 반은 수백만 개에 달하는 죽은 박테리아이며 나머지 반은 내가 분비한 끈적끈적한 점액이다. 물론 내가 흡수하지 못하고 남긴 허섭스레기도 폐기물 중의 하나이다.
나의 구조는 소화작용을 하는 데 아주 적합하게 되어 있다. 맨 앞이 소장인데 이것은 위와 인접해 있는 25cm 길이의 십이지장, 직경 3.8cm, 길이 2.4m인 공장, 이보다 약간 가는 3.6m 길이의 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에 길이가 1.5m인 대장이 이어진다. 나의 윗부분은 거의 세균의 침입을 받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강력한 위산이 세균을 죽여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아랫부분은 영락없는 세균배양소이다. 50종이 넘는 몇 조 마리가 우글거린다.
소화는 물론 조의 입과 위에서 시작된다. 입은 음식물을 갈고, 위는 그것을 휘저어 섞는다. 이렇게 해서 크림수프 정도로 반죽이 된 음식물은 수문장인 밸브를 통해 나에게로 분출되어 들어온다. 조가 마신 물은 10분 후면 나한테 도착하지만, 돼지고기는 4시간쯤 걸려야 나에게 닿는다. 위가 나한테 전달해 주는 음식은 강한 산성이다. 만약 내가 그것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받으면, 산이 나의 안쪽 벽에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아주 중요한 나의 소화효소의 활동을 멈추게 한다.
나는 그 산을 제법 솜씨있게 처리한다. 나의 십이지장은 세크레틴을 분비하는데, 이것이 조의 혈류 속으로 흘러 들어가서 조의 췌장을 자극, 즉각 알칼리성 소화액을 분비케 한다. 이 소화액 하루에 1퀴트(1.14ℓ) 정도가 분비된다 이 십이지장 속으로 흘러 들어와 산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중단되면 조는, 그가 '위'궤양이라고 부르는 것에 걸리기 쉽다. (실제로 이런 궤양은 거의 75%가 십이지장에 발생한다.) 췌장액에도 역시 단백질, 지방질 및 탄수화물을 기본적인 인체구성물질로 분해하는 세 가지 주요 효소가 들어 있다.
나에게는 여러 곳에서 갖가지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온다. 하루 2.28의ℓ 침(음식을 적셔 쉽게 삼킬 수 있게 하고 전분의 소화를 돕는다)을 비롯, 위에서 3.4ℓ의 위액(음식물 속의 박테리아를 파괴하고 우유를 엉기게 하며 단백질을 분해한다)이, 간에서는 담즙(분자수가 큰 지방질을 작게 분해해서 췌장효소가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이, 그리고 수많은 선에서 2.28ℓ 이상의 장액이 흘러 들어온다. 이것들을 모두 합하면 대략 2갈론 (7.6ℓ) 이나 된다!
구경이 작은 나의 세 가족, 즉 십이지장, 공장, 회장의 안쪽 벽은 육안으로 보면 벨벳천처럼 생겼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멍과 주름이 보인다. 만약 나의 안쪽 벽이 주름이나 구멍이 없는 반반한 상태라면 흡수표면은 5,400cm²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쪽 벽의 흡수표면은 실제로는 8,100cm²나 된다. 아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의 벽에 수백만 개나 돋아 있는, 미세한 손가락처럼 생긴 융모일 것이다. 이들 융모가 하는 일은 나의 내용물에서 가공된 식품을 뽑아내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혈류를 통해서, 지방질은 임파계를 통해서 조의 온몸으로 순환시키는 것이다.
나의 안쪽 벽은 복잡하게 뒤얽힌 근육 무더기들로 되어 있다. 한 무더기의 근육은 흔드는 운동을 해서(나는 복벽에 느슨하게 붙어 있다) 음식과 소화액을 섞는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는 이런 운동이 1분에 10∼15번 일어난다. 다른 무더기의 근육은 파도같이 움직이는데, 이 파동은 나의 내용물을 몇 cm 밀어내린 다음 사라진다. 길이 6m가 넘는 나의 소장이 완전히 휴식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나의 소장이 한끼 식사를 처리하는 데는 3∼8시간이 걸린다. 그 다음 나는 남은 묽은 죽을 대장으로 보낸다. 대장은 거기서 수분을 뽑아 혈액 속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조가 소화액을 생산하느라고 하루에 2갈론씩 액체를 상실한다면, 그는 곧 바싹 마른 미이라가 되고 말 것이다. 수분이 추출되고 난 다음에는 반고체 상태의 찌꺼기가 남는데, 나는 그것을 직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결장에 저장한다.
정상적인 경우, 수분을 추출하는 과정은 12∼24시간이나 걸리는 더딘 과정이다. 긴장, 약품, 박테리아의 침입 등과 같은 요인은 음식물을 빨리 통과하게 하고, 그러면 수분이 충분히 추출되지 모해 조는 설사를 하게 된다. 근심 걱정이 많거나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활동이 거의 멈춰 버려 조는 변비에 걸리게 된다. 이 둘 중 설사는 심한 탈수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더 위험하다. 설사를 하게 되면 조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나로 인해 조는 갖가지 고통을 겪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그러한 고통의 대부분은 대단치 않은 것들이다. 조가 가끔 듣고 당황해하는 꾸르륵거리는 소리는 나의 관 속으로 공기방울이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하다. 이 공기는 대개 조가 삼킨 것이다. 그러나 내 스스로 가스를 생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로 메탄과 수소이다. 나는 하루에 1.1ℓ가 조금 넘는 양의 가스를 생산하는데 이 가스는 대부분 밖으로 방출해 버린다. 내 속에 가스가 찼을 때 조는 답답한 느낌의 복통을 일으킨다.
몸 속의 여러 다른 기관들이 그렇듯 나도 조의 기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격렬한 감정은 나의 규칙적인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화가 났을 때 조가 식욕을 잃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만을 생각한다면, 조는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조도 비록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게실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나의 벽이 약해져서 건포도 또는 포도 크기의 작은 방울 모양으로 튀어나오는 증세이다. 감염이 되지 않는다면,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감염이 되면 게실염이 된다. 게실염은 흔히 생기지는 않지만,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다.
장염은 나의 안쪽 벽에 생긴 염증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화학약품 등에 의해서 생기며 경련, 메스꺼움,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인다. 조는 대장염을 여러 차례 앓았는데 조는 이 병을 '장 인플루엔자'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경우 하루이틀 쉬면서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염증은 가라앉는다.
궤양성 대장염 나의 대장 내벽에 생기는 궤양 도 나에게 생기는 많은 질병 중의 하나다. 나는 무엇이 그 병을 일으키는지 모른다. 만약 증상이 경미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내 스스로 고칠 수 있지만 심한 경우 궤양으로 나의 결장 벽이 뚫려 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다. 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만약 그런 경우 그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
결장경련도 내게 생기는 병 중 하나다. 이것은 주로 긴장이나 불안에서 온다. 나는 조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며칠 전 그가 큰 계약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할 때도 나는 반응을 나타냈다. 나의 결장은 뻣뻣해졌고, 가벼운 마비를 일으켰으며, 음식을 정상적으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그의 기분이 진정되자 나는 정상적인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조 역시 자신을 가끔 생기는 변비를 다루는 데는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나를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다. 그는 내가 기분파 기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며칠간 뿌루퉁해 있다고 해서 크게 해로울 것은 없다. 조는 불쾌한 팽만감을 느끼겠지만 나의 폐기물이 그의 신체기관에 해독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나도 중년이 되었으므로 조도 마찬가지지만 예전처럼 효율적으로 음식을 처리하지는 못한다. 한때 나는 그가 무슨 음식을 먹든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식사습관을 조절해 달라는 것뿐이다.
솔직이 말해 조가 몇 가지 상식적인 규칙만 지켜 준다면, 우리들은 훨씬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양파, 양배추, 콩 등과 같이 가스를 많이 만들어 내는 음식은 조심해야 하고 부담을 주는 식사, 지방질이 많은 식사는 피해야 한다. 과일, 잎이 많은 야채, 현미 등은 충분히 먹어야 한다. 이들 '부피가 큰' 식품은 나를 자극해서 내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물도 전보다 많이 마셔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큰 피해를 주는 긴장을 피하는 일이다.
꽤 만은 주문을 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불평을 적게 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한테 치러야 할 대가이다.
간
조는 그의 치아, 머리털, 폐, 심장 등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조의 간이다. 그가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다면 나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흔히들 짐작하는 그대로 생겼다. 나는 조의 몸 속에 있는 가장 큰 기관이며 무게는 1.4kg이나 된다. 갈빗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내가 조의 복부 오른쪽 윗부분을 거의 채우고 있다.
외모는 별나게 생겼지만 나는 조의 기관들 중에서 가장 솜씨가 뛰어난 존재이다. 복잡하다고 일컬어지는 심장이나 폐도 나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500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데, 만약 내가 그 중의 한 가지만이라도 실수한다면 조는 장례식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조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참여한다. 그가 골프를 칠 때는 연료를 공급해 주고, 아침식사로 베이컨을 먹으면 그것을 소화시켜 주며, 그가 밤에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타민을 제조한다.
내가 하는 일 중 비교적 간단한 일들을 큰 화학공장에서 해내려고 하면 아마 부지가 몇 에이커(1에이커 4.047m²)에 달하는 공장을 새로 세워야 할 것이다. 좀 어려운 일들은 화학공장에서도 도저히 해낼 수 없다. 나는 나의 화학적 변환작용을 담당하는 1,000여 종의 효소를 생산해 낸다. 내가 생산하는 응고인자가 없다면, 조는 손가락을 베여도 출혈이 그치지 않아 죽고 말 것이다. 나는 조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항체도 만들어 낸다. 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장이 분해해서 만들어 낸 아미노산은 그의 혈류 속에 들어가면 청산칼리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이들 아미노산을 '인간화' 시킨다. 다시 말해 나는 아미노산을 인체단백질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의 신체가 필요로 하지 않는 잉여물질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요소로 바꾸어 신장으로 보내 배설시킨다.
조의 부신은 염분을 보존하는 호르몬을 생산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양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조의 몸이 퉁퉁 부어 오르게 된다. 그 초과분을 내가 파괴해 준다. 나는 심장에 대해 일종의 안전판 구실도 한다. 나의 위편에는 조의 심장과 직접 연결된 암갈색 정맥이 있다. 만약 혈액이 갑자기 밀려들어 심장의 운동이 부자유스럽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나는 부풀어올라서 해면처럼 피를 빨아들인다. 그런 다음에 심장이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그 피를 되돌려 준다.
나는 뛰어난 해독자이다. 어떤 독성 물질 예컨대 니코틴, 카페인 및 조가 매일 섭취하는 갖가지 약품 등 을 심장으로 연결된 나의 나가는 핏줄 속으로 투입하면 조는 몇 분 안에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게로 들어오는 핏줄에 그것을 투입하면 나는 혈액이 나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6∼10초 사이에 그 독성을 깨끗이 뽑아 버린다. 조가 마시는 칵테일 속의 알콜성분도 내가 무해한 탄산가스와 수분으로 분해하니까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의 혈액 속에 축적되어 치사량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한 시간에 하이볼 반잔이나 맥주 4분의 3캔 정도를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속도로 마시면 조는 아무런 취기도 느끼지 않고 계속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는 그보다 빠른 속도로 마시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밤새도록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인체에서 생산되는 물질 중에도 너무 많이 축적되면 유독한 것이 있다. 나는 그런 물질들도 항상 체크한다. 조가 골프를 칠 때 그의 근육은 글루코스(포도당)를 태우면서 잠재적 위험성을 지닌 물질인 유산을 만들어 낸다. 나는 유산을 내버리지 않고 글리코겐으로 변환시켜 저장한다. 나는 낭비를 모르는 매우 알뜰한 주부이다.
조가 초콜렛을 먹으면 그 속의 설탕이 장에서 혈당(글루코스)으로 바뀐다. 이 글루코스가 혈류 속에 너무 많이 유입되면 조는 마치 인슐린 공급을 받지 못한 당뇨병 환자처럼 혼수상태에 빠져 죽고 만다.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한다. 만약 혈액 속에 글루코스가 너무 많으면 나는 그것을 풀 같은 글리코겐으로 변환시킨다. 이같은 방식으로 나는 설탕 200g에 해당하는 당분을 저장할 수 있다. 이렇게 저장했다가 끼니와 끼니 사이에 혈당량이 떨어지면(너무 적은 것도 많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해롭다), 나는 글리코겐을 다시 글루코스로 변환시켜 혈류속에 공급해 준다.
적혈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초마다 1천만 개의 적혈구가 죽는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처분되어야 한다. 나는 그 파괴된 적혈구를 보존해서 새로운 적혈구를 만드는 데 두고두고 이용하도록 한다. 나는 또 그 중의 일부를 이용해서 황록색의 쓴 소화액인 담즙을 하루에 1퀴트(1.14ℓ)씩 만들어 낸다.
담즙은 대개 나에게서 담낭으로, 다음에는 위와 소장 사이에 있는 십이지장이라는 작은 주머니로 이동한다. 담즙은 식사할때 분비되어서 지방분을 소화될 수 있는 수용성의 작은 입자로 분해한다. 담즙은 또한 지방질의 퇴적물을 씻어내 줌으로써 나의 통로들이 막히지 않게 해준다.
내가 담낭 속으로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있는 담즙에는 또한 적혈구가 파괴되어 생긴 폐기물인 두 가지 색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빌리루빈(적색 담즙)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빌리베르딘(녹색 담즙)이다. 이들 색소가 혈류 속에 너무 많이 유입되어 피부와 눈동자에 노란 반점이 생기는 황달을 유발시키는 수가 종종 있는데, 이런 증상은 병이라기보다는 나한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신호이다.
황달의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다. 말라리아나 어떤 종류의 빈혈 같은 질병에 걸려 적혈구가 빠른 속도로 파괴될 경우, 파괴된 적혈구에서 생긴 색소가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적된다. 담낭이나 담관에 장해가 생겨도 색소가 늘어날 수 있고, 이들 색소가 혈류 속에 넘쳐 들어와 황달이 유발될 수 있다. 또는 간장염이나 기타 질병에 의해 나의 일세포에 염증이 생기거나, 지방질에 의해 내 속의 통로들이 막히는 경우 나는 색소를 배설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는 큰 곤란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엄청난 잠재력과 재생력을 갖고 있다. 질병으로 인해 내 일세포의 85%가 파괴되어도 나는 내 할 일을 계속할 것이다. (사실 이런 잠재력은 나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조가 어떤 경고를 받기 전에 내가 아주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 수술을 받아 내 몸의 80%가 잘려 나가도 나는 여전히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나는 또한 대부분의 다른 기관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즉 불과 몇 달 사이에 나 자신을 재건해서 정상적인 크기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간장염은 나의 일세포를 수백만 개가 때려눕힐 수 있다. 그러나 수주일 지나면 이 바이러스감염은 보통 가라앉으며, 그러면 나는 손상된 부분을 수리한다. 대개의 경우 나는 정상상태로 되돌아간다.
지방분이 침투해도 매우 심각한 사태가 야기될 쉬 있다. 지방분이 일세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방분이 너무 많이 침투하면 나는 부어 오르고 예민해진다. 지방분은 혈류 속으로 파고 들어가 중요한 기관들에서 혈관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더욱이 지방질의 침투는 더욱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내가 아무 쓸모 없는 섬유질 조직으로 대체되는 사태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쪼그라들고 딱딱해지며 혹 같은 것이 생기고 색깔은 누르스름한 병색을 띤다. 이것이 간경변증인데, 생명에 위험이 되는 적신호이다.
무엇이 간경변증을 일으키는가?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감염에 의해서도, 비소나 가타 약품들의 중독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발병의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이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빈약한 식사와 알콜이다. 부실한 식사를 하고 하루에 340g의 위스키를 계속 마시는 사람의 경우, 거의 틀림없이 지방성 간으로 발전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면 간경변증이 된다. 다행히 조의 간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손상된 부분이 띠 모양으로 몇 개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충분한 일세포가 남아 있다.
나는 '과묵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몇 가지 방식으로 불평을 한다. 만약 조가 심한 피로를 느끼거나 식욕을 잃거나 복부가 부풀어오르거나 하면 나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만약 그의 상체에 있는 거미 모양의 핏줄이 팽창하거나 황달증세가 나타나면 가능한 한 빨리 의사를 찾는 것이 좋다.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나안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사들은 몇 가지 방법으로 검사를 한다. 한 가지는 물감(브롬설퍼레인)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만약 내가 최고의 컨디션에 있다면 그 물감을 45분 이내에 제거해야 한다. 또 하나 널리 쓰이는 방법은 혈액 속의 빌리루빈 색소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양이 너무 많으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늘을 나한테까지 찔러 넣어서 내 조직 중심부의 일부를 떼어서 검사하는 것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조가 이런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설사 간경변증으로까지 진전되었다 해도 의사들은 나에게 가장 많이 생기는 이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다. 의사들은 조를 입원시킨 다음 고단백질의 영양식과 다량의 비타민을 공급할 것이다. 그리고 알콜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이러한 치료를 받으면 나는 새 출발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불유쾌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체중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가 살이 찌면 나한테도 지방질이 낀다. 비타민, 특히 비타민 B군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알콜을 적게 섭취하고 분별 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최소한의 주의만 기울여 주어도 나는 조를 위해서 만능화학공장으로서의 나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췌장
나는 큰 개의 혀와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다. 길이는 15cm, 색깔은 회색이 도는 핑크색, 무게는 약 85g이다. 나는 간, 신장, 대장 등의 기관이 비좁게 자리잡고 있는 조의 복부 깊숙이(위의 뒤쪽, 척추의 앞쪽) 들어 있는 췌장이다.
나는 매우 바쁜 기관이다. 내가 생산하는 효소들이 없으면 조는 산더미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영양실조에 빠질 것이다. 그가 눈까풀을 깜박일 때마다, 또 그의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세포들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는데 나는 세포의 불이 잠시도 꺼지지 않게 연료를 공급하는 데 한몫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나는 하나의 보자기에 싸인 두 개의 선이다. 나는 조의 혈류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두 가지 중요한 호르몬을 생산한다. 나의 글루코스 즉 혈당은 에너지의 주공급원인 세포들이 쓰는 연료이다. 나의 인슐린은 혈당을 적정수준으로 유지시키며 그것이 알맞게 연소하고 있는지를 감독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것은 매우 까다롭고도 중요한 일이다.
나는 하루에 약 1ℓ의 소화액을 생산하는데, 이것이 소화작용에서 하는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85g의 선에서 900g의 소화액을 생산해 내니 그만하면 훌륭하다고 할 수밖에! 조의 위를 떠날 때의 음식물은 강한 산성을 띤 죽이 되어 있다. (조는 위산에 대해 불평하지만 산에게는 단백질 분해를 시작한다는 그 나름의 임무가 있다.) 이 산은 소장의 섬세한 안쪽 벽을 침식함으로써 조의 소화관을 망가뜨릴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그 산을 중화시키기 위해 알칼리성 소화액을 충분히 생산해 내야한다.
조가 저녁식탁에 앉으면, 수만 개에 달하는 작은 부대처럼 생긴 나의 포도상선은 그의 신경계로부터 알칼리성 소화액 생산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통하는 출입구인 유문을 통해서 위에 있던 죽이 실제로 들어오기 시작하기 전에는 본격적인 제조활동을 하지 않는다. 일종의 자기보호 작용으로서 십이지장은 세크레틴이라는 호르몬을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혈액을 통해 전해 오는 그 호르몬의 화학적 메시지를 받으면 나는 알칼리성 소화액의 생산을 극대화시킨다.
사실 산을 중화시키는 일은 그리 대단한 화학적 재주는 아니다. 나는 그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도 많이 한다. 예컨대, 조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조가 먹을 당시의 상태 그대로 혈류에 들어간다면 조는 금방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그 물질들을 혈류 속으로 들어가도 괜찮은 물질로 바꾸는 데 주역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 나는 재주 좋은 세 가지 효소를 만들어 낸다. 이화학적 재주꾼들 중 하나인 트립신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일을 시작한다. 아미노산은 혈류를 타고 온몸을 돌면서 조직을 만드는 일을 한다. 또 다른 효소 아밀라제는 전분을 당으로 변환시킨다. 세 번째 효소 라파제는 지방질을 지방산과 글리세린으로 분해한다. 조가 호화판 식사를 했건 핫도그를 먹었건간에 결과는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최종 물질은 거의 예외 없이 조가 입 속에 집어넣은 음식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다행히 나는 소화액을 넉넉히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의 포도당선의 반만으로도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을 정도다. 설사 나의 생산시설이 완전히 파괴된다 해도 조는 살아갈 수 있다. 타액과 위 및 장의 분비물이 그 일을 대행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화가 제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슐린의 생산은 나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만약 내가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조는 당뇨병에 걸리게 될 것이다. (1921 년에 동물에서 얻은 대체인슐린인 나타날 때까지는 내가 이 호르몬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뇨병 정도가 아니라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것도 오래 걸리는 고약한 죽음이었다.) 나는 나의 온몸에 흩어져 있는 약 100만 개의 소도세포를 이용해서 인슐린을 생산하는데, 이들 소도세포는 하나하나가 독립된 작은 공장이다. 엄청난 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게는 85g인 내 전체 무게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조의 몸 속에는 몇 조개나 되는 세포가 있는데, 이들 세포는 글루코스를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매우 효율적인 작은 연소장치이다. 나의 소도세포들이 만드는 인슐린은 이들 세포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확한 양의 연료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인슐린은 혈액 속을 순환하는 글루코스의 양 모두 합쳐 약 5g 을 결정하는 데 한몫을 한다.
인슐린은 또한 세포가 글루코스를 연소시키는 것을 돕는 역할도 한다. 만약 나의 소도세포들이 갑자기 파업에 들어간다면, 조의 세포들은 다른 연료를 연소시키려고 할 것이다. 지방질이 연소될 것이고, 근육 속의 단백질도 세포의 불을 유지하는 데에 쓰이고 말 것이다. 조는 장대처럼 창백하게 여윌 것이며 심한 시장기와 함께 항상 갈증을 느낄 것이다. 당분을 연소시킬 수 없기 때문에 조는 그것을 당뇨로 내보낼 것이다. 당뇨의 양이 하루에 자그마치 4ℓ나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내가 예방해 주는 당뇨병의 증상이다.
내가 생산하는 인슐린은 또한 조의 간에 대해서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간은 혈액 속을 순환하는 글루코스가 너무 많으면 그 남는 분량을 저장해 두는 찬장 같은 곳이다. 혈액이 통과할 때 인슐린이 간에 신호를 보내면 간은 이 과잉 글루코스를 글리코겐이라는 전분질로 바꾸어 필요할 때까지 보관한다. 그랬다가 신체조직에서 당분을 필요로 하면 글리코겐을 다시 글루코스로 바꾸어 혈액 속으로 공급한다.
물론 조가 단 것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나의 이러한 정밀한 제어기능이 난조에 빠지는 수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인슐린 생산량을 늘려서 세포의 불길에 부채질을 한다. 과자가 즉석에너지의 좋은 원천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대로 혈당이 너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 나는 인슐린의 생산량을 줄여서 세포의 불꽃을 줄여준다.
비록 당뇨병이 나와 관련된 제1의 병이기는 하지만, 나는 의사들에게 그 밖에도 몇 가지 다른 골칫거리를 제공한다. 나는 몸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외과의사가 다른 기관들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나한테 접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나를 제거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대체인슐린 및 효소가 있으므로 조는 내가 없어도 비록 불편하기는 하지만 살아갈 수는 있다.) 나에게 무슨 고장이 생기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건 종종 상복부에 심한 통증이 온다. 이러한 통증은 등까지 번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질병 구멍이 뚫리는 궤양(천공성 궤양), 심장마비, 담낭 장애, 장폐색 의 경우에도 같은 종류의 통증이 오는 수가 있는데, 이때에는 설사, 체중 감소, 피로, 황달 등이 함께 오기도 한다.
흔히 발생하는 또 다른 질병은 급성 췌장염이다. 이 염증의 원인은 유행성 이하선염, 인접 기관을 수술할 때 입은 상처, 동맥질환, 계속적인 음주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 근본원인은 내 도관이 부실하다는 데 있다. 나는 십이지장으로 연결되는 도관을 간 및 담낭과 같이 쓰기 때문에 간에서 나온 담즙이 나의 도관계로 역류해 들어와 그것을 손상 또는 파괴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는 담석이 도관을 막아 내가 생산하는 효소를 역류시키는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역류된 효소는 나를 소화시키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조는 끝장이다. 급성 췌장염은 상상 이상으로 위급한 병이다. 매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병으로 사망한다.
각종 종양도 나에게 타격을 입힌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이 나로 하여금 인슐린을 과도하게 생산케 하는 선종이다. 조의 나이 또래 사람들의 경우 췌장암은 폐암과 결장 직장암에 이어 세 번째로 사망자를 많이 내는 암이다. 담낭 질환이나 담낭 섬유증도 대개 나와 관련이 있다.
가끔 소화불량을 일으킨 것을 제외하고는 나는 지금까지 조에게 별다른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체로 조는 분별 있는 식사나 음주를 하고 있어 그것이 도움이 되고 있다. 그가 그런 생활 태도를 계속 유지해 간다면 그는 내가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 알 필요도 없이 행복한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7. 생식기관
자궁
나는 아랫배의 인대로 매달려 있는 연분홍빛 근육질 주머니이다. 나는 대충 조그마한 배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무게는 약 60g이다. 나를 아기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정 적절한 표현이기는 하나 그것은 나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한 명칭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우주의 신비의 극치라고 할 만한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몇 개의 세포 송이를, 그것이 수조 개의 세포 복합체 즉, 새로운 한 인간이 될 때까지 보살핀다. 나는 제인의 자궁이다.
새 생명이 자랄 아늑한 방 구실을 하는 일쯤 대단치 않은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 일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일이며 또 대단히 짜증스러운 작업이다, 사춘기로부터 폐경기에 이르기까지, 매달 나는 임신을 준비하는 정교한 의식을 치른다. 이러한 의식은 400회 이상 치러졌다. 또는 치러질 것이다. 그렇지만 제인의 경우, 임신은 불과 세 번밖에 없었다. 이것은 초대해도 좀처럼 오지 않는 손님들을 위해 화려한 연회를 계속 준비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400번이나 초대했는데 초대에 응한 것은 겨우 세 번뿐이었으니까!
월 1회의 이 준비작업에는 요란한 화학작용이 따른다. 새 혈관, 새 분비선, 새 조직의 얽히고 설킨 망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인의 난소에서 나오는 에스크로겐 호르몬의 자극으로 나의 속살 피처럼 붉고 벨벳처럼 보드라운 자궁내막 은 두꺼워지고, 나의 분비선들은 세 생명에게 필수적인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확장된다. 주기의 중간에 또 하나의 극히 중요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나는 속이 빈, 근육질의 기관인데 나의 내부 공간은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액체가 들어갈 만하다. 나의 근육은 규칙적으로 수축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축작용은 수정란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나의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서, 제인의 난소는 주기 중간에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임신중 자궁의 발육 성장을 지배하는 난소황체 호르몬의 일종 편집자주)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프로게스테론은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호르몬은 나의 내막이 수정란이 착상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을 돕고, 또 이미 에스트로겐에 의해서 자극을 받은 나의 분비선들로 하여금 성장 초기단계에 있는 수정란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분비해 공급하도록 한다.
나에게는 세 개의 통로가 있다. 두 개의 나팔관이 나의 윗부분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제인의 난소에서 매달 한 개씩 배출되는 난자가 들어오는 통로이다. 나의 또 하나의 통로는 나의 경부 즉 목을 통과하는 밀짚 모양의 터널이다. 이것은 남성의 정자를 받아들이는 나의 입구이자 아기를 내보내는 출구이다. 제인의 난소에서 난자가 배출될 때, 나의 경부는 남성의 정자가 난자를 향하여 헤엄쳐 올 수 있는 '강물' 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점액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이렇게 되면 나는 이제 수정란을 받아서, 새 생명을 양육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수정란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내가 마련해 놓은 새로운 조직, 분비선, 혈관 등은 모두 폐기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제인은 월경을 하게 되는데 월경을 하면 모든 것이 정상상태로 돌아간다.
나의 극적인 순간은 제인의 첫 아이와 함께 찾아왔다. 마침내 나의 기량을 보일 기회가 왔던 것이다. 난자가 수정되어 세포분열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나팔관 속을 유유히 떠내려오는 동안, 불어나는 세포들은 하나의 식량공급원 알의 노른자위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수정된 난자가 도달할 무렵에는 바닥이 나게 되어 있었다. 든든한 영양 공급원이 신속히 발견되지 않는 한, 이 미세한 생명이 살아남을 전망은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전에도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했을 무렵, 수정란은 미세한 촉모를 펴서 나의 내막에 붙었다. 이제 수정란은 안전하고, 따뜻하고, 먹을 것 걱정이 필요 없는 보금자리를 갖게 된 것이다.
까다로운 나의 새 손님을 먹이기 위해서 이것은 하루 24시간씩, 9개월 동안 계속되는 작업이었다 나는 인체의 모든 조직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복잡한 것 중의 하나인 나의 태반의 도움을 받게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티끌처럼 수정란에서 돋아난 태반은 마침내는 직경 약 18cm, 무게 900g 정도의 불그스름한 팬케이크만하게 커졌다. 볼품은 없지만 이것이 제인의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그 아기의 허파, 간, 콩팥 및 소화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아기의 생명선은 탯줄이었다. 탯줄의 길이는 짧을 경우에는 15cm밖에 안되지만 길 경우에는 120cm나 된다. 탯줄에는 2개의 동맥과 1개의 정맥이 있었다. 동맥은 아기의 노폐물을 태반으로 실어 갔고, 노폐물은 그곳에서 제인의 혈액 속으로 번져 들어갔다. 제인의 혈액 속으로 들어간 노폐물은 제인의 간, 신장, 및 폐에서 처리되었다. 정맥은 제인의 혈액으로부터 태아가 필요로 하는 것들 비타민, 산소, 미네랄, 탄수화물, 아미노산 등 을 실어왔다. 엷은 막으로 되어 있는 태반의 여과 장치는 제인의 혈액과 아기의 혈액을 완벽하게 따로 분리시킨 채 이러한 복잡한 교환작용을 해냈던 것이다. 제인의 혈액과 태아의 혈액은 섞일 수 없는 형이었기 때문에 만약 서로 섞였다면 재난이 초래되었을 것이다.
제인의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1개월이 경과하자 나의 손님(태아)은 수정란의 크기의 1만 배가 되었다 나의 수용능력도 증가하여, 종당에는 본래 크기의 500배가 되었다. 나의 모양 역시 배에서 공으로, 공에서 알로 변하고 있었다. 아마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날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고 있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나의 근육의 섬유조직은 크기와 무게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렇게 내가 커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속의 아기가 커지는 바람에, 특히 아기가 도리깨질과 발길질을 배운 후에는 터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의 힘이 이렇게 늘어난 까닭에 나는 후에 초인이라 할지라도 녹초가 될 만한 고역, 즉 산고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개 7개월까지는, 제인의 아기는 위치를 자주 바꾸었지만, 그후로는 중력이 생겨서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다른 부분보다 유난히 무거워졌다. 따라서 대부분의 태아처럼(모든 태아의 96%가 그렇다) 제인의 아기는 머리를 아래로 향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만을 위한 최상의 자세였다. 내 속에서 먹고 자는 아기의 크기와 힘이 늘어남에 따라, 나는 내게 가로거치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밀어냈다. 나는 제인의 방광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빈번한 화장실 출입을 불가피하게 했다. 또 내가 위와 장을 밀어붙임으로써 소화장애가 생기기도 했다.
9개월쯤 됐을 때 나는 복강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제 나의 임무가 거의 완료될 단계에 와 있었다. 나는 미소한 수서성기생체를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무게 3kg의 아기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드디어 어느 날 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9개월간의 무기력상태에서 깨어나 내 속에서 자란 아기를 몰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감격적인 분만의 드라마에 참여할 준비를 갖춘 것이었다. 최초의 힘겨운 목표는 아기의 머리를 통과시킬 수 있도록 나의 경부의 통로를 손가락끝이 들어갈 만한 넓이로부터 직경 13cm쯤이 넓이로 확대시키는 일이었다.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나는 점차 수축운동의 빈도를 높였다. 마침내 수축운동의 간격은 2,3분으로 좁혀졌고 지속시간은 1분으로 늘어났다. 물론 나는 이렇게 하는 동안 통로를 확대시키는 데 아기의 머리를 쐐기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의 근육들은 6.4kg의 추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11.3kg의 추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인의 복근과 횡경막이 나를 거들어 주었다. 마침내 아기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내게는 꽤나 많은 청소작업이 남아 있었다. 이제 태반이 필요 없게 되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몰아냈다. 그리고 또 노출된 혈관에 압력을 가하여 피가 흘러나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임신 초기에, 나의 무게는 60g이었다. 그러나 아기를 내보내고 났을 때, 나의 무게는 약 16배나 늘어나서 900g이 넘었다. 1,2개월내에, 나는 운동을 해서 무게를 정상수준으로 줄여야 했다.
나는 제인의 두번째 및 세번째 아기를 위해 이러한 과정을 두번 더 겪었다. 그러나 제인의 나이는 이제 42세, 얼마 안 있으면 폐경기에 접어든다. 그때가 되면 나의 임무는 끝날 것이고, 나는 원래의 크기로 오그라들어 어린 소녀의 자궁만하게 될 것이다.
제인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나는 갖가지 말썽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제인의 몸에서 가장 말썽이 많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겪는 가장 흔한 고통은 물론 월경불순, 즉 월경 때에 오는 경련성 고통이다. 유섬유종 나의 근육 벽에 종종 생기는 여러 가지 형태의 흐끄무레한 종양 은 나를 우울하게 하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이다. 많은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제인도 이러한 유섬유종을 암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불필요한 걱정이다. 유섬유종이 암으로 발전할 확률은 1/200도 되지 않는다.
나의 내부조직이 매달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제거되지 않으면, 과대한 또는 불규칙한 출혈이 생긴다. 이러한 증세는 가장 널리 시행되는 수술, 즉 나의 경부를 확장시켜 조직을 긁어내는 소파수술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 이 수술에서는 나의 경부 통로를 스푼처럼 생긴, 긁어내는 기구를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확장시킨다. 이렇게 해서 필요없는 조직을 긁어내면 출혈증세는 보통 없어진다.
나는 제인의 몸에서 유방 다음으로 암의 침공을 받기 쉬운 부위이다. 다행히 나에게 생기는 두 종류의 암(자궁경암과 자궁체암)은 대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또 조기에 발견만 된다면, 90% 이상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출혈, 특히 40세 이후의 이상출혈은 가장 흔히 나타나는 자궁체암의 징후이다. 그런 출혈은 다른 원인으로 생길 수도 있지만, 일단 출혈이 있게 되면, 제인은 지체없이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제인은 현명한 여자인지라 매년 자궁경암 조기발견을 위한 검사인 '팸(Pap)테스트'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나를 생각할 때, 내가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보다는 나로 인해 생기는 말썽에 더 치중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내가 없었다면, 그들은 태어나지도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점에 있어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난소
우리는 둘이며, 제인의 골반 양쪽에 인대로 매달려 있다. 희끄무레한 빛을 띠고 있으며, 대체로 갸름한 편도 모양이고, 길이는 7cm 정도이다. 둘을 합쳐도 우리의 무게는 7g밖에 안된다.
보잘것없는 생김새와 대수롭지 않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나의 짝과 나(나는 제인의 오른쪽 난소이다)는 제인의 몸을 구성하는 가장 여성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제인의 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제인의 기분, 성적 충동,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크게 좌우한다. 사실, 제인을 최초로 하나의 어엿한 여자로 바꾸어 놓은 것은 바로 나의 짝과 나이다.
제인은 12살쯤 그 이전 또는 이후였을지도 모른다 까지는 가슴이 납작했고, 말광량이였으며 성적으로 미숙했다. 그러다가 제인의 뇌하수체로부터 신호를 받고, 우리는 마술지팡이 같은 호르몬들을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호르몬들이 제인의 몸을 다시 조각하기 시작했다. 골반은 넓어졌고 엉덩이에는 지방층이 나타났으며, 유방이 부풀기 시작했다. 음모와 그 밖의 체모가 돋아났고 전반적인 성기관이 성숙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35년여에 걸쳐, 우리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제인의 월경주기의 조절에 개입함으로써, 다달이 제인에게 우리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제인이 첫 아기를 가질 때, 우리는 인간의 생명을 형성하는 두 개의 기본원료 중의 하나. 즉 난자를 공급하였다. 앞으로 몇 년 지나면, 나의 짝과 나는 가게 문을 닫을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제인의 가임기는 끝나게 될 것이다.
제인이 어린 소녀였을 때는, 나는 미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나의 짝과 나는 약 50만 개의 미세한 알세포, 즉 난모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개개의 난모세포에는 어린 제인이 후에 자라서 낳게 될 아기들에게 물려줄 유전적 특성을 간직한 수천 개의 인자들이 들어 있었다. 제인의 가임기 동안에 우리 난소들은 28일에 하나 꼴로 불과 400여 개의 수정이 가능한 성숙란을 생산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50만 개나 되는 알세포가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나도 모른다. 아마 자연의 낭비벽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어느 특정한 알세포가 선택되어 완전히 성숙한, 수정이 가능한 난자로 자라나게 되는 것일까? 독자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있었으며 좋으려만, 나로서는 그럴 능력이 없다.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월경주기 초에 뇌하수체는 미세한 양의 난포자극호르몬(FSH)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의 잠재력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하루 100만 분의 1온스(약 3,500분의 1g)미만으로도 놀라운 일련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FSH의 자극을 받으면 몇 개의 휴면중인 난세포가 잠을 깬다. 이들 개개의 자라나는 세포 주위에 액체가 담긴 난포가 형성되고 그 결과로 생기는 기포들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나의 표면을 향하여 밀고 나오기 시작한다.
단지 하나의 기포만이 표면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제인이 일란성이 아닌 쌍둥이를 분만하지 않는 한.) 약 2주일이 경과하면, 그것은 공기돌만한 크기의 물집을 이루며 나의 표면으로부터 불거져 나오는데 그 부피는 나의 부피의 4분의 1쯤 된다. 이 시점에서 뇌하수체는 황체형성호르몬이라 불리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이로 인해 난포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이 파열한다. 그러면 그 속의 액체가 새어 나오고, 완숙한 난자는 그 흐름에 휩쓸려 나간다. 난자는 자궁으로 운반되기 위해, 그리고 그 도중에 가능하면 수정이 도기 위해, 나팔관의 깔때기 주둥이 속으로 가볍게 떨어져 들어간다.
사실, 이 성숙한 난자는 이만저만한 존재가 아니다. 예를 들면, 제인의 첫 아기를 만들어 낸 난자는 생명창조의 드라마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해낼 기회를 얻기 위해 20여 년을 기다려야만 했었으며, 그동안 줄곧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유전인자 조의 정자에서 나오는 23개의 염색체와 결합하게 될 23개의 염색체 를 생생하게 지켜 왔던 것이다. 성숙한 난자는 제인의 몸에서 가장 큰 세포이다. 난자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작은 세포인, 남성정자 머리의 25배나 된다. 그런데도 나의 난자는 지금 겨우 육안으로 보일까말까 한 정도이다. 골무 하나를 채우자면 그러한 번쩍이는 작은 알맹이가 200만 개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처럼 작은 것이 어떻게 아기처럼 복잡한 생명체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만들어 내는 난자의 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제인이 15세가 되기까지는, 제인의 난자는 성숙하여 수정될 수 있는 능력이 보잘것없었다. 심지어 제인의 가임절정기 대충 20세에서 30세 에도 나의 난자가 모두 자라서 수정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임기에 있는 정상적인 여성의 몸 속에 있는 난자의 10 내지 20%는 수정이 되어도 제대로 발육하지 못한다. 갖가지 결함으로 인해서 거부되어 몸에 다시 흡수되거나 유산되고 마는 것이다.
여성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난자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만약 이제 42세의 나이로 제인이 또다시 아기를 갖게 된다면, 결함있는 아이를 낳게 될 공산이 30세 미만일 때에 비해서 상당히 커질 것이다. 그러나 물론 정상적인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난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해두기로 하자. 나는 난자를 생산하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즉 나는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선 구실도 하고 있다. 생명 자체는 내가 만들어 내는 호르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을 해 나가자면 내가 만들어 내는 호르몬이 있어야 한다. 먼저 내가 만들어 내는 몇 가지 에스트로건 모두 화학적 구조가 유산한 것들이다 을 생각해 보자. 이 에스트로겐이 없었더라면 제인은 여전히 키가 작고 가슴은 절벽이었을 것이다. 또 제인의 성기관은 아직도 왜소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기이하게도, 가장 여성적인 기관인 우리 난소들은 또한 테스트스테론 조의 고환에서 생산되는 것과 똑같은 남성 호르몬 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호르몬의 생산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제인은 음성이 굵어지고 턱수염이 돋아나게 될 것이다. 우리 난소들은 이 문제를 제법 멋지게 해결하고 있다. 즉 우리는 남성 호르몬을 에스트로겐으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두드러진 활동이 또 하나 있다. 사실상 우리는 매달 복잡한 새 호르몬 공장을 건조하는 것이다. 일단 난자가 배출되면, 황체형성호르몬(난포를 파열시키는 바로 그 호르몬)은 내 속에 남은 분화구처럼 푹 파인 자리를 자극하여 지방질이 섞인 노르스름한 물질을 지닌 세포들로 메꾼다.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선, 즉 황체이다. 황체는 제인의 혈류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새로운 호르몬을 만들어 낸다. 이 호르몬을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럴듯한 이름이다. 이 호르몬은 잉태(gestation)를 돕기(pro) 때문이다. 이 호르몬의 활동대상은 자궁이다.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으로 자궁의 율동적인 수축작용은 완화되고, 자궁 내벽은 두꺼워지며, 새로운 혈관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정란을 위한 보금자리와 그리고 영양분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임신이 되지 않으면, 황체는 오그라들어 죽어 버린다.
나는 나의 에스트로겐 및 프로게스테론의 생산을 세심하게 조절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이러한 호르몬의 생산이 조절되지 않으면 제인은 여러 가지 혼란 때로는 신체적인, 그리고 때로는 정신적인 에 휩싸이는 수가 있다. 체액이 축적되어 발이 붓기도 하고 월경때가 되면 짜증을 잘 내며, 신경질을 부리고, 우울해지는가 하면, 보통 사람보다 사고를 잘 일으킬 수도 있다. 다행히 호르몬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약이 나와 있다.
제인이 45∼50세쯤 되어 폐경기에 접어들면, 우리 난소들은 사춘기 이전의 크기로 오그라들고, 호르몬 생산도 크게 줄어든다. 우리의 에스트로겐 공급이 줄어듦에 따라,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 날 수도 있다. 중년부인에게 흔히 있는 군살이 생길 수도 있고, 또 유방이 축 늘어질 수도 있다. 수십년간에 걸쳐, 우리가 생산하는 에스트로겐은 제인을 동맥의 지방 축적으로부터, 그리고 동년배의 남성들에게는 여성들에 비해 40배나 더 빈번하게 찾아오는 심장의 관상동맥 질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 같다. 폐경 후, 제인은 남성이나 거의 마찬기지로 이러한 병에 걸리기 쉽게 될 것이다. 피부는 까칠까칠해지고, 근육이 굳어질 수도 있다. 또 제인은 골다공증, 즉 뼈가 부서지기 쉽게 되는 병에 잘 걸릴 수도 있다. 전에는 융단 위에 미끄러지면 멍이 드는게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엉덩뼈가 부서질지도 모른다.
제인은 물론 이러한 부작용들의 일부 또는 전부를 피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폐경기에 접어든 후에도 아무 탈없이 잘 지낸다. 설사 그러한 부작용이 생긴다 해도, 의사들이 우리가 생산을 중단한 호르몬을 대신할 약을 처방해 줄 수 있다.
내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항상 암이다. 난소암은 초기에는 흔히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며, 보통의 골반검사로는 알아낼 수 없는 병이다.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 골반 부위에 만져질 정도의 멍울이 생겼을 때 에는 대개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이다. 난소암은 어느 때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지만, 45∼60세까지의 연령층에서 발생률이 제일 높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제인에게 겁을 주고 싶지는 않다. 금년에도 약 100만 명의 미국 여성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사망하겠지만 이 중에서 난소암으로 죽는 사람은 100명에 하나 꼴밖에 안될 것이다.
이제 나의 이야기는 거의 끝났다. 나는 제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제인에게 자기가 원하는 자녀들을 갖게 해준 것은 내가 만들어 낸 난자였고, 제인으로 하여금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도 내가 분비한 호르몬이었다. 이제 몇 년 후면 나는 물러난다. 다음 세대를 만들어 내는 나의 임무가 완료되는 것이다.
유방
나는 가장 눈에 잘 띄는 여성다움의 징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나를 미용상의 한 부속물, 여성의 자아를 받쳐 주는 버팀목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중요한 존재이다. 나의 진정한 존재이유는 내가 불가사의한, 기적에 가까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혈액을 젖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는 제인의 왼쪽 유방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의 경우, 왼쪽 유방이 오른쪽보다 약간 크다) 한때는 인류의 생존 그 자체가 나에게 달려 있었다. 원시시대에 살던 제인의 선조들에게 있어선 임신이란 빈번한 일이었다. 아기가 연달아 태어났다. 유방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간동안, 아니 그런 시기가 지난 후까지도, 거의 계속해서 젖을 만들어 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잃은 갓난애에게 자기의 젖을 무리면 곧 젖이 나오곤 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구조를 달리한, 그리고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일종의 한선에 지나지 않는다. 제인이 태어난 후 처음 며칠 동안 나는 기능을 발휘했다. 제인의 어머니가 분비한 호르몬이 나를 자극하여 몇 방울의 '마유'(생후 3∼4일경부터 신생아의 유방에서 나오는 초유 비슷한 액체 편집자주)를 만들어 내게 했던 것이다. (조의 유방 역시 조가 처음 태어났을 때 그랬다.) 그 후 호르몬의 효력은 사라졌고 그래서 나는 휴면상태에 들어갔던 것이다. 제인이 약 12세가 되기까지 나는 잠자고 있었다. 그런데 호르몬들이 마술지팡이를 휘두르자 제인의 난소가 성숙했고, 난소가 만들어 내는 호르몬의 자극을 받아 나는 발달하기 시작했다. (제인의 친구들 중에는 8세에 벌써 유방이 발달하기 시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18세가 되어서야 유방의 발달이 시작된 사람도 있다.) 지방질 나는 주로 지방질이다 이 축적되었고, 나는 부풀어올랐다. 나의 한가운데에 붙어 있는 젖꼭지가 자라났고, 그 둘레를 달무리처럼 둘러싼 젖꽃판(유륜)이 보다 짙은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조직은 단연 가장 흥미있는 나의 구성요소이다. 나는 젖을 만들어 내는 17개의 독자적인 공장을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여자도 있고, 이보다 덜 가지고 있는 여자도 있다. 개개의 공장은 딸기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딸기처럼 생긴 것들은 모두 수만 개나 되는 나의 미세한 유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선포들이 생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젖방울은 유관의 지맥으로 배어 들어가서, 마침내 유관 본줄기로 흘러 들어간다. 17개의 유관 본줄기의 종착점은 나의 젖꼭지이다. 나의 피하지방이 이들 섬세한 구조들을 보호 격리시켜 준다. 나는 또한 나를 한데 얽어매는 직물 같은 연결조직을 속에 가지고 있다. 이 연결조직의 가닥가닥이 제인의 흉벽에 부착되어 있다. 말하자면 체내에 있는 일종의 브라자다.
나는 거의 전적으로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월경에 앞서, 호르몬은 나를 부풀게 하고, 또 나는 더욱 민감해진다. 제인의 첫 임신과 함께 나에게는 정말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태반 태아와 자궁을 연결시켜 준다 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나를 깨워주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은 나의 유관의 발달을 촉진시켰으며, 프로게스테론(황체 호르몬)은 딸기 비슷하게 생긴 젖샘(유선)들의 발달과 증식을 촉진시켰다. 나의 표면의 푸르스름한 정맥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해졌고 나의 무게는 두 배로 늘어났다. 분만일이 다가옴에 따라 나는 대청소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의 젖샘들은 단단한 물질로 가득차 있었는데 이것을 용해시키고 젖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제인의 아기가 태어나자, 새로운 호르몬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제인의 뇌 아래쪽에 있는 뇌하수체에서 프로락틴이라는 놀라운 호르몬이 분비되었던 것이다. 이 호르몬은 젖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게끔 하는 호르몬이다.
분만 후의 첫 나흘 동안, 나는 노르스름한 묽은 액체, 즉 초유를 분비했다. 이 초유에는 제인의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거의 없었다. 아기는 체중이 줄었고, 그래서 제인은 애를 태웠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초유는 아기의 소화기관에서 점액과 그 밖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더욱이 초유에는 신생아를 홍역, 백일해, 성홍열 등과 같은, 제인이 어렸을 때 앓은 치명적일 수도 있는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항체가 풍부하게 들어 있었다. 닷새째 되던 날에는 제인의 아기의 체내는 말끔히 씻겨졌고, 진짜 영양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졌다. 그리고 나는 영양분이 고루 갖춰진 젖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처음에, 나의 짝과 나는 하루 약 0.5ℓ의 젖을 만들어 냈다. 이 정도의 젖을 우리가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여러 갈론의 혈액이 우리를 순환해야 했다. 나의 젖샘들은 혈액으로부터 글루코스, 즉 혈당을 뽑아냈으며, 재주가 가장 뛰어난 화학자들인 나의 효소들은 그것을 갓난아이가 흡수할 수 있는 락토제와 그 밖의 당분으로 바꾸었다. 아미노산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아기의 성장 및 조직 재생에 필요한 카세인 및 그 밖의 복잡한 젖 단백질들로 바뀌었다. 지방은 다른 변화과정을 거쳤다. 나의 젖샘들은 순환하는 혈액으로부터 미네랄, 특히 뼈를 만드는 데 필요한 칼슘과 건강에 필수적인 비타민을 뽑아냈다.
제인은 아기가 빨면 나의 외형이 '일그러지지'않을까 걱정했다. 그 걱정은 근거없는 것이었다. 수유 때문에 나의 체내브라자의 인대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제인은 나의 젖꽃판(유륜)이 짙어지고 두터워졌음을 주목했다. 젖꼭지의 고통스러운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윤활제 구실을 하는 새로운 지방선이 이곳에 자리잡았던 것이다. 나의 젖꼭지는 발기성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이 조직이 빳빳해져서 허기진 조그만 입이 보다 잘 물고 있을 수 있게 해준다. 나의 재미있는 생리적 구조 덕분에, 아기가 젖을 빨면 즉각 젖이 나온다. 나의 젖꼭지 바로 아래에서 나의 젖나무의 줄기가 굵어져 조그만 저장탱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아기가 빨면 배고픔의 고통을 달래줄 젖이 바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저장되어 있는 양이 얼마 안되므로 젖은 곧 바닥이 난다. 그러나 나의 젖꼭지는 감각신경들과 빈틈없이 얽혀 있다. 이들을 통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제인의 뇌하수체에 신호가 전달된다. 30초 이내에 뇌하수체는 반응을 보이고 옥시토신 호르몬(뇌하수체 후엽 호르몬의 일종으로 모유분비를 촉진함 편집자주)을 제인의 혈류 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한다. 일단 이 호르몬이 나의 젖샘에 도달하면, 얇은 근육층이 죄어짐으로써 젖을 밀어내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기는 사실상 빨 필요가 없다. 그저 마시기만 하면 된다.
내가 만들어 낸 젖은 갓난아기의 생리적 요구에 딱 맞는다. 그래서 우리 유방들은, 여성들이 가능한 한 아기들에게 모유를 먹였으면 하는 것이다. 우유를 수유기의 아기에게 필요한 모유와 비슷하게 가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모유를 먹이면 또 다른 이익이 있다. 모유를 먹임으로써 제인의 자궁은 율동적인 수축작용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율동적인 수축작용은 자궁을 아기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자루 크기로부터 원래의 배만한 크기로 오므라들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수축작용은 또한 출혈의 위험을 감소시켰고, 또 제인에게 가벼운 성적 쾌감을 안겨 주었다.
수유 초기에는, 나의 짝과 나는 하루에 0.5ℓ미만의 젖 체중 3.2kg의 아기를 먹이기에는 충분하다 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아기가 커감에 따라, 우리가 생산하는 젖의 양도 늘어났다. 하루 3ℓ이상의 젖이 나오는 여자도 있다. 내가 만들어 내는 젖의 성분도 또한 변하였다. 골격형성과 조혈을 위해 더 많은 칼슘이 필요해짐에 따라 젖 속의 칼슘성분이 급증하였다.
2개월쯤 지나자 마침내 제인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일에 싫증이 났다. 약간의 비타민과 철분만 공급해 준다면, 아기에게 구태여 다른 음식물을 먹이지 않고도 나 혼자서 6개월간은 버텨 갈 수 있었는데도 허기진 조그만 입으로부터의 자극이 없어지자 나의 유선은 다시금 서서히 휴면상태에 들어갔고, 그리하여 나는 평상시의 무게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제 내가 주로 걸리는 병들을 알아보자. 많지는 않다. 아마 가장 보편적인 걱정거리는 유방이 너무 크다든가, 또는 너무 작다는 것일 것이다. 다행히 제인은 이런 문제로는 속을 썩이지 않는다. 나의 정상적인 무게는 180g이다. 제인은 금년 42세이지만, 나는 아직 단단하고 팽팽하다. 이같은 복을 타고나지 않았더라면, 제인은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내가 비정상적으로 작다 할지라도, 양식이 있는 의사라면 제인도 들어서 알고 있는 시리콘액을 주입하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채질적으로 맞는 환자들에게는 유방을 크게 하기 위해, 실리콘액 주입법이 사용되고 있다. 보기 흉한 정도로 큰 유방의 교정은 어려운 대수술이다. 과잉 지방과 피부를 도려내는데 때로는 몇kg이나 도려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다음 유방의 모양을 다시 만들고, 젖꼭지는 네번째 늑골 위의 적당한 위치에 이식된다.
나에게 가장 큰 위험은 암이다. 나는 제인의 몸의 다른 어느 기관보다도 이 병에 더 잘 걸린다. 그래서 암으로 죽어가는 여성 중에 유암으로 죽는 사람이 가장 많다. 다행히 제인은 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제인은 유방의 자기진단에 대해서 많이 들어 왔다. 약간의 연습으로 제인은 이러한 진단의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너무 작아서 대부분의 의사들이 놓치기 쉬운 멍울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 제인은 똑바로 누워 왼쪽 어깨를 베개로 받치고, 오른쪽 손의 세 손가락 끝으로 자기의 왼쪽 유방을 철저하게 검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오른쪽 어깨를 베개로 받치고, 왼쪽 손의 세 손가락 끝으로 자기의 왼쪽 유방을 철저하게 검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오른쪽 어깨를 베개로 받치고, 왼쪽 손으로 오른쪽 유방을 검사한다. 이러한 검사는, 한 달에 한번 정해진 날 예를 들면 월경 후 이틀째 되는 날 에 시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인은 유방에 움푹 들어간 곳이 생기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암조직은 유방의 다른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표면이 약간 들어가는 수가 있다. 나의 젖꼭지가 정상적인 위치로부커 약간 뒤틀리는 것도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징후이다. 또 젖꼭지로부터 어떤 비정상적인 분비물이 나오면 역시 검사해 보아야 한다. 어떤 멍울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것이 암일 확률은 3분의 1미만이다. 그러나 어떤 여자들처럼 지체하지 말고 즉각 의사를 찾아가야만 한다. 암이 생겼더라도 조기에 발견하면, 환자의 85%에게 최소한 5년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몇 가지 수술이 가능하다.
제인은 머지않아 폐경기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춘기에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거꾸로 발생할 것이다. 나는 피하지방을 어느 정도 잃게 되겠지만, 전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유선은 점차 쇠퇴하여 거의 없어질 것이며 나는 오그라들 것이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마루리지을 때인 것 같다. 나는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게끔 되어 있다. 사람들이 나를 일종의 장식물로 생각할 때면 아무리 나를 찬양한다 하더라도 나는 서글퍼진다. 따라서 나는, 오늘날 많은 젊은 어머니들 사이에서 아이들에게 모유를 먹이는 데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쁨을 금할 수 없다. 그런 어머니들이 보다 많아지기를!
고환
조는 나에 대해서 착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의 남성다음의 상징으로서 나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왠지 나를 부끄럽게 여긴다. 나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도무지 못마땅하다. 나는 그의 몸에 있는 다른 어느 기관 못지 않게 존경을 받을 만하며, 또 대부분의 기관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이다. 나와 나의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조는 물론이요 다른 어느 누구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테니까.
나의 중요성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자연의 여신이 조보다 더 현명하다. 대개의 경우, 조는 종류별로 선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둘이 있다. 조는 내가 성하고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가 알면 놀라 자빠질 갖가지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주인공이다. 그를 소년으로부터 성인으로 바꾸어 놓은 것도 나였다. 그리고 그의 말년이 평온할 것인지, 아니면 비참할 것이지도 십중팔구 내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조의 왼쪽 고환이다. 다른 기관들과 비교해 볼 때, 나는 결코 못생기지 않았다. 나는 번쩍거리는, 분홍색과 흰색이 뒤섞인 달걀 모양이다. 무게는 15g, 길이는 4cm 정도이고, 최대 직경은 2cm가량 된다. 나의 기능은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생명 의 창조자들인 정자세포를 만들어 내는 일이요, 또 하나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는 일이다. 이 화학물질은 근육,뼈 및 기타 조직의 형성에 한몫을 한다. 이것은 또한 조의 육체는 물론, 그의 정신적 자세의 형성에도 기여한다.
이것이 없다면, 조는 여자처럼 연약하고 수염도 없고, 정열도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조의 신체기관들 중에서 나처럼 좁은 울타리 안에서 나만큼 중요한 일을 해내는 기관도 드물 것이다. 나에게는 1천 개의 관이 있는데, 개개의 관의 길이는 30cm 내지 60cm이다. 통틀어서 대충 500m는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고운 명주실처럼 가늘다. 이들 세관들은 6m 길이의 커다란 수집용 판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매일 5,000만 개의 정자를 이들 도관 속에서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서, 나는 두 달마다 전세계의 인구와 맞먹는 수의 정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엄청난 수의 정자 중에서 불과 셋 만이 제구실을 해냈다. 그들이 조의 세 자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왜 그처럼 터무니없는 과잉생산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바다에서 있었던 생명의 기원을 어렴풋이 일깨워준다. 어떤 물고기들은 오행수로 물에 떠다니는 알에 수정이 되지 않을까 해서, 덮어놓고 바닷물 속에다 정액을 뿜어낸다.
도관 시스템 외에도 나는 수백만의 간질세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테스토스테론을 만들어 내는 세포들이다. 이상하게도 이 남성 호르몬은 여성에게서도 발견된다. 조의 부인 제인은, 부신에서 생산되어 혈액 속을 순환하는 이 호르몬을 조가 가지고 있는 양의 약 20분의 1쯤 가지고 있다. 이 호르몬이 없으면 제인은 불감증에 걸릴 수도 있다. 또 너무 많은 경우에는, 남자 비슷하게 변할 것이다.
조가 자기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나와 나의 짝은 그의 몸 안에 있었다. 조가 출생하기 2개월 전에, 우리는 서혜관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통로를 거쳐서 현재의 자리로 내려 왔다. 그런데 고환들이 내려온 후에도 서혜관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면, 나중에 헤르니아(탈장)를 일으킬 위험부위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내려오는 데 실패했더라면, 조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매우 재미있다. 조의 정상체온은 37℃이다. 이 온도에서는 나는 생존력 있는 정자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그의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2도 가량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정교한 냉방장치를 갖추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주머니에는 한선이 많이 있는데, 이 한선에서 나오는 수분이 증발함으로써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또한, 조도 보아서 알고 있겠지만, 터키탕 속에 들어가면 나는 밑으로 축 처진다. 나를 서늘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나를 달아매고 있는 인대가 늘어나는 것이다. 차가운 샤워를 할 때면, 인대가 줄어들어서 나를 몸 가까이로 끌어 당겨 훈훈하게 해준다.
이와 같은 온도조절이 방해를 받게 되면, 나의 정액 생산에 영향이 미친다. 만약 조가 열대지방으로 간다면 인대는 늘어날 것이고, 또 북극에 가면 추위가 나에게 자극을 주므로 인대는 오그라들 것이다. 조는 언젠가 폐렴에 걸려 1주일 동안 열이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알지 못했겠지만, 그때 나는 정액 생산을 중단했었고, 그는 잠정적으로 생식불능이 되었었다.
내가 만들어 내는 정자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이 정자들은 인체에서 가장 작은 세포이며(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의 난자는 가장 큰 세포이다), 그 모양이 미세한 올챙이 비슷하다. 요동을 치는 꼬리는 단지 운동을 위해서 있을 따름이고 중요한 부분은 머리인데, 이것이 바로 생명의 창조자이다. 이 문장 끝의 구두점을 덮는 데 1,200개의 정자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정자세포들은 여러 가지 두드러진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 조의 몸이 다른 세포들은 모두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정자세포 속에 들어 있는 염색체는 겨우 23개뿐이다. 염색체수가 정상적으로 되려면 여성의 난자가 자기 몫으로 가지고 있는 23개를 합쳐야 한다. 나의 정자는 아들을 만드는 Y염색체와 딸을 만드는 X염색체를 다 가지고 있다. 조의 부인은 X염색체만을 생산한다. 따라서 딸을 낳을 것인가 아들을 낳을 것인가는 내게 달려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가 자기의 어떤 성격을 자녀들에게 전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개개의 정자가 가지고 있는 수천개의 유전자인 것이다.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면서 정자세포들은 한 시간에 18cm를 헤엄쳐 갈 수 있다. 그들의 크기를 생각할 때, 이것은 굉장한 속도이다. 조가 시속 65km로 달리는 것과 대충 맞먹는다. 내가 이 정자세포들에게 갖추어 주는 효소가 없다면 비교적 크고 껍질이 단단한 난자를 이들이 뚫고 들어갈 가망은 전혀 없다 해도 좋을 것이다. 이 효소가 난자의 껍질을 용해시켜 줌으로써 정자들은 난자 속으로 들어가 수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외부로 배설되지 않는다면, 수백만 개의 정자는 늙어서 죽어 버릴 것이다. 또 너무 빈번하게 배설될 경우에는 수백만 개의 정자가 충분히 성숙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정자들은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만약 그 빈도가 너무 잦으면 즉, 10일 동안 하루 2회씩 정액을 배설한다면 정자가 거의 고갈상태에 이르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산시설로는 이러한 수요를 따를 수가 없다. 나의 기능이 정상상태로 돌아가자면 몇 주일이 걸릴 것이다.
조와 그의 부인이 첫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을 때, 그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임신이 되지 않자 그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빈도가 잦으면 임신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간간이 절제를 했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것이다.
단 한번의 사정으로 조는 내가 만들어 낸 6억에 가까운 정자세포를 방출한다. 숫자는 엄청나지만, 그 부피는 보잘것없다. 사정할 때 나오는 액체의 대부분은 티스푼 하나 정도 조의 전립선과 정낭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액체가 하는 일은 내가 만들어 내는 정자들을 희석시키고, 이들에게 영양분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분, 단백질, 미네랄 등이 함유되어 있다.
조가 14세가 되기까지, 나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내가 등장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의 뇌 아래쪽에 있는 뇌하수체로부터 내가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는 신호가 왔다. 소년 조가 어른 조로 변신할 시기가 되었다는 판정이 어떻게 해서 내려졌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 신호를 받고 맹렬한 활동을 시작했다. 뇌하수체 호르몬 중 하나의 자극에 따라 나의 정세관에서 정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뇌하수체 호르몬은 나의 간질세포를 자극하여 남성 호르몬을 대량으로 분비하게 했다.
이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은 주로 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조의 부모는 새로 사준 바지가 불과 몇 주일 만에 발목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는 어처구니없어 했다. 조는 1년만에 13cm나 자랐다. 아기였을 때 통통하던 살이 딱딱한 근육으로 바뀌고 목소리는 굵어졌고 얼굴의 솜털은 거뭇거뭇한 수염으로 바뀌었다. 피부 속의 지방선까지도 나의 호르몬의 자극을 느꼈다. 지방선의 활동이 너무 왕성해졌던 것이다. 조는 여드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조의 신체가 탈바꿈을 하고 있는 동안, 성격 역시 변하고 있었다. 그의 감정적 반응은 어른스러워졌고 짜증을 내는 일이 드물어졌다. 자신감 및 자제력도 늘어났다.
내가 분비하는 호르몬은 섹스에서도 한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호르몬이 없으면, 조는 섹스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호르몬이 정상적인 양만큼 있을 때에도 섹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마음인 듯하다. 성인의 경우, 내가 분비하는 호르몬의 영향은 주로 정서면에 나타난다. 만약 내가 생산을 중지한다면, 조는 초조해지고, 짜증을 잘 내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기억력도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또 폐경기의 여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순간적인 격정을 느끼게 될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가 25∼35세였을 때 가장 많은 양의 호르몬을 만들어냈었다. 그는 이제 47세, 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가 60세가 되면, 나는 사춘기 이전의 상태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그의 정열과 추진력은 줄어들겠지만, 60세라면 마땅히 그렇게 될 시기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테스토스테론을 신체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수염이 자라나게 하는 일 등에 필요하다 양만큼은 만들어 낼 것이다. 조가 90세에 이르더라도, 나는 여전히 정자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양이 임신을 시킬 수 있을 정도는 못될 것이다. 조가 늙어 가면서 호르몬제로 나를 도와준다면, 회춘이 가능할까? 불행하게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나의 건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손을 쓸 길이 사실상 없다.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훌륭한 건강이 주는 자극을 환영한다. 나는 조를 어엿한 남성으로 키워 놓았다. 앞으로 나는 그가 안락하고 활기찬 노년을 보내는 데 필수적인 몇 가지 호르몬이나마 계속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8. 비뇨기
콩팥
나는 조의 다른 기관들이나 마찬가지로 외양은 보잘것이 없다. 색깔은 적갈색이고 모양은 콩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대략 조의 주먹만하다. 나는 조의 오른쪽 콘팥(신장)이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나의 짝이 조의 척추를 사이에 두고 나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 조는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는 나를 단순히 매력없는 액체 오줌 를 생산하는, 제2의 쓰레기 처리기관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실, 나는 조의 신체에서 으뜸가는 화학자이다. 그리고 조의 주노폐물 처리기관은 그의 창자가 아니라 바로 나다. 피는 끊임없이 나를 지나가는데 나는 그 피를 정화하고 여과해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노폐물을 피에서 제거한다. 또한 나는 적혈구의 생산을 촉진시키고, 조의 혈액 속에 들어 있는 칼륨, 염화나트륨(소금), 그리고 기타 물질들을 감시한다. 이러한 물질들은 그 양이 조금이라도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조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생사에 관계되는 수분의 양도 조절한다. 수분이 너무 많으면 조의 세포들이 물 속에 빠져 죽게 될 것이고, 너무 적으면 조는 바싹 말라 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또 그의 혈액이 지나치게 산성화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알칼리화하지 않도록 감시한다. 사실, 내가 조를 위해 하는 일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의사들조차 아직 나의 활동을 모두 다 알고 있지는 못하다.
내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비록 무게는 140g 정도밖에 안되지만 네프론이라는 여과작용을 하는 작은 구성단위를 100만개 이상 가지고 있다. 이들 중의 하나를 고성능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머리가 크고 뒤틀린 꼬리가 달린 벌레처럼 보인다. 이 꼬리를 세뇨관이라고 하는데 나의 세뇨관을 펴서 늘여 놓는다면 그 길이가 물경 110km에 달할 것이다!
나와 나의 짝은 매시간 조의 몸 속에 있는 혈액을 두 차례씩 걸려낸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작업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다. 나는 적혈구나 혈액 속에 있는 단백질의 큰 입자들이 나의 고운 여과 장치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통과시킨다면 그것들이 오줌으로 배설되어 금세 조에게 큰 불행이 닥칠 것이다. 나의 세뇨관들 속에서 혈액의 99%가 재흡수된다. 필수 비타민, 아미노산, 포도당 그리고 여러 가지 호르몬 등은 다시 혈류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이라도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그 초과분은 오줌으로 나가 버린다.
그래서, 만약 조가 커스터드 파이(우유와 달걀에 설탕, 향미료 등을 넣어서 흐물흐물하게 찌거나 구운 과자 편집자주) 큰 것 두개를 먹었다면 그의 오줌에서, 의사들이 당뇨병으로 착각할 정도의 당분이 검출될 수도 있다. 또 조가 소금에 절인 청어나 그 밖의 몹시 짠 음식을 많이 먹었을 경우, 내가 그 염분을 뽑아 내지 않는다면 조는 정말 위독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염분은 수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만약 이 염분을 혈액 속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피 속에, 그리고 세포와 세포 사이의 공간에 필요 이상의 수분이 축적되기 시작할 것이다. 조의 얼굴, 다리, 배가 부어 오를 것이다.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혈액 속의 과다한 수분을 펌프질하느라고 지쳐 버린 조의 심장은 결국 멎어 버리고 말 것이다.
칼륨 주로 육류와 과즙에서 흡수됨 역시 나의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너무 적으면 근육, 특히 호흡운동을 맡은 근육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또 조금이라도 과다하면 심장에 브레이크를 걸어 심장을 완전히 멎게 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남는 칼륨은 아낌없이 버린다. 반대로 조가 필요한 만큼의 칼륨을 섭취하지 못할 때는, 나는 구두쇠처럼 조의 체내에 있는 칼륨을 잘 보존한다.
내가 처리해야 할 가장 큰 노폐물은 단백질이 소화되고 남는 최종산물인 요소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이것 역시 정확한 균형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너무 적으면 바로 내 위쪽에 있는 간에서 피해를 주게 되며 너무 많을 때는, 의사들이 흔히 보게 되는 가장 고약한 병의 하나인 요독증을 일으키게 된다. 요독증은 혈액 속에 요소가 쌓임으로써 생기는 병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쇼크, 혼수상태를 거쳐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 요소가 혈액 속에 쌓이기 시작하면 인체는 이 살인자를 제가하려고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땀샘들이 이 제거작업에 조력함에 따라 비슷한 모양의 백색 요소 결정들이 피부에 나타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된다. 그 때문에 요소가 과다해진다 해도 내가 처리할테니까.
나에게 맡겨진 일을 하면서 나는 쉬지 않고 오줌을 만들어 낸다. 나의 짝과 내가 하루에 만들어 내는 오줌의 양은 각각 1ℓ쯤 된다. 노폐물을 잔뜩 담은 이 미세한 액체 방울들은 100만 개나 되는 나의 세뇨관들에서 나와서 나의 중심부에 위치한 조그마한 저장탱크로 들어간다. 이 탱크는 방광과 연결되어 있고, 방광은 또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10초 내지 30초마다 파도치듯 근육이 움직여 그 액체를 배출관을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나는 밤에는 낮의 약 3분의 1정도밖에 활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는 한 시간에 한번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도 어떤 상황 아래서는 나의 활동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조가 추위를 느낄 때는 체내의 열을 보존하기 위해 그의 피부에 대한 혈액공급이 줄어든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체내의 기관들에 대한 혈액의 흐름이 늘어남을 뜻한다. 혈액이 많아지면 내가 만들어 내는 오줌도 자연히 많아진다. 조가 화를 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그의 혈압이 오르면 내가 처리해야 할 혈액의 공급도 증가된다. 그 결과, 오줌의 양도 많아진다.
알콜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다만 그 과정이 좀 복잡할 뿐이다. 나의 직속 상사 중의 하나가 바로 조의 뇌 밑에 자리한 뇌하수체인데, 여기서 이뇨억지호르몬이 분비된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나는 오즘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 내서 조에게 위험할 정도의 탈수현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것을 방지하는 것이 바로 그 호르몬이다. 조가 마시는 맥주나 마티니 속에 들어 있는 알콜은 직접적으로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알콜이 뇌하수체의 이뇨억지호르몬 생산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는 오줌을 보다 빨리 만들어 내게 된다. 조가 과음하게 되면, 가벼운 탈수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과음한 다음날 아침에는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커피 속의 카페인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 그러나 담배 속의 니코틴은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낸다. 즉, 니코틴은 이뇨억지호르몬의 생산을 촉진시킨다. 그래서 조가 담배를 많이 피울 때는 소변보러 가는 회수가 훨씬 줄어든다.
나의 나이도 조와 마찬가지로 47세이고 보니 차츰 노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질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유주신이라는 병도 있다. 그러나 조는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까 이 병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우리 콩팥들은 지방층에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다. 체중이 줄면 그 지방층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게 되고 콩팥을 고정시키고 있는 조직들이 늘어나서 콩팥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런 증세를 유주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는 신장결석에 관해서도 들어 알고 있다. 신장결석은 오줌이 지나치게 농축되었을 경우 생기는데 칼슘, 염분, 요산이 지나치게 농축된 나머지 결정체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 돌들이 모래알만할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돌들이 점점 커져서 완두콩알만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돌이 방광으로 통하는 관인 지극히 민감한 수뇨관을 통과하려 할 때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극단적인 경우, 이 돌들은 귤만한 크기로 커지는 수도 있는데, 이럴 때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조는 충분한 양의 액체를 꾸준히 흡수함으로써 이러한 신장결석을 막을 수 있다. 하루 9컵에 해당하는 수분을 섭취하면 족하다. (대부분은 음식물로부터 흡수된다.) 고기는 50%가 수분이며, 바나나는 90%, 수박은 93%가 수분이다.
정말로 큰 일은 나의 여과조직, 즉 네프론의 손상이다. 감염으로 네프론이 손상되기도 한다. 감염은 보통 내 아래쪽의 비뇨기로부터 시작되어 차츰 위로 진행되어 올라온다. 다행히 이러한 감염은 항생물질을 투여하면 곧 가라앉는다. 조가 중화상을 입었을 경우에도 나의 네프론들이 심한 손상을 입는 수가 있다. 파괴된 조직에서 나오는 노폐물이 내가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쌓이고 또 손상부위에서 혈액 속의 주요 성분들이 내가 그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빨리 유실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또 콩팥 부위를 얻어맞거나 자동차사고 등으로 인해 상해를 입어도 역시 나의 네프론들은 손상된다. 많은 약을 복용하거나 독성분을 섭취해도 마찬가지다.
대개 이러한 경우 네프론이 입는 손상은 일시적인 것이며, 쉽게 회복될 수 있다. 나는 재생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시 조심해야 할 것은 노화과정의 일부로 나타나는 동맥경화 현상이다. 실체의 다른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동맥들도 굳어지고 좁아지며 탄력을 잃게 되므로, 나에게 오는 혈액공급도 줄어든다. 조만간에 조의 심장은 펌프질하는 힘이 약해 질 것이다. 이 역시 나에게 오는 혈액의 양을 줄이는 요인이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피를 세척하는 나의 능력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유독성 노폐물이 쌓여도 그대로 방치하게 되고 또 나트륨, 칼륨, 염화물 및 기타 물질들의 정상적인 균형이 깨진다 해도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부분적으로 조에게 일어났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나의 네프론이 파괴되었다. 다행히도, 나와 나의 짝은 대단한 예비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네프론의 90%가 기능이 정지된다 해도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그러한 한계점에 이른다 해도 적절한 약물 및 식이요법으로 네프론의 생명을 몇 년 더 연장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음식물 속에 들어 있는 염분, 칼륨, 그리고 기타 물질들이 체내에서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식사를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수분의 섭취도 호흡, 땀, 오줌 등을 통해서 유실되는 분량과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또 지금은 옛날 같으면 절망시되던 상황에서도 도움이 되는 좋은 약들이 나와 있다.
의학계에서는 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검사방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본적인 검사는 물론 소변검사이다. 우선 오줌 속에 단백질은 없는가를 살펴야 한다. 극소량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있어서는 안된다. 단백질이 오줌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은 내 여과조직들이 혈액 속의 단백질을 유실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요원주는 없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세뇨관들에 염증이 생기면, 고체물질들(세포, 지방, 단백질)이 세뇨관과 똑같은 모양으로 굳어 버리는데 이것을 요원주라고 한다. 이것들은 이따금 오줌에 휩쓸려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혈액도 진찰에 도움이 된다. 요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지 않은가가 문제가 된다. 혈액에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은 조의 체내로부터 단백질 노폐물을 제거하는 나의 작업능력이 저하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또 조의 혈관에 어떤 색소를 주입하는 검사방법도 있다. 내가 이 색소를 통과시켜 오줌으로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나의 병세는 그만큼 악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검사방법이 수십 가지나 있다.
그러면 조가 나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체중과 혈압에 신경을 써 주면 된다. 운동도 도움이 되지만 격렬한 운동은 좋지 않다. 근육이 과로하게 되면 유산이 과다해져서 나에게 부담을 준다. 하루 1컵 정도의 물을 더 마시면 그것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분을 너무 적게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조의 오줌이 탁해지거나 적갈색을 띠기 시작하면 조는 빨리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또 얼굴이 붓거나, 속이 메스껍거나, 시력이 흐려지거나, 피로감이 느껴지면 내가 병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즉시 손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더러 나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며 조바심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을 지를 때는 즉시 손을 써 달라는 것뿐이다. 사실 나는 조에게 다시없이 중요한 존재이다. 나를 대수럽지 않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방광
인체에서 가장 못난 기관을 뽑기로 한다면 내가 쉽사리 그 영광(?)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또한 조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난처하게 만든다. 나는 단잠을 망치는 심술장이다. 추운 겨울밤 조를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나다. 중요한 업무회의 석상에서도 내 말은 조위 상사나 고객들의 말보다 더 권위가 있다. 그들이 조에게 아무리 중요한 용건이 있다 해도 조는 그들의 말보다 내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나에게 주목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요구한다. 나는 조의 방광이다.
조는 자신의 창자를 주 폐물 처리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창자가 1주일, 아니 수주일 동안 '파업'을 한다 해도, 조가 반드시 중대한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의 비뇨기가 2,3일 이상 문을 닫게 되면 조는 그야말로 중대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몸 안에 오줌이 가득 차면 나는 펀칭백(권투선수들이 때리며 연습하는 큰 고무공처럼 생긴 주머니 편집자주)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방광의 용량은 사람에 따라 달라서 180cc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720cc나 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용량은 약 470cc로 평균 수준이다. 콩팥(신장)이 조의 혈액에서 걸려낸 폐물인 오줌을 2개의 가느다란 수뇨관을 통해서 나에게 계속 찔끔찔끔 부어 넣는다. 요관이라고도 부르는 수뇨관은 연필심 정도의 굵기에 길이가 약 30cm인 관이다.
나의 배출구는 연필 굵기의 요도이다. 우리를 방광이 요도를 통해 하루에 내보내는 오줌의 양은0.5ℓ 7.5ℓ로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다. 조의 경우는 약 1.5ℓ로 중간 정도이다. 그러나 매일 똑같은 것은 아니다. 대체로 그 배설량은 땀샘과 폐를 통해 상실되는 수분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조가 땀을 흘리면 내가 배설하는 오줌의 양은 준다. 조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조가 잠잘 때 만들어지는 오줌의 양은 낮의 약 4분의 1로 떨어지는데 그 때문에 조는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오줌을 배설할 때는 내 윗부분에 있는 근육이 먼저 수축하고 그 다음에 밑의 근육들이 가세하여 나를 압박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나는 나 자신을 쥐어짜는 것이다. 배설 회수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근심, 걱정, 두려움은 혈압을 올라가게 하고 그에 따라 콩팥의 활동과 오줌생산은 촉진된다.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운동경기로 인한 흥분 혹은 분노 등은 나의 근육벽을 압박한다. 따라서 그럴 때는 오줌이 가득 차지 않았어도 오줌이 마려워진다.
조의 아내 제인이 임신했을 때 제인의 태아는 사실상 제인의 방광 위에 앉아 있었다. 태아의 무게에 의한 압박 때문에 제인의 화장실 출입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조는 추운 날이면 내가 자주 그를 화장실로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다. 추울 때는 체내의 열을 보존하기 위해 조의 혈류가 피부의 혈관을 우회하며 흐른다. 자연히 체내 기관들로 많은 피가 가게 된다. 콩팥이 걸려 내는 피가 많아지고 따라서 오줌도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특히 겨자, 고추, 생강 등 일부 조미료와 심지어 차와 커피까지도 나를 자극한다. 알콜도 마찬가지로 나를 자극하는데 특히 진에 포함된 향료들이 나를 심하게 자극한다.
나의 오줌을 검사해 보면 조의 체내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모든 점으로 보아 이 소변검사는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모든 점으로 보아 이 소변검사는 많은 의학상의 검사 중 가장 쓸모있는 검사일 것이다. 만약 조가 자기 오줌이 계속 탁하거나, 악취를 풍기거나, 혹은 색깔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줌 빛이 짙은 황갈색이면 그것은 콩팥의 기능이 너무 왕성하거나 혹은 단순히 조가 테니스를 치는 동안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콩팥이 처리할 액체의 양이 충분히 않음을 뜻한다. 오줌이 탁하면, 콩팥에 병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을 수도 있다. 운동을 심하게 한 뒤에는 오줌이 탁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온다면, 이것은 심상치 않은 증세이다. 조가 자기 오줌 속에 피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면 즉각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오늘날의 의사들은 세밀한 소변검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같은 양의 물의 무게와 비교한 오줌의 무게 즉 오줌의 비중이 너무 낮다면 콩팥의 여과기능이 시원치 않음을 뜻하며, 반대로 너무 높다면 환자가 탈수증을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요산의 농도가 높다면 신장결석이나 통풍이 생길 징후일지도 모른다. 또한 심장병이나 신장'콩팥'병 혹은 마름버짐이나 내분비 이상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모든 신체기관은 노폐물이나 과잉생산물을 오줌으로 배설한다. 각종 선이 특히 그렇다. 예를 들면, 여성의 경우 임신을 하면 여분의 여성호르몬이 오줌으로 배설되는 것이다. 그래서 임신 여부를 소변검사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방뇨는 수통에서 물을 비우는 일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나는 괄약근이라 불리는 2개의 밸브를 갖고 있다. 하나는 나의 밑부분에 있으며 내가 팽창하면 자동적으로 열린다. 또 하나는 약간 더 아래쪽에 있으며 조가 자기 의사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다. 첫번째 밸브가 열리면 조는 오줌이 마려워진다. 그러나 두번째 밸브가 열려야 비로소 오줌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두번째 밸브를 열고 닫는 방법은 유년기에 배워야 한다. 그때까지는 이부자리나 옷에 오줌을 싸서 엄마에게 괴로움을 끼칠 수밖에 없다. 또한 죽음이 임박하면 조는 방뇨를 억제하는 이 밸브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어 역시 오줌을 싸게 될 것이다.
야뇨증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긴다. 나의 용량은 유아때는 매우 적지만 2살에서 4살 사이에 갑절로 늘어난다. 초조감이나 불안감, 그 밖의 갖가지 심리적 비정상 상태는 가장 흔한 야뇨증의 원인이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경우는 여자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에게서 훨씬 흔하게 발견된다. 어떤 아이는 낯선 동네로 이사했을 때 불안감을 느끼게 되어 야뇨증이 재발한다. 그러나 일단 새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다.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는 요실금증은 마비성 환자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며 노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신경장애성(마비성) 방광기능부전증은 또 다른 병이다. 이 병은 일부 선천적 뇌장애 혹은 척수장애에 그 원인이 있다.
나의 오줌줄기의 세기를 보고 나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측정할 수있다. 나의 배출관은 조의 전립선을 지나간다. 전립선이 부었거나 병들어 있으면 오줌의 흐름이 방해받거나 끊긴다. 성병이나 기타 질병에 기인하는 협착증도 동일한 증세를 일으킨다. 종양으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조는 내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악성 암에 걸려 나를 송두리째 제거해야 할 경우, 의사는 콩팥에서 뻗어나온 수뇨관을 대장에 연결시켜 버린다. 이렇게 되면 조는 새처럼 될 것이다. 새들은 방광이 없다.
나는 조의 체내 다른 기관의 질병을 알아내는 열쇠가 되는 한편, 나 자신이 잘 걸리는 질병도 몇 가지 있다. 그 하나는 결석이다. 결석으로 생긴 돌이 나에게로 들어오고 나가는 관들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격렬한 고통이 따른다. 오줌이 콩팥에 고인 채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요독증에 걸려 생명까지 잃게 된다.
방광결석은 오줌에서 침전된 광물질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응결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매우 복잡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 결석은 추운 지방보다 더운 지방에서 훨씬 흔하게 나타난다. 운동 부족도 역시 결석의 원인이 되는 것 같다. 돌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어떤 것은 작은 '모래알'만해서 쉽게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무게가 약 6kg에 달하는 초대형도 있다.
신기한 것은 귤만한 크기의 돌이 몇 해 동안 잠복해 있으면서 아무런 심각한 증세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돌이 모가 나서 나의 조직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 그리고 원활한 오줌의 통과를 막지 않는 한, 나는 이 돌을 내 몸 안에 둔 채 살아갈 수 있다. 이 돌이 말썽을 일으키면,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 혹은 특수한 장치를 갖춘 방광경을 나의 요도를 통해 집어넣기도 하는데 이 조그만 기구에는 관찰용 렌즈와 분쇄장치가 부착되어 있어 요도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로 돌을 부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방광염이다. 세균이 들어와 몹시 고통스런운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두 번이 이 방광염을 앓아 보지 않은 여성은 거의 없다. 남성보다 여성이 이병에 더 잘 걸리는데 그것은 당연하다. 여성이 요도는 길이가 겨우 2.5∼5cm에 불과하나 음경을 통과하는 남성의 요도는 전체 길이가 20∼30cm나 된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는 세균이 외부로부터 침입하여 나에게 도달하기가 그만큼 쉬운 것이다. 다행히, 방광염은 치명적이라기보다는 성가신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오줌이 자주 마렵고, 후끈거리며, 막연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항생제나 설퍼제를 투여하면 대개 낫는다.
내가 조에게 강력하게 주목해 줄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 또 내가 일으킬 수 있는 그 갖가지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나는 조의 기관들 가운데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실상 나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못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나는 규칙적으로 채워졌다가 규칙적으로 비워지는 물탱크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조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조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내릴 것이다.
전립선
나는 조의 신체 중에서 가장 말썽 많은 기관 중의 하나이다. 말하자면 조물주가 책임을 통감해야 할 실패작이다. 나는 크기는 조그만 밤톨만하고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갖가지 말썽을 일으킨다. 나는 매일 밤,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하여 조로 하여금 밤잠을 설치게 하는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요독증으로 그를 죽일 수도 있다. 만약 조가 늙도록 오래 산다면 나는 암에 걸릴 위험이 폐보다 훨씬 높은 기관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나는 조가 원만한 성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다분히 내 덕분이다. 나는 조의 정액을 저장하는 주된 창고인 전립선이다. 내가 없으면 임신이 될 확률은 0에 가까워질 것이다. 한번 사정할 때마다, 조의 고환에서는 2억 개 이상의 정충세포가 쏟아져 나온다. 내가 맡은 일은 그들 정충들을 수천 배로 희석시킬 액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내는 액체는 대단히 특별한 것으로 그 안에는 연약한 정충에게 영양으로 공급될 단백질, 효소, 지방, 당분과 여성의 나팔관의 극심한 산성을 중화시킬 알칼리성분, 그리고 정자가 난자를 향해 헤엄쳐 갈 수 있게 하는 액체성 매개물질이 들어 있다.
나는 조의 하복부, 바로 방광의 목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조가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먼드만했다. 그러다가 신체의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나도 조를 소년에서 성인 남자로 변화시키라는 호르몬의 신호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크기로 자라났고 작은 포도송이처럼 생긴 분비선에서는 정액을 생산해서 나의 근육이 잘 발달된 작은 주머니에 비축하기 시작했다.
성적인 흥분을 느낄 때, 나는 저장된 정액을 언제 비워야 하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조의 척수의 맨 아래쪽 끝 부분에서 내리는 명령에 따를 뿐이다. 명령이 전달되면 내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일어난다. 우선 방광 목 부분의 괄약근 판막이 꽉 닫혀서 오줌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파도와 같은 근육수축이 나에게 일어난다. 이같은 수축현상은 나와 바로 이웃해 있으며 땅콩 두 개가 연결된 것과 같은 형상을 한, 정충의 저장고인 두 개의 정낭에서도 일어난다. 정낭은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정액 중 20%를 공급하며 그 나머지는 내가 분비한다. 그 혼합액은 조의 요도(요관)를 통해 사출되어 제 운명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구조적으로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 나는 세 개의 엽, 다시 말해 한 개의 캡슐 속에 나란히 싸인 세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앙 부분을 작은 요관이 지나고 있다. 조는 이 요관을 통해 그의 방광에 가득 차 있는 오줌을 배설하는 데 이 부근에 어떤 고장 감염, 염증, 암 따위 이 발생하여 정립선이 부어 오르면 이 엽들이 비대해져서 오줌의 흐름을 막아 갖가지 고통을 일으킨다. 부분적인 장애만 있어도 오줌이 방광으로 되돌아가 고이는데 때때로 세균이 침입, 번식하여 심한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 더욱 심한 경우에는 요관이 완전히 막혀 버린다. 오줌이 신장으로까지 역류하여 혈류로 흘러 들어가 요독증을 유발시킨다. 서서히 죽게 될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조가 늙어 갈수록 고환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의 분비량은 감소한다. 그렇게 되면 나도 소년의것만한 크기로 오그라들어야 마땅할텐데 이상하게도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나는 점점 더 커져서 심할 때는 그레이프프루트(귤 비슷한 과실로 직경이 10 15cm됨 편집자주)만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비대증은 암성과 '양성' 두 종류가 있는데 양성이라 할지라도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아직까지 조는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여전히 정상적인 크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거의 틀림없이 나는 서서히 커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거의 틀림없이 나는 서서히 커지기 시작할 것이다. 50세에 조의 전립선이 확대될 확률은 20%, 70세가 되면 50%, 80세가 되면 80%까지 올라간다. 비대증세는 왜 새길까? 나도 모른다. 그러나 고자나 거세된 남자들에게는 비대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성호르몬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전립선의 비대 그 자체만으로 조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간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요도를 압박할 만큼 비대해지면 조의 오줌 줄기가 가늘고 약해질 것이다. 감염이 되기 시작하면 타는 듯한 감을 느낀다. 또 오줌이 자주 마렵고 방광이 깨끗이 비워지지 않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 나는 그로 하여금 즉시 의사의 진찰을 받도록 독촉한다. 그가 나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0에 하나꼴에 불과하다. 의사는 염증이 있는지, 감염이 되었는지부터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술, 후추가루, 커피, 차등을 금하라고 권할 것이다. 이 금기 식품들은 오줌에 자극성 물질을 흘려보내 요도가 아주 막혀 버릴 수 있다.
폐색현상이 일어나면 정말 큰일이다. 우선 요관을 뚫어 배뇨를 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고무관을 요도를 통해 방광까지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의사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 내가 너무 비대해 있으면 외과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 또는 더 간단한 치료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는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의사는 연필만한 크기의 기구를 요도를 통해 몸 속으로 집어넣는다. 이 기구에는 불이 켜져 있어 속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전기에 의하여 작동되는 조그만 절단루프가 부착되어 있어 요관을 막고 있는 조직을 파내다. 또 다른 방법은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조직을 애화질소로 얼리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얼었던 조직은 죽어서 떨어져 오줌에 섞여 배설된다. 조는 이러한 치료법이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케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양성 전립선비대증으로 외과수술을 받은 5명중 4명은 성능력을 변함없이 유지한다. 물론 대개의 경우 임신시킬 능력은 없어지지만.
그러나 양성 비대증이 내게 생기는 가장 위험한 병은 아니다. 나에게 생기는 암은 특히 위험하고 조기발견이 어렵다. 전립선암으로 의사를 찾는 20명 중 19명은 이미 수술로 고치지 못할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있다. 또 전립선암은 드물게 일어나는 병이 아니다. 조가 50대가 되면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은 5%가 되고 70대엔 50%로 늘어난다. 그러나 이런 통계는 보기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나에게 발생하는 암은 보통 서서히 자라며 몇 주 혹은 몇 달만에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급히 퍼지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조는,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치명적이 아닌 전립선암에 걸린 채, 다른 질병 즉 심장질환이나 동맥경화, 당뇨병 등으로 사망하여 무덤에 묻힐 가능성도 크다.
또한 나에게 생긴 암이 수술시기를 놓쳐 버렸을 경우에도 비외과적 치료법으로 생명을 건지는 수도 종종 있다. 나에게 생긴 암이 자라려면 남성 성호르몬의 자극이 필요한 것 같다. 따라서 일단 이 자극이 제거되면 거세에 의해서건 여성호르몬의 투여에 의해서건 간혹 고통이 사라지고 정력이 회복되며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 방사선 치료로도 암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호르몬치료와 병행하면 효과가 크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학적 치료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만도 매년 1만 700여 명의 남자가 전립선암으로 목숨을 잃는다. 조가 이 희생자 대열에 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방법은 많다. 조는 신체검사를 받을 때. 혈청산성포스파타제 검사를 요청할 수 있다. 정상적인 경우, 이 테스트에 의해 검출되는 효소는 대체로 전립선에만 있다. 만약 혈액에서 이 효소(산성포스파타제)가 다량 검출된다면 나의 세 엽을 싸고 있는 캡슐이 찢어져서 효소가 혈류 속으로 섞여 들어가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암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매년 한두 차례씩 직장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검사는 신체검사 도중에 단 1분만 할애하면 되는데 전립선암을 외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게끔 조기진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의사가 촉진을 할 때, 손가락에 부드럽고 탄력있는 나의 원래의 조직과는 달리 딱딱하고 단추만한 크기의 작은 혹이 만져지면 다른 방법으로 진단하여 암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전까지는 일단 암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실 5명 중 3명은 암이다.) 좀더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의사는 조의 하복부를 절개하거나 속이 빈 바늘을 이용해서 조직의 중심부를 조금 떼어낸다. 암일 경우에는 나를 통째로 제거해야 한다.
나로 인해 야기되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 조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오줌이 자주 마렵거나 타는 듯한 감을 느끼거나 오줌이 잘 나오지 않거나 하면 조는 하루 빨리 전문의를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직장검사를 1년에 최소한 1회, 가능하면 3회쯤 받아야 한다.
9. 골격 및 기타 신체 부분
척주
나는 신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 원인이 애매한 고통을 조에게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조의 척주인데 조는 나를 자기 멋대로 상상하고 있다. 그는 나를 가끔 퉁겨져 나오는 일련의 '관절'로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 퉁겨져 나온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가끔 내가 불끈 성을 내면 조는 나를 두들기기도 하고 찜질도 하고 혹은 약도 쓰지만 모두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주는 고통은 단지 그가 나를 잘못 대접하는 데 대한 나의 앙갚음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조가 스스로 고칠 수 없는 나의 고장은 거의 없다. 사실 조는 다시 등의 통증을 겪지 않아도 된다.
내 부위의 고통은 조의 조상이 똑바로 서는 직립자세를 취하기로 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훌륭하게 균형이 잡힌 적교(양쪽 언덕에 줄, 쇠사슬 등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 편집자주)이던 나는 천막의 중심지주로 변해 버렸다. 평범한 지주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을 두루 갖춘 만능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 구부릴 수도 있고 비틀 수도 있고 머리를 회전시킬 수도 있으면서 체중의 대부분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46cm에 달하는 조의 척수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1.3cm정도 두께의 이 회백색 케이블에 어떤 심각한 고장이 생기면 조는 여생을 휠체어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척수를 통해서 오고가는 수백만 건의 메시지가 조의 목 아래쪽에서 행해지는 조의 모든 활동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겹의 싸개와 충격을 완화시키는 용액, 그리고 뼈로 된 집으로 나의 척수를 보호한다. 이 척수에서 31쌍의 신경이 가지처럼 뻗어 나간다. 그중 약 절반 정도는 뇌에 정보를 전달해 주는 지각신경이고 나머지는 뇌로부터 근육에 명령을 전하는 운동신경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척수가 독자적인 사고를 하기도 한다. 조의 손가락이 뜨거운 난로에 닿았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 정보를 뇌에 전하느라고 낭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나의 척수가 반사작용을 명령한다. 그래서 손가락을 홱 난로에서 떼게 된다.
나의 척수가 조에게 병을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나의 33개의 척추골과 그 척추골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들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부위에 고통이 생길 수 있다. 신장, 전립선, 간장 등의 기관에 고장이 났을 경우, 또 관절염, 각종 세균감염 심지어 희노애락의 감정까지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조는 며칠 동안 애태워가며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등에 둔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는 그 통증을 자신의 번민과 결부시켜 생각하진 않았다. 언제나 그러듯이, 그는 내가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 일어났던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강한 감정의 변화는 근육을 팽팽하게 한다. 며칠 동안 가벼운 긴장상태가 계속되면 나의 근육은 지쳐 버리고 그러면 그것이 둔한 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조가 번민을 하지 않게 되자 나도 고통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조가 나의 구조에 대해 공부한다면 사실 공학적으로 빈틈없는 구조이다 등의 통증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나의 제일 윗부분에서 7개의 경부척추골(경추)이 있는데 이들의 운동범위는 대단히 넓다. 조의 머리를 받쳐 주는 일 외에 비틀어서 조로 하여금 땅을 내려다보거나 별을 올려다 볼 수 있게도 해준다. 또 옆으로도 180도 회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는 양쪽 어깨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12개의 흉부척추골(흉추)이 있는데 이들은 경부척추골처럼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가 없으며 또 구태여 움직일 필요도 없다. 이 흉부척추골에는 갈비뼈가 갈고리 모양으로 걸려 있다. 이 부위에 고장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아랫부분에는 5개의 무거운 요추가 있는데 이들이 조의 체중의 대부분을 버티고 있다. 그 밑에 5개의 천골이 서로 맞붙어서 미골을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한때 조의 조상들이 달고 다니던 꼬리가 퇴화하여 남은 것이다. 나의 아랫부분 특히 네번째와 다섯번째 요추는 대단히 말썽이 많은 부위이다.
조가 갓 태어났을 때, 나는 비교적 곧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조가 머리를 곧추세우기 시작하면서 나의 척추골은 목 부위가 약간 구부러졌다. 그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자 그 아랫부위도 곡선형으로 변해 갔다. 그 결과 현재의 나는 어설픈 S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곡선형이 완전한 직선형보다 훨씬 낫다. 아치형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는 그 밖에도 또 있다. 아니 당연히 있어야 한다. 만약 척추골과 척추골이 맞닿아 있어서 조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생기는 약 5Kg의 충격을 흡수한다면, 나는 그리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척추골과 척추골 사이에는 디스크라는 쿠션이 끼어 있다. 젤리 도너츠같이 생긴 디스크는 겉은 꽤 튼튼한 연골로 싸여 있고 속에는 젤리 비슷한 탄력성 물질이 들어 있다. 조는 이따금 등에 통증이 있을 때마다 디스크가 삐끗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그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고통을 당할 소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그에 대해 좀더 소상히 알아두는 것이 좋다.
디스크는 여러 유형의 상해를 입기 쉽다. 갑작스럽고도 극심한 충격 자동차 사고, 낙상 사고 등 을 받게 되면 한 개의 디스크, 대부분의 경우 맨 끝부분에 있는 한 개가 으스러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흔히 으스러진 디스크의 파편을 제거하고 두 척추골을 접합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보다 가벼운 부상을 입더라도 디스크의 튼튼한 표피가 파열되어 안에 들어 있던 젤리가 흘러나오는 수가 있다. 그러면 격심한 고통이 뒤따른다. 새어 나온 디스크의 구성물질이 신경을 압박하면 자극을 받은 신경은 나의 근육들 중 하나에 경련을 일으킨다. 이 경련은 일종의 보호책이다. 내가 곤란에 빠진 것을 근육이 알고 더 이상의 손상을 가져올지도 모를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 부목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경련을 일으킨 근육은 그 밖의 다른 효과도 낸다. 즉 몸을 뒤틀어서 기울게 하는데 흔히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또 거의 예외 없이 파열된 디스크는 다리까지 뻗어 있는 좌골신경을 자극한다. 따라서 통증이 발가락까지 퍼지게 된다.
조의 등의 통증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400개의 근육과 1,000개의 인대로 이루어진 나의 정교한 모조 시스템의 쇠약과 긴장에 의해 일어난다. 조가 만약 내 근육의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가를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일요일에 골프를 쳐서 자신의 컨디션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조가 내게 억지로 떠맡기는 무거운 짐들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의 배는 올챙이배처럼 불룩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4.5Kg 정도의 군살이 붙은 것이다. 얼마전부터 그의 복근이 약해지고 있으므로 나의 배근이 늘어난 짐을 짊어져야 한다. (조의 아내가 임신할 때마다 통증이 생기는 것은 바로 복부의 추가되는 체중 때문이다.)
47살이 되었는데도 조는 바른 자세로 앉을 줄을 모른다. 그는 속을 많이 넣은 푹신한 소파나 의자에 푹 파묻혀 앉는다. 그렇게 앉으면 그는 편안할지 모르지만 나의 근육은 결코 편안치가 않다. 나의 근육들은 구부러진 척추골내의 질서를 바로 잡느라고 과로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는 조의 회전식 업무용 의자가 끔찍이도 싫다.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근육부위에 똑같은 긴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가 꼿꼿한 식탁용 의자를 사용하면서 가능하면 언제라도 다리를 꼬아 나를 쉬게 해준다면 나로서는 더 좋을 것이다.
조는 나를 지렛대로 생각하고 있다. 천만에! 지렛대는 팔과 다리지 내가 아니다. 나는 본래 꼿꼿하게 유지되어야 이상적이다. 만약 조가 통나무를 불에 던지거나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고 싶다면 쭈그리고 앉아 두 다리가 대부분의 일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조는 가능한 한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나의 쇠약한 근육은 이미 자기능력껏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과중한 부담, 심지어 단단히 닫힌 창문을 열기 위해 힘을 쓰기만해도 심한 긴장이나 디스크의 이상을 유발시킬 수 있다. 조는 나의 척추골 사이에서 쿠션역할을 하는 디스크들이 그전만큼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그것들은 조가 20대에 접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여 점점 연약해지고 탄력성도 줄어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완벽하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을 혹사할 여유는 없다.
지금까지 나는 주로 요추 부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또한 윗부분에서도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 드문 일이지만 경추부의 디스크가 파열하여 팔까지 고통이 퍼지는 수가 있다. 조의 목이 가끔 뻣뻣해지는 것은 근육이나 인대가 긴장되어 있거나 염증을 일으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사태는 역시 목이 부러지는 경우이다. 여기서 나는 조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야겠다. 만약 그가 교통사고 현장의 첫 목격자가 되었다면 그는 부상자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그를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척주가 부러진 사람의 머리를 섣불리 들어울리다가 오히려 척수를 더 다치게 하여 영구마비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뼈는 약화된다. 이러한 약화현상이 나의 척추골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칼슘성분이 차차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디스크가 점점 연약해지고 척추골도 강도가 약해짐에 따라 조의 등은 더욱 구부러질 것이다. 노년기에는 조는 약간 곱사등이 될 것이다.
만약 조가 내가 요구하는 만큼 나에게 주의를 기울여 준다면 다가올 여생에 많은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조는 당장 자신의 자세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벽에 등을 최대한으로 밀착시키고 꼿꼿이 선 다음, 허리의 잘록한 부분 뒤로 손을 살그머니 밀어넣어 보라. 그곳에는 아주 좁은 공간밖에 없어야 한다. 틈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많이 휘어져 있는 것이며 아마 그 이유는 근육이 약해진 때문일 것이다 조는 괴롭힐 가능성도 그만큼 많아진다. 근육의 약화, 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조는 의사를 찾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매일 단 몇 분간씩이나마 운동을 하고 자세에 대해 주의하고 침대와 의자를 주의해서 선택하는 것(딱딱한 것이 좋음) 등이 나의 건강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수롭지 않은 대가이다. 만일 조가 제대로 나를 대우해 준다면 나도 그에게 정당한 대접을 해줄 것이다.
대퇴골
조는 우리들 뼈를 죽은 물질, 자기의 살아 있는 몸을 지탱해 주는, 활성이 없는 받침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없다면 그는 젤리처럼 흐물흐물해질테고 걸을 수도, 말 할 수도,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목숨 없는 물질은 결코 아니다. 사실 우리는 단순히 조의 신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 이상의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기관이다. 우리는 신체에 공급되는 광물질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칼슘의 99%, 인의88%, 그보다는 양이 적은 구리, 코발트, 그리고 중요한 다른 미량의 원소들을 함유하고 있다. 물품의 출입이 잦은 창고인 우리는 하루 24시간 작동하면서 물품을 반출하고 반입한다.
우리는 또한 분주한 제조공장 골수 을 갖고 있다. 단 1분 동안에 1억 8,000만 개나 되는 조의 적혈구가 늙어서 죽어 간다. 조의 지라와 간이 대체될 적혈구 약간을 공급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가 만들어 낸다. 골수에 있는 방들의 스폰지 같은 내부에서 우리는 또한 조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백혈구의 대부분을 만들어 낸다.
나는 조의 오른쪽 대퇴골이다. 나는 뼈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길고 가장 튼튼하기 때문에 실제로 소형자동차의 무게를 견딜만큼 튼튼하다 뼈들을 대표해서 이야기하겠다. 우리 뼈들은 하나의 대가족이다. 조의 몸에는 206개의 뼈가 있는데 이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더 적게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실상 조는 어렸을 때 지금보다 더 많은 뼈를 갖고 있었다. 그는 태어났을 때 33개의 척추뼈를 갖고 있었다. 자라면서 맨 아래쪽 4개는 서로 융합되어 미골로 변했고 그 위의 5개도 붙어서 천골이 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11쌍 혹은 13쌍의 갈비뼈를 갖고 있는 수도 있다. 그러나 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12쌍을 갖고 있다.
우리 뼈들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조의 중이 있는 자그마한 등골(듣는 것을 가능케 함)이 있는가 하면 나같이 큰 뼈도 있다. 조의 왼쪽 다리에 있는 나의 짝과 내가 맡고 있는 일은 그의 몸무게를 지탱해 주는 것이다. 우리 뼈들은 인대로 연결되어 있다. 힘줄들은 꼭두각시에 달린 끈처럼 우리를 근육에 붙들어 매서 몸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형의 조직 가볍고 다공질인 망상 조직과 조밀하고 매우 강한 밀집조직 으로 되어 있다. 조의 척추와 골반은 주로 망상조직으로 되어 있고 나는 다른 팔다리 뼈들과 마찬가지로 밀집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건축의 천재들이 우리를 따라잡기 수백만년 전에 벌써 무게가 같을 경우 막대보다 속이 빈 관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리에 따라 나는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더 튼튼하다.
조가 태어났을 때는 그의 뼈들은 지금보다 훨씬 연했다. 물론 이것은 출산을 용이하게 했다. 석회화라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뼈들은 더욱 단단해진다. 우리 뼈들은 골아세포라고 불리는 수백만 개의 세포를 갖고 있는데 골아세포는 교원질이라 부르는 섬유성 단백질 단단하나 유연한 을 만들어 낸다. 섬유질 속에는 기초물질이라 불리는 아교 같은 혼합물이 들어 있는 아주 작은 공간들이 있다. 이 공간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광물 입자들(주로 칼슘, 인, 탄산염 등)로 채워짐에 따라 뼈가 형성된다. 이 일이 완성되면 조의 다리는 그를 지탱할 만큼 강해지게 된다.
조의 소년시절에 우리 뼈들은 그의 신체를 지탱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성장시켜야 했는데 이것은 마치 거주자들을 방해하지 않고 주택을 증축하는 작업처럼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이 기간에는 긴 뼈들의 양쪽 끝에 있는 특정부분들은 부드러운 연골로 구성되어 있었다. 새로운 연골이 계속 형성되어 가는 동안 오래된 안쪽의 부분은 경골로 굳어져 갔다. 그러나 조가 완전히 성숙했을 때 연골 부분들은 경화되고 성장은 중단되었다.
우리는 이제 길이로는 성장할 수가 없지만 근육처럼 그 부피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고, 또 보다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 조에게 역기를 들게 하면 나는 보다 강하고 견고해질 것이며 그를 수개월 동안 침대에 눕혀 놓는다면 나는 약해질 것이다.
칼슘을 저장하거나 방출하는 나의 역할은 중요하다. 나의 모든 기능은 혈액을 통해서 수행된다. 물론 나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혈관들이 있다. 나는 흐르는 혈액에 나의 광물 결정체들을 노출시켜 혈액으로부터 과잉의 칼슘을 흡수하고 또 혈액에 칼슘이 부족할 때는 칼슘을 혈액에 공급한다. 우리 뼈들이 혈류에 노출시키는 결정체의 표면은 방대하다. 표면에 전부 놓으면 약 40만m²의 토지를 덮을 수 있다.
우리의 칼슘 저장량은 꽤 많아서 1Kg에 달한다. 그러나 평상시 조의 혈류 속에 흐르는 칼슘의 분량은 0.7Kg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소량의 칼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칼슘이 없다면 어떤 충격도 신경을 따라 전달되지 않을 것이며 혈액은 응고하지 않을 것이다. 근육도 수축하지 않게 되고 심장의 박동도 그치고 만다. 칼슘이 너무 많을 경우에도 똑같이 중대한 사태가 발생한다. 과잉 칼슘은 신장에 결석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신장결석의 다음 단계는 요독증과 죽음이다.
내가 이 무서운 사실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내가 언제나 칼슘을 준비하고 있고 또 그것을 조의 혈액 속에 정확한 분량만큼 넣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 과정을 주로 통제하는 것은 조의 목에 있는 선이다. 혈액 속의 칼슘량이 떨어지면 부갑상선이 호르몬을 분비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나보고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이다. 칼슘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그의 갑상선에서 나온 호르몬이 나로 하여금 칼슘을 흡수하게 한다.
조는 우리 뼈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골절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뼈가 부러진다는 것은 대개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골절에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유형이 잇다. 첫째, 폐합 골절은 뼈가 딱 부러진 채 피부 밖으로 불거져 나오지는 않는 것이다. 둘째, 개방성 골절은 뼈가 불거져 나오는 경우이며 세째, 생목골절은 뼈가 완전히 부러지지는 않고 세로로 갈라지는 것이며 네째, 분쇄골절은 뼈가 작은 조각들로 부서지는 것이다.
아주 최근까지 골절은 주로 석고와 시간으로 치료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엉덩이뼈가 부러져 6개월간 침대에 누워 있으면 건강이 전반적으로 악화돼 폐렴에 걸리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기까지 했다. 오늘날의 정형외과 의사들은 환자들을 가능한 한 빨리 침대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고 있다. 뼈의 접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들은 핀과 나사, 판 등을 사용한다. 굳어진 팔굽이나 손가락, 무릎 등을 치료하는 데는 인공관절을 이용한다. 부서진 엉덩이뼈에는 주로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든 공이나 구멍을 설치한다. 어떤 소녀가 자신의 키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대퇴골을 8cm가량 잘라 내서 키를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리 뼈를 잘라 내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된다. 너무 키가 작다고 생각할 때는 뼈들을 늘일 수 있긴 하나 그 과정은 매우 어렵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하는 일이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진짜 치료는 내가 하는 것이다. 나의 골아세포들이 생산을 가속화하여 교원질을 뿜어내면 이 교원질이 석회화되어 뼈가 된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수리공들을 거느리고 있다. 나의 파골세포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세포들은 뼈를 '파괴'한다. 즉 거친 끝부분들은 다듬어서 원래의 뼈 모양으로 조각하는 일을 돕는다.
우리 뼈들에게도 갖가지 병이 생길 수 있다. 가장 고약한 병 중 하나가 재생불능성 빈혈인데 이것은 우리의 골수가 혈액을 만드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과도한 방사선이나 갖가지 독물이 이러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원인불명으로 생기는 수도 있다. 의사들은 단지 수혈을 하거나 골수이식을 할 수 있을 뿐이고 또 우리 뼈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스스로 치유되기를 빌 수 있을 뿐이다.
관절염 관절에 염증이 생기거나 관절이 굳어지는 것 은 또 다른 골칫거리다. 굳어진 관절을 대체하는 수술이 결정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테니스 선수의 팔굽이나 바텐더의 어깨, 하녀들의 무릎 등에 생기는 활액낭염은 뼈의 병으로 볼 수도 있을지 모르나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뼈의 병이 아니다. 관절은 쿠션 및 윤활유 역할을 하는 작은 주머니 활액낭 들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이 주머니들에 염증이 생긴다. 조는 어깨가 뻣뻣해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것은 가벼운 활액낭염이었다.
우리 뼈들은 또한 암에 걸리기도 한다. 감염도 걱정거리다. 세균은 혈류를 타고 우리에게 침범하는데 부근의 상처로부터 들어오거나 골절이 생기 때 우리를 침범한다. 그러한 침범은 골수염이라 부리는 뼈의 염증을 가져오는데 이 역시 매우 고약한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 의사들이 우선 세울 수 있는 방비책은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다.
조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 증세가 어느 정도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뼈의 질병이 있다. 골다공증이라는 병이다. 조가 20대가 되었을 때 우리 뼈들은 그 밀도와 강도가 절정에 달했었다. 그 후 천천히 칼슘과 저장된 다른 광물질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광물질을 혈액 속으로 흘려 보냈고 콩팥은 그것들을 다시 밖으로 내보냈다. 우리는 밀도와 강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조는 47살인 지금도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훗날 그가 골다공증으로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은 열 가운데 하나 정도가 된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이 그의 부인 제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훨씬 심각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폐경기가 되어 난소의 기능이 정지되면 광물질의 유출이 가속되기 쉽다. 제인이 65살쯤 되면 척추, 엉덩이, 손목 등이 약해지기 때문에 낙상을 할 경우 그전 같으면 타박상에 머무를 것이 골절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화석의 뼈들은 수천만년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인류의 뼈조각들이 지금도 발굴되고 있다. 이것을 우리의 공적으로 돌려주기 바란다. 우리 뼈들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조의 신체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더 오래도록 원형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발
조는 그의 심장, 간, 폐 및 다른 기관들에 대해서는 다소 존경심을 품고 있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는 꼴사납고 말썽을 잘 일으키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조의 왼쪽 발이다. 나는 조물주의 실패작이라는 말에서부터 해부학적 경이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말을 다 듣는다. 내가 보기에는 후자가 사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조는 내가 얼마나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지 모르고 있다. 그가 별다른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을 때도 나의 내부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26개의 뼈(조의 모든 뼈의 4분의 1이 그의 발에 있다), 107개의 인대, 19개의 근육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키가 1m 80cm이고 무게가 82kg인 살과 뼈의 덩어리인 조가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유지해 주고 있다. 두 발바닥과 같은 넓이에다 그만한 크기의 물건을 올려놓고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 보라! 그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나는 뇌와 바삐 메시지를 교환하면서 이 일을 해낸다. 가령 조가 약간 옆으로 기울어지면 내 발바닥의 감각점들이 나의 한족 부분에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러면 뇌로부터 명령이 온다. "이쪽 근육을 긴장시키고 저쪽 근육을 쉬게 하라"고. 이와 같이 균형을 잡는 일은 꽤 큰 컴퓨터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일이다.
걷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나의 뒤꿈치가 충격을 감당한다. 이 충격은 5개의 척골을 따라 발가락 바로 뒤에 있는 둥근 부분에 전달된다. 그러면 나는 엄지발가락으로 몸을 앞으로 밀어낸다. 이러한 절차를 밟느라고 나는 매우 바쁘다.
그러나 조는 나보다 그의 자동차 타이어에 더 신경을 쓴다. 그는 나를 무자비하게 혹사하고 나서 내가 상하게 되면 짜증을 내곤 한다. 그는 도대체 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1분에 100발짝씩 편안한 걸음걸이로 보도를 걷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내가 82kg의 충격으로 1분에 50번씩 시멘트를 친다는 것을 뜻한다. 오른쪽에 있는 나의 동료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조는 그의 평생을 통해 약 10만Km을 걷게 된다. 이는 내가 수천만 번의 충격을 받게 됨을 뜻한다. 내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조의 조상들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처음 약 백만년 동안에는 모든 환경이 우리들 발에게는 아주 좋았다. 누구나 부드럽고 고르지 않은 땅을 맨발로(후에 그들은 짐승가죽으로 발을 쌓다) 걸어 다녔다. 우리들 발을 위해서는 그것은 가장 좋은 운동이었다. 그러다가 신발, 시멘트 보도, 딱딱한 마루 등이 등장했다. 그것들을 생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조가 젖먹이였을 때 그의 부모들은 내게 여러 가지 벌을 가했다. 물론 사정을 모르고 한 일이긴 하지만, 그들은 나의 뼈들이 고무처럼 부드럽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조가 20살이 될 때까지 미완성품이었다.) 그들은 어린 조를 포대기로 너무 꼭 싸서 내 모양이 좀 일그러지게 하는가 하면 작은 신발과 양말 속으로 나를 억지로 밀어 넣어 내게 해를 입히기도 했다.
다른 젊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조가 어서 걸음마를 배우기를 바라는 조급한 생각에서 조를 도와주려 했다. 나는 아주 부드러운 젤리를 담은 작은 주머니에 불과했고 아직 걸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차라리 조가 제 힘으로 걸을 준비가 되었을 때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고 그때까지, 혹은 그보다 한 달쯤 후까지 맨발로 놓아두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어린 조는 어렸을 때는 좀처럼 탈을 일으키지 않는 심장, 폐 및 다른 기관들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검진을 받았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를 일으키는 나는 오히려 무시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의사들은 발이 아파서 죽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 것 같다. 조가 4살이 되었을 무렵 발 전문의가 보았더라면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조가 6살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약 40%가 그렇듯이 진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내 동료와 나는 평평하게 되어 갔으며 발가락이 기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발가락의 기형은 대개 유전이나 신발에 그 원인이 있다.
조는 이 닦는 법, 머리 손질, 귀를 씻는 것 등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걷는 법에 대해서, 특히 발가락을 앞으로 펴고 걷는 법에 대해서는 가르쳐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발가락을 사용치 않고 걸었다. 또한 그의 부모들은 그에게 오랫동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사 주었다. 이것은 가장 나쁜 일이다. 6살까지 조는 4∼6주에 한번씩 발의 크기를 재 보았어야 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새 신발을 사서 신었어야 했다. 12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1년에 네 차례 정도 새 신발을 바꿔 신었어야 했다.
"발이 아프면 온 몸이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증상을 일으킬 수가 있다. 등이 아플 수도 있고 두통 또는 다리 경련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주로 나의 아픈 부분을 덜 아프게 하려고 조가 몸의 자세나 걸음걸이를 바꾸기 때문에 생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내게 탈이 생기면 신체에만 영향이 미치지 않고 정서 또한 그 영향을 받는다. 발이 아프면 기분도 상하게 된다.
조의 부인의 발도 물론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발의 질환이 네 배나 더 많기 때문이다. 하이힐이 그 주범이다. 뒷굽이 높은 신발은 체중을 앞쪽으로 쏠리게 하고 장딴지 근육을 짧게 만들며 척추의 균형을 잃게 한다. 여자들이 등과 다리에 통증을 많이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신발을 벗으려 한다. 신발을 아예 벗어 던져 버리는 편이 더 좋을는지도 모른다.
내게 발생하는 질환은 약 50가지나 된다. 가장 흔한 것이 티눈이다. 신발이 나의 발가락의 한 부분에 압력을 가하면, 나는 방어적인 조직을 쌓아서 이에 대처한다. 얼마 안 있어 죽은 세포들이 쌓이게 되는데 그것이 너무 높이 쌓이면 그 밑에 있는 신경에 압박을 가해서 통증을 일으킨다. 하나의 티눈을 치료하려면 조는 1주일쯤 누워 있어야 한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티눈은 보통 없어진다.
조는 자신을 상당히 유능한 티눈 치료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는 소독하지 않은 면도날로 티눈을 잘라내거나 산성인 티눈 빼는 약을 사용하는데 이 두 가지가 다 감염을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 당장의 통증을 덜기 위해서는 몰스킨플래스터를 사용하고 또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엄지발가락 안쪽의 염증은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아래 겹쳐질 때 생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이 증상은 대부분이 유전적인 기형에 속하지만 신발이 더욱 악화시킨다. 나는 보호조직 덩어리를 쌓아 대응한다. 보통 이 문제는 특별히 고안된 부목이나 붕대, 그 밖의 기계적 장치를 신발 속에 설치하여 완화시킬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엄지발가락을 똑바로 펴는 수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엄지발가락 밑 둥근 부분에 많이 생기는 가골도 때때로 고통스러운 압점이 된다. 발 전문의가 가골을 깎아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쐐기, 받침 등 발의 균형을 향상시키는 장치를 해주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무좀은 진균류에 의해 생긴다. 이 진균들은 언제나 나에게 붙어살고 있으나 축축한 피부의 갈라진 틈이나 상처에서 번식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나를 건조하게 유지하는 것인데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발바닥에는 손바닥을 제외한 신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 많은 땀샘이 있기 때문이다. 조가 하루 두 번씩 나를 깨끗이 씻고 알콜마사지를 1회 정도 하고 또 자주 파우더를 뿌려 준다면 무좀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예방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정제로 된 최신의 항진균제를 복용해야 한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발톱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구석구석을 깨끗이 하고 작은 약솜 뭉치를 발톱 밑에 끼워 넣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발톱을 너무 짧지 않게 가지련히 깎는 것이 좋은 예방법이다.
최근, 조는 두어 차례 내가 차가와지고 감각이 없어지는 증상을 겪었다. 이것은 노화현상의 하나로 혈액순환이 잘 안되기 때문에 생기는 증세이다. 피를 더 빨리 돌게 하면 이 증세는 없어진다. 미지근한 물에 목욕을 하면 혈관이 팽창되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나와 나의 짝을 책상이나 방석에 올려놓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걷은 것도 좋다.
조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은 그의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땅을 맨발로 걷는 것이다. 만약 그가 맨발로 골프를 친다면 나를 위한 대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딱딱한 바닥에서는 나는 신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조는 자신의 생애의 3분의 2쯤 나를 신발이라는 가죽 감방에 가둬 두면서도 아직도 제대로 맞는 신발을 고르는 방법을 모른다. 사실 그는 넥타이를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때때로 내가 그에게 고통을 주면 그는 소위 '건강'화란 것을 한 켤레 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강'안경이나 '건강'틀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화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단지 신발이 발에 맞느냐 않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조는 내가 하루 중 가장 크게 부풀어 있는 오후에 신발을 사도록 해야 하나. 그는 또한 나와 나의 짝의 치수를 따로 재어 보도록 점원에게 분명히 일러야 한다. 한쪽 발이 다른쪽보다 조금 큰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수는 똑바로 선 자세로 재야 한다. (나는 조가 20살쯤 되었을 때 성장을 멈추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기장과 폭이 늘어나서, 당시 7½사이즈였던 것이 지금은 8½이 되었다.)
신발은 가장 긴 발가락 끝에서 적어도 1cm 정도는 여분이 있어야 한다. 만약 내 발가락이 꼼지락거릴 공간이 없으면 조는 그 신발을 신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발을 '길들인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신발이 살 때부터 편하지 못하면 나에게 결국 조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또 너무 작은 양말도 신발 못지 않게 발가락을 죄어서 해롭다. 조는 탄력성이 강한 양말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조에게 한마디 협박을 해두고자 한다. 조는 이 협박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조에게 노년기가 다가오고 있다. 수많은 노인들이 젊은 시절에 발을 혹사한 탓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들이 흔들의자나 공원의 벤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벼운 운동과 자극적인 활동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들은 그런 곳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실제로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만약 조가 오래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관심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실 그만한 대접은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
손
조는 눈이나 다리를 잃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재난일 것이라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 짝과 나를 잃는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큰 재난일 것이다. 나는 조의 왼손이다. 나는 그의 간처럼 화학적인 기적을 행할 수도, 그의 두뇌처럼 전기화학적 기적을 행할 수도 없다. 나는 근본적으로 지렛대, 돌쩌귀, 동력원 등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기계장치로서 주컴퓨터인 조의 두뇌에 의해 조종된다. 복잡함에 있어서는 인간이 만든 기계들이 내 앞에서 무색해질 정도이다. 나는 다재다능하고 지칠 줄 모르며 민첩하다. 조가 뛰어난 타자수라면 나는 나의 짝과 함께 1분에 120개 가량의 단어를 종이 위에 찍어놓을 수 있다.
어떤 신체 부위의 중요성은 그것의 사용을 위해 할당된 뇌 부분을 크기에 의하여 측정이 가능하다. 우리들 손을 운동피질이라고 알려져 있는, 뇌에서 가장 넓은 두 개의 공간을 할당받고 있다. 조가 엄지손가락을 돌릴 때면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다. 이 단순한 행동을 위해서도 뇌로부터 수천 가지 메시지가 와야 한다. 즉 이쪽 근육은 수축하고 저쪽 근육은 이완시키라는, 또 이 인대는 당기고 저 인대는 쉬도록 하라는 등의 복잡한 명령들이 전달되는 것이다.
나서 죽기까지 우리들 손을 잠자는 동안의 짧은 휴식을 제하고는 거의 언제고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조의 일생 동안 나는 적어도 2,500만 번 정도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할 것이다. 다리와 팔과 어깨와 발 등 그의 다른 신체 부분들은 활동을 지속하면 피곤해진다. 그러나 그가 손이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조가 모태에서 갓 태어난 아기였을 때조차 우리들 손은 아주 잘 발달되어 있었다. 우리는 조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부인과 의사의 엄지손가락에 매달릴 수 있었다. 나를 통제하는 근육들의 대부분이 멀리 떨어져 있음(팔뚝에 있다)을 생각할 때 나의 힘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조는 약 40kg의 악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만약 그가 힘이 아주 센 편이라면 악력은 55kg, 혹은 그 이상까지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악력은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대략 95%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조는 오른손잡이다. 조가 어느 손잡이가 될지는 생후 6개월 가량 되면서부터 결정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손운동과 눈운동을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즉 어떤 물건을 보고 그것을 집어올리는 행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 시기야말로 그의 발전과정에서 획기적인 시기였다.
인간의 조상들이 직립의 자세를 취하기 전까지는 인간은 가장 방어력이 약한 동물이었다. 사자나 호랑이에게 손쉬운 먹이였고 하이에나에게도 쉽게 잡아먹혔다. 그러나 일단 직립자세를 취함으로써 우리들 손이 몸을 이동하는 일에서 해방되자, 무기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벌거벗은 유인원은 지상에 사는 모든 생물들을 지배하는 지상의 주인이 되었다. 그밖에도 먹을 것을 찾고, 싸우는 일에서 해방된 턱은 크기가 줄어들고 언어를 실험하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하는 일이 좀더 복잡해지면서 두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최종산물인 조가 진화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된 데는 우리들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한 일은 그동안 우리들에게 그리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른 영장류의 손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은 비할 수 없을 만큼 숙련되어 있다.
우리는 눈, 귀, 소리의 역할까지도 대행할 수 있다. 조가 장님이라면 그는 우리를 이용하여 점자를 읽을 수 있다. 귀머거리라면 우리를 써서 수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촉각은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조는 주머니에 든 동전들을 구태여 보지 않고도 100원짜리를 찾아낼 수 있다. 나의 손가락들이 그것을 찾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농부라면 그는 손으로 흙을 만져 보고도 토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정부라면 그는 만져만 보고도 섬유의 질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놀라운 재주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 손은 중요한 지적 발달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 할 수 있다. 우리는 수학의 발달에 일익을 담담해 왔다. 십진법은 조의 10개의 발가락과 나와 내 짝이 가지고 있는 10개 손가락에 기초를 둔 것이다.
구조적으로 보아, 우리는 조의 신체에서 가장 복잡한 부위이다. 신체의 다른 어느 부위도 나같이 좁은 면적에 그렇게도 많은 기관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지는 않다. 나의 8개의 손목뼈와, 5개의 손바닥뼈, 14개의 손가락뼈 등 모두 27개의 뼈를 가지고 있다. 나의 짝이 가지고 있는 27개를 합치면 우리는 조의 신체에 있는 뼈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열, 감촉, 고통을 감지하는 나의 신경망은 신체에서 가장 정교하다. 나는 1평방인치(약 6.5cm²)당 수천 개의 신경종말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이 손가락 끝에 모여 있다. 이곳의 감각은 매우 예민하다. 조는 어두운 곳에서도 길을 더듬어 찾을 수 있고, 손가락 끝을 약간 적셔서 바람의 방향을 알아낼 수 있으며 그 밖에도 수천 가지 일을 손가락 끝을 써서 할 수 있다. 조는 이런 일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모두 놀라운 일들이다.
나의 힘줄은 기관차와 같아서 나의 많은 마디뼈와 꽤 떨어진 곳에서 그 뼈들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들을 연결하여 주는 역할을 한다. (조는 손가락을 구부릴 때 팔뚝에 있는 힘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는 또 미로와 같은 인대와 근막이 있어 각 부분을 서로 붙들어 매고 있다. 근막은 신경, 혈관,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구성요소의 기초물질을 공급하는 결합조직의 층이다. 나에게는 큼직한 동맥과 정맥의 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으나 수많은 모세혈관이 뻗어 있다. 추운 날이면 조의 다른 부위는 아무렇지 않은데도 나만은 고통을 겪곤 하는데 그것은 내 손가락들이 심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피가 차갑게 식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손가락은 나의 주요 운동부위다. 그중에서도 엄지는 진짜 재주꾼이다. 엄지는 다른 네 손가락과 '대치하고'있으면서 그중 어느 손가락과도 맞닿을 수 있어서 손이 물건을 쥘 수 있게끔 해준다. 엄지손가락은 내가 통상적으로 하는 일의 45%를 하고 있다. 조가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글씨를 쓰거나, 컵을 들어올리거나, 악수를 하려고 하면 그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조는 나의 다른 네 개의 손가락 중 한 개쯤 없어도 별 지장 없이 지낼 수 있다. 그 손가락들의 밑둥만 남아 있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엄지가 없으면 나는 집게의 한쪽 가닥이 떨어져 나간 뻰찌와 같은 신세가 된다. 나의 손가락들은 엄지손가락과 떨어지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도는데 특히 새끼손가락은 그 정도가 심하다.
나의 특징 중에 아직 얘기하지 않은 것은 없을까? 아, 지문에 대한 얘기를 빠뜨렸다. 지문은 조가 자궁 안에서 생겨난 지 4개월째 되던 때에 형성되었다. 지문이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의 것과 똑같은 지문을 갖고 있지 않다. 또 하나, 나의 손가락에는 신체의 어느 부위보다 땀샘이 많이 몰려 있다. 수백만년 전 조의 조상들이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때, 손바닥이 축축해야 나무를 타기 훨씬 수월했다. 오늘날에는 그 땀샘들이 조가 야구 방망이를 잡거나 자동차 핸들을 잡을 때 도움을 준다. 우연하게도, 조의 손바닥(발바닥도 마찬가지)은 그의 몸에서 햇볕에 타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손바닥에는 검정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다. 흑인과 백인의 손바닥 색깔이 거의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내가 관계하기 때문에, 그에게 발생하는 수많은 사고에 내가 연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화상을 입고, 으깨어지고, 꼬집히고, 베이고 또 타박상을 입는다. 나는 진균에 감염되고, 피부염, 마른버짐, 알레르기 등의 침입을 받는다. 나의 힘줄은 늘어나고 끊어지면, 나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킨다. 관절염과 다른 많은 질병이 나의 관절을 공격한다. 그러나 암이 나에게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에는 만약 조가 사고로 엄지손가락을 잃었다면 그것은 끔직한 재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숙련된 손 전문 외과의라면 신경, 힘줄, 혈관을 다치지 않으면서 집게손가락을 엄지손가락 자리에 이식할 수 있으며 그러면 조는 새 엄지손가락을 얻게 된다. 이 수술은 간단해 보이지만 장시간의 세심한 작업을 요하는 수술이다. 수술 후에 조가 새 엄지손가락의 사용법을 배우기까지는 여러 달에 걸친 참을성 있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아마 최신 손가락 수술법의 가장 큰 수해자는 태어날 때부터 오리발처럼 손가락이 서로 붙은 사람, 손가락이 5개보다 더 많은 사람, 그리고 기타 기형의 손가락 소유자들일 것이다. 오늘날의 고도로 숙련된 손 전문의 부분적으로 성형외과의, 정형외과의, 신경외과의, 혈관전문의를 겸해야 함 는 보기에도 괜찮고 기능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손을 만들 수 있다.
조는 이제 관절염이 기승을 부릴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이 병은 아주 고약한 병이다. 퉁퉁 붇고 염증이 생긴 관절이 나를 비틀어서 흉칙한 모습으로 만들고 또한 아무 것도 할 수 업는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염증이 생겨 두터워진 관절벽을 제거하는 수술이나 또는 손가락을 똑바로 펴서 손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수술로써 효과를 보는 수가 있다. 만약 손가락 관절이 파괴되었다면 플라스틱 관절을 대신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저 막연하게 나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대화도중에 무의식적으로 나의 중요성을 나타내곤 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공포의 순간에 손을 홱 쳐들고, 반대의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무엇을 달라는 표시로 손을 내밀곤 한다. 그들은 이기면 손을 내리고, 지면 항복의 표시로 손을 든다. 손으로 상대방을 밀쳐서 경고하며 따뜻한 마음의 표시로 차가운 손을 내밀기도 한다. 그들은 우의의 표시로 악수를 하며 꽉 쥔 주먹으로 분노를 표시한다. 그러나 조는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겨야 나의 참다운 가치를 절감하게 된다. 내 손가락중 두 개가 심한 화상을 입는다면 조는 쇄골(어깨 부분의 빗장뼈)이 부서진 것보다 더 무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조는 놀랄 만큼 정교하고도 없어서는 안될 신체의 중요한 기관인 나를 경이감을 갖고 대해야 마땅할 것이다.
모발
실용성에 있어서 나는 무용지물이다. 나는 조의 신체 가운데서 별로 하는 일이 없는 몇몇 부위들 중 하나다. 하지만 조는 자신의 사활에 관계되는 대부분의 중요한 기관들보다 나에 대해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조와 그의 아내인 제인은 나와 나의 친구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조의 머리에 있는 5만 6,789번째 머리카락인데 그의 온몸에 퍼져 있는 수백만의 모발을 대변하려고 한다.
우리 모발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갖고 있다. 뻣뻣하고 짧은 눈썹이 있는가 하면, 길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칼과 그 밖의 대부분의 신체부위에 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럽고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조의 머릿가죽에는 우리들이 약 10만 개나 모여 있으며 수염은 약 3만개 정도 된다. 우리는 그의 신체에서도 가장 잘 자라는 조직 중의 하나이다. 1년에 수염은 약 14cm, 머리카락은 약 13cm정도 자란다. 우리 모발들은 원시인들에게 특히 많은 공헌을 했다. 눈썹은 눈을 보호했고, 얼굴을 무성하게 덮은 털은 겨울에 따뜻하게 해주었으며 음부와 겨드랑이의 모발은 마찰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기능의 대부분이 그 중요성을 잃었다. 특히 군인들은 반드시 수염을 깎아야 하게 되었다. 구레나룻은 칼을 뽑는 동안에 상대가 움켜쥐고 늘어지기에 편리한 손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 모발은 무엇이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진피 표피 바로 밑에 있으며 피와 신경을 내포하고 있는 피부층 속에 약 0.3cm정도 묻혀 있으며 작은 모낭을 갖고 있다. 모낭이란 한마디로 모발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다. 모낭은 하루 24시간씩 근 7년 동안 놀랍고도 복잡한 업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다가 휴식과 정비를 위해 조업을 중단한다. 휴식이 끝나면 나의 모낭은 다시 시동을 걸고 생산을 재개한다. 우리 머리카락들은 잘 빠져 버리는데 새 머리카락이 나서 그 자리를 채운다. 조의 머리에서는 하루에 약 75개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조가 그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생겨난 지 2개월 째 되던 때부터 나의 모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모낭에서는 보드라운 태아의 솜털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생후 7개월이 되었을 때 조는 이 솜털을 갈았다.
조가 어렸을 때는 부드럽고 짧은 산모가 그의 온몸에 덮여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산모를 생산하던 대부분의 모낭이 조가 현재 갖고 있는, 올이 좀더 굵은 '영구'모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경우에 따라서 머릿가죽에 있는 많은 모낭이 퇴화하여 '영구'모 대신에 산모를 생산하거나 아니면 아예 모발생산을 완전히 중지해 버리는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대머리는 대개 이렇게 해서 생긴다. 남자들의 상당수가 중년이 되면 이미 대머리가 되어 있거나 되어 가고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비교적 대머리가 드물다.
조가 늙으면, 우리 모발들은 그 제조공장의 규모가 작아짐에 따라 가늘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품질도 떨어지게 된다. 조가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본다면, 그는 끝에 곤봉 모양의 모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보고 조는 다시는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한다. 그렇지는 않다. 이 모구는 단지 쉬고 있는 모낭에서 빠진 머리카락의 끝부분으로서 어차피 곧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낭의 주요 생산물은 단백질이다. 우리 털들은 거의 전적으로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모낭같이 조그만 것이 그렇게도 복잡한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의 외피는 지붕의 기와처럼 세포가 겹쳐 있다. 이 외피는 머리카락에 강도를 주고 아울러 보호도 해준다. 외피의 안쪽에 있는 중간층은 털에 부피를 주는 훨씬 통통하고 길다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팽창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어떤 조건하에서는 길이가 늘어날 수 있다. 나는 또한 놀랄 만큼 튼튼해서 약 85g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
모낭은 나의 세포들을 만들어 내고 배열해서 이와 같이 복잡한 구조를 만들면서 고운 알갱이로 이루어진 색소를 나에게 살짝 뿜어준다. 모발의 색깔은 색소 흑갈색 계통 혹은 적황색 계통 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이들 알갱이의 모양, 숫자, 분포 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각 모낭에는 피지선이 딸려 있어서 피지선이 분비하는 기름이 유연성과 방수성을 준다.
새로 생산된 모발세포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그러나 그들이 모발관을 타고 뻗어 나옴에 따라 각질화라고 하는 경화과정이 시작된다. 피부 밖에로 솟아난 부분은 이미 죽어 있다. 우리 모발들의 구성물질인 이 각질은 소의 뿔이나 오리의 깃털, 염소의 발굽에서도 볼 수 있다. 각 모낭의 생산속도는 조의 신체 부위에 따라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눈썹과 눈까풀의 모낭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쉬고 있다. 그러나 눈썹을 뽑아버리면 모낭의 활동을 자극하게 되어 면도를 한 뒤보다 더욱 왕성한 속도로 눈썹이 자라난다. 나(머리털)의 모낭은 활동적인 편에 속한다. 나의 모낭은 한 달에 약 1.3cm씩 모발을 자라게 한다. 조의 구레나룻을 생산하는 모낭은 그보다 약간 더 활동이 왕성하다. 제인은 조와 거의 비슷한 수의 모낭을 갖고 있지만 제인의 모낭의 대부분은 아주 다른 유형의 모발을 생산한다. 제인의 전신과 얼굴의 모발은 대부분이 가느다랗고 거의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든 솜털인데 이것은 조가 어렸을 4대 온몸을 덮고 있던 솜털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제인은 이와 같은 행운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되었더라면 제인에게도 수염이 나고 가슴에 털이 무성하게 됐을테니까.
우리의 모낭이 만들어 내는 모발은 곧은 것도 있고 꼬부라진 것, 곱슬곱슬한 것도 있다. 단면을 볼 때, 우리에게는 세 가지 기본 유형이 있는데, 원형, 타원형, 편평형이 그것이다. 원형은 곧은 모발의 것이고, 타원형은 꼬부라진 모발, 편평형은 곱슬곱슬한 모발의 것이다. 물론 같은 유형 안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단면이 편평하면 편평할수록 우리는 더욱 곱슬곱슬하며 둥글면 둥글수록 더욱 곧다.
조는 이제 47살, 희끗희끗한 머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색소분비선의 생산속도가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들은 생산을 전면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조의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 될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우리 모발들은 조의 신체의 기록 보관자이다. 조가 섭취한 모든 물질의 미세한 부분이 우리들 속에서 발견되는 수가 많은데 특히 금속성분이 그러하다. 조는 오늘날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해 공기가 납성분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만약 조가 그의 할아버지의 머리카락 한 개를 가지고 있다면, 그 속에는 조의 머리카락보다 몇 배 더 많은 납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조의 할아버지는 아마 연관과 납성분이 든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으로부터 납을 섭취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조의 찻잔에 비소를 살짝 집어넣었을 경우, 유능한 화학자라면 조의 모발을 검사하여 조가 비소를 먹은 시간을 48시간 이내의 오차로 알아낼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발을 병의 진단에 이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모발검사를 혈액검사나 소변검사같이 으레 하는 테스트의 하나로 넣자는 것이다. 전자현미경으로 우리를 자세히 살펴보거나 X선 분석을 하여 보면 조가 유전성 질병 또는 그 밖의 다른 질병에 걸려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우리의 건강은 전적으로 조의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좌우된다. 고열을 동반하는 질병 특히 성홍열이나 폐렴 은 일시적으로 모낭의 활동을 중단시켜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게 할 수 있다. 또한, 지극히 드문 일이지만 고조된 감정상태가 지속됨으로써 비정상으로 많은 수의 모낭이 한꺼번에 휴식에 들어가 일시적인 대머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에 관한 터무니없는 말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우리가 자라난다고 흔히들 믿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피부가 오그라들고 말라 버리면 이미 살갗 아래에 형성돼 있던 모발이 겉으로 드러나서 언뜻 보기에 꼭 모발이 자라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면도를 하면 모발의 올이 굵어지고 거칠어진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제인은 자기 다리털을 깎을 때마다 이 점을 걱정한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또 대머리는 혈액순환이 나쁘거나 햇볕을 너무 많이 쬐거나 너무 적게 쬐기 때문에 생긴다는 말도 있다. 대머리는 그런 이유 때문에 생기지 않는 다. 그것은 내가 증명할 수 있다. 조에게 받침접시만한 대머리가 생겼다고 하자. 조는 그의 목에서 8∼12올의 모발이 나 있는 식피편을 여러 개 떼어내서 대머리 부위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 이식모들은 불모의 생육지로 간주되었던 곳에서도 잘 자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머리에게는 단단한 머릿가죽이나 혈액순환 불량 이외의 어떤 이유들이 있는 것이다.
유전이 크게 작용한다. 만약 조의 아버지가 대머리였다면 조도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반반이다. 양친이 다 대머리였다면 그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선들도 조의 모발에 영향을 미친다. 사춘기가 되었을 때 조의 남성 선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에는 털이 없던 부위에서 갑자기 '영구' 모발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음부, 겨느랑이, 다리와 앞가슴 부위에 털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솜털같이 부드럽던 얼굴의 털이 거뭇거뭇해지고 거칠어졌다.
호르몬은 제인의 모발에도 영향을 준다. 임신중 제인에게서는 다량의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었다. 제인은 자기의 두발이 숱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출산 후 한두 달이 지나자 머리를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했다. 제인은 대머리가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사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지 않아 호르몬 분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머리도 빠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제인이 남성 호르몬을 과량 복용한다면 끔찍한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정상적일 때, 제인의 부신은 극소량의 남성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나 종양이 생겨 부신을 자극하여 남성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게 하면, 제인은 수염 난 여자로 서커스단의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도 한몫을 한다. 과다한 갑상선 호르몬은 모발을 지나치게 충성하게 하고, 반대로, 과소 분비되면 모발에 윤기가 없어지고 잘 빠지게 된다.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발도 고통스러운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우선 모낭을 파괴시키는 미세한 종양이 생길 수 있다. 균종 즉 백선의 침입을 받기도 한다. 어떤 약품들, 예를 들어 과다한 비타민A 의 섭취는 우리들을 빠지게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의한 병들도 있다. 한 가지 이상한 병은 원형탈모증이라는 부분적으로 대머리가 되는 병이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유전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모발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병이다. 조의 나이에는 두세 달 지나면 머리가 원래대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많다. 소위 '모발 전문가'들은 머리가 다시 살아나면 그 공을 자기네들이 차지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모발을 보호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우리 모발에는 먼지, 박테리아, 그리고 그 밖의 부스러기들이 잘 붙는다. 따라서 매주 한두 번씩 감아 주는 것이 좋다. 여름의 직사광선에 과다노출시키면 모발이 건조해지고 부서지기 쉬우며 탈색현상까지 일어나므로 스카프나 차양이 넓은 모자를 착용하여 우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이나 염소로 소독한 물에서 수영한 뒤에 헹구거나 감아주면 모발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조나 제인에게 내기 해주고 싶은 가장 좋은 충고는 그들 신체의 건간을 유지하면 나도 건간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유전적인 이유로 내가 조의 머릿가죽에서 영영 떠나야 할 때가 온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조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제인의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백발이 되면 염색을 하거나 가발업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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